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35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 1) 이종철 **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취락의조사와분포 Ⅲ. 취락의특징 Ⅳ. 맺음말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섬진강은험준한준령사이를가르거나곡간의충적대지를휘돌아흐르는것이특징이다. 이러한자연환경덕분에섬진강은감입곡류와크고작은충적지가발달되어있다. 그러나 고고학조사가상대적으로적어그문화적성격이분명하게드러나지않았던지역가운데 한곳이다. 본글은그동안보성강유역을중심으로파악되어왔던섬진강유역이아닌섬진강본류역 을중심으로하는청동기시대취락의성격과특징을살피는데목적을두고있다. 비록시기적 인취락의밀도차가극명하게대비되지만섬진강본류에입지한취락의분포와밀도가갖는 현시점의해상도를높인다는측면에서작은의미를찾을수있다. 섬진강본류역의청동기시대취락은조기~ 후기단계까지존재하지만후기단계의원형점토 대토기문화는아직까지분명하지않다. 즉조기단계의미사리유형, 전기단계의가락동 삼동 흔암리유형, 중기단계의송국리유형이확인되며, 후기단계는송국리유형의지속으로 역 * 본글은제23 회호남고고학회학술대회발표문을수정가필한것임을밝혀둔다. ** 전북대학교박물관학예연구사
136 第 46號 2015年 12月 설명된다. 이러한배경속에서송국리유형은섬진강상류역 ~ 하류역까지고르게분포하고있 으며, 밀도역시가장높기때문에청동기시대섬진강유역의대표성을갖는다. 섬진강유역권은공열토기로대표되는역삼동유형과송국리유형의보편화및상호복합적 성격을특징으로한다. 중기단계에이르러재지의전통적요소와새로운송국리유형의복합화 가활발하게진행된것으로파악된다. 취락의구성에서도전단계와달리발전된공간배치를 보여준다. 이시기에취락의한요소로서무덤의속성은명확하지않지만묘역식, 기반식 등다양한형태의지석묘가주요묘제였을가능성이매우높다. 주제어 : 섬진강, 청동기시대, 취락 Ⅰ. 머리말 섬 진강( 蟾津江 ) 은진안마이산과팔공산에서발원하여임실군순창군남원시, 곡성군 구례군, 그리고하동군을경유하여광양만으로흘러든다. 이강은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를관통하는우리나라 4대하천중하나로서그길이는 222km 에이른다. 섬진강본류와 크고작은지류는동쪽의백두대간과북서남쪽으로휘감긴호남정맥으로둘러싸여있기 때문에험준한준령사이를가르거나곡간의충적대지를휘돌아흐르는것이특징이다. 이러한 자연환경덕분에섬진강은감입곡류와크고작은충적지가발달되어있다. 본글은그동안보성강유역을중심으로이루어졌던섬진강유역이아닌섬진강본류역을 중심으로분포하는청동기시대취락의성격과특징을살피는데목적을두고있다. 이에대한 공간적범위는진안~ 광양에이르는섬진강본류와주요지류를중심으로하고, 시간적범위는 청동기시대조기~ 후기로한다. 본디공간적범위는넓은의미의범섬진강유역, 즉내륙지역의보성강유역권, 남해안지역의 여수반도권과남해군일원까지포괄하는권역을대상으로살펴보아야좀더특징적인지역성을 파악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여기에서는섬진강본류에입지한취락의분포와밀도가갖는 해상도를높인다는관점에서좁은의미의수계권으로제한하고자한다. 이는그동안주거와 무덤의연구가보성강유역에집중된나머지본류역의특징이나성격이잘드러나지않았던 데에기인한다.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37 청동기시대의시기구분은미사리유형을조기, 가락동역삼동흔암리유형을전기, 송국리 유형을중기, 초기철기시대의원형점토대토기문화를대표하는수석리유형을후기로보고자한 다. 중기와후기단계는여러연구자들의문제제기와편년관이제시된바있지만, 청동기문화의 연속성을지지하는의미에서청동기시대후기에무게를두기로한다. 필자는이러한공간적 시간적범위를배경으로섬진강유역에서조사된청동기시대취락의 분포와각취락들의구성을살펴볼것이다. 이를바탕으로시기별로구분되는취락의분포와 특성을파악해보고자한다. 섬진강유역권에서는출토유물이상대적으로빈약하여유적을편년 하는데있어어려움이적지않기때문에탄소연대를활용하고자하며, 토기와석기의비교도 병행하여검토할것이다. 나아가취락의개념을확대하여무덤유적과의관계성을견주어봄으로 써주거와무덤유적의연계또는복합적해석도시도해보고자한다. Ⅱ. 취락의조사와분포 1. 조사현황 취락은인간의삶이투영된구조물과사회관계가어우러진공간이라는관점에서주거영역과 무덤영역을포괄한다. 그러나고고학적으로두공간이함께조사되거나서로연결시켜볼수 있는경우가적어주거군을중심으로하는유적을취락으로간주하는것이일반적이다. 이러한 관점은섬진강유역권에서도유효하다. 대부분주거군과무덤군이이원화되어조사되고있기 때문이다. 섬진강유역에서조사된청동기시대의취락은다른권역에비해상대적으로소략한편이다. 곡성오지리 대평리, 임실외량, 그리고광양용강리를제외하면주거지의수는물론취락의 규모가대부분소규모에지나지않는다. 그리고한국고고학편년상조기전기중기에해당되 는취락만조사되었고, 후기단계속성의취락은아직까지보고되지않았다. 1) 1) 곡성대평리에는원형점토대토기와조합식우각형파수편이출토되는원형계주거지가존재한다. 원형점토대토 기가출토되는주거지로는섬진강유역에서유일한것으로파악된다. 그러나토기의형식학적측면에서수석리 유형으로보기에는무리라고판단된다. 보고자는이주거지를기원전 1 세기~ 기원후 1 세기대로보았다. 2기의 주거지는약 500 여미터나떨어져있어취락개념으로는적절하지않으며, 2호주거지에서는아무런유물도
138 第 46號 2015年 12月 섬진강유역은진안에서광양만에이르기까지오수천, 요천, 보성강과같은큰지류를제외하 면북서- 남동향의본류로형성되어있다. 따라서섬진강본류는상대적인관점에서상류역, 중류 역, 하류역으로구분해볼수있을것이다. 2) 이러한견지에서청동기시대의취락은상류역, 중류 역, 그리고하구쪽에집중적으로분포하는공간적점유양상을볼수있다( 표 1, 도판 1). 조기단계의취락은중류역에해당되는순창원촌유적뿐이다. 원촌유적은, 우리나라청동기 시대전기와조기의단계설정에있어돌대문토기에대한관심이고조되던 최초로각목돌대문토기와판상위석식노지를갖춘주거지가확인된곳이다. 2003 년에호남지역 < 표 1> 섬진강유역권청동기시대취락현황 시기분포유적명내용성격 조기중류역순창원촌주거지 1기미사리유형 전기 중기 계 중류역 남원고죽동주거지 2 기흔암리유형 순천죽내리 주거지 1 기( 파괴) 역삼동유형 + 가락동유형 하류역광양복성리주거지 4기역삼동유형 상류역 중류역 하류역 임실도인리주거지 7기송국리유형 임실외량2 주거지 20 기( 순수방형) 송국리유형 임실대곡리주거지 5기송국리유형 임실망월촌주거지 5기송국리유형 임실덕치리 순창원촌 * 남원광평 주거지 1기송국리유형 주거지 1기송국리유형 주거지 1기송국리유형 곡성오지리주거지 20 기(1 기미상) 송국리유형 곡성대평리주거지 18기송국리유형 구례봉북리주거지 3 기(1 미상 / 순수방형2) 송국리유형 역삼동유형 순천죽내리 * 주거지 1기송국리유형 광양용장주거지 11 기(5 기미상) 송국리유형 광양용강리관동주거지 3기송국리유형 광양용강리기두주거지 21 기(5 기미상) 송국리유형 광양칠성리주거지 8기송국리유형 17개유적 133(1 : 7 : 125) 출토되지않아시기도분명하지않다. 2) 상대적인관점에서상류역은섬진강수원지에서오수천합류지까지, 중류역은오수천합류지이후부터섬진강 어류생태관이위치한구례양천리까지, 하류역은양천리이후부터광양만까지로본다.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39 < 도판 1> 섬진강유역청동기시대취락분포( 김규정 2013 필자재편집)
