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원불교개교백년기획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일시 2 0 16. 2. 2 5 목 0 9 :0 0 ~ 18 :0 0 장소 주최 후원 원광대학교숭산기념관 2 층 원광대학교원불교사상연구원 한국연구재단 원불교사상연구원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이발표논문집은 2015 년도정부재원 ( 교육부 ) 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발간되었음.
구분시간주제발표및토론사회 제1부주제발표 < 프로그램 > 환영사 김도종 ( 원광대총장 ) 염승준 개회사 박맹수 ( 본원부원장 ) ( 원광대 ) 개회 09:00~09:20 < 제1주제 > 09:20~09:50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 제2주제 > 09:50~10:20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10:20~10:40 휴식 < 제3주제 > 10:40~11:10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발표 : 김용휘 ( 한양대 ) 토론 : 조성환 ( 원광대 ) 발표 : 김영주 ( 대진대 ) 토론 : 김승남 ( 대진대 ) 발표 : 김동환 ( 국학연구소 ) 토론 : 신운용 ( 한국외국어대 ) 박맹수 11:10~11:40 < 제 4 주제 > 통일교경전에나타난마음챙김의요소와치유 발표 : 이재영 ( 선문대 ) 토론 : 문선영 ( 선문대 ) 11:40~12:10 기조및특별강연 13:00~14:00 제 2 부 주제발표 < 제 5 주제 > 현대병든사회의치유와통합을위한원불 교적접근 : 삼학 ( 三學 ) 의 정신수양 ( 精神修 養 ) 과 사요 ( 四要 ) 의활용 발표 : 염승준 ( 원광대 ) 토론 : 원영상 ( 원광대 ) <Lunch> 12:10 ~ 13:00 교직원식당 ( 숭산기념관 1 층 ) 14:00~14:30 14:30~15:00 < 기조강연 > 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 의복귀 < 특별강연 >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 제6주제 >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가 ) < 제7주제 > 현대종교문화와생태공공성부유하는 사적영성을넘어서 15:00~15:20 휴식 < 제8주제 > 15:20~15:50 15:50~16:20 치유와통합을위한실천적모색 : 원불교은덕문화원의사례 < 제 9 주제 > 종교를넘어선종교 와영성 : 세속적신비주 의 (secular mysticism) 개념을중심으로 발표 : 박승길 ( 대구가톨릭대 ) 발표 : 칸노치가게 ( 管野千景 탈핵운동가 ) 발표 : 차옥숭 ( 이화여대 ) 토론 : 박광수 ( 원광대 ) 발표 : 유기쁨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 토론 : 박도선 ( 한살림연수원 ) 발표 : 김화연 토론 : 조서휘 ( 원불교은덕문화원 ) (ACRP 서울평화교육센터 ) 발표 : 성해영 ( 서울대 ) 토론 : 허남진 ( 원광대 ) 김춘호 ( 원광대 ) 이찬수 ( 서울대 ) 16:20~16:50 < 제 10 주제 > 오늘날의병듦과종교적치유의몸짓 발표 : 박상언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 토론 : 송현동 ( 건양대 ) 16:50~17:10 휴식 종합토론 17:10~18:00 발표 토론자전체박맹수
환영사 원광대학교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개최하는 2016년도, 원불교 100년기념학술대회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 본학술대회는원불교 100주년기념 11번째기획학술대회로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을주제로개최됩니다. 김도종 원광대학교총장원불교사상연구원장 지난 100년간원불교를비롯한한국의다양한신종교및신종교운동은격정적인한국사에서상처받은시민을위로하는치유자이자분열된사회를통합하는매개로써그역할을충실히이행해왔습니다. 그결과한국사회는문호개방과전쟁, 전후의산업발전과급변하는현대사회를슬기롭게극복하면서세계정치, 경제, 문화를선도하는선진사회에진입할수있었습니다. 오늘이자리는한국의근현대정신혁명의가장밑바닥에서시민의성찰과깨달음, 사회의변혁을주도했던신종교의사상적맥을확인하고공유하는시간입니다. 원기 100 년, 정치적혼란과경제적침체를마주하는지금이순간에우리는지난 100년동안한국신종교가보여준치유와통합의힘을확인하며새로운 100년을모색하고자합니다. 원불교소태산박중빈대종사는일찍이물질문명에도취 된현대사회를염려하며이를근본적으로치유하기위해 도학을장려할것을강조하신바있습니다. 선병자의 ( 先病
5 者醫 ) 라는말과같이우리는각자의병든마음을치유하는동시에밖으로세상을관찰하여병든세계를치료하고분열된세상을통합하는주인공이되고자다짐합니다. 오늘바쁘신와중에서학술대회에오신각종교계의발표자, 참여자를모두에게다시한번감사와환영의말씀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6 년 2 월 25 일 원광대학교총장겸원불교사상연구원원장김도종합장
목차 환영사 기조강연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 박승길 1 특별강연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케게모녀의증언 칸노치카게管野千景 9 주제발표 1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발표 : 김용휘 35 토론 : 조성환 47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발표 : 김영주 49 토론 : 김승남 63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발표 : 김동환 65 토론 : 신운용 91 통일교경전에나타난마음챙김의요소와치유발표 : 이재영 93 토론 : 문선영 107 현대병든사회의치유와통합을위한원불교적접근 : 삼학 ( 三學 ) 의 정신수양 ( 精神修養 ) 과 사요 ( 四要 ) 의활용발표 : 염승준 109 토론 : 원영상 123 주제발표 2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가 ) 발표 : 차옥숭 별지토론 : 박광수 별지 현대종교문화와생태공공성부유하는사적영성을넘어서발표 : 유기쁨 127 토론 : 박도선 147 치유와통합을위한실천적모색 : 원불교은덕문화원의사례발표 : 김근희 149 토론 : 조서휘 별지 종교를넘어선종교 와영성 : 세속적신비주의 (secular mysticism) 개념을중심으로발표 : 성해영 173 토론 : 허남진 187 오늘날의병듦과종교적치유의몸짓발표 : 박상언 189 토론 : 송현동 203
기조강연 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 박승길
< 기조강연 > 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 박승길 대구가톨릭대학교명예교수 I 오늘의학술대회주제는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으로, 이미학술대회기획서에서밝히고있는바와같이, 이자리는 한국신종교의태동과전개과정속에서발현된인간 치유 와상생적사회 통합 의다양한이론과실천들을새롭게조명하여우리사회의지금의현실에서필요한지혜를찾고자하는자리일것입니다. 분수에맞지않는순서를맡게된것자체가저에게는당장치유가필요한상황임을먼저말씀드립니다. 그러나너그러운마음으로오늘의주제를함께생각해보는순서였으면합니다. 동학을효시로전개되기시작한근현대의우리나라신종교운동은, 이땅의민초들이서양세력과신흥일본이라는위협적타자의등장, 백성을보호할힘도능력도없으면서수탈을일삼는무능한조정 ( 朝廷 ) 에대한실망, 더이상일상문제해결의능력을잃은성리학적세계관에대한불신등이겹치면서, 무언가크게바뀌고있는세상에대한불안이그추동력이되면서바뀌는세상을읽어주고풀어주는원리에대한관심에서부터출발하고있었습니다. 여태조선이대국으로섬겨온중국의수도북경이함락되는사태를목도하면서중화적세계관의위기를조선땅수운을통해계시된상제 ( 上帝 ) 의제인빌병 ( 濟人疾病 ) 과교인위아 ( 敎人爲我 : 곧, 나의영부를받아사람을질병에서건지고나의주문을받아사람을가르쳐서나를위하게하라 ) 를통한포덕천하라는소명의실천에서출발한동학이나, 역수 ( 易數 ) 를천지개벽과신명개벽으로풀어낸일부 ( 一夫 ) 의정역 ( 正易 ) 은, 신종교운동을조선땅에뿌리내리게하는가장중요한신종교운동의묘판이었습니다. 이묘판을새로운종교의큰열매를맺을수있도록해준밑거름은민초들의피땀을뿌리게한동학혁명이었을것입니다. 그혁명과정에서억울하게피뿌리도록강압한억압자에대한분노와복수심은수없이사려져간민초들의한 ( 恨 ) 을풀어줄절대자에대한신앙을형성하였고, 전통적신앙속에자리했던상제님은성육신화하여강증산으로, 때로는서양의그리스도로, 저멀리제주땅에서는노자 ( 老子 ) 로, 최근
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에는하나님어머니등으로까지나타나면서한국신종교운동은다양한스펙트럼을지닌종교운동으로꽃피고있습니다. 저는이자리에서이런신종교운동의구체적전개와진화, 발전상황에대해서말씀드리려는것이아닙니다. 다만, 한국신종교운동은그특징상, 우리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으로서이땅의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라고먼저규정짓고싶습니다. 매우단순한언설같지만, 저는여기에한국신종교운동의의의와한계가다함축된다고보기때문입니다. 저는오늘이자리에서바로여기에주목하여국내신종교운동에서찾아볼수있는치유와상생적통합의의의와한계를종교진화론적입장에서좀더깊이같이살펴볼까합니다. 그러나여기서진화론이라는용어는생물학적진화와같은용어가아닌, 종교적행위가인간삶에서문제를인식하고해답을주는현실의지평을확장하여가면서그를통해그특정종교의사회적존재양식이변하는과정을주목하며종교진화라는용어를쓰고자합니다. 동시에이런관점에서한국신종교운동의의의와한계, 그리고그전망을함께생각해보고자합니다. Ⅱ 사실, 모든생명체는언제나지금의상황에대한대응능력부재가부여하는심리적공황상태로서의공포를느끼며삽니다. 공포는생명력을위협하지만동시에그것을극복한체험이야말로생명의원동력이기도합니다. 이런공포와달리, 인간계는생각하는능력을통해당장현재의상황이부여하는공포가아닌, 미래에알수없는상황에대해서느끼는막연한두려움으로서의불안상황도실제처럼경험하고대처하려는능력을키우고, 또그것을학습하여왔습니다. 그래서흔히인생을나름대로의미있게살고자하는사람들은, 누구나자신들의삶이항상어떤상황이나경우에도불구하고스스로내적인평형과어떤목표나가치에대한지향성을가지면서자신을고무하고격려하려는존재였습니다. 이렇듯이, 모든생명체들은항상변화하는상황에적응하며생존자체에집중하는생활과행동방식을익혀야가지만, 인간세상은오히려어떤상황에도불구하고라는태도가빚어내는행동양식의가치를생각하며보존하고학습합니다. 바로그런가치의보존과학습의산물이어쩌면인간계만이가지고있는문화일것이고그축적된산물이문명일것입니다. 이런점에서문화적존재인인간들은, 태초의사회적삶을살아가면서부터이변화무쌍한삶의현실에서도, 어떤경우에도이렇게살아야하고살아갈것이다 는일관된현실파악에따른태도나행동양식을유지시켜주는그무엇인가를필요로하게되었고그것은종교라는이름으로학습되고보존되어왔음은이자리에계신분들은그누구보다도잘알고계실것입니다. 이렇듯, 종교는우리가일상생활에서일관된생활세계를구성하기위해서는반드시필
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 3 요로하는, 우리의태도나행동양식의심층구조로자리잡고있으면서굳이생각하지않아도자연스레반응하도록하는현실파악의해석틀임과동시에, 현실문제해결의방법론과구체적수단을제공하는것이기도합니다. 그래서우리는, 변화무쌍한상황이만들어내는풍랑과파고가언제밀어닥칠지도모르는현실의바다에서인생이라는조각배에몸을싣고도공포나불안을느끼지않을수있고, 또때로는풍랑에조각배가뒤집히고부서져도다시조각을맞추어배의중심을찾아일상의항행을가능케하도록복원시켜주는것도종교가우리에게제공하는하나의기능일것입니다. 그점에서모든종교는그자체로오늘의학술대회에서다루는주제이기도한 치유와통합 의역할수행을개인이나사회로부터기대받고있습니다. 물론때로는 내가세상에화평을주려고온줄로아느냐, 내가너희에게이르노니도리어분쟁하게하려함이라 ( 누가복은 12;51) 는예수의말처럼, 지금까지의전통에물든일상과의단절을통한구원의새로운장을제시함으로써혁명적변혁을추구하기도합니다. 그러나그런변혁추구역시문제되는현실에대한근본적치유와새로운통합을장으로서의구원공간을제공하려는의도일것입니다. Ⅲ 그런데이런다양한스펙트럼을지닌종교적행위는가장근본적으로문제되는현실이전제될때만나타나기마련입니다. 매우단순화시켜말한다면, 아무리경건한종교가할지라도문제되는현실이없다면스스로종교가로서의행위는다만직업적행동일뿐일것입니다. 우리가일상을살아가면서가장먼저또언제나쉽게맞닥뜨리는현실의문제를한마디로요약한다면, 빈 ( 貧 ) 병 ( 病 ) 쟁 ( 爭 ) 이될것입니다. 이셋중에서도원초성에따라위계적분류가있을수있겠지만, 이셋은쉽게현존재에대한직접적위해요소가될수있기때문입니다. 대체로이런문제가나타나면그원인을무엇으로생각하든당장의현존재상황을직접적인위기로몰고가기때문에그것을해결하는방법도보다직접적이고즉각적인수단을찾기마련입니다. 그래서모든종교적행위의근간에는이런수단으로서의주술 ( 呪術 ) 이존재하기마련입니다. 주술은그어떤수단보다도문제해결에경제적인방법이기도합니다. 경제적동기에서주술은항상우리의일상문제해결에쉽게동원되고있습니다. 그런데빈 ( 貧 ) 병 ( 病 ) 쟁 ( 爭 ) 으로문제된현실이개인적인만큼주술도개별성을띄면서발전합니다. 그러나이빈 ( 貧 ) 병 ( 病 ) 쟁 ( 爭 ) 의문제가단순히개인적문제가아닌보다근본적인특정공동체의공통문제로인식될때, 그문제해결의방법은개별적주술에서공동의의례로발전할수있습니다. 죄의식은바로그런근본적인특정공동체의공통문제인식에서발전된것이며동시에그것을해소하는주술적방법이공동의의례가될것입니다. 그래서모든종교집단에서행하는의례는
4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일차적으로근본적인공통문제로인한고난과고통을치유하는경제적동기가내포된방법일것입니다. 동학이나정역과같은초기신종교운동에서주문을외우고특별한몸짓을함께하는의례는그런의미일것입니다. 그러나여기에같은문제를안고있는것으로인식되어서로아픔과도움을나누는이웃공동체가아닌, 그공동체를위협하는타자가나타나일상의현존재상황을위기에빠뜨리는경험도하게됩니다. 이경우, 이웃들은함께그타자에대한분노와보복을다짐합니다. 하지만그보복이스스로성공적일수없다고느낄정도의상황이라면그런상황은바로신들의탄생이나복귀를필요로하는상황이될것입니다. 억압적타자에대한분노와복수가신격적위상의인물에게투영되어맡기는행위는, 지금까지의주술적행위가담긴공동체의의례를신에대한예배로전환시킬수있습니다. 강증산의신적위상과천지공사는곧, 동학혁명과정에서겹겹이쌓인민초들의분노와복수심을신적존재의현현으로이땅의민초들이겪는억울함을만들고있는상황에대한근본적말소를위한일회적행위였던셈일것입니다. 신종교운동을필요로했던상황에등장하는위협적타자는언제나타민족이었던만큼, 이웃공동체를형성할수있는민족공동체와는전혀다른집단으로이질화되고, 이것이국내신종교운동을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으로서이땅의회복에집중하는이른바민족종교화의길을걷게한것입니다. 물론이것이잘못된길을가는것은전혀아닙니다. 오히려당연한일입니다. 일제식민지라는타민족의위협과약탈을겪어야하는억울하기그지없는현실상황은, 더더욱국내신종교의존재양식을민족종교로서민족공동체의위기를극복할수있는한민족중심주의의부활기재로만들면서궁극적으로한민족이세계의구원자로등장하기를기대하게합니다. 이를위해서우리민족을낳은모태로서단군 ( 대종교 ), 환인 ( 증산도 ) 이나마고 ( 麻姑 : 단월드 ) 로까지거슬러올라가그들의복귀를기도합니다. 때로는그런구원의현실이요원한만큼, 원불교와같이이를위해서는물질문명에서타민족에게뒤진우리는정신문명에서개벽을통해그목표를달성해야한다고주장하게됩니다. 이과정에서한민족중심주의는우리민족고유의생활방식이나종교적전통에집중하도록하였습니다. 유 ( 儒 ) 불 ( 佛 ) 선 ( 仙 ) 삼교합일이나조상숭배로서의제사의례, 부모에대한보은 ( 報恩 ) 이나봉양같은예의의강조, 등이바로그런사실일것입니다. 하지만이런내용은결국은가족공동체적가치이념을크게벗어나지않는것일수밖에없습니다. 신종교운동에서다시부활했거나새롭게등장한신들은, 세계와역사속에서살아있으면서자신의뜻을관철시키려는그런존재와는달리, 가장오래된조상으로서가족이나생활공동체의중심에오히려자리잡으면서평화를누리기를바라는존재로부각됩니다. 그점에서국내신종교운동의대다수는가족을최소단위로하는이웃이라는적대적이지않고항상도울수있는공동체의내적평화를유지함으로써현실의문제되는상황에서받는상처를치유할수있음을전제로, 평화로운이웃공동체의통합에집중한다고말할수있을것입니다. 궁극적으로그평화상태를유지하는비결은부모와형제와자식, 이웃과이웃개개인의마음이서로공동운명체라는
한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회복을위한신들의복귀 5 하나됨이고, 하나로차별이없을때결국은마음의평화와공동체의평화를달성할수있다는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은유 불 선삼교에서일찍이강조해온것으로서로한마음이되기위한자기절제와훈련이상생적통합의길임을신종교운동은공통적으로가르치고있는셈입니다. 이런차별없기에하나일수밖에없는구원공동체에대한국내신종교운동에서꾸준히표출되는갈망은, 사실은양반과서얼, 평민등의신분차별과사농공상이라는직업적차별이빚어낸상대적박탈감이빈 ( 貧 ) 병 ( 病 ) 쟁 ( 爭 ) 이라는매우일상적인현실문제보다더크게부각된한말의현실을반영하는것으로볼수있습니다. 신분차별의병폐가당시모든사회적갈등과해체의원인으로해석하는것은, 동학에서시천주주문을통해모두가군자가되는세상을제시하고신명개벽을통해누구나군자가되는이상사회의도래를역수로풀었던정역에서도잘찾아볼수있는내용일것입니다. 신분적차별이사라진평등한인격체에대한단순한전망-여기서단순함이란표현을쓴것은개벽과같은운도 ( 運度 ) 변화에따른수동성때문에사용함-은, 그러나인간일반의존재의미나신성과의관계, 생활세계와일상의성속적 ( 聖俗的 ) 구분이나구체적구원상태에대한전망과기대등과같은종교일반의담론발전에는한계를보여주는것은아닐까요? 사실, 신분철폐에따른평등사회에대한기대에는상대적박탈감을통해느끼는자기존재에대한의미성찰행동이사회적으로커지고있음을보여주기때문에그만큼새로운종교는그런자아에대한새로운성찰의방법과의미체계를부여할필요가있습니다. 그러나초기신종교운동이지나치게개벽이나운도변화와같은세상이변할수밖에없는상황에의미부여를집중함으로써, 자아에대한새로운종교적성찰은다만자기절제와훈련방식으로대치되어진것은아닐까요? 또한한민족중심주의를내포한구원론에는민족내적도덕율과타민족에대한대외적도덕율의이중구조를가질수밖에없을것입니다. 이것은곧민족운동이란차원에서신종교운동을평가할때는의미가있을지몰라도인류라는차원에서볼때종교성에서보편성을주장하기어렵게만들것입니다. 그점에서국내민족종교를표방하는신종교교단들이흔히말하는종교의세계화나종교간대화에는참여하기어려운측면을가질수밖에없을것입니다. Ⅳ 종교는마땅히인류구원의길을제시하고자합니다. 우리나라의근현대라는역사적전개과정에서등장한신종교운동이우리의정신문화뿐아니라세계인과더불어구축할문화적지평을확대하는데기여하기위해서는, 우리민족의치유와구원공간으로서이땅의회복에집중하여신종교교단들이 민족종교협의회 라는일종의압력단체로활동하면서사회적공인에
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만족하는일은이제그만두어도될것으로감히생각합니다. 오늘날국내신종교운동은, 일제식민지라는타자의억압으로해방된공간으로서의구원공간을염두에두었던민족종교운동이라는지향점을더이상강조할필요가사라져가는현실입니다. 그결과국내신종교운동은, 인간의본성과현존재와그것을둘러싼현실상황, 궁극적구원공간의실현필요성과의의등과같은, 세계종교에서주제화하는신학적거대담론과는거리가먼, 오히려이땅의민초들의일상적불안과상처를즉각적이며가시적으로치유하고해소시켜줄方便的靈術과사소한체험적담론에주로치중하고있습니다. 종교가무릇경제적동기로서의주술을원초적으로가지고있음을인정한다해도, 이런개별적인사소한체험적담론에빠져들경우, 신종교운동은항상주변적종교운동내지는때로는컬트적속성을띄면서그발전적동력을잃게될것이기때문입니다. 이와관련하여. 이자리가원광대학교인만큼조금은낯뜨거운말이될지는몰라도, 법신불일원상의진리 에바탕한생활불교를천명한원불교는적어도그런민족종교의지향과는거리를두고있었고, 바로그때문에일제하에서는총독부의탄압을피할수도있었습니다. 원불교개교 100주년을맞는시점에서이문제는깊이있게다시생각해볼가치가있다고생각합니다. 원불교가일본의창가학회-물론창가학회를두둔하는것은아니고다만그가치이념을주목-처럼오늘날국내신종교운동가운데서도국내포교나종교간대화, 세계화에서도가장두드러진모습을보여주면서진화하고있음은부정할수없기때문입니다.
특별강연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일본 칸노치가게管野千景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 : 탈핵운동가 칸노치가게씨 모녀의 증언 9 <특별강연>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 - 탈핵운동가 칸노치가게씨 모녀의 증언 - 칸노치가게(管野千景) 칸노 한나(管野はんな)*1) 여러분 안녕하세요. 칸노 치카게(菅野千景)라고 합니다. 프로필에도 썼듯이, 저는 후쿠시마 현 후쿠시마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후쿠시마에서 결혼하고 두 딸을 얻어, 남편과 넷이 서 행복하고 평온하게 지냈었습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이 1학년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두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있었습니다. 학년말에 하는 선 생님과의 면담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제 순서가 되어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진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러 번 지진을 경험했지만,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크기의 진동이었습니다. 즉시 선생님과 함께 교정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수영장의 물이 크게 파도치며 교정까지 넘쳐흘렀습니다. 혼자서는 서있을 수가 없어서, 다른 어머니들과 서로 의지하며 어 떻게든 서 있었습니다. 큰 진동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좀처럼 학교건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진동이 가라앉았을 때 어머니들과 함께 학교 건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학교 안에는 꽃병과 책들이 떨어져 있고 천장도 벗겨져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3층 강당에 있었습 니다. 그랜드피아노 옆에서 선생님 곁에 모여 마치 부모새의 날개로 감싸 안은 아기새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딸을 찾았는데, 보니 울고 있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밖에 갈 수 있겠니? 하고 묻자 딸아이가 응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기 에, 엄마는 뒤에 갈 테니까 먼저 선생님이랑 나가렴 하고는 밖으로 대피시키고, 저는 혼자 남 * 칸노 치카게(菅野 千景, kanno chikage)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에서 태어났다. 남편, 두 딸과 함께 2011년 8월까지 후쿠시마시에서 지냈다. 2011년 3월11일에 지진을 겪었다. 살던 집은 도쿄전력 후쿠 시마 제1발전소에서 약 60km 떨어져 있었는데, 방사선량이 실내에서 0.7-1.2마이크로 시버트, 마당 에서 2.0-6.0마이크로 시버트, 빗물받이 밑에서는 10마이크로 시버트 이상 방사선량이 기록되었기 때 문에, 방사능의 영향을 피해서, 같은 해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고! 고! 두근두근 캠프 의 보양에 참가하 였다. 보양에서 일단 후쿠시마로 돌아와 8월 30일에 남편을 후쿠시마에 남겨두고, 딸과 함께 교토로 피 난을 떠났다. 2012년8월에 남편이 교토에 직장을 마련하여 가족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칸노 한나(管野 はんな, kanno hanna)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에서 태어났다. 지진 피해를 겪고, 원 전사고의 영향을 피해서 2011년 7살에 교토로 피난을 갔다.
