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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제 31 집 2015

3 제 31 집 목차 논문 해금운지법원리연구 김정미 9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배인교 43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신태영 67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양영진 89 - 마산백운사석봉의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를중심으로 - 월명사의성범 ( 聲梵 ) 에관한연구 윤소희 111 - 한국초전불교와서역불교문화를통하여 -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이지선 145 -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의 1907 년 ~1915 년기사를중심으로 - 서평 고대부터현대까지한권에담긴새로운한국무용사 권혜경 193 한국춤통사 ( 서울 : 보고사, 2014) 자료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이지선 199-1907 년부터 1912 년까지 -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이지선 249-1909 년부터 1915 년까지 - 부록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271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277 국악원논문집 원고작성원칙 284

4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No.31 Table of Contents 2015 Articles Analysis of the Principles of Haegum Fingering Techniques Kim, Jeongmi 41 The aspect of orchestrating the traditional instruments in North Korean Capital music organizations in 2010s Bae, Ihngyo 64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Dangak-jeongjae in the Goryeo Dynasty Shin, Taeyoung 87 Relevance of Baramu Motion with Beompae Melody of Baekun Temple in Masan -Focused on Sadarani( 四多羅尼 ) Bara and Cheonsu( 千手 ) Bara of Seokbong- Yang, Youngjin 108 A Study on the Mantra chants of the Unified Silla era -Through researching the Buddhist culture of Silk Road- Yoon, Sohee 143 Aspects of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ances in Japanese Theaters in Seoul Between 1900s and 1910s -Focusing on the articles in the Gyeonseong Sinbo and the Gyeongseong Ilbo on Performances in Japanese Theaters from 1907 to 1915- Lee, Jisun 182

5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No.31 Table of Contents 2015 Book Review The Birth of a New History Book Covering Every Era Korean Dance Kweon, Hyekyung 193 Miscellaneous The list of the articles about the traditional Korean and Japanese performing arts in the Gyeonseong Sinbo -from 1907 to 1912- Lee, Jisun 199 The list of the articles about the traditional Korean and Japanese performing arts in the Gyeonseong Ilbo -from 1909 to 1915- Lee, Jisun 249 Annex Research Ethics Regulations for the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271 Publication Regulations for the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277 Guidelines for manuscript submissions for the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 284

논문 해금운지법원리연구 김정미 2010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배인교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신태영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양영진월명사의성범 ( 聲梵 ) 에관한연구 윤소희 1900년대 ~1910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이지선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9~42 쪽 2015 1) 해금운지법원리연구 김정미 * [ 국문초록 ] 본논문은 악학궤범 의해금산형에나타난해금운지법 민요 산조 정악의해금운지법을분석하였다. 전통곡인민요 산조 정악의포지션유형과포지션이동유형은각장르별특징대로상이 ( 相異 ) 하게나타나고있다. 각곡의운지법의특징을보면민요와산조는정해진포지션없이유동성을지닌상대적중심음을기준으로유현식지가결정됨을알수있다. 또한산조와정악은제한된음간격으로전조되거나음역이확장될때포지션이동이이루어짐을알수있다. 이렇듯포지션과포지션이동이각곡의특징에맞는운지법에따라진행되고있지만이러한전통곡운지법은결국한가지의공통된운지법을갖고있는것을알수있다. 각곡에쓰인공통된운지법을자세히살펴보면다음과같다. 악학궤범 의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은비록경안법의차이에서평조와계면조가서로다르게구분되고있지만포지션의이동이완전5도로동일하게이동하는것을알수있었으며, 계면조에서한음을제외하면같은조에서는한가지형태의공통된운지법이사용되고있음을알수있었다. 민요의운지법은유동성을지닌민요청이음계나출현음과는상관없이유현식지를 도 나 솔 의두가지포지션으로한정하고있는것을알수있다. 이렇게유현식지가 도 나 솔 인포지션유형의운지형태는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하고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4도의운지변화를지닌공통운지법을갖는다. 산조의운지법은다양한조구성과함께포지션이동이자유롭다. 그러나일정하게유현식지를 도 나 솔 의두가지포지션유형으로한정하고있어서민요와같다. 포지션이동은전조와음역의확장을통해이루어지는데, 유현식지가 도 에서 솔 이나 솔 에서 도, 솔 에서다시 솔 로이동하는것을알수있다. 따라서유현식지가 도 나 솔 인포지션유형과포지션이동유형은운지형태에서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하고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4도의운지변화를지닌공통운지법을갖는다. 정악의운지법은고정된포지션과함께제한된장2도, 단3도, 완전4도의포지션이동을한다. 포지션의이동을음역이확장될때이루어지는것과함께음역과상관없이이루어지는것을분석하였다. 그결과포지션과포지션이동의운지법이한가지공통운지법으로연주하기위한것이라는결과를얻었다. 이것은민요 산조와같이운지형태에서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하고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4도의운지변화를지닌공통운지법과같은것이다. 이상의연구를통해전통곡운지법의결론은다음과같다. 민요 산조 정악의운지법은차이점과공통점을갖고있다. 이러한차이점과공통점은결국연주할때운지의혼동을최소화하기위해공통운지법이성립된것을알수있다. 지금까지의결과를바탕으로현재는정립되어있지않은창작곡운지법을도출해볼수가있다. 해금이개방현조율음이없는이동도법의악기라는것을감안한다면조성에따른으뜸음 도 (tonic) 를유현식지로하는기본포지션이성립된다. 또한음역의확장으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는경우에는완전5도위인 솔 (dominant) 로이동한다. 이러한결론은지금까지전통곡의공통점에서밝힌것과같이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하며무명지에서는장3도또는완전4도를연주하는유동성을지닌운지법이성립할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 본논문은 악학궤범 의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을비롯한전통곡전반의민요 산조 정악의운지법분석을통해창작곡운지법의체계를정립하는계기를마련하였다. 이에연구자는앞으로각조성에맞는창작곡의포지션과포지션이동에따른통일된운지법을제시하는연구를과제로남기고자한다. ** 현성남시립국악단단원

1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핵심어] 악학궤범 해금산형에 나타난 운지법, 민요의 해금 운지법, 산조의 해금 운지법, 정악의 해금 운지법, 해금 전통곡 운지법, 해금 창작곡 운지법 <차 례> Ⅰ. Ⅱ. Ⅲ. Ⅳ. Ⅴ. Ⅵ. 머리말 악학궤범 해금 산형의 운지법 유형 민요의 운지법 유형 산조의 운지법 유형 정악의 운지법 유형 맺음말 Ⅰ. 머리말 해금은 전통악기이다. 해금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고려 고종(1214년~1259년) 때에 한 림학사(翰林學士)들이 지은 한림별곡(翰林別曲) 1) 제6연을2) 들 수가 있다. 해금이 중국에서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최소한 고려 고종을 기준으로 하며, 또 그 이전의 시기로 소급될 수도 있 다.3) 이러한 해금은 궁중의 속악(俗樂)에서 연주되거나 선비들의 풍류문화, 또는 서민들의 일상에 두루 연주되었다. 그런데 수 세기가 지난 21세기에 들어서면 해금이 각광받는 시대라고 할 만큼 방송매체를 통해서 또는 입시경쟁에서 그 인구가 늘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늘날 향유층(享有層)의 증가와 관심은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배우고 익혀서 연주하는 것으로 발전하였 다. 이런 배경에 따라 해금을 연주하는데 기본이 되는 연주법에 관한 연구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해금 연주법은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정해져 있어 구분된다. 오른손에 해당하는 것을 운궁법 이라고 하며, 활을 써서 소리 내는 방법을 말한다. 반면, 왼손에 해당하는 것은 운지법이라고 하며, 줄을 짚어 소리 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연주법 중에서 운지법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 면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전통곡의 운지법에 관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곡의 운지법 연구를 통하여 창작음악에 활용할 수 있는 운지법에 관한 연구이다. 먼저, 전통곡의 운지법에 관한 논문으로 전통곡 중에서 정악을 다룬 조운조와4) 산조를 다룬 최 1) 악학궤범(樂學軌範) 과 악장가사(樂章歌詞) 에 국한문(國漢文)으로, 고려사 악지(高麗史 樂志) 에는 한문(漢文)과 이두(吏 讀)로 각각 실려 전한다. 2) 阿陽琴 文卓笛 宗武中琴 / 帶御香 玉肌香 雙伽倻ㅅ고 / 金善琵琶 宗智嵆琴 薛原杖鼓 / 위 過夜ㅅ景 긔 엇더 니잇고 / (葉) 一枝紅의 빗근 笛吹 / 一枝紅의 빗근 笛吹 / 위 듣고아 드러지라. 3) 조운조, 해금의 전통연주기법 고, 한국문화연구원논총 제53집, (이화여자대학교, 1988), 7쪽. 4) 위의 논문, 327-382쪽.

해금운지법원리연구 11 태현, 5) 심인택 6) 의연구가있다. 다음으로전통곡의운지법을응용하여창작음악에활용할수있는운지법을다룬논문으로주영위, 7) 조주희, 8) 한서영, 9) 노은아10) 의연구가있다. 전통곡의운지법에관해서는제시된운지법을다룬연구가전부이다. 또한전통곡운지법을통해창작곡에활용할수있는운지법연구에서는정악에국한된단편적체계 ( 體系 ) 의운지법을율명 ( 律名 ) 으로제시하거나오선보의음명으로제시한운지법연구에서는해금의전반적운지법원리이해를통한운지법제시라기보다는임의의기준을세우는데그쳐기존연구성과와마땅히다른것을찾지못했다는한계성이있다. 따라서지금까지의연구성과를살펴보면제시된운지법의연구혹은, 임의의운지법을제시한연구만있을뿐전통곡전반의각곡마다운지가지정되게된원리에대한연구는전무 ( 全無 ) 하다고판단된다. 본연구의목적은전통곡전반의해금운지법체계를밝혀운지법의원리를이해해보고자한다. 전통곡들이갖는음악적특성이운지법에도영향을미치는지운지법의특징을분석하여전통곡전반의해금운지법상관관계를살피고자한다. 이러한전통곡에나타난운지법분석을통해도출된결과는현재까지는정리되어있지않아통일안조차마련되어있지않은해금창작곡운지법을체계적으로제시하는계기를마련하고자한다. 연구범위는 악학궤범 해금산형의운지법과전통곡의대표장르인민요, 11) 산조, 12) 정악13) 의운지법을대상으로삼았다. 연구대상에서남도계면조는서양작곡법을토대로창작한곡의운지법체계를정립하는것과는내용이맞지않아본연구에서제외하였다. 14) 또한출현음에포함되지않은장식음은대부분출현음의옥타브위의음으로운지법의상관관계를분석하는내용에서그비중이크지않아편의상연구에서제외하였다. 연구방법은 악학궤범 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을분석하여보고민요, 15) 산조, 정악의순서로운지법을분석하였다. 16) 각곡의출현음과유현식지를정리하여유형을살피고유현식지를기준으로한나머지운지의형태를분석해보았다. 5) 최태현, 해금산조연구, ( 서울 : 세광음악출판사, 1988), 113-203쪽. 6) 심인택, 한범수류해금산조에관한연구 : 진양조의선법과운지법을중심으로, ( 서울 : 서울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1). 7) 주영위, 해금운지법연구, 한국음악산고 제 3집, ( 한양대학교한음회, 1992), 55-97쪽. 8) 조주희, 해금운지법연구 : 이건용작곡해금가락Ⅰ 을중심으로, ( 서울 : 한양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4). 9) 한서영, 해금의운지법에관한연구, (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8). 10) 노은아, 해금창작곡을위한연주법연구, ( 서울 : 서울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3). 11)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창, < 한국고전민요 >, 제1집, 제2집, 제3집, ( 한국음반, 1982). 12) 최태현, 해금산조연구 Ⅱ, ( 서울 : 민속원, 2008). 13) 강사준 윤찬구엮음, 정악해금보, ( 서울 : 은하출판사, 1988). 14) 떠는청-더음청-본청-꺾는청-엇청 등으로구성된계면선법 (minor) 은특정청의구분된기능이있어계면조를표현하였을때운지법에도영향을미친다. 따라서창작곡에서는계면조와같은특정음기능을필요로하는운지법이사용되지않기때문에제외하였다. 15) 대상음원해금반주자의운지를분석하였다. 16) 전통곡의운지법은활용면에서민요, 산조, 정악순으로점차확장되어있어단계적분석을위해공시적관점에서민요, 산조, 정악의순서로운지법을분석하였다.

1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본 논문의 운지법에 관한 용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운지법은 운지를 잡는 위치 혹은 운 지 형태 등과 함께 농현, 퇴성, 추성과 같이 표현방법을 나타내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본 논문에 서 운지법은 표현방법을 제외한 운지법을 대상으로 하였다. 표현방법을 제외한 운지법에서 포지션 은 운지가 현을 잡는 위치를 말하며, 구체적으로 포지션은 유현식지의 위치를 말한다. 또한 포지션 의 이동은 운지 이동을 말하며, 유현식지의 포지션에서 포지션이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운 지법이란 포지션, 포지션이동과 같이 현(絃)을 잡는 운지의 여러 형태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 것 을 말한다. Ⅱ. 악학궤범 해금 산형의 운지법 유형 해금 운지법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악학궤범 해금산형에 나타난 운지법이다.17) 악학궤 범 해금산형의 운지법을 보면 현재 전통곡에서 사용하는 역안법과는 다르게 경안법이 쓰인다. 해 금 운지법에서 말하는 경안법과 역안법의 두 가지 전통곡 운지법이란 경안법은 손가락을 짚어 벌 려서 연주 하는 것이며, 역안법은 손가락을 잡아 눌러서 연주 하는 것으로 이들의 운지법은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경안법과 역안법의 두 가지 전통곡 운지법의 원리를 분석하여 비교해 봄으로써 두 가지 운지법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림 1>은 해금 운지법에 관한 가장 오 래된 문헌으로 악학궤범 해금 산형의 운 지법이다. 산형(散形)에 제시된 운지법은 평조(平調)와 계면조(界面調)가 있으며, 각 조에 따른 해당 운지들을 명시해 주었다. 이와 같이 산형에 나타난 운지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산성(散聲) 즉, 허현(虛絃)은18) 개방현 (開放絃)을19) 말한다. 산성 아래 중현(中 絃)의 운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고, 하오(下 <그림 1> 악학궤범 해금 산형에 나타난 운지법 五, 僙)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 산성의 음, 즉 개방현의 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 17) 이혜구 역주, 신역 악학궤범, (서울: 국립국악원, 2000), 711-712쪽. 18) 위의 책, 433쪽. 19) 산성(散聲)이 개방현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사례는 위의 책 거문고 산형(444쪽)과 향비파 산형(456쪽) 등에서 알 수 있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13 다. 원산위의중현 ( 中絃 ) 에중현궁 ( 中絃宮, 僙 ), 20) 유현 ( 遊絃 ) 에유현치 ( 遊絃徵, 㑣 ) 라고쓰여있는것으로봐서두줄의음간격이 5도차이라는것을알수있다. 또한중현궁 ( 中絃宮, 僙 ) 과유현 ( 遊絃 ) 의궁 ( 宮, 黃 ) 은옥타브관계라는것을알수가있다. 산성 ( 散聲 ) 의음을비롯하여운지의간격이음차이만큼벌어져있는것으로봐서경안법으로연주되었다는것을알수있다. 또한평조 ( 平調 ) 의상3( 上三, 林 ) 에소지 ( 小指 ) 와상4( 上四, 南 ) 에장지 ( 長指 ), 계면조 ( 界面調 ) 의상3( 上三, 林 ) 에소지 ( 小指 ) 와상4( 上四, 無 ) 에장지 ( 長指 ) 로되어있는것은각조의소지 ( 小指 ) 부분이포지션이동될때식지 ( 食指 ) 가되는것을알수있다. 따라서포지션이동의음간격이궁 ( 宮, 黃 ) 에서상3( 上三, 林 ) 으로, 5도로진행하는것을알수있다. 이것은제시된평조 ( 平調 ) 와계면조 ( 界面調 ) 에는각각궁 ( 宮 ) 과상3( 上三 ) 을유현식지로하는두가지운지법이있다는것을추측할수있다. 이러한내용을그림으로나타내보면다음과같다. 開放食指食指長指名指 下五 ( 僙 ) 下四 ( 㑀 ) 下三 ( 㑖 ) 下二 ( 㑣 ) 宮 ( 黃 ) 上一 ( 太 ) 下一 ( 㑲 ) 上二 ( 仲 ) 上三 ( 林 ) 食指長指名指小指 長指 名指 宮 ( 黃 ) 下二 ( 㑣 ) 上一 ( 太 ) 下一 ( 㑲 ) 上二 ( 仲 ) 上三 ( 林 ) 上四 ( 南 ) 上五 ( 潢 ) 上六 ( 汰 ) 食指 長指 名指 小指食指 長指 名指 小指 < 그림 2> 평조 ( 平調 ) 궁 ( 宮 ) 과 상 3( 上三 ) 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2> 는 평조 ( 平調 ) 궁 ( 宮 ) 과 상3( 上三 ) 의운지법유형이다. 운지간의음간격을유현식지기준으로설명하여보면, 궁 ( 宮 ) 포지션 21) 은유현식지궁 ( 宮 )= 황종 ( 黃 ) 과22) 장지태주 ( 太 ) 가장2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명지중려 ( 仲 ) 가완전4 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소지임종 ( 林 ) 이완전5 도이다. 상3( 上三 ) 포지션은완전5도포지션을이동해서유현식지 23) 임종 ( 林 ) 과장지남려 ( 南 ) 가장2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명지청황종 ( 潢 ) 이완전4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소지청태주 ( 汰 ) 가완전5도인것을알수있다. 다음은계면조의운지법이다. 20) 이해의편의를위해율명도같이표기하였다. 21) 유현식지의위치를말한다. 22) 음간격의이해를돕기위해오음약보대신이하율명으로설명하였다. 23) 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시점에서중현의운지법은표기되어있지않아유현식지만을다루었다.

1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開放食指食指長指名指 下五 ( 僙 ) 下四 ( 俠 ) 下三宮 ( 黃 ) ( 㑖 ) 下二 ( 㑣 ) 上一 ( 夾 ) 下一 ( 㒇 ) 上二 ( 仲 ) 上三 ( 林 ) 食指長指名指小指 長指 名指 宮 ( 黃 ) 下二 ( 㑣 ) 上一 ( 夾 ) 下一 ( 㒇 ) 上二 ( 仲 ) 上三 ( 林 ) 上四 ( 潕 ) 上五 ( 潢 ) 食指 長指 名指 小指食指 長指 名指 上六 ( 浹 ) 小指 < 그림 3> 계면조 ( 界面調 ) 궁 ( 宮 ) 과 상 3( 上三 ) 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3> 은 계면조 ( 界面調 ) 궁 ( 宮 ) 과 상3( 上三 ) 의운지법유형이다. 운지간의음간격을유현식지기준으로설명하여보면, 궁 ( 宮 ) 포지션은유현식지황종 ( 黃 ) 과장지협종 ( 夾 ) 이단3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명지중려 ( 仲 ) 가완전4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소지임종 ( 林 ) 이완전5도이다. 상3( 上三 ) 포지션은완전5도포지션이동해서유현식지임종 ( 林 ) 과장지무역 ( 無 ) 이단3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명지청황종 ( 潢 ) 이완전4 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소지청협종 ( 浹 ) 이단6도인것을알수있다. 위의평조와계면조의운지간음간격을다시간단히설명하여보면평조는 2도-4 도-5 도, 포지션이동에서음간격또한 2도-4 도-5 도로같은운지법을사용하였으며, 계면조는 3도-4 도- 5도, 포지션이동에서음간격은 3도-4 도-6 도의음간격으로마지막음간격만이예외인것을알수있다. 이를통해경안법이기때문에평조와계면조의운지법이확연히다른유형으로구분되고있지만포지션과포지션이동은동일하게완전5도로이동하고있는것을알수있다. 또한같은조에서포지션과포지션이동은계면조의포지션이동에서마지막음을제외하고모두동일한운지법을사용하고있는것을알수있었다. Ⅲ. 민요의운지법유형 민요는기본포지션을정하는데있어이동도법의특징이잘표현되어있다. 다음은음반 < 한국고전민요 > 의제1 2 3 집이며, 각곡의출현음24) 과유현식지포지션유형을살펴보겠다. 다음표는 < 한국고전민요 > 제1집의출현음과포지션이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15 < 표 1> < 한국고전민요 > 제 1 집의출현음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 솔 포지션 도 1 노랫가락 2 아리랑 3 베틀가 4 한강수타령 5 도라지 6 노들강변 7 경복궁타령 8 궁초댕기 9 청춘가 10 천안삼거리 11 박연폭포 12 장기타령 13 자진방아타령 24) 실음표기에서덧줄이많아연구편의를위해한옥타브아래로표기하였다.

1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4 둥그레당실 15 사철가 16 이별가 위 < 표 1> 의수록곡을보면 < 노랫가락 >, < 아리랑 >, < 베틀가 >, < 한강수타령 >, < 도라지 >, < 노들강변 >, < 경복궁타령 >, < 궁초댕기 >, < 청춘가 >, < 천안삼거리 >, < 박연폭포 >, < 장기타령 >, < 자진방아타령 >, < 둥그레당실 >, < 사철가 >, < 이별가 > 로총 16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 25) 따른유현식지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노랫가락 >, < 아리랑 >, < 베틀가 >, < 한강수타령 >, < 도라지 >, < 노들강변 >, < 경복궁타령 >, < 청춘가 >, < 천안삼거리 >, < 박연폭포 >, < 장기타령 >, < 자진방아타령 >, < 둥그레당실 >, < 사철가 > 는유현식지가 도 이고, < 궁초댕기 >, < 이별가 > 는유현식지가 솔 이다. 다음표는 < 한국고전민요 > 제2집의출현음과포지션이다. < 표 2> < 한국고전민요 > 제 2 집의출현음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 솔 포지션 도 1 창부타령 2 사발가 3 자진뱃노래 4 양산도 5 난봉가 6 자진난봉가 25) 실음 을근거로 솔미제이션 으로구분하였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17 7 신고산타령 8 방아타령 9 사설방아타령 10 담바귀타령 11 몽금포타령 12 오돌독 13 강원도아리랑 14 수심가 위 < 표 2> 의수록곡을보면 < 창부타령 >, < 사발가 >, < 자진뱃노래 >, < 양산도 >, < 난봉가 >, < 자진난봉가 >, < 신고산타령 >, < 방아타령 >, < 사설방아타령 >, < 담바귀타령 >, < 몽금포타령 >, < 오돌독 >, < 강원도아리랑 >, < 수심가 > 로총 14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유현식지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창부타령 >, < 사발가 >, < 양산도 >, < 방아타령 >, < 사설방아타령 >, < 담바귀타령 >, < 몽금포타령 >, < 오돌독 >, < 수심가 > 는유현식지가 도 이고, < 자진뱃노래 >, < 난봉가 >, < 자진난봉가 >, < 신고산타령 >, < 강원도아리랑 > 는유현식지가 솔 이다. 다음표는 < 한국고전민요 > 제3집의출현음과포지션이다. < 표 3> < 한국고전민요 > 제 3 집의출현음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 솔 포지션 도 1 매화타령

1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2 태평가 3 정선아리랑 4 건드렁타령 5 군밤타령 6 풍년가 7 닐니리야 8 긴아리랑 9 오봉산타령 10 뱃노래 11 산염불 자진산염불 12 양유가 13 한오백년 14 밀양아리랑 15 울산아리랑 16 금강산타령

해금운지법원리연구 19 위 < 표 3> 의수록곡을보면 < 매화타령 >, < 태평가 >, < 정선아리랑 >, < 건드렁타령 >, < 군밤타령 >, < 풍년가 >, < 닐니리야 >, < 긴아리랑 >, < 오봉산타령 >, < 뱃노래 >, < 산염불 > < 자진산염불 >, < 양유가 >, < 한오백년 >, < 밀양아리랑 >, < 울산아리랑 >, < 금강산타령 > 으로총 16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유현식지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매화타령 >, < 태평가 >, < 군밤타령 >, < 풍년가 >, < 닐니리야 >, < 긴아리랑 >, < 오봉산타령 >, < 뱃노래 >, < 산염불 > < 자진산염불 >, < 밀양아리랑 >, < 울산아리랑 >, < 금강산타령 > 는유현식지가 도 이고, < 정선아리랑 >, < 건드렁타령 >, < 양유가 >, < 한오백년 > 는유현식지가 솔 이다. 지금까지 < 한국고전민요 > 제1 2 3 집에있는민요의출현음과유현식지의포지션을살펴보았다. 그결과제1집 16곡, 제2집 14곡, 제3집 16곡총 46곡중에서유현식지가 도 인곡은제1집 14곡, 제2집 9곡, 제3집 12곡으로총 35곡이었다. 유현식지가 솔 인곡은제1집 2곡, 제2집 5곡, 제3집 4곡으로총 11곡이었다. 이상의결과를통해유동성을지닌민요청은음계나출현음과는상관없이해금의운지법이유현식지를 도 나 솔 두가지유형의포지션으로한정하고있다는것을알수있었다. 이러한 도 나 솔 의운지법유형에따른운지의형태를자세히보면무명지를제외한모든운지는다음운지로바뀌거나한운지에서음을역안해서낼때음간격이장2도로공통된음간격을갖고있었다. 제외된무명지는장2도와단3도의두가지운지형태를갖고있으며, 각각운지법유형에따라두가지의운지형태가바뀌는것을알수있었다. 이와같은내용을그림으로살펴보면아래와같다. 도食指食指도솔食指 長指솔레長指長指레라長指 名指 라 미 (3 도 26) ) 名指 名指 미 (3 도 ) 도 (4 도 ) 名指 솔, 라 27) 小指레, 미小指 도 小指 28) 솔 小指 < 그림 4> 민요 도 와 솔 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4> 는민요 도 와 솔 의운지법유형이다. 운지간의음간격을유현식지기준으로설명 26) 유현식지 도 에서무명지 미 까지의음간격을말한다. 이후괄호안에있는숫자는모두유현식지음에서무명지까지의표기음간격을말한다. 27) 같은운지위에있는음명은자체가음을나타내고있기때문에누른음에관해서는따로표기하지않았다. 이하같음. 28) 화살표 는그운지에서화살표방향으로올리거나내리라는표시이며, 같은운지이지만손가락을벌려손가락의위치가다른곳을짚어연주함으로소지, 소지 로구분하여다르게분석하였다. 이하같음.

2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하여 보면, 유현29) 식지와 장지는 장2도, 유현식지와 무명지는 장3도 또는 완전4도, 유현식지와 소 지는 완전5도 장6도,30) 유현식지와 소지 는31) 완전8도를 연주하게 되는 운지법을 갖고 있다. 위의 도 와 솔 운지법의 운지간 음간격을 자세히 간단히 설명하여 보면 도 운지법은 2도 3도 5도 6도 8도, 솔 운지법은 2도 4도 5도 6도 8도이다. 이를 통해 유현식지가 어떤 유형 이냐에 따라 무명지가 장3도나 완전4도를 잡는 두 가지의 운지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Ⅳ. 산조의 운지법 유형 산조는 민요와 마찬가지로 기본 포지션을 정하는데 이동도법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민요에서는 없는 음역의 확장 혹은 전조 등을 통해 포지션 이동이32) 이루어진다. 다음은 지영희류 와 한범수류의 해금 산조의 출현음에 따른 음역과 포지션 및 포지션 이동을 살펴보았다. 아래의 표는 <지영희류 산조>의 조구성에 따른 출현음과 포지션이다. <표 4> 지영희류 조구성에 따른 출현음과 포지션 장단 조 출현음 포지션 음역 도,솔 833)+8+3 평조 도 8+5 경드름 솔,도 8+8+2 평조 솔 8+3 경드름 솔 7 우조 평우조 진양 중모리 굿거리 29) 중현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생략하였다. 30) 소지 한 손가락에서 솔과 라, 레와 미의 두 음이 역안에 따라 동일하게 나타나므로 상황에 따라 바뀌는 무명지의 미나 도와는 다르다. 31) 유현식지의 옥타브 음을 낼 때 사용되며, 도, 솔의 이전 음에 해당하는 파 시 는 민요에 사용되지 않는 음이기 때문에 공통 운지법(운지 간의 음간격이 장2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32) 포지션 이동 이란 하나의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시프팅, 시프트, 자리이동, 위치이동 등의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으나 현재 포지션 이동 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어 택하였다. 33) 완전8도를 말하며, + 뒤의 숫자는 추가된 도수이다. 이하 같음.

해금운지법원리연구 21 자진모리경드름솔 8+3 위 < 표 4> 를보면장단별조구성에서진양은우조 평우조 평조 3개, 중모리는경드름 1개, 굿거리는평조 경드름 2개, 자진모리는경드름 1개로총 7개조이다. 조성별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진양에서우조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도 와 솔 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다. 평우조는우조와같다. 평조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도 이다. 중모리에서경드름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도 와 솔 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다. 굿거리에서평조의음역은 완전8도 + 장3 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솔 이다. 경드름의음역은 단7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솔 이다. 자진모리에서경드름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솔 이다. 다음표는 < 한범수류산조 > 의조구성에따른출현음과포지션이다. < 표 5> 한범수류조구성에따른출현음과포지션 장단조출현음포지션음역 진양 우조솔, 도 8+8+2 평조도 8+7 위 < 표 5> 를보면장단별조구성에서진양은우조와평조각 1개로구성되어있다. 진양에서우조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솔 과 도 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다. 평조의음역은 완전8도 + 단7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 도 이다. 지금까지는 < 지영희류산조 > 와 < 한범수류산조 > 에서계면조를제외한나머지각장단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운지법을살펴보았다. 각유파의우조, 지영희류평조와경드름이 솔 과 도 의두포지션을두고이동하였으며, 이를제외한나머지조는모두 솔 이나 도 중한포지션을유현식지로하는포지션인것을알수있다. 다음은각조의포지션과포지션이동이있는조들의음역과조의수를살펴보았다.

2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표 6> 한포지션조와포지션이동조의수와음역 음역 7도 8도 +3도 8도 +5도 8도 +7도 8도 +8도 +2도 8도 +8도 +3도 계 한포지션조 1 2 1 1 0 0 5 포지션이동 0 0 0 0 1 1 34) 2 4 조의수 1 2 1 0 2 2 9 위 < 표 6> 은각조의포지션과포지션이동이있는조들의음역과해당조의수를살펴보았다. 한포지션에해당하는조의수는총 5개이며, 각조들의음역은 7도 는 1조, 8도 +3도 는 2조, 8도 +5 도 와 8도 +7도 는각각 1조이다. 다음으로포지션이동이있는음역의곡의수는총 4조이며, 조들의음역은 8도 +8도 +2도 와 8도 +8도 +3도 는각각 2조이있다. 포지션이동이있는조들은 2옥타브를넘는것들이어서, 음역이비교적넓은조에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고있음을알수있다. 다음은두유파의유현식지포지션과포지션이동을음간격으로구분하여운지법유형을살펴보았다. 아래그림은유현식지가 솔, 도 인포지션의운지법이다. 食指도솔食指솔 長指레라長指 名指미도名指 레, 미 小指 4 도간격이동 도 食指 도 長指솔레長指 名指라미名指 솔, 라 도, 레, 미 小指 小指 < 그림 5> 산조 솔 도 와 솔 도 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5> 의운지법유형은 솔 과 도 로한가지운지법으로만쓰이거나 솔 도 로포지션 34) 이와같이음영이있는칸은 < 한범수류산조 > 이고음영이없는칸은 < 지영희류산조 > 이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23 이동을하여두가지가모두쓰이기도한다. 아래그림은유현식지가 솔 인포지션의운지법이다. 미 食指 솔食指솔 라 長指 도 레 名指 小指 2 도간격이동 食指도솔食指 솔 長指레라長指 名指미도名指 < 그림 6> 산조 솔 과 솔 솔 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6> 의운지법유형은 솔 한가지운지법으로만쓰이거나 솔 솔 로포지션이동을하여두가지가모두쓰이기도한다. 이상의그림을살펴보면유현식지는장2도와완전4도의제한된음간격으로이동하는것을알수있다. 도 에서 솔 혹은 솔 에서 도 의완전4도음간격으로이동하는데, 경드름에서만장2도음간격으로이동한다. 동일한경드름끼리는 솔 에서 도 또는 도 에서 솔 로완전4도이동을하고있으나계면조혹은평조에서경드름으로진행할때에는 라 에서 솔 또는 솔 에서 솔 로장2 도35) 낮은음으로이동하는것이특징적이다. 따라서산조의포지션유형과포지션이동유형의결과를살펴보면, 포지션유형에서는 도 나 솔 을유현식지로하는민요의운지법유형과같다는것을알수있다. 유현식지가한포지션에서만연주되거나그것을기준으로포지션이이동을하였다하여도반드시유현식지는 도 나 솔 이되는것을알수있다. 이러한운지형태는 도 나 솔 이유현식지였을때공통되게무명지에서만운지의변화를갖는다. 이에따른운지간의음간격은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도 장6도이다. 그리고음정이높은포지션에서유현식지일때에는민요와같이소지 이있다. 이때 35) 계이름만같지음고는장 2 도로다르다.

2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유현식지와소지 는옥타브를연주하게되는운지법을쓰고있다. Ⅴ. 정악의운지법유형 정악은민요나산조와는다르게고정된포지션과제한된포지션이동으로이루어져있다. 다음은정간보총 125곡의출현음과운지법이다. 각곡의출현음과음역을살펴보고포지션과포지션이동을구분하였다. 고정된포지션과제한된포지션이동이어떻게이루어져있는지단일곡과모음곡으로나누어설명하였다. 아래는단일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에관한표이다. 36) < 표 7> 단일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번호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여민락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2 수연장지곡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3 송구여지곡 4 만파정식지곡 㑣 - 㑲 - 黃 - 太 - 仲㑣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㑲 - 黃 - 太 - 姑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 仲 黃 8+5 黃 太 8+3 5 수제천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太 8+4 6 동동黃 - 太 - 夾 - 仲 - 林 - 南 - 無 - 潢 - 汰仲 8+2 7 태평춘지곡 ( 본령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 淋 - 湳林 8+5 8 서일화지곡 ( 해령 ) 黃 - 太 - 夾 - 仲 - 林 - 南 - 無 - 潢 - 汰林 8+2 9 장춘불로지곡 ( 보허자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林 8+2 10 기수영창지곡 ( 낙양춘 ) 黃 - 太 - 姑 - 仲 - 林 - 南 - 應 - 潢 - 汰林 8+2 11 정동방곡黃 - 太 - 仲 - 林 - 南 - 無 - 潢 - 汰 - 㳞林 8+4 12 유황곡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林 8+4 13 경록무강지곡 ( 만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 - 潢 - 汰 - 㳞 - 淋林 8+5 14 헌천수 㑖 - 㑣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太 - 仲 - 林 - 無 - 潢 黃 仲 8+5 위 < 표 7> 의곡은 < 여민락 >, < 수연장지곡 >, < 송구여지곡 >, < 만파정식지곡 >, < 수제천 >, < 동동 >, < 태평춘지곡 >(< 본령 >), < 서일화지곡 >(< 해령 >), < 장춘불로지곡 >(< 보허자 >), < 기수영창지곡 >(< 낙양춘 >), < 정동방곡 >, < 유황곡 >, < 경록무강지곡 >(< 만 >), < 헌천수 > 총 9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36) 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곡은두줄로나누어구분하였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25 < 여민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수연장지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송구여지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와황종 ( 黃 ) 으로이동이이루어진다. < 만파정식지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태주 ( 太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수제천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태주 ( 太 ) 이다. < 동동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태평춘지곡 >(< 본령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서일화지곡 >(< 해령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장춘불로지곡 >(< 보허자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기수영창지곡 >(< 낙양춘 >) 은 < 서일화지곡 >(< 해령 >) 과같다. < 정동방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유황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경록무강지곡 >(< 만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헌천수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이상은총 125곡중단일곡에해당하는총 14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었다. 14곡에는음역에따라한포지션에서만연주하는곡과두번의포지션이동이있는곡들이있다. 다음은음역에따른한포지션의곡들과포지션이동이있는곡들을구분한것이다. < 표 8> 한포지션곡과포지션이동곡의해당곡수와음역 음역 8도 +2도 8도 +3도 8도 +4도 8도 +5도 계 한포지션곡 4 2 3 2 11 포지션이동곡 0 1 0 2 3 곡수 4 3 3 4 14 위 < 표 8> 14곡의음역을보면 8도 +2도 와 8도 +5도 가각각 4곡으로가장많다. 한포지션에해당하는음역의곡들은총 11곡이다. 8도 +2도 4곡, 8도 +3도 2곡, 8도 +4도 3곡, 8도 +5도 는 2곡이다. 다음으로포지션이동이있는음역의곡들은총 3곡이다. 8도 +3도 1곡, 8도 +5도 2곡이다. 포지션이동이있는것들은 8도 +5도 의곡으로, 음역이비교적넓은곡에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고있음을알수있다. 다만 8도 +3도 에해당하는 < 만파정식지곡 > 이예외이다. 예외인 < 만파정식지곡 > 을살펴보면곡중간에황종 ( 黃 ) 에서태주 ( 太 ) 로포지션이동을한다. 따라서태주 ( 太 ) 가유현식지가된다. 태주 ( 太 ) 가유현식지가되면서황종 ( 黃 ) 이나중려 ( 仲 ) 가유현식지였을때의운지법, 즉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도 장6도의운지법을따르게된다. 다음은모음곡이며,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먼저아래표는모음곡 < 유초신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2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이다. 37) < 표 9> < 유초신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상령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6 2 중령산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3 세령산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4 가락덜이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5 상현도드리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6 염불도드리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7 타령 8 군악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㑣 - 㑲 - 黃 - 太 - 仲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6 黃 太 仲 8+5 위 < 표 9> 를보면구성곡은 < 상령산 >, < 중령산 >, < 세령산 >, < 가락덜이 >, < 상현도드리 >, < 염불도드리 >, < 타령 >, < 군악 > 총 8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상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중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세령산 >, < 가락덜이 >, < 상현도드리 >, < 염불도드리 > 는 < 중령산 > 과같다. < 타령 > 은 < 상령산 > 과같다. < 군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태주 ( 太 ) 와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다음표는모음곡 < 중광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0> < 중광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상령산 2 중령산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黃 - 仲 - 林㑣 - 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黃 仲 8+6 黃 仲 8+2 3 세령산黃 - 太 - 仲 - 林 - 無 - 潢仲 8 4 가락덜이黃 - 太 - 仲 - 林 - 無 - 潢仲 8 5 상현도드리㑣 - 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仲 8+5 37) 짙은색으로표기된율명은 중현 ( 안줄 ), 옅은색으로표기된율명은 유현 ( 바깥줄 ) 을말한다. 이하같음. 그리고한곡에두줄이상인것은포지션이동이있는곡으로이동시해당율명을말한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27 6 하현도드리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仲 黃 8+6 7 염불도드리㑣 - 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仲 8+5 8 타령 9 군악 㑣 - 黃 - 太 - 仲 - 林㑣 - 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㑣 - 㑲 - 黃 - 太 - 仲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仲 - 林 - 南 - 潢 - 汰 仲 黃 8+5 黃 太 仲 8+5 위 < 표 10> 을보면구성곡은 < 상령산 >, < 중령산 >, < 세령산 >, < 가락덜이 >, < 상현도드리 >, < 하현도드리 >, < 염불도드리 >, < 타령 >, < 군악 > 총 9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상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중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세령산 > 의음역은완전8도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가락덜이 > 는 < 세령산 > 과같다. < 상현도드리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하현도드리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와황종 ( 黃 ) 으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염불도드리 > 는 < 상현도드리 > 와같다. < 타령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와황종 ( 黃 ) 으로이동이이루어진다. < 군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태주 ( 太 ) 와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다음표는모음곡 < 천년만세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1> < 천년만세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 곡명 출현음 포지션 음역 1 계면가락도드리 㑣 - 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仲 8+5 2 양청도드리 㑣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仲 8+5 3 우조가락도드리 㑣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仲 8+5 위 < 표 11> 을보면구성곡은 < 계면가락도드리 >, < 양청도드리 >, < 우조가락도드리 > 총 3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계면가락도드리 > 의음역은 완전 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양청도드리 > 와 < 우조가락도드리 > 가같다. 다음표는모음곡 < 표정만방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2> < 표정만방지곡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상령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2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2 중령산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 浹 仲 8+3 3 세령산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 浹 仲 8+3 4 가락덜이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 浹 仲 8+3 5 삼현도드리 㑣 -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 浹 仲 8+6 6 염불도드리 㑣 -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仲 8+4 7 타령 㑣 - 黃 - 夾 - 仲 - 林 - 無 - 潢 仲 8+4 8 군악 㑣 - 㑲 - 黃 - 太 - 仲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仲 - 林 - 南 - 潢 - 汰 黃 太 仲 8+5 위 < 표 12> 를보면구성곡은 < 상령산 >, < 중령산 >, < 세령산 >, < 가락덜이 >, < 삼현도드리 >, < 염불도드리 >, < 타령 >, < 군악 > 총 8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상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중령산 > 의음역은 완전8도 + 단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세령산 >, < 가락덜이 > 는 < 중령산 > 과같다. < 삼현도드리 > 의음역은 완전8도 + 단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염불도드리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타령 > 은 < 염불도드리 > 와같다. < 군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태주 ( 太 ), 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다음표는모음곡 < 절화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3> < 절화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절화 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 - 潢黃 - 太 - 仲 - 林 - 無 - 潢 太, 仲 8+4 2 길타령㑣 - 黃 - 太 - 夾 - 仲 - 林 - 無 - 潢仲 8+4 3 금전악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4 군악 㑣 - 㑲 - 黃 - 太 - 仲㑣 - 㑲 - 黃 - 太 - 姑 - 林 - 南太 - 姑 - 林 - 南 - 潢 - 汰 黃 太 林 8+5 위 < 표 13> 을보면구성곡은 < 절화 >, < 길타령 >, < 금전악 >, < 군악 > 총 4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절화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태주 ( 太 ) 와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길타령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금전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군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태주 ( 太 ), 임종 ( 林 ) 으로이동이이루어진다. 다음표는모음곡 < 자진한잎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29 < 표 14> < 자진한잎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이름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경풍년 1 평조두거 2 변조두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仲 - 林 - 南 - 潢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仲 - 林 - 南 - 潢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 黃 仲 8+5 黃 仲 8+5 염양춘 3 계면두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수룡음 4 농 5 계락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仲 - 林 - 無 - 潢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仲 - 林 - 無 - 潢 黃 仲 8+5 黃 仲 8+5 6 편 Ⅰ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7 편 Ⅱ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위 < 표 14> 를보면구성곡은 < 경풍년 > 의 < 평조두거 > < 변조두거 >, < 염양춘 > 의 < 계면두거 >, < 수룡음 > 의 < 농 > < 계락 > < 편Ⅰ> < 편Ⅱ> 총 7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평조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변조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계면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농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계락 > 은 < 농 > 과같다. < 편Ⅰ> 과 < 편Ⅱ> 는 < 계면두거 > 와같다. 다음표는모음곡가곡중남창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5> 가곡남창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구분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평조 1 다스름 㑣 - 㑲 - 黃 - 太 - 仲㑲 -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黃 仲 8+4 2 초수대엽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3 이수대엽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黃 8+2 4 중거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黃 8+2 5 평거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黃 8+2 6 두거 7 삼수대엽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仲 - 林 - 南 - 潢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太 - 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5 黃 仲 8+6 8 소용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仲 8+2 9 우롱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8+3

3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계면조 평계면 계면조 10 우락 11 언락 12 우편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6 黃 仲 8+6 黃 仲 8+6 13 반엽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黃 8+4 1 다스름 2 초수대엽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仲 - 林 - 無 - 潢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仲 - 林 - 無 - 潢 仲 黃 8+5 黃 仲 8+5 3 이수대엽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4 중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5 평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6 두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7 삼수대엽 㑖 - 㑣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仲 - 林 - 無 - 潢 - 汰 黃 仲 8+6 8 소용黃 - 仲 - 林 - 無 - 潢 - 汰仲 8+2 9 언롱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仲 - 林 - 無 - 潢 - 汰 黃 仲 8+6 10 평롱 1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11 평롱 2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12 계락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1 편락 1 편수대엽 2 언편 3 태평가 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太 - 仲 - 林 - 無 - 潢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仲 - 林 - 潢 黃 仲 8+6 黃 仲 8+5 黃 仲 8+6 黃 仲 8+5 위 < 표 15> 를보면구성곡은평조의 < 다스름 >, < 초수대엽 >, < 이수대엽 >, < 중거 >, < 평거 >, < 두거 >, < 삼수대엽 >, < 소용 >, < 우롱 >, < 우락 >, < 언락 >, < 우편 >, < 반엽 > 13곡과계면조의 < 다스름 >, < 초수대엽 >, < 이수대엽 >, < 중거 >, < 평거 >, < 두거 >, < 삼수대엽 >, < 소용 >, < 언롱 >, < 평롱1>, < 평롱2>, < 계락 > 12곡, 평계면의 < 편락 > 1곡, 계면조의 < 편수대엽 >, < 언편 >, < 태평가 > 3곡으로총 29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먼저평조의 13곡을보겠다. < 다스름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초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이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중거 > 와 < 평거 > 는 < 이수대엽 > 과같

해금운지법원리연구 31 다. < 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삼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소용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우롱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우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 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언락 > 과 < 우편 > 은 < 우락 > 과같다. < 반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다음으로계면조 12곡을보면다음과같다. < 다스름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와황종 ( 黃 ) 으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초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이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중거 > 와 < 평거 >, < 두거 > 는 < 이수대엽 > 과같다. < 삼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소용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중려 ( 仲 ) 다. < 언롱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 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평롱 > 2개와 < 계락 > 은 < 이수대엽 > 과같다. 평계면 1곡 < 편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계면조 3곡을보면 < 편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언편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 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태평가 > 는 < 편수대엽 > 과같다. 다음표는모음곡가곡중여창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6> 가곡여창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구분 순서 곡명 출현음 포지션 음역 1 이수대엽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黃 8+2 2 중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 黃 8+3 평조 평조계면조 계면조 3 평거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黃 8+2 4 두거 5 우락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㑖 - 㑣 - 㑲 - 黃 - 太 - 仲 - 林 - 南太 - 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6 黃 仲 8+6 1 반엽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黃 8+4 1 이수대엽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2 중거 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黃 - 太 - 仲 - 林 - 潢 黃 仲 8+5 3 평거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4 두거 㑖 - 㑣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太 - 仲 - 林 - 無 - 潢 - 汰 黃 仲 8+6

3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평조계면조 계면조 5 평롱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仲 - 林 - 潢 黃 仲 8+5 6 계락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1 환계락 㑖 - 㑣 - 㑲 - 㒇 - 黃 - 太 - 仲 - 林 - 南 - 無仲 - 林 - 南 - 潢 - 汰 黃 仲 8+6 1 편수대엽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8+4 2 태평가 㑖 - 㑣 - 㒇 - 黃 - 太 - 仲 - 林 - 無黃 - 仲 - 林 - 潢 黃 仲 8+5 위 < 표 16> 을보면구성곡은평조의 < 이수대엽 >, < 중거 >, < 평거 >, < 두거 >, < 우락 > 5곡과평조계면조의 < 반엽 > 1곡, 계면조의 < 이수대엽 >, < 중거 >, < 평거 >, < 두거 >, < 평롱 >, < 계락 > 6곡, 평조계면조의 < 환계락 > 1곡, 계면조의 < 편수대엽 >, < 태평가 > 2곡총 15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먼저평조의 5곡을보면다음과같다. < 이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중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3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평거 > 는 < 이수대엽 > 과같다. < 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우락 > 은 < 두거 > 와같다. 평조계면조의 1곡 < 반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계면조의 6곡을보면다음과같다. < 이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중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평거 > 는 < 이수대엽 > 과같다. < 두거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 평롱 > 은 < 중거 > 와같다. < 계락 > 은 < 이수대엽 > 과같다. 평조계면조의 1곡 < 환계락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계면조의 2곡을보면 < 편수대엽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이다. < 태평가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 ( 黃 ) 과중려 ( 仲 ) 로이동이이루어진다. 다음표는모음곡 < 종묘제례악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7> < 종묘제례악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구분순서곡명출현음포지션음역 1 희문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林 8+2 보태평 2 기명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林 8+2 3 귀인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林 8+2 4 형가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5 즙녕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해금운지법원리연구 33 6 융화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7 현미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林 8+2 8 용광 정명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 淋 林 8+5 9 대유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10 역성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11 진찬 黃 - 太 - 姑 - 仲 - 林 - 南 - 應 - 潢 - 汰 - 㳞 林 8+4 1 소무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2 독경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3 탁정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4 선위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정대업 5 신정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6 분웅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7 순응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8 총유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9 정세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10 혁정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11 영관 黃 3- 黃 -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潢 3 8+6 위 < 표 17> 을보면구성곡은 < 보태평 > 의 < 희문 >, < 기명 >, < 귀인 >, < 형가 >, < 즙녕 >, < 융화 >, < 현미 >, < 용광 정명 >, < 대유 >, < 역성 >, < 진찬 > 11곡과 < 정대업 > 의 < 소무 >, < 독경 >, < 탁정 >, < 선위 >, < 신정 >, < 분웅 >, < 순응 >, < 총유 >, < 정세 >, < 혁정 >, < 영관 > 11곡총 22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먼저 < 보태평 > 의 11곡을보면다음과같다. < 희문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기명 > 과 < 귀인 > 은 < 희문 > 과같다. < 형가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즙녕 > 과 < 융화 > 는 < 형가 > 와같다. < 현미 > 는 < 희문 > 과같다. < 용광 정명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대유 > 와 < 역성 > 은 < 형가 > 와같다. < 진찬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다음으로 < 정대업 > 의 11곡은모두같다. 출현음은 黃 3-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 淋 이고음역은 완전8도 + 장6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청황종 ( 潢 3) 이다. 다음표는모음곡 < 경모궁제례악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이다. < 표 18> < 경모궁제례악 > 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 순서 곡명 출현음 포지션 음역 1 어휴곡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林 8+2 2 진색곡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林 8+2 3 유길곡 黃 - 太 - 仲 - 林 - 南 - 潢 - 汰 - 㳞 林 8+4

3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4 혁우곡 黃 - 太 - 姑 - 仲 - 林 - 南 - 應 - 潢 - 汰 林 8+2 5 독경곡 黃 3-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潢 3 8+5 6 휴운곡 黃 3-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潢 3 8+5 7 휘유곡 黃 3- 夾 - 仲 - 林 - 潢 3- 潢 - 浹 - 㳞 潢 3 8+5 위 < 표 18> 을보면구성곡은 < 어휴곡 >, < 진색곡 >, < 유길곡 >, < 혁우곡 >, < 독경곡 >, < 휴운곡 >, < 휘유곡 > 총 7곡이다. 각곡의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 어휴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장2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진색곡 > 은 < 어휴곡 > 과같다. < 유길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4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임종 ( 林 ) 이다. < 독경곡 >, < 휴운곡 >, < 휘유곡 > 의음역은 완전8도 + 완전5도 이며, 유현식지포지션은황종3( 潢 3) 으로같다. 이상은전체 125곡중에서모음곡에해당하는 111곡을출현음에따른음역과포지션으로나누어살펴보았다. 이상의 111곡에는음역에따라한포지션에서만연주하는곡과두번혹은세번의포지션이동이있는곡들이있다. 다음은음역에따른한포지션의곡들과포지션이동이있는곡들을구분한표이다. < 표 19> 한포지션곡과포지션이동곡의해당곡수와음역 음역 8도 8도 +2도 8도 +3도 8도 +4도 8도 +5도 8도 +6도 계 한포지션곡 2 16 11 26 8 12 75 포지션이동곡 0 1 0 2 17 16 36 곡수 2 17 9 29 26 28 111 위 < 표 19> 와같이 111곡의음역을보면 8도 +4도 곡이 29곡으로가장많은것을알수있다. 먼저한포지션에해당하는음역의곡들은총 75곡이다. 8도 2곡, 8도 +2도 16곡, 8도 +3도 11 곡, 8도 +4도 26곡, 8도 +5도 8곡, 8도 +6도 12곡이다. 또포지션이동이있는음역의곡들은총 36곡이다. 8도 +2도 1곡, 8도 +4도 2곡, 8도 +5도 17곡, 8도 +6도 16곡이다. 이와같이음역이비교적넓은곡에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고있다. 하지만자세히살펴보면음역의폭보다출현음에따라그것을연주하기위해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고있음을알수있다. 이를테면단일곡인 < 만파정식지곡 > 의경우가그러하다. 모음곡은 < 영산회상 > 과 < 절화 > 의 < 군악 > 에서나타난다. 곡중간에황종 ( 黃 ) 에서태주 ( 太 ), 태주 ( 太 ) 에서중려 ( 仲 ) 또는태주 ( 太 ) 에서임종 ( 林 ) 으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고있다. 이러한현상은태주 ( 太 ) 나임종 ( 林 ) 이유현식지가되면서황종 ( 黃 ) 이나중려 ( 仲 ) 가유현식지였을때의운지법, 즉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도 장6도의운지법을보여준다. 따라서음역의폭이넓어지면서포지션이동이요구되었다는것과함께각곡의출현음에따라공통된운지법으로연주하기위

해금운지법원리연구 35 해포지션이동이불가피했다는분석이가능하다. 여기서 < 종묘제례악 > 의 < 정대업 > 이나 < 경모궁제악 > 의 < 독경곡 >, < 휴운곡 >, < 휘유곡 > 과같이제례악의계면조에해당하는운지법은예외이다. 예외의곡들을제외한나머지곡들에서는모두공통운지법을쓰고있다. 공통운지법을자세히설명하면다음과같다. 정악에서정해진유현식지에는 황종 ( 黃 ) 태주 ( 太 ) 중려 ( 仲 ) 임종 ( 林, G) 임종 ( 林, B ) 이있다. 이러한정해진유현식지중어떤음이유현식지포지션이되거나포지션이동이되어다시이들중의어떤음이되더라도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 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 도 장6도의운지법이쓰인다. 이와같은운지법의유형을그림으로그려보면다음과같다. 黃食指黃 長指㑣太長指 名指 㑲 仲 (4 도 ) 名指 2 도간격이동 太 3 食指 食指㑣太食指 太 長指㑲姑長指 名指 黃 (4 도 ) 林 (4 도 ) 南, 潢 名指 小指 3 도간격이동 仲 食指 仲 林 長指 南 (3 도 ) 名指 潢, 汰 小指 < 그림 7> 정악黃 太 仲과黃 太 仲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7> 의운지법유형은 黃 太 仲 중한가지운지법으로만쓰이거나 黃 太 仲 으로포지션을이동하여두가지혹은세가지가모두쓰이기도한다. 다음그림은유현식지가

3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황종 ( 黃 ) 태주 ( 太 ) 임종 ( 林 ) 인포지션의운지법이다. 黃食指黃 長指㑣太長指 名指 㑲 2 도간격이동 太 3 食指 食指㑣太食指 太 長指㑲姑長指 名指 黃 (4 도 ) 林 (4 도 ) 南, 潢 名指 小指 4 도간격이동 林 食指 林 長指太南長指 名指 姑 潢 (4 도 ) 名指 汰 小指 < 그림 8> 정악黃 太 林과黃 太 林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8> 의운지법유형은 黃 太 林 중한가지운지법으로만쓰이거나 黃 太 林 으로포지션을이동하여두가지혹은세가지가모두쓰이기도한다. 다음그림은유현식지가 황종 ( 黃 ) 중려 ( 仲 ) 인포지션의운지법이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37 食指㑖黃食指黃食指㑖黃食指 長指㑣太長指 長指㑣太長指 名指㑲 (3 도 ) 仲 (4 도 ) 名指 4 도名指㒇 (4 도 ) 仲 (4 도 ) 名指 林, 南小指간격林, 無 38) 小指 이동 食指 㑣 食指 㑣 仲食指仲仲食指 黃長指林長指長指黃林長指 名指太南 (3 도 ) 名指名指太無 (4 도 ) 名指 潢, 汰小指潢, 汰小指 < 그림 9> 정악黃 仲과黃 仲의운지법유형 위 < 그림 9> 의운지법유형은 黃 仲 중한가지운지법으로쓰이거나 黃 仲 으로포지션을이동하여두가지가모두쓰인다. 이상그림을살펴보면정악의포지션이동은제한된장2도, 단3도, 완전4도로이루어짐을알수있다. 이것으로음역이확장될때확장된음역을용이하게연주하기위해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사실과함께, 음역이좁더라도출현음에따라그음을연주하기위해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것을알수있었다. 이러한결론은오직공통된운지법으로연주하기위해포지션의이동이결정되었을것이라는분석을하게된다. 다시말하면유현식지가고정된포지션에서만연주되거나혹은그것을기준으로제한된포지션이이동을하였다하더라도반드시운지간의음간격이같다는것이다. 이에따른운지간의음간격을보면, 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도 장6도의운지형태를이루고있다. 여기서말하는한가지운지법이란민요, 산조에서밝힌운지법을말한다. 이는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한데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4도의운지변화를지닌공통운지법이다. 38) 모든음의간격들이무명지에따라현상이같이나타나고있으나, 이부분은예외이다.

3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Ⅵ. 맺음말 본논문은 악학궤범 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과전통곡에나타난해금운지법원리를분석하여보았다. 결과는다음과같다. 첫번째, 악학궤범 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을분석해본결과평조운지법의음간격은유현식지황종 ( 黃 ) 과장지태주 ( 太 ) 가장2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명지중려 ( 仲 ) 가완전4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소지임종 ( 林 ) 이완전5 도, 완전5도포지션이동을한유현식지임종 ( 林 ) 과장지남려 ( 南 ) 가장2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명지청황종 ( 潢 ) 이완전4 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소지청태주 ( 汰 ) 가완전5도인것을알수있었다. 계면조운지법의음간격은유현식지황종 ( 黃 ) 과장지협종 ( 夾 ) 이단3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명지중려 ( 仲 ) 가완전4도, 유현식지황종 ( 黃 ) 과소지임종 ( 林 ) 이완전5도, 완전5도포지션이동을한유현식지임종 ( 林 ) 과장지무역 ( 無 ) 이단3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명지청황종 ( 潢 ) 이완전4도, 유현식지임종 ( 林 ) 과소지청협종 ( 浹 ) 이단6도인것을알수있었다. 비록경안법의차이에서평조와계면조가서로다르게구분되고있지만포지션의이동이완전5도로동일하게이동하는것을알수있었으며, 계면조에서한음을제외하면같은조에서는한가지형태의공통된운지법이사용되고있음을알수있었다. 두번째, 민요의포지션을분석해본결과유현식지가 도 나 솔 의두가지유형으로구분되는것을알수있었다. 민요총 46곡에서유현식지가 도 인곡은총 33곡이고유현식지가 솔 인곡은총 13곡이었다. 이것으로유동성을지닌민요청은음계나출현음과는상관없이해금의운지법에서는유현식지를 도 나 솔 의두가지포지션으로한정하고있음을알수있었다. 따라서민요의운지법유형에따른결과를보면 도 나 솔 을유현식지로하는운지법유형은운지형태에서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한데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4도의운지변화를지닌공통된운지법이성립된다는결론을얻었다. 세번째, < 지영희류산조 > 와 < 한범수류산조 > 의포지션과포지션이동을분석해본결과계면조를제외한우조 평조 경드름의유현식지가모두 도 나 솔 의두가지유형으로구분되어있는것을알수있었다. 포지션유형은민요와같은형태로진행하여, 음간격을비롯한운지법의결론이민요와같은것을알수있었다. 그런데산조는민요와다르게음역의확장또는전조로포지션의이동이이루어지고있다. 이러한분석에따른결론을살펴보면음역이확장되거나전조되었을때유현식지의포지션이동이 도 나 솔 의포지션유형과동일하게이동하였을때에도 도 나 솔 로이동하는것을알수있었다. 즉, 도 에서 솔 로이동하거나 솔 에서 도 혹은 솔 에서다시 솔 로이동할때제한된장2도와완전4 도음간격으로진행하는것이다. 따라서산조의운지법유형에따른결과를보면민요를비롯한포지션이동유형과같은결론이나온다. 이로써 도 나 솔 을유현식지로하는운지법유형은운지형태에서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한데무명지에서만장3 도또는완전4도의변화를지닌공통된운지법이성립된다는결론을얻을수있었다.

해금운지법원리연구 39 네번째, 정악의포지션과포지션이동을분석해본결과유현식지가황종 ( 黃 ), 태주 ( 太 ), 중려 ( 仲 ), 임종 ( 林, G), 임종 ( 林, B ), 청황종3( 潢 3) 다섯개의고정된음으로포지션유형이구분되어있는것을알수있었다. 정악총 125곡중 40곡에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진다. 그런데이 40곡은황종 ( 黃 ) 에서태주 ( 太 ) 로이동하는장2도, 태주 ( 太 ) 에서중려 ( 仲 ) 또는중려 ( 仲 ) 에서태주 ( 太 ) 로이동하는단3도, 황종 ( 黃 ) 에서중려 ( 仲 ) 나중려 ( 仲 ) 에서황종 ( 黃 ), 태주 ( 太 ) 에서임종 ( 林 ) 으로이동하는완전4도의제한된포지션이동유형으로구성되어있다. 이와같이포지션이동유형이제한된장2도, 단3도, 완전4도로이루어진다. 이것은음역이확장될때확장된음역을용이하게연주하기위해서포지션이동이이루어졌다는것을보여주는것이다. 그리고출현음에따른음역을오직공통된운지법으로연주하기위해포지션의이동이결정되었을것이라는결론을얻을수있다. 다시말하자면고정된유현식지중어떤음이유현식지포지션이되거나포지션이동이되어다시이들중의어떤음이되더라도유현식지와장지는장2도, 유현식지와무명지는장3도또는완전4도, 유현식지와소지는완전5 도 장6도를연주하게되는운지법을갖는다는사실이다. 한편, 유현식지를기준으로하는장2도, 단3도완전4 도와같이제한된포지션이동유형이있음을알수있었다. 지금까지의내용을결론지어보면 악학궤범 해금산형에나타난운지법은서로다른조라할지라도동일형태의운지법을사용하는완전5 도의포지션이동의운지법을사용하였음을알수있었다. 더불어전통곡운지법은민요 산조 정악의운지법에서차이점과공통점이발견되었는데차이점은포지션과포지션이동이유동적이거나고정적으로서로같거나다르게구분되어있어특징이분명한점이라면공통점은포지션이거나포지션이이동되었다하더라도운지간의음간격이공통된운지법을사용한다는점이다. 공통된운지법은다만무명지에서만장3도또는완전 4도를연주하는유동성을지니게되는데이것은무엇보다연주할때오는혼동을최소한으로줄이기위해정해졌을것이라짐작된다. 따라서본논문의전통곡해금운지법의원리는공통의운지법이성립하고있다는결론을얻었다. 지금까지의내용을바탕으로현재는정립되어있지않은창작곡운지법을도출해보면다음과같다. 해금이개방현조율음이없는이동도법의악기라는것을감안한다면조성에따른으뜸음 도 (tonic) 를유현식지로하는기본포지션이성립된다. 또한음역의확장으로 39) 포지션이동이이루어지는경우에는완전5도위인 솔 (dominant) 로이동한다. 이러한결론은지금까지전통곡의공통점에서밝힌것과같이운지간의음간격이동일하며무명지에서는장3도또는완전4도를연주하는유동성을지닌운지법이성립할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 이상의전통곡해금운지법원리연구는포지션을정하는이동도법의포지션유형과음역확장또는전조등으로인한포지션이동의유형을통해도출된공통운지법의이해이다. 이러한공통운지법은현재는정립되어있지않은창작곡운지법을체계적으로정립할수있는통일된해결안을얻는연구에도움이되고자한다. 39) 곡중간에조성이바뀌는경우다시바뀐조성에맞춰유현식지를 도 (tonic) 로잡는다.

4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참고문헌 ] 1. 고악보 陳暘, 한국음악학자료총서 9: 樂書, 서울 : 국립국악원 1982. 2. 단행본강사준 윤찬구엮음, 김천흥감수, 정악해금보, 서울 : 은하출판사, 1988. 김기수 강사준, 해금정악, 서울 : 은하출판사, 1979. 송방송외, 한국음악학논저해제2: 1980년 ~1995년, 서울 : 민속원, 2000. 송방송외, 한국음악학논저해제4: 2001년 ~2004년, 서울 : 민속원, 2007. 송방송, 한국음악학논저해제1: 1980년이전, 서울 : 민속원, 2004. 이반갈라미안지음, 심상균옮김, 바이올린주법과지도의원리, 서울 : 음악춘추사, 2000. 이혜구역주, 신역악학궤범, 서울 : 국립국악원, 2000. 최태현, 구성요소로보는국악곡, 서울 : 현대음악출판사, 1993. 최태현, 해금산조연구, 서울 : 세광음악출판사, 1988. 최태현, 해금산조연구 Ⅱ, 서울 : 민속원, 2008. 최태현 김해숙 백대웅, 전통음악개론, 서울 : 도서출판어울림, 1995. 3. 일반논문강사준, 해금관련자료고, 민족음악학 제16권, 서울대학교동양음악연구소, 1994. 강사준, 해금의주법과구음법에관하여, 한국음악연구 제13 14 합병호, 한국국악학회, 1894. 송방송, 국립국악원소장 樂書 해제, 한국음악학자료총서권8: 樂書, 서울 : 국립국악원, 1982. 신대철, 한국 중국 일본의해금류악기, 한국음악연구 제26집, 한국국악학회, 1998. 이기설, 해금연주법고찰, 국악과교육 제30집, 한국국악교육학회, 2010. 이재숙, 피아노운지법에대한이해, 음악과민족 제10호, 민족음악학회, 1995. 전인평, 아시아의弓弦기둥악기 ( 해금 ), 동아시아의찰현악기 : 제1회, 서울 : 서울대학교동양음악연구소, 1997. 정기훈, 오선보로해독한해금운지법연구 : 궁중음악을중심으로, 민족음악학보 제8 호, 한국민족음악학회, 1998. 조운조, 해금의전통연주기법고, 한국문화연구원논총 제53집 (8월호), 이화여자대학교, 1988. 주영위, 해금운지법연구, 한국음악산고 제3 집, 한양대학교한음회, 1992. 4. 학위논문강정미, 해금의악기학적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4. 노은아, 해금창작곡을위한연주법연구, 서울 : 서울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3. 류정연, 정악해금연주법고찰 : 운궁법과특수주법을중심으로,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8. 심인택, 한범수류해금산조에관한연구 : 진양조의선법과운지법을중심으로, 서울 : 서울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1. 조주희, 해금운지법연구 : 이건용작곡해금가락Ⅰ을중심으로, 서울 : 한양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4. 한서영, 해금의운지법에관한연구,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8. 5. 음반 국립국악원, < 한국음악선집 >, 제 6 집, 주식회사성음, 1987.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 한국고전민요 >, 제 1 집, 제 2 집, 제 3 집, 한국음반, 1982.

해금운지법원리연구 41 Analysis of the Principles of Haegum Fingering Techniques 40) Kim, Jeongmi* This study analyzed the fingering techniques of Haegum as shown in Haegum Sanhyungs, pictorial representation of notes, in the book Akhak Gwebeom, and the fingering techniques of Haegum in playing Korean Minyo, Sanjo and Jeongak. The types of positions and position shifts in traditional music such as Minyo, Sanjo and Jeongak vary, reflecting the unique characters of each genre. Minyo and Sanjo have relative tonal centers that move flexibly instead of fixed positions, and the Yuhyon index finger is decided based on that center. Position changes in Sanjo and Jeongak occurred when tonal range expanded or modulations to limited tonal intervals appeared. Position types and position shifts occurred based on the fingering techniques that meet the characteristics of the unique music, yet the analysis also found that a single common fingering technique was used in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details of the common techniques were as follows. The Haegum Sanhyung fingering techniques in Akhak Gwebeom differentiates Pyeongjo and Gyemyeonjo based on the distinction of Gyeongan technique, but the position change to perfect 5th was made unilaterally. A common fingering technique was used in the same Jo except for a single tone in Gyemyeonjo. The fingering techniques in Minyo limited the Yuhyon index finger, which was done by Minyo-chung, to either doh or sol positions regardless of the scale or appearing notes. In fingering technique types where the Yuhyon index finger is positioned on doh or sol, tone interval between fingering techniques was identical and the fingering change in third finger were always major 3rd or perfect 4th. The fingering techniques in Sanjo allow free movement of positions and a wide variety of Jo structures. However, the Yuhyon index finger is limited to two positions only, doh and sol, which is not different from the restrictions applied to Minyo. The Yuhyon index finger shifted from doh to sol or sol to doh or sol to sol, which shows that positions shift when tone range extension or modulations appear. Therefore, position types with Yuhyon index finger on do or sol and position shift types share common fingering techniques, in which, tone intervals between fingering techniques was identical and the fingering change in third finger were always major 3rd or perfect 4th. The fingering techniques in Jeongak was fixed position change with limited position change among major ** Member of Seongnam Municipal Troupe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4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2nd, minor 3rd and perfect 4th. The study analyzed position shifts that occurred during the extension of tonal range and those that occurred regardless of the range. This is how the study reached the conclusion that fingering techniques regarding positions and position changes were formulated to establish a common fingering technique to play Haegum. As Minyo and Sanjo, this is the same technique used in the common fingering technique with identical tone intervals between fingering and fingering change in third finger were always major 3rd or perfect 4th. The conclusion of this study regarding the fingering techniques used in traditional music was as follows. The fingering techniques used in Minyo, Sanjo and Jeongak ha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These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show that common fingering techniques were established to minimize the confusion of fingering techniques during performances. The findings from this study could be utilized to establish fingering techniques for contemporary music that do not have structuralized forms. The basic position with tonic doh as the Yuhyon index finger was determined, considering the fact that Haegum is an open string instrument using the movable-doh system with no temperament. A shift from major 5th to dominant sol occurs when position shift appears due to extension of tonal range. This conclusion illustrates how a flexible fingering technique with identical tone intervals between fingering and the third finger on major 3rd or perfect 4th can be established, and this point was also identified as a common feature of traditional music. This study laid the foundation for establishing fingering techniques for contemporary music by analyzing the fingering techniques in Haegum Sanhyungs from Akhak Gwebeom and by analyzing traditional music genres such as Minyo, Sanjo and Jeongak. Further studies to discover a unified fingering technique based on the positions and position changes in contemporary music based on its tonality should be conducted. [key words] Fingering techniques shown in Haegum Sanhyungs of Akhak gwebeom; Fingering techniques of Haegum for playing minyo; Fingering techniques of Haegum for playing sanjo; Fingering techniques of Haegum for playing jeongak; Fingering techniques of traditional Haegum music, Fingering techniques of contemporary Haegum music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4 월 19 일 2015 년 5 월 26~6 월 17 일 2015 년 6 월 18 일

국악원논문집 제31집 43~66쪽 2015 2010년대 북한 중앙음악단체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 41) 배인교** [국문초록] 이 글은 남한과 북한이 반세기 이상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이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음악 연주 형태 중 현재 중앙에서 활동하는 음악단체들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은하수관현악 단의 2011년 2월과 2012년 3월의 파리공연, 그리고 민족관현악과 부분배합편성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조선인민내무군 협주단의 2013년의 4월과 9월 공연, 마지막으로 김정은의 세습이후 2012년에 창단된 모란봉악단의 2014년 9월 <신 작음악회>를 살펴보았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전면배합관현악편성으로 연주하였으며, 양악기와의 민족음악연주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주기술 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역시 전면배합관현악편성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은하수관현악단의 것과 민족악기의 위치가 달랐다.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 공연에서는 이 외에 소규모의 민족관현악편성과 배합편성이 있었 는데 모두 아코디언을 넣어 화성을 표현하였으며, 민족죽관악기와 하모니카를 결합하여 화성이 표현되면서도 민족적인 흥취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전자음악 악단인 모란봉악단이 연주하는 민요풍의 노래에서 전자악기로 형상 하는 민요의 음조도 그렇지만 전자악기에 꽹과리를 편성하여 민족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기본적으로 민족적 형식에 현대적미감과 인민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배합편성을 추구하고 있으나 민족음악 에서 화성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민족적 형식과 현대적 미감, 그리고 인민성은 북한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리며 향후 지속적으로 중앙 음악단체는 악기편성에서 화성을 위한 배합편성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어] 민족음악, 민족악기, 배합관현악, 전면 배합관현악, 민족관현악, 은하수관현악단,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모란봉악단, 민요풍 노래, 민족성, 현대성, 인민성 <차 례> Ⅰ. Ⅱ. Ⅲ. Ⅳ. Ⅴ. 들어가며: 북한 김정은체제와 민족음악 은하수관현악단의 민족악기 편성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 민족악기 편성 모란봉악단의 2014년 <신작음악회> 북한 민족기악 편성의 특성: 민족성, 현대성, 인민성 ** 이 글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5B8067326) ** 단국대학교 부설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

4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Ⅰ. 들어가며 : 북한김정은체제와민족음악 북한의음악을이해하기위해서는단순한음악현상만을검토하는것은한계가있다. 그이유는북한에서행해지는수많은문화예술이대부분북한의정치적사안들과맞닿아있으며, 당의정책적요구가수용된결과물들이기때문이다. 이러한이유로현대북한음악을살펴보기위해서는북한의정치사와함께북한음악의특성에대한이해가선결될필요가있다. 북한에는 1980년대말부터김정일의주도하에다양한정치이념들을만들어냈다. 예를들어 1980년대말에제시된 조선민족제일주의 나 1994년김일성의사망과함께제기된 유훈통치, 선군정치, 그리고 1998년의 강성대국건설 등이그것이다. 특히강성대국건설을위해군대가앞장서야한다는선군을강조하였기때문에 2000년대이후의북한문화를바라보는남한의연구자들은북한의문학과예술을군대문화의틀, 예를들어선군문학, 총대문학, 선군음악정치등의패러다임안에서해석하고있다. 이중음악정치는 1997년부터나오기시작한정치이념이다. 내용을간략히살펴보면, 음악정치는 인민대중의자주적인요구를구현한정치 이며, 음악예술의본질적특성과음악의사회, 교양적역할, 그리고음악의감화력에기초하여음악이혁명과건설을추동하는가장위력한무기가될수있다고보았다. 또한북한에서김정일이선군음악정치를펼칠수있었던것은김정일의음악적자질때문이라고 1) 말하곤한다. 그러나 2011년 12월김정일의갑작스러운사망과함께그의아들인김정은으로정권이교체됨으로써 3대세습체제하의북한음악문화의변화여부에관심이집중되었다. 한편북한음악을이해할때한가지더짚고넘어가야하는것이바로 민족성 이다. 민족음악에대한강조는체제형성기부터라고말할정도로북한에서는민족음악을강조한다. 북한에서말하는민족음악은 민족적형식 과 현대적미감 으로대표된다. 기본적은틀은전통문화속에서찾되그안에담긴내용은인민들의현대적미감에맞도록고쳐져야주체성과인민성이겸비된민족음악이된다. 최근김정은국방위원회제1위원장이평양순안국제공항 2청사건설장현지지도에서 세계적추세를따라가되주체성과민족성을살리라는과업을수행하지못했다며다시설계하라고질책 2) 했다는기사를보더라도북한만의특수한주체성과민족성은여전히사회통제의핵심코드로작용하고있으며, 김정일이제시했던조선민족제일주의가여전히유효한것을알수있다. 이에남한과북한이반세기이상분단상태를유지하고있는상태에서북한이독자적으로발전시켜온음악연주형태중김정은시대중앙에서활동하는음악단체들의민족음악연주양상을악기편성을중심으로살펴보도록하겠다. 민족성이겸비된음악을연주하기위해민족악기가어떤방식으로편성되어연주하는지알아볼필요가있기때문이다. 이를위해서는북한의대표적인민족예술공연단체인국립민족예술단3) 의연주양상을살펴보아야하나자료의접근이용이하지못하 1) 김두일, 장군님의음악정치와음악성, (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06), 18-24쪽. 2) http://www.ytn.co.kr/_ln/0101_201411011719189130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45 여남한에서이단체가주도하는연주회의영상물을확인하는것은어려운현실이다. 다만북한의민족기악연주양상은 2005년 7월에있었던4) < 인민배우정남희생일 100돐기념가야금연주회 > 5) 에서그편성의일면을엿볼수있을뿐이다. 이영상물에나오는민족악기의편성양상을보면, 지휘자의왼편에소해금이자리하고중앙에는가야금과같은지탄악기, 오른편에는중해금과대해금, 현악기뒤편으로죽관악기로불리는저대와대피리, 그리고대해금의왼편에장고를배치하였다. 북한의민족관현악편성은남한의국악관현악편성과는사뭇다른모습이나중국연변의조선민족음악편성과는일치하고있다. 즉 2014년 11월에국립국악원에서있었던제1회북한음악연주회 < 북한의민족기악 > 연주6) 를위해연변에서방한한조선민족기악연주자들의악기배치를보면북한과마찬가지로왼편에소해금, 중앙에양금과가야금을두었으며, 오른편에는대해금대신더블베이스와그옆의장구, 그리고뒷줄에저대와단소, 대피리를두었다. < 자료 1> 정남희작곡 < 평양의봄 > 연주 < 자료 2> 중국연변의조선민족관현악편성 이렇게민족음악만을연주하는편성의악단이아닌북한중앙음악단체의연주중에서동영상으로확인할수있는자료를중심으로민족음악중기악의편성양상을살펴보도록하겠다. 이를통해북한의악기편성의형태와편성원칙을알아볼수있을것으로보인다. 이글에사용된북한중앙음악단체의연주는북한에서전면배합관현악편성을볼수있는은하수관현악단의 2011년 2월 3) 1947년에창단되었으며, 봉화예술극장에서민요, 민족기악, 민족무용, 민족가극, 민속무용조곡등민족예술작품을주로공연하는북한의대표적인민족예술창조집단이다. 단원수는 480여명이다.( 북한예술단체총람 2011, ( 서울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16-19쪽.) 4)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9695 데일리NK 의보도내용에따르면 < 인민배우정남희생일 100돐기념가야금연주회 > 의개최날짜는 2005년 7월 20일로보인다. 그리고 조선예술 2005년제9호 ( 루계 585) 에는연주회사진이 44-45쪽에걸쳐수록되어있으며, 2005년의북한문예자료를소개한 조선문학예술년감 (2006) 에는 제15차 2.16예술상 개인경연이성과적으로진행되였으며 함기찬음악회, 인민배우정남희생일 100돐기념가야금연주회 가창작가, 예술인들의커다란관심속에성황리에진행되였다. (269쪽) 고하면서 296쪽에 조선예술 2005년제9호에게재한연주회사진을재수록하였다. 5) https://www.youtube.com/watch?v=twdiaocse1o 6) https://www.youtube.com/watch?v=bnmrp9z7sf4

4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과 2012년 3월의 파리공연, 그리고 민족관현악과 부분배합편성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조선인민내무 군협주단의 2013년의 4월과 9월 공연, 마지막으로 김정은의 세습이후 2012년에 창단된 모란봉악 단의 2014년 9월 <신작음악회>이다. Ⅱ. 은하수관현악단의 민족악기 편성 단체의 은하수 라는 이름이 김정은 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는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 5월에 창단된 단체이다. 창단 초에는 양악기 중심의 관현악편성이었으나 이후 전면배합관현악을 기본으 로 전자악기와 드럼세트가 포함된 형태를 갖추었다.7) 이 악단에서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대체로 성악곡 위주이며, 한 두 곡의 민요나 민요풍의 노래를 양악기, 민족악기, 배합편성 등으로 연주하 였다. 1. 2011년 설명절음악회 2011년 은하수관현악단의 설명절음악회8) 는 2월 2일부터 만수대예술극장에서9) 있었다. 이날 연 주 목록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2011년 은하수관현악단 <설명절음악회> 프로그램 형식/장르 곡목 애국가 설화 합창 연주자 지휘: 리명일 화술: 백승란 우리 민족 제일일세 강성부흥아리랑 혼성2중창 사랑가 지휘: 윤범주 박금희, 최준일 녀성독창 아직은 말 못해 멋있는 사람 리설주 우리 집사람 리철훈, 송용국, 김형일, 황승철, 리 웅, 김성국 사회주의 너를 사랑해 로은별, 서은향, 김경희 군밤타령 문명삼 색스폰6중주 녀성3중창 남성독창과 남성방창 7) 북한 예술단체 총람 2011,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56-64쪽 참조. 8) https://www.youtube.com/watch?v=behnwu2qp7m 9) 로동신문 2011년 2월 2일, 김정일총비서 은하수 설명절음악회 를 관람. 로동신문 2011년 2월 4일, 은하수 설명절음악회 진행.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47 남성 5 중창 녀성 2 중창과남성방창 녀성 6 중창 관현악 녀성독창 녀성기악 4 중주 녀성 4 중창 녀성 6 중창 귀항의노래 < 예술영화 < 갈매기 > 호청년들 보람찬우리일터 황금나무능금나무산에심었소우리사는마을입니다 양산도 우정의노래옥류교원무곡 준마처녀 어느사단출신인가요 영웅병사와고향처녀들군가에발을맞추자 리준일, 장윤성, 배철우, 문명삼, 김유철 모란봉 서은향 녀성독창과녀성방창못잊을나의길황은미 정선영, 백현희, 리은주, 김송희 지휘 : 김충일림은화, 최금주, 한숙, 강연희 림은화, 최금주, 신윤희, 김수향, 한숙, 강연희 혼성 2 중창아름다운생의자욱새기여가자황은미, 리철우 민족기악과바얀을위한관현악 합창 통일무지개 위대한내나라전선에서만나자 지휘 : 리명일한은성, 김금희, 조옥주외 위의표를보면은하수관현악단은 2011년신년음악회연주종목을대부분성악곡으로편성하였으며, 음악회의초반과중반후반에기악곡을배치하였음을알수있다. 그리고이음악회의악기편성방식은전면배합관현악편성이다. 지휘자의왼편에는양악현악기가자리하며, 중앙에는어은금두대와가야금한대, 오른편에는민족악기중해금류가자리하였다. 그리고양악현악기뒤로금관악기와민족죽관악기, 전자악기를배치하였고, 해금류뒤편에는꽹과리를놓았다. 그리고아래의자료사진에서볼수있듯이민족악기를연주하는여성연주자들은한복을입고연주하였다. < 자료 3> 무대전면악기편성 < 자료 4> 우측해금류와더블베이스 < 자료 5> 좌측상단저대와플룻 먼저색소폰 6 중주로연주한 < 우리집사람 > 은국제여성의날 100 주년을기념하여새롭게보급

4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자료 6> 색소폰 6 중주 한윤두근작사, 안정호작곡의민요풍의노래이다. 이노래는 위대한장군님을어버이로모시여화목한대가정을이룬선군시대인간들의고상하고아름다운생활과가정에차넘치는륜리세계를소박하고진실하게반영하여나온시대의명곡 이며, 12/8박자로흥취나는박자형태를띠고 5음계조식에기초한 쏠대조 의단순3부분형식 을갖고, 아름다운생활속에서찾게되는이부름말을소재로생활적인가사와민요적색채가짙은선률형상으로하여우리인민들속에서사 랑을받으며널리불리워지고 있다10) 고한다. 이노래를색소폰6 중주곡으로편곡하여화성을넣어연주하였으나, 실제연주를들어보면민요스타일의노래라기보다는남한의트롯음악에가깝다. 공연의중반에는관현악 < 양산도 > 가약 3분정도연주되었다. 배합관현악의합주로시작된음악은장새납의솔로와현악기군의선율들이어울리며유창하게연주되다가꽹과리의활기찬연주와대비를이루기도하는등민요 < 양산도 > 의흥겨운세마치장단과유창한선율을잘표현하면서전반적으로흥겹고활기찬연주를들려주었다.( 자료 7-9) < 자료 7> 배합관현악 < 양산도 > 의장새납 < 자료 8> < 양산도 > 의가야금과어은금 < 자료 9> 배합관현악 < 양산도 > 의꽹과리 음악회의후반부에연주된민족기악과바얀을위한관현악 < 통일무지개 > 는가요 < 통일무지개 > 의배합중주형상으로, 가야금, 고음, 중음, 저음저대, 바얀, 그리고이를받쳐주는배합관현악으로구성하여연주하였다. 이연주에사용된바얀은러시아식의아코디언으로북한의배합관현악에서 민족적인음색을받쳐주거나독특한제3의복합음색을만들어내는 역할을한다. 특히북한에서는바얀이나손풍금, 즉아코디언을연주하는연주자들에게민족적인음색과기교, 즉 부드럽고은은하면서도맑고처량한 음색이나 끌소리 로불리는흘러내리는음, 그리고요성을구현할수있는능력을소유할것을요구11) 하고있다. 이곡의연주속도가빠른탓에바얀의요성은들을수 10) 양정남, 뜨겁고열렬한사랑으로충만된시대의명곡 : 가요 우리집사람 을들으며, 조선예술 2010 년제 7 호 ( 루계 643 호 ), ( 문학예술출판사, 2010), 56 쪽.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49 없었으나 제 3 의복합음색 을만들어내는데는일조한것으로보인다. < 자료 10> 민족기악과바얀 1 < 자료 11> 민족기악과바얀 2 < 자료 12> 바얀연주 2. 2012 년프랑스파리연주회 은하수관현악단은 2012년 3월 14일프랑스파리공연12) 을가졌다. 연주회의 1부에서는은하수관현악단단독으로관현악 < 그네뛰는처녀 >, 민족기악 2중주 < 비날론삼천리 >, 관현악 < 매혹 >, 생상의 < 서주와론도카프리치오 >, 무반주바이올린독주곡 < 닐리리야 >, 관현악 < 신아우 > 를연주하였으며, 2부에서는프랑스라디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함께브람스협주고 9번전곡과관현악 < 아리랑 >, 그리고 < 카르멘조곡 > 을연주13) 하는등성악곡위주로연주했던북한에서와는달리모두기악곡으로구성하였다. 악기편성을보면, 1부에서는앞의두곡을연주할때전면배합관현악편성을취하되드럼세트나전자악기는편성하지않았으며, 관현악 < 매혹 > 부터는서양오케스트라편성을하되 1부마지막의관현악 < 신아우 > 와 2부의 < 아리랑 > 에서는죽관악기와꽹과리를넣은부분배합관현악편성을취하였다. 북한에서관현악 < 그네뛰는처녀 > 는세가지버전이확인된다. 즉원곡이라고할수있는 1956 년에창작된최로사작사, 김준도작곡의민요풍의노래와이노래를바탕으로 1970년에김윤붕에의해편곡된관현악곡14), 그리고은하수관현악단이 2011년당창건기념 <10월음악회 영원히한길을가리라 > 에서새롭게편곡하여연주한곡이그것이다. 김정일은 2011년당창건기념연주회를평하면서 지금까지진행한음악회들중에서제일훌륭한공연을진행하였다고하시면서특히관현악 그네뛰는처녀 는편곡이잘되고형상수준이대단히높다고, 우리식의배합관현악의위력을유감없이과시하였다고높이평가하시며특별감사를주시였다 15) 고한다. 참고로 DVD 문학 11) 박은정, 바얀연주가가창조하는음색은민족적인것으로되여야한다, 조선예술 2013 년제 10 호 ( 루계 682 호 ), ( 문학예술출판사, 2013), 50 쪽. 12) https://www.youtube.com/watch?v=wh2xhr7tbhk&list=pl8e62abffb97e7d91 13) 로동신문 2012 년 3 월 16 일자. < 은하수관현악단빠리에서대성황리에공연 > 14) 사회과학원출판사, DVD 문학예술대사전, (2006). 15) 림광호, 한해를빛나게장식한선군혁명음악예술, 조선예술 2011 년제 12 호 ( 루계 660 호 ), ( 문학예술출판사, 2011), 20 쪽.

