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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조사목적 본조사는전국민을대상으로대통령국정수행지지도, 정당지지도등을 파악하여, 국민여론을파악하는기초자료수집에그목적을둠. Ⅱ.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거주만 19세이상성인남녀 표본수 총 1,035 명조사후, 지역, 성, 연령별사후보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최대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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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송승종길병옥, ' 군용무인기개발의역사와그전략적함의에대한연구,' 군사 제 97 호, ) 최근공개된자료에따르면주한미군은기간중 268 회의무인기비행을수행한것으로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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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차

12 December 소비자의날안전점검의날 (273 차 ) 무역의날 대설 ( 大雪 )

세월호사건을통해서본한국사회의위기에대한성찰 79 세월호사건을통해서본한국사회의위기에대한성찰 * 박찬구 ** 핵심어 * 이글은 한국사회의위기에대한윤리적성찰 - 세월호사건을중심으로 라는제목으로 <2015 년한국윤리학회하계학술대회 >( ) 에서발표했던논문을수정보

1. 조사설계 조사대상 2017 년 2 월현재,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표본의크기 조사방법 1,021 명 ( 가중전 1,021 명, 가중후 1,000 명 ) - 가중치를 1,000 명기준으로부여했으나, 보도시표본크기는 1,021 명으로보도해야함. 구조화된설문지를이용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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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신자유주의의환상과현실 지주형 *3) 이글은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과그들을지지하는시민행동의정치화를통해우리사회의신자유주의화와그한계를살펴본다. 1993년에발생한서해훼리호참사와 2014년에발생한세월호참사는유사한측면이많지만서해훼리호참사와달리세월호참사는예외적으로정치화되었다. 이는많은부분세월호참사와서해훼리호참사의사고처리및수습과정에서의차이때문이었다. 세월호참사는서해훼리호와달리희생자의낮은연령, 선장과선원의무책임한도주, 무능한실종자수색작업, 국가의정치적책임회피, 피해자가족들과사회와의소통곤란등을특징으로했다. 이러한차이는많은부분우연한차이가아니라, 1993년과 2014년사이에일어난한국사회의구조적변화, 즉신자유주의화에기인한다. 세월호참사는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된대한민국의환상을깨고, 이윤을위해개개인의생명을방치하는신자유주의의참혹한현실을드러냈다. 세월호희생자가족과시민사회가예외적으로정치화되고반신자유주의투쟁에나서게된것은이러한충격적인현실에대한인식을통해서였다. 이와같은세월호참사의정치화는자본주의의모순에대한신자유주의적관리의한계를드러낸다. * 경남대학교조교수 사회학과 pepemoraz@gmail.com 14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1. 서론 이글은 2014년 4월 16일의세월호참사를통해한국사회의현실을읽으려고한다. 우리는이미문민정부에서서해훼리호침몰, 대구가스폭발, 성수대교붕괴, 상품백화점붕괴와같은, 압축성장 의결과로서의이른바 후진국형 참사를경험한바있다. 아이러니는그로부터 20여년후, 지난정부의선전에따르면 국격 이높은 선진국 이되었다는현재에도세월호침몰을비롯해, 경주마우나리조트체육관천정붕괴참사, 판교환풍구붕괴참사와같이과거와유사한, 안전과관련된참사들이반복되고있다는것이다. 어떤측면에서보면현재의참사들은 20년전의참사와동일한원인에의해반복되고있다. 현재우리사회는과거와마찬가지로여전히이윤동기가지배하는사회이며오랫동안한국경제를지배했던압축성장의잔재로부터완전히벗어나지도못한상태이다. 언론에서지적하듯이국민의안전의식도그리높지못한것이사실이다. 그러나그렇다고현재의참사를단순히과거의회귀와연장으로이해할수는없다. 왜냐하면역사는결코똑같이반복되지않기때문이다. 이글은세월호참사의보편적성격보다는특수성에주목한다. 세월호참사는다른참사와구별되는특징이있다. 예를들면세월호침몰과매우흡사한 1993년의서해훼리호침몰사건은현재와같은정도의사회적, 정치적반향과파장을일으키지못했다. 물론이러한사고들도분명히그리고합당히정치적이슈가되지만 사고공화국 이라불릴정도로빈번히안전사고를겪는한국에서제도정치권과시민사회를뒤흔들정도로재해 재난사고가심각하게정치화되는경우란매우드물다고할수있다. 그럼에도세월호참사는사회적으로크나큰충격을주면서한동안거의모든다른이슈들을덮을정도로매우중요한정치사회적이슈이자논쟁의대상이되었다. 1) 그와동시에세월호침몰생존자, 사망자, 실종자의가족들은, 대개경제적보상에대한요구에집중하는다른참사의유가 1) 시사저널 의설문조사에따르면세월호침몰은 IMF 외환위기를제치고 1945년광복이후한국에가장큰영향을미친사건 5위에오르기까지했다 ( 시사저널, 2014.9.4).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15

족들과는대조적으로, 진상규명을위한세월호특별법제정운동을통해보다적극적인 정치적 운동주체로변모했다. 그렇다면서해훼리호침몰과같은다른재난사고와달리세월호참사가이렇게예외적으로심각한정치적문제로발전한까닭은무엇일까? 다시말하면무엇때문에유가족들과수많은시민들이단순한애도와경제적배상에대한요구를넘어정치적으로분노하고행동하게되었을까? 하지만필자가이러한질문을던지는까닭은세월호참사의전모를밝히거나세월호유가족의시위와요구의전개및그에대한사회적지지의확산을낳은사회운동의동학을밝히데있지않다. 그것은오히려서해훼리호침몰등다른참사들과구별되는세월호참사의예외적정치화로부터현재우리사회의좌표를읽는데있다. 세월호참사의예외적인정치화는상당부분그동안우리사회가겪었던매우심대한질적인변화또는퇴보에기인하는것으로보인다. 유례없는형태의사회적분노와정치적행동이일어나지않을수없었던것은바로그때문이다. 이러한목적을위해이글은먼저서해훼리호참사와세월호참사의원인, 전개, 그리고수습과정을비교함으로써세월호참사와수습과정의역사적특수성을밝힌다. 다음으로이글은서해훼리호참사와대비되는세월호참사의특수성은상당부분 산업화, 선진화, 민주화 등으로포장된한국사회이면에존재하는신자유주의적현실에기인한다는것을보일것이다. 그리고이러한현실에대한 ( 뒤늦은 ) 인식을바탕으로세월호희생자유가족과그들을지지하는시민들이세월호참사라는재난사고를예외적으로정치화하게되었다는것을보일것이다. 끝으로이글은세월호참사와그것의정치화가자본주의의모순에대한신자유주의적관리의한계를드러내준다고주장할것이다. 2. 서해훼리호와세월호 : 1993 년과 2014 년 1993년 10월 10일오전 10시 10분, 초속 15~18m의바람이불고 3~4m 높이의파도가치는악천후를견디지못하고회항하던전북부안군위도발서해훼리호는우측으로회전중좌측에서몰아친높은파도에복원력을잃고 16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전복되어순식간에침몰했다. 구명조끼를입을시간도없을정도로급속히침몰했으나근처에서조업중이던어선 5~6척이몰려와우선 40여명을구조했고이후해경과해군및기타민간어선등이투입되어같은날 22시까지 70명의생존자를구조했다. 11월 3일까지 292명의시신을인양하여탑승자는총 362명으로밝혀졌다 ( 한겨레, 1993.10.11; 경향신문, 1993.10.11, 1993.11.3). 비교적빨리사건이마무리된것은선체가빨리인양되고실종자수습도조기에완료되었기때문이다. 서해훼리호침몰의직접원인으로는정원 (221명) 대비 141명이나초과한승선에따른무게중심이동과복원력상실, 승객의요구에의한악천후에서의무리한운항, 떠내려온어망에걸린스크루의정지, 화물과적과적재불균형, 항해사부재와승무원부족등이지적되었다. 가장큰원인으로지목된초과승선과악천후운항을초래한요인으로는국가의보조급지급거부에따른비용압박으로인한운항횟수단축 (1일 3회에서 1회왕복으로단축 ) 과위험항로운행, 당국의승객정원증원허가등이지적되었다. 또한화물과적의원인으로해운항만청이만재흘수선을적정치보다높게책정한것도지적되었다. 한편참사가커진원인으로는구명보트가 1대밖에제대로작동하지않았던것, 그리고기상악화로선장이승객들에게선실내에있으라고지시했던것이지적되었다 ( 동아일보, 1993.10.11, 1993.10.12; 경향신문, 1993.10.11, 1994.2.18; 한겨레, 1993.10.11, 1993.10.12, 1993.10.19, 1993.12.2; 해맑은뉴스, 2007.10.9). 간단히말해서해훼리호참사는국가의관리감독부실과선박업체의위험한비용감축및이윤추구가결합되어발생한사건이었다. 한편사건초기도주한것으로오인되어지명수배령이내려졌던선장, 기관장, 갑판장은모두선내에서사체로발견되었다. 조타실뒤편통신실에서발견된이들은사고당시긴급구조요청을보내려고했으나배가워낙순식간에침몰해탈출하지못하고사망한것으로밝혀졌다 ( 동아일보, 1993.10.16; 연합뉴스, 2014.4.18). 김영삼당시대통령은사고이틀뒤인 10월 12일사고현장과전북대희생자분향소를방문해유가족을위로하고 국민께진심으로죄송하다 며머리를숙였고, 사고 9일째인 10월 18일교통부장관, 해운항만청장등고위공무원을해임하고대국민사과문을통해 대통령으로서책임을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17