1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아제가입고있던코트를보자기대신에펼쳐서, 남아있던아이들의코트를전부모아품에안고교정으로나갔습니다. 그날은매우추운날이었습니다. 지진이일어나자지축이흔들려천둥이치고싸락눈이내리며눈보라가쳤습니다. 아이들에게코트를입히고교정의안전한장소에모여서마중나온가정등, 각자가집에돌아갈수있는때를기다리고있었습니다. 저는근방에사는아이들을제차에태워집에돌아갔습니다. 마을은정전이되어신호가모두꺼져있었지만, 모두가신중히차를운전하며서로양보하여사고없이돌아올수있었습니다. 집에돌아오자, 지진이나자마자직장에서학교로달려와준남편이먼저도착해있어서, 집안이엉망이되었으니신발신은채로들어와 하고말해주었습니다. 거실에들어서자식기선반부터식기와유리그릇이떨어져바닥에쑤셔박혀있고, 사진이넘어져서, 이미발디딜곳이없을정도로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제가살고있던구역은가스는끊기지않았지만, 전기는 3일간, 수도는 8일간끊어졌습니다. 다음날아이들과급수차에줄을섰습니다. 물을받는데 6시간을기다려야했습니다. 그후에아이들을시어머니께맡기고집을정리하러갔습니다. 그때이미후쿠시마에있는도쿄전력의원자력발전소가큰사고를내고있었다는것은알지못했습니다. 제가사는현에원전이있다는것은알고있었습니다. 사고와고장, 플루토늄열사용문제등은자주기사화되었지만, 저희집은원전에서 60km나떨어져있어서, 별로관계없을것이라생각했습니다. 무관심했다고할수있겠지요. 도쿄전력의원전은결국 4기의원전이폭발하고말았습니다. 원전사고가일어난직후에는많은학자와전문가, 코멘테이터, 저널리스트들이나와서이러저러한것들을이야기하였습니다. 시버트, 퀴리, 베크렐등지금까지는들어보지도못한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정부에서는매시간마다기자회견을열었는데, 매번 바로건강에피해가가는것은아니다, 문제없다, 사고수습까지 1년정도걸린다 와같은내용뿐이었습니다. 그리고원폭이떨어진나가사키와히로시마에서 [ 핵문제를 ] 잘아는사람 ( 有識者 ) 과자원봉사할머니들이후쿠시마에왔습니다. 그분들은 걱정할것없어, 괜찮아, 원폭이떨어졌어도할머니들이이렇게건강하게오래살고있쟎아요 라며위로의말을건넸습니다. 아무런근거도없이단지우리들을안심시키려하였습니다. 남편의매제는미국인입니다. 그는 빨리후쿠시마를떠나라 고말했습니다. 몇번이고이메일을보내고전화를했습니다. 하지만우리는휘발유도없고, 큰딸의졸업식을기다리고있어서이동할수가없었습니다. 저는그때까지어용학자라는학자가있다는것, 그런사람이있다는것을잘몰랐었습니다. 사람들의생활과목숨을지키지않고국가나일부권력자편에서는학자가있다는것등을전혀알지못한것입니다. 그리고저는 전문가와국가, 그리고현에서하는말이니까틀림없어 라며, 어디선지그들의말을믿고싶다고생각했었습니다. 솔직히말하자면, 혼란한와중에의심이들며완전히믿지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11 는못하면서도, 그래도잘알지못하니까걱정되고불안해서그들의말에의지하고싶었는지도모릅니다. 그런식으로저는정부와행정에농락당하면서도누가진실을말해주는것인지, 알고싶은마음은계속가지고있었습니다. 남편은시간을내서방사능과그에수반된건강피해등에대한강연회와공부모임에참가하였습니다. 그런가운데학자, 연구자이면서도자신의지위나명예, 금전보다는, 현재후쿠시마의상태와방사능에대한것, 방사능오염상황과원전사고상황 [ 을알리려는사람들이있으며,] 방사능으로부터우선아이들을지키는일이중요하다는것을배웠습니다. 이들은핵과원자력이뛰어난에너지라고믿어, 뜻을품고연구해왔지만, 알면알수록이것이인간과는공존할수없으며, 인간이감당할수없는무서운것임을알아채고, 바로원전을멈춰야한다고생각했다고합니다. 이들은사고가일어나기전에원전을멈추지못한것을매우원통해했습니다. 피해를입은분들에게정말드릴말씀이없습니다 라며말하기전에사죄하였습니다. 우리부부는이분들이절대거짓을말하지않으며, 우리들의입장에서이야기한다는것을확신하였습니다. 사고후에연간피폭량이변경되었습니다. 안전기준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올리게된것입니다. 거기서위원을맡고있던도쿄대학의교수가 4월에 아이들을그런기준에맞춰생활하라고하는일은, 저는할수없습니다 며울며회견을가졌습니다. 그회견을보고비로소우리부부는지금우리가처한상황이아이들을키울환경에적합하지않다는것을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방사능오염이적은곳으로피난할것을생각하였습니다. 홋카이도에서오키나와까지일본의끝에서끝까지찾아보았습니다. 쉬는날에는차를몰고임대주택을보러다녔습니다. 그러나좀처럼결정할수없었습니다. 그래서피난가기전에여름방학동안오염이적은장소로보양 ( 保養 ) 을가기로하였습니다. 교토의세이카대학교 ( 精華大学 ) 졸업생과재학생이시작한 고! 고! 두근두근캠프 라는보양캠프가있습니다. 보양 ( 保養 ) 이란방사선량이높은곳에사는사람들이방사선량이적은곳에서일정기간을보내는것으로, 방사선으로상처받은몸이회복되는효과를얻는것입니다. 체르노빌사고후, 벨라루스에서는국가정책으로사고후 30년간계속실시되고있습니다. 교토는저희집에서 700km정도떨어진곳에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한여름의더운시기에도피폭을피하려고긴팔에긴양말, 마스크를한모습으로등하교등의외출을했습니다. 학교에서는창문도열지못하고에어컨도없어서교육위원회에서한교실에네대의선풍기를나누어주었습니다. 더운교실안에서단지뜨거운바람을돌릴뿐이었습니다. 그리고아이들은밖에서놀수도없었습니다. 유월이되자방사선오염이심한학교부터순서대로학교건물외벽을세정하고교정의표토를제거하는, 이른바 제염 ( 除染 ) 이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제염작업을해도아직창문을열수있는시간이나밖에서노는것은제한
1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되었습니다. 딸아이들이보양차교토에오고부터는마스크도벗고여름에걸맞는복장으로마음껏밖에서놀았습니다. 풀과잎사귀, 나무를만지고, 물장난을하며보양에참가한아이들은모두너무나활기가넘쳤습니다. 저는아이들의모습을보고, 이게당연한아이들의본래모습이야 라고생각했습니다. 저자신도후쿠시마에있을때에는원산지를속이는경우도있는가운데, 매일식사를만드는데에도오염되지않은식재료를찾아야했는데, 정말안심하고먹을수있을까하는불안을안은채로식사준비를하였습니다. 아무리날씨가화창해도세탁물은집안에널고, 환기를시킬수없어서집안도약간곰팡내가나니기분이좋지않았습니다. 그런생활에너무숨이막힌다는느낌이었습니다. 교토에와서저는원전사고후처음으로심호흡을할수있었습니다. 그와동시에후쿠시마의환경이당연한것이아니라는것을확신하였습니다. 식재료는안전농산공급센터에서보낸무농약유기야채등이어서, 안심할수있는맛있는식재료로만든식사를하였습니다. 반달정도를교토에서보내고캠프후반에는남편도후쿠시마에서와서합류하였습니다. 보양을마치고후쿠시마로돌아가는전차안에서우리는 교토로피난가는것은좀멀어서어렵겠지 라고이야기하였습니다. 몇번이나여진이이어지며원전이또폭발하지는않을까걱정도되고, 수습되지않은상황에서후쿠시마에서사는것이불안했습니다. 아이들의몸과마음이건강하게성장하기어렵다고느껴, 역시교토로피난을가기로결심하고 8월말에두딸을데리고교토로왔습니다. 남편은직장을그만둘수없어서후쿠시마에남았습니다. 이삿짐을꾸릴때도, 아이들을데리고후쿠시마를떠날때도, 우린얼마나울었는지모릅니다. 피난하고나서, 매달남편이우리를만나러교토로와주었습니다. 아빠가만나러오는것을아이들과함께너무나기대하게되었습니다. 매일전화로이야기해도역시얼굴을맞대고이야기하는것과는전혀다릅니다. 한정된시간과집안의경제사정때문에남편은항상 10시간이상이걸리는야간버스로왕복을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이되었을즈음, 남편이보러오는것이힘들다는말을꺼냈습니다. 아이들도아빠를보고싶다며항상만나길기대하는데, 보러오는것이힘들다는말을꺼낸것입니다. 그것은만날수있다는기쁨보다헤어지는외로움이괴롭게느껴졌기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그럴때마다 피난한게잘못된일은아니었을까 라든가, 후쿠시마에있었으면이런고통은맛보지않았을거아닌가 라며몇번이고, 몇번이고자문자답했습니다. 1년후인 2012년 8월에남편이교토에서직장을찾아교토로올수있었습니다. 드디어가족이모여살수있게된것입니다. 하지만우리집수입이절반이하로줄었고, 전혀모르는땅에서일하는것도남편에게는매우힘든일이었습니다. 올해로사고가난지 6년을맞이합니다. 후쿠시마아이들의건강피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13 해는심각한상황에이르렀다고저는생각합니다. 갑상선암만해도 150명을넘기고말았습니다. 그중에서악성으로진단받아수술한아이들이 100명이상이됩니다. 암이갑상선에서다른곳으로전이된아이들도있습니다. 갑상선암뿐만이아닙니다. 아이도어른도심근경색과백혈병을일으키는사람이늘어났습니다. 우리부부가아는사람들과동급생도몇명이세상을떠났습니다. 남편도작년에양쪽눈이모두백내장에걸려수술을받았습니다. 후쿠시마에서지내는아이들은밖에서놀수없어서운동량이줄었기때문에비만아동도늘었고, 수업중에가만히있지못하고금방불안해하는아이들도늘었습니다. 국가와현에서는이러한아이들의건강피해에관해서, 사고후인과관계등을전혀인정하지않고있는데, 이는인과관계가없는것이아닙니다. 조사해보지도않고방사능의영향을인정하지않기로, 2012년가을 후쿠시마현민건강관리조사위원회 에서이야기해서결정했기때문입니다. 원전에서 20km권내의시쵸무라 ( 市町村 : 시군읍 ) 와이이타테무라 ( 飯舘村 ) 는강제로피난해야하는 피난구역 으로지정되었습니다. 언제돌아올수있을지알려주지도않고피난을강요받았습니다. 저희집은피난구역밖입니다. 물론매달받는보상도없고, 국가와행정으로부터는 살아도괜찮은데멋대로걱정하고멋대로밖으로떠난거죠 란소리를듣는취급을받습니다. 작년워싱턴포스트지는 유일한피폭국가로써세계에핵무기폐기를호소해온일본이좁은국토에 55기의원전을늘어세운핵대국이되어있었다 며정상이아님을지적하였습니다. 스스로가떨어진원폭의몇천, 몇만발분에맞먹는핵물질을원자로에보유하고있는데, 위기관리가되고있지않다. 정부가정보를계속은폐해온결과다 라며매우격렬하고적확하게비판하고있습니다. 정말한심한일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원전사고때문에가족과친구, 지역커뮤니티가크게파괴되어버렸습니다. 가장유감스러운것은아이들을지키기위해부부가서로이야기를해도서로를이해하지못해이혼하고마는부부가있다는것입니다. 아이들을지키려는생각인데도반드시아이들을지킬수있는것은아니라는것. 하지만이것도그부부가나쁜것은아니라고생각합니다. 이오년간피난을떠난사람, 피난가지않기로결정한사람, 피난가고싶어도못가는사람들은 후쿠시마를버렸다 든가 후쿠시마를버릴수없다 든가 도망갔다 도망가지않는다 는말들을듣습니다. 어떤말이든진심은아니라고생각합니다. 저도후쿠시마를버렸다고는생각하지않습니다. 후쿠시마에서도망친것이아닙니다. 방사능오염에서도망친것입니다. 서로상처주지않아도되는사람들끼리서로상처를입히고야마는것은, 아직까지도도쿄전력과국가가자신들이저지른악을제대로인식하고, 피해를당한모든사람들에게형식적으로가아니라, 마음에서우러난사죄를하지않았기때문이라고생각합니다. 원전은국가가추진하고있습니다. 원전을만들기위해서가난한어촌에돈을뿌리고, 교묘한말과돈으로사람의마음을어지럽힙니다. 당시에돈을받은사람은자신들의마을이도
14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쿄처럼번창할것으로생각했다고합니다. 그러나빈곤한마을이얼마나번창했는지를보면, 그다지풍요롭게되지는않았습니다. 그뿐아니라, 마음대로원전입지후보지로올려버린것만으로도, 검소하면서도정말행복하게생활하던사람들을분단시켜버렸습니다. 돈으로살수없는너무나소중한것이파괴되어버리는것. 원전이란, 핵이란그런것임을, 전혀무지했던제가부끄럽지만, 이때가되어서야알았습니다. 후쿠시마원전이라는명칭만이널리알려져있지만, 그것은도쿄에서사용하는전기로, 도쿄전력소유입니다. 후쿠시마에서는전혀사용하지않습니다. 이러한원전사고의 2차피해, 3차피해를우리집은절대로피하고싶었습니다. 그래서후쿠시마와교토에헤어져있어도서로에게걱정을끼치지않으려는것등은생각하지않고, 기쁜일은물론이거니와슬픈일도괴로운일도뭐든지다이야기하기로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약한인간입니다. 이런커다란난관을다짊어질수있을리없습니다. 남편이없는가정, 일상이없는일상, 떨어진거리를좁히기위해서라도가족끼리무엇이든이야기를나누는것은마음에여유가없는피난생활을보내기위해서중요한일이었습니다. 그리고무엇보다우선인것은아무런책임이없는데도어려운생활을강요받는아이들의기분을안정시키는것입니다. 작년말을시점으로, 피난민이약십오만명입니다. 교토에는많았을때가약팔백명, 현재는약오백명있습니다. 정치가중에는아직도 원전사고로죽은사람은한명도없다 고말하는사람이있습니다. 절대그렇지않습니다. 사고후피난지시가내려진지역에는혼자사는노인도있었습니다. 장애가있어사고를알지못한사람, 움직일수없어도움을기다리던사람도있었습니다. 그리고피난지시가내려진지역에는큰병원도있었습니다. 라이프라인이끊어진가운데도움을받지못하여, 그병원의입원환자만해도예순분이나그대로돌아가셨습니다. 츠나미와가옥이무너짐으로인해몸을움직일수없게된분들도그대로방치되었고, 기동대와경찰, 소방대원, 자위대등도철수시켜버렸기때문에그냥보고도죽게내버려둔것입니다. 수색이재개된것은한달이지난사월중순이었습니다. 이러한사실은절대로큰뉴스가되지못합니다. 모든정보가조작되어버린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소중하고존귀한생명이그렇게박탈되었다는사실을, 지금까지도반드시알아야하는입장에있는사람들이알지못한채, 올바르게알려하지도않는다고저는생각합니다. 병자이니까, 노인이니까, 장애가있다고해도가벼이여길수있는생명이란하나도없습니다. 그리고지금이시간도사고가일어난원전에서피폭되면서도목숨을걸고가혹한상황속에서작업하고있는많은노동자가있다는것을잊어서는안됩니다. 게다가지금도자살자가끊이지않고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딸부부, 아이들, 이렇게 4대가생활하던가족도적지않습니다. 그러나피난처의가설주택은좁기때문에가족이모두헤어져서살게되어, 살아갈의욕을잃어버리고치매에걸리거나, 고독한나머지죽고마는사람들이많습니다. 그럴때행정에서는무엇을해주었는가하면, 고민을가진사람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15 을상담할사람을몇백만엔을들여증원하는것입니다. 하루라도빨리원래처럼가족이함께살수있도록알아보는것이아니란것입니다. 동일본에서는 부흥 이라는두글자에들끓고있습니다. 부흥예산을사용해서유명한가수나스포츠선수, 아티스트를데리고와서이벤트를합니다. 그리고는활기가돌아서부흥의기폭제가되었다며기뻐합니다. 그때만의불꽃놀이같은행사로부흥이될리없습니다. 그것보다도원전, 핵, 방사능으로인해빼앗겨버린모든것 [ 을되돌려야합니다 ]. 자유, 꿈, 미래로이어지는모든것, 가족, 동물, 풍부한자연, 식물, 일, 서로사랑하는일, 모든생명, 많은것들이파괴되었습니다. 그것은한순간에일어나서길고긴시간을들여계속파괴하고있는것 [ 입니다 ]. 이제다시는돌아오지않는많은소중한것들을더이상잃는분이없도록, 지키고키워가는것. 진정한부흥은모든것을원래대로만드는것이라고생각합니다. 할수없는일이라면그만큼의무게를알아야한다고생각합니다. 도쿄전력은작년까지 2년연속 5210억엔의순이익을올리고있습니다. 다시한번말합니다, 도쿄전력은사고를일으켰음에도불구하고 5210억엔이나벌어들이고있다는것입니다. 사원은실직하는일도없고, 월급도지급되며보너스도받으면서뭐하나변한것없는생활을하고있는것입니다. 이사실을어떻게생각하십니까? 우리집은보양과피난, 남편과헤어져살던 1년간들인교통비와이중생활을해야했기때문에필요하게된생활도구, 집은재작년에매각해버렸지만, 피난해서살지않았던동안에계속지불했던세금과대출금, 그리고받을필요도없었던정신적인고통등, 실제로발생한손실을인정받기위해 ADR( 원자력손해배상분쟁해결센터 ) 에청구하였습니다. 청구는단호히거부당했습니다. 다음으로아직아이들을지키기위해피난상황에있다는증거를제출하도록요구받았습니다. 후쿠시마의집안팎과통학하고있던학교등, 생활권의오염상황등방사선량을측정해서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피난할필요가없는곳에서피난한것이므로일체지불할수가없다는답신이왔습니다. 다음으로다시한번같은대답이왔기에, 잘못된인식에대한설명과반론을제출하자, 비로소도쿄전략은화해안을내놨습니다. 그금액은청구액의약 5% 였습니다. 후쿠시마도 2012년부터삼회에걸쳐원전사고가일어나생긴손해를도쿄전력에청구하였는데약 40% 정도를지불받았습니다. 도쿄전력은이만큼이나사고를일으켰는데도자신들도피해자라고말합니다. 책임등을느끼지못하는것입니다. 도쿄전력의원전은현재 1기도가동하지않는데, 피해를입은분들에게형식뿐인얼마되지않는배상을하고서도, 그래도이익이나온다는것은도대체어떻게된일입니까. 전력회사는원전을가동시키지않으면, 전기가부족해져서전기요금도오른다면서우리의불안을부채질합니다. 우리집은교토에피난하고있는분들 175명과함께도쿄전력과국가를
1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상대로집단소송을제기하였습니다. 이것은이사건을막을수있었음에도불구하고비용이든다며대책을몇년이나뒤로미뤘다는것에대한책임. 피난의정당성과정신적고통에대한배상을요구하는것입니다.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2012년 7월에 이사고는인재다 라고정식발표하였습니다. 도쿄전력의원전사고는지진과츠나미로인해전원이상실되어일어났다고하지만, 그렇지않다는것입니다. 막는것이가능했다는것입니다. 후쿠시마현내에서의피난, 그리고전국각지에피난을강요받고있는분들이각지에서재판을걸고있습니다. 지금재판을건원고들, 재판을담당하는변호단도모두정보를공유하며서로격려하고, 싸우기위해서연대해나갈움직임을취하였습니다. 우리집의경우는 ADR에서회수할수없는손실은재판으로호소하여배상하게할수밖에없다고변호사에게들었는데, 개인이싸우기에는경제적으로시간적으로정신적으로너무나어렵다는것을실감하여포기하려했었기때문에같은생각을가진피해자가함께싸울수있다는것은마음든든합니다. 지금까지도약으로인한피해 ( 薬害 ), 공해등국가와대기업을상대로한재판은몇십년이나싸우고있는케이스가많습니다. 재판을하려고결정했을때, 나라를상대로싸운다는것따위소용없어 라말하는사람도있었습니다. 무엇이소용없다는것인지요? 나쁜일을한것에대해책임을인정하게하고, 사죄하게하는것은당연한일입니다. 매번재판에서는피고인도쿄전력과국가의변호사및대리인이지루한듯앉아서조는사람도있습니다. 무책임의표현입니다. 우리들원고와변호단은사고의책임을인정하게하고마음으로부터사죄할것을요구하는데에만그치지않고, 모든원전을없애서다시는사고가일어나지않는것까지를바라고있습니다. 일본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라는것이있었는데, 사고후 2012년 9월에 원자력규제위원회 라고이름을바꾸었습니다. 이사실부터가원자력의안전신화가붕괴되었다는증거라고생각합니다. 안전한원전같은것은세계어디에도없습니다. 2020년에올림픽이일본에서열리게되었습니다. 세계를향해자신있게거짓말을했습니다. 그후즉시오염수를바다에계속흘려보내고있던사실을숨기고있었다고도쿄전력이발표하였습니다. 규제위원회도이것에는기가막혀했습니다. 지역에서는오염수가더이상새어나가지않도록대책을세우고, 관리를철저히할것, 그리고정보를숨기는체질을재빨리개선하라고항의하며강하게요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아베수상은오염수가실제로는새고있었다는것에대한사죄도발언철회도하지않았습니다. 이전의노다수상은 2011년 12월에돌연원전사고수습선언을했습니다. 무엇을근거로발표했는지모르지만, 아니나다를까전세계로부터수습된것이아니지않느냐는질문과의견이쏟아졌습니다. 당연한일이라고생각합니다. 그리고그때도발언에대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17 한철회도, 사죄도없었습니다. 하지만오염의구체적인상황이나건강피해실태에대해서, 있는그대로실제상황을말한사람에대한반발이나비판은가혹합니다. 입증되지않았는데인과관계가없다, 문제없다, 걱정없다며우기는무책임한말은정당화되는불편함은지금도쭉계속되고있습니다. 우리들은사고직후부터계속속고, 거짓말을듣고있습니다. 우리는, 설령사실이받아들이기어려운것이라고해도알아야만하며, 알권리가있습니다. 그리고스스로판단해서선택할권리가있습니다. 작년 5월에후쿠시마에돌아갔을때택시에탔을적의일입니다. 기사님과날씨와고향의산에관해서등등, 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었습니다. 그분이살고있는곳은시내에서도방사선량이높은지역이었습니다. 자신의아이들과손자는비교적방사선량이낮은지역으로이사를시켰다고하였습니다. 저는 그건다행이었네요, 하지만이런말을좀더스스럼없이이렇게말할수있는분위기가후쿠시마에만들어지면좋을텐데요 라고하자, 정말말씀하신대로예요, 이상하죠 라고대답하였습니다. 후쿠시마에는사고이후부터지금까지도오염에대한, 피난에대한, 원전에대한걱정이나불안등에대해좀처럼본심을말할수없는분위기가있습니다. 모두가저마다안고있는어려움에이미힘이부치고, 힘이부칩니다. 자신의가족을지키는일로힘들고, 힘들다는것입니다. 목소리를내지못하고있다는것입니다. 저는현밖으로피난을갔지만, 피난하지않은사람들과의사이에, 더이상의고랑과경계를만들지않고모든것을넘어설수있도록서로를이해하고서로를지지하는것이정말로필요하다고느낍니다. 좁은일본에서또원전사고가일어난다면, 틀림없이안심하고살수있는토지와먹거리도없어지고말것입니다. 그런데약 2년간일본의모든원전이멈춰있어도아무런문제도없었는데, 국가와전력회사는원전의재가동을추진하며, 우리들의반대목소리도듣지않고작년 8월에큐수전력에서가고시마원전을재가동시켜버렸습니다. 원전사고가일어나도왜아직도원전을돌리려는것인지? 국민의반이상이원전재가동에반대하고있습니다. 안전하게처리하는기준같은것은없습니다. 원자력은핵입니다. 칸사이전력도원전사고를일으킨도쿄전력과같은것을취급하고있다는자각이전혀없었습니다. 만에하나라도, 있어서는안되는사고가일어나버렸을때의피난계획도서있지않습니다. 그리고사용이끝난핵연료의처리에대해서는뭐하나정해진것이없습니다. 지금까지사용한일본전체의핵폐기물을포함해서더욱폐기물을늘리는것에대해아무것도생각하지않았습니다. 공간의방사선량을줄이기위해후쿠시마의제염작업은오년간계속이어지고있습니다. 이작업으로발생한오염물질은검은플렉시블컨테이너백 (flexible container bag) 이라는것에채워넣어, 아름다운산림과길옆, 주택지의공터, 학교와공원의한구역등에쌓아두고있습니다. 임시로놓았다고설명은하지만, 언제어디에서처분할것인지에대해서는아무
18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것도정해진바가없습니다. 그안에서는방사선이계속나오고있습니다. 제염을한다고해도산산히흩어져버린방사능을모아서제거하는것은무리입니다. 모든수목도벌채하지않으면안됩니다. 지금후쿠시마에서는귀환정책이라고하여현밖으로피난한사람들을현내로돌아오게하는시책이활발히이루어지고있습니다. 임대주택의주택지원은내년 3월로중단됩니다. 퇴거를강요당한사람들은이사를하지않으면안됩니다. 당연히이사비용이듭니다. 만일후쿠시마에돌아간다면이사비용을일정액후쿠시마현이부담해줍니다. 하지만후쿠시마에는아직돌아갈상황이아니라고느끼는가족을비롯해아이들의학교나부모의직장관계상, 그대로피난처에서다른주택으로옮겨사는분도많습니다. 그런가정에는일체이사비용이나오지않습니다. 그런데피난구역으로지정한곳을점점해제하고있습니다. 방사선량이내려갔다는것입니다. 그기준은연간피폭량 20밀리시버트로, 사고후에올린수치입니다. 사고전에는연간 1밀리시버트였습니다. 20배나올려놓은채로되돌려보내려는것입니다. 피난구역에살고계신분은산간마을에대대로집을가진분도적지않습니다. 그렇지만작년말에주택은제염을했지만, 산림은제염을하지않기로후쿠시마현이결정했습니다. 이러한모순속에서아무리우리집으로돌아가고싶다고해도안심하고돌아갈수있을리없습니다. 자연재해같은것이라면, 재해구조법에바탕하여귀환할목표는세울수있겠지요. 하지만원자력재해는눈에는보이지않지만, 방사능의영향이없어질때까지핵종류에따라몇백, 몇천년이나되는연수가걸립니다. 국가는 2020년까지는가능한한피난자라불리는사람들을없애고싶고, 원전사고가완전히수습되었다고세계에발신하고싶어합니다. 왜냐하면올림픽이있기때문입니다. 이와함께일본의원자력기술수준이높다는것을어필하고싶은것입니다. 왜냐하면원전을외국에팔아서돈을벌고싶기때문입니다. 아베수상은큰기업이우선벌어서그곳이윤택해지면, 거기서넘쳐나온것이일반가정에흘러가서일본의경기가좋아진다고하는, 지극히국민을바보취급하는생각을가지고정치를하고있는것입니다. 원자력기술을자랑하고싶다면원전사고에좀더진지하게대처해서높은기술을어필하면좋을것이라생각합니다. 원전사고의배상재판과동시에각지의원전재가동을멈추는운동과재판도하고있습니다. 저는일본의 55기원전중원전이가장많이모여있는곳이피난처인교토의옆에있는후쿠이현으로 16기가, 다음으로후쿠시마현으로 10기가있다는것조차사고전에는알지못했습니다. 원전이이렇게많이모여있는곳으로피난을왔으므로절대로재가동시키고싶지않지만, 유감스럽게도다카하마원전이재가동되었습니다. 작년 4월에같은후쿠이현의오오이원전의가동중단가처분이인정되었습니다. 재판장은 원전이멈추어많은금액의무역적자가났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19 다고해도, 이것을국부상실이라고는할수없다. 풍부한국토와거기에국민이뿌리를내리고생활하는것이국부라고할수있다 고단언하였습니다. 오오이원전은앞선노다수상이 모든책임은내가진다 며하지도못할일을국민에게선언하여재가동을추진하려던곳이었습니다. 모든책임을질수있을리없습니다. 왜냐하면우리들에대해어떤책임도지지않았기때문입니다. 단한가족에대해서도책임지지않는데, 한번사고가일어나버리면, 그피해는짐작조차할수없습니다. 도대체이일로부터왜배우려하지않는것일까. 사고는일어나버렸습니다. 지금도사고는계속되고있습니다. 원자로안이어떤상태가되어있는지는아무도모릅니다. 매일 320톤의오염수를배출하면서원자로를계속식히고, 방사성물질을다량포함한공기를깨끗한하늘로배출하고있습니다. 현장은지금도긴박한상황속에서다시한번폭발하지않도록하고있다는것입니다. 이것을그만두면또폭발할듯한상황이라는것입니다. 지금도여진이있습니다. 방사선물질은콘크리트와금속도부식시킵니다. 원자로와원자로건물도언제까지버틸지모릅니다. 도쿄전력에서 1년전에보내온자료에는 폐로를위해서는먼저, 폐로방법을검토하고, 기술개발준비에 20-30년이걸립니다. 사용이끝난연료를꺼내는데 10년이상이걸립니다. 녹아서굳어버린연료에관해서는예상도할수없습니다 라는설명이써있었습니다. 분명히말해서아직도예측을할수없다는것입니다. 제가살아있는동안에수습과폐로가이루어지지않는다는것입니다. 원전은그런것입니다, 핵은그런것입니다, 인간이감당할수없는것입니다. 이대로눈앞의이익에갇혀뒤처리를생각하지않고위험을무릅쓰면서까지돈을벌려는모습을아이들에게보여주기보다는, 목숨을소중히하여좋은일을선택할강인함과용기를가지고사는것. 부끄럽지않은, 변명하지않는삶을살고싶습니다. 이오년간우리가족은많은일을참고, 포기하고, 헤어지고, 잃었습니다. 지금부터의인생은겉모습뿐만이아닌희망과미래를위해서, 행복하다고느끼고, 행복하다고마음으로말할수있는, 우리서로와미래의아이들을소중히여기며살고싶습니다.