5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예술대사전 에서음원으로만확인되는 1970년대창작된 < 그네뛰는처녀 > 는민족죽관악기와꽹과리가서양오케스트라에더해진부분배합관현악편성의곡으로들리는데비해은하수관현악단이새롭게편곡한 < 그네뛰는처녀 > 는전면배합관현악편성의곡이다. 풍부한현악기선율과민족죽관악기와의대비, 그리고꽹과리와장구가잘어우러진연주였다. 3부분형식을취하기는하지만음악중간의변주부분이짧다. < 자료 13> < 그네뛰는처녀 > 배합관현악 < 자료 14> < 그네뛰는처녀 > 장구 은하수관현악단이편곡한민족기악2중주 < 비날론삼천리 > 는 2010년 <9월음악회 > 에서처음선보인후 2010년 <10월음악회 > 와 2012년은하수신년음악회 < 태양의위업영원하리 > 에이어파리에서연주하였다. 중주악기는가야금과소해금이며, 연주자는 <2.16예술상 > 수상자인조옥주와남은화이다. 민족기악2중주라고하였으나실제로는민족기악2중주를위한관현악이라고할수있다. 이곡역시 3부분형식을취한다. 관현악연주에이어소해금의활대소리가장내를가르면 21현가야금이그뒤를이어소리를낸뒤 < 비날론삼천리 > 의 1절의주선율을가야금과소해금이번갈아가며연주한다. 이어관현악과함께 2절연주를한후점점빨라지면서변주부분으로들어간다. 빠른가야금연주와느린활대의소해금연주가대비를이루다가마지막부분에는다시속도를느리게하여원곡의정서를살리고있다. < 자료 15> 민족기악 2 중주 1 < 자료 16> 민족기악 2 중주 2 < 자료 17> 비날론삼천리소해금 지금까지 2009년에창단된은하수관현악단의 2011년 < 설명절음악회 > 와 2012년프랑스파리연주를살펴보았다. 2011년 < 설명절음악회 > 는은하수관현악단의연주회중에서도민요나민요풍의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51 노래가많이편성되어민족적인정서가가득한무대였다. 이중에서민족음악을기악으로만연주한것은세곡으로, 민요풍의노래를색소폰과같은금관악기를위한음악으로편곡하여연주하거나화성을연주할수있는바얀과함께민족죽관악기와가야금을배합한편성으로구성하였으며, 민요 < 양산도 > 를전면배합관현악으로편곡하여연주하였다. 이외에성악연주는모두배합관현악이반주하였으며, 이반주에맞추어양악성악가와민성가수의연주가있었다. 한편전면배합관현악은잘알려져있듯이양악기와민족악기를 1: 1의수준으로배치하는형태이다. 이연주회에서는지휘자의왼쪽에서양현악기를, 지휘자의앞에는가야금과어은금, 지휘자의오른편에는소해금과중해금을놓았다. 그리고현악기의뒤편으로금관악기와민족죽관악기, 전자기타, 더블베이스등이자리하였으며, 무대뒤쪽에피아노와장구, 드럼세트, 타악기, 꽹과리를배치하였다. 2012년프랑스연주에서는민요풍의노래 < 그네뛰는처녀 > 와 < 비날론삼천리 > 를부분배합관현악으로편성하여연주였고, 이중 < 비날론삼천리 > 는민족기악2중주를위한관현악이었다. 이날연주의악기배치는북한에서의것과약간다르다. 즉, 기본적인오케스트라편성을갖되중앙에어은금과소해금을배치하였으며, 민족죽관악기의수도적었다. 그리고드럼세트와전자기타는편성하지않았다. 상대적으로적은수의악기를배치하면서도민족음악적특성을담을수있도록편성하였음을볼수있다. 특히이연주에서는서구유럽을방문한동양오케스트라가연주레퍼토리를자국의창작곡으로채워놓거나솔로연주가가앵콜곡으로민요변주곡을연주함으로써북한의음악이서구유럽음악과견줄수있는수준의음악이라는긍지로가득한연주회를만들어놓았다. Ⅲ.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민족악기편성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은사회안전성협주단, 혹은인민보안성협주단등으로활동하다가 2010에지금의이름으로활동하고있는음악과무용, 화술이혼재된종합예술단체이다. 1947년북조선인민위원회내무국악단으로출발하였으며북한의경찰기관인인민보안부인민내무군정치국산하공연기관으로봉화예술극장을전용공연장으로활용하고있다.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이름으로진행한첫번째공연인 2010년 4월 17일의연주에는녀성중창 < 병사들은노래하네우리의최고사령관 >, 녀성2중창 < 해돋이순간 >, 녀성기타5 병창 < 이강산하도좋아 >, 남성독창과방창 < 사랑의봄빛 >, 녀성독창 < 조국은너를알게되리 >, < 내운명지켜준어머니당이여 >, 어은금독주 < 가마마차달린다 >, 이야기와녀성독창 < 여기는천리마내조국이랍니다 >, 손풍금3중주 < 축원의노래 >, 남성기타4 병창 <3대자랑가 >, 혼성중창 < 당의품은우리사는집 > 등이연주되었다. 16) 이제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이 2013년에진행한두번의공연에서민족기악형상과관련한내용 16) 북한예술단체총람 2011, ( 서울 : 한국관광문화연구원, 2011), 75-79 쪽.

5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을검토해보도록하겠다. 1. 2013 년 4 월태양절공연 2013년 4월태양절즈음에있었던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연주회의영상17) 은김정은이직접참여한공연을실황녹화한영상으로영상의첫화면에 <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김정은동지를모시고진행한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공연 > 임을밝히고있다. 이날공연종목을표로정리하면다음과같다. < 표 2>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태양절공연 편성 / 장르 곡목 연주자 설화와합창 영원한그미소 화술 : 김혜경 녀성독창과합창 김일성장군님은우리의태양 한은정 남성2중창과합창 장군님축지법쓰신다 남원철, 황명성 무용 삼지연못가에서 김은희외 9명 남성독창 아름다운고향 리동수 녀성3중창 새봄을노래하네 권미화, 리봄순, 한은정 어은금과손풍금2중주 강산에만발한꽃송이 류은혜, 리남신 트럼베트와남성독창 어버이품이여 전수련, 배성권 녀성기타병창 초소의까치소리 리경외 4명 하모니카독주 병사들아영웅이되자 림명산 하모니카3병창 도시처녀시집와요 오은향, 허미양, 박혜성 남성고음3중창 당의품에안겨사는인민의행복 리영교, 림영철, 배성권 고음저대와하모니카중주 모란봉닐리리야 박광혁, 리광외 5명 어은금병창과소합창 운명도미래도맡긴분 윤금란외 6명 녀성독창과소합창 단숨에 함금주 무용 행복의니나니난노 홍옥영외 11명 쌕스폰과남성독창 사랑에대한생각 김용재, 리충심 녀성독창 믿어다오조국아 박금향 남성기타4병창 번영하여라로동당시대 박금종외 3명 녀성독창과방창 승리자들 김희옥 설화시 원수님계신다 김혁외 3명 합창 인민이사랑하는우리령도자 오케스트라편성 17) https://www.youtube.com/watch?v=fgq80wg3r0o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53 위의표에서보듯이이연주회는음악과화술, 무용이함께구성된음악무용종합공연의형태를띤다. 이공연의기본악기편성은일반적인오케스트라편성이었으며무대뒤편으로합창대를두었다. 그리고공연중간에세종류의소규모편성이 흐름식 으로무대에들어왔는데, 이중에서앞의둘에민족악기가편성되어있다. 즉이공연에서볼수있는민족기악은어은금과손풍금2 중주의 < 강산에만발한꽃송이 >, 하모니카독주의 < 병사들아영웅이되자 >, 그리고고음저대와하모니카중주 < 모란봉닐리리야 > 이다. 공연초반의무용다음에흐름식으로무대에들어온악대는민족악기와아코디언, 드럼세트가혼합된민족악기위주의배합편성악대이다. 무대앞쪽인하단에는옥류금, 가야금, 양금, 대해금을배치하고, 무대뒤쪽인상단에는저대류 3, 피리류 3, 그리고아코디언과장구, 타악기일색과드럼세트를배치하였다. 이편성으로연주한음악은성악곡두곡이며, 죽관악기들의꺾어서흘러내리는주법과옥류금의아르페지오연주가강조되어나타났다. < 자료 18>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기본편성 < 자료 19> 흐름식악대 1. 민족악기위주편성 손풍금과어은금의 2중주로연주한 < 강산에만발한꽃송이 > 는 1961년에창작된서정가요이다. 여성연주자가연주하는맑은음색의어은금선율과그사이의빈여백들을화성으로채워주는남성연주자의손풍금연주가대비를이루고있다. 이러한대비는악기나악기의음색뿐만아니라연주자의성별에도부여하고있음을알수있다. 다음에역시흐름식으로들어온악대는무대왼쪽에 < 자료 20> 어은금과손풍금 2 중주 피아노아코디언을놓고아래쪽에어은금 3, 위쪽에전기기타둘과타악기, 그리고드럼세트를배치하였다. 이렇게밴드악대와어은금이혼합된편성에서는어은금의대표적인연주수법인트레몰로가도드라진경향을보였다. 그리고하모니카독주 < 병사들아영웅이되자 > 를제외하면이두악대는모두성악곡을반주하였다. 하모니카독주는두번째악대의악기와함께연주하였는데이역시하모니카의음색과민족악기인어은금의소리가대비를이루었다.

5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자료 21> 흐름식악대 2. 배합편성 < 자료 22> 하모니카독주 < 자료 23> 저대와하모니카중주 치하여음색의대비와함께화성을추가한점이눈에띤다. 다음으로고음저대와하모니카중주의 < 모란봉닐리리야 > 는 2008년에창작된민요풍의노래이나이역시남한의트롯음악에가깝다. 이연주에서는음역대를달리하는하모니카 6대와함께고음저대를편성하였다. 연주영상을보면고음저대가비록횡취의악기이기는하나그음색이단소나소금에가까워마치전통음악의생소병주와같은느낌을준다. 이세연주모두민족악기와화성을연주하는서양악기를배 2. 2013 년 9 월공화국창건기념공연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 2013년 9월 9일 공화국창건 65돐경축공연 < 선군의나의조국 > 공연18) 의연주목록을정리하면다음의표와같다. < 표 3>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공화국창건 65 돐기념공연 < 선군의나의조국 > 편성 / 장르곡목연주자 혼성합창 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 남성독창과합창선군의나의조국배성권 혼성합창 김일성대원수만만세 남성 2 중창과합창승리자들남원철황명성 무용 양금과녀성독창 어은금병창 승리의행진 선군의그길을생각할수록 감사의노래 양금 : 황련아독창 : 리봄순 녀성 3 중창먼저찾아요권미아리봄순한은정 바얀 2 중주축배를들자백성혁송경업 18) https://www.youtube.com/watch?v=_1nhrx4aaa0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55 혼성2중창 우리마을우리초소 리동수리정심 손풍금과쎅스폰 3중주 멋있는사람 리남신임향란외 2명 녀성기타병창 보람찬병사시절 리효심외 5명 남성고음3중창 그보다정다운품나는몰라라 리영교림영철배성권 퉁소와하모니카중주 정말좋은세상이야 김경석장혁외 5명 혼성4중창과소합창 공격전이다 장성혁박철옥리은숙림영철 녀성독창과소합창 래일을믿으라 함금주 남성기타4병창 오늘도그날처럼 오영수전창민박태혁박금종 무용 내가지켜선초소 김은희외 6명 녀성독창 조국은너를알게되리 김희옥 남성독창 대렬훈련나날에병사는자랐네 리동수 남성독창 뿌리가되자 김용재 전자드람을위한경음악과노래 이땅의주인들은말하네 한순정정옥주외 5명 설화시 선군의나의조국 주진아외 2명 혼성중창과합창 인민은일편단심 박금향외 5명 합창 인민이사랑하는우리령도자김정은장군목숨으로사수하리라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 < 선군의나의조국 > 은 4월의공연과같이음악무용종합공연의형식으로진행되었으며, 악기편성은전면배합관현악, 민족악기위주의배합관현악편성, 배합편성등다양한편성을보여주었다. 먼저이연주회의기본편성은 4월의연주와는달리전면배합관현악편성이었으며, 모두성악곡의반주를진행하였다.( 자료 26-29) 그러나은하수관현악단의전면배합관현악배치와는양상이조금다르다. 즉, 무대왼편뒤쪽으로어은금과죽관악기가자리하고있으며, 무대오른편에는소해금과중해금, 더블베이스, 팀파니, 그리고전자기타가편성되어있다. 즉, 어은금의위치가중앙과왼쪽뒤편으로다른셈이며가야금을두지않은점역시다르다. < 자료 24> 정면 < 자료 25> 우측 < 자료 26> 좌측뒤편의어은금 이날연주도 4월공연에서처럼민족관현악편성과어은금이포함된배합편성이연주에포함되어있었다. 먼저, 민족관현악편성의악단은무용 < 승리의행진 > 다음에 흐름식 으로들어왔다. 악기는

5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앞면왼쪽에소해금 4 대, 옥류금, 양금, 가야금, 중해금 2 대, 대해금 1 대를놓았고, 뒤편에저대류 3, 단소 1, 대피리 1, 중앙에아코디언과장구, 그리고오른편에타악기와드럼세트를놓았다. < 자료 27> 민족악기위주의배합편성 < 자료 28> 왼편의소해금과죽관악기 4월의민족관현악에드럼과아코디언이들어간편성과비교하여 9월의것은편성방식이약간다르다. 즉, 무대앞에옥류금과양금, 가야금을놓고뒤편에민족죽관악기 6개를배치하였던것에비해 9월의연주에서는옥류금과양금, 가야금의양옆으로해금류의악기를두었으며, 죽관악기의수를하나덜었다. 이러한편성으로연주된양금과녀성독창 < 선군의그길을생각할수록 > 은양금만의반주가아닌양금의연주가돋보이는연주로편곡한상태에서배합관현악의반주로노래를불렀다. 두번째노래인어은금병창 < 감사의노래 > 는영상자료에서연주영상이보이지않은채 7명의어은금연주자가무대를나가는모습19) 만보인다. 그러나 4월의연주에서그상황을추측해보면, 표주박모양의어은금을들고하와이안기타처럼잡아연주하면서노래를부르는어은금병창은뒤편의합창단대신민족관현악연주가받쳐진연주였을것으로보인다. 그리고이어진녀성3중창 < 먼저찾아요 > 는성악의연주와함께가야금, 장구, 꽹과리등의중간반주가돋보이는편곡으로이루어졌다. < 자료 29> 4 월연주의어은금병창 < 자료 30> < 먼저찾아요 > 의가야금간주 < 자료 31> < 먼저찾아요 > 의장구, 꽹과리간주 19) 로동신문 2013 년 9 월 12 일자 4 면 < 공화국창건 65 돐경축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공연 > 에 서곡 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 로시작된공연무대에는남성독창과합창 선군의나의조국아, 합창 김일성대원수만만세, 양금과녀성독창 선군의그길을생각할수록, 어은금병창 감사의노래, 남성고음 3 중창 그보다정다운품나는몰라라 등의종목들이올랐다. 는기사가있다. 이를바탕으로프로그램연주종목에추가하였으며, 영상물을통해어은금병창 < 감사의노래 > 가녀성 3 중창 < 먼저찾아요 > 앞에연주되었음을알수있다.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57 바얀연주다음에흐름식으로들어온악대의편성은 4 월공연의것과동일하다. 즉, 어은금 4 대 와피아노, 아코디언, 전자기타와드럼세트의편성으로합주와손풍금과색소폰 3 중주 < 멋있는사 람 > 이연주되었다. 이연주에서도트레몰로로연주하는어은금의소리가잘배합되어있었다. < 자료 32> 손풍금과색소폰 3 중주 1 < 자료 33> 손풍금과색소폰 3 중주 2 무대에서이편성이빠져나간다음에연주된퉁소와하모니카중주 < 정말좋은세상이야 > 는하모니카 6중주와민족악기퉁소의중주형태이며, 이것은 4월연주의고음저대와하모니카중주로편성된음악과상통한다. 이연주에서보여준퉁소는개량되지않은전통의모습을지닌악기였다. 그리고하모니카 6개가연주하는바이브레이션은마치피리나단소의농음과비슷한연주법을보여주었다. 퉁소의질박한소리가맑고고운음색을갖는하모니카의화성반주에어우러진연주였다. < 자료 34> 퉁소와하모니카합주 < 자료 35> 퉁소연주 이장에서는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민족악기편성양상을살펴보았다. 이악단의기본편성은서양오케스트라편성과전면배합관현악편성을보였다. 그러나협주단의전면배합관현악은은하수관현악단의그것과악기위치가조금달랐다. 이악단은공연중간에세번의흐름식악대가들어와연주하는데첫번째는민족관현악기에드럼과아코디언이배합된편성이며, 두번째는어은금이배합된밴드스타일의편성, 그리고세번째는전자악기편성이어서논외로두었다. 민족관현악에드럼과아코디언이들어있는편성은 4월과 9월이약간다르다. 4월의것에는해금류가없었던것에비해 9월의것은소해금 4대와중해금 2, 그리고대해금하나가추가되었다. 이러한편성은아코디언이나드럼세트를제한다면북한의민족관현악과중국연변의조선민족관현악편성과같으며, 대체

5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로성악곡의반주를담당하였다. 밴드악기와어은금이배합된편성에서는어은금의트레몰로연주가주의를끌었다. 이외에고음저대와하모니카 6중주, 퉁소와하모니카6중주와같은독특한편성이있었는데, 생황과비슷한음색을갖으면서화성연주가가능한하모니카나손풍금과같은악기와민족악기를결합하여민족적인흥취를내면서도화성을넣은연주를하고있음을볼수있다. Ⅳ. 모란봉악단의 2014 년 < 신작음악회 > 2012년 7월김정은시대에창단된모란봉악단은 1980년대김정일이창단한보천보전자악단과는차별성을갖는음악단체이다. 모란봉악단은연주에서대체로전자악기를사용한다는점에서는보천보전자악단과같다. 그러나보천보전자악단에서는일렉톤과같은건반위주의전자악기를남성연주자가담당하고여성연주자는노래만불렀던것에비해모란봉악단은현악위주의전자악기로구성하며모두여성연주자들로이루어져있다는점에서는다르다. 이악단의악기는바이올린, 첼로, 건반, 색소폰, 피아노, 드럼, 일렉기타, 베이스를연주하는 11명의연주자와다수의가수로구성되어있다. 이러한전자악기로주로경음악과성악곡을연주하며, 3대세습자인김정은의의지를반영한악단의민족음악연주양상을검토함으로써김정은의민족음악에대한의지를엿볼수있다고판단된다. 2014년 9월, 이악단은 < 신작음악회 > 20) 라는일종의쇼케이스를선보였다. 이날 48분정도의영상속에소개된총 11곡의노래중민요풍노래는두곡이다. < 표 4> 모란봉악단신작음악회 (2014.09.03) 편성 / 장르 곡목 출연자 비고 1 녀성3중창 인민은부르네친근한그이름 김설미, 리옥화, 라유미 2 녀성3중창 그리움의하얀쪽배 박미경, 정수향, 김유경 3 녀성독창과방창 내심장의목소리 공훈배우라유미 4 녀성중창 만경대혁명학원교가 5 녀성독창 그날의 15분 공훈배우리옥화 6 경음악련곡 빛나는조국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조국찬가 7 녀성독창과방창고백공훈배우라유미 8 녀성독창과방창세월이야가보라지공훈배우리옥화 민요풍노래 32: 42~36: 18 20) https://www.youtube.com/watch?v=pmn80nwp89e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59 9 녀성독창과방창철령아래사과바다김설미 10 녀성중창 근위부대자랑가 11 녀성중창 승리는대를이어 민요풍노래 36: 18~40: 07 위의표에서여성독창으로부른 < 세월이야가보라지 > 와 < 철령아래사과바다 > 라는두곡은 2014 년상반기에창작된 < 바다만풍가 > 21) 와함께모란봉악단이창작한민요풍의노래로카운트되었다. 이음악회에서연주된두곡에대한북한의평가는너무나긍정적이다. 특히음악회무대에오른민요작품들은내용에서우리당정책이반영되고형식에서민족성이구현된것으로하여당정책이살아숨쉬고민족적정서와흥취가넘쳐나는우리시대의민요명작으로서의훌륭한모습을잘보여주었다. ( 중략 ) 모란봉악단이펼친특색있는민요무대는우리선률이제일이고우리장단이제일이라는확고한관점을가지고민족음악을장려하고발전시킬데대한당의의도를빛나게실천하고당의손길아래나날이아름다와지고풍성해지는우리의생활을민족적정서가넘쳐나게형상한것으로하여관람자들의폭풍같은반향을불러일으켰다. 22) 서양식전자악기의경쾌한음악과화려한율동이주를이루었던모란봉악단이 2014년에창작하여형상한민요풍노래는세대를아우르는내용을담고있으며, 민족음악을장려하려는당의의도가잘드러난음악이라는것이다. 먼저 < 세월이야가보라지 > 의연주는민족악기없이전자악기로만연주되었으며, 모든악기들이양산도장단, 즉세마치장단의느낌을잘살려연주하였다. 노래를부른리옥화역시대중가요창법으로노래부르기는하였으나 굴림소리 나 꺾음소리 와같은민요창법을사용하여민족적인정서를안겨주었다. < 세월이야가보라지 > 의가사에서도알수있듯이고난의행군시기를이겨낸노년세대에대한자축의의미를담고있다. 21) https://www.youtube.com/watch?v=xk-yweuswqc < 바다만풍가 > 는 2014 년 5 월제 9 차전국예술인대회참가자들을위한모란봉악단축하공연에서처음연주된민요풍의노래이며, 흥겨운굿거리장단의음악이다. 22) 리은성, ( 관평 ) 주체적문학예술발전을위한새로운진군길에울려퍼진장쾌한명작포성 : 모란봉악단의신작음악회를보고, 조선예술 2014 년제 11 호 ( 루계 695 호 ), ( 문학예술출판사, 2014), 21 쪽.

6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자료 36> < 세월이야가보라지 > 1 < 자료 37> < 세월이야가보라지 > 2 이노래에대한북한의관평을보면, 이번에새롭게창작형상하여음악회무대에내놓은민요 세월이야가보라지 도 9/8박자의건드러진장단에맞추어녀성중음가수의독창과방창으로울려퍼져날을따라커만가는당복, 선군복속에누구나젊음에넘쳐있는조국의모습과우리인민의행복한모습을흰종이에단붓으로그려내듯생동하게보여주었다23) 면서노인세대의흥청거림을표현하였다. < 세월이야가보라지 > 에이어연주된 < 철령아래사과나무 > 는모란봉악단의민성가수김설미가불렀다. 이노래의가사는 4.4조에 4절로이루어져있으며, 김정은시대에들어와이룩해가고있는생활상의풍요로움을상징한당정책가요라고할수있다. 전통악기인꽹과리의안땅장단연주로시작된 < 철령아래사과나무 > 는굴림소리와요성이인상적인곡이다. 노래를형상한독창가수 ( 김설미 ) 는원곡이담고있는정서적요구를구체적으로그리고정확히파악하고세련된연주기교를발휘하였다. 이가수의노래형상에서특이한점은민요풍의노래에만있는독특한기교, 다시말하여악보에그려진음을골격으로하면서박자가 2박도는 4박자길이로연장되는대목들에서다양한형태의미분음을섬세하고재치있는굴림을써서원곡의정서를높은수준에서형상완성시켜24) 주었다며김설미의민요창법을높이평가하였다. < 자료 38> 전자악기편성 < 자료 39> 김설미 < 자료 40> 꽹과리 23) 리은성, 앞의글, 21 쪽. 24) 리관수, 당정책요구를민감하게반영한흠잡을데없는시대의걸작 : 가요 철령아래사과바다 를놓고, 조선예술 2014 년제 11 호 ( 루계 695 호 ), ( 문학예술출판사, 2014), 30-31 쪽.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61 모란봉악단이형상화한민요풍의노래두곡의악기편성을보면, 기본적으로현악기위주의전자악기속에전통악기인꽹과리하나를더넣은형태이며, 전통장단의사용과함께음악에서민족적정서를쉽게구현할수있도록하였다. 또한노년세대를겨냥한노래에서는평범한대중가요창법으로, 청년세대를대상으로한노래에서는전형적인민성창법으로노래하고있음을볼수있다. 이날연주에서불렸던노래에대한북한의평가를보면 우리인민들속에서좋은반향을불러일으키고널리불리워진민요 바다만풍가 와선군절에즈음하여창작된것으로하여그의미가더욱깊어진 철령아래사과바다 가녀성독창과방창으로울려퍼지자무대와객석은민족적정서와흥취로한껏달아올랐다. 관람자들은노래를들으면서경애하는원수님의은덕으로사회주의대가정에만발하는바다향기, 과일향기를민족적선률의정서속에서온몸으로받아안았다25) 면서모란봉악단의민요풍노래중젊은분위기와활기가느껴지는 < 바다만풍가 > 와 < 철령아래사과바다 > 를대대적으로선전하고있음을볼수있다. Ⅴ. 북한민족기악편성의특성 : 민족성, 현대성, 인민성 문화는사회적산물이며, 그시대를사는사람들의의식의반영이라고했을때, 동시대사회문화의한형태인음악은미학의보편적인언어와는다른소리와울림으로시대의의지와의식을반영한다. 또한의지와의식은세대를넘는교육을통해보편적인정서로대물림된다. 2000년대북한의문예담론은주체사실주의위에조선민족제일주의, 그리고 2000년대이후의음악정치등이층층이쌓여있는양상이며, 이들의중심에는김정일이있다. 그러나 2011년 12월갑작스러운김정일의사망으로인해김정은이권력을승계하였으며, 이시기에북한의중앙음악단체들의민족악기편성양상을연주영상을중심으로살펴보았다. 은하수관현악단은양악기와민족악기의비율을 1: 1로설정한전면배합관현악편성으로연주하였으며, 양악기와의민족음악연주가전혀어색하지않은연주기술을보여주었다. 그리고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역시전면배합관현악편성이보이기는하였으나은하수관현악단의것과민족악기의위치가달랐다.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의공연에서는이외에소규모의민족관현악편성과배합편성이있었는데모두아코디언을넣어화성을담당하게하였으며, 민족죽관악기와하모니카를결합하여화성이표현되면서도민족적인흥취를느낄수있게하였다. 마지막으로전자음악악단인모란봉악단이연주하는민요풍의노래에서전자악기로형상하는민요의음조도그렇지만전자악기에꽹과리를편성하여민족적정서를표현하고있었다. 음악예술론 에는민족악기와서양악기를배합하는것은 주체적 인악기편성의중요한원칙이 25) 리은성, 앞의글, 21 쪽.

6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라고명시하였다. 악기편성은음악에서민족적색을살리는데중요한역할을하기에 민족악기와서양악기를배합하는것은민족악기의역할을더욱높여민족음악을현대적으로발전시키며서양악기를민족음악발전에복종시키기위한필수적인요구 라는것이다. 배합을위해서민족악기의개량은선결과제였다. 이에민족악기의고유한음색을보존하면서도형태와모양, 재질을바꿔맑은음색과더큰음량, 현대적주법을연주할수있도록민족악기를개량하도록하였다. 그리고이렇게개량된민족악기와서양악기의배합편성에서는민족악기를위주로하고민족악기의역할을강조하는것이중요하다고보았다. 즉, 배합편성에서민족적이며현대적인새로운소리를찾아내기위해배합의균형을잘맞출것이강조되었다. 26) 그러나악단연주에서배합편성을하는이유는화성때문으로보인다. 그이유는민족관현악편성에서도화성연주를위해아코디언을편성하고, 중주의경우도민족악기과함께화성연주를하는아코디언과하모니카를함께편성하여연주하고있기때문이다. 물론북한에서 화성은그고유한음향적인색갈로하여민족적인특성을살리기도하며현대적인미감을돋구기도 27) 하기때문에 화성이나리듬과같은다른수단이선률의형상과성격을적극안받침하고풍부히하여주면선률이더잘살아나고음악에서선률의기본적이며주도적인지위와역할도훌륭히보장될수있다28) 고명시할정도로화성은현대성을보장하는중요한수단이다. 여기에더하여손풍금이라불리는아코디언이나바얀, 하모니카등은군중예술소조활동에많이사용되는악기로이동성이뛰어날뿐만아니라쉽게이들악기의반주로노래를부를수있기때문에인민성을보장할수있다. 한편북한에서민족의강조는외부세계로부터의공격을막으면서자국민들의단결을촉발시켜야할때사용되는경향이있다. 김정은시대대표악단이자전자음악을연주하는모란봉악단이기존의연주경향에서벗어나민요풍노래를창작, 발표하거나전자악기에꽹과리를편성하여민족음악의정서를살려놓은것을보면, 외부세계로부터인민통제를강화하려는북한지도부의의지가드러난다고할수있다. 그리고민족적형식과현대적미감, 그리고인민성은이렇게중앙음악단체의악기편성에서도구현되어있으며이후에도지속적으로이러한편성을지향할것으로보인다. 26) 김정일, 음악예술론,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84-87 쪽. 27) 앞의책, 97 쪽. 28) 앞의책, 54 쪽.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63 [ 참고문헌 ] 로동신문 데일리NK,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9695 YTN, http://www.ytn.co.kr/_ln/0101_201411011719189130 김두일, 장군님의음악정치와음악성,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06. 김정일, 음악예술론,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단국대학교한국문화기술연구소편, 통일문화사대계 1: 1990~1999 북한문예비평자료 해제집, 서울 : 도서출판경진, 2012. 사회과학출판사, DVD 문학예술대사전, 2006. 조선문학예술년감 : 주체95(2006),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09. 조선예술 2005년제9호 ( 루계 585), 문학예술출판사, 2005. 한국문화관광연구원편, 북한예술단체총람 2011, 서울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리관수, 당정책요구를민감하게반영한흠잡을데없는시대의걸작 : 가요 철령아래사과바다 를놓고, 조선예술 2014년제11호 ( 루계 695호 ), 문학예술출판사, 2014. 리은성, ( 관평 ) 주체적문학예술발전을위한새로운진군길에울려퍼진장쾌한명작포성 : 모란봉악단의신작음악회를보고, 조선예술 2014년제11호 ( 루계 695호 ), 문학예술출판사, 2014. 림광호, 한해를빛나게장식한선군혁명음악예술, 조선예술 2011년제12호 ( 루계 660호 ), 문학예술출판사, 2011. 박은정, 바얀연주가가창조하는음색은민족적인것으로되여야한다, 조선예술 2013년제10호 ( 루계 682호 ), 문학예술출판사, 2013. 양정남, 뜨겁고열렬한사랑으로충만된시대의명곡 : 가요 우리집사람 을들으며, 조선예술 2010년제7호 ( 루계 643호 ), 문학예술출판사, 2010. https://www.youtube.com/watch?v=twdiaocse1o https://www.youtube.com/watch?v=bnmrp9z7sf4 https://www.youtube.com/watch?v=pmn80nwp89e https://www.youtube.com/watch?v=pmn80nwp89e https://www.youtube.com/watch?v=behnwu2qp7m https://www.youtube.com/watch?v=wh2xhr7tbhk&list=pl8e62abffb97e7d91 https://www.youtube.com/watch?v=fgq80wg3r0o https://www.youtube.com/watch?v=_1nhrx4aaa0 https://www.youtube.com/watch?v=xk-yweuswqc

6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The aspect of orchestrating the traditional instruments in North Korean Capital music organizations in 2010s 29) Bae, Ihngyo* This article has a purpose to look into the orchestration of the national music instruments in the music organizations that are performing in the capital of North Korea. South Korea and the North Korea have been divided more than 50 years, and these organizations we are targeting are showing the original form of music of North Korea. To do this research, we examined the Paris concert of Eunhasu(Milky-way) Orchestra in February 2011 and March 2012, the concert of the Chosun People s Military Ensemble in April and September 2013, which show the ethnic orchestra and a part-mixed organizing, and lastly the <New Music Concert> of the Moranbong band in September 2014. The Moranbong band was established after the succession of Kim Jongeun in 2012. Eunhasu Orchestra played with the entire-mixed orchestration, and showed a performance technique that makes the western music instruments in the traditional music sounds not at all awkward. Also Chosun People s Military Ensemble displayed the entire-mixed orchestration, but different from that of Eunhasu Orchestra in the positions of the traditional music instruments. Besides this mix, at the concert of Chosun People s Military Ensemble, there were small traditional orchestration and the part-mixed orchestration. Both of them expressed the harmony with accordion, and combined the traditional bamboo musical instruments with harmonica presenting the harmony and the ethnic taste. Lastly, the electrical music band, Moranbong band is presenting the ethnic, traditional sentiment through the folk song scale in the songs, which are also minyo(folksong)-style song with the electrical instruments, and also presenting through adding the kwaenggwari with other electrical music instruments. In North Korea, the music groups are pursuing the mixed-orchestration to achieve the traditional form, the modern sense of beauty, and the popularity at the same time, but it can be told as a way of presenting the harmony in traditional music. The traditional form, modern sense of beauty, and the popularity seem as though they will be pursuing the mixed orchestration continuously for the harmony, engaging with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 political ** Research Professor, KCTI, Dankook University

2010 년대북한중앙음악단체의민족악기편성양상 65 intentions. [key words] traditional music; traditional music instrument; mixed orchestration; entire-mixed orchestration; traditional orchestra; Eunhasu(Milky-way) Orchestra; Chosun People s Military Ensemble; Moranbong Band; minyo(folksong)-style song; national character; modernity; popularity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5 월 10 일 2015 년 5 월 22~6 월 15 일 2015 년 6 월 18 일

국악원논문집 제31집 67~88쪽 2015 30) 고려 당악정재의 전래와 수용* 신태영** [국문초록] 대체로 고려의 당악정재는 송나라에서 전래했거나 송 조정이 고려 조정에 보내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논자는 이 러한 견해에 따라 송 교방악이 고려에 수용된 과정을 검토하다가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고려의 당악정재가 모두 송에 서 전래된 것이라면, 중국 문헌에 그 이름이 보여야 하고 또 정재의 사와 사의 작자도 어느 정도 밝혀져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별다른 변형 없이 도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에 먼저 송의 교방악이 들어온 기록을 검토하고, 다음으로 고려 당악정재의 사와 중국 사보(詞譜)의 사를 비교했 다. 어정사보(御定詞譜) 에 전체 16수의 사 중 9수가 실려 있었지만, 그 출처는 모두 고려사 악지 였다. 그리고 그 9수도 동천경색사(洞天景色詞) 한 수만 유사한 체를 지녔을 뿐, 나머지 8수는 유사한 체나 사패(詞牌)를 찾을 수 없어 사실상 독자적인 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당악정재의 사와 곡은 고려에서 직접 창작했을 가능성 을 제기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당악정재의 성립 과정과 그 시기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고려의 당악정 재는 모두 고려에서 창작했거나 재창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대성악(大晟樂)처럼 송 조정에서 고려에게 보내준 것이 아니라, 고려가 민간 무역과 공식 사절단 등을 활용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정재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다. 즉 송 교방악이 고려에 전래되어 고려의 당악정재가 되었다고 범범하게 이해하기보다는, 고려가 자신들 이 필요로 하는 가무희를 송 대곡(大曲)의 양식을 차용하여 자체적으로 만들어나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핵심어] 당악정재, 당악, 교방악, 어정사보, 헌선도, 수연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 <차 례> Ⅰ. Ⅱ. Ⅲ. Ⅳ. Ⅴ. 문제의 제기 고려의 송 교방악 수입 고려 당악정재의 사와 중국 사보 속의 사 고려 당악정재의 성립 결론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NRF-2014S1A5B8035981)임. **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부설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

68 국악원논문집 제31집 Ⅰ. 문제의 제기 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실려 있는 다섯 곡의 당악정재1) 를 비롯한 당악은 모두 송나라에서 전래했거나 송의 조정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고 있다. 송방송은 이들 당악은 통일신라의 당악과 관 련이 없고 송나라의 교방악이나 사악과 연관이 있으므로 송 교방악이 언제부터 고려 조정에 유입 되었는지 점검해야 한다며,2) 전래된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니 유입 시기만 따지면 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들 당악 48곡 중 대곡(大曲)류인 7곡을 제외한 산사(散詞) 41곡에서 그 작자가 밝혀진 것이 16편이고, 그 중 송나라 사람의 작품이 15편이나 된다.3) 차주환은 고려사 지 에 수록된 당악의 일부가 고려 초에 이미 전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중국 교방의 좌부기와 입부기의 당악 류가 고려 초에 수입되어 상연되었다고는 믿기 어렵다며, 만일 고려 초부터 교방이 설치되었다 해 도 그곳에서는 삼국시대 이래의 백희가무 정도를 행했을 것이라고 하였다.4) 곧 고려사 지 의 당악은 도입 시기만 다를 뿐 모두 송에서 수입되었다고 본 것이다. 심숙경도 고려는 팔관회와 연등 회 등의 대연의 경축절차를 갖추기 위해 전상(殿上)의 가무는 대체로 송에서 수입한 교방악을 사용 해 보완했다고 하면서, <헌선도>에 수록된 7수의 사 전부가 전송사(全宋詞) 5권의 무명씨 작과 완전 일치하므로 고려 <헌선도>는 송 대곡의 형식 위에 송사를 채용 하여 상연한 것이라 하여,5) 송의 교방악과 송사를 들여왔다고 하였다. 무용 연구자뿐 아니라 중문학 연구자인 박현규도 고려 사 당악에 수록된 작품은 송악(宋樂)에서 도입한 것이고 당시 연주되고 있는 악곡을 바탕으로 나 온 것이라 하였다.6) 이처럼 고려사 악지 의 당악이 모두 송에서 전래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 여 여기에 이견을 제시할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논자도 이에 굳이 이견을 제시하고 싶 지는 않다. 비록 위의 논자들이 고려가 송 교방악을 100% 그대로 도입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교류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첫째, 당악정재가 모두 송에서 전래된 것이라면 당연히 해당 당악정재의 이름이 중국 문헌에 대 곡(大曲)의 이름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송사(宋史) 악지 교방(敎坊)의 대곡명에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7) 또한 당(唐) 최영흠(崔令欽)의 교방기(教坊記) 의 대곡명에도 다섯 정재 1) 고려사 지 에는 당악 이라고만 했지 당악정재 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당악과 구별하기 위해 <헌선도> <수연 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만을 당악정재라 편의상 부르기로 한다. 2)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 2007), 168쪽. 3) 차주환, 고려당악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76), 47-48쪽. 차주환은 月華淸慢 은 고려 말에 고려에서 지어졌다고 했다 (46쪽). 한편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 2007), 175쪽]은 송나라 사람의 작품이 14곡이라 하였다. 송방송은 柳永의 臨江仙慢 을 제외하였는데 특별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4) 차주환, 고려당악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76), 28쪽. 5) 심숙경, 당악정재 헌선도 를 통해 본 고려, 송시대 악무 교류, 무용예술학연구 제10집 가을, (한국무용예술학회, 2002), 155-156쪽. 6) 박현규, 고려사 당악 원문 校勘에 수반되는 판본 선택의 중요성: 車柱環과 唐圭璋의 교감 기록을 중심으로, 중국어문논 총 22, (중국어문연구회, 2002), 240쪽.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69 의이름이보이지않는다. 교류의자세한과정은차치하더라도, 고려에서송에게요청해당악을받았다면, 송조정에서사용하는당악, 즉연악을그대로주었거나아니면대충손질해서주었을것이고, 최소한송조정에서사용하지않는다해도어느정도인기가있고이름이난것, 즉검증된것을주었을것이다. 또한송의악사들이고려에머물면서이를전수해주었다면당연히송나라에서인기가있던유명한대곡을전수해주었을것이다. 그런데도 송사 나 교방기 에그이름이보이지않는다는것은이상한일이다. 또한심숙경등이거론한 전송사 에도정재에사용된사 ( 詞 ) 의작자가무명씨로기록되어있다. 사악의속성상작자가분명하지않은경우도많지만, 그래도산악 41편중약 40% 에해당하는 16편의작자가밝혀진것에비해, 당악정재 5곡의 16사모두작자이름이단한편도밝혀지지않는다는것도이상한일이다. 대체로시대에따라차이가있지만, 송은고려와좋은관계를유지하려고많은공을들였다. 송은고려에국서를보낼때면, 글잘하는사람을여럿뽑아글을짓게하여그중하나를뽑고, 또글씨잘쓰는사람들에게쓰게하여그중에서제일잘된것을골라보냈다. 그리고그사신도재능과학식과품행이있는사람을신중하게골라보냈다. 신종 ( 재위 : 1067~1085) 은고려사신이지나는곳마다고려정 ( 高麗亭 ) 을짓도록하였으며, 수도변경 ( 汴京 ) 에사신일행이묵을동문관 ( 同文館 ) 을짓도록하는등, 고려에각별한정성을쏟았다. 시간이흐를수록송은고려와연합해거란을견제하려고노력하였고, 이과정에서송은고려에게많은예물을주고극진한대우를하였다. 이렇듯송은고려를매우중시하였으므로, 고려가원하는연악도마땅히신중하게골라서보냈을것이다. 그렇다면더더욱중국문헌에서고려당악정재의이름이나그사의작자이름을찾을수있어야할것이다. 그러나현존하는중국문헌어디에도당악정재 5곡과그 16수사의작자이름이발견되지않고있다. 둘째, 새로운악무, 곧낯선악무가낯선땅에서대대적으로향유되는것이그렇게쉬운일인가하는점이다. 물론그러한사례도종종있을것이다. 그러나대체로한때의호기심으로주목을받다가결국시들해지는것이일반적이라할것이다. 그렇기때문에새로운문화가이식될때는어느정도변형되어수용되며, 운이좋으면토착문화와융합되어새로운문화를창조하기도한다. 하나의문화가정착하려면오랜시간이필요했을것이고, 따라서어느정도의변형은필수적이라할것이다. 즉고려인의취향에맞는개조가필요했을것이다. 다시말해수용된이후전승되면서그당대인의취향에맞게변형되는것은물론이고, 수용될그당시에도이를고려인의취향에맞게변개되었을가능성이있다. 이에이러한의문점에따라논의의범위를정재로제한하여기존견해에대한재검토를하고자 7) 宋史 142 권 志 樂 17 권, 敎坊 의小兒隊제 1 에 柘枝隊 가, 女弟子隊제 3 에 拋毬樂隊 가있지만, 이것은대곡의이름이아니라악대의이름이다. < 壽延長 > 과유사한이름으로 18 조 40 대곡중, 제 5 조仙呂宮에 < 延壽樂 > 이있고, 본고에서포함시키지않은 < 萬年歡慢 > 이제 2 조中呂宮에 < 萬年歡 > 으로보인다.

7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한다. 곧 당악정재는 송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디서 어디까지 전래된 것일까? 100% 그대로 들어온 것인가, 아니면 들어오면서 변형되었을까? 혹시 고려에서 새로 덧붙이거나 재창작한 것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을 위해 먼저 도입과 관련된 문헌을 검토하고, 이어서 고려 당 악정재의 사와 중국 사보(詞譜)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섯 정재를 차례로 검토하여 고려 당악정재가 어떻게 성립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 학설을 보다 정치하게 이해 할 수 있고, 또 송과 고려의 무용 교류와 더 나아가 문화교류의 한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Ⅱ. 고려의 송 교방악 수입 고려는 발달된 송의 문화를 수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그 중 악무도 예외가 아니었 다. 물론 중국의 발달된 악무를 수입하려는 노력은 고려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당악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문무왕 4년(664)에 보인다. 그 해 1월에 부인들에게도 교서를 내려 중국풍의 의상을 입도록 하였고, 3월에는 성천(星川)과 구일 (丘日) 등 28인을 웅진부성(熊津府城)에 보내 당악을 배우게 했다.8) 660년에 백제가 멸망했는데, 4년이 지났어도 공주의 웅진부성에 당군이 남아 있었다. 당의 어떤 악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군대라는 성격상 군악 계통의 고취악이 있었을 것이고 또 군대를 위문하기 위해 파견된 공연단의 속악이 있었을 것이다.9) 이제 신라의 의복까지 중국풍이 되었으니 그 당시 신라에 당풍(唐風), 곧 당류(唐流)가 거세게 불었음을 상상해볼 수 있으며, 악무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신라와 고 려는 국제무역이 활발했던 국가였다. 양국 조정을 통한 공식적인 경로가 아니라 해도 민간 무역을 통해 많은 교류가 있었다. 악무 또한 그렇게 서로 주고받았을 것이다. 고려조에 당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조선 태종실록 11년(1411)의 기사에 의거해 광종조 (950~975)로 보고 있다. 아악을 정하였다. 예조에서 아뢰었다. 전조의 광왕(光王)이 사신을 보내 중국 악기와 악공을 청하여 그 자손이 대대로 그 업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충렬왕조에 이르러 김여영이 맡았고, 충숙왕조에는 그 후손인 김득우가 맡았습니다. 또 송나라 악서를 살펴보니, 원풍 연간에 고려가 악공을 구해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하온 즉 우리 동방의 악은 실제로는 중국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전한 세대가 오래되어 혹 잘못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바라옵건대 관습도감과 함께 상세히 살펴서 그 옛 악보를 찾아내 당 8) 三國史記, 新羅本紀 6권, 文武王 4년. 春正月 下敎婦人, 亦服中朝衣裳 三月, 遣星川 丘日等二十八人於府城, 學唐樂. 여기서 말하는 婦人은 일반 여염집이 아니라 귀족일 것이다. 9)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 2007), 112쪽.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71 송의유읍을추구하여성조의정악 ( 正樂 ) 을정하옵소서. 10) 일반적으로이기사를근거로고려광종조에송의교방악이고려에들어왔다고소개하고있다. 악공들사이에서내려오는이야기인지아니면구체적인문헌이있었는지는알수없지만, 광종조의악무수입을증언한거의유일한자료이다. 11) 당송의유음을찾아아악을정한다고하였는데, 여기서말하는아악이궁정에서사용하는일반음악에대한총칭인지, 사직이나문묘제례악등의제사용음악인지를단언하기는어렵다. 12) 그러나고려에서수입하려고애쓴음악은연악보다아악이었을수도있다. 또 우리동방의악은실제로는중국에서나온것입니다. 라는말에서말하는 악 은민간의음악도삼국시대이래로전승된향악도아닐것이다. 유전한세대가오래되어혹잘못이있을까염려 될정도라면, 여기서말하는 오동방지악 ( 吾東方之樂 ) 과 정악 ( 正樂 ) 은연향악보다는제례악인아악이아닐까생각한다. 하여간광종은송의악기를수입하고그악공을들여와고려에머물도록하였고, 그들의도움으로고려의음악이더풍부해지고발전할수있었다. 현대로치면, 서양의오케스트라단의악기와악보, 그리고이를지도해줄연주자와지휘자를초빙하고자노력하는경우와같다고하겠다. 광종의요청으로송태조 ( 재위 : 960~975) 가악기와악공을보낸것인데, 충렬왕조 (1274~1308) 와충숙왕조 (1313~1330, 1332~1339) 는광종조 (950~975) 와 3~4백년차이가나므로광종조에고려에들어온악공의후손이김여영이나김득우라고보기는어렵다. 이들에대한기록은 고려사 에더이상보이지않아자세한것은알수없다. 그러나북송이 1279년에멸망하므로시기상, 멸망직전에왔다가잔류했거나아니면멸망후고려에망명했을것이다. 김여영 은본명일수도있지만고려로귀화하면서새로지은이름일가능성도배제할수없다. 그리고김여영과김득우는대대로고려에살았으므로, 아무리가학이라해도어느정도의토속화는피할수없었을것이다. 고려는송의발달된음악을수입하기위해많은노력을하였다. 광종은송의악기를들여왔다고하지만이시기는송이개국한지얼마되지않을무렵이었고, 또그국교도 30여년밖에지속되지못했다. 양국은서로정치 군사 경제 문화적으로교류의필요성을크게느꼈지만, 거란 ( 요 ) 이점차힘을얻게되자그교류를제대로이어나갈수없었다. 986년송이요에게패하였고다시 10) 조선 태종실록 11 년 12 월 15 일 ( 신축 ). 定雅樂. 禮曹上言, 前朝光王遣使請唐樂器及工, 其子孫世守其業. 至忠烈王朝, 金呂英掌之, 忠肅王朝, 其孫得雨掌之. 又按宋樂書, 元豊年間, 高麗求樂工而敎之. 然則吾東方之樂, 實出中國也. 流傳世久, 恐或有訛. 乞與慣習都監詳加審察, 尋其舊譜, 追唐宋之遺音, 定盛朝之正樂. 11) 고려사 지 24 권, 악 1. 예종조 (1105~1122) 에송이신악 ( 新樂 ) 을주었고또대성악을주었다.[ 睿宗朝, 宋賜新樂, 又賜大晟樂.] 라고하였다. 후술하겠지만, 이외에도 續資治通鑑長編 261 권에서송신종희녕 ( 熙寧 ) 8 년 (1075) 3 월丙午 ( 清明節 ) 기사에교방제자 10 인을고려에파견했다고하였고 [ 江 淮發運司羅拯言, 泉州商人傅旋持高麗禮賓省帖, 乞借樂藝等人. 上批 已令教坊按試子弟十人, 可借. 呼第四部給色衣 裝錢, 作拯意奉詔遣往. 傳習畢, 早令還朝. ], 宣和奉使高麗圖經 40 권 樂律 에서도희녕연간 (1068~1077) 에고려문종의요청으로악공을보내주었다고하였다 [ 熙寜中, 王徽嘗奏請樂工, 詔往其國, 數年乃還 ]. 이에필자는광종조가아니라문종조 (1047~1083) 나예종조가아닌가생각한다. 광종조에송의악사가왔다면, 이와관련된공연기록이별도로있었을것이다. 12) 이에대해송방송은이를당악으로보고송악공이교방여기를가르쳤다고하였고 (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 민속원, 2007, 169 쪽 ), 박은옥은알수없다고하였다 ( 고려사악지의당악연구, 서울 : 민속원, 2006, 12 쪽 ).

7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993년고려가요에게패하자, 이후고려와송의국교는점점소원해지다가결국단절되었다. 물론정치적관계는단절되었지만민간교류, 즉무역은계속해서이루어졌다. 하지만송의발달된악무를제대로수입할수있는기간이그만큼짧았던것은사실이다. 그후 1069년송신종 ( 재위 : 1068~1085) 이고려에국교재개의사를타진하면서부터문종 25년 (1071) 부터국교가다시정상화되었다. 송은고려와연합해거란의요를견제하고나아가북방의영토를회복하려고했다. 송과연합하여거란을격퇴하려는것은이전부터고려가가지고있었던전략이었으나송의거절로이루어지지못했던것이다. 당연히고려는송의국교재개를승낙하였고이로써양국의교류는다시활발해졌다. 그러나정치 군사적교류는미약했고경제 문화적교류가주를이루었다. 요는고려와송의교류를막을수있는현실적인힘이없었다. 그결과 1071년부터여진이득세하기시작하는 1100여년무렵까지 30여년간고려 요 송은전에없던평화로운세상을맞이하게되었다. 13) 송의원풍연간 (1078~1085) 은고려의문종 32년부터선종 2년까지가이에해당하는데, 대략고려의문종조 (1047~1083) 말을뜻한다고볼수있다. 북송은 960년부터 1127년까지존속했고, 남송은그로부터 1279년까지존속했다. 그러나북송이멸망하면서그악공과악기는모두흩어져버렸고, 남송의첫임금고종 ( 재위 : 1127~1162) 은즉위초에교방을유지할수없어폐지했다가 1144 년에다시설치했지만 1161년에다시폐지하였다. 남송은교방의예전규모를유지할수없었기때문에대규모공연을열때면민간의악공과어린이들을동원해야했고, 이들의비중은시간이지날수록더커졌다. 14) 곧남송자신도악공을유지하기어려웠기때문에이를고려에파견할여력은거의없다고보아야할것이다. 15) 다시북송과교류하게되자고려문종은이기회를활용하여송의악기와악공을들여와당악을정비하려고했다. 문종 27년 (1073) 의다음기사로대무의도입시기를대략예측할수있다. 문종 27년 2월을해일에교방에서아뢰기를 여제자진경등 13명이전해받은 < 답사행가무 > 를연등회에서쓰기를청합니다. 라고하여, 조서를내려따르도록하였다. 11월신해일에팔관회를베풀었는데신봉루에거둥하여악을보았다. 교방여제자초영이새로전래한 < 포구락 > 과 < 구장기별기 > 를공연했는데, < 포구락 > 은제자가 13명이고 < 구장기 > 는제자가 10명이었다. 31년 2월을미일연등회때중광전에거둥하여악을보았다. 교방여제자초영이 < 왕모대가무 > 를공연했는데, 1대가 55인이며춤으로네글자를만드는데군왕만세 ( 君王萬歲 ) 나천하태평 ( 天下太平 ) 이었다. 16) 13) 고려 송 요의국제적관계에대해서는藏非非외, 한중관계사, ( 서울 : 범우, 2005), 256-262 쪽참조. 14) 楊蔭瀏저, 이창숙역, 중국고대음악사, ( 서울 : 솔, 1999), 618-619 쪽. 15) 고려는송에 1164 년에마지막사신을파견했고, 송도고려에 1173 년에마지막사신을파견하였다. 이로써양국의국교는사실상단절된사태였다. 김한규, 한중관계사 Ⅰ, ( 서울 : 아르케, 1999), 391 쪽참조. 16) 고려사 71 권, 지 25 권, 악 2, 用俗樂節度. 文宗二十七年二月乙亥, 敎坊奏 女弟子眞卿等十三人所傳踏沙行歌舞請用於燃燈

고려 당악정재의 전래와 수용 73 연등회는 대체로 2월 14일인 소회일과 15일인 대회일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팔관회도 11월 14 일인 소회일과 15일의 대회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연등회는 공휴일이 하루였지만 팔관회는 15일 전후 3일 동안 휴일로 지정하여 그 격을 높였다. 백희와 교방의 악은 소회일에 펼쳐졌는데, 대회일 에도 공연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문종 27년 2월 14일에 <답사행가무>가 진경 등 13인에 의해 공연되었고, 그 해 11월 14일에 <포구락>과 <구장기별기>가 초영 등에 의해 각각 13인과 10 인으로 구성돼 처음으로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4년 뒤 2월 14일 연등회의 소회일에 초 영 등에 의해 <왕모대가무>가 공연되었다.17) 위 인용문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교방에서 아뢰기를 여제자 진경 등 13명이 전해 받은 <답사행가무>를 연등회에서 쓰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여[敎坊奏 女弟子眞卿等十三人 所傳踏沙行 歌舞 請用於燃燈會. ] 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소전(所傳) 은 전수받은 으로도 전수해준 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 또한 교방 여제자 초영이 새로 전래한 <포구락>과 <구장기별기>를 공연했는데 [敎坊女弟子楚英, 奏新傳抛毬樂 九張機別伎] 에서도 신전(新傳) 을 새로 전수해준 으로도 새 로 전수받은 으로도 볼 수 있다.18) 여제자 는 송의 교방 소속 여제자일 수도 있고 고려 교방 소속 여제자일 수도 있다. 송에서 사 온 가기라 해도 고려의 교방에 소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방의 여제자라 했으니 고려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송인이라면 송 교방여제자라고 하든가, 아니면 일반 악인보다 급이 더 높았을 것이다. 만일 중국인이라면 자신이 전수해준 것을 자신이 무희들을 데리고 공연하 는 모양새가 된다. 안 될 이유는 없지만 좀 어색해 보인다. 또 위 인용문의 내용에 따르면 완성된 것을 시연해 보인다는 성격이 강해, 전수 받은 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위 인용문에 언급된 대무의 도입 시기를, 차주환은 당 송의 경우 한 종목을 60일 이상 연습하 는 경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문종 26년(1072)보다 더 이전에 수입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가소단은 문종 25년(1071) 송에 파견된 김제(金悌)를 통해 송의 교방악이 고려에 전수되었다고 보 았다. 이와 관련하여 박은옥은 송 신종 희녕(熙寧) 8년(1075)에 교방 제자 10인을 고려에 파견했다 는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261권의 기록과 희녕 연간(1068~1077)에 악공을 고려에 파 견했는데 수년 만에 돌아왔다는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 악율(樂律) 의 기록 을 그 근거로, 고려에 실제로 교방의 악공이 파견되었고 이를 통해 고려가 교방악을 전수받았다고 보았다.19) 會. 制從之. 十一月辛亥, 設八關會, 御神鳳樓觀樂. 敎坊女弟子楚英, 奏新傳抛毬樂 九張機別伎, 抛毬樂弟子十三人, 九張機弟子 十人. 三十一年二月乙未, 燃燈, 御重光殿觀樂. 敎坊女弟子楚英, 奏王母隊歌舞, 一隊五十五人, 舞成四字, 或君王萬歲, 或天下太 平. 17) <답사행가무> <구장기별기> <왕모대가무> 등은 본고의 논의 밖이므로 일단 제외시키기로 한다. 18) 현재 각 논저에 따라 혼용되어 변역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차주환은 고려인으로 보았고 가소단과 박은옥은 송인으로 보았다. 박은옥은 고려에 교방이 존재했다는 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 가소단은 여제자 라는 용어 는 오직 송나라에서만 사용되었다고 보았다.(출처는 각주 19번 참조) 하지만 송 이전부터 있던 교방의 제도를 수입했다면 그 용어도 함께 수입했을 것이다. 19) 속자치통감장편 과 선화봉사고려도경 의 원문은 각주 11)번 참조. 차주환, 고려당악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76),

7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그런데 속자치통감장편 의기록과 선화봉사고려도경 의기록은사실상같은내용이며, 모두 < 포구락 > 이공연된시기보다 2년후의일이다. 그리고 1071년에송교방의악공을파견했다면, 4 년만에 10인이나되는인원을또파견하지는않았을것이다. 다시말해고려에서송의악공을초빙해교방악을전수받았다는증거는될수있지만, < 포구락 > 을전수받은자료로보기는어렵다. 그렇다면 1071년에김제가송에파견되었을때, 송교방의공기 ( 公技 ) 로있다가민간으로흘러나온가기 ( 家技 ) 를사와서전수받았을수도있다. 한편고려는송의사 ( 詞 ) 와사악 ( 詞樂 ) 을도입하기위해많은노력을기울였다는것도이를뒷받침한다. 고려사신들이송의곡보 ( 曲譜 ) 를베껴가지못하게하자고상소한소식 ( 蘇軾 : 1037~1101) 의상소문이이를말해준다. 소식은정위 ( 鄭衛 ) 의음란한곡을이웃나라에알리는자체가대국의체모에어긋난다고본것같다. 20) 이처럼고려의사신들이곡보를베껴갔다면, 이들이대동한악공은직접송의악공에게기예를배웠다. 고려악공은자국에파견된적이있는송의악공을스승으로삼고예물을가지고송으로가서다시배웠다. 송조정에서도그악공을고려사신의숙소로보내주어계속해서배울수있도록배려했던것이다. 21) 고려는악공뿐아니라여악 ( 女樂 ) 을파견하기도했다. 고려사 에예종 5 년 (1110) 6월에 신미일에건덕전 ( 乾德殿 ) 에서송나라명주 ( 明州 ) 에서돌아온여악두명을불러보았다. 22) 라는기사가이를말해준다. 이처럼고려의연악은송조정이보내준것을단순히수용한것이아니라, 고려의주도적인노력에의해이루어졌던것이다. 인종 1년 (1123) 에고려를방문한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에의하면, 자지 ( 柘枝 ) 와포구 ( 抛毬 ) 의예 ( 藝 ) 가있지만마침고려예종의국상이끝나지않았기때문에악공들이악기를잡고만있고연주를하지않아서성률의절도를알수가없었다고하였다. 23) 서긍은직접눈으로본것이아니라문답을통해 < 자지무 > 와 < 포구락 > 이있다는것을안것이다. 그런데서긍은 연화대 라고 27-30 쪽 ; 가소단, 중국당송악무와고려당악무의비교연구, ( 서울 : 중앙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2), 14-15 쪽 ; 박은옥, 고려당악, ( 서울 : 문사철, 2011), 27-31 쪽. 20) 東坡全集 63권, 奏議 13수, 論高麗買書利害札子三首 1. 近據館伴所申, 乞與高麗使抄寫曲譜. 臣謂鄭衛之聲, 流行海外, 非所以觀德. 若畫朝旨特爲抄寫, 尤爲不便, 其狀臣已收住不行. 물론고려사신이사보를베껴가는등의행위는, 송에서대량으로서적을수집해가는일환으로이루어졌을것이다. 소식은고려가송에서서적등을통해수집한정보를거란에넘길수있다고의심했기때문에, 고려사신접대에막대한비용이들며고려가송의하사품등의경제적이익을목적으로사신을파견한다는등의이유를들며, 고려사신을환대하지말고서적도사가지못하게하자고상소하였다. 그러나같은시기에曾鞏 (1019~1083) 은소식과정반대의상소를올렸다. 오히려고려사신이송에서너무많은비용을지출한다며이문제를해결해주어야한다고건의할정도였다. 곧고려가송에서쓰는비용또한막대했던것이다. 소식과증공의관련상소문은王水熙, 소동파평전, ( 서울 : 돌베개, 2013), 328-357쪽참조. 21) 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 樂律. 熙寜中, 王徽嘗奏請樂工, 詔往其國, 數年乃還. 後人使來, 必齎貨, 奉工技爲師, 每遣就館敎之. 22) 高麗史 世家 13권. 辛未. 御乾德殿, 召見宋明州所歸女樂二人. 所歸 는글자그대로 돌아온바 로도볼수있고 온 ( 보낸 ) 바 로도볼수있다. 전자로풀이하면여악은고려인이고후자로풀이하면송인이다. 본고에서는일반적인용례에따라 돌아온바 로보았다. 23) 徐兢, 宣和奉使高麗圖經 40 권, 樂律. 若女伎, 則謂之下樂. 凡三等, 大樂司二百六十人, 王所常用. 次管絃坊一百七十人, 次京 市司三百餘人, 亦有柘枝 抛毬之藝. 其百戱數百人, 聞皆敏捷特甚. 然以時王俣衣制未終, 工人執其器而不作, 聲律之度, 不可得而考也.

고려 당악정재의 전래와 수용 75 하지 않고 자지무 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종 1년까지만 해도 자지무 로 불렸으며 연화대 라는 이 름은 후대에 생겼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헌선도>에 대한 기록은 의종 21년(1167)에야 보인다. 의종의 탄신일인 하청절(河淸節)을 맞이하여, 만춘정(萬春亭)에 있는 연흥전(延興殿)에서 축하 연 회가 열렸는데, 그때 <헌선도>와 <포구락> 등이 공연되었다.24) 그 외 <수연장> <오양선> <연화대>의 이름은 고려사 에서 악지 의 당악 조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헌선도>와 <자지무>의 이름도 앞에서 언급한 것이 전부이다. 만일 1075년 에 10명의 송 교방 악공이 고려에 와서 <포구락>을 제외한 나머지 정재 4종을 전수해주었다고 해 도 그 처음 공연한 연대를 알 수가 없다. 만일 이들이 <포구락>을 제외한 4종의 정재를 전수해주었 다면 고려사 에 관련 기록이 있을 것이다. 또한 <포구락>이 1075년 이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나머지 4종의 정재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라 문무왕 4년(664)에 당악을 배우도록 했고, 부녀자들도 당풍의 옷을 입도 록 했다. 신라와 고려는 활발한 국제무역을 했던 나라들이다. 그리고 고려 사신들이 사보를 베껴갔 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미 당과 송의 악무가 고려 땅에 들어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품격을 갖출 수 있도록 다듬거나 개선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남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송의 교방 악공을 초빙하여 이를 고려의 현실에 맞게 재창작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송사 나 교방기 의 대곡명에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 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Ⅲ. 고려 당악정재의 사와 중국 사보 속의 사 앞서 다섯 정재의 대곡명은 중국 문헌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섯 정재 속의 사 (詞)는 어떠할까? 당시(唐詩) 송사(宋詞) 라는 말이 있듯이, 사는 송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이었다. 사(詞)는 노랫 말, 즉 가사이고, 그 가사의 곡을 사패(詞牌) 또는 사조(詞調)라고 한다. 사 라는 말은 남송 때에야 널리 쓰였고, 그 이전에는 곡자(曲子) 또는 곡자사(曲子詞)라고 하였다. 사패는 노래의 내용도 아니 고 제목도 아닌 곡조의 이름일 뿐이다. 곡조는 새로 만들기 어렵지만 그 가사는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곡조에 여러 사람이 가사를 새로 만들어 이를 가기(歌妓)에게 부르 게 하였다. 가기가 노래를 부르려면 그 곡조에 알맞게 가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곡이 짧은데 가사가 길거나 가사의 운이 맞지 않으면, 즉 음률과 가사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제대로 부를 수 없다. 그래서 24) 고려사, 세가 18권, 의종 21년 4월 무인일. 以河淸節, 幸萬春亭, 宴宰樞侍臣於延興殿. 大樂署 管絃坊 爭備綵棚 樽花 獻 仙桃 抛毬樂等聲伎之戱.

7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사는구절수, 글자수, 평측과압운등이모두규정되어있다. 예를들어평성으로압운해야하는데측성으로압운을한다든지하면노래를부를수없었기때문에, 사를짓는일은그리쉽지않았다. 그래서고려나조선에는사작품을많이창작한사람이드물었다. 고려출신인김극기 ( 金克己 : 1379~1413) 처럼뛰어난사작가가없는것은아니지만, 많은문인들이사를형식적으로몇수지어문집에끼어넣는수준에서벗어나지못했다. 중국과말을달리하는이국에서사의노래를들을기회가적어그정서를제대로이해하기어려웠기때문이다. 비록사의규칙이근체시보다엄격하기는했지만, 완성된사가연주되거나노래로불러질때그음악에맞게조금씩수정되어글자수나구의수가조금씩달라질수있는데, 이때이체 ( 異體 ) 가만들어지게된다. 고려사 악지 의 당악 조에는사패와사가기록되어있다. < 헌선도 > 에 7수, < 수연장 > 에 2수, < 오양선 > 에 3수, < 포구락 > 에 4수, < 연화대 > 에 3수가실려있는데, 이중 일난풍화사 낭원인간사 동운영채색사 등은중복되어나타나므로, 총 16수의사가실려있다. 구체적인사패와사는아래와같다. 사명은첫구절을따서붙인것이다. < 표 1> 고려당악정재의 사 와 어정사보 의 사 비교 정재명 사패 사 어정사보 獻仙桃 元宵嘉會詞 獻天壽 ( 慢 ) 日暖風和詞 獻天壽令 ( 嗺子 ) 閬苑人間詞 < 獻仙桃 > < 壽延長 > < 五羊仙 > < 抛毬樂 > < 蓮花臺 > 金盞子 ( 慢 ) 麗日舒長詞 金盞子令 ( 嗺子 ) 東風報暖詞 瑞鷓鴣 ( 慢 ) 海東今日詞 瑞鷓鴣 ( 慢, 嗺子 ) 北暴東頑詞 中腔令 彤雲暎彩色詞 破字令 靑春玉殿詞 步虛子令 碧烟籠曉詞 中腔令 彤雲映彩色詞 * 破字令 縹緲三山詞 折花令 三臺詞 水龍唫令 洞天景色詞 小抛毬樂令 兩行花竅詞 淸平令 滿庭羅綺詞 白鶴子 微臣詞 獻天壽令 ( 慢 ) 日暖風和詞 * 嗺子令 閬苑人閒詞 * * 표는중복되는사임

고려 당악정재의 전래와 수용 77 논자에 따라 전송사 에 위의 정재의 사 중 일부 또는 전부가 무명씨 의 작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으 로 볼 때 모두 송인이 지은 것이며, 고려와 송의 악 무 교류가 매우 긴밀했다는 증거로 삼기도 한다. 그 러나 전송사 라는 책은 송 원이나 명 청 시대 에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중국의 당규장(唐圭璋)이 1937년에 완성하여 1940년에 편찬한 책이다. 이 책 에는 송 사인(詞人) 1,330가와 21,100여 수의 사가 실려 있다. 당규장은 당연히 이전의 사보(詞譜)를 보고 편찬했으므로 고려 당악이 공연되던 때와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당규장은 이들 무명씨를 송나라 사람으로 본 것은 어떠한 이유였 을까? 송사를 기록한 사보는 송나라가 아닌 명나라 (1368~1644) 말에 이르러 모진(毛晉: 1599~1659) 이 편찬한 송육십명가사(宋六十名家詞) 가 처음이 <그림 1> 어정사보 6권, 헌천수 <일난풍화사> 다. 사보로 유명한 것은 청나라 왕혁청(王奕清:?~1737) 등이 편찬한 어정사보(御定詞譜) 25) 와 만수(萬樹)의 사율(詞律) 을 들 수 있다. 어정 사보 는 1715년에 만들어졌는데, 사패에는 해당 사를 모아 자수와 운에 따라 실어놓았으며, 도합 826종의 사패와 2,300여 수의 사가 실려 있다. 이 어정사보 에 16수의 사 중 9수의 사가 실려 있는데, 그 출전이 모두 고려사 악지 로 되어 있다. <헌선도>의 일난풍화사 는 헌천수에 속한다. 그런데 일난풍화사 의 끝에 있는 주에 이 사 도 교감할 만한 다른 작품이 없다.[此詞 亦無他首可校.] 라고 하여, 자수와 압운 등의 교감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류로 헌천수 외에도 <헌선도> 금잔자령의 동풍보난사 를 들 수 있고, 비록 주석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역시 교감할 작품이 없는 단독 사로, <헌선도> 헌천수령인 낭 원인간사, <수연장> 파자령의 청춘옥전사, <오양선> 보허자령의 벽연롱효사 와 파자령의 표 묘삼산사, <포구락> 절화령의 삼대사 등, 전체 9수 중 <헌선도> 금잔자의 여일서장사 와 <포구락> 수룡음령의 동천경색사 를 제외한 7수가 이에 해당한다. 그럼 왕혁청이 이 사를 수록한 이유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헌천수령인 낭원인간사 의 경우, 이것은 고려 <헌선도> 무대곡이다. 당악을 사용했기 때문에 채록하였다.[此高麗獻仙桃舞隊曲也. 因所用唐樂, 故採之.] 라고 하였고, <포구락> 절화령의 삼대사 의 경우도 이것은 고려 <포구락> 25) 欽定四庫全書 에 청 왕혁청의 御定詞譜 가 있다. 이 외에 같은 작자의 欽定詞譜 가 있는데 어정사보 와 같은 책으로 보 인다.

7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무대곡이다. 당악을사용했기때문에채록하였다.[ 此高麗拋球樂舞隊曲也. 因所用唐樂, 故採之.] 라고하였다. < 수연장 > 파자령의 청춘옥전사 의주에도 이것은고려 < 수연장 > 무대곡이다. 당악을섞어썼기때문에채록하였다.[ 此髙麗壽延長舞隊曲也. 因其雜用唐樂, 故採之.] 라고하였으며, 사패를그냥파자령이라하지않고 수연장파자령 이라고하였다. 즉왕혁청은 어정사보 를편찬하면서작자의출신국보다는사용한음악을기준으로채록했다는것을알수있다. < 오양선 > 보허자령의 벽연롱효사 는, 이것은송나라가고려에하사한악중에오양선대무곡이다. 채록해서체를갖추어놓는다.[ 此宋賜高麗樂中, 五羊仙舞隊曲也. 採以備體.] 라고하였고, 파자령의 표묘삼산사 는역시, 이것은송나라가고려에하사한오양선대무곡이다. 당악이라이름했기때문에채록해넣어서한체를갖추었다.[ 此宋賜高麗五羊仙隊舞曲也. 名曰唐樂, 故採入以備一體.] 라고하였다. 곧송이고려에하사한대무곡이므로당악을사용했기때문에채록했다고했으니, 역시사람이아닌음악을기준으로채록한것이다. 그래도왕혁청의 어정사보 는사를모은책이므로출신국을따지지않아도무방하다. 하지만이를바탕으로만들어진당규장의 전송사 는문제가있다. 제목이 전송사 인만큼송인으로구성되어야하는데, 어정사보 의내용을무비판적으로옮겨놓아결과적으로작자불명의작품들을죄다송인의작품으로만들어놓았다. 그럼비교할수있는다른사를가진 < 헌선도 > 금잔자의 여일서장사 와 < 포구락 > 수룡음령의 동천경색사 는어떨까? 어정사보 의금잔자사패에는 5수가수록되어있는데, 여일서장사 의경우 이조 ( 調 ) 에서평성운으로압운한것은단지이사한편뿐이다.[ 此調, 押平韻者, 只此一詞.] 라했듯이여타의사는모두측성운을사용했다. 그런데앞서언급한대로압운의평측이바뀌면노래할수없게된다는점에서, 결국별도의작품으로보아야할것이다. 동천경색사 의경우 이것은 고려사 악지 에보이는데, 수룡음령 이라하며, < 포구락 > 대무곡이다. 역시진관 ( 秦觀 ) 의사와같다. 다만전후단의제9구에서각각 1자씩감하였고후단결국에서 2자를첨가한것이다르다. 이상의사 13수는모두전단제1구 6자, 제2구 7자로유례가있어서갖추어놓으니참고하라. 26) 라고하였다. 수룡음령에만 25수의사를모아놓았는데, 그중 12수의사가 동천경색사 와같은체를이루어하나의유형을형성한것이다. 이처럼사 9수중 7수가비교할만한사패를찾을수없는나홀로사패였고, 또 1수는비교할수있는사가있었지만홀로독특한형식을취하여사실상별체를형성했으니, 9수중 8수가독자적인형태를가지고있었다. 과연송에서들어온사라면이렇게유사한사를찾기어려울까하는의문을지을수없다. 혹시홀로존재하는사패들은고려에서독자적으로창작한것은아니까? 박은옥은 42가지산사 ( 散詞 ) 를청나라의 구궁보 ( 九宮譜 ) 의사보 ( 詞譜 ) 와비교하는작업을하였는데, 그결과제목과가사의내용이같은 5종을 구궁보 에서확인할수있었고, 그나마두문 26) 王奕淸, 御定詞譜, 水龍吟. 此見 高麗史 樂志, 名 水龍吟令, 拋球樂隊舞曲也. 亦與秦詞同, 惟前後段第九句各減一字, 後段結句添二字異. 以上詞十三首, 皆前段第一句六字, 第二句七字者, 類列以備, 參考.

