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일본학32집_최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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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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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SSN 第 32 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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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第 32 輯 차 례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他 者 >と< 言 葉 > 奈 良 勝 司 23 七 支 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47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67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85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03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29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47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65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朴 一 昊 187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矢 野 尊 義 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23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49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尹 在 石 269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金 玉 英 289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 秀 晩 309 不 満 表 明 の 日 韓 言 語 行 動 について 國 生 和 美 ㆍ 鄭 秀 賢 323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閔 丙 燦 339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閔 丞 希 357 共 感 覚 的 観 点 から 見 た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の 触 覚 を 表 す 擬 態 語 澤 田 信 恵 379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01 휘보 425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회칙 401 연구윤리 규정 405 발행 규정 409 심사 규정 411 투고 지침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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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 이 원 덕 ** Abstract The history conflict issue is the greatest factor that is hindering further relational improvement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In order for the improvement to take place, the overcoming of spreading and deepening history conflict and establishing of the futuristic vision based on cooperation and common prosperity of the two nations are require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diplomatic friction and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over the history perception issue will continue for some time. Nevertheless, an important fact to keep in mind is that the frequency and depth of the history conflict issue between the two nations can be modified by the leadership of the leaders, strategical thinking based efforts, and the roles of the media and intellects. In the macroscopic view, the 21st century is a complex new age that differs from the previous cold war periods. Korea and Japan s constructing of a common composition network in hopes of pursuing peace and prosperity for East Asia is a strategical choice for the two nations symbiosis. The new age Korea Japan relations require the two nations to fully cooperate in all areas with a common basis of values and regulations in Northeast Asia where the U.S. and China are taking a strong hold of. 1) Keywords : South Korea Japan Relation, history conflict, Northeast Asia, history perception Ⅰ. 한일관계의 현주소 2012년 이래 한일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 니다. 양국의 정상은 서로 대면조차 꺼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양국 국 민의 서로에 대한 호감도도 거의 밑바닥에 와 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대립 은 역사쟁점을 넘어서 안보, 외교, 경제,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겉잡을 수없는 속도로 점차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2015년은 한일국교가 정상화 된지 5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로서 한 편으로 반세기 한일관계사를 성찰하고 향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한일관계 *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사업(수행번호: NRF B00007)을 지원받아 진행 되었다. **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6 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의 미래의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2015년은 일본의 조선통치에서 해 방된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최근 불거진 일본과의 역사마찰에 주목하면서 2015년의 의미를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의 탈 식민 해방 70주년에 초점을 맞추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과 연 2015년은 한일 50주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해방 70주년이 될 것인가? 지 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한일관계에서 역사(영토) 마찰 문제는 여전히 미래지향적 양국관계의 발전 을 저해하고 옥죄는 최대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서는 점차 확산, 심화되고 있는 역사/영토 마찰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 지를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급무가 되고 있다. 당분간 한일관계에서 역사(영 토)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과 갈등은 반복되고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일 간의 역사/영토 마찰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전략적 대응 노력 그 리고 지식인이나 미디어의 역할 여하에 따라서 어느 정도 그 빈도와 심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일 간 역사마찰의 발생 원인은 한일 양측에 공히 존재한다. 먼저 일본 측의 원인은 한일관계에서 과거사, 영토 문제가 갖는 이슈의 중요성이나 민 감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 무신경 한데서 찾을 수 있는 반면, 한국 측은 지나치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고 과잉 대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나 독도 관련 움직임이 한국의 대일관계나 대일정서에 얼마나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 진지하게 고려하 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독도 문제나 과거사 문제가 지닌 폭발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아니면 심각성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안 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가 가져올 한 일관계의 파장에 대해 일본 지도층은 무신경하거나 무관심한 대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지도자들은 헌법문제, 자위대문제, 대북정책, 중국 정책 등을 계기로 심화되고 있는 일본 우경적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과 거사 갈등이나 영토문제를 부채질 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일부 우익단체 나 보수적 색채의 미디어는 한국과의 역사마찰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이후 일본의 우익세력이나 우익적 성향의 각종 미디어는 공공연하게 한국에 대한 악의적인 언행을 일삼 고 있다. 이른바 코리안 타운에서의 재특회(재일교포의 특권을 저지하는 모
7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3 임)의 활동은 헤이트 스피치를 넘어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역사마찰 격화의 한국 측 요인으로는 과잉 대응의 구조와 대중 영합주의 를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신문, 방송 등 한국의 미디어는 일본의 역사인식, 안 전보장, 영토분쟁, 헌법 개정 문제와 관련된 움직임을 아베 정권의 위험한 우 경화 노선이라는 단순한 틀로 재단하여 대대적으로 비난 보도하고 있다. 사 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역사교과서 문제 등의 과거사 갈등은 지속적 이고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외교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과거 사나 독도와 관련된 이슈는 늘 한국에서는 매우 민감한 이슈가 되고 초강경 대일정책을 불러일으킨다. 정권에 따라서 다소의 강약 차이는 존재하지만 어 느 정권도 일본과의 역사마찰이 발생하면 강경한 대응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한일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근본적 차이나 독도문제에 관한 상반된 입장과 최근 아베 정부의 박근혜 정부의 갈등상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양국 간의 외 교적 대립과 마찰의 빈발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이러한 마찰 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나 해법은 단기적으로 볼 때 존재하지 않는다. 독 도, 역사 마찰이 격화되면 될수록 실효성 있는 해법이 제시되기는커녕 양국 간 국민감정의 충돌만을 초래하여 양국관계 전반에 악영향이 파급되는 사태 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하다. 역사마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의 겸허한 태도와 피해자인 한국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관용적 태도가 요청된다. 더불어 한일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관점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인 가 치와 보편적 규범을 공유하는 국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가 치와 규범의 공유야 말로 한일간계와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번 영을 지향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서서 본고에서는 한일 간 역사/영토 마찰의 빈발 배경 을 구조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후, 이어서 2012년 말 아베 정권의 출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일관계의 악화 현상에 대한 원인진단을 시 도한다. 또 현재의 한일관계를 타개하고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고 있 는지를 실천적인 입장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8 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Ⅱ. 한일관계 65년 체제 50년의 총괄 1. 한일회담과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한일회담은 양국 간에 존재하는 과거사 인식의 깊은 괴리를 극복하고 새 로운 우호협력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교섭이었다. 그러나 14년간의 마라톤 교섭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과거사 인식의 근본적인 차이는 좁혀질 수가 없었 다. 35년간의 식민통치를 원천적으로 불법, 부당한 것으로 보는 한국 측의 인 식과 그것을 적법하고 합당한 것으로 보는 일본 측의 인식이 외교협상을 통해 근접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처럼 과거 일 본의 조선통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현격한 인식 차 로 말미암아 이 교섭은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겪은 후에야 타결될 수밖에 없었다. 1) 14년간의 회담 전개과정에는 다음의 두 가지의 상반된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즉, 회담을 타결로 이끌어 가는 힘은 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에 의해 주어졌다. 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가 한일관 계의 구심력으로 작용하여 교섭의 타결을 촉진시켰다. 반면 과거사 청산 논 리는 회담을 대립과 갈등으로 끌고 가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교섭을 결렬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원심적인 힘의 원천은 과거사 청산의 논리에 의해 주어 졌다. 냉전체제와 연계된 안보논리는 한편으로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의 아 시아 전략이라는 형태로 작용해 왔다. 즉, 미국은 회담의 개시 단계에부터 타 결 시점에 이르기까지 한일회담의 타결을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노력 을 기울여왔다. 애당초 한일 양국을 회담의 테이블에 앉힌 것이 다름 아닌 미국이었으며 나아가 반복되는 회담의 중단과 결렬사태를 회담재개와 타결로 이끌어가기 위해 때로는 배후에서, 때로는 표면적인 압력을 가한 것도 미국 이었다.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회담타결의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 것 은 안보적 고려였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조선은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1) 한일회담에 관한 실증적 분석은 이원덕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 (서울대출판부, 1996) 다 카사키 소지( 高 崎 宗 司 )( 検 証 日 韓 会 談, 1996), 오타 오사무( 太 田 修 )( 日 韓 交 渉 請 求 権 問 題 の 研 究 (2003), 요시자와 후미토시( 吉 澤 文 壽 )( 戦 後 日 韓 関 係 ー 国 交 正 常 化 交 渉 をめぐってー (2005) 장박진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 (2009)의 등의 연구에 의해 이뤄졌다.
9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5 비수 라는 인식은 명치유신 이래 일본의 한반도 정책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정권 또한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확 보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이 희구하는 한 일국교 정상화를 달성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보논리와 더불어 두 번째의 에너지 공급원은 경제논리였다고 생각된다. 경제논리가 회담타결의 주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1950년대에 답 보를 면치 못하던 한일교섭이 196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타협을 모색하는 방 향으로 선회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명백하다. 사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일 경제관계는 미국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상대를 경제적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만큼 긴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양국의 경제적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 특히 한국의 경우 1950년대 말부터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양적으로 크게 삭감되 는 한편 질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서 그로 인한 경제적 침체와 불황 이 심각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은 전후 대소전략의 일환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경제 원조를 서유럽을 비롯한 동맹국에 쏟아 넣은 결과 달러의 과도 한 방출로 인한 후유증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은 1950년대 말부터 달러방 위라는 명목 하에 동맹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대폭으로 감축하는 정책을 추 진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또 케네디 정 권이 들어선 이후부터는 원조의 성격이 소비재 위주의 무상 원조방식에서 개 발을 지원하는 차관 형 원조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되자 한국으로서는 대미 의존 형 경제체질을 탈피하여 자립적인 산업화의 기반을 구축하여 본격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1961년 5월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정권의 제일목표로서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을 내걸고 야심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본과 기술의 부족에 직면하여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곤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박 정권이 구상한 것이 다름 아닌 대일 관계의 타결노선이었다. 박 정권은 만약 대일회담이 타결된다면 상당한 액수의 청구권 자금이 들어올 것이고 더 나아가 일본과의 경제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다량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경제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박 정권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의 경제개발 계획을
10 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추진하도록 권유하는 한편, 대일회담의 타결을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 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였다. 미국은 박 정권이 대일회담의 타결에 나서지 않을 경우 경제 원조를 중단 내지 삭감할 것이라는 압박을 가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도 회담타결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한 1960년대로 접어 들면서 한일관계를 경제적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보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러난 기시 정권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이케다 정권은 될 수 있으면 국내의 혼란을 야기시 킬 수 있는 안보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고 그 대신 정치의 중심축을 경제로 옮겨놓는 쪽으로 정치노선을 설정했다. 이케다 수상이 야심적인 정책으로 내 놓은 소득배증계획 이야말로 이케다 정치노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일회담의 최대 난제였던 재산청구권 문제가 이케다 정권하에서 경제협 력방식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케다 수상 은 한일회담의 본질을 경제문제라고 인식하고 대한관계를 경제외교의 일환으 로 풀어 나가려고 시도하였다. 즉, 이케다 정권은 청구권 문제의 본질이 과거 사의 청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제적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이케다 정권이 청구권의 해결방안으로 고안해낸 것이 경제협력방식이었다. 경제협력방식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한국의 청구 권 요구를 명목과 지불의 둘로 나누어 지불 액수에서는 한국의 요구에 최대 한 접근하고 명목에 관해서는 사죄와 보상의 의미를 배제하는 대신 경제협력 의 의미를 부여한다. 둘째, 한국에 일본의 공업제품과 역무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장래 한국에 대한 경제 진출의 토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방식의 요체는 지불의 방식을 자본이 아닌 공업제품과 용역으로 한다는 데 있었다. 경제협력방식은 전후 일본이 인도네시아, 버마, 필리핀, 베 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전후처리에도 적용했던 방식이었다. 일본 은 이러한 전후처리의 방식을 오히려 동남아지역에 대한 경제 진출을 적극화 하는 토대로 활용해 왔다. 일본은 한국에게도 이 방식을 적용시키고자 의도 했던 것이다. 경제협력방식이 채용된다면 일본으로서도 결코 경제적으로 손 해 볼 것이 없으며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계산이었다. 이처럼 한일회담의 타결은 냉전적 상황과 그에 기반을 둔 안보논리 및 경 제논리에 의해서 촉진되었을 뿐 정작 회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사
11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7 청산의 논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일회담의 타결과 한일조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남 아있는 것은 회담타결에 있어서 과거사 처리문제가 유보된 채 안보와 경제논 리에 입각한 편의적인 해결만이 도모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루하고도 긴 교섭을 통해 양국 정부가 도달한 해법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 를 회피하고 유보하는 선에서 타협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타협은 한일기본조약의 비준국회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었다. 즉, 한일 양국 정부 는 비준국회에서 한일회담의 최대 초점이 되었던 청구권 문제와 과거인식 문 제에 관해서 전혀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병합 조약에 관해서 한국정부는 이미 무효이다 라는 규정을 당초부 터 원천적으로 무효였다 라고 해석한데 대하여 일본정부는 지금은 무효이나 당시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 고 해석하였다. 또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하기 로 약속한 유상, 무상의 자금의 지불명목에 대해 한국정부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한 보상 으로서 해석한 데 반해서, 일본정부는 어디까지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한국의 경제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협력 이라고 해 석하였다. 과거 청산이라는 핵심문제에 관해서 한일 양국의 이와 같은 상반 된 해석은 한일조약이 얼마나 본래의 모습과 괴리된 일그러진 전후 처리였는 가를 스스로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2. 한일수교 50년의 조망 19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래 한일관계의 역사를 조망해보면 시대 변천에 따라 한일관계의 성격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론적 인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존재방식을 종속변수로 놓고 생각해 보면, 그에 영 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대체로 동북아시아 국제시스 템과 양국의 파워 관계 그리고 양국의 국내체제가 될 것이다. 2) 물론 한일관계의 존재방식은 이러한 구조적 변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 2) 전후 한일관계에 대한 분석 틀에 관한 기존 논의는 이하를 참고. 이원덕, 구조전환기의 한일 관계: 쟁점과 과제 장달중ㆍ오코노기마사오, 전후 한일관계의 전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 제연구소, 2005); 최상용ㆍ이원덕ㆍ이면우, 탈냉전기 한일관계의 쟁점 (집문당, 1998);Koh, Byung Chul, Between Discord And Cooperation:Japan and The Two Koreas(Yonsei University Press, 2007); 木 宮 正 史 日 韓 関 係 の 力 学 と 展 望 : 冷 戦 期 のダイナミズムと 脱 冷 戦 期 における 構 造 変 容 金 慶 珠 ㆍ 李 元 徳 編 日 韓 の 共 通 認 識 : 日 本 は 韓 国 にとって 何 なのか? ( 東 海 大 学 出 版 会 2007)
12 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은 아니다. 즉, 구조적 변수와 더불어 한일 양국 정부 지도자의 리더십의 발 휘 양상과 리더십의 발휘를 가능케 하는 국내정치의 역학(여론 포함) 또한 한일관계의 성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이렇게 보면 한일관계 의 존재방식은 한편으로 국제시스템, 양국의 파워 관계, 양국의 국내체제라 는 각 수준의 구조적 요소에 의해 제약을 받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양국정 부 지도자의 리더십이라는 행동적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한일관계사 를 대별하면 3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제1시기는 1965년부터 1989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한일관계가 냉전체제의 강력한 영향권 속 에 존재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 안 보, 경제적 결속을 강화시켜 나갔다. 소련 중국 북한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공산진영의 북방 삼각동맹과 대결하기 위해 한일 양국은 자유주의 진영의 안 전과 평화를 지키려는 미국과의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했다. 이 시기 는 한일관계에서 반공 연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양국 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대립은 최대한 억제되었고 수면 하에 잠복될 수밖에 없었다. 4) 제2시기는 1990년 이후의 시기로 이 기간 동안 한일관계는 냉전질서의 해 체로 인해 반공에 기반 한 결속력이 급속도로 이완되었다. 그 동안 잠복되었 던 역사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 위로 분출됨으로써 양국 간의 역사 마찰이 격화되었다. 한국의 정치사회 민주화와 한일 간 파워 격차의 축소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강경한 대일정책을 추동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역 사마찰을 심화시켰다. 한편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일 양국 간에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양국 관계 라는 인식도 강화되었으며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시민사회 간 교류는 더욱 활 성화 되었다. 3)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소 이외의 정치 리더십의 역할에 주목한 연구로는 김호 섭, 한일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 일본연구논총 Vol.29(2009년 여름)를 참조. 4) 냉전시기 한일관계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Lee, Chong Sik Japan and Korea: the Political Deimension(Stanford Hoover Institution Press, 1885);Cha, Victor, D.,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 Korea Japan Security Triangle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13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9 제3시기는 대체로 2010년 이후의 시기로 이 시기를 통해 한일관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2010년을 전후하여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구조적인 요소에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경우에 따라서는 수 년 동안 급격하게 단기적으로 진행 되었다기보다는 냉전체제의 붕괴 이래 1990년대부터 장기적인 시간 축 속에 서 지속되어 온 추세적인 변화로도 볼 수 있다.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바야흐로 미중 양강 구도로 급속도로 재편되 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즉,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인 힘의 저하 속에서도 여전히 초강대국의 지위 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빠른 속도로 강대국으로 대두하는 있는 중국, 양국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의 2분기 통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고 5) 이후 중일 간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이 120년 전 청일전쟁에 패배한 이래 일본을 경제 규모에서 앞지른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기적인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걸친 150년이라는 기간은 어쩌면 예 외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이 예외의 시대 150년 간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 하여 세계 열강국가에게 굴종을 강요당하며 강대국의 지위를 박탈당한 반면, 일본은 20세기의 전반기에는 군사대국으로, 그 후반기에는 경제대국으로서 위용을 떨쳤다. 6)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일본은 심각한 재정적자, 성장 동 력의 상대적 상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상징되는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힘 의 상대적 저하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일본은 예 외의 150년을 경과하여 본래의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7) 5) 2010년 2분기(4 6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처음으로 중국에 역전돼 세계 2위 경제대 국 자리를 중국에게 내줬다. 이는 일본이 1968년 독일(당시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른 지 42년 만이다. 6) 앵거스 메디슨의 역사통계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으로 보았을 때 1820년 당시에도 중국은 세 계 GDP의 32.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계하고 있다. 한편 2030년에는 중국이 23.8% 의 지분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일본은 3.6%만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ngus Maddison, Shares of the Rich and the Rest in the World Economy: Income Divergence Between Nations Asian Economy Policy Review, 2008(3); 田 中 明 彦 지음 이원덕 역, 포스트 크라이스의 세계 (일조각 2010) pp ) 2010년을 계기로 중국이 국내총생산액 규모에서 일본을 능가하게 된 현상을 두고 일본이 주 도한 동북아의 근대사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중국이 군림하는 새로운 동북아의 현대사가 개 막되었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동북아시아의 복원 혹은 전근대
14 1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1990년대 이후 한일 이국 간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점차 이동하게 된 점 또한 양국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한국을 지배하던 80년대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한일관계는 전형적인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비대칭적인 성격을 지 니고 있었다. 가령 과거사 문제만 하더라도 이 시기 한국정부는 대일관계 악화가 초래 할 악영향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과거사 쟁점이 핫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꺼 려하여 일본에 문제제기 자체를 억제하거나 혹시 문제가 되더라도 이를 조기 에 수습하고자 노력했었다. 당시 한국정부는 과거사 문제보다 일본과의 안보 적 협력이나 경제협력을 획득하는 일에 외교적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강했 다. 또한 당시 한국정부는 북한과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구도 하에서 주요우 방국인 일본과의 우호 협력관계를 해칠 수 있는 대일행동을 자제하는 자세를 취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 하는 바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 한국은 꾸준한 고도경제 성장을 추진한 결과 마침 내 선진경제국으로 도약했으며 한편으로 80년대 후반 이래 정치사회적 민주 화의 성과도 착실하게 달성하였다. 특히 1990년대 한국의 OECD가입은 한국 이 비로소 선진국의 일원으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여 겨졌다. 이후 한국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를 정착시 키는 한편 경제적으로도 명실 공히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더욱 가속화 되어 2010 년 마침내 G20의 일원이 됨으로써 세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함에 따라 한국 국민 들은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이 강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일 양국 간 관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양국관계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은 향후 한일관계의 기본성격을 규정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8)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은 군 부 권위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민주화를 착실하게 달성시킨 결과, 선거에 의 국제질서로의 복귀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8) 오코노기 마사오,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 체제마찰에서 의식공유로 장달중ㆍ 오코노기 마 사오, 전후 한일관계의 전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5)
15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1 한 수차례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함으로써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안 착시켰다. 기본적인 인권은 놀라울 정도로 신장되었으며 사회경제적인 다원 화, 자유화도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기본적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 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선진 민주국가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뤄 진 한일의 가치체계 및 규범의 수렴 현상은 양국의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의 굳건한 토대가 되고 있다. 안보적 차원에서 보면 양국은 전후 줄곧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안전보장 정책의 중핵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 의 입장에서 보면 냉전체제 하에서 한국과 일본은 공히 아시아에서 가장 중 요한 동맹 국가로 취급되었으며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미국에게 있어 한국 과 일본이 지니는 군사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미국과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각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의 담보를 보장하는 체제 안전판으로서 간주되고 있으며 대외적 군사위협으로부터 평화와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일 양국은 경제,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양국은 전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국가주도형 발전 국가 모델을 지향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공산품 의 해외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꾀하는 국가발전 전략을 취해 왔다는 유사성 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국은 급속하게 글로벌화 하는 세계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개방과 경쟁을 통한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민주와 자율의 가치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또한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지니는 중요한 유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의 시민사회는 정부 간 관계 못지않게 90년대 이후 매우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 간 시민사회의 교류 기반은 국익을 넘어선 인권, 평화, 환경, 인간 안전보장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근년 들어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 간 교류는 엄청난 폭과 속도로 발전되 고 있는데 이는 향후 한일양국의 국익을 넘어선 보편적 규범과 가치의 공유 기반이 획기적으로 넓어지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6 1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일양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기본 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안전보장, 경제체제, 시민사회 등 제반 영역에서의 체제 수렴현상 또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음이 확인된다. 이는 향후에도 한일관계의 지속적인 우호 협력적 발전의 가능성을 담보하는 기능 과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규모와 질적 수준 이라는 양면에서 볼 때 정치적 민주주의와 선진적인 시장경제, 자유로운 시 민사회를 지니고 있는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양국 관계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Ⅲ. 한일 역사마찰의 구조적 배경 한일관계의 최대 갈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독도, 역사인식을 둘러싼 마찰 은 경험적으로 볼 때, 그 빈도와 심도의 양 측면에서 1990년대 이후 한층 격 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 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일관계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보다 크게 작용하 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냉전종결에 따라 한일관계의 갈등 요소는 오히려 증폭되었다. 냉전 시기 한일 간의 결속을 강화시켰던 요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하에서의 반공 연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체제 하에서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대 공산권 봉쇄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국제정세 하에서 한일 간의 독도 및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은 잠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붕괴로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민족주의적 갈등 요소는 여과 없이 표면으로 분출하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동북아 지역의 국제체제는 큰 지각변동을 맞이하게 되 었다. 이른바 국제정치이론에서 말하는 힘의 전이(Power Transition)가 급속하 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강대국으로서의 급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힘의 쇠퇴 그리고 한국의 미들 파워로서의 등장이 그것이다. 바야흐로 동북 아지역에는 미중 양강 구도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고 이는 한일관계의 성격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2012년 이후 격심한 한일, 중일 간의 대립과 마찰이 벌어진 것은 동북아지역의 세력전이 현상과 더불어 한중이 각국에서 일어난 정권교체가 동시 진행하면서 나타난 이른바 세력균
17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3 형의 유동화에서 그 구조적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일 양국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한일 간에는 정치인, 경제인의 인적 채널 및 네트워크에서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이 후 양국의 잦은 정권 변동과 정치인의 세대교체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특 히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형성 유지되어 왔던 정치인 간의 비공식 인 맥관계는 단절되었다. 1965년 국교수립 후 한일 정치인 간에는 수많은 공식, 비공식적 채널이 잦은 회합이나 긴밀한 의견교환을 통해 민감한 정치현안이 나 갈등 사안은 막후에서 조정, 타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점차 약화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거나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정치인 간의 교류나 접 촉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갈등 발생 시 문제해결 능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일관계는 더 이상 특수한 관계가 아닌 보통의 이국 간 관계로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양국 간 현안은 정치인들보다는 외무 관료의 손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정치인의 네트워크가 약 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민사회, 지방자치체, 기업 차원의 교류는 폭발적으 로 증대했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보통의 관계로 변화되면서 갈등을 수습하고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정치적 메카니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셋째, 한일 간의 이국 간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는 점 또한 양국관계를 이완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은 꾸준한 고도경제 성장을 추진한 결과 마침내 선진경제 로 도약했으며 한편으로 80년대 후반 이래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성과도 착실 하게 달성하였다. 1990년대 한국의 OECD가입은 한국이 선진국의 일원으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단시일 내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함에 따라 국민들은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한 보다 당당한 외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강화되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한국을 지배하던 시대만 하더라도 한일 간의 역사문제가 뜨거운 외교 쟁점으로 등장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대일관계 악화가 초래할 악영향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과거사 문제가 핫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꺼려하여 문제제기 자체를 억제하거나 혹시 문제가 되더라도 이를 조기에 수습하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정 부는 북한과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구조 하에서 주요한 우방인 일본과의 우호 협력관계를 해칠 수 있는 대일행동을 자제하는 자세를 취했다. 산업화와 고
18 1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도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일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 하려고자 노력했던 것이 다. 일본의 보수정치세력과 한국의 집권층이 밀접한 인적 유착관계를 유지하 고 있었다는 점 또한 관용적인 대일태도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한국 국력의 신장과 사회 정치의 민주화가 동시 진행되면서 대일 자세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부는 폭발적으로 표출되 는 국민들의 대일 감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의 대 일감정을 활용한 강성 대일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특히 민주화와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따라 그 영향력이 강화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 매체를 통 해 강렬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표출하며 대일정책에 있어서 강경 여론을 주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째, 일본국내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의 정치적 지형은 보수 내셔널리즘이 날로 강화되는 일로를 걸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에서는 이제 평화헌법 개정론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자 위대의 보통 군대화 움직임 또한 당연한 변화로 인식되고 있다. 수상 및 각 료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판 움직임도 상당히 무뎌졌다. 국민의 역사인 식도 2000년대 이후 점차 보수적인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마디로 평화국가로부터 군사적 보통 국가론의 탈바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일본국민은 큰 저항 없이 이를 받 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우경화 경향은 세대교체에 의해서 영향 받은 바 큰 것으로 이 해된다. 전후세대 정치인들은 미일동맹 중심의 강성 외교안보 정책의 추진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 중국 등에 대한 근린 외교는 그 비중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독도문제나 역사마찰 로 인한 한일관계 의 악화는 이들에게 그다지 심각한 외교현안이 되지 못한다. 전후세대 일본 인들은 과거 역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일반적으로 과거 식민통치와 침략의 아시아에 대한 침략역사에 대한 속죄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 서 영토문제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러한 경향은 민주당 정권 초기 2년간 잠시 주춤했으나 2012년 아베 정 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정점에 달한 느낌이다. 2012년의 가을 중의원 선거 에서의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과 2013년 여름 참의원에서의 자민
19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5 당의 승리는 일본정계를 사실상 우파 보수 세력 일색으로 변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견제 역할을 담당했던 이른 바 진보 리버설 세력은 고령화, 약체화되었고 야당은 지리멸렬하였다. 게다 가 정계의 이러한 우경화 추세에 대해 일정한 비판과 자정기능을 수행해 왔 던 시민사회 세력도 매우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우익적인 성 향의 정치지도자들이 정계의 전면에 등장하여 역사 퇴행적인 언행의 릴레이 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이 이에 대해 극단적인 경계와 우려를 지니게 되 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Ⅳ. 역사마찰의 원인 진단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는 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마디로 양국 지도층 간의 소통 부재와 양국의 미디어 보도를 경유하여 나타난 국민 레벨 의 극단적인 상호인식의 확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 자면 필자가 보기에 한일관계의 극단적인 악화는 존재론적인 차원의 문제라 기보다는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더욱 우려 스러운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식론의 횡행 속에서 양국의 외교정책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인 관점이 무시되거나 전략적인 사고 그 자체의 영 역이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한마디로 아베 총리가 지배하는 일본이 위험한 우경화의 길로 치 닫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인의 이러한 인식에 불을 당긴 것은 2012년 의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선거에서의 아베 자신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 다.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고노담화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였 고 일본 정부의 반성 사죄론적인 자세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무라야마 담화 를 수정하여 2015년 새로운 역사담화를 내놓겠다고 발언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일본의 전후 정치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져 왔던 헌법개정, 안전보장 정 책의 전환을 선거 공약으로 내놓고 이른바 전후 체제로부의 탈각, 일본을 되 찾자는 슬로건을 속속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의 미디어는 일제히 아베 정권 등장 그 자체를 매우 위험한 조짐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아베가 이끄는
20 1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부추기는 언설 을 쏟아내었다. 마치 이러한 인식을 확인이라도 해 주듯이 2013년 일본의 정계에서는 문 제발언이 속출하였다. 아베 총리의 침략전쟁 정의 발언, 하시모토 시장의 위 안부 발언, 아소 부총리의 나치식 개헌 발언 등이 이어졌고 마침내 12월에는 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단행하였다. 더욱이 2014년 6월 고노담화의 검증결과 발표는, 그렇지 않아도 아베정권의 역사인식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컸던 한국 국민을 더더욱 격분시키기에 충분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베 정부는 일본국민의 과반수에 가까운 반대와 우려에 도 불구하고 헌법해석의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일련의 조치 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판 NSC의 창설에 이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 케 하는 일련의 정책 전환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9) 한국의 아베 정부에 대한 인식은 경계론을 넘어 위협론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 수 정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아베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한국의 일본 인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한국 의 대일인식의 배경에는 식민통치의 암울했던 기억이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어 여전히 편견과 선입견이 앞서게 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한국의 일 본 인식에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인 DNA를 우익적인 것으로 지나치게 단순 화하여 파악하고 있는 특징이 보인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역사관련 행보,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안전보장 정책 의 전환 시도 그리고 영토정책을 우경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하나의 위험한 패키지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 베 수상과의 정상회담을 꺼리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한국 미디어 및 국민들의 일본 인식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일본의 한국인식에도 지나친 단순화와 객관성의 결여라는 문제가 존 재한다. 일본의 한국인식이 최근 급속하게 부정적으로 기울게 된 것은 아마 도 2012년 여름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방문과 천황사죄 발언 그리고 9) 이러한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전후 보수적 정치세력이 일관되게 추진해 왔던 이른바 군사적 보통국가로의 행보로 이해된다. 또 한편으로는 급부상하는 중국과의 센카쿠 충돌,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대한 나름의 대응의 측면과 더불어 힘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아시아로의 회 귀를 추구하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의 재조정이라는 틀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라 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21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7 일본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저평가 발언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고 생각 된다. 이와 더불어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2011년8월) 대법원의 판결(2012년 5 월)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압박이 가중되고 징용징병 피해자의 잇따 른 보상 요구 움직임이 한국 국내에서 표면화되면서 일본사회 일각에서는 일 종의 한국에 대한 사죄피로 현상 내지 혐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인식의 이면에는 최근 한국이 경제, 산업, 문화, 스포츠 등 몇몇 분야에서 일 본의 강력한 경쟁국, 경합 상대로 등장하게 됨에 따라 과거 수직적이었던 양 국관계가 수평적인 것으로 바뀐 것에 대한 인식의 부적응 상태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일본사회에는 바야흐로 미들 파워 한국의 대두를 막연하게 두려 워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정서가 서서히 표면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의 부정적 한국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는 있는 것은 아마도 한국의 중국 경사론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인식이 강화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박 정부 수뇌부의 일련의 외교행보 및 대일발언에서 비롯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전제 되지 않은 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곤란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에 걸쳐 발언한 바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미국, 중국, 유럽의 주요 국가 와이 정상 외교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확산되었다. 또한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고 더욱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이 른바 일본경시 내지 일본 이탈을 의도적으로 꾀하고 있다는 인식이 일본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미디어와 우익계 잡지는 한국의 이러한 대중 경사 경향을 마치 한국이 과거의 사대주의 외교로 회귀하고 있는 것인 양 묘사하는 논조로 보도하는 경향조차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박근혜의 대 중외교를 한국이 중국에 달라붙어 일본을 사사건건 비난하는 모양새로 비아 냥거리는 인식조차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인식은 한 마디로 중국 위협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 위험한 중국을 너무도 모르고 순진하게 보고 있다는 사고방식이 일본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최근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일본인들은 중국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 국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고도 경제성장과 정치군사 대국화를 달성했지만 그 내면에는 사회경제적 격차, 정치적 독재와 부정부패, 민족문제, 버블경제
22 1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등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한국은 그러한 중국에 대한 경계는커 녕 역사인식 문제 등에서 일종의 반일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인식이 일본의 혐한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10) 이러한 일본의 우려는 2014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및 정상 간의 역 사인식에 문제에 관한 공감 형성 및 언급에 의해 더욱 첨예화되었다고 생각 된다. 이와 같이 최근 1년 반 사이에 극단적인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양국 간의 상호인식은 상당부분 상대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양국의 뒤틀린 상호인식이 점차 수그러들기는 커녕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악순환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양국 미디어의 편향적인 보도 경향과 더불어 양국 정치지 도자 간의 의사소통과 직접 대화의 부재가 그것이다. Ⅴ. 역사마찰을 넘어 한일신시대로 최근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 악화를 극복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조기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 각된다. 당장 공식방문에 의한 정상회담 개최가 어렵다면 지난 북경 APEC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한중일 정상회담의 장을 빌어서라도 양국 정상이 대면하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렇게 해서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이 자리에서 양 정상 은 1아베 정부의 기존의 역사인식 및 역사 정책의 계승 입장의 명백한 확인 2양국 관계의 긴급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보상 문제에 대한 해결 원칙에 대한 합의 도출 3한일 간 미래 협력의 방향 설정에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는 주요 현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의 협상에 박차를 가하여 한일 10) 박근혜 정부의 중국 중시 외교는 실제로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체질이나 북한 과 연관된 안보적 현실, 역사적, 지정학적인 요소를 고려할 때 오히려 당연하고도 실용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 중시 외교는 반드시 일본 경시를 의미하지 않으며 한국 의 대중, 대일외교는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의 외교 전략에서 보면 한미동맹 과 더불어 한중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 한일 우호협력 관계는 필수불가결한 대외관계라고 할 수 있다.
23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19 국교정상화 50년을 맞이하는 2015년 중에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1998>을 한층 업그레이드 한 형태로 <21세기 한일 신시대 선언 2015>을 채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한일관계의 최대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 및 전후 보상 문제의 두 현안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접근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현재 진행 중인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통해 두 문제에 관한 정부 차 원의 대체적인 타결 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협상을 통해 타결 안을 만 드는 과정에서 양국 정부는 공히 각각 국내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의 합의가 도출되면 이 합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최종적으로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둘째, 양국의 합의 하에 가칭 <한일 역사 화해를 위한 추진하는 새로운 공 동기구>를 조직하여 2015년 6월까지 두 가지 핵심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방안이다. 기존의 한일 역사공동위원회가 역사학 자들에 의한 공동의 역사연구 조직이었다면 여기서 제안하는 공동기구는 보 다 확장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하여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책 입안 적 성격을 띤 기구가 될 것이다. 이 기구에는 한국의 경우 역사학, 정치학, 한 일관계 등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정대협과 관련 시민단체의 대표 그리고 변 호사 단체, 헌재, 대법원이 추천하는 법조계 인사 등이 포함되도록 하고 일본 의 경우에도 각계각층의 관계자, 전문가가 골고루 광범위하게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국장급 협의를 통한 타결안 도출 방식이든 공동기구에 의한 합의안 도출방식이든 기한 내에 양국 정부와 국민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낼 수 있는 해법이 출현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결론이 나 오든 나오지 않든, 좁은 국익이나 국내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양국 및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서 민간, 시민사회, 학계의 인사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지혜와 총의를 모으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 은 그 자체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양국의 역사마찰을 합리적으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국 최고 지도자 간의 암묵적인 합의와 공동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즉, 양국의 지도자 스스로가 역사 마찰로 인해 양국관계가 훼손되고 국민감정이 악화되 는 것이 양국의 국가 이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24 2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확고할 때 역사마찰을 진정시키기 위한 공동 노력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를 위 해서는 양국 지도자 간의 신뢰와 그에 기반 한 대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이 맞이하고 21세기 신시대는 냉전시기의 양 극화나 탈냉전 시기의 다극화 시대가 아닌 복합화의 시대이다. 한일 양국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공생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신시대 한일관계는 미중 양강 구도로 재편되는 동아시아 국제체제 속에서 양국이 기본적 가치와 규범의 공유를 기 반으로 하여 전 분야에 걸쳐 모든 행위자가 전면적인 협력의 추구를 요구하 고 있다. 신시대 복합공생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한일 양국은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는 한편 향후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신시대의 한일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국은 미래지향적 자세로 임해야 하 지만 또 한편으로 양국의 역사에 대한 공동의 인식기반의 확립을 위해 세심 한 배려가 필요하다. 즉, 한일관계에서 과거와 미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 할 수 있다. 과거를 완전히 망각한 미래 설계도 있을 수 없고 과거에만 집 착하는 미래 설계도 안 된다. 따라서 한일 신시대는 역사에 대한 직시와 깊 은 성찰에서 출발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한일 신시대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를 국익 경쟁이나 세력균형 의 전통적인 구도를 넘어서 보다 네트워크적인 세계정치의 시각에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은 기존의 한미일 관계를 강화함은 물론 한중일의 우호협력 관계와도 배치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방향 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한일 협력의 심화야말로 점차 도래하고 있는 미중 양 강 시대의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즉, 한일관계의 심화, 발전은 대미, 대중 관계의 강화와 선순환 관계에 있고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셋째, 한일 신시대는 한일협력의 방향을 기존의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고에서 탈피하여 양자는 물론이고 한반도, 동아시아지역, 글로벌 영역에 걸 친 한일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한일 신시대는 공간적으로 한반도, 동아시아, 글로벌 질서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미래의 한일 관계는 과거에 비해 훨씬 확장된 공간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신시대의 협력은 한일 양국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차원, 동아시아 지역차원, 글로벌 영역의 네 공간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 11) 11) 한일신시대의 비래비전에 관해서는 이원덕, 신시대 한일관계의 구축을 향하여 하영선, 오
25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원덕) 21 <참고문헌>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2008), 신 한일관계 파트너십 공동선언 10주년 기념 심포지움 회상, 현안 그리고 비전,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김호섭(2009), 한일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 일본연구논총 Vol.29, 2009년, 여름 오코노기 마사오(2005),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 체제마찰에서 의식공유로, 오코노기 마사 오ㆍ장달중, 전후한일관계의 전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이원덕(2006), 한일과거사 갈등의 구조와 해법모색, 김영작, 이원덕 엮음,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한울아카데미 (2005), 구조전환기의 한일관계: 쟁점과 과제, 오코노기 마사오ㆍ장달중, 전후한일관 계의 전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10), 한일관계 새로운 100년을 향해, 이원덕, 정재정, 남기정, 하영선 4인 대담, 일본공간 제8호,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2), 신시대 한일관계의 구축을 향하여,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논문집: 한일신시대 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한울 외교통상부(1998), 김대중 대통령 일본 공식방문 결과(공동선언, 연설문 등 주요기록) 정재정(2010), 한일여론 지도자 심포지움,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100년의 성찰, 동북아 역사재단 최상용ㆍ이원덕ㆍ이면우(1998), 탈냉전기 한일관계의 쟁점, 집문당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2010), 한일신시대 를 위한 제언: 공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 의 구축 田 中 明 彦 지음 이원덕 역(2010), 포스트 크라이스의 세계, 일조각 木 宮 正 史 (2007) 日 韓 関 係 の 力 学 と 展 望 : 冷 戦 期 のダイナミズムと 脱 冷 戦 期 における 構 造 変 容 金 慶 珠 ㆍ 李 元 徳 編 日 韓 の 共 通 認 識 : 日 本 は 韓 国 にとって 何 なのか?, 東 海 大 学 出 版 会 木 宮 正 史 (2010), 東 アジア 共 同 体 と 日 韓 関 係, 東 京 大 學 校 現 代 韓 国 研 究 センタ 主 催, 国 際 会 議 : 東 アジア 共 同 体 と 日 韓 の 知 的 交 流 Cha, Victor(1999), D.,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 Korea Japan Security Triangles, Stanford University Press. Koh, Byung Chul(2007), Between Discord And Cooperation:Japan and The Two Koreas, Yonsei University Press, Lee, Chong Sik(1885), Japan and Korea: the Political Deimension(Stanford Hoover Institution Press, 1885); Maddison, Angus(2008) Shares of the Rich and the Rest in the World Economy: Income Divergence Between Nations Asian Economy Policy Review, 코노기 마사오 역음 한일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한울, 2012) pp, 및 한일신 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 공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의 구축 (한 울, 2010) pp 참조.
26 2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이원덕, (한자) 李 元 德, (영어) LEE WON DEOG 소속 : 국민대학 국제학부 논문영문제목 : Korea Japan Relation of Crisis: How to break the Deadlock? 주소 : (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1049 반포타운빌라 102호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한일관계에서 역사마찰 문제는 미래지향적 양국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 요인이 되고 있 다.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는 점차 확산, 심화되고 있는 역사마찰 문제를 극복하 고 양국의 협력과 공동번영의 비래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당분간 한일관계에서 역사 문 제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과 갈등은 반복되고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일 간의 역사 마 찰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전략적 대응 노력 그리고 지식인이나 미디어의 역할 여하에 따라서 빈도 와 심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이 맞이하고 21세기 신 시대는 냉전시기와 탈냉전 시기와는 다른 복합화의 시대이다. 한일 양국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 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공생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신시 대 한일관계는 미중 양강 구도로 재편되는 동북아 국제환경 속에서 양국이 기본적 가치와 규범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여 전 분야에 걸친 전면적인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주제어: 한일관계, 역사마찰, 동북아시아, 역사인식
27 23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 漫 画 ナウシカ から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を 中 心 に - * 奈 良 勝 司 Abstract In this article, the author analyzed Miyazaki Hayao s thoughts especially concerning the structure of his world view. I used Miyazaki s animation movies, interview reports of him and others, model sheets from the official guidebooks, and so on as materials. Generally, the main image of Miyazaki s animation is bright, popular. He often uses topics like humanism, ecology, Japanese tradition, and so on. But through the 1980 s, while Miyazaki made his masterpieces such as Totoro and Kiki s delivery service, he had continued writing the comic version of Kaze no tani no Nausicaa. The comic version s Nausicaa included a variety of tragedies and serious and tough battle scenes. The core of Miyazaki s thought can been found within it. When the comic version s Nausicaa was finished in the early 1990 s, Miyazaki had started to include the essence of Nausicaa in his following works. In other words, Miyazaki started to include not only the light side of the world, but also the shadow side of the world. Spirited Away was one of the best representation of the new demands he imposed on himself. In this movie, the importance of words is particularly obvious. Words and promise made by it, ware not just a tool of communication, but also the public order in the world of light and shadow. Words based on the reality gave power to the promises and contracts shown in the movie. Key words : Miyazaki Hayao, world view, light and shadow, words, contract, reality 12) 1. はじめに 本 稿 は アニメ 映 画 監 督 宮 崎 駿 の 作 品 における 世 界 観 の 構 造 を 特 に 他 者 との 関 わりで 明 らかにし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 そもそも 宮 崎 アニメの 一 般 イ メージとはどのようなものだろうか たとえば となりのトトロ 風 の 谷 のナウシ カ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には エコロジーや 自 然 ㆍ 伝 統 世 界 への 憧 憬 それ らに 付 随 した 安 心 感 が 感 じられる 魔 女 の 宅 急 便 天 空 の 城 ラピュタ * 漢 陽 大 学 校 国 際 文 化 大 学 日 本 言 語 文 化 学 科 助 教 授. 明 治 維 新 史 (19 世 紀 日 本 史 ).
28 2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紅 の 豚 ハウルの 動 く 城 には わくわくする 冒 険 譚 やロマン および 異 国 情 緒 が 見 られる 全 体 的 には 子 ども 向 けであり 環 境 保 護 を 訴 え 中 期 以 降 の 作 品 では 日 本 古 来 の 風 俗 文 化 (あるいはアニミズム)を 高 く 評 価 する こうした 点 こそが 誰 もが 楽 しめる 秘 密 であり 逆 にいえば 宮 崎 アニメはあまりにもうまく 出 来 すぎていて 観 客 から 現 実 への 批 判 力 や 現 実 を 変 えようとする 意 思 を 奪 ってし まっている 1) 理 由 でもある 周 知 のように 宮 崎 駿 は 日 本 映 画 界 を 象 徴 する1 人 である 特 にアニメ 映 画 では 唯 一 無 二 の 存 在 といってよく 世 界 的 にもその 評 価 はすでに 確 立 している また 近 年 では 宮 崎 とは 別 個 の 作 風 を 武 器 に 新 たな 境 地 を 切 り 開 いてきた 新 世 代 の 映 像 作 家 たちが 活 動 を 成 熟 させるなかで 宮 崎 アニメに 回 帰 ㆍ 再 接 近 する という 現 象 も 起 こっている 2) 加 えて 宮 崎 は 文 章 で 自 分 の 考 えを 表 明 したり 作 品 解 説 をすることにも 精 力 的 であり これまでにもインタビュー 記 事 を 始 めとする 多 数 の 記 録 が 公 開 されてきた 3) ならば 宮 崎 が 長 編 映 画 からの 引 退 を 表 明 した 4) 現 在 のタイミングは 彼 を 一 人 の 思 想 家 として 本 格 的 に 位 置 づけ その 世 界 観 の 特 質 を 考 察 する 絶 好 の 機 会 といえるのではないか 実 は 宮 崎 アニメには わかりやすい 娯 楽 性 の 裏 に 強 烈 な 作 家 性 も 込 められている インタビューなどを 読 んでもわかるように 彼 の 社 会 に 対 する 問 題 意 識 およびそれとの 知 的 格 闘 は 作 品 を 通 した 巨 大 な 影 響 力 と 相 俟 って 十 分 人 文 学 からの 検 討 に 値 するものなのである もちろん かかる 試 みは 筆 者 が 初 めてなわけではない 宮 崎 アニメに 対 して は これまでにも 様 々な 立 場 から 数 え 切 れないほどの 言 及 がなされてきた 5) し 1) 切 通 理 作 (2001) 宮 崎 駿 の 世 界 筑 摩 書 房 p276. 2) たとえば ポスト 宮 崎 世 代 の 象 徴 ともいえる 庵 野 秀 明 は 元 々は 風 の 谷 のナウシカ の 作 画 ス タッフで 宮 崎 とは 当 初 から 切 っても 切 れない 関 係 にあったが 宮 崎 の 最 新 作 風 立 ちぬ では 主 人 公 二 郎 の 声 優 を 担 当 するなど ここに 来 て 二 人 の 関 係 は 再 び 密 接 なものになっている また 監 督 ㆍ 作 画 ㆍ 編 集 などをすべて 一 人 でこなした ほしのこえ で 新 世 代 の 鮮 烈 な 感 性 を 提 示 した 新 海 誠 は 2011 年 公 開 の 星 を 追 う 子 ども ではジブリの 新 作 かと 間 違 うほどのキャラクターㆍ 描 写 ㆍ 設 定 を 提 示 して 話 題 になったが 新 海 自 身 がWeb 上 のインタビューで 自 覚 的 に 行 った 宮 崎 作 品 へのオマージュであったことを 明 かしている( 3) 今 では 作 品 の 製 作 中 から 公 開 後 にかけた 一 連 の 関 連 書 籍 の 刊 行 ㆍ 発 信 の 方 針 は よく 計 算 さ れた 販 売 ㆍブランド 戦 略 とも 相 俟 って プロデューサーの 鈴 木 敏 夫 やスタジオジブリ 全 体 にも 共 有 されている 4) 2014 年 冬 時 点 彼 はこれまでにも 何 回 か 引 退 を 表 明 しては 撤 回 という 経 緯 を 経 てきたが 年 齢 的 な 事 情 からも 今 回 は 本 当 ということである 5) 全 てを 紹 介 するのは 到 底 不 可 能 だが 本 稿 で 直 接 触 れたもの 以 外 では 彼 の 思 想 を 包 括 的 に
29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25 かしながら そのなかには 映 画 の 公 開 にあわせて 自 身 の 感 想 やイデオロギーを 吐 露 しただけのものも 少 なくないし また 学 術 的 側 面 から 本 格 的 に 考 察 を 加 えた ものにしても 少 なくとも 問 題 設 定 の 次 元 においては 環 境 問 題 や 伝 統 風 俗 な ど 冒 頭 に 挙 げた 宮 崎 の パブリックイメージ に 規 定 されていることが 多 いよう に 思 われる 6) これに 対 し 筆 者 は 宮 崎 アニメを (たとえ 理 想 化 されたものであれ) 日 本 的 伝 統 への 憧 憬 や 回 帰 を 図 るものではなく むしろ 暗 黒 面 をも 含 む 自 身 の 理 想 を 過 激 に 反 映 させた 闘 争 であると 見 る その 上 で いっけん 伝 統 的 な 日 本 の 美 的 感 覚 とは 相 容 れないかに 見 える ドライでシビアな 契 約 概 念 と 絡 めて 彼 の 思 想 を とらえたい 予 め 結 論 を 先 取 りしていえば そこに 見 出 されるのは ニヒリズムを 土 台 にしながらもそれを 反 転 させたところに 誕 生 する 理 想 主 義 であり 近 現 代 日 本 への 批 判 精 神 とその 裏 返 しとしての 未 発 の 可 能 性 ㆍ 代 案 の 提 示 である なか でも 本 稿 が 注 目 するのが 言 葉 へのこだわりである これは 約 束 の 重 視 と 言 い 換 えてもよい この 傾 向 は 初 期 の 作 品 にも 見 られるが どちらかといえば 漫 画 ナウシカ 7) 完 結 後 の 後 期 作 品 に 顕 著 な 傾 向 であり 特 に21 世 紀 以 降 の 作 品 には 必 ず 登 場 しているといっても 過 言 ではない 国 民 的 作 品 として 幅 広 い 人 気 を 誇 る 宮 崎 アニメに 対 し こうした 理 解 は ある いは 奇 妙 に 聞 こえ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ながら 宮 崎 は 当 初 は 社 会 に 対 する 怒 りや 虚 無 感 から 出 発 して それを 自 覚 的 に 理 想 主 義 に 転 化 させるという 経 験 を 青 年 期 に 経 ていた 8) また 天 空 の 城 ラピュタ となりのトトロ 魔 女 の 宅 急 便 といった 陽 性 イメージを 決 定 づけた 作 品 群 を 発 表 した 時 期 にも 裏 では 陰 扱 ったものとして 久 美 薫 (2008) 宮 崎 駿 の 時 代 :1941~2008 鳥 影 社 野 村 幸 一 郎 (2010) 宮 崎 駿 の 地 平 白 地 社 などを 参 考 にした 6) 他 には 平 和 問 題 ㆍ 宗 教 問 題 からのアプローチなどが 主 なところであろう 7) 周 知 のように 風 の 谷 のナウシカ には 1982 年 から1994 年 まで 雑 誌 アニメージュ で 連 載 された 漫 画 版 と コミックの 第 2 巻 までの 筋 を 大 枠 でなぞりながらも オリジナルの 作 品 となった 映 画 版 がある 以 下 本 稿 では 漫 画 版 を 漫 画 ナウシカ と 表 現 し 映 画 版 を 映 画 ナ ウシカ と 表 現 して 区 別 する 8) 宮 崎 は 高 校 三 年 の 時 に 東 映 映 画 白 蛇 伝 を 観 て それまでの 観 念 先 行 の 冷 笑 主 義 や 醒 め た 割 り 切 りを 根 本 から 覆 された 衝 撃 を 一 番 バカにしてたはずのメロドラマを 観 てガ~ンとなっ た ( 宮 崎 駿 2002 風 の 帰 る 場 所 ロッキングㆍオン p345. 本 書 は 音 楽 評 論 家 渋 谷 陽 一 氏 とのインタビュー 集 である) 流 行 の 不 条 理 劇 でも 描 こうとしていた 自 分 の 愚 かさを 思 い 知 らさ れた( 中 略 ) 口 をつく 不 信 の 言 葉 と 裏 腹 に 本 心 は あの 三 文 メロドラマの 安 っぽくても ひたむき で 純 粋 な 世 界 に 憧 れている 自 分 に 気 づかされてしまった 世 界 を 肯 定 したくてたまらない 自 分 が いるのをもう 否 定 できなくなっていた ( 宮 崎 駿 1996 日 本 のアニメーションについて 同 出 発 点 徳 間 書 店 p101. 初 出 1988)と 語 っている
30 2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鬱 で 苛 酷 な 漫 画 ナウシカ を 書 き 続 けていた 彼 は 欺 瞞 に 満 ちた 現 実 社 会 を 前 にニヒリズムに 引 きつけられる 衝 動 を 幾 度 も 告 白 しているし 子 どもが 楽 しめ る 作 品 を 作 るという 強 固 な 主 義 を 持 ちながらも 稀 にそのルールを 脱 した 時 に は 非 常 に 個 人 的 で 反 社 会 的 ですらある 問 題 作 を 発 表 している 9) 生 身 の 人 間 としての 彼 が 気 難 しい 側 面 をもち 時 に 周 囲 への 苛 立 ちや 攻 撃 性 を 漏 らすさま は インタビューやテレビのドキュメンタリー 番 組 でも 生 々しく 記 されてきた 10) 以 上 が 筆 者 が 宮 崎 アニメとそれが 向 き 合 う 現 実 の 日 本 社 会 の 両 者 を 親 和 ㆍ 調 和 的 にではなく 逆 に 緊 張 関 係 として 捉 える 理 由 である 11) そして 本 論 で 詳 述 する 通 り 彼 の 作 品 特 に 後 期 作 品 では 主 体 と 異 質 な 他 者 との 関 わ り 方 という 問 題 が 一 貫 して 意 識 されるのである 12) 以 下 本 論 では 第 1 章 で 漫 画 ナウシカ の 連 載 が 終 了 してから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 制 作 に 至 るま での 軌 跡 を 第 2 章 で 彼 が 考 える 世 界 の 有 り 様 とその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への 反 映 を 明 らかにした 上 で 第 3 章 では そうした 世 界 と 主 人 公 をつなぐ 鎹 と しての 言 葉 が 持 つ 意 義 を 考 察 する 第 1 章 漫 画 ナウシカ から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へ 第 1 節 漫 画 ナウシカ 以 後 の 課 題 宮 崎 は 映 画 監 督 デビューのころから 同 時 並 行 で 漫 画 ナウシカ の 連 載 を 続 けていた ライフワークという 言 葉 を 嫌 う 彼 だが もともと 漫 画 家 を 目 指 していた 宮 崎 にとって 映 画 と 違 って 社 会 的 な 制 約 が 少 なかった 13) 本 作 は 結 果 的 にそ 9) 少 年 少 女 以 外 を 主 人 公 にした 紅 の 豚 と 風 立 ちぬ はそれに 該 当 するといえる 両 作 品 の 関 係 性 と 意 義 については 稿 を 改 めて 検 討 したい 10) たとえば 映 画 監 督 で 宮 崎 とも 関 係 の 深 い 高 畑 勲 は 彼 の こんなスタジオ 燃 えてしまえ! ( 高 畑 勲 エロスの 火 花 出 発 点 p575. 以 下 同 じ) 人 間 は 度 し 難 い (p580)といった 発 言 を 紹 介 している また 宮 崎 のことを 平 気 で 暴 言 を 吐 く しばしば 破 壊 的 虚 無 的 なことばを 周 囲 に 撒 きちらす (p574) 彼 が 大 衆 不 信 におちいり 破 壊 的 虚 無 的 なことを 叫 んだり とき に 独 裁 願 望 ととられかねないことを 口 走 ったりすることがあった (p577) などとも 評 している 11) もとより 彼 は 思 想 的 ではあっても 本 職 はあくまで 映 画 監 督 であり したがって 本 稿 がどれだけ 彼 の 文 章 やインタビュー 記 事 を 引 用 しても それはあくまで 筆 者 が 全 責 任 を 負 う 主 観 的 な 営 為 であることは 断 っ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 12) 筆 者 はすでに 日 本 史 研 究 の 立 場 から 明 治 維 新 を 対 象 にこの 問 題 を 検 討 したことがある( 拙 著 2010 明 治 維 新 と 世 界 認 識 体 系 有 志 舎 )
31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27 の 思 想 を 長 い 時 期 的 スパンのもとで 試 行 錯 誤 を 経 ながら 熟 成 ㆍ 展 開 させていく 実 験 場 となった もっとも それは 以 下 に 述 べるように 決 して 楽 しいだけの 作 業 ではなく むしろ 心 情 的 には 正 反 対 の 様 相 を 帯 びた 苦 行 のごときものになっ ていくのだが そして 映 画 ナウシカ で 途 中 経 過 を 提 示 した 後 は 漫 画 ナウ シカ が 凄 惨 な 地 獄 絵 図 を 展 開 させていく 一 方 で 映 画 では となりのトトロ な どの 今 日 の 彼 のイメージを 決 定 づけるような 名 作 が 生 み 出 されていくこととなる つまり いうなれば 思 想 の 表 出 回 路 が 顕 教 的 な 映 画 と 密 教 的 な 漫 画 という 二 つの 手 段 に 分 化 したのであり 映 画 では 明 るく 前 向 きな 陽 性 の 物 語 が 示 される 一 方 で 漫 画 ナウシカ では 重 く 陰 鬱 な 世 界 が 示 されるという ある 種 の 分 業 が 生 じたのである 14) 従 って80~90 年 代 前 半 に 作 られた 映 画 は その 背 後 に 漫 画 ナウシカ あってのものであり 一 般 的 な 陽 性 のイメージは 一 面 に 過 ぎず これらはあくまで 両 方 合 わさることで 当 時 の 彼 の 思 想 を 体 現 した 宮 崎 はこの 間 の 事 情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発 言 している 正 直 な 話 次 の 映 画 のために( 漫 画 ナウシカ の) 連 載 を 中 断 する 時 は 内 心 ホッとして 机 から 逃 げ 出 したといった 方 が 正 確 でした あまり 大 きな 声 でいえること じゃないんです 次 の 映 画 が 終 わって しばらく 休 んでも ナウシカの 所 へもどるの はつらかった 結 果 的 に 四 回 も 中 断 しちゃった( 中 略 )だから 先 にもいったけれど ナウシカ から 逃 げるために 映 画 をやるみたいなところが 正 直 いってあったんで す 一 方 で 重 いものがあるから こっちで 軽 いのをやるというふうにしたわけではな いけれども たぶん ナウシカ を 書 き 続 けていなかったら 映 画 の 中 にもう 少 し 重 いものを 込 めようとしてジタバタしたのじゃないかと 思 うんです 15) このように 映 画 監 督 としての 華 々しいキャリアの 裏 面 で 密 教 のように あた かも 地 を 這 うがごとくに 続 けられていた 漫 画 ナウシカ が 終 わると それまで 二 13) 宮 崎 は 連 載 終 了 時 のインタビューで 書 き 始 めた 時 の 状 況 を いつでもやめていいと 決 め ていたので 先 のことを 何 も 考 えないで 書 くことができた そのうちなんとかなるだろう その 前 に 雑 誌 がつぶれてくれるだろう( 笑 )とか そういうふうに 言 いながら だましだましやってい た と 語 っている( 同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出 発 点 pp 初 出 1994) 14) 五 味 洋 子 は 漫 画 ナウシカ の 世 界 を トトロ 等 の 宮 崎 ブランドのイメージしかない 人 達 が 見 れば 目 をむきそうな 酸 鼻 を 極 めた 地 獄 絵 図 と 表 現 するが 本 質 を 衝 いた 極 めて 重 要 な 指 摘 であるといえる( 1995 浄 化 されてゆく 宮 崎 世 界 の 闇 コミックㆍボックス 98 ふゅー じょんぷろだくと p39) 15)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p522ㆍ534.
32 2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つの 回 路 で 表 出 していた 思 想 を 彼 は 映 画 単 体 で 表 現 し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 た この 瞬 間 に 彼 にとっての 映 画 は 漫 画 ナウシカ の 苦 しさからの 一 時 的 な 逃 避 ㆍ 開 放 の 手 段 としての 意 味 を 失 い 16) 漫 画 ナウシカ で 格 闘 してきた 世 界 の 闇 の 側 面 を 以 後 は 映 画 にも 取 り 込 んでいく 必 要 が 生 まれた 漫 画 ナウ シカ 以 降 の 彼 の 映 画 は 善 と 悪 正 と 負 明 と 暗 といった 物 事 のポシティブな 部 分 とネガティブな 部 分 の 両 方 を 押 さえた 総 合 的 な 叙 述 にならざるを 得 ないこ とが 運 命 づけられたのである 総 合 的 な 叙 述 とは すなわち 世 界 を 描 くことであり 主 人 公 と 主 人 公 を 取 り 巻 く 世 界 との 関 係 性 を 描 くことである そして 通 常 我 々はその 関 係 性 の 体 系 化 さ れたかたちを 秩 序 とよぶ かくして90 年 代 以 降 の 宮 崎 アニメは いかに 子 ども 向 けや 娯 楽 性 を 標 榜 していても 否 応 なしに 世 界 構 造 や 秩 序 の 側 面 をその 内 部 に 組 み 込 まざるを 得 なくなった 17) あわせて スタジオジブリという 組 織 の 経 営 者 と しての 活 動 がこの 頃 から 本 格 化 したという 現 実 世 界 における 環 境 も もはや 宮 崎 に 単 なる 個 人 としての 発 想 ㆍ 活 動 にのみ 耽 溺 することを 許 さなくなった 18) 紅 の 豚 という 一 種 のモラトリアム 19) を 経 て 自 己 を 取 り 戻 した 彼 が かかる 状 況 下 で 本 格 的 に 難 問 に 取 り 組 んだのが もののけ 姫 であった 16) 宮 崎 は 別 のインタビューでも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稲 葉 振 一 郎 1996 ナウシカ 解 読 ユー トピアの 臨 界 窓 社 p197 初 出 1994) 80 年 代 に 作 られた 映 画 群 と 漫 画 ナウシカ が 不 可 分 の 関 係 にあり むしろ 地 味 な 後 者 の 方 が 中 心 だったことがわかる 映 画 をやっている 時 は 肉 体 的 にも 精 神 的 にもきわめて 辛 いんですけど ナウシカ を 書 いているより 楽 ですね ナウシカ を 書 いていたおかげで 脳 天 気 な 映 画 を 作 れた んじゃないかなと 思 っているんですけどね 17) 叶 精 二 氏 によれば 宮 崎 は1994 年 のインタビューでこう 述 べていた 丸 ごと 知 りたい というようなところが( 高 畑 勲 監 督 と)どこか 似 ていましたよ 一 つの 街 の 成 り 立 ちとかね こういう 店 の 建 物 もそれから 住 んでいる 人 間 も 何 を 食 べているのかも どう いう 商 品 が 並 んでいるのか どういう 風 にそれを 仕 入 れるのか どういう 風 に 支 払 いをする のかとか そういうことまで 含 めて 分 からないと 分 かったことにはならないんじゃないかな 叶 氏 はこれを 文 化 人 類 学 的 視 点 で 作 品 世 界 を 構 築 するという 作 風 と 言 い 表 している ( 以 上 同 2001 イメージボードからの 飛 翔 p49からの 引 用 ) 18) 宮 崎 は 組 織 経 営 の 側 面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述 べる( 風 の 帰 る 場 所 p129) 経 営 のことは 知 りません とか 組 織 のことは 関 係 ありません って 言 うわけにはいかな いです それはしょうがないことですよね そういう 面 倒 くさいことに 付 きあっていかな きゃ アニメーションって 作 れないんですから 作 りたいときだけ 山 から 降 りてきて 作 った らまた 風 のように 去 っていくっていうのはカッコいいですけど そうはいかないですから( 中 略 )そういうことはどっかで 面 倒 くさいと 思 うと 同 時 に 案 外 嫌 いじゃない 19) インタビュアーの 渋 谷 陽 一 氏 は 本 作 を 宮 崎 が 自 分 の 問 題 意 識 を 整 理 するために 撮 った 映 画 だと 指 摘 しているが 宮 崎 はこれを 肯 定 している( 同 前 p108)
33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29 第 2 節 もののけ 姫 の 問 題 構 造 しかしながら 独 自 の 世 界 をしっかりと 描 きながら そこに 生 きる 主 体 を 綺 麗 な 起 承 転 結 のシナリオに 従 わせることは 容 易 ではない なぜなら 精 度 を 増 した 架 空 世 界 は もはやただの 操 作 対 象 には 留 まり 得 ず それ 自 体 の 規 範 で 動 き 始 め るからである 宮 崎 の 盟 友 で 彼 の 軌 跡 を 旁 らで 見 続 けてきた 高 畑 勲 は 同 作 の 公 開 直 前 に 次 のように 指 摘 していた 最 近 の 作 品 では 啓 示 的 象 徴 的 な 世 界 構 造 を 具 体 的 現 実 的 に 描 出 することに 力 点 がかかり ますます 緻 密 の 度 を 加 えている このまま 行 くと アニメーション 作 品 で も 人 物 像 やその 行 為 はともかく ストーリーに 関 しては その 世 界 構 造 に 足 を 取 ら れて いままでの 彼 の 理 想 主 義 や 平 衡 感 覚 を 突 破 せざるを 得 なくなる 20) 理 想 主 義 が 注 がれる 場 所 は ハッピーエンドに 至 る 物 語 の 展 開 ではなく 構 造 的 な 物 語 世 界 それ 自 体 の 方 に 移 ってきているのである だから たとえあらす じが 破 綻 しているように 見 えても それは 決 して 世 界 観 の 破 綻 を 意 味 せず むし ろその 逆 ( 精 緻 化 ゆえ)なのである 21) ならば 作 品 の 軸 は 構 造 的 世 界 における 主 体 の 歩 みそれ 自 体 となり 焦 点 はそこでの 主 体 が 十 分 に 活 力 と 魅 力 に 溢 れた 存 在 であるか 否 かにかかってくることになるだろう その 点 で しかし もののけ 姫 は 未 だ 完 璧 ではなかった 本 作 品 は 漫 画 ナウシカ の 主 題 を 一 本 の 映 画 で 示 すという 難 問 に 挑 んだ 大 作 であったが あの 複 雑 で 長 大 な 物 語 を 同 じ 方 法 で2 時 間 余 の 映 像 に 収 めるのは やはり 聊 か 無 理 があったようである 実 際 のところ 本 作 は 壮 大 な 叙 事 詩 として 絶 賛 されな がらも その 一 方 ではどこか 消 化 不 良 で 血 の 通 わない 不 完 全 燃 焼 感 も 残 すことと なった 世 界 の 構 造 を 描 こうとした 結 果 本 作 にすでに 主 人 公 中 心 主 義 からの 決 別 が 生 じていた 点 は 批 評 家 の 切 通 理 作 氏 が タタラ 場 ともののけの 仲 裁 役 に 回 ったアシタカの 存 在 感 は 次 第 に 薄 れ 森 の 神 ㆍシシ 神 の 描 写 が 誰 の 主 観 で もない 映 像 としてえんえんと 続 く 22) と 指 摘 する 通 りである もののけ 姫 は 20) エロスの 火 花 ( 出 発 点 p578) 21) 宮 崎 の 後 期 作 品 に 対 する 少 なくない 批 評 が この 点 を 混 同 しているように 思 われる つまり ス トーリー 至 上 主 義 の 観 点 から その 展 開 がわかりやすい 起 承 転 結 の 型 を 外 れていることをもっ て あたかも 映 画 自 体 が 破 綻 しているかのように 受 けとめてしまっているのである 22) 同 宮 崎 駿 の 世 界 p290.
34 3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雑 多 な 他 者 が 並 存 する 世 界 をリアルに 描 いたがために 皮 肉 にもかえって 主 人 公 の 主 体 性 や 位 置 づけを 弱 めてしまったのである 当 初 は アシタカせっ 記 であった 本 作 の 標 題 は 興 業 に 責 任 を 負 う 鈴 木 敏 夫 プロデューサーによって 宮 崎 に 無 断 で もののけ 姫 に 変 えられた 23) こ れも アシタカとサン(もののけ 姫 )のどちらが 物 語 の 軸 かという 点 に 関 係 者 間 の 明 確 な 共 通 理 解 がなかったことを 意 味 しており 主 人 公 の 位 置 づけの 不 確 かさを 示 唆 していると 言 えよう よって 本 作 では 主 体 と 世 界 が 正 面 から 絡 み 合 う 様 とそこ に 表 れる 秩 序 をいかに 描 くかという 課 題 は まだ 未 解 決 であった 24) では なぜそのようなことが 起 こったのか 原 因 は 主 人 公 の 貴 種 性 にあったと 考 えられる これは しばしば 社 会 階 層 的 な 貴 族 性 と 身 体 的 な 卓 越 性 として 表 れ るものである 宮 崎 アニメの 主 人 公 は 特 別 な 地 位 や 能 力 を 備 えていることが 多 く 25) もののけ 姫 の 主 人 公 アシタカもエミシの 末 裔 という 血 統 と 強 い 戦 闘 力 を 併 せ 持 つ 存 在 であり 漫 画 ナウシカ の 設 定 を 忠 実 に 継 いでいたといえ る 26) しかし 漫 画 ナウシカ のような 壮 大 な 叙 事 詩 とは 異 なり 一 本 の 映 画 においてはこの 点 は 逆 に 主 人 公 の 魅 力 を 減 ずる 皮 肉 をもたらした なぜか? 主 人 公 が 強 すぎて 死 ぬ 可 能 性 が 想 像 できないため どんな 危 機 でも どうせ 大 丈 夫 だろう というある 種 の 安 心 感 が 働 き 観 客 から 良 質 の 緊 張 感 を 奪 ってしまう からである アシタカは 並 み 外 れた 戦 闘 力 をもっているので 生 身 の 人 間 の 視 23) 鈴 木 敏 夫 (2013) 風 に 吹 かれて 中 央 公 論 新 社 p 年 の 企 画 書 の 時 点 では 宮 崎 自 身 は 題 名 を もののけ 姫 あるいは アシタカせっ 記 としている( 同 出 発 点 p419) せっ 記 の せっ の 部 分 は 草 冠 の 下 に 耳 を 横 に2つ 並 べた 字 である 24) 鈴 木 敏 夫 は もののけ 姫 と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 関 係 性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述 べる ( 風 に 吹 かれて pp ) もののけ 姫 は 宮 崎 駿 の 集 大 成 とかって 嘘 ばっかりですよね だって とてつもない 大 きなテーマを 抱 えて それを 処 理 しきれない まるで 新 人 監 督 のようなつくり 方 そのいら 立 ちが 全 編 から 漂 っているでしょう いわゆる 作 劇 としては 熟 練 した 人 のつくるやり 方 じゃ ない いら 立 ちが 観 客 をも 巻 き 込 んだような 作 品 だと 僕 は 思 うんですよ 集 大 成 は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ほう( 中 略 )だから もののけ 姫 は 本 当 繰 り 返 しいいますけれど 集 大 成 じゃない あれは とてつもないテーマを 抱 えて それを 具 体 化 できない 新 人 監 督 のあ がきみたいなものがそのまま 映 画 になって それを 観 客 が 共 有 してくれた そんな 映 画 じゃないかなっていう 気 がしています 25) 権 力 への 反 発 を 表 明 しながら 一 方 では 学 習 院 大 学 卒 業 という 経 歴 ももつ 宮 崎 は 漫 画 ナウ シカ を 書 き 進 めていくなかで 統 治 者 だから 悪 被 支 配 層 だから 善 という 前 提 は 捨 てたと 語 っている(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p530) 26) ナウシカは 風 の 谷 の 族 長 ジルの 娘 であり その 戦 闘 力 が 秀 でていたことも 漫 画 版 で 展 開 され る 土 鬼 連 合 軍 との 熾 烈 な 戦 闘 その 他 で 描 かれる 通 りである
35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31 点 に 支 えられていない 描 写 は 焦 点 を 結 ば ず 作 品 自 体 が 世 界 も 自 分 も 汚 れ ており かといって 切 迫 感 もないという なんともメリハリの 欠 いた 映 画 になって しまう 27) というわけである では 中 心 性 の 喪 失 は 世 界 自 体 を 色 褪 せさせてしまうのか 主 人 公 の 主 観 か ら 世 界 構 造 の 叙 述 への 意 識 の 力 点 のシフトは 主 人 公 の 魅 力 そのものを 失 わせ てしまうのか そうではない それがわかるのは 主 人 公 が 万 能 ではなく 逆 に 微 力 な 存 在 であった 場 合 である そして その 設 定 が 実 現 した 作 品 こそが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であった 28) アシタカの 場 合 キーワードの 生 きろ に 象 徴 的 なように 彼 のメッセージ はあくまで 調 停 者 から 周 囲 への 呼 びかけであった 事 実 彼 は 曇 りなき 眼 で 目 の 前 に 起 こっていることを 見 届 けはするものの 実 際 に 愛 憎 渦 巻 く 現 実 世 界 を 主 体 として 生 きるわけではなく 彼 自 身 はどこまでいっても 余 所 者 であり 客 人 なのであり 厳 密 には 世 界 の 中 をあくまで 潜 り 抜 けているだけなのであ る もちろん 彼 自 身 にも 深 刻 な 苦 しみはあるのだが それはむしろ 世 俗 や 共 同 体 から 弾 き 出 されてあてどなく 彷 徨 う 羽 目 になった 点 にこそある ならば 本 当 に 世 界 の 中 で 生 きることの 喜 びと 苦 悩 は 実 はこの 段 階 ではまだ 現 れておらず 彼 の 呼 びかけに 応 じて 実 際 に 生 きる 主 体 の 営 為 の 在 りようこそが 未 発 の 課 題 と して 残 されていたということになるだろう 五 味 洋 子 氏 はこの 関 係 性 について もののけ 姫 が 発 した 生 きろ の 言 葉 の 先 にある ではどう 生 きるかを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は 示 していると 思 う 自 分 なりに 懸 命 に 一 途 に 簡 単 だけれ ど 難 しい 道 と 述 べている 29)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 主 人 公 である 荻 野 千 尋 は 平 凡 な 一 人 の 少 女 であ る 宮 崎 はその 設 定 について 美 人 とか 特 に 才 能 があるとか 族 長 の 娘 に 生 まれ るとかね 空 を 飛 べるとかそんなのがなくても そのくらいの 力 をみんな 持 って るっていう そういう 映 画 を 作 りたかった と 語 っている 30) つまり 本 作 は 族 長 (ナウシカㆍもののけ 姫 )や 王 族 (ラピュタ)や 魔 法 使 い( 魔 女 の 宅 急 便 )や 撃 墜 王 ( 紅 27) 切 通 理 作 宮 崎 駿 の 世 界 p ) インタビュアーの 渋 谷 陽 一 氏 は 本 作 を より 一 層 ナウシカ の 最 後 の 世 界 観 を 進 め た 作 品 で もののけ 的 なる 世 界 観 をより 進 化 させつつ より 大 衆 性 を 持 った と 表 現 している ( 風 の 帰 る 場 所 p223ㆍ341) 29) 五 味 洋 子 (2001) 愛 しい 小 さな 友 へ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ふゅーじょんぷろだくと p25. 30) 風 の 帰 る 場 所 p223.
36 3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の 豚 )といった 特 殊 な 属 性 を 一 切 もたない 特 権 化 されておらずしかしそれゆえ に 普 遍 的 な 主 体 が 自 身 を 取 り 囲 む 世 界 にいかに 対 峙 していくかというテーマを 描 いた 作 品 であったといえよう 第 2 章 善 悪 の 混 濁 する 世 界 第 1 節 悪 を 消 し 去 ることの 不 可 能 性 : 1 空 間 的 に では 宮 崎 駿 が 漫 画 ナウシカ から 継 承 し もののけ 姫 を 経 て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で 結 実 させた 世 界 は いかなる 特 徴 を 持 っていたのか 結 論 から いうと それは 勧 善 懲 悪 の 否 定 であった 宮 崎 は 映 画 の 趣 旨 説 明 で 本 作 の 骨 子 と 舞 台 について 正 邪 の 対 決 が 主 題 ではなく 善 人 も 悪 人 もみな 混 じり 合 っ て 存 在 する 世 の 中 だと 述 べる 31) 善 悪 がはっきり 分 かれた 単 純 な 筋 書 きに 安 心 して 身 を 委 ねるような 話 ではない という 宣 言 である こうした 感 覚 が 本 作 で 初 めて 登 場 した 思 いつきではなく 彼 の 歴 史 観 を 背 景 に 以 前 から 熟 成 されてきた テーゼであったことは かつて もののけ 姫 に 関 して 僕 は 侍 と 農 民 だけの 支 配 と 非 支 配 っていう そういった 歴 史 観 だけで 映 画 を 作 ることに 我 慢 ならなかっ た と 述 べていた 点 にも 明 らかであろう 32) しかも 宮 崎 は 紅 の 豚 公 開 直 前 インタビューでは 次 のようにも 語 っていた 確 かに 善 いことと 悪 いことがある 善 いことをするということもある だけど 善 いことを した 人 が 善 い 人 ではない 善 いことをした というだけなんです 次 の 瞬 間 には 悪 いこともする それが 人 間 だと 思 わないと あらゆる 判 断 を 間 違 える 33) 善 人 と 悪 人 は ただ 混 在 しているだけではない 混 在 しているだけなら 両 者 を 丹 念 に 選 り 分 ければいいのかもしれないが 問 題 はそう 単 純 ではない 実 は 一 人 の 人 間 が 善 と 悪 のどちらであるかすら 固 定 的 ではなく 同 じ 人 物 が 場 合 によって 善 にも 悪 にもなる 私 もあなたも 時 には 善 人 であり 時 には 悪 人 であ 31) 不 思 議 の 町 の 千 尋 この 映 画 のねらい 本 稿 では 斎 藤 良 一 ㆍ 今 西 千 鶴 子 ㆍ 加 藤 ちた かㆍ 鈴 木 隆 詩 ㆍ 徳 木 吉 春 (2001) ロマンアルバム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徳 間 書 店 p74から 引 用 した( 初 出 は1999) 32) 風 の 帰 る 場 所 p )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p528.
37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33 る それが 人 間 だというのである 宮 崎 はまた 生 き 物 っていうのは 動 態 だか ら と 述 べた 上 で 同 じ 人 間 でもね ものすごく 愚 劣 な 瞬 間 があったり それか らなんかやたらに 高 揚 してね あるいは 実 に 思 いやりに 満 ちたり そういうふうに 揺 れ 動 いてる とも 表 現 している 34) よって 彼 は 属 性 だけを 根 拠 に 登 場 人 物 35)の 評 価 を 固 定 したり ポジティブ な 側 面 ( 表 )とネガティブな 側 面 ( 裏 )を 独 立 した 別 個 のものと 捉 えることを 嫌 う す なわち 究 極 的 には2つの 要 素 は 切 り 離 すことが 可 能 だという 考 え 方 を 否 定 す る そのことは 本 音 と 建 前 という 命 題 に 対 して 本 音 と 建 前 とかっていう 論 争 の 不 毛 さはね 動 態 なのに 本 音 と 建 前 っていう 固 定 化 したものに 分 けるか ら 36) と 述 べていることからも 窺 える 善 と 悪 は 社 会 に 混 在 しているし 同 一 主 体 の 中 ですら 両 要 素 は 同 居 しており 場 合 に 応 じてどちらが 表 出 するかはわから ない 勧 善 懲 悪 のドラマや 小 説 のように 善 悪 を 固 定 して 安 定 した 正 義 の 立 ち 位 置 に 浸 ることは 二 重 の 意 味 で 否 定 されるのだ 第 2 節 悪 を 消 し 去 ることの 不 可 能 性 : 2 時 間 的 に 悪 を 消 し 去 ることができないのは 空 間 的 な 意 味 だけの 話 ではなかった もし 時 間 さえかければ 悪 を 善 に 変 えることが 不 可 能 ではないのならば たとえ 今 は 善 悪 が 混 在 していたとしても これから 徐 々に 善 が 領 域 を 広 げていくことによって いずれは 一 元 的 なユートピアが 実 現 でき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 宮 崎 駿 は 将 来 の 展 望 としても 悪 の 廃 絶 には 懐 疑 的 であった 本 人 によれば 1990 年 代 前 半 に 現 実 の 世 界 情 勢 に 関 して 彼 が 最 もショックを 受 けたのは ユーゴスラビア 内 戦 の 推 移 であった 彼 はその 時 の 様 子 を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あれだけひどいことをやってきた 場 所 だから もう 飽 きているだろうと 思 ったら 飽 き てないんですね 人 間 というものは 飽 きないものだということがわかって 自 分 の 考 えの 甘 さを 教 えられました( 中 略 )どうもちょっと 自 分 の 歴 史 認 識 が 決 定 的 に 甘 かっ たとは 思 い 知 らされました 37) 34) 風 の 帰 る 場 所 p61. 35) ただし 人 間 でない 場 合 も 多 い 36) 風 の 帰 る 場 所 p69. 37)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pp
38 3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もう 懲 りてんじゃないかって 思 ってたんですよね つまり 僕 らが 戦 争 に 懲 りてるよう に でも やっぱり 懲 りてないんですね 懲 りてるんだけど 懲 りてない それについ ては 懲 りてるけども 新 しい 憎 悪 もちゃんと 生 産 されるわけだから 我 々も 同 じような ことすぐやるなっていう 感 じも 含 めて ちょっとうんざりしたですね 38) 東 西 冷 戦 がようやく 終 わった 直 後 に 民 族 対 立 から 凄 惨 な 内 戦 が 生 じて 泥 沼 化 したことに 宮 崎 は 深 い 絶 望 感 を 味 わったのである そして これが 単 にユー ゴスラビアの 人 々だけの 問 題 ではなかったことは 彼 が 自 分 も 含 めて 人 って いうのは 愚 かなんだなあっていう 人 間 が 考 えてるより 人 間 は 複 雑 で 同 時 にそ んなに 賢 くないんだなっていうことをうんざりするほど 思 い 知 りました と 言 ってい ることからも 明 らかである 39) 要 するに 彼 の 嘆 きは 人 類 自 体 に 向 けられたもの であった 冷 戦 を 生 き 延 びた 人 類 は 昔 から 繰 り 返 されてきたはずの 愚 かな 民 族 対 立 にまた 陥 るのか と しかしながら こうした 絶 望 に 直 面 しながらも 重 要 なのは 宮 崎 が 将 来 も 悪 が なくならないという 事 実 を むしろある 意 味 では 肯 定 的 に 解 釈 していたことであ る 彼 は 自 身 の 思 想 が ニヒリズムの 理 想 主 義 ではないかと 指 摘 された 際 に なんかから 開 放 されて 開 放 されきったときに 人 が 自 立 的 になにかをやってい けるのか 白 昼 の 倦 怠 しか 待 ってないんじゃないかっていうね その 物 理 的 な 迫 害 とか 物 質 的 な 窮 乏 がないと 人 というのは 結 局 は 健 康 に 生 きられないのかっ ていうね などと 答 えている 40) 悪 はなくならないと 諦 めつつ しかし 実 はむしろ その 方 が 人 間 は 健 康 に 生 きていけるのではないか 逆 にいえば 障 害 や 困 難 が 全 くない 世 界 では 人 間 は 人 間 でなくなるのではないか と 思 考 が 展 開 し ている つまり 宮 崎 は 発 展 段 階 的 に 人 間 社 会 が 一 方 向 に 良 くなっていくことは ないと 判 断 した 上 で 41) しかしそれをある 種 の 真 理 として 冷 徹 に 受 けとめたといえ よう 人 間 存 在 自 体 が そうした 制 約 性 のもとに 成 り 立 っているという 理 解 であ る 42) この 世 界 で 悪 は 善 と 並 存 しているし それはたぶんこの 先 も 変 わらない 38) 風 の 帰 る 場 所 p ) 同 前 pp ) 同 前 p67ㆍ68. 41) これは 発 展 段 階 説 の 否 定 であり 宮 崎 は 漫 画 ナウシカ の 連 載 の 最 後 のあたりで かつて 信 奉 していたマルクス 主 義 を はっきり 捨 てました と 明 言 している( 風 の 谷 のナウシカ 完 結 の いま p529) 42) 影 を 取 り 去 った 世 界 は 世 界 ではないという 理 解 は 人 間 自 身 にも 当 てはまる 宮 崎 は 漫 画 ナ ウシカ の 最 終 盤 で 人 類 を 私 達 のように 凶 暴 ではなく おだやかでかしこい 存 在 へと 作 り
39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35 周 囲 や 未 来 から 負 の 側 面 を 閉 め 出 すことは 恐 らくは 原 理 的 に 不 可 能 なのである こうした 観 点 に 立 つことで 世 界 や 時 代 を 安 易 に 善 と 悪 に2 分 する あるいは 自 己 ( 主 役 )と 他 人 ( 脇 役 )に2 分 することが 不 可 能 になり 善 悪 が 並 存 する 状 況 を 正 面 から 受 けとめる 素 地 ができる そして 実 はこれこそ 漫 画 ナウシカ か ら 受 け 継 がれた 哲 学 の 核 心 部 分 エッセンスであった なぜなら 同 作 の 最 終 盤 でナウシカは 生 命 は 光 だ と 述 べる 墓 所 の 主 ( 旧 人 類 の 創 造 したスーパー コンピューター)に 対 し 生 命 は 闇 の 中 のまたたく 光 だと 言 い 直 して 人 類 を 改 造 することで 予 定 調 和 的 にユートピアを 実 現 する 計 画 を 破 壊 するのだから 43) 光 は 光 だけでは 光 たり 得 ず 闇 というもう1つの 対 照 的 な 要 素 と 一 対 の 関 係 をな すことによって 初 めてその 存 在 は 本 当 の 意 味 を 持 つのである 第 3 節 スタジオジブリとしての 湯 屋 そして こうした 世 界 観 は 机 上 の 空 論 ではなく 現 実 世 界 の 反 映 と 見 なされて いた 宮 崎 は 映 画 は 誰 かのために 作 るんだけど それだけじゃなくて 自 分 も 納 得 しなきゃ 駄 目 なんだって 思 ったんですよ だから ジブリで 働 くっていう 話 だと 自 分 でも 納 得 する と 述 べて 44)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 舞 台 である 湯 屋 をスタジオジブリに 見 立 てている またそこの 女 主 人 の 湯 婆 婆 は 作 中 世 界 の 秩 序 を 形 作 っている 人 物 であるが 宮 崎 は 彼 女 を 自 らと 重 ね 合 わせて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ジブリというのは 僕 は 狭 いスタジオだな って 言 ってるんだけど 中 は 映 画 の 湯 屋 のように 複 雑 になってますし 鈴 木 敏 夫 プロデューサーはでかい 声 出 します し そういう 僕 も 何 甘 い 夢 見 てんだよ ってでかい 声 出 す そういう 所 ですね そ こで 働 かないことにはどうしようもない 立 場 の 子 が 現 れたら どういう 目 に 遭 うんだろう とリアルに 考 えてみた 時 に この 物 語 が 出 来 てきたんです 45) 悪 役 の 湯 婆 婆 という 経 営 者 ですね お 風 呂 屋 さんの それも 本 当 は 悪 役 という 訳 替 える 計 画 の 存 在 をナウシカから 聞 かされたヴ 王 (トルメキア 国 王 )に そんなものは 人 間 とはい えん と 言 わしめている( 同 1995 風 の 谷 のナウシカ 7 徳 間 書 店 p211) 43) 同 前 p ) 宮 崎 駿 制 作 報 告 会 (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につき 2001 年 3 月 26 日 )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p35. 45) 同 前 p33.
40 3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じゃなくて 経 営 は 大 変 だし 子 育 ての 悩 みも 抱 えてるし 自 分 の 欲 望 もあって そういうものに 苦 しめられる そういうお 婆 ちゃんなんです まあジブリで 言 うと プ ロデューサーの 鈴 木 さんがそれにぴったりかどうかね 僕 の 方 が 顔 がでかいですか ら おまえに 似 ている という 話 もあるんですけど( 中 略 ) 鈴 木 プロデューサーを 初 め 僕 も 凶 暴 になることはしょっちゅうありますし わめき 散 らすし 頭 も 湯 婆 婆 のよう にでかいですし 若 いスタッフにとってはそういう 自 分 の 爺 さんの 年 の 人 間 が 血 相 変 えて 怒 鳴 ったら 恐 いですからね で それだけで 十 分 な 悪 役 になると 思 うの で こういう ジブリをモデルにした 映 画 を 作 りつつある 訳 です 46) このように スタッフが 権 力 者 としての 宮 崎 ㆍ 鈴 木 = 湯 婆 婆 を 恐 れるという 状 況 は しかし 時 間 さえ 経 てば 改 善 するというようなものでもなかった 47) スタッフの 中 には むしろ 入 社 後 数 年 を 経 た 後 に 困 難 に 直 面 するケースも 発 生 していた 宮 崎 は 次 のようにも 述 べて ジブリという 現 実 の 職 場 でも 前 述 した 発 展 段 階 は 存 在 しないことを 認 めている 精 神 的 に 極 めて 不 安 定 になったりして 辞 めていく 子 も 随 分 いる 訳 ですよ そういう のを 見 ると 結 構 こんな 狭 い 世 界 でも ここで 自 分 の 存 在 を 他 人 に 認 めさせて 自 分 の 存 在 意 義 を 感 じて 生 きていくのは 手 強 いことなんだっていうのは 感 じざるを 得 ない( 中 略 ) 健 気 で 生 真 面 目 で 優 しい 子 たちが 来 てくれるんだけど それが3 年 5 年 経 っていくうちになんか 辛 くなってたりですね 色 々 起 こる それを 見 てると やっぱりスタジオの 中 に 問 題 があると 言 って 簡 単 に 切 り 捨 てるより この 世 の 中 で 生 きていくということがただ 事 じゃなくて 自 分 の 中 から 相 当 の 力 を 出 していかなけれ ばならない 部 分 があるというふうに 思 い 立 ったのです だから 悪 役 を 倒 すとかい う 話 じゃなくて 悪 役 にしても 普 通 の 人 間 なんです 48) 重 要 なのは 宮 崎 が 他 者 に 対 する 自 らの 悪 の 側 面 あるいは 自 分 自 身 が 他 者 でもある 点 を 自 覚 していることである( 主 観 ではどれほど 善 き 人 たろうと しても 相 手 の 身 からすれば 抑 圧 的 な 存 在 になっていることはある) しかし 同 時 に それを 自 分 の 努 力 次 第 でなくせる 一 種 の 逸 脱 にすぎないとも 考 えていな いことである これを 単 なる 自 己 弁 護 と 解 釈 してはならないだろう 問 題 を 自 らの 46) 同 前 p34ㆍ38. 47) 時 間 が 問 題 を 解 決 するなら それは 通 過 点 となり 構 造 とは 見 なされない 48) 宮 崎 駿 制 作 報 告 会 (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につき 2001 年 3 月 26 日 ) p35ㆍ 年 6 月 18 日 に 行 われた 別 のインタビューも 参 照 (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p138)
41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37 道 徳 性 の 次 元 のみに 矮 小 化 させて 論 じることは いっけん 個 人 的 責 任 感 の 表 れ であるようで 実 は 社 会 の 構 造 自 体 から 目 を 逸 らす 免 罪 符 として 機 能 する 可 能 性 がある そこでは 問 題 の 構 造 的 根 深 さが 個 人 や 組 織 に 求 められる 反 省 の 深 さへと 誤 変 換 されてしまう それではいけないというのが 宮 崎 の 判 断 である スタジオの 経 営 者 として 湯 婆 婆 と 同 じ 立 場 にいる 自 分 (やプロデューサー)は 組 織 の 維 持 や 経 営 にも 配 慮 せねばならず 人 間 的 良 心 だけを 意 識 していればい いわけではない 49) 彼 はあるインタビューで 商 業 的 成 功 という 要 請 にも 配 慮 せ ねばならないことが 逆 に 生 き 甲 斐 でも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 問 われた 際 に それ を 認 めた 上 で いかに 職 場 を 健 康 な 状 態 に 保 つかってことで 怒 鳴 る 奴 には 怒 鳴 ったし チャンスを 与 える 奴 にはチャンスを 与 えたし 追 い 出 す 奴 は 追 い 出 すってね 可 哀 相 なこともずいぶんやってきました 50) と スタッフの 解 雇 なども 行 ってきたことを 告 白 している こうした 事 実 は たとえ1つの 集 団 に 所 属 していても 成 員 同 士 が 完 全 に 一 体 化 することは 不 可 能 で どうしても 一 定 の 軋 轢 や 矛 盾 は 存 在 し 続 けることを 意 味 する 51) それも 状 況 的 ㆍ 偶 然 的 にではなく 構 造 的 ㆍ 必 然 的 にである つま り どれだけ 親 密 で 家 族 のような 集 団 でも 内 部 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100%は 統 合 できない 文 化 人 類 学 の 概 念 を 援 用 すれば どれほど ハイコンテクスト に 見 える 集 団 にも 必 ず ローコンテクスト の 側 面 は 残 り 続 けるのである 52) 組 織 の 経 営 者 として 非 情 な 判 断 も 下 してきた 宮 崎 は 同 じ 会 社 の 人 間 も 仲 間 ではあるけれども 見 知 らぬ 異 人 のような 存 在 になってしまうことがあるわけで それといかにつきあうか を 課 題 にしていた 53) ジブリという 組 織 では 自 分 も 49) 宮 崎 はこうした 事 情 について 湯 婆 婆 には 湯 婆 婆 のストーリーというか 大 人 の 生 活 がある はずですから プロデューサーはね 夜 な 夜 ななにをやってるか 知 りませんけども なんか 出 か けていくしね なんか 難 しい 作 業 をしていたらしくて グッタリ 疲 れて 帰 ってくるし と 述 べている ( 風 の 帰 る 場 所 p211) 50) 風 の 帰 る 場 所 p ) 会 社 の 構 成 員 同 士 が 疑 似 家 族 となり 100%の 忠 誠 と 引 き 替 えに 事 実 上 の 運 命 共 同 体 として 身 分 保 障 や 生 活 保 障 を 行 ってきたのが 戦 後 日 本 経 済 の 核 をなした 終 身 雇 用 制 度 であろう 宮 崎 がここで 述 べているのは その 動 揺 ( 不 可 能 性 )についてともいえる 52) 日 本 社 会 を 例 にとれば 以 心 伝 心 を 根 拠 に 風 呂 ㆍ 飯 ㆍ 寝 る の 単 語 だけで 動 く 家 庭 は 家 父 長 制 の 遺 構 に 依 拠 した ハイコンテクスト の 小 社 会 といえるだろう こうした 環 境 では 言 葉 の 持 つウェイトは 最 小 化 されるが 言 うまでもなく 宮 崎 が 望 む 社 会 の 有 り 様 はこれとは 正 反 対 の 地 平 にある 53) 万 物 生 命 教 の 世 界 再 び ( 宮 崎 駿 2008 折 り 返 し 点 岩 波 書 店 初 出 2002) p289. これは 宮 崎 と 対 談 した 宗 教 学 者 の 山 折 哲 雄 氏 の 発 言 である
42 3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悪 なのかもしれない 同 時 に 世 間 で 悪 人 と 言 われる 人 も 実 は 自 分 たちと 同 じ く 一 方 では 世 界 の 主 役 だったり 善 人 でもあるのではないか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は このように 善 と 悪 の 空 間 ㆍ 時 間 両 面 での 未 分 化 という 真 理 を スタジ オジブリをモデルに 反 映 させたことで リアルだけど 白 黒 のつかない 曖 昧 なグ レーゾーンを 作 中 世 界 の 最 も 基 本 的 な 前 提 に 抱 えこむこととなった 第 3 章 千 尋 と 契 約 の 世 界 第 1 節 グレーゾーンへのこだわり ここまでの 考 察 で 明 らかにしてきたように 漫 画 ナウシカ 以 後 の 宮 崎 が 映 画 作 りの 際 にジブリブランドを 単 純 化 した 陽 性 イメージからの 脱 却 を これまで 以 上 に 強 く 意 識 したことは 間 違 いない それは 僕 の 映 画 がやっぱりヒューマ ニズムだと 思 ってる 人 がいるんですけどね( 笑 ) それは 勝 手 にしろと 思 うしかな い だけど 僕 自 身 はヒューマニズムでは 作 った 記 憶 がないです という 発 言 54) からも 容 易 に 読 みとれる 彼 は そういう 居 心 地 のよいところに 余 計 なことは 忘 れて 引 きずり 込 みたいと 思 っている 人 が 多 いことは 確 か とした 上 で だい ぶ それで 商 売 やってきましたからね とまで 述 べている 55) しかし 注 意 すべきは 世 界 から 負 ( 悪 )の 要 素 を 消 すことはできないことを 認 め たとしても そのことによって 正 ( 善 )の 要 素 やそこに 向 かおうとする 意 思 までもが 否 定 されるべきではないことを 宮 崎 がかなり 執 拗 に 訴 えている 点 である 彼 は 世 界 に 陰 影 が 存 在 することを 認 めつつも くだらないだけになっちゃう ことに 対 しては それじゃいけない と 明 確 に 拒 絶 している 56) 宮 崎 は 次 のように 言 う ただ あんまりくだらないから くだらなくても 本 来 はこうじゃなきゃいけないな と 思 ってるのをなくしちゃうと( 中 略 ) 分 けた 途 端 にねえ それは 最 低 になりますよ だって 俺 はスケベだ って 言 った 途 端 になにが 始 まるかっていったら 人 類 は みんなスケベだ っていう なにが 起 こる? なにも 起 こらないよね( 笑 ) 57) 54) 風 の 帰 る 場 所 p76. 55) 同 前 p173ㆍ ) 同 前 p69. 57) 同 前
43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39 ここで 述 べられているのは 世 の 中 には 綺 麗 事 では 済 まないくだらなさが 厳 然 と 存 在 することを 認 めた 上 で しかしそれを 根 拠 にただちに 綺 麗 事 を 全 否 定 したり 汚 濁 のみが 世 界 の 絶 対 的 な 真 理 なのだと 鬼 の 首 を 取 ったみたい に 声 高 に 叫 ぶような 振 る 舞 いは 論 理 の 飛 躍 だし 最 低 だということである 上 の 文 章 は 前 に 述 べた 本 音 と 建 前 について 述 べられたものだが この 関 係 は 理 想 と 現 実 という 言 葉 に 置 き 換 えてもいいだろう 両 者 の 関 係 において も 宮 崎 は 僕 は 理 想 のない 現 実 主 義 者 になりたいと 思 ってる 人 間 じゃないです から そういうふうになるつもりは 毛 頭 ありません と 述 べている 58) また 彼 は 別 のTVの 取 材 に 対 しても 理 想 を 欠 いた 現 実 主 義 を それは 最 低 ってことだか らね と 吐 き 捨 てるような 口 調 で 否 定 している 59) ここには 宮 崎 のリアリズム 観 が 見 える 彼 は 思 想 としてのリアリズムを 現 状 追 認 主 義 と 区 別 した 上 で 次 のように 冷 徹 な 現 実 感 覚 とより 良 い 現 実 を 目 指 す 理 想 主 義 の2つを 共 に 同 居 させるよう 訴 えている リアリズムっていうのは 僕 らが 一 番 不 得 手 な 部 分 なんですよ 観 念 的 に 見 てくのは ね 自 民 党 も 観 念 的 に 見 てるわけで そういうことについては この 民 族 は 比 較 的 簡 単 に 手 に 入 れるんだけど 人 間 に 対 する 見 方 も 含 めて 本 当 のリアリズムを 手 に 入 れるのは そう 簡 単 にはいかないだろうと 思 うんだけど そういうリアリズムの 方 向 で やっていこうっていう ただ 何 度 も 言 いましたように 理 想 のない 現 実 主 義 ってい うのはもううんざりだから その 点 ですね 60) 宮 崎 は 上 っ 面 の 観 念 主 義 を 否 定 した 上 で 理 想 のない 現 実 主 義 も 本 当 のリアリズム ではないと 考 える 観 念 を 追 求 すべき 理 想 ( 善 ) 現 実 を 世 界 にお ける 陰 影 の 側 面 ( 悪 ) と 言 い 換 えれば 2つが 密 接 不 可 分 で 1 後 者 を 欠 く 前 者 が 絵 空 事 に 過 ぎないのと 同 様 2 前 者 を 欠 く 後 者 もまたいびつで 不 完 全 なこと は 第 2 章 で 確 認 した 彼 の 発 言 からも 明 らかである 我 々はとかく 1には 敏 感 でいながら2を 具 体 的 に 実 感 ㆍイメージすることに 鈍 感 になりがちだが 上 記 の 対 構 造 を 土 台 に 宮 崎 がまさにこの 点 に 執 着 していることは 特 筆 すべきである 繰 り 返 しになるが 千 と 千 尋 制 作 時 点 での 宮 崎 の 世 界 観 は 善 ( 光 )と 悪 58) 同 前 pp ) (2009) 宮 崎 駿 の 仕 事 (NHKエンタープライズ DVD 作 品 )での 発 言 本 作 は2007 年 と2008 年 にNHKで 放 送 された 番 組 を 映 像 作 品 化 したもの 60) 風 の 帰 る 場 所 pp
44 4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 影 )を 共 に 世 界 を 形 作 る 本 質 的 要 素 と 認 めた 上 で ジブリという 現 実 体 験 を 踏 ま えながら 2つをあくまで 対 等 の 両 存 関 係 に 置 き 続 けることを 軸 としており 焦 点 は そうした 曖 昧 さの 下 で 主 体 がいかに 倫 理 を 保 ち 続 けられるかという 点 にあっ た つまり 一 言 でいえばグレーゾーンへの 執 着 であり グレーを 純 白 に 浄 化 ( 漂 白 )することができない 中 そのリアルな 認 識 を 通 して 主 体 としての 意 思 や 規 範 意 識 をどう 維 持 するかという 問 題 であった そして 以 上 の 点 は 千 と 千 尋 の 中 で 様 々な 形 で 示 され 作 品 を 貫 く 通 奏 低 音 をなしていた たとえば 主 題 歌 の いつでも 何 度 でも ( 作 詞 / 覚 和 歌 子 作 曲 ㆍ 歌 / 木 村 弓 )の 歌 詞 を 見 てみよう このなかでも かなしみは 数 えき れないけれど その 向 こうできっと あなたに 会 える 繰 り 返 すあやまちの そ のたび ひとは ただ 青 い 空 の 青 さを 知 る 果 てしなく 道 は 続 いて 見 える けれど この 両 手 は 光 を 抱 ける かなしみの 数 を 言 い 尽 くすより 同 じくち びるで そっとうたおう 61) といった 具 合 に 負 の 要 素 の 存 在 ㆍ 継 続 と それに も 拘 わらず 喜 びや 希 望 を 見 出 していけることに 対 する 期 待 ( 意 思 )が 繰 り 返 し 何 度 も 表 れていることがわかるだろう このように 本 作 には ネガティブな 側 面 が 厳 然 と 存 在 し 今 後 も 無 くなりそうに ない 62) 中 で それでもポシティブな 側 面 が 対 をなす 形 で 果 敢 に 主 体 の 希 望 を 支 え る 構 図 が 非 常 にわかりやすい 形 で 示 されている これは 渋 谷 陽 一 氏 の 言 葉 を 借 りれば 全 然 ハッピーじゃないけど 肯 定 的 なところに 立 つ 63) ことを 意 味 し だからこそ 宮 崎 は 特 別 な 背 景 をもたない 平 凡 な 少 女 である 主 人 公 千 尋 の 最 大 の 武 器 を 64) 実 は 喰 い 尽 くされない 力 にある と 位 置 づけたのである 言 うまでもなく これは 宙 ぶらりん の 認 識 であり 割 り 切 ることのできない 苦 しさを 伴 う かかる 認 識 を 安 易 に 絶 望 に 直 結 させることなく ニヒリズムに 陥 らな かった 時 に 初 めて 到 達 するのが グチャグチャになりながら それでも 生 きてい くしかない 65) という 覚 悟 である 宮 崎 は 先 述 のユーゴ 内 戦 を 意 識 しつつ 二 61) ロマンアルバム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pp ) 宮 崎 は 油 屋 で 働 く 労 働 者 向 けの 労 働 歌 のなかで 若 い 娘 や 青 年 もすぐに 老 人 となり の こるのは 人 生 だけさ 重 くてだるい 人 生 だけだ と 述 べている ただし 興 味 深 いことに その 口 調 は グッタリと 時 には 快 活 に と ここでも 両 義 性 を 帯 びている(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イメージアルバム のためのメモ 折 り 返 し 点 p238) 63) 風 の 帰 る 場 所 p ) 不 思 議 の 町 の 千 尋 この 映 画 のねらい p74. 65) 紅 の 豚 公 開 直 前 インタビュー ( 出 発 点 初 出 1992) p519.
45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41 十 一 世 紀 というのはケリがつかない 全 部 引 きずって 同 じばかなことを 繰 り 返 し ながら それで 生 きていくしかない そういう 見 極 めがついた 66) と 述 べてい た そしてそれは 次 のように 個 人 に 限 らず 国 家 同 士 の 関 係 にも 当 てはまること であった 日 本 だけ 鎖 国 して 世 界 と 離 れて 生 きていくことができない 以 上 人 口 は 増 えつづ けていく 世 界 のなかでヒステリックにあいつらが 悪 いんだといって 簡 単 に 鎖 国 をや るとか 人 種 間 戦 争 をやるとかそういうのじゃなくて いろいろ 抵 抗 もあるけど まあ しょうがない 一 緒 に 生 活 しようよ 頭 に 来 ることがあっても 我 慢 しあって 暮 らそ う そういうふうになっていくしかないという 見 極 めなんです 67) 規 模 に 違 いはあれ これは 個 とそれを 取 り 巻 く 他 者 の 関 係 をどう 構 築 する かという 問 題 であり その 意 味 で 宮 崎 の 描 く 世 界 観 は 普 遍 的 なものであった で は グレーゾーンを 律 するには 具 体 的 にどうすれば 良 いのか 曖 昧 さの 承 認 を 野 放 図 な 好 き 勝 手 の 氾 濫 に 帰 結 させることなく 本 当 のリアリズム はいか にして 明 確 な 輪 郭 を 得 られるのか 第 2 節 規 範 としての 言 葉 善 と 悪 が 混 在 する 世 界 で それでもやけっぱちにならずに 秩 序 を 追 求 しようと すれば いったいどうすればいいのか 動 態 を 動 態 のままで 無 秩 序 な 現 状 追 認 や 強 者 への 一 方 的 な 阿 り あるいは 世 界 そのものからの 隠 遁 などに 結 果 させる ことなく 1つの 規 範 へと 昇 華 して 維 持 させるには どうすればよいのか 宮 崎 にとってのその 答 えは 言 葉 であった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の 制 作 にあ たり 映 画 の 趣 旨 説 明 の 文 章 のなかで 彼 はこの 点 を 明 言 している 言 葉 は 力 である 千 尋 の 迷 い 込 んだ 世 界 では 言 葉 を 発 することはとり 返 しのつか ない 重 さを 持 っている 湯 婆 婆 が 支 配 する 湯 屋 では いやだ 帰 りたい と 一 言 でも 口 にしたら 魔 女 はたちまち 千 尋 を 放 り 出 し 彼 女 は 何 処 にも 行 くあてのない ままさまよい 消 滅 するか ニワトリにされて 食 われるまで 玉 子 を 産 みつづけるかの 道 しかなくなる 逆 に ここで 働 く と 千 尋 が 言 葉 を 発 すれば 魔 女 といえども 無 視 す 66) 同 前 p ) 同 前 p521.
46 4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ることができない 今 日 言 葉 はかぎりなく 軽 く どうとでも 言 えるアブクのようなもの と 受 けとられているが それは 現 実 がうつろになっている 反 映 にすぎない 言 葉 は 力 であることは 今 も 真 実 である( 中 略 ) 言 葉 は 意 思 であり 自 分 であり 力 なのだと いうことを この 映 画 は 説 得 力 を 持 って 訴 えるつもりである 68) ここでは 言 葉 はただの 一 般 名 詞 ではない 単 なる 意 思 疎 通 の 手 段 とい う 次 元 を 越 えて 特 別 な 価 値 を 持 った ある 種 の 魔 力 的 な 存 在 69)として 位 置 づけ られ 物 語 世 界 の 基 本 的 な 秩 序 を 形 成 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だろう そしてそのことは 作 品 のストーリー 展 開 にもわかりやすく 表 れていた 本 作 は 実 質 的 に 前 半 と 後 半 の2 部 構 成 で 70) 元 々の 中 心 は 前 半 にあった 71) そし てプロデューサーが いきなり 設 定 を40 分 もかけて 見 せるという 前 代 未 聞 の 映 画 と 述 べるように 72) そこでは 作 品 の 世 界 観 の 提 示 に 全 力 が 注 がれた で は 肝 心 の 世 界 観 の 核 になったものは 何 か それは 第 1 部 は 何 しろ 千 尋 が 紛 れ 込 んで 湯 婆 婆 の 所 に 行 くまで と 言 われるように 73) 千 尋 と 湯 婆 婆 との 出 会 い および 両 者 の 取 り 決 め( 契 約 の 締 結 )であった 本 作 の 前 半 は 異 世 界 に 迷 い 込 んだ 主 人 公 の 千 尋 が 未 知 の 恐 怖 に 翻 弄 される 中 でハクの 助 けを 受 け ながら なんとか 湯 婆 婆 のもとまで 辿 り 着 いて そこで 自 分 の 言 葉 を 使 って 労 働 契 約 を 勝 ち 取 るまでの 話 だからである 恐 怖 に 怯 える 千 尋 に 対 して ハクは 湯 婆 婆 に 何 を 言 われてもここで 働 きたいと 言 い 張 れば 彼 女 も 手 を 出 せないとアドバイスし 千 尋 はそれを 実 行 するのだが その 労 働 契 約 の 性 質 は 解 説 本 では 次 のように 述 べられている 68) 不 思 議 の 町 の 千 尋 この 映 画 のねらい p74. 69) 言 葉 や それと 関 連 する 人 物 の 名 前 に 特 別 な 意 味 を 付 与 する 思 想 自 体 は 宮 崎 が 影 響 を 受 け た 西 洋 の 伝 承 や 民 話 にもしばしば 登 場 する たとえば 息 子 の 吾 朗 氏 が 監 督 としてアニメ 映 画 化 しただけでなく 宮 崎 自 身 熱 心 なファンで ハウルの 動 く 城 の 公 開 キャンペーンでの 渡 米 時 には 原 作 者 のル=グウィンにまで 会 いに 行 った( 折 り 返 し 点 p515) ファンタジーの 傑 作 ゲド 戦 記 でも 言 葉 は 特 別 な 意 味 を 持 っていた 70) 鈴 木 敏 夫 は インタビューの 中 で 第 1 部 と 第 2 部 は 僕 に 言 わせると 話 のテンポがあまり にも 違 いすぎるし 内 容 も 違 う と 述 べている(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p148) 71) 宮 崎 は 初 めは 湯 婆 婆 に 会 いに 行 くっていうのがメインの 話 でしたから と 述 べている( 風 の 帰 る 場 所 p211) 72) 鈴 木 敏 夫 インタビュー(2001 年 6 月 20 日 )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p ) 同 前
47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43 霊 々の 世 界 において 契 約 が 持 つ 意 味 は 大 きい たとえどんなに 気 に 入 らなくて も 一 度 契 約 を 交 わしたら 守 らなくてはならず それは 巨 大 な 力 をもつ 魔 女 ㆍ 湯 婆 婆 もまた 例 外 ではない 湯 婆 婆 は ここで 働 きたい という 千 尋 と 契 約 書 を 交 わす ことで 千 尋 の 名 前 を 奪 い 支 配 するが 逆 に 湯 婆 婆 は 千 尋 が 働 きつづける 限 り そ の 生 命 を 奪 う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る 74) 千 尋 は 契 約 により 逃 げ 回 るだけであった 世 界 を 職 場 に 変 えたのである 注 意 しておきたいのは 湯 婆 婆 の 力 がいかに 強 大 なものであったとはいえ 千 尋 は 湯 婆 婆 の 意 向 そのものではなく あくまで 彼 女 との 間 に 結 んだ 契 約 によってこ の 世 界 に 受 け 入 れられたということである この 点 は ハクが 他 の 従 業 員 に 千 尋 を 紹 介 した 際 に 彼 らが 最 初 は いくら 湯 婆 婆 様 のおっしゃりでもそれは 人 間 は 困 ります と 受 け 入 れを 渋 ったにも 拘 わらず ハクが すでに 契 約 されたの だ と 告 げると なんと と 絶 句 し 人 間 臭 くてかなわんわ と 愚 痴 りなが らもしぶしぶ 承 諾 する という 経 緯 に 端 的 に 表 れている 75) 各 々が 有 する 力 の 大 小 に 関 わらず 言 葉 は 決 定 的 な 位 置 を 占 めていた ジャーナリストの 筑 紫 哲 也 氏 は 宮 崎 との 対 談 のなかで キーワードは あの 子 の 場 合 は 簡 単 で ここで 働 くと 言 い 続 ける 言 葉 の 力 がいかに 大 きいかということ をあそこで 出 そうとしたんだと 思 って 見 ました と 述 べている 76) また 湯 婆 婆 のも とに 向 かう 道 中 でも 言 葉 の 重 要 性 は 象 徴 的 に 示 されていた たとえばボイ ラー 室 で 釜 爺 に 助 けてもらった 千 尋 に 対 して 従 業 員 のリンは あんたねえ ハイ とかお 世 話 になりますとか 言 えないの? あんた! 釜 爺 にお 礼 言 ったの? 世 話 になったんだろ? と 叱 責 している また 湯 婆 婆 の 部 屋 の 扉 を 開 けようとする 千 尋 に 対 し 湯 婆 婆 は ノックもしないのかい? とたしなめている 77) ここでは 言 葉 の 重 要 性 と 共 に ただ 口 を 開 けばいいのではなく その ことによって 礼 儀 に 即 したコミュニケーションや 人 間 (を 含 む 様 々な 主 体 同 士 の) 関 係 を 作 ることができているかが1つの 尺 度 になっている 気 を 付 けたいのは たとえば 衣 食 足 りて 礼 節 を 知 る という 言 葉 に 象 徴 されるように ややもすれば 生 活 が 安 定 した 上 での 余 興 や 付 加 価 値 のようにとらえられがちな( 言 葉 を 介 した) 礼 儀 というものが ここでは 生 きるか 死 ぬかの 瀬 戸 際 状 況 をくぐり 抜 けるための 74) 契 約 書 の 語 句 説 明 ( ロマンアルバム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p66) 75) 作 品 の 開 始 42 分 あたりの 箇 所 76) しんどいけれどこんなに 面 白 い 時 代 はない ( 折 り 返 し 点 p285. 初 出 2002) 77) それぞれ 作 品 の 開 始 30 分 ㆍ35 分 あたりの 箇 所
48 4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文 字 通 りの 実 践 的 な 武 器 として 位 置 づけられていることである 78) 言 い 換 えれ ば 本 作 において 礼 儀 を 形 作 る 言 葉 は 甘 ったれた 非 現 実 的 な 絵 空 事 で はなく 逆 にリアリズムの 地 平 から 登 場 しているのだといえよう おわりに 以 上 本 稿 ではアニメ 映 画 監 督 宮 崎 駿 を 一 人 の 思 想 家 としてとらえ なかでも 彼 が 作 品 で 展 開 させた 世 界 観 の 構 造 に 注 目 して 他 者 との 関 係 性 という 観 点 から 考 察 を 加 えてきた 他 者 とは ただ 単 に 物 理 的 な 意 味 のみで 用 いて いるのではない 自 らの 思 い 通 りに 行 動 しない 邪 魔 な 存 在 自 らの 価 値 感 に 従 って 動 いてくれない 忌 々しい 存 在 はすべて 他 者 なのである いうなれ ば これは 当 事 者 から 見 た 悪 であり 善 たる 自 分 とは 相 容 れない 存 在 で ある この 悪 を 空 間 的 にも 自 分 の 周 囲 から 追 い 出 せず 時 間 的 ( 将 来 的 ) にもその 駆 逐 が 見 込 めない 時 果 たして 人 や 国 家 は 強 者 や 状 況 への 追 随 や 冷 笑 主 義 に 逃 避 することなく 善 と 悪 の 混 在 状 況 を 正 面 から 受 けとめ 曖 昧 さㆍグレーゾーンを 秩 序 づけ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 特 に1990 年 代 以 降 の 宮 崎 は 常 にこの 課 題 と 格 闘 してきたといっても 過 言 ではなかった 90 年 代 の 宮 崎 作 品 は 80 年 代 には 漫 画 ナウシカ の 執 筆 が 担 っていた 上 記 の 苦 行 を 同 作 の 完 結 を 受 けて 映 画 単 体 で 体 現 する 必 要 に 迫 られた そ の 意 味 では 大 作 もののけ 姫 はまだ 課 題 達 成 の 途 上 にあり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が 集 大 成 の 役 割 を 果 たした そして 同 作 の 核 をなしたのが 言 葉 で あった 言 葉 を 介 した 約 束 や 礼 儀 や 契 約 を 積 み 重 ねることで 一 定 の 規 範 に 基 づく 他 者 との 関 係 を 築 き 苛 酷 な 世 界 を 生 き 抜 く 実 学 として 機 能 させる こと これこそが 同 作 の 世 界 観 の 骨 子 であり 上 記 の 課 題 に 対 して 宮 崎 が 辿 り 着 いた1つの 回 答 であったといえる このような 言 葉 (を 介 した 約 束 ㆍ 礼 儀 ㆍ 契 約 )の 位 置 づけは 以 後 の 宮 崎 作 品 にも 繰 り 返 し 登 場 することとなる ハウルの 動 く 城 では ハウルが 個 人 的 に は 戦 争 を 嫌 いながらもサリマンとの 約 束 79)を 根 拠 に 動 員 されるし 強 大 な 力 をもつ 78) こうした 考 え 方 は 日 本 の 歴 史 上 にも 根 拠 を 持 っている 筆 者 は かつて 日 本 史 研 究 者 の 立 場 から 幕 末 外 交 における 徳 川 政 権 ( 幕 府 )の 動 向 を 素 材 にそのことを 論 証 した( 拙 著 明 治 維 新 と 世 界 認 識 体 系 )
49 宮 崎 駿 の 世 界 観 における < 他 者 > と < 言 葉 >( 奈 良 勝 司 ) 45 火 の 精 カルシュファーも その 契 約 ゆえに 事 実 上 ハウルに 扱 き 使 われながら 城 の 動 燃 機 関 に 甘 んじている 崖 の 上 のポニョ では 宗 介 とポニョはお 互 いを 好 き だという 意 志 表 明 だけで 種 族 の 差 を 飛 び 越 え 悲 観 主 義 者 のメタファーとしてのフ ジモトと 好 対 照 をなしている 風 立 ちぬ に 至 っては 基 本 的 には 口 下 手 な 二 郎 が 約 束 ( 契 約 )の 存 在 を 根 拠 に 軍 事 情 報 の 開 示 を 渋 るドイツ 人 に 対 して 堂 々たる 口 上 を 展 開 している これらは 全 て 他 者 との 関 係 における 言 葉 の 力 を 様 々な 形 で 示 唆 している 本 稿 の 問 題 意 識 に 即 していえば 千 尋 以 降 の 宮 崎 作 品 は 同 作 で 一 通 りの 完 成 をみた 宮 崎 思 想 のテーゼを 舞 台 と 登 場 人 物 を 変 え ながら 何 度 も 繰 り 返 しているだけといっても 言 いすぎではないのである 本 稿 では 漫 画 ナウシカ から 続 く 宮 崎 作 品 に 見 られる 特 質 を 一 つの 流 れとして 提 示 することに 主 眼 を 置 いたため 1つ1つの 作 品 を 十 分 に 掘 り 下 げて 検 討 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特 に 宮 崎 の 思 想 展 開 において1つのヤマ 場 を なしたと 考 えられる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については 作 品 内 容 そのものをより 包 括 的 に 検 討 し 他 の 制 作 スタッフの 関 与 も 含 めて 多 角 的 に 分 析 することが 必 要 になってくるだろう 私 見 では そこには 契 約 概 念 にまで 昇 華 された 言 葉 の 活 用 が 全 編 を 通 して 現 れているはずである しかしもはや 紙 面 も 尽 きた 上 記 の 課 題 については 別 稿 で 改 めて 検 討 することとしたい < 参 考 文 献 > 稲 葉 振 一 郎 (1996) ナウシカ 解 読 ユートピアの 臨 界 窓 社 叶 精 二 (2001) イメージボードからの 飛 翔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ふゅーじょんぷろだくと 切 通 理 作 (2001) 宮 崎 駿 の 世 界 筑 摩 書 房 久 美 薫 (2008) 宮 崎 駿 の 時 代 :1941~2008 鳥 影 社 五 味 洋 子 (1995) 浄 化 されてゆく 宮 崎 世 界 の 闇 コミックㆍボックス 98 ふゅーじょんぷろだくと 五 味 洋 子 (2001) 愛 しい 小 さな 友 へ 別 冊 COMIC BOX vol.6 千 と 千 尋 の 神 隠 し 千 尋 の 大 冒 険 ふゅーじょんぷろだくと 鈴 木 敏 夫 (2013) 風 に 吹 かれて 中 央 公 論 新 社 奈 良 勝 司 (2010) 明 治 維 新 と 世 界 認 識 体 系 有 志 舎 79) 正 確 には 魔 法 学 校 に 入 学 する 時 にたてさせられた 誓 い であり 証 書 としてハウルが 保 管 している 証 書 はナイフやダーツの 的 にされ 酷 い 状 態 に 置 かれているのだが このこ とが 逆 説 的 に 主 観 的 にはどれほど 下 らない 厭 わしいと 思 っていても 最 終 的 には 守 らざるを 得 ない 拘 束 を 受 けざるを 得 ないという 約 束 の 持 つ 魔 力 的 な 力 を 暗 示 している
50 46 比較日本學 第32輯 ( ) 野村幸一郎(2010) 宮崎駿の地平 白地社 宮崎駿(1984~1995) 風の谷のナウシカ 1~7 徳間書店 宮崎駿(1996) 出発点 1979~1996 徳間書店 宮崎駿(2002) 風の帰る場所 ロッキングㆍオン 宮崎駿(2008) 折り返し点 1997~2008 岩波書店 斎藤良一ㆍ今西千鶴子ㆍ加藤ちたかㆍ鈴木隆詩ㆍ徳木吉春(2001) ロマンアルバム 千と千尋の 神隠し 徳間書店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나라 카쓰지, (한자) 奈良 勝司, (영어) Nara Katsuji 소속 : 한양대학교 논문영문제목 : Others and Words in Miyazaki Hayao's cosmology Ⅱ 703호 주소 : (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동남레이크빌 E mail :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이 논문에서, 저자는, 특히 세계관의 구조적 관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사상을 분석 했다. 본고에서는 그것을 재료로 하고,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영화, 그나 다른 사람의 인터뷰 기 사, 및 공식 가이드 북의 설정 자료 등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이미지는 밝고, 대중적이며, 휴머니즘과, 자연보호, 일본의 전통 등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야자키가 이웃집 토토로 나 마녀 배 달부 키키 와 같은 걸작을 만들고 있었던 1980년대에도, 그는 다른 방면으로, 만화판 바람의 산골 짜기의 나우시카 를 계속 쓰고 있었다. 만화판 나우시카 는 비극이나 심각하고 터프한 전투 씬 등 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야자키의 사상 핵심은 그 안에 있었다. 그 때문에, 만화판 나우시카 가 1990년대전반에 끝난후,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나우시카 의 본질을 그후의 작품 안에 포함하게 되었다. 바꿔 말하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세계의 밝은 측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측면도 그 안에 포함하게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은, 그러한 요청에 대한 최선의 대답 중하나이다. 이 영화 에서는, 말 이 가지는 의미가 중시되었다. 말 이나 그것에 의해서 구성된 약속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며, 밝음과 어두음이 혼재한 세계에 있어서의 사회적 질서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진다. 리얼리티에 근거 한 말 은, 약속과 계약에 실제적인 힘을 부여한 것이다. 주제어: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관, 선 과 악, 말, 계약, 현실주의
51 47 七 支 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 정 효 운 ** Abstract The Chijido( 七 支 刀 ) is currently preserved in the Isonokamijingu( 石 上 神 宮 ) of Japan. Since the Chiljido was discovered in 1874, it has long been a controversial issue between the academic world of two countries; Korea and Japan. This is a product of diplomatic relations with ancient Korea and Japan. However, the primary cause of the dispute is a lot of remaining chracters carved in Chiljido are difficult to read because of corrosion. For this problem, there are many previous studies. The results are as follows: At first, this is a theory which the Chijido bestowed upon Ancient Japan( 倭 ) from Kudara( 百 濟 ). Secondly, this is a theory which the Chijido granted in Ancient Japan from Kudara. Thirdly, this is a theory which the Chijido granted from Chinese Donjin( 東 晋 ) dynasty. The change of such a theory is related to Ancient Korea Japan Relations. As for this, the claim that North Korean Seak hyoung Kim( 金 錫 亨 ) announced in 1963 was a chance. Seeing from such a point of view, I doubt whether a historian could free before a person of country and the ideology. It is thought that we must be troubled for such a basic question. This is not a problem only for merely Japanese. Keywords : Chijido, Isonokamijingu, Ancient Korea Japan Relations, Kudara, Ancient Japan 1) 1. 서론 일본의 奈 良 縣 天 理 市 石 上 神 宮 에 소장되어 있는 七 支 刀 는 1874년에 조 사되어 1892년에 도쿄제국대학의 星 野 恒 교수에 의해서 공개된 이후, 오늘의 고대한일관계사상을 구성하는 중요 자료의 하나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 칠지 도는 1873년부터 1876년간에 석상신궁의 대궁사로서 재임한 菅 政 友 이 발견 하여 판독한 이래 다양한 연구와 해석이 제기되어 왔다. 그 원인의 주된 이 유는 표면에 새겨진 명문이 긴 시간을 경과하는 동안 부식되어 판독되지 않 는 글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가와 민족이라 * 이 논문은 2014학년도 동의대학교 교내일반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과제번호 2014AA405). ** 동의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52 48 比較日本學 第32輯 ( ) 고 하는 이데올로기와 시대적 역사 인식의 변화란 점도 관여되어 왔기 때문 이라고 생각된다. 칠지도를 둘러싼 종래의 주된 쟁점은 제작 시기와 목적, 역 사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종래, 많은 선행연구에서 다양한 주장들이 제시되어 있 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점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들 연구1)에 미루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칠지도의 연대 문제라든지 제작 의도 등의 미시적인 해석보다 고 대한일관계사의 형성과 전개 가운데에서 칠지도의 연구가 어떻게 수용되어 왔고 변용되어 왔는가라고 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역사가에게 있어서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가가 민족 과 국가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 기로 한다. 2. 고대한일관계사의 형성과 전개 1) 고대한일관계사와 자료 우선, 고대한일관계사의 형성과 전개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2). 오늘날 고대한일관계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자료들이 활용되고 있지만, 기 본 사료로 활용되고 있는 자료는 日本書紀 와 宋書 왜국전, 三國史記, 三國遺事 등의 문헌과 광개토왕비와 칠지도등의 금석문 등이라 할 수 있 다. 이들 자료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일본서기 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자료들은 각 시기의 단편적인 역사상을 기록하고 있기 에 상호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서기 의 기록은 7세기 1) 관련 선행연구에 대해서는 神保公子(1981), 七支刀銘文の解釈をめぐって, 東アジア世界に 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 學生社; 김영심(1992), 七支刀,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1권, 가락 국사적개발연구원; 吉田晶(2001), 七支刀の謎を解く, 新日本出版社; 홍성화(2009), 石上神 宮 七支刀에 대한 일고찰, 한일관계사연구 34.;주보돈(2011), 백제 칠지도의 의미, 한 국고대사연구 62 등의 연구사에 소개된 논문들과 최근의 연구인 김영심(2013), 七支刀의 성격과 제작배경, 한국고대사연구 69, 한국고대사학회 등에서 제시되어 있는 참고문헌을 참조할 것. 2) 이 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졸저(1995), 고대 한일 정치교섭사 연구 학연문화사, 9~21쪽; 졸고(2010), 한ㆍ일 양국의 국가와 민족 속의 100년 고대한일관계사의 형성과 전 개를 중심으로, 일어일문학 47, 14ㆍ15쪽; 졸고(2012), 韓國史와 日本史의 遭遇 古代 韓日關係史의 觀點에서, 일어일문학 53, 423~433쪽 등을 참조할 것.
53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49 이전의 고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일관되게 전하고 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사서는 역사적 사실이란 측면에 있어서는 특히, 7 세기 이전의 한일관계의 역사적 기록은 고대 한국 국가들에 대한 왜왕권의 우월의식을 일방적이고 왜곡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고, 사실의 신빙성 문제와 더불어 연차의 괴리도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 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日本書紀 의 기록을 바탕으로 초기의 고대한 일관계사가 구축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통시적이고 비교 가능한 주변국의 자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 뼈대를 이루는 내용은 神功皇后紀 에 기록된 신공황후 원년(201)의 삼한정벌설화와 49년(249)의 가라 7국 평정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설화는 근세 일본의 조선 멸시관과 征韓論 사상 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기록은 주지하다시피 3세기 대의 고대 일본의 국가였던 왜가 고대 한국의 지역을 지배 내지 영향을 미쳤다는 비교 근거 자료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볼 때 오히려 당시의 고대 한 반도가 일본열도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있었고, 고대 국가의 형성 단계를 보아도 바다를 사이에 둔 양 지역의 정치세력권에 대해 정치적, 군사 적 영향권을 상정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 서 이 시기의 양 지역의 관계를 정치적 복속이나 지배, 피지배 등으로 해석 하려는 인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 1887년(明治 20)에 東京帝國大學에 사학과가 개설되고 1889년 국사 과가 증설됨으로서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에 의한 역사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에 즈음하여 조선사는 동양사의 일부로서 연구되었는데, 이는 1894년과 95 년에 일어난 청ㆍ일전쟁의 승리로 인한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의 증대도 일조를 하였다고 본다. 이 시기의 조선사연구의 특색3)은 우선, 연구가 고대 사에 한정되었다는 점과 문헌적 고증을 통한 전통적 독단에의 비판, 그리고 언어연구가 접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근대 초기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그 범위나 시기에 있 어서는 국학이나 한학의 전통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연구방향에 있 3) 이 부분에 대해서는 旗田巍(1969), 日本における朝鮮史研究の伝統, 日本人の朝鮮観, 勁 草書房, 쪽을 참고할 것.
