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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 간 사 국악학 기초연구 활성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국악원논문집 은 1989년 제1집을 시작으로 2004년 제16집까지 연1회 발간하였고, 잠시 중단되었던 학술지는 2008년 제17집부터 발간횟수를 연간 2회로 늘려 재발간하고 있습니다. 국악원논문집 은 공모를 통해 원고를 모집하고 편집회의를 통한 1차 심사,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2차 심사를 거쳐 원고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기획논문>편에는 국립국악원 개원60주년을 기념하여 동서양의 고악보와 무보 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학자들이 발표한 논문 4편을 수 록하였습니다. 또한 <일반논문>에는 세틀형식, 정간수의 변천, 봉장취, 국악을 활용 한 음악치료 등과 관련한 다양한 논문을 담았습니다. 국립국악원 개원 60주년을 맞은 2011년,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은 국악원논문 집 의 학술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자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로 선정되기 위하 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악원논문집 의 지속적인 발간을 통해 국 악학 발전을 견인해 나갈 것 입니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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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011/Vol.24 목 차 <기획논문 1> 한 중 일 고악보와 무보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신명숙 / 1 Research for value of dongbamubo and shiyongmubo as a historical document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 공척보( 工 伬 谱 )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 记 谱 )의 특징 왕야오화( 王 耀 华 ) / 27 Th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Chinese Notation as Manifested in Gongchepu Notation of Southern Fujian Music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當 代 ) 연구실태 개관 유칭이( 刘 青 弋 ) / 81 The Preservation of Ancient Chinese Dance Notations and Current Research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테라우치 나오코( 寺 内 直 子 ) / 일본의 가가쿠 류테키보 의 다양성과 통일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 Variety and unification in ryûteki notation in Japanese gagaku

8 <일반논문>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문주석 / 145 The Role of the Gugak Research Office to Promote Oversea s Korean Musicology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반혜성 / 167 Research on Bongjanchwi passed down on the SP record and LP record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영산회상>에 기하여 - 전인평 / 215 New Prospect of Triple Musicl Form - based on Yeongsanhoesang - 정간보( 正 間 譜 ) 1행 정간수( 井 間 數 )의 변천에 관한 연구 정화순 / 237 A Study on the Transition of the Number of Jeonggan on One Line of Jeongganbo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 陰 陽 五 行 ) 관련 연구 성과 검토 조연진 / 285 The Review of Studies Based on the Yin-Yang and the Five Elements Theory in Music Therapy Studies using Korean Traditional Music <번역문>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의 음악문화 번역 : 이용식 / 321 Turkmenistan 마크슬로빈(Mark Slobin) 외 <부 록> 국악원 논문집 발간규정 333

9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신 명 숙* 1) <국문초록> 무용은 시공간의 예술이라고 배웠지만 무용이 종이 위에서 다시 태어나 읽혀질 적 에는 재현의 의미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숨기고 있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더해간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를 본 논제로 선택한 이유는 우선 두 무보가 종교의식에 쓰이고 있고 또한 무보를 근거로 지금까지 현행되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보 는 본래 재현을 위해 기록이지만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에서는 본래의 목적 외에 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동바무보 는 움직임이 단순하지만 독특한 상형문자를 통해서 개구리의 상징성과 춤의 기원을 시베리아 샤먼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고, 시용무보 는 고려사 악지 와 송나라 악지 문헌을 비교해서 시용무보 의 연대를 고려까지 연계시킬 수 있다. 핵심어: 무보, 시용무보, 동바무보, 종묘제례악, 일무 목 차 Ⅰ. 서 론 Ⅱ. 동바무보 Ⅲ. 시용무보 Ⅳ. 결 론 * 대진대학교 무용예술학부 교수 1

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Ⅰ. 서 론 무용은 인류의 역사처럼 오랜 세월 속에 다양하고 풍부한 무용들이 탄생되었지만 전쟁과 사회의 변화에 의해 퇴화, 소멸되는 무용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민족들은 자신 들만의 무용을 암각, 벽화, 회화를 통해 춤들을 표현했지만 오늘날 그 춤들을 복원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였다. 이유는 춤의 전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필 요하다고 보는 장면만 남겼기 때문이다. 기록의 흔적은 오늘날 각 학계분야에서 귀한 유물 과 가치를 인정 받지만 춤의 재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아시아권의 몇몇 민족들 은 그들의 춤을 무보로 그려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춤을 계승하는 전통적인 민족들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나시족( 納 西 族 )은 민족 종교인 동바교( 東 巴 敎 ) 의 식무용을 동바무보 1) 를 근거로 지금까지 현행되고 있으며, 조선 왕들의 업적을 기리는 제례의식무용은 시용무보 를 통해 몇 백 년을 거쳐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이 두 개의 무보는 춤의 계승을 위한 가치 외에 무보 속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어 역사문 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보라는 단어는 중국 남송( 南 宋 ) 주밀( 周 密 : )의 계신잡식( 癸 辛 雜 識 ) 과 덕수궁무보( 德 壽 宮 舞 譜 ) 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덕수궁무보 의 기원은 1162년 송나라 고종( )이 퇴임 후 덕수궁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 궁중 예인들이 사용한 무보라 고 알려졌지만 실제 전해내려 오지 않는다. 다만 후에 주밀의 계신잡식 에 기록되어 있어 무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무보는 9종류와 63개 무용 술어가 기록되어 있고 그 중에 대형( 隊 形 )을 알려주는 술어 2) 도 있지만 술어의 해석이 난이하고 무용이 단절되어 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계신잡식 에 쓰여진 무보의 의미는 문자로 술어를 사용해서 무 용 동작과 대형을 기록한 것을 의미하고 재현을 위한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요구하는 무보의 기능은 서양의 기보법(notation)처럼 무용을 재현할 수 있 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얼굴방향, 동작, 박자, 음악, 전이도, 대형( 隊 形 ), 복식 등 무용을 위해 재현할 수 있는 모두 요소들을 상세히 표기를 하고 심지어는 영상매 1) 나시족의 동바경전에는 동바무용을 부르는 특별한 명칭은 없고 간혹 무용규정이라고 적혀있다. 그러 나 중국 학계에서는 이를 동바무보 라 부른다. 2) 타원앙아( 打 鴛 鴦 兒 ), 구배아( 龜 背 兒 ) 등등 있다. 3) 이 내용은 필자가 집필한 중국납서족동파무보연구( 中 國 納 西 族 東 巴 舞 譜 硏 究 ) (중국: 학원출판사, 2007), 37쪽에 기록된 내용을 요약한 것임. 2

11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체까지 동원해서 재현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같이 무보의 개념이 과거와 달리 점 차적으로 재현에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무용이 전승이외에도 실기를 바탕으로 점차 학문 적 체계를 갖추고, 인류 문화유산의 산물로 재평가 하려는 인식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는 오늘날 요구하는 무보의 조건을 다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 하고 오랜 세월동안 계승되거나 재현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경험이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기록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보가 무용의 재현을 위한 기록이었지만 문 자와 그림으로 종이위에 그려진 무보는 서양의 무보와 달리 한권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 럼 숨어진 내용들이 찾아내고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를 다루는 과정에서 몇 가지 제한점을 두고자 한다. 현재 동바 무보 는 나시족 동바교의 상형문자를 이용해서 기록되어 있고 현재 출판된 무보는 화발원 ( 和 發 源 )외 2명이 번역한 신적년세 도신무도규정( 神 的 年 歲 跳 神 舞 蹈 規 程 ), 무도내력( 舞 蹈 來 歷 ), 제십라법의도적규정( 祭 什 羅 法 儀 跳 的 規 定 ), 무도적출처화내력( 舞 蹈 的 出 處 和 來 歷 ) 의 4종류와 운남사회과학원 동바연구실에서 발간한 동파무보( 東 巴 舞 譜 ), 신수세여동파무 보( 神 壽 歲 與 東 巴 舞 譜 ) 상, 무도내력( 舞 蹈 來 歷 ) 하, 대제풍청신보호무보( 大 祭 風 請 神 保 護 舞 譜 ), 무도적출처화내력( 舞 蹈 的 出 處 和 來 歷 ) 의 5종류를 합하여 총 9종류 무보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정리해보면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실제 무보의 종류는 5종류 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무보는 극히 드물다. 국내 학술지에 소개된 나시족 관련 논문은 최근 들어 발표되고 있으며 4) 동바무보 관련 논문은 본인이 연구 발표하기도 했다. 시용무보 는 종묘에서 추는 일무를 그림과 문자(술어와 음악을 기록함)를 사용하여 만 든 조선의 유일무이한 무보이다. 이 무보에 관한 학계의 보고는 1956년 민속학보에 실린 시용무보 해제 가 있고 그 후 학문적 접근 관점에서 많은 연구가 발표되었다. 역사적 시 점에서 발표된 대표적인 논문으로 최해리는 중국의 도설적( 圖 說 的 ) 무보 형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했고 5) 이진원은 중국 명청제공무보( 明 淸 祭 孔 舞 譜 )와 상호관련성 6) 을 설명 하였다. 이숙희는 종묘제례무의 변화를 1463년(세조9년)을 전후로 분리하여 세조 9년 이후 의 제례무 변화를 문헌기록으로 제시했다. 7) 4) 정일, 나시족 지역사회의 생성과 전통축제의 지역활성화, 비교민속학회지 제29집, 이인택, 중국 나시족 신화비교연구, 중국어문학지 제30집, 홍희, 중국 나시족 동파의 제천 및 쓰미구 의례와 신화, 한국중문학회지 제40집, 2009 등이 있음. 5) 최해리, 한국무용기록의 역사와 전망,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창간호, ) 이진원, 시용무보( 時 用 舞 譜 ) 연구를 위한 중국 무보 초탐( 初 探 ),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제5호, ) 이숙희, 조선조 종묘제례무의 변천소고, 한국음악사학보 제31집. 3

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복원에 관한 논문으로 김현주외 2명은 전통무보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파악하고자 피험 자들에게 시용무보 를 복원하는 작업을 시켰는데 완벽하게 춤을 복원할 수 없었다는 주장 을 했으며 8), 김용은 종묘일무는 조선 유가 사상의 절대 아래 제작되었고 시용무보 의 그 림과 술어묘사를 현대의 창작 춤 안무 형식으로 복원시도는 잘못되었다고 반박했으며, 주 역의 원리로 복원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9) 이종숙은 시용무보 를 현행일무를 비교하여 재 현당시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였다. 10). 그리고 미술적인 시점에서 이소영외 1인은 시용무보 에 그려진 그림을 화법으로 분석 한 결과 시용무보 는 춤사위를 직접보고 그리지 않고 춤을 잘 모르는 화가들이 그림을 보 고 나누어 그렸고 그 결과 오자와 탈자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11) 이처럼 시용무보 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제시는 무용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기록과 정 확성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비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시용무보 <보태평무>, <정대업무>의 원류가 고려시대 중국으로부터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에 관련된 무용 관점의 연구는 거의 다루지 않았 기 때문이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는 주 핵심인 무용의 발생시기와 기록 연대가 명확치 않다. 그 리고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지만 이 무용을 추는 사람들은 제한된 신분과 조건에 의해 추 어졌기 때문에 보편화되지 못했고 또한 어떤 오류에 대해서는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여건 이 마련되지 못해 무보와 무용이 서로 다르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논하 는 시기에 필자가 발표하는 주제들은 무겁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는 서로 상호 관계성도 없고 비교 연구 대상은 없으나 이 두 무보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무보를 통해 오랜 춤들이 지금까지 연희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 요하다고 보았고, 이들 무보는 춤의 재현을 위한 가치 평가보다는 무보에 내재된 여러 가 지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서 역사적문헌의 가치로서 평가하고자 한다. 8) 김현주 유미희 최해리, 한국전통무보의 해석과 재현- 시용무보 를 중심으로, 한국무용기록학회 제4호, ) 김용, 한국 궁중무용의 춤사위 기록법 연구, 한국사상과 문화 제33집. 10) 이종숙, 시용무보 의 무절 구조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연구 (경기: 용인대학교 박사학위 논 문, 2002). 11) 이소영 조용진, 그림기법을 통해서 본 시용무보 의 제작 정황 추정, 한국사상과 문화 제21집. 4

13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Ⅱ. 동바무보 1. 동바무보 의 기원 중국 문헌에 모사이( 摩 沙 夷 ), 모시에만( 磨 些 蠻 )등으로 기록된 나시족( 納 西 族 ) 12) 은 현재 중국 윈난성과 쓰촨성, 티벳 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는 중국소수민족이다. 이 민족의 선 조들은 고대 중국 서북지역에서 살았던 고저강( 古 氐 羌 )민족의 한 지류이다. 진한( 秦 漢 )시대 에 한족( 漢 族 )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남하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당( 唐 )대부터 이 지역 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현재 살고 있는 나시족 지역의 주변에는 다른 소수민족 이족( 彝 族 ), 장족( 藏 族 )들과 밀 접한 지역이 있고 또한 차마고도의 경유지로 바이족[ 百 族 ], 타이족[ 傣 族 ]등과의 문화 접촉 이 가능하여 나시족은 자신의 고유하고 독특한 동바교( 東 巴 敎 )를 탄생시켰다. 동바란 산과 마을에서 경을 읽는자, 지혜로운 자 라는 뜻으로 사제를 부르는 나시어( 納 西 語 )이다. 동 바교의 기원은 나시족의 원시종교와 투판[ 土 蕃 ]의 본교, 라마교, 한족의 불교, 도교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종교 13) 또는 샤머니즘과 본교의 혼합물 14) 이라고 한다. 따라서 나시족 은 모든 사물에 영( 靈 )이 존재한다는 다신 숭배와 선조들을 신으로 모시는 등 복잡한 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바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동바상형문자의 사용이다. 이 문자는 약 7세기경에 만들어졌지만 중국의 상형문자와 다르고 문자의 이용도 사제자로 제한되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쓰고, 읽고, 사용하고 있다. 상형문자로 기록한 동바경전에는 나시족 선조들의 업적과 투쟁, 전쟁, 신화, 민속, 천문역법, 종교의식절차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1930년대 이 지역을 조사한 중국학자들에 의하면 동바는 나시족의 문화를 계승한 지식인으로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 통치자의 옆에서 참모 역할을 하였으며,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귀신을 물리치고 점을 칠 수 있는 종교사제 역할, 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역할 15) 도 담당했으며 동바들이 추는 무용은 민간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9세기 중엽 중국 청나라 당시 서양의 학자, 탐험가들은 중국 전 지역을 다닐 수 있는 12) 모소족, 모시족 등의 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 탄생과 함께 나시족으로 통칭되었다. 13) 화지무( 和 志 武 ), 동바교화동파문화( 東 巴 敎 和 東 巴 文 化 ), 동바문화논집( 東 巴 文 化 論 集 ) (중국: 운남 인민출판사( 云 南 人 民 出 版 社 ), 1991), 19쪽. 14) 이국문( 李 國 文 ), 인신지매( 人 神 之 媒 )-동바제사면면관( 東 巴 祭 司 面 面 觀 ) (중국: 운남인민출판사( 云 南 人 民 出 版 社 ), 1993), 14쪽. 15) 홍희, 중국 나시족 동바의 <제천>및 <쓰미구>의례와 신화, 중국문학연구 제40집, 253-4쪽. 5

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특권을 왕조로부터 허락 받아냈다. 서양인으로 동바경전을 처음 접한 사람은 프랑스 전도 사 페르 데스고딘(Pere Desgodins)이며 그후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관심을 보였고 미 국의 식물학자 록(J.F.Rock)은 쓰촨성 현지 탐험을 통해 많은 동바경전을 수집하여 미국에 가져갔고 은퇴 후 동바경전을 연구하여 출판도 했다. 당시 서양과 중국학자들이 연구한 동 바경전에는 동바무보 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중국은 5, 60년대 공산주의와 문화대혁명의 악순환을 겪으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의 식이 거세게 일어났고 종교 문화의 종사자들은 자아비판과 처형으로 되돌아왔다. 이를 본 목격자들은 모든 것들을 무관심,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사인방의 처 벌과 함께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화 정책을 선언하였고 서서히 보이지 않은 변화가 시 작되었다. 1980년 10월 북경에서 전국소수민족무용좌담회가 개최되었고 56개 민족의 무용 자료 수집에 관심을 집중했다. 중국 리장현 나시족 자치구는 도서관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구석에 쌓여진 동바경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경전들이 어떤 계기로 이곳에 놓여 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문화대혁명 당시 분서를 위해 수집된 고서들의 일부분으로 추측하 고 있다. 쌓인 경전을 분류하다가 새로운 경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신의 년세. 도신무도 규정( 神 的 年 歲. 跳 神 舞 蹈 規 程 ), 동바무도내력( 東 巴 舞 蹈 來 歷 ) 이다. 1981년 윈난성 사회 과학원은 이 경전을 동바들과 조사하면서 동바교 의식에 쓰이는 무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 었고, 1984년 3월 9일자 신화사보도에 의해 동바무보 발견을 공식화했다. 당시 현존하는 노동바( 老 東 巴 )들은 동바무보 에 대해 들은 적도 본적도 없다고 했지만 폭넓은 조사를 통해 동바무보 는 동바들 중에 최고인 대동바( 大 東 巴 )만 사용하는 경전이 고 커다란 의식을 거행할 적에 이 무보를 근거로 의식무용을 관여한 사실을 뒤늦게 알려졌 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이 경전을 동바무보 라고 명했고 동바무보 의 출판과 연구, 의식 무용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6) 동바무보 의 내용을 분류하면 무용의 기원에 관한 무용, 신의 이름으로 추는 무용, 법 기를 들고 추는 무용, 동물신으로 추는 무용 등 4가지 무용 항목이 있다. 그중 무용기원에 관한 무보는 4개가 있고, 신의 이름으로 추는 무보는 48종류의 137개의 무보가 있으며 법 기를 들고 추는 무보는 2종류의 4가지 무보가 있다. 동물신으로 추는 무보에는 14가지 동 물들과 52개 무보가 전해지고 있어 무보의 수는 총 197개 이다. 17) 16) 신명숙, 상형문자( 象 形 文 字 )로 기록된 신적년세.도신무도규정( 神 的 年 歲. 跳 神 舞 蹈 規 程 ) 무보 해제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제2호(서울: 한국무용기록학회, 2002), 157-8쪽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 17) 신명숙, 중국 납서족동파무보연구( 納 西 族 東 巴 舞 譜 硏 究 ) (중국: 중국학원출판사, 2007), 180쪽. 6

15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동바무보 를 나시어로 춰무(ts'o mu)라고 하는데 이 의미는 무용의 규범 혹은 무용의 조식( 調 式 )이라는 뜻이다. 가로 30cm, 세로 8cm의 크기의 종이위에 상중하로 칸을 나누고 서체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기록한다. 겉표지에는 경전의 제목을 적는다. 무보 에는 3가지,, 기술방법이 있다. 첫 번째 부호는 첫 시작을 알리거나 또는 새로운 무용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부호는 쉼표 역할과 마찬가지로 다음 동작이 진행, 연결된다는 것을 알린다. 세 번째 부호는 새로운 무용의 시작 혹은 무용이 마쳤다는 의미 로 쓰인다. 이런 무보의 형식은 동바무보 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살고 있 는 시판인[ 西 番 人 ]의 경전에도 유사한 형식을 쓰고 있고 더 나아가 인도 오리사주에서 발 견된 종려나무 재질의 무보는 상중하로 칸을 나누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동바무보 상형문자 술어는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해를 위한 간략한 상형문자를 소 개한다. 무용 동작을 4가지로 신체부위, 방향, 동작, 숫자로 분류해보았다. <표1> 동바무보에 사용되는 상형문자의 신체별 분류 신체부위 상형문자 상형문자 한글 발 손 나시어발음 khw la 방향 상형문자 위 정각 오른쪽 왼쪽 앞 뒤 gə tæ l uæ kæ mæ 동작 상형문자 걷다 가다 떨다 움추리다 흔들다 추다 thv dzi tsi do do ts'o 들어올리다 돌다 날아가다 총총걷다 밟다 밟다 lv ts'o ze dziythvy zər zər 7

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숫자 상형문자 하나 둘 셋 십 백 dw ni si tsər ci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바무보 에서 사용하는 상형문자 술어는 인체와 자연의 형상을 모방한 문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 상상을 한다면 무보를 읽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동바무용도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동바무보 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문자를 다시 살펴보도록 한다. 2. 동바무보 의 가치 1) 무용의 상형문자와 무용의 기원 ts'o: 추다. 춤 동바문자의 무용과 관련된 표기는 매우 흥미롭다. 사람이 양손을 벌린 채 위로 반원모양을 그리고 있고 양다리는 기마자세로 뛰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정지상태가 아니라 위로 뛰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고 이런 동작들 이 무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바무보 의 무용기원설에서 알 수 있다. 인류 가 살았던 풍요롭고 화려하고 광활한 이 땅에서 무용은 다음과 같은 기원과 유래가 있다. (인류의 무용은)황금 큰개구리의 도약하는 모습에서 계시 받아 기원되었다 18). 이 신화를 근거로 도약하는 개구리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무용모방설로 설명한다면 개구리의 가능성도 배재할 수도 없지만 동바교와 개구리 관계를 설명할 수 있 어야 이 주장에 설득력을 가진다. 개구리와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토템의 전설, 창세 기전설, 전통복식에 그려진 전설, 다산( 多 産 )과 관련, 점술( 占 術 )과 관련된 전설, 기우와 관련된 전설, 동물 모방에 의한 움직임 등이 있지만 19) 이 기능들이 동바교와 동바무용의 관련설을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시 말해 개구리는 보여지는 하나의 형태일 뿐 개구리 가 상징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삼국사기 에 기록된 동 부여의 금와신화를 보면 역시 개구리와 관련되었다. 그렇다면 개구리와 무용은 어떻게 설 명을 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가 있을까? 18) 신수세여동파무보( 神 壽 歲 與 東 巴 舞 譜 ) 상 (중국: 운남 사회과학원 출판사, 1987). 19) 신명숙, 중국 납서족동파무보연구( 納 西 族 東 巴 舞 譜 硏 究 ) (중국: 중국학원출판사, 2007), 쪽. 8

17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시베리아 샤먼이 의식을 할 적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구( 巫 具 )의 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개구리 그림이 그려져 있다. 20) 필자는 최근에 비교민속학회 주최로 바이칼 지역에 샤만과 함께 조사하던 중에 개구리와 관련을 물었더니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샤먼을 지칭한다는 대 답을 듣게 되었다. 결국 동바무용의 기원은 샤먼의 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실례 라고 볼 수 있다. 2) 술어의 독특한 형태 tsi: 떨다 1 동바무보 술어 중에 떨다 가 있다. 일반 생활에 서 떤다는 의미는 공포를 느끼거나, 몸에 열이 날 때, 춥거나 불안할 적에 보여주는 외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쓰이는 무용 동작의 떨다 의미는 일상생 활 동작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의식무용을 하다가 갑자기 떠는 동작은 어떤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일까? 샤만의식중 신과 무당이 접촉될 적에 외형적으로 표출되는 독특한 동작을 행하는데 바로 떨림 동작이다. 떨림 동작은 어깨 혹은 손 등 외형적인 모습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신이 내 렸다는 표시는 천왕대 혹은 신대의 떨림으로 나타난다. 신이 내리면 신대를 잡고 있는 마 을 주민이 갑자기 몸을 떨게 되는데 이로 인해 천왕대 혹은 신대도 함께 떨리게 된다. 잎 이 무성한 대나무가 떨리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는 신의 강림을 의미하는 효과적인 음향이다. 21) 상형문자의 떨림 동작은 동바무용의 기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zər: 밟다 2밟는다는 상형문자는 2가지로 기록하였다. 하나는 땅을 밟는 모습과 또 하나는 땅 밑에 귀신이 누워있어 발로 밟아버리 는 모습이다. 즉 발로 귀신을 밟아 다치게 하거나 혹은 죽인다는 의미는 곧 재앙을 물리친 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시아 강신무들의 춤사위를 보면 대체로 발동작들이 활발하 거나 혹은 뛰는 동작, 급회전 등을 많이 행한다. 이 동작을 강신무의 특징적 춤사위 해석으 로 인식하고 있지만 내면적인 의미로는 발로 귀신을 밟거나 혹은 죽여서 다시는 다른 귀신 들도 접근을 막고 나쁜 짓을 못하게끔 하는 행위는 외형적인 춤사위 특징으로 보인다. 20) 최지성 역, 시베리아 샤만 (서울: 민음사, 1988). 21) http: //folkency.nfm.go.kr/minsok/search.jsp. 9

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hwhw: (나선형으로) 돌다 3나선형의 상형문자는 바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무용에서 나선형은 자주 사용하는 동선이 아니다. 시계바늘이 도는 방향 으로 움직이는 문자는 공작새가 날아가는 모습의 형상을 묘사한 것이다. 공작새는 나시족 과 무관하지만 남쪽 타이족의 토템으로 섬기는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동바무보 에 공작새의 등장은 외래문화의 수용이라고 본다. 이외에도 동바무보 에는 연극적인 요소도 있다. 예를 들어 실존인물이며 동바교의 창시 자인 알려진 딩바시루의 일생을 묘사한 움직임이 무보에 기록되어 있다. 탄생장면에서 모친 이 분만하는 동작을 표현하고, 성장해서 수행하는 모습, 수행 중에 악신과 사투하는 장면을 그리는 등 딩바시루의 업적을 기리면서 악귀를 몰아내는 장면까지 연출되는 과정은 실제 의 식에서는 제사장의 장소를 신성하게 만드는 의례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동물신 이름으로 추는 무용에서는 동바들이 동물장식도 하지 않고 독특한 동물 동작만으로 춤을 춘다. 동바무용이 매우 단순하고 짧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용종류들이 많아 전문가도 전 과 정을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동바무보 에는 악기 구성과 선율, 박자도 알 수 없고 이 무용이 독무 혹은 군무로 춰야하는지, 움직임의 속도가 빠른지 아니면 느린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무보를 기록 할 당시 동바들은 음악 없이 의식을 거행하 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바들이 음악을 기록 하지 않았던 이유는 동바무용이 단지 오락 무 용이 아니라 신성한 경전으로 여기기 때문에 기록이 된 것으로 보았다. 또 하나의 사실은 종교음악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제사를 지낼 적에 읊는 주문이 점차적으로 음의 고저로 바뀌면서 선율이 생기고 종교 음악이 완성되는데, 동바교는 모든 의식들이 노래 없이 주문 혹은 경을 읽으며 진행되고 있어 초기 종교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악가무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보인다. 동바무용을 출 수 있는 대동바는 자격제한이 있으며 또 동바무용은 마을의 큰 제사가 있을 때만 행하기 때문에 평상시 동바무용을 볼 기회가 흔치 않다. 이런 제약 때문에 무보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상형문자로 기록한 동바무보 의 가치는 보여주는 무용연희보다 무 보 속에 내재된 많은 기록과 내용들이 무용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10

19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Ⅲ. 시용무보 1. 시용무보 의 기원 시용무보 는 조선시대 종묘제례 의식에 쓰이는 문헌이다. 종묘제례는 국가의 중요한 대 사였기에 어떤 왕조도 이 일과 관계되는 행사들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조선 초기 세종과 세조의 종묘제례에 관한 여러 가지 업적은 조선의 500년 역사를 이끄는 초석이 되 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종묘제례의식에는 악가무가 함께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의식이 지만 이 의식의 원조는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고대사회에 존재했던 하 상 주나 라의 선조들을 기리는 제사와 아악은 중국 역사의 변천과 새로운 국가 탄생에 의해 이어져 왔고 송대에 와서는 대성신악 혹은 아악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종묘제례의식의 악가무가 재정비되었고 후대 명대, 청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송 휘종이 만든 대성신악은 이웃나라 고려에도 영향을 미쳤고 약 천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서 종묘제례악을 듣고 볼 수가 있다. 오랜 세월동안 전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많은 설명이 첨부되어야 하겠지만 우선적 으로 선조들의 역사적인 기록과 시용무보 의 발간이 가장 큰 도움이라고 설명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시용무보 에 대한 가치를 논할 적에 먼저 송나라부터 수입된 초기 아악에 대한 연구가 먼저 토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의문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중국 송나라 문헌과 고려 문헌에는 대성아악에 대한 기록들이 조금 남아 있어 양국간의 문화 교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종묘제례악의 수입 고려 예종(재위: )은 직위 8년 만에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악을 수입하려고 했다. 1113년 9월 안직숭은 왕의 명령을 받고 북송에 공관으로 파견되었다. 1114년 6월 에 귀국하면서 중국 휘종의 조서와 함께 새로운 악기 공후, 박판, 비파, 쟁 등 악기와 악 보를 가져왔지만 조서 내용에는 대성악을 보내지 않았다고 명시되어 있다. 6월에 안직숭( 安 稷 崇 )이 송나라에서 돌아왔다. 황제가 왕에게 새 악기와 악보[ 譜 訣 ]를 주고 조서에 이르기를, 음악이란 천지와 함께 유행하는 것으로 국가에서 덕을 쌓은 지 백년 만에 야 일어나고, 공을 이룬 다음에야 지어지는 것이다. 선왕의 덕택이 없어지면서부터 예가 폐 지되고 음악이 무너져서 주나라로부터 지금까지 계승하지 못하였다. 짐이 여러 성인의 기업 11

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을 이어받아 성대한 덕과 아름다운 공적을 길이 생각하여 뜻을 잇고 사업을 계속하여 음악 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유사에게 명하여 몸으로 도( 度 )를 삼고, 도( 度 )를 말미암아 솥[ 鼎 ]을 만들며 음악을 지어 천지와 종묘에 올리니 봉황새도 때를 맞추어 나왔다. 대개 지 금 음악이 옛 음악과 같으니 짐이 지금 음악을 폐지하지 않는 바이다. 그 정아( 正 雅 )한 소리 를 지금 음악에 넣어서 천하에 반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화합하게 한다. 경( 卿 )은 외방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의를 사모하여 내조하였다. 사신이 이르러 새 음악을 듣기를 원하므로 그 성심을 가상히 여겨 이렇게 내려주노라. 대성악( 大 晟 樂 )의 정아한 소리는 아직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라고 하였다. 22) 예종은 중국 송에서 창제된 대성아악의 정보를 익히 알고 있어서 고려사신 안직숭을 통 해 수입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종은 1115년 7월 대성아악을 다시 수입하기 위해서 신하를 파견했고 이 때 예종은 특별한 당부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부상서 왕자지( 王 字 之 )와 호부시랑 문공미( 文 公 美 )를 송 나라에 보내어 사은하고, 겸하여 물품을 바치며 이어 진사 김단( 金 端 ) 견유저( 甄 惟 底 ) 조석( 趙 奭 ) 강취정( 康 就 正 ) 권적( 權 適 ) 등 5명을 보내어 태학(중국)에 들어가 공부하게 하였다. 23) 이달 모일에 문덕전( 文 德 殿 )에 나아가 조하( 朝 賀 )하옵고, 물러와 객성( 客 省 ) 막문( 幕 門 )에 있 노라니 관반( 館 伴 ) 모관( 某 官 ) 모가 마침 성지( 聖 旨 )를 유시( 諭 示 )하러 오고, 태사( 太 師 ) 노 국공( 魯 國 公 ) 채경( 蔡 京 )이 성지( 聖 旨 )를 받들어 전하려고 고려에서 악( 樂 )을 익히는 사람이 지금 와서 연악( 燕 樂, 宴 樂 과 같다)을 보고 있는데, 이는 대성아악( 大 晟 雅 樂 )을 익히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이었나이다.(생략) 신등이 고려를 떠나 올적에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훈시하시 기를 특별한 만남을 인연하여 사사로운 간청을 올릴지어다. 24) 22) 六 月, 安 稷 崇, 還 自 宋, 帝, 賜 王 新 樂 器 及 譜 訣, 詔 曰, 樂 與 天 地 同 流, 百 年 而 後 興, 功 成 而 後 作, 自 先 王 之 澤, 渴, 禮 廢 樂 壞, 由 周 迄 今, 莫 之 能 述, 朕, 嗣 承 累 聖 基 緖, 永 惟 盛 德 休 烈, 繼 志 述 事, 告 成 厥 功, 乃 詔 有 司, 以 身 爲 度, 由 度, 鑄 鼎 作 樂, 薦 之 天 地 宗 廟, 羽 物 時 應, 夫 今 之 樂, 猶 古 之 樂, 朕 所 不 廢, 以 雅 正 之 聲, 播 之 今 樂, 肇 布 天 下, 以 和 民 志, 卿, 保 有 外 服, 慕 義 來 同, 有 使 至 止, 願 聞 新 聲, 嘉 乃 誠 心, 是 用 有 錫, 大 晟, 雅 正 之 聲, 猶 不 在 是. 高 麗 史 節 要, 卷 之 八. 23) 遣 吏 部 尙 書 王 字 之, 戶 部 侍 郞 文 公 美, 如 宋 謝 恩, 兼 進 奉, 仍 遣 進 士 金 端, 甄 惟 底, 趙 奭, 康 就 正, 權 適 等 五 人, 赴 大 學. 高 麗 史 節 要 卷 之 八. 24) 今 月 某 日 詣 文 德 殿 朝 賀 退 就 客 省 幕 門 舘 伴 某 官 某 說 諭 適 來 太 師 魯 國 公 蔡 京 奉 傳 聖 旨 習 樂 人 今 來 閱 燕 樂 莫 若 習 大 晟 雅 樂 者 東 文 選 卷 三 十 五 12

21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왕자지는 이미 송나라를 (1113년 9월-1114년 6월) 다녀왔고 문공미 25) 도 요나라를 다 녀온 사신으로 두 사람 모두 북방외교에 경험 많은 사신이었다. 예종은 이 두 사람을 고려 대표로 송의 휘종에게 답례물품과 함께 보낸 것이다. 그런데 병부시랑 임존( 林 存 )도 대성 아악을 위해 송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다. 임존은 고려에서 출발하기 전 예종이 지시한 특 별한 만남의 인연 에 대해 많은 생각과 행동을 고려했을 것이고 결과 송나라 재상 채경( 蔡 京 )을 만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송의 휘종이 문화예술에 심취하고 있는 동안 채경은 재상 으로 정치의 모든 권력을 한손에 잡은 인물이다. 26) 당시 채경의 힘과 권력은 상상을 뛰어 넘는 정도의 능력을 가졌을 것이고 임존은 외교적인 노력으로 예종이 원하는 대성아악 수 입에 일조를 했을 거라는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 (중략) <대성연악( 大 晟 燕 樂 )>과 변두( 籩 豆 ) 보궤( 簠 簋 ) 존뢰( 尊 罍 ) 등 그릇도 하 사하시고, 심지어는 예모전에서 고려 사신을 위해 연회까지 베풀었다. 27) 휘종은 자신이 만든 대성아악을 전국에 학습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또한 고려도 대성아악 을 배우기를 원했기에 윤허를 했다. 그리고 이를 기념으로 예모전에서 큰 연회를 베풀었는 데 이는 고려사 악지 기록에 송조가 그들의 신악을 예모( 睿 廟 )에서 하사했다 는 기록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왕자지와 문공미는 약 1년 동안 머문 후 1116년 6월경 다시 고려로 돌아오면서 휘종의 조서와 의복, 은그릇, 대성신악, 악기. 악보 등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해 10월 예종은 친 히 건덕전에 나가 대성아악의 연주를 들었다. 누군가 송나라부터 수입된 악기들로 약 4개월간 연습을 했었고 건덕전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은 의문점들을 가지게 한다. 우선 악기를 연주한 사람이 송의 악인인지 아니면 고려 악인인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송의 악인들이 고려에 와서 가르쳤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 다. 이러한 의문점에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본다면 첫째, 재 교습을 위해 다시 중국을 방 문하는 경우 두 번째, 대성아악과 관련된 문헌 혹은 개인 습작보 등으로 연습을 하지 않았 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중국에 남아 있다. 25) 문공인( 文 公 仁 ) 혹은 문공언( 文 公 彦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6) 후대 역사학자들이 평가하는 채경은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간신 혹은 탐관오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27) < 政 和 > 中, 升 其 使 爲 國 信, 禮 在 < 夏 國 > 上, 與 < 遼 > 人 皆 隸 樞 密 院 ; 改 引 伴 押 伴 官 爲 接 送 館 伴. 賜 以 大 晟 燕 樂 籩 豆 簠 簋 尊 罍 等 器, 至 宴 使 者 于 < 睿 謨 殿 > 中. 宋 史 卷 487 列 傳 高 麗. 13

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전에) 고려에게 아악을 주었다. 성율을 배우고 익히기를 원하기에 대성부에서는 악보사를 선택해서 다시 악보를 주었다. 28) 즉 이전에 고려에게 아악을 주었는데 이들이 다시 와서 이와 관련된 것들을 배우고 익히 기를 청했고 대성부에서는 악보사를 선택해서 악보를 줬다는 기록이다. 이는 고려가 건덕 전에서 연주한 후 5개월 지난 1117년 2월의 일이다. 아마도 예종은 건덕전에서 연주를 들 을 당시 여러 가지 부분에서 미흡한 점들을 살펴보았고 이를 보강 혹은 재교육을 위해 신 하들을 다시 중국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기록으로 고려 대성아악의 연주 는 고려 악인이 직접 참여했을 거라는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째는 대성아악에 관한 문헌 수입가능성을 생각한다. 송의 대성부는 1116년에 유병 ( 劉 昺 )이 저술한 연악신서 29) 를 출판했는데 이 속에는 84조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고려 사신들이 귀국할 적에 많은 중국서적 중 연악신서 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이러한 가능 성은 다음 아래에서 제시할 것이다. 대성아악이 고려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이겠지만 예 종은 바로 국가의 제사에 대성아악을 적용시켰고 또한 고려사 악지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의 대성아악의 수입과 보존은 예종의 예악사상을 중시하는 정책의 한 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성아악을 수입하는데 공헌한 문공미와 임존은 그 후 이자겸의 반역사건에 연루 되었고 왕자지도 이자겸의 난에 휩쓸려 불행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이들의 운명은 마치 송의 대성아악이 금나라와 전쟁을 통해서 소멸되고 문헌상의 음악으로 존재하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일어나듯이 고려 대성아악의 공헌자들인 문공미, 임준, 왕자지도 이들의 몰락 으로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2) 고려사 악지 에 남아있는 송의 아악 가) 악장( 樂 章 )의 안( 安 ) 의 의미 고려사 악지 의 대성아악 연주곡명을 살펴보면 <정안지곡>, <영안지곡>, <순안지곡>, <희안지곡>, <무안지곡>, <풍안지곡>, <흥안지곡>, <공안지곡> 등등 많은 악장이 기록되어 28) 中 書 省 言 高 麗 賜 雅 樂 乞 習 敎 聲 律, 大 晟 府 選 樂 譜 辭, 詔 許 敎 習, 仍 賜 樂 譜 宋 史. 29) 大 晟 雅 樂, 頃 歲 已 命 儒 臣 著 樂 書, 獨 宴 樂 未 有 紀 述 其 令 大 晟 府 編 集 八 十 四 調 並 圖 譜, 令 劉 昺 撰 以 為 宴 樂 新 書 - 송사 악서 권129, 정화 6년(1116). 14

23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있는데 이 악장의 공통점은 안( 安 ) 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안 의 의미 는 음악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살펴보도록 한다. 송나라 초기 건륭원년(960년) 이월: (중략) 악장 12개의 <순>을 12개의 <안>으로 바꾼다. 이 는 <치세지음안이악>의 의미를 갖는다. 30) 송나라를 건국한 태조는 일대(창건)의 음악에는 당연히 새 이름으로 불러야 하고, 제사 와 향연에 쓰일 악장에는 새로운 가사를 넣어 과거의 의식에 따라 거행할 것을 명했다. 31)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 이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안이 필요로 했 는데 그것이 바로 고대사회에서 숭배되었던 아악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고대 국가로부터 전해지는 아악 숭배 정책은 문란해진 사회를 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 다. <치세지음안이악( 治 世 之 音 安 以 樂 )>은 시경( 詩 經 ) 모시서( 毛 詩 序 ) 32) 의 구절에서 등장 하는데 음악으로서 태평시대를 이끈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즉 국가에서 행하는 제사 와 향연의 악장에 안 자를 더하는 의미는 결국 위대한 선조들과 통치자들이 새로운 국가의 운명을 태평성대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염원을 악장으로 정하고 음악연주를 통해 천지인의 감동을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태조는 이전 국가에서 쓰였던 악장을 제목을 바꾼 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제천을 <고안>으로, 제지를 <정안>으로, 종묘를 <이안>으로 천지, 종묘의 등가를 <가안>으로, 황제가 헌가에 임했을 때 <융안>으로, 왕공 출입 <정안>으로, 황제가 식음 <화안>으로, 황제 가 조례, 황후가 입궁 <순안>으로, 황태자 헌현출입 <낭안>으로, 겨울 조례회의 <영안>으로, 교외묘 조두올림 <풍안>으로, 제향, 작헌, 음복 등 <희안>으로, 문선왕, 무성왕 제사 <영안> 으로, 경전, 선농 <정안>으로 바꾼다. 33) 30) 改 樂 章 十 二 順 為 十 二 安, 蓋 取 治 世 之 音 安 以 樂 之 義. 宋 史 志 第 七 十 九 樂 一. 31) 一 代 之 樂, 宜 乎 立 名 禋 享 宴 會 樂 章, 固 當 易 以 新 詞, 式 遵 舊 典 宋 史 志 第 七 十 九 樂 一. 32) 治 世 之 音 安 以 樂 其 政 和, 難 世 之 音 怨 以 怒 其 政 乖, 亡 國 之 音 哀 以 思 其 民 困.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의 음악은 평안하면서도 즐거우니 그 정치가 고른 때문이고, 세상이 어지러 울 때의 음악은 원망스러우면서도 노여우니 그 정치가 사리에 어긋나서이다. 33) 命 儼 仍 兼 太 常 建 隆 元 年 二 月, 儼 上 言 曰 : 三 五 之 興, 禮 樂 不 相 沿 襲 洪 惟 聖 宋, 肇 建 皇 極, 一 代 之 樂, 宜 乎 立 名 樂 章 固 當 易 以 新 詞, 式 遵 舊 典 從 之, 因 詔 儼 專 其 事 儼 乃 改 周 樂 文 舞 崇 德 之 舞 為 文 德 之 舞, 武 舞 象 成 之 舞 為 武 功 之 舞, 改 樂 章 十 二 順 為 十 二 安, 蓋 取 治 世 之 音 安 以 樂 之 義 祭 天 為 高 安, 祭 地 為 靜 安, 宗 廟 為 理 安, 天 地 宗 廟 登 歌 為 嘉 安, 皇 帝 臨 軒 為 隆 安, 王 公 出 入 為 正 安, 皇 帝 食 飲 為 和 安, 皇 帝 受 朝 皇 后 入 宮 15

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제천은 <고안지곡>, 제지는 <정안지곡>, 종묘제사는 <이안지곡>,제천지 종묘등가는 <가안지 곡>, 황제임헌은 <융안지곡>, 왕공출입은 <정안지곡>, 황제식음은 <화안지곡>, 황제수조, 황 후입궁은 <순안지곡>, 황태자헌현출입은 <낭안지곡>, 정동조회는 <영안지곡> 교묘조입은 <풍 안지곡>, 제향, 작헌음복, 수조는 <희안지곡>으로 한다. 34) 송사 와 송회요집고 에 기록된 악장은 모두 12개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만 송사 에는 음악[ 曲 ]이라는 단어가 없고 송회요집고 에는 음악이라는 단어를 붙혀서 악장 이 곧 음악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태조의 악장 개칭은 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무였던 <숭덕지무(( 崇 德 之 舞 )>를 <문덕 지무( 文 德 之 舞 )>로 무무인 <상성지무( 象 成 之 舞 )>를 <무공지무( 舞 功 之 舞 )>로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이 얼마동안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50여년이 지난 진종( 眞 宗 1008년) 기록에는 악장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휘종은 흩어진 악가무를 다시 재 정비하였다. 휘종은 대성부( 大 晟 府 )를 설치하면서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노래와 인재들을 모집하였고 이 기관을 통해서 옛 음악을 정리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여 궁중에서 필요 로 하는 음악의 수요를 맡았다. 이런 업무들은 과거 교방( 敎 坊 )에서 했던 악율을 정하고 악보를 만들고 교방을 근거로 학습하고 또한 천하에 전파하는 음악기관 35) 과 같은 것이다. 고려 태묘에 쓰인 모든 악장의 안 의 용어는 대성아악 체계로 볼 수도 있지만 원천적으로 는 송의 건국이념을 기념하기 위해 악장 개칭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나) 문무와 무무 문무와 무무가 고려에 수입된 것은 1116년 대성아악과 함께 들어왔다고 고려사 악지 에 기록되어 있다. 48명이 추는 문무와 무무의 기록이 있다. 문무48명이 약과 적을 잡고 있고 무무 48명이 간과 척을 잡고 있는데 모두 육일을 이루고 있다. 문무는 표의 좌우에 각각 3일씩 나뉘어 서있고 문무를 인도하는 자 2명은 앞에서 독 為 順 安 皇 太 子 軒 縣 出 入 為 良 安, 正 冬 朝 會 為 永 安, 郊 廟 俎 豆 入 為 豐 安, 祭 享 酌 獻 飲 福 受 胙 為 禧 安, 祭 文 宣 王 武 成 王 同 用 永 安, 籍 田 先 農 用 靜 安 宋 史 志 第 七 十 九 樂 一. 34) 祭 天 用 高 安 之 曲, 祭 地 用 靜 安 之 曲, 祭 宗 廟 用 理 安 之 曲, 祭 天 地 宗 廟 登 歌 用 嘉 安 之 曲, 皇 帝 臨 軒 用 隆 安 之 曲, 王 公 出 入 用 正 安 之 曲, 皇 帝 食 飲 用 和 安 之 曲, 皇 帝 受 朝 皇 后 入 宮 用 順 安 之 曲 皇 太 子 軒 縣 出 入 用 良 安 之 曲, 正 冬 朝 會 用 永 安 之 曲, 郊 廟 俎 入 用 豐 安 之 曲, 祭 享 酌 獻 飲 福 受 胙 用 禧 安 之 曲 宋 會 要 輯 稿 樂 四 之 九 35) 徐 楓, 詞 的 傳 播, 杭 州 大 學 學 報 編 輯 部, p5, ccs.nccu.edu.tw. 16

25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을 잡고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무무를 인도하는 자는 2명이 정을 잡고, 2명이 도를 잡고, 2명이 단탁을 잡고, 2명이 쌍탁을 잡고, 4명은 금순을 들고 2명은 금순을 치는 사람, 2명은 요를 잡고, 2명은 정을 잡고, 2명은 상을 잡고, 2명은 아를 잡고 헌가의 동서에 나뉘 어져 북향하여 북상부를 보고 서 있으며, 무무는 그 뒤에 있다. 36)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문무와 무무는 육일무로 각각 48명이 참여했고 문무는 약 과 적, 무무는 간척 즉 방패와 활을 들었다. 그리고 문무와 무무를 인도하는 자들이 있는 데 문무의 인도자는 독을 잡았고 무무의 인도자는 정, 도, 탁, 순,요,상, 아 등을 잡는 다. 그리고 이들은 헌가에 서서 상호 바라본다. 이와 유사한 모습은 중국 송사 악지 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무64명이 약과 적을 잡고 있고 무무64명이 간과 척을 잡고 있는데 모두 팔일무를 이루고 있다. 문무는 표의 좌우로 각각 4일씩 나뉘어 서있고, 문무를 인도하는 자 2명은 앞에서 독 을 잡고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무색장 2명은 독을 잡고 앞에 서서 동서로 나눈다.(무 무는 정을 잡고 앞에 있다) 무무를 인도하는 자는 2명은 정을 잡고, 2명이 도를 잡고,2명이 쌍탁을 잡고, 2명이 단탁을 잡고, 4명이 금순을 잡고, 2명이 금순을 연주하고, 2명이 정을 잡고, 2명이 상을 잡고, 2명이 아를 잡고 궁가의 동서에 서서 북향하여 북상을 보고 서 있 으며, 무무는 그 뒤에 있다. 37) 위의 내용은 휘종 정화 3년 4월(1113)에 행해졌던 기록으로 상친사이무( 上 親 祠 二 舞 )와 대조회( 大 朝 會 ) 의식을 위한 것이고 동일하게 쓰인다. 38) 살펴보면 문무와 무무 모두 팔일 무를 행했고 문무는 약과 적, 무무는 간과 척 즉 방패와 화살을 든다. 문무와 무무를 인도 하는 자와 문무와 무무의 무색장( 舞 色 長 ) 39) 역할도 등장한다. 인도자는 각각 독과 정을 잡 36) 文 舞 四 十 八 人 執 籥 翟 武 舞 四 十 八 人 執 干 戚 俱 爲 六 佾. 文 舞 分 立 於 表 之 左 右 各 三 佾. 引 文 舞 二 人 執 纛 在 前 東 西 相 向 引 武 舞 執 旌 二 人 鼗 二 人 單 鐸 二 人 雙 鐸 二 人 持 金 錞 四 人 奏 金 錞 二 人 鐃 二 人 鉦 二 人 相 二 人 雅 二 人 分 立 於 軒 架 之 東 西 北 向 北 上 武 舞 在 其 後. 高 麗 史 樂 志. 37) 文 舞 六 十 四 人, 執 籥 翟 ; 武 舞 六 十 四 人, 執 幹 戚, 俱 為 八 佾 文 舞 分 立 於 表 之 左 右, 各 四 佾 引 文 舞 二 人, 執 纛 在 前, 東 西 相 向 舞 色 長 二 人, 在 執 纛 之 前, 分 東 西 ( 若 武 舞 則 在 執 旌 之 前 引 武 舞, 執 旌 二 人, 鞀 二 人, 雙 鐸 二 人, 單 鐸 二 人, 鐃 二 人, 持 金 錞 四 人, 奏 金 錞 二 人, 鉦 二 人, 相 二 人, 雅 二 人, 各 立 於 宮 架 之 東 西, 北 向, 北 上, 武 舞 在 其 後. 宋 史 卷 129, 樂 四. 38) 上 親 祠 二 舞 之 製 ( 大 朝 會 同 ). 39) 舞 色 長 은 원문 전후를 살펴 본 결과 잘못된 표기이며 舞 色 이 맞다.( 袁 禾, 中 國 宮 廷 舞 蹈 藝 術, 상해 음악출판사, 2004), 365쪽. 17

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으며, 무무는 도, 탁, 순, 정, 상, 아를 잡고 궁가에 서서 북쪽을 바라본다. 보다 쉽게 비교를 하기 위해 고려와 송나라의 문무, 무무를 표로 그려보았다.<표2> <표2> 고려사 악지 와 송사 악지 기록 비교 고려사 악지 문무48명이 약과 적을 잡고 있고 文 舞 四 十 八 人 執 籥 翟 무무 48명이 간과 척을 잡고 있는데 武 舞 四 十 八 人 執 干 戚 모두 육일무을 이루고 있다. 俱 爲 六 佾 문무는 표의 좌우에 각각 3일씩 나뉘어 서있고 文 舞 分 立 於 表 之 左 右 各 三 佾 문무를 인도하는 자 2명은 引 文 舞 二 人 앞에서 독을 잡고 執 纛 在 前 동서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40) 東 西 相 向 무무를 인도하는 자는 引 武 舞 2명은 정을 잡고 執 旌 二 人 2명이 도를 잡고 鼗 二 人 2명이 단탁을 잡고 單 鐸 二 人 2명이 쌍탁을 잡고 雙 鐸 二 人 4명이 금순을 잡고 持 金 錞 四 人 송사 악지 문무64명이 약과 적을 잡고 있고 文 舞 六 十 四 人, 執 籥 翟 무무64명이 간과 척을 잡고 있는데 武 舞 六 十 四 人, 執 幹 戚 모두 팔일무를 이루고 있다. 俱 為 八 佾 문무는 표의 좌우로 각각 4일씩 나뉘어 서있고 文 舞 分 立 於 表 之 左 右 各 四 佾 문무를 인도하는자 2명은 引 文 舞 二 人 앞에서 독을 잡고 執 纛 在 前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東 西 相 向 무색장 2명은 앞에서 독을 잡고 동서로 나눈다. 舞 色 長 二 人, 在 執 纛 之 前, 分 東 西 (만일 무무경우에는 앞에서 정을 잡고 있다) ( 若 武 舞 則 在 執 旌 之 前 ) 무무를 인도하는 자는 引 武 舞 2명은 정을 잡고 執 旌 二 人 2명이 도를 잡고 鞀 二 人 2명이 쌍탁을 잡고 雙 鐸 二 人 2명이 단탁을 잡고 單 鐸 二 人 2명이 요를 잡고 鐃 二 人 18

27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고려사 악지 2명이 금순을 치는사람 奏 金 錞 二 人 2명이 요를 잡고 鐃 二 人 2명이 정을 잡고 鉦 二 人 2명이 상를 잡고 相 二 人 2명이 아를 잡고 雅 二 人 헌가의 동서에 나뉘어져 分 立 於 軒 架 之 東 西 북향하여 북상부를 보고 서 있으며 北 向 北 上 무무는 그 뒤에 있다 武 舞 在 其 後 송사 악지 4명이 금순을 잡고 持 金 錞 四 人 2명이 금순을 연주하고 奏 金 錞 二 人 2명이 정을 잡고 鉦 二 人 2명이 상을 잡고 相 二 人 2명이 아를 잡고 雅 二 人 궁가의 동서에 서서 各 立 於 宮 架 之 東 西 북향하여 북상을 보고 서 있으며 北 向 北 上 무무는 그 뒤에 있다 武 舞 在 其 後 중국 춘추좌전( 春 秋 左 傳 ) 에 천자( 天 子 )는 팔, 제후( 諸 侯 )는 육, 대부( 大 夫 )는 사, 사 ( 士 )는 이를 한다( 天 子 用 八, 諸 侯 用 六, 大 夫 四, 士 二 ). 라고 하여 팔일무, 육일무, 사일무 이일무라고 부르는 일무가 생겼고 주례( 周 禮 ) 에 정악현의 위치는 왕은 궁현, 제후는 헌 현, 향대부는 판현, 사는 특현으로 한다( 正 樂 縣 之 位, 王 宮 縣, 諸 侯 軒 縣, 鄕 大 夫 判 縣, 士 特 縣 ). 라고 하여 천자는 궁현으로 동서남북 4면에 배열하고, 제후는 헌현으로 3면에 배열 하고, 향대부는 판현으로 2면에 배열하고, 사는 특현으로 1면에 악기 배열을 하는 형식을 갖춘다. 일무와 악현의 배열 방식은 이미 고대에서 기초를 다져놓았고 약 천 여년이 지난 송나라와 고려는 모두 이런 사상을 기초로 문무와 무무의 형식을 만들어 따랐다. 다시 말 해 송나라는 황제의 지위로 팔일무와 4면에 악기를 배열했고, 고려는 제후의 지위로 육일 무에 삼면에 악기를 배열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문무와 무무에 사용하는 의물과 의물 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같다. 이러한 동일성은 악가무의 전수와 보존을 위해 특별 한 관리와 기록(문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예종이후 약 300여 년이 지난 고려사 악지 에 기록되었고 이 기록이 중국 대성아악과 내용이 같다는 사실은 40) 고려사 악지 헌가악기( 軒 架 樂 器 )에 무색장은 2개의 은두장자를 잡는다.( 舞 色 長 執 銀 頭 杖 子 共 二 條 ) 기록 을 근거로 무색장이 있었음을 보이지만 친사등가헌가( 親 司 登 歌 軒 架 )에는 없어 기록이 빠진걸로 보인다. 19

2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중국으로부터 아악과 관련된 문헌 수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휘종의 문무와 무무가 연희된 기록은 1113년 4월경이고, 고려 예종은 1116년 8월 18 일에 대성악과 문무의 춤을 시행하라고 했고 정식 관람한 시기는 1116년 10월 13일로 기 록되어 있다. 즉 송나라의 대성아악은 연희 된지 약 3년 만에 고려에 수입되었고 대성아악 을 수정 보완을 통해 완벽한 대성아악을 고려에 정착되었다고 본다. 3) 종묘제례악의 변천과 기록 예종이 아끼던 대성아악도 서서히 변화가 시작되었다. 의종15년(1161) 고려의 유신과 그릇된 악사가 임의로 아악의 연주순서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일부에 쓰인 무구의 숫자를 변경하였고 명종18년(1188) 2월 당시 왕립음악악기관의 악공이 다른 부서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음악에 전념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대성아악의 전승에 변화가 일어났다. 41) 또 명 종18년(1188년)이후에는 종묘제례 제향 절차 중 초헌에는 아악을 했지만 아헌( 亞 獻 )과 종 헌( 終 獻 ) 절차에는 향악으로 연주되는 변화가 생긴다. 42) 명종은 대성아악을 복원하기 위해 서 온을 송나라에 보내 무의( 舞 儀 )를 배워오도록 했지만 그 배움이 불확실해 가르치지 못 했다. 휘종의 대성아악은 북송의 멸망으로 소멸되었고 남송도 대성아악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은 북송 멸망의 원흉이 휘종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배우려하지 않았다. 서온이 방문한 곳은 북송이 아니라 남송이었고 이미 이곳도 대성아악보다는 부담 없이 듣고 노래할 수 있는 서민적인 잡극이 성행하고 있는 중이였다. 고려도 외적의 침입 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정치경제의 불안으로 제례악 거행이 쉽지 않았다. 종묘제례악의 대 재정비는 조선 세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재정비는 그 동안 중국식의 의례에서 조선의 의례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연( 朴 堧 )은 악률의 조법과 악기의 개 보수 및 조성, 공인들의 복식, 문무, 무무외에도 악에 관련된 기타 모든 제도적 측면을 두루 개선하도록 했으며, 이후의 악무와 관련된 제 도는 이를 기준으로 세종실록 오례 에 적용됨은 물론 조선조 향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 친다. 그리고 세종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윤허했다. 첫째, 문무와 무무인의 자격기준, 둘 째, 일무의 장소와 무위, 셋째, 문무와 무무의 지휘 넷째, 무인 및 악공의 관복제정, 다섯 째, 학습과 상벌이다 43). 이 5가지 개선안을 보면 세종이전에 종묘제례악을 맡은 사신들과 41)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 2007), 188쪽. 42) 송방송, 위의 책, 185-8쪽. 43) 이종숙, 시용무보 의 무절 구조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연구 (경기: 용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33쪽. 20

29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악인들의 역할이 나태함과 혼란에 빠져 있었고 조상에 대한 효와 예의 사상을 찾을 수 없 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세종은 종묘와 연회를 위해 새로운 아악 <정대업> <보태평> 을 만들었고 세조는 이 음악을 종묘제례악에 적용시켰다. 세종, 세조때 종묘제례악은 이전 과 달리 왕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인해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수정, 수행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세조 10년(1464) 1년 동안의 국가적인 제사와 연회행사에 <정대업>과 <보태평>이 16번씩 연희된 기록이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44) 성종은 과거 왕들의 노력으로 수정, 보완해오던 종묘제례악과 궁중 악가무를 또 다시 수정, 교정한 후 문헌으로 남기고자 1493년 악학궤범 이 편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원사업에도 불구하고 외세정세의 불안과 전쟁, 사건 등으로 인해 연주자의 부족 혹은 악기손실, 화재 등 종묘제례악을 수시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복원할 때에도 옛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시악화성 에서 음악을 복원할 때 무법( 舞 法 )을 알지 못하여 명 나라의 무법을 구하여 썼고, 한자리에 서서 손만 움직이는 춤은 대개 여기에서 말미암 은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때의 춤이 종묘일무를 뜻하는지, 아악의 일무를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45) 이러한 종묘제례악의 끊 임없는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통치자가 있는 반면에 이런 현상을 걱정하고 선왕들의 공헌을 기억하며 예와 효를 다하고자 하는 시대의 통치자는 기록을 남겨 뜻을 알리고자 하였다. 4) 시용무보 의 형식과 내재적 의미 종묘제례악에 쓰이는 <보태평> <정대업>의 무용을 그려놓은 시용무보 는 필사본으로 조선의 유일한 무보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첫 발간연대와 저자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 아있지 않다. 무보의 크기는 cm이며 재질은 한후지( 漢 厚 紙 )를 사용했다. 무보의 형식은 한 면을 4행으로 나누고 1행을 다시 6개의 정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행간에는 좁은 두 칸에 궁상하보( 宮 上 下 譜 )의 악보를 적었고 넓은 여백에는 춤의 동작과 함께 한자로 44 개의 술어를 병기하여 기록했다. 춤추는 사람은 남자이며 복식은 <보태평> <정대업> 모두 상하가 연결된 남색 옷에 붉은 띠를 띠고 검은색 신발을 신었다. 관모는 <보태평>은 진현 관( 進 賢 冠 ), <정대업>은 주황색 피변( 皮 弁 )을 착용하고 있어 궁중 무복의 모습을 엿볼 수 44) 이종숙, 위의 논문, 62쪽. 45) 김종수 이숙희, 역주시악화성 433쪽. 영조실록 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음. 21

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있다. 일무는 <보태평> <정대업>의 아악에 맞추어 의식무를 추는데 세조실록악보 를 근 거로 <보태평>에는 <희문( 熙 文 )>, <기명( 基 命 )>, <귀인( 歸 仁 )>, <형가( 荊 軻 )>, <즙녕( 蕺 寜 )>, <융화( 隆 化 )>, <현미( 顯 美 )>, <용광( 龍 光 )>, <정명( 貞 明 )>, <대유( 大 揄 )>, <역성( 繹 成 )> 등 11곡이 있으며 <정대업>에는 <소무( 昭 武 )>, <독경( 篤 慶 )>, <탁정( 濯 征 )>, <선위 ( 宣 威 )>, <신정( 神 定 )>, <분웅( 奮 雄 )>, <순응( 順 應 )>, <총유( 寵 緌 )>, <정세( 靖 世 )>, <혁정 ( 赫 整 )>, <영관( 永 觀 )> 등 11곡이 있다. 학자들은 시용무보 를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한 결과 출판연대를 세조이후 혹은 영 정 조 무렵으로 보고 있어 조선 궁중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왕들의 업적으로 연결시키는 것 은 당연지사라고 본다. 시용무보 는 이름 자체가 명확히 무보라고 명시되어 있어 대부분 학자들은 춤의 재현 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논하고 있지만 무보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더 큰 내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 시용무보 의 가치 고대 사회에서 의복은 그 사람의 관직 혹은 신분을 말해주지만 시용무보 에 그려진 무 원의 무복은 특별한 장식이 없다. 묘사해보면 겉옷은 파란계통의 둥근 옷깃에 소매통이 넓 고 겉옷 길이가 거의 바닥까지 내려져 있고 허리에는 붉은 끈으로 맨 후 앞으로 길게 늘어 져 있다. 그리고 머리엔 모자와 검은 신이 약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보태평무>에는 약 적의 의물을 들고 있고 <정대업>무에는 간 척을 들고 있다. <보태평> <정대업>과 관련된 복식 기록은 세종 당시 이미 두 가지 유형을 입고 있다. 하나는 종묘, 영녕전에 입었던 옷 으로 문무복은 남색의 겉옷과 붉은 허리띠를 입었다 는 기록과 세종조 회례연에서 무무복 에 표문대구고( 豹 文 大 口 袴 )와 기량대( 起 粱 帶 )를 착용했다 는 기록이 있다. 남색의 겉옷과 붉은 허리띠는 시용무보 의 무복과 비슷해서 시대적으로 세종과 연결할 수 있지만 표문 대구고 와 기량대 의 착용기록은 중국 송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무무66명, 그 중에 2명은 생을 잡는다. 기타 무인들은 무변( 武 弁 )과 평범한 두건을 쓰고, 붉 은 비단에 금으로 구분한 큰 소매와 흰 천에 입 벌리고 있는 표범 무늬, 붉은 명주로 만든 배자, 갑옷위에 금장식하고, 날아오르는 뱀 같은 기양대를 매고, 검은 신발을 신는다. 46) 46) 武 舞 六 十 六 人, 內 人 二 執 旌 其 舞 幷 服 武 弁, 平 口 幘, 金 支 緋 絲 布 大 袖, 白 布 豹 文 大 口, 蓋 襠 緋 絲 布 裲 襠, 甲 金 飾, 錦 騰 蛇 起 梁 帶, 鳥 皮 靴 宋 會 要 輯 稿. 22

31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그리고 이보다 더 오래전 오대십국( 五 代 十 國 )도 같은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 47) 이 있다. 표범은 용맹과 영웅을 상징하는 동물이고 무무 복식에 동물 문양 사용은 여러 의미를 내포 하한 상징성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고 또 기양대의 착용 또한 외래 복식 문화인 것이다. 조선 세종 종묘, 영녕전에 행해졌던 <보태평> <정대업>의 복식과 시용무보 복식이 같 고 조선 세종 회례연 무복이 송나라의 무무와 연계성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용무보 의 무복도 중국 송나라 혹은 더 이전의 국가들과 연관된 복식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시용무보 에 그려진 무원의 동작은 송나라 대성아악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현 시용무보 에 그려진 음악은 세종이 창안한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지만 세종이 무용을 만들었거나 혹은 안무, 제작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역으로 생 각한다면 대성아악의 무용 동작에 큰 변화 없이 전승되지 않았을까하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여기서 무무의 대형변화는 제외함) 고려 때 들어온 대성아악이 음악에서는 악장과 악기들의 음계가 부정확하고 소리가 흩어 져 새로운 음률과 새 음악의 창작 작업은 필연적인 현상이겠지만 무용은 특별한 리듬의 급 조변화만 없다면 동작은 박자의 느려지고 빨라지는 속도에 맞추어서 원래 춤을 추는 일은 어려운 경험이 아니다. 세종 때 창안된 <보태평> <정대업>의 음악이 새로운 악장일지라도 그 음악에 옛 무용동작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무용은 옛 형태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악학궤범 의 <보태평> <정대업>의 끝나는 부분에서 만일에 절차가 다 끝나지 않았을 경 우에는 곧 거듭 역성을 연주하여 춤춘다 48) 는 기록과 만일에 절차에 있어서 끝나지 않았 을 때에는 곧 거듭 영관을 연주하여 춤추고, 끝나면 음악이 그치고 대금십통을 친다 49) 는 기록은 음악과 무용의 끝나는 부분이 서로가 맞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고 악무를 종 결시키기 위해서 무용이 마치면 음악을 마친다는 기록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또 다른 사례는 악학궤범 이나 혹은 궁중 그림 속에 그려진 남무들의 무복 겉옷 길이 를 보면 대부분 무릎아래까지 내려오고 오피리를 신은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쉽게 풀이 한다면 시용무보 에 그려진 무복의 길이는 거의 땅에 닿고 조선 남자 무복에는 오피리 신 발이 다 보일 정도로 겉옷 길이가 짧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비교 대상이다. 중국 명나라 때 발간된 무보와 청나라 때 발간된 무보의 무인 복장은 그 시대의 복장을 입고 춤추는 모 습으로 그려져 있다. 시용무보 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당연히 조선의 남자 무 인을 모델로 삼아 묘사하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시용무보 에 그려진 무복은 조선 이전의 47) 武 舞 人 服 弁, 平 巾 幘, 金 支 緋 絲 大 袖, 緋 絲 布 裲 襠, 甲 金 飾, 白 練 蓋 襠, 錦 騰 蛇 起 梁 帶, 豹 文 大 口 布 袴, 鳥 皮 靴 舊 五 代 史 卷 )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음악 (서울: 일지사, 1979), 178쪽. 49) 장사훈, 위의 책, 181쪽. 23

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복장으로 보이고 더 나아가 처음 대성아악이 수입될 때 들어온 당시의 무복과 연계 가능성 도 배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고려사악지 의 기록과 송사악지 의 문무 무무의 내용이 거의 같고, 송나라는 대성아악을 보급하기 위해 연악신 서 를 출판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 예종의 대성아악에 대한 표의는 조선시대에도 더 엄격 히 격식화되어 행해졌음을 알 수가 있다. 시용무보 의 무용은 고려시대의 무용으로 볼 수 있고 송으로부터 수입당시 그려진 무보라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시용무보 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상의 오랜 세월을 시공간에서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Ⅳ. 결 론 무용은 시공간의 예술이라고 배웠지만 무용이 종이 위에서 다시 태어나 읽혀질 적에는 재현의 의미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숨기고 있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 감과 흥미로움을 더해간다.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는 양국간의 역사적인 교류 혹은 문화 접촉이 없는 나라들이고 무보를 구성하는 형식과 체계에서도 서로상호간의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두 민족은 오래전부터 무보를 사용했고 오랜 역사를 통해서 자 신만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해왔으며 변화와 단절의 긴 터널시간에도 그들의 문화를 다시 재현 하려는 의지는 지배 계층자들의 깊은 관심과 전문가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사소한 기록까지 남기는 작업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 지 무용전공자 입장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제 이 두 무보들은 각 민족들의 문화가 아닌 인류의 문화로서 재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는 후세의 영광으로 이어진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창조적인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지 또 는 종이위의 무보가 아닌 컴퓨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무보 기술이 어떤 새로운 무용을 안 무, 기록할 수 있는지 미래의 무용을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질 때가 왔다고 본다. 24

33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동바무보 와 시용무보 가치연구 <참고문헌> 고려사절요 8권. 구오대사. 144권. 동문선 35권. 동파문화논집( 東 巴 文 化 論 集 ). 송사 악서 129권. 송회요집고. 신수세여동파무보( 神 壽 歲 與 東 巴 舞 譜 ) 상. 김 용. 한국 궁중무용의 춤사위 기록법 연구. 한국사상과 문화 제33집. 김종수 이숙희, 역주시악화성 433쪽. 김현주 유미희 최해리. 한국전통무보의 해석과 재현- 시용무보 를 중심으로. 한국무용기록학회 제4호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 신명숙. 상형문자( 象 形 文 字 )로 기록된 <신적년세. 도신무도규정( 神 的 年 歲. 跳 神 舞 蹈 規 程 )> 무보 해제.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제2호 중국 납서족동파무보연구( 納 西 族 東 巴 舞 譜 硏 究 ). 중국: 중국학원출판사, 이국문. 인신지매( 人 神 之 媒 )-동파제사면면관( 東 巴 祭 司 面 面 觀 ). 운남인민출판사( 云 南 人 民 出 版 社 ), 이소영 조용진. 그림기법을 통해서 본 시용무보 의 제작 정황 추정. 한국사상과 문화 제21집. 이숙희. 조선조 종묘제례무의 변천소고. 한국음악사학보 제31집. 이인택. 중국 나시족 신화비교연구 이종숙. 시용무보 의 무절 구조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연구. 용인대학교 박사학 위논문, 이진원. 시용무보( 時 用 舞 譜 ) 연구를 위한 중국 무보 초탐( 初 探 ). 한국무용기록학회 지 제5호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음악. 서울: 일지사, 정 일. 나시족 지역사회의 생성과 전통축제의 지역활성화. 비교민속학회지 최지성 역. 시베리아 샤만. 서울: 민음사, 최해리. 한국무용기록의 역사와 전망. 한국무용기록학회지 창간호, 홍 희. 중국 나시족 동파의 제천및 쓰미구 의례와 신화. 한국중문학회지 중국 나시족 동바의 <제천>및 <쓰미구>의례와 신화. 중국문학연구 제40집. 25

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Research for value of dongbamubo and shiyongmubo as a historical document Shin myungsook (Prof. Daejin Univ.) When a dance is read on paper, it represents only a meaning of re-creation though we've learned that a dance is an art of space time. Therefore reading of dance makes us feel interest in it like reading a mystery story. The reason why I chose dongbamubo and shiyongmubo as my subject are that they have been used in a religious ceremony and continuously performed until now. Originally, mubo is a record for re-creation but I can find some features on each of them. dongbamubo has simple movements and a symbol of frog found from hieroglyphist which originated from Xiamen, Siberia. shiyongmubo could be extended to Goryeo dynasty comparing akji of Goryeo dynasty to China Song dynasty. Key words: notation( 舞 譜 ), shiyongmubo( 時 用 舞 譜 ), dongbamubo( 東 巴 舞 譜 ), Jongmyoakjaerae ( 宗 廟 樂 祭 禮 ), ilmu( 佾 舞 ) 26

35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 공척보( 工 伬 谱 )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 记 谱 )의 특징 왕야오화( 王 耀 华 )* 1) 번 역** 2) 현경채( 玄 璟 彩 )*** 3) <국문초록> 복건성의 대표적인 음악 남음( 南 音 )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의미 있는 음악 유산 갖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의 대표적인 음 악 장르이다. 복건남음은 음악적인 중요성과 함께 기보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하 다. 이는 복건남음의 공척보 연구가 곧 중국전통음악기보법의 일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본고에는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 공척보( 工 伬 谱 )를 통해 중국 전통 음악 기보( 记 谱 )의 특징이 연구되었다. 음높이와 시가( 時 價 )의 기보에 관 한 연구를 비롯하여, 보간강번( 谱 简 腔 繁 )과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 그리고 복건남음과 중국전통음악기보법의 음악학적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핵심어: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 공척보( 工 伬 谱 ), 중국 전통음악, 기보법, 중국 * 복건사범대학 교수 ** 원문을 번역하면서 고유명사는 편의상 한국식 발음의 한글로 표시하고 괄호 안에 중국 원문을 제시 하였다. 번역을 하면서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역자주 를 달았다. *** 영남대학교 강사, 국악방송 전문 진행자 27

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목 차 Ⅰ. 음높이와 시가( 時 價 )의 기보 Ⅱ. 보간강번( 谱 简 腔 繁 )과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 Ⅲ. 복건남음과 중국전통음악기보법의 음악학적 함의( 涵 意 ) 복건성의 대표적인 음악 남음( 南 音 )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음악은 유구한 역사만 큼이나 의미 있는 음악 유산 갖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 장르이다. 복건남 음은 복건성 남부 지방의 천주( 泉 州 ), 하문( 厦 门 ) 및 그 주변의 각 현과 장저우( 漳 州 ) 일대 에 많이 연주되었으며, 또한 민남어( 闽 南 語 ) 1) 을 사용하는 대만( 台 湾 )을 비롯하여, 홍콩, 마카오 지역과 오문등지구( 澳 门 等 地 区 ), 재동남아민남적화교( 在 东 南 亚 闽 南 籍 华 侨 ), 화인취 거구야심위류행( 华 人 聚 居 区 也 甚 为 流 行 ), 남음제료단독연창( 南 音 除 了 单 独 演 唱 ), 연주지외( 演 奏 之 外 ), 환피운용우( 还 被 运 用 于 ), 대만, 홍콩, 마카오와 동남아 민남어 지역의 화교를 중 심으로 주로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넓게 유포되어 연주되는 음악이다. 남음은 단독으 로 노래되거나 연주되는 방식으로 연행되는 것 외에, 이원희( 梨 园 戏 ) 2) 고갑희( 高 甲 戏 ) 3), 그리고 천주( 泉 州 )의 목우희( 木 偶 戏 ) 4) 와 타성희( 打 城 戏 ) 5) 등의 지방극과 연형극에서도 두루 사용되는 음악이다. 복건 남음의 공척보는 특정 한자를 사용하여 약속된 음높이를 표시하는 음높이 악보로 전문적인 용어로는 고정명표음체계( 固 定 名 标 音 体 系 ) 속하는 기보법이며, 중국전통음악의 기보법의 특징을 큰 부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1) 역자주, 민남어( 闽 南 語 )는 주로 복건( 福 建 )성 남부 광동( 广 东 )성 동부 대만( 台 湾 ) 전 지역에서 쓰이는 중 국어의 한 종류이다. 2) 역자주, 이원희( 梨 园 戏 )는 복건( 福 建 )성 남부와 대만( 台 湾 ) 등지에서 유행하였던 중국 전통 지방극이다. 3) 역자주, 고갑희( 高 甲 戏 )는 지방 전통극의 일종으로 복건( 福 建 )성 천주( 泉 州 ) 하문( 厦 门 ) 장주( 漳 州 ) 와 대만( 台 湾 ) 등지에서 유행했다. 4) 역자주, 목우희( 木 偶 戏 )는 천주 일대에서 유행한 나무인형극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고, 그 줄을 움직여 춤을 추게 하는 연희이다. 5) 역자주, 타성희( 打 城 戏 )는 천주 일대의 종교적인 민속활동에서 기원되었으며, 종교예술의 색채가 짙 은 음악극의 한 종류이다. 28

37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Ⅰ. 음높이와 시가( 時 價 )의 기보 음높이를 구분하는 표기법으로서의 악보 시스템은 공척보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이며, 중국전통음악의 기보법에 있어서도 음의 높낮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일정한 원칙으로 규 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악보 구성 원리로서도 중요한 점이다. 보통 악보에서 표기하고자 하 는 음의 높이(혹은 절대음, 혹은 상대음)는 언제나 정확해야하며, 또한 자세하게 기보되어 야하다는 기본 명제가 있다. 복건남음에서 사용된 공척보 속의 악보 체계에 사용된 음높이 부호(혹은 문자)는 비파 연 주에 있어서 손가락 지법과 상관관계가 있다. 비파 운지법과 괘를 집는 자리는 한자( 漢 字 ) 로 표기되고, 그것이 바로 고정된 음 높이이며, 복건남음의 공척보에서 음높이를 나타내는 한자로 통용된다. 복건남음의 기본 악보에 사용되는 문자는 尺 (chē처로 읽는다)를 비롯하 여 工, 六,, 乙 등이며, 이 기호(혹은 문자)에 해당되는 음의 높이는 바로 c1, d1, e1, g1, a1 에 해당 된다. 앞에 나열된 음렬들은 중간음역에 해당되는 악보이다. 이것 보 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구분하여 표기하는 방법으로는, 복건남음 공척보에서 사용하는 기 본적인 문자 앞에 亻 (인변) 을 더하여 표시하는데 기본 한자의 좌측에 붙인다. 예를 들어 伬,,,, 로 표기한다. 두 옥타브 높은 음은 彳 (두인변) 로 구분하여 표시하며 기본적인 공척보 문자 좌측에 붙인다. 예를 들어,,,, 은 기본음보다 두 옥타브 높은 음에 해당된다. 반대로 중간음역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군( 音 群 )은 해당음 마 다 다르게 표기한다. 예를 들어 乙 음은 下 표기하고, 음은 士 로 표기한다. (일반적으 로 음을 8도 아래로 내린 음은 士 로 표기하지만, 어떤 경우는 옥타브 아래음도 그냥 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乙 음과 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옥타브 내린 음을 구분할 때는 艹 (초두) 공척보 문자 위쪽에 붙여준다. 예를 들면, 와 같다. 이상에 기술한 공척보에 사용되는 문자에 해당되는 음 높이를 5선보로 비교하여 제시하 면 <악보 1>과 같다. 29