고려 당악정재의 전래와 수용 79 헌의 시간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선율도 같다고 볼 수 없었다. 제목은 같지만 가사 내용과 구절의 수와 글자 수 등이 매우 달라, 음악 역시 매우 다를 것으로 판단되는 악곡도 26가지나 되었다.27) 이처럼 당악정재 5곡은 물론이고 여타의 산악들도 중국 문헌에서 그 실상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 운 실정이다. 즉 중국에서 찾기 어려운 독자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면, 발상을 전화시켜 전부는 아니어도 그 일부가 송이 아닌 고려에서 창작했거나 재창작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고려에서 작사한 사가 있다. 고려사 악지 당악 조의 산악 중, 월화청만(月華淸慢) 은 고려에서 지은 것이다.28) 이것은 증보문헌비고 를 통해 밝혀진 것인데, 문헌을 통해 밝혀지지 않은 작품이 더 있을 수 있다. 한편 송 휘종은 1115년에 새로운 음률에 따라 신악을 만들고 이를 대성악(大晟樂)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음해(고려 예종 11) 6월에 이 대성악 을 고려에 보냈다. 하지만 그 가사가 고려의 실상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에서는 그해 10월에 역대 왕의 악장 9실을 지어 1116년 10월에 처음으로 태묘에서 연주하였다. 아악의 악장을 짧은 시간 안에 지어서 사용한 것처럼 당악의 가사도 새로 지어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공민왕 4년과 16년에 교방에서 새로 지은 악장(樂章)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어, 역시 그 사를 직 접 지어 연주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29) 송나라 때 사용된 모든 사나 사패가 기록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송에서 고려에 연 향악을 주었다면, 그것도 정부 간의 교류를 통해 주었다면, 매우 희귀한 작품이 아니라 검증된 작 품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유례를 찾을 수 있는 사는 하나뿐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고려로 전해지면서 고려 나름으로 사곡을 창작하거나 최소한 그 가사를 창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후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사의 가사 일부가 수정되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문헌에서 확인하기가 어렵다면, 오히려 유사한 형식의 사가 많이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면 과연 송나라 무명씨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지 여 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Ⅳ. 고려 당악정재의 성립 당의 대곡은 송의 대곡과 형식이 다르다. 당의 대곡은 크게 산서(散序) 중서(中序) 파(破)로 구분할 수 있는데, 송의 대곡은 당 대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파(破), 그 중에서도 입파(入破) 27) 박은옥, 고려사 악지의 당악연구, (서울: 민속원, 2006), 223-225쪽. 28) 차주환, 고려당악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76), 46, 165쪽. 29) 고려사, 세가 41권, 공민왕 4년. 丙午. 幸公主魂殿 告錫命, 仍設大享 敎坊奏新撰樂章, 王坐對公主眞 侑食禮 如平生. 고려 사, 지 24권, 악 1, 雅樂 太廟樂章. 恭愍王十六年正月丙午, 幸徽懿公主魂殿 告錫命, 仍設大享 敎坊奏新撰樂章. 참고로 조 선은 개국 초에 악장을 새로 짓고 그에 걸맞은 악과 무를 지어 <금척> <수보록> <근천정> 등등의 새로운 정재를 만들었다. 조선에서 한 일을 고려에서 하지 못했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8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부분만을따와서발전시켰다. 산서는일정한박자가없이자유롭게악기를연주하며, 중서는박자가생기고노래가있고, 파는여기에춤이더해졌다. 송의대곡은음악과노래와춤이어우러진가무희의형식이다. 그런데갑자기산서와중서가없이하이라이트에서시작하다보니전주부분이없어불완전한느낌을주게되었고, 이를보완하기위해당대곡에없던죽간자를더하였다. 죽간자가무희들을인솔하고나와서앞으로펼쳐질춤과노래의내용을설명하기도하고출연자와문답을하기도했다. 그러나고려의당악정재에서는문답과정이없고내용을설명하는치어 ( 致語 ) 만을담당했다. 비록문답등의절차가없어송의대곡보다역할이축소되었지만, 고려의당악정재가송대곡의형식을차용한것은분명하다. < 헌선도 > 의유사한제목으로 송사 142권 교방 에곡파 ( 曲破 ) 29종중, 선려궁 ( 仙呂宮 ) 의 < 왕모도 ( 王母桃 )> 가보인다. 더자세한내용이없지만중국에유사한내용의가무희가많이유전하였고30) 또제목이비슷한것으로보아이를바탕으로 < 헌선도 > 를만든것으로보인다. 앞서언급했듯이의종 21년 (1167) 연흥전공연이전에만들어졌을것이다. 이익 ( 李瀷 : 1681~1763) 의 성호사설 ( 星湖僿說 ) 15권 인사문( 人事門 ) 과이유원 ( 李裕元 : 1814~1888) 의 임하필기 ( 林下筆記 ) 16권 문헌지장편( 文獻指掌編 ) 에의하면최충헌 ( 崔忠獻 : 1149~1219) 이기녀들에게봉래산에서내려와임금에게하례하는모양을하도록하여악장을만든것이 < 헌선도 > 가되었다고하였다. 그유래의시비를떠나 < 헌선도 > 가만들어진시기가 고려사 의기록과일치한다는점과송이아니라고려에서만들었다고보는점에주목하고자한다. 서왕모는원래서쪽곤륜산 ( 崑崙山 ) 에산다는전설상의선인 ( 仙人 ) 이다. 서왕모가중국인들에게숭배의대상의된것은위진남북조시대이다. 중국사천성의무덤에서서왕모의화상석이대거출토되었다는점에서, 그당시에는죽음과사후세계를관장한신이었는데, 후에불사 ( 不死 ) 의이미지가덧붙여진것으로보인다. 31) 한무내전 ( 漢武內傳 ) 에는서왕모와한무제의연회가중요배경을이루고있는데, 이연회내용이각색되어서왕모류의가무희로발전한것으로보인다. 이처럼서왕모는서쪽사천성을배경으로탄생하였으며곤륜산에사는신선이었다. 그런데고려로넘어와서는고려인들과친숙한동쪽바다끝에있는귀대 ( 龜臺 ) 와봉래산 ( 蓬萊山 ) 에사는것으로바뀌어졌다. 곧치어에서 저아득한귀대에있다가, 대궐로내려와조회하오며 [ 邈在龜臺, 來朝鳳闕 ] 라고하였고, 일풍난화사 에서는 저희들은봉래산에서용모를가다듬고, 대궐로내려와하례드리옵니다.[ 我從蓬島整容姿, 來降賀丹墀.] 라고하였다. 또 해동 ( 海東 ) 이란어휘를사용하여 해동금일사 에서는 해동은오늘날태평한시절, 군신들이함께하는경사로운잔치를기쁘게바라보옵니다.[ 海東今日太平天, 喜望龍雲慶會筵.] 라고하였다. 이러한것들은송에서사가그대로들어온것이아니라, 최소한고려식으로변형되었음을보여주는것이다. 이렇게고려식으로변형하다보니착오도발견된다. 낭원인간사 에서는 낭원은인간세계와 30) 김학주, 한 중두나라의가무와잡희, ( 서울 :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213-214 쪽. 31) 유강하, 四川, 道敎, 그리고西王母에대한한연구, 도교문화연구 30, ( 한국도교문화학회, 2009), 332 쪽.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81 비록멀리떨어져있지만 [ 閬苑人間雖隔 ], 서쪽으로신선의세계를떠나하늘에서내려와 [ 西離仙境下雲霄 ] 라고하였다. 낭원 ( 閬苑 ) 은곤륜산위의낭풍산 ( 閬風山 ) 에있다는원유 ( 苑囿 : 대궐에있는동산 ) 를말하는데, 앞서서왕모는발해동쪽끝에있는신선의세계에서왔다고했으므로서로모순된다. 비선 ( 飛仙 ) 이한곳에만머물라는법은없지않겠느냐고애써말한다면그래도이해될수있기는하지만, 이것은기존에지어진사를옮겨와미처수정하지못해생긴실수라보는것이타당할것이다. < 수연장 > 과유사한제목으로, 송사 142권 교방 에, 18조 ( 調 ) 46대곡 ( 大曲 ) 의이름중, 5조인선려궁 ( 仙呂宮 ) 에연수악 ( 延壽樂 ) 이있지만명칭외의유사성은찾기어렵다. 성호사설 15권 인사문 과 임하필기 16권 문헌지장편 에서최충헌이부처를받드는것이잘못되었다는내용의상소를올리면서 당덕종의수명연장을위해불상을주조한일 을언급했는데, 어쩌면여기서 수연장 이라는말이유래했는지도모른다고했지만, 그리그럴듯해보이지는않는다. 수연장 ( 壽延長 ), 곧장수 ( 長壽 ) 라는것이한국이나중국에서는어느시대나나올수있는말이고, 더군다나송은도교국가인데도교는연년익수 ( 延年益壽 ), 곧장수를목적으로한종교이기때문이다. 임하필기 38 권 해동악부( 海東樂府 ) 에서는당덕종의위의고사를들며여기서수연무가유래하였고고려성종 ( 재위 : 981~997) 이이를그대로따랐던것같다고하여그성립시기를성종조로추정했지만, 수연무와성종에대한보다구체적인사실은제시하지않았다. 단지글자의유사성만으로추론한것이아닌가한다. 차주환은군왕이음주를할때중강 ( 中腔 ) 을창하던것이가무희로발전한것이라해도과언이아닐것이라고장담하였다. 32) 무림구사 ( 武林舊事 ) 와 몽양록 ( 夢粱錄 ) 에의하면, 중강 ( 中腔 ) 과답가 ( 踏歌 ) 는어주를올릴때가창하는것인데, 첫째잔이나둘째잔을올릴때여기 ( 女妓 ) 가창을한다고했으며, 또 < 수연장 > 의치어에 이원의악부가중강을연주합니다 [ 梨園樂部奏中 ]. 하였고, 구호에서도 이원에서새곡을중강으로연주합니다.[ 梨園新曲奏中腔 ]. 라고하여, 중강이등장한다. 그리고 < 동운영채색사 > 에서도 보배잔자주드는의협심있는영웅들 [ 寶觴頻擧俠群英 ] 이라하고, < 청춘옥전사 > 에서도 금잔에따르니 [ 泛金尊 ], 유하주찰랑거리네 [ 流霞豔溢 ]. 라고하여권주를소재로만들었기때문이다. < 오양선 > 은오양성 ( 五羊城 ) 고사를바탕으로만든것인데, 송나라악사 ( 樂史 ) 의 태평환우기 ( 太平寰宇記 ) 에, 속남월지( 續南越志 ) 에의하면오래된이야기에, 다섯신선이오색의양을타고육수거 ( 六穗秬 ) 를가지고내려왔는데, 지금오양성이라고부르는곳이바로이곳이다. 라고하였다. 33) 다섯신선이내려온곳은중국의광주 ( 廣州 ) 지역인데, 속남월지 라는제목에서처럼예전에는베트남의영토였다. 육수거란줄기하나에이삭이여섯개가달린벼로풍년을상징한다. 베트남에서내려오는원래의이야기에의하면, 그당시광주일대는사람이살수없는매우척 32) 차주환, 고려당악의연구, ( 서울 : 동화출판사, 1976), 51-52, 68 쪽. 33) 太平寰宇記 157 권, 二縣割出. 按續南越志云, 舊說, 有五仙人, 騎五色羊, 執六穗秬而至, 至今呼五羊城是也.

8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박한곳이었는데, 다섯신선이다섯가지서로다른색깔의양을타고광주의월수산 ( 越秀山 ) 정상에내려와서는, 다섯종류의곡식을전해주고승천했으며타고온양은산정상에서돌로변하였고, 그곳사람들은신선에게받은다섯가지곡식을심어풍요로운생활을할수있었다고한다. 이이야기가베트남과중국으로퍼지면서서로다른여러판본의이야기를만들어냈다. 그런데 < 오양선 > 에는왕모 1인과협무 4인이등장하여다섯신선을상징하는데, 이처럼왕모가등장하는것은원래의이야기뿐아니라중국이나베트남에유전된여러이야기에는없고오직한국에만있다. 34) < 오양선 > 의 표묘삼산사 에다섯신선이사는곳을 표묘삼신도 ( 縹緲三神島 ) 라하여동해바다끝에있는삼신산 ( 三神山 ) 으로설정하였는데, 이또한 < 헌선도 > 처럼고려적특색이반영된것이라하겠다. 그외 교방기 곡명 ( 曲名 ) 에 < 자양두 ( 煮羊頭 )> 와 < 오운선 ( 五雲仙 )> 이보이지만, < 자양두 > 는양을삶아먹는다는뜻이니관련이없어보이고, < 오운선 > 은제목으로는유사성이있지만자세한내용은알수없다. 대곡명으로 < 양두신 ( 羊頭神 )> 이있으나역시관련이적어보인다. 35) 서왕모와오양성고사가결합된형태가한국에만존재한다면, 이러한가무희역시한국에만존재할가능성이높다. 이두고사를결합시켜고려에서만들었거나, 아니면오양성고사의가무희가고려에들어왔을때이를고려인들이좋아하는서왕모와연계시켜재창작했을것이다. < 포구락 > 은 송사 142권에 교방 에여제자대 ( 女弟子隊 ) 의세번째에포구악대 ( 拋毬樂隊 ) 가보인다. 그외에 성호사설 15권 인사문 과 임하필기 38권 해동악부 에서 몽계필담 ( 夢溪筆談 ) 을인용해 이신언 ( 李愼言 ) 선비의꿈에수궁에서궁녀들이공을던지는놀이 [ 抛毬 ] 를보았다 는이야기에서유래했을것이라는설은, 중국에이미각종공놀이가유행했고또수궁의공을던지는놀이가구체적으로무엇인지알수없다는점에서그리신빙성은없는듯하다. 그런점에서술자리에서술잔이나채색한공을던져이를받는사람이춤을춘놀이에서기인했다는설도마찬가지다. 이런점에서여제자대의포구악대의가무희가고려의 < 포구락 > 이되었다고보이지만, 역시포구악대가포구를어떤방식으로했는지등의자세한내용은알수가없어확언할수없다. 앞서언급했듯이 < 포구락 > 은문종 25년 (1071) 에김제가송으로파견되었을때만들어진것으로보이며, 송조정을통해정식으로들어온것은아니다. 그런점에서기존에들어온 < 포구락 > 을다시손질하여개량한것이아닌가한다. < 연화대 > 의경우자지무 ( 柘枝舞 ) 와관련이깊을것으로여겨지고있다. 자지무는대체로석국 ( 石國 ) 에서유래한것으로보는데, 유래가매우오래된만큼다양하게변형된춤이다. 송사 142권 34) 최진아, 다섯마리양을탄신선이내려오다 : 오양선 이야기의베트남, 중국, 한국에서의변용, 비교문학 57, ( 한국비교문학회, 2012), 59-60 쪽. 35) < 오양선 > 에는가장중요한의물이라할수있는양이나육수거의의물이보이지않는다. 죽간자가다만 기쁘게도양을탄진선을만나고 [ 悅逢羊駕之眞仙 ] 라고하고 벽연롱효사 에서 완연히함께가화 ( 嘉禾 ) 의상서로움을가리키며 [ 完然共指嘉禾瑞 ] 라고하여말로대신했을뿐이다. 타고다녀야하는양은만들기어렵다해도육수거를의물로만드는것이그리어려운일이아닐텐데좀의아한생각이든다. 어쩌면이것이양이나육수거가등장하지않는 < 오운선 > 이고려에들어왔고, 후에이를바탕으로오양선과서왕모고사를덧붙여만들었기때문은아닐까생각해보지만, 역시이상한것은같다.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83 교방 에소아대 ( 小兒隊 ) 중에자지대 ( 柘枝隊 ) 가첫번째로나온다. 진양의 악서 184권에는당 ( 唐 ) 의잡설 ( 雜說 ) 에우조 ( 羽調 ) 의자지곡 ( 柘枝曲 ) 과상조 ( 商調 ) 의굴자지 ( 掘柘枝 ) 와각조 ( 角調 ) 의오천자지 ( 五天柘枝 ) 가있다고하였다. 36) 또 몽계필담 에의하면구준 ( 寇準 ) 은자지무를좋아하여한나절을추게했다고하며그집에서자지무를추었던어느비구니는자지무가수십편이있었다고하였다. 37) 자지무는당의것과송의것이다르다. 당의자지무는혼자또는둘이추는데, 건무 ( 健舞 ) 와연무 ( 軟舞 ) 가모두있었다. 북소리에맞추어모자에금령 ( 金鈴 ) 을달아소리를내는것이특징이며, 38) 금색으로수놓은비단옷에붉은색이나자색옷을입었다. 송의자지무는사호 ( 史浩 ) 의 무봉진은만록 ( 鄮峰眞隱漫錄 ) 1권에유일하게기록되어있다. 비록당과송의대무의형식이변하였다는점을논외로쳐도많은변화가있었다. 우선인원이 5명으로늘었고죽간자와무희사이에문답이있었으며, 비취빛소매에붉은옷을입었다. 또한무희의인원이더욱증가하여 24명이추었다는기록도있다. 이에비해고려의 < 연화대 > 는두명의동녀 ( 童女 ) 가붉은옷을입고금령이달린합립 ( 蛤笠 ) 을쓰고춤을춘다. 음악은고려와송의것이모두 8단락을연주하는데, 삼대 ( 三臺 ) 를제외하면공통된음악이없다. 39) 또한죽간자와문답하는과정도없다. 창사는 미신사 외에의 일난풍화사 와 낭원인간사 는모두 < 헌선도 > 에나온다. 그리고의물도죽간자를담당하는여기두명만있어서극히소략하다. 동녀의등장도연꽃속에숨어있다가나타나는것이아니라이미시작할때부터합립두개를놓고나란히서있다가죽간자가들어오면자리에앉을뿐이다. 학이연꽃을쪼아터트리면그속에서동녀가나타나는조선조의 < 학연화대처용무합설 > 과는많은차이가있다. 이처럼고려의 < 연화대 > 는무희가두명에불과하고붉은색옷을입는다는점에서당의 < 자지무 > 와더가깝다고할수있으며, 다만당의 < 자지무 > 대곡의파 ( 破 ) 부분에송의대곡형식을가미하여죽간자만덧붙였다고볼수있다. 그렇다면고려에이전부터전해오던당의 < 자지무 > 를새롭게개량했다고보는것이더타당하지않을까생각한다. 또한앞서언급한것처럼서긍이인종 1년 (1123) 에고려를방문한후작성한 선화봉사고려도경 에는 연화대 가아닌 자지무 라고하였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은서긍이고려의문물제도와풍습을속속들이조사하여 40권으로엮은일종의 고려종합보고서 의성격을가지고있다. 그런점에서허투루기록하지않았을것이다. 고려 < 연화대 > 의기원이 < 자지무 > 라면, 아마도그이후에명칭이변경되었다고보아야할것이다. 36) 陳暘, 樂書 184 권, 柘枝舞. 唐雜說, 羽調有柘枝曲, 商調有掘柘枝, 角調有五天柘枝. 37) 沈括, 夢溪筆談 5 권, 樂律 1. 寇萊公好 < 柘枝舞 >, 會客必舞 < 柘枝 >, 每舞必盡日, 時謂之 柘枝顛. 今鳳翔有一老尼, 猶是萊公時柘枝妓, 云 當時 < 柘枝 >, 尙有數十遍, 今日所舞 < 柘枝 >, 比當時, 十不得二三. 38) 양음류는 < 자지무 > 는북소리를매우중시한것같다고하였다. 양음류, 중국고대음악사, ( 서울 : 솔, 1999), 357 쪽참조. 39) 죽간자와의문답은박은옥, 고려당악, ( 서울 : 문사철, 2011), 55-56 쪽참조.

8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Ⅴ. 결론 본고는고려당악정재는송의교방악을과연그대로들여온것일까라는의문에서출발하였다. 모두송에서전래된것이라면, 중국문헌에그대곡명이보여야하고또그사와사의작자도어느정도밝혀져야하는데도그렇지못했다. 또한서로다른문화적환경에서별다른수정없이도입되어오랜세월동안유지될수있었을까하는의문도들었다. 이에먼저고려당악정재가들어온기록부터검토하였다. 신라와고려는국제무역을활발히행했던나라들이므로, 이미어느정도당과송의악무가민간교류를통해들어왔을것이다. 문헌에따르면고려광종조에송의악공을청해왔다는기록이있고, 또문종 27년 (1073) 에 < 포구락 > 을처음으로공연한기록이있다. 그리고 속자치통감장편 에서 1075년에고려에악공 10명을보냈다고하였고 선화봉사고려도경 에서는희녕연간 (1068~1077) 에악공을고려에파견했다는기록이있으나, 이기록보다먼저고려에서 < 포구락 > 이공연된것에주목하였다. 즉그이전에고려의사절단과민간교류를통해들어온송의교방악을국가적차원에서정비하고자송의교방악공을초빙하여, 고려에서여러당악정재를재창작했을것으로보인다. 만일그렇다면 송사 나 교방기 등의중국문헌에고려당악정재의이름이나그사가나타나지않는것은자연스러운현상일것이다. 다음으로고려당악정재의사와중국사보의사를비교해보았다. 당악정재의사는 어정사보 에서만찾을수있었는데, 전체 16수의사중 9수가실려있었다. 그러나그출처는모두 고려사 악지 였으며, 9수중 동천경색사 한수만이유사한체를지녔을뿐, 나머지 8수는사실상독자적인체를형성하고있어유사한체나사패를찾을수없었다. 고려에서직접사를짓기도하고새로지은사를교방에서연주하기도했다는점으로미루어보아, 사악이나사를고려에서창작했을가능성도있다. 또한송에서들어온사라해도그유사한형태를찾을수없을정도로변형되었다면, 이는사실상고려에서재창작했다고보아야할것이다. 마지막으로이러한성과를바탕으로가능한한당악정재의성립과정과그시기등을파악하고자하였다. 그결과 < 헌선도 > 는중국서쪽사천성에사는서왕모를동해바다끝의봉래산에사는것으로설정하는등, 그사내용이고려식으로되어있었다. 의종 21년 (1167) 이전에만들어진것으로보이는데, 이익과이유원등은이를고려에서창작한것으로보았다. < 수연장 > 은군왕이음주할때중강을창하던것이발전한것으로보인다. 하지만구체적인성립시기등은알수없었다. < 오양선 > 은베트남의오양성고사와중국의서왕모고사를합쳐서만들어진것으로, 이러한경우는한국이외에는보이지않는다는점에서, 고려에서두고사를합쳐만든것이아닌가한다. 또한창사에서도동해바다끝의삼신산을신선들이사는곳으로설정하여고려적특색을드러내고있었다. < 포구락 > 은문종 27년 (1073) 이전에만들어진것으로, 송조정에서보내준것이아니라고려가자체적인노력으로만든것으로보인다. < 연화대 > 는기존에있던당의자지무에송의대곡형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85 식을입혀서재창작한것으로보았다. 또한 선화봉사고려도경 에인종 1년 (1123) 에연화대가아닌자지무로기록되어있는것으로보아, 그이후에이름이변경된것으로보았다. 이처럼고려의당악정재다섯곡은모두고려에서창작하거나재창작했을가능성이높다. 또한대성악처럼송조정에서교방악을고려에보내주어고려가당악정재를갖추게되었다고보기보다는, 고려가민간무역과공식사절단등을활용하여여러방면으로각고의노력을통해정재를만들어냈다고보아야할것이다. 따라서송교방악이고려에전래되어고려의당악정재가되었다고범범하게이해하기보다는, 고려가자신들이필요로하는가무희를송대곡 ( 大曲 ) 의양식을차용하여자체적으로만들어나갔다고보아야할것이다. 40) 지금까지본고는고려당악정재의성립에대해관련기사와그정재의사를중심으로살펴보았다. 정재가가 악 무의종합예술이라는점에서볼때, 본고는그가사에만치중했을뿐음악과무용에대해서는미처살피지못하였다. 물론짧은지면으로음악과무용까지모두다루는것은어려운일이기도하지만, 주지하다시피고려음악의실상에대해서는자세히알수없고, 송의음악과춤에대해서도역시알려진것이극히적다. 이에부득이하게음악과춤의양상에대해서는후일의과제로미루어둔다. 40) 본고는기존자료를재해석했을뿐, 새로운자료는거의제시하지못하였다. 그러나자료가부족하다하여고려의당악정재가단순히외부에서유입되었다고치부하기보다는, 부족한자료이나마꼼꼼히점검하고그래도부족한부분은당시의문화적분위기와그배경으로메워야하지않을까생각한다.

8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참고문헌 ] 三國史記. 高麗史. ( 조선 ) 太宗實錄. 宋史. 李燾, 續資治通鑑長編. 李瀷, 星湖僿說. 李裕元, 林下筆記. 史浩, 鄮峰眞隱漫錄. 徐兢, 宣和奉使高麗圖經. 王奕清, 御定詞譜 陳暘, 樂書. 沈括, 夢溪筆談. 가소단, 중국당송악무와고려당악무의비교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2. 김학주, 한 중두나라의가무와잡희, 서울 :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김한규, 한중관계사 Ⅰ, 서울 : 아르케, 1999. 박은옥, 고려당악, 서울 : 문사철, 2011. 박은옥, 고려사악지의당악연구, 서울 : 민속원, 2006. 박현규, 고려사 당악 원문校勘에수반되는판본선택의중요성 : 車柱環과唐圭璋의교감기록을중심으로, 중국어문논총 22, 중국어문연구회, 2002.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 민속원, 2007. 심숙경, 당악정재 헌선도 를통해본고려, 송시대악무교류, 무용예술학연구 제10집가을, 한국무용예술학회, 2002. 楊蔭瀏저, 이창숙역, 중국고대음악사, 서울 : 솔, 1999. 王水熙저, 조규백역, 소동파평전, 서울 : 돌베개, 2013. 유강하, 四川, 道敎, 그리고西王母에대한한연구, 도교문화연구 30, 한국도교문화학회, 2009. 藏非非외, 김승일역, 한중관계사, 서울 : 범우, 2005. 차주환, 고려당악의연구, 서울 : 동화출판사, 1976. 최진아, 다섯마리양을탄신선이내려오다 : 오양선 이야기의베트남, 중국, 한국에서의변용, 비교문학 57, 한국비교문학회, 2012.

고려당악정재의전래와수용 87 41)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Dangak-jeongjae in the Goryeo Dynasty Shin, Taeyoung* Dangak-jeongjae(Korean court dance of Chinese origin) is generally known to had come from Chinese Song Dynasty. However, there arise several questions concerning the inflow process of Song's gyobangak( 敎坊樂 ) into Goryeo specially in the point that the title of dangak-jeongjae items and the composer's name of their lyrics are rerely found in the literary works of ancient China. In this context, this thesis discussed about the tentative possibility that the lyrics of Goryeo dangakjeongjae had been composed by native poets in Goryeo. For this, I examined the historical records about the inflow of Song's gyobangak, and compared Goryeo dangak-jeongjae's lyrics and Eojungsabo( 御定詞譜 ), a collection of Chinese lyrics. Further, I tried to chase the establishing process and the composition time of dangak-jeongjae items in the Goryeo Dynasty. As a result, there was found a strong possibility that dangak-jeongjae items might had been created or recreated in Goryeo through many efforts to compose dangak-jeongjae in many ways including private trading or official delegation and so on. It does not seem that Song Dynasty gave dangak-jeongjae in the name of daesungak( 大晟樂 ) directly to Goryeo as have been accepted as an historical fact by Korean scholars without enough reasonable proofs. In this respect, the establishing process of dangak-jeongjae needs to be studied more objectively on the base of firm, concrete historical data. [key words] Dangakjeongjae( 唐樂呈才 ); Eojungsabo( 御定詞譜 ); Heonseondo( 獻仙桃 ); Suyeonjang( 壽延長 ); Oyangseon( 五羊仙 ); Pogurak( 抛毬樂 ); Yeonwahdas( 蓮花臺 )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5 월 10 일 2015 년 5 월 22~27 일 2015 년 6 월 18 일 ** Research Professor, The World Ethnic Dance Institut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School of Dance

국악원논문집 제31집 89~110쪽 2015 42) 영제 바라무 동작과 범패 선율의 관련성 마산 백운사 석봉의 사다라니바라와 천수바라를 중심으로 양영진* [국문초록] 불교의식음악 범패 홑소리에는 작법무가 수반된다. 이 중 일부 홑소리에 바라무가 연행되는데, 본고에서는 마산 백 운사 석봉(石峰, 1955~현재)의 사다라니바라와 천수바라를 연구자료로 삼아 바라무와 범패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데 에 그 목적을 두었다. 도출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동작구성을 살펴보면, 사다라니바라는 동작 a+b+c를 기본으로 변화를 주었으며, 천수바라는 동작 가+다+나의 한 틀을 기본 구성으로 삼고 있었다. 천수바라의 기본동작은 사다라니바라의 동작 b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악곡의 선율은 메나리토리와 3소박 불규칙박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나리토리의 민요와 다르게 la음을 크게 떠 는 특징을 보였다. 천수바라에서는 2+2+2소박의 헤미올라 리듬이 출현하는데, 이는 무용 동작을 지시하는 신호로 사용 됨을 확인하였다. 두 악곡의 선율형식을 살펴보면, 사다라니바라는 선율형 b를 주로 반복하였고, 천수바라는 선율형 d만을 반복 사용 하였다. 두 선율형은 최고음 mi'로 시작하여 순차상행 후 la를 중심으로 상 하행는 점이 동일하고, 두 악곡은 모두 la로 종지하였다. 마지막으로 천수바라와 사다라니바라의 동작과 선율의 분석 결과를 통해 바라무와 범패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먼저 광쇠 및 징의 신호는 무용 음악의 시작과 끝에 관여하며, 특정 무용 동작을 지시하였다. 바라무의 특정 동작은 높은 mi'음을 수반하며, mi'음은 악구 구분과 바라무 동작 단락 구분의 기준점이 되었다. 또한 바라무 동작과 선율은 동일한 단락 구분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범패 리듬의 변화나 특정 음의 사용 및 반주악기의 연주가 바라무의 동작과 밀접하게 관련됨을 확인하였다. [핵심어] 작법무, 바라무, 사다라니바라, 천수바라, 범패, 광쇠, 백운사 <차 례> Ⅰ. Ⅱ. Ⅲ. Ⅳ. **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서론 사다라니바라와 천수바라의 형식 바라무 동작과 범패 선율의 구성 결론

9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Ⅰ. 서론 바라무는양손에바라 ( 哱囉 ) 를들고추는불교의식무이다. 통상징 북과같은타악기와선율악기태평소가함께수반된다. 곡에따라범패가함께불리기도하며, 영남지역에서는특징적으로징과함께광쇠가편성되기도한다. 바라무의전승은지역에따라차이를보인다. 봉원사를중심으로한경제는가장활발하게전승되고있으며, 천수바라 사다라니바라 화의재진언바라 명바라 관욕쇠바라 내림게바라 요잡바라등 7종바라무를연행한다. 백운사를중심으로전승되고있는영제에서는내림게바라를제외한 6종바라무가추어진다. 마지막으로호남범패인완제는경제와유사하다 1) 고전한다. 이세지역에서전승되는바라무는크게가사의유무에따라구분된다. 천수바라 사다라니바라 화의재진언바라는가사가있고, 명바라 관욕쇠바라 내림게바라 막바라는범패없이징과같은타악기의반주로만추어진다. 가사가있는바라무중사다라니바라 화의재진언바라는삼설 ( 三說 ) 이라하여진언 ( 眞言 ) 을 3번반복하고, 천수바라는 < 천수경 ( 千手經 )> 중 신묘장구대다라니 ( 神妙章句大陀羅尼 ) 즉 대비주 ( 大悲呪 ) 를 1번노래한다. 이악곡에대한선행연구는국악계와무용계에서각각이루어져왔다. 먼저악곡의선율적인연구를살며보면, 손인애 차형석두연구자에의해경제바라무의범패선율이서도소리의영향을받은바있음2) 이밝혀졌다. 또한서정매의연구를통해영제천수바라선율이메나리토리로구성된것3) 을확인하였고, 임미선의분석4) 을통해완제천수바라가메나리토리를근간으로다른토리를혼용한것을알수있었다. 한편무용계에서는불교사상적인측면에서바라무의동작과의의을해석5) 하거나, 동작을분석하고형식을살펴보는연구6) 가이루어져왔다. 그러나선행연구에서는바라무와범패가함께연행되는데도불구하고이를결부시켜바라보지않고있다. 음악적인연구는악조 박자 선율분석에치중하여악곡의전체형식을규명하지못 1) 임미선, 호남범패의전승과특징, 한국음악연구 제 38집, ( 한국국악학회, 2005), 260쪽각주 21번참고. 2) 손인애, 경산제불교음악 Ⅰ, ( 서울 : 민속원, 2013); 차형석, < 사다라니 > 의음악적연구, 한국음악연구 제48집, ( 한국국악학회, 2010), 339-378쪽. 3) 서정매, 영제범패 < 영산작법 > 연구-부산어장용운과마산어장석봉을중심으로- ( 부산 : 부산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5). 4) 임미선, 앞의논문, 260쪽참고. 5) 기연정, 불교사상에따른천수바라춤연구, (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3). 심상현, 작법무거행의배경과의의, 공연문화연구 제12집, ( 공연문화학회, 2006), 133-172쪽. 심상현, 작법무의연원과기능에대한고찰, 동아시아불교문화 제 12집,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2), 237-266쪽. 이현주, 천수바라춤의움직임특성을통한불교의사상적의미고찰, 무용역사기록학 제 11집, ( 무용역사기록학회, 2006), 117-138쪽. 6) 도현주, 천수바라무에관한고찰 : 부산시무형문화재제9호영산재를중심으로, ( 부산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4). 백재화, 영산재의바라춤연구, ( 서울 : 동덕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8). 이영숙, 사다라니바라춤의기본춤사위연구, ( 서울 : 서강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8). 이인경, 사다라니바라춤에관한연구 : 경제와완제의비교를통하여, ( 서울 : 동국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9). 최우정, 중요무형문화재제50호영산재천수바라춤연구, ( 서울 :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7).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91 했으며, 바라무의동작연구는선율적인부분을분석에서배제하였다. 이는경제범패에서바라무의동작과범패의구성이명확하게구분되지않기때문으로여겨진다. 한편영제바라무는타지역과다르게춤의방위가뚜렷하게구별되어주목된다. 경제는동작에지정된방위가없고, 7) 완제역시경제와유사 8) 하다. 순서에따라 4방위를돌아가며추는것이영제바라무의특징인것이다. 이것이고제 ( 古制 ) 인지는알수없으나, 정확한방위로인해무용동작을뚜렷하게파악할수있을것으로여겨진다. 더불어이를통해선율과의비교도가능할것이다. 따라서본고에서는영제에서전승되고있는가사가있는바라무, 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동작과선율을분석하고그형식을살펴보고자한다. 이를통하여바라무동작과선율의연관관계를고찰해볼것이다. 본연구는중요무형문화재아랫녘수륙재와불모산영산재의어장인석봉 ( 石峰, 1955~ 현재 ) 의소리를분석대상으로삼고자한다. 바라무는 2012년백운사에서개최된수륙재의녹화영상을살펴보겠다. 당시중요무형문화재지정조사가행해져타년도에비해비교적재의식이체계적으로이루어졌기때문이다. 위자료를토대로 2013년 2014년수륙재와인터뷰내용을보충자료로사용하고자한다. Ⅱ. 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형식 2012년백운사수륙재자료에의하면 사다라니바라 는상단권공 ( 上壇勸供 ) 절차에서, 천수바라 는영산작법 ( 靈山作法 ) 절차에서행해진다. 상단권공은불보살을모신상단 ( 上壇 ) 에공양물을권하는의례로, 이때사다라니바라가추어진것은이다라니의대상이불보살인것을의미 9) 한다. 또한영산작법은영취산에서부처의설법을재현하는의례로, 이때천수바라는 < 관음청 ( 觀音請 )> 으로관세음보살을청한뒤도량을청정하게하고관세음보살을찬미하기위해연행된다. 본장에서는이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동작과선율을분석하여, 그구성형식을알아보고자한다. 이를통하여범패와바라무의상관관계를고찰할수있을것이다. 1. 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동작구성 불교무용의연구는대부분그춤사위를분석하는데주력해왔다. 분석자료는사진 그림등을 7) 방향은자유자재로한다 [ 이애경, 영산재작법무, ( 서울 : 푸른세상, 2006), 161쪽천수바라동작설명, 168쪽사다라니바라동작설명 ]. 8) 임미선, 앞의논문, 260쪽참고. 9) 재의식, 사시불공, 49재등 < 사다라니 > 가연행되는절차와연행의대상은다양하다. 본고에서설명하고있는의미는상단권공에서행해진 < 사다라니 > 에한정된것이다.

9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활용하고, 이를통해동작의반복성및변화를파악하는연구방법을주로사용하고있다. 선행연구가동작분석에집중하는이유는경제바라무동작의방위가특정되어있지않은것과관계된것으로여겨진다. 그러나백운사의사다라니바라는동작의방위가정확하게구분되고, 또이방위를기준으로바라무의대형을파악할수있다. 따라서본고에서는방위와대형을삼각형 ( ) 10) 으로표시하고, 이를부연설명하는연구방법11) 을차용하고자한다. 1) 사다라니바라사다라니바라는 4개의다라니로구성되고, 각진언을 3번반복한다. 첫번째진언은바쳐진음식을실체가없는의식의대상이취할수있는형태로바꾸어주는주문 < 변식진언 ( 變食眞言 )> 이다. 둘째진언은감로수 ( 甘露水 ) 를올리는주문 < 시감로수진언 ( 施甘露水眞言 )> 이고, 셋째진언은 밤 한글자로모든공양물이수륜 ( 水輪 ) 을이루어질서정연하게베풀어지게하는주문 < 일자수륜관진언 ( 一字水輪觀眞言 )> 이며, 마지막진언은소화가잘되어젖국이되도록하는주문 < 유해진언 ( 乳海眞言 )> 이다. 이때 < 유해진언 > 의유 ( 乳, 우유 ) 는진리의상징적인표현으로, 널리부처의진리가퍼진것으로해석12) 되기도한다. 그러나이절차가상단권공에서행해진맥락에서살펴볼때앞선해석이보다설득력이있다고여겨진다. 무용동작역시다라니의구성과연관되어있다. 무용동작이 4개의큰단락으로나누어지기때문이다. 먼저 < 변식진언 > 의동작을살펴보면아래와같다. < 표 1> < 변식진언 > 바라무동작 가사 무량위덕자재광명승묘력변식다라니 진언명칭 광쇠 징 동작 가사나막살바다타아다바로기재옴삼마라삼마라훔 진언 1 광쇠 징 동작 10) 무용동작기호설명 기호 ᐏ 설명세모의위쪽꼭지점이무원이서있는방향을표시오른쪽으로상체를튼뒤왼쪽방향으로 180도이동하는동작 360도회전동작 11) 손선숙, 악학궤범 < 봉래의 > 여민락무의이동구조탐색,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제 23호, ( 한국무용기록학회, 2011), 19-43 쪽참조. 12) 진리의젖먹고수행하여부처되라, 불교신문 3040호, 2014.09.10. 기사참고.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93 가사나막살바다타아다바로기재옴삼마라삼마라훔 진언 2 광쇠 징 동작 가사나막살바다타아다바로기재옴삼마라삼마라훔 진언 3 광쇠 징 동작 < 변식진언 > 의바라무는남과북, 동과서를중심으로움직인다. 진언명을읊을때는북향하고있다가진언의시작전에좌 우로 2명씩갈라서서동 서로마주본다. 진언1과진언2 에서는좌 우대열이남 북, 동 서를중심으로움직인다. 동작중에 살바다타 의 타 와 옴 에서한바퀴빠르게회전한다. 진언3에서는남 북쪽에서시작하여시계반대방향으로 4방위를차례로돈다. 이때방향을전환하기전에상체를오른쪽으로살짝틀었다가움직이는특징을보인다. 이바라무의동작은크게세부분으로나뉠수있다. 첫째는진언명칭의준비동작이고, 둘째는진언1 과진언2 의남 북과동 서방위동작이다. 마지막진언3 에서는 4방위를시계반대방향으로돌며마무리한다. 이와같은동작의구성을시작부 (a)+ 전개부 (b+b')+ 종지부 (c) 로나타낼수있다. 이때바라무의동작을지시하는역할을광쇠가담당한다. 진언명을노래한뒤 3망치를쳐서진언이시작됨을알리고, 진언1 진언3의시작과진언2 진언3의종지를 1망치와 7망치로신호한다. 진언1의종지부분과진언2 의시작부분에광쇠를치지않는것은진언1과진언2가방위만다를뿐동일한동작이어서한부분으로구분되기때문이라고해석할수있다. 마지막으로진언1과진언2 가사중 살바다타 의 타 와 옴 에서빠르게몸을한바퀴회전할때광쇠를치는데, 이는대열의좌 우가서로등을돌린상태에서동시에동작을연행할수있게도와주는직접적인동작지시이다. 다음으로 < 시감로수진언 > 을살펴보겠다. < 표 2> < 시감로수진언 > 바라무동작 가사 시감로수진언 진언명 광쇠 징 동작

9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가사나무소로바야다타아다야다냐타옴소로소로바라소로바라소로사바하 진언 1 광쇠 징 동작 가사나무소로바야다타아다야다냐타옴소로소로바라소로바라소로사바하 진언 2 광쇠 징 동작 가사나무소로바야다타아다야다냐타옴소로소로바라소로바라소로사바하 진언 3 광쇠 징 동작 < 시감로수진언 > 의바라무는 < 변식진언 > 의확대형태이다. 진언명칭에서이미대열이좌 우로갈라서동 서로마주보고있는데, 이는 < 시감로수진언 > 이 < 변식진언 > 에연이어연행되기때문이다. 진언1과진언2는 < 변식진언 > 의전개부와동일하게남 북과동 서를중심으로움직이는데, 회전동작이 1회더추가된것을확인할수있다. 진언3 역시순차적으로 4방위를시계반대방향으로도는데, 가사가 < 변식진언 > 보다길기때문에한차례더 4방위를돈다. 이와같은 < 시감로수진언 > 의동작구성을시작부 (a)+ 전개부 (b++b'+)+ 종지부 (c+) 로나타낼수있다. 광쇠의연주자리역시 < 변식진언 > 과동일하다. < 시감로수진언 > 의시작과끝, 진언1과진언3 의시작, 진언명과진언2의종지에광쇠와징을친다. 다만회전동작이늘어났기때문에이를지시하는광쇠의연주횟수역시 2회에서 3회로증가한것을알수있다. 마지막으로 < 일자수륜관진언 > 과 < 유해진언 > 의동작을함께살펴보면아래표와같다. < 표 3> < 일자수륜관진언 > < 유해진언 > 바라무동작 진언명 가사 광쇠 징 동작 일자수륜관진언 가사옴밤밤밤밤옴밤밤밤밤옴밤밤밤밤 진언 광쇠 징 동작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95 가사광쇠 징진언명동작 유해진언 가사나무사만다못다남옴밤나무사만다못다남옴밤나무사만다못다남옴밤 진언 3 광쇠 징 동작 < 일자수륜관진언 > 과 < 유해진언 > 의바라무는 < 변식진언 > 과 < 시감로수진언 > 종지부와동일하다. 다만대열의좌 우방향이다를뿐이다. 가사의길이에따라 < 일자수륜관진언 > 은 < 변식진언 > 과, < 유해진언 > 은 < 시감로수진언 > 과마치는방위가동일한것을알수있다. 따라서 < 일자수륜관진언 > 의동작형식은종지부 (c) 로, < 유해진언 > 은종지부 (c+) 로나타낼수있다. 광쇠연주지점역시동일하다. 다만진언명칭의끝에치는광쇠와회전동작지시광쇠가연주되지않는다. 이는진언명의연행시간이매우 5초이내로매우빠르고, 회전동작이없기때문이다. 앞서살펴본사다라니바라무의동작은진언의구성에따라크게 4부분으로나뉠수있다. 이를도식화하면 A1(a+b+b'+c)+A2(a+b++b'++c+)+A3(a+c)+A3(a+c+) 로정리될수있다. 이안에서 a는시작, b는전개, c는종지를위한동작으로구분된다. 또한바라무의동작에서광쇠는무용의단락과직접적동작의지시를담당하는것을확인할수있다. 2) 천수바라천수바라는 <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 ( 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崖大悲心大陀羅尼經 )> 의일부인 신묘장구대다라니 ( 神妙章句大陀羅尼 ) 를가사로삼고있다. 그뜻은 신묘하고큰 [ 긴 ] 다라니 라는뜻이다. 관세음보살을주요대상으로삼고있기때문에이보살을지칭하는수식어대자대비 ( 大慈大悲, 큰자비 ) 를따서 대비주 라고도불린다. 대비보살의주문이라는뜻이다. 천수바라를연행할때는이 대비주 를가사로노래부르며, 사다라니와같이가사를반복하지않는다. 또한하나의큰진언이연행되기때문에사다라니처럼진언의명칭이여러번등장하지않는다. 사다라니는 4개의다라니여서진언명이 4번출현하지만, 천수바라의경우시작부분에서단 1번진언명을읊을뿐이다. 또한바라무를연행하는승려역시긴진언명칭을읊는동안방향을바꾸지않는다. 따라서천수바라의진언명칭부분을분석에서제외하고자한다. 천수바라의동작은매우규칙적으로연행된다. 이는가사의자수와매우밀접한관련이있는것으로보인다. 가사와동작의관련성을정리하면아래표와같다.

9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표 4> 천수바라무의기본동작 2 음절단위 가사 광쇠 징 동작 모지사다바아마하사다바아 ( ) 3 음절단위 가사 목카야사바하바나마하따야사바하자가라욕따야사바하 광쇠 징 동작 2+3 음절 가사 광쇠 징 동작 나막까리다바이맘알야바로기제새바라 2+3+2+3 음절 가사 광쇠 징 동작 도로도로미연졔마하미연졔 진언은 2자또는 3자를한호흡에연행한다. 통상적으로 사바하 는붙여서읽고, 옴 은독립된음절로본다. 이는관례와해석에따라띄어읽는것이다. 천수바라의가사역시 2음절과 3음절로구성되어있다. 2음절을연이어연행할때, 대형은좌 우로나뉘어서로대칭되는방향을바라보고 4방위를순차진행한다. 3음절을연이어연행할때, 대형은역시좌 우로나뉘어남 북또는동 서를 180도로번갈아바라본다. 2음절과 3음절이연이어연행될때는 3음절의 4자앞에서 360도로회전하고, 3음절에서본방향으로돌아온다. 마지막으로 2+3음절이반복될때는 2+3음절 의동작을반복한다. 천수바라의동작과광쇠의연주를연결하여살펴보겠다. 먼저순차적으로 4방위를도는 2음절단위의동작이기본이라할수있다. 신호를위한광쇠가연행되지않기때문이다. 이는 2음절단위의동작이별다른신호가필요하지않은일반적인동작임을의미한다. 3음절단위의동작에는광쇠의연주가수반된다. 90도로움직일동작을 180도로확대하라는신호이다. 2+3음절동작에는 3음절의 4자앞에서 5망치를쳐서 360도회전을지시하며, 3음보에서는 2망치를쳐서본래방향으로돌아올때임을알린다. 2+3+2+3음절 은광쇠의망치수가다를뿐동작은 2+3음절 동작의반복이다. 따라서 2음절동작을 가, 3음절동작을 나, 2+3음절동작을 다, 2+3+2+3음절동작을 다+ 로기호화하고자한다. 위세동작을바탕으로전체천수바라무의동작을살펴보면아래표와같다.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97 < 표 5> 천수바라무의구성 가사 1 나모라다나다라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준비 2 모지사다바아마하사다바아마하가로니가야옴살바바예수다라나가라야다사명가 + 다 ++ 나 3 4 나막까리다바이맘알야바로기제새바라 / 다바이라간타나막하리나야마발다이사미살발타사다남수반아예염살마보다남 바바마라미수타감단야타옴아로계아로가 / 마지로가지가란졔혜혜하례마하못지사다바삼마라삼마라 형식 가 + 다 / 가 + 다 + 나 + 다 가 + 다 +/ 가 + 다 + 나 5 하리나야구로구로갈마사다야사다야도로도로미연졔마하미연졔가 + 다 ++ 다 6 7 8 다라다라다린나례새바라 / 자라자라마라미마라아마라몰졔예혜혜로계새바라라야미사미나사야 / 나배사미사미나사야모하자라미사미나사야 호로호로마라호로하례바나마 / 나바사라사라시리시리소로소로못댜못댜못다야못다야 / 매다리야니라간타가마사날사남바라 하리나야마낙시바하싯다야사바하마하싯다야사바하싯다유예새바라야사바하니라간타야사바하바라하목카싱하목카야사바하바나마하따야사바하자가라욕따야사바하상카셥냐예못다나야사바하마하라구타다라야사바하바마사간타이사싯쳬다가린나이나야사바하먀가라잘마이바사나야사바하나모라 가 + 다 / 가 + 다 ++ 다 ++ 다 / 가 + 다 가 + 다 / 가 + 다 / 가 + 다 가 + 다 ++ 다 ++ 다 + 나 + 다 ++ 다 ++ 나 + 다 9 다나다나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사바하가 + 다 천수바라무의동작은위표와같이정리할수있다. 모든구성이동일하지는않지만유사한동작이연결된다. 가장처음인 나모라 에서 새바라야 까지는춤을추지않고시작자세를갖추어서있었기때문에준비동작으로보겠다. 기본형식은 가 + 다 + 나 의구성이다. 여기에 다 가반복되고, 나 가생략되기도한다. 그러나기본골격이 가 로시작하여 다 로진행한뒤, 다 또는 나 로종지하는것은일치한다. 이천수바라의동작을앞서살펴본사다라니바라와비교하고자한다. < 변식진언 > 의진언 1과천수바라의 나막 ~ 이사미 부분의동작을살펴보면아래표와같다. < 표 6> 변식진언바라무와천수바라무동작비교 변식진언 가사나막살바다타아다바로기제옴삼마라삼마라훔 동작 천수바라 가사 동작 나막까리다바이맘알야바로기제새바라다바이라간타나막하리나야마발다이사미

9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위표는 < 변식진언 > 의진언 1, 즉전개형인 동작 b 와천수바라의 가 + 다 / 가 + 다 + 나 동작을비교 한것이다. 이를통해두바라무는방향만다를뿐동일한것을알수있다. 따라서천수바라무의 동작구성을 b 의변형으로보고자한다. 2. 사다라니 대비주의선율형식 부산영산재바라춤보유자인청공 (1932~2009) 은 1950년대부산에서바라춤을가르쳐주신송만해스님과영파스님은모두윗녘에서오셨고, 특히영파스님은웃녘소리로바라를가르쳐주신분이다. 13) 라고증언한바있다. 그러나경제 < 사다라니 > 가서도소리의영향을받은수심가토리를근간으로삼고있는것14) 에반해, 영남의 < 사다라니 > 와 < 대비주 > 는메나리토리로되어있다. 상기인터뷰내용을고려할때두악곡은경제범패의영향을받았으나, 비교적지역색이강하게남아전승된것으로보인다. 본절에서는앞서살펴본 사다라니 와 대비주 의선율형식을알아보고자한다. 이를위하여선율의반복구조가잘드러나는도식악보 [Graphic Notation] 오선보로각악곡의선율을표기하고, 선율의진행을살펴보겠다. 1) 사다라니사다라니는 4개의다라니로구성된다. < 변식진언 >, < 시감로수진언 >, < 일자수륜관진언 >, < 유해진언 > 이그것이다. 노래부르는순서는먼저진언명칭을읊고, 진언을 3번반복하는형식이다. 이는음악의단락과동일하다. 사다라니의출현음은상행 mi la do' re' mi', 하행 mi' 're' do' la sol mi의 6음으로한옥타브이내이며, 전형적인메나리토리이다. 선율은 la를중심으로상 하행하며, la음으로마친다. 이때 do' 와 la를단3도정도의큰폭으로요성하는점이특징이다. 박자는 3소박을규칙적으로연행한다. 박자는규칙적이지않고, 가사의자수에따라탄력적으로운용된다. 이는불교음악에서자주발견되는현상이다. 박자를규칙적으로유지하고이에가사를맞추기보다, 가사의간격을규칙적으로배치하여의미전달의효율을높이는것이불교음악연행의목적에부합하기때문이다. 이와같은맥락에서불교음악의박자는큰의미를지니지않는다. 다만 3소박을지속하는것은바라무의동작에맞추어반주하기위함으로여겨진다. 다음으로 4개진언의선율형을살펴보겠다. 먼저 < 변식진언 > 의선율을살펴보면아래와같다. 13) 김용환 윤소희, 신라의소리영남범패, ( 서울 : 청우서적, 2010), 59 쪽. 14) 손인애, 앞의책, 139 쪽참고.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99 < 악보 1> 변식진언의선율 < 변식진언 > 의선율을살펴보면, 진언명을연행하는 1행과진언을반복하는 2~4행의선율이크게다르지않다. 진언을연행하는 2~4행은최고음 mi' 또는 re' 에서시작해 re' do' la sol mi 로순차하행하고, 다시 la를중심으로상 하행을반복하다가 mi에서 la로상행하여마친다. 진언명의선율은진언을부르는선율중 mi' 에서 mi로순차하행하는앞부분이떨어져나간형태이다. la에서 do' 로상행했다가 mi로순차하행한뒤 la로상행하여종지하는선율진행은진언선율의뒷부분과동일하다. 따라서 < 변식진언 > 의선율을 a+b+b+b로도식화할수있다. 다음으로 < 시감로수진언 > 의선율을살펴보겠다. < 악보 2> 시감로수진언의선율

10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시감로수진언>의 선율은 <변식진언> 진언부분과 동일하다. 최고음 mi'에서 시작해 최저음 mi 까지 순차 하행하고, 다시 la를 중심으로 상 하행을 반복 하다가 mi에서 la로 상행하여 마친다. 다만 주목할 점은 진언명칭 부분의 선율인데, 진언명의 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진언명칭과 진언1 선율이 하나의 단락으로 묶인다. 즉 진언명칭이 최고음 mi'에서 re'를 거쳐 do'로 하행하는 선율이 고, 진언1이 do' la sol mi로 하행 후 la를 중심으로 상 하행을 반복 하다가 mi에서 la로 상행 하여 종지하는 선율이다. 따라서 <시감로수진언>의 선율을 b+b+b로 나타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자수륜관진언>과 <유해진언>의 선율을 함께 살펴보겠다. <악보 3> 일자수륜관진언과 유해진언의 선율 두 진언의 선율은 <시감로수진언> 선율과 유사하다. 진언명과 진언1, 진언2가 한 단락을 이룬다. 진언명의 선율이 최고음 mi'에서 re'를 거쳐 do'로 하행하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진언에서 la를 중심 으로 상 하행하다가 세 번째 진언에서 la로 종지한다. 다만 <일자수륜관진언> 전체와 <유해진언>

영제 바라무 동작과 범패 선율의 관련성 101 의 진언3에서 la sol mi의 하행 선율이 생략되었다. 이는 불교 진언 중에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 는 옴 자 때문이다. 옴 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글자로 앞 음에 비해 높은 음으로 불러야 하는 높은 자 이다. 그러나 <일자수륜관진언>은 진언이 짧아 옴이 자주 반복되고, <유해진언>은 옴 자 가 비교적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최저음 mi로 순차 하행할 여유가 없다. 때문에 mi로 하 행하지 않았지만 이 선율을 앞선 선율 b와 동일한 형태로 보고자 한다. 따라서 두 진언의 선율을 도식화하면, <일자수륜관진언>은 b+b 로, <유해진언> 역시 b+b 로 나타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사다라니의 선율은 진언의 구성에 따라 크게 4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이는 A1(a+b+b+b)+A2(b+b+b)+A3(b+b )+A3(b+b )로 도식화된다. 처음인 <변식진언>에서는 가사의 반복에 맞추어 유사 선율을 4번 반복하고, <시감로수진언>에서는 진언명과 진언1을, <일자수륜관 진언>과 <유해진언>에서는 진언명과 진언1과 진언2를 하나의 선율형으로 연결시켰다. 이는 의식 의 진행에 따라 선율의 반복을 점차 줄여나가는 구성 형태임을 알 수 있다. 2) 대비주 대비주의 음조직와 박자구조는 사다라니와 동일하다. 출현음은 상행 mi la do' re' mi', 하 행 mi' re' do' la sol mi이며, do'에서 mi'로 지를 때 높은 sol'이 짧은 시가의 경과음으로 등 장하기도 한다. 소박은 규칙적인 3소박이며, 박자는 불규칙하다. 대비주는 가사의 단락이 나누어지지 않는 점에서 사다라니와 차별된다. 대비주의 가사는 단락의 구분 없이 총 442자의 진언을 연이어 낭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사만으로는 단락을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대비주를 노래할 때 연행자가 특정 부분에서 높은 mi'를 질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중심으로 악보의 행을 구분해 보겠다. 대비주 앞부분의 선율을 오선보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악보 4> 대비주의 선율

10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대비주의선율을살펴보면, 유사한선율이반복적으로사용되는것을알수있다. 첫글자는반드시 la에서 mi' 로높게상행하며시작한다. 실제노래부를때연행자는이부분의성음을굵고강하게내어다른부분과구별시킨다. 이후높은 mi' 에서순차하행후중간음역인 la를중심으로상행과하행을반복한다. la를중심으로상 하행할때에는사다라니와달리낮은 mi를짧게내고바로 la음으로상행하여연속되는느낌을준다. 악구의끝은대부분 la에서 do' 로상행하는데, 이역시선율이지속됨을암시한다. 최종종지음은 la로, 이음을길게장인하여마친다. 이와같은선율을선율형 d로명명하고자한다. 박자는 3소박을시작부터끝까지유지하는데, 특정부분에헤미올라리듬이나타난다. 3행의 사다남수반아예염 의 다남 부분에서광쇠는 2소박으로 3망치를연주한다. 이처럼 2소박헤미올라의리듬은가사가 3자 +2자 +3자로진행될때앞 3자의두 세번째글자에배치된다. 리듬이 3소박에서 2소박으로바뀌는이때, 무원 ( 舞員 ) 은 360도회전한다. 따라서이헤미올라리듬이무용동작을신호하는것을알수있다. 위와같은규칙은악곡의끝까지지속된다. 높은 mi' 의출현으로악구가구분되는곳을살펴보면아래표와같다. < 표 7> 대비주의악구구분 가사 01. 나모라다나다라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 02. 모지사다바아마하사다바아마하가로니가야옴살바바예수다라나가라야다사명 / 03. 나막까리다바이맘알야바로기제새바라 / 04. 다바이라간타나막하리나야마발다이사미살발타사다남수반아예염살마보다남 / 05. 바바마라미수타감단야타옴아로계아로가 / 06. 마지로가지가란졔혜혜하례마하못지사다바삼마라삼마라 / 07. 하리나야구로구로갈마사다야사다야 / 08. 도로도로미연졔마하미연졔다라다라다린나례새바라자라자라마라미마라아마라몰졔예혜혜로계새바라라야미사미나사야 / 09. 나배사미사미나사야모하자라미사미나사야 / 10. 호로호로마라호로하례바나마 / 11. 나바사라사라시리시리소로소로못댜못댜못다야못다야 / 12. 매다리야니라간타가마사날사남바라 / 13. 하리나야마낙시바하싯다야사바하마하싯다야사바하 / 14. 싯다유예새바라야사바하니라간타야사바하바라하 15. 목카싱하목카야사바하바나마하따야사바하자가라욕따야사바하 / 16. 상카셥냐예못다나야사바하마하라구타다라야사바하 / 17. 바마사간타이사싯쳬다가린나이나야사바하먀가라잘마 / 18. 이바사나야사바하나모라다나다나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사바하 /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103 위표는대비주의가사를중심으로높은 mi' 가출현하는부분을네모칸 ( ) 으로표시한것이다. 이를통해서 mi' 는반드시 2음절가사를노래할때만등장하는것을알수있다. 예외적으로 ' 옴 ' 은사다라니에서와같이 높은자 이기때문에높은 mi' 로연행하고있다. mi' 음은대비주의시작에서끝까지총 19번출현하며, 선율은매번유사하게진행된다. 따라서대비주의악곡구성방식은 d 선율을반복하는것이라볼수있다. Ⅲ. 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구성 앞서살펴본범패의선율과반주악기는바라무와밀접한관련성을보이고있다. 본장에서는바라무와관련된범패의요소를집중적으로살펴보고, 이를통해바라무와범패의연관관계를살펴보고자한다. 바라무와가장밀접한관계를드러내는요소는불교악기광쇠와징이다. 광쇠 징이연주되는지점을정리하면아래와같다. < 표 8> 광쇠 징의기능 구분연주목적연주방법 음악 + 무용 시작신호. 종지신호... 진언명연행끝과본진언의시작신호. 전개동작종지신호.. 무용 360 도회전신호 ( 사다라니바라 ).. ( 천수바라 1).. ( 천수바라 2).. 180 도회전신호.. 광쇠와징은음악 무용의시작과끝을알려주고, 무용동작을지시한다. 또한전개동작에서종지동작으로전환할때도광쇠와징을쳐서알린다. 가장자주쓰이는것은회전동작을지시할때이다. 특히천수바라에서는 2+3음절의가사와 2+3+2+3음절의가사를노래할때의회전신호를구분하고있다. 2+3+2+3음절의경우앞서회전한뒤바라를정리할겨를없이바로다음회전을돌아야하기때문이다. 이때는 3소박의박자구조를 2소박으로잠시변화를주어해당구간을두드러지게드러낸다. 다음으로범패선율의특정음과바라무동작의연관성을살펴볼수있다. 앞서살펴본천수바라의선율에서 mi' 음의출현을살펴본바있다. 이때 mi' 는반드시 2자가사에서만나타났는데, 이를무용동작과연관지어생각할수있다. 바라무의동작 가 역시 2음절가사가반복될때에만

10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추어지기때문이다. 천수바라에서 mi' 음을네모칸 ( ) 으로, 동작가 는회색 ( ) 으로표기하여 비교하면아래와같다. < 표 9> 대비주의악구구분 가사 나모라다나다라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 모지사다바아마하사다바아마하가로니가야옴살바바예수다라나가라야다사명 / 나막까리다바이맘알야바로기제새바라 / 다바이라간타나막하리나야마발다이사미살발타사다남수반아예염살마보다남 / 바바마라미수타감단야타옴아로계아로가 / 마지로가지가란졔혜혜하례마하못지사다바삼마라삼마라 / 하리나야구로구로갈마사다야사다야도로도로미연졔마하미연졔 / 다라다라다린나례새바라 / 자라자라마라미마라아마라몰졔예혜혜로계새바라라야미사미나사야 / 나배사미사미나사야모하자라미사미나사야 / 호로호로마라호로하례바나마 / 나바사라사라시리시리소로소로못댜못댜못다야못다야 / 매다리야니라간타가마사날사남바라하리나야마낙시바하싯다야사바하마하싯다야사바하싯다유예새바라야사바하니라간타야사바하바라하목카싱하목카야사바하바나마하따야사바하자가라욕따야사바하상카셥냐예못다나야사바하마하라구타다라야사바하바마사간타이사싯쳬다가린나이나야사바하먀가라잘마이바사나야사바하나모라다나다나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사바하 위표를통해바라무동작 가 와 mi' 음의연관성을확인할수있다. 높은 mi' 는악구의시작에사용되고, 동작 가 는가장기본이되는바라무동작으로무용단락의앞부분에배치된다. 사다라니바라역시모든진언의시작은 mi' 로높게질러낸다. 가사 다라다라 와 자라자라 의경우 mi' 는출현하지않지만, do' 를 4박동안지속하여분위기를전환시킨다. 따라서동작 가 는 mi' 음을수반하며, mi' 음은악구의시작및동작 가 의시작을동시에나타낸다고할수있다. 마지막으로악곡과바라무동작의구성형태를살펴보겠다. 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무용 선율형식을살펴보면아래표와같다. < 표 10> 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의동작과선율 사다라니바라 변식진언시감로수진언일자수륜관진언유해진언 동작 a b b' c a b+ b'+ c+ a c a c+ 선율 a b b b b b b b b b b 가사나모라 ~ 라야 모지 ~ 나가야 옴 ~ 다사명 나막 ~ 삼마라 천수바라 하리 ~ 사다야 도로 ~ 미연졔 다라 ~ 나사야 나배 ~ 바라 하리 ~ 나모라 동작준비 b" b" 4 b" b" 2 b" 4 b" b" 선율 d d d d 4 d d d' 2 d 4 d 6 d' 다나 ~ 사바하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105 바라무동작과선율의단락구성은거의일치한다. 사다라니바라는진언에따라크게 4부분으로구분되고, 이분류는바라무와범패가동일하다. 세부구성단위는 < 변식진언 > 만일치하고, 후반부로진행함에따라일부차이를보인다. 선율은길이를확대하였고, 바라무는일부동작을구성에서제외하는방법을사용하였다. 천수바라의경우가사에따른큰단락의구분은없지만, 높은 mi' 음과동작 가 로단락을구분할수있으며, 그단락은대부분일치한다. 다만선율의단위가무용동작에비해세분화되어있다. 특히후반부의 하리 ~ 나모라 에서는 360도회전동작이계속반복되는데, 이때문에선율형을자주반복하고높은음을내어분위기를환기시킨것으로추측할수있다. 위의세가지요소를통해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연관성을살펴볼수있다. 먼저광쇠의신호는무용 음악의시작과끝에관여하며, 특정무용동작을지시한다. 또한특정동작은높은 mi' 음을수반하며, mi' 음은악구구분과동작단락구분의기준점이된다. 마지막으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은동일한단락구분지점을공유하고있다. 이를통해바라무와범패의밀접한관련성을확인할수있다. Ⅳ. 결론 본고에서는바라무와범패의상호관계를파악하기위하여마산백운사석봉 ( 石峰, 1955~ 현재 ) 의사다라니바라와천수바라를살펴보았다. 두바라무의동작구성과선율형식, 반주악기광쇠 징의기능을파악함으로써그관련성을확인할수있었다. 먼저바라무의동작구성을살펴보았다. 사다라니바라무의동작은 A1(a+b+b'+c)+A2 (a+b++b'+ +c+)+a3(a+c)+a3(a+c+) 로도식화할수있다. 이안에서 a는시작, b는전개, c는종지를위한동작으로구분된다. 천수바라는동작 가 + 다 + 나 의한틀을기본구성으로삼으며, 이기본동작은사다라니바라의 동작 b 와유사하다. 천수바라는악곡의시작에서끝까지동작 b를총 14번반복하는것으로나타났다. 다음으로선율을살펴보면두악곡은동일한음조직및박자구조를가지고있다. 출현음은상행 mi la do' re' mi', 하행 mi' 're' do' la sol mi로, 메나리토리이다. la음을크게떠는점이민요와차별된다. 박자구조는 3소박불규칙박자이다. 다만천수바라에서 2소박의헤미올라리듬이출현하는데, 이는무용동작과관련된것으로나타났다. 두악곡의선율형식을살펴보면, 사다라니바라의선율은 A1(a+b+b+b)+A2(b+b+b)+ A3(b+b )+A3(b+b ) 로요약된다. 선율형 b는최고음 mi' 에서최저음 mi로순차하행후 la를중심으로상 하행을반복하다가 mi에서 la로상행하여마친다. 한편천수바라역시선율 d가반복된다. 선율의진행역시사다라니바라의선율 b와크게다르지않다. 다만악구의처음을 la에서 mi' 로

10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상행하며, 악구의끝은 la에서 do' 로상행하여지속감을준다. 악곡의끝은 la로종지한다. 낮은 mi 음역시시가를짧게사용하고바로 la음으로상행하는특징이있다. 이선율형 d는악곡의시작에서종지까지총 22번반복된다. 마지막으로천수바라와사다라니바라의분석결과를통해바라무와범패의상관관계를유추해보았다. 먼저광쇠의신호는무용 음악의시작과끝에관여하며, 특정무용동작을지시하였다. 또한바라무의특정동작은높은 mi' 음을수반하며, mi' 음은악구구분과동작단락구분의기준점이되었다. 더불어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은동일한단락구분지점을공유하고있었다. 불교의식음악범패홑소리는대부분작법무를수반한다. 무용동작에상징성을담고정성스런범패선율에가사를얹어, 그의미를의식의대상에게전달하는데그목적이있기때문이다. 따라서음악요소의변화요인을무용이나의식 교리등음악외적인것에서찾을필요성이있다. 본고에서는범패리듬의변화나특정음의사용및반주악기의연주가바라무의동작과밀접하게관련됨을확인하였다. 앞으로도경제및호남작법의분석을통하여작법무와범패의연관성을알아보는연구가이루어져야할것이다.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107 [ 참고문헌 ] 1. 단행본김용환 윤소희, 신라의소리영남범패, 서울 : 청우서적, 2010. 이애경, 영산재작법무, 서울 : 푸른세상, 2006. 손인애, 경산제불교음악 Ⅰ, 서울 : 민속원, 2013. 2. 논문기연정, 불교사상에따른천수바라춤연구,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3. 김민재, 중요무형문화재제50호영산재바라춤음악연구, 서울 :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7. 도현주, 천수바라무에관한고찰 : 부산시무형문화재제9호영산재를중심으로, 부산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4. 백재화, 영산재의바라춤연구, 서울 : 동덕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8. 서정매, 영제범패 < 영산작법 > 연구, 부산 : 부산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5. 손선숙, 악학궤범 < 봉래의 > 여민락무의이동구조탐색,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제23호, 한국무용기록학회, 2011. 심상현, 작법무거행의배경과의의, 공연문화연구 제12집, 공연문화학회, 2006. 심상현, 작법무의연원과기능에대한고찰,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2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2. 이영숙, 사다라니바라춤의기본춤사위연구, 서울 : 서강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8. 이인경, 사다라니바라춤에관한연구 : 경제와완제의비교를통하여, 서울 :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9. 이현주, 천수바라춤의움직임특성을통한불교의사상적의미고찰, 무용역사기록학 제11집, 한국무용기록학회, 2006. 임미선, 호남범패의전승과특징, 한국음악연구 제38집, 한국국악학회, 2005. 차형석, < 사다라니 > 의음악적연구, 한국음악연구 제48집, 한국국악학회, 2010. 최우정, 중요무형문화재제50호영산재천수바라춤연구, 서울 :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7.

10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5) Relevance of Baramu Motion with Beompae Melody of Baekun Temple in Masan -Focused on Sadarani Bara and Cheonsu Bara of Seokbong- Yang, Youngjin* In a single sound of Beompae( 梵唄 ) that is a Buddhist ritual music, Jakbeobmu(bara dance) is accompanied. In some single sound among these, Baramu is performed consecutively and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clarify a relation between Baramu and Beompae by taking Sadarani( 四多羅尼 ) bara and Cheonsu( 千手 ) bara of Seokbong(1955~present) of Baekun temple in Masan as research material and its deduced result is as follows. First, when observing motion composition, based on motion of a+b+c, variety was given in Sadarani bara and Cheonsu bara took one frame of motion a+b+c as basic composition. Basic motion of Cheonsu bara was represented to be similar to motion b of Sadrani bara. Melody of two musical tune is consisted of menari tori(musical composition of Korean eastern region) and irregular ternary subdivisions and contrary to folk song of menari tori, it was characterized by vibrating la sound loudly. In Cheonsu bara, hemiola rhythm of 2+2+2 was appeared and this was confirmed to be used as a signal directing dance motion. When observing melody pattern of these two musical tunes, Sadarani bara mainly repeated melody type b and Cheonsu bara used only melody type d repeatedly. Two melody types were in common in terms of the fact that it was started from maximum sound of mi' and increased/decreased based on la after sequential increase and both ended with la. Through analysis result of motion and melody of Cheonsu bara and Sadarani bara, correlation between Baramu and Beompae was observed. First, signal of Gwangsoe(small gong) and Jing(Large gong) is related with start and end of dance, music and it directed specific dance motion. Specific motion of Baramu accompanies high mi' sound and mi' sound becomes a reference point of division of musical phrase and paragraph of Baramu motion. In addition, Baramu motion and melody shared same paragraph division point. Through these three elements, it was confirmed that variety of Beompae rhythm, use of specific sound and performance of accompanying instrument have close relation with Baramu motion. ** Researcher of National Gugak Center

영제바라무동작과범패선율의관련성 109 [key words] Jakbeobmu( 作法舞 ); baramu( 哱囉舞 ); Sadarani( 四多羅尼 ) bara; Cheonsu( 千手 ) bara; Beompae( 梵唄 ); Gwangsoe(small gong); Baekun( 白雲 ) temple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5 월 10 일 2015 년 6 월 8~16 일 2015 년 6 월 18 일

국악원논문집 제31집 111~144쪽 2015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6) 한국 초전불교와 서역 불교문화를 통하여 윤소희* [국문초록] 본고에서는 월명사가 부르지 못했던 성범(聲梵) 의 실체를 찾아서 실크로드와 중국 그리고 한국의 초전불교의 면면 을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중국 초기불교 시기에 서역에서 온 유랑승들이 많았고, 이들은 범어범패로 신통력을 부리거 거나, 다라니나 진언이 지닌 의성어 의태어의 유희성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사실을 포착하였다. 월명사가 활동한 시기에 중국에는 조식에 의한 당풍 범패가 창제된 후였으므로 서역풍 범어범패와 당풍의 한어(漢語)범패가 모두 들어왔 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찬탄의 게송을 노래하는 한어 범패를 이변(異變)을 물리치기 위해 불러달라고 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반면 3세기 전 부터 주술적 방편의 밀교신앙이 실크로드를 포함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였고, 한국의 불교수용과정에도 이러 한 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부터 범어에 대한 다라니신앙이 있었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한국 승려들 의 범자관련 저술들에 미루어 볼 때, 범어범패의 주술적 신통력이 통일신라 당시 익히 행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경덕왕이 노래를 불러 재앙을 물리치려 했을 때 월명사가 성범을 부를 줄 모른다 는 말을 먼저 했던 것은 당시 신라에 범어범패가 널리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어범패는 인도풍의 성격을 유지한 체 실크로드와 중국에서 불리었다. 그러나 이들 범어범패가 실크로드와 중국 서방에 머문 시기가 수 백 년인데다 한반도에 들어 온지도 수 백 년이 지난 당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성범 은 실크로드와 신라의 색갈이 다소 가미된 인도풍 범패였을 것으로 추정 된다. 이와 더불어 범본(梵本) 불경의 역경으로 인해 한어성조가 규정되었고, 찬불가가 중국의 궁중음악이었던 것을 비롯 하여 삼분손익 정악 아정(雅正)의 개념 또한 서역음악의 영향이었 듯이 중국 악가무 전반에 걸쳐 서역음악의 영향이 없는 곳이 없었다. 이는 한국 전통음악에도 마찬가지이나 본고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재장에서 불리는 범어범패이다. 느리고 장인된 선율로 부르는 한어범패와 달리 다라니나 진언을 노래하는 범어범패는 법기 반주로 흥겹 게 노래한다. 이는 초기 범어범패의 대중 친화적 성격과 닮은 점 이어서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가 기대된다. [핵심어] 월명사, 성범, 서역범패, 신라의 범패, 범어범패, 실크로드 불교음악 <차 례> Ⅰ. Ⅱ. Ⅲ. Ⅳ. Ⅴ. Ⅵ. ** 부산대학교 출강. 머리말 중국 초전불교와 서역문화 한국 초전불교와 서역문화 범어의 한반도 전래와 유통 월명사의 성범 과 범어범패 맺음말

11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Ⅰ. 머리말 경덕왕(재위 742~765) 19년(760년) 경자년 4월 초하루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 열흘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자 월명사를 불러 이를 해소하려하였다. 이때 월명사는 향가만을 알 뿐 성범(聲梵) 은 못 한다 1) 고 하였다. 여기서 월명사가 하지 못한다고 했던 성범 은 어떤 노래였을까? 이에 대하여 이혜구는 고풍의 범패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고,2) 국악개론 에는 고풍의 범패는 당풍이나 향풍 이 아니기 때문에 서역에서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고 하였다.3) 월명사가 말했던 성범 에서 범(梵) 은 브라마를 한역한 것으로 신성하다 청정하다 는 뜻이 담 겨있다.4) 브라마 는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만유의 근원이자 우주의 창조신이므로 범어 에는 창조주의 영(靈)에서 비롯된 언어 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범 은 인도 라는 의미로 쓰여왔는데, 여기에는 인도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제반 사항을 볼 때 월명사 가 못 부른다고 했던 성범 은 중국풍과는 다른 인도풍 혹은 실크로드 지역 즉 서역풍의 범어를 가사로 하는 노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선행연구를 검토해 보면 김성혜의 신라의 불교음악 수용 양상에 관한 고찰 이 있다. 이 연구에 서는 주로 고구려와 중국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어 서역 불교음악에 관한 내용과는 거리가 있 다.5) 이상에서 보듯이 그간 국악학계에서는 월명사의 성범 이 고풍 이거나 서역풍 일 것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성범 과 관련한 구체적인 연구는 없었다. 한편 실크로드와 한국 불교음악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바 있지만 담론형식으로서6) 중국과 서역에 관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 이에 본고에서 는 앞서 발표된 내용을 축약하고, 서역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완하여 월명사 이전에 신라에 유입되 었을 범자와 이에 수반되는 불교문화를 조명하므로써 월명사가 모른다고 하였던 성범(聲梵) 의 실 체를 찾아서 사적(史的) 문화적 배경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연구 방법과 범위로는 문헌 뿐 아니라 유물과 같은 자료를 두루 활용하여 월명사 이전의 불교음 악 즉 성범을 둘러싼 당시 상황을 다각도로 추적해 보겠다. 왜냐면 문헌상으로 보면 기원전 139년 1) 三國遺事 第五卷, 月明師 兜率歌 條: 月明師兜率歌: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並現. 挾旬不滅. 日官奏請緣僧, 作散花 功德則可禳. 於是潔壇於朝元殿. 駕幸靑陽樓. 望緣僧. 時有月明師, 行于阡陌時之南路.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明奏云. 臣僧但屬 於國仙之徒. 只解鄕歌. 不閑聲梵. 王曰. 旣卜緣僧. 雖用鄕歌可也. 2) 이혜구, 신라의 범패, 한국음악연구, (서울: 국민음악연구회,1957), 252쪽. 3) 장사훈 한만영, 국악개론, (서울: 한국국악학회, 1975), 173쪽. 장사훈, 한국음악사, (서울: 세광출판사), 131쪽. 성범 을 범패 로 번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송방송은 진감국사의 귀국 이전에 범패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음악통사, (서울: 일조각, 1984), 129쪽. 한만영은 그의 또 다른 저서에서 한국의 범패는 당풍,향풍(신라풍)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고풍의 세 가지 종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불교음악연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14쪽. 4) 김용환 외, 불교 예술과 미의식,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부, 2011), 193쪽. 5) 김성혜, 신라의 불교음악 수용에 관한 고찰, 한국음악연구 제40집, (한국국악학회,2006), 5-20쪽; 신라의 외래음악 수용 양상, 한국음악사학보 제35집, (한국음악사학회, 2005), 5-31쪽. 6) 윤소희, 실크로드와 한국 불교음악 담론: 월명사의 성범(聲梵)의 실체를 찾아서, 아시아음악과 문화, (제19회 아시아태평양 민족음악학 국제학술회의, 2014), 81-124쪽.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13 한무제(漢武帝)가 서역과의 동맹관계 수립을 위해 사신으로 보낸 장건(張騫)에 의해 개척된 것이 서역교류의 시초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으로 볼 때, 중국의 비단이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이집트에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 300년 후에는 유럽지역에서도 중국의 비단이 유통되고 있 어7) 문헌 보다 훨씬 앞선 서역 교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범 이라는 단어 외에는 그 어떤 실마리도 없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실체를 찾기 위해서는 문 화현상을 두루 조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에서 유형(類型, type)은 공통되는 문화형식을 말하는 데, 그것은 주로 전파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양식(樣式, style)은 드러난 문화의 가변적 인 표현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할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타 종교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기독교가 유입된 이래 약 100여년이 흘렀는데 요즈음 가톨릭 미 사곡이나 성모송과 같은 음원을 들어보면 목탁만 치면 염불이라고 할 만큼 한국적인 곡들이 많다. 한편 오늘날 소통되고 있는 용어 중에 성범 과 가장 가까운 것은 범패 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인식하고 있는 범패 의 개념은 대개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전문적인 불교의식음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대만, 일본에서는 송경 염불 게송과 찬(讚)이 모두 범패이다. 한국의 범 패 개념이 이토록 축소된 데에는 조선의 억불과 일제의 사찰령, 근대 서구문화의 급류 속에 단절 되어온 대중 범패의 소멸이 있었기 때문이다.8) 이에 본고에서는 근대 이후 작곡가에 의해서 창작 된 것이 아닌 불교의식이나 신앙에 수반된 모든 율조를 범패 로 지칭할 것이며, 서역 은 실크로드 지역을 폭넓게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Ⅱ. 중국 초전불교와 서역문화 채집경제시대의 고인(古人)들은 정주(定住)란 것을 아예 생각 할 수도 없었으므로 기동력이 왕 성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므로 동서 교류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나우 강변의 흑해와 볼가 강변 등에서 출토된 한(漢)나라의 거울, 방제경(倣製鏡)9), 옥 구검(玉具劍) 그리고 흉노식 동기와 서아시아에서 동아시아 일대에 걸쳐 출토되고 있는 채색토기 와 옥제품 등이 그 예이다.10)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비롯된 불교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 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전 부터 실크로드 지역에 머무르며 이곳 문화의 색깔이 입혀졌다. 불교를 신봉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상을 보면 모두가 그들의 생김새를 닮아있다. 이렇듯 어 7) Richard C, Foltz, op. cit, 3쪽. 허남결, 실크로드의 호상(胡商) 소그드상인들의 재조명: 종교문명의 동전에 미친 영향을 중심 으로,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7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4), 105쪽. 8) 윤소희, 수륙재의례와 일반대중 범패: 대만 수륙법회와 산동적산원 불교의식을 통하여, 韓國禪學 제35호, (서울: 한국선학 회, 2013), 321-354쪽. 9) 모본(模本)이 되는 청동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청동제로 본 뜬 거울. 한국에도 이와 같은 거울이 다수 출토되어 있다. 10) 나가사와 가즈도시 저, 이재성 역,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서울: 민족사, 1994), 18쪽.