140 第 46號 2015年 12月 전기단계는중류역과하류역에서확인되고 있는데, 중기단계에비하면역시소략한실정 이다. 조사된주거지역시 1~4 기에지나지않아 충청지역과비교하면사회 문화적으로발전 된취락이라고는볼수없다. 이단계에는흔암 리유형과역삼동유형이혼합된양상으로파 악 3) 되는반면, 온전한가락동유형은아직까지 보고된바없다. 다만, 남원운봉면신기리와 남원세전리에서채집된이중구연단사선문토 기편의존재가섬진강유역에서가락동유형의 존재가능성을보여주는것은아닐까판단된다. 1995 년에조사된남원고죽동유적은같은해 익산영등동유적과함께전북의동부산악지 대와서부평야지대를대표하는전기취락으로 평가되고있다. 4) 중기와후기단계는송국리형문화의성행과 지속으로설명되며, 가장활발한조사현황을 보여주고있다. 상류역에서하류역에걸쳐고른 분포를보이고있으며, 주거지들역시다양한 < 도판 2> 진안좌포리유적과출토유물 양상을보인다. 이러한모습은전국적인특성으 로서송국리형문화의보편성을짐작할수있다. 특히 20 기이상의중규모취락이확인되고있는점에서정주성취락으로서의면모를보여준다. 그러나단 1 기만조사된유적들도적지않기때문에그배경에대한다각적인해석이요구된다. < 표 1> 에제시한유적들외에도간과할수없는사례가상류역에위치하는진안좌포리유적이 다. 이유적은주거지나특별한유구는조사되지않았지만, 곡류하천에의한충적대지를배경으 로조성된송국리형문화단계의유적입지를잘보여준다. 현재까지섬진강유역에서조사된 청동기시대유적중가장상류에위치하며, 진안용담댐의송국리형문화와직간접적인영향 3)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4) 이종철, 2014, 제4 장호남제주지역聚落 : 청동기시대의고고학 3, 김권구공민규편, 서경문화사, 169~ 170 쪽.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41 관계가존재했을가능성이높을것으로판단된다 ( 도판 2). 따라서좌포리는섬진강상류역의충적지에더많은송국리형문화단계의유적들이존재할가능성을보여주는사례로판단할수있다. 2. 유적의분포와취락구성 1) 유적의분포와입지 섬진강은지리적으로진안 - 임실 - 순창 - 곡성 - 구례 - 하동으로이어져바다로유입된다. 이러 한경로는산악지형의발달과하천흐름에따른충적지의형성으로요약된다. 섬진강의상류에 서옥정호에이르는구간은크고작은충적지가발달되어있다. 옥정호이후부터오수천이합류 하는적성면평남리까지는산지성곡간지형이형성되어있다. 그러나이후부터곡성대평리 일원까지는다시충적대지가분포한다. 이후산지성곡간지형이계속되다가구례봉북리일원에 서다시충적대지가발달한다. 구례에서하동에이르는구간은소규모의충적지가존재할뿐 대부분산지성곡간지형을이루고있다. 따라서섬진강유역은상류역에감입곡류와충적지가 가장발달되어있고, 중류역인곡성과구례일원에가장넓은충적지가형성되어있는반면, 하류역으로갈수록충적지의미발달과협소한곡간지형을특징으로한다. 이러한지형적특징 외에도순창과오수일원은산지성구릉이발달되어있다( 도판 3). 섬진강유역에서조사된취락들은많은사례는아니지만, 모든구간에취락이분포해있다. 현재까지조사된유적을통해서볼때상류역에는중기취락이, 중류역에는조기전기중기 취락이, 하류역에는전기와중기취락이각각분포한다. 특히중기단계로갈수록취락분포는 모든구간에서나타나며, 그밀도역시고르게높아지는것이특징이다. 섬진강유역에존재하는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양상을입지를중심으로살펴보면 < 표 2> 와 같다. 조기와전기단계는사례가적기때문에섬진강유역권만의입지적특징을도출하기에는 무리다. 다만, 조기단계는하천변충적지에소규모로조성되는것이일반적이라는점에서, 전기 단계는산지구릉이나산사면을배경으로능선을따라서또는등고선을따라서축조된다는점에 서각각의유적을평가할수있을것이다. 이러한관점에서광양복성리는구릉간저지에 1열로 축조된것이이례적이다. 중기단계의송국리형주거는이른시기부터구릉과충적지모두에서 조성되어왔기때문에섬진강유역만의입지적차별성은확인되지않는다.
142 第 46號 2015年 12月 < 도판 3> 섬진강유역충적지분포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43 시기분포유적명 하천변충적지 조기중류역순창원촌 전기 중기 중류역 남원고죽동 입지 구릉 비고 순천죽내리 경사면 하류역광양복성리 구릉간저지 ( 低地 ) 상류역 중류역 하류역 < 표 2> 섬진강유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입지 임실도인리 임실외량 2 산지구릉말단 임실대곡리 임실망월촌 평지성구릉 임실덕치리 경사면 순창원촌 남원광평 평지성구릉 곡성오지리 곡성대평리 구례봉북리 하천변저습지 순천죽내리 경사면 광양용장 광양용강리관동 용강리유적 Ⅰ 광양용강리기두 구릉말단부평지 광양칠성리 2) 취락구성 섬진강유역에서조기, 전기, 중기단계의주거는확인되었지만후기단계는아직까지보고되 지않았다. 따라서조기~ 중기취락을중심으로살펴보도록하겠다. 비록조기와전기단계에는 취락의밀도가중기에비해현격하게적다는한계가존재하지만, 현시점에서의취락양상을 살펴볼수있다는점에서그의미를두고자한다. 조기단계로볼수있는원촌유적은 1 기의주거로이루어졌다. 주거지는평면형태가방형이고, 바닥중앙에는판상위석식노지를설치하였다. 46 의면적에 1 : 1의단장비를보이는주거지로 서벽선을따라주공이존재한다. 주거지내부에서는각목돌대문토기편, 구순각목직립구연토기 편이출토되었다. 원촌유적은하나의집( 가옥) 을공유하는구성원들이하천변에서수렵 채집 어로를통해생계를유지해갔을것으로추정된다. 주변부전체가조사된것이아니기때문에 유적의면적당주거의밀도를분명하게알수없지만, 공간적시각으로볼때 하천변외딴집과 같은성격으로보아도무리는아닐것이다.
