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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본 학술지는 대덕교회( 이중삼 목사) 의 후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3 발간사 김형민 ( 본회 회장, 호남신대 교수) 본 학회는 2010년 5월 15 일( 토)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과학과 기독교 윤리 라는 주제로 제10 차 정기학술대회를 가졌다. 전임회장이신 김영일 교 수님( 전 협성대) 께서 개회예배 설교( 합리화의 비합리화: 창 11:1~9) 를 맡 아주셨고 양재섭 교수님( 대구대) 께서 과학과 기독교의 윤리적 동행 이라 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해주셨다. 임성빈 교수님( 장신대) 의 사회로 진행 된 오전 강연에서 신재식 교수님( 호남신대) 은 다윈과 다윈주의 진화론이 갖는 복잡한 윤리담론을 비교적 평이한 글을 풀어주셨고, 김기석 교수님 ( 성공회대) 은 현대 우주론의 패러다임이 갖는 종교적이며 윤리적 함축성을 과학의 역사를 통해 밝혀주셨다. 오주연 교수님( 연세대) 의 사회로 진행된 오후 강연에서 박우영 교수님( 협성대) 은 성례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근거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 속에 숨겨진 윤리적 함의를 보여주셨고 구미 정 교수님( 숭실대) 은 영화 아바타 에 나오는 그레이스 어거스틴(Grace Augustine)의 과학행위를 통해 페미니스트 과학의 가능성을 화려한 문체 로 기술해주셨다. 이번 학회를 개최하면서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기독교윤리 학회가 처음 연차대회를 가진 것은 2000년 5 월이었다. 당시 학회 회장이 셨던 김철영 교수님( 장신대) 과 부회장이셨던 김영일 교수님( 협성대) 은 학 회의 재정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기독교윤리학회의 정기학술대 회를 적극 추진하셨고 본인은 학회 총무로서 잔심부름을 맡았다. 그 이후 로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학회도 꾸준히 성장해 본 학회에 가입한 회원 수만도 100 명에 이른다. 또한 우리 모두가 기뻐하는 일은 본회의 전 회장 이셨던 유석성 교수님께서 서울신학대학교 제16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취 임하신 일이다. 학회를 대표해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이번 학술지의 발간과 함께 임원들의 임기도 끝난다. 방학을 제외하고 학기 중에는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깊은 학술토론을 벌이며 신앙

4 적이며 학술적인 친교를 다지었다. 박충구 교수님( 감신대) 께서 교통이 좋 은 감리교신학대학 안에 편안한 장소를 마련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회기 중점사업은 본 학회의 학술지를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임원들이 힘을 모았고 지난 2년 동안 매 해 두 번씩 학회지를 발간하였다. 학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 염려해주신 모든 회원들과 수고해주신 임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본 학회가 한국교회와 사회의 올바른 윤리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재정적 지 원을 아끼지 않으신 목사님들에게도 임기를 마감하며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5 차례 발간사 3 특집논문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신재식 9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 과학과 종교의 상호관계에서 본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과 윤리신학적 함축성에 관한 일 고찰 김기석 42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찾아서 - 성례주의적 사고와 실천 박우영 69 < 아바타> 의 그레이스 어거스틴의 과학하기 구미정 95 일반논문 솔즈베리,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다시 고향 만들기 백소영 131 탈식민주의 비평 담론과 관련된 다른 담론들 장종식 177 책임사회 구상의 발전과 그 현대적 적용 최경석 211 논문투고 안내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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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특집논문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신재식 호남신대 교수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 과학과 종교의 상호관계에서 본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과 윤리신학적 함축성에 관한 일 고찰 김기석 성공회대 교수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찾아서 - 성례주의적 사고와 실천 박우영 협성대 교수 < 아바타> 의 그레이스 어거스틴의 과학하기 구미정 숭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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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9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신재식 ( 호남신대 교수) 1. 들어가는 말: 다윈 혁명 이후의 윤리 다윈의 종의 기원 이 1859 년에 출판된 이래, 지난 150년 동안 진화 론적 사유는 다양한 분야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은 생물학 이나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사회과학과 인문학, 예술을 비롯한 지식과 문화의 전 영역을 쓰나미처럼 덮친 것이다. 1) 종교나 윤리, 도덕도 예외가 아니었다. 진화론이 가져 온 이런 변화를 우리는 다윈 혁명 2) 이라고 부르 며, 그 혁명의 우산 아래서 다윈의 시대를 살고 있다! 3) 다윈의 종의 기원 과 인간의 유래 이래 진화론적 관점에서 문화현 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등으로 계승 발전된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자연과는 구별되는 현상으로 간주했던 문화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반응을 초래하고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도덕성도 그런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주제이다. 도덕 성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행동주의자들은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 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다 학습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 1) 다윈 혁명이 가져온 사회과학, 인문학, 문화, 예술 등에 끼친 영향에 대한 간략한 논의는, 최재천 외, 21세기 다윈 혁명 ( 사이언스북스, 2009) 을 참고하라. 2) 예를 들면, Michael Ruse, The Darwinian Revolu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3) 마이클 셔머, 왜 다윈이 중요한가,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2008), 26.

10 10 과학과 기독교윤리 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상당 부분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믿는 다. 윤리나 도덕에 관련해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진화생물학자들과 전통 윤리학자들이 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진화에 관한 연구가 인간의 윤리나 도덕성의 기원에 대해 새 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확고한 윤리적 규범까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 특히 진화생물학이 구체적인 윤리규범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란에서 필자는,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 해 진화론적 측면까지 고려하는, 진화생물학에 기반 한 윤리담론이 인간 본성이나 문화의 생물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담론보다 본질적으로 더 일관성이 있고 적절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진화론적 지식은 구체적 인 윤리적 실천에서, 예를 들어 생태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윤리적 실천 대안 가운데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높일 것이라 고 본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다윈과 다윈주의 진화론의 윤리 담론을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4) 다윈이나 다윈주의가 윤리나 도덕성을 어떻게 설명했 으며, 그것들이 윤리 담론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다윈 이후 진화론의 발전과정에서 윤리나 도덕을 어떻게 설명하고, 진화 와 이것들 사이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진화론이 도덕이나 윤리 이 해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는 이 논의 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절에서는 다윈 자신이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 4) 진화론이나 신다윈주의 담론이 갖고 있는 규범윤리학이나 메타윤리학과 관계 등을 명시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윤리학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조직신학자인 필자의 능력으로는 다소 버거운 작업이다.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는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김성한, 진화론과 윤리, 철학과 현실, 제81 호(2009, 여 름), 56~ 66, 정상모, 진화론적 이타주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최재천 외 ( 산지니, 2008) 123~ 158, 이을상, 다윈주의 윤리학, 사회생물학, 인간 의 본성을 말하다, 161~ 191 등의 다양한 논의가 이미 개진되어 있다.

11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11 가를 검토한다. 제3 절에서는 다윈 이후 발전된 다윈주의, 특히 사회생물학 과 진화심리학의 논의에서 윤리의 핵심이 되는 이타주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며, 진화론적 사실에서 당위적인 윤리로 어떻게 이행해 가는가를 다룬다. 제4 절은 결론으로서 다윈주의 윤리 담론이 의미를 제시한다. 이런 논의를 전개하면서 필자는 윤리의 기원과 내용, 전개 과정에 대 한 진화론적 설명은 윤리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 준다고 확신한다. 생물학 적 접근방식을 간과한 인간이해나 문화이해에 근거한 윤리, 특히 기독교 윤리 담론의 적실성을 진화론적 입장에서 다시 검토해 보는 것이 중요하 다고 판단한다. 2. 다윈의 도덕 담론 1) 다윈의 진화론적 도덕 보기 다윈의 윤리 담론은 다윈이 도덕이나 윤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 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적 윤리 담 론을 전개하는 과정을 다윈의 인간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다윈의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가 그의 윤리나 도덕 담론과 직결되기 때문이 다. 다윈은 진화론적 도식 안에서 인간을 자리매김하는 데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종의 기원 에서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진화론이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해서 빛을 던질 것 이라고만 언급했다. 그렇지만 원래 집필 계획은 종의 기원 6장 의 한 절을 인간의 진화 문제를 다루는데 할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한 자료도 수집했지만,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 주제가 지닌 폭발력 을 생각해서 인간 진화에 대한 논의를 생략했다. 5) 다윈은 인간 진화에 대 5) 다윈의 종의 기원 의 저술과정에 대해서는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제임스 무어, 다 윈 평전: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 김명주 옮김 ( 뿌리와 이파리, 2009) 의 30

12 12 과학과 기독교윤리 한 자신의 관점을 담은 인간의 유래 를 1871 년에 출판했다. 6) 다윈의 진화론적 인간 이해는 종의 기원 보다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 었다. 그것은 이와 유사한 견해가 인간의 유래 출간 이전에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7) 종의 기원 이 출판된 뒤 여러 사 상가들은 생존경쟁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시켰다. 이 들은 인간의 진화와 사회의 진화, 전쟁, 종족의 융성과 멸망을 힘 있는 부족이나 국가가 약한 부족이나 국가를 멸망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설 명했다. 다윈은 이를 꼼꼼하게 읽고 소화해서 이중 많은 내용을 인간의 유래 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다윈이 인간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 지만, 그의 생각은 초기부터 분명했다. 종의 기원 과 인간의 유래 에 제시된 기본적인 지식 체계는 1838년에 이미 다윈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윈이 1837년부터 1839 년까지 기록한 B 노트, C 노트, D 노트, E 노트 에는 진화에 대한 전반적으로 논의가, M 노트 와 N 노 트 는 인간, 정신, 유물론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 8) 다윈이 자연선택의 원리를 선언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려는 첫 시도는 N 노트 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C 노트 앞부 분에는 다윈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해서 인간의 기원과 동물의 기원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9) 고 단 언한다. 이런 초기의 확신은 인간의 유래 1부에서 여러 생물들의 형태 와 행동을 비교 분석하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 장~ 33 장을 참고하라. 6)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1, 2, 김관선 옮김 ( 한길사, 2006). 이하 인간의 유래 라고 표기한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논의는 에른스트 마이어, 진화란 무엇인가,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2008), 제4 부 인간진화, 453~ 515 을 참고하라. 7) 1863년에 헉슬리는 다윈보다 먼저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Man's Place in Nature) 에서 인간의 조상이 유인원이라고 주장했다. 8) 다윈의 노트북에 관해서는 Paul H. Barrett, Peter J. Gautrey, Sandra Herbert, David Kohn, and Sydney Smith, eds., Charles Darwin's Notebooks, 1836~1844, (Cornell University Press, 1987) 에 실린 서문과 서론을 참고하라. 9) 다윈, 인간의 유래, 14.

