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제 1 장 =====1:1 사람에게서난것도아니요사람으로말이암은것도아니요 - 사도바울은자신의사도권이인간적인기원이나수단에있지않음을분명히밝힌다. 이처럼자신의사도권을편지의서두에서강조하는것은당시바울이예수의열두제자들중에하나가아니었다는이유를들어바울의사도성을부인하는자들이있었기때문이다. 이들은유대주의를고수하는거짓교사들로당시갈라디아교인들을심하게미혹 ( 迷惑 ) 하였던것으로보인다. 한편바울은실제로예수의열한사도들처럼예수의지상사역을목격하거나맛디아처럼공식적으로선출되지않았으나다메섹도상에서부활하신주님을목격하였고이방인의사도로서소명을받았으므로조금도사도의자격에부족한것이없었다 ( 행 9:1-17;26:14-18). ' 바울의사도직 ' 에대한상세한내용은고전 4:1-5 주제강해 ' 바울의사도적자기인식과고린도교회의오해 ' 를참조하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아버지로말미암아 - 본구절에해당하는헬라어본문은 ' 알라 '(*, ' 그러나 ') 로시작되고있어바울의사도권이하나님으로부터유래되었음을분명하게드러낸다. 바울은자신이가진사도권의기원을언급할때마다예수그리스도와하나님아버지를함께언급하였다. 이는바울이예수그리스도가하나님과동일한권위를가지신분이심을전제하였음을보여준다. 죽은자가운데서그리스도를살리신 - 바울은자신의사도직의기원 ( 起源 ) 이부활하신주님에있음을밝힘으로써더욱그의논지를분명히한다. 주의부활은당시초대교회성도들의신앙의근거요 ' 다메섹의경험 '( 행 9:1-18) 을통해서회심한바울자신의신앙의근거였다 (Longenecker). 사도된바울 - ' 아포스톨로스 '(*, ' 사도 ') 는관사없이사용되었다. 이는사도바울자신만이유일한사도인것은아님을암시한다. 사실예수의열두제자들외에다른사람들에게도 ' 사도 ' 라는칭호는사용되었다. 원래 ' 아포스톨로스 ' 는헬라어를사용하는유대인들에게있어서개인이나단체의권익을옹호하는대표자를의미했으나예수께서오신이후에는예수의복음을전하는자들을가리키는말로사용되었다 (Boice). 한편초대교회는사도가되기위한조건으로두가지를제시한다 ( 행 1:21-26). (1) 그리스도의공생애사역과부활하신주를목격하고, (2) 그리스도에의해복음사역자로택함받은자가그것이다. =====1:2 함께있는모든형제 - 바울은보통그의서신서의서두에서인사말을할때에동역자들의이름을밝히지만 ( 고전 1:1; 고후 1:1; 빌 1:1; 골 1:1 등 ), 단지 ' 형제들 ' 이라고표현한경우도종종있다 ( 살전 1:4). 여기서 ' 형제들 ' 이누구를가리키는지에대해서는견해가분분하다. (1) 혹자는믿음으로예수를주로고백하는모든성도들의무리라고한다 (Lenski). (2) 혹자는바울과함께선교여행중에있는선교단전체를의미한다고한다 (R.E. Howard). (3) 혹자는바울을지지하는예루살렘교회의지도자들을의미한다고한다. (4) 혹자는이편지가수리아안디옥에서남쪽갈라디아에보내는것이라고보고 ' 형제들 ' 이안디옥교회지도자들을가리킨다고본다 (Longenecker).(5) 혹자는이편지가고린도에서북쪽갈라디아에보낸편지라면고린도에선교가시작된지얼마되지않아믿기시작한사람들을통틀어가리킨다고본다 (Hendricksen). 위의견해들중 (4),(5) 번이가장타당한듯하다. 갈라디아여러교회들에게 - 다른서신들에서나타나는수신자에대한칭찬과존경에대한언급이없는것은아마그의불편한심기 ( 心氣 ) 가작용했기때문일것이다. 이교회들이구체적으로어느교회냐하는문제는논란이많다. 그러나분명한것은그가1차전도여행때 (A.D. 47-48) 복음을전했던곳으로서바울로부터복음의진리를들었던교회들임에틀림없다. 바울은복음의진리를받았음에도불구하고곁길로가고있는자들을책망하기위해본서를쓰고있다. =====1:3 하나님아버지와주예수그리스도 - 바울은하나님에대하여 ' 아버지 '(*, 파트로스 ) 로부르고있으며예수그리스도에대하여는 ' 주 '(*, 퀴리오스 ) 라는칭호를붙여쓰고있다. 이두칭호는사도바울의신앙을대변할뿐만아니라초대교회의신앙고백을암시하고있다. 여기서 ' 주 ' 에해당하는헬라어 ' 퀴리오스 ' 는히브리어의 ' 아도나이 '(* ) 와같은뜻으로 70인역에서는 ' 야웨 '(* ) 를읽을때사용되었다. 따라서신약에서의예수의호칭가운데하나인 ' 주 ' 의헬라어 ' 퀴리오스 ' 는구약의 ' 야웨 ' 와예수그리스도가본질상동일함을보여준다. 초대교회교인들은예수
를 ' 주 ' 로섬김으로써유일한믿음의대상 ( 행 5:14;9:42;11:24) 으로여겼으며또한그들의기도를들어응답하시는분으로 ( 행 7:59, 60: 고후 12:8) 믿었다. 은혜와평강 - ' 은혜 ' 에해당하는헬라어 ' 카리스 '(* ) 는죄로인해더러워진인간에게자유와용서를베푸시는하나님의게속적인선물을뜻하며 ' 평강 ' 의헬라어 ' 에이레네 '(* ) 는히브리어의 ' 샬롬 '(* ) 으로그리스도로인해하나님과죄인사이에이루어진평화를뜻한다. =====1:4 이악한세대에서 - ' 세대 '(*, 아이온 ) 의시간적개념은현재적인시점과다가오는시점을포함한다. 그러나본절에서의 ' 악한세대 ' 는 ' 다가오는세대 ' 즉영원한축복의세대와대조를이루는것으로서 ' 이세대 ' 를의미한다. 한편유대인들은 ' 메시야의오심 ' 을기준으로이전시대를가리켜 ' 이세대 '(*, 하올람하제 ) 라칭하였고메시야가도래한이후의시대를 ' 올세대 '(*, 하올람합바 ) 라고하였다. 결국 ' 세대 ' 에대한신약의개념은구약에서유래 ( 由來 ) 된것이다. 바울은본절에서이러한맥락을염두에두고 ' 이세대 ' 를언급하면서 ' 악한 '(*, 포네루 ) 이라는형용사를덧붙여 ' 이세대 ' 가갖는특성을강조하였다 (Longenecker). 자기몸을드리셨으니 - ' 자기몸을드리셨으니 ' 에해당하는헬라어 ' 투돈토스헤아우톤 '(* ) 은앞구절의 ' 예수그리스도 ' 를수식하는형용사절이다. 이렇듯그리스도에대해설명하는예를다른서신들의서문에서는찾아볼수없다. 이는갈라디아교인들이그리스도에대해가지고있는오류가독특하였고, 따라서바울이이를시정해주기위해본구절을덧붙여설명하고있음을보여준다 (Mare). 즉바울은복음의진리를희석시키고자하는유대주의자들에게그리스도의죽음을제시하여그리스도의죽으심과부활외에다른것을통해구원받고자하는행위는그리스도를보내신하나님의뜻을거역하는것이며, 율법을섬긴다는이유로예수그리스도의죽음을무시하는행위는하나님을볘반하는일임을경고한것이다. =====1:5 영광이저에게세세토록있을지어다 - 바울은십자가위에서우리의죄를위하여죽으신예수그리스도에게영광을돌리고있다. 이는흔히인사말뒤에나오는부드러운송영 ( 頌詠 ) 의의미라기보다는롬 1:25절에나타나는송영과같이하나님과아들예수에대한헌신과충성다짐하는의도를지닌다. 아멘 - 헬라어 ' 아멘 '(* ) 은히브리어 (*, 아멘 ) 에서유래되었다. 바울에게있어서아멘은하나님께대한찬양이나서신서의결미어로사용되었다 ( 롬16:27; 빌 4:20 등 ). 본절에서 ' 아멘 ' 은하나님께대한찬양과영광이영원히있을것이라는점을강조하며, ' 이악한세대 ' 의일시적이며덧없는속성과선명한대조를보여준다. =====1:6 그리스도의은혜로너희를부르신이 - ' 부르신이 ' 는 3절에나오는 ' 우리하나님아버지 ' 이시다. 구속사역에있어서성부하나님구원의계획을세우시며 ( 엡 1:3-5; 벧전 1:2) 또한계획하신대로당신의백성을부르시는분이시다 ( 고전 1:9). 바울은이처럼당신의자녀를부르시는분이삼위중에제일위격인성부하나님이라는것을여러번강조했다 (15절; 롬 8:30;9:24; 고전 7:15, 19; 살전 2:12 등 ). 하나님이성도를부르시는것은명백한계획으로되었고그계획은완전하며하나님의의지에속하는것으로분명한목적과의도를갖는다. 그러면성부하나님이성도들을부르시는목적은무엇인가? (1) 그의아들예수그리스도와더불어교제케하기위해서부르셨다 ( 고전1:9). (2) 성도들로하여금부정한가운데있지아니하고거룩한삶을살도록부르셨다 ( 살전 4:7). (3) 평화를위하여부르셨다 ( 고전 7:15; 골 3:15). (4) 하나님의나라와그의영광을위해서부르셨다 ( 살전 2:12). (5) 진리를믿음으로구원얻게하기위하여부르셨다 ( 살후 2:13). 이와같이성부하나님은그의백성들을부르셔서구원을얻게하셨다. 그러나갈라디아교회에는부르신하나님으로부터떠나는자들이있었다. 당시갈라디아교회에는거짓된유대주의자들이하나님을빙자 ( 憑藉 ) 하여율법의교훈들을가르침으로성도들을미혹하고있었던것이다. 이같이속히떠나 - ' 이같이 '(*, 후토스 ) 라는말속에는바울의깊은탄식과안타까움이있으며 ' 속히 '(*, 타케오스 ) 라는표현속에는전혀기대하지못했던상황이갈라디아교회에서일어났음을보여준다. 바울은갈라디아교인들이거짓복음을좇은것도이상한데, 상상외로빠르게복음을떠나는모습들을보았을때더욱의아해하고, 안타까워
하였던것으로보인다. 갈라디아교인들중유대주의를추종하는자들은하나님을떠나그리스도와의 교제를잃어버리고하나님께서부르신거룩한삶과하나님나라의영광과진리를버리고구원에서떠 나는자들이되었을것이다. =====1:7 다른복음은없나니 - ' 다른 '(*, 알로 ) 은 6절에사용된 ' 다른 '(*, 헤테론 ) 과 차이가있다. 즉 ' 알로 ' 는많은것들이있는가운데다른것을지칭하고,' 헤테론 ' 은단두가지중 에하나를 가리킨다 (TDNT). 이렇게볼때본절에 ' 헤테론 ' 대신 ' 알로 ' 가사용된것은복음의절대성 과유일성을강조하려는시도에서 비롯되었음을알수있다. 한편 6절의 ' 다른복음 ' 은 ' 또하나의복 음 ' 이아니라왜곡된복음을의미한다 (Cole). 왜곡되어그릇된복음은이미복음이아니다. 왜냐하면복 음은 하나님께서주신것으로완전하기때문이다. 너희를요란케하여 - 헬라어 ' 타랏손테스 '(* ) 는 문자적으로 ' 소란케하는자들 ' 을의미하며여기서는 ' 거짓교사들 ' 을가리킨 다. 이단어는 행17:8에서바울을시기하는데살로니가의유대인들이소요를일으켰던일에사용되기 도했다. 거짓교사들이교회를소란케하는내용은 (1) 복음을변질시키며, (2) 교회의질서를혼란시 키는것이다. =====1:8 하늘로부터온천사라도 - 갈라디아교회의율법주의자들은이방인그리스도인들에게거짓의율법을강조하면서천사에대해서도가르쳤는지모른다 (Cole). 유대인들은일반적으로천사를율법의중보자 ( 仲保者 ) 로생각했다. 특히이러한사상은후기유대교의이단들에게서부각되었다. 아무튼바울은그릇된사상을가지고복음을왜곡시키려는것은도무지용납될수없음을단호하게설명한다. =====1:9 누구든지... 다른복음을전하면저주를받을지어다 - 바울은 8절에이어저주를반복한다. ' 저주 ' 의헬라어 ' 아나데마 '(* ) 는하나님께로부터버림받는것으로우상이파멸되는것과갈은저주를뜻한다 ( 신 7:26). 바울은이단어를같은의미를가진 ' 카타라 '(* ) 와구분하여사용하였다. ' 카타라 ' 는 3:10, 13에서율법의요구를이루신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와관련하여사용되었다. 주께서십자가위에서받았던저주는율법이우리에게요구하는저주를대신지신것이다. 이제예수께서십자가위에서받은저주를부인하고다시율법의저주아래로들어가려고하는자는우상의파괴와같은멸망을받게될것이다. 한편 ' 누구든지 ' 라는말은 ' 다른복음을전하는모든자들 ' 을의미하는봐앞절의 ' 어떤사람들 '(7절), ' 하늘로부터온천사들 '(8절), 심지어는사도바울자신까지포함하는모든자들을의미한다. 따라서하나님의뜻을이루신그리스도의십자가를부인 ( 否認 ) 하는자는누구를막론하고저주를받을것임을바울은극령하게보여준다. =====1:10 사람의기쁨을구하는것이었더면 - 갈라디아교회의유대주의자들은율법적인 배경을 갖지못하면그리스도의십자가도헛된것에불과하다고가르쳤던것같다. 그래서그리스도의십자가 만을증거한바울의가르침은사람의환심을사려고율법의요구들을포기한것이라는비난을받았다. 그러나바울은이에대해자신을추종하는세력을얻으려는인간적야심을결코갖지않았다고분명하 게선언한다. 그리스도의종이아니니라 - 바울은자신이그리스도의종이라는사실을강조한다.' 종 '(*, 둘로스 ) 은한주인에대한절대적복종을의미하는용어이다. 바울은유대인으로서 율법에열심을가진자였으나이제율법의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게철저히복종한다. =====1:11 형제들아 - 헬라어 ' 아델포스 '(* ) 가신약성경에서는 ' 같은조상을가진사람 '( 행 3:22; 롬 9:3), ' 믿음으로연합한가족 '( 마 23:8; 롬 1:13). ' 그리스도의동역자 '( 고후 1:1) 등의의미로사용되었으며포괄적으로그리스도의십자가를믿음으로받아들이고참된복음의진리를따르는모든자들을칭하는용어로사용되었다. 바울은여기서갈라디아에있는그리스도인을지칭하여이말을사용했음이분명하다. 사람의뜻을따라된것이아니라 - 헬라어본문에서는본절의 ' 뜻 ' 에해당하는단어가없고다만 ' 사람을따라 '(*, 카타안드로폰 ) 로되어있다. 그러나문맥상 4절의 ' 하나님의뜻을따라 '(*, 카타토델레마투데우 ) 와반대되는개념으로사용된
것으로보아 ' 사람의뜻을따라 ' 로이해해도무방하다. 이처럼바울은반대되는개념을사용하여자신의사도권이사람의전승이나인위적인교육등에의한것이아니라하나님께로부터왔음을강조하고있다. =====1:12 사람에게서받은것도아니요 - 바울은하나님을섬기는열심에서유대교의사도로일한적이있었다. 당시사도의개념은산헤드린이나여제사장등높은직위에있는종교지도자들로부터명령을받아임무를완수하는자들을칭하기도했다. 바울이다메섹으로향할때에그의임무는이러한성격의것이었다 ( 행 9:2). 그러나바울사도는지금복음을전파하는것이이전에사람들의명령에따라하는것과다르다는것을주장한다. 오직예수그리스도의계시 - 바울은반복적으로부정어를사용하여사도권의근거를피력하다가이제접속사 ' 알라 '(*, ' 그러나 ') 를사용하면서자신의전한복음이그리스도의계시로말미암은사실을강조한다. 예수의열두제자들과는달리바울은예수와함께하는삶을통해가르침을받은적이없다는점에서사도적권위에도전을받을수있었다. 하지만바울은다메섹도상에서나타나신주님과의만남을기점으로사도의사명을받았다 ( 행 9:4-26). 또한열두제자들이비록바울보다먼저사도가되긴했지만, 그들역시성령에대한약속 ( 요 14:16;16:13) 이오순절사건으로성취된이후에야비로소사도가되었다. 다시말해제자들이오순절다락방에서성령을받아비로소사도로서활약했듯이바울은다메섹의도상에서부활하신주님을직접만나이방인의사도로부르심을받았다. =====1:13 유대교에있을때에행한일 - ' 행한 ' 의헬라어 ' 아나스트로펜 '(* ) 은역사적인사건뿐만아니라그가행한일들과근본적인삶의태도와방식을포함한다 (Huxtable). 바울이여기서 ' 유대교 '(*, 유다이스모 ) 라는호칭을사용하는것은비록바울이이전에유대교에속하여모세율법을삶의절대적표준으로삼고하나님을열심히섬기고자했지만, 유대교가단지 ' 인간종교집단 ' 에지나지않는다는것을시사한다. 바울은이제유대교에서벗어나객관적입장에서자신이과거에유대교를위해일했던사실을회상 ( 回想 ) 하고있다. 하나님의교회를심히핍박하여 - 바울은교회를핍박하는일에있어서가히광신적이었다. 그는자신이하나님을사랑한다는편견과교만으로교회를핍박했다. 본절에서 ' 하나님의교회 '(*, 엑클레시아투데우 ) 라는말을사용한것은두가지의미를함축한다. (1) 교회를핍박하는것은메시야이신예수를향한것일뿐만아니라하나님께대적하는것임을보여준다. (2) 구약시대에는유대민족이하나님의백성으로부르심을받아특권을누리고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교회가참이스라엘로전이되었다. 따라서바울이하나님을사랑한다고하는열심으로교회를핍박한것은결국하나님을대적하는결과가되었다. =====1:14 유대교를지나치게믿어 - 바울이과거에유대교를신봉했던정도를나타내는데,' 지나치게 ' 의헬라어 ' 프로에코프톤 '(* ) 은 ' 길을밝히다 ', ' 숲에서앞서서길을개척하다 ' 등의의미를갖는다 (Robertson). 유대교의대학자인가말리엘문하에서도뛰어난제자였고유대교에속한다른사람들보다앞서서나아가고있었다. 이처럼유대교에대해열심이었던바울은율법과랍비들의전승에서해방되어복음으로말미암은완전한자유를선포하게되었다. 만약바울이그리스도안에서완전한자유자가되지못했다면할례와율법을돌아보는자 ( 행 15:5) 가되고말았을것이다. 그러나그는그리스도의계시에의하여 (12절) 그높은율법의벽을훌쩍넘어설수있었다. 내조상의유전 - 유대인의율법은두가지형식을취했는데하나는정언적 (categorical) 또는절대적 (absolute) 이며또하나는결의법또는판례법형식이다. 전자는십계명과같이예외가없는지상명령의성격을띤것으로운율을가지고있어예배시에낭송되거나암송하기에편리하도록만들어져있다. 반면에후자는실제생활속에서발생하는문제들을해결하는관습법과같은것으로본절의 ' 유전 '(tradition) 은후자에가깝다. 랍비들은 613개조항의법조문을만들었는데이것은바로전자를실생활에확대적용하여세분화 ( 細分化 ) 한것이다 (Lenski). 결국 ' 유전 ' 은인간이만들어놓은것이다. 바울은인간이만든유전의울타리에갇혀하나님의교회를핍박하였다.