통감한다 고거듭사과를했다. 사건초기유가족 500여명은대책위원회를구성하고당국의안일한사태수습태도로사체인양이늦어지고있다며밤늦게까지항의농성을했다. 전경 4개중대가배치되었지만유가족스스로감정을진정시켜큰충돌이일어나지는않았다 ( 동아일보, 1993.10.12; 한겨레, 1993.10.13; 매일경제, 1993.10.19; 경향신문, 2014.4.24; 국민TV, 2014.4.29.). 서해훼리호참사는세월호참사못지않은대형사건이었지만사고처리에대해크나큰사회적저항을촉발하지않고비교적조용하게넘어갔다. 희생자유가족이국가배상을요구하며잠시농성을벌였지만사회적으로크게이슈화되지도않고보상문제도비교적쉽게해결되었다 ( 한겨레, 1994.1.9; 경향신문, 1994.2.3). 즉사건에대한정치적수습은무난했고정부의정당성은큰타격을입지않았다. 당시는김영삼정부의집권초기로민주화에대한기대덕분에, 아시아나항공기추락과같은잇따른사고와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따른쌀수입개방발표에도불구하고정부의개혁정책에대한지지도는비교적높게유지되었다. 하지만이와대조적으로비슷한규모의희생자를낸세월호참사는서해훼리호와달리사회적으로훨씬더큰충격을주었고, 정부의정치적정당성에흠집을내면서, 주요한정치적갈등의이슈로등장했다. 세월호특별법제정을위해서명한사람들의숫자는 600만명이넘었고합의가이뤄진 11월초까지청와대앞, 광화문앞, 국회등에서유민아빠김영오씨의단식투쟁을비롯해세월호가족대책위의진상규명과세월호특별법제정을위한투쟁이계속되었다. 세월호침몰은서해훼리호와무엇이달랐기에이러한사회적, 정치적반향을일으켰을까? 그리고그것은무엇을의미할까? 먼저세월호와서해훼리호의유사점부터찾아보자. 세월호와서해훼리호의침몰원인과사망자규모는엇비슷하다. 세월호또한안개가자욱하게낀악천후에서인천항을출발했으며 2014년 4월 16일오전 8시 52분전남진도군병풍도북방맹골수도에서항로를변경하던중갑자기배가좌현으로 30도가량기울면서끝내침몰했다. 구명장비가제대로작동하지않았던서해훼리호처럼세월호도구명뗏목이거의제대로작동하지않았다. 사망자수는비슷하지만생존자수는세월호가오히려더많다. 정부가실종자수색포기와선체인양을선언한 2014년 11월 11일을기준으로할때세월호침몰사고로사망한이가 295명, 18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실종된이는 9명이며구조된이는 172명이다. 사고의원인또한매우유사하다. 정부의느슨한관리감독아래에서비용문제로상습과적을일삼았던서해훼리호처럼, 세월호와그운영사인청해진해운도이윤을위해불법을저질렀고정부는마땅히해야할규제와감시의무를게을리했다. 무엇이세월호침몰의직접적계기가된급변침을초래했는지는아직정확하게밝혀지지않았지만, 선박회사에이익을챙겨주기위해행해진여객선및노후선박안전점검기준완화, 선박연령기준완화 (20년 30년 ), 선장의조종지휘대행조항신설등의규제완화가일조한것으로생각된다. 또한배가복원력을상실하고기울게된까닭으로는여객선차량적재기준완화, 무게중심을높인배의증개축, 화물과적, 2) 과적을가리기위한평형수감소, 컨테이너화물고박불량, 선원에대한안전교육및해양사고훈련미실시등돈벌이를위한해운사의위험한선박운항이지적되고있다. 게다가이러한위험천만한운항을용인한것은해양수산부와해경의선박개조승인, 해피아 ( 해수부마피아, 즉해수부출신인사 ) 들이지배하는한국선급의부실한안전검사등감독기관의부실한여객선감독이라는것이드러났다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 이하민변 ), 2014: 35~80, 103~116]. 이렇게경제적인동기와맞물린규제완화및규제를회피한불법운행등은사실 인재 ( 人災 ) 라불리는다른참사들에서도흔히발견되는것들이다. 세월호와서해훼리호모두민간해운업체의무리한선박운항과그것을감시하기는커녕안전하지못한운행을방치하거나유도한국가에그책임이분명히있었다. 하지만참사의규모나안전을무시한운행등사고원인에서의표면적인유사점을제외하면세월호와서해훼리호침몰은상당히큰차이가있다. 우선희생자의구성이다르다. 서해훼리호와달리세월호의경우희생자는대부분학생들이었다. 제주도수학여행을위해세월호에탑승한안산단원고등학교 2학년학생 325명중 75명만이구조되고 250명이사망하거나실종되었던 2) 세월호는인천항출발당시승객 476 명 ( 잠정추정치 ) 외에도차량 180 대, 화물 1,157톤이실렸으며차량과화물, 승객의체중을모두합하면적재한도를초과하는것으로계산된다 ( 머니투데이, 2014.4.22.; 파이낸셜뉴스, 2014.4.18).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19

것이다. 단원고인솔교사 14명을제외한일반인승객은 104명중 71명이구조되어약 69% 의생존율을보였다. 3) 이와달리단원고학생들의생존율은 23% 에불과했다. 전체희생자중에약 85% 가단원고학생들이었다. 일반인들과달리이들대부분은세월호가완전히침몰할지경에이르기까지객실에 현재위치에서절대이동하지마시고대기해주시기바랍니다 라는선내방송을그대로믿고따랐던것이다 ( 민변, 2014: 29~30). 성숙한시민 이라는 담론을통한자기규율 에따른결과는죽음이었다 ( 홍찬숙, 2014: 56). 탈출한아이들은대부분선내방송을따르지않거나객실에머물지않았던아이들이었다. 하지만더큰차이는사고이후의대처및수습과정에서나타난다. 우선서해훼리호와세월호선장및승무원의대처에있어차이가두드러진다. 가만히있으라 는선내방송을지시한것은이준석세월호선장이었다. 서해훼리호에서도선장은침몰전에 한쪽으로몰리면배가전복되니구명복을입고골고루앉아달라 고방송했다 ( 경향신문, 2014.4.27). 하지만그는 ( 그가원했든원하지않았든 ) 끝까지책무를다하고주검으로발견되었다. 이와달리세월호선장과선원들은대피와구조에충분한시간이있었음에도 가만히있으라 는방송을계속하면서승객들을내버려두고구조하러온해경경비정에제일먼저올라타탈출했다. 순식간에침몰한서해훼리호의경우와달리세월호의경우에는적절한조치만취했다면승객들모두또는적어도대다수가구조될수있었다는인식이지배적이다. 배가기울기는했지만처음부터기어오르지못할정도는아니었기때문에선장과선원들이승객들에게구명조끼를입히고갑판위로대피시켰다면쉽게구조할수있었을것이다. 4) 그러나그럼에도그들은필요한조치를하지않았고그결과세월호침몰은서해훼리호를능가하는참사로이어졌다. 그들이이렇게무책임했던것은비정규직이었기때문이라는해석이있다. 월급 270만원에 1년계약직이었던선장뿐만아니라갑판부와기관부선원 3) 세월호에탑승한화물차기사들은처음부터안내방송을믿지않고탈출해 32명중 31명이살아남았다 (KBS 뉴스9, 2014.4.26). 4) 세월호침몰현장에서구조작업에동참했던어부들은세월호선장이대처를잘해승객들이뛰어내리기만했다면모두구할수있었을것이라고입을모아증언했다 ( 노컷뉴스, 2014.4.24). 20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17명가운데 12명이 4개월에서 12개월짜리단기계약직이었고임금도다른해운사에비해 20~30퍼센트정도적었다. 이에따라선원들의높은소속감과책임감을기대하기어려웠으며, 게다가그들은제대로된안전교육과해양사고훈련도받지못한상태였다 ( 민변, 2014: 27, 155~160). 5) 안내방송을담당한승무원은선박사고시의탈출요령에대한지식이없었고, 9시 30분경선장과다른선원들이탈출하여더이상지시가없었는데도고지식하게배가 80~90도로기운 10시경까지대기하라는방송을계속해참사를키웠다 ( 서울신문, 2014.5.10.). 6) 다음으로구조과정에서해경의모습과역할도차이가난다. 물론두경우모두에해경은그리바람직한모습을보이지않았고똑같이유가족으로부터비난을받았다. 서해훼리호사건에서도해경은늑장출동해 1시간만에야현장에도착했다 ( 한겨레, 1993.10.12). 세월호의경우에도해경의대응은느릿했다. 세월호조난신고를접수한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 (VTS) 에서관제에소홀하던진도 VTS로연락해세월호와처음교신이이뤄질때까지 10분이넘게흘렀던것이다 ( 민변, 2014: 17~19). 그러나서해훼리호는워낙순식간에침몰한데다가해경구조대가현장에도착했을때는어떻든이미배가완전히침몰한후라그만큼할수있는것이없었고애초에구조작업에기대하거나책임을물을만한것이그리많지않았다 ( 경향신문, 1993.10.11). 반면세월호의경우는아직침몰하지도않고구조시간이충분히있는상태에서구조대가도착했으며이상황은나중에언론을통해영상으로중계까지되었다. 하지만기대와달리현장에도착한해경의구조작업은매우소극적이었다. 오전 9시 35분현장에제일먼저도착한목포해경소속 123정은승객들이오가는출입구가있는선미쪽이아니라선장실과조타실로연결된출구가있는선수쪽으로가서선원들을먼저구조했다. 그리고스스로빠져나온승객들만구조했을뿐선내진입이나승객퇴선방송등적극적인구호조치를취하지않았다 ( 민변, 5) 청해진해운은 2013년선원교육비용으로 54만 1,000원을썼다 (YTN, 2014.4.20). 6) 이밖에청해진해운은사고당시선원들과수차례통화를했지만승객퇴선명령을내리지않은것으로의심된다. 보험금을타기위해서회사과실로인한사고라는것을숨겨야되었기때문이라는의혹이있다 ( 프레시안, 2014.5.4).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21