13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13 며 이들이 보이는 차이는 단지 정도의 문제라는 것을 주장으로 보다 구체 화되었다. 이렇게 진화론에 의한 새로운 인간 이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종교 가 관련된 도덕 문제로 확장된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 에서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알렉산더 베인 등 영국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의 기본사상 을 수용하면서 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은 도덕적 분별력이 인간 본성 안에 주어져 있 다고 보았다. 다윈은 여기에서 다시 인간 본성 안에 있는 도덕적 능력을 진화론에 입각해서 설명한다. 그는 도덕성이 인간 이성에 선천적으로 주 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도덕의 기원 역 시 자연선택이론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윈 이전에는 인간 도덕성의 근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신이 주신 것이다. 였다. 다윈은 당시 서구에서 제 기되던, 도덕성의 본질이 무엇인가?, 어떤 도덕성이 인류에게 가장 타당 한가? 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기존의 결론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가 도전 한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신에게서 부여받는 것이라는 주장이었으며, 그 가 견해는 이런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윈이 이 주장을 위해 제시한 진화론적 논거는 무엇인가? 개괄적으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공통유래이론이다. 다윈은 이를 가지 고 그동안 유일신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자연에서 인간 의 독보적 위치를 박탈했다. 둘째는 자연선택이론 이다. 다윈은 이 이론을 통해 자연현상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제거했으며, 은연중에 인간의 도 덕성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이 전부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의 율법에 따라 움직인다는 자연신학 의 가정들을 반박했다. 이렇게 공통유래이론 과 자연선택이론 을 통해, 다윈은 도덕성에 대한 설명을 초자연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바꿨다. 물론 다윈도 인간의 도덕성에 관련해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충 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은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공동의 동물 조상을 지녔기 때문에, 이 차이 역시 진화 관점에서 설명되어야만 한다고

14 14 과학과 기독교윤리 주장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불연속적인 차이를 주장하는 ' 도약' 개념 대신 점진주의를 확신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심지어는 인간의 도덕성조 차도 점진적으로 진화했다고 보았다. 실제로 다윈은 인간이 유인원 계통 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후 오랜 시간이 흘렀으며, 그 기간은 인간의 윤리 개념이 여러 중간단계들을 거쳐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 고 믿었다. 이제 인간의 마음과 도덕성이라는 마지막 성채를 향해 다윈이 인간의 유래 에서 제기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2) 다윈의 도덕 담론 우선 다윈의 윤리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 다윈은 원래 어떤 윤리적 전 통에 서 있었는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이를 통해 다윈의 진화론적 윤리와 당시대 윤리의 차이와 관련성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이론을 주장하기 전에, 자연선택과 조화되기 어려운 당시대의 윤리관을 상당 부분 공유했다. 다윈 집안의 전통은 밀의 공리주 의 윤리였다. 다윈 가문은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적이었지만 친가나 외가 모두 보편적인 공감을 이상으로 삼았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 윈(Erasmus Darwin) 은 최대 행복의 원리 에 대해 책을 썼다. 외할아버지 조사이어 웨지우드는 노예제도를 앞장서서 반대했으며, 다윈도 이런 전통 을 이어받아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흑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10) 그런 다윈이 진화론을 확신하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윤리와 ' 자연신 학' 전통이 자연선택이 함축하는 가치들과 얼마나 충돌하는지를 알게 되었 다. 그는 조화와 균형과 합리성으로 가득한 자연신학의 세계관 대신, 고통 과 우연과 경쟁으로 가득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11) 10)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박영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2003), ) 1860 년 다윈은 그레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나는 남들이 보는 만큼,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설계의 증거와 우리 주위의 은혜를 명확히 볼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너무도 많은 고통이 세계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자비 심이 많고 전능한 신이 살아있는 쐐기벌레의 몸에서 먹이를 구하도록 기생하는 말 벌들을 고의로 창조했다거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 을 수 없습니다." Francis Darwin, ed.,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15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15 전능한 신 에 대한 회의는 다윈으로 하여금 윤리 규범의 근원을 기독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게 했다. 다윈은 유신론적 윤리 규범이 아닌 자연주 의적 윤리 규범을 모색한 것이다. 그 모색의 출발점이 도덕적 담화에 대 한 근본적인 지침들이 쾌락과 고통이라고 주장했던 공리주의였다. 다윈은 밀과 유사하게 자연계의 고통을 거의 같은 관점에서 보았고, 해결책도 거 의 같은 관점에서 찾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신이 없는 우주에서 도덕적 인 지침을 찾아낼 합당한 장소는 공리주의 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다윈은 도덕 지침으로서 공리주의의 위상에 대해 밀과 다른 입장을 지녔다. 다윈은 당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론 이 우세하다고 말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은 행동의 동기가 아닌 행동의 기준으로 언급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므로 절대 다수의 행복론 은 이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안내자이자 목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본능은 공감( 우리 는 이로써 다른 사람의 동의나 비동의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과 함께 일 차적인 충동이자 안내자로서 기여한다. 고 말한다. 12) 밀의 공리주의와 다윈의 공리주의 차이를 보면, 밀은 사회적 감정인 공리주의 를 강력한 자연적 정서 이자 공리주의자의 도덕을 위한 자연적 정서의 기반으로 보았다. 이와 달리 다윈은 사회적 감정 이 하등동물이나 사람들에게 모두 본능적이거나 생득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에게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 일차적이며, 공리주의는 사회적 본능에 따른 이차적인 결 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밀에게 공리주의는 가장 자연적이고 일차적이 고 근원적이지만, 다윈에게 공리주의는 사회적 본능에 따른 부산물로 이 차적인 것이다. 즉 다윈에게 공리주의는 기능을 설명할 수 있지만, 기원 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다윈은 도덕성의 뿌리에서, 여타 인간의 속성보 다 더 오래되고 인간의 진화로 인해 더욱 풍부해진, 사회적 본능을 본 것 이다. 그렇다면 다윈은 도덕성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Johnson Reprint Co., 1969), vol.2, ) 다윈, 인간의 유래, 199.

16 16 과학과 기독교윤리 설명하는가? 도덕이나 윤리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진화에 관한 논의 가운 데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주제였다. 인간이 자신들과 아무런 친분이 없는, 심지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연민을 느낀다. 그 이 유는 무엇일까? 왜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걸인 앞을 지날 때 양심의 불편을 느끼는가? 다윈은 도덕성이나 윤리에 대한 논의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명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다윈은 인간의 유 래 에서 윤리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고, 도덕성의 기능과 기원 에 대해서 언급한다. 다윈이 도덕성에 진화론적 잣대를 적용하려고 할 때 봉착하는 큰 문 제는 도덕 기준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윈은 도덕 기준의 다양성에 대한 이유를 다양한 다른 역사적 경험으로 돌리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도덕 규칙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규범들은 각기 공동체에 이익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윈은 영국이나 유럽과 미개 사회의 다른 도덕 규칙을 비교하고 판단한 다. 그런데 다윈이 도덕 발전을 판단하는 기준은 영국이나 유럽이다. 이 것은 그가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와 진보 신념에서 완전히 자 유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다윈은 이 렇게 서로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된 다른 도덕 관습들이 인간의 공통 본성 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모든 다양한 도덕성은 동일한 사회 적 본능에서 나온 다른 결과적 규칙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의 구조에 근거한 것이며, 이 것이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발아한 것이 다양한 도덕 규칙인 것이다. 그렇 다면 인간의 보편 본성에 근거한 도덕 규칙은 불변하는 것인가? 진화론자 인 다윈의 대답은, 아니오! 이다. 다윈은 도덕 규칙이 발전 성숙한다는 입 장을, 강하게 단언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지니고 있다. 다윈은 높은 규칙 과 낮은 규칙이 서로 구별되며, 그것은 경험과 수련을 통해서 성숙될 수 있다고 보았다. 13) 결국 도덕 규칙은 일부 사람들이 특정 덕목을 높이 평 13) 인간은 높은 규칙과 낮은 도덕 규칙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높은 도덕 규칙은 사 회적 본능에서 나타나면 타인의 복지와 관련되어 있다. 이 규칙은 동료의 동의와

17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17 가하고 실천하고, 이것은 교육과 실례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퍼지게 되어 결국에는 대중적인 견해로 유입된 것이며, 도덕 문화의 가장 높은 단계까 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14)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도덕성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진행된다. 인 간은 사회적 본능을 천부적으로 부여받았으며, 부모와 자식 간에 애정이 있는 동물이라면 그들의 지적 능력이 인간과 거의 동일할 정도로 발달하 자마자 도덕성과 양심을 필연적으로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다윈이 밝히는 이유는 네 가지이다. 15) 첫째, 사회적 본능 때문에 동물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동료들과 어느 정도 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봉 사는 명확하고 분명한 본능일 것이다. 둘째, 정신 능력이 크게 발달하자마 자 과거의 모든 행동과 동기에 대한 이미지가 각 개체의 두뇌를 통해 끊 임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셋째, 언어 능력이 갖추어져 자신들의 소망을 표 현할 수 있게 된 후, 각각의 구성원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 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견해가 자연스럽게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공감은 사회적 본능의 핵심을 이루며 그 초석이 된다. 16) 마지막 으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습성은 궁극적으로 각 구성원의 행동 지침으 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본능이나 공감은 이성으로 지지된다. 낮은 도덕 규칙은, 물론 자기희생이 따르는 경우 그것을 낮은 도덕 규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을 사실이지만, 미개한 부족에서 이 러한 도덕 규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주로 자기 자신과 관련되어 있고 대중의 견해에서 생겨나 경험과 수련을 통해 성숙된다.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168~ ) 다윈은 많은 동물들이 고통과 위험에 대해서 함께 느끼는 ' 공감' 을 강조한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을 인용한다. 모든 동물에게 공감이란 함께 생활하는 집단으로 구성원들에게로만 향하며 그에 따라 구면이면 어느 정도 애정을 품는 대 상에게로만 향한다. 이 공감은 습성으로 더욱 강화된다. 공감이 아무리 복합적인 방식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서로 돕고 지켜주는 동물에게 공감이란 매우 중요한 것 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통해 공감이 증가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감이 잘 형성 된 구성원이 많은 집단일수록 잘 번성할 뿐만 아니라 많은 후손을 낳아 키울 것이 기 때문이다. 다윈, 인간의 유래, 179~180.