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1> 복건남음의 공척보 기본 문자와 음 높이 복건남음의 공척보는 기본 음고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문자 외에도 반음을 올리고 내리 는 변화에 대한 기호도 있다. 1. 贝 자를 와 尺 의 좌측에 붙어 부가적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반음을 내리는 것 에 대한 약속으로, 로 악보 속에서 표기한다. 2.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贝 표, 등 올려진 반음을 제자리로 돌릴 때에는 음높이에 해당하는 문자 옆에 正 자를 더해서, 등으로 표기한다. 3. x 부호가 六, 伬 의 좌측에 붙은 것은, 사공관( 四 空 管 ) 6) 의 六, 라는 것을 나 타내며, 이것은 오공관( 五 空 管 ) 7) 의 六, 伬 와 비교해서 반음이 더 높은 음으로 해석 된다. 이것은 복건남음의 공척보에서 六, 伬 로 기보한다. 여기에서의 부가적인 부호 는 아래에 제시한 와 함께 민간숫자기호인 에서 온 것으로, 그것들은 각각 사공관( 四 空 管 ), 오공관( 五 空 管 ) 의 특구한 악보 시스 템을 축약해서 기보로 사용한 것이다. 4. 반대로 부호가 六, 伬 좌측 상단에 붙었을 때는, 오공관( 五 空 管 )의 六, 伬 을 지칭하는 것이고, 사공관( 四 空 管 )의 六, 伬 보다 반음 낮은 음이며, 실제 악보에 서는 六, 伬 로 기보한다. 6) 역자주, 사공관( 四 空 管 )은 한국의 4관청과 같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7) 역자주, 오공관( 五 空 管 )은 한국의 5관청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30

39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5. 비파 지투( 指 套 ) 8) 음악 <첩신수금( 妾 身 受 禁 )>의 첫 번째 마루(1절 혹은 첫 번째 곡) 의 이조 십팔비화( 二 调 十 八 飞 花 ) 중에서 처음의 7번째 마디에서의 공척보 乙 의 글자는 모연수일( 毛 延 寿 一 ) 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로 기보하는데, 이것은 원래의 공척보 상의 乙 보다 반음 높은 음이다. 6. 연주법에 덧붙어 장식하는 打 尺 은 악보에서는 로 기보되고, 실제 연주에서는 리라는 기호로 이해된다. 로 연주한다. 악보 상에서 알 수 있듯이 扌 부호는 사실상 반음 올 이상과 같이 반음을 올리는 임시표를 다음의 <악보 2> 에 정리하여 제시 하였다. <악보 2> 복건남음의 반음 올림 임시표 기호와 서양악보 이상 위에 기술된 복건남음의 기보법상에 제시된 음높이 부호에 상용된 문자들은 남음 비파의 줄의 순서를 비롯하여 비파 연주에서 사용되는 음의 위치에 해당 되는 괘의 자리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보에서 사용되는 부호를 비롯한 다양한 표현 기법 등은 남음 비파의 줄의 순서를 기호 로 표시되어 공척보 상세히 기보된다. 예를 들어 모현 ( 母 线 : 네번째 줄)은 악보 좌측에 母 자를 쓰고, 세 번째 줄은 악보는 좌측에 川 을, 두 번째 줄은 위쪽에 入 을 기록하 여 구체적인 현을 상세하게 구분한다. 자현 ( 子 线 : 첫 번째 줄)은 음표에 해당하는 문자 와 같아서 음높이에 해당하는 문자로 함께 사용한다. 아래에 <그림 1>로 비파 줄과 괘 의 위치, 그리고 복건남음의 공척보 악보에 사용되는 문자의 예를 제시했다. 8) 역자주, 지투( 指 套 )는 비파를 연주할 때의 손가락 사용법을 표기한 비파음악 모음곡을 지칭하는 것으 로 투곡( 套 曲 ) 또는 지투( 指 套 ) 라고도 한다. 31

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그림 1> 복건남음 비파 음 위치도 이상과 같이 이러한 음높이를 나타내는 문자는 음높이 악보로서의 특징을 담고 있으며, 당연히 중국 한족( 漢 族 )언어가 갖고 있는 4성 성조( 声 调 )의 언어적 특징과 음악의 체계와 관련이 있다. 즉, 중국 한족언어의 성조의 높낮이는 한자가 갖고 있는 뜻의 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이러한 중국 언어와 성조가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음고( 音 高 ), 음색( 音 色 ), 강약의 변화 등을 갖추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어 표준말 중 높낮이와 관련 있는 4성은 다 음과 같은 선율의 곡조를 만들어 낸다. 32

41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악보 3> 중국어 4성 성조( 中 国 汉 语 四 声 声 调 ) 이와 같이 언어가 갖고 있는 성조와 같은 개념의 선율의 멜로디 라인에 관련된 것은 소 리를 형성하는 것 중의 음색( 音 色 )과 상대적이며, 힘의 강세의 변화 등등에 나타난다. 이러 한 상관관계의 작용에서 만들어진 중국 전통음악은 다양한 악보체계를 찾아내어 적절한 자 신만의 기보 방법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복건남음 비파 악보 중에서의 탄 ( 弹 ), 도( 挑 ), 륜( 轮 ), 음( 吟 ), 노( 猱 ), 대( 带 ), 수( 擞 ), 타( 打 ) 등의 연주수법( 演 奏 手 法 )이 다른 비파보에서는 척( 摭 ), 제( 提 ), 구( 勾 ), 탑( 搭 ), 요지( 摇 指 ), 불( 拂 ), 소( 扫 ), 살현( 煞 弦 ), 교현( 绞 弦 ) 등 연주수법으로 재해석되어 기보되면서, 음고와 힘의 강세, 음색의 변화 등에 관련된 기보법으로 구체화 되었다. 복건남음의 공척보는 음의 시가( 時 價 ) 기보에 있어서는 불편한 악보이고, 대부분의 중국 악보 시스템은 음의 시가( 時 價 )를 표기 하는 데는 원칙적으로 소홀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음의 시가( 時 價 )를 기록하기 위한 흔적은 단위 개념은 음악 혹은 음악이 진행되는 과정에 서 음의 시간적인 척도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복건남음의 기보법에는 요박 기호( 撩 拍 记 号 )를 사용하여 박자를 표기한다. 박( 拍 ) 은 강박( 强 拍 )을 의미하는데 중국의 극음악( 劇 音 乐 혹은 戏 曲 音 乐 )에서 판( 板 ) 의 의미와 같은 개념이다. 요( 撩 ) 는 약박( 弱 拍 ) 에 해당하고, 희곡음악( 戏 曲 音 乐 )의 안( 眼 ) 과 같은 약박의 개념과 상통한다. 7요박( 七 撩 拍 ) 은 시작은 강박으로 하여 약박이 일곱인 박자 개념이고, 3요박( 三 撩 拍 ) 은 시작은 강 박으로 하여 약박이 셋인 박자 개념이며, 일이박( 一 二 拍 ) 은 두박이다. 그 외에도 첩박 ( 叠 拍 ) 등의 박자개념의 용어로 음악을 구분하여 기보한다. 이러한 박자개념 외에도 리듬개 념과 같은 세분화된 음악의 미세한 박자 기보법은 남음비파( 南 音 琵 琶 )의 연주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파 연주법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한자용어와 기보법의 개념이 결합되어 독 창적인 리듬개념의 기보법이 정착되었다. 예를 들어 연지류( 摙 指 类 ) 기법 중 점도거도류 ( 点 挑 去 倒 类 ), 갑선류( 甲 线 类 ), 낙지류( 落 指 类 ), 장식성지법류( 装 饰 性 指 法 类 ), 그 외에 도 연지류( 摙 指 类 )의 전연( 全 摙 ), 점연( 点 摙 ), 창연( 抢 摙 ), 관연( 贯 摙 ) 등, 이러한 비 파의 연주 기법이 복건남음 박자개념의 기보법에 중요 키워드가 되었다. 전연( 全 摙 ) 기법 에서는 오른 손 검지와 엄지가 연속적으로 뜯고 튀기는 점조( 点 挑 ) 주법이 박자개념에 사 용되는 예인데, 강하게 뜯는 것( 重 )과 가볍게 탄주하는 것( 轻 ), 천천히 완만하게( 缓 ), 혹은 33

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급하게 타는 것( 急 )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마지막 일점( 一 点 ) 은 소( 箫 ) 9), 현( 弦 ) 10) 및 노래[ 唱 声 ]의 시작이 포인트가 되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점연( 点 摙 ) 은 먼저 식지( 食 指 )로 일점( 一 点 ) 치면 호흡을 맞추는 것이고, 재연( 再 摙 ) 은 퉁소, 이현( 二 弦 ) 및 노래에 따라서 수성가락으로 연주하라는 신호 이며, 창연( 抢 摙 ) 은 빠르게 반박을 붙이는 것[ 快 摙 半 拍 ]이다. 관연( 贯 摙 ) 은 한 박자 안에 서 식지와 모지가 한 번 뜯고 한번 튕기는 것[ 一 点 一 挑 ]의 두 번 반복으로 4개음을 연주하 는 박자개념이다. 점( 点 ), 도( 挑 ), 거도( 去 倒 ) 기법 등의 종류에서도 박자개념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점( 点 ) 은 식지로 자연스럽게 현을 튕기는 것으로 이것의 음의 시가( 時 價 )는 반 박자이다. 만약에 다른 손가락으로 연주하라는 분지기호( 分 指 记 号 ) 가 있다면 이것은 한 박자로 해석 해야한다. 도( 挑 ) 는 엄지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올리는 주법이고 이것의 음의 시가( 時 價 )는 반 박자이다. 여기에도 만약 분지기호( 分 指 记 号 ) 가 있다면 한 박자로 해석해야 한다. 거 도( 去 倒 ) 는 집게 손가락로 뜯고, 엄지손가락으로 튕겨 올리는 연주기법이며 음의 시가( 時 價 )는 한 박자이다. 긴거도( 紧 去 倒 ) 는 거도( 去 倒 ) 와 같으나 속도는 두 배정도 빠르고 음 의 시가( 時 價 )는 반 박자이다. 분지( 分 指 ) 는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뜯고 나서 엄지손가락 으로 천천히 튕겨 올리는 주법이며, 박자는 거도( 去 倒 ) 보다 두 배 늘어난다. 전지( 战 指 ) 는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뜯고, 나서 각각을 한 번 튕겨 올리는 주법이고, 이것의 음의 시가( 時 價 )는 한 박자이다. 마지막 점일하( 点 一 下 ) 의 박자는 반 박자이다. 전지( 颠 指 ) 는 전지( 战 指 ) 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속도가 두 배로 빠르게 연주하는 주법이다. 채지( 采 指 ) 는 즉 두 번의 긴거도( 紧 去 倒 ) 이며 음의 시가( 時 價 )는 한 박자이다. 반도( 半 跳 ) 는 반 박자 안에서 먼저 식지 손가락으로 살짝 줄을 건드리는 연주 후에, 다시 반 박자 안에서 한 번 튕겨 연주하는 것으로, 이 단계를 합치면 한 박자가 된다. 전도( 全 跳 ) 는 반 박자 안에서 먼저 식지 손가락으로 살짝 줄을 건드리는 연주 후에, 다시 반 박 자 안에서 한 번 튕겨 연주하고, 마지막에 반 박자 안에서 식지로 가볍게 연주하는 주법이 다. 전지( 剪 指 ) 는 반 박자 안에서 식지 손가락으로 빠르게 스치며 연주학고, 엄지 손가락 으로 역시 빠르게 튕겨 올리며( 急 挑 )는 주법이다. 갑선( 甲 线 ) 은 본음( 本 音 )을 한옥타브 내린 음이다. 자선( 子 线 ) 위의 을( 乙 ) 음은 갑 선( 甲 线 ) 을 식지로 이선( 二 线 )의 하( 下 ) 음을 사용하는 것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엄지 9) 역자주, 소( 箫 )는 세워서 부는 퉁소 계통의 악기이다. 10) 역자주, 현( 弦 )은 이현( 二 弦 )으로 한국의 해금과 같은 종류의 악기이다. 34

43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손가락의 갑삼선( 甲 三 线 ) 혹은 사선( 四 线 ) 의 옥타브 아래음을 연주한다. 연주할 때는 엄 지손가락으로 줄을 눌러 소리를 낸다. 갑선( 甲 线 ) 은 여러 가지 변화형식이 있다. 긴갑선 ( 紧 甲 线 ) 은 갑선( 甲 线 ) 과 같으나 연주 속도가 두 배 빠르다. 접성( 接 声 ) 은 퉁소와 이현 ( 二 弦 )을 사용하며 노래 부를 때 쓰는 주법으로, 첫 음을 낸 다음 반 박자 쉬고 두 번째 음과 세 번째 음이 연속으로 출현되는 세 박자 개념이다. 직관( 直 贯 ) 은 접성( 接 声 ) 과 같 으나 첫 음 후 쉬지 않고 세 박의 음을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박자 개념이다. 구 갑( 钩 甲 ) 은 삭지 손가락으로 올려서 뜯고, 엄지손가락으로 갑선( 甲 线 )을 누르는 데 주법으 로 악보에 자주 쓰이는 주법중 하나이다. 낙지( 落 指 ) 는 윤지( 抡 指 ) 라고도 하며 쾌낙지( 快 落 指 ) 와 만낙지( 慢 落 指 ) 의 구분이 있 있는데, 쾌낙지( 快 落 指 ) 는 오른손의 새끼 손가락에서 시작하여 무명지, 중지, 식지 순서로 네 개의 음을 연주하는 주법이다. 식지 손가락 연주 할 때는 빠르게 엄지 손가락으로 튕겨 올려야 한다. 모두 다섯 음을 반 박자 안에서 연주해야하는 박자 개념의 주법이다. 만낙지 ( 慢 落 指 ) 는 연주법상으로 볼 때 쾌낙지( 快 落 指 ) 와 거의 같다. 다만 속도에서 비교적 느릴 뿐이며 속도차이 때문에 음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주법이다. 장식성지법( 装 饰 性 指 法 )은 바로 장식음을 연주할 때의 수법이다. 장식성 지법에는 단타 척( 单 打 尺 ) 을 비롯하여 쌍타척( 双 打 尺 ), 말육( 抹 六 ), 반범( 半 凡 ), 전범( 全 凡 ) 등이 있 다. 단타척( 单 打 尺 ) 은 왼쪽 식지 손가락으로 먼저 정패척( 定 贝 尺 )을 누르고 무명지로 전 척( 全 尺 )을 누르며, 오른 식지 손가락은 곁에서 살짝 스치고, 왼손은 무명지를 이용하여 강 하게 세 번을 쥐어뜯는 주법이다. 음의 시가( 時 價 )는 한 박자이며 그 안에서 주법을 마무 리 해야된다. 쌍타척( 双 打 尺 ) 은 왼손 식지 손가락으로 정패척( 定 贝 尺 )을 누르고, 무명지로 전척( 全 尺 )을 누르며, 오른손 식지 손가락에 기대 한 번 스치고, 무명지로 한 번 잡아 뜯 은 후, 식지로 다시 한 번 건드리는 주법이다. 무명지는 연속 세 번 뜯어야 하는 이 주법 은 두 박자의 박자개념이다. 말육( 抹 六 ) 은 왼손 식지 손가락으로 육( 六 ) 을 누르고, 무명 지로 를 짚으며, 오른 손 식지에 기대어 살짝 건드리고, 왼손 무명지로 음( 音 )을 잡는 주법으로 반 박자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주법이다. 반범( 半 凡 ) 은 두 음이 서로 연결되게 식지 손가락을 아래로 누르고 엄지손가락을 튕기는 주법으로 반 박자 안에서 해결해야 하 는 주법이다. 단, 첫 음은 반드시 원음보다 낮은 음이어야 한다. 전범( 全 凡 ) 은 오른손 식 지를 이용하여 아래로 한번 튕기는 주법으로 반 박자 개념의 주법이다. 엄지를 위로 하고 집게손가락을 아래로 하여, 각각 빠르게 튕기는데 반 박자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주법이다. 엄지손가락이 위로 한 번 들어 튕기는 주법을 네 번 반복하는 경우는 두 박자 안에서 연주 해야하는 주법이다. 그러나 4음중 제3음은 반드시 원음보다 낮은 음이어야 한다. 35

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감반( 减 半 ) 은 부호, 으로 구분하여 표시한다. 악보 중에서 어떠한 연주법이든지간에 만약 에 이 감반( 减 半 ) 부호의 표시가 가 붙어 있다면, 연주 속도는 두 배로 빨리 연주해야 한다. 이상 위에서 설명한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복건 남음( 南 音 )의 공척보에서의 대부분의 박자개념은 비파지법( 琵 琶 指 法 ) 중 점( 点 ), 도( 挑 ), 거도( 去 倒 ), 연지( 摙 指 ), 갑선( 甲 线 ), 윤지( 抡 指 ) 를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전통기보법 중에서 음의 시가( 時 價 )의 특징을 정하는 중요한 원칙은 중국어의 성조 ( 声 调 )와 중음언어( 重 音 语 言 )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특징과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동 시에 유가사상( 儒 家 思 想 )의 사회인륜( 社 会 人 伦 )에 있어서의 극기평형( 克 已 平 衡 )을 강조하 는 것과도 관계가 있으며, 또한 도가사상( 道 家 思 想 )의 초연물외( 超 然 物 外 )와 상외지상( 象 外 之 象 )을 추구하는 것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만약에 중음언어( 重 音 语 言 )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영어와 성조언어( 声 调 语 言 )의 대표적 인 언어인 중국어 등, 세계 언어에서 전형적인 의미를 지닌 두 종류의 언어라고 할 때, 중 음언어( 重 音 语 言 )는 경중( 轻 重 )의 순환( 循 环 )을 강조하므로 음악요소에 있어서 박자와 리듬 이 특히 중요시되며 강약의 고르게 분포되는 특징이 있다. 이와 상반되는 개념체계를 갖고 있는 성조언어( 声 调 语 言 )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어서의 음고( 音 高 ), 음색( 音 色 ), 강약의 변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 강약의 변화도 엄격하지 않다. 박자 개념의 기준이 되 는 판( 板 ) 과 자( 字 )는 동일한 개념의 관계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순환( 循 环 ) 중의 글자 를 중음( 重 音 )으로 변화시키지는 않고, 글자의 성조( 声 调 )로 인해 생겨난 멜로디의 운율감 도 판안( 板 眼 ) 으로 고르게 나타났다고 해서, 이것이 강약으로 서로 고르게 나타나지는 않 는다. 판안( 板 眼 )은 결코 강약신호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며, 그것이 선율에 대한 관련성의 정도는 언어의 성조현상에 의하여 순화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고문( 古 文 )에 구두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악구( 乐 句 )와 악구사이에 명확한 구분과 박자의 표시가 없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연주수법을 악보화 하는 과정에 서 음악으로 표현되는 여러 요소 즉, 음고( 音 高 ), 음색( 音 色 ), 음의 강약변화를 분별해서 기록한다. 물론 동시에 연주 수법을 부호화 하여 음악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악보화 하고, 박자의 개념을 악보화 하면서도 표기되어야 하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지만, 모 든 음악을 완벽하게 악보화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중국의 수묵화( 水 墨 画 )가 자연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는 것과 일맥이 상통한 다. 중국 전통 음악의 악보에서 판에 박은 듯 세밀하게 모든 음악을 정확한 박자개념으로 조금의 빈틈도 없이 종이위에 재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명나라 주권( 朱 权 )의 신기비보( 神 奇 秘 谱 )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6

45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상권( 上 卷 )의 태고신품( 太 古 神 品 ) 16곡( 一 十 六 曲 )은 옛 사람이 만든 것이며, 그들이 16곡에 대한 비밀에 대해서 전하지 않았기에 뜻을 알려주는 말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통한 사람은 얻을 수 있가. 이것은 금도( 琴 道 )로서 음악만 전할뿐 악보와 글로서는 전해지지 않았다. 고 로 혜강( 嵇 康 ) 11) 은 평생을 연구했지만 역시 전수하지는 않았고, 백아( 伯 牙 )는 현을 다시는 연주 않았는데, 이는 금음악을 아무렇게나 전수하여 다른 이를 그르치려 하지 않음이었다. 上 卷 太 古 神 品 一 十 六 曲 乃 太 古 之 操, 昔 人 不 传 之 秘, 故 无 点 句, 达 者 得 之, 是 以 琴 道 之 来 传 曲 不 传 谱, 不 传 句, 故 嵇 康 终 其 身 而 不 传, 伯 牙 绝 其 弦 而 不 鼓, 是 琴 不 妄 传 以 示 非 人 故 也. 12) 여기에서 말하는 음악만 전하고 악보는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세한 악보 를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의 악보는 음악을 잊을까 우려되어 준비한 것이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용이여서, 그때부터 악보에 판안( 板 眼 ), 구두점을 찍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보 에 별다른 설명을 전하지 않는 습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 琴 )을 배우려고 큰 마음을 쓰는 하는 사람은 악보 속에는 없으나 스승과의 수업으로 전수받거나, 혹은 박자개 념과 세밀한 음악적인 표현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어, 금곡( 琴 曲 )의 판안 板 眼 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음악에서의 구두점의 배치를 몸으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소위 신기 비보( 神 奇 秘 谱 ) 중에 거론한 통달하는 자가 얻게 된다 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다. 이러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박자개념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유가사상( 儒 家 思 想 )이든 아니면 도가사상( 道 家 思 想 )이든 간에 모두 각기 여러 면으로 영향을 주었다. 유가( 儒 家 )에 서는 중용지도( 中 庸 之 道 )를 주장하며, 중화지미( 中 和 之 美 )적인 미학관( 美 学 观 )을 제창하고, 사회 인륜의 극기평형( 克 已 平 衡 )과 행위에 있어서의 규율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문화심리의 측면에서 박자의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본박자와 기보에 있어서의 리듬형태(일종의 기본박자 규칙)의 운용을 추구하게 된다. 도가( 道 家 )는 세속에 구속되지 않고 초연한 것을 강조하며, 형상 밖의 형상을 추구하고 심리적 리듬의 자유로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중국음악의 박자개념으로 하여금 대체적인 틀의 안 정적인 기초위에서 유연하게 융통성 있는 자유를 허용하였다. 기보법 중의 박자의 정형화 에 대한 상반되는 개념이며, 이를 위해 충분한 여지를 남겨준 것이다. 유가와 도가, 이 두 사상의 영향은, 중국전통음악의 독특한 박자 개념의 사유체계의 방식과 기록형태를 형성하 게 되었다. 이는 중국 전통 음악의 박자개념으로 하여금 평형을 유지면서도, 정확한 박자 11) 죽림칠현 중 한 사람으로 저명한 琴 艺 家 이자 철학가이다. 12) 明 朱 权, 神 奇 秘 谱, 中 央 音 乐 学 院 民 族 音 乐 研 究 所 据 明 刊 本 影 印 ( 北 京 : 音 乐 出 版 社, 1956), 2쪽. 37

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개념은 염두에 두지 않고 리듬의 분위기 혹은 정취에 대한 것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하고 정확한 기능적인 강약 반복의 박자 개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마음과 정신세계가 중요한 심리상의 감정적인 미학에 입각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 전통 악보 시스 템에 있어서 중요한 철학으로 자리 잡았고, 음고와 시가( 時 價 )의 기보체계로 끊어질 듯 단 절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리듬과 박자 개념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적용되어 기 운생동( 气 韵 生 动 )의 음악으로 중국 전통 음악 기보법의 분명한 특징을 형성하였다. Ⅱ. 보간강번( 谱 简 腔 繁 )과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 중국 전통 음악 기보법에서는 일반적으로 간략한 방식으로 악보를 기록하지만, 연주과정 에서는 오히려 정교하게 꾸미고, 살을 붙여 연주하게 된다. 이것을 보간강번( 谱 简 腔 繁 ) 이 라고 한다.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의 악보에는 비파음위( 琵 琶 音 位 )와 연주수법( 演 奏 手 法 )만 기록되어 있고, 선율의 핵심적인 부분인 골격음만 표시되어 있어서, 사실상 노래를 부르거 나 연주하는 과정에서 윤색을 가하거나, 즉흥적으로 잔가락을 넣어 연주자의 음악적인 능 력을 심분 발휘할 수 있고, 또한 응당 그래야 한다. 때문에 이러한 비파 악보를 지골( 指 骨 ) 이라고 부른다. 즉,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지법과 골격음, 강보관계( 腔 谱 关 系 )를 간략하 게 기록한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 악보이다. 악보가 골격음의 틀을 기록함에 있어서 마치 사 람의 몸속의 뼈대만 추려서 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 살을 붙여 풍부하고 매끄 럽고, 화려하게 노래하는 것은, 마치 뼈 위에 적당히 풍만하고 균형이 잘 잡힌 피와 살이 올려진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다.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의 노래와 연주 중, 7음음계의 처리 에 있어 비록 각 관문( 管 门 ) 13) 의 기보법 중 기본악보에는 모두 5음음계의 골격음만 기록 되어 있지만 14), 실제로는 노래 선율과 퉁소( 洞 箫 ), 이현( 二 弦 )의 연주에 있어서 변궁( 变 宫 ) 과 변치음( 变 徵 音 )이 자주 나타난다. 골격악보에 상응하는 노래와 퉁소, 이현( 二 弦 )의 연주 에 있어서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부드럽고 완곡하게 들리는 것은, 골격악보에 살을 올려 연주하는 것 이다.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 에서는 변궁( 变 宫 ), 변치( 变 徵 )를 첨가하는 여러 방 식으로 나타기도 하거나, 혹은 장3도 음정을 쌓거나 하는 방법으로 기본 골격음에 살을 붙 13) 역자주, 관문( 管 门 )은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한국의 돌장과 같은 개념이다. 14) 오공관( 五 空 管 )이 G궁( 宮 ) 계통과 c궁( 宫 ) 계통의 종합은 예외이다. 38

47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이기도 한다. 15) 골격음에 살을 붙이는 방법에는 꾸밈음을 더하는 장식적인 방법을 비롯하 여 윤강성( 润 腔 性 ), 대체성( 代 替 性 )으로 노래 선율과 퉁소, 이현( 二 弦 )의 연주 및 비파의 연주 사이에 옆으로 혹은 위와 아래로 7음과 6율( 六 律 ), 5성 으로 자유롭게 멋을 부리는 것 등이 있다. 옆으로 살을 붙이는 예로는 노래 선율을 비롯하여 퉁소, 이현의 선율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5음음계를 주요 골격으로 하여, 사이에 변궁( 变 宫 ), 변치( 变 徵 ) 넣거나 혹 은 7음으로 5음음계를 장식하여, 멜로디 라인을 더욱 부드럽고 섬세하게 만드는 것이다. 종( 纵 )적으로는 위와 아래에 멋을 부리는 것은 비파, 삼현( 三 弦 )의 5음음계 선율을 연주하 는 기본적인 골격라인에 노래와 퉁소, 이현이 각각의 독특한 변주형식( 变 奏 形 式 )으로 변궁 ( 变 宫 )와 변치( 变 徵 )가 첨가하는 형식으로 멋을 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기본골격에 종 적으로 멋을 더한 곡조는 마치 구름이나 물이 유유히 흘러가듯 순창하고 우아하며 아름답 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결합하여 마치 아름다운 옥이 합친 듯, 진주를 꿰어 놓은 듯 빛이 나고, 뼈와 살이 서로 붙어 있듯이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래 <산험준( 山 险 峻 )>의 한 단락을 예로 들어 비파의 기본적인 악보와 노래선율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해 보았다. <악보 4> 복건남음 음악 <산험준( 山 险 峻 )> 중 한 단락 15) 자세한 내용은 福 建 南 音 唱 腔 旋 法 中 的 多 重 大 三 度 并 置, 王 耀 华 刘 春 曙, 福 建 南 音 初 探 ( 福 建 : 人 民 出 版 社, 1990), 42-58쪽에 수록되어 있다. 39

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러한 골보세강( 骨 谱 细 腔 )과 보간성번( 谱 简 声 繁 )의 상황은 복건성의 남음( 南 音 ) 음악 중 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다양한 민간음악과 고대음악의 문헌에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음악( 京 音 乐 ) 악보에도 악곡( 乐 曲 )의 골격에 해당하는 노래 선율만 있지만 실제로 연주할 때에는 각종 독특한 장식음( 装 饰 音 )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는 악보상의 기록의 골격음으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것이다. 16) 또 다른 예로는 서안고악( 西 安 鼓 乐 ) 중에 등장하는 형합( 哼 哈 ) 이라는 방법이다. 이 방 법으로 악보를 따라 곡조를 불러보면, 악보상에는 없었던 음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경과 음형합( 经 过 音 哼 哈 ) 을 비롯하여, 중복음형합( 重 复 音 哼 哈 ), 장식음형합( 装 饰 音 哼 哈 ), 쌍 음형합( 双 音 哼 哈 ) 등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7) 고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이와 관련된 사례인 곡조와 악보 관계에 대해서는 임이북( 任 二 北 )의 당성시( 唐 声 诗 ) 중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18) 그중에 보면 악보라는 것은 간략하게 한 글자가 한 음을 내는 것은 매 곡이 다만 주강( 主 腔, 주선율)와 정 판( 正 板, 정박자)을 나타낼 뿐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할 때는 반드시 늘려야 된다.[ 必 有 所 增 益 ] 글이 있고, 특히 골간재보( 骨 干 在 谱 ), 충지피육( 充 之 皮 肉 ) 등의 사례는 사실상 바로 중국에서 현재까지 존재하는 옛 민간 음악의 장르에서 흔 하게 나타나는 보간성번( 谱 简 声 繁 ) 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복선성의 남음( 南 音 )음악의 골 보세강( 骨 谱 细 腔 ) 은 자연히 중국 고대 음악에서 곡조와 악보 시스템의 전통을 계승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중국 전통음악 기보법에서의 보간강번( 谱 简 腔 繁 )과 골보육강( 骨 谱 肉 腔 )의 특징은 한편으로는 중국전통음악에 있어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미 중에서도 사실( 写 实 ) 중요시 여기는 것 의 미학( 美 学 )적 원칙과 관련이 있다. 다른 한 편으 로는 중국전통음악의 말로 전수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구전심수( 口 传 心 授 ) 전승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전통 예술 문화의 기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전통음악음악의 창의적인 개념 에서는 법( 法 ) 과 의미( 意 味 ) 가 대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항목이다. 법( 法 ) 은 바로 격식 과 형식 으로 일정한 규칙을 세워서 법( 法 ) 으로 삼고, 격식위에 의미( 意 味 ) 를 세우 16) 潘 怀 素, 从 古 今 乐 谱 论 龟 兹 乐 影 响 下 的 民 族 音 乐. 转 引 自 任 半 塘, 唐 声 诗 上 编 ( 中 國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188-9쪽. 17) 李 石 根, 西 安 鼓 乐 谱 解 读 油 印 本, 李 健 正 余 涛, 西 安 古 乐 谱 概 述 ( 中 國 : 西 安 音 乐 学 院 学 报, 1983). 18) 任 二 北, 唐 声 诗 ( 中 國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40

49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는 것이 중국음악의 개념이다. 중국 전통 음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격식 은 고전희곡의 극음악중의 격식이다. 첫 번째는 성강( 声 腔 ) 19) 과 곡패( 曲 牌 ) 20) 이다. 그것들은 일정한 선 율의 틀로서 정형화된 형식이나 류파의 특징을 담아낸 선율의 스타일이다. 먼저 다양한 감 정의 선율형을 담아 류파를 형성한 독특한 특징을 표출하고, 그 다음은 극음악속의 다양한 배역의 특징을 담아내서 성강( 声 腔 ) 과 곡패( 曲 牌 ) 가 완성된다. 표현해야 할 수 많은 인 물들을의 성별, 직업, 사회지위, 품성, 행동거지에 따라서 생( 生 ), 단( 旦 ), 정( 净 ), 말( 末 ), 추( 丑 )의 다섯 종류로 배역으로 구분된다. 중국 극음악의 배역은 여기에 기초해서 좀 더 세분화된다. 생( 生 )은 노생( 老 生 ), 무생( 武 生 ), 소생( 小 生 )으로 나누며, 노생( 老 生 )은 다시 문노생( 文 老 生 )과 무노생( 武 老 生 )으로, 소생( 小 生 )은 문소생( 文 小 生 )과 무소생( 武 小 生 ), 가 난한 궁핍소생( 穷 小 生 )으로 나뉜다. 단( 旦 )은 정단( 正 旦, 혹은 青 衣 ), 규문단( 闺 门 旦 ), 신 선단( 神 仙 旦 ), 무단( 武 旦 ), 화단( 花 旦 ), 채단( 彩 旦 ), 노단( 老 旦 )으로 구분되고, 정( 净 )은 대 화검( 大 花 脸, 혹은 正 净 ), 이화검( 二 花 脸 혹은 武 净 ), 백검( 白 脸 )으로 세분화 된다. 말( 末 ) 은 검은 수염을 단 참염( 黪 髯 )과 흰 수염을 단 백염( 白 髯 )을고 구분된다. 추( 丑 )는 문추( 文 丑 ), 무추( 武 丑 ), 소추( 小 丑 )가 있다. 각각의 캐릭터의 배역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발성방 법, 음색, 음역( 音 域 ), 행강( 行 腔 ), 윤강( 润 腔 ) 방법이 모두 다르며, 곡조를 부르는데 있어 각기 배역의 인물들만의 구체적인 성강( 声 腔 ) 과 곡패( 曲 牌 ) 의 틀을 갖고 있다. 이처럼 디테일하게 분류되어 있는 캐릭터의 배역의 기초 위에서 배역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 을 거쳐야 딱 맞는 음악이 정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인물의 성격과 감정이 변화하는 각 단계를 비롯하여, 내용의 순서에 따라 다양한 박자 체계인 판식( 板 式 ), 노래하는 배우의 목 사용 체계인 행강( 行 腔 )이 사용되어 노래의 단락( 唱 段 )과 구절이 만들진다. 심지어는 한 노 래 중간의 가사( 唱 词 )에서도 단어나 글자를 감정의 세심한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큰 폭으 로 리듬을 바꾸고 음색과 발성의 기복( 起 伏 )을 준다. 이상에 기술한 이러한 방법의 특징은 극음악의 노래 곡조를 여러 큰 분류로 나누고 다시 인물에 따라 몇 유형으로 요약한 것이 다. 그런다음 세세하게 층층이 나누고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다스리는 계층체계를 형 성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에 따른 다양한 계층과 세분화된 체계에 맞는 기보법은 대강의 골 격음으로만 기록되고, 자세한 장식적인 노래부분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하 19) 역자주, 성강( 声 腔 )은 중국의 극음악에 나오는 용어로 곡조( 曲 調 ). 선율( 旋 律 ). 멜로디(melody)의 의미이다. 여러 종류의 극음악에서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체계화된 높낮이와 리듬을 지닌 음의 흐름을 말한다. 20) 역자주, 곡패( 曲 牌 )는 중국의 극음악과 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정형화된 형식이나 류파의 특징 을 담은 선율진행을 말한다. 41

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는 것이 일반적인 중국 극음악의 기보법이다. 다양한 종류의 발성과 음악적인 스타일의 기 본적인 틀만을 악보에서는 제공하고, 음악으로 재연하는 배우들과 음악인들은 골격음에 자 신의 경험을 더해 살을 붙인 매끄럽고 화려한 음악으로 창조하는 역할은 음악인들의 몫으 로 음악 현장에서 비로서 완성되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배우인 동시에 작곡가로서 역 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인물, 이야기 줄거리, 감정의 흐름에 따라 예술 가들이 직집 재창조해 내는 것이다. 소위 틀은 음악 있고, 색깔은 노래에 있다( 框 格 在 曲, 色 泽 在 唱 ) 는 것이다. 즉, 골격음만 기록하여 악보는 틀이라는 기초을 제공하고, 거기에 속 도( 速 度 ), 박자( 节 奏 ), 선율( 旋 律 )의 꾸밈으로 윤색되거나, 간화( 简 化 ), 긴축( 紧 缩 ) 등 변화 를 통하여 여러 인물들의 유형과 각각의 배역, 감정의 발전 단계, 구( 句 ), 사( 词 ), 자( 字 )의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천편일률적인 단조로움의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스승이 직접 전수하고 마음으로 익히는 구전심수( 口 传 心 授 ) 방법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 계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승방식 중 하나이다. 비록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유럽 서구음 악의 유입은 구전심수에 의한 전승방식의 의존도가 조금은 줄기도 했지만, 그러나 중국음악 의 전승과정에서는 여전히 구전심수의 전승방식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중요하다. 음악대 학에서 전공자들에게 진행되는 전공 레슨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전승방법으로 진행되 며 음악대학의 노래 전공자들의 개별수업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중국 전통 음악이 발 전하는 과정에서 구전심수 방식을 특히 중요시 했는바, 스승과 제자가 얼굴을 맞대고 전수 받기를 요구하였고, 이는 악보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었다. 청나라의 왕덕휘( 王 德 晖 ), 서원징( 徐 沅 澂 )은 고오록( 顾 误 录 ) 중에서 안보자독( 按 谱 自 读 ) 21) 을 음악을 배우면서 경계 해야 할 여섯 가지인 학곡육계( 学 曲 六 戒 ) 중 하나로 포함 시켰다. 이 책에는 공척( 工 尺 ) 의 높낮이에 대해서 조금 안다고 말로 전해줄 필요가 없다고 했고, 자신이 곡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읽으며, 섬세한 소리와 정교한 노래를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고, 대충 박자는 맞춘다 고 하더라도 그저 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곡조가 잘못 적혀있고 틀린 글자가 있 고, 악보의 음이 부족해도 전혀 파악이 안 되며, 곡조나 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감정과 리 듬, 어조에 대해서는 악보는 전혀 업급이 없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고 기록되어 있다. 22) 그 원인을 따져보면 중국 전통 음악은 스승에게 직접 전수 받고, 마음으로 깨닫는 전수방식인 구전심수 방법에 이토록 많이 의존하는 것은 이러한 방법이 신운( 神 韵 )를 전승 21) 역자주, 안보자독( 按 谱 自 读 ) 은 악보를 보며 독학으로 음악을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22) 재인용 자료, 自 袁 青, 戒 按 谱 自 读 今 解, 李 元 庆, 民 族 音 乐 问 题 的 探 索 ( 北 京 :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3), 113쪽. 42

51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하는데 유리하다 생각 했으며, 이러한 전수방법이 창의성의 발양에 크게 도움이 되고, 개별 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전수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 예술 전통 중에서 운( 韵 ) 은 최고의 미학의 범위 안에 드는 것으로 내재적이 며 정신적인 정취와 선율의 움직임의 추구이다. 중국 음악의 신운( 神 韵 )은 선율의 선적인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고저기복( 高 低 起 伏 ), 강약교차( 强 弱 交 替 ), 허( 虚 )와 실( 实 ) 과 함께 연결되어 이웃하고 있는데, 빠르고 늦음의 변화로 만들어진 리듬감은 개체로 내재 되어, 심리적 감수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의 특징은 중국 전통음악 이 특히 개인의 느낌과 깨달음을 중요시하여 음악 외적으로 함유된 것과 신운( 神 韵 )외의 경지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구전심수는 스승이 제자로 하여금 악기로 연주되는 물리적인 소리의 외적인 것을 느끼게 하며, 물리적인 소리 밖에서의 여운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가 장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이러한 구전심수의 전통은 악보에 대한 의존을 크게 줄 여주었다. 주권( 朱 权 )의 신기비보( 神 奇 秘 谱 ) 에는 이런 글이 전한다. 만든 사람이 각각이듯이 통달하는 사람도 그 천성에 따라 각각 다르다. 피차의 입장이 다르 며, 세속의 흐름 또한 각기 다르다. 혼탁한 것에 섞이지 않고, 하늘 아래 깨끗함을 자랑하고 그 뜻이 사물 의외의 것을 추구하고, 우주에 이르며 그 몸은 돌연 천하에 하나가 된다. 그 함양과 자신이 얻은 뜻은 아주 작은 곳에서 나타나고, 우아한 정취에서 발산하며, 도의 기묘 함에서 합쳐져 자신의 뜻을 더욱 즐겁게 하니, 어찌 앞사람의 흥을 깨고 자신의 뜻을 쓸 수 있겠는가! 각자 도( 道 )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같지 않은 사람은 똑 같이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비천해지게 한다. 概 其 操 间 有 不 同 者, 盖 达 人 之 志 也 各 出 乎 天 性, 不 同 于 彼 类, 不 伍 于 流 俗, 不 混 于 污 浊, 洁 身 于 天 埌, 时 志 于 物 外, 扩 乎 与 太 虚, 同 体 泠 然 洒 于 六 合. 其 涵 养 自 得 之 志 见 微 轮, 发 乎 避 趣, 诉 于 神 明, 合 于 道 玅, 以 快 己 之 志 也, 岂 肯 蹈 袭 前 人 之 败 兴 而 写 已 之 志 乎, 各 有 道 焉! 所 以 不 同 者 多, 使 其 同 则 鄙. 23) 이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금곡( 琴 曲 )을 포함하여 중국 전통음악은 개인의 창조적인 음악성의 발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의 마음이 같을 23) 明 朱 权 神 奇 秘 谱, 中 央 音 乐 学 院 民 族 音 乐 研 究 所 据 明 刊 本 影 印 ( 北 京 : 音 乐 出 版 社, 1956), 3쪽. 43

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수 없는데, 음악이 같다는 것은 비천 할 수 밖에 없다 는 음악적인 미학이 자연스럽게 자 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부동( 不 同 ) 에 이르기 위해서 개성( 个 性 ) 을 존중하고 발 전시키고, 각각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에서 중요한 점이 다. 즉, 소위 말하는 통달한 사람의 뜻이라 함은 바로 각각의 천성이 무리들과 서로 다름 에서 나온다. 라는 것이고, 동일한 곡조를 연주할 때도 다양성과 창조성을 허용하는 것이 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도 구전심수의 전승방법이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교육방법이었 다. 만약 악보에 상세하게 기보되어 매 선율에 있어서의 발휘될 수 있는 음들을 기록하고, 박자에 해당되는 구두점을 표시해 놓았다면, 비록 오늘날 정확한 연주에 있어서는 편리하 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연주자에 의해서 새롭게 재창조될 여러 가능성을 닫아놓는 것이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골격보 악보를 기초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중에 음악의 여러 다 양성이 표현되는 객관적인 자료가 제공하게 되었다. 이는 창조성의 싹을 틔우는데 있어서 도 매우 유리하며, 골격음의 범위를 기초로 그 위에 여러 가지 장식적인 것으로 윤색( 润 饰 )을 하며, 기본적인 것에 살을 붙여 화려한 음악으로 완성되며 각자의 얻을 바를 얻고, 궁극에는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이루게 된다. 중국 전통음악이 후대에 전승되는 데에 어려움이 있거나, 혹은 비밀리에 전승되는 금곡 ( 琴 曲 )은 대부분이 수준이 높아서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적었던 데에 원인이 있었다. 이것은 옛 사람들은 그 비밀을 전수하지 않았다[ 昔 人 不 传 之 秘 ], 혜강은 평생 연구 했지 만 전하지는 않았다[ 嵇 康 终 其 身 而 不 传 ], 금( 琴 )은 함부로 전수하지 않는다[ 琴 不 妄 传 ] 등의 기록을 통해서 당시의 이러한 음악문화를 알 수 있다. 또한 조상으로부터 전해져온 뛰어난 기술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며느리에게는 전수해도 딸에게는 하지 않 는다 는 상황에 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슬하에 아들이 없다면, 자신의 기술 을 차라리 무덤으로 가져가겠다는 말도 있다. 이상과 같이 간단하게 적혀 있는 골격악보는 행여 음악을 잊을까봐 참고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며, 중요한 것은 구전심수의 전승방식 에 의존해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전승되는 방식을 고수한다. 44

53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Ⅲ. 복건남음과 중국전통음악기보법의 음악학적 함의( 涵 意 ) 중국 전통음악의 여러 기보법 중에는 모두 풍부한 음악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 면 필자의 중국전통음악악보학( 中 国 传 统 音 乐 乐 谱 学 ) 에서 언급했던 보연기( 谱 连 器 ), 율 ( 律 ), 조( 调 ) 가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중국 전통음악의 기보법이 다양한 악기( 乐 器 ), 악률 ( 乐 律 ), 악조( 乐 调 )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는 악보( 乐 谱 ), 악기( 乐 器 ), 악률( 乐 律 ), 악조( 乐 调 )가 서로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의 기보법에도 음악학적인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남음보( 南 音 谱 )의 기본 보자( 谱 字 )와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남음의 조성과 관련되어 있는 조문( 调 门 )은 관문( 管 门 ) 이라고 하며, 오공관( 五 空 管 ), 사 공관( 四 空 管 ), 오공사체관( 五 空 四 管 ), 배사관( 倍 思 管 ) 등이 있다. 앞에 나열된 조( 调 )와 관련된 이름은 역사상의 음악적 현상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까? 혹은 이름의 유래는 어디에 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원( 词 源 ) 에는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배사두관( 倍 思 头 管 ) 24) 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많은 유익한 증거물을 제시해 준다. 복건남음의 악보는 모두 확실한 고정적 음고( 音 高 )와 관련이 있다. 그 기본적인 악보와 고정 음고와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악보 谱 字 : 尺 工 六 乙 음고 音 高 : c d e g a <그림 2> 복건남음 공척보와 음고 이것을 중국 민간음악에서 통용되고 있는 공척보( 工 尺 谱 )와 비교해 보면 남음( 南 音 )의 음조( 音 调 )는 공척보( 工 尺 谱 ) 칠조( 七 调 )중의 상자조( 上 字 调 ) 의 악보와 그 음고( 音 高 )가 일부 부합되는 점이 발견된다. 24) 张 炎, 词 源,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 中 國 : 中 华 书 局, 1986). 45

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그림 3> 공척보 상자조( 上 字 调 )와 남음 기본악보비교 이 중 尺 은 che(체) 로 읽고, 그 의미도 尺 과 같다. 은 士 (스) 음으로 읽으며, 五 의 옥타브 아래는 四 와 서로 통하고, 六 은 상자조( 上 字 调 )에서는 f 음이며, 남음( 南 音 )에서는 e 음으로만 반음 차이가 난다. 만약 남음( 南 音 )의 기보법의 용어를 빌려 상자조 上 字 调 의 六 을 正 六 이라고 부른다면 남음( 南 音 )의 六 은 倍 六 이 된다. 그 이유는 남음 ( 南 音 )의 배사관( 倍 思 管 ) 에서 贝 士 (#f) 가 正 士 (g) 보다 반음이 낮고, 倍 尺 (B)은 正 尺 (c) 보다 반음이 낮기 때문이다. 倍 는 바로 반음이 낮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倍 六 이 담고 있는 뜻은 공교롭게도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 에서 기술된 내용과 맞다. 사원( 词 源 ) 권상( 券 上 ) 음보( 音 谱 ) 조항에는 법곡( 法 曲 )은 배사두관품( 倍 四 头 管 品 )으 로 하는데, 그 소리가 맑고 뛰어나다. 대곡( 大 曲 )은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으로 하는데 그 소 리가 유창하고 아름답다. 만곡( 慢 曲 ), 인( 引 ), 근( 近 )만 다르며 이름을 소창( 小 唱 )이라 고 하고, 글자를 발음할 때 맑고 원활하게 해야 하고, 아필률( 哑 筚 篥 ) 합치된다. 25) 두관 ( 头 管 ) 은 즉, 필률( 筚 篥 ) 혹은 필률( 觱 篥 ) 이다. 그 악보 속의 음을 소리로 만들면 상기 ( 象 器 )에서 가장 뛰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취교방( 鼓 吹 教 坊 )에서 사용을 하였으며, 이러한 연고로 두관( 头 管 ) 이 되었다. 26) 장염( 张 炎 )의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과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의 함의에 대해서는 역대로 여 러 견해가 존재한다. 동문( 童 雯 )의 중악심원 中 乐 寻 源 중에는 이 악기가 소날( 苏 捺 ) 과 기날( 叽 捺 ) 의 두 종류이며, 후대에 수르나이(태평소 혹은 唢 呐 )와 비슷한 악기라고 했다. 이책 书 의 상책( 上 册 ) 29쪽에는 이 악기를 필률( 觱 篥 ) 로 보았고 두 종류가 있다고 기록되 어 있다. 큰 것은 속칭 소날( 苏 捺 ) 이라고 하고 소리가 우렁차며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이 이에 해당된다. 작은 것은 속칭 기날( 叽 捺 ) 이라고 부르며 소리가 맑고 청아하다. 배육두 관( 倍 六 头 管 ) 이 작은 악기에 해당된다. 아필률( 哑 觱 篥 ) 은 지금의 두관( 头 管 ) 이다. 이는 대나무로 관을 만들며 호가 27) 식 증음기( 增 音 器 )가 없는 악기이다. 부드러운 갈대로 서를 25) 张 炎, 词 源 音 调,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 中 國 : 中 华 书 局, 1986). 26) 陈 旸, 觱 篥, 乐 书 卷 一 百 三 十. 46

55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만들고, 길이는 일촌( 一 寸 )정도 되었으며, 소리가 구성지고 부드러운 악기이다. 피리보다는 소리가 낮고, 퉁소보다는 높은 악기이다. 28) 이것이 그 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임겸삼 ( 林 谦 三 )의 동아악기고( 东 亚 乐 器 考 ) 에서 배육( 倍 六 ), 배사( 倍 四 )는 대개 대소필률( 大 小 筚 篥 )과 밀접한 음률( 音 律 )의 관계가 있다. 29) 고 했다. 위의 두 가지 견해에서 필자는 임 겸삼의 예가 더 타당하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필자는 한편,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 에서 언급한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의 기보법이 지금 남음( 南 音 ) 음악 기보법의 기본음체계 와 긴밀하게 연계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위에서 이미 말한바와 같이 배육( 倍 六 ) 과 복건남음( 福 建 南 音 ) 의 六 자의 관련 외에 이하 두 가지를 근거로 제시한다. 첫 번째는 송대필률( 宋 代 筚 篥, 혹은 管 )의 음고 표준 문제이다. 양음류( 杨 荫 浏 )선생은 송 강백석창작가곡연구( 宋 姜 白 石 创 作 歌 曲 研 究 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관( 管 : 강백석이 말한 이 악기는 아필률각( 哑 觱 栗 角 ) 이다)은 교방연악( 教 坊 燕 乐 )의 중요한 악기 이며, 또한 사악( 词 樂 )의 조( 调 )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요악기( 乐 器 )이다. 관( 管 )과 소( 箫 )를 비교해보면, 소( 箫 )는 아악( 雅 乐 ) 의 표준음고를 대표하고, 관( 管 )은 교방악( 教 坊 乐 )의 표준음고를 대표한다. 전자( 前 者 )의 가장 낮은 合 은 d 1 이고, 후자( 後 者 )의 최저음 合 은 송( 宋 )의 희녕( 熙 宁 )에서 원우( 元 祐, )까지의 일정기간 동안의 교방율( 教 坊 律 )로 적용해 볼 때 f 1 음보다 높았고 e 1 에 이른다. 평균적인 음고는 f 1 음을 전후로 추 정되는데, 지금의 지화사( 智 化 寺 )가 쓰는 제공전안( 诸 孔 全 按 ) 으로 얻은 태평소 계통의 악 기 대초( 大 哨 )의 정조( 正 调 ) 合 음의 높이와 같다. 30) 양음류( 杨 荫 浏 )선생은 여기에서 송나 라시대의 필률( 筚 篥 )의 合 음의 높이는 f 1 음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더나아가 지화사 ( 智 化 寺 )의 관악기 대소( 大 哨 )의 정조( 正 调 ) 合 음의 높이와 같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이 러한 음고에 대한 표준은 오늘날에 와서도 남아있는 고대 종( 种 ) 종류의 악기로 증명 된 다. 여기에 더해 남음( 南 音 ) 음악의 퉁소( 洞 箫 )의 음고( 音 高 ) 역시 위에서 설명한 소( 箫 )의 표준음고( 标 准 音 高 )와 같다. 가장 작은 입김인 저취로 얻은 통음( 筒 音 ) 은 d 음이고, 중간 의 평평한 힘인 평취로 얻은 통음( 筒 音 ) 은 d1 음이다. 두 번째는 필률( 筚 篥, 혹은 피리나 管 )의 악보에서 사용되는 음높이에 해당되는 문자에 대한 문제이다. 진양( 陈 旸 )은 필률( 觱 篥 ) 악보에 대해 오늘날 교방( 教 坊 )에서 사용하는 상 27) 역자주, 옛날 북방 민족의 피리와 비슷한 관악기. 원래 갈대잎을 말아서 만들었다. 28) 童 雯, 앞의 책 29쪽. 29) 林 谦 三, 东 亚 乐 器 考 ( 中 國 : 音 乐 出 版 社, 1962). 30) 杨 荫 浏 阴 法 鲁, 宋 姜 白 石 创 作 歌 曲 研 究 ( 中 國 : 音 乐 出 版 社, 1957). 47

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칠공( 上 七 空 ), 후이공( 後 二 空 )은 五, 凡, 工, 尺, 上, 一, 四, 六 勾, 合 등의 10개의 소 리를 이용하여 악보로 만든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31) 음표에 해당하는 10개의 글자와 함 께 또한 각음( 各 音 )의 음위( 音 位 )를 표시하는 도식( 图 示 )이 있다. 서술한 두 가지를 가설( 假 說 )로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은 필률음위( 觱 篥 音 位 )의 음높이 그림을 얻을 수 있다. <그림 4> 필률음위( 筚 篥 音 位 ) 음고도( 音 高 图 ) 위의 설명에 근거해 볼 때, 만약 남음( 南 音 )의 倍 의 의미에 적용해서 본다면 필률( 筚 篥 )의 倍 六 은 바로 b f 음이며, 결국 이명동음으로 e 음이 된다. 이는 예전의 남음( 南 音 ) 음악에서 사용된 사공관( 四 空 管 )을 정조( 正 调 )로 본예와 같다. 四 六 을 正 六 으로, 五 六 을 倍 六 으로 간주하던 것과 같은 것으로 아래의 표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림 5> 필률 공척보와 남음 공척보의 비교 이상과 같이 연구한 결과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과 남음( 南 音 )음악의 각각의 악보는 음의 높이가 완전히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음( 南 音 )의 공척보에서 음높이에 해당되는 문자 의 음높이 위치와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 에서의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의 기보방식은 기 본적으로 일치한다. 남음의 기본적인 악보 체계가 바로 현재의 기본 관문( 管 门 ) 오공관( 五 31) 陈 旸, 觱 篥, 乐 书 卷

57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空 管 ) 의 악보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음음악의 오공관( 五 空 管 )(혹은 五 空 调 ) 와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의 선법과 음계 역시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관문( 管 门 ) 이름과 의미에 관련된 연구 남음( 南 音 ) 오공관( 五 空 管 ) 과 배육두관( 倍 六 头 管 ) 의 선범과 음계가 상당히 밀접한 관 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남음음악의 관문( 管 门 )은 倍 六 으로 명명하지 않고, 오공관( 五 空 管 ), 사공관( 四 空 管 ), 오공체사관( 五 空 四 管 ), 배사관( 倍 思 管 ) 등 각각 다른 이름의 관문 ( 管 门 ) 구분하여 지칭한다. 이러한 관문( 管 门 )의 이름은 곧, 조( 调 )와 관련된 조문( 调 门 )에 해당 된다. 오공관( 五 空 管 )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공척보는, 尺 (c 1 ), 工 (d 1 ), 六 (e 1 ), (g 1 ), 乙 (a 1 ), 伬 (b 1 ), 仜 (d 2 ), (e 2 ) 이다. 이것을 오음음계로 이입해 본다면 c 를 宫 으로 하는 오음 음계와 g 를 宫 으로 하는 오음음계로 합일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g 음을 宫 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c 음 宫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오공사척 관( 五 空 四 伬 管 ) 의 예도 있다. 사공관( 四 空 管 )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공척보는, 尺 (c 1 ), 工 (d 1 ), 六 (f 1 ), (g 1 ), 乙 (a 1 ), 伬 (c 2 ), 仜 (d 2 ) 이다. 이것은 f 음 宫 계통으로 치( 徵 ), 우( 羽 ), 궁( 宫 ), 상( 商 ), 각( 角 ), 치( 徵 ), 우( 羽 )에 해당된다. 이러한 것을 왜 오공관( 五 空 管 ), 사공관( 四 空 管 ) 이라고 불렀을까? 이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남음음악 자체로 볼 때 이는 퉁소( 洞 箫 )의 지공( 指 孔 )과 관련이 있다. 오 공관( 五 空 管 )은 앞의 다섯 번째 구멍을 열고 六 음을 불기 때문이고, 사공관( 四 空 管 )은 네 번째 구멍을 열고 六 음을 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지금의 필률( 筚 篥 )에서도 찾을 수 있 는데, 역시 지공의 위치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즉, 필률의 관대의 다섯 번째 구멍에서 얻은 d 1 음을 치음( 徵 音 )으로 하고 이를 오공관( 五 空 管 )이라고 한다. 필률의 관대의 네 번째 구멍에서 얻은 음인 c 1 음을 치( 徵 )음으로 한다면 이것은 사공관( 四 空 管 )이 되는 것이다. 49

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그림 6> 필률 지공과 오공관 사공관 관계도 이처럼 다섯 번째 지공과 네 번째 지공을 치( 徵 )로하고, 치( 徵 )가 주( 主 )가 되는 개념으 로 오공관, 사공관 등 이름의 기원이 되었고, 이것은 현재 남음음악의 관문( 管 门 )의 작 명원리와 같으며, 중국 민간음악이나 혹은 고전음악의 기타 장르에서 넓게 유행된 공자위 주( 工 字 为 主 ), 육자위주( 六 字 为 主 ) 32) 및 이상위중심( 以 上 为 中 心 ) 33) 등의 조( 调 )의 명칭 ( 名 称 ) 역시 동일한 원리의 큰 줄기 중 다른 지류( 支 流 )이다. 그러나 남음음악의 조문( 调 门 ) 명칭( 名 称 )이 완전하게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오공사체관( 五 空 四 管 ), 배사관( 倍 思 管 ) 등의 이름은 자신의 특 정적인 음의 위치에서 온 것이다. 오공사체관( 五 空 四 管 )은 오공관( 五 空 管 )의 공척보의 음의 위치를 기초로 하였지만 고 음의 伬 이 伬 (b 1 ) 위에 있지 않고, 사공관( 四 空 管 )의 伬 (c 2 )에 위치해 있어 오공사척관 ( 五 空 四 伬 管 ) 이라고 부르고, 또한 六 음이 오공관( 五 空 管 )의 六 (e 1 )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육사척관( 五 六 四 伬 管 ) 이라고 한다. 사용되는 공척보와 해당 음고( 音 高 )는 다음과 같다. 32) 杨 荫 浏, 中 国 音 乐 史 纲 ( 上 海 : 上 海 万 叶 书 店 印 行, 1952), 杨 荫 浏, 河 北 定 县 管 乐 曲 集 ( 中 國 : 音 乐 出 版 社, 1956) 참고. 33) 袁 静 芳, 鲁 西 南 鼓 吹 乐 选 集 ( 中 國 :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0) 참고. 50

59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그림 7> 오육사척관( 五 六 四 伬 管 ) 공척보와 음고 배사관( 倍 思 管 )은 (g 1 ) 음을 반음 내린 것을 특징으로 한다. 다른 표기로는 (#f 1 ) 이고, 이것 조문( 调 门 )의 명칭( 名 称 )이 되었다. 이에 상응하는 尺 (c 1 ) 음은 반음 내린 음 으로 (b)로 표기한다. 그 공척보의 음고는 아래와 같다. <그림 8> 배사관( 倍 思 管 ) 공척보의 음고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 적용한다면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 중에 거론 된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의 공척보에 대해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먼저 배( 倍 ) 와 배사( 倍 四 ) 가 무엇인지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중국 고대 음악론 중에서 비교적 보편적인 견해는 倍 와 清 이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심괄( 沈 括 )은 옛 법에는 다만 오음( 五 音 )이 있었고, 금( 琴 )은 비록 여기에 더해 소궁( 少 宫 ), 소상( 少 商 )이 있지만 각각 금( 琴 )의 현( 弦 )을 사용함에 있어 각각 반율( 半 律 )의 개념이며, 이것은 바로 율려 청배법( 律 吕 清 倍 法 )이다. 34) 라고 자신의 책에 기록 한 바 있 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청배법( 清 倍 法 ) 이다. 즉, 바로 위와 아래의 옥타브 관계를구분하 여 악보로 표기하는 것으로, 옥타브위는 청( 清 ) 이고, 옥타브 아래는 배( 倍 ) 이다. 이것의 또 다른 예는 증후을( 曾 侯 乙 ) 묘에서 출토된 종에 새겨진 명문에서 발견된다. 음높이 부호 로 사용된 자( 字 )는 옥타브를 기준으로 분류를 했을 때 가장 낮은 음역의 구룹이라는 뜻의 앞의 장식이다. 낮은음이라면 당연히 배( 倍 ) 의 의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해석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음음악의의 배 로 반음 낮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제시한 한 옥타브를 내린다는 의미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바로 낮은 음을 취 한 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변( 变 ) 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민간음악 배조 34) 沈 括, 乐 律 补 笔 谈 卷 一, 梦 溪 笔 谈 ( 中 國 : 人 民 音 乐 出 版 社,1979). 51

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의 배( 背 ) 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하창림( 何 昌 林 )은 남음악보 중의 배척( 背 尺 )(혹은 贝 尺 ), 배사( 倍 四 ) (혹은 贝 思 )는 사실 배척( 背 尺 ), 배사( 背 四 ) 이며, 정척( 正 尺 ), 정사( 正 四 ) 다 각각 반음이 낮다고 35) 하였다. 그는 악서요록( 乐 书 要 录 ) 과 북몽쇄언 왕씨녀( 北 梦 琐 言 王 氏 女 ), 지화사( 智 化 寺 ) 음악의 조문( 调 门 ), 통아( 通 雅 ) 적자( 笛 子 )의 정조( 正 调 ) 와 배공조( 背 工 调 ) 로 입증한 후에 또 다음과 같이 연구발표한 바 있다. 조( 调 )는 정 ( 正 )과 배( 背 )로 나뉘기 때문에 남음음악(여기서는 복건성의 남음음악에 한정함) 중의 배 ( 倍 ) 혹은 패( 贝 ) 는 모두 배( 背 ) 자( 字 )가 잘못 전해진 것이다. 배( 背 ) 자는 한편으로는 어떠한 음악이 단2도 낮아진 것을 표시하고, 동시에 또한 이로 인하여 5도 위로(혹은 4도 아래로) 궁( 宫 )을 옮긴 것이다. 라고 했다. 36) 그동안은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 중에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의 배사( 倍 四 ) 에서 배 ( 倍 ) 가 당연히 남음음의 배사( 倍 思 ) 의 배( 倍 ) 로 해석했었고, 이것은 반음 낮은음의 의미 이고, 즉 소위 말하는 배사( 倍 四 ), 사( 四 ) 보다 반음 낮은 것으로 생각되고 해석 되었었 다. 이 해석에 따르면 배육( 倍 六 ) 은 음높이를 나타내는 보자( 谱 字 )의 기초위에서 이러한 개념의 법칙을 따라서 유추 해볼 때, 어렵지 않게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에서의 배사두 관( 倍 四 头 管 ) 보자( 谱 字 )의 음고( 音 高 )를 얻어낼 수 있다. <그림 9> 倍 六 공척보와 倍 四 공척보) 그중에서 처음의 공척보 오( 五 ) 는 한 옥타브 아래의 사( 四 ) 로 대신해서 쓴다. 이것은 공 교롭게도 남음음악의 공척보 배사관( 倍 四 管 ) 의 보자( 谱 字 )의 음위( 音 位 )와 맞아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남음음악의 관문( 管 门 )의 배사관( 倍 思 管 ) 과 조문( 调 门 )으로서 장염( 张 炎 )의 사 원( 词 源 )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의 조문( 调 门 )이 의미상에서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배사( 倍 四 ) 를 하나의 조문( 调 门 )으로 해석하는 것은 신당서 新 唐 书 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35) 何 昌 林, 南 音 十 题, 中 国 音 乐, ) 위의 책. 52

61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모든 속악( 俗 乐 )이라고 하는 것은 스물하고도 여덟 개가 더 있다. 정궁( 正 宫 ), 고궁( 高 宫 ), 중려궁( 中 吕 宫 ), 도조궁( 道 调 宫 ), 남려궁( 南 吕 宫 ), 선려궁( 仙 吕 宫 ), 황종궁( 黄 钟 宫 )이 칠궁 ( 七 宫 )이고, 월조( 越 调 ), 대식조( 大 食 调 ), 고대식조( 高 大 食 调 ), 쌍조( 双 调 ), 소식조( 小 食 调 ), 헐지조( 歇 指 调 ), 임종조( 林 钟 调 )가 칠상( 七 商 )이며, 대식각( 大 食 角 ), 고대식각( 高 大 食 角 ), 쌍 각( 双 角 ), 소식각( 小 食 角 ), 헐지각( 歇 指 角 ), 임종각( 林 钟 角 ), 월각( 越 角 )이 칠각( 七 角 )이다. 중려조( 中 吕 调 ), 정평조( 正 平 调 ), 고평조( 高 平 调 ), 선여조( 仙 吕 调 ), 황종우( 黄 钟 羽 ), 고반섭 ( 高 般 涉 )이 칠우( 七 羽 )이다. 이들은 모두 탁( 浊 )부터 청( 清 )으로 이동하며, 소리를 지속적으 로 바꾼다. 아래로 갈수록 탁하고, 위로 갈수록 소리가 맑아진다. 느린 것은 마디가 있고, 급한 것은 유창하다. 그 다음 성기( 声 器 ) 37) 가 점점 없어지고, 혹은 궁조( 宫 调 )의 이름이 있 고, 혹은 배사( 倍 四 )를 도로 하여, 율려( 律 吕 )와 이름이 같은 이가 있으나, 그 소리는 우아함 과는 거리가 멀다. 그 궁조는 바로 협종지율( 夹 钟 之 律 )이고 연악의 진설에 사용된다. 凡 所 谓 俗 乐 者, 二 十 有 八 调, 正 宫, 高 宫, 中 吕 宫, 道 调 宫, 南 吕 宫, 仙 吕 宫, 黄 钟 宫 为 七 宫 ; 越 调, 大 食 调, 高 大 食 调, 双 调, 小 食 调, 歇 指 调, 林 钟 调 为 七 商 ; 大 食 角, 高 大 食 角, 双 角, 小 食 角, 歇 指 角, 林 钟 角, 越 角 为 七 角 ; 中 吕 调, 正 平 调, 高 平 调, 仙 吕 调, 黄 钟 羽, 高 般 涉 为 七 羽. 皆 从 浊 至 清, 迭 更 其 声, 下 则 益 浊, 上 则 益 清, 慢 者 过 节, 急 者 流 荡. 其 后 声 器 寝 殊, 或 有 宫 调 之 名, 或 以 倍 四 为 度, 有 与 律 吕 同 名, 而 声 不 近 雅 者. 其 宫 调 乃 应 夹 钟 之 律, 燕 设 用 之. 38) 위의 인용글 중에서 속악이십팔조( 俗 乐 二 十 八 调 ) 나 기후성기침수( 其 后 声 器 寝 殊 ) 다음 에 배사( 倍 四 )와 궁조( 宫 调 ) 그리고, 율려( 律 吕 ) 를 함께 거론했다, 때문에 배사( 倍 四 ) 를 일종의 율을 돕는 것인 협률지기( 协 律 之 器 )로 보았다. 그러므로 복건성 남음음악의 공척보에서는 장염( 张 炎 )의 사원( 词 源 중의 배사두관( 倍 四 头 管 ) 의 배사( 倍 四 ) 를 남음( 南 音 )의 배사관( 倍 思 管 ) 등과 동일시하였다. 그것들은 같 은 조문( 调 门 )의 명칭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실질적인 음고( 音 高 )로 공척보의 보자( 谱 字 )와 같다. 37) 고대의 원시적 악기. 38) 新 唐 书 卷 二 十 二 志 第 十 二 乐 十 二, 中 华 书 局, 新 唐 书,

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3. 요박( 撩 拍 ) 39) 에 관련된 연구 중국의 기보법( 记 谱 法 )중의 박자 부호에 관련된 연구는 몇몇 학자들의 연구 업적이 있다. 허창림( 何 昌 林 )의 당전일본천평유보 번가숭 의 연구( 唐 传 日 本 天 平 遗 谱 番 假 崇 之 研 究 ) 에서는 청평보( 天 平 谱 )의 부호가 박자 부호라는 결과물을 도출했다. 즉 이 하나라면 중국의 박자 개념으로 1판( 一 板 )이라고 해석하였으며, 또한 일본에 전해진 <번가승( 番 假 崇 )> 음악에 이미 판( 板 ) 의 위치를 표시한 부호가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때 박자 개념을 표기 한 기보법( 记 谱 法 )은 늦어도 장문수( 张 文 收 )가 만든 <경운하청가( 景 云 河 清 歌 )>의 시기인 7세 기라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돈황곡악보( 敦 煌 曲 谱 속에도 판( 板 ) 과 안( 眼 ) 에 해당하는 자리를 은 口 와, 부호로 표시하였다. 40) 흥미로운 것은 송나라 말엽 진원정( 陈 元 靓 )의 사림광기( 事 林 广 记 ) 중, <원성쌍령( 愿 成 双 令 )> 악보에 보자( 谱 字 )옆에 매우 규칙 적으로 부호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부호를 박자기호일 것이라고 생각 한 바 있다.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중국 전통 기보법의 부호표기가 점점 더 정교해졌다. 이는 기보법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 큰 발전으로 이라고 할 수 있다. 건륭황제( 乾 隆 皇 帝 )의 명 을 받아 편찬( 编 纂 )하고 건륭 11년(1746년)에 완성된 구궁대성남북사궁보(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 를 비롯하여, 역시 건륭( 乾 隆 ) 황제의 재위기간에 편찬된 납서영곡보 범례( 纳 书 楹 曲 谱 凡 例 ) 에서는 아래와 같이 규정하였다. 악보 중에서, 를 첫 판( 板, 강박)으로 하고, 一 를 마지막 판( 板 )으로 하여, 를 두증판( 头 赠 板 ) 으로, 자를 요증판( 腰 赠 板 ) 으로 한다. 를 중안( 中 眼 ) 으로 하고, Δ 자를 요안( 腰 眼 ) 으로 한다. 41) 한편, 구궁대성남북 사궁보(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 에는 기보부호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한 설명을 제 시했다. 금두판( 今 头 板 )은, 으로 즉, 실판( 实 板 ) 이다. 박판( 拍 板 )은 음이 시작할 때에 박 자를 맞추어 쳐준다. 요판( 腰 板 )의 부호는 L 이고 체판( 掣 板 ) 이라고 하며, 음의 중간 정도 에 들어가는 박자이다. 저판( 底 板 )은 一 부호를 사용하며 절판( 截 板 ) 이라고 하고, 음의 끝 박자이다. 천판( 衬 板 ) 은 두판( 头 板 ) 이라고 하고 o 부호이다. 요판( 腰 板 ) 은 로 사용하고 정판음( 正 板 音 )과 사뭇 다르기 때문에 알기 쉽다. 42) 을 부호 39) 박자의 개념. 40) 임이북( 任 二 北 )의 돈황곡초탐( 敦 煌 曲 初 探 ) ( 上 海 : 文 艺 联 合 出 版 社,1954)과 협동( 叶 栋 )의 돈황 곡보연구( 敦 煌 曲 谱 研 究 ) (1982)에 근거함. 41) 纳 书 楹 曲 谱 凡 例 1쪽, 乾 隆 五 十 七 年 序 刻 本 纳 书 楹 曲 谱 福 建 师 大 图 书 馆 소장. 42)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凡 例 9쪽, 新 定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岁 在 昭 阳 大 渊 阳 月 古 书 流 通 处 景 印 ( 前 有 癸 亥 孟 冬 长 洲 吴 梅 叙 ). 54

63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그렇다면 남음음악과 위의 기보부호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대조하고 비교하는 연구를 통 해서만 우리는 남음음악의 기보법에서의 박자부호가 앞의 두 종류 책의 기초 위에서 종합 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음악 속에서 활용되어 수정되고 보완하 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완벽에 가까운 악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박( 撩 拍, 혹은 寮 拍 이라고도 한다) 을 기록할 때는 빨간 점으로, 부호로 요( 撩 ) (즉, 眼, 약박)의 위치를 표시한다. 빨간 색 동그라미 o 부호는 박( 拍 ) (즉, 板, 강박)의 위치를 표기한 다. 박자기호에는 만( 慢 ) (즉, 散 板, 慢 头, 慢 尾, 破 腹 慢 을 포함)을 비롯하여, 칠요일박 ( 七 撩 一 拍 ), 삼요일박( 三 撩 一 拍 ), 일이박( 一 二 拍 ), 첩박( 叠 拍 ), 긴박( 紧 拍 ) 등의 구분 이 있다. 남음음악의 요박( 撩 拍, 혹은 박자 개념) 을 여러 전통적인 박자부호와 비교해 본 결과 돈황곡보( 敦 煌 曲 谱 ) 의 판안부호( 板 眼 符 号 ) 와 매우 흡사함을 발견했다. 남음음악 중에서 박자의 위치를 표기하는 기호가, 인데, 이것과 돈황곡보( 敦 煌 曲 谱 ) 의 약의 위치를 나 타내는 안위기호( 眼 位 记 号 ), 과 같고, 강박의 위치를 나타내는 박위기호( 拍 位 记 号 ) o 은 돈황곡보( 敦 煌 曲 谱 ) 의 口 부호에 해당된다. 또한 사림광기( 事 林 广 记 ) 중 보자( 谱 字 ) 옆의 o 와 같으며,, 부호와 돈황곡보( 敦 煌 曲 谱 ) 의 안위기호( 眼 位 记 号 ), 와 같 다. 박의 위치 부호 口 가 o 로 간단하게 변화한 것은 악보 기보에서의 편리함을 위해서 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동시에 남음음악에 있어서 칠요일박( 七 撩 一 拍 ) 의 네 번째 撩 에 L 부호를 더하고 이것은, 또한 납서영곡보( 纳 书 楹 曲 谱 ), 구궁대성남북사궁보(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 의 요판( 腰 板 ) 기호와 비슷하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남음음악에 있어서 네 번째 요의 이 L 기호를 박자의 시가( 時 價 )로 계산하여 정확한 박자의 위치를 찾 는 다면 당연히 원래의 납서영곡보( 纳 书 楹 曲 谱 ) 와 구궁대성남북사궁보(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 의 두증판( 头 赠 板 ) 과 같지만 두증판( 头 赠 板 )의 기호인 혹은, 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정한 형식은 반드시 특정한 내용과 관련이 있고, 특정한 기보법도 필연 적으로 일정한 음악적 관념에서 출발한다. 현관예인 ( 弦 管 艺 人, 한국에서는 관현예인이 익 숙한 용어)에서 위에 거론한 네 번째 撩 를 미지요( 尾 指 撩 ) 라고 하는 것에서 고찰해 볼 때, L 과 혹은 o 의 관계는, 더나아가 사원( 词 源 ) 중에서 언급한 것으로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다. 남당서( 南 唐 书 )에서 말하길, 왕이 감화( 感 化 )받아 즐겨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 소리가 숲을 울리고, 악부( 乐 部 )와 서로 어울려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바로 가판색( 歌 板 色 )이다. 그 후 악붕( 乐 棚, 혹은 연주단)앞에 와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가판색( 歌 板 色 )을 연주하게 하였는데, 55

6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노래 소리와 악기소리가 서로 호응하고, 박자가 서로 어울렸다. 그러한 연고로 자고이래 안 박( 按 拍 )이라는 말이 유래 되었다. 소위 무용의 법도 중에서 대곡( 大 曲 )을 첫째로 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손가락 끝으로 박자를 맞추어야 하며, 춤의 박자와 음악의 박자를 서로 맞추 어 동작을 해야 한다. 이는 춤은 자고로 균수( 均 数 )에 맞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南 唐 书 云 : 王 感 化 善 歌 讴, 声 振 林 木, 击 之 乐 部, 为 歌 板 色. 后 之 乐 棚 前, 用 歌 板 色 二 人, 声 与 乐 声 相 应, 拍 与 乐 拍 相 合. 按 拍 二 字, 其 来 亦 古. 所 以 舞 法 曲 大 曲 者, 必 须 以 指 尖 应 节, 俟 拍 然 后 转 步, 欲 合 均 数 故 也. 43) 윗글의 내용에 의하면 남음음악의 미지요( 尾 指 撩 ) 와 손가락 끝으로 박자를 맞춘다는 지첨응박( 指 尖 应 拍 ) 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지요( 尾 指 撩 ) 위에 혹은 o 로 표기하지 않고, L 부호로 표기한 것은 역시 복잡한 부호를 간단 하게 변화해서 기보를 단순화 시킨 결과가 아닐까? 그 외에도 복건성 남음음악의 공척보에는 박자 개념에 대한 흥미로운 부호들이 많이 있 는데 이것을 타요( 打 撩 ), 답요( 踏 撩 ) 로 부른다. 사실 타요( 打 撩 ) 라는 단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당 나라 단안절( 段 安 节 의 악부잡록( 乐 府 杂 录 ) 의 갈고( 羯 鼓 ) 조 항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함통( 咸 通 ) 연간에 왕문거( 王 文 举 )가 있었는데 특히 뛰어나다.(여기서 뛰어나다고 함은 갈고 연주를 잘 했다는 것을 말함) 북채 셋으로 타요( 打 撩 )하는데 전혀 실수가 없다. 의황( 懿 皇 )이 그에게서 배웠다. 44) 여기에서 말하는 타요( 打 撩 ) 는 갈고를 연주하는 기술의 한 종류일 것이다. 위에 제시한 저자의 간단한 글에서 우리 는 왕문거( 王 文 举 )가 두 손으로 북채 셋을 들고 연주하였지만 전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기예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이글은 또한, 왕문거( 王 文 举 )의 뛰 어난 기예와는 다른 차원으로 당나라 시기의 뛰어난 음악 수준을 반영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시인인 최도융( 崔 道 融 )은 그의 작품 칠언절구 <갈고( 羯 鼓 )>에서 요박( 撩 拍 )으 로 갈고( 羯 鼓 )를 치는 성대한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화청궁( 华 清 宫 )에서 울리는 타요( 打 撩 )소리 사황( 丝 簧 )을 받들고 손 모아 듣고 있네 고독한 임금님의 수레 협곡 속에 있는데 누가 비에 젖은 령( 铃 )을 뒤집어 놓았나. 43) 张 炎, 词 源 拍 眼,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中 华 书 局, 1986, 257쪽. 44) 唐 나라 段 安 节, 乐 府 杂 录, 中 国 戏 剧 出 版 社, 中 国 古 典 戏 曲 论 著 集 成 第 1 册, 1959, 57쪽. 56