2014: 128~135). 해경은승객절반이상이안에갇혀있다는것을알고있으면서도유리창조차깨지않고무책임하고도무기력하게대처했다. ( 검찰에따르면 ) 선내에진입해승객을구조할수있었던 47분의시간은그렇게헛되게지나갔다 (SBS뉴스, 2014.4.28; 연합뉴스, 2014.5.18; 경향신문, 2014.5.11). 그뿐만아니라처음에해경은승객구조를위해접근하는어선들을막기까지했다. 해경은침몰하는세월호안에갇힌승객들중단한명도구해내지못했다. 세월호희생자가족들은침몰후에도선내에남아있을지모르는에어포켓에실낱같은희망을걸었다. 하지만, 실제로생존자구조가가능했든불가능했든, 그리고근무태만이든무능이든해경은사고당일부터다음날까지실질적으로아무런구조작업도진행하지않았다. 정부는모든수단을다동원한다고이야기했지만실제로사고첫날수중수색시간은 53분에불과했다. 잠수사또한가용자원 182명의 9% 에불과한 16명을투입했을뿐이다 ( 뉴스타파, 2014.4.21, 2014.7.1). 그것이객관적으로가능한것이었든불가능한것이었든세월호실종자가족들의희망과다르게해경은세월호완전침몰후 72시간이라는 생존가능시간 동안선내로부터단 1명의목숨은커녕단 1구의사체도건져내지못했다. 7) 결국불가항력적인급속한침몰로구조작업의여지가별로없었다고인정된서해훼리호의경우와달리, 세월호침몰사고는선장과선원의책임방기와선박사고대처미흡, 그리고해경의소극적인구조작업으로인명구조에결정적인골든타임을놓치면서수많은희생자를내고말았다. 한논평가에따르면이는참사가아니라 참살 이었다 ( 고민택, 2014: 91). 이후사고수습과정에서도서해훼리호와세월호의차이는매우크다. 희생자수색과인양을일찍종료한서해훼리호와달리정부의세월호희생자수색과정은무능의극치를보여주었다. 사고초기해경은경찰청, 소방본부, 해군해난구조대 (SSU) 와특수전전단 (UDT), 미해군, 민간잠수사등외부지원을거부하거나배제했다. 해군의통영함은끝내구조작업에투입되지않았고다이빙벨은논란 7) 사실에어포켓속에서의생존가능성은희박했다 ( 한겨레, 2014.5.13). 하지만수많은실종자가족들은그가능성을믿었고실제로학생들이침몰후에도수시간동안생존했다고생각했다. 22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끝에뒤늦게투입되었지만실패했다. 8) 대신해경은언딘이라는민간업체에세월호실종자수색작업의독점권을부여했다 ( 민변, 2014: 142~150; 한겨레, 2014.4.30). 이때문일까? 서해훼리호의경우사고발생이틀째부터선내에서시신을인양하기시작했고, 사고발생 9일만에희생자 292명가운데 279구의시신을인양했으며마지막시신도사고발생 23일째침몰현장에서 32km 떨어진근해에서표류하다인양했다. 반면에세월호의경우선체진입에 4일이걸리고사고발생 11일째거둔시신은 187구에그쳤다 ( 경향신문, 2014.4.27). 정부의주장대로강한조류등구조환경이열악한것 9) 도영향을주었겠지만이는무엇보다도초기부터구조작업을 ( 나중에스스로인정했듯이 ) 구조작업에부적합한언딘이독점했기때문으로보인다. 10) 그리고이러한언딘과의유착은해피아와의유착때문인것으로드러났다. 실종자수색구조작업에집중해야했던세월호침몰사고당일오후해경은선박인양업체인언딘과의구난계약체결을청해진해운에종용하고있었다 ( 민변, 2014: 81-86). 선박인양은시신을유실하거나훼손할수있기때문에시신을포함한인명구조를마쳤거나포기했다는것을의미한다. 서해훼리호는시신유실이나훼손가능성을최소화하려고하기는했지만사건발생직후부터선체인양을준비하여사건 19일째인 10월 28일에인양되었다. 문민정부 이긴했지만아직군사독재의권위주의가남아있던시기라군경합동구조단은일방적으로인양계획을발표하고실행했다 ( 동아일보, 1993.10.12; 경향신문, 1993.10.13; 한겨레, 1993.10.13 참조 ). 반면에세월호의경우실종자가족들은명시적으로선체인양에 8) 다이빙벨투입의실패도해경이방해했기때문이라는의혹이제기되었다 ( 오마이뉴스, 2014.10.30). 9) 세월호가침몰한맹골수도는이순신장군의명량대첩으로유명한울돌목다음으로조류가센곳이다 ( 연합뉴스, 2014.4.16). 10) 6월 24일 293번째희생자발견이후더이상의희생자를발견하지못하고있던중 7월 10일, 사고초기부터구조작업을주도하던언딘을새로운업체인 88수중개발로교체하고잠수시간을연장하는방법을채택하는동시에해군과해경 -민간업체가구역을맞바꿔수색하자일주일만에시신 1구 (294번째) 가새로발견되었다 (YTN, 2014.7.10; 연합뉴스, 2014.7.18).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23

동의하지않았고국가도그들의의견을따랐다. 사고이후한달정도가경과하면서대부분의시체가인양되었지만실종자가족들은마지막한명의실종자까지도가족의품으로돌아가게해달라고요구했고실종자수색작업은계속되었다. 구할수도있었는데구하지못한, 그리고아무런죄도없이선내방송에따랐다가목숨을잃은어린생명들에대한어른들의죄책감때문일까. 마지막한명의실종자까지찾아내야한다는안타까운가족들의반대로, 그리고어쩌면수색장기화로부터민간업체가챙길수있는막대한금전적이익 ( 미디어오늘, 2014.10.29 참조 ) 때문에, 세월호의인양은계속연기되었다. 11) 정부의대처도매우큰차이가있는것으로보인다. 지금시점에서볼때서해훼리호침몰에대해당시청와대가어떻게대처했는지를정확히알기는어렵다. 그러나적어도당시에는대통령이서해훼리호가침몰하고있던시간에무엇을했는지에대해의혹이제기되지는않았다. 반면에세월호의경우재난대응콘트롤타워의부재에대한비판이강력히제기되었다. 사고발생후 4월 16일오후 5시 15분박근혜대통령이중앙재해대책본부를방문할때까지약 7시간동안대통령비서실장과국가안보실장은대통령을한번도대면하지않았고대통령이어디에있었는지도모른다고말했다. 대통령또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입었다고하는데그렇게발견하기가힘듭니까? 라고질문하는등현장상황을전혀파악하지못한듯보였다. 이에따라재난대응과구조작업을지휘감독할대통령이책임을다하지않은것이아닌가라는의혹이제기되었다. 더구나국가안보실이세월호침몰와중에대통령보고를위한영상부터띄우라고요구한것이밝혀짐으로써청와대가구조작업을방해했다는비난이쏟아졌다 ( 민변, 2014: 117~127). 사과와책임자징계에있어서도서해훼리호와세월호는상당한차이를보인다. 사고후 9일만에대국민사과문을통해사과를하고책임자경질을했던김영삼대통령에비해박근혜대통령의사과와책임자징계는매우늦어지거나 11) 계절변화에따른기상악화, 체력적한계에도달한잠수사들의철수선언등더이상의수색작업이불가능해진지경이되서야정부는실종자수색종료를선언했다 (2014년 11월 11일 )( 오마이뉴스, 2014.11.11 참조 ). 24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미흡했다. 박대통령은사고다음날진도체육관방문, 4월 27일진도체육관재차방문, 그리고사고 13일후인 4월 29일오전안산화랑유원지에설치된세월호희생자분향소조문에서도사과대신구조작업에대한약속과위로만건네고떠났다. 그는같은날오후에야청와대국무회의의모두발언을통해비로소최초의대국민사과를했다 ( 연합뉴스, 2014.4.29). 유가족에게는사고후한달이지난 5월 16일이돼서야면담을통해최초로사과를했고국민에게는사고후 33일이지난 5월 19일에서야대국민담화를통해사과했다 ( 경향신문, 2014.5.16.; YTN, 2014.5.29). 그는해경해체를공식화하고안전과관련된행정조직개편을약속했지만김영삼대통령과달리책임자징계에는소극적이었다. 5월 22일김장수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실은재난콘트롤타워가아니다 라는책임회피성발언에대해책임을지고해임되었지만김기춘대통령비서실장은유임되었다. 4월 26일정홍원국무총리가세월호참사에책임을지고사임한다고발표했지만후임총리임명이연거푸실패하자 60일만에유임되는해프닝까지벌어졌다. 그밖의책임자들은거의아무런징계도받지않았다. 12) 박근혜정부는세월호침몰사고와사고이후미흡한대처로인해벌어진참사에대해합당한책임을지려는태도를보이지않았다. 대신모든책임은세월호선장과선원들, 세월호운행사인청해진해운, 청해진해운을사실상소유한유병언과그일가, 그리고이들과연결된이단종교단체기독교복음침례회 ( 구원파 ) 에게떠넘겨졌고, 보수언론은이러한책임전가에동참했다. 물론서해훼리호침몰에대한보도에왜곡이전혀없었던것은아니다. 예를들면서해훼리호선장이도주했다는보도는선장의유가족에게크나큰상처를주었다 ( 연합뉴스, 2014.4.18). 그러나이러한왜곡은세월호에비할바가아니었다. 사고당일오전의전원구조오보는시작에불과했다. 앞서언급했듯이정부는모든수단을다동원한다고이야기했지만실제로사고첫날수중수색시간은 53분에불과했고잠수사또한가용자원 182명의 9% 에불과한 16명을 12) 감사원조차 2014년 10월 세월호침몰사고대응및연안여객선안전관리 감독실태 라는제목의감사보고서에서진주 VTS 센터장, 사고현장에서구조에소극적이었던해경123정장, 목포해양경찰서장등을해임하고해경청장의징계를요구할지경이었다 ( 조선일보, 2014.10.11).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25