54 50 比較日本學 第32輯 ( ) 어서는 서양의 실증적, 합리주의적 역사연구 방법론을 접목하려 하였다고 평 가할 수 있다. 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연구는 많은 문제점과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당시로서는 방법론에 있어서 진일보적인 성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4). 주목할 점은 이전 시기의 관련 고대사 연구가 日本書紀 와 古事記 등 일본고전에서 추출한 편향된 역사상을 기초로 하여 고대 한일 관계를 이해하 였던 방법론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 문헌, 금석문 등에 보이는 고대 한국 관 련 기사를 뽑아내어, 비교 검토함으로서 연대의 오류를 지적하는 등 이전의 독단적 해석을 극복하려 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연구의 목적을 일본민족 기원의 형성과 일본민족 의 독자성 추구에 두었기 때문에, 국학 전통의 조선사관이었던 日鮮同祖論 이나 日韓日域論 등으로 불리는 사상이 저변을 형성하고, 근대일본의 한국 병합이란 국가 정책의 필요성과 연동되어 확산되었던 점은 문제점으로 작용 하였다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의 고대한일관계사는 러ㆍ일전쟁 중인 1906년 대일본제국 육 군의 滿洲國 野戰鐵道提理部가 중심이 되어 만든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1908년 동경지사에 朝鮮地理歷史調査室를 설치함으로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반관반민이란 요소와 제국주의란 시대적 상황이란 문 제점은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 기관 자금으로 연구된 고대사연구가 작금의 고대한일관계사의 기본적 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연구에 많은 영향 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5). 이 시기에 구축된 고대한일고대사 연구는 喜田貞吉로 대표되는 日鮮同祖 論 6)과 津田左右吉와 池内宏로 대표되는 滿鮮史硏究 로 대별할 수 있지만, 이들 연구는 고대 한국사의 특징을 타율성과 정체성으로 규정 지우려고 한 오류를 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전자는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분리하여 일 본에 종속시켜 이해하려 하였고, 후자는 한국의 역사를 만주를 포함한 대륙 사의 일부로 편입시킴으로서 한민족의 주체적 발전을 부정하려 하였던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방법론은 사료비판과 객관주의를 표방하였기 4) 졸고(2012), 앞의 논문 419쪽. 5) 긍정적 측면은 고대한일관계사의 틀을 제공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측면은 이후의 관련 연 구를 제약하였다는 점이다. 6) 喜田貞吉(1929), 日鮮兩民族同源論, 民族と歴史 6 1.; 金澤庄三郞(1929), 日鮮同祖論, 刀江書院 등.
55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51 때문에 오늘날의 일본의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에 계승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부언하자면, 후자의 연구는 일본서기 의 神功皇后의 三韓征伐 을 학문 적으로 검토, 비판에서 시작7)한다고 할 수 있다. 양 연구자의 공통성은 부동 의 근거를 廣開土王碑文에서 구하고 있는 점과 일본서기 인용의 百濟三 書 즉, 百濟記, 百濟新撰, 百濟本記 를 백제 편찬의 역사서로 이해하 였다는 점에 있었다. 차이점은 이들 사서에 대한 평가로 津田의 경우는 백제 修史家의 수식과 윤색, 조작이 가해졌다고 보았는데 비해 池内의 경우, 부분 적 윤색은 인정하지만 원문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8). 또한 그 기록들은 고대 일본의 일방적인 견해가 아니며 객관성도 풍부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池内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일본서기 의 본문 중에서 백제계 사적과 조선계 사료에 근거를 가진 기록을 객관적으로 추출하여 확정 할 수 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고대한일관계사를 구성하는 것에 역점을 두 려는 방법론으로 전개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고대사 연구에 계승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9). 이러한 과정에서 구축된 고대한일관계사는 일본서기 신공황후의 삼한정 벌과 가라 7국 평정 기사와 광개토왕 비문의 신묘년조 기사, 奈良縣 天理市 石上神宮 소장의 七支刀 명문, 宋書 왜국전의 한반도 지명 기사 등이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들 자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항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관련 시기와 비교 활용 자료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고대한일관계사 기본 자료와 관련 시기 시기 쟁점 3ㆍ4世紀 5世紀 6世紀 가라 7국 평정 임나 일본부 임나조 7世紀 백강전투 한국 文獻 金石文 廣開土王碑 三國史記 일본 文獻 金石文 日本書紀 日本書紀 日本書紀 日本書紀 중국 文獻 金石文 七支刀 비고 紀年問題 宋書 隋書 新唐書 舊唐書 紀年問題 7) 이 점에 대해서는 津田左右吉(1966), 古事記および日本書紀の研究, 神代史の研究, 津田 左右吉 全集 別卷 1, 岩波書店, 초출은 1919; 池内宏(1947), 日鮮の交渉と日本書紀の研究, 日本上代史の一研究, 近藤書店을 참조할 것. 8) 津田는 日本書紀 에 기록된 百濟三書 를 후대의 조작된 사료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인식 하에서는 日本書紀 사료를 통한 고대한일관계사의 복원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이후 津田 說이 계승되지 아니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9) 졸고(2012), 앞의 논문, 420쪽.
56 52 比較日本學 第32輯 ( ) 2) 고대한일관계사의 전개 그런데, 이러한 자료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고대한일관계사는 임나일본 부 와 임나조, 백강전투 문제라고 하는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서로 관련 성을 가지면서 해석되어 왔다고 생각된다10).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근대 일본의 연구자 통설적 고대한일관계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4세기 무렵의 大和王權이 한반도에 침입하여 임나(지금의 가야지역) 를 직할지배지로 하고, 그 곳에 임나일본부 를 설치하여 562년 신라에 의해 임나가 멸망당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임나 및 신라ㆍ백제 지역을 지배했 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1). 둘째, 임나의 조 에 대해서는, 영토 문제로서의 임 나는 562년에 끝났지만, 명목적인 지위와 지배는 646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 았다. 셋째, 백제의 멸망 후에 전개된 663년의 백강전투 에 있어서의 왜병의 파견 목적12)을 임나의 조 내지 그 명목적인 지위의 부활과 유지를 위해서였 다고 한다. 따라서, 야마토왕권에 의한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의 지배의 실체 화라고 하는 가공의 역사상은 임나일본부설 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상이 어떠한 연구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전개되었는지 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신묘년의 기사가 고대 한일관계사를 해석하고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부동의 근거 자료가 되어, 일 본서기 의 神功皇后 46년(246)조부터 52년(252) 조에 서술되고 있는 삼한정 벌과 가라 7국 평정 설화와 관련시켜, 역사적인 사실로서 포장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 경우, 제기되는 연대적 괴리의 문제는 2주갑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또한 칠지도의 명문에 보이는 泰 4年 이란 연호를 東晋(317~420년)의 太和4년(369) 으로 판독함과 동시에 백제왕이 왜국에 바쳤다고 보았기 때문 10) 이들 쟁점의 문제점과 이 항의 서술 내용은 주 2)에 언급한 논문들에서도 관련 부분을 일부 언급하고 있다. 11) 임나일본부 문제에 대한 종래 연구의 문제점 검토와 개인적 견해에 대해서는 이미 발표한 바 있기 때문에 관련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졸고(2007), 중간자적 존재로서의 임나일본 부, 동북아연구 13, 481~508쪽; 졸고(2009), 6세기 한ㆍ일관계사의 재구축 왜와 임나 관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56, 337~365쪽. 12) 임나의 조 와 백강전투 문제에 대한 검토와 견해는 졸저(1995), 앞의 책을 각각 참조할 것. 후자에 대한 최근의 관련 연구사는 김현구(2010), 백촌강싸움의 성격에 관한 일고찰, 한일역사쟁점논집, 동북아역사재단, 내부자료, 쪽을 참조할 것.
57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53 에, 양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교류라고 하는 관점보다 복속과 지배의 결과 로서 해석하였던 것이다. 또, 송서 왜국전의 都督諸軍事號 에 포함되어 있 는 고대한국의 관련 지명과 국명을 왜국왕의 지배 영역의 근거로서 왜곡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상의 문제점은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외교적 필요성을 달리하 는 집단에서 편찬 또는 제작된 이질적인 자료를 고대한국에 대한 야마토왕권 의 우월이란 인식을 전제로 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한 점에 있었다고 생각된 다. 즉, 시대를 달리하는 편찬 주체의 사상이나 제작 주체의 정치적 의도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근대라고 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제국일 본의 정치적인 필요성이 학문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明治維新이라고 하는 시대적인 변혁을 배경으로 새롭게 등장한 메이지정 부는 천황 중심의 단일 일본민족에 의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황 통치 의 정당성을 부여 받을 필요성이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필요성은 고대 천 황을 천신의 자손으로 미화하고, 그 통치 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일본서기 와 古事記 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천황제의 근원과 회귀로의 정 당성의 근거를 확립하려고 하는 노력은 양서의 연구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서 작용하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본서기 에 기록되고 있는 神功紀의 삼한정벌 의 이야기는 19세기 무력으로 병탄한 조선의 통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로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목적도 내재 되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근대 역사학은 천황주권국가의 국가 목적에의 봉사,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주체적인 문제의식의 배제, 개별 사실의 고증에 대해서도 객관 적인 사료 조작이라고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근 대학문의 형성이 국가권력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달하여 왔기 때문에 역사학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사관이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日鮮同祖論, 滿鮮一家論 13)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江戶시대의 국학의 전통과 실증과 합리성이라고 하 는 근대적인 학문방법론을 취하고 있지만, 고대한국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 의 강조라고 하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다른 점은 전자가 고대한국의 역사를 일본역사에 포함시켜 파악했다고 한다면, 후자는 중국역사의 일부로서 해석 하려고 한 점뿐이다. 13) 滿鮮史硏究라고도 한다.
58 54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이러한 역사관은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에 보이는 신라 정벌과 가라 7국 의 정벌 이야기, 고구려와 백제의 복속기사를 역사적인 사실로서 가공하여 허구성과 기년의 괴리성이라고 하는 모순에도 불구하고 南鮮經營論 으로 불 리는 왜곡된 고대한일관계사상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 학설은 末松保和가 1949년에 任那興亡史 라고 하는 저서14)를 발표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일 본학계에서는 고대한일관계사의 통설로서 자리매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1960년대 초까지는 이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본연구자는 없 었다. 이 설을 토대로서 石母田正의 東夷小帝國論 15)과 西嶋定生의 冊封體 制論 16) 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 자료에 포함되어 있는 자국중심적인 사상과 의식을 국가 간의 대외관계에 실 체로서 적용하여 해석하려고 한 점이다. 둘째는 상대국인 고대한국의 제 국 가의 이념이나 논리는 철저하게 배제하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종래의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가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종래의 연구가 임나일본부 에 의한 4세기부 터 6세기까지의 야마토왕권의 고대한국지배를 증명하기 위해서 시간적 제약 을 받을 수 없었지만, 이 설로 인해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정치역학과 질서 의 구조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7, 8세기, 공간적으로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에로의 연구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던 것이다 한편, 일본학계의 이러한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의 흐름 가운데, 북한의 김 석형이 1963년에 삼한ㆍ삼국의 일본 열도분국론 이라고 하는 학설을 주장17) 하였다. 이 설의 주된 내용은 삼한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주민의 이주가 진행되어 그 결과, 이러한 이주민 세력에 의해서 일본 열도의 각지에 정치적인 독자성을 가진 소국가가 만들어졌지만, 이 소국가들은 독립된 국가 는 아니고 한반도의 본국과 정치적인 관계를 유지한 분국으로서 존재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례가 없는 주장에 대해서 일본학계에서는 사실의 인식이 결 여된 견해이며 관련 사료에 대한 비판 의식의 부족, 대세론과 정세론적인 관 14) 末松保和(1949), 任那興亡史, 大八洲書院. 15) 이 설에 대해서는 石母田正(1971), 日本の古代国家, 岩波書店를 참조할 것. 16) 이 설에 대해서는 西嶋定生(1985), 日本歴史の国際環境, 東京大学出版会를 참조할 것. 17) 김석형(1966), 초기 조일관계사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59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55 점에서의 접근, 조선인민공화국가의 민족의식의 영향 등 다양한 비판이 제기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종래의 일본연구자가 일본서기 의 주술과 속박 에서 기인한 무의식적인 선입관의 영향으로 인해 학문과 俗說의 경계를 왕래 하였던 연구에 대한 경계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이후의 일본 고대연구자의 고대한일관계사의 인식을 반성시키고, 재검토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 학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삼한ㆍ삼국의 일본열도 분국론 의 제기 이후의 일본학계의 고대한일관계 사의 동향은 1960년대의 冊封體制論 과 東夷小帝國論 의 연구를 계승하여 심화하는 방향과 이것을 비판하면서 극복해 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공통되는 연구경향은 고대한일관계사를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 외관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하였다는 점과 일본 서기 의 사료 및 관련 사료를 보다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하는 움직임과 더 불어 임나일본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가야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 한국 측의 정치적 이념이나 논리를 일부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학계 주도의 고대한일관계사 연구는 明治維新 이후의 서구 근 대사학의 수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관련연 구는, 제국일본의 식민지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초기의 연구는 오 로지 일본학자에 의해서만 행해졌다고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관련 사료와 자료의 부족, 연구자와 연구방법론의 부재에 따른 초기의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는 근대 일본사학이 만들어 놓은 역사상과 그 영향의 아래에서 교육된 역사관이 저변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는 시간적으로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 196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방법론 으로서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식민사관의 극복이라고 하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고대한일관계사의 본격적인 연구는 좀 더 시간이 필요 하였다. 천관우의 연구18)를 시작하여 1970년대 말부터 가야사 연구를 중심으 로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가 본격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 본서기 의 사료적인 비판과 임나일본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제기되 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한국고대사 내부로부터의 연구동향과는 달리 1980년 18) 천관우(1991), 가야사연구, 일조각.
60 56 比較日本學 第32輯 ( ) 대부터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간 신진연구자들이 1980년대 말부터 귀국함으로서 고대한일관계사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 되었다19)고 말할 수 있다. 3. 칠지도와 한일관계사 단철로 만들어진 칠지도는 전체 길이가 74.9 이고 刀身의 길이는 66.5 인 칼로 양면에는 금상감 기법으로 60여 글자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림 1] 칠지도의 사진과 모사20) 앞장의 모사를 참고로 하면, 전면에 34글자, 후면에 27글자 모두 61자21)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판독되고 있는 글자를 제시22)해 19) 한일관계사 관련 연구자 현황에 대해서는 이병로(2007), 한국에서의 일본사연구의 현황과 전망, 일본문화연구 22, 동아시아일본학회, 쪽을 참조할 것. 20) 山尾幸久(1989), 앞의 책, 170ㆍ171쪽 인용. 21) 다만, 月 을 十一 月이나 十二 月로 해석하는 주장에 따르면 62자가 된다. 22) 연구자에 따라 보다 많은 글자를 판독하여 제시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논의가 되고 있는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 보다 적극적으로 판독하는 경우에는 泰和四年五[十一]月十六日 丙午正陽造百練銕[剛]七支刀生[出]辟百兵宜供供侯王 作[祥], 先世以来未有此刀
61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57 보면 다음과 같다. 前面 : 泰 四年 月十 日丙午正陽造百練 七支刀 辟百兵宜供供侯 作 裏面 : 先世 来未有此刀百濟 世 奇生聖音故為倭王旨造傳 世 그동안 많은 관련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판독이 일치하는 문자가 많 아지게 되었지만, 와 같이 해석할 수 없는 글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 며, 연구자에 따라 여러 해석문이 제시되어 있고, 그 해석을 기초로 칠지도의 역사적인 의미를 복원하고 있다. 문제는 확정할 수 없는 문자를 연구자 개인 의 관점에서 판독하여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칠지도가 만들어졌던 시기와 제작 의도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이 제시되고 실정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작 시기와 관련된 연호 문제라 할 수 있다.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泰 연호의 뒤 문자가 불명하여, 이 점을 둘 러싸고 초기에는 泰 初 나 泰 始 라고 판독하고, 중국의 연호 가운데에서 관 련성이 있는 西晉의 太始ㆍ泰始(265~274), 前秦의 太初(386~394), 南宋의 泰 始(465~471) 등이 후보로 거론될 수 있었지만, 이후 대부분의 연구자가 泰 和 로서 판독하여, 魏의 太和(227~233), 東晉의 太和(366~371), 北魏의 太和 (477~499) 등의 연호와 관련시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이것은 泰 라고 하는 한자가 太 와 大 의 문자와 음이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23). 이 경우, 太和 4년은 230년, 369년, 480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지 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도 泰和 를 중국의 연호가 아니고, 백제의 독자 연호 로서 보는 주장24)도 있다. 이와 같이 제작 시기에 있어도 많은 논의가 제기 되는 원인은 우선, 연호로 보이는 두 번째 문자가 판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는 점과 함께 관련이 있는 시기의 중국 연호에 泰和 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百濟王世子奇生聖音[晉]故為倭王旨造傳示後世 와 같이 된다. 단, [ ] 안의 글자는 달리 읽는 경우이다. 23) 그 외 泰 를 奉 으로 판독하여 武寧王 4년(504)의 백제연호로 보는 설도 있고[연민수 (1998), 칠지도 명문의 재검토,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백제연호 太和 4년(408) 설도 있다[손영종(1983), 백제 7지도의 명문 해석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1), 력사과학 4.]. 24) 이 설은 김석형[(1963), 삼한 삼국의 일본렬도 내 분국(分國)들에 대하여, 력사과학 1] 이 제기한 이후 대부분의 한국 연구자들이 지지하는 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설은 백제 하사설이 제기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62 58 比較日本學 第32輯 ( ) 한편, 칠지도를 제작한 주체와 그 목적을 둘러싸고도 많은 주장이 제기되 고 있지만, 이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백제왕이 야마토왕에게 바쳤다고 해석하는 백제헌상설이 있다. 이것은 일본서기 신공황후 52년 (252) 조에 보이는 백제의 久氐 등이 千熊長彦을 따라 와서 七支刀 한 개와 七子鏡 한 개, 또 여러 가지 보물을 바쳤다. 라고 하는 기록25)과 관련시켜 해 석하려고 하는 입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서기 의 기록의 신빙성과 연대의 불일치, 명문의 내용과의 차이가 문제점으로서 지적 되고 있다. 둘째는 백제왕이 야마토왕에게 하사하였다고 보는 백제하사설이 있다. 이 것은 주로 한국학계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설로, 日干支의 해석에 중점을 두 고 있는 점과 백제가 동진과 통교했던 시기가 근초고왕 27년(372)이기 때문 에, 이보다 4년 전에 중국의 연호를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점, 주변국 인 고구려와 신라가 독자적인 자국 연호를 사용26)하고 있었다고 하는 점, 명 문 말미의 傳示後世 라고 하는 문장이 상위자로부터 하위자에게 내리는 하 행 문서의 형식이라고 하는 점 등에서 백제왕이 후왕인 야마토왕에게 하사했 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백제의 금석문에서는 아직 연호가 사용된 예가 발견되어 있지 않은 점27)과 翰苑 인용의 括地志 百濟傳에 백제는 독자 적인 연호가 아니라 간지를 사용했다고 하는 기록28)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 25) 五十二年秋九月丁卯朔丙子, 久氐等從千熊長彥詣之. 則獻七枝刀一口ㆍ七子鏡一面, 及種 種重寶. 26) 고구려의 경우, 廣開土王碑의 永樂( 년) 외에도 建興五年銘金銅釋迦三尊佛, 延嘉 七年銘金銅佛像, 永康七年銘舟形光背 등의 불상자료를 통해 볼 때 영락, 건흥, 연가, 영강 등의 연호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도 三國史記 에 따르면, 536년(法興王 23)에 建元을, 眞興王 때에는 開國, 大昌, 鴻濟를, 眞平王 때에는 建福, 善德王 때 仁平, 眞德王 때 太和를 사용한 예가 있다. 고대 한국 삼국의 연호 사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졸고 (2011), 古代 韓ㆍ日의 年號 使用에 관한 研究, 일어일문학 51, 287~290쪽을 참고할 것. 27) 현재 발견된 백제의 금석문 자료에서도 간지를 사용 예가 많이 보이고 있다. 武寧王陵誌 石 의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 丙戌朔 七日壬辰 崩到 乙巳年八 月 癸酉朔 十二日甲申 安登冠大墓 立志如左 과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昌王銘石造舍利 龕 의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丁亥 妹公主供養舍利 사용예와 彌勒寺 西塔舍利記의 乙亥 年, 王興寺 舍利莊嚴具의 丁酉年, 砂宅智積碑미의 甲寅年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翰苑 括地誌, 周書, 隋書, 北史 등의 중국 사료에 백제가 宋의 元嘉曆을 사용하여 간지를 썼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원가력 채용 이전에는 연호를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사용례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확정하기 어렵다. 28) 用宋元嘉歷 其紀年無別號 但數六甲次第. 한편, 元嘉歷은 南朝 宋文帝 元嘉 20년(443) 何承天이 편집한 것으로, 周書 異域傳 百濟條의 又解陰陽五行 用宋元嘉歷 以建寅月爲 歲首 亦解醫藥卜筮占相之術 란 내용을 참고하면 6세기대에 백제에 수용되었을 개연성이
63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59 고 있다. 셋째, 동진왕이 백제를 통해서 야마토왕에게 하사하였다고 보는 동진하사 설29) 등이 있다. 백제가 동진의 명에 의해서 칠지도를 후왕에게 하사하였다 고 하는 주장은 최근 일본학계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설이다. 이 설은 전면 과 후면의 명문이 독립적이고 이질적이라고 하는 전제에서 백제의 종주국인 동진의 황제인 廢帝(海西公)가 백제를 통해서 야마토왕에게 보내었다고 보았 던 것이다. 즉, 백제가 372년 동진에 조공했을 때에 하사한 原七支刀를 흉내 내어 만들어 왜국에게 주었다고 해석함으로서 백제하사설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의 문제는 현재 聖音 으로 해독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聖晋 으로 해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과 백제가 왜 太和 4년(369)에 제작한 칠지도를 372년에 왜국에 모조하여 보냈는가 하는 점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외에 칠지도의 일 본위작설 등도 있다. 이처럼 종래 연호를 둘러싸고 논의된 주요 내용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 과 같다. 백제헌상설 (중국 연호설) 연호 泰 四年 백제하사설 (백제 연호설) 동진하사설 (중국 연호설) 비고 西晉 泰始四年(268) 泰初 日本書紀 神功紀 52年條 七枝刀 기록 연계 東晋 太和四年(372) 日本書紀 2주갑 인하 泰 四年 近肖古王二十四年(372) 日本書紀 2주갑 인하 百濟年號 東晋 太和四年(372) 日本書紀 2주갑 인하 聖 音 을 聖 晉 으로 판독 한편, 연호의 문제 이외에도 명문의 글자의 판독을 둘러싸고도 많은 논의 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전면의 月十六日 의 부분에 대해 서는 종래 六月十一日 로 해석한 경우도 있었고, 현재에는 五月十六日 이나 十一月十六日 로 판독하는 연구자30)들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泰和四 높다. 29) 栗原明信(1966), 七支刀銘文についての一解釈, 日本歴史 265.; 山尾幸久(1989), 앞의 책; 東野治之(2004), 七支刀銘文の 聖音 と 聖晉, 日本古代金石文の研究, 岩波書店; 濱田耕作(2010), 古代王権의 성장과 日韓關係 4~6세기, 제1장 제2절, 제2기 한일역사 공동연구보고서 제1권(제1분과편) 271~286쪽. 30) 후자의 경우, 홍성화(2009), 앞의 논문. 同(2010), 5세기 백제의 정국변동과 倭 5왕의 작호,
64 60 比較日本學 第32輯 ( ) 年五月十六日 의 간지가 乙未 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丙午正陽 을 일반적으로는 길상구로 보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辟百兵 의 경우, 를 生, 世, 出 등으로 판독하고 있고, 宜供供侯 의 경우도 供供 혹은 復供 으로, 侯 는 侯王 으로 판독하고 있지만, 후 왕 의 성격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作 의 부분에 대 해서는 판독할 수 없는 문자가 많지만 마지막 문자를 作 이라고 보아 제작자 라고 보는 설도 있고, 길상구로 보아 永年大吉祥 으로 해석 하는 설도 있다. 뒷면의 先世 来 는 先世以来 로 해독하고, 世 은 王世子 로 판독하 는 연구자가 많다. 奇生 에 대해서는 인명설과 서술적인 표현설로 나뉘고, 聖音 의 경우, 聖晋 이라고도 해독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故為倭王旨造 문구 가운데 爲 에 대해서는 한국학계의 백제하사설과 일본학계의 동진하사설의 사이에 해석을 달리하고 있고, 旨 의 경우도 인명 혹은 敎旨 와 같이 해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傳 世 는 傳示後世 라고 판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것 역시 한국학계에서 는 하행 형식의 명령문으로 보고 있고, 일본학계에서는 길상구와 같이 해석 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석에 있어서도 한국학계의 경우, 하행 형식의 명 령문으로, 일본학계의 경우에는 상행 형식으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위의 검토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근년에는 백제헌상설에 대해서는 부 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근거로 해서 제시 된 백제하사설과 동진하사설의 입장에서의 칠지도 관련 해석을 비교하여 살 펴보기로 보자 泰和 4年 5月 16日 丙午 正陽에 백번 鍛鍊한 鋼鐵로 七支刀를 만들었는데, 모든 兵害를 물리칠 수 있으며 편안히 侯王으로 나아가는 게 마땅하다. (아무 개가 이 칼을) 製作하였다. 先世 以來 이 칼이 없었는데, 百濟王 治世에 奇妙하게 얻은(得) 聖스러운 소 식(聖音)이 생겼으므로[奇妙하게 얻었음을 聖스럽게 고하는 까닭에], 倭王을 위해 만든 뜻을 後世에 전하여 보여라.31) 太和(泰和) 4年 5月 16日 丙午日의 正陽 時刻에 백번 단련한 의 七支刀를 만들었다. 이 칼은 나아가서는 百兵을 피할 수가 있다. 정말로 공손한 侯王이 한국고대사연구 60. 조경철(2010), 백제 칠지도의 제작 연대 재론: 丙午正陽을 중심으로, 백제문화 42. 등을 들 수 있다. 31) 이도학(1990), 百濟 七支刀 銘文의 재해석, 한국학보 60.
65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61 지니는 것이 좋다. 永年에 걸쳐 大吉祥하라. 先世 以来 아직 이러한(形의 또는 그 때문에 百兵을 피할 수가 있는 呪力이 강하다) 칼은 百済에게는 없었다. 百済王과 世子는 일생을 聖스러운 晋의 皇 帝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그 이유로 東晋 皇帝가 百済王에게 사여한 旨 을 倭王과 함께 共有시키려고 이 칼을 造 했다. 後世에도 영원히 이 칼(과 여기 에 감춰진 東晋 皇帝의 뜻)을 전하여 보여라.32) 이처럼 같은 칠지도의 명문을 두고 한국학계와 일본학계에서, 백제하사설 과 동진하사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해석이 다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왜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지 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선행 칠지도 관련 연구사를 검토해 보면서 살펴보기로 한다. 칠지도의 연구사는 대체로 4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33). 1기에 해당 하는 1950년대의 초반까지의 연구는 한국의 경우,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시 대적인 상황 때문에 일본인 학자의 주도하에서 행해졌다. 주된 관심과 연구 의 방향은 연호가 泰始 인가 泰初 인가에 두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칠지도의 내용을 파악하기 보다는 일본서기 기록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데 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2기는 1950년대의 초반부터 1960년대의 초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는 칠지도의 정밀한 조사가 행해져서 명문의 판독에 대해서 많은 성과를 올 렸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으로 인해 일본서기 의 고대한국 관련 기록을 2주갑 인하하여 해석하는 방법론이 정착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 한 기년의 조정 방법에 의해서 칠지도 연호의 東晋太和說과 함께 백제헌상 설이 일본학계의 통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기는 1960년대의 중반부터 1970년대의 후반까지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계기는 이 시기에 김석형의 삼한ㆍ삼국 일본 열도분국론 이라는 학설이 제 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설에서 씨는 泰 는 중국의 연호가 아니라 백제의 32) 太和(泰和)四年五月十六日丙午の日の正陽の時刻に百たび練った の七支刀を造った この 刀は出でては百兵を避けることが出来る まことに恭恭たる侯王が佩びるに宜しい 永年にわた り大吉祥であれ 先世以来 未だこのような(形の また それ故にも百兵を避けることの出来 る呪力が強い)刀は 百済には無かった 百済王と世子は生を聖なる晋の皇帝に寄せることとし た それ故に 東晋皇帝が百済王に賜われた 旨 を倭王とも共有しようとこの刀を 造 った 後世にも永くこの刀(とこれに秘められた東晋皇帝の旨)を伝え示されんことを [濱田耕作(2010), 앞의 논문.] 33) 시기를 나누어 검토한 연구로는 神保公子(1981), 앞의 논문; 吉田晶(2001), 앞의 논문; 김영 심(1992), 앞의 논문; 주보돈(2011), 앞의 논문 등을 들 수 있다.
66 6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독자 연호라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서 종래 일본학계의 백제헌상설과는 정반대 되는 백제하사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 주장의 제기로 인해 칠지도는 일 본서기 와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 다. 또한 이 설로 인한 일본학계의 충격은 칠지도의 백제헌상설에 대한 반성 으로 나타났고, 재검토를 통해 양국대등설이나 동진하사설을 탄생시키는 기 반을 제공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은 고대한일관계사상을 구축하여 온 주된 기본사료였던 일본서기 의 고대한국 관련기사도 재검토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4기는 197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연구자만이 아니라, 한국의 연구자들도 칠지도의 연구에 본격적으로 가담하 여 보다 천착되고 다양한 연구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문헌 연구 뿐만 아니라 고고학, 사상사 등의 분야에서의 많은 연구가 진행 34) 되어 성과 를 올리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칠지도 연구는 시기적으로는 4세기에 한 정된 문제가 아니라, 5세기를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시기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이러한 칠지도의 연구사를 볼 때, 그 연구가 백제헌상설로부터 백제하사설, 동진하사설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설 도 각각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어느 설이 확정적 이라 결론 지울 수 없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칠지도의 명문에 아직도 판독에 있어 주장이 엇갈 리는 문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점은 연구의 출발시점과 연구 과정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가와 민 족의 이데올로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부언하자면, 19세기 칠지도 해석의 출발점에 있어서 일본서기 란 사서가 강력한 입론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이를 근거로 지배와 피지배로 해석한 것 이 근대 일본의 역사학의 도입과 고대사 학문의 구축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4, 5세기의 백제와 왜의 관계를 정치적 상하 34) 村 山 正 雄 의 연구[1996, 石 上 神 宮 七 支 刀 銘 文 圖 錄, 吉 川 弘 文 館 ]와 같이 X 레이 사진을 통 한 고고학적 방법이라든지, 칠지도를 도교사상과 연관하여 해석하려는 주장[ 王 仲 殊 (1992), 石 上 神 宮 の 七 支 刀, 中 国 から 見 た 古 代 日 本, 学 生 社 ; 김영심(2013), 앞의 논문.]도 있다. 그러나 백제에 도가사상은 전래되었지만, 도교사상이 전래되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도가사상과 도교사상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졸고(2006), 일본서기 와 고대사상, 일어일 문학 29를 참조할 것.
67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63 관계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주변국 특히 바다나 자연적 환경으로 인해 떨어진 지역의 국가간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혹은 우월, 월등 하다고 보는 관념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사료로 인용되고 있는 일본서기 편찬기의 신라와 왜의 관계도 마찬가지라 본다. 당시의 백제와 왜의 어느 한 쪽이 정치적으로 지배, 피지배 관계에 있었다 거나 군사적 우월을 전제로 한 조공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객관적 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을 통한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사국들이 정치적, 군사적 우위와 열세를 상호 인정하지 않는 예는 역사상 에 수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칠지도의 문제를 헌상이라든지 하사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 려는 방법론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칠지도가 백제에서 왜로 보내어졌다는 사실을 헌상과 하사라고 해석하는 것은 당시의 국제관계에서 타당한 것인지? 보내는 자와 받는 자의 관념과 외교적 수사의 인식의 문제를 도외시 한 것은 아닌지? 즉, 백제가 칠지도를 하사하였다고 하더라도 왜는 이를 헌상하였다 고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35). 결국, 칠지도 문제의 연 구 과정에서 형성된 양국의 역사관이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관의 형성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은 칠지도의 명문이 상당 부분이 판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해 석에 있어서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 결론 이상으로 칠지도의 연구가 고대한일관계사와 어떻게 관련지어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칠지도는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와 상호 연관성을 가지면서 연구되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백제헌상설의 경우, 일본서기 의 내용으로부터 만들어진 야마토왕권에 의한 고대한국남부 지역 지배설을 실체화하는 임나일본부설 을 보강하는 유력한 근거로서 이용 35) 칠지도가 백제왕의 왜왕에 대한 臣屬도, 백제왕에 의한 왜왕의 봉건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지적[山尾幸久(1989), 앞의 논문 173쪽; 王仲殊(1992), 앞의 논문, 3쪽.]은 이와 연관성이 있 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김영심(2010), 앞의 논문, 108쪽.]. 이러한 관점은 향후 일본서기 를 이해하는 관점이 되기도 한다. 자세한 고증은 후일의 연구에 맡기기로 한다.
68 64 比較日本學 第32輯 ( )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 중반 이후, 김석형의 삼한ㆍ삼 국 일본 열도분국론 을 계기로 백제하사설이 제기되면서, 동진하사설에로의 해석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일본의 연구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의 고대 한국의 정세 즉, 고구려의 남하에 의한 백제의 對倭 외교의 필요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 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들 연구는 당시의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적 대립 이란 동아시아의 정세가 야마토왕권의 고대한국의 제 국가에 대한 정치적 우 위권의 유지를 합리화 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주장이라 생각된다. 이 점은 종 래 칠지도 문제에 있어서 왜왕권 우위의 해석은 임나일본부설 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한일관계사가 책봉체제론 과 동이소제국론 으로 변용되어 왔던 시 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삼한ㆍ삼국 일본열도 분국 론 이란 학설의 주장을 계기로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 시공간의 확대와 상대국 인 고대한국의 정치적인 논리와 이념을 수용하려는 일시적 움직임을 보이기 도 하였지만, 동진하사설의 배경에는 아직도 일본의 고대한일관계사학계에서 는 여전히 야마토정권 우위의 역사관 이란 관념과 인식은 변함없이 계승, 유 지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8세기 일본서기 의 율령사관과 20세기 초두의 제국일본 시기 에 형성된 민족적 역사관이 저변을 형성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백제하사설의 주장의 배경에도 일본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주의란 역 사인식이 고대사 해석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에서 그려 지고 있는 고대의 한국과 일본 양국의 지배, 피지배의 관념은 당시의 사실이 아니라 8세기 율령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관념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학의 목적이 자료의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事實의 규명에 있다고 한다면, 비교 사료가 부족하고 불확실한 고대의 경우 국가 간 의 교류를 지배와 피지배라는 일방적인 관념으로 접근하려는 방법은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결국, 국가와 민족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앞에서 역사가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근본적인 의문 에 대한 고민과 연관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일본인만 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 국민국가 간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4, 5세기 백제와 왜의 외교관계를 정치적, 군사적 상하관계로 해석하고 연동하여 구별 지우려는 역
69 七支刀 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운) 65 사 해석 방법론은 향후의 역사연구에 있어서 지양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 다. 칠지도 교류 단계의 동아시아의 역사도 그러한 상하관념으로 해석하는 방법론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더 이상 고대의 역사를 현대 국가 적 관념의 틀 속에서 해석하려는 방법론은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석형[(1963), 삼한 삼국의 일본렬도 내 분국(分國)들에 대하여, 력사과학 1. 김석형(1966), 초기 조일관계사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김영심(1992), 七支刀,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1권,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김영심(2013), 七支刀의 성격과 제작배경, 한국고대사연구 69, 한국고대사학회. 김현구(2010), 백촌강싸움의 성격에 관한 일고찰, 한일역사쟁점논집, 동북아역사재단. 손영종(1983), 백제 7지도의 명문 해석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1), 력사과학 4. 연민수(1998), 칠지도 명문의 재검토,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이도학(1990), 百濟 七支刀 銘文의 재해석, 한국학보 60. 이병로(2007), 한국에서의 일본사연구의 현황과 전망, 일본문화연구 22. 정효운(1995), 고대 한일 정치교섭사 연구 학연문화사. 정효운(2006), 일본서기 와 고대사상, 일어일문학 29. 정효운(2007), 중간자적 존재로서의 임나일본부, 동북아연구 13. 정효운(2009), 6세기 한ㆍ일관계사의 재구축 왜와 임나 관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연구 56. 정효운(2010), 한ㆍ일 양국의 국가와 민족 속의 100년 고대한일관계사의 형성과 전개를 중 심으로, 일어일문학 47. 정효운(2011), 古代 韓ㆍ日의 年號 使用에 관한 研究, 일어일문학 51. 정효운(2012), 韓國史와 日本史의 遭遇 古代韓日關係史의 觀點에서, 일어일문학 53. 조경철(2010), 백제 칠지도의 제작 연대 재론: 丙午正陽을 중심으로, 백제문화 42. 주보돈(2011), 백제 칠지도의 의미, 한국고대사연구 62. 천관우(1991), 가야사연구, 일조각. 홍성화(2009),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일고찰, 한일관계사연구 34. 홍성화(2010), 5세기 백제의 정국변동과 倭 5왕의 작호, 한국고대사연구 60. 池内宏(1947), 日鮮の交渉と日本書紀の研究, 日本上代史の一研究, 近藤書店. 石母田正(1971), 日本の古代国家, 岩波書店. 王仲殊(1992), 石上神宮の七支刀, 中国から見た古代日本, 学生社. 金澤庄三郞(1929), 日鮮同祖論, 刀江書院. 喜田貞吉(1929), 日鮮兩民族同源論, 民族と歴史 6 1. 栗原明信(1966), 七支刀銘文についての一解釈, 日本歴史 265. 神保公子(1981), 七支刀銘文の解釈をめぐって, 東アジア世界に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 學生社. 津田左右吉(1966), 古事記および日本書紀の研究, 神代史の研究, 津田左右吉 全集 別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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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67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 용 의* Abstract This research paid attention to the point that there are tales regarding sexual intercourse between men and pigs in Okinawa, differently from the mainland of Japan. This research investigated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tale based on the concrete case analysis of tale included in Okinawa tale collection book. First, this research pointed out that the existing research method is not meaningful, which discussed by classifying into the type of two species marriage story, e.g. <Receiving pig son in law> and <Pig wife>. The two types did not show remarkable difference in their narrative structure, rather there was a necessity to pay attention to the point why such marriage relationship between human and pig is not valid. Second, in this regard, based on the existing theoretical outcome of the characteristic of Japanese two species marriage story, this research explained from the viewpoint of the daily aspect of pig, as the livestock which lives with human, and the lack of absolute divineness, due to this. Third, pig of Okinawa in the tale was recognized as the spiritual being which can partly change, while its absolute divinness was not acknowledged. Due to this point, it was concluded that the pig was killed at the end in most of the tales related to sexual relationship between human and pig. Keywords : Okinawa folktales, pig, sexual intercourse, negotiation, spiritual being 36) Ⅰ. 머리말 오키나와에서 돼지는 일본 본토와는 달리 각별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돼지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와(ワー) 라고 부른다. 오키나와의 돼지에 관한 기록으로는 류큐왕부(琉球王府)에서 편찬한 지지(地誌)인 유구국유래 기(琉球國由來記) (1713)에 이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1)라고 *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일본문화학 전공. 1) 外間守善ㆍ波照間永吉 編, 琉球國由來記, 1997, 角川書店, p.133. 琉球國由來記 는 류 큐왕부에서 최초로 편찬한 체계적인 지지이다. 서문에 1713년 왕이 상람하였다는 기록이 있
72 6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적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늦어도 18세기 초에는 이미 오키나와에서 돼지 를 길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본토에서 본격적으로 돼지고기를 소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오키나와의 돼지 사육은 전국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2) 오키나와에서 돼지가 얼마만큼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가는 떡 설날, 돼지 설날(餅正月, 豚正月) 이라는 일본어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일본 본토에서는 설날을 맞이하여 떡을 장만하여 차려 놓는데 비 해서, 오키나와에서는 돼지를 잡아 설날을 맞이하기 때문에 생겨난 표현이 다.3) 오키나와 방언으로는 설날 전에 돼지를 잡는 날을 가리켜서 특별히 와 쿠루시(ワークルシー) 라고 부른다. 오키나와의 시인 다카라 벤(高良勉)의 오 키나와 생활지(沖縄生活誌) 에는 본인이 어려서 체험했던 돼지 잡는 날 에 관한 풍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4)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방언으로 후 루(フール) 라고 부르는 일명 돼지변소(豚便所) 는 변소 바로 밑에 돼지를 사 육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를 보아도 오키나와 에서 인간과 돼지가 다른 가 축에 비해서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오키나와문화에서 돼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돼지 와 관련한 속신도 적지 않게 전해진다. 예를 들면 오키나와 출신의 민속학자 시마부쿠로 겐시치(島袋源七)가 편찬한 얀바루의 토속(山原の土俗) 에는 오 키나와 북부지역에 전하는 돼지 관련 속신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5) 이 다. 돼지에 관해서는 권4 <生類門>에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 일본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是和漢ノ間ヨリ渡り来ル物ナラン 이하 본고에서 인용한 일본어 자료의 한국어 번역은 필자 의 졸역이다. 2) 예를 들면 1880년 당시 오키나와에서 사육하던 돼지는 5만 마리 정도로 이는 일본에서 전국 1위였다고 한다. 沖縄タイムス社 編(1983), 沖縄大百科事典 下, 沖縄タイムス社, p ) 이 점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 赤嶺政信(1998), シマの見る夢, ボーダーインク, pp 渡邊欣雄(1993), 世界のなかの沖縄文化, 沖縄タイムス社, pp ) 高良勉(2005), 沖縄生活誌, 岩波書店, pp 참고로 일부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 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1960년대까지 오키나와의 마을 대부분이 음력으로 설날을 축하했 습니다. 어렸을 때의 가장 큰 즐거움은 설날이 되면 세뱃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돼 지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0일과 섣달그믐에는 시마(シマ)라고 부르 는 마을의 곳곳에서 돼지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띠로 지붕을 이은 집에 살며, 평균적으 로 모두 가난했던 마을에서는 친척 혹은 이웃끼리 돈을 조금씩 내서 공동으로 돼지를 잡았습 니다. 설날 쓸 것을 비롯해서 반년 동안 먹을 돼지고기를 서로 나누어가졌습니다. 먼저 반년 간 정성껏 돼지를 길러온 집의 부엌 근처에 돼지를 묶어놓고, 경동맥을 잘라서 도살합니다. 목에서 흐르는 피는 한 방울도 헛되이 흘러가지 않도록 세숫대야에 잘 받아냅니다. 그리고 재빨리 소금을 넣고 저어가며 피를 굳힙니다. 이것은 귀중한 지이리차(チーイリチャー, 피와 야채를 섞어 볶은 것) 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5) 島袋源七(1974), 山原の土俗 <日本民俗誌大系>第1卷, 角川書店, pp 초판은 1929
73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69 속신들을 종합해 보면, 일찍이 오키나와 사람들은 돼지의 행동을 보고 날씨 를 점쳤고, 돼지를 의례의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돼지를 일종의 영적인 존재로까지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오키나와문화에서 인간과 돼지의 관계는 설화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일본 본토에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설화가 그다지 전 해지지 않는다.6) 인간과 돼지의 교섭 중에서도 특히 성적 교섭에 관한 이야 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비해서 오키나와 설화에는 돼지가 인간으로 둔갑하여 인간과 성적 교섭을 갖는 이야기가 곧잘 전해진다. 이 경우에 돼지 는 여성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남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키나와 설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인간을 유혹하여 성적 교섭을 갖더라도 혼인에는 이 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설화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이류혼인(異類婚姻)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파 탄을 맞이한다. 본고에서는 특히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 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 양상 및 그 민속적 배경에 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인간과 돼지에 관한 오키나와 설화의 유형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본토에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설화가 매우 드물다. 이 점에 관해서는 민간에 전하는 설화를 집대성한 민담자료집을 확 인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이른 시기에 일본의 민담을 모아서 체계적인 년 鄕土硏究社에서 간행되었다. 본고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이 자료에 기록된 얀바루 지역의 속신 중에서 돼지에 관한 속신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돼지가 소굴을 만들어도 우 천(雨天), 돼지가 부엌 또는 집안으로 들어오면 재액이 생긴다.(하마오리[浜降り]를 해야만 한 다), 돼지우리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돼지는 장님 신[盲神]이라 하므로 만약 침을 뱉으면 가난뱅이 신[貧乏神]이 되고 만다), 재채기를 했을 때에 똥 먹어라 라고 말해야만 한다.(둔갑 한 돼지가 대나무로 코를 건드린다), 돼지우리에서 놀래서는 안 된다.(반드시 혼령이 빠져나 가 버린다), 돼지우리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반드시 소인이 된다. 아니면 석녀 또는 석남이 된다), 돼지우리에서 도깨비불(妖怪火)을 보거나 혼령을 보았을 때에는 소원을 빈다.(거기서 본 것은 전부 자신의 혼령이라고 여긴다), 물에 빠져죽은 사람의 시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 는 돼지머리를 바다에 집어던진다.(돼지 대신에 시체가 떠오른다) 6) 예를 들면 김용의는 日本の民話 전집(전 26권)에 수록된 동물설화 187편을 대상으로 20위 까지 등장동물의 빈도 순위를 조사하였다. 이를 보면 돼지는 20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김용의(2001), 한일 동물설화의 비교연구(1) 일본어문학 제10집, 한국일본어문학회, p.112.
74 70 比較日本學 第32輯 ( ) 분류를 시도한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의 일본민담명휘(日本昔 話名彙) 에서 확인하기로 한다. 야나기타 구니오는 민담을 크게 <완형민담 (完形昔話)>과 <파생민담(派生昔話)>으로 이분하였다.7) 이어서 각각의 유형 밑에 하위유형을 설정하여 분류하였다.8) 그렇지만 <완형민담>이나 <파생민 담> 어디에도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이야기는 수록되지 않았다. 물론 해당 사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형 분류도 시도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해서 세키 게이고(關敬吾)가 펴낸 일본의 대표적인 민담자료집 인 일본민담대성(日本昔話大成) (전 12권)에서 확인하기로 한다. 세키는 일본민담대성 에서 민담을 크게 <동물민담(動物昔話)>, <본격민담(本格昔 話)>, <소화(笑話)>로 나누어 삼분하였다. 말하자면 세키는 야나기타 의 이분 법에 대해서 삼분법을 채택한 셈이다. 세키의 <본격민담>은 야나기타의 <완 형민담>에 대응한다. 일본민담대성 에는 인간과 동물의 성적 결합에 관한 다양한 유형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일본민담대성 에도 인간 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면 <본격민담> 의 하위유형으로 분류된 <혼인ㆍ이류 사위(婚姻ㆍ異類聟)>, <혼인ㆍ이류 아 내(婚姻ㆍ異類女房)>, <혼인ㆍ난제 사위(婚姻ㆍ難題聟)> 그 어느 유형에도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사례가 포함되지 않았다.9) 일본의 설화에는 왜 돼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였다. 예를 들면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 는 구승문예사고(口承文藝史考) 라는 논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7) 야나기타 구니오는 영웅의 일생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본래 민담의 의의였다고 보고 이 를 가리켜 <완형민담>이라고 불렀다. 이 <완형민담>에서 일부가 독립하여 떨어져 나온 이야 기를 가리켜 <파생민담>이라고 불러서 구별하였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다음 논저를 참고. 小 澤俊夫(1994), 昔話のコスモロジ, 講談社, pp ) 참고로 <완형민담>의 하위유형에는 <탄생과 기서(誕生と奇瑞)>, <불가사의한 성장(不思議な 成長)>, <행복한 혼인(幸福なる婚姻)>, <의붓자식 이야기(まま子話)>, <형제의 우열(兄弟の優 劣)>, <재보 발견(財宝發見)>, <액난 극복(厄難克服)>, <동물의 원조(動物の援助)>, <말의 힘(言葉の力)>, <지혜의 작용(知恵のはたらき)> 등을 설정하였다. <파생민담>의 하위유형에 는 <인연 이야기(因緣話)>, <요괴 이야기(化物話)>, <소화(笑話)>, <조수초목담(鳥獸草木 譚)>, <기타(その他)> 등을 설정하였다. 柳田國男 監修(1948), 日本昔話名彙, 日本放送出 版協會. 9) 예를 들어 동물이 여자로 둔갑하여 남자와 교섭을 갖는 <혼인ㆍ이류 아내> 유형에는 뱀, 개 구리, 대합, 물고기, 용궁여자, 학, 여우, 고양이, 천녀 등이 아내로 등장하지만 돼지와 관련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關敬吾(1978), 日本昔話大成 2, 角川書店, pp
75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71 그 동물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짐승 이야기가 많은 것은 몸집이 커서 가장 인 간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주의해서 보면 등장동물이 또한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멧돼지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서양에서도 옛날부터 기른 가축이었던 돼지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10) 야나기타는 동물 중에서도 짐승이 벌레 등에 비해서 몸집이 커서 인간과 가깝기 때문에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돼지(멧돼지)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 특징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점과 관 련하여 사쿠라이 도쿠타로(櫻井徳太郎)는 야나기타가 지적한 내용을 더욱 구 체적으로 전개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였다. 첫째 일상생활에 비근한 동물이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닭, 개, 고양이, 돼 지, 소, 말 등과 같이 순치된 가축들은 거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가령 등장 하더라도 주로 조역을 맡는 데에 불과하다. 둘째 심상(尋常)한 생태, 말하자면 단순한 행동이나 성향을 보이는 동물도 그다지 포함되지 않는다. 이상행동이 나 비인간적인 습성이 주목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인간에게 공포감이나 외 포(畏怖)를 느끼게 하는 동물이 주로 등장한다. 때로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 고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는 맹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넷째 그 초월적 영 력(靈力)이 인정되어 신과 교섭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동물이다.11) 사쿠라이는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비근한 위치에 있는 동물, 단순한 성 향이나 행동을 보이는 동물, 인간에게 위협적인 공포감을 주지 않는 동물, 초 월적 영력이 인정되지 않는 동물이 설화에 등장하기 어렵다고 파악하였다. 사쿠라이가 설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 지적한 네 가지 점은 오키나와의 설화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오키나와의 설 화에서 그 예외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는 그 예외적인 사례에 속하는 동물 중의 하나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키나와의 돼지는 변소라는 공간을 공유할 정도로 인간과 일상생활을 같이 하는 단순한 성향의 가축이다. 뿐만 아니라 산속에 서식하는 맹수와 비교할 때에 인간에게 공포감이나 외포(畏怖)를 느 10) 柳田国男(1963), 口承文藝史考 定本柳田国男集 第六卷, 筑摩書房, pp ) 櫻井徳太郎(1972), 動物昔話の類型 人獣交渉史の視点 文学 40, 岩波書店, p.97.
76 72 比較日本學 第32輯 ( ) 끼게 하는 동물이 아니며, 초월적 영력을 발휘한다는 측면에서도 이들 산속 의 맹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 설화에는 돼지가 등장하여 인간과 교섭을 갖는다. 앞서 인용한 사쿠라이의 해석은 비 록 오키나와 설화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오키나와 설화에서 인간과 돼지 사이에 혼인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점에 관해서는 본고의 3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일본의 민담자료집 중에서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이야기가 다 수 수록된 것은 이나다 고지(稻田浩二)와 오자와 도시오(小澤俊夫)가 책임편 집을 맡은 일본민담통관(日本昔話通觀) (전 31권)이다. 이 일본민담통관 은 전체적으로 모든 민담을 <옛이야기(むかし語り)>, <소화(笑い話)>, <동물 민담(動物昔話)>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다시 각각의 유형에 하위유형을 설 정하여 분류하였다. 일본민담통관 의 <옛이야기>는 야나기타의 <완형민담>, 세키의 <본격민담>에 해당한다. 이 자료집은 민담을 지역에 따라서 각 권별 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그 중에서 제26권은 오키나와에 전해지는 민담을 수 록한 자료집이다. 여기서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민담통관 에는 돼지가 여자로 둔갑하여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 를 <돼지가 둔갑한 미녀(豚化け美女)>라는 제목을 붙여 유형 분류하였다. 여 기에는 전형적인 유형의 이야기를 요약하여 1편 수록하고 유사한 이야기(類 話)를 모두 13편, 그리고 참고 이야기(參考話)를 1편 수록하였다.12) 그런데 여기 수록된 총 15편에 이르는 이야기를 유의해서 읽어보면, 그 중 에서 <유화3> 및 마지막의 <참고 이야기>는 돼지가 여자로 둔갑하여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돼지가 남자로 둔갑하여 여자를 유혹하는 이야기 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돼지가 둔갑한 미녀>라는 제목에 들어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는 이 부분의 편집자가 착각을 하여 잘못 분류한 결과이다. 한편으로는 그 만큼 오키나와에서 돼지가 여자로 둔갑하여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가, 남자로 둔갑하여 여자를 유혹하는 이야기보다도 일반적 인 유형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일찍이 다하타 지아키(田畑千秋)는 오키나와의 설화에 나타난 인간과 돼지 사이의 교섭에 관한 이야기를 <돼지사위 맞이하기(豚聟入)>와 <돼지 아내(豚 女房)>라는 두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한 바가 있다. 여기서 <돼지사위 맞이하 기>는 돼지가 잘 생긴 남자로 변해서 여자와 관계를 갖는 이야기를 의미하 12) 稲田浩二ㆍ小沢俊夫責任編集(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pp
77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73 며, 반대로 <돼지 아내>는 돼지가 여자로 변해서 남자와 관계를 갖는 이야기 를 가리킨다. 13)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오키나와에 전하 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설화를 검토하면, 인간과 돼지 사이에 성적 교섭은 가능했지만 돼지의 정체가 인간에게 발각되어 혼인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류혼인의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다. 앞 서 다하타가 유형을 분류한 <돼지사위 맞이하기>와 <돼지 아내>는 설화 연 구자들 사이에서 어디까지나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류혼인을 전제로 하는 유 형 분류이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인간과 동물에 관한 설화를 <돼지사위 맞이 하기>와 <돼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이류혼인담에 포함시켜 분류하기에는 무 리가 있다. 물론 다하타도 이 점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후속 연 구에서는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언급하였다. <돼지 아내( 豚 女 房 )>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는 약간 주저되는 이야기이다. <여 우 아내( 狐 女 房 )><대합 아내( 蛤 女 房 )> 등의 이류혼인담과는 두드러지게 차이 가 있어서 혼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돼지 요괴에게 홀린 이야기>이 다. 물론 앞서 소개한 <미남으로 둔갑한 돼지( 美 男 に 化 ける 豚 )>도 <돼지사위 맞이하기( 豚 聟 入 )>라고 말하기에는 주저된다. 다른 이류혼인담과 달라서 민담 으로서는 역시 미성숙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유형 모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민담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4) 다하타는 자신이 시도한 <돼지사위 맞이하기>와 <돼지 아내>라는 이름의 유형이 애초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 한계란 이류혼인담에 포함시켜 분류하기에는 혼인이라는 모티브를 확인할 수 없는 데서 발생하는 한계이다. 따라서 다하타처럼 애초에 <돼지사위 맞이하기>와 <돼지 아내>라 는 두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오키나와 설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돼지의 관계에 있어서 확인되는 두드러진 특징인, 양자 사이에 구체적인 혼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검토하는 편이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 같다. 본고에서는 일본민담통관 을 비롯한 오 키나와의 설화자료집에 수록된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이 점을 검토하고자 한 다. 13) 田 畑 千 秋 (1978), 豚 聟 入 とその 周 辺 沖 縄 文 化 研 究 5, 法 政 大 学 沖 縄 文 化 研 究 所, p ) 田 畑 千 秋 (1995), 美 女 に 化 ける 豚 昔 話 伝 説 研 究 の 展 開, 三 弥 井 書 店, p.97.
78 74 比較日本學 第32輯 ( ) Ⅲ.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오키나와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 이야기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형은 돼지가 아름다운 여자로 둔갑하여 남자를 유혹하였다가 후에 그 정체 가 탄로 난다는 이야기이다. 먼저 관련 사례를 보기로 한다. [사례1] 청년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 곳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한 청년이 여 자를 쫓아가서 말을 걸고 친해져, 한번 놀 때 마다 돈을 삼 관(貫)씩 주었다. 청년은 여자가 아단(アダン) 잎으로 엮은 신발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이상케 여겨서 한쪽 신발을 감추었다. 여자는 발을 질질 끌며 돌아갔다. 다음날 청년이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보니 돼지 발굽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돼지를 조사하니, 마을에서 떨어진 돼지우리에 사는 늙은 돼지 의 우리에 돈이 쌓여 있고 그 한쪽에서 돼지가 자고 있었다. 그 돼지를 죽였 다.15)(밑줄, 필자) [사례1]은 일본민담통관 에 요약된 이야기이다. 여기서 청년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 곳 이란 오키나와 방언으로 모아시비(毛遊び) 라고 부르는, 젊은 남녀가 밤에 함께 어울려 놀던 풍습을 의미한다.16) 이 모아시비에 나타난 아 름다운 여자는 평민들이 주로 신었던 아단나무 잎으로 엮은 신발이나 짚신이 아닌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이를 이상케 여긴 청년이 그 가죽신을 감추었는 데 알고 보니 가죽신이 아니라 돼지 발굽이었다. 이로 인해 돼지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돼지가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신 고 있었던 가죽신으로 인해서 정체가 탄로 난다. [사례1]에서 또한 흥미로운 것은 청년이 여자와 한 번 어울릴 때마다 돈을 3관씩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이 돼지우리에 그대로 쌓여있었다는 대목이다. 이 대목에 관해서 는 다음의 [사례2]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5) 稻田浩二ㆍ小澤俊夫 編(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p ) 모(モー) 는 오키나와말로 들판 을 의미한다. 남녀가 둥글게 둘러앉아서 샤미센(三味線)을 잘 다루는 남자와 노래를 잘하는 여자를 가운데 두고 함께 가무를 즐겼다. 이 모아시비에서 마음이 맞은 남녀는 성관계를 갖고, 이어서 남자가 여자 집을 방문하여 자는 기간을 거쳐 혼 인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渡邊欣雄 他編(2008), 沖縄民俗辭典, 吉川弘文館, p.515.
79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75 [사례2] 옛날 어느 곳에 가죽신을 신고서 고개를 숙인 채 추파를 던지며 지나가는 미녀가 있었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 젊은 남자 중에서 이 여자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젊은 남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그 미녀를 칭찬했다. 그런데 도 그 여자는 잠자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여자에게 돈을 6전(3 관) 주기만하면 하룻밤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어느 날, 이 말없는 여자가 사는 곳이나 이름을 알고자 하여 여러모로 장난을 걸었지 만, 여자는 그저 웃기만 할뿐으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그 여자 가 신고 있던 가죽신을 벗겨서 빼앗았다. 여자는 발을 끌며 어디론지 사라졌 다. 다음날 아침에 젊은이들은 그 가죽신을 확인해 보고서 너무 놀랐다. 그것 은 무엇이었을까. 기괴하게도 그것은 돼지의 발톱이었다. 젊은이들이 모여서 각 집을 돌며 돼지우리를 조사하였다. 그랬더니 어느 집에서 수 십 년이 지난 돼지가 발톱이 빠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비로소 그 돼지가 둔갑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고, 또한 매일 아침마다 돼지 주인이 돼지우리에서 돈 6전씩을 주었던 수수께끼도 풀렸다. 이때부터 매음을 하는 여자를 가리켜 3관 여자 라 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창기나 매음부를 3관 여자 라고 부르고 있 다.17)(밑줄, 필자) [사례2]는 앞의 [사례1]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사례1]과 [사례2]는 기본 적으로 정체모를 미녀의 출현, 돈 3관을 주고 미녀와 성적인 관계를 맺기, 미 녀가 신고 있던 가죽신 감추기, 둔갑한 돼지의 정체가 발각이라는 서사구조 로 되어 있다. [사례2]에는 정체가 탄로 난 돼지를 살해하는 대목이 서술되지 않았으나, [사례1의 경우에 비추어볼 때에 [사례2]에서도 살해되었을 것이다. [사례1]과 [사례2]에서는 여자가 신고 있던 신발을 감추어 둔 것이 계기가 되 어 여자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이 모티브는 오키나와의 인간과 돼지의 교섭 이야기에서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다음 사례를 참고하기로 한다. [사례3] 달밤에 남녀가 어울려 놀고 있는데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나타나서 바람 부는 방향 쪽에 앉는다. 여자는 새가 울 무렵이 되면 돌아가므로 남자 한 사 람이 이를 이상케 여겨서 짚신을 감추었다. 여자가 짚신을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자 그대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짚신이 돼지발톱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에 있는 돼지를 모두 조사하였더니, 백년을 산 돼지가 발톱이 빠 17) 島袋源七(1974), 山原の土俗 日本民俗誌大系 第1卷, 角川書店, pp
80 76 比較日本學 第32輯 ( ) 진 채로 죽어 있었다. 동물은 오랫동안 기르면 둔갑하기 때문에 오래 기르면 안 된다.18)(밑줄, 필자) [사례3] 또한 둔갑한 여자 돼지가 달밤에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아시비 장 소에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춘 이야기이다. 어울려 놀았던 남자 한 사람이 여 자가 신고 있던 짚신을 감추어 둔 것을 계기로 여자의 정체가 탄로 난다. [사 례3]에서는 백년을 산 돼지 가 등장하여, 돼지가 오래 살면 인간으로 둔갑한 다는 돼지의 요괴성이 특히 강조되었다. 그 요괴성으로 말미암아 동물은 오 랫동안 기르면 둔갑하기 때문에 오래 기르면 안 된다. 라는 일종의 교훈담에 가까운 형태로 전해진다. 오키나와 설화에서 여자로 둔갑한 돼지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신발을 감추는 행위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때로는 돼지 본연의 이상한 냄새 때문에 정체가 탄로 나기도 한다. [사례4] 아름다운 여자가 젊은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에 나타났다. 한 남자가 이 여 자를 좋아하여 어울려 놀았다. 남자는 여자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났으므로 여 자 뒤를 밟았다. 여자는 돼지우리로 들어갔다. 그 후로 돼지를 오래 기르면 인 간으로 둔갑한다고 해서 오래 기르지 않았다.19)(밑줄, 필자) [사례4]의 도입부는 이제까지 보아온 다른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젊 은이들이 모여 노는 곳, 다시 말하자면 모아시비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 서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뒤를 밟 았더니 돼지였다는 이야기이다. [사례4]에서도 이야기의 말미에 그 후로 돼 지를 오래 기르면 인간으로 둔갑한다고 해서 오래 기르지 않았다. 라고 하여, 돼지를 오랫동안 길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미녀로 둔 갑한 돼지는 때때로 돼지의 본성을 감추지 못했다가 그 정체가 탄로 나기도 한다. [사례5] 몇 십 년이나 기른 어미 돼지가 미녀로 둔갑하여 모아시비(野遊び)에 나가 18) 稻田浩二ㆍ小澤俊夫 編(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p ) 稻田浩二ㆍ小澤俊夫 編(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p.263.
81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77 사람들 틈에 끼어서 떠들썩하게 놀았다. 그 미녀는 남녀가 손으로 박자를 맞 출 때에 꿀꿀, 꿀꿀 하고 박자를 맞추었다. 어떤 사람이 이상한 여자라고 생 각하고 뒤를 밟았더니 돼지로 변해 있었다. 20) (밑줄, 필자) [사례5]에 등장하는 돼지는 매우 해학적으로 묘사되었다. 둔갑한 돼지가 모아시비에 나가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른 남녀들과 박 자를 맞추지 못했다가 그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인간들의 유희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정체가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설화 속의 오키나와 돼지는 여자로 둔갑하는 능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남자로 둔갑하여 여자를 유혹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오키나와 의 돼지는 설화 속에 남녀 양성의 인간으로 둔갑하는 능력을 지닌 동물로 등 장한다. 이 경우에도 대개는 앞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그 정체가 탄로 나기 마련이다. [사례6] 옛날, 어느 곳에 검은 머리띠( 黑 長 布 )를 두른 사내가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조리( 皮 裏 草 履 )를 신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며칠이고 젊은 여자 무리 에 섞여서 이들을 유혹하려 하였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한 처녀를 손에 넣으 려고 열심히 구애하였다. 그 처녀는 사내의 정체를 몰랐지만, 처녀의 친구는 이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의 친구는 이를 그 처녀에게 알리고자 똥냄새 가 나는데, 뭐지? 라고 놀려댔다. 사내는 이미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깨닫고 돼지로 변해서 맥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21) (밑줄, 필자) [사례6]은 법률가이자 민속학자인 사키마 고에이( 佐 喜 眞 興 英 )가 편찬한 남도설화( 南 島 説 話 ) (1922)에 수록된 사례이다. 22) 사키마의 남도설화 에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민담이 3편 수록되어 있다. 23) 20) 稻 田 浩 二 ㆍ 小 澤 俊 夫 編 (1983), 日 本 昔 話 通 觀 第 26 卷, 同 朋 舍 出 版, p ) 佐 喜 眞 興 英 (1922), 南 島 說 話, 鄕 土 硏 究 社, p ) 오키나와 기노완( 宜 野 湾 ) 출신의 민속학자 사키마 고에이( 佐 喜 眞 興 英 )가 20여 년 동안 구술 자를 찾아다니며 직접 채록한 설화 중에서 100편을 골라서 수록한 민담설화집이다. 여기 수 록된 민담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각 민담의 채집지역 및 구술자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23) 참고로 제14화 <아사토( 安 里 ) 위쪽의 돼지>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머지 1편은 본문에서 [사례8]로 제시하였다. 옛날, 아사토( 安 里 ) 위쪽의 무덤 앞에서 몇 대에 걸쳐 오래 산 늙은 돼지와 어떤 사내가 교
82 7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사례6]은 돼지가 남자로 둔갑하여 여자들을 유혹하려고 한 대목을 제외하 면 대체적으로 앞서 고찰한 사례들과 유사하다. 특히 [사례6]은 [사례1]의 유 형과 [사례4]의 유형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티브를 혼합하여 조합해놓은 것 같은 서사구조로 이루어졌다. [사례1]과는 둔갑한 돼지가 가죽신을 신고 있었 다는 점이 유사하며, [사례4]와는 냄새로 인해서 그 정체가 발각된다는 점이 유사하다. 돼지가 남자로 둔갑하는 사례를 하나 더 참고하기로 한다. [사례7] 정체불명의 남자가 아름다운 처녀의 처소로 찾아왔다. 처녀는 옆집 노파에 게 상의하였다. 노파는 남자가 어떤 신발을 신고 있었느냐? 고 물었다. 처녀 는 가죽처럼 생겼다. 라고 대답했다. 노파는 그 가죽신을 감춰두고 다음날 아침 변소를 뒤져보아라. 라고 가르쳐주었다. 처녀가 다음날 아침에 그대로 따 라했더니 가죽신은 돼지발톱으로 변해 있고, 변소에 가보았더니 커다란 돼지 가 발톱이 빠진 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24)(밑줄, 필자) [사례7]은 앞서 살펴본 사례들과는 그 서사구조가 약간 다르다. 도입부의 정체불명의 남자가 아름다운 처녀의 처소로 찾아왔다 라는 대목만을 읽으 면, 얼핏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야래자(夜來者)설화를 연상케 한다.25) 그렇지 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야래자설화와는 달리, 여자가 자신을 찾아온 남 자가 신었던 가죽신을 감추어두었다가 후에 그것이 돼지발톱이었음을 확인하 는 쪽으로 서사구조가 전개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 보아온 오키나와의 돼지설화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서사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오키나와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7편의 설화 를 살펴보았다. 이들 사례는 돼지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 모티브에 조금씩 차이가 인정될 뿐으로, 대체적으로 유사한 서사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첫째 돼지가 여자 혹은 남자로 둔갑하여 인간을 유혹하였지만 곧장 돼지의 정체가 탄로 나고야 만다. 그 때문인지 일본의 이류혼인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류 사이의 혼인 모티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둔갑한 돼지의 정 접한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돼지는 인간과 함께 밤놀이도 함께 했다고 한다. 佐喜眞興 英(1922), 南島說話, 鄕土硏究社, p ) 稻田浩二ㆍ小澤俊夫 編(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p ) 참고로 오키나와 설화집에서도 야래자 설화를 확인할 수 있다. 遺老說傳 제68화, 佐喜眞 興英가 편찬한 南島說話 (1922) 제9화가 이 유형의 설화이다.
83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79 체가 확인되면 대부분 인간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점에 대해서 검토하기로 한다. 먼저 돼지의 정체가 탄로 나서 인간과 돼지 사이에 이류혼인이 성립하지 않는 점에 대한 고찰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고의 2장에서 인용한 사쿠라 이의 지적을 다시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26) 돼지는 닭, 개, 고양이 등과 마찬 가지로 인간세계에서 인간과 생활을 함께 하며 일상적으로 늘 접촉하는 가축 이다. 그 중에서도 오키나와의 돼지는 인간과 변소라는 공간을 공유할 정도 로 친근한 존재이다. 따라서 돼지는 평소부터 인간에게 그 습성이 잘 알려져 있는 관계로, 인간 쪽에서 여자나 남자로 둔갑한 돼지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앞의 사례 중에서 인간으로 둔갑한 돼지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거나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어 정체가 드러나는 모티브가 이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돼지의 정체가 발각된 이상 인간과 혼인을 맺는 것은 불 가능하다. 말하자면 돼지는 산속에 거주하는 맹수 등과 비교할 때에 현저하 게 민속적 신성(神性)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키나와의 돼지가 전적으로 신성이 결핍된 동물은 아니었 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서론에서 언급한 오키나와의 돼지 관련 속신을 분석하 면 분명해진다. 돼지우리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돼지는 장님 신[盲神]이 라 하므로 만약 침을 뱉으면 가난뱅이 신[貧乏神]이 되고 만다), 돼지우리 에서 놀래서는 안 된다.(반드시 혼령이 빠져나가 버린다), 돼지우리에 떨어 져서는 안 된다.(반드시 소인이 된다. 아니면 석녀 또는 석남이 된다), 돼지 우리에서 도깨비불(妖怪火)을 보거나 혼령을 보았을 때에는 소원을 빈다.(거 기서 본 것은 전부 자신의 혼령이라고 여긴다) 27) 등의 속신으로 미루어 볼 때에, 적어도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돼지가 일정 부분 영성을 띠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 사례에서 돼지의 요괴적 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례8] 기노완(宜野灣) 가네코(我如古)에 있는 길에 청년 모습을 한 요괴가 매일 밤 나타났다. 슈리(首里)에서 봉공(奉公)하던 관리가 밤늦게 그 길을 지나는데, 역시 청년 모습을 한 요괴가 서 있었다. 그는 기가 센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26) 본고의 각주 11번 참조. 27) 島袋源七(1974), 山原の土俗 日本民俗誌大系 第1卷, 角川書店, pp
84 80 比較日本學 第32輯 ( ) 공무로 이렇게 밤늦게 다니는 것이다. 너는 대체 누구를 바보로 만들려고 이 곳에 있는 것이냐, 이놈! 하며 침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즉시 흰 돼 지로 변하였다. 그래도 그는 태연하였다. 뭐야, 이놈 하며 이번에는 가지고 있던 횃불로 지졌다. 요괴 돼지는 곧바로 다시 청년으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둘은 격투를 시작하였다. 그 관리는 점차 집 쪽으로 물러섰다. 요괴는 계속 그 의 뒤를 쫓아 왔다. (중략) 새벽이 되었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할머니도 이제 곧 날이 밝을 테니 괴물도 돌아 갔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집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서 몰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요괴는 이를 알아차린 듯 집요하게도 여전히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요괴에게 살해당하여 다음 날 아침에 차가운 시체로 발견되었다. 요괴는 이런 식이다. 요괴를 괴롭히면 때때로 이렇게 심한 일을 당하는 법이다.28)(밑줄, 필자) [사례8]은 청년으로 둔갑한 요괴가 매일 밤 출현하여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정체를 알고 보니 돼지였다는 이야기이다. 즉 [사례8]의 돼지는 남성으로 인 식되었다. 여기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돼지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 례8]에 의하면, 슈리(首里)에서 봉공(奉公)하던 관리가 청년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침을 내뱉자, 청년이 흰 돼지로 변해서 정체를 드러냈다고 한다. 흥 미롭게도 앞에서 언급한 돼지 관련 속신 중에는 돼지우리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 라는 속신이 있다. 침을 뱉어서는 안 되는 이유로는 돼지는 장님 신[盲神]이라 하므로 만약 침을 뱉으면 가난뱅이 신[貧乏神]이 되고 말기 때 문이라고 한다. 이 속신이 [사례8]에서 돼지에게 침을 뱉는 대목과 바로 문맥 이 연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양쪽 모두 돼지의 영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만 은 분명해 보인다. [사례8]에 등장하는 돼지는 매우 집요하다. 자신의 정체를 간파한 관리를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끝내 죽이고야 만다. 다시 말하자면 원한을 품은 인간에게 끝내 위해를 가하는 위협적인 요괴인 셈이다. 이 점은 앞서 검토한 여러 사례에서, 정체가 발각된 돼지를 인간들이 죽이는 이유와 관련이 있겠 다. 앞의 사례들에서 인간이 정체가 발각된 돼지를 죽였던 이유는, 무업보다 도 정체가 발각된 돼지가 인간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일본의 이류혼인담에서도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성이기도 28) 佐喜眞興英(1922), 南島說話, 鄕土硏究社, pp
85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81 하다. 일본의 이류혼인담은 대개 등장동물이 자연 속에서 인간세계로 내방하 여 인간과 무언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첫째 스스로 퇴거하 거나, 둘째 인간에게 추방되어 자연 속으로 돌아가거나, 셋째 인간에게 살해 당하는 세 유형으로 전개된다.29) 말하자면 혼인의 단계를 거친 후에 퇴거, 추 방, 살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혼인이 파탄을 맞이하는 셈이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인간세계를 방문하는 동물의 성별이 남성인가 여성인가에 따라서 혼 인이 파탄에 이르는 세 가지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이 점에 관해서 오자와 도시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일본의 이류혼인담에서 내방한 파트너가 여성일 경우에는 파트너가 스스로 퇴 거하든지 추방당하든지 하여 이야기가 그대로 끝난다. 이는 이들 파트너가 인 간세계에서 사라졌지만 자연 속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여 성이므로 위험시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된다. 파트너가 남성일 경우에는 인간 세계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다. 다시 내습할 위험이 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해하고 이야기는 끝난다. 위험한 파트너는 이로 인해서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30) 오자와의 해석에 따르자면 이류혼인담에 등장하는 동물이 여성일 경우에 는 향후 인간사회를 위협할 위험성이 낮아서 자연 속에 방치하지만, 등장동 물이 남성일 경우에는 다시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살해하게 된다 는 결론이다. 비록 [사례8]을 이류혼인담 으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이 해석을 적용하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돼지가 여자로 둔갑한 사례에서 도, 정체가 발각된 돼지가 위해를 가할 것을 두려워하여 돼지를 살해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특히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기른 돼지는 요괴적 영성을 발휘하여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여러 사 례에서 돼지를 오래 길러서는 안 된다고 충고를 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돼지는 인간과 일상적으로 늘 접촉하는 가축이었다는 점에서 설화적인 신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오래 살도록 방치해두 면 언젠가 요괴적 영성을 발휘하여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점이 작용하여 오키나와 설화 속의 인간과 돼 지는 이류혼인의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29) 小澤俊夫(1994), 昔話のコスモロジ, 講談社, p ) 小澤俊夫(1994), 昔話のコスモロジ, 講談社, pp
86 8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Ⅳ. 맺음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물이 설화에 주역으로 등장하여 활약하는 이른바 동물설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일본설화에도 다양한 동물들이 등 장하는데, 이들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은 인간사회와의 공간적 거리, 신성의 유무, 인간에 대한 위해성 등의 기준에 따라서 일정한 유형화가 가능 하다. 돼지는 결코 일본의 동물설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 럼에도 오키나와에는 돼지가 둔갑하여 인간과 성적 교섭을 갖는 설화가 적지 않게 전해진다. 본고에서는 인간과 돼지의 교섭에 관한 오키나와 설화를 오키나와 문화에 서 돼지가 차지하는 민속적 의미를 조명하는 데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사례 분석에 근거하여 그 양상을 고찰하였다.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키나와의 돼지 관련 설화를 <돼지사위 맞이하기>와 <돼지 아내>라 는 이류혼인담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고찰하는 기존의 연구방법이 그다지 중 요한 의미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보다는 왜 인간과 돼지 사이에 혼인관계 가 성립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주목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둘째 이 점에 관해서 인간과 동물의 이류혼인담의 특징에 대한 기존의 이 론적 성과를 참고로 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과 생활 을 같이 하는 가축으로서의 돼지의 일상적 측면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 점과도 관련이 있는 신성의 결핍이라는 측면 때문이다. 물론 수명이 오래 된 돼지의 경우에 일정 부분 신성이 인정되지만, 그 신성이란 결코 인간세계 에서 수용할 수 공샌적 성격의 신성이 아니었다. 그 신성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요괴적 영성에 불과했다. 셋째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설화는 대부분 마지막에 돼지를 살 해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그 이유에 관해서 요괴적 영성을 지닌 돼지의 위해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본고에서는 주로 설화의 서사구조 및 민속문화적 배경을 주목하는 방법으 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때문에 본고에서 거론한 설화들이 언제 어디서 발 생하여 전파하였는지를 밝히기 위한, 다시 말하자면 전파론적 관점에서의 규 명을 시도할 수 없었다. 본고에서 거론한 사례들은 지역적으로 오키나와에만 한정된 설화가 아니다. 중국에도 유사한 모티브 및 서사구조를 지닌 이야기
87 오키나와 설화에 전하는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의 양상 (김용의) 83 가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수신기(搜神記) 제18권에 유사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키나와는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도 중국 문화권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앞으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사례를 포함 한 비교연구가 필요하겠다. <참고문헌> 김용의(2001), 한일 동물설화의 비교연구(1) 일본어문학 제10집, 한국일본어문학회, p.112. 임동석 역주(2011), 수신기, 동서문화사, p 赤嶺政信(1998), シマの見る夢, ボーダーインク, pp 稲田浩二ㆍ小沢俊夫 責任編集(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稻田浩二ㆍ小澤俊夫 編(1983), 日本昔話通觀 第26卷, 同朋舍出版, pp 沖縄タイムス社 編(1983), 沖縄大百科事典 下, 沖縄タイムス社, p.797. 小澤俊夫(1994), 昔話のコスモロジ, 講談社, pp 佐喜眞興英(1922), 南島說話, 鄕土硏究社, p.13. pp 櫻井徳太郎(1972), 動物昔話の類型 人獣交渉史の視点 文学 40, 岩波書店, p.97. 島袋源七(1974), 山原の土俗 日本民俗誌大系, 角川書店, pp 關敬吾(1978), 日本昔話大成 2, 角川書店, pp 高良勉(2005), 沖縄生活誌, 岩波書店, pp 竹田晃 訳(1964), 搜神記, 平凡社, p.356. 田畑千秋(1978), 豚聟入 とその周辺 沖縄文化研究 5, 法政大学沖縄文化研究所, p.339. 田畑千秋(1995), 美女に化ける豚 昔話伝説研究の展開, 三弥井書店, p.97. 外間守善ㆍ波照間永吉 編, 琉球國由來記, 1997, 角川書店, p.133. 柳田國男 監修(1948), 日本昔話名彙, 日本放送出版協會. 柳田国男(1963), 口承文藝史考 定本柳田国男集 第六卷, 筑摩書房, pp 渡邊欣雄(1993), 世界のなかの沖縄文化, 沖縄タイムス社, pp 渡邊欣雄 他編(2008), 沖縄民俗辭典, 吉川弘文館, p.515.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88 8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인적사항 성명 : (한글) 김용의, (한자) 金 容 儀, (영어) Kim, Yongui 소속 :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일본문화학 영문제목 : A Study on Sexul Intercourse of Humans and Figs in Okinawa Folktales 주소 : (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일본의 동물설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은 유형화가 가능할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동물들이 거주하는 세계와 인간사회와의 공간적 거리, 등 장동물의 신격화 가능 여부, 인간에 대한 위해성 등에 따라서 등장동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들 설화에 등장하는 특정한 동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교섭을 한다. 이른바 이류혼인이라 부 르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혼인관계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본고에서는 일본 본토와는 달리 오키나와에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관계에 관한 설화가 전해 지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오키나와설화집에 수록된 설화의 구체적인 사례 분석에 근거하여 그 설 화적 전개과정을 고찰하였다. 첫째 <돼지사위 맞이하기>와 <돼지 아내>라는 이류혼인담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논의하는 기 존의 연구방법이 그다지 중요한 의미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두 유형은 그 서사구조에 있어서 두드 러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왜 인간과 돼지 사이에 혼인관계가 성립하지 않는지를 주목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점에 관해서 일본의 이류혼인담의 특징에 대한 기존의 이론적 성과를 참고로 하여, 인 간과 같이 생활하는 가축으로서의 돼지의 일상적 측면, 이로 인한 절대적인 신성의 결핍이라는 관 점에서 설명하였다. 셋째 설화에 등장하는 오키나와의 돼지는 절대적인 신성이 인정되지 않으나, 부분적으로 둔갑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 점으로 인해서 인간과 돼지의 성적 교섭에 관한 설화에서 대부분 마지막에 돼지를 살해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본고에서는 그 이유를 영성 을 지닌 돼지의 위해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주제어: 오키나와 설화, 돼지, 서사구조, 이류혼인, 요괴성
89 85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 영 실 * Abstract Gyun woo and Jik nyo folk tale in Japan and Korean, which originated in China is called Chilseok, and has been settled as one of customs. It is now performed on July 7th in lunar calendar in Korea and in solar calender in Japan. This is a typical tale that exists in both Korea and Japan and concerned with the stars. Chilseok in the figure was about Gyun woo and Jik nyo's heart rending love and parting. But now in addition to the story, they identify Chilseok with Obong in Japan and Chilseong in Korea by region. I will study Korea and Japan have any thoughts about this aspect to the stars and what had influenced. Keywords : Chilseok, star, Obong, Chilseong 31) Ⅰ. 서론 오늘날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시대를 맞았 지만, 아직도 그 신비는 다 풀리지 않은 상태다. 인간에게 우주는 많은 공상 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며, 탐험의 대상이다. 하루의 일 과를 크게 둘로 나누면 밤과 낮이 되고, 셋으로 나누면 아침과 점심과 저녁 또는 밤이 될 것이다. 이것을 천체에 적용해 본다면, 둘로 나누면 해와 달이 되고, 셋으로 나누면 해와 달과 별이 될 것이다. 해는 하루에 동쪽으로부터 떠올라 서쪽으로 기울고, 낮과 밤을 나눈다. 낮에는 볼 수 있지만, 밤에는 보 이지 않는다. 달은 28일 동안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며, 매일 매일 여러 모습 으로 변화한다. 이 두 개의 천체는 각각 하나씩이며, 보였다 안 보였다는 하 지만,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별은 수 백 수 천만 개로 육안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중에서도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있으며, 계 절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는 것도 있다.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형상(예를 들면 혜성)도 있고, 유난히 빛이 나는 것도 있고, 어두운 것도 있 * 한양대학교 석박사 통합과정7기
90 8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다. 때로는 하늘과 땅을 오고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예를 들면 유성)도 있으 며,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있다. 이처럼 별은 하늘에 떠 있는 천체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고 여러 모 습으로 존재하기에 다양성이 존재한다.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있듯이 이 세 상에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별들끼리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며 시간과 계 절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이 세상의 어두움 속의 하나의 질서를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별들의 삶은 인간과 닮아 있어서, 인간은 별을 통해 인간의 삶 을 이야기했다. 별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칠석설 화 이다. 지금으로부터 약3, 000년 전에 중국에서 유래된 견우와 직녀의 애틋 한 사랑에 관한 설화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지금도 존재하고 있 으며, 세시풍속으로도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음력 7월7일을 칠월칠석 이라 고 해서 칠석제를 지내고, 일본에서는 지금은 양력 7월 7일에 다나바타 라는 칠석제를 지낸다. 지금까지의 한국과 일본의 칠석설화에 관한 연구에는 설화를 한국어 교육 에 적용한 논문 1), 세시풍속에 관한 논문 2), 칠석 시가에 관한 논문 3), 한반도 로부터 일본으로의 칠석 전래설에 관한 논문 4) 들이 있으며, 별에 관한 신앙에 대한 연구는 없는 것 같다. 중국에서 유래한 칠석설화가 한국과 일본에 정착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나라의 사상이나 풍습 등에 영향을 받아 칠석의 모습이 변화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칠석을 오봉(일본의 추석)으로 동일시하는 지역도 있고, 한국에서 는 칠성과 동일시하는 곳도 있다. 본 논문은 한국과 일본의 칠석설화 속에 나타난 별에 관한 신앙이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친 사상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1) 안미영(2008), 한국어 교육에서 설화 문학을 활용한 문화교육 선녀와 나무꾼 을 통해 본 한국의 문화 정신문화연구 2008겨울호 제31권 제4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 김지영(2011), 일본연중행사 칠석연구 기원과 행사의 전모고찰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Vol.38 No., 동아시아일본학회 3) 윤영수(2006), 한ㆍ중ㆍ일 칠석시가의 비교연구 동아시고대학, Vol , 동아시 아고대학회 4) 노성환(2008), 고구려 고분벽화와 일본의 칠석설화 일어일문학연구, Vol.64 No.2, 한국일 어 일문학회
91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87 Ⅱ. 별에 관한 신앙 1. 한일의 점성학의 유형 역성혁명과 원령신앙 별을 뜻하는 한자는 상형문자로, 일( 日 ) 과 생( 生 ) 을 합한 성( 星 ) 이라는 글자이다. 이 星 의 옛날 글자는 日 3개와 生 을 합한 성( 曐 ) 또는 白 3 개와 生 을 합친 성( 皨 ) 이다. 여기에서의 3 이라는 것은 세 개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무수히 많다는 의미이다. 日 이나 白 은 밝음을 의 미한다. 生 은 나타나다 또는 한자의 음을 나타내기 위해 쓴 글자이다. 그러 므로 星 이라는 한자는 무수히 밝음을 의미한다. 星 의 사전적 의미에는 별, 별이름, 천문, 천체의 현상, 세월, 점( 占 ), 밤, 저울의 눈금, 희끗희끗하다 따위 가 있다. 하룻밤 동안 별자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 남쪽 하늘의 별자리는 태양의 이동 방향과 같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며 북쪽 하늘의 별자리 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룻밤 동안 별자리가 움직이는 이유는 지 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 기 때문에 별자리는 계절마다 바뀌게 된다. 모든 별자리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하늘에 나타난다. 단지 낮 에는 태양 빛이 너무 밝아서 볼 수 없을 뿐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별자리의 움직임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알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규칙성과 불 규칙성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적용시켜 이해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별 이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농사의 시기나 날씨 등을 예측하기도 했고, 사람이 태어나면 별이 하나 태어나고, 사람이 죽으면 별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북극성 같은 별은 인간에게 올바로 길을 찾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아주 고마운 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별에 관한 생각이 별에 대한 관측으로 이어졌고, 천체를 관측하여 인간의 운명이나 장래를 점치는 점성술 로 발전해 나갔으며, 더 나아가서 점성학 이라는 학문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천문학 으로 변화되어 왔다. 오늘날의 별자리는 주로 서양의 별자리를 이야기한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자신의 생일 달에 따라 찾아 운세를 찾아보는 그 별자리이다. 별자리의 유래 는 지금으로부터 약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비문이나 점토판 등의
92 8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해, 달, 별, 전갈, 염소 등과 관련된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페니키아인 들의 지중해 무역에 의해 그리스로 전해졌고, 그리스에서는 그들의 신화 속 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별자리에 많이 투영시켰다. 별자리는 중국으로 도 전해졌다. 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풍습이나 신화가 다르듯이 별자리에 대 한 용어와 관념에도 차이가 있다. 천문 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이미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역 5) <단( 彖 ) > <분( 賁 )>에는 하늘의 무늬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살피 며, 사람의 무늬를 보고 온 세상을 교화시킨다( 觀 乎 天 文, 以 察 時 変, 觀 乎 人 文, 以 化 成 天 下 ) 는 구절이 있다. 또한 <계사상( 繫 辭 上 )>에는 우러러 하늘의 무늬를 보고, 허리 굽혀 땅의 결을 살핀다.( 仰 以 觀 於 天 文, 俯 以 察 於 地 理 ) 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천문 의 뜻은 모두 천문 현상, 즉 각종 천체들이 뒤섞여 운행하면 서 하늘에 나타내는 풍경을 가리키는데, 이런 풍경을 무늬( 文 ) 라고 한 것이 다. 옛사람들이 천문현상을 우러러 관찰한 목적은 천문현상으로부터 인간세 상의 길흉과 재앙, 복을 알아내려는데 있었다. 이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천 문 이라는 말은 대개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학문, 즉 점성학을 가리켰다. 6) 점성학의 유형은 크게 국가적인 유형과 개인적인 유형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가적인 유형은 별자리의 모양을 근거로 전쟁의 승부나 풍년여 부, 수해나 가뭄 같은 재해, 제왕의 안위 등 국가와 군사 분야의 큰일을 예언 하는 것이다. 점성학은 일명 제왕학 이라고도 한다. 고대의 왕은 신의 대리 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제왕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모든 천문 현상, 예를 들면 해, 달, 혜성, 유성, 구름 등 의 형태나 색깔, 기상현상 등 광범위하다. 그것에 비해 개인적인 유형은 개인 의 출생시각의 천문현상을 근거로 평생 운명을 예언하는 점성학이므로 천문 형상의 범위는 좁다. 고대 중국인들은 천문현상이 천명이나 하늘의 뜻을 반영할 수는 있지만, 5) 유교의 경전. 六 經 의 한 가지. 본디 占 書 로서, 經 과 傳 의 두 부분으로 됨. 경은 陽 爻 와 陰 爻 를 맞춘 여섯 개의 선으로 된 그림에 설명이 붙은 것. 그 그림을 卦 라하여 64개, 筮 竹 과 算 木 을 써서 그림을 구하여 길흉을 판단. 음양ㆍ 四 象 ㆍ 八 卦 등 우주관은 후에 철학ㆍ윤리ㆍ정 치에 영향을 끼친 바가 큼. 공자가 대성. 주자가 易 經 이라 부름. 신콘사이스 국어사전 (1982), 동아출판사 6) 쟝사오위앤 지음, 홍상훈 옮김(2008), 별과 우주의 문화사, 바다 출판사, pp.9 10
93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89 천명이나 하늘의 뜻은 고정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 수시로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는 인간세상에서 제왕이 시행하는 통치가 덕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점성가들이 천문현상을 살피는 것은 제왕에게 천명 또 는 하늘의 뜻을 예고하거나 해석해 줌으로써 제왕으로 하여금 인간세상에서 그의 통치에 대해 하늘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려는데 목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상 이변이 있게 되거나, 전쟁에 지는 등 안 좋 은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하늘이 제왕의 통치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벌을 내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을 해결하기위해 신을 달래는 제사 를 드리거나 수도를 천도하는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신의 노 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기존의 제왕을 바꾸고 새로운 제왕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존재했기에 역성혁명( 易 姓 革 命 )이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는 왕이 성을 갖고 있었다. 역성혁명 이라는 것은 성씨( 姓 氏 )를 바꿔 천명( 天 命 )을 혁신( 革 新 )한다는 뜻으로, 덕 있는 사람은 천명( 天 命 )에 의해 왕위에 오르고, 하늘의 뜻에 반하는 사람은 왕위를 잃는다는 고대 중국의 정치사상 이다. 이러한 사상은 주( 周 )나라가 은( 殷 )나라를 무너뜨린 때부터 비롯된 것 으로 보이며, 맹자( 孟 子 )에 이르러 사상으로 정비되었으며, 신왕조가 구왕조 를 무너뜨리는 이데올로기로써 작용을 했다. 고대에 한국의 점성학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기상을 예측하고 다스리 는 자가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첨성대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첨성대는 선덕여왕(27대 ) 때에 세워진 건축 물로서 당시에는 별을 관측하여 천체 운행을 파악하려 했다. 이는 왕과 국가 의 길흉화복을 예측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또 다른 견해로는 땅과 하늘을 잇 는 통로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첨성대의 전체 기단은 31단이고, 하늘과 땅 을 합하면 33개의 기단으로 도리천의 33천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덕여왕이 도리천의 천신이 되고자 한 것과 관련 있다고 추측한다. 7) 선덕여왕의 예에 서 알 수 있듯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점성학은 중요시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역사에 대표적인 역성혁명의 예가 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 李 成 桂, )로, 그는 왕족 출신은 아니었다. 7) 김용희(2009),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다산호당, p275
94 9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이성계의 조상은 전주 출신으로, 함경도 지방에서 기반을 잡았다. 아버지 이자춘은 원나라가 그곳에 설치한 쌍성총관부의 다루가치(총독)를 지냈다. 그 는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발 빠르게 동조하여, 공민왕의 신임을 얻으면서 아들 이성계와 함께 고려의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8) 그 당시 고려 말의 정세는 어지러웠고, 원나라를 지지하는 권문세가인 친원파와 새로이 일 어서는 명나라를 지지하는 친명파인 신진사대부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이 성계의 정치적 기반은 신진사대부들로써 유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조선 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가이다. 유교는 인, 의, 예, 지, 덕을 중요시 했다. 고려시대 동안의 끊이지 않는 전란과 역병, 백성들의 궁핍함, 천재지변 등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수 있었던 명분이 되어 주었다. 하늘의 천제가 통치자에 대한 벌로 이 모든 고난을 주었으니, 이것을 해결하려면 단 하나 통치자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고려의 왕씨 왕조를 무너뜨 리고 조선의 이씨 왕조로 바꾸는 역성혁명이었다. 성서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박사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의 이야기 가 나온다. 한국의 삼국유사 에 김유신의 탄생에도 별에 관한 이야기가 있 다. 별은 귀한 사람의 탄생을 알리는 표시이다. 그런데 일본신화에는 별과 관 련된 탄생 이야기가 없고, 별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하다. 고사기 (712 년)에는 태양( 天 照 大 御 神 )과 달( 月 讀 命 )에 관한 이야기는 볼 수 있지만, 별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서기 (720년)의 천손강림 신화 속에서 단지 별의 신 카가세오(カガ セオ) 한명만이 천신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시도리( 倭 文 )의 신 타케 하츠치(タケハツチ)가 이를 쳐서 따르게 했다고 하며, 또 다른 일전에서는 후 츠누시(フツヌシ)와 타케미카츠치(タケミカツチ) 두신이 악신 아마츠미카보시 (アマツミカボシ), 일명 아메노카가세오(アメノカガセオ)를 주살했다고 한다. 9) 일본서기 에서는 별의 신은 천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악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본의 왕조에서는 역성혁명의 시도는 있었을지 몰라도 중국과 한국과 같 은 성공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맹자의 사상 또한 발달하지 못했다. 일본의 천황은 성도 없고 이름뿐이며,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만세일계로 왕조가 바뀐 적도 없다. 천재지변이나 역병 등은 하늘이 제왕의 통치에 대한 불만을 나타 8) 김용만(2007),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역사 수수께끼100, p152 9) 松 前 健 (1985), 日 本 の 神 話 の 謎, 大 和 書 房, p94
95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91 내기 위해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원령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즉 원한을 품고 죽은 영혼이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 은 원령을 달래주면 되는 것이다. 천황을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천황에 게는 아무 책임도 없고, 모든 것은 원령이 지는 것이다. 간무천황의 교토 천 도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菅 原 道 眞 )를 천신( 天 神 )으로 모신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점성학의 유형에서 보면 한국은 국가적인 유형에 일본은 개인적 인 유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일본에서의 점성학의 발달은 한국보다 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2. 한국과 일본의 칠석 불교와 신도 중국에서는 음양오행에 입각하여 홀수를 길한 수로 여겼고, 홀수가 두 개 겹치는 1월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에 여러 행사를 가졌다. 그 중 7월7일은 칠석이라고 하여 별에 관한 설화가 있다. 칠석전설은 고대 중국의 한중( 漢 中 )지역에서 전승된 베 짜는 처녀(직녀)와 소를 끌며 밭을 가는 농부(견우)간의 한수( 漢 水 )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러브 스토리가 초가을 밤하늘을 동부에서 남서로 흐르는 은하수에 투영된 것이 원 형이고, 본래는 우랑직녀전설 이었다. 칠석전설의 성립은 여러 가지 근거로 보아 늦어도 전한시대 전까지는 민간설화로서의 형태는 갖추어져 있었고, 민 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칠석전설이 서기 3세기 이전에 작품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여 진다. 10) 칠석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 薺 諧 記 ) 11) 에 처음 나타난다. 주( 周 : 중국 의 고대 왕조 BC 1046 BC 771)에서 한대( 漢 代 : BC )에 걸쳐 우 리나라에 유입되기까지 윤색을 거듭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12) 우리나라의 칠 석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구려에는 이미 견우 직녀 설화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덕흥리 벽화(408년 제작, 평안남도 소재, 1903년 확인, 발굴)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10) 윤영수(2006), 한ㆍ중ㆍ일 칠석시가의 비교연구, 동아시아고대학, Vol.14 No, p864, 동아시아고대학회 11) 제해기 는 위진남북조 시대 유송의 동양무의가 찬한, 기괴한 일들을 적은 짧은 이야기인 지괴소설집이다. 12) 국립민속박물관(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가을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한국세시풍 속사전 편찬팀, p44
96 9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고려 공민왕 때 칠석에 대한 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설화의 내용은 옥황상제에게는 베를 짜는 예쁜 딸 직녀가 있었다. 어느 날 은하수 건너편에서 열심히 일하는 목동 견우를 보고 그 둘을 맺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만 하고 일을 하지 않게 되자, 옥황상제는 화가 난 나머 지 그 둘을 갈라놓았다. 이 둘을 딱하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가 1년에 딱 한번 은하수를 건널 수 있게 다리가 되어주어 둘은 만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설화의 배경은 독수리 별자리( 鷲 星 座 )의 알타이르(Altair)별과 거문고 별자리( 琴 星 座 )의 베가(V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별이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서 유래한 듯하다. 이 두 별은 황도 상 운행할 때 가 을 초저녁에서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으며, 봄날 초저녁에서 동쪽 하늘에 나타나고, 칠석 무렵이면 천장 부근에서 보이 게 되므로 마치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견우성과 직 녀성이 일 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되는 천문 현상은 중국의 周 나라 때부터 인식하고 있었으며, 漢 나라에 이르러서 칠석설화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풍속 으로 발전해 왔다. 13) 수많은 밤하늘의 별들 중 음력 7월 7일쯤에 쉽게 찾을 수 있는 별자리 중 하나가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이 두 별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은하수는 말 그대로 밤하늘에 강처럼 보이기에 쉽게 눈에 뜨인다. 실재로 이 두 별은 16광년이나 떨어져 있어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옛 사람들의 눈에 칠석의 시기에 천장의 위치에 있어 잘 보여서 두 별의 만남을 상상했다. 일본의 칠석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직녀이야기와 중국에서 전해진 전설이 습합되어 전래되었다. 일본에서는 칠석을 시치세키(しちせき) 또는 다나바 타(たなばた) 라고 한다. 시치세키 는 칠석의 음독이지만, 다나바타 는 훈독 하고는 연관이 없다. 베를 짜는 여인인 직녀를 다나바타쓰메( 機 織 つ 女 ) 라고 한다. 다나바타 는 다나바타쓰메 에서 온 것이다. 일본의 직녀 이야기는 마을의 재앙을 없애기 위해 베 짜는 처녀를 강가의 베틀 집에 머물게 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며 신의 아 내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중국의 전설이 나라 시대에 전해졌으며 일본의 예로부터 전해오던 직녀 이야기와 합해 지금의 다나바타가 되었다. 다나바타 다음날에 축제에 사용된 조릿대나 장식 등을 강이나 바다에 흘려보내 부정을 13) 국립민속박물관(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가을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한국세시풍 속사전 편찬팀, p44
97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93 쫓는 다나바타오쿠리( 七 夕 送 り), 다나바타나가시( 七 夕 流 し), 나가시비나( 流 しびな) 와 같이 인형을 띄워 보내는 지역도 있다. 14) 견우직녀 설화가 일본으로 전해진 것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7세기 때 중 국에 갔다 온 견당사들에 의해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한반도 도래인인 하타 씨에 의해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8세기 나라 시대말기의 만엽집( 萬 葉 集 ) 에는 견우와 직녀를 노래한 와카( 和 歌 )가 많다. 한일 양국의 공통된 세시풍속으로는 결교전( 乞 巧 奠 )과 옷이나 책을 말리는 것 등이 있다. 걸교전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하늘 아래에 서 바늘에 실을 꿰는 행위로 직녀성에게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비는 행 사이다. 이것이 나중에 남자 아이들이 글쓰기나 글짓기를 잘하게 해달라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 지금의 일본에서는 단자쿠( 短 冊 )라고 해서 자신의 소 원을 적은 종이를 대나무에 매달아 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나무가 쑥쑥 잘 자라는 것처럼 자신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염원을 담은 것이다. 또 한 칠석이 되면 장마가 끝난 시기라서 습해져 있던 옷이나 책을 말리는 풍습 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칠석의 행사는 궁중, 민간에 이르기까지 행해졌지만, 일본은 주로 신사에서, 한국은 사찰에서 행해졌다. 일본의 칠석행사는 신도행 사라 하여 절에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15)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전제로 그들이 직조와 재봉의 기술을 늘리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고, 그들이 신이기 때문에 불교보다는 신도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교토의 기타노 덴만구 ( 北 野 天 滿 宮 )나 지누시신사( 地 主 神 社 ), 후쿠오카 칠석신사( 福 岡 七 夕 神 社 ) 등 이 그 예이다. 16) 한국의 칠석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칠성고사, 칠석고사, 칠성맞 이, 칠석맞이, 칠성제, 칠석제, 칠성기도, 칠성공, 칠성위하기, 칠성맞이 고사 등 칠성과 칠석을 통용하여 쓰고 있다. 칠성은 북두칠성 의 칠성 을 말하는 것으로, 칠석 과는 별에 관한 것이라는 것과 7 이라는 숫자가 같다는 공통 점은 가지고 있지만, 칠석과 칠성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곳에 따라 한국에서 는 이 둘을 동일시하고 민간과 사찰에서 행사를 주관한다. 14) 이이쿠라 하루타케 편저, 허인순ㆍ이한정ㆍ박성태 옮김(2009), 일본인의 생활과 관습, 어 문학사, p75 15) 노성환(2006), 현대 일본 칠석에 관한 현장론적 일고찰 일어일문학 Vol.32 No p151, 대한일어일문학회 16) 같은 논문, p165
98 9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일본에서는 칠석과 칠성을 동일시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지역에 따라 칠석을 나누카봉( 七 日 盆 )이라고 해서 오봉을 맞는 준비를 한다. 3. 한국의 칠성신앙과 일본의 오봉 1 한국의 칠성신앙 북쪽 하늘의 가장 중심이 되는 별은 북극성이다. 옛 사람들이 밤에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나침반 삼아 길을 찾았다. 하지만 북극성은 밝은 별은 아니다. 북극성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국자 모양의 밝은 북두칠성을 찾으면 된다. 북두칠성의 손잡이를 지나 국자 모양의 바닥을 지나 그 위쪽으 로 연결해 다섯 배를 하면 북극성 자리이다. 북두칠성의 두병( 斗 柄 )은 하룻밤 사이에 뚜렷하게 위치와 방향이 변함으로 써 옛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고대 중국의 좌표 체계에서는 북극성을 향하는 별의 특징이 매우 중요한데, 북두칠성은 바로 북쪽 하늘의 북극성을 향하는 별 천구의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밤중에 그 별들이 지평선 위에서 북극성을 둘 러싸고 돌아가는 모습이 목격되는 별 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성관이다. 17) 고대에 중국인들은 북극성을 하늘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별은 북극 성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극성은 천제를 상징했고, 북두칠성 은 천제가 타고 다니는 수레라고 생각했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성신이다. 도교와 유교의 천체 숭배사상과 영 부( 靈 符 )신앙이 조화된 신격이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았다고 하여 칠성여래, 칠아성군( 七 牙 星 君 )이라고 한다. 주로 수명장수, 소원성취, 자 녀성장, 평안무사 등을 비는 신이다. 특히 아이들의 수명장수를 비는 대상신 이다. 불가에서는 사찰 칠성각의 칠성신에게 공을 드리기도 한다. 사찰내의 칠성신은 약사 신앙이 조화되어 완전히 불교적으로 토착화된 신이다. 칠성신 은 불교에서 중생들의 내세에 대한 믿음을 주려는 것이고, 도교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것이어서 민속신앙에서 중요한 신명으로 모셔질 수밖에 없었다. 사찰에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각을 배치한 것은 불교가 유입된 당시 에 가장 중요하게 숭배한 신앙이 산신 신앙과 칠성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칠 성신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격이어서 불교의 토착화를 꾀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 칠성신앙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민 17) 같은 책 쟝사오위앤 지음, 홍상훈 옮김(2008), 별과 우주의 문화사, 바다 출판사, p424
99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95 속신앙을 수용하여 불교의 토착화를 꾀하기 위해 사찰의 가람배치를 전략적 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사찰의 중심공간인 대웅전 뒤에 칠성각을 배치한 것 은 배불자들이 대웅전 앞을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동화되기를 바란 의도이다. 이처럼 칠성신앙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18) 한국에서의 칠성신앙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삼국유사 의 김 유신의 탄생이야기이다. 유신공은 진평왕 17년 을묘년(595)생으로 북두칠성 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등에 북두칠성의 무늬가 있었고, 또 신기하 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고 되어 있다. 칠성은 곧 인간의 탄생과 관련된 신임을 알 수 있고, 나중에 다양한 기능 을 수행한 대상신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칠성신을 숭배하는 공간을 기준으로 보면 가정에서 모시는 칠성신, 가정 밖에서 모시는 칠성신, 사찰에서 모시는 칠성신, 의례와 관련된 칠성신으로 나눌 수 있다. 가정에서 모시는 칠성신은 장독대에 대나무를 세워 정화수 그 릇을 올려놓거나 장독대 곁 큰 돌 위에 정화수 그릇을 올려놓고 매달 7일, 17 일, 27일에 주부가 목욕재계하고 자손들을 위해 칠성님께 비손하는 등의 형 태이며, 물은 칠성신의 신체이다. 가정 밖에서 모시는 칠성신은 마을 밖 일곱 개의 바위를 칠성신의 신체로 삼고 그곳에서 칠성고사를 지내는 경우 이처럼 암석을 칠성신의 신체로 활용하는 것은 암석이 지니는 항구성과 별이 지닌 생명성이 결합되어 칠성바위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칠성바위 는 주로 아이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숭배의 대상이지만 한 생명을 점지해 준다는 생각에서 기자의 대신이다. 사찰에서 모시는 칠성신은 농가에 서는 간단히 떡과 나물을 준비하여 칠성신에게 가족의 명과 복을 빌었다. 명 과 복을 비는 까닭은 칠성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인간 은 칠성신의 품에서 태어난 이승의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다가 다시 칠성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여겨서 인간이 운명하는 것을 돌아가셨다 고 표현한다. 죽음의례에서 사람이 운명하여 임종이 확인되면 코와 입을 솜으로 막고 양쪽 엄지발가락을 삼끈으로 묶어 주검을 바르게 하고 양쪽 엄지손가락을 묶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서로 연결시켜서 시신을 바르게 한다. 그런 다음 시신을 일곱 매듭으로 묶어서 칠성판 위에 올려놓는다. 칠성판은 대개 대나무로 만 18) 국립민속박물관(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가을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한국세시풍 속사전 편찬팀, p680
100 9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들며, 대나무 대신 부엌문을 활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은 칠성신, 칠성판이나 칠성틀의 칠성은 칠성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 간은 죽어서 칠성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의식을 의례로 표현한 것이다. 19) 이처럼 한국인에게 있어 칠성신앙은 생활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고대로부 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왕족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대에 와서 많은 의례가 미신이라고 치부되어 간소화되거나 생략되었지만, 죽음에 관한 의례로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양에서는 7 이라는 숫자는 행운의 상징이다. 성경에서 하느님이 6일 동 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잡으셨다. 중국에서는 음과 양, 오행을 합치면 7이 되는 이 수를 완성된 수라고 생각했다. 달도 7일을 주 기로 모습을 바꾼다. 사람의 얼굴도 7개의 구멍이 있다. 북두칠성도 7개의 별 로 이루어져 있다. 7월은 1년 중 반이 끝나고 나머지 반년이 시작되는 달이 다. 칠석과 칠성의 발음은 닮아 있고, 7이라는 숫자의 공통점이 있으며, 별에 관한 신앙이라는 점도 닮아 있다. 한국에서의 불교의 형태는 산신 신앙과 칠 성신앙이 습합된 형태이다. 불교에서는 북두칠성을 칠성여래라 하여 수명장 수, 소원성취, 자녀성장, 평안무사 등을 비는 신이다. 특히 아이들의 수명장수 를 비는 대상신이다. 일본에서는 북두칠성을 묘켄보살( 妙 見 菩 薩 )로 보았고, 한국인이 생각하는 칠성여래보다는 뛰어난 시력은 가진, 선과 악을 잘 구별할 줄 아는 보살이라 고 생각했다. 한국인의 칠성신앙은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신앙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찰 에 북두칠성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찰에서 칠석제를 지낸 다. 한국의 칠석의 이름이 다양한 것은 칠석과 칠성신앙의 결합된 한 단면이 라고 할 수 있겠다. 2 일본의 오봉 오늘날의 한국의 추석은 음력 8월15일이고, 일본은 양력 8월15일이다. 명 치시대 들어와서 태양력을 사용하게 되어 8월 15일이지, 실제로 일본의 오봉 은 음력 7월15일이다. 일본의 오봉의 유래는 불교의 우란분에서 왔다. 석가의 제자인 목련이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석가의 가르침을 받아 19) 같은 책, p682
101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97 모든 중에게 공양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음력 7월을 盆 月 이라고 도 한다. 음력 7월은 오봉과 관계가 깊은 달이다. 오봉의 준비 20) 는 다음과 같다. 1일 7일 12일 13일 카마부타( 釜 蓋 ) 朔 日 나누카봉( 七 日 盆 ) 이날에 지옥 가마의 뚜껑 이 열리고, 정령이 저 세상 을 출발한다고 여긴다. a. 물에 관련되는 의례 우물 물 바꾸기 여성이 머리를 감는다. 말을 씻긴다. 7회 목욕을 하고 7회 밥을 먹는다. b. 오봉을 맞는 준비 묘의 청소 불전에 공물을 바친다. 불구를 닦는다. 盆 市 (오봉의 시장이 열림) 盆 花 取 り(불전에 바치 기 위해서 꽃을 따옴) 오봉을 맞이할 때까지의 사람들의 움직임( 靑 森 縣 남부지방의 사례) : 오봉 의 준비는 7일에 집중하고, 이 날을 오봉의 시작으로 하는 곳도 많다. 이와 같이 일본의 오봉은 시기적으로 칠석과 날짜 상으로 아주 가깝다. 7 월1일에 정령은 지옥을 출발하고, 후손들은 7일에 오봉을 맞을 준비를 한다. 칠석과 오봉이 겹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음력 7월15일은 백종일, 백중절, 망혼일 이라고 한다. 이 날 승 려들은 사원에서 제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을 한다. 신라와 고려 때에는 우란 분회를 벌여 속인들도 공양을 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로 승려들만의 행사가 되었다. 백종일에 사람들은 조상의 사당에 천신( 薦 新 )을 드리며 술과 고기를 마련하여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망혼일이라고 하는 것은 백 종일 밤에 술과 고기, 밥, 떡, 과실 등 많은 것을 차려놓고 망친의 혼을 불러 들여 제를 지내는 까닭이다. 백종이란 말도 이 무렵에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기 때문에 백가지를 차림다고 해서 나온 것이다. 21) 한국에서의 음력 7월15일인 백종일은 일반인들이 모두 하는 행사가 아니 라, 사찰에서 주로 행하는 행사였다. 칠석하고 날짜 상으로 가깝기는 하나, 20) 福 田 アジオㆍ 內 山 大 介 ㆍ 小 林 光 一 郞 ㆍ 鈴 木 英 惠 ㆍ 萩 谷 良 太 ㆍ 吉 村 風 (2012), 圖 解 案 內 日 本 の 民 俗, 吉 川 弘 文 館, p181 21) 임동권(1999), 한국세시풍속, 서문문고, p164
102 9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한국의 추석은 음력 8월15일이기에 조상을 모시는 행사는 그날에 행해졌다. Ⅲ. 결론 일본에서는 베를 짜는 여인인 직녀를 가리켜 다나바타쓰메( 機 織 つ 女 ) 라 고 한다. 칠석은 시치세키(しちせき) 또는 다나바타(たなばた) 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칠석은 다나바타쓰메( 機 織 つ 女 ) 와 연관성이 있다. 칠석의 중심은 직녀이다. 칠석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일본의 칠석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직녀 이야기와 습합된 것이다. 직녀 이야기의 직녀 는 물가에 사당을 만들어 놓고 베를 짜며 하늘로부터 신의 강림을 기다리는 여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룻밤을 직녀와 함께 보낸 신이 마을의 모든 더러 움을 가지고 간다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더러움은 죄, 부정한 것, 죽음 등을 가리키며, 이러한 제례의식을 통해 깨끗함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미소기(재계) 의식이며, 물의 청정성과도 통한다. 칠석 설화의 내용은 중국의 한중( 漢 中 )지역에서의 러브스토리가 밤하늘의 별자리에 투영된 것이다. 일 년에 딱 한번만 만날 수밖에 없는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지만, 실제적으로 견우성과 직녀성이 직접 만날 수는 없다. 1 년 중 여름철 밤하늘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이 있는 모습 을 보고 사람들은 그와 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칠석설화의 은하수와 예로부 터 일본에 전해져 온 직녀설화의 물가는 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물은 만물을 깨끗이 하고 흘러 보내는 것이다. 일본의 칠석의 풍습을 보면 물에 관한 것이 많다. 우물 물 바꾸기, 여성의 머리 감기, 말 씻기기, 7회 목 욕을 하고 7회 밥 먹기 등 이외에도 칠석이 끝나고 나서 다나바타 나가시( 七 夕 流 し), 다나바타 오쿠리( 七 夕 送 り), 나가시비나( 流 しびな) 라 해서 사용했 던 도구들을 물에 모두 흘려보낸다. 고대 일본에서의 점성학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이었지만, 일본에 서의 점성학의 발달에는 제한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국가적인 유형의 점성학 이라고 본다면 일본은 개인적인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재지변이나 기 근, 가뭄, 역병들이 발생하는 것은 하늘이 노해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고, 이 것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면 왕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상이 중국에 존재했고, 실제로 중국에서는 주왕조가, 한국
103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99 에서는 조선왕조가 그러한 사상에 의해 건국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러 한 맹자의 역성혁명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은 원령신앙의 탓으로 돌렸다. 음력 칠월칠석은 시기적으로 일본의 추석(음력 7월15일)과 굉장히 가깝 다. 일본의 추석은 조상과 관련된 불교행사로 지역에 따라서는 7월7일부터 그 준비를 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따라서는 칠석제와 오봉이 습합된 모습이다. 한국의 칠석은 추석(음력 8월15일)과는 한 달 이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 며, 음력 7월15일은 백종일이라고 해서 사찰에서 주로 행사를 한다. 칠성신앙 은 북두칠성을 신격한 것으로 불교보다도 빨리 한국에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불교를 정착시키는데 있어 가교 역할을 했으며,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 쳤다. 지금도 한국의 사찰 내에는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는 곳이 많고, 죽음에 관련된 의례에도 칠성신앙이 남아 있다. 한국인의 별에 대한 관념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돌아가셨다 는 표현이다. 이것은 칠성신의 품으로, 즉 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칠석의 발음과 칠성의 발음이 닮아 있고, 두개 모두 별을 모시는 신앙의 형태이다 보니 자연스레 습합되어 왔다. 한국의 칠성신앙은 인간의 수명장수, 길흉화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으로 믿어왔다. 한일 양국의 칠석은 별에 관한 신앙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세시풍속의 형 태를 보면 일본은 오봉과 한국은 칠성신앙과 습합된 부분이 많다. 오봉은 별 과는 상관이 없지만, 칠성은 북두칠성에 관한 것으로 별과 연관이 있다. 한국 인의 별에 관한 신앙은 바로 삶과 죽음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강현모(2006), 한국 민속과 문화, 비움과 채움 강판권(2009),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중국을 낳은 뽕나무, 글항아리 김용만(2007)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역사 수수께끼100, 바른사 김용희(2009),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다산호당 국립민속박물관(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가을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한국세시풍속 사전 편찬팀 모로 미야 지음(2007), 김택규 옮김, 닌자와 하이쿠 문화의 나라 이야기 일본, 일빛 이이쿠라 하루타케 편저(2009), 허인순ㆍ이한정ㆍ박성태 옮김, 일본인의 생활과 관습, 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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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칠석설화의 한일비교 (문영실) 101 <국문요지> 중국에서 유래된 견우와 직녀 설화는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칠석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하 나의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아 왔다. 지금은 한국에서는 음력 7월7일에, 일본에서는 양력 7월7일 에 행해진다. 이것은 한일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설화이며, 별에 관련된 대표적인 설화라 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칠석의 모습은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 외 에 일본에서는 칠석을 오봉(일본의 추석)과 동일시하는 지역이 있고, 한국에서는 칠성과 동일시 하는 곳이 있다. 천문학의 원류는 점성술에서 시작된다. 별의 운행을 보고 인간의 삶을 점치는 점성술은 더 나아 가 하나의 학문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중국에서는 천재지변, 가뭄, 기근, 전염병, 전쟁 등이 끊이 지 않으면, 이 원인은 하늘의 천제가 통치자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라 고 생각했다. 이것을 해결하기위한 방법은 통치자를 바꾸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이다. 한국에서의 조선왕조가 바로 역성혁명의 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러한 역성혁명이 성공한 적 은 없었다. 천황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 아니라, 원령의 탓으로 돌렸다. 원령(원한을 품고 죽은 영)을 달래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점성학이 국가적인 유형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개인적 유형이라서, 점성학의 발달에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오봉은 불교의 우란분에서 유래했다.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목련존자가 100명의 승려들에게 공양을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추석보다는 백종일(음력 7월15일)에 해당된다. 일본은 오봉을 맞는 준비를 하는 날이 7월7일이다. 오봉과 칠석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칠석제는 한일양국에서 왕실과 민간에서 두루 행해졌지만, 지금에 와서는 주로 일본에서는 견 우와 직녀가 하나의 신으로 받들어져서 신사에서 행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찰에서 행하 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산신신앙과 칠성신앙이 발달되어 있었다. 불교를 정 착시키기 위해 칠성신앙을 이용했다. 대웅전 뒤에 칠성각을 두어 자연스럽게 융화시켰다. 칠성신 은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삶과 죽음, 길흉화복, 기자신앙 등 폭넓 게 인간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우르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칠성과 칠석 발음도 비슷하고, 별에 관한 신앙이며, 칠 이라는 숫자의 공통점 등이 칠석과 칠성을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주제어: 칠석, 별, 오봉(일본의 추석), 칠성신앙
106 10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107 103 신라화랑 가무(歌舞)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稚児舞)의 현황 고찰 - 도래인 하타씨(秦氏)를 매개로 하여 - 전 금 선*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tudy Japan's Chigomai which is similar to the nature and functions of Hwarang as part of providing data on how the prototype of of Shilla Hwarang's dances looked like. To conduct this study, Chigomai is targeted since it is related to the Hata clan who was widely regarded as the Silla people from Gaya. First of all, the functions of Hwarang are classified as martial, musical affairs and ancestral rites and then Hwarang's dances and songs and Chigomai are examined accordingly, The case study is performed in Samuraiodri of Kagoshima prefecture, Chigomai of Gionmatsuri in Kyoto and Chigobugaku of Shimomuragamo shrine in Hokuriku areas. It turned out that many similar characteristics of Hwarang's singing and dancing are found in Chigobugaku of Hokuriku areas and therefore, this place is highly regarded as one of the most suitable ones for the future comparative research on Hwarang's Keywords : chigomai(稚児舞), hatashi(秦氏), bugaku(舞樂), hwarang(花郞), shilla(新羅) 1) Ⅰ. 들어가는 말 본고는 신라화랑의 가무(歌舞)1)연구를 위한 자료제공의 일환으로서, 화랑 가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일본의 치고마이(稚児舞)를 도래인 하타씨(秦 氏)를 매개로 하여 고찰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나아가 향후 진행될 화랑가무 와의 사례 비교연구 대상으로 적합한 치고마이를 찾는 것에도 있다. 치고마이는 성년전의 남아(男兒)인 치고(稚児)가 추는 춤을 뜻하며, 현재 기가쿠伎楽)나 부가쿠(舞楽), 엔넨(延年), 사루가쿠(猿楽), 노(能)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연행되고 있다. 치고가 백색화장을 하고 행렬을 진두지휘하거나 춤 *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박사과정 1) 넓은 의미로는 악(樂)과 무(舞), 좁은 의미로는 악을 동반한 무용을 의미하나, 본고에서는 가 무(歌舞)라는 용어로 통칭하도록 하겠다.
108 10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을 추는 모습은 신라화랑의 그것과 유사하다. 일본예능에서 치고마이가 중요 한 위치에 있는 이유는 신성한 존재라고 하는 치고가 가지는 종교적인 상징 성 때문이다. 하지만 제례의식인 가구라( 神 樂 )가 아니라, 도래계의 부가쿠나 산악신앙과 관련된 예능에서 치고마이의 연행 빈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종 교적 신성함만이 아닌, 다른 여러 복합 요소의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 단된다. 한편 신라의 가무는 우수한 가야의 문화를 흡수하여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처용이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감복시킨 것도 바로 노래와 춤이었다. 일본서 기 권13에 의하면 신라왕이 80인의 악인을 보내어 인교천황( 允 恭 天 皇 : )의 장례행렬을 따르게 했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 하는 외래악에 관한 기사로, 당시 신라 사회에는 대규모 악인을 파견할 정도 의 가무의례체계가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진흥왕은 화랑 도의 교육 이념으로서 가무를 장려하였으므로, 화랑의 수련에서 가무는 중요 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화랑이 행한 가무의 연행 형태에 대하여는 구체 적인 언급이 없고, 후대에 쓰인 진연의궤 나 정재무도홀기 에 등장하는 사선랑의 사선무, 삼국사기 동경잡기 문헌비고 에서의 황창랑의 검 무, 화랑을 주제로 창작된 안성향당무 등에서 그 유래만이 전해질 뿐이다. 이러한 화랑의 가무에 대하여 미시나 쇼에이( 三 品 彰 英 : )는 신라화 랑의 연구 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화랑집회의 기능 중 가무가 매우 중시된 것은 화랑에 관한 대부분의 약전( 略 傳 )에 제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세 이후에 전해진 화랑의 유풍 중 이 가무 의 잔재가 가장 현저하게 또는 장기간 존속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화랑제도가 퇴폐하여 최초의 기능을 잃은 신라 말기에 팔관회 제의에 참가한 이른바 사선악부( 四 仙 樂 部 ) 등이 화랑가무의 변질이며, 이 행사는 고려 시대에 와서 지나친 성대함이 정치문제화 될 정도였다. 나아가 부족의 계절제 나 무격( 巫 覡 )이 행하는 행사에서도 화랑( 花 郞 ) 또는 화낭( 花 娘 ) 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변질되어 남아 있다. 말하자면 가무는 화랑의 유풍으로서 가장 오 랫동안 유지되어온 부분이며, 게다가 화랑 집회에서는 빠질 수 없는 기본적인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2) 미시나 쇼에이의 지적과 같이, 화랑은 후대에 박수무당이나 무당서방, 광 2) 三 品 彰 英 (1971) 新 羅 花 郞 の 硏 究 平 凡 社, pp.86 87
109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05 대, 유녀, 무동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실체가 사라지거나 변질되었다. 정약용은 아언각비 에서 화랑은 신라의 귀유( 貴 遊 )의 이름이다. 지금 무당 이나 창우와 같은 미천한 무리를 화랑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한 뒤, 화랑의 복식이 화려한데서 따온 이름일 것이라고 했다 3). 하지만 일제시 기 화랑을 연구한 이마무라토모( 今 村 鞆 ), 아유카이후사노신( 鮎 貝 房 之 進 ), 이 케우치히로시( 池 内 宏 ) 등은 화랑집단이 무속 제의적 기능과 성적 유희 기능 을 가지는 것으로 한정지으려 했다. 이에 대해 박균섭은 일본 사학자들은 화 랑의 본질을 왜곡하는 모험을 감행하였지만 적어도 상열가악( 相 悅 歌 樂 )과 유 오산수( 遊 娛 山 水 )의 본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모여 함께 가무를 즐겼던 한국인의 정신적 원형에 주목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4). 화랑의 본질 적 가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화랑 가무에 관한 연구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실증적 사료의 한계에 놓인 고대 화랑 가무의 원형을 복원한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다각적인 연구방법을 통하여 그 실체에 조금씩 근접해 가려는 시도는 이루어져야 함에 마땅하다. 이를 위해 고대 일 본으로 건너간 신라인의 예능을 역추적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고에서는 화랑가무의 역추적 대상으로서 치고마이 ( 稚 兒 舞 )를 선정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성년전의 소년이라는 가무의 주체에 관한 유사성이고, 둘째는 제사( 祭 事 ), 악사( 樂 事 ), 무사( 武 事 )라는 춤의 성격 의 유사성이며, 셋째는 한국에서 전래된 부가쿠( 舞 樂 )와 기가쿠( 伎 樂 )에서 치 고의 역할이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론 체계적인 국가조직의 일부로 서의 화랑과 치고마이의 치고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비교 대상으로 삼 는 것에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비교연구가 아니라 화랑 가무의 일본전파 가능성에 무게를 둔 실태 조사이며, 춤추는 주체는 크게 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고마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고 판 단된다. 본고에서는 양자의 연결고리로써 가야계 신라인이라는 설 5) 이 가장 유력한 일본 최대의 도래족인 하타씨를 매개체로 이용하였다. 예능이라는 것은 인간 3) 정약용, 정해렴 역(2005) 아언각비, 이담속찬 현대실학사, p.159 4) 박균섭(2006) 화랑제도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시각 비판 교육학연구44 2, p.41 5) 박규태(2009) 교토와 도래인: 하타씨와 신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문화연구45, pp 하타씨의 가야계 신라인설에 대하여는 이 논문에 상세히 논술되어 있다.