18 18 과학과 기독교윤리 다른 본능과 마찬가지로 습관으로 크게 강화되었고 그 결과 집단의 소망 과 판단을 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인간이 하등동물과 마찬가지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본능을 획득했다고 여긴다. 이런 사회적 본능 때문에 인간은 처음부터 자신의 동료를 돕고 싶은 소망, 즉 얼마간의 공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동료들이 자신에 대해 동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신경을 쓰 게 된 것이다. 이런 충동에 따라 인간은 아주 먼 옛날에 이미 옮고 그 름 같은 선악의 규칙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점진적으로 발달되고 자기 행동이 미래에 미칠 결과까지 생각할 수 있 게 되었다. 또 인간은 유해한 풍습이나 미신을 배척할 정도의 충분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동료의 복지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도 점점 더 고려하게 되었다. 또 유익한 경험과 교육과 모범을 따르는 습성에서 인간의 공감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모든 인종, 바보, 불구자, 쓸모없는 사회 구성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등동물에까지 널리 확산 되었을 것이다. 17) 그런데 다윈은 도덕성의 기원에 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종교적 믿음뿐만 아니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행동 규칙이 어떻게 생겨났 는지 알지 못하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다윈은 종교 신념이나 도덕성이 인 간의 마음속에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초기 생명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입된 믿음이 거의 본능으로 변했다고 보 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힌다. 그는 또한 이렇게 생겨난 본능의 핵심은 그것이 이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18) 이렇게 다윈은 도 덕이나 윤리는 거의 본능으로 형성된 것으로 자연적인 기원을 가진 것이 며, 이성적이거나 초월적인 기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 다. 종교에 관련해서도, 다윈은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원래 17)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201.

19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19 부터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단언한다. 19) 그가 명확하게 설 명하지 못한 도덕이나 윤리의 기원은 20세기 들어서 진화심리학이나 사회 생물학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설명은 진화심리학의 논의의 핵심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물론 다윈은 인간의 도덕성이 진화과정의 산물이지만, 인간과 다른 동 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다윈은 인간과 하등동물의 차이점 중 에서 도덕성과 양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시대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도덕성을 인간의 속성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으로 간주한다. 20) 그는 동물 에 비해 인간이 지닌 엄청난 탁월성은 지적 능력과 사회적 습성에서 비롯 한 것이며, 이 두 요인 때문에 동료들끼리 서로 돕고 지켜주는 행동이 생 겨난 것으로 본다. 다윈은 동물과 인간의 이런 차이는 인간의 뇌의 크기 와 이로 인한 지적 능력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21) 다윈 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빠른 진보를 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이것은 아마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고 획득 한 지식을 물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2) 이렇게 다윈은 언어가 지적 능력을 통해 진화된 것으로 인간의 진보의 열쇠가 판 단한다. 23) 하지만 다윈에게 인간과 고등동물 사이에서 보이는 정신 능력의 차이 는 그것이 아무리 클지라도 정도의 문제지 결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19) 종교와 관련해서 다윈은, 그렇지만 ' 종교' 라는 용어에 영적인 힘을 포함시키면 덜 개화된 인종에게서도 이런 믿음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다. 종교에 대한 다윈의 견해는 주로 에드워드 타일러 등 당시 인류학자들의 현지 보고에 힘입어 형성되었다. 그는 당시의 종교 진화론적 설명인 주물숭배, 다신론, 유일신 사상으로 종교가 발전했다는 입장을 수용한다. 다윈, 인간의 유래, 162~ )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은 뇌가 여러 가지 정신 능력이 점차 발달하면서 커졌을 것이며, 고릴라나 오 랑우탄보다 큰 인간의 두뇌는 높은 정신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언 급한다.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101.

20 20 과학과 기독교윤리 사실은 명백했다. 다윈에 따르면, 인간이 자랑하는 감각과 직관, 사랑, 기 억, 주의력, 호기심, 모방, 사고력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과 능력은 하 등동물에게서도 미흡하나마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정신 능력이 모 든 하등동물이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유래 제3장에서 인간과 고등한 포유류 사이의 지능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한다. 그렇다면 다윈이 말하는 도덕성이 선택되는 진화의 단위는 무엇인가? 다윈의 도덕감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는 집단선택설 이다. 도덕은 개인 이 나 인류라는 종 전체가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 기능하고 선택된다는 것 이 다윈의 입장이다. 다윈은 도덕성이 사회적 본능에서 기인한 것으로 중 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정신 능력이 주로 집단 이익을 위해서 획득되었으며 개인은 그것으로 간접적인 이익을 얻는 다고 보았다. 24) 인간의 도덕적 의미, 법과 불법에 대한 감정이나 양심은 동정심이라는 본능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도덕은 개인의 행복추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복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미개인들이 그들의 행동을 선이나 악으로 나누는 기준은 부족 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인류라는 종 전체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부족을 이루는 각 구성원의 복지에 미 치는 영향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이 보기에 도덕의 집단선택 설이라는 결론은 도덕감이라는 것이 사회적 본능에서 처음 유래되었다는 믿음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초기에는 개인이 아닌 집단에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집단주의적 입장을 이렇게 밝힌다. 도덕성의 기준이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 종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서 더 큰 장점을 지니게 될 것이다. 애국심이 높고 정절, 순종, 용기, 동정심의 미덕을 두루 갖추어 늘 서로를 도우 며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성원이 많을수록 그 종족은 필경 다른 종족보다 우월한 위치에 설 것이다. 이것이 자연 24) 다윈, 인간의 유래, 120.

21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21 선택이다. 25) 이상에서 살펴본 다윈의 도덕 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다윈은 인간 의 유래 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회적 본능 으로서 인간의 동정심 이나 도덕, 윤리, 책임 의식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 은 동물의 사회적 본능과 다른 것으로 오직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독특 한 능력이다. 인간은 진화의 결과로 협동 능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윤 리를 발전시키는데, 이렇게 생긴 도덕성과 윤리적 태도가 약자를 배려하 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국 다윈 작업은 인간이 갖는 도덕 구조의 으뜸 원리인 사회적 본능이 활발한 지적 능력과 습성 효과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럽게 황금률로 이끌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남들이 그대들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 라. 이것이 다윈이 말하는 도덕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26) 진화론적 관점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다윈 이래 150년 동안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다. 비록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 자체의 적실성 여부가 논쟁 중이지만, 또한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다윈의 집단선택설의 관점이 진화생물학 진영 내부에서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다윈이 도덕성에 대해 제시한 설명은 어떤 의미에서 모범적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 지금의 진화심리학 방법이 여전히 적용하고 있는 유효한 패러다임을 세운 것이다. 이제 다윈의 도덕담론을 계승한 다윈주의의 윤 리담론으로 넘어가보자. 3. 다윈주의의 윤리 담론 다윈주의라는 용어는 1864 년에 헉슬리가 다윈의 생각을 다윈주 25) 다윈, 인간의 유래, ) 다윈, 인간의 유래, 207.

22 22 과학과 기독교윤리 의 (Darwinism) 라고 부르고, 1889년 월리스가 다윈주의 라는 책을 출판 하면서 일반화되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어느 누구도 다윈주의 라는 용어 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27) 여기에서는 다윈주의는 다윈 진화 론을 배경으로 생명 현상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라는 포괄적 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도덕이나 윤리와 관련해서 그 기원과 확산을 다루 는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등의 논의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최근 도덕성을 진화론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은 언급한 분야 이외에도 심 리학, 인지과학, 신경생리학 등의 분야가 발전하면서 더욱 확장 중이다. 이들은 다윈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진화론적 관점에서 도덕성의 기원과 확장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도덕성에 대해 다윈주의는 대략 이런 방식으로 설명한다. 사람들 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덕적 판단 들, 적어도 우리가 진화한 환경 속에서 퍼져 나간 판단들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도덕규범은 유전자가 자기 이익을 두고 경쟁하는 와 중에서 비공식적으로 타협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고, 유전자는 도덕률을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게끔 그 지렛대를 자기 쪽으로 돌려놓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28) 그렇다면 이런 도덕규범을 만들어 낸 마음의 구조부터 살펴보 자. 1) 진화심리학이 본 마음의 적응 진화심리학은 인간심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현대 진화생물 학의 관점에서 마음의 적응적 설계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 마지막에, 먼 훗날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연구 분야가 열리리 27) 1859년 이후 한동안 다윈주의는 생물계를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의미였 다. 이 맥락에서 다윈주의는 세계가 불변한다거나, 비교적 최근에 창조되었다거나, 끊임없이 윤회한다는 전통적 세계관과 구별되는 세계관이며, 세계는 그 자체가 지 속적으로 변화하여 유기체 역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한다는 믿음을 함축하고 있다. ' 다윈주의' 라는 용어와 개념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에른스트 마이어, 진화론 논쟁, 신현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1998) 의 7 장 ' 다윈주의'(121~ 141 쪽) 를 참고하라. 28)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226~227.

23 다. 29) 진화심리학은 다윈의 유지를 이어받아 인간 본성이 생물학적인 요인에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23 라고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에 서게 될 것이다. 라는 대담한 예언을 남겼다. 그는 1872년 인간의 감정을 진화적 관점에서 면밀하게 분석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이라는 저서를 출판하면서 최초의 진화심리학자 가 되었다. 오늘날의 진화심리학은 다윈 문제의식의 새로운 판본인 셈이 의해 규정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접근의 반대편에는 전통 인문학자나 사 회과학자가 있다. 이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몇 가지 공통된 입장을 취 하는데, 이것을 핑커는 빈 서판(tabula rasa) 학설로, 투비와 커스미디즈는 표준 사회과학모델 (standard social science model) 로 부른다. 30) 이 모델 의 핵심 전제는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텅 빈 백지 상태라는 가정 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모든 실질적인 내용은 바깥 에서, 즉 외부의 개별적인 사회적 환경이나 문화에서 유래한다. 인간에게 선천 적인 심리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입력되는 정보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동일한 속도와 효율로 작업을 수행하는 영역 일반적인 심리 메커니즘만이 유일하게 존재할 뿐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이를 합리성 이나 이성 이라 부르고, 심리학자나 인류학자는 학습 이나 지능 또는 문화습득능력 이라 불렀다. 베토벤 음악을 듣거나, 사랑에 빠진 얼굴 표정을 알아차리거 나, 곰팡이가 핀 식빵을 불쾌해 하는 등 우리 마음이 수없이 다양한 영역 의 일을 수행할 때, 이를 가능케 하는 심리 메커니즘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인간의 심 리와 행동은 오직 외부의 사회구조나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밝힐 수 있다. 29)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투비와 커스미디즈(Tooby J. & Cosmides, L.) 의 "Conceptual Found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 in D. M. Buss, ed.,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 (Wiley, 2005), pp. 5~ 67 와, 버스(Buss, D. M.) 의 Evolutionary Psychology: the New Science of the Mind 3rd. ed., (Allyn & Bacon, 2007) 를, 국내 출판물로는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 는가, 김한영 옮김 ( 소소, 2007) 과 빈서판,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2004), 메들리, 도덕적 동물 과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 ( 뿌리와 이파리, 2009) 을, 입문용으로는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 사이언스북스, 2010) 을 참고하라. 30) 이 전통에 관해서는 스티븐 핑커, 빈서판 1 장 공식이론을 참고하라.