투입했다 ( 뉴스타파, 2014.4.21, 2014.7.1). 그러나이러한현장상황은무시한채정부의발표를그대로받아적은언론은실종자가족들로부터큰비난을받았다. 이후이러한왜곡보도를일삼은기자들을일컫는, 기자 와 쓰레기 를조합한 기레기 라는말이널리쓰이게될지경이었다 ( 위키백과, 기레기 ). 그리고이러한제도권언론, 그리고나아가수사당국 ( 검찰 ) 에대한불신은세월호침몰에대한수많은다른음모론적내러티브를파생시켰다. 13) 그러나이러한제도권언론의사실왜곡은이후세월호피해자가족이겪을사회적 정치적소통의어려움에비하면빙산의일각에불과했다. 사고초기에대통령을포함해수많은정치인들이실종자가족이있는진도팽목항과진도체육관을찾고유가족을위로했지만그뿐이었다. 언제든유가족을다시만나겠다고약속하고눈물을흘리며대국민사과를하던박근혜대통령은, 7월 30일국회의원재보궐선거가여당의승리로끝나자, 세월호특별법제정은대통령이아닌국회의권한이라며단식투쟁중이던유민아빠의면담신청을거부하고국회방문시에도농성하던유가족을외면하는등세월호유가족에냉담한태도를보였다. 야당또한세월호특별법안에유가족이요구하지도않은세월호희생자의사자지정과생존학생대학특례입학등의내용을넣어서유가족에대한사회적반발을조장하더니, 나중에는원내대표가유가족의동의를구하지도않고여당이나두번이나합의한후번복하는해프닝까지벌였다. 유가족은자신들의의견을말하고억울함을호소할곳이없었다. 아마도유가족의눈에는 8월 18일한국을방문한프란치스코교종만이그들의말을진심으로경청한유일한힘있는 정치인 이었을것이다. 끝으로서해훼리호와세월호는희생자유가족의정치적행동에있어서도큰차이가있다. 먼저서해훼리호유가족은구조및수색작업에대해상당한불만을가졌음에도참사의불가항력적인측면을인정하고스스로진정하는모습을보였기때문에시위와농성과같은정치적행동은제한적으로만이뤄졌다. 또한 13) 간단히무시하기만은힘든이런음모론들로는국가정보원기획설, 잠수함충돌설, 해경에의한강제침몰설등이있다. 잠수함충돌설과이에대한해명으로는 한겨레 (2014.5.13) 을참조. 26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 표 1> 세월호참사와서해훼리호참사비교 침몰원인 서해훼리호참사 정부 : 규제감독부실, 선박 : 비용절감, 과적, 악천후에무리한운행등 세월호참사 희생자수사망 292 명, 생존 70 명사망 295 명, 실종 9 명, 생존 172 명 선장 / 선원대처책임 : 선내에서사체로발견됨무책임 : 가장먼저탈출 주요희생자성인 : 관광객, 주민등청소년 : 안산단원고 2 학년학생들 구조 / 실종자수색유능 : 실종자수색신속무능 : 실종자수색지연일방적선체인양. 선체인양조기실종자가족의선체인양반대. 선선체인양완료체인양연기책임인정 : 신속한대통령사과와책임회피및전가 : 대통령사과및정부의대처책임자징계책임자징계지연및미흡. 유병언사과와책임자징계일가의악마화. 언론보도및소통소통에대한문제제기없음언론보도왜곡과소통부재통상적인제한적정치화 국가배유가족과시민의예외적정치화 정치화여부상요구특별법제정요구 희생자들중많은수가성인남성이라유가족의생계문제가시급했기때문에유가족의요구는대개의다른재난사고들처럼일찍부터국가의경제적보상에초점이맞추고있었다. 반면에세월호유가족들의분노는진정되기는커녕갈수록커져갔다. 그리고그들의요구는경제적보상보다는진상규명과특별법제정과같은정치적인요구에초점을맞추었다. 이는세월호참사의경우희생자들이주로청소년기의자녀들이고유가족이학부모였다는점, 그리고앞서서술했듯이구조와수색과정에서국가의무능하고도무책임한모습이두드러지게나타났다는점과관련이깊다. < 표 1> 은이제까지살펴본서해훼리호참사와세월호참사의공통점과차이점을보여준다. 요약하면세월호참사는서해훼리호와달리희생자의낮은연령, 선장과선원의무책임한도주, 무능한실종자수색작업, 국가의정치적책임회피, 피해자가족들과사회와의소통곤란, 그리고그에따른유가족과시민의예외적인정치화등을특징으로했다. 이렇게볼때서해훼리호참사와세월호참사의차이는주로부정부패, 관리감독부실, 과도한비용절감과같은사고의원인보다는사고이후의처리및수습과정에서발견된다. 특히서해훼리호와달리세월호의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27

경우에는국가, 자본, 전문가의무책임과무능이두드러지게부각된다. 10대의어린학생들이희생되었으며, 그것도 가만히있으라 는안내방송을믿고따르다가마땅히이들을구출해야할의무가있는선장과선원의무책임한도주, 해경의태만하고무능한구조작업때문에죽었다. 게다가무책임은여기에그치지않고실종자수색, 언론보도와커뮤니케이션, 정치지도자의대국민사과와책임자징계등사고수습의전과정에서나타났다. 그런데현저한무능과무책임으로요약될수있는서해훼리호참사와세월호참사의이러한차이는우연한차이가아니다. 앞으로보겠지만그것은많은부분사고가일어났던 1993년과 2014년사이에벌어진한국사회의구조적변화에기인한다. 겉으로보기에는현재의한국사회가그때보다정치적, 경제적으로발전한것으로보이지만실제로는더욱더무책임하고무능한쪽으로퇴보했다는것이바로그변화의내용이다. 외면하거나의식하지못했던이변화의실체를인식하는순간사람들은큰충격에빠졌고이러한인식을바탕으로세월호참사의사회적수습과정은일반적인제도권정치과정을넘어서유가족과지지자들을중심으로시민사회수준에서의운동정치로전화하는예외적정치화로나아갔다. 그렇다면그동안한국사회가겪었던변화의핵심은무엇일까? 세월호참사와그이후의수습과정에서관찰된구조화되고조직화된무능과무책임의실체는무엇일까? 그것은바로 1997년경제위기이후우리의삶을크게지배하게된신자유주의였다 ( 지주형, 2011). 14) 14) 물론세월호참사와그정치화를모두신자유주의로환원하여설명할수는없다. 대표적으로희생자구성과사고초기언론의왜곡보도는신자유주의와는무관하거나직접관련이없다. 그러나유가족과시민사회가분노한대상은무책임하고무능력한국가와자본이었으며그뒤에숨어있는것은한국의신자유주의적현실이었다는점에서세월호참사와그정치화는신자유주의를핵심적인배경으로하여발생한것이라할수있다. 28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3. 세월호참사의충격과정치화 세월호참사는한국사회에대한신화, 즉암묵적인전제와가정을산산조각냈다 (Barthes, 1993 참조 ). 깨어진것은바로이른바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 를통해서다져진, 발전된산업자본주의민주주의국가에대한환상이었다. 그리고대신그자리에서마주친것은국가와자본의무능과무책임이라는신자유주의의혹독한현실이었다. 이것이바로세월호희생자유가족과상당수의시민들이받은충격의실체였고이로부터세월호참사의예외적정치화가시작되었다. 1) 충격 : 깨어진환상과신자유주의적현실 먼저세월호참사로깨어진환상과드러난현실이무엇이었는지자세히살펴보자. 첫째, 세월호참사는이제는한국이과거와달리선진자본주의국가로도약했다는환상을깨뜨렸다. 이것이국가인가? 라는대중과일부언론의허탈한반문은이러한현실인식의결과였다. 어린학생들을죽인것은세월호침몰사고자체라기보다책임을방기한무능한어른들이었다. 우리는세월호와같은여객선의침몰은매우드문일이고정부의규제그리고전문가들의운행이그러한사고를방지할것이라고가정한다. 그러나세월호는침몰했다. 바로청해진해운이라는기업의비용절감과이윤추구, 그리고그것을방치한정부의규제완화와관리감독부실때문에침몰했다. 하지만사고자체로는신화와환상을깨뜨릴정도의충격이발생하지않는다. 서해훼리호참사에서볼수있듯이한국은이미오래전부터 사고공화국 이었기때문이다. 오히려더큰충격을준것은침몰그자체가아니라사고에대한부적절한대처때문에대규모참사가발생했다는사실이었다. 세월호침몰과같은재난상황에서보통사람들이믿을수있는것은전문가와국가밖에없다. 현대자본주의사회는전문가체계에대한신뢰를발전시키며그것은우리사회도예외가아니다 (Giddens, 1991 참조 ). 전문가들은사회의문제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29

를해결하는역할을수행하고그대가로보상을받는다. 근대국가는정치공동체에속한국민을보호한다는명목하에폭력에대한정당한독점을주장하고세금을받는다 (Weber, 1994 참조 ). 이에더해최근들어서는한국을포함한선진자본주의산업경제에서는전문가와국가가상품화, 경쟁, 개방이라는시장의논리에따를수록사회시스템은더욱더효율적으로작동할것이라는신자유주의적환상이사회를지배해왔다. 신자유주의화된한국이국제연합의사무총장을배출하고, G-20 의장국을역임했으며, 월드컵과평창동계올림픽을유치했을뿐만아니라 한류 로불리는쿨한대중문화와첨단반도체와스마트폰을세계로수출하는막대한경상수지흑자국가라는사실은이러한환상을뒷받침한다. 그러나세월호참사는국민의기대와달리사고방지에있어서뿐만아니라사고이후의대처에있어서도전문가와국가, 그리고이들이따랐던신자유주의적시장논리를조금도믿을수없다는것을드러냈다. 유연한노동시장, 규제완화, 민영화라는시대적흐름속에서배를운행하던선장과선원, 구조에투입된해경, 그리고컨트롤타워로작동해야할정부까지도모두무책임하고비효율적이라는것이드러난것이다. 선장과선원들은배를가장잘알고있어야할뿐만아니라운행과승객안전에책임을져야의무를가지고있었지만필요한조치를취하기는커녕먼저도망쳐버렸다. 비정규직으로신자유주의의각자도생을체화한그들에게는일에대한책임도, 승객들에대한책임도없었다 ( 물론최소한의도리도하지않은그들에게그들의무책임이교육과훈련부족때문이라는면죄부를줄필요는없다 ). 그결과전문가와시스템에순응한이들은죽고그렇지않은이들은살아남는역설이일어났다. 다음으로국가는구조에있어서결정적인시간인골든타임을놓쳐버렸을뿐만아니라현장에도착한해경또한세월호가가라앉고있던그순간부터생존가능시간으로생각된사고발생후 72시간에이르기까지구조의무를게을리했다. 그리고이것이단순한무책임이아니라구조적인무능이었다는것이밝혀지는데에는그리오랜시간이걸리지않았다. 진도VTS의관제소홀, 재난콘트롤센터의부재등정부의재난대응체계의부실함이드러났고, 해양재난구조작업의민영화덕택에해경의구조능력은 21년전서해훼리호침몰때보다후퇴한것으로드러났다 ( 경향신문, 2014.4.27). 게다가계약에따라실종자수색을독점했 30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던언딘이라는 ( 신자유주의논리에따르면마땅히정부나공기업보다유능하고효율적이어야할 ) 민간업체또한구조가아니라구난 ( 선체인양 ) 을전문으로하는기업으로실종자구조와수색작업에무능을드러냈다. 결국세월호참사는, 유연한노동시장과규제완화를통해시장에서효율성이증진되고공공기능을민영화함으로써유능하고효율적인작은정부가된다는선진화된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의신화를허물었다. 그리고유연한노동시장, 규제완화, 민영화란곧무책임과무능일뿐이라는구조적현실을폭로했다. 특히신자유주의국가는자신의기능을민영화함으로써사회적리스크를제거하는능력이축소된다. 대신위험은사회가붕괴되지않을정도의적정한수준에서만통제 / 관리된다. 그래서국가는개개인의생명을돌보지않으며그럴능력도없다. 그결과는개입의비용이편익을초과하는한각자에게생존을맡기고 사람들을죽도록방치 하는국가이다. 15) 이를가장극적으로보여준것이바로스스로탈출한이들만구조되고배안에갇힌이들은방치되었던세월호참사였다. 민영화의허울을쓴무책임과무능함, 이것이바로신자유주의통치성의민낯인것이다 ( 최원, 2014: 62~68; Foucault, 2011, 2012 참조 ). 둘째, 세월호참사는신자유주의시대에도유지되던한국민주주의에대한환상을깨버렸다. 우리는흔히 1987년에한국사회가적어도정치제도상으로는민주화되었으며그에따라현재도여전히대체로민주적인절차에따라지도자가선출되고있다고생각한다. 예를들면국정원의 SNS 댓글조작에도불구하고 2012년박근혜대통령의당선이조작되었다는음모론은널리지지받지못한다. 또한민주화이후평범한중산층과서민들은대개불만을제기하고저항하는것은소위 꾼 또는 꿘 들과일부과격노동자들뿐이라고생각하지평범한자신들이 ( 설사개인적으로는정권에비판적인입장을취한다고하더라도 ) 잘못한것도없는데직접적으로정치적억압의대상이되거나특별히정치적행동에나서게될일은없다고생각한다. 하지만세월호참사는 87년이후한국의민주주의가껍데기에불과하며그런거리두기를허락하지않는다는것을세월호가족 15) 이러한형태의권력은일일이개인의일상에개입하고훈육하면서, 체제에저항하는이들을죽였던, 과거개발독재군사정권의권력과는대조된다.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31