110 10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의 신체와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도래인에 의해 예능이 전파될 가능성이 높 다. 특히 하타노가와가쓰( 秦 河 勝 :6C말 7C중반)가 쇼토쿠태자( 聖 德 太 子 : )로부터 일본예능 전수를 위임받은 시기는 진흥왕( )에 의해 화랑 제도가 정비된 후, 가무가 체계화 된 시점이므로 교류를 통한 도입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 그 후손들이 일본 악소( 樂 所 )를 담당하면서, 신라화랑의 가무를 답습했을 가능성 또한 상당히 높다. 예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표현수단으로서 한없이 큰 시간과 공간을 형성하므로, 장구한 역사 속에서 장소를 초월하며 전승되기 때문이다. 치고마이에 관한 선행연구가 부족한 관계로 본고에서는 현지조사와 영상 물을 많이 활용하였다. 먼저 치고마이에 관한 현황조사를 하고, 화랑의 기능 을 제사, 악사, 무사로 분류한 후, 이것을 기준으로 화랑가무와 치고마이에 대해 비교적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이해를 돕고 논점을 분명히 하 기 위해 분류한 형태에 부합되는 하타씨 관련의 치고마이를 선정하여 연행형 태를 관찰한 후, 도표로 제시하였다. 다소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될 수 있으므 로, 동작 분석표를 사진과 함께 작성하여 첨부하였다. Ⅱ. 치고마이 치고마이는 치고( 稚 児 ) 6) 에 의해 행해지는 춤으로, 절이나 신사의 치고가구 라( 神 楽 )나 치고부가쿠( 舞 楽 ), 치고엔넨( 延 年 )뿐만 아니라, 덴가쿠( 田 楽 )와 후 류( 風 流 ), 사루가쿠, 노 등의 다양한 민속예능에서 존재한다. 일본 문화청이 지정한 286개의 중요민속무형문화재 중에서 치고마이와 관련된 예능이 14개 나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그 보존적 가치가 높다. 치고마이가 중요시되는 이 유는 신성하고 정화된 신체를 가진 치고가 추는 춤이기 때문이다 7). 어린이는 신령이 들기 쉬운 신의 매개자로서 사사( 社 寺 )의 제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다. 치고마이의 일본 내 현황 분석을 위하여, 혼다야스지의 일본의 전통예능 전권 8) 과 문화청의 문화유산 온라인 9) 에 수록되어 있는 각 지역의 민속예능을 6) 치고는 성인식 이전의 소년, 어린이, 전근대의 사원이나 무가에서의 남색의 소년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본고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성년전의 소년을 지칭하도록 하겠다. 7) 神 田 より 子, 俵 木 悟 (2010) 民 俗 小 事 典 神 事 と 芸 能 吉 川 弘 文 館, pp
111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07 일일이 검토하여, 대표적인 치고마이를 <표. 1>로 정리하였다. <표. 1> 민속 예능 장르별 대표적인 치고마이 현황(필자 작성) 민속예능 세부 장르 대표적인 치고마이 현황 巫 女 神 楽, 採 物 神 楽, 湯 立 神 이야히코( 弥 彦 )신사치고마이, 미쓰하시( 三 都 가구라( 神 楽 ) 楽, 囃 子 神 楽 ( 山 伏 神 楽 ), 番 橋 )산조로마쓰리( 参 候 祭 ), 하쿠산츄쿄( 白 山 中 楽, 大 神 楽 居 )신사고단가구라( 五 段 神 楽 ), 기타시타라 하 나마쓰리 하나노마이 덴가쿠( 田 楽 ) 田 舞 と 田 楽 躍, 囃 し 田, 田 遊 고보덴( 御 宝 殿 )치고덴가쿠( 稚 児 田 楽 )후류( 風 び, 田 植 踊 流 ), 무쓰키진지( 睦 月 神 事 ) やすらい 花, 太 鼓 踊, 鹿 躍, 念 노모노봉오도리( 野 母 の 盆 踊 )우라마쓰리( 浦 후류( 風 流 ) 仏 踊, 盆 踊, 小 歌 踊, つくりも 祭 )치고마이, 소가시진쟈가미오도리( 曽 我 氏 神 の 風 流, 綾 踊, 奴 踊, 動 物 仮 社 神 踊 ), 오야다노힌코코( 大 矢 田 のヒンココ), 갓 装 の 踊 코치고마이 14지역 축복예 ( 祝 福 藝 ) 祝 福 藝 하카타마쓰바야시( 博 多 松 ばやし) 이토이가와노우노무악( 糸 魚 川 ㆍ 能 生 の 舞 楽 ), 야히코신사무악( 弥 彦 神 社 の 舞 楽 ), 하쿠산신사 무악( 白 山 神 社 舞 楽 ), 아마쓰신사무악( 天 津 神 社 도래계( 渡 來 伎 楽, 舞 楽, 散 楽, 延 年, 能, 舞 楽 ), 엣츄의 치고무악( 加 茂 神 社 の 稚 児 舞, 宇 奈 系 )와 무대계 狂 言, 人 形 まわし, 歌 舞 伎 月 町 の 法 福 寺 婦 中 町 の 熊 野 神 社 ), 니이야마의 ( 舞 臺 系 ) 엔넨( 新 山 の 延 年 ), 네치야마데라의 엔넨( 根 知 山 寺 の 延 年 ), 와라비오카엔넨( 蕨 岡 延 年 ), 다카오 카데라핫코( 高 寺 八 講 ) 기타 지역 오도리( 踊 ), 창작무용 가라코오도리다치오도리( 唐 子 踊 と 太 刀 踊 ), 헤 코니세( 兵 児 二 才 )사무라이오도리( 士 踊 り) <표. 1>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치고마이는 도래계 예능인 부가쿠와 엔넨 에서 높은 비율로 분포하고 있었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14개의 치고마 이중에서 11개가 부가쿠와 엔넨이었고, 지역적으로는 니이가타( 新 潟 )와 도야 마( 富 山 )현이 가장 많았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민속예능에서 가구라 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치고마이는 도래계 예능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가구라는 미혼 여성 미코( 巫 女 )가 추는 미코마이( 巫 女 舞 )의 형태가 많았다. 치고마이가 중시되는 이유가 치고의 신성한 존재적인 가치 때문이라고 한다면, 신의 제례의식인 가구라에 8) 本 田 安 次 (1998) 日 本 の 傳 統 藝 能 (1 20 卷 ), 錦 正 社 전권이용 9)
112 10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서의 비율이 높아야 하며 춤의 주체를 굳이 씨자( 氏 子 )에서 선출된 남아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치고의 종교적인 상징성만으로는 설명 되기 힘든 부분인데, 이외에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며, 그 중 하나가 도래계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우선 연행 빈도가 높은 엔넨과 부가쿠에서의 치고마이에 관해 살펴보자면, 엔넨은 대사원에서 빈객을 접대하거나 법회가 끝난 후에 승려나 치고가 중심 이 되어 행하는 예능을 뜻한다. 흥복사나 동대사, 법륭사, 약사사 등에서 행 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10), 후류나 치고부가쿠, 가구라, 만자이( 万 才 ), 시시마이 ( 獅 子 舞 ), 가면무( 仮 面 舞 ), 오마이( 翁 舞 ) 등의 여러 장르가 복합된 예능형태 다. 이중에서 치고에 의해 연희되는 춤을 치고엔넨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 에 춤의 형태를 어느 하나로 특정 짓기는 어려는 면이 있다. 이에 비해 치고가 연희하는 부가쿠를 뜻하는 치고부가쿠는 비교적 전형화 되어 있으며, 고대의 원형이 어느 정도 유지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가장 체계적인 전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이다. 부가쿠의 전래 시기는 확실 치 않으나, 속일본기 다이호2년(702)의 기사에 고죠타이헤이라쿠( 五 常 太 平 樂 )가 연주된 예가 보이므로 율령국가체제가 정비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 으로 보인다. 이때는 이미 한반도에서 도입된 시라기노가쿠( 新 羅 楽 )와 구다 라노가쿠( 百 済 楽 ), 고마가쿠( 高 麗 楽 )도 포함되었으며 11), 이 중에서 시라기노 가쿠는 체계적인 중앙의 예능으로, 귀족의 비호를 받았다는 점에서 화랑의 가무와 동질의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후 일본 율령국가의 정비와 함께 가가 쿠료( 雅 楽 寮 )가 설치되면서 도래계 무용인 부가쿠는 체계화된다. 료노슈게 ( 令 集 解 ) 에 의하면 가가쿠료에서는 도래계의 음악과 무용, 악기가 전수되었 다고 하며, 신라, 백제, 고려악은 각각 악사4명과 악생 20명을 두고 있었다. 12) 헤이안시대 말기, 고대국가가 해체되면서 가가쿠료의 궁중부가쿠는 쇠퇴하 게 되고 악인도 분산되었지만, 다행히 삼방악소에 의해 활동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삼방악소는 교토의 악소와 더불어, 나라ㆍ헤이안 시대에 흥행한 흥복사와 약사사, 동대사 등을 중심으로 한 남도악소( 南 都 楽 所 )와 오사카사 천왕사악소( 四 天 王 寺 楽 所 )를 지칭한다. 이 중 사천왕사의 부가쿠는 하타노가 와가쓰의 자손이 악가( 樂 家 )의 선조가 되었고 그 때 전해진 가무가 원류가 10) 安 田 次 郎 (2009) 寺 社 と 芸 能 の 中 世 山 川 出 版 社, pp ) 古 岡 英 明 (1982) 下 村 加 茂 神 社 稚 児 舞 調 査 報 告 書 富 山 県 射 水 郡 下 村, p.82 12) 今 岡 謙 太 郞 (2008) 日 本 古 典 藝 能 史 武 藏 野 美 術 大 學 出 版 局, pp.26 27
113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09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3). 특히 민중예능발전에 기여하여 도시 문화 를 지방으로 전파시킴으로써, 지방문화를 꽃피우게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지 방의 치고마이로, 현재 부가부의 영향을 받은 치고부가쿠가 전국에서 행해지 게 된 요인이 되었다. 중앙의 부가쿠를 광범위하게 지방으로 분포시킨 역할 을 한 것은 전문 예능자와 산악신앙관계의 야마부시이다 14). 이러한 이유에서 인지 치고마이의 분포도가 높은 곳은 도호쿠( 東 北 )와 호쿠리쿠( 北 陸 ), 츄부 ( 中 部 ) 등의 산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엣츄( 越 中 )에서 에치고( 越 後 )에서는 치 고부가쿠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치고부가쿠와 더불어 유명한 것이 갓코( 羯 鼓 )를 매고 추는 갓코치고마이이 다. 교토를 비롯하여, 시즈오카현과 아이치현, 기후현, 니가타현, 미에현, 와카 야마현, 도쿠시마현 등의 14개 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다. 시시마이( 獅 子 舞 )와 함께 연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토 기온마쓰리의 나기나타보코의 갓코치고마이이다. 그렇다면 치고마이는 언제부터 가무의 정식형태로 자리하게 되었을까. 그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도래계의 기가쿠와 부가쿠가 전래되면부터라고 여겨 진다. 일본서기 스이코천황20년(612)의 기사에 의하면 백제인 미마지가 구 레( 吳 )에서 기가쿠( 伎 樂 )를 배워와 소년들을 모아 가르쳤다고 한다 15). 그 후 쇼토쿠태자( 聖 德 太 子 )는 야마토( 大 和 )의 사쿠라이( 桜 井 邑 )에 갓코( 楽 戸 )를 설 치하여 소년들에게 교습시키고, 기가쿠를 사원의 법악으로 정하여 하타노가 와가쓰에게 기가쿠의 전수를 위임했다. 쇼토쿠타이시덴키( 聖 徳 太 子 伝 記 ) 에 는 18인의 악사가 미마지로부터 기가쿠를 배웠는데 이들은 하타노가와가쓰 와 그의 자식 5인과 손자 3인, 하타노가와미쓰( 秦 川 満 )와 그의 자식 2인과 손 자 3인 등 총 15인이 하타씨라고 기술되어 있다. 기가쿠 전수에 하타씨가 상 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마지가 춤을 배웠다는 구레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이영식은 고대에 낙동강 중하류유역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례( 久 禮 )라는 지역으로 보았고, 무라가미 쇼코( 村 上 祥 子 ) 도 여기에 동조하며 쇼토쿠태자가 기가쿠 전습에 힘쓴 것은 한반도계 불교의 영향을 받은 하타씨 때문이라고 했다 16). 또한 최재석은 752년 동대사대불개 13) 南 国 美 保 (2008) 四 天 王 寺 聖 霊 会 の 舞 楽 東 方 出 版, p ) 전문예능집단과 하타씨, 야마부시와 화랑과의 유사관계에 관해 언급되기도 한다. 15) 성은구역주(1993) 日 本 書 紀, 고려원, p ) 村 上 祥 子 (1991) 韓 国 仮 面 劇 と 日 本 伎 楽 の 比 較 研 究 比 較 民 俗 研 究 3, pp.91 92
114 11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안식에서의 기가쿠 복식이 신라 복식임을 밝혀, 미마지 이후 연행된 기가쿠 는 신라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17). 일본서기 에 의하면 덴무천황4년 (685) 신라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츠쿠시의 관세음사( 觀 世 音 寺 )에 서 기가쿠를 행했다고 한다. 신라 사신을 위해 행한 이때의 기가쿠는 백제식 이 아니라 신라식으로 추정된다 18). 하타씨에 의해 전수된 기가쿠는 그들의 조국의 양식을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화랑도를 제도화한 진흥왕이 가무를 중시하여 화랑에게 전수를 명했듯이 쇼토쿠태자도 소년들에게 교습시킬 것을 명했다. 그 주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쇼토쿠태자의 측근인 하타씨였다. 부가쿠의 경우에도 동무( 童 舞 ) 파트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필자는 가무로 서의 치고마이라는 관념이 기가쿠와 부가쿠가 도입되면서 도래계의 영향을 받아 확립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신라 화랑 무용의 성격은 어떠하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화 랑의 성격과 수련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미시나 쇼에이는 화 랑의 성격을 1가무유오를 하는 청년사교클럽과 같은 것. 2국가 유사시에 미소년을 받들어 전장에 나가는 청년 전사단. 3 국가적 사회적 교육을 받는 청년 집회. 4 신령과 통하여 제의를 행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19). 이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화랑도의 성격이 거론되었는데, 대부분 이종욱이 정의 한 무사( 武 事 )ㆍ악사( 樂 事 )ㆍ제사( 祭 事 ) 20) 로 요약되는 듯하다. 화랑의 성격은 수련과정에도 반영되어, 상마도의( 相 磨 道 義 ), 상열가악( 相 悅 歌 樂 ), 유오산수( 遊 娛 山 水 )와 같은 교육을 행하였다. 상마도의는 가무와 신체 수련을 통해 화랑도의 조화로운 전인적 인격 수련을 목적으로 충( 忠 )의 사상 을 실현하자는 것이고 상열가악은 가악으로써 서로 즐기며 조화롭고 성숙된 인간성을 형성해 가는 것으로 제의적( 祭 儀 的 ) 기능에서 그 시원( 始 原 )을 찾기 도 한다. 유오산수라는 것은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기며 명산대천을 찾아 도 의를 닦는 것을 뜻한다 21). 화랑의 가무는 이와 같은 화랑도의 성격과 수련방 식을 포함했을 것이며, 치고마이에서도 유사한 성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무사( 武 事 )ㆍ악사( 樂 事 )ㆍ제사( 祭 事 )로 구분하여 화랑 17) 최재석(1994) 일본정창원의 가면 기악에 대하여 한국외대일본연구, pp ) 전금선(2012) 도래인 하타씨의 고대 예능 연구 비교일본학 27집, pp ) 三 品 彰 英, 이원호역(1995) 新 羅 花 郎 의 研 究 集 文 堂, p.53 20) 이종욱(2003) 화랑 휴머니스트, pp ) 박균섭(2002) 화랑의 교육구상과 수련활동 한국청소년연구13 1, pp
115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11 무용과 치고마이에 관하여 논하기로 하겠다. Ⅲ. 무사ㆍ악사ㆍ제사로서의 화랑가무와 치고마이( 稚 児 舞 ) 1. 무사( 武 事 )로서의 가무 상마도의( 相 磨 道 義 ) 화랑은 국가유사시에 대비하여, 무예를 연마하고 신체수련을 행했다. 화 랑세기( 花 郞 世 記 ) 22) 에는 검술( 劍 術 )이나 말타기( 馬 術 ), 활쏘기( 弓 術 ), 격검 ( 擊 劍 ) 등의 기사가 보이고,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나 삼국사기( 三 國 史 記 ) 에는 창술( 槍 術 )도 언급되고 있다 23). 이 밖에 택껸도 행해졌었다 24). 화랑세 기 에 의하면 신라는 가야 검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 가 문노( )와 김유신( )으로, 이들은 모두 가야계 풍월주로서의 뛰어난 검술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가야의 금속관련 기술과 무예 가 신라에 흡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25). 무예를 무용으로 발전시킨 무무(( 武 舞 )의 대표적인 예가 황창랑무 라는 검무 이다. 동경잡기 에는 검무 의 유 래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황창랑은 신라 사람이다. 전설에 따르면 나이 일곱 살에 백제의 저잣거리에 들어가서 칼춤을 추니 구경꾼이 담장처럼 둘러쌌다고 한다. 백제왕이 이를 듣 고 불러서 보았는데 당 위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황창랑이 그 리하여 칼춤을 추다가 왕을 찔렀다. 백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 사 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 칼춤 추는 형상의 가면을 만 들었는데, 지금도 그것이 전해진다.(동경잡기) 26) 황창랑이라는 인물과 살해된 백제왕이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라 화랑인 관창의 충용담이 와전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27). 화랑에 의해 22) 사료로서의 진위여부에 시비가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술에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 고, 기존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사건 등이 새롭게 등장하는 등 진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본고에서는 화랑세기의 기사를 이용하도록 하겠다. 23) 김권택, 오주성(2011)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라화랑의 무도 무예연구5 2, p.3 24) 전덕재(2005) 신라 화랑도의 무예와 수박 한국고대사연구38, pp ) 김진범, 이인희외(2000) 신라화랑의 신체활동에 관한 연구 대한무도학회지, pp ) 민주면 외 역(2009) 동경잡기 지식을 만드는 지식, p.52
116 11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검무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신체수련을 위해 무기를 이용한 무예무를 추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가야와 신라인의 뛰어난 무예술이 하타씨 일족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8). 곤파루젠치구( 金 春 禪 竹 )의 메이슈쿠슈( 明 宿 集 ) 에는 하타노가와가 쓰의 자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하타노가와가쓰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한명에게는 무( 武 )를 전하고 한 명은 레이진( 伶 人 ), 악( 樂 )을 전하고 한명에게는 사루가쿠( 猿 楽 )를 전했다. 무 를 전한 것은 야마토의 하세가와토( 長 谷 川 党 )이고, 악을 전한 것은 가와치의 사천왕사의 악사이다. 그리고 사루가쿠를 전한 것이 엔만이( 円 満 井 )의 곤파루 다유( 金 春 大 夫 )이다.( 明 宿 集 29) 부가쿠와 사루가쿠 이외에 무( 武 ) 또한 하타씨에 의해 전수되었다는 내용 으로, 이러한 무는 하타씨가 담당하는 부가쿠에서 무구( 武 具 )와 무예동작의 형태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치고마이는 악사와 제사에 비해 무사의 성격이 강하지 않지만 치고에 의 해 행해지는 무예무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치고부가쿠( 稚 児 舞 楽 ) 는 활이나 창, 검, 방패 등의 무구( 武 具 )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타씨 ( 波 多 志 )신사로 유명한 야마나시현 가와구치아사마( 河 口 浅 間 )신사의 치고마 이는 오른손에는 방울을 왼손에는 검을 들고 추는 동작이 한국의 검무와 유 사하다. 또 하타씨의 씨사( 氏 寺 )인 다쿄지( 建 穂 寺 )에 봉납되던 시즈오카현아 사마( 静 岡 縣 浅 間 )신사의 치고마이도 한국의 택껸 동작과 유사한 동작들이 많 아 연관성 연구가 요구된다. 한편 유사시에 대비한 무사로서의 수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가고시 마 헤코니세( 兵 児 二 才 )의 사무라이오도리( 士 踊 り)이다. 가고시마는 하타씨계 도래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요로4년(720)에 일어난 하야토의 반란에서 동족 을 구하기 위해 후젠( 豊 前 )지역으로부터 하타씨 집단이 대거 이주한 곳으로 27) 이병옥(2014) 한국무용통사 고대편 민속원, p ) 6세기 진흥왕의 화랑제도 성립 이전에 이미 가야의 영향을 받은 무예가 발달해 있었음을 의 미한다. 화랑제도가 정비된 6세기 말과 하타씨족이 대거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시기인 5 6세기의 시간차를 신라의 가야문화 흡수로 설명할 수 있다. 29) 梅 原 猛 (2002) 翁 と 河 勝 角 川 學 藝 出 版, pp.22 23
117 신라화랑 가무(歌舞)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稚児舞)의 현황 고찰 (전금선) 113 도 알려져 있다30). 헤코니세의 기원은 이즈미(水出)지역의 헤코니세이다31). 이곳은 하타씨와 관련된 가라쿠니다케(韓国岳)와 한국우두봉신사(韓國宇豆峰 神社), 하치만신궁과 근접해 있다. 미시나 쇼에이는 헤코니세와 신라화랑과의 유사성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화랑집회의 연구에 임해서 청년전사들이 장식한 미소년을 받들었다는 특이한 점에 관해, 이와 거의 흡사한 일본 사쓰마(薩摩藩)의 헤코니세(兵児二才)제도 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헤코니세 란 봉건시대 사츠마 각지에서 행해졌던 사족(士族)의 젊은이조합이다.(중략) 2, 3명의 명문출신의 미소년에게 긴 명주옷을 입혀 아름답게 화장한 자를 도리모치고 로 부르며 이를 받들었 던 것이다32). 이에 대해 오오와 이와오(大和岩雄)는 헤코니세의 원류는 신라화랑이고 그 직접적 연관관계는 하타씨에 의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33). 헤코니세가 추었 던 사무라이오도리는 시마즈타다요시(島津忠良: )의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34). 예능에서의 창조라는 것은 전통에 기인하 기 때문에 원래 이지역에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마즈(島津)가도 하타씨의 후손(하타씨 고레무네우지(惟宗氏) 시마즈타다시하(島津忠久))으 로 알려져 있으므로, 헤코니세의 사무라이오도리와 하타씨예능, 그리고 화랑 가무는 충분히 연결해 볼 가치가 있다. 사례: 사무라이오도리(士踊り)의 연행 형태 사무라이오도리는 매년 7월23일 가세다시다케다(加世田市竹田)신사에 봉 납되는 가고시마의 무형민속문화재로, 청년이 추는 니세오도리(二才踊り)와 소년이 추는 치고오도리로 구성되어 있다. 30) 大和岩雄(2009) 日本にあった朝鮮王國 謎の秦王國と古代信仰 白水社, pp ) 西中研二(2012) 薩摩兵児二才と新羅花郎徒の比較研究 筑波大学博士学位論文, pp ) 三品彰英, 이원호역(1995) 新羅花郎의研究 集文堂, pp ) 大和岩雄(2009) 日本にあった朝鮮王國 謎の秦王國と古代信仰 白水社, pp ) 東元ろか(2007) 士踊の伝承と保存について お茶の水音楽論集第9号, pp.2 4
118 114 比較日本學 第32輯 ( ) <표. 2> 사례: 사무라이오도리(士踊り)의 연행 형태(필자 작성)35) 1. 헤코오도리4명의무인 이한발씩천천히내밀며 배전으로행진한후왼발 오른손을붙여배례한다. 2. 제위치에서면나머지 사람들은이중의원을만 들고안쪽은우측으로바 깥은좌측으로한발씩밟 으며돈다. 3. 일시정지하고손을위 로올려앞으로한발뒤 4. 세번제자리에서높이 뛰며 6열종대에서기마자 로한발씩내고위에서박 수를치며양쪽으로한걸 세를한다. 팔을앞으로하 여무릎을굽히고앞뒤로 음씩옮긴다. 바꾸며뛴다. 5. 한발씩차례대로천천 히 들면서 발을 구른다. 6. 니세가 배전에 배례하 고퇴장하면치고가다이 방향을바꾸며뒤로뛰며 다시좌우로발을높이들 며구른다. 코와가네를치며일열로 등장한다. 3열로 좌측 원 을돈다. 7. 기수를선두로하여미 8. 북을앞으로내밀고, 양 치유키를 연주하면서 원 을만들며걷는다. 다이코 발을차례로앞쪽으로내 면서원을그리며돈다. 북 모치가1열로선후선두에 서북을친다. 을 두번친후같은동작 반복한다. 9. 경내를 5 6번 돌고 난 후, 다이코와가네를연주 하면서춤의진을바꾼다. 10. 일렬로북을친다. 차 례로북을내리고, 좌측에 서가네를연주한후, 인사 하고퇴장한다. 논자가 관찰한 춤의 특징은 6열이나 3열, 원진 등의 다양한 춤의 진이 나타나고, 비교적 간단한 동작이지만 스모동작을 이용한 단체 수련무의 성격이 강하며, 다 이코와 가네를 조화롭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행연구들에 의해 헤코니세와 화랑과의 연관성이 거론은 되었지만, 가무 35) 2010년7월23일 여름마쓰리(夏祭り) 영상 8&fr= top_ga1_sa&p=%e5%a3%ab%e8%b8%8a%e3%82%8a
119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15 의 연행형태면에서 볼 때 화랑가무와의 직접적인 연결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단 화랑가무의 단체 수련무, 전투시의 용고를 이용한 춤의 연행가능성에 대하여는 참고가 될 만하다. 오히려 무사로서의 가무는 부가쿠 에서 연행되는 무예무에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2. 악사( 樂 事 )로서의 가무 상열가악( 相 悅 歌 樂 ) 화랑도가 제도화된 진흥왕대에 이르러 신라의 가무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진흥왕은 재위12년(551)에 가야에서 망명한 우륵과 그의 제자 이문을 수용하 여 음악을 제작하게 했고 다음 해에는 게고와 법지, 만덕 세 사람을 우륵의 제자로 삼아 가야금과 노래, 춤을 전수하게 하였다. 또 팔관회를 육성하고, 가야문화를 수용하여 전문 예술가를 양성하는 등 예술을 장려했다 36). 화랑 중에서 특히 10세 풍월주 미생랑은 춤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화랑세기 의 미생랑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미생은) 당시 나이가 겨우 12살이었는데 말에 오를 수 없었다. 미진부공이 쫒 아내려 하자 미실이 말하기를 어찌 나의 아우를 한 번에 내칩니까. 하였다. 사다함 또한 부득이 받아들였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란 자의 힘이 말에 오를 수 없고, 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하루아침에 일을 당한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 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37) 미생랑은 진흥왕이 총애했던 미실의 아우로, 비록 말과 검을 다루지는 못 했지만 춤에는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낭도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랑도에서의 가무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미생랑은 왕 이 여러 번 불러 입궁하여 동태자, 금태자와 함께 춤을 배우게 하였다. 미생 랑은 만덕에게 춤을 배워 그 근본을 터득하였다 38) 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의 화랑가무와 신라궁정가무는 동질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신라궁정가무는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부가쿠의 일부로 편입된다. 초기에는 36) 김효분(2004) 신라무용의 발달과정 대한무용학회논문집39호. pp ) 김대문, 조기영 역(1997) 화랑세기 : 화랑세기 및 화랑외사 장락, pp ) 이종욱(2002) 신라화랑도의 활동 서강인문논집제16집, p.71
120 11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궁정부가쿠로 형태로 재정비되어 주로 궁정이나 대사원에서 연희되었고, 후 에 지방으로 확산되어 지역 민속예능으로 발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치고부가 쿠이다. 39). 한편 궁중부가쿠는 우방( 右 方 )과 좌방( 左 方 )으로 체계화되었고, 그 중 한국 계의 악은 우방이 담당하였다. 악가록( 樂 家 錄 ) 에 의하면 교토의 무( 舞 )는 오오가( 多 家 )가, 사천왕사의 우무( 右 舞 )는 하야시가( 林 家 )와 도기가( 東 儀 ( 太 秦 ) 家 )가 담당하고 있었다 40). 이들은 모두 하타씨 관련 악인들로, 교토의 오 오가( 多 家 )의 선조인 오오노시넨마로( 多 自 然 麻 呂 )는 하타씨가 오오씨의 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41). 또한 사천왕사의 악가는 도기( 東 儀 ), 하야시( 林 ), 소노( 薗 ), 오카( 岡 )의 4가문으로 구분되는데 이들도 하타노가와가츠를 선조로 하고 있다. 도기( 東 儀 )가는 하타노가와가쓰의 4남을 계승하여 우무와 좌무를, 소노가는 차남으로 좌무를, 하야시가는 3남으로 우무를, 오카가는 8남으로 좌 무를 담당한다 42). 현재 부가쿠는 명치3년(1871) 삼방악소가 해체되고 궁내청 악부에 흡수되었지만, 관문5년(1665)부터 실시된 자격시험제도로 인해, 악인 들에게는 가무를 보존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원형이 유지된 채 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하타씨 악인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하타씨 계 통을 주장하는 악인들의 의해 고대의 형이 유지되어 온 부가쿠에 신라의 가 무가 일부 전수될 법도 하다. 한편, 악사의 기능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전술했던 갓코치고마 이이며, 그 대표격은 기온마쓰리( 祇 園 祭 )이다. 기온마쓰리가 열리는 야사카신 사는 야사카향진좌대신기( 八 坂 鄕 鎭 座 大 神 記 ) 에 의하면 스이메이2년(656) 에 한국( 韓 國 )의 조진부사 이리시오미( 伊 利 之 使 主 ) 43) 가 신라국우두산( 新 羅 国 牛 頭 山 )에 진좌한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모셔와 창건했다고 전한다 44). 에이가 쿠요키( 叡 岳 要 記 ) 에는 엔랴쿠13년(794)의 엔랴쿠지( 延 暦 寺 ) 초도공양의식에 참가한 악인 66인이 모두 하타씨로 기술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나라ㆍ헤 이안 시대에는 하타씨가 악인으로서 의례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39) 神 田 より 子, 俵 木 悟 (2010) 民 俗 小 事 典 神 事 と 芸 能 吉 川 弘 文 館, p ) 今 岡 謙 太 郞 (2008) 日 本 古 典 藝 能 史 武 藏 野 美 術 大 學 出 版 局, pp ) 大 和 岩 雄 (2006) 秦 氏 の 研 究 大 和 書 房, pp ) 南 国 美 保 (2008) 四 天 王 寺 聖 霊 会 の 舞 楽 東 方 出 版, p.122, p ) 이리시오미는 고구려인( 狛 人 )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감신원우두천왕고( 感 神 院 牛 頭 天 王 考 ) 에는 666년 가야인이 고구려 조진사로 내조하였다고도 전한다.(박규태, 쪽) 44) 紀 繁 継 (1870) 八 坂 社 旧 記 集 録 上 近 代 デジタルライブラリー, p.9
121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17 데 45), 엔랴쿠지의 말사였던 야사카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기온마쓰리 의 기원은 조간11년(869) 역병퇴치를 위해 행해진 기온어령회이며, 당시 교 토의 가장 유력한 호족이었던 하타씨의 경제적 후원 하에 하타씨 악인에 의 해 의례 예능이 진행되었고, 마쓰리가 열리는 야마보코쵸는 하타씨 주거지의 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타씨 상인들이 역할도 상당했다 46). 갓코치고마이( 羯 鼓 稚 児 舞 )는 야마보코 순행시 선두에 서는 나기나타보코 ( 長 刀 鉾 )의 치고가 피로하는 춤이다. 원래는 부채를 들고 노래를 읊으며 허리 에 찬 갓코를 두드리며 추는 치고구세마이( 稚 児 曲 舞 )의 형태였는데 이후에 야마보코에 올라타서 추게 되었다. 15세기 중반에 그려진 월차제례도모본( 月 次 祭 礼 図 模 本 )에는 니시진( 西 陣 )의 오오도네리자( 大 舎 人 座 )가 조진한 가사사 기보코( 笠 鷺 鉾 )에서 행해지는 갓코치고마이가 그려져 있다 47). 이 그림에 등 장하는 오오도네리좌는 하타씨계의 직물직인집단을 뜻하는데, 갓코마이를 추 는 사람들도 동족계로 추정된다. 타이류이치( 田 井 竜 一 )는 이들을 하층의 전 문예능집단인 산소( 散 所 )의 예능자로 보았다. 16세기 후반부터 춤의 주체가 유력씨자의 자제로 바뀌면서, 춤이 단순화되고 신성화되었지만 원래는 산소 의 예능인이 갓코치고마이를 담당했다는 것이다 48). 이러한 산소예능은 하타 씨가 신봉하는 하치만신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도래계일 가능성이 있다 49). 또 한 이들이 모시는 하쿠다유( 白 太 夫 )신이 하타씨가 모시는 시라야마( 白 山 )신 앙과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고대 일본으로 도래한 한국계 재인( 才 人 )집단이 하타씨의 통제하에 들어가거나, 스스로 하타씨와 결탁한 형태로 한국의 예능 을 도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50). 이후 기온마쓰리의 갓코치고마이는 산소의 예능자나 하타씨 상인에 의해 전국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결국 의식의례에서 시작된 치고마이는 하층 예인집단의 영향을 받으면서 갓코치고 마이의 형태로 변형되었고, 이후에 다시 야마보코쵸의 유력 집안 소년이 추 게 되면서 현재와 같은 신성화된 춤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45) 井 上 滿 郞 (2011) 秦 河 勝 吉 川 弘 文 館, p ) 전금선(2011) 처용무와 기온마쓰리의 연관성 고찰 비교일본학제25집, pp ) 東 京 国 立 博 物 館 画 像 検 索 48) 植 木 行 宣, 田 井 竜 一 (2010) 祇 園 囃 子 の 源 流 岩 田 書 院, pp ) 윤광봉(2009) 일본의 신도와 가구라 태학사, p ) 大 和 岩 雄 (2006) 秦 氏 の 研 究 大 和 書 房, p.426
122 11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사례: 기온마쓰리의 치고마이 현재의 연행형태에 관하여는 2014년의 7월의 현지조사51)를 토대로 간략히 언급하겠다. 치고마이는 7월5일 나기나타쵸회관(長刀町會所)과 7월17일 야마 보코 순행시에 행해진다. 일명 태평의 춤(太平の舞) 으로 마쓰리의 무사진행 과 오곡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52) 이 춤은 야마보코 순행에서 선두에 서는 나기나타보코(長刀鉾)의 치고가 추는데, 매년 씨자에서 10세 전후의 소 년 중에 선택되며, 춤 이외에도 다양한 제의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7월 1일에는 야사카신사 참배하는 나가나타쵸오센도(長刀鉾町お千度)를, 5일에는 깃부이리의례(吉符入の儀)를, 13일에는 헌상품을 실은 백마(白馬)를 대동하 여 야사카신사에서 대명의 직위를 받는 의례를 행한다. 이때부터 치고에게는 야마보코 순행이 끝날 때까지 땅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금기가 주어진다. 17 일의 야마보코 순행은 선두에 선 나기나타보코 치고가 치고마이를 춘 후, 시 메나와(注連縄)를 자르면서 시작된다. 이외에 구세고마가타(久世駒形)치고, 우마오사(馬長稚児)치고53)가 있는데, 구세고마가타치고는 신코사이(神幸祭) 와 칸고사이(還幸祭)에서 미코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가장 역사가 오래 된 치고이다54). 2014년의 춤의 연행 형태는 <표. 3>과 같다. <표. 3> 사례: 기온마쓰리의 치고마이(필자 작성) 1. 치고, 양쪽에는 가무로(禿) 2명, 뒤에는 보조인이 위치한다. 정 례를 하고, 채를 X자로 하여 왼쪽 앞으로 몸을 힘있게 내민다.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때 어른이 잡아주며, 오른쪽 가무로 가 부채로 동작을 같이 한다. 2.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몸을 옮긴다. 오른쪽 가무로의 부채도 동선을 같이 따라서 반원을 그린다. 51) 현지조사일: 2014년 7월 17일, 23 24일. 사진: 2014년 7월 5일 52) 中田昭 (2011) 京都祇園祭 京都新聞出版センター, p.25 53) 24일의 하나가사순행(花傘巡行)시 화려한 복장으로 말을 타고 행렬을 이루는 치고이다. 54) 八木透(2002) 京都の夏祭りと民俗信仰 昭和堂, pp.96 99
123 신라화랑 가무(歌舞)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稚児舞)의 현황 고찰 (전금선) 몸을 정 가운데로 옮기고 양팔을 벌려 원을 그리며 천천히 내 린다. 이어 양손을 갓코가 있는 쪽으로 옮긴다. 4. 갓코를 두 번 친다. 다시 채를 X자로 하고 이번에는 오른쪽으 로 몸을 앞으로 내민다. 왼쪽 가무로의 부채도 따라간다. 오른쪽 으로 몸을 옮기며 동작을 반복한다. 아주 단순하지만 신성한 요 소가 있는 춤이다. 갓코를 매고 채를 든 치고와 부채를 든 가무로(禿)가 단순한 동작을 하지 만, 신성하고 제의적 요소가 강한 춤이었다. 궁정예능인에 의해 행해진 의례 가무가 이후에 서민화되어 하층 예능의 복합요소와 결합했지만, 치고가 추게 되면서 신성함을 되찾았던 것이다. 특히 하타씨 관련 직인과 산소 예능인의 영향을 받으며, 초기 치고마이에서 많은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발달 해 왔다. 백색화장을 한 치고가 이끄는 제례의식은 화랑의 형태와 아주 흡사 하다. 그러나 춤의 경우에는 발생초기의 연행 형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연행형태와 화랑가무와의 연광성을 언급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 어 보인다. 그러나 갓코와 요고(腰鼓)와의 상관관계 또는 화랑의 요고춤에 관 하여는 타진해 볼 필요가 있겠다. 3. 제사(祭事)로서의 가무 유오산수(遊娛山水) 신라는 삼산오악으로 대표되는 산악신앙이 발달한 나라이다. 이러한 점에 서, 신라화랑의 유오산수 는 단순히 가무를 행하고 산을 즐긴 것이 아니라 산악신앙과 관련된 가무의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채호가 화랑을 솟대제단의 무사라고 정의한 것도 이들이 산악신앙을 신 봉하는 무격신앙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55). 미시나 쇼에이는 화 랑의 유오산수 에 대하여 고대인의 놀이 라는 말이 단지 오락적 행위만을 지칭한 것이 아닌 넓게는 주술적 종교적 행위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화랑이 산수에 유오하는 행사는 종교적 의의가 있었다고 쉽게 추측된다. 고 하였 55) 손인수(1996) 앞의 책, pp
124 120 比較日本學 第32輯 ( ) 다56). 그 대표적인 것이 산신제이며, 고대 문헌에서 상염무와 옥도령, 지백급 간, 산해정령 등과 같은 산신제와 관련된 신라 춤을 볼 수 있다57). 특히 사선 무(四仙舞)는 신라 효소왕 때 사선랑(四仙朗)이었던 영랑과 안상, 술랑, 남랑 의 춤으로, 진연의궤 에 기록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 때에 영랑(永郞)ㆍ안상(安祥)ㆍ술랑(述郞)ㆍ남석행(南石行)이라는 화랑이 있었는데, 함께 산수를 오유(滶遊)하여 사선(四仙)이라 불렸다. 금강산에 무선 대가 있는데, 전하는 말에는 네 사람이 여기서 취해 춤추었다고 한다.(진연의 궤)58) 화랑의 유오산수에 관한 내용으로, 사선무는 단절되어 한 때 추어지지 않 았으나 순조29년(1829)에 효명세자가 이 내용을 근거로 다시 창제하였다59). 그러므로 신라당대의 원형은 알 수 없으나, 선(仙) 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이 춤은 산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하타씨도 산을 숭배하여, 그들이 거주했던 곳에는 시라야마(白山)나 히코산(彦山), 가라쿠니다케(韓国岳)와 같은 성산이 있었다. 특히 하타씨는 시라야마(白山)신앙을 숭배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규슈와 가가(加賀:이 시카와현)의 시라야마이다. 가가의 시라야마 신앙은 현재의 하쿠산(白山:구명 칭 시라야마)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단군신앙이나 화랑신앙과 관련된 태백 산과 소백산과의 관련성이 언급되기도 한다60). 이곳은 요로원년(717)에 하타 노타이쵸(秦泰澄)가 개산(開山)한 이래 산악수험의 영산이 되었다. 타이쵸의 부친인 미가미노야스즈미(三神安角)는 하타씨로,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호쿠리쿠(北陸)지역은 한국과 일본의 해역교류의 최적의 장소이며 한국 동해 안을 남하한 문물이 유입되기 쉬인 곳이다61). 신라와의 교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라의 산악신앙과 일본의 수험도(修験道), 화랑과 야마부시(山伏)에도 유사성이 있다62). 일본 산악신앙인 수험도는 규슈에 있 56) 三品彰英, 이원호역(1995) 新羅花郎의研究 集文堂, p ) 이송(2008) 신라춤과 산신신앙 연구 우리춤연구제7집, pp )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 高宗辛丑進宴儀軌 한국예술종합학교, p ) 아훙구, 손경순(2010) 한국궁중무용총서12 보고사, p ) 中野幡能((1987) 英彦山と九州の修験道 名著出版, p.23 61) 前田速夫(2010) 渡来の原郷 現代書館, pp ) 박선수(2010) 韓國과 日本의 祭天文化 比較 선도문화제8집, pp.31 53
125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21 는 히코산( 彦 山 )에 전래된 후 구마노( 熊 野 )를 비롯한 영산으로 전해졌다. 히 코산에 처음 수험도가 들어온 이유는 이 산이 하타씨의 성산이기 때문이 다 63). 즉 하타씨가 신라계이기 때문에 화랑의 산악신앙을 이곳에 열었다는 해석이다. 또한 수험도의 조신( 祖 神 )으로 알려진 엔노오즈누( 役 小 角 )는 하타씨와 관 련된 씨족인 가모씨( 賀 茂 氏 ) 64) 로 알려져 있다. 니혼료이키( 日 本 霊 異 記 ) 에 는 엔노오즈누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등장한다. 백제계 도래 고승인 도쇼 ( 道 昭 )가 당에서 귀국할 때 일부러 신라에 들려,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엔노 오즈누를 만났다고 한다. 도쇼는 백제계로서 스이메이조는 백제와 동맹관계 에 있었지만 굳이 신라에서 만났다는 것은 수험도의 개조가 신라 산악에 있 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65). 히코잔류키( 彦 山 流 記 ) 에는 미륵의 화신은 천동( 天 童 )의 모습을 하고 있 다. 미륵신앙은 산악신앙과 더불어 신라의 대표적인 신앙이었다. 신라의 미륵 신앙은 토속신앙인 용왕신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신라에 서 미륵신앙이 유행하였다는 것은 진지왕대 국선인 미시랑이 하생한 미륵으 로 간주되었다는 삼국유사 의 기록과, 김유신의 무리를 용화향도라고 불렀 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미륵신앙은 화랑 제정과 함께 정치에 적용되어 국 정의 정신적 지주로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원동력이 된 미륵정토화 라는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66). 하타씨는 특히 미륵신앙을 신봉하였다. 쇼토쿠 태자로부터 명받은 한국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모시기 위해 고류지( 広 隆 寺 ) 를 창건한 것도 하타노가와가쓰( 秦 河 勝 )이다 67). 한편 행렬을 이끌며 의례를 행하는 치고는 고대풍의 백색화장을 하는데, 이것은 화랑에게도 발견된다. 혜공왕4년(768) 당의 사신으로 신라에 왔던 고 음( 顧 愔 )의 관찰 기록인 신라국기( 新 羅 國 記 ) 에 의하면 귀인의 자제 중에 서 아름다운 사람을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화랑이라 이름하여 사 람들이 모두 높이 섬긴다. 라고 했다. 이처럼 화랑이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 63) 大 和 岩 雄 (2006) 秦 氏 の 研 究 大 和 書 房, pp ) 엔노오즈누는 가모엔노키미오즈누( 賀 茂 役 君 小 角 )로 가모씨이며, 가츠라기잔( 葛 城 山 )계통의 가모씨( 賀 茂 氏 )이다. 계보에 의하면 이 가모씨는 후에 다카카모씨( 高 賀 茂 氏 )의 성을 가져서 음양도의 종가인 가모씨로 계승되었다. 65) 大 和 岩 雄 (2006) 앞의 책, pp ) 김혜완(1978) 신라의 화랑과 미륵신앙의 관계에 대한 연구 수선사학회, p ) 박규태(2010) 고대 교토의 한반도계 신사와 사원 연구 비교일본학제23집, pp
126 12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하는 것은 미륵불의 우미장엄한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여, 국토 인민의 면목 을 도화처럼 아름답기 위해서라는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다 68). 이상에서 시라야마신앙이나 수험도, 미륵신앙에 나타나는 하타씨나 신라화 랑과의 관련성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호쿠리쿠 지역은 비교적 이러한 조건 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엣츄( 越 中 )지역은 하쿠산( 白 山 )을 비롯한 다테야마 연봉이 위치한 곳으로, 치고마이가 가장 많이 남아있 는 곳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이 것이 시모무라가모( 下 村 加 茂 )신사, 우나즈키 쵸아케(( 宇 奈 月 町 明 日 ), 구마노신사( 熊 野 神 社 )의 치고마이이다 69). 대부분 치 고부가쿠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기가쿠를 전제로 한 가미가타( 上 方 )계의 부가쿠가 수험가구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야마부시 신앙과의 관계 속에서 전 승되어 왔다 70). 이 중에서 시모가모무라신사( 下 村 加 茂 神 社 )는 도야마 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이미즈시( 射 水 市 )에 위치해 있다.(현지조사:2010년 9월 4일, 2014년 11월 10일). 신사 입구의 안내판에는 1066년 현재 위치에 세워졌으며 교토의 가모미오야( 賀 茂 御 祖 : 下 鴨 )신사의 어신영이었던 구라가키노쇼( 倉 垣 庄 )의 총사였던 곳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교토의 가모신사의 가모씨는 하타 씨와 관련된 성으로 하타씨혼케이쵸( 秦 氏 本 系 帳 ) 에 의하면 하타씨 여성이 화살에 감응하여 가미가모신사의 제신인 와케이카즈치노카미( 賀 茂 別 雷 神 )를 낳았고 그녀 자신은 시모가모신사의 제신 미오야노카미( 御 祖 神 )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가모 신사의 제사를 하타씨가 관장해 왔는데 가모씨를 사위로 맞이하면서 양도했다는 것이다. 71) 엄밀히 말하면 이 신사도 하타씨와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례: 시모무라모신사( 下 村 加 茂 神 社 )의 치고마이 시모무라가모신사 치고마이의 연행 방식에 관하여는 현재 전수스승인 이 가라시 키요시( 五 十 嵐 清 )씨의 인터뷰내용을 참조하도록 하겠다 72). 68) 박균섭(2006) 화랑제도에 대한 일본인연구자들의 시각비판 교육학연구44 2, pp ) 国 指 定 文 化 財 等 データベース( 文 化 庁 ) 70) 富 山 県 教 育 議 員 会 (2006) 中 部 地 方 の 民 俗 芸 能 1 4 海 路 書 院, p ) 박규태(2009) 앞의 논문, pp , pp ) 인터뷰: 1014년 11월 10일
127 신라화랑 가무(歌舞)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稚児舞)의 현황 고찰 (전금선) 123 제가 사는 도야마현이미즈시(富山県射水市)는 오랜 역사와 전통문화가 계승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치고마이로서, 매년 9월3일과 4일의 아키 마쓰리(秋のお祭り)때 전통방식으로 새로 설치한 특별무대에서 행해집니다. 저는 올해부터 치고마이 전수스승(師匠)이 되었는데 이 지역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4명을 선정하여, 오오치고(大稚児) 2명과 고치고(小稚児) 2명로 삼은 후, 8월20 일 신사에서 의식을 치른 후 2주간 매일 6시간 연습을 시킵니다. 당사의 치고마 이는 약 950년 전에 교토의 시모가모(下鴨神社)신사로부터 전해져 왔다고 알려 져 있습니다. 다른 곳의 치고마이와 차별되는 점은 전수스승으로부터 전수스승 에게 직접 전수되어 옛 춤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의상은 곡목마다 전 부 바뀌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운 춤으로 부가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체를 통한 전수과정을 거치며 옛 원형을 유지한 춤이 지금 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치고마이는 땅을 밟지 않고 어른의 목 말을 타고 이동하거나, 나라시대 풍의 연지를 찍는 백색화장을 하는 등 옛 전통의 전형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다73). 이 지역의 산악신앙의 영향도 강 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74). 이미즈시(射水市)의 문화재 담당 마쓰야마 미쓰히로(松山充宏)씨로부터 입 수한 시모무라가모신사의 연중행사(下村加茂神社の年中行事)75)의 영상과 현 지조사를 참고하여 연행 형태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먼저 오전 1시에 제전에 봉제를 거행한 후 어른 어깨에 타고 신사로 향한다. 이때 다음해 치고로 선 정된 장대 잡이 소년이 선두에서 길을 인도한다. 2시부터 호코노마이(鉾の舞) 에서 고쵸노마이(胡蝶の舞)까지 6곡을 춘 후, 나카이리(中入り)하고 연달아 3 곡을 춘다. 짧게는 5분 길게는 9분으로 총 3시간 30분동안 치고들은 의상을 바꾸며 9곡을 피로한다. <표. 4> 사례: 시모무라모신사(下村加茂神社)의 치고마이(필자 작성) ① 창춤(鉾の舞) 소치고2명 첫 연목으로 무대를 정화하는 춤. 나무로 된 창을 들고 악귀를 퇴치하는 춤이다. 창을 휘두르는 모양을 천지인을 상징, 9곡 중 가장 길다. (관찰: 창을 세워 원을 크게 3번 그린다. 창을 위아래로 3번 그린다. 갑자기 빨라 지며 창을 들고 왼쪽 오른쪽 옆으로 뛴다.) 73) 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文化庁) 74) 富山県教育議員会(2006) 中部地方の民俗芸能1 4 海路書院, pp ) 地域伝統芸能等保存事業(2008), 下村加茂神社の年中行事DVD, 有限会社ビデオワーク
128 124 比較日本學 第32輯 ( ) ② 린가(林歌) 대치고2명 소치고 2명 총 4명 가장 짧은 연목으로 무악의 린가의 영향을 받은 춤이다. (관찰: 달려서 무대 하고 원을 그리며 뛴다. 일렬로 서서 오른팔로 원을 그리고 왼쪽에서 반복한 다. 뒤꿈치 들었다 놓으면서 춤을 추며 앉아서도 춘다.) ③ 고나소리(小奈曽利) 소치고2명 나소리에서 만들어진 춤으로 우아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동작은 활발하며 부 드럽다.(관찰: 두명이 마주 보고 앉는다. 부채 들고 서서 두 명이 서로 잡아 당 기는 동작, 튕겨나가는 동작, 부채 잡고 돌기 등을 하며 원을 그리며 뛰다가 퇴장한다.) ④ 가코노마이(賀古の舞) 대치고 2명 칼과 활을 들고 힘차게 추는 춤으로 악령을 퇴치하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관찰: 칼을차고활을어깨에매고춤 한발을세게밟는동작 활을쏘는동작 앞뒤로 한 번씩 발을 힘차게 구르는 동작이 많음) ⑤ 덴노마이(天の舞) 대치고 1명 유일한 독무로, 가면을 쓰고 춘다. 리드미컬한 변화가 많은 춤이다.. (관찰:: 오른손무구를들고원을그림 상체를숙이는동작이많음 숙이고앞으로나 갔다가 원을 도는 동작 많음 상체 숙여 앞으로 뛰었다가 양팔을 돌리며 위로 가는 동작 반복 ⑥ 고쵸노마이(胡蝶の舞) 대치고2명 소치고2명 무악의 고쵸에서 발생한 춤으로 가장 유명하다. 등에 날개를 달고 국화관을 쓰고 모란꽃을 들고 춘다. (관찰: 우아한 앞으로 뛰어서 나가서 한발씩 뒤로 물러나는 형태가 많음 나비를 형상화 함 어린이다운 춤) ⑦ 오오나소리(大奈曽利) 대치고 2명 소나소리에 대비하여 대나소리라고 부른다. 가면과 붉은 색 가발을 쓰고 춤 춘다. 활달한 동작이 많은 해학적인 춤이다.. (관찰 한발을 까딱까딱 하는 것 이 특징이다. 원을 그리며 뛰면서 퇴장한다. 두 마리의 용이 같이 노는 듯한 해학적인 춤) ⑧ 에비스노마이(蛭子の舞) 소치고2명 에비스신이 낚시를 하는 춤으로, 피리 반주에 맞추어 천천히 바다에 근접하 는 동작이나 낚아 올렸을 때 기뻐하는 동작 등을 한다. (관찰: 뛰는 동작과 모 방 동작이 많고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가장 어린이다운 춤이다.) ⑨ 바이로(陪臚) 대치고2명, 소치고2명 무악에서 발생한 곡으로 칼과 방패를 이용한 용맹스러운 춤이다. 마지막 동 작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관찰 네 명이 모였다 퍼졌다 하며 양손의 무구로 원을 그리거나 왼쪽 오른쪽으로 돌린다. 제자리에서 돌 고 한발 올리는 동작이 한국과 유사하다.)
129 신라화랑 가무( 歌 舞 )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 稚 児 舞 )의 현황 고찰 (전금선) 125 호코노마이( 鉾 の 舞 ), 린가( 林 歌 ), 고나소리( 小 奈 曽 利 ), 오오나소리( 大 奈 曽 利 ), 고쵸( 胡 蝶 ), 바이로( 陪 臚 ) 등의 한반도 우방계 춤이 많았다. 물론 이 지 역의 문화와 결합되면서 재창조의 형태로 전승되는 부분도 많지만, 나소리 등의 동작에서 한국 발동작을 비롯한 유사한 동작들이 발견된다. 또한 중앙 에서 전해진 부가쿠와 습합된 이 지역의 산악관련 예능을 분석한다면, 중앙 과 지방에서 전해지는 신라 관련 예능의 습합이라는 점에서의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Ⅳ. 사례지의 종합 결과 신라화랑에게는 가무가 중시되었는데, 이러한 화랑의 가무는 궁중가무의 형태로 일본에 전해져 하타씨계 악인들에 의해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화랑의 가무는 화랑도의 성격을 반영하였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무사 ( 武 事 )ㆍ악사( 樂 事 )ㆍ제사( 祭 事 )로 분류하여 화랑 가무와 치고마이를 하타씨 를 매개로 하여 고찰하였다. 첫째, 무사적 기능으로서, 무예무와 헤코니세의 사무라이오도리에 관하여 논하였다. 고대의 원형이 유지된 상태로 전승된 무예무가 다수 존재하고 있 었으며, 이중에서 하타씨와 관련된 치고마이와 치고부가쿠에서의 무예무는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헤코니세의 사무라이오도리와 화랑가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동작적인 연결 가능성에는 의문이 들지만 화랑의 단 체수련가무 연구에는 참조가 될 만하다. 둘째, 악사적 기능으로서, 부가쿠와 기온마쓰리의 갓코치고마이에 관하여 논하였다. 신라에서 도입된 부가쿠는 신라궁중가무로서 화랑도가 행했던 가 무와 동질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부가쿠는 하타씨 악인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치고부가쿠는 특히 연관성이 있다고 여겨진 다. 이에 비해 갓코치고마이는 하층의 하타씨 집단과 관련된 것으로 많은 변 형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화랑가무와의 연결가능성은 낮았다. 단 화랑의 요고 춤에 관하여는 타진해 볼 만 하다. 셋째, 제사적 기능으로서, 시모무라가모신사의 치고부가쿠에 관하여 논하 였다. 호쿠리쿠 지역의 치고마이는 하타씨 관련의 부가쿠가 전래되어 이 지 역의 산악신앙과 수험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화랑과 유사한 백색화장이나
130 12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한국과 유사한 춤동작이 발견된다. 이지역의 치고부가쿠와 화랑가무 사이에는 관련성은 다음과 같다. 1. 신라계 하타씨 전래 전수의 부가쿠의 영향을 받았다. 2. 화랑이나 하타씨와 관련된 시라야마신앙과 수험도의 영향을 받았다. 3. 활이나 검, 방패, 창을 이용한 부가쿠류의 무예무가 많다. 4. 나라시대풍의 분장법과 고대의 춤 동작 등의 유풍이 전해진다. 5. 지리적으로 신라와의 해상 교류가 용이한 위치에 있다. 위의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호쿠리쿠지역의 치고부가쿠와 화랑가무 사이 에는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동해안지역과의 실질 사례의 비 교 연구 대상지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이므로, 구 신라 지역의 검무를 비롯한 무예무와 동해안 지역의 의례와의 비교연구 등, 동작적인 측면에서의 후속 비교 연구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김권택(2011) 신라화랑의 기원에 대한 재해석 무예연구5 1, pp.1 15 김권택 오주성(2011)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라화랑의 무도 무예연구5 2, pp.1 26 김대문(1999) 화랑세기 미생랑 조 김종욱(2000) 신라이야기 김영사. 김진범, 이인희, 윤동식(2000) 신라화랑의 신체활동에 관한 연구 대한무도학회지, pp 김혜완(1978) 신라의 화랑과 미륵신앙의 관계에 대한 연구 史 林, pp.7 39 김효분(2004) 신라무용의 발달과정 대한무용학회논문집39호, pp 민주면 외 역(2009) 동경잡기 지식을 만드는 지식, p.52 박규태(2009) 교토와 도래인: 하타씨와 신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문화연구45, pp 박규태(2010) 고대 교토의 한반도계 신사와 사원 연구 비교일본학23, pp 박균섭(2006) 화랑제도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시각비판 한국교육학회44 2, pp 박선수(2010) 韓 國 과 日 本 의 祭 天 文 化 比 較 선도문화8, pp 성은구역(1993) 日 本 書 紀, 고려원 손인수(1996) 신라화랑의 공간 문음사 송수남(1988) 한국무용사 금광 윤광봉(2009) 일본의 신도와 가구라 태학사 이병옥(2014) 한국무용통사 고대편 민속원 이송(2008) 신라춤과 산신신앙 연구 우리춤과 과학기술7, pp.9 33 이종욱(2000) 신라이야기, 김영사 이종욱(2002) 신라화랑도의 활동 서강인문논집제16집, pp 아훙구, 손경순(2010) 한국궁중무용총서12 보고사 전금선(2011) 처용무와 기온마쓰리의 연관성 고찰 한양대 비교일본학25, pp
131 신라화랑 가무(歌舞)연구를 위한 일본 치고마이(稚児舞)의 현황 고찰 (전금선) 127 전금선, 김옥순(2012) 스사노오와 신라와의 연관성고찰 대한무용학회논문집, pp 전금선(2012) 도래인 하타씨의 고대 예능 연구 비교일본학 27집, pp 전덕재(2005) 신라 화랑도의 무예와 수박 한국고대사연구, pp 정약용, 정해렴 역(2005) 아언각비, 이담속찬 현대실학사, p.159 최재석(1994) 일본정창원의 가면 기악에 대하여, 한국외대일본연구, pp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 高宗辛丑進宴儀軌 한국예술종합학교, p.199 秋本吉郞 校注(1980) 日本古典文學大系2 風土記, 岩波書店 井上滿郞(2011) 秦河勝, 吉川弘文館 井上滿郞(1991) 京都よみがえる古代, ミネル書房 今岡謙太郞(2008) 日本古典藝能史, 武藏野美術大學出版局 植木行宣, 田井竜一(2010) 祇園囃子の源流 岩田書院 梅原猛(2002) 翁と河勝, 角川學藝出版 大和岩雄(2009) 日本にあった朝鮮王國 謎の秦王國と 古代信仰, 白水社 大和岩雄(2006) 秦氏の研究, 大和書房 加藤謙吉(2009) 秦氏とその民, 白水社 神田より子, 俵木悟(2010) 民俗小事典 神事と芸能 吉川弘文館, 川嶋將生(1996) 祈園祭, 吉川弘文館 紀繁継(1870) 八坂社旧記集録上 近代デジタルライブラリー 全日本郷土芸能協会(2013) 民俗芸能探訪ガイドブック 国書刊行会 出羽弘明(2004) 新羅の神がみと古代日本, 同成社 富山県教育議員会(2006) 中部地方の民俗芸能1 4 海路書院 八木透(2002) 京都の夏祭りと民俗信仰 昭和堂 久慈力(2004) 祈園祭と諸宗敎の謎, 批評社 東元ろか(2007) 士踊の伝承と保存について お茶の水音楽論集第9号 服藤早苗(2000) 傀儡女の登場と変容, 埼玉学園大学紀要 10 古岡英明(1982) 下村加茂神社 稚児舞 調査報告書 富山県射水郡下村, 本田安次(1998) 日本の傳統藝能 :第十六卷 舞樂延年Ⅱ, 錦正社, 安田次郎(2009) 寺社と芸能の中世 山川出版社 西中研二(2012) 薩摩兵児二才と新羅花郎徒の比較研究 筑波大学博士学位論文 松前健(1985) 日本神話の謎., 大和書房. 松前健(1970) 日本神話と形成, 高書房 三品彰英(1974) 新羅花郎の研究 平凡社 南国美保(2008) 四天王寺聖霊会の舞楽 東方出版 水谷千秋(2009) 謎の渡來人 秦氏, 文藝春秋, 皆神山すさ(2010) 秦氏と新羅王伝説, 彩流社, 村上祥子(1991) 韓国仮面劇と日本伎楽の比較研究, 比較民俗研究 3, pp 和歌森 太郞(1976) 日本民俗學講座4 藝能傳承, 朝倉書店 中田昭 (2011) 京都祇園祭 京都新聞出版センター 中野幡能((1987) 英彦山と九州の修験道 名著出版 東京国立博物館画像検索 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文化庁) 地域伝統芸能等保存事業(2008), 下村加茂神社の年中行事DVD, 有限会社ビデオワーク
132 128 比較日本學 第32輯 ( )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전금선, (한자) 田金仙, (영문) Jeon Geumseon 소속 :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박사과정 논문영문제목 : A study of the current status of Chigomai in Japan to examine Silla Hharang's singing and dancing through the Hata chan coming over to Japan 주소 : ( )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호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신라는 가무를 중시한 사회로서 진흥왕은 화랑도를 제도화하고 가무를 장려하였다. 신라 화랑 에서의 가무의 중요성은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어떠한 식으로 추어졌는가에 대한 연행 형식 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본고는 실증 사료의 한계에 있는 신라 화랑들의 무용 연구에 대한 자 료제공의 일환으로, 화랑가무와 유사한 성격과 기능을 가지는 일본의 치고마이(稚児舞)를 조사ㆍ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고찰 대상으로는 가야계신라인 설이 우세한 도래인 하타씨(秦 氏)와 관련된 치고마이로 하였다. 일본의 치고마이는 가구라(神楽)와 부가쿠(舞楽), 엔넨(延年), 덴가쿠(田楽), 후류(風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국 각지에서 연행되고 있다. 먼저 화랑의 기능인 무사(武事), 악사(樂事), 제사(祭事)로 분류한 후, 이것을 기준으로 화랑 가무와 치고마에에 대해 비교적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사례지는 가고시마현의 사무라이오도리(士踊り)와 교토 기온마쓰 리(祇園祭り)의 치고마이(稚児舞), 호쿠리쿠 지역의 시모무라가모신사(下村加茂神社)의 치고부 가쿠(稚児舞楽)로 하였다. 이 중 호쿠리쿠 지역의 치고부카구에서 화랑가무의 성격과 상당한 유 사점이 발견되었다. 첫째 하타씨에 의해 전수된 무악의 영향을 받았고, 둘째 화랑이나 하타씨의 신앙과 유사한 산악신악과 관련 있고, 셋째 무예무가 많으며, 넷째 분장법과 춤 동작에서의 유사 성이 발견되고, 다섯째 지리적으로 신라와 해상 교류가 용이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유로 이 지역의 치고부가쿠는 향후 비교연구의 대상지로서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주제어: 치고마이, 하타씨, 부가쿠, 화랑, 신라무용
133 129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 욕망과 해원( 解 寃 )을 중심으로 - 김 경 희 * Abstract This treatise is a comparative study to verify influential relations between Chosun's literary works and Japanese ones and to contemplate how desires could happen and settlement of grudge could be achieved through narrative comparison of grotesque love novels in East Asia. Specifically, narrative methods in Manboksajeopogi and Leesaenggyujangjeon in Chosun's Geumoshinhwa, for which Aekyungjeon and Chuichuijeon in Chinese Jeondeungsinhwa should be a reference, and Kibitsunokama and Asajigayado in Japanese Ugetsumonogatari were compared with each other. The result is as follows : Firstly, Kibitsunokama and Asajigayado in Ugetsumonogatari partly adoped the basic narrarives and took an influence for its contents from Manboksajeopogi and Leesaenggyujangjeon in Geumoshinhwa. Due to it, as examined in previous study, when Akinari wrote Ugetsumonogatari, he already encountered MaeWolDang Geumoshinhwa of Hayashi Razan and his creative conscioiusness was affected by Geumoshinhwa. Secondly, through comparative contemplation of narrative methods of works, desires and settlements of grudge have different aspects each other. In stories of Geumoshinhwa, settlements of grudges have an important role in entire narratives as remorse and resentment are accumlated through repeated meetings and farewels. Whereas, in stories of Ugetsumonogatari, settlement of grudge is not necessarily achieved although remorse and resentment as deepend through meetings and farewells give tremor to the stories. Afterwards, by studying affairs occurrence and settling ways through narrative comparis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works, native culture and recognition types of two nations can be examined further. 76) Keywords : Manboksajeopogi, Kibitsunokama, grotesque love novel, narrative, desire 1. 머리말 동아시아 전기소설( 傳 奇 小 說 )에는 주인공들의 일상적인 삶을 파괴하고 비 일상적인 시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사건ㆍ사고는 이야기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일본근세문학
134 130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의 발단이 되어 주인공들이 속해있는 사회 속에서 혹은 공동체 안에서 갈등 의 문제를 일으키고 그러한 비 일상이 일상으로 회복되는 과정들은 내러티브 로 만들어진다. 전근대 동아시아 전기소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보편적 소재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애정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을 찾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순수한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정 담의 전기소설적 성격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을 살펴보면, 남자 주인공과 만나 게 되는 여성이 이계(異界)의 인물이라는 점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에 현실적 논리에 입각한 직접적 대결이 아닌 비 현실세계의 개입을 통한 간접적인 대결이 이루어진다는 점들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애정 전기물에 있어서 일상을 뒤 흔드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는 애정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정의 욕망이 없이는 애정 서사는 이루어지 지 않기 때문이다. 애정의 욕망이 억압을 받을 때에 혹은 애정의 욕망이 채 워지지 않을 때에 일상적 삶 속에서 애정에 대한 욕망은 한(恨) 으로 나타나 고 한은 서사적 갈등구조의 핵심축이 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갈등을 해 소하고 원한을 풀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들에 주목하여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동아시 아 애정 전기소설의 작품을 서사 비교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는 중국 전등신화(剪燈新話) 의 영향권1)에 있는 조선과 일본의 애정 전기소설 의 서사 비교를 통하여 욕망과 해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하 여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는 이전 논고에서 중국의 전등신화 의 영향 아래 창작된 조선의 금오신화 와 일본의 괴담소설 우게쓰 모노가타리(雨月物語) 간의 영향관계에 대하여 검토한 바와 같이2) 금오신화 와 우게쓰 모노가타 1) 중국의 전등신화 가 조선에 전래되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이 그 영 향으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이자 전기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금오신화 를 저술하였다는 것 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평소 김시습을 존경하고 추앙하였던 창주(滄洲) 윤춘년(尹春年, )이 매월당의 시문(詩文)을 수집 정리하고, 수호자(垂胡子) 임기(林芑)가 집석(集 釋)한 전등신화구해 의 간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소 설을 본떠 고금의 괴담기문(怪談奇聞)을 엮어서 쓴 명대 유일한 문어체 소설집인 전등신화 는 중국에서는 금서(禁書) 조치를 당하지만, 이정(李禎)의 전등여화(剪燈餘話), 소경첨 (邵景詹)의 멱등인화(覓燈因話) 등으로, 조선에서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와 윤춘년과 임 기의 전등신화구해(剪燈新話句解) 로, 일본에서는 오토기보코(伽婢子) 우게쓰 모노가타 리(雨月物語), 베트남에서는 전기만록(傳奇漫録) 등의 작품 창작으로 이어지는 등 동아시 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2) 이생규장전 과 아사지가야도 의 두 작품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한(恨)의 모티브를 가지고
135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31 리 속의 다른 작품들의 비교고찰을 통하여서도 그러한 영향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한국에서의 연구는 전등신 화 나 금오신화 에 관하여 많은 연구의 축적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일 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오신화 와 일본 우게쓰 모노가타리 와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3).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전등신화 4)와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조선의 금오신화 5) 그리고 일본 우게쓰 모노가타리 6) 의 각 작품들은 서로가 한 작품씩을 참고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편의 이야 기에서 전체적인 화형(話形)이나 부분적으로 모티브를 도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작품을 전체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를 검토 하기 위해서 세 작품의 내용을 비교한 후, 각각의 작품에 관한 많은 선행연 구의 성과 중 주요 전거연구를 참고로 하면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을 선정하였다. 금오신화 속 만복사저포기(萬福寺摴蒲記) 의 경우, 이야기의 고찰한 결과, 두 작품 모두 전거작품인 애경전 으로부터 서사적인 측면을 부분적으로 수용 하고 있지만 애경전 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 공통적인 유사점으로 지적되었다. 김경 희(2013) 근세기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흐름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과 아사지가야도 (浅茅が宿) 의 비교를 중심으로 일본언어문화 제25호 3) 한영환(韓榮換)은 전등신화 금오신화 오토기보코 의 비교고찰 ( 동방문학비교연구총 서 1, 1985)을 다루었고, 신두헌(申斗憲)은 傳記小說 剪燈神話 ㆍ 金鰲新話 と 雨 月物語 ( 상명대학교논문집 21, 1988) 논문에서 우게쓰 모노가타리 가 오토기보코 를 통해 금오신화 로부터 소재를 취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김인규(金仁圭)는 金鰲新話와 雨月物語의 比較硏究 李生窺墻傳 과 浅茅が宿 을 중심으로 ( 우리문학연구 8, 1990) 논문을 통해 우게쓰 모노가타리 에서 직접적인 금오신화金鰲新話 의 영향을 찾을 수는 없지만, 두 작품이 전거작인 애경전 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최근 김영호(金永昊)는 전등신화 의 전래와 동아시아 ( 일본문화연 구 38, 2011) 논문에서 중국의 전등신화 가 일본, 조선, 베트남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가에 관한 번안양상에 대해 고찰한 바 있다. 4) 2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 화정 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 금봉채기(金鳳釵記) 연방루기(聯芳樓記) 영호생명몽록(令狐 生冥夢錄) 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 등목취유취경원기(藤穆醉遊聚景園記) 모란등기(牡 丹燈記) 위당기우기(渭唐奇遇記)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 영주야묘기(永州野廟 記) 신양동기(申陽洞記) 애경전(愛卿傳) 취취전(翠翠傳)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 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 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 감호야범기(鑑湖液泛記) 녹의인전 (綠衣人傳) 추향정기(秋香亭記) 5) 5편이 남아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6) 9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라미네(白峯) 깃카노치기리(菊花の約) 아사지가야도 (浅茅が宿) 무오노리교(夢応の鯉魚) 붓포소(仏法僧) 기비쓰노카마(吉備津の釜) 자 세이노인(蛇性の婬) 아오즈킨(青頭巾) 힌푸쿠론(貧福論)
136 13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모티브는 전등신화 의 애경전( 愛 卿 傳 ) 과 취취전( 翠 翠 傳 ) 에서 기본 서사 를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게쓰 모노가타리 속 기비쓰노카마( 吉 備 津 の 釜 ) 의 전체적인 서사는 모란등기 를 전거로 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애 경전 과 취취전 에서 모티브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금오신 화 의 만복사저포기 와 우게쓰 모노가타리 의 기비쓰노카마 를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들은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애정의 욕망과 해원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조선의 만복사저포 기 와 일본의 기비쓰노카마 에서는 전거작품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한 점들을 통해 두 작품 사이에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는지를 비교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전등신화 의 애경전 7) 취취전 8) 모란 등기 9) 에 대해서는 이미 선학들의 연구에서 대부분 다루어졌기에 따로 항목 을 두지 않고 조선과 일본의 작품을 살펴볼 때 비교적 시점에서 함께 언급하 기로 하겠다. 7) 애경전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나애애는 절강성 가흥의 명기로 그 미모와 성품을 존경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애경이라 불렀다. 같은 고을에 사는 높은 가문의 조생이라는 남자 가 애경에게 반하여 둘은 혼인을 하였다. 얼마 후 조생은 벼슬을 하기 위해 어머니와 애경을 두고 교토로 떠났는데, 도착해보니 자신을 부른 상서( 尙 書 )는 이미 병으로 면직한 후였고 조 생은 오갈 데 없이 고향으로도 가지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 시어머니는 죽고 홀로 남은 애경 은 전란 가운데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애경의 죽음을 알고 슬 퍼하는 조생 앞에 나타난 애경은 양가 출신이 아니었던 자신을 사랑해 준 남편에 대한 고마 움을 전하고 이승에서 남자아이로 다시 환생하였음을 알린 후 사라진다. 그 후 조생은 애경 이 남아로 환생한 그 집과 왕래하며 살았다. 8) 취취전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회안에 사는 김정과 유취취는 한 동네에 사는 서당 동배 로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곡절 끝에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이 못 되어 장사성의 난 이 일어나 취취는 이장군에게 잡혀 애첩이 된다. 김정은 천신만고 끝에 아내를 찾아내지만 결국 오누이라 속여 한집에 거처하다 끝내 죽어 나란히 묻힌다. 그 뒤 취취의 집 옛 하인이 그 밑을 지나다 그들을 만나 고향에 소식을 전하자 찾아온 아버지에게 환신해서 그들의 사정 을 알린다. 9) 모란등기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교생은 모란 등을 든 하녀를 동반한 여경을 만난다. 그 후 여경이 교생의 집에 드나들게 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노인이 엿보니 교생이 해골과 같 이 누워 있었다. 노인이 교생에게 알려주어, 교생이 여경을 알아보니 그녀는 이미 죽은 여자 였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스님이 준 부적을 붙인 후부터 여경이 찾아오지 않게 된다. 교생이 술에 취해 방심하여 여경의 무덤이 있는 절에 찾아가니 여경이 나와서 그를 껴안고 관 속으 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교생과 여경이 거리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자 사람들이 도 인에게 부탁하여 이들을 감금한 후 재판을 하여 지옥에 떨어뜨렸다.
137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만복사저포기 의 서사방식 먼저 금오신화 속 만복사저포기 10) 의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남원에 사는 양생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나이가 차도록 장가를 들지 못 하여 만복사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소원을 빌고 부처님과 저포내기를 하여 이긴다. (2) 여인이 불전에 나와서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축원문을 올린다. (3) 양생은 여인을 방 안으로 유인하여 인연을 맺고, 이튿날 여인을 따라 그녀 의 집으로 가서 사흘을 함께 지낸다. (4) 여인은 보련사( 寶 蓮 寺 )로 가는 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양생과 헤 어진다. (5) 양생은 여인의 부모를 만나 그녀가 왜구의 난리 때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 는다. (6) 양생이 여인을 만나 함께 보련사에 도착하고, 부모의 승낙으로 여인과 동숙 한다. (7) 여인은 양생과 이별하고 저승으로 떠나고, 양생은 여인의 부모가 준 재산을 모두 팔아 제사를 지내고 명복을 빈다. (8) 여인은 저승의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환생하여 양생에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권한다. 양생은 다시 장가를 들지 않고 지리 산에 들어가 약초 를 캐며 살았다. 위의 전체적인 서사를 보면, 남자주인공 양생과 여자주인공에게는 각기 인 연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한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들은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원한이 해소되는 해원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승과 저승이라는 경계를 두고 두 주인공은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 한다. 결국 여인은 양생의 사랑으로 해원을 이루고, 양생은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의미의 해원을 하고 있다. 그러면 다음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각 단락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1)에서 등장하는 남자주인공 양생은 조실부모( 早 失 父 母 )하고 나이가 들도록 배필을 얻지 못한데다가 만복사 동쪽에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인물로 서,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사실 양생의 상황에 10) 金 鰲 新 話 의 한글 및 원문에 대한 본문 인용은 국역 매월당집 3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8)에 따랐고, 의미전달을 위해 필자가 적절히 수정하였다.
138 13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서 배필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지기반과 의지가 되어 줄 부모가 일 찍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그의 삶이 불행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설사 좋은 인연을 만난다고 해도 부부가 생활을 할 만한 집도 한 칸 없는 남자가 아내 를 얻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양생에게는 인 연을 이루지 못한 한 맺힌 마음과 어떻게 해서라도 인연을 이루고자 하는 욕 망이 있는 것이다. 인연을 갈구하는 욕망이 부처님을 상대로 저포내기 11) 를 하게 했고 이김으로써 욕망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2)에서는 여인이 부처님께 올리는 축원문을 통해 그녀 또한 결연( 結 緣 )하 지 못한 한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왜놈들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생민을 노략하매,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 우로 도망가니, 친척과 동복들이 각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연약한 소녀 의 몸이라 멀리 피난가지 못하고, 깊숙한 규방에 들어 앉아 끝까지 정절을 지 켰습니다. (중략) 가을 달밤과 꽃 피는 봄날을 상심으로 헛되이 보내고, 뜬구 름 흐르는 물과 더불어 무료하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쓸쓸한 골짜기에 외로이 머물면서 한 평생의 박명을 탄식하였고, 아름다운 밤을 혼자 지새우면서 채란 ( 彩 鸞 )의 외로운 춤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 백마저 사라지고 흩어졌습니다. 여름날과 겨울밤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까 지 찢어집니다. 자비로운 부처님! 이 몸을 가엽게 여기시어 각별히 돌보아 주 소서. 인간의 한평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으며 선악의 응보를 피할 수 없으니, 제가 타고난 운명에도 인연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배필을 얻게 해 주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焚 蕩 室 廬, 虜 掠 生 民, 東 西 奔 竄, 左 右 逋 逃, 親 戚 僮 僕, 各 相 亂 離, 妾 以 蒲 柳 弱 質, 不 能 遠 逝, 自 入 深 閨, 終 守 幽 貞, 不 為 行 露 之 沾, 以 避 横 逆 之 禍, ( 中 略 ) 然 而 秋 月 春 花, 傷 心 虚 度, 野 雲 流 水, 無 聊 送 日, 幽 居 在 空 谷, 歎 平 生 之 薄 命, 独 宿 度 良 宵, 傷 彩 鸞 之 独 舞, 日 居 月 諸, 魂 銷 魄 喪, 夏 日 冬 宵, 胆 裂 腸 摧. 惟 願 覚 皇, 曲 垂 憐 愍, 生 涯 前 定, 業 不 可 避, 賦 命 有 縁, 早 得 歓 娯, 無 任 懇 祷 之 至. 양생 앞에 등장한 여인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사실은 왜구의 침 입으로 이미 목숨을 잃은 죽은 영혼이다. 전란이라고 하는 불가항력적인 상 황 가운데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친 그녀가 원한을 갖는 것은 어쩌 11) 백제에서 행하던 놀이의 한 가지로 주사위 같은 것을 나무로 만들어 던져서 그 사위로 승부 를 다투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1978) 만복사 저포놀이 萬 福 寺 樗 蒲 記 국역 매월당 집 3 세종대왕기념사업회 p.296
139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35 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위 인용문의 여인이 올리는 축원문을 보면 그녀의 원한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왜구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인간으로 태 어나서 인연을 맺어보지 못하고 죽은 것에 대한 한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인은 자신의 운명에도 인연이 있을 것이라며 결연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 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두 남녀주인공은 인연을 만나자고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있음을 확인하고는 주저없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행동한다. (3)에서 양생이 여인을 절 안의 판잣방으로 유인하여 운우지정( 雲 雨 之 情 ) 을 나눔으로써 두 사람 모두 인연을 갈망하던 자신들의 욕망이 해소되어 해 원이 이뤄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인의 집에서 사흘을 지내고 난 뒤 이별 을 맞이하게 된다. 여인: 이곳의 사흘은 인간 세상의 삼 년과 같습니다. 낭군은 이제 집으로 돌 아가셔서 생업을 돌보십시오. 양생: 어찌 이별이 이다지도 빠르오? 여인: 언젠가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될 거예요. 오늘 이 누추한 곳에 오시게 된 것도 반드시 묵은 인연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제 이웃 친지들 을 만나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중략) 여인: 내일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위하여 보련사에서 음식을 베풀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면,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와 함께 절로 가서 부모님을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생: 그러겠소. 此 地 三 日 不 下 三 年, 君 当 還 家 以 顧 生 業 也. 何 遽 別 之 速 也? 当 再 会, 以 尽 平 生 之 願 爾, 今 日 到 此 弊 居, 必 有 夙 縁, 宜 見 鄰 里 族 親, 如 何? ( 中 略 ) 明 日, 父 母 飯 我 于 宝 蓮 寺. 若 不 遺 我, 請 遅 于 路 上, 同 帰 梵 宇, 同 覲 我 父 母, 如 何? 諾. 양생과 여인은 둘 다 헤어지게 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며 슬퍼한다. 그리고 여인의 언젠가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될 거예요. 라는 말을 통해 그녀 의 한이 다 풀리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두 사람의 인연이 그대로 끝나지 않 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양생 또한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가 이승의 사 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한 애정의 욕망에 따 르고자 한다. 양생은 그 이튿날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여인을 다시 만나 절 에서 그녀의 부모님을 뵙기로 약속을 하고는 은 주발을 건네받는다. (5)에서 드디어 양생은 여인이 왜구의 난리 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140 13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된다. 내 슬하에 오직 딸자식 하나가 있었는데, 왜구가 침입하여 난리가 났을 때에 적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네. 미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령사 곁에 임시로 묻어 두고는 이래저래 미루어 오다가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네. 오늘이 벌써 대상날이라, 부모된 심경에 재나 올려 명복을 빌어 줄까 하네. 자네가 정말 그 약속대로 하려거든, 내 딸자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오게나. 그리고 부디 놀라지 말게. 吾 止 有 一 女 子, 当 冦 賊 傷 亂 之 時, 死 於 干 戈, 不 能 窀 窆, 殯 于 開 寧 寺 之 間, 因 循 不 葬, 以 至 于 今. 今 日 大 祥 已 至, 暫 設 斎 筵, 以 追 冥 路. 君 如 其 約, 請 竢 女 子 以 来, 願 勿 愕 也. 여인의 죽음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부모에게도 크나큰 상처와 회한을 남겼 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여식이 비록 이승의 몸은 아니었지만 이승의 인 연을 만났다는 소식은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 속 깊은 원한까지도 풀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여인과 양생의 결연을 통한 해원이 부모의 원한까 지도 해원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여인의 부모 이야기를 등장시킴으로써 여인에게는 양생과의 결연이 자신의 일차적인 해원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이차적인 해원을 이루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양생도 마찬가지로 여인과의 결연을 통해 자신의 해 원뿐만 아니라 연인의 부모로부터 공인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한을 풀었다고 할 수 있다 12). (7)에서 여인은 양생과 세 번째의 마지막 이별을 하면서 애통하고 황망한 마음을 토로하며 마음에 맺힌 한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인: (전략) 한스럽게도 업보( 業 報 )는 피할 수가 없어서 저승길로 떠나야만 하게 되었어요. 즐거움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였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 왔군요. (중략) 이제 한번 헤어지면 뒷날을 기약하기 어렵겠지요. 헤어지 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양생: (전략) 난리를 겪으면서 정조를 지켰지만,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었구려. 쑥 덤불 속에 몸을 내맡기고 홀로 지내면서, 꽃 피고 달 밝은 밤에는 마음이 아팠겠구려. 봄바람에 애가 끊어지면 두견새의 피울음 소리가 슬프고, 가을 서리에 쓸개가 찢어지면 버림받는 비단부채를 보며 탄식했겠구려. 지난번 12) 유권식(2014) 萬 福 寺 樗 蒲 記 에 나타난 해원의 구현 양상 연구, 어문논집 58 p.237
141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37 하룻밤 우연히 당신을 만나 기쁨을 얻었으니, 비록 저승과 이승이 서로 다 르다는 것은 알면서도 물만난 고기처럼 즐거움을 다하였소. 장차 백년을 해 로하고자 하였는데, 하루 저녁에 슬피 헤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후략) ( 前 略 ) 自 恨 業 不 可 避, 冥 道 当 然, 歓 娯 未 極, 哀 別 遽 至. ( 中 略 ) 従 此 一 別, 後 会 難 期. 臨 別 凄 惶, 不 知 所 云. ( 前 略 ) 逢 亂 離 而 璧 完, 遇 冦 賊 而 珠 沈. 托 蓬 蒿 而 独 処, 対 花 月 而 傷 心. 腸 断 春 風, 哀 杜 鵑 之 啼 血. 胆 裂 秋 霜, 歎 紈 扇 之 無 縁. 嚮 者 一 夜 邂 逅, 心 緒 纏 綿. 雖 識 幽 冥 之 相 隔, 実 尽 魚 水 之 同 歓. 将 謂 百 年 以 偕 老, 豈 期 一 夕 而 悲 酸. ( 後 略 ) 양생은 비록 여인이 이승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실하였 기에 떠나보내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전답과 가옥을 모두 팔아 그 녀를 위해 사흘 내내 재를 올려 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양생 앞에 나타나 다 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여인: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당신의 은 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부디 다시 깨끗한 업을 닦아 윤회의 굴 레를 벗어나기 바랍니다. 蒙 君 薦 抜, 已 於 他 国, 為 男 子 矣. 雖 隔 幽 冥, 寔 深 感 佩. 君 当 复 修 浄 業, 同 脱 輪 回. 양생의 은덕으로 여인은 저승의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환생함으로써 완전한 해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양생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잠시 인용해 보자. 양생은 이후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그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아무도 알 지 못한다( 生 後 不 復 婚 嫁, 入 智 異 山 採 藥, 不 知 所 終. ) 고 끝을 맺고 있다. 양생 은 여인을 떠나보낸 이후 더 이상 애정의 대상을 찾지 않았으며 세상을 등지 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서는 모두와의 연락을 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양생의 결말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양생 또한 여인과 마찬가지로 해 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얼핏 보기에는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 한 비극의 주인공이 맞는 결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양생은 언제까지 나 마음속에 여인을 기억하며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승에 남 겨진 양생의 회한과 고통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여인 의 마지막 권유처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결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 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양생은 애정의 욕망을 채울
142 13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수 있는 대상을 추구해왔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 한을 품게 되는 인 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결단을 통해 양생에게도 인간 애정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해원이 주어졌으리라 생각된다. 3. 기비쓰노카마 의 서사방식 다음에는 일본의 우게쓰 모노가타리 살펴보자. 전체적인 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속 기비쓰노카마 13) 의 이야기를 1 기비 지방에 사는 쇼타로( 正 太 郎 )와 기비쓰 신사( 吉 備 津 神 社 )의 신관 집안 의 딸 이소라( 磯 良 )와의 혼담이 오고 간다. 2 기비쓰 신사에서는 신관 딸의 혼사인 만큼 길운을 점치고자 가마솥 점을 치지만 결과는 흉으로 나온다. 3 기비쓰 가마솥 점의 결과를 무시한 채 예정대로 혼사는 성사되고, 시집을 간 이소라는 정성을 다해 시부모와 남편을 섬긴다. 4 남편 쇼타로는 제법 멀리 떨어진 도모 나루터 근처에 사는 유녀 소데( 袖 ) 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이소라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쓴다. 5 남편은 아내를 속여서 돈을 마련하게 하고는 소데와 함께 하리마로 도망친다. 6 남편에게 진심을 짓밟히고 배신당한 아내 이소라는 깊은 원한으로 병석에 눕게 되고 죽을 지경에 이른다. 7 이소라는 원령이 되어서 첩인 소데를 죽이고 쇼타로를 위협한다. 8 쇼타로는 음양사( 陰 陽 師 )의 지시로 42일간 근신하고 밖으로 나오지만, 결국 에는 죽임을 당한다. 벽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처마 끝에는 남자의 상투가 달려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애정 서사로 출발하여 후반부에서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아 내가 원령이 되어 무시무시한 복수를 행하는 전개를 보이고 있다. 남편의 애 정에 대한 욕망은 아내가 아닌 첩을 향하여 있고, 그러한 남편의 마음을 돌 리고자 아내는 더욱 남편을 향한 애정의 욕망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아내의 욕망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기만당했을 때의 마음은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13) 본문 인용은 英 草 紙 西 山 物 語 雨 月 物 語 春 雨 物 語 ( 高 田 衛 校 注, 新 編 日 本 古 典 文 学 全 集 78, 小 学 館, 1995)에 의한다.
143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39 한다. 어느 것으로도 해원할 수 없는 그녀는 복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다음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각 단락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 저 1에서 혼담이 오가는 쇼타로와 이소라의 인물에 대해 살펴보면, 쇼타로 는 가업인 농사일을 싫어하고 술을 즐기고 여색에 빠져서 아버지의 가르침 을 듣지 않는( 農 業 を 厭 ふあまりに 酒 に 乱 れ 色 に 耽 りて 父 が 掟 を 守 らず) 인물이 다. 쇼타로의 내면에는 그릇된 애정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어 그것은 언제든 지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에 비해, 이소라는 천성 이 아름답고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한편 와카를 잘 읊으며 거문고도 잘 타 는(うまれだち 秀 麗 にて 父 母 にもよく 仕 へ かつ 歌 をよみ 箏 に 工 みなり) 인 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혼사가 무산될 것을 걱정하는 이소라의 어머니 의 대사를 통해 결코 이소라도 평범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딸도 사위가 될 사람이 사내답다는 소문을 듣고서 시집갈 날만을 손꼽 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처럼 혼인을 취소하려 한다는 이야기라도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예요. ( ことに 佳 婿 の 麗 なるをほの 聞 きて 我 が 児 も 日 をかぞへて 待 ちわぶる 物 を 今 のよ からぬ 言 を 聞 くものならば 不 慮 なる 事 をや 仕 出 さん 其 のとき 悔 るともかへらじ )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이소라가 욕망을 거절당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과 그 행동이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3에서는 시집을 가서 정성을 다해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는 이소라의 모습 이 그려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누우며 항상 시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남편의 기분을 잘 헤아려 마음을 다해 섬기는 ( 夙 に 起 おそく 臥 て 常 に 舅 姑 の 傍 を 去 ず 夫 が 性 をはかりて 心 を 尽 して 仕 へ) 완벽한 양 처( 良 妻 )로 그려져 있다. 이점에서 본다면, 이소라 또한 남편을 향한 강한 애 정의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욕망은 4에서 남편 쇼타로가 천성인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데라는 유녀와 딴 살림을 차렸 을 때에도 이소라로 하여금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돌리 려고 애쓰게 만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음을 인용해보자. 이소라는 이를 원망하여 어떤 때는 시부모님의 노여움을 앞세워 설득해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남편의 경박한 바람기를 원망하며 한탄해보았지만, ( 磯 良 こ
144 14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れを 怨 みて 或 は 舅 姑 の 忿 に 托 て 諫 め 或 は 徒 なる 心 をうらみかこてども) 이소라가 남편을 향한 애정으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남편의 어긋난 애정 의 욕망은 그를 이소라에게서 더욱 멀어져가게 하고, 이소라의 마음에는 남 편에 대한 원망이 쌓여가면서 원한이 커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가 운데도 이소라는 어질고 착한 아내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이소라를 애처롭게 여기어 보다 못한 나머지 쇼타로를 크게 꾸짖 어 집 안에 감금해 버렸다. 이소라는 이 일을 슬퍼하면서도 이전보다 더욱 집 안일에 신경을 쓰는 한편, 첩인 소데가 살고 있는 곳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은 밀하게 보내주는 등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정성을 다했다. ( 父 は 磯 良 が 切 なる 行 止 を 見 るに 忍 びず 正 太 郎 を 責 めて 押 し 籠 めける 磯 良 これを 悲 しがりて 朝 夕 の 奴 も 殊 に 実 やかに かつ 袖 が 方 へも 私 に 物 を 餉 りて 信 のかぎりをぞつくしける) 이러한 이소라의 모습은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아내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려는 강한 욕망이 그녀의 내면 에 잠재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신까지 위태롭 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5에서 남편 쇼타로는 아내를 속이고 그녀로 하여금 친정에 가서 돈까지 마 련해오게 해서는 그 돈을 가지고 몰래 집을 빠져나가 소데와 도망을 쳤다. 쇼 타로의 잘못된 애정의 욕망이 급기야는 아내의 진심도 부모의 충고도 저버린 채 자신의 애욕이 이끄는 대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리고 쇼타로는 자 신이 그릇된 애정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6에서 이소라는 아내이자 인간으로서 베풀 수 있는 모든 성심성의를 짓밟 히고 버림을 당하자 남편에 대한 깊은 원한으로 병석에 눕게 되고 죽을 지경 에 이른다. 그리고 그녀 속에 있는 강한 애정의 욕망은 원한이 되어 그녀에 게 상처주고 고통을 안겨준 이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려고 한다. 원령( 怨 靈 ) 이 된 이소라는 먼저 소데를 죽이고 쇼타로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음양사는 점을 치더니 한참을 생각한 후에 말하기를, 당신 아내의 원령이 여 자의 목숨을 빼앗고도 아직도 그 한이 풀리지 않아 오늘 밤이나 내일 저녁에 당신 목숨을 빼앗으러 올 것이오. ( 陰 陽 師 占 べ 考 へていふ さきに 女 の 命 をう ばひ 怨 み 猶 つきず 足 下 の 命 も 旦 夕 にせまる )
145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41 음양사가 말한 대로 이소라의 원한은 남편의 상대 여인을 죽인 것으로는 다 해소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원한은 결국에 남편을 향해 있고, 남편은 더 이상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의 원한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의 목숨을 앗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소라의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작 품 말미의 부분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활짝 열린 문 옆 벽에 묻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 흐르며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시체도 뼈도 보이지 않았다. 달빛에 의지하여 살펴보니 처마 끝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불빛을 들고 자세히 비추어보니 남자의 상투만이 처마 끝에 매달려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히코로쿠가 그만 아 연실색하고 말았는데 그 무서움이란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 明 けたる 戸 腋 の 壁 に 腥 々しき 血 潅 ぎ 流 て 地 につたふ されど 屍 も 骨 も 見 えず 月 あかりに 見 れ ば 軒 の 端 にものあり ともし 火 を 捧 げて 照 し 見 るに 男 の 髪 の 髻 ばかりかかりて 外 には 露 ばかりのものもなし 浅 ましくもおそろしさは 筆 につくすべうもあらずなん ) 일찍이 나카무라 유키히코( 中 村 幸 彦 )는 괴이 면에서 본 작품을 일본문학 중의 백미 14) 라고 평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결말부는 독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공포감을 안겨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5). 쇼타로가 어떤 식으로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이소라의 원령이 쇼타로의 상투만을 남긴 채 그를 저승으로 데리고 갔음을 짐작할 수 있고, 그로써 이소라의 광기어린 복수도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말에 대하여 욕망과 해원의 관점에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이소라가 남편의 목숨만 앗아 간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까지도 데려 갔다는 점은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그의 몸을 데려 간 것인지, 아니면 피 흘 리는 상투만을 남김으로써 괴이와 광기의 극대화를 노리려고 한 것인지에 대 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먼저 전거작품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전거 작품인 모란등기 는 남자주인공인 교생( 喬 生 )이 귀신인 여경( 麗 卿 )을 만나 14) 中 村 幸 彦 校 注 (1968) 上 田 秋 成 集, 日 本 古 典 文 学 大 系 56, 小 学 館, p.14 15) 다카다 마모루( 高 田 衛 )는 이 결말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이 참극이 어 떤 구체적이고도 분석적인 묘사보다도 더욱 효과적인 것은 이 상투만이 달려있다 는 부분 일 것이다. 작가가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이 순식간에 격발되어 공포와 전율은 증가되는 것이다. 일찍이 괴기스러움을 그려내 는 박진감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이 장면의 전거로서 많은 설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보다 도 이 한 편은 상상력을 뛰어 넘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高 田 衛 (1995) 英 草 紙 西 山 物 語 雨 月 物 語 春 雨 物 語, 新 編 日 本 古 典 文 学 全 集 78, 小 学 館, pp
146 14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환락을 나누다 위법사( 魏 法 師 )의 도움으로 재앙을 모면하나 결국 여경의 관 속으로 끌려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쇼타로가 이소라에 의해 죽임 을 당하는 모티브가 여경의 관 속에 이끌려 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교생으로 부터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상대 남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모티브를 수용하였다고는 하나, 죽은 후에도 여전히 교생과 여경이 손을 잡고 함께 거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란등기 에 비해, 복수하는 이 소라와 쇼타로의 사이에는 애정을 나누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서 로를 갈구하는 애정은 아닐지라도 이소라의 행동은 그녀가 가진 애정의 욕망 이 원한으로 쌓여 분출된 것이고 결국에는 그녀로 하여금 복수하도록 이끌었 다고 할 수 있다. 쇼타로 또한 잘못된 애정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그것에 대 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 된다. 그러므로 본 편은 전거작품으로부터 남 자주인공의 죽음에 관한 모티브를 수용하면서도 어긋난 애정의 욕망을 추구 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핏자국과 남자의 잘린 상투만을 남겨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 속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복수가 끝남으로써 이소라의 원한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이소라의 상처받고 고통 받았던 마음은 위로를 얻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무시무시 한 복수를 통해 그녀는 해원을 이룬 것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말부에 대해, 나가시마 히로아키( 長 島 弘 明 )는 이소라는 확실하게 복수를 이루었지 만, 거기에는 깃카노치기리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이른바 복수의 카타르 시스라고 할 만한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16) 고 하면서 애정이 없이 증오만 이 남아 남자를 죽여야만 하는 여인의 모질고 박정( 薄 情 )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생각할 때 이소라의 원한은 완전한 해원을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라의 복수에는 카타르시스가 없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17). 이소라와 쇼타로의 이야기를 따라서 읽어 가면 갈수록 쇼타로 에 대한 이소라의 분노가 상승되고 원한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부정( 不 貞 )을 저질러 아내를 배신한 남편의 잘못을 덮어주고 상대 여인을 도 우려고까지 했던 아내의 진정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 16) 長 島 弘 明 (2000) 男 性 文 学 としての 雨 月 物 語 秋 成 硏 究, 東 京 大 学 出 版 会 pp ) 이소라가 한( 恨, うらみ)을 가진 인물로서 결말부의 복수를 통해 그녀의 한을 풀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에서 논한바 있다. 金 京 姬 (2007) 吉 備 津 の 釜 試 論 俳 諧 的 連 想 に 注 目 して, 近 世 文 芸 84, 日 本 近 世 文 学 会, p.37
147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43 침이 전혀 없이 상대 여인의 죽음 앞에서는 진심으로 애통해 하는가 하면, 낯선 여인을 향해 또다시 꿈틀거리는 남자의 욕망을 본 후에는 남편을 처치 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의 복수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그녀 는 원한을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고, 적어도 이소라의 이야기를 따라 그녀의 처지를 공감하는 독자들에게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생 각한다. 기비쓰노카마 의 쇼타로는 죽음으로써 잘못된 욕망에 대한 대가 를 치러야 했고, 이소라는 복수를 통해 원한을 풀어냄으로써 해원을 이루었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비교적 관점에서 본 욕망과 해원의 모티브 여기서는 만복사저포기 와 기비쓰노카마 두 작품의 영향관계를 살펴보 고, 애정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욕망과 해원의 서사방식에 대해 비교적 관점 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전 논고에서 이생규장전 과 아사지가야도 의 서사 비교를 통해 두 작품에 독자들에게 주는 깊은 울림과 슬픔, 회한 등 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그러한 요소들은 두 작품의 전거 작품인 애경전 에 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통적인 유사점임을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본 고 찰에서 살펴 본 만복사저포기 와 기비쓰노카마 를 통해서도 전거작품들 과는 다른 이질적인 면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먼저, 만복사저포기 의 여인이 남성으로 환생한다는 설정은 애경전 의 애경이 송씨 댁에 나생(羅生)이라는 사내아이로 환생하는 모티브와 유사하다. 그러나 애경은 이후로도 조생과 친척의 인연을 맺으며 왕래하고 있는 것에 반해, 만복사저포기 의 여인은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여 원한을 가진 인물이지만 양생의 진정한 사랑의 은덕에 의해 완전한 해원을 이루고 있다. 기비쓰노카마 의 경우는 핵심적인 주요 모티브를 모란등기 에서 수 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란등기 의 경우, 교생과 여경이 사람들에게 해를 입 히게 되어 결국에는 철관도인(鐵冠道人)에 의해 처벌을 받고 끝나는 결말로 서, 기비쓰노카마 의 이소라와 쇼타로를 통해 느끼는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애정의 욕망이나 짓밟힌 진정에 대한 원한의 감정들은 살펴볼 수 없었다. 아사지가야도 의 미야기(宮木)나 기비쓰노카마 의 이소라의 이야기를 통해
148 14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서 남편에 대한 애정의 욕망과 남편으로부터 자신들의 진정을 이해받지 못하 고 배신당하였을 때에 깊고도 강한 원한을 갖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것은 역시 만복사저포기 나 이생규장전 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들과 유사한 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일본의 우게쓰 모노가타리 작품 창작에는 중국의 전등신화 뿐만 아니라 조선의 금오신화 를 통하여서도 영향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애정 전기소설의 작품 간 서사 방식의 비교를 통하여 애정에 대한 욕 망과 해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내러티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모든 서사 속 주인공들은 그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사건들을 만나면서 비일상적인 것들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에 등장하는 남녀주인공들은 사랑의 대상을 만나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까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끝없는 애 정의 욕망을 추구하고 있었다. 애정의 욕망이 억압을 받거나 채워지지 않을 때에 인간에게는 한이 생겨나게 되고 그 정도가 강할 경우에는 깊은 원한으 로 남게 된다. 그 원한은 상대와의 만남을 통해 마음을 이해받고 상대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해원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볼 수 있 다. 그러한 관점에서 만복사저포기 는 순수하고 솔직한 애정의 욕망이 모티 브가 되었고, 남녀 주인공들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서 애정의 욕망을 추구하 면서 회한과 원한을 체험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반복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강한 울림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기비쓰노카마 의 이소라와 쇼타로는 만복사저포기 의 양생과 여인과는 다른 모티브를 수용하고 있지만, 여기서 도 마찬가지로 애정의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애정의 욕망이 거절당하였을 때 원한이 생겨나고 그것에 따른 해원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맺음말 본고에서는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작품들의 서사 비교를 통하여 조선과 일본 작품 간의 영향관계를 확인함과 동시에 사건과 해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비교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보았다.
149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서사비교 (김경희) 145 구체적으로는 중국 전등신화 속 애경전 과 취취전 모란등기 등의 작품을 전거로 한 조선 금오신화 의 만복사저포기 작품과 일본의 우게 쓰모노가타리 속 기비쓰노카마 작품의 서사방식을 비교하였다. 고찰한 결 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게쓰모노가타리 의 기비쓰노카마 는 금오신화 의 만복사저포기 와 이생규장전 작품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 었다. 서로 다른 모티브를 수용하고 있으면서도, 전거작품에서 살펴볼 수 없 는 애정의 욕망에 대한 추구, 애정이 가로막혔을 때의 절망, 고통 등을 독자 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이야기의 울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이전의 논문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아키나리가 우게쓰모노가타리 를 집필 했을 당시에 하야시 라잔의 매월당 금오신화 를 접하고 그의 창작 의식 속 에 금오신화 의 영향이 있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둘째는 작품 간 서사방식의 비교고찰을 통하여 사건과 해원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만복사저포기 작품 속에서는 만남과 이 별이 반복되면서 애정의 욕망과 해원이 반복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었고, 이야기의 전체 서사에서 해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기비쓰노카마 작품에서는 남자주인공의 그릇된 애정의 욕망과 여인 의 애정의 욕망은 서로를 향한 화해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남편에 대한 복수 를 통해 원한을 풀어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한일 간 작품 속 서사 비교를 통하여 사건 발생과 해결 방 식의 유형들을 고찰해 감으로써 양국 민족 간의 고유문화와 인식의 유형들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경미(2010) 전기소설의 젠더화된 플롯과 닫힌 미학을 넘어서,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0 김경희(2013) 근세기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흐름 이생규장전( 李 生 窺 墻 傳 ) 과 아사지가 야 도( 浅 茅 が 宿 ) 의 비교를 중심으로, 일본언어문화 제25호 김창현(2010) 금오신화 로 본 한국애정비극의 특성 동아시아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차 이를 중심으로, 아태연구 제17권 문영오(1987) 金 鰲 新 話 에 굴절된 恨 의 고찰 萬 福 寺 樗 蒲 記 李 生 窺 墻 傳 醉 遊 浮 碧 亭 記 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10 설중환(2001) 萬 福 寺 樗 蒲 記 : 분석심리학으로 읽어보기, 한국학연구 15 세종대왕기념사업회(1978) 만복사 저포놀이 萬 福 寺 樗 蒲 記 국역 매월당집 3, 세종대왕기
150 14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념사업회 유권식(2014) 萬 福 寺 樗 蒲 記 에 나타난 해원의 구현 양상 연구, 어문논집 58 최용철(2002) 金 鰲 新 話 朝 鮮 刊 本 의 發 堀 과 그 意 義 民 族 文 化 硏 究 36, 민족문화연구원 井 上 泰 至 (1999) 雨 月 物 語 論 ー 源 泉 と 主 題 ー, 笠 間 書 院 鵜 月 洋 (1969) 雨 月 物 語 評 釈, 角 川 書 院 金 京 姬 (2007) 吉 備 津 の 釜 試 論 俳 諧 的 連 想 に 注 目 して, 近 世 文 芸 84, 日 本 近 世 文 学 会 高 田 衛 校 注 (1995) 英 草 紙 西 山 物 語 雨 月 物 語 春 雨 物 語 新 編 日 本 古 典 文 学 全 集 78, 小 学 館 長 島 弘 明 (2000) 男 性 文 学 としての 雨 月 物 語 秋 成 硏 究, 東 京 大 学 出 版 会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사항 성명 : (한글) 김경희, (한자) 金 京 姬, (영어) Kim Kyoung Hee 소속 :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논문영문제목: A comparative study on the narratives of the East Asian grotesque novels Focusing on desires and settlements of grudge 주소: ( )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 339번지 동부2차 아파트 106동 1401호 E mail: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고에서는 동아시아 애정 전기소설 작품들의 서사 비교를 통하여 조선과 일본 작품 간의 영향 관계를 확인함과 동시에 욕망과 해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비교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보았다. 첫째, 우게쓰모노가타리 의 기비쓰노카마 는 중국 전등신화 속 애경전 과 취취전 의 기본 서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 금오신화 의 만복사저포 기 와 이생규장전 작품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것을 통해 아키나리가 우게 쓰모노가타리 를 집필했을 당시에 하야시 라잔의 매월당 금오신화 를 접하고 그의 창작 의식 속 에 금오신화 의 영향이 있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둘째, 작품 간 서사방식의 비교고찰을 통하여 욕망과 해원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만복사저포기 작품 속에서는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회한이 쌓이고 한이 깊어져 감과 동시에 이야기의 전체 서사에서 해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기비 쓰노카마 작품에서는 남자주인공의 그릇된 애정의 욕망과 여인의 애정의 욕망은 서로를 향한 화 해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남편에 대한 복수를 통해 원한을 풀어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한일 간 작품 속 서사 비교를 통하여 사건 발생과 해결 방식의 유형들을 고찰함 으로써 양국 민족 간의 고유문화와 인식의 유형들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제어: 만복사저포기, 기비쓰노카마, 애정 전기소설, 서사, 욕망
151 147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 김 미 경 ** Abstract Two Old Men, the last short story of Kunikida Doppo, is a work which contrasts conspicuously with other short stories such as The Bamboo Wicket. Written at about the same period, the two works present a culmination of tragedy focused on the stunning suicide of the heroine on the one hand, while, on the other, showing us a distinctive work removed from the persistent tendency of the author toward tragedy, interwoven with inviting comic elements which require full appreciation in their own right. The distinction of Two Old Men reveals itself most clearly when the work is brought into contrast with The Bamboo Wicket. Two Old Men has two equal, balanced focuses, that is, the two old men, because the author does not allow his tragic impulse to take one focus to take a look into its potential abyss. The very way the author presents the two old men one by the other, making a vivid contrast of one with the other by describing their respective troubles they go through is itself an achievement, which is illuminated in the light of the primary contrast between a non tragic work with a tragic one. This is why the contrast between the two old men only is not a profitable way to read the work itself. Two Old Men requires that two contrasts be considered at the same time. Key words : two contrasts, the primary contrast, tragedy, two old men 18)19) 1. 머리말 두 노인( 二 老 人 ) ( 明 41ㆍ1 文 章 世 界 )은 구니키다 돗포 생전의 마지막 소설 작품으로서 돗포집제2 ( 独 歩 集 第 二 ) ( 明 41ㆍ7 彩 雲 閣 )에 수록된 작품 이다. 돗포집제2 은 돗포 사후에 발간된 돗포의 다섯 번째 작품집이며 이 작품집에는 권두를 장식한 대나무 쪽문 ( 竹 の 木 戸 ) ( 明 41ㆍ1 中 央 公 論 )을 비롯하여 궁사( 窮 死 ) ( 明 40ㆍ6 文 芸 倶 楽 部 )와 두 노인 등, 돗포 후기의 대표작을 포함한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에 대한 당대와 * 이 논문은 2005년도 인제연구장학재단 국외(국내)연수지원에 의한 연구결과임. ** 인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152 14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종래의 평가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작품집 중의 걸작( 傑 作 ) 1) 이며 돗포의 작품 중에서 가장 노숙하고 호평이 자자하다는( 独 歩 の 作 品 中 で 最 も 老 熟 したも のとして 好 評 嘖 々たる) 2) 대나무 쪽문 과 두 노인 에 대한 평가인데, 이 두 작품을 다른 작품들과 아울러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과거 및 현재의 비평 3) 에서 대체로 간과되는 것이 두 작품의 현격한 차이인 동시에 두 노인 과 여타 작품들과의 차이이다. 본고는 두 노인 고유의 위상에 초점을 맞추 면서 여타 작품의 경향을 가장 극적으로 대표한다고 할 대나무 쪽문 을 주 된 예로 들어 두 작품의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돗포 후기 작품의 냉엄한 현실직시 및 객관적인 서술수법에 주목하면서 자 연주의 문학의 특색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보는 시각은 돗포집제2 에 수록 된 작품들에 대해 늙음, 빈궁, 질병, 영락, 죽음 등의 발견이자, 비참한 서민 세계의 발견( 老 い 貧 窮 病 気 落 魄 死 などの 発 見 であり みじめな 庶 民 の 世 界 の 発 見 ) 4) 이라고 한 평가로도 집약된다. 작품집이 출간되었을 당시나 근 래의 비평을 관류하는 이러한 평가를 놓고 볼 때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에서 두 노인 에 대한 비평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점 이다. 비평이 별로 없다는 것은 총괄적인 평가를 예시( 例 示 )하기에는 두 노 인 이 극적인 면에서나 독자에게 주는 충격의 정도에서나 너무 평범해 보이 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 봐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꼼 꼼한 읽기를 시도하는 비평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두 노인 은 동시기에 집 필되어 동년 동월에 발표된 대나무 쪽문 이나 전년에 발표된 궁사 에 비해 극적인 요소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작품이다. 가혹한 인생의 현실을 냉정한 1)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編 纂 委 員 会 (197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独 歩 集 第 二 文 庫 明 41ㆍ9 学 習 研 究 社, p.347 2) 坂 本 浩 (1942) 国 木 田 独 歩 三 省 堂, p.239 3) 돗포집제2 에 수록된 작품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살펴보면 자연주의문학이 성행하던 문단 의 경향이 반영된 평가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대나무 쪽문 과 두 노인 을 포함한 7편 의 작품에 대해 돗포 작풍의 원숙기에 있어서의 대표작이며, 또 우리 최근 문단 일부의 경 향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 独 歩 氏 の 作 風 の 円 熟 期 に 於 ける 代 表 作 で 又 わが 最 近 文 壇 一 部 の 傾 向 を 最 もよく 代 表 したもの) ( 早 稲 田 文 学 1908)으로 언급하고 있는 평가에서도 그 경향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문예비평가 나카무라 미쓰오( 中 村 光 夫 1954:112)는 궁사( 窮 死 ) 파 도소리( 波 の 音 ) 호외( 号 外 ) ( 明 40) 대나무 쪽문( 竹 の 木 戸 ) 두 노인( 二 老 人 ) ( 明 41)에 대 해서 이러한 작품에는 평범인의 생활의 평범한 희극 비극이 냉정한 필치로 묘사되어 돗포의 작품 중에서 (자연주의의 단편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으로 완성된(これらの 作 品 には 平 凡 人 の 生 活 の 平 凡 な 喜 劇 悲 劇 が 冷 静 な 筆 致 で 描 写 され 独 歩 の 作 品 のうちで( 自 然 主 義 の 短 編 のな かでも)もっとも 芸 術 的 に 完 成 された) 작품으로 평가한다. 4) 山 本 昌 一 (1991) 窮 死 論 死 の 発 見 国 文 学 解 釈 と 鑑 賞 56-2, p.129
153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49 필치로 묘사한 두 작품에 비해 노인의 소소한 일상과 삶의 애환을 담담한 필 치로 묘사하는 만큼 두 노인 은 지극히 평범해 보일 수밖에 없다. 크게 볼 때는 다른 작품들과 돗포 자연주의 문학의 대체적인 속성을 공유 하지만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별도로 언급할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 두 노인 비평에 깔려있는 암묵적 전제라면 바로 여기서, 다른 작품들 에 비해 평범해 보인다는 사실이야말로 두 노인 의 특징이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마지막 작품으로서 돗포의 여타 작품들과 다른 고유한 특징이 문제의 평범성 이라면 바로 그것을 여타 작품과 대비하는 방식으로 부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비를 통해서 두 노인 자체의 위상을 파악할 때, 평범해 보이는 것 자체가 작품고유의 뚜렷한 특징으로 드러날 수 있고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세심한 주목을 요하는 면면 또한 드러날 수 있다. 두 노인 을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비평에서는 주로 두 노인의 차이가 거론 되는데 작가자신이 두 노인 각각의 특성을 판이하게 그리고 있는 만큼 그 차 이가 논의의 중심에 서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두 노인의 차이에 치중할 때 놓치기 쉬운 것은 작가의 관심이 서로 다른 노인인 두 유 형의 인물을 제시하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고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아무 제한 없는 두 유형 이 아니라, 두 노인 만의 특징적인 공간에서 삶의 참상과 파국에는 이르지 않는 노인인 인물의 두 유형 이며, 작가가 파 국을 사상( 捨 象 )한 새로운 작품공간에 수용할만한 인물의 두 유형 이다. 다 시 말해, 두 노인은 그저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 에 공존하면 서, 그 공간을 공유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는 두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두 노 인의 차이만 거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순간 두 노인 고유의 위상과 가치는 반감되기 쉽다. 본고가 보는 두 개의 차이 는 여타 작품과 본 작품의 차이와 본 작품 내의 두 인물의 차이인데, 전자의 차이를 통해 본 작품 자체의 위상을 뚜렷이 할 때 후자의 차이를 아우르는 작가의 시선이 감지된다는 것이 본고가 말하려는 점이다. 편의상, 그리고 전자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작품 간 차 이 및 해당 작품 고유의 차이를 상위의 차이 로, 상위의 차이 와의 연관 속 에서 그저 차이일 뿐인 차이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는 두 인물의 차 이를 하위의 차이 로 명명한다.
154 15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2. 상위( 上 位 )의 차이: 두 노인 의 위상 두 노인 의 두 노인, 이시이( 石 井 )와 가와다( 河 田 )의 작중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차이를 보기에 앞서 두 노인 모두를 가령 돗포의 처녀작 겐 노인 ( 源 叔 父 ) ( 明 30ㆍ8 文 芸 倶 楽 部 )의 노인과 비교하면, 후자의 비참한 상황 과 같은 것이 전자의 두 노인 어느 누구의 상황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족을 모두 잃고 고독하게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 를 갈망하는 겐( 源 ) 노인의 뿌리 깊은 상실감과 고질화된 슬픔이라든가, 애정에 무감각하고 화석 화되다시피 한 고아거지소년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드러나는 내면적 파탄의 비극적 서정성이라든가 하는 것은 두 노인 에서는 더 이상 두 노인 의 몫 이 아니다. 두 노인의 어느 쪽에 대해서도, 이시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와다에 대해서조차도 삶의 참상 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다. 가장 적절한 말이 아마도 애환 일 것이다. 겐 노인 의 비극을 성립시키는 주인공의 갈 망, 관계 에 대한 노인의 갈망과 같은 것이 들어설 공간은 두 노인 에는 없 는데, 주인공의 자신의 실존 및 실존적 상황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나 그와 관련된 뿌리 깊은 자존( 自 尊 )의식과 그 의식이 낳는 꿈이라든가 크고 작은 환상처럼 비극의 요건이 되는 요소들 또한 두 노인 에서는 처음부터 여과되 어 있다. 처녀작 이후 삶의 참상에 닿는 주인공들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작 품들이 다수 있다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마지막 작품인 두 노인 에서 감지되 는 여과 는 매우 흥미롭다. 갈망 이 현실에 없거나 있어도 이루기 어려운 것에 대한, 그렇기 때문에 절실해지는 바람이라면 겐 노인 과 같은 작품의 주인공은 결정적인 결핍 을 이미 지닌 인물인데, 두 노인 의 가와다의 경우에도 생활고 로 묶일 수 있는 현실적 애로와 그에 대한 당사자의 사실주의적인 반응보다 깊은, 근저 의 어떤 심연 같은 것은 암시되지도 않는다. 돗포의 작품세계에서 가히 시종 일관 내장되어 있던 결핍 이라는 칩 이 제거되고 그 결정적인 것이 빠졌을 때 오히려, 작품의 초점이 한 주인공에 꽂히지 않고 거의 대등한 비중의 두 인물인 이시이와 가와다에 고루 맞춰지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두 인물의 차이 는 두 노인 이 선행하는 다른 모든 작품들과 다르기 때문 에 한 공간내의 두 초점 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노인 에서 두 노인의 차이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얼핏 보아 당연해보이지만 그러다가는 작 품에 제시된 대로의 빤한 차이만 이야기하고 끝나기 십상이다. 너무 당연해
155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51 보이는 두 노인의 차이에 앞서 본고에서 두 노인의 공통점, 즉 두 노인의 한 공간을 먼저 보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두 노인의 한 공간 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역시 자연주의의 가장 빼어난 특색을 발휘한 작품( 自 然 主 義 の 最 も 立 派 な 特 色 を 発 揮 したもの) 5) 이라 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대나무 쪽문 을 거론하면서 두 노인 을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나무 쪽문 의 비극적 결말에 이르러 작품 전체를 되돌 아보면 비극을 예비하는 설정이 뚜렷이 감지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설정이 감지되지 않는 상태의 인물묘사가 어떤 것인지는 두 작품의 대비에 의해 분 명해진다. 일례로, 대나무 쪽문 의 오겐(お 源 )과 두 노인 의 가와다 각각의 비행( 卑 行 ) 을 보자. 오겐이 숯 몇 조각을 훔치는 염치없는 행위가 그녀의 자살로 이어지는 극도로 압축된 과정에서 부각되는 것은 염치 와 자존 의 문제이다. 마음의 밑바탕에 강한 자존감이 꿈틀대는 인물이 스스로에게 소소 한 몰염치를 허용하는 자기위반( 自 己 違 反 ) 은 매우 위태로운 것으로서 비극 의 씨앗이 되는 점이다. 사는 형편이 어렵다보니 이웃의 호의에 기대 쪽문을 내달라는 다소 무리한 요구도 해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도 탐나는 물질 (숯)을 슬쩍하는 오겐의 몰염치가 아예 없는 동일한 결말을 생각하기는 어렵 다.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 허용한 몰염치가 자신이나 남편의 존재에 대한 자 존감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큰 전제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 이 작품의 비 극을 이루는 점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숯 한 섬을 통째로 슬쩍해왔고 그것이 발각되겠다는 두려움만 생각한다면 일부 평자들의 생각처럼 오겐의 자살은 이해하기 힘든 결말이 된다. 6) 남편이 들고 온 숯 한 섬 위에서 오겐이 목을 매는데, 숯의 양이 적으면 그 위에서 목을 맬 수 없겠지만 문제는 양이 많든 5) 相 馬 御 風 (190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最 近 の 小 説 壇 新 潮 明 41ㆍ3 学 習 研 究 社, 1978, p.406 6) 오겐의 자살을 둘러싸고 마지막에 목을 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죽이지 않는 쪽이 자연스럽다. 만약 죽인다면 좀 더 긴장시켜서 죽이는 쪽이 좋을 것이다.( 終 りに 首 をくくるのは 不 自 然 だと 思 ふ 却 つて 殺 さない 方 が 自 然 である 若 し 殺 すなら 今 少 し 緊 張 さし て 殺 した 方 がよからう ) ( 夏 目 漱 石 1908) 갑작스러운 죽음( 唐 突 な 死 ) ( 吉 田 精 一 1959:139) 제 삼자 결말에 보이는 동반자살 만큼의 필연도 없다( 第 三 者 の 結 末 の 心 中 ほどの 必 然 も 乏 しい) ( 平 野 謙 1962:424) 숯을 훔친 여자가 목을 매기 보다는 어딘가에 도망가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마도 기한의 사정인지 뭔지로 끝을 서두른 탓 일 것이다.( 炭 を 盗 んだ 女 が 首 を 吊 るよりは 何 処 かへ 遁 げ 出 しはしないかと 思 はれるが 多 分 は 日 限 の 都 合 か 何 かで 終 りを 急 いだ せいであろう ) ( 雲 外 生 1908) 라는 등의 평가가 있다. 오겐의 자살이 의외의 급작스러운 것 이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너무 쉽게 단정하는 이러한 비평들은 단편소설의 압축 미를 십분 활용하는 돗포의 작가적 역량을 심하게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156 15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적든 그것이 숯 이라는 점이다. 수량의 많고 적음으로 숯이 숯 아닌 게 되지 는 않듯이 염치 와 자존 도 오겐 자신이 의식적 차원에서는 구분할지 몰라 도 잠재적으로는 정도의 차이를 불문하고 깨끗이 구분할 수 없는, 근본적으 로 동질적인 것이어서, 바로 이것이 비극을 추동하는 저변의 요인이 되는 것 이다. 가와다는 자신의 비행 을 그대로 비행으로 인지하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위중( 危 重 )한 것으로 여 긴다. 벤치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시이에게 자신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회 피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죽여 주위를 힐끔힐끔 둘러보면서 어느 부인회의 수금원( 收 金 員 ) 일을 하다가 온 동경을 돌아다니는 일이 힘들어 식비 제공에 월급 7엔의 편한 일자리를 새로 구했다는 말을 한 뒤 가와다는 그러나... 라고 입을 떼면서는 몸을 뻗어서 근처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춰 자신이 큰일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생활비 부족으로 수금한 돈에서 1엔 2엔 몰래 써버린 돈이 15엔 정도 된다고 하면서 가와다는 그 15엔의 조달을 위해 사나흘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노라고, 돈을 빌려주기로 한 친구의 아들을 오늘 4시부터 5시 사이에 저쪽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자기 비행의 비 밀을 고해( 告 解 ) 라도 하듯 있는 그대로 자세히 말하고는 부디 비밀로 해달 라는 말을 말미에 붙인 가와다는 사연을 들은 이시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에 굽실굽실 대면서 떠나가는데, 뒤에 남겨져 멍하니 가와다의 뒷모습을 바 라보는 이시이의 눈에, 순사와 스쳐지나가면서 갑자기 모자에 손을 대고 인 사를 하는 가와다 노인의 모습이 잡힌다. 이시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가와다는 굽실굽실 대더니 떠나가 버렸다. 이 시이는 뒤에 남겨져 멍하니 가와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와다가 몸 을 뻗어서 멀리까지 둘러 본 것은 순사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과 순사가 스쳐지나갈 때 가와다는 갑자기 모자에 손을 대고 인사를 했다. 이시 이는 보고 있으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石 井 翁 が 何 も 言 ひ 得 ぬ 中 に 河 田 翁 は 辞 儀 をぺこぺこして 去 つて 了 つた 石 井 翁 は 取 残 されて 茫 然 と 河 田 翁 の 後 姿 を 見 送 つて 居 た 河 田 翁 が 延 び 上 がつて 遠 くまで 見 廻 したのは 巡 査 が 可 恐 かつたのだ そこで 翁 と 巡 査 と 摺 違 つた 時 に 河 田 翁 は 急 に 帽 子 に 手 をかけて 礼 をした 石 井 翁 は 見 て 居 て 其 意 味 が 解 らなかつた 7) ( )
157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53 이시이는 보고 있으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두 노인 의 이 마지 막 문장은 처지가 다른 사람의 심정과 태도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기본적으 로 같은 소민( 小 民 ) 8) 이면서도 의지할 조금의 연금이 있어 가와다가 겪고 있는 그런 정도의 생활고와 소심( 小 心 )까지는 이해하기 힘든 이시이 노인의 모습을 그 한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좁게는 순사에게 그렇게까지 신 경을 쓰면서 두려워하는 가와다의 모습이 생소했음을 나타낸다. 가와다의 모습을 보면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살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와다에게 자살은 없다. 대나무 쪽문 의 오 겐이 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소한 몰염치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정확히 말해서, 의식적으로 개의치 않으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와다는, 무너지는 한순간 그와 더불어 모든 것이 끝장나는 오겐류의 자존감은 없는 인물인 동시에 이미 드러난 대로 몰염치한 행동은 아예 할 수 없게 되어있는 인물이다. 말 그대로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 의 천성이나 원칙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돈을 한 푼 한 푼 수금하듯 한 푼이라도 누락되면 구멍이 생기는 잘 게 쪼개진 생활을 이를테면 한 푼 한 푼 이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에 몇 푼 빼서 쓰거나 하는 것은 평소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 그런 만큼 생활고에 부 득불 한 푼 두 푼씩, 실제로 여러 푼 빼서 쓰게 되었을 때의 가와다의 두려움 은 불 보듯 빤한 것이다. 가와다에게는 오겐의 자기위반 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힘겨운 소민의 생활고를 견뎌나가는 인물의 한 전 형이 있을지언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행위로써 파국을 예비하는 인물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와다에게는 삶의 애환이 줄을 잇지만 존 재 자체를 삭제할 비극은 없다. 따라서 두 노인 을 대나무 쪽문 과 같은 작품들과 한데 묶어 비참한 서민세계의 발견 9) 이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것 은 그저 무난하기는 하겠으되 둘 중 어느 작품에 대해서도 각각의 작품의 고 유성을 온당하게 비평하는 방법이 되기 어렵다. 이시이는 어떤가. 이시이가 가와다와는 사뭇 다른 처지에 있는 인물이지만 7) 작품의 인용은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四 巻 (1978 学 習 研 究 社 )에 의함. ( )안의 숫자는 페 이지를 나타냄. 8) 소민( 小 民 ) 이라는 돗포의 용어를 우리말로는 서민( 庶 民 ) 으로 바꾸어볼 수도 있겠으나 그럴 경우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평민 이라는 의미만 전달될 뿐 위축된 작은 존재 라는 느낌이 번 역어에 담기지 않는다. 소민 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이 논문에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 용어가 작가 자신의 공감과 연민의 시선까지 내포한 말이기 때문이다. 9) 山 本 昌 一 (1991) 앞의 논문.
158 154 比較日本學 第32輯 ( ) 가와다와 하나의 작품공간에 등장하는 것은 그가 소민으로서 그 나름의 삶의 애환을 가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기 때문이며 비극의 요건은 아예 있지도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시이는 성대(聖代) 의 혜택을 입어 별 과오 없이 오랜 관직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은급(恩給=年金) 으로 욕심 없이 무 위(無爲)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로서, 가와다에게는 있을 수밖에 없는 조금 더 나은 여건에 대한 바람조차도 필요 없는 인물이다. 더 바랄 것이 없고 있 다면 오로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연금만으로 어찌 되었든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을 감사히 받아 완전히 욕심에서 벗어나 하루하루를 가족과 함께 화목하게 즐겁게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 가령 25엔에 10엔 늘어나면 얼마만큼의 사치를 할 수 있나 모두 욕심이고 욕심에 는 끝이 없다. 일을 갖게 되면 5엔이든 10엔이든 눈비가 오는 날에도 쉴 수 가 없다. 역시 도시락을 싸들고 콧물을 찔끔거리며 젊은이들 사이에 끼여 비 칠거리며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아 생각만 해도 싫다. 恩給だけで兎も角も暮せるなら それを難有く頂戴して すつかり欲から離れて其 日々々を一家睦じく楽く暮すのが当然だ よしんば二十五円に十円増たら幾干の贅 沢が出来る 悉皆慾で 慾には限がない 役目となれば五円が十円でも 雨の 日雪の日にも休む訳には往かない 矢張腰弁当で鼻水を垂らして若い者の中に交 つてよぼよぼと通はなければならぬ オオ嫌な事だ (159) 남은 여생을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가족과 함께 화목하게 사는 것이 이시이의 바람인데, 이미 일 년 넘게 그 생활을 실행해오고 있는 이시이에게 그 생활이 바람 이 되는 것은 자신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아내 와 두 딸이 아닌 주변의 사람들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이러저러한 압박을 가해오면서 현상을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기 때문 이다. 아내의 조카인 도쿠(徳)는 언니의 살림 형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부탁 을 받아 이제 겨우 육십이고 사지도 멀쩡하고 매우 건강한 편(漸と六十歳で 足腰も達者 至て壮健の方) (157)인 이시이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일을 하게 할 생각으로 있는 인물이다. 그가 나타나 놀면서 지내는 것은 헛되다. 사지 가 멀쩡한 동안은 벌 수 있는 돈이라면 버는 것이 상책(遊んで暮すのは無駄 だ 足腰の達者な中は取れる金なら取るやうにするが得だ) (158)이니, 적어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놀고먹는 법은 없다. 병들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일하 는 것이 인간의 의무(いやしくも命のある間は遊んで暮らす法はない 病気でな
159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55 い限り死ぬるまで仕事をするのが人間の義務だ) (158)라며 노인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권유하면서 이시이를 압박해 온다. 마침내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놀고먹는 것은 죄악이라는 식의 이른바 유식죄악설(遊食罪悪說) 을 들이밀 기 때문에 이시이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것에 대적할만한 이름을 자신의 바람에 부여한다. 이른바 선인주의(仙人主義). 이시이는 도시에 은거하는 선인(市に隠れた仙人) 으로 자신을 규정함으로써 도쿠의 압박을 물리친다. 이번에는 유식죄악설을 들고 나와 거침없이 기염을 토해냈다. 이시이노인은 도쿠인 다케시에게 실컷 말하게 내버려둔 끝에 그럼 산에 은거하며 나무열매를 먹고 이슬을 먹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 그건 선인이죠 선인도 사람이다 그럼 숙부님이 선인입니까? 도시에 은거한 선인으로 있을 셈이다 이것으로 다케시는 다시 격퇴되어 버렸다. 今度は遊食罪悪説を持出して滔々と巻席立てて見た 石井翁は散々徳さんの武に言はして置いた揚句 それぢや山に隠れて木の実を食ひ露を飲んで居る人は如何する それは仙人です 仙人だつて人だ それじや叔父さんは仙人ですか 市に隠れた仙人の積で居るのだ これで武は又も撃退されて了つたのである (162) 타인의 압박을 물리치는 이시이의 모습은 남이 보기에 무조건 무위 를 고 수하는 옹고집일 수도 있으나, 퇴직하고 좀 편히 살겠다는 사람에게 일을 강 요하다시피 하는 것도 옹고집에 가까운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서,10) 거창한 두 명칭의 충돌이 독자에게 주는 인상은 다분히 희극적이기까 10) 이시이의 주변 사람들은 일을 거부하는 이시이를 별난 사람, 즉 변물(變物) 시 하면서 일하 기에 적절하지 못한 연배의 노인에게 일을 하라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쿠 의 유식죄악설 은 놀고먹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근면사상 이나 근무예찬 이 강하게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주장임에 다름 아니다. 그런 데 상대방이 공유할 수 없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면 밀어 붙이는 쪽이 오히려 변 물 로 보일 수 있으며 옹고집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작가는 도쿠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160 15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지 하다. 선인주의 를 의식적으로 표방해야할 만큼 이시이 나름으로는 상황 이 심각하더라도, 그것은 비극적인 어떤 요건과는 거리가 먼, 이시이에게 주 어지는 심리적, 정서적 애환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두 노인 에서 느끼는 것은 가와다는 가와다의 애환을, 이시이는 이시이의 애환을 보 여준다는 것, 두 인물이 각이( 各 異 )한 방식으로 공히 풍기는 애잔한 느낌이 다. 3. 차이의 구상( 具 象 ): 쪽문과 벤치 두 노인 이 돗포가 죽기 5개월 전쯤에 나온 마지막 작품이긴 하지만 두 노인 과 대나무 쪽문 은 거의 같은 시기에 집필되었다. 11) 돗포가 대나무 쪽문 에 심혈을 기울인 시기에 바로 뒤이어 두 노인 이 나왔다는 것은 작가 가 한편으로는 오래도록 자신이 집중해온 비극의 심연 과 주인공의 파국 을 압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완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 脫 )비극적 단편 의 창작을 통해 힘겨운 현실을 제 나름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애잔한 소민의 상을 꼼꼼하게 제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동안 마음에 있었지만 완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있어 미루고 있던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작가 의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성향이 강화된 작품과 거기서 갈라지는 새로운 성향의 작품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두 작품은 자연스럽 게 비교되는데, 두 작품 각각의 중심 물상인 쪽문 과 벤치 는 좀 더 효과적 인 비교의 수단이다. 대나무 쪽문 의 쪽문은 중류층인 이웃의 우물을 이용하던 오겐이 우물로 가는 최단거리의 길을 내기 위해 이웃집 주인에게 얼마간 무리한 부탁을 해 서 산울타리를 뚫고 낸 출입구이다. 이웃집의 하녀가 도둑의 입구( 泥 棒 の 入 口 ) 를 만들어 주는 꼴이라고 주인에게 말한 것과 상당한 불만( 大 分 苦 情 ) 의 소리가 가족 내에서 나온 것만 봐도 쪽문을 내는 일에 무리가 있었음을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11) 메이지 41년 신년호 잡지에 실린 대나무 쪽문 ( 中 央 公 論 )과 두 노인 ( 文 章 世 界 ) 은 당시 돗포가 거주하고 있던 오쿠보( 大 久 保 ) 자택에서 집필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돗포의 병상록( 病 牀 録 ) 이나 요시에 코간( 吉 江 孤 雁 1908)의 회상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며, 두 작품이 메이지 40년 11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에 집필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1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57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무리한 것만큼 오겐이 염치를 무시하고 들어간 셈이다. 이웃집의 출입구가 따로 있지만 그리로는 둘러가는 길이기 때문에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이 힘들다는 실용적인 생각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외부와의 경계 인 울타리에 비정상적인 출입구를 내는 일이 영 마땅찮겠다는 생각을 밀어냈 을 때, 쪽문 은 작가의 의도에 맞는 장치로 자리를 잡는다. 오겐에게는 동경 출신이기도 한 자기가 지금처럼 궁핍하게 살 사람은 아니라는 자존감이 잠재 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쪽문 정도의 부탁이나 요구는 무리가 따르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쪽문이 단지 물 긷는 편의를 위한 것이라 는 데에만 그 심리가 머물러 있지 않을 가능성이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진 다. 이것이야말로 돗포의 쪽문 이 함축하는 탁월한 의미이다. 그러한 가능성 이 현실화되는 사건이 숯 몇 조각을 훔치게 되는 사건인데, 오겐이 숯 몇 조 각을 훔칠 때 위에서 우연히 내려다본 주인의 시선과 마주치자 가볍게 딴청 을 부리는 장면에서도 오겐은 그것이 이미 사건 임을 의식하지 못한다. 쪽문 은 한편으로 교류 라고 하기 어려운 극히 제한된 교류가 부자연스럽게 이루 어지는 통로이지만, 무엇보다도 몰염치의 무리를 누적하게 하는 가운데 오겐 을 비극적 결말로 이끄는 통로이다. 몰염치의 뒷배 였던 자존감이 남편의 너 무도 간단한 더 큰 도둑질 앞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순간, 자신 의 무리를 무시할 수 있었던 꼿꼿한 자세가 무너지면서 누적된 몰염치의 무 리들 자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으로 한꺼번에 덮쳐오는 것이다. 쪽문 이 교류의 통로라면 그것은 비극을 낳는 교류의 통로이다. 쪽문 이 그것을 원하는 인물의 의지에 따라 무리를 동반하면서 만들어지 는 순간 비극이 잉태되게끔 한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섬뜩한 기량을 느끼게 만드는데, 두 노인 의 벤치 에 이르러 돗포는 쪽문 과 같은 특수한 장치에 집중하여 비극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데서 대폭 물러난다. 마치 그 일 은 이제 끝을 보았다는 듯이. 벤치 는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이미 주어져있는 자리로서 한 노인(이시이)을 앉혀 제 생각에 몰두하게 하면서 그 인물의 삶 전체와 당장의 고민, 그리고 인물 나름의 신조 비슷한 것을 드러내게 하는 장소이자,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또 다른 노인(가와다)을 불러들여 이미 있던 노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장소이다. 12) 쪽문 이 적어도 오겐의 심리 12)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벤치 는 메이지 36년에 개원한 일본최초의 양식공원인 히비야( 日 比 谷 ) 공원벤치이고 이 한 장소에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작품의 특징을 보인다.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렀다 스쳐가며 인생의 애환을 공유하는 장소이기도 한 공원벤치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시이와 가와다가 찾아들어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
162 15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속에서는 불확실한대로 교류 라 할 만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었 다면, 벤치 는 두 노인의 교류가 무리 없이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나타 나는 모습을 담는다. 벤치 에는 어떤 무리도 없다. 한 노인은 처음부터 끝까 지 앉아있고 또 한 노인은 중간에 찾아들었다가 작품의 마무리에서 먼저 일 어나며 먼저 있던 노인은 뒤에 온 노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할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구면인 상대의 안부를 묻는데 이런 식의 설정 자체는 너무 자 연스러워서 마치 쪽문 때문에 창백해진 돗포 자신이 히비야 공원을 찾아 한동안 앉아 쉬던 벤치를 이시이에게 내어준 뒤 그 인물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비유컨대 쪽문 이 비수를 품고 오겐을 내내 응시했다면 벤치 는 이시이의 삶에 개입하는 부분이 일체 없이 그저 그 인 물을 지켜볼 뿐이고 불안한 가와다가 찾아와 그나마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는 상황을 목격할 뿐이다. 차후 그 무엇도 증언할 필요 없이. 작품 의 모두( 冒 頭 )에 나타나는바,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과 그것에 조응 하는 이시이의 공공적적( 空 空 寂 寂 ) 한 내면은 돗포 자신이 마음 한편으로 품었을 안팎의 전망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전망이 문제의 벤치에서 열 리는 것이다. 4.하위( 下 位 )의 차이: 두 노인 두 노인 하나만 보면서 두 노인의 차이를 이야기해서는 그냥 작품을 착 실히 읽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작품과의 차이라는 상위의 차이 에 주목해서 두 노인을 큰 틀에서 같이 보는 관점을 제시한 것 이 이제까지의 논의였다. 두 노인 을 주로 대나무 쪽문 과 대비하는 과정 에서 두 노인 각각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 한 셈인데, 이제 남은 일은 이 제까지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돗포가 두 노인을 제시하는 그대로 보면서 각 각에 대한 이야기를 첨언하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 현재 자신의 삶, 퇴직 후의 청빈한 무욕의 삶에 대한 만족을 드러내는 이시이는 그러한 만족에 대해 불만을 품는 도쿠( 徳 ) 같은 주위사람 들의 압박에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다가 지금의 삶을 고수하기로 마음먹는다. 크고 작은 어떤 과오도 없이 오랜 관직생활을 무사 어 놓기에 적합한 장소로 두 노인의 애환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163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59 히 와 을 상 마치고 이제 일에서는 완전히 면제된 삶을 누리는 이시이에게 가령 아내 바둑을 두는 시간은 한가로운 여유만이 아닌 그 이상의 충일한 삶의 내실 의미한다. 아내가 바둑에 일심으로 집중하는 모습은 이시이로서는 더 이 바랄 것이 없는 행복의 면모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에 대해 도쿠가 노인 의 소일거리인 5엔 10엔 설(說)로는 도저히 부부가 마주 앉아 바둑 두는 것 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 (隠居仕事の五円十円説では到底夫婦差向ひの碁 打を説落すことは出来ないと考え) (162) 유식죄악설 을 들고 나와 거침없이 기염을 토해내며(滔々と巻席立てて) (162) 대놓고 공박을 해올 때, 사람들과 어 떤 식으로든 충돌하는 일이 없이 살아왔을 이시이로서도 정면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언급했듯 유식죄악설 에 대한 선인주의 로. 이 맞대응을 떠 올리면서 잠시 하게 되는 생각이, 아직 기운이 있는데 놀고먹는 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만도 아닌듯하다는 것, 하급월급쟁이는 이제 질색이고 농사가 좋겠으나 당장 논밭이 없다는 식의 답이 없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이 곧 벽 에 부딪치자 이시이는 선인주의(仙人主義)를 변호할 명분으로 되돌아가 끊 임없이 생각에 잠겨있 는 모습을 보인다.13) 이시이노인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자 벤치를 떠나려고 하다가 도쿠의 유식 죄악설이 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해서 다시 한 개비를 뽑아 피우기 시작했다. 도쿠의 본심은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선인설(仙人說)로 격퇴는 했지만, 과연 아직 기운이 정정한데 그저 놀고먹는다고 하는 것은 칭찬할 일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한다. 하급월급쟁이는 딱 질색이다. 시골에 살면서 농사라도 지을까? 이 생각은 좋을지도 모르나 당장 논밭이 없다. 노인 은 생각이 벽에 부딪치자 선인주의(仙人主義)를 변호할 명분으로 되돌아가 끊 임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 石井翁は煙草一本喫了つた処でベンチを起うとしたが徳の遊食罪悪説が鳥渡気に 掛りだしたので又一本取り出して喫ひ初めた 徳の本心は看破て居る そして仙人 説で撃退は仕たものの 成程 未だぴんしやんして居るのに唯だ遊んで食うて居る といふのは褒た事ではないやうにも思はれる それなら何をする 腰弁は真平だ 田舎に往つて百姓でもするか こいつは可いかも知れんが差当つて田地がない 翁は行塞つて了つたので 仙人主義を弁護する理屈に立返つて頻と考へ込んで居 13) 작가는 노년의 삶의 애환을 현실적 실질적인 문제, 즉 일할 수 있는데 일하지 않는 것을 죄 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대방이 공유할 수 없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데 에서 야기되는 마찰과 갈등을 포함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이시이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164 160 比較日本學 第32輯 ( ) る ( ) 이시이가 원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며 현재 의 삶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바라는, 작은 변화라 도 바라는 유위의 삶이 아니라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말 그대로 무 위의 삶을 이시이는 바라는 것이다. 이시이가 바랐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단하나, 오랜 관직 생활이라는 유위 에서 현재와 같은 무위 로의 변화이다. 이시이의 벤치는 바로 그 하나의 변화를 둘러싼 한 노인의 심리와 내면의 상태를 드러내면서 고요하고 평온한 기조를 유지하는 정적(靜的)인 장소 이다. 이시이의 벤치는 가와다를 앉게 한 뒤 독자의 시선을, 둘 다 비극적 결말 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가와다 노 인의 모습으로 옮긴다. 가와다는 이시이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벤치에 와서 는 털썩 주저앉는데, 이시이의 벤치에 가와다가 후반에 잠시 등장했다가 서 둘러 먼저 일어나는 것은 이시이의 삶에 비해 가와다의 삶 자체가 불안정한 것으로서 생활상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 금원으로서의 생활 자체가 육신의 움직임이 필요한 것인데다가 좀 더 나은 생활여건으로의 변화를 바라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시이에 비해 가와 다의 삶은 일을 계속하는 가운데 유위 에서 유위 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 이다.14) 가와다는 이시이가 딱 질색(真平だ) 으로 여기고 있는 하급월급쟁 이(腰弁) 신세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시이가 한사코 거절하고 있 는 소일거리에 해당하는 수입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이시이의 삶 이 작은 연금이지만 그것을 기초로 해서 퇴직이라는 단하나의 변화로 안정되 는 삶이라면, 가와다의 삶은 소소한 변화로 점철되는 삶으로서 하급의 급료 에 의존하는 더 많은 소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시이에게 안정된 가족과 화목한 가정이 있는 것에 비해 가와다는 결혼생 활의 실패 이후 60살까지 순전한 독신으로 독거생활을 해온 인물로 보통 사 람은 경험하기 힘든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결혼을 언약한 여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준 은인의 강권을 못 이겨 그 여자와 절연하 14) 사사부치 토모이치(笹淵友一1970: 588)는 생활을 위해 허덕거리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인 간과 그러한 근로를 거부하고 유전(流轉)의 신세에서 초월해서 안주해 있는 인간의 두 타입 (生活のためにあくせくと奔走しなければならない人間と そういう勤労を拒否し流転の境涯から 超越して安住している人間との二つのタイプ) 을 그린 작품으로 두 노인 을 평가한다.