65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华 清 宫 里 打 撩 声 供 奉 丝 簧 束 手 听 寂 寞 銮 舆 斜 谷 里 是 谁 翻 得 雨 淋 铃. 45) 이 시( 诗 )에서의 타요( 打 撩 ) 는 아마도 갈고( 羯 鼓 )를 두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갈고( 羯 鼓 )는 장단을 맞추어주는 중요한 타악기이다. 당연히 박자를 짚어 연주했을 것인데, 이것은 오늘날 남음음악은 갈고로 연주하지는 않지만 타요 와는 명칭 면에서 개념 면에서 상통하는 점이 발견되는 점에서 흥미롭고, 오늘날 중국 복건성의 남음음악에 있어서의 타 요 는 박자를 맞춘다는 중요한 용어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45) 明 나라 赵 宦 光, 黄 习 远 编 定 万 首 唐 人 绝 句 卷 三 十 六, 书 目 文 献 出 版 社 1, 876쪽. 57

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참고문헌> 구궁대성남북사궁보. 납서영곡보. 돈황곡보연구. 음악예술, 복건남음창강선법중적다중대삼도병치. 신기비보. 신당서권이십이지제십이 악십이. 신당서. 중화서국, 신정구궁대성남북사궁보. 악부잡록. 중국고전희곡론저집성. 중국희극출판사, 당규장. 사화총편. 중화서국, 동 문. 중악심원. 상무인서관, 리석근. 서안고악보해독. 리원경. 민족음악문제적탐색. 인민음악출판사, 림겸삼. 동아악기고. 음악출판사, 명조환광 황습원. 만수당인절구. 서목문헌출판사, 반부소. 종고금악보론구자악영향하적민족음악. 양음류. 중국음악사강. 상해만협서점인행, 하북정현관악곡집. 음악출판사, 음법로. 송 강백석창작가곡연구. 음악출판사, 왕야오화 류춘서. 복건남음초탐. 복건인민출판사, 유인본 리건정 여도. 서안 고악보 개술. 서안음악학원학보, 원정방. 로서남고취악선집. 인민음악출판사, 임이북. 당성시. 상해고적출판사, 돈황곡초탐. 상해문예련합출판사, 장 염. 사원. 전인자 임반당. 당성시, 상편. 상해고적출판사, 침 괄. 악률 540조. 몽계필담. 인민음악출판사, 황상붕. 증후을종경문악학체계초탐. 음악연구 하창림. 남음십제.. 중국음악 당전일본천평유보 번가숭 지연구. 전국제이차민족음악학년회. 58

67 복건남음 공척보로 살펴본 중국 전통 음악 기보의 특징 <Abstract> Th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Chinese Notation as Manifested in Gongchepu Notation of Southern Fujian Music Hwang Yaohua (Prof., Fujian Normal Univ., China.) Representative of traditional Chinese music, Southern Fujian music boasts long history and rich cultural heritage. For this reason, the Gongchepu notation of its music reveals certain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Chinese music notation. As an independent genre, Southern Fujian music was popular in areas south of Fujian Province, such as Quanzhou, Shamen and their neighboring prefectures and Zhangzhou, and in regions where Min Nam dialect is spoken, thatis, Hong Kong, Macau, and also among Chinese expatriates in Southeast Asia who spoke the dialect. Key words: Southern Fujian music, Gongchepu notation, Chinese traditional music, notation, Chinese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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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王 耀 华 * 46) < 中 文 节 录 > 内 容 提 要 : 福 建 南 音 历 史 悠 久, 遗 产 丰 富, 是 中 国 传 统 音 乐 的 一 个 代 表 性 乐 种. 同 样 在 记 谱 法 方 面 也 可 以 从 福 建 南 音 工 尺 谱 看 出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某 些 特 点. 即 : 音 高 的 定 量 与 音 值 的 定 性 ; 谱 简 腔 繁 与 骨 谱 肉 腔 ; 有 丰 富 的 乐 学 内 涵. 关 键 词 : 福 建 南 音 工 尺 谱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福 建 南 音 是 一 个 历 史 悠 久, 遗 产 丰 富 的 中 国 传 统 音 乐 乐 种. 福 建 南 音 作 为 一 个 独 立 的 乐 种, 流 行 于 福 建 南 部 的 泉 州, 厦 门 及 其 周 边 各 县, 以 及 漳 州 一 带, 也 流 行 在 闽 南 方 言 通 行 的 台 湾, 香 港, 澳 门 等 地 区, 在 东 南 亚 闽 南 籍 华 侨, 华 人 聚 居 区 也 甚 为 流 行. 南 音 除 了 单 独 演 唱, 演 奏 之 外, 还 被 运 用 于 梨 园 戏, 高 甲 戏, 泉 州 提 线 木 偶 戏 和 打 城 戏 等 地 方 戏 曲. 福 建 南 音 工 伬 谱 属 于 固 定 名 标 音 体 系 的 记 谱 法. 它 在 某 种 程 度 上 体 现 了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特 点. 序 目 一. 音 高 的 定 量 与 音 值 的 定 性 二. 谱 简 腔 繁 与 骨 谱 肉 腔 三. 福 建 南 音 和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乐 学 内 涵 * 福 建 师 范 大 学 音 乐 学 院 教 授 61

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一. 音 高 的 定 量 与 音 值 的 定 性 音 高 的 定 量, 指 的 是 在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中, 对 于 乐 音 的 高 低, 常 有 比 较 明 确 的 量 的 规 定, 往 往 用 一 定 的 谱 字 对 音 高 ( 或 则 绝 对 音 高, 或 则 相 对 音 高 ) 作 比 较 准 确, 精 细 的 记 写. 福 建 南 音 的 乐 谱 谱 字 既 与 琵 琶 的 按 指 位 相 对 应, 又 有 固 定 的 音 高. 福 建 南 音 的 基 本 谱 字 有 : 尺 ( 读 作 chē), 工, 六,, 乙, 它 们 分 别 表 示 的 音 高 是 : c1, d1, e1, g1, a1; 这 是 中 音 区 的 谱 字. 高 八 度 用 记 号 亻 表 示, 附 于 基 本 谱 字 左 旁 : 伬,,,,. 再 高 一 个 八 度 则 用 记 号 彳, 附 于 基 本 谱 字 左 旁 :,,,,. 基 本 谱 字 的 低 八 度 记 号 : 乙 为 下, 为 士 ( 亦 有 相 反 者, 基 本 谱 字 记 作 士, 低 八 度 谱 字 记 作 ), 余 者 加 艹 号 于 谱 字 之 上 方, 如,. 现 将 以 上 谱 字 及 其 音 高 用 五 线 谱 表 示 : [ 例 1] 福 建 南 音 基 本 谱 字 音 高 在 福 建 南 音 的 基 本 谱 字 之 外, 还 有 升 降 音 临 时 变 化 记 号. 1. 以 贝 字 附 加 于, 尺 之 左 侧, 表 示 该 音 降 低 半 音, 记 作 :,. 2. 反 之,, 若 需 还 原 时, 于 字 旁 加 正, 记 作 :,. 3. 以 x 号 附 加 于 六, 伬 的 左 方 时, 表 示 该 音 为 四 空 管 的 六,, 比 五 空 管 的 六, 伬 高 半 音, 记 作 : 六, 伬. 这 里 的 附 加 号 与 下 面 所 述 的, 来 源 于 民 间 数 字 记 号, 它 们 分 别 作 为 四 空 管, 五 空 管 的 特 有 谱 字 的 缩 写. 62

71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4. 反 之, 以 号 附 加 于 六, 伬 左 上 侧 时, 则 表 示 该 音 为 五 空 管 的 六, 伬, 比 四 空 管 的 六, 伬 低 半 音, 记 作 六, 伬. 5. 指 套 妾 身 受 禁 首 节 [ 二 调 十 八 飞 花 ] 中, 开 头 七 小 节 的 乙 字 称 作 毛 延 寿 一, 记 作 :, 较 基 本 谱 字 的 乙 高 半 音. 6. 作 为 装 饰 奏 法 的 打 尺, 谱 字 记 作, 奏 为, 此 扌 号, 实 际 上 也 可 以 作 升 半 音 记 号 理 解. 现 将 以 上 升 降 音 临 时 记 号 以 五 线 谱 表 示. [ 例 2] 福 建 南 音 升 降 音 临 时 变 化 记 号 音 高 以 上 这 些 福 建 南 音 记 谱 法 的 谱 字 的 音 高, 又 与 南 音 琵 琶 的 弦 序, 音 位 相 联 系 在 一 起. 作 为 记 谱 的 标 识, 这 种 弦 序 亦 有 记 号 表 示 : 母 线 ( 第 四 弦 ) 在 谱 字 左 旁 加 母, 第 三 弦 谱 字 左 旁 加 川, 第 二 弦 谱 字 上 方 加 入, 子 线 ( 第 一 弦 ) 音 符 则 与 相 应 音 高 的 谱 字 相 同. 如 下 图 : [ 例 3] 福 建 南 音 琵 琶 音 位 图 63

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以 上 这 种 音 高 定 量 的 记 谱 特 点, 应 当 与 中 国 汉 族 语 言 属 于 声 调 语 言, 乐 音 的 带 腔 性 有 关. 即 : 中 国 汉 族 语 言 的 声 调 具 有 影 响 字 义 的 作 用, 所 以, 与 之 相 适 应 的 乐 音 往 往 在 音 过 程 中, 具 有 音 高, 音 色, 音 强 的 变 化. 如 : 汉 语 普 通 话 的 四 声, 往 往 形 成 以 下 旋 律 音 调 : [ 例 4] 中 国 汉 语 四 声 声 调 对 于 这 种 与 语 言 声 调 相 适 应 的 旋 律 音 调 和 音 过 程 中 的 音 色, 力 度 变 化, 在 中 国 传 统 音 乐 的 许 多 乐 谱 中 都 探 索 了 自 身 的 记 录 方 法. 如 : 在 福 建 南 音 琵 琶 谱 中, 用 弹, 挑, 轮, 吟, 猱, 带, 擞, 打 等 演 奏 手 法, 在 其 他 琵 琶 谱 中, 用 摭, 提, 勾, 搭, 摇 指, 拂, 扫, 煞 弦, 绞 弦 等 演 奏 手 法, 来 体 现 音 高, 力 度, 音 色 的 变 化. 在 乐 音 时 值 方 面, 中 国 传 统 音 乐 的 记 谱 法 中, 定 量 原 则 没 有 得 到 充 分 重 视, 而 多 以 定 性 的 观 念 来 标 示 乐 音 或 音 过 程 的 时 值 尺 度. 例 如 : 福 建 南 音 记 谱 法 中, 用 撩 拍 记 号 来 标 记 拍 子, 拍 为 强 拍, 与 戏 曲 音 乐 板 的 意 义 相 同, 撩 为 弱 拍, 与 戏 曲 音 乐 的 眼 相 类 似, 有 七 撩 拍, 记 作.,,, L,,,, 三 撩 拍, 记 作.,,,, 一 二 拍, 记 作.,, 叠 拍, 记 作.. 除 此 之 外, 乐 音 的 节 奏 是 与 南 音 琵 琶 的 弹 奏 指 法 合 在 一 起 记 写 的. 包 括 摙 指 类, 点 挑 去 倒 类, 甲 线 类, 落 指 类, 装 饰 性 指 法 类 等. 摙 指 类, 有 全 摙, 点 摙, 抢 摙, 贯 摙 等. 全 摙, 右 手 食 指 与 拇 指 连 续 点 挑, 由 重 而 轻, 自 缓 而 急, 最 后 一 点 成 为 箫, 弦 及 唱 声 的 开 始 ; 点 摙, 先 由 食 指 一 点, 再 摙, 箫, 弦 及 唱 随 之 奏 唱 ; 抢 摙, 快 摙 半 拍 ; 贯 摙 : 在 一 拍 时 间 内 食 指 与 拇 指 一 点 一 挑 再 一 点 一 挑, 共 奏 四 音. 点, 挑, 去 倒 类, 有 : 点, 食 指 顺 势 弹 下, 时 值 半 拍. 若 遇 分 指 记 号 则 为 一 拍 ; 挑 : 以 拇 指 挑 弦, 时 值 半 拍. 若 遇 分 指 记 号 则 为 一 拍 ; 去 倒 : 食 指 点 下, 拇 指 挑 起, 时 值 一 拍 ; 紧 去 倒 : 与 去 倒 相 同 而 快 一 倍, 时 值 半 拍 ; 分 指 : 食 指 点 后, 拇 指 慢 挑, 时 值 较 去 倒 增 一 倍 ; 战 指 : 食 指 与 拇 旨 慢 点, 挑 各 一 下, 时 值 为 一 拍, 最 后 点 一 下, 时 值 半 拍. 颠 指 : 与 战 指 略 同 而 快 一 倍 ; 采 指 : 即 双 紧 去 倒, 时 值 一 拍 ; 半 跳 : 食 指 先 点 一 下, 时 值 半 拍, 再 于 半 拍 时 值 内 一 点 一 挑, 合 为 一 拍 ; 全 跳 : 食 指 先 点 一 下, 时 值 半 拍, 再 于 半 拍 时 值 内 一 点 一 挑, 最 后 食 指 再 点 一 下, 时 值 半 拍 ; 剪 指, 食 指 急 点, 拇 指 急 挑, 时 值 半 拍. 甲 线 : 甲 线 为 本 音 的 低 八 度 音, 除 子 线 乙 音 的 甲 线 用 食 指 二 线 下 音 外, 余 皆 以 拇 指 甲 三 线 或 四 线 的 低 八 度 音, 弹 奏 时 以 拇 指 压 弦 成 音 ; 甲 线 尚 有 多 种 变 化 形 式. 紧 甲 线, 与 甲 64

73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线 相 同 而 快 一 倍 ; 接 声, 用 于 箫 弦, 歌 唱 时, 发 出 第 一 音 后, 休 止 半 拍, 第 二 三 音 相 连 合 为 三 拍 ; 直 贯, 与 接 声 法 相 同, 但 第 一 音 之 后 不 作 休 止 而 三 音 连 贯 ; 钩 甲, 食 指 钩 起, 拇 指 甲 下, 常 用 于 谱 中. 落 指 : 亦 称 抡 指, 有 快 落 指, 慢 落 指 之 分. 快 落 指, 由 右 手 之 小 指 起 始, 无 名 指, 中 指, 食 指 顺 次 轮 落 四 音, 至 食 指 后 急 用 拇 指 挑 起, 共 五 个 音 占 时 半 拍 ; 慢 落 指, 奏 法 与 快 落 指 同, 惟 速 度 较 慢, 每 点 明 显 分 开. 装 饰 性 指 法 : 即 弹 奏 装 饰 音 的 指 法. 有 : 单 打 尺, 双 打 尺, 抹 六, 半 凡, 全 凡 等. 单 打 尺, 以 左 手 食 指 先 按 定 贝 尺, 无 名 指 按 全 尺, 俟 右 手 食 指 点 过 一 下, 左 手 用 无 名 指 紧 抓 三 下, 时 值 一 拍 ; 双 打 尺, 以 左 手 食 指 先 按 定 贝 尺, 无 名 指 按 全 尺, 俟 右 手 食 指 点 过 一 下, 无 名 指 先 抓 一 下, 食 指 再 点 一 下, 无 名 指 连 抓 三 下, 合 为 二 拍 ; 抹 六, 左 手 食 指 按 六, 无 名 指 按, 俟 右 手 食 指 点 过, 左 手 无 名 指 抓 音, 时 值 半 拍 ; 半 凡, 食 指 点 下, 拇 指 挑 起, 两 音 相 连, 时 值 半 拍, 但 第 一 音 必 须 较 原 音 低 一 级 ; 全 凡, 右 手 食 指 向 下 弹 一 下, 时 值 半 拍, 续 之 以 拇 指 向 上, 食 指 向 下 各 急 弹 一 下 共 合 半 拍, 最 后 拇 指 上 挑 一 下 一 指, 共 弹 四 下, 时 值 二 拍 ; 但 第 三 音 必 须 比 原 音 低 一 级. 减 半 : 记 号,, 谱 中 无 论 何 种 弹 奏 法, 若 附 以 减 半 记 号, 均 加 速 一 倍. 由 上 可 见, 南 音 琵 琶 指 法 中 以 点, 挑, 去 倒, 摙 指, 甲 线, 抡 指 为 基 础, 并 形 成 主 要 节 奏 音 型. 中 国 传 统 记 谱 法 中 的 音 值 定 性 的 特 征, 既 与 汉 语 是 声 调 语 言 而 同 重 音 语 言 具 有 不 同 的 特 点 相 关, 又 与 儒 家 思 想 强 调 社 会 人 伦 的 克 已 平 衡 相 联, 还 与 道 家 思 想 追 求 超 然 物 外, 象 外 之 象 紧 密 相 关. 如 果 说, 以 英 语 为 代 表 的 重 音 语 言 和 以 汉 语 为 代 表 的 声 调 语 言, 是 世 界 语 言 中 具 有 典 型 意 义 的 两 种 语 言 的 话, 那 么, 由 于 重 音 语 言 强 调 轻 重 的 循 环, 所 以, 对 音 乐 要 素 中 的 节 拍 节 奏 尤 为 重 视, 甚 为 突 出 了 强 弱 的 均 匀 出 现. 与 此 相 对 的 声 调 语 言, 在 强 调 音 过 程 中 的 音 高, 音 色, 音 强 变 化 的 同 时, 其 强 弱 变 化 是 弹 性 的, 板 与 字 的 同 步 时 位 关 系, 并 不 能 使 这 一 循 环 中 的 字 变 为 重 音, 因 字 调 而 产 生 的 腔 也 不 因 板 眼 的 均 匀 出 现 而 变 得 强 弱 相 推. 板 眼 并 非 强 弱 信 号 的 界 标, 它 对 旋 律 的 钳 制 程 度 被 语 言 声 调 现 象 弱 化 了. 正 如 古 文 没 有 标 点 一 样, 乐 句 与 乐 句 之 间 没 有 明 确 的 分 句 和 节 奏 标 示, 也 就 成 为 正 常 的 现 象. 因 此, 在 运 用 演 奏 手 法 记 写 音 过 程 的 音 高, 音 色, 音 强 变 化 的 同 时, 也 运 用 手 法 记 号 来 标 记 带 有 明 显 写 意 性 质 的 节 奏 型, 就 像 中 国 水 墨 画 不 必 将 自 然 中 的 一 草 一 木 亭 台 楼 阁 都 精 确 地 按 照 透 视 方 法 重 现 于 画 面 一 样, 在 中 国 传 统 音 乐 的 乐 谱 中, 也 不 讲 求 刻 板 精 微 的 将 所 有 乐 音 的 时 值 一 丝 不 苟 地 重 现 于 纸 面. 明 代 朱 权 神 奇 秘 谱 载 : 上 卷 太 古 神 品 一 十 六 曲 乃 太 古 之 操, 昔 人 不 传 之 秘, 故 无 点 65

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句, 达 者 得 之, 是 以 琴 道 之 来 传 曲 不 传 谱, 不 传 句, 故 嵇 康 终 其 身 而 不 传, 伯 牙 绝 其 弦 而 不 鼓, 是 琴 不 妄 传 以 示 非 人 故 也. 1) 此 处 的 传 曲 不 传 谱 应 当 指 的 是 不 传 详 谱, 琴 谱 只 作 备 忘, 供 琴 人 专 用, 故 不 在 琴 谱 上 加 板 眼, 点 句 逗, 形 成 琴 谱 不 传 句 的 习 惯. 但 是, 有 心 于 琴 学 的 人, 或 因 袭 师 承, 或 以 已 之 体 会, 得 知 琴 曲 的 板 眼, 体 悟 其 句 逗 安 排. 所 谓 达 者 得 之. 在 这 种 音 值 定 性 的 特 点 形 成 过 程 中 无 论 是 儒 家 思 想, 或 者 是 道 家 思 想, 都 从 各 自 的 不 同 方 面 起 着 影 响 作 用. 儒 家 主 张 中 庸 之 道, 提 倡 中 和 之 美 的 美 学 观, 强 调 社 会 人 伦 的 克 已 平 衡, 行 为 的 循 规 蹈 矩, 这 就 从 文 化 心 理 的 角 度 对 节 奏 的 平 衡 起 着 重 要 的 作 用. 因 此, 讲 求 基 本 节 奏 和 记 谱 中 的 节 奏 型 ( 一 种 基 本 节 奏 规 范 ) 的 运 用. 道 家 则 强 调 超 然 物 外, 追 求 象 外 之 象, 对 心 理 节 奏 的 流 散 飘 逸 起 着 重 要 的 作 用. 因 此, 使 中 国 音 乐 的 节 奏, 在 大 致 框 架 稳 定 的 基 础 上, 有 许 多 弹 性 回 旋 的 自 由, 而 记 谱 法 中 的 定 性 观 念 正 为 此 留 下 了 充 分 的 余 地. 儒 道 两 种 思 想 的 相 互 作 用, 形 成 了 中 国 传 统 音 乐 独 特 的 节 奏 思 维 方 式 和 记 录 形 态, 使 中 国 传 统 音 乐 的 节 奏 有 某 种 持 衡 的 量, 但 又 不 在 乎 其 尺 度 概 念, 而 更 注 重 于 节 奏 的 气 韵. 它 不 是 立 足 于 生 理 机 制 上 的 功 能 性 的 强 弱 律 动, 而 是 立 足 于 心 理 上 的 情 感 性 的 优 美 韵 律, 使 中 国 传 统 乐 谱 以 音 高 定 量, 音 值 定 性, 来 记 录 音 调 旋 律 的 绵 连 不 断 和 娓 娓 相 衔, 节 奏 节 拍 的 弹 性 伸 缩 和 气 韵 生 动, 形 成 了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鲜 明 特 点. 二, 谱 简 腔 繁 与 骨 谱 肉 腔 在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中, 往 往 用 较 为 简 略 的 方 式 来 记 谱, 但 是 在 演 奏 过 程 中 却 装 饰 精 巧, 繁 音 倍 出, 因 此 称 为 谱 简 腔 繁. 在 福 建 南 音 中, 由 于 乐 谱 只 记 琵 琶 音 位 和 演 奏 手 法, 标 示 的 是 旋 律 的 骨 干 音, 而 在 实 际 演 唱 过 程 中, 演 唱 者 可 以 而 且 应 当 作 润 腔 装 饰 和 即 兴 发 挥, 所 以 其 琵 琶 谱 叫 做 指 骨, 即 手 指 弹 奏 方 法 和 骨 干 音, 腔 谱 关 系 可 以 称 作 骨 谱 肉 腔, 乐 谱 记 录 骨 干 音 框 架, 就 像 人 的 骨 胳 架 子 一 样, 唱 腔 又 圆 润 丰 富, 就 像 是 丰 满 得 当, 结 构 匀 称, 有 血 有 肉 的 躯 体. 福 建 南 音 的 演 唱, 演 奏 在 对 七 声 音 阶 的 处 理 上, 虽 然 在 各 个 管 门 的 记 谱 法 的 基 本 谱 字 中, 都 只 有 五 声 音 阶 的 骨 干 音 ( 唯 五 空 管 为 G 宫 系 统 与 c 宫 系 统 的 综 合 例 外 ), 但 是 在 唱 腔 和 洞 箫, 二 弦 演 奏 中, 却 经 常 出 现 变 宫, 变 徵 音. 因 而, 在 对 与 骨 谱 相 应 的 唱 腔 以 及 洞 箫, 二 弦 的 演 奏 处 理 上 便 显 得 丰 富 多 彩, 细 腻 委 婉. 在 骨 谱 肉 腔 中, 变 宫, 变 徵 的 1) 明 朱 权 神 奇 秘 谱 第 2 页 ( 中 央 音 乐 学 院 民 族 音 乐 研 究 所 据 明 刊 本 影 印, 音 乐 出 版 社, 1956 年, 北 京 ). 66

75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出 现 有 多 种 形 式 : 或 构 成 多 重 大 三 度 并 置 的 富 有 特 性 的 旋 法 2), 或 作 装 饰 性, 润 腔 性, 代 替 性 进 行, 从 而 使 唱 腔 旋 律 及 洞 箫, 二 弦 演 奏 与 琵 琶 弹 奏 之 间 形 成 了 横 向 和 纵 向 的 七 音, 六 律 以 奉 五 声 的 效 果. 横 向 方 面, 唱 腔, 洞 箫, 二 弦 的 旋 律 在 进 行 之 中, 以 五 声 音 阶 为 主 干, 间 以 变 宫, 变 徵, 再 以 七 音 奉 应 五 声, 使 其 曲 调 线 条 更 为 柔 婉 细 腻. 纵 向 方 面, 以 琵 琶, 三 弦 弹 奏 五 声 旋 律 为 基 本 骨 架, 唱 腔, 洞 箫, 二 弦 各 以 自 己 独 特 的 变 奏 形 式 出 现 变 宫, 变 徵, 曲 调 因 而 有 如 行 云 流 水, 顺 畅 优 美. 二 者 之 结 合, 恰 似 珠 联 璧 合, 骨 肉 相 依, 刚 柔 相 济. 现 取 山 险 峻 片 段 为 例, 将 其 琵 琶 骨 谱 与 唱 腔 的 关 系 作 一 比 较 : [ 例 5] 福 建 南 音 山 险 峻 片 段 这 种 骨 谱 细 腔, 谱 简 声 繁 的 情 况, 不 仅 在 南 音 中 存 在, 而 且 在 我 国 许 多 古 老 的 民 间 乐 种 和 有 关 古 代 音 乐 的 文 献 中 都 可 以 看 到. 例 如, 在 京 音 乐 乐 谱 中, 也 一 样 仅 有 乐 曲 的 主 腔 旋 律, 但 在 实 际 演 奏 时, 则 各 种 独 特 的 装 饰 音 繁 声 傍 出, 远 非 谱 字 中 所 记 的 骨 干 音 可 以 表 现. 3) 再 如 西 安 鼓 乐, 有 哼 哈 之 法. 用 此 法 视 唱 乐 谱 时 往 往 出 现 一 些 不 用 谱 字 表 明 的 音, 其 中 有 经 过 音 哼 哈, 重 复 音 哼 哈, 装 饰 音 哼 哈, 双 音 哼 哈 等. 4) 2) 详 见 福 建 南 音 唱 腔 旋 法 中 的 多 重 大 三 度 并 置, 王 耀 华 刘 春 曙 福 建 南 音 初 探, 福 建 人 民 出 版 社 1990 年 版, 第 页. 3) 潘 怀 素 从 古 今 乐 谱 论 龟 兹 乐 影 响 下 的 民 族 音 乐. 转 引 自 任 半 塘 唐 声 诗 上 编,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年 版, 第 页. 4) 参 见 李 石 根 西 安 鼓 乐 谱 解 读 油 印 本, 李 健 正, 余 涛 西 安 古 乐 谱 概 述, 西 安 音 乐 学 院 学 报 1983 年 第 4 期. 67

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关 于 古 谱 记 载 的 腔, 谱 关 系, 在 任 二 北 的 唐 声 诗 中 有 许 多 精 辟 论 述. 5) 指 出 : 其 中 乐 谱 简 作 一 字 一 声 者 每 曲 但 示 主 腔 与 正 板 而 已, 唱 奏 时 必 有 所 增 益, 特 别 是 骨 干 在 谱, 充 之 皮 肉 等, 实 际 上 就 是 我 国 现 存 古 老 民 间 乐 种 的 谱 简 声 繁 情 况 的 写 照. 因 此, 南 音 的 骨 谱 细 腔, 自 然 是 我 国 古 代 音 乐 中 腔, 谱 关 系 传 统 的 继 承. 上 述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谱 简 腔 繁 和 骨 谱 肉 腔 的 特 点, 应 当 一 方 面 与 中 国 传 统 音 乐 写 意 为 主, 写 意 中 的 写 实 的 美 学 原 则 有 关, 另 一 方 面 与 中 国 传 统 音 乐 的 口 传 心 授 的 传 承 方 式 相 联 系. 与 中 国 传 统 艺 术 的 其 它 门 类 一 样, 在 中 国 传 统 音 乐 的 创 作 中, 十 分 重 视 以 法 写 意, 此 法 即 程 式, 即 立 一 定 规 式 以 为 法, 用 程 式 来 写 意. 在 中 国 传 统 音 乐 中, 最 能 代 表 其 特 点 的 程 式 是 古 典 戏 曲 音 乐 中 的 程 式. 首 先 是 声 腔, 曲 牌, 它 们 作 为 一 定 的 旋 律 框 架, 具 有 某 种 概 括 性 的 风 格, 感 情 的 类 型 化 特 征. 其 次 是 角 色 行 当, 把 需 要 表 现 的 千 千 万 万 数 不 尽 的 人 物, 按 其 性 别, 职 业, 社 会 地 位, 品 性 举 止 归 纳 为 生, 旦, 净, 末, 丑 五 大 类. 在 此 基 础 上 继 续 细 分 : 生 分 为 老 生, 武 生, 小 生, 老 生 又 分 文 老 生, 武 老 生, 小 生 又 分 文 小 生, 武 小 生, 穷 小 生 ; 旦 分 正 旦 ( 青 衣 ), 闺 门 旦, 神 仙 旦, 武 旦, 花 旦, 彩 旦, 老 旦 ; 净 分 大 花 脸 ( 正 净 ), 二 花 脸 ( 武 净 ), 白 脸 ; 末 有 带 黪 髯 的, 带 白 髯 的 ; 丑 包 括 文 丑, 武 丑, 小 丑. 各 种 行 当 有 不 同 的 发 声 方 法, 音 色, 音 域, 行 腔, 润 腔 方 法, 在 唱 腔 方 面, 体 现 了 人 物 的 类 型 化 特 征. 再 次, 就 是 在 细 致 分 型 的 基 础 上, 针 对 具 体 角 色 进 行 具 体 分 析, 处 理, 进 而, 根 据 人 物 性 格, 感 情 发 展 的 不 同 阶 段, 不 同 层 次, 运 用 不 同 的 板 式, 行 腔, 设 计 不 同 的 唱 段, 唱 句, 甚 至 在 同 一 唱 句 中 的 某 一 唱 词, 字, 为 表 现 感 情 的 细 微 变 化, 还 有 大 幅 度 的 节 奏 伸 缩 和 行 腔 起 伏. 这 种 方 法 的 特 点 是 先 把 音 乐 唱 腔 分 成 几 大 类, 再 按 人 物 概 括 为 几 种 类 型, 然 后 再 细 致 地 层 层 类 分, 形 成 一 个 以 简 驭 繁 的 分 层 系 统. 适 应 这 种 分 层 系 统 的 记 谱 法, 采 取 了 只 记 骨 干 音 不 记 细 致 装 饰 润 腔 的 方 式, 为 各 种 类 别 的 声 腔 曲 牌 提 供 基 本 框 架 ( 仅 仅 是 基 本 框 架 ), 让 表 演 者 兼 创 腔 者, 亦 即 演 员 兼 作 曲 家 有 充 分 的 发 挥 余 地, 根 据 人 物, 情 节, 感 情 进 行 再 创 造, 所 谓 框 格 在 曲, 色 泽 在 唱. 即 : 在 一 个 只 记 骨 干 音 的 框 架 谱 的 基 础 上, 通 过 速 度, 节 奏, 旋 律 的 加 花, 润 饰, 简 化, 紧 缩 等 变 化, 来 适 应 多 种 人 物 类 型, 个 别 角 色, 感 情 发 展 阶 段, 句, 词, 字 的 变 化. 而 避 免 了 千 人 一 面, 千 曲 一 腔 的 局 面. 口 传 心 授 是 音 乐 艺 术 的 重 要 传 承 方 式 之 一. 虽 然 在 近 现 代 欧 洲 音 乐 的 发 展 过 程 中, 对 口 传 心 授 的 依 赖 程 度 有 所 减 弱, 但 它 仍 然 是 不 可 或 缺 的, 当 今 专 业 音 乐 院 校 和 高 师 音 乐 系 科 声 乐 课 的 个 别 授 课 就 是 一 个 明 证. 在 中 国 传 统 音 乐 发 展 过 程 中, 对 口 传 心 授 的 传 承 方 式 尤 为 重 视, 讲 求 师 徒 之 间 直 接 的 面 对 面 的 传 授, 从 而 大 大 降 低 了 对 乐 谱 的 依 赖 程 度. 清 代 王 德 晖, 5) 任 二 北 唐 声 诗,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年 版 68

77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徐 沅 澂 在 顾 误 录 中 把 按 谱 自 读 列 为 学 曲 六 戒 之 一. 该 书 写 道 : 略 解 工 尺 之 高 下, 即 谓 无 须 口 授, 自 己 持 曲 按 读, 于 细 腻 小 腔, 纤 巧 唱 头, 不 知 理 会, 纵 能 合 拍, 不 过 背 诵 而 已. 甚 至 有 左 腔 别 字, 缺 工 少 尺 之 处, 罔 不 自 觉. 而 于 曲 情 字 眼, 节 奏 口 气, 全 然 未 讲, 不 知 有 何 意 味 6). 究 其 原 因, 中 国 传 统 音 乐 对 口 传 心 授 传 承 方 式 依 赖 程 度 之 所 以 高, 是 因 为 口 传 心 授 有 利 于 神 韵 的 传 承, 有 利 于 创 造 性 的 发 挥, 有 利 于 秘 传. 中 国 艺 术 传 统 中, 韵 作 为 最 高 美 学 范 畴, 追 求 一 种 内 在 的 韵 味 和 律 动. 中 国 音 乐 的 神 韵 则 在 旋 律 的 线 性 游 动 中, 由 高 低 起 伏, 强 弱 交 替, 虚 实 相 间, 疾 徐 迟 速 等 变 化 所 产 生 的 节 律 感. 具 有 个 体 性, 内 在 性 和 心 理 感 受 性 的 特 点. 正 因 为 这 三 个 方 面 的 特 点, 所 以, 中 国 传 统 音 乐 尤 其 重 视 个 人 的 体 味, 领 悟, 追 求 弦 外 之 音, 韵 外 之 致. 因 此, 口 传 心 授 就 成 了 师 傅 启 发 徒 弟 体 味 弦 外 之 音, 领 悟 韵 外 之 致 的 最 重 要 方 式, 而 在 很 大 程 度 上 削 弱 了 对 乐 谱 的 依 赖 程 度. 朱 权 神 奇 秘 谱 序 中 说 : 概 其 操 间 有 不 同 者, 盖 达 人 之 志 也 各 出 乎 天 性, 不 同 于 彼 类, 不 伍 于 流 俗, 不 混 于 污 浊, 洁 身 于 天 埌, 时 志 于 物 外, 扩 乎 与 太 虚, 同 体 泠 然 洒 于 六 合. 其 涵 养 自 得 之 志 见 微 轮, 发 乎 避 趣, 诉 于 神 明, 合 于 道 玅, 以 快 己 之 志 也, 岂 肯 蹈 袭 前 人 之 败 兴 而 写 已 之 志 乎, 各 有 道 焉! 所 以 不 同 者 多, 使 其 同 则 鄙. 7) 由 此 可 见, 包 括 琴 曲 在 内 的 中 国 传 统 音 乐, 重 视 个 人 创 造 性 的 发 挥, 不 同 者 多, 使 其 同 则 鄙 也. 为 了 达 到 不 同, 就 应 发 展 个 性, 承 认 每 个 人 气 质 性 格 的 不 同, 所 谓 盖 达 人 之 志 也 各 出 乎 天 性 不 同 于 彼 类 也. 容 许 各 人 对 同 一 曲 目 演 绎 的 多 样 化 和 创 造 性. 为 达 此 目 的, 对 乐 谱 依 赖 度 低 的 口 传 心 授 当 是 首 选 的 传 承 方 式, 因 为 如 果 在 乐 谱 上 详 尽 地 记 录 了 每 个 旋 律 花 音, 标 上 板 眼 句 逗, 固 然 方 便 了 今 日 的 准 确 弹 奏, 但 另 一 方 面 却 削 减 了 再 创 造 的 多 种 可 能 性. 正 是 在 以 骨 谱 为 基 础 的 口 口 相 传 之 中, 提 供 了 曲 目 演 绎 多 样 性 的 客 观 基 础, 有 利 于 启 迪 创 造 性 的 萌 发, 在 骨 干 音 框 架 的 基 础 上 作 多 种 润 饰, 繁 衍, 各 得 其 所, 各 美 其 美. 中 国 传 统 音 乐 的 不 传 或 秘 传, 既 有 像 琴 曲 那 样 的 曲 高 和 寡 的 原 因, 于 是 昔 人 不 传 之 秘, 嵇 康 终 其 身 而 不 传, 琴 不 妄 传 ; 也 有 作 为 祖 传 绝 技 的 谋 生 手 段 而 传 媳 不 传 女 的 情 况, 有 些 人 因 终 生 无 子 而 将 绝 技 带 到 不 该 带 去 之 处 所. 因 此, 谱 面 简 约 的 骨 谱 只 作 备 忘, 主 要 的 传 承 方 式 就 依 赖 于 口 耳 相 依 的 口 传 心 授 了. 6) 转 引 自 袁 青 戒 按 谱 自 读 今 解, 李 元 庆 民 族 音 乐 问 题 的 探 索 第 113 页,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3 年 版, 北 京 7) 同 第 3 页 69

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三, 福 建 南 音 和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的 乐 学 内 涵 在 中 国 传 统 音 乐 的 各 种 记 谱 法 中, 都 有 丰 富 的 乐 学 内 涵. 例 如 笔 者 在 中 国 传 统 音 乐 乐 谱 学 中 所 谈 的 谱 连 器, 律, 调, 也 就 是 说, 中 国 传 统 音 乐 的 记 谱 法 多 与 一 定 的 乐 器, 乐 律, 乐 调 相 关 联, 体 现 了 乐 谱, 乐 器, 乐 律, 乐 调 相 统 一 的 特 点. 同 样, 福 建 南 音 记 谱 法 也 有 其 乐 学 内 涵., ( 一 ) 南 音 基 本 谱 字 与 倍 六 头 管 南 音 调 门 称 为 管 门, 主 要 有 五 空 管, 四 空 管, 五 空 四 管, 倍 思 管 等. 这 些 称 谓 与 历 史 上 的 音 乐 现 象 有 何 关 系? 称 谓 的 来 源 在 何 处? 词 源 关 于 倍 六 头 管, 倍 思 头 管 8) 的 论 述, 为 研 究 以 上 问 题 提 供 了 许 多 有 益 的 启 示. 福 建 南 音 的 谱 字 均 与 一 定 的 固 定 音 高 相 关. 其 基 本 谱 字 与 固 定 音 高 对 应 关 系 如 下 : [ 例 6] 福 建 南 音 谱 字 音 高 谱 字 : 尺 工 六 乙 音 高 : c d e g a 若 同 我 国 民 间 通 行 的 工 尺 谱 比 较, 南 音 的 音 调 与 工 尺 谱 七 调 中 的 上 字 调 谱 字 及 其 音 高 有 某 些 相 符 之 处. [ 例 7] 工 尺 谱 上 字 调 谱 字 与 南 音 基 本 谱 字 对 照 其 中 尺 读 che 音, 意 义 也 与 尺 相 同 ; 读 士 音, 与 五 的 低 八 度 四 8) 张 炎 词 源,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70

79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相 通 ; 仅 六 相 差 半 音 : 上 字 调 为 f, 南 音 为 e. 如 果 借 用 南 音 记 谱 法 术 语, 将 上 字 调 的 六 称 作 正 六, 那 么 南 音 的 六 即 为 倍 六. 因 为 在 南 音 倍 思 管 中, 贝 士 (#f) 比 正 士 (g) 低 半 音, 倍 尺 (B) 比 正 尺 (c) 低 半 音, 倍 就 是 低 半 音 的 意 思. 这 里 倍 六 的 含 义 恰 与 张 炎 词 源 中 的 说 法 相 同. 词 源 卷 上 音 谱 条 说 : 法 曲 则 以 倍 四 头 管 品 之, 其 声 清 越. 大 曲 则 以 倍 六 头 管 品 之, 其 声 流 美 唯 慢 曲, 引, 近 则 不 同, 名 曰 小 唱, 须 得 声 字 清 圆, 以 哑 筚 篥 合 之. 9) 头 管 即 筚 篥 或 觱 篥. 因 谱 其 音 为 象 器 之 首, 至 今 鼓 吹 教 坊 用 之, 以 为 头 管. 10) 关 于 张 炎 倍 四 头 管, 倍 六 头 管 的 含 义, 历 来 有 各 种 不 同 观 点. 童 雯 在 中 乐 寻 源 中 认 为 它 们 是 苏 捺 与 叽 捺 这 两 种 近 似 后 世 唢 呐 形 的 乐 器. 该 书 上 册 第 29 页 又 说 : 按 觱 篥, 今 尚 有 两 种. 大 者 俗 称 苏 捺, 音 洪 亮, 似 即 倍 四 头 管 也. 较 小 者, 俗 称 叽 捺, 音 清 脆, 似 即 倍 六 头 管 也. 哑 觱 篥, 盖 即 今 之 头 管. 其 制 以 竹 为 管, 而 无 笳 式 之 增 音 器. 软 芦 为 哨, 长 寸 余. 音 圆 而 和. 下 于 笛 而 高 于 箫. 11) 这 是 其 一. 再 就 是 林 谦 三 在 东 亚 乐 器 考 中 认 为 : 倍 六, 倍 四, 大 概 有 如 大, 小 筚 篥, 有 着 音 律 关 系. 12) 在 以 上 两 说 中, 笔 者 认 为 林 谦 三 一 说 似 乎 比 较 接 近 于 实 际. 同 时, 笔 者 还 认 为, 张 炎 词 源 中 所 谓 倍 六 头 管 的 记 谱 法, 与 现 在 南 音 的 基 本 标 音 系 统 有 着 紧 密 联 系. 其 理 由, 除 上 面 已 经 论 述 过 的 倍 六 与 福 建 南 音 六 字 的 关 联 以 外, 尚 有 以 下 两 方 面 的 根 据. 一 是 根 据 宋 代 筚 篥 ( 管 ) 的 音 高 标 准 问 题. 杨 荫 浏 先 生 的 宋 姜 白 石 创 作 歌 曲 研 究 告 诉 我 们 : 管 ( 按 : 即 姜 白 石 所 谓 的 哑 觱 栗 角 ) 是 教 坊 燕 乐 的 重 要 乐 器, 也 是 与 词 调 有 着 密 切 关 系 的 主 要 乐 器 将 管 和 箫 相 比, 可 以 说, 箫 代 表 着 雅 乐 的 标 准 音 高, 管 则 代 表 着 教 坊 乐 的 标 准 音 高, 前 者 的 最 低 合 为 d1, 后 者 的 最 低 音 合, 依 宋 熙 宁 至 元 祐 ( ) 一 段 期 间 的 教 坊 律 来 看, 则 是 由 高 于 f1 以 至 于 高 于 e1, 平 均 音 高 在 f1 左 右, 与 现 在 智 化 寺 所 用 诸 孔 全 按 所 得 大 哨 正 调 合 音 的 高 度 相 同. 13) 杨 先 生 在 这 里 不 仅 说 明 了 宋 代 筚 篥 合 音 的 高 度 f1 左 右, 而 且 还 指 出 了 它 与 智 化 寺 大 哨 正 调 合 音 的 高 度 相 同, 从 而 证 明 了 这 种 音 高 标 准 至 今 仍 被 现 存 的 古 乐 种 所 运 用 着. 无 独 有 偶, 南 音 洞 箫 的 音 高 亦 与 上 述 箫 的 标 准 音 高 相 同 : 全 按 最 轻 力 吹 法 所 得 筒 音 是 d, 全 按 中 平 力 吹 法 所 得 筒 音 是 9) 张 炎 词 源 音 调,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10) 陈 旸 乐 书 卷 一 百 三 十 觱 篥 条. 11) 童 雯 中 乐 寻 源 上 册 第 29 页, 商 务 印 书 馆 1926 年 版 12) 林 谦 三 东 亚 乐 器 考, 音 乐 出 版 社, 1962 年 版 13) 杨 荫 浏, 阴 法 鲁 宋 姜 白 石 创 作 歌 曲 研 究, 音 乐 出 版 社, 1957 年 版 71

8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d1. 二 是 关 于 筚 篥 ( 管 ) 的 谱 字 问 题. 陈 旸 曾 对 觱 篥 谱 字 有 如 下 记 载 : 今 教 坊 所 用 上 七 空, 后 二 空, 以 五, 凡, 工, 尺, 上, 一, 四, 六, 勾, 合 十 字 谱 其 声. 14) 并 附 有 各 音 音 位 的 图 示. 如 果 将 上 述 两 点 予 以 综 合, 则 可 得 出 如 下 觱 篥 音 位, 音 高 图 : [ 例 8] 筚 篥 音 位, 音 高 图 据 此, 若 借 用 南 音 倍 的 意 义, 则 筚 篥 的 倍 六 就 是 bf, 等 音 为 e. 这 恰 好 与 南 音 历 史 上 曾 经 有 过 的 以 四 空 管 为 正 调, 四 六 为 正 六, 五 六 为 倍 六 的 意 义 相 同, 并 可 得 出 下 表 : [ 例 9] 筚 篥 谱 字 与 南 音 谱 字 之 对 照 由 此 可 见, 倍 六 头 管 与 南 音 各 对 应 谱 字 的 音 高 完 全 相 同. 至 此, 可 以 认 为, 南 音 基 本 标 音 谱 字, 音 高 位 置 与 张 炎 词 源 倍 六 头 管 记 谱 方 式 基 本 一 致, 南 音 的 基 本 谱 字 正 是 现 今 基 本 管 门 五 空 管 的 谱 字. 因 此, 我 们 是 否 可 以 由 此 推 断 : 南 音 五 空 管 ( 五 空 调 ) 与 倍 六 头 管 调 门 有 一 定 关 联. 14) 陈 旸 乐 书 卷 一 百 三 十 觱 篥 条 72

81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 二 ) 管 门 名 义 考 尽 管 南 音 五 空 管 与 倍 六 头 管 调 门 有 关 系, 然 而, 南 音 管 门 却 并 不 以 倍 六 命 名, 而 另 有 五 空 管, 四 空 管, 五 空 四 管, 倍 思 管 等 管 门 称 谓. 所 谓 管 门, 即 调 门. 五 空 管 的 基 本 谱 字 是 : 尺 (c1), 工 (d1), 六 (e1), (g1), 乙 (a1), 伬 (b1), 仜 (d2), (e2). 若 以 五 声 音 阶 对 它 进 行 考 察, 可 以 理 解 为, 是 一 种 下 面 是 一 个 以 c 为 宫 的 五 声 音 阶, 与 上 面 一 个 以 g 为 宫 的 五 声 音 阶 的 综 合. 但 占 主 导 地 位 的 是 g 宫 系 统, 因 为 还 有 五 空 四 伬 管 属 c 宫 系 统. 四 空 管 的 基 本 谱 字 是 : 尺 (c1), 工 (d1), 六 (f1), (g1), 乙 (a1), 伬 (c2), 仜 (d2). 相 当 于 f 宫 系 统 的 徵, 羽, 宫, 商, 角, 徵, 羽. 为 什 么 称 之 为 五 空 管, 四 空 管 呢? 如 前 所 述, 由 南 音 本 身 考 察, 这 与 洞 箫 的 按 孔 有 关, 因 为 五 空 管 只 开 前 第 五 孔 而 吹 得 六 音, 四 空 管 只 开 第 四 孔 而 吹 得 六 音, 所 以 分 别 得 名. 如 今 又 可 以 从 筚 篥 的 按 孔 音 位 中 得 到 另 一 答 案, 即 : 以 开 筚 篥 管 的 第 五 空 所 吹 得 的 d1 音 为 徵 音, 称 为 五 空 管 ; 以 开 筚 篥 管 的 第 四 空 所 吹 得 的 c1 音 为 徵 音, 称 为 四 空 管. [ 例 10] 筚 篥 音 孔 与 五 空 管, 四 空 管 关 系 图 这 种 分 别 以 第 五 空, 第 四 空 为 徵, 以 徵 为 主 的 调 名 来 源, 与 目 前 南 音 的 管 门 命 名 原 理 相 同, 与 我 国 民 间 音 乐 或 古 典 音 乐 的 其 他 乐 种 所 流 行 的 以 工 字 为 主, 以 六 字 为 主 15) 以 及 以 上 为 中 心 16) 的 调 门 名 称 亦 属 同 一 原 理 的 不 同 支 流. 15) 分 别 参 见 杨 荫 浏 中 国 音 乐 史 纲, 上 海 万 叶 书 店 印 行, 1952 年 版 杨 荫 浏 河 北 定 县 管 乐 曲 集, 音 乐 出 版 社, 1956 年 版 73

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然 而, 南 音 的 调 门 名 称 又 并 不 完 全 按 以 上 原 理, 其 余 五 空 四 管, 倍 思 管 等 名, 则 由 其 自 身 的 特 性 音 级 而 来. 五 空 四 管, 因 为 以 五 空 管 的 谱 字, 音 位 为 基 础, 但 高 音 伬 又 不 在 伬 (b1) 上, 而 在 四 空 管 的 伬 (c2) 位 置 上, 故 称 作 五 空 四 伬 管. 又 因 其 六 音 用 五 空 管 的 六 (e1), 所 以 也 称 之 为 五 六 四 伬 管. 其 谱 字 与 音 高 为 : [ 例 11] 五 空 四 乂 管 谱 字 与 音 高 倍 思 管, 则 以 (g1) 音 降 低 半 音 为 特 徵, 而 称 作 (#f1), 并 以 此 为 调 门 名 称. 与 之 相 应 的 尺 (c1) 音 亦 降 低 半 音 为 (b). 其 谱 字 与 音 高 为 : [ 例 12] 倍 思 管 谱 字 与 音 高 于 是, 似 乎 我 们 可 以 对 张 炎 词 源 中 的 倍 四 头 管 音 位 作 出 解 释 了. 为 了 解 释 这 一 个 问 题, 拟 先 了 解 倍 与 倍 四 的 意 义. 首 先 是 倍. 在 我 国 古 代 乐 论 中, 比 较 普 遍 的 看 法 是, 倍 与 清, 是 两 个 相 对 的 概 念. 沈 括 认 为 : 古 法 唯 有 五 音, 琴 虽 增 少 宫, 少 商, 然 其 用 丝 各 半 本 律, 乃 律 吕 清 倍 法 也. 17) 其 所 谓 清 倍 法, 即 高 低 八 度 取 音 之 法, 高 八 度 为 清, 低 八 度 曰 倍. 另 在 曾 侯 乙 钟 铭 中, 有 一 字, 为 八 度 分 组 最 低 组 的 前 缀, 当 与 倍 义 相 关. 18) 还 有 一 种, 就 是 南 音 的 倍, 即 低 半 音, 其 含 义 可 以 理 解 为 上 述 低 八 度 意 义 的 引 申, 即 往 低 取 音, 而 与 16) 参 见 袁 静 芳 鲁 西 南 鼓 吹 乐 选 集,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0 年 版 17) 沈 括 梦 溪 笔 谈 补 笔 谈 卷 一 乐 律 540 条,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79 年 版 梦 溪 笔 谈 音 乐 部 分 注 释 18) 参 见 黄 翔 鹏 曾 侯 乙 钟 磬 文 乐 学 体 系 初 探, 音 乐 研 究, 1981 年 第 一 期 74

83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变 之 义 相 同, 也 与 民 间 音 乐 背 调 的 背 义 通. 何 昌 林 指 出 : 南 谱 中 的 倍 尺 ( 贝 尺 ), 倍 士 ( 贝 思 ), 实 即 背 尺, 背 四, 比 正 尺, 正 四 各 低 半 音. 19) 他 在 引 证 乐 书 要 录, 北 梦 琐 言 王 氏 女, 智 化 寺 音 乐 的 调 门, 通 雅 笛 子 的 正 调 与 背 工 调 之 后, 又 说 : 正 由 于 调 分 正, 背, 故 南 音 ( 按 : 即 福 建 南 音 ) 中 的 倍 或 贝, 皆 背 字 之 讹 ; 背 字 一 方 面 表 示 某 个 乐 音 降 低 小 二 度, 同 时 又 表 示 由 此 产 生 了 上 五 ( 下 四 ) 度 的 旋 宫. 20) 我 们 认 为, 张 炎 词 源 中 有 关 倍 四 头 管 的 倍 四 之 倍, 应 按 南 音 倍 思 之 倍 的 意 义 解 释, 就 是 低 半 音 ; 所 谓 倍 四, 即 比 四 低 半 音. 按 此 解 释, 在 倍 六 谱 字 的 基 础 上, 顺 其 路 线 继 续 往 下 探 寻, 便 不 难 推 得 张 炎 词 源 关 于 倍 四 头 管 的 谱 字, 音 高 : [ 例 13] 倍 六 谱 字 与 倍 四 谱 字 其 中, 原 来 的 五 字 以 低 八 度 之 四 字 代 替 记 写, 这 就 正 好 与 南 音 倍 四 管 谱 字 音 位 相 符. 也 就 是 说, 作 为 南 音 管 门 的 倍 思 管, 与 作 为 调 门 的 张 炎 词 源 倍 四 头 管 的 调 门, 意 义 相 通. 此 外, 这 种 把 倍 四 作 为 一 个 调 门 的 解 释, 在 新 唐 书 中 也 可 以 找 到 根 据. 凡 所 谓 俗 乐 者, 二 十 有 八 调 : 正 宫, 高 宫, 中 吕 宫, 道 调 宫, 南 吕 宫, 仙 吕 宫, 黄 钟 宫 为 七 宫 ; 越 调, 大 食 调, 高 大 食 调, 双 调, 小 食 调, 歇 指 调, 林 钟 调 为 七 商 ; 大 食 角, 高 大 食 角, 双 角, 小 食 角, 歇 指 角, 林 钟 角, 越 角 为 七 角 ; 中 吕 调, 正 平 调, 高 平 调, 仙 吕 调, 黄 钟 羽, 高 般 涉 为 七 羽. 皆 从 浊 至 清, 迭 更 其 声, 下 则 益 浊, 上 则 益 清, 慢 者 过 节, 急 者 流 荡. 其 后 声 器 寝 殊, 或 有 宫 调 之 名, 或 以 倍 四 为 度, 有 与 律 吕 同 名, 而 声 不 近 雅 者. 其 宫 调 乃 应 夹 钟 之 律, 燕 设 用 之. 21) 这 里, 在 遍 述 俗 乐 二 十 八 调 及 其 后 声 器 寝 殊 之 次, 将 倍 四 与 宫 调, 律 吕 并 提, 19) 何 昌 林 南 音 十 题, 中 国 音 乐, 1984 年 第 二 期 20) 何 昌 林 南 音 十 题, 中 国 音 乐, 1984 年 第 二 期. 21) 新 唐 书 卷 二 十 二 志 第 十 二 乐 十 二, 中 华 书 局 新 唐 书, 1975 年 75

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因 此, 倍 四 当 为 一 种 协 律 之 器. 所 以, 我 们 可 以 将 张 炎 词 源 中 倍 四 头 管 之 倍 四, 同 南 音 倍 思 管 等 同 视 之, 它 们 不 仅 同 为 调 门 的 名 称, 而 且 在 实 际 音 高, 谱 字 方 面 亦 相 同. ( 三 ) 撩 拍 考 关 于 我 国 各 种 记 谱 法 中 的 节 拍 符 号, 何 昌 林 唐 传 日 本 天 平 遗 谱 番 假 崇 之 研 究 认 为 : 天 平 谱 的 号 为 节 拍 符 号, 即 一 为 一 板. 并 指 出 : 由 于 传 入 日 本 的 番 假 崇 一 曲 已 经 有 表 示 板 位 的 符 号, 因 此 我 认 为, 能 体 现 板 眼 观 念 的 记 谱 法 的 出 现, 至 迟 是 在 张 文 收 创 作 景 云 河 清 歌 的 时 候 : 第 七 世 纪. 22) 但 在 敦 煌 曲 谱 中, 板, 眼 则 以 口,, 号 标 示 ( 据 任 二 北 敦 煌 曲 初 探 23), 叶 栋 敦 煌 曲 谱 研 究 24) ). 有 趣 的 是 宋 末 陈 元 靓 事 林 广 记, 在 愿 成 双 令 谱 字 旁, 很 有 规 律 地 标 以 号, 我 们 认 为, 这 应 该 是 拍 板 记 号 25). 到 了 清 代 我 国 传 统 记 谱 法 的 符 号 标 示 已 日 趋 完 善, 可 以 这 样 说, 这 是 记 谱 法 的 一 次 飞 跃. 奉 乾 隆 皇 帝 钦 命 编 纂, 成 书 于 乾 隆 十 一 年 (1746 年 ) 的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以 及 同 编 辑 于 乾 隆 年 间 的 纳 书 楹 曲 谱 凡 例 就 作 了 如 下 规 定 : 谱 中, 者 为 头 板, 一 者 为 底 板, 者 为 头 赠 板, 者 为 腰 赠 板, 者 为 中 眼, Δ 者 为 腰 眼. 26)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又 在 记 谱 符 号 的 细 则 方 面 作 了 明 确 说 明 : 今 头 板 用, 即 实 板, 板 於 音 始 发 也 ; 腰 板 用 L, 即 掣 板, 拍 於 音 之 半 也 ; 底 板 用 一, 即 截 板, 拍 於 音 乍 毕 也. 其 衬 板 之 头 板 则 用 o, 腰 板 则 用, 以 别 於 正 板 音, 易 於 识 认 也. 27) 那 么, 南 音 与 以 上 记 谱 符 号 的 关 系 是 什 么 呢? 只 有 在 进 行 一 番 对 比 之 后, 我 们 才 认 为, 南 音 记 谱 法 的 节 拍 符 号, 应 该 是 一 种 在 前 两 种 书 综 合 的 基 础 上, 经 过 长 期 实 践 后 而 不 断 完 善 的 记 谱 法. 记 录 撩 拍 ( 亦 作 寮 拍 ) 时, 用 红 点, 表 示 撩 ( 即 眼, 弱 拍 ) 的 位 置, 红 圈 o 表 示 拍 ( 即 板, 强 拍 ) 的 位 置. 拍 子 记 号 有 : 慢 ( 即 散 板, 含 慢 头, 慢 尾, 破 腹 慢 ), 22) 何 昌 林 唐 传 日 本 天 平 遗 谱 番 假 崇 之 研 究, 全 国 第 二 次 民 族 音 乐 学 年 会 油 印 本. 23) 任 二 北 敦 煌 曲 初 探, 上 海 文 艺 联 合 出 版 社, 1954 年 版. 24) 叶 栋 敦 煌 曲 谱 研 究, 音 乐 艺 术 1982 年 第 1 期. 25) 陈 元 靓 事 林 广 记, 中 国 音 乐 研 究 所 编 中 国 古 代 音 乐 史 料 辑 要 第 一 集 第 703 页, 中 华 书 局, 1962 年 版. 26) 纳 书 楹 曲 谱 凡 例 第 1 页, 乾 隆 五 十 七 年 序 刻 本 纳 书 楹 曲 谱 福 建 师 大 图 书 馆 藏. 27)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凡 例 第 9 页, 新 定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岁 在 昭 阳 大 渊 阳 月 古 书 流 通 处 景 印 ( 前 有 癸 亥 孟 冬 长 洲 吴 梅 叙 ). 76

85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七 撩 一 拍, 三 撩 一 拍, 一 二 拍, 叠 拍, 紧 拍 等. 我 们 把 南 音 撩 拍 置 于 各 种 传 统 节 拍 符 号 中 进 行 对 比 之 后, 发 现 敦 煌 曲 谱 的 板 眼 符 号 与 它 十 分 相 近. 南 音 撩 位 记 号, 与 敦 煌 曲 谱 的 眼 位 记 号, 相 同, 其 拍 位 记 号 o 与 敦 煌 曲 谱 的 口 号 相 似, 也 与 事 林 广 记 中 谱 字 旁 的 o 相 同. 拍 位 记 号 口 之 向 o 的 简 化 和 演 变, 盖 因 书 写 的 方 便 起 见. 同 时, 南 音 在 七 撩 一 拍 的 第 四 撩, 加 用 L 号, 又 与 纳 书 楹 曲 谱,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的 腰 板 记 号 相 似. 值 得 注 意 的 是, 南 音 第 四 撩 的 这 一 记 号 L, 从 时 值 位 置 看, 原 应 与 纳 书 楹 曲 谱,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里 的 头 赠 板 相 当, 但 它 却 没 有 用 头 赠 板 记 号 或,. 不 过, 若 从 一 定 的 形 式 必 与 一 定 的 内 容 相 联, 一 定 的 记 谱 法 也 必 然 反 映 了 一 定 的 音 乐 观 念 出 发, 联 系 弦 管 艺 人 称 此 第 四 撩 为 尾 指 撩 来 考 察, 那 么, L 与 或 o 的 关 系, 似 乎 又 可 以 从 词 源 中 的 论 述 得 到 一 定 的 印 证 : 南 唐 书 云 : 王 感 化 善 歌 讴, 声 振 林 木, 击 之 乐 部, 为 歌 板 色. 后 之 乐 棚 前, 用 歌 板 色 二 人, 声 与 乐 声 相 应, 拍 与 乐 拍 相 合. 按 拍 二 字, 其 来 亦 古. 所 以 舞 法 曲 大 曲 者, 必 须 以 指 尖 应 节, 俟 拍 然 后 转 步, 欲 合 均 数 故 也. 28) 从 这 里, 我 们 是 否 可 以 说, 南 音 的 尾 指 撩 与 这 种 指 尖 应 拍 有 一 定 的 联 系 呢? 那 么, 在 尾 指 撩 上 不 记 作 或 o, 而 记 作 L 符 号, 是 否 也 是 一 个 从 繁 到 简 的 演 变 结 果 呢? 另 外, 福 建 南 音 按 拍 动 作 又 称 打 撩, 踏 撩. 其 实, 打 撩 一 语 亦 由 来 已 久. 唐 段 安 节 乐 府 杂 录 羯 鼓 条 云 : 咸 通 中 有 王 文 举, 尤 妙 ( 这 里 指 妙 於 击 奏 羯 鼓 ) 弄 三 杖 打 撩, 万 不 失 一, 懿 皇 师 之. 29) 这 里 的 打 撩, 应 该 是 羯 鼓 演 奏 技 巧 之 一 种. 从 者 简 扼 的 描 述 中, 我 们 可 以 得 知, 王 文 举 双 手 能 以 三 枝 鼓 杖 演 奏 而 不 失 手, 可 见 其 技 巧 之 精. 而 且, 王 文 举 之 精 湛 技 艺, 还 从 侧 面 反 映 了 唐 代 高 超 的 音 乐 水 平. 唐 朝 诗 人 崔 道 融 就 在 七 绝 羯 鼓 中 描 绘 了 以 撩 拍 击 奏 羯 鼓 的 盛 况 : 华 清 宫 里 打 撩 声, 供 奉 丝 簧 束 手 听 ; 寂 寞 銮 舆 斜 谷 里, 是 谁 翻 得 雨 淋 铃. 30) 诗 中 的 打 撩, 应 是 敲 击 演 奏 羯 鼓 之 意. 羯 鼓 属 打 击 乐 器, 按 节 应 拍 为 理 所 当 然. 今 天, 南 音 中 的 打 撩 自 然 已 经 不 是 用 羯 鼓 打 撩 了, 但 今 天 南 音 的 打 撩 有 其 历 史 渊 源 这 一 点, 是 不 用 怀 疑 的. 28) 张 炎 词 源 拍 眼,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第 257 页,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29) 唐 段 安 节 乐 府 杂 录, 中 国 戏 剧 出 版 社 中 国 古 典 戏 曲 论 著 集 成 第 1 册 第 57 页, 1959 年 版. 30) 明 赵 宦 光, 黄 习 远 编 定 万 首 唐 人 绝 句 卷 三 十 六 书 目 文 献 出 版 社 1983 年 版, 第 876 页. 77

8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注 释 : 1. 明 朱 权 神 奇 秘 谱 第 2 页 ( 中 央 音 乐 学 院 民 族 音 乐 研 究 所 据 明 刊 本 影 印, 音 乐 出 版 社, 1956 年, 北 京 ). 2. 详 见 福 建 南 音 唱 腔 旋 法 中 的 多 重 大 三 度 并 置, 王 耀 华, 刘 春 曙 福 建 南 音 初 探, 福 建 人 民 出 版 社 1990 年 版, 第 页. 3. 潘 怀 素 从 古 今 乐 谱 论 龟 兹 乐 影 响 下 的 民 族 音 乐. 转 引 自 任 半 塘 唐 声 诗 上 编,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年 版, 第 页. 4. 参 见 李 石 根 西 安 鼓 乐 谱 解 读 油 印 本, 李 健 正, 余 涛 西 安 古 乐 谱 概 述, 西 安 音 乐 学 院 学 报 1983 年 第 4 期. 5. 任 二 北 唐 声 诗,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82 年 版. 6. 转 引 自 袁 青 戒 按 谱 自 读 今 解, 李 元 庆 民 族 音 乐 问 题 的 探 索 第 113 页,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3 年 版, 北 京. 7. 同 第 3 页. 8. 张 炎 词 源,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9. 张 炎 词 源 音 调,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10. 陈 旸 乐 书 卷 一 百 三 十 觱 篥 条. 11. 童 雯 中 乐 寻 源 上 册 第 29 页, 商 务 印 书 馆 1926 年 版. 12. 林 谦 三 东 亚 乐 器 考, 音 乐 出 版 社, 1962 年 版. 13. 杨 荫 浏, 阴 法 鲁 宋 姜 白 石 创 作 歌 曲 研 究, 音 乐 出 版 社, 1957 年 版. 14. 陈 旸 乐 书 卷 一 百 三 十 觱 篥 条. 15. 分 别 参 见 杨 荫 浏 中 国 音 乐 史 纲, 上 海 万 叶 书 店 印 行, 1952 年 版. 杨 荫 浏 河 北 定 县 管 乐 曲 集, 音 乐 出 版 社, 1956 年 版. 16. 参 见 袁 静 芳 鲁 西 南 鼓 吹 乐 选 集,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80 年 版. 17. 沈 括 梦 溪 笔 谈 补 笔 谈 卷 一 乐 律 540 条, 人 民 音 乐 出 版 社, 1979 年 版 梦 溪 笔 谈 音 乐 部 分 注 释 18. 参 见 黄 翔 鹏 曾 侯 乙 钟 磬 文 乐 学 体 系 初 探, 音 乐 研 究, 1981 年 第 一 期. 19. 何 昌 林 南 音 十 题, 中 国 音 乐, 1984 年 第 二 期. 20. 何 昌 林 南 音 十 题, 中 国 音 乐, 1984 年 第 二 期. 21. 新 唐 书 卷 二 十 二 志 第 十 二 乐 十 二, 中 华 书 局 新 唐 书, 1975 年 22. 何 昌 林 唐 传 日 本 天 平 遗 谱 番 假 崇 之 研 究, 全 国 第 二 次 民 族 音 乐 学 年 会 油 印 本. 78

87 从 福 建 南 音 工 伬 谱 看 中 国 传 统 音 乐 记 谱 法 特 点 23. 任 二 北 敦 煌 曲 初 探, 上 海 文 艺 联 合 出 版 社, 1954 年 版. 24. 叶 栋 敦 煌 曲 谱 研 究, 音 乐 艺 术 1982 年 第 1 期. 25. 陈 元 靓 事 林 广 记, 中 国 音 乐 研 究 所 编 中 国 古 代 音 乐 史 料 辑 要 第 一 集 第 703 页, 中 华 书 局, 1962 年 版. 26. 纳 书 楹 曲 谱 凡 例 第 1 页, 乾 隆 五 十 七 年 序 刻 本 纳 书 楹 曲 谱 福 建 师 大 图 书 馆 藏. 27.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凡 例 第 9 页, 新 定 九 宫 大 成 南 北 词 宫 谱 岁 在 昭 阳 大 渊 阳 月 古 书 流 通 处 景 印 ( 前 有 癸 亥 孟 冬 长 洲 吴 梅 叙 ). 28. 张 炎 词 源 拍 眼, 唐 圭 璋 词 话 丛 编 第 一 册 第 257 页, 中 华 书 局 1986 年 版. 29. 唐 段 安 节 乐 府 杂 录, 中 国 戏 剧 出 版 社 中 国 古 典 戏 曲 论 著 集 成 第 1 册 第 57 页, 1959 年 版. 30. 明 赵 宦 光, 黄 习 远 编 定 万 首 唐 人 绝 句 卷 三 十 六, 书 目 文 献 出 版 社 1983 年 版, 第 876 页.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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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當 代 ) 연구실태 개관 유 칭 이* 31) 변 역 최 춘 월** 32) <국문초록>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명고국( 文 明 古 国 )으로서 풍부한 무용문화유산을 가 지고 있다. 중국은 매우 오래전에 역사를 기재하는 문자를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한 오래전에 무용을 전수하는 방법, 즉 무보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잦은 변 고로 인해 소장되어 있던 문헌이 많이 소실되었고, 대부분 역사의 먼지 속에 사라져 갔다. 따라서 중국고대의 무보는 남아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일부 학자들이 발굴 하고 정리해 낸 무보는 매우 진귀하다. 중국에서 현재 발견한 세상에 아직 남아있는 무보는 문화적인 형태에 근거하여 아래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무( 巫 ), 격( 觋 ) 무용( 舞 蹈 )의 무보이다. 주요 하게 갑골문사화무보( 甲 骨 文 社 火 舞 谱 ), 팔괘무보( 八 卦 舞 谱 ), 재초무보( 斋 醮 舞 谱 ) 등이 있다. 둘째, 아악무용( 雅 乐 舞 蹈 )의 무보이다. 북송궁궐( 北 宋 宫 廷 )의 <문 무( 文 舞 )> 와 <무무( 武 舞 )> 의 무보 이다. 원대( 元 代 )의 소무무보( 韶 舞 舞 谱, 명대 ( 明 代 ) 주재육( 朱 载 堉 )이 엮은 아악을 복구한 무보, 청대( 清 代 )의 궁궐제사[ 宫 廷 祭 祀 ]와 의식[ 典 仪 ]때 사용하던 무보, 명( 明 ),청( 清 )의 문묘석존악무무보( 文 庙 释 奠 乐 舞 舞 谱 ) 등이다. 셋째, 연악무용( 宴 乐 舞 蹈 )의 무보이다. 주요하게 당대의 돈황무 보( 敦 煌 舞 谱 ) 가 있다. 넷째, 기악무용( 伎 乐 舞 蹈 )의 무보이다. 주요하게 남송( 南 宋 ) 의 덕수궁무보( 德 寿 宫 舞 谱 ) 가 있다. * 항주사범대학 남송악무연구 중심주임 **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81

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위에서 서술한 무보의 기보방법은 주요하게 두 종류이다. 그 중 하나는 문자보 ( 文 字 谱 ) - 상형류의 자보와 설명류의 악보, 그리고 용어류의 악보를 포함한다. 또 한 종류는 도보( 图 谱 )이다. 무용 방위( 方 位 )류의 도보, 무용 행진노선류( 行 进 路 线 )류 의 도보 무용에서 발 위치[ 脚 位 ]류의 도보 및 무용동작자세 혹은 형상류( 形 象 类 )의 도보를 포함한다. 본문은 중국고대역사를 왕조 연대에 따라 모두 네 단계로 나누었으며, 중국고대무 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에 대해서 논술하고자 한다. 본문에서는 무보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을 주로 다뤄 소수민족의 무보, 예를 들면 납서족( 纳 西 族 )의 동파무보( 东 巴 舞 谱 ) 와 몽고족의 사마경( 查 玛 经 ) 등에 대 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핵심어: 중국고대무보, 무격무보, 아악무보, 연악무보, 기악무보 목 차 Ⅰ. 하( 夏 ), 상( 商 )에서 진대( 晋 代 )에 이르기까지 무보유존과 연구 Ⅱ. 당( 唐 ), 송대( 宋 代 )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Ⅲ. 원( 元 ), 명( 明 )대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Ⅳ. 청대( 清 代 )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Ⅴ. 당대무보( 當 代 舞 谱 )의 응용연구중의 성과와 문제점 82

91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Ⅰ. 하( 夏 ), 상( 商 )에서 진대( 晋 代 )에 이르기까지 무보유존과 연구 1. 팔괘무보( 八 卦 舞 谱 ) - 하대( 夏 代 ): 기원전 년 중국의 가장 빠른 무보유존에 대해 주빙( 周 冰 )과 증람( 曾 岚 )은 팔괘무보( 八 卦 舞 谱 ) 라 고 생각했다. - 주빙( 周 冰 ), 증람( 曾 岚 ), 그들은 민간제사의례무용에 많은 신비한 부호가 있으며 무당들이 쓰는 단어와 기도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구주팔괘( 九 州 八 卦 ) 그림의 기도문[ 巫 词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백탐량감수금( 一 白 贪 粮 坎 水 金 )(자: 子 ), 이흑거문곤사림( 二 黑 巨 门 坤 士 临 )(신: 申 ). 이벽록존진목시( 二 碧 禄 存 震 木 是 )(묘: 卯 ), 사연손상문곡성( 四 缘 巽 上 文 曲 星 )(이: 已 ). 오황렴중속중토( 五 黄 廉 中 属 中 土 )(중: 中 ), 육백무곡건상순( 六 白 武 曲 乾 上 巡 )(해: 亥 ). 칠적파중진시태( 七 赤 破 中 真 是 兑 )(유: 酉 ), 팔백좌차피 간상중( 八 白 左 车 皮 艮 上 中 )(인: 寅 ). 구자우필리대홍( 九 紫 右 弼 离 大 红 )(오: 午 ), 현중묘어새황금.( 玄 中 妙 语 赛 黄 金 ) 또한 선천팔괘( 先 天 八 卦 ) 에 적혀 있는 기도문은 아래와 같다. 일배곤북기주지( 一 拜 坤 北 冀 州 地 ), 이배건궁자남경( 二 拜 乾 宫 自 南 京 ). 삼배리동양주성( 三 拜 离 东 扬 州 城 ), 사배감서량주행( 四 拜 坎 西 梁 州 行 ). 오배간상옹중주( 五 拜 艮 上 雍 中 走 ), 륙배태궁주 兖 주( 六 拜 兑 宫 走 兖 州 ). 칠배진상청주주( 七 拜 震 上 青 州 走 ), 팔배손궁형주향( 八 拜 巽 宫 荆 州 乡 ). 중궁답도여주부( 中 宫 踏 到 予 州 府 ), 신귀원래정팔방( 神 鬼 原 来 定 八 方 ). 오배간상옹중주, 륙배태궁주 兖 주. 칠배진상청주주, 팔배손궁형주향. 중궁답도여주부, 신귀원래정팔방. 그들은 이것이 일종의 무용동작의 표기라고 생각하였는데 오행( 五 行 )으로 자리를 정하고 이러한 무격 기도문[ 巫 词 咒 语 ]과 서로 결합한 무보라고 확신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래와 같다. 83

9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팔괘무보 는 대략 사천 년 전의 하 나라 때 생겨났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 것은 하나라가 씨족사회에서 노예사회로 전환하는 시기로 계급과 국가가 형성되는 전환기 여서 제사의식을 포함한 각종제도가 막 세워지고 점점 더 완벽해지는 때였다. 우왕( 禹 王 ) 은 제사를 성대하게 하고 귀신을 존중하고 음악과 춤에 능하던 제왕이었으며 그 자신도 제 사장이어서 독특한 무용보법인 우보( 禹 步 ) 를 창조했다. 하 나라의 우가 물을 다스려 백 성들에게 복을 가져 주었는데 그는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들르지 않아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가 순임금[ 舜 ] 의 뒤를 이은 다음 고도( 皋 陶 )는 우( 禹 )임금의 덕을 흠모하여 백성들에게 모두 우처럼 할 것이며, 만약 하지 않으면 형벌로써 다스린다고 하였다. 하왕조( 夏 王 朝 )는 신을 신봉하고 무풍( 巫 风 )이 성행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우를 따르는 것 은 필연적으로 제사의식에서 모두 우를 따르는 것 이다. 그리고 후대의 문헌에서 주술 사들은 그들이 이러한 의식을 행하는 과정에서의 답강보두( 踏 罡 步 斗 ) 와 채팔괘( 踩 八 卦 ) 를 우보( 禹 步 ) 라고 불렀다. 우는 중국을 구주( 九 州 )로 나누었고 각자 수도를 중심으로 삼 았는데 이는 주술언어에 모두 언급이 되어 있다. 이외 고고학에서는 하나라에 이미 문자와 청동기가 있었으며 구주를 상징하는 동( 铜 )으로 만든 정( 鼎 )의 문양이 주술을 사용할 때 추 는 춤의 손 모양과 의미와 형식에서 많은 일치성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고, 또한 하나라 때 의 역서에는 이미 간지( 干 支 )로서 날짜를 적는 법을 발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보가 비록 하나라에서 기원했지만 수집해 모은 무보가 바로 하나라의 무보라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무보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특히 진( 秦 ), 한( 汉 ) 이후에 도교( 道 教 )가 무교( 巫 教 )의 모태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우보 는 단순한 삼보( 三 步 ), 구채( 九 踩 ) 에서 점점 다양한 품세( 套 路 )로 발전하였고, 또한 답 강보두( 踏 罡 步 斗 ) 도 채팔괘( 踩 八 卦 ) 의 범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 갑골문( 甲 骨 文 ) 위의 무보 : 상대( 商 代 ) 기원전 년 팽송( 彭 松 )은 중국의 가장 빠른 무보는 상대의 갑골문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갑골문 은 상형문자이고 이 문자는 형상적으로 무용의 각 동작에 대해서 기록했다. 은허문자갑편 ( 殷 墟 文 字 甲 编 ) 중의 일부 글자는 모두 무용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3069호 갑골문의 무( 舞 ) 자는 마치 한 사람이 두 손에 소꼬리를 들고 춤을 추는 것 같다. 3528호 갑골문은 여자 무당이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쓰고, 몸 뒤에는 꼬리 장식을 하고 몸을 옆으로 돌려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을 무보라고 할 수는 없고 갑골 문에 기록된 무용의 노선도를 중국에서 가장 원시적인 무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84