144 第 46號 2015年 12月 본디미사리식주거는정방형의평면형태, 2기의노지로 2 분할되는공간기획, 각목돌대문토기 와의연계성을특징으로한다. 이러한주거는혈연가족으로구성된가족공동체용가옥으로 이해되어왔다. 5) 최근에는정방형의평면형태, 석상위석식노지, 돌대문토기의출토로압축되며, 이세가지요소는시간적으로변천되는것으로파악되고있다. 6) 주거지연대에대한이견이있을수있겠지만, 호남지역에서미사리유형에더포함시킬수 있는사례로전주동산동, 담양태목리유적이있다. 각 1기씩조사되었기때문에원촌과대동소 이한환경에존재했을것으로추정된다 ( 표 3). 비록소수에불과하지만호남지역에서조기단계 의주거는시기적으로방형에서장방형으로변화된것으로판단된다. 7) < 표 3> 호남지역조기단계의주거 유적명호수면적m2단장비주요출토유물 순창원촌 1 46 1 : 1 위석식노지, 각목돌대문토기, 구순각목직립구연토기 전주동산동 1 172 1 : 2.22 위석식노지, 절상돌대문토기 담양태목리 1 151 1 : 2.16 위석식노지, 절상돌대문토기, 구순각목토기, 직립구연호 전기단계는소규모의취락을형성하고있다. 주거지들의동시성이증명되어야보다분명하게 알수있겠지만고죽동은 2 기, 복성리는 4 기가산지구릉에조성되었다. 순천죽내리는산사면에 등고선과평행하게축조되었을것으로추정되지만한쪽모서리부분밖에남아있지않아확언할 수없다( 표 4). 유적명호수면적m2단장비주요출토유물 남원고죽동 순천죽내리 광양복성리 < 표 4> 섬진강유역전기단계의주거 1호 51.3 1 : 2.53 공열문 +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문 +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공열토기, 공열문 + 구순각목문토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삼각만입촉, 이단경촉, 반월형석도 2호 25.8 1 : 1.53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직립구연토기 2호 - - 공열토기편,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편 1호 8.5 1 : 1.36 공열토기편, 삼각만입촉, 석겸편 2호 3.2 1 : 1.64 없음 3호 6.7 1 : 1.55 4호 - - 없음 공열토기편, 구순각목문 + 공열토기편, 직립구연호편, ( 이중구연 ) 단사선문토기편, 석부 5) 安在晧, 1996, 無文土器時代聚落의變遷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62~63 쪽. 6) 安在晧, 2000, 韓國農耕社會의成立韓國考古學報 43, 48 쪽. 7) 이종철, 2014, 제4 장호남제주지역聚落 : 청동기시대의고고학 3, 김권구공민규편, 서경문화사, 173 쪽.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45 섬진강유역의전기주거와관련하여구례봉북리주거지를언급하지않을수없다. 김규정과 홍밝음은각각봉북리 1호와봉북리 1호 2호 3 호를전기단계로간주하였다. 8) 탄소연대와 토기의전반적인속성을근거한것으로여겨지는데, 이에대해필자는견해를달리한다. 출토유 물은섬진강유역의전통적인지역성때문에전기문화적성향을보이는것이며, 나지구에집중 되어있는주거지수혈유구야외노지지석묘의분포는중기단계의취락구성으로보는것 이타당하지않을까한다. 공열토기와심발형토기의전통은영남지역과연계되는섬진강유역권 의문화적특성이라는점에서반드시전기로보아야하는것은아니라고사료된다. 이는호남 지역에서출토되는공열문토기에서공열문이라는문양이시간성을반영하고있지않은점과 통하는대목이다. 9) 다만, 탄소연대를굳이적용한다면유물이거의없는 2 호는전기에, 송국리형 주거인 1호와탄소연대가기원전 8~6세기대에위치하는 3호는중기단계에해당될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3 호에서원저투공내만구연발, 외반구연호, 삼각형석도편등이출토된점에서도 그러하다. 이에대해서는장 2 절에서다시논의하기로하겠다. 전기단계를고죽동, 죽내리, 복성리로한정하 여살펴보면취락은구릉의정상부와사면에조성 되었다. 주거의밀도는낮은편이며주거와연계 될만한부속시설도확인되지않는다. 따라서주 거용건물로만이루어진단순취락으로볼수있 다. 해당입지에대한전면적인조사가이루어지 지않아좀더구체적인취락구성에대해서는알 수없는실정이다. 호남지역에서조사된전기단계주거지가운데 최대규모는익산영등동 -7호로 140 에달하 며, 김제제상리 97, 보성옥평리 83 의순으로 파악된다. 이들을비롯한호남지역전기주거지 들의면적분포를나타내면 < 도판 4> 와같다. 면적 을초대형, 대형, 중형, 소형으로구분해본다면각 각 140 내외, 100 내외, 50~85 사이, 그리고 < 도판 4> 호남지역전기단계 주거지면적분포( 이종철 2014) 8)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 홍밝음, 2013, 전남지역 청동기시대조~ 전기문화의변천과정한국청동기시대편년, 서경문화사. 9) 정다운, 2015, 호남지역청동기시대전기문화의시공간적전개양상, 全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57 쪽.
146 第 46號 2015年 12月 5~50 사이에해당된다. 소형의면적분포가상대적으로넓지만 10~25 사이에밀집분포하고 있다. 10) 이러한면적분포를섬진강유역권에적용해보면대부분소형의범주에해당된다. 중기단계는섬진강유역에서활성화된송국리형문화로대표된다. 다양한송국리형문화요소 들가운데송국리형주거지송국리식토기유구석부삼각형석도는지속적으로유지되는반 면, 지역색을보여주는공열토기와심발형토기등이복합되는양상을보인다. 이러한현상은 시기적지역적인문화접변혹은물질문화의다양한교류에의한결과로파악된다. 송국리형주거군으로이루어진넓은의미의취락을송국리형취락 11) 으로간주할수있는데, 섬진강유역에서는하천변충적대지와산지구릉의사면에서확인되고있다. 전자는상류역과 중류역에서, 후자는하류역에서보이고있어현저한입지차이를보여준다. 대부분소규모취락 들이지만, 충적대지를기반으로하는곡성오지리일원과산지구릉을배경으로하는광양용강 리일원은 20 기이상의중규모취락을이루고있어좋은비교대상이된다. 중기단계의송국리형취락에서는공공의성격을띠는광장의존재, 종횡열또는환상열을 이루는주거배치의기획화, 주거생산매장의공간을분명하게설정하는취락공간의영역화 가확인된다. 12) 이러한특성들가운데몇요소는섬진강유역에서도발견된다. 환상열의주거 배치와그에따른광장의형성은광양용강리기두에서, 종횡열을이루는주거배치의기획화는 곡성오지리와대평리에서볼수있다. 그러나앞에서제시한송국리형취락의대표적인특징들은 거점취락을표방하는대규모유적들에서확인되기때문에섬진강유역에서는그온전한모습을 볼수없는것이아닌가판단된다. 범섬진강유역권에서거점취락에가까운유적은순천대곡리 취락이지만, 주거영역에대한정보만알수있을뿐생산및매장영역에대한것은분명하게 알수없는것이한계로작용하고있다. 또한곡성오지리와대평리취락에서같은양상을예상할 수있지만조사범위에대한한계로해석의확장은쉽지않은실정이다. 따라서섬진강유역의 취락구성은대부분주거지, 수혈, 구상유구등으로이루어져있어상대적으로단순한양상을 보여준다. 이에대해서는앞으로자료의축적을기대한다. 필자는섬진강유역권을넓은의미에서보성강유역, 여수반도, 순천일원을포함시켜송국리 형취락을고찰한바있다. 비록광양, 순천, 여수반도일원은남해안권역에포함되지만섬진강 하구와통하는환상( 環狀 ) 의해상권을이루고있기때문에분석목적에따라적용을달리할 수있다고판단된다. 이러한관점에서섬진강유역권은 15개유적 142 기의송국리형주거로집계 10) 이종철, 2014, 제4 장호남제주지역聚落 : 청동기시대의고고학 3, 김권구공민규편, 서경문화사, 174 쪽. 11) 이홍종, 2003, 松菊里型聚落의景觀的檢討湖西考古學第 9 輯, 湖西考古學會, 130 쪽; 李宗哲, 2015, 松菊里 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56 쪽. 12)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47 되었으며, 이가운데 형태미상이었다. 13) 19기는 광의적관점에서살펴본 범섬진강유역권은돼지코 모양의내주공식 (A 형) 주거 가압도적인수량을점유하 고있다는점에서다른지역 권과동일한양상을보이고 있다. 그러나원형과방형의 주거비율은 1 : 3.2로나타나 고있어금강유역권과는정 반대의양상을띠고있다. 즉송국리형주거에서원형과방형의비율은금강유역권 3 : 1, 호남 서부평야지대권 ( 부안~ 영광일원) 2 : 1, 영산강유역권 1.4 : 1 로나타났다. 결국금강유역에서 섬진강유역으로갈수록원형은감소하고, 방형은증가하는누적결과를보여준다. 이는방형과 원형의송국리형주거가 1 : 1 에가까워지는권역이영산강유역권임을알수있으며, 이러한 경향은영산강유역내각지역에서서로다른평면형태의빈도수가존재할수있다는해석을 가능하게한다( 도판 5). 한편기본형에서외주공식 (C 형) 과타원형구덩이식 (D 형) 도모두원형보다방형이우세하게 나타나고있어방형주거의선호도가매우높다는점과다른주거형에비해외주공식과타원형구 덩이식의주거가상대적으로높은빈도를보인다는점도이지역권의또다른특징이다. 그럼에 도불구하고 4 주형은모두원형으로만축조되고있어매우특색있는양상을보여주고있다. 이와같은범섬진강유역권의양상은섬진강본류를중심으로살펴보았을때에도거의동일하게 나타나고있음을 < 도판 6> 에서확인할수있다. 섬진강본류와범섬진강유역권의차이는그리크지않다. 방형의외주공식 타원형구덩이식 주거의감소가적고 4 주형주거가거의존재하지않는점을제외하면전반적으로같은양상이다. 따라서내주공식주거의대세속에서방형이우위를점유하는점, 상대적으로방형의외주공식 주거와타원형구덩이식주거가활성화되어있는점, 4주형주거가비활성화되었다는점은공통 된특징으로서섬진강유역권의특징으로요약된다. < 도판 5> 권역별송국리형주거평면형태의증감비 섬진강유역에는송국리형주거로이루어진취락외에도쟁점의소지가다분한취락이존재한 13)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89~90 쪽.