165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61 고 데릴사위 겸 양자로 들어가 결혼한 여자가 반미치광이인 것을 못 견뎌 어 린 아들을 데리고 뛰쳐나와 아이는 누나에게 맡겨 양육하게 하고 그 이후로 는 가정을 갖지 않았다. 별다른 능력이나 취미는 없지만 선한 사람이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리를 지키는 가와다는 소심해서 우물쭈물하는 몹시 조심스러 운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때로는 대책 없이 고집을 부리며 발끈하기도 하 는데, 방랑의 피( 放 浪 の 血 ) 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한 직장 한 장소에 안 주하지 못한다. 15) 이시이를 포함한 주위사람들은 가와다의 처지를 동정하면 서 그의 운명을 불가사의한 것( 不 思 議 なこと) 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고 합리 적인 이유를 내놓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성격의 문제, 즉 패기없음( 意 久 地 無 し) 옹고집( 片 意 地 ) 교만함( 高 慢 ) 몹시 조심스러움( 遠 慮 深 さ) 을 그의 불우 함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양자로 가기로 정해지자 결혼을 언약했던 여성에 게 허리띠 한 쪽을 선물하고 울며 헤어진 일이나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곧 바로 충돌해서 직장을 그만 둬 버리는( 些 細 な 事 に 腹 を 立 て 直 ぐ 衝 突 して 職 業 から 離 れて 了 ふ) (165) 그의 삶의 태도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으 며 그러한 성격이 그의 지금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그들은 해석한다. 이러 한 성격의 문제와는 또 다른 가와다의 처지 즉 장년 시절부터 노인 시절까 지 순전한 독신생활 즉 부모형제의 관계에서 멀어져 혈혈단신( 壮 年 の 時 から 老 人 の 時 まで 純 然 たる 独 身 生 活 則 ち 親 子 兄 弟 の 関 係 から 離 れてただ 一 人 ) (165)으로 살아 온 것이 그의 기구한 운명의 큰 이유이며 그의 혈맥에는 방랑의 피 가 흐르고 있어 그와는 전혀 관계없이 자라나 세상에 나와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아들에게도 그의 방랑의 피가 흐 르고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해석은 돗포집 이래의 자연주의적인 인간해석 ( 独 歩 集 以 来 の 自 然 主 義 的 な 人 間 解 釈 ) 16) 과 맥을 같이 하는 것임을 보여준 다. 성격과 처지, 그에 따르는 행위들이 낳은 가와다의 불안과 불안정은, 관직 에서 실책 없이 대인관계나 상하관계를 모나지 않게 유지하면서 무사히 임기 를 끝마친 이시이의 원만한 성격과 그것이 가능하게 한 삶의 안정과 대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5) 요시에 코간( 吉 江 孤 雁 1908)은 방랑주의의 인간과 비방랑주의의 인간의 두 인물( 放 浪 主 義 の 人 間 と 非 放 浪 主 義 の 人 間 の 二 人 ) 을 그린 작품으로 두 노인 을 평가한다. 16) 笹 淵 友 一 (1970) 明 治 大 正 文 学 の 分 析 明 治 書 院, p.589
166 16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5. 맺음말 대나무 쪽문 의 쪽문 과 두 노인 의 벤치 를 대비하면서도 언급했듯 이 돗포는 마지막 작품인 두 노인 에 이르러, 궁핍한 삶의 비극적 참상을 첨예하게 부각하던 이전의 경향에서 벗어나는 면모를 보여준다. 쪽문 이라 는 장치의 다소간 무리한 설정이 주인공의 자살이라는 충격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벤치 는 이미 주어져있는 자연스러운 장소로 서 그곳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는 평온해 보이는 노인(이시 이) 나름의 정서적 애환이 드러나는 공간이자, 그날그날 먹고사는 일로 한 가할 여유가 없는 노인(가와다)이 잠시 찾아들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돗포는 비극적인 파국을 예비하는 식의 모든 설정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일상적 삶의 애환을 겪는 서로 다른 두 모습을 잔잔하면서도 꼼꼼 하게 제시한다. 17) 대나무 쪽문 의 오겐(お 源 )의 비극이나 폐결핵을 앓는 천애고아로서 도 저히 견딜 수 없어서(どうにもこうにもやりきれなくつて) 역사( 轢 死 )하고 마는 궁사 의 분코( 文 公 )의 참상을 직시하면서 냉정한 필치로 묘사한 바 있는 돗포가 두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삶을 직 시하되 그 참상에서 한번 냉정하게 눈길을 돌려 다른 지점을 보는 것이다. 두 노인 은 삶의 참상을 외면한다기보다, 삶의 실상을 그야말로 냉정하게 보면 참상만큼 곧바로 눈에 띄지 않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또 다른 모습 이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삶의 참상은 외면하려 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명백하게 외면할 수 없는 곳에서 눈길 을 돌려보는 행위는, 반드시 비극적 심연으로 이어지는 삶의 애환이 아니더 라도 전형적인 소민 의 실상이라면 그 모습이 드러나는 만큼만 의식적으로 면밀하게 드러내는 일 또한, 혹은 그러한 일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통한다. 내용상 완화된 것으로 보이겠으나 자연주의적 기율은 그대 로 유지되는 가운데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두 노 인 의 위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두 노인 고유의 위상은 여타 작품들과의 대비라는 일차적 차이(상위의 차이)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본고에서 두 노인의 차이를 이차적인 차이(하위의 차이)로 본 것은 작가가 여실하게 그려낸 그 차이가 미약해서 17) 벤치 에서 시작해 벤치 에서 끝나는 작품의 기본구도부터가 파국과는 거리가 멀다.
167 두 개의 차이: 구니키다 돗포의 두 노인 과 비평의 관점 (김미경) 163 라기보다는, 두 노인이 판이한 인물이지만 다른 작중인물들과의 좀 더 극적 인 대비 하에서는 오히려, 삶의 실상을 대하는 작가의 새로운 자세에 의해 하나로 꿰어지기 때문이다. 좀 더 큰 틀에서 차이를 고려하고 여기에 이어 두 작중인물의 차이를 고려할 때 둘을 분리하는 동시에 한 작품공간에 아 우르는 작가의 시선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단선적으로 두 노인의 차 이에만 집중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시선이. <참고문헌>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編 纂 委 員 会 (197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四 巻 学 習 研 究 社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学 習 研 究 社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九 巻 所 収 病 牀 録 学 習 研 究 社, p.38 雲 外 生 (190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新 年 の 小 説 趣 味 明 41ㆍ2 学 習 研 究 社, 1978, p.404 坂 本 浩 (1942) 国 木 田 独 歩 三 省 堂, p.239 笹 淵 友 一 (1970) 明 治 大 正 文 学 の 分 析 明 治 書 院, pp 相 馬 御 風 (190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最 近 の 小 説 壇 新 潮 明 41ㆍ3 学 習 研 究 社, 1978 中 村 光 夫 (1954) 日 本 の 近 代 小 説 岩 波 新 書, p.112 夏 目 漱 石 (190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独 歩 氏 の 作 に 低 徊 趣 味 あり 新 潮 明 41ㆍ7 学 習 研 究 社, 1978, p.155 平 野 謙 (1962) 日 本 現 代 文 学 全 集 18 国 木 田 独 歩 集 作 品 解 説 講 談 社, p.424 山 本 昌 一 (1991) 窮 死 論 死 の 発 見 国 文 学 解 釈 と 鑑 賞 56-2, p.129 吉 江 孤 雁 (1908) 定 本 国 木 田 独 歩 全 集 第 十 巻 所 収 大 久 保 時 代 の 独 歩 氏 新 潮 明 41ㆍ7 学 習 研 究 社, 1978, p.198 吉 田 精 一 (1959) 自 然 主 義 の 研 究 下 巻 東 京 堂, p.139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김미경 (한자) 金 美 卿 (영문) Kim Mi Kyung 소속 : 인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168 16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논문영문제목: Two Contrasts : An Approach to Kunikida Doppo s Two Old Men 주소 : ( ) 경남 김해시 인제로 197 인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구니키다 돗포의 마지막 작품인 두 노인 은 대나무 쪽문 과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들 과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같은 시기에 집필되었는데,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 에 집중해온 돗포의 소설문학이 대나무 쪽문 에서 절정을 이룬 시기에 비극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희극적 요소가 다분한 두 노인 이 등장했다는 것은 적어도 두 작품 만큼은 대비( 對 比 )를 해야 후자 고유의 성격이 뚜렷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 노인 은 두 노인의 살아온 방식의 차이, 생활고가 있고 없음의 차이, 주변 환경에 대한 대 응(반응)에서 드러나는 성격의 차이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두 노인의 차이 가 이 작품을 따로 다루는 비평의 당연한 초점이 되는데 이 차이에만 집중할 때 두 노인 을 하나로 묶어서 보는 더 큰 시각은 확보하기 어렵다. 작품의 초점이 비극의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니 라, 삶의 애환을 상이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두 사람이라는 점이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한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비극의 절정을 선사한 작가가 비극 을 일단 배제했기 때문에 비중이 대등한 두 인 물을 하나하나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작품과의 대비를 통해서 드러나는 이 작품 고유의 면모이다. 이렇듯 해당작품을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의 차이 는 일차적으로 고려할 상위의 차이 가 된다. 두 노인 은 바로 그 차이와 더불어 두 노인의 차이 를 고려할 때 작가의 그야말로 색다른 역량을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요컨대, 두 개의 차이 를 고 려해야 하는 작품인 것이다. 주제어: 두 개의 차이, 상위의 차이, 비극, 두 노인
169 165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 경 수 * Abstract Park Hwa sung was born to women who have been marginalized from the social system of the Late Period of Chosun that seems to have been the most milestone in the history of Korea. She was originally sought independent proactive woman's life, or women's liberation. However, while lived in the colonial reign of Japan, the women's liberation was not to be obtained, through separated from the national liberation. There is a need to be ahead of what came to realize that national liberation. Therefore, she choose literature as a means of reality reform, and proceeded to shape of the clarity to the subject. However, while colonial regime has been strengthened, in her literary range is gradually reduced from social thing to living ones. Moreover, she also be equated with invincible natural disasters the colonial rule that can not be denied. Finally, at the colonial end stage when literati had converted to pro_japanese, she represented the escapism as silence. Park Hwa sung who was straight pursuing the realism of socialistic after start hers literary career, she were able to make a bold selection of silence as literature. And to it was sublimed into the construction of internal world, she could enter the active phase after liberation. Finally, she showed the literary life force as a writer passing through the Korean literature. Keywords : Colony(식민지), Socialism(사회주의), Reading clubs(독서회), Hukumotoism(후쿠 모토이즘), the 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1) 1. 연구목적 본 연구는 여성작가 박화성( 朴 花 城, ~ )의 작가의식을 생생하게 담아낸 초기소설(일제강점기에 발표한 소설)에서 민족 이라는 키 워드를 읽어내고자 함에 있다. 실로 한국문학사에서 박화성 이란 역사적 인물이 형성되어가던 시대는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하여 첫 번째 표적으로 삼았던 한반도를 완전한 식민 지로 만들어 본격적인 식민정치를 펼쳐나가던 시기였다. 그의 출생은 러일 전쟁(1904.2~1905.9)직후 한국통치권을 인정받은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 (1905)하여 식민지 기반을 다진 다음 마침내 합병(1910)이라는 수순을 거쳐 *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강사, 일본근현대문학, 한일비교문학 전공
170 16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본격적인 식민통치를 감행해 나가던 때였다. 이 시기야 말로 여성을 억압하 는 봉건적 사회구조에 더하여 지배국과 피지배국이라는 큰 틀의 주종관계 가 부과된, 한국역사상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단히 불리한 환경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시기 남성중심의 문단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배포로 사회를 응시 하였던 박화성의 초기작품이 크게 주목되는 것은, 동시기 여성작가에서 찾 아보기 어려운 민족 이라는 키워드가 차지하는 영역이 상당하였기 때문이 다. <3ㆍ1운동>을 전후하여 일본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작가군 1) 의 작품 소재 ( 素 材 )가 대부분 여성의 성적( 性 的 ) 정체성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때, 박화 성은 식민지 여성의 사회적 존재를 문제시하였고, 당대의 시대적 사명이었 던 민족해방 의 필연성을 작품 곳곳에 담아내어 민족의식을 이끌어내었다 는 점에서이다. 이는 한국여성문학에 대한 범주와 작가의 계보가 대부분 박 화성의 등장을 중심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점 2) 에서도 충분히 설명되는 부분 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체적으로 박화성을 여성 이라는 카테고리 에 묶어두고 주로 페미니즘 차원에서 보아왔기에, 민족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였다. 이에 본고는 날 로 강화되어가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식민지시대의 구조를 해부하는 특징적 인 작품 8편 3) 을 들어 민족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롭게 읽어냄으로 1) 신여성작가군의 대표작가로는 東 京 女 子 專 門 學 校 를 졸업한 김명순, 女 子 美 術 學 校 를 졸업한 나혜석, 도쿄 英 和 學 校 를 졸업한 김일엽을 꼽을 수 있다. 2) 한국여성문학에 대한 범주 및 계보는 사회주의 수용을 기점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를 처음 시도한 김윤식의 경우, <3ㆍ1운동> 전후에 시작하여 192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나혜석, 김 일엽, 김명순을 제1기로, 1930년대에 활동한 박화성, 강경애,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 등을 제 2기로, 제3기는 이들이 신체제문학 친일문학 에 참여하여 친일문인이 된 시기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이상경은 이러한 분류가 자료의 한계 등으로 실상에 맞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음을 내 세워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900년 이전에 태어나 <3ㆍ1운동>을 전후해 문화계에 등장하 여 자유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첨단의 삶을 살면서 저널리즘에도 자주 오르내리며 대중의 호 기심을 자극했던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을 제1기로 보았으며, 대개 1900년대에 태어나 1920 년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는 1930년대에 작품활동을 하면서 당시 여류문인 논의의 중심이 되었던 여성작가, 즉 박화성, 강경애, 김말봉, 이선희, 백신애, 장덕조, 최정희 등을 제2기로, 그리고 1930년대 후반 또는 말엽에 등단하는 바람에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임순득, 지하련, 임옥인 등을 제3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상경(2004) 1930년대의 신여성과 여성작가의 계보 연구, 여성문학연구 제12집, 한국 여성문학학회, pp 참조) 3) 추석전야 (1925.1), 백화 ( ), 하수도공사 (1932.6), 떠내려가는 유서 ( ), 비탈 ( ), 두 승객과 가방 ( ), 홍수전후 (1935.3) 한귀( ) 등
171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族 읽기 (박경수) 167 써 박화성 초기문학에 담긴 이념과 사상을 재조명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2. 현실인식과 민족의식 성장배경 박화성은 개화기 목포 선창에서 객주를 운영하며 시류를 타고 부를 축적 하였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유아기를 보냈지만, 성장기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상실감을 겪으면서 여성으로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사회적 환경은 일제의 주도한 식민통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박화성이 살고 있는 목포는 개항 이래 일본자본에 의해 급성장한 지역이었기에, 식민지 경제적 지배가 더하여 각종 산업 및 노동력 착취4)가 극심한 곳이었다. 박화성이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 던 것은 기독교 신앙과 접목된 민족해방에 대한 소명의식 이었다. 여기에 <러시아혁명>(1917)의 성공으로 인한 파장과 이후 급격히 유입된 사회주의 가 이론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식민지 조선사회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 ㆍ1운동>이 실패로 돌려지면서5)부터였다. 당시 사회주의이념을 받아들이는 4) 농업부문에서는 쌀과 면화가, 공업부문에서는 고무와 제사ㆍ방직업 등이었으며, 여기에 종사 하는 노동인력도 주된 착취의 대상이었다. 5) 그 요인으로는 첫째, 러시아혁명이 가져다준 충격과 거기에 따르는 일종의 희망이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가 아닌 후진 러시아에서 급진적인 혁명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사회주의 이념 을 민족해방의 이념적 기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둘째, 전통적인 지배계급 내지 우파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전개된 민족주의운동이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한계는 3ㆍ1운동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는 조선에서 부르주아 민족운 동의 최고 절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부르주아 민족주의 기치 아래에서는 진정한 민족의 계급 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하였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우유부단성과 무능력을 명백 히 폭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동경하던 서방의 자본주의국가에 의거 자주독립을 실현 하려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파산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셋째, 서구 열강들을 대상으로 식민 지해방과 민족독립을 추구하려 했던 외교적인 조력의 좌절을 코민테른이 다소나마 심리적 보상을 해 주었다. 3ㆍ1운동 이후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베르사이유회담 및 워싱턴회의에 참 석하여 조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했으나 참담한 좌절을 맛보았던 사실에 비해 코민테른 이 개최한 <제1회 극동피압박민족회의>는 대단한 지지를 해주었다. 이같은 요인들은 사회주 의가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이념이나 운동의 성격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은 물론이 고 나아가서는 현실적으로도 국제적 도움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김인걸 (1989) 1920년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보급과 노동운동의 발전, 일송정, p.18 ; 金錫根 (1995) 후쿠모토이즘(福本主義)과 식민지하 한국사회주의운동, 아세아연구 제38집, 고려 대아세아문제연구소, p.80 참조)
172 168 比較日本學 第32輯 ( ) 것은 크게 두 갈래의 루트를 통해서였는데, 그 하나는 연해주에서 일찍부터 사회주의에 접촉했던 인사들을 통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유학 하는 유학생을 통한 것이었다.6) 박화성의 경우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 여 일본 사회주의인사와 접촉이 많았던 오빠 박제민의 영향, 자신의 일본 유학경험, 또 일본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사상가 김국진과의 결혼으로 보아 도 후자에 해당된다 하겠다. 그러나 그 지향점만큼은 국민의 삶보다는 전쟁을 획책한 정부와 이에 편 승하여 부를 축적한 자본가에 대항하는 노동자 농민층의 저항이었던 일본 식 사회주의와는 전혀 달랐다. 당시 청년지식인들에게는 지배국의 착취가 만연한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던 까닭에 이들 이 수용했던 사회주의는 지배국의 착취에 대한 노동자와 농민의 의식전환 만이 진정한 민족적ㆍ계급적 해방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민족의식이 전제 된 사회주의 였던 것이다. 박화성이 성장기에 흡수한 사회주의 역시 민족의식이 전제된 사회주의였 다는 것은, 그가 1918년 숙명여고보 졸업(9회) 당시 우리나라를 독립시키 는 데에 거름이 되며 우리나라에서 몇째 안가는 큰 일꾼이 되겠다. 는 이상 을 품었다는 것과, 무엇을 어떻게 하여서 우리나라를 건지는 일꾼이 될 까? 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데서 확증된다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을 처음 작품으로 표출해 낸 것이 당시 문단의 유수한 작가들로부터 주목 을 받았던 추석전야 ( 발표)이다. 박화성의 현실인식은 추석전야 발표 후 다시 상경하여 숙명여고보 신 학제 4년을 마치고, 일본여자대학(日本女子大學) 영문학부에 입학한(1926.4) 이후 교내 독서회 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이 독서회 는 당초 세이케 도시 (淸家とし)7)와 니시무라 오토요(西村櫻東洋)8)가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실천 6) 진덕규(1988) 한국 민족운동에서의 코민테른의 영향에 대한 고찰,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집, p.395 참조 7) 淸家とし(홋날 寺尾とし, ) 昭和時代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에히메현(愛媛県) 우와 지마(宇和島) 출신. 旧姓은 와카마쓰(若松). 1923년 1월 사회주의 운동가 세이케 도시즈미(淸 家敏住)와 결혼하였으나 1931년 9월 이혼함. 훗날 데라오 고로(寺尾五郎)와 재혼함. 日本女 子大 졸업 직후인 1927년 노동농민당 서기가 되었고, 이듬해인 1928년 공산당에 입당한 이 래 4ㆍ16사건 등으로 수차례 옥살이를 하였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지하활동을 계속했다. 전후 당 재건에 노력했지만 1966년(S41) 남편 데라오 고로와 함께 中国派로서 제명되었다. 당시는 세이케와 결혼기간 중이었기에 본고는 세이케 도시 로 표기하기로 한다. 8) 西村桜東洋(にしむらおとよ, ) : 昭和時代 여성사회운동가. 사가현(佐賀県)에서 태
173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族 읽기 (박경수) 169 의식을 배양한다는 취지로 주관하였고, <3ㆍ1 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된 경 험이 있었던 이현경, 황신덕 박순천 등이 거쳐간 <赤友會>란 이름의 독서 회였다. 가끔 남편(清家敏住)의 동급생이었던 조선인 김영식(金永植)으로부터 조선의 부인학생 중에 사회문제 연구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뻤다. 그들이 우리의 1년 상급생인 3명의 조선부인이었다. 김영식은 남편 친 구 중 하나였던지라 거의 매일처럼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 김영식은 키가 크고 안경너머로 총명한 눈이 빛나는 아름다운 이현경(李賢卿)을 데리고 왔다. 니시무라 오토요(西村櫻東洋)와 함께 우리들 다섯은 기분 좋은 저녁식사 를 했다. (중략) 처음 한동안은 별로 말이 없었는데, 한번 이야기가 일본제국 주의에 미치자 그녀의 유창한 일본어가 열기를 띤 웅변이 되었다. 우리들은 김영식을 통해서 조선의 유학생들이 얼마나 일본제국주의를 증오하며, 강한 민족의식과 조국애에 불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는데, 이현경의 열변에 한층 깊은 감동을 느꼈다. 이현경 외의 다른 두 명의 조선부인은 황신덕(黃信德)과 박순천(朴順天)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함께 1919년 3월 조선민족독립운동에 여학생의 몸으로 참가해서 투옥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이때 처음 으로 알았다. 그 후 우리들은 학교 근처에 집이 있었던 박순천의 집에 모여서 비밀리에 협의를 했다. (중략) 이 모임은 <赤友會>라 명명된, 예비사회주의자 를 자처하는 모임이었기에 흐뭇하기 그지없었다.9)(번역 필자, 원문 각주) 어나 후쿠오카(福岡)현립 구루메고등여학교(久留米高等女学校(현 아키요시고등학교(明善高 校)를 거쳐 일본여대 사회학과 졸업. 1929년 이른바4ㆍ16사건에 연좌되어 투옥되었으나 폐 결핵으로 보석 출옥함. 패전 후 후쿠오카현 일본농민조합연합회 서기와 회계를 지내며 후쿠 오카현 농민회관에 관리인으로 거주함. 저서로 이타즈케 비행장 이야기(板付飛行場物語 怒 りの席田) (福岡ㆍ九州文庫, )와, 고 니시무라 오토요 유고집(故西村桜東洋の遺稿 集) (小川洵編集 刊行, )이 있다. ( ) 9) たまたま清家の同級生だった朝鮮人の金永植から 朝鮮の婦人學生の中に社會問題の硏究をし たいと希望している人のあることを聞いて私は非常によろこんだ それが私たちの一級上級にい た三人の朝鮮婦人だったのだ 金永植は清家の親友の一人であったから ほとんど每日のよう に私の家に出入していた あるとき金は背が高い 眼鏡のなかから聰明な眼が光っている美しい 李賢卿をつれてやってきた 西村櫻東洋も交えて私たち五人はたのしい夕食をともにした <略> はじめのうちは遠慮がちえあまり話もしなかったが 一たび話が日本帝國主義のことにおよぶと 彼女の流暢な日本語が熱をおびて雄辯となった 私たちは 金永植を通じて朝鮮の留學生たち がどんなに日本帝國主義を憎惡し 强い民族意識と祖國愛にも燃えているかとをよく知っていた が 李の熱辯に一層深い感動を覺えた 李賢卿のほかの二人の朝鮮婦人は黃信德と朴順天と いった この三人はともに一九一九年三月一日の朝鮮民族獨立運動には女學生の身で參加して 投獄された經驗の持主であることもこのときはじめて知った それ以來私たちは 學校の近くに家 を持っていた朴順天の家に集ってひそかに協議をした <略> この会は 赤友會 と名づけられ て いっぱい社會主義者の卵の集利をもって任じていたのだからほほえましい限りだ (寺尾とし
174 170 比較日本學 第32輯 ( ) 처음 텍스트는 다카바다케 모토유키(高畠素之)의 資本論入門 이었는데, 지도자도 없었고, 아나키즘과 볼셰비즘이 혼동되어 사회주의라 일컫던 시대 였던지라 그 이상의 발전도 없었고, 그러는 동안 조선부인 3명이 졸업하여 나가자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나 세이케와 니시무라에 의해 재정비된 이후의 독서회 는, 훨씬 진보적이었던 도쿄여자대학 사회과학연구회의 지도에 힘입 어 활성화되어갔다. 이후의 텍스트는 1925년 10월경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순식간에 일본 좌익논단을 석권한 후쿠모토 가즈오(福本和夫)의 서적이 채 택되었다. 특히 사회구성수준의 변혁과정(社會の構成竝の變革の科程) 은 당시 지식청년들 사이에서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마르크스주의를 말 할 자격이 없다 10)할 정도의 마르크시즘의 바이블 로 통용되던, 후쿠모토 이즘(福本主義)11)의 전형을 보여준 책이었으며, 이후 방향전환론(方向轉換 論) 이론투쟁(理論鬪爭) 방법론(方法論) 등으로 이어졌다. 세이케가 졸업(1927.3)으로 독서회 를 떠난 후, 가을학기에 입회한 박화성이 후쿠모 토이즘을 내면화 한 것으로 보아, 1927년 7월 이후 후쿠모토의 이론이 비 판을 받고 위용을 상실해가던 시기에도 텍스트는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인 다. 후쿠모토이즘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 역시 사회주의 수용과정의 연장 선에서 이해되어야 할 듯하다. 식민치하에서의 사회주의 수용이란 일차적으 로 민족해방과 민족독립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성격이 더 강했기 때 문이다. 이는 당시 일본유학이 조선인에게 새로운 사상이나 사회운동과 접 촉할 기회를 주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제국의 차별과 폭력성을 실감하고 오히려 민족적 저항의식을 배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경우와도 상통한다. 박 (1950) 傳說の時代 愛と革命の二十年, 未來社, pp.49 50) 10) 當時の無産階級運動の指導理論は山川イズムから福本イズムにうつっていたので 私たちのテ キストも福本和夫の著書 社會の構成竝の變革の科程 が使われた この本はマルクス主義の バイブルとされて飛ぶように売れた そしてこの書をよまざるものはマルクス主義を語る資格なし という有様であったから その一種獨特の難解な文字を私たちは鉢卷をして勉强したものであ る (寺尾とし, 앞의 책, pp.57) 11) 후쿠모토이즘(福本主義)의 본질은 일본을 절대주의 군주국가로 파악하고 일본 자본주의는 몰락과정에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먼저 부르주아혁명을 완수한 후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 가야 한다는 관점을 드러내며, 이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 노동자계급을 대상으로 한 지 식인들의 의식화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결합이전의 분리작업, 즉 이론투 쟁을 거쳐 소수정예로 구성된 전위정당의 출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후쿠모 토이즘이 순식간에 일본 좌익 논단을 석권하며, 1926년 12월 개최된 <일본공산당재건대회> 에서 당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었다.(金錫根, 앞의 논문, p.116 참조)
175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族 읽기 (박경수) 171 화성이 이 독서회에 빠져든 것도 어쩌면 이같은 현실인식하에 임석경관의 주의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정부의 비행을 규탄하는 회원들의 자기들 주 의와 신념을 피로(披露)하는 용감성과 끈기에 크게 감복 12)하였던 까닭이었 을 것이다. 그러나 세이케가 졸업 후 바로 사회주의 실천운동에 투신하였던데 비해, 박화성의 경우는 직접적인 투쟁보다는 주로 자신의 문학을 통해 이를 표출 하고 있다. 실로 1928년 1월 박화성이 <槿友會>13)의 도쿄지회장을 맡은 직 후, <槿友會>가 당초의 목적보다는 여성대중의 계몽운동에 더 치중하였던 점을 들어, 목포지회와 연대하여 반성을 촉진시켰던14)것 외에 실천운동 이 력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은 그가 독서회에서 내면화 한 사회주의 이념, 즉 후쿠모토이즘이 어떤 실천적 행동을 전개하기보다는 일차적 관념체계에만 머물러 있었던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박화성이 현실변혁 의 한 수단으로서 문학을 선택하였고, 그 문학에 자신의 의식을 고스란히 담아내었음을 고려할 때, 그의 초기소설을 통하여 민족의식 표출의 다변화 에 심층적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겨진다. 그 과정을 민족 이라는 키워드를 축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3. 이념과 사회, 그리고 민족 3.1 자아의 형상화 추석전야, 백화 박화성의 성장배경에 따른 자아가 가장 명쾌하게 드러난 소설은 말할 것 12) 서정자(1999) 한국근대여성소설 연구, 국학자료원, p.69에서 재인용 13) <槿友會>는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운동 조직인 <朝鮮女性同友會>(1924.5)가 창립된 이래 <中央女子靑年同盟> <京城女子靑年同盟> <京城女子靑年會>를 거쳐 1927년 5월 27일 민 족단일당 조직운동의 일환으로, ①朝鮮女性의 鞏固한 團結을 圖謀함. ②朝鮮女性의 地位 的向上을 圖謀함. ③朝鮮女性의 政治的, 經濟的, 社會的覺醒 을 促進함 을 취지로 하여 민족주의계ㆍ사회주의계 여성운동을 통합하여 조직된 여성운동단체이다. (崔貞熙(1931) 朝鮮女性運動의 發展過程, 삼천리, , p.252 참조) 14) 社會主義女性의一部는 槿友會를가지고 政治的x爭보담 朝鮮女性大衆의 啓蒙運動에 一層 힘드리고 政治運動은 階級的 漸進的으로 하지안으면 안된다고 그들은 主張하여왓다. 그 들은 政治的鬪爭은 먼저現下朝鮮에잇서서 客觀的情勢가 容恕하지안는다고말하엿다. (중 략) 이러한関係로 1928年 봄에 東京支會는 木浦支會와 提携해서 槿友會本部에 反省을 促 進시켯다. (崔貞熙, 위의 글, p.252)
176 172 比較日本學 第32輯 ( ) 도 없이 고향 목포의 방직공장을 배경으로 한 추석전야 (1925.1)이다. 앞서 살핀 대로 박화성의 고향 목포는 개항 이래 일본인에 의해 급성장한 지역 으로, 그 급성장의 이면에는 1900년대 초 면방직공업을 위한 면화재배에 성 공한 지역이었다는 점15)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 작품동기이자 배경이 된 방직공장은 일본이 1906년 수출시장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면화재배의 주산지 인근 목포에 설립한 제사공장인 한국면 화주식회사 였다. 그것이 1910년 합병과 동시에 일본의 한 지역으로 전락하 였음을 의미하는 조선면업 으로 바뀌었다가, 1917년 자본금을 2백만 원으 로 증자하여 조선면업주식회사 로 법인화하였으며, 1924년 해안통에 부설 직포공장을 설립함으로써 방직공업까지 일원화되게 되었다. 이 회사의 경영 형태는 목포 등지에서 재배된 면화를 오사카(大阪)로 실어가서 제사작업을 한 후 가공된 면사를 오사카로부터 실어와 직조하여 내수 및 수출로 이어 지는 방식이었다. 면화재배도 그렇지만 제사공장이나 방직공장은 특히 장시 간 노동을 요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었기에 일본인 자본가는 이에 대한 보 수를 가장 저임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성노동자를 선호하였다. 추석전야 가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작가의 집필 의도에 잘 나타나 있다. 추석전야를 쓰던 그때의 나의 눈에는 우리 민족의 9할이 내 주인공의 입장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과 싸워 얻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민족의 거의 다 대변자가 되어 그들의 생활을 연구하고 해부하고 폭로하여 만천하 동 포들의 공감을 얻는 동시 우리대로의 최선의 삶의 길을 뚫어나갈 방향을 찾아 15) 서구의 산업혁명 이래 세계자본주의 진행에 중요한 몫을 하였던 면방직공업은 근대 일본의 자본주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한 대단히 중요한 산업이었기에 일본이 원면확보에 기울인 정 책적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 원면의 세계시장은 미국산 면(綿)이 차지하는 비율이 %에 달했던 까닭에 일본 면방직공업의 성패는 미국의 면화농사와 원료공급 여부에 달려 있는 실정이었다. 이같은 사정으로 일본은 면화의 새로운 공급지를 찾기에 크게 부심 하였으나 일본의 기후나 풍토가 질 낮은 이불솜용에 불과한 재래면의 재배는 가능했지만 질 좋은 방적용 면화재배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에 1902년에는 식민지 대만에서 육지면 의 시험재배를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후 한국산 재래면이 미국산 육지면의 품 질과 비슷한데다 기후조건도 유사하다 여기고, 남부지역에서 시험재배를 시도하였는데, 1905년 드디어 전라남도 목포 인근 고하도에서 재배한 면화가 일본인 와카마쓰(若松)에 의 해 면적당 수확량이나 품질이 우수한 육지면으로 판명되었다. (金基赫(1994) 日帝時代 韓 半島 農業의 地域構造 硏究, 부산지리 제3호, pp 참조) 이로써 방적용 원면의 재 배 가능성을 확보한 일본은 목포 인근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육지면 재배를 시행하게 되었고, 그것이 성공적인 수확으로 이어지면서 목포인근의 농업구조와 공업구조의 재편을 초래하기 에 이른 것이다.
177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73 야 하겠다는 것이 당시 목적의 전부였던지도 몰랐다. 16) 민족의 90%가 식민지 착취의 현장에 놓여있었던 상황을 직시하였던 박 화성의 입장은 당시 민족의 참상을 해부하고 폭로하는 대변자가 되어 식민 지 여성의 최선의 삶의 길을 뚫어나갈 방향 을 찾고자 함에 있었다. 이의 투영을 위한 대변자로서 영신 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다. 나름 고등교 육을 받은 지식인 여성이지만, 남매를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 덜거덕거리 는 기계의 소음, 머리가 터질 듯한 역겨운 기름 냄새, 앞을 분간하기 힘든 뿌연 먼지로 뒤덮인 열악한 방직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공이기를 자처 한다. 그런 영신 을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일본인 감독의 동료 여공에 대 한 습관적인 성희롱이었다. 공장 감독이 와서 돌아다니다가 양금이라는 처녀의 긴 머리를 쭉 잡아당겼다. 양금이는 깜짝 놀라 돌아보다가 감독인 줄 알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러한 짓이 한두 번 아닌 까닭이다. 그 자는 다시 양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쁜 사람이 머리가 좋소. 하고는 또한번 잡아당기고는 머리를 툭 채여 잡아 빼 며 17) 일본인 감독의 동료 여공에 대한 상습적인 모욕을 보다 못한 영신 은 거세게 항의하다가 어깨에 부상을 입게 되는데, 공장 감독은 이마저도 약값 명목으로 1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무마하려고 하였다. 때문에 영신 은 더욱 거친 어조로 따지며 기어이 사과를 받아낸다. 피지배국 여성노동자가 지배국 관리의 파렴치한 행위에 저항을 시도하여 끝내 잘못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추석전야 의 민족적 의미는 상당하다. 이는 단지 사회의 하층민인 여공 의 입장에서 남성 감독에 대한 저항만을 넘어서서, 집필의도에서 밝혔듯이 피식민지인의 식민국에 대한 민족의식의 발로였던 것이다. 영신 의 당차고 정당성 있는 행동으로서 식민지 경제구 조와 식민지 착취에 대한 갖가지 행태를 해부하고 폭로하여 만천하 동포들 의 공감을 얻어내고자 한 작가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본시 계급적 갈등이란 유산자 대 무산자, 고용주 대 노동자, 지주 대 소작자 의 관계가 착취의 토대가 되어 발생하는 것인데, 박화성은 이러한 16) 박화성(1969) 작가수업, 추억의 파문, 국민문고사, p ) 박화성(1925) 추석전야, 앞의 잡지, p.83
178 17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서사의 축에 민족의식을 가미하여, 식민국 대 피식민국 이라는 민족적 갈 등을 적확하게 접합시켜내었던 것이다. 이의 확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장편 역사소설 백화 (동아일보, )이다. 백화 의 집필에 관하여 변신원(2001)은 양백화의 서운 ( 개벽 을 읽고 구상하여 일본유학중 꾸준히 창작하였으며, 추석 전야 의 연속선상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작품 18) 이라 하였다. 이러한 맥락 과, 당시 문학의 정치적 경향이 역사소설 이라는 우회적인 방식과 은유적 기법으로 표출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영신 의 확장된 인물로서 백화 의 등장 이 예사롭지 않다. 당시 지배 권력의 횡포나 자본가의 금권에 속수무책 당 할 수밖에 없는 순량한 백성을, 식민국의 횡포와 나라 잃은 식민지 하층민 으로 연결하는 장치를 우회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화 는 공민왕 때 대학관 박사로 지냈던 양반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 지 임경범의 충정심이 타락한 중신들의 표적이 되어 가문의 몰락을 지켜보 았고, 게다가 돈 많은 부자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백 화 를 미모와 정절에 가무와 문예까지 두루 갖춘 서경의 명기로 재탄생시킨 것은 박화성이 앞서 나라를 건지는 뛰어난 일꾼이 되고자 하였던 이상에 대한 문학적 실현으로 보인다. 때문에 일개 기생에 불과한 백화 를 귀족 남성들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으로 격상시켜 놓고, 백성을 돌보지 않는 국왕, 즉 정치권에 일침을 놓는 간언을 올리기도 하는 것이다. 신첩이 살피옵건대, 전하의 실덕하심이 오직 국왕의 권위를 가지사 사물로 여 기시어 유흥중에서라도 사의에 불만하신즉 살육을 임의로 하시고, 국가 만백 성의 복리를 생각지 않으시니 이보다 더 큰 실덕이 있사오리까. 더욱 전하의 실덕을 가지사 호기등등하기 행하시니, 전하 일국의 왕되심을 유일의 반초로 알으시고, 일신의 일시 흥락을 도웁고자 전군신민의 복리를 탈취하심이 아니 오리까. 19) 한편, 서경( 西 京 )의 재력가인 김장자 를 금권에 정면도전하여 몰락에 이 어 죽음으로 이끈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재색을 겸비한 백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천금을 내놓기를 서슴지 않았던 김장자 의 재산이야말로 갖은 18) 변신원(2001) 박화성 소설연구, 국학자료원, p.68 참조 19) 박화성(1932) 백화 <동아일보>( ) (서정자 편(2007) 백화, 푸른사상사, pp 에서 재인용)
179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75 농간으로 빈농의 전답과 집을 빼앗고 소작인에 대한 악랄한 착취를 기반으 로 축적된 것이었기에 백화 라는 당대의 영웅적 여성을 내세워 김장자 를 몰락시키고 결국 울화병으로 사망하도록 서사했다. 이처럼 남성중심의 문단에서 박화성의 문학적 행보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계급을 초월하여 접근성을 지닌 여성 백화 를 내세워 남성중심의 사회제도와 지배층의 부당한 정치력,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본가에 대 한 정면도전을 시도하였고, 그 도전을 과감히 진행하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 것은 당시만 해도 그의 문학적 포부가 미래 지향적이고 낙관적이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3.2 관념과 실천운동의 괴리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기인한 조선의 궁핍화를 고발하는 이른바 신경향 ( 新 傾 向 ) 적인 문학은 1927년의 방향전환론 이후 계급의식의 주입이라는 목적의식 하에 이론의 정론성을 띠고 점차 프로문학예술운동으로 이어져, 이른바 카프(KARF)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즈음의 박화성은 진즉부 터 꿈꾸어 왔던 일본유학길에 올라, 학업과 함께 일본식 사회주의를 체험하 고 이론적으로 내면화해가던 때였다. 그 내면화된 이념은 귀국하여 발표한 중편 하수도공사 ( 동광 )에서 두드러진다. 1930년대 초반 조선 각처에서 시행되었던 하수도공사 는 일본이 원활한 식민지수탈을 위해 실시한 토지집중화정책의 시행과정에서 파생된 모순적 구조의 전형 20) 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한 하수도공사 는 임금착취에 격분한 노동자 300명이 일본인 청부업자 중정( 中 井 ) 을 끌고 경찰서에 난입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원인은 청부업자 중정 의 농간으로 인한 철저한 20) 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촌은 식민지 수탈을 위한 방식으로 재편되어갔는데, 그것이 토지집중 화정책이었으며 이는 주로 일본인이나 친일파 거대지주에 의해 농지를 흡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소작농이 양산되었고, 이러한 소작농의 과잉은 결국 소작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같은 모순된 토지정책이 수많은 소 작농을 양산하였고, 이들 소작농민들은 끼니조차 연명하기 힘든 열악한 소작조건을 감당하 지 못하고 만주로 이주하거나 도시의 노동시장을 기웃거리는 유랑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 다. 일제는 이러한 유랑노동자에 대한 실업구제 방편으로 대규모 기간산업을 벌이기로 하였 고, 그 일환으로 조선 각처에 하수도공사 가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목 적일 뿐, 실상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식민지 지배기구의 기초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기간산업에서도 착취의 악순환은 계속되었는데, 그것이 하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단 계별로 더욱 악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180 17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임금착취에 있었다. 목포부에서도 실업구제의 하수도공사를 시작하게 되어 중정 이라는 자와 칠만 팔천원의 경비로 육개월 안으로 공사를 준공시키기로 청부계약이 성립되었다. 중정 이는 칠만 팔천원의 사할을 제 주머니 속에 따로 떼어놓고 나머지 사만 칠천 팔백원으로 공사를 끝마칠 예산을 세웠다. (중략) 부청과의 계약에 노동 자의 임금은 기술노동자와 십장은 매일 일원 이상이요, 보통 노동자는 최하 칠십전으로 정한 것이나 중정의 비밀주머지 속으로 들어간 삼만 일천 이백원 의 큰 구멍을 감쪽같이 때우는 오직 한가지의 길은 노동자의 피땀의 삯전에서 착취하는 수단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오십전이하 삼십전까지의 젃 은 삯에 목을 매고 유달산에서 사정없이 내리닥치는 찬바람과 뒷개벌판에서 몰려오는 눈보라를 맞으며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기 위하여 종일 곡괭이질과 남포질로 돌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시작한 지 석 달 동 안에 삯이라고는 돈으로 한번 받고 십이전짜리(보통 쌀 십칠전 할 때) 싸라기 로 한번 탄 일 밖에 없었다. 21) 이로 인해 야기된 노동자들의 태업( 怠 業 )과 동맹파업의 징후까지 접한 부청에서는 현장을 시찰한 후 중정 과의 청부계약을 해약하였고, 그 내막 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일제히 동맹파업을 단행하고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서로 끌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이나 부청의 토목과 주임은 노동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관리의 입장에서만 일을 처리하려 들어, 식 민지착취를 동조하는 듯한 행태를 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맞 닥뜨린 일본인 경찰과 관리의 편파적인 일처리에도 굴하지 않고 300명의 조선노동자들이 담합하여 투쟁한 끝에 결국 밀린 임금을 받아낸다는 이야 기다. 주목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로 서동권 이란 인물을 설정하여 조 직적인 투쟁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상업학교를 다니다가 검거사건에 휘말 려 일본으로 간 동권 은 도쿄( 東 京 )에서 정 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지도 로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돌아온 인물인데, 이러한 인물의 등장과 퇴장에서 박화성이 일본유학시절 내면화 한 사회주의 이념, 즉 후쿠모토이즘을 엿볼 수 있다. 21) 박화성(1932) 하수도공사, 동광 (1932.5) (김윤수 편(1996) 한국현대대표소설선 4 (주) 창작 비평사, p.299에서 재인용)
181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77 앞서 살핀바 박화성이 유학당시 접한 후쿠모토이즘식 사회주의는 혁명적 인 실천의 의미보다는 지적인 관념의 대상으로 수용된 측면이 더 강했기에 하수도공사 의 주동인물은 노동투쟁의 성공 이후에는 이념의 전달과 전수 에만 치중한 면을 드러낸다. 또한 정 의 검거사건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 점이나, 후반부의 동권 의 연애와 가족의 문제로 구체화되 어가는 과정에서도 분리ㆍ통합(헤쳐모여)의 이론을 적용시켜 마침내 동권 을 분리시키고 있음도 그러하다. 모든 객관적인 정세가 나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므로 나는 이곳을 떠나 고야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나도 종시 사람인지라 어찌 한줄기 의 눈물이 없을까마는 나는 보다 뜻있는 상봉을 위하여 떠나는 것이다. 용희 가 참으로 나의 뜻을 알고 나를 사랑한다면 자기 스스로 모든 장애를 돌파하 고 자체를 개척하여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여성이라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부디부디 굳세게 살아다오. 22) 동권 이 말하는 모든 객관적인 정세란 동권 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를 원 하는 용희 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 즉 정 의 검거사건으로 인한 충격에 의한다. 정 이 격문사건에서 자신을 뺀 것을 자신의 무자격 탓이라 여기고 자력으로 당당한 투쟁의 일선에 나서리라 결심하였기에 용희 에 대 한 애정관은 이념적 동지애로 접어두고 훗날의 뜻있는 상봉 을 위해 떠나기 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같은 프로문학적 견지도 식민지정책 강화에 따라 점차 위축되게 된다. 세계대공황에 따른 위기를 타개하고자 만주사변(1931)을 일 으킨 일본이 조선을 대륙진출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의 병참기지로 규정하 고 군수물자 조달을 위한 산업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였는데, 그 여파가 노동자 농민 등 하층계급의 선동을 유발할 소지가 다분한 프로문학의 강압 적인 탄압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첫 작업이 바로 카프(KAPF)에 대한 <제1 차 검거사건>(1931.6)이었다. 때문에 이후의 소설은 노동쟁의 현장에 직접 나섰던 지도적 인물이 주로 쫓겨 다니거나 투옥중이거나 혹은 구금되는 등 작품전면에서 후퇴하게 되 는 양상을 보인다. 떠내려가는 유서 ( )는 여성에게 현모양처이기를 22) 박화성(1932) 하수도공사, (김윤수 편(1996) 앞의 책, pp )
182 17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추구하는 학교교육보다는 여공이 되어 공장 내에서 친히 당하는 실제의 교훈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으라. 는 오빠의 유언을 실천하는 여동생 은 순 의 이야기다. 작가가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실로 동덕여고보 교사 이관술 이 이끄는 독서회 를 통해 사상이론 학습을 거친 여학생들(임순득 등)과, <槿友會>와 연관된 여학생(송계월)의 반제운동이 왕성했던 시기였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 안에서 동맹휴학과 같은 투쟁을 벌이다가 졸업 혹은 퇴학당 하여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거나 혹은 문학으로 그 사상을 표출하였던 여성들이었는데, 박화성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놓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떠내려가는 유서 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후의 소설은 민족의식 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다소 우회적인 면을 보여준다. 비탈 ( )에서는 사회적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허위의식에 사로 잡힌 여성 수옥 을 신여성 캐릭터로 전면에 부각하고 있어 퇴색되어가는 면을 보여준다. 물론 계몽운동과 계급운동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주희 라 는 상반된 인물을 내세워 수옥 에 대한 독자의 비판여론을 높이는 면도 있 지만, 실상은 일제의 현모양처에 입각한 현실순응의 조선 여성교육보다는 식민지배의 구조적 모순과 여성의 사회의식의 각성을 계몽하는 측면이 더 부각되어 있어 과도기적 성향을 보여준다. 두 승객과 가방 ( )은 갈수록 강화되어가는 식민지 현실인식에 대 한 작가의 심리가 단적으로 나타난다. 대구행 객차 안 이라는 하나의 공간 에 상반된 계급의 두 인물 정채 와 일본인 형무소장 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음이 그것이다. 일제에 의해 부설된 식민지철도는 당초 객차 안 이라는 공간에서 과거 신분질서를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획일적인 질서와 자유 평등의 원 리를 구현하며 식민지정책상 동화(同化)를 이끌어내었다.23) 그러나 그 객 차 안 이라는 공간에서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의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 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공간이 바로 사회주의운동에 연루된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자 생계가 막연해진 정채 가 생계를 위해 저임금과 열 악한 노동환경의 상징인 공장을 찾아가는 객차 안 이며, 일본인 형무소장 이 사회주의자 검거의 특전으로 영전되어 가는 객차 안 인 것이다. 젖먹이 아들을 떼어 놓고 대구로 향하는 정채 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에 23) 박경수(2012) 近代 鐵道를 통해 본 식민지조선 만들기, 日本語文學 제53집, 한국일본 어문학회, pp 참조
183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79 비해, 조국과 민족을 되찾기 위한 운동에 투신한 남편과 남편의 동료들을 수감시킨 대가로 영전해가는 형무소장의 감개와, 그 옆에 앉아 있는 형무소 장 딸의 새침한 모습이야말로 식민지철도의 전형이라 하겠다. 이같은 현상 이 제목에서부터 상징성을 드러내는 가방 24) 에서 더욱 가시화되기도 하는 데, 그 가방을 끌어안고 속절없이 퉁퉁 불은 젖을 처치하기에 고심하는 정 채 에 비해, 형무소장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형무소 건물에 대한 축복과 감격의 눈물겨운 인사 가 식민지철도 공간에서 크게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민족적 계급 인식에 더하여 금후의 식민지 현실이 더욱 암 담해질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처럼 박화성의 민족의식은 하수도공사 이후의 작품에서는 직접적인 투쟁의 현장에 있었던 남성들이 사망하였거나 투옥되었거나 아니면 일제의 치리( 治 理 )가 덜 미치는 곳으로 떠나는 방식으로 소설의 전면에서 점차 사 라져가고, 그 투쟁에 대한 의미만이 그들에 의해 대신 남겨진 여성에게 전 이( 轉 移 )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가장 불리한 시대의 이 중고를 짊어진데다, 대부분 생계를 위한 생활현장으로 내몰리는 현실이었기 에 그 의미가 소극적이거나 지극히 부분적으로밖에 형상화되지 못하는 양 상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관념과 문학적 실천운동의 괴리는 이러한 점에 있 다 하겠다. 3.3 현실도피의 수사학 일제의 탄압과 전향의 강제로 말미암은 카프 해체(1935.5)의 여파가, 이 후 박화성 문학에도 파장이 미쳤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후 주로 자연재해 문제를 다루거나 원초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농어촌여성의 생활방식에 포커 스를 둔 소설로 선회하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자연재해에서 소재를 채취하여 현실묘사의 치밀함으로 빈궁의 현실을 박진감 있게 고발한 홍수전후 (1935.3)와 한귀 ( )는 초기소 설의 관념성을 극복한 수작 25) 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당시 조선 24) 그 가방은 남편이 유학시절 사용했던 가방, 지하운동을 할 때 무언가를 잔뜩 넣고 다니던 가방, 지난여름 쫓겨났던 xx공장의 야유회 때 동료들의 점심을 담아갔던 가방이었으며, 지 금은 젖먹이 아이를 떼놓고 돈벌이 나온 엄마 정채 의 젖을 짜내기 위한 양재기가 들어 있 는 가방이다. 25) 김팔봉은 홍수전후 는 작년 중의 최역작이었다. 이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크다. 화 성의 사상을 보건대 그는 사회적으로 내지 정치적으로 막스주의에 가담한다. 그래서 이 의
184 18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의 농토가 대부분 천수답이었던 관계로 대홍수와 유례없는 가뭄 이라는 천 재지변이 불가항력적인 식민지 현실과 어우러져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하였 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목에서부터 작품 곳곳에 이르기까지 현실도피적 수사학이 엿보 이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작품에 임할 때 항상 주제설정을 우선 으로 하였던 박화성이 주제선정에서부터 시세에 대한 불가항력을 전제한 극심한 자연재해로 소재를 삼은 것과, 하늘의 이치( 天 理 )에 순종하는 캐릭 터의 인물을 주인공로 내세운 점에서도 그렇다. 팔자운명론 을 신앙처럼 여기는 홍수전후 의 송명칠 부부, 성실과 신의를 가족의 생계보다 우위 에 두고 살아가는 기독교 신자인 한귀 의 성섭 이라는 인물도 대상만 달 랐지 천리( 天 理 )에 순응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배 두 척으로 고기잡이 도 하면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홍수전후 의 명칠 은 영산강 일대에 몰아 닥친 대홍수로 말미암아 얼마 되지 않은 재산과 셋째 딸까지 잃게 되는 엄 청난 참상을 겪었음에도, 그것을 사람의 운수복력이 다 팔자에 타고난 것 이라 여기는 인물이며, 한귀 의 성섭 은 작년에는 홍수로 쌀 한 톨도 건 지지 못했고, 금년에는 극심한 가뭄 탓에 소작지의 수확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 였음에도, 산등성이의 손바닥만 자기 논에서 겨우 쌀 석 섬 수확한 것 가지고, 또 그 소리를 하네. 그럼 남의 논 빌어먹는 주제에 잘될 때나 소작료 주고 안 될 때는 영 안 줘버리고 말까? 어떤 논에서든 쌀이 생겼으면 갖다 줘야 지 꼭 그 논에서 나온 것만 줘야 쓰는가? 26) 하면서, 몽땅 소작료로 갖다 바친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로 주인공을 설 정한 것은 카프 해체 이후 강화된 식민체제가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나 작가의 내면에 살아있는 민족의식은 이에 대응하는 인물을 내세 워 저항하는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홍수전후 에서 명칠 의 아들 윤성 은 미에 있어서 머릿속이 확실하게 틀이 잡히고 좀처럼 변하지 아니할 것 같은 미덤성은 여성 작가 중 제일인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작가의 누구에게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고 하였고, 이청은 한귀 는 어떤 의미로 보아서는 일구삼오년도 창작의 최고봉이라고도 말하고 싶 다. 고 하였다. (김팔봉(1935) 구각에서의 탈출, 신가정, 1935, p.102 ; 이청(1935) 같은 책, 같은 면) 26) 박화성(1935) 한귀, 조광 ( ), p.257
185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81 주어진 모든 현실을 타고난 팔자 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아버지 의 세계관을 비웃으며 매사에 정면도전하는 캐릭터이며, 한귀 에서 성섭 의 아내 는 여섯 자녀를 둔 가장이 기독교적 신앙관을 앞세운 성실성으로 가족의 생계를 무시한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는가 하면, 기독교 신앙인으 로서 금기인 미신섬기는 행동도 불사하는 캐릭터이다. 이처럼 천리 나 신 의 의지 로 형상화 되는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는 주인공에 대응하는 인물이 매사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는 것은, 소극적이나마 일제의 체제강화로 갈수록 옥죄어오는 현실에 대한 박화성의 민족의식의 토로인 듯하다. 더욱이 기독교 신자인 성섭의 아내 가 미신을 섬기는 행동 도 불사하였다는 점은 박화성이 아기 때부터 믿고 의지해 왔던 유일신 하 나님 이 이토록 곤경에 빠져가는 민족 을 침묵으로만 지켜보고 있었던 것 에 대한 일종의 항의가 아니었을까? 그 가운데서도 화제작 홍수전후 는 이듬해인 1936년 5월 <오사카마이 니치신문( 大 阪 毎 日 新 聞 ) 朝 鮮 版 >에, 한귀 역시 동년 10월 최재서에 의해 일본잡지 改 造 에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어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에게도 조선농촌의 궁핍상이 단지 천재( 天 災 )만이 아닌, 식민지 농촌경제의 구조적 모순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개전을 1년여 앞둔 1936년 8월 육군대장 출신 미나미 지로( 南 次 郞 )가 제7대 조선총독으로 부 임하면서 더욱 강화된 황민화정책이 실시된다. 이에 따라 특히 노동자 농민 을 선동할 여지가 있는 사회주의 계열 작가들에게는 강도 높은 전향 이 강 제되었으며, 모든 문학자들에게는 일본어 글쓰기의 보급 과 국책의 선전 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주어지게 된다. 이즈음 박화성은 삼천리 기자와의 인터뷰( )에서 다른 여러 가 지 사정도 있고 해서 한 3년간 몸과 머리를 쉬었다가 다시 붓을 잡고 좀 더 새로운 역작을 다만 한 편이나마 내어볼 생각 27) 이라는 말로 3년여 정 도의 휴식을 예고하였다. 예정대로라면 박화성은 1939년쯤 새로운 역작을 들고 문단에 복귀했어야 했지만, 그 휴식이 무려 10여 년의 침묵기로 이어 졌다는 데서 암흑기 라 불릴 만큼 최악이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 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이념을 투쟁이라는 직접적인 행동보다는 문학으로만 표출하였던 27) 여류작가 가정방문기 그 1 유달산 밑에서 필봉을 가다듬는 박화성여사 (서정자 외(2013) 박화성,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다 푸른사상, p.177에서 재인용)
186 18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박화성이고 보면 당시의 국가(일본)를 상대로 전면적인 대항은 불가하였기 에, 그 침묵 이라는 행위야말로 사회주의이념의 내면화 이전부터 박화성을 지배하였던 민족의식의 표출이자, 일제말기 현실도피의 한 방편이기도 하였 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직후 바로 소시얼리스틱 리얼리즘 에 입각한 문학 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이때의 침묵은 머잖아 다가올 민족해방의 날을 대 비하는 내실 있는 침묵이 아니었나 싶다. 4. 맺음말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박화성의 소설 중 특징적인 작품 몇 편을 들어 민 족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바 식민지정책의 강도에 따라 그의 민 족의식 표출도 다양화 다변화 되어갔음이 파악되었다. 한국 역사상 가장 고비였다고 여겨지는 구한말 사회제도로부터 소외된 여성으로 태어난 박화성이 당초 모색하였던 것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 성의 삶, 즉 여성해방 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강점이 현실화되고 식민치하 에서 살아가는 동안 식민지에서 여성해방 이란 민족해방 과 분리되어 얻어 질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민족해방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문에 현실변혁의 한 수단으로서 문학을 택한 이래, 남성을 능가하는 배포로 식민지 사회상을 응시하였고, 식민지 경제의 파행적 구조에 대항하는 계급문학을 창작이념으로 하여 명쾌하게 그 주제 를 형상화해 나아갔다. 추석전야 와 백화 에서 보여준 박화성의 문학적 행보는 당당하고 거침 이 없었다. 추석전야 에서 식민지 경제구조와 지배국 감독의 부당한 행위 에 대항하는 당찬 영신 을 통하여 식민지 착취에 대한 갖가지 행태를 해부 하고 폭로하였는가 하면, 백화 에서는 계급을 초월하여 접근성을 지닌 기 생 백화 를 설정하여 남성중심의 사회제도와 지배층의 부당한 정치력, 부 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본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하였다. 또한 하수도 공사 에서는 일본유학시절 수용한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식민지 착취 에 대한 조직적인 투쟁을 시도하여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성취감과 함께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사회주의 탄압이 연이은 카프 검거사건으로 이어지면서
187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83 그의 현실인식의 범위가 사회적인 것 에서 점차 생활적인 것 으로 축소되 어 가는 경향을 드러냈다. 투쟁현장에 있었던 남성들이 작품 전면에서 사라 지고, 그들에 의해 대신 남겨진 여성에게 그 투쟁의 의미를 전이( 轉 移 )시키 고 있었는데, 이들 여성들은 생계를 위한 생활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마저 퇴색되게 된다. 두 승객과 가방 의 정채 가 대표적 케이스라 하겠다. 이후 박화성의 민족의식은 카프의 전면 해체(1935.5)에 이은 일제의 강도 높은 탄압과 전향강요에 따른 위기감으로,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와 거부할 수 없는 식민통치가 등치되어 나타난다. 홍수전후 와 한귀 에서 보여준 현실도피의 수사( 修 辭 ), 말하자면 두 작품의 주인공을 천리 와 신의 의지 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장치를 내세워 어떠한 현실이라도 긍정적으로 순응하 는 캐릭터로 설정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응하는 인물로 내 세운 윤성 과 성섭의 아내 라는 독특한 캐릭터에서 박화성의 저항의식에 대한 일면을 엿보게 한다. 그것이 대다수의 문인들이 친일로 전환하였던 식민지말기 침묵 이라는 소극적 저항으로 나타나면서 일종의 분리결합론 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 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세이케 도시가 분리결합론 을 중시하여 미련 없이 일본여자대학의 독서회 라는 그런대로 안락했던 사상적 둥지를 떠나 처절 한 투쟁의 현장으로 나갔듯이, 박화성은 1930년대 초 다시 문학의 현장으로 돌아왔으며, 암흑기 라 불리던 시기에 또다시 그것을 적용하여 10여년 이 라는 긴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그 침묵이 언젠가는 다가올 민족해방의 날을 고대하며 새로운 문 학적 결합을 위한 내부세계의 구축으로 승화되었기에 해방직후 바로 활동 기로 진입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한국문학사를 관통한 작가 로서의 문학 적 생명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박화성, 추석전야, 조선문단, , 하수도공사, 동광,
188 184 比較日本學 第32輯 ( ),,,,,, 백화 <동아일보>, 떠내려가는 유서, 만국부인, 비탈, 신가정, 두 승객과 가방, 조선문학, 홍수전후, 신가정, 한귀, 조광, 참고자료 金基赫(1994) 日帝時代 韓半島 農業의 地域構造 硏究, 부산지리 제3호, pp 金錫根(1995) 후쿠모토이즘(福本主義)과 식민지하 한국사회주의운동, 아세아연구 제38집,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 p.80 참조 김윤수 편(1996) 한국현대대표소설선 4 (주)창작 비평사, p.299 김인걸(1989) 1920년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보급과 노동운동의 발전, 일송정, p.18 김팔봉(1935) 구각에서의 탈출, 신가정, 1935, p.102 박경수(2012) 近代 鐵道를 통해 본 식민지조선 만들기, 日本語文學 제53집, 한국일본어 문학회, pp 참조 박화성(1969) 작가수업, 추억의 파문, 국민문고사, p.320 변신원(2001) 박화성 소설연구, 국학자료원, p.68 참조 서정자 외(2013) 박화성,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다 푸른사상, p.177 편(2007) 백화, 푸른사상사, pp (1999) 한국근대여성소설 연구, 국학자료원, p.69 이 청(1935) 구각에서의 탈출, 신가정, 1935, p.102 이상경(2004) 1930년대의 신여성과 여성작가의 계보 연구, 여성문학연구 제12집, 한국여 성문학학회, pp 참조 진덕규(1988) 한국 민족운동에서의 코민테른의 영향에 대한 고찰,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 2집, p.395 참조 崔貞熙(1931) 朝鮮女性運動의 發展過程, 삼천리, , p.252 寺尾とし(1950) 傳說の時代 愛と革命の二十年, 未來社, pp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박경수(朴京洙), (영문) : Park, kyung soo 소속 :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강사 논문영문제목 : The Nation Reading in the early novels of Park Hwa sung
189 박화성 초기소설의 民 族 읽기 (박경수) 185 주소 : ( ) 전북 익산시 하나로 동도미소드림 102동 501호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한국 역사상 가장 고비였다고 여겨지는 구한말 사회제도로부터 소외된 여성으로 태어난 박화 성이 당초 모색하였던 것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 즉 여성해방 이었다. 그러나 일제 의 강점이 현실화되고 식민치하에서 살아가는 동안 식민지에서 여성해방 이란 민족해방 과 분 리되어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민족해방 이라는 것을 깨닫 게 되었다. 그 때문에 현실변혁의 한 수단으로서 문학을 택한 이래, 명쾌하게 그 주제를 형상화 해 나아갔다. 그러나 식민체제가 강화되어가면서 그의 문학적 범위가 사회적인 것 에서 점차 생활적인 것 으로 축소되어 가는 경향을 드러내다가 갈수록 옥죄어오는 식민통치를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와 등치시키기기도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문인들이 친일로 전환하였던 식민지 말기에는 마침내 침묵 을 고수하는 것으로 저항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등단이후 올곧게 소시얼리스틱 리얼리즘 을 추구하였던 박화성이었기에 문학인으로서 침 묵 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내부세계의 구축으로 승화시켰기에 해방직후 바로 활동기로 진입하여, 마침내 한국문학사를 관통한 작가 로서의 문학적 생명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주제어 : 식민지, 사회주의, 독서회, 후쿠모토이즘, 민족해방
190 18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191 187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 망처가의 계승과 변용 - ** 朴 一 昊 Abstract In this thesis I carefully considered the meaning of the song lamenting Yakamochi's late wife which was inheriting the tradition of Bousaika as a threnetic song. I dealt with the problem in the recognition and expression of death from a special perspective, where there is a distance between reality and idea, paying attention to genre feature as a funeral dirge. Yakamochi's mourning song for his late wife is based on the awareness of literary style and the desire for expressing the late wife in language. Especially it can be a good literary work that pioneered the field of abstract funeral song honoring the dead wife, which is composed of the poetic song with rhythms. In other words, this funeral song verbalizes the literary entities rather than reflects reality of the wife's passing as it is. This work is not just intended to express the emotional grief for lost wife and the wife's death is rather accepted as a notion beyond reality by the creation of the poetic song with rhythms above the reality and fiction. It is meaningless to verify whether the writer's real experience as a man losing his wife is reflected in the poetic song. This literary work is a good paradoxical example that the conceptual experience above the real experience losing his wife can be accepted as a literary fact when it is expressed in language. Although the song lamenting Yakamochi's late wife was made in the early fourth period of Man'yōshū, it is a good work that attempts to express the concept of death and loss as well as the feelings over the death of his wife while inheriting the traditional genre, namely, a sad song for the late wife. Keywords : yakamochi, hitomaro, tabito, okura, presence, idea, deceased wife 1) 오토모노 야카모치( 大 伴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 1) (A) 111년 기묘 6월에 오토모노 스쿠네야카모치가 죽은 첩을 슬퍼하면 지은 노 래 한 수 * 본 논문은 2014년도 성신여자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 **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일본고전문학 1) 오토모노 야카모치( 大 伴 家 持 )는 덴표( 天 平 )11 年 (739) 6월에 망처의 슬픈 심정을 토로하는 단 가(제3권ㆍ462)를 짓는다. 이에 오토모노 후미모치( 大 伴 書 持 )가 화답(463)하고, 야카모치는 이 노래에 이어 단가와 장가로 구성되는 연작 망처가를 제작한다. 본 논문은 이 망첩비상가 ( 亡 妾 悲 傷 歌 ) 가군(462~474)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하며, 고찰에 앞서 가군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의 번역문과 원문을 제시한다. 이하 원문의 인용은 小 島 憲 之 외 편( ) 新 編 日 本 古 典 文 学 全 集 万 葉 集 1 2 ( 小 学 館 )에 의거하였다.
192 18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十 一 年 己 卯 の 夏 六 月 に 大 伴 宿 禰 家 持 が 亡 ぎにし 妾 を 悲 傷 して 作 る 歌 一 首 얼마 있으면 가을바람 차갑게 불어올텐데 어찌하여 나 홀로 이 긴 밤 지새우리 今 よりは 秋 風 寒 く 吹 きなむを いかにかひとり 長 き 夜 を 寝 む (제3권ㆍ462) 2아우 오토모노 스쿠네후미모치가 바로 화답한 노래 한 수 弟 大 伴 宿 禰 書 持 が 即 ち 和 ふる 歌 一 首 기나긴 밤을 홀로 지새운다고 말씀하시니 돌아가신 그분이 더 생각나는군요 長 き 夜 を ひとりや 寝 むと 君 が 言 へば 過 ぎにし 人 の 思 ほゆらくに (463) 3다시 야카모치가 처마 밑 섬돌 위에 핀 패랭이꽃을 보고 지은 노래 한 수 また 家 持 砌 の 上 に 瞿 麦 が 花 を 見 て 作 る 歌 一 首 가을이 오면 보며 생각하라고 아내가 심은 정원의 패랭이꽃 어느새 피었구나 秋 さらば 見 つつ 偲 へと 妹 が 植 ゑし やどのなでしこ 咲 きにけるかも (464) 4달이 바뀐 후 가을바람을 비탄하며 야카모치가 지은 노래 한 수 朔 移 りて 後 に 秋 風 を 悲 嘆 して 家 持 が 作 る 歌 一 首 덧없는 세상 그러하다 알건만 이 가을바람 차갑게 불어오니 떠난 아내 그립네 うつせみの 世 は 常 なしと 知 るものを 秋 風 寒 み 偲 びつるかも (465) (B1) 다시 야카모치가 지은 노래 한 수 아울러 단가 また 家 持 が 作 る 歌 一 首 并 せて 短 歌 내 집 정원에 꽃이 활짝 피었네 바라보려니 마음도 우울하네 사랑스러운 아내 가 살았다면 원앙새처럼 둘이 나란히 앉아 꺾어놓고는 보여주었을텐데 이 무 상한 삶 덧없는 몸이기에 이슬 서리가 사라져 버리듯이 험하고 험한 저 산길을 따라서 지는 해처럼 스러져 버렸으니 생각을 하면 가슴은 미어지네 어떠한 말 도 붙일 수 없을 만큼 흔적도 없는 무상한 세상이니 어찌 할 수도 없네 我 がやどに 花 そ 咲 きたる そを 見 れど 心 も 行 かず はしきやし 妹 がありせば 水 鴨 なす 二 人 並 び 居 手 折 りても みせましものを うつせみの 借 れる 身 なれば 露 霜 の 消 ぬるがごとく あしひきの 山 道 をさして 入 日 なす 隠 りにしかば そこ 思 ふに 胸 こ そ 痛 き 言 ひも 得 ず 名 付 けも 知 らず 跡 もなき 世 の 中 なれば せむすべもなし (466) (B2) 반 가 反 歌 1죽는 때라면 언제든 있으련만 가슴 저미게 떠나버린 아낸가 어린 아이 남 긴 채
193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189 時 はしも 何 時 もあらむを 心 痛 く い 行 く 我 妹 か みどり 子 を 置 きて (467) 2저승을 향한 그 길 알았더라면 미리 앞서서 아내를 멈추게 할 관문도 세워 둘걸 出 でて 行 く 道 知 らませば あらかじめ 妹 を 留 めむ 塞 も 置 かましを (468) 3아내가 보던 정원에 어느 샌가 꽃이 피었네 흐르는 내 눈물은 마르지 않았 건만 妹 が 見 し やどに 花 咲 き 時 は 経 ぬ 我 が 泣 く 涙 いまだ 干 なくに (469) (C) 슬픔은 여전히 가시지 않아 또 다시 지은 노래 다섯 수 悲 緒 未 だ 息 まず 更 に 作 る 歌 五 首 1정녕 이렇게 덧없는 것이건만 아내도 나도 천년이나 살듯이 서로 의지했었네 かくのみに ありけるものを 妹 も 我 も 千 歳 のごとく 頼 みたりけり (470) 2집을 떠나서 가버린 내 아내를 잡지 못하고 산 속에 묻었기에 살 기력도 없구나 家 離 り います 我 妹 を 留 めかね 山 隠 しつれ 心 どもなし (471) 3세상이란 건 언제나 이렇다고 알고 있건만 미어지는 가슴은 견딜 수도 없 구나 世 の 中 し 常 かくのみと かつ 知 れど 痛 き 心 は 忍 びかねつも (472) 4저 사호산에 걸쳐 있는 안개를 바라볼 때마다 아내가 그리워서 울지 않는 날 없네 佐 保 山 に たなびく 霞 見 るごとに 妹 を 思 ひ 出 で 泣 かぬ 日 はなし (473) 5이전엔 그저 무심히 보았는데 아내 무덤 있기에 더 사랑스럽구나 저 사호 산이여 昔 こそ 外 にも 見 しか 我 妹 子 が 奥 つきと 思 へば 愛 しき 佐 保 山 (474)
194 190 比較日本學 第32輯 ( ) 1. 들어가며 노래(和歌)를 읊는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심적 경험을 언어와 음률의 형태 로 재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주관적 표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에 의 해 포착되는 외적 또는 내적 사건ㆍ현상은 노래의 창작 과정에서 언어와 결 합되고 음률을 형성한다. 특히 만요슈(万葉集)의 노래는 사건ㆍ현상에 대한 자기의 경험이 언어와 일치한다고 하는 실재성을 큰 특징으로 하고 있어, 그 경험은 언어 및 음률에 의한 표현과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만요슈 내에서도 후기에 이르면 그 일체성은 중시되지 않고 경험과 언어ㆍ음률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노래가 제작된다. 이러한 노래는 오히려 그러한 괴리에 의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의 의도적 언어 표현이나 구조에 의해 노래의 시세계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른바 관념적인 노래라 할 수 있다. 만요슈에 있어서 이와 같은 관념적 경향은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의 노래에서 두드러지는데2), 야카모치(家持) 망첩비상가(亡妾悲傷歌)[덴표(天 2) 관념적 경향 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서경가인 야마베노 아카히토(山部赤人)의 예 다고 포구로 나아가 바라보니 새하얗게도 후지산 봉우리에 눈이 내렸구나 (田子の浦にうち出でてみればま白にそ富士の高嶺に雪は降り ける)[ 万葉集 제3권ㆍ318] 가 중세의 신코킨와카슈(新古今和歌集)에는 다고 포구에 나 아가 바라보니 시로타헤노(새하얀[마쿠라고토바枕詞]) 후지산 봉우리에 눈이 내리고 있네(た ごの浦にうち出でて見れば白妙の富士の高嶺に雪は降りつつ) 로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아카 히토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학의 경향에 따라 후지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게 표 현되어 있다. 신코킨슈의 시로타헤노(새하얀) 는 마쿠라코토바(어두수식어)로서 후지산을 이끌어내며 그 의미는 해석되지 않고 음으로서 읽혀진다. 하얀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표면적으 로 그 색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낭송되는 가운데 그 의미도 전해진다. 이에 비해 만요슈는 직접 새하얗게도(ま白にそ) 라고 색상어로 표현하여 바로 실감을 전하고 있 다. 무엇보다도 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마지막 구 눈이 내렸구나(雪は降りける) 라고 할 수 있는데, 신코킨슈는 눈이 내리고 있네(雪は降りつつ) 라고 상태의 계속 의 의미로 표 현하고 있다. 종조사 けり 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할 것을 새삼 깨달았다 는 영탄과 놀라움의 의미가 담겨진 표현임에 비해 つつ 는 동작이 계속됨을 나타내는 영탄의 표현이다. 따라서 만요슈의 노래가, 시야가 가려져 있다가 다고 포구에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후지산을 바라 볼 수 있었고 그 봉우리에 하얀 눈이 내려있음을 처음 알았다고 감탄하며, 실경에 입각하여 읊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후지산 정상에 눈이 내리고 있음을 산 아래의 먼 곳에서는 볼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코킨슈는 마치 지금 눈이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듯이 상 상하여 읊고 있다. 이른바 언어로 만들어진 관념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서경에 대해서도 이렇게 관념적으로 읊는 작품이 만요슈 후기에 나타는데 한 예로 야카모치의 제19권ㆍ 번 노래를 들 수 있다. 봄 들녘 안개 꾀꼬리 종달새 등 의 봄의 정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봄의 실경을 바라보며 읊고 있는 것이 아니라, 봄이라는
195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191 平 )11 年 (739) 6월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가군. 이하 망첩가로 약칭]는 그의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관념적 특성을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관념적 특성을 죽음에 대한 인식과 표현의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망첩 가에 대한 주요 선행연구는 주로 망첩의 실재 및 후미모치( 書 持 ) 노래(A)2 의 실제 작가를 둘러싼 문제, 선행 작품에 대한 수용의 양상, 망처비상가 ( 亡 妻 悲 傷 歌 )로서의 위상, 가군 전체에 대한 평가 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는데 3), 이러한 논의의 대부분은 더 이상의 전개가 무의미할 정도 로 폭넓고 깊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망첩의 실재를 둘러싼 진위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선행 작품의 수용 양상이나 가군 구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야카모치의 창작 의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되어 있어 여전히 논의의 여지를 남기고 있 다. 왜냐하면 많은 연구가 선행 망처가로부터의 수용 양상을 고찰함에 있어 서 주로 실재성의 관점에서 야카모치 망첩가의 독창성을 재평가하고는 있으 나, 이 가군을 만요슈에 있어서 이른바 관념적 경향의 초기 작품으로 자리매 김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는 주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첩가 계절에서 촉발되는 존재의 외로움이라는 심상 풍경을 읊고 있다. 즉 언어로 봄의 풍경을 마 음 안에 새기며 그 고독한 심상 세계를 탐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화의 문제는 궁정의례가와 같은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2기 가인 가키노 모토노 히토마로( 柿 本 人 麻 呂 )의 요시노찬가( 吉 野 讚 歌 )[제1권ㆍ36~39] 나 제3기 가인 가 사노 가나무라( 笠 金 村 )의 요시노찬가( 吉 野 讚 歌 )[제6권ㆍ920~922] 등은 실제로 요시노 별 궁 행차에 수행하여 궁중행사에서 읊은 노래이다. 그런데 야카모치의 요시노 별궁 행차가 ( 吉 野 離 宮 儲 作 歌 )[제18권ㆍ4098~4100] 는 요시노 별궁 행차가 덴표( 天 平 ) 8년(736) 이래 약 13년간 한번도 시행되지 않은 시점에 게다가 별궁이 아닌 자신의 부임지인 엣추( 越 中 )에 서 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3기 가인 다나베노 사키마로( 田 辺 福 麻 呂 )를 마지막으로 궁정 찬가의 제작이 단절되어 야카모치의 시기에는 그러한 의례가가 제작되고 奏 上 되고 있지 않음 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노래의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요시노 행 차를 예상하고 미리 지은 노래( 儲 けて 作 る 歌 )로서 반드시 실현을 목적으로 지은 노래가 아니 다. 야카모치의 신분도 종5위상( 從 五 位 上 )의 지방관이어서 그러한 궁정찬가를 올릴 위치에 있 지 않다. 따라서 이 별궁 찬가는 선행 궁정찬가의 표현을 활용하면서 찬가 주상의 상황을 가 상하여 지은 이른바 요시노찬가의 관념적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졸고 [2002] 大 伴 家 持 の 儲 作 歌 セミナー 万 葉 の 歌 人 と 作 品 第 八 巻 和 泉 書 院 참조).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이 실재를 언어화하기보다는 언어로 시세계를 만들어 실재를 느끼 고 구현하려는 관념적 경향이 야카모치의 초기 작품인 망첩비상가에서부터 확인됨을 선행 망처가의 수용 양상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고찰해나간다. 3) 小 野 寛 (1978) 大 伴 家 持 亡 妾 悲 傷 歌 万 葉 集 を 学 ぶ 第 三 集 ( 有 斐 閣 )는 망첩의 실재를 둘 러싼 논의를 정리하고, 가군 구성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倉 持 しのぶㆍ 身 崎 寿 (2002) 亡 妾 を 悲 傷 しびて 作 る 歌 セミナー 万 葉 の 歌 人 と 作 品 第 八 巻 ( 和 泉 書 院 )는 선행연구의 관점을 네 가지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196 192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의 관념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야카모치 망첩가 가 선행 망처가의 전통적인 방법을 잇고 있음을 명확히 의식하면서, 또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에 특히 죽음에 대한 표현의 관념성 의 문제는 이 작품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으 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망첩가의 만가(挽歌)로서의 장르적 특성에 주의하면 서 죽음에 대한 인식과 표현의 문제를 실재와 관념의 거리라는 관점에서 논 의하며, 망처가의 전통을 잇는 야카모치 망첩가의 의의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2. 실재와 허구의 간극 히토마로(人朝呂)의 계승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柿本人麻呂)는 만가의 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닐 만큼 다수의 만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읍혈애통가 (泣血哀 慟歌) [제2권ㆍ ] 는 망처와카(亡妻和歌)의 효시로서 후대의 가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야카모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어 표현과 방법 에 있어 그의 영향 하에 있다. 히토마로의 읍혈애통가 는 이전(異傳)을 포함 하여 3개의 장가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제1장가( )에서는 처의 갑작 스런 죽음을 전해 듣고 그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아내의 추억이 남겨 져 있을 가루(軽)시장을 애써 찾아가서는 덧없이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소매 를 흔들어(妹が名呼びて袖ぞ振りつる) 한없는 미망의 심정을 토로한다. 제2장 가( )에서는 인간사의 섭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내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하며, 홀로 된 채 아이만을 껴안고 규방의 외로움을 탄식 하고, 아내와 함께 한 시간은 이미 멀리 흘러가버렸고(相見し妹はいや年離る) 이젠 살아갈 기력조차 없다며(生けりともなし) 회한과 절망으로 맺고 있다4). 이 작품으로부터 야카모치는 표현과 방법에 있어서 무엇을 받아 들였을까. 우선 표현에 있어서는 (B1)의 지는 해처럼 스러져 버렸으니(入り日なす隠り 4) 이전(異傳)으로 수록된 제3장가( )는 제2장가와 유사한 표현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 초안으로 보는 관점, 별개의 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 등 그 성립 관계와 위상에 대 한 다양한 설이 제기되어 왔다. 본 논문에서는 이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曽倉岑(1999) 泣血哀慟歌 セミナー 万葉の歌人と作品 第三巻 (和泉書院) 참조.
197 야카모치(家持) 망첩비상가(亡妾悲傷歌)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朴一昊) 193 にしかば) 라는 구를 들 수 있는데, 210번 노래의 표현으로부터 가져오고 있 다.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 숨다(隠る) 에 해(석양)처럼(入り日なす) 이라는 직유표현을 더한 구인데, 망처가의 중심 주제의 하나인 죽음에 대한 핵심적 표현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비유하는 석양 과 비유되는 죽음 은 서로 유 사성을 지니며 실상과 추상의 이중성에 의해 죽음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전해지는데, 이는 상징의 차원에서 빛의 사라짐 이 죽음 에 대한 의미작용 을 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야카모치의 경우, 읍혈애통가 에서 비 롯되는 표현의 재활용을 통해 그 사라짐과 죽음을 보다 인위적으로 언어화하 여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한편 야카모치의 (B2)①에서는 죽은 아내가 남긴 어린 아이(みどり子)가 아내의 부재에 대비되는 실존적 대상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 역시 210번 노래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이 노래에서는 남자임에도 아이를 껴안고는 (男じものわき挟み持ち) 아이를 달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른바 아내의 역할마저 떠안아 버린 남자로서의 심정 이 토로되고 있는데, 이러한 심정은 다음 구에서 우리 아내와 베개 나란히 하고 둘이 잠잤던 침실에 틀어박혀 (我妹子と二人我が寝し 枕づくつま屋の内に5)) 로 읊어지듯이 홀로 남겨진 규 방의 풍경과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아내의 부재는 이른바 성적 대상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도 이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남편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는 아이의 존재는 단순히 아내가 남긴 생명의 실존적 유물로서만이 아니라, 성적 대상의 부재에 대한 하나의 표상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아내의 부재는 남편만이 홀로 남겨진 규방(閨房)의 적막과 중첩되면서 곧 성적 대상의 결손으로서 깨닫게 되고, 이 러한 결손은 남겨진 어린 아이에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성적 대상의 결손이라는 차원에서 읊는 표현은 히토마로 이후의 야 마노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의 망처가인 일본만가(日本挽歌)[제5권ㆍ ] 의 한시에 애욕의 강에 이는 파도는 사라져버렸고(愛河波浪已先 滅) 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망첩가 제작에 있어서 일본만가 에 절대적으 로 의존하고 있는 야카모치는 오쿠라를 통해 히토마로의 이러한 표현을 수용 하였다고 볼 수 있다. 5) 枕づく(마쿠라주쿠) 는 베개를 나란히 하고 베개를 함께 붙이고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마 쿠라코토바(枕詞:어두수식어) 인데, 원어에서는 일반적으로 현대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 음을 그대로 두고 읽는다. 그 기능이 의미보다는 소리의 운율을 표현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원음의 생소함을 고려하여 베개 나란히 하고 로 번역하였다.
198 19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그런데 야카모치의 경우는 가을의 긴 밤을 홀로 지새워야 하는가 하는 탄 식((A)1)과 호응하면서 그 결손의 의미가 전해지고 있으나, 아이만이 남겨졌 다는 즉물적 묘사에 중점이 놓여 있다. 이는 선행 작품의 표현에 의지하여 동침( 共 寝 )의 불가능함을 단지 일반적 표현 旣 知 의 표현 으로서 한 쪽에 놓 아둔 채, 유품으로서의 패랭이꽃을 완상하는((A)3) 행위로 아내의 부재를 미 적으로 그려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긴 유품(또는 유물)이 히토 마로의 읍혈애통가 에서는 외로운 규방과 아이인데 비해 야카모치의 경우 는 패랭이꽃과 아이로 되어 있음을 통해 양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즉 야카모 치의 경우, 이른바 성적 표상으로서 아내의 상실은 아내가 남긴 패랭이꽃의 도입으로 인해 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으로 인해 부재하게 된 처와의 거리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미적으로 형상화되고 추억하게 된 다[(B2)3]. 위와 같이 유사한 표현이 두 구 정도에 한정되듯이, 읍혈애통가 와의 관 계에 있어서 야카모치는 표현의 수용에 그다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다. 이는 야카모치가 처의 상실을 그리는 표현 하나 하나에 주목하기보다는 작품 전체의 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틀의 수용이 란 다름 아닌 허구로서의 망처가 에 대한 문예적 공감과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읍혈애통가 의 허구성에 대하여 논의한 최초의 연구는 이토 하쿠( 伊 藤 博 )에 의한 가인배우론( 歌 俳 優 の 論 )의 제기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이 노래 가 일종의 허구를 만들어 내어 또 다른 자기에게 말을 거는 사소설적인 작품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6). 이러한 관점은 망처가의 의미와 위상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구하였고 나아가 히토마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유력한 회로가 되 어 왔다. 허구의 관점에서 읍혈애통가를 파악하는 것은 실재하지는 않을지라 도 언어화된 그것이야말로 문예에 있어서 진실이라고 하는 발상에 의거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카모치의 망첩가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야카모치 망첩가의 실재성에 대한 의문은 나카니시 스스무( 中 西 進 )에 의해 처음 제기되는데 7), 그 의문의 근거로서 당시의 야카모치가 22세라는 점, 해 당 작품 이전보다 앞서는 노래에서는 첩으로 추정되는 다른 여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첩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통상적인 연인과 구별하고 있는 6) 伊 藤 博 (1975) 歌 俳 優 の 哀 歌 万 葉 集 の 歌 人 と 作 品 上 ( 塙 書 房, 初 出 1966) 321쪽. 7) 中 西 進 (1963) 家 持 ノート 万 葉 集 の 比 較 文 学 的 研 究 ( 桜 楓 社 ) 참조.
199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195 점, 어린 아이의 존재(みどり 子 ) 등을 들고 있다. 이후 망처의 실재를 묻는 관 점에서 나아가 장르로서의 망첩가의 의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 특히 야카모치의 망첩이 사실인가 아닌가 묻는 것 자체가 궁극의 문제가 아니다 8) 라는 아오키 다카코( 青 木 生 子 )의 지적 이래 망처 애상 이라는 주제 와 작품 구성의 관계를 논하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22세의 야카모치가 겪은 망처의 경험이 작품 제작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기 에는 장가와 단가의 13수로 구성된 망첩가 가군의 규모와 심정 토로의 넘침 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게다가 본 가군의 중심이 되는 장가 (B1)(B2)1~3 은 11예 20구에 이르는 선행 작품의 표현을 원용하고 있어서 선행 표현의 적극적 활용에 의거한 작품 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패러디적 창작은 하시모토 다쓰오( 橋 本 達 雄 )의 지적처럼 선행하는 작품의 세 계를 받아들여 자신의 입각점과 입장을 선명하게 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9).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패러디에 의한 창작 의도는 망처의 실재성에 구애되지 않고 전통적인 망처가를 새롭게 창조하려는 양식적 의욕에 다름 아 니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망첩가의 허구성에 대한 다른 설명이 될 수 있 다. 야카모치 망첩가는, 있을 수 있으리라 가상하는 망처의 경험을 전제로 하 면서 망처의 비애와 고독을 선행 작품의 언어와 자신의 언어로 얽어 짜놓은 노래의 직조물이며, 실재와 허구의 간극을 무의미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망처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언어의 힘 패러디와 허구 에 의한 진실의 표명을 가능하게 하는 힘 에 의거하여 망처가의 정형을 넘 어서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야카모치는 망첩가의 제작에 있어서 처의 죽음 이라는 현실과 노래로 읊어지는 표현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며 이른바 망처 의 관념적 실재를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8) 青 木 生 子 (1984) 亡 妻 挽 歌 の 系 譜 その 創 作 的 虚 構 性 万 葉 挽 歌 論 ( 塙 書 房 初 出 1971) 183쪽. 9) 선행 작품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망처가 계승의 양상과 구성의식에 대하여 고찰한 대표적인 연구로서는 橋 本 達 雄 (1994ㆍ11) 亡 妾 挽 歌 の 表 現 大 伴 家 持 の 場 合 国 文 学 ( 学 灯 社 )를 들 수 있다. 본 논문은 하시모토 논의 텍스트론적 분석 방법을 수용하면서, 나아 가 망처가의 허구성을 실재와 관념의 거리 선행 가인의 표현 및 방법의 수용을 통한 관념 적 작품의 제작 이라는 문제로 심화하여 고찰하였다. 선행 작품의 표현을 원용한 11예 20구 의 대응 관계는 하시모토론 56쪽 참조.
200 19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3. 형식미로서의 시세계 다비토( 旅 人 )의 변용 제2기의 히토마로를 잇는 제3기의 망처가로는 오토모노 다비토( 大 伴 旅 人 ) 의 가군(제3권ㆍ438~440, 446~450, 451~453)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다비 토가 덴표( 天 平 ) 2년(730) 12월에 다이나곤( 大 納 言 )으로 임명되어 다자이후 ( 大 宰 府 )로부터 귀경하면서 부임지에서 잃은 아내를 그리며 지은 단가 연작 의 작품이다. 귀경길의 시간적ㆍ공간적 이동에 맞추어 제작되고 있어서, 일 반적으로 가군을 3그룹으로 나눈다. 귀경을 앞둔 시점에 지은 제1가군(438~ 440)에서는 홀로 남겨진 남편의 외로움을 탄식하며 규방의 적막을 앞서 염려 하고, 귀경길에 오른 시점에 지은 제2가군(446~450)에서는 아내와 함께 보 았던 곳을 홀로 지나며 이미 곁을 떠난 아내를 추억한다. 귀경 후의 제3가군 (451~453)에서는 처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과 무상함에 한숨짓고는 생전에 함께 심었던 매화를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주체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장탄식이 귀경을 앞둔 시점 귀경길에 오른 시점 귀경 후의 시점 과 같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증폭되어 가고, 다시 공간의 이동에 맞추어 추 억과 비애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이른바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횡축과 종축으로 하여 망처의 비애를 상승과 하강의 곡선으로 그린 숨이 긴 가군이라고 할 수 있다. 야카모치는 자신의 망첩가를 제작함에 있어서 이러한 다비토의 망처가를 어떻게 수용하였을까. 표현의 측면에서 보면 의외로 관련되는 부분은 유사한 심정 표현 마음이 슬프구나[ 心 悲 しも](450) 나 가슴은 미어지며[ 心 むせつ つ](453) 정도로 한정된다. 야카모치의 심정표현 가슴 저미게( 心 痛 く)(B2)1 와 마음도 우울하네( 心 も 行 かず)(B1) 가 위의 예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라모치 시노부ㆍ미사키 히사시의 지적처럼 다채로운 야카모치의 심정표현 중의 하나인 가슴 저미게( 心 痛 く) 는 히토마로의 애절하게( 心 を 痛 み)[제2권ㆍ135] 를 응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마음도 우울하네( 心 も 行 かず) 는 야카모치의 작품에서만 단독적으로 쓰인 독자적인 어구이기 때문에 10), 다 비토의 예로부터 바로 수용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다비토 망처가 가군의 마지막 노래 나의 아내가 심어 둔 매화나무 볼 때마다 가슴은 미어지고 눈물만 흐르누나( 我 妹 子 が 植 えし 梅 の 木 見 るご とに 心 むせつつ 涙 し 流 る)[453] 는 야카모치의 (A)3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10) 倉 持 しのぶㆍ 身 崎 寿 (2002) 전게론, 80~84쪽 참조.
201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197 예로 볼 수 있다. 453번 노래가 아내를 추억하고 비탄에 잠기게 하는 매개물 로서 매화나무 에 주목하고 있는데, (A)3은 이를 패랭이꽃으로 바꾸었을 뿐 453번 노래로부터 시상의 전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후미모치( 書 持 )의 노래(A)2로 종결될 수 있었던 망첩가는 (A)3을 계기로 양적으로 증대ㆍ확 장되고 심정적으로 심화되어 가기 때문에, 가군 전개에 있어서 이 노래는 매 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위상을 갖는 노래가 다비토의 노래에 의거하 고 있다는 점은 그 영향 관계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야카모치가 부친인 다비토로부터 시기적ㆍ혈연적 측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에, 이러한 영향 관계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당연성에도 불구하고 야카모치 망첩가가 다비토의 작품으로부터 수용한 표현은 양적으로 매우 미미하다. 그렇다면 야카모치는 망처가의 전통을 의식하면서 다비토로부터 표현 이외에 무엇을 수용한 것일 까. 그것은 상실의 고통과 비애를 시간과 공간의 추이에 따라 부침하는 장대 한 가군에 담아내는 연작구성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마모치 망 첩가 또한 시간과 공간의 추이에 섬세하게 조응하며 숨이 긴 연작을 구성하 고 있다. 이러한 야카모치의 연작 구성에 대한 논의는 오노데라 시즈코( 小 野 寺 静 子 )가 2분법을 제기하며 비롯되었는데, 현재는 3분법이 일반적으로 인정 되고 있으며 3분법도 한 가군 내에 넣는 노래의 범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된다 11). 본 논문은 3분법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중심이 되고 있는 장가(B1)(B2) 1~3을 다시 장가(B1)와 반가(B2)1~3로 나누어 가군의 전개를 조망한 다. 장가에 이어지는 반가는 장가와 일체성을 가지면서도 장가의 시세계와는 별도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장 가는 꽃을 매개로 무상을 읊고 있는데, 반가 제1수(B2)1는 느닷없이 어린 아이(みどり 子 ) 를 등장시켜 죽음의 실존적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장가의 시세계가 평이하게 미끄러지듯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 에서 작은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단가군 4수(A)1~4가 1 起 2 承 3 転 4 結 과 같이 전개되듯이 12), 형식면에서 短 歌 4 首 (A군) 長 反 歌 (B1군+B2군) 短 歌 5 首 (C군) 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 가군 전 11) 연작 구성과 관련한 다양한 분류법은 倉 持 しのぶㆍ 身 崎 寿 (2002)전게론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본 논문은 이를 참조하였다. 12) 橋 本 (1994ㆍ11) 전게론, 54쪽 참조.
202 19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체는 시세계의 측면에서는 A군( 起 ) B1군( 承 ) B2군( 転 ) C군( 結 ) 과 같이 전개된다. 즉 처의 죽음에 대한 심정의 변화(탄식 위안 고통 체 념) 를 장단의 노래로 이루어진 형식의 전개 로 표현하고 있다. 가군 전체가 단가에서 장가로 다시 반가와 단가로 이어지면서 망처의 비통 에 대한 의미 부여가 장단의 형식적 변화 속에서 크게 반전하며, 망처 애상 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구도화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야카모치 망첩가는 처의 죽음을 상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유지하면서 가군을 이어가고 있다. 즉 누구 나 겪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상실의 고통을 남겨져서 보여지는 나 라는 또 다른 시점의 설정을 통해 응시하고 있다. 그 시점이란 다름 아닌 자신을 상 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처의 죽음이라는 현실 의 질곡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군의 모두(A)1에서는 가을바람( 秋 風 )의 추위를 예견하며 고독한 자신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달이 바뀌어 가을이 찾아온 시점의 노래(A) 4부터는 그립다네( 偲 びつるかも)(A)4 마음도 우울하네( 心 も 行 かず)/가 슴이 미어지고( 胸 こそ 痛 き)/어찌할 바를 모르네(せむすべもなし)(B1) 가슴 저미게( 心 痛 く)(B2)1 살 기력도 없구나( 心 どもなし)(C)2 미어지는 가 슴은( 痛 き 心 は)/견딜 수 없구나( 忍 びかねつも)(C)3 와 같이 심정 표현이 집요 할 정도로 반복되면서 자신의 마음 에 초점이 모아지고, 마지막에는 사랑스 러운 사호산( 愛 しき 佐 保 山 )(C)5 으로 맺으며 마음의 이야기적 전개 가 마무 리된다. 이러한 형식은 다비토의 연작구성을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단 가로만 구성된 다비토 망처가에서 나아가 장가를 도입한 점은 장가의 만가를 처음 시도한 히토마로와 논리적 장가를 제작한 오쿠라(후술함)에게 배운 것 이라 할 수 있다. 야카모치는 이러한 선행 망처가의 방법에서 더 나아가, 구 도에 대한 의식이 뒷받침된 장단의 가군 구성을 통해 죽음을 실재와 거리를 두는 관념으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단 장 단의 연속적 구성에 의해 시적 화자의 심정 처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고통 이 대상화되어, 그 심 정의 움직임을 수용자가 더듬어 따라갈 수 있도록 논리적 구도를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구성의식에 의한 구도의 상징성과 효용 에 주목하며 처의 죽음 이라는 실재를 관념으로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히토마로와 오쿠라 의 방법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망처가 형식의 개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이다.
203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무상의 표상과 논리적 귀결 오쿠라( 憶 良 )의 수용 야카모치 망첩가의 성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인이 오쿠라임은 수많은 유사구의 전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망처가 제작에 있어서 오쿠라의 작품 이 실제적 창작의 모범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쿠라 일 본만가 가 상관인 다비토의 망처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서 읊은 일종의 허 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볼 때에 단지 표현의 측면만이 아니라 허구적 제작 이라는 작법도 야카모치가 인지하고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오쿠라로부터의 수용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는 그다 지 많지 않다. 한 예로 (B2)3은 오쿠라의 아내가 봤던 멀구슬나무 꽃은 져 버리겠네 흘리는 내 눈물은 아직 안 말랐는데( 妹 が 見 し 楝 の 花 は 散 りぬべし 我 が 泣 く 涙 いまだ 干 なくに[제5권ㆍ798] 의 어구를 그대로 차용한 범작으로 평가 된다. 표현의 단조로운 답습뿐만 아니라 보던( 見 し) 을 뜰(やど) 에 잇고 있 어서, 바라본 대상을 꽃에 잇고 있는 오쿠라 작품 (봤던 멀구슬나무[ 見 し 楝 の 花 ])에 비해 문맥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하 시모토는 오쿠라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 선행가의 표현을 충분히 소화 해 내지 못한 미숙함의 반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3). 그러나 모방이라는 패러디 구도에 의존하게 되면 이러한 문맥의 부자연스 러움이나 시적 응집성의 약화는 피할 수가 없다. 불완전함을 애써 감수하면 서도 야카모치는 자신만의 방법을 지향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패러디 구조 에 적극적으로 의지하려는 곳에 새로운 창작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야카모치는 오쿠라로부터 특히 무엇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 기화하려고 하였을까. 우선은 오쿠라의 논병아리처럼 둘이 나란히 앉아(にほ 鳥 の 二 人 並 び 居 )[794] 를 원앙새처럼 둘이 나란히 앉아( 水 鴨 なす 二 人 並 び 居 )(B1) 로 전용한 구나, 쓰쿠시 구석구석 보여주었을텐데( 国 内 ことごと 見 せ ましものを)[797] 를 꺾어놓고는 보여주었을텐데 ( 手 折 りても 見 せましもの を)(B1) 로 원용한 구 등과 같은 예에서 표현의 수용 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예는 아내와의 각별한 애정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각 각 직유법과 반실가상( 反 実 仮 想 )의 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야카모치는 13) 橋 本 (1994ㆍ11) 전게론, 57쪽. 그러나 하시모토의 논문은 야카모치의 미숙함을 인정하면서, 나아가 야카모치의 창의성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204 20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이 수법을 그대로 전용하며 패러디 구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모방하였다고는 하여도 문체 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쿠라의 경우가 숨이 길고 휘감기는 듯한 문체라고 한다면, 야카모치의 망첩가는 숨 이 짧고 건조한 느낌의 문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자는 장식적이면서도 풍 부한 언어적 기교를 통해 처의 상실로 인한 비애를 토로하고 있는 것에 비해, 후자는 선행하는 만가의 표현을 내재화하여 누구나 알고 있고 느낄 수 있다 는 이른바 상식적 전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간결하게 단순화한 표현으로 심정 의 공감을 호소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남겨진 자신을 대상화하여 그 슬픔의 실체를 자기 안의 심상으로서 조망하려는 구심적 문체를 견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표현은 결국 상실의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인 간의 숙명을 자각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흔적도 없는 무상한 세상이니 어찌할 수도 없네( 跡 もなき 世 の 中 なれば せ むすべもなし)(B1) 인데, 이는 오쿠라 세상 살기 어려움을 슬퍼하는 노래 한 수와 서문( 世 間 の 住 み 難 きことを 哀 しぶる 歌 一 首 并 せて 序 [제5권ㆍ804~805] 의 목숨이 아깝지만 어찌할 수도 없네( 命 惜 しけどせむすべもなし)[804] 와 세상 사 이렇기에 붙잡을 수도 없네( 世 の 事 なれば 留 みかねつも)[805] 를 원용한 것이다 14). 여기에서 드러나는 정신 구조가 오쿠라로부터 수용한 가장 핵심적 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인생 무상 에 대한 공감과 언어적 표상에 대한 의지이다. 처의 죽음으로 인해 닥쳐온 불행은 견디어 낼 수 없는 두려움이고, 결국 인생 무상 이라는 허무감으로 주저앉게 한다. 이러한 허무감은 현실적 의지 및 감각의 정지이며 마음의 공허로 나타난다. 그 허무는 처의 죽음을 인정하 지 못하게 하고 현실과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가을이 오면 패랭이 꽃을 바라보고 그리라고(A)3 한 처의 과거의 말이 지금은 존재의 허망함으 로 남겨져 버렸다. 그리고 망처의 바람이 현실화되어 꽃이 피고 다시 그것을 상상 속에서 처와 함께 완상한다고 하는 범시간적 행위의 공유는 무상함으로 이어진다.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이윽고 무상의 뼈저린 자각에 이르고 있는 14) 한편 다비토 다자이후 장관 오토모 경이 흉사의 소식에 답하는 노래 한 수( 大 宰 帥 大 伴 卿 凶 問 に 報 ふる 歌 一 首 )[제5권ㆍ793] 의 세상 삶이란 덧없는 것이라고 알게 될 때에 비 로소 더욱더욱 슬펐던 것이지요( 世 の 中 は 空 しきものと 知 る 時 しいよよますます 悲 しいかりけり) 로부터의 수용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상실을 괴로워하며 결국에는 허망함(인생 무상)을 깨닫는다는 상실의 고통에서 무상의 자각에 이르는 귀결적 논리구성 은 역시 오쿠 라로부터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205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201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처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사호산( 佐 保 山 ) 으로 시선을 옮겨 놓고(C)4, 마지막에는 사랑스러운 사호산( 愛 しき 佐 保 山 )(C)5 으로 맺으며 죽음을 일상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비로 소 형식적으로 완결될 뿐만 아니라 망처로 인한 미망와 번뇌는 해소되고 위 안을 받게 된다. 꺼리고 있던 무덤( 奥 つき) 을 언어화하면서 처의 죽음으로 인해 내적으로 어두움과 밝음 사이를 방황하였던 불안과 번민의 상태 로부 터 벗어나 현재의 자신을 납득하는 모습 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이는 이른바 한없는 미망의 질곡을 극복하고 현실적 세계로의 복귀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논리적 귀결의 방법 또한 실은 오쿠라 장가의 특성인 논리적 구성의 방법 으로부터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야카모치 망첩가의 제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오쿠라 일본만가 는 한 문서, 칠언시, 장가(반가 5수 포함)로 구성된 장대한 작품인데, 서문 하나만 보아도 소주제가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논리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문은 크게 2개의 단으로 나뉘지만 다시 각각 2개의 단으로 세분할 수 있다. 제1단 도입부[대체로 듣기를( 蓋 聞 )~누구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 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誰 能 逃 黒 闇 之 捜 来 )]는 죽음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화두로 던지고 있으며<기>, 이어 아아 원통한 일 이도다( 嗟 呼 痛 哉 ) 까지의 제2단은 소멸을 향해 가는 시간의 흐름이 순식간임 을 탄식하고 있다<승>. 세상 무상의 이치를 설파하는 이러한 1, 2단은 고인 의 미덕을 찬미하는 제3단[홍안( 紅 顔 )~홀로 남은 인생길을 살아가게 되리라 고는( 獨 飛 生 於 半 路 )]에 이르러 죽은 자에게로 시점이 전환되며 반려를 잃은 슬픔을 토로한다<전>. 제4단은 홀로 남겨진 절망감과 규방의 쓸쓸함을 탄식 하며 아아, 애통한 일이도다( 嗚 呼 哀 哉 ) 로 맺고 있다<결>. 이러한 구성은 한문서(인생무상의 이치: 기) 칠언시(극락정토에의 기원: 승) 장가(망처의 고통과 상실감: 전) 반가(회한: 결) 와 같이 작품 전체의 전개에서도 인정 된다. 야카모치 망첩가는 이러한 구성 방법을 원용하여 처의 죽음과 상실에 대한 비애를 현실 인식 과 무상 이라는 중층구조로 관념화 이른바 논리적 형식 의 인공적 구축에 의해 죽음을 관념화 하고 있다. 이렇게 방법적 의식에 입 각하여 죽음에 대한 실재와 관념의 거리를 가늠하려는 의도적 구성에 야카모 치 망첩가의 창의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6 20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5.나가며 죽음과 상실에 대한 문예적 표상 야카모치 망첩비상가는, 망처만가라는 문예 양식에 대한 의식 과 망처의 언어화에 대한 의욕 에 근거하여, 장단의 가군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관념적 망처만가 의 방법을 개척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처의 죽음이라는 현실 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의한 문학적 실체를 구현한 작품 이다. 여기서는 처를 잃은 비애의 심정이 단지 감상적 언어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장단 가군의 조성 구도에 대한 의식 을 통해 처의 죽음이 실재를 떠나 관념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가군의 연속적 구성에 의해 시적 화자의 심정 처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고통 이 대상화되고, 그 심정의 움직임 을 수용자가 더듬어 따라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망처라는 주제를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허구적 언어의 효용에 주목 하고 있으며, 망처의 비애는 그 허구적 언어와 단 장 단 의 구성으로 표현 됨으로써 실재하는 것을 넘어서 享 受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따라서 야카모치 는 상실에 대한 感 傷 의 넘침을 허구적 문맥 안에 담아내며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장단 구성의 만가를 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행 작품의 안이한 채용으로 인해 표현의 새로운 개척 이나 수사의 정교함에는 부족함이 남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러한 선행 작품의 과도한 활용 넓게 확보된 패러디의 언어적 공간 은 관념 적 창작을 위한 적극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처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따지는 것은 무의 미하다. 처의 죽음에 대한 실재적 경험을 넘어 언어로 조성하는 관념적 경험 이 문예적 진실로서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카모치 망첩가는, 만요슈 제4기의 초반기에 제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망처가라는 전통적 장르를 의식하고 계승하면서 망처 의 심정을 허구적 언어로 표현하여, 죽음과 상실에 대한 관념적 표상을 시도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青 木 生 子 (1984) 亡 妻 挽 歌 の 系 譜 その 創 作 的 虚 構 性, 万 葉 挽 歌 論, 塙 書 房, 初 出 1971
207 야카모치(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에 있어서 죽음의 실재와 관념 ( 朴 一 昊 ) 203 伊 藤 博 (1975) 歌 俳 優 の 哀 歌, 万 葉 集 の 歌 人 と 作 品 上, 塙 書 房, 初 出 1966 小 野 寺 静 子 (1972ㆍ10) 悲 二 傷 亡 妾 一 歌, 国 語 国 文 研 究 50, 北 海 道 大 学 国 文 学 会 小 野 寛 (1978) 大 伴 家 持 亡 妾 悲 傷 歌, 万 葉 集 を 学 ぶ 第 三 集, 有 斐 閣 粂 川 光 樹 (1977) 時 は 経 ぬ 考 試 論 ㆍ 家 持 の 時 間, 論 集 上 代 文 学 第 七 册, 笠 間 書 院 倉 持 しのぶㆍ 身 崎 寿 (2002) 亡 妾 を 悲 傷 しびて 作 る 歌, セミナー 万 葉 の 歌 人 と 作 品 第 八 巻, 和 泉 書 院 小 島 憲 之 외 편( ) 新 編 日 本 古 典 文 学 全 集 万 葉 集 1 2, 小 学 館 曽 倉 岑 (1999) 泣 血 哀 慟 歌, セミナー 万 葉 の 歌 人 と 作 品 第 三 巻, 和 泉 書 院 中 西 進 (1963) 家 持 ノート, 万 葉 集 の 比 較 文 学 的 研 究, 桜 楓 社 橋 本 達 雄 (1994ㆍ11) 亡 妾 挽 歌 の 表 現 大 伴 家 持 の 場 合, 国 文 学, 学 灯 社 広 岡 義 隆 (1993ㆍ5) 家 持 の 亡 妾 悲 傷 歌 作 品 形 成 における 季 の 展 開 について, 三 重 大 学 日 本 語 学 文 学 4, 三 重 大 学 日 本 語 学 文 学 会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박일호, (한자) 朴 一 昊, (영어) Park, Ilho 소속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일어일문학과 영문제목 : The presence and idea of death in the song lamenting Yakamochi's late wife Inheritance and transformation in the song mourning the deceased wife 주소: ( ) 서울시 성북구 보문로 34다길 2 성신여대 인문과학대학 일어일문학과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 논문에서는 오토모노 야카모치( 大 伴 家 持 ) 망첩비상가( 亡 妾 悲 傷 歌 )의 만가( 挽 歌 )로서의 장 르적 특성에 주의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과 표현의 문제를 실재와 관념의 거리라는 관점에서 논 의하며, 망처가의 전통을 잇는 야카모치 망첩가의 의의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야카모치 망첩비상가는, 망처만가라는 문예 양식에 대한 의식 과 망처의 언어화에 대한 의 욕 에 근거하여, 장단의 가군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관념적 망처만가 의 방법을 개척한 작품이라 고 할 수 있다. 즉 처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의한 문학적 실 체를 구현한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처를 잃은 비애의 심정이 단지 감상적 언어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장단 가군의 조성 구도에 대한 의식 을 통해 처의 죽음이 실재를 떠나 관념으로서 이해 된다. 따라서 가군의 연속적 구성에 의해 시적 화자의 심정 처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고통 이 대상화되고, 그 심정의 움직임을 수용자가 더듬어 따라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8 20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행 작품의 안이한 채용으로 인해 표현의 새로운 개척이나 수사의 정교함 에는 부족함이 남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행 작품의 과도한 활용 넓게 확보 된 패러디의 언어적 공간 은 관념적 창작을 위한 적극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처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처의 죽음에 대한 실재적 경험을 넘어 언어로 조성하는 관념적 경험이 문예적 진실로서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카모치 망첩가는, 만요슈 제4기의 초반 기에 제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망처가라는 전통적 장르를 의식하고 계승하면서 망처의 심정 을 허구적 언어로 표현하여, 죽음과 상실에 대한 관념적 표상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야카모치, 히토마로, 다비토, 오쿠라, 실재, 관념, 망처가, 망첩가
209 205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Abstract This is the study to see the Japanese character of amends to be free from the prick of conscience for love in Japanese Modern literatures of Soseki, Dazai and Tokoku. These works have common style that hero falls in love and feels guilty and comes to guilty conscience. And they commit suicide to atone for their sin at last. In these works heros die to atone for their sins. They try to make up for their sins by themselves. It is Japanese character of amends to punish himself and die for his responsibility. It is their way to be free from guilty conscience by death. They do not ask for help to another people or God. They do not seek for salvation too. Their price of death can not save themselves from sin. Keywords : conscience, God, amends, sin, punishment, death 1) 1. 서론 저명한 일본근대문학자 나쓰메 소세키( 夏 目 漱 石 )와 다자이 오사무( 太 宰 治 ), 그리고 기타무라 도코쿠( 北 村 透 谷 )는 남성이 여성을 사랑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작품을 썼고 그들 작자 자신도 정신적으 로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소세키의 마음(こころ) 은 연애사건으로 인해 가 지게 된 죄의식과 자신의 죄에 대한 벌( 罰 )로써 자살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 져 있지만 소세키 자신도 만년에 정신적 위기 속에 있었다. 또 다자이의 인 간실격( 人 間 失 格 ) 은 여성관계로 인해 남자가 폐인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여성관계로 인해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살미수를 반복했던 다자이 의 인생을 묘사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정신적 연애론을 주창한 도코쿠는 젊은 나이에 자살했지만, 아뇌옥( 我 牢 獄 ) 은 나( 我 ) 가 처녀에 대한 정신 적 연애 속에서도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소세키의 마음 에 대해서 이노 켄지( 猪 野 謙 二 )는 선생의 자살은 인간적 *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조교수. 일본고대ㆍ근대문학 전공.
210 206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인 불손(不遜)에 대한 벌이기도 했다. 라고 했고 아라카와 마사히토(荒川正 人)는 마음 을 일관하는 주제는 죄와 벌 이다. 신(God)에 대한 죄도 아니 고 신이 내린 벌도 아니다. 1)라고 했다. 또 야마다 테루히코(山田輝彦)는 마 음 은 자신이 범한 죄를 스스로 심판함으로써 씻는다는 속죄의 이야기 2)이 라고 했다. 이렇게 모두 주인공이 죄악감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자이의 인간실격 에 대해서 가메이 카쓰이치로(亀井勝一郞)는 주인공 요우조(葉藏)의 마음속에 떠오르고 있었던 것은 신(God)이 자신을 벌하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벌하겠다는 자살 이다. 라고 했고, 도리이 쿠 니오(鳥居邦朗)는 요우조는 자신을 죄인으로 마구 꾸짖었다. 죄에서 도망치 지 못한 그는 인간자격으로부터 실격되고 이야기가 끝난다. 3)라고 했다. 또 사고 준이치로우(佐古純一郞)는 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는 계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그리고 최후에 가장 무서운 죄인 자살에 몸을 내맡겼다. 4)라고 했다. 어느 것도 주인공의 죄의식과 벌로써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한편 도코쿠의 아뇌옥 에 대해서 이로카와 다이키치(色川大吉)는 폐색감 (閉塞感)과 염세(厭世), 그리고 죽음의 어두움이 진하게 나타나 있고, 이 절망 (絶望)적 연애(戀愛)의 전도는 도코쿠의 최후를 예고하는 징조(徵兆)인 것처 럼 보여서 어쩐지 무섭다. 5)라고 했다. 또 히라오카 토시오(平岡敏夫)는 죽 음을 앞 둔 뇌옥(牢獄) 생활을 나(我) 는 보내고 있다. 6)라고 했고 기타가 와 토오루(北川透)는 뇌옥처럼 느끼는 폐색감과 다가오는 죽음이 서로 깊이 스며들어 도코쿠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7)라고 했다. 이처럼 그들은 아뇌 옥 에 나타난 나 의 마음의 폐색감과 도코쿠의 죽음의 관련성에 대해서 지 적했다. 이상과 같이 세 작가에 대한 연구자들은 각 작품을 죄책감(罪責感)으로 인 한 자살을 묘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죄의식과 연애의 1) 玉井敬之 外(編)(1994) 漱石作品論集成 第十卷 こころ おうふう, p.42, p.148 2) 山田輝彦(1984) 夏目漱石の文學 桜風社, p.177 3) 鳥居邦朗(1982) 太宰治論 雁書館, p.189 4) 小山淸(編)(1957) 太宰治硏究 筑摩書房, p.50, p.57 5) 色川大吉 (1995) 北村透谷 東京大学出版社, pp ) 平岡敏夫(1982) 北村透谷硏究 有精堂, p.171 7) 北川透(1976) 北村透谷 試論Ⅱ 冬樹社, p.333
211 연애(戀愛)에 의한 죄의식(罪意識)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贖罪) (矢野尊義) 207 관계가 깊이 분석되지 않았고, 죄의식으로 인해 자살에 이르는 과정 또한 자 세히 분석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들은 왜 연애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 는가. 또 죄의식을 느꼈다고 해도 왜 자살을 해야 했는가. 이들 경위와 과정 은 간과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일본근대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세 작가의 작품을 위의 간과된 내용들을 총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본근대문학에 새로 나타난 연애에 의한 죄의식에 대해서 밝히고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근대 인의 속죄방식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2. 연애(戀愛)와 죄의식(罪意識)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죄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신을 업신여 기는 행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De Civitate Dei))를 말한다. 아우구스티누 스는 성기를 죄, 특히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가장 적 절한 은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8)고 한다. 고대일본문화에는 죄라는 관념이 없었지만, 고대말기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일반인에게도 불교적 죄의 관념이 생기게 되었다.9) 그러나 메이지 이후, 서양사상이 들어옴과 동시에 일본인의 죄의 관념도 점점 변화해 간 것으로 보인다.10) 다음은 소세키의 마음 의 경우이다. 아이는 언제까지나 생길 리가 없어요. 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사모님은 침묵 하고 있었다. 왜요? 라고 내가 대신하여 물었을 때 선생님은 천벌이니까. 하고 크게 웃었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과 사모님은 사이가 좋은 한 쌍의 부 부였다.(26) 나는 세상에서 여자를 오로지 한 명밖에 모릅니다. (중략) 아내도 내가 천하에 단 한명밖에 없는 남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 리는 가장 행복하게 태어난 인간의 한 쌍이어야 할 것입니다. (30) 선생님은 8) 존 포트만/서순승(역)(2008) 죄의 역사 리더스북, p.37, p.185 9) 고대일본문화는 남녀사랑이나 성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남녀관계나 성욕에 대한 죄의 식은 없다. 고대말기에 불교가 서민사이에 침투하고 나서 남녀사랑이나 성욕은 색욕(色慾)이 라고 해서 번뇌(煩惱)로 보게 되었지만, 남녀사랑이나 성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뇌하거나 죄의식을 가지는 이야기는 불교 수도자에 대한 불교설화 이외는 드물다. 10) 순결이나 정조의 문제는 에도(江戶)시대의 유교(儒敎)도덕을 배운 무가(武家)나 높은 계급 의 여성이 아니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메이지(明治)시대부터 이 문제는 일반시민 사이에 서도 큰 관심사가 되었다.