과대중의눈앞에가장충격적으로드러냈다. 예를들면, 뒤에더자세히서술하겠지만해경의무책임하고무능한구조작업에항의하기위해진도에서청와대로도보행진하던세월호희생자들은경찰에의해제지되었다 (4.20). 그들은어느순간자신도모르게국가로부터권리를가진국민이라기보다위험한존재또는잠재적범죄자로취급당하고있었다. 16) 잘못한것이없으니억압받지않으리라는환상은무참히깨어져버렸다. 나아가세월호희생자유가족의진상규명과세월호특별법에대한요구는정치권에의해제지되었다. 아마도그들에게진정으로필요한것은그무엇보다도누군가그들의억울함을귀기울여들어주는것, 즉소통이었을것이다. 그러나현실은꽉막혀있었다. 현실앞에서그들은 국민 도 주권자 도아니었다. 게다가국가는세월호참사에대한책임을부인했다. 17) 박근혜대통령의대국민사과는늦어졌고정부내책임자에대한징계는극소화되었다. 대통령은눈물을흘렸지만유가족의진상규명요구에는귀를기울이지않았다. 국가는사실상태만하고무능한구조작업에대한책임을부인했다. 대신책임은개인들에게만돌려졌다. 제일먼저책임을진것은, 책임을다했고그래서책임을질필요도없었던, 학생 7~8명을구하고도살아나왔다는죄책감에시달리다자살한안산단원고교감이었다 ( 연합뉴스, 2014.4.18; 서울신문, 2014.4.21). 단원고교장또한대통령도지지않는도의적책임을지라고직위해제당했다 ( 연합뉴스, 2014.6.17). 그리고검찰의수사가진행됨에따라모든책임은세월호선장과선원들, 그리고유병언과그일가에게돌려졌다. 보수언론도정권의책임회피를 16) 전남경찰청은세월호가족이머물고있던진도체육관과팽목항에 1일평균 22명의정보과소속사복경찰을배치해가족들을감시했다 ( 고발뉴스, 2014.5.2). 17) 민주주의의핵심은책임성 (accountability) 이다. 이를통해정부가선거이후에도국민을진정으로대표하는지를가늠해볼수있기때문이다. 87 년이후정부는대체로정부의잘못이있을때또는국민이그렇게판단할때대국민사과및책임자징계와처벌등을하는데있어서그다지인색하지않았다. 그러나이명박정부부터대통령의사과는인색해진다. 예를들면 2009년 1월 19일경찰의무리한진압으로철거민 5명과경찰 1명이숨진용산참사에대해이명박당시대통령은끝내사과하지않았다 ( 국민TV, 2014.4.29). 그리고박근혜정부는이러한인색한책임성을계승했다. 32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위한이러한책임전가에동참했다. 이러한국가의책임회피와개인에대한책임전가는전형적인신자유주의국가전략이다. 작은국가 는책임질것도작다. 공공기능과책임을외주화한신자유주의국가에게세월호참사는국가가책임질이유가없는 교통사고 에불과한것이었다 ( 오창룡, 2014: 47~49). 결국세월호참사가드러낸것은신자유주의화된민주주의국가 ( 달리말하면 권위적국가주의 또는 포스트민주주의 국가 ) 란진정으로책임을지지도국민을대표하지도국민과소통하지도않는다는사실이다 (Poulantzas, 1994; Crouch, 2008 참조 ). 박근혜정부의책임회피민주주의는 87년에성취했다는형식적이고명목적인정치적민주주의가신자유주의의심화와함께얼마나얄팍해졌는지를여실히드러냈다. 셋째, 이렇게세월호참사로밝혀진구조화되고조직화된자본과국가의무능및무책임은한국사회가노동계급과중산층, 그리고그들자녀의생명에매기는실질적가치가얼마인지냉정하게드러냈다. 한국의현대사는전쟁과학살로점철되어있고최근에도 2009년용산참사처럼노동계급에대한직간접적인참살도드물지않은편이다. 하지만전태일열사가분신하던 1970년대와광주에서학살이일어나던 1980년대와달리 1987년의민주화와 1997년의신자유주의화이후국가와자본의생명에대한위협은훨씬더은밀해졌다. 국가는이제대놓고국민을학살하지않는다. 하지만그럼에도세월호참사는국가와자본의무관심, 무책임, 방치속에서체제에순응적인평범한보통사람들의생명이얼마나무참히짓밟힐수있는지를보여주었다. 서해훼리호가침몰한 1993년은문민정부원년이었지만아직권위주의적군사독재의잔재가상당히남아있던때였다. 국가의억압적성격은훨씬더가시적이었고 ( 당시라고사람의생명이귀하지않은것은아니었지만 ) 인간생명의가치도지금처럼크게매겨지지않았다. 실로권위주의군사독재하에서인간생명의가치는실질적으로뿐만아니라명목상으로도쉽게무시당하곤했다. 따라서생명의명목가치와실질가치의괴리가크지않았다. 반면에군사독재시절에비해훨씬더민주화되고자유화된 ( 것으로보이는 ) 현재의한국사회에서적어도인간생명의명목적가치는훨씬더크다. 예를들면인권은적어도담론의차원에서는그어느때보다도중시되고있다. 그러나국가와자본의구조화된무능과무책임에의해초래된세월호참사는높아진인간생명의명목가치에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33

대한환상을깨어버렸다. 그리고한국사회에서노동계급과중산층그리고그들의자녀들이가진생명의실질가치가무엇인지를무자비하게드러냈다. 안산단원고인근주민의입에서나온 선장은말할것도없고, 정부에너무화가나요. 강남의학교였어도이렇게늑장대응을했을까요? 라는말은사태의본질을정확히짚고있다 ( 한겨레21, 2014.5.5.). 아이러니한것은생명의실질가치가드러난자리에, 뒤늦게주검의상징적, 경제적가치만과거에비할수없게커졌다는사실이다. 생명의명목가치는높게매기지만실제로는개개인의생명을돌보지않는신자유주의국가는뒤늦게주검의가치라도높게쳐줄수밖에없다. 군사적권위주의의잔재속에서침몰후 23일만에인양되었던서해훼리호의경우와달리민주화이후의신자유주의국가는세월호선체인양을일방적으로결정할수없었다. 실종자가족의안타까운요구에따라단한명의실종자도놓치지않기위해세월호의인양은계속연기되었고그만큼수색업체는수익을올렸다. 하지만늘어난주검의경제적가치만큼또다른생명이희생되어야했다. 잠수사들은자신들의생명이위협을받을정도로잠수를계속했고그중 2명이사망했다 ( 국제신문, 2014.5.6; 연합뉴스, 2014.5.30). 11월초육체적한계에도달한잠수사들은현장철수를선언했고정부도기상악화에따라실종자수색중단을선언했으며실종자가족도눈물을흘리며이를수용했다 ( 머니투데이, 2014.11.8; 오마이뉴스, 2014.11.11.). 18) < 표 2> 는세월호참사를통해서드러난가치, 통치, 정치영역에서의한국사회에대한환상과현실을보여준다. 인간은본래 사회적 동물 19) 이고사회속에서만자신을온전히보존하고 18) 수색중단이후세월호인양에대한희생자유가족의입장에변화가생겼다. 실종자수색을위해인양을반대하던유가족들은이제세월호인양이수색의한방법인동시에진상규명을위해꼭필요한일이라고주장하는반면, 일부언론과정치인 관료들은경제적비용을이유로인양포기를주장한것이다 ( 뉴시스, 2014.11.18). 경제적이익의추구가세월호침몰과참사의근본적원인이되었다는점에서볼때순전히경제적이유로세월호가인양되지못하고진실규명에공백이생긴다면남은실종자 9명뿐만아니라세월호사망자전체가두번죽임을당하는것이라할수있다. 34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 표 2> 한국사회의환상과현실 가치 ( 생명, 노동력 ) 선진화, 산업화, 민주화의환상 노동계급 / 중산층생명의높은명목가치 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의현실노동계급 / 중산층생명의낮은실질가치 통치유능, 책임, 효율성, 신뢰성무능, 무책임, 비효율성, 비신뢰성 ( 국가, 시장, 전문가 ) 정치무책임 / 책임전가, 책임성, 대표성, 소통 ( 민주주의 ) 독단성, 불통 / 왜곡 계발할수있다. 하지만세월호참사는한국 사회 에서그것이허상이고그구성원들은보호받지못한다는것을드러냈다. 한국의신자유주의적현실에서노동계급과중산층생명의실제가치는극히낮고, 국가, 기업, 전문가들은이들의생명을구하는데무관심, 무책임, 무능하며, 민주주의도실질적으로작동하지않는다는것이드러난것이다. 다시말하면한국전쟁시기도군사독재정권시기도아닌, 민주화되고선진화되었다는 21세기의한국사회에서조차시민들의생명은방치되고있다. 대다수의사람들에게는자신들이연약한개인으로서믿고의지하는수밖에없는, 이른바 사회 로통칭되는국가, 기업, 전문가들이체계적 구조적으로자신들을내버릴수있다는것을인식하는것은충격적이아닐수없다. 20) 그래서믿을것이란아무것도없고, 그러한상황에서어쩔수없이각자도생밖에선택할수있는것이없더라도, 국가, 자본, 전문가에의해방치되는 ( 노동계급과중산층을포함한 ) 대다수의약자들의삶은그저불안정한우연, 즉운에달려있을뿐이라는것, 세월호참사는아무도말하고싶지않은, 외면하고픈그은밀한진실을폭로했다. 이것이세월호참사가준충격의핵심이었다. 세월호참사의정치화를추동한것은바로이러한충격이었다. 19) 고대그리스어 zoon politikon을번역한말로본래는고대그리스도시국가속에서만인간답게살수있는 폴리스적동물 이라는뜻이나, 맥락에따라공동체적동물, 정치적동물등으로도번역될수있다. 20) 이러한측면에서볼때 2014년세월호참사의정치화와 2008년미국산소고기수입반대촛불시위는동일한문제에대한반응이라고할수있다. 2008년촛불시위또한대다수국민의생명을체계적, 구조적으로위협하는국가, 자본, 전문가에대한반대에서시작되었던것이다.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35