148 第 46號 2015年 12月 < 도판 6> 섬진강유역권송국리형주거양상 다. 부여송국리유적에서처럼송국리유형의물질문화를갖추고있으면서 ( 장) 방형계주거로만 구성된취락이바로그것이다. 송국리는송국리형주거가인접하여공존하고있다는점에서차이 를보인다. 이와같은취락은임실외량 2 유적에서확인되는데, 소형의 ( 장) 방형계주거군, 지석묘 와석관묘, 수혈유구, 그리고주거영역과무덤영역을가르는석렬유구로구성되어있다. 14) 순수 ( 장) 방형계주거로만이루어졌 다는점에서섬진강유역에서 는유일한사례이자상대적으 로규모를갖춘취락으로볼수 있다. 특히이취락은반( 半 ) 환 상열의주거배치와그에따른 광장이존재하며 ( 도판 7), 송국 리형주거와같이노지가존재 < 도판 7> 임실외량2 취락의공간배치( 이종철 2015) 하지않는점이특징이다. 15) 14) 고금님장지현박춘규이종화, 2014, 임실외량2유적 2013 2014 호남지역문화유적발굴조사성과, 湖南考古學會. 15)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124~125 쪽.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49 뿐만아니라주거영역과매장영역을구분해주는석렬유구는독립된공간의영역화를보여주는 적극적인근거로서외량2 취락사회의생활양식과관념적사고체계를이해하는데매우중요한 구성요소로판단된다. Ⅲ. 취락의특징 1. 취락의시기와특징 1) 조기및전기단계 섬진강유역에서조기단계의온전한취락은아직까지존재하지않으며, 원촌유적이유일한 주거유적일뿐이다. 따라서원촌유적의계통과호남지역에분포하는전주동산동및담양 태목리와의관계성에대한문제를쟁점으로삼을만하다. 그러나자료의한계로현시점에서는 단언하기가쉽지않다. 담양태목리유적의탄소연대가기원전 13~11 세기에해당되므로시기적으로는가락동유형이 나역삼동유형과어느정도공존했을것임을짐작할수있지만, 순창원촌유적은탄소연대 값이없어서로비교할수없다. 다만, 천선행과김재윤의편년을수용하여기원전 15~14 세기로 추정하기도한다. 16) 이는청동기시대조기단계를기원전 15세기부터로보는관점에서비롯된 것이기때문에앞으로탄소연대의축적을통해검토해야하는과정이남아있다. 앞에서도설명한바와같이원촌유적은소규모의가족구성원으로이루어진집단일가능성이 높은데, 전국에분포하는미사리유형이이와유사하다는점에서이들의정체성에대한의문은 자연스러울수밖에없다. 미사리유형의표지유물인돌대문토기는압록강유역또는요동반도에서농경생산을기반으 로한주민들이남하한결과로이해하기도하고, 17) 압록강중상류와하류지역의유적들과연관 된것으로보면서절상돌대문토기가가락동유형의이중구연토기와관련되는것으로해석하기도 한다. 18) 여러연구자들의관점을원촌유적에적용해보면, 전기단계문화요소가전혀보이지 16) 홍밝음, 2013, 전남지역청동기시대조~ 전기문화의변천과정한국청동기시대편년, 서경문화사, 343~347 쪽. 17) 安在晧, 2000, 韓國農耕社會의成立韓國考古學報 43, 韓國考古學會, 46 쪽. 18) 朴淳發, 2003, 渼沙里類型形成考湖西考古學第 9 輯, 湖西考古學會, 106~108 쪽.