212 20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아름다운 연애 뒤에 무서운 비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얼마나 선생님에게 비참한 것이었는지는 상대인 사모님에게 마저 알려지지 않았다.(34) ( 마음 ) 11) 선생 이 아이가 없는 것을 스스로 천벌( 天 罰 ) 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선 생 부부 사이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인은 아직까 지 그 사연을 알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가장 행복하게 태어난 한 쌍 의 부부가 비참한 인간이 된 사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연애 뒤에 있 었던 무서운 비극 이란 다음과 같다. 해버렸어요! 해버린 후에 놀랐어요. 그리고 너무 무서워졌어요. (41) 그가 아 가씨에 대한 애달픈 연정을 나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한 그때의 내 입장을 상 상해보세요. (227) 나는 갑자기 사모님!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했 다.(247) 나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251) (나는) 교활한 남자였습니다. 그 리고 그것을 아는 자는 지금 단 하늘과 내 마음뿐이었어요. (중략) (사모님은) 제가 (딸이 약혼한 것을) 이야기했더니, (K의) 얼굴이 이상한 표정이 되었어 요. (중략) 라고 했다.(253) 그날 밤에 K는 자살하고 말았다.(254) ( 마음 ) 12) 선생 은 청년이었을 때 하숙집 아가씨를 좋아했는데 그가 데리고 온 친구 가 그녀에 대한 연정을 그에게 고백하자마자 선생 은 친구를 빼돌리고 먼저 아가씨에게 구혼하고 결혼약속을 해버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자살 11) 子 供 はいつまでたったってできっこないよ と 先 生 が 言 った 奥 さんは 默 っていた なぜです と 私 が 代 わりに 聞 いた 時 先 生 は 天 罰 だからさ と 言 って 高 く 笑 った 私 の 知 る 限 り 先 生 と 奥 さん とは 仲 のいい 夫 婦 の 一 對 であった (26) 私 は 世 の 中 で 女 というものをたった 一 人 しか 知 らな い ( 中 略 ) 妻 のほうでも 私 を 天 下 にただ 一 人 しかない 男 と 思 ってくれています そういう 意 味 から 言 って 私 たちは 最 も 幸 福 に 生 まれた 人 間 の 一 對 であるべきはずです (30) 先 生 は 美 し い 戀 愛 の 裏 に 恐 ろしい 悲 劇 を 持 っていた そうしてその 悲 劇 のどんなに 先 生 にとってみじめな ものであるかは 相 手 の 奥 さんにまで 知 れていなかった (34) 이하 마음(こころ) 은 夏 目 漱 石 (1968) こころ 旺 文 社 에서 인용한다. 괄호 안에 숫자는 페이지수이다. 단, 본고에 나오는 일본어 문헌의 한국어번역은 모두 필자가 한 것이다. 12) やったんです やったあとで 驚 いたんです そうして 非 常 にこわくなったんです 彼 のお 孃 さん に 對 する 切 ない 戀 をうち 明 けられた 時 の 私 を 想 像 してみてください 私 は 突 然 奥 さん お 孃 さ んを 私 にください と 言 いました 私 だけがすべてを 知 っていたのです ( 私 は) 狡 猾 な 男 でし た そうしてそこに 気 のついているものは 今 のところただ 天 と 私 の 心 だけだったのです ( 奥 さ んは わたしが( 娘 が 婚 約 したことを) 話 したら 變 な 顔 をしていましたよ と 答 えました その 晩 に Kは 自 殺 して 死 んでしまったのです ( こころ )
213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09 했다는 이야기다. 그때부터 선생 은 죄인이 된 것이다. 해버렸다! 하고 나서 무서워졌다. 라는 말은 선생 의 배신행위가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친구는 선생 에게 복수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친구의 자살로 인해 선생 은 적 어도 선생 의 마음속에서는 친구의 살인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이 선생 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게 했는가. 그것은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심 때문이다. 선생 은 친구를 밀어젖히고 아가씨를 먼저 얻으려고 했다. 이것은 그의 이기 심에서 나온 것이다. 선생 이 고뇌하는 것도 바로 교활( 狡 猾 )한 자신의 이 러한 마음이었다. 13) 아가씨를 자기 것으로 한 선생은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은폐( 隱 蔽 )한 채 아가씨와의 사랑을 실현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켜 온 14) 것 이다. 선생 의 죄를 아는 자는 하늘과 자신 밖에 없었지만, 그의 비겁한 행 위는 지울 수 없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이 알고 있다. 는 자책감( 自 責 感 )은 한 순간도 그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다. 이와 같은 죄의식을 가진 인간의 마음상태에 대해서 가미야 미에코 ( 神 谷 美 惠 子 )는 과거에 자신이 범한 죄 행위를 몰래 고민하는 사람의 심경 이다. 주변사람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이제 고백할 필요도 없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자신과 자신 사이에서 마음은 계속 아파한다. 15) 고 한다. 다음은 다자이의 인간실격( 人 間 失 格 ) 의 경우이다. 하세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중략) 요시 코의 표정에는 분명히 아무도 더럽힌 적이 없는 처녀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습 니다.(110) 전혀 남을 의심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략) 아아, 더러움을 모르는 처녀의 순결이란 정말 귀한 것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111) 일생에 한 번이라도 좋다. 처녀의 순결이란... (중략)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구 나.(112) ( 인간실격 ) 16) 13) 마음 의 아집( 我 執 )은 사랑에 동반하는 질투의 감정이다. 선생에게 죽음을 선택하게 한 것 은 연애와 그것에 동반하는 질투의 감정이었다.( 山 田 輝 彦 (1984) 前 揭 書, p.174) 14) 玉 井 敬 之 (1994) 前 揭 書, p ) 神 谷 美 惠 子 (1991) 生 きがいについて みすず 書 房, p ) してよ ちっとも 悪 びれず 下 唇 を 突 き 出 すのです ヨシちゃんの 表 情 には あきらかにだれに も 汚 されていない 処 女 のにほいがしていました てんで 疑 おうとしないのです ああ よごれを 知 らぬヴャジニティは 尊 いものだ 自 分 は 今 まで 生 涯 に 一 度 でいい 処 女 性 の 美 しさとは やはりこの 世 の 中 にあるものだ 이하 인간실격( 人 間 失 格 ) 은 太 宰 治 (2010) 人 間 失 格 角
214 21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그것 봐! (123) 두 마리의 동물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중략) 모든 것에 자 신을 잃고 사람을 더없이 의심하게 되고 이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 기쁨, 공감 등과 영원히 무관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 일은 내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 건이었습니다. 나는 정면으로부터 미간에 상처를 입었고 그때부터 그 상처는 어 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아프게 되었습니다. (124) 엉엉 소리를 내고 울었습니 다. 얼마든지 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배후에 요시코가 접시에 잠두콩을 수북 이 담고 멍청하게 서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고 해서... (125) ( 인간실격 ) 17) 요시코는 순결( 純 潔 )한 처녀였다. 주인공은 그녀를 통해 인간에게 마음을 열 기 시작했다. 그가 요시코와 결혼하고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 었던 바로 그때 사건이 일어났다. 남자에 대한 요시코의 무지는 한 남자에게 치욕( 恥 辱 )을 허락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녀는 남성을 의심할 줄 몰랐기 때문 에 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신뢰가 능욕( 凌 辱 )의 원인이 되었다는데 주인공의 고민이 있다. 이것은 다자이의 아내이었던 하쓰요( 初 代 )에 대한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하쓰요는 다자이의 입원 중에 실수를 했다. 퇴원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다 자이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다자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고 그의 생애의 길을 결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18) 는 것이다. 다자이는 젊은 나이에 이미 정신적 방랑자( 放 浪 者 )가 되었지만, 19) 하쓰요의 사건으로 인해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달래려는 정신적 불구자( 不 具 者 )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더럽히 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순결이 더렵혀진 것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자신을 더럽힘으로써 잊으려고 했던 것이다. 20) 그러나 그의 川 書 店 에서 인용한다. 17) 見 ろ! 二 匹 の 動 物 がいました すべてに 自 信 を 失 い ひとを 底 知 れず 疑 い この 世 の 営 みに 対 するいっさいの 期 待 よろこび 共 鳴 などから 永 遠 に 離 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実 に それは 自 分 の 生 涯 において 決 定 的 な 事 件 でした 自 分 は まっこうから 眉 間 を 割 られ さうしてそれ 以 来 その 傷 は どんな 人 間 にでも 接 近 する 毎 に 痛 むのでした おいおい 声 を 放 って 泣 きまし た いくらでも いくらでも 泣 けるのでした いつの 間 にか 背 後 に ヨシ 子 が そら 豆 を 山 盛 り にしたお 皿 を 持 ってぼんやり 立 っていました 何 にも しないからって 言 って... ( 人 間 失 格 ) 18) 中 野 嘉 一 (1983) 太 宰 治 宝 文 館, pp ) 하쓰요와 약혼 예물을 교환한 직후 19세의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 東 鄕 克 美 ( 編 )(1995) 太 宰 治 事 典 学 燈 社, p.20) 20) 1937년에 하쓰요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나서 하쓰요와 헤어지고 1938년에 재혼한다. 사
215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11 잇따른 음행( 淫 行 )으로 인해 그 자신까지도 죄의 나락( 奈 落 )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 여성에 대한 치욕( 恥 辱 )사건은 다자이를 폐인 ( 廢 人 )으로 만든 결과가 되었다. 다음은 도코쿠의 아뇌옥( 我 牢 獄 ) 의 경우이다. 현실에 있어서의 내 비련은 눈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의 들판에서 나무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진 마른 나무 밑에서 혼자 일어서는 것보다도 더욱 세 다. (중략) 내 장을 찢어도 또 찢어지는 것은 내 사랑이다. (380) 혹시 나에게 어떤 죄가 있는지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없다. 그러나 나는 뇌옥 속에 있다. (중략) 나는 모른다. 나는 알 수 없다. 어떤 죄로 인해 구속된 몸이 되었는가 를.(375) ( 아뇌옥 ) 21) 나( 我 ) 는 처녀에 대한 정신적 연애로 인해 현실에 있어서의 비련( 悲 戀 ) 에 빠진다. 나 는 정신적으로 처녀를 동경했지만, 처녀는 나 를 사모함으로 써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 이다. 뜻밖에도 나 의 정신적 연애가 그녀의 비극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 는 뇌옥에 투옥된 뇌수( 牢 囚 )와 같은 죄악감을 느끼게 된다. 처녀를 정신적으로 사모하는 것이 어떤 죄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나 의 마음 의 폐색( 閉 塞 )감은 더욱더 심해졌고 뇌옥에 감금된 것 같은 부자유한 죄의식 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시미즈 히토시( 淸 水 均 )는 나는 이 비련( 悲 戀 ) 의 배후에 제자 마쓰코( 松 子 )의 존재를 비쳐보고 있다. 22) 라고 했고 모리야마 시게오( 森 山 重 雄 ) 또한 마쓰코의 존재 없이는 도코쿠의 비련의 관념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23) 라고 언급했지만, 아뇌옥 이래의 도코쿠의 소설은 도코쿠와 마쓰코의 비련을 묘사한 것이다. 문학자로서 정신적 사랑을 찾고 있었던 도코쿠와 마쓰코 사 양( 斜 陽 ) (1947)을 집필하고 있었을 때 28세의 미용사와 관계하기 시작했지만 같은 시기에 전쟁미망인과도 관계하고 있었다. 자택에는 처자가 있고 이즈( 伊 豆 )에는 다자이의 아이를 잉태한 애인이 있었다. ( 上 揭 書, pp.26 28) 21) 現 に 於 ける 我 が 悲 戀 は 雪 風 凛 凛 たる 冬 の 野 に 葉 落 ち 技 折 れたる 枯 木 のひとり 立 つよりも 激 し かるべし ( 中 略 ) 唯 だ 我 九 腸 を 裂 きて 又 た 裂 くものは 我 が 戀 なり もし 我 にいかなる 罪 あるか を 問 はば 我 は 答 ふる 事 を 得 ざるなり 然 れども 我 は 牢 獄 の 中 にあり ( 中 略 ) 我 は 識 らず 我 は 悟 らず 如 何 なる 罪 によりて 繋 縛 の 身 となりしかを ( 我 牢 獄 ) 이하 아뇌옥( 我 牢 獄 ) 과 도코쿠의 평론은 勝 本 淸 一 朗 ( 校 訂 )(1978) 北 村 透 谷 選 集 岩 波 書 店 에서 인용한다. 22) 北 村 透 谷 硏 究 會 ( 編 )(1994) 透 谷 と 近 代 日 本 翰 林 書 房, p ) 森 山 重 雄 (1986) 北 村 透 谷 日 本 圖 書 センター, p.257
216 21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이에 싹튼 정신적 사랑의 감정은 도코쿠의 의도와 달리 마쓰코의 운명을 크 게 동요시켰다. 24) 마쓰코는 아뇌옥 발표 한 달 후에 도코쿠가 가르치고 있었던 학교를 졸업하지만 그 1년 후에 병으로 인해 죽는다. 도코쿠의 3편의 비련소설( 悲 戀 小 說 )은 모두 그 사이에 쓴 것이다. 25) 이와 같이 마음 에서 선생 은 사랑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친구를 배신했다. 그런데 친구가 자살함으로써 그는 연애에 대한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26) 인간실격 에서는 아내가 죄를 범하지만, 주인공은 그 마 음 상처를 고치지 못한다. 이 소설은 다자이가 여성으로 인해 죄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아뇌옥 에서 나 의 죄의 식은 마음의 폐색( 閉 塞 )감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는 잘 모 르지만 자신이 뇌옥 속에 있다 는 기분과 이것이 내 비련( 悲 戀 ) 에서 생긴 것이라는 자각이 있다. 이 소설 역시 연애로 인해 죄의식을 가지게 된 경위 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연애를 원인으로 해서 죄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3. 양심( 良 心 )의 가책( 苛 責 ) 예기치 못한 불행한 운명을 경험한 주인공들은 죄의식을 가진 채 살게 되 지만, 이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양심의 가책으로 나타난다. 다음은 소세키 의 마음 에 나타난 양심의 가책이다. 나는 그의 친구 한 사람으로부터 K가 왜 자살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중 략) 내 양심은 그때마다 콕콕 찔리듯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과 함께 빨리 내가 죽였다. 고 자백하라는 목소리를 들었다.(262) 나는 드디어 아가씨 와 결혼했다. 외면적으로 보면 모두 예상한 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경사스럽다 고 해야 할 것이다.(263) (결혼한 후) 아내가 함께 K의 성묘를 하자고 말을 꺼 냈다. 나는 의미 없이 그냥 깜짝 놀랐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 물었 24) 졸고(2010) 기타무라 도코쿠( 北 村 透 谷 )의 비련( 悲 戀 ) 日 本 文 化 硏 究 第 36 輯, 동아시 아일본학회, pp ) 我 牢 獄 (1892.6), 星 夜 (1892.7), 宿 魂 鏡 (1893.1)가 그것이다. 미쓰코( 松 子 )는 졸 업(1892.7)후 1년 만(1893.8)에 타계한다. 26) 그(선생)는 연애는 죄악이라 고 경고한다. ( 玉 井 敬 之 (1994) 前 揭 書, p.211)
217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13 다. (중략) 나는 내심 단지 내가 잘못했다고 반복하는 것뿐이었다.(263) 1년이 지나도 K를 잊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은 언제나 불안했다.(265) 나는 오로지 인 간의 죄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 느낌 때문에 나는 매월 K의 묘에 간다. (중략) 나는 그 느낌 때문에 길거리의 사람으로부터 채찍질 당하고 싶다고까 지 생각했다. 이런 단계를 경과하는 사이에 점점 다른 사람으로부터 채찍질 당하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가 채찍질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270) ( 마음 ) 27) 이처럼 선생 의 양심은 점점 자신의 죄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양심은 내 가 죽였다. 고 책망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아가씨와 결혼을 했 지만, 그녀가 K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 선생 은 더 이상 과거의 죄를 숨기지 못하게 된다. 죄의식은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양심은 늘 자신 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선생 은 자신이 잘못했다 고 반복해서 K에게 용서를 비는 것뿐이었다는 것이다. 미요시 유키오( 三 好 行 雄 )는 양심에 떨어 온 선생은 K에 대한 죄와 벌의 인과를 넘어 인간의 죄라는 인식에 이 른다. 원죄( 原 罪 )와 같은 존재악( 存 在 惡 )까지 느끼게 된다. 28) 고 한다. 선생 이 인간의 죄라는 것을 깊이 느꼈고 채찍질당하고 싶다 는 것은 자신의 존 재 자체에 대한 죄를 느꼈기 때문이며 이것은 원죄의 인식과 가깝다. 29) 이렇 게 해서 양심의 가책에 견디지 못하게 된 선생 은 자신을 심판하지 않고는 그대로 살 수 없게 된다. 다음은 다자이의 인간실격 에 나타난 양심의 가책 부분이다. 27) 私 はその 友 人 の 一 人 から Kがどうして 自 殺 したのだろうという 質 問 を 受 けました 私 の 良 心 はそのたびにちくちく 刺 されるように 痛 みました そうして 私 はこの 質 問 の 裏 に 早 くお 前 が 殺 し たと 白 狀 してしまえという 聲 を 聞 いたのです 私 はとうとうお 孃 さんと 結 婚 しました 外 側 から 見 れ ば 萬 事 が 豫 期 どおり 運 んだのですから めでたいと 言 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結 婚 した 時 お 孃 さんが 二 人 でKの 墓 參 りをしようと 言 い 出 しました 私 は 意 味 もなくただぎょっとしました どうしてそんなことを 急 に 思 い 立 ったのかと 聞 きました 私 は 腹 の 中 で ただ 自 分 が 惡 かったとく り 返 すだけでした 一 年 たってもKを 忘 れることのできなかった 私 の 心 は 常 に 不 安 でした 私 は ただ 人 間 の 罪 というものを 深 く 感 じたのです その 感 じが 私 をKの 墓 へ 每 月 行 かせます 私 はそ の 感 じのために 知 らない 路 傍 の 人 から 鞭 うたれたいとまで 思 ったこともあります こうした 階 段 をだんだん 經 過 してゆくうちに 人 に 鞭 うたれるよりも 自 分 で 自 分 を 鞭 うつべきだという 気 になり ます 自 分 で 自 分 を 鞭 うつよりも 自 分 で 自 分 を 殺 すべきだという 考 えが 起 こります ( こころ ) 28) 玉 井 敬 之 (1994) 前 揭 書, p ) 원죄란 인간조상이 신(God) 앞에 범한 죄이며 그 후손으로서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 고 있는 죄이다. 원죄가 있는 인간은 신 앞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이다.
218 21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기보다 요시코의 신 뢰가 더럽혀졌다는 것이 그 후에 오랫동안 나에게 살 수 없을만큼의 고뇌가 되었다.(126) 요시코는 일생 허둥거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중략) (요시코 는) 더욱더 나에게 주뼛 주뼛하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웃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131) 사람들의 불행은 세상에게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불행은 모두 자신의 죄악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고 (중략) 죄악의 덩어리 같고, 한계 없이 스스로 불행하게 될 뿐, 막을 방책이 없다.(133)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다. (중략) 죽 어야 된다. 살고 있는 것이 죄의 원인이다. ( ) 이 지옥에서 도망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중략)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기로했다.(139) ( 인간실격 ) 30) 요시코에 대한 능욕( 凌 辱 )은 주인공에게 살 수 없을 만큼의 고뇌가 되었 지만, 주인공은 남편으로서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요시코가 받은 마음의 상 처를 걱정했다. 그리고 이제 남편 앞에 설 수 없게 된 요시코의 모습을 보는 주인공은 모든 잘못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인공은 이 사건 을 통해 자신의 죄악 을 깨달았다. 자기들이 끝없이 불행하게 되는 것도 자 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코 준이치로우( 佐 古 純 一 郞 )는 다자이는 문학 자적 감수성으로 인해 오히려 원죄( 原 罪 )에 대한 실감을 잘 표현했다. 31) 고 했지만, 여기서 주인공이 깨닫는 죄는 개인을 넘어 더욱 보편적인 죄에 대한 자각이며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를 자각한 것으로 간주된 다. 신뢰는 죄인가? 라는 물음도 신(God)에게 물었던 것이며 그가 신 앞에 죄를 느끼게 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살고 있는 것이 죄의 원인이다. 라는 말 도 이미 그가 신 앞에 존재하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을 자각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지옥에서 도망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은 고백 하는 것이라는 인식 또 30) ヨシ 子 が 汚 されたという 事 よりも ヨシ 子 の 信 賴 が 汚 されたという 事 が 自 分 にとってそののち 永 く 生 きておられないほどの 苦 惱 の 種 になりました ヨシ 子 は 一 生 おろおろしなければならなく なったのです 尙 いっそう 自 分 に 對 して おろおろして 自 分 が 何 を 言 っても 笑 わず そうし てろくに 口 もきかない その 人 たちの 不 幸 は 所 謂 世 間 に 対 して 堂 々と 抗 議 が 出 来 ます しか し 自 分 の 不 幸 は すべて 自 分 の 罪 惡 からなので 誰 にも 抗 議 の 仕 樣 が 無 いし とにかく 罪 惡 のかたまりらしいので どこまでも 自 らどんどん 不 幸 になるばかりで 防 ぎ 止 める 具 體 策 など 無 い のです 死 にたい いっそ 死 にたい もう 取 返 しがつかないんだ 死 ななければならぬ 生 きているのが 罪 の 種 なのだ この 地 獄 からのがれるための 最 後 の 手 段 自 分 の 實 情 一 さいを 告 白 する 事 にしました ( 人 間 失 格 ) 31) 小 山 淸 (1957) 前 揭 書, p.55
219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15 한 깊은 죄의 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숨기 고 있는 자신의 죄를 남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도코쿠의 작품에 나타난 양심의 가책이다. 뭐? 당신은 눈물을 흘리는가? 기쁘다고 미소 짓는가? 뭐? 뭐라고 했어?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그 말은 내가 해야 될 말이야. 뭐? 잔인 한 사람이라고? 그것은 나도 하고 싶은 말이야. 뭐? 이 사랑 때문에 죽겠다고? 그것은 나도 같은 마음이야.(388)( 숙혼경 ) 32) 죽음은 벌이다. 그렇다. 벌이다. 그러나 세상의 벌로써 이 벌처럼 감미로운 벌이 있겠는가.(307) ( 가쓰라강 조가를 평해서 정사( 情 死 )에 이르다 ) 33) 숙혼경 에서 묘사된 것처럼 현실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해 번민하는 처녀 가 나 에게 주는 정신적 고통은 컸다. 히라오카( 平 岡 )는 숙혼경 에 묘사된 그 미친 것 같은 사모( 思 慕 )의 정( 情 )과 미쳐서 죽은 결말이 곧 병으로 인해 죽음을 기다리게 된 도미이 마쓰코( 富 井 松 子 )의 이미지 34) 이라고 하지만, 현 실로 이루지 못한 처녀와의 순애( 純 愛 )는 그 처녀를 환상( 幻 想 )으로 만들었고 그녀를 영적 존재로 인식하게 하였다. 마쓰코는 아뇌옥 의 (처녀)영혼이 되 어 숙혼경 의 유미코( 引 子 )가 된 것이다. 35) 나카야마 카즈코( 中 山 和 子 )는 도코쿠의 연애론에 새로운 전기( 轉 機 )를 가 져왔던 것은 마쓰코의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다. 36) 라고 했고 히라오카는 마 쓰코의 존재의 상실로 인해 그(도코쿠)는 자신의 뇌옥 을 성립시켰던 근거 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37) 라고 하지만, 마쓰코의 죽음이 도코쿠의 생애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38) 는 것은 사실이다. 도코쿠는 정신적 연애의 한계 32) なに 御 身 は 涙 を 零 すか うれしと 微 笑 むか 何 に 何 と 言 ふ 我 を 戀 ふる 心 知 らずやと そ の 言 草 は 此 方 にあり 何 に むごい 御 方 と それは 此 方 も 言 ひたき 事 何 に この 戀 故 に 死 にますと それは 此 方 も 同 じ 事 ( 宿 魂 鏡 ) ( 勝 本 淸 一 郞 ( 編 )(1892) 透 谷 全 集 第 二 卷 岩 波 書 店, p.388.) 33) 死 は 罰 なり 然 り 罰 なり 然 れども 世 間 の 罰 にして 斯 の 如 く 甘 美 なる 罰 ありや ( 桂 川 弔 歌 を 評 して 情 死 に 及 ぶ ) 34) 平 岡 敏 夫 (1982) 北 村 透 谷 硏 究 有 精 堂, p ) 졸고(2005) 도코쿠( 透 谷 )의 타계관( 他 界 觀 )과 마쓰코( 松 子 ) 日 本 文 化 硏 究 第 14 輯, 동 아시아일본학회, p ) 日 本 文 学 硏 究 資 料 刊 行 會 (1983) 北 村 透 谷 有 精 堂, p ) 平 岡 敏 夫 (1982) 續 北 村 透 谷 硏 究 有 精 堂, p ) 森 山 重 雄 (1986) 前 揭 書, p.281
220 21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속에서 처녀 마쓰코가 타계한 그 사실에 대해 큰 자책감( 自 責 感 )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도코쿠가 생각한 죽음은 위의 평론에서 밝힌 것처럼, 감미로 운 것이었지만, 39) 마쓰코의 운명에 대한 책임으로써 자신이 받아야 할 벌 이기도 했던 것이다. 도코쿠는 무구( 無 垢 )한 처녀를 번민 끝에 혼자 죽게 했 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녀를 따라 세상을 떠나려는 결심에 이르는 것으 로 보인다. 이렇게 마음 에서 양심의 가책은 한순간도 주인공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 고 계속적으로 주인공을 책망한다. 주인공은 늘 공포에 떨게 된다. 인간실격 에서 아내의 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된 주인공은 점점 스스로 자신의 죄 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죄를 넘은 원죄의식 이다. 결국 그는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신의 죄를 고백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숙혼경 에서 나 는 처녀가 고민한 끝에 죽음에 이른 것으로 느끼고 자신도 죽을 것을 각오한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함께 죽을 것을 결 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들 작품에서 죄의식은 양심의 가책으로 나 타나고 그들은 더 이상 그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4. 벌( 罰 )로써의 죽음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이들 문학을 보면 모두 비슷한 길 을 선택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소세키의 경우이다. 그러나 내가 (격투하려고) 어떤 방향으로 돌진하려고 하면 무서운 힘이 어딘 가에서 와서 (중략) 나에게 너는 아무 자격이 없는 남자라고 억누르듯이 말한 다. (중략) 이상한 힘은 냉담한 목소리로 비웃는다. 자기가 잘 알면서. 라고 한다. (중략) 내가 도저히 이 뇌옥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되었을 때 (중략)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271) ( 마음 ) 40) 39) 도코쿠의 평론에 나온 이 정사( 情 死 ) 의 내용은 도코쿠가 정사를 인정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시점에서 도코쿠의 마음속에 그의 연애사상과 배반( 背 反 )하는 정사의 유혹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봐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론에 나오는 정사 의 상대는 실은 마쓰코를 암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0) しかし 私 がどの 方 面 かへ 切 って 出 ようと 思 い 立 つやいなや 恐 ろしい 力 がどこからか 出 て 來 て ( 中 略 ) 私 にお 前 は 何 をする 資 格 もない 男 だとおさえつけるように 言 って 聞 かせます ( 中 略 ) 不 思 議 な 力 は 冷 やかな 聲 で 笑 います 自 分 でよく 知 っているくせにと 言 います ( 中 略 ) 私 がこの
221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17 무서운 힘이 어디에선가 오고 차가운 목소리로 선생 을 냉소하는 것이다. 스스로 잘 알면서도. 라고 속삭이는 이 목소리는 선생 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한다. 선생 은 마음의 뇌옥 속에 살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처벌하려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아라 마사히토( 荒 正 人 )는 마음 에서는 타 자( 他 者 )로 인한 구제( 救 濟 )는 거부되어 있다. 선생 은 절대자가 없는 황량 ( 荒 凉 )한 지옥( 地 獄 )의 추위 속에 내려서 있다. 41) 라고 하지만, 선생 에게 구 원은 없다. 마지막에 선생 이 유서를 남기고 죽는 것을 선생 의 고백의 단편 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다음은 다자이의 경우이다. 두 사람은 엄숙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를) 애무한 여자와 (중략) 서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결말을 죽음으로 인해 청산하려고 생각했다. (중략) 자살 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 사람의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 략) 저것만은 나는 그냥 둘 수 없다. 견딜수가 없다. (중략) 윤리는, 나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을 용서할 수가 없다. (중략) 남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이다. 너를 비난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89 108) ( 조모 버리기 ) 42) 다자이는 실제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 내용과 일치한다. 그는 자신과 여자의 죄를 함께 죽음으로써 청산하려고 했던 것이 다. 그의 자살의 특징은 여성과 동반자살을 하는 것이지만 43) 그가 자살을 시 도할 때마다 여자는 죽고 다자이는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을 죽 음으로 끌고 가면서 자신만이 남게 되었던 다자이는 더 무거운 죄인이 되었 다. 후지이 카즈요시( 藤 井 和 義 )는 자살을 금지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에게는 자살을 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44) 라고 했고 또 다자이의 편지 牢 獄 のうちにじっとしていることがどうしてもできなくなった 時 ( 中 略 ) 自 殺 よりほかにないと 私 は 感 ず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271) ( こころ ) 41) 玉 井 敬 之 (1994) 前 揭 書, p ) ふたり 厳 粛 に 身 支 度 をはじめた 愛 撫 した 妻 と ( 中 略 )お 互 ひ 身 の 結 末 を 死 ぬことに 依 つてつけようと 思 つた ( 中 略 ) 死 ぬことを 企 てたというだけで このひとの 世 間 への 申 しわけが 立 つ 筈 だ ( 中 略 )あのことだけは おれは 平 気 で 居 られぬ たまらないのだ ( 中 略 ) 倫 理 は おれは こらへることができる 感 覚 が たまらぬのだ ( 中 略 ) 言 葉 のままに 信 じたひとだ お まえを 非 難 しようとは 思 はない ( 姥 捨 ) ( 太 宰 治 (1989) 太 宰 治 全 集 第 一 卷 筑 摩 書 房, pp ) 43) 조모 버리기 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다자이의 작품에 나타난 죄 지은 여성은 하쓰요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작품은 그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22 21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 )에 입원 중에 성서( 聖 書 )만 읽었다. 인간실격 에서 알 수 있 듯이 다자이의 죄의식은 성서를 통해 생긴 것 45) 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다자이가 자살한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God) 의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46) 그래서 자신이 자신을 심판할 수밖에 없 었던 것이다. 다음은 도코쿠의 경우이다. 이런 것이 내 뇌옥이다. 이런 것이 내 연애이다. 세상은 나에게 해를 주지 않 았다. 나도 세상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와 같이 수인의 몸이 되었다. (중략) 죽음의 바늘은 내 뒤에서 (나를 죽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죽음 은 다가왔다. 그러나 이 죽음은 삶보다 즐겁다. 내 가 산 동안 의 빛보다 지금 죽을 때의 희미한 빛 이 나에게는 고맙다. 암흑! 암흑! 내가 갈 곳을 알 수 없 다. (중략) 안녕! 안녕! (381) ( 아뇌옥 ) 47) 도코쿠가 처음에 자살을 시도한 것은 1893년 12월이고 그가 자살한 것은 1894년 5월이기 때문에 아뇌옥 (1892.6) 집필은 도코쿠의 자살보다 훨씬 전이다. 이런 시기에 도코쿠는 자신이 죽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 서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我 ) 는 연애로 인해 죄인 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삶보다 즐겁다. 라고 하고 있으며 안녕! 안녕! 하고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죽을 때의 희미한 빛 은 오히려 고맙다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자신에게 다가 오는 죽음에 조용히 응하고 있고 죽음을 자신의 운명인 것처 럼 받아들여 이것에 순종한다. 마치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히라오카( 平 岡 )는 아뇌옥 44) 藤 井 和 義 (1978) 鴎 外 ㆍ 芥 川 ㆍ 太 宰 源 論 桜 風 社, p ) 中 野 嘉 一 (1983) 太 宰 治 宝 文 館, p ) 나는 신(God)조차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신의 사랑은 믿을 수 없었고 신의 벌만 믿고 있 었습니다. ( 自 分 は 神 にさえ おびえていました 神 の 愛 は 信 ぜられず 神 の 罰 だけを 信 じてい るのでした ) ( 인간실격( 人 間 失 格 ) )라고 있는 것처럼 신이 사랑인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 운 것이다. 47) 是 の 如 きもの 我 牢 獄 なり 是 の 如 きもの 我 戀 愛 なり 世 は 我 に 對 して 害 を 加 へず 我 も 世 に 對 して 害 を 加 へざるに 我 は 斯 く 籠 囚 の 身 となれり 死 の 刺 は 我 が 後 に 來 りて 機 をうかがへり 死 は 近 づけり 然 れどもこの 時 の 死 は 生 よりもたのしきなり 我 が 生 ける 間 の 明 より も 今 ま 死 する 際 の 薄 暗 は 我 に 取 りてありがたし 暗 黑! 暗 黑! 我 が 行 くところは 関 り 知 ら ず をさらばなり をさらばなり ( 我 牢 獄 )
223 연애( 戀 愛 )에 의한 죄의식( 罪 意 識 )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 贖 罪 ) ( 矢 野 尊 義 ) 219 은 완전히 고립된 인간의 고백 48) 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뇌옥 은 자신이 고립되고 죽음에 이르는 사연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정신적 사랑으로 인 해 가지게 된 죄의식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나( 我 ) 는 고백했기 때문 에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고백은 속죄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들 작품에 있어서 주인공들은 죽음으로 인해 죄를 청산하려고 했다. 그들에 있어서 죽음은 자신에 대한 벌이었으며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 되려는 속죄방식이었다. 특히 그들의 속죄에는 마지막에 고백이 있다. 먼저 남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벌했던 것이다. 5. 결론 이상과 같이 세 명의 일본근대문학자들의 작품분석을 통해 연애로 인해 가 지게 된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 그리고 그로 인해 선택하게 된 죽음에 대해 서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을 보면 근대문학에 있어서 남녀문제는 남성에 있 어서도 인생의 생사를 결정하는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 다. 근대이후 연애의 문제는 남녀를 묻지 않고 인간 개인의 이기심이나 정조 ( 貞 操 )문제, 그리고 순결의 문제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의 문 제로써 깊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에게 묻고, 반성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 은 친구를 배신함으로써 친구를 죽게 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에게 죄의식을 가지게 한 원인은 한 여성에 대한 연애이었다. 사랑에 대한 이기심 이 친구뿐만 아니라 그 여성마저 불행하게 했고 마지막에는 주인공도 스스로 죽게 된다. 선생 은 자신의 비겁한 행위가 폭로( 暴 露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죄를 은폐( 隱 蔽 )해 왔지만, 이것이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죽음의 원인 이 되었다. 그는 유서에서 고백하는 처지가 되었다. 또 다자이는 많은 여성들과 음행( 淫 行 )을 반복하고 그 죄를 갚기 위해 그 녀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인간실격 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의 마음속 에는 늘 한 여성의 능욕( 陵 辱 )에 대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즉 사랑하는 여성 의 순결에 대한 침해가 그를 죄의식 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그를 폐인으 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편, 정신적 연애론을 주창한 도코쿠는 정신적으로 처 48) 平 岡 敏 夫 (1995) 北 村 透 谷 評 傳 有 精 堂, p.292
224 220 比較日本學 第32輯 ( ) 녀를 동경(憧憬)했지만, 아뇌옥 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비련(悲戀)으로 인 해 뇌수(牢囚)와 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숙혼경 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 는 정신적 연애가 처녀를 불행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처녀가 병으로 죽자, 도 코쿠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처럼 이들 작품과 작가의 삶은 남성이 연애로 인해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위와 양심의 가책 끝에 자신을 스스로 처벌하게 되는 속죄과 정을 보여준다. 죄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 들 근대문학자들은 연애로 인해 짓은 죄를 깊은 차원에서 반성하고 회개(悔 改)하고 있다. 이것은 이때까지 일본문학에 보지 못했던 도덕관에 따른 죄의 식이며 기독교윤리와 가깝다. 그러나 어떤 종교에도 몸을 내맡기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을 용서해줄 존재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심 판해서 처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 고 자신을 스스로 벌한다. 이것이 일본근대문학에 나타난 죽음으로 인한 속 죄방식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존 포트만/서순승(역)(2008) 죄의 역사, 리더스북, p.37, p.185 야노 다카요시 (2005) 도코쿠(透谷)의 타계관(他界觀)과 마쓰코(松子), 日本文化硏究 第14 輯, 동아시아일본학회, p.303 야노 다카요시(2010)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의 비련(悲戀), 日本文化硏究 第36輯, 동 아시아일본학회, pp 色川大吉(1995) 北村透谷, 東京大学出版社, pp 小山淸(1957) 太宰治硏究, 筑摩書房, p.50 神谷美惠子(1991) 生きがいについて, みすず書房, p.106 勝本淸一郞(校訂)(1978) 北村透谷選集, 岩波書店, p.375 勝本淸一郞(編)(1982) 透谷全集 第二卷, 岩波書店, p.388 北村透谷硏究會(編)(1994) 透谷と近代日本, 翰林書房, p.313 太宰治(1989) 太宰治全集 第一卷, 筑摩書房, pp 太宰治(2010) 人間失格, 角川書店, p.109 玉井敬之 外(編)(1994) 漱石作品論集成 第十卷 こころ, おうふう, p.148 東鄕克美(編)(1995) 太宰治事典, 学燈社, pp 鳥居邦朗(1982) 太宰治論, 雁書館, p.189 中野嘉一(1983) 太宰治, 宝文館, p.101 夏目漱石(1968) こころ, 旺文社, p.34 日本文学硏究資料刊行會 (1983) 北村透谷, 有精堂, p.136
225 연애(戀愛)에 의한 죄의식(罪意識)과 죽음으로 인한 속죄(贖罪) (矢野尊義) 221 平岡敏夫(1982) 北村透谷硏究, 有精堂, p.171 平岡敏夫(1982) 續北村透谷硏究, 有精堂, p.135 平岡敏夫(1995) 北村透谷 評傳, 有精堂, p.292 藤井和義 (1978) 鴎外ㆍ芥川ㆍ太宰源論, 桜風社, p.187 山田輝彦(1984) 夏目漱石の文学, 桜風社, p.177 森山重雄(1986) 北村透谷, 日本圖書センター, p.257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야노 다카요시, (한자) 矢野尊義, (영어) Yano Takayoshi 소속 :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조교수 논문영문제목 : A Sense of Sin for Love and Death for Amends in Japanese Modern Literature 주소 : ( ) 서울 양천구 목동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고는 처녀에 대한 연애로 인해 죄의식에 빠지게 되고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주 인공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소설을 쓰고 작가 자신도 이와 같은 죽음의 경지를 겪었던 세 명의 일본근대문학자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에게 공통된 근대특유의 죄의식과 속죄방식에 대해서 분석한 것이다. 이들 일본근대문학자의 죄의식은 그때까지의 일본문학자가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연애를 통해 이기심이나 순결문제로 인한 죄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죄에 대한 인식까지에 이른 다. 게다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만큼 그들의 윤 리에 대한 태도는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었다. 남성이 연애를 통해 이처럼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지 하게 반성하는 역사가 그때까지 일본에는 없었다. 이와 같이 이들 근대문학에는 근대에 새로 생긴 연애로 인한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하 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죽음은 스스로 자신을 처벌함 으로써 자신이 짓은 죄에 대한 용서를 빌려는 것이었으며 양심적이고 성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들은 죽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죄의식에 대한 자각은 서양화로 인해 일본에 들 어온 기독교윤리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구원의 길까지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제어: 양심의 가책, 신, 속죄, 죄, 벌, 죽음
226 22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227 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 엄 인 경 **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typical poetry published in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and considers the features of such poetry. National Poetry and Tanka was the only poetry and tanka journal during the early 1940s in colonial Korea, even if it was merely a bulletin of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League. Because it was solely a poetry journal, as compared with The National Literature, which has been the center of the national literary argument since the 1940s, many poets were published in it. The poetry they wrote is indispensable to a global view of Japanese poetry, even if it was writte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poetry recorded in this magazine included themes responding to situation requests. They were positive answers to the national culture and national epic theories of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However, much of the work published in the magazine did not rely on such themes. One example is war poetry. Other poems were influenced by the modernism movement of the 1930s as well as by a difference of opinion on the epic theory within the magazine. Keywords :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Japanese Poetry, Tanka, national literature, epic theory,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League 1) 1. 서론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로 영위된 문학, 즉 한반도 일본어 문학 에 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진척되어 왔다. 특히 한국문학계에서는 1940년대를 대 상으로 하여 조선인 작가의 일본어 창작을 중심으로 친일문학 을 재조명한 다는 의미에서 이중언어문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그 중심은 조선 문인협회와 조선문인보국회에 이름을 올린 조선인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었 다. 대상 매체는 주로 국민문학( 國 民 文 學 ), 녹기( 綠 旗 ) 였으며, 이 분야 * 본 연구는 2014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 구(KRF A00019)이다.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교수
228 22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연구사에서는 한정된 매체와 더불어 소설과 평론 위주의 장르적 편중의 문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일제 말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어로 창작된 시 연구에 한하여 볼 경우 이광 수, 김종한, 주요한과 같은 메이저 시인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거나, 1) 재조일본인 시인 중에서는 경성제대 교수 사토 기요시( 佐 藤 清 )의 시가 분석 된 2)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체의 문예잡지가 폐간된 이후 한반도에서 귺히 제한된 잡지 간행만이 허락된 당시, 국민문학 보다 2개월이나 먼저 창간되고 국민문학 에 관한 이론 역시 선행한 국민시가연맹( 國 民 詩 歌 連 盟 ) 의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들은 당시 시 문단의 주도적 위치에도 불구하 고 연구에서 전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1940년대 초 식민지 조선 유일의 시가( 詩 歌 ) 전문 잡지 3) 였던 국민시가 자체가 본격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 4), 최현식은 국민문 학 의 관점에서 국민시가 의 이데올로기와 잡지의 성격을 중심으로 논했고, 엄인경은 국민시가연맹의 성립 배경과 그 중심축인 단카 분야의 인원 구성 및 가론( 歌 論 ), 단카 작품 분석을 시도했다. 이들 연구로 인해 국민시가 라 는 매체가 가진 당시대적 중요성과 연구 가치는 충분히 드러났지만 정작 수 록된 일본어 시의 전체적 작품 분석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고에서는 이를 다루려는 것이다. 일제 말기의 친일시나 국책시의 계보를 정리하고자 하는 선행 연구 5) 도 있 1) 최현식(2008) 이광수와 국민시 ( 상허학보 제22집, 상허학회, pp ), 허윤회(2006) 1940년대 전반기의 시론에 대하여 김종한의 시론을 중심으로 ( 민족문학사연구 제42집, 민족문학사학회, pp ), 이주열(2011) 주요한의 시적 언어 운용 방식 일본어 시를 중 심으로 ( 비평문학 제40집, 한국비평문학회, pp ) 등이 있다. 2) 관련 연구에 김윤식(2009) 최재서의 국민문학 과 사토 기요시 교수 : 경성제대 문과의 문 화자본 (역락), 김승구(2013) 사토 기요시( 佐 藤 清 ) 시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의 전통예술 ( 한국민족문화 제48집,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pp.33 60)이 있다. 3) 엄인경(2013) 1940년대초 한반도의 일본어 국민시가론 단카ㆍ시 잡지 국민시가 를 중심으 로 日 本 文 化 硏 究 제48집, 동아시아일본학회, p ) 국민시가 를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은 최현식(2013) 일제 말 시 잡지 國 民 詩 歌 의 위상 과 가치(1) 잡지의 체제와 성격, 그리고 출판 이데올로그들 ( 사이 間 SAI 제14호, 국제한 국문학문화학회, pp ), 최현식(2014) 일제 말 시 잡지 國 民 詩 歌 의 위상과 가치(2) 국민시론ㆍ민족ㆍ미의 도상학 ( 한국시학연구 제40호, pp ), 엄인경(2013), 전게 논문( 1940년대초 한반도의 일본어 국민시가론 단카ㆍ시 잡지 국민시가 를 중심으로 ), 엄인경(2013) 일제 말기 한반도에서 창작된 단카( 短 歌 ) 연구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1941~42) 를 대상으로 ( 日 本 學 報 제97집, 한국일본학회, pp )의 네 편이 있다. 5) 이와 관련해서는 박수연(2006) 일제말 친일시의 계보 ( 우리말글 제36집, 우리말글학회,
229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25 지만, 국민시가 의 시 작품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 시단을 대 표하고 있던 국민시가연맹과 그 기관지가 국민시가 였다는 의미에서 1940 년대 초 한반도의 일본어 시단 계보와 방향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잡지 의 시를 배제하고 그 전모를 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국민시가 의 1941년 9월의 창간호부터 이듬해 11월까지의 현존본 여섯 호 에 수록된 재조일본인과 조선인들에 의한 일본어 시의 전체적 양상과 그 내 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국민시가 의 시작품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그 경향과 특성을 국민 문학 시와 대조하여 짚어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쟁, 총후, 애국이라는 키 워드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시의 내용적 유형을 분류해 봄으로써 국 민시가 의 시가 갖는 종횡의 폭을 정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일제 말기 한반도에 횡행한 국민시 와 애국시 의 실체, 그리고 이 잡지의 또 다른 두 축인 평론이나 단카( 短 歌 )와 어떻게 조응하거나 모순되는지 대조해 볼 것이 다. 이러한 국민시가 의 시 연구는 일제 말기 한반도에서 조선인과 재조일본 인들에 의해 창작, 발표된 국민문학 으로서의 일본어 시의 전모와 그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는 초석이 됨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자료 미발굴로 파편적으로 이루어진 1940년대 일본어 시의 전체상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국민시가 로 본 1940년대 초 한반도 일본어 시단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朝 鮮 文 人 報 告 会 )가 결성되기 전 한반도에는 조선문인협회( 朝 鮮 瓶 人 協 会 ), 조선하이쿠작가협회, 조선센류협회( 朝 鮮 川 柳 協 会 ), 국민시가연맹( 國 民 詩 歌 連 盟 ), 조선가인협회( 朝 鮮 歌 人 協 会 )라는 다섯 단 체가 있었다. 이 중 지금까지 연구의 대상이 된 단체는 조선문인협회와 조선 하이쿠작가협회, 국민시가연맹 정도라 할 수 있다. 조선문인협회에 관련해서 는 박광현과 이건제의 연구가 있고 6), 조선하이쿠작가협회에 관해서는 미 pp )가 참고할 만하다. 또한 고봉준(2013) 일제 후반기 국민시의 성격과 형식 ( 한 국시학연구 제37호, 한국시학회, pp.37 59)에서도 국민시가 를 일부 다루고 있으나 국민 문학, 국민시인 이라는 잡지와의 연속성에서 1940년대 전반 국민시 개념을 추적한 것으로 시 작품은 논하지 않았다. 6) 박광현(2010) 조선문인협회와 내지인 반도작가 ( 현대소설연구 43, 한국현대소설학회, pp ), 이건제(2011) 조선문인협회 성립과정 연구 ( 한국문예비평연구 제34집, 한국
230 22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즈키누타( 水 砧 ) 해제 7) 에 상세한 편이며, 국민시가연맹에 관해서는 1940년 대 초를 전후한 한반도의 시가 문단에 대한 개황과 시가의 통합 과정 8) 이 언 급된 바 있다. 주지하듯 1941년 한반도에서 간행되던 문예잡지들은 총력화, 물자 부족과 같은 시국의 현황으로 인해 모두 폐간되었고, 장르 내 혹은 장르 간 통합이 이루어졌다. 장르 내 통합은 하이쿠 문단이 가장 빨라서, 호토토기스파(ホトト ギス 派 )를 위시하여 신흥 하이쿠( 新 興 俳 句 ), 샤쿠나게파( 石 楠 派 ) 등의 이름으 로 1910년대부터 30년간 가장 활발하게 식민지 조선 각지에서 활동하던 하이 쿠 종사자들이 유파 갈등을 딛고 조선하이쿠작가협회( 朝 鮮 俳 句 作 家 協 会 )를 결성하여 1941년 7월 미즈키누타( 水 砧, 빨래 방망이) 라는 기관 잡지를 창간 하였다. 그리고 그 두 달 후 이번에는 일본 전통시가인 단카( 短 歌 )와 시( 詩 ) 장르가 시가( 詩 歌 ) 라는 용어로 통합하여 연맹을 만들고 1941년 9월 국민 시가 를 창간하게 된 것이다. 한ㆍ일 양국에서 1940년대 일본어 문학의 가장 주된 연구대상이었던 국민문학( 國 民 文 學 ) 은 이보다 또 두 달 늦은 1941년 11월에 창간되었다. 최재서가 국민문학 창간에 초조를 느낀 것 9) 에는 국민 시가 라는 선험적 존재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도 추찰할 수 있는 바이다. 국민시가 의 발간 주체는 국민시가연맹이다. 이 연맹은 고도의 국방국가 체제 완수에 이바지하기 위해 국민총력의 추진을 지향하는 건전한 국민시가 의 수립에 노력 10) 한다는 목적 하에 반도 시가단의 최고 지도기관 이며 시 가단의 유일한 공기( 公 器 ) 11) 로서 국민시가 를 간행했다. 따라서 1941년 9 월 창간되어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결성으로 흡수된 국민시가연맹의 기관 지 국민시가 는 1940년대 전반기 한반도 일본어 시가 문학의 가장 중요한 매체라 할 수 있다. 우선 국민시가 현존 본 여섯 호에 수록된 시인과 가인, 창작시와 단카의 현대문예비평학회, pp ). 7) 엄인경(2013) 미즈키누타( 水 砧 ) 해제 韓 半 島 刊 行 日 本 傳 統 詩 歌 資 料 集 35 俳 句 雑 誌 篇 4, 도서출판이회, pp.413~423. 8) 엄인경(2013), 전게논문( 1940년대초 한반도의 일본어 국민시가론 단카ㆍ시 잡지 국민시가 를 중심으로 ). 9) 國 民 文 學 창간호( ) 編 輯 後 記 에 문예잡지 통합후 창간호를 냄에 있어 다양한 감개 가 왕래함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반 년 이상 잡지를 쉰 것에 대해서는 그 이유의 여하에 상관 없이 편집자로서는 실로 죄송한 마음이 들어 견디기 어렵다 (p.236)는 문면이 기술되어 있다. 10) 道 久 良 (1941) 編 集 後 記 國 民 詩 歌 創 刊 號 ( 九 月 號 )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美 島 梨 雨 (1941) 半 島 詩 歌 壇 の 確 立 國 民 詩 歌 十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62~63.
231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27 수를 수치만으로 비교하면, 시가의 균형적 배치를 의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 (인)보다는 가(인)의 수가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12) 또한 편집 겸 발 행인인 미치히사 료( 道 久 良 )와 1942년 편집후기 를 작성한 스에다 아키라 ( 末 田 晃 )는 1920년대부터 한반도의 가단( 歌 壇 )을 대표하는 가인( 歌 人 )들이었 고, 만요슈( 万 葉 集 ) 로 거슬러 올라가는 1300년이라는 단카의 긴 역사성과 전통을 배경으로 한 것이므로 국민시가 는 시 보다는 가 의 주도 하에 간 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시가 에 참여한 조선인 시(인)의 수는 조선인 가(인)의 수보 다 비율적으로도 절대적 수치로도 훨씬 많다. 일본 전통의 음수율과 문어체 에 기반한 단카 창작이 시 창작에 비해 난해하기 때문에 조선인 작가들의 참 가율이 저조했을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국민시가 에 단카 작품 을 창작한 조선인으로 김인애( 金 仁 愛 ), 한봉현( 韓 鳳 鉉 ), 남철우( 南 哲 祐 ), 최봉 남( 崔 峯 嵐 ), 남기광( 南 基 光 ) 등이 있지만 13), 작품 수와 비율은 매우 적다. 이 에 비해 국민시가 의 시에는 식민지 조선의 이중언어 시인들의 시 작품이 다수 게재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시 잡지로서의 국민시가 특징이 도출되 리라 생각한다. 일본인 시인/시 조선인 시인/시 국민시가 의 일본어 시 (1941년 9월 창간호~1942년 11월, 도합 6호) 62명 / 123편 23명 / 40편 국민문학 의 일본어 시 14) (1941년 11월 창간호~1945년 5월, 도합 37호) 27명 / 93편 17명 / 43편 합계 시인 85명 / 시 163편 시인 44명 / 시 136편 12) 國 民 詩 歌 현존본 여섯 호의 창작 시가 일람표 1941년 9월(창간)호 1941년 10월호 1941년 12월호 1942년 3월(특집)호 1942년 8월호 1942년 11월호 歌 人 91명 74명 70명 113명 47명 37명 歌 数 367수 290수 295수 280수 223수 254수 詩 人 24명 35명 18명 47명 16명 20명 詩 数 24편 35편 18편 47편 16편 20편 표 출처는 엄인경(2013)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해제 ( 韓 半 島 刊 行 日 本 傳 統 詩 歌 資 料 集 27 短 歌 雑 誌 篇 22 도서출판이회), p ) 엄인경(2013) 식민지 조선의 일본고전시가 장르와 조선인 작가 단카( 短 歌 )ㆍ하이쿠( 俳 句 ) ㆍ센류( 川 柳 )를 중심으로 民 族 文 化 論 叢 第 53 輯,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pp.81~ ) 國 民 文 學 의 일본어 시는 사희영 역(2014) 잡지 國 民 文 學 의 詩 世 界 (제이앤씨)를 참
232 22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위의 표는 지금까지 1940년대 한반도의 일본어 문학을 논할 때 가장 중핵 적으로 다루어진 국민문학 의 시(인)와 그에 선행한 국민시가 의 시(인)의 수치를 비교한 것이다. 현존본의 간행 연도도 한정적이고 현존본의 수도 적 지만 시가 전문 잡지답게 국민시가 에는 국민문학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와 시인을 확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시가 의 시를 많이 수록한 일본인 시인들은 아마가사키 유타카( 尼 ヶ 崎 豊 ), 이마카와 다쿠조( 今 川 卓 三 ), 아베 이치로( 安 部 一 郎 ) 등이며 이들은 6 호에 전부 시가 게재되었다. 국민시가 에 시가 수록된 조선인 23명은 강문 희( 姜 文 熙 ), 구자길( 具 滋 吉 ), 김경린( 金 璟 麟 ), 김경희( 金 景 熹 ), 김북원( 金 北 原 ), 김기수( 金 圻 洙 ), 김상수( 金 象 壽 ), 가네무라 류사이( 金 村 龍 濟, 김용제), 류하국 ( 柳 河 國 ), 이춘인( 李 春 人, 본명 이강수), 임호권( 林 虎 權 ) 15), 기야마 마사키( 城 山 昌 樹, 본명 미상), 신동철( 申 東 哲 ), 이와타 샤쿠슈( 岩 田 錫 周, 본명 미상), 양 명문( 楊 明 文 ) 16), 윤군선( 尹 君 善 ), 아사모토 분쇼( 朝 本 文 商, 본명 미상), 조우 식( 趙 宇 植 ), 주영섭( 朱 永 涉 ), 히라누마 분포( 平 沼 文 甫, 윤두헌), 히라누마 호 슈( 平 沼 奉 周, 윤봉주) 17), 가야마 미쓰로( 香 山 光 郎, 이광수), 홍성호( 洪 星 湖 )이 며, 기야마 마사키가 6편으로 가장 많고, 가야마 미쓰로가 그 다음으로 5편을 게재했다. 이 중 국민시가 와 국민문학 두 매체에 모두 시를 게재한 시인은 일본 인은 아마가사키 유타카, 야나기 겐지로( 柳 虔 次 郎 ), 데라모토 기이치( 寺 本 喜 一 ), 스기모토 다케오( 杉 本 長 夫 ), 아베 이치로, 다나카 하쓰오( 田 中 初 夫 ), 가 와바타 슈조( 川 端 周 三 )의 7명이며, 조선인은 가네무라 류사이(김용제), 김기 조하였다. 15) 이 중 김경린, 김경희, 김기수, 이춘인은 임종국 친일문학론 신인작가론(pp )에서 약간 다루어졌고, 다른 시인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임호권은 전후 김경린 등과 함께 모더니즘에 기반한 신시론( 新 詩 論 ) 활동을 했다. 16) 양명문( 년)의 호는 자문( 紫 門 )이고 평양 출생이다. 극작가 김자림( 金 玆 林 )이 부 인이다. 1942년 일본 도쿄센슈대학( 東 京 專 修 大 學 )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44년까지 동 경에 머무르면서 문학 창작을 연구하였다. 광복 후 북한에 머물러 있다가 1ㆍ4후퇴 때 월남 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검색) 17) 히라누마 분포와 같은 창씨를 한 것으로 보아 윤두헌과 형제인 윤봉주로 추측된다. 윤봉주 는 1940년 5월 1일에 도쿄 쇼가쿠샤( 奬 學 社 )에사 발행한 순문학동인지 업( 業 ) 의 편집겸 발행인으로 이 잡지는 국판 창간호만 나온 것으로 확인되며,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문학청 년들이 순수문학을 표방하고 만든 동인지로 특별한 어떤 주의나 경향은 없었다고 평가된다. 업 의 동인은 윤봉주 외에 김병길( 金 秉 吉 ), 장세무( 張 世 武 ), 탁시연( 卓 時 淵 ), 문성빈( 文 星 彬 ), 김희선( 金 喜 善 ) 등이 있었다고 한다. 잡지 업( 業 ) 에 관해서는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를 참조.
233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29 수, 양명문, 조우식, 주영섭, 기야마 마사키 6명이다. 이광수, 히라누마 분포 (윤두헌), 김경희, 이마카와 다쿠조 등을 비롯하여 1940년대 최대 문학잡지인 국민문학 에 시를 게재하지 않은 일본인과 조선인 시인 다수가 국민시가 에만 시를 수록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상에서 분석한 국민시가 내 일본어 시의 현상과 분포를 보더라도 이 잡지를 주도한 시인들의 작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제 1940년대 초 일본어 시단의 동향과 구체적인 시 작품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본고는 국민시가 의 일본어 시의 분포와 시인 및 작품에 관한 분석을 통해 이 잡지의 창작 시 특징과 시인들을 규명하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국민시가 의 실제 시 작품과 이 잡지의 시론에서 표 방하는 시의 상( 像 )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나아가 1940년대 초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일본어 시의 특징은 무엇인지 도출하기 위해 국민시가 의 시 작품 을 유형화하여 자세히 고찰한다. 3. 국민시가 의 국책시 유형과 특징 국민시가연맹의 목적과 성격 상 국민시가 에는 전반적으로 시국에 부합 하려는 일본인 시인들에 의한 다양한 국책시와 조선인 시인들에 의한 친일시 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1942년 3월의 특집호 국민시가집 의 47편의 시는 그 편집후기 에서 보듯, 본 집(=국민시가집)은 무훈에 빛나는 제국 육 해군 장병 각위에게 본집을 통해 우리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아울러 그 노 고를 위문하고자 하여 약 천 부를 증쇄 하고 황국의 새로운 국민 서정의 건 설을 목표 18) 로 한 것인 만큼 전쟁을 찬미하고 황국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시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장에서는 국민시가 의 시를 유형별로 구분하여 명백히 대동아전쟁에 협력하는 국책시들의 표현상의 특성을 분석하 기로 한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 국가주의에 협력하는 국책문학이 애국문학, 총후문학 으로 일컬어지고, 1940년대 초 국민문학 으로 일반화되었다. 19) 국민시가 18) 國 民 詩 歌 連 盟 (1942) 後 記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김응교(2009) 일제말 조선인이 쓴 일본어시의 전개과정 현대문학의 연구 38호, 한국문 학연구학회, pp.181.
234 23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의 많은 평론에서 국민문학 으로서의 일본어 시와 단카 정신이라는 것이 다 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잡지 내의 시 작품은 국책시의 비중이 압도적 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시가 의 국책시는 (1)전쟁과 전황 자체를 묘사하여 전의를 고취하는 시, (2)팔굉일우의 정신 하에 대동아공영권을 옹호하고 천황가를 상찬하며 황 국신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강조하려는 시, (3)부 모 자식 간, 혹은 형제나 친구 사이 같이 인간이 갖는 본심과 연계시켜 총후 에서 신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이에 포함되지 않거나, (1)과 (2), 혹은 (2)와 (3)이 동시에 구현되거나 혼재하 고 있는 등 단독 유형으로 분리하기 어려운 시도 있지만, 이하 국민시가 국책시의 유형에 따른 특징을 개략적으로 도출해 본다. (1) 전장의 현장을 그린 시 이 분류에 속하는 시들의 경우 직접 표현된 전쟁은 1937년 발발하여 성전 ( 聖 戰 )으로 일컬어진 중일전쟁에서 1941년 12월 시작된 태평양전쟁, 그리고 동남아시아 각 지역의 침략 전쟁이었던 남양( 南 洋 ) 의 묘사 20) 에 이르고 있 으며, 전황에 따라 시에서 그 지역의 이름과 배경이 묘사된다. 녹슬지 않는 기름에 뜬 빗방울을 칼 끝에 싣고 나는 항공지도를 더듬는 비행사의 손끝을 따른다 신징( 新 京 ) 장군묘( 將 軍 廟 )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싱안링( 興 安 嶺 ) 쒀웨얼지( 索 岳 爾 齊 ) 산맥 자작나무 숲은 원시에 뒤덮이고 이 또한 진기한 짐승 한다한이 서식하는 야라호수를 넘어 망막의 사막으로 전장으로 ( 安 部 一 郎 静 かな 決 意 일부) 21) 이상은 아베 이치로의 시 조용한 결의 의 일부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20) 이 시기 일본어 잡지와 일본어 시에 드러난 남양 표상과 언설에 관한 분석은 鄭 炳 浩 (2011) 1940 年 代 韓 国 作 家 の 日 本 語 詩 と 日 本 語 雑 誌 の< 南 洋 > 言 説 研 究 ( 日 本 學 報 第 86 輯, 韓 國 日 本 學 會, pp )에 상세하다. 21) 安 部 一 郎 (1941) 静 かな 決 意 國 民 詩 歌 十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56. 이하 국민시가 내의 시 번역은 모두 필자에 의한다.
235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31 병사들과 전장의 모습이 신징( 新 京 ), 싱안링( 興 安 嶺 ) 산맥, 야라 호수 을 위시한 만주 의 대륙, 몽골 인근의 사막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더구나 중 국 동북지방 다( 大 )싱안링 산맥에 서식하는 힘세고 위엄이 있는 큰 사슴과 흡사한 동물로 중국인들에게 신성시된 한다한 과 같은 진기한 짐승을 등장 시켜 이국정서와 현장감을 높이고 있다. 여기서 원시에 뒤덮이고 라는 표현 은 이러한 처녀지로서의 이국정서를 아득한 문명 이전의 시기로 돌이켜 제국 일본에 의해 문명의 광명을 받아야 할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 작 의도가 잘 나타난 곳이라 보인다. 이 시뿐 아니라 (1)로 분류되는 시들 22) 은 시기에 따라 전쟁확장과 공간이 변화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1941년 창간호(9월)와 10월, 12월호에는 후 룬베이얼 과 노몬한 전투, 장고봉( 張 鼓 峰 ), 야블로노이 산맥 과 같이 지 나( 支 那 ) 와 만주 로 일컬어진 중국 대륙과 몽골 및 소련 과의 국경 23) 등이 시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1942년 3월의 국민시가집 부터는 1941년 12월 8일 개전된 태평양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며 하와이( 布 哇, 진주만)와 캘 리포니아, 남양 으로 공간 확대된다. 24) 특히 괌, 홍콩, 마닐라를 거쳐 1942년 2월 15일 싱가폴 함락에 이르기까지 이국을 무대로 일본의 전승을 그림으로 써 읽는 이로 하여금 생경한 환경에 놓인 병사들의 모습을 임장감 있게 묘출 22) 이 유형에는 본문 인용시 외에도 창간호의 담배 ( 森 田 良 一 ), 10월호의 출정 ( 尼 ヶ 崎 豊 ), 훈련 ( 今 川 卓 三 ), 장고봉( 張 鼓 峰 ) 회상 ( 青 木 中 ), 구름 ( 谷 口 二 人 ), 전장의 들판에 ( 児 玉 卓 郎 ), 동란 ( 中 村 喜 代 三 ), 전장의 친구에게 ( 江 原 茂 雄 ), 12월호의 산화( 散 華 ) 노몬한 전투 초( 抄 ) ( 安 部 一 郎 ), 기러기 ( 川 口 清 ), 이야기 ( 吉 田 常 夫 ), 국민시가집 에 가장 많 이 수록되어 남국에 전사하다 ( 朝 本 文 商 ), 바다밑 ( 上 田 忠 男 ), 위대한 아침 ( 江 崎 章 人 ), 격멸 ( 江 原 茂 雄 ), 선전 ( 香 山 光 郎 )), 전지의 학생에게 ( 川 口 清 ), 묵도 ( 北 川 公 雄 ), 소 년의 결의 ( 金 璟 麟 ), 하와이 공습 ( 木 村 徹 夫 ), 델타 ( 佐 井 木 勘 治 ), 결전보( 譜 ) ( 実 方 誠 一 ), 유채꽃 ( 申 東 哲 ), 싱가폴 함락 ( 田 中 初 夫 ), 세기의 아침 ( 谷 口 二 人 ), 기원2602년 ( 寺 本 喜 一 ), 생일 ( 中 尾 清 ), 축 싱가폴 함락 ( 陽 川 利 福 ), 전승의 세모 ( 平 沼 文 甫 ), 말레 이 폭격 ( 朴 炳 珍 ), 위대하구나 일본의 이 날 ( 山 田 網 夫 ), 1942년 8월호의 자폭에 부치다 ( 尼 ヶ 崎 豊 ), 1942년 11월호의 일억의 투석기 ( 尼 ヶ 崎 豊 ) 등의 시가 있다. 23) 1941년도의 시들을 보면, 창간호에서는 위문꾸러미에 부쳐 ( 柴 田 智 多 子 )에 지나, 길 ( 安 部 一 郎 )에 만주, 담배 ( 森 田 良 一 )에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베이징, 귀환병 ( 川 口 清 )에 후룬베이얼, 10월호에서는 인용한 조용한 결의, 장고봉 회상 ( 青 木 中 )에 장고봉, 전 장의 들판에 ( 児 玉 卓 郎 )에 장강( 長 江 =양자강), 12월호에서는 산화 노몬한 전투 초 ( 安 部 一 郎 )에 몽골, 기러기 ( 川 口 清 )에 야블로노이 산맥 과 만리장성 등이 언급된다. 24) 국민시가집 에 수록된 시제만 보더라도 남국에 전사하다, 격멸, 하와이 공습, 싱가 폴 함락 (같은 제목 2편), 축 싱가폴 함락, 전승의 세모, 말레이 폭격, 12월 8일 와 같이 태평양전쟁을 직접 지명이 수반된 전투명을 거론하며 구체적 전승을 소재로 전쟁 수 행을 옹호하는 국책시임을 알 수 있다.
236 23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대동아 의 대륙과 태평양의 바다, 하늘이라는 현장에 놓인 병사들 은 대부분은 전사( 戰 死 )를 각오하고 있으며 특히 하늘에서 지는 꽃( 散 華 ) 으 로 미화되어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창유리에 맞으며 피는 검은 꽃들이여 아아 빛나는 산화( 散 華 )의 장려함 ( 城 山 昌 樹 驟 雨 후반부) 25) 국민시가 의 전쟁시에서 소나기는 아열대 지방의 스콜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 시에서 소나기는 격앙과 광분이라는 고조된 감정 상태를 나타내고 이윽고 검은 꽃 으로 피어난다.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이후 조선인 친일문 학자로 알려진 본명 미상의 기야마 마사키 26) 의 위의 시 소나기 에서 보듯, 소나기에서 피어난 검은 꽃들 의 무수한 죽음은 빛나고 장려하게 지는 꽃, 즉 산화 로 표상되고 있다. 한편 하늘에서의 죽음이 지는 꽃 이었다면 대륙 벌판에서의 죽음과 바다 에서의 수장( 水 葬 )도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낳는다. 주검에 풀이 무성히 나도 주검은 물에 완전히 잠기어도 주검은 하늘에 지더라도 그저 오로지 대군의 더욱 번영하심을 축도하네 ( 北 川 公 雄 黙 禱 일부) 27) 25) 城 山 昌 樹 (1941) 驟 雨 國 民 詩 歌 十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기야마 마사키( 城 山 昌 樹 )는 임종국(1966) 친일문학론 (이건제 교주(2013), 민족문제연구 소, pp )에서 다루어진 이래로 일제의 대동아건설 구호에 철저히 복무하는 태도 로 민족적 정체성과 근대성을 탐색했던 문학의 소중한 영역을 반민족적 친일의식으로 채우는 과오를 범 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경수(2003) 일제 말기 재일 한국인의 일어시와 친일 문제 배달말 32호, 배달말학회, pp ) 北 川 公 雄 (1942) 黙 禱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61.
237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33 육ㆍ해ㆍ공에서의 죽음은 각각 풀 맺다( 草 むす), 잠기다( 水 漬 く= 身 尽 く, 몸이 다하다와 발음이 같음), 지다( 散 る) 라는 아어( 雅 語 )와 묶여 미화된 도 식으로 정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국민시가 의 국책시, 그리고 국민시가집 에서 가장 많은 유형을 보 인 (1)의 시들에서는 유라시아 대륙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동쪽으로 확대되는 전황에 따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이국적 정서와 환경, 혹은 지명을 직 접 드러내어 전장의 현장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그 리고 확대된 전장만큼 대륙, 바다, 공중에서 무수히 전사하는 병사들의 죽음 을 정형화된 시어로 표현함으로써 전쟁과 죽음을 미화하고자 하는 수법이 내 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2) 황국신민의 자부심 이상의 (1) 유형의 시들이 중일전쟁 이후 시간의 추이에 따라 공간적으로 확산된 전쟁의 현황을 직접 노래하는 경향이었다고 한다면, (2)의 유형에 속 하는 시들은 시간적인 뒷받침을 통해 전쟁 수행을 합리화하고, 은유를 통해 일본의 국민, 즉 황국신민으로서의 자부를 드러낸다. 팔굉일우와 대동아공 영권이 수 천 년 역사를 담보한 일본이 중심이기에 가능하고 타당하다는 시 들이 여기에 속한다. 국민시가 창간호의 첫 번째 시 신도( 臣 道 ) 가 이 유 형의 시 특성을 잘 보여준다. 오늘처럼 내일도 또 있어야 하네. 조용히 올라오는 감격을 신하의 길이라 의지하고 바싹 뒤쫓아오는 거대한 동력을 등에 없고 나는 외치네. 참아라, 참아라, 일본의 스프처럼. 예전 이 천에 얼굴을 붉힌 국민의 서정 노래 소리에 더럽혀진 길을 지금 엄중한 국가의 의지가 간다. 더구나 새로운 분노의 방위로 땅껍데기가 만드는 기복에 따라 충성을 이어 받는 자의 격정의 노래는 간다. 넘어가야만 하는 시대의 흉벽을 잡고 오르며 천성적으로 덤벼드는 격한 목 숨과 닮아 내 속옷은 표표히 바람을 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너는 이러한 신화를 들은 적이 있느냐. 아아, 일장기조차도 스프로 만들어지는 오늘이 있었다는 것을. ( 上 田 忠 男 臣 道 일부) 28)
238 23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후반부의 일부만 인용하였으나 우에다 다다오의 시 신하의 도리 에서 반 복되는 스프 는 스태이플 화이버(staple fiber)의 줄임말로 면이나 모와 같은 천연섬유가 고가였던 시기에 대용품으로 사용된 합성섬유이다. 이 시 전반부 에 보이는 빛나는 역사, 정신의 흐름, 후예의 영광 은, 시대의 흉벽 즉 동양의 중심인 일본이 놓인 일장기조차도 스프로 만들어지는 오늘 의 현실 을 의연히 극복하고 인내해야 할 정서적, 의무적 의지로 승화시키는 동력이 다. 결국 어려운 현실을 황국신민으로서 신도 (=신하의 충성된 도리)로 나아 가는 것 자체가 마지막 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신화( 神 話 ) 가 되는 것이다. 영원한 모습의 그것들이 신대( 神 代 )와 같이 오셔서 맞이할 것을 오랫동안 나 는 꿈꾸고 있었다. 나는 삼십년을 살고 삼천년의 역사를 배우고 삼만년의 태고를 알고 지금 전에 없던 민족의 집결에 직면하고 있다. 중략 나를 관통하는 윤리는 날개를 얻고 초토의 미개의 하늘을 난다. 과거의 금빛 솔개처럼 ( 岩 瀬 一 男 金 鵄 のやうに 일부) 29) 이 시에서 보듯 나 (=일본인)는 삼천년의 역사 와 삼만년의 태고 라는 일본의 시간적 길이와 직결되며, 일본 신화에서 진무천황( 神 武 天 皇 )이 정벌 을 갈 때 활에 내려앉았다는 금빛 솔개 30) 를 인용하여 현재 시점의 전쟁을 신대( 神 代 ) 의 정벌 신화로 치환하여 이 전쟁에 대한 당위성을 보증하고 있 다. 일본이 가진 신성함의 관념은 천황가와 신화의 역사에 의해 보장되며 이 러한 역사는 현재에 재현되어 일본의 윤리 를 보증한다. 또한 점령해야 할 공간은 미개 의 영역으로서 영토 확장의 의도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28) 上 田 忠 男 (1941) 臣 道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岩 瀬 一 男 (1942) 金 鵄 のやうに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금빛 솔개, 즉 금치( 金 鵄 )는 국민시가집 의 조우식 시 마당에 노래하다 에서도 역시 오랜 전통과 역사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금빛 솔개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무훈이 뛰어난 일본 군인에게 수여되던 것이 금치 훈장 인 것과 아울러 생각하면 그 상징성과 전통성이 신화에 근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239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35 는 신화 나 천손강림 과 같은 제목의 시처럼 노골적인 경우도 있으며, 선 조의 목소리, 신의 나라의 후예, 조상의 혼, 선조들의 혼, 선조의 피, 신의 음성 31) 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며 이러한 역사성의 강조를 통해 대동아공 영권의 맹주로서 일본의 자격을 정당화, 합리화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 시를 보기로 한다. 우리의 아시아다. 우리의 생명권이다. 우리의 여명이다. 철혈의 흐름이다. 열화의 태풍이다. 날갯짓하는 승리의 역사와 황혼의 만종이여. 검은 리본의 나비들이여 날아올라라. 꿈의 나라, 신화의 숲에 아시아의 하늘은 미소 짓는 것이다. 아시아의 태양은 장미로 피는 것이다. ( 洪 星 湖 アジアの 薔 薇 일부) 32) 아시아라는 십억의 생명권을 이끄는 꿈의 나라, 신화의 숲 일본이 아 시아의 태양 으로서 장미 로 표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유의 수법을 살린 (2)유형의 시에서 붉은 장미 는 일장기(=욱일승천기)의 태양 으로서 일본을 표상하는 상징물 33) 이 된다. 이처럼 황국신민으로서의 도리를 바탕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정당하게 보고 일본을 그 중심에 놓은 시들에서는, 신대로부터 이어진 긴 역사적 정통성을 현재로 소환하여 과거 역사를 재현하는 수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현재(1940년대 초)의 전쟁을 수행하는 세대에게 청각적으로 선조 의 목소리 가 계속 작용하는 것이며, 시각적으로 일본은 일장기의 붉은 태양 처럼 아시아의 장미 라 노래된 것이다. 31) 선조의 목소리 는 역두보 ( 尼 ヶ 崎 豊, 창간호), 신의 나라의 후예 는 삼 척을 나는 독수 리 ( 上 田 忠 男, 10월호), 조상의 혼 은 가을 창 열다 ( 増 田 栄 一, 10월호), 선조들의 혼 은 망향 ( 今 川 卓 三, 12월호), 선조의 피, 신의 음성 은 전투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 다 ( 尼 ヶ 崎 豊, 12월호)에 각각 나오는 표현이다. 32) 洪 星 湖 (1942) アジアの 薔 薇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붉은 장미=일장기=일본 의 의미를 지니는 시는 몇 편 더 있는데, 특히 같은 국민시가집 에서 태평양전쟁 개전과 승리 하에 일본이 1942년이라는 새해를 맞는 기대감을 노래한 스 기모토 다케오의 위대한 해( 大 いなる 歳 ) 의 십이월의 어두운 하늘로부터 / 붉은 장미 꽃 은 피었도다 ( 국민시가집, p.73)라는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240 23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3) 인간 본성과 연계한 총후시 전쟁을 직접 묘사하거나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당위를 은연중에 합리화하는 유형 외의 국책시는, 전장이 아닌 후방 이른바 총후( 銃 後 ) 를 지 키는 사람들의 시라 할 수 있다. 전쟁 참여에서 한 걸음 떨어진 여성이나 아 이들, 또는 귀환병은 전쟁에 나간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자식, 혹은 형제나 친 구였다. 이처럼 총후 국책시에는 가족애와 형제애, 벗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인간 본연의 정서를 내면화하여 이를 전쟁과 결부지워 간접적으로 전쟁수행 에 협력하고 전의를 고취하는 내용이 많다. 이 유형 중 대표로 꼽을 만한 시인은 시바타 지타코( 柴 田 智 多 子 )로 국민 시가 에 다섯 편이 수록된 그녀의 시 중에는 비국책시로 구분될 시 34) 도 있지 만, 다음 시들에서 총후 국책시의 전형을 읽어낼 수 있다. 병사님 나는 이 위문품 꾸러미를 꿰매면서 여러 가지 감사하는 마음에 머리가 숙 여집니다. 오랜 전쟁의 세월을 거쳐도 여전히 우리는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 고 이렇게 위문품 꾸러미를 만들며 어린 아이 마음에도 샘솟아 오르는 병사님 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생각하면 고마운 나라에 태어난 기쁨에 절절히 마음이 젖어듭니다. ( 柴 田 智 多 子 慰 問 袋 にそえて 일부) 35) 황군의 무운 장구하기를 빌고, 영령들에게 감사하며, 총후의 봉공을 맹세하며 묵도 이것은 국민의 매일의 기도입니다. 중략 아버지를, 자식을, 남편을, 형제를 바치고, 진중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집을 지키는 어머니여, 자식이여, 아내여. 엄숙하게 사랑스러운 그 나날에 합장합니다. ( 柴 田 智 多 子 女 性 の 祈 祷 일부) 36) 34) 10월호의 엄마의 꿈( 母 の 夢 ) 에서는 백설공주의 앞부분 인용하며 다섯 살 딸이 배우는 말 에 대해 갖는 엄마로서의 당부가 그려져 있고, 12월호의 여심단장( 女 心 断 章 ) ( 紫 田 智 多 子 로 오기)에서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기다림을 표현했다. 또한 1942년 8월호의 어린 자( 稚 き 者 ) 는 아이를 야단치는 무심한 엄마의 처사를 묘사한 것이다. 이들 시에서 전 쟁 색채를 직접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시바타 지타코의 시 전체를 통해서 보면 총후를 지키 며 일본의 미래(=아이)를 키워내고 남편을 성실히 뒷받침하는 자기 역할에 대한 의식이 강 하게 보이므로 전체적으로 총후 국책시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시인으로 볼 수 있다. 35) 柴 田 智 多 子 (1941) 慰 問 袋 にそえて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241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37 다섯 살 순진무구한 아이가 전장의 병사에게 보내는 위문꾸러미를 싸 주 며 엄마가 덧붙이는 편지 형식을 빌고 있는 위의 시에는 오랜 전쟁 에도 불 구하고 병사님 과 고마운 나라 에 대한 감사로 일관되어 있다. 아래 시에 는 그야말로 부부, 부모자식 간, 형제라는 혈육의 정을 바탕으로 황군으로 나 선 사람들과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 총후를 지키는 사람으로서의 맹세가 전 면에 드러나 있다. 시바타 지타코 외에도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인 소년들에 대한 기 대 37) 나 출정가는 남편의 의연한 모습을 응원하는 아내의 결의 38), 전사한 형 제나 전우를 찬미하는 39) 등 가족애를 비롯한 인간 본연의 정리( 情 理 )를 초월 한 국가애, 즉 애국 이 총후의 시에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이 유형 의 시들은 전쟁 수행이라는 행위를 인간의 가장 본연적인 관계, 즉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 친구 사이라는 본연의 인정( 人 情 )과 등치시킴으로써 전쟁 수행 자체가 인간 내면의 자연스런 발로인 양 이미지화하는 프로파간다의 역 할을 수행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국민시가 에는 진정한 예술이란 국책 전통에 조응하는 것이라 보고 펜=총 으로서 기능한다는 신념을 보이는 예술(문학)지향주의 표방 작 품 40) 이나, 총후에서 출정가지 않는 대신 생산 현장에 늠름히 임한다는 의지 를 노래한 시 41) 도 있어 국책시의 다양한 폭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분석한 것처럼 국민시가 의 국책시는 전장 및 전사를 직접 그 리거나,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기 위해 수행하는 전쟁을 일본의 신화적 정통 성에 입각하여 합리화하는 시, 또는 모든 국민 의 마음이 인간관계의 상위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국가애로 수렴되는 총후시로 대략 귀결된다. 1940년대 36) 柴 田 智 多 子 (1942) 女 性 の 祈 禱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창간호의 青 木 中 아이들( 子 供 たち), 増 田 栄 一 여름의 의지( 夏 の 意 志 ) 1942년 8월호의 今 川 卓 三 벚꽃( 桜 ) 등의 시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38) 국민시가집 시마이 후미( 島 居 ふみ)의 아내의 결의( 妻 の 決 意 ) 에 드디어 나갈 때가 왔 다며 조용히 미소짓는 남편 / 중략 / 나의 가슴은 긴장되고 / 새로운 결의에 눈꺼풀이 뜨거워진다 (p.70)는 구절이 있다. 39) 창간호의 귀환병 ( 川 口 清 ), 벗을 기억하다 ( 藤 本 虹 児 ), 12월호의 늦 가을 짧은 풀 ( 谷 口 二 人 ), 국민시가집 의 푸른 해변의 푸른 묘 ( 安 部 一 郎 ), 그 ( 池 田 甫 ), 1942년 11월호의 추풍기 ( 今 川 卓 三 ) 등이 이에 속한다. 40) 창간호 수치심 없는 시인, 10월호 가을 창 열다, 각성 등에서 진정한 민족의 예술, 펜 = 총, 시인은 애국심에 호소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41) 田 原 三 郎 大 漁 讚 歌 國 民 詩 歌 十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71.
242 23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초 일본어 국책시의 선험적 존재로서 국민시가 의 이러한 유형들이 이후에 전개된 국책시의 기원을 보여주면서 대량으로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 히 국민시가집 은 국책시 일색으로, 그 안에 담긴 모든 시는 시인의 정체 성을 막론하고 이번 장에서 다룬 세 유형 내에 모두 포함되는 전쟁시, 혹은 총후 국책시로 국민시가 가 지향한 시의 방향을 정확히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4. 국민시가 의 시론과 비( 非 )국책적 시의 위치 앞 장에서는 시국에 부응하는 국민시가 의 시들이 당시의 시대적 문맥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국책시의 전체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들 국책시는 전쟁을 찬미하거나, 천황가나 일본 전통의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총 후에서 전쟁의 필연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등 다양한 양 상을 띠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시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당시 국민 문학, 국민시 라는 논리에 적극 부응하는 형태였다. 환언하면 이러한 국책 시들은 국민시가연맹의 기관지로서 국민시가 가 표방하는 시가론, 정확히 말하면 시론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잡지에는 시, 단카 의 문학작품 뿐 아니라 상당 분량의 문학론과 가론, 시론이 게재되어 있어 한반도의 일본어 시가 문학의 방향을 적극 지도하고자 했다. 다만 국민시가 의 출발기인 1941년 9월 창간호, 10월호, 12월호에는 시론 다운 시론이 매우 부족하다. 가인( 歌 人 )들에 의한 만요슈( 万 葉 集 ) 를 중심에 둔 단카의 현대적 의의가 국민가( 歌 ) 의 핵으로서 많은 평론을 통해 고민되 던 것에 비해, 42) 국민문학/문화 혹은 국민시 에 관해서는 이하의 의견 정 도이다. 1자유주의사상이 유행한 시대에는 전쟁에 대한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중략 국토는 전쟁에 의해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는 전쟁에 협 력하여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현대전의 성격과 현대 문화의 성 격은 긴밀하게 상호 결부하여 국가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43) 42) 엄인경(2013), 전게 논문( 일제 말기 한반도에서 창작된 단카( 短 歌 ) 연구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1941~42) 를 대상으로 ), pp
243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39 2시는 자유다, 쓰면 된다는 식의 유치한 혹은 경솔한 견지에서 출발한 바에 오늘날 시의 저조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료히 깨달아야 한다. 중략 창 간호에 등재된 작품을 일별하여 느낀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른바 늠름한 시의 결핍이다. 늠름한 시란 분명한 정체를 가지고 사람 마음을 칠 수 있는 시를 가리킨다. 44) 3국민시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중략 시단에서도 시국 편승이 비 난받고 꺼려지는 듯하다. 그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시국 편승을 비난함 에 있어 국책 선전(?)과 시국 편승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45) 1은 국민시가 에서 가장 많은 문학평론을 게재하고 시 작품과 노랫말 등을 남긴 국민총력 조선연맹 문화부 참사인 다나카 하쓰오( 田 中 初 夫 )의 창 간호 권두 평론이다. 다나카는 과거 자유주의적 문학 청산이 중일전쟁 이후 시대적 사명이며, 조선문학의 경우도 한글문학을 폐기하고 빠르게 일본의 국 민문학을 내면화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적극 개진하였다. 문화나 문학은 정책 에 종속적이거나 협력하여야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당시의 국민문학은 국가 목적 인 전쟁 수행과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2는 국민시가 의 시작( 詩 作 ) 활동이 가장 활발한 아마가사키 유타카가 쓴 시평에 속하는 잡기로, 당시의 시가 저조하다는 자성 하에 창간호 시에 사람 의 마음에 닿는 늠름한 기상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3은 기야마 마 사키의 논설로 국민시 란 이해하기 어려워서는 앞길이 다난( 多 難 )할 것이며, 국민문화 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드러낸 글이다. 특히 인용부분 맥락 에서는 시국 편승 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국책 선전 과는 근간이 다른 문제 이므로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적어도 국민시가 의 평론, 시론은 중일전쟁 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일본의 국가목적을 전면에 내세우며 문학작품들도 이러한 국책에 적 극 호응하는 늠름한 기상을 갖춘 내용이어야 함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 일 색이었다. 그리고 아마가사키처럼 일억의 투석기( 一 億 の 弩 ), 자폭에 부치 다( 自 爆 に 題 する), 정벌전( 征 戦 ), 전투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다( 戦 信 に 題 す), 힘을 기리다( 力 を 頌 す), 어뢰를 피해( 魚 雷 を 避 けて) 46) 와 같 43) 田 中 初 夫 (1941) 朝 鮮 に 於 ける 文 化 の 在 り 方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尼 ヶ 崎 豊 (1941) 雑 記 ( 一 )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城 山 昌 樹 (1941) 國 民 詩 に 関 聯 して 國 民 詩 歌 10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244 24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이 노골적인 전쟁시를 창작하여 이를 실천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해도 좋을 것이다. 협의의 시국적 제재를 문학에 무턱대고 담는다고 바람직한 국책문학이 되 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국책문학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 는 국민시가 를 주재한 가인( 歌 人 ) 미치히사 료( 道 久 良 )의 다음 글에서 확 인된다. 시국이라는 것을 매우 좁게 해석하여 작품 위에 전쟁이라든가 방공연습이라든 가 그런 것을 집어넣지 않으면 이 시대의 지도적인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작가가 있다면 중략 그와 같은 사람들이 쓴 글과 지도에 의해서 는 정말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국을 넓게 해석하면 유사 이래의 이 중대한 시국 하에서 이 시대를 인식하고 일본국민으로서 진정 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가 확정된 작가가 쓴 작품은, 이른바 시 국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제재로 삼지 않더라도 역시 이 시국 아래에서 국민의 기상을 진흥할 수 있는 힘 있는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7) 여기에서는 시국을 어떻게 문학에 반영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데, 미치히 사는 전쟁이나 방공연습과 같은 것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협의의 국책문학을 부정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지도 적 작품은 문예의 잠재적 힘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소재보다는 작가의 태도와 성실성, 그리고 작가의 신념의 문제를 중 시하는 시국을 넓게 해석 한 문학을 주장한다. 국민시가 의 지도적 시가 문학은 민중을 지휘하여 국가의식과 전쟁 당위성, 국민의 기상을 고취해야 한다는 의미로 광의적으로 확대되는 대목이다. 이 시국 아래에서 국민의 기 상을 진흥할 수 있는 힘 있는 작품이 탄생할 것 을 기다리는 미치히사와 같 은 요청을 하는 내용의 시도 있다. 진정 위대한 시인의 출현이야말로 오랜 대망! 중략 말에 혼이 담기는 행복의 나라의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여러 말들을 46) 일억의 투석기 부터 힘을 기리다 까지는 국민시가 에 수록된 시이며, 어뢰를 피해 는 國 民 文 學 1944년 8월호에 게재된 시이다. 이 외에도 아마가사키는 國 民 文 學 1942년 10월호에 시 등산자( 登 山 者 ) 를 수록했다. 47) 道 久 良 (1941) 時 評 國 民 詩 歌 12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245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41 중략 헝클어져 일고 거칠어져 가는 생각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꾸고 괴로움에도 슬픔에도 흔들림 없는 굳센 마음을 불어넣어주는 아아! 숭고한 시는 없는가 ( 島 居 ふみ 羞 恥 なき 詩 人 일부) 48) 말에 혼이 담 긴다는 언령( 言 霊, 고토다마) 사상 의 일본(= 행복한 나라 ) 의 아름다운 옛 전통을 기반으로 민초의 마음을 맑게 할 숭고한 시, 즉 굳건한 작가 태도로 민초에게 굳센 마음 을 불어넣는 시를 갈망하는 내용 자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은 이러한 국민시가 의 문학론 협의의 시국 문학과 광의의 국책 문학 방향과는 이질적인, 어쩌면 이러한 방향에서 일탈한 시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국민시가집 을 제외한 잡지 국민시가 에는 국책시로는 도저히 치부하기 어려운 시도 수십 편 수록 되어 있다. 전쟁의 구체적 소재를 다룬 협의의 시국시로도, 국민 의 기상을 진흥할 광의의 국책시로도 보기 어려운 이러한 시들은 추억, 고향, 가을, 황 혼녘, 일상을 다루는 내용이 많다. 이하 이 시기 주요 재조일본인 시인으로 보이는 스기모토 다케오( 杉 本 長 夫 )와 조선인 친일문학자로 알려진 기야마 마 사키 시를 보자. 저 먼 바다의 끝에 흰 구름이 춤추는 것을 보면 어릴 적 추억의 문은 열린다 중략 어릴 적 황혼의 꿈은 좋았다 아주 높은 모래언덕 근처 친구들 모여 노는 향기로운 생명의 잔치 그 추억은 고기잡이 배의 등불이 깜박이는 듯하다 ( 杉 本 長 夫 海 일부) 49) 48) 島 居 ふみ(1941) 羞 恥 なき 詩 人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 杉 本 長 夫 (1941) 海 國 民 詩 歌 創 刊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54.
246 24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가을 풀을 깔고 나는 눕는다 눈을 감고 어머니 무릎에 어리광 부리듯이 중략 갑자기 나는 그을린 램프 같은 저녁빛을 느낀다 어느 샌가 내 눈물선이 흔들리고 있다 적적한 모든 모습에 나는 혼자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 城 山 昌 樹 夕 暮 のしらべ 일부) 50) 위의 시는 어릴 적 추억 을 아침, 낮, 저녁의 기억의 정경을 좇아 그리며 그 추억이 바다의 고기잡이 배 등불의 점멸과 같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심상 을 그리고 있다. 아래쪽 시 역시 가을 풀을 깔고 누워 눈을 감고 과거와 현실 을 떠올리다 다시 눈을 뜨고 저녁의 적적한 모습에 감격하는 나 가 묘사되 어 있다. 고향이나 일상, 자연이나 정경, 유독 시간적 배경으로는 저녁 이 많 은 이러한 유형의 시들 51) 에서는 나 와 같은 개인의 사( 私 )적 시간과 공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비국책시로 분류되는 시들 중에는 다음과 같이 1930년대의 모더니즘 의 계열을 잇는 듯한 시도 있다. 카페 한 귀퉁이 장난감 기차같은 박스에 연지 바르고 백분 바르고 미태와 애교섞인 웃음을 짓는 여자 남자들은 안이한 자위와 향락에 스스로를 잊고 시끄러움과 연기와 사람들의 훈기 안에 창백한 도시인의 신경과 재즈는 교차한다 50) 城 山 昌 樹 (1941) 夕 暮 のしらべ 國 民 詩 歌 12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 위의 두 시 외에도 창간호의 수은등 있는 풍경 ( 江 崎 章 人 ), 아카시아 꽃 ( 田 中 由 紀 子 ), 고요한 밤 ( 田 中 美 緖 子 ), 큰 파도 ( 椎 名 徹 ), 고추 ( 池 田 甫 ), 과거 (ひろむら 英 一 ), 나 와 아이 ( 谷 口 二 人 ), 10월호의 녹색 가방 ( 島 居 ふみ), 고추잠자리 ( 川 口 清 ), 조용한 밤 ( 米 山 静 枝 ), 별의 천궁 ( 平 沼 文 甫 =윤두헌), 여름 밤 ( 吹 田 文 夫 ), 12월호의 저녁 노래 (ひろむら 英 一 ), 가을바람 불던 날 ( 江 波 澄 治 ), 중양의 국화 ( 江 原 茂 雄 ), 1942년 8월호 황혼의 보( 譜 ) ( 藤 田 君 枝 ), 봄의 등 ( 北 村 葦 江 ), 들은 저문다 ( 朝 本 文 商 ), 1942년 11월호 의 역정( 歴 程 ) (조우식), 비오는 날에 (김경희), 원근도4 秋 の 歌 (주영섭), 넓이에 관하여 (이춘인), 단장 ( 城 山 昌 樹 ), 들뜸 ( 具 滋 吉 ), 여행 수첩 ( 金 象 壽 ), 초가을부( 賦 ) ( 金 圻 洙 ), 풀 ( 柳 虔 次 郎 ), 황혼 ( 延 原 慶 三 ) 등이 이러한 경향의 비국책시이다.
247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43 이 데카당스트들 새디즘들 내 마음은 겨울처럼 소름끼쳐 얼어붙은 포장도로의 차가움에 가라앉는다 ( 加 地 多 弦 月 かふえ ) 52) 전쟁이 수행되는 시국이나 국민 으로서의 기백이 표현되기보다는, 카페라 는 공간 자체는 물론이고 도시인의 향락과 퇴폐상( 像 )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마지막에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간접적 시선은 느껴지지만 시의 지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이전 시대의 모더니즘 시 의 수법을 이용하여 시어가 가진 상징성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사변적이 며 내용적 지향점이 뚜렷하지 않은 시들도 역시 국민시가 의 창작시 내에 산재되어 있으며, 53) 이러한 유형의 시들 중에는 일본인 시인보다 조선인 시 인들의 시가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41년의 세 호에 비해 1942년 8월호와 11월호에서는 서너 편의 시론이 일정 지면을 차지하여 가론과 비등해지는 변화를 보인다. 시론이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시는 정치를 지도하고 종교, 교육, 예술, 전쟁 일체를 유도하는 원 천 54) 이고 새로운 일본정신에 의한 일본주의 시를 발표해야 할 시기 55) 라는 주장이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특히 애국시가의 문제( 愛 国 詩 歌 の 問 題 ) 를 특집으로 한 11월호에서는 일본이 처한 중대한 역사적 시국을 강하게 인식하 며 애국시 가 정치, 경제, 군사, 과학, 기술, 문학 기타 생활 백반에 걸쳐 중 심에 위치하며 일대 추진력 일대 원동력이 되도록 노력하고 정진해야 하 56) 며, 국가이념에 기초하여 날갯짓하여 오 르는 것이자 고도의 새로운 세계적 문화이념과 사명의 입장에서 충분히 잘 사용 57) 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성이 몰각되거나 개인적 감정을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현대시의 올바르지 않은 경향 58) 이라는 지적이 같은 지상에 존재한다는 52) 加 地 多 弦 月 (1941) かふえ 國 民 詩 歌 10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이러한 시에는 창간호의 여름 날 ( 江 波 悊 治 ), 10월호의 진주 가루가 ( 佐 井 木 勘 治 ), 한여 름 날 ( 村 上 章 子 ), 1942년 8월호의 당나귀 (주영섭), 노래 없었다면 ( 山 本 寿 美 子 ), 여행 (김경희), 맥추기 ( 城 山 昌 樹 ), 상큼한 봄 밤 ( 米 山 静 枝 ), 1942년 11월호의 돌 (윤군선), 나그네 (임호권) 등이 있다. 54) 尼 ヶ 崎 豊 (1942) 詩 並 に 詩 人 について 國 民 詩 歌 八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徳 永 輝 夫 (1942) 詩 に 於 ける 英 雄 性 國 民 詩 歌 八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尼 ヶ 崎 豊 (1942) 愛 国 詩 の 反 省 國 民 詩 歌 十 一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 ) 徳 永 輝 夫 (1942) 愛 国 詩 歌 の 再 検 討 國 民 詩 歌 十 一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13.
248 24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점, 그리고 1942년 11월호에 상대적으로 비국책시에 해당하는 시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시론 에 균열이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애 국시가의 문제 특집호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시가 의 현존본 마지막 호가 보여주는 이러한 시 유형의 다양화와 시론의 분열, 새로운 신예 시인들의 등 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국민시가 는 1940년대 한반도 시단과 가단에서 국가주 의나 대동아공영권 수행 의지를 내면화하여 국책에 적극 호응하고자 창간된 시가 잡지였다. 그럼에도 이 잡지에 상당수의 비국책시가 존재하고 평론에서 도 균열이 보이는 것은, 당시 시단에서 국책 수행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더라도 역시 시단 내부의 지향성과 실제 시작( 詩 作 )에서는 여전히 시의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국민시가 는 국민문학 선전의 공간임과 동시에 문학 의 방향을 둘러싼 1940년대 초 한반도의 일본어 시단의 혼돈상을 여실히 드 러낸 잡지였다고 하겠다. 5. 결론 본고에서는 창작시 작품을 중심으로 국민시가연맹의 기관지 국민시가 의 시를 유형적으로 분석해 보고 특징을 고찰해 보았다. 시가 전문잡지인 만큼 국민시가 에는 지금까지 1940년대 국민문학 논의의 중심이었던 국민문학 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고 다수의 시가 게재되어 있으므 로, 이 시기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일본어 시 전체상을 조망할 때 필수불가결 한 대상 매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싱가폴 함락이라는 전승을 기념한 국민시가집 에 서 보듯 시들은 강력한 시국적 요청으로 국책에 부응하는 것들이 대다수였 다. 이는 국민시가 의 국민문화론 이나 국민시론 에 적극 호응하는 형태로 탄생한 것이었으며, 유형별 분류에서 파악하였듯 1940년대 한반도의 일본어 국민시 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잡지에는 광의의 국 책시로도 수렴될 수 없는 작품들도 수십 편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1930년 58) 平 沼 文 甫 (1942) 現 代 詩 の 問 題 ー 詩 の 大 衆 性 についてー 國 民 詩 歌 十 一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249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45 대 모더니즘 시의 영향과 국민시가 내의 시론 이 일관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 바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상으로 국민시가 의 일본어 시를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았지만 다음과 같은 향후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 다수의 조선인 시인이 참가한 국민시가 의 시단에서 재조일본인 시인과 조선인 시인들의 시에 있어 근본 적 차이가 있는지 보다 정치한 고찰이 필요하다. 둘째, 다수의 모더니즘 계열 의 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시어의 상징성을 당시 다른 시들과 비교 고 찰하여 이 계열 시들이 지향하는 바와 의미를 도출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셋째, 예술과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는 시들이 있는데, 이는 마치 중세의 혼카도리( 本 歌 取 り) 기법처럼 한 편의 시를 읽었을 때 그에 내재 된 또 다른 시가가 중첩되어 읽힌다. 59) 이중 구조를 가진 이러한 시들에 관 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후속 연구로 1940년대 초 한반도를 배경 으로 창작된 일본어 시가의 본질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 다. <참고문헌>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1998) 국어국문학 자료 사전 한국사전연구사. 고봉준(2013) 일제 후반기 국민시의 성격과 형식, 한국시학연구 제37호, 한국시학회, pp 김승구(2013) 사토 기요시( 佐 藤 清 ) 시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의 전통예술, 한국민족문화 제 48집,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pp 김윤식(2009) 최재서의 국민문학 과 사토 기요시 교수 : 경성제대 문과의 문화자본, 역락, pp 김응교(2009) 일제말 조선인이 쓴 일본어시의 전개과정 현대문학의 연구 38호, 한국문학 연구학회, pp 박광현(2010) 조선문인협회와 내지인 반도작가, 현대소설연구 43, 한국현대소설학회, pp 박경수(2003) 일제 말기 재일 한국인의 일어시와 친일 문제 배달말 32호, 배달말학회, pp 박수연(2006) 일제말 친일시의 계보 우리말글 제36집, 우리말글학회, pp.203~232. 사희영 역(2014) 잡지 國 民 文 學 의 詩 世 界, 제이앤씨, pp ) 光 崎 検 校 秋 風 の 曲 に 寄 せて ( 田 中 初 夫, 창간호), 頼 山 陽 の 母 より ( 佐 井 木 勘 治, 12월호) 寄 り 添 へる 吾 を 目 守 りて 言 ひたまふ 何 かいひたまふ 吾 は 子 なればー 茂 吉 ( 安 部 一 郎, 1942년 11월호) 등의 시가 이에 해당하는 예라 할 수 있다.
250 24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엄인경(2013)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해제 韓 半 島 刊 行 日 本 傳 統 詩 歌 資 料 集 27 短 歌 雑 誌 篇 22 도서출판이회, pp (2013) 미즈키누타( 水 砧 ) 해제 韓 半 島 刊 行 日 本 傳 統 詩 歌 資 料 集 35 俳 句 雑 誌 篇 4, 도서출판이회, pp.413~423. (2013) 식민지 조선의 일본고전시가 장르와 조선인 작가 단카( 短 歌 )ㆍ하이쿠( 俳 句 )ㆍ 센류( 川 柳 )를 중심으로 民 族 文 化 論 叢 第 53 輯,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pp.81~109. (2013) 일제 말기 한반도에서 창작된 단카( 短 歌 ) 연구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1941~42) 를 대상으로 日 本 學 報 제97집, 한국일본학회, pp (2013) 1940년대초 한반도의 일본어 국민시가론 단카ㆍ시 잡지 국민시가 를 중심으 로 日 本 文 化 硏 究 제48집, 동아시아일본학회, pp 이건제(2011) 조선문인협회 성립과정 연구, 한국문예비평연구 제34집, 한국현대문예비평학 회, pp 이주열(2011) 주요한의 시적 언어 운용 방식 일본어 시를 중심으로 비평문학 제40집, 한 국비평문학회, pp 임종국(1966), 이건제 교주(2013), 친일문학론 민족문제연구소, pp 최현식(2008) 이광수와 국민시 상허학보 제22집, 상허학회, pp (2013) 일제 말 시 잡지 國 民 詩 歌 의 위상과 가치(1) 잡지의 체제와 성격, 그리고 출 판 이데올로그들, 사이 間 SAI 제14호,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pp (2014) 일제 말 시 잡지 國 民 詩 歌 의 위상과 가치(2) 국민시론ㆍ민족ㆍ미의 도상학 한국시학연구 제40호, pp 허윤회(2006) 1940년대 전반기의 시론에 대하여 김종한의 시론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 구 제42집, 민족문학사학회, pp 崔 載 瑞 (1941) 編 輯 後 記 國 民 文 學 創 刊 號 人 文 社, p.236. 鄭 炳 浩 (2011) 1940 年 代 韓 国 作 家 の 日 本 語 詩 と 日 本 語 雑 誌 の< 南 洋 > 言 説 研 究 日 本 學 報 第 86 輯, 韓 國 日 本 學 會, pp 道 久 良 (1941) 國 民 詩 歌 創 刊 號 ( 九 月 號 )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1941) 國 民 詩 歌 十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1941) 國 民 詩 歌 十 二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1942) 國 民 詩 歌 集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1942) 國 民 詩 歌 八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1942) 國 民 詩 歌 十 一 月 號 國 民 詩 歌 發 行 所, pp *본문에서 인용한 國 民 詩 歌 ( 集 ) 의 평론과 시 작품은 모두 위의 여섯 호에 의한다.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엄인경, (한자) 嚴 仁 卿, (영문) In kyung Um
251 1940년대 초 잡지 국민시가( 國 民 詩 歌 ) 의 시( 詩 ) 연구 (엄인경) 247 소속 :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교수, 일본시가문학, 한일비교문화론 논문영문제목 : Research concerning poetry in the magazine The National Poetry and Tanka in the early 1940s 주소 : ( ) 서울 성북구 인촌로 108 청산MK문화관 일본연구센터 303호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고는 국민시가연맹의 기관지이자 1940년대 초 식민지 조선 유일의 시가( 詩 歌 ) 전문 잡지였 던 국민시가 의 시를 유형적으로 분석하고 그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시가 전문잡지인 만큼 국 민시가 에는 지금까지 1940년대 국민문학 논의의 중심이었던 국민문학 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고 다수의 시가 게재되어 있으므로, 이 시기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일본어 시 전체상을 조망할 때 불가결한 대상 매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잡지의 시들은 강력한 시국적 요 청으로 국책에 부응하는 것들이 대다수였는데 이는 국민시가 의 국민문화론 이나 국민시론 에 적극 호응하는 형태로 탄생한 것이었다. 유형별 분류로 파악해 본 것처럼 1940년대 전반기 한 반도의 일본어 국민시 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잡지에는 전쟁시는 물론 광의의 국책시에도 수렴될 수 없는 작품들 역시 수십 편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1930년대 모더 니즘 시의 영향과 국민시가 내의 시론 이 일관되지 않은 균열에서 기인한 바도 있는 것으로 파 악되었다. 주제어: 국민시가, 일본어 시, 단카, 국민문학, 시론, 국민시가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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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249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求安録) * 윤 복 희** Abstract Kyuanroku (The Search for Peace) is generally regarded as a confessional work in which Uchimura Kanzo confesses his faith. However, transcending the category of pure confessional and illustrating the correspondence of his faith with his life, this could be said to be the most important of his works. While analyzing the core content of Kyuanroku, such as the principle of sin, the meaning of faith, the principle of atonement, etc., this study examines how Uchimura grafted his faith onto his actual life, and how he made his prognosis on the true nature of modern civilization while living in this present day modern era. Trying to live the spirit that modern Japan had abandoned, he unceasingly advocated man s inner reform. He also put forth that modern civilization s superficial development was not progress, but rather retrogression, and that modern man must have a consciousness of mankind s joint responsibility for sin, which applied the Christian principle of atonement. In a word, one may say that his life after Kyuanroku was one which put into actual practice the power to save the world. Keywords : Uchimura Kanzo, Kyuanroku, atonement, spirit, the power to save the world 1. 들어가며 일반적으로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의 자전적 삼부작으로 불 리는 작품으로 기독신도의 위안(基督信徒のなぐさめ) (1893.2), 구안록(求 安録) (1893.8), 나는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나?(How I became A Christian?) 1) 를 들 수 있다. 이상은 모두 1893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필된 작품이다. 특 히 구안록 은 기독신도의 위안 에 이은 두 번째 단행본 저서로, 간조의 저 작의 일관된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죄의 문제와 속죄 2)를 중심 내용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 * 이 논문은 2012년도 동덕여자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수행된 것임. ** 동덕여자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어과 부교수 1) 집필은 1893년 6월 전후부터 시작했지만 발표는 1895년 9월에 영문으로 먼저 출판했다. 2) 亀井勝一郎編(1963), 21쪽 (이하 각주에서는 편의상 저자와 발표년도 및 인용한 쪽수만 기재 함. 저서 및 논문명의 상세는 참고문헌 참조)
254 25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다. 3) 구안록 이라는 제목에서 일반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의 내용은 저자 인 간조의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는 여정 정도가 될 것이다. 4) 실제로 이 작 품은 기독교신자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의 여정을 고백한 고백문학이라고 보 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견해일 것이다. 그 한 예로, 구안록 이 수록된 内 村 鑑 三 全 集 5) 2권의 편집책임자인 스즈키 도시로( 鈴 木 俊 郎 )가 이 작품을 해 제하면서 이 책은 신학적으로 뛰어난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신학이나 교리학 의 사상적 계보로부터 독립된, 또한 인간적인 고백문학의 장르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저자 자신의 하나님의 말씀 에 따른 체험적 신앙고백 6) 이라고 표 현한 것은 아마도 구안록 이라는 작품에 관한 가장 간결하면서도 합리적인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구안록 이 뛰어난 고백문학임을 공감한다. 이 책은 죄의 문제, 신 앙의 문제, 속죄에 따른 구원의 문제 등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와 핵심을 다 담고 있는 명백한 저자 우치무라의 신앙고백서로, 아직 기독교의 역사가 일 천한 당시 일본에 일본인의 손으로 작성된 본격적인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측 면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만이라 고 한다면 이 책은 그저 일본의 기독교 역사상 주목할 만한 종교서 중 하나 에 머물 것이지만 이 책이 내포하고 시사해 주는 많은 중요한 사항을 다 수 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 간조가 이후의 인생여정에서 언론인으 로, 사회개량가로, 성서학자로, 나아가 인류의 문명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문 명비평가로서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놀랄 만큼 일관적인 그의 생애를 관통 하는 한 가지, 그 원형을 보여주는 그의 다양한 저작 중 최초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부동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생애를 관통 3) 시부야 히로시( 渋 谷 浩 )등, 우치무라 간조 연구의 권위자들은 이 책이 초기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전한다.( 渋 谷 浩 外 (1975), 97쪽) 4) 1893년 3월 29일에 우치무라 간조가 미국인 친구인 벨에게 보낸 편지에 이 책의 집필에 관한 사정을 전하며 책의 영문 제목을 Search after Peace: Record of Real Experience 로 소개하 고 있다. 이로 보건대 이 작품이 자신의 실제 경험의 기록, 즉 실생활의 기록임을 암시하고 있다. ( 内 村 鑑 三 全 集 36권, 岩 波 書 店, , 373쪽) 5) 이하 본고의 텍스트인 内 村 鑑 三 全 集 은 전집 으로 표기. 또한 텍스트 및 여타 자료에서의 인용 시, 기본적으로 원문은 게재하지 않고 필자의 졸역을 게재함. 6) 전집2, 496쪽 / 우치무라 간조 연구의 권위자인 스즈키 노리히사 역시 이 작품을 간조의 신 앙고백서 로 규정했다.( 鈴 木 範 久 (1984), 68쪽)
255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51 하는 한 가지는 그의 사상 내지는 정신, 혹은 그의 종교적 입장에서 보자 면 신앙 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의 사상이나 신앙은 반드시 종교적 영역 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신앙은 곧 그 자신의 생활로 이어졌고 생활은 곧 신앙의 실천장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신앙과 실생활을 별 개로 분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치무라 간조는 그의 여러 저작 중에서도 특히 구안록 안에서 죄와 신 앙과 속죄의 원리 등, 기독교의 핵심내용을 다루면서 자신의 신앙과 실생활 의 접목을 보여주었다. 본고는 이 작품 안에 간조가 당시 일본의 현실과 인 류문명을 바라보면서 품은 자신의 생각을 대부분 담았다고 본다. 그것이 과 연 무엇인지, 그는 당시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나아가 근대라고 하는 현재를 살면서 그가 진단한 근대, 근대문명, 근대인의 실체와 문제점이 무엇 인지 이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우치무라 간조가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죄란 무엇인가 2-1 우치무라 간조의 죄의식 및 관련 주요 연구 앞서 구안록 을 뛰어난 고백문학이라고 규정했는데 그렇다면 우치무라 간조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고백하고자 한 것일까. 이 책의 핵심어는 과 연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우선 하나만 든다면, 한 마디로 죄 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책의 주제는 죄와 구원, 죄와 속죄 정도로 표면상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죄의 죄 됨을 알기 이전에는 죄를 지어도 그다지 고통을 느끼지 않았는 데 죄를 미워해야 함을, 죄의 두려움, 죄의 죄 됨을 알고 난 후에는 죄를 범했 을 때에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중략) 죄의 가책으로 나는 완전히 삶의 즐거움을 잃었다. 식욕을 잃고 밤잠을 이루 지 못하고 일할 기력을 잃고 그저 공포에 떨면서 날을 보냈다. 7) 7) 전집2, 쪽
256 25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인용문에도 드러나듯이 구안록 을 읽다보면 일본인 중에 이렇듯 치열하 게 죄의 문제를 추궁한 사람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극심한 죄의식과 그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는 저자의 면모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작품과 관련된 단독연구는 본고가 조사한 바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간조의 남다른 죄의식 내지는 그의 예민한 죄악감이라는 특징과 관련한 언급 은 적지 않은 편이다. 일찍이 우치무라 간조와 그의 사상적 특징으로써의 죄의식 에 주목한 가 메이 가쓰이치로( 亀 井 勝 一 郎 )는 근현대일본사상사에 한 획을 그은 간조의 작 품을 책임편집하고 해설한 자신의 글에서 탁월한 우치무라 간조론을 펼쳤다. 그는 일본인의 사고의 특징으로 마루야마 마사오( 丸 山 真 男 )가 일본의 사상 ( 日 本 の 思 想 ) 에서 언급한 무한 포용성( 無 限 抱 擁 性 ) 을 든다. 즉, 불교의 무한 포용성 이나 신불습합( 神 仏 習 合 ) 의 전통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일본 의 사상적 관용이 처음으로 벽에 부딪친 것은 메이지의 기독교 와 다이쇼 말기의 마르크스주의 에 접했을 때라고 주장한다. 특히 우치무라 간조가 기 독교에 입문한 것은 시대의 흐름상 필연적 이었으며, 그는 다른 사상과의 공존이나 타협을 거절하고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비관용( 非 寛 容 ) 의 정신으 로 일관했다고 하면서 이러한 점이 근대일본의 정신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가메이는 일본의 사상사적인 문제로 일본의 지식 계급이 사상 을 논할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앙 의 문제를 제 외하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자기라고 하는 주체 가 신앙의 문제를 어 떻게 받아들이는지 이 점에서 아주 태만했다고 지적하면서 마루야마의 일본 의 사상 이 설명과 해석 면에서는 일본인의 사고의 실체를 밝힌 점에서 동 감하지만 자기 자신의 문제 로서는 아무런 발언이 없다는 점을 들어 그런 점이야 말로 일본 지성의 비극 이며, 개개인이 하나님 8) 또는 부처와 대결 해서 그것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싸움이 사상형성의 기 본 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러면서 일본의 미지근한 정신풍토 를 참을 수 없었던 간조는 빛과 어둠, 선과 악, 생과 사, 그에 대한 준엄한 판 단 을 원했고, 그는 그것을 기독교적 죄악감 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특 히 가메이는 간조의 모든 저작에서 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 8) 원문은 神 이지만, 뒤의 부처 에 대비되는 개념이므로 개신교 신자인 간조의 입장을 고려 하면 하나님 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한 구안록 을 포함하여 이하, 간조의 다른 작품이나 글에 등장하는 神 역시 하나님 으로 번역한다.
257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53 다 고 하면서 간조의 사회적 정의감의 근본 으로 이러한 죄의 자각 이라 는 예민하면서도 결벽한 그의 정신을 예로 들었다. 9) 다소 길지만 가메이의 견해를 소개한 이유는 우치무라 간조라는 한 인간의 정신사를 분석하면서 일본의 사상사 전체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언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고 역시 가메이의 견해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지만, 치밀한 고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가장 적절하게 지지해줄 구안록 에 관한 약간의 언급이나마 누락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물론 구안록 에 관한 단독연구가 아닌 이상, 논지의 흐름상 어쩔 수 없었다 고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본고는 구안록 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이후 줄곧 간조를 괴롭힌 죄의식,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조명한 전 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서는 2 2 이하에서 고찰하기로 한다. 그밖에 역시 단독 연구는 아니지만, 간조의 죄의식 관련사항을 언급한 것 으로는 먼저 나카자와 고키( 中 沢 洽 樹 )와 시부야 히로시( 渋 谷 浩 )의 서로 다른 견해를 주목할 만하다. 나카자와는 간조의 죄의식의 근원을 그의 첫 번째 부 인이었던 아사다 다케( 浅 田 たけ)와의 이혼에서 찾는다. 10) 간조와 다케의 결 혼과 파경은 당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한 사건으로, 그 원인을 놓고 연구자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본고의 선행연구에서 이미 상세한 고찰을 하였 기에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11) 그리고 반드시 나카자와의 견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시부야는 이러한 전처와의 이혼 문제로 간조의 죄악감이 깊어졌다고 보는 것은 너무 기계적인 시각이라고 하면서 우치무라 간조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간을 면밀히 검토 하면서 이러한 시각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시부야는 루스 베니딕트와 폴 트루니에 같은 학자의 설을 원용하면서 간조의 이혼문제는 죄의 형식적 요건 일 뿐, 실은 간조의 죄의식의 근본에는 앰허스트대학 유학시절 실리총장으로 부터 촉발된 진정한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간조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상대적 가치밖에 없는 자아, 이 자아를 사랑하는 자기애 또는 이기심 이야말로 진정한 죄 라는 깨 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시부야의 견해이다. 12) 9) 亀 井 勝 一 郎 編 (1963), 14 23쪽 10) 中 沢 洽 樹 (1971), 73 74쪽 11) 마사이케 히토시( 正 池 仁 ), 오타 유조( 太 田 雄 三 ), 안도 히로시( 安 藤 弘 ), 스즈키 노리히사( 鈴 木 範 久 )의 관련 언급은 졸고(2011.5) 참조
258 254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이상, 대표적인 연구자들의 관련 견해를 살펴보았지만, 정작 우치무라 간 조가 가장 치열하게 죄와 대면한 기록인, 구안록 에 대한 충분한 고찰은 여 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고는 구안록 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 의 죄의식 의 이면을 살펴보고, 그가 생각한 죄의 정의가 무엇인지 더불어 살펴보기로 한다. 2-2 죄란 무엇인가 구안록 은 크게 上下 2부로 구성되어 있다. 上部(1 4)13)는 죄의식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잃은 상태에서 求安, 즉 평안을 탐구하기 위한 자기체험 을 기술한 부분이고, 下部(5 9)는 죄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평안 을 얻게 된 체험부이다. 1.비탄(悲嘆) 과 2.내심의 분리(内心の分離)14) 는 이 책의 도입부이자 주 제를 다룬 부분으로, 인간은 죄를 지어서는 안 될 자이면서 죄를 짓는 자이 다(人間は罪を犯すべからざるものにして罪を犯すものなり) 15)로 시작되는 작품 서두의 문장은 전편의 주제를 이룬다. 그러나 인생의 불만은 하나님을 구하 는 무언의 목소리 이며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 16)이라고 하면서 도입부에서 일찌감치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문제의 해결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탈죄술(脱罪術) 과 4.망죄술(忘罪術) 을 통해 작가는 죄를 벗고자 또는 죄를 잊고자 갖은 노력을 시도해 본다. 먼저 전자, 즉 죄에 서 벗어나고자 시도된 탈죄술로는 리바이벌 17), 학문, 자연연구 18), 자 선사업, 신학연구 19)등을 시도해 보지만 이러한 자주적 노력은 그에게 평 12) 渋谷浩(1984), 6 7, 16쪽 13) 원문에는 번호가 없지만 본고에서는 각 주제별 제목에 편의상 번호를 달기로 한다. 14) 일본어와 함께 Internal Schism 이라고 병기했다. 15) 전집2, 137쪽 (이하, 일본어 원문은 생략함) 16) 전집2, 138쪽 17) リバイバル (전집2, 148쪽) 전도집회의 일종으로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부흥회 라고 부 른다. 18) 알려진 바와 같이 간조는 삿포로 농학교(札幌農学校)에서 다양한 학문에 접하며 전반적으 로 발군의 학습능력을 발휘했으나 최종적으로 수산학을 주 전공으로 선택했다. 19) 전집2의 구안록 목차 에는 신학연구 및 전도 (136쪽)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신학연구 (165쪽)로만 표기되어 있다. 뒤에도 비슷한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편집상의 오류는 아닌
259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55 안을 주지 못했다. 이는 모두 간조의 청년기의 체험에 상응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죄를 잊기 위한 망죄술로는 가정(ホーム), 이욕주의( 利 慾 主 義, Hedonism) 20) 에 빠져보기도 하고, 또는 낙천주의( 楽 天 主 義 ) 21) 등의 여러 사상에도 접해보면서 죄 그 자체를 잊어보려고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열된 다. 그러나 이러한 망각에 의한 의식의 변경은 죄 그 자체의 실재를 해소시 키지는 못했다. 결국 탈죄술과 망죄술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마지 막으로 시도된 것은 죄의 근원을 찾아 원리를 규명하고 죄의 실태를 추구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어지는 5.죄의 원리 에서는 나는 아예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포기하고 말까? 하고 자포자기처럼 자문하면서 이내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해 욕구가 있으면 거기 따르는 물건이 있는 것이 우주의 변함없는 법칙이다 22) 고 하면서 죄의 원리를 규명하기로 한다. 죄란 무엇인가? 내가 노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 이것이 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왜 노하고 도둑질을 하는가? 어찌하여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것일까? (중략) 내 원수의 본거지는 어디인가? 그 병 의 뿌리가 있는 곳을 알 수만 있다면 이를 근절시킬 수 있을 텐데. 만일 악 자체가 악행이 아니라고 하면 선 자체도 선행은 아닐 것이다.(중략) 선은 정신이지 행위가 아니다. ( 5.죄의 원리 ) 23) 여기서 그는 노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 이 죄 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러한 것은 자신이 원해서 짓는 죄가 아니므로 그 본거지 가 있을 것이라 보고 그 병의 뿌리 를 찾아서 근절 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악 과 악행, 선 과 선행 은 서로 다르며, 선은 정신 이지 행위 가 아니라고 한다. 이 는 결국 죄 역시도 행위 가 아닌 정신 의 문제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죄 란 결국 무엇인가. 것 같고 작가인 간조의 실수로 보이며, 본고는 본문의 표기를 따른다. 20) 전집2의 구안록 목차 에는 주락설( 主 楽 説 ) (136쪽)로 표기됨. 21) 전집2의 구안록 목차 에는 楽 天 主 義 (138쪽)로만 나왔으나, 본문에는 옵티미즘( 楽 天 教 ), 附 유니테리언교 및 新 神 学 (178쪽)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는 편의상 전자를 따른다. 22) 전집2, 185쪽 23) 전집2, 186쪽
260 25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도둑질, 살인, 간음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지 죄 자체는 아니다. (중략) 그 러므로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다. ( 5.죄의 원리 ) 24) 하나님을 떠난 결과, 바로 이것이 죄 라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최종적 으로 5.죄의 원리 에서 간조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 한 그의 생각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시간을 두고 발표된 다음 글이다. 죄란 보통 도둑질, 살인, 간음, 위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죄 임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죄(sins)를 말하며 죄 그 자체(the sin)는 아니다. 성경은 전자를 위법이라 말하고 후자를 특히 죄라 고 한다. 죄는 많은 것이 아니고 하나이다. 죄 중의 죄가 있고 그 결과로서 많 은 죄가 생겼다. 그리고 이 죄는 무엇인가 하니, 그것은 반역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 지은 죄 가 반역죄인 것이다. 이것이 죄 중의 죄로, 모든 죄의 근본이 된다. ( 죄란 무 엇인가( 罪 とは 何 ぞや), 聖 書 之 硏 究, ) 25) sins 와 the sin 의 차이, 도둑질, 살인, 간음, 위증 과 같은 모든 죄 (sins) 는 행위의 문제일 뿐으로, 그 근원에는 죄 그 자체(the sin) 가 있는데, 이는 반역죄 로 사람이 하나님께 지은 죄 를 말한다. 결국, 간조는 인류의 조상이 뱀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26) 한 것이 인류의 죄의 시 작이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 자신이 곧 정신, 우주의 정신 이라고 역설한다. 그러기에 자신이 자선사업 과 같은 선행 27) 으로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으려고 한 것, 그 자체가 죄임을 알았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 28), 그에게 돌아가는 길 뿐이라고 더욱 확고하게 자신의 신앙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죄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된 간조의 사유는 성경 창세기에 등 24) 전집2, 189쪽 25) 전집17, 270쪽 26) 전집2, 190쪽 27) 이상 전집2, 206쪽 28) 전집2, 208쪽
261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57 장하는 인류타락의 심원한 의미 29) 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면서 인심내부의 분리(Internal Schism) 30), 즉, 인간이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된 것 역시 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한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이러한 종교적인 깨달음의 범 주에 머물지 않고 이것을 실생활에 접목시켜 5.죄의 원리 의 후반부 이하에 서 인간관계, 사회관계, 국제관계, 역사적 사실 등으로 실증적 설명을 시도한 다. 그리고 설명을 통해 인류가 보편적인 이상으로 여기는 것들이 실은 철저 한 허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역설한다. 3. 근대문명의 실체 예를 들면 인류가 미덕으로 삼는 책임감( 責 任 の 念 ) 은 실은 창조주를 떠 난 결과, 인류 개개인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게 되면서 생존경쟁의 마 당 으로 들어선 비극의 시작이며 그 결과로 역사가 네안더가 말하는 인심내 부의 분리(Internal Schism) 31) 가 시작돼 사람 자체가 수라장 으로 변질됐다 고 보는 것이 간조의 주장이다. 그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고 약품의 발명과 의학의 발달이라는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질병을 부르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인류는 하나님을 잃은 마음의 공허를 인간으로 채우려 하면서 부득이 하게 남을 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법률 이 생겨나면 서 오히려 육법 4629조 32) 가 설치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 역시 법의 발달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 없지만 간조는 이것을 하나님을 떠 난 결과 33) 에서 비롯된 필요악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이 밖에도 몽고의 왕 티무르 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자국의 영토 확장을 이루었거나 시도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 그러한 야망이 인간의 심령을 채울 수 없는 허망한 꿈임 을 보여주면서 인간 내면의 평안은 밖에서 구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29) 전집2, 190쪽 30) 전집2, 191쪽 31) 이상 전집2, 191쪽. 앞서 작품의 上 部 에서는 내심의 분리( 内 心 の 分 離 Internal Schism) (전 집2, 139쪽)로 표기했다. 32) 전집2, 192쪽 33) 전집2, 189쪽
262 25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한 결과 급기야 인류는 종교 라는 이름 아래, 같은 인간을 우상 으로 만들면서 교주정치 가 파생되고 그에 따른 압제 가 행해지면서 교회 는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 가장 먼 곳 34) 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 주장에는 불경사건( 不 敬 事 件 ) 이후, 동포와 제 도권 교회에 버림받은 자신의 울분이 어느 정도 실려 있는 것 같다. 35) 그런데 죄의 뿌리, 그 근원을 설명하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서 무엇보다 주 목하고 싶은 것은 근대라고 하는 현재를 살았던 그가 근대문명의 실체를 어 떻게 간파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이 아마도 5.죄의 원리 의 하이라이트 이자 작품 전체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가 유혈과 기아와 무수한 눈물로 얻은 오늘의 개명진보는 그가 반역으로 인해 잃은 심령의 독립과 완전을 보상하기에 족한가 (중략) 문명, 문명, 문명 이란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250만명의 상비군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60억만불을 지출하고 허무당을 배출하고 정신병자를 증가시키고 사회 를 점점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욕망 가운데 무한한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란 말인가. ( 5.죄의 원리 ) 36) 여기서 간조는 개명진보 란 인간의 심령의 독립과 완전 을 포기한 대가 로 얻은 것이고, 문명 이란 막대한 인력과 예산의 낭비 및 허무당 과 정 신병자 를 양산하면서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인류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함께 수록하지 못했지만 인용문 의 앞뒤 문장에는 문명 이라는 것이 인류의 경쟁을 통해 빚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쟁에 따른 진보는 일리가 있지만 백해가 있 다 고 하면서 경쟁적 진보는 인류전체의 손해요 이익이 아니며, 진보처럼 보이지만 퇴보 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후쿠자와 유키치( 福 沢 諭 吉 )가 文 明 論 之 槪 略 37) 에서 주장한 근대는 곧 문명 이라는 사상이 일본을 지배 34) 이상 전집2, 194쪽 35) 주지하는 바와 같이 1891년 1월 9일에 일어난 천황의 교육칙어 봉독식에서 천황부부의 초 상 앞에서 최고의 경례를 하지 않은 우치무라 간조는 이른바 불경사건 을 일으켜 재직 중 이던 제일고등중학교(일명 一 高 )를 쫓겨나다시피 사임하고 설상가상으로 동포와 교회들로 부터 불경한 이라고 공격을 받았다. 이후에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 다가 구안록 및 기타 작품을 집필하면서 문필활동에 전념하게 된 전후 사정 등은 졸고에 서 이미 고찰한 바 있다.(졸고, 참조) 36) 전집2, 195쪽
263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59 하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8) 구안록 에 보이는 문명 에 관한 그의 생각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문명관은 당시의 보편적인 문명관과 더욱 확실하게 선을 긋는 다. 예를 들어 1909년 2월에 聖 書 之 研 究 所 感 란에 발표한 단문을 보면 좀 더 분명하게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은 증기가 아니다, 전기가 아니다, 헌법이 아니다, 과학이 아니다, 철학이 아니다, 문학이 아니다, 연극이 아니다, 미술이 아니다, 문명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이다. 사람을 존중하는지, 진리를 사랑하는지, 주의에 충실한지, 정의에 용 감한지, 책임을 존중하는지, 의무를 다하는지, 문명의 정도는 이러한 여러 가 지 문제로 결정된다. 문명은 사람의 영혼에 있는 것이지 장식이나 기구나 편 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 문명의 해석( 文 明 の 解 ), 聖 書 之 硏 究, ) 39) 문명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 또는 문명은 사람의 영혼에 있는 것 등과 같은 표현은 앞서 선도 악도 죄도 정신 이지 행위 가 아니라고 한 구안록 의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보이는 그의 문명관은 자칫 문명 그 자체를 부정하는 듯이 보였던 구안록 의 문명관에서 진일보한 측면 을 보여준다. 즉, 간조는 문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진보를 말하 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적 상태, 영혼의 성장 여부와 관련된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정신을 배제한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류가 멸망 으로 치닫는 길임을 이미 내다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깨달음과 관련하여 다음 인용문은 그가 과거에, 내면에 앞서 외형적인 결과물을 먼저 추구한 탓에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자신의 다양한 행위적 노력의 실패담이다. 죄에 빠진 인간은 외부의 허식을 좋아한다. 먼저 밖을 고친 후에 내부로 향하 37)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문명론지개략 은 후쿠자와가 1875년에 발표한 문명론으로, 우치무 라 간조는 사사건건 그를 거침없이 비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예로 그는 담즙수적( 胆 汁 数 滴 ) ( 万 朝 報, )에서 후쿠자와가 퍼뜨린 배금주의 사상은 정신적 대혁명을 일으키 지 않으면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개탄한 바 있다.(전집4, 134쪽) 38) 참고로 나쓰메 소세키( 夏 目 漱 石 )가 일본의 문명개화에 회의를 품고 현대문명의 개화( 現 代 文 明 の 開 化 ) 를 발표한 것이 메이지( 明 治 )44년, 즉 1911년이고 보면, 이런 점에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간조의 선견을 엿볼 수 있다. 39) 전집16, 204쪽
264 26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습이다. 나는 사회풍기의 개량에 앞서서 국가경제의 증진에 주목했다. 진솔한 신도의 양성에 앞서서 이상적 기독교회의 설립을 계 획했다. 내 영혼이 구원받기 전에 성인들의 행위를 본받으려 애썼다. 그러나 자연의 순서에 어긋난 방법이 성공할 리 없으므로 나의 방책은 모두 실패했 다. ( 5.죄의 원리 ) 40) 간조는 인간은 죄에 빠진 결과로 외부의 허식, 다른 말로 행위 에 치 중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먼저 밖을 고친 후에 내부 로 향하는 순서가 뒤바뀌는 우를 범하게 되었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그런 어리석은 자의 대표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회풍기의 개량 에 앞서 국가경제의 증진 을 주목한 점, 진솔한 신도의 양성 에 앞서 기독교회의 설립을 계획 한 점, 영혼의 구원 에 앞서 성인 들의 행위 를 본받으려 했던 것은 모두 자연의 순서 를 어긴 것이어서 실패 로 끝났다고 자인한다. 여기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명백하다. 보통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먼저 밖을 고친 후에 내부로 향하는 것 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 이는 내부 즉, 정신을 고치는 내면의 개혁이 외부의 개혁에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국가이건 개인이건 모두에게 해당되 는 것으로,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이후에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강력한 추진력 을 발휘하면서 실행되기에 이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41) 우치무라 간조는 一 高 강단에서 쫓겨나, 지방의 작은 학교들을 전전하다가 교토에 3년여 거주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이때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1897년 1월에 요로즈초호( 万 朝 報 ) 신문사에 초 빙되어 이 신문의 영문란 주필로 언론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에 도쿄 독립잡지( 東 京 独 立 雑 誌 ) 를 직접 발행, 본격적인 사회시사평론활동을 하면서 주로 문필활동을 통한 일본인들의 사상개혁, 즉 일본인의 정신을 개혁하는 일에 사활을 걸게 된다. 42) 결국, 간조가 주장하는 것은 근대일본이 추구한 부국강병적 외형을 키우는 40) 전집2, 247쪽 41) 앞의 주35) 참조. 42) 도쿄독립잡지 지면을 통해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사회개혁은 근본적 개혁 으로, 이는 국민의 인생관 및 우주관의 개혁, 즉, 국민들의 내면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일찍이 야심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근본적 개혁( 根 本 的 改 革 ), 東 京 独 立 雑 誌, /전집6, 34쪽) (졸고, 참조)
265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61 문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인간의 정신, 즉 내면의 개혁으로, 그는 인간의 존엄, 윤리문제 등 다방면에 마음을 쏟으며 일본사회 및 일본인의 내면적 개 량에 앞장서려 했음을 알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졸고( )에서 미흡하나 마 한차례 살펴본 바와 같다. 43) 다시 말해, 우치무라 간조의 일생은 한마디로 근대일본이 팽개친 정신, 그것을 살고자 한 삶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4. 속죄의 원리 4-1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상에서 우치무라 간조가 간파한 근대, 나아가 근대일본이 추구한 외형적 물질문명의 허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와 별도로 본 장에서는 간조가 또 다 른 측면에서 간파한 근대 및 근대인의 특징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더불어 문 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구안록 및 그의 다른 작품을 참조하면서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간조가 생 각한 신앙 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을 살펴봄으로 써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다. 또한 기독교신자인 인간 우치무라 간조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앙 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간조는 신앙 따로, 삶 따로가 아닌, 신앙과 실생활의 일 치를 꿈꿨다. 그가 그토록 求 安, 즉 평안이 없는 삶에서 평안을 추구한 것은 결국 신앙과 실생활의 분리 속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 들에 대한 그 나름의 도전이기도 했다. 5.죄의 원리 말미에서 그는 죄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애를 즐기면서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소비하는, 이상적 인 인물 44) 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찾던 끝에 기쁜 소식을 접한다. 이어지 는 6.기쁜 소식 에서는 나사렛 예수(ナザレの 耶 蘇 ) 45) 를 믿는 믿음, 곧 신 43) 참고로 우치무라 간조는 구안록 을 쓴 이듬해, 청일전쟁의 의( 日 新 戦 争 の 義 ) (1894.9)라 는 글을 발표하며 일본의 개전론( 開 戦 論 )을 주장하는 등, 잠시 일본정부의 주변국 침략정책 과 보조를 맞춘 적이 있지만, 이 몇 년 뒤에 바로 맹렬한 반성( 猛 省 ) ( )을 발표, 자 신의 과오를 시정한 바 있고, 이후에는 계속적으로 비전론( 非 戦 論 ) 및 전쟁절대반대를 외치 며 근대일본이 추구한 방향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걸었다.(졸고, 참조) 44) 이상 전집2, 196쪽
266 26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앙 만이 죄에서 구원 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된 경위가 묘 사되어 있다. 계속해서 7.신앙의 해석 에는 그가 신앙 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가 당시 일본의 여타 신앙인들과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과 다른 삶을 살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신앙 의 국어사전적인 정의를 찾는 것은 본고의 내용과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간조가 생각한 신앙 의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 그와 대조해 보는 의 미에서 필요할 것 같아 조사해 보았다. 신앙 이란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 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ㆍ사랑ㆍ의뢰심을 갖는 일 46) 이라고 규정된다. 즉, 신앙 의 일반적인 대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초자연적인 절대자 로 보는 것이 사전적인 해석이 다. 그런데 우치무라 간조가 생각한 신앙은 이와 사뭇 다르다. 신앙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둘과 둘을 합하면 다섯이 된 다고는 이 우주가 사라져 버린다 해도 나는 믿을 수 없다. 거짓말하는 것이 선이라고는 물불의 고문을 받는다 해도 나는 믿을 수 없다.(중략) 신앙이란 믿 을 만한 일을 두려움 없이 주저 없이 믿는 것을 말한다. ( 7.신앙의 해석 ) 47) 우선, 신앙 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 이 아니라, 믿을 만한 일을 두려움 없이 주저 없이 믿는 것 이라고 하면서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한다. 소크라테스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보통 그리스인이 인간 보통의 진리 로 알고 있던 사실을 믿고 실행했을 뿐이다. (중략) 워싱턴이나 크롬웰이나 루 터나 웨슬리가 위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성실하게 보통도리를 믿은 데 있다. ( 7.신앙의 해석 ) 48) 이렇듯 신앙 은 소크라테스 를 비롯해, 워싱턴이나 크롬웰이나 루터나 웨슬리 등, 역사상의 유명한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 보통의 진리, 즉, 일반적인 삶의 보편적인 진리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45) 전집2, 201쪽 46)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검색일 ) 전집2, 202쪽 48) 전집2, 203쪽
267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63 다시 말해 신앙 이란 종교인들만의 특별한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통도리 를 믿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 이다. 두 번째로, 신앙 이란 남에게 허락하는 것, 곧 나를 버리고 남에게 맡기 는 것 49) 이라고 한다. 여기서 남 이란 문맥상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신앙의 대상인 기독교의 신, 즉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또한 나 이외의 타인을 수용하는 표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 에게 허락 하거나 맡기기 위해서는 나 를 버리는 것 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런데 우치무라 간조가 일본의 근대, 구체적으로는 근대인에게 절망한 이유가 다름 아닌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는 근대인의 특징이자 문제점에 대해 다음 과 같이 말한다. 그는 다소의 지식은 있다(주로 좁고 전문적인 지식이다). 다소간의 이상은 있 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현세를 존중한다. 그는 이른바 존경할만한 신사 이 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자기이다. 근대인은 자기중심의 인간이다. 자기의 발 달, 자기의 수양, 자기의 실현과 자기, 자기, 자기, 무엇이든 자기이다. 그러므 로 근대인은 실은 초대인( 初 代 人 )이다. 원시인이다. 원숭이가 처음으로 사람이 된 자이다. 자아가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 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에게 죽은 자가 아니다. ( 近 代 人, 聖 書 之 研 究, ) 50) 자기중심의 인간 이며 자아가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 자 인 근대인 을 구안록 에서는 피조물이면서 조물주의 흉내 51) 를 내는 인간이라고 묘사한 다. 그는 이런 근대인 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조는 자기중심 에서 벗어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에게 죽은 자 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 곧 신앙인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또한 이런 사람이야말로 바람직한 근대인 이라고 하는 그의 무언의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여 인류를 모든 죄에서 구한 전형적인 예를 그 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52) 에서 찾았다. 이렇게 간조에게 필연적으로 다 49) 이상, 전집2, 204쪽 50) 전집20, 239쪽 51) 전집2, 207쪽 52) 전집2, 210쪽
268 26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가온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매개로 한 기독교의 속죄론 53) 이었다. 4-2 속죄의 원리 인류의 연대책임 의식 속죄( 贖 罪 )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에서 죽음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고 하는 내용임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54) 간조는 속죄에 대해 구안록 의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작품의 초입인 2.내심의 분리 에서 은연중에 속죄의 핵심이 무엇인지 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무정한 세상의 정신은 기독교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서 악인의 피를 요구하신다.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은 우 리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류책임연대론( 人 類 責 任 聯 帶 論 )은 기독교의 교의이 자 근세 사회학의 결론이다. ( 2.내심의 분리 ) 55) 나는 나, 너는 너, 앞서 살펴본 근대인의 자기중심에서 비롯된 이러한 개 인주의는 속죄와 정반대 의식이다. 형제 가 지은 죄 를 곧 우리 가 범한 죄 로 보는 인류책임연대론 56) 은 속죄의 원리를 적용한 표현으로, 기독교 의 교의 이자 근세 사회학의 결론 이라고 이 도입부에서 먼저 규정했다. 그 리고 후반부인 9.속죄의 원리 57) 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속죄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 설과 교리적 해석이 제시되었지만 간 조는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속죄의 원리를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천하 보통의 도리 및 자연계 보통의 이치 로 증명하려고 하며, 이것은 앞서 신앙이란 인간의 보통도리 를 믿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비슷 한 입장이다. 53) 전집2, 218쪽 54) 속죄의 사전적인 해석은, 어떤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 받는 일,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 31575검색일 ) 전집2, 146쪽 56) 9.속죄의 원리 (전집2, 234쪽)에서는 인류연대책임 으로 칭함 57) 원문은 속죄의 철리( 贖 罪 の 哲 理 ) 이나 이하, 문맥상 좀 더 자연스러운 속죄의 원리 로 번 역함.