=====1:15 태로부터나를택정하시고 - ' 택정하시고 ' 의헬라어 ' 아포리사스 '(* ) 는 ' 어떤경계로부터떨어지게한다 ' 는뜻으로서어떤특정한직분이나사역에관련하여성별 ( 性別 ) 됨을나타낼때사용되었다 (2:12; 행 19:9). 구약시대의선지자들은그들의부르심이 ' 어미의태로부터 ' 된것임을고백하고있다 ( 사 49:1; 램 1:5). 바울은구약시대의선지자들이가지고있던사상을잇고있는것으로보인다. 또한바울은이러한하나님의영원한구원계획과예정을선지자나사도같은특별한사람들에게만국한시키지않고하나님의백성된모든사람에게적용시키고있다 ( 롬 9:11). =====1:16 그를내속에나타내시기를기뻐하실때에 - 예수께서바울의영혼과마음속에내적계시를통하여자신을나타냈음을말한다. 바울은내적계시를통하여예수가누구시며그의죽음과부활의의미가무엇인지깨달을수있었다. 본절은또한역사적으로다메섹도상의체험 ( 행 9:1-9) 을시사하며아울러바울이성령의충만함과그리스도의말씀을소유하고있음을암시한다 (Chrysostom, Huxtable). 이렇듯바울이내적계시를통하여그리스도에대한지식과말씀을소유한것은자신의이해를위한것일뿐만아니라이방에그리스도를전파하기위함이었다. =====1:17 오직아라비아로갔다가 - 바울은자신이하나님으로부터부르심을받아이방인의사도된것을강조하기위해 ' 오직 '(*, 알라 ) 이라는말을사용하였다. 또한구태여먼저사도된자들을만나지않았다는사실과혈육과의논하지않았다는것 (16절) 을언급하고있는것도이와같은사실을강조하기위해서이다. 한편 ' 아라비아 ' 는매우광범위한지역이기때문에바울이갔던장소가어디인지정확하개알수없다. 사실다메섹도아라비아에속한곳이므로다메섹에서그리멀지않은지역으로갔으리라추측된다 (Cole, Huxtable). 혹자는모세가율법을받았던것을상기하여이곳을시내산이라고주장하기도한다 (Lightfoot). 그러나이견해도명확한근거가없다. 의미상 ' 아라비아 ' 는예루살렘과상관없는장소이며또한바울자신이개인적으로예수의계시를체험하고이해한장소이다. 바울은다메섹도상에서예수를만남으로그의삶과가치관이변화되었지만자신이경험한계시를체계화시키는데는많은시간이필요했을것이다. 이는마치예수께서그의사역을준비하시면서세례를받으시고광야에나가기도하신것과유사하다. 바울은광야에서혈육과분리되고, 예루살렘에있는다른그리스도인의영향도받지않고하나님과의개인적인교제를통하여자신에게주어진특별한계시, 즉이방인들을향한하나님의뜻을발견하고그사역을위하여준비하는기간을가졌다. =====1:18 그후삼년만에 - 본구절에대하여는두가지의해석이가능하다. (1) 바울이회심하고나서삼년이지났다는것이다. 즉문맥상바울이자신의독특한회심을강조하고있기때문에회심에역점을두었을것이라는견해이다 (Boice, Huxtable,Lenski). 바울이아라비아에서다메섹으로돌아온때로부터삼년이경과되었다는것이다. 아무튼본절에서바울이강조하고자하는바는게바를만나기전에상당기간이소요되었다는사실이다. 한편어떤학자는 3년이란기간을문제삼아본문의기록이행9장에나타난바울의행적과모순된다고주장한다. 왜냐하면누가가행 9장에서바울의행적에대하여기록할때 ' 아라비아로간것 ' 에대하여는침묵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러나누가의침묵이바울의아라비아행을부정할수있는충분한증거는못된다. 누가는단지특별한일이발생하지아니한기간에대하여침묵한것뿐이며, 그반면에바울은본서에서게바를만나기전에일정기간동안하나님과의깊은영적교제를통해자신의신앙과신학을재정립 ( 再定立 ) 하였음을시사하고있는것이다. 게바를심방하려고 - ' 심방하려고 ' 의헬라어 ' 히스토레오 '(* ) 는영어의 ' 히스토리 '(history, ' 역사 ') 의어원이되는말로서 ' 이야기를들려준다 ' 는의미이다. NEB는이를 ' 게바와가까워지려고 '(to get know) 라고번역하였다. 본구절은행9:26-30에기록된사건으로바울은바나바에의하여예루살렘교회에소개된이후에베드로를찾아갔다. 그런데사도바울이자신의사도성을주장하면서베드로와의만남을언급하는이유는무엇일까? 이에대하여는두가지의추측이가능하다. (1) 2절에서언급한자신을지지하는 ' 형제 ' 가운데베드로가포함되었음을암시하기위해서이다. (2) 바울의입장에서보면이방문이사적인방문이며어떤인간적인권위의지지를얻으려는방
문이아니었음을밝히려는것이다. 이렇게하여바울은자신의사도권이주께로부터유래되었음을밝히는것이다. 양자가조심스럽게적용되어야하겠으나문맥상후자를택하는것이나을듯하다. 사도는지금예루살렘교회의영향을받지아니한자신이사도권을주장하고있기때문이다. 물론 15일동안머무르며게바를통하여예수에대한지식과경험을들을수있었을것이며, 바울은그때에그리스도에관한사실들과가르침을바르게정립하게되었을것이다. 또한자신을이방인의사도로부르신하나님의섭리에대하여설명하였을것이다. =====1:19 주의형제야고보 - 바울이만난야고보가세베대의아들이면서요한의형제인야고보 ( 마 10:2) 나알패오의아들야고보 ( 마 10:3) 가아니라예수의친형제야고보라는것을분명히한다. 예수의선교초기에그의형제들과친족들은예수를믿지않았을뿐만아니라미친자로여겼다 ( 막 3:21; 요 7:5). 그러나예수의부활을목격한그들은어머니마리아와함께오순절마가의다락방에서성령을체험하고진실한신자가되었으며 ( 행 1:14) 야고보는예루살렘교회에서영향력있는지도자가되었다 (2:9, 12; 행12:17;21:18 등 ). 어떤학자는바울이야고보를사도로인정하느냐또는인정하지않느냐에관심을가지지만 (Cole), 당시교회의보편적인사도개념으로이해할때지도자인야고보를사도로인정하는것은문제가되지않는다. 보다중요한문제는바울이왜열두제자중베드로외에야고보만을보았다는것을강조하는가하는문제이다. 바울은예수에대한보다넓고많은지식을얻기위하여수제자를택했으며또한예수의친형제를택한것같다. 야고보는이방인들에게도너그러웠으며온유한인격을소유하였으므로바울에게도친절하게예수에대하여설명해주었을것이다. =====1:20 하나님앞에서거짓말이아니로라 - 바울이이렇게표현하는것으로보아갈라디아교회의구성원중에는아직도바울의사도권에대해탐탁지않게생각하는자들이있었던것같다. 아마도바울이교회의지도자들과충돌할때에발생되는문제는그의진정한사도권에관한것이었지만, 교회의구성원들과의관계에있어서그의마음을아프게하는것은자신이지난날에그들을핍박했던사실이었을것이다. 바울은이렇게자신의쓰라린과거의경험을회상하면서갈라디아의교인들에게거짓교사들을멀리하고복음에서떠나지말라고엄숙하게권고하고있다. =====1:21 수리아와길리기아지방에이르렀으나 - 바울은본절에서자신의연대기적인 행적을 설명하고있는것이아니다. 사도행전에의하면그는예루살렘에서가이사랴를 들러길리기아지방으 로 ( 행 9:30) 갔다가안디옥에서함께사역하기를바라는 바나바의요청에 의해 수리아지방으로 갔다 ( 행 11:25,26). 길리기아는소아시아의동남부 연안지대로서바울의고향인다소를포함하는지 역이며수리아는팔레스틴북부 지역으로수도인안디옥을중심으로하는지역이다. 바울이이두 지역을언급하는것은 (1) 예루살렘교회의영향을받지않는먼곳에서사역했다는것을설명하기 위함이며, (2) 또한 예수를만난이후에복음을위해서열심으로헌신했다는것을증거하기 위함이 다. =====1:22 유대에... 나를얼굴로알지못하고 - ' 얼굴로 ' 에해당하는헬라어 ' 토프로소포 '(* ) 는 ' 개인적으로 ' 라는의미이다 (Longenecker). 행 8장에나타난박해로인해유대지방의그리스도인들은바울이어떤인물인지익히들어알고있었을것이다. 하지만바울이어떤인격의소유자인지구체적으로아는사람은예루살렘교회에국한되어있었음이분명하다. 그러므로변방 ( 邊方 ) 에있던유대인의교회는바울에대해개인적으로잘알지못했을것이다 (Cole). 그리스도안에있는교회 - 바울이 13절에서는 ' 하나님의교회 ' 라고하였는데본절에서 ' 그리스도안에있는교회 ' 라고표현한것은유대교의회당과구분짓기위함인것같다 (Cole). 또한이러한표현은살전 2:14의 ' 그리스도예수안에서유대에있는하나님의교회들 ' 이라는표현과동일한용어로보인다 (Longenecker). 그러므로본문이, 유대인과이방인이따로교회로모이는것을시사한다거나, 유대지역의교회가구체적으로지역교회의형태를가졌음을보여준다고하기는어렵다. 한편 ' 교회 ' 를복
수인 ' 엑클레시아이스 '(* ) 로사용하는것은단지유대지역에있는교회뿐만아 니라사마리아와갈릴리지역의교회까지포함하고있음을시사한다 ( 행 9:30). =====1:23 잔해하던그믿음을지금전한다 - ' 지금 '(*, 뉜 ) 은현재사실을과거사실과대조하여사도바울이회심한사실을보다선명하게나타낸다. 교회를핍박했던바울이회심하여그리스도의복음을전하는자가되었다는사실은과거바울로부터직접핍박을받았던유대지역의그리스도인들에게는하나님의기적적인역사가되고도남았다. 본문은바로그와같이변화된바울을두고유대그리스도인들이이구동성으로했던말을인용한것이다 (Ernst Bammel). =====1:24 나로말미암아영광을... 돌리니라 - 본절의이면 ( 裏面 ) 에는, 바울의사도직과메시지를부정하면서정면으로대적하는자들이바울에대해매우불만스럽게생각한모습과바울의초기선교사역의소식을듣고매우기뻐하며하나님께영광과감사를돌리는유대그리스도인들의모습이대조적으로암시되고있다. 한편본절의내용은하나님께서당신의종에관하여말씀하신부분인사 49:3 내용과매우유사하다 (Longenecker). 갈라디아서제 2장 =====2:1 십사년후에내가바나바와함께디도를데리고다시예루살렘에올라갔노니 - 사도행전에의하면바울은세번에걸쳐예루살렘을방문하였다. 첫번째방문은그가회심한지삼년후에베드로를만나기위한것이었고 ( 행 9:26), 두번째방문은안디옥교회의구제헌금을전달하기위한것이었으며 ( 행 11:29,30), 세번째방문은이방인에게복음을전하는자신의사도권을변증하러예루살렘공의회에참석하기위한것이었다 ( 행 15:1 이하 ). 본절에나타난바울의예루살렘방문이이차방문인지삼차방문인지에대해서는학자들의견해가갈라진다. 먼저두번째방문이라고주장하는견해 (Bruce, Calvin) 를살펴보면다음과같다. (1) 행 15장의세번째방문은공적회의에참석한것이지만, 2절에의하면바울은개인적으로예루살렘지도자를만났으므로세번째방문이라고하기어렵다는것이다. (2) 행 15장에는디도에대한언급이생략되어있으나본절에는디도와바나바가동행 ( 同行 ) 한것으로기록하고있으므로본구절의방문은세번째방문이전에이루어진것이다. (3) 본절의 ' 다시 ' 를두번째방문을뜻하는것으로해석한다. 이러한견해는, 만일 1:18에기록된방문이첫번째방문이라면문맥상본구절의방문이두번째방문이라고추정하는것은나름대로의타당성을가진다. 다음으로세번째방문이라고주장하는학자들의근거는다음과같다 (Berkhof,Eerdman, Findlay, Robertson). (1) 행 15장과본장의주제가동일하다는것인데, 두곳모두에서 ' 이방인그리스도인들의할례 ' 를다루고있다. (2) 행15장에서지도자들간의연합을 ( 행 15:8,9) 강조하고있는데, 본장에서도동일하게연합을서술하고있다 (9절). (3) 행 15장이나본장이모두유대주의자들에대하여단호한입장을주장하고있다. 이상의견해들가운데본절이말하는바울의방문이세번째방문이라는것이더욱타당한데, 그이유는다음과같다. (1) 예루살렘공의회의연대를 A.D. 49년경으로보고바울의예루살렘방문연대를추정하면 1차는 A.D. 35년, 2차는 A.D. 46년 ( 행11:30;12:25), 3차방문은 A.D. 49년에이루어졌다. 여기서만일본장의방문을 2차방문과연결시킨다면바울의 1차방문은 A.D. 46년에서 14년전인 A.D. 32년의되며또한그가회심한시기는그보다 3년전인 A.D. 29년이되어야한다. 그렇다면바울이다메섹도상에서예수를만난때가예수께서살아계실때이어야하므로불가능하다.(2) 두번째방문을주장하는자들은디도에대한언급이행15장에없다는이유로세번째가아니라고주장하지만, 디도에대한기록은사도행전전체에서누락되어있다.(3) 바울이두번째방문을생략한것은무슨속임수나의도적인것이아니라단지이방인의할례문제를다루는본장에서다른주제, 즉가난한자들에대한구제문제를취급한두번째방문에대하여언급할필요성을못느꼈기때문이다. (4) ' 다시 '(*, 팔린 ) 는두번째를뜻하기도하지만요 18:27에서베드로의세번째부인과관련하여사용되었다. ' 두번째 ' 를의미하는헬라어 ' 듀테론 '(* ) 을쓰지않고 ' 팔린 ' 을사용한것은단지방문의반복을나타내기위해서이다. 바나바 - 그는레위지파출신의유대인으로구브로에서태어나바울보다먼저복음을받아들였던사람으로서이방인들에대한남다른열정을가지고있었다. 그래서그는예루살렘교회로부터안디옥
교회로파송되었다 ( 행 11:22). 그의본명은 요셉이었으나사도들은그를 ' 권위자 ', ' 권위의아들 ', ' 위 로의아들 ' 이라는 의미의 ' 바나바 ' 로불렀다 ( 행 4:36). 그는성령과믿음이충만한자로소 ( 행 11:24) 초대교회의 헌신적인지도자였다. 그는바울을예루살렘교회에소개하고바울의 체험을 변 호하며함께사역하였으나 2차전도여행을떠나면서마가의동행문제로바울과 결별 ( 訣別 ) 하게되었 다 ( 행 15:36-41). 디도 - 그는할례를받지아니한이방인으로서고린도교회와밀접한관계를맺 고있는목회자이다 ( 고후 8;23;12:18). 본절에서이방인의할례문제로등장하는그는바울이 ' 나의참 아들디도 ' 라고말할만큼바울의총애를받았으며그에 대한 성경의마지막기록은그가로마에서 달마디아로갔다는것이다 ( 딤후 4:10). =====2:2 계시를인하여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카타아포칼립신 '(* ) 은바울의이방인선교가 어떠한인간적인동기로부터유래된것이아님을확실히보여준다. 한편행 13장에서는바울이바나바 와함께이방인을위해파송되는과정이안디옥교회의결정임을보여준다. 이처럼바울의선교사역 이교회의결정에의해이루어졌다는사실과 본절에서언급된바, 바울의선교사역의동기가하나님 의계시로말미암았다는사실은서로상반되지않는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결정배후 ( 背後 ) 에하나 님의계시하심이있음을확신하였을것이다 (Hendriksen) 달음질하는것 - 바울은개종이후부터이 방인에게복음을전파하는사명을당시의운동경기를염두에두어묘사하였다. 그의 달음질은 향방 없는 것이 아니라 ( 고전9:26) 분명하고확고한목표를향한것이었다. 그는이목표를이루기위해지 도자들을사사로이만나는면밀한계획을갖기도하였으며교회의화합과일치를위해지도자로서의사 명을충실히이행하였다. 결국변하거나바울의달음질을헛되게하는것은자신이아니라갈라디아 교인들이었으므로본절에는바울자신이 유대주의자들의 모든거짓된것들을반드시고치고야말겠다 는의도가내포되어있다고할수있다. =====2:3 억지로할례를받게아니하였으니 - 구약에서하나님께서는아브라함과언약을 맺으시고 ' 언약의표징 ' 으로할례를자손대대에이르기까지거행하도록 명령하셨다 ( 창17:10-14). 그러나세월 이경과하면서이스라엘백성은할례의 언약적인 의미보다는종족적이며문화적인우월감의상징으로 서외적인할례에중요한의미를부여했다. 급기야는구원을위해할례를받아야한다고생각했다. 이 러한사상을배경으로하는교회안의유대주의자들은율법을준수하는것과함께할례를시행하는것 이구원의조건이된다고주장하여이방인신자들에게까지할례를강조했다. 할례에대한보다 자세 한내용은구약호크마창 17:1-14의주제강해 ' 할례언약과세례 ', 창 34:25-31의주제강해 ' 할 례실시에따른제반사항 ' 을참조하라. 한편 ' 억지로... 아니하였으니 ' 의헬라어 ' 우데... 에낭카스데 '(*... ) 는할례를주장하는강한압력속에서도굴하지아니하는바울의굳건한 의지를나타낸다. 당시 갈라디아교인들이거짓교사들의회유 ( 懷柔 ) 에말려들어할례를중요하게 생각한상황에서 바울이할례받지않은디도를유력한증인으로내세우는이유는디도가갈라디아교 회의신임을받고있었기때문임이분명하다. =====2:4 가만히들어온거짓형제까닭이라 - ' 거짓형제 ' 의헬라어 ' 프슈다델푸스 '(* - ) 는 ' 프슈데스 '(* ) 와 ' 아델포스 '(* ) 의합성어이다.' 프슈데스 ' 는 ' 거짓사도 '( 고후 11:13),' 거짓선지자 '( 벧후 2:1) 등에서처럼 ' 거짓 ' 이라는의미를가진접두사로사용되었다. 바울은본절에서 ' 파레이사크투스 '(*,' 가만히들어온 ') 와함께이말을사용하여은밀하고은근하게복음을훼손시키는거짓교사들의교활한특성을드러내고있다. 한편바울이 1:11에서유대주의자들에게미혹된갈라디아교인들을 ' 형제 ' 라고부른것은그들을향한사랑을표현하지만, 본절에서유대주의자들을향하여 ' 거짓형제 ' 라고한것은그리스도를주로고백하는공동체속에그들이설자리가없음을나타낸다. 그러나그들이누구인가하는문제는쉽지않다. 그들은최소한내부에서믿음을배반한사도들이나성도들은아닐것이다 (Lenski). 아마 ' 거짓형제 ' 는 (1) 예루살렘공의회에서이방그리스도인도할례를받아야할것을주장하며모세율법을지킬것을요구한자들이거나 (2) 공의회의결과가갈라디아와안디옥교회에소개되었다 ( 행 15:30). 그럼에도불구하
고갈라디아에는계속해서교인들을미혹하는유대주의자들이존재했으며이들은그리스도를믿음으로자유케된성도들을다시율법아래로끌어들이려고하였다. 더욱이그들은신자인것처럼가장하여열심은있으나실제로는복음을거부하고교회를파괴하려고하였다 ( 고후 11:26; 벧후 2:1). 이러한갈라디아교회의형편가운데서디도가할례받지않고있다고하는것은자유얻은자로하여금자유를잃지않도록하려는것이다. =====2:5 일시라도복종치아니하였으니 - 복종을요구하던자는디도에게할례를 요구했던무 리들로국한시켜이해하기보다는더욱광범위한의미에서유대주의화를꾀하던 ' 거짓형제 ' 들이라고 보는것이나을것같다. 사도바울일행은위의할례를 주장하는자들이나율법을강조하는자들의 견해를받아들이지않았다. 한편어떤서방 사본들에서는 ' 호이스우데 '(*, '... 한자 들에게조금도... 않다 ') 가 생략되어본구절이 ' 잠시동안만복종하였다 ' 는의미가된다. 이런사본에 의하면바울이잠시동안만평화를위하여타협할수도있었던것을시사한다. 그러나베자 (Bezae) 사본을제외한모든언셜 (Uncial) 사본과오래된파피루스사본 (P46), 그리고고대헬라교부의번역에 서 ' 호이스우데 ' 는생략되어있지않다. 또한본장의문맥상바울이거짓형제들과조금이라도타협한 다는것은불가능하다. 그는지금까지달려온길이 헛되지않게하기위해최선의노력을경주하고 있다. 할례는초대교회의최대 논쟁이며또한복음에대한최대의도전 ( 挑戰 ) 이었다. 이논쟁앞에서 바울이진리를양보했다는것은상상할수도없는일이다 (Lenski). 복음의진리 - 이에해당하는헬 라어 ' 헤알레데이아투유앙겔리우 '(* ) 는본절과 14절 에만나오는것으로 ' 결함이전혀없는복음 '(Lightfoot) 또는 ' 진리가담겨있고진리에 속해 있는 복음 '(Burton) 이라는의미이다. 이러한의미를가진복음을들어언급하는것은디도의 할례문제는 한개인의구원문제에만제한되어있는것이아니라복음의 진리 문제에직결된다는것을보여준 다. =====2:6 유명하다는이들중에 - 바울은세번에걸쳐 ' 호이도쿤데스 '(*,' 유력한자들 ') 를사용하여 (2절) 베드로, 요한, 야고보등예루살렘의사도를지칭하였다 (9절). 이러한호칭후에곧바로하나님은외모로취하지않는다고언급하는것을보면바울이이호칭을풍자적의미로사용하였음을알수있다 (Cole). 내게더하여준것이없고 - 헬라어본문에나와있는후치사 ' 가르 '(* ) 는선행구절을보다충분하게설명해주는삽입구가시작되고있음을나타낸다. 따라서본구절은선행구절에서제시된 ' 외모를취하지않는하나님 ' 의속성때문에어떤유명한자들일지라도조금도보탬이되지않는다는의미이다. 바울은하나님으로부터직접받은복음이예루살렘교회의사도들의영향을받지않았다는것과동시에예루살렘교회지도자들이가르치는것과전혀다른복음을가르치는것이아니라는것을증명하고자했다. =====2:7 내가무할례자에게... 베드로가할례자에게맡음과같이한것을보고 - 여기서 ' 할례자 ' 와 ' 무할례자 ' 는구체적인어떤사람들을가리키는것이아니라일반적인의미로사용되어유대인과이방인을가리킨다 ( 롬 4:9; 엡 2:11 등 ). 유대주의자들은베드로와바울이전하는복음에서로다른것이있다고주장한것같다 (Lenski). 그러나바울은사역상서로다른책임이있을뿐어디까지나복음의내용은동일 ( 同一 ) 하다는것을강조하고있다. 한편바울이할례자에게복음전하는자로열두제자가운데베드로를대표로내세운이유는다음과같이추정해볼수있다. (1) 베드로가예루살렘에있는사도들을대표하는인물이기때문이다 (Lenski, Huxtable). 그러나전자는타당하지않다. 그이유는베드로가이방인고넬료의가정에복음을전했을뿐만아니라가이사랴와다른이방인들에게복음을전했으며또한그자신이이방인들에게복음을전하는것이하나님의뜻임을깨닫게되었기때문이다 ( 행 15:7). 바울역시이방인들에게만복음을전한것이아니라때로는예루살렘에있는유대인들에게도복음을전한바있다 ( 행 23:11). 그는또한예루살렘과온유다와이방인에게까지복음을전하는것이자신의사명이라고말하고있는것으로 ( 행 26:20ff.) 보아, 본절에서바울이의도하는바는이방인의사도로부르심을받는자신의특수성을강조하는것이아니라베드로와자신이전파하는복
음의동질성을강조하는것이다. =====2:8 그를할례자의사도로삼으신이 - ' 사도로 ' 의헬라어 ' 에이스아포스톨렌 '(* ) 은베드로의지도자로서의자리를명확하게인정하는표현이다. 바울은베드로보다가문이나학문에서뛰어난자로소로마의시민권을가지고있었으나자신을베드로보다우월한자로여기지않는다. 여기에는바울의겸손함이포함되어있지만보다근본적으로바울이이와같이겸손할수있었던것은그들을사도로세우신이가동일하다는사실때문이었다. 바울은본절에서자신을사도로세우신하나님과베드로를사도로세우신하나님을동일시함으로자신의사도됨을증거하고있다. 두사도중에하나는유대인을중심으로, 또하나는이방인을중심으로사역했으나그들의사역의내용은같은것이었으며둘다동일한섭리와은혜에의하여 ( 고전15:9,10) 사도로세우심을받은것이다. 따라서그들에게서맺어지는열매도무할례자이거나할례자이거나동일한것이었다. =====2:9 기둥같이여기는 - ' 기둥 '(*, 스튈로이 ) 이라는표현은중요성을강조하는말이다. 탈무드에서는아브라함, 이삭, 야곱을이스라엘의세 ' 기둥 '(*, 암무딤 ) 이라하였고이스라엘의계약공동체뿐만아니라온세계가그들위에세워졌다고한다 (Longenecker). 이러한개념을사용하여바울은야고보와게바와요한을 ' 기둥 ' 에비유한것같다. 실제로그들은예루살렘교회를이끌어가는권위와영향력을가진지도자들이었다. 바울은유대주의자들을향해의도적으로히브리적개념을도입해논리를펴나가면서세사도가갖는비중 ( 比重 ) 을강조하였다. 야고보와게바와요한 - 이세사람의이름을언급한것은공관복음서에나오는예수님의제자라는점에초점을맞춘것이아니라, 예루살렘공의회에서지도자적입장에서있었던사실에역점을둔것이다 ( 행 15장 ). 먼저야고보에대해살펴보기로한다. 바울은 1:19에서 ' 주의형제야고보 ' 라고구체적으로기록하였으나, 본절에서는그냥 ' 야고보 ' 라고칭하고있다. 이는본장의전체맥락이예루살렘공의회를언급하고있기때문이다. 당시에야고보는예루살렘공의회의의장이었다 (1:19 주석참조 ). 바울이다른두사도보다예수님의형제야고보의이름을먼저기록한것은우연의일치라기보다는당시예루살렘교회의공식적인입장을대변하는의장으로서의야고보를설명하기위함인것같다 (Boice). 그러나다른사도들의이름이뒤에나왔다고해서예루살렘교회속에서이들의서열이정해져있었다고볼수는없다. 그다음으로, 바울은모두아홉번에결쳐베드로를언급하는데일곱번은 ' 게바 ' 라고불렀으며 (14절;1:18; 고전 1:12;3:22;9:5;15:5) 두번은 ' 베드로 ' 로칭하였다 (7,8절). 특히유대주의자들과논의할때게바라는이름을사용함으로써베드로와자신의관계를오해없이설명하려한것같다 (Huxtable). 끝으로, 요한이예루살렘공의회에참석하였다는기록은성경에서본절에만나타난다. 그러나베드로와요한은다른여러곳에서함께등장하며또한사역하였다 ( 행 3:1;4:13;8:14 등 ) 교제의악수를하였으니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덱시아스에도칸코이노니아스 '(* ) 는 ' 교제의오른손을주었다 ' 라고직역된다. 이는고대사회에서우정을돈독하게하고동의한다는의사표시였다 (Longenecker). 본절에언급된다섯사람은두그룹으로나누어져있었음이분명하다. 즉야고보와게바, 요한은유대인들을대상으로복음을전하였고, 바울과바나바는이방인을위한복음전파에주력하였다. 이두그룹은서로독자적이면서도하나님의나라를건설하는사역에협력하였다 ( 행 15:25,26). 이들은서로의손을잡았다는것은사적 ( 私的 ) 인장소에서서로의손을잡았다는의미보다는예루살렘공의회의공식석상에서결의한사항을실행할때에함께협력하기위하여공식적으로손을잡았다는것을의미한다 (Lenski). =====2:10 가난한자들 - 이에해당하는헬라에 ' 톤프토콘 '(* ) 은 ' 가난 ' 을뜻하는일상용어로서돈이나재산이나생활수단이거의없거나전혀없다는뜻으로쓰인단어이다. 신약에서이말은 ' 거지 ' 에게도사용되었으며 ( 눅 16:20) 주로물질적으로풍요롭지못한자들에게사용되었다 ( 마 19:21; 눅 19:8; 요 13:29). 당시가난한자들은복음전파의주요대상이었다 ( 마 11:5). 예수님은다른사람들을부요하게하기위해스스로가난한자가되셨으며자신을찾아온부자들에게재산을팔아가난한자들에게나누어주라고말씀하셨을뿐만아니라 ( 마 19:21) 자신과제자들이함