93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은허문자갑편( 殷 墟 文 字 甲 编 ) 2418호와 2307호에 나타난 세 무용노선도는 처음에는 매 우 신비한 부호로 여겼지만 후에 이것이 한나라 화상전( 画 像 砖 )의 무용그림과 섬북( 陕 北 ), 동북요양( 东 北 辽 阳 )지구의 사화( 社 火 ), 앙가( 秧 歌 ) 등의 무용대 노선무보( 路 线 舞 谱 ) 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그들의 제사의 사( 社 : 토지신( 土 地 神 )) 과 직( 稷 ): 오 곡신( 五 谷 神 )) 에서 기능상 매우 비슷한 일치성을 보인다. 그리고 악무로서 사, 직 을 제 사지내는 것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다. 3. 진대( 晋 代 )의 우보( 禹 步 )무보 : 진대 기원 년 진대도사 갈홍( 葛 洪 : 기원전 )은 포박자( 抱 朴 子 )٠내편( 内 篇 ) 에서 도교(( 道 教 ) 또한 무교( 巫 教 )이기도 함)의 무보, 즉 우보( 禹 步 ) 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다. 이 책에 기 록된 우보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선약권( 仙 药 卷 ) 에 기재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등 섭권( 登 涉 卷 ) 에 기재되어 있다. 전자는 양생( 养 生 )용이고 후자는 법술을 쓸( 做 法 ) 때 사용 하는 것이다. 포박자( 抱 朴 子 )٠내편( 内 篇 ) 선약권( 仙 药 卷 )의 우보법( 禹 步 法 ) 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전거좌( 前 举 左 ), 우과좌( 右 过 左 ), 좌취우( 左 就 右 ). 차거우( 次 举 右 ), 좌과우( 左 过 右 ), 우취좌.( 右 就 左 ). 차거좌( 次 举 左 ), 우과좌( 右 过 左 ), 좌취우( 左 就 右 ). 여차삼보( 如 此 三 步 ), 당만이장일( 当 满 二 丈 一 ), 후유구적( 后 有 九 迹 ). 후세에 도교와 무교무용이 우보 를 사용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오래된 무용보법이 긴 세월동안 전해 내려 왔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이 무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보의 형태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4. 도교( 道 教 ) 재초과의( 斋 醮 科 仪 ) 유존무보( 遗 存 舞 谱 ): 동한( 东 汉 ) 기원25-220년 남북조( 南 北 朝 ) 기원 년 도교는 중국의 중요한 종교 중 하나로 동한시기에 시작되어 남북조시기에 성행했다. 위 에서 서술한 무보다우( 巫 步 多 禹 ) 처럼 무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우보 는 지금에 이르러 이미 사천 여년의 세월을 흘러 내려왔다. 도교의 재초과의( 斋 醮 科 仪 ) 중 우보 는 지금까 지 이미 천 육백여년의 세월을 전승해왔다. 85

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950년대 중국무용연구팀은 쑤저우 도교예술에 대해서 고찰하고 소주도교예술집( 苏 州 道 教 艺 术 集 )(1957) 을 편찬해 재초의식( 斋 醮 仪 式 )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중국도 교의 팔대교파인 一 현묘관정( 玄 妙 观 正 ) 一 도교 파의 과의악무( 科 仪 乐 舞 )에 대해서 체계적으 로 정리하고 해석하였으며, 영화로 만들었다. 제단을 세워 천지에 고하는 것 은 중국의 예부터 있었던 전통이다. 전해져 오는바에 의 하면 초사( 醮 事 ) 1) 는 헌원황제( 轩 辕 黄 帝 )가 창시한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요태게( 瑶 台 偈 ) 2), 천보허( 穿 步 虚 ) 3) 등의 군무( 群 舞 ) 및 독무( 独 舞 )인 보강채두( 步 罡 踩 斗 ) 4) 의 위치와 보법에 대해서 모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강서용호산( 江 西 龙 虎 山 )정일도( 正 一 道 )는 재초의식( 斋 醮 仪 式 )에서 수결( 手 诀 )과 보강( 步 罡 ), 검무( 剑 舞 )가 잘 결합하여 완벽한 법사무용이 형성되었다. Ⅱ. 당( 唐 ), 송( 宋 )대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1. 당오대( 唐 五 代 )의 돈황무보 의 잔권( 残 卷 ): 당대 기원 ) 돈황무보( 敦 煌 舞 谱 ) 의 발견 1900년에 발견한 당오대 돈황무보잔권 은 현재 세 종류가 남아있다. (1) P.3501호는 폴 플레오 (Paul Pelliot)가 중국에서 가져가 지금은 파리에 있는 프랑스도서관에 수장되어 있다. <하방원( 遐 方 远 )>, <남가자( 南 歌 子 )>, <남향자 ( 南 乡 子 )>, <쌍연자( 双 燕 子 )>, <완계사( 浣 溪 沙 )>, <풍귀운( 风 归 云 )>의 6조14곡 1) 제사에서 일종의 기도를 말한다. 2) 요태게( 瑶 台 偈 ) 초사( 醮 事 ) 전표( 全 表 ) 중의 한 단계이다. 요대선경( 瑶 台 仙 境 )을 상상하면서 사람들 은 꽃을 달고 함께 노래 부르는데 신선의 노래는 우렁차다. 3) 보허( 步 虚 ) 는 초사( 醮 事 ) 전부( 全 符 ) 가 시작될 때 법사( 法 师 )가 첫 절차로 전달( 传 递 ) (먼저 부명 장을 그리고 그에게 공문을 전달하게 한다.) 후, 두 번째 절차는 보허 단 위에 올라가 명령을 집행 할 준비를 하며 여러 장군( 众 将 )을 불러 청한다. 초단( 醮 坛 )을 주관하는 고공( 高 功 ) 은 엎드려 절한 다. 보허 는 이 절차에서 사용하는 음악의 명칭이며 노래가사를 곁들인다. 천보허( 穿 步 虚 ) 는 화사 조( 火 司 朝 ) 중의 한 절차이다. 전문적인 기도문을 이미 읽고 잘못한 점에 대해 참회하고 나서 대중들 은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4) 보강답두( 步 罡 踏 斗 ) 는 고공( 高 功 )이 전표( 全 表 ) 에서의 절차이다. 원신( 元 神 )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표문( 表 文 )을 아뢴다. 86

95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이 포함된다. (2) S.5643는 스타인 (A.Stein)이 중국에서 가져가 지금은 런던 영국도서관에 수장 되어 있다. <맥산계( 蓦 山 溪 )>, <남가자( 南 歌 子 )>, <쌍연자( 双 燕 子 )>등 3조 10곡 이 담겨 있다. (3) S.3791은 스타인이 중국에서 가져갔고 지금은 영국국회도서관에 수장되어 있으 며 요종신( 饶 宗 颐 )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내용은 <완계사( 浣 溪 沙 )> 잔권( 残 卷 )이 며 세 줄만 남아 있다. 1984년 이후에 발견된 세 악보는: (4) S.5613권. 원문은 서의권( 书 仪 卷 ) 여부서( 与 夫 书 ) 의 제목 아래에 씌어져 있 다. 전문에는 병렬로 모두 네 줄이 있으며 제목은 13글자이다. 개평세칠월칠일 간제덕심기지( 开 平 岁 七 月 七 日 简 题 德 深 记 之 ) 즉 후량 개평3년 909년이다. 이 발 견은 돈황무보 연대( 敦 煌 舞 谱 年 代 )의 분쟁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데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남가자( 南 歌 子 ) 이며 돈황연구원 이정우 ( 李 正 宇 )가 발견했다. (5) S.785권이다. 원문은 이릉여소무서( 李 陵 与 苏 武 书 ) 의 제목 앞에 거꾸로 쓰여 있으며 두 줄, 아홉 자만 남았다. 그 곡조의 이름은 <곡자하협배( 曲 子 荷 叶 杯 )> 이며 아래에 한 줄의 곡조가 남아 있다. (6) S.7111권배 <곡자별선자( 曲 子 别 仙 子 )> 사서( 词 序 )이다. 시검홍( 柴 剑 虹 ) 등이 발 견했으며 고적정리출판정황간보( 古 籍 整 理 出 版 情 况 简 报 ) 174기에 발표되었다. (7) 북경도서관820호. 전문은 모두 11줄이며 두 곡조이고 곡 단락이 동일하다. 매 곡은 여덟 구이고 매 구는 다섯 박자이다. 이리하여 지금까지 발견한 돈황무보 는 일곱 건이고 13조 (그 중에서 <남가자( 南 歌 子 )>, <쌍연자( 双 燕 子 )>, <완계사( 浣 溪 沙 )>는 중복된다.)이며 30곡이다. 무보는 대부분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바로 서사악보( 序 词 谱 字 )와 표상악보( 表 象 谱 字 )이다. 이는 학자들이 연 구하는 주요 대상과 내용이 된다. 서사악보( 序 词 谱 字 )는 바로 매 악보의 시작문자로 곡명 과 박자, 리듬, 악보의 구조를 설명한다. 표상악보는 무용 의 13글자인데 령( 令 ), 무( 舞 ), 뇌( 挼 ), 요( 摇 ), 거( 据 ), 예( 拽 ), 두( 头 ), 송( 送 ), 기( 奇 ), 약( 约 ), 여( 与 ), 청( 请 ), 서( 揟 )이다. 베이징 도서관 820호에는 무( 舞 ), 송 ( 送 ), 거( 据 ), 뇌( 挼 ), 기( 奇 ) 외에도 또 황( 皇 ), 타( 打 ), 절( 折 ) 등이 여덟 자를 형성한다. 87

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돈황무보 연구 중의 주요한 초점 중국고대악부시가가 일체화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돈황무보 의 연구는 분야를 뛰어 넘 는 연구가 되었는데 중국인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성과로 볼 때 주요한 관심분야는 다 음과 같다. (1) 돈황무보 는 무보 인가 돈황잔권( 敦 煌 残 卷 ) 은 무보로서 유반농( 刘 半 农 ) (유복- 刘 复 )이 1931년에 그의 돈황 철쇄( 敦 煌 掇 琐 ) 에서 그렇게 부르고나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당나라 사람들이 원래는 어떻게 불렀는지는 고증해 봐야 한다. (임이북- 任 二 北, 1953) 어떤 학자는 그 곡 이 곡식( 曲 式 )과 무식( 舞 式 )이 동보( 同 步 )성과 어긋남[ 错 位 ]의 무보 이다. (팽송- 彭 松, 1989)고 말했다. (2) 돈황무보 에 기재된 무용의 성질 돈황무보 가 속무( 俗 舞 )인지 아니면 아무( 雅 舞 )인지에 대해 공통된 인식은 속무이다. 그러나 돈황무보 가 주령보( 酒 令 谱 ) (예를 들면 나용( 罗 庸 ), 협옥화( 叶 玉 华 ), 팽송( 彭 松 ), 왕곤오( 王 昆 吾 )등의 문장)인지, 아니면 대곡에서 온 잡곡보( 杂 曲 谱 ) (임이북- 任 二 北, 1953)인지, 혹은 사원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교무용의 무보인지(왕극분- 王 克 芬, 1985)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론이 분분하다. (3) 당대주령예술( 唐 代 酒 令 艺 术 )과 돈황무보 의 관계 돈황무보가 당대 주령예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나용, 협옥화가 자신의 문장에 서 먼저 제기하였고, 팽송문( 彭 松 文 )이 가장 확고하고, 왕곤오의 문장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다뤘다. (4) 돈황무보잔권( 敦 煌 舞 谱 残 卷 ) 의 정리와 분석에 대한 연구 임이북, 팽송, 시검홍, 석진관등의 문장에 모두 깊이 있게 다뤘다. (5) 돈황무보 의 교석( 校 释 )과 자의( 字 义 )에 있어서의 의문점에 대한 연구 이 방면에 대해 학자들이 가장 많은 연구를 했는데 요종신( 饶 宗 颐 )이 제일 먼저 시작했 고 그 뒤 많은 학자들이 다투어 연구하고 있다. 88

97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6) 돈황무보 의 박자에 대한 연구 이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데 조존악( 赵 尊 岳 )과 석진관( 席 臻 ) 贯 이 비교적 깊이 있게 연구했다. (7) 돈황무보 의 구( 句 )를 읽는데 대한 연구, 악율( 乐 律 )에 대한 연구, 서열( 序 列 ), 원 형( 原 型 ) 에 대한 연구 이는 석진관이 주요하게 연구했으며 비교적 체계적이다. (8) 돈황무보 중의 무용 에 대한 연구 무용은 무보를 해독하는데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연구는 무보의 교석( 校 释 )과 해 석하고 읽어내기, 그리고 의문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서 로 겹쳐있어 대부분 학자들이 모두 이 방면의 연구에 어느 정도 관여했지만 무용의 동작 자체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한 학자는 주요하게 왕극분( 王 克 芬 )과 팽송( 彭 松 )이다. (9) 돈황무보 연구의 시각과 방법 대부분 학자 자신의 배경과 그들의 가지고 있는 자신들만의 우위( 优 势 )로 결정된다. 그 들은 문사( 文 史 )방면의 연구에 있어서의 우위, 혹은 음악학 연구에 있어서의 우위, 희곡학 ( 戏 曲 学 )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의 우위, 혹은 무용역사학의 연구에 대한 우위에 힘입어 여 러 각도와 시각으로 파고들어 돈황무보 연구가 많은 중요한 진전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 러나 돈황무보 는 그 역사가 길어 그에 대한 해독과 연구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하여 많은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고 학자들이 이미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설을 제기하였다고 하지만 한충 더 깊은 고증을 거쳐야 한다. 2. 북송( 北 宋 )의 <문무( 文 舞 )>와 <무무( 武 舞 )> 의 무보: 북송 기원전 년 송사 ( 宋 史 ) 악지( 乐 志 ) 의 기록에 의하면, 원풍( 元 丰 )4년(기원1081년)12월 처음으로 대악장( 大 乐 正 ) 5) 협방( 叶 防 )에게 조회에서 공연될 두 무보를 편찬하라고 명했다. <무무>는 5) 궁전에서 예악을 관장하는 벼슬이름. 89

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위가사해( 威 加 四 海 ) 의 무용이고, <문무>는 화성천하( 化 成 天 下 ) 의 무용이다. 악지는 그 무용 이름 아래에 문자로 매 동작(무보약- 舞 谱 略 )을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궁정조회아 악무용( 宫 廷 朝 会 雅 乐 舞 蹈 )의 비교적 완벽한 문자로 기록된 무보이다. 이 두 의식에 사용되는 무용은 서주초기( 西 周 初 年 )의 제례작악( 制 礼 作 乐 ) 이 남아내려 온 것이다. <문무>와 <무무>는 64명이 추는 춤으로 <팔일지무( 八 佾 之 舞 )>이다. 무무는 손 에 방패와 창을 들고 추며, 세 번 변하는데 항상 네 번 찌른다. 다 같이 나아가고 들어오 는데 의기충천하며 무술로 천하를 정복한다. 문무는 손에 약 6) 적( 龠 翟 )을 들고 추는데 세 번의 변화를 준다. 사보( 四 步 ), 삼읍( 三 揖 ), 삼사( 三 辞 ), 삼겸( 三 谦 )이 한 과정이다. 문치의 덕으로 천하를 이룬다. 악지 에 규정하기를 무릇 이 두 가지 춤으로 표기를 장식하고 춤으 로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는 것은 큰 제사에 사용되는 춤과 같다. 협율랑( 协 律 郎 ) 7) 진기( 陈 沂 )가 읽어보고 나서 리듬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조회에 사용하였다고 말했다. 팽송( 彭 松 ), 풍벽화( 冯 碧 华 )는 랍반무보( 拉 班 舞 谱 ) 중국고대무보 에서 랍반무보 의 기보방법으로 위가사해( 威 加 四 海 ) 의 무용 중 부분적인 무용동작에 대해서 기록했다. 복 원을 목적으로 필자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3. 남송( 南 宋 )의 덕수궁무보( 德 寿 宫 舞 谱 ) : 기원 년 현재 남송의 덕수궁무보 의 유존은 주요하게 남송 주밀( 周 密 )의 계신잡식후집( 癸 辛 杂 识 后 集 ) 에 보인다. 덕수궁무보 는 또한 남송의 첫 황제 조구( 赵 构 )가 덕수궁에서 생활하 던 기간 악기( 乐 伎 )들이 무용을 헌상( 献 舞 )할 때 사용한 무식( 舞 式 )이다. 책의 기록으로 볼 때 이는 덕수궁무보 의 원 악보는 아니고 다만 세밀하게 악보중의 일부분 무식에서 뽑아낸 것이다. 또한 덕수궁무보 는 무곡이 있는 것이며 그중에 모두 새로 곡을 만들었다. 팽송은 이를 남송기인의 무용용어보 라고 쉽게 이름 지었다. 덕수 궁무보 의 연구는 주요하게 제여산( 齐 如 山 )의 국극신단보( 国 剧 身 段 谱 ) (1915)에 많이 보 인다. 희곡( 戏 曲 )의 단락을 참고해서 이를 서술했다. 6) 대나무 관을 엮어 만든 중국 고대 악기, 후대의 배소( 排 簫 )와 비슷함. 7) 궁에서 음률을 장관하는 벼슬이름. 90

99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그는 <좌우수수( 左 右 垂 手 )>, <도수인( 掉 袖 儿 )>, <대소전찬( 大 小 转 撺 )>은 모두 여자의 무 용이며, 희곡의 단각( 旦 脚 )이 무대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며 그 중에는 소맷자락을 흔드는 동작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소전찬( 大 小 转 撺 )>은 군무에 속하지만 각각의 동작이 따로 있다. <타원앙장( 打 鸳 鸯 场 )>은 원앙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포로철( 鲍 老 掇 )>은 여러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었을 것이다. <오화인( 五 花 儿 )>은 손에 도구를 들고 추 는 춤이고, <안시인( 雁 翅 儿 )>은 기러기의 날개와 관련이 있는 자세이다. <구배인( 龟 背 儿 )> 은 <화무( 花 舞 )>나 <자무( 字 舞 )>와 비슷하다. <근제인( 勤 蹄 儿 )>은 대부분 손에 관련된 이 름이 있는데 아마 소매 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번역해 냈고 또 연구하는 학 자들이 적은 관계로 한층 더 깊이 있는 고증이 필요하다. Ⅲ. 원( 元 ), 명( 明 )대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1. 원대( 元 代 )의 소무무보( 韶 舞 舞 谱 ) : 원대 기원 년 구소지무( 九 韶 之 舞 ) 에 대한 연구는 팽송( 彭 松 )과 풍벽화( 冯 碧 华 )의 랍반무보( 拉 班 舞 谱 ) 중국고대무보 에 보인다. 소무구성악보( 韶 舞 九 成 乐 补 ) 도보( 图 谱 )의 대형도( 队 形 图 )에 근거하여 이 무용의 무대평면도를 번역해냈다.(1989) 구소지무( 九 韶 之 舞 )무보 는 원대 문종천력( 文 宗 天 历 )(기원 )연간의 사람 여 재( 余 载 )(자 대차- 大 车 ) 가 쓴 것이다. 소무( 韶 舞 ) 또한 대경( 大 磬 ) 이라고도 하며 순 임금 시기(기원전 22세기 이전)의 악무라고 전혀 내려오고 있고 기( 夔 ) 8) 가 창조했으며 순 임금이 요임금을 계승하여 공덕을 쌓고 만민에게 복을 주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 표현 방식에 있어 요의 악무 <대장( 大 章 )>, <격석부석( 击 石 拊 石 )>, <풍황래의( 风 凰 来 仪 )>, <백 수솔무( 百 兽 率 舞 )>를 이어 받아 원시 무용의 풍격을 간직하고 있으며 후세의 가공을 거쳐 <문무>의 대표작이 되었다. 후세에 많은 다른 이름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구소( 九 韶 )>, <소소( 箫 韶 )>, <소소( 韶 箾 )>, <소우( 韶 虞 )>, <구변( 九 辩 )>, <구대( 九 代 )> 등이다. 여재( 余 载 )는 옛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 때 먼저 사물에 감화를 받고, 마음이 움직여서 8) 중국 역사상 많은 음악가가 있는데 최초로 저서를 낸 음악가이다. 91

1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손과 발이 함께 움직이고 박자가 예에 어긋나지 않고, 음악과 조화를 이룬다고 여겼으며 위로는 교화를 주고 아래로는 풍속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설 중의 하도( 河 图 ) 와 낙서( 洛 书 ) 에 근거해 <소무( 韶 舞 )>를 만들었다. 춤추는 이는 모두 팔일 9) 이고, 의상은 홍 ( 红 ), 백( 白 ), 벽( 碧 ), 적( 赤 ), 황( 黄 ), 흑( 黑 ), 자( 紫 ), 청( 青 ), 녹( 绿 ) 등 아홉 가지 색이다. 손을 움직여 춤을 추는 형상은 하도( 河 图 )를 상징하고, 발동작은 낙서( 洛 书 ) 10) 를 상징한 다. 이는 하늘이 둥글어서 대지를 감싸는 모습과 앞과 뒤, 위와 아래, 좌우, 홀수와 짝수,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생하는 형상을 나타낸다. 2. 명대( 明 代 ) 주재육( 朱 载 堉 )이 만든 아악무보( 雅 乐 舞 谱 ) : 명대 기원 년 명대의 악률학자인 주재육(기원 년)은 그 때 당시의 악곡과 고대의 산문과 운 문에 근거해서 일부 고대아악무보( 古 代 雅 乐 舞 谱 ) 를 편찬했다. 이러한 무보와 무명( 舞 名 ) 은 기본적으로 주나라와 한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무보에는 그림과 글이 같이 적혀있고, 춤의 자세, 음악, 박자와 대형의 그림이 있다. 다른 소무향악보( 小 舞 乡 樂 谱 ) 에는 그림은 없고 문자만으로 동작이나 가사, 음율, 타악의 박자에 대해 설명하였다. 무보의 동작은 기본적으로 모두 인무보( 人 舞 谱 ) 를 기초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춤 추는 모습이 그림으로 되어 있는 것은 명집례( 明 集 礼 ) 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여 이를 무용의 근본으로 여긴다. 주재육이 만든 무보는 명대의 무용에서 나왔으며 그 목적은 악 학에 있어서의 폐단을 없애고 옛 사람들의 뜻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다. 악률전서( 乐 律 全 书 ) 육대소무보( 六 代 小 舞 谱 ) 의 첫 머리에서 주재육은 이렇게 말한 다. 옛 춤을 배우는 것을 전체적으로 논해본다면 영( 永 ), 전( 转 ) 두 글자가 그것을 배우 는 방법이 된다. 옛 사람들이 노래를 배울 때 영 한 글자로 배움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옛 사람들이 춤을 배울 때 전자로 배움의 방법을 알게 된다 (중략).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들은 노래를 배움에 있어서 영하지도 못하고, 춤을 배움에 있어서도 돌려고 하지 않는 다. 그러므로 전통이 끊긴 것이다. 9) 고대 악무로 한 줄에 여덟 명씩 팔열로 서서 춤 추는 것을 말한다. 10) 하도와 낙서는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두 폭의 신비한 도안이다. 역대로 하낙문화( 河 洛 文 化 )의 뿌리라고 여겨졌다. 92

101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육대대무( 六 代 大 舞 )>와 <소무>는 주대에 제사대전( 祭 祀 大 典 )과 귀족자제( 贵 族 子 弟 )들 을 교육함에 있어서 사용되었던 악무이다. 그것들은 제사장소도 다르고, 역할도 달랐다. 그 러나 주재육은 <육대소무>는 <육대대무>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옛날에 황제 는 팔일나 이리( 二 佾 )의 사람들이 춤을 추었지만, 일반 백성은 이러한 이수( 佾 数 )가 없고 혼자서 춤을 추어도 되었다.(중략) 중나라 예절을 관리하는 악사가 왕자에게 소무를 가르쳤는데 대무와 크게 다르겠는가? 다만 춤추는 사람이 한 명 뿐이라서 <소무>라고 불 렀을 것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했는데 열세 살에서 스물까지 가르치고 나서 <대하> 등의 <대무>를 가르쳤고, <대무>는 다른 파로 이름을 짓고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을 <소무>라고 했을 것이다. 왕극분( 王 克 芬 )은 중국무용사( 中 国 舞 蹈 史 )(1985) 에서 이 점은 그다지 정 확하지 않다고 했지만 주재육은 이름난 고대악학대가로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영성소무보( 灵 星 小 舞 谱 ) 는 두협황( 豆 叶 黄 ) 을 음악반주로 삼았는데 이는 한 대의 아 악에 근거하여 편찬한 어린이 교육용 무용이다. 이 춤은 원래 한 고조 때 시령천하입령성 사( 时 令 天 下 立 灵 星 祠 )라는 사후직( 祠 后 稷 )을 제사지낸 뒤에 추는 악무였다. 춤은 열여섯 명이 추며 손에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고 씨 뿌리며 수확을 하는 것을 상징했다. 농사를 가르치는 것이 끝나면 농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 노래 부르고 춤을 추어 신명에 감 사를 드렸다. 농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춤을 추는 자무보( 字 舞 谱 ) 가 등장하면 무용 대열은 천하대평( 天 下 太 平 ) 이라는 네 글자를 만들어 낸다. 이일철조도( 二 佾 缀 兆 图 ) 는 특이한 무보이다. 악무 공간 지위의 배열방위( 排 列 方 位 图 ) 도 이외에 주요하게 신발의 방향을 움직임으로서 무용을 기록한다. 모든 신체동작을 모두 문자로 설명하는데 예를 들면, 위로 돌고, 아래로 돌고, 안으로 돌고, 밖으로 돌고.(중 략) 엎드려 보고, 위로 보고, 돌아보는 등등이다. 이는 이러한 동작이 이미 규격화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주재육의 악률사상과 무보에는 봉건도덕( 封 建 道 德 )과 삼강오륜( 五 常 三 纲 )의 사상이 가득 차 있다. 악률전서( 乐 律 全 书 ) 권 이십, 고금악률( 古 今 乐 律 ) 잡설병부록( 杂 说 并 附 录 ) 에 옛 사람들이 춤을 춤에 있어서 를 기록할 때 이렇게 말했다. 사세( 四 势 )로 줄거리를 잡는 데 마치 사단( 四 端 )과 같다. 하나는 상전세( 上 转 势 )라고 하며 마치 측은한 마음의 어진 것 과 같고( 侧 隐 之 仁 ), 둘은 하전세( 下 转 势 )라고 부르는데 악함을 부끄러워하는 의와도 같으 93

1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며, 셋은 외전세라고 부르는데, 마치 시비를 가리는 지혜와도 같으며, 넷은 내전세라고 부 르며 마치 서로 양보하는 예의와도 같다 고 하면서 이렇게 해석하였다. 이 사세는 사단과 같아 무보에서는 송요초요( 送 摇 招 摇 )라고 부른다. 위로 돌리면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이고 아래로 돌리면 마치 손님을 배웅하는 자세이며, 밖으로 돌리면 마치 흔들어 내보 내려는 태세이고, 안으로 돌리면 마치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태세이다. 또한 팔세를 목적으 로 하고, 마치 삼강오륜과 같다. 하나는 도는 초기의 태세라고 부르는데 마치 측은한 마음 의 어진 것과 같고, 둘은 절반 돈 태세라고 하는데 마치 악함을 부끄러워하는 의로운 마음 과 같고, 셋은 한번 돈 것을 말하는데 마치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신의와 같고, 넷은 너무 돈 것을 말하는데 이는 마치 지혜롭지 못함과 같고, 다섯은 조금 남기고 도는 것을 말하는 데 이는 사양의 예의와 같다. 육은 엎드려 보는 자세를 말하는데 임금에 대한 존경을 뜻하 고, 칠은 위로 쳐다보는 자세인데 이는 사랑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는 것을 나타내며, 팔은 뒤로 돌아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남편에게 순종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를 너무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말한다. 3. 명대( 明 代 )의 문묘제사무보( 文 庙 祭 祀 舞 谱 ) : 명대 기원 년 팽송은 제공악무( 祭 孔 乐 舞 )와 그 변화 발전의 역정( 沿 革 )에 대해서 서술할 때 명홍 무26 년(기원1393)에 대규모의 제공아악무의 전파가 있은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궁에서는 각지의 학부에 대성악( 大 成 乐 ) 을 보내주었다. 그림과 글자로 된 무보를 통해서 무용의 각 자세에 대해서 귀납해 볼 수 있다. 3할의 무용과 96개의 무용자세 중에서 나아가고 물러 나는 동작이 이미 많이 적어져 세 번 나아가고, 세 번 물러나며, 한 번 좌우로 나아갔을 뿐이다. 주요하게 마당에서 궁전으로 들어가 연주하기에 공간의 제한을 받아 이리 되었을 것이다. (팽송, 풍벽화( 冯 碧 华 ) 1989) 강범( 江 帆 ), 애춘화( 艾 春 华 )는 중국역대공묘아악( 中 国 历 代 孔 庙 雅 乐 )(2001) 에서 중국의 제공악무에 대해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였다. 명대 제공무용의 조합형식은 무보가 내포한 함의와 복식의 특징 을 제목으로 하여 궐리구지( 阙 里 旧 志 ) 에 실린 단선도보( 单 线 图 谱 )와 공상임( 孔 尚 任 )이 궐리신지( 阙 里 新 志 ) 에서 원본의 단선도보( 单 线 图 谱 )에 근거하여 귀 납한 팔대무용( 八 大 舞 容 ) 과 열한 종류의 무용 의 자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94

103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명대 제공악보는 명 홍무6년에 첨동( 詹 同 ), 냉겸( 冷 谦 )이 작곡한 악장이다. 즉 신을 맞아 들이는 <함화지장( 咸 和 之 章 )>, 전백( 奠 帛 )은 <저화지장( 宁 和 之 章 )>이며, 초헌( 初 献 )은 <안 화지장( 安 和 之 章 )>이고, 그 다음, 마지막에 바치는 첩주( 叠 奏 )는 <경화지장( 景 和 之 章 )>, 철 찬( 徹 馔 )과 음복( 饮 福 ) <함화지장( 咸 和 之 章 )>이다. 강범( 江 帆 )과 애춘화( 艾 春 华 )는 그림에 동세보( 动 势 谱 ) 라는 문자를 넣었으며 제공무용( 祭 孔 舞 蹈 )의 사상내용( 思 想 内 容 )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여기에서 유가윤리도덕관념과 예악치도( 礼 乐 治 道 )의 사상을 뜻으 로 세우고 중( 中 ), 화( 和 ), 지( 祗 ), 용( 庸 ), 효( 孝 ), 우( 友 )의 여섯 가지 덕을 무용언어의 기 초로 하며, 노래나 시의 글자형태와 글자 뜻에 따라 상징성의 무용언어를 부여하였다. 그 사상내용에 집중적으로 덕( 德 ) 이라는 글자를 표현해 냈으며, 그 표현형식에서 예( 礼 ) 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그리고 무용의 구상은 중화의 음악 의 미학적 관념을 이어 받았다. Ⅳ. 청( 清 )대의 무보유존( 舞 谱 遗 存 )과 연구 1. 청대( 清 代 ) 제사무보( 祭 祀 舞 谱 ) : 청대 기원 년 명, 청이후 아악의 제도가 점점 더 완벽해졌다. 청은 명대의 <중화소악( 中 和 韶 乐 )>의 음 악을 이어받았고, 강희( 康 熙 )황제는 <중화소악>을 반포하고 주례( 周 礼 ) 에서 중( 中 )이라 는 것은 충성심( 忠 )과 같고, 화( 和 )라는 것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당함을 말한다. 는 것을 널리 퍼지게 했다. 청대에는 주 왕조이래의 음악을 행함에 있어서 중화( 中 和 ) 를 근본으로 하는 전통을 계승하여 육대의 음악과 아악제도를 계승하고 발양하는 절정에 달했다. 건륭 11년에 황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흠정사고전서회요( 钦 定 四 库 全 书 荟 要 ) 어제률 려정의후편( 御 制 律 吕 正 义 后 编 )>에서 청대의 제사악, 조회악, 연향악, 도영악( 导 迎 乐 ) 11), 행행악( 行 倖 乐 ) 12) 등 120권을 반포하였다. 길례( 吉 礼 )는 제사보다 중히 여겨서는 안 되 며, 제사는 효묘( 效 庙 )를 넘어서면 안 된다. 예의가 크면 음악도 흥성한다. 그러므로 책속 의 37권에서 반포한 것은 제사음악 및 그 무보이다. 그 중에서 형상과 문자가 결합한 무보 는 모두 21세트이다. 궁정의 아악과 국가의 정치제도, 예악제도 및 등급제도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므 11) 제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원만하게 끝난 것을 경축하는 음악. 12) 제사에 사용하는 음악은 아니고, 출행하거나 정식 제사음악 전에 사용하는 음악. 95

1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로 의식에 있어 제사를 지내는 곳, 시간, 내용, 형식은 매우 엄격한 규정과 요구가 있다. 그리고 그 중의 무용의기, 무용음악, 무용노래, 무용의상, 무용의 자태, 춤추는 사람, 무용 의 진영 등을 포함한 무용에 대해 매우 엄격한 규정과 설명이 있다. 예를 들면 제사통례 ( 祭 祀 通 例 ) 에 보면 무릇 제사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사용한다. <원구( 圆 丘 )>, <기곡( 祈 谷 )>, <우제악( 雩 祭 乐 )>을 함께 9할 정도 사용한다. <방택악( 方 泽 乐 )>은 8할 정도 사용한 다. <사직단( 社 稷 坛 )>, <조일단( 朝 日 坛 )>, <선농단( 先 农 坛 )>, <역대제왕묘악( 历 代 帝 王 庙 乐 )>은 함께 7할 정도 사용한다. <태묘( 太 庙 )>, <석월단( 夕 月 坛 )>, <문묘( 文 庙 )>, <천신단 ( 天 神 坛 )>, <지지단( 地 祗 坛 )>, <태세단악( 太 岁 坛 乐 )>은 함께 6할 정도 사용한다. 모든 제 사에 사용하는 음악의 악장은 모두 엄격한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제사무용은 8명씩 8줄, 즉 64명이 동원된다. 처음에는 <무무>를 바치고, 두 번째와 마 지막에는 <문무>를 바친다. <무무>를 추는 사람은 간척을 들고 문무를 추는 사람은 우약 ( 羽 龠 )을 든다. 문묘무만이 육일의 사람이 동원되며 36명이고 <문무>만 춘다. 대우( 大 雩 ) 13) 는 열여섯 명의 무동이 <대우동자무( 大 雩 童 子 舞 )> 를 춘다. 흠정사고전서회요( 钦 定 四 库 全 书 荟 要 ) 어제률려정의후편( 御 制 律 吕 正 义 后 编 ) 에 기재 한 것은 중국고대무보유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무보계통이며 이는 형상적으로 묘사된 그림 과 글자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고, 여기에 상세한 각종 악기의 악보가 결합된 가장 완벽 한 중국아악무보이다. 2. 청대( 清 代 )제공( 祭 孔 )무보의 널리 퍼짐 청대 제사악무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은 주요하게 문묘제사악무이다. 청대 순치( 顺 治 )황제가 베이징에 수도를 정한 다음 국자감( 国 子 监 )에 문묘를 세우고 대 성전( 大 成 殿 )을 건설해 전문적으로 공자를 제사지내는데 사용하게 했다. 강희( 康 熙 )연간에 공상임( 孔 尚 任 )이 궐리신지( 阙 里 新 志 ) 를 편찬했고 악무를 수정했다. 청대에 기재된 제공 ( 祭 ) 무보문헌은 비교적 많은 편인데 필자가 알아본데 의하면 위에서 서술한 율려정의후 편 외에 중국예술연구원과 베이징도서관에 지금까지 아래와 같은 저작들이 남아 있다. 1) [청]공상임( 孔 尚 任 ), 궐리신지( 阙 里 新 志 ), 중국예술연구원도서관. 2) [청]서창달( 徐 畅 达 ), 육일무보, 황조제기악무록, 북경도서관선본부. 3) [청]공전락( 孔 传 铎 ), 문묘무보, 골문악지, 중국예술연구원도서관. 13) 기우제. 96

105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4) [청] 흠반문묘무용보식, 황조악무록집요, 북경도서관선본부. 5) [청] 문묘악무전보, 부록: 문묘악무전보흠반문묘악보, 문묘악무고 악부, 중국예술 연구원도서관. 팽송( 彭 松 )은 [청] 궐리신보( 阙 里 新 谱 ) 문자무보와 성문악지( 圣 门 乐 志 ) 의 무보가 다 르며, 청대의 것은 신( 身 ), 수( 首 ), 보( 步 ), 입( 立 ) 에 대해 상세한 해명이 있고 신체 각 부 위의 자태 종류에 대해 설명이 있으며 - 황궁경사록( 皇 宫 敬 事 录 ) 문자도보- 동작에 대한 분류가 명대의 그것보다 더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문묘악무고( 文 庙 乐 舞 考 ) 중에서 한 무곡이 성문악지( 圣 门 乐 志 ) 및 율려정의후편( 律 吕 正 义 后 编 ) 중의 문묘제공악무와 다 르다는 것을 찾아냈다. 명 청대의 무보에서 볼 때, 제공( 祭 孔 )은 문무의 무보만 있지만, 강범( 江 帆 ), 애춘화( 艾 春 华 )의 연구에서는 홍무( 洪 武 )에서 청대말에 이르기까지 510여 년 동안 중국 각지는 문무 와 무무는 계속해서 함께 어울려 존재했다고 말했다. 신해혁명이후, 남경임시정부의 교육총장을 맡은 채원배( 蔡 元 培 )는 정제( 丁 祭 ) 를 정지시 켰는데 1914년(민국3년)에 이르러 위안스카이가 다시 회복시켰다. 1915년 12월에 위안스 카이는 황제제도를 다시 부활시켜 스스로 홍헌황제( 洪 宪 皇 帝 ) 라 칭했다. 그는 1916년 3 월 22일에 물러나기까지 83일 동안에 정제를 한번 지낸 적이 있는데 악생과 무생의 의상 을 새로 만들고 음악과 무용도 새로 만들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1934년 중화민국정부 가 매년 8월27일을 공자탄생기념일로 정하고 국가기념일에 넣어 휴무일로 지정했다. 하여 공자를 위한 제사시간은 정제( 丁 祭 ) 에서 공자탄생기념일로 바뀌게 되었다. 민국기간동안 산시( 山 西 ), 후난( 湖 南 ), 허베이( 河 北 ), 닝샤( 宁 夏 ), 윈난( 云 南 등 지역의 지방지에는 모두 문묘제공( 祭 孔 )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공자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1948년까지 지속되었 고 취푸( 曲 阜 )가 문무만을 사용할 뿐 기타 지역에서는 무무와 문무가 모두 흥했다. 이외에 청대에는 두 종류의 악무무보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나는 제묘( 帝 庙 )의 무무( 武 舞 )무보이고 ([청]서창달( 徐 畅 达 ) 관제묘초헌악무보( 关 帝 庙 初 献 乐 舞 谱 ), 황조제기악무록 ( 皇 朝 祭 器 乐 舞 录 ), 베이징도서관선본부.), 다른 하나는 문창악( 文 昌 乐 )의 무보 ([청]서창 달( 徐 畅 达 ), 문창악무보( 文 昌 乐 舞 谱 ), 황조제기악무록( 皇 朝 祭 器 乐 舞 录 ), 베이징도서관선 본부)이다. 97

1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Ⅴ. 당대무보의 응용연구중의 성과와 문제점 1. 무보의 응용연구가 이루어낸 성과 위에서 서술한 이론연구 외에 무보연구는 당대문화 중건( 复 建 )의 응용에 있어서도 일정 한 성과와 중대한 진전을 보였다. 1949년 후 제사악무 활동과 연구는 한 때 그 맥이 끊긴 적이 있다. 1957년 중국무용연구회 오효방( 吴 晓 邦 ) 주석은 연구회를 이끌고 공자에게 제사지낼때 사용하는 음악과 춤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산둥 취푸( 山 东 曲 阜 )에서 제례공연을 했으 며 제공의식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의식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140명에 이르렀는데 (1931~7년)의 취푸 고악전습소( 曲 阜 古 乐 传 习 所 ) 스승과 학생을 기본으로 하고, 악생, 무 생, 예생( 礼 生 ) 등을 집중적으로 동원했다. 문무생은 당시의 중학생을 뽑았는데 이 주 제사 에 참여한 인원으로 볼 때 그들이 당시에는 이미 노령의 나이였고 청대를 살아 온 경험 많 은 노인들이었다. 1957년에 민국시기에 윈난( 云 南 )건수문묘제사( 建 水 文 庙 祭 祀 )에 참가한 적이 있는 무동(지금은 이미 84세이며 아직도 건재하다.) 장술공( 张 述 孔 )은 청대 궁정에서 반포한 직성문묘무보( 直 省 文 庙 舞 谱 ) 에 근거해 제공일무를 연습하여 합동공연에 참가하였 다. 1960년대, 타이완은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다시 시작했고, 1968년 9월10일부터 제례의식의 악장, 무용, 음악, 악기, 의상 등을 바꾸어 나갔는데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들이 채용한 것은 명대의 홍무( 洪 武 )6년(1373)에 제정한 사선사공자악장( 祀 先 师 孔 子 乐 章 ) 이다. 1984년 산둥취푸( 山 东 曲 阜 )는 강범( 江 帆 ), 애춘화( 艾 春 华 )의 주관으로 공자에게 제사지 내는 행사를 재연했고 1989년에는 수도박물관에서 7일에 걸쳐 공연을 진행했다. 그 다음 그들은 또 베이징 국자감 공자묘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재연했으며, 2004년부터 각지 문묘 에서 보편적으로 재연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아악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다 년간의 현장조사를 거쳐 서주( 西 周 ) 제례작악( 制 礼 作 乐 ) 이 형성한 예악제도( 礼 乐 制 度 )와 그 제사 아악무( 雅 乐 舞 ) 중의 일무( 佾 舞 ) 가 공자에게 제사지내는 것 중에서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아악은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고 재건의 가능성이 있다. 2009년에 필자는 청나라 건륭8년의 흠반직성문묘제사무보( 钦 颁 直 省 文 庙 98

107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祭 祀 舞 谱 ) 에 근거해 공자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다시 복원시켰으며, 2009 중국 항저우 한중일 전통아악무 국제학술포럼과 한중일 전통아악무 대표작품 전시공연 활동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중국아악무의 재건활동도 베이징을 대표로 하는 사회의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기 시작했 다. 2004년 베이징 천단( 天 坛 )과 제왕이 지신을 모시는 제단( 地 坛 )에서 먼저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의식 공연을 회복하였다. 매년 설날과 초하루에서 초이레까지 매일 두 번 공연 한다. 이어서 황제가 달에게 제사지내는 곳에서도 월단제월의식( 月 坛 祭 月 典 仪 ) 을 회복했 다. 금년 3월21일 춘분절기에 160여 년 동안 지내지 않았던 일단제일의식( 日 坛 祭 日 典 仪 ) 이 일단공원( 日 坛 公 园 )에서 시민들과 다시 만났다. 이리하여 베이징 성의 천, 지, 일, 월 의 사대 제례의식은 모두 공연을 재개하게 되었으며 중국아악무 문화전승과 응용, 연구 방 면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타이완 무용가인 유봉학( 刘 凤 学 )은 신고전무용단을 건립하고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고대악 무의 연구에 몰두했다. 2003년에 타이완에서 재건 重 建 한 <황제파진악( 皇 帝 破 阵 乐 )>, <춘 앵전( 春 莺 啭 )>, <소합향( 苏 合 香 )>, <단란선( 团 乱 旋 )>등의 대곡을 내놓았다. 교육영역에 있 어서는 타이완 남화대학이 여러 해 동안 아악무( 雅 乐 舞 )를 교육과정에 넣어 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2009년 항주사범대학 음악학과는 정부의 지원으로 남송아악무 연구중심을 세웠고 한국 정재연구회, 일본서수( 瑞 穗 )아악회와 연합하여 항저우에서 공동으로 한중일전통아악무국제 학술포럼과 한중일 전통아악무대표작품전시공연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전통아악무학회의 건립을 기획하고 준비했고, 앞으로 나아가는 공정 을 가동하여 음악대학 의 학교부지에 중국음악박물관을 건설하고, 동시에 남송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아악무의 연 구와 재건항목을 가동시켰는데 현지민족음악무용학과의 건설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러므로 악보와 무보의 연구는 그 바탕이 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국내학계 와 교육계의 응용연구영역에서 지지도와 규모에 있어서 가장 큰 항목이다. 인류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의식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프로젝트가 전면적으로 가동되었다. 여행문화의 촉진, 지역전통문화 브랜드 창조의 이념아래 일부 오 래된 옛 의식들이 다시 부활되었고, 공연프로그램으로서 여행객, 관객들과 만나고 무보의 연구에도 뜨거운 열기를 더해 주었다. 99

1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무보복원 응용연구 중에 나타나는 주요 문제점 1) 연구 성과는 주요하게 지난 세대의 무용사학가들에게서 나오며(그들의 현재 연령은 대부분 80-95세이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주요하게 1980년대에 발표했다. 젊은 학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응당 해야 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0년 후의 기 초연구 성과가 그다지 많지 않아 현재 열기를 더 해가고 있는 악무 재건 실천과 그것을 다루고 응용하는데 있어서의 바탕지식이 두텁지 못하다. 2) 최근 몇 년 동안, 도시건설은 역사의 바탕을 빌려 옛 이름난 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학자들은 경제건설의 환경에서 학술연구를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문 화기초건설이 장기적이라는 특징과 비 영리성으로 인해 일단 영리를 주목적으로 하 는 상업행위와 문화적인 짧은 시각의 행위가 모순되며 결과 희생되는 것은 왕왕 문 화이다. 3) 위의 특징과 대비되게 현재 연구가 비교적 중시하는 것은 무보의 응용과 복원이다. 비록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만 너무 폐쇄적이고 자원에 대해서 잘 통합하지 못했 다. 그리하여 기초연구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잘 못하면 거짓 문화 의 범람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각계의 인식을 한 단계 높여 문화의 장기적인 목표와 단기적인 사회경제 효과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무보의 발굴과 해독 및 기초연구에 대해서 더욱 중 시해야 하며, 사회 각계의 자원을 동원하여 마음과 힘을 합쳐 문화와 정신의 깊은 곳에 중 국무보연구와 재건 등 계통의 프로젝트를 구축해야만 전통문화의 발굴, 정리, 보호에 대한 마땅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100

109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참고문헌> 중국무도예술연구회연구조편. 소주도교예술집. 상해사회과학원출판사, 문묘악무전보부록. 문묘악무전보흠반문묘악보. 문묘악무고. 이십오사. 절강고적출판사, 흠정사고전서회요 어제률려정의후편. 길림출판사, 강범 애춘화. 중국력대공묘아악. 중국국제엄파출판사,2001. 공상임. 궐리신지. 중국예술연구원도서관. 공전탁. 문묘무보. 골문악지. 중국예술연구원도서관. 동석구. 해개돈황무보지미. 무도예술 라용 협옥화. 당인타령고. 북경대학사십주년기념문집, 모엄생. 구재사론 돈황무보석사. 석진관. 당전무보편전문 박 지초탐. 중국음악학, 역주. 고사로음악기돈황무보연구. 감숙성문화예술연구소, 고사로음악기돈황무보연구. 돈황문예출판사, 왕극분. 돈황무보잔권탐색. 무도예술 시검홍. 돈황무보적재탐색. 무도예술 요종신. 기대영박물관장돈황무보. 신아학보 돈황무보교석. 향항대학학생회금희기념논문집 유칭이 주편. 중국무도통사. 상해음악출판사, 임반당 당성시. 무보. 임이북. 돈황곡초탐 무용일득 제여산. 국극신단보 주밀. 계신잡식. 북경도서관선본부. 주빙 증람. 최고로적무보- 팔괘무보. 무도예술 주육육. 악률전서. 상무인서관, 추정(조존악). 돈황무보상해. 향항대학학생회론문집, 팽송 풍벽운. 랍반무보3. 중국고대무보. 중국무도출판사,

1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The Preservation of Ancient Chinese Dance Notations and Current Research Liu Qingyi (Prof., Peking Univ., China) China is an ancient civilization with a long history and thus has rich cultural heritage of dance. China long ago invented characters to document history as well as dance notation as a way of passing down dance. Frequent upheavals in history, however, have destroyed a great deal of literature, and as a consequence, only a tiny number of dance notations have been discovered by scholars in recent history. The extant dance notations may b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according to their cultural forms: First, notations of shaman music, which include Dance Notation Inscribed on Bones and Carapaces( 甲 骨 文 社 火 舞 譜 ); Octagram Dance Notation( 八 卦 舞 譜 ); Ablution Ritual Dance Notation( 齋 醮 舞 譜 ). Second, notations of dances for imperial court music, which includes Literary Dance( 文 舞 ) and Military Dance( 武 舞 ) of the court of the North Sung Dynasty; Artistic Dance( 韶 舞 ) of the Yuan Dynasty; dances for imperial court music restored by Chu Tsai-yü( 朱 载 堉 ) of the Ming Dynasty; dances for court worship rituals of the Qing Dynasty; Notation of the Ritual Dances for Confucius and Sakyamuni( 文 廟 釋 尊 樂 舞 舞 譜 )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hird, notations of dances for national feasts, the most important of which is those of Notation of the Dances in Dunhuang( 敦 煌 舞 譜 ). Fourth, notations of dances for instrumental music, the most important of which is Notation of the Dances at De Shou Gong Palace( 德 壽 宮 舞 譜 ) of the South Sung Dynasty. 102

111 중국 고대무보의 유존과 당대 연구실태 개관 The above examples largely fall into two forms of notation: character notation, including hieroglyphic, descriptive, and terminological notations, and picture notation, including notations for directions, dance formations, positions of feet, and dance movements. In this paper, I have divided Chinese history into four stages according to dynasties: Ha/Shang through Chin dynasties; Tang and Sung dynasties; Yuan and Ming dynasties; Qing dynasty. The discussion of each stage will be based on preserved materials and the academic achievement of scholars. Key words : ancient Chinese Dance Notation, notations of dance for music, notations of dance for imperial court music, notations of dance for feasts, notations of dance for instrumental music 103

1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刘 青 弋 * 1) < 中 文 节 录 > 内 容 摘 要 : 中 国 是 历 史 悠 久 的 文 明 古 国, 因 而 有 着 丰 富 的 舞 蹈 文 化 遗 产. 中 国 不 仅 很 早 发 明 了 记 载 历 史 的 文 字, 亦 很 早 发 明 了 传 授 舞 蹈 的 方 法 舞 谱. 然 而, 因 为 历 史 迭 遭 变 故, 文 献 典 藏 散 失, 大 多 被 埋 没 于 历 史 的 尘 埃 之 中. 因 此, 中 国 古 代 的 舞 谱 遗 存 寥 寥, 部 分 由 学 者 发 掘 和 整 理 出 来 的 舞 谱, 亦 如 吉 光 片 羽, 弥 足 珍 贵. 中 国 目 前 发 现 的 古 代 舞 谱 的 遗 存 按 照 文 化 形 态 可 以 分 为 如 下 几 类, 即 : 一. 巫 觋 舞 蹈 的 舞 谱. 主 要 有 甲 骨 文 社 火 舞 谱 ; 八 卦 舞 谱 ; 斋 醮 舞 谱 等. 二. 雅 乐 舞 蹈 的 舞 谱. 主 要 有 北 宋 宫 廷 的 文 舞 与 武 舞 舞 谱 ; 元 代 的 韶 舞 舞 谱 ; 明 代 朱 载 堉 编 制 的 雅 乐 舞 谱 ; 清 代 的 宫 廷 祭 祀 舞 谱 ; 明, 清 的 文 庙 祭 祀 舞 谱 等. 三. 宴 乐 舞 蹈 的 舞 谱. 主 要 有 唐 代 的 敦 煌 舞 谱. 四. 伎 乐 舞 蹈 的 舞 谱. 主 要 有 南 宋 的 德 寿 宫 舞 谱. 上 述 舞 谱 记 谱 的 方 式, 主 要 为 两 种 : 一 种 为 文 字 谱 ( 包 括 : 象 形 类 字 谱, 说 明 类 字 谱 和 术 语 类 字 谱 ); 另 一 种 为 图 谱 ( 包 括 : 舞 蹈 方 位 类 图 谱 ; 舞 蹈 行 进 路 线 类 图 谱 ; 舞 蹈 脚 位 类 图 谱 以 及 舞 蹈 动 作 姿 势 或 形 象 类 图 谱 ). 本 文 将 中 国 古 代 历 史 按 朝 代 从 远 至 近 分 为 四 个 阶 段, 对 中 国 古 代 舞 谱 的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进 行 论 述. 本 文 关 注 舞 谱 流 传 的 广 泛 性, 因 而 将 少 数 民 族 的 舞 谱, 如 纳 西 族 的 东 巴 舞 谱 和 蒙 族 的 查 玛 经 等 忽 略 未 涉. 关 健 词 : 中 国 古 代 舞 谱 ; 巫 觋 舞 谱 ; 雅 乐 舞 谱 ; 宴 乐 舞 谱 ; 伎 乐 舞 谱 * 兼 杭 州 师 范 大 学 南 宋 乐 舞 研 究 中 心 主 任. 104

113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序 目 Ⅰ. 夏, 商 至 晋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Ⅱ. 唐 代, 宋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Ⅲ. 元 代 明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Ⅳ. 清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Ⅴ. 当 代 舞 谱 应 用 研 究 中 的 成 绩 与 问 题 Ⅰ. 夏, 商 至 晋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1. 八 卦 舞 谱 ( 夏 代 公 元 前 年 ) 关 于 中 国 最 早 的 舞 谱 遗 存, 周 冰 与 曾 岚 认 为 就 八 卦 舞 谱 ( 周 冰, 曾 岚., 1986). 她 们 发 现 : 在 民 间 祭 祀 礼 仪 舞 蹈 中 有 许 多 神 秘 的 符 号, 并 配 有 巫 词 咒 语. 例 如, 九 州 八 卦 图 配 的 巫 词 是 这 样 写 的 : 一 白 贪 粮 坎 水 金 ( 子 ), 二 黑 巨 门 坤 士 临 ( 申 ). 二 碧 禄 存 震 木 是 ( 卯 ), 四 缘 巽 上 文 曲 星 ( 已 ). 五 黄 廉 中 属 中 土 ( 中 ), 六 白 武 曲 乾 上 巡 ( 亥 ). 七 赤 破 中 真 是 兑 ( 酉 ), 八 白 左 车 皮 艮 上 中 ( 寅 ). 九 紫 右 弼 离 大 红 ( 午 ), 玄 中 妙 语 赛 黄 金. 再 如, 和 先 天 八 卦 配 的 巫 词 是 这 样 写 的 : 一 拜 坤 北 冀 州 地, 二 拜 乾 宫 自 南 京. 三 拜 离 东 扬 州 城, 四 拜 坎 西 梁 州 行. 五 拜 艮 上 雍 中 走, 六 拜 兑 宫 走 兖 州. 七 拜 震 上 青 州 走, 八 拜 巽 宫 荆 州 乡. 中 宫 踏 到 予 州 府, 神 鬼 原 来 定 八 方. 105

1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她 们 认 定 这 是 一 种 舞 蹈 动 作 运 动 的 标 向, 以 五 行 为 定 位, 同 巫 词 咒 语 结 合 的 舞 谱. 理 由 是 : 八 卦 舞 谱 大 约 产 生 于 四 千 多 年 前 的 夏 朝. 何 以 为 证? 因 为 : 夏 朝 处 于 氏 族 社 会 向 奴 隶 社 会 转 型, 阶 级 和 国 家 形 成 的 转 折 时 期, 各 种 典 章 制 度, 包 括 祭 祀 仪 式 等 都 在 建 立 和 建 全 之 中. 禹 王 是 位 隆 祭 祀, 敬 鬼 神, 善 乐 舞 的 帝 王, 本 身 也 是 一 位 大 巫 师, 创 造 了 独 特 的 舞 蹈 步 法 禹 步. 因 为 夏 禹 治 理 水 患, 为 民 造 福, 曾 三 过 家 门 而 不 入, 其 德 望 之 高, 在 他 继 舜 帝 位 后, 皋 陶 于 是 敬 禹 之 德, 令 民 皆 则 禹, 如 不 然, 刑 从 之. 夏 王 朝 神 道 设 教, 巫 风 盛 行, 民 皆 则 禹, 必 然 在 舞 祭 形 式 上 皆 则 禹. 而 且 后 世 文 献 和 巫 师 多 有 将 他 们 在 作 法 过 程 的 踏 罡 步 斗 和 踩 八 卦 称 为 禹 步. 禹 划 中 国 为 九 州, 均 以 王 都 为 中 心. 巫 词 中 都 有 提 及. 另 据 考 古 学 发 现, 夏 朝 已 经 有 了 文 字 和 青 铜 器, 铸 成 的 象 征 九 州 的 铜 鼎 上 的 纹 饰 和 巫 舞 的 手 势 内 涵 和 形 式 有 不 少 一 致 性. 并 且, 夏 时 历 书, 已 经 发 明 用 干 支 记 日 法. 但 她 们 也 认 为, 舞 谱 虽 然 源 起 于 夏 朝, 但 并 不 等 于 所 搜 集 到 的 舞 谱 就 是 夏 时 舞 谱. 因 为 随 着 历 史 的 进 程, 舞 谱 在 不 断 变 化. 尤 其 是 秦 汉 以 后, 道 教 从 巫 教 的 母 体 中 脱 胎 出 来, 禹 步 也 就 从 简 单 的 三 步, 九 踩, 发 展 成 许 多 套 路, 并 且 将 踏 罡 步 斗 也 纳 入 了 踩 八 卦 的 范 畴. 2. 甲 骨 文 上 的 舞 谱 ( 商 代 公 元 前 年 ) 彭 松 认 为 中 国 最 早 的 舞 谱 遗 存 出 现 在 商 代 的 甲 骨 文 中. 由 于 甲 骨 文 是 象 形 文 字, 文 字 形 象 记 载 了 舞 蹈 的 动 作. 殷 墟 文 字 甲 编 中 的 一 些 字 都 和 舞 蹈 有 关. 例 如 : 甲 骨 编 号 3069 的 舞 字, 就 是 象 一 个 人 两 提 两 条 牛 尾 而 舞. 甲 骨 编 号 3528 号, 画 一 巫 女 头 戴 尖 帽, 身 后 有 尾 饰, 侧 身 而 舞, 跳 舞 求 雨. 但 这 样 的 形 象 还 不 能 说 是 舞 谱, 而 一 些 甲 骨 文 记 录 的 舞 蹈 线 路 图 可 以 说 是 我 国 最 原 始 的 舞 谱. 如 殷 墟 文 字 甲 编 2418 号 和 2307 号 上 出 现 的 三 个 舞 蹈 路 线 图. 一 些 最 初 被 认 为 十 分 神 秘 的 符 号, 后 来 被 发 现 和 汉 画 像 砖 上 的 舞 蹈 图 形, 以 及 后 世 陕 北, 东 北 辽 阳 地 区 的 社 火, 秧 歌 舞 队 的 路 线 舞 谱 之 间 非 常 相 似, 并 且 它 们 在 祭 祀 社 ( 土 地 神 ) 和 稷 ( 五 谷 神 ) 功 能 方 面 有 着 十 分 相 同 的 一 致 性. 而 用 乐 舞 祭 祀 社, 稷 是 中 国 一 贯 的 传 统. 3. 晋 代 的 禹 步 舞 谱 ( 晋 代 公 元 年 ) 晋 代 道 士 葛 洪 ( 公 元 ) 在 抱 朴 子 ٠ 内 篇 中 记 录 了 道 教 ( 也 是 巫 教 ) 的 舞 步 禹 步. 该 书 记 录 的 禹 步 的 两 种, 一 种 载 于 仙 药 卷, 另 一 载 于 登 涉 卷. 前 者 为 养 生 之 用, 106

115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后 者 为 做 法 之 用. 抱 朴 子 ٠ 内 篇 ( 仙 药 卷 ) 禹 步 法 一 是 这 样 写 道 : 前 举 左, 右 过 左, 左 就 右. 次 举 右, 左 过 右, 右 就 左. 次 举 左, 右 过 左, 左 就 右. 如 此 三 步, 当 满 二 丈 一, 后 有 九 迹. 后 世 道 教 和 巫 教 舞 蹈 使 用 禹 步, 乃 至 沿 袭 至 今, 可 见 这 一 古 老 的 舞 蹈 步 法 流 传 后 世 久 远. 并 且, 这 一 舞 谱 让 人 们 重 新 认 识 到 禹 步 的 形 态. 4. 道 教 斋 醮 科 仪 遗 存 舞 谱 ( 东 汉 公 元 年 南 北 朝 公 元 年 ) 道 教 为 我 国 重 要 宗 教 之 一, 起 于 东 汉, 盛 行 于 南 北 朝 时 期. 如 上 所 述, 巫 步 多 禹, 流 传 在 巫 教 中 的 禹 步 至 今 已 经 流 传 了 四 千 多 年, 道 教 在 斋 醮 科 仪 中 的 禹 步, 传 承 至 今 也 已 经 一 千 六 百 多 年 了. 20 世 纪 50 年 代, 中 国 舞 蹈 研 究 组 曾 对 苏 州 道 教 艺 术 进 行 了 考 察, 编 著 了 苏 州 道 教 艺 术 集 (1957), 对 其 斋 醮 仪 式 作 了 翔 实 的 记 录. 尤 其 是 对 中 国 道 教 的 八 大 教 派 之 一 玄 妙 观 正 一 道 派 的 科 仪 乐 舞 进 行 了 系 统 整 理 与 解 释, 并 拍 摄 了 电 影. 设 坛 祭 告 天 地 在 中 国 古 之 有 之, 传 说 : 醮 事 是 轩 辕 黄 帝 创 始 的. 书 中 对 瑶 台 偈 1), 穿 步 虚 2) 等 群 舞, 以 及 独 舞 步 罡 踩 斗 3) 的 位 置 和 步 法, 都 有 详 细 的 说 明. 江 西 龙 虎 山 正 一 道 在 斋 醮 仪 式 中 以 手 诀, 步 罡 和 剑 舞 的 珠 联 璧 合 形 成 完 整 的 法 事 舞 蹈. 1) 瑶 台 偈 是 在 醮 事 全 表 中 的 一 个 步 骤 想 像 瑶 台 仙 境, 大 家 穿 花 齐 唱, 仙 歌 嘹 亮 2) 步 虚 是 在 醮 事 全 符 开 始 时, 法 师 在 第 一 步 传 递 ( 先 画 符 名 将, 请 他 传 递 公 文 ) 后, 第 二 步 步 虚 上 坛 准 备 施 行 命 令, 召 请 众 将 醮 坛 的 主 持 者 高 功 要 跪 拜 步 虚 是 这 段 使 用 的 音 乐 名 配 有 唱 词 而 穿 步 虚 则 是 在 火 司 朝 中 的 一 个 步 骤 在 专 词 已 上 达, 过 失 得 到 忏 悔 后, 大 众 的 欢 欣 歌 舞 3) 步 罡 踏 斗 由 高 功 在 全 表 中 的 一 个 步 骤 元 神 飞 天 庭, 启 奏 表 文 107

1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Ⅱ. 唐 代, 宋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1. 唐 五 代 的 敦 煌 舞 谱 残 卷 ( 唐 代 公 元 年 ) 1) 敦 煌 舞 谱 的 发 现 1900 年 被 发 现 的 唐 五 代 敦 煌 舞 谱 残 卷 现 存 三 种 : (1) 编 号 :P.1350, 由 伯 希 和 (Paul Pelliot) 从 中 国 拿 走, 现 藏 巴 黎 法 国 图 书 馆. 内 容 包 括 遐 方 远 南 歌 子 南 乡 子 双 燕 子 浣 溪 沙 风 归 云 等 6 调 14 谱. (2) 编 号 :S.5643, 由 斯 坦 因 (A.Stein) 从 中 国 拿 走, 现 藏 伦 敦 英 国 图 书 馆. 内 容 包 括 蓦 山 溪 南 歌 子 双 燕 子 等 3 调 10 谱. (3) 编 号 :S.3791, 斯 坦 因 从 中 国 拿 走, 现 藏 英 国 国 会 图 书 馆. 由 饶 宗 颐 发 现. 内 容 为 浣 溪 沙 残 卷, 只 存 三 行 年 以 后 发 现 的 三 谱 为 : (4) S.5613 卷. 原 文 书 写 在 书 仪 卷 与 夫 书 标 题 之 下. 全 文 并 题 记 共 四 行. 题 记 13 个 字 : 开 平 岁 七 月 七 日 简 题 德 深 记 之 即 后 梁 开 平 三 年, 909 年. 这 一 发 现, 对 解 决 敦 煌 舞 谱 年 代 的 争 端 意 义 重 大. 内 容 为 南 歌 子, 由 敦 煌 研 究 院 李 正 宇 发 现. (5) S.785 卷. 原 文 倒 书 于 李 陵 与 苏 武 书 题 前, 残 存 两 行 9 字. 即 在 调 名 曲 子 荷 叶 杯 下 有 一 行 残 谱. (6) S.7111 卷 背 曲 子 别 仙 子 词 序. 由 柴 剑 虹 等 人 发 现, 发 表 于 古 籍 整 理 出 版 情 况 简 报 174 期. (7) 北 京 图 书 馆 820 号. 全 文 11 行. 经 辩 认 可 知, 此 乃 二 谱, 同 一 曲 段 : 每 曲 八 句, 第 句 五 拍 段. 由 此, 至 今 被 发 现 的 敦 煌 舞 谱 为 7 件 13 调 ( 其 中 南 歌 子 双 燕 子 浣 溪 沙 重 复 )30 谱. 舞 谱 大 多 分 为 两 大 部 分, 即 序 词 谱 字 和 表 象 谱 字. 成 为 学 者 们 研 究 的 主 要 对 象 与 内 容. 序 词 谱 字 即 是 在 每 首 谱 子 的 开 头 的 文 字, 用 以 说 明 曲 名, 拍 子, 节 奏 和 字 谱 的 结 构. 表 象 谱 字 即 为 舞 容 的 13 字 : 令, 舞, 挼, 摇, 据, 拽, 头, 送, 奇, 约, 与, 请, 揟 ( 掯 搰 ). 而 北 京 图 书 馆 820 号 则 有 舞, 送, 据, 挼, 奇 之 外, 又 有 皇, 打, 折 等 形 成 8 字. 108

117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2) 敦 煌 舞 谱 研 究 中 的 主 要 关 注 点 由 于 中 国 古 代 乐 舞 诗 歌 具 有 一 体 化 的 特 征, 因 此, 敦 煌 舞 谱 的 研 究 成 为 一 种 跨 学 科 的 研 究, 从 华 人 学 者 现 已 发 表 的 成 果 ( 见 文 后 参 考 文 献 ) 来 看, 主 要 的 关 注 点 如 下 : (1) 关 于 敦 煌 舞 谱 是 否 舞 谱 敦 煌 残 卷 作 为 舞 谱, 由 刘 半 农 ( 刘 复 )1931 年 在 其 敦 煌 掇 琐 一 书 中 拟 称, 一 直 被 沿 用. 但 是, 唐 人 原 称 如 何, 尚 待 考 证 ( 任 二 北,1953). 有 学 者 说 其 谱 为 曲 式 和 舞 式 同 步 与 错 位 的 舞 谱 ( 彭 松,1989). (2) 关 于 敦 煌 舞 谱 记 载 的 舞 蹈 的 性 质. 敦 煌 舞 谱 是 俗 舞 还 是 雅 舞? 基 本 取 得 共 识 的 是 俗 舞. 但 是 敦 煌 舞 谱 是 酒 令 谱 ( 例 罗 庸, 叶 玉 华, 彭 松, 王 昆 吾 等 文 ) 还 是 来 自 大 曲 的 杂 曲 谱 ( 任 二 北,1953), 还 是 用 于 寺 院 目 的 的 宗 教 舞 蹈 的 舞 谱 ( 王 克 芬,1985)? 学 者 们 颇 有 争 议. (3) 关 于 唐 代 酒 令 艺 术 和 敦 煌 舞 谱 的 关 系 认 为 敦 煌 舞 谱 是 唐 代 酒 令 艺 术 的 一 部 分, 以 罗 庸, 叶 玉 华 文 提 出 在 先 ; 以 彭 松 文 立 场 最 为 坚 定 ; 以 王 昆 吾 文 最 为 系 统. (4) 关 于 敦 煌 舞 谱 残 卷 的 整 理 与 分 析 研 究 任 二 北, 彭 松, 柴 剑 虹, 席 臻 贯 文 都 有 较 多 深 入. (5) 关 于 敦 煌 舞 谱 的 校 释 和 字 义 释 疑 研 究 这 方 面 的 工 作 学 者 们 做 得 最 多, 以 饶 宗 颐 为 先, 后 来 者 争 上. (6) 关 于 敦 煌 舞 谱 的 节 拍 研 究 上 述 学 者 多 有 涉 及, 赵 尊 岳 和 席 臻 贯 文 切 入 较 深 入. (7) 敦 煌 舞 谱 的 句 读 研 究, 乐 律 研 究 ; 序 列 原 型 研 究 主 要 见 于 席 臻 贯 的 研 究, 并 较 系 统. 109

1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8) 关 于 敦 煌 舞 谱 中 的 舞 容 研 究 由 于 其 是 舞 谱 破 译 的 核 心 部 分 之 一, 这 一 研 究 和 舞 谱 校 释, 解 读 和 释 疑 有 着 紧 密 的 联 系 和 交 叉 的 关 系, 因 此, 大 多 学 者 都 多 少 涉 及 了 这 一 研 究, 但 是, 从 舞 蹈 的 动 作 本 身 进 行 研 究 的 主 要 是 王 克 芬 和 彭 松. (9) 关 于 敦 煌 舞 谱 研 究 的 视 角 与 方 法 大 多 由 每 位 学 者 自 身 的 背 景 和 优 势 决 定. 他 们 或 背 靠 文 史 方 面 研 究 的 优 势 ; 或 背 靠 音 乐 学 研 究 的 优 势 ; 或 背 靠 的 戏 曲 学 研 究 的 优 势 ; 或 背 靠 舞 蹈 史 学 研 究 的 优 势, 从 不 同 的 角 度 与 方 向 切 入, 使 得 敦 煌 舞 谱 研 究 有 了 许 多 重 要 的 突 破. 但 是, 由 于 敦 煌 舞 谱 年 代 久 远, 对 其 破 解 与 研 究 十 分 困 难, 因 此, 很 多 问 题 仍 然 是 个 谜, 即 便 学 者 们 已 经 做 出 的 假 设, 亦 有 待 于 进 一 步 考 证. 2. 北 宋 的 文 舞 与 武 舞 舞 谱 ( 北 宋 公 元 年 ) 据 宋 史 乐 志 记 载 : 元 丰 四 年 ( 公 元 1081 年 ) 十 二 月, 始 命 大 乐 正 叶 防 撰 朝 会 二 舞 仪. 武 舞 曰 威 加 四 海 之 舞. 文 武 曰 化 成 天 下 之 舞. 乐 志 在 其 舞 名 下, 均 用 文 字 记 录 了 每 一 个 动 作 ( 舞 谱 略 ). 是 至 今 宫 廷 朝 会 雅 乐 舞 蹈 的 较 完 整 的 文 字 舞 谱. 这 两 支 典 仪 舞 蹈, 是 为 西 周 初 年 制 礼 作 乐 的 遗 制. 文 舞 和 武 舞 各 由 64 个 舞 生 表 演, 是 为 八 佾 之 舞. 武 舞 手 执 干 戈 和 盾, 舞 有 三 变, 每 变 四 次 击 刺, 进 旅 退 旅, 发 扬 蹈 励, 以 武 功 征 服 天 下. 文 舞 手 持 龠 翟, 舞 有 三 变. 以 四 步, 三 揖, 三 辞, 三 谦 为 一 成. 以 文 德 化 成 天 下. 乐 志 规 定 : 凡 二 舞 缀 表 器 及 引 舞 振 作, 并 与 大 祭 祀 之 舞 同. 协 律 郎 陈 沂 按 阅, 以 谓 节 奏 详 备, 自 是 朝 会 则 用 之. 彭 松, 冯 碧 华 : 拉 班 舞 谱 中 国 古 代 舞 谱 一 书, 运 用 拉 班 舞 谱 的 记 谱 方 法, 记 录 了 威 加 四 海 之 舞 一 对 舞 者 的 部 分 舞 蹈 动 作. 以 复 建 为 目 的, 目 前 本 人 亦 在 研 究 之 中. 3. 南 宋 的 德 寿 宫 舞 谱 ( 公 元 年 ) 目 前, 南 宋 的 德 寿 宫 舞 谱 的 遗 存, 主 要 见 于 [ 南 宋 ] 周 密 : 癸 辛 杂 识 后 集. 德 寿 宫 舞 谱 也 即 南 宋 第 一 个 皇 帝 赵 构 住 在 德 寿 宫 期 间 乐 伎 们 献 舞 时 所 用 的 舞 式. 从 书 中 所 录 来 看 : 这 不 是 德 寿 宫 舞 谱 的 原 谱, 而 只 是 周 密 所 摘 谱 中 的 部 分 舞 式. 而 且, 德 寿 宫 舞 谱 是 有 舞 曲 的, 其 中 皆 新 制 曲. 彭 松 将 其 名 为 南 宋 伎 人 的 舞 蹈 术 语 谱, 似 乎 更 110

119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为 贴 切 (1989). 关 于 德 寿 宫 舞 谱 的 研 究, 主 要 见 齐 如 山 的 国 剧 身 段 谱 (1915), 以 戏 曲 身 段 为 参 证, 对 其 做 出 了 阐 述. 他 认 为, 左 右 垂 手, 掉 袖 儿, 大 小 转 撺 都 是 女 子 的 舞 牌, 类 似 戏 曲 里 的 旦 脚 的 出 场, 其 中 有 抖 袖 等 动 作. 不 过 大 小 转 撺 是 一 种 群 舞, 但 是 各 有 各 的 动 作. 打 鸳 鸯 场 可 能 和 鸳 鸯 的 意 义 有 关. 鲍 老 掇 可 能 是 一 种 多 人 的 合 舞. 五 花 儿 是 一 种 手 持 器 械 的 舞. 雁 翅 儿 和 雁 翅 有 关 的 姿 式. 龟 背 儿 是 类 似 花 舞 或 者 字 舞. 勤 蹄 儿 大 多 都 是 用 手 有 名 词, 可 能 也 和 袖 舞 有 关. 由 于 只 有 部 分 译 出, 亦 由 于 研 究 者 寡, 故 有 待 进 一 步 考 证. Ⅲ. 元 代 明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1. 元 代 的 韶 舞 舞 谱 ( 元 代 公 元 年 ) 九 韶 之 舞 的 研 究 见 于 彭 松 和 冯 碧 华 的 拉 班 舞 谱 中 国 古 代 舞 谱 一 书. 根 据 韶 舞 九 成 乐 补 图 谱 队 形 图, 译 出 了 该 舞 的 舞 台 平 面 图. (1989). 九 韶 之 舞 舞 谱 为 元 代 文 宗 天 历 ( 公 元 年 ) 时 人 余 载 ( 字 大 车 ). 韶 舞 又 名 大 磬, 相 传 为 舜 时 ( 公 元 前 22 世 纪 以 前 ) 乐 舞, 由 夔 创 造, 歌 颂 舜 继 承 尧 帝 功 德, 造 福 万 民. 表 演 的 形 式 承 袭 了 尧 的 乐 舞 大 章, 击 石 拊 石, 风 凰 来 仪, 百 兽 率 舞. 具 有 原 始 舞 蹈 的 风 貌. 经 过 后 世 的 加 工, 成 为 文 舞 的 代 表 作. 后 世 有 许 多 异 名, 如 : 九 韶 箫 韶 韶 箾 韶 虞 九 辩 九 代 等. 余 载 认 为 古 人 作 乐, 感 于 物 而 动 于 心, 必 有 手 之 舞 之, 足 之 蹈 之, 节 之 有 礼, 和 之 以 乐. 上 施 教 化, 下 移 风 易 俗. 他 以 传 说 中 的 河 图 与 洛 书 为 数 据, 编 制 了 韶 舞. 舞 人 用 八 佾, 所 著 服 装 颜 色 为 红, 白, 碧, 赤, 黄, 黑, 紫, 青, 绿 等 九 色. 手 舞 的 形 象 象 征 河 图, 足 蹈 的 动 作 象 征 洛 书. 表 示 载 天 圆 而 履 地 方, 以 及 前 后, 俯 仰, 左 右, 奇 偶, 动 静 相 生 的 形 象. 111