2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칸노한나의원고 우리가족은 2011년원전사고의영향으로교토로이사를왔습니다. 저는그때초등학교 2 학년이어서, 원전사고가무엇인지전혀몰랐습니다. 하지만한가지알고있었던것은방사능은무서운것인데, 눈에보이지않으며해로운것이라는것입니다. 우리가먹는소, 닭, 돼지등도방사능으로오염되고말았습니다. 하지만먹을수없다고해서죽일필요는없다고저는생각합니다. 희망의목장 이라는한그림책을읽었습니다. 그책에는소를키우는사람의실화가그려져있습니다. 나라에서는 방사능으로오염된소들을살처분하는것에동의해주십시오 라고하였지만그사람은동의하지않았습니다. 소들에게는죄가없습니다. 인간이보기에소들은먹으려고존재하는것이라고생각할수도있지만소들은살기위해존재하는것입니다. 인간만의생각으로죽이지말고, 소들에대해서도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살처분당한소들의주인은어쩔수없이동의한것이라고생각합니다. 무척가슴이아팠을것이라고생각합니다. 방사능은너무나무서운것입니다. 소뿐만이아니라맛있는쌀이나는논, 물고기가헤엄치는바다와강, 깨끗한공기등, 모든것이의미를잃었습니다. 방사능이있어서모두의고향이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조금씩남겨진소들을돌보는것을도와주는사람들도나타났습니다. 일본각지에서도움을주는사람들, 먹이와돈을기부해주는사람들도있었습니다. 그목장은언제부턴가 희망의목장 이라불리게되었다고합니다. 인간이사라진토지에몇백마리나되는소가살고있고, 듬뿍먹이를먹고기운차게돌아다니고있다. 이모습에 희망을느낀다 는사람도있다고합니다. 저도그렇게느낍니다. 팔리지않는소에게먹이를주며돈을들인다는것, 의미가없을지도모르지만, 이것이희망이되고있다. 그것만으로저는의미가있다고생각합니다. 이제부터세상을바꿔가는것은우리들입니다. 일부사람들의자기중심적사고방식으로세상이지배되고마는것은좋지않습니다. 우리가움직여서이러한일을모든이에게전하는것. 그것이우리가지금할수있는일이라고생각합니다. 떠올리는것도, 말하는것도괴롭지만, 원전사고가있었던것을절대로잊지않기위해서필요하리라생각합니다. 앞으로도소중한생명을지켜갈수있도록저도살아가고싶습니다. 저의이야기를마칩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 : 탈핵운동가 칸노치가게씨 모녀의 증언 21 <日 文 > 福島原電事故以後の日本ー脱核運動家管野千景母娘の証言ー 菅野千景 菅野 はんな*2) 皆さまはじめまして菅野千景といいます プロフィールにもありますように 私は福島県福島市で生まれて育ちました 福島で結婚して2人の娘が与えられ 夫と4人で幸せに穏やかに暮らしていました 2011年3月11日午後2時46分に地震が起きました 当時長女が小学6年生で次女が1年生でした そその日私は 娘達が通う小学校にいました 学年 末の先生との面談のためでした ちょうど私の番が来て先生と話している時に揺れが始まりました 私は子どもの時から何度も地 震を経験しましたが 今までに無いほどの揺れでした すぐに先生と一緒に校庭に避難しました プールの水が大きく波立って 校庭まで溢れてきまし た 一人で立っていることができずに ほかのお母さん達と支え合ってなんとか立っていました 大きな揺れが長く続きました 子ども達は校舎からなかなか出てきませんでした 少し揺れが治まった時 お母さん達と一緒に校舎の中に子どもを迎えに行きました 学校の中は花瓶や本が倒れ 天井も剥がれ落ちていました 子ども達は3階の講堂にいました グランドピアノのわきで先生のもとに集まり まるで親鳥の翼 に守られている小鳥のように泣いていました 私は娘を探しました 見ると泣いていませんでした 先生と一緒にお外に行ける と聞くと娘は うん とうなずいたので お母さんは後から行くか ら先に先生と行きなさい と言って外に避難させて 私はひとり残って自分のコートをふろしき代 わりに広げて 残っていた子ども達のコートを全部集めて抱えて校庭に出ました その日はとても寒い日でした 地震が起きると地響きがして雷が鳴り あられが降り吹雪になりま * 菅野 千景(kanno chikage) 福島県福島市に生まれる 夫と娘二人と2011年8月まで福島市で暮らす 2 011年3月11日震災に遭う 自宅は東京電力福島第一原発から約60km離れていたが 放射線量は室内 で0.7 1.2マイクロシーベルト 庭で2.0 6.0マイクロシーベルト 雨どいの下では10マイクロ シーベルト以上の放射線量を示していたために 放射能の影響を避けるために 同年の夏休みに子ども達と ゴー ゴー ワクワクキャンプ の保養に参加する 保養から一度福島に戻り 8月30日夫を福島に残し 母子で京都に避難する 2012年8月に夫の仕事が京都で見つかり家族そろって暮らせるようになる 菅野 はんな(kanno hanna) 福島県福島市に生まれる 震災に遭い 原発事故の影響を避けるために201 1年7歳のときに京都に避難する
2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した 子ども達にコートを着せて校庭の安全な場所に集めて お迎えに来てくれる家庭など それぞれ家に帰れるタイミングを待っていました 私は近所の子ども達を自分の車に乗せて帰りました 町の中は停電になり信号は全て消えていましたが 誰もが慎重に車を運転して ゆずりあって事故など起きることなく帰れました 家に着くと地震が起きてすぐに職場から学校に駆けつけてくれた夫が先に帰って着いて 家の中が酷い事になっているから靴を履いたまま入ってきて と言われました リビングに入ると食器棚から食器やグラスが落ちて床に突き刺さり 写真は倒れてもう足の踏み場がないほどぐちゃぐちゃでした 私の住んで居た地区はガスは止まりませんでしたが 電気は3 日間 水道は8 日間止まってしまいました 翌日は子ども達と給水車に並びました 水をもらうのに6 時間も待ちました その後子ども達を夫の母に預けて自宅の片付けに行きました その頃すでに東京電力の福島にある原子力発電所が大変な事故を起こしているとなど知りませんでした 私は自分の住んでいる県に原発があることは知っていました 事故や故障 プルサーマルの問題などしょっちゅうニュースになっていましたが 我が家は原発から 60kmも離れているのであまり関係はないと思っていました 無関心であったといえるでしょう 東電の原発は結果 4 基の原発が爆発してしまいました 原発事故が起きた直後は沢山の学者や専門家 コメンテーター ジャーナリストが出てきてそれぞれの事を言っていました シーベルト キュリー ベクレルなど今まで聞いたことのない言葉でした そして政府からは時間ごとに記者会見が行われて 毎回 ただちに健康被害はない 問題は無い 事故が収束するのは1 年くらいだ というような内容ばかりでした そして原爆が落とされた長崎と広島からは有識者やボランティアのお婆さん達がすぐに福島にやって来ました その方々は 心配することはない 大丈夫だ 原爆が落とされてもお婆ちゃん達はこんなに元気で長生きしています と言ってなぐさmwとぃました 何の根拠もないのに私達をただ安心させようとしていました 夫の義弟はアメリカ人です 彼は 早く福島を離れるよう にと言いました 何度もメールや電話がありました けれど私達にはガソリンは無いし 長女の卒業式を控えていたので動く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私はその時まで御用学者という学者がいる その存在を知りませんでした 人々の生活や命を守るのではなく 国家や一部の権力者の側に立つ学者が存在することなどまったく知りませんでした そして私は 専門家や国や県が言うのだから間違いない と どこかでその人達を信じたいと思っていました 正直に言うと 混乱する中で疑いながら信じ切ることができず でもわからないから心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23 配で不安でその人達に頼りたか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 そんな風にして私は政府や行政に翻弄させられながらも誰が本当の事を言ってくれるのか 知りたい気持ちはずっとありました 夫は時間をつくっては 放射能とそれに伴う健康被害についてなどの講演会や勉強会に参加してくれました その中で 学者や研究者でありながらご自分の地位や名誉やお金よりも 今の福島の現状や放射能のこと 放射能の汚染の状況や原発事故の状況 放射能から子ども達をまず守ることの大切さを教えてもらいました 彼らは核や原子力が素晴らしいエネルギーだと信じ 志をもって研究してきたけれど 知れば知るほどこれは人間と共存できない 人間の手に負えない恐ろしいものだと気づき 今すぐに原発などやめるべきだと思ったそうです 彼らは事故が起きる前に原発を止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をとても悔やんでいました 被害に遭った方々に本当に申し訳なく思います とお話の前に謝罪してくださいました 私達夫婦はこの方々は決してうそは言わないし 私達の立場で話してくれると確信しました 事故の後に年間被ばく量が変わりました 安全基準を1ミリシーベルトから 20ミリシーベルトに引き上げるとなったのです その委員をしていた東京大学の教授が 4 月に 子ども達をそのような基準において生活させることは私はできない と泣いて会見しました その会見を見てやっと私達夫婦は 今自分達の置かれている状況が子ども達を育てる環境にはふさわしくないのだと知りました そして放射能の汚染の少ない所に避難することを考えました 北海道から沖縄まで日本の端から端まで探しました 休みの日には車を走らせ借り上げ住宅の下見に行きました しかしなかなか決められませんでした そこで避難の前に夏休みの間汚染の少ない場所へ保養に行くことにしました 京都の精華大学の卒業生と在校生が始めてくれた ゴー! ゴー! ワクワクキャンプ という保養キャンプです 保養というのは 放射線量の高い所に暮らす人々が放射線量の低い所である程度の間過ごすことにより 放射線で傷つけられた体が回復するという効果を得ることです チェルノブイリの事故後 ベラルーシでは国策として事故後 30 年間ずっと行われています 京都は我が家から700kmほど離れたところにあります 福島では真夏の暑い時期も被ばくを避けるために長袖に長い靴下 マスク姿で登下校など外出していました 学校では窓も開けられずエアコンも無いので 教育委員会からは 1つの教室に扇風機 4 台が配られました 暑い教室の中でただ熱風をまわしているだけでした そして子ども達は外で遊ぶ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 6 月になると放射能の汚染のひどい学校か
24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ら順に 校舎の外壁の洗浄や校庭の表土を削る いわゆる 除染 が始まりました しかし除染をしてもまだ窓を開ける時間や外遊びは制限されていました 娘たちは保養で京都へ来てからは マスクも取り夏らしい服装でおもいっきり外で遊びました 草や葉っぱや樹木に触れ 水遊びをして保養に参加した子ども達は皆とっても活き活きとしていました 私は子ども達の様子を見て これが本来あるべき子どもの姿だ と思いました 私自身も福島にいた時は産地の偽装などもある中 毎日の食事を作るのも 汚染してない食材を探し 本当に安心して食べることができるのかという不安を抱えながら食事を作っていました いくら晴れていても洗濯物は室内に干し 換気ができないので家の中も少しかび臭くなる不快感がありました そのような暮らしにとても息苦しさを感じていました 京都へ来て私は原発事故後はじめて深呼吸ができました それと同時に福島の環境が当たり前でではないと確信しました 食材は安全農産供給センターなどから届けられた 無農薬有機野菜など 安心できておいしい食材を使った食事をいただきました 半月ほど京都で過ごしキャンプの後半には夫も福島から来て合流しました 保養を終えて福島に帰る電車の中で 私達は 京都へ避難するのはちょっと遠いからできないかな と話していました 何度も余震が続き原発もまた爆発す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心配もあり 収束などしていない状況の中 福島で暮らすことに対して大きな不安がありました 子ども達が心身ともに健康に成長するには厳しさを感じ やはり京都へ避難することを決意して 8 月末に二人の娘を連れて京都へ来ました 夫は仕事を辞めるわけにいかず 福島に残りました 引っ越しの荷づくりをする時にも 子ども達を連れて福島を離れる時にも 私達はどれ程泣いたか分かりません 避難してから夫は毎月京都へ会いに来てくれました お父さんが会いに来てくれるのを子ども達と一緒にとっても楽しみにしていました 毎日電話で話していてもやはり顔と顔をあわせて話すことはまったく違います 限られた時間と我が家の経済から 夫とはいつも 10 時間以上かけて夜行バスで往復してくれました ところが2012 年になった頃に夫は会いに来るのが辛いと言い出しました 子ども達もお父さんと会いたいといつも会うのを楽しみにしていたけれど 会いに来てくれるのが辛いと言い出しました それは会える喜びよりも別れる寂しさの方が苦しくなったからでした 私達はそんな時いつも 避難することは間違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 とか 福島にいたらこんな苦しみを味わうことも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 と何度も何度も自問自答しました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25 1 年後 2012 年 8 月に夫の仕事が京都で見つかり 夫も京都に引っ越して来ることができました やっと家族そろって暮ら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けれど我が家の収入は半分以下に減り 知らない土地での仕事は夫にとって非常に辛いことでした 今年で事故から6 年目を迎えます 福島の子ども達の健康被害は深刻な状況になっていると私は思います 甲状腺癌だけでも150 人を超えてしまいました その内悪性と診断されて手術した子ども達は100 人以上になりました 癌が甲状腺からほかの場所に転移してしまった子ども達もいます 甲状腺癌だけではありません 子どももおとなも心筋梗塞や白血病をおこす人が増えてしまいました 私達夫婦の知り合いや同級生も何人か亡くなりました 夫も昨年は両目とも白内障になり手術しました 福島で暮らす子ども達は外で遊ぶことができず運動量が減ってしまい 肥満の子ども達が増えてしまい 授業中も落ち着きがなかったり すぐにイライラする子ども達も増えてしまいました 国や県はそのような子ども達の健康被害に関して 事故後因果関係など一切認めません それは因果関係が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 調べることもせず 放射能の影響であることと認めない事にしようと2012 年秋に 福島県民健康管理調査委員会 で話し合って決めたからなのです 原発から20km 圏内の市町村と飯舘村は強制的に避難させられてしまう 避難区域 に指定されてしまいました いつ帰って来れるのか告げられる事もなく避難を強いられました 我が家は避難区域外です もちろん毎月の補償もありません 国や行政からは 住んでいて大丈夫なのに 勝手に心配して勝手に出て行ったのでしょう と言われる扱いです 昨年のワシントンポスト紙には 唯一の被爆国として世界に核廃絶を訴えてきた日本が狭い国土に55 基の原発を林立させた核大国になっていた と異常さを指摘し 自分たちが落とされた原爆の何千何万発分にも相当する核物質を原子炉に保有しているのに危機管理ができていない 政府が情報を隠蔽し続けてきた結果である ととても厳しく的確に批判されています とても情けない事です 恥ずかしいです 原発事故のせいで家族や友人 地域のコミュニティーが大きく破壊されてしまいました 一番残念なのは 子ども達を守る為に夫婦で話し合うが お互いに理解しあえず 離婚してしまう夫婦がいることです 子ども達を守ろうという思いからなのに必ずしも子どもを守ることができない けれどこの事もその夫婦が悪いのではないと思うのです この5 年の間 避難する人 避難しないと決めた人 避難したくてもできない人が 福島を捨てた とか 福島を捨てられない とか 逃げた 逃げない という言葉を聞きます どれも本心ではないと思います 私も福島を捨てたなどと思っていません 福島から逃げ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 放射能の汚染から逃げたのです
2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傷つけ合わなくてよい者同士が傷つけ合ってしまうのは 東電と国が自分達のしたことの悪をしっかり認識し 被害に遭ったすべての人々に形式だけでなく 心からの謝罪を今もまだしていないからだと思います 原発は国が推進しています 原発を作る為に貧しい漁村にお金をばら撒き 言葉巧みに人の心をお金で惑わします その当時にお金をもらった人は自分たちの町が東京のように栄えると思ったそうです しかし貧しい町はどれ程栄えたかといえば そんなに豊かにな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 それどころか勝手に原発立地候補にあげられてしまっただけで 慎ましくもなかよく幸せに暮らしていた人々は分断させられてしまうことになります お金で買えないとっても大切なものが壊されてしまう 原発とは核とはそのようなものだと まったく無知だった私は恥ずかしながらこの年になって知りました 福島原発という名称だけが広がってしまっていますが あれは東京の方で使う電気であり東京電力のものなのです 福島ではいっさい使われていません このような原発事故の二次被害 三次被害を我が家は絶対に避けたかった だから福島と京都と離れていても お互いに心配をかけないようになどと考えない事 嬉しい事はもちろんだけど 悲しい事も辛い事も何でも話そうと決めました 私達は弱い人間です こんな大きな困難など担いきれるはずなどありません 夫のいない家庭 日常ではない日常 離れている距離を縮めるためにも家族で何でも話すことは 心に余裕のない避難生活をおくるために大切な事でした そして何よりもまずは 何の責任もないのに困難な生活を強いられた子ども達の気持ちが落ち着くようにすることです 昨年末時点で 避難者は約 15 万人います 京都には多かった時で約 800 人 現在では約 500 人います 政治家の中には 原発事故で死んだ人はひとりもいない といまだに言っている人がいます そんなことは決してありません 事故後避難指示が出された地域には一人暮らしの老人もいました 障害があり事故を知らない人 動けず助けを待っていた人もいました そして避難指示が出た地区には大きな病院もありました ライフラインが途絶えた中で助けに来てもらえず その病院の入院患者だけでも60 人もの方々はそのまま亡くなっています 津波や家屋の倒壊により身動きの取れなくなった方々はそのまま置き去りにされ 機動隊や警察 消防隊員や自衛隊なども撤収させられてしまいましたからそのまま見殺しにされたのです 捜索が再開したのは1か月経った4 月なかばでした そのような事実は絶対に大きなニュースにはなりません すべて情報操作され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だから大切な尊い命がそのように奪われた事実を いまだに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の人が知らないでいます 正しくは知ろうとしていないのだと私は思います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27 病人だから 老人だから 障害があったとしても軽んじられる命などはひとつもありません また 今この時間も事故の起きた原発で被ばくしながら命を懸けて 過酷な状況の中で作業をしている多くの労働者がいることも忘れてはいけません 更に今でも自殺者が絶えません お爺さんお婆さん お父さんお母さん 息子や娘夫婦 子ども達と 4 代で暮らしていた家族も少なくありません しかし避難先の仮設住宅は狭いため家族が皆離れ離れで暮らすことになり 生きる張り合いを失い 認知症になってしまったり 孤独のあまり亡くなる人々が多くいます そんな時行政はなにをしてくれるかと言うと 悩みを抱えた人の相談員を何百万もかけて増員することです 一日も早くもとのように家族が一緒に暮らせるように調えてくれるわけではないのです 東日本では 復興 というこの二文字に湧きだっています 復興予算を使って有名な歌手やスポーツ選手やアーティストを連れてきてイベントをします そして活気が出て復興の起爆剤になったと喜んでいます その時だけの花火のような催しで復興するわけはありません それよりも原発 核 放射能によって奪われたすべてのもの 自由 夢 未来へつながるすべて 家族 動物 豊かな自然 食物 仕事 愛し合うこと すべての命 たくさんの事が壊されました それは一瞬に起きて 長い長い時間をかけて壊し続けていること もう二度と戻らないたくさんのたいせつなものもをこれ以上失う方のないように 守り育んでいくこと 本当の復興はすべてをもと通りにすることだと思います できないのならその重みを知るべきだと思います 東電は昨年までに2 年連続で5210 億円の純利益を計上しています もう一度言います 東電は事故を起こしているのにもかかわらず5210 億円も儲けているのです 社員は失業することなく 給料も支払われてボーナスも貰い 何一つ変わらない生活をしているのです この事実をどう考えますか? 我が家は保養や避難 夫と離れて暮らしていた1 年間の交通費や二重生活になってしまったために必要になった生活道具 自宅は一昨年に売却してしまいましたが 避難して住んでいなかった間に支払い続けた税金とローン そして受ける必要のなかった精神的な苦痛など実際に出た損失を認めてもらうためにADR( 原子力損害賠償紛争解決センター ) に請求しました 請求は跳ね返されました 次にまだ子ども達を守る為に避難する状況にあることの証拠の提出が求められました 福島の自宅の内外と通学していた学校など生活圏の汚染の状況など放射線量を測定して提出しました しかしまた避難する必要のない場所からの避難なので一切支払う事はできないという回答がきました 次にもう一度同じ回答が来たので 間違っている認識に対する説明と反論を提出したところ やっと東電は和解案を出してきました その金額は請求額の約 5% でした
28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福島県も2012 年から3 回にわたり原発事故が起きたために生じた損害を東電に請求したところ約 40% 程の支払いを受けています 東電はこれだけの事故を起していながら 自分たちも被害者だということをいっています 責任など感じていないのです 東電の原発は現在 1 基も稼働していません 被害に遭った方々に形ばかりのわずかな賠償をしてそれでも利益が出るとはどういうことなのでしょうか 電力会社は原発を稼働させないと電気が足りなくなり電気料金も上がると言って私達の不安をあおります 我が家は京都に避難している方々 175 名で東電と国を相手に集団訴訟を起こしています それはこの事故は防げることができたにもかかわらず 費用がかかるからとその対策を何年も先送りしていた事の責任 避難の正当性と精神的苦痛に対しての賠償を求めています 国会事故調査委員会は 2012 年 7 月に この事故は人災である と正式に発表しています 東電の原発事故は地震と津波により電源が喪失し起きたと言われていますが そうではないのです 防ぐことはできたのです 福島県内での避難 そして全国各地に避難を強いられている方々がそれぞれの地で裁判を起こしています 今裁判を起こしている原告同士 裁判担当する弁護団も皆で情報を共有さながら励まし合いながら 闘うために繋がっていくうごきになりました 我が家はADRで回収できない損失は裁判で訴えていき賠償させるしかないと弁護士から言われましたが 個人で闘うには経済的に時間的に精神的にとても難しいと実感しあきらめようとしましたので 同じ思いの被害者で闘えることは心強いです 今までも薬害 公害など国や大企業を相手にした裁判は何十年も闘っているケースが多いです 裁判をしようと決めた時に 国を相手に闘うなんて無駄だ と言う人もいました 何が無駄なのでしょうか? 悪い事をしたものに責任を認めさせ謝罪させることは当たり前の事です 毎回裁判では被告である東電と国の弁護士や代理人は退屈そうに居眠りしている者もいます 無責任のあらわれです 私達原告と弁護団は事故の責任を認めさせ 心からの謝罪を求めるだけにとどまらず すべての原発をなくして二度と事故など起きないことまで望んでいます 日本には 原子力安全委員会 というのがありましたが 事故後の2012 年の9 月に 原子力規制委員会 と名前を変えました この事からも原子力の安全神話が崩れた証拠だと思っています 安全な原発など世界中どこにもありません 2020 年にオリンピックが日本で行わ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界に向けて自信をもって嘘をつきました その後すぐに汚染水を海へ流し続けていた事を隠していたと東電が発表しました 規制委員会もこれには呆れていました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29 地元からは汚染水がこれ以上漏れないように対策をとり 管理をしっかりやることと 情報を隠す体質を速やかに改善するように抗議し強く求めました けれど安倍首相は汚染水が実際は漏れていたと謝罪も発言の撤回もありませんでした 前の野田首相は2011 年の12 月に突然 原発事故収束宣言をしました 何を根拠に発表したのかわかりませんが 案の定世界中からは収束していな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質問や意見が寄せられました 最もだと思います そしてその時も発言に対する撤回も謝罪もありませんでした けれど 汚染の詳しい状況や健康被害の実態についておりのまま本当の事を言った人に対しての反発や批判は酷いものです 立証されていないのに因果関係はない 問題は無い 心配はないと言い張る無責任な言葉は正当化される違和感は今もずっと続いています 私達は事故直後からずっとだまされ嘘をつかれています 私達はたとえ事実が受け入れがたい事だとしても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し 知る権利があります そして自分で判断して選択する権利があります 昨年 5 月に福島に帰った時にタクシーに乗った時のことです 運転手さんとお天気や地元の山の話などいろいろ話しました その方の住んでいる所は市内でも放射線量の高い地区でした ご自分のお子さんとお孫さんは比較的放射線量の低い地区へ引越しさせたと言っていました 私は それは良かったですね でもこういう話をもっと気兼ねなくこんな風にお話できる雰囲気に福島がなるといいですね と言うと 本当にその通りだ おかしいよね と言っていました 福島では事故後から今も汚染について 避難について 原発について心配や不安な事などなかなか本音で話せない空気があります 皆がそれぞれ抱えている困難の為にもういっぱいいっぱいなのです 自分の家族を守ることでいっぱいいっぱいなのです 声を上げられずにいるのです 私は県外に避難しましたが 避難していない人々との間にこれ以上の溝や境目を作らずすべてを乗り越えるために理解し合い 支え合うことが本当に必要なのだと感じます 狭い日本でまた原発事故が起きてしまったら 間違いなく安心して住める土地や食べ物が無くなってしまいます それなのに約 2 年間日本のすべての原発が止まっていて何の問題もなっかたのですが 国と電力会社は原発の再稼働をすすめてしまい 私達の反対の声も聞かず昨年 8 月に九州電力で鹿児島の原発が再稼働してしまいました 更に先月末には関西電力で福井の原発が再稼働してしまいました 原発事故が起きてもまだ原発をどうして動かそうとするのか? 国民の半分以上が原発再稼働に反対しています 安全に取り扱う基準などないのです 原子力は核なのです 関西電力も東電の原発事故を起したものと同じものを扱かっているというその自覚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でした 万が一あってはならない事故が起きてしまった時の避難する計画もで
3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きていません そして使用済み核燃料の処理については何一つ決まっていません 今まで使用した日本中の核のゴミも含めて更にゴミを増やすことについて何にも考えていませんでした 空間の放射線量を減らすために福島の除染作業はこの 5 年間ずっと続けられています その作業ででた汚染物質は黒いフレキシブルコンテナバックというものに詰め込まれ美しい山林や道のわき 住宅地の空き地 学校や公園の一画などに積み置かれています 仮に置いているという説明ですが いつどこへ処分するのかなど何も決まっていません その中からは放射線が出続けているのです 除染と言っても撒き散らされてしまった放射能を集めて取り除くことなど無理なのです すべての樹木も伐採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福島では帰還政策といって県外に避難している人々を県内に帰らせる施策が盛んに行われています 借り上げ住宅の住宅支援は来年 3 月に打ち切られます 退去を強いられた人々は引越し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当たり前ですが引越し費用がかかります もしも福島に帰ってくるのであれば引っ越し費用を一定額福島県が負担してくれます しかし福島にはまだ帰る状況ではないと感じている家族や 子ども達の学校や親の仕事の関係で そのまま避難先で別の住宅に移り住む方も多くいます そのような家庭には一切引越し費用が出ません そして避難区域に指定している所をどんどん解除しています 放射線量が下がったというのです その基準は年間被ばく量 20ミリシーベルトと事故後に引き上げられた数値です 事故前は年間 1 ミリシーベルトでした 20 倍も引き上げられたままですが帰そうとしています 避難区域に住んでいた方は山間の集落に代々の家を持っている方も少なくありません しかし昨年末に住宅は除染するけれども 山林は除染しないと福島県は決定しました そんな矛盾の中でいくら我が家に帰りたいと思っていても安心して帰れるわけがありません 自然災害などなら災害救助法に基づき帰還する目途は立てられるでしょう けれど原子力災害は目には見えませんが 放射能の影響が消えるまでには核種により何百年何千年もの年数がかかるのです 国は2020 年までにはできるだけ避難者と言われる人々をなくしたい 原発事故が完全に収束したと世界に発信したい なぜならオリンピックがあるからです それと日本の原子力技術の水準は高いのだとアピールしたいのです なぜなら原発を外国に売って儲けたいからです 安倍首相は大きな企業がまず儲けてそこが潤ったらそこからこぼれ落ちたものが一般の家庭に行き日本の経済の景気が良くなるという 極めて国民をバカにした考えをもって政治をしているのです原子力技術を誇りたいなら原発事故にもっとまじめにとり取り組んで 高い技術をアピールして欲しいものだと思います 原発事故の賠償裁判と同時に 各地の原発の再稼働を止める運動や裁判も行われています 私は55 基ある日本の原発が一番多く集まっているのが避難先の京都の隣の福井県で 16 基 次に福島県で10 基 そんな事すら事故前は知りませんでした
후쿠시마원전사고이후의일본 : 탈핵운동가칸노치가게씨모녀의증언 31 原発がこんなに多く集まる所に避難したので 絶対に再稼働などさせたくないとおもっていましたが 残念なことに高浜原発が再稼働してしまいました 昨年 4 月に同じ福井の大飯原発の差し止め仮処分が認められました 裁判長は 原発が止まり多額の貿易赤字が出たとしても これを国富の喪失とは言えない 豊かな国土とそこに国民が根を下ろして生活することが国富と言える と言い切っした 大飯原発は前の野田首相が 全責任は私がとる とできもしない事を国民に宣言し再稼働をすすめようとしたものでした 全責任などとれるはずなどありません 何故なら私達は何の責任もとってもらってないからです たったひとつの家庭に対する責任もとれないのに 一度事故を起してしまったら その被害は図りしれません どうしてそこから学ぼうとしないのか 事故は起きてしまったのです 今も事故は継続中です 原子炉内がどのような状態になっているのか誰もわかりません 毎日 320トンの汚染水を出しながら原子炉を冷やし続けて また爆発しないように窒素ガスを注入し続け 放射性物質を多く含んだ空気を綺麗な空へ排出しています 現場は今も緊迫した状況の中でもう一度爆発しないようにしているのです それをやめたらまた爆発するような状態なのです 今も余震があります 放射性物質はコンクリートも金属も腐食させてゆきます 原子炉や建屋はいつまでもつかわかりません 東電から1 年前に届いた資料には廃炉にするにはまず 廃炉の方法を検討し技術開発の準備に 20~30 年かかります 使用済み燃料の取り出しに10 年以上かかります 溶けて固まった燃料に関しては見当がつきません という説明が書いてありました はっきり言って未だに見通しがつ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 私が生きている間に収束 廃炉に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原発はそういうものです 核はそういうものです 人の手には負えないのです このまま目先の儲けに囚われ後始末を考えずに 危険を冒してまでお金を得ようとする姿を子ども達に見せるより 命を大切にして良い事を選ぶ強さや勇気をもって生きること 恥ずかしくない 言い訳のしない生き方をしたいです この5 年私たち家族は 沢山の事を我慢し あきらめて お別れして 失ってきました これからの人生は上辺だけでない希望や未来のために 幸せだと感じて幸せだと心から言える お互いのことや未来の子どもたちを大切にして生きてゆきたいと思います
3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管野はんな原稿 私達家族は 2011 年の原発事故の影響で京都に引っ越してきました 私はそのころ小学 2 年生だったので原発事故が何なのかなど全くわかりませんでした でも 一つ知っていたのは放射能はこわいもので目に見えなくて害のあるものだと言うことです 私達が食べる牛 にわとり ぶたなども放射能で汚染されてしまいました しかし 食べられないからと言って殺す必要は無いと私は思います 希望の牧場 と言う一冊の絵本を読みました その本には牛飼いの人の実話が描かれています その方は国から 放射能で汚染された牛たちの殺処分に同意してください と言われましたが 同意しませんでした 牛たちに罪はありません 人間からみたら牛たちは食べるために存在するという考え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 牛たちは生きるために存在しているのです 人間だけの考えで殺すのではなく牛たちの事も考えてみましょう 今まで殺処分されてきた牛たちの飼い主はしょうがなく同意したんだと思います とても胸が苦しかったと思います 放射能はとてもおそろしいものです 牛だけではなく おいしいお米がとれる田んぼ 魚の泳ぐ海や川 きれいな空気など すべてが意味をなくしました 放射能があるだけみんなの故郷が消えました しかし 少しずつ残された牛たちのお世話に協力してくれる人たちもあらわれました 日本各地から 手伝ってくれる人やエサやお金を寄付してくれる人もありました その牧場はいつしか 希望の牧場 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そうです 人間が消えた土地に何百頭もの牛が生きている もりもりエサを食べて元気に動き回っている その姿に 希望を感じる という人もいるそうです 私もそう感じます 売れない牛にエサをやってお金がかかる 意味はないかもしれないけれど それが希望になっている それだけで私は意味があると考えます これからの世の中を変えていくのは私達です 一部の人間の自己中心的な考え方で世の中が支配されてしまうのは良くありません 私達が動いてこのようなことをみんなに伝える それが私達の今できることなのだと思います 思い出したり 話したりするのはつらいけど 原発事故があったことを絶対に忘れないためにひつようなのかなと思います これからも大切な命を守っていけるように私も生きていきたいです 私の話を終わります
주제발표 1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김용휘 토론 : 조성환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김영주 토론 : 김승남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김동환 토론 : 신운용 통일교경전에나타난마음챙김의요소와치유 이재영 토론 : 문선영 현대병든사회의치유와통합을위한원불교적접근 : 삼학 ( 三學 ) 의 정신수양 ( 精神修養 ) 과 사요 ( 四要 ) 의활용 염승준토론 : 원영상
< 제 1 주제발표 >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김용휘 한양대학교 Ⅰ. 신음하는헬조선 < 무장포고문 > 지금신하가된자들은나라에보답하려는생각을아니하고한갓작록과지위를도둑질하여임금의총명을가리고아부를일삼아충성스런선비의간언을요사스런말이라하고정직한사람을비도 ( 匪徒 ) 라한다. 그리하여안으로는나라를돕는인재가없고바깥으로는백성을갈취하는벼슬아치만이득실거린다. 인민의마음은날로더욱비틀어져서들어와서는생업을즐길수없고나와서는몸을보존할대책이없도다. 학정은날로더해지고원성은줄을이었다. 군신의의리와부자의윤리와상하의구분이드디어남김없이무너져내렸다. 관자가말하길 사유 ( 四維 ; 예의염치 ) 가베풀어지지않으면나라가곧멸망한다. 고하였다. 바야흐로지금의형세는예전보다더욱심하다. 위로는공경대부 ( 公卿大夫 ) 이하, 아래로는방백수령 ( 方伯守令 ) 에이르기까지국가의위태로움은생각지아니하고거의자기몸을살찌우고집을윤택하게하는계책만을몰두하여벼슬아치를뽑는문을재물모으는길로만들고과거보는장소를사고파는장터로만들고있다. 그래서허다한재물이나뇌물이국고에들어가지않고도리어사사로운창고를채운다. 나라에는부채가쌓여있는데도갚으려는생각은아니하고교만과사치와음탕과안일로나날을지새워두려움과거리낌이없어서온나라는어육이되고만백성은도탄에빠졌다. 진실로수령들의탐학때문이다. 어찌백성이곤궁치않으랴. 백성은나라의근본이다. 근본이깎이면나라가잔약해지는것은뻔한일이다. 그런데도보국안민 ( 輔國安民 ) 의계책은염두에두지않고바깥으로는고향집을화려하게지어제살길에만골몰하면서녹위만을도둑질하니어찌옳게되겠는가? 121년전동학혁명의정신을선언한무장포고문을읽고있노라면마치지금의대한민국을비판하고있는듯한착각마저들게한다. 외세의침탈과중앙정부의무능, 지방수령들의수탈과학정에대응해일어났던거국적인민 ( 民 ) 의저항이있은지두갑자가지났지만사정은그때와크게다르지않은것같다. 세월호참사에서극명하게드러났듯이 우리사회는미
36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친 탐욕과 아픈 절규로 응고된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는 1) 듯하다. 세상은 여전히 탐욕스런 소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더 다양한 방식의 차별과 편견은 여전하다. 모든 영역에서 사람보다 돈이, 생명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더 심화되고 있다. 그 사이 에서 서민들의 생존은 절벽 위로 내몰리고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 등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포 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작금의 대한민국을 헬조선 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굶주리는 청년 들, 3포를 넘어 7포 세대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 해고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 아파트 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하는 집단 자살, 고독사, 파지줍는 노인들. 이것 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분열되어, 여전히 민을 향하지 않고 당리 당략과 정권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고, 관료들은 제 배만 불리고 있다. 국민들도 좌우, 빈부, 지역, 세대, 남녀로 분열되어 서로를 할퀴고만 있다. 157년전 수운은 당시를 괴질운수라고 하였다. 해월 역시 지금 세상은 산천도 편안치 못하 고 나는 새, 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다 2)고 하면서 세상이 한번 바뀔 때가 되었다고 역설했 다. 과연 그 때에 비하면 세상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뒤바뀌긴 했다.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첨 단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론 참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억압과 착취,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에 의해 자국민들에게 자행된 국가적 폭력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에서의 진압과 학살에서부터 한국 전쟁 중 의 민간인 학살, 4.3항쟁, 유신시절의 국가적 폭력, 가깝게는 광주항쟁까지. 최근의 세월호 사건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깊게 병들어 신음하는 생명의 외마디 외침이었다.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민족에겐 미래 가 없다고 했다. 이제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과 작은 생명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때이 다. 그 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Ⅱ. 분단체제와 분열 현재 한국사회의 수많은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한두가지로 정리하긴 힘들다. 정치는 과거 로 퇴행하고 있고, 경제민주화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복지는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은 부자들의 배만 불리고 있을 뿐 수많은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들을 양산하면서 서민들의 삶을 나락에 빠뜨리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문제는 단순 히 정치적 문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데 문제의 복잡성과 해법의 어려움이 있다. 1) 백무산,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 이영광의 추천사 중에서. 2) 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37 신자유주의의시장만능은수많은사회적약자들의삶을고통에빠뜨려헬조선을만들고, 대한민국을돈이지배하는사회로만든것도사실이지만, 이바탕에는수많은봉건적유산과모든영역을지배하고있는공고한관료적카르텔, 공평하지도공정하지도않은사회시스템, 미완의정치민주화, 성숙하지못한시민의식도한몫하고있다. 이런정치적민주화와시민의식의미성숙은여전히자유주의적사고를필요로하고있다. 또한우리사회는모든영역에서반생명적인문화가확산되고있다. 아이를출산하는데서부터보육, 교육, 농업, 의료, 노동, 환경, 먹거리, 에너지등모든영역에서사람과생명을존중하기보다는과학이란이름으로관리 통제, 획일화하고파괴하고있다. 문제가더심각한것은이모든분야가돈벌이의수단이되어버렸다는사실이다. 우리사회의반생명적인문화의이면에는두가지문제가이중적으로굴절되어있다. 하나는물질과정신을둘로보며, 눈에보이는것만인정하고세계를고립된입자들에의해구성된기계론적사유로보는서양근대학문의폐해이고, 다른하나는모든영역이자본에포획된문제이다. 게다가일제강점기가낳은후유증도계속되고있다. 여전히친일청산도못하고있다. 오히려친일했던사람들과그후손들이더떵떵거리고잘살고있다. 또한그때부터형성된정경유착과재벌위주의정책들은여전히한국경제의근본적모순으로자리하고있다. 분단과한국전쟁이일어난근본적원인도거슬러올라가면일본의식민통치의후폭풍이라고할수있다. 이는 20세기수많은내전이식민통치를받은나라에서일어났다는사실이뒤받침해준다. 보다근원적인문제는분단체제가야기한문제점이다. 지금우리사회의많은갈등은분단체제로인해비롯된것이많다. 진보와보수의이념적갈등은물론, 세대갈등도일정부분분단으로야기된측면이있다. 정치도종종정책대결보단이념대결로가버린다. 심지어경제적평등의주장, 양극화해소같은의제들조차종북적사고로매도되기도한다. 분단은우리의정신도반쪽으로만들어사고의경직성을초래해왔다. 배제와이분법적사고를무의식적으로강요당함으로써다양한상상력, 창의적이고통합적사고를차단해왔다. 남남갈등의많은부분이분단체제와그것을악용하는세력에의해조장된측면도있다. 요컨대정치적분열과부재, 불공정한사회시스템, 신자유주의의시장만능, 일제강점과남북분단으로인한갈등과분열이사회통합을가로막고있다. 어떤면에선남북갈등보다남남갈등이더크다고할수있다. 이분법적사고, 분리와배제의이야기, 닫힌사고, 불안과공포, 미움과불신, 분노사회. 최근의일베현상은마음의폐쇄성과생존본능의두려움만남은 1차원적인간의전체주의적정신병이라고할수있다. 이런분열과갈등, 분단을넘어사회통합과바람직한통일한국을만들어나가야한다. 이제분리의이야기를넘어치유와통합을이야기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먼저역사적으로치유되지못한상처들을확인하고치유하는작업이선행되어야한다.