께거하는공동체속에가난한자들을돕기위해준비된공동궤를가지고있었다 ( 요13:29). 사도행전에와서는 ' 엔데에스 '(* ) 라는말이등장하는데 ( 행 4:34) 이는초대교회안의 ' 가난한자 ',' 궁핍한자 ' 로서다른사람들이재산을팔아나누어준덕분에살아가는자들을뜻한다. 초대교회에있어서가난한자들에대한구제문제는할례와같이논쟁의대상이아니라당연히행하여야되는임무로인식되어있었다. 가난한자들에대한임무는공의회의결정에의하여수립된것이아니라구약에서 ( 요 13:29), 또한초대교회의출발부터교회가감당했던사명이다 ( 행 24:17). 나도본래힘써행하노라 - 바울은믿음과구제문제를믿음과할례문제처럼대립시키지않는다. 바울의힘써행하는구제는남에게보이고자하는외식적인것이아니다. 본절의구제가구체적으로언제인지알수는없으나바울의생애가운데구제의사건은여러번등장한다. 바울은바나바와함께안디옥교회가모은구제헌금을가지고예루살렘에올라갔으며 ( 행 11:29,30) 여러서신서에서구제에대하여강조하였다 ( 행 24;17; 롬 15:25-27; 고후 8:1-5). 또한그는구제에대한교훈을남겼으며 ( 롬12:13; 엡 4:28; 딤전 6:18) 가난한자들을돕는일에게으르지말고그일을위하여정직하게살것을요구한다 ( 엡 4:28). 이러한삶의요구는선행이신앙의살아있는증거요 ( 약 2:14-17) 신앙고백의진실성을측정하는기준이되기때문이다 ( 요일3:17,18) =====2:11 내가저를면책하였노라 - 여기서베드로의행위가명백하게잘못된것으로드러나는데, 이는다음과같은사실로더욱뚜렷해진다. (1)' 면책하였노라 ' 의헬라어 ' 안테스텐 '(* ) 이문자적으로 ' 대항하다 ', ' 저항하다 ' 혹은 ' 반발하다 ' 라는의미로베드로의행위가 ' 복음의진리 ' 를훼손 ( 毁損 ) 할정도로심각한상태에있었음을시사한다. (2) ' 안텐스텐 ' 의시제가부정과거로서바울이베드로를성공적으로책망했으며베드로는바울의책망에대항하지못하고굴복했다는것을시사해준다 (Lenski). (3) 더욱이바울은베드로를개인적으로아니고공개적으로면책하며저지했다는사실로베드로의잘못의심각성이더해간다 (Hendriksen). 이와같이바울은예루살렘에서와는달리안디옥에서는베드로보다높은위치에서서성도들을대하는것같이느껴지는데, 이는베드로의잘못이너무도명백하여견책거리가되기때문이다 (Robertson). 따라서우리는여기서두가지사실을알수있다. (1) 바울이, 신자라면누구나소유하고있는완전한동등권을항상공격하며반대하는유대인들의좁고치우쳐있는유대중심적신앙관에대항하고있다는사실이며 (Huxtable) (2) 예루살렘교회의그어떠한권세자도하나님앞에서잘못을저지를수있으며나아가그것에대하여책망받을수도있다는점이다 (Cole). =====2:12 이방인과함께먹다가 - 본구절은초대교회의그리스도인들이일반적으로행하던식탁교제나성찬을가리키는것같다. 이것이정식예배였는지아니면비공식적인그리스도인의모임이었는지확실하지는않다. 본절에서초대교회당시유대출신의그리스도인들이이방출신그리스도인과의식사를꺼린사실이나와있는데이는다음과같은이유때문이었다. (1) 유대인들은레 11장에있는정함과부정함에관한규례를철저히지켜왔고죽음을각오하면서까지준수하려하였다 ( 민 25 장, 31장 ; 단 1:8; 토비트 1:1-12; 마카베오상 1:62). 이들은그리스도인이되고나서도그관습에서벗어나지못했다. 게다가이방인들이먹는음식중에는레 11장의정결 ( 精潔 ) 규례에위배되는것이있을가능성이대단히높다. 따라서유대출신의그리스도인들은이방출신의그리스도인들과식사를함께하지않으려했다. (2) 하나님께서주신율법들을부연하고설명하는과정에서만들어진제한규정들때문이다. 이러한규정들은그종류가대단히많고다양했는데초대교회당시에는하나님의율법못지않게존중된것으로보인다. 그실례로장로들의유전에는음식을먹기전에손을씻어야한다는규정이있는데, 이는단순히위생상이유때문에서가아니고이방사람들과접촉하여부정하게된손으로음식을먹지나않을까하는두려움때문이었다 ( 마 15;1-20; 막 7:1-23). 위와같은이유로오랫동안유대인들의의식속에는이방인에대한배타심이굳어져왔다. 이러한것은사마리아인도인식하고있는일반적인사실이었다. 예수께서사마리아여인에게물을달라고할때그여인은 ' 당신은유대인으로서어찌하여사마리아여자인나에게물을달라하나이까 ' 라고대답한다 ( 요 4:7-9). 따라서유대인이이방인과함께식사를한다는것은상상도못할일이었을뿐아니라대단히죄악된행동으
로간주되기까지했다 (Hendriksen). 하지만그리스도께서십자가에서죽으심으로구약의율법이완성되었다. 이러한사실에근거하여유대인과이방인그리스도인이함께식사를하는것은실제로아무런문제가되지않는다. 오히려그것이그리스도께서원하시는것이며그리스도인이라면당연히해야할행동이며삶이다. 예루살렘공의회는이러한사실을인식하고늘어나는이방그리스도인에대해몇가지제한사항을제시하고다른어떠한율법의행위로도짐을지우지않는다는결의를한바있다 ( 행 15:14-21). 저희가오매... 두려워하여떠나물러가매 - 베드로가이방그리스도인과함께식사하는것이정당함에도불구하고베드로는예루살렘에서사람이오자이방인들과식사를하지않았다. 이러한그의행동의동기는예루살렘에서의자신의위치에부정적인영향을끼칠까두려워했기때문이었다 (Hendriksen). 또한베드로가이방인들과함께음식을먹는것은사랑이나자기확신에의해나온행동이아니라거짓과위선의행동이었기때문에바울은베드로의외식적인행동를책망했다. =====2:13 남은유대인들도... 외식하므로 - 주님의가장가까운제자들중한사람이요공적인위치에있었던베드로가한외식은유대교의율법주의와복음의자유가첨예 ( 尖銳 ) 하게대립되고있는초대교회에큰영향을끼치게되었다. 베드로의이러한실수는단순히개인적인외식으로만그치는것이아니라 (1) 다른사람들심지어바나바같은지도자까지도외식적인행동을하도록유도하는근거가되며 (2) 예루살렘공의회 (A.D.49) 의율법무용론에대한결정을무효화시키는것이고 (3) 결과적으로는율법주의에굴복한다는위미를지닌다. 여기서우리는공적인위치에있는지도자의행동의중요성과함께한사람의외식적인행동은중요성과함께한사람의외식적인행동은다름사람들에게까지도영향을끼친다는사실을분명히알수있다 ( 막 7:1-23). =====2:14 모든자앞에서 - 바울은베드로가저지른실수에대해공개적으로책망을했다. 이는 (1) 베드로뿐만아니라여러유대출신의그리스도인들이그러한잘못을했으며 (2) 공적인잘못은사적으로고칠수없기때문이고 (Lenski) (3) 그러한실수를베드로뿐만아니라다른모든유대출신의그리스도인들이범하지않게하기위함이다 (Hendriksen). =====2:15 우리는본래유대인이요 - 본절에서바울이 ' 본래유대인 ' 임을밝히는것은그도태어나면서부터유대인의종교적특권을지녔음을보여주어다른유대인들로하여금자신에대한반감을줄이게하고자하는의도로보인다 (Cole). 이방죄인이아니로되 - 이방인들에게 ' 죄인 '(*, 하마르톨로이 ) 이라고말하는것은윤리적인판단에의해서라기보다는유대인의독선에서나오는이방인에대한통상적인언급이었다. 실제로유대인들은선택받은백성으로서특권을누리고있었지만본문에서바울은그특권을자랑하거나또는이방인들을조소하기위해 ' 죄인 ' 이란말을사용한것이아니다. 비록바울이유대교내의용어들을사용하여 ' 이방죄인 ' 으로표현하였지만이말속에는매우반어적 ( 反語的 ) 인의미가내포되어있다. 즉, 당시유대인들에의해죄인으로간주된이방인들에게바울이복음을전하고있었던사실은스스로선민의식에사로잡혀이방인들을하찮게여기며조금도가까이하지않았던유대인들의독선적이고교만한태도와극명하게대조되는것이다 (Cole). =====2:16 사람이의롭게되는것은 - 본절에는법정용어인 ' 디카이오스 '(*,' 의로운 ') 에서파생된말이세번반복되고있다. ' 의 ' 는하나님의속성에속하는것이므로그근원은인간에게있지아니하고하나님께있다. 본절에서도이용어가수동태로기록되어있는것은인간스스로의능동적인노력에의하여이루어지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 바울이말한 ' 의롭게된다 ' 는것은 ' 의롭다고선언한다 ' 는뜻이지 ' 의롭게만든다 ' 는뜻이아니다. 모든사람은죄를범하였으므로하나님의의로움에이를수가없다 ( 롬 3:20). 그러나의의주권자이신하나님께서예수그리스도를통하여그를믿는자들을의롭다고인정하시는길을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의롭다고인정하시는것은인간의윤리에따른것이아니라하나님의법정적인선언이며신적표준에서발생하는하나님의행위이다. 율법의행위에서난것이아니요 - 본서에서처음나타나는 ' 율법 ' 에해당하는헬라어 ' 노모스
'(* ) 는바울서신중특히로마서와본서에많이등장하는데 ' 의 '(*, 디카이오쉬네 ), ' 행위 '(*, 에르곤 ) 등과함께복음의핵심을설명할때마다 ' 믿음 '(*, 파스티스 ) 과관련되는개념으로사용되었다. 본절에서관사없이사용된 ' 노모스 ' 는모세의율법을지시하는것이라기보다는자신의선한행위들을통하여구원을받고자하는인간들이 ' 자기의 ' 를위해구축한규범들을가리킨다. 그것은유대주의사회가만들어낸거짓된규범들이다. 인간이만들어낸규범으로하나님의의를소유한다는것은불가능한것이다. 오직예수그리스도를믿음으로 - 인간의믿음은하나님께서인간을의롭다고선언하시게되는수단일뿐절대적인자격이나요건이되지못한다. 단지하나님께서는믿음을통하여그리스도와연합한자들을의롭다고여겨주시는것이다 ( 롬 5:18,19). 죄악된인간을대신하여십자가에서죽으신그리스도만이인간들을하나님앞에서의롭다함을얻게할수있으며이를신뢰하는것이구원에이르게하는믿음이며이러한믿음은생명력이있어신자로하여금하나님나라에합당한역동적 ( 力動的 ) 인삶을살도록한다. 그러나불행하게도유대주의자들은그믿음에다가할례와같은율법적이요외적인조건을더하려고하였다. 율법의행위로서는의롭다함을얻을육체가없느니라 - 본절은시 143:2(LXX, 142:2) 의인용이며아울러롬 3:20 내용과병행을이룬다. 아래의도표에서보는바와같이시편의 ' 파스존 '(*, ' 모든생명 ') 대신에로마서에서는 ' 파사사륵스 '(*, ' 모든육체 ') 를사용하였고, 로마서와본절에서는시편에없는 ' 율법의행위 ' 를부가 ( 附加 ) 시키고있다. 이것은사람이자기스스로의노력으로는결단코의롭다함을얻을수없다는것을강조하고있다. =====2:17 그리스도안에서 - 이말은바울신학에있어서핵심적인용어로서그리스도와성도간에누리는친밀한개인적교제를시사한다. 그가이방인에대한복음전파사역을강조하는것도자신이그리스도안에있기때문이며, 예수에대한지식과믿음을전파하는것과미래세계에대한거룩한소망을가지는것도그가그리스도안에있기때문이다. 바울은그리스도가자신의유일한신앙의대상이며동시에전부라고고백하고있다. 특히바울신학에서 ' 그리스도안에서 ' 라는표현은 ' 아담안에서 '( 롬 5:12-19) 라고표현과대조를이룬다. 아담은죄와사망의옛사람을대표하지만, 그리스도는자유와생명의새사람을대표한다. 그리스도안에있다는표현은십자가의죽음과부활을실현하신그리스도와실존적으로연합하여 ( 롬 8:39;14:7; 빌 2:1) 구원받은상태에있음을의미한다. 죄인으로나타나면 - 본절에대해서는두가지의견해가있다. (1) 바울이유대주의자들의입장에서이말을하고있다고보는견해이다 (Hendriksen). 다시말해서유대주의자들이의롭게되기위하여예수를믿음으로율법을폐기하는죄인이되었다고스스로생각할경우에대하여그들을위로하고회심을독려하는문구로해석한다 (Cole). 이견해에따르면, 유대주의자들이예수를믿고율법을폐기했다면그들은스스로이방인과같이율법을도외시하는죄인이된것이고그것은모세율법보다저급한수단의삶으로여겨질것이다. 더나아가그것은그리스도마저 ' 죄를위한봉사자 '(*, 하마르티아스디아코노스 ) 로전락시키는어리석음을범하는것과같다. (2) 바울이자신의삶을돌아보고있다는견해이다. 즉바울은그리스도안에서의롭다함을받았지만여전히자기속에죄악의본성이남아있음을고백하고있다는것이다. 바울은그리스도안에있으면서도죄악된옛사람의습관을버리지못하는자신을돌아보며 ' 오호라나는곤고한자로다 '( 롬 7:24) 라고고백한바있다. 본문에서바울은오히려유대주의자들앞에서자신의죄인됨을고백한다. 이는유대주의자들이가진의식법과율법주의적관점에서는언제나죄인인것을시인하는역설이다 (R.E. Howard). 그가유대주의자들의관점에서자신의죄인됨을시인한다고해도더이상두렵지않은것은그리스도안에있는자신을정죄할수있는것은아무것도없다고확신하고있기때문이다 ( 롬 8:1). 본절의해석은자신이계속해서죄인으로드러남에도불구하고다시율법으로돌아가지않겠다는전체의맥락과연결시킬때후자가보다타당할것같다. =====2:18 내가헐었던것을다시세우며 - 본문은다분히베드로가유대주의자들을두려워하여그 리스도안에서얻은자유로부터떠나다시유대인의옛습관으로돌아간 사건을염두에두고있다
(2:11). 바울은다메섹의체험 ( 행 9:1-7) 이후에는한번도뒤를돌아보지아니한일관된삶을살았음 을고백한다. 또한율법의공로를다시세우고자하는의도가결단코없음을밝힌다. 범법한자로 만드는것이라 - ' 범법한자 ' 의헬라어 ' 파라바텐 '(* ) 은하나님과의관계에서그의 미가정의되는 ' 하마르톨로스 '(*, ' 죄인 ') 와약간의차이가있다. ' 파라바텐 ' 은 문자적으로 ' 배신자 ',' 이단자 ' 를뜻하며본절자서는바울자신이다시율법을세우는것은하나님의사 랑에대한 배신 ( 背信 ) 행위가된다는점을말해준다. =====2:19 내가율법으로말미암아율법을향하여죽었나니 - 바울은 ' 나 ' 라는 1인칭대명사를사용함으로자신에게있었던실제적인경험을강조하고있다. 무엇을향하여 ' 죽는다 ' 는표현은모든관계가단절된것을의미하며더이상어떠한영향도받지않는다는것을의미한다. ' 죽었나니 ' 의헬라어 ' 아폐다논 '(* ) 은다음절에나오는 ' 함께십자가에못박혔나니 '(*, 쉬네스타우로마이 ) 와동일한의미로사용되었다. 이단어들은둘다단회적인것으로서다시율법으로돌아갈수없으며다시십자가에못박힐수없는옛사람의죽음을의미한다. 역설적으로 ' 율법을향하여죽었다 ' 는것은 ' 율법으로부터벗어나살아났다 ' 는표현이다. 로마서에서는 ' 율법에대하여죽임을당했다 ' 고표현했는데 ( 롬 7:4), 이두표현은모두단순히사변적인표현으로끝나는것이아니라구체적인삶의현장에서경험한것을고백한말이다. 율법의행위로는죄악으로부터밀려오는좌절감과실패를극복할수가없다. 오히려율법은인간속에있는죄를더욱죄되게만든다. 율법은단지죄에서해방되기위하여그리스도와연합하는믿음과새생명으로나아갈수밖에없도록하는기능을감당하게된것이다. =====2:20 그리스도와함께십자가에못박혔나니 - 본구절은본서의여러곳에거듭언급되는내용으로 (1:4;3:1,13;6:12,14) 그리스도의죽으심이초대교회의가르침의초점이었음을보여준다. 아울러본절은예수님을핍박했던바울자신의개인적인삶의변화와율법으로부터단절되었다는신학적인논증을나타낸다. 실로그토록교만하고자존심강한유대인중에유대인이요, 바리새인중에바리새인이었던바울이예수와함께죽었다고고백하는것은유대교에철저했던그에게있어종래의모든삶과사랑에대한부정이요새로운삶을향해전환 ( 轉換 ) 을이루는실로엄청난변화였다. 이변화된삶은그리스도께서지셨던십자가를지고고난가운데서도자기를부인하며그리스도를따르는제자의삶이다. 그러나그리스도와함께죽은이후에그가지고가는십자가는궁극적으로고통의삶이아니라오히려영광과승리의삶이었다 (W.G.Coltman). 한편 ' 함께십자가에못박혔나니 ' 에해당하는헬라어 ' 쉬네스타우로마이 '(* ) 는성도가그의십자가를짐으로써그리스도의죽음에영적으로동참하였음을의미한다. 여기서본서에처음등장하는 ' 십자가 ' 는율법의요구를완성하는의미로나타난다. 그리스도의죽음은율법의요구를이루려함이며 ( 롬 8:4), 또한실존적으로구약의모든율법적요구들을완성한역사적사건이다. 바울은그리스도와함께십자가에못박힘으로이제까지자기가메고있던율법의요구들로부터자유와해방을얻었다. 오직내안에그리스도께서사신것이라 - 이짧은구절안에그리스도의죽음과부활이모두언급되고있다. 바울은십자가위에서율법의모든요구를완성하시고죽었다가사흘만에부활하신그리스도안에서새로운삶을살게되었다 ( 롬 6:4). 그리스도와바울의완전한연합은그리스도에게접붙임을받는것이며그결과그리스도의풍성한열매를맺는것이다. 옛사람의자기교만과바리새인의자존심을버리는것이잠시동안자신에게패배감과고통을안겨주었지만, 그리스도께서그안에사심으로인하여얻은자유와평화는그고통과족히비교할수없는영광이었다 ( 롬 8:18). 이제내가육체가운데사는것은 - 본절에는세가지변화가나타난다. (1) ' 나 ' 대신에 ' 그리스도 ',(2) ' 율법 ' 대신에 ' 믿음 ',(3) 과거의 ' 옛사람 ' 대신에현재의 ' 새사람 ' 으로의변화가그것이다. 그리스도의십자가는바울로하여금모든변화를경험하게했다. 즉바울은그리스도의십자가의죽음으로말미암아율법아래서종노릇하는것으로부터해방되어의와사랑의종이되었으며 ( 롬 6:19), 비록제한된육체가운데살지만더이상자신을위한삶을살지않으며, 성령을좇는삶을살게되었다 ( 롬 8:4). 하나님의아들을믿는믿음안에서 - 그리스도인의삶은 ' 믿음안에서 ' 사는것이다. 이는과거에율법을
지켜행함으로의롭게되려고애썼던삶과는판이하게다르다. 예수께서는 ' 내말이너희안에 '( 요 15:7) 라고말씀하셨지만, 바울은 ' 아들을믿는믿음안에 ' 라고말한다. 이는주께서우리안에계실때 에는말씀으로존재하시며우리가그리스도안에있다는것은믿음으로그를따른다는의미이다. =====2:21 하나님의은혜 - 그리스도께서십자가에죽으신것과바울자신이그죽으심과부활에참여하게된신비적연합의사건이 ' 하나님의은혜 ' 로묘사되고있다. ' 은혜 ' 의헬라어 ' 카린 '(* ) 은 ' 하나님이주시는값없는선물 ' 이다. 하나님께서아들을십자가에서죽게하신것과우리로아들을믿게하신것은전적으로하나님의사역이다. 그리스도께서헛되이죽으셨느니라 - ' 헛되이 ' 에해당하는헬라어 ' 도레안 '(* ) 은 ' 연고없이 ',' 이유나목적이없이 ',' 불필요하게 ' 등의의미를지닌다. 갈라디아교회의유대주의자들이다시율법으로도아갈것을주장하는것은단순히율법에대한애착심과관심으로끝나는것이아니라그리스도의십자가를불필요한것으로만들어버리는결정적인잘못이다. 율법으로돌아가는것은옛생활에대한단순한향수 ( 鄕愁 ) 가아니라그리스도를다시십자가에못박고자하는범죄이며하나님의은혜를저버리는배신행위이다. 갈라디아서제 3장 =====3:1 어리석도다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아노에토이 '(* ) 는돌이킬수없는죄에대해책망하는것이라기보다는죄를분별할수있는능력이있으면서도그능력을사용하지않는것을질책하는것이다 ( 롬 1:14; 딤전 6:9; 딛 3:3). 본절과 3절에서두번에걸쳐사용되는이단어는매우도전적이고통렬한어투로진술되고있다. 바울은앞으로전개될결론에대하여보다준엄하고냉정한태도를취하고있다. 십자가에못박히신것이... 밝히보이거늘 - ' 밝히보이거늘 ' 의헬라어 ' 프로에그라페 '(* ) 는 ' 공적선언으로발표하다 ' ' 미리기록하다 ' 등의뜻으로부정관계형이다. 이는이미과거에편지를통해서나직접방문하여복음에대해언급한적이있음을보여준다. 바울은자신이처음갈라디아를방문했을때선포하였던복음의진리들을상기시키면서그때에그들이납득할수있도록선명하게전파하였음을강조한다. 그의미는너무나선명하여마치공공계시판이나그림과같이육안으로볼수있게끔제시했다는뜻이다. 특히바울은본절에서 ' 십자가에못박히신것 '(*, 에스타우로메노스 ) 를분사완료형으로기록하고있는데그의미는그리스도께서십자가위에서죽으신사건이과거에이미이루어졌다는것이다. 이것이 ' 밝히보인다 ' 고하는것은그십자가의공효 ( 功效 ) 가여전히지속적으로적용되고있음을시사한다 ( 고전 2:2,10). 그효과의지속성은갈라디아교인들뿐만아니라오늘날성도들을포함하여복음의핵심을듣고믿고자하는모든사람들에게동일하게작용한다. 누가너희를꾀더냐 - ' 꾀더냐 ' 의헬라어 ' 에바스카넨 '(* ) 은 ' 거짓된칭찬이나음흉한눈으로악을가져오다 ' 또는 ' 악한술책으로타락시키다 ' 라는뜻을가지고있는말로서신약에서는본절에서만사용되었다. 바울은지금갈라디아교인들의마음을어지럽게한거짓교사들이누구냐하는것을문제삼고있는것이아니라선명한복음의핵심을잃어버릴수있느냐를묻고있는것이다. 한편 ' 에바스카넨 ' 은 ' 시기하다 ' 는뜻으로도해석이가능하다. 즉유대인들이그리스도안에있는자유를부러워하여 ' 너희를시기하느냐 ' 는뜻으로이해할수있다. 그러나이러한해석은전체적인문맥이의도하는목적을충족시키지못하는것같다 (Cole). =====3:2 율법의행위로냐듣고믿음으로냐 - ' 율법 ' 의헬라어 ' 노모스 '(* ) 는구원에이르는수단으로서의 ' 믿음 ' 과상대되는개념으로사용되었다. 율법은그리스도에게로인도하는몽학선생 (24절) 으로서의역할을할뿐이지만갈라디아의율법주의자들은오히려율법을중요하게생각하고율법의행위를강조하였다. 이에대하여바울은 ' 너희가성령을받은것은율법의행위로냐듣고믿음으로냐 ' 라는양자택일의문제를던진다. 이것은곧율법을따르는자들에게는들음이요구된다는점을암시한다. 여기서 ' 들음 ' 은십자가와부활의역사적사건에대한반응이다. 이와관련하여바울은로마서에서믿음은들음에서난다는점을강조하였다 ( 롬 10:14-17). 또한베드로는믿음이들음에서난다는것을주장하며전파하는자의소명을강조한바있다 ( 행15:7). ' 들음 ' 은전파하는자와성령의사역으로되어지는것이기에불완전한인간이행하는행함과족히비교할수없는은혜의방편이
다. =====3:3념으로등장한다. ' 육체 '(*, 사륵스 ) 는본서에서크게두가지의미로사용되었다. (1) 할례를자랑으로여기는자들이내어보이는인간의신체를가리킬때사용되었으며 (6:13) (2) 본절에서와같이성령의하시는일과대조를이루는인간적인삶의방식을상징하는의미로사용되었다. 본절에서바울이의도하는바는두번째의미로서육적인자아 ( 自我 ) 를십자가에못박은성도가 (2:20) 어떻게다시그육체적자아로돌아갈수있겠느냐는것이다. 그리스도로말미암아새생명을얻은성도는성숙한신앙의열매 (5:22, 23) 를맺기위해부단히정진하는삶을살아가는것이마땅하며다시는율법의종으로돌아갈수없다 (Howard). =====3:4 괴로움을 - 헬라어 ' 에파데테 '(* ) 는 ' 파스코 ' 의부정과거형태이며 ' 파스코 ' 는 ' 선한또는악한경험을하다 ' 라는뜻이다. 개역성경은 ' 악한경험을했다 ' 는뜻으로번역하였으나 NEB는 ' 영적인놀라운일 ' 즉영적인축복들을의미하는 ' 선한경험 ' 으로번역하였다.' 파스코 ' 가성경에서주로 ' 고난당하다 ', ' 괴로움을받다 '( 마 27:19; 막 9:12; 눅 22:15;24:46; 고전 12:26; 빌 1:29; 히 2:18;9:26) 의의미로사용되나, 본절에서선한영적경험으로사용되었다는주장도정당성을가질수있다. 악한의미에서의괴로운경험과선한의미에서의영적경험이라해석하는두견해를각각살펴보면다음과같다.(1) 악한경험, 즉박해의의미로받아들이는자들은본문이바울과바나바가남갈라디아지방에서교회를세울때에받았던고난을 ( 행13:50;14:2, 5, 19, 22 등 ) 의미하는것이라고받아들인다 (Lenski, Robertson). 비록본절의박해가남갈라디아에서의박해 ( 행 14장 ) 를의미하지않는다할지라도바울은지금유대주의자들로부터받았던모든박해를회상하고있다는것이다 (Cole). (2) 축복된영적경험으로해석하는자들은 ' 너희가그렇게풍성한영적축복들을받았는데그것을헛되게하려느냐?' 라는의미로본문을해석한다 (Boice). 이견해를주장하는자들은갈라디아교회가성령의풍성한능력을받았다고말하는 5절과본문을연결시킨다. 또한이들은갈라디아교회가성령으로거듭나게되는놀라운능력을체험했음에도불구하고육체의소욕 ( 所欲 ) 을따라행하려느냐는 3절과본문을연결시킨다. 사실본절과긴밀하게연결된문맥을살펴본다면하나님께서성령주심 (3절), 하나님께서갈라디아사람들가운데능력행하심 (5절) 등긍정적이고영적인경험으로번역되는것이더타당하다고본다. 과연헛되냐 - 바울은여전히 ' 아니오헛되지않습니다 ' 라는대답을기대하고수사의문문을사용한다. ' 헛되냐 ' 의헬라어 ' 에이케 '(* ) 는 ' 아주보잘것없는무가치한것 ' 을의미하며여기서는 ' 믿음으로부터벗어나있는상태 ' 를가리킨다 (Lenski). 진정그들이믿음에서떨어져나간상태에거하게된다면그들을부른신하나님의사역과성령의풍성한은사와또한바울이갈라디아교회를향하여가졌던사랑과수고한모든열심이헛된것이되고말것이다 (4:11). =====3:5 너희에게... 행하시는이 - 본절은형식상 2절과유사하나그내용에있어서는몇가지의차이점을가진다. (1) 2절에서는성령을보내시는하나님이주체가되신다. 즉2절에서는갈라디아교인들이성령을받았던근거가무엇이냐에관심을두는반면, 본절에서는하나님이어떠한기준에따라서성령을주시느냐는물음에초점을두고있다. (2) 2절은갈라디아교인들이성령을받았던과거사실에역점을두어과거시제로표현했지만본절은현재시제로되어있다. 특히하나님이성령을 ' 주시고 '(*, 에피코레곤 ), ' 능력을행하시는 '(*, 에네르곤 ) 두사역은현재분사를사용하고있다. 이는과거에도사역하셨지만지금도사역하시는현재적인의미를보다부각시키기위한것이다. 바울은지속적 ( 持續的 ) 의미를나타내는두개의현재분사를사용하여하나님께서갈라디아교인들이처음회심할때뿐만아니라지금도계속역사하고계심을강조하고있다. 한편 ' 능력 ' 의헬라어 ' 뒤나메이스 '(* ) 는 ' 에네르게오 '(*, ' 행하시는 ') 와연결되어현재적의미를강조할뿐만아니라, 그능력은하나님의사람들에게만베풀어질수있다는제한성을보여준다. 성령을주시고 - 바울서신에서는보통 ' 주다 ' 라는의미로 ' 디도미 '(* ) 라는단어가사용되었다 ( 고전 12:7; 고후 1:22). 그러나본절에서바울은일반적인용어인 ' 디도미 ' 를