11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떤문화가특정지역에머무르다보면자연히자신들의모습을투영시키게된다. 석가모니입멸후고구려소수림왕대 (AD4세기) 에불교가공인되기까지는천년에가까운세월이흘렀다. 이기간에머물렀던지역은서역즉중앙아시아와중국서방의실크로드지역이다. 따라서한국에불교가들어오기전머물렀던이지역문화는의례진행에수반되는송경율조를비롯하여불교무용등중국불교에서다밝히지못하는중요한실마리를제공할것이다. 1. 서역의시원과지역적배경 서역 이란명칭이처음나타나는문헌은 한서 ( 漢書 ) 의 서역전 권 96이다. 본사료를보면, 한무제 (BC140-87) 가흉노에대항해서대월씨 ( 大月氏 ) 에장건을파견하여 서역경영 이시작되었다 고적고있다. 이는기원전 60년에전한 ( 前漢 ) 이숙적흉노를제압하기위해타림분지의중앙부에위치한우레이청 ( 五壘城 ) 에서역도호부 ( 西域都護府 ) 를설치하면서부터형성된지역으로좁은의미의 서역 이다. 한대이후중국의대외교섭과교류가점차확대됨에따라 서역 의범위가서쪽으로더확대되어, 당대 ( 唐代 ) 에이르러서는중앙아시아와천축 ( 인도 ) 파사 ( 페르시아, 이란 ) 안식 ( 이란북부 ) 따쉬 ( 大食 : 아랍 ), 사자국 ( 스리랑카 ), 불름 ( 대진 : 동로마 ) 까지포함된다. 이는넓은의미의서역으로서근세기까지통용되었다. 서역과문화교류가가장활발했던시기는당대 ( 唐代 : 618~907) 이다. 당시서방의문물이활발히중국으로도래하였는데, 이때이란의조로아스터교, 마니교및로마에서이단시 ( 異端視 ) 되었던그리스도교의한파인네스토리우스파도중국으로전래되었다. 7세기중엽당나라의타림분지에안서도호부 ( 安西都護府 ) 를설치한시기는실크로드 11) 의최성기 ( 最盛期 ) 였다. 당시실크로드육로는남로와북로의두길이있는데, 중국학자들은이지역에서발견되는수많은벽화와유적을통해불교음악에대한해설을내놓기도하였다. 실크로드의인적구성은파미르고원을중심으로동투르키스탄과서투르키스탄으로나누인다. 동쪽은현재의중국신장위구르자치구에해당하는지역, 서쪽은소련연방으로부터독립한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다지키스탄의다섯공화국으로이루어졌다. 이중이란계인타지키스탄을빼고는모두투르크계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지역은민족적으로나종교 문화전반에걸쳐명료한단층이형성되어있다. 전기는아리아인의일파가타림분지의주변오아시스에분산거주하며대상무역으로번영을구가하던시기로다방면으로섭취한독특한문화가있다. 이후천산이북과몽골리아초원지대의유목세력인투르크계의종족은타림분지로이주하여사막의새로운거주자로화하면서이슬람문화에젖어들었다. 이시기의전기를아리 11) 독일의지리학자리히트호펜 (Ferdinand von Richthofen) 의저서 China, ( 총5권 ) 중 1권후반부에실크로드라는말을쓰기시작했다. 박주식, 실크로드의생성과발전및쇠퇴, 민족연구 제27권, ( 한국민족문화연구원, 2006), 150-164쪽 ; 김규현, 대당서역기, ( 서울 : 글로벌콘텐츠, 2013), 755-767쪽.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15 안의 시대, 후기를 이슬람의 시대로 칭하고 있으며 전기에서 후기로 이행하는 시점은 대개 9세기 경이다. 이 중에 월명사가 말한 성범과 관련되는 시기는 전기에 해당하는데, 이 당시 실크로드를 왕래한 소그드인은 신라에 서역문화를 전달하는 주역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신라 항목에서 논하겠다. 2. 불교유입과 역경 석가모니는 승려들이 집을 짓고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계율로 금했다. 그리하여 초기에 중국으 로 넘어온 승려들도 일정한 거처를 두지 않고 돌아다니며 포교하는 유화승들이 많았다. 그 한 예로 거지를 화즈(花子)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유화승을 일컫던 교화자(敎化子) 에서 나온 말이다.12) 중 국에 공식적으로 불법을 전한 승려로 알려진 축법란(竺法蘭)은 유랑하며 포교를 하다가 낙양에 오 게 되었고, 안식국(安息國)의 태자였던 안세고(安世高), 대상(隊商)의 아들 담가가라(曇柯伽羅), 간 법개(干法開) 등 걸식 유화승의 기록이 많다.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문자를 쓸 줄 몰랐으 므로 유랑승들이 외는 범어 주문을 따라하며 신심을 키웠고, 그 가운데 유랑승들이 일으켰던 신통 력이 화제의 중심에 서며 포교의 효과가 컸다.13)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불교전파를 위해서는 범어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했다. 역경에 관련된 승려들은 인도 서북쪽 다위에씨(大月氏) 안스(安息), 캉주(康居) 등지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 걸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 인물인 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3-413)은 구마라염의 아들로 쿠자국 왕의 누이동생 기바를 어머니로 하여 쿠자국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름을 합하여 구마라습이라하였는데, 줄여서 라습(羅什)으로 번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한다. 그는 7세 때 출가하여 북인도 각지에서 수학한 후 불학(佛學)에 대한 경지가 높았다. 383년 (건원19) 진왕이 승전하자 401년(융안5) 구마라습으로 하여금 범어 경전을 번역토록 하여 성실 론 심송률 대품반야경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십주비바사론 등 경률론 74부 380여권이 번역 되었다.14) 인도나 실크로드 지역의 승려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활동한 것과 반대로 중국에서 서역으로 건너간 승려들도 많았는데 이들을 입측승이라고 한다. 그 중에 최초로 인도로 간 승려는 법현(法 顯)이다.15) 법현은 399년(동진 융안3)무렵 혜경 도정 혜탈 혜외 등과 함께 장안을 떠나 실크 로드의 여러 나라를 거쳐 북인도에 갔다가 불루사에서 동행들과 작별하고, 홀로 여러 성지(聖地)를 순례한 후 마갈타국에 3년간 머물면서 마하승기율 을 비롯한 경과 율을 번역하였다. 이 외에도 12) 澤田瑞穗, 佛敎と中國文學, (東京: 國書刊行會, 1975), 3쪽. 조명화, 불교와 돈황의 강창문학, (서울: 이회출판사, 2003), 173쪽. 13) 조명화, 앞의 책, 173-174쪽. 14) 길상(吉祥) 편, 불교대사전 상권, (서울: 홍법원, 2003), 213쪽. 15) 길상(吉祥) 편, 앞의 책, 839쪽. 동명이인으로 중인도 나란타사 승려가 있기도 하다.

11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수 많은 입축승(入竺僧)들로 인하여 중국과 인도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였다. 이러한 왕성한 서역교 류가 신라의 월명사 이전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겠다. 3. 한어에 미친 범어의 영향 1) 한어성조와 범패 중국에서 문자를 익힌다는 것은 그 생김새와 발음을 동시에 배우는 것이었으므로 발음만을 따로 표기해야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인도로부터 불교가 유입되면서 한어와 이방 언어의 접촉 이 이루어졌고, 이때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발음을 표기해야만 했다. 따라서 한어 성조의 형성과 변화는 인도에서 온 범어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16) 중국 문학은 문자의 고립성과 단음성(monosyllabic-isolating language)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대 구 형식과 성률(聲律) 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엄격한 수식 규율이 만들어내는 중국문학의 언어 적 제한은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는 보기 힘든 구어와 문자의 분리, 이른바 형문(形文)과 성문(聲文)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문자가 각 지역의 방언 독음과는 격리돼 사용되는 언어형 문학이라 할 수 있다.17)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歌)하거나 영(詠)하거나 간에 모두 패라고 하였는데, 중국에 들어와서는 경전의 문구를 영하는 것은 전독이라 하고, 창송문을 가하는 것은 범패 라고 하였는데,18) 이 또한 한어(漢語)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고승전 에 나오는 승려들의 포교행을 보면 주어(呪語)나 주문(呪文)처럼 구전(口傳)을 통한 것이 더 많았다. 심지어 옛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을 글자로 적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진언과 다라니(dhāraņi)는 무의미한 어휘나 의성어, 의태어를 반복함으로써 쉽게 기억하고, 이를 통해 삼매에 들게 하는 구조가 있다. 신주(神呪) 다라니의 주어(呪語) 들은 본래 밀교에서 중 시된 것이었으나 이 당시 실크로드와 중국의 민중들은 밀교 교리의 의미 보다 그저 들어서 재미있 고 신통한 다라니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따라서 유화승들은 교리 보다는 민중의 관심을 사기 위하 여 율조를 바탕으로 하는 또 다른 언어 예술을 주어(呪語)와 섞어 사용하면서 대중들 속으로 들어 갔다. 이러한 과정에 주문이 지니는 본래의 신비성이나 주술성은 약화되고, 흥미와 오락성으로 대 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비난하는 여론이 생기기도 하였다.19) 16) 심소희, 한자 정음관의 통시적 연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37-71쪽. 윤소희, 중국 한어 성조와 한국 범패, 국악원논문집 제28집, (국립국악원, 2013), 121쪽. 윤소희, 중국 한어 성조의 입성과 범패의 맺음형: 영남범패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8집, (동아사불교문화학회, 2014), 145-176쪽. 최영애, 中國語音韻學, (서울: 통나무출판사, 2000), 15-22쪽. 17) 郭紹虞, 中國文字型與言語型的文學之蓮變, (北京: 丹靑圖書, 1985), 327-335쪽. 金經一, 중국 구어체 언어의 문학적 수용: 燉煌 俗文學 作品을 中心으로, 동서문화교류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1997), 4쪽. 18) 然天竺方俗 凡是歌詠法言 皆稱爲唄 至於此土 詠經則稱爲轉讀 訶讚則號爲梵唄, 高僧傳 권 13.(대 50 P415b), 조명화, 앞의 책, 135쪽.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17 이러한 영향으로 불교문화와 범어는 돈황의 속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를 요약해 보면. 첫째 유교가 시대적 구어와 거리가 있는 문자로 그 사상을 전파하고 유지해 왔던데 비해 불교는 고승들의 구어가 그대로 남겨 회자되었고, 이들은 후대 당송 백화문의 뼈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둘 째 불교가 가져온 대중성과 통속성으로 종교와 서민문학의 묘한 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강 경문 변문 등의 구어체 문학이 대두되었다. 셋째 불경의 번역으로 새로운 언어 형태를 수용하므 로써 당시 사회에서 일찍이 없었던 자유스럽고 평이한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어조를 제공했다. 귀 족적이고 엄숙한 유교나 현실도피적인 도교와 달리 현세와 또 다른 세계를 밀접하게 연결 짓는 종 교적 공간으로 확대되고 심화되었던 것이다. 2) 돈황의 강창문학과 한국의 화청 민중의 속어로 설법하였던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중국에 들어오므로써 대중친화적인 구어체 사 설이 돈황에서 다량 발견되었다. 석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에는 불법을 노래하던 민간 유흥적 가 사들이 많았는데, 이것이 바로 강창문학이다. 강창문학에 담긴 일화를 소개하면, 팔관재를 지내는 긴 밤, 자정 무렵이 지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음에 겨워한다. 이때 지종이 법좌에 올라가 한번 큰 소리로 범패를 부르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20) 는 대목이다. 그런데 한국에도 근대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 밤재를 지낼 때 한 승려가 징을 치며 회심곡을 하면 보살 들 주머니를 다 털었다던 풍속이 있다. 이때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사설들은 실크로드지역의 강창문학과 연결되어 후대로 가면서 대중 친화적인 불곡 사설로 발전하였고, 이들은 대중 불교가 성했던 송대에 이르러 만개하였다. 송대에 는 마을의 중심에 사찰이 있고, 사찰 마당에는 오락장이 있었는데 여기서 담경(膽經) 설창(設 唱) 탄창과 같은 노래들이 불리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저간에는 돈황문에 보이는 목련구 모변문 부모은중경 과 같은 것이 있어 오늘날 한국의 회심곡도 이러한 흐름과 같이한다. 4. 중국음악에 미친 인도불교의 영향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음악의 최초 중국 전래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진나라 최표(崔豹) 의 고금악론(古今樂論), 당나라 오경(吳競)의 악부고제요해(樂府古題要解) 에 의하면 장건에 의해 서역길이 개통된 후 서역 악기인 호각(胡角)이 전래되고, 이연년(李延年)이 이 호각으로 연주 하는 신성이십팔해(新聲二十八解)를 지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중국 학자들은 이 기록을 들어 중 국에 전해진 최초 서역음악으로 보고있다.21) 중국에서 호악(胡樂)이라 불리는 서역 음악의 전래는 19) 조명화, 앞의 책, 175쪽. 20) 高僧傳 권 13.(대 50 P414a), 釋智宗조, 조명화, 앞의 책, 139-140쪽. 若乃八關長夕 中宵之後 四衆低昻 睡蛇交至 宗則昇座一轉 梵響干雲 莫不開神畅體 豁然醒悟 21) 徐寶餘, 論絲路音樂對中古文學內質的影響, 박진태 엮음, 실크로드의 예술, (서울: 도서출판 박이정, 2008), 67쪽.

118 국악원논문집 제31집 한대에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시대에 지속적인 확대과정을 거쳐 수 당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 하였다. 이 당시 중국에 있어 실크로드 교역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불교를 둘러싼 서역 문물의 유입이었 다. 불교는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경전의 전파가 주된 것이었으므로 서역음악은 자연히 문학과 막역한 관계를 지니고 진행되었다. 장춘석은 그의 논문 論絲路音樂對中古文學內質的影響 를 통 해 서역음악의 아화(雅化)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동진남북조 시대에 쿠자 천 축 강국(康國) 소륵(疏勒) 안국(安國) 고려(高麗) 등의 외국음악이 중국에 활발히 유입되었는 데, 그 중에 절대 다수가 서역음악이었고, 이들의 전래 초기에는 수준이 낮은 속악으로 인식되다가 점차 아화 과정을 겪으면서 서역음악의 지위가 강화되어갔다 는 것이다. 서역음악이 궁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는 위진남북조시기이다. 잦은 전쟁으로 주나라 때 부터 행해 오던 아악이 결여되자 그 빈자리를 서역음악이 채우면서 종묘제례에도 서역음악이 사용 되었다. 그런가하면 양나라의 무제는 궁중에서 불교의 게송을 부르게 했다. 그리하여 수서 악지 에는 양무제가 정악(正樂)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을 서술한 것이다. 22) 는 기록이 남아 있다. 양무제는 직접 불곡을 창작하기까지 하였는데 이 당시 한유(韓愈)의 시 화산녀(華山女)에는 거리 마다 불경을 말하고 종소리와 나(螺) 소리가 궁정을 시끄럽게 한다 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이는 당대의 연악에 불교음악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무제 당시에 논 악자칠십팔가(論樂者七十八家) 라는 학설이 생겼는데, 이는 훗날 삼분손익법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 다. 이후 서역음악은 부단히 상류층 음악에 편입되면서 주(周) 진(秦) 한대(漢代)에 형성된 아 정(雅正) 의 개념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23) 더불어 서역음악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중국의 12율 형 성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위 북주 북제가 서역의 영토와 인접하여 서역의 악무가 중 원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어지는 수대에는 국제음악 활동이 활발하여 고구려기와 백제기 등이 연주되었으니 이때 함께 연주되던 서역음악이 당연히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수나라의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칠부 기와 구부기에 속한 음악들을 보면, 천축기를 비롯하여 대부분 서역으로 통칭되는 실크로드지역 음악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수대는 음악문화가 번성하면서. 율려와 악조이론의 정립을 보게 되었 다. 수나라 개황(開皇 589~600) 때 설립된 칠부기는 고려기(高麗伎: 고구려음악)를 비롯해 국기(國 伎) 청상기(淸商伎: 중국음악) 천축기(天竺伎: 인도음악) 안국기(安國伎, Bokhara음악) 쿠자 기(龜玆伎: 庫車伎) 문강기(文康伎: 晉의 假面伎)로 구성됐다. 이 칠부기는 수나라 대업(大業 605~616) 때 구부기(九部伎)로, 당나라 태종(626~649) 때 십부기(十部伎)로 확대되었다.24) 이 당시에는 서역 각처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연주자들과 가인(歌人)들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2) 隋書 第305頁 名爲正樂,槪述佛法, 徐寶餘, 앞의 논문, 69쪽. 23) 박진태 엮음, 앞의 책, 80-822쪽. 24)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서울: 도서출판 보고사, 2012).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19 대표적인 인물로 소지파를 들 수 있다. 그는 쿠자 출신의 비파명인이었으나 중국으로 건너와 활동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조묘달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범어 Sujva 를 번역한 묘달(妙達)에서 비롯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에는 중앙아시아와 인도는 물론이요 미얀마와 신장 일대에 서 유입된 음악이 민간 곡조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이 곡자사(曲子詞) 이다. 이로써 외래음악인 서역음악과 중국의 민간음악이 융합된 다양한 불곡이 생겨났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의식이 양무제와 관련이 있는 것을 볼 때25), 중국 불교문화 혹은 음악이라는 것이 실은 서역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역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 지역 색깔의 차이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번성한 음악문화를 향유 한 쿠자의 벽화들 중에 음악 연주를 하고 있는 그림들을 보면, 5현 비파 소 횡적 수공후 류 트 등이 있다. 서역문물 교류에서 쿠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면 투루판(高昌)은 한대(漢代)부 터 있던 도시국가이지만 당대에는 중국문화가 유입되어 음악문화의 독특한 양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비해 코탄은 간다라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한 때 인도의 문화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바로 이곳에 4현 류트, 수형 하프와 팬파이프와 같은 악기들이 있었다.26) 한국의 불상과 불교미술이 대부분 간다라양식인 점에 미루어 볼 때27) 앞으로 코탄과 한국음악을 비교해 보면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불교의 게송과 찬팅이 양나라의 궁중음악으로 연주되었던 상황을 볼 때, 이어지는 수대의 궁중음악에는 다분히 불교적인 내용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수대의 7부기와 9부기로 확대되었다가 당의 태종(626~649) 때는 또 하나의 부기가 늘어나 십부기(十部伎)가 되었다. 십부 기에는 서량기(西凉伎) 청상기(淸商伎) 또는 청악(淸樂) 고려기(高麗伎: 高句麗伎) 천축기(天 竺伎: 印度伎) 안국기(安國伎, Bokhara伎) 쿠자기(龜玆伎: 庫車伎) 강국기(康國伎, Samarkand 伎) 소륵기(疏勒伎, Kashgar伎) 연악(宴樂) 고창기(高昌伎)로 구성되었다. 이들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실크로드 즉 서역, 혹은 호악이라 지칭되는 음악과 상통하고 있고, 그 가운데 월명사가 못 부른다고 했던 성범 스타일의 노래가 있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음 항에서는 이러한 서역 의 불교문화가 한반도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월명사 이전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5) 양무제는 수륙재를 최초로 행한 황제로써 우란분법회, 양황보참 등 여러 의례를 고승들과 함께 창제하였다. 윤소희, 한 중 불교음악 연구, (서울: 백산자료원, 2007), 36-51, 205쪽; 道端良秀, 중국불교사, (서울: 우리출판사, 2003). 이외 중국 불교 사를 비롯한 일체의 문헌. 26) 조석연, 고대의 공후, (서울: 민속원, 2008), 73-80쪽을 통해 고대 인도의 공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하였으며, 불탑 에 새겨진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27) 이주형, 간다라미술, (서울: 사계절출판사, 2003)에 의하면 간다라양식은 고대 그리스문화와 융합되기도 하였다. 당시 샤카 파르티아와 탁실라, 스와트, 쿠산왕조의 미술이 시원이었던 간다라양식이 한국 불교문화에 스며든 간다라양식을 구체적이고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2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Ⅲ. 한국 초전불교와 서역문화 종교의 전파는 초보적인 전달 과정과 문화적인 변이를 거치는 공전(公傳)의 두 단계가 있다. 초 전은 민간에서 잠행적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짙고, 공전은 초전 과정을 거친 후 국가의 공식적인 허용에 의해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초전불교의 기록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실크로드 지 역을 통해 직접 들어온 점에서 한국 불교문화의 색깔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교 행위 는 그에 해당하는 경전이나 기도문을 낭송하면서 이루어지므로 종교가 유입되었다는 것은 곧 그에 수반되는 율조가 유입되었음을 의미한다. 1. 고구려와 서역불교 문화 한국의 불교는 소수림왕(小獸林王) 즉위 2년 임신년(372)28) 에 전진 왕(前秦王) 부견(符堅)이 사 신과 승려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내온 것이 최초 전래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공전불교일 뿐 그 이전에 유입된 불교문화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하나의 예로 삼국유사 는 3세 기 중반 중국 위나라의 아굴마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고구려 여인 고도령과의 사이에서 아 도를 낳았다29) 는 기록이 있다. 아도는 5살 때 어머니의 뜻으로 출가하였다가 14살에 고구려로 돌 아와 포교활동을 하였는데 이때는 순도가 고구려에 오기 100년 전의 일이다. 1) 무용총에서 발견되는 서역불교 문화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 벽화고분은 약 95기에 달한다. 이들은 중국에 있는 것이 24기이고, 나 머지 71기는 모두 평양 이북에 분포해있다. 월명사 이전에 해당하는 3세기 초부터 7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고분 벽화는 대개 인물 풍속도, 장식무늬도, 사신도(四神圖)들이다. 수용 소화 재창조 의 과정을 거치는 문화의 속성을 볼 때, 벽화는 그 사회가 속한 문화의 실마리를 제공 할 뿐 아니 라 외래문화의 수용방식을 읽게 해 준다. 그러한 점에서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가 문화 요소의 수 용단계를 보여준다면, 50여년 뒤 출현하는 덕흥리 고분벽화의 행렬도는 소화과정을 보여주는 예이 다.30) 393년(광개토왕 3년)에는 국가의 주도로 평양에 9개의 사찰이 창건되면서 평양은 수도 집안에 버금가는 불교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무렵 고구려 무용총 널방의 북벽 접객도(接客圖)에는 14 명의 남녀가 대열을 지어 춤을 추고 있다. 이 그림 속 사람들의 복식이 서역식인데다 무용총에 보 이는 여러 정황들이 서역 문화의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다. 28) 소수림왕 즉위 2년은 중국 동진(東晋)의 함안(咸安) 2년으로, 효무제(孝舞帝)가 즉위한 해이기도 하다. 29) 三國遺事 卷3, 法興, 第3, 阿道基羅條: 接我道(阿道)本碑云 我道高麗人也 母高道寧 正始問 曹魏人我(姓我也)堀摩奉使句麗 私 之而還 因而有娠 師生五歲 其母令出家 年十六歸魏 省觀堀摩 投玄影和尙講下就業 年十九又歸寧於母. 30) 전호태, 벽화여 고구려를 말하라, (서울: 사계절출판사, 2004), 23쪽.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21 고구려복식과 서역복식을 양식적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다 같이 바지와 저고리를 착용하고, 깃 이나 섶 도련 소매 끝에 다른 색의 단을 두르는 가연법을 취하며, 고깔형 모자인 변형모와 조우 관 같은 둥근 모자를 쓰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고분 연대는 이웃한 각저총과 함께 4세기 말 또는 5세기 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무용총의 공양행렬도는 공양물을 머리에 이고 앞서가는 사람과 그 뒤를 따르는 승려와 귀족의 복식을 통해 5세기 후반 새로운 수도 평양을 중심으로 번성 하였던 서역 불교문화를 읽게 한다.31) <그림 1> 쌍영총 공양 핼렬도32) 2) 안악고분의 서역 불교문화 황해도 안악군 일원에 있는 안악고분은 모두 돌방봉토무덤으로서 발굴 순서에 따라 1 2 3호 분으로 명명한다. 그 중에 안악3호분에는 영화30년(永和十三年十月戊子朔甘六日)이라는 기록이 보 인다. 이는 동진(東晉)의 연호로써 낙랑 옛 땅의 중국계 주민들이 해상 교통을 통해 동진과 교류하 며 동진의 연호를 쓰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때는 서기 357년이므로 고국원왕 27년에 안악3호분 이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벽화에 나타나는 각종 동물 관련 소재의 기원은 서역이나 북방 유목 기마민족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 5세기 초 고구려에 정착된 이 천마상은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 에 신라로 전파되어 경주의 천마총으로 이어진다. 이 그림 중 고구려인과 겨루는 상대는 큰 눈과 높은 매부리코를 지니고 있어 서역인으로 판명되 었다. 이는 사찰에서 흔히 보는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와 같은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서 겨루기를 즐기는 인물인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유추해 보면, 어떤 서역인이 고구려에 와서 살면서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북중국 벽화에서는 좀처 31) 정수일, 앞의 책, 127-130쪽. 전호태, 앞의 책, 50쪽. 고고학사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32) http://hopergy.tistory.com/710

12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럼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고구려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서역과 직접 교류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2>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하는 사람들33)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에는 64명으로 구성된 고취악대가 등장한다. 악대의 구성을 보면 크고 작 은 뿔나팔을 비롯하여 젓대 등 관악기를 부는 사람만 28명, 동원된 타악기도 9종에 이른다. 이러한 고취악은 한대에 서역에서 장건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것이다.34) 중국의 문헌에 의하면 장건이 귀 국하면서(BC122) 많은 서역 문물을 소개하였는데, 그 중 고취악과 횡취악이라는 2종의 군악이 수 입되었다. 한편 장건이 귀국할 때에 마하토륵(摩訶兎勒) 이라는 곡을 수입하였다는 기록이 있 다.35) 여기서 마하토륵 이라는 이름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서 공히 쓰는 크다 는 의 미의 마하 와 미륵 과 유사한 토륵 으로써 인도불교와 관련된 어휘이다. 2. 백제와 서역 불교문화 백제 본기(本記)에는 제15대 침류왕(枕流王)이 즉위한 갑신년(384)에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들어오자 그를 궁중으로 맞이하며 공경했다 는 기록이 있다. 동진에서 건너온 생김새가 낮선 외국 승려를 왕이 친히 교외에까지 나가 맞이했다는 것은 이미 불교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불교가 급속히 전파되었다는 것은 그 전 부터 알고 있던 불교가 양성화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듬해 을유년(385)에 한산주(寒山州)에 절을 짓고 스님 열 분을 모 33) 정수일, 앞의 책, 126쪽에서 인용. 34) 越成, 鼓吹樂 小考, 이화여대 창립 70주년 기념 논문집,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56), 96쪽. 35) 晉書 樂誌, 橫吹有雙角, 卽胡樂也, 張傳望入西域 傳其法於西京 惟得摩訶兎勒一曲, 전인평, 비단길 음악과 한국음악, (서울: 중앙대학교출판부, 1996), 195쪽.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23 셨으니 이것이 백제 공전불교의 기록이다. 이어 아신왕(阿幸王)이 즉위한 태원 17년(392) 2월에는 백성들에게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 는 왕명을 내릴 정도로 불교가 확산되었다. 1) 천축기행 백제 율종(律宗)의 시조인 겸익(謙益)은 529년(성왕 4)에 인도에 다녀와서 율종을 개창하였다. 그는 인도 중부의 상가나 대율사(尙伽那大律寺)에서 범어(梵語)를 배웠다. 특히 율부(律部)를 전공 하여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하였다. 두 승려는 흥륜사(興輪寺)에 머물면서 범어 율문을 국내의 고승 28인과 함께 번역하여 율부 72권을 펴냈다. 당시 백제의 고승들은 겸익 을 도와 윤문(潤文)과 증의(證義)를 하였으며, 그 뒤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이 이 율에 대한 소 (疏) 36권을 지었다.36) 이때 번역한 율은 범본아담장오부율문(梵本阿曇藏五部律文) 또는 비담신율(毘曇新律) 이라 고 하는데, 여기서 아담 이나 비담 은 아비달마(阿毘達磨)의 준말이다. 성왕은 이 신역 율본을 태 요전(台耀殿)에 보관하여 널리 보급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중 국에 이미 오부율(五部律) 등 몇 종의 율부가 번역되어 있었는데도 백제가 인도로부터 직접 원 전을 가져와 번역한 사실은 한국불교가 중국 아닌 서역과 교류해온 점에서 주목된다. 겸익의 율학 으로 인하여 백제불교는 계율 중심의 불교가 되었는데,37) 겸익의 범자에 대한 내용은 제Ⅳ항에서 다시 논하겠다. 또한 당시 인도 불교의 최고 전당 날란다(Nalanda)사38) 에는 늘 백제 승려가 몇 명씩 상주할 정 도로 백제의 천축기행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헤초 스님처럼 견문록을 남기거나 대식 같이 미지의 세계를 탐방한 사람이 없어39) 백제불교의 실크로드 문화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내세울 수가 없어 안타깝다. 2) 금동대향로 향로는 예로부터 악취를 제거하고 부정(不淨)을 없애기 위하여 향을 피웠던 도구로 인도에서는 4,000년 전부터 만들어졌고, 중국에서는 전국시대(B.C.5세기~B.C.3세기) 말 부터 만들어졌다. 중국 의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B.C.206~A.D.219)에 이르는 시기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승반(承盤) 위에 ㅗ 모양 다리와 잔(盞)모양의 몸체, 중첩된 산봉우리 모양의 뚜껑을 갖춘 박산향로(博山香爐) 가 많이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신선사상이 유행했던 북중국 지역과 낙랑무덤에서 발견된 바 있는 박산향로 36) 길상(吉祥) 편저, 불교대사전, (서울: 홍법원 2003), 88쪽 외 불교학 문헌 참조. 37)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서울: 신문관, 1918). 38) 인도 북부, 비하르 시 남쪽에 있는 유명한 불교 수도원으로 흔히 날란다대학이라고 부른다. 날란다의 역사는 석가모니(BC 6~5 세기)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9)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하, (서울: 창비출판사, 2006), 37쪽.

124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는 아랍을 비롯한 서역의 향 문화를 받아들여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백제의 금동대향로는 한대 이후 박산향로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성은 무 령왕릉 출토 동탁은잔(銅托銀盞)과 왕비의 베개, 능산리 동하충의 벽화, 부여 외리 출토 무늬벽돌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금동향로 뚜껑에 장식된 조각에는 완함 피리 배소 북 거문고(?) 등 다섯 가지 악기가 새겨 져 있다. 이 중에 완함은 말 위에서 타던 서역악기로써 중국 한대까지는 비파로 불리다가 진(晉)나 라 때 완함 이라는 사람이 잘 연주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피리는 쿠자에서 기원된 관악기 이며, 배소는 북방유목민들의 관악기로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난다.40) 이 외에 타원형으로 누인 거문고 계통의 현악기와 무릎에 올려둔 북을 찾기 위하여 수년간 아시 아 지역 도상과 문헌을 찾았으나 타원형의 현악기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 도대탑에서 금동향로의 무릎북과 비슷한 항아리 북을 발견하였다. 향로에 새겨진 북과 똑 같다고 는 할 수 없으나 이들이 불교 탑에 담겨있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느껴졌다. <그림 3~4> 보로부르도 대탑의 조각들41) 3) 유리 구슬 한국에서 발굴된 최초의 유리제품은 1989년 부여 합송리 돌무덤에서 출토된 남색 대롱옥이다.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구슬은 6세기 전반에 축조된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 되었다. 이 유리구슬은 동남아 계통의 유리구슬로 판명되고 있어 실크로드를 통한 유통경로가 있 었을 겻이다. 이 외에 여러 유적에서 발굴된 금박구슬이나 점박이구슬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40) 정수일, 앞의 책 상권, 183쪽. 41) https://www.google.co.kr/search?q=borobudur&newwindow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25 서 실크로드를 지나 한반도로 유입된 것이다. 일본서기 권24 에는 6세기 무렵, 백제의 사신과 쿤륜 사신에 얽힌 기록이 보 이기도 한다.42) 이와 더불어 다수의 연구에 백제와 동남아와 의 교역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 불교 교류의 결과였다. 3. 신라와 서역 불교문화 신라의 불교는 고구려가 수용한 것을 재수용하거나 중국으 로부터 전래된 서역계 문화를 수용한 것이 많다. 신라 본기(本 記 제4권)에는 제19대 눌지왕 때에 사신 묵호자(墨胡子)가 고 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 경북 선산)에 이르자, 그 고을 사람 <그림 5> 백제 무령왕릉의 유리구슬43) 모례(毛禮 毛祿)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그 를 머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양(梁)나라에서 사신을 시켜 의복과 향물(香物)을 보내왔는데, 묵호자가 향 의 용도와 의미를 알려주자 왕이 사찰을 하사하니 그것이 흥륜사(興輪寺)였다. 모례 의 누이동생은 이름이 사씨(史訖)인데, 아도에게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삼천(三川)에 절을 지 어서 살았는데, 그 곳이 바로 영흥사(永興寺)이다. 해동고승전 에 의하면 아도가 일선군에 왔을 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정방(正方)과 감구빈(減垢 玭)이 포교활동을 하다가 피살된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이는 아도가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이전부터 불교가 들어와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삼국유사 에는 아도가 오기 전에 흥륜 사를 비롯하여 7곳의 가람터가 있었다는 기록44) 도 있다. 눌지왕(417-458) 때 아도화상의 전도활 동으로 신도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6세기에 이르러 법흥왕이 불교를 흥기시키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차돈(異次頓,506~527)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이차돈의 순교이후 월명사 이전의 시기인 진흥왕 12년 (551)에 고구려 승려 혜량(惠亮)에 의해 백고좌회(百高座會)와 팔관회 가 열린 기록45) 이 보인다. 불교의례가 대규모로 행해졌다는 것은 율조가 수반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모두 월명사 이전의 사례로써 월명사의 성범 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42) 書紀 卷24, 皇極元年 2月 條: 백제에서 조문차 온 사신들이 말하기를 작년 11월에 대좌평(大佐平)인 지적(智積)이 죽었 습니다. 그 밖에 백제의 사신이 쿤륜의 사신을 바다에 밀쳐 빠뜨렸습니다 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인숙, 유리와 고대 한국, 실크로드와 한국 문화, (서울: 소나무출판사, 2000), 217-249쪽. 43) 정수일, 한국속의 세계 상권, 101쪽. 44) 三國遺事 卷3 興法 阿道基羅: 此國于今不知佛法; 爾後三千餘月, *<계(鷄)>林有聖王出, 大興佛敎. 其京都內有七處伽藍之 墟: 一曰金橋東天鏡林, [今興輪寺. 金橋謂西川之橋, 俗訛呼云松橋也. 寺自我道始基而中廢. 至法興王丁未草創. 45) 三國遺事 卷3 4塔像 皇龍寺九層塔: 神曰, 皇(黃)龍寺護法龍, 是吾長子, 受梵王之命, 來護是寺, 歸本國, 成九層塔於寺中, 隣 國降伏, 九韓來貢, 王祚永安矣. 建塔之後, 設八關會, 赦罪人, 則外賊不能爲害.

12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1) 유리구슬 한국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들은 대부분 중국계의 납(鈉) 유리와는 그 성분이 달라 서방에서 온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신라 유리그릇의 기벽에 점박이를 넣은 수법은 고대 로마의 식민지였던 퀼른 지역에서 개발된 것이라는 주장이47) 있을 정도로 신라의 서역 교류 역사는 오늘날 우리들의 상상을 초 월한다. 금박이 구슬은 경주의 금령총(金鈴塚)48) 이외에 합천옥전 고분군(陜川玉田古墳群)에서도 출토되었다. 유리와 관련한 유 물은 주로 5세기 전후한 것이어서 월명사나 혜초의 서역 기행 <그림 6> 미추왕릉지구 고분 출토 구슬46) 보다 훨씬 이전의 서역문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는 내 물왕(奈勿王, 356-402) 때 국내외적으로 도약의 발판을 구축 하였는데 이때 중국 북조로부터 고구려를 거쳐 들어온 실크로드 문물이 많다. 위 사진은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상감구슬이다. 원래 상감구슬은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 꽃 새 같은 형상을 구슬 속에 새겨 넣은 일종의 모자이크무늬의 구슬이다. 이러한 장식무늬구슬은 대체 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중앙시아아 등 서역 일원에서 일찍이 유행했던 것이다. 그 외에 여러 유적에서 나오는 금박구슬이나 점박이 구슬은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그 기원을 두 고 있어 이들의 전달 경로를 봤을 때 신라에 번성한 서역교류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2) 실크로드의 신라인 돈황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족적을 남긴 고대 한국인의 자취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 중 대 당서역구법고승전 에 열거된 신라인을 보면, 승려 정관(貞關, 627-649), 돈황 벽화의 한국인 사절 (642-686), 사마르칸트의 한국인 사절(7세기 후반), 혜초(8세기 전반)가 있고, 고구려가 신라에 멸 망하자 고구려의 고선지가 중앙아시아 석권(8세기)에 기여한 것도 실크로드 지역에 활동한 한국인 으로 주목된다. 3) 경주의 서역인 경주 외동면에 있는 사적 26호 괘릉 앞에는 무인석상(武人石像)이 세워져있다. 이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 세워진 무인상이 서역인이라는 점은 대부분 의견이 일 치하고 있다. 이러한 무인석상은 괘릉 뿐만 아니라 경주시 도지동에 있는 경덕왕(재위 702-736)능 46) 정수일, 앞의, 102쪽에서 인용. 47) 권영필, 렌투스 양식의 미술, (서울: 사계절출판사, 2002), 129쪽에는 이와 관련한 루트를 지도를 통해 표시하고 있다. 48)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돌무지덧널봉토분[積石木槨封土墳].

월명사의성범 ( 聲梵 ) 에관한연구 127 과안강읍에있는흥덕왕 ( 재위826-835) 능에서도발견된다. 신라인들이서역인무인석을왕릉의외호물로택한것은장대한위용과이색적인용모에서오는수호적기능을노린것으로풀이된다. 이들돌상에새겨진서역인의체격과복식은매우사실적으로묘사되고있다. 이러한사실적묘사는서역인을직접모델로삼았기에가능하다는것이이방면전문가들의견해이다. 흥미로운것은괘릉무인석의오른쪽옆구리에차고있는복주머니이다. 서역인이신라에와서신라풍의주머니를차고있는것을통해신라와서역인이가졌던문화적포용성을느낄수있다. 그외에신라의왕릉에는홀을잡고있는서역인토우까지있어신라속의서역인과서역문화가얼마나왕성했던가를짐작할수있다. < 그림 7> 실크로드의소그드인낙타몰이꾼 49) < 그림 8-9> 소그드상인들 50) < 그림 10-11> 경주괘릉의무인석상과복주머니 51) < 그림 12-13> 용강동돌방무덤의토우 49) 국립중앙박물관, 앞의책, 19 쪽. 50) 국립중앙박물관, 앞의책, 61-63 쪽. 51) 그림 8-11 은정수일, 앞의책, 229-236 쪽에서인용.

128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위 사진의 오른쪽 두 개의 토우는 용강동 돌방무덤의 토우 중 서역인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들 의 모양새를 보면 두 손으로 홀을 잡은 서역남자(17CM)와 고깔을 쓴 남자는 모두 월명사가 활동 했던 전후의 시기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서역인이 신라에 살면서 무장이나 문관으로까지 기용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석상과 토우에는 상당한 사실성이 투영되고 있다. 이는 월명사 가 말한 성범 이 서역풍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특수층에 의해 불리는 특이한 외래 음악이 아니라 신라에 널리 불리고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신라에는 서역 즉 실크로드 문화와 관련이 있는 호악기로 피리 횡적 소 박판 요고 동발 당비파 공후 등 여러 악기 가 보인다. 4) 신라의 유학 승려 신라의 각덕(覺德)이 중국의 남조 양나라로 건너갔다가 진흥왕 10년(559)에 양의 사신과 함께 불사리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 신라승으로서는 입당구법의 효시로 꼽히는데 이는 8세기 월명사의 기록(760년) 보다 200년 이상 앞선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승려와 일반 유학생들의 입당을 적극 권장하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약 400년 동안에 구법을 위해 수나라와 당나라에 들어간 승려의 수는 수 백 명에 달하였다.52) 당시 당나라는 서역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적 번성기 를 이룬 만큼 이들은 당나라에서 불경과 더불어 다양한 서역문물을 접하였을 것이다. 고승전(高僧傳) 53) 을 비롯한 중국의 문헌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승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중 신라승려가 130명에 이르러 삼국 중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인으로부터 지장왕보살로 추앙된 지장스님(金地藏)과 천태종의 제16조인 의통(義通)을 비롯해 중국인을 교화한 신라승려들의 활약 이 괄목할만 하다.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중국인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다수의 신라승려가 있다는 것은 중국이 아닌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들어와서 중국 보다 앞선 불교가 있 었다 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5) 혜초의 서역 기행 혜초(慧超, 704~787)가 천축 기행을 한 것은 당시에 이 지역으로 유학승과 문물학습을 배우러 가는 일이 왕성하였던 사회 풍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혜초는 경주를 출발하여 당나라에 들 어가 인도 출신의 승려들로부터 밀교와 대승 등 여러 불학을 익히다가 723년 광저우(廣州)를 떠나 바닷길로 인도에 들어가 약 4년 동안 서역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727년 장안(長安)으로 돌아왔 다. 그는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방향과 소요시간, 왕성(王城)의 위치와 규모 언어, 습속 종 52) 高柄翊, 慧超의 往五天竺國傳, 한국의 명저, (서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69), 48-49쪽. 이 글의 말미에 신라승구법입당 표 에 90여명에 달하는 입당승들의 이름과 입당 및 귀국 연도, 문헌 출처 등이 있다. 53)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의 불교 고승들의 전기집으로. 최초로 편찬된 것은 중국남조 양나라의 혜교가 편찬하여 14권으 로 이루어져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당초부터 6세기 초 양무제까지의 고승들의 열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론 1권과 본문 13권의 구성이다. 한국에도 통일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이 지은 고승전 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29 교 특히 불교의 성행 정도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으나 신라로 귀국하지는 못하였다. 혜초 또한 중국 땅에서 입적함으로써 한국의 불교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지만 월명사 당시 신라의 서역교류의 일면을 대변해 주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혜초의 서역 기행이 경덕왕(재위 742~765) 19년(760년) 경자년 4월 초하루에 있었던 월명사의 성범 에 관한 기사 보다 앞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당시에 신라 는 실크로드 교역이 활발했고, 서역인이 경주에 상주하였고, 신라의 사신과 승려들이 실크로드를 오가며 그 지역 불교문화를 왕성하게 배워왔으므로 서역풍 범패 또한 신라에 널러 퍼졌을 것이라 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왕이 월명사에게 범패를 불러 달라고 했을 때 성범 을 모른다는 대답을 먼 저 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에 신라에 서역 혹은 범어범패가 널리 불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월명 사는 향가를 불렀다 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6) 최치원의 향악 잡영오수 최치원(崔致遠, 857~?)은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헌강왕 11년(885년) 3월54) 에 중국 회남 (淮南)에서 귀국하여 그 이듬해인 886년(정강왕 1)향악잡영오수라는 시를 써서 왕에게 바쳤는데, 이것이 삼국사기 의 악지 55) 와 계원필경(桂苑筆耕) 에 전한다. 이때 신라 오기(五伎)의 모습 을 읊은 칠언시 5수를 일컬어 향악잡영오수 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담긴 기예들 대부분이 서역에 서 들어온 것이란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최치원은 월명사 보다 후대의 사람이므로 월명사의 성범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본고에서 주목 하는 것은 서역에서 유래한 기예를 향악 이라는 이 름을 붙인 점이다. 학계에서는 향악잡영오수 중 월전(月顚) 은 서역 의 코탄(于闐), 산예(狻猊)는 쿠자(龜玆)에서 전래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예(사자무)의 기원은 인도와 페르시아의 두 가지로 갈린다. 그 중에 인도 기원설을 보면,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건립한 사자석주(獅子石柱)에서 사 자가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신수(神獸)로 사용된 유 적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사자무가 천축국(인도)과 사자국(스리랑카)에서 행해지다가 불교 전파의 길 을 따라 쿠자를 거쳐 장안에 전래되었다는 것이 다.56) 금을 칠한 공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는 금환 54) 三國史記 권11. 14a 55) 三國史記 권32 11ab 樂志, 新羅樂. <그림 14> 혜초 향악잡영오수가 기록된 원본

13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金丸), 가면무로 술잔을 들고 춤 추는 월전, 역신을 쫓던 대면(大面), 무인들이 봉황춤을 추는 속독 (束毒) 또한 신라 때 쿠자나 허텐, 소그디아 등지의 잡기들이다.57) 서역에서 들어온 기예들을 향 악잡영 이라고 한 점에 미루어 보면, 당시 서역문물이 신라에 들어와 향악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최치원이 귀국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이와 같은 시를 바친 점에서 향악 이 서역의 향악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겠지만 아무튼 이 당시 서역에서 들어온 성범 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상 월명사 이전에 들어와 성범 의 전파에 영향을 미친 한반도의 서역교류 내용을 연도별로 정돈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월명사 전후 실크로드 교류의 역사 기 원 전 기 원 후 200 흉노의 한 침입 139 한나라 장건의 비단길 개척 122 장건이 귀국하면서 서역의 고취악(마하토륵) 유입 무캄으로 연결 284 신라의 제13대 미추왕릉 (재위 262~284)의 서역 유리 구슬 356 내물왕(奈勿王, 356-402)대 신라 번성과 문화의 도약 발판 372 고구려 소수림왕대 불교 공전(公傳)/ 100년 전 초전(初傳) 375 안악 3호분은 고국원왕 27년 다양한 서역 문화가 묘사됨 384 4C말-5C초 침류왕이 즉위한 해에 인도의 마라난타스님, 백제 불교 공전(公傳) 고구려 무용총과 기타 고분의 서역 문물 서기 357년 안악 3호분 조성. 393년(광개토왕 3년) 쌍영총의 공양행렬도 5C말-6C초 신라로 전파(경주 천마총) 417- 눌지왕대(417-458)에 고구려 승려 묵호자에 의해 신라 불교 초전 6C초 백제 무령왕릉의 유리구슬 신라 금령총 금관, 유리 용기, 기마 인물 토기 521 법흥왕 8년 이차돈 순교 후 불교 공인 627 신라 승려 (정관貞關, 627-649), 돈황 벽화의 한국인 사절(642-686), 사마르칸트의 한국인 사절(7세기 후반) 628 신라승 원측과 그 제자들의 당나라 유학과 범어관련 저술58) 642 돈황 벽화의 한국인 사절(642-686) 56) 李進新, 新疆宗敎演变史, (中國: 新疆人民出版社, 2003), 103-107쪽. 박진태 엮음, 실크로드의 예술, (서울: 도서출판 박이정, 2008), 91쪽 등 참고. 57) 정수일, 앞의 책 상권, 227쪽. 58) 원측(圓測, 613-696)은 일찍이 당으로 유학하여 般若心經疏 를 비롯하여 다수의 저술을 하였고, 그 가운데는 64종 범음(梵音) 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원측은 신라로 귀국하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 승장(勝莊: 651-714)에 의해 이 당시 신라의 실담범자(悉曇梵字) 유입 배경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기 원 후 702 고구려 후예 고선지의 중앙아시아 석권(8세기 전반) 33대 경덕왕(재위 702-736) 19년(760년) 월명사의 성범 괘릉의 서역 무인석상, 용강동 돌방 무덤의 토우 (서역인) 720 혜초(慧超, 704~787) 723년 중국 광주 출발 천축으로 이동 760 경덕왕 19년 월명사가 성범을 모른다고 함. 830 진감국사 귀국, 당풍범패 유입 834 신라 흥덕왕, 서역 문물에 의한 사치 금지령 내림 840 장보고, 당과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의 중심 역할 885 최치원의 귀국, 이듬해(885) 향악잡영오수 바침 1100 이슬람교도의 인도 침입 시작, 인도에 불교가 사라지게 됨. 131 Ⅳ. 범어의 한반도 전래와 유통 월명사의 성범 이 범어범패라면 그와 관련되는 가장 직접적인 매개는 범어 이다. 범어는 석가 모니의 모국어인 마가다어와 인도의 고전어였던 산스크리트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석가모니가 설법할 때 사용한 언어는 그의 출신지인 마가다를 포함한 북인도 지역의 속어로써, 오늘날 이를 팔리어 로 칭하고 있다. 팔리어는 석가모니 입멸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구전되었으므로 당시 방 언의 흔적이 경전에 남아있고, 이들은 미얀마와 태국 등지의 남방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59) 팔리어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일찍이부터 산스크리트어로 불전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진보적 성향의 대승불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중국과 한국 등 동북아 지역에는 산스 크리트어인 실담(悉曇)이 전해졌다. 실담(Siddham) 은 굽타 문자 이후의 인도 문자로, 어원을 보 면, 완성된 의 시다(siddha) 와 문자 라는 뜻의 마트리카(mātŗkā) 가 합성된 싯담마트리카 (Siddhamātŗkā)이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이하면 깨달은 자 의 뜻을 지니고 있는 시다 로 인하여 시다르타의 언어 로 풀이 할 수도 있다.60) 1. 범어의 한반도 전래 범어는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로 여러 불경 속에 진언을 적은 문자와 함께 유입되었으므로 삼국시대부터 범어가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61) 진언(眞言) 혹은 다라니로 번역되는 만트라 (mantra)는 신성한 사상을 담는 그릇 이라는 범어에서 유래하여 주(呪) 밀주(密呪) 신주(神呪) 59)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졸저,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 (서울: 민속원, 2013), 혹은 한국음악연구 제51집, (한국국악학회, 2012)에 실린 졸고, 팔리어 송경 율조와 범패 참고 바람. 60) 본 범자의 원리와 사상에 관해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준 강대현선생과의 대담. 61) 이태승, 망월사본<眞言集凡例>에 대한 연구, 한국어학 제19집, (한국어학회, 2003), 208쪽.

13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한자로 된 범패 가사들은 불보살을 칭탄하는 뜻에 집중된 것에 비해 범어로 된 진언은 소리 나는 음에 집중하여 지송하므로써 신통력을 발휘하는 기능이 있다. 앞서 백제의 서역문화에서 예시하였듯이 백제의 침류왕 원년(384)에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들 어 왔으므로 범어와 관련한 불교는 백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526년 무렵 겸익(謙益)은 인도 20여부파의 계율을 기록한 사분율(四分律) 범본(梵本)을 직접 번역하였다. 이는 당나라의 현장 (玄奘)62) 이나 의정(義淨)63) 보다도 100년이 앞선 시기이다. 이러한 사실에 미루어 볼 때, 백제는 6세기부터 실담범자를 접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수행과 신앙도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범자와 관련한 역사적 전개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문헌에서 구체적인 내용들이 보이는데64), 범자와 관련하여 거론되는 승려들로는 백제의 관륵(觀勒, ca7c) 고구려의 혜관(慧灌, ca7c) 혜편(惠便, 6-7c), 신라의 원초 (圓超, 560-656: 원측의 제자) 불가사의(不可思議, ca700-770) 승장(勝莊, ca651-714)등이 있 으나 지면 관계상 이들의 내용은 생략하고,65) 일본에서 발견되는 실담 저술에 관한 승려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2. 통일신라의 범어 유통과 신행 한반도에 범어가 전래된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승려들이 일본에 범어를 전해준 기록들이 다방면에서 발견된다. 입당구법순례행기 를 쓴 원인자각대사(圓仁, 794~864)는 당나라 순례 기 간 동안 신라인의 도움으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고, 귀국 이후 일본 천태종의 시조가 되었다. 산동 적산원에서 신라인의 불교의식을 자세히 기록하므로써 한국에도 친숙한 그에게는 안연(晏然) 이라 는 제자가 있었다. 안연은 어려서 원인의 제자로 출가하여 19세에 보살대계(菩薩大戒)를 받았고, 884년 무렵 44세 였다는 기록에 미루어 84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엔닌과 문하의 여러 승려들로부터 불학 의궤 및 실담을 전수 받은 후 여러 저술을 펴냄으로써 일본 태밀(台密)의 집대성자로 꼽힌 다. 이들 저술 중 悉曇梵字 8卷에는 한국 승려들의 범어 관련 활동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신라인이었던 김예신(金禮信)이 일본에 전한 오음(吳音), 신라승 월충(月忠)이 62) 현장(602-664)은 629년부터 645년 사이 서역의 那揭羅曷國(Nagarahara) 등 약 138개국을 직 간접 견문한 후 그 나라의 풍 토와 관습 등을 정리하여 大唐西域記 ( 大正藏 51,876c09-14)를 펴냈다. 63) 의정(635-713)은 현장의 大唐西域記 에 자극을 받아 인도로 건너가 20여년간 수학하였다. 그의 南海寄歸內法傳 ( 大正藏 51,01a25-27)에는 당시 인도 등지에서 유행했던 범어의 체계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여 현장 에서 일보 전진한 성과를 거두었다. 64)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 불교학 분야의 많은 연구들이 일본의 사료와 연구자료에 근거해서 이루 어지고 있다. 범자와 관련한 한국 학자의 연구는 이태승, 중국에서의 悉曇學 形成에 대하여, 密敎學報 제2집, (2000). 智廣 의 悉曇字記 硏究, 密敎學報 제3집,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01), 211-238쪽. 이태승 안주호 공저, 悉曇字記와 望月寺本 眞言集 硏究, (서울: 글읽는들, 2004); 강대현, 安然의 悉曇藏 에 나타난 東아시아 佛敎家의 悉曇에 관한 硏究, (경주: 위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외 다수. 65)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강대현, 앞의 논문, 149-160쪽 참고 바람.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33 지은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 에 나타나는 위작자(僞作字)로서의 육근진언, 그리고 백제승려 혜 균(慧均)이 지은 사론현의기(四論玄義記) 중 십사음의(十四音義) 에 나타나는 오십자문(五十字 門) 등이다. 혜균은 삼론종의 승려로 일본에서 승정(僧正)을 지낸 인물이다. 6세기 중엽부터 7세기초엽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혜균은 법랑에게서 十二門論 66) 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때의 12문은 범자의 종 자(種字)를 이르는 말이다. 기본 종자인 12자는 여러 체언을 만나 또 다른 자로 파생되는데 이들은 42자에서 51자에 걸쳐 있다. 한글대장경 화엄경 입법계품 에는 42화엄자모 로 보살도를 이룬 선지중예동가 범어 하나하나가 해탈로 들어가는 문(門)이 됨을 설하고 있고,67) 혜균이 사론현의 기 전 12권을 백제의 보희사(寶憙寺)에서 찬술하였다는 주장68) 에 비추어 볼 때, 6~7세기 한국의 범자 유통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안연은 중국어 성조에 관하여 기술하면서 범자의 음과 한자음과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 이를 전한 인물 다수를 들고 있는데, 그 중에 신라인 김예신이 등장한다. 당시 안연은 김예신의 성(性)만 거명하였는데 후에 정엄(淨嚴)이 그의 저술 삼밀초( 三密鈔) 에서 김예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일본에는 원래 오(吳)와 한(漢)의 이음(二音) 을 전하였다. 처음에는 김예신이 대마국(對馬國: 현재 대마도)을 거쳐 본국으로 와서 오음을 전하 여 배웠고 후략 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여기서 김예신이 전한 오음 은 범어를 이르는 것으로, 그 내용에 관한 연구가 한국 학자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69) 본고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김 예신이라는 인물과 신라의 범어 유통 상황, 나아가 월명사의 성범과 관련한 시기이다. 일본 역사에 서 대마도 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한 때는 문무천황 5년(701)부터다. 이 사실에 미루어 볼 때, 김예 신은 적어도 그 이전에 일본에 오음을 전하였을 것이고, 이는 월명사 보다 훨씬 이전에 범어에 관 한 체계적인 이해와 사상적 유통이 신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한편, 월충이 저술한 석마하연론 은 대승기신론 의 주석서로, 진언 및 다라니 신앙의 생생한 일면이 느껴지는 대목이 담겨 있다. <표 2> 월충의 석마하연론 중 범자와 신행 (於呼反) (那閬反) 66) 범자의 종자는 아 자로 시작하여 5모음과 12모음으로 분파되며 이들은 각 모음(摩多)의 장단과 관련이 있다. 상세한 내용은 강대현, 悉曇字記에 나타난 12摩多와 그 音의 長短에 대하여, 불교학연구 제37호, (불교학연구회, 2013), 참고. 67) 윤소희, 화엄자모와 범어 범패, 한국음악연구 제55집, (한국국악학회, 2014); 화엄자모와 21세기 불교음악, 동아시아불 교문화 제22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5). 68) 최연식 校註, 校勘 大乘四論玄義記, (서울: 불광출판사, 2009). 69) 강대현, 安然의 悉曇藏 에 나타난 東아시아 佛敎家의 悉曇에 관한 硏究 외 다수. 70) 釋摩訶衍論, ( 大正藏 32, 660a20-28).

13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伊因反 ) ( 毘入反 ) 위와같이신주를만팔천사백오십번외우고나면심량 ( 心量 ) 이완전하게구족되어요달하지못할바가없다. 70) 월충의 석마하연론 은계명 ( 戒明 ca8~9c) 이라는승려에의해전파되어진언종의근본논장이되었다. 계명이 8~9세기인물인점에미루어볼때, 월충은적어도 779년이전에이저술을마친것으로보인다. 이시기는월명사의 성범 에관한기록보다다소뒤의일이지만이러한범자신행을일본에전했다는것은훨씬이전부터이와같은진언신앙이신라본토에행해지고있었음을알수있다. 3. 신라범자의현존실체 불국사의석가탑에서발견된 부구정광다라니경 은그제작시기가 706~751년간의것71) 으로월명사의 성범 에관한기록보다 50여년이앞선다. 경상북도금릉군남면오봉리금오산서쪽기슭에있었던갈항사 ( 葛項寺 ) 에서도범자진언이발견되었다. 동서삼층석탑과함께 758년에제작된것으로추정되는이범자의내용은불모 ( 佛母 ) 인준제 ( 準提 ) 께바치는진언으로한국실담의원형을복원하는데중요한역할을한다. < 그림 15> 갈항사범자진언 72) 71) 남권희, 한국기록문화에나타난진언의유통, 밀교학보 제 7 집, ( 위덕대학교밀교문화연구원, 2005). 72) 이에관한내용은 http://blog.daum.net/kelim/10826062 에서도확인할수있음.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35 닥종이에 가는 붓으로 나선형 동그라미 사이에 쓴 범자는 원래 26자이나 지금은 24자 정도를 읽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 신행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천수경 을 보면, 5언8구의 준제주 게송을 왼 후 나무칠구지대준제보살 이라는 진언으로 넘어간다. 준제주는 공덕 크니 일념으로 염송하면 세상 어떤 어려움도 침해하지 못하리라. 천신들과 사람들이 여래처럼 복받으며 여의주를 만났으니 크나큰 복 얻으리라 73) 는 준제진언 게송의 내용을 보면, 신라 사람들과 오늘날의 신행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 고려대장경을 비롯해 망월사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진 언집범례(眞言集凡例)> 등 범자 신앙에 대한 여러 자료가 있으나 이는 연대상으로 본고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생략하겠다. Ⅴ. 월명사의 성범 과 범어범패 1. 월명사와 시대적 배경 월명사는 신라 경덕왕 대의 승려이자 화랑으로 능준대사의 문인이기도 하였다. 그의 이름에 스 승 사(師)자가 붙은 것은 왕가와 친밀한 엘리트로써 국선(國仙)까지 지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륵이 화랑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미륵하생신앙을 믿었으며, 제망매가(祭亡妹歌) 도솔 가(兜率歌) 를 지을 정도로 향가에 능했고, 이들 노래와 관련한 이적(異蹟)들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 아 수행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명사가 활동하던 시기는 화랑의 세력이 다소 약화된 시기였으니 이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 사회적 안정과 왕권 세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경덕왕 재위 시절은 당나라의 불교문화가 절정 을 이룬 때였고, 당과 연합하여 통일을 이룬 만큼 적극적인 사대(事大)를 하였다. 이 무렵 중국에는 조식(曹植 192~232)에 의해 창제된 한어범패가 만들어져 당풍 범패가 불리고 있었고, 당나라와 활 발한 교역을 하였던 당시 상황을 볼 때, 당풍 범패가 신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2. 월명사의 성범 과 신라의 불곡(佛曲) 한편 월명사가 부르지 못했던 성범 에 대하여 두 가지의 가능성을 열어 볼 수 있다. 먼저 향가 만 알뿐 성범은 모른다 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성범 은 일반적인 향가풍 노래가 아닌 전문 불 곡이었을 가능성이다. 월명사가 불렀던 향가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불렀던 점에 미루어 볼 때, 73) 準提功德聚 寂靜心常誦 一切諸大難 無能侵是人 天上及人間 受福如佛等 遇此如意珠 定獲無等等 한정섭, 천수경 강의, (서울: 이화문화사, 1996). 우천 법안 편저, 천수경 정근법, (서울: 정우서적, 2008).

13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서정 가곡의 향가는 아니었을 것이므로 신라풍의 불곡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명사는 제망매가 와 도솔가 를 지어 부를 정도로 향가에 능했는데 향가풍의 범어범패라고 못 부른다고 했을 가능성 은 희박하다. 그러므로 월명사가 부르지 못한 성범 은 신라의 향가풍이 아닌 외래풍의 불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외래풍의 불곡이라면 한어범패와 범어범패의 두 가지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월명사 당시 중국에는 이미 조식에 의한 한어 범패가 있었고,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던 신라에 조식의 어산 범패가 들어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음성 본연의 뜻을 중시하던 인도범패에서 찬사(讚詞) 의 뜻을 중시하게 된 한어범패의 성격74) 을 생각해 볼 때,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목적과 잘 맞지 않는다. 이를 증명하듯 오늘날 한국에서 불리는 한어범패 가사는 대개 법을 설하거나 불보살을 찬 탄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월명사가 부르지 못한 성범 은 당풍의 한어범패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범어범패이다. 두 해가 나타난 재앙을 물리치려고 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월명사가 부르지 못한 성범 은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어범패였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여 기서 따져봐야 할 점은 그 범어 범패가 중국풍이었는지 실크로드 혹은 인도풍이었는지에 대한 것 이다. 중국의 한어 범패가 생겨난 이유는 한어가사와 본래의 범어 선율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에 전해진 후에도 범어를 그대로 노래한 범어범패는 인도에서의 원형대로 부르거나 읊는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크로드와 중국 초전불교의 전개 과정을 살펴 볼 때, 이 지역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수백 년이었고, 한국 초전불교 시기부터 통일신라 당시까지 수백년이 흐른 뒤였다. 그러므로 인도풍의 선율이 신라시대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월명사가 부르지 못한 성범 은 실크로드지역의 색깔과 신라의 향토적 색깔이 다소 가미된 인도풍의 범패였을 가능성이 높다. 3. 월명사의 성범 과 범어범패 중국 초기불교의 승려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는 유랑승이 많았다. 당시 유랑승들은 다라니와 진 언을 노래하며 신통력을 부리고 반복되는 묘사적 어휘로 민중을 사로잡았다. 다라니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는 승려들의 신통한 능력에 매료되었던 일화들을 보면, 경덕왕이 왜 월명사에게 노래 를 부르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려 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때 월명사에게 부탁한 것은 초기 중국 유랑승들이 그랬듯이 주술(呪術)적 범패로 신통력을 발휘해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즈음도 한국 사찰에서는 범어로 된 다라니를 외면서 액(厄)과 마(魔)를 물리치는 신행이 행해지고 있다. 주력신앙과 관련한 밀교의 전개 과정을 보면, 초기밀교는 다라니의 염통공덕(念通功德)으로 제 화초복(除禍招福)을 목적으로 하고, 중기 밀교는 대승사상을 상징적인 의례로 조직화하고 실천하 74) 高雅俐, 佛敎音樂 傳統與 佛敎音樂, 佛敎音樂, (臺灣: 佛光山文敎基金會, 1998), 34쪽. 音聲. 力量的中視則不再像原始佛敎時期那樣地强調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 137 였으며, 후기 밀교는 탄트라와 관계한 각 시대별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중 제화초복을 주력하는 초기밀교는 3세기 전 부터 한역되기 시작하여 병의 치료나 주술, 불노불사의 도술(道術) 음양오 행 참위술(讖緯術) 신선술(神仙術) 귀신신앙(鬼神信仰) 방술(方術) 등이 실크로드를 포함한 중국에서 널리 유행되었으므로 한국의 불교수용과정에도 이러한 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75) 밀교적 신행을 수행하는 다라니나 진언은 의성어 의태어를 비롯하여 반복되는 패턴의 단어가 많다. 현재 한국에서 암송되는 천수다라니나 능엄주를 비롯하여 한자 게송 끝에 외는 진언도 이러 한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유화승들은 교리 보다는 민중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음악을 바탕 으로 하는 또 다른 언어 예술을 주문(呪文)과 섞어 노래하니 진언이 지니는 본래의 신비성이나 주 술성은 약화되고, 흥미와 오락성으로 전락하고 있다 고 지적하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 늘날 한국의 재장에서 범어 가사를 노래하는 순서에 이르면 한어 범패와 달리 템포가 빨라지고 법 구를 신명나게 치며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범어 범패의 이러한 율조들은 월명사 당시부터 있었던 대중 친화적 유습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서역문화와 신라의 가무 일반적으로 호악 이라 불리는 서역음악의 전래는 한 대(漢代)에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시대에 지 속적인 확대과정을 거쳐 수 당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들 중 고취곡(鼓吹曲)은 대부분 서역 악곡이었는데 이들은 송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사(舊曲新詞)와 함께 전승되어 왔고, 여기에 불 교적 음조나 호어(胡語 서역언어)가 혼합되어 있었다.76) 한편 북주의 무제(武帝, 543-578)는 돌궐 녀를 왕후로 맞은 후 서역 제국과의 친교가 이루어지자 쿠자 소륵 안국 강국 등 악사들이 대 거 활동하였고, 남북조 시대에는 서역에서 유입된 악무를 통칭 산악(散樂) 혹은 백희(百戲)라고 하 였는데 산악의 종류는 수백 종에 달했고,77) 이들과 연결되는 것이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였다. 오늘날 서역, 즉 실크로드 지역을 대표하는 신장위구르의 무캄(무카무)은 기악과 무용음악의 종 합이자 여러 곡을 이어서 연주하는 투곡(套曲)78) 형식이다. 중국과 대만의 범패 중 화엄경에 실려 있는 범어 가사의 종자(種字)를 노래하는 화엄자모 범패 또한 투곡식이다.79) 한편 장건이 귀국할 때 가져왔다는 무캄 에 대해 북경민족대학의 구안예웨이(關也維)교수는 무카무(木卡姆)는 마하토 륵(摩訶兜勒) 이라는 음악에서 확대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80) 무캄의 영역은 워낙 방대하여 본고에 75) 76) 77) 78) 79) 장익, 인도 밀교의 형성과정, (경주: 한국불교학회 동계워크숍 발표 논문집, 2015), 15쪽. 馬端臨, 文獻通考 卷129 樂 2. 정수일, 앞의 책, 438-444쪽. 홍주희, 중국 신강 위구르 무캄, 한국음악사학보 제36집, (한국음악사학회 2006), 195-201쪽. 袁静芳, 中国汉传佛敎音乐文化, (北京: 中央民族音乐出版社, 2003), 79쪽. 기원후 1세기 무렵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화엄경 중에 화엄자모는 마가다어 즉 팔리어로 된 것으로 석가모니의 모국어이다. 윤소희, 화엄자모와 범어 범패, 한국음악연구 제55집, (한국국악학회, 2014), 179쪽. 80) 권오성, 실크로드 지역 무카무의 음악적 특징, 실크로드의 예술, (서울: 도서출판 박이정, 2008), 206쪽.

13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서이를일일이다거론할수없는실정이다. 따라서본항에서는 마하토륵 은인도의범어와관련 이있고, 초전불교가성했던지역적특성을지닌사실만을언급하겠다. 5. 서역불교문화와한국음악 2소박을주된근간으로하는일본과중국에비해 3소박이주된패턴을이루는한국전통음악은중앙아시아나서아시아, 그리고신장지역의음악과더가깝다. 필자는우즈베키스탄보이순에서열리는민속축제에참여한적이있는데, 그때대부분의음악이 3소박이었다. 또한노래하고춤추는여인들이머리를땋아뒤로늘어뜨린모습을비롯해서그들의생김새등한국과많은친연성이보였다. 한국의전통음악이나민속음악중긴악곡은대개느리게시작하여점차빨라지는틀을지니고있다. 영산회상과산조와같이느리게시작하여점차빨라지는것은인도와실크로드지역에서공통적으로발견된다. 인도불교의면모를가장많이지니고있는스리랑카에는밤새도록찬팅을노래하는철야법회가성행하는데여기서불리는마하빠리따도이런흐름이었다. 특히인도라가가무박의알랍으로시작해서본곡으로접어드는것은한국의산조가다스름으로시작해서점차빨라지는것과흡사하다. 중국과대만을다니다보면여러가지염불류범패를들을수있다. 그런데이들염불은대부분느리게시작해서점차빨라진다. 실제로염불의식에참여해보니느리게시작해서점차잦아든후에좌선으로접어드는경우가있었다. 이러한의식과수행법은불교문화권에널리쓰이는방식이기도하다. 따라서한국의영산회상이나산조가갖는음악적틀은불교수행법에서생겨난염불과관련성이있다. 81) Ⅵ. 맺음말 본고는월명사가못부른다던 성범 ( 聲梵 ) 의실체를찾아서범자의한반도유입과유통상황을파악하였고, 그와관련한문화유입의경로를따라서역불교문화와음악에대해고찰하였다. 이과정에서중국의초전불교당시서역유랑승들이부르는주어 ( 呪語 ) 와주문 ( 呪文 ) 범패의신통력이대단하였으며범어가지닌묘사적율조의유희성이대중들에게인기가있었음을알게되었다. 특히범어범패가지닌신통력은경덕왕이이변 ( 異變 ) 을해소하기위해서노래를부르게했던상황을이해하는데결정적인단서가되었다. 81) 느리게시작해서점차빨라지며빙글빙글도는이슬람의수피댄스를보면느린음악에서점차빨라지는틀은세계보편적종교음악현상이라는생각도든다.

월명사의성범 ( 聲梵 ) 에관한연구 139 월명사가활동한시기는조식에의해창제된한어범패가생겨난이후였고, 당나라와의교역이활발했던당시상황에미루어볼때월명사가부르지못한다던 성범 이당풍범패였을가능성을배제할수는없다. 그러나찬탄의뜻이중요한한어범패를재앙을물리치기위해불러달라고했을가능성은희박하다. 이에비해당시통일신라에유통되던주력 ( 呪力 ) 신앙과서역교류의면면을볼때, 월명사가부르지못했던 성범 은진언이나다라니같은범어범패였을가능성이높다. 여기에는 3세기전부터한역되기시작하여병의치료나주술, 불로불사의도술 ( 道術 ) 음양오행 참위술 ( 讖緯術 ) 신선술 ( 神仙術 ) 귀신신앙 ( 鬼神信仰 ) 방술 ( 方術 ) 등이실크로드를포함한중국에서널리유행한뒤한국불교로수용된사실이뒷받침되고있다. 또한백제의겸익은중국의현장보다도 100년이나이른시기에범본 ( 梵本 ) 경전을번역하였고, 삼국의승려들이일본에전한범어수행과범자관련저술을보더라도이러한정황추정이자연스럽다. 비슷한시기에최치원은서역으로부터유입된놀이와기악을 향악 이라는이름을붙여 잡영오수 라고했다. 이는서역의가무와오락이신라에뿌리내린일면을짐작케하는대목으로써서역의범어범패가신라에왕성하게소통되고있었음을추정하는간접근거가되었다. 그러므로왕이범패를불러달라고했을때 성범 을부르지못한다는말을먼저했던것이다. 한어와범어의선율이맞지않았기때문에중국범패가창제되었던것에비해범어범패는본래의선율을그대로노래할수있었음을감안해볼때, 범어범패는인도풍율조와리듬을비교적안정되게유지할수있었을가능성또한발견하게되었다. 그러나아무리본래의범어율조라할지라도실크로드와중국서방에머물러있었던기간이수백년이었고, 통일신라까지한반도에서보낸기간도수백년이었다. 이러한시간적경과를볼때, 인도풍의선율이유지되면서도지역적변화도어느정도있었을것이다. 그러므로월명사당시의범어범패는실크로드지역의색깔과신라의향토적색깔이다소가미된인도풍의범패였을가능성이높다. 한편초전불교당시중국서부를포함하는실크로드지역에오락적인흥미로범어범패의인기가많았는데, 이는오늘날법기반주와함께흥겹게노래하는한국범어범패와도닮아서앞으로이방면의연구가기대된다. 더불어범어경전을한역하는과정에한어성조가규정되었고, 중국의제례음악과궁중악가무에이르기까지인도불교의영향이미치지않는곳이없었다. 중국음악이론의근저가된삼분손익, 정악과아정함의개념변화, 불경의게송을노래하는궁중음악, 수대의 7부기와 9부기에서당대의 10부기까지서역음악을제외하고는중국궁중음악을생각할수없을정도였다. 한편, 신라의불상과사찰유물을보면대부분간다라양식인데, 실크로드지역중간다라문화를많이받아들인곳은코탄이므로인도와고탄, 경주로이어지는문화추적에서또다른연구성과가있을것으로보인다. 불교음악뿐아니라서역과한국의일반음악도막역한관계가있음에도그간이방면의연구가매우빈약하다. 앞으로는불교학과고고학등다방면의분야와교류하여연구성과를확대할필요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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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사의성범 ( 聲梵 ) 에관한연구 143 82) A Study on the Mantra chants of the Unified Silla era -Through researching the Buddhist culture of Silk Road- Yoon, Sohee* One day during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742-765), two suns risen up. The King thought of it as an evil omen. So he ordered Ven Woulmyung to redress it with Buddhist chants. Then monk Woulmyung said I can't sing Sungbeom ( 聲梵 ). I can only sing Hyangga (Silla native style songs). And so I wonder what kind of Sungbeom chants Monk Woulmyung could not sing. In fact, the word Beom means India, Mantra or Brahmā, I think the songs may have been Mantra chants. That period was in the early days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when trade was brisk through the Silk Road. At that time the main goal of the Silk Road trade was to disseminate Buddhism and Buddhist culture. Previously there had been some wandering monks who came from India or middle Asia in the early Buddhist days of China and the Silk Road. There are some records relating how wandering monks enjoyed a certain popularity, due to the magic power or the amusements of Mantra chanting. King Gyeongdeok, demonstrating his awareness of this power, consequently asked Ven Woulmyung to sing. Even though he declined to sing, it shows how mantra chants of Silk road area s or Indian style were popular at that time in Silla. Until now many Korean Buddhists have recited the mantra as incantation of belief and the mantra chant is sung with jolly rhythmical percussion accompanying the traditional Buddhist ritual, in contrast with the slow melisma melody of the Chinese lettered Beompae. This, I believe, is related to the custom of Silla mantra chanting. [key words] Woulmyungsa; Sungbeom; Mantra chants; Silla Beompae; Buddhist chants on Silk Road.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4 월 9 일 2015 년 5 월 22~6 월 20 일 2015 년 6 월 22 일 ** A Lecturer in Pusan National Univ.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45~190 쪽 2015 83)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 -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의 1907 년 ~1915 년기사를중심으로 - 이지선 ** [ 국문초록 ] 본고에서는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 경성신보 및 경성일보 기사중경성소재일본인경영극장의공연기사를분석하여, 20세기초조선에서의일본전통공연예술의양상에대해서파악했다. 경성일보 와 경성신보 에서확인되는경성소재일본인극장은 16곳이다. 이중일본전통예술을공연한극장은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 영락정 낭화관 어성좌 좌구량좌 수관 유락관의 11곳으로, 이중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은다른극장에비해공연횟수가압도적으로많다. 일본전통공연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계속증가하다가 1911년부터 1912년까지는감소, 그리고 1915년에는다시증가하는형태로나타난다. 특히 1910년에공연횟수가크게늘어난것은경성거주일본인의증가와함께극장수가증가한것과관련이있다고할수있다. 1911년과 1912년은경성의일본흥행시장의침체기로, 이를극복하려는노력이있었지만쉽게경기를회복하지는못한것으로보인다. 1915년에공연시장이활기찼던이유는조선물산공진회개최의영향으로이해된다.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경성에서가장빈번하게접할수있던일본전통공연은나니와부시이고, 이어서가부키 -라쿠고-기다유-고단-겐지부시의순이다. 이는당시일본에서나니와부시가유행하고있었던것과같은현상이다. 또한경성에서는일본의유명연주자의공연을자주접할수있었던것으로확인되는데, 이러한점은일본과경성의공연문화가큰시간차를두지않고같은형태로전개되고있었다는것을말하고있다. 경성에일본인경영극장이조선인경영극장보다월등히많았던이유는전근대부터시작된일본의관극문화가경성의일본거류민사회에까지이어졌기때문이라판단된다. 일본인극장공연중에는조선의전통공연은찾아볼수없는데, 이는한국어를사용하는공연 ( 조선신파, 조선전통예술 ) 과일본어를사용하는공연 ( 일본신파, 일본전통예술 ) 이각각조선인경영극장과일본인경영극장으로분명하게구분되어행해졌다는것을보여준다. 조선인극장에는공연을전담하는전속예인이소속되어있었던데비해, 일본인극장에는전속음악가가따로있지않았고공연을위해일본에서연주자를부르는경우가많았다. 극장의공연종목차이는조선인극장의경우소속된음악가들의전문분야에의한것인반면에일본인극장의경우는극장의규모와성격에서기인한것이라하겠다. [ 핵심어 ] 경성신보, 경성일보, 20 세기초, 경성소재일본인극장, 조선인극장 ** 본연구는숙명여자대학교 2014 학년도교내연구비지원에의해수행되었음. ** 숙명여자대학교일본학과교수.

14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차 례> Ⅰ. Ⅱ. Ⅲ. Ⅳ. Ⅴ. 머리말 경성일보 와 경성신보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공연 맺음말 Ⅰ. 머리말 이글에서는 경성신보(京城新報) 및 경성일보(京城日報) 의 기사를 분석하여 1900년대와 1910년대 조선에서의 일본 전통공연예술의 양상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일제강점기 에 발간된 주요 일본 신문을 조사하여 당시의 조선 전통공연예술 및 일본 전통공연예술의 면면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하는데, 본고는 그 연구의 일환으로 먼저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 공연 기사를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885년 경성에 일본인의 거류가 허용되자 남산 아래 진고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집거 가 시작되었다. 이 해에 일본 거류민은 88명에 불과했지만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하 고 조선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자, 이를 계기로 조선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어, 일제강점이 시작된 1910년에는 경성 거류 일본인이 1885년보다 40배가량 많은 34,468명에 달했다.1) 이러한 재경 일본인의 증가는 경성에 일본문화가 편입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 본인 거류지 형성과 더불어 오락 기관을 증설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2)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유 곽3) 과 극장이다. 경성에는 1900년대와 1910년대에 걸쳐 20여개의 극장이 생겨났는데, 이중 16개가 일본인이 경 영하는 극장이었다. 1910년 전후 일본 거류민이 당시 경성인구 28만 명의 약 1/8이었다는 것을 감 안하면, 인구 대비 극장의 비율은 일본인 경영 극장이 조선인 경영 극장보다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극장에서의 공연 관람이 재경 일본인들의 주요한 유흥의 하나였음을 짐작케 한다. 1910년대 경성의 일본인 극장 공연에 관해서는 이미 연구된 바가 있다.4) 경성신보 의 연예란 1) 1885년 경성 거류 일본인은 88명(19호)에 그쳤지만 청일전쟁(1894.6-1895.4) 후인 1895년에는 1,839명(500호)으로 크게 늘어 났고, 러일전쟁(1904-1905) 후인 1906년에는 11,724명(3,216호)으로, 1910년에는 34,468명(8,794호)으로 증가했다. 京城居留 民團役所編, 京城發達史, (京城: 京城居留民團役所, 1912), 422-423쪽. 2) 岡良助, 京城繁昌記, (東京: 博文社, 1915), 480쪽. 3) 1910년 전후로 경성에는 신정유곽(新町遊廓)과 도산유곽(桃山遊廓)을 시작으로 개운루(開運樓) 화월루(花月樓) 조일루(朝日 樓) 팔판루(八坂樓) 고도옥(高島屋) 등의 예기(藝妓) 및 창기(娼妓)가 있던 요리집, 예기가 소속되었던 중검번(中檢番)이 존 재했다. 경성신보 의 문예란에는 극장의 공연 기사와 더불어 유곽 검번 화류(花柳) 창기 예기에 대한 기사나 정보가 거 의 매일 게재되고 있어, 이에 대한 높은 수요를 짐작케 한다. 4) 洪善英, 一九一〇年前後のソウルにおける人街の演劇活動 新聞 京城新報 の演藝欄を中心に, 明治期雜誌メディ アにみる<文學>, (筑波: 筑波大學近代文學會, 2000).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47 을 조사하여 1908년부터 1911년까지의 일본인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을 살펴보고 있는데, 연구대 상은 대부분 신파이고 극장 공연도 수좌(壽座)의 공연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일본인 극장 공연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일본 전통공연의 양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외에 경성일보 의 1915년부터 1919년까지의 기사를 분석하여 조선에서의 일본음악 양상에 대해 살펴본 것이 있다.5) 다만 이 연구에서는 일본인 극장에서의 공연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고 연구 시기도 1910년대 중 후반으로, 경성의 일본문화 형성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1900년대와 1910년대 전반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6) 경성신보 및 경성일보 기사 중 일본인 극장의 전통공연 관련 기사를 수집 분석하여, 20세기 초 조선에서의 일본 전통공연 문화의 전개 양상에 대해 서 파악하고자 한다. 먼저 대상 사료인 경성일보 와 경성신보 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 두 신 문의 기사를 통하여 당시 경성에 존재한 일본인 극장은 무엇이며, 어떤 극장에서 일본 전통공연을 연행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공연된 일본 전통예술의 종류, 공연 빈도, 연행자, 특별 한 공연에 대해 파악하고, 이를 통해 조선인 경영 극장 공 연과 다른 일본인 극장 공연의 특징을 밝혀보고자 한다. Ⅱ. 경성일보 와 경성신보 경성일보(京城日報) 는 1906년 9월 1일 통감부(統監 府)의 기관지로 창간된 일본어 신문이다.7) 통감 이토 히 로부미(伊藤博文)는 대한(對韓) 보호정치(保護政治)의 정신을 내외에 선양하고 일선융화(日鮮融化)의 대의를 창도할 필요 를 느껴 당시 경성에서 발행되고 있던 한 성신보 와 대동신보 를 매수하고 이토 히로부미 자신 이 제호를 경성일보 라 명명하여 창간했다. 초대 사장 은 대한조선신문 의 편집장이었던 이토 유칸(伊藤祐侃) <그림 1> 경성일보 5) 이지선 山本華子, 1910년대 조선에서의 일본 전통음악 사정 1: 1915년~1917년 전반기의 경성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일 본연구 제32집, (중앙대학교 일본연구소); 이지선 山本華子, 1910년대 조선에서의 일본 전통음악 사정 2: 1917년 후반 기~1919년의 경성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국악교육 제36집, (한국국악교육학회, 2003). 6) 연구대상 시기를 1907년부터 1915년까지로 삼은 이유는 현존하는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가 1907년부터이고, 시기별 변화를 파악하기는 위해서는 적어도 5년 이상의 기사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7) 1906년부터 1912년까지는 일간지로 발행되었지만 1915년부터는 하루에 주간과 석간의 두 차례씩 발행되었다. 1913년과 1914 년의 경성일보 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기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파악되지 않는다. 1915년의 주간과 석간의 경우, 석간은 실제로는 이전 날짜의 신문으로 시간상으로 보면 석간이 주간보다 이른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15년 9월 2일자 신문의 경우, 석간 각 면의 윗부분에는 大正四年 九月 二日 로 게재되어 있지만 제호 위에는 一日 夕刊 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9월 1일의 석간이 9월 2일자로 발행되어 나오는 방식이다.