38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Ⅲ. 동학 운동에서의 상처와 아픔 1. 동학농민혁명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조선 최대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명확한 이념과 사상 을 가지고 전국적인 규모로 최소 100만명 이상이 참가하여 1년 이상 전개되었으며 약 30만 명이 희생된 이런 혁명은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다.3)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청일전 쟁이 발발하고 이에 승리한 일본이 제국주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으니, 이 동학혁명은 동아시아적 사건이며, 세계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조정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하기까지 하여 외국에 운항권, 어채권, 광산개발권 등 이권을 팔아 착복하였고, 외세를 등에 업고 오직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매관매직으로 벼슬을 팔아 뇌물을 챙겼기 때문에,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지방수령들은 관의 재산을 착복하거나 백성들에 대해 온갖 구실로 수탈을 일삼았다. 착취와 학정으로 견딜 수 없게 된 백성들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당시의 대내외적 모순에 대한 민(民)의 생존적 울 부짖음이었으며, 불의하고 무능한 권력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이었으며 외세에 굴종하는 정부 와 벼슬아치에 대해 목숨으로 민족적 자존을 지킨 항거였다. 또한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 어 현실의 모순과 불평등을 개혁하자는 자발적이고 근대적인 민중운동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일본의 신식무기에 좌절되고, 동학농민군은 무참하게 학살되었다. 일본군의 치밀한 전략과 무자비한 학살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지경이지만, 더 가슴아픈 사실은 조 선 정부에 의한 정벌과 학살, 그리고 유림과 민보군 같이 같은 민간인에 의해 자국민들끼리 폭력이 행사되었다는 점이다. 동학혁명농민군은 의(義)를 들어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치유될 길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 다. 희생된 사람만 약 30만 명이고, 살아남은 사람도 동학군 토벌을 위해 각도에 보내진 토 포사에게 다시 잡혀 대부분 학살당하거나 그 이전에 동학군에 의해 피해를 본 동네사람들에 의해 몽둥이로 맞아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그 가족들도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구타를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동네에서 쫓겨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혁명의 실 패는 다른 지방에서도 물론이겠지만 특히 전라도 농민과 동학교도에게 엄청난 휴유증을 남겼 다. 이때의 상황이 얼마나 혹심했는지 이후의 전라도 땅에서는 집안 망한다고 동학의 동 자 도 못 꺼내게 했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혁명이 끝난후 어떤 사죄도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의 혼란과 외세에 의해 3) 박맹수,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모시는사람들, 2011.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39 기울어가는나라를바로세우고, 지방수령들의학정에못견뎌일어난백성들의울부짖음을조정은오히려외세를끌어들이고자국군과민보군까지동원해서무참히짓밟았으며, 이후어떤사죄와보상도하지않았다. 110년이지난 2004년에와서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이제정되어일부명단이파악된분들에대해명예회복과보상이이루어졌지만, 아직도희생자의전체명단조차파악하지못하고있는실정이다. 일본군의만행과학살에대해서는말할것도없다. 공식적으로는어떤사죄도없는현실이다. 한국정부조차이문제에대해깊은인식이없다. 다만민간에서의교류와화해의노력이일부양심적지식인과시민들을중심으로이어져오고있다. 충격적인사실은안중근같은우국지사도그의아버지와함께의병을모아서동학군을토벌했다는사실이다. 이는국가의주체를정부로보느냐, 민중으로보느냐의차이일수도있고, 가치적으로보면의 ( 義 ) 와충 ( 忠 ) 의대결이기도하다. 이런가치관과국가관의차이가오늘날에도진보와보수의차이를낳는게아닌가싶기도하다. 그렇다면어떤지혜로이런차이와분열을통합할수있을것인가? 2. 3.1 운동 3 1운동은제국주의적탐욕과군사적폭력에맞서세계최초로일으킨거족적인독립운동이었으며대중적인민주운동이자비폭력평화운동이었다. 또한지역과신분, 종교와정파, 이념과신앙, 남녀노소의차이를넘어서온민족이하나로일어난대통합운동이었다. 이는신분과특권과낡은전통과굴레를깨뜨리고자유와평등을실현한민주혁명이었다는점에서사실상 3 1혁명이라고불리워야할사건이었다. 4) 3 1운동은 3월 1일을시작으로약 3개월간이어졌으며, 해외에까지전파되어약 1년간지속되었다. 참여인원은최소 50만에서 202만명정도로추산한다. 조선총독부의공식기록에의하면집회인수가 106만여명, 사망자 7,509명, 구속된자 4만 7천명으로당시인구의 6.31% 가만세시위에참여한것으로나와있다. 특히천도교는 3.1운동으로인해너무도큰희생을치렀다. 의암 ( 손병희 ) 과춘암 ( 박인호 ) 을비롯한교회간부들이대부분투옥되고전국각지방에서체포된교인들이수천명에달했다. 교회재산도거의압수당했으며자유로운교회활동조차제한받았다. 독립선언서를인쇄한보성사는 6월 28일일제의방화로전소되었다. 또한천도교가운영하던보성학원 ( 현고려대전신 ) 과동덕여학교도결국재정난으로 1923년경영권을넘겨주게되었다. 이과정에서의암이거주하던상춘원 ( 부지 10,165) 를비롯천도교재산의상당부분이넘어갔다. 게다가손병희는 4) 박재순, 삼일운동의정신과철학, 홍성사, 2015. 6~7 쪽.
4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극심한고문으로병을얻어결국 1922년에돌아가시게되었다. 이렇게삼일운동에서의천도교의주도적인역할을안일제는재산압수는물론자유로운교회활동까지제한하면서천도교를집중적으로탄압했다. 5) 게다가화성의제암리사건은수십명의천도교인들이희생되었지만아직그사실조차잘알려지지않고있다. 3.1 운동은아직일본정부로부터공식적인사과를받지못하고있다. 화해와용서의전제조건은진심어린사과와진실규명이다. 하지만최근의일본정부는오히려역사적진실을숨기고왜곡하며오히려과거로회귀하려고하고있다. 3.1 운동의정신은셋이하나되어보편적가치를실현하는 통합 의구현이었으며단순한독립운동을넘어, 또한식민, 피식민의이분법을넘어이땅에자유와평등, 생명과평화, 도의적 ( 道義的 ) 신문명 을열고자했던정신이었다. 우리는평화로운통일한국의건설과함께, 일본, 그리고중국과함께동북아평화공동체의구현, 나아가서는유라시아평화공동체를열어나가야하는시대적소명을느끼고있다. 이를위해선일본과의화해를통한신뢰와협력관계를구축해야할것이다. 그러기위해선일본정부의사과가선행되어야함은물론이다. 이제 3.1 운동백주년이얼마남지않았다. 이백주년을맞아일본정부의진정성있는사과와반성을이끌어내고, 양심적인일본의시민사회와연대하여민이중심이된동북아평화공동체를위한공동의노력을기울여나가야할것이다. 또한그동안독립운동과평화운동으로희생되신분들의명예회복과보상을통해시대의아픔을치유해야할것이다. 더이상독립운동가의후손들은가난을대물림하는일은없어야할것이다. 3.1운동을비롯한일제강점의희생자들에대한진정한치유와보상이올바른역사를구축하고평화를만들어나가는출발점임을명심해야할것이다. 3. 남북통일운동 해방공간에서천도교는종교교단으로서의위상회복보다는청우당이라는정당조직을통해통일국가건설에보다큰관심과노력을기울였다. 원래청우당은일제하의민족문제해결을종교적차원을넘어현실정치에서실현하기위해 1919년 9월천도교의김기전을당수로해서창당되었다. 1920년대문화운동과계몽운동으로 7개부문운동을벌이는등활발한운동을하다가 1930년대들어일본의탄압에의해지하로잠복했다가 1945년해방되면서다시부활하였다. 남쪽에서는동년 10월 31일김병제를위원장으로부활하였고, 북쪽에서는 1946 년 2월 1일김달현을위원장으로부활설립되었다. 6) 해방공간에서청우당은임시정부영수들 5) 이상의요약은천도교중앙총부교서편찬위원회, 천도교약사, 제 9 장, 천도교와 3.1 독립운동 ; 오문환외, 의암손병희와 3.1 운동, 모시는사람들, 2008. 참조. 6) 임형진, 전위단체운동사로본천도교통일운동, 동학 천도교의민족통일운동 ( 천도교동학민족통일회편,2005) 참조.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41 을중심으로전민족적총력을집중하여통일하고완전한민족자주정권을수립코자노력하였다. 청우당은좌우를넘어절대다수인민중을기초로한여러집단과양심있는개인들의연결로민족적대동단결을촉구해나갔다. 그런데 1948년단독정부수립움직임이일자, 이에반대하여남북분열을저지하고통일정부를수립하기위한운동에나서게되었다. 1948년남북총선거의실시가무산되자남북한청우당은 3.1절을기해남북한청우당은물론천도교인전체가총궐기하는 남북분열저지운동 을계획하였다. 이를흔히 3.1재현운동 이라고한다. 그러나남북분열을저지하고통일정부를수립하기위한이운동은사전에발각되어북한전지역에서 1만7천여명이체포되었다. 최종적으로재판에회부된인원은 87명이며, 그중유은덕, 김일대, 김덕린, 주명득 4인은사형에처해졌다. 그후천도교는재거사의기회를대비하기위하여조직을재정비 " 영우회 ( 靈友會 )" 라는비밀결사를통하여수십만의조직망을확보하였다. 그러나이역시 1950년 4월경에비밀이탄로나평양감옥에서 165명 ( 입수된재판기록에의함 ) 이처형되고, 해주감옥에서 47명, 수안감옥에서 44명, 등확인된것만각지에서 515명이처형되는등북한전역에서수만명의희생을내었다고전한다. 7) 남쪽의청우당도 1948년 5월이승만의남한단독선거에반대하는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에참여, 남한의단독선거와미군정에반대하고, 김구와김규식등의통일정부수립을위한남북요인회담에참여하기도하였다. 이같은해방정국에서민전과의연대, 미군정정책의비판과남한단독정부수립반대등은미군정과이승만등극우세력으로부터탄압받는계기가되어결국청우당은남한에단독정부가수립된후 1949년 8월강제해산되고말았다. 8) 이상으로동학 천도교의운동과그과정에서치른희생의역사를살펴보았다. 동학운동의역사는한국근현대사의가장결정적인순간을추동했거나공유하고있다. 그과정에서엄청난아픔과희생을치러야했다. 그러나그아픔은아직치유되지못하고있고희생의댓가는아직보상받지못하고있다. 가장바람직한운동은운동과정이운동주체와사회모두에게서치유와통합이일어날때이다. 두번째는운동주체의희생으로사회가치유되고통합되는것이다. 세번째는사회는변화되지않더라도운동주체의치유와통합이일어나는것이다. 최악은운동이두쪽모두에서치유와통합보다는상처와아픔만남기는경우이다. 동학운동의경우는두번째에가장가깝다고할수있다. 운동주체의희생으로사회에엄청난영향을미쳤다. 하지만그것이반드시치유였던것도아니었고통합으로나아간것은아니었다. 미완의치유였고, 미완의통합이었다. 7) 이에대한내용은신인간사, 남북분열저지투쟁 3.1 재현운동지,1969 년초판 ; 정용서, 북조선천도교청우당의정치노선과활동, 한국사연구, 125 호 ; 박연수, 1981, 옥중기, 남북분열저지투쟁삼일재현운동지 를참조. 8) 임형진, 동학의정치사상 - 천도교청우당을중심으로, ( 모시는사람들, 2002)
4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치유는쌍방적으로이루어져야한다. 먼저진실규명과진정성있는사죄, 그리고명예회복과보상이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언제까지저쪽의사죄를기다리고있을수는없기에책임있는사죄, 진상규명의요구와더불어내안의상처는스스로치유해야한다. 피해의식을극복하고건강한주체로서의연하게서야한다. 사회적치유가나의치유와병행되어야하고, 나의치유가사회적치유와통합으로연결될수있는방식으로운동과실천이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역사적상처의치유는무엇보다도정부와학계, 시민사회의공동의노력이필요하다. 특히정부가당사자인경우도있고, 일본의사죄를이끌어내야하기때문에보다적극적인외교적노력이필요하기도하다. 대한민국의현대사는동학에많은빚을지고있다. 대한민국올바른역사세우기는동학운동의역사가제대로조명되어진상규명은물론역사적진실과그의미가제대로평가될때가능하다. Ⅳ. 동학사상으로본치유와통합 1. 천도와동학 동학 천도교는 19세기중엽황혼기에접어든조선말엽의대내외적혼란을극복하기위해수운최제우 (1824~1864) 의 보국안민 ( 輔國安民 ) 의구도동기로시작된현실적종교사상이라고할수있다. 당시는오랜세도정치의폐해가극심하여조정은무능하고부패했으며돈으로벼슬을산지방수령들의학정은백성들을이루말할수없는고통에빠뜨리고있었다. 게다가당시는서양제국주의의야욕이동아시아에까지뻗치면서서세동점의위기감이점증하고있던시기였다. 이러한때에수운은대내외적위기속에서신음하던조선백성들을구제하고, 무너져가던나라를바로잡기위해 10년여의주유천하를한후수년간의지극한수행끝에천도 ( 天道 ) 를깨닫고동학을창도하였다. 그렇기에동학은애초부터사회운동적성격을다분히지닌종교사상이었다고할수있다. 수운은고대동아시아성인들이깨달아폈지만그후로오랫동안잊혀져왔던천도 ( 天道 ) 를다시깨달아이땅에서도로회복하고자하였다. 천도는말그대로하늘의길, 즉우주의운행원리이자만물화생의원리, 생명의순환원리를말한다. 옛성인들은그하늘의운행원리를깨달아사회의작동원리로삼은한편, 사람이걸어가야할길로삼았다. 하지만어느순간그길은잊혀지고사람들은더이상그길로갈수가없었다. 그러자세상은더욱혼탁해지고싸움과다툼이지배하는세상이되었다. 수운은그길은다시발견했고, 그것을이땅의우리백성들을위해 동학 이란이름으로내놓았다. 수운은천도의핵심적원리를 시천주 ( 侍天主 ) 세글자로압축하고그로써인간의길을제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43 시하려고하였다. 그러므로동학은이 시천주 세글자로말할수있으며, 그중에서도 모실 시 ( 侍 ), 이한자에다담겨있다고도할수있다. 2. 모심과살림 수운의깨달음은한마디로 모심 으로요약된다. 모심 이란모든사람안에하늘이모셔져있다는자각이다. 그러므로모든사람들은자기안의하늘을깨달아잘모셔야한다는것이다. 바깥에있는하늘을받드는것이아니라내안의하늘을받들어공경하는삶, 이것이참된경천 ( 敬天 ) 이며, 참된인간의길이라는것이다. 이는고대성인의 경천명순천리 의삶을심학적차원에서다시해석한것이다. 보국안민을위한현실적구제책을찾던중수운은뜻밖에도하늘의소리를듣고다소우회하는길을발견하게되었다. 직접적으로혼란을종식시키거나백성들에게밥을먹여주는방법은아니었지만그것은근본적인길이었으며고대성인들이발견했던바로그길이었다. 수운은모든사람안에깃든하늘을보았고, 그하늘을회복함으로써모든사람들이현인군자가될수있다고하였다. 그것은만권시서를읽어서되는길이아니라나의본래마음을발견하고회복하면될터였다. 수운은그런점에서모든사람들이하늘을모시고있는거룩한존재들이며, 따라서누구도차별받지않고하늘로섬겨야한다고역설했다. 이는이후후계자인해월최시형 (1827~1898) 에게서 사인여천 ( 事人如天 ) 과 삼경 ( 三敬 ) 으로보다구체화되었다. 수운은누구도차별받지않고모든사람들이하늘로존중되는세상을꿈꾸었다. 그러기위해서선결조건으로서먼저자기안의하늘을발견해야한다고하였다. 나아가모든존재가신성한하늘을모신거룩한존재로서연결되어있다는것을체험해야한다고하였다.( 內有神靈, 外有氣化 ) 그러므로동학은자기안의하늘을발견하여다른모든존재들을하늘로섬기고, 모든생명을살리고자하는종교이자사상이다. 모심과살림이동학의핵심키워드라고할수있다. 모심이수운이깨달은천도의핵심내용이자동학영성의중추라면, 살림은당시세상에대한치유이자모심의사회적실천이라고할수있다. 모심 의영성은필연적으로 살림 의실천과운동으로나아갈수밖에없다. 원래동학의출발은폭정과제국주의의현실에맞서보국안민의길을찾는것이었다. 모심 의영성은생활속에서는 사인여천 과 경물 ( 敬物 ) 이라는살림의실천으로, 그리고사회적으로는병든사회를근본적으로치유하고살려내는살림운동으로드러났다. 그렇기때문에동학도들은때론차별과폭정에항거하여농민혁명도일으켰으며, 이름을천도교로바꾼이후에는식민지배의굴종에저항하여다른종단과여타세력들과연대하여비폭력비타협적평화혁명을일으키기도하였다. 또한 1920년대는 개벽 잡지를중심으로문화운동을통한의식혁명과영적코뮤니즘을추구하기도하였으며, 해방공간에서는좌우의이념을넘어서인내천 ( 人乃天 ) 의진리에입각한새로운나라를건설하기위한통일운동에매진하기도하였다.
44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3. 영부 동학의치유가가장직접적이고구체적으로언명된것은 영부 라는용어를통해서이다. 영부는 1860년 4월 5일수운이하늘로부터세상을건지라고받은것중의하나이다. 다른하나는주문이었다. 9) 주문은수운의깨달음의핵심내용을 21자에압축해서수행의방편으로삼은것이고, 영부는건강하고조화로운삶을살게하기위한처방으로주신것이다. 영부는다만개인의질병에국한된것이아니고, 사회적질병과병폐를치유하는방법으로주신것이다. 개인의병의원인과사회적질병의원인이근원적으로하나이기때문이다. ( 한의학에서는병의원인을기의균형이깨져서조화를잃어버렸기때문에생기것으로본다. 사회적인질병도타인, 타집단과의갈등과부조화로인해사회적기운, 나아가천지기운이막혔기때문이다.) 영부는종이에그려서불에태워마시기도해서부적처럼여겨지기도하지만사실상영부는우주의약동하는기운을상징적으로표현한것이다. 그래서수운은영부를 가슴속에감춰둔불사의약 [ 胸藏不死之藥 ] 10) 이라하였다. 이돈화역시영부를부적으로보지않고 창조심 이라고하여, 하늘의마음과수운의마음이온전히부합되어여합부절 ( 如合符節 ) 된의미를취한것이라하였다. 11) 그러므로영부를받는다는것은단순히하늘의기운을받아형상을종이에그린다는의미가아니라, 우주를운행하고만물을화생시키는영기의에너지를온몸으로체험하고그것을활용할수있다는의미이다. 그것을수운은내유신령, 외유기화로도표현하였다. 내안의하늘의영성을발견하고밖으로내가우주의기운과하나로연결되어우주적기운을활용할수있어야한다는의미이다. 만물화생과생명의근원인우주적영의체험, 그것과의합일이바로 여합부절 로서의영부의의미인것이다. 이로써만물화생과생명의이치, 즉천도를깨달아자기몸의치유는물론주변을살릴수있는조화로운주체, 창조적주체로서우뚝서게되는것이다. 하지만그것은높아지는것이아니라오히려모든존재를하늘로공경하는낮아짐으로드러난다. 그것을해월은삼경 ( 三敬 ) 으로구체화했고, 그것이생활적으로, 사회적으로드러난것이 살림 이다. 그러므로영부는생명살림으로서의치유이며, 살림운동을통해세상의부조화와분열을조화시키고통합하는힘이다. 그러므로동학은몸과마음의치유와통합으로부터세상의질병을구제하려는종교이다. 9) 東經大全, 布德文.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10) 東經大全, 修德文, 50 쪽. 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 11) 이돈화, 水雲心法講義, 33~35 쪽.
동학의 사상과 운동으로 본 치유와 통합 45 4. 불연기연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은 통합의 논리이다. 불연기연은 아니다 그렇다 의 논리이며, 서 로 상반되고 대립된 것을 일치시키는 반대일치의 논리 12)이다. 여기서 불연(不然)은 그렇지 않은 것, 기필키 어려운 것 즉 경험할 수 없거나,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을 말하고, 기연 (其然)은 그러한 것, 즉 우리의 감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알 수 있는 것을 기연이라고 하고, 눈이 보이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고 추론해서 알 수도 없는 영역을 불연이라고 한다. 모든 사태는 기연적 측면과 불연적 측면이 동시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의 일면만 보 고 전부인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수운은 이 불연기연의 논리를 통해 드러난 차원의 이면 에는 숨겨진 질서가 있어서 겉으로는 모순, 반대되는 현상도 근원에서는 통합되어 있다고 하 였다. 바다 위로 세 개의 섬으로 보이는 것이 물이 빠지면 둘로 보일 수도 있고, 바다 밑에 서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이처럼 동학의 불연기연은 여러 상이한 논의들을 통합하고 화해시킬 수 있는 화쟁의 논리이다. 그러므로 동학의 불연기연은 지금 우리사회의 대립과 분열,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 는 지혜일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점점 세대간 지역간 이념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으며, 빈부격차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것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식의 이분법 적 태도로 편가르기를 하고, 남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다. 지금 시비선악을 구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받고, 지 치고, 뒤돌아서 있는 모든 마음들을 어루만져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고 마음의 힘을 북돋아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일이다.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질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심과 살림의 실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Ⅴ. 나오면서 : 전환이 개벽이다 최근의 세월호 사건과 그 대응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도 못하고, 진상규명은 물론 진정한 사과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동학 역사에서의 희생자들도 아직 치유되지 못하고 진실 규명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마찬가지 상황이다. 최 근 한국 사회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에 빠져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서민들과 사 12) 이돈화, 동학지인생관,
4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회적약자들의삶은더열악해지고있다. 생태계의파괴도지속되고있다. 어떻게할것인가. 원인이복잡한만큼단순히몇가지대증요법적인정책적처방으로해결될성질의것은아니다. 보다근본적인처방이필요할때이다. 지금의원인은봉건적유산과신자유주의, 청산하지못한일제의유산과분단체제, 그리고서양의근대학문의병폐가복합적으로작용하고있기때문이다. 치유와통합의영성과적공이필요하다. 만물화생과생명순환의이치로서천도를깨달고, 그것을내몸안팎에서영과기운으로체험하는모심, 자기의몸과마음의치유는물론, 생명살림의사회적치유로서의영부의의미를제대로깨달아살림의실천운동으로구체화할수있어야한다. 이를위해서는세계와인간을바라보는관점이천도 ( 天道 ), 즉생명의원리에입각해서바라볼수있어야한다. 그리고그것을모든영역에적용하는생명학의정립이요구된다. 그중에서도자본주의와사회주의를둘다넘어설수있는새로운사회경제시스템에대한적공이무엇보다도필요하다. 지금은바야흐로대전환이요구되는시대이다. 수운은이를 다시개벽 이라고하였다. 개벽은애벌레에서나비로의존재변화를요구한다. 진화적도약을요구한다. 자기치유와완성을위한노력, 애벌레에서나비로의의식진화, 존재의거듭남이가장선결조건이다. 또한불연기연의통합적논리를내면화한대화와갈등조정의기술과그런포용적인격이요구된다. 이는결국수행과적공을통해신인류로거듭나는일정숫자이상의집단영성의힘에의해서가능한일이다. 현재대한민국의진정한치유와통합은결국나비로거듭나는수행과적공, 역사적상처의치유와분단극복을위한노력, 그리고생명의원리에입각한새로운사회경제시스템을마련해서통일한국은물론새로운문명으로의전환을현실화할때비로소가능하다. 전환이진정한치유이자통합의길이며, 그것이개벽이다.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47 < 토론문 > 동학으로동학을치유한다 - 동학의사상과운동으로본치유와통합 을읽고 - 조성환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전임연구원 이글은현대한국사회가안고있는치유와통합이라는과제에대한처방전을동학의사상과실천으로부터찾고자하는시도이다. 글의구성은크게 4장으로이루어져있는데 ( 서론 1-2장, 본론 3-4장 ), 1장 신음하는헬조선 에서는 세월호 로응집된현대한국사회가안고있는총체적갈등과문제점들을지적하면서, 오늘날우리가처한상황이 150여년전의동학창시때와유사하다고분석하고있다. 이어서제2장 분단체제와분열 에서는그주된원인으로서양근대의반생명문화와남북한분단체제그리고신자유주의경제체제로인한분리와배제문화의확산을들면서, 치유와통합이요청되는이유가여기에있다고진단하고있다. 제3장 동학운동에서의상처와아픔 에서는동학 천도교를 현실의모순과불평등을개혁 하기위해일어난 자발적이고근대적인민중운동 으로규정하고, 이러한운동이 동학농민혁명, 3 1 운동, 남북통일운동 등으로전개되었지만, 그과정에서생긴피해자들에대한온전한보상이나치유는아직행해지지않고있고, 오히려정치적인견해차로인한국민분열이진행되고있다고지적하고있다. 마지막으로제4장 동학사상으로본치유와통합 에서는이러한아픔들을치유할수있는해결책으로서, 동학의모심의영성과살림의실천, 그리고생명의근원인우주적영과의합일로서의 영부, 마지막으로통합의논리로서의 불연기연 을제시하고있다. 전체적으로한국사회에대한진단과동학운동에대한서술이중심이되고있고, 그런점에서는치유책그자체보다는치유받아야하는 대상 과 상황 에초점이맞춰져있는느낌이다. 반면에치유와통합의방법으로동학사상을제시하고있는점은흥미롭다. 왜냐하면이두가지를종합하면 동학으로동학을치유한다 는결론이가능하기때문이다. 즉동학운동의피해자들이동학사상을가지고자신들의트라우마를치유하고 건강한주체 로설수있다는논리가가능하기때문이다.
48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뿐만아니라현대한국은발표자도지적하고있듯이, 동학운동피해자들뿐만아니라세월호유가족, 위안부할머니, 절망에빠진젊은이들등, 치유를필요로하는주체들이산재해있는현실이다. 이들을건강한주체로거듭나게하기위해서는, 가해자는물론이고, 피해자또한 내안의상처를스스로치유하는 노력이요청된다고생각된다. 진정한상생이란공동의노력을통해비로소완성되기때문이다. 이과정에서발표자가제시한동학의살림철학이시사하는바가트다고생각한다. 가령발표자가강조한동학의 불연기연 의논리는, 기존의유학에서중시한도덕적시비판단의논리를넘어서, 존재론적차원에서자기와다른편에서있는상대방을이해하고포용할수있는인식론적지평을제공할수있을것이다. 아울러흔히미신시되기쉬운 영부 에대한이돈화식의생명철학적재해석 ( 창조심 ) 도주목할만하다고생각한다. 다만과학주의의벽을넘어서설득력을담보할수있을정도의보다상세하고정밀한해석이필요하지않을까?