150 第 46號 2015年 12月 않는다는점에서돌대문토기단독기로볼수있을것이다. 따라서원촌유적은전기에포함시켜 살피는것 19) 보다는조기단계로보고그문화적특징을다각적으로고찰하는것이더타당할 것으로판단된다. 물론주거지의시기성이탄소연대에의해분명하게밝혀진것이아니라는 점은간과할수없는사실이다. 섬진강유역의전기단계역시조기단계만큼이나유적의밀도가낮다. 비록주거지의수는 2 기이상으로조합됨으로써조기단계와는다른모습을보이는것은사실이지만, 소규모취락에 해당될뿐이어서문화적상호관계성을적극적으로논의하기에는자료적한계가크다. 특히전기 단계의문화( 유형) 가운데가락동유형과역삼동유형은상대적으로차이점이존재하여구분하기 가어렵지않은반면, 섬진강유역으로유입된또는이권역에서형성되었을흔암리유형에대한 관점은여러각도에서접근할필요가있다고여겨진다. 이에대한필자의생각은다음과같다. 첫째, 흔암리유형을온전히인정할것인가의문제이다. 이형원은역삼동유형과흔암리유형이 토기, 석기, 주거지상에서거의동일한양상을보인다는점을들어두유형을문화적전통을 달리하는별개의집단으로보지않고 역삼동흔암리유형이라는 하나의유형으로설정한바 있다. 20) 이러한관점은김규정으로이어져호남지역의전기문화를가락동유형 ( 또는가락동식 토기) 과역삼동흔암리유형 ( 또는역삼동흔암리식토기 ) 으로정리하는계기가되었다. 21) 그러 나물질문화의복합상에는인류학적인문화변동의시각을적용할수있기때문에역삼동 흔암 리유형 ( 또는역삼동흔암리식토기 ) 으로통합해서살피는것은역삼동유형과흔암리유형이갖 는문화변동의해상도를낮추는결과가될것이다. 섬진강유역의남원고죽동은흔암리유형의 특성을잘보여주고있기때문에흔암리유형의범주내에서그가능성과변화상을추적해가야 한다고사료된다. 둘째, 그러나온전한흔암리식토기가아닌가락동식토기와역삼동식토기가하나의주거지에 서각각출토된다면이는해석을달리해야할것이다. 즉가락동유형과역삼동유형이서로복합 되기이전단계로서송만영의흔암리유형 기 22) 가될것이다. 엄밀한의미에서는흔암리유형화 의첫단계이거나두집단의상호접촉양상으로볼수있다. 완전한자료는아니지만, 순천 죽내리는이에해당될가능성이있는사례로서주거지의양상은전혀알수없을지라도토기의 복합양상은궤를같이한다. 남원세전리와신기리에서출토된가락동식토기의존재가독립적인 19)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20) 李亨源, 2009, 韓國靑銅器時代의聚落構造와社會組織, 忠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8~14 쪽. 21)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25 쪽. 22) 宋滿榮, 2001, 南韓地方農耕文化形成期聚落의構造와變化한국농경문화의형성, 제25 회한국고고학전국 대회발표요지, 82 쪽.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51 가락동유형의유입을보여주는한단면이고 ( 도판 8), 섬진강유역에서확인되는역삼동식토기들의보편화는역삼동흔암리유형의변화상이라기보다역삼동유형의분포상을말해주는것이라면섬진강유역 의전기단계는가락동유형과 역삼동유형의존재속에서그 < 도판 8> 남원세전리및신기리출토가락동식토기 들의상호관계와별도의흔암리유형의유입으로보는것이더적절할것으로판단된다. 이러한 두가지양상은앞으로자료가축적된다면좀더분명해지겠지만, 흔암리유형의지역적다양성 23) 은여러각도에서지켜볼필요가있을것이다. 이와같은견지에서섬진강유역에분포하는전기취락의특징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 섬진강유역에는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이모두존재했을가능성이높다. 이세유형은시기를달리하면서섬진강유역에분포하게되었고, 독자적인변천과상호관계 속에서그들의문화를지속시켜갔을것으로판단된다. 둘째, 세유형은자료의한계로분명한연대와문화변천상을파악하기가쉽지않지만, 토기의 조합관계와탄소연대를바탕으로어느정도시간성을부여할수있다. 가락동유형은기원전 13~12 세기를상한으로보고있는데, 24) 호남지역에서는기원전 12~9 세기, 25) 최근에는기원전 13~10 세기 26) 로추정되고있다. 또그중심연대를기원전 11~10 세기로보기도한다. 27) 역삼동유 형은전남지역에서기원전 12~11 세기를중심연대로추정하는반면, 28) 역삼동흔암리유형의 관점에서호남지역은기원전 12~9 세기로보기도한다. 29) 역삼동유형은대부분이범위에포함되 는것으로보인다. 흔암리유형은남원고죽동이대표적이지만탄소연대가확보되어있지않기 때문에동일한관점에서비교하는것은현재로서는불가능하다. 다만, 호남지역에서확인되는 역삼동유형의연대폭을고려하면기원전 11~10 세기를중심연대로볼수있지않을까한다. 23) 金壯錫, 2001, 흔암리유형재고 : 기원과연대 嶺南考古學 28 號, 嶺南考古學會, 61 쪽. 24) 李亨源, 2009, 韓國靑銅器時代의聚落構造와社會組織, 忠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25) 金奎正, 2011, 湖南地域靑銅器時代前期文化의特徵 韓國靑銅器學報第六號, 韓國靑銅器學會, 48~49 쪽. 26)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31 쪽. 27) 홍밝음, 2013, 전남지역청동기시대조~ 전기문화의변천과정 한국청동기시대편년, 서경문화사, 346 쪽. 28) 홍밝음, 2013, 전남지역청동기시대조~ 전기문화의변천과정 한국청동기시대편년, 서경문화사, 346 쪽. 29)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31 쪽.
152 第 46號 2015年 12月 셋째, 취락은모두소규모에해당되며특별한주거배치의특징은확인되지않는다. 다만, 주거지의수가상대적으로많은복성리는구릉간저지에 1열배치로조성되어있는것이특징이 다. 이러한양상은전기단계에구릉을배경으로형성된취락과차별되는점으로특기할만하 다. 30) 이는주거의입지가구릉상부에서저지대인하부로변화된것을의미하기때문에전기 취락의변천과정을보여주는사례로볼수있다. 특히모든주거가소형화되었다는점에서 전기취락의후반적시간성이반영되어있다고보아도무리는아닐것이다. 넷째, 취락을구성하는요소들가운데주거지를제외하면다른부대시설은확인되지않기 때문에상대적으로단순한취락구성이었을것으로추정된다. 이러한단순구성은취락민들의 생활상과밀접한관련이있을것으로추정되는데, 중기단계취락과비교한다면취락공간에 대한공공성과그에따른부대시설체계가상대적으로덜체계화된것으로판단된다. 다섯째, 취락과동일시되는무덤유적과의관계성을알수없다. 따라서섬진강유역에자리한 전기취락의묘제는분명하지않은것이다. 전기단계에는지석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와 석곽묘, 주구묘가축조된것으로보고있지만, 31) 이들중일부가취락( 주거유적) 으로부터멀리 떨어져조성되었기때문에서로견주어볼수없거나유적의인근에서조사되지않았을가능성이 있다. 2) 중기및후기단계 섬진강유역의중기와후기단계는송국리형문화일색으로, 송국리유형의보편화와역삼동유 형의복합을특징으로한다. 특히역삼동유형요소가운데공열토기의복합양상은대표적이다. 이러한물질문화의복합은송국리형문화가주변지역으로파급되는과정에서나타난문화접변 의결과로파악되며, 32) 문화의지역적다양성을보여주는단면으로이해되고있다. 즉서해안 지역에서구순각목문의영향이대표적인문화접촉의증거라면, 낙동강유역과범섬진강유역에 서는공열토기와의공반을들수있겠다. 송국리형문화는중기이후후기단계에도지속되는데원형점토대토기문화와직접적으로상호 관계를맺는유적보다는탄소연대가상대적으로늦는취락이대부분을차지한다. 물론탄소연대 의오차값을고려하지않을수없지만광양용강리기두의일부와곡성대평리취락은시기적으 30) 주거들의 1열배치는곡간지에형성되어있는구상유구와밀접한관련이있을것으로추정되나구상유구 출토유물이매우소략하여그관계성을파악하기가쉽지않다. 31) 李榮文, 2011, 韓國靑銅器時代前期墓制의樣相文化史學 35, 51 쪽. 32) 宋滿榮, 2001, 南韓地方農耕文化形成期聚落의構造와變化한국농경문화의형성, 제25 회한국고고학전국 대회발표요지 ;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53 로늦은단계의송국리형취락임을확인할수있다. 섬진강유역에분포하는송국리형취락의특성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 섬진강유역에형성된송국리형취락은감입곡류하천및곡류하천을배경으로형성된 충적지와산지구릉및평지성구릉에입지하는경향을보인다. 둘째, 송국리형취락은중기에서후기단계까지지속되며, 중기의어느시점까지는전기문화인 역삼동유형과어느정도병존했을가능성이높다. 특히후기단계는원형점토대토기문화로대표 되지만아직까지그존재가분명하게드러나있지않기때문에송국리형문화와의병존관계나 상호접촉양상은파악되지않는다. 셋째, 내주공식 (A 형) 주거의압도적인우세속에서외주공식 (C 형) 과타원형구덩이식 (D 형) 의 상대적인성장세로압축할수있다. 특히원형계보다는방형계가대세를이루는점과 4주형은 방형계가없고모두원형계라는점이특징이다. 이러한양상은범섬진강유역권에서도동일하다 ( 도판 6). 따라서섬진강유역권에서는주거의외형이방형으로보편화되어가는사회문화적 현상을파악할수있다. 이러한현상의원인은송국리형문화의파급에따른지역적적응전략과 무관하지않다고본다. 넷째, 섬진강유역권의송국리형취락은송국리형문화의발전기인기원전 8 세기~6 세기어느 시점에본격적으로파급되어지역마다크고작은정주취락으로성장해갔을것으로추정된다. 이시기에는충청지역을제외한대부분의지역에서충적대지에입지하는경향이높아지는데, 특히거점취락으로볼수있는대규모취락들의공통점이기도하다. 비록순천죽내리주거지에 서확보된주거의탄소연대 (2 시그마 ) 가기원전 19~8 세기에분포하고, 33) 곡성오지리에서확보된 네주거의 1 2시그마와중심연대가기원전 9세기에집중되고있는점은다른각도에서재고할 필요가있겠다. 특히오지리와대평리를서로병존하는하나의취락으로보았던필자의기존 입장 34) 은수정될필요가있음을밝히며, 오지리와대평리는시기차가존재하는취락일가능성과 대평리시기부터잠정적인대규모취락으로성장했을가능성을제시하고자한다. 이러한견지에 서섬진강유역권은기원전 9세기대의잠정적취락형성기 35), 기원전 8~6 세기의본격적파급 정착기 ( 발전기 ), 기원전 5~3 세기의정착쇠퇴기로상정할수있을것이다 ( 도판 9). 33) 이기길, 2000, 방사성탄소연대측정순천죽내리유적, 조선대학교박물관. 34)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91 쪽. 35) 이시기는좀더많은유적의탄소연대가축적되어야설정가능할것으로판단되며, 두가지관점에서해석되어 야할것이다. 하나는탄소연대를바탕으로기원전 9세기대의이른시기송국리형취락이형성되어있었을 가능성이고, 다른하나는탄소연대의환경적오염에기인한결과로서현시점에서적극활용하기에는유적의 수가적을수있다는관점이될것이다.