2) 세월호참사의정치화 : 충격에서행동으로 21) 세월호침몰피해자유가족들과그들을지지하는수많은시민들은, 역대최대의사고규모와어린학생들의죽음외에도선장과선원의무책임한도주, 해경의태만과무능, 정부의억압적대응, 정치권의비아냥거림, 진정성없는대통령의사과같은신자유주의적현실에대한충격적인경험을연쇄적으로겪으면서다음과같이단계적으로정치적행동을발전시켜나갔다. 세월호희생자가족들이받은첫번째충격은물론참사의규모와주요희생자의특성에서온것이었다. 사망자와실종자를합해 304명의희생자를낸세월호참사는한국전쟁이후최대의참사로서그규모만으로도충격적이었다 ( 민변, 2014 참조 ). 게다가처음에전원구조라는오보가나왔다는점, 그리고 304명의희생자중무려 250명이 10대의어린고등학생들이었다는것은그충격의크기를배가했다. 게다가 4월 18일에는세월호선장과선원들이충분히대피시킬시간이있었는데도승객을놔둔채도주한혐의로구속된것도충격이었다. 세월호가족대책위유경근대변인에따르면유가족을가장괴롭힌것은아이들을모두다살릴수있었는데살리지못했다는사실이었다. 저희가족들이견디지못하는이유는, 그아침에다살릴수있는아이들을그냥수장시켰기때문입니다. 빨리나와라, 바다로뛰어들어라 이한마디만외쳤어도이아이들은살았습니다 ( 한겨레, 2014.5.23, 강조는필자 ). 그러나사고초기에세월호참사는경악, 슬픔, 안타까움을낳았을지언정결코심각한정치문제로인식되지는않았다. 사고다음날안산단원고학생들과시민들이실종자무사귀환을비는 촛불기도회 를열었을따름이었다 ( 오마이뉴스, 2014.4.17). 21) 이절은특별히다른인용표시가없는경우 오마이뉴스 의 세월호침몰사고 타임라인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ewolsinkingtimeline.aspx) 과 4 월 16일세월호죽은자의기록산자의증언 (http://www.ohmynews.com/nws_ Web/event/sewol.aspx) 을참조하여서술되었다. 36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세월호참사의정치화는선진화된국가의환상이벗겨지고무능하고무책임한국가의실상이드러남으로써받은두번째충격으로부터시작되었다. 정부는막대한인원과장비를동원해실종자를수색하고있다고발표하고언론은그것을충실히베껴서보도했다. 하지만 4월 16일오후부터실종자수색현장에도착한희생자가족들은경악했다. 정부와해경은보도와달리거의아무런구조작업도하고있지않을뿐만아니라해군잠수요원과해군특수부대, 그밖에민간잠수사들을통제하기까지했다. 구조를담당한해경까지도무책임하고무능한것으로드러난것이다. 유경근세월호가족대책위대변인에따르면 목포해양경찰청장이무전으로 4차례나승객들을밖으로나오도록방송하라고지시했음에도, 현장에서는아무도그무전을받고도전달하지않았던것입니다. 결국 4~5일만에해경스스로실토했습니다. 구조책임을맡은지휘장교가 사실우리해경은능력이없습니다. 방법을모릅니다. 장비도없습니다 라고저에게직접말했습니다 ( 한겨레, 2014.5.23, 강조는필자 ). 세월호특별법제정을위해단식투쟁을한유민아빠김영오씨는당시상황이준충격을다음과같이말한다. 나는대형사고가나면정부가구조를제일잘하는팀들을불러와빨리빨리구조해주는줄알았다. 실제로정부는사상최대의구조작업을진행중이라고발표했고, 언론도그렇게보도했다. 그런데실제현장에가보면쳐다만보고있고, 접근도못하고있었다. 전직구조대요원들이나민간잠수사들이자발적으로구조를하겠다고찾아와도차단만시키고있었다. 우리는이런상황을개선해달라고요구해도공중파방송사들은일절다루지않았다. 그때처음고립됐다는것을느꼈다. 나는사실언론에대해잘몰랐다. 방송사가보도하는내용이곧사실이고법인줄알았다. 이런언론인줄몰랐다 ( 한겨레, 2014.9.4, 강조는필자 ). 이렇게해경의무능과무책임, 그리고언론의왜곡보도를확인하고분노한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37

실종자가족은 4월 17일진도체육관을방문한박근혜대통령에게거세게항의했다. 그리고다음날아침안산단원고학부모대책본부는 국민여러분도와주세요 라는제목의실종가족호소문을발표한다. 정부의행태가너무분한나머지국민들께눈물을머금고호소하려합니다. 4월 16일오전 9시께사고가나고놀란가슴을진정시키고뉴스를통해진행상황을지켜보다가낮 12시쯤모두구조됐다는이야기를듣고아이들을보러도착했지만실상은어처구니가없었다. 실내체육관상황실에와보니책임을지고상황을정확히판단해주는관계자가아무도없고상황실도꾸려지지않았다. 학부모대책위를꾸려오후 7시쯤팽목항과실내체육관 2곳으로나누어사고현장을방문하고자했는데민간잠수부를동행해자원을요청했지만배도못띄우게하고진입을아예막았다. 흥분한저희들은소동을피우고난리를피워서책임지는사람을보내달라고했는데대답이없었다. 오후 10시넘어아이들이죽어가고있고구조는없었다. 학부모와민간잠수부는오열했지만받아들여지지않았다. 17일현장을방문했는데인원은 200명도안됐다. 헬기는단 2대, 배는군함 2척, 해양경비정 2척, 특수부대보트 6대, 민간구조대원 8명이구조작업중이었다. 그러나오전 9시정부는인원 555 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아이들을구출하고있다고거짓말을했다. 국민여러분, 이게진정대한민국현실입니다. 아이들을살릴수있도록도와주세요 ( 연합뉴스, 2014.04.18, 강조는필자 ). 세월호실종자가족이맞닥뜨린정부의무책임과무능속에서세월호뿐만아니라선진화되고민주화된대한민국의환상또한침몰하고있었다. 그리고그자리에국민의생명을보호하는데무관심한대한민국의냉혹한현실이부상했다. 정부의무책임과무능으로부터받은충격으로현실을인식한실종자가족은이와같이정치적의사표현과행동에나서기시작했다. 주권자로서의당연한행동이었다. 하지만이러한행동을통해서그들은국가의억압과책임회피라는세번째의또다른놀라운경험을하게된다. 4월 19일오후진도실내체육관에있던실종자가족들사이에더딘구조작업과무책임에대해쌓인분노가폭발하면서청와대로가서대통령의이야기를듣자 38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는의견이나왔다. 그러나 20일 0시를전후해진도체육관을나온가족들은경찰의제지를당했다. 가족들의요구로도착한정홍원국무총리가이들을달래보려했지만실패했다. 이후실종자가족 100여명은경찰저지선을뚫고진도대교방향으로도로를따라 13km 정도걸으면서 정부는살인마, 아들딸살려내라 고행진하다가오전 7시경다시 4개중대 350명의병력을동원한경찰에의해제지당했다. 실종자가족들은 우리가죄인이냐, 우리가범죄자냐, 청와대에서시켰냐, 대한민국국민이대한민국땅을걷겠다는데왜막나, 우리가폭도냐 라고항의하면서경찰과충돌했다. 결국실종자가족의청와대행진은좌절되었다 ( 오마이뉴스, 2014.4.20). 이순간부터그들은더이상국민도주권자도아니었다. 경찰이막아야만하는위험한존재또는잠재적범죄자가되어있었던것이다. 이러한상황에서일부정치권과관료의조롱과비아냥거림이시작되었다. 4월 20일정몽준당시새누리당서울시장예비후보의아들이세월호실종자가족을 미개하다 고비난해물의를일으켰다. 한안전행정부국장은세월호침몰현장상황실에서기념촬영을해사직서를써야했다. 22일에는여당의한국회의원이실종자가족을선동꾼으로몰기까지했다. 더구나정부의최고책임자인대통령의사과는미흡하기짝이없었다. 4월 29일희생자유가족들은오전안산화랑유원지에설치된합동분향소를방문한박근혜대통령에게정부의무능과합동분향소설치과정의혼선에대해항의했다. 그리고이번에도대통령이유가족에사과하지않자분노한유가족은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관련부처장관, 여당대표등이보내온조화를분향소밖으로치웠다 ( 동아일보, 2014.4.29). 같은날대통령은국무회의의모두발언에서비공식적으로대국민사과를했지만, 실종자가족들은사과로받아들일수없다며정식대국민사과와세월호사고경위에대한진상규명을요구했다. 이날실종자가족들은세월호사고희생자 실종자 생존자가족대책위원회 ( 세월호가족대책위 ) 를결성했다. 이렇게정부의억압적대응, 정치권의비아냥거림, 그리고대통령의진정성없는사과와같은 ( 이제는더이상전만큼놀랍지만은않았을 ) 세번째충격을겪으며세월호희생자유가족들은마침내조직화된정치적저항으로나아가는결정적인문턱을넘었다.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39