148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으로, 처음에는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을 발행했는데, 1907년 4월부터는 한국판의 발행을 중단했다. 1910년 8월 일제강점 후에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었고, 일본의 국민신보 사장인 도쿠토미 소호 (德富蘇峰)의 감독 하에 운영되었다.8) 총독부의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는 조선의 언론계를 통치에 유리하도록 개편하기 위해 신문통일정책 을 강행하여, 조선인들이 발행하던 신문 은 매일신보 하나만을 남겨두고 모두 없애는 동시에 일본인들의 신문도 경성일보 에 통합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로써 매일신보 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어 경성일보 와 자매지 성격을 띠게 된다. 경성일보 는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후 미군정청(美軍政廳)이 접수했으나 일본인 사장 요 코미조 미쓰테루(橫溝光輝)를 그대로 두고 발행을 지속하다가 10월 조선인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12월 11일에 폐간되었다.9) 경성신보(京城新報) 는 1907년 11월 3일 메이지(明治)천황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天長節) 에 창간된 일본어 일간 신문이다. 사장은 미네기시 시게타로(峰岸繁太郞), 발행인은 야마시타 에이 지(山下英爾)로 알려진다. 이 신문은 일본정부와 통감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 몇 차례 발행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08년 7월 5일부터 12월 23일까지는 경성신문 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다가 1909년 1월 1일부터는 다시 경성신보 라는 이름으로 발행을 이어갔다.10) 1910년 전후 경성에는 10여종의 일본인 경영 신문이 있었는데11), 대부 분이 일제강점을 전후하여 통감부와 총독부에 의해 매수 또는 폐간되었지만 경성신보 의 발행은 1912년까지 계속 되었다. 경성신보 의 발행 부수는 1910년 당시 1일 평균 5,137부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의 19,494부에 비하 면 많은 부수는 아니었지만 발행지인 1910년 경성에서의 월평균 발행 부수는 75,000부로, 경성일보 의 월평균 발 행 부수 65,232부보다 1만 부 정도 많은 수치였다.12) 이는 경성신보 가 당시 경성의 많은 일본인들이 소비하는 주 요 정보매체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신문 은 총독부를 비판하는 기사로 인해 결국 총독부에 의해 <그림 2> 경성신보 1912년 2월 29일에 폐간되었다. 정진석, 한국언론사, (서울: 나남, 1990), 327쪽. 정진석, 언론조선총독부,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63, 339-345쪽.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 책, 308쪽. 京城日報 (1906-1945, 총독부 기관지), 漢城新報 (1895-1906), 大東新報 (1904-1906), 大韓日報 (1904-1910), 中央新 報 (1906), 京城新報 (1907-1912), 朝鮮日日新聞 (1908?-1910), 龍山日出新聞 (1908-1910), 朝鮮家庭新聞 (19091932?), 東洋日報 (1909-1910), 大韓日日新聞 (1910) 등. 김태현, 광복 이전 일본인 경영신문에 관한 연구: 1881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된 일본인 경영 민간지를 중심으로,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16쪽. 12) 김태현, 한국강점 전후 경성신보 와 재한일본인사회의 동향,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68집,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1), 6-7쪽. 8) 9) 10) 11)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49 경성일보 는 1906년에 발행된 신문이지만 초기의 것은 거의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것의 대부분은 1915년 9월 이후부터이다.13) 반면에 경성신보 는 1907년 11월 발행 초기부터 폐간되 는 1912년까지 2월까지의 신문이 거의 남아있다.14) 따라서 19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 초까지의 재조 일본인 사회의 모습은 경성신보 를 통해, 1910년대 중반부터의 사회상은 경성일보 를 통 해 파악할 수 있다. 경성일보 는 총독부의 기관지이고, 경성신보 는 민간신문으로 총독부를 비 판하는 언론이라는 점에서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만 1910년 전후의 경성에서의 일본 전통 공연은 일본 거류민의 유흥을 위한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두 신문의 예술 관련 정보는 정치적 면 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성일보 와 경성신보 는 성격이 다른 언론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일본 전통공연예술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중요 한 사료라 하겠다. Ⅲ.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 경성에는 1900년대부터 수좌를 시작으로 16개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극장이 생겨났다. 1910년 전후 경성의 일본인 극장에 대해서는 극장의 주요 성격 개장 및 소멸 시기 소재지 규모 극장 주 특이사항 등에 대해서 논의된 바가 있다.15) 다만 기존 연구에서는 극장의 존속 시기에 관해서 는 출처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보완할 점도 있어, 이하에서는 기존 연구를 참고로 하되 경성신 보 및 경성일보 의 기사를 중심으로 일본인 극장의 개관과 폐관 시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 다. 두 신문 기사에서 확인되는 극장의 존속 시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3) 현재 경성일보 는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1924년-1944년 신문)과 서울대학교 도서관(1926-1945)에, 일본의 국립국회도서관 (1915-1945), 도쿄대학(東京大學)의 명치신문잡지문고(明治新聞雜誌文庫)(1930-1345), 교토대학(京都大學) 인문과학연구소 도서관(1915-1943),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 도서관(1940-1943)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기관에 있는 경성일보 는 대부분 1915년 이후의 것이다. 1915년 이전 일자는 극히 일부만이 도쿄대학 명치신문잡지문고에 마키노신문(牧野新聞)으로서 소장되 어 있다. 이는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가 식물 표본을 채집하여 대지(臺紙)로 사용했던 폐 신문에서 발견 된 것으로, 1907년 1일분(6.23), 1909년 4일분(1.1, 7.13, 10.24, 10.26), 1910년 5일분(2.17, 3.10, 3.12, 3.19, 7.12), 1911년 6일분(1.21, 5.11, 5.14, 5.19, 5.20, 5.21), 1912년 5일분(2.3, 2.4, 2.11, 2.17, 2.18)이다. 경성일보 는 2003년 영인본으로 간행 되었고( 京城日報(1915-1945) 영인본, 제1권-제205권, 서울: 한국교회사문화원, 2003. 京城日報-補遺篇(1907-1912) 영인 본, 서울: 한국교회사문화원, 2003), PDF 파일로도 제작되어(한국학술정보 京城日報 http://www.kstudy.com/kyungsung _new/), 웹상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학술정보의 경성일보 사이트는 경성일보 라는 명칭 하에 경성신보 의 일부(4년분)를 혼합하여 수록하고 있다. 즉 1907년 6월 23일자 신문은 경성일보 이지만 1907년 11월 3일부터 1912년 2월 29일까지(1908년은 없음)는 경성신보 이며, 또 이 기간 중 1911년 5월 11일과 5월 14일 일자는 경성일보 이다. 그리고 1915년 9월 2일부터 1945년 12월 11일까지는 경성일보 를 수록하고 있다. 이렇듯 두 신문이 아무런 표시 없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신문의 1면 제호나 각 면 윗부분의 제호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를 인용하게 될 수도 있다.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는 전혀 별개의 신문이므로 구분해서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4) 현재 한국에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1907-1912)에, 일본에는 국립국회도서관(1907-1912)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다. 영인본은 2003년에 간행되었다.( 京城新報 영인본 통권 제1호-통권 제10호, 서울: 한국교회사문화원, 2003) 15) 홍선영, 1910년 전후 서울에서 활동한 일본인 연극과 극장, 일본학보 제56집 제2호, (한국일본학회, 2003); 홍선영, 경성의 일본인 극장 변천사 : 식민지도시의 문화와 극장, 일본문화학보 제43집, (한국일본문화학회, 2009); 한상언, 1910년대 경 성의 극장과 극장문화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제53집, (한국영화학회, 2012).

15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경성의 일본인 극장(1906-1915)16) 가무기좌 1906년 10월 이전 개관. 1912년 2월 화재로 소실. 수좌 1906년 10월 이전 개관. 1909년 8월 개축. 1915년 12월 현재 존재. 경성좌 1906년 10월 이전 개관(?). 1908년 8월 이전(移轉). 폐관 시기 불명. 용산좌 1906년 말 개관. 1912년 2월 현재 존재. 폐관 시기 불명. 본정좌 1907년 11월 이전 개관. 1909년 2월 화재로 소실. 영락정 1909년 2월 이전 개관. 1910년 3월 현재 존재. 폐관 시기 불명. 낭화관 1909년 말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고등연예관 1910년 2월 개관. 1915년 폐관. 어성좌 1910년 6월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좌구량좌 1910년 6월 경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대정관 1910년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수관 1912년 12월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황금관 1913년 1월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세계관 1915년 3월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고등연예관의 후신) 유락관 1915년 9월 개관. 1915년 12월 현재 존재. 용광관 1915년 10월 이전 개관. 먼저 가무기좌(歌舞伎座, 가부키자)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무기좌가 정확히 언제 개관되었는지 는 불명확하다. 다만 인천가무기좌(仁川歌舞伎座)가 1906년 10월에 존재하고 있었다는17) 점으로 미루어, 경성의 가무기좌도 이 당시에는 이미 개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멸 시기에 대해서는 가무기좌소실(歌舞伎座燒失) 이라는 기사에 의해 확인된다. 기사에는 (1912년 2월) 21일 욱정(旭 町)에 있는 가무기좌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극장 한 동과 부속 주택 한 동, 총 건평 95평을 태웠 고, 피해 금액은 총 8950엔에 이른다. 18) 고 하고 있어, 이 극장은 1912년 2월에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화재 발생하루 전인 2월 20일까지 이치카와 고엔(市川小圓) 일좌에 의한 나니와부시 극(浪花節芝居) 공연 안내가 보이지만,19) 2월 21일 이후 가무기좌 공연에 관한 기사는 사라진다. 수좌(壽座, 고토부키자)가 정확히 언제 개관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전술한 가무 기좌의 개관 시기에 의해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하다. 수좌는 1909년 경성에 있던 극장 중에서 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는데,20) 전술한 가무기좌가 1906년 10월에는 이미 존재한 극장으로 16) 17) 18) 19) 20) 본 연구의 대상 기간이 1915년까지이기 때문에 폐관에 대해서는 1915년 이전에 이루어진 것만을 표시한다. 慈善演奏會開演廣告 會場仁川歌舞伎座, 朝鮮新報 1906.10.25.일5, 10.26.일5. 歌舞伎座燒失, 京城新報 1912.2.22.일3. 演藝だより 歌舞伎座, 京城新報 1912.2.20.일3. 壽座の大改築, 京城新報 1909.5.6.일3.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51 추정되기 때문에 수좌의 개관은 이보다 빠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수좌의 건물은 소위 거류지 창설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점이 있어 1909년 5월 극장주인 후루사코 가쿠지로(古迫角次 郞)가 이를 3층 건물에 정원 1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으로 크게 개축하기로 21) 하고, 7월 12일 상량식을 한 후 8월 말경 완성한 것 22) 이라고 한다. 수좌의 전신은 판본좌(坂本座, 사카모토 자)이고, 후신은 경성극장이다.23) 수좌에서의 공연은 1915년 12월 30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24) <그림 3> 수좌25) 경성좌(京城座, 게이조자)의 개관 시기는 불분명하다.26) 다만 1908년 8월 새로운 장소로 이전 (移轉)했다는 기사로 미루어, 원래 장소에서의 개관은 이때보다 적어도 1-2년 정도는 전에 이루어 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극장 이전에 관한 기사에는 (경성좌는) 본정(本町)으로 이전 개축하여, (1908년 8월) 22일에 도착한 오사카(大阪) 가부키(歌舞伎) 배우 나카무라 조에몬(中村長右衛門), 반도 다로(阪東太郞) 일좌의 공연을 개최한다. 27) 라고 전한다. 이 극장에서의 공연 기사는 1909년 9월까지28) 는 확인되지만 그 이후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경성좌는 1915년 명치정(明治町)에 壽座の大改築, 京城新報 1909.5.6.일3. 壽座の棟揚げ, 京城新報 1909.7.6.일3, 壽座の新築着手, 京城新報 1909.8.1.일3. 劇場と興亡 過去六十年間の京城, 京城日報 1921.8.13.석3. <演藝案內>壽座, 京城日報 1915.12.30.석2.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 책, 476쪽. 기존 연구에서는 조선신보 의 1906년 10월 26일자에 경성자선음악회가 경성좌에서 개최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하여, 이에 의해 경성좌의 개관 연도를 1906년 10월 이전으로 보고 있지만(한상언, 1910년대 경성의 극장과 극장문화에 관한 연구, 앞의 논문, 411쪽) 1906년 1월 26일자 조선신보 에서는 경성좌에서 개최된다는 자선음악회에 관한 기사를 확인하기 어렵다. 27) 京城座の舞臺開き, 京城新報 1908.8.25.일3, 新築落成 實川正三郞 阪東太郞 中村長右衛門 大一座-京城座, 京城新報 1908.8.25.일3.~1908.9.4.일4. 28) 京城座の慈善演藝會, 京城新報 1909.9.1.일3. 21) 22) 23) 24) 25) 26)

15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2000명 규모의 대극장으로 신축되고 있는29) 점으로 미루어, 1915년 이전에 폐관된 이후 1915년에 다시 건설되었고 1921년 이전에는 화 재로 인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31) 용산좌(龍山座, 류잔자)의 개관에 대해서는 1907년 신년 광고에 의 해서 파악된다. <그림 4>에서 보듯이 조선신보 의 1907년 1월 2일 에는 공하신년(恭賀新年) 용산 영정(榮町) 용산좌(龍山座) 신축낙성 좌주 사사베 모쿠자에몬(笹部杢左衛門) 이라는 광고가 실려 있어, 이 에 의해 용산좌는 1906년 12월경에 개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용산 좌의 소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극장의 공연은 1912년 2월 11일까지만32) 확인되고 1915년 신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33) <그림 4> 용산좌 낙성30) 본정좌(本町座, 혼마치자)에 대해서는 1907년 11월 20일 기사에서 처음 확인된다. 본정좌에서 연일 공연되고 있는 북촌극(北村劇)에 대 한 평과 함께 당일 공연작과 배역을 게재하고 있어,34) 적어도 본정좌는 1907년 11월 이전에 개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이 극장은 1909년 2월 16일 화재에 의해서 소실된다.35) 영락정(永樂亭, 에이라쿠테이)은 주로 라쿠고(落語) 고단(講談) 나니와부시(浪花節) 등의 구 연예능이나 샤미센 음악 등을 공연하는 소규모 극장인 요세(寄席)로 알려진다. 이 극장의 존속 시 기에 관해서는 1907년 전후부터 1915년 전후까지라는 설이 있지만,36) 실제 영락정에 관한 기사는 1909년 2월부터 1910년 3월까지만 찾아볼 수 있어,37) 영락정이 1907년 전후부터 1915년 전후까 지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낭화관(浪花館, 나니와칸)은 영락정과 함께 경성의 대표적인 요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극장의 개관에 대해서는 1909년 12월의 신문 광고와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축 중이었던 낭화관이 드디어 낙성되어 오사카(大阪) 나니와부시(浪花節) 대일좌를 불러 12월 1일부터 매우 싼 가격으로 공연한다. 는38) 광고에 이어, 낭화관은 친절한 손님 접대, 저렴한 입장료, 좋은 공연 내용, 숙련된 공연자의 4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어, 날씨도 춥고 연말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밤 대만원을 이루어 고 있다. 는39)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낭화관은 1909년 말에 개관된 극장임을 알 수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 책, 480쪽. 京城協贊會編, 京城案內, (京城: 京城協贊會, 1915), 256쪽. 恭賀新年 龍山櫻町 龍山座 新築落成, 朝鮮新報 1907.1.2.일4. 劇場と興亡 過去六十年間の京城, 京城日報 1921.8.13.석3. <演藝たより>龍山座, 京城日報 1912.2.11.일4. 경성신보 는 1912년에 폐간되고 경성일보 는 현재 1915년 이전의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1912년 3월부터 1915년 8월까지의 사정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용산좌가 이 기간에 폐관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本町座覗き, 京城新報 1907.11.20.일3, 本町座本日の藝題, 京城新報 1907.11.20.일3. 又々京城の大火災 火元は劇場本町座, 京城新報 1909.2.18.일3. 홍선영, 1910년 전후 서울에서 활동한 인본인 연극과 극장, 앞의 논문, 250쪽. <演藝だより>永樂亭, 京城新報 1909.2.5.일3.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浪花館, 京城新報 1909.12.7.-14.일4. <演藝だより>明治町の浪花館, 京城新報 1909.12.21.일3.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53 있다. 낭화관에서의공연은 1915년 12월까지도확인된다. 40) 고등연예관 ( 高等演藝館, 고토엔게이칸 ) 에대해서는 1910년 2월 18일기사에서처음찾아볼수있다. 농상공부길 ( 農商工部通り ) 에신축낙성한경성고등연예관에서 (2월) 18일관민수백명을초대하여활동사진개장을피로한다. 41) 는내용으로, 이에의해이극장은 1910년 2월에건립된것임을알수있다. 경성최초의활동사진관인고등연예관은대정관 ( 大正館 ) 의주인에게인수되어제2대정관으로이름을바꾸었다가 1915년 3월다시세계관 ( 世界館 ) 으로개칭했다. 42) 고등연예관은 1915년에준공된연예관 ( 演藝館 ) 과종종혼돈을일으키기도하지만43) 전자는닛타고이치 ( 新田耕市 ) 가경영했던활동사진관이고, 후자는 1915년 9월조선물산공진회 ( 朝鮮物産共進會 ) 의행사를위해경복궁내에건립된건물을44) 말한다. 어성좌 ( 御成座, 오나리자 ) 에대해서는 1906년이나 1907년전후에개관된것으로알려져왔다. 45) 하지만어성좌의개관에관해서는 1910년 5월과 6월기사에서찾아볼수있다. 남대문밖지역일대의번영을위해조직된남대문외번영기성동맹회 ( 南大門外繁榮期成同盟會 ) 는목적달성을위한첫걸음으로어성정 ( 御成町 ) 에극장을설치하여어성좌 ( 御成座 ) 라고명명하고, 내지에서인형극 ( 人形芝居 ) 단을초대하여개장한다. 46) 는기사에이어 < 그림 5> 의 어성좌낙성식 ( 御成座の落成式 ) 에는 어성좌낙성번영기성회는어성정에극장건축을위해조합원출자로공사를하고완공했다 라는설명과함께 6월 4일의공연작품명과연행자의이름을게재하고있다. 47) 두기사에서보듯이어성좌는남대문외지역일대의번영을목적으로조합원들의출자로 1910년 6월에개관한것임을알수있다. 이후어성좌에서의공연은 1915년 12월까지도확인된다. 48) 어성좌가언제까지존속되었는지는아직확인되지않지만늦어도 1921년이전에는화재로인해사라진것으로보인다. 49) 40) < 演藝案內 > 浪花館, 京城日報 1915.12.30. 석 3. 41) 演藝館の披露, 京城新報 1910.2.18. 일 3. 42)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80 쪽. 43) 홍선영, 경성의일본인극장 변천사 : 식민지도시의문화와 극장, 앞의논문, 291 쪽. 44) 演藝館竣工す, 京城日報 1915.9.7. 조 2, 演藝館の舞臺開き, 京城日報 1915.9.9. 석 2. 45) 홍선영, 1910 년전후서울에서활동한인본인연극과극장, 앞의논문, 250 쪽 ; 한상언, 1910 년대경성의극장과극장문화에관한연구, 앞의논문, 411 쪽. 46) 御成座の落成式 - 六月初旬に蓋開け, 京城新報 1910.5.31. 일 3. 47) 御成座の落成式 - 淨瑠璃入人形芝居, 京城新報 1910.6.4. 일 3. 48) < 演藝案內 > 御成座, 京城日報 1915.12.30. 석 2. 49) 劇場と興亡 - 過去六十年間の京城, 京城日報 1921.8.13. 석 3.

154 국악원논문집 제31집 <그림 5> 어성좌 개관에 관한 기사50) <그림 6> 좌구량좌(앵좌) 개관에 관한 기사51) 좌구량좌(佐久良座, 櫻座, 사쿠라자)의 개관에 관해서는 <그림 6>에 제시한 1910년 5월 용산 앵 좌의 낙성식(龍山櫻座の落成式) 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용산 삼각지에 작년(1909년)부터 극 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다음 달에 낙성식을 거행한다. 이 극장을 사쿠라자(櫻座)로 명명하는데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극장이다. 건물은 히로시마(廣島)의 서유곽(西遊廓) 신명좌(神明座)를 옮겨놓은 것 같은 형태로, 히로시마시의 가와노(河野廣吉)가 소유에 관여하고 용산의 가와타(川田 又藏), 야마네(山根兵助) 외 1명이 모든 일을 힘쓰고 있다. 낙성 후에는 가와카미 오토지로(川上音 次[二]郞)나 이치카와 우단지(市川右團次) 일좌를 초빙하여 화려하게 흥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52) 라는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좌구량좌(사쿠라자)는 원래 앵좌(櫻座, 사쿠라자) 라는 명칭이었고, 1910년 6월경에 낙성 예정이라는 점, 1500석 규모의 대극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신파극 의 창시자라 불리는 가와카미 오토지로(1864-1911)나 가부키 배우 초대(初代) 이치키와 우단지 (1843-1916)의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서양식 연극과 일본 전통극을 모두 공연하는 극장으로 계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좌구량좌의 건설은 신파극의 가와카미 오토지로의 경성 방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53) 1909년 1월 기사에는 조선에서 혁신극을 공연하고 계획한 가와카미 오토지로가 사전 답사를 통해 극장 사정이 열악하다고 지적함으로써 경성에 대극장 건설 이 거론되었고, 극장 건설지로 용산을 예상하고 있다. 54) 는 내용이 게재되어 있는데, 이 새로운 극 장을 용산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55) 전술했듯이 용산좌는 이미 1906년 말에 개관한 극장으로, 기사에서 말하는 극장은 좌구량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좌구량좌는 용산 삼각지에 건설되었 50) 51) 52) 53) 54) 55) 御成座の落成式 淨瑠璃入人形芝居, 京城新報 1910.6.4.일3. 龍山櫻座の落成式 一千五百名を容る, 京城新報 1910.5.25.일3. 龍山櫻座の落成式 一千五百名を容る, 京城新報 1910.5.25.일3. 川上音次郞來る, 京城新報 1908.12.18.일3. 大劇場の建設呼, 京城新報 1909.1.5.일3. 홍선영, 一九一〇年前後のソウルにおける人街の演劇活動 新聞: 京城新報 の演藝欄を中心に, 앞의 논문, 72-73쪽; 홍선영, 1910년 전후 서울에서 활동한 인본인 연극과 극장, 앞의 글, 247-248쪽.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55 다는점, 가와카미가조선을방문한직후인 1909년부터건설되었다는점, 그리고낙성후가와카미오토지로일좌의공연을무대에올릴것이라는점이이를뒷받침한다. 좌구량좌에서의공연은 1915년 12월까지도이어지고있다. 56) 대정관 ( 大正館, 다이쇼칸 ) 은 1910년에개관한활동사진관이다. 정원은 1200명으로, 전속기관으로연예부 ( 演藝部 ) 가있었다. 57) 1915년 12월말까지신파와구극 ( 시대극 ) 상영이확인된다. 58) 수관 ( 壽館, 고토부키칸 ) 은 1912년 12월 5일에개관한극장으로알려진다. 59) 정원은 800여명으로, 신파와일본전통예술모두를무대에올린것으로보인다. 수관에서의공연은 1915년 12월에도확인된다. 황금관 ( 黃金館, 오곤칸 ) 은 1913년에개관한활동사진관이다. 60) 1915년 12월말까지신파등을상영하고61) 있다. 세계관 ( 世界館, 세카이칸 ) 은활동사진관으로, 전술한고등연예관의후신이다. 고등연예관이후제2대정관으로불리었는데, 당시에는조선인손님본위의극장이었지만경성에일본인이많아짐에따라 1915년 3월세계관으로개칭한이후로는일본인본위의극장이되었다. 62) 세계관에서는활동사진외에마술등도공연한것으로 63) 보인다. 유락관 ( 有樂館, 유라쿠칸 ) 의개관은 1915년 9월기사에의해확인된다. 신문에는 경성호텔나카하라데쓰오미 ( 中原鐵臣 ) 가경영하는고등연예장유락관에서 19일신축낙성축하회를개최하고, 64) 경성관민 1200여명을초대하여여흥으로활동사진을관람, 연회에서는기비가쿠 ( 吉備樂 ) 와기술 ( 奇術 ) 등을연행한다. 65) 라는내용과 20일부터개관 66) 한다는광고를연일게재하고있다. 이에의해유락관은 1915년 9월 20일에개관한활동사진관과연예장을겸한극장이었음을알수있다. 용광관 ( 龍光館, 류코칸 ) 은활동사진관으로, 정확한개관시기에대해서는확인되지않는다. 다만용광관에관해서는 1912년이전기사에는보이지않고 1915년 10월에신파와구극을상연하고67) 있는점을보아 1915년 10월이전에는개관되었음을알수있다. 이상살펴본바에의하면, 1906년에서 1907년사이에개관한극장은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임을알수있다. 이는 1907년 11월당시경성에극장이 5개존재하고있다는기사내용68) 과도일치한다. 1909년경에는영락정과낭화관이, 1910년에는고등연예관 어성좌 56) < 演藝案內 > 佐久良座, 京城日報 1915.12.1. 석 4. 57)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78 쪽. 58) < 演藝案內 > 大正館, 京城日報 1915.12.11. 석 2. 59)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78 쪽. 60)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74 쪽. 61) < 演藝案內 > 黃金館, 京城日報 1915.12.30. 석 2. 62)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79-480 쪽. 63) < 演藝案內 > 世界館, 京城日報 1915.9.30. 석 3. 64) 有樂館落成祝賀會, 京城日報 1915.9.19. 석 2. 65) < えんげい > 有樂館開館式, 京城日報 1915.9.19. 조 3. 66) 新築落成卄日より開館有樂館, 京城日報 1915.9.20. 석 2. 67) < 演藝案內 > 龍光館, 京城日報 1915.10.9. 석 3.

15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좌구량좌 대정관이 개관하고, 1912년 이후로는 수관 황금관 세계관 유락관 용광관이 건립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 살펴본 극장의 존속 시기를 표로 나타내면 <표 1>과 같다. <표 1> 경성의 일본인 극장의 존속 시기(1906-1915)69) Ⅳ.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공연 1.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의 연예란 경성신보 와 경성일보 에는 <그림 7> 및 <그림 8>과 같이 극장의 공연 소식을 전하는 연예 란 70) 이 있다. 연예란에는 극장의 이름과 함께 공연 정보가 게재되어 있어, 이를 통해 어떤 극장 에서 어떤 공연 이 누구 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다. 이하에서는 경성신보 68) 本町座覗き, 京城新報 1907.11.20.일3. 69) 점선이 앞에 있는 경우는 개관 추정 시기를, 점선이 뒤에 있고 물음표가 뒤에 있는 경우는 해당 극장에서의 공연이 그 시기까지 는 확인되지만 이후 언제 극장이 폐관되었는지 불명확한 경우를 나타낸다. 70) 두 신문의 연예란은 여러 종류이다. 경성신보 의 연예란은 연예소식 (演藝だより)에서 시작하여, 연예계(演藝界), 연예(演 藝), 귀와 귀(耳と耳), 연예소식 으로 바뀌었고, 경성일보 연예란은 일간만 발행되었던 1910년과 1912년에는 연예소식(演 藝たより) 한 종류이지만 주간과 석간이 나오던 1915년에는 주간에는 연극과 유예 (芝居と遊藝) 또는 연예 (えんげい)가, 석간 에는 연예안내(演藝案內) 가 게재되어 있다.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57 와 경성일보 의 연예란을 중심으로 하고 여타 기사도 참고로 하여,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에서의 일본 전통공연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연예소식 연예계 연예 귀와 귀 <그림 7> 경성신보 의 연예란 연예소식 연극과 유예 연예 연예안내 <그림 8> 경성일보 의 연예란 2. 연도 별 일본 전통공연 양상 1) 일본 전통공연 빈도 1907년부터 1915년까지 일본인 극장에서 이루어진 일본 전통공연을 종류와 시기로 나누어 공연 횟수를 표시하면 <표 2>와 같다. 표에는 앞서 살펴본 16곳의 극장 중에서 11곳만을 나타냈는데, 이는 일본 전통공연이 가무기좌 수좌 경성좌 본정좌 용산좌 영락정 낭화관 어성좌 좌 구량좌 수관 유락관에서만 확인되기 때문이다. 고등연예관 대정관 황금관 세계관 용광관 은 활동사진관이었기 때문에 음악회와 같은 형태의 공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71) 71) 같은 활동사진관이지만 유락관은 고등연예관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낙성 기념으로 나니와부시(浪花節)의 대가로 알려진 요시다 나라마루(吉田奈良丸)의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吉田奈良丸 有樂館, 京城日報 1915.10.1.석2, <演藝案內>有樂館 吉田奈良丸, 京城日報 1915.10.1.석4.

15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표 2> 경성소재일본인극장에서의일본전통공연 72) 연도극장가부키구극기다유나니와부시 1907 (11-12) 1908 (1-12) 1909 (1-12) 1910 (1-12) 1911 (1-12) 1912 (1-2) 겐지부시 라쿠고고단기타합계 가무기좌 - - - - - - - 3 3 소계 0 0 0 0 0 0 0 3 3 수좌 - - 2 - - - - - 2 가무기좌 - - - - - - - 2 2 경성좌 12 - - - - - - - 12 본정좌 2 - - 5 - - - 1 8 소계 14 0 2 5 0 0 0 5 19 수좌 - - 7 6 - - - - 13 가무기좌 - 19-2 - - 10 5 36 용산좌 - - 6 - - - - - 6 영락정 - - 4 86 10 30 - - 130 낭화관 - - - 5 - - - - 5 소계 14 19 17 99 10 30 10 10 204 수좌 98-6 15 15 18 14 14 180 가무기좌 41 19-22 - - 7 6 95 용산좌 - - 2 12-4 1-19 영락정 - - - 2 - - - - 2 낭화관 - - 48 85-55 9 8 205 어성좌 - - - - - - - 20 20 소계 153 19 73 235 15 77 31 38 705 수좌 49 - - 4 - - 15 5 73 가무기좌 41-1 53 - - - - 95 용산좌 - - 1 6 - - - 7 14 낭화관 - - 48 83-66 - 27 224 어성좌 - - - 15 - - - - 15 좌구량좌 - - - 2 - - - - 2 소계 243 19 123 396 15 143 46 77 1,126 수좌 - 20-4 - - - 4 28 가무기좌 - - - 14 - - - - 14 낭화관 - - - - - 27 4-31 좌구량좌 - 1 - - - - - - 1 소계 243 39 123 414 15 170 50 81 1,199 72) 표에나타낸공연횟수는신문의연예란과기사를바탕으로작성한것으로, 실제공연은이보다많을것으로생각된다.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59 수좌 7 - - 6 - - - - 13 낭화관 - - - 81-23 - 3 107 1915 (9-12) 좌구량좌 21 - - 13 - - - - 34 수관 - - 16 15-15 - 14 60 유락관 - - - 7 - - - - 7 소계 271 39 139 529 15 208 50 98 1,413 총계 271 59 141 543 25 238 60 119 1,456 < 표 2> 73) 에서보듯이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일본인극장에서주로공연된일본전통예술은가부키 ( 歌舞伎 ) 74) 구극 ( 舊劇 ) 75) 기다유 ( 義太夫 ), 76) 나니와부시 ( 浪花節 ) 77) 겐지부시 ( 源氏節 ) 78) 라쿠고 ( 落語 ) 79) 고단 ( 講談 ) 80) 이다. 이들공연은대부분일주일이상길게는한달이상계속된장기공연으로, 극장이주관한상설공연이다. 이외에극장주관의공연이라도단발성의특별공연이거나 81) 외부의대관공연, 82) 자선을목적으로한비영리음악회 83) 등은 기타 로묶었는데, 여기에는노가쿠 ( 能樂 ) 84) 이마요노가쿠 ( 今樣能樂 ) 85) 하카타니와카 ( 博多仁輪加 ) 86) 게이 73) 용산좌에서는 1910년 6월 12일부터 22일까지우카레부시극 ( 浮れ節芝居 ) 공연이있었다. 우카레부시 ( 浮れ節 ) 는나니와부시 ( 浪花節 ) 와같은것으로, 관서지방과규슈 ( 九州 ) 지방에서메이지 ( 明治, 1868-1911) 말기까지불리던명칭이었다. 따라서 < 표 2> 에는우카레부시를 나니와부시 의항목에포함시켰다. 74) 노래 ( 歌 ) 춤 ( 舞 ) 기예 ( 伎 ) 로구성된일본의대표적인전통연극으로남성배우에의해연행된다. 음악은기다유 ( 義太夫 ) 도키와즈 ( 常磐津 ) 기요모토 ( 淸元 ) 나가우타 ( 長唄 ) 등의샤미센 ( 三味線 ) 음악이다. 75) 경성신보 에서말하는구극은공연작품으로볼때가부키를가리키는것으로보인다. 다만본고에서는신문의표기에따라구극이라고표시한다. 76) 샤미센을반주로하는이야기체음악, 즉조루리 ( 淨瑠璃 ) 의일종이다. 노래와대사를담당하는다유 ( 太夫 ) 와샤미센연주자로구성된다. 인형극전용음악으로, 가부키에서사용되기도하고연극과관계없이순수음악으로도연주된다. 77) 로쿄쿠 ( 浪曲 ) 의옛명칭. 로쿄쿠는샤미센을반주로하는이야기체음악의일종이다. 1917년이전까지나니와부시라는명칭으로불렸고, 관서지방과규슈지방에서는우카레부시로불리기도했다. 78) 설경 ( 說經 ) 제문 ( 祭文 ) 에샤미센음악인신나이부시 ( 新內節 ) 을도입한음악이다. 메이지시대에유행했지만현재에는연주되지않는다. 79) 무대에혼자앉아골계적인이야기를들려주는구연예능. 80) 무대에책상을놓고앉아무용담, 정담 ( 政談 ) 등을들려주는구연예능. 81) 御成座の人形芝居- 珍しいので大受け, 京城新報 1910.6.12. 일3, 壽座の今樣能樂, 京城新報 1910.9.13. 일3, 能樂大會- 有樂館にて二日間 - 京城空前の催し, 京城日報 1915.10.28. 석 2. 82) 이하는 경성신보, 京城樂友會第三回音樂 1907.11.13. 일 3, 京城樂友會開催 1908.3.27. 일 3, 京城樂友會 1908.6.14. 일 3, 京城樂友會音樂會 1908.12.6. 일 3, 京城樂友會音樂會 1909.3.31. 일 3, 樂友會の大會番組 1910.8.20. 일 3, 中檢の披露演劇 1909.6.20. 일 3, 中檢の披露演劇 1909.6.22. 일 3, 中券番開業披露 1909.7.1.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藝妓芝居 1909.7.4. 일 3, 中檢藝妓芝居の終了 1909.7.7. 일 3. 이하는 경성일보. 琵琶會 - 橘流筑前琵琶 1912.2.18. 일 4,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 1915. 10.1. 석 4, 壽館 - 秋季淨瑠璃大會 1915.9.29. 석 3, 浪花館 - 若葉會素人淨瑠璃秋季大會 1915.11.29. 석 4, 壽館 - 京城名士出場素人淨瑠璃大會 1915.12.12. 석 4. 83) 이하는 경성신보, 慈善演藝會趣旨書 - 韓國京城孤兒院慈善演藝會 - 初日番組 1909.6.17. 일 3, 京城座の慈善演藝會 1909.9. 1. 일 3, 永樂亭の慈善演藝會 1909.9.3. 일 3, 慈善演藝會 - 大阪汎愛扶植會京城慈善會 1910.3.21.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韓國助産婦養成所慈善演奏會 1910.3.23. 일 3. 84) 전통가면극으로남성배우에의해연행된다. 배우의대사와노래외에, 지우타이 ( 地謠 ) 라는합창과고쓰즈미 ( 小鼓 ) 오쓰즈미 ( 大鼓 ) 다이코 ( 太鼓 ) 후에 ( 笛 ) 로구성되는하야시 ( 囃子 ) 라는반주가함께한다. 85) 1900 년대에만들어진노 ( 能 ) 로, 일반적인노와는달리가면을착용하지않고, 반주에샤미센이첨가되며여성배우도함께하는것이특징이다.

160 국악원논문집 제31집 기연극(藝妓芝居) 자선연예회 비전문가 조루리(淨瑠璃)대회, 비와(琵琶)연주회 등이 있다.87) 그럼, 연도 별로 총 공연 횟수를 비교해보자. 1908년부터 1911년까지는 12개월간의 신문이 남아 있지만 1907년(2개월) 1912년(2개월) 1915년(4개월)은 일부만 남아있어, 비교 조건이 같지 않 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조건으로 맞추기 위해 편의상 1907년 1912년 1915년의 공연 횟수를 1 년 치로 환산해보았다. 1907년 2개월간(11-12월) 이루어진 일본인 극장에서의 전통공연 횟수는 3회로 이를 1년 치로 계산해보면 18회가 되고, 1912년 2개월간(1-2월)의 공연 횟수는 74회이므로 1년 치로는 444회가 되며, 1915년 4개월간(9-12월)의 공연 횟수는 221회이므로 1년 치로 환산하면 663회가 된다. 다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912년 2월에 가무기좌가 화재로 소실되기88) 때문에 그 영향도 고려할 필요 가 있다. 가무기좌는 대략 1년 동안의 일본인 극장에서의 전통공연 중 약 20%를 담당하고 있었는 데,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1912년에는 444회(2달의 공연 횟수를 1년 치로 환산)의 공연 횟수에 서 20% 줄어든 355회 정도의 공연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렇게 계산한 것을 정리하면, 1907년에는 18회(추정), 1908년에는 24회, 1909년에는 190회, 1910년에는 521회, 1911년에는 423회, 1912년에는 355회(추정), 1915년에는 663회(추정)의 일본 전통공연이 일본인 극장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그림 9>와 같다. 1907년과 1912년, 1915년은 각각 2개월, 2개월, 4개월을 1년 치로 환산한 수치이기 때문에 그림에 서는 옅은 막대로 표시했다. 800 700 600 500 400 300 200 100 0 1907 1908 1909 1910 1911 1912 1915 <그림 9> 일본인 극장에서의 일본 전통공연 횟수(연도별) (1907년[2개월] 1912년[2개월] 1915년[4개월]은 1년 치로 환산) 86) 골계를 주로 한 잡예로, 민간예능의 일종이다. 87) 어떤 일본 전통예술이 어떤 극장에서 어느 시기에 공연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부록으로 작성하여 말미에 첨부한다. 88) 歌舞伎座燒失, 京城新報 1912.2.22.일3.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61 <그림 9>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07년(3회, 18회로 환산)과 1908년(24회)에는 1년 동안의 공연 이 20회 전후에 불과하지만 1909년(190회)의 공연 횟수는 이전보다 약 9배 증가하고 있고, 1910 년(521회)에 이르면 1909년보다 2.7배, 1907년과 1908년보다 26배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1911년 (423회)은 공연 횟수가 1910년보다 100회 정도 적어지고, 1912년(74회, 355회로 환산)은 1911년 보다 0.8배 감소, 1910년보다는 0.6배 감소하고 있다. 1915년(221회/663회로 환산)에는 다시 공연 이 많아져, 1910년의 1.2배, 1911년의 1.5배, 1912년의 1.8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 1907년의 일본 전통공연 전술했듯이 1907년에는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의 일본 전통공연은 3회만 확인된다. 3회의 공 연도 일본음악과 서양음악과의 합동 연주회이다. <그림 10>은 1907년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가 무기좌에서 열린 경성악우회(京城樂友會)89) 주최 연주회 중 첫째 날 프로그램이다. 일본 전통예술 로는 샤쿠하치(尺八) 고토(琴) 야쿠모고토(八雲琴, 2현금) 산겐(三絃, 샤미센) 지쿠젠비와(筑 前琵琶) 조루리(淨瑠璃, 기다유부시義太夫) 요쿄쿠(謠曲) 시마이(仕舞)가, 서양음악으로는 바 이올린과 오르간이 연주되었고, 서양 연극이나 서양 무용극으로 보이는 무답(舞踏), 그리고 육군군 악대의 연주 순서도 보인다. 1907년의 일본 전통공연은 이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90) <그림 10> 경성악우회 제3회 연주회 프로그램(1907년)91) 3) 1908년의 일본 전통공연 1908년의 극장에서의 공연은 24회이다. 수좌에서 기다유부시 공연이 3회 확인되고, 가무기좌에 서 경성악우회 연주회가 2회, 경성좌에서 가부키가 12회, 본정좌에서 가부키가 2회 나니와부시가 89) 재경일본인의 오락과 취미를 위해서 설립된 단체로, 경성악우회 연주회는 1910년 8월까지 확인된다, 樂友會の大會番組, 京 城新報 1910.8.20.일3. 90) 경성박람회 협찬회의 폐회식에서 일본전통예술 중 라쿠고와 게이기 무용이 있었고 인천의 군함 환영회에서 게이기 무용이 연 행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행사 여흥의 일환이지 일반 관객을 위한 공연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協贊會閉會式, 京城新報 1907.11.15.일3, 協贊會閉會式, 京城新報 1907.11.17.일2, 仁川の軍艦歡迎會, 京城新報 1907.12.3.일2. 91) 京城樂友會第三回演奏順序, 京城新報 1907.11.19.일2.

16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5회 기타 공연이 1회 개최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1908년 1년 동안 공연된 일본 전통예술은 24회 정도만 확인되고 있는 데 반하여 서양식 연극은 고키 다무라(小喜多村) 일좌(가무기좌), 이도 후미오(伊東文夫) 일좌(본정좌, 가무기좌), 시라카와 히로이치(白川廣一) 일좌(본정좌), 기무라 다 케오(木村猛夫) 일좌(수좌), 사카이 세이슌(酒井政俊) 일행(수좌) 등의 공연이 1 4 8 9 10 11월에 연일 이어지고 있다.92) 일본 전통공연이 전체적으로 적은 가운데, 특히 라쿠고 공연은 경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같다. 이는 시민들이 의견을 피력하는 경성신보 의 <평민문고>에 라쿠고가 경성(當地)에 안 오 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라쿠고 광) 93) 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이것은 당시 경성에 있던 일본 인 극장은 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본정좌 용산좌로, 대부분 연극을 상연하는 비교적 큰 극장 으로, 주로 라쿠고나 고단 등을 상연하는 소규모 연예장인 요세가 경성에 거의 없었던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94) 1908년 전통공연 중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세키산 주로(關三十郞) 일좌의 가부키 공연이95) 있다. 이 외에 경성좌의 개축기념으로 오사카의 지쓰카와 세이사부로(實川正三郞) 반도 다로(阪 東太郞) 나카무라 초에몬(中村長右衛門) 일좌의 가부키 무대도96) 열흘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4) 1909년의 일본 전통공연 1909년에는 일본 전통예술을 공연한 날이 190회로 전년도의 9배에 달한다. 공연된 장르도 다 양해져서 구극(가부키로 추정) 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 고단 등이 무대에 올 랐다. 이전과 비교하여 먼저 주목되는 점은 나니와부시의 공연 횟수가 현저히 많아진 점이다. 나니와 부시는 전체 공연의 52%(99회)를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라쿠고 고단 겐지부시 등이 적지 않게 공연되고 있는 점이다. 라쿠고 고단 기다유 등은 일반적으로 연행자가 1-3명 정도의 소규모 공연으로 주로 요세에서 상연되는데, 1909년에는 영락정과 낭화관의 요세 두 곳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작은 공연이 자주 연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낭화관은 1909년 말에 개 관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라쿠고 고단 기다유 등은 영락정에서 공연되었다. 1909년의 전체 공 연(190회) 중에서 영락정에서의 공연은 68%(130회)로 전체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다. 1909년에는 전통 공연을 위해 일본에서 여러 연주자들이 경성을 방문했는데, 그 중 주목되는 연 주자는 기다유의 다케모토 잇쇼(竹本一昇)와 고단의 비토 잇초(美當一調, 1847-1928)이다. 잇쇼 92) 小喜多村一座の開演, 京城新報 1908.1.5.일3, 伊東一座の開演, 京城新報 1908.4.23.일3, 伊東文夫一座の開演, 京城新 報 1908.8.8.일3, 演藝だより 本町座白川一座, 京城新報 1908.8.12.일3, 壽座の木村一座, 京城新報 1908.9.13.일3, 壽 座の不如歸(木村猛夫), 京城新報 1908.10.1.일3, 壽座今晩の替狂言(酒井), 京城新報 1908.11.21.일3. 93) 平民文庫 落語家が當地に來ないのは, 京城新報 1908.8.7.일3. 94) 요세인 영락정과 낭화관은 각각 1909년 2월 이전과 1909년 12월경에 개관한다. 95) 本町座の關三一座, 京城新報 1908.12.18.일3. 96) 京城座の舞臺開き, 京城新報 1908.8.25.일3.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63 일좌의 공연에 대해서 종래에 한국에 왔던 기다유 연주단은 대부분 여성 다유(娘太夫)들로, 조루 리(淨瑠璃)의 기예보다는 오히려 미모와 애교를 보여주고자 하는 편이었지만 다케모토 잇쇼 일좌 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훌륭한 조루리이다. 라고97) 평하고 있다. 이에 의해 당시 경성에서 기다유 공연은 주로 여성에 의한 것이었고, 남성 다유에 의한 공연은 오히려 화제가 될 만한 것이 었음을 알 수 있다. 비토 잇초는 군사 고단(軍事講談)의 태두로 알려지는데, 당시 공연에서는 지쿠젠비와의 명수 미 요시 가즈마(三好數馬)와의 합동 연주로 호평을 받아 그에 관한 기사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앞의 다케모토 잇쇼의 기다유 공연 입장료가 20전 균일인 것에 비해 비토 잇초의 공연은 1등석이 1엔, 2등석이 75전, 3등석이 30전의 고가인 점으로 보아 명인의 수준 높은 공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 다.98) 이외에 겐지부시 공연으로는 겐지부시의 창시자로 알려지는 오카모토 미네다유(岡本美根太夫) 의 제자 오카모토 미네마쓰(岡本美根松) 일좌의 연주가 있었고,99) 나니와부시 공연으로는 요시카 와 엔초(吉川圓朝), 요시카와 다쓰마루(吉川辰丸), 고텐구 요네마루(小天狗米丸) 등의 무대도 있었 다. 다만 이들에 대해 독립 기사로는 다루고 있지는 않은 점으로 미루어, 크게 화제가 되는 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1910년의 일본 전통공연 1910년에는 일본 전통공연(521회)이 1909년(190회)에 비해 2.7배 증가하고, 공연의 종류도 다양 해진다. 이 해에 공연된 장르는 가부키 구극 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 고단 이마요 노가쿠(今樣能樂) 인형극(人形芝居)으로, 이마요 노가쿠와 인형극은 경성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분야이다.100) 공연의 수와 내용이 풍부해진 첫 번째 이유로는 경성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910년은 일제강점이 시작된 해로, 경성 거주 일본인은 크게 늘어나 경성의 총 인구 28만 명 중의 34,468명101) 이 일본인이었다. 일본 거류민이 증가함에 따라 공연에 대한 수요가 증 가하고 이를 반영하듯이 극장의 수가 점차 늘어났는데, 1909년 12월에는 전통공연 전문 극장인 낭 화관(요세)이, 1910년 6월에는 어성좌가, 8월에는 좌구량좌가 개관되었다. 특히 1910년에는 낭화 관에서의 공연(205회)이 전체 공연(521회)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어, 낭화관의 개관이 일본 전통 공연의 증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97) 壽座の義太夫 未曾有の好淨瑠璃, 京城新報 1908.4.11.일3, 壽座の義太夫を聽く, 京城新報 1909.4.13.일3. 98) 美當一調の開演, 京城新報 1909.7.9.일3, 美當一調は今夜から, 京城新報 1909.7.10.일3, 美當一調を聽く(上), 京城新 報 1909.7.13.일3, 美當一調を聽く(下), 京城新報 1909.7.14.일3. 99) 演藝界 永樂亭 岡本美根松一座, 京城新報 1909.4.23.일3. 100) 공연의 증가 양상은 전통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신파극에서도 나타난다, 新年の韓國劇壇 大方は新派劇で占む, 京城新報 1909.12.11.일3, 五月の韓國劇壇 新派と舊派と落語, 京城新報 1910.4.29.일3. 101) 京城居留民團役所編, 京城發達史, (京城: 京城居留民團役所, 1912), 423쪽.

164 국악원논문집 제31집 1910년에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일본 전통예술은 가부키(139회)로 이를 구극(19회)과 합하면 전체의 30%(158회)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나니와부시 26%(136회), 라쿠고 15%(77회), 기다유 11%(56회)가 뒤를 있고 있다. 1909년에는 나니와부시(52%)가 전체 공연의 반 이상으로 한 장르에 집중되었던 반면에, 1910년에는 가부키 공연이 나니와부시와 비슷한 비중이 되어 전체적으로 볼 때 쏠림 현상 없이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해에는 일본의 많은 유명 연주자와 배우들이 경성으로 와서 여러 극장을 돌며 공연한 것으로 보인다. 가부키와 구극에서는 <그림 11>의 젊은 배우 나카무라 후쿠엔(中村福圓) 일좌102) 와 여우 (女優) 나카무라 도키코(中村時子) 일좌103) 가, 고단에서는 <그림 12>의 2대 모모카와 자쿠엔(桃川 若燕, 1873-1947),104) 라쿠고에서는 2대 산유테이 긴바(三遊亭金馬, 1868-1726)105) 의 공연이 인 기를 끌었고, 나니와부시에서는 도추켄 조운(桃中軒如雲, 1892-1974)이106) 16살의 어린 나이에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되었으며, 오사카의 도추켄 호시에몬(桃中軒星右衛門)107) 의 나니와부시와 2대 다케모토 오시마타유(竹本大島太夫, 1856-1915)의 노련한 기다유 무대도 호평을 이끌었다.108) <그림 11> 나카무라 후쿠엔의 가부키(1910년)109) <그림 12> 모모카와 자쿠엔의 고단(1910년)110) 또한 어성좌의 개관 기념으로 일본에서 온 인형극(人形芝居) 일좌의 공연도111) 1910년의 주목 할 만한 공연 중의 하나이다. 이전까지는 가수인 다유(太夫)와 샤미센 연주자로만 구성된 조루리 102) 中村福圓優來る, 京城新報 1910.1.14.일3, 歌舞伎座の好評, 京城新報 1910.1.18.일3. 103) 中村時子の乘込, 京城新報 1910.4.20.일3, 中村時子の初日, 京城新報 1910.4.21.일3, 五月の韓國劇壇 新派と舊派と落 語, 京城新報 1910.4.29.일3. 104) 桃川若燕の乘込, 京城新報 1910.5.20.일3, 桃川若燕の開演, 京城新報 1910.5.24.일3, 桃川若燕, 京城新報 1910.5. 25.일3, 桃川若燕を聽く, 京城新報 1910.5.26.일3. 105) 金馬一座の乘込, 京城新報 1910.6.21.일3, 壽座の三遊亭金馬, 京城新報 1910.6.24.일3. 106) 桃中軒如雲の來韓, 京城新報 1910.6.28.일3, 桃中軒如雲の乘込, 京城新報 1910.7.1.일3, 桃中軒如雲の初日, 京城新 報 1910.7.5.일3, 如雲の好人氣, 京城新報 1910.7.7.일3, 如雲一座を聽く, 京城新報 1910.7.9.일3. 107) 桃中軒星右衛門, 京城新報 1910.2.11.일3, 星右衛門を聽く, 京城新報 1910.2.13.일3. 108) 大島太夫の開演, 京城新報 1910.9.4.일3, 大島太夫を聽く, 京城新報 1910.9.8.일3. 109) 歌舞伎座の好評, 京城新報 1910.1.18.일3. 110) 桃川若燕を聽く, 京城新報 1910.5.26.일3. 111) 御成座の落成式 淨瑠璃入人形芝居, 京城新報 1910.6.4.일3.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65 (기다유) 형태는 종종 볼 수 있었으나 다유 샤미센 인형이 함께 하는 분라쿠(文樂) 방식의 인형 극은 경성에서는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112) 이러한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인형극을 관람하기 위해서 경성의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113) 이외에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가 있었던 이마요 노가쿠(今樣能樂)가 경성에서 공연 된 점도114) 눈에 띈다. 이마요 노가쿠는 1900년대에 이즈미 스케사부로(泉祐三郞)가 창시한 노(能)로, 일반적 인 노와는 달리 가면을 착용하지 않고, 반주에 샤미센이 첨가되며 여성 배우도 함께 하는 것이 특 징이다.115) 이마요 노가쿠는 수좌에서 약 10일 동안 공연되었다. 6) 1911년의 일본 전통공연 1911년의 일본인 극장에서의 전통공연(423회)은 1910년(521회)보다 약 100회 감소한 것으로 나 타난다. 나니와부시를 제외한 장르의 공연은 모두 줄어들었는데, 가부키와 구극은 90회로 전년도 (158회)보다 약 70회 정도가 줄어들었고, 겐지부시 공연은 찾아볼 수 없으며 라쿠고는 약 10회, 고단은 약 15회가 감소했다. 이렇듯 대부분 장르의 공연이 줄어든 반면에 나니와부시는 오히려 약 30회 정도가 증가하고 있어 변함없이 인기 있던 장르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해에 가장 많이 공연된 일본 전통예술은 나니와부시(163회)로 전체의 39%를 차지한다. 그 다음이 가부키 21%(90회), 라 쿠고 16%(66회), 기다유 12%(50회)가 뒤를 있고 있다. 1910년에 비해 공연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경성의 일본 공연 시장이 전년도에 비해 침체된 것을 의미한다. 실제 당시에는 극장계의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의 유명 연주자와 가 부키 극단의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기사에는 경성 연극계는 작년 겨울 이후로 부진한 가 운데 각 극장은 관객을 만족시키고자 경쟁하듯이 공연을 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 여 생존의 무대가 지금부터 전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고전을 면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성 극장계의 부진을 비분(悲憤)하여 경용(京龍) 흥업계의 기재(奇才) 사 카모토 고이치(阪本吾市)는 나니와부시의 태두인 도추켄 구모에몬(桃中軒雲右衛門)을 초대하여 1 주일동안 흥행하기로 했다. 지금 경성에서도 나니와부시는 관민 사이에서 매우 유행하고 있기 때 문에 이번 구모에몬의 방한을 공전의 대환영이라 할 수 있다. 116) 라는 내용을 게재하고 있다. 도추 켄 구모에몬(1873-1916)의 기사는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그를 스모(相撲)의 챔피언인 요코즈나 (橫綱)에 비유하여 나니와부시 연주자의 순위를 매기기도 하고, 5월의 두 번째 공연에 대해서는 112) <耳と耳>壽座 文樂式操人形芝居一座, 京城新報 1910.6.19.일3. 113) 御成座の人形芝居 珍しいので大受け, 京城新報 1910.6.12.일3. 114) 원래 노가쿠는 일반 오락으로 즐기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지만 이번에 경성에 오는 이즈미 스케사부로 일좌의 노가쿠는 이러 한 점을 개량하여 누구나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즈미 일좌는 일본 화족 앞에서 공연할 때 자천회(紫泉會)로 명명되었 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壽座の今樣能樂, 京城新報 1910.9.13.일3. 115) 이마요 노가쿠는 한때 화족의 저택에서 공연하는 등 큰 인기가 있었지만 (일반적인) 노가 성행하면서 점차 쇠퇴하여 1910년대 에 이즈미 스케사부로 일좌는 해산했고,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116) 雲右衛門入道來, 京城新報 1911.3.7.일3.

166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반년 사이에 구모에몬이 경성에 2번이나 온 것을 보면 도시로서의 경성의 가치가 높아진 것 이라 고까지 평하고 있다.117) 하지만 도추켄 구모에몬의 공연으로 극장계 전체가 활기를 찾은 것 같지는 않다. 공연 시장이 다시 호경기가 되기 시작한 계기는 6월의 가부키 공연으로 보인다. <그림 13>에서 보듯이 가타오 카 마쓰노스케(片岡松之助)를 중심으로 70여명의 배우로 구성된 가부키 대일좌가 경성에 와서 약 2주간에 걸쳐 공연을 했는데, 첫날 공연부터 연일 대만원을 이루어 입장권을 더 이상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이 공연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침체된 상태였던 경성 연예계가 다시 경기를 회 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18) <그림 13> 마쓰노스케의 가부키(1911년)119) <그림 14> 요시다 나라오의 나니와부시(1911년)120) 이외에 지쿠젠비와(筑前琵琶) 다카미네류(高峰流)를 창시한 다카미네 지쿠후(高峰筑風, 18791936)의 공연이 호평을 받았고,121) 나니와부시의 대가 요시다 나라마루(吉田奈良丸)의 수제자로 소개된 <그림 14>의 요시다 나라오(吉田奈良男)의 공연에는 많은 관객이 찾은 것으로 보인다.122) 7) 1912년의 일본 전통공연 1912년 기사는 경성신보 에 1-2월, 경성일보 에 2월 일부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이 해의 전체 적인 공연 상황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1-2월에 이루어진 일본 전통공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1912년 2개월 동안 확인된 총 공연 횟수는 74회이다. 매 월 공연의 횟수가 같다고는 할 수 없지 만 전체적인 비교를 위해 1912년 2개월의 공연 횟수를 1년 치로 환산해 본다면 총 444회가 된다. 117) 大浪花節番附, 京城新報 1911.3.18.일3, 雲右衛門の開演, 京城新報 1911.3.31.일3, 雲入と日韓書房, 京城新報 1911.4.8.일3, 雲入道又々來る, 京城新報 1911.5.25.일3. 118) 大歌舞伎 片岡松之助來る, 京城新報 1911.6.18.일3, 壽座の 記, 京城新報 1911.6.28.일3. 119) 大歌舞伎 片岡松之助來る, 京城新報 1911.6.18.일3. 120) 奈良男一座の大入, 京城新報 1911.11.12.일3. 121) 高峰筑風を聽く, 京城新報 1911.5.25.일3. 122) 奈良男一座の大入, 京城新報 1911.11.12.일3.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67 하지만전술했듯이 1912년 2월에가무기좌가소실되기때문에그동안의가무기좌에서의전통공연이평균비율인 20% 를제외하면약 355회로볼수있다. 이는전년도인 1911년보다 0.8배감소한것, 그전년도인 1910년보다는 0.6배나감소한수치이다. 1912년 3월부터 12월까지의실제공연상황이어떠했을지는정확히알수는없지만단순히계산해보면이전에비해전통공연이줄어든것으로나타난다. 앞서살펴보았듯이 1911년은경성의일본공연시장이침체되어이를타개하기위한노력이많이이루어졌는데 1912년에는전년도의침체기가더욱가속화된것으로생각된다. 그럼공연의종류나내용은어떠했는지살펴보기로하자. 신문에서확인할수있는 2개월동안의공연중가장많은공연은라쿠고 27회 (36%) 이고, 그뒤로구극 21회 (28%), 나니와부시 18회 (24%), 고단 4회 (5%), 기타공연 4회 (5%) 가따른다. 1월과 2월에우연히라쿠고의공연이많았을수도있지만, 이전의대부분의연도에나니와부시가가장높은공연비율을보였던것과비교하면사뭇다른모습이다. 또한 1912년에는이전과는달리일본에서내한한유명연주자의공연은찾아보기어렵다. 장기공연으로는와카시마야 ( 若島屋 ) 일좌의구극 (20회), 산유테이엔자쿠 ( 三遊亭圓若 ) 의라쿠고 (27 회 ), 이치카와고엔 ( 市川小圓 ) 의나니와부시극 (14회) 을들수있고, 단기공연으로는 3월까지이어질것으로보이는공연으로는나카무라가시쿠 ( 中村かしく ) 의나니와부시극과아즈마미사오 ( 東操 ) 의고단등을들수있는데, 이들연주자에대한평이나소개를하고있는기사는거의찾아보기어렵다. 8) 1915년의일본전통공연 경성신보 는 1912년 2월에폐간되고, 경성일보 는 1915년 9월이전것이거의남아있지않기때문에, 1912년 3월부터 1915년 8월까지의 3년 5개월간의일본전통공연상황에대해서는파악되지않는다. 그럼 1915년 9월부터 12월까지의일본전통공연상황에대해서알아보자. 이 4개월간전통공연은총 221회로, 이는 1909년에 12개월동안공연횟수 190회보다많은수치이다. 4개월간의 221회를 1년치로환산하면 663회가되는데, 이것은 1910년 (521회) 과비교하면 1.2배늘어난것이고, 1911년 (423회) 보다 1.5배, 1912년 (1년치로환산 355회 ) 보다 1.8배정도증가한것이다. 이렇듯 1911년과 1912년의공연시장침체가 1915년경에는완전히회복되어공연경기가크게활성화된것으로보인다. 1915년의 4개월동안의공연중에서가장많이무대에오른것은나니와부시로전체의 55%(122 회 ) 를점유하고있고, 다음으로는라쿠고 17%(38회 ), 가부키 13%(28회 ), 기타 8%(17회 ), 그리고기다유 7%(16회 ) 순이다. 이해에공연이급증한이유는당시의사회상황과무관하지않은듯하다. 1915년은일제강점 5년이되는해로, 일본은이를기념하기위해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50일간경복궁에서본

16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격적인대규모의박람회로조선물산공진회 ( 朝鮮物産共進會 ) 를개최한다. 박람회장의건축물은경복궁의일부전각을허물고신축되기도했고일부경복궁건물들이전시장으로이용되기도했다. 공진회는조선합병에대한대대적인선전을위한것으로, 각전시장에는산업 교육 교통 위생 생활 문화등여러분야가전시되었고, 조선총독부기관지인 경성일보 ( 일본어 ) 와 매일신보 ( 조선어 ) 에는연일공진회에관해보도하고있었다. 공진회기간중에는일본에서대규모의극단이나유명연주자들이경성을찾았는데, 그예로서먼저가부키일좌를들수있다. 오사카의가부키배우이치카와신쇼 ( 市川新昇 ) 와이치카와간쇼 ( 市川眼笑 ) 일좌는공진회기간중에공연하기위해 52명의대일좌를꾸려서오는 17일에온다고한다. 경성에는지금극장이없기때문에용산좌구량좌에서 18일부터흥행하기로했다. 극장을찾는관객을위해서돌아가는전차승차권을증정한다. 123) 는기사가있는데, 여기서주목되는점은가부키일좌가공진회기간을맞추어왔다는점과이기간에경성에공연할극장이없다는점이다. 가부키일좌가공진회에맞추어오려했다는것은일본에서도조선의공진회에큰관심을갖고있었다는것을의미하고, 공연할극장이없었다는점은당시공연시장이호경기였다는것을보여주고있다. 다음으로나니와부시의연주자로 3대벳코사이도라마루 ( 鼈甲齊虎丸, 1885-1938) 에관한기사도눈에띈다. 기사는 나니와부시관동파요코즈나와경쟁하고위세당당하게내한한대장도라마루 ( 虎丸 ) 선생이낭화관의공연후부산으로내려갔는데, 공진회중에다시돌아온다는본인으로부터의소식 124) 이라는내용을소개하고있다. 도라마루가부산으로내려간후공진회기간에맞추어귀경한다는점으로미루어공진회가연주자에게도중요한기간으로인식되고있었음을알수있다. 도라마루의공연공진회의끝무렵인 10월 25일부터시작하여약한달간이어지고있다. 125) 1915년의공연중에서가장주목할만한것은 < 그림 15> 의 2대요시다나라마루 ( 吉田奈良丸, 1879-1967) 의공연이다. 나라마루는나니와부시의제1의황금기를이끈주역으로, 공연뿐아니라 1910년대초부터음반도활발히취입하여126) 대중들에게크게인기가있었다. 나라마루의경성공연은조선물산공진회가한창이던 10월 1일부터 7일간유락관에서열렸다. 127) 기사에의하면, 나라마루의조선공연에관한이야기는수년전부터있었지만여러사정으로지금까지실현되지못했는데, 닛타 ( 新田 ) 대정관주인등의노력으로초대하게되었고, 나라마루스스로도머지않은시일에은퇴할생각이기때문에이번이아니면다시는조선에올것같지않아공연을결심했다. 128) 123) < えんげい > 大歌舞伎來る, 京城日報 1915.9.16. 조 3. 124) < 芝居と遊藝 > 虎丸都落す, 京城日報 1915.9.5. 조 3. 125) < 演藝案內 > 浪花館 - お馴染の鼈甲齊虎丸來る, 京城日報 1915.10.25.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京城日報 1915.11.20. 석 4. 126) 浪花節大家吉田奈良丸新曲著荷 - 蓄音器商會, 京城新報 1911.10.13. 일 3, 奈良丸の音譜 - 蓄音器商會, 京城日報 1915.10.2. 석 2. 127) 奈良丸の出演, 京城日報 1915.9.27. 석 2.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69 고 한다. 이로 미루어 나라마루의 경성 공연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5> 요시다 나라마루(吉田奈良丸)의 나니와부시(1915년)129) 나니와부시의 유명연주자 공연으로는 전술한 두 사람 외에 관서지방의 교야마 와카마루(京山若 丸, 1878-1953)의 무대가 있었고130) 라쿠고에서는 2대 가쓰라 미키스케(桂三木助, 1884-1943)와 초대 가쓰라 고난(桂小南, 1880-1947)이 같은 시기에 공연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131) 이외에 노가쿠대회도 1915년의 대표적인 공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나자와(金澤) 노가 쿠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사노 기치노스케(佐野吉之助, 1864-1919) 외 10여명의 노가쿠 배우(能 樂師)가 조선물산공진회를 관람하기 위해 경성에 오기로 했는데, 경성노가쿠회(京城能樂會)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들과 교섭하여 사노 기치노스케 일행의 노가쿠 공연을 이틀간 유락관에서 개최했다.132) 이 공연은 경성 공전(空前)의 행사로 소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고, 이틀간의 공연에 대한 광고, 호평의 기사, 사노 기치노스케의 감상 등이 연일 신문에 보도되었다.133) 3. 종목 별 일본 전통공연 양상 앞에서는 연도 별로 일본 전통공연 양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각 종 목 별 공연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1907년부터 1915년의 기간 동안 경성의 일본인 극장 에서 공연된 종목의 횟수를 정리하면 <표 3>과 같고,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그림 16>과 같다. 128) 奈良丸一行卅日夜乘込み, 京城日報 1915.10.1.석2, 奈良丸を聽く 滿員の盛況は流石々々, 京城日報 1915.10.6.석3. 129) 奈良丸一行卅日夜乘込み, 京城日報 1915.10.1.석2, 奈良丸を聽く 滿員の盛況は流石々々, 京城日報 1915.10.6.석3. 130) えんげい 若丸の乘込期, 京城日報 1915.9.17.조3. 131) えんげい 三木助來る, 京城日報 1915.10.6.조3, 浪花館の小南と壽館の三木助 久し振りの落語, 京城日報 1915.10.12. 석2. 132) 能樂大會 有樂館にて二日間 京城空前の催し, 京城日報 1915.10.28.석2. 133) 能樂大會 京城能樂會, 京城日報 1915.10.30.석2, 能樂大會番組 素謠仕舞, 京城日報 1915.10.30.조3, 能樂大會 第一 日の盛況, 京城日報 1915.10.31.석2, 非常なる盛會 能樂大會二日目, 京城日報 1915.11.1.조3, ポプラを能舞臺に使はうと は夢にも思ひませんでした 佐野吉之助氏京城能樂界を評して曰く, 京城日報 1915.11.2.석2.

17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표 3> 종목별일본전통공연양상 연도가부키구극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고단기타합계 1907 0 0 0 0 0 0 0 3 3 1908 14 0 2 5 0 0 0 3 24 1909 0 19 17 99 10 30 10 5 190 1910 139 19 56 136 15 77 31 48 521 1911 90 0 50 163 0 66 15 39 423 1912 0 21 0 18 0 27 4 4 74 1915 28 0 16 122 0 38 0 17 221 합계 271 59 141 543 25 238 60 119 1,456 600 500 400 300 200 100 0 가부 / 극기다유나니와겐지라쿠고고단기타 < 그림 16> 일본전통공연의종목비교 (1907-1915) ( 가부 / 극 - 가부키와구극, 나니와 - 나니와부시, 겐지 - 겐지부시 ) < 표 3> 과 < 그림 16> 을보면, 가장많이공연된종목은나니와부시로총 543회이고, 다음은가부키 (271회) 와구극 (59회) 이 330회, 라쿠고 238회, 기타공연 119회, 기다유 141회, 고단 60회, 겐지부시 25회의순이다. 이로써나니와부시는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 7년 (1913년과 1914년제외 ) 동안가장유행했던일본전통예술이었음을알수있다. 그럼각종목이시기에따라어떠한변화를보이고있는지살펴보자. 1907년과 1912년, 1915년은각각 2개월, 2개월, 4개월의공연상황만알수있어이를제외하고, 12개월을모두파악할수있는 1908년부터 1911년까지의기간을비교하려고한다. 또한겐지부시와고단은전체공연횟수가적고기타공연은한종목만을가리키는것이아니므로이들은모두제외하여, 비교에서는가부키 구극, 기다유, 나니와부시, 라쿠고를대상으로삼는다. 이렇게하여 1908년부터 1911년까지의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71 4 년동안의 4 개의주요공연종목을비교하면 < 그림 17> 과같다. 180 160 140 120 100 80 60 40 가부키 / 구극기다유라쿠고나니와부시 20 0 1908 1909 1910 1911 < 그림 17> 연도별주요일본전통공연비교 (1908-1911) 먼저가부키 구극을보면, 1908년과 1909년에는 1년간의총공연이 20회에도미치지않았지만 1910년에는 8배의증가를보여총공연이약 160회에이르고있다. 하지만 1911년은 90회공연으로다시크게감소하고있다. 기다유공연은 1908년에는 2회, 1909년에 17회에불과하지만 1910년에 56회로늘어난다. 그러나 1911년에는다시다소줄어든다. 라쿠고는 1908년에공연이확인되지않는다. 1909년에는 30회공연이이루어졌는데 1910년에는 2배이상증가하여약 80회에이르고있다. 하지만 1911년에는다시 10회정도감소하는것으로나타난다. 나니와부시는 1908년에는 5회로매우적은공연횟수를보이고있지만 1909년에는 14배증가하여약 100회에이르고있고, 1910년에는더욱많아져 140여회, 1911년에는이보다많은 163회를기록하고있다. 이상과같이, 가부키 구극, 기다유, 라쿠고의공연은 1908년부터 1910년까지점차증가하다가 1911년에다시줄어드는형태를보이고있는반면에, 나니와부시는 1908년부터 1911년까지계속증가하는모습을보인다. 또한 < 그림 17> 에는나타내지않았지만 1915년의 4개월간 의나니와부시공연횟수 (122회) 는 1910년이나 1911년의 1년간 의나니와부시공연횟수 (136회, 163회 ) 와비슷한점으로비추어볼때, 1915년 1년간의나니와부시공연은이전해보다월등히많았을것으로추정된다. 일본에서는 1900년대중반부터 1920년대까지를나니와부시의황금시대로일컬을정도

172 국악원논문집 제31집 로 나니와부시는 크게 인기가 있었던 종목인데,134) 이러한 현상이 경성 공연계에도 그대로 나타나 고 있다. 특히 1900년 말의 도추켄 구모에몬을 시작으로 1910년대의 2대 요시다 나라마루, 3대 벳 코사이 도라마루, 교야마 와카마루는 일본 전국에서 유명세를 떨친 인물로, 경성에서 이들의 무대 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일본과 경성의 공연 문화가 큰 시간차를 두지 않고 같은 형태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4. 극장 별 일본 전통공연 양상 다음으로는 어떤 극장이 전통 공연을 무대에 많이 올리고 있었는지, 또 각 극장에서는 주로 어 떤 전통공연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경성에서 일본 전통예술을 공연한 극장 은 가무기좌 수좌 경성좌 본정좌 용산좌 영락정 낭화관 어성좌 좌구량좌 수관 유 락관의 11곳이다. 이들 극장에서 행해진 일본 전통공연의 횟수를 연도별로 나타내면 <표 4>와 같 고, 7년간의 공연 총 횟수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그림 18>과 같다. <표 4> 극장 별 일본 전통 공연 횟수 연도 가무기좌 수좌 경성좌 본정좌 용산좌 영락정 낭화관 어성좌 좌구량좌 수관 유락관 1907 3 1908 2 2 12 8 1909 36 13 6 130 5 1910 95 180 19 2 205 20 1911 95 73 1912 14 28 14 224 15 2 31 1 1915 13 107 34 60 7 합계 245 309 12 8 39 132 572 35 37 60 7 <표 4> 및 <그림 18>을 보면, 1907년부터 1915년 동안 전통공연을 가장 많이 한 극장은 낭화관 (572회)이고, 그 다음은 수좌(309회) 가무기좌(245회) 영락정(132회) 수관(60회) 용산좌(39 회) 좌구량좌(37회) 어성좌(35회) 경성좌(12회) 본정좌(8회) 유락관(7회) 순이다. 134) 平野健次 上參鄕祐康 蒲生鄕昭監修, 音樂大事典, (東京: 平凡社, 1989), 562쪽.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73 700 600 500 400 300 200 100 0 가무기수좌경성본정용산영락낭화어성좌구량수관유락 < 그림 18> 극장별일본전통공연횟수비교 (1907-1915) 공연이거의없었던 1907년과약 20회공연에그쳤던 1908년을제외하고, 1909년부터연도별로보면, 1909년에가장많은공연을한극장은영락정 (130회) 으로다른곳에비해서압도적으로많고, 그뒤로가무기좌 (36회) 와수좌 (13회) 가따른다. 1910년에전통공연을가장많이한극장은낭화관 (205회) 이고, 그다음은수좌 (180회), 가무기좌 (95회) 순이다. 1911년역시전통공연은낭화관 (224회) 에서가장많이이루어졌고, 그다음은가무기좌 (95회) 와수좌 (73회) 순을보이고있다. 1912년과 1915년은각각 2개월과 4개월의기간이지만이역시가장많은전통공연을한극장은낭화관 (31회, 107회 ) 으로나타난다. 낭화관다음으로는 1912년에는수좌 (28회) 가, 1915년에는수관 (60회) 이많은전통공연을무대에올리고있다. 그럼극장별로어떤종류의공연을많이하고있었는지에대해서알아보기로하자. 공연빈도가높은극장순으로배열하면 < 표 5> 와같다. < 표 5> 극장별일본전통공연의종류와횟수 (1907-1915) 극장가부키구극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고단기타합계 낭화관 - - 96 254-171 13 38 572 수좌 154 20 15 35 15 18 29 23 309 가무기좌 82 38 1 91 - - 17 16 245 영락정 - - 4 88 10 30 - - 132 수관 - - 16 15-15 - 14 60 용산좌 - - 9 18-4 1 7 39

17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좌구량좌 21 1-15 - - - - 37 어성좌 - - - 15 - - - 20 35 경성좌 12 - - - - - - - 12 본정좌 2 - - 5 - - - 1 8 유락관 - - - 7 - - - - 7 < 표 5> 를보면, 공연빈도가높은 4개의극장, 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은공연의종류도나머지극장에비해서다양한것으로나타난다. 기타공연을제외하고, 낭화관이공연한종목은기다유 나니와부시 라쿠고 고단의 4종류이고, 수좌의공연종목은가부키 구극 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 고단의 7종류이며, 가무기좌는가부키 구극 기다유 나니와부시 고단의 5종류, 영락정은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의 4종류를공연하고있다. 반면에 7년간의전통공연의총횟수가 60회이하인수관 용산좌 좌구량좌 어성좌 경성좌 본정좌 유락관은기타공연을제외하면공연종류가대부분 3종류이하이다. 이렇듯공연의빈도나종류로볼때, 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이일본전통공연의주요무대였음을알수있다. 이네극장에서주로연행한종목은무엇인지그래프로나타내면 < 그림 19> 와같다. 300 가부키 / 구극기다유나니와부시겐지부시라쿠고고단 250 200 150 100 50 0 낭화관수좌가무기좌영락정 < 그림 19> 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의일본전통공연종목비교 (1907-1915) < 그림 19> 에서보면, 낭화관은전체공연 (572 회 ) 중에서나니와부시가 254 회 (44%) 로가장높은 분포를보이고있고, 다음으로라쿠고 171 회 (30%), 기다유 96 회 (17%) 의순이다, 나니와부시 항

1900년대~1910년대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의 일본 전통예술 공연 양상 175 목에는 나니와부시와 나니와부시연극을 함께 표시했는데, 낭화관에서는 연극 형태의 나니와부시는 공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이 외에 가부키나 구극과 같은 연극 공연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낭화관은 영락정과 함께 경성에 있던 대표적인 요세로 알려지는데,135) 이는 위와 같은 낭화관의 공연 형태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반면에 수좌(309회)에서는 가부키와 구극이 174회(56%)로 전체 공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 다. 수좌는 1200석136) 규모의 큰 극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연극 형태의 공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좌는 <그림 19>에서 보듯이 다른 극장에 비해서 가장 다양한 종목을 무대에 올리 고 있다. 가무기좌(245회)도 수좌와 유사하게 가부키와 구극을 가장 많이 공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부 키와 구극을 합한 것은 120회(49%)로 전체 공연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나니와부시 (91회, 37%)가 뒤따르는데 나니와부시 중에서도 연극 형태가 51회로 이는 전체의 21%에 해당한 다. 이렇게 보면, 가무기좌에서의 공연 중 연극 형태의 전통공연(가부키 구극 나니와부시극)은 67%로, 경성의 극장 중에서는 가장 많은 전통극을 공연한 극장임을 알 수 있다. 영락정(132회)에서는 나니와부시 공연(88회, 67%)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라쿠고 공연(30회, 23%)이다. 나니와부시 중에서 연극 형태는 전혀 없고, 가부키나 구극 공연도 전 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공연 형태는 요세였던 영락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5. 경성 소재 일본인 극장 공연의 특징 이상으로 경성 소재 일본인 경영 극장에서 이루어진 일본 전통공연의 면면에 대해서 고찰했다. 그럼 이러한 일본인 경영 극장의 공연이 조선인 경영 극장의 공연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을 보이 고 있는지에 대해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첫째, 극장 수와 관극문화의 측면이다. 1900년대와 1910년대에 존재한 경성의 대표적인 조선인 경영 극장으로는 협률사(1902) 광무대(1907) 단성사(1907) 연흥사(1908) 원각사(1908) 장 안사(1908)의 6곳이 있었던 비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극장으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수좌 가무기 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 영락정 낭화관 고등연예관 어성좌 좌구량좌 대정관 수 관 황금관 세계관 유락관 용광관의 16곳이 존재했다. 일본인 극장의 수가 조선인 극장의 수 보다 3배 가까이 많은데, 1910년 전후 경성의 일본 거류민이 경성인구 28만 명의 약 1/8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본인 극장은 조선인 극장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5) 劇場と興亡 過去六十年間の京城, 京城日報 1921.8.13.석3. 136) 壽座の大改築, 京城新報 1909.5.6.일3.