24 24 과학과 기독교윤리 여기에 진화론이나 자연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이런 주장과 달리, 진화심리학은 적응주의 프로그램을 인간의 마음에 적용하여 마음이 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 다. 31)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 그 자체보다는, 외부의 어떤 자극에 대 해 과거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적응적 행동을 취하 게 해주는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는다. 약 1천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되는 인간의 두뇌는 환경으로부터 입력된 정보 를 처리하여 행동을 구현하는 기능을 한다.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를 처리 하여 적응적인 행동을 산출한다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선택을 우 리 마음속에 다수의 심리적 적응, 혹은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을 장착시 킨다. 일시적 행동 그 자체가 자연선택에 의해 직접 설계되는 것이 아니 라, 특정한 자극과 특정 행동을 짝지어 주는 심리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 바라 본 인간의 마음은 우리 진화적 조상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부딪혔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 택이 설계해낸 수많은 심리 메커니즘들의 묶음이다. 이렇게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의 중요한 특성을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리의 마음에는 각각의 적응적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다양한 심리 메커니즘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한다. 인류의 조상들이 수백 만 년 동안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생활을 하면서 풀어야 했던 적응적 문제들은 수없이 많았다. 무서운 포식자를 피하기,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매력적인 이성 고르기, 신선한 음식 구하기, 안전한 거처에 31) 다윈 이론에 기반 한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어떤 복잡한 형질 x 에 대해 " 형질 x의 기능은 무엇인가?" 즉 그 형질을 만든 유전자가 다른 형질을 만든 경쟁 유전자에 비해 과거의 환경에서 어떤 선택적 이점을 누렸을지 질문함으로써 x를 더 깊이 이 해하려는 방법론이다. 심장의 각 부분은 피를 몸에 보낸다는 심장의 기능을 잘 수 행하게끔 설계되어 있음을 이해하며, 심장 판막의 독특한 구조는 우연히 그렇게 생 긴 것이 아니라 혈액의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구조는 기능을 반영하다는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수백 년 동안 생리학, 해부학, 형태학, 생 화학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이끌었다. 전중환, " 진화심리학," 철학과 현실 제81 호(2009, 여름), 72.

25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25 서 지내기, 자식을 잘 키우기,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기, 배우자의 바람기 다스리기, 외적의 침입 막기, 윗사람과 좋은 관계 유지하기 등은 그 가운 데 극히 일부 사례이다. 이런 전문적인 문제는 전문적인 해결책을 요구한 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우리 마음속에 아주 많은 수의 영역 특이적 (domain-specific) 인 심리적 적응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마음은 여러 가지 상황에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도구 ( 병따개, 칼, 드라이버, 전선 피복 벗기개, 플라이어, 망치, 톱, 깡통따개, 코르크마개따개, 송곳, 가위, 핀셋 등등) 들이 포함된 맥가이버칼이나 스위 스 군용칼에 비유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는 유일한 심 리 메커니즘은 학습이나 지능 같은 영역 일반적인(domain-general) 심리 메커니즘이라는 빈 서판이나 표준 사회과학 모델의 관점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은 영역 특이적인 심리 메커니즘들을 수없이 많이 지니고 태어나며, 이 덕분에 우리 조상들이 겪어 왔던 여러 가지 적 응적 문제들을 융통성 있게 해결해냈다고 주장한다. 둘째, 우리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의 수렵채집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해왔기에, 농경사회나 현대산업사회에서도 반드시 생존과 번식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심리적 적응이 출현 하려면 그만큼 복잡한 신경 구조가 적어도 수천 세대에서 수만 세대에 걸 쳐 진화해야 한다. 인류의 조상은 침팬지 가계와 약 7백만 년 전에 갈라 진 이후에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생활 을 하면서 보냈다. 약 11,000전에 시작된 농경사회나 200년도 채 되지 않 은 현대산업사회는 우리의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기 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현대적인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 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외부의 입력 자극 에서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 을 거쳐, 출력된 행동으로 이어지는 정보처리과정에서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 이 보 편적임을 강조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최종 결과물인 행동이 반드시 모든 문화에서 동일하게 나타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보편적인 심리 메커니즘 이 다른 환경이나 생태 조건에 노출되면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물을

26 26 과학과 기독교윤리 산출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종교나 도덕을 비롯한 여러 활동들이 진화과정에서 마음이 만들어 낸 인지 적응의 산물 이라고 주장한다. 2) 사회생물학과 도덕성 사회생물학은 윌슨이 1975년에 사회생물학 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으 로 등장한 학문분야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을 모든 사회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으로 정의한다. 32) 그는 사회적 본 능과 사유능력을 갖추면서 도덕규범이 시작되었다는 다윈의 주장을 더 구 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사회생물학 첫머리에서 철학자 나 인문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윤리에 관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격적으 로 논의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생물학을 이용해 도덕성을 모 든 차원에서 남김없이 설명하겠다는 그는, 윤리에 대한 생물학적 논의를 유전자 차원까지 확대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본성, 감정, 동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도 다윈처럼 본성과 관련해서 인간과 동물 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33) 그렇다면 사회생물학적 탐구가 말하는 도덕성의 본성은 무엇인가? 다 윈과 마찬가지로 이타성이다.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도덕성에 관해 논의할 때, 제일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자연선택이 이타주의의 진화에 기여했는 가 하는 문제이다. 다윈 자신도 많은 진사회성 곤충 종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자기희생적 행동이 자연선택이론을 위협하는 사례가 될까 우려 했다. 이렇게 자연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주의적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체들로부터 어떻게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 32)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이병훈, 박시룡 옮김 ( 민음사, 1992), ) 사회생물학 논의 자체와,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는 종교나 윤리, 도덕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비판적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프란 츠 부케티츠, 사회생물학 논쟁, 김영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1999); 피터 싱어, 사회생물학과 윤리, 김성한 옮김 ( 인간사랑, 1999); 민주주의 사회 연구소편, 사 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 산지니, 2007) 등을 참고하라.

27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27 나는가 하는 것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다. 왜냐하면 이타주의는 개체의 적응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선택의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다. 이타적 개체와 이기적 개체가 공존하는 집단에서는 이타적 개체가 점 차 도태될 것이고 결국에는 소멸될 것이다. 그런데 자연계에는 많은 이타 적 동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타주의는 소멸된 것이 아니고 선택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역설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과연 이타주의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타주의인가? 그리고 일 상적 혹은 윤리적 이타주의의 생물학적 존립 근거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 에 대해 윌슨을 비롯한 일군의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적 태도를 자연선택 이론에 따라 설명하면서, 이타적 행위의 역할과 기능의 측면에 서는 도덕 현상을 유전자의 표현형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은 자 연선택과 적응도라는 생물학적 원칙에 따라 도덕성, 즉 이타주의를 설명 한다. 34) 그렇다면 진화론에서 말하는 이타주의라 무엇인가? 도덕이나 윤리에서 다루는 일상적 의미의 이타주의란, 동정심에서건, 선의지에서건, 또는 복 지 총량의 극대화를 위해서건, 타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행 동한다는 동기나 의도와 같은 분명한 심리적 동인이 있다. 이에 비해 진 화론적 이타주의는 일상적 이타주의 개념에서 선, 쾌락, 행복 등의 추상적 의미를 갖는 이익 을 진화론적 의미의 적응도 (fitness) 로 구체화해서 인간 이외의 생물에까지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든 개념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이 타주의는 일반적으로 간단히 말해서, 한 개채의 적응도 희생을 통한 타 개체( 들) 의 적응도 증대, 혹은 자신의 적응도는 끌어내라고 다른 개체의 적응도는 끌어올리는 것으로 정의된다. 35) 34) 진화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 자연선택' 과 ' 적응도' 이다. 자연선택이란 가장 적응도 가 높은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적응도는 자손 번식의 성공률을 높이는 정도를 가리킨다. 윌슨의 이타주의 설명에 대해서는, 사회생물학 5장 집단선택과 이타현 상, 134~ 166 을 참고하라. 35) 진화론적 이타주의에 관해서는 Elliott Sober, "What is Evolutionary Altruism?", in David Hull and Michael Ruse, eds., The Philosophy of Biology, 2nd., (Westview Press, 1998) 을 참고하라.

28 28 과학과 기독교윤리 이런 진화론적 이타성과 관련해서 사회생물학은 어떤 종의 사회적 행 동이 자신에게는 희생과 죽음을 가져오지만, 이를 감수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고 있다. 현재 사회생물학에는 자연선택이 어떻게 이타성의 출현을 돕는지 설명할 때, 다양한 종류의 이타적인 행동 을 구별하고 있다. 다윈 자신도 이타적 행동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언급했지만, 최근의 논의는 이타적 행동의 수혜범 위에 따라 크게 포괄적응도 이타주의 (inclusive fitness altruism) 와 호혜성 이타주의 (reciprocal altruism) 로 구별하면서 진행된다. 먼저 포괄적응도 이타주의이다. 이타적 행동의 사례로 자식을 위한 모성애 라든지, 동족을 위한 민족애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 의 이타적 행동은 자기 집단의 번식성공률을 높이려는 집단의 적응도로 잘 설명될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집단의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에서 일어 나는 선택을 혈연선택 (kin selection) 이라고 부른다. 혈연선택은 두 개체 의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친족을 보호하려는 이타적 행동이 강화된다는 일종의 친족우선주의 를 가리킨다. 유전적 친족을 위한 이타적 태도를 해 밀턴은 포괄적응도라고 표현했다. 즉 포괄적응도란 한 개체가 지닌 유전 자의 포괄적인 번식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해밀턴은 포괄적응도를 개별적응도와 구별하는데, 포괄적응도 개념에 따라 친족의 이타적 태도와 준비성이 유전적 친족성의 정도에 따라 달라 진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족끼리 모여 사 는 집단에서 한 개인의 이타적 행동은 정의상 그 개인에게는 희생이 되지 만, 이타적 행동은 동일한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희 생이 아닐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50%, 형제간 50%, 삼촌관계는 25%, 사촌관계는 12.5% 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한 개인이 자식이나, 형제, 조카, 사촌에게 헌신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공유하는 유전자의 비율만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기회를 높이는 셈이다. 36) 이렇게 유전자 36) 해밀턴은 ' 혈연선택' 이라는 이타적 행위의 진화 방식을 1963 년에 'The Evolution of Altruistic Behavior' 을 American Naturalist에, 1964 년 'Genetic Evolution of Social Behavior' 를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에 발표하면서 구체화시킨다. 해밀턴의 '