사용하지않고 ' 에피코레곤 ' 을사용하고있다. 이는 21절에서 ' 율법을주셨다 ' 는의미로사용된 ' 디도미 ' 와구별하기위함인것같다. 또한 ' 에피코레곤 ' 은 ' 값없이제공하다 ' 또는 ' 지원하다 ' 등의의미를가지고있다. 바울은본절에서 ' 에피코레곤 ' 을사용함으로그리스도인들에게주신보혜사성령이율법과는달리값없이주신선물임을강조하고있다. =====3:6 본절은바울이 4:7까지믿음과율법을번갈아가며전개하고있는순차적 ( 順次的 ) 인논증의첫번째항목이다 (Boice). 바울은갈라디아사람들이아브라함에대해잘알고있다고전제하고구약의내용에서도믿음으로구원을얻는사실을가르치고자하고있다. 아브라함이하나님을믿으매... 의로정하셨다 - 유대인의조상아브라함은무엇으로하나님앞에서의롭다고인정을받았는가? 그리고그 ' 의 ' 의성격은어떠한것인가? 바울은로마에서아브라함이할례를행하기이전에의롭다함을받았다고설명하였다 ( 롬 4:10). 바울이갈라디아의유대주의자들앞에서특별히아브라함을논쟁의중심으로삼고있는것도바로무할례시에아브라함이의롭다함을받은사실때문이다. 그렇다면본절의 ' 의 '(*, 디카이오쉬네 ) 는어떤의미로쓰였는가?(1) ' 법률적인칭의 ' 를의미할수도있다 (Boice). 아브라함의행위역시하나님께의롭다함을인정받기에는부적합한것이었으므로아브라함의 ' 의 ' 역시선언적의미가큰것은사실이다. (2) 또아브라함과하나님과의관계속에서가지는그의올바른태도를의미할수도있다 (E.D. Burton, Cole). 창 15:6에서볼수있듯이아브라함이자기를부정하고하나님을전폭적으로신뢰한것이하나님께의로인정되었다고본다. 즉하나님과의바른관계속에서아브라함이하나님을향하여신실한태도를보임으로말미암아하나님이의롭게여겼다고본다. 즉하나님과의바른관계속에서아브라함이하나님을향하여신실한태도를보임으로말미암아하나님이의롭게여겼다고본다. 두견해들모두에게서중요한것은의롭다하는것이아브라함을근거로하지않는다는사실이다. 의롭다하시는이는바로의롭다고여기시는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 의 ' 역시신약백성이우리의의와같이대속하신구세주의은혜로얻게되는것이며단지아브라함은이미계획된하나님의약속앞에서선취 ( 先就 ) 된 ' 의 ' 일뿐이다 ( 고후 5:21). 시간상으로아브라함의의는할례를받기이전에인정되었으며아들이삭을하나님께바치려고한믿음과순종의태도를보이기이전임을상기시키면서바울은자기교만과의를자랑하는유대주의자들을책망함과동시에할례의무용성을강조하고있다. =====3:7 믿음으로말미암은자들은아브라함의아들 - 바울이할례받지아니한믿음의무리들을아브라함의아들이라고부른것은유대주의자들에게는매우놀라운일이다. 여기서바울이 ' 아들 '(*, 휘오스 ) 이라고한것은 ' 아이 '(*, 테크논 ) 라는말과의미상차이가크다. ' 아들 ' 은일차적으로육신을통하여태어난자손들을의미하지만, 신약의다른곳에서는조직의일원임을나타내는단어로서가계 ( 家系 ) 와상관없이사용되기도하였으며마 12:27에서는종파의일원을뜻하는말로사용되기도하였다. 본절에서바울이믿음으로말미암은자들을아들이라고부른것은믿음으로의롭다함을받은아브라함과이들을동격으로취급하기위함이다 (Lenski). 그들은아브라함의영적자녀들로서아브라함에게부여된구원의약속을상속받는자들이기때문이다 (29절; 롬 4:13; 엡 3:6) =====3:8 정하실 - 하나님은모든것을아시며모든것을계획하신다 ( 롬 3:21). 하나님의작정은시간이시작되기이전에세워져서역사의과정속에서변함없이지속되는영원한것이다 ( 엡 1:11). 따라서한번작정된하나님의의지는변하거나죄인의반항에의하여실패하거나좌절되지않는다 ( 사 46:10). 하나님의포괄적인작정은아브라함의구원계획을역사속에서구체적으로이루셨다. 성경이미리알고 - 보통구약을인용할때에는 ' 말하다 ' 라는의미의헬라어 ' 레게이 '(* ) 나 ' 에이페 '(* ) 등이사용되나본절에서는 ' 알다 '(*, 프로이두사 ) 라는보다의인화된표현이사용되고있다. 이러한의인법 ( 擬人法 ) 은 22절의 ' 다두었느니라 ' 는단어에서더선명하게나타난다. 성경을의인화시키는것은직접말씀하시는하나님과의관계를좀더밀접하게묘사하기위함이며, 또한두개의주어, 곧하나님과의말씀이동격에있음을보여준다. 복음을전하되 - 아브라함에게작정되고전하여진복음은기록에따라약간의차이는있지만, 그주된내용은 ' 너를통
하여모든이방이복을받으리라 '( 창 18:18;22:18) 는것이다. 예수께서는아브라함이장래에관 한하나님의구원의약속을믿었음을나타낸다. 또한이것은오늘날우리가예수그리스도를믿음으 로말미암아구원을받게된것과일맥상통하며그것이곧복음의내용임을보여준다. =====3:9 아브라함과함께복을받느니라 - 일반적으로구약에나타난 ' 복 '(*, 베라카 ) 은말로써부모가자녀에게빌어주는것으로, ' 건강 ', ' 장수 ', ' 재산 ' 등다분히현세적이며물질적인성격을가진것이었지만 ( 신 28:6), 본절에서의 ' 복 '(*, 율로기아 ) 은영적의미를강조하는것으로믿음으로인하여아브라함과같이의롭다고칭함을받는구원을의미한다 ( 벧전 3:9). ' 복 ' 은어느개인이나특정한민족들에게만제한되는것이아니다. 모든이방민족들도믿음으로말미암아아브라함이누렸던축복에동참하게되는것이다 ( 롬 4:24) =====3:10 무릇율법행위에속한자들은... 저주아래있는자라 - 율법의행위를구원의방편으로삼고자하는자는모두저주아래있다는바울의말은죄의보편성 ( 普遍性 ) 을전제하고있다. 이말은 ' 율법을따르는자들은칭의를받을수없다 ' 라는율법자체에대한부정적시각이라기보다는율법을따르려는사람들이모든율법을지키더라도하나의율법을어기면저주아래놓이게된다는인간의완벽할수없는연약함을보여주는표현이다. 만약에인간이하나의율법도어기지아니하고모든율법을지킨다면그는의롭다고칭함을받을수있을것이다. 그러나바울이아와같이말하는것은율법의기능이인간의죄인됨을드러내는것이며또한모든사람이율법을따라야하는필연적인의무를가졌음에도 ( 레 19:2) 불구하고이행할수없기때문이다 ( 롬 7:24). 인간의능력으로는도저히지킬수없는율법은단지정죄와진노의기능을가질뿐이다 ( 롬 4:15;5:16, 18). =====3:11 의인이믿음으로살리라 - 율법에대한부정적인시각으로칭의를설명해온바울은이제보다긍적적이며적극적인시각으로칭의에접근한다. 바울이구약에서인용한 ' 의인이믿음으로살리라 '( 합 2:4) 는구절은구원에관한여러구절들중에하나이다. 본구절은원래하박국이갈대아인의침공을염두에두고한말이다. 즉사악한자들을심판하시려는하나님의진노앞에서하박국은하나님을향한겸손과신뢰로이와같이고백하고있다. 바울과하박국의입장이다른것은사실이나필할수없는위기와저주가운데서믿음으로 ( 롬 1:17) 여호와를바라는것은동일한것이다 (Boice). 결국하나님과의올바른관계를맺고그앞에살고자하는자는오직 ' 믿음 ' 에의지해야할것이다. =====3:12 이를행하는자는그가운데서살리라 - 바울은갈라디아의유대주의자들앞에서구약을인용하여 ( 레 18:5) 믿음과율법이조화될수없는관계임을증거한다. 율법으로행하려는자들은끝까지율법을행하는삶을살아야하며, 율법을행치않으면저주를받는다 (27:26). 결국율법주의자들은자신들의행한바의로운행위로구원하시지아니하는심판에이르러서야그들의저주를깨닫게될것이다 ( 딛 3:4, 5). =====3:13 속량하셨으니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 엑세고라센 '(* ) 은 ' 값을치르고사다 ', ' 되돌려사다 ' 등의의미를가진다. 본절에서이말은율법의노예가된우리를그리스도께서값을치르고사셨다는의미로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치르신대가는십자가의피였다. 죄없으신그리스도의죽음은속전 ( 贖錢 ) 의개념에서해석되며 ( 출 21:30) 아들을나무에달리게하는저주 ( 신 21:23) 까지받게하신것은성부하나님의사랑에기인한다 ( 사 53:6). =====3:14 그리스도예수안에서아브라함의복이이방인에게미치게하고... 성령의약속을받게하려함이니라 - 그리스도의대속적죽음으로성도들을구속한목적이두가지로나타난다. (1) 아브라함의복이유대인뿐만아니라이방인에게미치게하려는것이며 (2) 믿는자들이성령의약속을받게하려는것이다. 아브라함의복은믿음으로인해의롭다함을받은신약의성도들에게널리미치게되었고 (9절주석참조 ), 성령의약속은예수의부활이후성취되었다 ( 요 14:16-18; 행 1:4). 이처럼의롭다
함을얻는것과성령을선물로얻는것은아브라함이받은복과같은성격이다. 왜냐하면이방인에게미치는아브라함의축복이하나님의약속이듯이 (8절) 예수그리스도로말미암아의롭게되고성령을받게되는것역시하나님의약속이기때문이다 ( 눅 24:49). =====3:15 사람의언약이라도정한후에는아무나폐하거나더하거나하지못하느니라 - ' 언약 ' 에해당하는헬라어 ' 디아데케 '(* ) 는주로 ' 유언이나유언장 ' 이라는의미로사용되나 70인역에서는몇번의예외를제외하고대분분 ' 언약 ' 이라는의미로해석되었다. 이말이 ' 유언 ' 이라고번역될수도있으나본절에서 ' 유언 ' 이라는뜻으로해석될수없는것은유언은유언자가죽어야그효력을발생하기때문이다. 따라서하나님의유언이되려면하나님의죽으셔야한다는결론이된다. 그러나하나님의죽으심을가정한다는것은불가능한일이므로이단어를 ' 유언 ' 으로해석하는것은무리가따른다. 바울은본절에서사람사이의언약의견고성 ( 堅固性 ) 을예로들어하나님과아브라함이맺은언약의불변성 (16절) 을설명한다. 하나님의언약은사람이맺은언약과큰차이가있다. 창 15장에서하나님이아브라함과언약을세우시는정황을살펴보면그차이가분명히드러난다. 일반적으로계약자들을쪼갠짐승사이로지나가셨다. 이것은하나님이언약의주권자로서기필코하신약속을이루시겠다는강한의지의표현이다 ( 히 6:13-15). 바울이이처럼하나님의언약과본질적으로차이가있는사람의언약을예로들어하나님의신실성을표현하는것은하나님의언약이절대적으로성취된다는점을극명하게보여주기위함이다. =====3:16 오직하나를가리켜네자손이라하셨으니 - ' 자손 ' 에해당하는헬라어 ' 스페르마티 '(* ) 는복수형인 ' 스페르마신 '(* ) 과함께집합적의미로사용된다. 그럼에도바울이 ' 오직하나 ' 라는강조문구를덧붙인것은바울이헬라어를잘몰랐다거나바울자신이랍비적논증방식을사용하여랍비적배경을가진사람들에게설득하려고했음을나타내지않는다. 바울은 ' 스페르마티 ' 를집합적인의미로사용한예도있지만 ( 롬 4:16-18;9:6-8), 본구절에서는단수의의미로사용함으로써궁극적인메시야의축복이한사람을통해이루어질것임을강조하고있다 (Boice). 곧그리스도라 - 바울은하나님과아브라함이맺은언약의중심을그리스도에게로끌어온다. 아브라함에게제시된언약은당대의육신적인자손들이나율법에의하여성취된것이아니라예수그리스도에의하여성취되었기때문이다. 혹자는본절을궤변적인랍비적논쟁방법에의한삽입구로간주하려고한다 (Howard, Cole). 그러나본절에서바울이분명하게주장하는바는약속의성취는그리스도에게집약되어이루어졌다는사실이다. =====3:17 사백삼십년후에생긴율법 - 이것은출 12:40에근거한기간이다. 그러나이기간은접근방법에따라다양하게설명된다. (1) 애굽에서노예생활을했던기간으로볼수있는데, 이에대한근거는히브리어본문을기초로한번역본들에서나타나고있다 (Boice). (2) 아브라함과모세사이의기간으로보는경우가있다. 이는헬라어사본 (LXX) 에근거한견해이다 (Hendriksen). (3) 아브라함의언약이확정된야곱때로부터시내산율법을주신때까지의기간으로추정하기도한다. 이견해는 (2) 의견해와비슷하지만다른점은아브라함의언약이야곱에게와서확증되었다는것이다. 아무튼, 본절에서바울이말하고자하는바는주어지기까지상당한기간이지났다는사실이다 (Lenski, Howard, Cole). =====3:18 만일그유업이율법에서난것이면약속에서난것이아니리라... 아브라함에게은혜로주신것이라 - 바울은다시한번율법과약속을대립시킴으로율법이약속을파기할수없다는것 (17절) 을강조한다. 율법과약속이본질적으로대립되는이유는율법이행함을근거로하기때문이다. 행함은구원을이룰수없으며가까이가면갈수록더큰저주를초래할뿐이다. 한편 ' 은혜로주신 ' 의헬라어 ' 케카리스타이 '(* ) 는 ' 카리스 '(*, ' 은혜 ') 에서온말로구원이값없는은혜임을보여주며, 이말이완료형인것은구원의영원불변성을나타낸다 (Boice). 또한 ' 유업 '(*, 클레로노미아 ) 이약속에의하여주어졌다는사실은구
원이율법에의하여 타낸다. 성취되는것이아니며다만율법은구원을이루는수단으로주어졌다는것을나 =====3:19 율법은무엇이냐범법함을인하여더한것이라 - 지금까지율법이약속을폐하지못하리라는것을증명한후에이제바울은율법의목적에대하여설명한다. 율법의목적은 ' 범법함을인하여더한것 ' 이라고한다. 공동번역은 ' 범법함을인하여 ' 대신에 ' 죄가무엇인지알게하시려고 ' 율법을주신것으로번역하였다. 그러나본절에서 ' 죄 ' 에해당하는헬라어 ' 하마르티아 '(* ) 를사용하지않고 ' 파라바시스 '(*, ' 범함 ') 를사용한것을기억해야한다. 바울은로마서에서도율법의목적을논하면서 ' 율법으로는죄를깨달음이니라 '( 롬 3:20) 에서는 ' 하마르티아 ' 를사용했고 ' 율법이없는곳에는범함도없느니라 '( 롬 4:15) 에서는 ' 파라바시스 ' 를사용하였다. 본절에서우리가생각해야할것은율법이주어지기전에인간들은 ' 죄 ' 가무엇인지몰랐다는사실이다. 그렇다고세상에죄가없었다는것이아니라, 율법으로말미암아죄를죄되게하고사람들로하여금죄를인식하도록했다는것이다 ( 롬 5:20 주석참조 ). 천사들로말미암아중보의손을빌어 - 율법이주어질때천사가함께했다는암시는신 33:2에서찾아볼수있다. 또한스데반은율법을천사가전한것으로언급한다 ( 행 7:53). 바울은스데반이따랐던개념을그대로사용한다. 그러나본절에서바울이강조하는바는천사가중보자가되었다는사상이아니라율법이누군가에의하여, 즉최소한천사와모세에의하여전달되었다는사실이다 (Boice). =====3:20 중보는한편만위한자가아니나오직하나님은하나이시니라 - 본절은본서에서가장난해한구절가운데하나이다. 학자들은견해도 250-300여개정도로너무많이있어하나의견해를취한다는것이쉽지않다. 수많은견해들을세가지부류로정리하면다음과같다. (1) ' 중보 '(*, 메시테스 ) 는일반적인의미로앞절에서제시한중보그자체를가리킨다는것이다. 즉율법은중보를통해사람들에게간접적으로주어졌으나하나님의약속은중보를내세우지않고직접세우셨다는것이다 (15-18절).(2)' 중보 ' 를모세로보는견해가있다. 이는문맥에비추어본해석으로서앞에서줄곧모세율법에관해언급한데다가본절에서는정관사 ' 호 '(* ) 가있다는사실에근거한다. 그러나정관사가있다고하여그것이꼭한개인을지칭한다고볼수는없다 (Boice). (3) ' 중보 ' 를그리스도로보는견해도있다. 이는바울이딤전 2:5에서 ' 중보 ' 라는말을그리스도에관해사용하고있다는것에근거한다 (Jerome,Chrysostom, Cole). 그러나이해석은문맥에비추어보면어울리지않는다. 결국위의여러견해들이일치를보기란불가능하다. 다만본절에서바울은율법이중보에의하여전달된반면약속은하나님에의하여직접적으로주어졌다는사실을강조하려고한다. 이는약속의직접적인전달과하나님의주권적이고일방적인언약체결을보다선명하게나타내준다. 또한그리스도가중보가되었든지, 천사나모세가중보자가되었든지간에율법이직접주어지지아니한것만은사실이다. 이에바울은약속이창15장에기록된대로하나님의주권적이며무조건적인일방성 ( 一方性 ) 에의하여주어진것임을강조하면서율법보다약속이우월하다는것을증명한것이다. =====3:21 율법이하나님의약속들을거스리느냐결코그럴수없느니라 - 율법이약속을폐할수없다는것이증명되었다. 그러나율법과약속은서로대립되지않는다. 왜냐하면양자는근본적으로하나님으로부터왔기때문이다. 율법과약속이서로대립된다면하나님의속성이내부에서서로대립되는것이되고만다. 약속과율법은서로다른목적을위하여주어졌다. 율법이죄인을그리스도에게로인도하는역할을한다면, 약속은그리스도안에서구원을얻게하는역할을한다. 따라서이둘은서로다른역할을가지고있으면서도동일하게하나님의구속경륜에필요한요건이되었다. =====3:22 성경이모든것을죄아래가두었으니 - ' 성경 ' 에해당하는헬라어 ' 헤그라페 '(* ) 는 ' 율법 '(*, 노모스 ) 과동일한의미로쓰인것이분명하다 (Bruce, Cole). 바울은앞구절에서의의가율법으로말미암지않는다는것이명백히보여준뒤본절에서는율법이가진실제적인기능은모든사람을죄의굴레속에가두는것이있다는것을명백히보여준다. 율법은인간을정죄하
기때문에사람이율법주의를통해하나님께의롭다고여김을받을수없으며다만예수그리스도를믿는믿음을통해하나님의약속을받을수있다. 모든것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타판타 '(* ) 는중성으로쓰였는데이는가장포괄적 ( 包括的 ) 인범위를뜻하는용법이다. 바울이이말을사용한것은이례적이다. ' 타판타 ' 가지시하는내용은크게세가지로구분할수있다. (1) 유대인뿐만아니라이방인을포함한모든사람들을가리킨다. (2) 타락한인간이소유하고있는모든것, 즉말, 행위, 생각등을가리킨다. (3) 인간의타락으로말미암아타락된모든피조세계 ( 롬 8:22) 를가리킨다. 아담의타락에의하여모든피조세계가타락한것은사실이지만, ' 타판타 ' 가이러한의미로사용되었다고유추하는것은무리가있다 (Boice). 오히려본절에서는 ' 모든것 ' 이하반절의 ' 믿는자 ' 라는인칭대명사와의연관하에이해됨이타당하다. 물론본절에서바울이이방인에대한율법의적용에대하여구체적으로언급하지는않았지만, 최소한이말이본문에서예수그리스도에의하여구원될자들의옛상태를지시하는말로사용된것만은사실이다. =====3:23 율법아래매인바되고 - ' 매인바되고 ' 의헬라어 ' 에프루루메다 '(* ) 는 ' 프루레오 '(* ) 의미완료수동태로서 ' 점진적으로조여오다 ' 는 의미이며때로는 ' 보도하 다 ' 는의미로사용되기도한다. 이단어의시상이미완료인것은매여있던상태가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로부터지금까지계속되었음을암시한다. =====3:24 그리스도에게로인도하는몽학선생 - 율법의한계는명확하게드러났다. ' 몽학선생 ' 에해당하는헬라어 ' 파이다고고스 '(* ) 는 ' 아이를돌보는자 ', ' 어린아이에게시중드는자 ' 라는의미로원래 6세에서 16세까지의아이들을돌보는노예신분의사람을가리키는용어였다. 몽학선생은가정교사로서가정의예법 ( 禮法 ) 을가르치기도하며아이가학교에오고갈때에길을인도하는노예로이해되기도하였다. 몽학선생은대부분의경우에있어서 ' 교사 '(*, 디다스칼로스 ) 로서의개념으로만이해되지는않았다. 바울은율법이그리스도보다낮은지위에있다는것을설명하기위해율법을몽학선생에비유하고있다. =====3:25 믿음이온후로는 - 믿음이오기전까지 (23절) 율법은자기의임무를수행할뿐이다. 그리스도께서이땅에오시는역사적인성육신사건에의하여율법의임무는끝났다. 율법으로부터믿음으로옮겨지는역사적믿음으로그리스도를영접하는모든자들에게있어서되풀이되어나타나는구체적인사건이다. 따라서궁극적인목표가성취된율법은더이상그리스도안에있는성숙한자녀들을지배하지못한다 ( 롬 7:6). =====3:26막아브라함의자손이된사람들이예수그리스도안에서하나님의아들이되었다는것은곧 ' 양자 '(*, 휘오데시아 ) 가되었다는것을의미한다. 이는크게두가지의의미를가진다. (1) 죄아래놓여있던자들이믿음으로말미암아창조주하나님과바른관계로회복되었음을의미한다. 하나님은창조주로서모든만물을만드신자이시며 ( 행 17:28) 모든인간들의아버지가되시나, 죄아래매인인간들을이제죄로부터해방되어회복된질서속에서하나님의아들이라칭함을받는특권을누리게되었다. (2) 하나님의아들로서아버지라부를수있는것은성령에대한약속이성취되었음을보여준다 (14절). 왜냐하면성령이우리로하여금하나님을아바아버지라고부르도록하시며우리가하나님의자녀된것을증거하시기때문이다 ( 롬8:14-16). 우리가하나님의자녀된것을증거하는자가있다는것이곧성령의약속이성취된증거이다. =====3:27한다. 세례는복음의핵심을설명하는데있어서매우중요한개념이다. 본절에서세례는할례를대신하는구원의방편으로제시되지않았다. 세례는믿음을통해서이미이루어진그리스도와의연합을나타내는외적의식 ( 儀式 ) 이상의의미를갖는다. 즉세례를통하여그리스도의새생명에연합하게되고이로써삶의변화를경험할수있게되는것이다. 이러한삶의변화를경험할수있게되는것이다. 이러한일련의사실은약속된성령의사역으로서구원의인치심을확증한다. 그
리스도로옷입었느니라 - ' 세례받는자 ' 의또다른표현이다. ' 옷입었느니라 ' 의헬라어 ' 엔뒤오 '(* ) 는일반적으로 ' 겉옷을입는다 ' 는의미로사용되나바울서신에서는새로운인격과연합한삶의모습을나타내는의미로사용되곤하였다 ( 롬13:14). 성령으로거듭난자들은세상가운데서의와진리와거룩함을따라그리스도를드러내는의로운삶을사는것이당연하다. 그리스도로옷입는것은세상의정욕과썩어져가는옛사람을벗어버리고하나님의전신갑주를입는것이며 ( 엡 6:11,14) 구원의옷을입는것이다 ( 사 61:10). =====3:28 그리스도예수안에서하나이니라 - 믿음으로말미암아그리스도와연합하여하나님의자녀가된성도들은그리스도의몸을이루는지체로서하나가된다. 즉 ' 믿음 ' 을공통분모로하는자들은인종이나신분이나성별의차이에상관없이하나이며믿음으로하나님아버지께로나아갈수있다. 여기서바울은 ' 하나 '(*, 헤이스 ) 라는표현을사용하여교회가통일성을가지고있음을나타낸다. 아마도바울은갈라디아교회가혼란과분쟁가운데빠져있음을염두에둔것으로보인다. 특히이방인들에게할례를요구하는유대주의자들의독선적인우월주의 ( 優越主義 ) 를의식하였을것이다. =====3:29 그리스도께속한자면... 약속대로유업을이을자 - 유대주의자들은율법을통해서만유업을이을수있다고생각했고유대인이되려면먼저할례를행해야한다고확신했다. 할례를행하는자들만이아브라함의자손이될수있으며아브라함에게약속된유업을받게될것이라고믿었던것이다. 바울은이러한상태에있는갈라디아교회의유대주의자들을염두에두고율법이갖는역할과의미를아브라함의약속과견주어설명하고나서지금까지의논쟁을결론짓는다. 곧진정한의미에서, 아브라함의자손으로약속대로유업을이을자는 ' 그리스도께속한자 ' 라는결론을내린다. ' 그리스도께속한자 ' 는신분이나사회적지위나인종에관계없이믿음으로예수그리스도를자신의주 ( 主 ) 로영접한자를가리키는관용구였다. 갈라디아서제 4장 =====4:1 내가또말하노니 - 이것의헬라어 ' 레고데 '(* ) 는 바울이 새로운진술을 시작할때앞서언급된사건에대한부연설명을할때일반적으로사용된 형식이다 ( 롬 15:8; 고전 1:12). 그는 3장마지막부분 (3:23-29절 ) 에서언급한내용에대하여비유를사용하여계속설명하 고있다. 즉, 바울은율법아래있던상태에서믿음으로말미암아의롭게되는변화를마치다른사람 의보호를받던유아기로부터 스스로선택권과자유를가지는성년으로변화되는것에비유한다. 어렸을동안에는 - ' 어렸을 ' 에해당하는헬라어 ' 네오피스 '(* ) 는 ' 말을못하는자 ' 라는뜻이다. 바울은 ' 네오피스 ' 라는단어를기독교진리의 장성한분량을감당할수없기때문에 ' 젖 ' 을먹어야하는연약한자들을비유하는데사용하였다 ( 고전 3:1, 2). 본절에서는 성년과대조하여미 성년의상태를가리킨다. 유대에서는만 12세까지를미성년으로취급하였는데이들은재산을소유할 수는 있었으나재산권을행사할수없었다는점에서종과다를바가없었다. =====4:2 그아버지의정한때까지 - 로마시대의관습법상미성년자는 14세까지그의아버지가의뢰한후견인아래있었으며재산권은 25세가될때까지청지기가대신관리했다. 그러나명확히고정되어있지않았던것같다 (Lightfoot). 아마도이들이성년이되는것은아버지의재량권 ( 載量權 ) 에달렸던것으로보인다. 로마의아이들은매년3월 17일에열리는 ' 리베랄리아 '(Liberalia) 라는가족들의잔치에서성인이되었고, 그아이는공식적으로아버지에의해인정되는아들이자상속자로받아들여졌다 (Boice). 이것이사실이라면바울이언급하는 ' 그아버지의정한때까지후견인과청지기아래 ' 있다는말은로마의관습을가리키는것임이분명하다. 바울이비유한논리속에서우리는율법의종된상태에서믿음으로자유자가되는것은그작정한때를따라행사하시는하나님의주권적의지에달려있음을선명하게알수있다. 후견인과청지기 - 앞에서바울은율법을 ' 파이다고스 ' 에비유하였고여기서는 ' 보호자 '(guardians), ' 어린아이를책임지는자 ' 등의뜻을가진 ' 후견인 '(*, 에피트로푸스 ) 과 ' 가문의재산을관리하는자 ' 라는뜻을가진 ' 청지기 '(*, 오이코노무스 ) 에비유했다. 바울이몽학선생보다더구체적이고법률적인지위를가진
직책들을비유로사용한것은율법아래매인자들의종속상태를강조하기위함인것같다. 비록유대주의자들이스스로를하나님의자녀라고생각할지라도, 그들은율법의청지기와후견인에게매인자들로서실제적인권한은없고참자유를누리지못하는미성년자의상태에처한것과같았다. =====4:3 초등학문아래있어서 - ' 초등학문 ' 의헬라어 ' 스토이케이아 '(* ) 는 ' 차례 ', ' 질서 ', ' 순위 ' 등을의미하는 ' 스토이코스 '(* ) 에서유래한말로크게세가지의의미를갖는다. (1) 헬라사회에서세상을구성한다고하는기본적인네요소, 즉물, 불, 흙, 공기등을뜻하는것으로사용되었다. (2) 하늘의해와달과별들이 ' 초보적영들 '(elemental spirits) 에의하여움직여진다고믿었던점성술에서의천체숭배를가리킨다 (Ambrose, Augustine, Chrysostom). 점성술에대한내용은구약의유다왕므낫세에게서찾아볼수있는데, 유대인들중어떤사람들은그들의바벨론포로생활이므낫세와그를따르는무리들의 ' 별숭배 ' 때문이라고믿었다 (Cole). 초대교회당시에는유대교의영향을받은영지주의자들이혼합주의적인신비종교를만들면서 ' 스토이케이아 ' 를하늘과땅의모든공간에존재한다고믿는 ' 모든영과천사들과마귀들 ' 을뜻하는단어로사용하였다. (3) 종교적지식의미숙한단계또는어떤분야에있어서의초보단계 ( 행 15:10; 골 2:8, 20; 히5:12 등 ) 를의미한다 (Jerome, Tertullian, Calvin, Lightfoot). 본절에서 ' 스토이케이아 ' 는 (2) 와 (3) 의뜻을가리킨다고보는견해가지배적이다. 이렇게볼때바울이유대인의율법주의나천체숭배및그리스도신앙에미치지못하는모든의식과사상들을 ' 초등학문 ' 이라는독특한개념속에포함시키고있음을알수있다 (9, 10절 ; 롬 8:38). 즉바울은그리스도신앙이외의모든다른것들을우상적이며유치한것으로취급하였다. =====4:4 때가차매 - ' 때 ' 에해당하는 ' 크로노스 '(* ) 는 2절의 ' 아버지의 정한때 '(*, 프로데스미아 ) 와연관이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주권적으로작정한기간이 지났음을시사한다. 또한때가차기전에일정한기간동안율법에매여있었던암담한상태가끝났음 을암시한다. 한편 NIV는본문을 ' 시간이충만하게임하였을때 '(When the time had fully come) 라 고번역하였다. 이는율법이하나님의백성을억압함으로그들이더이상견디기어려운무기력과곤고 함에 이르렀음을보여준다. 하나님이그아들을보내사 - 바울서신에서 ' 보내다 ' 라는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는세가지가있다. (1) ' 아포스텔로 '(* ) 는특별한임무를 주 어보낸다고하는데에역점을주고있다 ( 요 17:18). ' 사도 '(*, 아포스톨로스 ) 가 ' 보냄을받은자 ' 라는의미를가지는것은그와 같은 사실을잘설명해준다. (2) ' 펨포 '(* ) 는하나님이아 들을 보낸다는 의미로 ( 롬8:3) 아버지께서성령을보내신다는의미로 ( 요 14:26) 쓰였다. 이는 단 지 보낸다고하는사실에역점을두고있다. (3) 본절에서사용된 ' 엑사포스텔로 '(* ) 는 보냄을받은사람이그를보낸사람이나장소, 사회적지위에귀속되어있다는점에역점을두고있다 ( 눅 1:53; 행 7:12; 11:22). 이에본절의 ' 엑사포스텔로 ' 는아들이하나님에게귀속되어있다는것과 그를보낸실존적공간, 즉 하늘나라를염두에두고씌여진것으로본다 (E, Huxtable). 여자에게서 나게하시고 - 본절에는바울의기독론이포함되어있다. 바울은 다른곳에서예수그리스도를 ' 모든 창조물보다먼저나신자 ' 라고묘사하여예수그리스도의신성을나타낸다 ( 빌 2:5, 6: 고 1:15, 16). 반면본절에서는예수그리스도를완전한인성을가진사람으로묘사하였다. 즉 ' 여자에게서 ' 라는말은 메시야의계보인 다윗의 ' 혈통 ' 에서나셨음을의미하고 ( 롬 1:3) 따라서우리와같은육신의몸을 입 었다는것을의미한다 (3:13). 율법아래나게하신것 - 본문장또한앞문장과마찬가지로예수께 서완전한 인성을가진사람의몸으로태어났음을강조한다. 그러나강조점에있어서단지 ' 사람 ' 으 로오신것이아니라하나님의율법을지킬의무를가진 ' 유대인 ' 으로오셨다는것이다 (Longenecker). 그리스도께서는그의삶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 시키시고 ( 마5:17, 18) 죽음으로율법의진노 를짊어지셨다 (3:13; 빌 2:8). =====4:5 우리로아들의명분을얻게하려하심이라 - ' 아들의명분 ' 에해당하는헬라어 ' 휘오데시 안 '(* ) 은 ' 양자됨 ' 이라는뜻으로서신약성경에서바울만이사용하였다. 바울이이