17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이는경성의일본인극장에서의관극이일본거류민의주된유흥의하나였다는점을말해주고있다. 전통적으로조선의음악과연희는정형화된무대나특정한공간을필요치않았던반면에, 일본의음악과연희는생성초기부터극장이나특정무대와밀접하게관련을지으며발달해왔기때문에근대이전부터극장에돈을지불하고공연을감상하는것이보편적인일이었다. 일본전통연극인가부키의경우, 17세기중반부터나카무라좌 ( 中村座 ) 이치무라좌 ( 市村座 ) 모리타좌 ( 森田座 ) 야마무라좌 ( 山村座 ) 라는관허극장이생겨나극장에서의관극이유행했고, 137) 인형극 ( 人形芝居 ) 은 17세기후반부터다케모토좌 ( 竹本座 ) 와도요다케좌 ( 豊竹座 ) 가흥행하며인기를끌었으며, 138) 만담인라쿠고는 18세기말에전용극장인요세 ( 寄席 ) 가등장한139) 이후, 요세에서의관람이당시오락생활에서매우큰비중을차지했다. 140) 무사들의전유물이던노가쿠조차도 14세기말부터막부 ( 幕府 ) 의허가하에 1년에몇차례수백명이들어가는임시극장을만들고간진노 ( 勸進能 ) 라는흥행을하여서민들이입장료를내고공연을관람했다. 141) 일본음악도극장과매우밀접한관련을갖고발전해왔다. 기다유 ( 義太夫 ) 나가우타 ( 長唄 ) 도키와즈 ( 常磐津 ) 기요모토 ( 淸元 ) 등의샤미센음악은모두연극과관련이있는것으로, 에도시대 ( 江戶時代, 1603-1867) 에오롯이연주만을감상하기위한음악이적었던것은당시음악을감상하는장소, 즉극장의영향이고그것이일본인의취향이었기때문이다. 142) 오늘날에도근세의일본음악을구분할때극장음악과비극장음악으로나누고있어, 143) 극장 이일본음악을설명하는데기준이되고있다는것을알수있다. 이렇듯전근대부터시작된일본인의관극문화는근대까지이어졌고, 이는일본내지뿐아니라앞에서살펴보았듯이경성으로이주해온일본인사회에도형성되었다. 경성일본인극장에서의공연에대해서극장이대만원을이루었다는기사가종종발견되는데, 144) 이러한일본전통공연에대한수요가경성에일본인극장건립의주요요인으로작용한것이라생각된다. 둘째, 공연종목의측면이다. 조선인경영극장에서공연된분야는크게조선신파145) 와조선의전통예술이고, 일본인경영극장무대에오른분야는주로일본신파146) 와일본의전통예술로, 조 137) 早稻田大學演劇博物館編, 芝居繪に見る江戶 明治の歌舞伎, ( 東京 : 小學館, 2003), 44 쪽. 138) 井上由理子, 古典藝能樂々讀本, ( 東京 : アートダイジェスト, 1999), 109-111 쪽. 139) 相羽秋夫, 落語入門百科, ( 東京 : 弘文出判, 2000), 38 쪽. 140) 山本進, 落語の歷史, ( 東京 : 河出書房新社, 2006), 22 쪽. 141) 西野春雄 羽田昶編, 能 狂言事典, ( 東京 : 平凡社, 1986), 238 쪽. 142) 吉川英史, 劇場と音樂, 音樂の歷史, ( 東京 : 創元社, 1965), 184 쪽. 143) 岸邊茂雄외 4 인저, 이지선역, 일본음악의역사와이론, ( 서울 : 민속원, 2003), 90-144 쪽. 144) < 演藝だより > 明治町の浪花館, 京城新報 1909.12.21. 일 3, 御成座の人形芝居 - 珍しいので大受け, 京城新報 1910.6.12. 일 3, 壽座の 記, 京城新報 1911.6.28. 일 3, 奈良男一座の大入, 京城新報 1911.11.12. 일 3. 145) 유민영, 한국근대극장변천사, ( 서울 : 태학사, 1998), 148-150 쪽. 146) 이하 경성신보 일간 3 면, 小喜多村一座の開演 1908.1.5, 伊東一座の開演 1908.4.23, 伊東文夫一座の開演 1908.8.8, < 演藝だより > 本町座白川一座 1908.8.12, 壽座の木村一座 1908.9.13, 壽座の不如歸 1908.10.1, 壽座今晩の替狂言, 京城新報 1908.11.21. 이외에 1912 년까지의 경성신보 연예란과 1915 년까지의 경성일보 연예란에는신파공연에관한안내가거의빠지지않고소개되고있다.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77 선인극장에서일본전통공연을한경우나반대로일본인극장에서조선전통공연을무대에올린예는찾아볼수없다. 147) 조선인경영극장의주요공연종목은판소리 구극 노래 춤 연희 기악으로다양한데비해, 일본인경영극장의주요종목은연극과노래가대부분으로기악과춤은거의없다. 가부키와구극은연극형태,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기다유는샤미센을반주로하는이야기체음악, 라쿠고와고단은이야기예술로, 모두말과노래를매개로하는것이다. 다만조선인극장의경우전반적으로판소리와구극이높은비중을차지하고있었던것과같이일본인극장에서도나니와부시와가부키 ( 구극 ) 가가장많이공연되었던것으로나타난다. 독창자가부르는이야기음악과전통연극이인기있던것은조선인극장과일본인극장에서공통적으로보이는현상이다. 일본인극장의공연물에기악과무용이거의없었던이유는음악의성격이나연행자와관련이있는듯하다. 예를들어조선인극장의경우, 장안사에서의가야금연주는소속연주자 ( 심정순 ) 가담당하여공연레퍼토리로서무대에올린반면에, 148) 일본의기악인고토음악은가정음악이라는측면이강하기때문에동호회의발표회외에상설공연으로무대에오르는경우는없었다. 또한조선인극장의경우, 관기나극장소속기생이극장의무용공연을담당했던반면에경성의게이기 ( 藝妓 ) 의공연은주로행사의여흥이나발표회등의형태로이루어졌고극장의상설공연형태로행해지지는않았다. 셋째, 연행자의측면이다. 조선인경영극장에는공연을전담하는창부와기생이소속되어있었던데비해일본인경영극장에는전속음악가가따로있지는않았던것으로보인다. 149) 조선의협률사는관립극장이었기때문에관기들이공연을담당했고때에따라서흥행을위해삼패나창부를모집하기도했으며, 원각사에는가기 ( 歌妓 ) 20명과창부 40명이전속해있었고, 장안사에는남도출신창부와남도기생, 삼패출신기생들이소속되어있었다. 150) 또한장안사의전속단원이광무대로이속되기도했고, 장안사외에단성사와광무대에도전속기생들이있었다. 이와달리일본인극장의상설공연은주로일본에서공연을위해경성을방문한이들로꾸려졌고151) 이외에경성에거주하는음악가도참여했던것으로보인다. 경성에연주여행을오는내지의음악가들에대해서는신문에여러차례광고를하고있는데, 이들은한번오면한극장에머물지않고경성의여러 147) 1915년 9월과 10월에개최된조선물산공진회를위해경복궁내에건립된연예관에서조선의기생과일본의게이기 ( 藝妓 ) 가함께공연한경우가있는데, 이는일본인극장의상설공연이아니라공진회행사의일환으로한시적으로이루어진공연이다. 148) 송혜진, 장안사및장안사소속 일행 의공연활동연구, 한국음악사학보 제53집, ( 한국음악사학회, 2014), 282-283쪽. 149) 대정관에전속기관으로연예부가있었지만 ( 岡良助, 京城繁昌記, 앞의책, 478쪽 ), 대정관이활동사진관이었다는점을감안하면연예부는전통음악을담당했다고는할수없다. 150) 권도희, 한국근대음악사회사, ( 서울 : 민속원, 2004), 107-109쪽. 151) 이하 경성신보 일간 3면, 京城座の舞臺開き- 大阪若手俳優中村長右衛門阪東太郞 1908.8.25, 筑前琵琶泰斗來- 鶴崎賢定 1909.11.28,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浪花館 1909.12.7, 中村福圓優來る 1910.1.13, 中村時子の乘込 1910.4.20, 桃川若燕の乘込 1910.5.20, 金馬一座の乘込 1910.6.21, 桃中軒如雲の乘込 1910.7.1, 京山小圓の乘込 1910.11.22, 雲右衛門入道來 1911.3.7, 京山若丸來る 1911.4.22, 雲入道又々來る 1911.5.25, 大歌舞伎片岡松之助來る 1911.6.18, 奈良丸の高弟奈良男の乘込 1911.11.8, 桃中軒雲遊の乘込 1911.11.19. 이하 경성일보, 佐久良座- 大阪大歌舞伎一座 1915.9.16. 석3, 眼笑一座乘込み 1915.9.17. 조3, 奈良丸一行卅日夜乘込み 1915.9.30. 석2.

178 국악원논문집 제31집 극장, 나아가 인천이나 부산까지 돌며 연주를 하는 형태를 취했다. 또한 조선의 경우 기생이 근대 공연예술계의 주역이라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152) 반면, 일본의 게이기는 예술 활동에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림 20>은 1910년의 축 음기와 음반광고인데, 음반으로 조선명기음반(朝鮮名妓音 譜) 과 일본대가음반(大家音譜) 을 나란히 게재하고 있 는 점이 주목된다. 기생의 음반을 일본 대가의 음반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점은 기생의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게이기의 음반 광 고는 적어도 1915년까지의 신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넷째, 극장에 따른 공연 종목 차이의 측면이다. 조선인 경 영 극장도 일본인 경영 극장도 극장마다 레퍼토리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인 극장의 경우 협률사의 주요 종목은 판소리였 고,154) 원각사 단성사 연흥사는 주로 판소리와 창극을, <그림 20> 축음기 음반 광고153) 광무대에서는 주로 가무를 공연했으며,155) 장안사와 단성사 에서는 구극이나 판소리 외에 가야금 공연도 많이 했다. 이 렇듯 극장에 따라 공연 종목의 차이가 있는 것은 극장 전속 예인들의 특징에 따른 것으로,156) 극장에 소속된 음악가들의 전문 분야에 따라 공연 레퍼토리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 극장의 경우, 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이 일본 전통공연의 주요 무대였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낭화관과 영락정의 주요 공연 종목은 나니와부시와 라쿠고이고 가부키와 같은 연극 형태는 전혀 없었던 반면에 수좌와 가무기좌에서는 가부키를 가장 많이 무대 에 올리고 있고 나니와부시도 연극형태로 공연한 경우가 많다. 낭화관과 영락정은 건립 당시부터 소규모 전통공연을 하는 요세로 만든 극장이었던 반면에 수좌와 가무기좌는 1000석이 넘는 큰 규 모의 극장이었고 특히 가무기좌(歌舞伎座)는 명칭에서 보듯이 가부키(歌舞伎) 공연을 염두에 두고 건립한 극장이었다. 이렇듯 일본인 극장은 처음부터 공연 종목을 고려하여 건립되었고 극장의 성 격에 맞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기 때문에 극장마다 공연 종목에 차이가 났던 것이라고 하겠다. 152) 권도희, 근대 기생, 미정의 소수자, 한국사연구 제164집, (한국사연구회, 2014), 102-110쪽. 153) 朝鮮名妓音譜, 大家音譜 汁屋蓄音器部, 京城新報 1910.7.26.제4 일3. 154) 권도희, 한국 근대음악 사회사, 앞의 책, 110쪽. 155) 유민영,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 앞의 책, 35쪽. 156) 정충권, 1900~1910년대 극장무대 전통공연물의 공연양상 연구, 판소리연구 제16집, (판소리학회, 2003), 277쪽.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79 Ⅴ. 맺음말 이글에서는 1907년부터 1915년까지의 경성신보 및 경성일보 기사중경성소재일본인경영극장의공연기사를분석하여, 1900년대와 1910년대조선에서의일본전통공연예술의양상에대해서파악했다. 경성신보 및 경성일보 에보이는일본인경영극장은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 영락정 낭화관 고등연예관 어성좌 좌구량좌 대정관 수관 황금관 세계관 유락관 용광관의 16곳이다. 이중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는 1906년에서 1907년사이에개관한초기의극장이고, 영락정과낭화관은 1909년경에개관했으며, 고등연예관 어성좌 좌구량좌 대정관은 1910년에, 수관 황금관 세계관 유락관 용광관은 1912년이후에생긴극장으로확인된다. 16곳의극장중에서일본전통예술을공연한곳은수좌 가무기좌 경성좌 용산좌 본정좌 영락정 낭화관 어성좌 좌구량좌 수관 유락관의 11곳이다. 이중낭화관 수좌 가무기좌 영락정은다른극장에비해공연횟수가압도적으로많은데, 요세였던낭화관과영락정에서는주로나니와부시와라쿠고를, 대규모극장이었던수좌와가무기좌에서는주로가부키와구극을무대에올렸다. 일본인경영극장의일본전통공연형태는크게극장이주관한상설공연과외부에극장을대여해주는대관공연이있었다. 대부분은전자의형태이고, 후자의경우는경성소재음악단체의연주회, 자선연예회, 동호회의발표회등이다. 일본전통공연횟수의연도별추이를보면, 1907년부터 1910년까지는계속증가하다가 1911년부터 1912년까지는감소, 그리고 1915년에는다시크게증가하는것으로나타난다. 1907년과 1908년에는 1년동안의공연이약 20회에불과하고, 가부키외에는일본공연이거의없었다. 소규모공연을찾아보기어려운이유는당시대부분의일본인극장이연극등을상연하는비교적큰극장으로소규모연예장인요세가부재했던것과관련이있는것으로보인다. 1909년에는일본전통공연횟수가전년도의 9배증가하고, 공연종목도다양해졌다. 이전에비해나니와부시공연이현저히많아지고라쿠고 고단 겐지부시등의소규모의공연이급증했는데, 그이유로는이해를전후하여영락정과낭화관의요세두곳이개관한것을들수있다. 1910년에는일본전통공연의횟수가 1909년보다 2.7배, 1907년과 1908년과비교하면 26배증가한것으로나타난다. 공연종목은가부키 구극 기다유 나니와부시 겐지부시 라쿠고 고단 이마요노가쿠 인형극등으로이전보다더욱다양해졌다. 공연횟수의증가와내용의다양화는경성거주일본인증가와함께극장의수가늘어난것과밀접한관련이있는것으로생각된다. 1909년말에낭화관이, 1910에는어성좌와좌구량좌가개관되었는데, 특히낭화관에서의공연이전체공연의약 40% 를차지하고있어, 이극장의개관이일본전통공연의증가에큰역할을한

18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것으로이해된다. 1911년에는전년도에비해서공연횟수가감소한것으로나타난다. 당시는일본전통공연뿐아니라경성의일본흥행시장이전체적으로침체되었는데, 이러한불황을극복하기위해서일본에서유명연주자를초대하여공연을개최하지만침체되었던경기가단기간에회복되지는않은듯하다. 1912년에는공연횟수가 1911년보다도감소하고있어, 전년도의일본인극장경기가더욱악화된것으로보인다. 이해에는일본에서내한한유명연주자의공연도찾아보기어렵다. 1915년에는공연횟수가크게증가하여일본인극장의흥행시장이침체에서완전히벗어난것으로추정된다. 공연이활성화된이유로는 1915년후반에개최된조선물산공진회의영향을들수있다. 공진회개최를계기로일본의명인급연주자와유명극단이경성에서대거공연을펼쳐, 그어느해보다공연시장이활기찼던것이라할수있다. 당시경성에서가장빈번하게접할수있던일본전통예술은나니와부시로, 다른종목에비해서월등히많은공연횟수를보이고있다. 다음으로는가부키- 구극-라쿠고- 기다유-고단- 겐지부시의순이다. 이는당시일본에서나니와부시가유행하고있었던것과같은현상이다. 또한경성에서는일본의유명연주자의공연을자주접할수있었던것으로확인되는데, 이러한점은일본과경성의공연문화가큰시간차를두지않고같은형태로전개되고있었다는것으로이해할수있다. 1900년대와 1910년대경성의일본인경영극장수 (16곳) 는조선인경영극장 (6곳) 에비해 3배가량많다. 이는전근대부터시작된일본의관극문화가경성의일본거류민사회에까지이어져경성의일본인극장건립요인으로작용한것으로보인다. 일본인극장공연중에는조선의전통공연은찾아볼수없는데, 이는한국어를사용하는공연 ( 조선신파, 조선전통예술 ) 과일본어를사용하는공연 ( 일본신파, 일본전통예술 ) 이각각조선인경영극장과일본인경영극장으로분명하게구분되어행해졌다는것을보여준다. 독창자가부르는이야기음악 ( 판소리 / 나니와부시 ) 과전통연극 ( 창극 / 가부키 ) 이인기있던것은조선인극장과일본인극장에서공통적으로보이는현상이다. 조선인극장에는공연을전담하는전속예인이소속되어있었던데비해, 일본인극장에는전속음악가가따로있지않았고공연을위해일본에서연주자를부르는경우가많았다. 또한조선기생은공연예술계에서매우중요한역할을담당했던반면, 경성의일본게이기는예술활동에극히제한적이었다. 조선인극장도일본인극장도모두극장마다공연레퍼토리에차이가있었다. 공연종목의차이는조선인극장의경우소속된음악가들의전문분야에의한것인반면에, 일본인극장의경우는극장의규모와성격에기인한것이라하겠다.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81 [ 참고문헌 ] 권도희, 근대기생, 미정의소수자, 한국사연구 제164집, 한국사연구회, 2014. 권도희, 한국근대음악사회사, 서울 : 민속원, 2004. 김태현, 광복이전일본인경영신문에관한연구 : 1881 년부터 1945년까지발행된일본인경영민간지를중심으로,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6. 김태현, 한국강점전후 경성신보 와재한일본인사회의동향,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68집,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1. 송혜진, 장안사및장안사소속 일행 의공연활동연구, 한국음악사학보 제53집, 한국음악사학회, 2014. 岸邊成雄외 4인저, 이지선역, 일본음악의역사와이론, 서울 : 민속원, 2003. 유민영, 한국근대극장변천사, 서울 : 태학사, 1998. 이지선 山本華子, 1910 년대조선에서의일본전통음악사정1: 1915년 ~1917년전반기의 경성일보 기사를중심으로, 일본연구 제 32집, 중앙대학교일본연구소, 2012. 이지선 山本華子, 1910 년대조선에서의일본전통음악사정2: 1917년후반기 ~1919 년의 경성일보 기사를중심으로, 국악교육 제 36집, 한국국악교육학회, 2013. 정진석, 경성일보보유편해제 : 식물학자마키노의표본에숨어있던경성일보, 경성일보 : 보유편 영인본, 서울 : 한국교회사문화원, 2003. 정진석, 언론조선총독부, 서울 :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정진석, 한국언론사, 서울 : 나남, 1990. 정충권, 1900~1910년대극장무대전통공연물의공연양상연구, 판소리연구 제16집, 판소리학회, 2003. 한상언, 1910년대경성의극장과극장문화에관한연구, 영화연구 제53집, 한국영화학회, 2012. 한상언, 1910년대경성의일본영화연구, 영화연구 제40호, 한국영화학회, 2009. 홍선영, 1910년전후서울에서활동한일본인연극과극장, 일본학보 제56집제2호, 한국일본학회, 2003. 홍선영, 경성의일본인극장 변천사 : 식민지도시의문화와 극장, 일본문화학보 제43집, 한국일본문화학회, 2009. 岡良助, 京城繁昌記, 京城 : 博文社, 1915. 京城居留民團役所編, 京城發達史, 京城 : 京城居留民團役所, 1912. 京城協贊會編, 京城案內, 京城 : 京城協贊會, 1915. 吉川英史, 音樂の歷史, 東京 : 創元社, 1965. 吉川英史監修, 邦樂百科辭典, 東京 : 音樂之友社, 1984. 山本進, 落語の歷史, 東京 : 河出書房新社, 2006. 相羽秋夫, 落語入門百科, 東京 : 弘文出判, 2000. 西野春雄 羽田昶編, 能 狂言事典, 東京 : 平凡社, 1986. 井上由理子, 古典藝能樂々네本, 東京 : アートダイジェ成ト, 1999. 早稻田大學演劇博物館編, 芝居繪に見る江戶 明治の歌舞伎, 東京 : 小學館, 2003. 平野健次 上參鄕祐康 蒲生鄕昭監修, 音樂大事典, 東京 : 平凡社, 1989. 洪善英, 一九一〇年前後のソウルにおける人街の演劇活動: 新聞 京城新譜 の演藝欄を中心に, 明治期雜誌メディアにみる < 文學 >, 筑波 : 筑波大學近代文學會, 2000. 京城新報, 1907년 11월 3일 ~1912 년 2월 29일. 京城日報, 1909년 10월 24일 ~1915년 12월 30일. 朝鮮新報, 1906년 10월25일, 1906년 10월 26일, 1907년 1월 2일.

18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Aspects of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ances in Japanese Theaters in Seoul Between 1900s and 1910s 157) -Focusing on the articles in the Gyeonseong Sinbo and the Gyeongseong Ilbo on Performances in Japanese Theaters from 1907 to 1915- Lee, Jisun* This paper examines and analyzes the articles in the Gyeonseong Sinbo and the Gyeongseong Ilbo on Performances in Japanese theaters posted from 1907 to 1915 to find aspects of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ing arts carried out in Joseon Dynasty in early 20C. The number of the Japanese-owned theaters in operation in Seoul (Gyeongseong) was 16 around 1910, and 11 out of the 16 theaters had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ances.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ances increased from 1907 to 1910 but decreased until 1912, showing an increase in 1915 again. The increase of performances is seemingly related to the increase of the number of theaters. The Japanese performing arts were in recession in 1911 and 1912 and did not return to prosperity despite a struggle for market recovery. The performance market was more activated than ever due to Joseon Industrial Exhibition in 1915. The most frequent performance was Naniwabushi (a genre of traditional Japanese narrative singing) followed by Kabuki (a classical Japanese dance-drama), Rakugo (a form of Japanese verbal entertainment), others, Gidayuu (a style of puppet play), Kodan (traditional oral Japanese storytelling), and Genjibushi to put in order. This is the same phenomenon as in Japan where Naniwabushi was popular by that time. There were also many performances by famous Japanese musicians in Seoul, which unfolds that the Japanese performing arts were following almost the same pattern both in Japan and Seoul without a time lag. The traditional Korean performing arts are not found in the performances in the Japanese theaters in Seoul. This reveals that the performances with different languages were held separately: the traditional or new-school Korean performing arts with the Korean language were held in Korean-owned theaters while the traditional or new-school Japanese performing arts were held in Japanese-owned theaters. ** Sookmyung Women's University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83 [key words] Gyeonseong Sinbo; Gyeongseong Ilbo; early 20C; Japanese theaters in Seoul; the traditional Japanese performing arts; the traditional Korean performing arts 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2015 년 5 월 10 일 2015 년 5 월 22~6 월 1 일 2015 년 6 월 18 일

18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부록 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공연 (1907-1915) 가무기좌 ( 歌舞伎座 ) <1907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11 其他 <1908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6 其他 <1909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5 其他浪花節 6 舊劇 7 舊其他講談 <1910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歌舞伎 2 - 歌舞伎 3 其他 4 其他 5 講談 6 講 舊劇 7 舊 浪花節 8 其他 10 浪花節 11 - 浪花節劇 浪花節 <1911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歌舞伎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85 3 浪花節 4 浪花節 歌舞伎 5 義 浪花節 10 浪花節劇 11 - 浪花節劇 浪花節 歌舞伎 12 - 歌舞伎 <1912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浪花節 2 - 浪花節劇 수좌 ( 壽座 ) <1908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8 義太夫 <1909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4 義太夫 6 浪花節 <1910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 浪花節 4 歌舞伎 5 - 歌舞伎 歌舞伎 6 - 歌舞伎 其他 落語 7 - 落語 源氏節劇 8 - 源氏節劇 9 義太夫 其他 ( 今樣能樂 ) 講談 其他 10 - 其他 講談 浪花節 歌舞伎 11 - 歌舞伎 12 - 歌舞伎 其他

18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1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歌舞伎 講談 2 - 講談 4 浪花節 6 歌舞伎 7 - 歌舞伎 8 其他 9 歌舞伎 11 講談 <1912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舊劇 2 - 舊劇 其他 浪花節劇 <1915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0 歌舞伎 11 浪花節劇 경성좌 ( 京城座 ) <1908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8 歌舞伎 9 - 歌舞伎 본정좌 ( 本町座 ) <1908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2 浪花節浪花節劇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87 영락정 ( 永樂亭 ) <1909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 落語 ( 義太夫 講談 新內 ) 3 浪花節 4 - 浪花節 源氏節 5 源氏節 義太夫 浪花節 6 浪花節 7 - 浪花節 浪花節 8 落語 <1910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 浪花節 용산좌 ( 龍山座 ) <1909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4 義太夫 5 義太夫 <1910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6 浮節劇 9 義太夫 落語 10 落 講 12 浪 <1911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 浪 5 義

18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7 其 8 其他 9 浪花節 낭화관 ( 浪花館 ) <1909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2 浪花節 <1910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浪花節 2 義太夫 浪花節 3 - 浪花節 其他 ( 慈善演奏會 ) 浪 4 浪花節 5 浪花節 6 - 浪花節 7 浪花節 義太夫 8 - 義太夫 9 - 義太夫 落語 講談 10 - 講談 落語 11 - 落語 12 浪花節 <1911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落語 義太夫 2 - 義太夫 3 浪花節 4 浪花節 5 浪花節 義太夫 浪花節 6 - 浪花節 其他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7 - 其他 浪花節 8 - 浪花節 浪花節 浪花節

1900 년대 ~1910 년대경성소재일본인극장의일본전통예술공연양상 189 9 浪花節浪花節 10 - 浪花節落語 11 義太夫落語 12 - 落語 <1912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落語 2 - 落語 講談 <1915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9 浪浪花節浪花節 10 浪落語浪花節 11 - 浪花節其他 12 其浪花節 어성좌 ( 御成座 ) <1910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6 其他 ( 人形劇 ) <1911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0 浪花節劇 11 浪花節 좌구량좌 ( 佐久良座 ) <1911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11 浪花節

19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9 歌舞伎 10 - 歌舞伎 浪花節 浪花節 11 浪花節 12 - 수관 ( 壽館 ) <1915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9 其他義太夫其他 10 其他落語 11 落語 12 浪花節其他浪花節 유락관 ( 有樂館 ) <1915 년 > 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0 浪花節

서평 고대부터현대까지한권에담긴새로운한국무용사 권혜경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3~196 쪽 2015 고대부터현대까지한권에담긴새로운한국무용사 158) 한국춤통사 ( 서울 : 보고사, 2014) 권혜경 * < 차례 > Ⅰ. 한국무용사관련단행본들의성격과한계 Ⅱ. 한국춤통사 의구성방식 Ⅲ. 깊고풍요로운우리춤역사쓰기를기대하며 예나지금이나춤은기록하기가장어려운장르이다. 예술은인간의정신세계를구현하는데몸의움직임을재료로삼는춤은추어지는순간사라질뿐만아니라, 신체와정신의관계에관한복잡하고도어려운문제를안고있다. 춤의실체를파악한다는것은그래서어떤예술장르보다도어려운일이다. 춤을기록하고자하는시도는예로부터계속되었다. 벽화 회화등에그려진그림, 도자기 범종 탑등에새겨진부조, 토우와같은입체적인조각상으로남겨진정지된포즈들이가장오래되고원초적인춤의기록들이다. 고려사 악지, 악학궤범, 정재무도홀기 등으로전해지는춤동작과구성에관한문자기록들도있으며, 감상을전제로한개인의문집등에남아있는춤에관한묘사도옛춤을해독하는단서가된다. 근대에와서야사진자료와공연관련기사, 광고문, 평문등이등장하며, 현재는다양한영상매체와컴퓨터를활용한기록방법이개발되고있다. 또한보다본격적인춤기록방법으로동서양을막론하고무보체계를개발하려는노력들도있었다. 사가 ( 史家 ) 는이러한기록들을찾아과거춤현장과시간의퍼즐을맞추며,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환경들을살펴춤역사를유추하고해석한다. 그러나온전한기록이어려운춤의특성상사료는턱없이부족하고, 실제작품의실체에다가가기어렵기때문에무용사연구는태생적한계를안고출발하게된다. 이러한척박한상황에서최근 한국춤통사 라는당당한제목의책이발간 ** 국립국악원학예연구사

19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되었다. Ⅰ. 한국무용사관련단행본들의성격과한계 1950년대이화여대를시작으로대학에무용 ( 학 ) 과가만들어지며무용학이발전해온지반세기가지났으니고대로부터현재를아우르며신뢰할만한통사 ( 通史 ) 는진작에있어야했다. 그동안한국무용사관련단행본이없었던것은아니다. 그러나발간시점이너무오래되어내용이소략하거나, 특정시대만을다룬저술이대부분이었다. 아래표는한국무용사관련단행본들의종류와시대구분을정리한것이다. < 표 1> 한국무용사관련단행본의시대구분 제목발행연도저자수록시대및구분 한국전통무용 1979 성경린상고시대 / 삼한시대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근대 한국무용사 1988 송수남상고및부족국가시대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갑오경장이후 한국무용사 1995 김매자 한국무용사연구 1. 고대편 우리무용 100 년 2001 1996 이병옥 김경애김채현이종호 조선조궁중무용사 2010 이희병 부족국가시대 / 삼국시대 / 중세 / 조선전기 / 조선후기 / 일제식민지치하 / 근대무용 / 5 16 이후 원시시대 / 상고시대 ( 고조선, 성읍국가시대 )/ 삼국시대 / 통일신라시대 근대 (1900~1960)/ 현대 (1961~2000) 조선왕조정재사연구 2013 송방송조선 ~1910 년대 한국춤통사 2014 김영희김채원김채현이종숙조경아 조선전기 ( 확립기, 태조 ~ 성종 )/ 조선중기 ( 전환기, 연산군 ~ 정조 )/ 조선후기 ( 중흥기, 순조 ~ 갑오경장 ) 선사시대 / 부족국가시대 /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 후기신라, 발해 )/ 고려시대 / 조선전기 / 조선후기 /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 해방 ~ 한국전쟁 / 대한민국 (50 년대 ~2000 년대 ) 위의 < 표 1> 을보면성경린, 송수남, 김매자가저술한 3종의책이고대로부터근대까지이어지는통사의성격을가지고있다. 이세권의저서는오랫동안대학무용과에서교재로활용되며한국무용사학습의길잡이가되어왔다. 그러나 한국전통무용 ( 성경린, 1979) 은약사 ( 略史 ) 로소략하게서술되어있고, 나머지두저서도발간시점이오래되어새로운연구성과를반영하지못할뿐만아니라근 현대사부분은매우간략하게구성되어있어통사 ( 通史 ) 로서미흡한점이많았다.

고대부터현대까지한권에담긴새로운한국무용사 195 그후에발간된 4 종의서적은각각고대, 근 현대, 조선시대를집중조망한것으로전시대를아우 르는무용사저술은없었다는것을알수있다. 이번 한국춤통사 의발간은무용계가풀어야할 오랜숙제로다소늦은감이있기때문에더욱더반갑고기대되는책이다. Ⅱ. 한국춤통사 의구성방식 이책은다섯명의저자가집필하였다. 김영희, 김채원, 김채현, 이종숙, 조경아다섯저자들의중심연구분야가뼈대가되어한권의통사가탄생하였다. 선사시대부터조선전기까지를이종숙이, 조선후기와대한제국황실의춤을조경아가, 조선후기민속의춤과대한제국부터 1960년대까지를김영희가, 1970년대부터 80년대와북한무용의흐름을김채원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김채현이담당하였다. 이와같이시대구성은선사시대부터 2000년대까지의시간을왕조중심으로구분하여서술하였다. 시대구분면에서지금까지나온책들과의차이점은통일신라시대를남북국시대로칭하고, 발해의춤문화를추가하였다는점이다. 근대이후의시대구분을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 ~ 한국전쟁, 대한민국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 으로세분한점도돋보인다. 또한 북한무용의흐름 을부록으로추가하여분단이후남북한무용사의균형을맞추려는시각을제시하였다. 북한무용과관련하여박사학위를받은김채원이필자로참여하면서가능했던작업이었을것이다. 각시대별로다루어진비중을비교해보면, 대한제국부터 2000년대까지의서술분량이전체본문의거의절반을차지하여근현대사의내용이매우비중있게다루어졌음을알수있다. 궁중의연행활동, 민속춤, 종교의식춤등춤의유형별비중을살펴보면궁중정재와일무등궁중의연행활동이큰비중을차지하고있다. 고려와조선의내용은왕실의오례 ( 五禮 ) 를중심으로서술되었고, 불교, 무교등종교의식과관련된내용들은다루어지지않았다. 민속춤은조선후기에서탈춤과농악으로일부다루어지긴했으나전체적으로왕조중심의활동에초점이맞추어져있다. 이것은그동안의연구성과가상대적으로사료가남아있는궁중의활동에집중되어있기때문이라고는하나, 넓은시각에서당대의다양한춤문화를조망하지못한점은아쉬움이많이남는다. 이것은무용사의영역을궁중, 왕조중심의제도와춤종목에만집중하던오랜관행에서벗어나민간, 지역, 사람, 양식등다양한관점으로조망해야할앞으로의과제를암시하는대목이다. 이런면에서볼때, 조선후기저술에서지방교방의연행활동이포함된점은이책의진일보한점이라고할수있다. 2000년대초반부터음악, 무용분야의몇몇연구자들에의해지방교방의연행활동에대한연구가진행되었고, 그성과가반영된것이다. 지방읍지, 연행록등의기록을통해지방교방의활동상과규모, 연행물의성격들이드러나면서정재의공연공간이궁중에한정되

19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지않았을뿐만아니라, 선상기 ( 選上妓 ) 의왕래를통하여중앙과지방이서로활발한영향을주고받았다는점이밝혀졌다. 이방면의연구성과가반영되어조선후기춤역사의폭이넓어졌다. 한편,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다루는 11장대한민국은 3명의필진이나누어맡았다. 그런데글의구성방식과문체가서로달라 10년을단위로한변화와흐름을추적하는데일관성이떨어진다는아쉬움이있다. 더구나제한된사료를다루며, 사료의발견만으로도이슈가되는앞시대에비해이시기는훨씬다양해진춤의흐름과자료가있기때문에일관되면서도폭넓은관점의구성이더욱더중요하다. 50년대와 60년대는더깊이서술되지못하고자료의나열에그치는한계를보였으며, 70년대와 80년대의서술은 한국현대예술사대계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서울 : 시공사, 2000) 와많은부분에서유사한관점이그대로노출되어선행연구에진일보한연구성과를찾기힘들었다. Ⅲ. 깊고풍요로운우리춤역사쓰기를기대하며 무용학연구를본업으로삼는무용학자의수는많지않다. 자료의양이너무나척박하고, 실체를잡을수없는춤을학문적으로접근한다는것은참으로어려운일이다. 그소수의학자들이쌓아온꾸준함과열정으로이책은나올수있었다고생각한다. 다섯저자들의노고에박수를보낸다. 원고를탈고하며 한국춤통사 라는제목을부칠때뿌듯하고설레었을그마음도짐작된다. 무용계의오랜숙제하나가풀리며새로운과제를생각하게된다. 이책의발간으로인해이제우리는마음껏새로운역사쓰기를해도되겠다는생각이든다. 고전적인모델의역사쓰기가아닌지역, 양식, 사람, 비평, 교육등다양한관점의역사, 미시사, 구술사등다양한방식의역사쓰기를기대한다. 멈출듯멈추지않고고요한듯휘돌아치는우리춤의매력처럼우리춤역사가깊고풍요로워지길기대한다. 그리고춤을기록한다는것이얼마나중요한일인가를새삼느낀다.

자료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이지선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이지선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9~248 쪽 2015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 1) -1907 년부터 1912 년까지 - 이지선 ** 경성신보( 京城新報 ) 는 1907년 11월 3일에창간되어 1912년 2월 29일에폐간된일본어신문이다. 이목록은 경성신보 기사중에서조선및일본의전통공연예술 ( 음악포함 ) 과직 간접적으로관련이있는기사와서양음악에관한기사를추출하여작성한것이다. 다만서양음악관련기사는많지않기때문에제목은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으로표시했다. 목록은 연월일 면 원기사제목 번역기사제목 구분 관련사항 의항목으로나누어표로정리했다. 면 항목에서 일 은일간을, 숫자는기사가실린면을표시한다. 예를들어 일2 는해당기사가일간 2면에게재된것을나타낸다. 원기사제목 에는일본어원래의기사제목을, 번역기사제목 에는한국어로번역한기사제목을표시했다. 원기사제목 과 번역기사제목 에서 < > 은신문의정규란을, [ ] 은사진 화보 삽화 광고등의형태를나타낸다. 다음의목록을예로들면, 1909년 5월 6일의일간 3면에는여러공연을소개하는정규연예란으로 < 연예계 > 가게재되어있고, 7월 10일의일간 3면에는악기점 광고 를, 7월 16일의일간 3면에는연극공연을하는중검번소속의게이기 ( 藝妓 ) 얼굴 화보 가실려있다. ** 이목록은 2012 년도정부 ( 교육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작성되었음 (NRF-2012S1A5A8023409). ** 숙명여자대학교일본학과교수.

20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9.5.6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一昇一座御園館 - 岡本美根松一座歌舞伎座 - 博多仁輪加音樂會 - 京城ホテル < 연예계 > 영락정 - 잇쇼일좌어원관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가부키좌 - 하카타니와카음악회 - 경성호텔 未詳 義太夫源氏節仁輪加未詳 1909.7.10. 일 3 [ 廣告 ] 中元御贈答用品 - 松本樂器 [ 광고 ] 중원답례용품 - 송본악기西洋 piano, organ, violin 1909.7.16. 일 3 [ 畵報 ] 去る五日中檢の芝居 [ 화보 ] 지난 5 일중검번연극藝妓演劇 구분 항목에서 朝鮮 은조선의공연예술, 은일본의공연예술, 西洋 은서양음악, 其他 는기타음악 극장 축음기 음반등의사항을나타내고, 朝 日 은조선음악과일본음악이함께나온경우, 朝 西 은조선음악과서양음악이함께나온경우, 日 西 은일본음악과서양음악이함께나온경우, 日 他 는일본음악과기타사항이함께나온경우, 朝 西 他 는조선음악 서양음악 기타사항이함께나온경우, 日 西 中 은일본음악 서양음악 중국음악이함께나온경우, 未詳 은세부사항이불분명한경우를나타낸다. 관련사항 항목에는기사의관련내용이나기사안에언급된음악과전통예술을표시했다. 구분 항목에내용이 1개일경우는하나의공연이나행사를, 2개이상일경우는여러종류의공연을나타낸다. 다음목록을예로들면, 1911년 11월 5일의 구분 에는 朝 西 1개가쓰여있는데, 이는조선음악과서양음악이한행사에서연주된경우로그내용 ( 관련사항 ) 은조선고악 ( 朝鮮古樂 ), 행진가 ( 行進歌 ), 일본창가 ( 唱歌 ), 진행가 ( 行進歌 ) 이다. 1911년 12월 9일의 구분 에는 이 3개쓰여있는데, 이는모두신문의정규연예란인 < 귀와귀 > 에함께게재되어있는것으로, 그내용은낭화관에서의니와카 ( 仁輪加 ) 공연, 수좌에서의간주로일좌의가부키 ( 歌舞伎 ) 공연, 용산좌에서의나니와부시연극 ( 浪花節劇 ) 을나타낸다.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11.11.5. 일 3 奉祝天長節本社主催日鮮人合同大提燈行列の盛況 봉축천장절본사주최일본 조선인합동대제등행렬의성황 朝 西 朝鮮古樂, 行進歌, 唱歌, 進行歌 1911.12.9.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仁輪加壽座 - 雁十郞一座龍山座 - 浪花節芝居 < 귀와귀 > 낭화관 - 니와카수좌 - 간주로일좌용산좌 - 나니와부시극 仁輪加歌舞伎浪花節劇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01 1907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7.11.3. 일 1 天長節奉祝彙報천장절봉축휘보西洋軍樂隊 君か代기미가요西洋國歌 1907.11.13. 일 2 京城樂友會第三回音樂경성악우회제 3 회음악日 西未詳 1907.11.15. 일 3 協贊會閉會式협찬회폐회식落語, 手踊 1907.11.17. 일 2 協贊會閉會式협찬회폐회식落語, 手踊 1907.11.20. 일 3 本町座覗き본정좌엿보기其他劇場 1907.11.19. 일 2 1907.11.21. 일 3 京城樂友會第三回演奏順序 ( 第一日順序 ) 京城樂友會演奏順序 ( 第二 三日順序 ) 경성악우회제 3 회연주순서 ( 첫째날순서 ) 경성악우회연주순서 ( 둘째, 셋째날순서 ) 日 西 日 西 1907.11.26. 일 3 樂友會盲評記 ( 一 ) 악우회맹평기 (1) 日 西音樂團體 1907.11.28. 일 3 樂友會盲評記 ( 二 ) 악우회맹평기 (2) 日 西音樂團體 1907.12.1. 일 1 踊舞臺の寄附무용무대의기부其他舞臺 尺八, 淨瑠璃, 謠曲, 琴曲, 八雲琴, 筑前琵琶, 長唄, 舞踏, 三絃, 仕舞, 陸軍軍樂隊, violin, organ 尺八, 淨瑠璃, 謠曲, 琴曲, 八雲琴, 筑前琵琶, 長唄, 舞踏, 三絃, 仕舞, 陸軍軍樂隊, violin, organ 1907.12.3. 일 2 仁川の軍艦歡迎會인천의군함환영회日 西藝妓手踊, 軍樂隊 1907.12.15. 일 1 [ 揷畵 ] 小說絃のみだれ ( 二十八 ) [ 삽화 ] 소설현의흐트러짐 (28) 太夫, 三味線 1907.12.26. 일 2 < 間島たより > 統監府派出所 < 간도소식 > 통감부파출소淨瑠璃, 琵琶 1908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8.1.5. 일 1 京城樂友會第三會音樂會收支決算報告경성악우회제 3 회음악회수지결산보고日 西音樂團體 1908.2.5. 일 2 熊谷民長の新年宴會구마야민단장의신년연회藝妓手踊 1908.2.18. 일 3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1908.2.23. 일 3 本日の日曜오늘의일요仁輪加, 浮節劇 1908.2.25. 일 1 [ 揷畵 ] 小說絃のみだれ ( 八十 ) [ 삽화 ] 소설현의흐트러짐 (80) 太夫, 三味線 1908.3.1. 일 3 1908.3.3. 일 4 [ 廣告 ] 韓國皇室の御上買 - 蓄音器竝に嶄新の音譜 - 汁屋 [ 廣告 ] 韓國皇室の御上買 - 蓄音器竝に嶄新の音譜 - 汁屋 [ 광고 ] 한국황실에서구입 - 축음기및최신음반 - 즙옥 [ 광고 ] 한국황실에서구입 - 축음기및최신음반 - 즙옥 其他蓄音機, 音盤 ( 音譜 ) 其他 蓄音機, 音盤 1908.3.6. 일 2 陸軍紀念祭來賓心得육군기념제내빈심득仁輪加, 藝妓手踊 1908.3.10. 일 3 五雲會四月番組오운회 4 월프로그램能樂 1908.3.13. 일 2 陸軍紀念祭雜觀 - 餘興육군기념제잡관 - 여흥藝妓手踊 1908.3.21. 일 3 五雲會謠曲會오운회요쿄쿠회能樂 ( 謠曲 )

20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廣告 ] 劍舞大會 [ 광고 ] 검무대회 1908.3.27. 일 3 京城樂友會開催경성악우회개최日 西音樂團體 1908.4.1. 일 3 1908.4.7. 일 3 [ 廣告 ] 蓄音器賃貸 - 東京三光堂韓國總代理店汁屋 [ 廣告 ] 直輸入新荷着案內 - 蓄音器, 音譜各種 [ 광고 ] 축음기임대 - 동경삼광당한국총대리점즙옥 [ 광고 ] 직수입입하안내 - 축음기, 음반각종 其他 其他 手踊, 三曲合奏, 講談, 尺八, 琵琶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1908.4.10. 일 3 芝居の木戶錢を値切る공연입장료를깎다. 義太夫 1908.4.12. 일 3 本町座の博多仁輪加본정좌의하카타니와카博多仁輪加 1908.4.15. 일 3 [ 廣告 ] 大聲蓄音器音譜各種 - 汁屋 [ 광고 ] 대성축음기음보각종 - 즙옥其他蓄音機, 音盤 1908.4.23. 일 3 五雲會番組오운회프로그램能樂 1908.4.30. 일 3 京城樂友會경성악우회日 西 大阪汎愛扶植會の慈善演藝會오사카범애부식회의자선연예회日 西 淨瑠璃, 謠曲, 八雲琴, 尺八, 琴, 胡弓, 仕舞, 長唄, violin, clarinet, saxophone, organ, harmonica 講談, 落語, 琴, 尺八, violin 1908.5.5. 일 3 京城樂友會경성악우회日 西淨瑠璃, 謠曲 1908.5.19. 1908.5.20. 일 3 1908.5.21. 일 2 1908.5.31. 일 3 일 2 靑年會の慈善演藝會 - 眞龍齊貞水청년회의자선연예회講談 일 3 五雲會番組오운회프로그램能樂 慈善演藝會決算報告 - 大阪汎愛扶植會 자선연예회결산보고 - 오사카범애부식회 日 西 未詳 < 演藝會彙報 > 貞水初夜の講談 < 연예회휘보 > 데이스이초야의고단講談 愛國婦人會演藝會애국부인회연예회日 西 琴曲符敎授案出고토곡악보교수안출琴 [ 廣告 ] 速成新法琴曲符稽古開始 - 伊藤靜代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교습개시 - 이토 陸軍軍樂隊, violin, 尺八 1908.6.1. 일 3 軍歌の始군가의시작日 西軍歌, 國歌, 雅樂 1908.6.3. 일 3 愛國婦人會演藝會決定애국부인회연예회결정日 西 1908.6.5. 일 1 일 2 軍樂の起り군악의시작西洋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琴 愛國婦人會演藝會彙報애국부인회연예회휘보日 西未詳 演藝會と臨時列車연예회와임시열차日 西未詳 1908.6.6. 일 3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 - 이토琴 1908.6.7. 일 2 愛國婦人會演藝會애국부인회연예회日 西未詳 일 4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 - 이토琴 琴 陸軍軍樂隊, violin, harmonica, clarinet, saxophone, organ, 合唱, 長唄 軍樂, 橫笛, 喇叭, 小鼓, 大鼓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03 1908.6.9. 일 2 愛國婦人會演藝會애국부인회연예회日 西未詳 일 3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 - 이토琴 1908.6.12. 일 3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 - 이토琴 1908.6.14. 일 3 京城樂友會 - 第三回音樂경성악우회 - 제 3 회음악日 西未詳 1908.6.16. 일 3 [ 廣告 ] 速成新法琴曲音符敎授 - いとう [ 광고 ] 속성신법고토곡악보교수 - 이토琴 1908.6.20. 일 2 演藝會慰勞會연예회위로회日 西講錟, 奏樂 1908.7.9. 일 3 軍樂演奏군악연주西洋軍樂隊 1908.7.18. 일 3 明日の演奏내일의연주西洋軍樂隊 1908.8.5. 일 2 朝鮮日々社園遊會조선일일사원유회日 西藝妓手踊, 軍樂隊 1908.8.7. 일 3 < 平民文庫 > 落語家が當地に來ないのは 1908.8.8. 일 3 1908.8.20. 1908.8.21. 일 1 일 3 일 1 일 3 < 평민문고 > 라쿠고가가당지 ( 경성 ) 에오지않는것은 倭城臺の演奏위성대연주西洋陸軍軍樂隊 落語 パゴダ公園奏樂に就て파고다공원주악에관하여西洋未詳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演藝だより > 壽座 - 竹本鳴八一座 - 女義太夫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演藝だより > 壽座 - 竹本鳴八一座 - 女義太夫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연예안내 > 수좌 - 다케모토나리하치일좌 - 여류기다유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 연예안내 > 수좌 - 다케모토나리하치일좌 - 여류기다유 日 西 中 琴 義太夫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義太夫 1908.8.22. 일 3 南山公園の奏樂남산공원주악西洋陸軍音樂隊 1908.8.23. 일 4 1908.8.25. 1908.8.26. 1908.8.27.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日 西 中 일 2 手踊禁止の訓令데오도리금지의훈령藝妓手踊 일 3 京城座の舞臺開き - 大阪若手俳優中村長右衛門, 阪東太郞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廣告 ] 新築落成實川正三郞阪東太郞中村長右衛門大一座 - 京城座 경성좌의공연시작 - 오사카젊은배우나카무라조에몬, 반도다로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 광고 ] 신축낙성지쓰카와세이사부로, 반도다로, 나카무라조에몬대일좌 - 경성좌 日 西 中 日 他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琴 歌舞伎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歌舞伎, 劇場 일 3 京城座の舞臺開きの景況경성좌의공연시작의경황日 他歌舞伎, 劇場 일 4 일 1 일 4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日 西 中 琴 琴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1908.8.28. 일 3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日 西 中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20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8.8.29. 1908.8.30. 1908.9.1. 1908.9.2. 1908.9.3. 일 3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일 4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일 3 日曜奏樂 - 倭城臺公園일요주악 - 왜성대공원西洋軍樂隊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日 西 中 琴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일 4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일 1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일 2 大韓婦人會演藝會대한부인회연예회朝 日妓生舞踊, 藝妓舞踊 일 3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일 4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일 1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일 4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일 1 일 4 일 1 일 4 1908.9.4. 일 4 1908.9.5. 1908.9.6. 일 1 일 3 [ 廣告 ] 洋室新築落成御披露 - 琵琶バイヲリン尺八笛月琴 - 春日 [ 광고 ] 양실신축낙성피로 - 비와, 바이올린, 샤쿠하치, 후에, 월금 - 춘일 日 西 中 琴 尺八 尺八 琴 琵琶, 尺八, 笛, 月琴, violin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廣告 ] 新築落成 - 京城座 [ 광고 ] 신축낙성 - 경성좌日 他歌舞伎, 劇場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일 3 倭城臺奏樂왜성대주악西洋軍樂隊 일 4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尺八 尺八 琴 琴 尺八 琴 尺八 琴 尺八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05 1908.9.8. 일 1 일 3 1908.9.9. 일 4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1908.9.11.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12. 일 4 1908.9.13. 일 3 1908.9.15.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廣告 ] 山田流生田流琴曲敎授 - 伊藤靜代子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야마다류이쿠타류고토곡교수 - 이토 日曜奏樂일요주악西洋軍樂隊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일 2 妓生の金品下賜기생의금품하사朝鮮朝鮮舞踊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16.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17.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18.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19. 일 4 [ 廣告 ] 尺八自宅及出稽古敎授 - 稲本正音 1908.9.20. 일 3 1908.9.30. 일 3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 광고 ] 샤쿠하치자택및출장교습 - 이나모토 天下一品於辰천하일품오타쓰三味線 ( 義太夫 ) 日曜奏樂일요주악西洋軍樂隊 琴 尺八 尺八 琴 尺八 尺八 琴 尺八 尺八 尺八 尺八 尺八 尺八 育兒院慈善會 - 慈善演藝會육아원자선회 - 자선연예회未詳未詳 五雲會오운회能樂 1908.10.2. 일 3 統監府員の娛樂會통감부원의오락회講談, 落語 1908.10.3. 일 3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1908.10.4. 일 3 倭將臺奏樂堂 - 落成式왜장대주악당 - 낙성식其他劇場 1908.10.8. 일 3 二十二會五雲會開催제 25 회오운회개최能樂 1908.10.10. 일 3 奏樂堂落成式延期주악당낙성식연기其他劇場 1908.10.17. 일 2 奏樂堂落成式주악당낙성식西 他 陸軍軍樂隊, 宮內府音樂隊, 劇場 1908.10.20. 일 3 奏樂堂落成式주악당낙성식西 他陸軍軍樂隊, 韓國樂隊, 劇場 1908.10.22. 일 3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廣告 ] 京城基督敎靑年會演藝會 [ 광고 ] 경성기독교청년회연예회日 西奏樂, 琵琶

20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8.10.23. 일 3 演藝會順序연예회순서日 西 1908.10.24. 일 4 [ 廣告 ] 京城基督敎靑年會演藝會 [ 광고 ] 경성기독교청년회연예회日 西琵琶, 奏樂 일 1 [ 廣告 ] 京城基督敎靑年會演藝會 [ 광고 ] 경성기독교청년회연예회日 西琵琶, 奏樂 일 2 龍山水害救護演藝會용산수해구호연예회未詳未詳 일 3 慈善演藝會番組 - 龍山水害救護演藝會 자선연예회프로그램 - 용산수해구호연예회 1908.10.25. 일 3 基督敎靑年會演藝會기독교청년회연예회日 西 1908.10.28. 일 3 1908.10.30. 일 3 京城座の演藝會 - 龍山災民救護慈善演藝會 경성좌의연예회 - 용산재민구호자선연예회 日 西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育兒院慈善演藝會決算報告일본육아원자선연예회결산보고未詳樂隊 八雲琴, 一節切, 尺八, 觀世流仕舞, 薩摩琵琶, 琴, violin, organ 琴, 三味線, 舞, 仁輪加 尺八, 仁輪加, 謠曲, 薩摩琵琶, violin, organ 義太夫, 長唄, 舞踏, violin 1908.11.6. 일 3 謠曲閑話 ( 三 ) 요쿄쿠한화 (3) 能樂 ( 謠曲 ) 1908.11.7. 일 3 長唄嗜好會設立の趣旨나가우타기호회설립의취지長唄 1908.11.10. 일 3 [ 廣告 ] 音樂講習會員募集 - 音樂講習會 [ 광고 ] 음악강습회원모집 - 음악강습회西洋 violin 1908.11.11. 일 2 パゴダ公園奏樂の廢止파고다공원주악의폐지西洋宮內府樂隊 일 3 一昨夜の長唄嗜好會어제의나가우타기호회長唄 1908.11.17. 일 1 [ 廣告 ] 音樂講習會員募集 - 音樂講習會 [ 광고 ] 음악강습회원모집 - 음악강습회西洋 violin 1908.11.19. 일 2 愛國婦人會 - 釜山大邱委員部演藝會애국부인회 - 부산대구위원부연예회未詳未詳 1908.11.20. 일 3 五雲會開會오운회개회能樂 1908.11.22. 일 3 長唄嗜好會會則나가우타기호회회칙長唄 演藝會收支報告 - 京城基督敎靑年會연예회수지보고 - 경성기독교청년회未詳未詳 1908.11.27. 일 2 樂友會第七回音樂會악우회제 7 회음악회日 西未詳 1908.12.3. 일 3 京城音樂會の為に惜む - 如何なる原因にや 경성음악회때문에애석하다. - 어떤원인인지 日 西 1908.12.4. 일 2 釜山演藝會の成績부산연예회의성적未詳未詳 1908.12.6. 일 2 京城樂友會音樂會경성악우회음악회日 西未詳 1908.12.9. 일 3 本町座の浪花節본정좌의나니와부시浪花節 1908.12.10. 일 3 本町座今晩の語り物본정좌오늘밤의공연작품浪花節 1908.12.11. 일 3 本町座今晩の語り物본정좌오늘밤의공연작품浪花節 1908.12.12. 일 3 未詳 長唄嗜好會例會나가우타기호회예회長唄 本町座今晩の語り物본정좌오늘밤의공연작품浪花節 1908.12.16. 일 3 本町座の替狂言본정좌의교체공연작품浪花節劇 1908.12.17. 일 3 愛友會の演藝會 - 鐵道靑年會の為に애우회의연예회 - 철도청년회을위해未詳未詳 本町座の替狂言본정좌의교체공연작품浪花節劇 1908.12.18. 일 3 < 演藝だより > 本町座の關三十郞一座본정좌의세키산주로일좌歌舞伎 本町座の關三一座본정좌의세키산일좌歌舞伎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07 1908.12.20. 일 3 長唄嗜好會나가우타기호회 長唄, 常磐津, 清元, 淨瑠璃 1908.12.23. 일 3 一昨夜の長唄會어젯밤의나가우타회長唄, 落語 1909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9.1.5. 일 3 長唄の大流行나가우타의대유행長唄 大劇場の建設乎대극장의건설호其他劇場 1909.2.2. 일 3 長唄大會の盛況나가우타대회의성황長唄 1909.2.3.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四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4) 長唄 1909.2.4.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五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5) 長唄 1909.2.5. 일 3 1909.2.6.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六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6) 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三遊亭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산유테이유시치일행 七代目芳村伊三郞 ( 七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7) 長唄 落語, 義太夫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義太夫 1909.2.7. 일 3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義太夫 1909.2.9.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八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8) 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講談, 義太夫 1909.2.10.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九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9) 長唄 1909.2.13. 일 3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講談, 義太夫 1909.2.14. 일 3 1909.2.17.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十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10) 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新內, 講談 七代目芳村伊三郞 ( 十一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11) 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講談, 義太夫 1909.2.18. 일 3 又々京城の大火災 - 火元は劇場本町座 1909.2.19. 일 3 1909.2.20. 일 3 또경성의큰화재 - 발원지는극장본정좌 七代目芳村伊三郞 ( 十二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12) 長唄 < 演藝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講談, 義太夫 七代目芳村伊三郞 ( 十三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13) 長唄 < 演藝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講談, 義太夫 1909.2.23. 일 3 長唄會の番組나가우타회의프로그램長唄 1909.2.24. 일 3 七代目芳村伊三郞 ( 十四 ) 7 대요시무라이사부로 (14) 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新內, 講談 1909.2.25. 일 3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新内 1909.2.26. 일 3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新内 1909.2.27. 일 3 長唄嗜好會 - 第四會目畧評나가우타기호회 - 제 4 회약평長唄 < 演藝だより > 永樂亭 - 遊七一行 < 연예소식 > 영락정 - 유시치일행落語, 新內, 講談 其他 劇場

20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9.3.3. 일 2 統監府員娛樂會통감부원오락회落語, 講談, 筑前琵琶 1909.3.9 일 3 韓國の下田歌子 - 尹貞媛한국의시모다우타코 - 윤정원其他女子音樂院 [ 廣告 ] 長唄嗜好會 - 幹事辭任 [ 광고 ] 나가우타기호회 - 간사사임長唄 1909.3.10. 일 3 [ 廣告 ] 長唄嗜好會 - 幹事辭任 [ 광고 ] 나가우타기호회 - 간사사임長唄 1909.3.12. 일 2 陸軍紀念祭 - 眼覺きしき餘興육군기념제 - 놀라운여흥朝 日 1909.3.14. 일 3 永樂亭の蓋明け - 廣澤虎丸영락정의시작 - 히로사와도라마루浪花節 1909.3.16. 일 3 < 演藝 > 五雲會第二十八回能會永樂亭 - 廣澤虎丸一座 < 연예 > 오운회제 28 회노회영락정 - 히로자와도라마루 1909.3.20. 일 3 樂友會の大會악우회대회日 西未詳 1909.3.28. 일 3 新曲富の源 - 芳村伊三郞作曲신곡부의근원長唄 1909.3.31. 藝者踊, 妓生踊, 筑前琵琶, 仁輪加 能浪花節 일 2 京城樂友會音樂會경성악우회음악회日 西未詳 일 3 一昨夜の長唄會 - 空前の大盛況어제의나가우타회 - 공전의대성황長唄 1909.4.1. 일 3 第五會長唄會漫評제 5 회나가우타회만평長唄 1909.4.8. 일 3 奏樂堂紀念繪葉書 - 京城樂友會주악당기념회엽서 - 경성악우회日 西未詳 1909.4.10. 일 3 梅鶯會の春期大會매앵회춘기대회義太夫 1909.4.11. 일 3 1909.4.13. 일 3 新曲寶草 - 芳村伊三郞作曲신곡보초長唄 壽座の義太夫 - 未曾有の好淨瑠璃 수좌의기다유 - 미증유의훌륭한조루리 國風音樂の大會국풍음악대회日 西 < 演藝 > 永樂亭 - 虎丸一座壽座 - 竹本一昇一座 < 연예 > 영락정 - 도라마루일좌수좌 - 다케모토잇쇼일좌 義太夫 尺八, 三曲, 三絃, 琴, organ, violin 浪花節義太夫 壽座の義太夫を聽く수좌의기다유를듣다. 義太夫 1909.4.15. 일 3 壽座の物語수좌의이야기義太夫 1909.4.16. 일 3 < 演藝界 > 樂友會音樂會五雲會能仕舞壽座の替り < 연예계 > 악우회음악회오운회노시마이수좌의공연교체 日 西 未詳能樂 ( 仕舞 ) 義太夫 1909.4.17. 일 3 < 演藝界 > 壽座の替り < 연예계 > 수좌의공연교체義太夫 1909.4.18. 일 3 < 演藝界 > 仁川歌舞伎座 - 竹本一昇一座 1909.4.23.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1909.4.24.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1909.4.25.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1909.4.27.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岡本美根松龍山座 - 竹本一昇一座 < 연예계 > 인천가무기좌 - 다케모토잇쇼일좌 < 연예계 > 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 연예계 > 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 연예계 > 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 연예계 > 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용산좌 - 다케모토잇쇼 義太夫 源氏節, 新內, 落語 源氏節, 新內, 落語 源氏節, 新內, 落語 源氏節義太夫 1909.4.29. 일 3 < 演藝界 > 龍山座 - 竹本一昇一座 < 연예계 > 용산좌 - 다케모토잇쇼일좌 義太夫源氏節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09 1909.4.30. 일 3 1909.5.1. 일 3 1909.5.2. 일 3 1909.5.4. 일 3 1909.5.6. 일 3 1909.5.7. 1909.5.8. 일 3 일 4 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長唄嗜好會 - 本月例會나가우타기호회 - 본월예회長唄 < 演藝界 > 龍山座 - 竹本一昇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 연예계 > 용산좌 - 잇쇼일좌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義太夫源氏節 長唄嗜好會 - 本月例會나가우타기호회 - 본월예회長唄 < 演藝界 > 龍山座 - 竹本一昇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 演藝界 > 龍山座 - 竹本一昇永樂亭 - 岡本美根松一座 [ 廣告 ] 豫約募集ピアノ, オルガン - 松本樂器 < 연예계 > 용산좌 - 잇쇼일좌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 연예계 > 용산좌 - 잇쇼일좌영락정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 [ 광고 ] 예약모집피아노, 오르간 - 송본악기 西洋 義太夫源氏節 義太夫源氏節 壽座の大改築수좌의대개축其他劇場 < 演藝界 > 永樂亭 - 一昇一座御園館 - 岡本美根松一座歌舞伎座 - 博多仁輪加音樂會 - 京城ホテル < 연예계 > 영락정 - 잇쇼일좌어원관 - 오카모토미네마쓰일좌가부키좌 - 하카타니와카음악회 - 경성호텔 未詳 piano, organ 義太夫源氏節仁輪加未詳 < 演藝界 > 永樂亭 - 一昇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잇쇼일좌義太夫 < 平民文庫 > 一昇の義太夫 < 평민문고 > 잇쇼의기다유義太夫 [ 廣告 ] 劇道唯一雜誌 歌舞伎 [ 광고 ] 극도유일잡지 가부키 歌舞伎 [ 廣告 ] 豫約募集ピアノ, オルガン - 松本樂器 [ 광고 ] 예약모집피아노, 오르간 - 송본악기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一昇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잇쇼일좌義太夫 일 4 1909.5.9. 일 3 [ 廣告 ] 豫約募集ピアノ, オルガン - 松本樂器 [ 廣告 ] 開業廣告 - 源氏節三 [ 美 ] 根松一座 - 御園館 < 演藝界 > 永樂亭 - 一昇一座龍山座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예약모집피아노, 오르간 - 송본악기 [ 광고 ] 개업광고 - 겐지부시미네마쓰일좌 - 어원관 < 연예계 > 영락정 - 잇쇼일좌용산좌 - 경성음악강습회 西洋 西洋 未詳 1909.5.12. 일 3 五雲會能會오운회노회能樂 piano, organ piano, organ 源氏節 義太夫未詳 1909.5.13.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吉川圓朝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요시가와엔초일좌浪花節 1909.5.15.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圓朝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엔초일좌浪花節 1909.5.16. 일 2 昨日の園遊會어제의원유회西洋軍樂隊 1909.5.18. 일 3 1909.5.20. 일 3 1909.5.21. 일 3 < 演藝界 > 歌舞伎座 - 長谷川富廣, 吉川圓長 < 演藝界 > 永樂亭 - 吉川圓朝歌舞伎座 - 長谷川富廣 < 연예계 > 가무기좌 - 하세카와도미히로, 요시카와엔초 < 연예계 > 영락정 - 엔초가무기좌 - 하세카와도미히로 浪花節 浪花節浪花節 < 演藝界 > 永樂亭 < 연예계 > 영락정浪花節 < 平民文庫 > 吉川圓朝, 吉川圓長 < 평민문고 > 요시카와엔초, 요시카와엔초 浪花節 1909.5.27. 일 1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1909.5.28. 일 1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일 3 < 平民文庫 > 淨瑠璃なり俗謠なり < 평민문고 > 조루리이든속요이든淨瑠璃, 俗謠

21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9.5.29. 일 1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1909.5.30. 일 1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1909.6.2. 일 4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1909.6.3. 일 1 [ 廣告 ] 正派薩摩琵琶硏究會 [ 광고 ] 세이하사쓰마비와연구회薩摩琵琶 1909.6.4.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義太夫, 薩摩琵琶 1909.6.8.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義太夫 於辰の義太夫오타쓰의기다유義太夫 1909.6.10.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淨瑠璃 1909.6.12. 일 3 < 演藝界 > 永樂亭 - 吉川辰丸一座 1909.6.15. 일 3 < 연예계 > 영락정 - 요시카와다쓰마루일좌 浪花節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能樂 ( 謠曲 ) < 演藝界 > 五雲會と慈善會永樂亭 - 吉川辰丸一座歌舞伎座 - 市當一座 1909.6.16. 일 3 < 演藝界 > 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1909.6.17. 일 3 1909.6.18. 1909.6.19. 일 3 일 4 일 3 일 4 1909.6.20. 일 3 1909.6.22. 일 3 1909.6.23. 일 3 < 演藝界 > 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慈善演藝會趣旨書 - 韓國京城孤兒院慈善演藝會 - 初日番組 < 演藝界 > 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慈善演藝會趣旨書 - 韓國京城孤兒院慈善演藝會 - 初日番組 < 연예계 > 오운회와자선회영락정 - 요시카와다쓰마루일좌가무기좌 - 이치도일좌 < 연예계 > 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 연예계 > 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자선연예회취지서 - 한국경성고아원자선연예회 - 첫날프로그램 < 연예계 > 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자선연예회취지서 - 한국경성고아원자선연예회 - 첫날프로그램 能樂浪花節舊劇 舊劇 舊劇 薩摩琵琶, 義太夫, 藝妓舞踊, 長唄, 手踊, 落語, 新內, 仁輪加 舊劇 薩摩琵琶, 義太夫, 藝妓舞踊, 長唄, 手踊, 落語, 新內, 仁輪加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長唄, 念佛踊 < 演藝界 > 永樂亭 - 吉川辰丸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慈善演藝會趣旨書 - 韓國京城孤兒院慈善演藝會 - 初日番組 < 연예계 > 영락정 - 요시카와다쓰마루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자선연예회취지서 - 한국경성고아원자선연예회 - 첫날프로그램 浪花節舊劇 中檢の披露演劇중검번의피로연극藝妓演劇 薩摩琵琶, 義太夫, 藝妓舞踊, 長唄, 手踊, 落語, 新內, 仁輪加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淨瑠璃, 仁輪加 < 演藝界 > 永樂亭 - 吉川辰丸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요시카와다쓰마루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浪花節舊劇 藝妓芝居の日取게이기연극의일정藝妓演劇 < 演藝界 > 壽座 - 小天狗米丸一座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演藝界 > 壽座 - 浪花節藝妓芝居 - 中檢番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연예계 > 수좌 - 고텐구요네마루일좌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 연예계 > 수좌 - 나니와부시게이기연극 - 중검번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1909.6.24.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端唄 浪花節, 薩摩琵琶舊劇 浪花節, 薩摩琵琶藝妓演劇舊劇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11 1909.6.25. 일 3 1909.6.26. 일 3 1909.6.27. 일 3 1909.7.1. 일 3 1909.7.2. 일 3 1909.7.3. 일 3 1909.7.4. 일 3 1909.7.6. 일 3 1909.7.7.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都々逸 < 演藝界 > 永樂亭 - 辰丸壽座 - 米丸一座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演藝界 > 永樂亭 - 辰丸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연예계 > 영락정 - 다쓰마루수좌 - 요네마루일좌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 연예계 > 영락정 - 다쓰마루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浪花節浪花節, 薩摩琵琶舊劇 浪花節舊劇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新内 慈善演藝會자선연예회 < 演藝 > 壽座 - 米丸三遊亭遊七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연예 > 수좌 - 요네마루산유테이유시치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義太夫, 長唄, 手踊, 落語, 新内仁輪加 浪花節落語舊劇 藝妓芝居の景氣게이기연극의경기藝妓演劇 < 演藝 > 三遊亭遊七永樂亭 - 辰丸歌舞伎座 - 市川市當一座 < 연예 > 산유테이유시치영락정 - 다쓰마루가무기좌 - 이치카와이치도일좌 落語浪花節舊劇 中券番開業披露중권번개업피로藝妓演劇 [ 畵報 ] 今二日の藝妓芝居今二日の藝妓芝居 [ 화보 ] 오는 2 일의게이기연극오는 2 일의게이기연극 藝妓演劇藝妓演劇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藝妓芝居 < 연예 > 가무기좌 - 게이기연극藝妓演劇 일 4 中券番開業披露중권번개업피로藝妓演劇 [ 畵報 ] 昨二日の藝妓芝居昨二日の藝妓芝居 [ 화보 ] 지난 2 일의게이기연극지난 2 일의게이기연극 藝妓演劇藝妓演劇 中檢披露劇を見る ( 一 ) 중검번의피로극을보다 (1) 藝妓演劇 < 演藝 > 歌舞伎座 - 藝妓芝居 < 연예 > 가무기좌 - 게이기연극藝妓演劇 < 平民文庫 > 慈善とか < 평민문고 > 자선이든演藝會, 藝妓演劇 中檢披露劇を觀る ( 二 ) 중검번의피로극을보다 (2) 藝妓演劇 [ 畵報 ] 今四日の藝妓芝居今四日の藝妓芝居 [ 화보 ] 오는 4 일의게이기연극오는 4 일의게이기연극 藝妓演劇藝妓演劇 演藝會雜觀연예회잡관藝妓演劇 < 演藝 > 歌舞伎座 - 藝妓芝居 < 연예 > 가무기좌 - 게이기연극藝妓演劇 < 平民文庫 > 一昨夜の淸華亭 < 평민문고 > 어젯밤의청화정藝妓演劇 藝妓芝居の紛擾게이기연극의분요藝妓演劇 [ 畵報 ] 一昨四日の藝妓芝居一昨四日の藝妓芝居 [ 화보 ] 그제 4 일의게이기연극그제 4 일의게이기연극 藝妓演劇藝妓演劇 壽座の棟揚げ수좌의상량식其他劇場 中檢披露劇を觀る ( 三 ) 중검번의피로극을보다 (3) 藝妓演劇 < 平民文庫 > 三日夜の中檢披露源氏節美根松の一行藝妓芝居で始めて < 평민문고 >3 일밤의중검번피로겐지부시미네마쓰일행게이기연극으로시작하여 藝妓演劇源氏節藝妓演劇 中檢披露劇を觀る ( 四 ) 중검번의피로극을보다 (4) 藝妓演劇 [ 畵報 ] 中檢藝妓芝居去る五日の藝妓芝居 [ 화보 ] 중검번게이기연극지난 5 일의게이기연극 藝妓演劇, 義太夫藝妓演劇

21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9.7.8. 일 3 1909.7.9. 일 3 1909.7.10. 1909.7.11. 1909.7.13. 일 3 中檢藝妓芝居の終了중검번게이기연극종료藝妓演劇 < 演藝 > 永樂亭 - 辰丸歌舞伎座 - 美當一調 < 연예 > 영락정 - 다쓰마루가무기좌 - 비토잇초 浪花節講談 < 平民文庫 > 藝妓芝居は < 평민문고 > 게이기연극은藝妓演劇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民謠 ( 追分 ) [ 畵報 ] 去る五日の藝妓芝居 [ 화보 ] 지난 5 일의게이기연극藝妓演劇 美當一調の開演비토잇초의공연시작講談, 筑前琵琶 謹告 - 藝妓芝居 - 中檢番근고 - 게이기연극 - 중검번藝妓演劇 [ 寫眞 ] 美當一調 [ 사진 ] 비토잇초講談 美當一調は今夜から비토잇초는오늘밤부터講談, 筑前琵琶 [ 廣告 ] 美當一調, 三好數馬 - 歌舞伎座 [ 광고 ] 비토잇초, 미요시가즈마 - 가무기좌 講談, 筑前琵琶 [ 廣告 ] 中元御贈答用品 - 松本樂器 [ 광고 ] 중원답례용품 - 송본악기西洋 piano, organ, violin 일 4 謹告 - 藝妓芝居 - 中檢番근고 - 게이기연극 - 중검번藝妓演劇 일 1 [ 廣告 ] 中元御贈答用品 - 松本樂器 [ 광고 ] 중원답례용품 - 송본악기西洋 piano, organ, violin 일 2 送迎園遊會順序송영원유회순서藝妓手踊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喇叭節 [ 寫眞 ] 三好數馬 [ 사진 ] 미요시가즈마筑前琵琶 四カ所の樂器賣出 4 곳의악기매출西洋 piano, organ, violin [ 廣告 ] 美當一調, 三好數馬 - 歌舞伎座 [ 광고 ] 비토잇초, 미요시가즈마 - 가무기좌 講談, 筑前琵琶 일 1 [ 廣告 ] 中元御贈答用品 - 松本樂器 [ 광고 ] 중원답례용품 - 송본악기西洋 piano, organ, violin 일 3 1909.7.14. 일 3 1909.7.15. 일 3 1909.7.16. 일 3 美當一調を聽く ( 上 ) 비토잇초를듣다 ( 상 ) 講談 [ 畵報 ] 去る五日中檢藝妓芝居 [ 화보 ] 지난 5 일중검번게이기연극藝妓演劇 [ 廣告 ] 美當一調, 三好數馬 - 歌舞伎座 < 平民文庫 > 美當一座の歌舞伎座の人氣 [ 광고 ] 비토잇초, 미요시가즈마 - 가무기좌 < 평민문고 > 비토잇초의가무기좌의인기 美當一調を聽く ( 下 ) 비토잇초를듣다 ( 하 ) 講談 講談, 筑前琵琶 講談, 筑前琵琶 [ 畵報 ] 去る五日中檢の披露劇 [ 화보 ] 지난 5 일중검번의피로극藝妓演劇 < 演藝 > 五雲會 - 第三十二會能會永樂亭 - 吉川辰丸歌舞伎座 - 美當一調 [ 廣告 ] 美當一調, 三好數馬 - 歌舞伎座 < 연예 > 오운회 - 제 32 회노회영락정 - 요시카와다쓰마루가무기좌 - 비토잇초 [ 광고 ] 비토잇초, 미요시가즈마 - 가무기좌 能樂浪花節講談, 筑前琵琶 講談, 筑前琵琶 [ 畵報 ] 花月內於辰 [ 화보 ] 화월의오타쓰新內, 義太夫 < 演藝 > 歌舞伎座 - 美當一調 < 연예 > 가무기좌 - 비토잇초講談, 筑前琵琶 [ 畵報 ] 去る五日中檢の芝居 [ 화보 ] 지난 5 일중검번연극藝妓演劇 < 演藝 > 歌舞伎座 - 美當一座永樂亭 - 浪花節 < 연예 > 가무기좌 - 비토일좌영락정 - 나니와부시 講談, 筑前琵琶浪花節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13 1909.7.17. 일 3 1909.7.18. 일 3 1909.7.20. 일 3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 < 演藝 > 歌舞伎座 - 美當一座永樂亭 - 千秋樂 < 연예 > 가무기좌 - 비토일좌영락정 - 마지막날 端唄, 喇叭節 [ 畵報 ] 杵屋もん [ 화보 ] 기네야몬長唄 講談, 筑前琵琶浪花節 納凉會の餘興납량회의여흥藝妓手踊 [ 畵報 ] 去る五日中檢の芝居 [ 화보 ] 지난 5 일중검번연극藝妓演劇 納凉會の餘興납량회의여흥日 西蓄音機奏樂, 落語 < 演藝 > 永樂亭 - 諸藝大寄せ仁川歌舞伎座 - 美當一調, 三好數馬 < 연예 > 영락정 - 예능모음인천가무기좌 - 비토, 미요시마 1909.7.21. 일 3 中檢から義太夫중검번으로부터기다유義太夫 1909.7.22. 일 3 < 演藝 > 永樂亭 - 諸藝大寄せ < 연예 > 영락정 - 예능모음落語 仁川のいろいろ - 美當一座の講談이천의여러가지 - 비토일좌의고단講談 浪花節, 源氏節, 新内, 落語講談, 筑前琵琶 1909.7.23. 일 3 < 平民文庫 > 源氏節美根由は < 평민문고 > 겐지부시미네요시는源氏節, 落語 1909.7.28. 일 3 1909.7.29. 일 3 [ 畵報 ] 先般中檢の藝妓芝居 [ 화보 ] 지난중검번의게이기연극藝妓演劇 < 演藝 > 永樂亭 - 諸藝大寄せ < 연예 > 영락정 - 예능모음講釈 紳士の遊興振신사의유흥품새義太夫, 琵琶 旭町の珍音曲욱정의진귀한음곡能樂 ( 謠曲 ) 1909.7.30. 일 3 花柳便り - 長唄藝妓として화류소식 - 나가우타게이기로서長唄 1909.7.31. 일 3 [ 畵報 ] 花月樓のぼん太郞 [ 화보 ] 화월루의본타로長唄 1909.8.1. 일 3 壽座の新築着手수좌의신축착수其他劇場 1909.8.4. 일 3 [ 畵報 ] 中檢の披露劇 [ 화보 ] 중검번의피로극藝妓演劇 < 演藝 > 永樂亭 - 三遊亭百朝 < 연예 > 영락정 - 산유테이햐쿠초落語, 講談 1909.8.5. 일 3 [ 廣告 ] 會員募集 - 歌舞伎座 [ 광고 ] 회원모집 - 가무기좌其他劇場 1909.8.7. 일 3 [ 畵報 ] 中檢の披露劇 [ 화보 ] 증검번의피로극藝妓演劇 일 4 [ 廣告 ] 會員募集 - 歌舞伎座 [ 광고 ] 회원모집 - 가무기좌其他劇場 1909.8.8. 일 4 [ 廣告 ] 會員募集 - 歌舞伎座 [ 광고 ] 회원모집 - 가무기좌其他劇場 1909.8.10. 일 3 < 演藝 > 永樂亭 < 연예 > 영락정落語, 新内, 講談 1909.8.11. 일 3 [ 畵報 ] 長唄と言はず [ 화보 ] 나가우타이든長唄, 清元 1909.8.15. 일 3 清元延壽太夫出演기요모토엔주다유출연清元 1909.8.24. 일 3 清元家元기요모토의이에모토清元 1909.8.26. 일 3 五代目延壽 5 대엔주다유清元 1909.9.1. 일 3 京城座の慈善演藝會경성좌의자선연예회落語, 三曲, 義太夫, 手踊 1909.9.2. 일 3 永樂亭の慈善演藝會영락정의자선연예회 1909.10.13. 일 3 芳村伊左松요시무라이사마쓰長唄 1909.10.19. 일 3 < 演藝 > 永樂亭 - 玉川梅光一一座 < 연예 > 영락정 - 다마카와바이코浪花節 1909.10.31. 일 3 伊藤公の俗謠이토히로부미의속요都々逸 落語, 琴, 仁輪加, 琵琶, 新内, 浪花節