29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29 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자식을 돕고, 형제를 돕고, 손자손녀나 조카를 돕 는 행위를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은 사람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희생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기적 행동이다. 도킨스 의 이기적 유전자 는 이런 관점을 유전자 수준에서 일관성 있게 적용한 논의다. 그런데 이타적 행동이 꼭 혈연적 친족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 니다. 이런 행동이 다른 종의 집단이나 개체까지 확장되어 발견된다. 즉 유전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개체들 사이에 서로 이득이 되는 행위가 있는 데, 이를 호혜성 이타주의 라고 한다. 호혜성이란 나의 이타적 행위가 상 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동시에 나의 미래 이익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호혜성 이타주의는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 행위 또 는 신세의 상호교환, 즉 서로 신세를 지는 것이다. 흡혈 사냥에 실패해서 피를 얻지 못한 흡혈박쥐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다른 흡혈박쥐, 서로 털을 다듬어주는 침팬지들, 큰 포식성 물고기의 몸에서 체외기생충을 제거해주 는 청소부 물고기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 또는 제3자와의 싸움에 대비하 여 두 개체가 동맹을 맺는 것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내가 ( 전혀 모르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내가 물에 빠져 죽 을 확률이 5% 이고, 내가 도와주지 않을 때 물에 빠진 사람이 죽을 확률 은 50% 라고 가정해보자. 내가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죽을 확률 5% 를 무릅쓰는 나의 행위는 전적으로 이타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내가 구조 받는 상황이 발생하여 그 사람이 나를 구조한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 나 를 구조해주지 않을 때 익사 확률은 50% 이다.) 이런 경우 나의 생존 확 률은 95% 가 된다. 미래의 이익을 생각할 때 나는 물에 빠진 낯선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이익이 된다. 또한 이로써 나는 두 개의 조그만 위험( 내가 낯선 사람을 구조할 때 겪는 5% 의 위험과 내가 도움 받을 때의 5% 의 위 험) 과 큰 위험( 내가 도움 받지 못했을 때 50% 의 위험) 을 맞바꾸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37) 한마디로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준 혈연선택' 이론에 관해서는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72~ 91 쪽을 참고하라.

30 30 과학과 기독교윤리 다 로 압축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생물학에서 말하는 이타적 행위에는 혈연에 근거한 포괄적 응도 이타주의와 호혜성 이타주의라는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이타주의를 윌슨은 맹목적 이타성과 목적성 이타성으로 구분한다. 맹목적 이타성이란 혈연 이타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타적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 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이타성은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강력하게 나타 나고, 멀어질수록 느슨해진다. 이에 반해 목적성 이타성은 혈연 이타성을 제외한 모든 이타성을 아우르는 말인데, 이런 이타성은 혈연 이타성과 달 리 이타행위에 대한 대가를 바란다는 특징이 있다. 3) 진정한 이타주의와 문화적 진화 그렇다면 이런 이타성을 엄밀한 의미에서 이타적 이라고 할 수 있는 가? 이것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고, 이런 계산적 선행이 나타나는 까닭 을 윌슨은 인간 행동이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원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라고 본다. 즉 인간의 행위는, 그것이 무의식적이든지 의식적이든지, 자기 이익에 우선 관심을 둘 수밖에 없고, 이런 관심을 갖는 궁극적인 원인이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윌슨은 본다. 이렇게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두 가지 이타주의 고려한다 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와 같은 무조건적 사랑은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 명제는, 사회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네가 내 등을 긁어주느냐 않느냐에 상관없이 나는 언제나 너의 등을 긁어주겠 다 는 전략인데, 이 전략은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 겠다 는 호혜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미래의 대가를 기대하는 호혜주의 원칙은 진정한 이타성으로 보기 어 렵다. 이타성이란 남을 위한 희생정신을 말하는데, 호혜주의는 조건적이고 일종의 이기주의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의 이타성이란 없는가? 이런 진정한 의미의 이타성은 사회생물학적으로 설명 37) 윌슨, 사회생물학, 154.

31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31 할 수 없는가? 이와 관련해서 마이어는 진정한 이타주의적 행위의 가능성 을 문화집단에서 작용하는 선택압에 의해서 진화한 윤리규범과 행동에서 찾는다. 38) 마이어는 포괄적응도 이타주의와 호혜성 이타주의는 개체 수준의 선택 압을 통해 진화했지만, 인류역사에서 강력히 작용해온 집단선택의 압력이 윤리규범 형성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집단선택은 개체에 해 가 되더라도 집단을 강화하는 진정한 이타주의나 다른 덕행들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문화집단 전체의 복리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행동이 보전되었고, 그런 행동 규범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 볼 때, 그 는 인간의 윤리 행위를 적응적으로 본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무리 내에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인들의 경향을 견제하고 집단 전체에 직접 도움이 되는 이타주의의 부담을 개인에게 부과하기 위해 비친족에 대한 문화적 행위규범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집단적 규범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 인간 두뇌의 사고 력 진화가 선행되어야 했다는 것을 마이어는 지적한다. 큰 두뇌와 큰 사 회집단 사이의 공진화에 의해 두 가지 새로운 형태의 윤리적 행위가 형성 된 것이다. 마이어의 논지를 이것이다. 첫째, 집단선택의 형태로 작용하는 자연선택은 개인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집단에 이득이 되는 이 타적 성향을 보상했다. 둘째, 인간은 새로 얻은 사고력 덕분에 순전히 본 능적인 포괄적응도에 의존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것보다 윤리적 인 행동을 선택했다. 39) 이것은 이타적 윤리규범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발전된 두뇌구조라는 생물학적 기반에 의존하지만, 동시에 상대적 으로 독립된 문화집단이 없다면 나타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어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이타주의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함께 공진화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40) 38) 에른스트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최재천 외 옮김 ( 몸과 마음, 2002), 399~ 402 쪽을 참고하라. 39)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 이외에도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은 순수한 의미의 이타주의가 적절한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음을 ' 죄수의 딜레마' 를 통해 제시한다. 피터 싱어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

32 32 과학과 기독교윤리 마이어는 포괄적응도를 기본으로 하는 본능적 이타주의로부터 집단윤 리로 넘어가는 적응이 진정한 의미의 이타주의로 나가는 인간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슨과 아얄라가 제시한 윤리적 행동의 판결을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각각 제시한다. 심슨은 첫째, 대안 행위 양태들이 있어야 하며, 둘째, 개인들은 이런 대안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셋째, 개인들은 윤리적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대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41) 즉 윤리적 행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결과에 책임지려는 개인의 자 질에 달려 있으며, 그는 이것이 바로 도덕성의 기원과 기능의 기본이라고 한다. 아얄라 역시 이와 거의 비슷하게, 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생물학적 인 필요충분조건 세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알 수 있는 능력이며, 다른 하나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마지막 하나가 행동 과정의 대안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42) 이들 진화생물학 자들은 인간이 윤리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판단능력과 선택능력이 생 물학적으로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윤리적으로 행동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은 유아기와 아동기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 으로 엄청나게 길어진 것, 따라서 자식을 돌보는 기간 역시 길어진 것, 종교 특유의 전통과 문화가 발달한 것 등 다른 인간 특성들의 진화와 밀 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이상의 진정한 이타주의에 대한 논의는 비유전적 진화론으로 진행된 다. 생물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도덕성이나 윤리는 일단 문화적 요 인으로 자리 잡게 되면 생물학적 특성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니게 된다. 이후 이타적 행위에 대해 특정 사회가 부여하는 높은 가치와 그런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생물학적 적응도가 다. 피터 싱어, 사회생물학과 윤리, 86~ 87 을 참고하라. 죄수 딜레마에 대한 간략 한 설명은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28~34. 41)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402.

33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33 저하됨에도 불구하고 이타성은 선택되고 진화될 수 있다. 이것이 문화적 진화론이다. 문화적 진화론은 추락하는 비행기를 인구 밀집 지역을 피해서 몰다가 사망하는 젊은 조종사나, 독신 성직자 같은 자기희생적 인물의 이타적 행 위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가설 역할을 한다. 이들의 행위는 자신의 포괄적 적응도를 낮추면서 집단의 적응도를 높이는데, 만약 이런 행동 성향이 유 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런 이타적 형질의 재생산은 실패하기 때문이 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재생산에 실패한 형질의 진화에 대한 설명으로 제 시된 것이 비유전적 진화론이다. 이것은 문화적 적응성으로 유전자에 의 해서가 아니라 학습이나 교육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지금까지 문화적 진화 이론이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유전자 결정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문화적 현상에 대한 전망 있는 설명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더욱이 문화변동이 생물학적 진화보다 빠르게 발생하 기 때문에, 문화가 생물학적 진화보다 더 강력한 변화 결정인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은 이 설명 모델의 가능성을 밝게 해준다. 43) 그리고 이 런 문화적 진화는 ' 보편적 다윈주의' 의 우산 아래서 밈 개념을 통해 문화 적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도킨스의 작업 등을 통해 더 구체화되고 있다. 44) 이렇게 형성된 윤리 규범은 밈의 전파 메커니즘을 통해 확대 재 생산되는 것이다. 4) 다윈주의 윤리학, 사실에서 가치로 일반적으로 진화론이나 다윈주의에 근거해서 제시하는 윤리 이론에 대 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비판이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 이다. 자연주의적 오류란 존재 로부터 당위 를 도출할 수 없다는 흄의 명제에 기초하여 가 43) 문화적 진화 모델에 관해서는, 엘리엇 소버, 생물학의 철학, 민찬홍 옮김 ( 철학 과 현실사, 2004), 386~ 399 을 참고하라. 44) 도킨스의 진화론과 종교담론에 관해서는, 신재식, ' 유전자' 와 ' 밈' 사이에서: 도킨 스의 종교 담론, 종교문화비평, 15 호(2009) 를 참고하라.

34 34 과학과 기독교윤리 치어를 사실어로 환원시킬 때 필연적으로 빠지고 마는 논리적 맹점을 말 한다. 진화론에서 직접적으로 규범을 도출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자연주의적 오류는 19세기에 진화론을 이념적으로 적용시 켰던 진화윤리학을 목표로 비판하고 있다. 45) 비판의 핵심은 사실적 정보 만으로 새로운 규범을 도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남성은 다수의 성 파트너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다수 의 성 파트너에 대한 욕구 충족해야 한다는 규범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것 이다. 일반적으로 메타윤리학은 도덕적 사고방식과 관련해서 무엇이 우리를 도덕적이게끔 만들어주는가, 즉 무엇이 도덕적 행위를 합리적이고 유의미 하게 해주는가를 묻는다. 당위로서 선이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 정당화할 수 없을까? 이런 질문에 기존 메타윤리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비자연적 속성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주관적으로 직관되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이런 해결책이 문제를 지녔다고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당위가 근본적으로 존재에 기반하고 있 기 때문이다. 즉 내게 선인 것이 너에게도 선이기 위해서는 본성적으로 동일한 존재에 기초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이을상은 동일한 존재 기반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당위 가 있음을 판단할 수 있는가? 를 질문하면서, 이렇게 메타윤리학이 귀착하 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답이 다윈주의 윤리학 이라고 주장한 다. 46) 그는 다윈주의 윤리학이 진화론에 근거하여 윤리의 기원을 설명함 으로써 존재( 사실) 로부터 당위가 정당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 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본성에 기초하는 다윈주의 윤리학이 과연 도덕규 범의 당위성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다윈주의 45) 진화윤리학이라 19 세기의 스펜서, 헉슬리 등이 표명한 윤리적 입장을 말한다. 이들 은 자연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 사회도 진보해 갈 것이라는 ' 사회진화론' 에 윤리 학의 뿌리를 두고 있다.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는 바로 이런 진화윤리학을 정면으 로 비판한 것이다. 46) 후성규칙에 관한 기술은 이을상이 다윈주의 윤리학: 유전자의 기능과 이성의 역 할, 161~ 191 에서 제시한 논의에 주로 의존한 것이다.