1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明 代 朱 载 堉 制 的 雅 乐 舞 谱 ( 明 代 公 元 年 ) 明 代 乐 律 学 家 朱 载 堉 ( 公 元 年 ), 根 据 当 时 的 乐 曲, 古 代 的 词 章, 编 制 了 一 部 分 古 代 雅 乐 舞 谱. 这 些 舞 谱 舞 名 基 本 来 自 周 代 和 汉 代, 舞 谱 图 文 并 重, 有 舞 姿, 音 乐, 节 拍 和 队 形 图 示. 另 有 一 谱 小 舞 乡 乐 谱, 只 有 文 字 说 明 动 作, 歌 词, 律 吕, 打 击 乐 节 拍 等. 舞 谱 的 动 作, 基 本 上 都 是 以 人 舞 谱 为 基 础. 因 为 人 舞 有 图, 出 于 明 集 礼. 故 为 舞 之 本 也. 朱 载 堉 所 制 舞 谱 是 为 明 代 之 舞, 目 的 是 在 为 救 乐 学 之 弊, 以 复 古 人 之 意. 在 乐 律 全 书 六 代 小 舞 谱 的 开 篇, 朱 载 堉 写 道 : 总 论 学 古 歌 舞 以 永 转 二 字 为 众 妙 之 门. 古 人 学 歌 以 永 之 一 字 为 众 妙 之 门, 古 人 学 舞 以 转 之 一 字 为 众 妙 之 门 今 人 学 歌 而 不 能 永, 学 舞 又 不 肯 转, 此 所 以 失 传 也. 六 代 大 舞 和 小 舞 在 是 周 代 用 于 祭 祀 大 典 和 教 育 贵 族 子 弟 的 乐 舞. 它 们 用 于 不 同 的 祭 祀 场 合 和 功 能. 但 朱 载 堉 认 为, 六 代 小 舞 是 六 代 大 舞 的 别 名. 他 还 认 为 古 者 天 子 用 八 佾 至 士 用 二 佾 数. 庶 人 无 佾 数, 独 一 人 以 舞 可 也 周 礼 乐 师 掌 教 国 子 小 舞, 所 谓 小 舞 者 岂 异 于 大 舞 哉? 以 其 无 佾 数 独 一 人 以 舞, 故 谓 之 小 舞 耳, 或 云 年 幼 十 三 巳 上 教 至 二 十, 然 后 教 以 大 夏 等 大 舞, 大 舞 支 派 别 立 于 名 号 以 教 年 少 者 为 小 舞. 王 克 芬 在 中 国 舞 蹈 史 (1985) 中 认 为 这 一 观 点 并 不 准 确. 然 而, 朱 载 堉 作 为 著 名 的 古 代 乐 学 大 家, 这 一 提 法 值 得 研 究. 灵 星 小 舞 谱 运 用 小 曲 豆 叶 黄 作 为 音 乐 伴 奏, 是 根 据 汉 代 的 雅 乐 编 制 的 儿 童 教 育 舞 蹈. 原 舞 来 自 汉 高 帝 时 令 天 下 立 灵 星 祠, 祠 后 稷 的 乐 舞. 舞 者 用 十 六 人 舞, 手 执 农 器, 象 教 田 耕 种, 收 获 击 土. 教 田 既 毕, 农 事 已 成. 讴 歌 舞 蹈, 答 谢 神 明. 不 用 农 器, 空 手 而 舞 的 字 舞 谱 登 场, 用 舞 队 组 成 天 下 太 平 四 字. 二 佾 缀 兆 图 是 一 套 和 所 有 舞 谱 不 同 的 舞 谱. 除 了 一 幅 乐 舞 空 间 地 位 排 列 方 位 图 外, 主 要 用 鞋 子 的 方 向 和 转 动 来 记 录 舞 蹈. 所 有 的 身 体 动 作 都 运 用 文 字 说 明. 如 : 上 转, 下 转, 内 转, 外 转 伏 睹, 瞻 仰, 回 顾 等 等. 说 明 这 些 姿 势 已 经 是 程 式 化 的 动 作. 朱 载 堉 的 乐 律 思 想 和 舞 谱, 充 满 了 封 建 道 德 和 五 常 三 纲 的 思 想. 乐 律 全 书 卷 二 十 古 今 乐 律 杂 说 并 附 录 记 录 古 代 人 之 舞 曰 : 四 势 为 纲, 象 四 端 也 ; 一 曰 上 转 势, 象 侧 隐 之 仁 ; 二 曰 下 转 势, 象 羞 恶 之 义 ; 三 曰 外 转 势, 像 是 非 之 智 ; 四 曰 内 转 势, 象 辞 让 之 礼. 并 解 释 道 : 此 四 势 象 四 端, 舞 谱 谓 之 送 摇 招 摇. 上 转 若 邀 宾 之 势, 下 转 若 送 客 之 势, 外 转 若 摇 出 之 势, 内 转 若 招 入 之 势. 他 写 道 : 八 势 为 目, 象 五 常 三 纲 也 ; 一 曰 转 初 势, 象 侧 隐 之 仁 ; 二 曰 转 半 势, 象 羞 恶 之 义 ; 三 曰 转 周 势, 象 写 实 之 信 ; 四 曰 转 过 势, 像 是 非 之 智 ; 五 曰 转 留 势, 象 辞 让 之 礼 ; 六 曰 伏 睹 势, 表 尊 敬 于 君 ; 七 曰 仰 瞻 势, 表 亲 爱 于 父 ; 八 曰 回 顾 势, 表 和 顺 于 夫. 有 学 者 认 为 其 有 些 牵 强 附 会. 112

121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3. 明 代 的 文 庙 祭 祀 舞 谱 ( 明 代 公 元 年 ) 彭 松 在 论 述 祭 孔 乐 舞 及 沿 革 时 提 及, 明 洪 武 二 十 六 年 ( 公 元 1393 年 ), 有 过 一 次 大 规 模 的 祭 孔 雅 乐 舞 的 传 播. 宫 廷 向 各 地 学 府 颁 发 大 成 乐. 运 用 图 谱 与 文 字 谱 归 纳 出 舞 容 的 各 种 姿 势. 在 三 成 舞, 九 十 六 个 舞 姿 中, 进 退 活 动 已 经 很 少, 只 有 三 次 进 步, 三 次 退 步, 一 次 左 右 进 步. 主 要 是 由 于 从 庭 院 搬 入 殿 堂 演 奏, 空 间 受 限 所 致 ( 彭 松, 冯 碧 华 1989). 江 帆, 艾 春 华 在 中 国 历 代 孔 庙 雅 乐 (2001) 专 著 中, 对 中 国 的 祭 孔 乐 舞 作 了 系 统, 全 面 的 研 究. 在 明 代 祭 孔 舞 蹈 的 组 合 形 式, 舞 谱 内 涵 和 服 饰 物 之 特 点 题 目 下 详 细 地 介 绍 了 载 于 阙 里 旧 志 中 的 单 线 图 谱, 和 孔 尚 任 在 阙 里 新 志 中 根 据 原 单 线 图 谱 归 纳 的 八 大 舞 容 和 十 一 种 舞 具 动 势. 明 代 祭 孔 乐 谱 是 明 洪 武 六 年, 由 詹 同, 冷 谦 作 曲 的 乐 章, 即 迎 神 咸 和 之 章, 奠 帛 宁 和 之 章, 初 献 安 和 之 章, 亚, 终 献 叠 奏 景 和 之 章, 徹 馔 和 饮 福 咸 和 之 章. 江 帆, 艾 春 华 为 图 谱 配 上 了 文 字 动 势 谱. 并 对 祭 孔 舞 蹈 思 想 内 容 进 行 剖 析. 指 出 其 以 体 现 儒 家 伦 理 道 德 观 念 与 礼 乐 治 道 思 想 为 立 意 ; 以 中, 和, 祗, 庸, 孝, 友 等 六 德 为 舞 蹈 语 言 基 础, 按 歌 诗 字 形 字 义, 赋 予 象 征 性 舞 蹈 语 汇 ; 从 思 想 内 容 上 集 中 地 表 现 了 一 个 德 字 ; 从 其 表 现 形 式 上 则 突 出 地 体 现 了 一 个 礼 字. 而 舞 蹈 的 构 思 则 是 承 袭 了 中 和 之 乐 的 美 学 观 念. Ⅳ. 清 代 的 舞 谱 遗 存 与 研 究 1. 清 代 祭 祀 舞 谱 ( 清 代 公 元 年 ) 明 清 以 后, 雅 乐 的 制 度 趋 于 完 善. 清 承 袭 明 代 中 和 韶 乐 的 乐 名, 康 熙 皇 帝 颁 昭 普 及 中 和 韶 乐, 中, 犹 忠. 和, 刚 柔 适 度 ( 周 礼 ). 清 代 继 承 周 王 朝 以 来 的 行 乐 以 中 和 为 本 的 传 统, 形 成 继 承 与 发 扬 六 代 之 乐 和 雅 乐 制 度 的 高 峰. 在 乾 隆 十 一 年 御 制, 钦 定 四 库 全 书 荟 要 御 制 律 吕 正 义 后 编 中 颁 发 了 清 代 的 祭 祀 乐, 朝 会 乐, 宴 享 乐, 导 迎 乐, 行 倖 乐 等 一 百 二 十 卷. 吉 礼 莫 重 于 祀 事, 祀 事 莫 过 于 效 庙, 礼 之 大 者, 乐 亦 盛. 因 此, 书 中 的 前 37 卷 颁 布 的 是 祭 祀 乐 及 其 舞 谱, 其 中 有 形 象 和 文 字 结 合 的 舞 谱 共 21 套. 宫 廷 的 雅 乐, 和 国 家 的 政 治 制 度, 礼 乐 制 度 及 等 级 制 度 有 着 直 接 的 联 系, 因 此, 仪 式 的 举 113

1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行 关 于 祭 祀 的 地 点, 时 间, 内 容, 形 式, 都 有 严 格 的 规 定 和 要 求. 而 其 中 的 舞 蹈, 包 括 舞 器, 舞 乐, 舞 歌, 舞 衣, 舞 容, 舞 人, 舞 阵 都 有 严 格 的 规 定 和 说 明. 例 如, 祭 祀 通 例 : 凡 祭 祀 中 和 韶 乐. 圆 丘, 祈 谷, 雩 祭 乐 并 用 九 成. 方 泽 乐 用 八 成. 社 稷 坛, 朝 日 坛, 先 农 坛, 历 代 帝 王 庙 乐 并 用 七 成. 太 庙, 夕 月 坛, 文 庙, 天 神 坛, 地 祗 坛, 太 岁 坛 乐 并 用 六 成. 所 有 祭 祀 乐 的 乐 章 都 有 严 格 的 规 定. 祭 祀 舞 用 八 佾, 六 十 四 人. 初 献 跳 武 舞, 亚 献 和 终 献 都 跳 文 舞. 武 舞 生 执 干 戚, 文 舞 生 执 羽 龠. 只 有 文 庙 舞 用 六 佾, 三 十 六 人, 只 跳 文 舞. 大 雩 用 十 六 舞 童, 跳 大 雩 童 子 舞. 钦 定 四 库 全 书 荟 要 御 制 律 吕 正 义 后 编 记 载 的 可 以 说 是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中 规 模 最 大 舞 谱 系 列, 由 形 象 图 谱 与 字 谱 结 合 呈 现, 加 之 详 细 的 各 种 器 乐 的 乐 谱 配 合, 也 是 最 为 完 整 的 中 国 雅 乐 舞 谱. 2. 清 代 祭 孔 舞 谱 的 传 衍 清 代 祭 祀 乐 舞 流 传 至 今 的 主 要 是 文 庙 祭 祀 乐 舞. 清 代 顺 治 定 都 北 京 后, 在 国 子 监 立 文 庙, 建 有 大 成 殿, 专 门 用 来 每 年 举 行 祭 孔 大 典. 康 熙 时, 孔 尚 任 撰 阙 里 新 志, 修 订 了 乐 舞. 清 代 记 载 祭 孔 的 舞 谱 文 献 较 多, 据 笔 者 查 询, 除 了 上 述 所 举 律 吕 正 义 后 编 外, 现 存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和 北 京 图 书 馆 的 还 有 : 1) [ 清 ] 孔 尚 任. 阙 里 新 志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2) [ 清 ] 徐 畅 达. 六 佾 舞 谱. 皇 朝 祭 器 乐 舞 录 [M]. 北 京 图 书 馆 善 本 部. 3) [ 清 ] 孔 传 铎. 文 庙 舞 谱. 圣 门 乐 志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4) [ 清 ] 钦 颁 文 庙 舞 容 谱 式. 皇 朝 乐 舞 录 辑 要 [M]. 北 京 图 书 馆 善 本 部. 5) [ 清 ] 文 庙 乐 舞 全 谱 附 录 / 文 庙 乐 舞 全 谱 钦 颁 文 庙 乐 谱. 文 庙 乐 舞 考 乐 部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彭 松 认 为 [ 清 ] 阙 里 新 谱 文 字 舞 谱 与 圣 门 乐 志 的 舞 谱 不 同, 有 身, 首, 步, 立 诸 节 的 详 辩. 说 明 身 体 各 部 位 的 姿 态 种 类, ( 皇 宫 敬 事 录 ( 文 字 图 谱 ) 它 的 动 作 分 类 比 明 谱 丰 富 一 些. 笔 者 在 文 庙 乐 舞 考 中 查 询 有 一 舞 谱 和 圣 门 乐 志 及 律 吕 正 义 后 编 中 的 文 庙 祭 孔 乐 舞 都 不 同. 从 明, 清 的 舞 谱 来 看, 祭 孔 只 有 文 舞 的 舞 谱. 但 是, 江 帆, 艾 春 华 的 研 究 则 称 : 至 洪 武 至 清 末 年 的 五 百 一 十 多 年 来, 在 中 国 各 地 则 文 舞 和 武 舞 融 聚 一 堂 则 是 一 直 没 有 间 断 过. 辛 亥 革 命 后, 出 任 南 京 临 时 政 府 教 育 总 长 的 蔡 元 培 停 止 了 丁 祭 年 ( 民 国 三 年 ) 袁 世 凯 恢 复 丁 祭 年 12 月 袁 世 凯 复 辟, 自 立 为 洪 宪 皇 帝, 至 1916 年 3 月 22 日 跨 台 的 114

123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83 天 之 间, 举 行 过 一 次 丁 祭. 新 制 了 乐 生 和 舞 生 的 服 装, 亦 新 制 了 乐 和 舞, 不 过 未 用 年, 中 华 民 国 政 府 将 每 年 的 8 月 27 日 定 为 孔 子 诞 辰 纪 念 日, 并 列 为 国 家 纪 念 日, 休 假 一 天. 于 是, 祭 孔 时 间 就 由 丁 祭 时 改 为 孔 子 诞 辰 纪 念 日. 民 国 期 间, 在 山 西, 湖 南, 河 北, 宁 夏, 云 南 等 地 的 地 方 志 都 有 文 庙 祭 孔 仪 式 的 记 载. 祭 孔 活 动 一 直 延 续 到 1948 年. 除 了 曲 阜 只 用 文 舞 外, 其 他 地 区 有 武 舞, 文 舞 双 兴. 此 外, 清 代 还 传 有 两 种 乐 舞 舞 谱 : 一 是 关 帝 庙 的 武 舞 舞 谱 ([ 清 ] 徐 畅 达. 关 帝 庙 初 献 乐 舞 谱, 皇 朝 祭 器 乐 舞 录 [M], 北 京 图 书 馆 善 本 部.); 二 是 文 昌 乐 的 舞 谱 ([ 清 ] 徐 畅 达. 文 昌 乐 舞 谱. 皇 朝 祭 器 乐 舞 录 [M]. 北 京 图 书 馆 善 本 部.) Ⅴ. 当 代 舞 谱 应 用 研 究 中 的 成 绩 与 问 题 1. 舞 谱 应 用 研 究 取 得 的 成 绩 除 了 上 述 理 论 研 究 之 外, 关 于 舞 谱 研 究 在 当 代 文 化 复 建 中 的 应 用 也 取 得 了 一 定 的 成 绩 和 重 大 的 突 破 年 后, 祭 祀 乐 舞 活 动 和 研 究 亦 一 度 停 止 年, 中 国 舞 蹈 研 究 会 在 主 席 吴 晓 邦 先 生 的 带 领 下, 对 祭 孔 乐 舞 进 行 研 究, 在 山 东 曲 阜 举 行 祭 礼 演 出 活 动, 并 将 祭 孔 仪 式 拍 成 了 电 影. 参 加 仪 式 的 人 员 是 动 员 集 中 了 (1931 至 937 年 间 的 ) 曲 阜 古 乐 传 习 所 的 师 生 为 基 本 的 演 出 人 员, 加 上 乐 生, 舞 生, 礼 生 共 有 140 人. 文 舞 生 是 抽 调 当 时 的 中 学 生 表 演, 从 参 加 主 祀 的 人 之 年 龄 来 看, 他 们 当 时 已 是 耄 耋 之 年, 是 为 清 代 遗 老 年, 在 民 国 时 期 参 加 过 云 南 建 水 文 庙 祭 祀 的 舞 童 ( 现 年 84 岁, 仍 然 健 在 的 ) 张 述 孔, 曾 根 据 清 代 宫 廷 颁 发 的 直 省 文 庙 舞 谱, 排 练 了 祭 孔 佾 舞, 参 加 舞 蹈 的 汇 演. 20 世 纪 60 年 代, 台 湾 开 始 恢 复 祭 孔 活 动 年 9 月 10 日, 开 始 改 进 祭 孔 典 礼 的 乐 章, 舞 蹈, 音 乐, 乐 器, 服 装 等 等, 历 时 三 年. 采 用 的 是 明 洪 武 六 年 (1373 年 ) 制 定 的 祀 先 师 孔 子 乐 章 年, 山 东 曲 阜 在 江 帆, 艾 春 华 的 主 持 下, 恢 复 了 祭 孔 表 演 活 动 年 在 首 都 博 物 馆 举 行 了 7 天 的 表 演. 随 后, 他 们 又 在 北 京 国 子 监 孔 庙 恢 复 了 祭 孔 表 演 年 后, 祭 孔 活 动 或 表 演 在 各 地 文 庙 普 遍 恢 复. 世 人 一 般 认 为, 中 国 的 雅 乐 已 经 不 存 在 了. 笔 者 经 过 多 年 的 田 野 调 查, 认 为, 西 周 制 礼 115

1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作 乐 形 成 的 礼 乐 制 度 及 其 祭 祀 雅 乐 舞 中 的 佾 舞, 在 祭 孔 活 动 中 被 幸 运 地 流 传 至 今. 中 国 的 雅 乐 并 未 完 全 消 亡, 并 有 复 建 的 可 能 性 (2009) 年, 笔 者 根 据 清 乾 隆 八 年 钦 颁 直 省 文 庙 祭 祀 舞 谱 将 祭 孔 乐 舞 复 现, 发 表 于 2009 中 国 杭 州 中 日 韩 传 统 雅 乐 舞 国 际 学 术 研 讨 会 暨 中 日 韩 传 统 雅 乐 舞 代 表 作 展 演 活 动. 对 于 中 国 雅 乐 舞 的 复 建 工 作, 也 在 社 会 不 同 地 区 开 展 起 来, 以 北 京 为 代 表 年, 北 京 天 坛 和 地 坛, 率 先 恢 复 了 祭 天 仪 式 和 祭 地 仪 式 表 演, 在 每 年 的 春 节, 大 年 初 一 至 初 七, 每 天 表 演 两 场. 接 下 来 月 坛 亦 恢 复 了 月 坛 祭 月 典 仪. 今 年 3 月 21 日 春 分 时 令, 中 断 了 160 余 年 的 日 坛 祭 日 典 仪 在 日 坛 公 园 与 市 民 见 面. 至 此, 北 京 城 天, 地, 日, 月 四 大 祭 祀 典 仪 都 已 恢 复 表 演. 在 中 国 雅 乐 舞 文 化 传 承 和 应 用 研 究 方 面 意 义 重 大. 台 湾 舞 蹈 家 刘 凤 学 创 建 新 古 典 舞 团, 长 期 致 力 于 中 国 古 代 乐 舞 的 研 究, 2003 年 在 台 湾 推 出 重 建 的 四 首 大 曲 皇 帝 破 阵 乐, 春 莺 啭, 苏 合 香, 团 乱 旋, 受 到 学 界 的 赞 赏 ; 在 教 育 领 域, 台 湾 南 华 大 学 多 年 来 将 雅 乐 舞 纳 入 教 育 课 程, 受 到 学 界 的 好 评 年, 杭 州 师 范 大 学 音 乐 学 院 在 市 政 府 的 支 持 下, 成 立 了 南 宋 雅 乐 舞 研 究 中 心, 与 韩 国 呈 才 研 究 会, 日 本 瑞 穗 雅 乐 会 联 合, 在 杭 州 共 同 举 办 了 中 日 韩 传 统 雅 乐 舞 国 际 学 术 研 讨 会 暨 中 日 韩 传 统 雅 乐 舞 代 表 作 品 展 演 活 动. 并 且 以 此 为 开 端, 筹 备 建 立 传 统 雅 乐 舞 学 会. 启 动 攀 登 工 程, 在 音 乐 学 院 校 址 建 设 中 国 音 乐 博 物 馆, 同 时 启 动 以 南 宋 为 中 心 的 传 统 雅 乐 舞 的 研 究 与 复 建 项 目, 以 重 建 本 土 民 族 音 乐 舞 蹈 学 科 建 设 为 主 要 目 标, 因 此, 乐 谱 与 舞 谱 的 研 究 是 其 基 础 工 作, 这 项 工 程 是 迄 今 为 止, 国 内 学 界 和 教 育 界 在 应 用 研 究 领 域 受 到 支 持 力 度 和 规 模 最 大 的 项 目. 伴 随 对 人 类 文 化 遗 产 的 保 护 意 识 日 益 增 长, 文 化 遗 产 保 护 工 程 全 面 启 动, 旅 游 文 化 的 推 动, 在 打 造 地 域 传 统 文 化 品 牌 的 思 想 指 导 下, 促 使 了 一 些 古 老 的 仪 式 得 以 恢 复, 并 作 为 表 演 节 目 和 游 客 和 观 众 见 面, 带 动 了 舞 谱 的 研 究 升 温. 2. 舞 谱 复 原 应 用 研 究 中 的 主 要 问 题 1) 研 究 成 果 主 要 出 自 老 一 辈 的 舞 蹈 史 学 家 ( 他 们 目 前 的 年 龄 大 多 在 岁 ), 其 成 果 主 要 发 表 在 20 世 纪 的 80 年 代. 年 轻 一 代 学 者 尚 未 对 其 投 入 应 有 的 关 注, 新 千 年 后 的 基 础 研 究 成 果 不 多, 从 而, 使 目 前 升 温 的 乐 舞 复 建 实 践 和 操 作 应 用 的 基 础 不 厚. 2) 近 年 来, 城 市 建 设 欲 借 助 历 史 基 础 打 造 名 城 形 象, 经 济 欲 借 助 文 化 唱 戏 刺 激 高 速 增 长, 旅 游 业 欲 借 助 文 化 看 点 吸 引 游 客 观 光, 学 者 借 助 经 济 建 设 平 台 开 展 学 术 研 究. 116

125 中 国 古 代 舞 谱 遗 存 与 当 代 研 究 概 况 而 文 化 基 础 建 设 的 非 短 期 成 效 性 和 非 赢 利 性, 一 旦 以 赢 利 为 目 的 商 业 行 为 和 文 化 短 行 为 发 生 冲 突, 结 果, 牺 牲 的 往 往 是 文 化. 3) 与 上 一 特 点 对 应, 当 下 研 究 较 为 重 视 舞 谱 的 应 用 和 复 原. 虽 然 也 颇 有 成 效, 但 是, 由 于 自 为 阵, 未 能 很 好 地 整 合 资 源, 从 而 基 础 研 究 的 问 题 没 有 很 好 解 决, 弄 不 好 就 形 成 伪 文 化 泛 滥. 因 此, 我 们 必 须 进 一 步 提 高 各 界 的 认 识, 将 文 化 的 长 远 目 标 和 短 期 的 社 会 经 济 效 应 有 机 地 结 合, 更 加 重 视 舞 谱 挖 掘, 破 解 及 基 础 研 究 工 作, 调 动 各 界 资 源, 齐 心 协 力, 从 文 化 和 精 神 的 深 度 建 构 中 国 舞 谱 研 究 及 其 复 建 等 系 统 工 程, 才 能 实 现 对 传 统 文 化 的 挖 掘, 整 理, 保 护 的 应 有 的 价 值. 117

1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 参 考 文 献 > 二 十 五 史 [M], 浙 江 古 籍 出 版 社, [ 宋 ] 周 密. 癸 辛 杂 识 [M]. 北 京 图 书 馆 善 本 部. [ 明 ] 朱 堉 堉. 乐 律 全 书 [M]. 商 务 印 书 馆, [ 清 ] 钦 定 四 库 全 书 荟 要 御 制 律 吕 正 义 后 编 [M]. 吉 林 出 版 社, [ 清 ] 孔 尚 任. 阙 里 新 志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 清 ] 孔 传 铎. 文 庙 舞 谱, 圣 门 乐 志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 清 ] 文 庙 乐 舞 全 谱 附 录, 文 庙 乐 舞 全 谱 钦 颁 文 庙 乐 谱, 文 庙 乐 舞 考 [M], 中 国 艺 术 研 究 院 图 书 馆. 齐 如 山. 国 剧 身 段 谱 罗 庸, 叶 玉 华. 唐 人 打 令 考 [M] 北 京 大 学 四 十 周 年 纪 念 文 集, 秋 艇 ( 赵 尊 岳 ). 敦 煌 舞 谱 详 解 [M]. 香 港 大 学 学 生 会 论 文 集 任 二 北. 敦 煌 曲 初 探 舞 容 一 得 [M] 中 国 舞 蹈 艺 术 研 究 会 研 究 组 编. 苏 州 道 教 艺 术 集 [M] 年 油 印 / 上 海 社 会 科 学 院 出 版 社, 冒 广 生. 疚 斋 词 论 敦 煌 舞 谱 释 词 [M]. 饶 宗 颐. 记 大 英 博 物 馆 藏 敦 煌 舞 谱 [J]. 新 亚 学 报 : 4(2), 饶 宗 颐. 敦 煌 舞 谱 校 释 [M]. 香 港 大 学 学 生 会 金 禧 纪 念 论 文 集, 王 克 芬. 敦 煌 舞 谱 残 卷 探 索 [J]. 舞 蹈 艺 术, 1985(4). 周 冰, 曾 岚. 最 古 老 的 舞 谱 八 卦 舞 谱 [J]. 舞 蹈 艺 术, 1986(1). 王 克 芬, 柴 剑 虹. 敦 煌 舞 谱 的 再 探 索 [J]. 舞 蹈 艺 术, 1988(4). 董 锡 玖. 解 开 敦 煌 舞 谱 之 谜 [J]. 舞 蹈 艺 术, 1988 (4). 彭 松, 冯 碧 云. 拉 班 舞 谱 3: 中 国 古 代 舞 谱 [M]. 中 国 舞 蹈 出 版 社, 席 贯 臻. 唐 传 舞 谱 片 前 文 拍 之 初 探 [J]. 中 国 音 乐 学, 1990(1). 任 半 塘. 唐 声 诗 舞 谱 [M]. 席 臻 贯 译 注. 古 丝 路 音 乐 暨 敦 煌 舞 谱 研 究 [M]. 甘 肃 省 文 化 艺 术 研 究 所, 席 臻 贯. 古 丝 路 音 乐 暨 敦 煌 舞 谱 研 究 [M]. 敦 煌 文 艺 出 版 社, 江 帆, 艾 春 华. 中 国 历 代 孔 庙 雅 乐 [M]. 中 国 国 际 广 播 出 版 社, 刘 青 弋 主 编. 中 国 舞 蹈 通 史 [M]. 上 海 音 乐 出 版 社,

127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메이지찬정보( 明 治 撰 定 譜 ) 는 어디에서 왔는가 - 일본의 가가쿠 류테키보 의 다양성과 통일 - 테라우치 나오코( 寺 内 直 子 )* 4) 번 역 이 종 찬** 1) <국문초록> 일본의 궁중음악인 가가쿠의 류테키( 龍 笛 ), 히치리키( 篳 篥 ), 쇼( 笙 ), 비와( 琵 琶 ), 고토( 箏 ), 마이(춤) 혹은 우타모노(노래)의 연주는 같은 레퍼토리라 하더라도 교토 ( 京 都 ), 나라( 奈 良 ), 오사카( 大 坂 )의 음악인들마다 악상, 리듬, 미묘한 뉘앙스, 무용 스타일 등에 대해 서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고대와 중세의 합자보에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쇼가 악보들을 살펴보면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단 일 창법으로 통일되기까지 류테키와 히치리키를 위한 여러 다른 쇼가의 기보체계가 있었다. 오늘날의 궁중음악인들은 1876년과 1888년에 정부 주도로 편찬된 표준보 인 메이지찬정보 에 수록된 고전 악곡들을 단일 스타일로 연주한다. 메이지찬정보는 18세기와 19세기 문헌들에서 합자보와 쇼가 음절들을 병용하는 방법을 차용하여 구음과 음높이를 모두 이용하여 선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전 문헌들의 체계를 답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기보를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였다. 찬정보에서 새롭게 창안된 것은 박이나 장단을 더욱 정확히 기보하기 위하여 서 로 다른 크기의 글자들을 사용한 것이고, 같은 높이의 음이 두 박 이상 지속될 경 우 항상 히키( 引 ) 표시를 한다. 핵심어: 메이치찬정보, 가가쿠, 쇼가, 류테키, 히치리키 * 일본 고베대학교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학교 강사 119

12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목 차 Ⅰ. 서 론 Ⅱ. 두 기보체계 Ⅲ. 쇼가에 대한 선행 연구 Ⅳ. 근대이전, 에도 시대( )의 류테키 유파들 Ⅴ. 결 론: 답습된 것과 창안된 것 Ⅰ. 서 론 본 논문은 근대 이전, 즉 에도 시대와 근대 즉, 메이지 시대에 편찬된 기보법들을 분석 함으로써 일본의 궁중음악인 가가쿠( 雅 樂 )의 유파들을 연구한다. 가가쿠에서 류테키( 龍 笛 ), 히치리키( 篳 篥 ), 쇼( 笙 ), 비와( 琵 琶 ), 코토( 箏 ), 마이(춤) 혹은 우타모노(노래)의 연주는 교 토( 京 都 ), 나라( 奈 良 ), 그리고 오사카( 大 坂 )의 특정 가문들에 국한되었는데, 같은 레퍼토리 에서조차 이 세 지역의 음악인들은 악상이나 리듬, 미묘한 뉘앙스, 무용의 스타일 등에 대 한 서로의 차이점들을 주장해 왔다. 그러한 차이들은 불행히도, 17세기에 새로운 기보법인 쇼가( 唱 歌 )의 채보가 등장하기 전에 편찬된 고대와 중세의 합자보 1) 에서는 분명하지 않았 다. 주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도제식으로 구전되는 쇼가 창법에는 음높이, 악상, 호흡 등 2) 선율의 모든 세부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음절 문자체계로는 창법의 미세한 뉘앙스를 완전히 전달할 수 없는 점이 쇼가 악보의 한계이지만, 태블러처(tablature) 악보 들보다는 보다 자세히 선율적 진행을 설명할 수 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쇼가 악보들을 살펴보면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단일 창법 으로 통일되기까지 류테키와 히치리키를 위한 여러 다른 쇼가의 기보체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궁중음악인들은 1876년과 1888년에 정부 주도로 편찬된 표준보인 메이 지 센테이후 혹은 찬정보( 明 治 撰 定 譜 )에 수록된 고전 악곡들을 단일 스타일로 연주한다. 1) 편집자 주: 문자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모듬 부호보라는 뜻으로 적합한 용어가 없어 편의상 합 자보 로 표기함. 2) 정확히 말하면, 쇼가의 선율은 목관 악기로 실제 연주되는 것과 간혹 다르다. 120

129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본 논문은 류테키를 중심으로 근대 이전의 악보들과 메이지찬정보 를 고찰하여 첫째, 19세기 중반 이전에 다양한 쇼가의 연주관행이 있었다는 것과 둘째, 기존의 기보법으로부 터 찬정보가 답습한 것은 무엇이며 새로이 창안한 것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Ⅱ. 두 기보체계 전통적으로 가가쿠에서는 특정음정들과 관련하여 조율이나 선법에 따라 어떤 기호들은 여러 다른 음정들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선율악기들의 지공과 운지법(류테키, 히치리키, 쇼 의 경우), 괘 혹은 현의 위치(비와와 코토의 경우) 등을 합자보로 기보하였다. 17세기 이전 에 편집된 류테키, 히치리키, 쇼, 비와, 코토 등의 고악보들은 기본적인 선율을 이런 식으 로 표기하였는데, 텐표비와부( 天 平 琵 琶 譜 ) 3), 하쿠가노후에후( 博 雅 笛 譜 ) 4), 산고요로쿠 ( 三 五 要 録 ) 5), 진치요로쿠( 仁 智 要 録 ) 6), 카이추후( 懐 中 譜 ) 7), 코후료리츠노마키( 古 譜 呂 律 巻 ) 8), 나카하라로세이쇼( 中 原 芦 声 抄 ) 9) 등의 잘 알려진 악보들도 모두 합자보이다. <악보 1>은 966년에 완성된 하쿠가노후에후 10) 에 수록된 <지스이라쿠( 拾 翠 樂 )>(오쇼키 조, 즉 황종조 선법에 주음은 A)라는 곡의 도입 부분의 고악보이고, <표 1>은 각 기호와 해당 음높이를 나타내는데, 이로써 대략적인 선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세계의 다른 헤테 로포니 음악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실제 선율 연주는 더욱 미세한 장식음들을 포함할 수 있으나, 가가쿠의 전통에서는 쇼가가 혹은 연주 실례가 도제식으로만 구전되어 전해져 왔다. 11) 쇼가 악보는 선율 연주의 더욱 상세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기하려는 노력의 결과 일 수 있지만, 각 음절이 합자보에서처럼 특정 음높이에 상응하지 않으므로, 각 기보법의 3) 나라의 정창원( 正 倉 院 )에 보존된 8세기의 비와보. 4)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가 966년에 완성한 류테키의 악보. 5) 후지와라노 모로나가( )가 1192년에 편찬한 비와의 악보. 6) 후지와라노 모로나가( )가 1192년에 편찬한 코토의 악보. 7) 13세기에 완성된 류테키보. 8) 토요하라 가문이 13세기에 편찬한 쇼의 악보. 9) 시게마사 나카하라가 14세기에 편찬한 히치리키의 악보. 10) 현재 우에노가쿠엔 대학교의 일본음악사학 연구소에 보관된 라쿠사이도 기록집의 악보. 11) 쇼가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가모(1986, 2001), 시바(1982), 테라우치(2004), 나카무라(2000), 모테기(1978), 요코미치(1977)를 참조할 것. 121

1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메이지찬정보 는 두 체계를 병용하고 있다. <악보 2>는 효조( 平 調 )선법인 <고쇼라쿠노큐( 五 常 楽 急 )>의 현행 류테키 악보이다. 주된 세로줄은 구음과 합자 보, 왼편은 각 음높이에 해당하는 운지법을 나타낸다. <악보 1> 하쿠가노후에후 중 <지스이라쿠> <표 1> 류테키의 운지법 122

131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악보 2> 효조 선법의 <고쇼라쿠노큐>의 현행 악보 Ⅲ. 쇼가에 대한 선행 연구 메이지찬정보 의 모음 용례에서 상대적인 규칙성이 보이기도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 이, 쇼가의 음절들은 특정 음높이들에 상응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휴즈(David Hughes)는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 기보법의 모음 아 와 이 는 보다 높은 음높이들을, 오 와 우 는 낮 은 음높이들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는 이런 현상이, 세계의 다른 음악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인 규칙이라고 주장한다. (Huhes 2002) 아래에 보는 바와 같이, 필자는 메 이지찬정보 가 엄격한 체계임을 분석하였다. <악보 3>은 고쇼라쿠 의 쇼가의 오선보인데, 두 번째 마디의 루 이 에서 이 는 우 보다 높으며, 1, 2 마디에 걸친 호 루 에서 오 는 우 보다 높다. 또 4마디와 8마디의 에 걸친 로 이 에서 이 는 오 보다 높다. 이 세 가지 123

1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예를 종합해 보면 이 가 가장 높고, 오 가 가운데 있으며 우 가 가장 낮다는 규칙을 유추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다음 두 음절들과 음높이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표 2>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악보 3> 쇼가인 <고쇼라쿠노큐>의 서양식 오선보 <표 2> 모음과 음높이 휴즈의 분석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선행연구들은 쇼가의 음운체계를 설명하는데 주력하였을 뿐 메이지 유신 이전 에 다양한 쇼가 체계들이 존재하였고 여러 다른 전통의 유파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본 논문은 17세기 와 19세기에 편찬된 쇼가 악보들을 분석하고 이미 소실된 류테 키의 다양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Ⅳ. 근대이전, 에도 시대( )의 류테키 유파들 1. 여러 가지 쇼가 악보 17세기와 19세기에 걸쳐 편찬된 다양한 쇼가 악보들이 있는데, 편집자 보유자의 계보 나 유파 그리고 쇼가 체계 자체의 측면에서 다음의 악보들은 중요하다. 쇼가를 세부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적인 문헌 정보를 제시한다. 124

133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1) 류테키카나후( 龍 笛 仮 名 譜 ) - 카네요리후( 兼 頼 譜 ) 이 사본은 본래 후시미노미야( 伏 見 宮 ) 가문이 소장하였으나 현재는 궁내청 서릉부( 宮 内 廳 書 陵 部 )에 보존되어 있다. 12) 후기( 後 記 )에 의하면 원본은 오사카의 음악가인 토기 카네 요리( 東 儀 兼 頼 ) ( )가 1680년 2월, 카미가모 신사( 神 社 )의 제사장의 딸에게 주 기 위하여 집필하였다 한다. 13) 악보는 쇼가의 음절들과 동일한 길이의 마디들을 나타내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악보 4-1> 2) 로쿠초시쿄쿠후와곤( 六 調 子 曲 譜 和 琴 ) - 사다유키 친왕보( 貞 致 譜 ) 이 사본 또한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소장품이었다가 현재 궁내청 서릉부에 보존되어 있 다. 14) 주로 6현금인 와곤( 和 琴 )의 악보인데, 이 악기는 본래 가가쿠의 토속 성악곡들에 사 용되었으나 11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토가쿠( 唐 樂 ) 합주나 소규모 귀족들의 연주모임에서 사이바라( 催 馬 楽 )의 반주에 널리 쓰였다. 이 악보는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제 13대 친왕( 親 王 )인 사다유키( 貞 致 )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5) 류테키 쇼가와 더불어 와곤의 합 자보가 수록되어 있다. <악보 4-2> 16) <악보 4-1> 카네요리후 <악보 4-2> 사다유키 친왕보 12) 도서번호: 伏 ) 원문: 右 龍 笛 假 字 譜 者 依 / 大 夫 将 監 賀 茂 縣 王 清 豊 / 息 女 所 望 書 写 之 令 附 / 與 訖 / 延 宝 八 庚 申 暦 仲 春 良 日 / 正 五 位 下 行 修 理 亮 太 秦 兼 頼. 14) 도서번호: 伏 ) 원문: 此 本 二 品 式 部 卿 貞 致 親 王 正 筆 也. 16) 카네요리후와 사다유키후에 대한 정보는 테라우치(2004) 참조. 125

1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3) 키쿠테이( 菊 亭 ) 혹은 이마데가와( 今 出 川 )) 가( 家 )라쿠후의 전수보 - 치카사다후( 近 貞 譜 ) 키쿠테이(이마데가와) 가문은 황궁의 위계 중 고위 귀족 가문으로 가가쿠의 코토와 비와에 능통하였다. 이 가문은 낮은 직급의 음악인들에게 현악을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목관의 전통 을 물려 받았는데, 제자가 한 곡을 완전히 익히면 스승이 그에 대한 인증으로 악보를 수여하 였다. 17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키쿠테이(이마데가와) 코레스에 ( 菊 亭 伊 季 ) ( )는 나라의 하위직급 음악인인 코마 치카사다( 狛 近 貞 ) ( )로부터 여러 가지의 악보를 받았다. 현재 키쿠테이 가문의 류테키 악보의 상당 부분이 센슈( 專 修 )대학교의 도서관에 소장 되어 있다. 17) 악보에서는 가운데 세로줄이 쇼가 음절들, 왼편은 합자보이다. <악보 4-3> 18) 4) 로쿠쵸시쿄쿠카나후( 六 調 子 曲 仮 名 譜 ) - 신조안인후( 新 浄 安 院 譜 ) 이 사보는 이치죠 테루요시( 一 條 輝 良 )( ) 다이코 다이진( 太 政 大 臣 )의 딸이자 후시미노미야의 사다유키( 貞 敬 ) 친왕( )의 부인이었던 신조안인 여사(?-1828)가 소장 19) 하였던 것으로 현재는 궁내청 서릉부에 보존되어 있다. 20) 이 사보의 가운데 세로줄 은 류테키 쇼가이며 그 왼편에는 류테키 합자보가, 오른편에는 비와의 합자보가 기재되어 있다. <악보 4-4> <악보 4-3> 치카사다후 <악보 4-4> 신조안인후 <악보 4-5> 스에스케후 17) 이 가문의 악보 중 또 다른 상당량이 교토대학교에 보존되어 있다. 18) 센슈대학교 소장 키쿠테이 문고집 중 도서번호: ) 후기 원문: 新 淨 安 院 御 者 御 所 持 之 御 譜 也 / 十 一 年 亥 ノ 殘 冬 九 皐 カツカル 了. 20) 도서번호: 伏

135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5) 로쿠쵸시쿄쿠카나후( 六 調 子 曲 仮 名 譜 : 스에스케후) 궁내청 서릉부에 보존된 신조안인후 와 다른 내용을 수록한 로쿠쵸시쿄쿠카나후 란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악보로 21) 교토 출신의 음악가인 아베 스에스케( 安 倍 季 資 ) ( )가 정리한 것이다. 히치리키의 명인이었던 그는 후시미노미야의 친왕에게 1854년 이 류테키 악보를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2) 이 악보의 중앙에는 류테키 쇼가가, 왼편에는 합 자보, 그리고 오른 편에는 코토(일부는 비와)합자보가 배치되어 있다. <악보 4-5> 23) 2. 세 가지의 쇼가 체계 <표 3>은 같은 곡인 <고쇼라쿠노쿄쿠>의 류테키 쇼가의 음절들을 비교한 것인데, 우리 는 여기서 음절들의 용례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악보(2) 사다유키후 와 악보(3) 치카사다후 는 선행 음절들인 토, 호 와 로 를 연장하기 위하여 종종 모음 오 를 사용한 다. 예를 들면, 제 3마디와 7마디에 토 오 루리 같은 경우이다. 반면에 같은 마디들이 악보(4) 신조안인후 와 악보(5) 스에스케후 에서는 토 우 루리 로 기재되어 있다. 다른 차 이는 5, 6마디와 9, 10 마디인데 악보(2)와 (3)에서는 토-오 호-오 로, (4)와 (5)에서는 타-아 화-아 가 발견된다. 다른 마디들에서, 악보(2)와 (3)은 유사한 특징들을 보이며 (4) 와 (5)역시 마찬가지이다. 악보(1) 카네요리후 는 다소 특이한 점을 보이는데, 다른 악보들이 토 오 루 리, 토 우 루 리 라고 적고 있는데 반해 이 악보의 제 3마디와 6마디에서는 타 아 로 리 라고 적혀 있다. 제 11마디의 경우, 다른 악보들이 로 오 루 나 로 우 루 를 사용하는 데 비 해, 악보(1)은 리 이 야 를 사용하며 제 19마디에서는 테 이 라 로 적혀 있다. 모음 에 는 (1) 카네요리후 에만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면, 악보(2)와 (3)은 같은 부류, (4)와 (5)도 같은 부류이며 (1)은 독자적이다. 악보(1)의 집필자인 토기 카네요리는 오사카 유파에 속한다. 모음 에 의 사용은 이 기보 법을 포함하여 (텐노지라 불리는) 오사카의 기보법에만 보이는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악보 (3)의 집필자인 코마 치타사다가 나라 출신이므로 이 쇼가 기보법은 나라의 체계일 수 있 다. 또 악보(5)를 정리한 사람은 교토 출신의 아베 스에스케이므로 이는 교토의 쇼가 스타 21) 도서번호: 伏 ) 후기 원문: 這 譜 依 / 伏 見 殿 仰 加 校 合 了 / 安 政 元 年 大 呂 中 旬 / 大 夫 将 監 季 資. 23) 신조안인후와 스에스케후의 정보가 더 필요할 경우, 테라우치(2010)를 참조하시오. 127

1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일일지도 모른다. (2), (3)과 (4), (5) 사이의 차이는 나라와 교토의 지역적 차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악보(2), (3)은 17세기 후반에 집필되었고 (4), (5)는 19세기 초반에 씌어 졌 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17세기의 체계, 후자는 19세기 초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표 3> <고쇼라쿠노큐>의 비교 128

137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3. 질적 차이 그러면 이제 현행 쇼가를 에도 시대의 것들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고악보 중 현재의 것 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없는데, 예를 들어 제 3마디에서 악보(2)와 (3)이 현행과 같은 음절들을 사용하지만 제 4마디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악보(4)와 (5)의 쇼가는 제 5, 6 마디에서 현행과 같으나 제 7마디는 다르다. 현행의 쇼가와 고악보들 사이의 차이는 그 질적 차이에 있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 모음 연장에서의 사소한 차이; (b) 자음이나 모음 용례의 분명한 차이; (c) 실제 연주의 분명한 차이. 이러한 분류에 따라 우 리는 자료들 사이의 상이함 과 유사함 을 평가할 수 있다. 유형 (a): 제 1, 3, 7, 11-14, 21, 24마디는 악보(2), (3)에서 토 오 로 적혀 있지만, (4)와 (5)에서는 토 우 를 포함한다. 이 오 나 우 는 선행 음절들인 로, 토, 호 를 길게 늘인 것이다. 대개 오 다음의 우 는 분명히 소리 나지 않는 다. 예를 들어 일본의 수도 동경( 東 京 ) 은 히라가나로는 토-우 쿄-우 라 적 지만 보통은 토오쿄오 로 발음된다. 유형 (b): 제 5, 6마디에서 악보(2)와 (3)은 토 오 호 오 라 적었지만, (4)와 (5)는 타 아 화 아 이다. 이 경우 모음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실제 류테키 선율은 같 을 수도 있다. 유형 (c): 제 16, 17 마디는 악보(2)를 제외한 모든 악보에 카케부키 라 하는 일종의 행 수잉여음( 行 首 剩 餘 音 )(혹은 약박)을 포함한다. 이렇게 메이지찬정보 를 포함한 여섯 가지 악보를 살펴 본 결과, 유형 (a)를 무시한다 면 악보(4)와 (5)가 현행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9

1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Ⅴ. 결 론: 답습된 것과 창안된 것 위에서 분석한 것처럼, 음절들의 사용에 있어 에도 시대에 적어도 세 가지의 쇼가 유파 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메이지찬정보 와 유사하다. 메이지찬정보 는 또한 18세기와 19 세기 문헌들에서 합자보와 쇼가 음절들을 병용하는 방법을 차용하였는데, <악보 4-4, 4-5, 4-6> 그리하여 구음과 음높이 둘 다 이용하여 선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메이 지찬정보 는 이전 문헌들의 체계를 답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기보를 위 하여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였다. 새로이 창안한 것은 주로 박자와 관련이 있는데, 박이나 장단을 더욱 정확히 기보하기 위하여 찬정보는 서로 다른 크기의 글자들을 사용한다. <악보 2> 큰 글자들은 네 박의 한 마디 안에서 강박인 제 1박과 제 3박을 나타내며, 작은 글자들의 시가는 경우에 따라 다른 데, 네 박 중 약박인 제 2박과 제 4박을 나타낼 때도 있고, 다른 경우에서는 8분 음표나 16분 음표를 표시한다. 같은 높이의 음이 두 박 이상 지속될 경우, 찬정보는 항상 히키 ( 引 ) 표시를 한다. 일본의 가가쿠에서 실제 선율 연주방법은 구전되어 왔으므로 선율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쇼가의 악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일본의 학계에서는 8세기나 10세기의 합자보와 비교하여 새로운 편인 에도 시대의 편찬 악보들은 무시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 러나 합자보 보다는 쇼가의 악보들을 통해 우리는 메이지 시대에 가가쿠의 전통이 통합되 기 이전 음악의 선율적 특징들에 관해 더욱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까운 과거의 자료들을 살펴보고 아직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한 다양한 전통들을 규명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가가쿠의 역사는 더욱 풍요해질 것이다. 130

139 메이지찬정보 는 어디에서 왔는가 <참고문헌> 가모 미츠코( 蒲 生 美 津 子 ). 乱 声 小 考, 諸 民 族 の 音 : 小 泉 文 夫 追 悼 記 念 論 文 集. 東 京 : 音 楽 之 友 社, 音 声 音 韻 の 側 面 から 見 た 篳 篥 竜 笛 の 唱 歌, 沖 縄 県 立 芸 術 大 学 紀 要 나카무라 유키( 仲 村 由 紀 ). 伝 後 陽 成 天 皇 宸 筆 越 殿 楽 唱 歌 譜 考, 朱 ( 伏 見 稲 荷 大 社 発 行 ) 모테기 키요코( 茂 手 木 潔 子 ). 唱 歌 ( 仮 名 譜 )についての 一 考 察, 音 楽 学 24/ 시바 스케야스( 芝 祐 靖 ). 横 笛 唱 歌 考, 雅 楽 界 ( 小 野 雅 楽 会 ) 요코미치 마리오 가모 사토아키 共 編, 横 道 萬 里 雄 蒲 生 郷 昭 構 成 解 説, 口 唱 歌 大 系 日 本 の 楽 器 のソルミゼーション CBSソニー(00AG457-61), 테라우치 나오코( 寺 内 直 子 ). 江 戸 時 代 における 龍 笛 唱 歌 に 関 する 一 考 察, 国 際 文 化 学 研 究 ( 神 戸 大 学 国 際 文 化 学 部 )22, 東 儀 兼 頼 撰 龍 笛 吹 艶 之 事 と 江 戸 時 代 の 龍 笛 の 系 統 `, 国 際 文 化 学 研 究 Hughes, David. No nonsense: logic and power of acoustic-iconic mnemonic system`, British Journal of Ethnomusicology 9/ii,

1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 Variety and unification in ryûteki notation in Japanese gagaku TERAUCHI, Naoko (Prof., Kobe Univ., Japan) Japanese gagaku has relegated the practice of ryûteki 龍 笛 (flute), hichiriki 篳 篥 (reed pipe), shô 笙 (mouth organ), biwa 琵 琶 (lute), koto 箏 (zither), mai 舞 (dances), or utamono 歌 もの (songs) to specific families in Kyoto 京 都, Nara 奈 良, and Osaka 大 坂. Even for a same repertoire, musicians in the three places have claimed differences among each other in terms of articulation, rhythm, minute nuance of music, and style of dance. The differences were unfortunately not necessarily clear in the tablature scores of the ancient and middle ages, until a new style of notation, the shôga 唱 歌 (mnemonic sounds) transcription, appeared in the 17 th century. The shôga scores from the 17 th to the 19 th centuries suggest that there existed several different shôga systems in ryûteki flute and hichiriki pipe before they were unified into a single style right after the Meiji Restoration in Meiji sentei-fu also took the method to combine tablature sings and shôga syllables from the 18 th to the 19 th century s sources. The combination enables us to read a melody from both aspects of vocables and pitches. Meiji sentei-fu, however, not only succeeded systems from the preceding sources, but also added a new invention in the following point to make the notation more systematic. The invention is rather relating to a temporal aspect. To transcribe beat or rhythm more precisely, Meiji sentei-fu employs different sizes of letters. Keywords: Meiji sentei fu, gagaku, shôga, ryûteki, hichiriki 132

141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 Variety and unification in ryûteki notation in Japanese gagaku TERAUCHI, Naoko* 24) Contents Ⅰ. Introduction Ⅱ. two systems of notation Ⅲ. preceding studies on shôga Ⅳ. schools of ryûteki flute in the Edo (pre modern) period ( ) Ⅴ. conclusion: what is succeeded and what is invented Ⅰ. Introduction This paper studies schools in gagaku 雅 楽, the royal court music, by analyzing notations compiled in the pre-modern (Edo) and modern (Meiji) periods. Japanese gagaku has relegated the practice of ryûteki 龍 笛 (flute), hichiriki 篳 篥 (reed pipe), shô 笙 (mouth organ), biwa 琵 琶 (lute), koto 箏 (zither), mai 舞 (dances), or utamono 歌 もの (songs) to specific families in Kyoto 京 都, Nara 奈 良, and Osaka 大 坂. Even for a same repertoire, musicians in the three places have claimed differences among each other in terms of articulation, rhythm, minute nuance of music, and style of dance. The differences were unfortunately not necessarily clear in the tablature scores of the ancient and middle ages, until a new style of notation, the shôga 唱 歌 (mnemonic sounds) * Prof., Kobe Univ., Japan 133

1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transcription, appeared in the 17 th century. The shôga singing, which is primarily used in oral transmission from a mentor to a protégé, contains every detail of melody in terms of pitch, articulation, accent, breath cut, and the like 1). Unfortunately, there is a certain limit in the shôga score that syllabary cannot completely convey the fine nuances of the singing, but still it can describe more detailed movement of melodies than tablatures do. The shôga scores from the 17 th to the 19 th centuries suggest that there existed several different shôga systems in ryûteki flute and hichiriki pipe before they were unified into a single style right after the Meiji Restoration in In the present-day practice, Imperial court musicians play the classical numbers in a unified style, which are selected in the Meiji sentei fu 明 治 撰 定 譜, a standard score compiled in 1876 and 1888 by the governmental order. This paper, focusing on ryûteki, examines scores of the pre modern era and Meiji sentei fu to clarify, first there were various shôga practices until the mid 19 th century, and secondly what Meiji sentei fu inherited from the previous systems and what it newly invented. Ⅱ. two systems of notation Traditionally, notation of melodic instruments in gagaku have employed tablature signs to indicate finger hole, fingering positions (for ryûteki, hichiriki, shô), frets, or strings (for biwa and koto) that are associated with particular pitches, though some signs could be interpreted to several different pitches according to tuning or mode. Old manuscripts of ryûteki, hichiriki, shô, biwa, koto edited before the 17 th century basically use this system to outline fundamental melody. Such well known scores as Tenpyô biwafu 天 平 琵 琶 譜 2), Hakuga-no-fue-fu 博 雅 笛 譜 3), Sango yôroku 三 五 要 録 4), Jinchi yôroku 仁 智 要 録 5), Kaichû-fu 懐 中 譜 6), Kofu ryoritsu no maki 古 譜 呂 律 巻 7), Nakahara rosei-shô 中 原 1) Precisely speaking, shôga melody sometimes differs from that of actual performance on wind instrument. 2) A biwa score of 8 th century, found in Shôsô in national treasure house in Nara. 3) A ryûteki score completed in 966 by Minamoto no Hiromasa ( ). 4) A biwa score compiled before 1192 by Fujiwara no Moronaga ( ). 5) A koto score compiled before 1192 by Fujiwara no Moronaga ( ). 134

143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芦 声 抄 8) are all notated with tablature signs. Example 1 shows old notation of the beginning part of a tune Jisuiraku 拾 翠 楽 (ôshiki-chô 黄 鐘 調 mode, prime note=a) found in Hakuga-no-fue-fu 9) completed in 966. Correspondence between signs and pitches is shown in Table 1. A rough outline of melody could be extracted here. In actuality, however, as is often seen in a heterophonic ensemble all over the world, melodic realization is supposed to include more fine embellishments, which have only been transmitted by shôga or demonstration on the instrument orally in a mentor = protégé lesson in gagaku 10). Emerge of shôga score could be a result of endeavor to transcribe a melodic realization visually more in detail on a sheet. However, a syllable of shôga does not relate to a pitch as a tablature sign does. Thereupon, to make up deficiency of each system, Meiji sentei-fu adopted both systems and put them together side by side. Example 2 is a current ryûteki score of Goshôraku no kyû 五 常 楽 急 (hyôjô 平 調 mode). The main column shows vocable and tablature signs on the left side indicate finger positions relating to pitches. Example 1 Jisuiraku from Hakuga no fue fu 6) A ryûteki score completed in c. 13 th century. 7) A shô score compiled in the 13 th century by Toyohara family. 8) A hichiriki score compiled in the 14 th century by Nakahara Shigemasa ( ). 9) From a manuscript of Rakusaidô collection, now preserved in Research Institute of Japanese Music Historiography, Ueno Gakuen University. 10) For more information on Japanese shôga, see Gamô 1986, 2001, Shiba 1982, Terauchi 2004, Nakamura 2000, Motegi 1978, Yokomichi

1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Table 1 Ryûteki fingering Example 2 Hyôjô mode Goshôraku no kyû (current notation) 136

145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Ⅲ. preceding studies on shôga As I mentioned above, syllables of shôga do not correspond particular pitches, though some relative regularity in the usage of vowels can be found in Meiji sentei fu. David Hughes discusses from a linguistic point of view that vowel a and i are applied to relatively higher pitches in a mnemonic song and o and u are for the lower. He also claims that this rule is universal that could be applied to other musical practices in the world (Hughes 2002). As my own analysis shows below, Meiji sentei-fu follows a strict system. Example 3 is a staff notation of shôga of Goshôraku. In the phrase ru i (Measure 2), i is higher than u in pitch. In the phrase fo ru (Measure 1-2), o is higher than u. In the phrase ro i (Measure 4, 8), i is higher than o. If we organize these three relationships, we can deduct a rule that i is the highest, o the middle, and u the lowest. In this way, if we examine relationships between all vowels and pitches in neighboring two syllables, we could find a rule shown in Table 2. Example 3 Western notation of Goshôraku no kyû, shôga Table 2 Vowels and pitches Typically presented in the Hughes analysis, most of the precedent studies were dedicated to the elucidation of phonetic system of shôga and little attention was paid to the fact that there were various shôga systems and therefore different schools of musical tradition existed before the Meiji period. This paper will analyze shôga 137

1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scores compiled during the 17 th and 19 th centuries and clarify diversity in ryûteki tradition that is now lost. Ⅳ. schools of ryûteki flute in the Edo (pre-modern) period ( ) 1. various shôga scores There are various shôga scores compiled from the 17 th to 19 th centuries among which the following manuscripts are important in the light of editor/holder s lineage or school and shôga system itself. Before analyzing shôga in detail, some basic philological information is given here. 1) yûteki kana-fu (Kaneyori-fu) 龍 笛 仮 名 譜 ( 兼 頼 譜 ) This copy used to be a property of Prince Fushiminomiya 伏 見 宮 family and is now preserved in Kunachô shoryôbu 宮 内 庁 書 陵 部 (Archives and Mausolea Department, Imperial Household Agency, Japan) 11). According to the postscript, the original manuscript was written by Tôgi Kaneyori 東 儀 兼 頼 ( ), a musician of Osaka, to be given to a daughter of a shinto priest of Kamigamo shrine 12) in February The notation consists of syllables of shôga and dots, which indicate measures of equal length (Example 4-1). 1) Rokuchôshi kyoku-fu wagon (Prince Sadayuki-fu) 六 調 子 曲 譜 和 琴 ( 貞 致 譜 ) This copy also used to be a property of Prince Fushiminomiya family and is now preserved in Kunachô shoryôbu 13). This score is primarily for wagon, a six stringed 11) Call number: 伏 ) The original postscript is as follows; 右 龍 笛 假 字 譜 者 依 / 大 夫 将 監 賀 茂 縣 王 清 豊 / 息 女 所 望 書 写 之 令 附 / 與 訖 / 延 宝 八 庚 申 暦 仲 春 良 日 / 正 五 位 下 行 修 理 亮 太 秦 兼 頼 138

147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zither. The wagon had originally been used in indigenous vocal genres of gagaku, but was widely employed in tôgaku 唐 楽 ensemble or saibara 催 馬 楽 accompaniment in a small-scale aristocratic concert from the 11 th to the 19th century. This score is attributed to Prince Sadayuki 貞 致 ( ), the 13th head of the Fushiminomiya family 14). The score includes ryûteki shôga along with wagon tablature signs (Example 4-2) 15). Example 4-1 Kaneyori-fu Example 4-2 Prince Sadayuki-fu 3) certificatory scores of Kikutei (Imadegawa) family (Chikasada-fu) 菊 亭 家 楽 譜 ( 近 貞 譜 ) 今 出 川 Kikutei (also known as Imadegawa 今 出 川 ) family is a high ranked noble clan in the court hierarchy, who held expertise in koto or biwa traditions of gagaku. The family was given wind instruments tradition from the professional lower ranked musicians in exchange for teaching them string traditions. Usually, when a disciple masters a piece completely, a teacher gives him/her a score as a certification. In the late 17 th to early 18 th centuries, Kikutei (Imadegawa) Koresue 菊 亭 ( 今 出 川 ) 伊 季 ( ) was given a bunch of music sheets of ryûteki from Koma Chikasada 狛 近 貞 ( ), a lower ranked musician of Nara. Now a large collection of ryûteki score of Kikutei family is 13) Call number: 伏 ) The original postscript says; 此 本 二 品 式 部 卿 貞 致 親 王 正 筆 也 15) For more information on these manuscripts Kaneyori-fu and Sadayuki-fu, see Terauchi

1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preserved in Library of Senshu University 16). The scores put shôga syllables in the central column, tablature signs on the left side (Example 4-3) 17). 4) Rokuchôshi kyoku kana-fu (Shin jôan-in-fu) 六 調 子 曲 仮 名 譜 ( 新 浄 安 院 譜 ) This copy was owned by a Lady Shin jôan-in (?-1828), a daughter of prime minister Ichijô Teruyoshi 一 條 輝 良 ( ) and married to Price Sadayuki 貞 敬 of Fushiminomiya ( ). 18) The copy is now preserved in Kunachô shoryôbu 19). This score includes ryûteki shôga in the central column, ryûteki tablature signs on the left side, and biwa tablature signs on the right side (Example 4-4). Example 4-3 Chikasada-fu Example 4-4 Shin-jôan-in-fu Example 4-5 Suesuke-fu 5) Rokuchôshi kyoku kana-fu (Suesuke-fu) 六 調 子 曲 仮 名 譜 ( 譜 ) There is another copy that has a same title Rokuchôshi kyoku kana-fu conveying different content from that of (4) Shin jôan-in-fu in Kunaichô shoryôbu 20). The score was 16) Another large collection of the family is preserved in Kyoto University. 17) Call number: 343 in Kikutei Bunko Collection in Senshû University. 18) The original postscript says; 新 浄 安 院 御 者 御 所 持 之 御 譜 也 / 十 一 年 亥 ノ 残 冬 九 皐 アツカル 了 19) Call number: 伏 ) Call number: 伏

149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collated by Abe Suesuke 安 倍 季 資 ( ), a musician of Kyoto 21). Though he was a specialist of hichiriki in Kyoto, he was asked by Prince Fushiminomiya to collate this ryûteki score in ). The score consists of ryûteki shôga in the main column, tablature on the left side, koto signs (and biwa signs in some cases) on the right side (Example 4-5) 23). 2. three shôga systems Example 5 is a comparison of syllables of ryûteki shôga for a same piece Goshôraku no kyû. We could distinguish three groups here in terms of usage of syllables. Score (2) Sadayuki-fu and Score (3) Chikasada-fu often use o sound for prolongation of preceding syllables to, fo, and ro. For example, Measures 3 and 7 include to o ru ri. While, same measures are presented as to u ru ri in Score (4) Shin jôan-in-fu and Score (5) Suesuke-fu. Another difference lies in Measures 5-6, and 9-10, in which Score (2) and (3) employ to o - fo o, while Score (4) and (5) ta a fa a. In other measures, Score (2) and (3) show similar characteristics, and Score (4) and (5) are close. Score (1) Kaneyori-fu shows rather independent feature. In Measures 3 and 6, it uses ta a ro ri, while other scores to o ru ri or to u ru ri. In measure 11, Score (1) employs ri i ya, while other scores ro o ru or ro u ru. In measure 19, Score (1) shows te i ra. The vowel e is solely found in (1) Kaneyori-fu. To summarize, Score (2) and (3) makes one group, Score (4) and (5) another group, and Score (1) is independent. Tôgi Kaneyori, the author of Score (1) belongs to Osaka school. The use of vowel e is a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nly found in the notation of Osaka (also known as Tennôji) school including this notation. Likewise, as Koma Chikasada, the author of Score (3) is a Nara musician, the shôga of Score (3) could be a Nara system. Score (5) collated by Abe Suesuke, a Kyoto musician, might belong to Kyoto style of shôga. The 21) Originally born a Hayashi family in Osaka but adopted into Abe family in Kyoto. 22) The original postscript says; 這 譜 依 / 伏 見 殿 仰 加 校 合 了 / 安 政 元 年 大 呂 中 旬 / 大 夫 将 監 季 資 23) For more information on the manuscripts Shin jôan-in-fu and Suesuke-fu, see Terauchi

1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difference between the group (2) (3) and the group (4) (5) could be interpreted as the regional difference between Nara and Kyoto. But it might also be taken into consideration that Score (2) and (3) were written in the latter half of the 17 th century and Score (4) and (5) were in the early 19 th century. In other words, the former shôga could reflect the system of the 17 th century and the latter that of the early 19 th century. Table 3 Comparison of Goshôraku no kyû 142

151 Where did the notational system of Meiji sentei fu come from? 3. quality of differences Let me now compare the current shôga with those of Edo period. None of the old scores match completely with the current one. For instance, Score (2) and (3) share same syllables with the current practice in Measures 3, but not in Measure 4. Likewise, the shôga of Score (4) and (5) are identical with the today s one in Measures 5-6, but not in Measure 7. The differences between the present-day shôga and old ones, however, could be further classified into three types in terms of quality; (a) insignificant difference in vowel of prolongation; (b) clear difference in usage of vowel or consonant; and (c) clear difference of musical realization itself. According to the quality of differences, we could estimate remoteness or closeness among the materials. Type (a) Measure 1, 3, 7, 11-14, 21, and 24 includes syllables to u in Score (4) and (5), while to o in Score (2) and (3). This o or u is a vowel for prolongation of the preceding syllable ro, to and fo. Usually, the u sound after o is not clearly pronounced. For example, Tokyo is written as To-u-kyo-u in Japanese hiragana, but it is usually pronounced tôkyô. Type (b) In Measures 5 and 6, Score (2) and (3) employ to o fo o, while Score (4) and (5) ta a fa a. The vowel is clearly different here. However, actual ryûteki melody could be same perhaps. Type (c) From Measure 16 to 17, the specific pattern called kakebuki, which is a kind of anacrusis (auftakt), is presented in all scores except for Score (2). Thus, the comparison of 6 scores including current Meiji-sentei-fu reveals that the shôga of Score (4) and (5) is closer to the present one, if ignoring the difference of Type (a). 143

1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Ⅴ. conclusion: what is succeeded and what is invented The analysis above has clarified that there were at least three different schools of shôga in terms of use of syllables during the Edo period, to one of which Meiji sentei-fu looks close. Meiji sentei-fu also took the method to combine tablature sings and shôga syllables from the 18 th to the 19 th century s sources (Example 4-3, 4-4, 4-5). The combination enables us to read a melody from both aspects of vocables and pitches. Meiji sentei-fu, however, not only succeeded systems from the preceding sources, but also added a new invention in the following point to make the notation more systematic. The invention is rather relating to a temporal aspect. To transcribe beat or rhythm more precisely, Meiji sentei-fu employs different sizes of letters (see Example 2). Big letters indicate first and third beat (strong beat) out of 4 beats in a measure. The time value of small letters depends on cases; sometimes quarter note on the second or fourth beat (weak beat), and eighth notes or 16th notes in other cases. To indicate prolongation of a same pitch over two beats or more, Meiji sentei-fu always put hiki 引 sign. In Japanese gagaku tradition, shôga which contains an essence of melodic realization has been handed down by oral transmission. Therefore, the old notation of written shôga is invaluably important when we trace historical changes of melodies back to the past. In the Japanese academic field, the shôga scores compiled in the Edo period have been rather ignored because they were relatively new, compared with tablature scores of the 8 th or 10 th century. However, shôga scores present us more detailed feature of a melody than tablature scores do and give us a plenty of information on diversified musical features before the unification of the gagaku tradition at Meiji period. Therefore it is our task to work on our near past materials and clarify a variety of traditions not fully focused on yet. By doing so, we could add further richness to our history of gagaku. 144

153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문 주 석* 24) <국문초록>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을 고찰하기위하여 국악연구실 사업 중에서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되는 <국제학술회의 개회> 와 <영문책자 발간> 등 국내사업, <해외 현지 한국음악학 자료조사>와 <해외 한국 음악 음원자료 발굴> 등 국외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국제학술회의는 중ㆍ장기계획을 수립 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하며, 국내 에서 개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개최하여 국제학술회의 개최의 파급성과 참 여도를 극대화 할 필요성 있다. 둘째, 영문책자 발간은 더욱 확대하여 영문판 이외에 불어ㆍ독어ㆍ스페인어ㆍ중 어ㆍ일어 등으로 사용언어권이 넓은 언어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제작해야할 것이다. 셋째, 해외 현지 한국음악학 자료조사는 연구주제의 다양화와 연구지역의 다변화 를 모색해야한다. 또한 중장기계획 바탕위에 진행되어야한다. 넷째,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은 민간이나 개인연구자가 진행하기에는 어려 움이 수반되므로 한국음악의 원형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국립기관에서 지 속적으로 추진해야할 것이다. 본 고( 稿 )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여 미래로 나아가 고자하는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음악학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 로 기대한다. 핵심어: 해외, 한국음악학, 국악연구실, 국립국악원, 학술회의, 영문책자, 현지조 사, 음원발굴 *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145

1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목 차 Ⅰ. 서 론 Ⅱ.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내사업 Ⅲ.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외사업 Ⅳ. 결 론 Ⅰ. 서 론 해외 대학 소재 한국학( 韓 國 學 )센터와 한국어 및 한국과 관련된 학술회의 등 다양한 학 술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에서 실시하고 있다. 지속적인 지원과 새로운 사업발굴로 인하여 한국학에 관한 대외적 이미지 상승효과 와 한국학에 대한 폭넓은 국제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가 진행되 고 있다. 기존 한국학 연구영역이 확장되고 확대되어 깊이 있는 학술토론과 다양한 연구시 각이 등장하여 학문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소통과 교류를 통한 시너지 효과의 수혜를 한국학이 거두고 있는 것이다. 교류( 交 流 )의 사전적 정의는 문화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함. 또는 서로 왕래하거나 물건을 주고받음 1) 으로 규정되어있다. 학문도 소통하고 교류할 때 더욱 성장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학문은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자연도태( 自 然 淘 汰 )되어 사 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음악학 분야도 위에서 서술한 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음악이라고 하면 단순히 연주( 演 奏 )와 공연( 公 演 )만을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비춰지는 부분 이 있다. 국악 즉, 한국음악 속에는 한국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음악 원리와 사상적 배경이 함의되어있다. 문화와 예술 속에 투영된 시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열쇠의 실체는 한국음악학( 韓 國 音 樂 學 )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추상적인 것을 객관화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음악의 학문 1) 민중서림 편, 에센스 국어사전 (서울: 민중서림, 2007), 259쪽. 146

155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적 체계를 활성화하여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전 세계 모든 지식 인들이 편리하게 접근하여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음악학이 되어야한다. 또한 이러 한 작업은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어야하며, 점진적으로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활성화하 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국가기관 차원에서 진행되는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사업들 중에서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사업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다. 왜냐하면 한국음악연구를 체 계적 지속적으로 수행한 국가기관은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국립국 악원 국악연구실에서 수행한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사업들을 검토함으로써 미래의 사업 방향성 제시와 앞으로 준비하고 시작해야할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의 효율성을 위하여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2) 사업 중에서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내에서 진행한 사업과 국외에서 추진한 사업으로 분류하여 고찰 하고자한다. 첫째, 국내에서 진행한 사업 중에는 국제학술회의 개회 와 영문책자 발간 사 업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한다. 둘째, 국외에서 추진한 사업은 해외 현지 한국음악학 자료 조사 사업 과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 사업 을 살펴보고자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한국음악학의 연구영역을 국제적으로 확대하고 연구논의의 범위도 확 장하는 효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나아가 한국음악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Ⅱ.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내사업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사업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해외 한국음악 학의 실체에 대하여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해외에 한국음악학은 존재하는가? 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해외 한국음악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 논의의 명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수 있다. 해외 국가기관 및 교육기관의 한국음악학에 관한 논의는 다른 학문분야와 비교하면 활성 화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민족음악학자와 교육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학문적으로 발산하는 의미에서 한국음악학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해외 한국음악학 2) 본 고( 稿 )에서 사용하는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은 연구의 편의상 이하 국악연구실 로 약칭하여 사 용하고자한다. 147

1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은 한국학처럼 한국학센터나 학교 내에 개설된 한국학과는 없으므로 개인 또는 민족음악을 표방하는 학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음악학 발전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이후에 기관과 학교로 확대해가야 할 것이다. 본 항목에서는 국악연구실에서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하여 수행한 국내사업을 중심 으로 살펴보고자한다. 1. 국제학술회의 개최 국립국악원에서는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 한국음악관련 세미나 3) 를 시작하였다. 국제적 규모의 학술대회는 1993년 국악원학술대회 93, 동아시아 음악교류 에 관한 내용을 중심 으로 한국 일본 인도 중국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진행되었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 17 년 동안 총 15회 4) 개최하였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개최된 중장기 학술회의는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이다. 총 9회 진행되었다. 동양의 악( 樂 ) 가( 歌 ) 무( 舞 ) 의식( 儀 式 )의 영역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 었다. 그러나 동양음악을 연구하고 논의하던 학술의 장이 2005년 이후 동양음악학 국제학 술회의 명칭으로는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정 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국제학술회의 개최현황(1993~2002) 기간 학술회의명 주 제 참가국가 (참가학자수) 국악원 학술대회 93 동아시아 음악교류 학술발표회 한국(4), 일본(1) 인도(1), 중국(1) ~20. 제1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의 현악기 한국(7), 몽골(1) 베트남(1) 일본(1), 중국(2) ~16. 제2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동양의 아악( 雅 樂 ) 한국(2), 베트남(1) 일본(3), 중국(2) 3) 국립국악원, 建 元 1400 年 開 院 50 年 國 立 國 樂 院 史 (서울: 국립국악원, 2001), 쪽. 4) 15회의 횟수에는 국립부산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도 포함되어있다. 이는 국제학술회의사업이 학예연구사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므로 큰 범주 안에서 국악원연구실 의 사업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148

157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기간 학술회의명 주 제 참가국가 (참가학자수) ~9.3. 제3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동양무용과 무용정신 한국(4), 미국(1) 인도(1), 일본(1) ~9.2. 제4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동양불교성악과 문화 한국(2), 몽고(1) 인도(1), 일본(1) 중국(1), 티벳(1) ~21. 제5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아시아의 농요 한국(3), 베트남(1) 인도네시아(1) 일본(1), 중국(1) ~15. 제6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아시아의 장례음악 한국(2), 인도(1) 일본(1), 중국(1) 캄보디아(1) ~30. 제7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및 아시아음악축제 아시아의 서사음악 한국(5), 몽고(1) 인도(2), 일본(2) 우즈베키스탄(1) 중국(1), 캄보디아(1) <표 2> 국제학술회의 개최현황(2004~2010) 기간 학술회의명 주 제 참가국가 (참가학자수) ~9. 제8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의 무속음악 한국(4), 몽고(1) 일본(2), 중국(1) ~3. 제9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고대한반도문화교류사 - 악기를 중심으로 한국(2), 일본(2) 중국(2) ~7. 세계한국음악학자대회 :국립부산국악원 개원 기념 (주최: 국립부산국악원) 해외에서의 한국음악학 연구 현황 해외에서의 한국음악학 교육 음악의 세계화 전략 한국음악의 민족음악학적 접근 한국(10), 독일(1) 미국(9), 영국(2) 일본(2), 중국(1) 캐나다(1), 호주(2) ~26. 한국민요학회 국립남도국악원 공동 국제학술대회 (주최: 국립남도국악원) 동아세아 민중들의 민요와 삶, 그 연구의 쟁점 한국(11), 대만(1) 몽골(2), 베트남(1) 일본(3), 중국(4) 149

1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기간 학술회의명 주 제 참가국가 (참가학자수) ~ ~19. 아시아 태평양음악 국제학술회의 (주최: 국립부산국악원) 제6회 동아시아 불교음악 국제학술회의 아시아의 탈놀이 불교음악 한국(6), 일본(1) 인도네시아(1) 캄보디아(1) 한국(4), 일본(2), 중국(2) ~8. 국립국악원 개원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동서양의 고악보와 무보 한국(7), 일본(2), 중국(3), 독일(1) <표 1>과 <표 2>의 내용을 종합하면, 17년간 15개국에서 전체 77명의 외국학자들과 국 제학술회의를 통하여 학문적으로 교류하였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된 국제학술회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적적 효과를 유 발하였다. 첫째, 국립국악원에서 1993년 국제학술회의를 시작할 무렵은 한국음악학계의 역 량과 정보수준은 국립기관이 상대적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대적 장점을 바 탕으로 국립기관을 중심축으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여 국내 음악학자들에게 다양한 학문 적 자극제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음악학을 견인하는 성장 동력을 만들었다. 둘째, 오늘날 민 간 학회 및 연구자들의 학문적 역량과 정보가 확대되고 지난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셋째, 국제학술회의 주제를 아시아의 악기 음악 무용 노래 의식음악 연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내용을 논의함으로써 연구시각 의 확대와 학문적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넷째, 2008년 <세계 한국음악학자대회>는 전 세계의 음악학자들이 여러 국가에서 대거 참여하여 한국음악학의 위상이 양적 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계기가 되었다. 국제학술회의의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위에서 제시한 국제학술회의의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학술적 변화의 물결 에 순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자리에 고집한다면 국악원연구실의 국제학술회의 사업은 전시 용 행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표 1>과 <표 2>의 내용을 참가국 중심으로 살펴보면, 국제학술회의에 인도 우즈베키스 탄 몽골 티벳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중국 일본 대만 영국 독일 미국 캐나다 호 주 등 15개국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참가횟수나 학자의 비율이 일본(32%)과 중국(14%)에 편중되어있다. 15개국 중 일본과 중국의 합산비율이 46%를 차지하고 있어 일부국가에 제 150

159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한된 측면은 아쉬움이 있다. 참여국가의 다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시아 이외의 지역으로는 유럽권역의 독일과 영국 그리고 중미권의 미국 캐나다가 있 으며, 또한 호주도 있다. 이들 국가의 참가는 특별기획한 학술회의에 제한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국제학술회의 형식을 취하지만 아시아지역 중심 그리고 중국과 일본 중심의 학술 회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이후 국제학술회의 개최현황은 장기적 계획에 의거한 단계적 진행이 아니라 현 실성과 시의성을 고려한 산발적 5) 개최양상이 나타난다. 2006~2007년 은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다. 향후 국제학술회의가 발전하기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 방향성이 요구된다. 첫째, 아시아 중심의 국제학술회의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과 중남미 그리고 아 프리카까지 아우르는 학술회의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민족음악학의 관점에 서 한국음악학을 논의하고 인접국가 및 한국음악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교섭한 국 가들의 음악학자들과 학술적 교류를 통하여 한국음악학의 연구인식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 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제학술회의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순수예술과 학문에 대한 지원 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이며, 단기적 성과를 바라는 조급증 환자의 마음이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성을 인지하는 대륙적 기질이 필요하다. 민간분야에서 할 수 없는 학문의 영역을 발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학술정보를 공유하고, 세계의 학자들과 교유할 수 있도록 국립기관에서 먼저 마당을 펼쳐야할 것이다. 셋째, 국제학술회의 개최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존의 국제학술회의는 국내에서 100%개최 되었다. 외국의 학자들을 안방으로 초대하여 우리의 음악을 논하는 자리였다. 학문교류의 제한성과 방문학자들의 중복성 문제가 우려된다. 오히려 외국 현지에서 국제학 술회의를 개최한다면 음악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한국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하는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극대화 될 것이다. 넷째, 타 기관이 개최하는 국제학술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한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국제전통음악회(ICTM)나 아시아태평양민족음악학회(APSE) 등의 활 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음악학을 세계의 음악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 도록 기여해야할 것이다. 5) 본 항목에서 산발적 의미는 국제학술회의 주제에 대한 평가부분이다. 151