154 第 46號 2015年 12月 < 도판 9> 섬진강본류역의송국리형문화단계유적과취락의탄소연대현황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55 다섯째, 거점취락의존재가능성이다. 송국리형취락은큰하천의충적대지나대규모구릉을 중심으로거점취락이형성되었을것으로추정되며, 보령관창리부여송국리진주대평리 등여러유적에서그발전상이확인된다. 36) 범섬진강유역권에서는대규모취락을이루는순천 대곡리가가장유력하지만조사범위의한계로다양한정보를확보할수없다. 섬진강본류에서 대곡리취락과견줄만한유적으로는곡성오지리와대평리유적이있다. 두유적은각각 19기와 18 기의송국리형주거가확인되었지만더많은주거지가주변에조성되어있을것으로추정된다. 이유적들은방형평면의내주공식주거가압도적인가운데외주공식과타원형구덩이식주거가 중심을이루는취락이라는점에서도대곡리취락과공통점을갖는다. 작은하천에의해취락이 구분되기는하였지만오지리일원과대평리일원의충적대지에는종횡열을이루는대규모의 송국리형취락이존재했을것으로판단된다. 특히대평리취락에서검출된방사성탄소연대치에 따르면대체로기원전 5~3 세기대로추정할수있다. 또한충적대지안쪽에서섬진강변쪽으로 갈수록주거지 ( 대평리 27 호) 의연대가기원전 3~2세기까지늦어지고있어취락의확장혹은 시기적인공간변화가있었을것으로생각된다. < 도판 10> 취락의형성과주거의배치 36)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156 第 46號 2015年 12月 여섯째, 취락구성에서주거의환상열과광장의존재( 용강리기두), 주거군의종횡열배치( 오 지리 대평리 ) 는가장주목되는점이다. 대부분소규모의취락을이루고있기때문에특징적인 공간설계( 배치) 를찾아보기가어렵지만, 20여기내외의주거군으로이루어진취락에서는의도 적인공간기획을어느정도확인할수있다는점에서취락의발전상을논할수있다. 오지리와 대평리는전면발굴이아니기때문에주거배치의확장을논의하기가쉽지않은반면, 용강리 기두취락은광장을중심으로하는주거군의패턴을어느정도감지할수있는점에서주목된다 ( 도판 10). 즉광장, 주거의환상열, 초대형 - 대형 - 중형 - 소형으로이루어진가옥의규모, 서로 다른군집성, 광장내굴립주건물등은용강리기두취락의성격을대변해준다. 37) 비록완전한 체계를이룬것은아닐지라도섬진강유역에서현재까지조사된취락들가운데가장의미있는 공간배치를보여주는사례로판단된다. 38) < 도판 11>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물질문화 ( 축척부동) 37) 李宗哲, 2010, 전남남해안의송국리형주거문화韓國靑銅器學報第 6 號, 韓國靑銅器學會, 25~26 쪽. 38) 곡성대평리에서환호가조사된것으로보고되었지만, 그길이가짧고한정되어있어정확한분포양상을 파악할수가없기때문에논의를발전시키기에는무리라고판단된다.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57 일곱째, 방형계송국리형주거가대세를이루는가운데토기류는내만구연심발형토기 공열토 기직립구연토기외반구연토기 ( 송국리식토기 ) 등이조합을이루며, 이들가운데내만구연심 발형토기와공열토기는섬진강유역의보편적물질문화를이룬다 ( 도판 11). 이러한현상은섬진 강유역권이역삼동유형의영향권에있었음을보여주는것이며, 송국리형문화와의접촉을통해 물질문화의복합양상을띠게된것으로해석된다. 온전한송국리식토기의보편화는다소늦은 시기부터인것으로파악되는데, 보성강유역의순천대곡리와곡성대평리취락에서어느정도 확인할수있다. 이러한양상은두집단 ( 또는문화 ) 의문화접변이후주변지역으로부터지속적으 로유입되는송국리형문화의점진적인우세현상에기인한결과로판단된다. 따라서산간내륙이 나영남지역에서늦은시기에외반구연토기 ( 송국리식토기또는변화형 ) 의상대적증가는송국 리형문화의재파급과그로인한보편화과정을말해주는것으로사료된다. 섬진강유역권은 전기문화( 특히역삼동유형 ) 와의문화접촉과정을거치면서범송국리형문화기로전환되었다고 판단되며, 그전환기는대체로필자의송국리형문화쇠퇴기인기원전 5~3 세기대로추정된다. 39) 여덟째, 송국리형문화를배경으로온전히송국리형주거로이루어진취락뿐만아니라송국리 형주거와 ( 장) 방형계주거가혼합된취락, 온전히순수 ( 장) 방형계주거로만이루어진취락이 존재한다는점이다. 이러한 ( 장) 방형계주거에서는송국리식토기, 삼각형석도와같은석기류가 출토되기도하지만, 공열토기와심발형토기등역삼동유형의유물조합상을어느정도유지하고 있다. 따라서구례봉북리와같이전기문화속성의 ( 장) 방형계주거와임실외량2 와같이순수 송국리유형의 ( 장) 방형계주거가존재하고있음을간과해서는안된다. 송국리형주거와 ( 장) 방형 계주거의공존은탄소연대에근거할때잠정적으로기원전 9 세기대의구례봉북리, 기원전 5~3 세기대인곡성대평리취락을참고할수있다. 탄소연대는측정되지않았지만광양칠성리 취락에서도 ( 장) 방형계주거지에서송국리식토기가출토되고있어취락의어느시점에는송국리 형주거, ( 장) 방형계주거, 송국리식토기등이복합화되었을것으로추정된다. 송국리유형의 ( 장) 방형계주거민의성격은확실하지는않지만이른시기부터오랜기간동안송국리형주거와함께 축조되고있는점을고려하면상호친연성은분명히존재할것으로사료된다. 또임실외량2 유적처럼 ( 장) 방형주거로독립한취락도존재하기때문에어느시점에는분파를형성했을가능 성도배제할수없다. 이들의관계를어떤식으로볼것인가는자료의축적을좀더기다려 보아야하겠지만, 보령관창리와부여송국리로부터섬진강유역에이르는여러유적들을통해 39) 송국리형문화의재파급은형성기 ( 기원전 8~6 세기) 의어느시점부터본격화되었을것으로추정되며, 쇠퇴기에 이르러물질문화의범송국리형문화화가이루어졌을것이다. 그러나이시기에는점토대토기문화가금강유역 권과해안지역을중심으로전개되고있어동일시기라고할지라도지역에따라문화복합상이서로달랐을 가능성이높다.