<제2주제발표>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김 영 주 대진대학교 Ⅰ. 들어가며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무수한 상처와 아픔 속에서 그것을 안고 살아간다. 육체적 고 통, 정신적 장애와 대인간 갈등에 의한 마음의 상처 등으로 안락한 삶을 영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 부조리에 의한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 시대적 아픔을 양산하기도 한다. 종교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유된 세계관과 사회적 질서의 형성에도 영 향을 미치며,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치료과정이 세계관을 바꾸고 사회적 질서를 재편하 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1) 이는 사회병리현상이 심각한 삶의 위기로 나타나며,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공동체의 위기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이해와 치유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종교나 교육은 모두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으며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경 험체계의 축적인 즉, 인간의 변화에 대한 의미작용인 셈이며, 그 변화의 방향은 바람직하다는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인간의 본질을 발현하게 하는 수단이 종교가 되는 것이다.2) 그런 의미에서 심신이 지친 현대인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을 회복시 킬 수 있는 치유프로그램은 인간에 대한 전인적 치유에 해당하는 셈이 된다. 본 논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주안점을 두었다. 첫째, 치유를 종교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대순진리회의 입장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둘째,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치유 가 어떻게 역할할 것인가를 논의하고자 하였다. 1) 류성민, 종교적 질병 치유의 사회문화적 의미, 종교연구 제35집(서울: 한국종교학회, 2004), 2쪽. 2) 윤재근, 대순사상의 종교교육이론-인존의 교육적 인간상을 중심으로, 종교교육학연구 제24권(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7), 246-248쪽)
50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Ⅱ. 증산의 시대인식과 병세문 조선에서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은 양란이후 본격화된 총체적 모순이 심각하게 표 출되던 시기였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누적된 폐습의 고착화와 외래사조의 유입은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백성들을 살펴야 할 목민관들은 사회적 혼란을 틈타 백성들을 착취하 는데 몰두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맞이하게 된 19세기 말은 사회적 갈등과 모순, 정치적 분당과 쟁송 등으로 국정의 문란을 초래하였으며, 민중들의 삶은 궁핍의 극점으로 치달았다. 18세기 초반까지의 민중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유망(流亡) 혹은 도적활동에서 찾 았다. 이는 모순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여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는 것 외에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었던 민중의 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이후 민중은 유망과 같은 체제 이탈 외에 상언 격쟁 호소 등소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대응방식은 여 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 그치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민중에게 있어 모순 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발현되고 있었다는 사실3)은 인권과 경제를 중심으로 한 근대성 발현의 밑거름이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의 농민들의 대응방식은 적극적 투쟁의 형태인 민란으로까지 발전해 갔 으며, 사회 정치적 의식도 함께 상승되었다.4) 이를테면 민중들은 점차 뚜렷한 의지와 목표 지향성을 갖춘 조직을 형성하였으며, 사회변혁을 주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봉건사회의 해체기에 이르러 발생한 민란은 극에 달해 있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민중의 여론이 폭발한 것임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향한 민중들 의 열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1894년 1월의 고부농민봉기에서 시작되어 1895년 1월 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회적 사전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 을 정도로 대규모적이며 1년 이상의 장기전으로 이어진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후기 빈발했던 수많은 민란의 연장선 위에서 종래의 민란을 집약한 것이었다.5) 격변기의 조선후기 사회를 직시했던 증산은 진멸지경 이라는 표현을 통해 당시의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6) 그리고 진멸지경에 처한 원인을 상극이라는 세상의 운행원리에서 찾고 있 3) 김성희, 조선 후기 민중의 유교윤리 전유와 사회의식 성장, 사학연구 제106호(서울: 한국사학회, 2012), 192-193쪽. 4) 하원호, 조선후기 변란과 민중의식의 성장, 사학연구 (서울: 한국사학회, 2004), 187쪽. 5) 박맹수 정선원, 공주와 동학농민혁명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5), 11쪽. 6)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전경, 교법1장1절; 본 논문의 논의는 증산 관련 정승기록 가운데 대순진리회의 전경 (대순진리회교무부,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74)을 기반으로 논의한다. 또한 이하 전경 의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51 다.7)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증산 화천 후 거처하던 방에서 발견된 병세문 8)의 내용이다. 정확히 언제 작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병든 세상 이 된 원인과 증산만의 치유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증산은 천하가 병든 이유를 부모 임금 스승에 대한 은혜를 망각하여 이 세상에 충 효 열의 도가 사라져 버린데 기인한다고 하였다. 세상의 기본적 윤리가 상실되었음을 개탄하며 이러한 사회현상을 무도의 질병으로 진단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병은 온전하지 못한 몸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약으로 치유될 수 있는 병 이라면 소병이라 할 수 있지만 대병은 물리적인 약으로는 치유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 서 충효열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하게 된 병은 대병에 해당하며 대병에는 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증산은 큰 병에는 본래 약이 없지만 그럼에도 약을 구한다면 안심 안신이 약이 된다 고 말하고 있다. 큰 병의 약이 안심 안신이라는 것은 큰 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므로 충효열이 사라진 원인을 마음에서 찾아 치유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증산은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몸은 동서남북이며 마음에 의지한다.9) 마음은 사람의 행동기능을 주관하는 것으로,10) 마음작용을 통해 몸의 행위로 표현되어지기 인용은 편 장 절 의 일부만을 간략하게 표기한다. 예를 들면, 교법 1장1절 의 경우 교법1-1 의 형 식으로 그 전거를 밝힌다. 7)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 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 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 이니라.(공사1-3) 8)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 祈禱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 則大病勿藥自效 小病勿藥自效 至氣今至四月來 禮章 醫統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病勢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愈 聖父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辦斷 大仁大義無病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孔子魯之大司冠 孟子善說齊梁之君 西有大聖人曰西學 東有大聖人曰東學 都是敎民化民 近日日本文神武神 幷務道通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 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聖之業(행록5-38) 9) 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교운1-66)
52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때문에 마음을 중앙, 몸을 동서남북 이라 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 음의 자취로다. (교법1-11)라는 언설을 통해 몸의 기능인 말과 행동이 마음에 기반하고 있음 을 설명한다. 악하다고 하여 제거한다 는 것과 좋다고 하여 취한다 는 것에서 악하다 와 좋 다 의 감정은 마음에 기반한 것이며, 제거한다 와 취한다 의 행위는 마음작용이 몸의 행위로 나타난 것으로 몸이 마음에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것은 선을 추구하는 본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진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11) 증산은 인간이 지니게 되는 마음의 불안정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귀신의 추기(중추기관)이고, 문호이고, 도로이다. 추기를 열고 닫고, 문호를 드나들며, 도로를 왕래하는 신은 혹은 선한 것도 있고, 혹은 악한 것도 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치니, 내 마음의 추기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크다.12) 마음이라는 것은 신이 드나들 수 있는 중요기관으로서 드나드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과 같 은 역할을 한다. 초월적 존재인 신이 인간과 교통할 수 있는 기관이 마음이기 때문에, 인간은 마음을 통하여 선신(善神)과 악신(惡神) 등의 다양한 신을 접하게 된다. 증산은 인간의 선악 행위가 마음을 왕래하는 선신과 악신에 있다고 본 듯하다.13) 그래서 선한 것에 대해서는 본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스승으로 삼아야 하며, 나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그러한 허물을 짓 지 않게 경계함으로써 올바른 수양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늘의 작용과 땅의 작용, 사람의 작 용이 모두 마음에 달려있다. 14)고 한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이 가지는 마음작용 이 자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통해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15) 마 음작용이 천지인 삼계(三界)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인간이 가지게 되는 능동적인 선의지는 천지보다 큰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란 수행과정 상의 특정한 어떤 것을 지칭하는 개념은 아니다. 마음은 단순히 성찰 10)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75), 15쪽. 11) 김영주, 대순진리회 마음공부 프로그램의 현황과 과제, 종교교육학연구 제43권(익산: 한국종교교육 학회, 2013), 147쪽. 12)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행록3-44) 13) 김영주, 증산 수양론에 있어서 욕망 해석의 문제, 종교문화연구 제18호(경기오산: 한신대학교 종교 와문화연구소, 2012), 156쪽. 14)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행록3-44) 15) 상제께서 기유(己酉)년에 들어서 매화(埋火) 공사를 행하고 사십 구일간 동남풍을 불게 하실 때 사십 팔일 되는 날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병을 치료하여주실 것을 애원하기에 상제께서 공사에 전념하시는 중임으로 응하지 아니 하였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서 원망하였도다. 이로부터 동남풍이 멈추므로 상제께 서 깨닫고 곧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위안케 하시니라. 이때 상제께서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기 운이 막힌다 고 말씀하셨도다.(공사3-29)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53 하는데서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지향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 과정이 마음공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세 계를 치유하기 위한 마음공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Ⅲ. 대순진리회 치유프로그램의 실제 종교인들의 개인적 종교행위 즉, 수행은 결핍된 신체적 정신적 치유를 희구하는 자기연수 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리 불가능한 체험을 통하여 결핍의 정서를 정화한다. 이것은 외계의 물리적 조력보다는 내적 자기노력이 보다 더 유효한 종교행위임을 의미한다. 증산은 병은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일어난다(病自己而發) (예시36)고 하였다. 치 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상태를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마음은 일신을 주 관하며 만기(萬機)를 통솔한다. 마음이 몸의 주체로서 제병제악(諸病諸惡)을 낚아 들이는 것 16)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순진리회에서 행해지는 종교수행인 기도, 수련, 경전 강독 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치유가 지향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도 대순진리회에서의 기도는 대순진리를 신앙하는 자가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실천적인 노력이며, 신앙의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수행방법이다. 기도를 통해 심신의 안 정을 이루어 내적 완성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종교수행에서 기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당(牛堂, 朴漢慶: 1917-1996)은 훈시(訓示)에서 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기도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 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所定)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을 말합니다.17)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이란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양대 진리가 마음에 베고 몸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 18)으로 모심 이라는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도의례를 행할 때는 진실 16)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49쪽. 17)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회보>제4호(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6), 2쪽. 18)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17쪽.
54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된 마음과 지극정성의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기도의례는 단순히 기도를 행하는 그 시간을 의 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도를 모시기 위해 준비하는 것부터 기도를 모시고 정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기도의례에 해당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의 기도는 기복의 의미보다는 증산이 짜놓은 천지공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 는 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혼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19) 기도는 주문을 통해서 신명을 내 앞에 모 시는 행위로서 이를 통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외경의 심정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마음을 다 하여 천지공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되는 것이다.20) 기도는 또한 일신의 복을 바라는 기복적 종교의례가 아니라 남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이 타행의 공부이다.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 하여도 되나니 (교법1-2)라는 증산의 언설은 남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처가 기 도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남을 잘 되게 한 후에 느끼는 행복감을 기도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기도가 주는 치유의 작용이 있는 것이며 기도가 지극한 정성 그 자체여야 하는 이유 가 있는 것이다. 2. 수련 대순진리회에서는 대순진리회요람 을 통해 수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간과 장소의 지정이 없이 기도주(祈禱呪) 혹은 태을주(太乙呪)를 송독(誦讀)한다.21) 대순진리회 수련의 특징은 주문을 송독하는 데 있으며, 현재 대순진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련은 태을주를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증산은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그것이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이니라. 오만년 동안 동리 동리 각 학교마다 외우리 라 (교운1-60))는 언설을 통해 태을주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에서의 수련은 일정한 시간이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각자의 희망에 따라 언제 든지 행해질 수 있다. 수련방법은 종단에서 사용하는 주문 전체를 일독 후, 태을주를 반복해 서 송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1시간 수련을 원칙으로 한다. 대순진리회의 신앙인에게 있어서 수련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벗어나 성스러운 실재에 부 합하기 위한 자기훈련의 과정이며,22) 기본적으로 수심연성과 세기연질의 과정인 만큼 상당한 19) 상제께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부안지방 신명을 불러도 응하지 않으므로 사정을 알 고자 부득히 그 지방에 가서 보니 원일이 공부할 때에 그 지방신(地方神)들이 호위하여 떠나지 못하였 던 까닭이니라. 이런 일을 볼진대 공부함을 어찌 등한히 하겠느냐 하셨도다.(교운1-63) 20) 故天地生人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교법3-47) 21)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75), 18쪽.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55 인내를요하는수행방법이다. 선악의가치체계가상존하는현실에서욕망을제어하기위한자기연수의방법이수련이기때문이다. 때와장소를가리지않는수행방법인수련을통해인간본래의양심을회복하고자아를다스릴수있는것이며, 이것은욕망의적절한자기조절이기도할뿐더러정신적신체적결핍의자발적치유행위인것이다. 23) 3. 경전 강독 개별종교들은창시자의진리에대한언설 ( 言說 ) 을묶은경전을가지고있으며그경전에담긴진리를체화 (incarnation) 하는방편으로경전을읽고새긴다. 경전을읽고새기는것은단순히진리를이해하기위한공부가아니라그경전에담긴진리를내재화, 의식화, 인격화, 생활화하는과정이다. 이러한의미로대부분의종교는경전을읽고새기는것을종교수행의중요한방편으로삼고있다. 24) 대순진리회는증산상제를종교적연원으로하여신앙의대상으로삼고있으며, 증산의말씀을기록한 전경 을소의경전으로삼고있다. 대순진리를신앙하는수도인들이왜곡되지않고올바른방향으로나아가기위해요구되는것은대순진리에대한바른이해이다. 그런의미에서대순진리는 전경 을근본으로이해되어져야한다. 전경 은대순진리를신앙하는이들에게있어서는증산상제의말씀으로믿어지고있다. 신성성이담보되어있음을의미한다. 그러므로매일전경을통하여상제님의말씀을읽고마음속으로새기는훈련을하여야한다. 이러한훈련을통하여상제님의말씀은내생활의지침이되고, 내존재의중심이되며, 내행동의원천이되는것이다. 이처럼상제님의말씀을읽고마음에새기는훈련은나의내면속에잠재되어선한본성을일깨워참된진리의길로나아가게한다. 종국에는진리에대한통찰을가져다주는것이다. 그런의미에서본다면 전경 읽기의중요성은새삼말할필요가없을것같다. 25) 그리고전경을바탕으로대순진리를바르게인식하고실천하여생활화할수있도록대순진리회의설립자인우당의말씀을정리한 대순지침 은수도인으로하여금올바른수행의길과대순진리회가지향하는바가무엇인지를명확히제시하고있다. 전경 을통한대순진리의바른이해 26) 와 대순지침 을통한대순진리회의지향점의제시는경전에담긴진리를내재화, 22) 이경원, 대순종학원론 ( 서울 : 문사철, 2013), 233 쪽. 23) 박상언은태을주수행의효과를 수승화강 ( 水昇火降 ) 을통한기의순환 과태을주송독시발생하는파장에의한몸안의 생명에너지증가 를들고있다.( 박상언, 치유의신을찾는몸짓 - 증산도치유의례의사례연구, 종교문화연구 제 3 호 ( 경기오산 : 한신대학교종교와문화연구소, 2001), 266-268 쪽참조 ) 24) 이재영, 경전수행의맥락에서본통일교훈독회, 종교교육학연구 제 43 권 (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115. 25) 김영주, 대순진리회마음공부프로그램의현황과과제, 종교교육학연구 제 43 권 (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163 쪽. 26) 대순진리회교무부, 대순지침 ( 서울 :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17 쪽.
56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의식화, 인격화, 생활화하는 과정으로서 진리의 이해를 통한 심신의 치유행위가 되는 것이다. 앞서 병세문 에서 보았듯이, 증산은 세상이 병든 원인을 무도한데서 찾고 있으며, 이를 치 유하기 위해서 제시한 것이 안심 안신이었다. 충효열이 사라진 원인을 마음에서 찾아 치유 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증산이 제시한 안심 안신을 우당은 기도, 수련, 경전 강독을 통 한 직접적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증산이 병든 세상의 치유책으로 안심 안신을 제시했다 면, 우당은 안심 안신의 직접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안신태(心安身泰)라 하였다. 심안신태란 마음이 안정되어야 몸이 태평하다는 뜻이다.27) 이 말은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 구조로 분할한다는 것이 아니고, 바른 마음에서 건강한 신체 가 유지된다 는 일체적 사고관념을 의미한다. 안심이 되어야 안신이 되며, 안신이 되어야 안 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본질적 치유의 교호작용을 확인할 수 있겠다. 정신적 신체적 결핍의 구조를 종교적 수행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개인적으로 행 해지며 때로는 집단적으로 행해진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자기 연수이 며, 이상사회의 건설을 희구하는 집단적 의례의 양식인 것이다.28) Ⅳ. 사회통합을 위한 가정화목운동 대순진리회에서 행해지는 기도, 수련, 경전 강독은 종교수행이라는 실천적 행위를 통해 결 핍의 구조를 치유하는 치유프로그램에 해당된다. 치유가 지향하는 바가 심신의 안정을 통한 완전한 인격의 형성에 있다면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반목쟁투가 없는 지상낙 원의 건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유가 개인의 완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와 국가로 확장되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치유를 통한 개인의 완성이 사회의 통합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의 터전이자 실 천수행의 기본적 장이 되는 가정화목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가정(家庭)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조직으로서 인륜을 행하는 최소의 구성체이다. 가 정이 삶의 가장 소중한 영역이 되는 이유도 인간에게 있어 가장 친밀한 혈연공동체이기 때문 이다. 그렇기에 가정은 소중하며 가정화목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가정화목은 사회, 국가 나아 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대순지침 에서는 가정화목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정화목 사회화합 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29) 27) 대순진리회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49쪽. 28) 윤재근 김영주, 치유에 대한 종교교육적 접근-대순진리회의 입장에서, 종교교육학연구 제46권(익 산: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10쪽.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57 가정의 화목은 전 인류가 소망하는 바이다. 가정화목이 사회화합과 세계평화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화목은 종교가 추구하는 인간완성의 장이 된다. 가정이 곧 종교교리의 실 천수행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가정화목을 대순진리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통(不通)의 원인은 가정에서의 불통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친밀한 혈연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가족 구성원들과 소통하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익숙해 있 다. 가정의 화기는 깨어지고 결국엔 가정불화와 가정파괴가 발생하며, 이러한 습성은 결국 사 회로 전이되어 불통의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건전한 가정, 건강한 가정을 이루 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가족 구성원들의 바라보 는 관점의 변화 또한 요청된다. 각자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대상이기 보다, 존중과 배려가 우선되는 온 생명으로서 바라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생명의 형성은 경천동지할 경사로서 하늘과 땅이 축복해주는 복된 현상이며, 생명의 시작은 우주적 차원의 프로그램 속에서 비롯된다.30) 이와 함께 천지가 사람을 낳고(天地生人) (교법 3-47)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은 천지의 은혜로 태어난 존재로 묘사된다. 천지는 모든 만물을 낳은 덕을 지닌 가치론적 실재로서 인간 또한 천지의 은혜로 태어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천지생인 즉, 천지가 사람을 낳고 라는 표현에는 인간이 태어남에 있어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나기 위해서는 부모를 비롯한 윗대의 조상들이 필요하며 조상들이 생육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의식주의 모든 것들이 제공되 어져야 한다. 그래서 천지가 사람을 낳았다는 표현은 즉금에의 탄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라 즉금에서의 탄생을 위해 존재한 조상들과 자연물에게로 천지라는 개념이 소급하여 적용되 어지는 것이다. 또한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는 신적요소도 포함되는 바, 증산은 생명 탄생과 관련해서 조상선령신 과의 관계설정을 통한 독특한 생명관을 보여주고 있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 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드려 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 같이 공을 드려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하셨도다.(교법2-36) 생명은 단순히 살아있는 존재 의 영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생명의 탄생이 조상신과의 관계 성에 있음을 통해 신명적 교감이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조상에 대해 지극한 정성을 드리는 일 단면이 여기에 있는 듯도 하다. 육십년 동안 공을 들여 어럽게 태어난 존 29) 대순진리회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9), 20쪽. 30) 조응태, 한국 신종교의 생명문화, 신종교연구 25집(서울: 한국신종교학회, 2011), 112쪽.
58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재 가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이 쓸려고 할 때 쓰여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1) 증산의 언설대로라면, 인간은 누구나 조상선령신들이 육십년의 공을 들여 태어난 존재이다. 탄생의 과정 자체가 경의롭고 신비롭다. 내 부모가 그렇고, 내 형제가 그렇고, 내 자식이 그 렇다. 그렇기에 모두가 존경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이다. 가족이라 해서 함부로 대하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를 대하던 존경해야 하는 것이다.32) 가정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을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것과 더불어 효 관념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조상선령신 과의 관계설정이 전제된 증산의 생명관은 선령(先靈)의 향화(香火)와 봉친육영 (奉親育英)을 통해 효의 관념으로 이어진다. 이해 가을 어느 날 상제께서 안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부지런히 농사에 힘쓰고 밖으론 공사를 받 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 안으론 선령의 향화와 봉친 육영을 독실히 하여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 라 하시도다.33) 증산은 선령의 향화와 봉친육영을 통해 효를 설명한다. 향화는 향불, 제사에 향을 피운다 는 뜻으로, 제사의 이칭(異稱) 34)을 의미하는 것인 바, 여기서의 향화의 의미는 단순히 조상 의 은덕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유지를 받들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 령의 향화는 그 사회의 성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관념 35)의 의미를 지닌다. 선령의 향화는 유지를 받드는 것 뿐 만아니라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가짐이다. 뿌리 없 는 나무가 없듯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조상이 존재했음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조상의 은혜에 대한 추모의식이다. 유교에 말하는 제사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는 것과 같이 한다 는 정신으로 올려지는 의식36)인 바 선령의 향화 역시 효라고 볼 수 있다. 증산은 부모를 향해 자식이 행하는 전통적 관점의 효 뿐만 아니라 자식을 위해 부모가 행 해야하는 육영 또한 효라고 하여 봉친육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봉친육영은 나를 기준으로 부모와 자식에 대한 행위이다.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잘 섬기는 것과 자식을 사랑과 감사의 31) 김영주, 생명윤리와 대순진리회의 종교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45권(익산: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111쪽. 32) 상제께서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대말을 쓰셨도다. 김 형렬은 자기 머슴 지 남식을 대하실 때마 다 존대말을 쓰시는 상제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옵소 서 하고 청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그 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 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일러주셨도다.(교법1-10) 33) 典經, 행록 4장 44절. 34) 이희승, 국어대사전 (경기 파주: 민중서림, 2006), p.4337. 35) 최길성, 한국의 조상숭배 (서울: 예전사, 1986), p.79. 36) 안호상 외, 한국인의 윤리사상 (서울: 율곡사상연구원, 1992), p.447.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59 마음으로 잘 키우는 것이 모두 효에 해당된다. 내가 부모를 받들고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올바른 효인 것이다. 내가 부모를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고 받들며, 자식을 사랑과 감 사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바로 가정화목인 것이다. 이처럼 가정화목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보은의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보은 이라는 것이 일향적 작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은이라는 것은 상호의 존재와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자기가 처한 위치에 서 도리를 다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其師何立 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공사3-40)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대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인 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임금이 있으나 신하가 없으면 그 임금이 어디에 설 수 있으 며, 부모가 있으나 자식이 없으면 그 부모가 어디에 설 수 있으며, 스승이 있으나 배우는 자 가 없으면 그 스승이 어디에 설 수 있겠는가. 라는 증산의 언설을 통해 군신, 부자, 사제의 관계는 독존적 존재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서로에 대한 절실한 희구와 배려가 서로를 온전한 주체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있게 해 준 신하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며,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스승은 스승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하는 신하되게 해준 임금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37) 다시 말하면, 대대적 관계의 존재양상은 개별적 주체로서의 독립성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고 상호 교호작용을 통한 상생적 존립관계여야 한다는 의미 부여이다. 그 런 의미에서 가정화목, 사회통합, 세계평화를 논의할 때에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보 은의 도리라 할 수 있다. Ⅴ. 나가며 헬조선, 갑질논란, 불통 등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이들 용어는 현대사회가 처 한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화합과 통합보다는 미움과 분열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만 연하고 있다. 윤리의식의 부재, 소통의 단절, 재화의 편중, 이념과 지역의 대립 등으로 사회 는 병들어 가고 있으며, 그 안의 구성원들 또한 병들게 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치유와 통합 37) 김영주, 생명윤리와 대순진리회의 종교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45권(익산: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113쪽.
6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을이야기한다는것은한편으로 종교가세상을치유하기위해제시할수있는새로운비전은무엇인가? 를논의하는작업일수있다. 그만큼무거운짐을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지금의종교는복잡한현실과미래에대한두려움에서탈피하여개인의안위를추구하고자이기주의의길로치닫고있는현대인들의모습과별반다르지않다. 신관의정립이라든지교리나신앙체계에대한고민없이 믿음 과 구원 만을강조하고있기때문이다. 복잡한현실에서단순함을쫓고있는현대인들에게 믿으면구원받는다 는씩의그릇된종교관을심어주고있는것이다. 신앙한다는것이신앙인스스로가신과의관계정립을통해올바른신앙인으로성장한다는것을의미한다면, 지금의종교의모습은상처를더키우고있는셈이다. 그런의미에서치유와통합에대한논의는종교본연의모습으로돌아가자는의미가짙게베여있다. 종교의본질이이타행즉, 남을잘되게하는데있다면, 치유와통합에는진심을다한경청의중요성이강조된다. 단순히귀로만잘듣는경청이아니라따뜻한눈맞춤과배려가전제된경청이이루어질때, 가족구성원나아가사회구성원이가지고있는내면의아픔과상처를보듬어안을수있기때문이다. 그것이종교가되었든교육이되었든그무엇이되었든간에진심으로자신들의이야기를들어줄수있는그런세상이필요한이유인것이다.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61 참고문헌 전경 대순진리회교무부, < 대순회보 > 제4호 ( 서울 : 대순진리회출판부, 1986). 대순진리회교무부, 대순지침 ( 서울 :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대순진리회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 서울 : 대순진리회출판부, 1975). 박맹수 정선원, 공주와동학농민혁명 ( 서울 : 모시는사람들, 2015). 안호상외, 한국인의윤리사상 ( 서울 : 율곡사상연구원, 1992). 이경원, 대순종학원론 ( 서울 : 문사철, 2013). 이희승, 국어대사전 ( 경기파주 : 민중서림, 2006). 최길성, 한국의조상숭배 ( 서울 : 예전사, 1986). 김성희, 조선후기민중의유교윤리전유와사회의식성장, 사학연구 제106호( 서울 : 한국사학회, 2012). 김영주, 생명윤리와대순진리회의종교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45권(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대순진리회마음공부프로그램의현황과과제, 종교교육학연구 제43권(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대순진리회마음공부프로그램의현황과과제, 종교교육학연구 제43권(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3)., 증산수양론에있어서욕망해석의문제, 종교문화연구 제18호( 경기오산 : 한신대학교종교와문화연구소, 2012). 류성민, 종교적질병치유의사회문화적의미, 종교연구 제35집( 서울 : 한국종교학회, 2004). 박상언, 치유의신을찾는몸짓-증산도치유의례의사례연구, 종교문화연구 제3호( 경기오산 : 한신대학교종교와문화연구소, 2001). 윤재근, 대순사상의종교교육이론-인존의교육적인간상을중심으로, 종교교육학연구 제 24권 ( 서울 : 한국종교교육학회, 2007). 김영주, 치유에대한종교교육적접근-대순진리회의입장에서, 종교교육학연구 제 46권 (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이재영, 경전수행의맥락에서본통일교훈독회, 종교교육학연구 제43권( 익산 : 한국종교교육학회, 2014). 조응태, 한국신종교의생명문화, 신종교연구 25집 ( 서울 : 한국신종교학회, 2011). 하원호, 조선후기변란과민중의식의성장, 사학연구 ( 서울 : 한국사학회, 2004).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63 < 토론문 >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를읽고 김승남 대진대학교 김영주선생님의 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 대순진리회를중심으로 라는글을읽고현대인들이처한육체적고통과정신적장애그리고대인관계에서의갈등에의한마음의상처등으로안락한삶을영위하지못함은개인의상처를넘어시대적아픔으로양상됨을재차느끼게되는기회였고, 특히대순진리회에서행하고있는개인적치유와사회적치유의실제를이해하고, 그과제와전망을제안한것은대순진리회입장에서시사하는바가크다고할수있습니다. 이에본논평자는글을읽으면서가진몇가지궁금증을질문함으로써논평에갈음하고자합니다. 1. Ⅱ장에서발표자는 18세기후반부터 19세기전반의시대상황을살피면서증산의시대인식과연결시키고있습니다. 즉격변기의조선후기사회를증산은 진멸지경 이라는표현을통해당시의사회를설명하였고, 그원인을상극이라는세상의운행원리에서찾고있다. 더불어증산화천후거처하던방에서발견된 병세문 의내용을빌어 병든세상 이된원인을부모 임금 스승에대한은혜를망각하여이세상에충 효 열의도가사라져버린데기인한다고하였다. 그리고증산만의치유방법에대하여증산은큰병에는본래약이없지만그럼에도약을구한다면안심 안신이약이된다고말하고있다. 큰병은마음에서부터시작하는것이므로충효열이사라진원인을마음에서찾아치유할수있음을이야기하며증산의마음정의와마음공부의중요성에대하여강조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여기서마음을움직이게하는요인 ( 원인 ) 은무엇이라고생각하십니까. 또한마음공부를위한올바른수양은어떤것이며, 마음은단순히성찰하는데서만그치는문제가아니라실천의문제로연결된다고하셨는데그실천의문제는구체적으로무엇인지설명부탁드립니다.
64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2. Ⅲ장은 대순진리회치유프로그램의실제 에서기술된대순진리회의 기도 수련 경전강독 에서기도는 신앙의대상또는신명과의합일을추구, 수련은 세속적인자아로부터벗어나성스러운실재에부합하기위한자기훈련의과정, 경전강독은 경전에담긴진리를내재화, 의식화, 인격화, 생활화하는과정 등으로만언급하여다소피상적인언급으로느껴져, 어떠한측면이치유의기능으로작용하는지명확하게이해되지않습니다. 이에대순진리회의종교수행이갖는종교적효과에대해추가설명부탁드립니다. 3. Ⅳ장 사회통합을위한가정화목운동 에서치유를통한개인의완성이사회의통합으로완성되기위해서는개인의삶의터전이자실천수행의기본적장이되는가정화목의중요성을이야기하면서, 가정화목필수요건으로존경과배려를말씀하셨는데대순진리회적존경과배려는무엇인지요? 그리고내자식을잘키우는것도효라고하셨는데어떤의미가있는것인지설명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논문에대한논평자의부족함으로잘못이해한부분이있다면한수가르침을청 하며또한논지전개과정에서무례가있었다면너그러움마음으로이해해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3주제발표>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김 동 환 [사]국학연구소연구원 Ⅰ. 들어가면서 종교는 사회적 기능과 떨어질 수 없다. 특히 전통사회에서의 종교는 사회문화의 근간이 되 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했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이 곧 종교생활이며 사회생활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적용하는 방법과 형태, 그리고 그 기재(器材)들이 변했을 따름이다. 한국의 종교 상황 역시 종교백화점 이나 종교시장 등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 사회는 다종 교사회 로 표현된다. 한국 사회에 종교단체의 수가 많고, 종교단체들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의 원리에 따라 일종의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와 관련하여, 2008년 의 조사 결과, 한국에는 자생 종교와 외래 종교 등을 합해 510여 개 이상의 교단 교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 종교단체들이 많아진 이유에는 여러 조건들이 있었다. 정치 사 회적 조건으로는 개항 이후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에 입각하여 종 교단체의 설립을 허용하는 정책, 실질적인 공인종교 정책 등, 개인적으로는 특정인의 다양한 종교체험과 욕망 등이 그에 해당된다.1) 따라서 그 종교인구도 2005년을 기준으로 2천 4백 9 십 7만 7백 66명으로 나타나 있다.2) 흔히 종교의 기능을 크게 본래적 기능과 수단적 기능으로 나눈다. 본래적 기능이란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다. 즉 자기 종교의 교리나 신앙을 통해 얻게 되는 정신적 위안, 긴장의 해소, 죽음과 같은 공포에 대한 극복 등을 말한다. 또한 수단적 기능이란 본래적 기능 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이다. 흔히 예배, 기도, 노래, 설교 등과 같은 의례들이 이 러한 범주에 속한다. 1) 고병철 外, 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체육관광부, 2011, 3쪽. 2) 같은 글, 9쪽.