한편시민사회에서는세월호희생자유가족의항의와저항에대한동조가확산되기시작했다. 무엇보다도세월호침몰의원인과사고당시자본의무책임과정부대응의무능함이하나둘씩밝혀지기시작했다. 세월호의증개축, 과적, 화물고박불량, 화물적재량기록조작및평형수감소등의문제가드러나는한편, 골든타임을날려버린제주VTS와진도 VTS와의소통문제, 진도VTS의관제소홀, 사고를최초로신고한고등학생에대한해경의어처구니없는대응, 해경의언딘에대한특혜의혹등이여론의도마에오르기시작했다. 이와동시에세월호침몰에관한각종음모론또한인터넷을통해확산되기시작했다. 무능하고무책임한정부에대한불신에서비롯된자연스러운현상이었다. 국가와자본의무능과무책임에침몰원인을둘러싼수수께끼와다양한해석들, 음모론의인터넷확산, 그리고무엇보다도기존에있던신자유주의의사회경제적모순에대한불만이겹쳐져시민사회가마침내움직이기시작했다. 무엇보다도세월호희생자추모집회가정치화되기시작했다. 5월 3일서울청계광장에서열린세월호참사추모촛불집회에참석한시민들은정부의무능과무책임에분노했다. 한시민은 2014년 4월 16일, 선장은세월호와함께이웃을버렸고, 정부는국민의생명을버렸다 " 고목소리를높였다. 이렇게생명과국가를대비시키면서세월호침몰희생자가족과시민사회의투쟁은반신자유주의적인성격을보다분명히띠기시작했다. 5월 8일에는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세월호는교통사고 라는발언 (5월 4일 ) 에항의하기위해영정사진을안고안산합동분향소에서출발한안산단원고희생자유가족 200여명이경찰의제지로 KBS에진입하지못하자 9일새벽언제든찾아오라던대통령의말을믿고청와대로향했다 ( 오마이뉴스, 2014.11.5). 그들은종로구청운동주민센터앞에서대통령면담을요구하며다음날오후까지연좌농성을벌였다. 세월호침몰사고에서생존한안산단원고학생 30명이동참했고시민들도각종물품을지원했다. 부담을느낀청와대는 KBS 길환영사장을보내사과를하게했고농성은풀렸다. 다음날안산에서는 1만 3,000명의시민이촛불집회를열었다. 5월 17일에서는서울광장에서 3만명이모여촛불을들었다. 희생자가족과사회적반발이거세지자 5월 16일박근혜대통령은유가족대표와면담하고사과를표했고 19일에는대국민담화를통해눈물을흘리면서국민에사과했다. 40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하지만가족대책위는충격과비탄속에반발했다. 대통령이희생자가족의실종자구조및진상규명에대한요구에대해침묵했기때문이었다. 22) 당시세월호희생자가족이발표한기자회견문은 ( 비록 신자유주의 라는말을사용하지는않았지만 ) 그들의투쟁이세월호참사의근본적인원인인신자유주의적이윤추구, 규제완화, 생명경시를반성하고국민의목소리와개개인의안전에무관심한권위주의적신자유주의국가에반대하는성격의것임을분명히했다. 세월호참사의가장큰문제는한생명에대한소중함을잃어버린우리모두의자화상이었습니다. 모든공무원들이생명의소중함에앞서이윤을생각했고, 그것이규제완화로이어졌으며세월호출항부터침몰에이르기까지모든공무원들은생명의소중함을생각하지않았습니다. 정부에서책임지고마지막한명까지우리의품으로돌아올수있도록구조에총력을기울여주시기를바랍니다. 우리는정부가우리의목소리를진심으로경청하기를원합니다. [ 해경이 ] 그책임에맞는역할을할수있도록대통령께서힘을실어주고권한을부여하며 국민한사람한사람을보호할수있도록했어야합니다. 저희는인간의존엄성이존중되고, 모든사람의안전이보장되는나라, 국가에대한믿음과사회에대한신뢰가회복된나라에서살고싶습니다 ( 미디어오늘, 2014.5.20, 22) 세월호가족대책위유경근대변인은그날의경험을다음과같이묘사했다. [ 대통령의대국민담화 ] 이틀전에는유족대표단 17명이청와대를방문해서 1시간 30분간면담을나눴습니다. 항의하기위해서가아니라우리이야기좀들어달라는것이었습니다. 해경, 해수부장관, KBS 를찾아갔지만누구도우리이야기를들어주지않았습니다. 그래서대통령이라도우리이야기를들어달라고갔습니다. 대통령에게요구한것은남아있던실종자를빨리꺼내달라는것이었습니다. 그러고나서진상규명을철저히해야한다는것이었습니다. 그러나실종자구조나진상규명에대한언급은전혀없고, 무엇을없애겠다, 만들겠다는이야기만있습니다. 대통령은그자리에서공감한다고말하고눈물도흘려줬지만결과를놓고보면정말우리가원하는것이무엇인지전혀모르고있었다는것이너무힘듭니다. 담화가발표되는그시간, 진도에있는가족들은목을놓아통곡했습니다. 그래도대통령은우리를버리지않을것이라고생각했는데, 우리는버려졌구나, 우리는다잊혀졌구나 ( 한겨레, 2014.5.23, 강조는필자 )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41

강조는필자 ). 23) 5월 22일에는전국 800여개의시민사회단체가참여한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발족하고실종자수색구조촉구, 세월호참사진상규명과특별법제정및이를위한천만인서명운동,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마련, 피해자지원등다양한활동을시작하는동시에대규모촛불집회를조직하기시작했다 ( 연합뉴스, 2014. 5.22;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홈페이지 http://sewolho416.org/). 6월 7일유가족은이러한흐름에동참해전국 31곳에서세월호특별법제정을위한서명운동을시작했고 11월까지무려 600만명이서명에동참했다 ( 연합뉴스, 2014.6.7; 공무원신문, 2014.11.14). 이후세월호특별법안은진상조사특위구성, 특위활동기간, 수사권 기소권등의문제를놓고유민아빠의단식및이에대한시민의동조단식, 여야합의의두차례번복등난항을겪었다. 사고 199일째인 10월 31일여야는최종합의에도달했으며더이상법안제정을미룰수없다고판단한세월호가족대책위는이틀후인 11월 2일이법안을수용했다. 그러나조사위원회위원장을유가족이추천하고유가족이반대하는인사는특별검사후보군에서제외하기로하는등진상규명의객관성을요구했던그간의투쟁이전혀무의미한것은아니었다. 청계광장에서열린시민 1만명이참석한세월호참사 200일범국민추모대회에서박래군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공동운영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은많이부족 하지만그래도 아이들얘기만나오면울고불고하는엄마아빠들이만든 23) 이러한신자유주의국가에대한비판은박근혜정권에대한비판과는명확히구별된다. 오히려세월호특별법제정투쟁의반신자유주의적성격은 정권퇴진 을목표로삼지않는투쟁의자기서술속에서더분명히드러난다. 예를들면세월호가족대책위유경근대변인은 이것은정권, 새누리당, 청와대, 대통령의문제가아닙니다. 만일정치인, 대통령을바꿔서해결된다면대통령물러나라고소리쳐야겠죠. 그렇게해결된다면강제로라도끌어내려야겠죠.. 그러나이것은정권을지키느냐의문제가아니라대한민국이침몰하느냐다시떠오르느냐의문제입니다. 어떻게하면정권을지킬까, 또는끌어내릴까. 그런단순하고가벼운문제가아닙니다. 단순히정권의존재유무가아니라대한민국을살릴수있느냐의문제입니다. 임기 5년짜리정권의문제가아닙니다 라고역설했다 ( 한겨레, 2014.5.23). 42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특별법 이라고말했다 ( 오마이뉴스, 2014.11.1). 요약하면세월호희생자가족들과시민들의행동을정치화한것은대한민국에대한환상을깨고신자유주의적현실을직시하게만든일련의충격이었다. 세월호침몰이그들을경악과슬픔에빠지게했다면, 많은부분신자유주의로부터기인한해경- 언딘의태만과무능, 정부의무책임한태도와억압적인대응은그들에게충격으로다가왔고국가와자본에대한근본적인회의와분노를일으켰다. 그리고이러한불신과분노로확대된각종의혹과괴담과음모론은노란리본캠페인과함께인터넷과 SNS로빠르게확산되었다. 여기에시민사회의신자유주의적사회경제현실에대한기존의불만들이결합하면서희생자추모촛불집회는명백히정치적인성격을띠게되었다. 그리고진상규명을위한세월호특별법제정및책임자처벌에대한집회와농성이계속되면서세월호희생자가족과시민들의투쟁은신자유주의에대한반성이자반대투쟁으로성장했다. 24) 4. 신자유주의의모순과비대칭적관리, 그리고위기경향 세월호참사에대한희생자가족과시민사회의반응은 세월호, 잊지않겠습니다 로요약될수있다. 25) 그것은희생자에대한애도인동시에다시는그와같은참사가일어나지않게하겠다는결의다. 그것은책임자들에대한처벌뿐만아니라신자유주의로 ( 환원될수는없지만 ) 요약될수있는한국사회의구조적모순에대한세월호참사의폭넓은진실규명을요구한다. 그렇다면세월호 24) 이글이주장하는것은세월호가족과시민들의투쟁이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유연성에대한반대와같은명확한반신자유주의적의식에의해촉발되었다는것이아니다. 이글이주장하는바는세월호참사의정치화는신자유주의적현실이준일련의충격들과그에따른의식의발전, 그리고자연스러운저항의연속으로볼수있다는것이다. 25) 세월호를기억하는시민네트워크 (http://sa416.org) 는세월호참사에관련된기록을수집하고있으며 2014년 8월 11일에는안산시단원구고잔동에 30평남짓한크기의세월호기억저장소 1호관을열었다.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43