말을사용하는것은하나님의아들됨이자연적으로발생하는것이아니라하나님의사역에의한것임을나타내기위한것이다 (TDNT). 하나님의유일한아들그리스도께서는인간의제도와율법을순종하셔서우리로하나님의아들이되게하셨다. 다시말해그리스도께서는유대인으로태어나신지 8일만에할례를받으시고 ( 눅 2:21), 유월절절기를지키셨으며 ( 눅 2:41; 요 2:13) 그밖의모세율법을지키면서자라나셨다. 뿐만아니라율법의속박아래있는자들을속량하시고하나님이그들들을아들로서받아들일수있는근거를주고자십자가에서죽으셨다 ( 빌 2:8). =====4:6 아들의영 - 우리가하나님의아들됨을확신할수있는것은 ' 아들의영 ' 이증거하기때문이다. ' 아들의영 ' 은 ' 하나님의영 '( 롬 8:14) 또는 ' 그리스도의영 '( 롬 8:9) 으로서 ' 성령 ' 을가리킨다. 성령은약속대로오순절다락방에강림하신이후에모든믿는자들에게하나님의 ' 양자됨 ' 을증거한다. 아바아버지 - 구약시대이스라엘백성들은하나님을 ' 아버지 ' 라고불렀으며, 그들은또한 ' 하나님의아들 ' 이라고불렀다 ( 출 4:22; 사 63:16; 렘 3:19). 그러나예수당시의유대인들중에실제로하나님을아버지라고부르는사람은없었다. 그러므로예수께서 ' 우리아버지 ' 라고불렀을때불경하다고말한것은시대적상황속에서는당연한것이었다. 그러나예수그리스도를믿음과성령의내주 ( 內主 ) 로말미암아하나님과의관계가새로워졌고그새로워진관계를 ' 아바 ' 라고표현했다 (Longenecker). ' 아바 ' 는아람어로서 ' 아버지 ' 를뜻하며탈무드에서는아기가태어나서제일먼저배우는말이라고기록하고있다 (Jeremias). 이는어린아이가 ' 아빠 ' 라고하는것처럼아버지를더욱친근하게부르는표현이다. 바울은이말을사용하여우리와하나님과의관계가아주가까운것임을증거한다. =====4:7 유업을이을자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클레로노모스 '(* ) 는 ' 상속자 ', ' 후사 ' 등의뜻을가진다. 본문에서이말은 ' 종 ' 과반대되는개념으로사용되어하나님나라의백성들이누리는모든축복을소유한자를의미한다 ( 롬 8:14-17). 갈라디아교인들은성령의내적증거로말미암아하나님나라에속해있는특권을소유하게되었다. 한편, ' 하나님으로말미암아 '(*, 디아데우 ) 는본서에서 ' 믿음으로말미암아 '(3:24, 26), ' 약속으로말미암아 '(3:18), ' 그리스도예수안에서 '(3:26) 등의모든방편들을포괄하는표현이다. 바울은이러한표현을통해독자들로하여금그들이양자됨이자신의행위나공로가아니라하나님은혜의결과라는것을상기시키려하고있다 (Longenecker). =====4:8 하나님이아닌자들에게종노릇하였더니 - 바울은갈라디아교인들이이교도로있을때의상태를지적한다. ' 하나님이아닌자 ' 에해당하는헬라어 ' 메우신데오이스 '(* ) 는문자적으로 ' 신이아닌자들 '(those who bynature are not gods, NIV) 이라는의미이다. 바울은이를 ' 귀신 '( 고전 10:20) 또는 ' 신이라칭하는자 '( 고전 8:5) 라고표현하기도했으며이것들은제우스, 아폴로등과같이인간의상상력에의하여만들어진것들을의미한다 (E. Huxtable). 이처럼인간이만든형상을섬기는것은우상숭배이며하나님께서는이를분명하게금지하셨다 ( 출 20:4; 신 7:25). 그럼에도불구하고하나님을떠난인간은본성적으로우상의노예가되게마련이다. =====4:9 이제는너희가하나님을알뿐더러 - ' 이제는 '(*, 뉜데 ) 은 8절의 ' 그때에는 '(*, 토테 ) 과극명한대조를보이면서갈라디아교인들의상태변화를설명한다. ' 알다 ' 의헬라어 ' 그노스덴테스 '(* ) 는 ' 기노스코 '(* ) 의부정과거수동태로 ' 오이다 '(*, ' 사실적으로알다 ') 등과는달리보다개인적이고친밀한관계속에서의앎을나타낸다. 즉, 하나님을아는것은믿음을통하여경험적으로알게되는것이며나아가하나님이주권적으로선택하신은혜에의하여수동적으로알게되는것이다. 약하고천한초등학문 - 본구절은율법을빗대어말하는표현으로 3절에서언급한 ' 초등학문 ' 의특성을지적하고있다 (3절주석참조 ). ' 약하고 ' 의헬라어 ' 아스데네 '(* ) 는히 7:18에서율법은무력하고빈곤하여서인간을대속하고속량할능력이없다. 또한 ' 천한 ' 의헬라어 ' 프토카 '(* ) 는원래사람들이절대적인궁핍으로인해구걸할수밖에없는 ' 결핍상태 ' 를의미한다 (TDNT). 본구절에서이러한
의미의단어를사용한것은초등학문인율법은항상결핍이있고한계가있음을보여주기위함이다. 율법이갖고있는초라함은 ' 그리스도의풍성함 '( 엡 3:8) 과대조되는개념으로그리스도를떠난사람들 의초라함과천박함을동시에시사하고있다. =====4:10 날과달과절기와해를삼가지키니 - 바울은유대주의자들의거짓되고외식적인율법주의를책망하고있다. 본절과유사한문구는골 2:16에서도찾아볼수있는데당시이방인교회속에는거짓된외식적율법에의하여상당한문제가발생한것같다. 갈라디아교인들이의식적으로지켰던율법의규례들은다음과같다. (1) ' 날 '(*, 헤메라스 ). 유대인들이전통적으로지켰던금식일과안식일을뜻한다. 그리고여기에하루만지키는절기가포함된다. (2) ' 달 '(*, 메나스 ). 매월초하루에지키는월삭 ( 삼상 20:5, 18; 사 66:23) 과달의반복적운행과관련된절기들, 즉정월로서추수가시작되는아빕월 ( 출 13:4), 2월이며꽃의계절인시브월 ( 왕상6:1), 비의계절인 7월과 8월, 즉에다님월 ( 왕상 8:2) 과불월 ( 왕상 6:38) 등을가리킨다. 그런데갈라디아교회에있어서달에대한절기는유대인과이방인들의월력이달랐으므로그들의문화권에서혼란을초래했던것으로보인다 (E. Huxtable). (3) ' 절기 '(*, 카이루스 ). 레위율법이규정하는 3대절기, 곧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 레 23장 ) 뿐만아니라유대인들의전통에의하여추가된나팔절 ( 레23:23-25), 수전절 ( 마카비상 4:52-59), 부림절 ( 에 9:24-32) 등을말한다. (4)' 해 '(*, 에니아우투스 ). 매 7년마다돌아오는안식년 ( 레 25:2-7) 과매 50년마다돌아오는희년 ( 레 25:8-55) 을의미한다. 바울은이상에서언급한종교적절기들을충실히지킨사실만으로갈라디아교인들을탓하지않는다. 오히려바울은그들이율법의참된목적을깨닫지못하고율법을구원의방편으로삼는왜곡된신앙을소유함으로더큰멍에와굴레에빠져헛된열심을가지고있는것을책망한다. =====4:11 헛될까두려워하노라 - 바울의 ' 헛될까 ' 라는표현은갈라디아교인들이율법주의에치우쳐있음을염려한데서나온것인지그들이완전히율법주의자가되어예수그리스도의복음에서이탈하였기때문에나온것은아니다. 실제로당시의갈라디아교인들은아직할례를행하지는않은것으로보인다. 다만그들중에절기와날들을지키는유대주의자들이침투하였던것은사실이다 (9,10절). =====4:12 나와같이되기를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기네스데호스에고 '(* ) 는현재중간태명령법으로서직역하면 ' 계속나와같이되기를 ' 이라는의미이다. 이말이무엇을뜻하는가하는문제를알아보기위해몇가지의견해를살펴보면다음과같다. (1) 혹자는바울이갈라디아교인들에게사랑과정직으로대한것을상기시키면서 ' 너희도내앞에서솔직하라 ' 는의미로본다 (Cole).(2) 혹자는바울이유대인이었음에도불구하고유대주의의모든의식주의 ( 儀式主義 ) 를폐기하고그리스도안에서자유자가된것을상기시키면서 ' 너희도나와같은자유자가되라 ' 고했다고본다 (E. Huxtable). (3) 혹자는바울이갈라디아교인들의입장에선것을상기시키면서 ' 너희도내입장에서나를이해하라 ' 고권면했다고본다 (NEB, Boice). 이상의세견해는나름대로의타당성을갖지만문맥상 (2) 의견해가가장타당한것같다. 왜냐하면바울은계속해서율법과그리스도로인한자유에대해설명하고있기때문이다. 바울은복음을위하여자신의지위와유대인이갖는우월감을초라한것들로인식하고참된자유가그리스도안에서이루어졌음을가르치고있다. =====4:13 육체의약함을인하여... 너희가아는바라 - 바울은처음갈라디아교인들에게복음을전하던때를구체적으로회상하고있다.' 너희가아는바라 ' 에해당하는헬라어 ' 오이다테 '(* ) 는사적 ( 私的 ) 인역사의배경을설명할때에나 ( 고전16:15; 빌 4:15) 또는이미확정된교리들을진술하려할때에 ( 롬 2:2; 3:19; 딤전1:8) 자주사용되었다. 본절의배경이되는행 13:13, 14에의하면바울은제2차전도여행중바보와버가를지나속히갈라디아지방으로올라갔다. 당시버가는저지대로서해안의습지로인한유행병들이많이돌았는데특히말라리아가심했다. 바울은여기서얻은유행병으로인하여하루속히버가를떠난것같다. 그러나혹자는바울이루스드라지방
에서겪은육체적핍박으로인하여 ( 행 14:19; 딤후 3:11) 원래계획했던것보다갈라디아에더오래머물렀다고추정한다 (Boice). 어쨋든바울의계획에차질을주었던그의질병이무엇인지정확하게알수는없지만그가상당히 ' 약한몸으로 '( 고전 2:3) 갈라디아에서목회했음을알수있다 =====4:14 버리지도아니하고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엑셉튀사테 '(* ) 는 ' 퇴짜놓다 ', ' 침뱉다 ' 등의의미를가지고있으며 70인역 (LXX) 에는나타나지않고신약성경에서도본절에서만사용되었다. 당시사람들은병자를만나면그병에걸리지않기위해서침을뱉는관습이있었다 (Lightfoot). 그럼에도불구하고갈라디아교인들은바울에게존경과사랑으로대했다. 과거에바울은신과같이 ( 행 14:12, 13) 환영받았지만자신이신처럼존경받는것을기뻐하지않았다. 반면에본절에서는자신이갈라디아교인들에게환영받은사실을긍정적으로보고갈라디아교인들을칭찬한다. 이처럼자신을후대 ( 厚待 ) 한갈라디아교인들을칭찬한이유는갈라디아교인들이자신에게보여준사랑과환영이참된것이었기때문이고, 갈라디아교인들의상태가율법주의적인경향으로흐르고있는것을염려하여과거의상태를기억나게할필요가있었기때문일것이다. =====4:15 너희의복이지금어디있느냐 - ' 복 ' 에해당하는헬라어 ' 마카리스모스 '(* ) 는 ' 축복 '(blessedness), ' 행복 '(happiness), ' 기쁨 '(joy) 등을뜻한다. 한편소유격 ' 너희의 '(*, 휘몬 ) 는단순용법으로쓰였든지재귀용법으로쓰였다. 더욱이이말은주격소유격이나목적격소유격으로사용된다. 본절에서는단순대명사로보이며그기능상소유의의미를갖는것으로보는것이낫다. 그래서본절은 ' 너희들이갖고있는바축복된내용들 ( 앞에서언급한 ) 이어디있느냐?' 라는의미이다 (Longenecker). 증거하노니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마르튀로 '(* ) 는바울서신에서항상칭찬할때사용되었다 (5:3; 롬 10:2; 골 4:13). 신중하고도엄숙한이표현은뒤에나오는구체적인내용의진실성과사실성을강조한다. 본절에서는바울자신을위해서무엇이든지다해주기를원했던갈라디아교인들의헌신적인생활을생생하게설명해주고있다. =====4:16 참된말을하므로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알레듀온 '(* ) 은 진리를 뜻하는 ' 알레데스 '(* ) 에서 나온 동사 ' 알레듀오 '(* ) 의 능동태 분사이다. 이단어는신약성경에서본절과엡 4:15에서만사용되었는데엡 4:15에서는참말을신실하 게한다는의미와더불어거룩한삶과하나님의진리를열심을다해지키고자하는생활습관을뜻하 는의미로사용되었다. 실제로바울의삶에있어서진리는단순히말속에만남아있지않고그의모 든삶의모습과 습관에서도반영되었다 ( 고후 4:2; 딤후 2:4). 원수가되었느냐 - ' 원수 ' 에해당하는 헬라어 ' 에크드로스 '(* ) 는능동적의미로사용되었으며개역성경에는번역되어있지않 은소유격 ' 휘몬 '(*,' 너희의 ') 의지배를받는다. 그러므로본구절은바울자신이갈라디아교 인들의원수가되겠느냐는반어법적문장이다. 다시말해서진리를말하는것이 ' 너희와원수되기위함 인줄아느냐 ' 라는뜻이다. 그런데원수관계는서로조화될수없고연합할수없는관계이다. 따라서 바울이본절에서의도하는바는내가너희와그토록 감격스러운기쁨과사랑을나누었는데어찌하여 원수의관계가될수있겠느냐는 의미로 그것이불가능하다는것을보여준다. =====4:17 열심내는것이좋은뜻이아니요 - 바울은지금갈라디아교인들을미혹하는거짓교사들의간사함을지적한다. ' 열심내는 ' 에해당하는헬라어 ' 젤루신 '(* ) 은 ' 시기, 증오, 진노의감정으로가득차다 ', ' 열렬히바라다 ' 는의미이다. 본절에서바울은거짓교사들의위장된열심을폭로하고자신의선하고아름다운열심을증명하려한다. 갈라디아교인들을향한바울의열심은그들을그리스도에게인도하고, 접붙임으로그리스도와연합하여한지체를이루게하기위함이다. 그러나거짓교사들은갈라디아교인들을그리스도로부터멀어지게하고, 복음의진리를왜곡시키고와해 ( 瓦解 ) 시켜서그리스도안에서한지체된것을파괴시키려고열심을다한다. 바울이유대주의자들의열심이거짓이라는사실을자세히알수있었던것은그자신역시거짓된진리에지나친열심을가진경험이있었기때문일것이다 (1:13, 14).
=====4:18 좋은일에대하여열심으로사모함을받음은언제든지좋으니라 - 열심으로사모하는주체가누구냐에따라본절에대한해석이다르다. (1) 열심의주체가바울일경우, 바울은그들을처음만났을때에나지금이나언제든지선한열심으로서로돕기를소원한다는뜻으로해석할수있다 (Burton). (2) 열심의주체가갈라디아교인일경우, 갈라디아교인들이처음복음을받았을때좋은일에열심을내었듯이지금진리를말하는 (16절) 자신에게도다시좋은열심을보이기를소원한다는뜻으로해석할수있다 (Cole). (3) 열심의주체가율법주의자들일경우, 바울은참복음을전하는사도답게율법주의자들의열심을어느정도용납하겠다는겸손과시랑의뜻으로해석될수있다. 다시말해서율법주의자들의열심이선한목적에서이루어진것이라면언제든지환영한다는뜻이다 (Lightfoot, Ridderbos). 세견해중우선 (2) 와 (3) 의해석이타당성을갖는다. 왜냐하면본절의 ' 사모함을받음은 ' 에해당하는헬라어 ' 젤루스다이 '(* ) 는수동태나중간태로취할수있기때문이다. 즉, 수동태로볼경우는갈라디아교인들이율법주의자들의 ' 환심을샀다 ' 는것이되며, 중간태를취할경우는갈라디아교인들이예전처럼지금도열심으로선한일을추구하기를사도바울이바란다는것이다. 이와같이단지문법적측면에서만본다면 (2) 와 (3) 의해석이타당성을갖지만, 전후문맥상으로나본절의내용상으로볼때 (3) 의해석이더많은지지를받는다. 즉, 앞절에서바울은갈라디아교인들을미혹한거짓교사들의간사하고교활한특징을기술하였고계속하여본절에서갈라디아교인들에대한그들의섬김의동기가선하지않은데있음을역설적으로지적하고있다. 사실상본절에서바울이거짓교사들에대해서우호적으로언급하고있지는않다. 오히려복음의적 ( 敵 ) 인그들에대해바울이연속적인비난을가하고있는것은본절의 ' 좋은일에대하여 '(*, 엔칼로 ) 와 ' 언제든지 '(*, 판토테 ) 라는반어적의미를가진부사어에잘드러난다 (Longenecker). 이러한맥락에서공동번역은본절을 " 그들이좋은동기로여러분에게열심을보인다면야얼마나좋겠습니까?" 라고번역하였다. =====4:19 나의자녀들아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테크나무 '(* ) 는그리스도안에있으나미성숙한사람들을칭하는 ' 네피오이 '(*, ' 어린아이들 ') 와구별된다 ( 고전 3:1). 바울이디모데를부를때에도 ' 테크논 '(* ) 을사용한것을보면 ( 딤전 1:18; 딤후 2:1) 바울은갈라디아교인들이자신에게서양육받았음을나타내고자한것같다. 바울은본서신에서이말을처음사용하여교회를존속시키려는자신의헌신적사랑을나타내고있다 (Ridderbos). 해산하는수고를하노니 - ' 해산하는 ' 에해당하는헬라어 ' 오디노 '(* ) 는단순히임심해있는오랜기간보다는분만하는고통에역점을두고있다. 즉, 바울은갈라디아교인들을양육하는것을어머니가아기를출산하는고통에비유하고있다. 이것은갈라디아교인들이다시중생의체험을해야한다는의미라기보기는중생한자가가야할성화의과정을전제하고바울이그들을계속하여양육함의수고가크다는것을시사한다. =====4:20 내음성을변하려함은 - 바울은자신의심정을음성에비유하고있다. 그는지금까지강경한어조로말해왔지만갈라디아교인들을만나게되면부드럽고온유한말로격려하고싶다는의사를표현하고있다. 이는바울이직접그들과만나서말로가르치는것이서신으로말하는것보다더낫다고인식한때문일것이다 (Ridderbos). 의심이있음이라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아포루마이 '(* ) 는 ' 당황하다 ', ' 어찌할바를모르다 ' 를뜻한다. 이는갈라디아교인들이어떠한상태에있는지를정확하게모르므로당혹스럽다는표현이며그들을직접만나그의문을풀고싶다는생각을나타내는말이다. 바울이어떠한일로인하여직접갈라디아를방문할수없었는지는정확하게알수없지만, 그의마음속에는여전히갈라디아교인들을향한깊은사랑과관심이남아있었다. 그래서바울은지금거짓교사들의미혹에흔들리고있는갈라디아교인들이깊이타락하지않고바로돌아올수있기를간절히바라고있다. =====4:21 율법아래있고자하는자들 - 본절의 ' 율법 '(*, 노몬 ) 역시 4 절과 3:23
등과같이정관사없이사용됨으로 ' 율법적제도 ' 를가리키는단어로쓰여졌다. 따라서 ' 율법아래있고자하는자들 ' 은주의계명을사랑하고존경하며지키려는자들이아니라외식에치우쳐인간의자유를구속하려는갈라디아교회의변절자들을가리킨다. 특히 '... 하고자 ' 에해당하는헬라어 ' 델론테스 '(* ) 는 ' 원하다 ', ' 지지하다 ', ' 좋아하다 ' 등의의미를가진 ' 델로 '(* ) 의현재분사형으로과거에율법을따랐던적이있는사람을가리키지않고현재의도적으로율법주의를따르며지지하고있는자들을구체적으로지시한다. =====4:22 두아들이있으니 - 실제로아브라함에게는이스마엘과이삭외에도후처그두라를통한여섯명의아들들이있었다 ( 창 25:1, 2). 그럼에도불구하고바울이두자녀만언급한것은그들의탄생에관계된사건에있어서근본적으로서로판이한출발점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하나는약속과 (3:6-14) 관계된반면, 다른하나는약속과관계없이육신을따라난것이다. 계집종에게서 - ' 계집종 ' 에해당하는헬라어 ' 파이디스케 '(* ) 는신약성경에서언제나 ' 노예로서의여자 ' 를뜻하는단어로쓰였다 ( 눅 12:45; 요 18:17; 행 12:13). 본절에서이단어는사라의여종인 ' 하갈 ' 을지시하며나아가그녀에게서난 ' 이스마엘의신분 ' 과 ' 율법의신분 ' 을암시한다. =====4:23 육체를따라났고 - ' 육체를따라 ' 에해당하는헬라어 ' 카타사르카 '(* ) 는수태의방법이육체의질서와법칙으로인해태어났음을보여주고그아들을잉태한어머니의신분을시사한다. 여기서 ' 육체 ' 는보통 ' 영 ' 이라는말과대조되어사용되는데그것은때때로평범하고자연적인과정으로이해되기도하였다. 그러나대부분의경우에있어서 ' 육체 ' 는영적이며비가시적인세계와대조되는세상의현실적삶을묘사할때사용되었다 ( 롬 1:3; 4:1; 고전 1:26; 고후 1:17; 5:16). 약속으로말미암았느니라 - ' 약속 ' 에해당하는헬라어 ' 에팡겔리아스 '(* ) 는본절에서관사없이사용되었다. 관사가있는경우에는명백하게아브라함의허리에서날메시야를가리키는것이지만 (3:19), 관사없이사용된본절의 ' 약속 ' 은이삭이태어난원인이며수단이다. 이출생의신비는초자연적인것이며인간이구할수없는가운데서얻은하나님의은혜이다. =====4:24 이것은비유니 - 비유를뜻하는헬라어 ' 알레고루메나 '(* ) 는 ' 알레고레오 '(* ) 의현재분사형이다. 이는 ' 알로스 '(*, ' 다른 ') 와 ' 아고류오 '(*,' 말하다 ') 의합성동사로그문자적인의미는 ' 다른뜻으로말하다 ' 이지만보통 ' 우의적 ( 禹意的 ) 으로말하다 ' 또는 ' 어떤사물을비유로설명하다 ' 등의뜻으로사용되었다. 바울은역사적사실을의심하지않고과거의교훈을현재상황에적용시켜하나님의섭리의일관성을논증하고있다. 이렇듯현재를포함하여모든시대의사건들은하나님의계시역사를살펴볼때, 그의미가분명하게드러난다. =====4:25 이하가는아라비아에있는시내산으로 - 개역성경의 ' 하가 ' 라는번역은 ' 하갈 ' 의잘못된표기이다. 헬라어사본들과다른영역본들은한결같이 ' 하갈 '('*,Hagar) 이라고표기하고있다. 본절에서이름과연관지어논쟁이되는것은 ' 하갈 ' 을시내산과동일한것으로간주하고있는점때문이다. 수많은주석가들이 ' 하갈 ' 이라는이름의지명을찾기위해많은노력을기울였지만쉽지않았다. 하지만본절을바울이사용한우화로푼다면그의미는보다쉽게상징화된다. 시내산을하갈산이라고불렀든지 ' 하갈 ' 이라는말자체가시내산을의미하는단어인지의문제는중요하지않다. 바울이본절에서말하고자하는요점은하갈과시내산및지상의예루살렘이동일선상에있다는사실이다. 지금있는예루살렘 - 이말은그당시에유대의율법주의자들이본부로삼고있던예루살렘을상징한다. 예루살렘에있는율법주의자들은혈통적으로유대인중에유대인이요누구보다도순수한사라의후손임에틀림이없으나그들은율법의저주를감당하시고율법을완성시키신그리스도를영접하지아니함으로여전히율법아래있는종의신분을갖게되었다. 이들의종됨은이방인들이믿음을통하여진정한아브라함의후손이되는것과대조를이루고있다. =====4:26 위에있는예루살렘 - 이는땅에있는예루살렘과대조를이루는천상의새예루살렘을
상징한다. 그곳은율법에게종노릇하는자들을해방시키신예수그리스도께서통치하시는영적예루살렘이다. 이예루살렘이아니라새로운중보자예수그리스도에의하여 ( 히 12:24) 현재적으로이루어지는거룩한도성이기도하다 ( 빌 3:20). 믿음으로말미암아그리스도의대속적죽음을받아들이고그리스도와연합한자들은모든시대에걸쳐현재적으로새예루살렘의백성이되며성령이친히이일을증거할것이다. 그러나새예루살렘은궁극적으로예수그리스도의재림으로완성된다 ( 계 21:2). =====4:27 기록된바 - 바울은본절에서사 54:1의말씀을인용하고있다. 이사야는이구절을통하여그리스도로인한화해를선포하고영적인평화의상태가도래할것을묘사하면서 ' 많은주의종 ' 들을통하여하나님의사랑과평화가이루어질것을예언하였다. 바울은이구절을인용함으로써새로운섭리로인하여많은하나님의자녀들이태어날것이라는것과믿음의자녀들이핍박자들의고난을물리치고믿음의자녀들이궁극적으로승리한다는것을증거하고자한다. 홀로사는자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에레무 '(* ) 는 ' 과부된자 ' 라는뜻으로남편잃은한고부의고독하고불행한상태를나타낸다. 본구절이이사야서에서는역사적인사건을비유하는바, 바벨론에포로된유다를가리킨다. 바울은이러한의미의이사야의글을인용하여 90세가넘어도저히아기를가질수없는사라에게주어졌던약속이성취되는것을서술한다. 사라에게주어졌던약속이란직접적으로는자손에대한것이지만, 이는믿음으로하나님의자녀가된그리스도인들에대한것이다. 따라서본절은하나님께서약속의자손의어머니사라 (26절) 를통하여복음을주시며, 그복음으로교회가크게확장된다는계시의역사를함축하고있다. 교회의확장은하나님의언약의성취인것이다 ( 롬 14:11; 빌 2:9-11). 한편이말이꼭이방인만을상징한다고생각할수는없다. 왜냐하면자유하는여인이낳은아들중에는유대인이나이방인이구분되지아니하고믿음으로태어난모든양자들을포함하기때문이다. =====4:28 너희는약속의자녀라 - 바울은모든그리스도인들을이비유에적용시키고있다. 약속은인간들이만들어낸것이아니라하나님께서주권적인작정과섭리를통하여주신선물이다. 따라서하나님의자녀가되는것은자의적 ( 自意的 ) 행위로말미암지않고부르시는이의뜻을따라이루어지는것이므로이는육체의족보를따르지않는다 ( 롬 9:8). ' 위에있는예루살렘 ' 의자녀들은믿음을통하여태어나며, 성령의세례를통하여새롭게거듭나는자들이다. 바울은 ' 자유하는여자 ' 와 ' 이삭 ' 과 ' 약속의자녀 ' 들과갈라디아의교인들을동일선상에서취급하면서궁극적으로그리스도의구속사에포함될모든자들을약속의자녀로선포하고있다. =====4:29 핍박한것같이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에디오켄 '(* ) 은 ' 핍박하다 ' 라는뜻을가진동사 ' 디오코 '(* ) 의미완료능동태형이다. 바울이, 이스마엘이이삭을괴롭힌것을계속적인사실을현재상황에그대로적용하여그리스도인들이당하는핍박의현실감을강조하기위함이다. 창 21:9에이스마엘이이삭을 ' 희롱했다 ' 는사실을묘사한히브리어 ' 차하크 '(* ) 는 ' 경멸하며비웃다 ', ' 희롱하다 ' 의뜻으로이스마엘의시기는단순한조소에서그친것이아님을보여준다. 바울은오늘날에도하나님의약속의자녀에대한핍박이계속되고있다고말하면서사라가하갈을내쫓음과같이그리스도의공동체속에서거짓된이복형제들, 곧율법주의자들을멀리하라고권고한다. =====4:30 더불어유업을얻지못하리라 - 유업을이을자는오직자유하는여자의아들뿐임을강조한다. 이는율법과믿음이공존할수없으므로블가피하게믿음이선택되어야한다는것이다 (Lightfoot). 유대주의자들은유업을이을자가유대인뿐이라고믿었기때문에이방인들을핍박했다. 그러나바울은그들의입장을반전시킨다. 유업은그리스도의대속적죽음을믿는자들에게만해방되어진정한하나님의아들이된자들에게만주어진특권이라는것이다 (7절). 율법의정죄아래계속머물러있는자들은육신의신분을따라죄의종으로머물게되며 ( 롬 3:23; 6:16; 7:14), 결굴아버지의유업으로부터제외된다.