158 第 46號 2015年 12月 볼때 서로구분되는동일문화집단 40) 정도로표현될수있지않을까한다. 2. 주거와무덤의관계 취락은주거, 매장, 생산등취락구성원에의한모든영역과구조물을포함하는의미로사용된 다. 특히주거와무덤은서로밀접한관계를맺고있기때문에취락을이해하는중요한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에섬진강본류역에서조사된무덤이나매장영역을중심으로그취락적특성에 대해접근해보고자한다. 섬진강유역에서청동기시대무덤유적의조사는주암댐이건설된보성강유역에집중되어 있으며, 대부분지석묘로알려져있다. 지석묘는동복천이합류하는보성문덕, 복내면과순천 송광면일대의보성강중류역에밀집분포하고있는데, 이들은주로충적대지나계곡평지, 구릉대지에입지하지만일부는산사면이나고갯마루에분포하고있다. 41) 섬진강본류역은무덤유적에대한발굴조사자료가영성하고, 보성강유역에편중되어있다보 니구체적인성격과변천과정에대한연구는활성화되어있지않다. 보성강유역뿐만아니라 전남지역일원에분포하는지석묘의분류와성격, 42) 묘역식지석묘의전개과정과사회적성 격, 43) 보성강유역에분포하는지석묘의전개과정 44) 등은다른권역에비해섬진강유역의 무덤조사와해석의한계를잘보여준다. 따라서섬진강유역의무덤유적을고찰하기위해서는 앞으로보성강유역뿐만아니라본류를중심으로분포, 밀도, 축조방식과분류, 무덤의성격과 수계내지역적관계성등이파악되어야할것이며, 이를바탕으로섬진강유역에서축조된 무덤의해상도를높일수있을것이다. 청동기시대에는지석묘, 석곽묘, 석관묘, 토광묘, 주구묘, 옹관묘등이축조된것으로파악되는 데취락에서주거군과무덤군이서로연관성을가질가능성이가장큰무덤은지석묘일것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가이루어지지않았더라도지표에노출되어있기때문에그규모와입지를 비롯한분포양상을육안으로파악하는데어렵지않을뿐만아니라전남과전북지역은우리나 40) 계급혹은계층으로설명하기에는수직적또는수평적검증이쉽지않기때문에 구분이라는 단어를사용하였 으며, 앞으로이에대한적합한해석과근거를마련해가도록하겠다. 41) 황재훈, 2012, 섬진강유역지석묘의전개과정韓國上古史學報第 75 號, 韓國上古史學會, 111 쪽. 42) 李榮文, 1993, 全南地方支石墓社會의硏究, 韓國敎員大學校博士學位論文 ; 이영문, 1999, 바. 전남지방 한국지석묘 ( 고인돌 ) 유적종합조사연구( ), 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43) 金承玉, 2006, 墓域式 ( 龍潭式 ) 支石墓의展開過程과性格韓國上古史學報第 53 號, 韓國上古史學會. 44) 황재훈, 2012, 섬진강유역지석묘의전개과정韓國上古史學報第 75 號, 韓國上古史學會.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59 라지석묘의최대밀집분포지역이라는점 45) 에서추론이가능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섬진강 유역권에서조기와전기단계에주거군과무덤군을서로연관지을수있는사례는확인되지않았 다. 중기단계역시마찬가지이지만그연관성에대한가능성은상대적으로높다고판단된다. 최근섬진강본류역에서조사된유적들가운데순창무수리유적의성격은송국리형문화와 묘역식지석묘군의관계성에무게를실어주는사례로판단된다. 비록고원리원촌유적의송국리 형주거와 1km 거리에떨어져위치하고있지만, 진안용담댐수몰지역에서조사된묘역식지석묘 와같은계통이라는점과이와같은지석묘가송국리형주거와함께취락을형성한다는점은 이러한추론을뒷받침해준다. 특히출토유물이매우빈약함에도불구하고 1호지석묘에서출토 된공열토기편과수직목판조정의무문토기동체부편 ( 내만구연심발?) 을통해이미역삼동유형 ( 공열토기문화 ) 의영향과목포- 나주- 광주- 담양- 순창으로연결될수있는영산강유역권의영향을 짐작해볼수있지않을까한다. 46) 무수리와같은묘역식지석묘는순창금과면내동리 47) 에서도 발굴된바있어일정한분포역을형성 했을것으로여겨진다. 이러한관점에서전면적인발굴조 사는아니지만발굴조사로드러난송 국리형주거와지표조사에서확인된지 석묘군의관계를서로견주어볼수있 는유적이남원청계리광평유적이다. 본디청계리광평유물산포지였던평 지성구릉의중심부에서말각방형의 외주공식송국리형주거 1기가조사되 었고, 반경 500m 이내에청계리광평 지석묘 이순서대로위 치하고있다. 이와같은공간적분포가 동일한시간성을공유한다고볼수는 < 도판 12> 구례봉북리유구별공반유물 없겠지만그가능성이예상되는사례다. 45) 이영문, 1999, 바. 전남지방한국지석묘 ( 고인돌 ) 유적종합조사연구( ), 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935 쪽. 46) 1호지석묘는묘실이존재하지않을뿐만아니라묘역석들의정형성을찾아볼수없기때문에이미훼손되었을 가능성이매우높다. 따라서토기편들의소속여부역시온전하다고는볼수없다. 47) 진만강, 2005, 淳昌內東里遺蹟 2004 2005 호남지역문화유적발굴성과, 湖南考古學會.