6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또한인간들은종교적활동에참여함으로써공동체의식을강화하게되고, 함께사는삶의의미를만들어가게되므로, 종교는사회를하나로묶는작용을해왔다. 종교의사회적기능이다. 이러한기능은뒤르켐 (Emile Durkheim) 에의해서체계적으로정착되었다. 그는종교가사회의기본적가치와규범의근거를확립하며, 사회구성원들간에공동체의식을갖게하여사회가안정성을갖도록한다고말하였다. 3) 즉, 종교는사람들로하여금사회질서에순응하게하고, 사회의가치와규범을사회화시키는방식을통해서사회통합의기능을수행한다는것이다. 또한종교는현존하는사회구조와질서자체를정당화시켜서사회구조와계급등이올바른것임을알게하여사회를통합하고자하였으며, 마지막으로개인들을집단안에서서로의미있는관계성을갖도록하여분리보다는통합에기여하고자했음을강조했다. 종교의사회적통합이라는관점에서보면, 그사회의문제점에대한해결역시반드시수반되는노정이다. 문제의해결없이는결과적통합을도출할수없기때문이다. 그것을종교의사회적치유기능으로보아도무방한이유다. 결국종교의치유와통합기능은동전의양면과같이뗄수가없다. 한편치유나통합이라는의미는집단을주도하는세력의유지기능과도밀접하다. 치유가집단의고질을치료하여낫게하는것이라면, 통합은조직이나기구를하나로모아합친다는의미로해석된다. 정상적 ( 자주적 ) 인집단이라면, 문제점의제거를통한안정된화합을추구하며일치된단결을지속적으로지향할것이다. 반면제국주의집단에서의문제점제거는바로저항세력에대한구축 ( 驅逐 ) 이다. 그리고그들이추구하는안정된화합이란잡음없는식민지의완성과통한다. 이글의주제성립도이러한관점에서가능할듯하다. 일제강점기는우리로보면국가의국권 ( 國權 ) 이무너지는완전한해체였다. 그러나일제의입장에서는또다른통합을향한외연의확장과통한다. 일제에있어무너진대한민국은치유의대상이었다. 완전한일본화 ( 통합 ) 를위한치유의방법이식민지정책이었다. 우리에게도무너진대한민국은치유의대상이었다. 완전한조국광복 ( 통합 ) 을위한치유의방법이독립운동이었다. 흔히말하는 해쳐모여 의대상과목표가정반대였던것이다. 이것이, 같은시기같은공간에서만들어진치유와통합의역설이다. 이러한첨예한역설의시공간중심에대종교가있었다. 대종교는일제와가장치열하게투쟁하며무너져간집단이다. 일제가치유의대상으로한우리의정체성이바로대종교였기때문이다. 그러므로이글에서는일제강점기치유와통합의역설을살펴보고, 그시기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을신도 ( 神道 ) 와신교 ( 神敎, 대종교 ), 조선어와국어, 조선사와국사의관계를중점으로하여, 양보없는투쟁을펼친담론을밝혀보고자한다. 3) 에밀뒤르켐, 종교생활의원초적형태, 노치준 민혜숙옮김, 민영사, 1992, 305-321 쪽참조.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67 Ⅱ. 일제강점기 치유와 통합의 역설 19세기 들어 세계는 낭만적 지구촌 시대를 꿈꾸게 되었다. 인류사와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침략과 피침략이 부 딪친 제국과 식민의 바다였다. 제국주의자들은 탄압과 수탈로 군림하면서 치유와 통합을 외쳐 대는 한편, 식민지인들은 슬픔과 오욕으로 굴종해가며 또 다른 치유와 통합을 모색해야 했다. 제국주의자들이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 식민지 정책이다. 그 자체가 그들에게 는 치유와 통합의 방안이었다. 반면 식민지인들이 탈통치(脫統治)를 위한 수단으로 택한 것이 반식민지운동이다. 이 또한 그들에 있어서는 치유와 통합의 방편이었다. 전자가 식민지 정책 을 통한 통합의 완성을 추구했다면, 후자는 독립운동을 통한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 다. 한마디로 같은 공간에서 지배와 저항이 길항작용을 하며, 치유와 통합의 역설로 나타난 것이다. 20세기 초 조선도 이러한 역설의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을사늑약으로 조선 역시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한편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제는 조선의 내정까지도 간섭했다. 물론 을사 늑약에는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 한다고 하였으나, 이는 허울에 불과한 것 이었다. 조선의 내정을 장악하고 전도(顚倒)된 질서 속에서의 치유와 통합(식민지화) 의 기초 를 확고히 한 후 대륙침략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1910년 5월 병약한 소네 아라스케(曾彌荒助)를 대신하여 통감에 임명된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內正毅)는, 1910년 8월 조선병탄을 이끌어내며 조선총독부의 초대 총독으로 취임하게 된 다. 당시 일제는 1909년 7월 한국병합에 관한 건 과 대한시설대강(對韓施設大綱) 이 일왕의 재가를 통해 결정된 상황이었다.4) 이후 이 두 문건은 일제가 조선을 치유하고 통합(식민지 화) 하는 기본적 방침으로써, 조선총독부로 연결되면서 착실히 계승되었다.5) 한국병합에 관한 건 6)의 내용은,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일본 판도의 일부로 하는 병합을 4) 金正明 編, 日韓外交資料集成 6-下, 巖南堂書店, 1965, 1254쪽. 5) 서민교,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 (한국독립운동의 역사4),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13-27쪽 참조. 6) 한국병합에 관한 건 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은 우리 실력을 해반도(該 半島)에 확립하고 그 파악을 엄밀히 함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일로전쟁(日露戰爭) 개시 이래 한 국에 대한 우리 권력은 점차 커져 더욱이 작년 일한협약(日韓協約) 체결과 함께 한국에서의 시설은 크 게 그 면목을 개량하였다. 비록 한국에서 우리 세력은 아직 십분 충실하게 이르지 못하고 한국 관민의 우리에 대한 관계도 역시 아직 완전이 만족할 만하지 못하였으므로 제국은 금후 더욱 한국에서의 실력 을 증진시켜 그 근저를 깊이 하고 내외에 대하여 도전받지 않을 만큼의 세력을 수립하기에 노력할 것을 요한다. 이리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차제(此際)에 제국정부에 있어 좌左의 대방침을 확립하 여 이에 기초한 제반의 계획을 실행할 것을 필요로 한다. 제1. 적당한 시기에 한국 병합을 단행할 사 (事). 한국을 병합하여 이를 제국 판도의 일부로 함은 반도에서 우리 실력을 확립할 가장 확실한 방법 이다. 제국이 내외의 형세에 비추어 적당한 시기에 단연단연 병합을 실행하여 반도를 명실공히 우리 통
68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단행하고, 병합시기가올때까지는병합방침을확고히하기위한정책을수행하며, 충분히보호의실권을거두고힘써실력부식을도모한다는것이핵심이었다. 또한 대한시설대강 7) 에서는병합시기이전까지군대및경찰의주둔과외교권의장악, 그리고철도시설장악등, 정치 군사 치안 외교 경제권의제반을지배하기위한내용이골자를이룬다. 일제는곧바로제2차러 일협상을통해러시아의병합양해를얻어내고, 8) 그뒤 1909년 12 월일진회백만회원의연명이라칭하고 한일합방성명서 를중외에발표하게하였다. 9) 새로운치유와통합을위한줄탁동시 ( 啐啄同時 ) 의모양새를갖춘것이다. 탄력을받은데라우치는탄압기구를더욱강화하기위해헌병경찰제를실시하였다. 이로써병합준비는계획대로진행되어갔다. 일제는 한국을일본에병합하지않고서는통치의책임은도저히충족할수없다 며 1910년 6월 합병후의조선에대한시정방침 을결정하였다. 10) 이에따르면한국을병합할지라도한국에는일본제국헌법을시행하지않고일본과차별하여통치하며, 일체정무는무관총독이독재하며, 정치와정치기구는될수있는한간단하게하며, 총독부의회계는특별회계로하고그경지는한국의세입철도 통신 관세등으로충당할것을원칙으로하되당분간일정한금액을정하여본국정부에보충하며, 한국인을하급관리로채용토록하였다. 11) 이어 1910년 7월에는 22개항목에이르는 병합처리방안 이작성되고, 일본각의에제출되어통과되었다. 12) 그리고 1910년 8월 16일데라우치는총리대신이완용으로하여금내각대신회의를개최토록한뒤에미리준비한 합병방침 을안건으로채택하여이를통과시킨뒤에, 20일에는순종임석하에어전회의를열어 한일병합조약 을강제로체결하였다. 이에따라데라우치는총독으로임명된다. 식민지로서조선을통치할방안을구체적으로실행해나갔다. 치하에두고, 또한국과제외국과의조약관계를소멸시킴은제국백년의장계 ( 長計 ) 이다. 제 2. 병합시기가도래할때까지병합방침에따라충분히보호의실권을거두도록노력하고실력부식을도모할것. 전항 ( 前項 ) 과같은병합의대방침 ( 大方針 ) 은이미확정하였으나, 그적당한시기가도래할때까지는병합방침에따라우리제반의경영을진보함으로써반도에서우리실력의확립을기하기를필요로한다., 金正明編, 위의책, 1254-1255 쪽참조. 7) 대한시설대강 의전체내용은다음과같다. 한국에대한일본정부의대방침이결정된이상한국에대한시설은병합시기가도래하기까지다음항목에의해이를실행할필요가있다고인정된다. 제 1. 일본정부는기존방침에따라한국의방어와질서유지를담임하고이를위하여필요한군대를한국에주둔시키고또가능한한많은헌병과경찰관을한국에증파하여십분질서유지의목적을달할사 ( 事 ). 제 2. 한국에관한외국교섭사무는기존방침에의해이를우리손에둘것. 제 3. 한국철도를일본철도원관할로옮기고철도원의감독하에남만주철도와연결하여우리대륙철도의통일과발전을도모할사. 제 4. 가급적많은일본인을한국내로이주시켜우리실력의근저를깊게하는동시에한일간의경제관계를밀접하게할사. 제 5. 한국중앙정부와지방청에재임하는일본인관리의권한을확장하여한층민활하고도통일적인시정을행함을기할사., 金正明編, 앞의책, 1255-1256 쪽참조. 8) 信夫淳平, 大正外交 15 年史, 国際連盟協会, 1927, 372-373 쪽. 9) 순종실록 1909 년 12 월 4 일자. 10) 金正明編, 앞의책, 1396-1397 쪽. 11) 김운태, 일본제국주의의한국통치, 박영사, 1998, 144 쪽. 12) 조선총독부편, 韓國ノ保護及倂合, 조선총독부, 1917, 참조.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69 그는 동화정책의 지표로 우선 식민지의 안정화, 문명화, 일본화를 꼽았다. 식민지의 안정화는 동화정책의 전제조건이며, 문명화는 동화정책을 가능케 하는 명분이며, 일본화는 동화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13) 독립국으로서의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마침내 조선 치유와 통합의 책임자가 융희황제에서 데라우치로 바뀌었다. 당시 데라우치 총독의 치유와 통합의 방안은 곧 침략과 지배의 논리로써,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문명개화론으로 압축된다. 그러므로 데라우치는 통치이념이나 시정방침을 거론할 때마다, 융합동화 일시동인주의(一視同仁主義)를 강조하였 다. 이는 한일역사관인 일선동조론에 그 밑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일선동조론과 문명개화론 을 강하게 내세웠던 것은 조선의 독립불능론을 전제로 주장된 것이었다. 당시 데라우치는 조 선은 독립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였다. 한 나라가 독립을 하기 위해 우수한 육군과 해군, 그리고 이들 군사력을 지탱할 수 있는 과학적 능력과 지식의 구비가 필수적인데, 조선의 현 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은 일본을 믿고 일본에 의뢰하는 것이 자국의 행복을 위한 최상의 방책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며, 한국 병탄의 취지 자체도 양국의 상합 일체(相合一體)로 피아차별을 없애고 상호 전반의 안녕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명분이었다.14) 병탄(1910년) 이후 광복(1945년)까지 일제(조선총독부)의 모든 제도(制度)나 령(令) 규칙(規 則) 등은, 이러한 기조 위에서 식민지의 완성을 심화시켜 갔다. 이것이 그들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한 치유와 통합의 방법이었다. 또 그 명분으로 동원한 것이 조선(조선인)의 성격 자 체를 미개성 타율성 정체성(停滯性) 반도성(半島性) 등등의 부정적 속성으로 치부하여, 치유의 대상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한편 의병운동으로 고개를 든 일제에 대한 저항은, 일제의 조선병탄 이후에는 보다 본격화 되었다. 즉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진 조국의 현실에 수긍하지 않는 세력에 의해 다양한 저 항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종교의 등장은 일제에 대한 총체적 저항의 중심이었 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15) 특히 민족정체성의 고수 혹은 회복을 통한 선진성(先進性) 자율 성 발전성 대륙성의 강조는, 일제가 추구하려 한 치유와 통합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이었다. 또한 많은 대종교지도자들은, 당시 융희황제가 포기한 치유와 통합의 권한을 일제에 게 준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준 것임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가령 1917년 상해에서 발표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 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선언은 대종교지도자 신규식 이상설 박 은식 신채호 윤세복 조소앙 신석우 한흥 등 14명의 명의로 발표된 것으로, 그 내용 중 에 융희황제의 주권 포기는 즉 아국민(我國民)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禪位)니, 아동지(我同志)는 당연 13) 서민교,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 앞의 책, 18쪽. 14) 서민교, 앞의 책, 19-27쪽 참조. 15) 김동환, 대종교의 민족운동, 종교계의 민족운동 (한국독립운동의 역사38),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 회, 2008, 139-146쪽 참조.
70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히 삼보(三寶)16)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또 대통(大統)을 상속할 의무가 유(有)하도다. 고로 이천만의 생령(生靈)과 삼천리의 구강(舊疆)과 사천년의 주권(主權)은 오인(吾人) 동지가 상속하였고 상 속하는 중이요 상속할 터이니, 오인 동지는 차(此)에 대하여 불가분의 무한책임이 중대하도다. 17) 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즉 융희황제의 주권 포기가 결코 일제에게로의 주권 양도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 주권 계승의 특권이 우리(국민)에게 있고 그것에 대한 무한책임 역시 우리에게 있음을 공언했다. 아무튼 대종교는 그 무한책임의 실천을 위하여 총체적 저항을 했다. 잘못된 치유와 통합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며 무너져 갔다. 당시 많은 종교들이 일제의 치유와 통합의 정책에 호응하면서 순치되었던 양상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것은 대종교라는 집단이 여타 종교들보다는 민족정체성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강하다는 점과도 관 련된다. 즉 일제가 무단통치로부터 민족말살정책을 펴기까지, 그들이 추구하는 치유와 통합에 가장 큰 걸림이 조선민족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일제의 치유와 통합의 완성이 조선의 완전한 일본화였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의 치유와 통합의 완성이 정체성 회복을 통한 조국 광복의 완성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일 제강점기 치유와 통합의 역설은 이와 같은 비정상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과 저항의 아노미 역시, 제국의 구호와 식민의 구호가 충돌하는 회색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Ⅲ. 일제강점기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늘 그랬듯이, 단군은 외세와의 투쟁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원천이었 다. 조선 말기에도 단군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백봉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 교집단이 그것이다.18) 특히 이 집단은, 후일 나철을 중심으로 하는 단군교(대종교) 성립에 소 중한 토대를 마련해 줌으로써, 근대 정체성 확립의 신기원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 는다. 더욱이 대종교의 중광은 우리 민족사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침체된 단군신앙의 단순한 부활을 넘어서, 주권을 잃어버린 암울한 우리 민족사 회 전반에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으며 망국의 한을 품고 중국 만주 그리고 연해 16) 토지 인민 정치 17) 宣言, 4-5쪽. 18) 신운용, 대종교 세력의 형성과 그 의미,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4,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5, 21 쪽.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71 주로 망명한 우국지사들과 유리표박(遊離漂迫)하던 수많은 동포들에게도 정신적 안식처를 제 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종교의 중광(重光, 다시 일어남)은, 중광의 명분을 가장 극명 하게 보여주는 단군교포명서 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긴 세월 민족적 정체성(正體性)의 와해 속에서 급기야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적 수모를 당하게 된 역사적 원인에 대한 냉철한 자성과 함께 그 치유방안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19) 그러므로 대종교에서는 민족정체성과 관련한 여러 분야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국시(國是)로서의 홍익인간이나, 국전(國典)으로서의 개천절, 그리고 국기(國紀)로서의 단군기 원 등이 모두 대종교를 매개로 정착된 것이다.20) 또한 국교(國敎) 국어(國語) 국사(國史) 부문 에서의 대종교의 인식 제고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민족문화에 가장 핵심을 이루는 이 분야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홍암 나철 신사(神師)로 하여금 단군교(대종교-필자 주)를 중광시켜, 노예적 구사상(舊思想) 구세력(舊 勢力)을 탈각(脫殼)하고, 전민족적 혁명에의 길로 전환되었다. 그리하여 노예적 사편(史片)을 자주적 사 면(史面)으로, 유교 불교 정신을 배달교(倍達敎) 정신으로, 그리고 한문어(漢文語)를 국문어(國文語)로 혁신하여, 국어 국문 국사 국교(國敎)를 회복하였고, 만천하 동포가 대종교에 귀일케 되니 실로 중로(中 路) 양령(兩嶺)에 단군문화가 독립운동 봉화대가 되고, 백두천산은 독립운동 사령탑이 되고, 나홍암 신 사는 민족운동의 총사령격(總司令格)이시었다. 21) 라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 기록을 남긴 이현익(李顯翼)은 만주 대종교 항일운동의 일선 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흥업단에서의 활동과 함께 광정단에서는 북부외교장(北部外交長)으 로도 활약했다. 또한 신민부에서는 이승림(李承林)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대 종교의 비밀조직인 귀일당(歸一黨)에서는 이일림(李一林)이라는 가명으로 항일운동을 한 인물 로서22) 당대의 정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한편 대종교의 국교와 국어 국사에 대한 애착은 일제의 조선 침략에 대한 각성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그 방면을 통한 대종교의 저항은 집요하고 치밀했다. 즉 일제는 그들의 신도(神道) 국교화(國敎化)를 통해 우리의 전래 신교를 압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하여 우리의 국어를 조선어로 타자화시켰으며, 우리의 국사 역시 조선사로 몰락시켰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신도, 일본어, 일본사가 우리의 국교 국어 국사로 자리 잡았다. 1. 신교(神 敎 ) 조선어 조선사가 주는 교훈 19) 20) 21) 22) 김동환, 김동환, 이현익, 이현익, 대종교 항일운동의 정신적 배경, 국학연구 제6집, 국학연구소, 2001, 140쪽. 대종교와 국가정체성, 대종교보 (통권 제295호), 대종교총본사, 2014, 30-77쪽 참조. 대종교인과 독립운동연원 [ 대종교보 (통권 288호), 대종교총본사, 2000, 51쪽.] 위의 책, 79쪽.
7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주목되는것은 20 세기초에해외신사건설로본격화된일본의신사신도 ( 神社神道 ) 23) 가천 황제이데올로기와결합하여국가신도를지향하던신사였다는점이다. 따라서일본이지배하 는영토에는일본의신이강림한다는이른바국체 ( 國體 ) 교의에입각하여추진한것이해외신 사건설이었다. 그러므로해외신사건설이란다름아닌종교침략과일맥하는정책이었다. 24) 이또한일제가그들의신도보급에있어, 한국의신교 ( 대종교 ) 를용납하지못한배경이된 다. 1915 년일제가우리의신교 ( 대종교 ) 를부정하고일본의신도만을용인함으로써, 명실공히 일본의신도가우리의국교 ( 國敎 ) 를대신하게되었다. 우리의신교 ( 대종교 ) 는불법종교로전 락하고만다. 일제가패망할때까지극렬하게대종교를없애려한근본적인이유가여기에있다. 결코 일제는그들의신도와한국전래신교 ( 대종교 ) 의양립을용납할수없었다. 신도를국교로했 던일제로서는, 신도의뿌리를주장하는조선의신교 ( 대종교 ) 를용납한다는것이성립되지않 았다. 한마디로대종교와신도와의전쟁이시작된것이다. 이것은일본신도의 태생적한계 ( 한국의전래신교에그뿌리를둠 ) 에서오는자격지심도있으려니와, 조선의영구지배를위 해서도단군으로상징되는조선의정체성을방관할수없었기때문이다. 일제의신사창건은, 그들의국교인신도의보급을통해, 일본의정체성을우리에게이식하 겠다는의도에서출발했다. 즉그들의조상신을우리의조상이라정당화함으로써, 내선일체 일 선동조론의명분을합리화하고궁극에서는황민화를달성하려했던것이다. 한민족정체성의 중심인대종교가, 일제의패망때까지총체적대일항쟁의길을걷게됨도그이유다. 즉우리 의신교 ( 대종교 ) 와일제의신도간에물러설수없는싸움이전개된것이다. 따라서일본신도 의원조임을내세운대종교의공간은, 일제의탄압에의해철저하게부정되고말살되었다. 주권을빼앗겼던시기, 우리의국어와국사가조선어와조선사로전락한기억도우리의아 픔경험이었다. 나 를 나 라못하고 그 라고칭하게된역사적사례다. 25) 1911 년 8 월에공포 된이른바 조선교육령 ( 朝鮮敎育令 ) 26) 은일제의초기민족말살정책이잘드러나있다. 조선 교육령제 2 조는 교육은교육에관한칙어에기초한충량한국민을육성하는것을본의로한 다 고하였고, 제 5 조는 보통교육은보통의지식기능을전수하고특히국민다운성격을함양 하고국어 ( 일본어 - 필자주 ) 를보급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 는것이골자로되어있다. 즉이 조선교육령은교육의주체가한민족이아님을극명히보여준다. 27) 이 조선교육령 은일제의식민지교육을제도화하고그방침을천명한것이었다. 데라우치 23) 신사신도는교파신도나민속신도와는구별되는일본신도의한흐름으로. 신사를정신결합의중심으로삼고. 천황제지배를뒷받침하던이념적신사였다.( 國史大辭典編纂委員會編, 國史大辭典 7, 吉川弘文館, 1985, 41 쪽.) 24) 村上重良, 國家神道, 岩波書店, 1974, 79-80 쪽참조. 25) 김동환, 국학의개념규정을위한시론, 국학연구 제 15 집, 국학연구소, 2011, 89-91 쪽참조. 26) 1911 년의 조선교육령 을흔히 제 1 차교육령 이라고한다. 이후 1922 년 2 월 4 일, 1938 년 3 월 3 일, 1943 년 4 월 1 일에각각교육령이개정되었다. 27) 이만규, 조선교육사 下, 을유문화사, 1949, 186-187 쪽.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73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은 조선교육령 반포 직전인 7월 1일 각도 장관 회의에서 훈시를 행하였다. 이때 교육방침과 관련된 다음 사항은 조선교육령의 숨겨진 의도를 그대로 알려주 고 있다. 一. 한국인을 일본 신민으로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一. 점진주의(漸進主義)로 한다. 一. 근로의 습관을 형성하도록 힘쓴다. 一. 보통교육 및 실업교육에 힘쓴다. 一. 국어(일본어-필자 주) 보급을 도모한다.28) 데라우치 조선총독은 조선교육령의 실시를 맞이하여, 그들의 교육에 관한 칙어(勅語) 의 취 지를 들고 조선은 아직 내지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덕성의 함양과, 일본어의 국어 의 보급에 힘써 일본천황의 충량한 신민(臣民)다운 자질과 품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 는 유고(諭告)를 내린 것이다. 특히 마지막 항에 국어(일본어) 보급을 도모한다 는 부분에서 는 우리말이 나그네의 언어인 조선어로 몰락하고, 일본어가 국어의 자리를 차지하여 주인 행 세를 하게 됨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한글학회로 자리 잡았지마는, 조선어학회란 명칭 역시 기분 좋은 이름은 아니 었다. 1911년 국어의 자리를 일본어에 빼앗긴 수모 속에서, 국어학회란 명칭을 떳떳하게 사용 하지 못한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디 조선어학회가 1908년 창립된 국어연구학 회를 모태로 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후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바꾸 고 1949년 9월 명칭인 한글학회로 정착한 것이다. 우리 국사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역사교육이 결정적으로 위축되게 된 것 역시 1910 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떨어진 뒤다. 일제는 수차에 걸친 조선교육령 등 각종 법령을 통해 우리의 역사교육을 압살해 나갔다. 당시 조선인의 교육을 일본천황의 교육에 관한 칙어 의 취지에 따라 충성스럽고 착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을 본의로 했기 때문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1911년의 1차 조선교육령 에 따라 당시 보통학교에서는 역사를 국어(일본어)과나 조선어 과 안에서 다루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국사는 바로 일본사를 의미했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더욱 한국사의 말살에 혈안이 되었다. 고등보통학교의 경우 당초 교 과과정 편성에서 주당 2시간의 조선사를 허용했으나, 1919년 12월 관련 규칙의 개정을 통해 서 조선사를 제외시키고 1921년에는 일본사를 정식 교과과정에 편입하였다. 그리고 각급 사 립학교의 경우도 공립학교규칙에 준하도록 하였다. 당시 총독부 학무과장 유게 코타로(弓削幸 太郞)는, 3 1운동의 최대원인이 조선인의 독립 욕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조선인이라는 의식을 없애고 마침내는 자기가 일본인이라는 관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29) 28) 매일신보 1911년 7월 9일 조선학제안입안.
74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일제의 교육방침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 것이다. 한마디로 국사(일본사)의 자존심을 높이고 조선사의 열등의식을 고양하는 것이 그들의 방침이었다.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하여 조선사를 편찬하면서, 조선사의 식민지근성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주인(일본사)과 노예(조선사)의 구별을 분명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 의 조선반도사편찬요지(朝鮮半島史編纂要旨) 를 보면, 조선인은 여타의 식민지의 야만미개한 민족과 달라서, 독서와 문장에 있어 조금도 문명인에 뒤떨어질 바 없는 민족이다. (중략) 혹은 한국통사 라고 일컫는 한 재외조선인 저서같은 것의 진상을 규명하지 는 않고 함부로 망설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를 절멸시킬 방책만을 강구한다 는 것은 도로(徒勞)에 그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전파를 장려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옛 역사를 강제로 금하는 대신 공명적확한 사서로써 대처하는 것이 보다 첩경이고 또한 효과가 더욱 클 것이다. 이 점을 조선반도사 편찬의 주된 이유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서적의 편찬이 없다면 조선인은 무심코 병합과 관련 없는 고사(古史), 또한 병합을 저주하는 서적만을 읽는 일에 그칠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된다면 어떻게 조선인동화의 목적을 달 성할 수 있을 것인가? 30) 라는 내용이 나타난다. 이것은 일제가 조선사를 편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일제에 노예가 되는 조선사 일제에 굴복하는 조선사 일제에 순종하는 조선사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성이 아닌 타율성론을 부각시키고, 발전 성이 아닌 정체성론을 강조하며, 단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닌 복속된 열등민족으로서의 시혜의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만든 국사(일본사) 에서 조선은 일본의 일개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서 나타난 조선사의 모습은 정체 되고 타율적인 역사로서 일본의 합병에 의해 그 본연의 지위를 얻고 문명화가 가능하게 되는 그러한 역사로 조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국사는 조선사로 전락한다. 주인의 학문이 나그네의 학문으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한 원로사학자가, 역사학도로 발을 디디게 된 소회를 적은 글의 한 부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즉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어와 일본사를 국 어, 국사라는 교과서로 공부했던 역사적 슬픔은 충격이었다는 고백이 그것이다.31) 2. 대종교의 국교(國 敎 ) 국어 국사 투쟁의 담론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종교 쟁점은 우리의 전래 신교(神敎, 대종교)와 일본 신도(神道)의 29) 송건호, 민족통일을 위하여(2), 송건호 전집 2, 한길사, 2002, 373쪽에서 재인용. 30) 朝鮮史編修會編, 朝鮮半島史編纂要旨, 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시인사편집부 엮음, 시인사, 1986, 참조. 31) 이원순, '해방 공간'의 한 사학도, 역사가의 탄생, 지식산업사, 2008, 125-138쪽 참조.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75 충돌이었다. 일본 정체성의 핵심인 신도를 통하여 조선의 새로운 치유와 통합의 완성을 도모 하려 했던 일제로서는, 일본 신도의 종주(宗主)를 자처하며 나타난 대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새로운 치유와 통합의 첩경이었다. 우선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이, 일본의 신도가 우리 신교에 뿌리를 두었다는 다음의 인식을 주목해 볼 일이다. 대화(大和:일본-인용자 주)의 옛 사기(史記)를 살펴보건대, 일본 민족의 근본과 신교(神敎)의 본원이 다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신사(神社)의 삼보한궤(三寶韓几)와 궁내성(宮內省)의 오십한신(五十韓神)32) 이 다 어디에서 왔으며, 의관문물(衣冠文物)과 전장법도(典章法度), 그리고 공훈을 세운 위인들이 다 어 느 곳으로부터 왔는가. 33) 즉 일본의 신도만이 아니라 일본문화의 모든 질서가 한국으로부터 건너갔음을 말하고 있 다. 그것도 일본 정체성의 뿌리가 모두 한국으로부터 갔다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일본총리에 게 보낸 것이다. 이후 패망 때까지, 일제가 극렬하게 대종교를 없애려 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결코 일제는 그들의 신도와 한국 전래 신교(대종교)의 양립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도를 국교로 했던 일제로서는, 신도의 뿌리를 자처하는 조선의 신교(대종교)를 용 납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교와 신도와의 전쟁이었다. 이것은 일본 신도의 태생적 한계 (한국의 전래 신교에 그 뿌리를 둠)에서 오는 자격지심도 있으려니와, 신도의 국 교화를 통한 조선의 영구지배를 위해서도 단군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정체성을 방관할 수 없 었기 때문이다.34) 그러므로 1915년 국내에서의 대종교포교금지령이 내려진 이후의 신교 국내 활동은 거의 불 가능한 상황이었다. 1915년 8월 16일 공포된 포교규칙 은 일본의 신도를, 불교 기독교와 함 께 식민지 조선에서 종교로 공인한다. 일제는 191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3호로 발포 한 포교규칙 에 의하여35) 대종교는 그들이 정한 신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청서를 각하하였 다. 사실상 종교 활동의 중단 상태로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대종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지 자, 일제는 서서히 자신들 국체의 우월성을 교화하는 국가신도(國家神道)를 보급하며 신도의 국교화를 진행시켰다. 일제의 신사 창건과 신도의 보급은 일본의 국풍(國風)을 우리에게 이식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즉 그들의 조상신을 우리의 조상이라 정당화함으로써, 내선일체 일선동조론의 명 분을 합리화하고 궁극에서는 황민화를 달성하려 했다. 한민족 정체성의 상징인 대종교가, 일 32) 五十韓神이란, 이소다게루(五十猛)나 이데도(五十迹手) 그리고 일본 황실의 시조로써 백제계의 신(神) 인 가라가미(韓神)를 지칭하는 것이다. 33)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앞의 책, 247쪽. 34) 김동환, 대종교 성지 청파호 연구: 종교지리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제17집, 국학연구소, 2013, 225쪽. 35)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施政年報, 大正 6年(1915) 372쪽.