35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35 윤리학에서 중요한 것이 후성규칙 (epigenetic rules) 이다. 이때 후성규칙 이란 유전자와 인간이 사고나 행동을 매개하는 규칙을 말한다. 이을상은 루스의 논의에 기대면서 후성규칙을 통해 진화론적 이타성에 서 도덕규범이 갖는 당위성을 논증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루스는 윌슨이 말한 목적성 이타성이 인간의 도덕 감정 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47) 이 도덕 감정은 개인의 원초적인 차원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오호 감정을 나타낼 것 이지만, 점차로 사회적 차원으로 발전해나가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무엇을 해야만 하거나 하지 말아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발전한다 는 것이다. 이런 의무감의 원천을 루스는 후성규칙에서 찾는다. 이렇게 다윈주의는 어떤 행위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인간의 오호감정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오호감정은 단순한 주관적인 경 향을 넘어 옳고 그름의 평가에까지 이른다. 예를 들어, 오늘날 근친상간의 금지는 단순히 근친의 상간을 싫어한다는 주관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근친을 상간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의식까지 포함하는 말이 다. 당위란 근본적으로 대전제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런 다윈의 생물학적 기원을 루스는 후성규칙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실제 로 당위로서 근친상간의 금지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유인원에 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생물학적 특질이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는 이 금지가 의식과 함께 주어짐으로써 인지의 발달을 가져왔다. 즉 인 간에게 후성규칙은 인지의 발달을 유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루스는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윌슨에게서 빌려왔다. 윌슨은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를 설명하면서 인지 발달의 편향된 신경 회로 를 뜻하는 후 성규칙이라는 말을 도입했다. 윌슨은 유전자가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일 련의 생물학적 과정을 규정한다고 보고, 이를 프로메테우스적 유전자 라고 부른다. 이 프로메테우스적 유전자는 말 그래도 인간에게 문화 를 가능하 47) 루스의 진화론적 윤리에 대해서는, Michael Ruse, Taking Darwin Seriously, (Prometheus Books, 1998) 의 3장 Evolutionary Ethics와 6장 Darwinian Ethic을 참 고하라.

36 36 과학과 기독교윤리 게 해준다. 이같이 프로메테우스적 유전자가 문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 유전자는 마침내 인간의 마음을 다른 유전자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결 과 자유롭게 된 마음을 다시 종합하는 하나의 형식이 필요한데, 이를 윌 슨은 후성규칙 이라고 부른다. 48) 이렇듯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 회로 와 규칙적인 후성규칙을 만들어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자기 주변의 문 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 된 후성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진화론적 윤리는 이렇게 후성규칙이라는 말에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 는 당위적 사실의 생물학적 논거를 발견하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윤리의식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인간발달의 산물이고, 이런 심성의 발달이 야말로 새로운 윤리학의 토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다윈주의 윤리학의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논의를 배경으로 진화론과 윤리담론은 어떤 관련성을 가질 수 있는가? 철학자 키처(Philip Kitcher) 는 일반적으로 진화론이 윤리 학과 관계하는 방식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49) 첫째, 인간이 갖추 고 있는 도덕 능력을 진화론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어 떻게 도덕 개념을 갖고, 도덕 판단을 내리게 되었으며, 윤리 원리 체계를 형성했는가를 설명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둘째는, 진화론이 인간에 대한 사실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것을 기존의 도덕 원리에 연결시켜 새로운 규범을 도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진화론을 메타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윤리가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등의 논의를 포함해서, 윤리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화론이 활용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화론으로부터 새로운 윤리 원리 들을 도출해내려는 시도가 있다. 이 경우 진화론은 두 번째의 경우처럼 48) 윌슨의 후성규칙에 대한 최근의 논의는, 에드워드 윌슨, 통섭, 최재천, 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2005) 의 7 장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8장 인간 본성의 적응도를 참고하라. 49) Philip Kitcher, Vaulting Ambition: Sociobiology and the Quest for Human Nature, (MIT Press, 1985), 417. 김성한, 진화론과 윤리, 57~ 58 재인용.

37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37 단순히 사실 을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윤리 원리를 제시하는 데 활용된다. 이때 진화론은 규범의 원천이 된다. 키처는 진화론과 윤리 학이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논의는 대부분 사 회진화론으로 대표되는 네 번째 접근방식만을 염두에 두고 비판한다고 지 적한다. 필자가 보기에 최근의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 문화진화론은 키처 가 제시한 위의 네 가지 접근방식 가운데 마지막을 제외한 세 가지와 밀 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도덕성의 기원과 윤리의 형 성에 대해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회생물학은 사회 성 동물의 행동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윤리를 설명하면서 연성이지만 사 실에서 당위로 이행해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이렇게 진화 론은 자연과는 독립된 산물로서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되던 윤리 문제를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설명하려고 문화적 진화까지 논의의 확산을 시도하 고 있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다윈주의가 기독교 윤리에 던지는 질문 진화론의 등장 이전에 신은 궁극적인 기준이었으며, 삶의 가치는 신의 뜻에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와 달리 세상을 지배하는 형이상 학적 원리로 진화를 파악한 다윈은 생물학적 토대에서 출발한 자연주의적 윤리 담론의 길을 열었다. 이렇듯 다윈은 윤리와 관련해서 기존의 철학자 나 신학자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의 윤리에 대한 입장은 진 화론적 인간 이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윤리나 도덕을 진화론적 틀 속에서 설명하는 다윈의 인간 이해는 전통적인 서구의 인간 이해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 서구사회는 다윈 당시까지도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완전히 다른 존재 로 간주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인간은 창조의 정점에 있으며, 다른 모든 동물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성서뿐만 아니라, 플라톤 에서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인간만

38 38 과학과 기독교윤리 이 지닌 이성적인 영혼은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가르는 결정적인 근거였 다. 이에 따라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다른 동물 세계의 것에 비해 아주 특별하고 독특하기 때문에 고유한 용어를 통해서만 분석할 수 있으며 생 물학 용어를 통해서는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지각, 도덕, 언어, 그 외의 지적 특성이 인간과 짐승을 명백하게 구별 짓는 인간 고유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윈을 진화론을 통 해, 특히 공통유래이론으로 인간 종을 영장류 조상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동물계에 포함시킨 것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질적 차이를 해소해버 린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 은 성서의 창조론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인류 의 기원 은 도덕관념이 지닌 독립된 위상에 손상을 입혔다. 현대 다윈주 의 역시 친족선택론이나 호혜성 이타주의에 대한 논의를 통해, 다원과 마 찬가지로 인간의 도덕 감정이 하늘이 내려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공감, 감정이입, 동정, 양심, 죄책감, 자책, 신상필벌이라는 정의감을 비롯 한 모든 감정들을 지구라는 별난 행성에서 유기체들이 밟아 온 역사의 흔 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과 일정 크기 의 문화적 집단의 등장은 생물학적 토대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윤리규 범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면서 문화적 진화가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다윈주의적 윤리 담론은 기존의 윤리에 어떤 빛을 비출 수 있을 것인가? 마이어는 기존의 서구 윤리 규범이 한계에 처해 있다고 본다. 윤 리 규범의 경직성과 인류가 경험하는 급격하고 급변한 상태 변화가 적합 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그는 이로 인해 오래 전 과거에 형성된 윤 리가 지금의 도시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사 회가 직면한 세 가지 윤리 문제들이 서구 전통의 윤리 규범들에 의해 제 대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범위 확대의 문제이다. 한 집 단 영역이 확대되어 가면서 다른 집단들과 결합할 때 생기는 갈등을 해소 하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다. 개인적인 윤리와 사회나 공동체의 윤리 사이의 문제이다. 마지 막이 자연 전체에 대한 인간의 책임 문제이다. 50)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진

39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39 화 담론 자체는 십계명이나 예수의 가르침 같은 직접 명문화된 윤리 규범 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진화에 대한 이해는 건강한 인간 사회와 청지기 정신에 의해 보존되는 생태계 전체를 위한 윤리 체계 형성 에 필요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윈과 다윈주의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고려하 면서, 다윈주의 윤리담론이 기독교 윤리를 향해 던지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신학적 인간론에 기반 한 기독교 윤리에서, 생물학 적 인간론까지 고려한 새로운 기독교 윤리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 문제 는 진화론이나 현대과학의 등장 이전에 형성된 세계관과 신 이해에 근거 한 기독교 신학과 윤리를 진화론 이후의 세계 속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을 요청한다. 더 나아가 기독교 윤리의 기원과 전개, 발전 과정 자체를 문화 적 진화의 관점에서 기술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 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진화론적 또는 생태적 관점에서 지평을 확장 할 수 있는가? 남은 것은 기독교의 몫이다. 주제어: 찰스 다윈, 다윈주의, 진화론, 진화생물학, 진화와 윤리, 윤리, 도덕, 기독교윤리,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인간의 유래, 진화 윤리학 Key words: Charles Darwin, Darwinism, Theory of Evolution, Evolutionary Biology, Christian Ethics, Ethics, Moral, Evolution and Ethics, Evolutionary Psychology, Sociobiology, The Descent of Man, Evolutionary Ethics 50)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413~416.