269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65 속죄라는 것의 원리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남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나는 먼저 모든 선인( 善 人 )은 속죄적인 성질을 갖는다 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연대책임( 聯 帶 責 任 )을 가지고 함께 연 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죄는 인류 전체가 이를 느끼고, 한 나라의 실정은 만 국의 손해가 된다. (중략)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의 죄를 지지 않으면 그 죄 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천하 보통의 도리이다. ( 9.속죄의 원리 ) 58) 그리스도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 즉 기독교 의 속죄의 핵심은 인류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스 도로 예표 되는 善 人, 다른 말로 죄 없는 자 가 죄 있는 자 의 죄를 짐 으로써 인류 상호의 죄를 속하는 연대책임, 간조는 이 연대책임 의식에 서 속죄의 첫 번째 원리를 찾는다. 그리고 속죄의 두 번째 원리는 자연계의 일반적인 이치에서 찾고 있다. 속죄의 원리란 자연계 보통의 이치이다. 광물계에서는 이것을 동력의 평균 (Equilibration of Forces)이라고 하고 생물계에서는 치유의 작용으로 나타나며 심령계에서는 속죄가 되는 것이다. 공기 중에 기압이 옅은 곳이 있으면 사방 의 공기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기압이 완전히 평균을 이루면 기체의 흐름이 멈춘다. 즉 짙은 부분은 옅은 부분을 위해 공기를 얼마 쯤 제공한다. (중략) 우리 중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회 전체는 그와 함께 괴로워하고 우리 쾌락의 일부를 바쳐서 수난당하는 사 람을 구해야 한다. 사회 일부의 손해는 전체가 이를 부담해야 한다. 건강한 부 분의 희생에 의해서만 병든 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 ( 9.속죄의 원리 ) 59) 속죄는 심령계 에 속한 것으로, 이는 명칭은 다를지언정 광물계 의 동 력의 평균, 생물계 의 치유의 작용, 기압 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공기 의 움직임 등과 동일한 원리라고 하며 속죄의 보편성을 논한다. 또한, 속죄란 사회적으로 보면 한 사람 의 고통을 사회 전체 가 함께 괴로워하며, 사회 일부 의 손해를 전체 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원리로, 건강한 부분의 희생 으로 사회 전체의 병든 부분을 치료 한다고 하는 이치이다. 58) 전집2, 234쪽 59) 전집2, 240쪽
270 26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9.속죄의 원리 후반부에서 간조는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라 인류전체의 책임을 지는 자 가 되는 것이야말로 사람 된 자의 무상의 영광 60) 이라고 했 다. 또한 속죄의 목적은 나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이라고 했다. 이것 은 내 노력이 아닌 대속자의 속죄로 인해서 완전해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그러므로 속죄란 도덕의 끝 이자 종교의 시작 61) 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죄를 속함 받은 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 아닌 세상을 구하는 힘 62) 이 되는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세상을 구하는 힘, 우치무라 간조의 이후의 인생은 한마디로 이것을 이루 기 위한 삶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후의 그의 삶 은 언론인으로, 사회개량가로, 성서학자로 차례로 변모하면서 그 나름의 방식 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때로는 세상과 치열한 전쟁도 불사한 전사( 戰 士 )의 삶 이었다고 할 수 있다. 5. 나오며 이상, 죄의 원리, 신앙의 해석, 속죄의 원리 등, 구안록 의 핵심내용을 살 펴보면서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을 진단해 보았고, 또한 그의 신앙과 실생활 의 일치라는 관점 하에, 그가 본 근대 및 근대문명, 근대인의 실체를 당시의 일본 및 세계의 상황과 결부지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본고는 우치무라 간조 가 자신의 신앙고백과 함께, 또는 그와는 별도로 구안록 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한마디로 정신의 회복, 즉, 근대 일본이 부국강병을 선택하면서 소 홀히 여긴, 그것이었다고 본다. 그는 죄도 선도 악도 정신 의 문제라고 했으 며, 근대도 문명도 정신 즉, 마음의 상태 라고 했다. 고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추구(즉, 求 安 )하기 위해서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같은 외형적 진보 의 성취에 앞서 인간 내면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며, 또한 근대인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인류 연대책임 의식을 가지고 인류 상호의 죄를 담당해 야 한다고 하는 것이 구안록 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임을 이상에서 살 펴보았다. 60) 전집2, 쪽 61) 이상 전집2, 243쪽 62) 전집2, 248쪽
271 우치무라 간조의 구안록( 求 安 録 ) (윤복희) 267 구안록의 마지막 장인 10.최종문제 에서 나는 평안을 얻는 길을 알았다. 그러나 길을 안 것이 반드시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고 하며, 다가올 인생 행로의 고단한 삶을 예견한 듯이 끝을 맺고 있다. 그의 예견대로 이후의 그 의 삶은 자신의 신앙을 실천에 옮김으로 세상을 구하는 힘 이 되고자 했으 나 그것이 얼마나 지난한 삶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일본의 현실, 그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텍스트 : 鈴 木 俊 郎 外 編 ( ) 内 村 鑑 三 全 集 全 40 卷, 岩 波 書 店 윤복희(2010.5) 内 村 鑑 三 論 청일, 러일 전쟁기의 一 斷 面, 日 本 學 報 83 輯, 韓 國 日 本 學 會 (2011.5) 정조미담 룻기( 貞 操 美 談 路 得 記 ) 論, 翰 林 日 本 學 18 輯, 翰 林 大 學 校 日 本 學 硏 究 所 ( ) 万 朝 報 영문란 주필, 우치무라 간조 不 敬 事 件 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比 較 日 本 學 25 輯, 漢 陽 大 學 校 日 本 學 國 際 比 較 硏 究 所 ( ) 内 村 鑑 三 의 사회개혁과 그 사상, 翰 林 日 本 學 21 輯, 翰 林 大 學 校 日 本 學 硏 究 所 亀 井 勝 一 郎 編 (1963) 現 代 日 本 思 想 大 系 5, 筑 摩 書 房 山 本 泰 次 郎 (1966) 信 仰 ㆍ 生 涯 ㆍ 友 情, 東 海 大 学 出 版 会 (1968) 内 村 鑑 三 の 根 本 問 題, 教 文 館 中 沢 洽 樹 (1971) 内 村 鑑 三 真 理 の 証 人, キリスト 教 夜 間 講 座 出 版 部 鈴 木 範 久 (1975) 内 村 鑑 三 とその 時 代, 日 本 基 督 教 団 出 版 局 渋 谷 浩 外 (1975) 内 村 鑑 三 基 督 信 徒 の 慰 求 安 録 内 村 鑑 三 研 究 4 号, キリスト 教 図 書 出 版 社 森 有 正 (1976) 内 村 鑑 三 ( 講 談 社 学 術 文 庫 ), 講 談 社 政 池 仁 (1977) 内 村 鑑 三 伝 再 増 補 改 訂 新 版, 教 文 館 太 田 雄 三 (1977) 内 村 鑑 三 ーその 世 界 主 義 と 日 本 主 義 をめぐってー, 研 究 社 出 版 安 藤 弘 (1978) 書 評 内 村 鑑 三 内 村 鑑 三 研 究 10 号, キリスト 教 図 書 出 版 社 鈴 木 範 久 (1984) 内 村 鑑 三 ( 岩 波 新 書 ), 岩 波 書 店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272 26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윤복희, (한자) 尹 福 姬, (영문) Yoon Bokee 소속 : 동덕여자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어과 부교수 논문영문제목 : Uchimura Kanzo s Kyuanroku 주소 : ( ) 서울 성북구 화랑로 13길 60 동덕여자대학교 일본어과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구안록 은 일반적으로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을 고백한 고백문학으로 본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고백문학의 범주를 넘어 그의 신앙과 삶의 일치를 보여준,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죄의 원리, 신앙의 해석, 속죄의 원리 등, 구안록 의 핵심내용을 분석하면서 간조가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실생활에 접목했는지, 근대라고 하는 현재를 살면서 그 가 근대문명 및 근대인의 실체를 어떻게 진단했는지 분석했다. 그는 근대일본이 추구한 외형적 진 보의 성취보다는 오히려 근대일본이 버린 정신 을 살고자 하여 끊임없이 인간 내면의 개혁을 주 장했다. 또한 근대인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연대책임 의식을 가지고 인류 상호의 죄를 속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구안록 이후의 그의 삶은 한마디로 세상을 구하는 힘 이 되고자 경주한 삶이었 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 우치무라 간조, 구안록, 속죄, 정신, 세상을 구하는 힘
273 269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ー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に 触 れる ー * 尹 在 石 Abstract This study aims to make the word texts of all poems in Hyakuyokaieisou. This is the first work to edit the word texts of all poems in Hyakuyokaieisou. Besides, it is written in modern language because it has been edited by the old poetic dictions and grammar that we can't read it easily. With this study, researchers can study and read Hyakuyokaieisou easily without checking out it in Library of the Japanese National Diet. The following are some special features that I found out in the process of making the word texts of all poems in Hyakuyokaieisou. In his poetic diction, he was better at imitating something rather than his contemporary poets. Especially, he used the diction of red colour many times. But he was not better at imitating the versification because he wrote just only one poem that has the first phrase of <wo>, and other contemporary writers also used a <Kire letter>, <ya>. And the dictions of not only <obashima> <kami> <kimi> <aka> <sode>, but also <mayu> <tokimasuna hito> seemed to be imitated under the influence of a poet, Yosano Akiko and the journal, Myozyou. 1) Keywords : Hyakuyoukaieisou, Yosano Akiko, Myouzyou 1.はじめに 石 川 啄 木 ( 以 下 啄 木 )の 初 期 文 学 を 論 じる 時 白 羊 会 詠 草 は 重 要 な 位 置 に あると 思 われる 白 羊 会 詠 草 にはロマン 主 義 時 代 の 啄 木 の 様 子 が 窺 われるか らであろう 白 羊 会 詠 草 は 白 羊 会 という 名 前 から 見 られるように 歌 会 白 羊 会 の 同 人 たちが 歌 った 一 連 の 歌 群 である 啄 木 もその 白 羊 会 の 同 人 の 一 人 であ る ところで 白 羊 会 詠 草 に 関 わる 研 究 をみると 当 然 であるように 啄 木 のみに 限 って 行 われて 来 たようである それは 白 羊 会 詠 草 を 詠 んだ 同 人 の 中 では 啄 木 だけが 文 学 者 の 道 を 歩 み 有 名 になったからであろう ところが この 時 期 の * Hanbat 大 学 校 日 本 語 科 教 授
274 27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啄 木 の 文 学 的 特 徴 をより 詳 しく 分 かるためには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を 見 る 必 要 があると 思 われる 現 在 白 羊 会 詠 草 における 啄 木 の 歌 は 石 川 啄 木 全 集 第 一 巻 1)にす べて 載 っているが その 他 の 白 羊 会 同 人 の 歌 は 岩 城 之 徳 石 川 啄 木 伝 2) に 白 羊 会 詠 草 ( 一 ) 夕 の 歌 が 載 っているだけである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一 部 が 活 字 化 されているだけである 本 稿 では 白 羊 会 詠 草 全 体 像 に 触 れるという 視 角 のもとで 次 の4つにつ いて 考 察 して 見 たい 先 ず 今 まで 活 字 化 されなかった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を 活 字 にしておき たい それは 資 料 的 な 価 値 もあるだろうが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を 見 ること から 見 られるものもあると 思 われるからである 二 つ 目 は 啄 木 研 究 史 では 当 然 のように 受 け 入 れていた 先 行 論 を 読 み 直 して みたい かつては 啄 木 の 歌 を 中 心 に 白 羊 会 詠 草 を 評 価 してきたが ここで は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を 視 野 にいれておきたい 三 つ 目 は 白 羊 会 詠 草 の 口 語 訳 である 白 羊 会 詠 草 に 使 われている 言 葉 や 文 法 は 現 代 とはかなりかけ 離 れているので その 口 語 訳 が 要 ると 思 われ る このような 試 みは 啄 木 や 啄 木 に 纏 わる 周 辺 研 究 のための 基 礎 的 な 土 台 になる と 思 われる 2.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の 活 字 化 白 羊 会 詠 草 は 短 歌 会 白 羊 会 の 同 人 たちが 詠 んだ 一 連 の 歌 群 である に ぎ た ま 白 羊 会 は 盛 岡 中 学 の 文 学 同 人 誌 爾 伎 多 麻 を 母 体 にして 結 成 されてい る その 同 人 は 盛 岡 中 学 の 五 年 生 の 金 田 一 京 助 細 越 省 一 ( 夏 村 ) 野 村 長 一 ( 菫 舟 ) 四 年 生 石 川 一 ( 翠 江 ) 3) 岡 山 儀 七 ( 残 紅 ) 三 年 生 では 瀬 川 深 ( 委 水 よさめ 楼 藻 外 ) 二 年 細 越 毅 夫 ( 夜 雨 夜 の 人 ) 金 子 定 一 などである 彼 らは そ 1) 岩 城 之 徳 編 (1978) 石 川 啄 木 全 集 第 一 巻 筑 摩 書 房 2) 岩 城 之 徳 (1985) 石 川 啄 木 伝 筑 摩 書 房 3) 石 川 一 は 啄 木 の 本 名 である この 時 期 啄 木 は 翠 江 という 筆 名 を 使 っている
275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71 れぞれの 歌 を 匿 名 にして 一 冊 子 に 纏 めて 回 覧 し 時 には 旧 公 園 の 小 沼 という 家 かじ の 二 階 に 集 まって 煎 餅 を 嚙 りながら 短 歌 の 運 座 を 試 みるというふう に 短 歌 を 詠 んでいたと 言 われる 4) 白 羊 会 詠 草 は 一 九 一 年 ( 明 治 三 四 ) 十 二 月 三 日 から 一 九 二 年 ( 明 治 三 五 ) 一 月 一 日 にかけて 岩 手 日 報 の 詩 歌 欄 文 苑 に 七 回 にかけて 連 載 され ている それを 見 ると 次 のとおりである 白 羊 会 詠 草 ( 一 ) 夕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三 日 ) 白 羊 会 詠 草 ( 二 ) 花 売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四 日 ) 白 羊 会 詠 草 ( 三 ) 牧 笛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十 二 日 ) 白 羊 会 詠 草 舞 姫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十 九 日 ) 白 羊 会 詠 草 ( 七 ) 煙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二 十 日 ) 白 羊 会 詠 草 追 悼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二 十 八 日 ) 白 羊 会 詠 草 新 年 雑 詠 ( 明 治 三 十 五 年 一 月 一 日 ) 以 上 の 歌 群 の 全 体 を 活 字 化 し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管 見 によると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が 活 字 になるのはこれがはじめてであろう 歌 の 羅 列 は 原 文 のとおりにした なお 原 文 に 使 われている 変 体 かなは 仮 名 に 旧 字 は 新 字 に 適 宜 直 した 文 苑 白 羊 会 詠 草 ( 一 ) 夕 の 歌 瀬 川 委 水 樓 笠 を 手 に 夕 野 を 行 く 旅 人 の 心 あるかな 萩 路 を 右 へ 絃 きるゝ 小 琴 いだきて 寝 亂 るゝ 京 の 女 あはれ 秋 の 野 のくれ 旅 に 暮 れぬ 月 にやどらむ 梅 園 の 梅 の 花 ちる 小 池 のほとり かいよする 枯 藻 冷 たき 門 川 をたが 愛 笛 ぞ 流 れきぬ 夕 さはとはに 絵 かゝじものと 夕 方 を 絵 絹 なげやる 門 川 の 水 小 林 花 郷 神 殿 の 森 にゆふべの 霧 こめて 白 き 鳩 居 る 旅 にして 見 ぬ 夕 寒 き 人 と 人 との 別 れまを 歌 筆 そむる 梅 の 間 の 机 夕 くれをひとり 戸 による 春 の 人 梅 の 香 慕 ふ 眉 のすゞしき 4) 前 掲 注 2)p.65
276 27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5) かつぎぬと 思 ひの 歌 のふしかきてとはにはなたじ 寒 き 世 の 夕 岡 山 残 紅 欄 に 夕 のそらを 眺 むればなぐさめ 四 方 に 星 は 朧 に 今 日 もまた 野 道 半 ばに 黄 昏 れぬめぐき 小 羊 うちもかねつゝ 今 すぎし 玉 藻 刈 船 かげよいづこ 暮 れゆく 磯 に 追 分 のふし なにとなく 昔 ゆかしき 夕 なり 君 よその 夜 の 琴 しらべずや 京 の 鐘 遠 くさぎりになりどよみ 四 条 五 条 に 夕 くれてゆく 石 川 翠 江 迷 ひくる 春 の 香 淡 きくれの 欄 に 手 の 紅 は 説 きますな 人 かりそめの 人 のすさびの 鑿 の 香 を 春 したひよる 夕 の 窓 かな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秋 の 川 にあしの 穂 白 き 夕 暗 を 主 なき 小 舟 野 末 に 去 りぬ 流 れにし 山 を 西 への 雲 の 末 に 思 ひこちたき 夕 そゞる 髪 夕 くれを 落 葉 に 人 の 笛 の 手 はわなゝく 指 にふし 亂 れけり 白 羊 会 詠 草 ( 二 ) 花 売 の 歌 岡 山 残 紅 市 によぶ 黄 菊 白 菊 色 も 香 も 里 の 乙 女 のそれに 似 よとぞ 花 をうりし 其 料 今 日 も 酒 にかへて 酔 ふとも 知 らず 今 日 も 酔 ひけり 花 うる 子 汝 がよぶ 市 はつらくとも 帰 らば 野 辺 に 露 も 清 けむ 小 林 花 郷 下 京 の 吹 雪 に 子 笠 かたむけて 花 うる 乙 女 笑 み 美 しき 京 の 鐘 の 冴 ゆるあしたを 花 売 の 露 の 桔 梗 朝 日 にさむき 花 負 ひて 市 にひさぐの 乙 女 子 が 朝 の 野 道 月 かげうすき 瀬 川 委 水 樓 花 をかゝえ 野 を 市 にゆく 乙 女 子 のかざす 芙 蓉 の 紅 くもあるかな 乙 女 いくつ 秋 の 百 花 美 はしく 朝 な 朝 なをおとづるゝかも 石 川 翠 江 しげ 笠 に 紐 は 濃 かりきくれないのわかしや 花 を 市 にうる 人 手 にかざす 花 は 紅 花 うりの 面 うつくしき 朝 もやの 野 路 5) 世 の 夕 が 岩 城 之 徳 石 川 啄 木 伝 筑 摩 書 房 (p.63)には 夜 の 夕 となっている ここに 指 摘 して 置 く
277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73 野 の 水 にそとぬすみ 見 し 水 姿 若 きを 人 の 花 に 頬 ずる 紫 を 市 にうる 人 秋 の 今 や 見 ませ 汝 が 道 くれないのもや( 年 若 き 桔 梗 売 の 娘 を 見 て) * 白 羊 会 詠 草 ( 三 ) 牧 笛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十 二 日 ) 朱 絃 そのふしは 樂 所 になれし 律 にあらず 牧 場 の 雲 を 精 舎 の 一 人 根 白 葦 の 茎 か 青 葉 か 吹 くふしの 月 より 洩 るゝ 牧 場 の 夕 笛 ふくに 吹 くにいつしか 牛 追 ふ 子 精 舎 を 三 里 深 野 に 入 れぬ 右 近 秋 はおそし 蔦 の 紅 葉 のあかきあらば 笛 のしとどめ 貫 かむとせしを 我 が 笛 の 旅 のなぐさに 興 もあらば 一 ふしはゆるせ 恋 ふく 縁 花 郷 牧 場 野 の 梅 に 夕 のあはき 小 雨 朧 を 人 の 春 に 笛 吹 く 調 強 き 笛 に 夕 の 桜 花 をいたみ 牧 場 を 遠 く 西 へいにぬ 人 翠 江 白 桃 に 眉 は 濃 かりき 春 の 野 に 牧 笛 追 ひて 西 に 去 りし 人 きくちば 黃 朽 葉 に 説 かじ 紅 くさ 笛 を 深 野 に 人 よ 春 うらどへな 箕 人 うらぶれて 秋 錦 野 にゆきかよひ 羊 追 ふ 子 ぞふしおもしろき まま 残 約 ( 残 紅 のはず) * 短 歌 1 首 原 文 の 状 態 がよくなくて 読 み 不 可 能 委 水 楼 霞 こめし 春 の 牧 場 を 小 牛 吠 へて 暮 れをかすかに 笛 の 音 のきこゆ 骸 子 行 く 春 の 羊 よぶ 笛 今 知 りぬ 説 かじなやみを 春 にもつ 吾 れ * 白 羊 会 詠 草 舞 姫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十 九 日 ) 箕 人 うら 若 きその 和 肌 ぞうそ 寒 き 亂 るゝこころあはれまひ 姫 金 扇 に 春 さゞめきて 舞 媛 がうすき 眉 毛 ぞ 舞 の 手 翳 せ にほつるゝ 髪 をかゞげては 額 たゞ 白 く 紅 絹 のまひ 袖 右 近 在 原 のおとゞの 恋 を 舞 ひふけて 黛 れしき 水 かゞみかな 紅 さすになれたる 指 をかゞなへて 眉 そる 年 を 若 き 思 ひぞ
278 27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骸 子 歌 ひそまひそ 桃 いと 白 き 春 やおそき 団 扇 そとかせ 京 のまひ 姫 花 郷 そゞろ 思 ひ 舞 の 扇 の 紅 を 京 の 子 わかくほゝえむそむく 残 紅 老 ひしれて 昔 の 吾 を 忍 ひけり 亂 れ 小 菊 のまひ 衣 のそで 翠 江 まひをへて 乱 れし 髪 をそとつくる 京 の 子 はしきわた 殿 の 月 * 白 羊 会 詠 草 ( 七 ) 煙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二 十 日 ) 委 水 楼 血 まれし 野 もせのくれの 風 なぎて 煙 さ 迷 ふ 破 城 のわたり 春 をゆく 君 やいくえの 雲 のをちいざよふ 煙 やゝにまへゆく 裏 戸 出 て 千 町 田 に 見 る 夕 月 の 影 を 朧 ろに 浅 間 の 煙 箕 人 こ 煙 罩 めて 春 さながらに 夕 戸 出 の 濃 紫 になびく 夕 凩 の 海 彩 雲 の 亂 るゝ 春 野 牧 野 ゆくにけむりたなびく 村 長 が 門 夕 煙 その 萩 の 戸 に 新 月 の 月 のおばしまたがはりかけし 朱 絃 艶 なりやかざす 手 額 にけむりさえるなれぬかゝざの 亂 れ 銀 杏 よ その 渋 茶 供 すと 煙 たてし 都 なまりの 人 なつかしき 翠 江 紺 青 の 雲 雀 たちゆく 春 のそらに 煙 かすれて 森 の 香 深 き 残 紅 桐 壷 に 香 のけふりの 末 きえて 夕 ちりしきる 木 蓮 の 花 花 郷 白 桃 に 煙 ただよふ 夕 野 路 を 人 の 子 の 笛 わかき 調 べ * 白 羊 会 詠 草 追 悼 の 歌 ( 明 治 三 十 四 年 十 二 月 二 十 八 日 ) 友 なる 島 の 君 の 父 君 いぬるひ 病 みて 逝 かせられぬはかりがたなきつゆの 命 とじはい へさてもあじきなの 世 やかゝかゝ 花 郷 子 それ 神 のなさけかなやむ 人 の 子 の 命 うばひぬ 梅 ちるゝ 夕 香 のあはき 梅 の 霞 に 人 の 世 の 運 命 はこれか 花 片 くだし
279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75 さり 乍 梅 のみ 国 の 朧 夜 を 歌 に 佇 み 君 やおはさむ 委 水 楼 はちす 流 れゆく 蓮 とも 見 る 常 秋 を 波 にけのこる 香 しるしも たどりゆく 暗 は 遠 けど 和 田 津 見 のはてをみ 星 の 影 あきらけく 玉 光 る 清 水 のわたり 花 も 枯 れしさぎりの 奥 の 夢 を 安 かれ 残 紅 なき 姉 にのこひし 涙 かはかぬに 悲 しさだめにまた 人 になく ふりかけし 涙 の 花 の 白 菊 そ 天 にありてふ 君 ようけませ 夕 露 にすさぶ 小 笛 のたゆたひてはかなし 人 のみ 名 仰 ぎ 見 し 朱 絃 紫 の 雲 うす 色 にひくほとりしろき 翅 の 君 やたのしき 悲 しみの 夕 の 鐘 はなり 初 めぬ 幾 つうつもの 二 十 二 の 君 痩 せし 頬 は 歌 になぐさめ 悲 みの 運 命 は 今 に 説 きますな 人 翠 江 木 蓮 の 花 のひと 片 ちりて 香 の 煙 りのむなじき 今 や 紫 にけなむうつゝ 雲 の 色 つぎりし 今 の 星 のさびしき たなぞこにちりしま 玉 の 露 の 香 にうつゝはとかじ 黄 朽 葉 の 今 * 白 羊 会 詠 草 新 年 雑 詠 ( 明 治 三 十 五 年 一 月 一 日 ) 金 矢 朱 絃 桐 壷 の 絃 のたえしまや 簾 そと 捲 きし 紅 梅 の 衣 紅 梅 は 春 のおごりかさいへ 人 屠 蘇 の 微 酔 の 何 れ 栄 かる 鶯 に 朝 なつかしき 欄 や 初 日 うらうら 紅 梅 のかほり 鶯 は 呉 竹 出 でて 梅 によぢぬ 若 きしらべの 今 朝 あたらしき 君 や 吾 や 同 じ 此 年 の 巡 礼 を 遠 くも 行 かず 恋 の 詩 誦 する 宵 とりし 年 の 一 つを 如 く 呼 べは 十 九 のこの 春 はづかしの 吾 呪 はしの 鐘 と 許 りはおぼすなよかすみ 乍 らの 今 朝 の 響 きは 瀬 川 委 水 楼 香 烟 る 殿 の 欄 干 初 日 さして 暁 清 く 梅 さけるかも 雪 をふくむ 山 の 朝 雲 かぎろひて 年 立 つ 宿 の 鶯 若 し 潮 よする 浜 を 鴎 のとひかへりかへるみ 空 も 初 日 のぼるも つぼみ 書 き 初 めの 筆 や 洗 はむ 背 戸 川 を 莟 なからの 紅 梅 流 る 年 迎 る 詩 をかきけり 消 えにけり 門 の 川 水 星 かげ 清 き
280 27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村 におれば 人 も 訪 ひこず 新 年 を 吾 宅 の 早 梅 流 れにちるゝ なぎ 漁 りする 小 舟 も 見 えず 年 立 ては 荒 磯 の 千 鳥 夕 凪 になく 岡 山 残 紅 紫 のふりの 袂 にうけて 見 つ 年 立 つ 今 日 の 曙 の 雪 吹 雪 する 小 野 の 野 寺 に 吾 はかれど 春 としいへは 先 づ 屠 蘇 の 味 に 年 の 春 春 の 初 日 の 初 手 前 吾 妹 よさらは 松 の 雪 煮 む 京 の 里 の 春 こそ 知 らぬ 今 日 もまた 梅 さく 宿 の 翁 と 酔 ひし 階 に 軒 端 の 梅 の 歌 を 思 ふ 眉 うら 若 き 殿 のきん 達 若 水 に 絵 筆 きよめてうつさはや 妹 か 手 活 の 白 梅 の 花 願 くは 吾 守 る 神 よ 願 はくはよきを 給 への 年 の 初 夢 春 といふにこはまた 淋 し 水 仙 の 花 そさひしき 若 尼 の 留 守 石 川 翠 江 夜 のみぞ 屠 蘇 の 香 の 深 ふして 微 笑 はしき 舞 子 の 袖 や こと 箏 の 音 は 月 に 冴 えたり 桐 壷 の 宵 の 勅 題 に 歌 なき 春 や おこそかに 取 る 手 わなゝく 新 春 の 宵 の 燭 台 に 梅 の 花 ちる 春 や 濃 きさゝめきつきし 紅 梅 の 窓 の 絃 の 音 灯 うすき 呉 竹 の 窓 の 新 春 鶯 の 小 羽 ふるふよ 淡 雪 のそら まゆずみ 屠 蘇 の 香 に 思 ひ 出 うれし 奈 良 の 宿 にうす 黛 の 朝 十 九 の 君 のとかなる 梅 の 小 窓 に 小 扇 の 歌 にほゝえむ 舞 衣 の 君 はね ぬか に ねりぎぬ 紅 梅 や 羽 子 つく 人 の 額 にちりて 惡 くゝもあらす 練 絹 の 裾 かつて 岩 城 之 徳 は 宮 内 庁 書 陵 部 所 蔵 の 岩 手 日 報 より 白 羊 会 詠 草 を 新 資 料 として 発 見 し それの 資 料 的 価 値 や 意 味 などを 言 及 し た 6) しかし 白 羊 会 詠 草 を 活 字 にしたのは 啄 木 の 歌 だけであり 他 の 歌 は 参 考 までに 一 部 に 限 り 活 字 にした それは おそらく 当 時 は 啄 木 を 天 才 詩 人 として 称 える 啄 木 研 究 の 風 土 の 中 で 啄 木 の 歌 だけが 重 要 であって 他 の ものは 岩 城 之 徳 が 言 うように 参 考 の 意 味 しかなかったからだと 思 われる 以 後 白 羊 会 詠 草 に 関 する 研 究 は 岩 城 之 徳 の 言 及 の 領 域 を 越 えることはなかったよ うに 思 われる これについては 後 述 する なお 岩 城 之 徳 が 新 資 料 として 発 見 した 宮 内 庁 書 陵 部 所 蔵 の 岩 手 日 報 は 現 在 日 本 国 会 図 書 館 に 移 管 されている 6) 前 掲 注 2) p.64
281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先 行 論 の 読 み 直 し 白 羊 会 詠 草 に 関 する 先 行 論 を 見 ると 大 きく 一 つの 流 れしかないように 思 われ る 啄 木 研 究 のリーダ 的 位 置 にあると 思 われる 岩 城 之 徳 は これら 白 羊 会 同 人 の 詠 草 はいずれも 新 詩 社 風 の 作 風 で 明 星 や 晶 子 の みだれ 髪 の 強 い 影 響 を 受 けている と 書 いている 今 井 泰 子 は 晶 子 の 影 響 を 指 摘 しながらもより 突 っ 込 んで 次 のように 言 う 啄 木 の 一 年 下 級 であった 岡 山 儀 七 が 後 年 に 白 羊 会 ( 校 内 短 歌 結 社 )の 詠 草 集 を 手 に した 時 の 驚 きとして 書 いている その 当 時 の 啄 木 の 歌 は 才 気 煥 発 と 云 つたやうな 訳 で 外 の 同 人 のとは 名 前 を 見 なくとも 一 見 区 別 が 出 來 るやうに 思 つていたが 見 た 処 ではどれが 誰 のか 一 切 見 当 がつかない ( 尤 もその 集 には 作 者 の 名 がしるしてゐ なかつた ) 唯 どれもこれも 何 のことを 歌 つたのやら 解 らず とにかく 三 十 一 字 音 に だけはなつていると 云 ふやうな 厄 介 な 歌 ばかりだつた つまり どれもこれも が 晶 子 の 擬 態 だったというわけでる 晶 子 に 依 拠 して 人 々が 三 十 一 字 音 を 並 べる ことに 腐 心 した 時 代 であった そうした 時 代 に 岡 山 らが 啄 木 の 歌 は 才 気 渙 発 と 感 じたとすれば 啄 木 の 晶 子 模 倣 は 抜 きん 出 て 巧 緻 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7) 今 井 泰 子 が 言 うように 白 羊 会 詠 草 は どれもこれも が 晶 子 に 依 拠 して 三 十 一 字 音 を 並 べていた 模 倣 的 習 作 の 段 階 であったといえ る 当 時 は 明 星 調 の 浪 漫 的 風 潮 とりわけ 与 謝 野 晶 子 の 歌 が 多 くの 文 学 青 年 に 影 響 を 及 ぼした 時 代 で 啄 木 を 含 めた 白 羊 会 の 同 人 たちもそういった 文 学 青 年 の 中 にいたのであるが 啄 木 だけは 周 囲 の 短 歌 好 きな 仲 間 らより 晶 子 模 倣 は 抜 きん 出 て 巧 緻 だった のであろう 晶 子 影 響 を 見 るのは 昆 豊 においても 同 じである 彼 は 白 羊 会 詠 草 期 の 啄 木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言 う 晶 子 歌 の 模 倣 から 啄 木 歌 が 出 発 していたことは 周 知 の 事 実 だが 僅 か 一 ヶ 月 余 りの 間 に 晶 子 の 語 彙 韻 律 語 法 句 法 を 学 びとって その 習 作 を 発 表 している 例 は 同 年 代 歌 人 に 見 ることができない 希 有 な 例 といえよう 8) 7) 今 井 泰 子 (1974) 石 川 啄 木 論 塙 書 房 p.57 8) 昆 豊 (1985) 警 世 詩 人 石 川 啄 木 新 典 社 p.88
282 27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昆 豊 は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を 指 摘 しながらも その 模 倣 が 優 れていることを 同 年 代 歌 人 に 見 ることができない 希 有 な 例 と 評 価 している 今 井 泰 子 が 晶 子 模 倣 は 抜 きん 出 て 巧 緻 だった と 評 価 したのと 同 じであろう 以 後 こういった 先 行 論 の 流 れは 変 わることなく 現 在 に 至 るといえる 管 見 によ ると 白 羊 会 詠 草 の 歌 に 関 する 評 価 は 岩 城 之 徳 や 今 井 泰 子 昆 豊 の 指 摘 の 範 疇 のなかにあるように 思 われる 筆 者 も 今 まで 白 羊 会 詠 草 について 岩 城 や 今 井 昆 の 指 摘 を 当 然 のように 受 け 止 めて 来 た 白 羊 会 詠 草 の 歌 を 詳 しく 分 析 した 上 で 今 井 泰 子 と 昆 豊 の 指 摘 を 受 け 止 めたのではなく 啄 木 研 究 史 おいての 常 識 であったからである ところが 今 回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を 活 字 化 し また 口 語 訳 するにあた り 白 羊 会 詠 草 の 先 行 論 を 読 み 直 してみることにした 読 み 直 す 方 法 は 前 述 の 今 井 泰 子 と 昆 豊 が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の 根 拠 と して 提 示 した 欄 髪 君 紅 袖 などの 語 彙 がよく 使 われている ことと 9) 夕 くれを 落 葉 に 人 の 笛 の 手 はわなゝく 指 にふし 亂 れけり の 初 句 の を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の 三 句 切 れの 切 れ 字 の や のような 句 法 を 使 っていること 10) を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に 適 用 してみた 先 ず 欄 髪 君 紅 袖 などの 語 彙 を 使 った 歌 について 調 べ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欄 岡 山 残 紅 欄 に 夕 のそらを 眺 むればなぐさめ 四 方 に 星 は 朧 に 石 川 翠 江 迷 ひくる 春 の 香 淡 きくれの 欄 に 手 の 紅 は 説 きますな 人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箕 人 夕 煙 その 萩 の 戸 に 新 月 の 月 のおばしまたがはりかけし 金 矢 朱 絃 鶯 に 朝 なつかしき 欄 や 初 日 うらうら 紅 梅 のかほり 瀬 川 委 水 楼 香 烟 る 殿 の 欄 干 初 日 さして 暁 清 く 梅 さけるかも 髪 石 川 翠 江 流 れにし 山 を 西 への 雲 の 末 に 思 ひこちたき 夕 そゞる 髪 箕 人 にほつるゝ 髪 をかゞげては 額 たゞ 白 く 紅 絹 のまひ 袖 翠 江 まひをへて 乱 れし 髪 をそとつくる 京 の 子 はしきわた 殿 の 月 9) 前 掲 注 9)p.90 10) 前 掲 注 9)p.92
283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79 君 岡 山 残 紅 委 水 楼 花 郷 子 残 紅 朱 絃 石 川 翠 江 紅 石 川 翠 江 瀬 川 委 水 樓 石 川 翠 江 右 近 翠 江 箕 人 右 近 花 郷 金 矢 朱 絃 瀬 川 委 水 楼 石 川 翠 江 袖 箕 人 残 紅 石 川 翠 江 なにとなく 昔 ゆかしき 夕 なり 君 よその 夜 の 琴 しらべずや 春 をゆく 君 やいくえの 雲 のをちいざよふ 煙 やゝにまへゆく さり 乍 梅 のみ 国 の 朧 夜 を 歌 に 佇 み 君 やおはさむ ふりかけし 涙 の 花 の 白 菊 そ 天 にありてふ 君 ようけませ 紫 の 雲 うす 色 にひくほとりしろき 翅 の 君 やたのしき 悲 しみの 夕 の 鐘 はなり 初 めぬ 幾 つうつもの 二 十 二 の 君 まゆずみ 屠 蘇 の 香 に 思 ひ 出 うれし 奈 良 の 宿 にうす 黛 の 朝 十 九 の 君 のとかなる 梅 の 小 窓 に 小 扇 の 歌 にほゝえむ 舞 衣 の 君 迷 ひくる 春 の 香 淡 きくれの 欄 に 手 の 紅 は 説 きますな 人 花 をかゝえ 野 を 市 にゆく 乙 女 子 のかざす 芙 蓉 の 紅 くもあるかな 手 にかざす 花 は 紅 花 うりの 面 うつくしき 朝 もやの 野 路 秋 はおそし 蔦 の 紅 葉 のあかきあらば 笛 のしとどめ 貫 かむとせしを きくちば 黃 朽 葉 に 説 かじ 紅 くさ 笛 を 深 野 に 人 よ 春 うらどへな にほつるゝ 髪 をかゞげては 額 たゞ 白 く 紅 絹 のまひ 袖 紅 さすになれたる 指 をかゞなへて 眉 そる 年 を 若 き 思 ひぞ そゞろ 思 ひ 舞 の 扇 の 紅 を 京 の 子 わかくほゝえむそむく 桐 壷 の 絃 のたえしまや 簾 そと 捲 きし 紅 梅 の 衣 つぼみ 書 き 初 めの 筆 や 洗 はむ 背 戸 川 を 莟 なからの 紅 梅 流 る 春 や 濃 きさゝめきつきし 紅 梅 の 窓 の 絃 の 音 灯 うすき はね ぬか に ねりぎぬ 紅 梅 や 羽 子 つく 人 の 額 にちりて 惡 くゝもあらす 練 絹 の 裾 にほつるゝ 髪 をかゞげては 額 たゞ 白 く 紅 絹 のまひ 袖 老 ひしれて 昔 の 吾 を 忍 ひけり 亂 れ 小 菊 のまひ 衣 のそで 夜 のみぞ 屠 蘇 の 香 の 深 ふして 微 笑 はしき 舞 子 の 袖 や 以 上 を 同 人 名 ごとに 表 にまとめ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284 28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同 人 名 欄 髪 君 紅 袖 合 計 岡 山 残 紅 石 川 翠 江 箕 人 金 矢 朱 絃 瀬 川 委 水 楼 花 郷 子 右 近 2 2 なお 今 井 泰 子 と 昆 豊 の 指 摘 した 欄 髪 君 紅 袖 の 他 に 眉 ときますな 人 も 与 謝 野 晶 子 や 明 星 の 影 響 や 模 倣 から 使 われたものと 思 われる 次 はその 例 である ときますな 人 朱 絃 痩 せし 頬 は 歌 になぐさめ 悲 みの 運 命 は 今 に 説 きますな 人 石 川 翠 江 迷 ひくる 春 の 香 淡 きくれの 欄 に 手 の 紅 は 説 きますな 人 眉 翠 江 白 桃 に 眉 は 濃 かりき 春 の 野 に 牧 笛 追 ひて 西 に 去 りし 人 箕 人 金 扇 に 春 さゞめきて 舞 媛 がうすき 眉 毛 ぞ 舞 の 手 翳 せ 右 近 紅 さすになれたる 指 をかゞなへて 眉 そる 年 を 若 き 思 ひぞ 次 に 夕 くれを 落 葉 に 人 の 笛 の 手 はわなゝく 指 にふし 亂 れけり のように 初 句 の を を 使 った 歌 について 調 べ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小 林 花 郷 夕 くれをひとり 戸 による 春 の 人 梅 の 香 慕 ふ 眉 のすゞしき 石 川 翠 江 夕 くれを 落 葉 に 人 の 笛 の 手 はわなゝく 指 にふし 亂 れけり 三 番 目 に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のように 三 句 切 れの 切 れ 字 の や を 使 った 歌 について 調 べ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石 川 翠 江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紫 を 市 にうる 人 秋 の 今 や 見 ませ 汝 が 道 くれないのもや 骸 子 歌 ひそまひそ 桃 いと 白 き 春 やおそき 団 扇 そとかせ 京 のまひ 姫 金 矢 朱 絃 桐 壷 の 絃 のたえしまや 簾 そと 捲 きし 紅 梅 の 衣 鶯 に 朝 なつかしき 欄 や 初 日 うらうら 紅 梅 のかほり 岡 山 残 紅 若 水 に 絵 筆 きよめてうつさはや 妹 か 手 活 の 白 梅 の 花
285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81 以 上 のように 先 行 論 を 詳 しく 調 べて 見 た 先 行 論 に 指 摘 されているように 啄 木 は 語 彙 の 面 では 同 年 代 歌 人 に 比 べて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に 抜 きん 出 て いると 思 われる 特 に 啄 木 は 紅 という 言 葉 をよく 使 っていたことが 分 かる しかし 初 句 の を や 三 句 切 れの 切 れ 字 の や のような 短 歌 の 作 法 にお いては 啄 木 だけが 抜 きん 出 て いるとは 言 えない 上 で 見 たように 啄 木 が 初 句 の を を 使 った 歌 は 一 首 しかなく また 三 句 切 れの 切 れ 字 の や を 使 った 歌 は 啄 木 だけでなく 他 の 同 人 もよく 使 っていたからである 11) また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の 中 で 各 同 人 は 何 首 を 詠 んでいるかについて も 調 べてみた 作 者 別 にまとめてみ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瀬 川 深 ( 委 水 樓 ) 夕 の 歌 五 首 花 売 の 歌 二 首 牧 笛 の 歌 一 首 煙 の 歌 三 首 追 悼 の 歌 三 首 新 年 雑 詠 七 首 合 二 十 一 首 白 羊 会 詠 草 七 回 すべて 掲 載 小 林 茂 雄 ( 花 郷 ) 夕 の 歌 四 首 花 売 の 歌 三 首 牧 笛 の 歌 二 首 舞 姫 の 歌 一 首 煙 の 歌 一 首 追 悼 の 歌 三 首 合 十 四 首 岡 山 儀 七 ( 残 紅 ) 夕 の 歌 五 首 花 売 の 歌 三 首 牧 笛 の 歌 一 首 舞 姫 の 歌 一 首 煙 の 歌 一 首 追 悼 の 歌 三 首 新 年 雑 詠 八 首 合 二 十 二 首 白 羊 会 詠 草 七 回 すべて 掲 載 石 川 一 ( 翠 江 ) 夕 の 歌 六 首 花 売 の 歌 四 首 牧 笛 の 歌 二 首 舞 姫 の 歌 一 首 煙 の 歌 一 首 追 悼 の 歌 三 首 新 年 雑 詠 八 首 合 二 十 五 首 白 羊 会 詠 草 七 回 すべて 掲 載 金 矢 七 郎 ( 朱 絃 ) 牧 笛 の 歌 三 首 煙 の 歌 二 首 追 悼 の 歌 三 首 新 年 雑 詠 七 首 合 十 五 首 11) 初 句 の を 使 った 例 がただ 一 首 であるのに この 一 つの 例 を 持 って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である というのは 言 い 過 ぎではないかという 考 えもありそうだが 当 時 の 啄 木 の 他 の 歌 にも 初 句 の を 使 った 例 があり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と 言 うのが 定 説 である
286 28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おさかず 野 村 長 一 ( 右 近 ) 牧 笛 の 歌 二 首 舞 姫 の 歌 二 首 合 四 首 猪 川 浩 ( 箕 人 ) 骸 子 牧 笛 の 歌 一 首 舞 姫 の 歌 三 首 煙 の 歌 三 首 合 七 首 牧 笛 の 歌 一 首 舞 姫 の 歌 一 首 合 二 首 白 羊 会 詠 草 は 前 記 したように 八 人 が 七 回 連 載 されているが 全 回 にかけて 掲 載 している 人 は 瀬 川 深 ( 委 水 樓 ) 岡 山 儀 七 ( 残 紅 ) 石 川 一 ( 翠 江 )こと 石 川 啄 木 の 三 人 である また 七 回 の 歌 の 合 計 を 見 ると 啄 木 が 二 十 五 首 でもっとも 多 いこ とが 分 かる 白 羊 会 詠 草 において 啄 木 はもっとも 主 導 的 な 役 割 または 短 歌 に 才 能 を 見 せていたと 言 えよう 一 方 白 羊 会 詠 草 を 詠 んだ 人 の 中 には 骸 子 という 筆 名 があるが 骸 子 の 本 名 は 分 からない 如 上 の 白 羊 会 詠 草 を 詠 んだ 白 羊 会 の 同 人 たちの 名 前 を 詳 しく 調 べたのは 岩 城 之 徳 であり 以 後 後 進 の 啄 木 研 究 者 は 岩 城 の 伝 記 研 究 のおかげで 白 羊 会 詠 草 に 纏 わる 多 様 な 問 題 を 追 求 して 来 たとい えるが 骸 子 については 岩 城 之 徳 の 研 究 にも 漏 れていることから 12) 当 分 は 岩 城 之 徳 のような 優 れた 伝 記 や 資 料 研 究 家 の 出 現 を 待 つしかないだろう これに ついては 筆 者 もこれからの 課 題 にしておきたい 4. 啄 木 の 歌 の 口 語 訳 白 羊 会 詠 草 は 言 葉 や 文 法 など 現 代 語 とはかなりかけ 離 れているので その 口 語 訳 が 要 ると 思 われる これらの 試 みは 啄 木 や 啄 木 周 辺 研 究 のための 基 礎 的 な 研 究 の 土 台 になるだろう 本 稿 では 紙 面 の 都 合 でとりあえず 啄 木 のものに 限 っ た 夕 の 歌 * 迷 ひくる 春 の 香 淡 きくれの 欄 に 手 の 紅 は 説 きますな 人 夕 暮 れ 淡 い 春 の 香 りの 迷 い 漂 う 欄 干 にもたれ 手 に 持 つ 紅 い 花 のように 熱 い 12) 残 念 なことであるが 岩 城 之 徳 は 現 在 亡 くなっている
287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83 恋 を 告 白 なさってはなりません * かりそめの 人 のすさびの 鑿 の 香 を 春 したひよる 夕 の 窓 かな 仮 のなぐさめにと 鑿 を 持 つ 人 の その 木 彫 りの 香 りを 春 もしたい 寄 るような 夕 暮 れの 窓 辺 であるよ * 海 棠 に 春 の 雨 濃 きおばしまや 染 めむの 歌 の 絹 なき 夕 海 棠 の 花 に 春 雨 がしきりに 降 りそそいでいる 欄 干 その 美 しい 有 様 を 歌 に 詠 みたいのに 書 く 絹 がない 味 気 ない 夕 であるよ * 秋 の 川 にあしの 穂 白 き 夕 暗 を 主 なき 小 舟 野 末 に 去 りぬ ゆうやみ 秋 の 夕 暗 せまる 頃 野 川 の 岸 には 芦 の 穂 が 白 しろじろ 々 と 続 いて その 中 を 誰 のも のか 知 れぬ 小 舟 が 遠 く 去 って 行 った * 流 れにし 山 を 西 への 雲 の 末 に 思 ひこちたき 夕 そゞる 髪 山 の 峯 を 西 へと 流 れ 行 く 夕 暮 れの 雲 の 果 に 何 やら 重 苦 しい 思 いをそそられ る 髪 の 毛 * 夕 くれを 落 葉 に 人 の 笛 の 手 はわなゝく 指 にふし 亂 れけり 夕 暮 れ 落 葉 しきりに 降 り 止 まず 笛 吹 く 人 の 手 指 もふるえて 曲 も 乱 れてし まうのだった 花 売 の 歌 * しげ 笠 に 紐 は 濃 かりきくれないのわかしや 花 を 市 にうる 人 市 で 花 を 売 る 娘 の そのすげ 笠 を 結 んだ 紐 の 濃 い 紅 色 がなんとも 若 々しいこ とよ(しげ 笠 ーすげ 笠 の 東 北 なまりであろう) * 手 にかざす 花 は 紅 花 うりの 面 うつくしき 朝 もやの 野 路 くれない 花 売 る 娘 の 手 にかざす 花 は 紅 顔 だちもまた 美 しい 朝 もやこめる 野 路 のみち であ る * 野 の 水 にそとぬすみ 見 し 水 姿 若 きを 人 の 花 に 頬 ずる 野 川 の 水 に 映 る 姿 をそっと 盗 み 見 うら 若 い 美 しさに 酔 いしれて 水 辺 の 花 に 頬 ずりするのだった * 紫 を 市 にうる 人 秋 の 今 や 見 ませ 汝 が 道 くれないのもや( 年 若 き 桔 梗 売 の 娘 を 見 て) ききょう 紫 の 桔 梗 を 売 っていた 娘 さんよ 秋 の 紅 葉 の 季 節 を 迎 えあなたの 道 には 今 紅 の 靄 が 立 ちこめている( 年 若 き 桔 梗 売 の 娘 を 見 て)
288 28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牧 笛 の 歌 * 白 桃 に 眉 は 濃 かりき 春 の 野 に 牧 笛 追 ひて 西 に 去 りし 人 白 桃 の 花 かげに 濃 い 眉 の 美 しかったあの 人 春 の 野 に 牧 笛 を 追 って 遠 く 西 へ 去 ってしまった きくちば * 黃 朽 葉 に 説 かじ 紅 くさ 笛 を 深 野 に 人 よ 春 うらどへな くちば 黄 色 い 枯 朽 葉 の 時 節 には 恋 を 語 らず 青 草 深 いときの 野 原 に 草 笛 を 吹 いて 恋 を 探 してごらんなさい 舞 姫 の 歌 * まひをへて 乱 れし 髪 をそとつくる 京 の 子 はしきわた 殿 の 月 まいこ 舞 い 終 えて 乱 れた 髪 をそって 直 している 渡 り 廊 下 京 の 舞 妓 のそのいとおしい 姿 を 遠 くから 月 が 照 らしている 煙 の 歌 * 紺 青 の 雲 雀 たちゆく 春 のそらに 煙 かすれて 森 の 香 深 き あいいろ ひばり 明 るい 藍 色 の 春 の 空 に 雲 雀 が 舞 い 上 がってゆく あたりはぼうっと 煙 にかす んで 森 林 の 深 い 香 がただよっている 追 悼 の 歌 * 木 蓮 の 花 のひと 片 ふとちりて 香 の 煙 りのむなしき 今 や 木 蓮 の 花 ひとひらがふっと 散 り 落 ち 手 向 けた 香 の 煙 が 今 は 何 とも 空 しいこ とよ * 紫 にけなむうつゝの 雲 の 色 ちぎれし 今 の 星 のさびしき 紫 になってやがて 消 えるであろうこの 世 の 雲 の 色 よ 天 上 にあって 契 った 星 の 命 の 今 が 何 と 淋 しいことであるか * たなぞこにちりしま 玉 の 露 の 香 にうつゝはとかじ 黄 朽 葉 の 今 かぐわ 手 のひらの 底 でくだけ 散 った 美 しい 玉 のような 露 の 命 の 香 しさに 比 べれば きくちば 枯 朽 葉 のような 現 世 の 有 様 などお 話 したくもありません 新 年 雑 詠 * 夜 のみぞ 屠 蘇 の 香 の 深 ふして 微 笑 はしき 舞 子 の 袖 や 正 月 の 祝 酒 の 匂 いがするのはさすがに 夜 だけ 美 しい 長 い 袖 の 正 装 でほほえ
289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85 んでいる 舞 妓 の 何 といとおしいことよ (はしきー 愛 すべきいとおしい) こと * 箏 の 音 は 月 に 冴 えたり 桐 壷 の 宵 の 勅 題 に 歌 なき 春 や こと さ きりつぼ 月 明 りに 箏 の 音 の 冴 えわたっている 桐 壺 の 御 所 勅 題 は 宵 のうちに 出 されて いたが まだ 誰 の 歌 も 無 い 春 の 夜 である * おこそかに 取 る 手 わなゝく 新 春 の 宵 の 燭 台 に 梅 の 花 ちる 新 春 の 宵 おごそかに 燭 台 の 火 をともそうと 緊 張 して 手 がふるえたので 梅 の 花 びらが 散 りかかったよ * 春 や 濃 きさゝめきつきし 紅 梅 の 窓 の 絃 の 音 灯 うすき 春 たけなわの 宵 ひそひそとささやく 声 もとぎれて 紅 梅 の 咲 く 窓 辺 にぼんや りと 灯 がともり 絃 の 音 が 聞 こえて 来 たのだった * 呉 竹 の 窓 の 新 春 鶯 の 小 羽 ふるふよ 淡 雪 のそら くれ 淡 雪 の 舞 いそうな 空 模 様 吳 竹 のしげる 窓 辺 に 新 春 を 告 げる 鶯 が 寒 そうに 小 羽 をふるっているよ まゆずみ * 屠 蘇 の 香 に 思 ひ 出 うれし 奈 良 の 宿 にうす 黛 の 朝 十 九 の 君 屠 蘇 酒 の 香 りをかげばうれしく 思 い 出 す あの 奈 良 の 宿 に 泊 まった 朝 うす 黛 に 化 粧 したあなたはまだ 十 九 であった * のとかなる 梅 の 小 窓 に 小 扇 の 歌 にほゝえむ 舞 衣 の 君 のどかに 梅 の 花 咲 く 小 窓 にもたれて 小 扇 に 書 かれた 歌 を 眺 めては 微 笑 んで いた 舞 妓 姿 のあなたよ はね ぬか に ねりぎぬ * 紅 梅 や 羽 子 つく 人 の 額 にちりて 惡 くゝもあらす 練 絹 の 裾 はね 羽 子 つきしている 娘 の 額 に 紅 梅 の 花 びらが 散 りかかり ちらと 見 えた 紅 い 練 絹 の 裾 もなかなか 良 かった まゆずみ ねりぎぬ 5.まとめ 本 稿 では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の 様 子 が 見 られるように 全 体 の 歌 を 活 字 にした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歌 が 活 字 になったのはこれがはじめてであると 思 われる 白 羊 会 詠 草 全 体 の 活 字 化 によって これから 白 羊 会 詠 草 の 全 貌 に 触 れたい 人 は 日 本 国 会 図 書 館 にまで 行 って 岩 手 日 報 を 閲 覧 する 苦 労 はなくなると 思 われる また 白 羊 会 詠 草 の 口 語 訳 を 試 みた これは 当 時 の 歌 は 語 彙 や 語 法 など
290 28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が 難 しく 理 解 しにくいからである 以 上 のように 白 羊 会 詠 草 をテキスト 化 する 過 程 の 中 から 次 のようなことが 分 かった 啄 木 は 語 彙 の 面 では 同 年 代 歌 人 に 比 べて 与 謝 野 晶 子 の 模 倣 に 抜 きん 出 て いると 言 える 特 に 啄 木 は 紅 という 言 葉 をよく 使 っていた ことが 分 かった 歌 の 作 法 においては 啄 木 だけが 抜 きん 出 て いるとは 言 えな い 啄 木 が 初 句 の を を 使 った 歌 は 一 首 しかなく また 三 句 切 れの 切 れ 字 の や を 使 った 歌 は 啄 木 だけでなく 他 の 同 人 もよく 使 っていたからである ま た 先 行 論 で 指 摘 した 欄 髪 君 紅 袖 の 他 に 眉 と きますな 人 も 与 謝 野 晶 子 や 明 星 の 影 響 や 模 倣 から 使 われたものと 思 われる < 参 考 文 献 > 昆 豊 (1985) 警 世 詩 人 石 川 啄 木 新 典 社 岩 城 之 徳 (1985) 石 川 啄 木 伝 筑 摩 書 房 岩 城 之 徳 (1987) 啄 木 全 作 品 解 題 筑 摩 書 房 岩 城 之 徳 (1960) 解 題 石 川 啄 木 全 集 第 四 巻 筑 摩 書 房 岩 城 之 徳 編 (1978) 石 川 啄 木 全 集 第 一 巻 筑 摩 書 房 今 井 泰 子 (1974) 石 川 啄 木 論 塙 書 房 岩 手 日 報 岩 手 日 報 社 岩 手 日 報 社 編 (1966) 岩 手 人 名 大 鑑 岩 手 日 報 社 川 並 秀 雄 (1976) 石 川 啄 木 新 研 究 冬 樹 社 岩 城 之 徳 編 (1981) 石 川 啄 木 必 携 学 灯 社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윤재석, (한자) 尹 在 石, (영문) Yun jae seug 소속 : 한밭대학교 일본어과 교수, 일본근현대문학 논문영문제목 : A study of Ishikawa Takuboku In case of <Hyakuyokaieiso> 주소 : ( ) 대전시 유성구 동서대로 125 (덕명동) 한밭대학교 일본어과 E mail : [email protected]
291 石 川 啄 木 の 白 羊 会 詠 草 考 察 ( 尹 在 石 ) 287 <국문요지> 본고에서는 <백양회영초> 에 실린 모든 시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활자화하였다. <백양회영 초>에 실린 모든 시가 활자화 된 것은 본고가 처음일 것이다. <백양회영초>전체의 시가 텍스트화 됨에 따라, 앞으로는 <백양회영초>전체의 시를 다루고 싶은 사람이 일본국회도서관까지 가서 열 람해야 하는 수고는 덜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백양회영초>의 시를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당시의 시는 어휘나 어법 등이 어려워 내용 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백양회영초>를 활자화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것 을 알 수 있었다. 타쿠보쿠는 어휘 면에서는 같은 또래의 시인들과 비교하여 모방에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특 히, 타쿠보쿠는 <붉은 색>이라는 어휘를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 작법의 모방에 있어서는 타쿠보쿠만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타쿠보쿠가 첫구 <오(wo)>를 사용한 시는 1수 밖에 없고, 또한, <3구 키레>의 <키레문자>인 <야(ya)>를 사용한 시 는 동료들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행논문에서 지적한 <난간> <머리카락> <당신> <붉은 색> <소매(자락)>등의 어휘 외 에, <눈썹> <묻지않는 당신>과 같은 어휘도 요사노아키코나 <묘죠>의 영향으로부터 모방된 것이 라고 생각된다. 주제어: <백양회영초>, 요사노아키코, 묘죠
292 28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293 289 *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Abstract The results for analyzing the purpose of movement between Korean and Japanese expressions are as follows. 1. Japanese form of ます(masu) form of kango verb+ni+iku expresses the purpose of a certain movement stronger than the shape kango noun+ni+iku. Consequently, in online news headlines, the shape of masu form of kango verb+ni+iku is more widely used. It is recommended the form masu form of kango verb+ni+iku should also be listed in textbooks for learning Japanese. 2. In Korean kango verbs, the form kango noun+eur gada is not typically listed in textbooks, however, it is recommended to list kango noun+eur gada along with the shape kango noun+ni+iku. 3. The noun in Korean kango noun+eur gada includes motional verb and locational verb which the latter is not used for Japanese verbs. Motional verb means go to do something while locational verb also expresses the motion caused in the location (such as go to the hospital expresses the motion to see the doctor ). Hence, in the case of kango verbs, along with the form kango noun+ni+iku, the form masu form of kango verb+ni+iku is also used in Japanese while in Korean, kango noun+eur gada should be stated other than only kango noun+ha+reo gada in order for the learners to really comprehend Japanese or Korean like natives. Keywords : movement, purpose, ~niiku, ~siniiku, ~reo gada, ~eur gada 13)14) Ⅰ.はじめに 日 本 語 の 助 詞 の に は 行 く 来 る 帰 る などの 移 動 動 詞 と 共 起 し いわゆる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とされる 三 省 堂 の 大 辞 林 (1988) には 目 的 や 対 象 を 指 定 する とあり 魚 釣 に 行 く という 例 が 載 っている また 講 談 社 の 日 本 語 大 事 典 (1989) には 移 動 動 作 の 目 的 を 表 す とあり 本 を 買 いに 行 く という 一 例 が 挙 げられている 助 詞 に が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ためには 1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く * 本 論 文 は 釜 山 大 学 校 自 由 課 題 学 術 研 究 費 (2 年 ) によって 研 究 されたものである ** 釜 山 大 学 校 日 本 語 学 教 授
294 29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る 帰 るなど) 1) という 形 をとることになる しかし 動 詞 の 種 類 には 和 語 動 詞 と 漢 語 動 詞 ( 外 来 語 を 含 む) 2) がある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のに 和 語 動 詞 の 場 合 は 和 語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 という 形 をとるが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は 漢 語 名 詞 +する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 形 と 漢 語 名 詞 +に+いく 形 とがある 日 本 語 の 初 級 のテキストには 和 語 動 詞 の 場 合 は 食 べにいく のように 和 語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 という 形 が 提 示 され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は 食 事 にいく のように 漢 語 名 詞 +に+いく という 形 が 提 示 されている これ らの 二 つの 形 式 に 対 応 する 韓 国 語 はほとんど 両 形 とも 먹으러 가다 식사 하러 가다 のように ~러 가다 形 を 対 応 させている しかし 実 際 に 使 われる 例 を 拾 ってみると 日 本 語 の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には 食 事 にいく と 食 事 しにいく という 二 つの 形 が 用 いられ 韓 国 語 の 場 合 に も 식사하러 가다 と 식사를 가다 という 二 つの 形 が 用 いられている 両 言 語 ともに 名 詞 の 場 合 は 日 本 語 では 名 詞 +し+に+いく と 名 詞 +に+ いく 韓 国 語 では 名 詞 +~러 가다 と 名 詞 +을 가다 3) という 二 つずつ の 形 を 持 つことが 分 かる しかし テキストでは 日 本 語 の 名 詞 +にいく 形 とこれに 対 応 する 韓 国 語 の 名 詞 +~러 가다 形 だけが 提 示 されている 和 語 動 詞 の 場 合 は ~러 가다 という 一 つの 形 のみ 対 応 するので ~러 가 다 形 で 足 りるが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には 韓 国 語 の 名 詞 +~러 가다 形 とと もに 名 詞 +을 가다 形 をも 対 応 させる 必 要 がある むしろ 名 詞 +을 가 다 形 の 方 が 適 切 な 文 脈 がかなり 多 い 以 上 のようなことで 本 稿 では 日 本 語 の 名 詞 +し+にいく 形 と 韓 国 語 の 名 詞 +을 가다 形 にフォーカスを 当 てて 分 析 を 行 い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日 本 語 教 育 日 本 語 母 語 話 者 の 韓 国 語 教 育 に 役 立 てたいとおもう 1) 以 下 にいく と 表 記 する 2) ドライブする のような 外 来 語 の 動 詞 も 漢 語 動 詞 同 様 の 振 る 舞 いをするので 以 下 合 わせて 漢 語 動 詞 と 表 記 する 3) 以 下 日 本 語 の 前 者 を ~しにいく 形 後 者 を ~にいく 形 と 呼 び 韓 国 語 の 前 者 を ~ 러 가다 形 後 者 を ~을 가다 形 と 呼 ぶことにする
295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291 Ⅱ. 移 動 の 目 的 の 表 現 形 式 の 使 用 実 態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で 日 本 語 を 専 攻 してから 二 三 年 目 の 大 学 生 を 対 象 に 次 の ようなアンケートをとった Ⅰはじめに で 言 っているように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和 語 動 詞 の 場 合 は 和 語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 という 一 形 のみであり 対 応 する 韓 国 語 も ~러 가다 という 一 つの 形 のみ 対 応 するので アンケートでは 除 外 し 日 本 語 の 漢 語 名 詞 +にいく 形 と 韓 国 語 の 名 詞 +을 가다 形 を 提 示 し 両 言 語 の 対 応 関 係 を 調 べた まず 学 生 達 に 慣 れている 日 本 語 の 移 動 の 目 的 表 現 のアンケート1を 先 に 出 しで 調 べた その 理 由 は アンケート2の 韓 国 語 の 漢 語 名 詞 +을+가 다 形 を 先 に 出 すと 普 段 使 わない 漢 語 名 詞 +을+가다 形 でアンケート1 を 対 応 させる 可 能 性 があると 考 えられたからである アンケート1 アンケート2 次 の 日 本 語 を 韓 国 語 に 直 しなさい 1 勉 強 に 行 く 2 仕 事 に 行 く 3 留 学 に 行 く 次 の 韓 国 語 を 日 本 語 に 直 しなさい 4식사를 가다 5응원을 가다 6관찰을 가다 7병원을 가다 8형무소를 가다 アンケート1は 日 本 語 の 漢 語 動 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中 漢 語 名 詞 +に+いく 形 を 対 象 にし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が ~러 가다 形 と ~을 가다 形 の 中 どれを 選 択 するかを 見 るためである アンケート2は 韓 国 語 の 漢 語 動 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中 漢 語 名 詞 +을+가다 形 を 対 象 に し 対 応 する 日 本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の 表 現 の ~しにいく 形 と ~にいく 形 の 中 どれを 選 択 するかを 見 るためである まず アンケート1の 結 果 を 見 る 58 人 の 学 生 を 対 象 にアンケートをし 55 人 が 答 えてくれた ただ 2 仕 事 に 行 く は 答 えが 二 つの 場 合 があって57になっている
296 29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設 問 1 勉 強 に 行 く 答 え 공부하러 가다 공부를 가다 공부 가다 回 答 者 数 (%) 55(100) 0(0.00) 0(0.00) 設 問 2 仕 事 に 行 く 答 え 일하러 가다 일을 가다 일 가다 직장에 가다 출근하다 일 때문에 가다 回 答 者 数 (%) 52(91.22) 1(1.75) 0(0) 2(3.50) 1(1.75) 1(1.75) 設 問 3 留 学 に 行 く 答 え 유학하러 가다 유학을 가다 유학 가다 유학을 하러 가다 回 答 者 数 (%) 10(18.18) 19(34.54) 25(45.45) 1(1.81) 漢 語 名 詞 +に+いく 形 の 設 問 1の 勉 強 に 行 く は 55 人 中 55 人 とい う100%の 学 生 が 공부하러 가다 という ~러 가다 形 で 答 えている 設 問 2の 仕 事 に 行 く は 55 人 中 52 人 の91.22%が 일 하러 가다 という ~러 가다 形 を 答 えている 二 つの 設 問 とも 漢 語 動 詞 であるが 勉 強 に 行 く の 方 が 日 本 語 の 学 習 時 によく 出 てくる 表 現 であるためであろう 設 問 3 の 留 学 に 行 く は 55 人 中 10 人 の18.18%が 유학하러 가다 を な お これに 準 ずる 一 人 の1.81%が 유학을 하러 가다 という ~러 가다 形 で 答 えている 韓 国 語 の 表 現 では 유학을 가다 と 유학 가다 が 自 然 であり それぞれ19 人 の34.54%と25 人 の45.45%が 答 えている 留 学 に 行 く は 出 張 に 行 く のように 日 本 語 でも 留 学 しに 行 く 出 張 しにい く のような ~しにいく 形 を 持 たないという 特 徴 を 持 っている そのため 設 問 1 設 問 2と 異 なって 유학을 가다 で 対 応 させている 答 えが34.54% 出 て いる アンケート2の 結 果 を 見 る 58 人 の 学 生 を 対 象 にアンケートをし 58 人 が 答 えてくれた ただ 7병원 을 가다 と 8형무소를 가다 は 答 えが 二 つの 場 合 があって59になってい る
297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293 設 問 4 答 え 食 事 に 行 く 食 事 しに 行 く 식사를 가다 食 事 を 行 く 食 事 に 出 る 食 事 をする に 行 く 回 答 者 数 (%) 46(79.31) 9(15.51) 1(1.72) 1(1.72) 1(1.72) 設 問 5 응원을 가다 答 え 応 援 に 行 く 応 援 しに 行 く 応 援 を 行 く 応 援 をするに 行 く 回 答 者 数 (%) 45(77.58) 7(12.06) 5(8.62) 1(1.72) 設 問 6 答 え 観 察 に 行 く 観 察 しに 行 く 관찰을 가다 観 察 を 行 く 観 察 する 観 察 をす る 観 察 をす るに 行 く 回 答 者 数 (%) 40(68.96) 10(17.24) 4(6.89) 1(1.72) 1(1.72) 1(1.72) 設 問 7 병원을 가다 答 え 病 院 に 行 く 病 院 しに 行 く 病 院 へ 行 く 病 院 を 行 く 回 答 者 数 (%) 40(67.79) 0(0.00) 17(28.81) 2(3.38) 設 問 8 答 え 刑 務 所 に 行 く 刑 務 所 しに 行 く 형무소를 가다 刑 務 所 へ 行 く 刑 務 所 を 行 く 刑 務 所 に 入 る 回 答 者 数 (%) 32(54.23) 0(0.00) 20(33.89) 2(3.38) 5(8.47) 漢 語 名 詞 +을+가다 形 の 設 問 4の 식사를 가다 は 58 人 中 46 人 の 79.31%が 食 事 に 行 く という ~にいく 形 で 答 えている 設 問 5の 응원 을 가다 は 58 人 中 45 人 の77.58%が 仕 事 に 行 く 設 問 6の 관찰을 가 다 は 58 人 中 40 人 の68.96%が 観 察 に 行 く という ~にいく 形 で 答 え ている ~しにいく 形 は 設 問 4の 식사를 가다 が9 人 (15.51%) 設 問 5の 응원을 가다 が7 人 (12.06%) 設 問 6の 관찰을 가다 が10 人 (17.24%)になっている 設 問 4の 식사( 食 事 ) 設 問 5の 응원( 応 援 ) 設 問 6の 관찰( 観 察 ) は 動 作 性 漢 語 名 詞 であってテキストには ~にいく 形 で 提 示 されているので ほとんど ~にいく 形 で 対 応 させているが 韓 国 語 の ~을 가다 形 が 慣 れないため ~しにいく 形 での 対 応 も 見 せてい
298 29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る しかし 設 問 7と 設 問 8の 場 所 性 名 詞 の 場 合 を 見 る 設 問 7の 병원을 가다( 病 院 を 行 く) と 設 問 8の 형무소를 가다( 刑 務 所 を 行 く) の 병원( 病 院 ) 형무소( 刑 務 所 ) という 名 詞 は 場 所 性 名 詞 である 韓 国 語 の 場 所 性 名 詞 +을+가다 は その 場 所 でやる 動 作 をす るために 行 くという 意 味 が 含 意 されるが 日 本 語 にはこのような 意 味 がないの で ほとんど その 場 所 に 行 く という 場 所 への 移 動 の 意 味 で 対 応 させてい る この 結 果 は テキストで 韓 国 語 の ~을 가다 形 を 提 示 しないためであろ う 以 上 の 設 問 の 結 果 から 漢 語 名 詞 の ~にいく 形 と 韓 国 語 の ~러 가다 形 のみに 対 応 させている 日 本 語 のテキストに 実 際 に 高 い 使 用 頻 度 を 見 せている 漢 語 名 詞 の ~しにいく 形 と ~을 가다 形 を 一 緒 に 提 示 する 必 要 性 があると 見 られる Ⅲ. 日 本 語 の 移 動 の 目 的 表 現 日 本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形 式 には 動 詞 のます 形 +に+いく という ~しにいく} 形 と 名 詞 +に+いく という ~にいく 形 の 二 つの 形 式 があ るので この 二 つの 形 式 に 分 けて 見 ることにする 3.1. ~しにいく 形 和 語 動 詞 と 漢 語 動 詞 の 中 動 作 性 動 詞 は ~しにいく 形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ことができる 和 語 動 詞 取 る 見 る のような 和 語 動 詞 は ~しにいく 形 式 のみ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以 下 で 例 を 見 る 1) 5 月 下 旬 国 語 の 時 間 1 年 生 16 人 が 机 を 円 形 に 並 べ 漢 字 のドリルを 解 いて いた 分 からない 問 題 があると 席 を 立 って 辞 書 を 取 りに 行 く (as)
299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295 2) 川 崎 の 勤 め 先 を 訪 ねてきた 友 人 ( 中 村 伸 郎 )が 今 夜 大 洋 ( 現 ベイスターズ)と 阪 神 の 試 合 を 川 崎 球 場 に 見 に 行 くというのを 主 人 公 ( 笠 智 衆 )が 強 引 に 飲 み 屋 に 誘 う (ma) 3) お 友 達 の 所 へ 遊 びに 行 く 事 などは 致 しませんでした (ao) 例 1)の 辞 書 を 取 りに 行 く の 取 る は 和 語 動 詞 であり 辞 書 を 取 る という 動 作 は 行 く という 移 動 の 目 的 である 普 通 助 詞 に は 学 校 に 行 く のように 行 く という 動 詞 の 目 的 地 を 表 すが 動 作 性 動 詞 +に+ 行 く という 構 文 では 動 作 性 動 詞 の 表 す 動 作 をする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ことにな り に は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ことになってくる 例 2)の 川 崎 球 場 を 見 にい く は 行 く 目 的 が 川 崎 球 場 を 見 る という 動 作 をするためだということを 表 す 例 3)の お 友 達 の 所 へ 遊 びに 行 く は 遊 ぶためにお 友 だちの 所 に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 例 1)~ 例 3)の ~しにいく 形 は 和 語 動 作 動 詞 の 例 であり 和 語 動 詞 の 表 す 動 作 を つまり 目 的 の 動 作 をする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ことを 表 す よっ て 取 る 見 る 遊 ぶ という 動 詞 は 意 思 動 詞 であり 和 語 動 詞 の 場 合 は ~しにいく 形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漢 語 動 詞 注 文 する 注 意 する 等 のような 漢 語 名 詞 +する という 漢 語 動 詞 は 漢 語 名 詞 +し(するのます 形 )+に+いく という 形 式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ことがある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も 和 語 動 詞 同 様 動 作 性 動 詞 である 以 下 で 例 を 見 る 4) 夫 は 自 己 中 心 の 愛 し 方 で 故 郷 に 執 着 民 具 などには 愛 着 がないと 往 復 7 キロの 雪 道 を 歩 いて 盥 を 注 文 しに 行 くのだ (as) 5) 近 所 迷 惑 なうるさい 騒 音 は 警 察 110 番 に 通 報 で 警 官 が 注 意 しに 行 くよ (ya) 6) 多 分 都 市 部 に 行 くまでの 燃 料 は 問 題 ないのだけど 冒 険 しに 行 くには 無 謀 す ぎる 状 態 なので 一 応 帰 路 に 向 かうつもりでガススタ 探 しをします (ya) 例 4)の 盥 を 注 文 しにいく という 漢 語 動 詞 注 文 する の ~しにいく 形 は 往 復 7キロの 雪 道 を 歩 いて で 分 かるように 盥 を 注 文 するためにという 移 動 の 目 的 が 強 く 現 れている 例 5)の 注 意 しに 行 く の ~しにいく 形
300 29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は 110 番 で 通 報 された 警 官 が 近 所 に 迷 惑 なうるさい 騒 音 を 発 しないように 注 意 するために 行 くという 移 動 の 目 的 が 強 く 現 れている 例 6)の 冒 険 しに 行 く の ~しにいく 形 は 無 謀 すぎる 状 態 なのに 冒 険 する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 目 的 が 強 く 現 れている 漢 語 名 詞 に 動 詞 のます 形 の し が 付 くことで 和 語 動 詞 同 様 目 的 の 場 所 に 移 動 して 目 的 の 動 作 をするということを 表 す 目 的 の 動 作 が 浮 彫 りになって くるので 目 的 の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る 3.2. ~にいく 形 ~にいく 形 は 漢 語 動 詞 にのみある 形 式 である 漢 語 動 詞 の する が 脱 落 し 漢 語 名 詞 に 直 接 にいく の 付 く 形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漢 語 動 詞 7) 横 浜 市 鶴 見 区 の 堀 井 千 帆 さん(37)は 自 宅 近 くの 保 育 所 で 預 けた 長 女 (1)に 何 度 も 手 を 振 った パートの 仕 事 に 行 く 前 に 週 3 回 の 一 時 保 育 を 利 用 している (as) 8) 多 くの 人 から 応 援 に 行 く と 言 われ 期 待 に 応 えたいという 気 持 ちが 強 い だ が いつも 通 りのプレーをしたい と 平 常 心 で 大 舞 台 に 臨 む (ma) 9) 指 名 されると 2 人 掛 けのボックス 席 で10 分 間 話 すのがルールだという 店 外 で 食 事 やデートに 行 くと 女 性 は 男 性 から 交 通 費 の 名 目 で 現 金 を 受 け 取 れ る (as) 例 7)の パートの 仕 事 に 行 く 前 に の ~にいく 形 は パートの 仕 事 のた めに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し 例 8)は 応 援 のために 例 9)は 食 事 やデートのた めに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 ~しにいく 形 と 違 って ~にいく 形 は 動 詞 の し が 除 去 されること で 名 詞 の 持 つ 抽 象 的 な 動 作 性 の 概 念 だけが 含 意 され 目 的 の 場 所 に 移 動 して から 目 的 の 動 作 をするのではなく 移 動 と 動 作 が 一 緒 になるので 動 作 そのもの は 浮 彫 りになってこなくなる 例 7)~ 例 9)で 分 かるように 漢 語 名 詞 +する という 漢 語 動 詞 は 動 作 性 の 名 詞 である しかし 一 例 のみであるが 次 のような 例 がある 10) 買 い 物 以 外 には 先 輩 とご 飯 に 行 くか 寝 るのが 好 きなのでとりあえず 寝 ます (as)
301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297 例 10)の ご 飯 にいく の にいく 形 の 漢 語 名 詞 は 動 作 性 名 詞 ではない しかし ご 飯 は 食 べる 物 であるので ご 飯 にいく の ご 飯 に は ご 飯 を 食 べに という 意 味 を 表 すことになり ご 飯 を 食 べる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意 味 に 拡 張 された 例 である ~にいく 形 のみ 持 つ 漢 語 動 詞 11) 脊 髄 損 傷 でふだんは 車 いすを 使 う 女 性 が 手 足 に 補 助 具 を 着 け 歩 いてバス を 降 りた なじみの 添 乗 員 が 声 をかける こないだの 旅 行 の 時 より 良 くなっ てます? 女 性 は 笑 顔 で 旅 行 に 行 くたび 足 が 動 く 気 がするの 車 い す 要 らなかったね (as) 12) 金 曜 日 は 日 帰 りで 出 張 にいくので 東 京 に 戻 ってくるのが19 時 ぐらいになりま す できれば 20 時 以 降 で 夕 食 を 一 緒 にして 商 談 を 希 望 しています (ya) 13) 実 際 他 の 国 に 比 べ 驚 異 的 な 割 合 で 大 韓 民 国 の 国 籍 を 放 棄 し 移 民 を 行 って います 能 力 があれば1 日 でも 早 く 移 民 に 行 くのが 答 えです (ya) 例 11)の 旅 行 にいく 例 12)の 出 張 にいく 例 13)の 移 民 に 行 く の 旅 行 する 出 張 する 移 民 する という 動 詞 は ~しにいく 形 がな く ~にいく 形 のみが 用 いられることが 特 徴 である 森 田 (1985)で ~にいく 形 は 目 的 地 に 出 向 いて そこである 行 為 をなすため にまず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といい そのため 移 動 行 為 と 目 的 行 為 とがはっきり 切 り 離 されない 旅 行 する 等 のような 移 動 そのものが 目 的 となるような 行 為 を 表 す 動 詞 は ~していく 形 は 使 えないといっている つまり 例 11)の 旅 行 する は 出 発 地 点 を 離 れる 時 点 から 旅 行 が 始 まり 例 12)の 出 張 する も 出 発 地 点 を 離 れ る 時 点 から 出 張 が 始 まるので ~している 形 は 用 いられないわけである 3.3. 漢 語 動 詞 の ~しにいく 形 と ~にいく 形 の 違 い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は ~しにいく 形 と ~にいく 形 の 二 つの 形 式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ことを と で 見 た 日 本 語 のテキストには 漢 語 動 詞 の 場 合 ~にいく 形 のみを 提 示 してい る しかし 実 際 例 文 を 拾 ってみると インタ ネットでは ~しにいく 形 も 多 く 用 いられ 特 にタイトルには 広 く 用 いられている インターネットではタイトルに 移 動 の 目 的 表 現 が 用 いられ 次 のような 例 があり ~しにいく 形 と ~にい
302 29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く 形 の 違 いをよく 見 せるいる 14) タイトル: 彼 の 実 家 へ 初 めて 挨 拶 しに 行 く 際 に 気 をつけることは? 内 容 :みなさんこんにちは 実 は 私 昨 年 から 結 婚 を 前 提 にお 付 き 合 いしてい る 彼 氏 がいるのですが 1 月 末 に 彼 の 家 へ 初 めて...まだ 未 婚 ですが 今 まで 何 回 か 付 き 合 ってる 方 の 実 家 に 挨 拶 に 行 った 事 があります (yo) 15) タイトル: 要 のない 人 まで 来 客 に 挨 拶 しにいく 必 要 があるのか 内 容 : 親 とくらしている 中 学 生 です 親 には 来 客 がよく 来 ます 仕 事 の 都 合 で す 親 に 最 近 あなたも 挨 拶 に1Fに 降 りてきなさい と 言 われます 100% 来 客 は 自 分 には 要 はないです 親 と 話 すのが 目 的 です (ya) 16) タイトル: 相 撲 を 観 戦 しに 行 くのはどんな 人 が 多 い? 内 容 : 相 撲 観 戦 に 行 ったことのある 方 に 質 問 です (yu) 例 14)のタイトルでは 実 家 へ 初 めて 挨 拶 しに 行 く 際 に のように ~しにい く 形 を 用 い 挨 拶 するために という 移 動 の 目 的 をアピールしておいてか ら 内 容 に 入 っては 付 き 合 ってる 方 の 実 家 に 挨 拶 に 行 った と ~にいく 形 を 用 いている 例 15)も 例 14)と 同 様 である 例 16)でもタイトルでは 相 撲 を 観 戦 しに 行 く のように ~しにいく 形 を 用 いて 相 撲 を 観 戦 するために とい う 移 動 の 目 的 を 読 み 手 にアピールしておいて 内 容 に 入 ってからは 相 撲 観 戦 に 行 った と ~にいく 形 を 用 いている インターネットに 載 せるタイトルは 読 み 手 の 関 心 を 引 くために 強 調 された 文 章 が 使 われる 傾 向 がある 14)~16)の 例 は ~しにいく 形 の 方 は し の 使 用 によって ~にいく 形 より 移 動 の 目 的 が 浮 彫 りになり 移 動 の 目 的 が 強 調 されるということを 裏 付 ける 例 である 日 本 語 の ~しにいく 形 は 移 動 と 目 的 の 動 作 が 切 り 離 されることで 目 的 の 動 作 が 浮 彫 りになって 強 調 される 結 果 になる しかし ~にいく 形 は し が 隠 されることで 移 動 と 目 的 の 動 作 が 切 り 離 されないので 目 的 の 動 作 は 浮 彫 りにならず 目 的 の 動 作 は 強 調 されない Ⅳ. 韓 国 語 の 移 動 の 目 的 表 現 韓 国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形 式 には 動 詞 / 名 詞 +러 가다 と 名 詞 + 을+가다 という 二 つの 形 式 がある 前 者 を 러 가다 形 後 者 を 을 가
303 日ㆍ韓両語の移動の目的を表す表現の分析 (金玉英) 299 다 形とする 4.1. ~러 가다 形 韓語動詞と漢語動詞4)は 러 가다 形5)で移動の目的を表すことができる 韓語動詞 17) 지난 해 여름, 기상청 분들과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으러 가다 비를 쫄딱 맞은 적이 있습니다.(ch) (去年の夏 気象庁の方々とお昼にどじょう鍋を食べに行く途中 雨に降られ たことがあります ) 18) 범인 2명은 N보안업체 소속 현금수송요원 2명이 고속터미널 내 현금지급 기에 돈을 넣으러 가는 것을 보고 오토바이를 이용해 날치기했다.(do) (犯人2名は Nセキュリティー会社の現金輸送要員2人が高速ターミナル内の 現金自動預払機(ATM)にお金を入れに行くのを見て バイクを利用しひったく りをした ) 19) 대전의 어떤 단체는 학교의 상태를 직접 보고 싶다고 직원을 보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한국계 청년들이 이번 여름방학에 영어와 태권도를 가르치러 올 예정이다. (do) (大田(テジョン)のある団体は学校の状態を直接見たいと職員を派遣しており アメリカ サンフランシスコからは 韓国系の青年たちが今回の夏休みに英語 とテコンドーを教えに来る予定だ ) 例17)の 추어탕을 먹으러 가다(どじょう鍋を食べに行く途中) の 먹다(食 べる) の 러 가다 形は 移動の目的がどじょうを食べるためであるという ことを表し 例18)の 돈을 넣으러 가는(お金を入れに行く) の 넣다(入れ る) の 러 가다 形は お金を入れるためであ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る 例19)の 영어와 태권도를 가르치러 올(英語とテコンドーを教えに来る) の 가르치다(教える) の 러 가다 形は 移動の目的が英語とテコンドーを 教えるためであ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る 4) 日本語との用語の統一のために漢字語でない韓国語動詞を韓語動詞と呼び 漢字語動詞を漢 語動詞と呼ぶ 5) 韓語の移動を表す動詞は 가다(行く) 오다(来る) 나가다(出る 出かける) 돌아오다 (帰る) 等があるが 便宜上 러 가다 形で表記する
304 30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例 17)~ 例 19)の 먹다( 食 べる) 넣다( 入 れる) 가르치다( 教 える) は 韓 語 動 詞 であり 韓 語 動 詞 は ~러 가다 形 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ことになる 漢 語 動 詞 20) 심지어 홍보영상을 촬영하러 가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겪기도 했다.(ch) (それだけでなく 広 報 映 像 を 撮 影 しに 行 く 途 中 軽 い 交 通 事 故 に 遭 ったりし た ) 21) 진 슈메이커(69)씨가 18일 소행성 충돌로 인해 생긴 분화구를 탐사하러 가다 호주 앨리스 스프링스 부근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ch) (ジーン シューメーカー(69) 氏 は18 日 小 惑 星 衝 突 により 生 じた 噴 火 口 を 探 査 し に 行 く 途 中 オーストラリアのアリスス プリングス 付 近 で 自 動 車 事 故 により 死 亡 し た ) 22) 얼마 전 강의하러 자주 가는 부천의 한국산업안전공단을 가다 찾아 낸 한 오토 바이 가게의 센스 있는 간판이다.) (ch) (この 前 講 義 しによく 行 く 富 川 (プチョン)の 韓 国 産 業 安 全 公 団 に 行 くとき 見 つけた あるバイクの 店 の センスある 看 板 だ ) 例 20)の 촬영하러 가다( 撮 影 しにいく) の 촬영하다( 撮 影 する) の ~ 러 가다 形 は 漢 語 名 詞 に 動 作 を 表 す 하다(する) が 付 くこと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撮 影 するという 動 作 が 浮 彫 りになって 目 的 を 強 調 することになる 例 21) の 탐사하러 가다( 探 査 しに 行 く 途 中 ) の 탐사하다( 探 査 する) 例 22)の 강의하러 가는( 講 義 しに 行 く) の 강의하다( 講 義 する) も 例 20)のように ~ 러 가다 形 は 漢 語 名 詞 に 動 作 を 表 す 하다(する) が 付 くことで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動 作 が 浮 彫 りになる 4.2. ~을 가다 形 漢 語 動 詞 ~을 가다 形 の 付 く 韓 国 語 の 漢 語 名 詞 には 견학( 見 学 ) のような 動 作 性 名 詞 と 서점( 本 屋 ) のような 場 所 性 名 詞 とがある 動 作 性 名 詞
305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 일본어 수업이 끝나고 닛산자동차 공장에 견학을 갔거든요. (im) ( 日 本 語 の 授 業 が 終 わって 日 産 自 動 車 工 場 に 見 学 をいったんです 6) / 見 学 に 行 ったんです ) 24) 오늘 렛슨을 갔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an) ( 今 日 レッスンを 行 きましたが/レッスンに 行 きましたが ショックを 受 けまし た ) 25) 운동을 갔다 만난 제주일몰 우리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소공원을 지나 쭉~~~뻗은 대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걷다가 뒤돌아 본 순간, 지는 제 주일몰 장면이 참 포근하고 평온하여 담아봤다. (da) ( 運 動 を 行 って/ 運 動 に 行 って 会 った 済 州 の 日 没 うちのアパート 団 地 内 にあ る 子 供 の 小 さな 公 園 を 過 ぎて まっすぐ 伸 びた 大 通 りに 沿 って 東 に 歩 いてい き 振 り 返 って 見 た 瞬 間 沈 む 済 州 の 日 没 シーンがとてもなごやかで 平 穏 なの で 盛 り 込 んでみた ) 例 23)の 견학을 갔거든요( 見 学 をいったんです/ 見 学 にいったんです) の 견학하다( 見 学 する) の ~을 가다 形 に 前 接 する 견학( 見 学 ) は 動 作 性 名 詞 である 動 作 性 名 詞 の 場 合 は 견학( 見 学 )に 하다(する) が 隠 れ ることで 森 田 (1985)の 言 うように 目 的 と 移 動 が 分 離 されないので 移 動 の 目 的 の 見 学 する という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ない つまり 見 学 そのもののため に 移 動 するという 意 味 を 表 すことになる 例 24)の 렛슨을 갔는데( レッスンを 行 きましたが/レッスンに 行 きましたが の 렛슨하다(レッスンする)の 렛슨(レッ スン) は 動 作 性 名 詞 であるが ~을 가다 形 が 用 いられ レッスンそのもの の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ことを 表 す 例 25)の 운동을 갔다( 運 動 を 行 って/ 運 動 に 行 って) の 운동하다( 運 動 する) も 動 作 性 の 名 詞 であり 運 動 そのもの のために 移 動 するということを 表 す 例 23)~ 例 25)のような 動 作 性 名 詞 の ~을 가다 形 は 動 作 性 名 詞 の 表 す 目 的 と 가다( 行 く) という 移 動 が 切 り 離 されないので ある 場 所 に 移 動 して そこで 目 的 の 動 作 をするという 意 味 が 薄 れ 目 的 の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なくな る 例 23)~ 例 25)の 견학을 가다( 見 学 を 行 く/ 見 学 にいく) 렛슨을 가다 ( レッスンを 行 く/レッスンに 行 く) 운동을 가다( 運 動 を 行 く/ 運 動 に 行 く) のような 動 作 性 名 詞 には 하다(する) という 意 味 が 隠 れていることが 次 に 見 る 場 所 性 名 詞 との 違 いである 6) 日 本 語 との 対 応 関 係 を 見 るため の 直 訳 の 非 文 を 一 緒 に 付 けることにする
306 302 比較日本學 第32輯 ( ) 場所性名詞 26) 얼마전에 서점을 갔는데... 그냥 무작정 들렸다가 딱히 사고 싶은 책이 눈 에 안들어와서 40분을 서성였다. (mo) (この前 本屋を行ったんですが/本屋に行ったんだけど7) ただ計画もなしに 寄って これといって買いたい本が目に入ってこなくて40分をうろうろした ) 27) 내비게이션을 구입하기위해서 백화점을 갔는데 역시 내 마음을 사로잡는 내비게이션은 아이나비 제품밖에 없었습니다. (in) (ナビゲーションを購入するために デパートを行きましたが/デパートに行きま したが やっぱり私の心をとらえるナビゲーションはアイナビ製品しかありません でした ) 28) 오래간만에 노래방을 갔는데 킹크스The Kinks의 You Really Got Me가 있더라고요. 요새 제 훼이보릿이 된 곡인지라 당장 불렀습니다. (gi) (久しぶりに カラオケを行ったんだけど/カラオケに行ったんだけど キンクス The KinksのYou Really Got Meがあったんです 最近私のお気に入りの曲 なのですぐ歌いました ) 例26)の 서점을 갔는데( 書店を行ったが/書店に行ったが) の 을 가 다 形の 서점(書店) という名詞は 動作性名詞でなく場所性名詞である 場所性名詞の場合は その場所でやるべき動作をも一緒に表すことになる 書 店は 사고 싶은 책(買いたい本) で分かるように 本を買うために行く場所で ある そのため 서점을 가다(書店を行く) は 書店に本を買いに行くと いう動作を表すことになる 例27)の 백화점을 갔는데( デパートを行きました が) の 백화점(デパート) という場所性名詞に付く 을 가다 形は デ パートという場所でやる動作つまり買い物をするための移動を表す 例27)の 내비게이션을 구입하기 위해서(ナビゲーションを購入するために) で分かる ように 백화점을 가다(デパートを行く) は普通デパートでやる買い物のため の移動を表す 例28)の 노래방을 갔는데( カラオケを行ったんだけど) の 노래방(カラオケ) という場所は歌を歌うための場所である 노래방을 다( カラオケを行く は 노래방(カラオケ) でやる歌を歌うためである 가 例26) 例29)の場所性名詞の 을 가다 形は 動作性名詞の 하다(す 7) 韓国語の場所性漢語名詞の移動の目的を表す 서점을 가다(書店を行く) を 書店に行く 形に対応させると ただ書店という場所への移動を表すことに止まり 移動の目的は表せなくな る 以下同様である
307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303 る) の 含 意 とは 違 って 場 所 性 名 詞 でやる 具 体 的 な 動 作 をも 表 すことが 特 徴 である ~을 가다 形 のみ 持 つ 漢 語 動 詞 29) 저는 이번에 저의 가장 친한 친구와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da) ( 私 は 今 回 一 番 親 しい 友 だちとハワイへ 旅 行 を 行 って/ 旅 行 に 行 ってきまし た ) 30) 자녀가 유학을 갔더라도 이들에 대한 교육비 지출을 공제 받을 수 있다. (ye) ( 子 供 が 留 学 を 行 っても/ 留 学 に 行 っても 彼 らに 対 する 教 育 費 支 出 の 控 除 を 受 けることができる ) 31) 작년이 결혼 10주년이었는데 하필 기념일에 해외 출장을 갔거든요. (la) ( 昨 年 結 婚 10 周 年 でしたが よりによって 記 念 日 に 海 外 出 張 を 行 ったんです/ 海 外 出 張 に 行 ったんです ) 例 29)~ 例 30)の 여행하다( 旅 行 する) 유학하다( 留 学 する) 출장하다 ( 出 張 する) という 漢 語 動 詞 は ~러 가다 形 が 用 いられず ~을 가다 形 のみが 用 いられることが 特 徴 である 例 29)の 여행을 가다( 旅 行 を 行 く) 例 30)の 유학을 가다( 留 学 を 行 く) 例 31)の 출장을 가다( 出 張 を 行 く) の ~을 가다 形 は 移 動 をし てから 目 的 をなすことができず 出 発 地 点 を 離 れる 時 点 から 出 張 する 遠 足 する 留 学 する ということが 始 まるので ~러 가다 形 は 用 いられず ~을 가다 形 のみが 用 いられることになる 4.3. ~러 가다 形 と ~을 가다 形 の 違 い 32) 이름이 언경 이였던 분이 소희한테 싸인을 받으러 갔대요.(si) 8) ( 名 前 が オンギョン だった 方 がソヒにサインをもらいに 行 ったそうです ) 33) 한 어린이가 설날에 세배하러 가다 길에서 5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다. (ch) (ある 子 供 がお 正 月 新 年 の 挨 拶 しに 行 く 途 中 道 で500ウォンのコインを 拾 っ た ) 33 ) 한 어린이가 설날에 세배를 가다 길에서 5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다. (ch) 8) 例 32)と 例 35)は ~을 가다 形 のみを 持 つが 例 33)と 例 34)は ~러 가다 形 と ~을 가 다 形 の 両 形 を 持 つので 一 つの 例 文 を を 付 けて 変 えている
308 30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ある 子 供 がお 正 月 新 年 の 挨 拶 を 行 く 途 中 / 新 年 の 挨 拶 に 行 く 途 中 道 で 500ウォンのコインを 拾 った ) 34) 오늘 새벽이죠! 기분전환삼아 오이도로 드라이브를 갔다 왔습니다.(na) ( 今 日 の 明 け 方 です! 気 分 転 換 にオイ 島 へ ドライブを 行 って/ドライブに 行 って きました ) 34 ) 오늘 새벽이죠! 기분전환삼아 오이도로 드라이브하러 갔다왔습니 다.(na) ( 今 日 の 明 け 方 です! 気 分 転 換 にオイ 島 へドライブしに 行 ってきました ) 35) 음식점을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두고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대기실에 들어선지 10분이 채 안된 시간, 이름을 불렀다. (co) ( 飲 食 店 を 行 き/ 飲 食 店 に 行 き 人 が 多 くて 待 機 者 リストに 名 前 を 書 いて30 分 待 たなければならないと 言 われましたが 待 機 室 に 入 ってから10 分 足 らずで 名 前 を 呼 んだ ) 例 32)の 싸인을 받으러 가다(サインをもらいに 行 く) の 받다(もらう) と いう 韓 語 動 詞 の ~러 가다 形 は サインをもらうという 目 的 で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 例 33)の 세배하러 가다( 新 年 の 挨 拶 しに 行 く) の 세배하다( 新 年 挨 拶 する) という 漢 語 名 詞 の ~러 가다 形 は 하다(する) という 動 詞 が 使 われることで 新 年 の 挨 拶 をするという 目 的 である 場 所 に 移 動 するということを 表 す 例 34 )の 드라이브하러 가다(ドライブしに 行 く) も 하러(しに) のよう に 하다(する) という 動 詞 が 使 われることで ドライブする 目 的 でオイドという 場 所 に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 しかし 例 33 )の 세배를 가다( 新 年 の 挨 拶 を 行 く) の ~을 가다 形 は 動 作 性 漢 語 名 詞 の 表 す 動 作 と 가다( 行 く) という 移 動 とが 切 り 離 されない ので 目 的 の 動 作 は 浮 彫 りにならない 例 34)の 드라이브를 가다( ドライブ を 行 く) も 例 32 ) 同 様 하다(する) 動 詞 が 隠 れることで 하다(する) という 意 味 は 含 意 されるが 目 的 の 動 作 は 浮 彫 りにならない 例 35)の 음식점을 가다( 飲 食 店 を 行 く/ 飲 食 店 に 行 く) のような 場 所 性 漢 語 名 詞 の ~을 가다 形 は 場 所 性 漢 語 名 詞 の 음식점( 飲 食 店 ) でや る 食 べ 物 を 食 べる という 動 作 の 目 的 で 移 動 することを 表 す 例 35)のように 食 べ 物 を 食 べる という 意 味 が 含 意 される 以 上 のように 韓 国 語 の ~러 가다 形 は 韓 語 動 詞 と 漢 語 動 詞 に 後 接 し て 移 動 と 目 的 が 切 り 離 され 目 的 の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ることを 表 す ~을
309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305 가다 形 は 漢 語 名 詞 に 後 接 して 移 動 と 目 的 が 切 り 離 されないので 目 的 の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ない 漢 語 名 詞 には 動 作 性 名 詞 と 場 所 性 名 詞 があり 前 者 には する という 動 作 が 含 意 され 後 者 にはそれぞれの 場 所 でやる 具 体 的 な 動 作 が 含 意 される Ⅴ. 終 わりに Ⅲ Ⅳ で 分 析 した 結 果 をまとめると 次 の 通 りである 日 本 語 の 移 動 の 目 的 表 現 を 表 す 形 式 は ~しにいく 形 と ~にいく 形 があ る ~しにいく 形 は 和 語 動 詞 と 漢 語 動 詞 の 持 つ 形 式 であり ~にいく 形 は 漢 語 動 詞 のみ 持 つ 形 式 である 漢 語 動 詞 の ~しにいく 形 は 使 用 例 が 少 な いということでテキストには 提 示 していないが インタネットでは 広 く 用 いられてお り ~しにいく] 形 の 意 味 特 徴 をはっきりつかんでいるので テキストに 提 示 す る 必 要 がある ~しにいく 形 は 移 動 と 目 的 が 切 り 離 され 移 動 をして 目 的 の 動 作 をすることになり 目 的 の 動 作 が 取 り 立 てられる ~にいく 形 は 動 作 性 漢 語 動 詞 ( 外 来 語 を 含 む)のみ 持 つ 形 式 である 漢 語 動 詞 の ~にいく 形 は 移 動 と 目 的 が 切 り 離 されないので 目 的 の 動 作 は 取 り 立 てられない そのため 移 動 とともに 目 的 の 動 作 が 始 まる 旅 行 する 出 張 する のような 漢 語 動 詞 は ~にいく 形 しか 持 たない 韓 国 語 の 移 動 の 目 的 表 現 を 表 す 形 式 は ~러 가다 形 と ~을 가다 形 がある ~러 가다 形 は 韓 語 動 詞 と 漢 語 動 詞 の 持 つ 形 式 である ~러 가다 形 は 日 本 語 の ~しにいく 形 と 対 応 し ~을 가다 形 は 日 本 語 の ~にいく 形 と 対 応 し 意 味 も 同 様 である しかし 日 本 語 の 漢 語 動 詞 の ~にいく 形 は 動 作 性 の 漢 語 名 詞 に 限 られるが 韓 国 語 は 動 作 性 の 漢 語 名 詞 の 他 場 所 性 の 漢 語 名 詞 にも 付 く ~을 가다 形 は 動 作 性 の 漢 語 名 詞 の 場 合 は する という 意 味 が 含 意 され 場 所 性 の 漢 語 名 詞 の 場 合 はそれ ぞれの 場 所 でやる 具 体 的 な 動 作 が 含 意 される 日 本 語 のテキストには 日 本 語 の 漢 語 動 詞 の ~にいく 形 に 韓 国 語 の ~ 러 가다 形 を 対 応 させているが 韓 国 語 の ~을 가다 形 も 加 えて 対 応 させ るべきである
310 30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 参 考 文 献 > 梅 棹 忠 夫 ㆍ 金 田 一 春 彦 ㆍ 阪 倉 篤 義 ㆍ 日 野 原 重 明 監 修 (1988) 大 辞 林, 三 省 堂 国 際 交 流 基 金 (1978) 教 師 用 日 本 語 教 育 ハンドブック3 文 法 Ⅰ 助 詞 の 諸 問 題 1 凡 人 社 松 村 明 編 (1989) 日 本 語 大 事 典, 講 談 社 森 田 良 行 (1985) 誤 用 文 の 分 析 と 研 究 ー 日 本 語 学 への 提 言, 明 治 書 院 < 例 文 出 典 > (ao) (as) (go) (ch) (da) (do)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사항 성명: (한글) 김옥영, (한자) 金 玉 英, (영문) Kim, Ok Yeong 소속: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일어학전공) 교수 논문영문제목: Analysi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Expressions that Indicate the Purpose of Movement 주소: ( )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산 30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E mail: [email protected]
311 日 ㆍ 韓 両 語 の 移 動 の 目 的 を 表 す 表 現 の 分 析 ( 金 玉 英 ) 307 <국문요지> 일본어의 이동의 목적을 나타내는 형태인 ~しにいく(siniiku) 형은 화어동사와 한어동사에 사 용된다. ~しにいく(siniiku) 형은 이동을 하여 목적의 동작을 하게 되므로 이동과 목적이 분리되 어, 목적인 동작이 두드러진다. ~にいく(niiku) 형은 한어동사에만 사용되며 하다 동사의 탈락 으로 동작이 숨게 되어 이동과 목적인 동작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동작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따라 서 이동과 동시에 목적인 동작이 이루어지는 여행하다 출장하다 와 같은 동사는 ~にいく (niiku) 형밖에 사용하지 못 한다. 일본어의 ~にいく(niiku) 형에 대응하는 한국어의 러 가다 형은 일본어 ~にいく(niiku) 형 과 같게 사용되나 漢 語 동사의 경우는 일본어 보다 사용빈도가 높다. 일본어의 ~にいく(niiku) 형 에 대응하는 ~을 가다 형은 일본어의 ~にいく(niiku) 형과 같게 사용된다. 다만, 일본어에는 사 용되지 않는 서점을 가다 와 같은 장소성명사에도 사용되어 그 장소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동작이 함의되는 특징이 있다. 일본어 교재에는 일본어 한어동사의 경우 ~にいく(niiku) 형만을 제시하고 한국어의 ~러 가 다 형만을 대응시키고 있으나, 인터넷상에서 높은 빈도수를 보이는 ~しにいく(siniiku) 형도 함께 제시하고 ~にいく(niiku) 형의 의미상으로 적합한 한국어의 ~을 가다 형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주제어: 이동, 목적, ~niiku, ~siniiku, ~러 가다, ~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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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309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 高 秀 晩 Abstract Vowel devoice is a phenomenon in which the vowel that should be voiced is devoiced by the influence of nearby unvoiced consonant, and it usually occurs on high vowel. While this phenomenon occurs regularly in Japanese, it occurs optionally in Korean. In some existing references on phonetics or phonology, high vowel ㅣ, ㅟ, ㅡ, ㅜ are described to be devoiced in particular condition. However, according to the recent research, it is claimed that the devoice of ㅜ is relatively low compared to that of ㅣ or ㅡ. When ㅜ, round vowel, is pronounced, it is unlikely to be devoiced when rounded lips are unchanged. In Japanese, /u/ is easy to be devoiced because it is pronounced as unrounded [ɯ]. In Korean, ㅟ is round vowel too, and it also seems difficult to be devoiced if rounded lips are maintained. In Japanese, if alveolar fricative /s/ appears first, /u/ is centering and pronounced as [ɨ], while it is omitted in devoice circumstance. In Korean, 수 is considered to be devoiced when vowel is unrounded and in this case, there exists devoiced vowel. 9) Keywords : vowel devoice, high vowel, unrounded, alveolar fricative, vowel elision 1. 머리말 일본어 학습자에게 있어 모음의 무성화는 쉽지 않은 일본어 발음 중의 하 나이다. 모음은 성대의 진동이 내뿜는 호기와 함께 구강을 통과할 때 폐쇄나 좁힘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만들어지는 유성음이다. 이것이 특정한 환경에서 성 대의 진동이 수반되지 않게 되어 무성음처럼 발음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모음의 무성화라 한다. 무성화된 모음은 성대의 진동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 에 실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입모양이나 혀의 위치 등은 원래의 모음 상태 를 유지한다. 유성음이어야 할 모음이 무성화되어 실제 소리로 나지 않는 현상은 음의 동화 현상으로 설명된다. 어떤 음이 앞뒤 음의 영향으로 그와 유사한 음으로 동화되는 현상은 어느 언어에서나 관찰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러한 동화 * 인하대학교 교수
314 310 比較日本學 第32輯 ( ) 현상은 언어의 효율적인 운용이 그 원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모음의 무성화는 여러 언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언어에서의 모음 무성화는 수의적으로 실현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에 비해, 공통일본어(東京방언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표준어)에서는 높은 규칙성을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모음의 무성화는 일본어 학습자 발음 능력의 중요 한 체크포인트의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일본어의 모음 무성화 현상에 대해 서는 다방면에 걸쳐 많은 연구가 행하여졌다. 음운론적으로 원래의 모음과 무성화된 모음과의 관계는 의미상으로 차이 가 없으므로, 이음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모음의 무성화가 나타나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공통된다. 한국어에서도 모음의 무성화 현상은 나타나지만 일본어와 같은 높은 규칙 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 수의적인 것이어서,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에 관한 연 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어 음운론이나 음성학 관련 서적에도 모음의 무 성화에 대하여서는 간략하게 기술되어져 있는데, 그 내용 중에는 쉽게 납득 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모음의 무성화는 주로 고모음에서 실현되는데, 한국어에서도 ㅣ, ㅟ, ㅡ, ㅜ 등의 고모음에서 무성화가 실현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 중 원순모음 인 ㅟ, ㅜ 는 원순성이 유지되면서 무성화가 실현되는가에 의문이 생긴다. 또한 일본어에서는 치경마찰음이 선행할 때의 모음 무성화는 탈락의 양상 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에서도 치경마찰음이 선행할 때의 모음 무성화 실현 비율이 다른 자음이 선행할 때보다 높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한 국어에서도 일본어와 같이 탈락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음운론의 관점에서 한국어 ㅜ, ㅟ 의 무성화와 치경마찰 음이 선행할 때의 모음 무성화에 대하여 일본어와 대조하며 고찰한다. 2. 일본어의 모음 무성화 일본어의 모음 무성화는 방언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악센트와 밀접한 관 련이 있다고 한다. 秋永一枝(1983)에 의하면 関東ㆍ九州ㆍ東北(南)지역은 무 성화 현상이 많고, 関西ㆍ四国ㆍ北海道ㆍ東北(北) 지역은 무성화 현상이 적 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비무성화 지역에서도
315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秀晩) 311 무성화 실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공통어 교육의 보급이나 방송 등의 영향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무성화로 분류되는 지역의 사람들은 일상대 화에서는 무성화 실현 비율이 낮지만 의식적인 발음에서는 무성화시키는 것 같다. 한 예로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大阪 출신 여학생은 대화 중에는 무성 화 환경에서 모음을 무성화시키지 않았지만, 같은 내용을 읽게 하자 무성화 시켜 발음하였다. 일본 공통어의 바탕이 되는 현대東京語는 높은 규칙성을 보이는데, 今田滋 子(1989)는 다음과 같이 이를 기술하면서 악센트의 핵이 있는 음절(모라, 박) 에서는 무성화가 겹쳐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무성화되는 모음은 발 음기호 밑에 [ ]로 나타낸다. (1) [i], [ɯ]가 무성자음 사이에 올 때 きた[kita] くさ[kɯsa] (2) [i], [ɯ]가 무성자음 뒤에 계속되고, 어말이나 문말에 올 때 です[desɨ]1) ます[masɨ] とくしょく[tokɯʃokɯ]2) (3) [i], [ɯ]가 어두에서 무성자음의 앞에 올 때 いきます(行きます)[ikimasɨ] いきる(生きる)[ikiɾɯ] うつる(移る, 写る)[ɯʦɨɾɯ] (4) [i], [ɯ] 앞에 치경마찰음 [s]가 올 때, 뒤에 유성자음이 와 도 무성화하는 경우가 있다. むすめ[mɯsɨme] すぎ[sɨɡi] (5) [a], [o]도 같은 모음이 연속될 때는 무성자음 사이에서 무 성화되는 경우가 있다. かたな[katana] こころ[kokoɾo] 이 밖에 [e]는 일반적으로 무성화되는 빈도가 가장 낮은 모음으로 분류되 1) 일본어의 す, つ, ず(づ) 는 그 모음이 중설화되어 발음되는데, 이는 한국어의 ㅡ[ɨ] 의 발음 과 거의 같다. 본래는 [ɯ ]로 표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쇄 편의상 [ɨ]로 표시하기로 한다. 2) 한국어의 시 나 일본어의 シ 의 자음은 연구자에 따라 경구개치경마찰음인 [ʃ]나 치경경구개 음인 [ɕ]로 표시한다. 본 논문에서는 日本音声学会 編(1976) 音声学大辞典 三修社에 따라 [ʃ]로 통일한다. 다만, 인용의 경우 원문이 [ɕ]로 표시했다면, 그에 따른다.
316 312 比較日本學 第32輯 ( ) 는데, 佐久間鼎(1929)는 ケッシテ 의 ケ 와 セッカク 의 セ 를 무성화의 예로 들었다. 今田(1989)는 위의 무성화 규칙 중, (1)(2)(3)은 규칙성이 높은 것으로 분류 한다. (1)의 경우는 악센트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무성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규칙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어3), 악센트사전 등에는 (1)을 제외하고는 무성화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2)의 경우 도 今田(1989)에 의하면 현대東京語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므로 규칙 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3)의 경우는 行きますー来ます, 写るー釣る 등과 같이 혼동을 야기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무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4)와 (5) 는 수의적인 현상으로 규칙성이 높지 않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東京語의 모음 무성화는 주로 고모음 /i/, /u/가 무성자음 사이에 오거나, 전후에 무성자음이 올 경우에 일어난다. 모음의 무성화를 가령 기호로 표시해 보면 CVC의 환경에서 V가 무성화되 어 CVC로 발음되는 것인데, 이와 같은 주변음의 영향으로 원래의 음 속성이 주변음의 속성과 유사하게 변하여 발음되는 동화 현상은 어느 언어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음운 현상이다. 모음의 무성화가 보고된 언어는 그다지 많 지 않지만, 무성자음이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화되는 현상은 많은 언어에서 보고된다. 이처럼 유성음 사이에서 무성음이 유성화된다거나, 무성음 사이에서 유성 음이 무성화되는 현상은 언어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관점으로 이해 할 수 있 을 것이다. 분명 무성 유성 무성, 혹은 유성 무성 유성과 같이 유무성음이 교차되는 발음보다는 무성 무성 무성, 혹은 유성 유성 유성과 같이 같은 속 성의 발음이 연속되는 것이 의미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는 한, 발음 에너지의 절약이라는 측면에서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음의 무성화도 그러한 효율적인 언어 운용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모음 /i/와 /u/가 무성화되기 쉬운 것은 모음의 지속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춘선(2013)을 재인용하면 일본어의 모음 중에서 /u/가 지속 시간이 가장 짧고, 그 다음으로 /i/가 짧은 것으로 나타난다. i i 과 같은 경우에는 き, く, ち 각각에서 모음이 무성화될 수 있는데, 3) きくちさん[k kɯ ʧ saɴ] 이처럼 무성화가 계속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하나씩 건너뛰어 무성화시켜 발음한다고 한다(今 田(1989)).
317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秀晩) 313 그런데 모음의 무성화 현상도 무성파열음이 선행할 때와 무성마찰음이나 무성파찰음이 선행할 때와는 그 양상을 달리 한다. 무성의 파열음이 선행할 때는 모음은 무성화되지만 그 모음의 조음 형태는 유지된다. 그에 반해 무성 의 마찰음이나 파찰음이 선행할 때는 무성화에서 나아가 모음이 탈락하는 현 상이 많이 관찰된다. 위의 무성화 규칙에서도 (2)의 です, ます 에서 す 는 모음이 무성화된다기보다는 탈락으로 보인다. 또한 규칙 (4)의 경우, ス 는 그 모음이 위 (1)의 규칙과 상관없이 유성자음 앞에서도 무성화되는 경우이다. 무성마찰음이 선행할 때의 무성화 현상에 관해서는 일찍이 神保格(1925)가 サ行의 シ 와 ス, 그리고 ハ行의 ヒ 와 フ 가 무성자음 앞에서 모음이 탈락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川上蓁(1977)도 アクセント等の条件が許すかぎり無声子音の直前の き ぴ く ぷ しゅ ちゅ は母音をもたず その代りに無声母音 [i][ɯ]をもつ また 無声子音の直前の し ち ひ す つ ふ は一般に無声母音すらもたない もしもったとしてもその長 さは極度に短い 라고 하여, 일본어의 무성마찰음이나 무성파찰음에 후속하는 [i] [ɯ]는 무성 자음 앞에서 탈락한다고 지적하였다. 前川喜久雄(1989)는 あきから 의 き 는 무성화되어 [akikaɾa]로 발음 되는 데 이때는 무성모음 [i]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あした 의 발음 표기를 [aʃita]로 하는 것은 음성학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aʃta]로 하지 않으면 안 된 다고 하였는데, 이는 음성학적으로 모음이 탈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무성의 마찰음이나 파찰음 뒤에 오는 고모음은 파열음이 선행할 때보다도 무성화 되기 쉽고 나아가서는 모음이 탈락하기까 지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무성의 마찰음이나 파찰음이 선행할 때 고모음이 탈락하는 것은 무성마찰음과 파찰음, 그리고 고모음의 조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치경마찰음의 조음과 치경마찰음이 선행할 시의 무성화의 관계 로 범위를 좁혀 살펴보기로 한다.
318 314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일본어 サ行의 자음은, 모음 [i]가 후속하는 シ 에서는 [ʃi]와 같이 경구개 치경음으로 나타나고, 그 외의 모음 앞에서는 치경마찰음 [s]로 나타난다. シ 의 자음 [ʃ]는 그 조음 위치가 경구개와 치경의 경계 부근이다. シ 의 모음 [i]는 조음 위치가 경구개 부근이다. 비슷한 조음 위치를 갖는 자음 [ʃ] 와 모음 [i]가 결합하게 되면 모음 [i]는 그 발음 길이가 더욱 짧아져 자음 [ʃ] 에 동화되기 쉬워질 것이다. 그것이 모음 [i]가 [ʃ]에 후속하고 계속해서 무성 자음이 후속할 때 탈락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サ行 ス 의 자음 [s]는 개인차가 있지만 조음 위치가 치경 부근이다. 그리 고 ス 의 모음 [ɯ]는 중설화된다. 이는 ス 에서뿐만이 아니라 ツ 나 ズ 와 같이 [s]와 관련되는 파찰음이 선행할 때도 마찬가지로 중설화된다. 이는 치 경 부근에서 [s]가 조음될 때 그 영향으로 후속하는 모음 [ɯ]의 조음 위치가 치경 쪽으로 이동하여 중설 부근에서 조음되는 것이다. 이렇게 [s]에 후속하 는 중설음 [ɨ]는 한국어의 ㅡ[ɨ] 와 흡사한 음이다. 이렇게 조음된 ス 는 위에 서 본 바와 같이 발화 시에 모음이 탈락되고 유성자음이 후속할 때도 무성화 가 실현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3.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 한국어에서의 모음 무성화에 대해서는 그것이 수의적으로 일어나는, 규칙 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음운 현상이기 때문인지 그다지 많은 연구가 행하여 지지는 않아, 한국어 음성학이나 음운론 관련 서적 등에서도 대부분 간략하 게 언급되어져 있다. 이기문 외(1999)에서는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 하게 기술되어져 있다. 화자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멀다, 좋다, 파랗다 등의 어휘들에서 첫 음절 의 모음을 무성화하는 경우가 있다. 또 짧은 고모음 ㅣ, ㅟ, ㅜ, ㅡ 는 유기음 ㅊ, ㅋ, ㅌ, ㅍ 및 마찰음 ㅅ, ㅆ, ㅎ 다음에서 거의 대부분, 혹은 완전히 무성화된다. 투고[thuɡo], 시간[ɕiɡan], 희안한[çianɦan]
319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 高 秀 晩 ) 315 위의 예 중 파랗다 의 첫 음절에서 무성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일본 어의 かたな[ka tana] 처럼 같은 모음이 반복해서 출현할 경우 저모음도 무성 화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멀다, 좋다 등의 예에서의 무성화 실현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짧은 고모음 ㅣ, ㅟ, ㅜ, ㅡ 는 유기음 ㅊ, ㅋ, ㅌ, ㅍ 및 마찰음 ㅅ, ㅆ, ㅎ 다음에서 거의 대부분, 혹은 완전히 무성화된다고 하였는데, 그 렇다면 이것은 규칙성이 높은 것으로 한국어의 일반적인 음운 현상으로 규정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를 수의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구 결과와는 배치된다. 변희경(2002)은 한국인 35명을 대상으로 한국어 모음의 무성화 실태를 조 사하여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1) 개인의 무성화 실현 비율은 평균 34%로, 개인차가 상당히 크다. (2) 마찰음이 선행할 때 무성화되기 쉽고, 후속할 때는 무성화가 일어나 기 어렵다. (3) 후속자음이 선행자음보다 무성화율에 관련되어 있다. (4) 가장 무성화되기 쉬운 음 환경은 마찰음이 선행하고 파열음이 후속 되는 경우이다. (5) 모음의 종류에 의한 무성화 실현 비율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6) 지역별, 성별의 무성화 실현 비율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변희경은 또한 한국어에 있어서의 모음 무성화는 지역 구별 없이 개인차가 몹시 크기 때문에 무성화 현상에 무디어서, 일본어의 모음 무성화에 대해서 도 의식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의 모음 무성화에 관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신지영(2001)은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에 대하여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는 데,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모음의 무성화 실현 비율은 /ㅡ/>/ㅣ/>/ㅜ/의 순으로 차이를 보이는 데, 특히 /ㅜ/는 다른 고모음에 비하여 실현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2) 선행자음이 치경마찰음인 경우 무성모음의 실현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3) 후행자음이 비음이거나 탄설음일 경우 무성모음의 실현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높았다. 변희경과 신지영의 실험 결과는 약간 상이한 점이 있지만, 마찰음이 선행 할 때 무성화가 실현되기 쉽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앞의 이
320 31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기문 외의 기술과도 부합된다. 변희경은 치경마찰음과 후두마찰음의 차이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신지영은 후두마찰음이 선행할 때의 무성모 음 실현이 현저하게 낮다고 하였다. 또한 신지영은 고모음에 후행하는 자음이 유성음인 비음이나 탄설음일 때 가 파열유기음일 때보다도 무성화 실현율이 더 높다고 하여 주목을 끈다. 신지영은 /ㅜ/의 무성화 실현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하였는데, 이는 이기문 외의 기술 내용과는 배치된다.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의 고모음도 다른 모음에 비해 지속시간이 짧 은 것으로 여러 실험 결과는 전한다. 지민제 외(1993)에 의하면 한국어의 협 모음(고모음)인 /ㅣ, ㅡ, ㅜ/의 길이는 다른 모음에 비해 짧고, 그 중에서도 / ㅡ/가 가장 짧다고 하는데, 이는 신지영의 실험에서 나타난 /ㅡ/가 무성화 실 현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한국어에서도 중설모음 /ㅡ/가 마찰음에 후속할 경우에 무성화 실현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4. 한국어 고모음 ㅜ, ㅟ 의 무성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한일 양국어에서의 모음 무성화는 주로 고모음이 그 실현 비율이 높다. 이처럼 고모음이 무성화되기 쉬운 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발음의 지속시간이 다른 모음보다 짧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모음은 조음위치 상 자음에 가까운 음이라는 점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어의 고모음은 전설의 /i/와 후설의 /u/가 있는데, 후설의 /u/는 비원순 인 [ɯ]로 실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u/의 이음으로서 치경마찰음과 치 경파찰음이 선행할 때 나타나는 중설의 [ɨ]가 있다. 일본어의 후설모음 [ɯ]는 그 조음점도 [u]보다는 약간 중설 쪽이다. 한국어의 고모음은 전설의 /ㅣ/[i]와 중설의 /ㅡ/[ɨ], 그리고 후설의 /ㅜ/[u]가 있다. /ㅟ/는 정상적인 발음에서는 [wi]와 같이 반모음이 삽입된 음으로 실현 되지만, 빠른 발음에서는 전설의 원순모음인 [y]로 실현된다. 이러한 /ㅟ/[y] 까지 넣는다면 한국어의 고모음은 4종이 되는데, 이 중 [y]와 [u]는 원순모음 이다. 이호영(1996)과 이기문 외(1999)는 고모음 ㅟ 와 ㅜ 가 대부분 무성화 된
321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秀晩) 317 다고 하였지만, 필자의 관찰로는 이것은 원순모음인 ㅟ[y] 와 ㅜ[u] 의 원순 성이 약화되거나 비원순음으로 발음될 때라고 생각된다. 먼저 전설모음인 ㅟ[y] 에 대해 살펴본다. 음운론적으로 전설의 원순모음은 유표의 음이다. 유표의 음은 무표의 음에 비해 어떤 형태로든 발화 시에 노력을 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체 등의 빠른 발화에서는 유표의 음이 무표의 음을 지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窪薗 晴夫(1998)는 어떤 언어에서 모음수의 감소와 같은 음의 변화가 일어날 경우 먼저 유표의 음이 무표의 음에 융합되어 소멸된다고 하며, 고대 영어의 전설 원순모음 [y] 소멸을 예로 들었다. 일본어에서는 모음의 무성화와 악센트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무성 음과 유성음의 대립이 있는 파열음 등에서는 무성음이 무표, 유성음이 유표 이지만, 모음에 있어서는 자연언어에 반하는 무성화 현상은 유표가 된다. 그 리고 악센트도 유표이다. 모음의 무성화가 악센트의 핵이 있는 음절(모라, 박)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은 악센트라는 유표성이 선행되기 때문이라고 생 각한다. 또 中條修(1989)에 의하면 첫째 박과 둘째 박은 악센트의 높낮이가 달라야 하는 東京語에서 둘째 박에 무성화가 선행하면 한 박 늦추어져 둘째 박과 셋째 박 사이에서 악센트의 상승이 관찰된다고 한다. 이러한 무성화와 악센트의 관계는 두 가지 유표성이 동시에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설의 원순모음인 ㅟ [y]가 그 유표성인 원순을 유지하면서 또 다른 유표성의 무성화가 실현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 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귀찮다 서귀포 악귀, 취하다 술취한 숙취 등과 같이 모음 ㅟ 가 들어간 어휘를 어두 어중 어말에 배열하고 빠르게 읽도록 시켜 보았다. 상당히 의식적인 발음이었음에도 어말>어두>어중의 순으로 원순성의 약화가 관찰되었다. 조금 빠른 발화에서는 어중의 귀 나 취 가 기 나 치 처럼 평순모음처럼 들린다. 대화체의 빠른 발화였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높은 비율로 나타날 것이다. 모음의 무성화도 ㅟ 가 어중에 올 때 많이 관찰되었고, ㅟ 의 원순성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무성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다음은 후설의 고모음 ㅜ 에 대해 살펴본다. 신지영(2001)은 한국어의 고모음 중 ㅜ 는 다른 고모음에 비하여 무성화
322 31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의 실현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ㅜ 발음의 원순성 유 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신지영은 성우의 낭독체 발음을 실험의 자료로 이용하였는데, 발음 훈련을 받은 성우라면 ㅜ 의 발음 시 원 순성이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ㅜ 의 무성화 실현 비율이 현 저히 낮게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어에서는 모음 /u/가 원순음으로 발음되는 방언이 있는데, 그런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은 모음의 무성화에 관해서도 비무성화 지역으로 분류된다. 음운론적으로 [후설 원순]의 음은 무표이다. 그렇지만 위의 한국어와 일본 어 방언의 예에서 모음의 무성화에 관해서는 후설모음에서도 원순은 유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어에서 모음 /u/의 무성화 실현 비율이 높은 것은 실제의 음 [ɯ]의 조 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ɯ]는 후설모음으로 분류되지만 실제의 조음점은 완전한 후설이 아니라 약간 전설 쪽으로 이동된 곳이다. 음운론적으로 [후설 비원순]의 모음은 유표이지만, 窪薗(1998)는 조음점이 전설 쪽으로 이동되어 있는 일본어의 [ɯ]는 무표라고 하였다. 이기문 외(1999)는 투고 의 투 를 무성화의 예로 제시했지만, 이 역시 ㅜ 를 원순성을 유지하면서 발음할 경우 무성화가 실현되지 않는 것이 관찰 된다. 고모음이 무성화되기 쉬운 것은 지속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ㅜ 의 발음에 서 원순성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지속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무성화는 일어나 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유춘희(2013)는 한국어에서 폐음절인 CVC의 환경에서의 V의 무성화 실현 비율이 개음절인 CV의 V보다 무성화 실현 비율이 높다고 하면서, 그것은 지속 시간이 더욱 짧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V가 원순모음인 ㅜ 라면 CVC의 환경에서 지속 시간이 짧아지며 원순성이 약화되어 무성화가 실현되는 것으 로 생각한다. 모음 ㅜ 가 비원순화된다면 그것은 일본어 ウ段 의 모음 [ɯ]와 유사한 음 이 된다. 모음 ㅜ 가 실제 발음에서 비원순화되는 현상에 대한 실험음성학의 자료를 접하지 못해 단정적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유표의 음이 그에 대한 무표의 음을 지향하는 음운론의 일반 원칙에 비추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필자 자신의 발음이나 다른 사람들의 발음 관찰을 통 해 확인할 수 있었다.