=====4:31 그런즉 - 바울은 21절부터서술한하갈과사라에관한이야기의비유적인재해석을결론짓고있다. 그결론은앞서 3:6-9에서제기되었던바 ' 누가진정한아브라함의자녀이며상속인인가?' 라는물음에대한답변으로귀결된다. 특별히바울이지금까지사용한 ' 너희 ' 또는 ' 저들 ' 이라는말대신에 ' 우리 '(*, 에스멘 ) 라는 1인칭동사를사용하고있는것은믿음으로아브라함의자녀가된모든자들은더누리는약속의자녀임을갈라디아교인들에게확신시키기위함이다. 갈라디아서제 5장 ====5:1 그리스도께서우리도자유케하려고자유를주셨으니 - 여기 " 자유 " 란무엇인가? 이것은사회생활에관한것이아니고, 신자가그리스도로말미암아율법의정죄에서놓인 ( 롬 ( 8:1-1) 영적자유를말한다 ( 요 8:36). 영적자유란것은다음과같이해설된다. (1) 사람이율법하래서행복을도모하는동안은우선자기자신의노예가된다. 자신의욕구는무수한데그것들을그자신의힘으로는만족하게실현시킬수없다. 그는평생기쁨없이그것들의종이된다. 그러나그가예수그리스도를믿은후에는자기의모든문제를그리스도께맡기고그리스도안에서만족을얻는다. 이런의미에서그는우선자기자신에게서해방된다. (2) 금생내세에율법의정죄에서그는해방된다. 롬8:1 참조. 예수그리스도께서죽으신목적이우리의죄값을담당하신것이므로하나님은진실히믿는우리를용서하시되일흔번씩일곱번이라도용서하신다. 다시말하면, 그는우리르마얼마든지용서하신다. 그렇지만용서를빙자하여범죄를두려워하지않고짐짓죄를범하는자는하나님이용서하하시지않는다. 히 10:26-31 참조, 이자유는자유그것을위한것이아니고, 그자유를가지고감심 ( 甘心 ) 으로하나님을섬기기위한것이다. 다시는종의멍애를메지말라 - 기독신자가율법에서놓인줄모르고아직도율법을지켜야만구원을얻는줄안다면그것은다시율법의종이됨이다. 이방인들은모세의율법을받은적이없는데여기서 " 다시는 (* )... 메지말라 " 라고경계한것이그들에게부합하지않는듯하다. 그러나인류의첫조상이에덴동산에서선악과를 " 먹지말라 " 는율법아래있었던것이니만큼, 이방인들도그점에서는 ( 그들이복음을믿기전에는 ) 율법의멍에아래있었던것이사실이다. 모세의율법은본래하나님께서에덴동산에서인류에게주셨던행위계약 ( 율법 ) 을확장한것뿐이다. 하나님께서아담에게명령하여선악과를 " 먹지말라 " 고하신것은행위계약혹은율법의조종 ( 祖宗 ) 이다. =====5:2 나바울은너희에게말하노리 - 여기에 " 나 " 란대명사와 " 바울 " 이란고유명사를붙여기록함으로사도바울은그의말하고자하는내용의중대성을나타낸다 (Greijdanus). 너희가만일할례를받으면그리스도께서너희에게아무유익이없으리라 - 곧갈라디아교인들이구원의공로로 ( 의를얻으려고 ) 할례를받는다면, 그들은그리스도를완전한구주로믿지않음과같다는것이다. 따라서완전한구주이신그리스도께서그들과는상관이없게될것이다. ======5:3 율법전체를행할의무를가진자라 - 누구든지할례를받아야만구원에이르는의를얻는다고주장한다면, 그것은그리스도밖에도구원이있다는것이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율법의일부분인할례만지켜서될것인가? 인간으로서율법을완전히지킴은절대로불가능하다. 그러므로구원의길은그리스도를완전한구주로받는믿음밖에없다. =====5:4 율법안에서의롭다함을얻으려하는너희는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떨어 진자로다 - 율법은그의식적부분이든지도덕적부분이든지그 행하는 자에게구원의의를주지 못한다. 구원에이르게하는의 ( 義 ) 의최소 ( 最小 ) 부분도율법 지킴에있다고생각할수없다. 만일그 것이율법지킴에있다고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그리스도와은혜를포기하는자이다 (Calvin). 2:21 참조. =====5:5 성령으로믿음을좇아의의소망을기다리노리 - 헬라원문에는이귀절의초두에 " 왜
그런고하면 " 이란이유접속사 (* ) 가있다. 진정한의를얻는소망은율법이이루어주는것이아니고성령님이이루어주시는것이다. 그리고그것은인간의공로 ( 功勞 ) 로얻어지는것이아니고오직그리스도를믿음으로거저받아지는것이다. =====5:6 사랑으로써역사하는믿음뿐이니라 - 이것은신앙의특징을보여주는말씀이다. 진정한신앙의소유자는사랑의행위를나타낸다. 그렇다면, 사랑을행해야구원을받는다는것인가? 그런것은아니다. 이것은신자가그신앙의증표로사랑을지니고있어야된다는것이다. 행위는믿음이내어주는열매이니, 선한행위가없으면죽은믿음이라고할수밖에없다 ( 약 2:21-26). 물론사랑의행위가구원의공로는아니지만참신앙은그것을지니고있다. 신앙그것도구원의공로를받는데있어서믿음은절대필요한것이다. 이것도하나님의선물이다 ( 엡 2:8). =====5:9 적은누룩이온덩이에퍼지느니라 - 이것은여기서거짓교훈을가리킨다. 고전 5:6 참조, (1) 적은죄악을용납하면큰죄악으로확대되는법이다. (2) 누룩이소리없이은근히떡반죽에퍼짐과같이, 적은죄악도사람의생활을지배하기까지은근히그의마음을점령하게된다. 마귀의장난은이렇게암암리에죄를퍼뜨린다. 마 13:24-25; 딤후 2:16-17 참조. =====5:10 다른마음도품지아니할줄을주안에서확신하노라 - " 다른마음 " 은바울이이때까지가르친바믿음으로구원얻는다는 ( 以信得救 ) 교리가아닌다른사상을의미한다. 그는이때까지그들에게엄하게훈계하였다. 그러나여기서는그들에게소망이있음을표시한다. =====5:11 십자가의거치는것 - 여기 " 거치는것 " 이란말 (* ) 은넘어지게하는돌같은 ' 장애물 ' 을의미한다. 예수님의십자가가유대인들에게는 " 거리끼는것 "( 고전 1:23) 이된다고하였다. 그들의메시야상 ( 象 ) 은이세상에서큰권세와능력으로행할자라고깊이믿어왔다. 그런데, 미천하게살으시고십자가위에서죽으신예수님의메시야자격을그들은믿을수없었던것이다. 여기서그들은넘어진다. =====5:12 너희를어지럽게하는자들이스스로베어버리기를원하노라 - " 스스로베어버림 " 이란말 (* ) 은몇가지해석을가진다. (1) 스스로교회에서떨어져나가는것을의미한다는것, (2) 유대주의자들이할례를주장할진대, 이방의풍속대로아주생식기를수술한는데까지철저히하기를원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바울이풍자적으로 ( 諷刺的 ) 으로유대주의자들을공격한말씀이다. 그리스도의완전하신구주자격을무시하고할롑를구원받는조건으로삼는것은복음을 " 어지럽게하는하는 " 큰죄악이다. 그러므로바울은풍자적으로까지그들을공격한다. =====5:13 너희가자유를위하여부르심을입었으나 - 여기 " 너희가 "(* ) 란말은헬라원 어의어순 ( 語順 ) 대로강세형 ( 强勢形 ) 이다. 그것은갈라디아교인들을유대주의자들에게비교하여그들 의특수한처지를지적함이다. " 자유 " 란말 (* ) 은종들을놓아줌에대하여흔히사 용된말이다 (Greijdanus). 인간은죄악의 종이었음에따라서거기심판자로임한율법에도종이된것 이다 ( 요 8:34; 갈 4:1-3, 5:1). 그러나그리스도께서오셔서그의백성을대신하여죽으심으로그들은 죄에서 해방되었고, 율법에서도놓였다 ( 요 8:32,36; 롬 8:1). 육체의기회를삼지말고 - " 육체 " 란 말은헬라원어로삵스 (* ) 인데, 여기서는인간의부패성과죄악성을의미한다. 하나님께서그 독생자예수그리스도를 희생시켜서우리를대속 ( 代贖 ) 하신목적은우리로하여금정죄에서구원받을 뿐아니라, 다시는죄를짓지아니하게하려는것이다. 참으로그리스도를믿는자는죄에서멀어지게 되는것이실제적경험의사실이다. 롬 3:31 참조. 그러므로복음을믿어영적 자유를얻은자로서 죄악에접근한다면, 그는하나님의속죄사업의본의 ( 本意 ) 를 무시하는죄까지범하는자이다. 사랑 으로서로종노릇하라 - 복음을믿어영적자유를얻은자가율법의멍에아래있지는않으나, 그와 율법과의관계는그대로남아있다. 그는성령에의하여기쁜 마음으로율법을행한다. 이렇게행함이
곧, 사랑이다. " 종노릇하라 " 란말 (* ) 은 " 섬기라 "(serve) 고번역되어야한다. " 섬긴다 " 는개념과 " 종이된다 " 는개념는다르다. 우리가섬긴다는것은상대방의유익을위하여돕는행위이고, 그의의지 ( 옳은소욕이나옳지않은소욕 ) 에맹종함은아니다. 우리가상대방의불의한소욕에는응종하지않음이그를사랑함이다. 그는사랑의동기로율법을행하고노예적심리로행하지않는다. 따라서그가율법을행함은사랑의실천이라고할수있다. 이사실에대하여는다음귀절이밝힌다. =====5:14 온율법은네이웃사랑하기를네몸같이하라하신한말씀에이루었나니 - 신구약성경에인간의행위의법칙에괸하여 " 하라 " 혹은 " 하지말라 " 라고한명령들은모두다율법에속한말씀이다. 이런명령들이많지만그모든것들은결국사랑하라는말씀이다. 온율법은이웃사랑에서그완성을본다. 만일누가사랑의동기없이율법을행하였다고하면, 그것은율법을참되이행한것이아니다. 그뿐아니라, 만일누가사랑을행하면서율법을범한다면, 그것은사랑을참되이행한것이아니다. 율법의실행은사랑없는기계적동작이아니며, 또한사랑은법없는무질서 ( 無秩序 ) 가아니다. 사랑은법을초월하나법을무시하지않는다. ======5:15 만일서로물고먹으면피차멸망할까조심하라 - 율법주의자들은실상사랑을제외하고율법을본다. 드들은육체적방법, 또는사람의힘만으로율법을기계적으로순종하려한다. 그들은그리스도로말미암은자유에서얻어지는사랑의동기로참되이행할줄은모른다. 따라서그들은율법을네세우면서율법을잃어버렸고, 이웃을해롭게하는불의한싸움을교회에가져온다. 그들은사랑의정신으로살지못하는것만큼, " 서로물고먹는 " 악행을연출한다. =====5:16 성령을좇아행하라그리하면유체의욕심을이루지아니하리라 - 율법주의자들은인력으로조문 ( 條文 ) 을하나하나실행하고자한다. 그것은결국실패한다. 그러나복음으로말미암아성령을받은기독신자는, (1) 사랑의동기로행하면서율법을괴로운짐으로여기지않고순종하며, (2) 성령님의도우시는힘으로말미암아그의실행력이강하고, (3) 그의행실에도약점이있으나하나님은그를버리시지않는다. 그이유는, 그가율법아래있지않고은혜아래있기때문이다. 이의미에서신자육체의욕심대로따라가는자는아니다. =======5:17 육체의소욕은성령을거스리고성령의소욕은육체를거스리나니 - 헬라원문에는 이귀절첫머리에 " 왜그런고하면 " 이란말 (* ) 이있다. 그러므로이귀절은 앞절의이유를보 여준다. 성령을좇아행함이육체의욕심을이루지않게하는 이유는, 성령을좇아행하는자는육체 를거스려싸워육체의야욕을이루지못하게하기때문이다. 이둘이서로대적함으로너희의원하 는것을하지못하게하려함이니라 - 곧, 위에서말한바와같이, 성령의소욕과육체의소욕이서로 싸움으로인하여 육체 ( 인간의부패한성질 ) 의소원이이루지못하게된다는말씀이다. 영전 ( 靈戰 ) 은 참된기독신자에게만있다. 영전이있으므로죄악에대한승리가온다. 이세상전쟁에 있어서는언 제나필승을기대할수없다. 그러나영전에가담하는자는반드시 승리하는 법이다. 요 16:33 참 조. ==== ====5:18 너희가만일성령의인도하시는바가되면율법아래있지아니하리라 - " 성령의인도하시는바가되 " 는것은무엇으로식별할수있는가? 루터는다음고같이말한다. " 성령의인도하시는바가된다는것은사람이감심으로육체 ( 옛사람 ) 를죽임이니곧, 하나님외에모든것을버리며, 심지어자기자신을버림이다. 그것은죽음과죽음의친구들을두려워하지아니함이며, 허탄한이세상쾌락과그것으로말미암은부패하고더러운열매를내어버림이며, 이세상의모든좋다는것들을버리고그대신고난 ( 환란 ) 을위함이다. 이것은우리본성의특징이아니라. 우리속에계신성령님의역
사이다."(Vorlesung ber den R merbrief, 1965, s.270). 루터의이말은물론성령의인도하심이된자들의그표준을보여주는것이다. 그들에게는위의표준에맞지않는행동곧, 결점이전연없다는것이아니다. 그들에게도결점이있으나그들에게는회개 ( 悔改 ) 가있다. 칼빈은 " 성령의인도하시는바가된 " 자에대하여다음과같이말하였다. " 이미성령으로말미암아중생한자로서하나님의뜻을순종할마음이간절하다. 그는자기의사욕을따르지않는다 ( 벧후 1:21). 양이목자를따르는것과같이, 하나님의자녀는하나님의말씀을듣기좋아한다. 이런사람은벌써그리스도안에있어서정죄를면한자이니 ( 롬 8:1), 율법아래있지않다. 하나님앞에서그의행실에허물과결점을이있을지라도하나님께서는그를허물없는것과같이보아주신다." ==== ====5:19 육체의일은현저하니 - " 육체 " 란것은하나님과원수된부패성을의미한다 ( 롬 8:7). 이런괴악한것의움직임이우리의눈에감취어서보이지않느다면, 우리는그것을정복하기어려울것이다. 그러나그것이현저히나타나있으므로우리는그것을지적하여멸절할방침을세울수있다. 음행과더러운것과호색 - 이세가지는성적죄악 ( 性的罪惡 ) 이다. 하나님과원수된육체 ( 인간의부패성 ) 는무엇보다먼저성적죄악으로나타나서하나님의성전인몸을더럽힌다. 고전 3:16-17,6:13-20참조성경은사람의성적죄악이자기몸에대한범죄라는의미로말하기를," 사람이범하는죄마다몸밖에있거니와음행하는자는자기몸에게죄를범하느라 "( 고전 6:18) 고하였다. 곧, 그성적죄악은몸이주님의성전된거룩한소속임을위반한다는것이다. 다른죄악은외계 ( 外界 ) 의남들에게손해를주는것이지만, 성적죄악은무엇보다도자기자신에게손해를주는것이다. 특히그손해는종교적인면이더욱크다. 고전 6:15-17에말하기를," 너희몸이그리스도의지체인줄을알지못하느냐내가그리스도의지체를가지고창기의지체를만들겠느냐결코그럴수없느니라창기와합하는자는저와한몸인줄을알지못하느냐일렀으되둘이한육체가된다하셨나니주와합하는자는한영이니라 " 고하였다. 그러므로인간이그몸을가지고성적죄악을범하면, 그것은주님의성전을더럽히는범성죄 ( 犯聖罪 ) 이며, 주님앞에정절을지키지않는훼절 ( 毁節 ) 의죄도된다. 안셈 (Anselm) 은말하기를, " 다른죄들은대항하여싸움으로이길수있으나, 성적죄악은피함으로야이긴다 " 고하였다. 요셉이이죄를이긴방법도그러하였다. ( 창 39:1-18). 안셈의말은물론 " 음행을피하라 "( 고전 6:18) 는성경에의거한것이다. 죄악의많은종류중에는매력을가지고유인하는것들이있는데, 성적죄악이거기에속한다. 성적죄악은외모의미 ( 美 ) 를가지고사람을꾀어넘어뜨리는독한것이다. 그것은마치독사 ( 毒蛇 ) 의이빨에서나오는살인독 ( 殺人毒 ) 과같다. 또그것은마치알프스산의아름다운잔디언덕과같다. 많은여행자들은아름다운잔디가있는땅을든든히디디고발을붙이려다가떨어져죽는일이많다고한다. 음행은멸망길이다. 그러므로성경은음행자를가리켜 " 소가푸주로가는것같고미련한자가벌을받으려고쇠사슬에매이려가는것과일반이라필경은살이그간으뚫기까지에이를것이라새가빨리그물로들어가되그생명을잃어버릴줄을알지못함과일반이니라 "( 잠 7:22-23) 고하였고, 그런죄를범하게하는집에대하여말하기를," 그집은음부의길이라사망의방으로내려가느니라 "( 잠 7:27) 고하였다. " 음행 "(* ) 은특수한범행 ( 犯行 ) 으로서의성적죄악이고, " 더러운것 "(* ) 은일반적인성적불결의행습을의미하는바, 남들에게알려지지않은것들일수도있다고한다. " 호색 "(* ) 은방종스러운노골화한불결의행습을의미한다고한다 (Trenchm Syn New Testament). ==== ====5:20 우상숭배와술수 - 이것들은종교적죄악이다. " 우상숭배 " 라는것은하나님늘보이는형태로만들어섬기려는동기에서생긴행동이나. 하나님아닌것을하나님으로알거나, 혹은하나님께드릴영광을그것에게돌림이다. 그러므로하나님을육안 ( 肉眼 ) 으로보고야믿겠다는마음이역시우상숭배의사상이다. 그것은하나님의영광과존엄성을무시하는교만이요어리석음인것이다. 보
이지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본질상속성인데, 사람이자기마음대로하나님을볼수있는분으로 여긴다면그 얼마나교만한행위인가? 죄없는스랍들도두날개로그얼굴을가리우고, 하나님을보 지못한다고성경은말한다 ( 사 6:2). 출 33:20에말하기를, " 네가내얼굴을보지 못하리니나를보 고살자가없음이니라 " 고하였다. 욥 9:11에는, " 그가내앞으로지나시나내가보지못하며그가내 앞에서나아가시나내가깨닫지못하느라 " 하였고, 딤전 6:16에는, " 오직그에게만죽지안니함이있 고가까이가지못할빛에거하시고아무사람도보지못하였고또볼수없는자시니그에게존귀와 영원한능력을 돌릴지어다 " 라고하였고, 요일 4:12에는말하기를, " 어느때나하나님을본사람이 없으되 " 라고하였다 ( 시 18:11; 골 1:15 참조 ). 히 11:3에, " 보이는것은나타난것으로말미암아된 것이아니니라 " 고하였으니, 보이지않으시는그가모든보이는 것을 지으셨다. 그러므로그의보 이지않으시는성질은더욱우리의신앙을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를... 보지못하고믿는 자들은복되도다 "( 요 20:29) 라고하셨다. 보지못하나믿는그신앙은더욱고상하다. 그이유는,(1) 보이는감각세계에 의존하지않는참신을그대로믿는까닭이며, (2) 신앙을방해하는감각주의 ( 感 覺主義 ) 의마음을이기며믿는까닭이다. " 술수." " 우상숭배 " 가제사적 ( 祭祀的 ) 인방면의범죄라면, " 술수 "(* ) 는예언적 ( 豫言的 ) 인방면의범죄이다. (1) 하나님의뜻대로바로 나온 예언은천국을중심한하니님말씀이지만, " 술수 "( 術數 ) 는개인의사욕을채우기위한행위이다. (2) 예언은인간으로하여금회개케함을목적한다. 그러나 " 술수 " 는인간으로하여금낙심케하든지혹 은요행수를바라보게하여도덕적 반성을 잊어버리게 만든다.(4) 예언은그것을받는자가거의 뜻밖에자주의식 ( 自主意識 ) 에의하여하나님의객관적계시 ( 客觀的啓示 ) 를받아말한것이다. 그러나 술수하는자는솔선적으로공교히만든소위예언으로써사람들을속인다. 기독신자들중에무의식적 으로그리스도의미명 ( 美名 ) 아래숨어서 " 술수 " 의죄를범하는자들이적지아니하다. 예를들면, 신 자가하나님의영광을위하지않고자기의육적야욕을위하여성령을구하며 이용하려하는것, 신 자가지식에절제할줄모르고하나님만이아실수있는고급여계 ( 靈界 ) 의깊은지식까지알고자하 여분수에넘치는사색을일삼는 것, 하나님을 신종 ( 信從 ) 하고일상생활의평범한책임을다함에 주력하지않으면서기이 ( 奇異 ) 한 것만을탐하여그것에주력하는것이다. 그러나우리는이미알려 진하나님의말씀 ( 성경말씀 ) 에순종하는것이 이적 ( 異蹟 ) 을보는것보다낫다고생각한다. 우리는이 적을믿는다. 특별히성경에기록된 표준이적들을믿는다. 하나님말씀의사역에따라그런이적들 이나타났던것이다, 오늘날교회시대에도우리가믿음으로바로살기만하면주님의뜻인경우특별 섭리의 일들이나타나기도한다. 그러나그것이나타나지않는경우에도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 리의신앙생활에있어서 " 술수 " 의잔재 ( 殘滓 ) 가있다면우리는그것을완전히버려야한다. 그이유 는, " 술수 " 는우리의신양을해롭게하며또한하나님께욕을돌리기때문이다. 원수를맺는것과 분쟁과시기와분냄과당짓는분리함과이단과투기 - 이 여덟가지 죄악은 육체적으로 범하는 불화 ( 不和 ) 의 죄악이다. " 원수르 맺는 것 "(* ) 은성경이여러가지로금한다. 사람이 원수를맺음은자기와충돌된상대방의 죄를용서하지않음에서기인된다. 신자는원수를 용서하고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출 23:4-5에, " 네가만일네원수의길잃은소나나귀를만나거든반드시 그사람에게로돌릴지며네가만일너를미워하는자의나귀가짐을싣고엎드러짐을보거든삼가버 려두고말고그를도와그짐을부리울지니라 " 하였고, 욥31:29에는," 내가언제 나를미워하는자의 멸망으기뻐하였으며그의재앙만남을인하여기운을 뽐내었던가 " 라고하였고, 잠 24:17에는, " 네 원수가넘어질때에즐거워하지말며그가엎드러질 때에마음에기빠하지말라 " 고하였다. 롬 12:21에, " 악에게지지말고선으로 악을 이기라 " 고하였다. 우리가원수에대하여선을행함으로 몇가지아름다운열매를 맺게된다. (1) 하나님의완전성이나타남 ( 마 5:48). (2) 하나님앞에서나 자신이 심판장이되는참람한죄를면함 ( 롬 12:19). (3) 용서하는 자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옴 ( 잠 19:11). 원수를갚는자는상대편의악을이기지못하고도리어나를대적하는악을더많이만들 어놓는다. 요한번연은진리파수를위해서는강경하였으나, 진리의적들이그를욕할때에는온유하 게참았다고한다. " 분쟁 "(* ) 은 " 원수를맺는 " 일에서나오는법이다. 분쟁은 언제나 그것 이확대될위험성의있고확대되면수습하기어렵다. 그러므로성경은 " 분쟈 " 에 대하여다음과같이 경계한다. 잠25:8에, " 너는급거히나가서다투지말라 " 하였고, 잠17:14에는 " 다누는시작은방축에