1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영문책자 발간 한국음악을 세계인들이 알기 쉽게 이해하기위한 책자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2007년부터 국립국악원에서는 KOREAN MUSICOLOGY SERIES 를 발간하고있다. 2010년까지 총 4권의 책이 발간되었다. 한국음악 개론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Music of Korea 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 어있는 민속악의 꽃으로 불리는 판소리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 하는 PANSORI 를 발간하 였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되는 산조를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쓴 SANJO, 한국 고악보의 원리를 설명하고 외국 악보와 비교 설명하여 외국인들도 한국 악보를 이해 할 수 있도록 설명한 Musical notation of korea 를 2010년에 발간하였다. 연도별 발간현황을 알기 쉽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년도별 발간 현황 년 발간연도 책명 개요 목차 2007년 KOREAN MUSICOLOGY SERIES 1. Music of Korea 고등교육을 받은 해외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악을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 진 책으로 한국음악의 간략한 역사를 필두로 정악, 민속악, 종교음악, 창작음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국악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Preface Introduce History Court Music Classic Music: Vocal Classic Music: Instrumental Folk Music: Vocal Folk Music: Instrumental Professional Music: Vocal Professional Music: Instrumental Religious Music: Buddhism Religious Music: Shamanism Contemporary Korean Music References 배부처 총 400개처 배부(해외: 376개처, 국내: 24개처) 152

161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년 발간연도 책명 개요 목차 2008년 KOREAN MUSICOLOGY SERIES 2. PANSORI 여러 국악분야 중에서 판소리 부분을 집중조명하여 해외에 알리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판소리의 역사에서부터 판소리 명창의 소개, 창극, 문학적 측면에서 본 판 소리, 음반소개 등 판소리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하였다. Preface Introduce Chapter Ⅰ. History of Pansori Chapter Ⅱ. Theory of Pansori Chapter Ⅲ. Pansori Master Singers Chapter Ⅳ. Korean Opera, Changgeuk Chapter Ⅴ. Pansori in the View of Literature Chapter Ⅵ. Recording pansori References Principal Scenes in the Five Pansori Works 배부처 총 382개처 배부(해외: 367개처, 국내: 15개처) 년 발간연도 책명 개요 목차 2009년 KOREAN MUSICOLOGY SERIES 3. SANJO 국악의 여러 분야 중 산조 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산조의 역사, 음악적 특 성, 종류, 미학 등은 산조를 다양한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소개한 책이다. Preface Introduce Chapter Ⅰ. Social History of Sanjo Chapter Ⅱ. Music of Snajo Chapter Ⅲ. Sanjo Evolution and transmission Chapter Ⅳ. Scattered Thoughts on Scattered Melodies Chapter Ⅴ. Sanjo Aesthetics Chapter Ⅵ. Sinawi References About the Contributors 배부처 총 405개처 배부(해외: 373개처, 국내: 32개처) 153

1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년 발간연도 책명 개요 목차 2010년 KOREAN MUSICOLOGY SERIES 4. Musical notation of korea 한국과 동아시아의 전통 고악보를 대상으로 해외 소개용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한국의 전통 고악보에 대한 개관에서부터 기보법, 개관 악보의 종류 등을 구체적으 로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동아시아 3국의 고악보를 비교하고 유럽의 고악보도 함께 소개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고악보에 관해 자세히 소개한 책이다. Preface Introduce Chapter Ⅰ. History of Korean Notations Chapter Ⅱ. Korean Notational Systems Chapter Ⅲ. Critical Assessment: The Rhythmical Interpretation Chapter Ⅳ. The Gueum(oral Mnemonics) for Wind Instrument Chapter Ⅴ. Historical Change and Meaning Korean Tablature, Hapjabo Chapter Ⅵ. The correlation between the Musical Notations of Korea and China Chapter Ⅶ. The Musical notation of korea and japan Chapter Ⅷ. The Musical notation of korea and Europe References 배부처 총 465개처 배부(해외: 465개처) 영문책자 발간은 공신력 있는 국립기관에서 한국음악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함으로써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에는 외국의 일반인을 잠재적 수용층으로 설정하여 발간내용의 난이도를 조정하여 발 간하고 있다. 또한 해외 400여 곳의 기관과 단체에 정기적 지속적으로 배부함으로써 한국 음악에 대한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한 긍정적 효과이외에도 보완해야할 사항이 잔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부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발간물 기획단계 부터 내용기술에 대한 연령별 대상별 검토가 있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발간물의 독자층을 구체화함으로써 편집체계 기술방식 수록내용의 난이도 등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4

163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둘째, 내용구성에서 도상자료를 풍부히 수록하여 이해를 도모하고, 생소한 용어에 관한 자 세한 설명을 부기함으로써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발간물 주제 선정시 KOREAN MUSICOLOGY SERIES 가 1편부터 마지막까지 수미쌍관( 首 尾 雙 關 )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체계성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발성기획물은 배제되어야할 것이다. 영문책자발간 사업은 긍정적 효과와 문제점이 동시에 수반된다. 그러나 한국음악의 올바 른 정보를 해외에 알려줌으로써 한국음악학 발전에 밀알이 될 수 있는 측면에서 향후 지속 적으로 추진해야할 사업이다. 향후 사업 방향성에 일성( 一 聲 )을 더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 들을 소개할 수 있다. 첫째, 배부처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도서관에도 한국음악자료가 비치되어 야할 것이다. 발간물을 해외 도서관과 음악관련 전문기관 및 교육기관 등을 중심으로 아프 리카에서 남미까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배부함으로써 음악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학문과 예술발전의 시작은 접근성 문제가 먼저 선 결되어야하며, 한국음악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자료의 개방성과 공유성이 확대될 때 부지불 식간( 不 知 不 識 間 )에 한국음악은 성장할 것이다. 둘째, 한국음악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소개하는 차원에서 안주하지 말고 4종의 발간 경 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문 음악서적 내용도 소개하는 발간 계획을 수립할 필 요가 있다. 한국음악 최고의 악서 악학궤범 을 영문판으로 제작하여 한국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하는 학자 음악가 교육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음악의 위상 과 품격은 한층 더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재의 영문판으로 제작 배부되는 KOREAN MUSICOLOGY SERIES 는 영문 판 이외에 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어 일어 등으로 사용언어권이 넓은 언어를 중심으로 다 양하게 제작되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지만 영어권이외의 국가들 언 어로 다양하게 제작하는 것은 한국음악을 직접 전달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155

16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Ⅲ.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외사업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외사업은 현장중심 사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해외 현 지 한국음악 자료조사와 해외 한국음악음원자료 발굴 사업이 진행되었다.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해 국외에서 수행한 사업은 한국음악학 발전의 적극적 노력의 한 양상이다. 특히 해외 현지에서 이루어진 자료조사와 연구 사업은 한국음악학의 학문적 내성을 강화하는 효 과가 있다. 이론적 논의에 매몰되어 현장의 조사와 연구 없이 논의되는 공허한 담론은 경계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음악과 관련된 해외현지 조사와 발굴 및 연구는 매우 중요한 학문적 가치를 수반한다. 1. 해외 현지 한국음악 자료조사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사업은 한국음악 영역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음악이 존 재하는 모든 지역과 장소를 조사 대상 범주에 두고 있다. 또한 한국음악만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음악 교섭관계에 놓여있는 여러 나라의 음악과 악기 등도 함께 조사 연구함으로써 한국음악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을 제공하고 있다. 본 항목에서는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에서 실시한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및 해외에서 수행한 타국의 음악자료 조사 사업도 함께 포함한다. 왜냐하면 한국음악은 순수하게 독자 적으로 형성 발전된 것보다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문화적 음악적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발 전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2007년~2011년)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다. 2007년부터 2011년 까지 총 13건의 해외 현지 한국음악 자료조사 6)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사대상 국가는 중국 베트남 일본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기타 국가로는 네팔과 필리핀 그리고 유럽 4개국이 있다. 2008년~2011년까지 실시한 해외 현지 한국음악 자료조사 현황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 은 다음과 같다. 6) 해외 현지 한국음악 자료조사의 범주는 한국음악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민족음악과 악기 등도 포함한 개념으로 설정한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서술한바와 같이 한국음악과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만 을 다루는 것은 연구영역의 축소를 가져올 뿐이며, 연구의 편향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 문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음악과 악기에 관한 연구와 논의 그리고 현지조사도 넓은 의미에서 한국음 악학의 학문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축으로 판단한다. 156

165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표 3>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현황(2008~2011) 년도 기간 대상국가(도시) 연구목적 연구성과 ~ ~8. 영국(런던) 프랑스(파리) 독일(뮌헨) 오스트리아 (비엔나) 일본 (시모노세키) 해외 박물관 소장 국악기 실태조사 해외분산 국악유물 및 기록자료의 집성 (소장품 기증 추진) 해외 박물관 소장 국악기 실태 파악 한국무속연구에 매우 귀중한 음향 및 영상자료를 기증 받음 ~8. 일본 (나라, 오사카) 일본 소재 백제음악 문화조사 일본에 전승되는 백제악기의 현황 파악 및 악기의 성격 규명 ~28. 일본 (나고야) 호사문고 소재 악학궤범 복제와 이용권한 확보 필름 사진으로 촬영 복제 자료의 이용권한 확보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사업은 한국음악학의 연구지평을 확대하고 현장에서 실증적 자 료 수집과 문헌적 연구를 보완할 수 있는 사업효과가 있다. 또한 여러국가에 산재한 한국 음악의 해외 실태를 파악하여 한국음악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 람직한 사업이며, 민간분야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영역을 국립기관에서 추진함으로써 접근 성이 어려운 자료를 확보하여 제공함으로써 여타의 학문분야에 미칠 파급효과도 큰 의미 있는 사업이다. <표 3>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 이 도출된다. 첫째 최근 5년간 국악연구실에서 수행한 해외 음악자료조사 사업 중에서 한국 음악관 직접적인 관련 있는 사업은 4건에 불과하다. 둘째, 조사내용은 악기와 관련된 사업 이 3건, 서적과 관련된 사업은 1건이다. 사업내용이 악기분야에 편중되어 해외 한국음악자 료 조사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조사 국가는 일본(3회)에 집중되어있다. 유럽 4개국에서 실시한 해외박물관 소장 국악기 실태조사 사업이 일본 이외의 조사국가로 유일하 다. 해외에 산재한 한국음악과 관련한 현지자료 조사사업의 당위성이 무색할 지경이다. 위에서 살펴본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현황 분석에서 향후 해외 현지조사의 문제점과 과제를 던져준다. 우선 선결해야 될 것은 연구주제의 다양화이다. 악기조사 중심의 영역에 157

1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서 탈피하여 해외 소재 한국음악 서적 가곡원류 (불란서본), 하버드 금보 (하버드대학교 소장) 등을 조사하거나 한국음악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음악벽화조사 그리고 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 상의 국가들에서 잔존하고 있는 한국음악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단계적 학술적 현지조사 연구가 진행되어야할 것이다. 연구주제의 다양화와 더불어 연구지역의 다변화도 이루어져야한다. 현지조사지역의 확대 는 한국음악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음악의 원형과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사업이다. 연해주 가 포함된 러시아, 실크로드 동로( 東 路 )와 서로( 西 路 )의 중심 중앙아시아, 선사시대의 고대 문명을 간직한 서남아시아까지 모든 지역이 조사 지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연구주제의 다양화와 연구지역의 다변화는 중장기계획 바탕위에 진행되어야한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여 단기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사업들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현지조사의 방식은 TF(Tasks Force)를 구성하여 집단적 집약적 연구체제를 구성하여 진행하는 것이 개인의 연구역량에 의한 방식보다 효율적이다. 필자가 판단하는 집단적 집약적 연구체제의 효율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 한국음악연구 자료조사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개인 연구자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다수의 연구자가 참여하여 역할분담 및 연구범위의 분 배를 통한 연구가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현지조사는 사전에 충분한 학습과 사 전기초조사 그리고 조가국과의 협의과정을 거쳐야 현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의 과 정을 줄일 수 있다. 개인이 부담하게에는 시간적 물리적 에너지가 많이 발생하여 연구의 효율성이 상쇄될 우려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 현지조사 이후 조사결과물에 대한 정리 및 분석과정은 연구업무의 분화를 통하여 보다 세밀하게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현지조사 이후 생성되는 결과물에 대해서는 공개하여 유익한 연구정보를 모두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판단과 주관의 개입이 배제된 객관적인 양 질의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물론 위에서 제시한 다수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연구방식의 장점처럼 개인연구자가 사업 을 수행할 때 발생하는 장점-의사결정의 신속성, 조사지역 이동의 편리성, 예산의 절감 등 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정리해야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개 인연구자가 유발하는 장점보다 다수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방식이 해외 한국음악 조사방법 에 효율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판단한다. <표 3>에서 제시한 해외 한국음악 자료조사 현황과 비교자료로 국악연구실에서 추진한 해외 민족음악 자료조사 현황을 참고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58

167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표 4> 해외 민족음악 자료조사 현황(2007~2010) 년도 기간 대상국가(도시) 연구목적 연구성과 ~22. 중국(톈진) ~16. 베트남(후에) 생황 리드 제작과정 및 청석칠 기법 조사 베트남 후에 유적보존센터 활동 및 궁중악기 복원 작업 조사 생황 리드 제작과정 및 청석칠 기법 연구 베트남 편종, 편경 복원사업 지원요청 ~ ~15. 영국(런던) 프랑스(파리) 독일(뮌헨) 오스트리아 (비엔나) 필리핀 (마닐라) 해외 음향연구기관 조사 해외 공연장 음향 시설조사 서양악기 연구 및 제작현황 조사 아시아 지역 음악연구기관 포럼 악기 음향 및 제작 기법연구 악기 표준화방안 연구 아시아 전통음악 연구프로그램 강화 12.8.~11. 일본 해외악기제작 및 연구기관 조사 국악기연구사업계획에 참고 반영 ~14. 중국 중국민족악기 조사 고악기 복원 및 개량사업에 자료로 활용 7.1.~6. 베트남 베트남 궁중악기 복원을 위한 현지조사 베트남 궁중악기 복원 기초자료로 활용 ~9.3. 네팔 히말라야 샤머니즘 조사 ~12.3. 베트남 베트남 궁중악기(편종, 편경) 제작 및 기록 네팔 히말라야 지역의 샤머니즘 원형 조사와 자료수집 베트남 편종 복원 제작 12.7.~31. 베트남 베트남 복원 악기 기증, 업무협약체결 및 공연 개최 복원 악기 기증 및 업무협약 체결로 인한 지속적인 지원 및 상호연구 기반 구축 <표 4>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외 민족음악 자료조사 현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조사 및 연구 주제가 대부분 악기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생황과 민족 악기조사, 베트남의 편종 편경과 궁중악기, 해외 악기제작연구기관조사 등이 159

16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현지조사 지역 중에서 베트남(4회)이 타 지역에 비하여 상 대적으로 현지조사 횟수가 많다. 셋째, 악기 또는 유물이외의 연구주제는 샤머니즘 원형조 사 7) 조사가 있다. 넷째, 유럽지역 현지조사에서는 악기음향과 관련된 내용이 조사되었다. 2.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사업은 해외 여러 지역에 산재한 한국음악 음원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한국음악의 원형성과 정체성을 확보하고, 근 현대 국악기록 자료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한국음악에 관한 인식의 부족과 체계적 관리가 부실한 시기에 방치한 자료들을 발굴 수 집 연구 하는 작업을 통하여 한국음악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 해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2010년 국립국악원에서 발행한 <한국음악선집> 제33집 <존레비 컬렉션의 한국전통음악(Korean Traditional Music in John Levy Collection)> 은 매우 의미가 있다. 존레비 컬렉션의 한국전통음악은 영국 에딘버러대 학(Edinburgh University)의 셀틱 스코틀랜드 연 구 자료실(Celtic & Scottish Studies Archives) 소재( 所 載 ) 존레비컬렉션(John Levy Collection)에 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음악 자료 중 52점을 복각한 음원자료이다. 존레비 컬렉션의 한국전통음악은 1964년 한국을 <그림 1> 나그라(nagra) 방문한 존레비(1910~1976)가 국내국악전문가 8) 의 도움으로 당시 최신식 녹음기 나그라(nagra) 9) 로 한국 전통음악 120여곡을 34개의 마스터 테이프에 녹음한 음원자료이다. 1964년 당시 국 립국악원에서 연주한 궁중음악과 그 당시의 민속악 즉, 불교음악 무속음악 판소리 산조 민요 등의 음원이 내재되어 있다. 1960년대 음원자료가 희귀한 국내음반 현황을 고려할 7) 이용식, 히말라야 샤머니즘 2차 현지조사 결과보고서 (서울: 국립국악원, 2010), 1쪽. 국립민속박물 관의 히말라야 네팔 2차 현지조사팀과 협력하여 관련 전문분야(무속음악)의 조사 연구 수집이 이루 어진 사업임 8) 앨런 해이만과 故 이혜구를 지칭함. 9) 야외 촬영시 쓸 수 있도록 간편하게 고안된 이동식 오디오 녹음기. 나그라 4.2나 IS가 가장 많이 사 용되는 모델이며 주머니에 넣어 쓸 수 있는 SN 모델도 있다. 나그라의 사진자료 및 해설자료 출처: http: //terms.naver.com/entry.nhn?docid=

169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때, 매우 중요한 예술적 가치와 학술적 의미가 높은 음반으로 평가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립국악원 차원에서 직접 자료를 최초발견하고 소개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 국내전문가 들에 의하여 발굴되고 소개된 자료를 이용한 측면이다. 그러나 최초발굴의 상징성보다 이 러한 자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음반으로 제작하여 국내음원자료의 활성화 및 전통음원 자료의 전승에 기여한 점은 국립기관이 해야 할 중요 역할로 높게 평가받아야할 것이다.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사업은 <존레비 컬렉션의 한국전통음악> 자료 이외에 진행 된 사업은 없다. 기존에 제작된 음반자료는 국내음원자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민족음악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해외 음원자료를 발굴하고 음반으로 제작하여 소개하는 접근법이 아닌 한국음악의 원형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추진해야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다문화국가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서 소리의 동질성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표 5> <한국음악선집> 제33집 음반내용 현황 연번 분야 연주곡명 재생시간 연주자 향당교주 3: 26 보허자 7: 21 1 궁중음악 보태평 - 희문, 기명, 귀인 5: 48 해령 6: 10 여민락 1장 22: 16 여민락 7장 5: 34 상령산 7: 07 국립국악원 중령산 1: 41 세령산 2: 52 2 관악영산회상 가락더리 1: 46 삼현도드리 3: 16 염불도드리 3: 30 타령 2: 15 국립국악원 군악 3:

1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연번 분야 연주곡명 재생시간 연주자 영산회상 별곡 26: 21 국립국악원 3 영산회상별곡 대금독주 청성자진한잎 4: 38 조창훈 향피리독주 자진한잎 6: 08 김태섭 우조 이수 버들은 8: 06 반엽 남하여 5: 51 계면 이수 언약이 8: 00 계면 평롱 북두칠성 6: 56 노래/지화자 반주/국립국악원 4 가곡 5 판소리 산조 우조 우락 바람은 5: 56 계면 편수 모란은 2: 57 계면 태평가 7: 13 가사 춘면곡 11: 29 단가 백발가 5: 26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 심청가 중 범피중류와 인당수 장면 6: 49 20: 24 노래/지화자, 홍원기 반주/국립국악원 노래/지화자 반주/국립국악원 소리/박초월 고수/한일섭 소리/김소희 고수/한일섭 아쟁산조 7: 50 아쟁/한일섭 고수/신쾌동 거문고 조율시범 4: 23 거문고/신쾌동 오돌또기 2: 04 이야홍 2: 02 산천초목 2: 24 6 제주민요 정월이라 4: 39 검질매는소리 1: 16 이어도사나 0: 54 망건곁는소리 1: 07 꽃염불소리 1: 40 부영민 162

171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연번 분야 연주곡명 재생시간 연주자 행상소리 1: 13 6 제주민요 7 불교음악 달구소리 1: 43 서우제소리 1: 38 동풍가 2: 07 이어도사나 1 5: 06 이어도사나 2 3: 31 이어도사나 3 2: 41 이어도사나 4 3: 23 배헌해탈향 2: 46 배헌반야등 9: 02 홋소리 합장게 4: 09 짓소리 보례 13: 41 대취타 4: 02 염불가락 3: 04 능게가락 2: 33 초감제 30: 18 부영민 제주 해녀들 봉원사 8 제주무속음악 9 Selected Recordings 한국의 기악 제주 무속음악 8: 32 제주 무속음악 3: 08 보태평-희문, 기명, 귀인 5: 48 보허자 7: 21 해령 6: 10 영산회상 별곡 26: 21 조옥화 등 국립국악원 청성자진한잎 8: 32 조창훈 아쟁산조 7: 50 아쟁/한일섭 고수/신쾌동 염불가락 3: 04 봉원사 10 Selected Recordings 한국의 성악 우조 이수 버들은 8: 06 노래/지화자 계면 편수 모란은 2: 57 반주/국립국악원 계면 태평가 7: 13 노래/지화자, 홍원기 반주/국립국악원 163

1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연번 분야 연주곡명 재생시간 연주자 가사 춘면곡 11: 29 단가 백발가 5: 26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 6: 49 노래/지화자 반주/국립국악원 소리/박초월 고수/한일섭 소리/김소희 고수/한일섭 10 Selected Recordings 한국의 성악 서도민요 긴난봉가 2: 49 이정열 서도민요 병신난봉가 1: 25 이정열 제주민요 오돌또기 2: 09 부영민 제주민요 서우제소리 1: 40 부영민 경기민요 창부타령 3: 53 김옥심 단소/이창배 홋소리 합장게 4: 09 봉원사 덕담풀이 3: 10 조옥화 등 Ⅳ. 결 론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기능을 고찰하기위하여 국악연구실 사업 중 에서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되는 국내에서 진행한 사업과 국외에서 추진한 사업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국내에서 진행한 사업 중에는 국제학술회의 개회 와 영문책자 발간 사업, 국외에서 추진한 사업은 해외 현지 한국음악학 자료조사 와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 사업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국제학술회의는 중 장기계획을 수립 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하며, 국내에서 개 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개최하여 국제학술회의 개최의 파급성과 참여도를 극대화 할 필요성 있다. 또한 여타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회의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 자세로 참여 하여 세계의 음악학자들과 소통과 교류를 통한 한국음악학 위상을 양적 질적으로 성숙시켜 야 한다. 둘째, 영문책자 발간은 더욱 확대하여 영문판 이외에 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어 일어 164

173 해외 한국음악학 발전을 위한 국악연구실의 역할 등으로 사용언어권이 넓은 언어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제작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음 악내용도 포함하여 수준 높은 양질의 한국음악 지식정보를 제공해야할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 해외 현지 한국음악학 자료조사는 연구주제의 다양화와 연구지역의 다변화를 모색 하여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중장기계획 바탕위에 진행되어야한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 여 단기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사업들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넷째, 해외 한국음악 음원자료 발굴은 민간이나 개인연구자가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수 반되므로 한국음악의 원형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국립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 해야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해외인적자원 교류사업도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한국 음악을 배우고 이해하고자하는 학자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기를 체험하고 교습하는 차 원에서 진일보하여 장기간 국내에서 체류하며 학습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에 관한 논의 가 필요하다. 반대로 한국음악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해외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여건도 형성되어야할 것이다. 본 고( 稿 )에서 논의한 내용들은 제한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하여 논리의 비약과 확대가 일부 있으나,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여 미래로 나아가고자하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면, 앞서 서술한 논의 내용들이 한국음악학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 대한다. <참고문헌> 건원1400년 개원50년 국립국악원사. 서울: 국립국악원, 민중서림 편. 에센스 국어사전, 민중서림, 이용식. 히말라야 샤머니즘 2차 현지조사 결과보고서. 서울: 국립국악원,

1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The Role of the Gugak Research Office to Promote Oversea s Korean Musicology Moon, Joo-Seok (Researcher, National Gugak Center) In order to study the role of the Gugak Research Office to promote oversea s Korean Musicology, I have examined various projects, particularly the domestic projects such as <International Conferences> that are considered to hav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oversea s Korean Musicology, and <English Reference Publishing Project> and the international projects such as <Researches on Oversea s References of Korean Musicology>, and <Excavation Project of Oversea s Sound Sources of Korean Music > conducted by the office. As a result, I have concluded as the following. First, it is necessary that the international conferences be carried out in stages under the midterm/long term plans and conducted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oversea s countries to maximize their riffle effects and participation of the relevant scholars. Second, it is necessary that the references be published in more languages which are widely used, such as French, German, Spanish, Chinese, Japanese as well as English. Third, the researches on oversea s Korean Musicology need to be diversified in the subjects and the target regions, based on the midterm and long term plans. Fourth, it is necessary that the national organizations continue to promote the excavations of oversea s sound sources of Korean music in terms of establishing the identity and the originality of Korean music, as such project is difficult for individuals or private organizations to carry out. Viewed from a wish to advance to the future by facing the reality after reflecting the past, this study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advancement of Korean music studies. Key words: Oversea s, Korean musicology, Gugak Research Office, National Gugak Center, international conference, English references, oversea s references, excavations of sound sources 166

175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10)반 혜 성** 11) <국문초록> 봉장취는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종종 연주되었고, 산조의 형성에 영향을 준 음 악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현재는 연주가 단절된 상태이며, 과거의 음악 형태에 대해 서도 고증해 줄 연주자나 제보자도 없는 형편이다. 본고는 그동안 발굴된 유성기음 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음원 전반에 관한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다음으로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의 음원간에 어 떠한 변별적인 특징이 존재하는가도 아울러 살펴보았다. 봉장취는 전 곡을 통해 전형적인 계면조로 진행된다. 청의 이동은 독주로 연주되 는 경우에만 a, e', d'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합주의 경우에는 거의 a에 고정되 어 있다. 봉장취의 악기 편성은 정해진 바 없이 어떠한 악기로든지 편성이 가능하지만, 전 해지는 음원들을 보면 가장 애용된 악기는 퉁소와 대금, 해금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성기음반에서는 퉁소가 풍각쟁이의 음악을 대표하며 독주로도 연주되고, 해금, 가 야금과 함께 합주되었지만, 장시간음반에서는 더 이상 퉁소가 사용되지 않는다. 장 시간음반에서는 유성기음반에는 없던 아쟁이 해금과 함께 봉장취를 연주하기 시작하 였고, 피리도 해금, 대금, 가야금 등의 악기와 합주되었다. 유성기음반에서 보이는 봉장취의 장단 구성은 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등이 1~2개로 연주되거나 2개의 장단이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봉장취 음악에서 장단의 구성이나 변화가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장시간음반에 * 본고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시행된 2009 전통예술 복원 및 재현사업의 하나인 봉장취 복원 의 보고서의 내용을 보충하여 논문의 형식으로 재구한 것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수료 167

1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서는 진양, 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등 4개의 장단이 느린 것부터 점차로 빨라 지는 장단 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단의 속도에 따른 변화도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봉장취를 연주한 연주자들은 경기나 전라, 충청 등 어느 한 지역 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광범위한 출신지역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당대의 유명 명 인에게 사사했거나 천부적으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연주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연주자들이 공유했던 음악적인 배경은 그들이 타고난 명인이 면서 두루 여러 음악들을 섭렵했던 성향이 강했고, 이러한 특성은 곧 봉장취 산조 시나위 같은 음악을 창출할 밑거름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핵심어: 봉장취, 풍각쟁이, 창우집단, 유성기음반, 장시간음반 목 차 Ⅰ. 서 론 Ⅱ.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음원 목록 Ⅲ.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과 연주자 Ⅳ. 결 론 Ⅰ. 서 론 봉장취는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종종 연주되었고, 산조의 형성에 영향을 준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전통의 맥락에서 본다면 현재는 연주가 단절된 상태이다. 산조는 1960년 대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대학의 정식 교과목으로 흡수되면서 현재까지 활발히 연주되 고 있지만, 봉장취는 연주 뿐 아니라 과거의 음악 형태에 대해서도 고증해 줄 연주자나 제 보자도 없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몇 편의 연구가 진행되었고, 유성기음반(SP)과 장 시간음반(LP)에 봉장취와 관련된 음원들이 전해지고 있어서 그나마 과거 봉장취의 음악에 대하여 규명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68

177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처음으로 봉장취에 관하여 언급한 학자는 이보형이다. 그는 풍각쟁이 음악고 1) 에서 봉 장취는 풍각쟁이에 의해 불려진 악곡임을 신재효의 변강쇠가에서 인용하여 지적하였다. 그 리고 봉장취는 새의 울음소리가 나오는데서 비롯된 곡이고, 재인 광대 악공놀음에서 고인 [ 樂 工 ]이 연주했던 악곡이라고도 하였다. 그래서 재인 광대 악공 출신의 명인들인 정해시 ( 鄭 海 時 ), 김덕진( 金 德 鎭 ), 지용구( 池 龍 九 ), 박종기( 朴 鍾 基 ), 유동초( 柳 東 初 ), 강태홍( 姜 太 弘 ) 등이 봉장취( 鳳 長 醉 ), 봉작취( 鳳 雀 吹 ), 봉구황( 鳳 求 凰 ), 봉황곡( 鳳 凰 曲 ) 등의 다양한 이름 으로 유성기음반에 봉장취를 취입하였음을 밝혔다. 이보형은 다시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2) 에서 봉장취의 어원과 유형에 관하여 정리하 기도 하였다. 봉장취는 어원적인 면에서 봉장추( 鳳 將 雛 ) 3) 에서 나왔고, 그 뜻은 봉이 새끼 를 거느렸다, 봉이 새끼를 기르다 이지만, 한편 제왕이 숨은 영웅을 거느렸다 는 의미로도 풀이된다고 하였다. 중국에서의 봉장추는 전한시대 거기( 車 騎 )장군 심충( 沈 充 )이 지은 노래 로, 그 노랫말은 어미 봉황이 새끼 아홉을 거느리고 추추하고 지저귄다 는 내용을 말하므 로 새소리가 묘사되는 성악곡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중국 고대음악 봉장추와 한국 의 봉장추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산조라는 명칭이 좋지 않다. 이 명칭보다 봉장 취라 이르는 것이 옳다 라고 김윤덕이 언급한 내용을 밝히며 봉장취와 산조가 전통사회에 서 비슷한 장단으로 구성되어 연주되고 이를 산조의 원형으로 보아 산조 발생론에 봉장취 의 역할이 있었음을 말하였다. 이렇게 봉장취가 산조의 발생과 관련이 있음은 안희정의 봉장취에 관한 연구 4) 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안희정은 구전으로 봉장취가 산조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고 내려온 사 실을 지영희(해금)와 성금연(아쟁)의 연주를 채보하고 분석하여 봉장취와 산조의 관련성을 입증하였다. 특히 지영희와 성금련의 봉장취는 장단구성이 진양 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 리로 되어있어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봉장취가 1~2개의 장단구성으로 되어있는 것과는 다 른 점을 지적하며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장단구성되는 산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진원은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성 5) 에서 봉장취와 장암, 장끼타령과의 1)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한국민속학 제11호(서울: 민속학회, 1979). 2) 이보형,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한국음반학 제10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2000). 3) 각주1)에서는 봉장취라 하였으나 신재효의 사설 변강쇠가 원문에는 봉장추( 鳳 將 雛 )라 기록되었다. 신 재효, <변강쇠가> 신재효판소리전집 (서울: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69), 23-5쪽. 4) 안희정, 봉장취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4). 5) 이진원,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성, 한국음반학 제11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2001). 169

1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연관성, 중국의 설창음악 백조조봉( 白 鳥 朝 鳳 )과 산동의 기악곡 백조조봉, 해청나천아( 海 靑 拿 天 鵝 )와의 연관성, 그리고 일본의 쯔루노 스고모리( 鶴 の 菓 )와 봉장취와의 유사성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유성기음반에 나타난 봉장취를 다루면서 가장 먼저 취입된 봉장취를 1910년에 발매된 유명갑의 피리기러기타령으로 꼽았고, 봉장취의 본격적인 유성기음반 취 입은 1930년대에 다시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는 봉장취의 취입 형태가 연희적인 성격을 갖는 종합 예술로서 이미 발전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즉 유성기음반의 여러 유형 의 봉장취와 명인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봉장취는 기악이 딸린 재담소리에서 출발된 기악이 삽입된 일종의 소리 극( 劇 )이라 하였다. 그래서 봉장취는 순수한 기악곡으로 출발된 것이 아니고 장끼타령과 같은 소리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았다. 이 연구는 봉장취의 기원을 풍각 쟁이에 의해 연주된 기악곡에 두지 않고 소리꾼의 성악곡에 그 기원을 둔 점에서 주목되는 연구이다. 장휘주는 봉장취 연구: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봉장취를 중심으로 6) 에서 1930년대의 유 성기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3곡을 채보하고 분석하여 그 음악적 특징을 밝혔다. 이전의 봉 장취 연구가 문헌에 근거하여 그 특징을 살폈다면, 장휘주는 실제로 전하는 음원에 근거하 여 봉장취의 음악적 특징을 규명하려 한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 이 결과로 봉장취에는 새 소리 선율이 삽입되는 특징이 있고, 전조하는 음악이라는 것, 산조 장단과 같은 장단을 사 용하므로 시나위보다는 산조와 더 밀접한 음악적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상의 봉장취 연구가 음악의 유형이나 어원, 또는 산조와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라면, 이외에도 과거에 봉장취를 연주하였던 연주자들에 대한 연구와 유성기음반에 전하는 곡에 관한 음악 분석과 관련된 연구도 있다. 7) 이들 연구는 유동초, 지용구, 김덕진, 강태홍 등 당시의 봉장취를 유성기음반에 취입한 연주자들의 생애와 예술, 또는 그들이 남긴 음원에 대한 음악 분석을 위주로 한 글이다.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를 통해 봉장취의 음악적인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어 왔음을 알 수 6) 장휘주, 봉장취 연구: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봉장취를 대상으로, 한국음반학 제4호(서울: 한국고음 반연구회, 1994). 7) 이보형, 유동초의 생애와 예술, 한국악기학 2003년. 허시라, 지용구의 음악활동 고찰: 해금산조 창제 에 관하여, 한국음악사학보 제33집(서울: 한국음악사학회, 2004). 이진원, 유동초 퉁소산조의 선율분 석: 중모리를 중심으로, 한국음반학 제2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이진원, 정해시 퉁소산조 연구, 한국음반학 제5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1995). 장휘주, 허튼가락 봉장취의 대위선율 유형: 2 성 대위를 중심으로, 한국음반학 제13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2003). 이귀영, 김덕진의 산조 합주 분석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5). 김혜련, 강태홍 가야금 봉장취에 관한 연구: 박종 기 대금 봉장취와 비교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6). 구수정, 봉장취 음악에 관 한 고찰: 김덕진의 해금 가락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170

179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있지만,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수록된 봉장취 음원 전반에 관한 특성을 함께 살핀 연 구는 없었다. 유성기음반에는 봉장취라는 악곡명이 아니어도 그 음악적인 내용이 봉장취와 관련이 있는 곡들이 상당수 보이고, 장시간음반에도 다수의 봉장취굿거리가 존재하고 있으 므로, 이 곡들이 갖는 음악적 특징을 총체적으로 고찰해볼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본고가 재구되기 전에 봉장취의 복원 및 재현연주 8) 를 통하여 1차로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 하는 봉장취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봉장취 음원을 소개하고 채보 하여 악보화하였으나, 이외에도 몇 가지 추가해야할 음원이 있어서 본고를 재구하게 되었 다. 이에 본고는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의 음원을 목록화하여 그 음악적 내용을 살펴보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다음으로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의 음원 간에 어떠한 변별적인 특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Ⅱ.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음원 목록 봉장취는 창우집단의 고인들이 연주하기 이전에 조선조에 혼자 또는 소규모로 악기를 연 주하며 유랑하던 풍각쟁이의 연주곡목 중 하나였다. 풍각쟁이의 연주곡목은 니나니가락, 봉장취, 시나위(심방곡), 가객의 소리, 가얏고잽이 짝타령, 삼현타령이나 자진타령 비슷한 곡, 무동의 검무 등으로 알려져 있다. 9) 풍각쟁이는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천민 집단으로, 주로 구걸하고 다니며 그 대가를 음 악으로 돌려주던 집단이다. 조선 말 황해도 감찰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1892년(고종9년)의 교방가요 에는 그 당시의 잡희를 열거하는 부분에 풍각( 風 角 )-소적행걸( 簫 笛 行 乞 ) 라는 기록이 있다. 10) 이는 소나 적과 같은 관악기를 불며 구걸하는 사람을 풍각이라고 한 것이 다. 잡희 항목에 있는 풍각쟁이는 특별히 관악기로 연주하는 집단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외에 신재효의 판소리 변강쇠가 사설에 의하면 풍각쟁이는 가객, 퉁소장이 소경, 북장 이, 가야금 타는 이, 검무잡이 겸 퉁소장이의 길잡이 등 5명으로 무리 지어 다니며 연행하 는 무리라 하였다. 11) 또한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박타령에는 풍각쟁이가 검무장이, 북잡 8) 2009년 11월 30일 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에서 실시되었다. 9)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70-80쪽. 10) 성무경 역, 교방가요 (서울: 도서출판보고사, 2002), 226쪽. 171

18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 각설이패, 초라니패 등과 함께 어울려 연행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12) 이렇 듯 풍각쟁이는 노래와 춤 뿐 아니라 가야금이나 퉁소 같은 악기의 연주도 함께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리지어 떠돌아다니며 구걸하거나 다른 떠돌이 집단과 함께 연희하기 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풍각쟁이는 20세기가 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지만, 이들이 연주하였던 봉장취, 시나위, 메나리 등과 같은 악곡은 창우집단의 고인들에게 이전되어 연주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다. 13) 창우집단의 고인은 악공을 이르는 말로, 이들은 본래 조선조에서 신청을 중심으로 활동 하던 기악연주가들이었다. 이들은 무가의 반주 뿐아니라 재인 광대의 광장악이나 풍류객의 방중악에서 기악연주를 담당하는 등 활동 영역에 크게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과거 명인들 이 구술한 봉장취의 특성은 판소리 명창 공대일에 의하면, 대가댁 사랑에서 재인 광대 고 인을 불러 놀음을 벌일 때 주인이나 상객이 젓대잽이에게 한 바탕 봉장취나 부르라고 하면 장구장단에 봉장취놀음을 벌였다고 한다. 능주 맹인한량이며 퉁소 명인인 유동초와 나주 젓대 명인 김두재가 잘했다고 한다. 또한 젓대 명인 강백천은 젓대잽이 혼자가 아니고 여 러 악공들이 함께 봉장취를 연출했다고 한다. 여류 명창 박녹주는 명창 정정열, 김초향과 젓대 명인 박종기가 고니타령을 음반으로 취입했다고 하였다. 14) 이러한 과거 명인들이 말하는 봉장취는 고니 한 쌍의 이야기를 아니리로 하고 숫고니가 총에 맞는 장면, 암고니의 탄식, 문상 온 새들의 울음소리 등 극적인 장면에서 젓대가 연 주하거나 젓대, 피리, 해금의 기악합주가 함께 연주되는 양상을 띤다. 그러므로 이러한 봉 장취는 단순한 기악곡이 아니라 서사적인 내용을 담은 판놀음으로도 보인다. 즉 초기 풍각 쟁이 집단이 받아들인 봉장취는 새소리를 구사하는 음악으로 단순하였지만, 그 이후 창우 집단이 풍각쟁이 집단의 음악을 수용하여 여러 가지 유형의 세련된 음악으로 확대 발전시 킨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창우집단에 의해 연주되던 봉장취는 서사적인 내용의 아니 리에 기악연주, 아니면 순수 기악곡의 형태로 연주되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창우집단은 소리꾼을 중심으로 꾸려진 창극과 같은 소리극의 반주를 담당하기 도 하고, 창극의 막간에는 산조나 봉장취, 시나위 같은 순수 기악곡을 연주하거나 민요나 잡가를 기악 선율로 옮겨서 연주하는 등 그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갔다. 그리고 이들의 11) 강한영 교주, 신재효 판소리 사설 여섯마당집 (서울: 영설출판사, 1982) 461-3쪽. 12) 강한영, 위의 책, 286-9쪽. 13)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70-80쪽. 이보형,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20-1쪽. 14)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73-7쪽. 172

181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음악 활동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발매된 유성기음반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성기음반에 수록된 봉장취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서사적 내용의 아니리에 기악 연주가 곁들여진 것, 둘째, 단순한 아니리나 불림에 기악 연주가 곁 들여진 것, 그리고 셋째로 순수 기악곡으로 연주되는 형태 등이다. 가장 먼저 취입된 봉장 취는 1910년에 발매된 유명갑의 피리기러기타령이고, 15) 그 나머지는 대부분 1935년부터 1940년에 집중적으로 취입되었다. 기악곡을 중심으로 했던 창우집단에 의해 유성기음반에 전해진 봉장취는 서사적 내용의 아니리에 기악 연주가 곁들여진 것은 3종, 16) 단순한 아니 리나 불림에 기악 연주가 중심이 되는 3종, 17) 그리고 나머지는 순수 기악곡으로 연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성기음반 이후 장시간음반에서 보이는 봉장취는 아니리가 포함된 기악곡은 찾 아 볼 수가 없고 모두 순수기악곡의 형태만이 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1960년대에 녹음되 었음을 알 수 있다. 총 6종의 기악합주곡과 1종의 장단곡이 전해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봉장취 관련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봉장취 관련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의 목록 음반회사 및 번호 곡명 제작년도 연주자 1 Okey 춘향가 전집 Okey 흥보가 전집 1941 정정열, 임방울, 이화중선, 신숙, 김소희, 고 정원섭 임방울, 오수암, 이화중선, 김록주, 반주-오케고악단 3 New Korea 1042A 잡가 꾀꼬리 1937 김초향, 반주-코리아악단 4 New Korea 1042B 잡가 고늬한쌍 1937 박녹주, 반주-코리아악단 5 일축조선소리반 (NIPPONPHONE) 피리기러기타령 1910년대 유명갑 15) 이진원,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서울: 민속원, 2007), 180-1쪽. 16) 유성기음반 목록의 3. New Korea 1042A 雜 歌 金 楚 香 꾀꼬리, 4. New Korea 1042B 雜 歌 朴 綠 株 고늬한쌍, 5. 日 蓄 朝 鮮 소리 盤 (NIPPONPHONE) 피리기러기타령 등 3종. 17) 유성기음반 목록의 1. Okey 春 香 歌 全 集, 2. Okey 興 甫 歌 全 集, 9. Victor Star KS-2007(KRE186) 洞 簫 獨 奏 鳳 雀 吹 등 3종 173

1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음반회사 및 번호 곡명 제작년도 연주자 6 Victor Junior KJ-1043 (1106) 합주 봉황곡 1935 통소 정해시, 가야금 심상건, 해금 김덕준, 고 한성준 7 Korai CM809-A 기악 봉장취( 上 ) Korai CM809-B 기악 봉장취( 下 ) 1936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9 Victor Star KS-2007 (KRE186) 동소독주 봉작취 1937 퉁소 유동초, 고 한성준 10 Okeh 12209(K755)-A 해금산조 봉구황 Okeh 12209(K755)-B 해금산조 굿거리 1937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고 정원섭,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고 정원섭, 12 Columbia C2028 ( ) 고악 봉장취 1940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고 한성준-콜럼비아고악단 13 Columbia C2028 ( ) 고악 새타령 1940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고 한성준-콜럼비아고악단 14 Sinseki 민1273 봉장취굿거리 1960년대 해경악회 15 SLN-10635, 민1217(1LP) 한국고전무용곡집 (신세기레코오드주식회사) 봉장취굿거리 1960년대 해경악회 (피리 이충선, 해금 지영희, 대금 김광식, 가야금 성금연, 장고 지갑성) 16 Sinseki 민1240(30LP) 국악대전집 제28집 봉장취굿거리 1960~ 70년대 해경악회 17 HL-1257, (1LP) 무용곡 (히트레코드사) 봉장취굿거리 1976 해경악회 18 ALC-1023(1MC) 무용곡 (아세아레코드사) 봉장취굿거리 1983 해경악회 19 킹스타-KSM-1105 (10인치 1LP) 아쟁 해금과 남도단가 (제일면)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 1959~ 60년대 아쟁 성금연, 해금 지영희 (킹스타국악단) 20 DAS-0279(1MC) 무속 굿거리 (봉장취) 1985 이성진(장고 장단 강의) 174

183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1. 춘향가 전집과 2. 흥보가 전집은 입체 창극형 판소리 음반 전집으로, 여기에서 보이 는 봉장취는 봉장취를 불러라 하는 소리로 불림을 중중모리 한 장단에 평계면조로 부르고 나서 기악 합주로 봉장취형 반주로 춤놀이를 벌이는 유형이다. 18) 이는 독립적으로 연주되 는 기악곡은 아니고 창극에서 극적 구성을 위하여 편성되어 연주된 경우이다. 춘향가는 정 정열이 도창을 맡고, 정원섭이 북 반주를 하여 이화중선, 신숙, 김소희 등이 소리를 맡아 1937년에 녹음된 음반이다. 흥보가는 임방울, 오수암, 이화중선, 김록주 등이 소리를 맡았 고, 반주는 오케고악단이 담당하였으며, 1941년에 녹음된 음반이다. 3. 잡가 김초향 꾀꼬리 와 4.잡가 박녹주 고늬한쌍은 소리 및 아니리, 몇 개의 악기 합주로 한 개 내지 몇 개의 장단을 단위로 짧게 교대로 봉장취형 선율을 연주하며 서사적으로 새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유형이다. 박록주에 의하면 이 봉장취 곡조는 정정열이 짰다고 한다. 이 음반에서 보이는 봉장취는 기악과 성악으로 편성되어 서사적인 내용을 담은 판놀음으로 변천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 이 곡들은 코리아악단이 반주를 담당했다고 하는데, 강태홍이 가야금을, 박종 기가 대금을 담당하였고, 1937년에 녹음된 것이다. 5. 일축조선소리반(NIPPONPHONE) 유명갑연주의 피리기러기타령은 불완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암수기러기가 노는 장 면과 포수가 등장하여 숫기러기가 총맞는 부분, 암기러기의 울음소리 부분, 그리고 기러기 들이 조상 와서 우는 부분 등을 아니리와 피리 연주로 구성하고 있다. 이 곡은 서사적인 내용을 소리가 아닌 아니리로 표현하고 유명갑이 피리 단잽이로 연주를 한다. 이 곡은 1910년대에 녹음된 것으로 최초의 봉장취 음원으로 간주된다. 20) 6. 합주 봉황곡은 전술된 음반과는 다른 순수 기악합주곡으로, 풍각쟁이들이 주로 다루 었던 퉁소를 비롯하여 가야금과 대금이 함께 편성되어 연주된 곡이다. 이 음반은 1935년 에 녹음되었다. 7. 기악 봉장취(상)과 8. 기악 봉장취(하)는 하나의 음반에 앞면과 뒷면에 각각 수록되어있다. 기악 봉장취(상)은 엇모리 장단이고, 기악 봉장취(하)는 자진모리 장단 으로 연주되는데, 1936년에 녹음되었다. 박종기는 1935년에 오케레코드사에서 진양 중모 리 자진모리의 3개 장단으로 짜여 진 대금산조를 취입한 바 있어서 음악적 내용에서 산조 와 봉장취를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 퉁소독주 봉작취는 유동초가 퉁소로 독주하며 한성준이 반주를 맡았다. 곡 중간에 새소리를 말하는 아니리와 악기로 새소리를 흉내 내는 선율이 삽입된 형태로, 풍각쟁이의 봉장취 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음반이다. 이 음반은 18) 이보형,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9쪽. 19) 이보형, 위의 책, 11쪽. 20) 이진원,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180-1쪽. 175

1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937년에 녹음되었다. 10. 해금산조 봉구황과 11. 해금산조 굿거리는 하나의 음반에 A B 면으로 각각 녹음되어 있다. 명칭상으로 보면 중모리로 연주되는 해금산조 봉구황만이 봉 장취와 연관된 곡으로 보이나, 음악적 내용으로 보면 굿거리에서 새소리 묘사부분이 있어 서 이 곡도 봉장취의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금과 대금이 함께 연주 되며, 1937년에 녹음되었다. 12. 고악 봉장취와 13. 고악 새타령 역시 해금과 대금의 합주 로 중모리와 자진모리로 각각 연주되었다. 고악 새타령은 민요나 잡가, 혹은 판소리와 같 은 성악곡 새타령의 반주로서의 기악합주가 아니라 봉장취 계열의 순수 기악합주곡이다. 1940년에 제작되었다. 이상 13종은 유성기음반에 수록된 것이다. 14. 부터 18. 까지 소개된 봉장취굿거리는 장시간음반에 수록된 봉장취 계열의 곡들로, 사실상 모두 동일한 곡이다. 1960년대에 처음 해경악회(피리 이충선, 해금 지영희, 대금 김광식, 가야금 성금연, 장고 지갑성)에서 연주되어 수록된 봉장취굿거리를 국악대전집이나 무용곡집에 그대로 취입한 것으로 보인다. 14. 봉장취굿거리와 15. 봉장취굿거리는 1960년 대에 제작되었고, 16. 봉장취굿거리는 년대에, 17. 봉장취굿거리는 1976년, 18. 봉장취굿거리는 1983년에 각각 제작되었다. 19.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는 성금연과 지영희 부부의 연주로 진양 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의 장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녹음시기는 1959~60년대이다. 20. 무속 굿거리(봉장취)는 이성진이 장단을 소개하는 강의 가운데 일 부로서 무속굿거리(봉장취)장단을 소개하고 있다. 1985년에 녹음되고, 1992년에 제작된 음반이다. 21) 본고에서는 이상 총 20종의 봉장취 관련 음원 중에서 기악곡 위주로 녹음된 음반을 위 주로 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창극형 판소리에서 불림 이후 춤놀이의 반 주로 연주되는 1. 춘향가와 2. 흥보가에서의 봉장취와 역시 잡가의 반주형태로 짧게 연주되 는 3. 잡가 김초향 꾀꼬리와 4. 잡가 박녹주 고늬한쌍은 순수 기악곡으로 볼 수 없는 봉장 취이므로 제외하고자 한다. 그리고 5. 일축조선소리반의 피리기러기타령 역시 불완전한 형 태로 전해지는 곡이므로 제외하고자 한다. 또한 14. 부터 18. 까지 소개된 봉장취굿거리는 사실상 모두 동일한 곡이므로 15. 봉장취굿거리를 택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20. 무속 굿거리(봉장취)는 장단만이 다뤄지고 있어서 아울러 제외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본고에서 연구대상이 되는 봉장취 음원은 6. 합주 봉황곡( 鳳 凰 曲 ), 7. 기악 봉장 취(상), 8. 기악 봉장취(하), 9. 동소독주 봉작취( 鳳 雀 吹 ), 10. 해금산조 봉구황( 鳳 求 凰 ), 21) 초보자를 위하여 해설하고 세마치, 기본굿거리, 자진모리, 살풀이(시나위)장단, 덧배기장단, 자진덧 배기장단, 무속장단 중 도살풀이, 삼현도드리, 허튼타령, 무속굿거리(봉장취), 자진모리, 당악 등을 이성진이 구음으로 불러주고 장구 시연을 하는 형태로 녹음되어 있다. 176

185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11. 해금산조 굿거리 12. 고악 봉장취( 鳳 長 醉 ), 13. 고악 새타령, 15. 봉장취굿거리, 19. 아 쟁과 해금의 봉장취 등의 10종이 해당 된다. 이상의 음원을 대상으로 하여 다음 장에서 그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Ⅲ.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과 연주자 유성기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관련 악곡명은 봉황곡, 봉장취, 봉작취, 봉구황, 굿거리, 새 타령 등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장시간음반에는 봉장취, 혹은 봉장취굿거리라고 실려 있다. 유성기음반에는 봉장취를 이르는 명칭과 연주 방식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장시간 음반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현상은 장시간음반을 취입하게 되는 시기에는 민속 기 악곡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들이 다양한 연주종목을 소화하려 하지 않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대학의 정식 교과목으로 흡수된 일반화된 산조 연주에 더 집중하게 된 결과 때문 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과거 명인들이 즉흥성을 바탕으로 삼삼오오 모여 즐겨 연주하던 다 양한 봉장취가 전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본장에서는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그 음악적 내용과 음반에 음원을 남긴 연주자들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유성기음반에 봉장취 음원을 남긴 연주자는 심상건, 김덕진, 정해시, 강태홍, 박종기, 지용구 등이 있고, 장시간음반에 음원을 남긴 연주자는 지영희, 성금연, 이충선, 김광식 등이 있다. 본 장에서 다룰 봉장취 음원은 유성기음반에서 1. Victor Junior KJ-1043(1106) 합주 봉 황곡: 통소 정해시, 가야금 심상건, 해금 김덕준, 고 한성준, 2. Korai CM809-A 기악 봉장 취(상):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3. Korai CM809-B 기악 봉장취(하): 가 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4. Victor Star KS-2007(KRE186) 동소독주 봉작 취( 鳳 雀 吹 ): 유동초, 고한성준, 5. Okeh 12209(K755) 해금산조 봉구황( 鳳 求 凰 ): 지용구, 고 정원섭, 대금 박종기, 6. Okeh 12209(K755) 해금산조 굿거리: 지용구, 고 정원섭, 대금 박 종기, 7. Columbia C2028( ) 고악 봉장취 콜럼비아고악단: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 진, 장고 한성준, 8. Columbia C2028( ) 고악 새타령 콜럼비아고악단: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고 한성준 등 총 8종이고, 장시간음반에서 9. SLN-10635, 민1217(1LP) 한 177

18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국고전무용곡집 봉장취굿거리: 해경악회((피리 이충선, 해금 지영희, 대금 김광식, 가야금 성 금연, 장고 지갑성))와 10. 킹스타- KSM-1105(10인치 1LP)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 아쟁 성금연, 해금 지영희, 등 총 2종이다. 1. Victor Junior KJ-1043(1106) 합주 봉황곡 퉁소 정해시, 가야금 심상건, 해금 김덕준, 고 한성준 1) 음악적 내용 합주 봉황곡의 총 연주시간은 3분 8초이고, 제작년도는 1935년이다. 자진모리 총 71장 단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기본 청은 이동하지 않고 퉁소와 가야금 에서 옥타브로의 음역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퉁소와 가야금에 비해서 해금은 중간음역 으로 평이한 진행을 보인다. 처음 시작부분은 제6째 장단까지 3개의 악기군이 동일한 진행 을 하다가 퉁소가 한 옥타브 위로, 가야금은 한 옥타브 아래로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각각 의 악기가 자유로운 선율진행을 하게 된다. 퉁소는 곡 전체를 끌어가듯이 힘차게 차고 나 가는 반면 가야금은 주로 해금과 청을 맞추면서 리듬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많이 주고 있 다. 이에 비해 해금은 곡 전반에 걸쳐 중간 음역대를 고수하며 진행하고 있다. 178

187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 봉황곡-1 22) 곡의 후반부로 가면 제 59장단부터 제 68장단에서는 봉장취의 특징 중 하나인 새소리 선율이 연주된다. 새소리로 연주되는 부분은 퉁소와 해금이 동일한 진행을 하고 가야금이 대구를 이루는 방식으로 주고받으며 연주된다. 전체적인 리듬 진행은 자진모리의 기본 리 듬형인 이,,, 등의 다양한 리듬형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23) 22) 본문에서 다루어진 악보는 봉장취 연구와 복원재현 연주회 (채륜출판사, 2009) 리플렛에 수록된 것의 일부이며, 전곡의 악보는 리플렛 책자 쪽을 참조하기 바람.(채보자는 대금: 박환영, 퉁소: 최여영, 해금: 허시라, 가야금: 반혜성, 피리: 조성환, 아쟁: 홍진경 임.) 23) 재현 연주를 담당했던 지순자(가야금)에 의하면 심상건은 왼손의 여음 사용이 많고 잽싼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아 크고 긴 손을 가진 것 같다고도 하였다. 해금 연주를 재현하는 허시라는 활 쓰는 법이 활발하고 날렵한 지용구와 지영희보다는 김덕진의 활 쓰는 법이 펼쳐서 사용하는 편이라 유연 하다고 하였다. 179

18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2> 봉황곡-2 180

189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3> 봉황곡-3 181

1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연주자 봉황곡은 퉁소 정해시, 가야금 심상건, 해금 김덕진의 합주에 한성준의 장구로 반주된다. 심상건은 충청도를 음악적 배경으로 한 산조를 주된 특장으로 삼으며, 1925년 그의 나이 만36세에 제비표 조선( 朝 鮮 )레코드에서 가야금산조를 취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1965년 70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음원을 남긴 연주자이다. 24) 심상건은 이 시기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기량껏 산조 관련 음반을 취입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남긴 적잖은 음원들은 유성기음반에서 그 이후로 연계되는 심상건의 산조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김덕 진은 1930년대에 민속악 뿐 아니라 민요 반주와 영산회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 종목 으로 활동을 하였다. 25)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967년 조사한 경기시나위명인에 그 이름이 올라 있는 사실로 미루어 그의 음악적 배경은 경기도이며, 한편으로는 경기시나위가 그의 특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정해시는 유성기음반에 퉁소와 대금의 연주자로 명시되어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인적 사항에 대해서 알려진바 없다. 정해시, 김덕진, 심상 건 등은 이로써 그 당시 기악 연주자들이 산조와 봉장취, 시나위를 구별하여 순수 기악곡을 취입하였지만 결국은 그 음악적인 내용은 같은 곳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2. Korai CM809-A 기악 봉장취(상)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1) 음악적 내용 봉장취(상)의 총 연주시간은 3분 18초이고, 제작년도는 1936년이다. 엇모리 총 72장단 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다른 곡과는 다르게 봉장취(상), 봉장취(하)로 구분되어 2개의 장단이 짝을 이루 어 하나의 봉장취를 이루고 있다. 엇모리로 연주되는 봉장취(상)은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 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엇모리의 기본 리듬형인 로 시작되어,, 와 같은 다양한 리듬형으로 변주가 되고 잉어걸이가 빈번하다. 대금과 가 야금은 동일한 선율 진행을 하여 일체감을 주기보다는 각자 자유롭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연주되고 있다. 제 33장단과 제 34장단에서 1박이 늘어지지만 제 35장단에서 바로 정박을 잡는다. 이 음원은 듣기에는 거뜬거뜬 진행하는 것이 멋스럽고 유연하지만, 엇모리의 리듬 24) 권도희, 심상건의 산조사적 공헌, 한국음반학 제9호(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1999), 174-5쪽. 25) 구수정, 봉장취 음악에 관한 고찰, 12-3쪽. 182

191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붙임에 있어서 기교적인 면이 돋보이는 곡이다. 대부부의 엇모리는 혼소박(2소박+3소박)4 박자로 이해되는 장단인데, 이 곡에서의 엇모리는 각각의 소박이 2나 3으로 집합되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이 되는 것이 이채롭다. 26) <악보 4> 봉장취(상)-1 26) 지순자(가야금)는 강태홍의 엇모리는 의 10박을 다시 나누어 의 20개로 리듬을 나누어 가는 부분이 있어서 매우 정교하게 곡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곡의 엇모리 리듬을 이미 10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한 강태홍은 박자 감각이 뛰어나서 예측되지 않는 진행을 즐겼으나 결코 강 약이 뒤집히지 않았고 장단에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183

19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5> 봉장취(상)-2 184

193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2) 연주자 봉장취(상)은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의 합주에 최계란의 장구로 반주된다. 강태홍은 전남 무안 출신으로, 역시 유성기음반에 진양 중모리 자진중모리 잔모리로 구성된 산조를 취입한바 있어서 27) 앞서 언급한 심상건과 같이 봉장취와 산조를 특장으로 삼았던 연주자 라 하겠다. 강태홍은 아버지를 여읜 후 광주 신청에서 자란 그의 음악적 배경에 그치지 않 고, 새로운 음악을 향해 탐구하던 연주자이다. 그는 신( 新 )가야금이라 하여 지방을 순회하 면서 초상집을 방문하여 그 울음소리를 연구하고 각 지방마다 소리의 성질, 발성, 성격 등 을 특징으로 하는 음을 모아 산조를 만드는 밑바탕으로 삼았다. 또한 산사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바람소리 등을 표현하며 앞으로 이런 곡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28) 이렇듯 강태홍은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그의 음악에 반영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물이 나 현상을 묘사하는 음악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서 산조 뿐 아니라 봉장취에서도 그의 탁월 한 음악성이 잘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의 가야금은 또한 신( 神 )가야금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장월중선은 강태홍 산조는 갑절의 겹가락이라 아주 맛있고 가락이 독특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비오거나 궂은 날에는 꼭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도 하였다. 29) 박종기는 전남 진도 태생으로 그의 집안이 진도의 세습 단골판의 음악을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음악 적 배경은 전라도 무속에 뿌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 박종기는 대금산조를 창시 한 인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판소리, 창극, 시조, 민요 등의 성악곡 반주와 시나위 연주자로도 정평이 있었다. 또한 퉁소와 호적 연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31) 27) 강태홍은 가야금병창에도 많은 곡을 남겼다. 정영진, 가야금명인 강태홍의 공연양상, 한국음악사 학보 제29집(서울: 한국음악사학회, 2002), 662-7쪽. 28) 박희전, 강태홍 가야금산조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1), 14쪽. 29) 박희전, 강태홍 가야금산조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 13-4쪽. 30) 정범태, 명인명창 (도서출판 깊은샘, 2002), 90-3쪽. 31) 이진원,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쪽. 185

1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3. Korai CM809-B 기악 봉장취(하)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장고 최계란 1) 음악적 내용 봉장취(하)의 총 연주시간은 3분 18초이고, 제작년도는 1936년이다. 자진모리 총 80장 단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봉장취(하)는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이 곡은 자진모리의 기본 리듬형인 이,,,,, 등과 같은 다양한 리듬형으로 변주되어 자진모리가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대금과 가야금의 악기적인 특성을 반영한 시김새와 리듬 붙 임새의 활용이 뛰어난 곡이다. 186

195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6> 봉장취(하)-1 봉장취의 특징 중 하나인 새소리 선율형은 봉장취(상) 엇모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봉장 취(하) 자진모리에서만 나타난다. 정해시 일행이 연주하는 봉황곡 보다는 새소리 부분이 짧 다. 제 63장단부터 제 72장단까지는 자진모리 장단이 흐트러지며 도섭으로 연주되는데, 이 부분이 끝나고 나면 간결한 리듬형과 선율구조로 진행하며 곡을 마친다. 이러한 대비는 곡 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종지감을 준다. 187

1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7> 봉장취(하)-2 188

197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4. Victor Star KS-2007(KRE186) 퉁소독주 봉작취 퉁소 유동초, 고 한성준 1) 음악적 내용 봉작취의 총 연주시간은 3분 11초이고, 제작년도는 1937년이다. 자진모리 총 88장단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퉁소 독주로 연주되기 때문에 계면조 안에서 청이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합주 로 연주되는 봉장취는 청의 이동이 없거나 경과구의 형태로 짧게 나타나는 데에 비해 유동 초의 봉작취는 독주곡이므로 a, e', d' 등으로 청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곡에 변화를 준 다. 즉 청의 이동은 아무래도 합주보다는 독주에서 수월한 편이라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계면조 내에서 자유롭게 청이 이동하는 것을 독주 봉장취의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곡은 똑딱이새가 울어, 뻐꾸기가 울것다, 꾀꼬리가 울어 와 같은 아니리를 하고 퉁소로 새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풍각쟁이에 의해 연주되었던 원 초 봉장취의 유형과 가장 가까운 방식의 곡이다. 새 울음소리를 묘사하는 부분은 아니리에 이어 새 종류마다 다르게 표현되면서 비교적 길게 진행된다. 그런데 제56째 장단에 나오는 아니리는 앞의 새울음을 말하는 아니리와는 다르게 머리 빗것다 로 표현된다. 이는 예전에 봉창취를 연주하다가 한창 흥이 나면 머리 곱게 곱게 빗고 시집가~ 라고 불렀던 노래가사 의 일부로 해석된다. 봉장취와 같은 즉흥기악곡을 함께 연주하다가 이렇게 흥에 겨워 누군 가 노래를 부르면 그 가락을 흉내내어 악기별로 돌아가며 연주를 했다고 한다. 32) 전반적으 로 퉁소의 투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시김새가 잘 살아있는 곡이다. 32) 지순자에 의하면, 그 부분을 연주할 때는 짓궂게 웃으며 연주하다가 자동(어린이) 있으니 소남혀 (그만혀) 하고 끝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노랫말에 성적인 내용이 해학적으로 풀이된 것으로 보인 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4번째의 아니리는 머리 빗것다 로 보면 뒤에 이어지는 선율 진행과도 맞아 떨어졌다. 189

1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8> 봉작취-1 190

199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9> 봉작취-2 191

2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연주자 유동초가 퉁소로 독주하고, 한성준의 장구로 반주된다. 유동초는 전남 장성 출신으로 본 명은 유봉이나, 동방에서 처음 나온 관악기 대가라는 뜻에서 이왕직아악부 사람들이 그를 유동초라 칭하게 되었다. 33) 유동초는 선천적으로 안맹하여 어려서부터 국악을 배워 퉁소를 비롯하여 가야금, 단소, 젓대, 세피리에 능하였고, 풍류, 가곡반주, 가곡창, 시나위, 산조, 봉장취에 능하였는데 퉁소산조와 봉장취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에 서울에 올라와 방송출연, 유성기음반 취입 등 각종 활동을 하였다. 34) 5. Okeh 12209(K755) 해금산조 봉구황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고 정원섭 1) 음악적 내용 해금산조 봉구황의 총 연주시간은 3분이고, 제작년도는 1937년이다. 중모리 총 27장단 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해금산조 봉구황, 해금산조 굿거리로 명명되어 A B면으로 녹음되어 있는 곡 중의 하나이다.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해금과 대금이 동일한 선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서 로 반비례하는 선율과 리듬형을 구사하면서 대위적인 진행을 하기도 한다. 즉 대금이 치고 올라가며 잘게 쪼개는 선율형을 구사하면 해금은 느리고 안정된 진행을 하고, 해금이 화려 한 기교를 선율에 나타내면 대금이 길게 끌어주는 진행을 보인다. 33) 조석연, 유동초는 누구인가, 악사 유동초 음반 해설지 (전주MBC 윤승희기획, 지구레코드제작 JCDS-0806, 1CD, 2008), 5-7쪽. 34) 이보형, 유동초의 생애와 예술, 한국악기학 제1집(서울: 한국퉁소연구회, 2003), 11-6쪽. 192

201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0> 봉구황 현재의 산조는 독주곡으로 연주되지만, 이 곡은 해금과 대금의 합주로 연주되는데 해금 산조라 명명되고 있다. 이를 통해 산조와 봉장취가 동일한 음악적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이 시기는 산조와 봉장취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조 말은 풍각쟁이의 음악이 창우집단의 고인(악공)에게로 전이되면서 이들에 의해 다양한 기악곡 형식이 시도되었고, 이러한 가운데 대금과 합주하는 해금산조 193

2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봉구황과 굿거리 같은 형식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술된 강태홍과 박종기의 봉장 취는 봉장취(상) 엇모리와 봉장취(하) 자진모리로 음악적 기반은 봉장취에 두고 장단으로 구분하였으나, 이 곡은 해금산조 안에서 봉장취와 굿거리로 나누고 있어서 이 음악의 기반 이 되는 것은 해금산조라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봉구황을 연주한 지용구가 해금산조의 창시자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입증되는 바이다. 이 곡은 해금과 대금이 큰 진행은 같이 가면서 시김새에서 악기의 특성을 살리면서 변화 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각각 자유로운 진행을 하면서 즉흥성이 강조되는 봉장취 본래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틀을 잡아 정형화 시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해서 산조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의 곡으로 해석된다. 2) 연주자 이 곡은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합주에 정원섭의 장구로 반주된다. 지용구는 17세부 터 음률을 습득하여 해금, 장고, 거문고, 양금, 가야금, 단소, 생황 등에 능통하였고, 그 중에도 장고, 해금은 탁월하였다고 한다. 지용구는 정악구락부의 활동을 통하여 줄풍류 음 악을 음반에 취입하였고, 경성방송국에서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지용구는 1858년 생이므로 해금산조 봉구황과 굿거리는 그의 나이 79세에 녹음된 것이다. 35) 그러므로 이 음원은 지용구의 말년기 음악활동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지용구의 해금산조와 민요 는 지영희에게 전승되었다. 36) 6. Okeh 12209(K755) 해금산조 굿거리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고 정원섭 1) 음악적 내용 해금산조 굿거리는 해금 지용구, 대금 박종기 합주에 정원섭의 장구로 반주된다. 연주시 간은 3분이고, 제작년도는 1937년이다. 굿거리 총 57장단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a청에서 전조는 없이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우선 이 곡의 명칭을 보면 해금산조에다가 굿 35) 허시라, 지용구의 음악활동 및 초기 해금산조 창제의 음악사적 고찰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 전문사 학위논문, 2004), 4-7쪽. 36) 성금연, 지영희민속음악자료집 (서울: 민속원, 2000), 126-7쪽. 194

203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거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봉장취와는 관련이 없는 곡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 44-47째 장 단과 제 55-56째 장단에서 새소리를 묘사한 부분은 유성기음반에 수록된 다른 봉장취와 유사하다. 또한 즉흥성이 보이는 전조 없는 계면조의 진행이 곡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아 이 곡은 봉장취 관련 악곡으로 보는 것이 맞다. <악보 11> 해금산조 굿거리 195

2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7. Columbia C2028( ) 고악 봉장취 콜럼비아고악단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고 한성준 1) 음악적 내용 고악 봉장취는 연주시간은 3분이고, 제작년도는 1940년이다. 중모리 총 32장단의 계면 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 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이 곡의 악기 편성은 대금과 해금이라 음반 표지에 기록 되어 있지만 실제 음악을 들어보면 대금이 아니라 퉁소로 연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 주자가 2인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음색이 다르고 에코 현상도 아닌 악기가 퉁소 대금 해 금의 3가지로 소리 나고 있어서 정해시와 김덕진 이외에 제 3의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음악이다. 37) 퉁소가 해금과 이중주로 연주되는 가운데 대금이 사이사이 퉁소의 음악을 이어주기도 하고 받쳐주기도 하면서 연주되는 점이 이채롭다. 37) 복원 및 재현연주를 담당했던 최여영(퉁소)도 같은 의견이었다. 196

205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2> 고악 봉장취 2) 연주자 콜럼비아고악단의 합주이고,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구 한성준이 연주하고 있다. 김덕진은 앞서 정해시, 심상건과 함께 연주한 봉황곡도 전하는 것으로 보아 봉장취를 연주 했던 중요한 명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당시 봉장취를 비롯한 경기시나위 의 명인으로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들의 음악적 내용은 산조, 봉장취, 그리고 시나 위 등에서 함께 공유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7

2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8. Columbia C2028( ) 고악 새타령 콜럼비아고악단 대금 정해시, 해금 김덕진, 장고 한성준 1) 음악적 내용 고악 새타령의 연주시간은 3분이고, 제작년도는 1940년이다. 자진모리 총 32장단의 계 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 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이 곡 역시 악기 편성은 대금과 해금이라 명시되어 있지 만 떠는 음이나 기타 시김새를 들어보면 투박한 울림이 대금이 아닌 퉁소로 연주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봉장취는 기악새타령이라고도 하였기 때문에 이 곡이 봉장취 계열의 곡이 라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그러므로 곡명을 고악 새타령이라고 하였으나 콜럼비아고악단의 고악 봉장취와 그 음악적 기반이 같고, 중모리와 자진모리 2개의 장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전술된 강태홍과 박종기의 봉장취나 해금산조 봉구황과 같이 하나의 음악 적 기반에 2개의 장단으로 연주되는 방식과 같다. 곡의 시작부분과 제 36장단부터 제 40 장단, 제 45장단부터 제 49장단까지 부분 부분 동일하게 진행되기도 하고 서로 엇갈리기 도 하면서 이중주의 멋을 잘 살리고 있다. 제 79장단부터는 도섭으로 자진모리장단을 흩트 리며 퉁소가 먼저 풀어주고 이어서 해금이, 다시 퉁소가 풀어주는 방식으로 연주되다가 끝 맺는다. 198

207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1> 고악 새타령 199

2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9. SLN-10635, 민1217(1LP) 한국고전무용곡집 봉장취굿거리 해경악회(피리 이충선, 해금 지영희, 대금 김광식, 가야금 성금연, 장고 지갑성) 1) 음악적 내용 봉장취굿거리의 총 연주시간은 3분 28초이고, 제작년도는 1960년대이다. 자진굿거리 총 85장단의 계면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1930년대 봉장취에는 편성되지 않은 피리가 들어가 있다. 시나위와 민요 합주 에서는 가야금, 대금, 해금, 피리, 장구 등으로 편성되기도 하지만 봉장취에서 피리가 사용 된 것으로는 유일한 음원이다. 물론 1910년 서사적인 내용의 아니리를 포함한 피리기러기 타령에서는 피리가 사용되었으나, 아니리가 포함되지 않은 1930년대의 순수 기악합주곡 봉장취에서는 피리가 사용되지 않았다. 1960년대는 산조와 시나위를 비롯하여 과거 명인 들의 기악 연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다. 그러므로 산조가 일반화 되어가 며 독주 기악곡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과거의 명인들이 합주로 봉장취를 시도해 본 것 으로 판단되는 곡이다. 시기적으로 1960년대는 산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민속기악 곡 중 산조만이 독립된 기악독주곡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까지 전통의 맥락에 서 살펴볼 때 독립된 연주곡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순수 기악곡으로는 산조이외에도 봉 장취와 시나위가 있었지만 안정적인 연주종목으로는 정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0

209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2> 봉장취굿거리 이 곡의 전반적인 특징은 후술될 장시간음반의 지영희와 성금연이 연주한 봉장취보다는 전술된 유성기음반의 음악적 특징과 더 닮아있다. 즉 동일한 선율을 병진행하기보다는 악기 제각각의 선율선을 나름대로 개성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즉흥성이 살아있는 곡이다. 이곡은 피리가 편성되어 연주되는 봉장취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곡이나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피리를 통해 곡 전체를 파악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제 22장단과 제 23장단을 지나면 전 반적인 속도를 몰아가면서 조금씩 빨라져서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흥겹게 연주된다. 201

2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연주자 봉장취굿거리는 해경악회(피리 이충선, 해금 지영희, 대금 김광식, 가야금 성금연, 장고 지갑성)에 의해 연주된 곡이다. 해경악회를 구성했던 연주자들은 그 당시 음반취입 뿐 아 니라 방송과 공연활동에서도 함께하였다. 지영희는 경기도 평택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가야금, 해금, 피리, 아쟁, 태평소, 장구 등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고, 무속악을 오선보에 채보하거나 신곡을 작곡하는 등 음악 전반에 관 하여 두루 통달한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영희의 해금산조는 지용구와 김덕진에게서 배 운 짧은 산조에 경기무악이 바탕이 되어 복잡한 기교까지 더해져서 한 차원 다른 산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영희가 사사한 스승이 해금산조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지용구와 경기시나위의 명인인 김덕진이라는 점과 지영희의 출신이 경기무악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음악적 바탕은 시나위나 산조에 많이 집중되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곡의 구성이나 진행을 볼 때 다른 봉장취 음원보다는 산조에 더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성금연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당대의 명인인 안기옥과 박상근, 신쾌동, 정정열 등에게서 가야금, 거문고, 판소리 등 다양한 종목의 음악들을 섭렵하였다. 지영희와 혼인한 이후 함께 연주, 방송출연, 음반 취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며 1968년에는 중요무형문화 재 제23호 가야금산조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충선은 경기 무악의 명인 이 덕재의 아들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레 경기 무악이 그의 음악적인 배경이 되었고,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송파산대놀이의 반주 악사로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그 의 피리 스승은 고재덕이다. 38) 김광식은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박종기에게 대금을 사사하 였다. 38) 정범태, 경서도 명인명창 (서울: 도서출판 깊은샘, 2005), 67-9쪽. 202

211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10. 킹스타- KSM-1105(10인치 1LP)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 아쟁 성금연, 해금 지영희 1) 음악적 내용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는 아쟁 성금연, 해금 지영희의 합주이고 장구 반주자는 미상이다. 연주시간은 13분 50초이고, 제작년도는 1960년경이다. 진양 31장단, 중모리 20장단, 굿 거리 48장단, 자진굿거리 61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장시간음반에 녹음되면서 연주시간이 13분으로 늘어났고, 장단구성도 진양, 중 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등 4개로 확대되었다. 이는 연주시간을 늘릴 수 있는 장시간 음반이라는 녹음의 환경이 주는 영향일수도 있으 나,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미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장단 틀로 하는 산조가 일반화 된 결과의 영향이라 판단된다. 진양은 해금과 아쟁이 거의 동일한 선율로 진행되고 제 30장단부터 아쟁이 피치카토로 연주되면서 중모리로 넘어간다. 중모리 제 1장단부터 제 3장단까지는 아쟁이 피치카토로 연주되어 시작되고 진양과 마찬가지로 해금과 아쟁은 동일한 진행이 많다. 진양과 중모리 는 주로 동일한 선율을 해금과 아쟁을 통해 음색과 음역을 달리하여 병주하는 윤곽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1930년대 유성기음반에 녹음되었던 봉장취와는 매우 다른 특징이 된다. 유성기음반의 봉장취는 2개 이상의 악기가 연주할 때에도 동일한 선율 을 악기음색과 음역만으로 구별하여 연주하는 예는 없기 때문이다. 굿거리에는 제 27장단 부터 아쟁이 피치카토를 연주하고 새울음 소리 선율형을 내면 해금이 다시 그 소리를 받고 또 다시 아쟁이 그 소리를 받으며 진행된다. 이 곡의 굿거리 부분의 처음은 중중모리에도 잘 맞아서 2개의 장단으로 구분 되는가 했지만,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자진굿거리와 맞아 서 굿거리, 자진굿거리 장단의 반주로 보았다. 굿거리에서는 아쟁의 피치카토 주법이 없고, 자진굿거리로 넘어가서 곡의 끝부분은 아쟁이 가야금처럼 피치카토 주법으로 빠르게 연주 되면서 마친다. 203