참사가가리키는신자유주의의구조적모순은무엇일까? 달리말하면세월호에대한기억을지우려는그모든시도 26) 에도불구하고세월호참사가잊히지않고기억되어야하는이유는무엇일까? 우리가이제까지살펴본세월호참사의정치화는자본주의적모순에대한신자유주의적관리의한계를드러낸다. 자본주의사회는가치, 통치, 정치의측면에서다양한내적모순을가지고있고이를다양한전략을통해서관리한다 (Jessop, 2000 참조 ). 하지만그러한관리가자본주의의모순을완벽히통제하는것은아니다. 모순관리속에서도환상이깨지고현실이드러나는위기의경향은계속나타나며세월호참사와그것의정치화는그러한위기경향을표출한다고할수있다. 가치, 통치, 정치에서의환상과현실과괴리와그에따르는위기는그각각의측면에서신자유주의가사회에미치는비대칭적효과의결과이다. 먼저자본주의사회의모순을관리하는신자유주의전략에대해살펴보자. 첫째, 자본주의사회는가치또는자본축적의영역에서교환가치와사용가치의근본적인모순이있다 (Marx, 1991). 가치는교환가치 ( 화폐 ) 와사용가치 ( 실물또는실질적부, 즉생명, 유용성, 산업적효율성등 ) 의형태로만축적되는데어느한형태로축적되면다른형태가희생되고그결과가치축적자체가위협받을수있다. 예를들면실물상품의과도한생산은화폐의축적을위협할수있다. 왜냐하면더이상화폐의획득 ( 판매 ) 이어려울정도로상품이넘쳐날수있기때문이다. 그렇게되면자본축적은위기에빠진다. 반면에화폐의과도한생산 ( 신용 ) 은실물상품의축적을위협할수있다. 왜냐하면금융화가진행되고금융거품이형성되고생산적 산업적투자가줄어들며마침내심각한타격을입을수있기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는다양한전략을통해서이러한교환가치와사용가치의모순을관리하고균형을잡는다. 신자유주의적축적전략은두가지중에서교환가치, 즉화폐의축적에초점을두면서그밖의것들, 생명 노동력, 유용성, 산업적효율성등과같은실질적부를희생시킨다 (Jessop, 2007: 72; Veblen, 2009 참조 ). 26) 세월호참사에대한진실은폐와진실규명을요구하는희생자가족들에대한왜곡된정보의유통등이이에해당한다. 따라서세월호에대한기억은사회적투쟁의영역이다 ( 김익한, 2014). 44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둘째, 자본주의사회는사회질서또는통치의영역에서자유와질서의모순을노정한다. 자본주의사회는개인의 ( 소극적 ) 자유를강조하는자유주의를발전시키지만동시에개인의자유가자본주의적생산관계의질서를무너뜨릴정도로확장되어서는안된다. 예를들면자본주의는혁신을위한비판을장려하지만그렇다고자본주의의형태를허물어서는안된다 (Eagleton, 2002). 때문에자본주의사회는자유와질서를결합하는다양한전략이존재한다. 자본주의는일반적으로개인의생명과신체의자유외에도재산권을강조하는자유주의적질서를발전시키지만그안에도다양한유형이있으며, 파시즘, 군부독재, 보나파르티즘, 케인스주의, 사회민주주의와같은국가주의적인질서관리도자본주의에서예외적이라고만하기어려울만큼흔하다 (Poulantzas, 1986 참조 ). 실로국가는자유와통제, 개입과비개입사이에적절한균형을잡아야한다. 신자유주의적통치전략은, 개인재산권의확장과국가축소, 즉자유로운경쟁의심화를통해서개인들을탈정치화하고집합행동으로부터거리를두게함으로써자유와질서의모순을관리하고자본주의적질서를재생한다. 셋째, 자본주의사회는정치의영역에서대표성과비대표성, 책임성과무책임성, 또는민주주의와자본주의사이의모순을노정한다. 자본주의사회의정당성은정치적대표성과책임성에의해승인되지만, 이러한정치적대표성과책임성, 즉민주주의가과도하게발전할경우자본주의적생산 / 소유관계를위협할수있다. 따라서자본주의는민주주의를완전히억압해서도그렇다고완전히해방해서도안되며, 적절하게제한해야만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발전한대의제자유민주주의 ( 정치적민주주의 + 경제적자유주의 ) 는민주주의를적절하게제한함으로써대표성 / 책임성과비대표성 / 무책임성의모순을관리하는하나의방식이다. 물론자본주의의실제정치사에서는정상적인대의제자유민주주의가차라리예외적이며노골적으로억압적이고무책임한파시즘, 군사독재, 보나파르티즘등이오히려지배적인때도있었다. 이와달리신자유주의는 권위적국가주의 또는 포스트민주주의 라고불릴수있는형식화 / 관료화 / 사법화된민주주의를통해자본권력을대표하고책임진다 (Poulantzas, 1994; Crouch, 2008). 말하자면신자유주의는가치 ( 축적 ), 통치, 정치영역의모순을교환가치, 자유, 그리고관료화 / 사법화의계기를강화하는전략으로관리한다. 이를통해신자유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45

주의는사람들에게자아실현의희망과더불어자유로운시장거래에의한부의증식, 즉가치의축적과질서의환상을조장한다. 그러나이러한모순관리는사회적으로비대칭적인효과를낳고그에따라한계에부딪친다. 신자유주의전략은확실히지배적자본가계급에는더많은자아실현의기회, 자산가격으로대표되는부와가치의증식, 그리고비즈니스에유리한자유와사회질서를제공한다. 또한신자유주의정치권력은그들의권력을더많이대표하고책임진다. 하지만반대로상당수비자본가계급에게는빈곤, 생명가치의하락, 비효율성, 부자유, 생활의불확실성과무질서를부여하며, 정치권력은그들을대표하지도책임지지도않는다. 그들은경제적교환가치는커녕사용가치도제대로제공받지못하며, 자아실현의기회나정치적대표성과책임성도누리지못한다. 이렇게지극히비대칭적인신자유주의의효과는배제된사람들을생성한다. 그들에게신자유주의의환상과현실은괴리되게마련이며이러한괴리는그것이체험되고인식될때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에정치적, 사회적불안의요인을제공한다. 이는개별적인생명들을방치하면서붕괴하지않는수준으로만관리함으로써통치의비용을극소화하는신자유주의통치성의필연적인양태일수밖에없다. 예를들면신자유주의적민영화와규제완화는직간접적민영화를통해사용가치를희생하고교환가치를추구하며국가의업무를민간에돌리고책임을방기한다. 그리고그결과로어디선가는대형사고가터지고때로는사고의수습또한어려움에빠지게된다. 세월호참사와그것의정치화는바로자본주의의모순을관리하는이러한신자유주의적전략과제도의약한고리에서일어난것이었다. 즉앞에서서술했던, 세월호참사, 그에따른가치, 통치, 정치영역에대한환상의붕괴와현실의폭로, 그리고정치사회적저항은각각의영역에서신자유주의적관리전략이한국사회에미치는비대칭적효과가낳은결과였다. 신자유주의에서는이렇듯그비대칭적효과로인해환상이깨지고현실이드러나는부분적인위기의경향들이반복된다. 그러나이러한위기경향들이반드시체계적이고구조적인수준의위기로발전하는것은아니다. 신자유주의권력은터져나온모순을다시흡수하거나억누름으로써그것이체계적위기로까지발전하지않도록관리할수있다. 서해훼리호침몰에도불구하고침몰사고의재발을막기위한제도적개선보다는규제완화가계속되었듯이세월호 46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참사이후에도신자유주의적규제완화는전사회적으로계속되고있다 ( 헤럴드뉴스, 2014.4.19; 뉴시스, 2014.4.24). 더구나진상규명을위한세월호특별법은수사권과기소권에대한희생자유가족의요구를반영하지않았다. 다시말하면신자유주의에서계속적으로터져나오는모순들은, 구조적제약속에서도그해결이나해소가완전히결정되지않는사회적, 정치적투쟁의장이다. 따라서세월호유가족과시민들의투쟁은세월호특별법제정으로끝나지않고어떤형태로든이후의진상조사과정에서도계속될것이다. 그리고이에따라세월호참사를통해 2008년촛불시위이후다시금촉발된한국신자유주의의모순을둘러싼사회적투쟁과갈등은계속될것이라고생각된다. 27) 신자유주의적지배질서가계속되고그로부터파생되는모순과위기의징후들이계속되는한우리는결코세월호참사, 그리고그로인해희생된이들을잊을수없을것이다. 5. 결론 이글은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과그들을지지하는시민행동의정치화를통해우리사회의신자유주의화와그한계를살펴보았다. 1993년에발생한서해훼리호참사와 2014년에발생한세월호참사는유사한측면이많지만서해훼리호참사와달리세월호참사는예외적으로정치화되었다. 희생자가족과시민사회는애도와분노를넘어정치적행동을조직하고정부의사과와특별법제정을요구했으며국회내에서도세월호특별법제정을둘러싸고여야간에도격돌이일어났다. 그리고세월호참사진상규명과정에서도이러한정치적갈등은계속될것이라고생각된다. 세월호참사의예외적으로심화된정치화는많은부분서해훼리호참사와 27) 가족대책위는청와대앞농성장과국회농성장은철수하지만광화문농성장은철수하지않기로했다. 유경근가족대책위대변인은 광화문농성장은이제가족들뜻만으로철수할수없다 며 진상조사위구성과시행추이를지켜보며함께해주시는시민들과상의해서결정할것 이라고밝혔다 ( 오마이뉴스, 2014.11.5).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47

구별되는세월호참사의특징, 특히사고처리및수습과정에서의차이에기인한다. 세월호참사는서해훼리호와달리희생자의낮은연령, 선장과선원의무책임한도주, 무능한실종자수색작업, 국가의정치적책임회피, 피해자가족들과사회와의소통곤란등을특징으로했다. 이러한차이는많은부분우연한차이가아니라, 1993년과 2014년사이에벌어진신자유주의화라는한국사회의시대적, 구조적변화를나타낸다. 세월호참사는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된대한민국의환상을깨고, 이윤을위해개개인의생명을무책임하고무능하게방치하는신자유주의의참혹한현실을드러냈다. 세월호희생자가족과시민사회가예외적으로정치화되고반신자유주의투쟁에나서게된것은이러한충격적인현실에대한인식을통해서였다. 이와같이세월호참사의정치화는자본주의적모순에대한신자유주의적관리전략의한계를드러내준다. 세월호참사는개인의자유가마음껏발휘될수있는효율적인선진자본주의국가라는이상이사회적으로보편적인것이아니라비대칭적이라는것. 그래서그것은사실언제든지죽음의위험에직면하고버려질수있는대부분의사람들에게는환상에불과하다는것을보여준다. 그리고이는그러한비대칭성의결과로신자유주의체제내부에사회적 정치적위기의경향이지속된다는것을보여준다. (2014 년 11 월 6 일투고, 11 월 26 일심사, 11 월 30 일채택 ) 주요용어 세월호참사, 서해훼리호참사, 신자유주의, 국가 참고문헌고민택. 2014. 세월호참사후한국사회정치지형변화가능성. 진보평론, 61, 89~ 110쪽. 기든스, 앤소니 (Anthony Giddens). 1991. 포스트모더니티. 이윤희, 이현희옮김. 민영사. 김익한. 2014.8.29. 세월호, 잊지않겠단약속은틀렸다. 프레시안, http://www. 48 경제와사회 2014 년겨울호 ( 통권제 104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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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aldcorp.com/view.php?ud=20140418000899 Abstract The Political Sociology of the Sewolho Disaster The Fantasy and Reality of Neoliberal Capitalism Joo-Hyoung Ji This article examines the politicization of the Sewolho victims families and their civil supporters, thereby reviewing the structural neoliberalization of Korean society and its limits. The West Sea Ferry disaster in 1993 and the Sewolho disaster in 2014 exhibits a number of similarities, but unlike the former, the latter has been exceptionally politicized. This is largely due to the differences between the West Sea Ferry and Sewolho disasters in terms of their management. Unlike the West Sea Ferry case, the Sewolho disaster is characterized by the victims younger age, the captain and crew s irresponsible flight, the incompetent search operation for missing people, the evasion of responsibility by the state, and the communicative isolation of the victims families. Many of these differences are not contingent ones and reflect the structural change of Korean society between 1993 and 2014, that is, neoliberalization. The Sewolho disaster broke down the fantasy of advanced, industrialized and democratized Korea and exposed the brute reality of neoliberal capitalist state that lets individuals die for the sake of profits. It is through the recognition of such a shocking reality that the Sewolho victims families and civil society have become exceptionally politicized and entered into anti-neoliberal struggle. In this way, the politicization of the Sewolho disaster reveals the limits to the neoliberal management of capitalist contradiction. Keywords: Sewolho disaster, West Sea Ferry disaster, neoliberalism, the Korean state 특집 1 세월호참사의정치사회학 _ 지주형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