323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秀晩) 치경마찰음 선행 시의 모음 무성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한일 양국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음이 무성화 하기 쉬운 환경으로는 무성의 치경마찰음이 선행하는 경우이다. 한국어의 /ㅅ/는 중설이나 후설의 고모음과 결합하면 스[sɨ] 와 수[su] 와 같이 치경음으로 나타나고, 전설모음과 결합한 시 는 조음 위치가 약간 경구 개 쪽으로 옮겨져 일본어의 シ 와 같이 [ʃi]로 나타난다. 일본어에서는 무성의 치경마찰음이 선행할 때 고모음 /u/는 후속자음이 무 성자음일 때는 물론 유성자음일 때도 무성화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어 역시 치경마찰음에 후속하는 고모음 ㅡ 는 무성화의 빈도 비율이 가장 높았다. 또 한 모음이 탈락하는 현상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어의 음절구조는 한 음절 내에서 자음의 연속이 허 용되어 CCCVCC와 같이 한 음절 내에 세 개의 자음이 연속되는 경우도 있 다(예;strength). 한국어나 일본어의 음절구조에서는 자음 뒤에는 반드시 모음이 후속하는 CV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등의 외국어를 외래어로 수용할 때 위의 CCCVCC는 CVCVCVCVCV와 같이 모음을 삽입하게 된다. 이 경우 한 국어에서는 어느 자음이든 /ㅡ/를 삽입한다. 그리고 일본어에서는 영어 등의 /k/나 /t/를 수용할 때 /u/ 이외의 다른 모음이 삽입되는 경우도 있지만(예, strike ストライキ), 그 자음이 /s/일 경우는 거의 대부분 /u/를 삽입한다4). 이 것은 일본어에서 /s/ 뒤의 /u/가 중설모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 다. 한국어에서 영어 등에 단독으로 나타나는 모든 자음에 /ㅡ/를 첨가하여 수용하는 것은 모음 /ㅡ/가 지속시간이 짧고, 중설이라는 조음 위치가 자음에 동화되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형성된 일본어 외래어 중의 ス 나 한국어 외래어 중의 스 는 발화 시에 모음이 탈락되어 자음 [s]만이 발음되는 것이 많이 관찰된다. 이것은 영 어 교육의 보급으로 원음 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어 ス 나 한국어 스 의 조음 환경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일본어의 ス 는 모음 /u/가 중설화되어 [ɨ]로 발음 되는데 이는 한국어의 스 와 흡사한 발음이다. 그리고 한국어에서 모음 ㅡ 는 지속시간이 가장 짧은 음이다. 일본어에서는 /u/가 지속시간이 가장 짧은 4) 室町시대에 포르투갈어 cristão 를 キリシタン 과 같이 s 를 シ 로 수용한 예가 있다.
324 320 比較日本學 第32輯 ( ) 모음인데 /s/에 후속하며 중설화되면서 더욱 짧아지기 때문에 무성화가 쉽게 일어나고 또한 탈락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어의 수 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음 ㅜ 의 원순성이 유지된다면 무성화가 어려울 것이다. 수 에서 모음이 무성화된다면 그것은 ㅜ 의 원순 성이 약화되거나 상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옥수수 를 빠르게 발음할 때 어 중의 수 에서 비원순화와 무성화가 관찰된다. 그러나 이때 모음의 탈락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중 수 의 모음이 무성화된다면, 그 원순성은 잃었지만 중설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 다. 일본어 /u/의 일반적인 음 [ɯ]와 유사한 음으로 무성화모음 [ɯ]가 실현되 는 것으로 보인다. 6. 맺음말과 향후의 과제 이상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현상에 대하여 음운론적인 입장에서 대조 고찰해 보았다.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현상은 다른 언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고모 음에서 실현되는데, 일본의 현대東京語가 모음 무성화에 관하여 높은 규칙성 을 보이는데 대하여 한국어의 모음 무성화는 수의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어의 고모음 ㅣ, ㅟ, ㅜ, ㅡ 중 ㅟ 와 ㅜ 는 원순모음인데, 모음의 무성화와 관련해서는 발화 시 그 원순성이 유지된다면 무성화는 실현되기 어 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어의 /u/가 무성화되기 쉬운 것은 평순음인 [ɯ]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일본어에서도 모음 /u/가 원순음으로 발화되는 방언이 있 는데, 그런 방언의 사용 지역은 모음의 무성화에 관해서도 비무성화 지역으 로 분류된다. 치경마찰음에 후속하는 ㅡ 는 일본어 ス 의 모음처럼 무성화가 실현되면 탈락되고, 치경마찰음에 후속하는 ㅜ 는 비원순화와 함께 무성화가 실현되 지만 이때는 무성모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필자의 청각과 시각을 이용한 관찰과 음운론적인 고찰 에 의한 것으로 기계적인 음성실험의 뒷받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 라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향후 기자재를 이용한 실험음성학의 연구 과제로 삼고자 한다.
325 한일 양국어의 모음 무성화 대조연구 (高秀晩) 321 (1) 한국어 원순모음의 비원순화 실현 양상 (2) 비원순화와 무성화의 상관관계 (3) 모음 ㅡ 탈락의 양상 <참고문헌> 변희경(2002) 韓国語における母音の無声化 日本音声学会全国大会予稿集 신지영(2001) 한국어 모음무성화 현상의 실현 환경과 그 양상 한국어학 14 이기문 김진우 이상억(1999) 국어음운론 學硏社 이호영(1996) 국어음성학 태학사 유춘선(2013) 한ㆍ일 양 언어의 모음의 무성화 지속시간과 모음의 무성화 일어일문학연구 84 지민제, 최운천, 김상훈(1993) 우리말 소리의 길이 : 실험음성학적 연구 제5회 한글 및 한 국어 정보처리 학술발표 논문집 秋永一枝 編(1983) 明解日本語アクセント辞典 第2版 三省堂 今田滋子(1989) 教師用日本語教育ハンドブック6 発音 改訂版 凡人社 NHK 編(1985) 日本語発音アクセント辞典 改訂新版 日本放送出版協会 川上蓁(1977) 日本語音声概説 桜楓社 窪薗晴夫(1998) 音声学ㆍ音韻論 くろしお出版 窪薗晴夫 吉田夏也(2003) 母音の無声化と時間制御について Essays on Phonetics and Phonology 佐久間鼎(1929) 日本音声学 京文社(1963 風間書房에서 復刊) 神保格(1925) 国語音声学 明治図書 中條修(1989) 日本語の音韻とアクセント 勁草書房 日本音声学会 編(1976) 音声学大辞典 三修社 前川喜久雄(1989) 母音の無声化 講座日本語と日本語教育2 日本語の音声ㆍ音韻(上) 明治 書院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고수만, (한자) 高秀晩, (영어) Ko, Sooman 소속 : 인하대학교 교수 논문영문제목 : The Comparative Study of Japanese Korean on Vowel devoice 주소 : ( )인천광역시 남구 인하로 100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일본언어문화학과 E mail: [email protected]
326 32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국문요지> 모음의 무성화는 유성음이어야 할 모음이 전후 무성자음의 영향으로 무성화되는 현상으로 주 로 고모음에서 일어난다. 모음의 무성화 현상은 일본어에서는 규칙적으로 나타나는데, 한국어에 서는 수의적으로 나타난다. 기존의 한국어 음성학ㆍ음운론의 개설서에는 고모음 ㅣ,ㅟ, ㅡ, ㅜ 가 특정한 조건에서 무성 화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 ㅜ 의 무성화 실현 비율은 ㅣ 나 ㅡ 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ㅜ 는 원순모음으로 발화 시에 그 원순성이 유지된다면 무성 화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어의 /u/가 무성화되기 쉬운 것은 평순음인 [ɯ]로 실 현되기 때문이다. ㅟ 도 원순모음으로 이 역시도 발화 시에 그 원순성이 유지된다면 무성화 실현 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어의 /u/는 치경마찰음 /s/가 선행하면 중설화되어 실제 발화에서 [ɨ]로 실현되는데 무성화 환경에서는 탈락된다. 이 점 한국어의 스 도 공통되어 무성화 환경에서 모음이 탈락된다. 한국어 의 수 에서는 모음이 비원순화되었을 때 무성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때는 무성모음 이 존재한다. 주제어 : 모음의 무성화, 고모음, 비원순화, 무성마찰음, 모음탈락
327 323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公共場面における表現を中心に 國生和美* ㆍ鄭秀賢 ** Abstract This study tried to consider the factor of the differences in language and behavior, stating dissatisfaction of the subjects of both nations and the features of the language and behavior which are called expression of dissatisfaction, paying attention to the linguistic expression and behavior of the expression of dissatisfaction by Japanese and Koreans and with which expression means they express their dissatisfaction at the scene where those can occur in their daily lives, dividing them in public cases. Conscious part made use of selective questionnaire to use the expressions of dissatisfaction in Japanese and Koreans. The data close to the real expressions showed the followings as we examined and analyzed, using the tests in completing the discourse. We have paid attention to how they express their dissatisfaction in public cases, but both nations(japan and Korea) have outstandingly used direct means. Meanwhile, Koreans practiced direct linguistic behavior. The expression of dissatisfaction towards the stranger in public cases depended on who the counterpart is and what feature the stranger has. Japanese and Koreans as above, It became clear that close friendship and a hierarchical relations, a social rule and courtesy and a difference of the consciousness for the manner had an influence on the choice of the dissatisfaction expression. It can be said that knowing the misunderstandings, dissatisfactions, frictions and differences in the consciousness or linguistic behavior of the counterpart who expresses the dissatisfaction that can be the reason and understanding each other are one of the important assignments that can smoothly carry on the communications between different cultures. Keywords : Complaint strategy, Direct, Indirect 5)6) 1. はじめに 本稿では 日常生活のなか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行う際に聞き手との人間関係 や聞き手の面目に影響を及ぼしかねない 不満表明 という発話行為に注目し たいと思う 国際化が進む現在 異文化コミュニケーションはさまざまな状況で必 * 東国大学校 日語日文学科 博士課程 日本語学 ** 東国大学校 ソウルキャンパス 文科大学 日語日文学科 教授 日本語学 (交信著者)
328 324 比較日本學 第32輯 ( ) 然的に要求され その際に自国の言語行動や習慣を基本として考え 行動する ことによって他国との言語や文化の違いから誤解や摩擦が生じる可能性は少なく ない 日本語母語話者と韓国語母語話者が日常的に起こりうる場面において どのような言語行動を用いて不満を表明し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を調査し 不満表 明ストラテジーの特徴を考察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 2. 先行研究 本稿では ある種の行動期待や当然とみなされる文化規範に反するような状況 を好ましくないと感じることを藤森弘子(1997)を引用し 不満 1)とする また 相手の立場を脅かす行為であり 母語話者にとってもちょっとした言葉の使い方 や話の持ちかけ方で人間関係に大きな影響を与える可能性がある難しい行為を 初鹿野他(1996)を引用し 不満表明 と定義する さらに 好ましくない状況を 引き起こした相手にそれを伝えようとする時に用いる言語表現ストラテジーを 不 満表明ストラテジー とする2) これまでの 不満表明 に関する研究は初鹿野他(1996)をはじめ朴承圓 (2000) 李善姫(2004)(2006a, b) 洪珉杓(2006)などが挙げられる 母語話者に 限らず日本語学習者との比較など多様な観点から不満表明を考察し 研究した 結果が示されている しかし 上に挙げた先行研究では日本語母語話者と日本 語学習者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違いを考察したり 日本語学習者の不満表 明ストラテジーの使用における母語からの転移の影響などを考察したものが多く 見られる そこで本稿では全体的使用傾向のみに焦点を当てるのではなく 不 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の差にみられる要因に注目したいと思う 公共の 場において 一人でいる場合と誰か親しい友達と一緒にいる場合 また親しい 先輩や後輩といる場合に不満表明の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に違いが見られるか どうか またその特徴についても考察を進めていきたいと思う 1) 藤森弘子(1997)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日英比較 談話完成テスト法の調査結果をもとに 言語と文化の対話 英宝社 p.243 2) 初鹿野阿れ 熊取谷哲夫 藤森弘子(1996)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 日本語母語 話者と日本語学習者の比較 日本語教育 88号 日本語教育学会 p
329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國生和美ㆍ鄭秀賢) 研究方法 3.1 調査対象者 日本と韓国の大学生と大学院生を対象とし 選択式アンケート及び談話完成 テスト3)を用いて調査を行った (場面の詳細は付録参照) 選択式アンケートは 日本人男性77名 女性103名 韓国人男性76名 女 性107名に実施した また 談話完成テストは 日本人男性28名 女性34名 韓国人男性34名 女性50名に実施した 談話完成テストは 不満を感じる状況を引き起こした相手に対して何か言うこと を前提として回答することを条件にしているため 選択式アンケートとは異なる調 査であるということをここに示しておく 3.2 調査方法 調査対象を日本と韓国の大学生と大学院生に限定し ①不満を感じるか感じ ないか ②不満を感じる場合どのような表現方法で不満を表明するかについてア ンケート形式で調査を行った 所要時間は選択式アンケート3分 5分 談話 完成テスト5分 10分程度である 具体的な言語行動については談話完成テス トの結果を参考に考察する 調査は2007年から2008年にかけて実施したものであり 本稿は2009年の修士 論文を改めて考察し 結果をまとめたものである 調査に使用した場面設定は 計4つである まず 図書館場面と割り込み場 面では 公共の場で不満を感じるような状況を引き起こした見知らぬ人に対し て どのくらい不満を表明できるのかについて考察するために設定した場面であ る 一人でいる場合との比較のために不満表明の言語行動に差が出るであろうと 予想される親しい友達と一緒にいる場合を設定した 続いて レストラン場面と映画場面では 一緒にいる相手によって不満表明の 仕方に差があるかについて注目するために設定した場面である 親しい間柄で あっても上下関係という壁がある限り 親しい友達ㆍ先輩ㆍ後輩とでは不満表明の ストラテジーに違いがみられるのかということに焦点を当てて考察を進めていく 3) Discourse Completion Test: DCT)とは アンケート形式の調査で場面を設定し それぞれの場 面でどう言うかを被験者に書き込んでもらうものである
330 326 比較日本學 第32輯 ( ) 4 場面別にみる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を分類するにあたって 李善姫(2006a,b) 初鹿野他 (1996) 朴承圓(2000) 藤森弘子(1997)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を参考にした 表1の構成は李善姫(2006a,b)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4)に加え 4つの新たなス トラテジーを追加し 計12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に分類したものである <表1>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分類 間 接 的 Str1 不満を表明しない(諦めて受け入れる) Str2 気づかせるための発話ㆍ行動 Str3 示唆ㆍ皮肉(不満を感じている状況をほのめかす) Str4 直接的な表現と状況の説明 Str5 理由問い 直 接 的 Str6 改善要求 Str7 代償要求 Str8 非難 Str9 警告 Str10 感情表出 Str11 責任の追及 Str12 その他 (非言語行動も含める) 間接的なストラテジーは 不満を感じる状況を引き起こした相手が自ら気づくよ うな表現を用いて不満を表明する形式として分類した 直接的なストラテジーは 不満を感じる状況を引き起こした相手に向かって遠 まわしに不満を表明するのではなく 直接不満を投げかけて その不満が相手 に聞こえていることを前提とする 選択式アンケートも談話完成テストも会話の相 手のいない選択式及び記述形式の調査であるため 不満を相手に聞こえるよう に直接言っているかどうか明確に判断できないという問題点がある しかし 談 話完成テストでは不満を感じる状況を引き起こした相手に対して何か言うことを前 提として記述するように条件をつけたため 相手に直接不満の感情が伝わってい 4) 李善姫(2006a, b)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は計8つで構成されている 1 不満を表明しない 2 遠まわしな不満表明 3 理由ㆍ説明の要求 4 明示的な不満表明 5 改善要求 6 代償要求 7 警告ㆍ脅かし 8 非難
331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國生和美ㆍ鄭秀賢) 327 ることを前提とする さらに友達言葉と丁寧語の使用における感じ方の違いや男 女の差については 今回は考察の対象としない 4.1 図書館場面 1) 一人でいる場合 <表2> 一人でいる場合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 間接的 日 韓 s s 単位 直接的 s s s s s s s s s s 下線は日本語母語話者 網掛けは韓国語母語話者の特徴的な使用率を示す 日本語母語話者(以下 JN)はStr10の感情表出の使用率が最も高く うるさ い うざい という言葉を用いて感情を露わにしている傾向が見られた 続い てStr6 Str12の使用率が高くなっているが 怒りを抑えて 静かにしてもらえま すか という表現で状況の改善を求める また 相当不満を感じていても言葉 に出して言うには抵抗を感じ 非言語行動を用いて状況の改善を試みている 非言語行動の使用は 韓国語母語話者(以下 KN)と大差が見られる 非言語 行動には 咳払いをする 席を移動する などが見られる KNはStr6の使用率が最も高く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すみませ ん ちょっと静かにしてもらえませんか)など 一人でいても不満を感じている状 況を改善しようとする傾向が見られる Str4の直接的な表現と状況説明はJNより も3倍程使用率が高く 저기요...조금 시끄러운데요 (すみません ちょっとう るさいんですけど)やStr10の感情表出 짜증나 (うざい)などの使用率が高い ここで Str2について注目してみると JNは4.1 KNは12.8 とKNの使用 率が3倍程上回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独り言という手段を使うことで相手に不 満を感じている状況について気づかせ 直接不満を表明するときのような負担を 和らげている これまでの先行研究で提示されてきた結果を見るとJNが直接的 な表現をあまり用いず間接的な表現を多用し KNは直接的な表現を使用する 傾向があるとされている 相手に気づかせるというストラテジーはJNの方が多用 す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たが 今回の結果はKNの使用率が高い
332 328 比較日本學 第32輯 ( ) 2) 親しい友達といる場合 <表3> 親しい友達といる場合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 日 韓 s 間接的 s s s s s 直接的 s7 s s s 単位 s s 下線は日本語母語話者 網掛けは韓国語母語話者の特徴的な使用率を示す 日韓ともにStr6の改善要求 すみませんが 少し静かにしてもらえます か 저기요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안될까요? (すみません ちょっと 静かにしてもらうことはできませんか)などの使用率が高い JNの場合 一人でいるときに比べ 積極的に不満を表明している傾向が見ら れる 改善要求に続いてStr2 Str10 Str4など 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も多 様化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 特にStr10においてはKNよりJNの使用率が高くなっ ており Str4よりStr10の感情表出を使用する傾向が見られる ここではStr2に注目したい 前述したストラテジーではあるが 一人でいる場 合にはJNの使用率はほとんど見られなかった 友達といることで 聞こえよがし のひとりごと5) としてではなく 会話のなかに相手の文句を含めて聞こえるよう に あいつらうざいよな 勉強できひんやつはええな のように会話を進めて いく傾向が見られ 友達と一緒にいる場合には気の持ちように変化がある また 改善要求のストラテジーを使用する場合 一緒にいる友達に不満を引 き起こした相手に対して 不満を表明するよう促すという結果も見られた 友達に言わせるという言語行動はKNの結果にも見られた KNはStr6に続い てStr4 Str2を使用しているが Str2と4は使用率が同一であり 友達といると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の使用率が上がることはJNと似通っている 一人でいる場 合はStr10の使用率が高かったが 友達と一緒にいることにより不満を感じている 状況への変化を求める意識が強くなっていると思われる 一人でいるか 誰かと 一緒にいるかということは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に影響を及ぼすという ことが分かる 5) 足を踏まれて 痛いっ や ああ 痛いなぁㆍㆍㆍ などと言いながら 足を踏んだ人にチラチ ラ視線をやったりする この時点で意図が加わったと見るべきで 文字通り 聞こえよがしのひと りごと この場合は文句を言うための手段に切り換えたことになる (土岐(1983))
333 不 満 表 明 の 日 韓 言 語 行 動 について ( 國 生 和 美 ㆍ 鄭 秀 賢 ) 割 り 込 み 場 面 1) 一 人 でいる 場 合 < 表 4> 一 人 で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単 位 :% 間 接 的 直 接 的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日 韓 ともにStr4の 直 接 的 な 表 現 と 状 況 の 説 明 すみません あたしら 並 んで るんですけど 저기요 제가 먼저 서있었거든요 (すみません 私 が 先 に 並 んでいたんですけど)などを 多 用 するという 結 果 になった 一 人 でいる 状 況 でも 直 接 的 に 不 満 を 表 現 し さらにJNの 方 がKNに 比 べて 直 接 的 な 表 現 のストラテ ジーを 使 用 するという 結 果 は JNは 間 接 的 な 言 語 行 動 が 目 立 つという 先 行 研 究 の 結 果 とは 矛 盾 するものとなった KNはStr4に 続 きStr10の 感 情 表 出 Str6の 改 善 要 求 Str8の 非 難 と 多 様 なスト ラテジーに 使 用 傾 向 が 分 散 している JNは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傾 向 の 大 半 を 先 にも 述 べたStr4とStr10が 占 めている 間 接 的 な 不 満 表 明 が 特 徴 的 であるとされてきたJNが 直 接 的 な 表 現 や 感 情 表 出 のス トラテジーを 割 り 込 み 場 面 で 使 用 する 傾 向 にある 理 由 として 大 学 の 食 堂 という 場 面 設 定 が 大 きく 関 係 し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大 学 の 食 堂 で 割 り 込 みをしてくる 相 手 と いえば 学 生 が 主 であると 考 えられる さらに 自 分 が 一 人 で 並 んでいるとはいえ 割 り 込 みをされたときの 不 満 が 咄 嗟 に 言 語 として 独 り 言 のように 表 れるということも 十 分 考 えられる 公 共 の 場 でのルールである 列 に 並 ぶという 行 為 を 割 り 込 みという 形 式 で 破 られた 場 合 今 の 状 況 を 説 明 して 不 満 を 解 消 しようとする 傾 向 が 見 られる 2)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 表 5>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単 位 :% 間 接 的 直 接 的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334 33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日 韓 ともにStr4の 使 用 率 が 最 も 高 く この 結 果 は 一 人 でいる 場 合 の 結 果 と 似 通 っており Str2の 使 用 率 が 両 国 ともに 高 くなっている 会 話 の 中 に 文 句 を 織 り 交 ぜて 不 満 を 表 明 するという 傾 向 が 見 られる 一 人 でいる 場 合 には 気 づかせの ストラテジーを 使 用 することのなかったJNが 友 達 といる 場 合 にはその 使 用 率 を 伸 ばしており 一 人 でいる 場 合 よりもストラテジーに 多 様 性 が 見 られる 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がJNよりKNの 使 用 率 が 低 い 要 因 としてJNには 見 られ ないStr3の 使 用 がKNに 見 られることが 関 係 しているといえる またKNはStr8と Str10の 使 用 が 減 少 し 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率 が 目 立 っている 気 づ かせのストラテジーは 間 接 的 に 不 満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に 不 満 を 表 明 するストラ テジーと 言 える しかし ここではStr4の 直 接 的 な 表 現 の 使 用 率 が 最 も 高 いこと から 友 達 といる 場 合 日 韓 ともに 直 接 的 な 表 現 を 用 いて 不 満 を 感 じている 状 況 を 打 破 しようとする 傾 向 があると 考 えられる Str6がJNは3.9% KNは13.5%という 結 果 に 注 目 したいと 思 う JNは 改 善 要 求 よりStr10の 感 情 表 出 の 使 用 率 が 高 いことに 着 目 すると 感 情 表 出 も 不 満 を 言 葉 に 出 して 発 することで 結 果 的 には 相 手 が 起 こした 割 り 込 みという 状 況 への 不 満 を 気 づかせることにつながる 言 語 行 動 であると 考 えられる 不 満 を 感 じる 状 況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に 改 善 要 求 のストラテジーを 使 用 し 状 況 の 改 善 を 自 らの 言 語 行 動 で 分 かりやすく 求 めるというよりは 不 満 を 口 に 出 すという 行 為 により 不 満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が 考 えて 行 動 を 改 善 するべきだという 意 識 があるように 思 わ れる 先 行 研 究 にみられる 間 接 的 な 不 満 表 明 を 用 いる 日 本 人 という 結 果 は 割 り 込 みという 社 会 的 ルールを 破 ることにより 起 こる 場 面 ではJNの 不 満 表 明 の 形 式 を 間 接 的 から 直 接 的 に 変 える 可 能 性 があると 考 えられる 4.3 レストラン 場 面 1)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 表 6>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単 位 :% 間 接 的 直 接 的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335 不 満 表 明 の 日 韓 言 語 行 動 について ( 國 生 和 美 ㆍ 鄭 秀 賢 ) 331 日 韓 ともにStr4の 直 接 的 な 表 現 と 状 況 説 明 頼 んだものと 違 うねんけど 이건 주문한게 아닌데 (これ 注 文 したものじゃないけど)などが 使 用 率 の 大 半 を 占 めている JNにおいては 半 数 以 上 を 占 める 結 果 であり 本 調 査 でのストラ テジー 使 用 率 の 中 でも 最 も 高 い 他 の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傾 向 も 見 られるが 使 用 率 は 低 く 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という 空 間 においては 不 満 を 感 じる 状 況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が 客 である 自 分 自 身 より 立 場 が 下 の 店 員 という 要 因 が 大 きく 関 わっ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KNは Str4に 続 いてStr5 Str6の 使 用 が 見 られる 不 満 を 表 明 することに 集 中 し 状 況 の 改 善 にまで 到 達 していないJNのストラテジー 使 用 傾 向 に 対 しKNの 使 用 するストラテジーは 不 満 も 表 明 しつつ さらに 状 況 の 改 善 及 び 納 得 できる 理 由 を 聞 こうとする 姿 勢 などJNに 比 べ ストラテジーの 多 様 性 と 目 的 達 成 の 意 識 の 強 さが 表 れている JNは 口 に 出 して 状 況 の 改 善 を 求 めるより 不 満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に 客 であ る 自 分 達 の 機 嫌 を 良 くするようサービスの 提 供 を 促 そうとする 傾 向 が 見 られる ま たStr7がKNにしか 見 られない 理 由 としても 前 述 した 理 由 の 一 部 であると 考 えら れ 口 に 出 して 代 償 を 要 求 するのではなく 直 接 的 な 不 満 表 明 から 不 満 を 引 き 起 こした 相 手 に 意 図 を 読 み 取 らせる 傾 向 がある さらに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での 日 韓 のサービスの 違 いも 要 因 の 一 つに 挙 げられると 考 えられる 2) 親 しい 先 輩 といる 場 合 間 接 的 < 表 7> 親 しい 先 輩 と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直 接 的 単 位 :%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日 韓 ともにStr4の 直 接 的 な 表 現 と 状 況 説 明 が 高 い 比 率 を 占 めている この 結 果 は 上 述 した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とほぼ 変 わりないが ここで 注 目 したい 点 は Str1である 親 しい 友 達 といる 場 合 よりも 使 用 率 が 上 がっておりJNにおいては その 差 が2 倍 以 上 である その 理 由 として 考 えられるのは 日 韓 の 上 下 関 係 に おける 意 識 の 違 いが 挙 げられることが 多 い 敬 語 体 系 の 違 いも 上 下 関 係 の 意 識 の 違 いと 十 分 に 関 わりがあるといえる
336 33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JNの 結 果 のStr1が18.9%となっているのは 先 輩 の 前 で 不 満 を 表 明 するより は 不 満 を 感 じる 状 況 に 対 して 先 輩 の 気 持 ちや 機 嫌 を 損 ねることのないよう 努 力 し 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直 接 的 な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率 が 最 も 高 いのは 前 述 した レストランという 空 間 での 店 員 と 客 という 条 件 も 関 わっていると 考 えられるが ダラ ダラと 不 満 を 表 明 するより 直 接 的 な 表 現 を 使 用 することで 簡 潔 にその 状 況 から 脱 しようとしている 傾 向 が 見 られる KNはJNに 比 べStr1の 使 用 率 が10.0%と 低 くなっており 親 しい 友 達 といるとき と 比 べるとその 比 率 はやはり 上 昇 している しかし 直 接 的 な 表 現 や 改 善 要 求 のストラテジーを 使 用 することで 的 確 にかつ 不 満 を 感 じている 状 況 を 改 善 すると いう 結 果 にもつながるように 努 めていることが 分 かる 3) 親 しい 後 輩 といる 場 合 < 表 8> 親 しい 後 輩 と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単 位 :% 間 接 的 直 接 的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日 韓 ともにStr4の 使 用 が 特 徴 的 である やはりレストランという 場 面 と 客 と 店 員 という 属 性 が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の 選 択 の 際 にかなりの 影 響 を 及 ぼしていること が 分 かる しかし そのような 場 面 の 属 性 があるにしても 日 韓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 テジーの 使 用 傾 向 には 異 なる 部 分 がある JNはStr4に 続 いてStr1の 使 用 が 特 徴 的 である 先 輩 といる 場 合 の 諦 めて 受 け 入 れるストラテジーの 意 図 の 裏 側 には 先 輩 の 気 持 ちや 機 嫌 に 考 慮 した 配 慮 が 見 られた しかし 後 輩 と 一 緒 の 場 合 には 自 分 自 身 が 年 上 の 先 輩 の 立 場 になるた め 不 満 を 表 明 するのではなくこのままの 状 況 でも 気 分 よく 食 事 をしようと 同 意 さ せる 傾 向 が 見 られる KNはStr4に 続 いてStr6が 高 い 比 率 を 占 めているが 友 達 といる 場 合 も 改 善 要 求 のストラテジーが 多 用 されていたこともあり 使 用 傾 向 に 似 通 った 部 分 があると 思 われる しかし 口 調 や 言 い 回 しに 差 を 出 し 後 輩 の 前 では 自 分 自 身 が 先 輩 の 立 場 であるという 自 覚 が 自 然 に 出 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またStr7はKNにのみ 表 れ ており サービスの 提 供 を 追 加 しようとする 意 識 が 高 いように 思 われる
337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國生和美ㆍ鄭秀賢) 映画場面 1) 親しい友達といる場合 表9 親しい友達といる場合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 日 韓 s 間接的 s s s s s 直接的 s7 s s s 単位 s s 下線は日本語母語話者 網掛けは韓国語母語話者の特徴的な使用率を示す JNはStr6の改善要求 すみません 足を下に下ろしてもらえますか KNは Str4 저 방해되니까 그만 하세요 (あの 邪魔になるのでやめてください)など が高い比率で見られた JNはStr2 Str10 Str12と続き 改善要求のストラテジーを除いてはこれまで 見てきた相手に意図を読み取らせることを狙っている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が 強いことが分かる 直接的な言語行動である改善要求を使用する要因として親 しい友達と一緒にいることによる心強さとお金を払い映画を見ている途中に映画 に集中できない状況が起こると何とかして不満を感じている状況を改善しようとい う意識が強くなると考えられる KNはStr6 Str2 Str12 Str10と続き ストラテジーの多様性はもちろん自分 自身で行動に移し 積極的に状況の改善に努める傾向がここでも見られる 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や感情表出 非言語行動のストラテジーも見られるが JN に比べるとその差は決して低いとは言えず 不満を感じる状況を改善しようとす る意識や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に日韓の違いが見られる 2) 親しい先輩といる場合 表10 親しい先輩といる場合の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 間接的 単位 直接的 日 s1 0.0 s s3 0.0 s s5 0.0 s s7 0.0 s8 4.2 s9 0.0 s s s 韓 下線は日本語母語話者 網掛けは韓国語母語話者の特徴的な使用率を示す
338 33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JNはStr12 Str6 Str10 Str2の 使 用 が 目 立 った ここで 注 目 したいのはStr4 である 先 輩 の 前 なのでできる 限 り 我 慢 し 最 終 的 に 言 葉 に 出 して 不 満 を 表 明 するだろうと 考 えた しかし 映 画 を 一 緒 に 観 に 来 ている 先 輩 の 邪 魔 にならないよ うに 簡 潔 かつ 迅 速 に 不 満 を 感 じている 状 況 を 改 善 しようとする 傾 向 が 見 られる Str2の 使 用 率 が 友 達 と 一 緒 にいる 場 合 と 比 べ 低 くなっているのも 不 満 を 感 じて いることを 映 画 鑑 賞 中 に 先 輩 との 会 話 のなかで 表 現 することで 先 輩 の 邪 魔 になる ことを 避 け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KNはStr2と4 また Str12の 使 用 率 が 友 達 といる 場 合 より 高 くなり Str6は 低 くなっている 改 善 要 求 のストラテジー 使 用 の 低 下 に 伴 い 直 接 的 な 表 現 と 気 づ かせの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率 が 高 くなっていることから 先 輩 と 一 緒 にいると 状 況 の 改 善 という 結 果 を 求 めるよりは 不 満 を 引 き 起 こしている 相 手 に 不 満 の 状 況 を 伝 えることが 優 先 され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JNに 見 られるような 先 輩 の 邪 魔 にならな いように 不 満 を 表 明 するというより 親 しい 先 輩 なのだから 不 満 を 感 じている 状 況 を 話 して 一 緒 に 解 決 しようという 試 みが 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の 使 用 から 分 か る 3) 親 しい 後 輩 といる 場 合 < 表 11> 親 しい 後 輩 といる 場 合 の 不 満 表 明 ストラテジー 単 位 :% 間 接 的 直 接 的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日 韓 下 線 は 日 本 語 母 語 話 者 網 掛 けは 韓 国 語 母 語 話 者 の 特 徴 的 な 使 用 率 を 示 す JNはStr6の 使 用 率 が 最 も 高 く 続 いてStr12 Str10を 使 用 する 傾 向 が 見 られ る Str2に 注 目 すると 後 輩 といる 場 合 が 最 も 低 い 比 率 を 表 している 後 輩 と 協 力 して 不 満 を 感 じる 状 況 を 改 善 しようというより 自 分 自 身 の 力 のみで 不 満 を 表 明 する 傾 向 が 強 いと 思 われる わずかではあるがStr1の まぁいっか などの 使 用 も 見 られることから 後 輩 に 対 しても 配 慮 している 可 能 性 があると 考 えられる KNはStr4 最 も 高 い 比 率 で 表 れており 状 況 改 善 に 努 める 意 識 は 日 本 に 比 べ て 強 いことが 分 かる 改 善 要 求 の 比 率 も22.8%と 高 く 気 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 や 感 情 表 出 のストラテジーで 相 手 が 気 づくように 促 すのではなく 相 手 が 映 画 に 集
339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國生和美ㆍ鄭秀賢) 335 中している状況を妨げることのないよう 積極的な不満表明によって自ら状況を 改善していくという特徴がここでも見られた 5 おわりに 本稿では 日本語母語話者と韓国語母語話者の公共の場面における不満表 明の言語行動に注目し 日常的に起こりうる場面において不満を感じた場合ど のようなストラテジーを用いて不満を表明するのかについて選択式アンケート及 び談話完成テストを用いて調査した 主な結果をまとめると 次のようになる ① 図書館場面 JNは一人でいるときに比べ 親しい友達といると不満を直接表明する比率が 高くなり 一人でいる場合は非言語行動を用いて 睨む ため息をつく な どの表現で不満を表明する傾向が見られる KNは一人でいても親しい友達といても 不満表明の使用傾向に大差はない が 一人でいる場合は 席を移動する などの非言語行動の使用も見られる 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は 一人でいる場合JNは感情表出のストラテジーが 多用され KNは改善要求のストラテジーが多用されていた 気づかせのストラ テジーは 間接的な不満表明の使用傾向が目立つとされてきたJNの使用率が 高いと思ったがKNの使用率が高い比率で表れた しかし親しい友達といる場 合 気づかせのストラテジーの使用はJNにも高い比率でみられた ② 割り込み場面 JNは親しい友達と一緒にいる場合 不満を引き起こした相手が気づくようにあ えて聞こえるように友達と一緒に不満を感じている状況について話す傾向が見ら れる KNは一人でいる場合 親しい友達といるときよりは不満を直接的に表明する 比率が低いが 不満を感じている状況を改善したいという意識はJNに比べて強 いといえる 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は両国ともに一人でいても不満を直接表明するストラ テジーの使用率が高い比率で見られる 一人でいる場合にはKNよりJNのほうが
340 336 比較日本學 第32輯 ( ) 直接的な表現を多用している 割り込みという社会的ルールを破ることにより起こ る場面ではJNの不満表明の形式が間接的から直接的に変わる可能性がある ③ レストラン場面 両国ともに先輩と一緒にいる場合 直接言う表現を使用することは控えられて おり 先輩が不満を感じ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心配や気遣いの意識が強い ことが分かる 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は 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という空間においては不満を 感じる状況を引き起こした相手が客である自分自身より立場が下の店員という要 因が大きく関わり 直接的に不満を表明するストラテジーの使用率が両国ともに 目立った ④ 映画場面 両国ともに先輩と一緒にいる場合 不満表明の比率が低い傾向にあるがJN は態度に表すという結果が誰と一緒にいるかに関わらず大半を占め KNは直 接言うという結果が大半を占めている JNは態度で不満を表明し KNは積極 的に不満を表明する傾向があるといえる KNはストラテジーの多様性はもちろん 自分自身で行動に移し 積極的に 状況の改善に努める傾向が見られる JNのような先輩の邪魔にならないよう不 満を表明するというより 親しい先輩なのだから不満を感じている状況を話した 上で解決しようとする傾向が見られる 以上のように日本語母語話者と韓国語母語話者の公共の場面における不満 表明の言語行動に注目してきた データをさらに分析することで本稿の調査で 得られた結果を一般化できるかどうか検討していきたい 地域差や男女差なども 考察の対象として不満表明の言語行動を調査することが今後の課題である 付録 場面の詳細 図書館場面 割り込み 場面 あなたはもうすぐ試験があるため 図書館で勉強しています ところが 隣に 座っている人達が私語をしていてうるさいため勉強に集中できません あなたは大学の食堂で食券を買うために並んでいます そこへ急に順番を抜 かして他の人が入ってきてあなたの前に並びました
341 不満表明の日韓言語行動について (國生和美ㆍ鄭秀賢) 337 レストラン 場面 あなたは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に食事をしに来ました 昼食の時間なので少し混 み合っています 注文してから30分後にようやく料理がきました ところがあ なたの頼んだ料理ではなく 違う料理がきました 店員は気づいていないよう です 映画場面 あなたは映画館に映画を見に来ました 映画が始まり 楽しく見ていたとこ ろ 後ろの座席の人があなたの座席に足を押し付けているため 蹴られてい るように感じます <参考文献> 日本語文献 李善姫(2004) 韓国人日本語学習者の 不満表明 について 日本語教育 123号 日本語教 育学会 (2006a) 韓国人日本語学習者の 不満表明 の特徴 日本語文学 第29輯 韓国日本 語文化学会 (2006b) 日韓の 不満表明 に関する一考察 日本人学生と韓国人学生の比較を通して 社会言語科学 第8巻第2号 社会言語科学会 任榮哲 井出里咲子(2004) 箸とチョッカラク ことばと文化の日韓比較 大修館書店 熊井浩子(1992) 外国人の待遇行動の分析(1) 依頼行動を中心にして 研究報告 人文ㆍ社 会科学編 第28巻 第1号 静岡大学教養部 土岐哲(1983) ひとりごと 話しことばの表現 講座日本語の表現3 筑摩書房 初鹿野阿れ 熊取谷哲夫 藤森弘子(1996)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使用傾向 日本語母語話者 と日本語学習者の比較 日本語教育 88号 日本語教育学会 朴承圓(2000) 不満表明表現 使用に関する研究 日本語母語話者ㆍ韓国人日本語学習者ㆍ 韓国語母語話者の比較 言語科学論集 第4号 東北大学文学部日本語学科 藤森弘子(1997) 不満表明ストラテジーの日英比較 談話完成テスト法の調査結果をもとに 言語と文化の対話 英宝社 洪珉杓(2007) 日韓の言語文化の理解 風間書房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고쿠쇼 카즈미, (한자) 國生和美, (영문) KOKUSHO KAZUMI (한글) 정수현, (한자) 鄭秀賢, (영문) JUNG SOO HYUN
342 33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소속 : 동국대학교 논문영문제목 : Dissatisfaction expression linguistic behavior of Japanese and Korean In terms of expression in public scenes 주소: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지봉로43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기숙사 551호 E mail: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고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불만 표명을 나타내는 표현 및 행동에 주목하여 고찰한 논문이다. 일 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면에서 불만을 느끼는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떠한 불만 표명 수단을 이용해서 불만을 표현하는지, 즉, 불만 표명이라고 하는 언어 행동에 있어서의 특징 및 양 국민의 차이를 조사하고, 그 차이가 생기는 요인에 대해서 고찰을 시도했다. 공적인 경우, 어떻게 불만을 표현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 왔지만, 양국 모두 직접적인 수단의 사용이 눈에 띄며, 일본인은 간접적인 언어 행동, 한국인은 직접적인 언어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경향 은 별로 볼 수 없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불만 표명을 나타내는 언어 행동을 비교한 결과, 친근함과 상하 관계, 사회 적 룰 및 예의나 매너에 대한 의식의 차이가 불만 표명 수단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밝혀졌다. 주제어: 불만 전략, 직접적, 간접적
343 339 <べし>의 대역어 <可하다>에 대하여* - 조선총독부관보 를 중심으로 - 閔 丙 燦**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equivalence of Japanese auxiliary verb <beshi(べし)>, focusing on a public document named Chosunchondokbugwanbo(朝鮮總督府官報) written in Japanese classical language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its attached document of Chosunyeokmun. As for the equivalence for <べし>, the following five types were used. ①< 할 事> ②< ㄹ듯하다> ③< ㄹ지라> ④< 함(이라)>, and ⑤< (함이)可하다>. Such diverse equivalences shows just how various meanings <べし> possesses. Besides, if we assume that < 可하다 > faithfully follows equivalence rule of Gwanbo(官報), then rule is believed to be strict enough to be applicable to grammar, rather than limited within vocabulary. Moreover, when regarding other equivalences except for < 可하다> as translation borrowing, the same logic allows us to think that the translation borrowing was applied not only at vocabulary level but also in grammar. Hence, the usability of Gwanbo as linguistic research material is once more confirmed. To sum up,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equivalence of Gwanbo does contain the elements that vividly reflects Korean language at the time, rather than merely following strict rules of simple abbreviation or technical translation Keywords : translation, classical language, beshi, Japanese Korean translated materials, vocabulary level, grammar 6)7) 1. 들어가기 일본어의 조동사 <べし>의 의미ㆍ용법을 각종 사전들의 설명만으로 이해 하고 그것을 실제 예문에 대한 분석에 적용하여 각각의 쓰임새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1). 그것은 아마도 사전에 제시된 각 용법이 차지하는 의미 *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2012 S1A5A2 A ) **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일본어학ㆍ일본어교육. 1) 예를 들어 広辞苑 (제6판)에는 아래와 같이 <べし(可し)>의 의미가 기술되어 있는데 그 용 법을 명확하게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졸고(2014.b)에서의 논의도 있다. 그런데 예컨대 역시 広辞苑 의 기술을 빌어 설명하자면, 어차피 하나의 표현이므로
344 34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범주가 매우 근접해 있는 탓도 있을 듯싶은데, <べし>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자 할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 게다가 20세기 초라고 하는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하면서, 朝 鮮 總 督 府 官 報 (이하 관보 로 약칭)와 같이 일본어의 文 語 로 작성된 공식문 서를 한국어로 대역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면, 그 어려움은 훨씬 더했을 것임 에 틀림이 없다. 요컨대 대역을 담당했던 당대의 사람들이 문말표현 하나하 나까지 매우 민감하게 고려했을 개연성을 상정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처럼 관보 에서 <べし>가 어떻게 대역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관보 의 언어 문제 전반을 조망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2014b)는 <べし>의 활용형 가운데 하나인 <べから>가 20세기 초 일 한대역자료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단순한 축어역에 그치지 않고 <능히> <마땅히> <가히>와 같은 부사어를 추가하는 방식이 채택되는 경우가 있음에 대해 지적했다. 본고에서는 이를 이어 관보 를 중심으로 <べし>의 대역어에 대해 검토해보려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그 대역어로 사용된 <( 함이) 可 다>와 < ㄹ지라>와 같은 형식이 가진 당대의 의미ㆍ용법에 대해 고찰하고, 이에 기초하여 관보 조선역문 의 언어자료 로서의 성격에 대해 재론하고자 한다.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서 5의 뜻이지만 거기에는 1의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는 식의 유연한 기술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 命 令 >과 < 推 量 >의 경계선상에 있는 용법 을 상정하기란 논리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1 当 然 の 意 ア するのがよい イ するはずだ ウ しなければならない 2 確 実 な 推 量 の 意 アきっと するだろう するに 違 いない イ するらしい ウ する 予 定 だ 3 話 し 手 の 動 作 の 語 に 付 いて 意 志 ㆍ 決 意 を 表 す 必 ず しよう するつもりだ 4 可 能 の 意 することができそうだ 5 命 令 の 意 せねばならない 2) NAVER 에 탑재된 일한사전을 검색해본 결과를 아래에 참고삼아 제시한다. 앞선 広 辞 苑 을 통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 용법을 명확히 구분 짓기가 어렵다. 1. 당연의 뜻. a. 하는 것이 마땅[당연]하다. b. 일 것이다; 임에 틀림없다. c.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d. 이 적당하다. e. 할 예정이다. 2. 추측의 뜻. a.반드시 일 것이다. b. 할 듯하다; 인 것 같다. 3. 가능의 뜻;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듯하다. 4. ( 終 止 形 으로) 상대의 動 作 에 대하여 말하는 이[글쓴이]의 勧 誘 ㆍ 命 令 을 나타내는 말 : 하 라; 하여 다오. 5. 말하는 이[글쓴이]의 의사를 나타내는 말 : 꼭 하겠다[할 것이다].
345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관보 에서의 <べし>의 대역과 문제의 소재 관보 에서 <べし>를 대역하는 방식 3) 은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 유형 을 보인다 4). 하나의 형식이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옮겨진다는 사실은 일면 <べし>의 다의성을 반영한 적극적인 번역의 결과로도 볼 수 있겠다. [1]<~할 事 > 3개 [2]<~ㄹ듯하다> 14개 [3]<~ㄹ지라> 26개 [4]<~함(이라)> 27개 [5]<~(함이) 可 하다> 197개 구체적인 예문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류에서 제시된 <べし>가 가지고 있는 의미ㆍ용법과 위에 제시한 대역 한국어를 단순히 비교해보고서, 필자는 [1]<~할 事 >는 <명령>, [2]<~ㄹ듯하다>는 <추량>, [3]<~ㄹ지라>는 <당연>이나 <명령>, [5]<(~함이) 可 하다>는 <가능>이나 <추량>의 의미일 것 이라는 예상을 했다. 요컨대 각 대역어가 역할분담을 하고 있으리라는 추정 인데, 이는 필자(2014a)가 밝혔던 관보 조선역문 의 <중층성> 문제와도 관 련되므로 상세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서 [3]<~ㄹ지라>는 3) 다음과 같이 문중에 쓰이는 <べき>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겠지만 일단 논의를 간명하게 하기 위해 종지형의 용법만을 검토하기로 하겠다. 아래 두 예는 모두 관보 제1호에 소수된 것이 다. 아울러 관보 가 방대한 분량인 만큼 본고에서는 일단 조사 범위를 제1호 100호로 한정 한다. [원문] 第 三 條 朝 鮮 ヨリ 移 入 スル 貨 物 中 外 国 ヨリ 輸 入 スル 場 合 ニ 於 テ 内 国 税 ヲ 課 スヘキモノアル トキハ 外 国 ヨリ 輸 入 スルモノニ 準 シ 内 国 税 ヲ 課 ス [역문] 第 三 條 朝 鮮 에셔 移 入 貨 物 中 에 外 国 에셔 輸 入 境 遇 에 内 国 税 課 이 可 거시 有 外 国 에셔 輸 入 거세 準 야 内 国 税 課 이라 [원문] 第 四 條 外 国 ニ 輸 出 スル 貨 物 ニ 関 シ 内 国 税 ヲ 免 除 若 ハ 還 付 シ 叉 ハ 交 付 金 ヲ 下 付 スルコト ヲ 定 メタル 規 定 ハ 之 ヲ 朝 鮮 ニ 移 出 スル 貨 物 ニ 準 用 シ 外 国 ヨリ 輸 入 シタル 貨 物 ニ 関 シ 輸 入 税 ヲ 下 戻 スヘキコトヲ 定 メタル 規 定 ハ 之 ヲ 本 令 ニ 依 リ 移 入 税 ヲ 課 セラレタル 貨 物 ニ 準 用 ス [역문] 第 四 條 外 国 에 輸 出 貨 物 에 関 야 内 国 税 免 除 거나 或 還 付 거나 叉 交 付 金 을 交 付 을 定 規 定 은 朝 鮮 에 移 出 貨 物 에 準 用 며 外 国 에셔 輸 入 貨 物 에 関 야 輸 入 税 還 附 이 可 을 定 規 定 은 本 令 에 依 야 移 入 税 課 케된 貨 物 에 準 用 이라 4)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용례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원문] 尚 漫 ニ 妄 想 ヲ 逞 シ 敢 テ 妨 碍 スル 者 アラハ 断 シテ 仮 借 スル 所 ナカルヘシ(관보1호) [역문] 漫 히 逞 其 妄 想 야 妨 碍 施 政 者 ㅣ가 有 면 断 無 仮 貸 之 所 ㅣ라
346 34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林 圭 ( )가 日 文 譯 法 (1909)에서 제시하고 있는 <べし>에 대한 대 역방식이라는 점에 비춰 두 문헌 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재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가질 수 있었다 5).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누리집 표준국어대사전 을 검색해본 결과, <~ㄹ지라>에 대해 (예스러운 표현으로) 해라할 자리에 쓰여, 마땅히 그렇 게 할 것이다,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명령의 의미를 나타낼 때도 있으며, 장엄한 어감을 띤다. 는 기술이 있음을 확인했 다. 이는 앞서 제시했던 広 辞 苑 의 <べし>에 대한 의미기술에 있어서 1 当 然, 2 推 量 및 5 命 令 을 커버하는 것이어서, <べし>에 대한 대역어로서 <~ 할지라>는 충분히 선택이 가능한 한국어 가운데 하나였다고 일단은 해야 할 듯싶다. 또한 장엄한 어감 이라는 기술 역시 <べし>에 대한 대역어로서의 적합도를 높인다고 하겠다. 이어서 <べし>에 대한 대역어로서 가장 많은 용례수를 보이는 <(~함이) 可 하다> 유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6). <~ㄹ지라>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표준국어대사전 에서 <가하다>를 검색하면, < 加 하다>와 < 可 하다> 두 항목 이 제시된다. 둘 가운데 후자에 대해서는 품사가 형용사라는 점과 함께 그 의미로서 첫째 옳거나 좋다, 둘째 안건이나 문제 따위가 자기의 뜻에 맞아 좋다 가 제시되어 있다. 또한 연세 한국어사전 (1998)에는 1(무엇이) 좋 다. 도리에 비추어 옳다. 2가능하다. 타당하다. 괜찮다. 라는 의미기술이 이 루어져 있다. 아울러 관보 와 비슷한 시기에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朝 鮮 語 大 辞 典 (1920)에는 <가하다>에 대해 1( 討 議 中 のある 問 題 に 対 して) 賛 成 する よしとする 2 道 理 にかなっている 正 しい 와 같은 기술이 보인다. 여기에 다시 広 辞 苑 을 겹쳐보면 <べし>가 가진 1 当 然, 2 推 量, 4 可 能 의 의미와 중첩되므로, < 可 하다> 역시 <べし>에 대한 대역어로서 충분히 선 택이 가능한 한국어 가운데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두 표현 모두 화 자의 가치판단을 담고 있다는 점에도 주의해야겠다. 그런데 한국어의 <가하다>는 필자만의 느낌일지는 모르겠으나 사극에서나 들을 법한 말로서 그 의미 역시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필자는 <가하 다>의 의미ㆍ용법을 보다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 5) 필자(2012b)는 이미 관보 의 대역 방식이 임규의 일문역법 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일문역법 에는 助 動 詞 의 譯 法 이라는 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べし는 推 量 의 意 를 表 하는 助 動 詞 니 國 語 의 할디라 할만한 等 이니라 (p.272)라는 기술이 있다. 6) <べし>와의 관련 없이 < 可 하다>가 사용된 예는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여기에 밝혀둔다.
347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43 는데, 그 방법으로서 논어 의 언해 과정에서 등장하는 <가하다>와 독립신 문 에서의 <가하다>의 사용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나아가 관보 에서 <가하다>와 대응하는 <べし>의 의미를 재검토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관보 에서 <가하다>가 채택된 의의 등에 관해 논의해보기로 하겠다. 3. 논어 언해 및 독립신문 에서의 <가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論 語 는 한국어로의 번역이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 쳐 거듭해서 이루어져 왔는데, 이번 장에서는 論 語 諺 解 (1590)와 論 語 栗 谷 先 生 諺 解 (1749)에서 < 可 하다>가 사용된 용례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가하다>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ㆍ용법을 갖는지에 관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여기에 비교적 최근 자료인 김동인 외(2010) 세주 완역 논어집주대전 도 함께 견주어보기로 하겠는데, 이하 위 문헌들을 인용하는 경우 각각 [논 어] [언해] [율곡] [세주]로 약칭한다 7). 먼저 < 可 하다>가 <괜찮다>의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예로는 아 래와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8). [논어] 子 貢 曰 貧 而 無 諂 富 而 無 驕 何 如 子 曰 可 也 未 若 貧 而 樂 富 而 好 礼 者 也 < 学 而 第 一 > [언해] 子 貢 이 오 貧 야도 謟 홈이 업스며 富 야도 驕 홈이 업소 엇더 닝잇고 子 ㅣ 샤 可 나 貧 고 楽 며 富 고 礼 를 好 者 만 디 몯 니라 [율곡] 子 貢 이 오 貧 코 諂 이 업 미 富 코 驕 ㅣ 업 면 엇더 니잇고 子 ㅣ 샤 可 나 貧 코 楽 며 富 코 礼 好 니만 디 몯 니라 7) [언해]와 [율곡]의 인용은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21세기 세종 역사 말뭉치>에 의거한다. 8) 이밖에도 < 可 하다>가 <괜찮다>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아래와 같은 예도 있다. [논어] 子 曰 非 吾 徒 也 小 子 鳴 鼓 而 攻 之 可 也 < 先 進 第 十 一 > [언해] 子 ㅣ 샤 우리 물이 아니로소니 小 子 아 鼓 를 鳴 야 功 홈이 可 니라 [율곡] 子 ㅣ 샤 우리 무리 아니로다 小 子 아 鼓 鳴 야 攻 호미 可 니라 [논어] 子 夏 曰 大 德 不 踰 閑 小 德 出 入 可 也 < 子 張 第 十 九 > [언해] 子 夏 ㅣ 오 큰 德 이 閑 에 踰 티 아니 면 쟈근 德 出 入 야도 可 니라 [율곡] 子 夏 ㅣ 오 큰 德 이 閑 을 踰 티 아니면 져근 德 은 出 入 야도 可 니라
348 34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세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답하셨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 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논어] 子 曰 朝 聞 道 夕 死 可 矣 < 里 仁 第 四 > [언해] 子 ㅣ 샤 아 의 도를 드르면 나죄 죽어도 可 니라 [율곡] 子 ㅣ 샤 아 道 드르면 나죄 주거도 可 니라 [세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논어] 仲 弓 問 子 桑 伯 子 子 曰 可 也 簡 < 雍 也 第 六 > [언해] 仲 弓 이 子 桑 伯 子 를 묻 온대 子 ㅣ 샤 可 홈이 簡 이니라 [율곡] 仲 弓 이 子 桑 伯 子 問 대 子 ㅣ 샤 可 니 簡 니라 [세주] 중궁이 자상백자는 어떠한지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간결하니 괜 찮기는 하다. 다음으로는 [세주]에서 <가하다>로 쓴 경우와 <좋다>로 옮겨진 경우다. [논어] 季 文 子 三 思 而 後 行 子 聞 之 曰 再 斯 可 矣 < 公 冶 長 第 五 > [언해] 季 文 子 ㅣ 세 번 思 後 에 行 더니 子 ㅣ 드 시고 샤 再 ㅣ 可 니라 [율곡] 季 文 子 ㅣ 세 번 思 後 에 行 더니 子 ㅣ 듯고 샤 두 번 홈이 可 니라 [세주]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연후에 행동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 다. 두 번이면 가하다. [논어] 子 曰 聖 人 吾 不 得 而 見 之 矣 得 見 君 子 者 斯 可 矣 < 述 而 第 七 > [언해] 子 ㅣ 샤 聖 人 을 내 어더보디 몯 거든 君 子 를 어더보면 이 可 니라 [율곡] 子 ㅣ 샤 聖 人 을 내 어더보디 몯 거든 君 子 者 어더보미 이 可 니라 [세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은 내가 만나보지 못했으니 군자라도 만나보 았으면 좋겠다. [논어] 子 曰 善 人 吾 不 得 而 見 之 矣 得 見 有 恆 者 斯 可 矣 < 述 而 第 七 > [언해] 子 ㅣ 샤 善 人 을 내 어더보디 몯 거든 恒 인 者 를 어더보면 이
349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45 可 니라 [율곡] 子 ㅣ 샤 善 人 을 내 어더보디 몯 거든 恒 이 잇 者 어더보미 이 可 니라 [세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인은 내가 만나보지 못했으니 항상성이 있는 자라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이상과 같이 論 語 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용됐던 < 可 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 의 1옳거나 좋다, 2안건이나 문제 따위가 자기의 뜻에 맞아 좋다 나 연세 한국어사전 의 1(무엇이) 좋다. 도리에 비추어 옳다. 2가능하다. 타당하다. 괜찮다. 라는 의미기술을 바탕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 능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다음으로 독립신문 에서의 용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가하다>와 같이 붙여 쓴 것은 아래에 제시한 두 예뿐이었지만 <가 하다>와 같이 띄어쓰 기를 한 용례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9). 아래에 그 용례 가운데 일부만 을 제시하는데 그 끄트머리에 덧붙여 적은 것은 밑줄 친 부분이 해당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일에 가지 쳥국을 각 졍략으로 젼리 모든 군함을 쳥국으로 도로 붓침 이 가 다 쥬쟝 이 잇서 해군 쟝교 즁에도 히 독립 의견으로 이 문 졔를 연구 이 잇스되 (제4권 제261호, 1899년 11월 14일) <옳다> 연셜은 무가 번다 고 시간이 진 야 젼회에 졔츌 대한 관인이 공무를 각근히 랴면 경졔 샹에 편리 셔양 의졔를 모본 이 가 다 문졔를 그 다음 회에 토론 결뎡 얏스니 (제3권 제41호, 1898년 4월 7일) <좋 다/괜찮다> 회샤 본 님군의 권이 잇 아니요 부 대신의 감독 아 그 졍무를 야도 실뎨 젼뎨 졍부라 이러 넓고 큰 토디를 샤립 회샤에 붓 쳐 둠이 불가 니 졍부에셔 관할 이 가 다 고 공론이 이러난즉 영국 졍 부에셔 금번계획이 잇슴이로되 (제4권 제228호, 1899년 10월 5일) <옳 다> 10) 9) 실제로 조사해보기 이전 단계에서는 <가하다>가 한문훈독체를 비롯한 딱딱한 문체에서 사용 되던 표현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독립신문 이 순한글신문이라는 점에서도 그 용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전혀 빗나갔다.
350 34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국가의 긔쵸를 튼튼히 랴면 각죵 학교 몃만 곳을 셜 여야 터이요 만 일 그럿치 아니 면 학교의 일홈을 라히 영영 혁파 고 젼 셰계 로 그져 지 것이 가 다고 엿더라 (제2권 제117호, 1897년 10월 2일) <옳다/ 괜찮다> 츄호라도 그른 일을 엿스면 잡아 갈 아니라 쥭여도 한이 업거니와 문명 화 에 명텬이 샹 거 디에 고 지극히 인션 사 을 동학 보다 더 악 일을 다 고 군부에 보고 여 병명으로 뭇지르쟈 니 일변은 심 고 우슈은 일이라 다만 수십명이라도 모혀 불의지 를 진 치 것도 가 고 멸 것도 가 거니와 각각 뎨 집에셔 경텬 인 도리를 실심으로 사 의게 병뎡이 무 샹관이 잇스리오 (제2권 제 126호, 1897년 10월 23일) <가능하다/괜찮다> 11) 이처럼 독립신문에 <가하다>의 용례가 많다고 하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가하다>는 반드시 한문훈독체와 같은 딱딱한 문체 속에서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예컨대 필자가 <옳다/괜찮다>로 표시한 것과 같 이, 그 의미를 특정 짓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べし>와 유사한 양 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べし>가 <옳다, 괜찮다, 가능하다> 의 뜻으로 쓰인 경우라면 <가하다>는 선택가능성이 높은 대역어 가운데 하 나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10) <옳다>로 해석 가능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도 있다. 외부에셔 경무쳥에 훈령 기를 법국 공 의 편지 에 곳 드른즉 귀경무쳥에셔 슌검을 김포에 보내여 그 초평에 츄슈 교민 셰명을 잡아다 가두엇다니 귀 대신은 교민 삼 명을 즉각에 놋코 혹 연타치 말미 가 다고 엿스니 무 일인지 답복 라 엿다더라 (제2권 제118호, 1897년 10월 5일) 림피 군슈 리현직씨 원 노릇을 엇더케 잘못 지 도 에 불치 슈령으로 뎨일 유명 지라 그런 고로 도 관찰 가 리군슈를 야 기를 어셔 쇽히 셔울노나 올나가셔 잘 쥬션 야 다른 고을노나 옴겨 가 것이 가 다 고 군 각항 문부를 실 랴고 위 원을 파송 얏다더라 (제4권 제268호, 1899년 11월 22일) 11) <가능하다/괜찮다>의 예로는 아래와 같은 것도 있다. 법부 대신은 고등 판쇼에 쇼쟝을 올닐 안이 잇고 업슴을 구 치 아니 고 한셩 판쇼의 무와 안건을 로 감시 고 혹 로 파원 야 슌시케 고 한셩 판쇼에 무가 번 극 에 법부 대신이 법부 직원 즁으로셔 연슉 사 을 잠간 파송 여 판 부 판 셔긔등 직무를 신 판리케 이 가 니 이러 경우에 원의 직원이 한셩 판쇼에 인 원과 다름이 업 일이고 (제2권 제131호, 1897년 11월 4일)
351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관보 에서의 <べし>의 대역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보 에서 <べし>의 대역어로 채택된 한국어는 다섯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각 유형별로 특징적인 용례를 중 심으로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할 事 > 유형 먼저 [1]<~할 事 >는 총 3개의 용례가 있는데 이는 広 辞 苑 을 기준으로 보면 <1 当 然 ウ しなければならない> 또는 <5 命 令 せねばならな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2). [원문] 土 地 調 査 事 業 ニ 従 事 スヘキ 朝 鮮 総 督 府 臨 時 土 地 調 査 局 事 務 員 ヲ 養 成 スル 為 メ 左 記 要 項 ニ 依 リ 学 員 六 十 名 ヲ 募 集 ス 入 学 志 願 者 ハ 請 願 書 ニ 履 歴 書 ヲ 添 附 シ 至 急 本 養 成 所 ニ 提 出 スヘシ (관보50호) [역문] 附 近 農 家 作 況 大 暑 부터 二 百 十 日 에 至 동안의 氣 候 溫 度 가항샹 低 야 穗 의 生 育 이 完 全 치못 나 多 幸 히 本 年 은 移 植 期 가니르고 甚 히 不 幸 畓 이 無 故 로 平 年 作 以 上 일듯 4.2. <~ㄹ듯하다> 유형 다음으로 [2]<~ㄹ듯하다>는 총 14개의 용례가 있는데 역시 그것을 広 辞 苑 을 기준으로 보면 <2 確 実 な 推 量 >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원문] 附 近 農 家 作 況 大 暑 ヨリ 二 百 十 日 ニ 至 ル 間 ノ 気 候 ハ 温 度 概 シテ 低 ク 稲 ノ 生 育 充 分 ナラスト 雖 幸 ヒ 本 年 ハ 移 植 期 早 ク 甚 シキ 不 良 ノ 田 ヲ 見 サルカ 故 ニ 平 年 作 以 上 ナルヘシ (관보35호) [역문] 附 近 農 家 作 況 大 暑 부터 二 百 十 日 에 至 동안의 気 候 温 度 가항샹 低 야 穂 의 生 育 이 完 全 치못 나 多 幸 히 本 年 은 移 植 期 가니르고 甚 히 不 幸 畓 이 無 故 로 平 年 作 以 上 일듯 [원문] 七 月 上 旬 及 中 旬 ノ 頃 屡 々 水 害 ヲ 蒙 リ 頗 ル 生 育 ヲ 害 セラレ 其 後 気 候 陰 晴 常 ナ ラス 日 照 時 間 龋 年 ニ 比 シ 著 シク 減 シ 気 温 低 カリシモ 漸 次 勢 力 ヲ 回 復 シ 分 蘖 数 ノ 12) 이 두 가지 용법을 구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352 34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如 キモ 昨 年 ニ 比 シ 殆 ント 優 劣 ナキニ 至 レリ 但 数 回 浸 水 ノ 為 メ 肥 料 分 少 シク 流 失 セ ルモノノ 如 ク 微 ニ 欠 乏 ノ 徴 候 ヲ 示 セリ 仮 令 今 後 ノ 気 候 適 順 ナルモ 前 年 ニ 比 シ 多 少 ノ 減 収 ヲ 免 レサルヘシ (관보35호) [역문] 七 月 上 旬 과 中 旬 에 数 次 水 害 가잇서 生 育 을 妨 害 얏고 其 後 도 気 候 가 陰 晴 不 常 야볏치 時 間 에 龋 年 에 比 야 大 段 히 減 고 気 温 도 低 얏스되 漸 々 勢 力 을 回 复 야 分 蘖 数 도 昨 年 比 야과히 優 劣 이 無 게되니라그러 나 数 次 浸 水 에 肥 料 分 이젹이 流 失 지죠곰 欠 乏 徴 候 가 有 니 仮 令 今 後 気 候 가 適 順 지라 도 前 年 에 比 야 多 少 間 減 収 免 치못 듯 니라 [원문] 水 稲 成 熟 ノ 収 況 ハ 前 年 ニ 比 シ 著 シク 遅 レ 其 ノ 最 モ 豊 後 種 ノ 如 キモ 尚 収 穫 ニ 至 ラス( 前 年 ハ 九 月 十 八 日 収 穫 ) 晩 稲 ハ 目 下 糊 熟 中 ニシテ 成 熟 ハ 十 月 上 旬 ナル ヘシ 要 スルニ 二 百 十 日 以 後 気 候 不 順 ナリシヲ 以 テ 出 穂 成 熟 共 ニ 不 整 ニシテ 前 年 ニ 比 シ 早 稲 ハ 十 日 晩 稲 ハ 五 六 日 遅 熟 ヲ 来 スナルヘシ (관보46호) [역문] 水 稻 의 成 熟 의 收 況 은 前 年 에 比 야 大 段 히더듸여그즁일흔 豊 後 種 도아즉 收 穫 이못되여( 前 年 은 九 月 十 八 日 에 收 穫 ) 晩 稻 目 下 糊 熟 中 이니 成 熟 은 十 月 上 旬 일듯 니라 蓋 二 百 十 日 以 後 에 氣 候 不 調 으로 出 穂 (이삭이나 것)와 成 熟 이다 不 整 야 前 年 에 比 면 早 稻 十 日, 晩 稻 五 六 日 더듸여익을듯 니라 4.3. <~ㄹ지라> 유형 또 다음으로 [3]<~ㄹ지라>는 총 26개의 용례를 찾을 수 있었는데, 広 辞 苑 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다음 표와 같이 넓은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広 辞 苑 /4 1/5 2/3 용례수 예컨대 다음 예는 <1 当 然 の 意 >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는 것이다. [원문] 日 本 帝 国 政 府 ハ 併 合 条 約 施 行 ノ 際 現 ニ 朝 鮮 ニ 於 ケル 外 国 領 事 裁 判 所 ニ 繋 属 スル 事 件 ハ 最 終 ノ 決 定 ニ 至 ル 迄 其 ノ 裁 判 ヲ 続 行 セシムルコトヲ 承 諾 スヘシ (관 보1호) [역문] 本 帝 国 政 府 併 合 条 約 施 行 際 에 現 히 朝 鮮 의 外 国 領 事 裁 判 所 에 繋 属 事 件 은 最 終 의 決 定 에 至 기 지 其 裁 判 을 続 行 케 을 承 諾 지라 다만 1의 경우 <5 命 令 の 意 せねばならない>로 보는 것도 가능한 예
353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49 가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며, 아울러 <5 命 令 >의 경우 명 백하게 그 뜻으로만 쓰였다고 단정할 수 있는 예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도 주 의가 필요하다 13). 이러한 예를 카운트한 것이 위 표에서 1/5 로 표기한 부 분이다. 다음으로 2< 推 量 >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14). [원문] 自 今 前 韓 国 ノ 皇 帝 陛 下 ハ 昌 徳 宮 李 王 殿 下 ト 称 セラレ 皇 太 子 ハ 王 世 子 トナリ テ 後 嗣 長 ヘニ 相 継 承 シ 万 歳 無 窮 タルヘク 太 皇 帝 陛 下 ハ 徳 寿 宮 李 太 王 殿 下 ト 称 セラレ 並 ニ 皇 族 ノ 禮 遇 ヲ 賜 ハリ 其 ノ 秩 俸 ノ 豊 厚 ナル 皇 位 ニ 在 スノ 時 ト 異 ル 所 ナカ ルヘシ (관보1호) [역문] 自 今 前 韓 国 의 皇 帝 陛 下 昌 徳 宮 李 王 殿 下 라 称 하며 皇 太 子 王 世 子 가되시 고 後 嗣 가 長 히 相 傳 繼 承 고 萬 歲 無 窮 지며 太 皇 帝 陛 下 徳 寿 宮 李 太 王 殿 下 라 称 하야 玆 히 皇 族 의 禮 遇 賜 시고 其 秩 俸 이 豐 厚 은 皇 位 에 在 실 時 와 無 異 지라 [원문] 朝 鮮 ニ 在 留 スル 諸 外 国 人 ハ 日 本 法 権 ノ 下 ニ 於 テ 事 情 ノ 許 ス 限 日 本 内 地 ニ 於 ケルト 同 一 ノ 権 利 及 特 典 ヲ 享 有 シ 且 其 ノ 適 法 ナル 既 得 権 ノ 保 護 ヲ 受 クヘシ (관 보1호) [역문] 朝 鮮 에 在 留 諸 外 国 人 은 日 本 法 権 의 下 에셔 事 情 이 許 을 限 야 日 本 内 地 와 同 一 権 利 와 及 特 典 을 享 有 야 且 其 適 法 旣 得 権 의 保 護 受 지라 다만 위에 제시한 두 번째 예의 경우, 보기에 따라서는 受 하는 것이 가능 하다 는 의미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지적해두겠다. 그 러나 그것을 인정한다면 当 然 의 의미로 해석할 여지 역시 전혀 없다고 할 13) 관련한 예로는 아래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관점에 따라 <명령>으로도 <당연>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원문] 前 条 第 三 号 ニ 依 リ 免 除 シタル 欠 逋 金 ニ 就 キ 提 供 シタル 担 保 物 件 アルトキハ 之 ヲ 担 保 提 供 者 ニ 還 附 スヘシ [역문] 前 條 第 三 號 에 依 야 免 除 欠 逋 金 에 對 야 提 供 擔 保 物 件 이 有 此 擔 保 提 供 者 에 還 附 지라 [원문] 韓 国 ト 列 国 トノ 条 約 ハ 当 然 無 效 ニ 帰 シ 日 本 国 ト 列 国 トノ 現 行 条 約 ハ 其 ノ 適 用 シ 得 ル 限 朝 鮮 ニ 適 用 セラルヘシ [역문] 韓 国 과 列 國 間 의 條 約 은 當 然 히 無 效 에 歸 야 日 本 国 과 列 国 間 의 現 行 條 約 은 其 可 히 適 用 을 限 야 朝 鮮 에 適 用 케 지라 14) 다만 아래에 제시한 두 번째 예의 경우 보기에 따라서는 受 하는 것이 가능하다 는 의미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은 지적해두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当 然 의 의미로 해석 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354 35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수 없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원문] 世 家 率 循 ノ 道 ニ 至 リテハ 朕 ハ 当 ニ 別 ニ 其 ノ 軌 儀 ヲ 定 メ 李 家 ノ 子 孫 ヲシテ 奕 葉 之 ニ 頼 リ 福 履 ヲ 増 綏 シ 永 ク 休 祉 ヲ 享 ケシムヘシ (관보1호) [역문] 世 家 率 循 의 道 에 至 야 朕 이 当 히 其 軌 儀 叧 定 야 李 家 의 子 孫 으로 야 곰 奕 葉 이 賴 之 고 福 履 増 綏 야 永 히 休 祉 享 케 지라 [원문] 朕 惟 フニ 李 堈 及 李 熹 ハ 李 王 ノ 懿 親 ニシテ 令 問 夙 ニ 彰 ハレ 槿 域 ノ 瞻 望 タリ 宜 ク 殊 遇 ヲ 加 錫 シ 其 ノ 儀 称 ヲ 豊 ニスヘシ (관보1호) [역문] 朕 이 惟 컨 李 堈 及 李 熹 李 王 의 懿 親 으로 令 問 이 夙 彰 고 槿 域 의 瞻 望 이니 宜 히 殊 遇 加 錫 야 其 儀 称 을 豊 케 지라 다음으로는 4< 可 能 >의 용법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예는 하나를 제외하 고 15) 모두 아래와 같이 ことあるへし 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이는 예컨대 <유함이 가하다>와 같은 표현이 형용사가 반복되는 문제도 있고 해서 매우 어색하다는 사실까지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6) [원문] 患 者 ニシテ 攝 生 ヲ 守 ラス 又 ハ 院 内 ノ 秩 序 ヲ 紊 シ 治 療 ノ 妨 害 ヲナスモノハ 診 療 15) 그 하나란 아래와 같은 예인데 이는 보기에 따라서 1< 当 然 >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원문] 今 回 朝 鮮 総 督 府 所 属 官 署 官 制 公 布 セラレ 次 テ 職 員 ノ 任 命 アリ 新 政 ノ 機 関 ハ 玆 ニ 一 先 ツ 完 備 セリト 謂 フヘシ (관보31호) [역문] 今 次 朝 鮮 總 督 府 와 所 屬 官 署 官 制 公 布 시고 因 야 職 員 을 任 命 시 新 政 의 機 関 이 可 히 完 備 다 謂 지라 16)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용례가 있다. [원문] 代 書 業 者 本 則 ニ 違 反 シ 又 ハ 公 安 ヲ 害 スルノ 虞 アリト 認 ムルトキハ 所 轄 警 察 官 暑 長 ハ 其 ノ 業 務 ヲ 停 止 シ 又 ハ 禁 止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0호) [역문] 代 書 業 者 가 本 則 에 違 反 커나 或 公 安 을 害 虞 가 有 다 認 所 轄 警 察 官 暑 長 은 其 業 務 停 止 커나 或 禁 止 事 가 有 지라 [원문] 前 項 ニ 依 リ 施 設 ヲ 命 セラレタル 者 其 ノ 期 間 内 ニ 之 ヲ 行 ハサルトキハ 當 該 官 署 ハ 自 ラ 之 ヲ 行 ヒ 又 ハ 第 三 者 ヲシテ 之 ヲ 行 ハシメ 其 ノ 費 用 ハ 義 務 者 ヨリ 徵 收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7호) [역문] 前 項 에 依 야 施 設 을 命 바가된 者 가 其 期 間 内 에 此 行 치아니 當 該 官 署 가 此 自 行 커나 或 第 三 者 로 야곰 行 케 야 其 費 用 은 義 務 者 에셔 徵 收 이 有 지라 [원문] 但 シ 特 別 ノ 事 情 ニヨリ 必 要 アルトキハ 取 扱 時 間 ヲ 延 伸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9호) [역문] 但 特 別 事 勢 因 야 必 要 가 有 取 扱 時 間 을 延 伸 이 有 지니 [원문] 朝 鮮 總 督 府 郵 便 爲 替 貯 金 管 理 所 ヨリ 郵 便 振 替 貯 金 事 務 ニ 関 シ 發 スル 書 類 ニハ 其 ノ 名 ヲ 京 城 振 替 貯 金 部 ト 略 記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9호) [역문] 朝 鮮 總 督 府 郵 便 爲 替 貯 金 管 理 所 에셔 郵 便 振 替 貯 金 事 務 에 関 야 發 書 類 에 其 名 을 京 城 振 替 貯 金 部 라 略 記 이 有 지라
355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51 ヲ 謝 絶 スル 事 アルヘシ (관보11호) [역문] 患 者 가 攝 生 을 守 치아니 거나 或 院 内 의 秩 序 紊 케 야 治 療 의 妨 害 쟈 診 療 謝 絶 事 가 有 지라 [원문] 入 院 者 ノ 被 服 ハ 自 辯 セシムルヲ 例 トス 不 潔 ナル 被 服 ハ 更 新 ヲ 命 スル 事 アル ヘシ (관보11호) [역문] 入 院 者 의 被 服 은 自 辯 케 을 例 로 不 潔 被 服 은 更 新 을 命 事 가 有 지 라 4.4. <~함(이라)> 유형 이제 다음으로 [4]<~함(이라)> 유형을 살펴보겠다. 총 27개 용례를 広 辞 苑 을 기준으로 분류한 결과를 아래 표로 제시한다. 広 辞 苑 2 3 4/2 5/1 용례수 먼저 2< 推 量 >으로 해석 가능한 용례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원문] 朝 鮮 民 衆 ハ 尽 ク 帝 国 ノ 臣 民 ト 為 リ 天 皇 陛 下 撫 育 ノ 化 ヲ 被 ムリ 長 ヘニ 深 仁 厚 徳 ノ 恵 沢 ニ 浴 スヘシ (관보1호) [역문] 朝 鮮 民 衆 은 咸 爲 帝 国 臣 民 야 被 天 皇 陛 下 撫 育 之 化 고 永 히 深 仁 厚 德 之 惠 澤 에 浴 이라 [원문] 又 従 前 法 律 ニ 違 反 シタル 者 ニシテ 其 ノ 犯 罪 ノ 性 質 特 ニ 愍 諒 スヘキ 者 ニ 対 シ テハ 一 律 ニ 大 赦 ノ 特 典 ヲ 与 ヘラルヘシ (관보1호) [역문] 又 從 前 法 律 에 違 背 者 로 其 犯 罪 性 質 이 特 히 愍 諒 홈즉 者 에 對 야 一 律 大 赦 之 特 典 을 與 심이라 다음으로는 3< 意 志 ㆍ 決 意 >의 뜻이다. [원문] 官 庁 以 外 ノ 購 求 者 ニシテ 前 納 金 満 了 ノトキハ 官 報 ノ 発 送 ヲ 停 止 スヘシ (관보 56호) [역문] 官 庁 以 外 購 求 者, 前 納 金 滿 了 時 官 報 의 發 送 을 停 止
356 35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원문] 官 報 ハ 本 局 ノ 許 可 シタル 官 報 販 売 所 ニ 就 キ 購 求 スル 事 ヲ 得 官 報 販 売 所 ヲ 許 可 シタルトキハ 官 報 ヲ 以 テ 公 告 スヘシ (관보56호) [역문] 官 報 本 局 의 許 可 官 報 販 賣 所 에 就 야 購 求 을 得 며 官 報 販 賣 所 許 可 時 官 報 로쎠 公 告 또 다음으로는 가장 용례수가 많은 4< 可 能 >과 2< 推 量 >의 경계선상에 있는 것으로 본 예인데 아래와 같다. [원문] 講 習 生 ノ 定 員 ハ 三 十 名 トス 但 時 宜 ニ 依 リ 増 減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4호) [역문] 講 習 生 의 定 員 은 三 十 名 으로 但 時 宜 에 依 야 増 減 이 有 이라 [원문] 大 蔵 大 臣 ハ 前 項 ノ 請 求 ナキトキハ 仕 払 元 金 ニ 超 過 シタル 仕 払 命 令 ノ 仕 払 ヲ 停 止 スルコトアルヘシ (관보28호) [역문] 大 藏 大 臣 은 前 項 의 請 求 가 無 仕 拂 元 金 을 超 過 仕 拂 命 令 의 仕 拂 을 停 止 이 有 이라 마지막으로 5< 命 令 >과 1< 当 然 >을 단정하기 어려운 예인데 아래와 같다. [원문] 是 ヲ 以 テ 各 種 ノ 宗 敎 ヲ 待 ツニ 毫 モ 親 疎 ノ 念 ヲ 挾 マサルハ 勿 論 其 ノ 布 敎 傳 道 ニ 對 シテハ 適 當 ナル 保 護 便 宜 ヲ 與 フルニ 吝 ナラサルヘシ (관보1호) [역문] 以 是 로 各 種 宗 敎 를 待 에 毫 無 挾 於 親 疎 之 念 을 勿 論 고 其 布 敎 傳 道 에 對 야 適 當 保 護 便 宜 與 이 不 吝 이라 [원문] 朝 鮮 總 督 府 官 報 ヲ 購 求 セムトスルモノハ 其 ノ 配 送 ヲ 受 クへキ 場 所 住 所 氏 名 及 購 求 セラル 官 報 ノ 發 行 月 日 ( 何 月 分 ヨリ 叉 ハ 何 月 何 日 分 ヨリ)ヲ 明 記 シタル 書 面 ヲ 以 テ 申 込 マルヘシ (관보56호) [역문] 朝 鮮 總 督 府 官 報 購 求 코쟈 者 其 配 受 場 所, 住 所, 氏 名 及 購 求 官 報 의 發 行 月 日 ( 何 日 부터 叉 何 月 何 日 分 부터) 明 記 書 面 으로 申 請 4.5. <(~함이) 可 하다> 유형 이제 마지막으로 [5]<(~함이) 可 하다> 유형을 살펴보겠는데 이 형식은 용 례가 197개에 이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べし>에 대한 대역어 가운데는 선택 비중이 가장 높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표준국어대사전 이나 연세 한국어사전, 그리고
357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53 논어 언해본이나 독립신문을 참조하면 <옳다, 괜찮다, 가능하다>의 뜻, 즉 広 辞 苑 의 기술로 보면 1 当 然, 2 推 量, 4 可 能 의 의미와 관련하여 <가하 다>가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실제 용례 전체를 분석해본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사실 조사 결과는 매우 간단한데, 5< 命 令 >과 1< 当 然 > 양쪽 모두로 해석 이 가능한 경우, 즉 그 경계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예가 183개에 이르 며, 나머지 14개는 5, 1의 해석 가능성에 덧붙여 4< 可 能 >의 뜻도 담고 있 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먼저 전자의 예로는 아래와 같은 것 이 있다. [원문] 前 項 ノ 命 令 ハ 発 布 後 直 ニ 勅 裁 ヲ 請 フヘシ 若 勅 裁 ヲ 得 サルトキハ 朝 鮮 総 督 ハ 直 ニ 其 ノ 命 令 ノ 将 来 ニ 向 テ 效 力 ナキコトヲ 公 布 スヘシ (관보1호) [역문] 前 項 의 命 令 은 發 布 後 에 直 히 勅 裁 請 이 可 若 或 勅 裁 得 지못 朝 鮮 總 督 은 直 히 其 命 令 이 將 來 에 向 야 效 力 이 無 을 公 布 이 可 이라 [원문] 大 赦 ノ 施 行 ニ 関 スル 処 分 ハ 検 事 ヨリ 迅 速 且 明 細 ニ 統 監 ニ 報 告 スヘシ (관보1 호) [역문] 大 赦 의 施 行 에 関 處 分 은 檢 事 에셔 迅 速 且 明 細 히 統 監 에 報 告 이 可 이 라 다음으로 후자의 예는 아래와 같다. [원문] 内 地 台 湾 及 樺 太 ト 朝 鮮 トノ 間 ニ 通 航 スル 船 舶 ハ 開 港 ニ 由 リ 出 入 スヘシ (관 보1호) [역문] 内 地, 台 湾 及 樺 太 와 朝 鮮 間 에 通 航 船 舶 은 開 港 을 由 야 出 入 이 可 이라 [원문] 官 報 広 告 ノ 掲 載 ハ 原 稿 ヲ 添 ヘ 朝 鮮 総 督 府 ニ 請 求 スヘシ (관보15호) [역문] 官 報 広 告 의 揭 載 原 稿 添 고 朝 鮮 總 督 府 에 請 求 이 可 이라 [원문] 警 務 部 長 ハ 道 長 官 ノ 命 ニ 依 リ 道 行 政 ノ 執 行 ヲ 助 ケ 又 ハ 地 方 警 察 事 務 ニ 関 シ 道 長 官 ノ 命 ヲ 承 ケ 必 要 ナル 命 令 ヲ 発 シ 叉 ハ 処 分 ヲ 行 フヘシ (관보28호) [역문] 警 務 部 長 은 道 長 官 의 命 에 依 야 道 行 政 의 執 行 을 助 커나 或 地 方 警 察 事 務 에 関 야 道 長 官 의 命 을 承 야 必 要 命 令 을 発 커나 叉 処 分 을 行 이 可 이라
358 35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요컨대 <(~함이) 可 하다>로 대역되어 있는 <べし>는 명확하게 <명령>이라 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모든 예문에서 <명령>이라고 하는 의미범주를 완 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상과 차이를 보였다고 언급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 문제는 관보 전체의 대역 양 상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필자(2014a)가 논의했던 바와 같이 관보 는 일문역법 과 마찬가지로, 예컨대 < 行 ふ 行 하다>< 努 る 努 하다>와 같이, 일본어를 동일한 한자를 활 용하는 형태로 치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을 때, <べし>는 < 可 し>로 표기할 수 있으므로, 이를 < 可 하다>로 옮기는 것은 관보 의 대역방침을 충 실히 수행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지도 모르겠다. 이는 조동사에까지 도 <1자한자어 + 하다>와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이므로, 관보 전체의 대역방침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다소 관점을 바꿔보면 <(~함이) 可 하다>를 제외한 나머지 유형들 은 모두 번역차용 17) 을 시도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 휘 레벨을 넘어 문법형식에서도 번역차용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되므로, 관보 의 언어연구자료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라 고 하겠다. 5. 맺음말 이상 본고에서는 일본어의 文 語 로 작성된 공식문서인 朝 鮮 總 督 府 官 報 와 그에 첨부된 조선역문 을 중심으로, 조동사 <べし>가 한국어로 어떻게 대 역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べし>의 대역어로는 [1]<~할 事 > [2]<~ㄹ듯하다> [3]<~ㄹ지라> [4] <~함(이라)> [5]<~(함이) 可 하다>와 같이 다섯 가지 유형이 채택되고 있는 데, 이처럼 다양한 대역 양상을 보이는 것은 <べし>가 가진 다의성을 대변하 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함이) 可 하다>가 관보 의 기본적인 대 역 방침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방침은 어휘 레벨을 넘어 문 법형식에까지 적용되는 철저함을 띠고 있다고 해야겠다. 아울러 <~(함이) 可 17) 송(2007)은 번역차용이란 결국 일본어의 간섭에 대한 국어의 적극적인 저항을 나타낸다 고 지적한다.
359 <べし>의 대역어 < 可 하다>에 대하여 ( 閔 丙 燦 ) 355 하다>를 제외한 나머지 대역어들을 번역차용으로 이해한다면 역시 같은 논 리로 어휘 레벨을 넘어 문법형식에까지 번역차용이 시도됐다는 것이 되어 관보 의 언어연구자료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요컨대 관보 의 대역은 단순한 축어역이나 마치 기계번역과도 같은 기본방 침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한국어를 생생하게 반영한 요소 역시 공 존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관보 의 언어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인 외 옮김(2010) 세주 완역 논어집주대전 1, 2, 도서출판 한울 김종택(1992) 국어 어휘론 (주)탑출판사 閔 丙 燦 (2012a) ヘボンㆍブラウン 訳 馬 可 伝 における べし について, 日 本 學 報 92 輯. p 閔 丙 燦 (2012b) 조선총독부관보의 조선역문 에 대하여, 日 本 學 報 93 輯. p 閔 丙 燦 ㆍ 李 知 彦 (2013) 日 文 譯 法 의 일한번역 양상에 대하여, 日 本 學 報 95 輯. p 閔 丙 燦 ㆍ 李 知 彦 (2014a) 朝 鮮 總 督 府 官 報 의 언어자료로서의 활용 가능성에 대하여, 日 本 學 報 98 輯. p 閔 丙 燦 (2014b) <べし>의 한국어 번역에 관한 일고찰, 日 本 學 報, 99 輯. p 송민(2007) 개화기 국어에 나타나는 신생어와 관용구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자료집 한국현대문학회. 안예리(2013) 1음절 한자어+하다 용언의 통시적 변화, 한국어학 58집. p 연세대학교 언어정보개발연구원(1998) 연세 한국어사전 (주)두산. 韓 中 瑄 (2003) 林 奎 의 日 文 譯 法 考 察 日 本 語 學 硏 究 8 輯. 大 野 透 (1956) ベシㆍベカラズㆍマシジㆍマジについて, 国 語 学 25. p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민병찬, (한자) 閔 丙 燦, (영어) Min Byung Chan 소속 :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논문영문제목 : A Study on <gahada( 可 하다)> as an equivalence to <beshi(べし)> 주소 : ( ) 인천광역시 남구 인하로 100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E mail : [email protected]
360 35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국문요지> 본고는 일본어의 文 語 로 작성된 공식문서인 朝 鮮 總 督 府 官 報 와 그에 첨부된 조선역문 을 중심으로, 조동사 <べし>가 한국어로 어떻게 대역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べし>의 대역어로는 1<~할 事 > 2<~ㄹ듯하다> 3<~ㄹ지라> 4<~함(이라)> 5<~(함 이) 可 하다>와 같이 다섯 가지 유형이 채택되고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대역 양상을 보이는 것은 <べし>가 가진 다의성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함이) 可 하다>가 관보 의 기 본적인 대역 방침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방침은 어휘 레벨을 넘어 문법형식에까지 적용되는 철저함을 띠고 있다고 해야겠다. 아울러 <~(함이) 可 하다>를 제외한 나머지 대역어들 을 번역차용으로 이해한다면 역시 같은 논리로 어휘 레벨을 넘어 문법형식에까지 번역차용이 시 도됐다는 것이 되어 관보 의 언어연구자료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요컨대 관보 의 대역은 단순한 축어역이나 마치 기계번역과도 같은 기본방침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한국어를 생생하게 반영한 요소 역시 공존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관보 의 언 어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어: 대역자료, 조동사 베시, 조선총독부관보, 축어역, 번역차용
361 357 人情本の おまへ の使用様相分析 ー 春色梅児誉美 と 春色辰巳園 を中心としてー 閔 丞 希*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usages of omae in two of the Japanese early modern ninjōbon writings, Shunshoku umegoyomi, Spring colors: The Plum Calendar and Shunshoku tatsumi no sono, Spring colors: The Southeast Garden. A thorough investigation has been conducted regarding cases of Omae and some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omae are found as follows: 1. Omae is the most frequently used personal pronoun in the Japanese early modern ninjōbon pieces. It was kamigata language mainly used in the kamigata region (the Kyoto Osaka area) but was an important pronoun that was also widely used in the end of early modern period. 2. The level of politeness associated with omae in the later early modern period widely varied from expressing politeness to crudity. In other words, omae showed enlarged levels of politeness in the late early modern period in Japanese rather than descending levels of politeness. 3. Omae can be used with a predicate which shows a meaning of politeness or a predicate which has no polite meaning. This implies that predicates which were associated with omae also showed varied levels of politeness. 4. The omae and watakushi were used interchangeably so as to show high levels of politeness in the late early modern period. Keywords : Shunshokuumegoyomi, Shunshokutatsuminosono, Omae, Second person pronoun, First person pronoun 1) Ⅰ. はじめに 近世は前期と後期に分かれ 前期には政治ㆍ社会ㆍ文化などの中心が京都 ㆍ大阪の上方を中心に発達し 後期にはその中心が江戸に移って発達した 時期である 文学の隆盛もこれに従って 文学史において18世紀前半までを 上方文学の時代 以後を狭義の江戸文学の時代とも呼ばれる そして 言語 * 중원대학교 조교수
362 35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の 史 的 研 究 も 上 方 語 ㆍ 江 戸 語 に 分 けられて 研 究 されてきた それは 前 期 上 方 と 後 期 江 戸 の 間 に 政 治 的 な 要 素 地 域 的 な 要 素 社 会 ㆍ 文 化 的 な 要 素 の 大 きな 差 があり それらの 要 素 は 言 語 の 変 化 にも 影 響 を 及 ぼしたからである 本 稿 は 近 世 後 期 江 戸 語 の 中 特 に 後 半 とも 言 える1770 年 以 後 の 人 情 本 を 研 究 資 料 にして 近 世 後 期 江 戸 語 において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につい ての 分 析 を 試 みる 人 情 本 の 中 春 色 梅 兒 誉 美 春 色 辰 巳 園 を 研 究 資 料 として 扱 う こ の 二 つの 作 品 に 現 われている おまへ の 用 例 をすべて 取 り 上 げ その 使 用 頻 度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との 関 係 述 語 との 呼 応 関 係 おまへ と 自 称 代 名 詞 との 共 起 関 係 などを 把 握 することが 本 研 究 の 目 的 である 本 稿 で 特 に おまへ を 取 り 出 して 検 討 しようとする 理 由 は 次 のようである 1 おまへ は 近 世 に 使 用 頻 度 がもっとも 高 い 代 名 詞 で 近 世 を 代 表 する 対 称 代 名 詞 であるとも 言 えるので おまへ についての 分 析 は 近 世 の 代 名 詞 を 理 解 するにおいて 重 要 な 位 置 を 占 めているからである 2 おまへ は 近 世 前 期 から 後 期 にかけて 使 用 されながら 他 の 対 称 代 名 詞 ( おまへさま おまへさん おめへ おめへさん )の 待 遇 価 値 などに 影 響 を 与 えて 近 世 代 名 詞 体 系 に 変 化 をもたらした 代 名 詞 であり 日 本 の 代 名 詞 の 語 史 研 究 に 重 要 な 位 置 を 占 めているからである 3 おまへ についての 多 くの 先 行 研 究 があるが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具 体 的 な 使 用 用 例 分 析 はまだ 行 われていないからである 本 研 究 がもたらす 研 究 意 義 は 次 のようである 1 近 世 人 称 代 名 詞 研 究 に 役 立 つ 2 人 情 本 の 言 語 的 特 徴 及 び 待 遇 表 現 研 究 に 役 立 つ 3 語 史 的 な 観 点 からみて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の 変 遷 研 究 に 役 立 つ また 本 稿 の 研 究 資 料 として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春 色 辰 巳 園 を 選 んだ 理 由 は 次 のようである 1 為 永 春 水 の 春 色 梅 兒 誉 美 春 色 辰 巳 園 は 複 数 の 男 女 の 恋 愛 を 複 雑 に 交 錯 させながら 人 情 を 描 く 一 般 庶 民 のための 恋 愛 文 学 である 人 情 本 の 忠 実 な 会 話 描 写 の 手 法 は 江 戸 庶 民 生 活 の 記 録 と 言 っても 過 言 ではな く 当 時 の 言 語 を 知 る 資 料 として 貴 重 なものである 2 滑 稽 本 としては 浮 世 風 呂 と 浮 世 床 がよく 知 られているように 人 情 本 としては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が 代 表 的 な 作 品 である 滑
363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59 稽 本 においての おまへ の 分 析 は 多 く 行 われたが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の おまへ についての 用 例 分 析 は 遅 れているの で 学 術 的 に 研 究 価 値 が 高 い 資 料 である 3 洒 落 本 ㆍ 滑 稽 本 よりも 時 代 的 に 遅 れている 人 情 本 を 研 究 資 料 として 近 世 から 近 代 にどのように おまへ の 使 用 用 法 が 変 化 していったかが 考 察 でき る 資 料 であある Ⅱ. 先 行 研 究 近 世 の 人 称 代 名 詞 についての 研 究 は 主 に 前 期 上 方 の 人 称 代 名 詞 研 究 と 後 期 江 戸 の 人 称 代 名 詞 研 究 に 大 きく 分 けられる まず 前 期 上 方 の 人 称 代 名 詞 に 関 する 研 究 としては 坂 梨 隆 三 (1987)の 江 戸 時 代 の 国 語 湯 沢 幸 吉 郎 (1982) の 徳 川 時 代 語 の 研 究 山 崎 久 之 (1963)の 国 語 待 遇 表 現 体 系 の 研 究 な どのすぐれた 先 学 研 究 が 残 っている 特 に 山 崎 久 之 (1963)は 国 語 待 遇 表 現 体 系 の 研 究 で 人 称 代 名 詞 と 述 語 との 対 応 を 綿 密 に 検 討 して 客 観 的 に 科 学 的 な 方 法 で 近 世 人 稱 代 名 詞 を 待 遇 價 値 によって 体 系 化 させたと 評 価 される 一 方 近 世 後 期 の 人 称 代 名 詞 に 関 する 研 究 は 主 に 洒 落 本 ㆍ 滑 稽 本 ㆍ 人 情 本 を 対 象 にして 行 われ 池 上 秋 彦 (1963)の 人 情 本 に 現 われたーㆍ 二 人 称 代 名 詞 について 小 島 俊 夫 (1974)の 後 期 江 戸 ことばの 敬 語 体 系 永 田 高 志 (1995)の 江 戸 後 期 庶 民 語 における 第 三 者 に 対 する 敬 語 表 現 ー 洒 落 本 ㆍ 滑 稽 本 ㆍ 人 情 本 を 通 じてー などが 知 られている この 中 特 に 小 島 (1974)が 近 世 後 期 の 人 称 代 名 詞 を 待 遇 価 値 によって 体 系 化 させたと 評 価 される そして 本 稿 で 扱 っている おまへ を 小 島 (1994:86)は 次 のように 位 置 づけている * 聞 き 手 に 対 する 話 し 手 の 礼 を 失 わない 範 囲 のくつろいだ 敬 意 対 等 に 相 互 に 中 流 の 段 階 が 広 く 使 用 * 対 等 な 人 間 関 係 を もっとも 基 本 的 に 反 映 することばづかい つまり 小 島 は おまへ は 主 に 対 等 な 関 係 で 使 われた 対 称 代 名 詞 として 規 定 している このような 位 置 づけを 基 にして 本 稿 ではもっと 微 視 的 に 接 近 して 作 品 別 に おまへ の 具 体 的 な 用 法 を 考 察 しようとする 具 体 的 に 本 論 文 が 先 行 研 究 と
364 36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異 なる 点 は おまへ の 用 例 を 次 の 三 つの 点 に 注 目 して 考 察 したところにある 1 おまへ がどのような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関 係 で 使 われたか 2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はどのような 待 遇 価 値 を 表 しているか 3 おまへ はどのような 自 称 代 名 詞 と 共 起 しているか 上 の 三 つの 点 に 従 って 考 察 を 進 め おまへ についての 先 行 研 究 をもっと 発 展 させるのが 本 稿 の 研 究 目 的 である Ⅲ. おまへ の 用 例 分 析 1. 春 色 梅 児 誉 美 の 場 合 1-1. おまへ の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関 係 分 析 春 色 梅 児 誉 美 で 対 称 代 名 詞 おまへ の 用 例 数 は 総 34 例 である また 春 色 梅 児 誉 美 に 現 われている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と 用 例 数 は< 表 1>のようである < 表 1> 春 色 梅 兒 誉 美 の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と 用 例 数 1) 作 品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使 用 例 数 おめへ 59 おまはん 42 おまへ 34 春 おまへさん 25 色 てめへ 20 梅 あなた 8 兒 そなた 5 誉 そのほう 4 美 そっち 3 おまへさんがた 2 ぬし 2 うぬ 2 春 色 梅 兒 誉 美 の 対 称 代 名 詞 の 中 使 用 頻 度 が 高 い 対 称 代 名 詞 は おめ 1) あなたさま おまへがた おまへたち おめへたち きさま きでん そち う ぬら おのれ はそれぞれ 用 例 が 一 つずつあったが 紙 面 関 係 上 用 例 が 一 つしかない 対 称 代 名 詞 は 表 には 記 入 しなかった
365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61 へ おまはん おまへ などである つまり 近 世 前 期 の 上 方 の 代 表 的 な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た おまへ は 依 然 として 近 世 後 期 の 人 情 本 においても 使 用 頻 度 の 高 い 対 称 代 名 詞 として 使 われていたことがわかる 上 方 語 的 な 要 素 は 江 戸 後 期 になるにつれ 減 少 していくのが 一 般 的 であるが おまへ は 後 期 に も 使 用 頻 度 の 高 い 代 名 詞 として 使 用 され 生 命 力 の 強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たと 評 価 できる 特 に 本 稿 で 扱 っている おまへ の 総 例 数 は34 例 であり その 中 男 性 の 使 用 は3 例 のみで 残 り31 例 は 女 性 の 使 用 例 である つまり 女 性 の 使 用 が 圧 倒 的 に 多 く 現 われた おまへ を 使 用 している 話 し 手 ( 対 称 代 名 詞 の 使 用 者 )と 聞 き 手 の 関 係 につい て 整 理 し 示 すと 次 のようになる < 表 2> おまへ の 話 し 手 と 聞 き 手 2) 関 係 代 名 詞 おまへ 話 し 手 聞 き 手 用 例 数 用 例 出 處 3) お 長 4)( 女 ) 此 糸 ( 女 ) 2 65(11) 65(12) お 長 ( 女 ) 丹 次 郎 ( 男 ) 4 116(4) 117(6) 117(10) 143(3) お 由 ( 女 ) 五 四 郎 ( 男 ) 2 197(10) 197(10) お 由 ( 女 ) 内 儀 ( 母 ) 1 210(5) 松 兵 へ ( 番 頭 )( 男 ) 丹 次 郎 ( 男 ) 1 51(2) お 長 ( 女 ) お 阿 ( 置 屋 の 母 ) 1 133(1)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4 182(5) 182(5) 184(4) 184(6) 米 八 ( 女 ) 仇 吉 ( 女 ) 1 179(15) 鬼 兵 衛 ( 男 ) かげ 八 ( 男 ) 1 226(10) お 由 ( 女 ) お 長 ( 女 ) 13 74(3) 74(8) 74(9) 74(14) 114(2) 114(3) 114(4) 114(9) 114(13) 114(14) 114(16) 175(11) 208(6) 此 糸 ( 女 ) よね 八 ( 女 ) 1 123(7) 内 儀 ( 母 ) お 由 ( 女 ) 1 212(16) 此 糸 ( 女 ) お 長 ( 女 ) 1 234(14) 藤 兵 衛 ( 男 ) 由 次 郎 ( 男 ) 1 156(6) 2) <표2>で 目 上 の 人 には 目 下 の 人 に 対 等 な 関 係 の 人 には と 示 した ( 以 下 す べての 表 で 同 じである ) 3) 用 例 の 出 所 の 表 記 は まず ページ を 書 き その 後 行 を( )の 中 に 表 記 した 例 え
366 36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上 下 関 係 を< 表 2>で 記 号 と で 示 した 資 料 に なっている 作 品 が 近 世 の 社 会 を 反 映 しているので 上 下 関 係 のもっとも 基 本 的 な 基 準 は 身 分 であり 次 の 基 準 は 人 物 の 年 齢 である 本 稿 で 扱 う 春 色 梅 兒 誉 美 や 春 色 辰 巳 園 の 登 場 人 物 は 多 くないし 人 物 相 互 の 関 係 も 遊 里 を 背 景 にごく 単 純 であり 複 雑 に 関 係 や 内 容 が 絡 み 合 っている 他 の 作 品 と 比 べれば 上 下 関 係 の 位 置 づけは 明 確 である 次 の[ 例 1]と[ 例 2]は 目 上 の 相 手 に 対 して おまへ が 使 われている 例 文 で ある また [ 例 3]は 目 下 の 相 手 に 対 して おまへ が 使 われている 例 文 であ る [ 例 1]おゐらんへ 今 のよふにお 言 だがね 私 はおまへが 内 所 へすわつたり 何 か すると 寔 にこまるから どふぞ 左 様 しなひで 世 話 をしておくんなさいヨ (お 長 ( ) 此 糸 ( )) ( 梅 65 11) 5) [ 例 2] 堪 忍 どころじやございません 父 親 さんの 存 生 な 節 さへ 恋 しかつたおつかさ ん まして 常 々 気 にしても 尋 ねる 富 もないおまへが どうして 私 の 在 宅 が 知 れて モシマア 夢 じやア 有 りませんか (お 由 ( ) 内 儀 ( 母 )( )) ( 梅 210 5) [ 例 3]ノウお 由 今 までいふたは 過 たこと 今 日 わざわざ 来 たわけは チツトおま へに 頼 が 有 が 聞 とどけておくれか ( 内 儀 ( 母 )( ) お 由 ( )) ( 梅 ) [ 例 1]の 話 し 手 であるお 長 は 唐 琴 屋 の 娘 であったが 落 ちぼれて 遊 女 にな り 行 くところもない 身 になった 人 である また 聞 き 手 である 此 糸 はお 長 の 面 倒 をみてくれているお 長 より 年 上 の 遊 女 である [ 例 2]と[ 例 3]のるお 由 は 遊 女 であり 母 と 話 している 場 面 であるが 母 が 娘 に 対 しても 娘 が 母 に 対 しても ば 65(11)は65ページの11 行 目 の 用 例 を 意 味 する 4) 作 品 の 登 場 人 物 の 上 下 関 係 は 主 に 身 分 と 年 齢 を 基 準 とする 春 色 梅 兒 誉 美 の 登 場 人 物 を 紹 介 す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丹 次 郎 ( 遊 女 屋 唐 琴 屋 の 養 子 ) お 長 ( 唐 琴 屋 の 娘 で 丹 次 郎 のいいなずけ) お 由 ( 遊 女 お 長 よ り 年 上 )ㆍ 米 八 ( 遊 女 丹 次 郎 の 恋 人 )ㆍ 仇 吉 ( 米 八 と 同 僚 遊 女 ) お 阿 ( 置 屋 の 母 ) 五 四 郎 ( 番 頭 ) 鬼 兵 衛 ( 番 頭 ) かげ 八 ( 番 頭 ) 藤 兵 衛 ( 商 家 の 旦 那 ) 由 次 郎 ( 番 頭 ) 此 糸 ( 唐 琴 屋 の 花 魁 ) 5) 出 典 の 表 記 において 春 色 梅 兒 誉 美 は 約 して 梅 春 色 辰 巳 園 は 辰 と 示 すこと にする また ページを 前 に 示 し その 後 行 を 示 した
367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63 おまへ が 使 われている すなわち [ 例 1]と[ 例 2]は 目 上 の 相 手 に 対 し て 使 われている おまへ の 用 例 であり [ 例 3]は 目 下 の 相 手 に 対 して 使 わ れている おまへ の 用 例 である 上 記 の[ 例 1][ 例 2][ 例 3]と< 表 2>によると 目 上 の 人 に 対 しても 目 下 の 人 に 対 しても おまへ は 使 用 されている つまり 近 世 前 期 に 主 に 目 上 の 人 に 対 して 使 われた おまへ の 待 遇 価 値 6)に 比 べ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 まへ の 待 遇 価 値 は 相 当 低 くなり 目 下 の 相 手 に 対 しても おまへ は 使 われ ていることが 確 認 できる おまへ の 待 遇 価 値 の 下 落 については 江 湖 山 恒 明 (1938)も 滑 稽 本 の 用 例 分 析 を 通 じて 次 のように 指 摘 している おまへ は 元 禄 頃 までに 用 ひられた おまへ が 有 つ 待 遇 語 としての 位 置 そのま まにまで 遡 源 されたものではあり 得 ず 遥 に 敬 意 の 希 薄 な 語 になつてゐる 事 は 対 応 する 用 語 を 元 禄 頃 までのそれに 比 較 考 量 して 見 れば 明 瞭 である 江 湖 山 恒 明 の 指 摘 や 本 稿 の 分 析 結 果 近 世 後 期 おまへ の 待 遇 価 値 の 下 落 は 明 確 な 事 実 である しかし 高 い 待 遇 価 値 の 機 能 が 全 くなくなったわけでは なく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まへ が 現 われている 待 遇 価 値 の 幅 は 広 くて 目 上 の 相 手 から 目 下 の 相 手 にまで 広 範 囲 に 使 用 されたことに 注 目 すべきである 1-2.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分 析 実 際 の 使 用 例 を 挙 げ その 文 脈 に 表 われる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を 調 査 し これらを 整 理 すると < 表 3>のようになる まず 例 文 を 提 示 す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 例 4]アレサ 母 さん モウよいわね 出 がけにおまへが 小 言 をおいひだと 気 にか かつておざしきの 機 嫌 もとりにくいヨ (お 長 ( ) お 阿 ( )) ( 梅 133 1) [ 例 5]イヱアニ 大 界 おぼえておりますヨ それよりは 早 く 済 やうに その 内 藤 さんが 6) 下 記 の 例 は 近 世 前 期 の 世 話 浄 瑠 璃 である 夕 霧 阿 波 鳴 渡 での おまへ の 例 であるが そこ で おまへ は 身 分 が 異 なる 目 上 の 相 手 に 対 しても 用 いられるほど 高 い 待 遇 価 値 を 表 している ( 例 )お 前 を 見 つけ どうもこたへられず 心 乱 れて 廬 外 のだん 御 免 遊 ばし あごきな 申 しごとな れど お 侍 のお 慈 悲 に 父 かと 言 うて わたくしに 抱 付 いてくだされませ < 伊 左 衛 門 (かご 舁 き) 源 之 介 ( 武 家 の 若 旦 那 )> ( 夕 霧 阿 波 鳴 渡 144)
368 36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お 出 でなら おまへのお 咄 しをいたそうが おまへのお 宅 はどちらでござい ますか (お 由 ( ) 五 次 郎 ( )) ( 梅 ) [ 例 6]ふしぎな 縁 で 兄 弟 となつて 斯 して 一 ツ 㝥 もわたしは 誠 の 妹 だと 思 へば 朝 夕 遠 慮 せず 無 理 を 言 たり わが 儘 もおまへに 隔 てぬ 心 から それにおまへ は 隠 しだて ナゼうちあけては 咄 さぬのだへ 何 をとは 恨 みだよ 今 おま へが 寝 言 に 言 た 丹 さんとは 中 の 郷 に 当 時 日 影 の 身 のうへで 幽 かにくらす 侘 び 居 (お 由 ( ) お 長 ( )) ( 梅 114 2ㆍ3) [ 例 7]しかし 私 も 丹 さんの 話 は 噂 に 聞 たゆへ 何 かの 容 子 は おまへが 直 にたづ ねて 来 たがよからう (お 由 ( ) お 長 ( )) ( 梅 ) [ 例 4]の 話 し 手 であるお 長 は 遊 女 であり 聞 き 手 であるお 阿 は 置 屋 の 母 であ る また [ 例 5]の 話 し 手 であるお 由 は 遊 女 であり 聞 き 手 である 五 次 郎 は 遊 女 たちを 監 督 する 人 である つまり [ 例 4]と[ 例 5]は 目 下 の 話 し 手 が 目 上 の 相 手 に 対 して 話 している 場 面 である [ 例 6]と[ 例 7]は 年 上 の 遊 女 お 由 が 年 下 の 遊 女 お 長 に 対 して 話 している 場 面 であり 目 上 の 話 し 手 が 目 下 の 相 手 に 対 して 話 し ている 場 面 である このような 上 下 関 係 を 考 慮 しながら 上 の 例 文 [ 例 4]から[ 例 7]までの 述 語 をみると ございます ([ 例 5]) おいひだ ([ 例 4])などのような お+ 平 常 動 詞 7) が 対 応 する 場 合 もあり 咄 さぬ ([ 例 6]) 尋 ねてきた ([ 例 7])など の 平 常 動 詞 がそのまま 対 応 している 場 合 もある ーなさる ございます な どの 述 語 と おまへ が 呼 応 していることから その 場 合 おまへ には 敬 意 が 含 まれていたと 判 断 できる しかし その 他 平 常 動 詞 とも 呼 応 している つ まり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の 待 遇 価 値 の 幅 は 広 いと 言 える それは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まへ が 目 上 の 相 手 から 目 下 の 相 手 にまで 広 範 囲 的 に 使 われたことと 同 じ 観 点 から 説 明 できると 思 う おまへ は 近 世 後 期 に 上 位 の 相 手 にも 下 位 の 相 手 にも 使 用 された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て あまり 上 下 関 係 を 意 識 せずに 気 楽 に 使 用 できる 表 現 であった 7) 平 常 動 詞 とは 敬 意 を 含 めていない 動 詞 を 言 う
369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65 述 語 との 対 応 から 見 ても 対 称 代 名 詞 おまへ は 平 常 動 詞 とも 対 応 し 敬 意 が 含 まれている 述 語 とも 対 応 できる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たという 分 析 結 果 から 待 遇 価 値 の 幅 が 広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たと 判 断 できる < 表 3>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主 な 述 語 対 称 代 名 詞 話 し 手 聞 き 手 述 語 おまへ お 長 ( 女 ) 此 糸 ( 女 ) お 長 ( 女 ) お 阿 ( 女 ) お 由 ( 女 ) 五 四 郎 ( 男 ) お 由 ( 女 ) 内 儀 ( 女 ) お 由 ( 女 ) お 長 ( 女 )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内 儀 ( 女 ) お 由 ( 女 ) おいひだ おくんなさい おいひだ いたす ございます ございません はなさぬ たづねてきた 行 く おくれ 1-3.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分 析 おまへ の 使 用 された 場 と 同 じ 人 間 関 係 において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に ついて 調 べる [ 例 8]は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わちき の 例 で [ 例 9]は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おいら の 例 である わちき [ 例 8]おゐらんへ 今 のよふにお 言 だがね 私 はおまへが 内 所 へすわつたり 何 か すると 寔 にこまるから どふぞ 左 様 しなひで 世 話 をしておくんなさいヨ ひよ つとおまへがそふいふことだと 私 しやア 心 ぼそひヨ (お 長 ( ) 此 糸 ( )) ( 梅 65 11ㆍ12) [ 例 9]ドレおいらも 支 度 をしようや 丹 さんおまへ 今 日 今 の 所 へ 行 ときかないよ ( 米 八 ( ) 丹 次 郎 ( )) ( 梅 184 4)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を 整 理 してみると < 表 4>のようになる
370 36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 表 4>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おまへ 話 し 手 聞 き 手 お 由 ( 女 ) お 長 ( 女 ) お 由 ( 女 ) 母 ( 内 儀 )( 女 ) お 長 ( 女 ) 丹 次 郎 ( 男 ) お 長 ( 女 ) 此 糸 ( 女 ) お 長 ( 女 ) お 阿 ( 女 )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わたし わちき わたし わちき わたし わちき おいら わたし わちき 同 一 の 対 人 関 係 において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として わた し わちき おいら があげられる 滑 稽 本 ㆍ 人 情 本 で わたし と わ たくし は 同 じ 話 し 手 が 同 じ 話 し 相 手 に 対 して 同 じ 場 において 共 用 し その 間 に 顕 著 な 敬 語 としての 差 異 を 見 いだしにくい 用 例 が 散 見 する つまり わた し は わたくし と 同 じような 敬 意 を 示 すほど 高 い 敬 意 を 有 していたと 言 える 一 方 わちき は 話 し 相 手 に 対 する 話 し 手 の くつろいだ 敬 意 対 等 に 相 互 に 中 流 以 上 の 階 層 がひろく 使 用 する という 段 階 Ⅱに 所 属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である また おいら は 上 位 の 話 し 手 が 下 位 の 話 し 相 手 に 対 して 相 互 に 使 用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であり ののしり 言 葉 としての 用 法 もみられるほど 敬 意 度 は 低 いと 評 価 される( 小 島 俊 夫 (1974: )) すなわち わたし わち き おいら の 待 遇 価 値 はそれぞれ 異 なり わたし は 高 い 待 遇 価 値 を 示 し おいら は 低 い 待 遇 価 値 を 有 していた しかし このように 待 遇 価 値 が 異 なる 三 つの 自 称 代 名 詞 わたし わち き おいら はすべて おまへ と 共 起 している これは おまへ が 表 す 待 遇 価 値 の 幅 が 広 かったことの 反 証 であるとも 言 える 2. 春 色 辰 巳 園 の 場 合 2-1. おまへ の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関 係 分 析 春 色 辰 巳 園 における 対 称 代 名 詞 おまへ の 用 例 数 は117 例 で 使 用 さ れた 対 称 代 名 詞 の 中 で もっとも 使 用 例 数 が 多 い 使 用 頻 度 が 高 い 対 称 代 名 詞 としては おまへ おめへ てめへ があげられる 春 色 辰 巳 園 で 使 用 された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と 使 用 例 数 を 表 すと< 表 5>のようになる
371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67 < 表 5> 春 色 辰 巳 園 の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と 使 用 例 数 作 品 対 称 代 名 詞 の 種 類 使 用 例 数 春 色 辰 巳 園 おまへ 117 おめへ 98 てめへ 30 うぬ 6 おめへさん 4 おまへさん 3 おめへさんがた 2 おめへたち 2 ぬし 2 てめへたち 1 また 春 色 辰 巳 園 での おまへ の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関 係 について 整 理 すると < 表 6>のようになる < 表 6> おまへ の 話 し 手 と 聞 き 手 8) 関 係 代 名 詞 おまへ 話 し 手 仇 吉 ( 女 ) 丹 次 郎 ( 男 ) 聞 き 手 用 例 数 26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33 増 吉 ( 女 ) 丹 次 郎 ( 男 ) 1 264(12) 仇 吉 ( 女 ) 名 前 な し ( 遊 廓 の 客 男 ) 1 309(12) 用 例 出 處 258(2) 261(2) 261(7) 261(9) 261(10) 261(16) 262(4) 262(4) 262(5) 263(3) 264(4) 266(6) 266(8) 344(12) 335(4) 381(5) 381(6) 381(8) 381(9) 391(9) 392(5) 394(7) 394(9) 428(7) 428(12) 429(6) 280(14) 281(8) 282(16) 284(14) 285(3) 285(14) 285(15) 285(15) 343(4) 344(1) 345(4) 346(3) 346(8) 358(10) 365(11) 365(12) 366(14) 366(16) 367(2) 367(12) 367(15) 368(2) 368(2) 368(4) 368(5) 368(15) 369(4) 369(5) 369(6) 369(7) 369(13) 372(5) 372(9) 仇 吉 ( 女 ) 幸 三 郎 ( 男 ) 2 322(12) 328(12) 8) 春 色 辰 巳 園 の 登 場 人 物 を 紹 介 すると 次 のようである ( 前 述 した 春 色 梅 兒 誉 美 の 人 物 と 重 な る 人 物 はすでに 記 述 したので 省 く ) 増 吉 春 吉 小 濱 延 津 賀 喜 世 お 染 喜 孝 ( 遊 女 ) 鬼 九 郎 ( 遊 郭 の 客 亭 主 ) 小 少 女 ( 遊 郭 の 働 きもの) 幸 三 郎 ( 遊 郭 の 客 ) 新 孝 甚 吉 ( 遊 女 の 管 理 人 ) 寿 楽 ( 手 代 )
372 36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小 少 女 ( 女 ) 米 八 ( 女 ) 1 282(2) 仇 吉 ( 女 ) 仇 吉 の 母 ( 女 ) 2 313(10) 313(14) お 長 ( 女 ) 米 八 ( 女 ) 1 436(4) 小 濱 ( 女 ) 濱 新 孝 ( 男 ) 1 377(9) 仇 吉 ( 女 ) 鬼 九 郎 ( 男 ) 3 412(9) 412(12) 412(5) 米 八 ( 女 ) 鬼 九 郎 ( 男 ) 3 416(8) 417(3) 417(10) 米 八 ( 女 ) 甚 吉 ( 男 ) 1 421(8) 春 吉 ( 女 ) 仇 吉 ( 女 ) 1 278(8) 仇 吉 ( 女 ) 春 吉 ( 女 ) 1 278(9) 熊 ( 女 ) 仇 吉 ( 女 ) 1 328(8) 仇 吉 ( 女 ) 米 八 ( 女 ) (3) 418(15) 419(14) 420(2) 420(3) 420(4) 422(8) 422(13) 426(4) 348(8) 348(8) 348(10) 348(11) 348(12) 400(1) 米 八 ( 女 ) 仇 吉 ( 女 ) 9 348(6) 418(3) 418(6) 419(3) 419(6) 420(12) 420(13) 421(1) 424(4) 米 八 ( 女 ) 延 津 賀 ( 女 ) 2 351(15) 353(2) 延 津 賀 ( 女 ) 米 八 ( 女 ) 2 353(1) 353(8) 仇 吉 ( 女 ) 延 津 賀 ( 女 ) 1 354(12) 喜 世 ( 女 ) 仇 吉 ( 女 ) 2 399(2) 399(5) お 染 ( 女 ) 仇 吉 ( 女 ) 2 409(12) 410(7) 善 孝 ( 男 ) 喜 世 ( 女 ) 1 399(11) 鬼 九 郎 ( 男 ) 米 八 ( 女 ) 2 416(8) 417(1) 鬼 九 郎 ( 男 ) 仇 吉 ( 女 ) 2 412(1) 412(10) 壽 楽 ( 男 ) 新 孝 た ち ( 男 ) 1 326(2) この 作 品 の 内 容 から 考 えても 女 性 の 使 用 例 が 多 いのは 仕 方 のないことだが おまへ の 使 用 数 117 例 のうち 111 例 が 女 性 の 使 用 例 である それに 比 べて 男 性 の 使 用 はわずか6 例 と 少 ない このように おまへ の 使 用 において 女 性 が 多 いというのは 春 色 梅 児 誉 美 においても 同 様 で 34 例 中 31 例 と 春 色 辰 巳 園 と 同 じような 傾 向 が 認 められる さらに 上 の< 表 6>によると 女 性 から 男 性 に 対 して 使 用 している 例 が71 例 と 多 く 次 いで 女 性 から 女 性 に 対 してのものが46 例 である このように 女 性 は おまへ を 男 性 に 対 して 使 用 することが 多 いが その 場 合 には やや 目 上 に 対 しての 使 用 (69 例 )が 基 本 であると 考 えられる また 対 等 の 男 性 にも 使 用 する こともあるが 使 用 例 は 少 ない この 作 品 では2 例 である 下 の 二 つの 例 ([ 例 10][ 例 11])は 女 性 が 目 上 の 男 性 に 対 して 使 用 している 例 で ある
373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69 [ 例 10]おまへが 仇 吉 さんに 借 た 金 は 何 程 だへ 其 様 なことは 打 捨 ておゐて マ ア 其 金 はいくらだへ ( 米 八 ( 女 )( ) 鬼 九 郎 ( 男 )( )) ( 辰 416 8) わちき マイ 仇 吉 さんでも 私 でも はかなひ 活 業 したばかり 勿 体 ないほど 銭 金 を 遣 つた 事 もありますのサ 病 人 を 付 こんで いぢめなさるおまへの 腹 と は 違 ひます サア 請 取 をよこしてはやくお 帰 り ( 米 八 ( 女 )( ) 鬼 九 郎 ( 男 )( )) ( 辰 417 3) [ 例 11]ヲヤ 丹 さん おまへどうしたんだへ 何 もそんなに 腹 を 立 なくつてもいゝじや アないか ( 仇 吉 ( 女 )( ) 丹 次 郎 ( 男 )( )) ( 辰 391 9) いつにねへ 物 のいひやうをしなはるもんだから そう 云 たつて 大 そうにき ざでもなんでもないじやアないかへ そのなことをそんなに 腹 を 立 て 気 障 が わちき つても よそうと 思 つても 切 れやうと 思 つても 私 やアまたきざに 思 はれ ば 猶 のことあくまでも 付 まとつてやるから そう 思 つておいでよ ほれられ たがおまへの 不 調 法 といふもんだアネ ( 仇 吉 ( 女 )( ) 丹 次 郎 ( 男 )( )) ( 辰 392 5) 女 性 が 女 性 に 使 用 する 場 合 は 先 の 男 性 に 対 する 表 現 とは 異 なり 目 上 に 対 して 使 用 する 場 合 よりは 対 等 の 相 手 に 対 して 使 用 する 傾 向 が 強 い 目 上 の 女 性 に 対 しては4 例 であるのに 対 して 対 等 の 女 性 に 対 しては36 例 と 多 いことからもわ かる 下 の[ 例 12]は 対 等 の 女 性 同 士 の 会 話 である [ 例 12]さぞ 困 つてお 出 だらうと 思 つて 出 て 来 たから 今 のお 金 もはじめツから お まへの 小 遣 ひにするつもり まだ 持 て 来 たのがあるヨ マア 当 時 入 用 の 物 わちき を が 居 るうち 不 残 お 買 な 宅 へ 帰 ると 亦 追 ひ 追 ひによこして おまへ 私 の 全 快 なるまでは どんな 事 をしても 月 継 から 必 必 気 を 丈 夫 に 持 ておい でよ ( 米 八 ( 女 )( ) 仇 吉 ( 女 )( )) ( 辰 ㆍ13) また [ 例 13]のような 男 性 の おまへ 使 用 は 春 色 辰 巳 園 でも 数 が 少 なく 資 料 的 に 十 分 ではないが 男 性 の おまへ 使 用 例 が 存 在 することか ら 近 世 後 期 に おまへ は 女 性 特 有 の 語 ではないことは 明 らかである ま た おまへ の 男 子 使 用 例 は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ではその 例
374 37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が 少 ないが 他 の 浮 世 床 や 浮 世 風 呂 などの 作 品 では 男 性 の 使 用 も 多 く 見 られる 下 の[ 例 13]は 春 色 辰 巳 園 での 男 性 使 用 例 であり [ 例 14]は 浮 世 風 呂 での 男 性 使 用 例 である [ 例 13]コレサ 仇 さん 此 間 中 から 言 とふり どふぞおれが 頼 みをム と 言 つてくん ねへ おいらはモウモウ 今 言 ことを 聞 てくれりやア 死 まで 愛 想 はつか さねへ ナニ どふして おまへを 殺 していゝものか いふ 事 さへ 聞 てく れりやア 医 者 を 幾 人 かけても 物 入 がいくらかゝつても 構 はねへ ( 鬼 九 郎 ( 男 )( ) 仇 吉 ( 女 )( )) ( 辰 412 1) [ 例 14]そんなに 欲 はらずに 昼 寝 でもなさればいい そんなこといはずと 荷 の 中 にあるもんでお 呼 びなせへ 今 度 から 呼 ぶなら 代 物 の 名 で 呼 かけなさいまし おまへのやうなあたじけねへ 人 を 生 姜 と 申 します ( 番 頭 ( 男 )( ) けち 兵 衛 ( )) ( 浮 世 風 呂 四 中 272) 2-2.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分 析 おまへ がどのような 述 語 と 呼 応 するかを 調 べるため 例 文 をあげてみる と 次 のようである [ 例 15] 私 が 日 ごろいふことだが それに 亦 おまへも 聞 て 知 つてお 出 だろうが わた それをおまへに 極 ておいて がなんぽ 離 れねへ 心 で 達 人 を 云 た 所 が 私 おまへの 了 簡 がおぼつかねへと わりいものにみこまれたとあきらめ て はなれる 心 になつておくれでないヨ ( 仇 吉 ( ) 丹 次 郎 ( )) ( 辰 261 7ㆍ10) [ 例 16]そしておまへ 煩 らつたつて 知 らしてよこしもなさらねへで どうして 知 れる わた 物 かネ やアまた 月 代 をはやしてすこしやせて 大 分 好 男 になつて 私 来 たと 思 つたり ( 仇 吉 ( ) 幸 三 郎 ( )) ( 辰 ) わたし おまへこそ 妬 心 を 起 しておくれでないヨ が 色 の 世 話 をする 人 だから 私 ( 仇 吉 ( ) 幸 三 郎 ) ( 辰 328 1) [ 例 17]どうぞ 丹 さん 聞 わけてこのことばかりは 承 知 しておくれな おもひやりのね へやうに よしておしまひとはいはないかはりに 急 度 そうしておくれよ 私 も 願 がけをしても もうこのことをいふまいから しかしおまへばかりひたす わちき
375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71 る 頼 んだといて はたにしやくりて 多 し 仇 吉 さんが 承 知 しねへことは お まへの 心 にも 詮 方 も 有 まいけれど ハテそこがおまへのかはいがる 人 のこと だから どうでもなろうじやアないかへ 聞 わけてさへおくれなら 今 夜 にも わちき おまへが 仇 吉 さんに 逢 にいつて よくよくことをわけて の 頼 みを 言 つて 聞 私 して よふくいつてあやまつておくれる ( 米 八 ( ) 丹 次 郎 ( )) ( 辰 369 5ㆍ6ㆍ7) [ 例 15]では 対 称 の 動 作 ㆍ 存 在 を 表 す 表 現 に 知 っている の 敬 語 表 現 に 推 量 を 表 す だろう が 付 いた 知 っておいであろう が 使 用 されており [ 例 1 7]では 㦝 願 の 意 を 込 めた 表 現 くれる に 丁 寧 語 の お が 付 いた 聞 わけ てさへおくれなら が 使 われている また 承 知 しておくれな ([ 例 17])や お くれでないよ ([ 例 16])などの ーおくれ に 願 望 ㆍ 許 容 ㆍ 禁 止 を 強 める 終 助 詞 ーよ の 付 く 表 現 また する の 尊 敬 語 なさる の 付 いた ーなさら ねへ などが 見 られる わちき [ 例 18]ヨヤ 米 八 さん が 何 を 盗 んだへ めつたなことをおいひでない 丹 さん 私 わちき はおまへの 亭 主 か 知 らぬへが はおまへを 丹 さんの 内 室 さんだと 一 度 私 でも 引 合 せられたこともなし ひろめをしたと 沙 汰 もきかず この 頃 までは 何 も 知 らず 二 人 で 落 合 おざしきの 跡 では おまへに 丹 さんのことも ( 仇 吉 ( ) 米 八 ( ) ) ( 辰 348 8ㆍ10ㆍ11ㆍ12) [ 例 19]いやみをいはずにマアお 聞 ヨ マア 何 にしても 米 八 さん おまへは 先 へお 帰 りヨ ( 延 津 賀 ( ) 仇 吉 ( ) ) ( 辰 353 1) 仇 吉 さんなりおまへなり ひけをとらせるさばきはしないヨ マアお 帰 り ( 延 津 賀 ( ) 仇 吉 ( ) ) ( 辰 353 8) [ 例 20]アレサ 米 さん およしヨ おまへの 着 物 がよごれるはネ そしてマア わちき が 第 一 冥 利 がわるひはネ 其 様 にやさしいおまへとも 知 らずに 迷 つた 私 横 恋 慕 是 非 丹 さんを 自 由 にしよふと 無 理 がこふじておまへと 喧 嘩 な わちき か 直 りはしたけれど 今 さらおまへに 皃 向 もならぬ が 無 法 なしかた お 私 もひ 出 しても 勿 体 ない 他 の 噂 の 草 履 打 それを 根 葉 にも 思 はず 斯 して 見 舞 に 来 ておくれのお 志 に 対 しては 恥 かしくつて 死 たいヨ ( 仇 吉 ( ) 米 八 ( ) ) ( 辰 ㆍ3ㆍ4)
376 37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上 の[ 例 15]から[ 例 20]の 例 文 からわかるように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表 現 は 敬 意 を 含 んだ 表 現 も 多 い 対 等 な 関 係 においても お 聞 き お 帰 り などの おーー を 付 けた 表 現 ([ 例 19])が 使 われていることから おまへ は 近 世 後 期 になって 待 遇 価 値 は 下 落 したと 言 われるが それにしてもまだ 平 常 動 詞 だけではなく 敬 意 を 含 んだ 表 現 とも 呼 応 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 このような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分 析 結 果 は 春 色 梅 兒 誉 美 の 分 析 結 果 と 一 致 して いる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述 語 表 現 を 整 理 してみると 次 の< 表 7>のようになる < 表 7> おまへ と 呼 応 する 主 な 述 語 対 称 代 名 詞 おまへ 話 し 手 聞 き 手 仇 吉 ( 女 ) 丹 次 郎 ( 男 )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仇 吉 ( 女 ) 幸 三 郎 ( 男 ) 仇 吉 ( 女 ) 鬼 九 郎 ( 男 ) 米 八 ( 女 ) 鬼 九 郎 ( 男 ) 述 語 知 っておいでたろう 極 めておいで 了 簡 かおぼつかねへ おくれでないヨ 腹 を 立 てなくつてもいい しなはる 思 つておいでよ がわるかろふ あいそがつき いいだす 承 知 しておくれな 聞 きわけておくれなら そうしておくれよ あやまっておくれな なされねへ おくれでないよ あいそがつきる 思 っておくれ およしよ お 聞 きよ をよこす いじめなさる おかえり 仇 吉 ( 女 ) 米 八 ( 女 ) をおこす とられていた
377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73 延 津 賀 ( 女 ) 米 八 仇 吉 ( 女 ) 米 八 ( 女 ) 仇 吉 ( 女 ) 鬼 九 郎 ( 男 ) 米 八 ( 女 ) 鬼 九 郎 ( 男 ) 仇 吉 ( 女 ) にもおもわず おいいでない しておくれよ およしヨ いはず お 聞 きヨ お 帰 りヨ お 帰 り しておいでだろう 持 つておいでよ お 買 いな でごぜへます きいてくんねへ 聞 てくれりあア 2-3.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分 析 春 色 辰 巳 園 で おまへ は わたし わちき わたい わたく し と 共 起 していた 下 の[ 例 21]は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わちき の 例 文 [ 例 22]は おま へ と 共 起 する わたくし の 例 文 [ 例 23]は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わた い の 例 文 である また < 表 8>は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を 示 し たものである わちき わちき [ 例 21]アレサおよしヨ が 身 で があいそのつきる 様 に 穢 れて 居 るものを 私 私 おまへも 少 しは 何 とか 思 つておくれでも 直 にあいそのつきる 種 だはネ ( 仇 吉 ( ) 鬼 九 郎 ( )) ( 辰 412 9) マアお 聞 よ こんなに 煩 らつて 居 るのを おまへ かわひそふだとおもつ わちき ておくれなら どふでもなるけれど が 死 んでもかまはねへといふ 様 な 気 私 じやアいやだヨ ( 仇 吉 ( ) 鬼 九 郎 ( )) ( 辰 ) [ 例 22]おまへはたしか 仇 吉 さんとは 色 の 意 気 地 で 敵 同 士 と 噂 にきいて 折 節 は 皃 も 見 知 つた 米 八 さん ハイ 何 少 しでごぜへます たつた 六 七 両 わたくし へ サ そんならおまへが 立 代 て この 大 金 を 私 ( 鬼 九 郎 ( ) 米 八 ( )) ( 辰 )
378 37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わたい [ 例 23]いかに 惚 たを 付 込 で 我 儘 をいへばといつて それじやア が 思 ひでも お 私 まへの 冥 利 がわるかろふ なんぞと 言 たら 猶 のこと 愛 想 のつきるわけだろ うけれど おまへも 何 か 腹 があつて 言 出 した 切 口 上 私 やア 覚 悟 を 極 た から おまへもその 気 で 居 ておくれ ( 米 八 ( ) 丹 次 郎 ( )) ( 辰 ㆍ15ㆍ16) < 表 8>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おま へ 話 し 手 聞 き 手 仇 吉 ( 女 ) 丹 次 郎 ( 男 ) 米 八 ( 女 ) 丹 次 郎 ( 男 ) 仇 吉 ( 女 ) 幸 三 郎 ( 男 ) 米 八 ( 女 ) 鬼 九 郎 ( 男 ) 仇 吉 ( 女 ) 鬼 九 郎 ( 男 ) 仇 吉 ( 女 ) 米 八 ( 女 ) 鬼 九 郎 ( 男 ) 米 八 ( 女 ) 対 応 する 自 称 代 名 詞 わたい わちき わたい わちき わたやア わちき わちき わちき わたくし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まへ は わたし わちき おいら と 共 起 し ていた また 春 色 辰 巳 園 では おいら との 共 起 はみえないが わたく し わたし わちき わたい と 共 起 しており 大 きな 差 はない ただ 注 目 に 値 するのは 春 色 辰 巳 園 での おまへ と わたくし との 共 起 であ る 近 世 後 期 において おまへ が 対 等 待 遇 表 現 や 目 下 に 対 する 下 位 待 遇 表 現 を 表 したのは 確 かであるが おまへ が 高 い 待 遇 価 値 を 表 す わたくし と 共 起 できるのは 近 世 前 期 と 同 じく 目 上 に 対 する 上 位 待 遇 価 値 も 有 していたこと を 意 味 する Ⅳ. おわりに 本 論 文 は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に 現 れている おま へ の 使 用 様 相 を 話 し 手 と 聞 き 手 の 上 下 関 係 呼 応 する 述 語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という 三 つの 面 から 分 析 した 近 世 の 対 称 代 名 詞 といっても 作 品 別 ㆍ 作 家 別 地 域 別 などいろいろな 条 件 によって その 使 用 様 相 は 異 なり 得