2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13> 봉장취 - 진양 204

213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4> 봉장취 - 중모리 205

2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15> 봉장취 - 굿거리 206

215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악보 16> 봉장취 - 자진굿거리 이 곡은 이전의 봉장취에는 편성된 바 없는 아쟁을 사용하였고, 장단의 구성을 진양부터 시작하여 현행의 산조와 같이 4개의 장단 틀을 가졌다는 점에서 전술된 봉장취와는 다르 다. 시기적으로 볼 때도 이 곡의 녹음은 1960년대에 이뤄진 것인데, 이시기는 산조가 일 반화되면서 연주되기 시작했으므로 진양부터 편성되는 장단 구성이 산조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1930년대에 녹음된 음원은 봉장취가 2개의 장단 구성을 넘지 않고 용어도 산 조와 봉장취가 동일하거나 혼용되어 사용되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면 산조는 정형화되어 독주음악으로 정착되어 봉장취와는 구별되었다. 그러므로 이 곡은 과거 봉장취를 전승받아 207

2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연주되었을 가능성과 반대로 산조의 영향을 받아 연주되었을 두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지 닌 곡으로도 생각된다. 이상 총 10종의 봉장취 음원을 통해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볼 수 있다. 봉장취는 전 곡을 통해 전형적인 계면조로 진행된다. 청의 이동은 독주로 연주되는 경우 에만 a, e', d'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합주의 경우에는 거의 a에 고정되어 있다. 봉장취의 악기 편성은 정해진 바 없이 어떠한 악기로든지 편성이 가능하지만, 전해지는 음원들을 보면 가장 애용된 악기는 퉁소와 대금, 해금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성기음반에서 는 퉁소가 풍각쟁이의 음악을 대표하며 독주로도 연주되고, 해금, 가야금과 함께 합주되었 지만, 장시간음반에서는 퉁소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장시간음반에서는 유성기음반에 는 없던 아쟁이 해금과 함께 봉장취를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역시 유성기음반에서의 봉장 취의 합주악기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피리도 해금, 대금, 가야금 등의 악기와 합주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의 악기 구성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즉 유성기음 반에서는 장구 반주와 함께 3개를 넘지 않는 악기로 편성되었다면, 장시간음반에서는 장구 반주와 함께 3개 이상의 악기로 편성되거나, 아쟁과 같이 음량이 크고 표현력이 강한 악기 가 사용되어 봉장취의 악기 구성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유성기음반에서 보이는 봉장취의 장단 구성은 주로 한 개의 장단으로 연주되거나 2개의 장단이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봉장취 음악에서 장단의 구성이나 변화가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장시간음반에서는 진양, 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등 4개의 장단이 느린 것부터 점차로 빨라지는 장단 구성을 갖기 때문에 장단의 속도에 따 른 변화도 봉장취의 음악적 내용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시간음반의 봉장취에서는 자진굿거리가 사용되었는데, 이 장단은 빠른 4박자로 자진모리와 유사하다. 여기서 자진굿거리는 유성기 음반의 자진모리를 대신하여 빠른 4박자 의 장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무속음악의 장단을 설명하는 음반에서 무속굿거리를 봉장취라고 표기한 것 39) 으로 보아 빠른 4박자의 봉장취는 장시간음반 시기에 는 자진모리보다 자진굿거리를 더 애용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이후가 되면 봉장취와 음악적인 내용상 유사한 산조는 일반화되면서 독주곡으로 연주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자 진굿거리가 봉장취의 장단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봉장취와 산조를 구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산조에는 사용되지 않는 빠른 4박자의 장단인 자진굿거리로 봉장취를 연주했을 것이라는 점 39) 각주 21) 참조. 208

217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산조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 틀을 기본으 로 하는 독주곡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즉흥성을 바탕에 두고 연주되던 봉장취와 시나위는 서로간에 경계가 모호해져서 고정적인 장단틀을 갖지 못한 것이라고도 판단된다. 1930년대 유성기음반에 수록된 음원의 봉장취에는 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등의 장단이 사용되었 고, 1960년대 해경악회의 연주에는 자진굿거리, 비슷한 시기의 지영희, 성금연 연주에는 굿 거리와 자진굿거리 장단이 사용되었다. 1930년대의 봉장취는 무속보다는 판소리나 산조에 사용되는 장단을 사용하였지만, 1960년대와 1980년대의 봉장취에는 무속음악에 사용되는 장단을 차용하고 있어서 이 시기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봉장취는 1930년대의 것과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봉장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민속 기악곡인 산조, 시나위, 무속의 기악반주음악 등과 봉장취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나타난 결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봉장취를 연주한 연주자들은 경기나 전라, 충청 등 어느 한 지역에 집중 되어 있지 않고 광범위한 출신지역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당대의 유명 명인에게 사사했 거나 천부적으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연주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들 연주자들이 공유했던 음악적인 배경은 그들이 타고난 명인이면서 두루 여러 음악들을 섭렵했던 성향이 강했고, 이러한 특성은 곧 봉장취 산조 시나위 같은 음악을 창출할 밑거 름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Ⅳ. 결 론 봉장취는 조선조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하던 풍각쟁이나 창우집단에 의해서 연주되 던 전통이 있었음에도 현재는 연주와 전승이 단절되고,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음원으 로만 전해지는 음악이다. 유성기음반의 봉장취는 총 13여종이 전해지나 본고에서는 순수 기악곡으로서의 비중이 큰 8종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유성기음반의 봉장취는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행한다. 청의 이동은 독주로 연주되는 경우에만 a, e', d'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합 주의 경우에는 거의 a에 고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성기음반의 봉장취는 과거 풍각쟁 이가 애용하였던 퉁소 독주를 비롯하여 퉁소, 가야금, 해금, 대금 등의 악기가 2~3개씩 편성되어 연주되었고, 장단은 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등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9

2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장시간음반의 봉장취는 총 6종이 전해지나 본고에서는 2종을 대상으로 그 음악적 특징 을 살펴보았다. 장시간음반의 봉장취는 유성기음반의 봉장취와 마찬가지로 굵게 떠는 e와 기본 청이 되는 a, 그리고 꺾는 시김새를 갖는 b의 3음이 기본이 되는 계면조 안에서 진 행한다. 장시간음반에서는 퉁소가 사라진 대신 아쟁과 피리가 추가되면서 사용 악기가 아 쟁,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로 확대되었고, 장단은 진양, 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등 빠르기에 따라 구성되어 곡의 형식을 지배하였다. 또한 자진굿거리는 빠른 4박자의 장단으 로 유성기음반의 자진모리를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장시간음반의 봉장취는 유성기음반의 봉장취에서 사용되던 장단이나 악기 편 성과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봉장취는 점차로 연주되지 않다가 현재는 전승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성기음반 시절 봉장취의 대표 악기인 퉁소가 현재는 더 이상 연주되지 않고 단절되었으며, 아쟁과 같은 시나위의 대표 악기가 봉장취를 연주하 게 됨으로서 봉장취 고유의 악기 편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한 장시 간음반 시절이 되어서는 봉장취가 굿거리나 자진굿거리와 같은 시나위나 무속기악곡에서 사 용되는 장단으로 연주됨에 따라 이들 음악과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봉장취의 연주가 단절 되게 된 이유라고 본다. 또한 봉장취와 음악적 기반이 같은 산조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장단 틀로 하여 기악독주곡으로 정착되는 한편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활발히 연주되고 있지만, 즉흥성이 바탕된 연주전통을 따르던 봉장취는 시나위나 민속기악곡과 충 돌하게 되면서 기악합주곡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점차 연주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10

219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참고문헌> 구수정. 봉장취 음악에 관한 고찰: 김덕진의 해금 가락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김혜련. 강태홍 가야금 봉장취에 관한 연구: 박종기 대금 봉장취와 비교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안희정. 봉장취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귀영. 김덕진의 산조 합주 분석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한국민속학 제11호. 서울: 민속학회, 이보형.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한국음반학 제10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유동초의 생애와 예술. 한국악기학 제1집. 서울: 한국퉁소연구회, 이진원. 유동초 퉁소산조의 선율분석: 중모리를 중심으로. 한국음반학 제2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이진원. 정해시 퉁소산조 연구. 한국음반학 제5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이진원.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성. 한국음반학 제11호. 서울: 한국고 음반연구회, 이진원.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서울: 민속원, 장휘주. 봉장취 연구;유성기음반에 취입된 봉장취를 대상으로. 한국음반학 제4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장휘주. 허튼가락 봉장취의 대위선율 유형: 2성 대위를 중심으로. 한국음반학 제13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허시라. 지용구의 음악활동 및 초기 해금산조 창제의 음악사적 고찰. 서울: 한국예술 종합학교 예술전문사 학위논문,

2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Research on Bongjanchwi passed down on the SP record and LP record Ban, Hye Sung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Bongjanchwi is evaluated as a music that had been frequently performed until the 1960's and that had an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Sanjo music. However, the performance of Bongjanchwi has now died out and the reality is that there is no musician nor informant to ascertain the form of the music of the past. This paper has its priority in examining the musical traits of the overall sound sources of Bongjangchwi that has passed down on the SP record and LP record found. Next, this paper also examines the distinctive feature between each of the sound sources that has been passed down on the SP record and the LP record. Bongjangchwi is carried out with a typical gyemyunjo through every song. When performed as a solo, chung freely moves to a, e', d' and when performed as a ensemble, chung is mostly fixed to a. Bongjangchwi has no fixed instrumental formation, being able to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 However, according to the sound sources passed down, tungso, daegeum, and haegeum seemed to be the favorites. Furthermore, tungso representing the pung gakjaeng i, played both as a solo and as a ensemble together with haegeum and gayageum on the SP record. However, the tungso is no further used on the LP record. On the LP record, ajaeng which has not been seen on the SP record starts to perform the bongjangchwi with haegeum. Also piri forms an ensemble with haegeum, daegeum, gayageum etc. The composition of the jangdan of bongjangchwi seen on the SP record uses 1~2 jangdans or uses 2 jangdans together. The jangdans used include jungmori, jajinmori, ŏtmori, etc. Thus the composition or the change of the jangdan did not have an effect on the musical contents of the bongjangchwi. However, in the case of LP records, the 212

221 Research on Bongjanchwi passed down on the SP record and LP record jangdan composition had four jangdans including Jinyang, jungmori, gudgŏri, and jajingudgŏri. These jangdans were played in a sequence that started from the slowest one gradually accelerating to the fastest one. Therefore the change of the jangdan's speed can be regarded as an influencing factor on the musical contents of the bongjangchwi. On the other hand, the performing artists of bongjangchwi had its origins from various regions, not concentrated on one region such as Gyeonggi, Jeolla, or Chungcheong. In addition, these artists were mostly pupils of the famous masters of the time or had outstanding natural talent on music.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these artists shared a musical background of most being an outstanding master and of having a tendency to range over various musical fields. It seems that these characteristics later served as a found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some music genres such as bongjangchwi, sanjo, and sinawi. Keywords : Bongjanchwi, pung gakjaeng i, Changwoo group, LP record, SP record 213

222

223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 <영산회상>에 기하여 - 전 인 평* 40) <국문초록> 아시아 지역에는 느린 속도로 시작하여 중간 속도를 거쳐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세틀형식이 많이 있다. 이 세틀 형식은 모두 변주 형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산 회상>의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는 모두 <상영산>의 변주곡으로 보고 있다. 중국 음악에서는 느린 속도 - 중간 속도 - 빠른 속도를 나타내는 용어 로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는데 만판( 慢 板 )-중판( 中 板 )-원판( 原 板 )(또는 三 板 - 二 板 - 頭 板 )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원판( 原 板 )은 원래의 주제라는 뜻이고 두판( 頭 板 ) 은 제일 먼저 나온 주제라는 뜻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에서 짧고 단순한 것을 주제이다. 이것을 원판( 原 板, First Level,) 또는 두판( 頭 板 ) 이라고 한다. 주제에 간음을 넣어 리듬 단위의 길이 가 길어진 것을 중판( 中 板, Second Level)이라 한다. 연주할 때에는 주제보다 앞에 놓인다. 제1변주보다 간음을 더 넣어 박수가 늘어나면 삼판( 三 板, Third Level)이 라고 한다. 연주할 때에는 앞의 제1변주 앞에 놓인다. 이와 같이 주제 선율에 간음을 넣어 확장하여 변주를 만드는 현상은 중국음악, 태국음악, 캄보디아 음악, 인도네시아 음악 등에 공통적으로 보인다. 또한 간음을 넣어 속도가 느려진 변주곡은 항상 주제 앞에 연주한다. 놓는다. 즉 제1변주는 주제 앞에, 제2변주는 제1변주 앞에 놓인다. 다른 나라의 세틀 형식 변주 이론을 영산회상에 적용해 보면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은 <가락덜이>의 변주곡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상영 산>이 주제이고 <중영산> <세령산> <가락덜이>는 <상영산>의 변주 라는 기존 연구 와 상반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한국 <영산회상>만이 지 니는 특수 상황인지는 앞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핵심어: 세틀형식, 속도, 딸라, 타오형식, 나탑, 절주, 장단, 영산회상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아시아음악회 회장 215

2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목 차 Ⅰ. 머리말: 한국의 <영산회상> Ⅱ. 인도 음악의 세틀 형식 Ⅲ. 인도네시아 음악의 세틀 형식 Ⅳ. 태국 음악의 세틀 형식 Ⅴ. 캄보디아 음악의 세틀 형식 Ⅵ. 중국 남부 강남사죽의 세틀 형식 Ⅶ. 맺음말 Ⅰ. 머리말: 한국의 <영산회상> <영산회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악곡이다. 이 음악은 국악 관계 중고교에서 필수적 으로 배우고 대학 입시의 중요한 시험곡이다. 졸업하고 전문 악단 입단 시험에서도 중요하 게 다루는 곡이다. 또한 문인음악으로써 선비 사회에서 선비들이 서로 교유하면서 즐기던 음악이었다. 선비들은 영산회상을 즐기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정인심( 正 人 心 )의 음악으 로 거문고로 타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음악이기도 하다. 세틀 형식이란 느린 속도, 중간 속도, 빠른 속도의 음악이 한 틀을 이루는 형식을 말한다. 세틀형식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중요한 형식이다. <영산회상>과 <산조>가 대표적인 것이다. 필자는 아시아 음악을 연구하다가 우리나라 음악이 고대로 올라갈수록 주변국과 많은 교 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음악 양상 중에 많은 부분이 외국 음악과의 접 촉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주변국의 세틀형식 이론과 우리나라 이론이 다 르게 적용되어 흥미로웠다. 216

225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악보 1> 영산회상의 변주 선율(<상영산> <중영산> <가락덜이>) 1) 앞의 악보에서 보듯이 <가락덜이>의 선율이 가장 단순하고 여기에 간음을 넣어 <잔영 산>을 만들고 가락을 더 넣어 <중영산>을 만든다. <상영산>은 변주곡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다. 이처럼 <영산회상>은 하나의 선율이 기초가 되어 간음을 넣어 더욱 복잡한 변주곡 을 만들고 있다. 1) 이혜구, 영산회상, 한국음악논집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5), 90-1쪽. 217

2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2> 동대금보 (1813)의 <영산회산> 장단 a) <만영산> <중영산> <삭영산> 1장(20박 장단) 雙 ( 鼓 ) 鞭 鼓 鞭 (6:4:4:6) b) <삭영산> 2~5장 <가락드리>(10박 장단) 雙 ( 鼓 ) 鞭 鼓 鞭 (3:2:2:3) c) <삭영산> 2~5장 <가락드리>(6박 장단) 雙 鞭 鼓 鞭 (2:1:1:2) <만 영 산> 6: 4: 4: 6 2) <삭 영 산> 3: 2: 2: 3 <가락드리> 2: 1: 1: 2 앞에서 보인 장단의 장구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영산은 쌍편고편( 雙 鞭 鼓 鞭 ) 의 네 장구점이 각각 6박 4박 4박 6박으로 배열되어 있다. <삭영산>도 쌍편고편의 네 장 구점이 각각 3박 2박 2박 3박의 배열이고 <가락드리>도 네 장구점을 2박 1박 1박 2박 으로 배열한 것이다. 이처럼 <영산회상>의 장단도 쌍편고편 네 장구점을 기초로 네 장구점의 길이만 변화시 켜 다른 장단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영산회상>의 <상영산> <세영산> <가락덜이>는 모두 하나 2) 이혜구는 <상영산> 장단을 로 정리하였으나 이곳에서는 장구점을 중심으로 살피기 위하여 으로 정리하였다. 졸저, <영산회상> 장단과 산조 장단, 한국음악 장단의 역사와 논리 (서울: 중앙대학교출판부, 2004), 493쪽. 218

227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의 선율을 기초로 변주하여 여러 선율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선율뿐만 아니라 장구 장단 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 기존 연구는 <상영산>이 주제이고 나머지 <세영산> <가락드리>가 변주곡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나라 이론을 한국음악에 적용시켜 보면 가락덜이가 주제이고 <세영산> <중영 산> <상영산>이 변주곡이 된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세틀 음악 형식을 살펴보고 그 이론으로 <영산회상>을 비추어 보겠 다. 이를 위하여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중국의 강남사죽 음악의 세틀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음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해주고 아시아 음악 속에서 한국음악의 보편성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Ⅱ. 인도 음악의 세틀 형식 먼저 인도의 고대 연극 문헌 나티야 사스트라(Natya Sastra) 에 나오는 인도의 고대 음 악의 세틀 음악 형식을 살펴보겠다. 나티야 사스트라 는 기원 전 2세기의 인도 고전 무용 음악 연극에 관한 문헌이다. 이 책은 고대 인도의 공연예술에 관한 문헌인데, 연극에서의 음 악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음악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나티야 사스트라 에 의하면 장단(tala) 3) 은 다음과 같이 세틀로 분화한다고 설명하고 있 다. 다음에 챠빠뿌따(capaputa) 딸라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다. 챠빠뿌따(capaputa)는 뜨라야스라(tryasra) 계통인데 긴 음 하나, 두 개의 짧은 음, 그 리고 긴 음 하나로 구성 한다 4). 즉 2: 1: 1: 2의 구성이다. 다음은 장단 관련 나티야 사스트라 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Tryasra and Caturasra were the two principal Talas. The Tryasra was named Cancatputa, having the measure of Ga(i.e. Guru - two matras), La(i.e. Laghu - one 3) 인도음악 장단에 관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졸저, 영산회상 장단과 인도의 딸라, 한국음악 장단의 역사와 논리 (서울: 중앙대학교출판부, 2004), 쪽. 4) The Capaputa which is tryasra consists of one long syllable, followed by two short syllables and the last one is a long syllable. Bharatamuni, The Natya Sastra, p417. (31, 10-14) 219

22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matras), La and Ga and the Caturasra, Cancatputa having the measure of Ga, Ga, La and Pluta(elongated i.e. three matras). Eachof these two was again three-fold - Ekakala, Dvikala and Catuskala. In the case of Cancatputa, Ekakala was of six matras, Dvikala of twelve Matras and Catuskala of twentyfour Matras ; while in the case of Cancatputa, Ekakala was of eight matras, Dvikala of sixteen Matras and Catuskala of thirtytwo Matras. G. H. Tarlekar, Studies in the Natyasastra, p Kala is to be understood to be of three varieties. The wise base thus difference on the three Margas (i. e. Panis). In the Citra Procedure there are two Matras, in the Vrtti Procedure there are four Matras, in Daksina Procedure there are eight Matras. Bharatamuni, The Natya Sastra, p (31, 4-6) The three vrttis(prose passage) styles of procedure to be mainly considered are three. (a) Citra (Variegated), Vrtti(Simple movement) and Daksina(dextrous). For the determination of their characters we have insrumental music, timemeasure, Laya(Tempo), Giti(rhythm), Yati(Pause) and Graha Marga(Way of beginning). In the Cittra, the Magadhi is the Giti, the instrumental music becomes consice without being elaborate, the unit of tala is one kala, the Laya is quick(druta)and the Yati(Pause) is Sama Grahas are predominant. In the Vrtti, the Sambhavita is the Giti, the instrumental for music is Vina, the Laya is Madhya(medium), the Yati is Srotogata (flowing like a current). the Sama. Graha Margas are prepoderant. In the Daksina, the Giti is Pruthula, the unit of time measure is four kalas, the Laya is Vilambita(Slow), the Yati is Gopuccha(Cow's tail) and Atita Graha Margas are predominant. Bharatamuni, The Natya Sastra, pp (29, ) 마뜨라가 6인 것을 에까깔라 비디(ekakala vidhi)라 하고, 마뜨라가 12개 인 것은 드비 깔라 비디(dvikala vidhi)라 하고, 마뜨라가 24개인 것은 찻뚜스깔라비디(catuskala vidhi)라 한다. 5) 마뜨라가 둘인 에까깔라 비디는 빠른속도이고 씨뜨라 마르가(citra 5) The margas of rhythm were three - Citra, Vrtti and Daksina ; in the first, thekala was of two Matras (Matra being the time required for the utterrance of five short syllables), in Vrtti of four matras, andin Daksina of eight Matras. Thus the Kala was three-fold. G. H. Tarlekar, Studies in the Natyasastra, Delhi: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Private Limited, p

229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marga)라고 한다. 마뜨라가 네 개로 분화한 것을 드비깔라 비디(dvikala vidhi)라 하고, 이것은 보통의 속도이고, 브르띠 마르가(vrtti marga)라고 한다. 마뜨라가 여덟 개로 분화 한 것을 찻뚜스깔라 비디(catuskala vidhi)라 하고, 느린 속도이며, 다끄씨나 마르가 (daksina marga)라고 한다. 6) 이처럼 챠빠뿌따(capaputa)는 6마뜨라 - 12마뜨라 - 32마뜨라의 세틀로 리듬 변화를 보인다. 6마뜨라는 빠른 재1단계의 드루타(druta)이고, 12마뜨라는 제2단계의 마디야 (madya)이고, 24마뜨라는 느린 세틀의 빌람비타(vilambita)이다. 이처럼 인도 고대 음악 문헌 나띠야 샤스뜨라 의 딸라 이론에는 속도와 관련한 세틀 변화 형식이 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정간보( 井 間 譜 )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한 칸은 한 박 을 말한다. <악보 3> 챤챠뜨뿌따(cancatputa)의 세 가지 분화 a) 제1단계(druta); 에까깔라 비디(6 matra) sa ta sa ta b) 제2단계(madhya); 드비깔라 비디(12 matra) 7) ni sa ta sa ni sam 6) The three vrttis(prose passage) styles of procedure to be mainly considered are three. (a) Citra (Variegated), Vrtti(Simple movement) and Daksina(dextrous). For the determination of their characters we have insrumental music, timemeasure, Laya(Tempo), Giti(rhythm), Yati(Pause) and Graha Marga(Way of beginning). In the Cittra, the Magadhi is the Giti, the instrumental music becomes consice without being elaborate, the unit of tala is one kala, the Laya is quick(druta) and the Yati(Pause) is Sama. Anagata Grahas are predominant. In the Vrtti, the Sambhavita is the Giti, the instrumental for music is Vina, the Laya is Madhya(medium), the Yati is Srotogata(flowing like a current). the Sama. Anagata Graha Margas are prepoderant. In the Daksina, the Giti is Pruthula, the unit of time measure is four kalas, the Laya is Vilambita(Slow), the Yati is Gopuccha(Cow's tail) and Atita Graha Margas are predominant. Bharatamuni, The Natya Sastra, pp ) Mukund Lath, A Study of Dattilam -A Treatise on the Sacred Music of Ancient India-, New Delhi: IMPEX INDIA, 1978), p

2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c) 제3단계(vialmbit); 찻뚜스깔라 비디(24 matra) 8) a ni vi sa a ta vi sa a ni vi sam 나티야 사스트라 는 기원전 2세기의 문헌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 장단의 세틀 변화를 설명하는 어느 문헌보다도 오랜 것이다. 이처럼 인도음악 세틀 형식의 장단은 뼈대음으로 구성된 주제에 간음을 넣어 느린 제1 변주곡을 만들고 연주 순서는 제1변주곡을 주제 앞에 연주한다. 다시 제2변주곡을 만들면 이 변주곡은 제1변주곡의 앞에 연주한다. Ⅲ. 인도네시아 음악의 세틀 형식 인도네시아에서는 속도 변화를 이라마(Irama)라고 한다. 그리고 리듬 변화의 주기를 곤 간(gongan)이라 한다. 곤간은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단위로, 공(gong)으로 주기의 끝을 표 시한다. 9) 곤간(gongan) 단위는 공(gong)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공으로 표시하는 단위는 서로 연 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의 고리에는 항상 공이 울린다. 이 공은 한 주기의 끝을 나타내기 도 하지만, 또한 다른 주기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곤간의 확장은 각 박이 둘로 나누어질 때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약박이 나뉘어 약-강 이 되고 다시 강박이 나뉘어 약-강이 된다 10). 이처럼 분화되더라도 약-강 악센트는 계속 유지된다. 8) Mukund Lath, A Study of Dattilam -A Treatise on the Sacred Music of Ancient India-, p338. 9) Judith Becker, Towards a Theory of Central Javanese Gamelan Gongan, in The Traditional Music in Modern Jav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0, Appendix Ⅳ. 10) 인도네시아에서는 첫 박을 약박으로 제2박을 강박이다. 222

231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다음 악보는 께툭(ketuk), 께농(kenong), 공(gong)이 음악에서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보 인 것이다. t는 께툭을 나타내고, Kn은 께농을 G는 공을 나타낸다. <악보 4> 가믈란 선율의 공의 연주 Kn t t Kn t p t Kn t p t Kn t p t G 이 악보를 보면 공은 전곡 32박의 마지막 박에 울려 한 단락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다음에는 가믈란 음악의 세틀 속도 변화를 실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다음은 가믈란의 선율이 확장되는 가를 보인 것이다. 가운데 있는 것이 단순한 선율이고 여기에 간음 넣으 면 중간 선율이 되고 여기에 간음을 더 넣으면 세 번째 원의 복잡한 선율이 된다. 가운데 있는 선율(제1단계, irama 1)은 란짜란(lancaran)이라고 부르는데 장단의 단위 주기가 8박이고, 둘째 원의 선율(제2단계, irama 2)은 꺼타왕(ketawang)이라고 부르는데 장단 주기가 16박 이고, 셋째 원의 선율(제3단계, irama 3)은 라드랑(ladrang)이라고 부 르는데 장단 주기가 32박 이다 11). 11) 악보의 숫자 하나하나는 1박의 길이를 갖는다. 인도네시아 악보는 율자보처럼 음의 길이를 적지 않 고 음 높이만 적는다. 이것은 모든 음의 길이가 동일한 등시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223

2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표 1> 인도네시아 가믈란의 리듬 세틀 분화 12) 이처럼 1단계 음악의 4박은 2단계에서 8박으로 3단계에서는 16박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확장시켜 만든 변주곡은 연주 순서에서는 주제보다 앞에 연주한다. 다시 제2변주곡을 만들 면 이 변주곡은 제1변주곡 앞에 연주한다. 다음은 죡자카르타 양식(Yogyakarta style)의 라드랑(Ladrang Pangkur) 의 뼈대음 (balungan)이다. 이것을 가지고 실제로 연주할 때의 세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3) 1단계의 4박은 2단계에서 8박으로 세틀에서 16박으로 늘어난다. 12) Satanley Sadie,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 London: Macmillian Publishers Limited, 1090) vol. 9, p 이 표에서 숫자는 음을 표시한 것이다. 6음계의 선 율인데 가장 낮은 음을 1로 표시하고 순차적으로 가장 높은 음은 6으로 표시한다. 13) Judith Becker, Ethonomusicology, A Southeast Asian Musical Process: Tai Thao and Javanese Irama, Sep. p

233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표 2> 인도네시아 이라마(Irama)의 세틀 변화 14) a) lancaran (m=60) t_ tn t _ tnt tn t_ tnt tn p p p g b) Ketawang (m=30) _ t _ t _ n _ t _ t n p p g c) ladrang (tempo 1: m=60, tempo 2: m=30) _ t _ t _ n _ t _ t n p _ t _ t _ n _ t _ t n p p g 제3단계 라드랑(ladrang)은 주기가 32박이고, 제2단계 꺼타왕(ketawang)은 주기가 16 박이고, 제1단계 란짜란(lancaran)은 주기가 8박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인도네시아 가믈란의 리듬은 세틀 변화를 보이면 각각은 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음악도 뼈대음으로 구성된 주제에 간음을 넣어 느린 변주곡을 만들고 새로 만든 변주곡을 앞에 연주한다. 다시 제2변주곡을 만들면 이 곡은 제1변주곡의 앞에 연주한다. Ⅳ. 태국 음악의 세틀 형식 태국 리듬 구조는 타오(thao form) 형식이라고 한다. 태국의 타오 형식도 세틀 변화를 보인다. 태국 음악의 리듬은 보통 똔(thon)과 람마나(rammana)라는 북이 담당한다. 기본적인 장단으로 느린 삼찬(samchan)과 중간 속도의 송찬(songchan) 그리고 빠른 찬디오(chan 14) Ibid 1980:

2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dio)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짧은 것을 확대하여 긴 것을 만든 것이다. 다음 악보에서 t는 ting을 나타내고, th은 thang을 나타내고 j는 jong을, ja는 ja를 나타낸 다. 앞의 것은 나탑 프로카이(nathap prokai)이고 뒤의 것은 나탑 송마이(nathap songmai) 이다. <악보 5> 태국 타오(thao)의 세 가지 속도 15) 15) Terry E. Miller and Sean Williams, Southeast Asia,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 vol. 4, New York: Garland Publishing, Inc., 1998, p

235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태국 음악의 세틀 형식은 느린 삼찬(samchan), 제2단계 중간 속도의 송찬(songchan), 제1단계 빠른 찬디오(chan dio)이다. 이것이 더 확장되면 나탑 프로카이(nathap prokai) 는 64박-32박-16박의 구조가 된다. 나탑 송마이(nathap songmai)는 느린 것이 32박 한 주기이고 중간 속도의 음악은 16박이 한 주기이고 빠른 음악의 한 장단 주기는 8박 단위 가 된다. 본 연구의 진행 중에 태국의 타오형식(thao form)이 중국에서 기원하였을 것이라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어에서 투( 套 )는 타오(tao)로 발음하고 set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 식당에서 하나씩 주문하지 않고 식당에서 미리 정하여 제공하는 정식( 定 食 ) 코 스 요리를 타오차이(tao chai, 套 菜 )라고 한다. 중국에서 여러 곡을 모아서 하나의 곡으로 만드는 모음곡을 타오취(tao qu, 套 曲 )라고 한다. 중국 음악의 느린 것은 삼판( 三 板, third level)이라 하고, 중간 속도는 이판( 二 板, second level) 빠른 것은 원판( 原 板 first level)이라고 한다. 태국에서 삼찬(sam chan; third level), 중간 속도의 것은 송찬(song chan; second level), 빠른 것은 찬디오(Chan dio; first level)라고 한다. 중국과 태국의 단계마다 부르는 이름에 숫자를 사용한다는 점, 그 순서는 모두 느린 것 부터 3-2-1로 연속된다는 점, 느린 것에 모두 3을 쓰고 숫자가 적어질수록 빨라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태국의 타오(tao)는 중국어 套 (tao)와 관련이 있고, 중국음악 의 영향일 것으로 사료된다 16). 이처럼 태국음악도 뼈대음으로 구성된 주제에 간음을 넣어 제1변주곡을 만들고 제1변주 곡은 주제 앞에 연주한다. 다시 간음을 넣어 제2변주곡을 만들면 제2변주곡은 제1변주곡의 앞에 연주한다. 16) 이러한 내용을 중국 천주의 ICTM 학술회의에서 발표하였던 바,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러한 연구는 중국음악과 태국음악을 동시에 연구하여야 알 수 있는 것이기에 태국학자들이 중국 음 악에 대한 이해가 없어 이해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27

2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Ⅳ. 캄보디아 음악의 세틀 형식 캄보디아의 속도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을 느린 것부터 빠른 순서로 배열 하면 베이 초안(bey choan; 한 리듬 주기 32박) - 제2단계 피 초안(pi choan; 한 리듬 주기 16박), 제1단계 무오이 초안(muoy choan; 리듬 주기 8박)의 순서이다. 캄보디아 장단 이름은 우리나라 산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속도와 리듬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토치 욤 무오이 초안(Toch Yomm Muoy Choan)에서 토치 욤은 곡 이름 이고 무오이 초안은 리듬형 이름이다. 그래서 이 음악의 한 리듬형은 8박이고 속도는 빠 르고 곡 이름은 토치 욤이다 라는 뜻이다. 17) 캄보디아의 장단 이론은 태국의 장단 이론과 동일하다. 18) 태국 장단에 관한 것은 필자 의 논문 동남아시아음악의 세틀 형식 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19) 다음은 악곡이 세틀로 속도가 변화하면서 어떻게 분화하는가를 보인 것이다. 제1단계 무 오이 초안은 제2단계 피초안의 1/2 길이이다. 제3단계 베이초안은 피초안의 1/2이다. 속 도를 살펴보면, 제2단계는 제1단계보다 2배 느리고, 제3단계보다 제1단계보다 4배 느리 다. 다음에 세틀 변화를 실제 악보로 보인다. 17) 이런 양상은 한국 음악에도 보인다. 진양조라는 말은 장단이름이면서 악곡이름이고 또한 속도를 나 타내는 말이다. 18) Rhythm and meter in both Thai and Khmer musics on the same fundamental principles. Terry E. Miller and Sam-ang Sam, "The Classical Musics of Cambodia and Thailand," Ethnomusicology 39(2): 이렇게 태국과 캄보디아의 음악 이 관련성을 맺은 것은 태국에서 캄보디아 음악을 대거 수입하였기 때문이다. 태국은 역사 상 여 러 번 크메르 음악을 받아들였다. 19) Chun InPyong, The Triple Musical Form of southeast Asian Music and Korean Music, Asian Musicology Seoul: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2003, Vol. p3. 이 글의 한글 논문 은 실크로드음악과 한국음악 (서울: 아시아음악학회, 2001) 쪽 참조. 228

237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악보 6> 캄보디아 음악의 세틀 칭 연주법과 캄보디아 체베아 스록 몬(Chvea Srok Mon)의 처음 부분 세틀 변화 20) 20) Terry E. Miller and Sean Williams, Southeast Asia,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 vol. 4, New York: Garland Publishing, Inc., 1998, p182. 캄보디아 체베아 스록 몬 (Chvea Srok Mon)의 처음 부분 세틀 변화. 앞의 책, 182쪽. 229

2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처럼 캄보디아음악도 뼈대음으로 구성된 주제에 간음을 넣어 제1변주곡을 만들고 제1 변주곡은 주제 앞에 연주한다. 다시 제2변주곡을 만들면 제2변주곡은 제1변주곡의 앞에 연 주한다. Ⅴ. 중국 남부 강남사죽의 세틀 형식 중국에서 한국의 장단과 흡사한 것은 절주( 節 奏 ) 또는 판식( 板 式 )이다. 중국 음악에서 세틀 변화를 보이는 것은 많이 있지만 예로 강남사죽( 江 南 紗 竹 )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느린 만판( 慢 板 )은 4/4로 적고 느린 음악이다. 중간 속도의 중판( 中 板 )은 2/4로 적는다. 빠른 것은 원판( 原 板 )이라고 하는데, 1/4로 적는다 21). 원판의 1/4박자는 항상 빠른 속도로 연주한다. 이 빠른 것을 원판( 原 板 )이라 하는 것은 원판이 본 곡이고, 나머지는 변주곡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남사죽 중 유청랑( 柳 靑 娘 ) 22) 악보이다. <악보 7> 강남사죽 유청랑의 세틀 변화 21) 중국의 악보를 보면 서양음악 표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1/4박자가 나온다. 중국 전통음악 악보에서 1/4박자는 그 음악이 빠르다는 속도 기호로 사용한 것이다. 중국음악은 2/4는 중간 속도이고 4/4 는 느린 음악이다. 22) 중국에서는 이 음악을 매우 역사가 긴 곡이라 생각하고 있다. 당( 唐 ) 마익( 馮 翊 )의 계원총담( 桂 宛, 叢 談 )과 송( 宋 ) 왕약( 王 灼 )의 벽계만지 ( 碧 溪 漫 志 )에도 소개되어 있다. 沅 君, 中 國 古 典 戱 曲 硏 究 ( 台 北 : 學 藝 出 版 社, 중화민국 34년(1945)), 357쪽. 230

239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이처럼 중국 강남사죽 음악도 주제에 간음을 넣어 제1변주곡을 만들고 제1변주곡은 주 제 앞에 연주한다. 다시 제2변주곡을 만들면 제2변주곡은 제1변주곡의 앞에 연주한다. 즉, 원판의 변주곡인 중판은 원판의 앞에 연주하고, 중판의 변주 선율인 만판은 중판의 앞에 연주한다. Ⅶ. 맺음말 필자는 한국음악을 연구하다가 우리나라 음악이 고대로 올라갈수록 주변국과 많은 교류 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음악 양상 중에 많은 부분이 외국 음악과의 접촉 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주변국의 음악 연구에서 우리나라 음악이론과 다 른 나라 음악이론이 달라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다른 나라 음악이론을 적용하였을 때 다른 나라 이론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산회상>이다. 이 글에서는 주변국의 세틀 형식에 의한 변주곡 형식을 먼저 살펴보고 그 이론으로 영산 회상을 비추어 보았다. 주변국의 음악이론으로 <영산회상>을 해석해 보기 위한 것이다. <영산회상>의 선율은 처음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는데 <상영산> <중영산> <세영 산> <가락덜이>는 모두 <상영산>을 변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음악이 론에서는 가장 느린 음악이 주제가 아니고 가장 빠른 음악이 주제라고 한다. 이러한 이론 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음악에서는 속도를 나타 내는 말은 판식( 板 式 )이라고 한다.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는데 중요한 것으로는 만판( 慢 板 ) - 중판( 中 板 ) - 원판( 原 板 ), 삼판( 三 板 ) - 이판( 二 板 ) - 원판( 原 板 ), 만판( 慢 板 ) - 중판 ( 中 板 ) - 두판( 頭 板 )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원판( 原 板 )은 원래의 주제라는 뜻이고 두판( 頭 板 )은 제일 먼저 나온 주제라는 뜻이다. 이처럼 중국 음악의 세틀 형식은 세 번째 연주하는 것을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가장 느린 것은 삼찬(sam chan, third level), 중간 속도의 것은 송찬(song chan, second level), 빠른 것은 찬디오(chan dio, first level)라고 한다. 태국에서는 빠 른 찬디오가 주제이고 나머지 음악은 변주곡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인도네시 아에서도 발견된다. 이 여러 나라 음악은 같은 주제와 변주 형식으로 속도 변화를 보이고 있고 느린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주제는 빠른 것이다. 즉 주제를 변주시킬 경우에 느리게 만들고 이 느린 음악은 주제 앞에 놓인다. 그리고 다음 주제는 더 느리게 만들고 더 앞에 231

2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연주한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음악의 변주 관련 음악이론과 <영산회상>을 비교해 보면 유독 우리 나라의 <영산회상>만이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게 된다. 즉 우리나라 음악은 느린 것이 주제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다른 나라에서는 빠른 것을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 시아 음악의 장단과 선율은 하나가 속도에 따라서 기본틀을 유지하며 변화 한다 23). 이와 같은 주변국의 이론을 우리나라 <영산회상>에 대입해 보면, <영산회상>의 원곡은 가락덜이 이다. 그리고 장단의 원형은 6박 도드리장단이다. 앞에서 여러 나라의 변화 양상을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느린 곡, 중간 속도의 곡, 빠른 곡 중에서 빠른 것이 주제이고 다른 것은 변주곡이다. 그리고 빠른 음악이 변주되면 간음이 들어가면서 속도가 느려진다. 이 느려진 음악은 주제의 앞에 연주하고, 더 간음을 넣어 제2의 변주곡이 만들면 이 음악은 제1변주곡 앞에 연주한다. 이런 변주곡의 연주 순 서는 서양음악과 정반대의 것이다. 서양음악의 변주곡은 항상 주제 뒤에 놓인다. 이처럼 다른 나라 음악의 변주 이론으로 <영산회상>을 보면 <상영산> <중영산> <세영 산>의 주제는 <가락덜이>로 추정된다. 이것은 <영산회상>의 원곡은 <상영산>이고 나머지 는 변주곡이라는 기존 연구와 전면 배치되는 결론이다. 이처럼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보이 는 보편성이 오직 한국음악에서만 적용되지 않아 흥미롭다. 여러 지역의 세틀형식 중에서 오직 한국의 세틀형식 변주 이론만 다른 지역과 다른 이유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긴다. 23) 인도의 예를 들어보자. 16박 리듬을 띤딸(tintal)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느린속도 - 중간 속도 - 빠 른 속도로 연주한다. 그래서 느린 것을 새로 장단 이름을 붙이지 않고 느린 띤딸이라고 부른다. 우 리나라에서는 <상영산> <중영산> <가락덜이> 장단이 장구점 구성은 같고 각각의 음 길이가 달라진 다. 이 때에 각각 다른 이름을 붙인다. 인도식으로 <영산회상> 장단 이름을 붙여보면 느린 영산회 상 장단, 빠른 영산회상 장단 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32

241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참고문헌> 沅 君. 中 國 古 典 戱 曲 硏 究. 台 北 : 學 藝 出 版 社, 이혜구. 한국음악논집.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장단의 개념. 한국음악연구 제19집. 서울: 한국국악학회, 전인평. 봉래의( 鳳 倈 儀 )의 장단과 속도.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실크로드음악과 한국음악. 서울: 아시아음악학회, 아시아음악연구. 서울: 중앙대학교출판부, 한국음악장단의 역사와 논리. 서울: 중앙대학교출판부, Bharatamuni, The Natya Sastra, Delhi: Satgru Publications, no dated. Chun In Pyong, Indian Tala and Korean Tala, Asian Musicology, Seoul: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2002, Vol. 1., The Triple Musical Form of southeast Asian Music and Korean Music, Asian Musicology Seoul: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2003, Vol. 3. Diamond Group, Musical Instruments of the World. New York: Facts on the Publications, Judith Becker, 'Towards a Theory of Central Javanese Gamelan Gongan, in The Traditional Music in Modern Jav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0, Appendix Ⅳ. Judith Becker, A Southeast Asian Musical Process: Tai Thao and Javanese Irama, Ethonomusicology, 1980 Sep. Judith Becker, Ethonomusicology, A Southeast Asian Musical Process: Tai Thao and Javanese Irama, 1980 Sep. Mukund Lath, A Study of Dattilam -A Treatise on the Sacred Music of Ancient India-, New Delhi: IMPEX INDIA, Satanley Sadie.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 London: Macmillian Publishers Limitted, 1090) vol. 9. Terry E. Miller and Sam-ang Sam "The Classical Musics of Cambodia and Thailand," Ethnomusicology 39(2). Terry E. Miller and Sean Williams. Southeast Asia,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 vol. 4, New York: Garland Publishing, Inc.,

2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New Prospect of Triple Musicl Form - based on Yeongsanhoesang - Chun In-pyong (President of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As I studied and researched more about Korean traditional music, I have realized that there used to be a lot more cultural exchanges in between Korea and other countries around in the past time than the present. I also have acknowledged the fact that many of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have been influenced by the music of its neighbouring countries. For some of them, different point of view has been aplied on the theoretical analysis of its musical structures when it compared to that of the other surrounding countries. One can find these typical differences in analysis of Youngsanhoesang, for it has been distinguished in its analytic views compared to that - the music with same structure - of other countries around. The musical structure of Youngsanhoesang is a theme and variation. In this paper, I will examine the theoretical viewpoints and the ways of analyzing/classifying the music in same formats from other surrounding countries in order to compare it with that of Korea. The melodies and rhythms of each musical pieces will ben examined in depth. The melodies of Youngsanhwesang starts slow and proceeds faster beats. All the melodies that Sangyoungsan, Jungyoungsan, Seyoungsang and Garakdeoli are the variations of that of Sangyoungsan. In most of other countries, when the music is in the form of theme and variation, the fastest music - or melody - is theme and the rests are variations of it. This way of analyzing the musical form of theme and variation will be aplied in countries such as China, Indonesia, Thailand and India. The chinese term for tempo is panshi ( 板 式 ). There are also other terms such as manban ( 慢 板 ), zhongban ( 中 板 ), yuonban ( 原 板, yuon ban), samban ( 三 板 ), erban ( 二 板,) and touban ( 頭 板 ). Yuonban literally means the original theme and the term touban means the theme 234

243 밖에서 본 한국의 세틀형식 that appears the first. As we can find from the music forms and the terms that are used of China, the third theme is always the main theme. In Thailand, terms such as samchan (third level), songchan (second level) and chan dio (first level) are used to indicate each slow, medium and fast tempo. Chan dio is always the theme and the rests are the variations of it and the same cases are also found in Indonesia. All of these music are theme and variations, differ in their origins of countries, but same in the musical structure which it started slow and move to faster tempo where the theme melodies are always the fastest ones. In other words, when the variations are made from the theme melody, the music in slower tempi than its main theme are always placed ahead of it. As we can see from the analysis on the musical form of theme and variation from each countries, there are common logics to it. That is to say, the slower pieces are always the variations and the main theme is on fast tempo. Contrast to that, Korean Youngsanhoesang is analyzed differently, which is the piece in slow tempo is always the main theme and the variations are in faster tempo. One of the distinctive feature of the rhythm of Asian music is that one rhythmical pattern is transformed in many different shapes in accordance with the tempo of the piece. When compared and aplied in the analytical logics of the music of theme and variation from the countries around Korea, the main theme of Youngsanhoesang shuld be garakderi and the main beat(rhythm) should be doduri jangdan in six. This conclusion could confuse the readers for it is differ from the already known musical theories and analysis of Youngsanhoesang. Further studies and researches should be followed to find out the reason of differences in analyzing Korean Youngsanhoesang as a musical form of theme and variation with that of the other countries around. Key words : triple musical form, tempo, tala, tao form, rhythm, rhythmc mode, Youngsanhoesang 235

244

245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정간보( 井 間 譜 ) 1행( 行 ) 정간수( 井 間 數 )의 변천에 관한 연구* 24) 정 화 순** 25) <국문초록> 본 연구는 세종대 세조대 현행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간보( 井 間 譜 )의 역사적 변천에 대하여 세조대로부터 현행으로 직결시키기에는 시간적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위 1행 16정간6대강으로 이루어진 세조식 보법이 과연 어떤 과정 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중간 과정에 대하여 상고한 것이다. 그 표기 방식이 1행 2대강( 大 綱 ) 6대강 8정간( 井 間 )3대강 등으로 이루어짐으로 써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처음으로 보이는 양금신보 를 기존의 16정간6대강의 전 통에서 벗어난 효시로 간주하여, 그것을 기점으로 1948년 이전에 속하는 고악보 가 운데 정간 혹은 대강을 활용한 악보를 대상으로 그 정간 활용실태를 검토하여 보았 다. 그 결과, 양금신보 이후 1948년 간에 이루어진 현전 고악보는 대체로 1 양 금신보 의 전사(모방)와 변질 시기, 21행 1장단~다장단( 多 長 短 ) 시기, 31행 1장 단 정착 시기 등 3시기로 대별되어 나타남을 확인하게 되었다. 제1시기는 정간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 대강의 와해 시기로서 양 금신보 의 8정간3대강에 대강표시가 배제되어 정간과 대강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또 세로 길이가 정간에 상응하던 양금신보 6대강의 세로 길이가 균일하게 바뀌어 나타난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는 새로운 악곡이 대두됨에 따라 세로 길이가 균등한 1행 4대강법 외에 1행 24정간형 보법이나 1행 12정간과 14정 간의 혼용방법 등이 출현하는 등 새로운 기보 방식의 맹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제2시기에는 양금신보 로부터의 전사곡이 없어지고, 영산회상과 가곡이 규모가 * 이 논문은 학년도에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가 지원한 학술연구조성비(특별연구과제)에 의해 연구되었음 **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예술전공 교수 237

2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갖추어짐에 따라 매 1행의 정간 수는 일정하지만, 그 1행에 1장단~다장단이 표기 됨으로써 1행 다장단 방식이 출현하였다. 제3시기는 1행 1장단 정착 시기로서 매 1행의 정간 수가 대체로 1행 정간으로 함축되어 나타나고, 그 1행의 정간 수는 바로 1장단의 소요 정간 수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외로 방산한씨금보 에서는 별곡 중 상령산~가락제지를 제외한 나머지 악곡들의 표기에는 여전히 종래의 1행 다장단 방식이 남아 있었다. 요컨대, 금합자보 까지 충실히 유지되어 오던 16정간6대강의 세조식 보법이 양 금신보 에 이르러 정간이 없는 대강보의 출현으로 인하여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 만, 아직 세종보나 세조보의 원리에 근간이 되어온 역리적 근거를 일탈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양금신보 이후로 대강이 와해되는 현상이 생겨나면서 점차 정간 보가 역리로부터 괴리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산회상 같 은 곡이 생겨나면서 장단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1행에 1장단~다장단식 보법( 譜 法 )단 계를 거쳐 점차 1행 즉 1장단으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정간보는 더 이상 관 념적인 악보가 아니라 실용적이고 기능성적인 악보로 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핵심어: 정간( 井 間 ), 대강( 大 綱 ), 양금신보( 梁 琴 新 譜 ), 세조식 보법( 世 祖 式 譜 法 ), 1행 다장단( 多 長 短 ), 1행 1장단.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양금신보( 梁 琴 新 譜 ) 의 전사( 轉 寫 )와 변형 시기의 기보실태 2. 1행( 行 ) 1장단~다장단 시기의 기보실태 3. 1행 1장단 정착시기의 기보 실태 Ⅲ. 결 론 238

247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Ⅰ. 서 론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로 알려진 정간보는 애초 1행 32정간으로 창안되었다. 종래, 정간 보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서는 창안 당시(세종대) 세조대 현행 등 3시기로 대별하여 논의 되어왔고, 현재까지도 모든 개론서에서 예외없이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그 개괄적인 내 용을 보면, 세종대의 1행 32정간이 세조대에 1행 16정간으로 바뀌었다가 현행에 이르러 1 행 정간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세종대과 세조대는 시간적인 거리가 매우 가깝지만, 세조대로부터 곧바로 현행을 논하기 에는 시간적인 거리가 너무나 멀다. 과연 정간보 1행의 정간수가 16정간에서 전격적으로 현행과 같이 다양한 수로 바뀌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 르게 되었을까? 그런데 함화진( 咸 和 鎭 )의 조선음악통론( 朝 鮮 音 樂 通 論 ) 에 근현대 정간보 의 변천에 관하여 언급한 문장이 있어 주목된다. 즉 1888년 무렵 1) 에 당시 국악사장이었던 함재운( 咸 在 韻 )이 새로운 기보법[ 新 譜 法 ]을 여러 가지로 제정하여 각종 악기에 적합한 부 호를 첨부하여 고저 장단 강약을 알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2). 아울러 1행 12정간의 해금 타령보와 1행 20정간의 피리 보허자보 및 1행 32정간의 현금 우조삼삭대엽 등 3종 보례 를 예시하였다. 적어도 1888년 무렵에 1행 12정간 1장단형과 1행 20정간 1장단형 및 1 행 32정간 1장단형 등 3종 유형의 정간보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종래 세종대 세조 대 현행으로 일관되어온 정간보의 변천사에서 이러한 함재운식 보법의 등장은 세종 창안 보 세조식 보법을 이어 새롭게 대두된 창안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것은 바로 세조대로부터 곧바로 현행을 논해온 기존의 논의에 문제점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기실, 양금신보( 梁 琴 新 譜 ) (1610)에서 비로소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출현한 이래, 현전 근현대의 고악보 중에는 정간을 활용한 악보로서 이미 1행 16정간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 1) 본문 중에 언급된 지금부터 60년 전 은 조선음악통론( 朝 鮮 音 樂 通 論 ) 이 출판되던 1948년을 기점 으로 하면 1888년이 된다. 그러나 인용문이 쓰여진 시기가 불확실하므로 여기서는 1888년 무렵 으 로 간주하였다. 2) 지금부터 육십 년 전에 필자의 선친(국악사장( 國 樂 師 長 ) 함재운( 咸 在 韻 ))이 신보법( 新 譜 法 )을 창안 하여 여러 가지로 제정하였으니 이것이 비록 한자보나 고저( 高 低 ), 장단( 長 短 ), 강약( 强 弱 )과 각종 악기 연주에 있어 각자 부호( 符 號 )를 첨부하여 누구나 알 수 있게 가장 진보적으로 되어 최근에는 누구를 물론하고 전부 이 양식을 쓰고 있다. <함화진( 咸 和 鎭 ), 조선음악통론( 朝 鮮 音 樂 通 論 ) [영인] (서울: 민속원, 1983), 211쪽.> 239

2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는 악보들이 다수 발견된다. 돌아보면, 세종-세조 간의 1행 32정간이나 16정간의 정간보 는 역리( 易 理 )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3 2 3정간을 근간으로 하는 대강이 내재되어 있다 1). 세조 이후의 역리적인 16정간 6대강 보법은 금합자보( 琴 合 字 譜 ) 까지 충실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양금신보 에 이르러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출현하면서 기존의 16정간 6대 강 보법에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후로 새로운 악곡의 출현과 함께 새로운 보식이 생겨났으 며, 마침내 현행과 같이 1행 1장단의 다양한 정간 수를 가진 정간보로 정착되기에 이르렀 다. 그런데 정간보의 변천과정을 세종대 세조대 현행으로 개괄된 종래의 견해에서는 정간보가 언제부터 역리와 무관하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행=1장단으로서의 기능을 지닌 기보법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실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양금신보 이후에 속하는 고악보 가운데 정간을 활용한 악보 들이 검토된다면 정간보가 역리로부터 괴리되는 과정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1 행 16정간의 정간활용방식이 현행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 역시 밝혀지리라 기대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보다 많은 자료의 수집을 요하는 소위 함재운의 신보법에 대한 연 구는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우선 양금신보 이후에 속하는 현전 고악보를 대상으로 하여 정간의 활용실태를 살핌으로써 역리적 정간보에서 일탈하여 새로운 기능을 지닌 정간 보로 재탄생되기까지 그 변천과정을 밝혀보고자 한다. 단, 본 연구의 대상 범위는 대체로 국립국악원 발행 한국음악학자료총서( 韓 國 音 樂 學 資 料 叢 書 ) 가운데 양금신보 이후 조선 음악통론( 朝 鮮 音 樂 通 論 ) 이 출판되던 1948년 간에 속하면서 정간을 활용한 고악보로 한정 하고자 한다 2). 아울러 그 기술순위는 기본적으로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의 해제 ( 解 題 )에서 밝혀진 연대순에 의거하기로 한다. 1) 정화순, 초기 정간보의 역학적 해석을 위한 시도, 한중철학 창간호, 서울: 한중철학회, 1995, 쪽. 2) 양금신보, 윤용진소장금보( 尹 容 鎭 所 藏 琴 譜 ), 증보고금보( 增 補 古 琴 譜 ), 남훈유보( 南 薰 遺 譜 ), 동대금보( 東 大 琴 譜 ), 인수금보( 仁 壽 琴 譜 ), 삼죽금보( 三 竹 琴 譜 ), 죽취금보( 竹 醉 琴 譜 ), 양금여민 락보( 楊 琴 與 民 樂 譜 ), 가곡현금보( 歌 曲 玄 琴 譜 ), 조선음율보( 朝 鮮 音 律 譜 ), 방산한씨금보( 方 山 韓 氏 琴 譜 ), 동대율보( 東 大 律 譜 ), 이왕직아악부악보( 李 王 職 雅 樂 部 樂 譜 )[가야금보 해금보], 흑홍금보 ( 黑 紅 琴 譜 ), 악서정해부례서율보( 樂 書 正 解 付 禮 書 律 譜 ), 금은금보( 琴 隱 琴 譜 ) 등 28종. 240

249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Ⅱ. 본 론 세종 후기에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로서 1행 32정간의 정간보 3) 가 창안된 이래, 세조대에 1행 16정간으로의 개혁이 이루어져 소위 16정간 6대강 을 갖춘 세조식 보법이 장기간 사 용되었다. 세종대의 초기 정간보나 세조식 보법에서 구획된 1행의 정간 수는 모두 역리적 바탕에서 이루어졌다. 세종식 보법과 세조식 보법은 세종식 보법의 1행이 세조식 보법에서 2행으로 나뉜 것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세종식 보법의 1 행 32정간12대강이 세조식 보법에서 2행 32정간12대강으로 애초의 1행을 2행으로 늘렸을 뿐, 근본적인 면에서 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위 대강이 내재해 있는 역리적 정 간보의 전통은 금합자보( 琴 合 字 譜 ) (1572)까지도 충실히 유지되어왔다. 그런데 금합자보 보다 38년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양금신보 (1610)에 이르러 비로소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출현함으로써 기존의 1행 16정간6대강형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양금신보 를 필두로 이후의 고악보의 정간 활용실태를 살피되, 고악보의 수록내용과 기보 실태에 의거하여 양금신보 의 모방( 轉 寫 )과 변형 시기, 1행 1장단~다장단 시기, 1행 1장 단 시기 등 세 시기로 구분하여 논하기로 하겠다. 1. 양금신보 의 전사( 轉 寫 )와 변형 시기의 기보실태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악보 가운데 이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양금신보 윤용 진소장금보( 尹 容 鎭 所 藏 琴 譜 ) 증보고금보( 增 補 古 琴 譜 ) 남훈유보( 南 薰 遺 譜 ) 동대금 보( 東 大 琴 譜 ) 인수금보( 仁 壽 琴 譜 ) 등 6종이 있다. 3) 정간보라는 명칭은 1948년에 발표된 이혜구의 한국의 구기보법 에 사용된 것이 문헌상 나타나는 최초 의 기록이라 한다(홍정수, 대강보의 절주방식( 節 奏 方 式 ), 한국음악사학보 제11집(경산: 한국음악사학 회), 1993, 19-80쪽). 그러나 1841년에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삼죽금보 에 계면타령칙팔정간위일각 ( 界 面 打 鈴 則 八 井 間 爲 一 脚 ); 차칙사정간위일각( 此 則 四 井 間 爲 一 脚.), 차지일간당피지이간( 此 之 一 間 當 彼 之 二 間 )...,( 삼죽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33 (서울: 국립국악원, 1998), 97쪽)에 이미 정간이 란 말을 사용하였고, 또 1920년대에 조선 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안곽( 安 廓 )의 기고문에 초기 정간보에 대하여 세종의 음보는 (삼)십이정간을 치고 율명의 두자를 기입하되, 음의 장단은(을 - 필자교정) 표준 하야 정간의 수를 헤아려 기입하니, 정간은 장단, 율명은 음의 고저를 표한 것이다 (안곽, 조선음악의 연구, 조선 제14권 제8호(서울: 한국국악학회(영인), 1980.)라고 하여 이미 정간이란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241

2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 양금신보 4) 의 기보 방식 양금신보 (1610)에는 1행 2대강 6대강 8정간3대강 등 3종의 표기 방식이 사용되었 다 5). 즉 만대엽( 慢 大 葉 )과 조음은 매 행이 2대강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전( 北 殿 )은 8정간3 대강, 5종 중대엽( 中 大 葉 )과 감군은( 感 君 恩 )은 6대강으로 기보되었다. 그 중 1행 2대강형 과 6대강형에는 정간이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기존의 16정간6대강의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보방식으로써 현전 고악보 중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출현한 것 은 양금신보 가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양금신보 는 현금동문류기 의 저자 이득윤( )이 악의 원리를 터득하는데 결 정적인 단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금보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6). 역리에 통달하 였던 이득윤은 일찍이 양금신보 중 평조( 平 調 ) 우조( 羽 調 )의 산형( 散 形 )과 정간, 합자의 배치( 排 置 ) 등이 음양의 왕래( 往 來 )에 합치되지 않음이 없으며, 응( 應 )관계 비( 比 )관계 승 ( 乘 ) 승( 承 ) 완급( 緩 急 )도 역시 괘효( 卦 爻 )의 발휘에 합치 된다 고 하였다 7). 이득윤이 옥 계산중( 玉 溪 山 中 )으로 들어가 거문고로 악보를 익히고는 마침내 금명( 琴 銘 )을 짓게 된 배 경에 바로 양금신보 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양금신보의 기보방식이 16정간6대강의 전통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음양원리나 역학적 원리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음은 이득윤의 견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기실, 북전 ( 北 殿 )의 표기에 사용된 8정간3대강 방식은 기존의 16정간6대강을 반으로 나눈 것에 불과 하고, 5종 <중대엽>과 <감군은>의 표기에 사용된 6대강은 정간이 없을 뿐 기존의 6대강을 그대로 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각 대강의 세로 길이는 전통적 3 2 3정간의 수에 비례하여 길고 짧게 구획되어 있어 정간을 나타내는 선만 없을 뿐, 실질적으로는 16정간6 대강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금신보 소재 <만대엽>과 조 음에 사용된 매 행 2대강식 기보방식은 종래 근거가 없던 새로운 방식이다. 이러한 1행 2 대강 방식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만대엽>을 선호하지 않았던 당시인들의 음악적 기호와 연관되는 듯하다. 즉 악곡의 퇴화과정에서 음악적 규칙성이 무너지는 현상에서 비롯된 결 과가 아닐까 추정된다. 왜냐면 다수인이 공유할 수 있는 조건의 유행음악은 상호간 소통되 4) 양금신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14 (서울; 국립국악원, 1984), 76-90쪽. 5) 이혜구,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창간호(서울: 국립국악원, 1989), 11쪽. 6) 임미선, 음악사학적 측면에서 본 이재난고 의 사료적 가치, 한국음악연구 제44집(서울: 한국국악 학회, ), 쪽. 7) 정화순, 이덕윤( 李 德 胤 )의 생애와 업적, 청예논총 제12집(청주: 청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1997), 쪽. 242

251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는 공통분모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음악의 경우는 음악적 특질이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변질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향후 양금신보 시기를 전 후한 고악보 소재 만대엽과의 비교를 통하여 상고되어야 할 과제로 남기고, 여기서는 다만 당시 잘 연주되지 않게 된 <만대엽>의 표기를 위하여 1행 2대강의 기보방식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악보1> 양금신보( 梁 琴 新 譜 ) 중 <만대엽( 慢 大 葉 )> <북전( 北 殿 )> <중대엽( 中 大 葉 )> 2) 윤용진소장금보( 尹 容 鎭 所 藏 琴 譜 ) 8) 의 기보 방식 1610년대 혹은 1650년대로 추정 9) 되고 있는 윤용진소장금보 는 전반부에 만대엽과 조 음( 調 音 ) 등 양금신보 전사곡( 轉 寫 曲 )을, 후반부에 만대엽[낙시조]와 중대엽[속칭 심방곡] 등 금합자보 전사곡을 수록하였다. 이러한 악곡들의 표기를 위하여 1행 2대강 8정간 6 대강 등 3종 방식이 사용되었다. 기본적으로 양금신보 의 기보방식을 차용하였지만, 기존 의 8정간3대강 방식이 대강의 표시가 없이 8정간만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양금신보 에서의 1행 8정간3대강 방식은 윤용진소장금보 에서부터 대강의 구획이 없이 1행 8정간 방식으로 바뀌어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후의 악보에서 더 이상 8정간 3대강 방 식은 발견되지 않고 1행 8정간 방식으로 정착되어 나타난다 10). 반면, 1행 6대강 형에서 각 대강의 세로 길이는 정간에 준하여 아직 양금신보 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8) 금보( 琴 譜 )-영인 (윤용진/ 尹 容 鎭 ),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9) 이동복, 금보(윤용진)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18쪽, 10) 이러한 사실은 윤용진 소장 금보 가 양금신보 보다는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243

2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2> 금보 (윤용진 소장) 중 <만대엽> <북전> <중대엽> 3) 증보고금보( 增 補 古 琴 譜 ) 11) 의 기보 방식 정확한 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증보고금보(가칭) 에는 전반부에 <만대엽[낙시조]>를 비 롯한 양금신보 의 수록곡이 거의 그대로 전사되었고 12), 후반부에는 양금신보 에 없는 <삭대엽> 우조 등 6곡이 추가되어 있다. 각 악곡에 사용된 보법을 보면, 1행 2대강 8정간 6대강 4대강 등 4종 방식이 사용되었다. <만대엽[낙시조]>과 조음에 사용된 1행 2대강 방식은 양금신보 와 같고, <북전( 北 殿 )>은 1행 8정간인 점에서는 양금신보 와 같으나 대강이 구획되지 않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양금신보 의 1행 8정간3대강 방식이 윤용진소장금보 이후로 1행 8정간방식으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대엽[속칭 심방곡]>은 1행 8대강 7대강 6대강이 혼용되어 나타나는데, 이하 <중대엽> 우조~<중대 엽> 평조계면조와 감군은[평조사편( 平 調 四 篇 )]은 공히 1행 6대강으로 나타난다. 1행 6대강 의 경우, 양금신보 나 윤용진소장금보 에서는 매 대강의 세로 길이가 정 간의 길이에 상응하도록 안배되었으나, 여기서는 6대강이 모두 균등한 길이로 안배되어있 어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세로길이가 균등해진 1행 6대강형은 이후의 악보에서도 동일하 게 나타난다. 그리고 양금신보 에는 없었던 <우조 삭대엽>~<보허자>는 공히 매 1행에 세로 길이가 동일한 4대강으로 기보되었고, 영산회상은 정간 또는 대강을 나타내는 횡선이 보이지 않아 불분명하다. 11) (증보)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서울: 국립국악원, 1981), 33-48쪽. 12) 장사훈, 증보고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7(서울: 국립국악원, 1981), 3-4쪽. 244

253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요컨대, 증보고금보 에서는 양금신보 에 비하여 1행 2대강형은 유지되고 있지만, 1행 8정간3대강형에서 대강이 배제된 채 1행 8정간형으로 정착되어 나타나는 점, 1행 6대강형 에서 매 대강의 세로길이가 균등해진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양금신보 에 없었던 새로운 악곡이 출현함에 따라 세로길이가 균등한 1행 4대강형이 새로이 대두되어 나타난다. <악보3> 증보고금보( 增 補 古 琴 譜 ) 중 <만대엽> <북전> <중대엽> <삭대엽> 4) 남훈유보( 南 薰 遺 譜 ) 13) 의 기보 방식 남훈유보 역시 연대미상이나 고종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 14) 와 1651[이수보( 二 水 譜 )] 1680[신증금보( 新 證 琴 譜 )] 간에 이루어졌으리라 보는 견해 15) 가 있다. 본고에서는 그 수록 악곡과 기보방식을 고려하여 후자의 견해를 수용하기로 하겠다. 남훈유보 에는 총 10곡이 수록되었는데 16), 전반에 수록된 양금신보 전사곡 17) 은 중여음의 수가 줄었을 뿐, 대체로 증보고금보 와 같고, 이하도 삭대엽의 종류가 줄었지만 <보허자> <영산회상> <평 조삭엽( 平 調 數 葉 )>이 수록된 점도 비슷하다. 그리고 증보고금보 에 없는 <만대엽[조성보 ( 趙 晟 譜 )]>가 새로이 추가되었고, 악보의 전반적인 내용도 증보고금보 에 비해 상세하고 13) 남훈유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14) 이동복, 남훈유보해제( 南 薰 遺 譜 解 題 ),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3쪽, 15) 이혜구,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창간호(서울: 국립국악원, 1989), 7-35쪽. 16) 조음[평조] 다 림[하편장] <우조> <만대엽> <영산회상> <감군은[평조사편]> <중대엽[평조계면조]> <만대엽[조성보]> <보허자> <평조삭엽> 등. 17) 단, 중대엽보다 앞 쪽에 포함되어 있는 영산회상은 예외로 간주된다. 기실, 필자도 <보허자> 다음 에 <영산회상>의 제목을 삽입한 뒤, 당재차간( 當 在 此 間 ) 이라 하여 <영산회상>이 <보허자>에 이어 서 있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245

2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전문적이다. 각 악곡에 사용된 보법을 보면, 1행 2대강 6대강 4대강 방식과 1행 12+14정간 혼용 방식이 사용되었다. 상술하면, <만대엽>은 1행 2대강으로 되어있어 양금신보 와 같지만, 조음[평조]과 다 림[하편장( 下 篇 長 )]은 <감군은[평조사편]> <중대엽[평조계면조]>과 함께 공히 1행 6대강으로 이루어져 있어 양금신보 나 증보고금보 와 다르다. <평조삭엽> 역 시 1행 6대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증보고금보 의 <삭대엽>이 1행 4대강의 보법으 로 이루어졌던 점과 다르다. 1행 6대강형의 경우, 증보고금보 와 같이 매 대강의 세로 길 이가 균등하게 안배됨으로써, 이 무렵 이미 정간 수에 상응하는 전통적 6대 강이 6등분의 균등한 길이로 바뀐 채 정착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산회상>과 <보 허자>에 사용된 1행 4대강형은 매 대강의 세로 길이가 균등한데, 이는 증보고금보 에서 신보법으로 대두되었던 1행 4대강형이 정착단계에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한편, 남훈유고 에 처음 보이는 <만대엽[조성보]>는 1행 12정간(일 이지( 指 ))과 1행 14정간( 三 指 이하)의 보법이 혼용되었는데, 이러한 보법은 1행 4대강의 신보법에 이어 새로이 대두 된 보법으로서 그 출현은 정간보 연화( 演 化 )의 초기 양상을 암시하고 있다. <악보4> 남훈유보 중 <만대엽> <중대엽> <영산회상> <만대엽[조성보]> 5) 동대금보( 東 大 琴 譜 ) 18) 의 기보방식 1813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동대금보 는 (1)정간을 다시 채용한 점(만 중의 <영 산>: 20정간, <삭령산( 數 靈 山 )> <가락더리>: 10정간, <삼현도드리> <염불>: 6정간, <평 18) 동대금보( 東 大 琴 譜 )[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2(국립국악원: 1987), 쪽. 246

255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조타령( 打 鈴 )[타령( 打 令 )]> <우조타령( 打 鈴 )[군악]>: 8정간 사용), (2)전에 없던 장고점 ( 點 )(흑( 黑 ) 백( 白 ) 반흑반백( 半 黑 半 白 )의 세 가지 동그라미) 19) 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점 에서 특징이 있다고 한다 20). 그 수록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전반부는 양금신 보 전사부분이고, 후반부는 영산회산병록( 靈 山 會 山 幷 錄 ) 이하 부분이다 21). 우선 전반부의 양금신보 전사부분에 사용된 보법을 보면, 1행 2대강 8정간 6대강 등 3종 보식이 사용 되었다. 만대엽과 조음[속칭 다 림]에 사용된 1행 2대강형은 양금신보 와 같지만, 북전 에 사용된 1행 8정간형은 윤용진소장금보 이후로 대강의 표시가 없어진 점에서 양금신 보 와 다르다. 그리고 <중대엽[속칭 심방곡]> <중대엽[우조]> <중대엽[우조계면조]> <감군 은[평조사편]>에 사용된 1행 6대강형 역시 증보고금보 나 남훈유보 와 같이 매 대강의 세로 길이가 일정한 점에서 양금신보 와는 다르다. 비록 북전의 1행 정간 수와 중대엽류 의 1행 6대강이 증보고금보 나 남훈유보 의 그것들과 공통되지만, 동대금보 에서는 북 전의 각 정간을 구획한 선과 중대엽류의 대강을 구획한 선의 굵기를 달리함으로써 그 유래 가 정간인지 대강인지가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편, 후반부에 영산회산병록( 靈 山 會 山 幷 錄 ) 이라 하여 수록된 악곡들을 매 행의 정간 수에 따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 1행 20정간[1장단]: <만령산( 慢 靈 山 )> 5장 22) <중령산> 5장 <삭영산> 1장 만령산 ( 慢 靈 山 ) 1장단 (2) 1행 20정간[2장단]: <삭령산> 2장 이하 23) <가락드리> 제1-4행[8장단] 수령산 ( 數 靈 山 ) 1장단 1장단 19) 동대금보 에 표기된 장단 표시는 여타 악보와 다르다. 즉 합장단[ ]은 흑백의 위치가 다른 악보 에서 로 표시된 것과 흑백 위치가 반대이고, 채편[ ]과 북편[ ] 역시 여타 악보에서 채편[ ] 북편[ ]으로 표시된 것과 상반된다. 20) 이혜구, 앞의 책, 23쪽. 21) 김영운, 동대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2(서울: 국립국악원, 1987), 8-12쪽. 22) <만영산> 제1장 제1행 제11정간 부분에 자차합풍류( 自 此 合 風 流 ) 라 명시되어있어 오늘 날 중광지 곡의 시작 형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23) 현행 <세령산> 초장에 해당함. 247

2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3) 1행 18정간[3장단]: <가락드리> 제5행 이하 24) <삼현회산( 三 絃 會 山 )[삼현도드리]> <삭회산( 數 會 山 )[속칭 잔도드리]> <하현회산( 下 弦 會 山 )[하현도드리]> <염불회산( 念 佛 會 山 )[속칭 염불도드리]> <만회산( 慢 會 山 )[속칭 하청도더리]> 25) 삼현영산 ( 三 絃 靈 山 ) 1장단 1장단 1장단 (4) 1행 16정간[2장단]: <평조타령> <우조타령[혹운군악( 或 云 軍 樂 )]> 타령 ( 打 鈴 ) 1장단 1장단 상기와 같이 1행의 정간 수는 정간 등 3종 방식이 있지만, 1행 20정간에서는 매 행이 1장단일 경우(<만령산> 5장 <중령산> 5장 <삭령산> 1장)와 2장단인 경우(<삭령산> 2장 이하 <가락드리> 제1-4행[8장단])가 있고, 1행 18정간에서는 매 행이 3장단(<만회산 ( 慢 會 山 )[속칭 하청도더리]>), 1행 16정간에서는 2장단(평조타령 우조타령[혹운군악( 或 云 軍 樂 )])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1장단의 정간 수는 정간 등 4종으로 나타나는데 26), 현행 정간보에서는 1행이 1장단인데 반하여 동대금보 에서는 1행에 1~3장단이 기보되었 다. 바로 1행 1장단으로 전화하기 이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이하 악보사진 생략) 6) 인수금보( 仁 壽 琴 譜 ) 27) 의 기보방식 인수금보 의 성립연대는 1825년 이후로 추정되었는데 28), 앞서 논한 남훈유보 (고종대 로 추정)의 이본( 異 本 )이라고한다 29). 실제로 인수금보 에는 남훈유보 의 수록곡 중 평조 24) 현행 <상현도드리>에 해당함. 25) 악조는 우조이고, 屬 於 民 樂 [민악( 民 樂 )에 속한다] 이라 되어있다. 현행 <밑도드리>에 속한다. 26) 1장단의 정간 수는 대부분 현행 국립국악원 정간보와 같으나 타령에서 차이가 있다. (김영운, 동대금 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2(서울: 국립국악원, 1987), 8-12쪽.): 타령 군악의 2정간은 현행 타 령 군악의 3정간에 해당한다. 즉 매 2정간 중 전 1정간을 2행으로 분할하고, 후 1정간을 그대로 두 면 현행 타령장단과 같이 12정간 1정단을 이루게 된다( ). 27) 인수금보( 仁 壽 琴 譜 )[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28) 이동복, 인수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9(서울: 국립국악원, 1985), 8쪽. 29) 현전하는 남훈유보( 南 薰 遺 譜 ) 의 이본( 異 本 )으로는 인수금보( 仁 壽 琴 譜 ) (경북 달성군 화원면 남평리 문씨종가택 소장) 외에 국립국악원 자료실 소장 금보 와 박기환 소장 금보단( 琴 譜 單 ) 및 경북대학교 248

257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삭엽( 平 調 數 葉 )을 제외한 나머지 악곡들이 모두 동일한 보법으로 그대로 수록되었고 30), 그 선율도 대체로 동일하다. 다만 악곡명에서 남훈유보 의 조음[평조] 다 림[ 下 篇 長 (하편 장)] <우조> 등이 인수금보 에서는 공히 <중대엽> 3자가 추가되어 나타난다 31). 양자의 차이점은 남훈유보 에 있는 평조삭엽( 平 調 數 葉 )이 인수금보 에는 없고, 대신 양금신보 에 수록되어 전하는 북전과 중대엽류 4종이 더 있다. 뿐만 아니라 인수금보 에는 남훈유 보 를 비롯하여 여타의 악보에는 없는 금가금보( 今 歌 琴 譜 )가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악곡들에 사용된 보법 중 1행 2대강 8정간 6대강 4대강 방식은 인수금보 의 그것들과 같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인수금보 에만 보이는 금가금보에 대 하여 논하고자 한다. 금가금보는 1행 24정간으로 기보되었는데, 각 장[지( 旨 )]이 끝나면 행 이 바뀌어 다음 장이 시작된다. 각 장별로 상부에 장고 점수( 點 數 )로 추정되는 점수가 명 시되어 있는데, 그 수는 각 장별 소요 정간 수나 출현 음의 수와 다르다. 그 일지 20점, 이지 16점, 삼지 24점, 중여음 10점, 사지 16점, 오지 30점 등 각 장별 점수는 현행 가 곡의 각 장별 장고 점수와 같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행 가곡의 각 장별 정간 수에 비추 어볼 때, 금가금보에 사용된 1행 24정간의 각 정간은 현행 가곡에서의 각 정간과 같이 일 정한 한배를 갖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만대엽[조성보( 趙 晟 譜 )]에서 사용된 1행 12 14정간과 마찬가지로 금가금보에 사용된 1행 24정간 보법은 정간보가 연화( 演 化 )되는 초기 양상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양상이라고 하겠다. 이상 살펴본 양금신보 의 전사( 轉 寫 )와 변형 시기의 기보실태를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 과 같다. 중앙도서관 소장 금보 등이 있고, 고송석하 소장이었던 송씨이수삼산재본 금보 는 그 실전( 失 傳 ) 이 본( 異 本 )이라 한다. (이동복, 남훈유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3쪽.) 30) 즉 만대엽 1행 2대강, 조음[평조]중대엽 다 림[하편장]중대엽 중대엽[평조계면조] 감군은[평조사 편] 1행 6대강, 영산회상과 보허자 1행 4대강, 만대엽[조성보] 1행 12정간(일 이 指 )과 1행 14정간 (삼지 이하)의 혼용 등 남훈유보 와 같다. 31) 인수금보 의 수록곡은 조음[평조]중대엽 다 림[하편장]중대엽 우조중대엽 만대엽 북전[1행8정간] 중대엽[속칭심방곡] 중대엽[우조] 중대엽[우조계면조] 중대엽[평조계면조] 감군은[평조사편]([우만력 연간악사양덕수보( 右 萬 曆 年 間 樂 師 梁 德 壽 譜 )]) 보허자 영산회상 만대엽[조성보] 금가금보[1행 24정 간]이고, 남훈유보 의 수록곡은 조음[평조] 다 림[하편장] 우조 만대엽 영산회상 감군은[평조사편] 중대엽[평조계면조]([우만력연간악사양덕수보]) 만대엽[조성보] 보허자 평조삭엽이다. 밑줄 친 부분이 양 악보의 공동 수록악곡이다. 249