40 40 과학과 기독교윤리 참고문헌 김성한. 진화론과 윤리. 철학과 현실 제81 호(2009, 여름). 로버트 라이트 마이클 셔머 스티븐 핑커 / 박영준 옮김. 도덕적 동물. 사이언스북스, / 류운 옮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바다출판사, / 김한영 옮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소소, / 김한영 옮김. 빈서판. 사이언스북스, 신재식. 유전자 와 밈 사이에서: 도킨스의 종교 담론. 종교문화비평 제15 호(2009). 에드워드 윌슨 / 이병훈 박시룡 옮김. 사회생물학. 민음사, / 최재천 장대익 옮김. 통섭. 사이언스북스, 에른스트 마이어 / 임지원 옮김. 진화란 무엇인가. / 신현철 옮김. 진화론 논쟁. 사이언스북스, 사이언스북스, / 최재천 외 옮김. 이것이 생물학이다. 몸과 마음, 엘리엇 소버 / 민찬홍 옮김. 생물학의 철학. 철학과 현실사, 이을상 / 최재천 외. 다윈주의 윤리학.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산지니, 전중환. 오래된 연장통. 사이언스북스, 진화심리학: 마음의 설계를 규명하다. 철학과 현실 제81호 (2009, 여름). 정상모 / 최재천 외. 진화론적 이타주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 을 말하다. 산지니, 제임스 무어 프란츠 부케티즈 피터 싱어 / 김명주 옮김. 다윈 평전. 뿌리와 이파리, / 김영철 옮김. 사회생물학 논쟁. 사이언스북스, / 김성한 옮김. 사회생물학과 윤리. 인간사랑, 1999.

41 신재식 다윈, 다윈주의, 그리고 윤리 41 찰스 다윈 / 김관선 옮김. 인간의 유래. 한길사,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뿌리와 이파리, 최재천 외. 21 세기 다윈 혁명. 사이언스북스, Barrett, Paul H., Peter J. Gautrey, Sandra Herbert, David Kohn, and Sydney Smith, eds. Charles Darwin's Notebooks. 1836~1844. Cornell University Press, Darwin, Francis, ed.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Johnson Reprint Co., Sober, Elliott. What is Evolutionary Altruism?. in David Hull and Michael Ruse, eds. The Philosophy of Biology 2nd. Westview Press, Ruse, Michael. The Darwinian Revolu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Taking Darwin Seriously. Prometheus Books, 1998.

42 42 과학과 기독교윤리 Darwin, Darwinism, and Ethics Shin, Jaeshik Professor Honam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Gwangju, Korea After the publication of Darwin's On the Origin of Species(1859), the idea of evolution has been influenced on the various area of human activity, beyond the boundary of biology and/or natural sciences. Religion, ethics, and morality have not been free from its challenge. This article aims to survey the Darwin's view on morality and Darwinian understanding of Ethics. To achieve the goal, this study consists of two main sections. The section Two deals with the discourse of Darwin's morality. In his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Darwin presents his view on the nature, function, and origin of human moral sense, from an evolutionary perspective. He insists that human morality is rooted in social ability of human beings, and morality functions in group level. The third section covers the Darwinian discourse on ethics and morality. Recently evolutionary psychology and sociobiology discussed the origin and function of morality and ethics, which even Darwin could not explain clearly in his days. Evolutionary psychology and sociobiology develop the basic concept of Darwin and tries to explain the nature of altruism which is one of key issue of evolutionary ethics. In the section four, as a conclusion, with a summary, some questions are suggested for Christian ethics faced on the challenges of evolutionary ethics.

43 김기석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43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 과학과 종교의 상호관계에서 본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과 윤리신학적 함축성에 관한 일 고찰 김기석 ( 성공회대 교수) 1. 시작하는 말 언뜻 생각하기에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어 보 인다. 일반적인 학문 분류상으로도 두 영역은 거의 겹치지 않을 것이며, 기독교 윤리를 연구하는 논문 중에서도 우주론과의 상관성을 다루는 논문 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자는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는 비록 표면적으로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겠지만, 우주론에 내포된 함축적인 차 원에 있어서는 상당한 상호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언제부터인가 생각하는 존재, 즉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ce) 가 되었을 때부터 항상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추구해왔다. 하나는 이 세계는 과연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모습은 어떠한가? 라는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 나, 혹은 생명) 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주론(cosmology) 이 첫 번째 질문에 대 한 설명이라면, 인류의 모든 철학과 종교와 윤리는 바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고대와 중세 시 대에는 신화나 종교를 통해 그 답을 제시하려 시도하였고, 계몽주의 시대,

44 44 과학과 기독교윤리 특히 임마누엘 칸트 이후에는 전자는 자연과학을 통하여, 후자는 종교 혹 은 윤리학을 통하여 의미있는 설명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서도 두 가지 궁극적인 질문에 대하여 종교나 과학 한 영역으로 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으며, 과학과 종교의 통합적이고 상호보완적 대화를 통해서만이 이러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주론의 내용에는 이 세계가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떤 모습을 지녔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한 종합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 리고 이러한 설명은 하나의 종합적인 이론체계를 구성함으로써 토마스 쿤 이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논증한대로 패러다임의 성격을 지닌다. 1) 그러 므로 하나의 우주론은 순수한 자연과학에 국한한 이론이 아니라 반드시 종교적, 윤리적 함축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각 시대를 지배한 우주론은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 및 가치론으로서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윤리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소고는 바로 과학과 종교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 그리고 각 시대 의 지배적인 우주론 속에는 윤리신학적 함축성이 내포되었다는 가설적 전 제에서 출발한다. 이다. 이러한 상관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검토하고, 각 시대의 지배적인 우주론과 그 윤리신학적 함축성을 살펴볼 것이다. 1) 토마스 쿤, 김명자 역, 과학혁명의 구조 ( 서울: 까치, 1999), 34. 한편 토마스 쿤 은 자신의 기념비적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1962 년판에서 패러다임 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과학철학의 핵심적인 방법론적 용어로 사용한 이래 이 용어의 포괄적 의미 로 인한 모호성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쿤은 1969 년 판 말미에 추가하여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 재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패러다임 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은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은 그런 집합에서 한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형이나 또 는 예제로서 사용되어, 정상과학의 나머지 퍼즐 풀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전자의 정의에 의하면 종교적, 윤리적 함축성이 패러다임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45~246.

45 김기석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과학과 종교의 상호관계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과 종교는 서로 적대적이고 화합할 수 없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지동설을 지지했던 갈릴레이에 대한 로마교회의 재판이나, 다윈의 진화론을 둘러싼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 사이의 논쟁은 이러한 상호충돌적 관계를 드라마 틱하게 보여준다. 2)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여 버틀란드 러셀은 1935년에 출 판한 종교와 과학 이란 그의 책 제목 아래에 독단과 이성의 투쟁사 란 부제를 달았다. 3) 물론 여기서 독단은 종교를, 이성은 과학을 지시한다. 또한 두 영역의 만남을 종교와 과학의 갈등의 역사 4) 또는 기독교왕국 에서의 과학과 신학의 전쟁의 역사 5) 로 묘사한 책들이 지식인에게 큰 영 향을 끼쳤다. 이러한 저작들은 모두 과학과 종교가 서로 화해될 수 없는 관계임을 역설한다. 6) 그러나 모든 이들이 다 그렇게 본 것은 아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는 종교의 원리는 영원한 것이지만, 그러한 원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지속적인 발전을 필요로 한다 고 주장하면서 과학의 발전에 따라 종교적 2) 지금으로부터 150 년 전,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지 1년 후인 1860년 영국 옥스포드 에서 열렸던 영국과학진흥회에서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주교는 진 화론에 관한 발표를 했던 진화론을 열렬히 선전함으로써 다윈의 불독 이라는 별명 을 얻은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ely) 가 발표를 끝내자 이렇게 조롱어린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 원숭이 선조로부터 진화했다면, 당신은 원숭이 조상은 부계 쪽이 요, 아니면 모계 쪽이요? 이에 대해 헉슬리는 인간의 특권인 지성을 이런 식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라면, 자신은 인간 조상 대신에 기꺼이 원숭이 조상을 택하겠노라 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 어떤 전승에 의하면 인간 대신에 주 교 라고 말했다고도 전해진다.) John Hedley Brooke, Science and Religion: Some Historical Perspec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34, 40~41. 3) 버틀란드 러셀, 송상용 역, 종교와 과학: 독단과 이성의 투쟁사 ( 전파과학사, 1994) 4) John William Draper, History of the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 Andrew Dickson White,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종교전쟁 (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9).

46 46 과학과 기독교윤리 표현 방식을 수정해 나간다면 과학은 종교에 유익하다고 주장하였다. 7) 그 는 종교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였 다. 20 세기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 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라며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적인 관계일 때 인류사회에 원만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8) 그럼에 도 불구하고 존 폴킹혼이 지적하듯이, 20세기의 대표적인 서구신학 사조 였던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나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도 공히 계시 또는 실존 이라는 게토 속에 스스로 고립시킴으로써 과학으로부터 신학을 근본적으로 고립시켜왔다. 9) 또한 20세기 후반에 제기된 제 3세계 신학 역시 민중의 구조적 억압과 빈곤의 상황에 응답해야 하는 정치 경제 적 신학 등도 컨텍스트의 절박함으로 인해 자연과학이 이룩한 새로운 발 견과 영감에 대해 적극적인 성찰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0 여년 전부터 영국 학계에서부터 과학과 신학, 또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학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 가 진척 되었는데, 이얀 바버는 이 분야를 개척함에 있어서 이정표를 세운 공로를 남긴 학자로 평가된다. 10) 그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갈 등, 독립, 대화 그리고 통합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11) 이러 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 혹은 과학과 신학의 학제적 연구는 보다 성숙하고 풍성한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특 히 오늘날 지구화의 급속한 전개에 따른 생태위기,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7) Alfred North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6), ) 오늘날 장애를 표현할 때 절름발이 나 장님 같은 단어는 차별적 용어라 하여 사용 하지 않지만 과거 아인슈타인의 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사용하였음 을 밝힌다.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9) John Polkinghorne, Belief in God in an Age of Science (New York: Vail Ballou Press, 1998), ) Ian Barbour, Issues in Science and religion (London: SCM Press, 1966) 은 이 분야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11) Ian Barbour, Religion in an Age of Science (London: SCM Press, 1990), chap. 1.