서물이새는것같은즉싸움이일어나기전에시비를그칠것이니라 " 하였고, 잠18:19 에는, " 노엽게한형제와화목하기가견고한성을취하기보다어려운즉이러한다툼은산성문빗장같으니라 " 고하였다. " 시기 "(* ) 는남이나자신보다웃해진것을보고불쾌하게여기는것이다. 사람은마땅히남이자기보다우수함을볼때에기뻐해야된다. 그이유는다음과같다. (1) 나보다우수한자를나의선생으로알때에기쁨을가지게됨. 선생이없는사람은인도자없는소경과같다. (2) 이세상에는할일이너무많다. 그것을다하기위해서는나자신보다우수한자들이많이있어야한다. 교회역사를보면, " 시기 " 의죄가교회에큰손해를끼쳤다. 크리소스톰 (Chrysostom) 은교권자데오빌로감독의시기로인하여억울하게탈직을딩하였으며, 마침내사막에망명하여종신 ( 終身 ) 하였고, 유명한사무엘루더포드 (Ruderforth) 도사이드셀프라는교권자의시기로인하여투옥되어수난하였다. 예수님은대제사장들의시기로인하여잡히셔서십자가에못박히셨다. " 분내 "(* ) 에대하여성경에여러가지훈계가있다. 잠12:26에 " 미련한자는분노를당장에나타내거니와 " 라고하였고, 잠 16:32에는 " 노하기를더디하는자는용사보다낫고마음을다스리는자는성을빼앗는자보다나으니라 " 하였고, 잠27:33에는, " 돌은무겁고모래도가볍지아니하거니와미련한자의분노는이둘보다무거우니라 " 하였고, 전7:9에는, " 급한마음으로노를발하지말라노는우매자의품에머무름이니라 " 하였고, 잠 27:4에는, " 분은잔인하고노는창수같거니와 " 라고하였다. 사람이선한일을많이한다. 할지라도 " 분노 " 하는성질이있으면, 그것으로인하여많은손해를당한다. 고대 ( 古代 ) 의유명한학자제럼 (Jerome) 은성경을라틴어로번역한공적이있으나, " 분노 " 하는성질이과도하여어거스틴 (Augustine) 에게보낸편지에도분노를나타냈다. 그것은그의업적에커다란오점 ( 汚點 ) 이아닐수없다. " 당짓는것 " 이란말 (* ) 은어원적 ( 語原的 ) 으로는 ' 임금노동자 '( 賃金勞動者 ) 를의미한다 (Greijdanus). 이의미에서, 이것은육체의유익으로매수되어단결해서진리를항거 ( 抗拒 ) 하는행위를가리킨다. 진리를위하여성령으로하나되게된단결은작든지크든지, 집에있든지밖에있든지그것은당을지음이아니다. 다만비진리를세우기위하여육체적수단으로서로단결한것은작당 ( 作黨 ) 행위이다. 고대의제2에베소회의는당파를짓는악한사람디오스코루스 (Dioscorus) 가주회 ( 主會 ) 한회의인데, 그회는비상하게경건한플라비아누스 (Flaviaus) 를축출하였고, 이단자 ( 異端者 ) 유두게를포용하였다. 칼빈은말하기를," 이회의는성령이주장하시기않았다. 나는그것이교회가아니라고생각한다 " 라고하였다 (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 BK. 4. chap. 10). 교회사 ( 敎會史 ) 에나타난대로교황그레고리 (Gregory) 11세가죽은 (1378 A. D.) 후에교황권쟁탈전으로인하여울반 (Urban) 6세는로마에서, 클레멘트 7세는프랑스의아비뇽에서각각교권을가지고근 30년을분립하였으니, 이것은순전히권리를위한당쟁이다. " 분리함 " 이란말 (* ) 은개인주의에입각하여화합성 ( 和合性 ) 이없는것을의미한다. 교회의참됨과거짓됨은그교회의공동고백과권징실시여부 ( 與否 ) 로써판별되고, 그교회의성원인개인신사들의사생활의완전여부는별도의문제이다. 만일누가교회의개인신사들의결점으로인하여교회적생활을버리고물러선다면, 그것은혹시 " 분리 " 행위가되기쉽다. 그러나만일누가교회의부패를경고하며진리와의 ( 義 ) 를증거하다가교권의억압 ( 抑壓 ) 으로축출을당한다면그는 " 분리 " 의죄를범한것이아니라. 의를위하여핍박을받은영광을얻을것뿐이다. 사무엘루더포드 (Samuel Ruderforth) 는 16세기의영국인으로서건전한개혁교의정신을로신앙생활을했던신앙위인이었다. 그는웨스트민스터신경작성위원중의한사람이었다. 그는일찌기어느교직자의시기를받아수감 ( 收監 ) 되었던일이있었는데, 그가옥중에서교인들에게보낸편지에말하기를," 이땅의목사들을따르지말라 " 고하였다 (1637년 7월 14일아벧딘옥에서 ). 그러나그것은결코그가 " 분리 " 의죄를범한것이아니고, 하나님의양떼로하여금이리와같은거짓스승들에게가지않도록하려는것이요, 양떼를사랑하는마음으로말한것뿐이다. 마 7:15 참조 " 이단 " 이란말 (* ) 은 " 채택함 " 을의미한다. 곧, 이것은신자들이공통적으로가지는진리와표준에위배되는의견을채택함이다. 그러나교회역사를보면, " 이단 " 이란칭호가타파 ( 打破 ) 에대한편견으로사용되니실례 ( 實例 ) 들이적지않다. 이것은옳은편에서그릇된편을향하여부른파명 ( 派名 ) 인동시에, 그릇된편을향하여서도사용하였다. 공정한의미에서 " 이단 " 은역사적으로고백해온성경적교리를위반하고다른의견을채택하는것이다. 누구든지그잘못된다른의견을채택하였다가도조만간그것을버
렸으면그는이단자아니다. ==== =====5:21 투기 - 이것은 " 시기 " 가좀더약화된것이다. 이것은남이소유한것에대하여심술이나서그것을빼앗으려고까지생각하는악심 ( 惡心 ) 이다. 술취함 - 신구약성경은술에취하는것을금한다. 잠23:29-35; 엡 5:18 참조. 술을약으로사용함이허락되었는데 ( 딤전 5:23), 그것을빙자하여술을탐해먹는다면, 그것은속이는죄까지범함이다. 신자가술에취하는것이불가한이유는다음과같은몇가지를생각할때에알수있다. (1) 신자는하나님의제사장이니 ( 벧전 2:9), 술에취하면하나님을경배하는일과진리를분별하는일에실수하게된다 ( 레 10:9; 겔 44:21), (2) 술에취하면일반적행동에도실수하게된다.( 잠 23:29-35). 신자가올바른정신을가지고도하나님의진리를다준행하지못하는데, 술에취하여서어떻게경건한생활을할수있으랴? (3) 술에취함은건강을해하는것이다. 방탕함 - 이것은음란이외의모든무절제 ( 無節制 ) 한향락주의를말한다. 누구든지그리스도의공로로구원받는진리를악용 ( 惡用 ) 하여이세상향락을방종스러이취할수있다고생가하면안된다. 신자는율법에서해방되었으나이제는감심으로율법을지켜야할책임을가지고있다. 그는오직하나님에게만순종할자유인이된것이사실이지만, 모든사람들을감심으롤섬겨야할종인것이다. 그러므로그는향락을자기마음껏취할처지가아니고모든사람들을위하여극기 ( 克己 ) 하며사랑의수고를해야만한다. =======5:22 성령의열매 - 여기 " 열매 " 란말 (* ) 은단수명사되었다. 그것은신자의여러가지덕행 ( 德行 ) 이성령의단일하신역사로말미암아여러방면으로나타난것임을알려준다. 그리고그모든덕행을 " 열매 " 라고한것은, 그것들이사람의노력을주로하고성립되는것이아님을보여준다. 이모든것들은성령에게서나오는것이다. 사랑 - 이 " 사랑 " 은믿음과함계있는사랑인사실을우리가알아야한다. 고전 13:13에말하기를, "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항상있을것인데그중에제일은사랑이라 " 고하였다. 신자의사랑은그가하나님의속죄의사랑을믿는데서반영된사랑이니만큼, 하나님의사랑을원천으로하고나온다고할수있다. 요일 4:10-11참조. 희락 - " 희락 " 은언제나성령으로말미암은사랑의열매이다. 사랑이있는곳에희락 ( 喜樂 ) 이있나니, 사랑하는자도기쁘고사랑을받는자도기쁜법이다. 언제든지남을미워하는자의얼굴에는수심과번민과고통의그늘이있지만, 남을사랑하는자의얼굴에는즐거움이속에서부터솟아난다. 희락의필요성은육체의건강을위한의미도있지만, 그보다도신앙을건전하게하려는것고하나님께감사를많이하려는것이다. 희락이있어야신앙이자라나고감사가넘친다. 화평 - 이것도성령으로말미암은사랑의열매인데, (1) 서로사과함으로이루어지며 ( 마 5:24-26), (2) 서로용서함으로성립된다.( 엠4:2-3). 이두가지방법으로화평이이루어지지만, 그것도하나님께서사모하는자 ( 힘쓰는자, 히 12:14) 에게주시는선물이다.( 약3:17-18). 마 5:9; 막9:50 참조. 오래참은 (* ) - 이것은 ' 따가움을멀리함 ' 이란뜻이다. 사람은대인관계 ( 對人關界 ) 에있어서혹은무엇이마음대로안될때에그심령이따갑게 ( 안타깝게 ) 되기쉽다. 이런떼에이기는방법은신앙으로하나님의도우심을기다림이다. 우리가인력으로할수없는떼에는침착하여하나님을기다리는것이좋다. 구원하여주시는하나님을기다림이우선안식의복이아닌가! 애굽사람들이이스라엘백성을잡으려고홍해까지따라올떼에모세는말하기를, " 다희는두려워말고가만히서서여호와께서오늘날너희를위하여행하시는구원을보라 "( 출 14:13) 하였고, 모압과압몬족속이큰무리로유대에육박하였을떼에여호사밧왕이말하기를, " 이전젱에는너희가싸울것이없나니항오를이루고서서너희와함께한여호와가구원하는것을보라 "( 대하 20:17) 고하였다. 히 10:36에말하기를, " 너희에게인내가필요함은너희가하나님의뜻을행한후에약속을받기위함이라 " 하였고, 갈6:9 에는말하기를, " 우리가선을행하되낙심하지말지니피곤하지아니하면때가이르매거두리라 " 고하였다. 자비. - " 자비 " 란말은 (* ) 남에게주는 ' 친절 ' 을의미한다. 그러므로 " 친절 " 이라고번역되어야한다. 친절은행실로만아니라말로도나타난다. 우리의말은중요하다. 잠
12:18에 " 혹은칼로찌름같이함부로말하거니와지혜로운자의혀는양약 ( 良藥 ) 과같으니라 " 하였고, 잠15:1에는 " 유순한대답은분노를쉬게하여도과격한말은노를격동하느니라 " 하였고, 잠15:4에는, " 온량한혀는곧생명나무라도패려한혀는마음을상하게하느니라 " 고하였다. 영시 ( 英詩 ) 에말하기를, " 노여운말한마디가한친절한마음을상하게만들고, 부지중에나온실언 ( 失言 ) 이앞날을캄캄하게만들고, 찌르는가시를일평생남겼도다. 그러나친절한말한마디가슬펐던마음에광명을주고, 동정의말한미디가한영혼을살려놓고, 기쁨의말한마디가캄캄하던앞길을광명하게만든다. 남의마음을섭섭케만드는것은네가발표한말뿐이아니다. 네가말하지아니하는그때에많은마음들이아픈상처를받는다. 네가말했더면많은아픈마음이풀어졌으리라. 사림들이언필칭 ( 言必稱 ) 공평을부르짖으며사람에게사납게행한다. 그러나격분된말로의 ( 義 ) 를말할진대말하지않는것이낫다 " 라고하였다. 양선. - " 양선 "(* ) 은자선행위를말하는데성령께서주신것이니만픔, 질적으로선하다. 이세상에는자선사업이나적선 ( 積善 ) 을말하는자들도많고실행하는자들도있다. 그러나흔히질적선미 ( 善美 ) 를지니지못한외부적행동에그치므로하나님이보시기에는자선이아니라생명없는사업혹은외식 ( 外飾 ) 에불과하다. 진정한자선은끝날의심판때에그대로다드러낼지라도전정한가치가있는것이되도록행해지는것이다. 충성. - 이것은진실하게주님의부탁을지킴이다. 우리는구원의소식을전함에있어서우리자신이어떤새로운공의 ( 功義 ) 를기증할필요는없다. 만일그럴필요가있다면그것은그리스도의이루신구원이불완전하다는뜻이된다. 구원은그리스도께서완성하셨다는것이성경의교훈이다. 그러면, 우리의 " 충성 " 이란것은그리스도께서전하신구원의복음을그대로전함이다. 충성하는자는구체적으로다음고같은자들이다. (1) 주님을두려워하는약한자. 주님께충성하는자는반드시영웅적기질을가진사람이아니다. 겁약한자라도주님만을두려워하게되면주님께충성하는자가된다. 이세상에속한충성을살펴보면, 생래적 ( 生來的 ) 으로영웅적기질을가지고국가에충성한자들이있다. 예를들면, 헬쿨라네움 (Herculaneum) 이함락당할때에로마파수병이죽기까지자리를옮기지않고그자리에서임무를다한것과같다. 또예를들면, 당 ( 唐 ) 나라의충신장흥 ( 張興 ) 이역적 ( 逆賊 ) 안록산 ( 安祿山 ) 의부하에게잡혀서도항복하지않고콥에키워죽으면서끝까지원수를꾸짖은것등이다. 그러나그것은인력을가지고썩을것에게충성한것이다. 하나님께충성하는것은반드시호걸이어야할수있는것이아니다. 그이유는, 호걸은자기의잘난것때문에하나님을전적으로의지하지않기때문이다. (2) 주님앞에진실한자. - " 충성 " 으로번역된말 (* ) 은진실을의미하기도한다. " 중심에진실함 " 을주님께서원하신다.( 시51:6). 주님께사로잡히지않은지식인이나모사는하나님의교회에해를끼치지만, 무식하여도주님의복음을그대로진실해전하는자는주님의일에유익하다. 사람이거짓되게행하기는어려워도진실히행하기는쉽다. 거짓되게행하는자는계속적으로거짓을꾸미며또그렇게처신하게된다. 그것은양심에괴로움을주는어료운길이다. 그러나사람이진실히행하면양심이평안하고그길도단순하다. (3) 주님을위한의로운생활 ( 혹, 사업 ) 에변절하지않는자. - 그는언제나한결같으며유종의미 ( 有終之美 ) 가있다. 누구든지선미 ( 善美 ) 한길을가다가변하면그는썩은뒤에그들의존재는교회에해가된다. 그러나썩기시작할때에서둘러치료하면회복할수있다. 그것은시급히회개함이다. 회개는신자의부패를막는유일한치료제이다. 인류역사는부패로이어져서보기도싫은역사이다. 그러나니느웨의회개역사는모든부패를막아역사를미화 ( 美化 ) 시켰다. 그역사는보기싫은것이아니라, 도리어부패했던적이없었던역사보다하나님앞에서기쁨이되는역사이다. 우리는변절로인한허물된인걱이되지말아야한다. 교역자들이처음에는잘하다가점점잘못한예 ( 例 ) 가얼마나많은가? 혹은명예심, 혹은물질에대한탐심, 혹은시기심, 혹은정욕, 혹은혈기등으로잘못되어타락하고만다. =======5:23 온유와절제니이같은것을금지할법이없느니라 - " 온유 " 란말 (* ) 은특히대적에게복수하지않고부드러운인격으로이기는덕을가리킨다. 위대한지도자들은이덕을소유하였다. 모세는그시대에가장온유의근본이시다. ( 마 11:28-30,12:17-21). 크렌머 (Cranmer) 에대한후세 ( 後世 ) 의속담은, " 캔터베리의감독크렌머와충돌하여라. 그리하면네가영원히그의친구사되리라 " 고하였다. 중세대의성자버나도 (Bernard) 는그눈이비둘기눈같은온유한
인물이었고, 보나벤츄라를보면아담이범죄하지않은것다 " 고하였다. 오리겐 (Origen) 은말하기를, " 우리는남을위해서지음이되었고, 남을저주하기위함은아니라 " 고하면서논쟁에있어서도온유를주장하였다. 키프리안 (Cyprian) 은교회정치가로서권위를존중히여기면서온유를실천하였다. " 절제 " 란말 ( ) 은 ' 자기자신을분잡음 ' 을의미한다. 이것은죄를범하지못하게자기를제재함이다. 바울은자기를 " 쳐복종하게 " 한다고하였는데 ( 고전9:27), 그것이바울의자기제재라고생각된다. " 이같은것을금지할법이없느니라." 이말씀은성령의아홉가지열매와율법이서로충돌되지않는다는것이다. 성령에의하여그기스도신앙으로행하는자의행실 ( 사랑으로행하는모든행실 ) 은율법을이루는것뿐이다. 롬 3:31,13:8-10참조. 이점에대하여다음귀절이도욱밝혀준다. ==== =====5:24 그리스도예수의사람들은유체와함께그정과욕심을십자가에못박았느니라. - 본절부터 26절까지는앞부분 (13-23 " 육체 " 대로범죄하지말고사랑을행하라고한보든말씀 ) 에대한결론이다. " 그리스도예수의사람들 " 은그리스도예수께서속죄하여그의소유로삼으쇼가백성을가리킨다. " 육체 " 는인간의부패성을가리키는데, 그것은모든죄악의근원이다. " 정 "(* ) 은의지적 ( 意志的 ) 으로하려고하지않아도자동적으로일어나는죄악의심리를가리킨고, " 욕심 "(* ) 은따갑게일어나는죄되는욕구를말한다. " 십자가에못박았 " 다함은,(1) 그리스도께서그들을대신하여십자가에서죽으셨을떼에그들과정욕사이의관계는원칙적으로끊어졌다는것이고 ( 고후 5:14-17), (2) 예수님이죽으셨다가다시사셨음으로인하여그들이받은영적새생명은부단히정욕과싸워그정욕이주장하지는못하게한다는것이다. 정욕을 " 십자가에못박았 " 다함은, 그것을현세에서부터아주없애버렸다는의미가아니다. 현세에기독신자에게서정욕이아주없어진다는교리는성경의다른부분에도없다.( 갈 5:17; 요일 1:8) ======5:25 만일우리가성령으로살면또한성령으로행할지니 - " 성령으로삶 " 은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아성령님의역사가신자들을중생케하며, 그들로하여금 거룩하게 살도록함을가리킨다 ( 고후 3:17). " 성령으로행할지니." 여기 " 행함 " 이란말 (* ) 은행렬 ( 行列 ) 을지어 서거나가거나함을의미한다.(Greijdanus). 이것은 신자들이한단체의행렬처럼성령님의인도대로 규율있게순종함을가리킨듯하다. 빌 2:12-13 참조 =======5:26 헛된영광을구하여서로격동하고서로투기하지말지니라 - 교회생활에있어서분쟁은허영을구함에서일어난다. 교회의단체생활에서누구든지높아지기를원하면, 그것은허영심이다. 그이유는, 이세상에서높아지는것을언제든지헛된까닭이다 ( 벧전 1:24). 천국에서는낮아지는것이실상높아짐인데, 그와반대로높아지기를원함은어리석은생각 ( 마구적 ) 이다 ( 눅 18:14). " 서로격동함 " 은서로노엽게함이고, " 서로투기함 " 은남의잘됨을기뻐하지않고도리어방해하는악독한행동이다. 갈라디아서제 6장 =====6:1 무슨범죄한일 - ' 범죄한 ' 에해당하는헬라어 ' 파라프토마티 '(* ) 는문자적으로 ' 넘어지다 ', ' 따로떨어지다 ' 등의의미로 ' 타락하다 ' 라는개념을포함한다. 바울은이단어를사용하여고의적이고계획적인죄의개념을제거하고자한다 (Ridderbos, Lenski). 본절의범죄는어떤유혹에의하여부지중에저질러진 ' 실수 ' 나 ' 허물 ' 을가리킨다. 그러나 ' 파라프토마티 ' 가무지와연약함에의하여저질러진것이라할지라도범죄에대한책임마저소멸되는것은아니다. 그렇지만바울은겸손한마음으로그들의책임을나누어질것을권고한다 (2절). 한편바울이본절에서 ' 범법한자 ' 라는의미를가진 ' 파라바테스 '(* ) 를사용하지않은것은여기서취급하고자하는범죄가적극적인것이아니라우발적 ( 偶發的 ) 이거나육신의약함을인하여범한것임을시사한다. 드러나거든 - ' 드러나거든 ' 에해당하는헬라어 ' 프롤렘프데 '(* ) 는 ' 발견하다 ', ' 놀라게하다 ' 등의뜻을
가진 ' 프롤람바노 '(* ) 의부정과거수동태가정법으로어떤사람이부지중에범죄한후스스로깨닫지못하다가어느날갑자기범죄한자신을발견하게될때에느끼는당혹감과놀라움을의미하며다른사람들에의하여범죄한사실이알려지는것을뜻하기도한다. 혹자는이단어가범죄의수단이나원인보다는단순히범죄한현장에서발견되었다는현장성을강조한다고설명한다 (Ridderbos). 그러나 ' 프롤렘프데 ' 는간음하다가현장에서잡힌여인을언급할때에 ( 요 8:4) 사용된 ' 카탈람바노 '(* ) 란단어와비교해볼필요가있다. ' 카탈람바노 ' 는사건의현장성, 곧범죄의증거를강조하는한편 ' 프롤렘프데 ' 는사건의진위성 ( 眞僞性 ) 곧범죄한사실이있었느냐없었느냐는사실관계를강조한다. 온유한심령 - 이것의헬라어 ' 프뉴마티프라위테토스 '(* ) 는 ' 온유한마음 ' 으로번역되기도하였다 ( 고전 4:21). 물론 ' 프뉴마티 ' 는본절에서 ' 인간의영 ' 을뜻하며성령의열매인온유로특징지어지는사람의심리적상태를의미한다. 특별히성령의 9가지열매중에서 ' 온유 ' 를언급한것은 ' 프라위테토스 ' 가교만과반대되는개념으로서 ' 겸손 ' 을의미하며또한 ' 화내지않고관용하는마음 ' 을함축하고있기때문이다 (R.E. Howard) =====6:2 짐을서로지라 - ' 지라 ' 에해당하는헬라어 ' 바스타제테 '(* ) 는일시적인도움이아니라계속적으로관계성을갖고돕는것을의미한다. 이러한공동체적관계는 ' 알렐론 '(*, ' 서로 ') 에서더욱잘드러난다. 이들이나누어져야할 ' 짐 '(*, 바로스 ) 은 ' 가혹하여서감당하기힘든일이나짐 ' 을뜻하는단어이지만, 때로는긍정적인의미로 ' 영광과충만 ' 의의미를함축하기도한다 ( 고후 4:17). 본절에서의미하는바는다음세가지로생각해볼수있다. (1) 범죄로말미암아스스로감당해야할책임을뜻한다 (Huxtable). (2) 그리스도인이삶의현장에서겪는시험이나인생의좌절을뜻한다 (Boice). (3) 죄를짓도록유혹하거나영적으로억압하려는세력을뜻한다. 이경우 ' 짐을서로지는 ' 것은그리스도인들을범죄의유혹과위협으로부터보호하고자예비적으로협력하는것을뜻한다고볼수있다. 위의세견해중에어느것을선택한다고할지라도지체들의유기적 ( 有機的 ) 관계를설명함에있어서부적합한것은없다. 성도는이상의모든경우에있어서서로의짐을나누어져야한다. =====6:3 아무것도되지못하고된줄로생각하면 - 바울은동일한주제속에서온전한사랑을실천하지못하는자들의내적상태를지적한다. 다시말해서이웃의무거운짐들을함께나누어지지도못하면서의식적인율법의구조속에빠져스스로모든율법의요구를지켰다고착각하는자들을경고한다. 그들의문제점은자신의재능이나역할에대하여자신감을가졌다는것이아니라영적으로교만한상태에빠져하나님의절대적인판단기준을무시하고율법을자신의유익과종교적욕구를만족시키기위해지켰다는것이다. =====6:4 각각자기의일을살피라 - 앞절이영적교만에빠져자기를기만하는몇몇사람들에게만제한되어적용된것이라면, 본절은모든사람에게적용되는교훈이라고볼수있다. 의식하는자들은율법의종이되어인간적인규범으로이웃을판단하고, 다른사람의범죄에자신을비교하여자신의상대적인의로움에절대적인가치를둠으로써이웃의짐을나누려하기보다는오히려이웃의짐을가중시키는불법을행하였다. 이처럼자신과다른사람과의비교에서생기는그릇된자존심에서탈피하는것이진정한사랑의출발점이다. 한편본절의 ' 살피라 ' 에해당하는헬라어 ' 도키마제토 '(* ) 는제련소에서순금을정련 ( 精鍊 ) 하는것처럼 ' 참과거짓을가려내는 ' 것을의미한다 (test, NIV). 성도들은자기의생각과행동을살필때하나님의말씀을표준으로하여엄정하게해야한다. 이렇게할때성도들은그리스도앞에서깨꿋한양심을갖게되고또그리스도안에서참기쁨과평안을누리게된다. 자랑할것이자기에게만있고 - ' 스스로속이는자들 ' 은자신의자랑거리를상대방의실수와견주어평가했던것같다 (Ridderbos). 그러나자신의업적이하나님의행하심으로말미암았다고고백하는바울의자랑 ( 고후 1:12; 빌 2:13) 에비추어볼때이들의자랑이얼마나부끄럽고어리석은것인지를알게된다. 바울은자신의눈을다른사람이아닌하나님께돌려야할것을시사하며이로써성도는자신의무익함과하나님께대한영광을깨닫게될것을보여준다 (Boice).