21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09.11.11. 일 3 觀世流の素謠大會간제류의스우타이대회能樂 ( 素謠 ) 1909.11.15. 일 3 觀世流の素謠大會 - 空前の大盛會간제류의스우타이대회 - 공전의대성회能樂 ( 素謠 ) 1909.11.20. 일 3 五雲會素謠例會오운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1909.11.26. 일 3 天狗連と淨瑠璃덴구련과조루리淨瑠璃 1909.11.28. 일 3 筑前琵琶泰斗來 - 鶴崎賢定지쿠젠비와태두오다.- 쓰루자와筑前琵琶 1909.12.5. 일 3 浪花館の蓋開興行낭화관의개업흥행日 他浪花節, 劇場 1909.12.7. 일 4 1909.12.8. 일 4 1909.12.9. 일 4 1909.12.10. 일 4 1909.12.11. 일 3 일 4 1909.12.12. 일 4 1909.12.14.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新年の韓國劇壇 - 大方は新派劇で占む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신년의한국극단 - 대부분은신파극이차지하다.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日 他 日 他 日 他 日 他 其他 日 他 日 他 浪花節, 劇場 浪花節, 劇場 浪花節, 劇場 浪花節, 劇場 劇壇 浪花節, 劇場 浪花節, 劇場 일 3 明治町の浪花館명치정의낭화관浪花節 일 4 [ 廣告 ] 浪花節定席大阪一座開業廣告 - 浪花館 [ 광고 ] 나니와부시정석오사카일좌개업광고 - 낭화관 日 他 1909.12.19. 일 3 記者團の忘年會 - 三遊亭千朝기자단의망년회 - 산유테이덴초落語 浪花節, 劇場 1909.12.21. 일 3 < 演藝だより > 明治町の浪花館 < 연예소식 > 명치정의낭화관浪花節 1909.12.23. 일 3 津太夫と濱太夫쓰다유와하마다유義太夫 1909.12.28. 일 3 筑前琵琶敎授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一月の各劇場 - 仁川歌舞伎座 1 월의각극장 - 인천가무기좌源氏節 1910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10.1.1. 일 3 新春の各劇場 - 浪花館 - 如雲신춘의각극장 - 낭화관 - 조운浪花節 1910.1.5. 일 3 < 演藝 > 浪花館 - 如雲 < 연예 > 낭화관 - 조운浪花節 1910.1.7. 일 3 < 演藝 > 浪花館 - 如雲 < 연예 > 낭화관 - 조운浪花節觀世喜多の謠初간제, 기타류의우타이시작能樂 ( 謠曲 ) 1910.1.11. 일 3 [ 廣告 ] 歌舞伎 歌舞伎發行所 [ 광고 ] 가부키 가무기발행소歌舞伎 1910.1.13. 일 3 中村福圓優來る나카무라후쿠엔오다. 歌舞伎 1910.1.14. 일 3 < 演藝 > 中村福圓一座 < 연예 > 나카무라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16.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中村福圓一座浪花館 - 如雲 < 연예 > 가무기좌 - 나카무라후쿠엔낭화관 - 조운 歌舞伎浪花節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15 1910.1.18. 일 3 歌舞伎座の好評가무기좌의호평歌舞伎 1910.1.19. 일 3 1910.1.20. 일 3 歌舞伎座の初日가무기좌의첫날歌舞伎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五雲會の初例會오운회의첫예회能樂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1.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2.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3. 일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후쿠엔일좌 歌舞伎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후쿠엔일좌 歌舞伎 1910.1.25.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6.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7.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8.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29.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1.30.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歌舞伎 1910.2.1.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福圓一座浪花館 - 竹本越之助一座 < 연예 > 가무기좌 - 후쿠엔일좌낭화관 - 다케모토에쓰노스케일좌 歌舞伎義太夫 歌舞伎座と藝妓가무기좌와게이기歌舞伎 1910.2.2. 일 3 < 演藝 > 歌舞伎座 - 中村福圓一座浪花館 - 娘義太夫 < 연예 > 가무기좌 - 나카무라후쿠엔일좌낭화관 - 여류기다유 歌舞伎義太夫 1910.2.3. 일 3 趣味の京城 ( 四 ) 취미의경성 (4) 薩摩琵琶, 筑前琵琶 1910.2.4. 일 3 < 演藝 > 浪花館 < 연예 > 낭화관義太夫 1910.2.5. 일 3 < 演藝 > 浪花館 - 越之助一座 < 연예 > 낭화관 - 에쓰노스케일좌義太夫 1910.2.6. 일 3 1910.2.8. 일 3 趣味の京城 ( 五 ) 취미의경성 (5) 琴 觀世流の謠曲간제류의요쿄쿠能樂 ( 謠曲 ) 筑前琵琶の敎授지쿠젠비와의교수筑前琵琶 浪花館낭화관義太夫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趣味の京城 ( 六 ) 취미의경성 (6) 淨瑠璃 < 演藝 > 浪花館 - 娘義太夫 < 연예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義太寸評기다유촌평義太夫 1910.2.9. 일 3 < 演藝 > 浪花館 - 娘義太夫 < 연예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0.2.10. 일 3 < 演藝 > 浪花館 - 娘義太夫 < 연예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0.2.11 일 3 1910.2.13. 일 3 [ 寫眞 ] 桃中軒星右衛門 [ 사진 ] 도추켄호시에몬浪花節 < 演藝 > 浪花館 - 娘義太夫 < 연예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本晩の桃中軒오늘밤의도추켄浪花節 在京藝人懇親會재경예인간친회 琵琶, 尺八, 義太夫, 琴, 落語 < 演藝 > 壽座 - 桃中軒星右衛門 < 연예 > 수좌 - 도추켄호시에몬浪花節, 筑前琵琶

21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0.2.15. 일 3 1910.2.16. 일 3 星右衛門を聽く호시에몬을듣는다. 浪花節, 筑前琵琶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壽座の桃中軒수좌의도추켄浪花節, 筑前琵琶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本晩の桃中軒오늘밤의도추켄浪花節 五雲會の狂言오운회의교겐能樂 ( 狂言 ) 1910.2.17. 일 3 壽座の桃中軒수좌의도추켄浪花節, 筑前琵琶 1910.2.18. 일 3 壽座の桃中軒수좌의도추켄浪花節, 筑前琵琶 演藝館の披露 - 高等演藝館연예관의피로 - 고등연예관其他劇場 1910.2.19. 일 3 壽座の桃中軒수좌의도추켄浪花節, 筑前琵琶 1910.2.20. 일 3 壽座の博多俄수좌의하카타니와카博多仁輪加, 筑前琵琶 1910.2.24.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2.25.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일 3 慈善演藝計劃자선연예계획未詳未詳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中村福圓一座壽座 - 桃中軒星右衛門永樂亭 - 源氏節, 浪花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나카무라후쿠엔일좌수좌 - 도추켄호시에몬영락정 - 겐지부시, 나니와부시 歌舞伎浪花節源氏節, 浪花節 1910.2.26.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2.27. 1910.3.1. 1910.3.3.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일 3 < 演藝 > 浪花館 - 廣次菊丸 < 연예 > 낭화관 - 히로지기쿠마루浪花節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일 3 < 演藝 > 仁川歌舞伎座の桃中軒 < 연예 > 인천가무기좌도추켄浪花節 일 3 < 演藝 > 浪花館 - 菊丸 < 연예 > 낭화관 - 기쿠마루浪花節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4.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5.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6. 일 3 < 演藝 > 浪花館 - 菊丸 < 연예 > 낭화관 - 기쿠마루浪花節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7. 일 3 月友會懇親會월우회간친회筑前琵琶 1910.3.8.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菊丸 < 귀와귀 > 낭화관 - 기쿠마루浪花節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9.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10.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12.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13. 일 3 送別觀世素謠會송별간제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1910.3.15. 일 3 五雲會오운회能樂 1910.3.16. 일 3 < 耳と耳 > 永樂亭 - 桃中軒雲丸 < 귀와귀 > 영락정 - 도추켄구모마루浪花節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17 1910.3.18. 일 3 喜多流素謠會기타류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1910.3.19.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21. 1910.3.23. 일 3 慈善演藝會 - 大阪汎愛扶植會京城慈善會 - 歌舞伎座 자선연예회 - 오사카범애부식회경성자선회 - 가무기좌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韓國助産婦養成所慈善演奏會 < 귀와귀 > 낭화관 - 한국조산부양성소자선연주회 朝 日 일 4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25.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慈善演奏會 < 귀와귀 > 낭화관 - 자선연주회朝 日奏樂, 演舞 1910.3.26.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27. 일 1 [ 廣告 ] 筑前琵琶敎授 [ 광고 ] 지쿠젠비와교수筑前琵琶 1910.3.30.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一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1) 民謠 1910.3.31.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浪花節 < 귀와귀 > 낭화관 - 나니와부시浪花節 1910.4.1. 일 3 1910.4.2. 일 3 1910.4.3. 1910.4.5. 1910.4.6. 諸國盆踊唱歌評 ( 二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2) 民謠 < 耳と耳 > 浪花館 - 浪花節 < 귀와귀 > 낭화관 - 나니와부시浪花節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筑前琵琶, 講錟, 仁輪加 妓舞, 一村坊奇術, 伽倻琴, 寸藝琴, 尺八, 淨瑠璃, 薩摩琵琶 於辰の廢業오타쓰의폐업三味線 ( 淨瑠璃 ) [ 畵報 ] 花月の老妓於辰 [ 화보 ] 화월의노기오타쓰三味線 ( 淨瑠璃 ) 諸國盆踊唱歌評 ( 三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3) 民謠 < 耳と耳 > 浪花館 - 浪花節 < 귀와귀 > 낭화관 - 나니와부시浪花節 일 1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五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5) 民謠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六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6) 民謠 일 4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七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7) 民謠 일 4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1910.4.7.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八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8) 民謠 1910.4.8. 1910.4.9.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九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9) 民謠 일 4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일 1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일 3 諸國盆踊唱歌評 ( 十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10) 民謠 1910.4.10. 일 1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21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月友會演奏會월우회연주회筑前琵琶 1910.4.12. 일3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1910.4.13. 일 3 演奏會寸感 ( 上 ) 연주회촌감 ( 상 ) 筑前琵琶, 浪花節 演奏會寸感 ( 下 ) 연주회촌감 ( 하 ) 筑前琵琶, 浪花節 諸國盆踊唱歌評 ( 十一 ) 각지방봉오도리창가평 (11) 民謠 1910.4.14. 일 1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1910.4.15. 일 1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1910.4.17. 1910.4.20. 日 西 中 일 1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일 3 壽座の蓋明け수좌의시작歌舞伎 일 3 1910.4.21. 일 3 1910.4.22. 일 3 1910.4.29. 일 3 赤穗義士 ( 一 )- 佐々木信綱作歌, 田村虎藏作曲 적수의사 (1)- 사사키노부쓰나작가, 다무라도라조작곡 西洋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聲樂曲 中村時子の乘込나카무라도키코오다. 歌舞伎 일 4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赤穗義士 ( 二 )- 佐々木信綱作歌, 田村虎藏作曲 적수의사 (2)- 사사키노부쓰나작가, 다무라도라조작곡 西洋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聲樂曲 中村時子の初日나카무라도키코의첫날歌舞伎 < 耳と耳 > 歌舞伎座 - 淨瑠璃大會 < 귀와귀 > 가무기좌 - 조루리대회淨瑠璃 赤穗義士 ( 三 )- 佐々木信綱作歌, 田村虎藏作曲 < 耳と耳 > 壽座の蓋明け歌舞伎座 - 語り物 五月の韓國劇壇 - 新派と舊派と落語 赤穗義士 ( 終 )- 佐々木信綱作歌, 田村虎藏作曲 적수의사 (3)- 사사키노부쓰나작가, 다무라도라조작곡 < 귀와귀 > 수좌의시작가무기좌 - 이야기체음악 5 월의한국극단 - 신파와구파와라쿠고 적수의사 ( 끝 )- 사사키노부쓰나작가, 다무라도라조작곡 西洋 西洋 聲樂曲 歌舞伎淨瑠璃 歌舞伎, 落語, 講談 聲樂曲 1910.4.30. 일 4 [ 廣告 ] ブァイオリン - 京城音樂講習會 [ 광고 ] 바이올린 - 경성음악강습회西洋 violin 1910.5.1. 일 3 壽座 - 中村時子一座수좌 - 나카무라도키코일좌歌舞伎 1910.5.3.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時子一座 < 귀와귀 > 수좌 - 도키코일좌歌舞伎 1910.5.4. 일 3 歌舞伎座と壽座가무기좌와수좌舊劇 1910.5.5.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時子一座 < 귀와귀 > 수좌 - 도키코일좌歌舞伎 1910.5.6. 일 3 < 耳と耳 > 浪花館の落語一座壽座 - 中村時子一座 < 귀와귀 > 낭화관의라쿠고수좌 - 나카무라도키코일좌 일 4 [ 廣告 ] 營業品目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영업품목 - 미천삼미선점 日 西 中 落語歌舞伎 1910.5.7.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時子一座 < 귀와귀 > 수좌 - 나카무라일좌歌舞伎 1910.5.8.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時子一座 < 귀와귀 > 수좌 - 나카무라일좌歌舞伎 1910.5.12. 일 3 < 耳と耳 > 壽座の次興行 < 귀와귀 > 수좌의다음흥행歌舞伎 琴, 三味線, 尺八, 洋琴, 鐵琴, 橫笛, 月琴, 明笛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19 일 4 1910.5.13. 일 3 [ 廣告 ] 三味線 - 米川三味線店ブァイオリン速成敎授 [ 광고 ] 샤미센 - 미천삼미선점바이올린속성교수 日 西 三味線, violin での妓生芝居일본에서의기생연극朝鮮妓生演劇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中村翫若一座 1910.5.14. 일 3 < 耳と耳 > 壽座 - 翫若一座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1910.5.15. 일 3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落語歌舞伎 歌舞伎落語 五雲會例會延期오운회예회연기能樂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1910.5.17.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落語 1910.5.18.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1910.5.19.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1910.5.20. 일 3 桃川若燕の乘込모모카와자쿠엔오다. 講談 1910.5.22. 일 3 1910.5.24. 歌舞伎落語 歌舞伎落語 歌舞伎落語 浪花館の落語一座낭화관의라쿠고일좌落語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歌舞伎落語 일 2 敎育的唱歌の嚆矢 ( 韓國唱歌 ) 교육적창가의효시 ( 한국창가 ) 西洋唱歌 일 3 1910.5.25. 일 3 1910.5.26. 일 3 1910.5.27. 일 3 1910.5.28. 일 3 [ 寫眞 ] 歌舞伎座出演 - 筑前琵琶師 [ 사진 ] 가무기좌출연 - 지쿠젠비와연주자 桃川若燕の開演모모카와자쿠엔의공연시작講談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龍山櫻座の落成式 - 一千五百名を容る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용산앵좌 ( 좌구량좌 ) 의낙성식 -1500 명을수용 其他 筑前琵琶 歌舞伎落語 [ 寫眞 ] 桃川若燕 [ 사진 ] 모모카와자쿠엔講談 壽座增聘の新顔連수좌증빙의새로운얼굴들歌舞伎 < 耳と耳 > 歌舞伎座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가무기좌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桃川若燕を聽く모모카와자쿠엔을듣다. 講談, < 耳と耳 > 歌舞伎座壽座 - 中村翫若一座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若遊三壽座 - 中村翫若一座 < 귀와귀 > 가무기좌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와카유자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 劇場 講談, 筑前琵琶歌舞伎落語 講談, 筑前琵琶歌舞伎 講談落語歌舞伎 都々逸도도이쓰都々逸 < 耳と耳 > 歌舞伎座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가무기좌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講談歌舞伎落語 觀世會素謠大會간제회스우타이대회能樂 ( 素謠 ) 일 4 [ 廣告 ] 三味線 - 米川三味線店ブァイ [ 광고 ] 샤미센 - 미천삼미선점바이올日 西三味線, violin

22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オリン速成敎授 1910.5.29. 일 3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若遊三 1910.5.31. 일 3 1910.6.1. 일 3 1910.6.2. 일 3 1910.6.3. 일 3 일 4 1910.6.4. 일 3 린속성교수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와카유자 講談落語 御成座落成式 - 人形芝居어성좌낙성식 - 인형극日 他人形劇, 劇場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歌舞伎 浪花館の大入日延낭화관의많은관객, 공연연장講談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若遊三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壽座 - 中村翫若一座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와카유자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수좌 - 나카무라간자쿠일좌 講談落語 落語歌舞伎 龍山座の若燕一行용산좌의자쿠엔일행講談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歌舞伎落語 都々逸도도이쓰都々逸 [ 廣告 ] 三味線 - 米川三味線店ブァイオリン速成敎授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 [ 광고 ] 샤미센 - 미천삼미선점바이올린속성교수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 日 西 三味線, violin 歌舞伎落語 御成座落成式 - 淨瑠璃入人形芝居어성좌낙성식 - 조루리반주의인형극日 他人形劇, 劇場 1910.6.5.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歌舞伎 1910.6.7. 일 3 1910.6.8. 일 3 일 4 1910.6.9. 일 3 1910.6.10.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浪花館 - 若遊三龍山座 - 桃川若燕一行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御成座 - 人形芝居 [ 廣告 ] 三味線 - 米川三味線店ブァイオリン速成敎授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용산좌 - 모모카와자쿠엔일행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어성좌 - 인형극 [ 광고 ] 샤미센 - 미천삼미선점바이올린속성교수 日 西 歌舞伎落語講談 落語人形劇 三味線, violin 若燕と若遊三자쿠엔쿠과와카유산講談, 落語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御成座 - 人形芝居 < 耳と耳 > 五雲會御成座 - 人形芝居桃川若燕 1910.6.11.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翫若一座仁川歌舞伎座 - 若燕 1910.6.12. 일 3 < 耳と耳 > 壽座 - 金馬一座御成座龍山座 - 浮れ節芝居仁川歌舞伎座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어성좌 - 인형극 < 귀와귀 > 오운회어성좌 - 인형극모모카와자쿠엔 < 귀와귀 > 수좌 - 간자쿠일좌인천가무기좌 - 자쿠엔 < 귀와귀 > 수좌 - 긴바일좌어성좌용산좌 - 우카레부시인천가무기좌 歌舞伎人形劇 能樂人形劇講談 歌舞伎講談 落語, 尺八人形劇浮節劇講談 御成座の人形芝居어성좌의인형극人形劇 東洋日報義太夫會동양일보기다유회義太夫 京城觀世素謠會경성간제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 廣告 ] 尺八指南, 三味線はりかえ - 米 [ 광고 ] 샤쿠하치지도, 샤미센줄교체尺八, 三味線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21 川三味線店 - 미천삼미선점 1910.6.14. 일 3 < 耳と耳 > 御成座 - 人形芝居 < 귀와귀 > 어성좌 - 인형극人形劇 1910.6.16. 일 3 1910.6.17. 일 3 일 4 龍山座の浮節芝居 - 市川鯉之助 용산좌의우카레부시극 - 이치카와고이노스케 < 耳と耳 > 仁川竹園館 - 若遊三 < 귀와귀 > 인천죽원관 - 와카유자落語 浮節劇 日韓寺觀音講일한사관음강和讚詠歌 朝鮮新聞社演藝團조선신문사연예단仁輪加, 歌舞伎 [ 廣告 ] 尺八指南, 三味線はりかえ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샤쿠하치지도, 샤미센줄교체 - 미천삼미선점 尺八, 三味線 1910.6.18. 일 3 壽座の人形芝居수좌의인형극人形劇 1910.6.19. 일 3 < 耳と耳 > 壽座 - 文樂式操人形一座 < 귀와귀 > 수좌 - 분라쿠방식인형일좌人形劇 1910.6.21. 일 3 1910.6.22. 일 3 1910.6.24. 일 3 1910.6.25. 일 3 金馬一座の乘込긴바일좌오다. 落語, 尺八 < 耳と耳 > 龍山座浪花館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座浪花館龍山座 [ 廣告 ] 尺八指南, 三味線はりかえ - 米川三味線店 < 귀와귀 > 용산좌낭화관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낭화관용산좌 [ 광고 ] 샤쿠하치지도, 샤미센줄교체 - 미천삼미선점 浮節劇落語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落語浮節劇 尺八, 三味線 壽座の三遊亭金馬수좌의산유테이긴바落語, 尺八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落語, 常磐津 [ 廣告 ] 尺八指南, 三味線はりかえ - 米川三味線店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浪花館 [ 광고 ] 샤쿠하치지도, 샤미센줄교체 - 미천삼미선점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낭화관 1910.6.26. 일 3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 1910.6.28. 尺八, 三味線 일 3 桃中軒如雲の來韓도추켄조운의내한浪花節 일 4 [ 廣告 ] 尺八指南, 三味線はりかえ - 米川三味線店 [ 광고 ] 샤쿠하치지도, 샤미센줄교체 - 미천삼미선점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落語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尺八, 三味線 1910.6.29. 일 3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1910.6.30. 일 3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 1910.7.1. 일 3 桃中軒如雲の乘込도추켄조운오다. 浪花節 1910.7.2. 일 3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 1910.7.3. 일 3 目先の見へぬ藝人눈앞의보이지않는예인 < 耳と耳 > 壽座 - 三遊亭金馬一行 < 귀와귀 > 수좌 - 산유테이긴바일행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浪花節, 長唄, 清元, 落語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22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0.7.5. 일 3 1910.7.6. 일 3 1910.7.7. 일 3 1910.7.8. 일 3 1910.7.9. 일 3 1910.7.10. 일 3 1910.7.12. 일 3 1910.7.13. 일 3 1910.7.14. 일 3 일 4 桃中軒如雲の初日도추켄조운의첫날浪花節 浪花館 - 吉川秀廣一座壽座 - 金馬一行 [ 寫眞 ] 歌舞伎座に開演中の桃中軒如雲 壽座 - 金馬一行歌舞伎座 - 桃中軒如雲一座 낭화관 - 요시카와히데히로일좌수좌 - 긴바일행 [ 사진 ] 가무기좌에서공연중인도추켄조운 수좌 - 긴바일행가무기좌 - 도추켄조운일좌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浪花節 如雲の好人氣조운의큰인기浪花節 浪花館 - 吉川秀廣一座壽座 - 金馬一行 < 耳と耳 > 歌舞伎座 - 如雲一座壽座 - 金馬一行浪花館 낭화관 - 요시카와히데히로일좌수좌 - 긴바일행 < 귀와귀 > 가무기좌 - 조운일좌수좌 - 긴바일행낭화관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浪花節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浪花節 倭城臺日曜奏樂왜성대일요주악西洋軍樂隊, clarinet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金馬一行歌舞伎座 - 如雲一座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긴바일행가무기좌 - 조운일좌 如雲一座を聽く조운일좌를듣다. 浪花節 壽座の次興行수좌의다음흥행落語 歌舞伎座가무기좌浪花節 < 耳と耳 > 歌舞伎座 - 如雲浪花館 < 귀와귀 > 가무기좌 - 조운낭화관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浪花節 浪花節浪花節 觀世素謠月次會간제스우타이월차회能樂 ( 素謠 ) 五雲會月次例會오운회월차예회能樂 < 耳と耳 > 歌舞伎座 - 如雲一座浪花館 三流合倂歡迎會 ( 觀世流, 寶生流, 喜多流 ) [ 廣告 ] 中元進物と蓄音器 - 朝鮮名妓音譜, 大家音譜 - 汁屋蓄音器部 < 耳と耳 > 歌舞伎座 - 如雲一座浪花館 [ 廣告 ] 中元進物と蓄音器 - 朝鮮名妓音譜, 大家音譜 - 汁屋蓄音器部 < 귀와귀 > 가무기좌 - 조운낭화관 세유파합병환영회 ( 간제류, 호쇼류, 기타류 ) [ 광고 ] 중원선물과축음기 - 조선명기음반, 일본대가음반 - 즙옥축음기부 < 귀와귀 > 가무기좌 - 조운낭화관 [ 광고 ] 중원선물과축음기 - 조선명기음반, 일본대가음반 - 즙옥축음기부 朝 日 他 朝 日 他 浪花節浪花節 能樂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浪花節浪花節 1910.7.15. 일3 < 耳と耳 > 歌舞伎座 - 如雲 < 귀와귀 > 가무기좌-조울 浪花節 講談師鈴木長州 고단시스즈키조슈 講談 1910.7.16.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1910.7.17.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23 1910.7.19. 일 3 三遊亭千朝歸る산유테이센초돌아가다. 落語 < 耳と耳 > 龍山座浪花館 < 귀와귀 > 용산좌낭화관 落語浪花節 1910.7.20.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1910.7.21. 일 3 1910.7.22. 일 3 夫婦と琴三味線부부와고토, 샤미센琴, 三味線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觀世音入佛供養관세음입불공양詠歌, 琵琶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1910.7.23. 일 3 和 [ 倭 ] 城臺奏樂曲目왜성대주악곡목西洋軍樂隊 1910.7.24. 일 3 1910.7.26. 제 4 일 3 喜多流の素謠會기타류의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浪花節 [ 廣告 ] 朝鮮名妓音譜, 大家音譜 - 汁屋蓄音器部 [ 광고 ] 조선명기음반, 일본대가음반 - 즙옥축음기부 朝 日 他 1910.7.27. 일 3 < 耳と耳 > 壽座 - 岡本美家登司 < 귀와귀 > 수좌 - 오카모토源氏節劇 1910.7.29. 일 3 鼻と笛코와피리其他鼻笛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竹本廣八一座の女義太夫壽座 - 岡本美家登司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다케모토히로하치수좌 - 오카모토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筑前琵琶義太夫源氏節劇 1910.7.30. 일 3 浪花館の女義漫評낭화관의여류기다유만평義太夫 1910.7.31. 일 3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岡本美家登司 1910.8.2. 일 3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오카모토 妓生のラッパ節기생의랏파부시朝 日 < 耳と耳 > 壽座 - 岡本美家登司浪花館 1910.8.3. 일 3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岡本美家登司 1910.8.4. 일 3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岡本美家登司 1910.8.5. 일 3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岡本美家登司 < 귀와귀 > 수좌 - 오카모토낭화관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오카모토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오카모토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오카모토 義太夫源氏節劇 長唄, 端唄, 清元, 喇叭節 源氏節劇義太夫 義太夫源氏節劇 義太夫源氏節劇 義太夫源氏節劇 1910.8.6.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7. 일 3 1910.8.9. 일 3 < 耳と耳 > 壽座浪花館 薩摩琵琶演奏會사쓰마비와연주회薩摩琵琶 < 耳と耳 > 壽座 < 귀와귀 > 수좌源氏節劇 1910.8.10. 일 3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岡本美家登司 < 귀와귀 > 수좌낭화관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오카모토 源氏節劇義太夫 義太夫源氏節劇 1910.8.11.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12. 일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 義太夫 倭城臺演奏曲目 왜성대연주곡목 西洋 陸軍軍樂隊

22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0.8.13.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14.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 演藝だより > 浮節芝居の市川鯉之助 < 연예소식 > 우카레부시극의이치카와고이노스케 浮節劇 1910.8.15.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17. 일 3 觀音講と其緣日관음강과연일詠歌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18.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19. 일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 義太夫 素人義太夫例會 비전문가기다유예회 義太夫 1910.8.20.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樂友會の大會番組 - 井上千代子女史惜別會 악우회대회프로그램 - 이노우에지요코여사석별회 1910.8.21.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23.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 義太夫 1910.8.24. 일3 觀世會半歌仙會 간제회반가선회 能樂 1910.8.25.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26.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8.27. 일 3 [ 廣告 ] 京城歌舞伎座靑山少女音樂隊 [ 광고 ] 경성가무기좌청산소녀음악대未詳未詳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 廣告 ] 音譜, 朝鮮音譜, 器械各種 - 汁屋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각종기계 - 즙옥 朝 日 他 1910.8.28. 일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 義太夫 和 [ 倭 ] 城臺日曜奏樂 왜성대일요주악 西洋 陸軍軍樂隊 1910.8.30. 일 4 [ 廣告 ] 音譜, 朝鮮音譜, 器械各種 - 汁屋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각종기계 - 즙옥 朝 日 他 1910.9.1.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9.3.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귀와귀 > 낭화관義太夫 1910.9.4. 일 3 1910.9.6. 일 3 廣八一座總評 ( 上 ) 히로하치일좌총평 ( 상 ) 義太夫 大島太夫の開演오시마다유의공연시작義太夫 廣八一座總評 ( 下 ) 히로하치일좌총평 ( 하 ) 義太夫 < 耳と耳 > 壽座 - 大島太夫一行 < 귀와귀 > 수좌義太夫 廣八の仁川乘込히로하치인천오다. 義太夫 1910.9.7. 일 3 半歌仙謠會番組반가선우타이회곡목能樂 ( 素謠 ) 1910.9.8. 일 3 < 耳と耳 > 壽座 - 大島太夫一行仁川竹園座 - 廣八一座 < 귀와귀 > 수좌 - 오시마다유일행인천죽원좌 - 히로하치일좌 琵琶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義太夫義太夫 大島太夫を聽く오시마다유를듣다. 義太夫 1910.9.9. 일 3 < 耳と耳 > 壽座 - 大島太夫 < 귀와귀 > 수좌 - 오시마다유일행義太夫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25 1910.9.10. 일 3 仁川竹園座 - 廣八인천죽원좌 - 히로하치義太夫 < 耳と耳 > 壽座 - 大島太夫浪花館 - 三遊亭金馬竹園座 - 廣八 < 귀와귀 > 수좌 - 오시마다유낭화관 - 산유테이긴바죽원좌 - 히로하치 義太夫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義太夫 倭城臺演奏曲目왜성대연주곡목西洋陸軍軍樂隊 1910.9.11. 일 3 < 耳と耳 > 壽座 - 大島太夫 < 귀와귀 > 수좌 - 오시마다유義太夫 1910.9.13.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様能樂浪花館 - 金馬一座龍山座 - 大島太夫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용산좌 - 오시마다유 일 4 [ 廣告 ] 竹本大島太夫 - 壽座 [ 광고 ] 다케모토오시마다유 - 수좌義太夫 1910.9.14.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1910.9.15.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五雲會素謠例會오운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1910.9.16.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1910.9.17.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1910.9.18.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1910.9.20.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1910.9.21. 일 3 < 耳と耳 > 壽座 - 今樣能樂浪花館 - 金馬一座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마요노가쿠낭화관 - 긴바일좌 1910.9.22.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金馬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긴바일좌 1910.9.23.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浪花館 - 金馬一座 1910.9.24. 일 3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낭화관 - 긴바일좌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義太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今樣能樂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講談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和 [ 倭 ] 城臺上の奏樂왜성대에서의주악西洋陸軍軍樂隊 ( 長唄 )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浪花館 - 金馬一座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낭화관 - 긴바일좌 講談,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浪花館の大當낭화관의성공落語, 尺八, 義太夫 1910.9.25. 일 3 [ 寫眞 ] 壽座出演の改良講談師東操 [ 사진 ] 수좌출연의개량고단시아즈마미사오 講談

22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浪花館 - 金馬一座 1910.9.28.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桃中軒如雲一行龍山座 - 金馬一座 1910.9.29. 일 3 1910.9.30. 일 3 1910.10.1.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浪花館 - 如雲一座龍山座 - 金馬一座 < 耳と耳 > 浪花館 - 如雲一座龍山座 - 金馬一座壽座 - 博多仁輪加一座 < 耳と耳 > 浪花館 - 如雲一座龍山座 - 金馬一座壽座 - 博多仁輪加一座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낭화관 - 긴바일좌 < 귀와귀 > 낭화관 - 도추켄조운일행용산좌 - 긴바일좌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낭화관 - 조운일좌용산좌 - 긴바일좌 < 귀와귀 > 낭화관 - 조운일좌용산좌 - 긴바일좌수좌 - 하카타니와카일좌 < 귀와귀 > 낭화관 - 조운일좌용산좌 - 긴바일좌수좌 - 하카타니와카일좌 四絃會秋季大會사현회추계대회 講談,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講談, 浪花節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 講談講談, 浪花節落語講談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仁輪加, 筑前琵琶講談落語, 常磐津, 浮世節, 尺八仁輪加, 筑前琵琶 箏 三味線 尺八筑前琵琶 仁川錦諷會인천금풍회薩摩琵琶 1910.10.2.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如雲一座壽座 - 博多仁輪加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조운일좌수좌 - 하카타니와카일좌 講談仁輪加, 筑前琵琶 1910.10.3.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如雲一座壽座 - 博多仁輪加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조운일좌수좌 - 하카타니와카일좌 講談仁輪加, 筑前琵琶 1910.10.5.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如雲一座壽座 - 東操一座 1910.10.6.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博多仁輪加一座龍山座 - 如雲一座 1910.10.7.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龍山座 - 如雲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조운일좌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하카타니와카일좌용산좌 - 조운일좌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용산좌 - 조운일좌 1910.10.8.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講談 1910.10.11. 일 3 < 耳と耳 > 壽座 - 東操一座 < 귀와귀 > 수좌 - 아즈마미사오일좌講談 1910.10.12. 일 3 < 耳と耳 > 龍山座 - 東操一座 < 귀와귀 > 용산좌 - 아즈마미사오일좌 講談講談 講談仁輪加, 筑前琵琶講談 1910.10.14. 일 3 三遊亭若遊三산유테이와카유자日 西落語, violin 1910.10.15.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0.16.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日 西落語, violin 1910.10.19.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壽座 - 浪花節芝居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수좌 - 나니와부시극 日 西 講談講談 講談 落語, violin 浪花節劇 1910.10.20. 일 3 < 耳と耳 > 浪壽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수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와카유자 日 西 浪花節劇落語, violin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27 五雲會素謠例會오운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觀世會素謠例會간제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1910.10.21. 일 3 < 耳と耳 > 壽座 - 中村雁十郞浪花館 - 若遊三一座 1910.10.25.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1910.10.28.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수좌 - 나카무라간주로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日 西 日 西 日 西 舊劇 ( 歌舞伎 ) 落語, violin 歌舞伎落語, 浮節, violin 歌舞伎落語, violin 1910.10.29.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日 西落語, violin 일 2 本社主催日鮮人合同奉祝天長節大提燈行列 본사주최일선인합동봉축천장절대제등행렬 西洋 軍樂隊 1910.10.30. < 耳と耳 > 歌舞伎座 - 浪花節芝居 < 귀와귀 > 가무기좌-나니와부시극 浪花節劇 일3 浪花館 - 若遊三一座 낭화관- 와카유자일좌 日 西 落語, violin 松友會の發會式 송우회발회식 能樂 1910.11.1. 1910.11.2. 1910.11.3. 1910.11.5. 1910.11.6. 일 2 일 3 일 2 일 3 本社主催日鮮人合同奉祝天長節大提燈行列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本社主催日鮮人合同奉祝天長節大提燈行列 < 耳と耳 > 歌舞伎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본사주최일선인합동봉축천장절대제등행렬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본사주최일선인합동봉축천장절대제등행렬 < 귀와귀 > 가무기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西洋 日 西 西洋 日 西 軍樂隊 浪花節劇落語, violin 軍樂隊 浪花節劇落語, violin 일 2 天長節と京城府 - 民團奉祝會천장절과경성부 - 민단봉축회日 西奏樂, 藝妓手踊 일 3 일 2 일 3 瓦斯電氣會社の新作祝歌와사전기회사의신작축가西洋樂隊奏樂 本社主催日鮮人合同奉祝天長節大提燈行列 본사주최일선인합동봉축천장절대제등행렬 西洋 軍樂隊 < 耳と耳 > 歌舞伎座 < 귀와귀 > 가무기좌浪花節劇 京城の天長節 - 日鮮人合同奉祝會 奉祝天長節本社主催日鮮人合同大提燈行列の盛況 - 參加人員約二萬五千人 黃金町民の祝賀會 경성의천장절 - 일본 조선인합동봉축회 봉축천장절본사주최일본 조선인합동대제등행렬의성황 - 참가인원약 25,000 인 황금정주민의축하 西洋 朝 西 朝 西 日 音樂隊 仁川天長節祝賀인천천장절축하西洋音樂隊 < 耳と耳 > 歌舞伎座 - 浪花節芝居 < 귀와귀 > 가무기좌 - 나니와부시극浪花節劇 일 2 朝鮮學童と國歌조선학동과국가西洋國歌 朝鮮古樂, 行進歌, 唱歌, 進行歌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1.8.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1.9. 일 3 天長節慶祝歌 - 朝鮮生徒の作歌천장절경축가 - 조선학생의작가西洋唱歌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1.10.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妓生演舞, 國歌, 落語

22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0.11.11. 일 3 文之助の浪花節 - 獨立軒女運と稱す 분노스케의나니와부시 - 독립하여켄조운이라고칭하다. 浪花節 1910.11.12.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1.13. 일 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 와카유자일좌日 西落語, violin 1910.11.15. 일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 < 귀와귀 > 수좌-간주로일좌 歌舞伎 琵琶演奏會寸評 비와연주회촌평 琵琶 1910.11.16. 일3 < 耳と耳 > 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낭화관- 와카유자일좌 日 西 落語, violin 五雲會素謠例會 오운회스우타이예회 能樂 ( 素謠 ) 1910.11.17.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仁川竹園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인천죽원관 - 와카유자일좌 歌舞伎落語 1910.11.18.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歌舞伎 1910.11.19.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歌舞伎落語, violin 觀世會素謠大會간제회스우타이대회能樂 ( 素謠 ) 淸樂會演奏大會청악회연주대회 琴, 三味線, 胡弓, 尺八, 八雲琴, 筑前琵琶 일3 1910.11.20. 일5 1910.11.22. 일3 1910.11.23. 일3 サノサ節と法界節 - 法界節の元祖は支那人 사노사부시와호카이부시 - 호카이부시의원조는중국인 投書家懇親會투서가간친회 사노사節, 法界節 樂聖會素謠會악성회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浪花館 - 若遊三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長唄, 筑前琵琶, 浪花節, 落語, 手踊 歌舞伎落語, violin 仁川の小圓一座인천의고엔일좌浪花節 京山小圓の乘込교산고엔오다. 浪花節 淸樂會例會盛況청악회예회성황 朝鮮雜誌社と音樂會조선잡지사와음악회未詳未詳 [ 廣告 ] 音樂大演奏會於廣通館 - 朝鮮雜誌社 [ 광고 ] 음악대연주회광통관에서 - 조선잡지사 日 西 投書家懇親會の次第투서가간친회순서 万千閣上の能樂 - 十二月四, 五兩日開催 만천각상의노가쿠能樂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歌舞伎 廣通館の音樂會광통관의음악회日 西 [ 廣告 ] 音樂大演奏會 - 朝鮮雜誌社 [ 광고 ] 음악대연주회 - 조선잡지사日 西 琴, 三絃, 胡弓, 尺八, 八雲琴, 筑前琵琶 琴, 三絃, 尺八, 薩摩琵琶, 筑前琵琶, piano, organ, violin 筑前琵琶, 長唄, 三絃, 浪花節, 手踊, 落語 琵琶, piano, organ, guitar 琴, 三絃, 尺八, 薩摩琵琶, 筑前琵琶, piano, organ, violin 1910.11.25. 일 3 京城觀世大會경성간제대회能樂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29 投書家懇親會 - 絃吟會と命名투서가간친회 - 현음회로명명 京山小圓の開演교산고엔공연시작浪花節 1910.11.26. 일 3 < 耳と耳 > 壽座 - 雁十郞一座, 掬翠樓藝妓 1910.11.27. 일 3 壽座と歌舞伎座 - 小圓一座の大人氣, 中券藝妓向を張る < 耳と耳 > 歌舞伎座 - 小圓一座壽座 - 雁十郞一座, 淸華亭藝妓 < 귀와귀 > 수좌 - 간주로일좌, 국취루게이기 수좌와가무기좌 - 고엔일좌의대인기, 중권번게이기대항하다. < 귀와귀 > 가무기좌 - 고엔수좌 - 간주로일좌, 청화정게이기 1910.12.2. 일 3 大能樂會の番組대노가쿠회곡목能樂 1910.12.6. 일 3 < 耳と耳 > 壽座 < 귀와귀 > 수좌歌舞伎 1910.12.7. 일 3 1910.12.9. 일 3 1910.12.11. 일 3 < 耳と耳 > 壽座 < 귀와귀 > 수좌歌舞伎 竹本皆登太夫の披露淨瑠璃を聽く < 耳と耳 > 浪花館壽座 - 雁十郞一座龍山座 - 浪花節芝居 다케모토미나토다유가연주한조루리를듣다. < 귀와귀 > 낭화관수좌 - 간주로일좌용산좌 - 나니와부시극 三つ巴二人女房삼파 2 명의아내 筑前琵琶, 落語, 長唄, 浪花節 歌舞伎, 藝妓演劇 浪花節, 藝妓演劇 浪花節歌舞伎, 藝妓演劇 義太夫 仁輪加歌舞伎浪花節劇 義太夫, 浪花節, 源氏節, 筑前琵琶 觀世會素謠例會간제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1910.12.13. 일 3 五雲會素謠例會오운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1910.12.14. 일 3 1910.12.15. 일 3 < 耳と耳 > 壽座 - 素人淨瑠璃納會浪花館 - 京山北星一座 < 耳と耳 > 壽座 - 素人淨瑠璃竹豊會納會浪花館 - 京山北星一座 < 귀와귀 > 수좌 - 비전문가조루리납회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 < 귀와귀 > 수좌 - 비전문가조루리죽풍회납회낭화관 - 호쿠세이일좌 淨瑠璃浪花節 淨瑠璃浪花節 1910.12.16. 일 3 デビス博士追悼會데비스박사추도회西洋奏樂, 讚美歌 1910.12.17. 일 3 日韓禪寺觀音講일한선사관음강詠歌, 和讚 浪花館 - 京山北星一座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浪花節 1910.12.18. 일 3 浪花館 - 京山北星一座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浪花節 1910.12.20. 일 3 浪花館 - 京山北星一座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浪花節 1910.12.21. 일 3 浪花館 - 京山北星一座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浪花節 京城基督敎會日曜學校경성일본기독교회일요학교西洋讚美歌, 唱歌 1910.12.22. 일 3 浪花館 - 京山北星一座낭화관 - 교야마호쿠세이일좌浪花節 1910.12.28. 일 3 < 耳と耳 > 歌舞伎座 - 片岡島之助一座浪花館 - 東京落語 < 귀와귀 > 가무기좌 - 가타오카시마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라쿠고 歌舞伎落語, 手踊

23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1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11.1.5. 일 3 1911.1.7. 일 3 1911.1.8. 일 3 1911.1.10. 일 3 < 耳と耳 > 壽座 - 市川鯉三郞片岡松十郞歌舞伎座浪花館 - 米枝一座 < 耳と耳 > 壽座 - 市川鯉三郞歌舞伎座浪花館 - 米枝一座 < 耳と耳 > 壽座 - 市川鯉三郞浪花館歌舞伎座 < 演藝だより > 壽座 - 市川鯉三郞浪花館歌舞伎座 1911.1.11.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市川鯉三郞歌舞伎座 - 島之助一座 1911.1.1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歌舞伎座浪花館 1911.1.13.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浪花館 1911.1.14.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浪花館 1911.1.15. 일 3 1911.1.17. 일 3 1911.1.18. 일 3 < 귀와귀 > 수좌 - 이치카와고이사부로가무기좌낭화관 - 베이시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치카와고이사부로가무기좌낭화관 - 베이시일좌 < 귀와귀 > 수좌 - 이치카와고이사부로낭화관가무기좌 < 연예소식 > 수좌 - 이치카와고이사부로낭화관가무기좌 < 연예소식 > 수좌 - 이치카와고이사부로가무기좌 - 시마사부로일좌 < 연예소식 > 수좌가무기좌낭화관 < 연예소식 > 수좌낭화관 < 연예소식 > 수좌낭화관 歌舞伎歌舞伎落語, 手踊 歌舞伎歌舞伎落語, 手踊 歌舞伎落語, 手踊歌舞伎 歌舞伎落語, 手踊歌舞伎 歌舞伎歌舞伎 歌舞伎歌舞伎落語, 手踊 歌舞伎落語, 手踊 歌舞伎落語, 手踊 聯合義太夫會연합기다유회義太夫 < 演藝だより > 壽座歌舞伎座浪花館 < 演藝だより > 壽座浪花館竹園館 < 연예소식 > 수좌가무기좌낭화관 < 연예소식 > 수좌낭화관죽권관 歌舞伎歌舞伎落語, 手踊 歌舞伎落語, 手踊義太夫 壽座수좌歌舞伎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1911.1.19.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仁川歌舞伎座 - 片岡島之助一座 1911.1.20. 1911.1.21. < 연예소식 > 수좌인천가무기좌 - 가타오카시마노스케일좌 歌舞伎歌舞伎 일 1 [ 畵報 ] 山中鹿之助 [ 화보 ] 야마나카시카노스케琵琶 ( 法師 ) 일 3 壽座수좌歌舞伎 일 1 [ 畵報 ] 山中鹿之助 [ 화보 ] 야마나카시카노스케琵琶 ( 法師 ) 일 5 1911.1.22. 일 3 大法會記念式대법회기념식詠歌, 和讚 < 演藝だより > 壽座 < 연예소식 > 수좌歌舞伎 月友會支部移轉월우회지부이전筑前琵琶 < 演藝だより > 壽座 < 연예소식 > 수좌歌舞伎 1911.1.24.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浪花館 - 女義太夫竹本越之助一座 < 연예소식 > 수좌낭화관 - 여류기다유다케모토고에스케일좌 歌舞伎義太夫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31 1911.1.27.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小林伯知 < 연예소식 > 수좌 - 쇼린하쿠치講談 1911.2.1. 일 3 浪花館 - 竹本越之助一座낭화관 - 다케모토고에노스케義太夫 1911.2.3. 일 3 1911.2.4. 일 3 樂聖會例會 - 半歌撰謠曲會악성회예회 - 반가찬요쿄쿠회能樂 < 演藝だより > 壽座 - 小林伯知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수좌 - 쇼린하쿠치낭화관 - 여류기다유 講談義太夫 壽座評수좌평講談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壽座 - 小林伯知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수좌 - 쇼린하쿠치 講談義太夫 1911.2.5.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7.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8. 일 3 1911.2.9. 일 3 1911.2.10. 浪花館の 記 ( 上 ) 낭화관의 기 ( 상 ) 義太夫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浪花館の 記 ( 下 ) 낭화관의 기 ( 하 ) 義太夫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연예소식 > 낭화관義太夫 일 1 [ 廣告 ] 京城日朝音樂團 [ 廣告 ] 경성일조음악단未詳未詳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11.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14.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15.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17. 일 3 1911.2.18. 일 3 日韓禪寺일한선사詠歌, 和讚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1911.2.1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義太夫 1911.2.21.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1.2.25.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1.2.28.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1.3.1. 일 3 < 演藝だより > 仁川歌舞伎座 - 浮れ節芝居片岡鶴之助一座 1911.3.5. 일 1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안내 > 인천가무기좌 - 우카레부시극, 가타오카쓰루노스케일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其他 其他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浮節劇 蓄音機, 音盤 1911.3.7. 일 3 雲右衛門入道來구모에몬온다. 浪花節 1911.3.8. 일 3 < 演藝だより > 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一座 1911.3.9. 일 3 < 演藝だより > 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一座 < 연예소식 > 인천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일좌 < 연예소식 > 인천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일좌 浮節劇 浮節劇

23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일 1 [ 廣告 ] 朝鮮助産婦養生所主催慈善大演藝會 [ 광고 ] 조선조산부양생소주최자선대연예회 1911.3.10.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吉田春圓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요시다하루엔일좌 浪花節 일3 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一座 인천가무기좌- 쓰루노스케일좌 浮節劇 都々逸 도도이쓰 都都逸 1911.3.11. 1911.3.12. 일 1 일 3 1911.3.14. 일 3 1911.3.15. [ 廣告 ] 朝鮮助産婦養生所主催慈善大演藝會 [ 광고 ] 조선조산부양생소주최자선대연예회 陸軍記念追悼會육군기념추도회薩摩琵琶 觀世素謠會간제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吉田春圓一座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요시다하루엔일좌인천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未詳 未詳 未詳 未詳 浪花節浮節劇 일 2 陸軍記念追悼會육군기념추도회薩摩琵琶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春圓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 하루엔일좌浪花節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春圓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 하루엔일좌浪花節 慈善演藝會雜觀자선연예회잡관日 西 [ 廣告 ] 慈善演藝會日のべ廣告 [ 광고 ] 자선연예회연기광고未詳未詳 일 1 [ 廣告 ] 慈善演藝會日のべ廣告 [ 광고 ] 자선연예회연기광고未詳未詳 일 3 1911.3.17. 일 3 1911.3.18. 일 3 1911.3.19. 일 3 1911.3.21. 일 3 1911.3.22.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春圓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하루엔인천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落語, 踊, 筑前琵琶, 三曲合奏 (violin 三味線 尺八 ), 仁輪加 浪花節浮節劇 花園町日韓禪寺화원정일한선사詠歌 < 演藝だより > 仁川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인천가무기좌 - 쓰루노스케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浮節劇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仁川仁諷會인천인풍회能樂 ( 素謠 ) 大浪花節番附대일본나니와부시순위표浪花節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春圓 < 연예소식 > 낭화관 - 하루엔浪花節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東洋軒雷右衛門一座浪花館 - 春圓一座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도요켄라이에몬일좌낭화관 - 하루엔일좌 浪花節浪花節 視察團見送雜感시찰단배웅잡감朝鮮朝鮮音樂 歌舞伎座 - 雷右衛門一座가무기좌 - 라이에몬일좌浪花節 [ 廣告 ] 京城聲友會 - 蓄音機出張御聽聞料 [ 광고 ] 경성성우회 - 축음기출장청문료 日 他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歌舞伎座 - 雷右衛門一座가무기좌 - 라이에몬일좌浪花節 일 4 [ 廣告 ] 京城聲友會 - 蓄音器出張御聽聞料 [ 광고 ] 경성성우회 - 축음기출장청문료日 他 蓄音機, 音盤 ( 俗曲, 謠曲, 琵琶, 義太夫 ) 蓄音機, 音盤 ( 俗曲, 謠曲, 琵琶, 義太夫 )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33 1911.3.24.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雷右衛門一座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라이에몬일좌浪花節 1911.3.25. 일 3 1911.3.26.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雷右衛門一座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라이에몬일좌浪花節 일 3 歌舞伎座 - 雷右衛門一座가무기좌 - 라이에몬일좌浪花節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 演藝だより > 雷右衛門 < 연예소식 > 라이에몬 浪花節 1911.3.28. 일3 都々逸 도도이쓰 都都逸 1911.3.29.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浪花節 1911.3.30. 일 3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1911.3.31. 일 3 喜多流謠曲會기타류요쿄쿠회能樂 ( 謠曲 ) 雲右衛門の開演구모에몬공연시작浪花節 [ 寫眞 ] 桃中軒雲右衛門 [ 사진 ] 도추켄구모에몬浪花節 1911.4.1.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浪花節 1911.4.2.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浪花館 - 吉川今勝, 京山若圓一行 1911.4.5. 일 3 1911.4.6. 일 3 1911.4.7. 일 3 1911.4.8. 일 3 1911.4.16. 일 3 1911.4.18. 일 3 일 4 1911.4.19. 일 3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낭화관 - 요시카와이마카스, 교야마와카엔일행 浪花節浪花節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若圓一行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스, 와카엔일행 浪花節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浪花館 - 今勝, 若圓一行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낭화관 - 이마카쓰, 와카엔일행 浪花節浪花節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浪花節 雲入と日韓書房구모에몬과일한서방浪花節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浪花館 - 今勝, 若圓一行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낭화관 - 이마카쓰, 와카엔일행 浪花節浪花節 音樂大演奏會음악대연주회未詳未詳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音樂大演奏會음악대연주회日 西 觀音講說敎관음강설교詠歌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坂東鶴二郞, 實川正三郞合同一座浪花館 - 今勝, 若圓一行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반도쓰루지로, 지쓰카와세이자부로합동일좌낭화관 - 이마카쓰, 와카엔일행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三曲合奏, 筑前琵琶, violin 歌舞伎浪花節 蓄音機, 音盤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坂東實川合同一座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반도, 지쓰카와합동일좌 歌舞伎浪花節

23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浪花館 - 今勝, 若圓一行 낭화관 - 이마카쓰, 와카엔 1911.4.20. 일 3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1911.4.22. 일 3 1911.4.23. 일 3 1911.4.25.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京山若丸來る若遊三來る歌舞伎座 - 坂東實川合同一座 < 演藝だより > 壽座 - 京山若丸歌舞伎座 - 坂東實川合同一座浪花館 - 若遊三一行 < 연예소식 > 교야마와카마루온다. 와카유자온다. 가부키좌 - 반도, 지쓰카와합동일좌 < 연예소식 > 수좌 - 교야마와카마루가부키좌 - 반도, 지쓰카와합동일좌낭화관 - 와카유자일행 浪花節落語舊劇 浪花節歌舞伎落語 일 3 壽座 - 京山若丸一行수좌 - 교야마와카마루일행浪花節 일 6 [ 廣告 ] 直輸入元 - 織居商店 [ 광고 ] 직수입원 - 직거상점其他蓄音機 1911.4.26.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京山若丸 < 연예소식 > 수좌 - 교야마와카마루浪花節 1911.5.18. 일 7 1911.5.19 일 5 浪花館 - 娘義太夫一座낭화관 - 여류기다유일좌義太夫 長唄大會나가우타대회長唄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娘義太夫竹本水朝浪花館 - 娘義太夫豊竹小智榮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여류기다유다케모토미즈아사낭화관 - 여류기다유도요타케고치와 義太夫義太夫 1911.5.20.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小智榮 < 연예소식 > 낭화관 - 고치와義太夫 1911.5.21.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小智榮 < 연예소식 > 낭화관 - 고치와義太夫 1911.5.23. 일 5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小智榮 < 연예소식 > 낭화관 - 고치와義太夫 1911.5.24. 일 4 [ 廣告 ] 獨逸製手風琴 - 織居商店 [ 광고 ] 독일제손풍금 - 직거상점西洋手風琴 1911.5.25. 일 3 1911.5.26. 高峰筑風を聽く다카미네지쿠후를듣다. 筑前琵琶 雲入道又々來る구모에몬뉴도또온다. 浪花節 일 1 [ 廣告 ] 獨逸製手風琴 - 織居商店 [ 광고 ] 독일제손풍금 - 직거상점西洋手風琴 일 5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浪花節 1911.5.27.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浪花節 1911.5.28. 일 3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일 5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雲右衛門 - 千秋樂 1911.5.30. 일 5 < 演藝だより > 筑風氏の慰問演奏浪花館 - 京山若圓一座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구모에몬 - 마지막날 < 연예소식 > 지쿠후씨의위문연주낭화관 - 교야마와카엔일좌 其他 蓄音機, 音盤 浪花節 筑前琵琶浪花節 1911.5.31. 일 3 浪花館 - 京山若圓一座낭화관 - 교야마와카엔일좌浪花節 1911.6.1. 일 5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京山若圓 < 연예소식 > 낭화관 - 교야마와카엔浪花節 1911.6.2. 일 3 < 演藝だより > 筑前琵琶會滯京中の高峰筑風浪花館 - 京山若圓一座 [ 廣告 ] 筑前琵琶會高峰筑風 - 壽座 < 연예소식 > 지쿠젠비와회경성체류중의다카미네지쿠후낭화관 - 교야마와카엔일좌 [ 광고 ] 지쿠젠비와회다카미네지쿠후 - 수좌 日 西 日 西 筑前琵琶, 長唄, 三曲合奏, violin 筑前琵琶浪花節 筑前琵琶, 長唄, 三曲合奏, violin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35 1911.6.3 1911.6.4. 일 1 일 3 일 3 일 4 [ 廣告 ] 筑前琵琶會高峰筑風 - 壽座 < 演藝だより > 壽座の琵琶會 - 高峰筑風浪花館 - 京山若圓一座 < 演藝だより > 壽座の琵琶會 - 高峰筑風浪花館 - 京山若圓一座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지쿠젠비와회다카미네지쿠후 - 수좌 < 연예소식 > 수좌의비와회 - 다카미네지쿠후낭화관 - 교야마와카엔일좌 < 연예소식 > 수좌의비와회 - 다카미네지쿠후낭화관 - 교야마와카엔일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日 西 日 西 日 西 其他 筑前琵琶, 長唄, 三曲合奏, violin 筑前琵琶, 長唄, 三曲合奏, violin 浪花節 筑前琵琶, 長唄, 三曲合奏, violin 浪花節 蓄音機, 音盤 1911.6.6.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京山若圓 < 연예소식 > 낭화관 - 교야마와카엔浪花節 1911.6.9. 일 3 愛夫主催慰問會애국부이회주최위문회筑前琵琶 1911.6.10. 일 3 仁川築港祝賀彙報 - 餘興の色々인천축항축하휘보 - 여러여흥 1911.6.11. 1911.6.13. 일 3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朝 日 中 其他 日 西 他 妓生舞踊, 朝鮮樂隊, 藝妓手踊, 支那音樂隊 蓄音機 일 5 仁川築港祝賀彙報 - 踊りと劍舞と相撲인천축항축하휘보 - 춤과검무와스모舞踊, 劍舞 일 2 築港祝賀會축항축하회西洋陸軍樂隊 蓄音機, 音盤 ( 國歌, 樂隊 orchestra, 薩摩琵琶, 謠曲, 琴, 三味線, 義太夫, 俗曲, 流行節 ) 일 3 仁川祝賀會の二日目인천축하회의 2 일째劍舞, 仁輪加 十一日の仁川市中雜觀 11 일의인천시중잡관浪花節 1911.6.14. 일 3 仁川築港祝賀會拾遺인천축항축하회습유藝妓手踊 1911.6.17. 일 3 1911.6.18. 일 3 일 4 1911.6.20. 일 3 1911.6.21. 일 3 月竝觀音講竝說敎월관음강과설교詠歌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 < 연예소식 > 수좌 - 가타오카마쓰노스케歌舞伎 [ 寫眞 ] 壽座に於ける片岡松之助一座初日の演じ物 [ 사진 ] 수좌의가타오카마쓰노스케일좌첫날공연작품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 演藝だより > 大歌舞伎片岡松之助來る < 연예소식 > 대가부키 - 가타오카마쓰노스케오다. 京城藝妓の半生 ( 卅七 ) 경성게이기의반생 (37) 長唄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壽座 - 片岡松之助一座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歌舞伎 歌舞伎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수좌 - 가타오카마쓰노스케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其他 蓄音機, 音盤 [ 寫眞 ] 壽座に於ける片岡松之助一座の [ 사진 ] 수좌의가타오카마쓰노스케歌舞伎 落語, 手踊, 筑前琵琶, 淸元, 浮世節歌舞伎 歌舞伎落語, 淸元, 浮世節, 筑前琵琶, 手踊, 仁輪加

23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演じ物 京城藝妓の半生 ( 卅七 ) 경성게이기의반생 (37) 長唄 1911.6.2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1911.6.23.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1911.6.25. 1911.6.27. 1911.6.28. 일 3 일 4 일 3 일 4 일 3 일 4 1911.6.29. 일 3 1911.6.30. 일 3 1911.7.1. 1911.7.2. 일 3 일 4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其他 其他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蓄音機, 音盤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蓄音機, 音盤 壽座の 記수좌의 기歌舞伎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勸進帳を觀る - 二十七日夜の壽座간진초를보다 -27 일밤의수좌歌舞伎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勸進帳を觀る - 二十七日夜の壽座간진초를보다 -27 일밤의수좌歌舞伎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合倂演藝會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浪花館 - 東京大阪合倂演藝會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합병연예회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낭화관 - 도쿄오사카합병연예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歌舞伎落語, 浮世節, 手踊, 淸元, 琵琶 蓄音機, 音盤 1911.7.4.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松之助一座 < 연예소식 > 수좌 - 마쓰노스케일좌歌舞伎 1911.7.7.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落語, 音曲 1911.7.8.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玉武館開館式餘興浪花館 - 合倂演藝會 1911.7.9. 일 4 일 5 일 6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演藝だより > 壽座 - 玉武館開館式餘興浪花館 - 合倂演藝會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연예소식 > 수좌 - 옥무관개관식여흥낭화관 - 합병연예회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 연예소식 > 수좌 - 옥무관개관식여흥낭화관 - 합병연예회 其他 落語, 手踊, 音曲未詳 蓄音機, 音盤 未詳落語, 淸元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37 1911.7.11. 일4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落語, 淸元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1911.7.12.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落語, 淸元 1911.7.13.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落語, 淸元 1911.7.14.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未詳 1911.7.16.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合倂演藝會 < 연예소식 > 낭화관 - 합병연예회落語, 音曲 일 4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1911.7.18. 일 3 < 演藝だより > 五雲會例會浪花館 - 浪花光廣一行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오운회예회낭화관 - 나니와아쓰히로일행 能樂浪花節 1911.7.1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1911.7.20.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1911.7.22.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1911.7.25.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1911.7.27. 1911.7.28. 일 4 일 5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パゴダ公園の演奏파고다공원의연주西洋陸軍軍樂隊 クラブ音樂隊の來鮮클럽음악대의내선西洋未詳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일 4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其他 蓄音機, 音盤 1911.7.30.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光廣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쓰히로浪花節 1911.7.31 일 3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浪花館 - 光廣一行 1911.8.2. 일 3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浪花館 - 光廣一行 1911.8.3.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浪花館 - 光廣一行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1911.8.4. 일 3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浪花館 - 光廣一行 1911.8.5. 일 3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浪花館 - 光廣一行 1911.8.6. 일 3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낭화관 - 아쓰히로일행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낭화관 - 아쓰히로일행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낭화관 - 아쓰히로일행 仁輪加浪花節 仁輪加浪花節 仁輪加浪花節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낭화관 - 아쓰히로일행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낭화관 - 아쓰히로일행 仁輪加浪花節 仁輪加浪花節 パゴダ公園の演奏파고다공원의연주西洋朝鮮軍樂隊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合同劇 < 연예소식 > 용산좌 - 합동극仁輪加

23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일 4 浪花館 - 光廣一行낭화관 - 아쓰히로일행浪花節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1.8.9. 일 4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1911.8.1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大阪仁輪加浪花館 - 虎筆孃一行 1911.8.13. 1911.8.15. 일 3 일 4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大阪仁輪加浪花館 - 虎筆女一行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壽座 - 大阪仁輪加浪花館 - 虎筆女一行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1911.8.16.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大阪仁輪加浪花館 - 虎筆女一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 연예소식 > 수좌 - 오사카니와카낭화관 - 도라후데조일행 < 연예소식 > 수좌 - 오사카니와카낭화관 - 도라후데조일행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수좌 - 오사카니와카낭화관 - 도라후데조일행 其他 其他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仁輪加浪花節 仁輪加浪花節 蓄音機, 音盤 仁輪加浪花節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수좌 - 오사카니와카낭화관 - 도라후데조일행 仁輪加浪花節 1911.8.2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桃中軒雲柳一行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추켄운류일행浪花節 1911.8.30. 일 3 일 4 1911.8.31. 일 5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일5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桃中軒雲柳 < 연예소식 > 낭화관-도추켄운류 浪花節 雲柳を聽く 운류를듣다. 浪花節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桃中軒雲柳壽座 - 片岡鶴之助 1911.9.1.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桃中軒雲柳壽座 - 片岡鶴之助 1911.9.2. 일 3 1911.9.5. 일 3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추켄운류수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추켄운류수좌 - 가타모카쓰루노스케 浪花節浮節劇 浪花節浪花節劇 都々逸도도이쓰都都逸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桃中軒雲柳壽座 - 片岡鶴之助 < 演藝だより > 壽座 - 鶴之助龍山座 - 桃中軒雲柳大久保大將と雲柳 1911.9.6.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鶴之助龍山座 - 桃中軒雲柳 1911.9.8. 일 3 < 演藝だより > 龍山座 - 桃中軒雲柳壽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추켄운류수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수좌 - 쓰루노스케용산좌 - 도추켄운류오쿠보대장과운류 < 연예소식 > 수좌 - 쓰루노스케용산좌 - 도추켄운류 < 연예소식 > 용산좌 - 도추켄운류수좌 - 쓰루노스케 浪花節浪花節劇 浪花節劇浪花節浪花節 浪花節劇浪花節 浪花節浪花節劇 1911.9.9. 일 1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39 1911.9.10. 1911.9.12. 1911.9.22. 1911.9.23. 1911.9.24 일 3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鶴之助龍山座 - 桃中軒雲柳 < 연예소식 > 수좌 - 쓰루노스케용산좌 - 도추켄운류 浪花節劇浪花節 < 演藝だより > 壽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수좌 - 쓰루노스케浪花節劇 [ 廣告 ] 開店披露滿韓一手販賣所蓄音器商會 - 音譜, 朝鮮音譜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개점피로만한일수판매소일본축음기상회 - 일본음반, 조선음반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일 3 汁屋店頭の卅分즙옥상점앞의 30 분 일 4 [ 廣告 ] 開店披露滿韓一手販賣所蓄音器商會 - 音譜, 朝鮮音譜 [ 광고 ] 개점피로만한일수판매소일본축음기상회 - 일본음반, 조선음반 朝 日 他 其他 日 西 他 朝 日 他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蓄音機, 音盤 唱歌, 浮節, 蓄音機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일 1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일 3 제 4 일 1 제 4 일 3 일 4 일 5 일 3 일 5 筑前琵琶大會지쿠젠비와대회筑前琵琶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吉川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 - 요시카와이마카쓰浪花節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吉川今勝壽座 - 琵琶大會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낭화관 - 요시카와이마카쓰수좌 - 비와대회 其他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浪花節筑前琵琶 吉川今勝を聽く요시카와이마카쓰를듣다. 筑前琵琶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壽座 - 琵琶大會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수좌 - 비와대회 浪花節筑前琵琶 1911.9.26. 일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이마카쓰 浪花節 二十四日夜の浪花館 24일밤의낭화관 浪花節 1911.9.27.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浪花節 1911.9.28.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일 5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浪花節 1911.9.30.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浪花節 1911.10.1. 일 1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パゴダ公園の演奏 파고다공원의연주 西洋 軍樂隊 일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 < 연예소식 > 낭화관-이마카쓰 浪花節 1911.10.4. 일 4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1911.10.5.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浪花節浪花節劇

24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1.10.6.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1911.10.7.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1911.10.8.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浪花節浪花節劇 浪花節浪花節劇 浪花節浪花節劇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1.10.10.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1911.10.11.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今勝御成座 - 片岡鶴之助 일 1 1911.10.12. 일3 1911.10.13. 일 3 일1 1911.10.14. 일3 일 3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演藝だより > 御成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落語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이마카쓰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其他 蓄音機, 音盤 浪花節浪花節劇 浪花節浪花節劇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낭화관 - 라쿠고 浪花節落語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 演藝だより > 御成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落語 [ 廣告 ] 浪花節大家吉田奈良丸新曲著荷 - 蓄音器商會 [ 廣告 ] 浪花節大家吉田奈良丸新曲著荷 - 蓄音器商會 < 演藝だより > 御成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福圓一座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어성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낭화관 - 라쿠고 [ 광고 ] 나니와부시대가요시다나라마루신곡취입 - 일본축음기상회 [ 광고 ] 나니와부시대가요시다나라마루신곡취입 - 일본축음기상회 < 연예소식 > 어성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후쿠엔일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浪花節落語 日 他蓄音機, 音盤 ( 浪花節 ) 日 他蓄音機, 音盤 ( 浪花節 ) 浪花節落語 1911.10.15. 일4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일 5 일 3 1911.10.17. 일4 < 演藝だより > 御成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福圓一座 < 演藝だより > 御成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福圓一座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 연예소식 > 어성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후쿠엔일좌 < 연예소식 > 어성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후쿠엔일좌 其他 蓄音機 浪花節落語 浪花節落語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1911.10.1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일좌落語 1911.10.20.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1911.10.21.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其他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 落語浪花節劇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41 일3 1911.10.22. 일 1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일 4 일3 1911.10.24. 일4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其他 落語浪花節劇 蓄音機, 音盤 落語浪花節劇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일 2 天長節祝賀會場決定천장절축하회장결정朝 日妓生 藝妓手踊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落語浪花節劇 1911.10.25. 일3 觀世流此花會秋季大會간제류차화회추계대회能樂 1911.10.26.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1911.10.27. 일 4 [ 廣告 ] ヴ井クター會社製蓄音機械音譜蓄音器商會 - 熊平支店 1911.10.28.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광고 ] 빅터회사제축음기계음반, 일본축음기상회 - 웅평지점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其他 落語浪花節劇 蓄音機, 音盤 落語浪花節劇 落語浪花節劇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1911.10.29.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광고 ] 대성발음기-음반목록무료증정其他蓄音機, 音盤일4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1911.10.31. 일 3 1911.11.1. 1911.11.2.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本社主催奉祝天長節神田祭式手古舞行列次第 - 本社新作木遺唄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福圓歌舞伎座 - 片岡鶴之助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본사주최봉축천장절간다마쓰리식데고마이행렬순서 - 본사신작나무베기노래 < 연예소식 > 낭화관 - 후쿠엔가무기좌 - 가타오카쓰루노스케 民謠 落語浪花節劇 일 2 天長節奉祝擧式順序천장절봉축거식순서朝 日妓生 藝妓手踊, 童舞 일 3 일 3 일 4 本社主催奉祝天長節神田祭式手古舞行列次第 - 本社新作木遺唄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女義太夫竹本小浪一座 本社主催奉祝天長節神田祭式手古舞行列次第 - 本社新作木遺唄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女義太夫小浪御成座 - 吉川今勝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본사주최봉축천장절간다마쓰리식데고마이행렬순서 - 본사신작나무베기노래 < 연예소식 > 낭화관 - 여류기다유다케모토고나미일좌 본사주최봉축천장절간다마쓰리식데고마이행렬순서 - 본사신작나무베기노래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여류기다유고나미어성좌 - 요시카와이마카쓰 民謠 ( 木遺唄 ) 義太夫 民謠 浪花節劇義太夫浪花節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24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1.11.3. 일 3 1911.11.5. 天長節奉祝會場案內 - 餘興場천장절봉축회장안내 - 여흥장藝妓手踊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女義太夫小浪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여류기다유고나미 浪花節劇義太夫 일 3 奉祝天長節當日第一の偉觀봉축천장절당일제일위관民謠 ( 木遺唄 ), 藝妓手踊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1911.11.7.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小浪 < 연예소식 > 낭화관 - 고나미義太夫 1911.11.8. 일 3 1911.11.9. 일 3 일 1 1911.11.10. 일3 일 4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小浪御成座 - 吉川今勝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 고나미어성좌 - 이마카쓰일좌 義太夫浪花節 奈良丸の高弟奈良男の乘込나라마루의수제자나라오공연浪花節 [ 廣告 ] 蓄音器商會 - 一浪花節大家吹込吉田奈良丸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片岡鶴之助浪花館 - 竹本小浪御成座 - 吉川今勝 [ 광고 ] 일본축음기상회 - 일본제일의나니와부시대가취입요시다나라마루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쓰루노스케낭화관 - 다케모토고나미어성좌 - 요시카와이마카쓰 日 他蓄音機, 音盤 ( 浪花節 ) 浪花節劇義太夫浪花節 [ 寫眞 ] 吉田奈良男 [ 사진 ] 요시다나라오浪花節 [ 廣告 ] 蓄音器商會 - 一浪花節大家吹込吉田奈良丸 [ 광고 ] 일본축음기상회 - 일본제일의나니와부시대가취입요시다나라마루 日 他蓄音機, 音盤 ( 浪花節 ) 筑前琵琶秋季大會지쿠젠비와추계대회筑前琵琶 < 演藝だより > 奈良男の初日 - 歌舞伎座浪花館 - 女義太夫小浪 < 연예소식 > 나라오의첫날 - 가무기좌낭화관 - 여류기다유고나미 浪花節義太夫 [ 廣告 ] 口上吉田奈良男 - 歌舞伎座 [ 광고 ] 고함요시다나라오 - 가무기좌浪花節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일 1 [ 廣告 ] 口上吉田奈良男 - 歌舞伎座 [ 광고 ] 고함요시다나라오 - 가무기좌浪花節 高女校生徒音樂會여고학생음악회未詳未詳 1911.11.11. 일3 < 演藝だより > < 연예소식 > 浪花節好評の奈良男一座 - 歌舞伎座호평의나라오일좌-가무기좌義太夫浪花館 - 女義太夫小浪낭화관- 여류기다유고나미 일 1 [ 廣告 ] 口上吉田奈良男 - 歌舞伎座 [ 광고 ] 고함요시다나라오 - 가무기좌浪花節 [ 廣告 ] 蓄音器商會 - 一浪花節大家吹込吉田奈良丸 [ 광고 ] 일본축음기상회 - 일본제일의나니와부시대가취입요시다나라마루 日 他蓄音機, 音盤 ( 浪花節 ) 高女校の音樂會여고의음악회西洋合唱, piano, organ 1911.11.12. 筑前琵琶秋季大會演奏曲目 지쿠젠비와추계대회연주곡목 筑前琵琶 일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奈良男 < 연예소식 > 가무기좌-나라오 浪花節 浪花館 - 竹本小浪 낭화관- 다케모토고나미 義太夫 일 4 1911.11.14. 일 3 奈良男一座の大入나라오일좌의만원浪花節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蓄音機, 音盤 高女音樂會の大成功여고음악회의대성공西洋合唱, piano, organ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43 1911.11.15. 일 3 < 演藝だより > 佐久良座 - 吉川今勝浪花館 - 竹本小浪歌舞伎座 - 吉田奈良男 < 연예소식 > 좌구량좌 - 요시카와이마카쓰낭화관 - 다케모토고나미가무기좌 - 요시다나라오 浪花節義太夫浪花節 [ 廣告 ] 西村樂器店 [ 광고 ] 서촌악기점西洋 piano, organ, violin, 鈴琴 < 演藝だより > 佐久良座 - 吉川今勝浪花館 - 竹本小浪歌舞伎座 - 吉田奈良男 < 연예소식 > 좌구량좌 - 요시카와이마카쓰낭화관 - 다케모토고나미가무기좌 - 요시다나라오 浪花節義太夫浪花節 壽座と歌舞伎座수좌와가무기좌浪花節일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吉田奈良男 < 연예소식 > 가무기좌-요시다나라오浪花節 1911.11.16. 일4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직거본점其他蓄音機居本店 1911.11.17.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吉田奈良男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1911.11.18.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吉田奈良男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일3 1911.11.19. 일 4 1911.11.21.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吉田奈良男浪花館 - 三遊亭若遊三桃中軒雲遊の乘込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壽座 - 桃中軒雲遊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廣告 ] 浪花節若手名士吉田奈良男開演 - 仁川歌舞伎座 1911.11.2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桃中軒雲遊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1911.11.23. 일 4 일 5 1911.11.25. 일 3 일 3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요시다나라오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요시다나라오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요시다나라오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도추켄운유의공연시작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수좌 - 도추켄운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 광고 ] 나니와부시젊은명사요시다나라오공연개시 - 인천가무기좌 < 연예소식 > 수좌 - 도추켄운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其他 浪花節落語 浪花節落語 浪花節落語浪花節 蓄音機, 音盤 浪花節落語 浪花節 浪花節落語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京仁合同喜多流謠會경인합동기타류우타이회能樂 ( 謠曲 ) < 演藝だより > 壽座 - 雲遊歌舞伎座 - 中村歌玉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演藝だより > 壽座 - 雲遊歌舞伎座 - 中村歌玉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演藝だより > 壽座 - 雲遊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연예소식 > 수좌 - 운유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 연예소식 > 수좌 - 운유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 연예소식 > 수좌 - 운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 浪花節歌舞伎落語 浪花節歌舞伎落語 浪花節落語 1911.11.26.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광고 ] 대성발음기-음반목록무료증정其他蓄音機, 音盤일4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1911.12.6. 일 3 長唄大會나가우타대회長唄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中村歌玉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歌舞伎

24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浪花館 - 三遊亭若遊三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落語 1911.12.7. 일 3 長唄嗜好會 - 納會番組나가우타기호회 - 납회프로그램長唄 1911.12.8. 일 3 일 4 1911.12.9. 일 3 일5 1911.12.10. 長唄嗜好會 - 納會番組나가우타기호회 - 납회프로그램長唄 五雲會素謠例會오운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樂聲會素謠例會악성회스우타이예회能樂 ( 素謠 )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中村歌玉浪花館 - 三遊亭若遊三壽座 - 長唄嗜好會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演藝だより > 壽座 - 京城演藝大會浪花館 - 三遊亭若遊三歌舞伎座 - 中村歌玉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수좌 - 나가우타기호회 歌舞伎落語長唄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 연예소식 > 수좌 - 경성연예대회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 筑前琵琶, 三曲合奏, 淨瑠璃, 長唄, 浪花節, 落語落語歌舞伎 일 4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일 6 일 1 盛なりし長唄嗜好會 ( 一 ) 활기찬나가우타기호회 (1) 長唄 < 演藝だより > 壽座 - 京城演藝大會浪花館 - 三遊亭若遊三歌舞伎座 - 中村歌玉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廣告 ] 蓄音機は蓄音器商會製に限る < 연예소식 > 수좌 - 경성연예대회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가무기좌 - 나카무라가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축음기는일본축음기상회제에한한다. 其他 朝 日 他 筑前琵琶, 三曲合奏, 淨瑠璃, 長唄, 浪花節, 落語落語歌舞伎 蓄音機, 音盤 1911.12.12. 盛なりし長唄嗜好會 ( 二 ) 활기찬나가우타기호회 (2) 長唄일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中村歌玉 < 연예소식 > 가무기좌 -나카무라가교쿠歌舞伎 일5 盛なりし長唄嗜好會 ( 三 ) 활기찬나가우타기호회 (3) 長唄 1911.12.13. 일6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직거본점其他蓄音機居本店 1911.12.14. 일 3 盛なりし長唄嗜好會 ( 四 ) 활기찬나가우타기호회 (4) 長唄 일 1 [ 廣告 ] 蓄音機は蓄音器商會製に限る [ 광고 ] 축음기는일본축음기상회제에한한다. 朝 日 他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일4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서촌악기점 西洋 organ, piano 1911.12.15. 琵琶の修繕新調 비와수선 琵琶 일5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中村歌玉 < 연예소식 > 가무기좌- 나카무라가교쿠 歌舞伎 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낭화관- 산유테이와카유자 落語 1911.12.16. 일 6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일 5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연예소식 > 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落語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1911.12.17. 일6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광고 ] 대성발음기-음반목록무료증정其他蓄音機, 音盤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1911.12.1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三遊亭若遊三 < 연예소식 > 낭화관 - 산유테이와카유자落語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45 1911.12.21. 일 6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1911.12.22. 일 4 [ 廣告 ] 各種蓄音器御小賣取次店 - 喜多金光堂本店 1911.12.24. 일 4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각종축음기소매취급점 - 희다금광당본점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其他 蓄音機 蓄音機, 音盤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西村樂器店 [ 광고 ] 오르간피아노 - 서촌악기점西洋 organ, piano 1911.12.26. 일 3 [ 廣告 ] ヴイクター會社蓄音機械 - 織居本店 [ 광고 ] 빅터회사축음기계 - 직거본점其他蓄音機 1911.12.28.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一座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일좌舊劇 1912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12.1.5.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一座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일좌舊劇 1912.1.7. 일 3 일 4 1912.1.9.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三遊亭圓若壽座 - 若島屋一座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수좌 - 와카시마야일좌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落語舊劇 蓄音機, 音盤 龍山の觀兵式용산의관병식西洋軍樂隊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1.10.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1.11. 일 3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舊劇落語 舊劇落語 若遊三詐欺取財와카유자사기취득落語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1.1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1.13. 1912.1.14. 일 3 일 4 일 3 일 4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舊劇落語 舊劇落語 若遊三の大迷惑와카유자의큰폐단落語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譜朝鮮譜多數着荷 - 蓄音器商會 [ 廣告 ] 各種蓄音器御小賣取次店 - 喜多金光堂本店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다수착하 - 일본축음기상회 [ 광고 ] 각종축음기소매취급점 - 희다금광당본점 朝 日 他 其他 舊劇落語 浪花館總見雜觀낭화관총견잡관落語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1.16. 일 1 [ 廣告 ] 譜朝鮮譜多數着荷 - 蓄音器商會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다수착하 - 일본축음기상회 其他 朝 日 他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蓄音機 舊劇落語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24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일 3 1912.1.17. 일 3 1912.1.18. 1912.1.19. 일 1 일 3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各種蓄音器御小賣取次店 - 喜多金光堂本店 [ 廣告 ] 譜朝鮮譜多數着荷 - 蓄音器商會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각종축음기소매취급점 - 희다금광당본점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다수착하 - 일본축음기상회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其他 朝 日 他 舊劇落語 舊劇落語 蓄音機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舊劇落語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1.20. 일 1 [ 廣告 ] 譜朝鮮譜多數着荷 - 蓄音器商會 1912.1.21. 1912.1.23.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다수착하 - 일본축음기상회 其他 朝 日 他 舊劇落語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舊劇 일 4 일 1 일 3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廣告 ] 譜朝鮮譜多數着荷 - 蓄音器商會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記念演藝會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다수착하 - 일본축음기상회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기념연예회 其他 朝 日 他 圓若の噺엔자쿠의이야기落語 1912.1.25.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浪花館 - 三遊亭圓若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1912.1.27. 일 3 鼓友會發會式고우회발회식能樂 1912.1.28.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1912.1.30. 일 3 壽座 - 若島屋수좌 - 와카시마야舊劇 1912.2.1. 일 3 1912.2.2.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の藝妓芝居浪花館 - 三遊亭圓若壽座 - 若島屋歌舞伎座 - 市川小圓 < 演藝だより > 壽座 - 若島屋歌舞伎座 - 市川小圓 < 연예소식 > 수좌의게이기연극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수좌 - 와카시마야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 < 연예소식 > 수좌 - 와카시마야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舊劇落語筑前琵琶, 落語, 藝妓手踊 舊劇落語 舊劇浪花節劇落語 蓄音機, 音盤 藝妓演劇落語舊劇浪花節劇 舊劇浪花節劇 京城券番藝妓芝居と役割경성권번게이기연극과역할藝妓演劇 壽座稽古場覗き - 四日から開演する藝妓芝居 수좌연습장엿보기 -4 일부터시작하는게이기연극 藝妓演劇

경성신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47 1912.2.3. 1912.2.4. 일 3 일 4 일 3 일 4 1912.2.6. 일 3 1912.2.7. 일 3 1912.2.8.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浪花館の圓若壽座 - 若島屋歌舞伎座 - 市川小圓 [ 廣告 ] 各種蓄音器御小賣取次店 - 喜多金光堂本店 < 演藝だより > 壽座の藝妓芝居浪花館 - 三遊亭圓若 < 宗匠訪問錄 >( 四 ) 筑前琵琶指南井上霞曉子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연예소식 > 낭화관의엔자쿠수좌 - 와카시마야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 [ 광고 ] 각종축음기소매취급점 - 희다금광당본점 < 연예소식 > 수좌의게이기연극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종장방문록 >(4) 지쿠젠비와지도자이노우에가케우코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其他 其他 落語舊劇浪花節劇 蓄音機 藝妓演劇落語 筑前琵琶 蓄音機, 音盤 藝妓衆のお芝居게이기들의연극藝妓演劇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三遊亭圓若歌舞伎座 - 市川小圓壽座 - 藝妓芝居 < 연예소식 > 낭화관 - 엔자쿠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수좌 - 게이기연극 落語浪花節劇藝妓演劇 浮名の立春 - お芝居外のお芝居부명의입춘 - 연극외의연극藝妓演劇 < 演藝だより > 壽座 - 藝妓芝居仁川歌舞伎座 - 若島屋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2.9.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2.10.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1912.2.11. 일 3 일 4 < 宗匠訪問錄 >( 五 ) 義太夫竹本楢梅杖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2.13. 일 3 < 宗匠訪問錄 >( 六 ) 義太夫竹本楢梅杖 1912.2.14. 일 3 일 3 < 연예소식 > 수좌 - 게이기연극인천가무기좌 - 와카시마야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종장방문록 >(5) 기다유다케모토나라바이초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종장방문록 >(6) 기다유다케모토나라바이초 其他 其他 藝妓演劇舊劇浪花節劇落語 浪花節劇落語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落語 浪花節劇落語 義太夫 浪花節劇落語 蓄音機, 音盤 義太夫 演藝會實行委員 - 公園修築費募集연예회실행위원 - 일본공원수축비모집未詳演藝會 < 宗匠訪問錄 >( 七 ) 義太夫竹本楢梅杖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종장방문록 >(7) 기다유다케모토나라바이초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義太夫 浪花節劇落語 < 宗匠訪問錄 >( 八 ) 踊華元いわ子 < 종장방문록 >(8) 무용하나모토이와코舞踊 1912.2.15. 일 3 演藝會實行委員會연예회실행위원회 藝妓手踊, 音曲合奏, 琵琶

24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일 4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2.16. 일 3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其他 浪花節劇落語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落語 1912.2.17. 일 3 藝妓義太夫會게이기기다유회義太夫 1912.2.18. 1912.2.20. 1912.2.21. 일 3 일 4 일 3 五雲會例會오운회예회能樂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演藝だ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三遊亭圓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 其他 浪花節劇落語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落語 일 4 [ 廣告 ] 新音譜賣出し - 蓄音器商會 [ 광고 ] 새로운음반매출 - 일본축음기상회日 他義太夫, 小唄, 蓄音機 일 3 일 4 1912.2.22. 일 3 1912.2.23.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中村かしく浪花館 - 東操龍山佐久良座 - 若島屋 [ 廣告 ] 各種蓄音器御小賣取次店 - 喜多金光堂本店 < 연예소식 > 수좌 - 나카무라가시쿠낭화관 - 아즈마미사오용산좌구량좌 - 와카시마야 [ 광고 ] 각종축음기소매취급점 - 희다금광당본점 其他 浪花節劇講談舊劇 歌舞伎座燒失가무기좌소실其他劇場 龍山座の失火용산좌화재其他劇場 < 宗匠訪問錄 >( 十一 ) ヴァイオリン中島樂洋君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1912.2.24.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中村かしく浪花館 - 東操 1912.2.24. 일 4 [ 廣告 ] 四十五年式最新蓄音器最新音譜賣出し 1912.2.25. 일 3 일 4 < 演藝だより > 壽座 - 中村かしく浪花館 - 東操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종장방문록 >(11) 바이올린나카지마라쿠요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 연예소식 > 수좌 - 나카무라가시쿠낭화관 - 아즈마미사오 [ 광고 ]45 년식최신축음기최신음반매출 < 연예소식 > 수좌 - 나카무라가시쿠낭화관 - 아즈마미사오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西洋 其他 朝 日 其他 蓄音機 violin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講談 ( 妓生舞踊 ), 小唄, 義太夫 浪花節劇講談 蓄音機, 音盤 1912.2.27. 일 3 < 演藝だより > 壽座 - 中村かしく < 연예소식 > 수좌 - 나카무라가시쿠浪花節劇 1912.2.28. 일 3 < 演藝だより > 浪花館 - 東操 < 연예소식 > 낭화관 - 아즈마미사오講談 일 4 1912.2.29. 일 3 [ 廣告 ] 大聲發音器 - 音譜目錄無代進呈 - 蓄音器商會朝鮮總代理店汁屋 [ 광고 ] 대성발음기 - 음반목록무료증정 - 일본축음기상회조선총대리점즙옥 仁川演藝會行惱인천연예회제자리걸음未詳未詳 [ 廣告 ] ニッポノホン蓄音機音譜 - 金化堂時計 [ 광고 ]NIPPONOPHONE 축음기, 음반 - 금화당시계 其他 其他 蓄音機, 音盤 蓄音機, 音盤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249~268 쪽 2015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 2) -1909 년부터 1915 년까지 - 이지선 ** 경성일보( 京城日報 ) 는 1906년 9월 1일통감부 ( 統監府 ) 의기관지로창간된일본어신문으로, 1945년 12월 11일에폐간되었다. 현재남아있는 경성일보 는대부분 1915년이후의것으로, 이전일자는 1907년 1일분, 1909년 4일분, 1910년 5일분, 1911년 6일분, 1912년 5일분만이전하고있다. 이목록은 경성일보 기사중에서조선및일본의전통공연예술 ( 음악포함 ) 과직 간접적으로관련이있는기사와서양음악에관한기사를추출하여작성한것이다. 다만서양음악관련기사는많지않기때문에제목은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으로표시했다. 목록은 연월일 면 원기사제목 번역기사제목 구분 관련사항 의항목으로나누어표로나타냈다. 1915년신문은주간과석간으로발행되고있는데, 석간은실제로는하루전날짜의신문으로시간상으로보면석간이주간보다이른소식을전하고있다. 예를들어 1915년 9월 2일자의경우, 석간각면의윗부분에는 大正四年九月二日 로게재되어있지만 경성일보 제호위에는 一日夕刊 으로표시되어있다. 즉, 9월 1일의석간이 9월 2일자로발행되어나오는방식이다. 따라서목록의 면 항목에는석간을앞에, 주간을뒤에표시했다. 면 항목에서 일 은일간, 조 는조간, 석 은석간을나타내고, 숫자는기사가실린면을표시한다. 예를들어, 일3 은해당기사가일간 3면에게재된것을가리킨다. ** 이목록은 2012 년도정부 ( 교육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작성되었음 (NRF-2012S1A5A8023409). ** 숙명여자대학교일본학과교수.