47 김기석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47 다원주의, 양극화와 정의의 문제 같은 윤리신학적 이슈를 해결함에 있어 서도 바로 과학과 종교의 대화 및 학제적 연구의 접근 방식이 적극 필요 할 것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 중에 하나인 존 폴킹혼도 앞으로 과학과 종 교의 대화의 영역을 넓히고자, 보다 다양한 종교-문화적 배경과 새로운 맥 락(context) 에 속한 학자들이 이 토론에 참여하기를 희망을 피력하고 있 다. 12) 이러한 기대에 호응하여 앞으로 한국의 기독교 윤리학 분야에서도 궁극적 진리를 추구하기위한 이 분야의 대화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필 요할 것이다. 3. 중세기의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1)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 중세 기독교의 우주론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프톨레마이 오스(85~145) 천문학에 기반하여 성립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전 시대 의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천문학 관측자료를 집대성하여 고대 천 문학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저서 < 알마게스트 > 를 집필하였다. 여기서 그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의 천체가 회전한다는 천동설( 지구중심설 ) 의 천 문체계를 완성했는데, 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중세의 지배적인 우주론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완성한 지구중심적 천문체계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우주의 중심에는 지구가 있고, 그 위에는 여러 겹의 천구(heavenly sphere) 가 지구를 둘러싸고 하루에 한 번씩 회전을 12) 존 폴킹혼, 이정배 역, 과학시대의 신론 ( 서울: 동명사, 1998), 111. 폴킹혼은 과 학과 종교의 계속적인 대화 프로그램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한다; (1) 신학자들과 여 러 과학분야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참여, 여기서 인문학 분야들이 특별히 중요한 역 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2) 세계종교 전통들의 광범위한 참여. 이는 과학과 신 학 사이의 대화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고, 또한 에큐메니칼적 만남의 확고한 근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48 48 과학과 기독교윤리 하며, 각 천구에 속한 달과 태양과 다섯 행성(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 성) 들은 천구에 정해진 경로를 따라 운행한다는 것이다. 13) 천구들을 지상 으로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살펴보면 첫 번째 하늘인 달의 천구로부터 수 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그리고 토성의 천구가 있다. 그 위에 여덟 번 째 하늘은 항성천, 아홉 번째는 원동천이 있는데 이는 그 아래의 모든 천 구들의 운동을 관장하는 곳이다. 그 다음에는 열 번째 하늘이 바로 부동 의 원동자가 머무르는 장소이자 영원한 제 계, 혹은 하늘나라이다. 14) 5원소로 만들어진 이데아의 세 한편 천체가 운동하는 경로는 천구상의 완전한 원 궤도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완성된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에 의하면 하늘은 완 전한 부동의 원동자 의 이데아를 반영하는 장소이고, 또한 원은 기하학에 서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천체의 회전은 당연히 완전한 원 궤도를 그리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근대 과학의 우주론적 관점에서 볼 때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서 천구의 일일 일회전은 지구의 자전을 반영하고, 다섯 행성이 천구에 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운행하는 것은 행 성들의 공전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성들은 공전궤도도 완전한 원 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도 케플러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대에는 관념에 비추어 지구가 태양계에 속한 여러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을 중심 으로 공전하고 있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 으므로 부득이하게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고 완전한 원 궤도의 천문 13) 태양계에 속한 총 9 개의 행성 중에 본문에 언급된 다섯 행성( 이 외에 지구, 천왕 성, 해왕성, 그리고 명왕성; 한편 최근 유럽의 천문학계에서 명왕성은 심한 타원형 의 공전궤도 및 그 외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행성에서 제외시킴으로서 논란 이 제기되기도 하였음) 들은 상대위치가 변하지 않는 멀리서 빛나는 다른 항성( 우리 은하 내의 이웃 별) 들과 달리 ( 공전운동으로 인하여) 상대위치가 계속 변화하는 것 이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점성술 등의 이유로 거의 모든 고대 문명권에서 지속적으로 관측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활동한 이집트의 알렉 산드리아는 고대 문명의 방대한 천문관측 자료와 지식이 집대성된 곳이었다. 칼 세 이건, 홍승수 역, 코스모스 (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6), 57~61. 14) 와다나베 마사오, 오진곤, 손영수 역, 과학자와 기독교 ( 서울: 전파과학사, 1995), 31~32.

49 김기석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49 체계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체계로 인해 관측된 각 행성들의 실제 위치가 프톨레 마이오스가 구성한 이론상의 위치와 일치되지 않는 문제점이 때로 발생하 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는 각 행성 들이 주전원을 따라 커다란 원운동을 하면서 그 원 궤도를 중심으로 다시 작은 보조 원운동을 한다는 개념을 고안해 내었다. 이러한 해결 방식은 잘못된 미봉책이었으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워낙 권위가 있었기 때 문에 어느 누구도 근본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고, 코페르니쿠스가 태 양 중심의 천문체계, 즉 지동설을 제안할 때까지 1천 3백년 이상 서구 기 독교 세계를 지배한 우주론이었다. 2)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과 윤리신학적 함축성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순수한 천문학적 이론과 관측자료만으로 완 성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천문학과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로 대 표되는 그리스 자연철학 및 기하학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여 구성되었고, 거기에 더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사후에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적 세계관 이 추가로 결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종합적인 세계관이었다. 프톨레마이오 스 천문체계에서 첫 번째 하늘인 달의 천구에서 여덟 번째 하늘인 항성천 까지는 관측된 천문학에 근거하지만 아홉 번째 하늘인 원동천과 열 번째 하늘인 불멸의 제 5원소로 만들어진 하늘나라는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온 것이다. 나아가 아홉 번째 하늘인 원동천은 후에 기독교 세계관과 결합하 여 하느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이 머무르는 장소가 되고, 열 번째 하늘은 하느님이 거하는 하늘나라가 된다. 천사들은 원동천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따라 그 아래의 여덟개 천구들의 운동을 떠맡아 천체의 운행을 일 정하게 유지시키고, 계절의 변화와 날씨를 관장하고, 지상에 사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과 죽음, 흥망성쇠와 길흉을 주재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천문학이고 어디서부터 종교적 믿음인지 구분이 되지 않 는다. 지리적으로 지중해를 둘러싼 세계가 지상세계의 전부라고 알고 있 었고, 천체에 관해서는 극히 일부의 영역밖에 알지 못했던 당시의 인류의

50 50 과학과 기독교윤리 지식 수준에 비추어 볼 때, 관측 가능한 세계 너머의 영역, 즉 무한과 영 원과 완전성의 문제는 형이상학적 이상향의 장소 내지는 종교적 신비의 영역으로 수렴시키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따라서 중세 서구시대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체계는 과학적 우주론이 면서 동시에 종교적 우주론이기도 하다. 과학과 종교가 완전히 결합하여 구성한 세계관인 것이다. 과학적이고 동시에 종교적 우주론은 곧 윤리적 원리가 포함된 우주론이기도 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세상에서 일 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설명이 가능한 당대의 과학적 우주론이었으며, 나아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막강한 권위를 지닌 종교적 도그마이자 윤 리적 지침이 내포된 세계관이었다. 예컨대 천체의 운동이나 계절과 날씨 의 변화와 같은 자연현상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길흉사를 겪는 일과 죽음 후에 영혼이 가는 장소에 대해서조차도 모두 설명이 가능했다. 이 우주론 속에는 별들이 운행하는 하늘 너머에는 천사들이 사는 아홉 번 째 하늘이 있고 또 그 너머에 하느님이 계시고 착한 사람들만의 영혼이 갈 수 있는 하늘나라가 구체적인 장소로 존재하였다. 또한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있는 땅 아래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 도 물리적인 장소로 명백히 지시되었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지옥불 설교 는 상징적인 언어가 아니라 사실의 언어였고, 신자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착한 사람들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악한 자의 영혼은 죽으면 지옥의 사자가 와서 땅 속으로 끌고 간다는 중세 기독교의 윤리적 가르침은 단지 종교적 권위에 의해서만 아니라 과학적 우주론 속에서도 뒷받침되었다. 서구에서 중세의 시대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이와 같 이 중세 기독교의 윤리적 가르침이 과학적 우주론에 의해 지지되었기 때 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중세적 우주론을 지나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제 기되고 뉴턴- 데카르트에 의해 완성된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우주론과, 20세

51 김기석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51 기 중반을 지나 표준 이론으로 확립된 현대의 빅뱅우주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중세적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잔영을 완전히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 사랑과 영혼> 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상기해보자. 얼마 전에 고인이 된 패트릭 스위지와 요즘도 젊은 연하의 남자와 사랑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데비 무어가 각각 남녀 주인공 으로 열연한 이 영화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패트릭 스위지가 ( 실제로는 그의 영혼이) 언체인징 멜로디에 맞추어 데비 무어와 지상에서 의 마지막 춤을 추고서 빛나는 하얀 옷을 입은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하 늘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한편 패트릭 스위지의 절친한 친구였으 나 욕심에 사로잡혀 친구를 죽이고 그의 재산과 여자 친구를 가로채려던 악인이 죽는 장면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지옥의 사자들이 악인의 영혼을 양쪽에서 붙잡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땅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저건 말도 안 돼! 하면서 코웃음을 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조차 아직도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 다. 그 이유는 중세의 우주론이 지닌 어떤 정서적 편안함과 고유한 매력 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편안함과 매력은 다름 아닌 지옥-지상세계 - 하늘나라의 삼층 구조로 만들어진 신화적, 종교적 세계관에 기인하는 것 인데, 여기에는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가 어김없이 실현되고 권선징악 이라 는 윤리적 원리가 자연법칙과 동등하게 작동하는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정서적으로 가장 친화력있 는 우주론인 것이다.

52 다. 15) 아무튼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고안되고 케플러와 갈릴레이에 의해 지지 52 과학과 기독교윤리 4. 코페르니쿠스 우주론과 기독교 윤리 1) 코페르니쿠스 우주론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는 폴란드의 천문학자 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이의를 제기하여 소위 코페르니쿠스 전환이 라는 우주론의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수립 된 지구중심의 천문체계가 관측된 실제 별들의 위치와 맞아 떨어지지 않 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를 다른 행 성과 같이 태양을 공전하는 천문체계, 즉 지동설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코 페르니쿠스와 그의 동료들은 지동설이 몰고 올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충격 과 반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저서 < 천구의 회전에 대하 여> 를 출판하면서 서문에 이 새로운 천문체계의 물리학적 사실성이나 개 연성을 주장하지 않고 다만 관측과 일치하는 계산상의 장점이 있는 천문 학 이라고 스스로 평가절하 하였다. 또한 그는 지동설로 인해 생전에 종 교재판에 회부될 것을 두려워하여 출판을 허락한 것은 생애의 거의 끝 무 렵이었고, 그 자신도 임종 직전에야 출판된 책을 받아본 것으로 알려졌 되었으며, 후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역학법칙에 의해 확고한 이론 으로 자리잡게 된 코페르니쿠스 천문체계에 따르면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를 포함한 다섯 행성들이 태양을 공전하는 체계이다. 또한 뉴턴 은 코페르니쿠스 천문체계를 확장하여 기계론적 우주론을 확립하였다. 뉴 턴은 1687 년에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라는 그의 탁월한 저서를 통해 우주의 모든 운동 현상은 중력이라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6) 우주는 절대시간 축을 따라 무한한 공간을 가지며 15) 데이비드 C. 린드버그, 로널드 L. 넘버스 엮음, 이정배, 박우석 옮김 신과 자연: 기독교와 과학, 그 만남의 역사 상권 ( 서울: 이화여대출판부, 1998), ) Stephen Hawking, Brief History of Time (London: Bantam, 1988),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