7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제의패망때까지총체적대일항쟁의길을걷게됨도그이유다. 우리의신교 ( 대종교 ) 와일제의신도간에물러설수없는싸움이전개된것이다. 따라서일본신도의원조임을내세운대종교의종교공간은, 일제의탄압에의해철저하게부정되고말살되었다. 일제의신도정책에대항한대종교의조직적저항역시만만치않았다. 나철은대종교의국교의식 ( 國敎意識 ) 환기를통해일제의신도국교화와정면으로충돌했다. 나철은대종교가우리민족의역사속에연면히흘러온종교이며, 우리민족의종교적사유를가장옹글게간직한것이단군신앙으로보았다. 36) 우선대종교의전래경전이단군시대로부터유래되는것이며그것의역사적전개또한교명 ( 敎名 ) 만달리할뿐, 동북아전역에이어왔다는것이다. 즉부여에서는대천교 ( 代天敎 ) 고구려에서는경천교 ( 敬天敎 ) 발해에서는대도진종 ( 大道眞倧 ), 그리고신라는숭천교 ( 崇天敎 ) 로고려는왕검교 ( 王儉敎 ) 로만주에서는주신교 ( 主神敎 ) 로흘러왔음을밝혔다. 37) 또한삼신제석으로떠받드는성조신 ( 聖祖神 ) 과태백신제 ( 太白神帝 ) 인산상신 ( 山上神 ), 그리고만주족이신봉하는주신 ( 主神 ) 과태고단신 ( 太古檀神 ), 중국인들이떠받드는동황대제노백신 ( 東皇大帝老白神 ) 등도같은하느님의이음동의어로보고있다. 38) 또한나철은 교문을세우니이름하여대종이요현묘한도의근원은삼일이라 ( 乃設敎門曰大倧玄妙之原道三一 ) 고밝힘으로써, 39) 현묘지도의근원이단군신앙의삼일철학에있음을설파했다. 그러므로그는순교당시제자엄주천에게남긴유서에서도신라최치원의 난랑비서 ( 鸞郞碑序 ) 를간곡하게일깨우는데, 40) 이것은최치원의 국유현묘지도 ( 國有玄妙之道 ) 에나타나는국교의식을전수하려는나철의의지라고보아도무리가없다. 최치원의현묘지도 ( 풍류도 ) 는한국고대종교의결정체로서, 국가적 민족적 영토적 문화적통합에의해서형성된한국고대의가장뚜렷하고독창적인종교요사상이며문화이기때문이다. 41) 나철이창교가아닌중광 ( 重光 : 단군신앙을다시일으킴 ) 을내세운것도, 몽고침입이후 7 백년간단절되었던위와같은종교적인맥을다시세웠기때문으로풀이된다. 즉단군신앙고유제전인팔관 ( 八關 ) 이몽고의침략으로무너졌다는것이다. 까닭에나철은순교당시유서를통해서도진실한정성을위해팔관의재계 ( 齋戒 ) 42) 가있음을일깨우고있다. 43) 팔관은고려조이지백 ( 李知白 ) 의상소내용에서도전래되어온선랑 ( 仙郞 ) 의유풍이었음이확인되고, 44) 36) 김동환, 국학과홍암나철에대한연구, 국학연구 제 9 집, 국학연구소, 2004, 228 쪽. 37) 대종교총본사편, 중광가, 홍암신형조천기, 대종교출판사, 2012, 63 쪽. 38) 같은글, 68 쪽. 39)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앞의책, 172 쪽. 40) 대종교총본사편, 보본엄주천에게준글, 홍암신형조천기, 앞의책, 91 쪽. 41) 도광순, 풍류도와신선사상, 신선사상과도교, 범우사, 1994, 83 쪽. 42) 팔관재계란, 고려때의팔관재에서임금과백성이한가지로하느님께제사하되 생물을죽이는것 도적질하는것 음란한것 망령되이말하는것 술을마시는것 높은평상에앉는것 비단옷을입는것 함부로듣고봄을즐기는것 등의여덟가지허물을금하자는의식이다. 43) 대종교총본사편, 密諭, 홍암신형조천기, 앞의책, 53 쪽. 44) 高麗史 卷第九十四, 列傳第七, 徐熙.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77 고려 의종은 선풍(仙風)과 팔관회를 받들어 따를 것을 명한 바가 있으며,45) 그 행사 내용도, 백희가무(百戱歌舞)와 사선악부(四仙樂部), 다섯 길이 넘는 채붕(綵棚) 설치와 모든 신하들이 포홀행례(袍笏行禮)를 하는 등의 불교적 행사와는 완전히 다른 전래 행사였다.46) 아무튼 나철의 위와 같은 국교의식은 김교헌 서일 신규식 윤세복 이시영 등등 당시 많은 사람 들에게 파급되었다. 대종교의 국교적 의미 부여는, 당시 신문인 대한매일신보 에서 이미 언 급되고 있다.47) 즉 국가 간의 세력 다툼에서 종국적으로는 종교의 침략이 나타남을 지적하 고, 그 나라의 국성(國性)으로 된 국교의 의미를 인식시켰으며, 대종교와 천도교가 그러한 가 치 위에서 나타난 것임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황성신문 논설에서도 我始祖檀君은 神聖의 德으로 繼天立極 셧스니 神道說敎로 作君作師 심을 歷史의 明證이오 神人의 后裔로 神敎를 信仰 은 理想의 固然이라. 故로 星湖 李先生이 曰 我國古代에 神敎가 始有라 이 豈不 信哉리오. 由此觀之 면 我國의 宗敎 歷史 第一世 神敎오 第二世 箕子의 倫敎오 第三世 佛敎오 第四 世 儒敎로 相承 이 歷歷可證이라. 凡我子孫은 此敎化歷史에 對 야 宜乎紀念 고 崇拜 思想이 有 지로다. 48) 라고 언급했다. 여기서는 단군의 종교가 신교(神敎)로써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며, 성호 이 익의 말로도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자의 윤교(倫敎) 뿐만 아니라, 불교, 유교에 앞선 유구한 종교가 단군 신교임을 강조했다. 박은식 역시 정신적 승리를 위한 종교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당시의 대종교가 단군 시대의 신교에서 출발하여 연면히 이어온 종교임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단군 시대에는 신도(神道)로 백성을 교화하였기에 그 종교를 신교(神敎) 또는 배천교(拜天敎)라 한다. 대개 고대 사람들의 사상은 모두 신권(神權)에 복종하였다. 그러므로 역(易)에 이르기를, 성인은 신도 로 교를 베프니 천하가 복종하였다 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 동방의 역대 왕조에 고구려의 시조는 선교 (仙敎)로 세상을 다스렸고, 신라의 시조는 신덕(神德)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모두 단군으로부터 온 것이 고, 단군이 신인(神人)으로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동방교화의 시조를 삼았기 때문에 오늘날 조선의 교 계에 대종교가 있다. 종(倧)은 신인의 칭호이니 이는 단군의 신교를 받드는 것으로 곧 역사적 종교이 다. 49) 이것은 단군신앙이 단군의 신교를 출발점으로 연면히 이어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대종 교 국교관에 통시적 당위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또한 신채호도 단군이 곧 선인(仙人)의 시 조라, 선인은 곧 우리의 국교(國敎)이며 라고 밝힘으로써,50) 단군신앙이 우리 민족의 국교임 45) 高麗史 卷第十八, 世家 卷第十八, 毅宗 二十四年. 46) 高麗史 卷第六十九, 志卷第二十三, 禮十一, 嘉禮雜儀, 仲冬八關會儀. 47) 大韓每日新報 1910년 5월 18일 論說-韓國宗敎界의 將來(續). 48) 황성신문 1910년 8월 9일 論說-我檀君子孫의 民族과 疆土아 敎化의 歷史. 49) 박은식, 대동고대사론, 백암박은식전집 제4권, 동방미디어, 2002, 387쪽.
78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을주창하고있다. 또한정인보는해방후 순국선열추념문 을통하여, 국변 ( 國變 ) 당시조야 ( 朝野 ) 를통하여열절 ( 烈節 ) 히계기 ( 繼起 ) 한지라, 수사 ( 守土 ) 의장리 ( 長吏 ) 를비롯하여구원 ( 丘園 ) 에서간정 ( 艱貞 ) 을지키던이, 국교 ( 國敎 ) 로민지 ( 民志 ) 를뭉치려던이, ( 후략 ) 라는표현과같이, 51) 국교의기원을단군에두고나철을국교 ( 國敎 ) 로써민족의뜻을뭉치려하였던인물로평가하고있다. 한편일제강점기많은지도층인사들이대종교에직접입교하지는않았더라도, 당시단군사상의정점에있었던대종교를국교로받아들이려는정서가팽배해있었다. 52) 그러므로일제하만주지역을보더라도, 대종교는종교적성격보다이주한인사회를상징하는사회운동단체와같아서다른종교인들과도쉽게교류하게되었다. 천도교 기독교인이라하여도대종교에대해서는거부감을보이지않았으며, 모두백두산아래모인배달족일뿐이었다. 53) 또한대종교에입교하여대종교인으로서활동하지않았다하더라도, 국교적대종교관을가진인물들도적지않았다. 백범김구는카톨릭배태교인 ( 胚胎敎人 ) 이면서도대종교를방문할때마다천진전 ( 天眞殿 ) 에참배 ( 參拜 ) 드리고윤세복을배견 ( 拜見 ) 한후나도대종교인이라는것을자처하면서, 우리가한배검자손인이상모두그가르침속에살아왔음을고백하곤했다. 54) 김구가 백범일지 나의소원 부분에서우리나라가세계에우뚝서는나라가되기를간절하게소망하는데, 무력 ( 武力 ) 이나경제력 ( 經濟力 ) 이아닌 아름다운문화 로써우뚝서기를갈망한다. 그리고그힘의원천이우리국조단군의홍익인간이념이그것임을밝힌것도이러한정서와무관치않다. 55) 이승만또한일찍부터서구적분위기에서기독교적정서에친숙한인물이지만상해임시정부대통령당시어천절기념식석상에서행한찬송사 ( 讚頌詞 ) 56) 를통해단군황조의뜻을계승하고펴겠다는간곡한다짐이주목되는데, 1921년초상해신원 ( 申園 ) 공원에서이승만은대종교의핵심인물이었던신규식 박찬익과의형제를맺었다는기록이나, 57) 대종교국내총책임자였던강우 ( 姜虞 ) 가무오년인 1918년에이미이승만을고유 ( 告由 ) 로써대종교에입교시킨기록이있음을볼때, 58) 당시대종교에대한그의정서를엿볼수있다. 그리고안창호와이동휘 50) 신채호, 조선상고사, 단재신채호전집 ( 개정판 ),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1995, 372 쪽. 51) 정인보, 순국선열추념문, 담원정인보전집 2, 연세대출판부, 1983, 264-265 쪽. 52) 김동환, 일제하항일운동배경으로서의단군의위상, 선도문화 제 10 권, 국학연구원, 2011, 168 쪽. 53) 서굉일, 단애윤세복과독립운동, 단애윤세복선생추모학술강연회논문집, 대종교종학연구원, 2001, 18 쪽. 이러한예는당대대표적인천도교의이론가였던이돈화에게서도발견된다. 즉이돈화는대종교의교사인 단군교오대종지서 를 단군역사 라는제목으로불교잡지에연재도했다.( 白頭山人, 檀君歷史, 潮音, 朝鮮佛敎靑年會通度寺支會 (1921 년 11 월 ). 27-29 쪽참조.) 54) 이현익, 대종교인과독립운동연원, 앞의책, 48-49 쪽. 55) 김구 ( 도진순주해 ), 나의소원, 백범일지, 돌베개, 1997, 431 쪽. 56) 이승만, 어천절찬송사, 독립신문 1922 년 4 월 30 일 ( 陰 ) 자. 57) 남파박찬익전기간행위원회편, 南坡朴贊翼傳記, 남파박찬익전기간행위원회, 1989, 161 쪽. 5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편, 호석선생문집, 독립운동사자료집 제 12 집 ( 문화투쟁사자료집 ), 1977. 517 쪽.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 일제강점기민족정체성확립을통한투쟁담론을중심으로 79 도개천절송축사 59) 와개천절축사 60) 를통하여단군설교 ( 檀君設敎 ) 의민족적의미를예찬했는데, 당시의단군이나대종교는종교나이념을초월한민족단합의상징이었음이확인된다. 대동단결선언 과 대한독립선언( 무오독립선언 ) 의기초자로알려진조소앙도국교적대종교관을잘보여주는인물이다. 61) 특히그는 1914년 1월 15일에 육성일체 ( 六聖一體 ) 만법귀일 ( 萬法歸一 ) 금식명상 ( 禁食冥想 ) 의육성교 ( 六聖敎 ) 라는종교를구상하면서도, 육성 ( 六聖 ) 을사상과연결시키면서단군은독립자강 ( 獨立自强 ) 에불타 ( 佛陀 ) 는자비제중 ( 慈悲濟衆 ) 에공자는충서일관 ( 忠恕一貫 ) 에소크라테스는지덕합치 ( 知德合致 ) 에예수는애인여기 ( 愛人如己 ) 에마호메트는신행필용 ( 信行必勇 ) 에각기연결시켰다. 62) 여기서특히육성중에단군을제일으뜸으로놓고독립자강과우선연결시킴으로써, 대종교의영향과함께그의국교적대종교관이드러난다. 기독교계열의학교였던만주명동학교의실례를보더라도알수있다. 당시김약연이이끌던명동학교에서는교실에단군초상화를걸고수업을했는가하면, 예배당에도십자가와단군기를함께놓고예배를드렸다한다. 또한명동학교교가의가사에는백두산과더불어대종교의용어인단군한배검얘기가들어있다. 그러므로결혼할때에도단군의아들 딸들이했으니아들을낳으라는의미로검정두루마기를입었다는증언이이를확인해준다. 63) 김약연이대종교도들이중심이되어발표한 무오독립선언 에기꺼이참여한이유가쉽게이해되는부분이다. 일제의고문으로옥사한환산 ( 桓山 ) 이윤재는 대종교라하면얼른보기에요새새로생긴무슨교이니무슨교이니하는것처럼치기도쉬우나실상그러한것이아닙니다. 이것이우리진역 ( 震域 ) 에있어서가장오랜전통과깊은근기 ( 根基 ) 를가진것임은징 ( 徵 ) 하여밝히알것입니다. ( 중략 ) 그러니그본원과본체는어느때든지지고최상 ( 至高最上 ) 인냥독특한교문 ( 敎門 ) 그대로있었읍니다. 이것이곧대종교그것입니다. 라는견해를통해연면한국교의위치에있었음을설명했다. 64) 애류 ( 崖溜 ) 권덕규역시대종교를 조선의생각 으로인식하면서, 우리민족의역사와흥망성쇠를함께한국교적가치로자리매김시키고있다. 65) 이러한대종교의국교적정서를가장잘적어놓은인물이가람이병기다. 그가대종교에정식으로입교한것은 1920년 11월 21일이다. 그리고그는대종교에입교할당시의심경을다음과같이피력하고있다. 59) 안창호, 개천절송축사, 독립신문 1922 년 10 월 12 일 ( 陰 ) 자. 60) 이동휘, 개텬절축사, 震檀 第七號, 震檀報社 ( 中國 上海 ), 中華民國九年 (1920), 2 쪽. 61) 김동환, 일제하항일운동배경으로서의단군의위상, 앞의책, 174-177 쪽참조. 62) 홍선희, 조소앙사상 : 삼균주의의정립과이론체계, 태극문화사, 1975, 54 쪽. 63) 문화방송시사교양국편, 독립투쟁의대부 : 홍암나철 ( 자료집 ) (3 1 절특집 : 이제는말할수있다 74 회 ), 문화방송시사교양국, 2004 년, 35-37 쪽참조. 64) 이윤재, 대종교와조선인, 삼천리 제 8 권제 4 호, 삼천리사, 1936, 140-143 쪽참조. 65) 권덕규, 조선생각을차즐대, 개벽 제 45 호, 개벽사, 1924, 34-40 쪽참조 ; 권덕규, 大倧敎觀, 대종교는역사상으로어떠한가, 삼천리 제 8 권제 4 호, 삼천리사, 1936, 134-139 쪽참조.
80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나는 한배님 가르치심을 믿음은 진실로 오랜 것으로 생각한다. 한배님께서는 우리의 등걸에 가장 비롯 하고 거룩하시고 높으시고 크시어 다시 우러르고 끝없고 가없은 등걸이다. 고로잘해 먼저부터 우리 등 걸들께서 한배님을 가장 높이시고 사랑하시고 믿어오며 우리로부터 고로잘해 그지없는 뒤에도 우리 자 손들이 한배님을 가장 높이고 사랑하고 믿을지니라. 이를테면 우리 등걸이든지 우리든지 이승에 생겨나 올 적에 반드시 삼신께서 만들어 낳으셨다 하니 삼신이 곧 한배님이시라. 한배님께서 하늘에 계실 적에 는 환인(桓仁)이시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계실 적에는 환웅(桓雄)이시었고, 이승에 내리었을 적에는 단 군(檀君)이시었다. 이러하므로 삼신이라 이름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마다 집마다 한배님을 높이고 믿 었다. 실상 이제 새삼스럽게 한배님의 가르침을 믿는다니 하잘 것 없다. 이미 삼천 년 긴 동안이나 높이 시고 믿으면서 왔다. 그러나 이 때는 다른 때와 달라 온갖 다른 교(敎)란 것이 들어와 한배님의 가르치 심을 어지럽게 하므로 다른 때보다 더욱 얼을 차리고 힘을 다해 한배님의 가르치심을 널리 펴 널리 알 아, 위로는 우리 등걸의 큰 뜻을 받아 이고 아래로는 우리 자손에게 이 뜻을 전하여 우리는 우리대로 문명을 짓고 문명을 자랑하며 살아야 함이다. 제 어버이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다른 어버이를 공경하며, 또 저의 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아들을 사랑한다 함은 합리한 일이 아니다. 진실로 우리가 한 배님을 버리고 누구를 높이며 믿으랴. 한껏 한배님의 가르치심이 이 누리로 가득하여 나아가기를 빌고 또 비노라. 66)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병기는 대종교에 정식으로 입교하기 이전에 이미 대종교에 대 한 상당한 이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대종교 신앙이야말로 오랜 세월 전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흘러왔음을 밝히고 후손들의 믿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 고 있다. 또한 삼신의 의미가 바로 한배님임을 밝히고 우리 민족 구성원이면 누구에게나 이 미 녹아있는 종교적 성정(性情)임을 피력함과 아울러, 새삼스레 대종교에 입교하여 믿는다는 것이 형식적 번거로움임을 토로한다. 즉 이병기는 대종교를 국교의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것 이다. 한편 민족문화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는 것이 언어와 역사다. 이것은 그 집단 (민족)을 치유하고 통합시키는 데도 중요한 동인이 된다. 민족 집단에 있어 언어와 역사는 그 집단의 종교 철학 사상과 더불어 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국어와 국사를 조선어와 조선사로 구축해 버림으로써, 우리 정체성의 요소로부터 망각시키려 하였다. 그들 정체성(일본어와 일본사)의 이식(移植)을 위한 치유의 대상이 우리의 국어와 국 사였으며, 통합의 방법이 새로운 국어(일본어)와 국사(일본사)로의 대체였다.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보여준 대종교의 역할과 저항 또한 주목되는 부분이다. 훈민 정음 등장 이후 조선조 말기까지 우리글은 한마디로 국어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의 사회구조와 밀접하다. 즉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조선의 국시(國是)인 유교적 정서를 토대로 한문으로 소양을 쌓고 그것을 통하여 과거에 응시하고 사 66) 이병기, 가람일기(Ⅰ), 신구문화사, 1975. 130쪽.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81 회적 입지를 굳건히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있어 한문이라는 것은 학문이나 정치 사회 활동 및 여가활동 등 모든 지적표현활동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지적(知的) 구조에 다가 중국에 대한 사대모화사상이 맞물려 한문숭상주의가 당연히 득세할 수 있었고 한글은 그러한 구조적 벽에 걸려 언문(諺文: 상놈의 글)으로 폄하되어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까닭에 우리글의 의미를 민족문화의 반열 위에 내세운다는 것은 이러한 인식의 틀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먼저 정신적으로는 유교적 사대모화사상(事 大慕華思想)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며, 한편으로는 기득권을 가진 지식층의 한문어(漢文 語)를 청산하고 민중보편적인 우리글의 확립을 조직적으로 도모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이다. 또한 당대로는, 일제의 치유(우리의 국어와 국사)를 통한 통합(조선어와 조선사로 바꿈) 정책에, 또 다른 치유(우리 국어와 국사를 지킴)를 통한 통합(조국광복의 완성)의 길을 모색 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종교는 단군교포명서 에 이미 조선이라는 말이 배달에서 왔다는 설명과 더불어 배달목 태백산 패강 임검 이사금 이니금 나라 서울 등 우리말에 대한 어원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것 은 단군교단이 대종교 중광 이전에 이미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다. 또한 대종교를 중광할 당시 단군교단으로부터 받은 봉교과규(奉敎課規) 중에 다음과 같 은 지침이 나타난다. 一. 봉교인은 남녀를 가리지 말고 문자를 해득치 못하는 자는 마땅히 국문(한글-필자 주)을 먼저 익히 게 하되 만일 가난하여 여유가 없는 자에게는 부득이 강행할 것임. 67) 즉 문자를 모르는 교인이 있으면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국문(한글)을 먼저 습득케 하라는 종교적 규약을 보면, 한글에 대한 대종교 혹은 나철의 방침이 무엇이었는가가 분명하게 확인 된다. 또한 대종교의 노래 중 나철이 작사한 한풍류(天樂) 세얼(三神歌) 세마루(三宗歌) 어 천가(御天歌) 등에 나타나는 나철의 순수한 우리말 사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단어 한 글자에도 한자어 사용이 없고 유려하고 세련된 조탁에 의해 펼쳐진 이 노랫말 속에서, 나철 의 순수 우리말 구사 능력과 그것을 위한 노력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68) 한힌샘 주시경은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물론 1905년 신정국문(新訂國文) 실시 주장 했던 지석영도 대종교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주시경이야 말로 우리글의 명칭을 한글 이라고 처음 명명한 인물로서, 한글을 통한 언어민족주의와 한글 대중화를 위해 1914년 7월 27일 임종하기까지 오로지 헌신했던 인물이다. 그의 한글사랑에 대한 계기 또한 대종교다. 주시경은 배재학당 졸업 당시에 받은 예수교 세례를 과감히 버리고 대종교로 개종한다. 그는 무력침략보다 정신적 침략을 더 무서운 것으 67)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앞의 책, 100쪽. 68) 김동환, 나철: 이 달의 문화인물, 문화관광부, 2005, 17-19쪽 참조.
82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로 여겼으며 본인이 예수교인으로 있다는 것은 이미 정신적 침략을 받은 것으로 다음과 같이 단정했다. 선생은 종교가 예수교였는데, 이 때 탑골승방에서 돌아오다가 전덕기 목사를 보고, 무력침략과 종교적 정신침략은 어느 것이 더 무섭겠습니까? 하고 물을 때에 전목사는 정신침략이 더 무섭지. 하매, 선생은 그러면 선생이나 나는 벌써 정신침략을 당한 사람이니, 그냥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하였다. 전목사는 종교의 진리만 받아들일 것이지 정책을 받지 않으면 될 것이오. 하였지마는, 선생은 과거 사대사상이 종교침략의 결과임을 말하고, 종래의 國敎인 대종교(곧 단군교)로 개종하여, 동지를 모으려고 최린, 기 타 여러 종교인들과 운동을 일으키었으므로, 종교인들에게 비난과 욕을 사게 되었다. 69) 또한 우리 민족 과거의 사대사상이 종교침략의 결과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종래의 국교(國 敎)인 대종교로 개종한다고 천명한 것을 보더라도, 주시경의 한글운동의 배경에는 철저한 대 종교적 정서를 토대로 한 언어민족주의적 가치가 지탱하고 있었다. 주시경의 이러한 국어정신을 계승한 대표적 인물이 백연 김두봉이다. 김두봉은 주시경의 수제자이면서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의 수제자였으며 대종교의 교리 교사에 해박한 인물이었 다. 그는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이 못다 한 일을 이어 받아 그것을 더 넓히고 더 열어서 우리의 말과 글과 얼이 묻히지 않고 영원히 자랄 수 있는 기틀을 다지기 위해 조 선말본 을 저술한 인물이다.70) 또한 그는 1916년 나철의 구월산 봉심(奉審)에 수석시자(首席 侍者)로 동행을 한다.71) 당시 나철은 6명의 시봉자(侍奉者)를 대동하는데 그 중에서 김두봉은 교질(敎秩)이 가장 높은 상교(尙敎)의 위치에 있었다. 상교의 교질이란 대종교에 봉교한 지 최소 5년 이상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교인의 지위로서, 신행(信行)이 일치하고 교리(敎理)의 연찬(硏鑽)이 월등하며 교문(敎門)의 오대종지(五大宗旨)와 오대의무(五大義務)를 잘 이행하며 교우(交友)들에 모범이 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교질이다.72) 후일 조선어학회 조직에도 절대 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김두봉이 일찍부터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했음은 물론 대종교에서의 그 역할 또한 중요했음을 짐작해 볼 때 그의 한글연구를 통한 저항의 배경에도 이러한 정신 굳게 자리잡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극로 또한 그의 혁혁한 문화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상황 속에서 김두봉과 같이 우 리 민족운동사에 잊혀진 인물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이극로는 베를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를 받고 파리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음성학을 연구한 뒤 귀국하여 1929년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에 가입한다. 한힌샘 주시경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1921년에 결성한 조선어연 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바꾸고 조선어사전편찬 한글맞춤법제정 외래어표기 표준어 69) 70) 71) 72) 김윤경, 주시경전기, 한결金允經全集 7,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23쪽. 김차균, 김두봉의 우리말 소리 연구에 대한 국어사학적 고찰, 한힌샘연구, 한글학회, 1989, 89쪽.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앞의 책, 186쪽. 대종교편, 敎秩, 大倧敎洪範 제5장, 대종교총본사, 단기4325년, 30-31쪽 참조.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 일제강점기민족정체성확립을통한투쟁담론을중심으로 83 사정등의굵직한국어의당면문제들을추진해나가는데, 이극로는간사장 ( 幹事長 ) 으로서사 실상어학회를이끌었다. 이극로또한대종교를통하여민족의식에눈을뜨고국학운동에관심을갖게되며국어연 구의계기를마련한다는점에서주목을끈다. 이극로의대종교입교시기는 1912 년으로추측 된다. 이러한추측은그가 1912 년만주회인현 ( 懷仁縣 ) 에서대종교를처음접하고대종교의 중심인물이었던단애윤세복과백암박은식, 그리고국어연구의결정적인계기를만들어주 었던백주 ( 白舟 ) 김진 [ 金振 : 대종교에서는金永肅으로많이알려짐 ( 필자주 )] 을만나이곳에서 생활하게된것을보면알수있다. 73) 이러한만남들은이극로의인생에중요한변화를몰고왔다. 당시윤세복과박은식, 그리고 신채호의만남과한글연구의계기가되는김영숙과의만남은그가대종교적민족주의정서를 토대로한글운동에헌신하게된중요한바탕이되었기때문이다. 그중에서도윤세복은대종 교의절친한동지인백산안희제와함께, 이극로뿐만이아니라신성모 안호상등을중국상해 로보내구라파유학을주선한다. 특히이극로로하여금베를린대학에조선어과 ( 朝鮮語科 ) 를 설치해전세계에우리국어 국문그리고우리문화를최초로선전하는계기를만들어주었고 대종교정신을통한국어사랑에초지일관할수있는의지를심어주었다는점에서윤세복의영 향은지대했다할수있다. 그러므로이극로는해방후에도, 당시대종교의교주를맡고있던 윤세복을도와, 전강 ( 典講 ) 이라는중책맡아대종교의연구와교육활동에중심이되었으며 종학연구회 ( 倧學硏究會 ) 회원으로서활동하기도했다. 74) 공교롭게도임오교변 (1942 년대종교지도자일제구속사건 ) 과조선어학회사건이모두이극로 와연관이된다는점도흥미롭다. 임오교변이이극로가윤세복에게보낸 널리펴는말 75) 이라 는글이단서가된것같이, 조선어학회사건은만주에서윤세복이 단군성가 ( 檀君聖歌 ) 라는 가사를지어경성에있는이극로에게보내작곡을의뢰했는데, 이가사가조선어학회이극로 의책상위에서일경 ( 日警 ) 에의해발견됨으로써조선어학회사건의결정적인빌미가되는것 이다. 76) 이렇듯이극로도대종교와불가분의관계를맺으면서그의국어사랑의실천및조선 어학회를이끌었음을볼때, 그의국어운동을통한항일운동의정신적배경또한대종교로 귀착됨이분명해진다. 이밖에도조선어학회와연관된많은인물들이대종교를토대로활동하면서일제에대해 조직적인저항을감행했다. 이것은조선어학회가대종교정신으로무장한주시경의제자들이 73) 이극로, 滿洲와西伯利亞에서放浪生活하던때와그뒤, 苦鬪四十年, 을유문화사, 1947, 8-9 쪽. 74)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앞의책, 577-579 쪽참조. 75) 당시경성에서조선어학회를이끌고있던이극로가윤세복에게보낸서찰중에 널리펴는말 이라는원고가동봉되었는데, 일경은이를먼저검열하고그내용을일문 ( 日文 ) 으로번역함에있어그제목을 조선독립선언서 라고바꾸어붙이고그내용의마지막부분에나오는 일어나라움직이라! 한배검이도우신다. 라는내용을 봉기하자폭동하자! 한배검이도우신다. 로날조하였다. 바로이내용이임오교변발생의직접적인단서가되었던것이다.( 대종교중광육십년사, 위의책, 458 쪽참조.) 76) 이인, 반세기의증언, 명지대학출판부, 1974, 124-127 쪽참조.
84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중심이 되어 태동시킨 단체라는 점과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던 김두봉과 이극로의 대종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대표적 인물 들 중, 최현배 이윤재 권덕규 신명균 안재홍 정인보 이병기 안호상 등등의 인물들도 대종교 정신 을 토대로 국어 투쟁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더불어 문학적인 부분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각성이, 대종교적 정서 위에서 민족문학적 모 티브를 찾으려 했던 안확(安廓)77)을 위시하여, 지성인들의 양심과 어울려 나타난다. 빙허 현 진건이 1932년 동아일보 에 연재한 단군성적순례 또한 이러한 정서의 연장에서 출현한 것 이다. 현진건이 단군성적순례 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은 나철 시 한 수로 끝맺고 있음도 이에 대한 반증이다. 參星壇上拜吾天 참성단에 올라 하늘에 절하니 天祖神靈赫赫然 한배님의 영험이 밝기도 밝아라 廣開南北東西至 누리를 개척함이 가없이 이르고 歷溯四千三百年 느리워진 역사 사천삼백 년이라 倍達族光從古闡 배달족의 영광 본받아 떨치니 大倧道脈至今傳 대종교의 가르침 지금도 전하네.78) 일제의 치유와 통합의 정책에서 대종교와 충돌한 또 한 부분이 역사 방면이다. 그들은 우 리 우리 민족의 족보를 그들의 족보로 편입시키려했다. 즉 조선의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과거 사를 치유하고 문명화된 미래를 열어주겠다는 명분으로 한국사의 새로운 통합(식민사관)을 시 도한 것이다. 일제의 한국사 왜곡의 배경을 보면 일제침략기에 별안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깊다.79) 일제의 한국사에 대한 침략적 안목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가 본격화되면서 식민 주의사관이라는, 더욱 세련된 논리로 자리 잡게 된다. 병탄 직후부터, 조선총독부에서는 어용 학자들을 동원하여 고적조사 구관제도조사(舊慣制度調査) 등의 사업을 통해, 식민지통치를 위 한 기초자료수집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한국인의 문화적 저력과 역사적 자긍심이 남다르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일본 어용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타율성론 정체성론 일 선동조론 등의 가치를 한국사의 굴레에 잡아 묶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77) 안확은 대종교의 정신 속에서 그의 문학관을 형성하는데, 대종교의 기본 경전인 삼일신고 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대종교 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종(倧)을 토대로, 그의 조선문학사 의 정신적 근원인 종사상(倧思想)을 구체화시킨 인물이다.(김동환, 국학과 홍암 나철에 대한 연구, 앞의 책, 252-255쪽 참조.) 78) 현진건, 단군성적순례, 예문각, 1948, 107-108쪽. 이 시는 나철이 대종교를 일으키고, 강화도 마니산 제천을 행할 당시에 지은 시로써, 강도지(江都誌) 에 실려 전한다.( 江都誌 名所古蹟 古蹟 ) 79) 일본인 하타다 다카시(旗田巍)는 그의 저서(旗田巍, 日本人の朝鮮觀, 勁草書房, 1969참조.)에서, 일본 학자들의 조선 연구 경향이 잘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日本人の朝鮮觀 滿鮮史の虛像 日 本における朝鮮史硏究の傳統 등의 논문이 실려 있다.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 일제강점기민족정체성확립을통한투쟁담론을중심으로 85 그러므로일제는한국사에관한서적들을수거폐기시키면서, 한국인의민족의식고취와관련된독서를금지시켰다. 그리고한민족문화적역량의줄기가되는한국사에대한조직적인왜곡작업을진행하게된다. 때마침대종교계열의역사가였던박은식의 한국통사 가국내에유입되어민족의식이고무됨을보자, 일제는서둘러한국사의편찬작업을시작했다. 이것은바로식민사관에입각한한국사의정리로써, 객관적실증주의를명분으로내세우고이면에는타율성론 정체성론 일선동조론과같은부정적역사관으로한국사를포장하는목적성연구작업이었던것이다. 중화사관과일제의식민사관이중첩되는시기에대종교가등장한다. 일제의식민사관은과거조선조중화사관의적절한변용으로잉태된또다른왜곡사관이었다. 즉일제의식민사관은중화사관에나타나는우리역사의사대성 ( 事大性 ) 과종속성을교묘히재활용하여정착시키려했다. 이러한중첩성은, 대종교의역사투쟁이과거중화사관의척결과더불어일제식민사관에맞서게되는운명적구조의배경이된다. 20세기초대종교의등장은한국사학사에도일대변화를몰고온다. 그것은대종교의교리 ( 敎理 ) 나교사 ( 敎史 ) 의특성상, 정신사관적 ( 精神史觀的 ) 인요소의강조와대륙사관적 ( 大陸史觀的 ) 인측면의부각, 그리고문화사관적 ( 文化史觀的 ) 인방향이중시될수밖에없었다는것이다. 정신사관적인측면에서본다면, 우리나라사학사의흐름을유교사학 불교사학그리고도가사학 ( 道家史學 ) 의흐름으로이해해볼때, 80) 과거유교와불교중심으로흘러내려오는역사인식을도가 ( 道家 ) 또는신교 ( 神敎 ), 즉대종교적역사인식으로바꾸는것을의미하는것이다. 또대륙사관적인방향에서살펴볼때, 그동안반도중심적, 즉신라 고려 조선으로이어지는역사인식을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요 금 청등의대륙중심의인식으로확산시켜가는것을말하는것이다. 그리고문화사관적인입장에서본다면, 외래사조에침체되고와해된우리고유문화, 즉신교문화 ( 神敎文化 ) 를복원하고그것에정체성 ( 正體性 ) 을부여하는작업과도일치하는작업이었다. 한편대종교의이러한측면들의강조는당연히과거와현실에동시에맞서야하는이중적부담을안게되었다. 먼저과거조선조에화석처럼굳어진성리학적정통론과맞서야하는문제였다. 즉주무왕에의해봉해졌다는기자의조선이아닌중국과대등하게출발하는단군의조선으로돌려놓는일이그것이다. 종속적역사에서자주적역사로의회귀를말하는것이다. 또하나는당대일제식민사관과의투쟁이었다. 일제는타율성 정체성 반도사관을앞세워조선의역사를치유의대상으로환작 ( 幻作 ) 시켰다. 일제는황국사관의토대위에서우리의역사를철저하게유린해갔다. 대종교사관은일제의황국주의 침략주의 어용주의의탈을쓴식민사관에대항하는민족사관으로자리잡았고, 나아가민족적역사의식의고취를통한항일운동의중심축으로우뚝섰다. 80) 한영우, 17 세기반존화적도가사학의성장, 한국의역사인식 상, 지식산업사, 1976, 264 쪽참조.