160 第 46號 2015年 12月 이상의지석묘들과는달리전면적인발굴조사를통해서로근접하는주거군과지석묘군을 확인했음에도불구하고쉽게해석하기어려운유적으로구례봉북리가있다. 방형계송국리형주 거 1기와순수방형계주거 2 기, 지석묘 3 기, 수혈유구, 구상유구, 야외노지, 수로가조성되어 있는가운데주거지와야외노지의탄소연대를통해유적의연대는전기와중기로나뉜다. 따라서 지석묘의연대는전기, 중기, 또는이들과무관한시기로생각해볼수있다. 필자는 앞에서송국리형주거 (1 호) 와방형주거 1 기(3 호) 가서로연관될가능성을제시한바있다. 이 방형주거는출토유물에서야외노지 1 기(2 호) 와서로통하고있고, 좀더확대한다면수혈 1 기(7 호) 와도연결될수있다( 도판 12). 즉송국리형문화단계로볼수있는것이다. 이러한관점에서 2m 간격으로 1 열을이루는지석묘도서로관련되어있지않을까여겨지는것이다. 기반식지석묘와관련해서는임실운정리의조사성과 48) 를견줄만하다. 현재옥정호내에 있는운정리장자골일원이다. 지석묘에서는아무런유물도출토되지않았지만, 석관묘에서는 내만구연심발과일단경식석촉이출토되었다. 유적의성격은분명하지않지만용담댐수몰지 역과같은묘역식지석묘가아니라는점, 기반식지석묘와석관묘가근접하여축조된점, 지석묘주변에서일단병식석검이출토된점등을고려하면유적의시기는중기단계로판단되 며, 용담댐의진안여의곡취락과병존했을것으로추정된다. 이러한결론이봉북리지석묘에도 적용될수있지않을까한다. 보성강유역의고흥중산리나여수화장동에서는유력군집묘가축조됨으로써동시기다른 무덤군에비해사회적으로우월한집단의존재를상정할수있지만, 49) 섬진강본류역에서는 아직까지이와같은양상의무덤은확인되지않고있다. 입지로보아서는곡성과구례를중심으 로대단위주거군과무덤군이예상되지만이또한분명하지않다. 앞으로활발한발굴조사가 기대되는대목이다. Ⅳ. 맺음말 이상으로섬진강본류역에분포하는청동기시대취락에대해살펴보았다. 아직까지는자료가 48) 郭長根趙仁振鄭明玉, 2006, 任實雲井里遺蹟緊急收拾調査報告硏究論文集第 7 號, ( 財 ) 湖南文化財硏 究院. 49) 金承玉, 2006, 墓域式 ( 龍潭式 ) 支石墓의展開過程과性格 韓國上古史學報 第 53 號, 韓國上古史學會, 88 쪽.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61 많이축적되어있지않아해상도높은취락의양상과성격을파악하기가쉽지않았다. 특히 송국리형문화단계에집중되어있어조기와전기단계는거의시작에불과하다. 영성한자료의 한계속에서중기단계에만편중된양상이며, 후기단계로의집중력있는접근이부족하였다는 생각이든다. 곡성대평리에서원형점토대토기가출토되는주거지가, 광양용강리관동에서 외반구연호원형점토대토기편두형토기편이공반하는수혈이조사되었지만좀더분명하고 실증적인자료의축적이필요한실정이다. 섬진강유역에분포하는청동기시대취락의정체성은매우흐릿한상태로서그동안보성강 유역권과여수반도권역에치중된고고학적성과를차용할수밖에없었던이유가설명될수있는 대목이다. 결국조기전기후기는자료의축적이선결되어야할문제이고, 중기는자료의 축적과더불어주거군과무덤군의관계를어떤식으로풀어갈것인가에대한적극적인고민이 요구된다. 이는전남지역에분포하는대부분의지석묘문화에해당되는문제이지만, 섬진강 유역은공간적으로백두대간과호남정맥이병풍처럼둘러싸고있기때문에다른권역에비해 폐쇄적경향이강하다. 따라서지역연계망이나유적간관계성을도모하는데상대적으로집중 해야하지않을까한다. 이러한지속적인노력과자료의축적은앞으로섬진강유역권에자리하 는청동기시대취락의사회구조와경제체계를연구하는데중요한토대가될것으로기대한다. 논문투고일 : 2015.10.28. 논문심사완료일 : 2015.12.10. 게재확정일 : 2015.12.11.
162 第 46號 2015年 12月 참고문헌 고금님장지현박춘규이종화, 2014, 임실외량2 유적 2013 2014 호남지역문화유적발굴조사성과, 湖南考古學會. 郭長根趙仁振鄭明玉, 2006, 任實雲井里遺蹟緊急收拾調査報告硏究論文集第 7 號, ( 財 ) 湖南文化 財硏究院. 金奎正, 2011, 湖南地域靑銅器時代前期文化의特徵韓國靑銅器學報第六號, 韓國靑銅器學會. 金奎正, 2013, 湖南地域靑銅器時代聚落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金承玉, 2006, 墓域式 ( 龍潭式 ) 支石墓의展開過程과性格韓國上古史學報第 53 號, 韓國上古史學會. 金壯錫, 2001, 흔암리유형재고 : 기원과연대嶺南考古學 28 號, 嶺南考古學會. 朴淳發, 2003, 渼沙里類型形成考湖西考古學第 9 輯, 湖西考古學會. 宋滿榮, 2001, 南韓地方農耕文化形成期聚落의構造와變化한국농경문화의형성, 제25 회한국고고학 전국대회발표요지. 安在晧, 1996, 無文土器時代聚落의變遷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安在晧, 2000, 韓國農耕社會의成立韓國考古學報 43, 韓國考古學會. 이기길, 2000, 방사성탄소연대측정순천죽내리유적, 조선대학교박물관. 李榮文, 1993, 全南地方支石墓社會의硏究, 韓國敎員大學校博士學位論文. 이영문, 1999, 바. 전남지방한국지석묘 ( 고인돌 ) 유적종합조사연구 ( ), 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李榮文, 2011, 韓國靑銅器時代前期墓制의樣相文化史學 35. 李宗哲, 2010, 전남남해안의송국리형주거문화韓國靑銅器學報第 6 號, 韓國靑銅器學會. 이종철, 2014, 제4 장호남제주지역聚落 : 청동기시대의고고학 3, 김권구공민규편, 서경문화사. 李宗哲, 2015, 松菊里型文化의聚落體制와發展, 全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李亨源, 2009, 韓國靑銅器時代의聚落構造와社會組織, 忠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이홍종, 2003, 松菊里型聚落의景觀的檢討湖西考古學第 9 輯, 湖西考古學會. 정다운, 2015, 호남지역청동기시대전기문화의시공간적전개양상, 全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진만강, 2005, 淳昌內東里遺蹟 2004 2005 호남지역문화유적발굴성과, 湖南考古學會. 홍밝음, 2013, 전남지역청동기시대조~ 전기문화의변천과정한국청동기시대편년, 서경문화사. 황재훈, 2012, 섬진강유역지석묘의전개과정韓國上古史學報第 75 號, 韓國上古史學會. Daum 지도 발굴조사보고서는생략함
섬진강본류역청동기시대취락의분포와특징 이종철 163 ABSTRACT Distribution and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Bronze Age Settlements along the Mainstream Area of the Seomjingang River Lee Jong-Cheol The Seomjingang River is characterized by a mainstream that runs across rugged mountainous areas and winds around alluvial plains extending along valleys. The geographical conditions surrounding the river have resulted in the development of incised meanders and stretches of alluvial land of different sizes. There have been, however, few archaeological studies on the areas around the river s mainstream, and consequently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their cultural aspect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termine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Bronze Age settlements that formed along the mainstream of the Seomjingang River, a subject that has attracted scant attention from researchers compared with the area around the Boseonggang River, one of the Seomjingang s main tributaries. The study is expected to increase knowledge about the distribution and density of the prehistoric settlements that sprang up along the mainstream area of the Seomjingang River. The study shows that the areas along the mainstream of the Seomjingang River were populated with settlements from the initial to the last period of the Korean Bronze Age, although clearer evidence about the cultures formed during the last period of the Bronze Age, represented by round-rimmed earthenware, has yet to be discovered. In sum, these settlements are characterized by Misa-ri type in the initial period, Garak-dong, Yeoksamdong and Heunam-ri type in the early period, and by Songguk-ri type in the middle and last period. Songguk-ri type is distributed evenly from the upper to the lower reaches of the river, and is more frequently discovered than other types. The Bronze Age cultures around the Seomjingang River are characterized by the extensive use and mutual influence of Yeoksam-dong type, which is exemplified by
164 第 46號 2015年 12月 rim-perforated jars, and Songguk-ri type. It appears to have been during the middle period that the traditional elements were briskly combined with the new Songguk-ri type and that the settlements began to adopt a more advanced spatial layout. There is no clear evidenc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ttlements and burial practices, but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dolmen was the main burial form. Key words : Seomjingang River, Bronze Age, Settl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