25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원기사제목 에는일본어원래의기사제목을, 번역기사제목 에는한국어로번역한기사제목을표시했다. 원기사제목 과 번역기사제목 에서 < > 은신문의정규란을, [ ] 은사진 화보 삽화 광고등의형태를나타낸다. 구분 항목에서 朝鮮 은조선의공연예술, 은일본의공연예술, 西洋 은서양음악, 其他 는기타음악 극장 축음기 음반등의사항을나타내고, 朝 日 은조선음악과일본음악이함께나온경우, 日 西 은일본음악과서양음악이함께나온경우, 日 他 는일본음악과기타사항이함께나온경우, 朝 日 他 는조선음악 일본음악 기타사항이함께나온경우, 未詳 은세부사항이불분명한경우를나타낸다. 구분 항목에내용이 1개일경우는하나의공연이나행사를, 2개이상일경우는여러종류의공연을나타낸다. 예를들어, 구분 에 日 西 1개가쓰여있으면일본음악과서양음악이함께언급된경우를말하고, 이 3개쓰여있으면각각다른일본음악공연 3건이하나의제목으로묶여서게재된경우를가리킨다. 관련사항 항목에는기사의관련내용이나기사안에언급된음악및전통예술을표시했다. 1907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7.11.3. 일 1 天長節奉祝彙報천장절봉축휘보西洋軍樂隊 君か代기미가요西洋國歌 1907.11.13. 일 2 京城樂友會第三回音樂경성악우회제 3 회음악日 西未詳 1907.11.15. 일 3 協贊會閉會式협찬회폐회식落語, 手踊 1907.11.17. 일 2 協贊會閉會式협찬회폐회식落語, 手踊 1907.11.20. 일 3 本町座覗き본정좌엿보기其他劇場 1907.11.19. 일 2 1907.11.21. 일 3 京城樂友會第三回演奏順序 ( 第一日順序 ) 京城樂友會演奏順序 ( 第二 三日順序 ) 경성악우회제 3 회연주순서 ( 첫째날순서 ) 경성악우회연주순서 ( 둘째, 셋째날순서 ) 日 西 日 西 1907.11.26. 일 3 樂友會盲評記 ( 一 ) 악우회맹평기 (1) 日 西音樂團體 1907.11.28. 일 3 樂友會盲評記 ( 二 ) 악우회맹평기 (2) 日 西音樂團體 1907.12.1. 일 1 踊舞臺の寄附무용무대의기부其他舞臺 尺八, 淨瑠璃, 謠曲, 琴曲, 八雲琴, 筑前琵琶, 長唄, 舞踏, 三絃, 仕舞, 陸軍軍樂隊, violin, organ 尺八, 淨瑠璃, 謠曲, 琴曲, 八雲琴, 筑前琵琶, 長唄, 舞踏, 三絃, 仕舞, 陸軍軍樂隊, violin, organ 1907.12.3. 일 2 仁川の軍艦歡迎會인천의군함환영회日 西藝妓手踊, 軍樂隊 1907.12.15. 일 1 [ 揷畵 ] 小說絃のみだれ ( 二十八 ) [ 삽화 ] 소설현의흐트러짐 (28) 太夫, 三味線 1907.12.26. 일 2 < 間島たより > 統監府派出所 < 간도소식 > 통감부파출소淨瑠璃, 琵琶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51 1909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09.10.24. 일 5 音樂會음악회日 西音樂, 外國人演奏 일5 外人の慈善演奏會외국인의자선연주회西洋韓國軍樂隊, 外國人演奏 1909.10.26. 일6 [ 廣告 ] 最新ヴァイオリン敎本 - 箏曲, [ 광고 ] 최신바이올린교본-소쿄쿠, 요日 西箏, 謠曲, violin 謠曲樂譜쿄쿠악보 1910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관련사항 1910.2.17. 일 5 1910.3.10. 1910.3.19. < 演藝たより > 壽座 < 연예소식 > 수좌浪花節, 筑前琵琶 < はがきたより > 今回入京の桃中軒星右衛門 < 엽서소식 > 이번에경성에오는도추켄호시에몬 浪花節 일 2 本日の陸軍紀念日 - 餘興目錄及順序오늘의육군기념일 - 여흥목록및순서藝者舞踊, 仁輪加, 演劇 ( 芝居 ) 일 6 [ 廣告 ] オルガンピアノ - 寺田清四郎 [ 광고 ] 오르간, 피아노 - 데라다西洋 organ, piano, violin, harmonica, 吹奏樂隊樂器 일 1 [ 廣告 ] オルガンヴァイオリン - 日韓書房 [ 광고 ] 오르간, 바이올린 - 일한서방西洋 organ, violin 일 5 1910.7.12. 일 5 愛國婦人會の慰問애국부인회의위문日 西尺八, violin 喜多流素謠會기타류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五雲會오운회能樂 < 演藝たより > 浪花館 < 연예소식 > 낭화관浪花節 1911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세부사항 1911.5.11. 일 4 일 5 1911.5.14. 일 5 [ 廣告 ] 音譜, 朝鮮音譜, 器械各種 - 汁屋 < 演藝たより > 佐久良座 - 娘義太夫浪花館 - 若遊三一座 [ 광고 ] 일본음반, 조선음반, 기계각종 - 즙옥 < 연예소식 > 좌구량좌 - 여류기다유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朝 日 他 蓄音機, 音盤 ( 朝鮮音樂, 音樂 ) 義太夫落語 中學校大運動會중학교대운동회西洋校歌 < 演藝たより > 舞溫習會 - 華元流舞踊竹園館 - 娘義太夫豊竹小糸龍山座 - 娘義太夫竹本水朝浪花館 - 若遊三一座 1911.5.19. 일 5 < 演藝たより > 歌舞伎座 - 竹本水朝一座 1911.5.20. 일 5 1911.5.21. 일 5 慈善會の精算 - 大阪汎愛扶植會慈善會 < 연예소식 > 무용온습회 - 하나모토류무용죽원관 - 도요타케고이토용산좌 - 다케모토미즈아사낭화관 - 와카유자일좌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다케모토미즈아사 자선회의정산 - 오사카범애부식회자선회 未詳 舞踊義太夫義太夫落語 義太夫 大音樂會 - 京城基督敎靑年會대음악회 - 경성기독교청년회日 西尺八, 琴, 外國人演奏 パゴダ公園奏樂파고다공원주악西洋軍樂隊 < 演藝たより > 浪花館 - 豊竹小智榮一座 < 연예소식 > 낭화관 - 도요타케고치와 未詳 義太夫

25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2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세부사항 1912.2.3. 일 4 < 演藝たより > 晝夜兼行の大稽古歌舞伎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三遊亭圓若一座 < 연예소식 > 주야겸행의대연습가무기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산유테이엔자쿠일좌 藝妓演劇浪花節劇落語 1912.2.4. 일 5 < 花のしづく > 藝妓芝居 < 꽃의물방울 > 게이기연극藝妓演劇 1912.2.11. 일 4 < 演藝たより > 歌舞伎座 - 市川小圓浪花館 - 圓若一座龍山座 - 中村かしく < 연예소식 > 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낭화관 - 엔자쿠일좌용산좌 - 나카무라가시쿠 浪花節劇落語浪花節劇 1912.2.17. 일 4 平壤の慈善大會평양의자선대회藝妓手踊, 博多仁輪加 < 演藝たより > 藝妓の淨瑠璃會歌舞伎座 - 市川小圓 < 연예소식 > 게이기조루리회가무기좌 - 이치카와고엔 義太夫浪花節劇 今日は朝鮮のお正月오늘은조선의설날朝鮮八釜敷 (?) 音樂 1912.2.18. 일 4 < 演藝たより > 壽座 - 藝妓浄瑠璃歌舞伎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圓若一座琵琶會 - 橘流筑前琵琶 < 연예소식 > 수좌 - 게이기조루리가무기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엔자쿠일좌비와회 - 다치바나류지쿠젠비와 義太夫浪花節劇落語筑前琵琶 1915 년 연월일면원기사제목번역기사제목구분세부사항 1915.9.2. 1915.9.3. 1915.9.4. 석 2 天長節祭典 - 京城神社にて천장절제전 - 경성신사에서奏樂 ( 雅樂 ) [ 畵報 ] 音樂堂のです [ 화보 ] 음악당입니다. 其他劇場 振った餘興 - 千五百名の來賓振った餘興 - 大繁昌の演藝館振った餘興 - 老人素人演藝 활기찬여흥 -1500 명의내빈활기찬여흥 - 대번창의연예관활기찬여흥 - 노인비전문가연예 朝鮮未詳 藝妓手踊朝鮮舊劇聲樂 京券連師匠招待경성권번스승초대朝 日妓生舞踊, 長唄 [ 畵報 ] 共進會會場 - 音樂堂 [ 화보 ] 공진회회장-음악당 其他 劇場 조1 共進會場 -(5) 音樂堂 공진회장-(5) 음악당 其他 劇場 조 2 演藝館竣工期연예관준공기간其他劇場 조 3 [ 寫眞 ] 吉備舞 - 卅一日夜京城ホテルにて [ 사진 ] 기비마이 -31 일밤경성호텔에서吉備舞 석 3 長唄演奏大會開催나가우타연주대회개최長唄 조 3 석 2 1915.9.5. 조 3 < 芝居と遊藝 > 浪花館 - 鼈甲齋虎丸 < 연극과유예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 浪花節 花柳の師匠の朝鮮舞踊評화류의사장이조선무용을평함朝 日朝鮮舞踊, 舞踊 新舞踊の總浚へ새로운무용총정리舞踊, 長唄 조 3 < 芝居と遊藝 > 天手古舞 < 연극과유예 > 야단법석舞踊 < 芝居と遊藝 > 虎丸都落す野添氏謠曲會李王職音樂隊 < 연극과유예 > 도라마루경성떠나다. 노조에씨요쿄쿠회이왕직음악대 西洋 浪花節能樂 ( 謠曲 ) 李王職音樂隊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53 1915.9.6 1915.9.7. 1915.9.8. 1915.9.9. 1915.9.10. 1915.9.11. 부 1 婦人の謠曲趣味부인들의요쿄쿠취미能樂 ( 謠曲 ) 석 2 名人連の舞踊명인들의무용舞踊 석 3 [ 廣告 ] 大景品附大聲蓄音器 - 大阪蓄音器商會 [ 광고 ] 많은경품증정대성축음기 - 오사카축음기상회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浪花節 조 2 演藝館竣工す연예관준공하다. 其他劇場 조 3 一寺院に一千人の僧侶 - 大祭の伎樂に伶人舞蹈者百人 한사원에서천명의승려 - 기악에악사와무용수백인 其他 蓄音機, 音盤 ( 浪花節, 淨瑠璃, 博多節, 筑前琵琶, 陸軍軍樂隊 ) 석 2 太平樂다이헤이라쿠 ( 新作 ) 琵琶歌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浪花節 조 3 석 2 < 芝居と遊藝 > 浪花館 - 花川圓玉 < 연극과유예 > 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 伎樂 浪花節 [ 廣告 ] 各流謠曲本 [ 광고 ] 각유파의요쿄쿠책能樂 ( 謠曲 ) 演藝館の舞臺開き - 花やかな兩券藝妓の總踊り 연예관무대개막 - 화려한두권번게이기의총무용 日 他 [ 寫眞 ] 演藝館 ( 內部, 外部 ) [ 사진 ] 연예관 ( 내부, 외부 ) 其他劇場 京城券番, 中券番경성권번, 중권번 昌德宮の賀筵に吉備樂を召さる < 演藝案內 > 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창덕궁의하연에서기비가쿠를부르다. < 연예안내 > 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藝妓舞踊, 劇場 舞踊, 唄, 三味線, 打樂器 ( 鳴物 ) 吉備樂 浪花節 조 2 [ 廣告 ] 各流謠曲本 [ 광고 ] 각유파의요쿄쿠책能樂 ( 謠曲 ) 조 3 석 3 조 3 석 1 美しい舞の手ぶり - 共進會出演妓生舞踊 아름다운손동작 - 공진회출연기생무용 朝鮮 朝鮮舞踊 [ 寫眞 ] 共進會出演妓生舞踊 [ 사진 ] 공진회출연기생무용朝鮮朝鮮舞踊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師匠連送別温習會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芝居と遊藝 > 東京師匠連送別温習會送別演藝會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奏樂時間決定 < 연예안내 > 수관 - 동경사장송별온습회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 연극과유예 > 동경사장송별온습회송별연예회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시정 5 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주악시간결정 西洋 舞踊, 歌舞伎浪花節 舞踊, 歌舞伎舞踊, 歌舞伎浪花節 李王職音樂隊 석 2 [ 寫眞 ] 舞姿 - 演藝舘にて新舞踊稽古 [ 사진 ] 연예관에서새로운무용연습舞踊 석 4 1915.9.12. 석 4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師匠連送別温習會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師匠連送別温習會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동경사장송별온습회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 연예안내 > 수관 - 동경사장송별온습회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舞踊, 歌舞伎浪花節 舞踊, 歌舞伎浪花節 1915.9.13. 석 2 [ 寫眞 ] 賑ひは此の舞姿よりぞ - 演藝館出演 [ 사진 ] 활기는이러한춤추는모습으로부터 - 연예관출연 舞踊

25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9.14. 1915.9.15. 1915.9.16. 1915.9.17. 석 3 조 3 석 2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娘義太夫竹本燕糸一座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여류기다유다케모토다케모토엔시일좌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義太夫浪花節 [ 寫眞 ] 有樂館の舞臺開き [ 사진 ] 유락관의무대개막長唄, 囃子 有樂館舞臺開 - 花柳の壽三番叟 淸境の秋蕭かに大聖を祭る - 古典的空気の漲った經學院の釋奠 유락관무대개막 - 하나야기의고토부키산바소 청경의가을, 차분하게대성에게제를올리다.- 고전적분위기가넘치는경학원의석전 朝鮮 舞踊, 長唄 宗廟祭禮 [ 寫眞 ] 經學院釋奠祭 [ 사진 ] 경학원석전제朝鮮宗廟祭禮 [ 樂譜 ] 大典奉祝歌譜發表 [ 악보 ] 대전봉축가악보발표西洋大典奉祝歌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一座浪花館 - 花川圓玉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하나카와엔쿄쿠일행 義太夫浪花節 조 3 < 芝居と遊藝 > 壽館の娘義太夫 < 연극과유예 > 수관의여류기다유義太夫 석 2 妓生の踊기생의춤朝鮮朝鮮舞踊 석 3 조 3 석 3 조 3 석 3 조 3 1915.9.18. 석 3 1915.9.19.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 < 芝居と遊藝 > 長唄連愈々退京十五日の演藝館 - 中券番, 廣橋 茶洞組合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 < 연극과유예 > 나가우타연주자들퇴경 15 일의연예관 - 중권번, 광교 다동조합 朝 日 義太夫浪花節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 寫眞 ] 無題 ( 七名三味線演奏 ) [ 사진 ] 무제 (7 명샤미센연주 ) 三味線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大歌舞伎一座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대가부키일좌 長唄朝鮮舞踊, 舞踊, 三絃, 歌曲 ( 長唄 ) 義太夫浪花節歌舞伎 家庭博見物 - 子供室は가정박람회구경 - 어린이방은其他自動音樂器 < えんげい > 十六日の演藝館 - 京城券番茶洞組合大歌舞伎来る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大歌舞伎一座 < えんげい > 十七日の演藝館 - 中券番, 廣橋組合眼笑一座乘込み若丸の乘込期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大歌舞伎一座 < 연예 >16 일의연예관 - 경성권번, 다동조합가부키온다.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대가부키일좌 < 연예 >17 일의연예관 - 중권번, 광교조합간쇼일좌공연시작와카마루의공연기간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대가부키일좌 朝 日 朝 日 朝鮮舞踊, 舞踊歌舞伎 義太夫浪花節歌舞伎 朝鮮舞踊, 舞踊歌舞伎浪花節 義太夫浪花節歌舞伎 석 2 有樂館落成祝賀會유락관낙성축하회其他劇場 석 3 조 3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廣橋妓生組合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광교기생조합 朝 日 義太夫浪花節 朝鮮舞踊, 舞踊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55 1915.9.20. 1915.9.21. 1915.9.22. 1915.9.23. 1915.9.24. 석 2 석 3 조 3 < えんげい > 有樂館の開館式佐久良座 - 大阪一派市川眼笑 < 연예 > 유락관개관식좌구량좌 - 이치카와간쇼 日 他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 廣告 ] 新築落成 - 卄日より開館 - 有樂館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 [ 廣告 ] 大景品附大聲蓄音器 - 大阪蓄音器商會 < 今日の演藝館 > 京城券番, 茶洞妓生組合 < えんげい > 佐久良座 - 市川新昇眼笑一座京山若丸來有樂館の開館式 [ 광고 ] 신축낙성 -20 일부터개관 - 유락관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 [ 광고 ] 많은경품증정대성축음기 - 오사카축음기상회 < 오늘의연예관 > 경성권번, 다동기생조합 < 연예 > 좌구량좌 - 이치카와신쇼 간쇼일좌교야마와카마루온다. 유락관개관식 其他 其他 朝 日 其他 吉備樂, 劇場歌舞伎 劇場 義太夫浪花節 蓄音機, 音盤 ( 浪花節, 淨瑠璃, 博多節, 筑前琵琶, 陸軍軍樂隊 ) 朝鮮舞踊, 舞踊 歌舞伎浪花節劇場 석 2 背景苦心談 - 演藝館の評判배경고심담 - 연예관의평판朝 日朝鮮舞踊, 舞踊 석 3 조 3 석 4 조 3 석 2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廣橋妓生組合 < えんげい > 浪花館 - 京山若丸壽館 - 竹本燕糸一座佐久良座 - 大阪若手舊俳優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今日の演藝館 > 京城券番, 妓生茶洞組合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광교기생조합 < 연예 > 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수관 - 다케모토엔시일좌좌구량좌 - 오사카젊은구배우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 오늘의연예관 > 경성권번, 기생다동조합 朝 日 朝 日 義太夫浪花節歌舞伎 朝鮮舞踊, 舞踊 浪花節義太夫歌舞伎 義太夫浪花節歌舞伎 < えんげい > 浪花館 - 京山若丸 < 연예 > 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浪花節 朝鮮舞踊, 舞踊 [ 廣告 ] 諸流謠曲本 [ 광고 ] 각유파요쿄쿠책能樂 ( 謠曲 ) [ 寫眞 ] つひのよるべ - 演藝館出演 [ 사진 ] 쓰이노요루베 - 연예관출연舞踊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義太夫浪花節歌舞伎 조3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茶洞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다동기생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 尺八 석 2 妓生ものがたり - 昔ながらの朝鮮名物기생이야기 - 예부터조선의명물朝鮮朝鮮舞踊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義太夫浪花節歌舞伎 조 3 < 今日の演藝館 > 京城券番, 妓生茶洞組合 < 오늘의연예관 > 경성권번, 기생다동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25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9.25. 1915.9.26. 1915.9.27. < えんげい > 浪花館 - 京山若丸佐久良座 - 大阪舊歌舞伎壽館 - 竹本燕糸一座の義太夫 < 연예 > 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좌구량좌 - 오사카구가부키수관 - 다케모토엔시일좌 浪花節歌舞伎義太夫 석 2 水族館の餘興仁川藝妓手踊수족관의여흥, 인천게이기데오도리舞踊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義太夫浪花節歌舞伎 조 2 秋季皇靈祭 ( 東京特電 ) 추계황령제 ( 동경특전 ) 雅樂 ( 東遊 ) 조 3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茶洞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다동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석 4 조 3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今日の演藝館 > 京城券番, 妓生茶洞組合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 오늘의연예관 > 경성권번, 기생다동조합 朝 日 義太夫浪花節歌舞伎 < えんげい > 佐久良座 - 歌舞伎 < 연예 > 좌구량좌 - 가부키歌舞伎 석 2 奈良丸の出演나라마루의출연浪花節 석 3 조 3 1915.9.28. 석 3 1915.9.29. 석 3 1915.9.30. 1915.10.1.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朝鮮舞踊, 舞踊 義太夫浪花節歌舞伎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茶洞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다동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 廣告 ] 諸流謠曲本 [ 광고 ] 각유파요쿄쿠책能樂 ( 謠曲 )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 廣告 ] 琴曲敎授山田流山勢流 < 演藝案內 > 壽館 - 竹本燕糸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演藝案內 > 壽館 - 秋季淨瑠璃大會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演藝案內 > 壽館 - 秋季淨瑠璃大會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 - 大阪若手歌舞伎 [ 광고 ] 고토음악교수야마다류, 야미세류 < 연예안내 > 수관 - 다케모토엔시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 연예안내 > 수관 - 추계조루리대회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 연예안내 > 수관 - 추계조루리대회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 - 오사카청년가부키 조 2 [ 廣告 ] 琴曲敎授山田流山勢流 [ 광고 ] 고토음악교수야마다류, 야마세류琴 조 4 [ 廣告 ] 於內外各國博覽會賞牌受領琴, 三味線 석 2 석 4 [ 광고 ] 내외각국박람회상패수령고토, 샤미센 琴 義太夫浪花節歌舞伎 淨瑠璃浪花節歌舞伎 淨瑠璃浪花節歌舞伎 琴, 三味線 奈良丸一行卅日夜乘込み나라마루일행 30 일밤도착浪花節 [ 廣告 ] 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 - 유락관浪花節 [ 廣告 ] 橘流筑前琵琶歌音譜 [ 광고 ] 다치바나류지쿠젠비와노래악보筑前琵琶 < 演藝案內 >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浪花館 - 京山若丸一行佐久良座有樂館 - 吉田奈良丸 < 연예안내 > 수관 - 지쿠젠비와연주대회낭화관 - 교야마와카마루일행좌구량좌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筑前琵琶浪花節歌舞伎浪花節 [ 廣告 ] 筑前琵琶大演奏會 - 壽館 [ 광고 ] 지쿠젠비와대연주회 - 수관筑前琵琶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57 조 1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1915.10.2. 1915.10.3. 1915.10.4. 1915.10.5. 조 3 석 2 [ 廣告 ] 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 - 유락관浪花節 < 今日の演藝館 > 中券番, 茶洞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중권번, 다동기생조합 朝 日 祝賀の歡聲 - 歡語して開宴축하의환성 - 환영소리로연회시작其他國歌 [ 廣告 ] 奈良丸の音譜 - 蓄音器商會 [ 광고 ] 나라마루의음반 - 일본축음기상회 朝鮮舞踊, 舞踊 其他音盤 ( 浪花節 ) 석 3 筑前琵琶大演奏會지쿠젠비와대연주회筑前琵琶 석 4 < 演藝案內 >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 연예안내 > 수관 - 지쿠젠비와연주대회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筑前琵琶歌舞伎落語浪花節 [ 廣告 ] 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유락관 浪花節 조3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석 2 [ 寫眞 ] 總會餘興妓生演舞 [ 사진 ] 총회여흥기생연무朝鮮朝鮮舞踊 석 4 조 3 석 2 석 3 조 3 석 3 조 3 < 演藝案內 >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 연예안내 > 수관 - 지쿠젠비와연주대회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筑前琵琶歌舞伎落語浪花節 [ 廣告 ] 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 - 유락관浪花節 特別廣告 - 朝鮮一等の名人朴春裁の各種雜歌と戱談 특별광고 - 조선일등명인박춘재의각종잡가와희담 朝鮮 雜歌, 戱談 < えんげい > 奈良丸の三日目 < 연예 > 나라마루의 3 일째浪花節 秋を高吹く千里の風가을높이부는천리의바람西洋李王職 orchestra 盛んな餘興고조된여흥朝 日 振った日曜の共進會場떠들썩했던일요일의공진회장舞踊 < 演藝案內 >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 연예안내 > 수관 - 지쿠젠비와연주대회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朝鮮音樂, 朝鮮演劇, 三味線, 歌, 打樂器, 舞踊 筑前琵琶歌舞伎落語浪花節 [ 廣告 ] 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 - 유락관浪花節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 えんげい > 奈良丸の四日目佐久良座 - 市川新昇 < 演藝案內 > 壽館 - 筑前琵琶演奏大會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 연예 > 나라마루의 4 일째좌구량좌 - 이치카와신쇼 < 연예안내 > 수관 - 지쿠젠비와연주대회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浪花節歌舞伎 筑前琵琶歌舞伎落語浪花節 < えんげい > 桂小南來る < 연예 > 가쓰라고난온다. 落語 [ 廣告 ] 滿員に付日延べ吉田奈良丸 - 有樂館 [ 광고 ] 만원사례로연장공연요시다나라마루 - 유락관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浪花節

25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10.6. 1915.10.7. 1915.10.8. 1915.10.9. 석 2 석 3 조 3 석 3 [ 廣告 ] 六日七日兩日大割引奈良丸 - 有樂館 [ 寫眞 ] 家庭博夜間の餘興 ( 大喝采の朝鮮唄 )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 광고 ]6-7 일양일대할인나라마루 - 유락관 [ 사진 ] 가정박람회야간의여흥 ( 큰갈채속의조선노래 )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朝鮮 浪花節 朝鮮歌 落語歌舞伎落語浪花節 能樂から見た妓生の舞踊노로부터본기생의무용朝 日朝鮮舞踊, 能樂 奈良丸を聽く - 滿員の盛況は流石々々 < えんげい > 佐久良座の舊劇三木助来る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佐久良座浪花館 - 桂小南一行有樂館 - 吉田奈良丸 나라마루를듣다.- 만원의성황은유석 < 연예 > 좌구량좌의구극미키스케온다.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좌구량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유락관 - 요시다나라마루 浪花節 歌舞伎落語 落語歌舞伎落語浪花節 조 3 < えんげい > 奈良丸と龍山 < 연예 > 나라마루와용산浪花節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浪花館 - 桂小南一行佐久良座 - 吉田奈良丸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좌구량좌 - 요시다나라마루일행 落語落語浪花節 조 3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석 3 1915.10.10. 석 3 1915.10.11. 석 3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浪花館 - 桂小南一行佐久良座 - 吉田奈良丸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좌구량좌 - 요시다나라마루일행 落語落語浪花節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 尺八 조2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壽座 - 大阪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 廣告 ] 吉田奈良丸來る - 仁川歌舞伎座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一行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온다.- 인천가무기좌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일행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 落語歌舞伎落語 浪花節 落語歌舞伎落語 浪花館の小南と壽館の三木助 - 久し振りの落語 낭화관의고난과수관의미키스케 - 오래간만의라쿠고 落語 1915.10.12. 석 2 [ 廣告 ] 大景品附大聲蓄音器 - 大阪蓄音器商會 [ 광고 ] 많은경품증정대성축음기 - 오사카축음기상회 日 西 他 蓄音機, 音盤 ( 浪花節, 淨瑠璃, 博多節, 筑前琵琶, 陸軍軍樂隊 )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59 1915.10.13. 1915.10.14. 석 3 조 2 조 3 석 2 석 3 조 3 [ 廣告 ] 吉田奈良丸來る - 仁川歌舞伎座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 廣告 ] 吉田奈良丸來る - 仁川歌舞伎座 家庭博に圓坊と歌六が現はれて得意の落語と音曲を演る 小供の喜び - 今日は落語家圓坊と若橘が来る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家庭博後庭 - 昨夜の賑ひ - 若橘圓坊の大當たり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온다.- 인천가무기좌 < 연예안내 > 수관 - 미키스케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 [ 광고 ] 요시다나라마루온다.- 인천가무기좌 가정박람회에엔보와우타로쿠가나타나득의의라쿠고와온쿄쿠를연행하다. 어린이들의기쁨 - 오늘은라쿠고가엔보와와카기쓰가온다.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 가정박람회뒤뜰 - 어젯밤의활기 - 와카기쓰, 엔보의대성공 浪花節 落語歌舞伎落語 浪花節 落語, 音曲 落語, 滑稽手踊 落語歌舞伎落語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 えんげい > 浪花館 - 小南壽座 - 市川新昇 < 연예 > 낭화관 - 고난수좌 - 이치카와신쇼 落語 落語歌舞伎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尺八 석 2 < 十四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14 일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석 3 조 2 조 3 1915.10.15. 석3 1915.10.16. [ 寫眞 ] 十二日夜の家庭博餘興 - 圓坊の盆藝越後獅子 ( 上 ) と若橘の落語 ( 下 )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 廣告 ] 山葉ピアノオルガン - 三木樂器店 昨夜も大當たり - 家庭博の落語 [ 사진 ]12 일밤의가정박람회여흥 - 엔보의분예에치고지시 ( 상 ) 와와카가쓰의라쿠고 ( 하 )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 [ 광고 ] 야마하피아노, 오르간 - 삼목악기점 어젯밤도대성공 - 가정박람회의라쿠고 西洋 盆藝越後獅子, 落語 落語歌舞伎落語 piano, organ 松齡會謠曲大會송령회요쿄쿠대회能樂 ( 謠曲 ) 석 2 浪花館の無料券낭화관의무료입장권其他劇場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 落語 落語歌舞伎落語 조 3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석 3 조 3 < 演藝案內 > 壽館 - 桂三木助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佐久良座 - 花川圓玉 < 연예안내 > 수관 - 가쓰라미키스케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좌구량좌 - 하나카와엔쿄쿠 落語歌舞伎落語浪花節 幼稚園の運動會 - 京城幼稚園유치원운동회 - 경성유치원西洋國歌, 童謠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 廣告 ] 於內外各國博覽會賞牌受領琴, 三味線 [ 광고 ] 내외각국박람회에서상패수령고토, 샤미센 琴, 三味線

26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10.17. 석 3 < 演藝案內 > 壽座 - 市川新昇一座浪花館 - 桂小南一行佐久良座 - 花川圓玉 < 연예안내 > 수좌 - 이치카와신쇼일좌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좌구량좌 - 하나카와엔쿄쿠 歌舞伎落語浪花節 조3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 廣告 ] 通信敎授バオリン尺八 [ 광고 ] 통신교수바오린샤쿠하치 尺八 1915.10.18. 석 2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佐久良座 - 花川圓玉 < 연예안내 > 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좌구량좌 - 하나카와엔쿄쿠 落語浪花節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가쓰라고난일행落語佐久良座 - 花川圓玉좌구량좌-하나카와엔쿄쿠浪花節 1915.10.19. 조3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 朝 日 朝鮮舞踊, 舞踊 < えんげい > 浪花館 - 小南一行 < 연예 > 낭화관- 고난일행 落語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落語 < 今日の演藝館 > 券番, 妓生組合 < 오늘의연예관 > 권번, 기생조합朝 日朝鮮舞踊, 舞踊 1915.10.20. 조3 [ 廣告 ] 樂器買入 - 古バイオリン, 古オ [ 광고 ] 악기매입, 오래된바이올린, 西洋 violin, organ ルガン오래된오르간 1915.10.21. 석 2 舞姬のお稽古振り - 日々の上達に御前達は大ニコニコ 무희의연습모습 - 매일향상됨에귀인들은크게기뻐함. < 卄一日の演藝館 > 券番 <21 일의연예관 > 권번舞踊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落語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가쓰라고난일행落語 1915.10.22. 조3 [ 廣告 ] 樂器買入 - 古バイオリン, 古オ [ 광고 ] 악기매입, 오래된바이올린, 西洋 violin, organ ルガン오래된오르간 1915.10.23. 석2 小南二十三日限 고난 23일에한정 落語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가쓰라고난일행 落語 1915.10.24. 조3 1915.10.25.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桂小南一行 < 연예안내 > 낭화관 - 가쓰라고난일행落語 석 3 조 3 共進會演藝館 - 十二時出發 - 中 京城券番 [ 廣告 ] 樂器買入 - 古バイオリン, 古オルガン 공진회연예관, 12 시출발 - 중 경성권번 [ 광고 ] 악기매입 - 오래된바이올린, 오래된오르간 西洋 雅樂 舞踊 violin, organ 名手演奏家庭博の筑前琵琶명인연주, 가정박람회의지쿠젠비와筑前琵琶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來る < 연예안내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온다. 昌德宮內秋夜の宴창덕궁의가을밤잔치朝 西 桃太郞の唱歌の曲に連れて모모타로의창가곡에따라西洋唱歌 今晩午後七時から家庭博で筑前琵琶 - 演奏者水波旭櫻, 東原旭扇 오늘밤오후 7 시부터가정박람회에서지쿠젠비와 浪花節 音樂隊, 西洋合奏, 獨奏, 羽衣舞 筑前琵琶 석2 1915.10.26. 석 3 家庭博 - 今夜の筑前琵琶旭扇會 가정박람회 - 오늘밤의지쿠젠비와, 욱선회 今宵の琵琶오늘밤의비와琵琶 [ 寫眞 ] 卄四日一桃太郞行列お供の妓生蓮 [ 사진 ]24 일일본제일의모모타로행렬뒤따르는기생들 朝 日 筑前琵琶 妓生, 三味線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61 조3 석2 석3 1915.10.27. 조3 석2 1915.10.28. 석3 조3 석2 1915.10.29.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來る 享樂の鄕寶の山大福引, 寶探, 名刺競爭, 琵琶 < 연예안내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온다. 향락의고향보물가득, 제비뽑기, 보물찾기, 명함경쟁, 비와 寶探, 名刺競爭, 琵琶보물찾기, 명함경쟁, 비와琵琶 旭翠出演 - 今晩の筑前琵琶 [ 寫眞 ] 卄五日夜の家庭博餘興 ( 旭扇女史の琵琶 ) 교쿠스이출연 - 오늘밤의지쿠젠비와연주회 [ 사진 ]25 일밤가정박람회여흥 ( 교쿠스이여사의비와 ) 聽衆殺倒 - 盛な琵琶演奏會청중쇄도 - 성행하는비와연주회琵琶 浪花節 琵琶 筑前琵琶 < えんげい > 虎丸愈々開演 < 연예 > 도라마루드디어공연시작浪花節 滿員の演藝館 - 每日出演の藝妓妓生連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 家庭博成功祝ひ - 寶探, 大福引, 妓生歌舞と餘興, 琵琶 만원의연예관 - 매일출연하는게이기 기생들 < 연예안내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 가정박람회성공축하 - 보물찾기, 제비뽑기, 기생의가무와여흥, 비와 朝 日 朝 日 琵琶 朝鮮舞踊, 舞踊 浪花節 < えんげい > 虎丸お名残り < 연예 > 도라마루의여운浪花節 兩師出演 - 旭扇會旭翠會の巨星全部来場す [ 寫眞 ] 二十六日家庭博の餘興 - 旭翠師の琵琶 能樂大會 - 有樂館にて二日間京城空前の催し 今夜の琵琶彈奏會 - 七時半から家庭博にて 두사범출연 - 욱선회와욱취회의거성이모두온다. [ 사진 ]26 일가정박람회여흥 - 교쿠스이사범의비와 노가쿠대회 - 유락관에서이틀간, 공전의행사 오늘밤의비와연주회 -7 시반부터가정박람회에서 妓生競爭, 寶探, 琵琶기생경쟁, 보물찾기, 비와琵琶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 妓生競爭, 寶探, 琵琶기생경쟁, 보물찾기, 비와琵琶 朝鮮舞踊, 琵琶 筑前琵琶 筑前琵琶 能樂 筑前琵琶 浪花節 [ 廣告 ] 橘流琵琶出敎授 [ 광고 ] 다치바나류비와출장교습筑前琵琶 美しい音樂會 - ミュージッククラブの白, 塞兩國國民義捐演奏會 藝妓出演 - 卄九日午後から京城券の美形連 [ 寫眞 ] 卄七日夜家庭博提燈行列第一著の妓生桂香 아름다운음악회 - 뮤직클럽의벨기에, 세르비아양국국민의연연주회 게이기출연 -29 일오후부터경성권번의미인들 [ 사진 ]27 일밤가정박람회제등행렬첫번째의기생계향 西洋 朝鮮 belgium 音樂, serbia 音樂 舞踊 歌競爭 - 勝敗は聽衆の投票노래경쟁 - 승패는청중의투표朝鮮妓生歌 [ 寫眞 ] 二十七日夜家庭博餘興妓生提燈競走 [ 사진 ]27 일밤가정박람회여흥기생제등경주 < 演藝案內 > 浪花館 - 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浪花節 朝鮮 妓生 妓生 조 3 藝妓の手踊 - 何れ劣らぬ梅櫻 게이기의데오도리 - 무엇이든뒤떨어지지않는우메사쿠라 藝妓手踊

26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10.30. 석 2 妓生歌競爭 - 廣橋茶洞兩妓生の人氣競爭 今二十九日家庭博は - 美形出演, 妓生歌投票, 大福引 기생노래경쟁 - 광교 다동두기생의인기경쟁 오는 29 일가정박람회는 - 미인출연, 기생노래투표, 제비뽑기 朝鮮 朝鮮 妓生歌 妓生歌 [ 寫眞 ] 鮮かさ - 二十九日晝の手踊 [ 사진 ] 산뜻함 -29 일낮데오도리藝妓手踊 旭翠會記念演奏욱선회기념연주筑前琵琶 妓生歌競爭기생노래경쟁朝鮮妓生歌 妓生大運動會 - 京城, 中兩券番기생대운동회 - 경성권번, 중권번朝 日妓生, 藝妓 博多仁輪加하카타니와카博多仁輪加 [ 廣告 ] 能樂大會 - 京城能樂會 [ 광고 ] 노가쿠대회 - 경성노가쿠회能樂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浪花節 조 3 能樂大會番組 - 素謠仕舞 노가쿠대회프로그램 - 스우타이, 시마이 能樂 ( 素謠, 仕舞 ) [ 廣告 ] 橘流琵琶出敎授 [ 광고 ] 다치바나류비와출장교습筑前琵琶 能樂大會 - 第一日の盛況노가쿠대회- 첫째날의성황能樂석2 [ 廣告 ] 能樂大會 - 京城能樂會 [ 광고 ] 노가쿠대회-경성노가쿠회能樂 1915.10.31.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도라마루浪花節 1915.11.1. 1915.11.2. 조 3 お終ひの家庭博 - 廣橋茶洞組合끝나는가정박람회 - 광교 다동조합朝鮮妓生公演 석 2 석 3 夜十時半まで - 最終の日の家庭博 - 廣橋茶洞組合妓生 [ 寫眞 ] 卅日夜家庭博餘興の博多二輪加 밤 10 시반까지 - 마지막날의가정박람회 - 광교 다동조합기생 [ 사진 ]30 일가정박람회여흥의하카타니와카 朝鮮 妓生公演 博多二輪加 < 演藝案內 > 浪花館 - 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浪花節 [ 廣告 ] 諸流謠曲本 [ 광고 ] 각류요쿄쿠책 能樂 ( 謠曲 ) 조2 [ 廣告 ] 橘流琵琶出敎授 [ 광고 ] 다치바나류비와출장교습 筑前琵琶 조 3 非常なる盛會能樂大會二日目대단한성황 - 노가쿠대회 2 일째能樂 석 2 석 3 ポプラを能舞臺に使はうとは夢にも思ひませんでした - 佐野吉之助氏京城能樂界を評して曰く 포플러나무를노무대에사용할줄은꿈에도생각하지못했습니다.- 사노기치노스케씨경성노가쿠계를평하여말하다. [ 廣告 ] 諸流謠曲本 [ 광고 ] 각류요쿄쿠책能樂 ( 謠曲 )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 < 연예안내 > 낭화관 - 벳코사이도라마루 能樂 浪花節 1915.11.3. 석 3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浪花節劇 석 3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浪花節劇 1915.11.4. 조 4 [ 廣告 ] 御卽位式紀念特別製作大聲蓄音器 - 下村蓄音器商會 [ 광고 ] 즉위식기념특별제작대성축음기 - 하촌축음기상회 其他 蓄音機, 音盤 1915.11.5. 석 3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鼈甲齋虎丸來る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도라마루온다. 浪花節劇浪花節 1915.11.6. 석 3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浪花節劇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63 1915.11.7. 1915.11.8. 조 3 석 3 조 4 석 4 浪花館 - 鼈甲齋虎丸來る낭화관 - 도라마루온다. 浪花節 < 芝居と遊藝 > 虎丸演題替へ壽座の浪花節芝居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 廣告 ] 御卽位式紀念特別製作大聲蓄音器 - 下村蓄音器商會 < 演藝案內 > 壽座 - 浪花節芝居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 연극과유예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수좌의나나와부시극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 광고 ] 즉위식기념특별제작대성축음기 - 하촌축음기상회 < 연예안내 > 수좌 - 나니와부시극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其他 浪花節浪花節劇 浪花節劇浪花節 蓄音機, 音盤 浪花節劇浪花節 조 3 [ 廣告 ] 樂器 - オルガンバヨリン琴 [ 광고 ] 악기 - 오르간, 바이올린, 고토日 西 organ, violin, 琴 1915.11.9.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浪花節 1915.11.10. 석 2 [ 寫眞 ] 京都の記念踊 [ 사진 ] 교토의기념춤舞妓舞踊 석1 卽位大典御神樂歌즉위대전오카구라우타雅樂 1915.11.11.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 < 연예안내 > 낭화관-도라마루공연浪花節替り제목교체 1915.11.12.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석3 1915.11.13.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조 2 賢所御神樂儀神樂譜卅八曲현소오카구라의식, 가구라악보 38 곡雅樂 浪花節 석 2 各町の餘興각마을의여흥浪花節, 筑前琵琶 조 3 1915.11.14.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五節の舞姬達に縁談の口が降るやうにある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고세치의무희들에게혼담이쏟아진다. 浪花節 석 2 [ 寫眞 ] 御大典記念加茂川踊 [ 사진 ] 어대전기념가모가와춤藝妓舞踊 < 演藝案內 > 浪花館 - 鼈甲齋虎丸演題替り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공연제목교체 雅樂 浪花節 조 3 [ 廣告 ] 樂器 - オルガンバヨリン琴 [ 광고 ] 악기 - 오르간, 바이올린, 고토日 西 organ, violin, 琴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虎丸今晩の演題 < 연예안내 > 낭화관 - 도라마루오늘밤의공연제목 浪花節 1915.11.15. 大嘗祭 - 稲春歌대상제- 이네쓰키우타稻春歌조2 대상제봉주의이네쓰키우타와후조大嘗祭奉奏の稲春歌と風俗歌稲春歌, 風俗歌쿠우타 석 2 博多仁輪加하카타니와카博多仁輪加, 筑前琵琶, 手踊 南山町の舞臺 - 落語手踊芝居남산정무대 - 라쿠고, 테오도리극落語, 舞踊劇 君ヶ代を唱ひ기미가요를부르고西洋國歌 今夜の提灯行列 同胞すべて七千萬 오늘밤의제등행렬 동포모두 7천만 西洋 唱歌 1915.11.16. 석3 晴の日を待つ五節の舞姬 맑은날을기다리는고세치의무희 雅樂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 연예안내 > 낭화관 - 오늘밤도라마루공연작품 浪花節 조 3 [ 寫眞 ] 十五日の市中 - 南山町連博多仁輪加 [ 사진 ]15 일의시중 - 남산정하카타니와카 博多仁輪加

26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915.11.17. 1915.11.18. 1915.11.19. 祝へ! 歌へ! 景氣好い山車, 可愛い娘手踊 축하하자! 노래하자! 경기좋은수레, 귀여운아가씨데오도리 歡の灯は輝けり - 盛んな人出기쁨의등은빛나고 - 많은인파博多仁輪加 조 4 [ 廣告 ] 都山流尺八音譜 [ 광고 ] 도잔류샤쿠하치악보尺八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 연예안내 > 낭화관 - 오늘밤도라마루의공연작품 手踊 浪花節 조1 [ 寫眞 ] 大饗宴舞樂殿內部 [ 사진 ] 대향연무악전내부 其他 舞樂舞臺 大饗宴第一日 - 五節舞 대향연제1일 -고세치노마이 雅樂 석 2 석 3 석 4 조 1 조 3 석 4 今日の催し物 - 第一種料理屋組合の藝者行列, 南山町浪花節 오늘의행사 - 제 1 종요리집조합의게이샤행렬, 남산정나니와부시 歡天喜地 - 琵琶行列환천희지 - 비와행렬琵琶 浪花節 歡天喜地 - 呼物の芝居환천희지 - 인기있는연극藝妓演劇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 연예안내 > 낭화관 - 오늘밤도라마루공연작품 [ 畵報 ] 五節舞 [ 화보 ] 고세치노마이雅樂 浪花節 大饗宴第二日 - 壯麗なる宴場대향연제 2 일 - 장려한연회장風俗歌 大饗宴第二日 - 萬歲樂と太平樂 [ 寫眞 ] 昨日の市中 - 中券番藝妓行列, 妓生, 博多仁輪加, 京城券番藝妓行列 대향연제 2 일 - 만자이라쿠와다이헤이라쿠 [ 사진 ] 어제의시중 - 중권번게이기행렬, 기생, 하카타니와카, 경성권번게이기행렬 五節の舞姬は三人中止고세치의무희 3 인중지雅樂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 연예안내 > 낭화관 - 오늘밤도라마루공연작품 雅樂 博多仁輪加 浪花節 조1 [ 寫眞 ] 五節舞の勢揃ひ [ 사진 ] 고세치노마이 ( 무희 ) 가모두모임 雅樂 五節の舞を奉仕して 고세치노마이를봉사하고 雅樂 1915.11.20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今晩虎丸の讀物 < 연예안내 > 낭화관 - 오늘밤도라마루공연작품 석4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落語卽席問答 < 연예안내 > 수관- 도쿄라쿠고즉석문답 落語 1915.11.21. 조1 文の舞武の舞 문무와무무 雅樂 浪花節 조 3 謠曲大會 - 喜多會京城支部요쿄쿠대회기타회경성지부能樂 ( 謠曲 ) 1915.11.22. 석 4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落語卽席問答 < 연예안내 > 수관 - 도쿄라쿠고즉석문답 조 3 [ 廣告 ] 樂器 - オルガンバヨリン琴 [ 광고 ] 악기 - 오르간, 바이올린, 고토日 西 organ, violin, 琴 1915.11.23. 석 4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落語卽席問答 1915.11.24. 석 4 < 演藝案內 > 壽館 - 東京落語卽席問答 1915.11.25. 석 4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流浪界の大關女雲右衛門一行 1915.11.26. 석 2 < 연예안내 > 수관 - 도쿄라쿠고즉석문답 < 연예안내 > 수관 - 도쿄라쿠고즉석문답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여류나니와부시계의 2 인자온나쿠모에몬일행 藝妓一同の嘆願書却下の事게이기일동의탄원서각하의일其他劇場 落語 落語 落語 浪花節 旭扇會溫習會욱선회온습회筑前琵琶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65 석 4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온나쿠모에몬浪花節 조3 [ 畵報 ] 京城上戶連酒癖 [ 화보 ] 경성상호들의주벽 吉備舞 宮城檢校演奏 - 箏曲大會開催 미야기켄교연주-소쿄쿠대회개최 箏曲 1915.11.27. 석 4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온나쿠모에몬浪花節 1915.11.28. 석4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 < 연예안내 > 좌구량좌- 온나쿠모에몬 浪花節 조3 女學校演奏會 여학교연주회 日 西 piano, organ, 合唱, 箏 석4 1915.11.29. 석 2 七福會仁輪加칠복회니와카仁輪加 조 3 1915.11.30. 석 4 1915.12.1.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浪花館 - 若葉會素人淨瑠璃秋季大會 樂しき美しき音樂會 - 京城高等女學校に於て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浪花館 - 若葉會素人淨瑠璃秋季大會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온나쿠모에몬낭화관 - 약엽회비전문가조루리추계대회 즐겁고아름다운음악회 - 경성고등여학교에서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온나쿠모에몬낭화관 - 약엽회비전문가조루리추계대회 西洋 浪花節淨瑠璃 piano, organ, 合唱 浪花節淨瑠璃 조 3 [ 廣告 ] 婦人畵報增刊御大典記念畵報 [ 광고 ] 부인화보증간어대전기념화보雅樂 석 2 < えんげい > 壽館 - 女雲右衛門一行 < 연예 > 수관 - 온나쿠모에몬일행浪花節 석 4 < 演藝案內 > 佐久良座 - 女雲右衛門浪花館 - 若葉會素人淨瑠璃秋季大會壽館 - 女雲右衛門 1915.12.2.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女雲右衛門 1915.12.3. 1915.12.4. 석 4 조 3 석 2 석 4 조 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女雲右衛門 白國救濟慈善演藝會 - 四日靑年會館 < 연예안내 > 좌구량좌 - 온나쿠모에몬낭화관 - 약엽회비전문가조루리추계대회수관 - 온나쿠모에몬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 벨기에구제자선연예회 -4 일청년회관 日 西 浪花節淨瑠璃浪花節 浪花節浪花節 浪花節浪花節 劇場問題 - 演藝場讓渡破談극장문제 - 연예장양도파담其他劇場 < えんげい > 記念琵琶演奏會浪花館の恭爲壽館 - 女雲右衛門一座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女雲右衛門 今日の演藝會 - 白耳義國寡婦孤兒救濟慈善演藝會 < 연예 > 기념비와연주회낭화관의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일좌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 오늘의연예회 - 벨기에과부고아구제자선연예회 日 西 謠曲, 吉備舞, 舞踊, 李王職樂隊, piano, 獨唱 琵琶浪花節浪花節 浪花節浪花節 謠曲, 吉備舞, 舞踊, 李王職樂隊, piano, 獨唱 석 2 < えんげい > 恭爲の初日壽館 - 女雲右衛門 < 연예 > 교타메의첫날수관 - 온나쿠모에몬 浪花節浪花節 1915.12.5.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女雲右衛門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 浪花節浪花節 조 3 背負投げを食った藝妓一同 - 焦れめいた演藝場は手に入らず 막판에배신당한게이기일동 - 안달했던연예장은손에들어오지않고 其他 劇場 1915.12.6.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女雲右衛門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온나쿠모에몬 浪花節浪花節

26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석 2 虹藝關の刹那홍예관의찰나其他京劇 1915.12.7.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8. 조 3 評判三人義太夫평판 3 인기다유義太夫 석 2 < えんげい > 浪花館 - 京山恭爲, 吉田若春 < 연예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 요시다와카하루 浪花節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9.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10. 석 2 寶生流素謠會호쇼류스우타이회能樂 ( 素謠 ) < えんげい > 恭爲を聽く < 연예 > 교타메를듣다. 浪花節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석 2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11. 觀世會大會간제회대회能樂 ( 謠曲 ) 조3 忘年琵琶大會망년비와대회琵琶 1915.12.12.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京城名士出場素人淨瑠璃大會 석4 1915.12.13. 1915.12.14.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京城名士出場素人淨瑠璃大會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경성명사출장비전문가조루리대회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경성명사출장비전문가조루리대회 조 3 華燈の輝き, 彩袖のときめき꽃등의빛, 화려한소매의두근거림 浪花節淨瑠璃 浪花節淨瑠璃 석 2 < えんげい > 恭爲を聽く < 연예 > 교타메를듣다. 浪花節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京城名士出場素人淨瑠璃大會 1915.12.15.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京城名士出場素人淨瑠璃大會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경성명사출장비전문가조루리대회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경성명사출장비전문가조루리대회 雅樂演奏團 ( 宮內省雅樂部 ) 浪花節淨瑠璃 浪花節淨瑠璃 조 1 [ 廣告 ] 鶴崎流琵琶 [ 광고 ] 쓰루사키류비와筑前琵琶 1915.12.16. 석 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17.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교야마교타메 浪花節 조1 [ 廣告 ] 鶴崎流琵琶 [ 광고 ] 쓰루사키류비와 筑前琵琶 1915.12.18. 석 2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浪花節 석 2 納めの謠曲會 - 觀世流松齡會마지막요쿄쿠회 - 간제류송령회能樂 ( 謠曲 ) 旭扇會溫習會욱선회온습회筑前琵琶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교야마교타메浪花節 1915.12.19. 御代始能の夜の輝き어대시작노의밤의반짝임能樂 조 3 天覽能の謠本덴란노의노래책能樂 ( 謠曲 ) [ 廣告 ] 鶴崎流琵琶 [ 광고 ] 쓰루사키류비와筑前琵琶 1915.12.20.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浪花節浪花節

경성일보 의조선및일본전통공연예술관련기사목록 267 1915.12.21. 석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浪花節浪花節 조 4 [ 廣告 ] 鶴崎流琵琶 [ 광고 ] 쓰루사키류비와筑前琵琶 1915.12.22.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1915.12.23.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1915.12.24.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浪花節浪花節 浪花節浪花節 浪花節浪花節 석2 月白し, 歡びの歌聲달뜰무렵하얀하늘, 기쁨의노랫소리西洋讚美歌, organ 1915.12.26. 석3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 < 연예안내 > 낭화관-교야마교타메浪花節壽館 - 神崎與五郞수관-가미사키요고로浪花節 1915.12.27. 석4 석 2 輝やく窓から笑の聲々빛나는창으로부터의웃음소리西洋賛美歌, 歌劇, 唱歌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浪花節浪花節 조 3 [ 廣告 ] 鶴崎流琵琶 [ 광고 ] 쓰루사키류비와筑前琵琶 1915.12.28. 석 4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館 - 神崎與五郞 1915.12.29. 석 4 1915.12.30. 석 2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座 - 大阪歌舞伎若手俳優壽館 - 娘義太夫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관 - 가미사키요고로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좌 - 오사카가부키젊은배우수관 - 여류기다유 浪花節浪花節 浪花節浪花節義太夫 歲旦祭 - 京城神社に執行세단제 - 경성신사에서집행奏樂 ( 雅樂 ) 初春興行, 壽座 - 大阪若手俳優一座浪花館 - 東京落語壽館 - 娘義太夫 < 演藝案內 > 浪花館 - 京山恭爲壽座 - 壽式三番叟, 前 切狂言壽館 - 娘義太夫 초봄흥행, 수좌 - 오사카젊은배우일좌낭화관 - 도쿄라쿠고수관 - 여류기다유 < 연예안내 > 낭화관 - 교야마교타메수좌 - 고토부키시키산바소, 마에 기리쿄겐수관 - 여류기다유 歌舞伎落語義太夫 浪花節歌舞伎義太夫

부록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국악원논문집 원고작성원칙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271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제정 2014. 10. 10 예규제 216 호 제 1 장총칙 제 1 조 ( 목적 ) 이규정은 국악원논문집 에게재할논문등과관련하여연구부정행위를방지하고연 구윤리를확보하는데필요한모든사항을규정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 제 2 조 ( 적용대상 ) 이규정은 국악원논문집 ( 이하 학술지 라한다 ) 에논문등을제출한연구자와 제출된논문등의심사를담당하는심사위원, 게재여부를최종결정하는편집위원에대해적 용한다. 제 2 장연구자등의연구윤리 제 3 조 ( 적용대상 ) 1 학술지에논문등을제출한연구자는연구의전과정및제출과정에서위조 변조 표절등의연구부정행위를해서는아니된다. 2 이규정의 연구부정행위 에는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논문저자표시, 이중투고, 여타도덕성의문제등이포함되며, 그정의는다음각호와같다. 1. 위조 는존재하지않는자료또는연구결과등을만들어내는행위를말한다. 2. 변조 는연구과정또는연구자료등을인위적으로조작하거나변형, 삭제함으로써연구내용또는결과를왜곡하는행위를말한다. 3. 표절 은타인의연구생각, 연구내용또는연구결과등을정당한승인이나인용표시없이도용하는행위를말한다. 4. 부당한논문저자표시 는연구내용또는연구결과에대하여학술적기여를한사람에게정당한이유없이논문저자자격을부여하지않거나, 학술적기여를하지않은사람에게감사의표시또는예우등을이유로논문저자자격을부여하는행위를말한다. 5. 이중투고 는동일한연구결과를 2개이상의학술지에동시에제출하여비슷한시기에

27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심사를받는행위를말한다. 다만, 먼저제출한학술지에서 게재불가 의심사결과통지를받은이후다른학술지에제출하는것은 이중투고 에해당하지않는것으로본다. 6. 도덕성의문제 는자신의연구결과를드러내기위하여기존의연구를의도적으로은폐하거나폄하한경우, 혹은연구의개시및과정, 결과에있어도덕적결함이있는경우등을말한다. 3 논문등을제출한연구자는별지제1호서식의연구윤리규정준수확인서를제출하여야한다. 제 4 조 ( 편집위원의윤리 ) 1 편집위원은본학술지에제출된논문등의수준과논문심사규정에의거하여공정하게게재여부를결정해야한다. 2 편집위원은제출된논문등의심사를해당분야의전문지식과공정한판단능력을지닌심사위원에게의뢰해야한다. 3 편집위원은제출된논문등의게재여부가결정될때까지논문제출자에대한사항이나논문등의내용을공개해서는아니된다. 제 5 조 ( 심사위원의연구윤리 ) 1 심사위원은편집위원회에서의뢰하는논문등을발간규정이정한기간내에성실하게심사하여그결과를편집위원회에통보해야한다. 만약자신이논문등의내용을심사하기에적임자가아니라고판단하는경우에는편집위원회에그사실을지체없이알려야한다. 2 심사위원은심사의뢰받은논문등을객관적기준에의해공정하게평가해야한다. 충분한근거를명시하지않은채논문등을탈락시키거나, 심사위원본인의관점이나해석과상충된다는이유로논문등을탈락시켜서는안되며, 심사대상논문등을제대로읽지않은채평가해서도아니된다. 3 심사위원은심사를의뢰받은논문등에대해제3조제2항에따른문제를발견하였을경우편집위원회에지체없이그사실을알려야한다. 4 심사위원은심사를의뢰한논문등에대한비밀을보장해야한다. 논문등에대해특별한조언을받기위해서가아니라면논문등을다른사람에게보여주거나그내용에대하여다른사람과논의해서는아니된다. 5 논문등이게재된학술지가발간되기전에는논문제출자의동의없이논문등의내용을인용하지못한다.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273 제 3 장연구윤리위반행위에대한처리절차등 제6조 ( 연구윤리위원회의구성및운영 ) 1 학술지에게재된논문등에대해위조 변조 표절등연구윤리규정의위반논란이있을때이를조사하기위해필요한경우편집위원장은연구윤리위원회를구성하여운영해야한다. 2 제1항에따라연구윤리위원회를구성할경우에편집위원장이연구윤리위원회의위원장이되며, 외부전문가 5인이상으로연구윤리위원을임명한다. 3 연구윤리위원회는연구윤리규정의위반을제보한사람과연구윤리규정의위반으로제보된논문제출자에게의견진술의기회를주어야하며, 조사결과를확정하기전에변론의기회를주어야한다. 당사자가이에응하지않을경우에는이견이없는것으로간주한다. 4 연구윤리규정의위반으로제보된논문제출자는연구윤리위원회에서행하는조사에협조해야한다. 만약정당한조사에협조하지않거나방해하는경우에는연구윤리규정위반을인정하는것으로간주한다. 5 연구윤리위원회의회의는윤리위원과반수의출석으로개의하고, 출석위원과반수의찬성으로의결한다. 6 이밖에연구윤리규정의위반여부조사를위하여필요한경우에는교육부가정한 연구윤리확보를위한지침 을따른다. 제7조 ( 연구윤리규정위반에대한제재조치 ) 1 연구윤리위원회는제6조제5항에따라별지제2호서식의연구윤리위원회심의 의결결과를작성하고, 편집위원회에알려야한다. 2 편집위원회는연구윤리위원회조사결과, 연구부정행위로확정된논문제출자에대하여다음각호의조치를취한다. 1. 게재취소 2. 원고료회수 3. 향후 3년간학술지에논문등의게재금지 4. 학술지에연구윤리규정위반사실공지 제8조 ( 비밀보장 ) 1 연구윤리규정위반으로조사를받는이해당사자는위반사실이확정되기전까지는연구윤리규정을위반하지않은것으로본다. 2 연구윤리위원회는제보자의신원을외부에공개해서는아니된다. 3 연구윤리위원회는최종결정이내려질때까지연구부정행위의위반으로제보된논문제출자 ( 이하 심의대상연구자 라한다 ) 의신원을외부에공개해서는아니된다.

27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제9조 ( 위원회의기록물유지 ) 1 연구윤리위원회는회의내용을회의록으로작성하여보관해야하며, 회의록에는심의안건내용, 연구부정행위의내용, 참석윤리위원의명단과의결절차, 결정사항의근거및관련증거, 심의대상연구자의소명및처리절차를포함한다. 2 심의와관련된기록은심의종료시점을기준으로 5년간보관해야한다. 부칙 이규정은 2014 년 10 월 10 일부터시행한다.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 275 별지제 1 호서식 논문제목 : 연구윤리규정준수확인서 본인은 국악원논문집 연구윤리규정을준수하여논문을작성하였으며특히아래 의사항에대하여확인합니다. 1. 저자의지적창작이며, 타인의저작권을침해한바없음 2. 저자는제출한논문의작성에실질적인지적공헌을하였으며, 제출한논문의내용에대하여모든책임을부담함 3. 제출한논문은타인의명예등권리를침해한바없음 4. 제출한논문은과거에출판된적이없으며, 다른학술지에중복게재를위하여제출하지않았고, 제출할계획이없음 년월일 논문제출자 : ( 인 ) 국립국악원장귀하

27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별지제 2 호서식 연구윤리위원회심의 의결결과 대상논문 ( 또는자료 ) 위반행위구분 표절 중복게재 기타 ( ) 구체적내용 제출자의견 연구윤리위원회회의내용 의결사항 위와같이의결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 ( 서명 )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 서명 )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 서명 )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 서명 )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 서명 )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 서명 )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277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제정 2011. 7. 12 예규제 153 호개정 2014. 3. 14 예규제 195 호개정 2014. 10. 10 예규제 215 호 제 1 장총칙 제 1 조 ( 목적 ) 이규정은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에관한사항을정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 제 2 조 ( 발간일 ) 국악원논문집 ( 이하 학술지 라한다 ) 은매년 2회, 6월 30일과 12월 20일에발간한다. 제 3 조 ( 학술지구성 ) 학술지는다음각호의자료로구성한다. 1. 일반논문또는기획논문 2. 서평, 음반평, 공연평또는자료소개성격의발표문등 제 4 조 ( 논문등의제출및게재 ) 1 학술지에제3조각호의자료를게재하고자하는사람은별지부록원고작성원칙에따라제3조각호의자료 ( 이하 논문등 이라한다 ) 를작성하여국립국악원에전자우편으로제출해야한다. 2 논문등의제출기한은 4월 20일, 10월 20일까지로한다. 3 학술지에게재하고자하는논문등은국내외에서간행되지않은것이어야한다. 4 동일한사람이 2회이상연속해서학술지에게재할수없다. 5 제3조제1호의자료는제8조에따른심사를거쳐편집위원회의결정에따라게재하고, 제 3조제2호의자료는편집위원회의결정만으로게재할수있다. 제 2 장학술지편집 심사 제 5 조 ( 편집위원회의구성및운영 ) 1 학술지에게재할논문등의심사와편집에관한다음각호의사항을결정하기위하여국립국악원에편집위원회를둔다.

278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1. 심사회부결정및심사위원위촉 2. 논문의게재여부결정 3. 이의제기수용여부결정 4. 연구윤리부정행위에대한조치 5. 제3조제2호의자료게재여부 2 편집위원회는편집위원장 1명을포함한 7명의편집위원으로구성하며임기는 1년으로하되, 연임할수있다. 3 편집위원은다음각호의어느하나에해당하는사람중에서국립국악원장이위촉하되, 외부전문가를 4명이상포함해야한다. 1. 학예연구관으로서국립국악원에재직중인사람 2. 고등교육법 에따른학교에서국악이나전통예술분야조교수이상의경력이있는사람 3. 국악이나전통예술에관한학식과경험이풍부한사람으로서그분야에 15년이상종사한사람 4 편집위원장은국립국악원국악연구실장으로하며, 편집위원장은편집위원회를대표하고편집위원회의업무를총괄한다. 다만, 편집위원장이부득이한사유로인하여직무를수행할수없을경우에는편집위원중에서연장자가그직무를대행한다. 5 편집위원회의회의는편집위원과반수의출석으로개의하고, 출석위원과반수의찬성으로의결한다. 6 편집위원회는실무를담당하기위해 1명의편집간사를두되, 국립국악원국악연구실학술지담당학예연구사가그직무를담당한다. 7 편집위원은비상임으로하며, 편집위원에게는예산의범위에서수당과여비를지급할수있다. 제 6 조 ( 논문의심사위원위촉 ) 1 편집위원장은제4조제1항에따라제출된일반논문또는기획논문중에서편집위원회에서학술지에게재하고자논문심사회부가결정된일반논문또는기획논문 ( 이하 논문 이라한다 ) 에대해서는이를심사하기위하여논문별로 3명의외부전문가를심사위원으로위촉한다. 2 제1항에따라위촉하는심사위원은다음각호의어느하나에해당하는사람이어야한다. 1. 국악이나전통예술관련분야박사학위를소지한사람 2. 국악이나전통예술관련분야석사학위이상을소지한사람으로서관련분야에 5년이상종사한사람 3. 국악이나전통예술에관한학식과경험이풍부한사람으로서관련분야에 10년이상종사한사람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279 제 7 조 ( 논문심사 ) 1 심사위원은다음각호의기준에따라논문을심사한다. 1. 논문제목과내용의적합성 2. 연구내용의독창성 3. 연구방법과결과의명확성 4. 논문체계와기술방법의적절성 5. 용어개념의적절성 6. 연구기대효과및학문적기여도 2 심사위원은논문심사를의뢰받은날로부터 10일이내에별지제1호서식의논문심사평가서를작성하여편집위원장에게제출해야한다. 제 8 조 ( 논문게재결정 ) 1 편집위원회는제7조에따른논문심사결과를토대로논문의게재여부를결정한다. 2 제1항에따른게재여부는심사위원 3명이제출한점수의평균이 60점이상인논문을대상으로하며심사위원이내린평가를종합하여다음각호의어느하나로결정한다. 유형번호 심사자 1 심사자 2 심사자 3 최종판정결과 1 게재가 게재가 게재가 2 게재가 게재가 수정후게재 3 게재가 수정후게재 수정후게재 4 수정후게재 수정후게재 수정후게재 게재가 수정후게재 5 게재가게재가게재불가 6 게재가수정후게재게재불가 수정후재심 7 수정후게재 수정후게재 게재불가 8 수정후게재 게재불가 게재불가 게재불가 9 게재가 게재불가 게재불가 3 편집위원장은제2항의결정사항에대해논문을제출한사람에게개별적으로통보한다. 다만, 수정후게재 와 수정후재심 의경우에는수정할사항을함께통보해야한다. 4 제3항의단서규정에따라수정할사항을통보받은논문을제출한사람 ( 이하 논문제출자 라한다 ) 은논문을수정 보완하고, 통보받은후 7일이내에별지제2호서식의수정사항과함께수정된논문을편집위원회에제출해야한다. 5 편집위원장은 수정후게재 의판정을받은논문의경우제4항에따라수정 보완된내용을검토하여최종논문게재여부를결정한다. 6 편집위원장은 수정후재심 의판정을받은논문의경우 1회에한하여 60점미만의점수평가를내린심사위원에게재심사를의뢰한다. 다만, 특별한사유가있는경우편집위원

280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회의회의를거쳐다른심사위원에게심사를의뢰할수있다. 7 편집위원장은 수정후재심 의판정을받은논문의경우제 6 항의심사결과에따라최종 게재여부를결정한다. 제 9 조 ( 이의제기 ) 1 수정후게재 또는 게재불가 결정통보를받은논문제출자는통보일로부터 7일이내에별지제3호서식의심사결정이의제기서를작성하여편집위원회에이의를제기할수있다. 다만, 이의제기는 1회에한하여할수있다. 2 편집위원회는제1항에따라이의가제기된경우, 해당논문의이의제기수용여부를결정하되, 특별한경우를제외하고학술지발간일 7일전까지는이의를제기한논문제출자에게통보해야한다. 3 제2항의결정을위하여필요하다고인정하는경우편집위원장은외부전문가에게자문을구할수있다. 제10조 ( 논문등의게재에따른계약등 ) 1 국립국악원은학술지에게재되는논문등의저작권관리등을위하여필요한경우 국립국악원저작물관리규정 에따라계약을체결한다. 2 학술지게재에따른원고료는 국립국악원사례지급규정 을따르되, 최대원고지 100매까지만지급한다. 다만, 다른기관으로부터연구비를지원받은논문등에대해서는원고료를지급하지않는다. 부 칙 이규정은 2011 년 7 월 12 일부터시행한다. 부 칙 이규정은 2014 년 3 월 14 일부터시행한다. 부 칙 이규정은 2014 년 10 월 10 일부터시행한다.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281 별지제 1 호서식 국악원논문집 논문심사평가서 논문제목 심사위원 성명 : 전화번호 : 소속 : 전자우편 (E-mail) : 주소 : 심사료수령계좌 : 논문제목과내용의적합성 (20 점 ) 연구내용의독창성 (20 점 ) 연구방법과결과의명확성 (20 점 ) 평가지표 논문체계와기술방법의적절성 (20 점 ) 용어개념의적절성 (10점) 연구기대효과및학문적기여도 (10점) 총점 (100점) 게재가 ( ) 수정후게재 ( ) 게재불가 ( ) 게재여부 평가지표총점에따른 80 점이상은게재가, 60~79 점은수정후게재, 59 점이하는게재불가입니다. 평가종료후해당사항에 표해주시 기바랍니다. 심사소견 심사위원 : ( 인 )

282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별지제 2 호서식 국악원논문집 수정사항 논문제목 수정사항 논문제출자 : ( 인 )

국악원논문집 발간규정 283 별지제 3 호서식 심사결정이의제기서 논문제목 이의사유 논문제출자 : ( 인 )

284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국악원논문집 원고작성원칙 1. 원고작성 1 논문은한글 2002 이상또는 MS 워드프로그램으로작성하여전자메일로편집간사에게제출한다. 2 논문원고는논문제목, 저자의성명 ( 소속및직책명기 ), 목차, 국문초록및주제어, 본문, 영문초록및주제어 ( 저자의영문성명, 소속및직책명기 ) 의순서로작성한다. 3 연구비의출처를밝힐경우에는본문첫쪽하단에각주로처리한다. 4 서평등의원고는해당서적및음반등을식별할수있도록관련사항을포함하여작성한다. 5 한글로작성하는것을원칙으로하되, 필요한한자 ( 漢字 ) 나외래어를괄호속에함께적어쓸수있다. 6 외국어논문은집필자가한글로번역하여제출하는것을원칙으로한다. 단, 국악원이필요하다고인정하는경우에는번역하지않고그대로제출할수있으며, 국악원에서번역을거쳐본학술지에수록한다. 7 요약 ( 국문, 영문 ) 및핵심어 (key words) 서술 : 논문제목및투고자이름다음에 200자원고지 10매내외의 < 국문초록 > 을적고, < 핵심어 > 를 5개이상적는다. 논문의끝부분에는 A4용지 1매내외의 < 영문초록 ( 제목포함 )> 을적고, < 영문핵심어 > 를 5개이상적는다. 단, 영문초록은게재여부가확정된후제출한다. 8 논문의부제는 -부제- 의형식으로한다. 예 ) 국립국악원의정재전승양상예 ) -정기공연을중심으로- 9 주는각주 ( 脚註 ) 처리를원칙으로한다. 2. 저자표기 1 투고논문이 2인이상의공동연구인경우제1저자를명시한다. 2 특별한표기가없으면제일앞에기재된저자를제1저자로간주한다. 3 제1저자와교신저자가다를경우에는교신저자를명시한다. 3. 논문의편집형식 1 용지크기 : A4(210mm 297mm) 2 용지여백 : 위 아래 20, 왼쪽 오른쪽 30, 제본 0, 머리말 15, 꼬리말 15 3 줄간격 : 180

국악원논문집 원고작성원칙 285 4 글자모양 : 바탕, 장평 100, 자간 0, 크기 10( 각주 인용 9) 5 문단모양 : 왼쪽 오른쪽 0, 들여쓰기 10( 각주 - 보통, 인용 - 들여쓰기 10) 4. 논문의소제목 1 1단계-Ⅰ,Ⅱ,Ⅲ 바탕, 글자크기 16.5, 진하게, 좌우정렬 2 2단계-1,2,3 바탕, 글자크기 13, 좌우정렬 3 3단계-1), 2), 3) 바탕, 글자크기 10.5, 좌우정렬 4 4단계-(1), (2), (3) 바탕, 글자크기 10.5, 좌우정렬 5 5단계-가, 나, 다 바탕, 글자크기 10.5, 좌우정렬예 ) Ⅰ. 1. 1) (1) 가. 5. 인용문헌 1 본문내의인용문헌 1) 인용문의출전은각주로처리한다. 2) 자료 ( 사료 ) 의인용은한글번역을원칙으로한다. 단, 번역이불가능한경우에는원문을제시할수있다. 3) 하나의주석에여러문헌을인용하는경우문헌들사이에쌍반점 ( ; ) 으로구분한다. 국문문헌과외국문헌이함께서술되었을경우국문, 동양문헌, 서양문헌순으로제시한다. 이때문헌의제시순서는첫번째저자의성을기준으로각언어의알파벳순으로, 국문은 가나다, 영문은 ABC 순으로제시한다. 동일한저자의문헌이여러개일경우에는연도순으로수록한다. 2 주석 1) 저자가다수일경우 3인까지는모두표기하되, 4인이상은첫번째저자만언급하고, 국문의경우 홍길동등, 영문의경우는 et al. 로표기한다. 2) 각주의작성양식은다음과같다. -단행본: 저자명, 서명, ( 출판지 : 출판사, 발행년도 ), 쪽수. -예) 홍길동, 국악개론, ( 서울 : 민속사, 2002), 195쪽. -잡지또는정기간행물 : 저자명, 논문명, 잡지또는학술지명 권 ( 집, 호 ), ( 편집 발행처, 발행연도 ), 쪽수. -예) 홍길동, 국악원의공연양상연구, 국악원논문집 제21집, ( 국립국악원, 1993), 123쪽. -학위논문: 저자명, 논문명, ( 지역 : 대학명대학원석사또는박사학위논문, 연도 ), 쪽수. -예) 홍길동, 국악원의공연양상비교연구, ( 서울 : 국악대학교음악대학원박사학위

286 국악원논문집 제 31 집 논문, 2002), 42 쪽. - 웹사이트 : 필자, 글제목, < 웹사이트 URL>, ( 검색연월일 ). - 예 ) 홍길동, 국악원의공연 <www. gugak.go.kr/html>, (2014.1.1 검색 ). 6. 표와도 1 표의제목은표와악보의상단좌측 < > 에일련번호를넣어표시하고, 도상자료 ( 사진, 그림등 ) 의번호는도상자료의하단중앙 < > 에일련번호를넣어표시한다. 2 인용한경우에는각주에서출처에관한정보를밝혀야한다. 7. 참고문헌 1 참고문헌은논문의끝에실으며, 작성요령은다음과같다. -단행본: 저자명. 서명, 출판지 : 출판사, 발행년도. -예) 홍길동. 국악개론, 서울 : 민속사, 2002. -잡지또는정기간행물 : 저자명. 논문명, 잡지또는학술지명 권 ( 집, 호 ), 편집 발행처, 발행연도. -예) 홍길동. 국악원의공연양상연구, 국악원논문집 제21집, 국립국악원, 1993. -학위논문: 저자명. 논문명, 지역 : 대학명대학원석사또는박사학위논문, 연도, 쪽수. -예) 홍길동. 국악원의공연양상비교연구, 서울 : 국악대학교음악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2. -웹사이트: 필자, 글제목, < 웹사이트 URL>. -예) 홍길동, 국악원의공연, <www. gugak.go.kr/html>.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송지원국립국악원국악연구실장편집위원김영운한양대학교교수편집위원박소현영남대학교교수편집위원성기련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편집위원이상규전주교육대학교교수편집위원임병옥청주교육대학교교수편집위원홍주희제주대학교교수 ( 가나다순 ) 간사천현식국립국악원학예연구사

國樂院論文集제 31 집 발행일 2015년 6월 30일 발행인 국립국악원장김해숙 발행처 국립국악원 137-073 서울특별시서초구남부순환로 2364( 서초동 ) 전화 : 02-580-3352 / 팩스 : 02-580-3079 http://www.gugak.go.kr 기 획 송지원국악연구실장 책임편집 주재근학예연구관 편 집 천현식학예연구사 인 쇄 민속원 02-804-3320 국립국악원의허락없이이책의일부또는전부를무단복제 전재 발췌할수없습니다. ISSN 1225-7771 발간등록번호 11-1370132-000007-10 < 비매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