379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75 る そして 本 稿 は 近 世 の 中 後 半 とも 言 える1770 年 以 後 の 近 世 後 期 の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を 資 料 として 扱 い その 近 世 後 半 の おま へ の 使 用 様 相 を 具 体 的 に 分 析 した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と 春 色 辰 巳 園 に 現 れている おまへ の 分 析 から 次 のようなことがわかる 1 おまへ は 近 世 後 期 の 人 情 本 において もっとも 使 用 頻 度 の 高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る つまり おまへ は 近 世 上 方 から 使 用 されたいわゆる 上 方 語 で はあるが 言 語 的 生 命 力 が 強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って その 待 遇 価 値 や 用 法 は 変 化 したが 近 世 後 期 においても 使 用 頻 度 の 高 い 重 要 な 代 名 詞 として 依 然 とし て 人 々によって 使 用 された 2 おまへ は 先 行 研 究 で 小 島 (1974)などは 主 に 対 等 な 関 係 で 使 われた 対 称 代 名 詞 として 規 定 しているが 本 稿 での 検 討 の 結 果 おまへ は 上 位 の 相 手 に 対 しても 対 等 の 相 手 に 対 しても 下 位 の 相 手 に 対 しても 使 われれ 使 用 範 囲 の 広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ることがわかった しかも 下 位 の 相 手 に 対 しての 用 例 も 多 く 人 情 本 において おまへ は 主 に 対 等 な 関 係 を 表 す 対 称 代 名 詞 で あるとは 言 いにくいほど 待 遇 価 値 が 下 落 してしることが 確 認 できた 近 世 前 期 に 上 方 で おまへ はもっとも 高 い 最 上 位 の 待 遇 価 値 を 表 したが いわゆる 敬 意 漸 減 法 則 に 従 って 近 世 後 期 人 情 本 においては 下 位 の 相 手 にま で 使 われるほど 待 遇 価 値 が 低 くなった しかし 注 目 に 値 するのは おまへ の 表 現 できる 待 遇 価 値 が 下 位 待 遇 価 値 にまで 拡 大 されたが それと 同 時 に 上 位 待 遇 価 値 を 表 す 近 世 前 期 の 用 法 をも 保 っていたことである つまり 待 遇 価 値 が 低 くなって 下 位 待 遇 価 値 だけを 示 すようになったのではなく 後 期 になるにつ れ 表 現 できる 待 遇 価 値 の 範 囲 が 広 くなり 上 位 待 遇 価 値 から 下 位 待 遇 価 値 ま でをすべて 表 現 できるようになった 3 おまへ は 平 常 動 詞 とも 敬 意 を 含 んだ 述 語 とも 呼 応 することがわかる つまり 表 現 できる 待 遇 価 値 の 範 囲 の 広 い 対 称 代 名 詞 である 呼 応 できる 述 語 の 待 遇 価 値 の 幅 が 広 いのは 上 で 言 及 した おまへ の 表 現 できる 待 遇 価 値 の 範 囲 が 広 かったことと 同 じ 側 面 から 分 析 できる 4 春 色 梅 兒 誉 美 で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は わたし わちき おいら である また 春 色 辰 巳 園 で おまへ と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は わたくし わたし わちき わたい である 二 つの 作 品 で 共 起 する 自 称 代 名 詞 には 大 きな 差 はない だだ 注 目 に 値 するのは 近 世
380 376 比較日本學 第32輯 ( ) 後期においても おまへ と わたくし の共起の用例が見当たることである つまり 近世後期の人情本の おまへ の待遇価値は 近世前期に比べて低く なったが それにしても 後期の おまへ は わたくし と共起できるほど高 い待遇価値をも保っていたと言える 上記のような結論に導くため 春色梅兒誉美 と 春色辰巳園 の用例を すべて抽出して分析したが このような微視的ㆍ具体的な用例分析に基づい て 人情本の対称代名詞の特徴が纏められると思う おまへ 以外の対称代名詞 おまへさん おめへ おめへさん お まはん てめへ などについての用例分析は今後の課題としたい <参考文献> 池上秋彦(1963) 人情本に現われたーㆍ二人称代名詞について 鶴見女子大学紀要第1 11 鶴見 女子大学 pp 江湖山恒明(1938) おまへ の系譜 国語と国文学 15卷2号 東京大学国語国文学会 p.168 小島俊夫(1974) 後期江戸ことばの敬語体系 笠間書院 pp p.86 pp 坂梨隆三(1987) 江戸時代の国語ー上方語ー 明治書院 pp 永田高志(1995) 江戸後期庶民語における第三者に対する敬語表現ー洒落本ㆍ滑稽本ㆍ人情本を 通じてー 近代語研究2 ひつじ書房 pp.5 21 山崎久之(1963) 国語待遇表現体系の研究 武蔵野書院 pp 湯沢幸吉郎(1982) 徳川時代語の研究 風間書院 pp <資料編> 中村幸彦校注(1967) 春色梅兒誉美 春色辰巳園 日本古典文学大系64 岩波書店 中村通夫校注(1976) 浮世風呂 日本古典文学大系63 岩波書店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민승희 (한자) 閔丞希 (영어) Min, Seung Hee 소속 : 중원대학교 일본어학과 조교수, 일본어학
381 人 情 本 の おまへ の 使 用 様 相 分 析 ( 閔 丞 希 ) 377 논문영문제목 : Analysis of the usages of omae in two of the Japanese early modern ninjōbon writings, Shunshoku umegoyomi, Spring colors 주소 : (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중원대학교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근세후기의 작품인 人 情 本 春 色 梅 兒 誉 美 과 春 色 辰 巳 園 를 연구 자료로 하여, おまへ 의 사용양상을 분석하였다. 春 色 梅 兒 誉 美 과 春 色 辰 巳 園 의 용례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お まへ 의 특징을 정리할 수 있다. 1. おまへ 는 근세후기 人 情 本 에서, 가장 사용빈도가 높은 대칭대명사이다, 즉, おまへ 는 근세 上 方 에서부터 사용되어진 上 方 語 이지만, 후기에도 사용빈도가 높은 중요한 대명사 이다. 2. 근세 후기에 おまへ 의 표현 가능한 대우가치의 범위는 넓어서, 상위대우가치부터 하위 대우가치까지 모두 나타낼 수 있다. 즉 근세후기 おまへ 의 특징은 대우가치의 하락보다 는 대우가치의 확대에 있다. 3. おまへ 는 경의를 포함한 술어와도 포함하지 않은 술어와도 모두 호응하고 있다. 이와 같 이 호응 가능한 술어의 대우가치의 폭 또한 넓었음을 알 수 있다. 4. 근세후기에 있어서도 おまへ 는 わたくし 와 共 起 가능할 정도로 높은 대우가치도 유 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제어: 오마에, 1인칭대명사, 2인칭대명사
382 37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383 379 ㆍ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 韓国語の 触覚を表す擬態語 - かたさとやわらかさを中心に 澤 田 信 恵* Abstract This contrastive research refers to the synesthetic analysis of mimetic words of tactile, especially hardness and softnes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We verified that the transition from tactile to visual was the most remarkable common phenomenon in two languages, which shows the high possibility of co occurrence in these two senses in the use of tactile mimetic. Secondly, we found that softness has more polysemic mimetic words than hardness, especially the transition to hearing is one of the characteristics in softness in two languages. Finally, we could confirm the bisensoriel aspect in mimetic words of tactile in both languages, and we conclude that the direction of transition of sense could be decided by distinctive features that each mimetic word has. Keywords : synesthetic analysis, tactile, polysemic, bisensoriel 1) Ⅰ. はじめに 本稿では日本語と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を共感覚的から考察する 語 の多義性の研究の一環として近年注目され始めたのが共感覚的考察である ULLMANN(1964)は 共感覚の転移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言及している 体系的分布(Hierarchical distribution) 転移は感覚中枢脳の下域から上域へあまり 分化していない感覚から一層分化しているものへ昇ってゆく傾向があって その逆 ではない 優位の出自(Predominanat source) 第一の傾向として厳密に一致する のは 感覚中枢脳の最下水準である触覚が転移の主要供給者であることである 中略 なお注意すべきは熱の領域が触覚のそれときわめて密接に関連していて ちょうど匂いと味とが関連していると同様なことである 両者が融合すれば 合併領 域の優勢はなおのこと著しいものになろう * 同徳女子大学 日本語科
384 380 比較日本學 第32輯 ( ) このように共感覚はあまり分化していない触覚からより分化された感覚へと転移し ていくことが示されている <図1> 共感覚比喩の構造1) 安井(1978p135 36)は図の右に行くほど識別可能な感覚対象の数は増える が それに見合う固有の感覚表現の数が少ないため 低次の感覚表現から借り て来ざるを得ないとし 國廣(1986:31)は視聴覚の場合 我々は感覚器官がはた らいていることを普通は意識しないため それを形容する表現が発達しておら ず 共感覚表現に依存せざるを得ないとしている (認知言語学キーワード事典 p53) いわゆる 共感覚的比喩 (酒井:2001, 伊藤:2007)と呼ばれる分野は語の多義 的研究に包括されている場合が多い 本稿では 触覚の中の かたさ と やわらかさ を表す擬態語の用例を基 に 他感覚への共感覚転移がどのように表れているのかについて考察する Ⅱ. 先行研究と問題の所在 共感覚的研究は近年さかんにおこなわれている 國廣は 共感覚比喩的体 系 (1989)の中で WILLIAMS(1976)の比喩の 一方向仮説 2)を認め 日 本語の用例を示しながら説明しいる そして共感覚比喩が 接触感覚 遠隔感 覚(視覚ㆍ聴覚) という構造を持っていると結論づけている この遠隔感覚の優 位性に関しては認めるものの 視覚と聴覚の優位性を巡っては議論が盛んであ る 池上(1978)は視覚を 安井(1978) 山梨(1988)は聴覚を優位とする立場を 取っている 認知意味論 認知心理学的研究では楠見が多くの論文を発表し ているが その中で 味覚メタファー表現への認知的アプローチ (2004)で 1) WILLIAMS(1976)を日本語にしたもの(認知キーワード事典p53) 2) WILLIAMS(1976)は 五感を表す語の意味転用の方向性は 接触感覚(触覚 味覚 嗅覚)か ら遠隔感覚(視覚 聴覚)への一方向の転用であると主張した
385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381 は 味覚を中心に共感覚比喩の 一方向仮説 の検証を行っている これは 共感覚比喩の心理実験の言語学的データーを照らし合わせて議論を展開したも ので 味覚の共感覚比喩の理解には感覚 身体 言語 学習 記憶 文化 といった広範な視野が必要であるとしている また 一方向仮説 について は 低次感覚(接触感覚)から高次感覚(接触感覚)への転移は認めるものの 具体的な感覚の方向性としては必ずしもWILLIAMSの主張とは一致しないことを 示した 先行研究としては 酒井(武藤)(2001a,2001b,2001c,2002a,2002b, 2002c,2003,2004,2008)が共感覚比喩に関する論文を数多く出しており 日本 語の共感覚的比喩(表現) (2003)では やはりWILLIAMS の 一方向仮説 を日本語で検証するため 五感の形容詞ㆍ副詞ㆍ動詞について検討し 一 方向仮説 に反論する立場を取り また日本語には 視覚の優位性 が見ら れることを示した また味覚における多義構造の分析を行い 感覚間の意味転 用の動機付けは感覚間だけでは説明できず 多義構造の記述が必要不可欠で あると主張している 近年 神経心理学研究で言われている 二つ以上の感覚 が同時に存在するとした 複合感覚 という考え方に基づいた研究としては 竹本( )がある その中で竹本は 多義性は共感覚的な経験と複合 感覚(同時に知覚する複数の異種感覚)から生まれるとしている ひとつの感覚 からの転移と考えるのではなく 複数の感覚が同時に存在するという考え方であ る 対照研究としては 吉村(2007)が色彩語の共感覚表現について日本語の擬 声語擬態語を英語と比較している その中で欧米語は遠感覚(視覚ㆍ聴覚)の 共感覚表現が多いことを示し 両言語において色彩と音 味 匂いとの深い関 連性について考察している また 武藤(2009)は視覚と聴覚を中心に 14の言 語における共感覚比喩表現の考察を行っている 韓国語との対照では 伊藤 (2009)で中古ㆍ中世語ㆍ現代語の音象徴を語基に持つ語の意味拡張の事例を 通して 擬声語から擬態語へと変化したものは聴覚から他感覚へ転移すると し WILLIAMSの 一方向仮説 と一致しないと結論付けた このようにWILLIAMSの 一方向仮説 を基に その妥当性を問う形で様々 な研究が行われてきたが 最近の研究ではこの仮説と一致しないことを主張す るもの(大澤(伊藤):2007 武藤(酒井):2008,2009)が目立つ これは共感覚表現 の判定の難しさ 判定基準の理解の困難さ(吉村:2007)が根底にあるものと思わ
386 382 比較日本學 第32輯 ( ) れる また それぞれの言語が持つ文化的側面が語形成に及ぼす影響を考え ると 共感覚が人間に共通した普遍的な知覚現象であるとしても その方向性 には違いがあって当然ではないかという考え方もできるはずである 本研究はこのような考え方に沿い 触覚擬態語 であるため WILLIAMS の 一方向仮説 の検証にはとらわれず 触覚を出発点としてその他の感覚へ と転移するケース または触覚と他感覚との同時性について取り扱う 本稿では5つの感覚の内 触覚3)(かたさㆍやわらかさ)から視覚 聴覚 臭 覚 味覚への転移に限定して考察を行う また評価性についても同時に考察す るため プラスのイメージにはP Positive マイナスのイメージにはN:Negativeと いうコードを付けた マークがない場合は中立と判断した場合である Ⅲ. 考察 1. かたさ 1.1. 日本語 kati4) «触覚 視覚» かちかち 光る 1) 風呂場は氷でかちかち光っている 夏目漱石 永日小品 «触覚 視覚» かちかち 書きつめる 2) 細かい字をかちかちノートに書きつめ 久坂葉子 灰色の記憶 «触覚 視覚» P かっちり する : 完璧だ 3) まだかっちりとして若々しくて 宮本百合子 鼠と鳩麦 gati 3) 日本語と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に関する語彙の選択基準等に関しては 紙幅の関係により 次の関連論文を参照されたい (澤田 a,b,c,2006,2007,2008) 4) 語基はアルファベットで記す
387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383 «触覚 視覚» P がっちり する 頑丈だ 4) 二階建てのがっちりした建物で 久生十蘭 キャラコさん 雪の山小屋 «触覚 視覚» P がっちり する 引き締まっている 5) 石のようにがっちりしたお顔色 夢野久作 少女地獄 koti «触覚 視覚» N こちこち なる : 緊張する 6) こちこちになっていた伝六は 佐々木味津三 右門捕物長 血染めの手形 gori «触覚 視覚» N ごりごり する : がさつな 7) 浅黒いごりごりした親父で 宮沢賢治 なめとこ山の熊 gotu «触覚 聴覚» N ごつごつ する : おだやかでない 8) いやにその話もごつごつしていながら 水野葉舟 北国の人 «触覚 聴覚» N ごつごつ する : 荒っぽい 9) ごつごつした声が 海野十三 不思議国探検 «触覚 視覚» N ごつごつ する : 男性的でがさつな 10) ごつごつしたその風貌は 下村湖人 次郎物語 用例を分析した結果 かたさの擬態語の共感覚転移は次の通りだった
388 384 比較日本學 第32輯 ( ) <表1> 日本語かたさの擬態語共感覚転移 擬態語 かちかち かっちり がっちり こちこち ごりごり 共感覚の転移 触覚 視覚 触覚 視覚 触覚 視覚 触覚 視覚 触覚 視覚 ごつごつ 触覚 視覚 ごつごつ 触覚 聴覚 視覚への転移が大多数を占め ごつごつ のみ聴覚への転移5)が見られた か たさの擬態語はその性質上 擬声語としての機能を持つ語がほとんどである (か ちかちあたる/ごりごりこする など) しかし ごつごつした声 のような場合 接触 による音とは違い 明らかに比喩として触覚を音に例えた例である これには する の役割があると見られる する は粗さや凹凸の状態を表す状態動 詞として ごつごつ の変化や安定を手助けする役割を担っている 形態的にみ ると かたさの擬態語は共感覚転移の場合 CVCVx2型を取る傾向にある 伊藤(2009:p252)は擬態語が<する>を取る理由を次のように説明している a) その擬態語の意味が既存する他の動詞を修飾するような様態だけ の意味までも完全に含んでしまう場合(畳語に でなく その動詞 なるのを避ける場合) 例)泣く めそめそする / めそめそ泣く b) その擬態語が既存する個別の動詞が意味する動作との修飾関係に留まらず 様態に 代表される動詞を表す場合 例)のろのろする/のろのろ歩くㆍ走るㆍ登るㆍ動く c) その擬態語が既存する他の動詞の意味に満たない動作や作用の態 あるいは繰り返 しのような意味を表す様態の場合 例)うとうとする / うとうと眠る ごつごつ を例にとってみる 5) 佐々木(1987) 武藤(2003)は視覚と触覚の近接性について述べており 竹本(2012:p )は そのメカニズムを脳科学的に説明している
389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 岩がごつごつしている 12) 岩が体にごつごつあたる ごつごつ は<する>との結合で かたく凹凸のある状態を示す形容詞とし て岩のような物を描写する役割を果たしている 示差的特徴はかたさ 表面の 凹凸であるため ごつごつする を一言で代置できる語はない (上述項目の bにあたる) ここで<する>と結合することで語彙化された擬態語に共感覚的意味拡張があ ると仮定しよう 擬声語と擬態語の両側面を持つかたさの擬態語は <する>との 結合で音韻的な側面より触覚的な側面 つまり状態が描写される この点につ いてはもう少し考察が必要である かちかち の中心的な意味は小さいものとの接触により出る音 そしてかた い状態だが どちらがより基本的な意味なのかは判断しがたい しかし 用例2) 細かい字をかちかちノートに書きため にもあるように 音と状態(細かく詰め て書く)が相互依存して醸す状況であることは間違いない 従ってこの文では音 と状態の つの意味を完全に分離することは難しいと言える また かちか ち が擬声語なのか擬態語なのかを判断する材料として重要な基準となるのは やはり 動詞または名詞との組み合わせであろう しかし 書く という動詞は 必然的に音を伴う可能性のある動詞(鉛筆や紙の音)であるため極めて曖昧な位 置にあると言える この場合の かちかち は 触覚と聴覚が同時に存在する複合感覚的な用 2 法であると解釈するのが妥当であろう 1.2. 韓国語 日本語の共感覚的考察では触覚と視覚の関係が強いことが確認できたが 韓国語ではどうだろうか colkis «触覚 聴覚» N 쫄깃쫄깃 말하다: 話す 13) 여자를 바라보며 쫄깃쫄깃 말했다. あざ笑うような表情で女を眺め ねちねちと言った Kaist corpus, 205
390 386 比較日本學 第32輯 ( ) «触覚 味覚» N 쫄깃쫄깃한 매운 맛 : 辛さ 14)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걸쭉하고 쫄깃쫄깃한 매운 맛 パンソリの持つこってりとして噛み応えのあるピリッとした味(魅力)は Kaist corpus, 430 kkalkkal «触覚 聴覚» N 깔깔한 마찰음: 摩擦音 15) 천과 천이 맞부딪는 듯한 깔깔한 음이 났다. 布と布がこすれるような耳障りな摩擦音がした Kaist corpus, 1467 ttakttak «触覚 聴覚» N 목소리가 딱딱하다 : 声がかたい 16) 그녀의 목소리가 딱딱하다. 彼女の声はかたい «触覚 Kaist corpus, 2231 視覚» N 딱딱하게 빛을 띠다 : 光を放つ 17) 메스로 딱딱하게 회색 빛을 띠는 혹을 メスで灰色の光を放つしこりを Kaist corpus, 1378 ppasppas «触覚 聴覚» N 뻣뻣한 목소리 : 緊張した声 18) 뻣뻣한 목소리로 말했다. 緊張した声で話した «触覚 視覚» N Kaist corpus, 760 뻣뻣한 태도: つっかかるような態度 19) 밋밋하고 뻣뻣했던 태도 煮え切らないつっかかるようだった態度 «触覚 視覚» N Kaist corpus, 1229 뻣뻣한 시선 : きつい目つき 20) 빳빳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厳しい視線で彼を見上げた Kaist corpus, 1459
391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387 kkongkkong «触覚 視覚» N 표정이 꽁꽁 얼다 : 硬直した表情 21) 표정은 긴장감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表情は緊張感でかちかちに凍り付いていました Kaist corpus, 3382 <表2> 韓国語かたさの擬態語共感覚転移 擬態語 쫄깃쫄깃 깔깔 딱딱 빳빳 뻣뻣 꽁꽁 共感覚転移 触覚 味覚 触覚 聴覚 触覚 聴覚 触覚 視覚 触覚 聴覚 触覚 聴覚 触覚 視覚 触覚 視覚 韓国語のかたさの擬態語において共感覚現象はそれほど頻繁には見られな い 하다を義務的に伴う단단 탄탄のような擬態語は特にそうである(딱딱は例 外) 具体名詞であればあるほど共感覚転移は起きやすく 考え 基盤 決 定 社会といった抽象名詞では起きにくい傾向がある 韓国語では聴覚への転 移が多く見られたが これは日本語と違い かたさの擬態語には擬声語的要素 が少ないことが理由として挙げられるだろう 味覚といった日本語擬態語にはな かった感覚への転移も見られた 評価性の面では日本語と同じようにマイナスイ メージの用例が圧倒的に多かった 2 やわらかさ 2.1. 日本語 buwa «触覚 聴覚» N ぶわぶわ聞こえる 22) とんまな歌声がぶわぶわと聞こえてくる いしいしんじ トリツカレ男 buyo
392 388 比較日本學 第32輯 ( ) «触覚 視覚» N ぶよぶよ膨れる 23) 一匹のかえるがぶよぶよ膨れて Wilhelm Carl GRIMM かえるの王様 gunya «触覚 視覚» N ぐにゃぐにゃする 24) とかげよりもぐにゃぐにゃしている huka «触覚 視覚» P 金治直美 逢魔が刻のにおい ふかふか湯気の立つ 25) ふかふかと湯気の立つ 雁もどきと 蒟蒻の煮込みのおでんの皿盛を 泉鏡花 開扉一妖帳 huku «触覚 視覚» P ふっくらとする 26) がりがりの中ではふっくらとした猫がいる «触覚 聴覚» P ふっくら/ふっくりと語る Corder ZIZOU Lion Boy 27) 人はいつもわかりやすくふっくりと語る 28) ふっくらつやのある透き通る声 huwa «触覚 坂口安吾 桜の森の満開の下 視覚» ふわふわ漂う 29) 宙をふわふわ漂っていくような感じである «触覚 宮本百合子 よもの眺め 聴覚» ふわふわ 話し声 城山三郎 打たれ強く生きる 30) 話し声がふわふわと浮いて «触覚 臭覚» P ふわふわ 香り 31) ただふわふわ恋の香りにだけしたい夜 泉鏡花 第二蒟蒻本 岡本かの子 或る秋の紫式部
393 共 感 覚 的 観 点 から 見 た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の 触 覚 を 表 す 擬 態 語 ( 澤 田 信 恵 ) 389 kunya «触 覚 視 覚» N くにゃりとゆする 32) 体 をくにゃりとゆすって 断 り 宮 本 百 合 子 : 獄 中 への 手 紙 1944 年 sina «触 覚 視 覚» しなしな 動 く 33) 手 がしなしなと 動 いている «触 覚 視 覚» P/Nしなしなする 34) しなしなした 女 は 懲 懲 だ «触 覚 視 覚» P しんなりと 座 る 35) 麗 卿 が 燈 籠 の 下 にしんなりと 座 っていた 萩 原 朔 太 郎 : 月 に 吠 える 徳 田 秋 声 :あらくれ 田 中 貢 太 郎 : 牡 丹 燈 記 かたさでは 示 差 的 特 徴 6)に 擬 態 語 的 側 面 を 併 せ 持 つため 共 感 覚 表 現 にお ける 聴 覚 の 区 別 の 難 しさがあった やわらかさにおいてはこのような 問 題 はない が 別 の 難 しさがある それは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はhuwa/huka 浮 く sina 揺 れる gunya/kunya 曲 がるといった 動 きの 示 差 的 特 徴 を 持 つことが 多 いからだ かたさの 知 覚 的 イメージは 音 を 伴 い その 音 でかたさを 区 別 することができる またやわらかさの 場 合 軽 さや 弾 力 性 がやわらかさの 基 準 となることが 多 い 例 えば ぐにゃぐにゃした 蛙 という 表 現 を 実 際 に 触 ってから 言 う 人 はあまりいな いだろう 私 たちは 蛙 がどんな 感 触 であるかを 経 験 や 一 般 知 識 として 持 っている ため このような 表 現 が 使 えるのである この 種 の 用 法 は 触 覚 から 視 覚 への 共 感 覚 転 移 として 分 類 される このように 私 たちの 触 覚 的 経 験 が 触 覚 からその 他 の 感 覚 へつなげる 役 割 を 果 たしていると 言 えるだろう 次 の 表 は 日 本 語 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の 触 覚 からの 共 感 覚 構 造 である 6) ある 語 の 使 われ 方 を 他 の 語 と 区 別 するのに 必 要 な 特 徴 ( 池 上 :1975p83) 弁 別 的 特 徴 とされる 場 合 もある
394 390 比較日本學 第32輯 ( ) <表3> 日本語やわらかさの擬態語共感覚転移 擬態語 ふわふわ 共感覚転移 視覚 聴覚 視覚 臭覚 聴覚 視覚 聴覚 視覚 視覚 視覚 視覚 視覚 視覚 視覚 聴覚 ふわり ふんわり/ふっくら ふかふか ぐにゃぐにゃ/ ぐにゃり くにゃくにゃ/くにゃり ほくほく しなしな/しんなり ふにゃふにゃ ぶわぶわ かたさと同じように 触覚から視覚への転移は全ての擬態語において見られ た ふんわりの例を見てみる 36) 蒸しパンはとてもふんわりしていておいしいので 37) 飛行機はふわりと飛び去っていたのでした 林芙美子 お父さん 村山早紀 新シェーラひめの冒険 例文36)は舌による触覚の表現で 話者は蒸しパンのやわらかさや弾力性を ふわり と表現している 一方 37)は飛行機が飛び立つ様子で 当然触覚 によるものではなく ふわり は軽やかさを描写している これは一種の共感 覚的比喩(synaesthesic metaphor)表現で 個人社会における日常生活で繰り返 される経験(伊藤:2009, 55 56)によって自然と身につけた感覚によるものであ る 例えば 私たちは羽根は柔らかくて軽く またふわふわと浮かぶように飛ぶ ことを経験で知っている このイメージと飛行機の飛び立つイメージが重なって ふわり が使われたと思われる メタファーによる意味は«やわらかい (触 覚)» «軽い (触覚/視覚)» «浮く (視覚)»という流れで拡張されたと 仮定できる 最終的には触覚の意味は残っていないが このような流れで意味 拡張が起こったとしたら 対象の持つ共通点から十分に相関関係が見出せる
395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391 このような構図は共感覚的比喩表現のひとつの過程である 特に触覚と視覚 聴覚の隣接関係は触覚擬態語の意味拡張に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ると思われ る <擬態語+する>と多義性 共感覚表現の関連については やわらかさの共感 ㆍ 覚表現においてもこの形は顕著である やわらかさではかたさとは違い <擬態 語 一般動詞>のケースも多く見られる 特に動詞の意味領域が触覚と関連性 が薄い場合 共感覚現象が起こりやすい 2.2. 韓国語 多義的考察では擬態語の意味拡張の方向性を探った 人に関する比喩が多 く 体から始まり対象は徐々に抽象化し 性格 態度 声 社会 組織などに 拡張する これは日本語と韓国語において同じように見られる現象だった 比 喩的表現の対象は常に具象から抽象へと転移する傾向がみられる 韓国語の やわらかさの擬態語の共感覚転移はどうであろうか hamul «触覚 視覚» 흐물흐물거리다 : 光が弱く照りつける(揺れる) 38) 봄날의 태양이 흐물흐물거리며 春の日の太陽が弱く照りつけ Kaist corpus, 1213 mallang «触覚 視覚» P 말랑말랑하다 : 優しい 39) 리뚜마가 말랑말랑한 미소를 띄우며 リトゥマが優しい笑みを浮かべ Kaist corpus, 1405 molssin7) «触覚 臭覚» N 물씬하다 : 強いにおいを放つ 40) 아직 진흙 냄새가 물씬하고 7) 물씬には副詞として2つの異なった定義がある 물씬 풍기다は触覚とは関連性がなく 하다とも 共起しない そのため 共感覚の考察からは除外した
396 392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まだ 泥 のにおいが 強 く 漂 い Kaist corpus, 2104 malkhang «触 覚 臭 覚» 물컹하다 : 強 く 鼻 につく 臭 いがする 41) 물컹한 삼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朝 鮮 人 参 のにおいが 四 方 に 行 き 渡 った Kaist corpus, 1342 noknok «触 覚 視 覚» N 눅눅하다 : 湿 っぽい 陰 険 な 42)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눅눅하고 담담해 보였다. 彼 の 表 情 はあまりにも 陰 険 で 淡 々として 見 えた «触 覚 聴 覚» N 눅눅하다 : 優 柔 不 断 な 43) 눅눅한 소리를 내는 대현에 «触 覚 臭 覚» N 눅눅하다 : 湿 っぽい 44) 눅눅한 바다 냄새를 그는 가슴 깊이 마셨다. 湿 っぽい 海 の 匂 いを 彼 は 胸 深 く 吸 い 込 んだ Kaist corpus, 3643 Kaist corpus, 3679 Kaist corpus, 2226 phokeun «触 覚 聴 覚» P 포근하다 : 心 地 よい 45) 달콤한 샹송이 봄 햇살처럼 포근하고 甘 いシャンソンは 春 の 日 差 しのように 心 地 よく «触 覚 視 覚» P 포근하다 : 優 しい あたたかい 46) 그녀의 표정은 포근하고 뭉클했다. 彼 女 の 表 情 はあたたかく 感 動 的 だった 47) 그 빛깔이 너무나 아늑하고 포근하여 その 光 はあまりにもおだやかで 暖 かく «触 覚 臭 覚» P 포근하다 : 優 しい Kaist corpus, 2219 Kaist corpus, 1440 Kaist corpus, 2633
397 共 感 覚 的 観 点 から 見 た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の 触 覚 を 表 す 擬 態 語 ( 澤 田 信 恵 ) ) 그 그윽하고 포근한 향내는 そのほのかで 優 しい 香 りは Kaist corpus, 2322 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の 共 感 覚 構 造 は 次 の 通 りである < 表 4> 韓 国 語 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共 感 覚 転 移 擬 態 語 하물하물 말랑(말랑)+하다 몰씬 말캉 하다 녹녹 하다 포근 하다 共 感 覚 転 移 視 覚 視 覚 臭 覚 臭 覚 視 覚 聴 覚 臭 覚 視 覚 聴 覚 臭 覚 6つの 語 基 に 共 感 覚 現 象 がみられた しかし 韓 国 語 の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に おいて 共 感 覚 転 移 はそれほど 多 いとは 言 えない 日 本 語 では 視 覚 への 転 移 が 圧 倒 的 だったが 韓 国 語 では 視 覚 はもちろん 臭 覚 への 転 移 が 多 い 点 が 特 徴 的 であり 全 体 的 に 見 ても 転 移 する 感 覚 に 多 様 性 があると 言 える イメージとして は 語 基 が 陽 母 音 で 使 われる 場 合 はプラスイメージ 陰 母 音 の 場 合 はマイナスイ メージという 構 図 は 共 感 覚 においても 同 じであった 元 々その 擬 態 語 が 持 つ 示 差 的 特 徴 からくるイメージもあるが 母 音 交 替 がプラスㆍマイナスのイメージに 影 響 を 与 えることは 間 違 いない また 共 感 覚 表 現 においても< 擬 態 語 +하다>の 形 が 多 いことが 確 認 された 하다 は 擬 態 語 の 意 味 領 域 をより 広 く 多 様 にする 手 段 だと 言 える Ⅳ. 対 照 分 析 1. かたさ 日 本 語 では 共 感 覚 転 移 は 視 覚 (かちかち 光 る/がっちりした 建 物 /ごりごりした
398 394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親 父 など)が 最 も 多 く 視 覚 の 優 位 性 が 確 認 された 前 述 した ごつごつ の 例 からもわかるように 私 たちは 直 に 触 ることなく 視 覚 で 岩 のおうとつやかたさを 計 り 知 ることができる このように 触 覚 と 視 覚 には 密 接 な 関 係 があることがわかる こ のような 触 覚 と 視 覚 の 関 係 は 私 たちの 感 覚 的 経 験 に 基 づくものである 共 感 覚 的 考 察 の 結 果 触 覚 と 共 感 覚 を 結 ぶ 共 通 のイメージが 存 在 することがわかった 例 えば 聴 覚 とつながりがある 表 現 は 擬 声 語 的 要 素 を 持 ち 臭 覚 に 転 移 する 擬 態 語 は 空 気 などの 媒 体 ( 共 起 名 詞 )を 介 して 匂 いと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また 感 覚 転 移 の 方 向 性 感 覚 の 同 時 性 はその 触 覚 ( 例 えばかたさややわらか さ)の 持 つ 特 性 と 大 きく 関 係 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 仮 説 を 立 てることができ る 例 えば かたさは 音 ( 聴 覚 ) やわらかさは 動 き( 視 覚 )との 複 合 感 覚 的 な 要 素 を 見 出 すことができる 形 態 的 にはCVCVx2 CVQCVRi,<CVNCVRi+する>に 多 かった 韓 国 語 の 共 感 覚 転 移 はより 多 方 面 に 渡 る その 中 でも 聴 覚 (쫄깃쫄깃 말하다: ねちねち 話 す/깔깔한 마찰음: 乾 いた 摩 擦 音 /목소리가 딱딱하다: 声 がかちかち だ) そして 視 覚 (뻣뻣한 태도:ぎこちない 態 度 /표정이 꽁꽁 얼다: 表 情 が 凍 りつ く) などがあり 味 覚 (쫄깃쫄깃한 매운 맛:ちゃっかりして 鋭 い 性 格 )への 転 移 は 特 徴 的 である 共 感 覚 転 移 はそれぞれの 擬 態 語 が 持 つ 示 差 的 特 徴 の 方 向 へと 広 がっていく 傾 向 がある < 表 5>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かたさの 擬 態 語 の 共 感 覚 表 現 日 本 語 韓 国 語 転 移 する 感 覚 擬 態 語 動 詞 / 名 詞 がっちり する/ 性 格 態 度 色 視 覚 がちがち かちかち かっちり ごつごつ こちこち ごりごり ぐりぐり 震 える 光 る / 氷 書 く/ 文 字 する/ 性 格 する/ 風 貌 性 格 働 く なる/ 体 固 まる/ 顔 する/ 外 見 動 く/ 目 聴 覚 ごつごつ する/ 声 話 視 覚 빳빳 뻣뻣 꽁꽁 쫄깃 굳다: 固 まる/ 表 情 体 하다 :する / 視 線 굳다 : 固 まる/ 体 顔 굴다 : 振 舞 う 얼다 : 凍 る/ 表 情 하다 :する/ 女 性
399 共 感 覚 的 観 点 から 見 た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の 触 覚 を 表 す 擬 態 語 ( 澤 田 信 恵 ) 395 딱딱 굳다 : 固 まる/ 表 現 하다 : する/ 声 トーン 聴 覚 쫄깃 말하다 : 話 す 깔깔 하다 : する/ 音 뻣뻣 하다 : する/ 声 껄껄 하다 : する/ 音 味 覚 쫄깃쫄깃 하다 : する/ 味 2. やわらかさ 日 本 語 やわらかさの 共 感 覚 転 移 は 顕 著 に 見 られる 最 も 転 移 が 多 い 感 覚 は 視 覚 ( 蛙 がぶよぶよ 膨 れる/ふかふか 湯 気 の 立 つ/ 宙 をふわふわ 漂 う/ 手 がしなしなと 動 いている など)である ほとんどの 表 現 がやわらかさに 関 連 した 動 きや 状 態 (ぶ よぶよ かえる/しなしな 手 ) または 共 感 覚 を 利 用 して イメージを 共 有 する 名 詞 (ふかふか 湯 気 /ふわふわ 宙 )と 結 びついている 聴 覚 への 転 移 は 浮 ついた 返 事 ㆍ 話 優 しい または 浮 ついた 声 などに 転 化 する 韓 国 語 で 転 移 がよく 見 られる 感 覚 は 視 覚 ㆍ 聴 覚 ㆍ 臭 覚 である これらの 中 で も 視 覚 (태양이 흐물흐물 거리다: 太 陽 がぎらぎらする/말랑말랑한 미소: やわら かい 微 笑 み/표정이 눅눅하다: 表 情 が 暗 く 無 関 心 だ/표정이 포근하다 : 表 情 が あたたかい)がやはり 最 も 顕 著 である 臭 覚 (눅눅한 바다 냄새: 湿 った 海 のにお い/포근한 향내: 穏 やかで 優 しい 香 り/물컹한 삼내:もったりした 朝 鮮 人 の 匂 い)も 視 覚 同 様 顕 著 で 韓 国 語 のやわらかさの 特 徴 的 な 転 移 だと 言 える 聴 覚 (샹송은 포근하다:シャンソンはやわらかく 心 地 よい/눅눅한 소리:しめっぽい 声 )への 転 移 はあまり 多 くない 次 の 表 は 用 例 に 基 づく 共 感 覚 転 移 例 である < 表 6>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の 共 感 覚 表 現 日 本 語 転 移 する 感 覚 擬 態 語 動 詞 / 名 詞 ぶよぶよ 膨 れる くにゃり ゆする ふわふわ する/ 性 格 気 持 ち 漂 う 視 覚 ふわり 微 笑 む ふんわり 見 える / 魚 ふっくり する/ 動 き ふっくら する/ 動 物 ぐにゃぐにゃ する/ 人 雰 囲 気
400 396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韓 国 語 聴 覚 ほくほく ふかふか しなしな しんなり ふにゃふにゃ ふわふわ ふんわり ふっくら ふっくり ぶわぶわ する 湯 気 が 立 つ する/ 女 動 く/ 体 立 つ/ 女 なる/ 人 する/ 返 事 表 現 息 づく する/ 声 笑 う する/ 声 語 る 聞 こえる/ 声 臭 覚 ふわふわ する/ 愛 香 り 味 覚 ふわり 広 がる 視 覚 聴 覚 물씬 말랑말랑 눅눅 흐물흐물 포근 하다:する/ 雰 囲 気 하다:する/ 微 笑 하다:する/ 表 現 거리다 : 接 尾 動 詞 하다 :する / 人 笑 い 하다 : する/ 表 現 포근 하다: する/ 音 声 눅눅 하다 : する/ 声 味 覚 포근 하다 : する/ 味 臭 覚 물씬 물컹 눅눅 포근 하다: する/ 匂 い 香 り 하다 : する/ 匂 い 하다 : する/ 匂 い 하다 : する/ 香 り やわらかさの 共 感 覚 的 意 味 拡 張 はかたさに 比 べると 両 言 語 を 通 して 豊 富 であ る 触 覚 を 除 く4 感 覚 全 てに 転 移 が 見 られたが 視 覚 が 意 味 体 系 的 に 最 も 結 び つきやすいようである 伊 藤 (2009: )は 擬 態 語 の 共 感 覚 点 には «聴 覚 視 覚 触 覚»という 流 れがあったとし これはWILLIAMS(1976)の 示 した 流 れ と 一 致 しないことを 主 張 している 本 稿 の 考 察 では かたさにおいては 聴 覚 と 触 覚 の 密 接 な 結 びつきを 見 出 すことができたが これはかたさと 音 との 関 連 の 強 さからくるものだと 結 論 付 けることができる これは 共 感 覚 が 聴 覚 から 触 覚 へと 転 移 したものとみなすこともできるが 接 触 により 音 が 発 生 するという 流 れから 見 る と どちらが 出 発 点 であるかは 断 言 できない 問 題 であろう いずれにせよ かた さの 擬 態 語 に 関 しては 2つの 感 覚 が 共 存 し 作 用 しているため 分 離 すること
401 共 感 覚 的 観 点 から 見 た 日 本 語 ㆍ 韓 国 語 の 触 覚 を 表 す 擬 態 語 ( 澤 田 信 恵 ) 397 は 難 しいという 結 論 に 至 る またやわらかさについても 具 象 から 抽 象 へと 意 味 が 転 移 していくことを 考 えると 物 理 的 な 接 触 がまずあり 他 感 覚 へと 転 移 すると いう 基 本 的 な 考 えに 基 づき 蛙 がぶよぶよ 膨 れる の ぶよぶよ という 感 覚 は 接 触 による 経 験 がなければ 知 り 得 ない 感 覚 であるため 視 覚 触 覚 という 流 れにはなり 難 いと 考 える Ⅴ. おわりに 触 覚 をあらわす 擬 態 語 の 共 感 覚 的 考 察 において 次 のような 点 を 確 認 するこ とができた 日 本 語 では 触 覚 から 視 覚 への 転 移 が 多 く 視 覚 の 優 位 性 を 後 押 しする 結 果 となった また このことは2 感 覚 間 の 共 起 性 の 高 さを 示 していると 言 える かたさでは 触 覚 と 聴 覚 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 やわらかさにおいても 元 々 複 合 感 覚 (bisensoriel) 的 な 要 素 < 触 覚 視 覚 ( 動 き)>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 仮 定 することが できる 一 方 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は 擬 声 語 的 側 面 と 共 起 しないため 聴 覚 へ の 転 移 (ふわふわ ふわり ふんわり ふっくら ぶわぶわ)は 純 粋 な 共 感 覚 転 移 だとみなすことができる このように 聴 覚 への 転 移 の 多 さはやわらかさの 擬 態 語 のひとつの 特 徴 だと 言 える また 評 価 性 においてもプラスイメージへの 転 移 が 顕 著 な 点 もかたさとは 対 照 的 な 結 果 となった 一 方 韓 国 語 のかたさの 擬 態 語 は 日 本 語 とは 多 少 異 なった 様 相 を 見 せ 複 合 感 覚 的 な 用 法 はあまり 見 られなかった 日 本 語 に 比 べ 転 移 する 感 覚 も 多 様 だ が やはり 視 覚 への 転 移 が 優 勢 だった 触 覚 の 経 験 的 感 覚 が 視 覚 への 転 移 を 後 押 しし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また딱딱하다の 共 感 覚 転 移 が 最 も 多 かったことか ら 語 彙 化 が 進 んでいる 語 であればあるほど 共 感 覚 的 用 法 が 多 い 反 面 抽 象 名 詞 への 共 起 が 多 い단단하다や탄탄하다などは 共 感 覚 的 用 法 が 少 ないという 結 果 を 得 た やわらかさをあらわす 擬 態 語 では 日 本 語 のように 聴 覚 と 視 覚 との 共 起 性 が 高 いことが 確 認 されたため この2 感 覚 の 共 起 関 係 がやわらかさの 認 知 において 重 要 な 役 割 を 果 たしている 可 能 性 は 高 い 言 い 換 えれば やわらかさ の 認 知 は 触 ることだけでなく 動 きを 見 ることでも 可 能 だということである また 韓 国 語 のやわらかさにおいては 臭 覚 との 共 起 性 も 高 い 触 覚 と 臭 覚 との 関 連 性 に ついてはもう 少 し 示 差 的 特 徴 や 共 起 名 詞 ㆍ 動 詞 を 精 査 する 必 要 があるが 韓 国
402 398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語 では 触 覚 的 やわらかさから 空 気 や 雰 囲 気 への 意 味 拡 張 が 多 かったことか ら 空 間 的 な 近 接 関 係 から においㆍ 香 に 転 移 するという 構 図 が 考 えられる かたさの 擬 態 語 において 触 覚 から 聴 覚 への 転 移 は 可 能 だろうか この 疑 問 に 答 えるためには かたさの 性 質 に 立 ち 戻 って 考 え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かたい 物 質 との 接 触 は 必 然 的 に 音 を 伴 う この 性 質 がかたさの 擬 態 語 の 意 味 に 反 映 され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今 回 の 共 感 覚 的 考 察 を 通 して かちかち 8) が そうであるように 聴 覚 もかたさの 擬 態 語 の 持 つ 基 本 的 な 感 覚 とみなしていいの ではないかという 結 論 に 至 る しかし ごつごつした 声 /ごつごつした 話 など に 見 られる 触 覚 から 聴 覚 への 転 移 は 擬 声 語 ではなく 共 感 覚 的 転 移 であるとみ なす これは 共 起 名 詞 が 直 接 接 触 が 不 可 能 で かたいもの でない 為 であ る 前 述 したように かたさの 擬 態 語 が<する>と 結 びつくことにより 擬 声 語 の 機 能 を 失 い 共 感 覚 表 現 の 判 断 基 準 は 共 起 名 詞 ㆍ 動 詞 となることを 示 した それ ぞれの 擬 態 語 がそれぞれの 意 味 領 域 に 関 連 した 動 詞 と 結 びつく 例 えば 触 覚 であれば あたる つかむ 押 すなどの 直 接 接 触 に 関 連 した 動 詞 と 聴 覚 で あれば 聞 く 鳴 る 響 くなどと 結 びつくということである よって かたさの 擬 態 語 が 中 心 的 意 味 として 機 能 しているか または 周 辺 的 意 味 として 機 能 している かは 文 脈 から 判 断 が 可 能 で かたさに 関 連 した 動 詞 や 名 詞 との 共 起 は 触 覚 の 中 心 的 意 味 かどうかを 判 断 する 決 定 的 基 準 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また いくつ かの 擬 態 語 は 本 質 的 に 複 合 感 覚 的 (bisensoriel:かちかち)であったり また 多 機 能 的 (polyvalent:ごつごつ/がっちりなど)であったりする 本 研 究 では 触 覚 からの 転 移 について 見 てきたが 共 感 覚 表 現 は 様 々な 感 覚 を 出 発 点 として 他 感 覚 へと 転 移 する 様 相 を 見 せる 本 稿 での 結 果 から 見 る と それぞれの 擬 態 語 が 持 つ 中 心 的 意 味 が 何 であるかによって どの 感 覚 が 原 点 となるかが 決 まり 前 述 したように かたさ やわらかさ 湿 り 気 といった 触 覚 の 持 つ 特 性 が 共 感 覚 転 移 の 方 向 性 を 左 右 するのではないかと 推 測 できる 複 数 の 先 行 研 究 でそれぞれ 感 覚 の 転 移 の 流 れが 示 されているが 本 稿 で 得 た 結 論 に 従 えば これらは 取 り 扱 う 擬 態 語 によって 当 然 感 覚 の 流 れも 違 ってくるという ことになる その 方 向 性 は 多 様 でも 転 移 の 過 程 には 近 接 する 感 覚 との 共 起 関 係 が 存 在 し それはそれぞれの 擬 態 語 が 持 つ 示 差 的 特 徴 や 話 者 の 個 人 的 経 験 に 基 づくつながりに 因 るものだと 考 えられる 8) 伊 藤 (2009: )は かちかち を 狭 義 的 には 擬 声 語 として 分 類 している このような 擬 態 語 を 擬 声 語 的 擬 態 語 と 呼 ぶことにする
403 共感覚的観点から見た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 (澤田信恵) 399 <参考文献> 池上嘉彦(1975) 意味論, 大修館書店. 伊藤理英(2007) オノマトペの意味拡張の事例に基づく共感覚比喩表現の一方向性における反例と 考察, 日本認知言語学会論文集第7巻 JCLA 7. (2009) 日本語オノマトペの比喩による意味拡張を中心とした認知言語学的考察, J&C. 楠見孝(2004) 味覚のメタファー表現への認知的アプローチ, 日本言語学会 第127回大会予稿集 p9 14. 國廣哲彌(1986) 語義研究の問題点 多義語を中心として, 日本語学 5 6, 明治書院 (1989) 五感を表す語彙 共感覚的比喩体系, 月刊言語 18(11), 澤田信恵(2004) 日本語と韓国語の感覚オノマトペ語彙の意味分析 触覚を表すオノマトペを中心 に, 日本学報 No.61, 韓国日本学会, pp (2005a) 日本語ㆍ韓国語の かたさ を表すオノマトペの意味分析 シンタグマティックな 側面から, 日本学報 No.64, 韓国日本学会, pp (2005b) やわらかさ をあらわす日韓擬態語の意味分析 語が持つ意味を 中心に, 日本学報 No.65, 韓国日本学会, pp (2005c) 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 粘り気 を表す擬態語の意味分析 語がもつ意味を 中心に, 人文科学研究, 同徳女子大学校. (2007) 日本語ㆍ韓国語[湿り気ㆍ水分]を表す擬態語のプロトタイプ的考察, 日本学 報 No.70, 韓国日本学会, pp (2008) 日本語ㆍ韓国語の[触覚]を表す擬態語の意味朗息の考察, 日本学報 No.76, 韓国日本学会, pp 竹本江梨(2012) 日本語の擬音語ㆍ擬態語の意味構造における複合感覚 脳科学的所見およびア リストテレスの共通感覚に照らして, 名古屋外国語大学 外国語学部紀要 42号. 辻幸夫(2002) 認知言語学キーワード事典, 研究社. 武藤(酒井)彩加(2001) 接触感覚から遠隔感覚 と 遠隔感覚内 の意味転用に関する一考察 共感覚的比喩 を支える複数の動機付け 言葉と文化, 名古屋大学大学院国際言語 文化研究科 (2), pp 安井稔 (1978) 新しい聞き手の文法, 大修館書店. 山梨正明 (1988) 比喩と理解, 東京大学出版会. 吉村耕治(2007) 色彩語を含む共感覚表現に見られる日英語の文化的相違 共感覚現象の意味ㆍ 日本語オノマトペの状況中心性 研究論集 86, 関西外国語大学, pp J.M. WILLIAMS(1976) Synaesthic adjectives: a possible law of semantic universals Language 52 ULLMANN(1964) 意味論 (山口秀夫 訳) 紀伊国屋書店 (1969) 言語と意味 (池上嘉彦 訳)大修館書店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404 40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사와다노부에, (한자) 澤 田 信 恵, (영어) Sawada Nobue 소속 : 동덕여자대학교 일본어과 논문영문제목 : Synesthetic analysis of mimetic words of tactile in Japanese and Korean Hardness and Softness 주소 : ( )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13길 60 동덕여자대학교 일본어과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 논문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촉각을 나타내는 의태어 중 딱딱함과 부드러움에 대해 그 공감 각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고찰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두 언어에서 촉각에서 시각으로 전이하는 경우가 공통적으로 많이 나타났는데, 이는 그 두 감각의 공기관계가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촉각을 인지할 때 시각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한국어는 부드러움의 경우 용례수는 많지 않았으나 전이의 다양성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일본어보다 여러 감각으로 전이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찰결과를 봤을 때 각 의태어가 가진 시사적 특징이 공감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제어: 공감각, 촉각, 다의성, 복합감각적
405 401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 영 희 * Abstract This paper researched the negations collected in the discourse of Korean Chinese informants colonial Japanese with Japanese native speakers by stance of a second language retention. Comparing with colonial Japanese of other East Asian regions from the retention of the standard and the dialect forms of older Korean Chinese in the environment Japanese not used approximately during 70 years, the following results are found. (a) Although the degree of dialect type N retention is extremely low, approximately preserved by informants that is nearly proportional to the degree of contact with colonial Japanese. And comparing with the older colonial Japanese in other areas, input by the Japanese teachers and the Japanese environments after 1945 (Older Korean Japanese> Osaka> Taiwan> Korean> China Yanbian> Learners) is a strong factor in the retention of dialect type N. (b) In the Verb's sentence, Dialect type N can be preserved well with the verb WAKARU. In addition, maintaining strong negative modality. (c) Characteristically negative representation of the formal style MASENG is frequently used in the form proportional to Japanese contact and ability. Degree of normative MASENG retention and non normative NAIDESU production is relatively more higher than Korea. (d) Informants have a capacity of making KUNAI in I adjectives. JANAI is used generally in Na adjectives and Noun negatives. (e) In the case of Korea, transference of the analytical structure KOTONAI is seen but in the case of China Yanbian a transitive element is less than Korea. (f) The use of standard and dialect type in China and Korea is mainly appearing in the M group(secondary education) and the use of non standard is mainly appeared in the P group(primary education). The strength of Japanese contact network is considered to be the factors in Japanese retention. 1) Keywords : China Yanbian region, elder Korean Chinese's Japanese, negations, second language retention 1. 들어가며 중국연변지역의 조선족노년층은 일본의 식민지통치기간에 습득한 일본어 * 한양사이버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일본어교육ㆍ사회언어학
406 402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이하, 식민지일본어 라 한다)를 70여년이 지난 현재도 잘 보존하고 있다. 이 식민지일본어는 과거 교실장면에서의 학습과 일본인과의 접촉을 통한 자연습득을 통해 기억된 것이 현재도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시기의 중국 동북부지역에는 당시 한국보다는 그 숫자가 적었지만(황2011a), 일본 인교사를 포함하여 서일본지역 출신자가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본 어에는 해당 지방의 방언적 요소도 일부 잔존하고 있다. 한국의 식민지일본어에 대해 당시 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서일본지역의 방언적 말투를 줄이기 위해 교사가 표준어를 가르치도록 권장한 역사적 기 록은 일본인(内地人)의 증가에 따른 순화 를 호소한 자료(국어문화학회 1943, 大西1944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和田(1940)에서도 そんなことあるかも知らん 과 같은 간사이(関西) 지역의 방언적인 부정표현이 보이며 조선에 주재한 교원이 출판한 기록풍 의 소설 半島の子ら (飯田彬著, 1942년)에도 知らんㆍ かもしれんㆍい かんㆍならんㆍ出来んㆍ見えん 등의 표현이 쓰이고 있다(黃2008). 현재의 일본어 부정표현에 대해서는 방언형과 표준어형과의 접촉으로 새 로운 중간방언형이 만들어지는 변화가 지적되고 있다. 식민지시대에 한국과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규슈(九州)에서는 부정사ン은 여전히 쇠퇴하는 경향없이 존재하는 뿌리깊은 방언이며, 居ラン 居ラナイ 와 같은 접촉형 신어가 확대되는 한편으로 부정사 변환에 의한 行けナイ 行けン 과 같은 새로운 방언형식도 만들어지고 있다(陣内1996). 일본어습득 이후의 부정표현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표준어형ナイ와 방언 형ン의 두 형식에 접촉한 대만의 식민지일본어에서 ン이 격식이 없는 형식 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簡(2006)과, 한국의 식민지일본어에서 1945년 이전의 일본어접촉도와 현재의 방언형의 사용이 비례한다는 黃(2008)이 있다. 일본어습득과정의 부정표현에 관해서는 부정형식의 습득에는 보편적 프 로세스가 있어 (동사)사전형 ナイ ジャナイ 활용혼동형 의 순서로 오용 이 소멸된다는 家村(2001) 등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연구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본고에서는 위와 같이 방언형ン도 관련된 부정표현이 중국연변지역 식민 지일본어에 어떻게 보존되고 있으며 거기에는 어떤 중간언어적 요인이 작 용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다음의 2장에서는 제2언어보존의 특색을 살펴보기 위해 왜 부정표현을
407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03 거론하는가에 대해, 3장에서는 조사개요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4장에서 조사대상자들이 어떤 부정형식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동사, イ형용사, ナ형 용사ㆍ명사 로 나누어 기술한다. 더불어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의 사용실태에서 조사대상자를 3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다른 식민 지일본어 등과 비교함으로써 그 실태와 관련한 제2언어보존의 언어내적[출 현동사의 특징, 모달리티(modality)적 요소], 외적 요인[입력(input), 사용의 식]을 명확히 규명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 전체를 정리하도록 한다. 2. 연구의 필요성 본고에서 거론하는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는 지금에 와서는 다른 동아시아지역 식민지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언어습득 종료시점의 일본 어능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다른 동아시아지역 식민지일본어의 L2환경에 있어서 L2의 감퇴 와는 또 다른 L3환경에 있어서 L2의 감퇴 라 는 언어사용환경면에서의 큰 차이점이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어습득이 없어진 환경에서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조사대 상자도 과거의 일본어능력이 쇠퇴하고 있거나 동등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일본어모어화자와 일본어로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 정도의 일본어를 유 지하고 있는 것을 개인에게 있어서 제2언어의 보존 으로 언급하도록 한다. 그러면 왜 부정표현이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보존 양상을 살펴보기에 적 절한 언어항목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4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a) 부정표현은 (표준어형을 포함해) 다양한 변이형을 가지고 있으며 표 준어형과 방언형의 접촉현상과 습득 이후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의 변화를 볼 수 있다. (b) 본고의 조사에서는 언어습득 종료 시점(=1945년) 이후 일본어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대상자를 선출하였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접촉 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방언형ン은 1945년 이전에 습득된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이 이유로 습득종료 이전에 습득된 언어항목의 보존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다. (c) 부정표현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표준어형ナイ와 방언형ン을 둘 다 접
408 404 比較日本學 第32輯 ( ) 촉한 대만노년층에게 ン이 보다 인포멀한 형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簡(2006)과 부정형식 습득에 보편적인 프로세스가 있다는 家村(2001) 등이 있지만, 연구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黃2008). (d) 한국의 경우에는 방언형ン이 보존되고 있는 방언적 요소 가운데 オル 와 함께 그 사용이 가장 많은 형식이었다1). 동일한 한국어모어화자로 서 조선족노년층의 경우에는 과연 그 보존의 정도가 어떠하며, 차이 가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 근거해 본고에서는 일본어를 보존하고 있는 일정한 사회적 속성 (일본어의 습득기간ㆍ일본어와의 접촉형태)를 가진 조선족노년층을 대상으 로 부정표현의 베리에이션의 출현 양상을 좌우하는 언어내적ㆍ언어외적 요 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조사대상자의 사회적 속성, 사용의식, 전접하는 동사의 유형, 비표준어적인 부정형식, 모어의 영향 이라는 관점에 서 형식적ㆍ기능적 특징을 명확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면 관계상 해당 지역의 일본어 접촉과 관련한 자세한 사회적ㆍ역사적 배경이 되는 중국연변지역의 일본어교육사와 한국의 일본어교육사에 대해 서는 황(2011a)을 참조하기 바란다. 3. 조사 개요 중국 연변지역 식민지일본어의 부정표현의 사용실태를 파악하고 동아시 아지역 식민지일본어와 비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사를 디자인하였다. 분석데이터는 2010년 7월 조선족노년층이 다수 거주하는 중국 동북부 연 변지역[연길시(延吉市)와 도문시(圖們市)]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학습 하고 1945년 이후 일본어접촉이 거의 전무한 80세 이상 남녀 5명(남4명, 여 1명)에 대해 일본어모어화자와의 자연담화(평균42분)를 문자화한 담화데이 터 및 조사문 조사의 결과를 정리한 자료이다. 한국데이터는 필자가 2006년 8월 서울과 대구에서 노년층 8명에 대해 위와 동일한 방법으로 실시한 조 1) 한국과 중국의 존재동사의 사용비율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황2011b). 한국 : おる(8.4) > ある(5.1) > いる(1.4) 중국 : ある(5.4) > いる(2.4) > おる(1.8) *( )안은 1인당 사용비율.
409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05 사데이터를 비교자료로 하였다(구체적인 사항은 黄(2007) 참조). 일상어가 아닌 일본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초면의 일본인 조사자를 상 대로 정중도를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정중한 스타 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3.1 조사대상자 정보 조사대상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학습하고 1945년 이후에는 일본어 와의 접촉이 거의 전무한 80세 이상 남녀 5명(남4명, 여1명)으로 현재의 일 본어능력과 당시의 습득사정 등을 고려하여 한국에서의 조사디자인과 동일 하게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선정하였다. 조사대상자 각각의 속성을 청취 조사의 결과에 근거해 <표1>에 표시하였다. <표1>에서는 현재의 일본어능 력이 높은 순으로 정리하였다. <표1> 조사대상자 정보 (중국) 생년 성별 출신지 1945년 이전 일본어 학습력 C1W 1926 남 평안도 小學校(6), 中學校(3), 專門學校(2) C2M 1927 여 전라도 小學校(6), 高等女學校(3) C3m 1931 남 연길시 國民學校(6), 中學校(1) C4w 1928 남 황해도 小學校(6) C5P 1931 남 함경도 國民學校(6) 직업력 조선업, 군인 魚店, 학교급사 * 조사대상자의 숫자는 현재의 일본어능력 순서, 알파벳은 각각 P : 초등교육 수료자, M : 중등교육 수료자, m : 중등교육 미수료자, W : 중등교육 수료 후 취업자, w : 초등교육 수료 후 취업자 를, ( )안은 해당연수를 나타낸다. **식민지시기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초등교육은 小学校,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초등교 육은 普通学校 에서 실시되었지만, 1938년에 개정된 朝鮮教育令 에서 普通学校 는 (尋常)小学校 로 바뀌고 1941년에 둘 다 国民学校 로 개칭된다. <표1>의 中學校ㆍ高等 女學校는 6년제 普通學校(國民學校)를 끝낸 사람이 진학한 학교이다(이하 동일). 일본어 모어화자는 NS1[20대남성ㆍ야마구치(山口)출신], NS2[30대남성ㆍ 도쿄(東京)출신]이며, 실제 담화에서 출현하지 않는 언어항목도 많을 것으로 추측되어 한국어문장을 일본어문장으로 바꾸는 조사문 조사를 담화 수록 후에 실시하였다. 장소는 연변대학의 연구실 및 조사대상자의 자택에서 보 이스레코더를 이용한 음성녹음과 컴퓨터 캠코더를 이용한 화상녹화를 동시 에 실시하였다.
410 406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이들 조선족노년층은 광복 이전에 國語교육으로서 日本語교육을 받았으 며 일본어습득 중단시점( 1945년)은 일치하지만, 습득기간과 접촉형태는 서로 다른 80세 전후의 남녀이다. <표1>에서 조사대상자의 일본어능력의 판정에 대해서는 실제의 담화데이터를 (대화상대로 선정한 일본어모어화자 가 아닌 별도의) 일본어모어화자 2명에게 들려주고 판정을 의뢰했다. 다만, 일본어 사용의 정확성이나 유창성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다소 그 판단이 어긋난 부분도 있었기에 다른 언어항목에서 조사대상자의 일본어 운용능력 과 규범적인 일본어의 사용에서 벗어난 일탈의 정도도 고려하여 최종적으 로는 필자가 그 순위를 결정하였다. 3.2 대조데이터 한국의 경우도 식민지시기에 일본어(国語) 교육을 받았으며 언어습득 종 료시점(1945년)은 일치하지만, 습득기간과 접촉형태는 다른 남녀8명의 데이 터를 이용하였다(黃2008). 조사대상자 각각의 속성에 대해서는 <표2>에 정리하였다. <표2>에서는 조사대상자를 학력과 직업력의 두 가지 측면에서 현재의 일본어능력의 순 서로 나열하였다. 조사대상자 번호의 숫자는 일본어능력순서를 나타내며 로 마자는 각각 <표1>에서 든 습득환경을 나타낸다. <표2> 조사대상자 정보 (한국) 생년 성별 1945년 이전 일본어 학습력* K1M 1920 여 普通学校(6)ㆍ家政女学校(3) K2M 1928 여 尋常小学校(6)ㆍ高等女学校(4) K3W 1926 남 普通学校(6) K4M 1927 남 普通学校(6)ㆍ中学校(5) K5P 1926 여 国民学校(6) K6W 1928 여 国民学校(6)ㆍ小学校高等科(2) K7P 1927 여 国民学校(6) K8P 1930 여 国民学校(6) 직업력 전력회사(2) 버스회사(3) * <표2>의 家政女学校 도 6년제 普通学校(国民学校)를 마친 사람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 이다. 그리고 K4M의 중학교는 학생이 한국인뿐이었다. 그러나 K1MㆍK2MㆍK6W의 家 政女学校ㆍ高等女学校ㆍ小学校高等科 는 일본인과 같이 다닌 공학(共学)이었다.
411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07 조사대상자 전원에 대해 중년층의 일본어모어화자와의 대화( 対 中 年 談 話 )를 수록하였다. 그리고 8명 가운데 4명(K4MㆍK3WㆍK5PㆍK7P)에 대 해서는 스타일에 따른 차이를 보기 위해 청년층의 일본어모어화자를 대상 으로 한 담화( 対 若 年 談 話 )도 같이 수록하였다(합계530분, 평균44분). 일 본인 인터뷰어에 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중년층 일본어모어화자 NS1[40대여성ㆍ아키타( 秋 田 )출신], NS2(40대여성ㆍ후쿠오카( 福 岡 )출신] 청년층 일본어모어화자 NS3[20대남성ㆍ미야자키( 宮 崎 )출신], NS4[30대남성ㆍ오사카( 大 阪 )출신] 또한, 본고에서는 중국 연변지역 식민지일본어에 나타난 부정표현의 특징 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른 지역[대만( 台 湾 )ㆍ재일( 在 日 )ㆍ오사 카( 大 阪 )]의 노년층일본어의 담화자료를 대조데이터로서 사용하였다. 담화자 료 사이에 화자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등의 과제는 남아 있지만, 위의 담 화데이터들은 초면의 일본어모어화자와 나눈 대화인 점과 수록시간 및 담 화의 전개양상 등에 있어서 본고의 조사디자인과 유사하기 때문에 대조데 이터로서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각각의 대조데이터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 과 같다. 먼저 한국보다 15년 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어 교육의 일환으로 일본어에 접촉한 대만노년층의 데이터로는 簡 (2004)의 결 과를 차용하였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전체 대만노년층의 약2%가 모어가 서 로 다른 화자들 사이에서 일본어가 공통어(lingua franca)로서 커뮤니케이션 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1945년 이후 일본어 사용 장면이 거의 전 무한 중국이나 한국과 다른 언어환경적 특징이다. 簡 (2004)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습득한 대만노년층(1925년생에서 1942년생까지 남5명, 여3명)에 대해 노년층화자끼리의 대화와 일본어모어화자와의 대화를 녹취하여 그 일 본어능력의 차이와 스타일전환의 양상에서 대만노년층의 식민지일본어가 구조면이나 언어행동면에서 단순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고에서는 그 가운데 조사디자인이 유사한 일본어모어화자와의 담화데이터 만을 비교 대상으로 하였다. 다만, 담화데이터 그 자체가 공개되어 있지 않 기 때문에 부정표현에 관한 집계 결과를 비교 대상으로 차용하였다(구체적
412 408 比較日本學 第32輯 ( ) 인 정보는 簡(2004) 참조). 재일코리언의 대조데이터로는 1945년을 전후하여 일본으로 이주하여 간 사이(關西) 지방에 정착ㆍ생활하고 있는 재일코리언1세의 담화를 채집한 渋 谷ㆍ金(1999), 金(2005), 金ㆍ生越(2002)의 결과를 차용하였다. 각 연구는 조사자와의 담화에서 문법범주, 코드전환, 한국어로부터의 전이, 중간언어적 요소, 방언적 요소의 수용 등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재일코리언1세의 일본 어는 주로 직장 등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화상대가 젊 은 조사자(조사 대상자의 손자 또는 지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대화는 그다지 정중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앞의 두 연구는 분석결과만 제시한 것으 로 담화데이터 자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담화데이터의 형태로 공 개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다시 정리한 것이다(黃2008). 한국과 중국의 식민지일본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서일본지 역 방언화자의 담화데이터로는 오사카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사회언어학 연구실의 SS코퍼스(Ver1.0)를 사용하였다. SS코퍼스(Ver1.0)는 스타일 전환 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 각지의 일본어방언화자 및 중급수준의 일본 어중간언어화자와 일본어모어화자와의 대화를 수집한 자료로(細谷2004), 그 가운데 오사카방언화자 (1933년생의 남1명)의 데이터를 차용하였다. 학습자의 대조데이터는 조사대상자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KY코퍼 스를 이용하였다. KY코퍼스는 외국어학습자의 회화 과제(task) 달성 능력을 대면인터뷰방식으로 판정하는 OPI의 테이프를 문자화한 것으로 롤플레이 (role play)를 포함하는 30분 정도의 담화자료이다. 모어별로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모어화자가 각각 30명씩 포함되어 있으며 한국인학습자의 데이터를 이용하였다. 화자의 일본어능력의 내역은 OPI의 판정결과별로 초급(初級)5 명, 중급(中級)10명, 상급(上級)10명, 초급(超級)5명씩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본고와 같이 한국노년층에 잔존하는 일본어의 담화데이터를 채집한 木口(2004)는 코퍼스화한 회화데이터로부터 <단순화>와 함께 <분석 화>의 경향도 보인다면서 그 근거로 어휘영역에서 문법카테고리에 이르기 까지 포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후술하는 <한국B>의 자료이다. 다 만, 이 데이터는 화자의 속성 차이에 따른 선정을 하지 않은 점에서 본고와 다르다. 본고에서 거론하는 화자는 (언어습득 종료시점으로 간주되는) 1945년 광 복 시점에 일본어습득이 멈춰지고 그 후 서적이나 NHK 등의 미디어를 통
413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09 한 접촉은 다소 있지만, 본격적인 일본어와의 접촉은 거의 없는 (전형적인 제2언어보존 상태에 있는) 대상자로 한정하였다. 이들이 조선족노년층 전체 의 대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청취조사와 일본어교육사를 참고하면 현재의 조선족노년층의 유형은 대체로 본고에서 거론한 속성에 따라 특징지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3.3 청취 조사 한편 각각의 조사대상자에게는 담화데이터 가운에 나타나지 않는 (지식 으로서 가지고 있는) 베리에이션도 있다고 예측된다. 그래서 잠복하고 있는 언어능력을 확인하고 언어필터를 거치지 않는 긴박한 상황에서 산출되는 형식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보통체의 동사부정문 (평서문, 가능문, 존재문)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번역식의 규범의식조사를 담화 수록 이후에 실시하였다. 동시에 개인별로 일본어 습득환경에 관한 청취조사도 실시하 였다. 4. 부정표현의 사용실태 여기에서는 조사대상자들이 어떤 부정표현형식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동 사, イ형용사, ナ형용사ㆍ명사 로 나누어 정리한다. 이어서 조사대상자의 속 성과 부정표현 사용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다른 지역의 식민지일본어와 비교함으로써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의 특징을 명확히 밝혀내도록 한다 동사의 부정형 우선 담화데이터에서 추출된 부정표현 가운데 가장 사용수가 많고 방언 형도 사용되고 있는 동사의 부정형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표3>은 동사의 부정형을 전접( 前 接 ) 또는 후접( 後 接 )하는 형식과 같이 표시한 것이다.
414 410 比 較 日 本 學 第 32 輯 ( ) <표3> 동사부정형의 사용상황 (중국) C1W C2M C3m C4w C5P 계 ン 2 2 ナイ ナイデ ナクテ 1 1 コトナイ ンジャナイ(확인요구) ンジャナイ(부정) ジャナイ(확인요구) ジャナイ(부정) ンデス ナイデス マセン <표4> 동사부정형의 사용상황 (한국) K1M K2M K3W K4M K5P K6W K7P K8P 계 ン ナイ ナイデ ナクテ コトナイ ンジャナイ(확인요구) 1 1 ンジャナイ(부정) ジャナイ(확인요구) ジャナイ(부정) ンデス ナイデス マセン *<표4>의 한국 수치는 <표3>의 중국데이터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対 中 年 談 話 対 若 年 談 話 를 합한 평균값이다. 그리고 ナカッタ는 ナイ에, ナイデショウ는 ナイデス에 포함시켰다. 이다. 다음은 동사부정형을 보통체와 정중체로 나눠 그 사용실태를 정리한 것 보통체 <표3><표4>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체의 동사부정형은 ナイ와 ン 두 가지 가 사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표준어형ナイ(122예):방언형ン(7 예), 중국에서 표준어형ナイ(65예):방언형ン(2예) 의 양상을 보이고
415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11 있다. 중국의 경우는 C3m에게만 아래와 같은 방언형ン의 사용이 보인다. (1) C3m : 会話で使っても相手が分からんからね それを使うことができないんです (2) C3m : 85年に私が行って聞いたんですからね 日本で日本時代に戦争負ける以 前ね こんなことやったかと言うとね そんなこと分からんと日本では 반면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조사대상자는 ン과 ナイ를 병용하고 있다. 방언형ン은 습득기간이 가장 긴 K4M에게 사용이 집중되고 있으며, 예(4)와 같이 종속절 내에서도 ン을 사용하고 있다. (3) K1M : それ(入れ歯)を入れたら 味が分からん (4) K4M : 私も あの学生を分からんですよ 分からんのに うちに 여기에서는 방언형ン을 사용하는 조사대상자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방언 형ン을 어떤 경우에 사용하고 있는가를 한국의 분석(黃2008)에서와 같이 당 시의 입력(input) 측면과 한국어의 전이에서 확인하고, 언어내적 요인으로서 공기하는 동사의 특징, 모달리티(modality)의 측면에서 방언형ン이 사용되는 조건을 살펴 보자. (a) 입력(input) 한국에서는 당시의 일본어습득상황 및 현재의 사용의식에 관한 청취조사 의 결과를 통해 ワカラン이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방언형ン의 이해능력은 조 사대상자 모두가 보존하고 있었으며 그들 모두에게 입력(input)된 것이었다. 모든 조사대상자가 방언형ン을 손아래사람에 대한 인포멀한 장면에서 사용 하는 형식이라고 의식하고 있었다. 특히 K4M이 생산적으로 ン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중학교에서는 조선인교사가 혼자밖에 없었던 것, 주2시간정도 있 었던 군사훈련(교련)과 2주정도 있었던 근로봉사에서 일본인장교로부터 욕 설이 섞인 캐쥬얼한 일본어가 입력된 것, 스스로 출력(output)의 경험이 있 었던 것 등이 영향을 끼쳤다. ン의 사용이 보이지 않는 K5P와 K8P는 학교 의 일본인교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ン의 입력량이 제한되었고 대우도가 가장 낮은 부정표현이라는 의식도 관여하여 초면의 회화에서는 좀처럼 나 오기 힘들었다(黃2008). 그럼 왜 중국의 경우는 C3m에게만 방언형ン의 사용이 보이는 것일까?
416 412 比較日本學 第32輯 ( ) 모든 조사대상자들이 일본인교사와의 접촉 경험이 있었지만, C3m은 예 (2)에서 알 수 있듯이 광복 이후 일본 방문시에 일본인과의 접촉에서 잠복 해 있던 방언형ン이 재인식되고 재생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b) 출현동사의 특징 위의 한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방언형ン은 가장 캐쥬얼한 장면에서 상대 방에게 대우의식과 문장에 대한 주의도가 저하한 경우에 나타나기 쉬운 형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출현동사의 특징을 보면 ワカル와 2拍五段동사 에 대해 대만의 사용상황과 같이 하나의 덩어리의 성질이 강한 ワカラン은 장 기간에 걸쳐 존속하기 쉬운 것이었다(黃2008). 대만노년층을 조사한 簡 (2006)도 五段동사에서 ン이 보존되기 쉽고 그 가운데에서도 ワカラン의 출 현빈도가 48 (121예 252예)라고 보고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한국노년 층(木口2004)과의 사이에 공통점이 보인다. 이번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 조사에서도 방언형ン은 ワカラン의 형태 로 장기간 보존되기 쉬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c) 모달리티적 요소 한국의 경우 강한 확인 이라는 모달리티(modality)적 요소가 부가된 ワカ ラン은 문말사와의 공기의 양상, 인칭제약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 다(黃2008). 중국의 경우도 역접의 종속절과 이유의 종속절 내에서 문맥상 강한 부정 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에 모달리티(modality)의 성격을 띠고 사용되고 있다(예1, 2). (d) 한국어의 전이 한국의 경우는 コトナイ가 한국어의 구조를 도입하여 전략적으로 사용되 었지만(예8), 중국 연변지역의 コトナイ는 모두 경험이 없음을 나타내는 기본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4예). (5) C2M : 受けたことないですね (6) C3m : 思ったことないんです (7) C5P : ないです 行ったことないです (8) K3W : 植民地化しておさめたからな そう感じがよいコトハナイだろう
417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13 (e) 기타 한편 ナイデㆍナクテ의 오류가 보이기도 한다. (9) C2M : 入学したんですけど あそこ 卒業できないで こうふくした 광복 (10) C3m : 1年生はじめは日本語をすらすらや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 学校では3年生 から日本語使わないでいけない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ます 이들 형식은 일본어습득 단계에 있는 중간언어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발 견되는 것이다. 한편 식민지일본어에서는 학습 초기단계에서 많이 관찰되는 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인 ナイ 나 사전형 ナイ 등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유아어에 많이 보이는 유사한 부정표현 ダメㆍイヤㆍ違ウㆍイイエ ㆍアマリㆍアンマリ 등은 남양군도의 식민지일본어에 적은 숫자이지만 나타 난다고 한다(Hayashi1999). 그러나 본고에서 다룬 중국노년층에서는 ダメ(7 개)ㆍイヤ(5개)ㆍアマリ(5개) 가 보이지만, 이와 같은 화용론적 부정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11) C1W : いや 僕はそうゆってないよ (5개) (12) C2M : 私を残したのは 学校がないと言うので 学校をなかったら 勉強しなけ れば だめだと言ってね (13) C4w : 小学校卒業するまではね 日本人との付き合いはあまりなかったんです (4개) 정중체 정중체에서 부정사ン의 사용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면, (a)マセン 중국37 예 : 한국27예, (b)분석적 형식인 ナイデス 중국61예, 한국51.5예, (c)부 정사ン デス 중국0예, 한국5.5예 (이하, ンデス라 한다)가 사용되고 있다. 다음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한다. (a) マセン 중국에서는 조사대상자의 일본어능력 순서와 マセン의 사용이 비례하는 형태로 보이고 있다. 이것은 C1W의 경우 (형용사문의 부정을 제외하고) 조 사문 조사에서도 모두 マセン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확인된다2). 그 리고 예(14)와 같이 자연스러운 축약형의 사용도 보인다.
418 414 比較日本學 第32輯 ( ) (14) C1W : だからはそれはもう 昔この延辺大学であれした時は ここでも見ましたけ ど それからもう見てません (15) C2M : セイユウは行ってみました ショウテイリは行ってみましたんでした (16) C3m : 中国で当時こちらで出版していませんでした (17) C3m : その時までは 幼い頭にはそんなこと 分かっていませんでした (18) C3m : 日本の料理などそんなもの 残ってはいません 家庭では (19) C3m : その人たちと一緒に 酒もちょっと飲んじゃ この日本の時の話をやること あるんですけど この歌みんな記憶していません (20) C3m : 結婚していません (21) C4w : (서일본출신 교사의 유무에 대한 질문) いません (22) C5P : ありません ありません (23) C5P : 分かりません *( )내는 문맥에 대한 설명. 한국의 경우는 중국에 비해 현대일본어에서 일반적으로 정중도가 높다고 말해지는 マセン의 사용이 많이 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일본어능력이 낮은 층을 중심으로 사용된 マセン은 모두 ワカリマセン, アリマセン, デキマセン, シマセン, スミマセン 등과 같이 특정 동사와 결합한 관용적인 정형표현이 대부분이었다(27예 가운데 25예). 중국의 경우도 C4w와 C5P에게 기본적인 부정표현이 많이 보이며(예21~23), C3m의 경우는 テイマセン의 형태로 학습 자의 일본어 습득과정에서 볼 때 어렵다고 생각되는 テイル의 결과지속의 용법도 완벽히 구사하고 있다(예16~20). 이와 같이 한국은 오히려 일본어능력이 낮은 층에서 マセン이 보였지만, 중국은 일본어접촉 및 능력과 비례하는 형태로 정중체의 부정표현 マセン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b) ナイデス <표3><표4>와 같이 중국과 한국 모두 マセン보다 새로운 형식이라고 생 각되는 ナイデス(福島ㆍ上原2003)가 2배가량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에 대해서 한국노년층일본어를 다룬 木口(2004)는 당시의 언어생 2) 조사문 조사의 항목 (한국어 생략) : ①書きませんでした ②暑くなかったです(형용사 부정문) ③静か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④中国人ではなかったです ⑤分かりません ⑥みませんでし た ⑦これ以上我慢できません ⑧忙しくてテレビを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 ⑨忙しくて手紙を書 く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⑩あの人は結婚なさっていません ⑪自動車が1台もありません ⑫ 延辺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本はございませんか(ありませんか) ⑬切符が必要ではない方はおら れませんか ⑭山田という校長先生がおられます(おられません) ⑮子どもがいません
419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15 활과 교과서에 ナイデス와 ナカッタデス는 출현하지 않으며, マセンㆍマセン デシタ가 일반적이었다고 말하면서 입력(input)에 의한 습득을 부정하고 전 자인 ナイデス는 일본어가 보존되는 가운데 분석적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지 적하고 있다3). 확실히 당시 일본어(国語) 교육이 주로 규범형을 도입하여 실시된 점, ナイデス가 マセン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만, 당시 약10%(2, , 557명)였던 일본인교사가 아니라 비모 어화자인 약90%의 조선인교사에 의해 비표준형ナイデス와 ナカッタデス가 입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安田1997ㆍ1942, 黃2008). (24) C2M : 先輩 一人もなかったですね (25) C3m : こちらの先生 日本の先生たち 一般的にそんなに残った人がないんです (26) C4w : 学生はないんですよ (27) C5P : 戦争する時 日本人はなかった なかったです ないから 日本語を 사용할 기회가 (28) C5P : 子どもがないです 조사대상자의 숫자를 고려한 전체 사용수와 일본어능력에 따른 사용분포 에서 보면 중국은 한국보다 규범적인 マセン의 보존도와 함께 비규범적인 ナイデス의 생산도도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다. (c) ンデスㆍマセンデス 한국에서 K4M(4.5예)ㆍK6W(1예)에게 ンデス가 보이지만, 이외에는 ナイ デス가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형식이다. 중국의 경우는 그 경향이 한국보다 더 강해 ンデス는 보이지 않으며, マセンデス보다 ナイデス가 자연스럽게 출 현하는 형식이다. (29) K4M あ わか わか それ よめ 読マンデスよ (30) K6W それから あれがなにか分カランデスね 3) 이와 관련하여 당시의 자료 金( )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보인다(원문을 그대 로 인용). えんぴつあるかい ナイデス ぢゃ 小刀は やっぱりナイデス これで悪いとはいはない が 内地の子供ならいくら無愛想な子でもかうはいはない ありません ございません 売 切れです お生憎さま 何んとかいふをつける 朝鮮の子供たちとてさうした言葉を知らないわ けではない 知識としては心得てゐても生活感情がそれに副はないだけである
420 416 比較日本學 第32輯 ( ) (d) ジャナイ ン이나 ノ의 삽입에 의한 ジャナイ의 사용은 상급(上級)의 상(上) 과 같 은 발화레벨이 높은 화자에게서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家村2003). 그리고 학습자에게 있어서 ジャナイ는 クナイ와 함께 분석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일 가능성이 높다(家村ㆍ迫田2001). (31) C1W : 軍隊の班長さん 僕 こういうの状況っちゅうのはあんた知ってるんじゃな いですか (확인요구) (32) C1W : いや 工場に入ったんじゃないですよ (부정) (33) C2M : みんな帰ったのじゃなくて 帰ったんじゃなくて (부정) (34) C3m : 韓国で発明したあの ん 韓国で発明した거북선 豊臣秀吉の戦争 ね それは韓国で発明したんじゃないですか (확인요구) (35) C3m : 聞いた話には 南京の大虐殺 そんなこと聞いた時には あまりやった じゃないかと そんな考える時もあります (확인요구) 위와 같이 중국의 경우 ンジャナイ의 형태가 확인요구 와 부정 의 용법 으로 일본어능력이 높은 층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상, 중국연변지역 식민지일본어의 동사부정형에 관해 스타일별로 한국 의 대조자료와 비교ㆍ분석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부정사는 ナイ가 대부분이며 모달리티의 성격을 띤 방언형ン이 사용된 것은 C3w의 ワカラン뿐이다. 이것은 습득종료 이후에 재인식된 것으로 보인 다. 또한, 한국어로부터의 전이현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b)マセン도 ナイデス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부정형식이다. ナイデス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선인교사에 의해 입력된 생산적인 것일 가능성이 있 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주로 여성화자에게만 보이던 マセン이 중국의 경우 는 성차에 관계없이 일본어능력에 비례하는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4). 중간 방언형 ンデス는 중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ンジャナイ는 확인요 구 와 부정 의 용법으로 일본어능력이 높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4) 현대일본어의 소설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福島ㆍ上原(2003)는 福島ㆍ上原(2001, 2002)의 자 연담화의 조사와 공통된 결과로 ナイデス형은 マセン형에 비해 윗사람의 입장에서 아랫사람 에게 혹은 동등한 관계의 친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발화나 술자리 등 정중도가 낮은 장면에서 많이 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차(性差)에 대해서는 소설의 경우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을 반영하여 ナイデス형이 남성에게 다용(多用)된다고 한다.
421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イ형용사의 부정형 <표5>는 イ형용사의 부정형의 사용상황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표5> イ형용사 부정형의 사용상황 (중국) C1W C2M 2 3 クナイ ジャナイ(확인요구) ジャナイ(부정) クナイデ コトナイ C3m C4w 3 3 計 C5P <표6> イ형용사 부정형의 사용상황 (한국) K1M クナイ ジャナイ(확인요구) ジャナイ(부정) クナイデ コトナイ K2M K3W K4M (ⅱ) K5P (ⅰ) K6W K7P K8P 計 *(ⅰ)少ナイㆍ行ッテミタクハナイデス는 제외. (ⅱ)ジャナイ의 축약형 ジャン 을 1예 포함. <표5><표6>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과 한국의 조사대상자 전원이 クナイ 의 생성능력을 가지고 있다(예36). 또한, 중국의 경우 ジャナイ는 한국과 같 은 비표준적인 사용(예37)은 보이지 않았으며, 모두 확인요구 의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예38). (36) C5P : あたたかくなかったです (37) K6W おばあさんたちが国語分かる人 10人だったら 一人 二人 多いジャ ナイデスよ (38) C3m : 日本の旗を韓国の旗に作るのに ちょっと良いじゃないですか 黒と赤 4.3 ナ형용사의 부정형 계속해서 ナ형용사ㆍ명사문 부정형의 사용상황을 <표7><표8>에 각각 표 시하였다.
422 418 比較日本學 第32輯 ( ) <표7> ナ형용사ㆍ명사 부정형의 사용상황 (중국) ナ형용사 ジャナイ(확인요구) ナ형용사 ジャナイ(부정) 명사 ジャナイ(확인요구) 명사 ジャナイ(부정) 명사 기타 C1W C2M C3m C4w C5P 계 <표8> ナ형용사ㆍ명사 부정형의 사용상황 (한국) K1M K2M K3W K4M K5P K6W K7P ナ형용사 ジャナイ(확인요구) ナ형용사 ジャナイ(부정) (ⅰ) 0.5 명사 ジャナイ(확인요구) 명사 ジャナイ(부정) (ⅱ) 명사 기타(ⅲ) 1 0.5 K8P 1 1 계 *(ⅰ)ジャナイデ3예ㆍデハナイ1예, (ⅱ)デハナイデス1예, (ⅲ)왼쪽에서 デナイㆍダケナイㆍデモ ナイ. 그리고 オナジクナイ와 같이 형용사형으로 활용한 예는 제외. 한국과 마찬가지로 ナ형용사ㆍ명사의 부정형은 ジャナイ가 일반적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불안정한 デナイ의 형태가 일본어능력이 낮은 층(예51ㆍ 53)에게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39) C1W : そうじゃないんですよ (40) C1W : でも 大連 瀋陽ちゅうのは私たちが住み着くそういうところじゃない ね (41) C1W : 中国人ではなかったです (42) C2M : 私がよく歌うのはあの歌じゃなくて ひな祭り という歌 (43) C2M : そうじゃなくて テイシンから新潟 (44) C2M : 静かじゃ 静かでなかった (45) C3m : 中国人じゃない (中国人ではありません 中国人ではなかったよ : 조사 문 조사에서 자기 수정) (46) C3m : そうじゃないですか (47) C3m : 静かじゃない (48) C4w : 学生でなく 働いて あの時は先生が半分くらい 半分じゃない 3分の1 ですかね 日本人 (49) C4w : 中国人でないんです (50) C4w : 静かでないんです (51) C5P : しずかなかったです
423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19 (52) C5P : 中国人でなかったな 급제되는가? (53) K7P : きれくないです 이상으로 イ형용사의 부정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조사대상자 모두 クナイ 의 생성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ジャナイ는 중국의 경우 모두 확인요구의 용 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ナ형용사ㆍ명사의 부정형은 한국과 마찬가지 로 ジャナイ가 일반적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 모두 불안정한 デナイ의 형태 와 활용의 오류가 일본어능력이 낮은 층을 중심으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 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4.4 부정형식의 사용을 통해 본 조사대상자의 유형 이상, 중국과 한국의 표준형과 방언형의 부정형식의 사용상황을 그룹별로 정리하면 <표9>와 같다. <표9> 조사대상자 그룹별 부정형식의 사용상황 (a) 표준형 형식 동사 ナイ 동사 ナクテ 동사 ナイデス 동사 マセン イ형용사 クナイ ナ형용사 ジャナイ 명사 ジャナイ CM CW CP KM KW KP (b) 방언형 형식 동사 ン 동사 ンデス CM CW CP KM KW KP * 각각 해당하는 부정형식의 모든 사용수(연어수)에 대한 각 조사대상자의 사용률이 50 이상, 25 이상 50 미만, 1 이상 25 미만, 사용이 없는 경우를 나타 낸다. 그리고 확인요구의 ジャナイ는 제외하였다. (a) 표준형은 동사 ナイㆍナイデス イ형용사 クナイ ナ형용사ㆍ명 사 ジャナイ 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424 420 比較日本學 第32輯 ( ) (b) 방언형은 중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M층에서 다소 사용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분석하면 중국과 한국 모두 M그룹에서 표준형ㆍ방언 형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비표준형의 사용은 P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방언형도 보존하면서 표준적인 부정표현의 운용도 보이는 M 층과 적은 방언형을 보존하면서 표준형도 사용하는 W층, 그리고 비표준형 의 사용률이 다소 높으며 운용이 불안정한 P층으로 나눌 수 있다. 4.5 다른 지역 식민지일본어와의 비교 마지막으로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실태를 더욱 명확히 하 기 위해 방언형ン과 표준형ナイ의 사용빈도를 동사의 유형별로 식민지일본 어를 보존하고 있는 한국(韓国), 대만(台湾), 재일코리언1세(在日), 오사카방 언화자(大阪), 한국인일본어학습자(学習者)와 비교해 본다. 해당 지역의 부 정사 사용의 상황을 표시하면 <표10>과 같다. <표10> 동사 유형별 부정사의 사용상황 五段동사 부정사 中国 韓国A 韓国B 台湾 在日 大阪 学習者 ン 2(2%) 11(10%) 29(23%) 252(54%) 111(44%) 24(77%) 1(1%) ヘン (0%) (0%) (0%) (0%) 120(48%) 3(10%) (0%) ナイ 75(98%) 104(90%) 95(77%) 211(46%) 19(8%) 4(13%) 127(99%) 一段ㆍサ変ㆍカ変동사 부정사 中国 韓国A 韓国B 台湾 在日 大阪 学習者 ン (0%) (0%) 2(3%) (0%) 42(48%) 1(7%) (0%) ヘン (0%) (0%) (0%) (0%) 17(19%) 9(60%) (0%) 80(97%) 307(100%) 29(33%) 5(33%) 168(100%) ナイ 51(100%) 100(100%) *( )내는 사용 비율. 韓国A는 黃(2008), 韓国B는 木口(2004). <표10>을 보면 재일(在日)ㆍ오사카(大阪)에서는 동사의 활용에 관계없이 ナイ와 ン 양쪽이 사용되고 있지만, 중국(中国)ㆍ한국(韓国)ㆍ대만(台湾)ㆍ학 습자(学習者)5)에서는 ン의 사용은 거의 五段동사에 제한된 것을 알 수 있다. 5) 학습자 대조데이터는 대상자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아 방언접촉의 정도를 알 수 없어 다른
425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21 한편 중국(中国)과 한국(韓国)ㆍ대만(台湾)의 차이를 보면 중국(中国)의 ン의 사용률(2 )은 한국[(韓国(A10%ㆍB23%)]ㆍ대만[台湾(54 )]에 비해 아주 낮으며 기본적으로는 ナイ(98 )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韓国)의 ン이 分かる おる やる 読む 飲む, 대만(台湾)의 ン이 いく 言う 要る 切る 探す 足る 炊く 飲む 取る 와 같이 다양한 동 사에 사용되는 점에서 두 지역은 서일본출신의 교사가 많았다는 비슷한 환 경에 있었던 반면, 중국(中国)은 일본인 네트워크가 비교적 약했다는 언어 환경이 방언형ン의 낮은 보존도와 상당히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방언형의 사용비율이 在日 大阪 台湾 韓国 中国> 学 習者 의 순서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어의 사용환경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가가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재일(在日)은 간사이권(関西圈) 에 살면서 일본어를 일상생활어로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 ナイ의 사용률이 낮다. 그리고 재일(在日)과 한국(韓国)의 중간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대만 (台湾)은 모어가 다른 화자간에 의사소통을 꾀하기 위해 (대만노년층 전체 의 약 2 를 점하는 북경어를 말할 수 없는 화자에 의해) 현재도 일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韓国)과는 사정이 다르다(簡2004). 그 밖에 한국(韓国)과 대만(台湾) 사이에서 방언형의 사용률에 차이가 발 생하는 요인으로 광복 전의 일본인교사의 비율과 두 지역의 교육방침의 차이 가 있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1940년경 대만의 공학교에서 일본인교사의 비율 은 약60 (일본인 대만인 10,774명 6,752명)이었던 것에 대해(簡2004), 한 국에서의 일본인교사의 비율은 약10 (일본인 한국인 2,827명 20,557명) 를 조금 웃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黃2008). 그리고 교 육방침이라는 점에서 대만(台湾)에서는 회화를 중심으로, 한국(韓国)에서는 읽기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정이 있다(山口1939). 결과적으로 동일선상에서 조사대상인 중국(中国)의 사용상황을 보면 중 국 동북부지역은 일본인교사의 숫자와 일본인학생 및 일본인과의 네트워크 가 적었다는 점(황2011a)에서 볼 때 동아시아지역 식민지일본어의 부정표현 은 일본어습득환경의 차이가 현재의 방언형 유지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 을 알 수 있다. 지역 자료와의 균질성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방언형의 사용이 적으나마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는 미디어를 통해 방언형에 접촉하기 쉬운 습득환경이다. 앞으로 현재의 한국인 일본어학습자의 방언형의 습득, 유지, 보존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426 422 比較日本學 第32輯 ( ) 5. 맺으며 이상으로 본고에서는 70여년 전에 일본어 습득요소가 단절된 중국 연변지 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에 나타나는 부정표현을 대상으로 제2언어보존 이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지역의 다른 식민지일본어와 대조ㆍ고찰하였다. 본고에서 밝힌 것을 방언형과 표준어형의 두 축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중국 연변지역의 조선족노년층일본어는 1945년 이전 방언형ン에 접촉 했을 가능성은 높지만, 방언형ン의 보존도는 지극히 낮다. 중국의 경 우 언어습득환경상 한국보다 방언 접촉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중체에서는 식민지일본어와의 접촉도와 비례하는 형태로 マセ ン의 보존도가 높고 ナイデス의 생산도도 높은데, 이것은 비모어화자 인 조선인교사에 의해 입력(input)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b) 조사대상자별 사용상황에서는 M층은 방언형ン이 보존 또는 잠재된 가운데 안정된 부정표현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P층에는 비표 준적인 부정표현이 다소 나타나고 있다. (c) 다른 동아시아지역의 식민지일본어와 비교하면 광복 이전의 (서일본지 역 출신) 일본인교사수와 광복 이후의 일본어 사용환경이 방언형ン의 보존도와 강한 상관관계에 있으며 在日 大阪 台湾 韓国> 中国> 学習者 의 순으로 방언형ン이 잘 보존되고 있다. (d) 방언형ン은 동사 ワカル에 후접하기 쉬운 언어내적 특징이 보인다. (e)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한국어의 분석적 통어구조와 일치하는 동사ㆍ 형용사 コトナイ 의 사용은 중국어가 L3인 언어환경에 놓여 있는 연 변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f) イ형용사의 부정형은 조사대상자 모두 クナイ의 생성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ナ형용사ㆍ명사의 부정형은 ジャナイ가 일반적이다. (g) 중국과 한국 모두 M그룹에서 표준형ㆍ방언형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비표준형의 사용은 주로 P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어 접촉과정에서 네트워크의 강약 정도가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생각 된다.
427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 (황영희) 423 <참고문헌> 김희자(2010) 중국 연변 조선족 생활문화 연구-문화콘텐츠 개발을 중심으로-, 순천향 인 문과학논총 25집, pp.5~41 황영희(2011a) 동아시아지역 식민지일본어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고찰 언어외적 요소를 중심 으로, 지속가능성연구 vol.5 No.1, 지속가능발전연구소, pp.71~101 (2011b) 동아시아 식민지일본어의 존재표현 중국연변지역과 한국의 비교, 일본언 어문화,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pp.357~374 飯 田 彬 (1942) 半 島 の 子 ら, 第 一 出 版 協 会 家 村 伸 子 (2001) 日 本 語 の 否 定 形 の 習 得 - 中 国 語 母 語 話 者 に 対 する 縦 断 的 な 発 話 調 査 に 基 づい て-, 第 二 言 語 としての 日 本 語 の 習 得 研 究 4 号, pp.63~81 家 村 伸 子 ㆍ 迫 田 久 美 子 (2001) 学 習 者 の 誤 用 を 生 み 出 す 言 語 処 理 のストラテジー(2)- 否 定 形 じゃない の 場 合 -, 広 島 大 学 日 本 語 教 育 研 究 第 11 号, 広 島 大 学 教 育 学 部 日 本 語 教 育 学 講 座, pp.43~48 大 西 雅 雄 (1944) 満 鮮 の 日 本 語 教 室, 日 本 語, 第 四 巻 第 十 二 号, 日 語 文 化 協 會, pp.20~23 (2003) 日 本 語 の 否 定 表 現 の 習 得 過 程 - 中 国 語 話 者 の 発 話 資 料 から-, 第 二 言 語 とし ての 日 本 語 の 習 得 研 究 6 号, pp.52~69 簡 月 真 (2004) 台 湾 に 残 存 する 日 本 語 の 実 態, 大 阪 大 学 博 士 論 文, BookPark (2006) 台 湾 残 存 日 本 語 に 見 られる 否 定 辞 ナイ と ン - 花 蓮 県 をフィールドに-, 日 本 語 科 学 20 pp.5~25 木 口 政 樹 (2004) 韓 国 における 残 存 日 本 語 の 摩 滅 に 関 する 研 究 - 韓 国 人 高 齢 者 コーパス の 分 析 を 通 して-, 韓 国 中 央 大 学 博 士 論 文 金 智 英 (2005) 在 日 コリアン1 世 の 否 定 表 現 の 運 用 真 田 信 治 ㆍ 生 越 直 樹 ㆍ 任 栄 哲 編, 在 日 コリア ンの 言 語 相, 和 泉 書 院, pp.141~158 金 素 雲 (1931) 朝 鮮 児 童 の 場 合, 国 語 文 化 創 刊 号 11 月, 育 英 書 院, pp.67~70 孫 春 日 (2002) 中 国 朝 鮮 族 社 会 文 化 発 展 史, 延 辺 教 育 出 版 社 陣 内 正 敬 (1996) 地 方 中 核 都 市 方 言 の 行 方 - 九 州, おうふう 黄 永 熙 (2007) 韓 国 高 年 層 に 残 存 する 旧 植 民 地 日 本 語 からみた 第 二 言 語 の 保 持 ㆍ 摩 滅 - 可 能 表 現 を 中 心 に-, 日 本 学 報 第 71 輯, 韓 国 日 本 学 会 pp.175~188 (2008) 韓 國 高 年 層 日 本 語 の 否 定 表 現 からみる 第 二 言 語 の 保 持, 阪 大 日 本 語 研 究 20, 大 阪 大 学 文 学 研 究 科, pp.119~150 福 島 悦 子 ㆍ 上 原 聡 (2001) 現 代 日 本 語 における 丁 寧 体 否 定 形 式, 東 北 大 学 留 学 生 センター 紀 要 第 5 号, pp.11~17 (2002) 言 いません としか 僕 は 言 わないです: 会 話 における 丁 寧 体 否 定 辞 の 二 形 式 南 雅 彦 ( 編 ), 言 語 学 と 日 本 語 教 育 Ⅲ, pp.269~286 (2003) 日 本 語 の 丁 寧 体 否 定 辞 二 形 式 に 関 する 通 時 的 研 究, 東 北 大 学 大 学 院 国 際 文 化 研 究 科 論 集 第 十 一 号, pp.79~89 細 谷 書 子 (2004) 大 阪 市 方 言 話 者 のスタイル 切 り 換 え, 阪 大 社 会 言 語 学 研 究 ノート 6, 大 阪 大 学 文 学 部 社 会 言 語 学 研 究 室, pp 安 田 敏 朗 (1997) 帝 国 日 本 の 言 語 編 制, 世 織 書 房 山 口 喜 一 郎 (1939) わが 国 の 外 地 における 日 本 語, 国 語 運 動, 第 三 巻 第 十 号, pp.8~15 和 田 重 則 (1940) 博 覧 会, 国 語 運 動 第 四 巻 第 一 二 号, pp.36~37
428 424 比較日本學 第32輯 ( ) Hayashi, B.(1999) Testing the regression hypothesis : the remnants of the Japanese negation system in Micronesia. In Hansen(ed.), Second language attrition in Japanese contexts.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pp 논문투고일: 논문심사일: 심사확정일: 인적 사항 성명 : (한글) 황영희, (한자) 黃永熙, (영어) Hwang, Young Hee 소속 : 한양사이버대학교 일본어학과 논문영문제목 : The negations of Japanese spoken by Korean Chinese elders in Yanbian region 주소 : ( )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한양사이버대학교 사이버1관 405호 E mail : [email protected] <국문요지> 본고는 조선족노년층 5명과 일본어모어화자와의 담화를 채집하여 식민지시기에 습득한 일본 어에 보이는 부정표현을 제2언어보존이라는 시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이것을 다른 동아시아지역 의 식민지일본어와 비교해 본 결과 사용되는 환경이 없어진 채로 70년 가까이 잠복상태에 있는 조선족노년층일본어의 부정표현에는 방언형의 보존, (비)표준형의 보존이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 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방언형ン의 보존 정도는 지극히 낮지만, 조사대상자별로 보면 그 보존 정도는 식민지일본 어와의 접촉 정도에 거의 비례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노년층일본어와 비교해 본 바 일 본인교사에 의한 입력 과 광복 후의 일본어 사용환경[재일(在日) 오사카(大阪) 대만 (台湾) 한국(韓国) > 중국(中國) 학습자(学習者)] 이 방언형ン의 보존에 강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b) 방언형ン은 전접하는 동사의 종류별로 보면 ワカル동사에서 보존되기 쉬움을 알 수 있다. 또한, 강한 부정 이라는 모달리티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 (c) 일본어접촉 및 능력에 비례하는 형태로 정중체의 부정표현マセン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이 특징인데, 한국보다 규범적인 マセン의 보존도와 비규범적인 ナイデス의 생산도가 비교 적 높다. (d) イ형용사의 부정형은 조사대상자 전원이 クナイ의 생성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 지로 ナ형용사ㆍ명사의 부정형은 ジャナイ가 일반적이다. (e) 한국의 경우 한국어의 분석적 구문구조의 전이(コトナイ) 등이 보이지만, 중국어 사용환경 에서 유지되어 온 연변지역의 경우는 한국어의 전이적 요소가 적다. (f) 중국과 한국 모두 M그룹에서 표준형ㆍ방언형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비표준형의 사용은 주 로 P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어접촉에서 네트워크의 강약 정도가 요인으로 작 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주제어: 중국연변지역, 조선족노년층일본어, 부정표현, 제2언어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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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등 록 번 호 11-1430000-001471-01 지식재산 법제도와 정책 동향 국내외 지식재산 법제도 비교 분석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Intellectual Property Legal System and Policy Trends 기초연구과제 보고서 지식재산 법제도와 정책 동향 Intellectual Property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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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棄 権 DNS: 欠 場 )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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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지석묘 6 일본 지석묘 동북아시아 지석묘 6 일본 지석묘 2011년 10월 26일 초판 1쇄 인쇄 2011년 10월 30일 초판 1쇄 발행 총괄 ㅣ 연 웅 기획자문 ㅣ 김성범,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 편집교정 ㅣ 이규훈, 정성목, 성윤길, 이은선 원고작성 ㅣ 小 池 史 哲 번역 ㅣ 이은선 사진제공 ㅣ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 발행처 디자인 펴낸곳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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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C OF KOREA------JAPAN 海 峽 圈 硏 究 第 10 號 2010. 10. 韓 日 海 峽 圈 硏 究 機 關 協 議 會 발 간 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명품들이 만들어져왔습니다. 특히 지역 명품들은 그 시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함으로써 무한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지역마다 지역자원을 활용한 명품을 만드는데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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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대회 진행 순서 제1 개 회 식 제2 발 표 제3 문화 공연 및 시상 제2회 큐슈한글교한국어변론대회 개요 목 적 실행 기관 실시 내용 ~ ~4 2 심사 기준 및 시상 3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개 회 사 오늘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의 개최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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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仲 井 健 治 先 生 の 研 究 活 動 の 再 照 明 2. - 白 湖 林 悌 を 中 心 に - 野 崎 充 彦 ( 大 阪 市 立 大 学 ) 一. はじめに 最 初 にお 詫 びすべき 幾 つかの 点 がございます まず 一 つ 目 は 私 は 韓 国 古 典 文 学 を 専 攻 しているとはい え 白 湖 林 悌 の 研 究 者 ではなく また 漢 詩 に 対 する 造 詣 も
經 營 史 學 第 20 輯 第 5 號 ( 通 卷 40 號 ) ち 得 たとはいえ 独 立 後 の 政 治 的 主 導 権 をめぐって 混 乱 が 続 いたのみなら ず その 後 勃 発 した 朝 鮮 戦 争 によって 国 土 は 荒 廃 し ようやく 経 済 再 建 に 向 かい 始 めるのは
전후 60년 한 일 기업가 활동의 비교사적 검토 경영사학 제20집 제5호 (통권40호) 2005. 12. 31. 한국경영사학회 第 15 回 國 際 學 術 大 會 : 전전 60년 한한한한한 이이이 온 기기기기 그기그 기기기 정정 基 調 演 說 - 戦 後 60 年 日 韓 企 業 者 活 動 の 比 較 史 的 検 討 - 鳥 羽 欽 一 郎 戦 後 60 年 の 日 本
韓 日 社 會 的 企 業 SYMPOSIUM 한 일 사회적기업의 전망과 과제 일시 2008.8.22(금) PM 2시 ~ 6시 장소 서울지방노동청 컨벤션룸 주최: 실업극복국민재단, 일본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 류코쿠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시게모토프로젝트 후원: 노동부 韓 日 社 會 的 企 業 SYMPOSIUM 한 일 사회적기업의 전망과 과제 일시 2008.8.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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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3. 1. 30. Story 2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3 STORY STORY 12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3 Korean Wave Story 2013 (2012년 1/4분기) 12 12 2012. 4. 9. 2 3 4 5 6 乱 世 佳 人 花 絮 合 集 梦 回 唐
POWERSHELL CONTROLLER + BATTERY Setup Guide English............................... 4 繁 體 中 文.............................. 12 한국어............................... 20 www.logitech.com/support................
초대의 글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회원여러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으스스 추위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재직 중인 회원님들께서는 입시철의 업무와 강요받는 대학 변화의 회오리 속에서, 신진 회원님들께서는 우리 학계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연구에 박
2015 年 度 秋 季 國 際 學 術 大 會 日 時 : 2015 年 11 月 7 日 ( 土 ) 11:30~20:30 場 所 : 高 麗 大 學 校 國 際 館 主 催 : 韓 國 日 本 言 語 文 化 學 會 主 管 : 韓 國 日 本 言 語 文 化 學 會 高 麗 大 學 校 GLOBAL 日 本 研 究 院 高 麗 大 學 校 BK21PLUS 中 日 言 語 文 化 敎 育
참고자료
(Invited Paper) 목 차 (Contents) 무(Akiba Moo) ( 산업사회학부 교수) 시민사회와 사회적 기업 5 Civil Society and Social Enterprise in Korea and Japan 기획연구 (Planned Papers) 배 한 동(Han Dong Bae)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북한식 개혁 개방의 현황과 전망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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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자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 재외동포교육비(홍보비) 예산을 지원받아 고베한국교육원에서 편집 인쇄하였습니다. この 冊 子 は 大 韓 民 国 教 育 科 学 技 術 部 在 外 同 胞 教 育 費 ( 弘 報 費 ) 予 算 で 神 戸 韓 国 教 育 院 が 編 集 印 刷 しました 4 발간사( 發 刊 辭 ) 사람은 죽어도 꿈은 남는다 人 は 死 んでも 夢 は 残 る
目 次 1 はじめに 1 2 問 い 合 わせをするとき 1 3 市 役 所 への 届 出 2 4 健 康 保 険 5 5 保 育 園 6 6 学 校 7 7 ごみ 8 8 犬 を 飼 うとき 9 9 火 事 救 急 救 助 10 10 防 災 11 11 主 な 公 共 施 設 15
外 国 人 のための 生 活 案 内 書 외국인을 위한 생활안내서 韓 国 語 版 [한국어판] 大 田 原 市 오오타와라시 目 次 1 はじめに 1 2 問 い 合 わせをするとき 1 3 市 役 所 への 届 出 2 4 健 康 保 険 5 5 保 育 園 6 6 学 校 7 7 ごみ 8 8 犬 を 飼 うとき 9 9 火 事 救 急 救 助 10 10 防 災 11 11 主 な 公 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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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학 연 구 론 총 제 1 집 택민국학연구원.2008.6.30. 日 本 에 있어서의 韓 國 文 學 의 傳 來 樣 相 江 戸 時 代 때부터1945 年 까지 西 岡 健 治 * 1) 序 言 Ⅰ. 江 戸 時 代 에 읽혀진 作 品 들 Ⅱ. 1868( 明 治 元 ) 年 에서 1918 年 ( 大 正 中 期 )까지 읽혀지고 翻 訳 된 作 品 들 Ⅲ. 三 一 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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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차. 東京 ( とうきょう ) はどこですか 시작하기 수업목표 초급단계에서배운기초문형과표현을활용하여간단한일본어를듣고말할수있는능력을향상시킴 특징 習 ( なら ) うより慣 ( な ) れよ 배워서알기보다경험하여익히도록하라! 훈련이완벽을만든다! 주입식수업이아닌액티브한수업 구성 시작하기 대화연습 연습문제 정리하기 ここがメイン! 시작하기 학습내용제시 포인트강의 대화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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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테이 시메이( 二 葉 亭 四 迷 ) 뜬구름( 浮 雲 ) 1 * 작가소개 겐지( 元 治 ) 원년 2월 28일 (1864년4월4일) 에도 출생 본명 하세가와 타츠노스케 ( 長 谷 川 辰 之 助 ) 필명의 유래 : くたばってしめ(ま)え 메이지 14년(1881년) 동경외국어학교 노어과 입학. 쓰보우치 쇼요 坪 内 逍 遥 와 평론 小 説 総 論 발표 1887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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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1 前 言 現 行 考 銓 制 度 一 現 行 考 銓 制 度 對 人 事 行 政 的 重 要 性 : 強 烈 建 議 考 人 事 行 政 的 同 學 們, 一 定 要 精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熟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的 好 處, 可 以 從 以 下 幾 個 角 度 來 分 析 : 相 對 重 要 程 度 高 : 現 行 考 銓 制 度 在 人 事 行 政 三 個 主 要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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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집은 발표자들의 프리젠테이션, 한글 번역본 등이 빠진 임시 자료모음입니다. 번역 등이 완료 되는대로 최종 본은 에너지정의행동 홈페이지 http://energyjustice.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elcome to No Nuke Asia Forum 2012 In the aftermath of the Fukushima accident,
Microsoft PowerPoint - KJFD Program_150617 final
第 3 回 日 韓 未 来 対 話 제3회 한일미래대화 日 韓 両 国 の 未 来 に 向 けたビジョンと 相 互 協 力 한일 양국의 미래 비전과 상호 협력 2015 年 6 月 21 日 ( 日 ) 2015년 6월 21일(일) 国 連 大 学 エリザベスローズホール 국제연합대학 엘리자베스 로즈 홀 第 3 回 日 韓 未 来 対 話 제3회 한일미래대화 主 催 者 挨 拶 日 韓
2015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2015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국제학술행사 한일관계의 과거를 넘어 미래로 일 시 : 2015. 06. 17 ~ 06. 19 장 소 : 제주도 하얏트리젠시호텔 - 주 최 - 동북아역사재단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한국국제정치학회 현대일본학회 공익재단법인 일한문화교류기금 도쿄대 한국학연구부문 일본국제정치학회 현대한국조선학회 - 후 원 - 대한민국 외교부 일본 외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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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霊 岩 郡 立 河 正 雄 美 術 館 Yeongam Ha Jung Woong Museum of Art 霊 岩 郡 立 河 正 雄 美 術 館 58434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로 96 全 南 霊 岩 郡 郡 西 面 鳩 林 路 96 T.061)470-6841~3 F.061)470-6844 http://haart.yeongam.go.kr 마음의 여유와
9정부의 답변은 횡설수설하여 이재민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만들었고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일반국민들까지도 분개했다. 政 府 の 答 弁 は 場 当 たり 的 で/ 二 転 三 転 し 被 災 者 たちは 怒 り 心 頭 に 達 し 直 接 被 害 を 受 けなかった 国 民 たちもかんか
通 訳 案 内 士 試 験 道 場 韓 国 語 模 試 1 氏 名 問 題 1 次 の 韓 国 語 を 和 訳 しなさい 1권총과 시퍼런 칼을 찬 도둑의 일당이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때로는 염탐하면서 보물을 훔쳐 달아나는 작품. 拳 銃 や 青 みがかった 刀 を 身 につけた 泥 棒 一 味 が 時 にはこっそり 人 目 をくらませてお 宝 を 頂 戴 する ルパン 三 世 2흥미에
제13과 打ち上げ
2016 일본어기초1 제13과 打 ち 上 げ 会 ーが(を)V-たい :(희망표현) -을/를...(하)고 싶다 ーをV-たがる :-을/를...고 싶어하다 ーながら : -하면서 ーけど: -한데, -지만 いかがですか : 어떠신지요? 13 課 (じゅうさんか)13과 打 (う)ち 上 (あ)げ 会 (かい)종강파티 1 学 期 間 (がっきかん)한 학기
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본 생활은 어떠십니까?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생활은 언어와 관습에도 차이가 있어 많은 불안과 고민도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치카와시에서는 여러분들의 불안과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이치카와시 생활 편리장 이치카와시 韓 国 語 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본 생활은 어떠십니까?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생활은 언어와 관습에도 차이가 있어 많은 불안과 고민도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치카와시에서는 여러분들의 불안과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일상생활을 보다 즐겁고 쾌적하게 보내실 수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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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2002 年 2 月 昌 原 大 學 校 大 學 院 音 樂 科 安 明 基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Sonata for B-flat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見 積 書
2 한국일본문화학회 회 장 인 사 한국일본문화학회 회원 여러분께 한국일본문화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높고 파란 하늘이 성 큼 다가와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합니다. 한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10월은 너무도 아름답습 니다. 파아란 하늘, 빠알간 단풍잎, 노오란 은행잎을 맘껏 즐기고
台 東 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여러분께 타 이 토 본 책자에는 台 東 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여러분과 관련이 깊은 구청의 업무나 시설 등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본 책자를 곁에 두고 활용해 주십시오. 台 東 区 で 暮 らす 外 国 人 の 皆 様 へ 本 冊 子 は 台 東
외국인을 위한 생활수첩 外 国 人 のための 生 活 便 利 帳 (ハングル 版 ) 台 東 구에서의 일상생활 (한글판) 台 東 区 台 東 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여러분께 타 이 토 본 책자에는 台 東 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여러분과 관련이 깊은 구청의 업무나 시설 등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본 책자를 곁에 두고 활용해 주십시오. 台 東 区 で 暮 らす 外 国 人 の
16 經 學 研 究 集 刊 特 刊 一 墓 誌 銘 等 創 作 於 高 麗 時 代 與 朝 鮮 朝 時 代, 此 是 實 用 之 文 而 有 藝 術 上 之 美. 相 當 分 量 之 碑 誌 類 在 於 個 人 文 集. 夢 遊 錄 異 於 所 謂 << 九 雲 夢 >> 等 夢 字 類 小 說.
經 學 研 究 集 刊 特 刊 一 2009 年 12 月 頁 15~36 高 雄 師 範 大 學 經 學 研 究 所 15 韓 國 漢 文 學 硏 究 之 最 近 傾 向 김동협 金 東 協 教 授 / Professor Kim Donghyub 摘 要 我 想 對 於 韓 國 漢 文 學 最 初 之 專 門 著 書 是 金 台 俊 之 >. 此 冊 刊 行 於
2014년도 만주학회 추계 국제학술회의 관전기( 貫 戰 期 ) 동아시아와 만주 East Asia and Manchuria in Trans-war Period 滿 洲 - 일 정 - 일시: 2014년 9월 27일(토), 09:30-18:00 장소: 국민대학교 경상관 301호 학술대회장 주관: 만주학회,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후원: 동북아역사재단, 국민대학교,
산업현장 직무능력수준
1 노동시장분석 산업현장 직무능력수준 류 직 능 수 준 특급기술자(7수준) 고급기술자(6수준) 중급기술자(5수준) 초급기술자(4수준) 숙련기술자(3수준) 세 분 조경설계 조경설계 총괄책임자 조경설계 실무책임자 조경설계 실무관리자 조경설계 실무자 조경설계 실무보조자 조경시공 조경시공 총괄책임자 조경시공 실무책임자 조경시공 실무관리자 조경시공 실무자 조경시공 실무보조자
건강증진 시범보고서 운영을 위한 기술지원 연구
짧활 康 t합샤훌 示 範 띔 健 所 運 營 응 위한 技 術 支 援 웹 JE - 示 範 保 健 所 模 型 開 發 을 中 心 으로l' 鍾 和 李 順 英 鄭 基 뽑 編 著 韓 國 띔 健 社 會 댐 究 院 머 리 말 美 國 이나 日 本 등 先 進 國 의 경우 이미 1970년대 부터 人 口 의 高 敵 化 와 生 活 樣 式 의 變 化 에 기인한 成 人 病 증가와 이에
대국민호소문 원문 http://youtu.be/gj39vlgqqrc 현장을 방문코자 하였습니다. 심지어 민간잠수부를 동행하여 자원을 요청하였지만 해경에서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습니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고 난리를 쳐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자로님을 분석해봅니다. 굿모닝대한민국 거짓이라는 자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34026 7 자로2 (수정이막힘) 추가자료 올립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34028
한국일어일문학회 2013 년춘계국제학술대회 일시 : 2013 년 4 월 20 일 ( 토 ) 12:30-20:00 장소 : 인하대학교문과대학 (5 호관 ) < 국제심포지엄주제 > 일본어교육의변화와비전 の とビジョン 주최 : 한국일어일문학회 주관 : 인하대학교일본언어문화전
한국일어일문학회 2013 년춘계국제학술대회 일시 : 2013 년 4 월 20 일 ( 토 ) 12:30-20:00 장소 : 인하대학교문과대학 (5 호관 ) < 주제 > 주최 : 한국일어일문학회 주관 : 인하대학교일본언어문화전공 후원 : 한국연구재단, 인하대학교, 인하대인문과학연구소 韓國日語日文學會 한국일어일문학회 2013 년춘계국제학술대회 < 차례 > 일시 :
國 統 調 9 0-1 2-1 0 7 南 北 韓 社 會 次 化 力 量 綜 출 評 價 統 院 調 査 硏 究 室 책 을 내 면 서 南 北 韓 이 分 斷 以 後 각기 相 反 된 政 治 理 念 과 政 治. 經 濟 的 制 度 에 토대를 둔 體 制 成 立 으로 相 異 한 社 會 文 化 를 形 成 해온 지도 벌써 4 5 年 이 지 났다. 이 기간동안 南 과 北 의 社 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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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조선통신사, 왜 일본에 갔을까?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 (한국어 자료3 (일본어 자료11 일본에서의 조선통신사의 족적 나카오 히로시 (조선통신사유네스코기록유산 일본학술위원회 위원장 (한국어 자료21 (일본어 자료29 次 < 基 調 講 演 > 朝 鮮 通 信 使 はなぜ 本 に ったのか 孫 承 喆 ソンスンチョル ( 江 原 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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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기서 朝 鮮 思 想 通 信 이 식민본국과 피식민지 사이에 놓여 있는 재조선일본인의 어떤 존재론적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민본국과 피식민지의 Contact Zone 에 위치한 재조선일본인들은 조선이라는 장소를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기
식민지의 목소리 - 朝 鮮 思 想 通 信 社 刊, 朝 鮮 及 朝 鮮 民 族 (1927)을 중심으로 鄭 鍾 賢 ( 成 均 館 大 ) 1. 伊 藤 韓 堂 과 朝 鮮 思 想 通 信 伊 藤 韓 堂 이 발간한 朝 鮮 思 想 通 信 은 1925 년에 발행을 시작하여 1943 년 그가 죽은 직후에 폐간될 때까지 대략 18 년 동안 간행된 조선문을 번역한 일본어 신문이다.
02 다문화 포커스 多 文 化 フォーカス 2015년 2월 10일 (월간) 제59호 私 たちはインドネシアの 文 化 使 節 団 우린 인도네시아 문화 사절단 伝 統 舞 踊 を 伝 播 する スリカンディ インドネシア 전통 춤 전파하는 스리깐디 인도네시아 えた これに 加 え ス
2015 2 www.dasarangnews.com Wanted dasarang 032)881-9441 ビョルクデ 仁 川 観 光 の 星 となる 별그대 인천관광의 별이 된다 Photo News 인천시는 올해 중국 관광객(요우커) 50만 명의 해외관광객과 3만 명의 국내 관광객을 유치하는 전략을 세웠다. 오는 10월 송도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프레지던트컵 골프
238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3권 생각해야 한다는 제안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貫 井 正 之 씨는 豊 臣 秀 吉 의 대외적 인 정복의도 전반을 검토하고 책 이름에 海 外 侵 略 이라는 문구를 채택했으며( 豊 臣 政 権 의 海 外 侵 略 과 朝 鮮 義 兵
文 祿 慶 長 의 役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 237 文 祿 慶 長 의 役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 나카노 히토시( 中 野 等 ) 머리말 Ⅰ. 근세 전기 일본의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亂 )에 대한 위치 설정 Ⅱ. 근세 후기 일본의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亂 )에 대한 위치 설정 Ⅲ. 근대 일본의 성립과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국외통신원소식_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둘러싼 논점(문혜정).hwp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둘러싼 논점 중국 화동정법대학 법학 박사과정 문혜정 일본 헌법의 공포 원본. 국무 대신의 부서와 전문=국립 공문서관 소장 자료출처 : 毎 日 新 聞 http://mainichi.jp/articles/20160503/k00/00e/010/121000c 들어가며 일본 참의원 선거 1) 가 다가오는 2016년 7월 10일 실시될 예정이다. 금번
본 자료집은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포털(www.gjhr.go.kr)과 5 18기념재단 세계인권도시포럼 홈페이지(whrcf.518.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ll materials of this book are posted on both homepage of Demo
본 자료집은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포털(www.gjhr.go.kr)과 5 18기념재단 세계인권도시포럼 홈페이지(whrcf.518.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ll materials of this book are posted on both homepag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Portal of Gwangju Metropol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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低 所 得 偏 父 母 家 族 의 生 活 實 態 와 政 策 課 題 金 美 淑 朴 敏 妌 李 尙 憲 洪 碩 杓 趙 炳 恩 元 永 憙 韓 國 保 健 社 會 硏 究 院 머 리 말 배우자의 사별, 별거, 이혼 등으로 초래되는 偏 父 母 家 族 은 産 業 化 의 진전에 따른 개인주의 팽배로 이혼이 증가하였고 經 濟 危 機 로 인한 가 족해체가 확산되어 최근 증가 추세에
큰 제목은 16
일본의 2000년대 의료보험제도 개혁과 일본형 복지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조 은 일본의 2000년대 의료보험제도 개혁과 일본형 복지 지도교수 류석춘 이 논문을 석사 학위논문으로 제출함 2013년 12월 일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조 은 조 은의 석사 학위논문으로 인준함 심사위원 인 심사위원 인 심사위원 인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3년 12월
Seikatsu Guide Book
生 活 ガイドブック 생활 가이드북 日 進 市 役 所 닛신시청 はじめに 外 国 から 希 望 と 不 安 を 持 って 日 本 へやってきた 外 国 人 の 皆 さんは 祖 国 と 違 う 言 葉 や 生 活 習 慣 文 化 な ど 何 かと 戸 惑 いを 感 じられることが 多 いと 思 います この 生 活 ガイドブック は 皆 さんが 日 進 市 で 安 心 して 暮 らしていただくため
세계
111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공범과 신분 규정에 관한 검토 이 정 하*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현행 형법상 공범과 신분 규정 1. 신분의 의의 및 신분범 2. 현행 형법 제33조의 해석 Ⅲ. 개정안 제35조의 공범과 신분 규정 1. 개정안의 내용 2. 개정안에 대한 검토 Ⅳ. 마치며 Ⅰ. 들어가며 * 행위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춘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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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LETTER : 300-150 31-1 201 [email protected] : 2 한국일본문화학회 회 장 인 사 한국일본문화학회 회원 여러분께 한국일본문화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창밖에는 노란 개나리. 그리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많은 꽃들이 피어 있고, 화사하게 핀 벚꽃들이 바람결에 꽃잎을 날리며 봄의 향연이 한창입니다. 여러 회원님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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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역사와 법* 60) 조시현**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개 Ⅲ.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법 적용의 의미 -역사와 법의 관계 1. 법적 책임의 전제로서의 사실에 대한 규범적 평가 2. 법을 둘러싼 진실규명의 필요성 3. 연속된 법의식의 회복과 미래 -피해자의 권리와 공동행동원칙의 정립 4. 국가책임의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