86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대종교의정신사관적측면을분석함에있어가장선행해야할부분이대종교중광의종교 적특성을살펴보는일이다. 한말등장하는여타종교의교주들과는달리, 나철은자기역할에 서분명한차이를보여주고있다. 즉대종교에서단군의의미는종교적입장으로본다면창 교주인동시에민족사의관점에서는국조 ( 國祖 ) 가되기때문이다. 그러므로대종교에서단군 의위상을올바로세운다는의미는종교사와국사를동시에바로세운다는뜻과도일맥하는 것으로신교사관 ( 神敎史觀 ) 곧대종교사관의본질이여기에있다. 위와같은대종교사관을가장잘정리한인물이김교헌이다. 81) 김교헌은그의저술인 신 단민사 ( 神壇民史 ) 신단실기 ( 神壇實記 ) 배달족역사 에서대종교의역사적원형인신교사관 ( 神 敎史觀 ) 을정립한다. 신단민사 에서는우리단군민족의혈통의흐름을대종교의경전인 신사 기 ( 神事記 ) 와같은구족설 ( 九族說 ) 에그근원을찾음과함께, 역사적강역인식에서는대륙을 주요활동무대로설정하여고조선부터조선조까지철저하게대륙적인식을버리지않고있다. 신단실기 에서도단군에대한사적 ( 事蹟 ) 과신교사상에대한자취를모아자료집의성격으로 정리해놓았으며 배달족역사 는, 정확히말하면김교헌이교열 ( 校閱 ) 한것을대한민국상해임 시정부가발간한것으로, 신단민사 의굵은줄기만을간추려놓은축소판이라할수있는책 이다. 김교헌의역사정신은독립운동의동력으로연결되었다. 국권을상실한일제하에서무엇보다 시급한문제가국권회복을위한투쟁의식이었다. 따라서역사교육을통한독립의식의함양과 고취는가장중요한요소였다. 김교헌의역사서는재만한인사회의학생들에게독립의식고취 를위한교과서였던동시에, 일반민중이나상해임시정부의학생교육서로쓰였다. 나아가중광 단 정의단 북로군정서를비롯한독립군들에게도정신교육의중요한도구가됨으로써독립투 쟁정신을북돋는데크게이바지한다. 그러므로김교헌이있던곳이독립운동의거점이되었 고동시에곧민족사연구의현장이었다. 그곳은또한독립군양성의요람으로진정한민족 사관의근거지였다. 우리가얻어낸독립과자유는이러한역사의식을통한희생으로얻어진 결과였다. 일제에부용하면서, 질곡의시대에안주하며그러한시대가영원하길바라던노예 적식민사관하고는근본적인차이를보여준다. 신채호역사정신의핵이라할수있는낭가사상 ( 郎家思想 ) 의형성배경에도대종교의정신 적요소가크게작용하고있다. 그것에대한단적인예로, 신채호가대종교를경험하기이전 에는그가유교라는정신적바탕을벗어나지못했다는것이다. 82) 그러므로그는신교 ( 神敎 ) 와 81) 김교헌이우리역사계에차지하는비중에대해서는, 김두봉이 중국의사마천 ( 司馬遷 ) 이세운공보다더크다 ( 동아일보 1924 년 1 월 23 일, 金敎獻 ( 茂園 ) 追悼式 : 일월십삼일에상해에서열어 ) 고평한것이나, 안재홍이 우리민족전체의선생 ( 조선일보 1926 년 1 월 2 일, 茂園金敎獻씨를悼함 ) 이라고추앙함에서도알수있다. 또한 우리나라역사학의우두머리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편찬위원회편,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42, 서한집 Ⅰ, 白純이李承晩에게보낸서한 (1921 년 12 월 29 일 )) 로평한백순의기록, 그리고상해 독립신문 의사장을지낸김승학이 대한민국역사계의독보적존재 ( 독립신문 1923 년 7 월 21 일. 神檀民史刊行廣告 ) 로광고한내용에서도그무게가확인된다. 82) 김동환, 일제하항일운동배경으로서의단군의위상, 앞의책, 164-165 쪽참조.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 일제강점기민족정체성확립을통한투쟁담론을중심으로 87 같은맥락인한국고대선교 ( 古代仙敎 ) 에대해서, 불로장수를추구하는중국종교의아류 ( 亞流 ) 로공박했다. 그러나대종교를경험하면서완전히변한다. 중국도교와는전혀성격이다른 우리민족고유의선교가이미도교수입이전부터형성되어우리민족신앙의중요한줄기가 되었다고인식한것이다. 그변곡점이된신채호의논문이 1910 년 3 월에발표된 동국고대선 교고 ( 東國古代仙敎考 ) 다. 그는이글에서과거의유교정신의잔재를청산하고우리고유의 사상을바탕으로한역사의식의변화를극명하게보여주는모습이다. 그러므로 1910 년대이 후의신채호의역사연구는거의대부분을선교 ( 대종교 ) 의실체를연구하는데두어졌다고해 도과언이아니며, 83) 이러한사상적바탕위에서대륙적인식및문화사의지평을넓혀간 것이다. 박은식또한대종교를경험하기이전에는유교적중화사관 ( 中華史觀 ) 에서헤어나지못한 고루한유학자에지나지않았다. 84) 1910 년이전의박은식은인생이나사회구제의대명제 ( 大 命題 ) 로공부자 ( 孔夫子 ) 의도, 즉유교밖에없다는인식으로일관한다. 그리고유교구신 ( 儒敎 救新 ) 을위하여양명학운동이나대동교 ( 大同敎 ) 창건등의활발한활동을전개했던것이다. 까닭에대종교경험이전의박은식의역사의식은민족사관과는거리가먼유교적애국사상가 수준을벗어나지못했다. 1910 년만주로망명한후의박은식의변화는환골탈태그자체였다. 바로대종교를경험하 면서다. 그의역사정신의고갱이라할수있는국혼 ( 國魂 ) 의의미도바로대종교의정신적구 현이라할수있다. 그러므로그는신교 ( 神敎 ) 의현대적구현이대종교로단정하고대종교를 국교 ( 國敎 ) 로서의가치가있음을고증도한다. 85) 박은식역사인식의변화를단적으로보여주는글이 몽배금태조 다. 이글은나라가망한데 대한준엄한자기비판이통곡처럼흐르고앞으로나라를찾으려는결의가천둥처럼울려퍼 지는통렬한독립지침서이며변모된박은식에대한사상과의식이가장집중적으로표된책 으로써, 86) 이글을쓰게된동기가대종교의영향임을서두에서박은식스스로밝히고있다. 박은식은이글을통하여유교적가치에대한환멸과함께, 유교를민족의자존과독립을위 해반드시청산해야할반민족적가치로규정함은물론, 망명전교육의정신적토대였던유 교가교육을통해극복되어야할대상임적시하고있다. 즉중화사관의극복이곧일제식민 사관에대한투쟁임을자각한것이다. 또한박은식은, 육체의생활은잠시일뿐영혼의존재는영구한것이라고언급하며, 인간이 나라에충성하고민족을사랑하는자면육신의고초는잠시일뿐이요그영혼의쾌락은무궁 한것이라고말한다. 반면에나라를팔아먹고민족에화를주는자는육체의쾌락은잠시일 83) 한영우, 한말에있어서의신채호의역사인식, 단재신채호선생탄신 100 주년기념논집,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1980, 175-176 쪽. 84) 김동환, 백암박은식과대종교, 앞의책, 199-247 쪽참조. 85) 박은식, 한국통사, 박은식전서 하권, 단국대동양학연구소, 1975, 359 쪽. 86) 김영호, 해제, 박은식전서 상권, 앞의책, 5 쪽.
88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뿐이요 영혼의 고초는 무궁할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87) 정신사관의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박은식의 역사정신이 대동고대사론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에 흐르는 국혼사 관(國魂史觀) 대륙사관 대종교사관의 형성에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한편 정인보의 역사정신의 중추인 조선얼 또한 대종교의 영향 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정 인보는 나철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국내비밀활동을 전개했을 뿐만이 아니라,88) 신규식의 동 제사(同濟社) 활동에도 가담하여 직 간접적인 대종교 활동을 감행한다. 그 또한 대종교가 단군 이 처음 교화를 베푼 것이며 대종교를 국교로 인식했던 인물이다. 특히 정인보는 인간이 얼 을 잃어버린 것은 남이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자실(自失)하는 것임을 환기시키면서, 학문이 얼이 아니면 헛것이고 예교(禮敎)도 얼이 아니면 빈 탈이며, 문장(文章)이 얼이 아니면 달(達) 할 것이 없고 역사정신 또한 얼 이 아니면 박힐 것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얼은 진(眞)과 실 (實)이니 얼이 아니면 가(假)와 허(虛)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던 인물이다.89) 이 밖에도 안재홍 이상룡 류근 장도빈 권덕규 등도 대종교적 정서 위에서 그 나름의 민족사를 개척하고 서술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다음과 같은 박은식 역사인식의 정서에 부합되 는 인물들이었다. 혼의 됨됨은 백에 따라 죽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도 망하지 않는다. 한국의 백은 이미 죽었으나 이른바 혼이란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90) 문 사 철(文史哲)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집단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는 국학(國學)의 가치 와 통한다. 국학이란 우리 정체성의 중심이 되는 학문으로, 우리가 우리 학문의 가치관적 근 간을 부를 때 일컫는 명칭이다. 따라서 국학이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줄기로 하여 우리 민 족사에 연면히 이어온 인문학적 사상(事象)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91) 근대 동북아 문화충돌의 중심에 국학이 있었다. 전통시대를 주도하던 중국의 국학(유교질 서)이 일본의 국학(신도질서)에 의해 구축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 한국의 국학 (신교질서)도 움텄다. 그것이 나철의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있다) 이다. 일제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했던 대종교의 독립운동 또한, 이 정신(道, 단 군정신)을 토대로 운용되었다. 나철이 강조하는 정신을 몸통으로 하여 종교화한 것이 대종교 요, 언어화한 것이 한글투쟁이며, 역사화한 것이 민족사관이었다. 이러한 단군의 열기는, 1916년에 이미 대종교의 신자가 30여만 명에 달했다는 나철 스스로의 기록에서도 확인된 다.92) 87) 88) 89) 90) 91) 박은식, 이현익, 정인보, 박은식, 김동환, 몽배금태조, 박은식전서 중권, 같은 책, 207쪽. 대종교인과 독립운동 연원, 앞의 책, 87-88쪽. 조선사연구(상), 담원정인보전집 3, 연세대출판부, 1983, 29-30쪽. 한국통사, 박은식전서 상권, 앞의 책, 367쪽. 국학이란 무엇인가, 한뿌리, 2011, 40-69쪽 참조.
대종교의 사회적 치유와 통합에 대한 연구: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 확립을 통한 투쟁 담론을 중심으로 89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대종교의 국교 국어 국사투쟁은, 전통시대 중국의 국학을 극복하기 위 하여 몰락해버린 우리의 문 사 철을 재구(再構)해가는 작업이었다. 동시에 일본의 국학을 치료 제로 우리의 국학적 요소를 치유하려 했던 일제에 대한 중요한 투쟁의 수단이었다. 더욱이, 당시 대종교는 여타 종교들이 드러냈던 호교론적(護敎論的) 선택(일제와의 타협)도 사용할 수 없었다. 민족정체성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일제는 그들의 새로운 통합(그들이 주장하는 완전한 내선일체)을 이루지 못하고 패 망한다. 이제 해방된 공간에서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말과 글 우리의 역사를 떳떳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율도 얻었다. 다만 언급한 치유와 통합의 역설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바로잡 혔는지 또 다시 묻고 싶을 뿐이다. Ⅳ. 나아가면서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 속의 인간사는 가치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일제강점기는 누천년 우리 역사 속에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유일한 경험이었 다. 우리의 모든 정체성이 흔들린 시간이었다. 그 경험의 후유증은 애국과 매국이라는 이름으 로 아직도 충돌하고 있고, 그 정체성의 혼돈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한편 인간사의 중심에는 늘 종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의 사회적 기 능과 맞물려, 그 치유와 통합의 역설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기가 바로 일제강점기다. 신도 국교화를 완성하려 했던 일제에 맞서 우리의 정체성을 자처하며 투쟁한 집단이 바로 대종교 였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단군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가치다. 이미 단군정신은 불교를 국시로 한 고려조에서, 불교와 유교 그리고 몽고의 침략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 받으면서도 저항했던 경험이 있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조에서도 철저하게 유린된 요소가 단군역 사와 그 가치였다. 일제는 그들의 신도(神道) 국교화(國敎化)를 통해 우리의 전래 신교를 압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하여 우리의 국어를 조선어로 타자화시켰으며, 우리의 국사 역시 조선사로 몰락시켰 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신도, 일본어, 일본사가 우리의 국교 국어 국사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종교 쟁점은 우리의 전래 신교(神敎, 대종교)와 일본 신도(神道)의 충돌이었다. 일본 정체성의 핵심인 신도를 통하여 조선의 새로운 치유와 통합의 완성을 도모 하려 했던 일제로서는, 일본 신도의 종주(宗主)를 자처하며 나타난 대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92) 나철, 일본 총리 오쿠마(大隈)에게 준 글, 홍암신형조천기, 대종교출판사, 2012, 78쪽. 한편 일 본 학자 요시카와 문타로(吉川文太郞)도 그의 저술에 당시 대종교도가 30만에 달했다고 적고 있다.(吉 川文太郞, 朝鮮の宗敎, 朝鮮印刷株式會社(朝鮮 京城), 大正十年(1921), 353쪽.)
90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새로운치유와통합의첩경이었다. 일제의신도정책에대항한대종교의조직적저항역시만만치않았다. 나철은대종교의국교의식 ( 國敎意識 ) 환기를통해일제의신도국교화와정면으로충돌했다. 또한일제는우리국어와국사를조선어와조선사로주변화시킴으로써, 우리정체성의요소로부터망각시키려하였다. 그들정체성 ( 일본어와일본사 ) 의이식 ( 移植 ) 을위한치유의대상이우리의국어와국사였으며, 통합의방법이새로운국어 ( 일본어 ) 와국사 ( 일본사 ) 로의대체였다. 이방면에대한대종교의저항역시만만치않았다. 한글 이라는이름을정착시키면서언어투쟁의최전선에나섰으며, 중화사관과일제식민사관에극복 대항하면서민족사관을정착시킨것이다. 대종교의국교 국어 국사투쟁은, 전통시대중국의국학을극복하기위하여몰락해버린우리의문 사 철을재구 ( 再構 ) 해가는작업이었다. 동시에일본의국학을치료제로우리의국학적요소를치유하려했던일제에대한중요한투쟁의수단이었다. 더욱이, 당시대종교는여타종교들이드러냈던호교론적 ( 護敎論的 ) 선택 ( 일제와의타협 ) 도사용할수없었다. 민족정체성그자체였기때문이다. 가치는형량하기나름이다. 그러나그진위 ( 眞僞 ) 와정사 ( 正邪 ), 그리고경중 ( 輕重 ) 의원칙은흔들려서는안된다. 그것이종교의정신이요, 역사의지향이다. 일제강점기대종교가총체적저항을통해드러낸치유와저항의담론이, 혹여시류 ( 時流 ) 의또다른역설에의해묻혀가는것은아닌지아쉬울뿐이다.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 일제강점기민족정체성확립을통한투쟁담론을중심으로 91 < 토론문 > 김동환선생님의 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한연구 에대한토론문 신운용 한국외국어대학교 김동환선생님은대종교연구의 대가 입니다. 오랜세월동안대종교연구에천착해오셨 고지금도이분야의선구적인연구가입니다. 오늘발표하신논문의주제가대단히어려 움에도불구하고잘정리해주시었고또한이분야의시야를넓혀주고있다고생각됩니다. 김동환선생님은오늘발표주제에맞게우선뒤르켐 (Emile Durkheim) 의종교정의를인용하여 사회의기본적가치와규범의근거를확립하며, 사회구성원들간에공동체의식을갖게하여사회가안정성을갖도록하는것이라고종교의개념을정리하고있습니다. 더나아가서사회와개인의통합을종교의기능이라고보시고계십니다. 선생님께서는이러한개념아래대종교의사회적치유와통합에대해서기술하였습니다. 토론자는대체적으로선생님의논지에동의하는바입니다. 그러나토론자의임무를다하기위해다음과같이몇가지질문하고자합니다. 첫째, 모든종교가사회와개인의통합을지향하고있지만, 종교간의통합은대단히어려운이야기입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 원불교, 대종교, 천도교등한국의종교는모두그배경과역사를달리하고있습니다. 특히외래종교가유입됨에따라그민족의정체성에심각한영향을끼치는것이사실입니다. 한국에서는아직그러한현상은없지만심지어는종교전쟁이우리땅에서벌어질지도모릅니다. 정체성의훼손은민족구성원간의통합보다는분열을가속화시키는원인이됩니다. 이러한문제에있어대종교가다른종교와달리종교간의통합이론이있는지소개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둘째, 한국근대의일제는한민족내부의치유와통합보다이간질과분열을군사적강
92 2016 년도제 36 회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 : 원불교개교백년기념 Ⅺ 근현대한국신종교운동에나타난치유와통합 점상황에서한민족의정체성의핵심인식민사학의정착에지대한공을드려왔습니다. 식민사학의구조에서우리는여전히빠져나오지못하고있습니다. 대일항쟁기신채호등의대종교인들은민족의통합과협력의방안으로단군과상고사에진력하였습니다. 그결과독립운동세력은종교를넘어단군과상고사에대한인식을공유했습니다. 국권이회복된지 70년이넘은오늘날여전히단군을부정하고한사군을평양에설정하고, 임나일본부의한반도남부에존재했다고학문을넘어서믿음의단계에있는것이오늘날의현실입니다. 이러한현상을타계할대종교의이론이무엇인지설명해주면감사하겠습니다. 셋째, 선생님께서는근대재종교인들이구체적으로대종교이론에바탕을둔신교의부활이론인홍익인간정신을독립전재의수행, 식민사학과의대결로상징되는민족사학, 국어학의정립등을소개해주시었습니다. 그런데이처럼근대대종교가민족의치유와통합을위해일정한역할을하였다는점은선생님의글을통해충분히알수있지만현대대종교는사회와개인의치유와통합을위해어떠한일을해왔는지소개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넷째, 사회와개인의치유와통합을종교의역할이라고한다면한민족을넘어서적어도동북아시아의치유와통합을위한대종교의방안이있으시면한마디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한민족의치유와통합을위해한국의종교들이진정으로공유해야할가치 가무엇인지듣고싶습니다.
<제4주제발표> 통일교 경전에 나타난 마음챙김의 요소와 치유 이 재 영 선문대학교 Ⅰ. 들어가는 말 많은 현대인들이 심리적 요인에 의한 심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고도의 경쟁 사회에서 갈등과 긴장 상황이 만들어졌고 여기서 스트레스, 우울감, 상실감 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러한 정신적인 질병들은 생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 을 유발한다. 심인성에 의한 질병들은 약물이나 물리적인 처치료 일시적인 완화는 가능하지 만 완치가 어렵다. 심인성에 의한 질병은 먼저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안정이 요구되며 필요 에 따라 약물 사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리고 심인성의 질병의 치유는 자신의 의지와 노 력이 필요하다. 심인성에 의한 치료는 심리치료와 생리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질병의 심리적 인 요인을 찾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늘날 심리학에 기반을 둔 여러 가지 심리치료 기법 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기존의 심리치료에서 명상을 기반으로 한 심리치 료 기법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서양에서 정신분석, 인지 행동 치료 등에서 명상을 기 반으로 한 치료가 일반화 되고 있다.1) 명상 중에서 불교명상 위빠사나의 핵심 요소인 싸티(sati)를 기재로 한 명상 심리 치료가 대중화 되고 있다. 빨리어 사티는 영어로 mindfulness 로 번역되고 우리말로는 마음챙김, 알 아차림, 수동적 마음집중 등으로 번역하여 사용된다. 마음챙김이란 의도적으로 판단을 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2) 즉 위빠사나(vipassana)의 본래 의미인 대상 을 분별없이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3) 대상과 현상을 분별없이 객관적으로 주시하게 1) 마음챙김 명상을 기초하거나 응용한 명상심리 치료법에는 Reduction), MBCT(Mindfulness Based Cognitive Commitments Therapy), DBT(Dialectical Behavior Compassion) 등이 있다. 2) John Kabat-Zinn, Wherever You Go. There You 마음챙김 명상 (서울: 도서출판 물푸레, 2013), p.27.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Therapy), ACT(Acceptance and Therapy), MSC(Mindfulness Self Are. 김언조 고명선 옮김, 존 카밧진의
94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되면 자각과 통찰력이 강화되어 현재의 순간을 비판단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대상을 접하게 될 때 대상에 대한 관념적인 분별과 판단에 의해 야기된 불안과 불만족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현존에 대한 자각과 통찰은 관념과 습관에 의한 감 각대상에 이끌려가지 않고 자신에 깨어 있게 한다. 자신에 깨어 있음, 즉 현존에 깨어 있을 때 마음을 제어할 수 있고, 현존에 깨어있지 못하게 될 때 대상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일어 난다. 감각대상에 대한 자각과 통찰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갈애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다. 감각대상에 대한 자각과 통찰을 마음챙김이라고 하며 마음챙김은 자아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준다. 본 논문은 통일교 경전에 나타나는 마음 작용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그 메커니즘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마음챙김의 요인과 치유의 기재를 고찰하고자 한다. 통일교도 타 종교 가 지향하는 것처럼 인간의 구원 즉 자유와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통일교 관점에서 인 간의 구원을 위한 교리와 종교적 사역에서 어떤 마음챙김의 요인과 기재가 있고 그 기재가 어떻게 치유에 적용되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Ⅱ. 마음챙김과 치유 1. 마음챙김과 치유 mindfulness 는 위빠사나 명상의 주제 싸티(sati)의 영어 번역으로 awareness(알아차림), attention(주시) remembering(기억) 등의 의미를 갖는다.4) 즉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주시와 알아차림을 말한다. 빨리어 사티(sati)의 번역어로 현재 마음챙김 이 가장 일반적인 사용되고 있다. 마음챙김은 불교 문헌과 심리치료에서 일반적으로 현재의 경험을 수용적으로 알아차림 이라는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5) 마음을 챙긴다는 의미는 'nonconceptual'(비개념적) 'present-centered'(현재중심)' nonjudgmental'(비판단적) 'intentional'(의도적) 'participant observation'(참여적 관찰) 'nonverbal'(비언어적) 'exploratory'(탐구적) 'liberating'(해방하 는) 등의 조건 하에서 대상에 대하여 주시하고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붓다가 깨달음의 방편으로 사용한 명상법이 위빠사나다. 붓다는 위빠사나가 인간이 고통으 3) 빨리어 vipassana 의 어의는 접두어 v 와 passana'의 결합어로 vi'는 분별하다, 뛰어나다, 다양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passana'는 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vipassana 고 봄, 뛰어난 봄, 분별없이 봄, 객관적으로 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준영, 위빠사나 (서울: 민족사, 2010) 참조 4) Christopher K. Germer/ Ronald D. Siegel ed., Mindfulness and Psychotherapy (New York: The Guilford Press, 2005) p.5. 5) ibid. p.7.
통일교 경전에 나타난 마음챙김의 요소와 치유 95 로부터 벗어나 해탈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파하였다. 위빠사나의 핵심적인 요소가 사티 (sati) 즉 마음챙김이다. 위빠사나는 싸티 즉 마음을 챙기는 명상법을 말한다. 붓다는 최초의 설법에서 사성제 즉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설파하였다. 즉 인간의 고통은 집 착으로부터 비롯되고 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팔정도라고 설파한 것이다. 팔정도에서 첫째가 정견(正見)이고 이 정견을 위해서 싸티(정념, 正念) 즉 마음챙김이 확립되어야 한다.6) 마음을 챙김으로 인간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은 관념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어나 는 마음작용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통은 지금까지의 인지방식의 틀을 벗어나 지 못하고 관념과 습관에 의한 인지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접했 을 때 습관적으로 연기법이 작동한다. 즉 대상을 보았을 때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은 갈애 를 일으키고, 갈애는 집착을 일으키고,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7) 마음챙김 명상은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만드는 연기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한다. 마음챙김은 궁극적으로 삼법인(三法印) 즉 무상, 고, 무아를 깨달아 자유 와 해탈로 이끄는 방법이다.8) 즉 인간의 고통은 자아에 대한 집착, 좋은 대상에 대한 집착, 싫은 대상에 대한 혐오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존재의 무상(無 常), 고(苦) 무아(無我)를 깨달아야 한다. 존재의 무상함과 무아를 깨닫게 될 때 고통의 원인 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은 정신적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고, 신체적 고통의 완화와 치 유의 힘을 갖는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vipassana는 빨리어로 접두어 분별없이 라는 'vi와 본다 라는 passana'의 복합어로 ' 분별없이 판단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마 음을 챙겨서 본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음이 챙겨야 할 염처(念處)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 사념처이다. 즉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관찰이다. 붓다는 이 사념처 수행에 대하 여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 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을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이다. 9)(대념처경 P. 79) 최근에 마음챙김을 기초로 하거나 마음챙김을 응용해서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 만성 통증 등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심리적 장애가 있는 6) 대림스님 각묵스님 역 및 주해, 아비담마길라잡이 (서울: 초기불전연구원, 2003), pp.665-667. 7)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이 일어나는 메카니즘을 연기법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에 접하게 될 때 인지의 연기와 확대가 일어나서 고통에 빠지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대림스님 각묵스님 역 및 주해, 아비담마길라잡이 하권 (서울: 초기불전연구원, 2003), pp.657-718. 참조 8) 위빠사나는 사념처에 대한 마음챙김이라고 할 수 있다. 삼법인에 대한 마음챙김은 사념처에서 법념처에 속하다. 각묵스님 옮김(2003), 앞의 책 참조 9) 각묵 스님 옮김, 네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서울: 초기불전연구원, 2008), p.79.
96 2016년도 제36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 기념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 사람들에게 치유의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는 인지행동 치료에 마음챙 김을 접목한 새로운 치료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인지행동 치료에서 비합리적 인 지의 오류에 대한 교정을 치료방법으로 사용하였으나 인지 과정에서 마음챙김을 활용하여 인 지의 변화를 이끌도록 하고 있다. 마음챙김의 심리치료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심리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마음챙김 개념을 조작한 하위개념을 분석해야 한다. 이들 하위개념은 마음챙김이 심리치료의 매개변인으로 작 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챙김의 심리적 변인들로 사용하는 매개 변인들로서 탈 중심화, 노출, 탈자동화, 탈동일시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10) 이러한 요소들은 인지 방식의 변화, 부정 적 습관으로부터의 해방, 현존에 대한 자각, 자기 이해와 정체성 고양 등의 효과를 통해 심리 적 문제에 대한 견딤, 완화, 치유 등을 가능하게 한다. 2. 통일교 원리강론에 나타난 마음챙김의 요소 1) 마음과 몸의 메커니즘과 마음챙김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선생의 말씀 선집에 보면 자아 주관 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리고 자아주관의 길로 마음과 몸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의 진수(眞髓)를 뽑아 만든 통일교 경전 천성경 증보판에 보면 자아주관 이란 단어가 199회 나온다. 아래의 말씀 은 문선명 선생의 강연 천일국 창건의 주인 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어떤 경우에도 하나로 통일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인도 일찍이 하늘 길을 결심하면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라는 표어를 걸어 놓고 비장한 각오로 출발했습 니다.11) 자아주관이란? 마음과 몸의 통일을 말한다. 마음의 심층에 있는 본심과 양심이 욕망을 중 심으로 일어나는 사심을 제어하는 것이 자아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주관을 위해서는 마 음챙김이 필요하다. 관념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그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마음에서 일어난 느낌, 의도, 감정, 생각 등을 주시하여 알아차림으로 그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통일교 경전 원리강론 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설명한다. 마음은 성상(性相)이고 몸은 형상(形狀)으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설명한다.12) 즉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나 인간은 10) 정준영 박성현, 초기불교의 싸티(sati)와 현대심리학의 마음챙김-마음챙김 구성개념 정립을 위한 제 언,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제22권 제1호(서울: 한국상담심리학회, 2010). pp.22-23. 11)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편, 천성경 (서울: 성화출판사, 2013) p.1405. 12)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편, 원리강론, (서울: 성화출판사, 1994) p.24.
통일교 경전에 나타난 마음챙김의 요소와 치유 97 타락성으로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 고통에 빠지게 된다. 인간 의 본성과 양심에 의해 살지 못하고 사심에서 나오는 본능과 쾌락에 끌려 사는 것이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된다. 마음과 몸의 이성성상의 관계란? 두 성품이 상대적 관계로 마음을 부정한 몸이 있을 수 없 고 몸을 부정한 마음이 있을 수 없는 필연의 관계를 말한다. 즉 한 쪽을 부정하면 다른 한 쪽이 부정되고 한 쪽이 긍정되면 다른 한 쪽이 긍정되는 관계다. 모든 존재는 이성성상의 관 계로 되어 있다. 음양, 남녀, 강약, 고저 등 존재의 세계는 이성성상으로 생존, 번식, 발달하 며 소멸하는 것이다. 원리강론 에서 설명하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 다.13) 표에 나타난 것처럼 육신은 육체(肉體)와 육심(肉心)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고 영인체는 영체(靈體)와 생심(生心)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육신에서는 육심과 육체의 수수작용에 의 하여 인간의 생존과 번식과 발전의 생리적 기능을 이끌어 간다. 육신이 건강하고 원만하게 성장하려면 양성(陽性)의 요소인 무형의 공기와 햇빛을 적당히 받고 음성(陰性)의 요소인 물 질적 요소(色素)를 적절하게 섭취하여 혈액을 중심하고 수수작용 해야 한다. 육신의 행위는 영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즉 육신의 선행(先行)과 악행(惡行)에 따라 영인체 도 선화(善化) 악화(惡化)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육체가 성장 발달하면서 영인체에 돌려주는 생력요소(生力要素)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돌려주게 될 때 건전 한 영인체로 성장된다.14)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아 성장하며, 육신에게 돌려주는 요소를 생령요소(生 13)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편, 위의 책, pp.65-69의 육신과 영인체의 상대적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 했음. 14) 위의 책,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