=====6:5 자기의짐을질것임이니라 - 바울은본절에서그리스도인들이마땅히가져야할의무를가르친다. 그것은곧자신의짐을스스로지는것이다. 바울은본절에서 ' 짐 ' 을뜻하는단어로 ' 포르티온 '(* ) 을사용하여 2절에서의 ' 짐 ' 에해당하는헬라어 ' 바로스 '(* ) 와구별하고있다. ' 포르티온 ' 은신약에서배에싣는화물을가리키기도하였으나 ( 행 27:10 ), 어원적으로 ' 포르티온 ' 이 ' 바로스 ' 보다더가벼운짐을뜻한다든지더무거운짐을뜻한다는것을 ( 마 23:4) 증명하는것은쉬운일이아니다 (Ridderbos). 그러나 ' 포르티온 ' 은 ' 바로스 ' 와달리한사람의 ' 짐꾸러미 ' 를의미한다. 이 ' 짐꾸러미 ' 는본절에서하나님이성도각자에게맡기신직무를가리킨다 ( 고전 12:5). 모든성도는각자자기가해야할일을감당해야하며그일에대해책임을져야한다. 한편 ' 질것임이니라 ' 의헬라어 ' 바스타세이 '(* ) 는미래시제로미래의심판뿐만아니라그리스도인이감당하는정상적인의무와마땅히해야할일들의책임성을강조한다 (Ridderbos, Huxtable). 하나님의심판날에각사람의모든행위가드러나므로 ( 벧전 1:17) 모든그리스도인은하나님으로부터받은의무를성실히이행해야한다. =====6:6 가르침을 받은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 카테쿠메노스 '(* ) 의 동사형 ' 카테케오 '(*, ' 가르치다 ') 는원래 ' 이해하게하다 ', ' 귓가에울리게하다 ' 라는뜻으로사용되었으며때로 는 ' 좋지않은소리를귀에따갑도록반복해서알리는것 ' 을의미하기도하였다 ( 행 21:21, 24). 혹자는 본절에 언급된자들이유료 ( 有料 ) 교사들의집단일것이라고추측한다 (Boice). 그러나본절 ' 카테쿠메노 스 ' 는어떤특정한단체나조직속에있는자들을가리키기 보다는 ' 그리스도의교훈아래있는자 ' 들 이라는포괄적인의미로보는것이타당할것같다 (Boice, Cole). 말씀을가르치는자 - ' 가르침을받 는자 ' 들의신분이구체적으로드러나지않았듯이 ' 가르치는자 ' 들의신분도분명하게드러나지는않았 다. 이들은 ' 말씀 ' 을가르치는자들로서다른서신서에서는 ' 디다스칼로이 '(* ) 라고 표현되었으며 ' 교사 ' 라고번역되었다 ( 고전 12:28; 엡 4:11). 이들 ' 교사들 ' 이본절에기록된 ' 가르치는자 ' 들과같은부류의사람들인지에대한견해는크게둘로나뉜다. (1) 혹자는이들이초대교회안에서 목회자적인신분을가진자들로서 ' 디다스칼로이 ' 와같은신분의사람들이라한다 (Ridderbos). 그러나 본서가 다른 서신들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것을염두에 볼 때 ' 가르치는 자 ' 즉 ' 카테쿤티 '(* ) 가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임명된직분자들이라고하기는어렵다. (2) 오히려본절에서 ' 가르치는 자 ' 들은보다초기의직분자들로서바울을포함한사도들과바나바와디도같은 사역자들과 교회가임명한장로들을 ( 행 14:23) 가리킨다 (Huxtable). 이들은 ' 교사 ' 들과는달리한교회에소속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복음을전파하기위해여러 곳을 돌아다니는전도여행자들을뜻하는것같 다. 문맥상 (2) 의견해가무난하리라본다. =====6:7 스스로속이지말라 - ' 속이지 ' 에해당하는헬라어 ' 플라나스데 '(* ) 는 3절에 ' 프레나파타 '(* ) 와는차이가있다. ' 플라나스데 ' 는 ' 길을잃게하다 ', ' 진리에서벗어나도록하다 ', ' 잘못되게유인하다 ',' 미혹하다 ' 등을뜻하는 ' 플라나오 '(* ) 의현재수동태명령법으로 ' 어떤유혹에미혹되어믿음을잃게되다 ' 는뜻이다. 하나님은만홀히여김을받지아니하시나니 - ' 만홀히여김 ' 에해당하는헬라어 ' 뮈크테리제타이 '(* ) 는 ' 바보취급당하다 '(to be fooled,neb) 라고번역될수있다. 이러한태도는인간의그릇된본성과연관되어있다. 인간의이기적본성에의하여저질러진행위는결국하나님을모독하거나등한시하는결과를초래한다. 본절에서 ' 만홀히여김을받지않는다 ' 는것은인간의모든행위를꿰뚫어보시는전지전능 ( 全知全能 ) 하신하나님께서 ( 시 139:1-6; 겔 11:5) 인간의행위에대하여공의로운심판을하실것을의미한다. 본절에서바울은율법을지킨다고자부하며할례를행하는자들이오히려진정한율법의정신인사랑과선행을무시하는것을염두에두고이는하나님을기만하는행위라고교훈하고있다. 사람이무엇으로심든지그대로거두리라 - 바울은인간의행위를자연법칙에비유한다. 이렇듯행위와그결과를설명하기위해씨뿌리고거두는비유를사용하는것은혤라문화와성경에서자주발견된다 ( 마 7:16; 막 4:26; 눅 19:21; 고후 9:6). 바울은고후 9:6에서적게심는것과많이심는것의차이
에대하여설명하였으나본절에서는심는것과거두는것의 ' 질 ' 에대하여논한다. ' 심든지 ' 에해당하는헬라어 ' 스페이레 '(* ) 는현재가정법능동태로미래조건을나타내기위해 ' 에안 '(*, '... 하든지 ') 과연결되어있다. 현재가정법은동작의계속적반복을나타내므로본절에서묘사된행위는인간이지속적으로행하는각각의행위를말한다. 또한미래조건절임을나타내는 ' 에안 ' 이사용된것은인간의모든행위가미래의결과, 곧하나님의심판을향하고있다는것을보여준다. 따라서사람들이복음을듣고그것을어떻게실생활에실천하느냐하는문제는그가미래의심판대앞에서어떠한결과를거둘것이냐하는문제와밀접한관계가있다. =====6:8 자기의육체를위하여심는자는... 썩어진것을거두고성령을위하여심는자는 -' 심은대로거둔다 ' 는일반적인법칙은서로다른두가지의경우에적용된다. 바울이앞장에서육체와성령을비교한논리 (5:16-18) 와는차이가있지만세상끝의추수를바라보는시간은동일하다. 타락한육체의본성을따라규모없이생활한다면육체적부패와도덕적타락을초래하게되며영적인성품들을잃게될것이다. 성령으로부터영생을거두리라 - ' 성령을위하여심는다 ' 는것은자기의삶을성령에게맡기고성령의열매를거두기위하여성령의인도하심을따라사는것을의미한다 ( 롬 8:14). 이러한삶은인간내면세계에서역사하시는성령으로부터 ' 영생 ' 을얻게될것이다. 이는육체적인생명전체를가리킬뿐만아니라부활후에하나님의영광에참여하는영화 ( 榮華 ) 로운생명을의미한다 (Ridderbos). =====6:9 선을행하되낙심하지말지니 - 본구절은마지막추수의때가지연된다는것을염두에둔표현이다 (Ridderbos). 임박한종말을눈앞에두고는누구든지긴장하게마련이지만, 간사한인간은이 ' 지연 ' 으로인하여스스로피곤해하며넘어지게될것이다. 한편본절의내용은 ' 너희는선을행하다가낙심치말라 ' 는살후 3:13의내용과매우유사하다. 본절과살후 3:13을비교해보면다음과같다. ' 본절 '(*, 토칼론포이운테스메엥카코멘 ),' 살후 3:13'(*, 메엥카케세테칼로포이운테스 ). 살후 3:13에서는 ' 메 '(* ) 와연결된부정과거가정법 ' 엥카케세테 '(* ) 에의하여 ' 낙심하지말라 ' 는 ' 금지명령형 ' 을뚜렷하게설명하였으나, 본절에서는현재가정법 ' 엥카코멘 '(* ) 과 ' 메 '(* ) 의구문이앞에있는 ' 포이운테스 '(*, ' 행함 ') 와함께사용되어 ' 계속적이고반복적인행함 ' 의의미를강조하고있다. =====6:10 그러므로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아라운 '(* ) 은앞에기술된사실들을결론적으로다시반복하여강조하고자할때자주사용되며구약을인용하고나서부연설명을시작할때사용되기도한다. 본절에서는전자의경우에해당한다. 기회있는대로 - 혹자는 ' 있는 ' 의헬라어 ' 에코멘 '(* ) 을가정법적인의미로이해하여 ' 기회가있으면 ' 으로번역한다 (Westcott, Hort). 그러나바울은일반적으로가정법문장을사용할때언졔나 ' 안 '(*, if) 을썼다. 본절에서는 ' 안 ' 을사용하지않았으므로 ' 에코멘 ' 을 ' 기회가있는동안 ', 또는 ' 기회있는대로 ' 등의뜻으로번역하는것이타당하다 (Lenski, Ridderbos, Huxtable). 본문은한개인의생애가운데제한되어있는기회의제한성을나타낸다. 착한일 - 이에해당하는헬라어 ' 아가돈 '(* ) 은 9절의 ' 칼론 '(*, ' 선 ') 대신에쓰여졌다. ' 칼론 ' 이 ' 윤리적인아름다움 ' 이라는의미를담고있는단어라면, 본절의 ' 아가돈 ' 은철저하게 ' 이웃과의관계 ' 속에서이해되는단어이다. 한편 6절에서는 ' 아가돈 ' 이아니라복수형태인 ' 아가도이스 '(*, ' 좋은것들 ') 가사용되었으나본절에서는단수로사용되었다. 비록단수로쓰이긴했어도 ' 아가돈 ' 은선한모든것을하나로묶는집합적의미로해석되어야한다. 이렇게할때 ' 아가돈 ' 은모든사람을대상으로베푸는자비와동정심을가리킨다. 6절에서의 ' 아가도이스 ' 는영적인것과물질적인모든것을함께나누는것에역점을두고있다면본절의 ' 아가돈 ' 은일방적으로베푸는선행에역점을두고있다. 더욱믿음의가정들에게할지니라 - ' 더욱 ' 에해당하는헬라어 ' 말리스타 '(* ) 는 ' 무엇보다도 ', ' 최고로 ', ' 특히 ' 등의뜻을가진 ' 말라 '(* ) 의최상급이다. 바울이이처럼믿는자들에게특별히잘해주라고권면하는것은갈라디아교인들속에있는거짓
교사들과유대주의자들을염두에두고있음을시사한다. 한편 ' 가정들 ' 로번역된헬라어 ' 오이케이우스 '(* ) 는신약에서바울서신에만나타난다 ( 엡 2:19; 딤전 5:8). 바울이이단어를사용하는것은하나님의자녀가된무리들은신앙공동체의불가분리적인관계를지니고있음을강조하고자함이다. 이처럼바울이성도들을하나의대가족단위로파악한것은성도들을 ' 이웃 ' 보다긴밀 ( 緊密 ) 한 ' 형제 '(*, 아델포스 ) 로보았기때문이다. =====6:11 내손으로는... 큰글자로쓴것 - 바울은이제본서신전체에대한결론을 맺는다 (11-18). 본절은 ' 큰 ' 의헬라어 ' 펠리코이스 '(* ) 와 ' 쓴 ' 의헬라어 ' 에그랖사 '(* ) 의시제를어떻게취급하느냐에따라다르게이해할수 있다.(1) ' 펠리코이스 ' 를 ' 긴 ' 또는 ' 많은 ' 등의개념으로이해할경우바울이지금까지쓴많은내용의편지를가리키고있는것으로해석한다 (Calvin, Luther). (2) ' 펠리코이스 ' 가시각적으로 ' 큰 ' 을의미한다고볼경우바울이쓴글씨체를 가리킨다. 이렇게볼때본절은바울이오랜여행기간둥안의박해와노동으로인하여적당한글씨체 로글을쓸수있는능력을상실했다는것을호소하는의미를갖는다고본다 (Deissmann).(3) 혹자는 바울이글쓰는사람에게대신쓰도록하고바울은자신의 서명만 스스로했다는점 ( 고전 16:21ff.; 골 4:18; 살후 3:17) 에착안하여본구절에서바울자신이직접쓰는부분이시작된다는것을강조한다고 한다. 이견해들가운데어느하나를 취하기는어렵다. 그러나바울자신이본서신의진실성을증명 하기위해서직접펜을들었으며갈라디아교인들에게 특별히 강조해야 할 부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Ridderbos). 한편 ' 쓴 ' 에해당하는헬라어 ' 에그랖사 ' 는부정과거로발신자가 수신 자의편지를읽는시점을염두에두어집필시점을과거로묘사하는서신적인 용어이다. 그러므로본 절에서는헌재적인의미로 ' 쓰고있는 ' 이라는뜻으로이해해야한다. =====6:12 육체의모양을내려하는자 - 갈라디아교인들에게할례를강요하는율법주의자들은전통적인유대주의자들이라고말할수없다. 그들은율법을진실하게지키려는유대인이라기보다는이기적인욕심을따라사는기회주의자들이라고말할수있다. ' 모양을내다 ' 에해당하는헬라어 ' 유프로소페사이 (* ) 는드물게나타나는단어로 ' 좋은모양을낸다 ' 라는의미이다. 이러한의미로봐서그들은인간적인겉치레만을일삼는자들이며겉과속이다른자들이다. 억지로너희로할례받게함은 - 그들은할례를행함에있어서도언약적인관계로서행하는것이아니라외형적인모습만을갖추기위해행하는자들이었다. 그들의할례는율법을완성하신예수께서행하셨던할례나 ( 눅 2:21) 또한디모데에게할례받게했던 ( 행 16:3) 바울의할례개념과는차이가있다. 그들은단지육신의유익을위해할례를행하였다. 본절의 ' 육체 ' 는부패한인간본성과이웃을경멸하는종교적자만심을뜻하기도하며인간의신체중에할례받은한부분을더구체적으로지적하는말로서 (Ridderbos) 그들의자랑이얼마나편협되고초라한수준에머물러있는가를지적한다. 그리스도의십자가를인하여핍박을면하려함뿐이라 - 할례를요구하는율법주의거짓교사들이그리스도를선생이나선지자중의한사람으로는인정하고있어도그리스도의십자가는기피하고싫어하였다. 율법주의자들이십자가를싫어하는이유는크게두가지이다. (1) 십자가는유대주의자들이스스로세워놓은율법적인의의를부인한다. 그래서자신들을죄인으로인정해야하기때문이다. 게다가나무에달려죽은자는저주받은자로인식되었기때문에예수를구세주로받아들일수가없다는문제때문이다 (Boice). (2) 갈라디아의율법주의자들이십자가를전파하게되면그리스도의사역과효력을증거해야되고그렇게되면자연스럽게할례를부인해야만한다. 만약그들이할례를부인한다면그들은전통적인유대주의자들로부터박해를받게될것이다. 따라서그들은십자가자체를부인하지는않았다고해도박해를받지않기위해서십자가를회피하고할례의정당성 ( 正當性 ) 을언급하였을것이다. =====6:13 할례받은저희라도 - ' 할례받은 ' 에해당하는헬라어 ' 페리템노메노이 (* ) 는 ' 할례를행하다 ' 는뜻을가진 ' 페리템노 '(* ) 의현재중간태로서 ' 스스로할례를받은 ' 또는 ' 할례를좋아하는 ' 이라는의미이다. 어떤사본 (P,B, F) 에서는완료수동태인 ' 페리테트메메노이 '(* ) 를취하여이미할례를받은거짓교사들을선명하게지시한다 (Ridderbos). 혹자는
본문이현재갈라디아교회의위기를초래하고있는자들, 다시말해서율법주의자들에의하여할례를 받은 자들을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제를 현재형으로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Huxtable, Howard). 또한보다오래된사본 (*, A, B) 에서는현재형을취한다. 이처럼현제형을취 하면모든거짓교사들과추종자들다지시할수있다는점에서타당한듯하다. 스스로율법은지키 지아니하고 - ' 지키지아니하고 ' 의헬라어 ' 우데퓌랏수신 '(* ) 은 고의적 인율법 파기를의미한다. 갈라디아 교회의거짓교사들은율법을지키기위하여할례를행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율법준수를도외시하는거짓무리들에불과하였다 (12절). 그들은유대교를따르는 자들도아니었다. 그들은눈앞에있는박해를피하기위해기회를엿보는자들이며자기의육체를자랑 하기위해모든진리들을마음대로변질시키는자들이었다. 너희의육체로자랑하려함이니라 - 그 들은진리를따른다거나율법을행한다는것을자랑으로삼지않았다. 단지그들을따르는추종자들이 얼마나많은가 하는 것을자랑으로삼고자했다. 그들은자아중심적인교만에빠져육체의흔적을신 뢰하는 거짓신앙을가지고있어서자기자신이멸망의길로가는것을알지못할뿐만 아니라다른 사람이멸망의길로가는것을기뻐하며다른사람들의희생을 통하여 자기들의유익을 찾고자 하는 이기적 ( 利己的 ) 인사람들이었다. =====6:14 십자가외에결코자랑할것이없으니 - ' 결코... 없으니 ' 에해당하는 ' 메게노이토 '(* ) 는 70인역에서주로사용된용법으로 ( 수 22:22;24:16) 미래에대한부정적인소원을나타내는화구법이다. 이는박해를피하기위해십자가를부끄러워하면서할례를자랑하는율법주의자들의삶의태도와대조를이룬다. 세상이보기에십자가는연약함과불행의상징이었지만 ( 고전 1:25) 바울에게있어서는자랑이었다. 이러한역설적인표현은바울이가졌던진리의본질과삶의동기와목적을선명하게대변한다. 한편 ' 내게는 '(*, 에모이 ) 이라는표현은온갖불의를무릅쓰고끝까지진리를사수하는바울의열정을나타낸다. 세상이나를대하여십자가에못박히고 - 바울은그리스도의십자가사건을자신에게적용시킨다. 그도한때세상의영광들을구하며인간적인성공을바라보며살았던쓰라린경험을가지고있다 ( 빌 3:3-6). 그러나이제그는냉철하게세상과자신을구별한다. 그리스도안에서새롭게태어난새생명을자랑하는것은 ' 십자가에못박히고 ' 라는절대적인표현속에잘나타나있다. 이제그리스도안에서새로워진자아 ( 自我 ) 는절대로세상적인방식을따라살아갈수없다. 여기서 ' 세상 '(*, 코스모스 ) 이란인간들의자기주장에의하여움직여지는불신앙적인요소와악의총체를의미한다. 바울이 ' 세상 ' 과 ' 나 ' 를배타적인관계로여기고십자가에못박는것은오직그리스도의십자가만이유일한구원과생명의근거라는사실을증거한다 (Ridderbos). =====6:15 오직새로지으심을받은자 - 바울은구원의조건으로무할례를강조하지않는다. 할례와 무할례는상대적인요소들로서절대성을지닌그리스도의십자가앞에서 아무런효력을발휘하지못 한다 (5:6; 고전 7:19). 바울이앞절에서오직십자가만을자랑하다가 ' 새로지으심을받은자 ' 로관심을 돌린것은매우흥미있는전황이다. 이 말은성령안에서살아가는새로운삶을의미한다 (Ridderbos). ' 지으심을받은 ' 에해당하는헬라어 ' 크티시스 '(* ) 는하나님의행위를의미하기도하며 ' 피 조물 ' 을뜻하는 ' 크티스마 '(*, 약 1:18) 와같은의미로사용되었다. 특히 ' 크티시스 ' 는본 절에서 ' 새로 ' 의헬라어 ' 카이네 '(* ) 와함께쓰여그리스도로말미암아재창조된하나님의 피조물을강조한다 ( 엡 2:10). 그리스도안에서선한일을 위하여지으심을받은자들은삶의동기와 목적도새로운것으로바뀌었다. 이제 성도는현재의삶속에미래에이루게될종말의삶을도입하 며살아간다. =====6:16 이규례를행하는자 - ' 이규례 ' 는바울이앞서말한모든것을포함한다. 그것은그리스도의십자가를부끄러워하지않는것이며보다적극적으로성령안에서새롭게살아가는것이다. 이는새언약곧복음으로말미암아가능하다. 이처럼본절에서는본서의핵심을요약하고있다. 한편 ' 행하는 ' 의헬라어 ' 스토이케수신 '(* ) 은 ' 행렬에맞추어나가다 ', ' 규칙을굳게지키다 ' 라는뜻을
가진 ' 스토이케오 '(* ) 의미래직설법으로 5:25에서성령으로행하는삶을의미할때사용된것처럼새규례가성령의인도하심에의존된것임을보여준다. 하나님의이스라엘에게평강과긍휼이있을지어다 - 새언약의규례를따르는자들에게베풀어진축복은본절에서크게두가지로나타난다. (1) ' 하나님의이스라엘 ' 이된다는것이다. 유대인이나이방인이나누구를막론하고그리스도안에서새롭게거듭난자들만이유일한하나님의백성이되며참된이스라엘족속이될수있다 (3:29;4:28, 29). 참된이스라엘이란민족적이며전통적인이스라엘이아니라복음을믿어순종케된자들로구성된 ' 새이스라엘 ' 곧 ' 약속의자녀 ' 를말한다 ( 롬 9:7). (2)' 평강 ' 과 ' 긍휼 ' 의은혜가주어진다. ' 평강 ' 에해당하는헬라어 ' 에이레네 '(* ) 는 5:22에제시된성령의열매가운데하나이다. 이는신약에서일반적으로미래에이루어질축복과행복을뜻하는말로쓰여졌는뎨 ( 눅 2:14) 본절에서는종말론적인구원을함축한다 (Ridderbos). 한편 ' 긍휼 ' 에해당하는헬라어 ' 엘레오스 '(* ) 는구약의 ' 헤세드 '(* ) 의번역으로 ' 하나님의무한한사랑 ', ' 한번택한백성을버리지않는변함없는은혜 ' 등을의미한다. 신약에서는하나님의구원의약속이예수그리스도로말미암아베풀어진큰은혜를가리킨다. 특히바울은이와같은축복을특정한무리들에게만국한시키지않고아직복음을받아들이지않은무리들에게도같은축복속으로초대하고있다 (Huxtable). =====6:17 나를괴롭게말라 - ' 괴롭게 ' 에해당하는헬라어 ' 코푸스... 파레케토 '(*... ) 는 ' 내면적인고통이나슬픔 ' 을의미한다 ( 마 26:10; 눅 11:7). 바울이당한괴로움은유대주의자들로부터의직접적인폭력이나폭언이라기보다는갈라디아고인들이유대주의자들에게미혹되는것을지켜봐야하는안타까움이다. 따라서 ' 괴롭게말라 ' 는구절은더이상갈라디아교회속에서이단자들에의하여미혹 ( 迷惑 ) 되는자들이없기를바라는호소의성격이강하다. 예수의흔적을가졌노라 - ' 흔적 ' 에해당하는헬라어 ' 스티그마타 '(* ) 는소나양에게낙인을찍어소유주를나타내거나종이특정한주인의소유임을나타내기위하여 ' 자국 ' 이나 ' 소인 ' 을남긴다는것을의미한다. 어떤신비주의자들은이 ' 흔적 ' 을십자가에못박히신예수의상처가그대로바울에게도생긴것이라고한다. 일례로아씨시의프란시스 (Assisi Francis) 가이런식의거룩한흔적을받았다고전해진다. 그러나본절에서 ' 흔적 ' 을신비적체험으로이해하는것에는많은무리가따른다 (Ridderbos, Huxtable, Cole). 바울이말한예수의흔적은복음을전파하는가운데서예수의이름으로말미암아얻게된수많은고난의흔적을의미한다. 그것은 (1) 수많은육체적고난으로인하여실제로남겨진박해의상처들을뜻하며 ( 고후 11:22-27),(2) 그리스도와연합한삶의실천적의미로서수많은고난에동참하였음과고난과박해속에서도끝까지예수를따랐다는사실을나타낸다. 바울이소유한예수의흔적은예수의고난에참여함으로얻은거룩한증표로서율법주의자들이육체의자랑을위해스스로행한 ' 육체의모양 ' 과는족히비교할수없는영광스러운것이다 ( 행 20:24). =====6:18 형제들아우리주예수그리스도의은혜가너희심령에있을지어다아멘 - 모든형제들 에게거룩한인사를함으로시작했던 (1:2) 본서신은갈라디아교회의형제들에게그리스도의은혜가 함께하기를간구하는기도로끝을맺는다. ' 그리스도의 은혜 ' 는바울이지금까지말한모든성령의 약속과구원을함축적인의미로 표현한 것으로서저들의구원이자의적 ( 自意的 ) 인행위에있지않 고하나님의주권적인사역에달려있음을다시한번확증한다. 특히그리스도의은혜가너희 ' 심령에 '(*, 메타투프뉴마토스 ) 라고표현한것은외형적인모양을 추구하는율법주의자 들의견해와는대조적으로하나님의은혜가성도들의내적인 존재 전체에영향을끼치길기원하는의 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