2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표1> 양금신보 의 모방와 변질시기의 기보 실태(곡목 앞의 숫자는 기보 순위를 나타냄) 악보 1 양금신보 (1610) 2 1행 2대강형 1만대엽 7조음 1만대엽 7조음 윤용진 9만대엽 소장금보 [낙시조] (? ) 3 증보고금보 (?) 4 1만대엽 [낙시조] 3 慢 大 葉 남훈유보 (고종대(?) 혹은 ) 8정간3대강형 1행 6대강형 1행 4대강형 기타 방식 비고 2북전 3중대엽[속칭 심방곡] 4중대엽[우조] 5중대엽[우조계면조] 6중대엽[평조계면조] 8감군은[평조] 2북전 3중대엽[속칭심방곡] 대강표시 없음 4중대엽[우조] 5중대엽[우조계면조] 6중대엽[평조계면조] 8감군은[평조] 10중대엽[속칭심방곡] 11우 12한림별곡 2북전 3중대엽[속칭심방곡] 8삭대엽[우조] 대강표시 없음 4중대엽[우조] 9계면조 5중대엽[우조계면조] 10평조 6중대엽[평조계면조] 11계면조평조 7감군은[평조] 12보허자 13영산회상 - 1조음[평조] 4영산회상 다 림[하편장] 8보허자 2조음[우조] 5감군은[평조] 6중대엽[평조계면조] 9평조삭엽 1만대엽 2 北 殿 3 中 大 葉 [ 俗 稱 心 方 曲 ] 7조음 [속칭다 림] 大 綱 표시 없음 4 中 大 葉 [ 羽 調 ] 5 中 大 葉 [ 羽 調 界 面 調 ] 6 感 君 恩 [ 平 調 ] 7만대엽 [조성보]: 1 行 12정간과 1 行 14정간 혼용 1행 20정간형: 8만령산 9중령산 10삭령산 11가락드리 양금신보 전사곡. 단, 북전에서 대 강의 표시가 없 이 1행 8정간으 로 표기됨 금합자보 전사곡 7까지 양금신보 전사 1 行 6대강형에서 각 대강의 세로길 이 균등해짐 1 行 4대강형 출현 6까지 양금신보 전사 만대엽[조성보] 가 처음 보임 중대엽 [평조계면조]가 빠짐 1행 다장단형 대두됨 5 동대금보 (1813) 1행 18정간형: 12삼현회산 13삭회산 14하현회산 15염불회산 18만회산 1행 12정간형: 16평조타령 17우조타령 250

259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6 인수금보 (1825 이후) 3만대엽 4북전 [낙시조] 1조음[평조] 10보허자 다 림[하편장] 11영산회상 2우조중대엽 5중대엽[속칭심방곡] 6중대엽[우조] 7중대엽[우조계면조] 8중대엽[평조계면조] 9감군은[평조] 12만대엽 [조성보]: 1행 12정간 과 1행 14 정간 혼용 13금가금보: 1 行 24정간 9까지 양금신보 전사 금가금보 [1행 24정간] 가 처음 보임 2. 1행 1장단~다장단 시기의 기보실태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악보 중 이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삼죽금보( 三 竹 琴 譜 ) 와 죽취금보( 竹 醉 琴 譜 ) 를 들 수 있다. 1) 삼죽금보( 三 竹 琴 譜 ) 32) 의 기보방식 악보의 성립연대가 1841년으로 추정 33) 되고 있는 삼죽금보 에는 20여 종의 악곡이 수 록되어 있다 34). 이러한 악곡들의 표기에는 조현[계면조 다스음]에서 1행 16정간과 15정간 이 잡용 되었을 뿐, 전 곡에 기본적으로 1행 16정간 보법이 사용되었다. 장별 구분이 있는 악곡의 경우, 하나의 장이 끝나면 행을 바꿔 다음 장으로 연결된다. 매 정간의 기능에 관 해서는 조현[우조다슬음] 아래에 매 1정간은 1점이 된다고 하였고 35), <중령산> 아래에도 역시 매일정간위일점( 每 一 井 間 爲 一 點 ), 이초두여이두개사십점( 而 初 頭 與 二 頭 皆 四 十 點 ) 라 고 하여 매1정간을 1점으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반면, <가락더리>를 포함한 5종의 악 곡에는 다음과 같이 1각( 脚 )의 정간 수가 명시되어 있다. 32) 이승무, 삼죽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33(서울: 국립국악원, 1998), 쪽. 33) 삼죽금보 의 편찬연대에 대한 추정은 1721년(경종 원년), 1841년, 1901년 등으로 분분하나 이혜 구박사의 연구결과와 족보의 기록, 서문과 범례, 악보의 일관성에 의거하여 1841년에 이승무에 의 하여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함. (서인화, 삼죽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33(서울: 국 립국악원, 1998), 7쪽.) 34) 조현[우조다슬음] 조현[계면조다스음] 보허사 여민락 본환입[및도드리] 소환입[잔도드리] 영산회상 중령산 소령산[잔령산] 가락더리 환입[도드리] 염불 타령 군악 평조영산회상 우조타령 우조가락 제이[가락더리] 계면가락제이[가락더리 속칭사언환입 우칭굿거리] 군중취타 로군악 가군악 소보허 사[굿보허 ] 양청환입 등이 수록되어 있다. 35) 每 一 井 間 爲 一 點, 而 有 空 間 者 如 初 頭 留 遲 一 點 故 也. 他 放 此. 名 目 下 靑 小 點 點 其 句 節 者 也 ( 三 竹 琴 譜 (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33(서울: 국립국악원, 1998), 35쪽.) 251

2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 <가락더리>: 매 5정간이 1각이 됨[ 每 五 井 間 爲 一 脚 ]. (2) <환입[도드리]>: 매 3(정)간이 1각이 됨[ 每 三 間 爲 一 脚 ]. (3) <염불>: 매 3(정)간이 1각이 됨[ 每 三 間 爲 一 脚 ]. (4) <타령>: 매 8(정)간이 1각이 됨[ 每 八 間 爲 一 脚 ]. (5) <군악>: 매 8정간이 1각이 됨[ 每 八 間 爲 一 脚 ]. 뿐만 아니라 <우조타령>에는 계면타령은 8정간이 1각이 되지만 이 곡은 4정간이 1각이 된다. 이 곡의 1(정)간은 저 곡[계면타령]의 2(정)간에 해당한다. 36) 라는 주가 부언되어 있 다. 이와 같이 삼죽금보 에서는 3정간 4정간 5정간 8정간 등을 각각 1각으로 삼은 악곡 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5종 악곡 가운데 <가락더리>와 <환입[도드리]> 및 <염불>은 1각의 소요 정간 수를 배수 로 환산하면 바로 현행 정간보 1각의 정간 수와 같게 된다. 즉 이 세 곡은 1정간이 현행 정간보의 2정간에 해당한다. 반면, 타령과 군악은 동대금보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각의 소요 정산 수의 배수가 현행 정간보와 다르다. 그 배수로 환산된 1각의 정간 수 16정간은 바로 동대금보 의 그것과 같다. 말하자면, 5종 악곡을 통하여 확인되는 삼죽금보 1각의 정간 수는 동대금보 의 그것들에서 1/2로 줄어 나타난다. 다른 한편, 동대금보 의 1장 단의 정간 수는 대부분 현행 국립국악원 정간보와 같으나 타령에서 차이가 있다 37) 는 사실 을 고려할 때, 삼죽금보 동대금보 현행 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며, 따라서 삼죽금 보 가 동대금보 보다 더 이른 시기에 속하는 악보일 가능성이 짙다고 하겠다. 한편, 삼죽금보 에서는 <영산회상>과 가곡에 한하여 장고 장단이 명시되어 있다. <영산 회상>에서는 2행에 걸쳐 3장단을 제시하였는데(각 행의 제1간은 비어 있음), 매 1장단의 소요 정간 수는 10정간이다. 비록 1장단의 정간 수가 10정간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장단 은 다음과 같이 현행 <상령산> 20정간의 장단과 기본적으로 같다(단 편의상 현행 합장단 을 로 표시함). 삼죽금보 현행 l 36) 界 面 打 鈴 則 八 井 間 爲 一 脚 ; 此 則 四 井 間 爲 一 脚. 此 之 一 間 當 彼 之 二 間... 삼죽금보(영인), 한국음 악자료총서 33(서울: 국립국악원, 1998), 97쪽. 37) 김영운, 동대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2(서울: 국립국악원, 1987), 10쪽. 252

261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이와 같이 <영산회상> 1장단의 매 1정간은 현행 2정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앞서 논 한 바, <가락더리>와 <환입[도드리]> 1각의 5정간 3정간이 그 배수로써 현행 <가락덜이> 와 <(상현)환입> 등 6박계 악곡의 1장단과 상응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영산회상 10정 간 1장단 역시 1각으로 간주할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즉 삼죽금보 의 1각은 바로 1장단으로 해석되지만, 그 1각이 곧 1행은 아니다. 반면, 가곡에서는 1장단이 16정 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현행과 같이 1행 16정간 즉 1장단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단도 역시 현행 가곡 16박 1장단과 기본적으로 같다. 삼죽금보 현행 l i l 이 16정간 1장단 역시 1각이 되므로 결국, 삼죽금보 에는 정간이 1 각 혹은 1장단을 이루는 악곡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삼죽금보 에서는 1행 16정간의 보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1행의 정간 수는 오직 가곡에서만 1행 16정간 즉 1장단을 이루고 있을 뿐, 여타의 악곡에서는 의미가 없이 무조건 1행을 16정간으로 구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죽취금보( 竹 醉 琴 譜 ) 38) 의 기보 방식 1890년에 편집된 악보로 알려진 죽취금보 에는 현행 별곡에 해당하는 악곡들이 수록되 어 있다 39). 매 악곡의 표기에 사용된 1행의 정간 수와 장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1행 20정간[1장단]: 상령산(5장) 중령산(5장) 1장단 1장단 38) 죽취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서울: 국립국악원, 1981), 82-97쪽. 39) 장사훈, 죽취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7(국립국악원, 1981), 10쪽 ; 수록 악곡은 상령산 중령산 잔령산 가락 상현도두리 잔도도리 염불 타령[평조] 군악[3장] 등이다. 253

2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1행 20정간[2장단]: 孱 靈 山 (5장), 加 樂 1행 2장단이므로 1장단을 1행으로 간주 하면 1행 10정간임 2장단 1장단 1장단 (3) 1행 18정간[3장단]: 上 絃 刀 斗 里 (전1장) 孱 道 ㄷ 里 (7장) 下 絃 道 ㄷ 里 (전1장) 念 佛 (1 장단=6정간) 3장단 1장단 1장단 1장단 (4) 1행 16정간[2장단]: 打 鈴 軍 樂 (1장단=8정간) 2장단 1장단 1장단 이러한 장단들은 동대금보 의 영산회상에서 사용된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매 1행의 사 용 정간 수나 장단 수 역시 동대금보 와 완전히 같다. 다만 악곡 명칭에서 <만령산>이 <상 령산>으로, <삭영산>이 <잔령산>으로, <가락드리>가 <가락>으로, <삼현회산[삼현도드리]>이 <상현도두리( 上 絃 刀 斗 里 )>로, 수회산( 數 會 山 )[속칭 잔도드리]이 잔도ㄷ리( 孱 道 ㄷ 里 )로, 하현 회산( 下 弦 會 山 )[하현도드리]가 하현도ㄷ리( 下 絃 道 ㄷ 里 )로, 염불회산( 念 佛 會 山 )[속칭 염불도드 리]이 염불로 각각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여기서의 타령 군악 장단 역시 동대금보 의 경우 와 마찬가지로 매 2정간은 현행 3정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2정간 가운데 전 1정간을 2정 간으로 늘리면 다음과 같이 현행 장단에 상응하는 12정간 1장단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 살펴본 바, 1행 1장단~다장단 시기의 기보실태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54

263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표2> 1행 1장단~다장단 시기의 기보 실태(곡목 앞의 숫자는 기보 순위를 나타냄) 악보 1행 20정간형 1행 18정간형 1행 16정간형 비고 1 삼죽금보 (1841) 2 죽취금보 (1890) 1장단형: 1상령산 2중령산 2장단형: 3잔령산 4가락 7조음 5상현도두리 6 孱 道 ㄷ리 7하현도ㄷ리 8염불 공히 1행 3장단 1조현[우조다슬음] 2조현[계면조다슬음] 3보허사[우조] 4여민락 5본환입 6소환입 7영산회상 8중령산 9소령산 10가락더리[ 每 五 井 間 爲 一 脚 ] 11환입[ 每 三 間 爲 一 脚 ] 12염불[ 每 三 間 爲 一 脚 ] 13타령[ 每 八 間 爲 一 脚 ] 14군악[ 每 八 間 爲 一 脚 ] 15평조영산회상 16우조타령[ 四 井 間 爲 一 脚 ] 17우조가락제이 18계면가락제이... 9 打 鈴 [ 平 調 ] 10 軍 樂 공히 1행 2장단 전 곡이 기본적으로 1행 16정간으로 이루 어짐(단 2만 1행 16 정간과 15정간 혼용) 1행의 정간 수와 무 관하게 3정간 4정간 5정간 8정간을 1 脚 으로 삼은 악곡이 포함되어 있음 1행 1장단형 2장단 형 3장단형 3종 3. 1행 1장단 정착시기의 기보 실태 본 연구의 대상 악보 중 이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양금여민락보( 楊 琴 與 民 樂 譜 ) 가 곡현금보( 歌 曲 玄 琴 譜 ) 조선음율보( 朝 鮮 音 律 譜 ) 방산한씨금보( 方 山 韓 氏 琴 譜 ) 동대 율보( 東 大 律 譜 ) 이왕직아악부악보[가야금보, 해금보] 흑홍금보( 黑 紅 琴 譜 ) 악서정해부 례서율보( 樂 書 正 解 付 禮 書 律 譜 ) 금은금보( 琴 隱 琴 譜 ) 등이 있다. 1) 양금여민락보( 楊 琴 與 民 樂 譜 ) 40) 의 기보방식 1906년대에 속하는 양금여민락보 에는 <여민락>과 <환입[도드리]>이 수록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전자는 1행 20정간 1장단, 후자는 1행 12정간 1장단으로 기보되어 있다. 40) 우재 조이순, 양금 여민락보[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255

26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 1행 20정간: 여민락 전반 l l 후반 l l l l (2) 1행 12정간: 환입[도드리] 환입 l l 이와 같이 양금 민락보 의 기보방식은 현행과 같이 1행 즉 1장단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서 주목된다. 2) 가곡현금보( 歌 曲 玄 琴 譜 ) 41) 의 기보방식 한편, 양금여민락보 와 유사시기에 동일한 저자에 의해 이루어진 가곡현금보 는 기본 적으로 1행을 16정간으로 구획한 뒤, 매 정간을 또 2분 하였다. 따라서 매 1행의 실질적 인 정간 수는 32정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단은 현행 가곡 장단에 비교적 근사하다. 가곡현금보 l l l l l l 현행 l i l 3) 조선음율보( 朝 鮮 音 律 譜 ) 42) 의 기보방식 표지에 편집연대가 대정5년(1916)으로 분명히 명시된 조선음율보 는 현행 별곡의 소속 악곡을 일괄 수록하고 있다. 그 악보는 다음과 같이 1행 20정간과 12정간 두 방식이 사용 되었고, 공히 1행이 1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 1행 20정간: <영산회상>-<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삼현환입> 초장 제1행 <타령> <군악> 41) 우재 조이순, 가곡 현금보[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1900년대(?). 42) 김학규, 조선음율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5(서울: 국립국악원, 1988), 37-53쪽, 태학서관 광동서국, 1916( 大 正 5). 256

265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2) 1행 12정간: <삼현환입> 초장 제2행~ <하현환입> <염불환입> <미환입> <계면가락환입> <양청환입> <우조가락환입> 이와 같이 조선음율보 매 1행의 정간 수가 20정간형과 12정간형으로 대별되고 있고, 그 1행은 바로 1장단이 된다. 그런데 악보에 명시된 장고 장단을 보면 20정간형과 12정간 형에는 다음과 같이 각각 균등시가분배형와 부등시가분배형 장단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43). 1행 20정간 1행 12정간 l i ㅣ i l i ㅣ i 이와 같이 조선음율보 에는 1행 20정간 1장단과 1행 12정간 1장단이 있지만, 각각 균 등시가분배형와 부등시가분배형 장단으로 구분됨에 따라 그 수록곡은 다음과 같이 4종 유 형으로 구별되어 나타난다. 제1형) 1행 20정간 부등시가분배형(고6[ ] 편4[ㅣ] 고4[ ] 편6[i]): <상령산> <중령 산> <세령산> <가락제지> <삼현환입> 초장 제1행 제2형) 1행 20정간 균등시가분배형(고5[ ] 편5[ㅣ] 고5[ ] 편5[i]): 타령 군악 제3형) 1행 12정간 부등시가분배형(고4[ ] 편2[ㅣ] 고2[ ] 편4[i]): <삼현환입> 초장 제2행이하 <하현환입> <염불환입> <미환입> 제4형) 1행 12정간 균등시가분배형(고3[ ] 편3[ㅣ] 고3[ ] 편3[i]): <계면가락환입> <양청환입> <우조가락환입> 1행 20정간 1장단 균등시가분배형으로 기보되어있는 <타령> <군악>은 동대금보 나 죽취금보 에서 8정간 1장단이었다. 이는 <타령> <군악>의 1장단이 8정간 1장단으로부터 현행 12정간 1장단으로 정착되기까지 그 중간 점에 속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8정간 1장단 20정간 1장단 12정간 1장단으로의 변천과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에서는 <타령> <군악> 장단이 <계면가락환입> <우조가락환입>과 대체로 차이 43) 이혜구, 조선음율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5(서울: 국립국악원, 1988), 3-5쪽. 257

2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가 없는데 조선음율보 에서는 각각 1행 20정간 1장단과 1행 12정간 1장단으로 구별되어 있어 특이하다. 현행 양청도드리가 민간음악의 볶는 타령과 유사한 점을 상기할 때 조선 음율보 에서 사용된 1행 20정간 균등시가분배형과 1행 12정간 균등시가분배형은 혹 속도 문제와 상관된 문제가 아닌지, 이 점은 향후의 과제로 남긴다. 4) 방산한씨금보( 方 山 韓 氏 琴 譜 ) 44) 의 기보방식 1916년에 편집된 것으로 알려진 방산한씨금보 에는 <보허사> <여민락> <가곡> <영산회 상> 등 거문고 악보를 비롯하여 가야금보 <별곡>, 양금 악보 등 방대한 악곡이 수록되어 있 다 45). 악곡의 종류에 비례하여 1행의 정간 수에 따른 보법이나 장단 유형 역시 다양하다. 우선 그 거문고 악보를 중심으로 각 악곡의 기보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행 20정간[1장단]: <보허사>(전7장) <여민락>(전7장) <영산회상>(5장) <중령산>(4장) <세령산>(4장) <가락제지>(3장) 보허사1-4 l l 보허사5-7 l 여민락1-3 l 扌 여민락4 l 扌 여민락5-7 l l 단, 與 民 樂 1-3 靈 山 會 像 中 靈 山 의 장단 유형이 같고, 步 虛 詞 5-7 細 靈 山 加 樂 除 指 의 장단유형이 같다. 가야금보에서는 영산회상 본령산이 위 여민락4장과 장단유형이 같은 것으로 보아 상호 호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加 樂 除 指 제3장 후반에서 1행 24정 간으로 바뀌는데 이 부분은 현행 상현도드리 초장에 해당한다. 44) 한우석, 방산한씨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4(서울: 국립국악원, 1984), 쪽). 45) 보허사 여민락 하성세환입 가곡(한바탕) 영산회상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상현환입[삼현] 세환입 [상성] 하현환입 염불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지 문해양청환입 우조가락제지 취타(이상 거문고보) 영산회상[본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삼현환입 상성세환입 하현 염불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 지 문해양청환입 우조(이상 가야금보) 시절가(이하 양금과 장단) 계면조음 얼청 평조 등. 258

267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2) 1행 24정간[2장단]: <하성세환입( 下 聲 細 還 入 )> <가락제지( 加 樂 除 指 )> 제3장 후반 <상현환입[삼현]> <세환입[상성]>(전7장) <하현환입> <염불> 하성세환입 ː l ː l 가락제지 외 l l l l 1장단 1장단 즉 1행 24정간을 2장단으로 삼았으므로 매 1장단은 12정간이 된다. (3) 1행 8정간[2장단]: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지> <우조가락제지> 타령 l l l l 군악 l l l l l l 계면가락제지 l l l l 1장단 1장단 단, <우조가락제지>는 <타령>과 장단유형이 같다. 1행 8정간이 2장단이므로 그 1장단은 4정간이 된다. 그리고 4정간 1장단은 현행의 12정간 1장단과 상응한다. 그러므로 현행에 비추어 1장단에 소요되는 4정간의 매 정간은 정간이라기보다 오히려 대강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다른 한편, 가야금보에 명시된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지> <우조가락제지>의 각 장단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타령 l l l l 군악 l l l l 계면가락제지 l l l l l 우조가락제지 l l l l 1장단 1장단 이와 같이 거문고보와 가야금보의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지> <우조가락제지> 장단 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4정간 1장단으로 이루어진 악곡들은 상호 호환 하여 변통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1행 8정간[4장단]: <문해양청환입( 文 蟹 兩 靑 還 入 )> 문해양청환입 l l l l 1장단 1장단 1장단 1장단 259

26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5) 1행 32정간[1장단]: 가곡 중 <초삭대엽> <이삭대엽> <거중성( 擧 中 聲 )> <평성> <소 삭대엽> <삼삭대엽> <쇠 셋 ㅣ치> <계면초삭대엽> <계면이삭대엽> <계면거중성> <계면평성> <계면소삭대엽> <계면삼삭대엽> <계면쇠 셋 ㅣ치> <언롱초장> <만 횡초이장> <반엽중념이하( 半 葉 中 念 以 下 )> 32정간 l l 현행 가곡에서의 대여음은 제1행 제12정간에서 시작되는데, 가곡의 실연에서 그 대여음 을 전주한 뒤 이어 초장이 시작된다. 현행에 비추어볼 때, 방산한씨금보 소재 가곡은 바 로 현행 대여음의 시작부분을 매 장단의 개시점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 1 행 32정간 1장단에서는 제11정간의 합장단을 현행 16박 1장단의 시작부분으로 삼으면 다 음 행 제10정간까지가 현행에 상응하는 1장단이 된다. 이하 16정간 1장단과 10정간 1장 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16정간 1장단에서는 제6정간부터 다음 행 제5정간까지가, 10정간 1장단에서는 제4정간부터 다음 행 제3정간까지가 각각 현행 1장단에 해당한다. (6) 1행 16정간[1장단]: 가곡 중 <소용이> <우롱> <우락> <쇠 우락> <얼락> <계면 소용이> <언롱이장이하> <만횡( 蔓 橫 )>삼장이하 <계롱> <계락> <반엽>초장-삼장 <환계락> 16정간 l l l (7) 1행 10정간[1장단]: <우편> <계편> 10정간 l l l l l (8) 1행 12정간[1장단]: <취타> 취타 l (9) 1행 24정간[5장단]: <시절가> 시절가 혼합장단 1장단 1장단 1장단 1장단 1장단 260

269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이상 살펴본 바, 방산한씨금보 에서는 1행의 정간 수가 정간 인 7종 방식이 활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 중 1행 정간 등 5종 방식 은 매 1행이 1장단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현행 정간보의 기보 방식과 상통한다. 현재 1행 32정간 1장단 방식은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1행 10정간 1장단[우편 계편]과 1행 12정간 1장단[취타], 1행 16정간 1장단[가곡 중 <소용이> 외], 1행 20정간 1장단[보허사 외] 등 은 4종 기보방식은 현행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가곡의 표기에 사용된 1행 32정간 1장 단과 1행 16정간 1장단 및 1행 10정간 1장단은 다음과 같이 장고 점수가 완전히 같으면 서 각각의 한배만 다르다는 점에서 상호 유기적인 연변( 演 變 ) 관계가 확인된다. 32정간 l l 16정간 l l l 10정간 l l l l l 한편, 1행 24정간의 보법에서는 매 행이 1장단 12정간씩 2장단으로 구성된 경우가 있 고, 3정간 1장단과 6정간 1장단이 혼합 구성된 경우[시절가]가 있다 46). 그리고 1행 8정간 의 보법에서는 매 행이 1장단 4정간씩 2장단으로 구성된 경우와 매 행이 1장단 2정간씩 4 장단으로 구성된 경우로 구분된다. 이와 같이 매 1행이 2장단 이상으로 구성되는 방식은 앞서 취급한 동대금보 나 삼죽금보 등을 통하여 이미 그 전례를 확인한 바로서 현행과 같이 1행 즉 1장단 이전에 이미 사용하던 방식으로 대체로 영산회상의 표기에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5) 동대율보( 東 大 律 譜 ) 47) 의 기보방식 1921년의 악보로 알려진 동대율보 에는 <본령산>부터 <군악>까지 <별곡>이 수록되어 있다 48). 악곡의 표기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1행 정간 보법이 사용되었고, 매 행 은 다음과 같이 공히 1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46) 후자의 경우, 제1행과 제2행이 정간씩 5장단이 안배되어 있고, 제3행이 정간 씩 4장단이 안배되어 있어 그 기본 구성이 박(초 중장)과 박(종장)으로 구성 되는 현행 시조와 상응하고 있다. 즉 3정간 1장단과 6정간 1장단은 현행 시조의 5박과 8박의 옛 보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47) 동대율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2(서울: 국립국악원, 1987), 쪽. 48) 수록 악곡은 본령산(전5장) 중령산(전5장) 잔령산(전5장) 졸님(전2장) 회두(1행) 상현(전3장) 잔도드 리(전7장) ㅣ탄(전3장) 념불(전3장) 하현(1장) 타령(전3장) 군악(전3장)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261

2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 1행 20정간[1장단]: <본령산>(전5장) <중령산>(전5장) <잔령산>(전5장) <졸님>(전2 장) <회두>(1행) 본령산 (2) 1행 12정간[1장단]: <상현>(전3장) <잔도드리>(전7장) < ㅣ탄>(전3장) <념불>(전 3장) <하현>(1장) 상현 (3) 1행 8정간[1장단]: <타령>(전3장) <군악>(전3장) 타령첫5행!! 제6행이하 즉 동대율보 에서는 현행과 같이 1행 즉 1장단으로 완전 정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이러한 사례는 이미 앞서 양금여민락보 나 가곡현금보 및 조선음율보 등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6) 이왕직아악부 악보(가야금보 외)의 기보방식 이왕직아악부의 악보는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자료총서 25와 한국음악자료총서 28에 10종 악기의 악보[영인]가 수록되어 전한다. 즉 한국음악자료총서 25에는 대금 필률( 觱 篥 ) 당적 단소 현금 등 5종 악기의 악보가 수록되었고, 한국음악자료총서 28에는 가야금 해금 양금 아쟁 경종 등 5종 악기의 악보가 수록되었다. 이러한 아악부의 악보가 완성된 시기는 일단 1930년대로 추정되고 있고 49), 악보는 정간보에 율명을 적어놓는 방식으로 이 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편의상, 10종 악기의 아악보 중 가야금보 50) 와 해금보를 주요 대 49) 김영운, 국립국악원소장 아악부 악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5(서울: 국립국악원, 1988), 5-34쪽. ; 황병기 김영운, 고악보해제: 아악부가야금보외, 한국음악자료총서 28(서울: 국립국악원, 1989), 3-17쪽. 50) 본 연구에서 현금보를 주요 대상으로 삼지 않고 가야금보를 선정한 이유는 양 악보에 수록된 악곡 이 완전히 같으면서(단, 수록 순위에서 현금보에서는 송구여지곡이 우조가락환입 뒤에 나오지만 가 야금보에서는 승평만세지곡에 이어 나오는 점에서 다름) 가야금보에는 명시된 장단 유형이 현금보 의 그것보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262

271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상으로 하여 그 기보방식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가야금보에 사용된 정간보 1행의 정간 수는 다음과 같이 20정간 12정간 32정간 등 3종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매 1행은 1장으로 기보되었다. (1) 1행 20정간[3종 장단 유형]: 조음 계면조조음[이상 무장단] <승평만세지곡> <황하 청> <중광지곡> 중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이상 쌍6-편4-고4-편 6] <삼현환입> 초장 제1행[쌍4-편2-편4-고4-편6] <취태평지곡> 중의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삼현환입> 초장 제1행 가곡의 편장단 [쌍2-편2-고2-편2-편2-고2-편2-쌍2-편2-고2] 51) 2종 조음[무장단] 승평만세지곡 등 삼현환입 초장 제1행 가곡 중 편장단 이상과 같이 1행 20정간 보법에서는 무장단과 3종 장단형으로 구별되어 나타나는데, 매 1행 즉 1장단을 이룬다. 즉 삼현환입 제1장 제1행에 사용된 장단은 승평만세지곡-가락제 지에 사용된 장단과 다르고, 가곡의 편장단은 가곡의 1행 32정간의 장단에서 모든 4정간 이 2정간으로 바뀐 결과로서 앞의 2종 장단형과 다르다(뒤에서 상론함). (2) 1행 12정간[쌍4-편2-고2-편4]: <송구여지곡> <수연장지곡> <삼현환입> 초장 제2 행 이하 <하현환입> <염불환입> <타령> <군악> <천년만세지곡> 중 <계면가락환 입> <양청환입> <우조가락환입> <수요남극지곡> 송구여지곡 등 1행 12정간 보법에서 역시 매 행이 1장단을 이루고 있고, <송구여지곡>-<수요남극지 곡>에 모두 동일한 장단이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송구여지곡> <수연장지곡> <삼현 환입> 초장 제2행 이하 <하현환입> <염불환입> 등이 현행에서는 1행 6정간 1장단으로, <천년만세지곡> 중 <양청환입>은 현행에서 1행 4정간 1장단으로 각각 바뀌어 나타나고 바 뀌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타령> <군악> <천년만세지곡> 중 <계면가락환입> <우조가락 환입>이 현행에서는 1행 12정간 1장단인 점에서는 같으나 그 장단형이 바뀌어 나타나고, 51) 현금보에서는 삼현환입 초장 제1행의 장단과 가곡의 편장단이 공히 승평만세지곡 등에 보이는 장단 [쌍6-편4-고4-편6]과 동일하게 나타나 가야금보와 차이가 있다. 263

2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수요남극지곡> 역시 행 12정간 1장단인 점에서는 같으나 그 장단형이 완전히 다르게 바 뀌어 나타난다. (3) 1행 32정간[쌍4-편2-고4-편2-편4-고4-편2-쌍4-편2-고4]: <만년장환지곡> 32정간 이와 같은 가곡의 1행 32정간 1장단은 앞서 살펴본 바 방산한씨금보 의 1행 32정간에 서 다음과 같이 그 1장단을 제11정간부터 다음 행 제10정간까지로 환산했을 때의 경우와 완전히 일치한다. 전1행 l 후1행 l 한편, 아악부 해금보에는 <태평춘지곡> <기수영창지곡> <서일화지곡(해령: 16장절구 분)> <경록무강지곡(전: 십장)> <요천순일지곡> 등 당악곡이 무정간보로 이루어졌고, <승 평만세지곡> 이하 각곡 전 곡이 정간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승평만세지곡> <중광지 곡>(<송구여지곡[세환입]> <수연장지곡[미환입]>포함) <천년만세지곡> <취태평지곡> 등은 1행의 정간 수나 장단형이 가야금보 의 그것들과 완전히 같다. 다만 <취태평지곡> 중 <삼현환입> 초장 제1행의 장단이 제5정간에 편( )장단이 추가됨으로써 쌍4-편2-편4-고 4-편으로 나타나 미소한 차이가 발견된다. 또한 동일한 영산회상계에 속하는 <표만방지 곡>의 소속곡 역시 1행의 정간 수나 장단형이 중광지곡의 그것들과 동일하다. 그밖에 <만 년장환지곡> 중 1행 32정간 방식은 1행의 정간 수나 장단형이 가야금보의 그것과 완전히 같으나, 그 1행 20정간의 편장단의 경우, 그 1행의 정간 수는 가야금보의 그것과 같지만 다음과 같이 그 장단형이 다르게 나타난다. 해금 편장단 가야금 편장단 즉 해금보에서 사용된 편장단은 <승평만세지곡>이나 <중광지곡> 중 <상령산> 등에 사용 된 장단과 같은데, 현금보에서도 해금보와 동일한 장단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가야금보에 264

273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사용된 편장단은 다음과 같이 1행 32정간 1장단과 유기적 관계에 있다. 32정간 20정간 이와 같이 가야금보에 명시된 가곡의 편장단은 가곡의 1행 32정간의 장단에서 모든 4정 간이 2정간으로 바뀐 결과라 할 수 있고, 아악부 양금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해금보(현금보포함)보다는 가야금보(양금보포함)에 명시된 편장단이 보다 신빙성있는 것으 로 추정된다. 하지만 두 유형의 장단이 호환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아악부 해금보에는 표정만방지곡 외에도 가야금보에는 없는 소위 관악곡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 1행의 정간 수와 장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행 12정간 1장단: <만파정식지곡> <우림령> <금전락> <군악> 만파정식지곡 우림령등 만파정식지곡의 경우, 1행 12정간 1장단인 점에서는 동일계 악곡에 속하는 아악부 가야 금보의 <수요남극지곡>과 같으나 그 사용 장단이 다르게 나타난다. 즉 가야금보의 수요남 극지곡에서는 쌍4-편2-고2-편4이었지만, 해금보에서는 쌍2-쌍2-쌍2-고1-고1-쌍2-편 2로 나타나 비교적 현행 만파정식지곡의 장단에 가깝다. 아악부 양금보 만파정식지곡의 장 단 역시 해금보와 같은데, 양금보의 수록악곡에 수요남극은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만파정식 지곡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양금이 만파정식지곡의 연주에 편성되었음을 시사하고 있 다 52). 그리고 <우림령( 雨 林 鈴 )>과 금전락 및 군악에 사용된 장단은 쌍4-편2-고2-편4로 서 위 송구여지곡이나 수연장지곡의 장단과 동일하다. 52) 아악부 양금보에는 조음 승평만세지곡 송구여지곡 황하청 중광지곡 천년만세지곡 취태평지곡 만 파정식지곡 만년장환지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음악자료총서 28(서울: 국립국악원, 1989), 쪽. 265

2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1행 16정간 1장단: 절화(1행16정간) 장단은 쌍4-쌍4-쌍4-편4임. 절화 1행 16정간 1장단형은 아악부 가야금보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해금보에서도 오직 절화 에만 사용되었다. 장단 점이 각각 4정간씩 균일하게 안배된 점으로 미루어 행진곡으로서의 기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3) 1행 20정간 1장단: <장춘불로지곡> <수제천> <헌천수> <동동> <경풍년> 중 <편삭대엽[ 第 三 平 調 (제삼평조)]> <장춘불로지곡> <수제천> <헌천수> <동동>에 사용된 장단은 <경록무강지곡> 등에 사 용된 유형[쌍6-편4-고4-편6]과 동일하다. 하지만 경풍년 중의 <편수대엽[제삼평조]>은 쌍 2-편2-고2-편2-편2-고2-편2-쌍2-편2-고2로 구성되는 가야금보의 편장단형을 치다가 제4장에서 해금보의 편장단형인 쌍6-편4-고4-편6으로 바뀌어 5장을 거쳐 제이대여음( 第 二 大 餘 音 )으로 마치고 있어 특이하다. (4) 1행 32정간 1장단: <경풍년> 중 <두거> <두거[변조]. <두거[제이평조]. <농> <계 락> 장고 장단은 그 가곡 1행 32정간 1장단과 같다. 이로써, 해금보의 관악곡에서는 1행 12정간 20정간 32정간의 보식 외에도 1행의 정간 수가 16정간인 기보방식이 사용되었음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아울러 1행 12정간을 활용한 만파정식지곡의 장단이 1행 12정간으로 이루어진 여타 악곡에서 사용된 장단 쌍4-편2-고 2-편4와는 달리 쌍2-쌍2-쌍2-고1-고1-쌍2-편2로 이루어짐으로써 행진곡적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요컨대, 아악부 악보 중 가야금보와 해금보를 통하여 이왕직아악부의 아악보에는 1행의 정간 수가 정간 등 4종 보법이 사용되었고, 매 악곡은 예외없이 매 1행 즉 1장단으로 나타나 현행의 1행 즉 1장단의 기보방식이 이미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66

275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7) 흑홍금보( 黑 紅 琴 譜 ) 53) 의 기보방식 1930년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흑홍금보 에는 현행 별곡에 해당하는 악곡이 수 록되어 있고, 표기는 200자 원고지를 세로로 세워 매 칸에 구음(육보)를 기입하는 방식으 로 이루어졌다. 200자 원고지를 사용하였으므로 매 행은 기본이 20정간이지만 매 악곡에 따라 사용 정간 수가 한정됨으로써 매 행의 실질적인 정간 수가 되고 있다. 먼저 악곡별 매 1행의 정간 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행 20정간: <본영산> <즁영산(이상 1정1박형)> <잔영산> <가락도두리>(이상 2정 1박형) <타령> <군악> (2) 1행 12정간[2정1박]: <상현>(4장) <하현>(4장) <염불>(4장) <본도두리>(7장) <잔 도두리>(7장) <계면도두리>(1장은 불균등, 2장부터 매 행 6음) (3) 1행 8정간[2정1박]: <양청도두리>(매 행 4음) (4) 1행 16정간: <우조도두리>(단, 초장 처음 2행은 1행 12정으로 3정간마다 1음씩 4음 이 기보되었고, 제3행 이하는 1행 16정간으로 2정간마다 1음씩 8음이 기보되었는데, 그 처음 2정간은 현행 2정간, 두 번째 2정간은 현행 1정간에 해당함) 54). 이상과 같이 흑홍금보 에는 악곡에 따라 1정 1박형과 2정 1박형 등으로 구별되지만, 기본적인 기보 방식은 1행 8정간 12정간 16정간 20정간 등 5종 방식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현행에 비추어볼 때, 그 매 1행은 바로 1장단에 해당한다. 8) 악서정해( 樂 書 正 解 ) 부예서율보( 附 禮 書 律 譜 ) 55) 의 기보방식 1932년에 출판된 악서정해 에 부가되어 있는 예서율보는 가야금악보로서 별곡을 수록 하고 있다. 악서정해 에서는 정간의 활용방식이 여타의 악보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독특하 다. 기보 방식은 기본적으로 1정간을 1박자로 하여 1장단을 1각으로 삼았다 56). 하지만 매 53) 흑홍금보[영인], 韓 國 音 樂 資 料 叢 書 7(서울: 국립국악원, 1981), 쪽. 54) 초장 제1행부터 제9행(7행)[1행 16정간]은 현행 양청도드리 제7장에 해당하고, 제 10행이 현행 우 조 초장 시작부분에 해당함. 55) 이기태, 악서정해 부예서율보 (전주: 전주도서인쇄주식회사, 壬 申 (1932)). 267

2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정간은 2칸으로 구분되어 그 홀 수 칸은 길고 짝수 칸은 짧게 구획됨으로써 각각 홀짝 2 칸을 1박자로 삼되, 홀수 칸은 2/3박이 되고, 짝수 칸은 1/3박이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매 1정간 즉 1박자는 실제로 길고 짧은 2칸으로 구성된다. 먼저 수록 악곡의 기보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행 10정간 1/2장단[이십박자위일각( 二 十 拍 子 爲 一 刻 )]: <본령산> <중령산> 제1-5장 제6행 제1행 제2행 현행 악보에 준할 때 본령산 중령산의 매 1행은 현행 1/2행이 되고, 매 1각 즉 매 2행 20박자(박자는 정간수와 같음)는 현행 1행 20정간과 같다. 그러므로 본령산 중령산을 <1 각 = 1행 = 1장단>으로, <1박자 = 1정간>으로 환산하면 그 1장단은 다음과 같게 된다. 1장단! 1장단 이와 같은 쌍6 편4 고6 편4(편1 편3)는 쌍6 편4 고4 편6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2) 1행 10정간 1장단[십박자위일각( 十 拍 子 爲 一 刻 )]: 중령산제7-8행 세령산 제지(속칭 돌가락) 제3장 제1행 제1행 1행 10정간 1장단형은 2행 20정간 1장단의 장고 점수를 공히 반으로 줄여 이루어진 것 임을 알 수 있다. 56) 이러한 사실은 영산회상 아래에 일명 일남곡[청풍명월곡계면조] 이십박자위일각, 일박삼초[20박자 를 1각으로 삼는데, 1박은 3초이다] 라고 한 주와 본령산에 본령산삼백사십박자십칠각 라고 되어 있는 점에서 확인된다. 2행이 1각으로 기보된 본령산은 실제로 34행, 즉 17각을 이루고 있고, 총 340박자이다. 본 연구에서는 길고 짧은 두 칸을 1박자로 간주한 것에 근거하여 그 길고 짧은 두 칸을 실질적인 1정간으로 간주하였다. 268

277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3) 1행 6정간 1장단[육박자위일각]: <제지(속칭 돌가락)> 제3장 제2행 이하 <상현> <세환입> <하현> <염불> 매 1행 1행 6정간 1장단형은 1행 10정간 1장단형에서 쌍1 편1 고2가 각각 생략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4) 1행 8정간 1장단[팔(박)자위일각]: 타령 군악 매 1행 1행 8정간 1장단형 역시 위 1행 10정간 1장단형에서 쌍1 고1이 각각 생략되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악서정해 에서는 기본적으로 1행 정간 등 3종 보법이 사용되었지 만, 1행 10정간 방식에서 매 2행이 1각(장단)을 이루는 경우와 매 1행이 1각(장단)을 이루 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4종 보법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행에서의 행 과 각 은 동일한 수의 정간을 갖는데 반하여 이 악보에서는 행 과 각 이 구별되어 나타나 고 있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리고 명시된 4종 장단형은 장고 점수별 한배는 다르나 그 점 수가 완전히 같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9) 금은금보( 琴 隱 琴 譜 ) 정악조음( 正 樂 調 音 ) 57) 의 기보방식 1938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58) 금은금보 에는 정악조음 외에 현행 별곡에 해 당하는 거문고 악곡이 수록되어 있다 59). 기보는 한글 육보로 되어있는데 정악조음부터 상 현 2장까지는 정간을 활용하여 시가를 나타내었고, 장단도 표시되었다. 반면, 그 이하부터 는 시가와 장단의 표시가 없고, 사용된 용지도 앞의 한지에 모필을 사용한 것과 달리 갱지 미농지를 사용하였다 60). 우선 정악조음부터 상현 제2탄까지 사용된 기보방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7) 금은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쪽. 58) 이동복, 금은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7-10쪽. 59) 정악조음 본령산영산회상 중령산 하령산 가락환입 상현 잔도드리 돌장 하현 염불 타령 당학 양쳥 등. 60) 이동복, 금은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서울: 국립국악원, 1985), 8쪽. 269

2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1) 1행 20정간 1장단: 정악조음 <본령산 영산회상> <중령산> 1장단 l l 정악조음 이하 중령산에 사용된 장단은 1행 20정간 1장단인 점에서는 현행 상령산 등과 같지만, 1장단이 쌍6 편4 고6 편4으로 구성되어 쌍6 편4 고4 편6을 기본으로 안배되는 현행 장단과는 차이가 발견된다. (2) 1행 10정간: <하령산> <가락환입> 1장단 l l 1행 10정간 1장단형은 1행 20정간 1장단의 장고 점수를 공히 반으로 줄여 이루어졌다 는 점에서 앞의 악서정해 의 경우와 같다. (3) 1행 6정간: <상현>(제1-2탄) 1장단 l l 단 1행 6정간 1장단형에서는 지면을 줄이기 위해 1행 6정간 1장단을 상하로 간격을 두 어 기보하였다. 이 1행 6정간 1장단형 역시 1행 10정간 1장단형에서 쌍1 편1 고2가 각 각 생략되어 이루어진 점에서 앞의 악서정해 의 경우와 같다. 이와 같이 금은금보 에 사용된 장단은 3종 유형으로 확인되며, 1행의 정간 수 역시 정간 등 3종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각의 1행은 1장단이 되고 있다. 한편, 금은금보 에 사용된 1장단의 정간 수와 장단형은 각각의 장고 점수에 소요된 정 간 수로 볼 때 다음과 같이 악서정해 의 그것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단, 악서정해 는 1각 = 1행 = 1장단으로 환산한 경우임). (1) 1행 20정간 1장단 금은금보 l l 악서정해! 1장단 270

279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2) 1행 10정간[1장단]: <세령산>(5장), <제지>(속칭 돌가락, 3장 중 제1 2장) 금은금보 l l 악서정해! 1장단 (3) 1행 6정간[1장단]: <제지>(제3장,) <상현>(전3장) <세환입>(7장) <하현>(전2장) <염불> (5장) 금은금보 l l 악서정해! 1장단 이와 같이 양 악보에 명시된 쌍 편 고 편에 안배된 정간 수는 공통점이 있고, 그것들은 아악부 악보 등에 사용된 안배와 차이가 있다. 이상 살펴본 1행 1장단 정착시기의 기보 실태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71

28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표3> 1행 1장단 시기의 기보 실태(출현 시기를 기준하였으므로 정간 수의 기술 순위가 불규칙함) 악보 20정간형 16정간형 12정간형 10정간형 24정간형 8정간형 32정간형 6정간형 비고 1 양금여민락보 (1906) 여민락 환입 모두 1행 1장단형 2 가곡현금보 가곡 1행 16정간으 로 구획한 뒤 매 정간을 다 시 2분함으로 써 1행 32정 간으로도 해 석할 수 있음 3 조선음율보 (1916) 부등시가분배형: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삼현환입 [초장제1행]> 균등시가분배형: <타령> <군악> 부등시가분배형 : <삼현환입> 초장 제2행 이하 <하현환입> <염불환입> <미환입> 균등시가분배형: <계면가락환입> <양청환입> <우조가락환입> 272

281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악보 20정간형 16정간형 12정간형 10정간형 24정간형 8정간형 32정간형 6정간형 비고 4 방산한씨금보 (1916) <보허사> <여민락> <영산회상>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3장) 공히 1행 1장단 가곡 중 <소용이> <우롱> <우락> <쇠 우락> <얼락> <계면소용이> <언롱이장이하> <만횡삼장이하> <계롱> <계락> <반엽초장-삼장> <환계락> <취타> <우편> <계편> 1행 2장단형: <하성세환입> <가락제지>제3장 후반 <상현환입[삼현]> <세환입[상성]> <하현환입> <염불> 1행 5장단형[ 정간 혼합장단]: <시절가> 1행 2장단형: <타령> <군악> <계면가락제지> <우조가락제지> 1행 4장단형: <문해양청환입> <초삭대엽> <이삭대엽> <거중성> <평성> <소삭대엽> <삼삭대엽> <쇠 셋 ㅣ치> <계면초삭대엽> <계면이삭대엽> <계면거중성> <계면평성> <계면소삭대엽> <계면삼삭대엽> <계면쇠 셋 ㅣ 치> <언롱초장> <만횡초이장> <반엽중념>이하 1행 8정간 10정간 12정간 16정간 20정간 24정간 32정간 등 7종 방식 활용되었음 1행 24정간형과 8정간형에 여전히 다장단방식이 남아있음 5 동대율보 (1921) <본령산> <중령산> <잔령산 > <졸님> <회두> <상현> <잔도드리> < ㅣ탄> <염불> <하현> <타령> <군악> 1행 1장단으로 완전 정착되어 나타남 273

2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20정간형 16정간형 12정간형 10정간형 24정간형 8정간형 32정간형 6정간형 비고 6 이왕직아악부 악보(가야금) (1930) 무장단형: 조음 계면조조음 쌍6-편4-고4- 편6형: <승평만세지곡 <황하청> <중광지곡>과 <취태평지곡> 중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제지> 쌍4-편2-편4- 고4-편6형: <삼현환입> 초장 제1행 가곡의 편장단곡 <송구여지곡> <수연장지곡> <삼현환입>초장 제2행이하 <하현환입> <염불환입> <타령> <군악> <천년만세지곡> 중 <계면가락환입> <양청환입> <우조가락환입> <수요남극지곡> <만년장환지곡> 1행 20정간 12정간 32정간 등 3종 유형. 1행 20정간형 에서는 무장단 +3종 장단형 나타남 1행 32정간 1 장단형은 방산 한씨금보 중 1행 32정간형 의 제11정간부 터 다음 행 제 10정간까지의 장단과 동일함 이왕직아악부 악보(해금) (1930) <장춘불로지곡> <수제천> <헌천수> <동동> <경풍년> 중 <편수대엽 [제삼평조]> <절화> <만파정식지곡> <우림령> <금전락> <군악> <경풍년> 중 <두거> <두거[변조]> <두거[제이평조]> <농> <계락> 가야금보에 없는 곡만 소개함 274

283 7 8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악보 20정간형 16정간형 12정간형 10정간형 24정간형 8정간형 32정간형 6정간형 비고 흑홍금보 (1930년경) <본영산> <즁영산(이상 1정1박형)> <잔영산> <가락도두리 (이상 2정1박형)> <타령> <군악> <우조도두리> (단, 초장 처음 2행은 1행 12 정으로 3정간 마다 1음씩 4 음이 기보되었 고, 제3행 이 하는 1행 16 정간으로 2정 간마다 1음씩 8음이 기보) <상현>(4장) <하현>(4장) <염불>(4장) <본도두리>(7장) <잔도두리>(7장) <계면도두리> (1장은 불균등, 2장부터 매 행 6음) 공히 2정1박 <양청도두리> (매 행 4음) 1행 8정간 12정간 16정 간 20정간 등 4종 방식 사용 악곡에 따라 1정 1박형과 2정 1박형 등 으로 구별됨 악서정해 부예서율보 (1932) 이십박자위일 각 형: 본령산 중령산 제 1-5장 제6행 십박자위일 각 형: 중령산 제7-8행 세 령산 제지 (속칭돌가락) 제3장 제1행 <타령> <군악> <제지> (속칭 돌가락) 제3장 제2행 이하 <상현> <세환입> <하현> <염불> 1행 10정간 6정 간 8정간 등 3 종 보법 사용되 었음 단, 1행 10정간 방식에서 매 2행 이 1각(장단)을 이루는 경우와 매 1행이 1각(장 단)을 이루는 경 우 등 2종 방식 인 점을 고려하 면 총 4종 방식 이 활용되었음 275

2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20정간형 16정간형 12정간형 10정간형 24정간형 8정간형 32정간형 6정간형 비고 9 금은금보 (1938) 정악조음 <본령산영산 회상> <중령산> <하령산> <가락환입> <상현> (제1-2탄) 1행 20정간 10정간 6정 간 등 3종 1행은 1장단 이고, 그 장 단 역시 3종 유형으로 나 타남 276

285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Ⅲ. 결 론 본 연구는 세종대 세조대 현행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간보의 역사적 변천에 대하여 세조대로부터 현행으로 직결시키기에는 시간적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위 1 행 16정간6대강으로 이루어진 세조식 보법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마침내 易 理 로부터 괴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중간 과정에 대하여 상고해본 것이다. 연구 방법은 현전 고악보 중 그 표기 방식이 1행 2대강( 大 綱 ) 6대강 8정간( 井 間 )3대강 등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정간이 없는 대강보가 처음으로 보이는 양금신보 를 기존의 16정 간6대강의 전통에서 벗어난 효시로 간주하여, 현전 고악보 가운데 정간 혹은 대강을 활용 한 악보로서 그 성립 시기가 양금신보 이후에 속하는 악보를 대상으로 그 정간 활용실태 를 검토해 봄으로써 각 시기 별 특징을 살펴보았다. 단 기술의 편의를 위하여 대상 고악보 를 양금신보( 梁 琴 新 譜 ) 의 모방( 轉 寫 )과 변형 시기, 1행 1장단~다장단 시기, 1행 1장단 시기 등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첫째, 양금신보 의 전사(모방)와 변질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양금신보 외 윤용진 소장금보 증보고금보 남훈유보 동대금보 인수금보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악 보들에서의 공통 점은 양금신보 수록 악곡들을 기초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기보 방식 면에서는 기존 대강의 와해 시기로서 윤용진소장금보 이후로 양금신보 의 1행 8정간3 대강형에 대강표시가 배제되어 1행 8정간형으로 바뀌었고, 또 세로 길이가 정간에 상응하던 양금신보 1행 6대강형은 윤용진소장금보 까지 유지되다가 증보고금 보 부터 세로 길이가 균등하게 안배됨으로써 매 대강의 세로길이가 동일한 1행 6대강형으 로 바뀌었다. 다른 한편, 양금신보 에 없는 악곡으로서 새로이 대두된 삭대엽 보허자의 표기에 세로 길이가 균등한 1행 4대강형이 출현한 점, 금가곡보( 인수금보 )에 활용된 1행 24정간형 보법이 출현한 점, 1행 12정간과 14정간을 혼용한 조성보 만대엽이 출현한 점 61) 등 새로운 기보 방식의 맹아기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 1행 1장단~다장단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삼죽금보 와 죽취금보 를 들 수 있 다. 이 시기 악보들의 특징은 양금신보 로부터의 전사곡이 없어지고, 영산회상과 가곡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영산회상과 가곡이 규모가 갖추어짐에 따라 삼죽 61) 만대엽(조성보)의 출현은 당시 사람들의 복고적 태도에서 기인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행 12정 간과 14정간을 혼용하여 만대엽 조성보를 악보화한 점은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옛 악곡의 현 대적 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77

28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금보 에서는 매 1행이 공히 16정간으로 구획되었지만, 1장단의 의미를 갖는 1각의 정간 수가 정간으로 구별되었고, 죽취금보 에서는 1행 20정간 1장단[1장단 =20정간], 1행 20정간 2장단[1장단=10정간], 1행 18정간 3장단[1장단 =6정간], 1행 16 정간 2장단[1장단 8정간] 등의 보식이 활용되었다. 즉 삼죽금보 에서는 매 1행에 차지하 는 1장단의 소요 정간 수가 불규칙하지만, 죽취금보 에서는 매 1행에 1~3장단이 규칙적 으로 안배됨으로써 행과 장단의 관계가 삼죽금보 에 비하여 분명해졌다. 셋째, 1행 1장단 정착 시기에 속하는 악보로는 양금여민락보 가곡현금보 조선음 율보 동대율보 아악부 악보 흑홍금보 악서정해 부예서율보 금은금보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매 1행의 정간 수가 1행 정간 등 다양 하게 나타나는데, 삼죽금보 외의 모든 악보에서 그 1행의 정간 수는 바로 1장단의 소요 정간 수에 비례한다. 예외로 방산한씨금보 에는 1행의 정간 수가 정간 등 7종 방식이 활용되었는데, 가곡의 3종 장단(1행 정간)과 취타(1행 12정간) 및 여민락 보허자 등(1행 20정간)은 1행 1장단 방식이 활용된 반면, 별곡 중 상 령산-가락제지를 제외한 나머지 악곡들의 표기에는 종래의 1행 다장단 방식이 여전히 남 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금합자보 까지 충실히 유지되어 오던 16정간6대강의 세조식 보법이 양금신보 에 이르러 정간이 없는 대강보의 출현으로 인하여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세종보 나 세조보의 원리에 근간이 되어온 역리적 근거를 일탈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양 금신보 이후로 대강이 와해되는 현상이 생겨나면서 점차 정간보가 역리로부터 괴리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산회상> 같은 곡이 생겨나면서 장단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1행에 1장단~다장단식 보법단계를 거쳐 점차 1행 즉 1장단으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이로 써 정간보는 더 이상 관념적인 악보가 아니라 1행이 1장단을 이루는 실용적이고 기능성적 인 악보로 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정간보의 변천사에서 세종대 세조대 현행으로 일괄해온 기존의 논의에서 시간적인 거리가 너무도 먼 세조대와 현행 사이의 여백을 어느 정도 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본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정간보 1행 정간 수의 변천을 세종대 세조대 기존 대강의 와해 시기[ 양금신보 의 전사(모방)와 변질 시기] 1행 1 장단에로의 전환기[1행 1~다장단 출현 시기] 현행[1행 1장단 시기]로 논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상 악보의 검토 순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해 당혹스런 부분 도 없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 진행한 대상 악보에 대한 검토순위는 기본적으로 국립국악원 278

287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의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되어있는 고악보 해제에서 추정된 연대에 의거하였다. 그런 데 각 악보의 수록 내용상 과연 고악보 해제에서 추정한 연대에 전적으로 의거하여 순위를 정하여도 될 지 의문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훈유보 를 고종대로 추정하 고 1825년으로 알려진 인수금보 를 그 이본으로 간주한 견해를 따른다면 응당 남훈유보 와 인수금보 를 함께 취급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훈유고 를 년 간 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 때문에 부득불 별도로 논할 수 밖에 없는 곤란함이 있었다. 또 본 연구에서는 남훈유고 동대금보 인수금보 순으로 취급하였지만, 1813년으로 추정된 동대금보 를 과연 인수금보 (1825)보다 앞선 시기의 악보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그 수록 악곡과 기보 방식을 보면, 동대금보 에는 인수금보 에 비해 비교적 후대에 생성된 악곡이 수록되었고, 그 표기를 위하여 다양한 기보방식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악보의 연대 추정은 악보를 조망하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견해가 충분 히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종래 각 악보에 대한 개별 해제가 이왕 이루어진 만큼 향후에는 묶음으로 연대 추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하자면 연대에 대한 낱개 악보의 절 대적인 추정보다는 전후 시기의 악보를 참조한 상대적인 추정이 강조되었으면 한다. 그것 은 고분의 연대를 추정할 때 다른 고분과의 비교를 통하여 진행되는 것에 비길 수 있을 것 이다. 279

28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참고문헌> 금보[영인 (윤용진)[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8. 서울: 국립국악원, (증보)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 서울: 국립국악원, 금은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8. 서울: 국립국악원, 금합자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2. 서울: 국립국악원, 남훈유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8. 서울: 국립국악원, 동대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2. 서울: 국립국악원, 아악부 대금보 [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25. 서울: 국립국악원, 양금곡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5. 서울: 국립국악원, 양금신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4. 서울: 국립국악원, 인수금보[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 서울: 국립국악원, 죽취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 서울: 국립국악원, 조선정악전습소 일람[필사본] 태학서관 광동서국. 1916[대정5]. 흑홍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 서울: 국립국악원, 휘금가곡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7. 서울: 국립국악원, 김영운. 국립국악원소장 아악부 악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5. 서울: 국립국악원, 동대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2. 서울: 국립국악원, 김학규. 조선음율보[영인]. 韓 國 音 樂 資 料 叢 書 25, 서명응. 대악후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 서울: 국립국악원, 서인화. 삼죽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33. 서울: 국립국악원, 서한범. 국악통론. 서울: 태림출판사, 성낙서. 조선음악사[필사본] 안 곽. 조선음악의 연구. 조선 제14권 제8호. 서울: 한국국악학회, 우재 조이순. 가곡 현금보 [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 서울: 국립국악원, 양금 여민락보[영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9. 서울: 국립국악원, 이기태. 악서정해 부예서율보. 전주: 전주도서인쇄주식회사, 1932( 壬 申 ). 이동복. 금은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 서울: 국립국악원, 남훈유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8. 서울: 국립국악원,

289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인수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9. 서울: 국립국악원, 이승무. 三 竹 琴 譜 [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33. 서울: 국립국악원, 이혜구. 조선음율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25. 서울: 국립국악원,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창간호. 서울: 국립국악원, 한국의 구기보법. 한국음락연구. 서울: 국민음악연구회, 한국음악연구. 서울: 국민음악연구회, 정간보의 정간 대강 및 장단. 서울: 세광음락출판사, 장사훈. 대악후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1. 서울: 국립국악원, 죽취금보 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7. 서울: 국립국악원, 증보고금보해제. 한국음악자료총서 장사훈 한만영. 국악개론. 서울: 서울대출판부, 정화순. 이덕윤의 생애와 업적. 청예논총 제12집. 청주: 청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초기 정간보의 역학적 해석을 위한 시도. 한중철학 창간호. 서울: 한중철학회, 한우석. 방산한씨금보[영인]. 한국음악자료총서 14. 서울: 국립국악원, 함화진. 조선음악통론[영인]. 서울: 민속원, 홍정수. 대강보의 절주방식. 한국음악사학보 제11집. 경산: 한국음악사학회, 황병기 김영운. 고악보해제: 아악부가야금보외. 한국음악자료총서 28 서울: 국립국악원. 281

2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Abstract> A Study on the Transition of the Number of Jeonggan on One Line of Jeongganbo Jeong Hwa-soon (Prof. Cheongju Univ.) Based on the understanding that with regard to the historical transition of jeongganbo which has been discussed as it changed from the Sejong era to Sejo era to the present time, it is too long in the length of time to connect directly from the Sejo era to the present time,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intermediate process of how the Sejo-style musical score writing methods that was composed of 16 jeonggan and 6 daegang on one line have changed to that of the present time. The score writing methods were composed of one line 2 daegang, 6daegang, 8 jeonggan 3 daegang, and yanggeum sinbo where daegangbo musical score without jeonggan that was first shown is regarded as the first of its kind that was freed from the tradition of 16 jeonggan 6 daegang, and with this as a starting point, I attempted to examine the state of utilizing jeonggan of the musical scores that utilized jeonggan or daegang among the old musical scores that belong to those before As the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the existent old musical score that was formed between yanggeumsinbo era and 1948 are roughly divided into 3 periods: 1 the period of copying and spoiling yanggeumsinbo 2 the period of one line beat ~ multiple beats 3 the period of one line one beat settlement. The 1st period is the period in which the existing daegang, whose foundation is jeonggan, collapsed, so daegang mark was excluded in 8 jeonggan 3 daegang of yanggeumsinbo and the distinction between jeonggan and deagang was unclear and length of yanggeumsinbo 6 daegang that corresponded to the length jeonggan changed to uniform length. On the other hand, in this period, new music appeared, and besides the one line 4 daegang method whose length is uniform, it can 282

291 정간보 1행 정간수의 변천에 관한 연구 be said that it was the sprouting time of new musical score writing methods such as one line 24 jeonggan type musical score writing method or the mixed method of one line 12 jeonggan and 14 jeonggan. In the 2nd period, music copied from yanggeumsinbo disappeared and as the scale of yeongsanhoisang and songs was established, the number of jeonggan per line was constant but on that one line, one beat~multiple beats were marked, so one line multiple beats method appeared. The 3rd period is the period in which one line one beat methods are settled and the number of jeonggan per line is implied by jeonggan per line and the number of jeonggnan of the one line is represented in proportional to the number of jeonggan required in the one beat. As an exception, the one line multiple beats method still remained in the remaining song writings except sangryongsan~grakjeji among special tunes in bangsanhanssigeumbo. In sum, the sejo-style musical score writing methods of 16 jeonggan 6daegang that had been faithfully maintained until geumhapjabo underwent epoch-making changes due to the emergence of daegangbo without jeonggan by the time of yanggeumsinbo, but they were not completely deviated from the divining grounds that had been the basis of the principles of sejongbo or sejobo. However, as daegang collapsed after yanggeumsinbo, it can be said that jeongganbo musical scores began to be gradually divorced from the divining principles. On the other hand, as music such as yeongsanhoisang emerged, beats began to appear and passing through the musical score writing stages of one beat-multiple beats per one line, they gradually settled down into one line that is one beat. Thus, it can be said that jeongganbo is no longer an abstract musical score but is converted into a practical and functional musical score. Keywords: jeonggan, daegang, yanggeumsinbo, sejo-style musical score writing method, one line multiple beats, one line one beat 283

292

293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 陰 陽 五 行 )관련 연구 성과 검토 조 연 진* 62) <국문초록> 본 연구는 2000년부터 2010까지 발표된 국악을 소재로 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 양오행( 陰 陽 五 行 )을 적용한 연구 성과들을 살펴본 논문이다. 음양오행은 동양의학에 서 인체의 생리적, 병리적 변화를 인식하고 설명하는데 이용되어왔다. 이 연구에서 는 학위논문을 중심으로 연구내용 검토와 분석을 통해 연구자들이 음양오행의 이론 과 국악을 음악치료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아본 후 각 연구들에 대한 비평과 제안 을 함께 전개하였다. 음악치료 연구들은 신경과학, 심리, 노인, 장애 아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연구 되었다. 그러나 연구 소재에 있어서 음양오행과 국악을 사용하여 연구가 이루어진 경우는 지극히 적은 편이다. 이 연구를 위해 조사된 분석대상 논문들의 연구자들도 대부분 음악치료 전공자들은 아니다. 본고에서 음양오행이론을 국악과 접목시켜 임상과 연구에 적용한 예를 음악 치료 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향후 음악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국악을 이용하기 위해 서도 필요한 연구과제이다. 따라서 연구 내용 분석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과 해결방 안을 제시하고 음양오행이론에 사용된 국악 소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활용방안과 연구에 대한 미래의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다. 선정된 자료들은 연구자의 배경, 연구형태, 연구내용과 음악치료 구성에 따라 분 석하였다. 연구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었다. 연구자의 배경은 음악치 료 배경보다는 음악교육이나 대체의학과 같이 음악치료 외의 배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형태는 가능성에 대한 이론제시 연구가 많았다. 음악 치료 방법에 있 어서는 대부분 음악 감상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음악분류나 선곡에 대한 기준이 정 *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음악치료전공 박사과정 285

2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확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음양오행이론을 음악치료의 근거로 삼은 연구자들은 병증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특징들을 볼 때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몇 가지 점들을 고려해 볼 수 있 다. 먼저, 치료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음악 감상에 편중된 음악치료 방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악치료 활동을 연구하고 음악선택과 분류에 있어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악을 포함하여 음악치료 프로그램에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국악기에 대한 정보와 지식도 함께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핵심어: 음양오행( 陰 陽 五 行 ), 국악, 음악치료, 한방음악치료, 전통음악치료 목 차 Ⅰ. 서 론 Ⅱ. 연구현황과 연구자들의 배경 Ⅲ. 연구 분류에 따른 내용검토 및 분석 Ⅳ. 결론 및 논의 Ⅰ. 서 론 음악치료는 치료적인 목적을 가지고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음악이라는 도구를 사용하 는 것으로, 대상자의 심리적 혹은 신체적 상태의 문제를 개선시키며 변화를 이끌어 내는 체계적인 과정이다. 체계적인 과정이라 함은 대상자에 대한 진단과 평가 후 구체적인 치료 목표와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음악치료는 질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다. 음악에 대한 개인의 반응도 모두 다르고 주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음악을 들으 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무슨 증세에는 누구의 음악을 들으라는 식의 접근은 대단히 잘못 286

295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음악치료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1) 일부에서는 음악치료는 음악을 이용한 심리적 치료로 국한하여 알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치료는 대상자의 자신감, 사회성, 대인관계 능력, 정서적 발달 등과 같은 행동변화 뿐 아니라 학습능력과 같은 인지 기능, 그리고 운동, 보행능력, 언어능력과 같은 신체의 바람직한 기능적 변화에까지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음악치료가 음악의 전문분야로 자리잡아가면서 음악치료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들도 발표 되었다. 이러한 연구발표는 음악치료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중에는 국악을 소재로 한 음악치료에 관한 논문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악을 소재로 한 연구들 중 특히 음양오행( 陰 陽 五 行 )을 적용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음양오행의 이치는 인체의 생리적, 병리적 변화를 인식하고 설명하는데 이용하는 이론이 자 방법이다. 국악의 소재를 이러한 음양오행의 원리에 적용하여 최초로 발표된 학위 논문 연구로는 박미향 2) 과 한금희 3) 의 연구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한국의 전통음악과 음양론의 연계 흔적은 <삼국사기( 三 國 史 記 )> 악지 의 가야금에 관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공명통의 윗부분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한 것이고, 밑이 평평한 것은 땅을 상징한 것이라 하였다. 한자 문화권의 음악에서는 12음의 구성 자체가 음양조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황종 음부터 차례로 헤 아려서 홀수의 음( 音 )은 양( 陽 )이고 짝수의 음( 音 )은 음( 陰 )이 되는데 예를 들어 황종 음은 첫 번째 음이 홀수이기 때문에 양에 해당되고 대려는 짝수이기 때문에 음에 해당되는 것이 라고 한다. 4) 음양오행 이론을 가지고 음악치료에 접근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그들이 근거로 삼은 음 양 5) ( 陰 陽 )은 다음과 같다. 음양이라는 말이 최초로 나오는 설문해자( 說 問 解 字 ) 6) 에서는 밝 1) 최병철, 음악치료학 (서울: 학지사, 1999), 20쪽. 2) 박미향, 동양의학 원리에 기초로 한 음악치료의 전통음악 활용 방안 (서울: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2000). 3) 한금희, 스트레스 환자를 위한 음악치유에 관한 연구,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2000). 4) 한명희, 음양오행사상과 한국의 전통음악,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 3권(동아시아 문화학회, 2006), 102-3쪽. 5) 두 개의 힘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두 가지 속성이다. 서로 다른 두 힘이 맞물려 하나를 완성하는 것 이고 이 때 어느 한 쪽의 힘이 세어지면 균형이 깨져 질병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자연계의 사물의 변화는 모두가 음양( 陰 陽 )의 대립과 조화라는 양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우겸, 한의학과 현 대의학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102쪽. 287

2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음은 양( 陽 ), 어두운 것은 음( 陰 )으로 상징했다고 한다. 또한 주역 이나 춘추번로 를 참 고하면 양은 강하고 적극적이며 음은 약하고 소극적인 것으로 대입된다고도 하였다. 7) 이러 한 점에 근거하여 연구자들은 밝고 활기차며 빠른 음악은 양, 조용하고 느리며 어두운 느 낌의 음악은 음의 음악으로 적용하였고 장애아동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음악 활동 도구로 이용하였다. 음양에 비해 오행은 시대나 학자별로 의견이 다양하지만 오행이론을 음악치료에 사용한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접근하였다. 먼저 오행의 각각의 특성 8) 에 근거하여 음악의 요소나 느낌을 가지고 음악을 분류하여 생명체의 변화나 정서치료에 사용하였다. 오행학설에서는 우주의 모든 사물을 오행에 귀속을 시켜 서로 상호작용하고 변화하며 이 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오행의 속성으로 사물을 추단연역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오행의 속성으로 오미( 五 味 )를 처음 추단 연역한 것에 대한 유래를 가지고 후대인들이 여러 가지 로 해석을 한 것이라고 한다. 추단 연역은 오색( 五 色 ), 오성( 五 聲 ) 으로 발전을 하였고 내경( 內 徑 ) 시대에 와서는 오행의 속성으로 기후, 소리, 색깔 뿐 아니라 사시음양( 四 時 陰 陽 )과 인체의 내장, 기관 등의 조직이 서로 호응한다는 개념으로 추단연역의 범위를 확대 시켰다고 한다. 9) 이러한 원리를 근거로 하여 연구자들은 추단연역에 음악을 이용하여 인체 의 생리적, 병리적 현상에 대한 치료와 연계하였다. 한편, 한의학의 신형일체론( 神 形 一 體 論 )과 칠정학설을 정신치료나 인체 장부( 臟 腑 )의 질 병과 관련하여 음악치료 근거로 접근하기도 하였다. 신형일체론은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는 것으로, 형( 形 )은 인체의 생명활동 중 신체와 밀접하게 연관된 음( 陰 )적인 현상이고 신( 神 )이란 신체적 활동을 추동하는 양( 陽 )적인 표상의 개괄이라고 한다. 10) 여기서는 오장 ( 五 臟 )의 변화가 감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칠정학설에서는 정지( 精 志 )의 변화가 정신 6) 총 15편으로 후한( 後 漢 )의 허신( 許 愼 )이 편찬. 그 당시 통용된 모든 한자를 분류하였다. 7) 명재남, 음양오행론의 상담심리치료 적용 가능성 탐색,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석사학위 논문, 2007), 36-7쪽. 8) 음양오행을 적용한 연구자들이 정의한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목( 木 )의 특징은 솟으려는 기운, 즉 자 란다 는 기운. 화( 火 )는 흩어지려는 기운으로 불과 여름의 열기가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 이 자신을 발산하는 특성. 금( 金 )은 모으려는 기운으로 가을의 모든 기운이 열매 속으로 모이는 것 에 비유. 수( 水 )는 끌어내리려는 기운으로 추운 겨울에 초목이 한기를 피하려고 땅속뿌리로 에너지 를 끌어내리는 것. 토( 土 )는 목( 木 ),화( 火 ),금( 金 ),수( 水 )를 흙에서 품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 즉 이 네 가지의 조화균형을 이루는 기운이라 정리하고 있다. 9) 배병철, 기초 한의학 (서울: 성보사, 2001), 73쪽. 10) 대한동의생리학회편, 동의생리학 (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3), 391쪽. 288

297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신체적 병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정신적 스트레스나 감정의 동요가 인체의 장부에 영 향을 미쳐 병증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한의학에서는 칠정 중 다섯 가지 감정을 기본정서로 하여 장기의 오행배속에 의한 상호관계를 설명했다고 한다. 11) 이러한 이론에 입각하여 연구 자들은 음악을 가지고 칠정에 관련된 감정들을 다스리고 연관된 효과를 얻기 위한 치료 근 거로 사용하였다. 정신과 장부를 관련짓는 것은 사상체질의학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 누어 설명하였는데 네 가지 체질의 차등성을 논하며 선천적인 장부의 대소( 大 小 )와 육체적 현상이 희노애락의 성정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12) 이러한 사상체질의학 의 원리를 근거로 삼아 네 가지 체질의 특성에 따른 기운과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음 악에 대한 연구도 시도된 바 있다. 13) 앞서 설명된 이론들을 기본으로 하여 이승현 14) 은 오기( 五 氣 )를 발하는 음악을 가지고 누에와 같은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국악에 대한 음양오행 분류도 함께 제 안하였다. 김주연 15) 은 양기( 陽 氣 )와 음기( 陰 氣 )의 음악활동을 통해 자폐아의 행동변화를 실험하여 음양오행이론에 근거한 음악활동의 영향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박태미 16) 는 한국 전통음악 감상을 통해 인체 에너지 장의 오행 활성도를 측정하여 알아봄으로써 전통음악이 우리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또한 김병학 17) 은 오행 분류와 팔음 ( 八 音 ) 분류를 통해 악기활용에 대한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음양오행이론을 국악과 접목시켜 임상과 연구에 적용한 예를 음악 치료적 관점에서 살펴 보는 작업은 향후 음악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국악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연구과제이 다. 또한 전통음악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1) 김병학, 음악치료의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국악기의 활용방안 연구: 칠정학설과 악학궤범을 중심으 로, (동의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음악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08), 19쪽. 12) 이승현, 사상체질인의 병증치료를 위한 한방음악치료에 관한 연구, 대한한의학 원전학회지 20(4) (대한한의학 원전학회, 2007), 120쪽. 13) 위의 논문. 14) 이승현, 오행(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변화에 미치는 영향: 한방음악치료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3). 15) 김주연, 양기의 음악활동과 음기의 음악활동이 자폐성 아동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 (숙명여자 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 석사학위 과제, 2005). 16) 박태미, 한국 전통음악이 성인의 인체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 정악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대 체의학대학원 정신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0). 17) 김병학, 앞의 논문. 289

2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음양오행이론을 활용한 논문 분석을 통해 음양오행과 관련하여 국 악의 소재들을 음악치료에 어떻게 적용했고, 연구자들이 제시한 활용방안 및 연구결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의 내용검토와 분석을 통해 보완점과 해결 방안을 제시 하고 음양오행이론에 사용된 국악 소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활용방안과 연구 에 대한 미래의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연구를 위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 질문 은 다음과 같다. 1. 국악을 소재로 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이론을 적용한 연구현황과 연구자들의 배경은 어떠한가? 2. 음악치료 연구의 분류 18) 는 어떠한가? 3. 연구내용과 음악치료의 구성 19) 은 어떠한가? 1) 연구방법 및 결과 2) 음악치료의 목적 (혹은 연구의 목적) 3) 음악치료 대상자의 형태 4) 활동 방법 혹은 프로그램 5) 악기와 음악선택 18) 연구의 분석을 위해 임상 실험연구, 활용방안 및 접근방법에 대한 연구로 분류하여 2개의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분류된 연구 설계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임상실험연구는 연구대상을 가지고 실험을 거쳐 음양오행 적용의 치료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활용 방안 및 접근방법 연구는 음악치료와 관련 하여 음양오행과 동양의학의 이론 설명, 전통음악을 활용한 프로그램이나 치료 방법 등을 제안한 것들이며 때로 간단한 사례도 포함된 내용들이다. 19) 접근방법 및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들이 어떤 원리를 가지고 치료방법이나 활용법을 제안 했는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연구들도 있다. 따라서 연구에서 언급된 내용 안에서 최대한 음 악치료 구성의 내용을 반영하여 서술하였다. 290

299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Ⅱ. 연구현황과 연구자들의 배경 국악을 소재로 한 음악치료 연구들은 총 51편이다. 이는 국악소재의 음악치료 연구가 최초로 나타난 1994년 20) 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학위논문 및 학술지 논문들의 결과이다. 국악소재 음악치료 연구들의 전체적인 연구현황에 대해서는 연도, 학문영역, 연구대상, 연 구유형, 연구주제별로 분류된 연구 21) 를 참조하면 전체적인 흐름 파악을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국악소재의 전체적인 음악치료 연구들 중 음양오행 소재 연구만을 대상으 로 하였고 그 연구들의 내용분석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연구 현황과 연구자들의 배경에 대 해서는 필요부분만 간략하게 다루었다. 국악을 소재로 한 음악치료 연구 성과 중 음양오행 적용 연구의 조사는 최초 연구가 게 재된 시점인 2000년도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학위 논문을 검색 대상으로 하였다. 논문 검색을 위한 키워드는 음양오행, 국악, 한방음악치료, 전통음악치료로 검색하였다. 석사, 박사 학위 논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 7편이 음양오행을 적용한 연구로 확인되었 다. 22) 연구자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박사 학위 논문 1편, 석사학위 논문 6편으로 발표되었으 며 연구자의 전공 배경은 음악치료(2편), 음악교육(2편), 한의학 원전학과(1편), 대체의학(2 편)으로 나타났다. 음양오행 연구의 목록은 <부록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 성과들을 살펴보면 임상실험연구 3편, 활용방안 및 접근방법에 대한 연구 4편으로 나와 있다. 위의 결과들을 볼 때 음악치료 배경의 연구자들보다는 비( 非 )음악치료 배경의 연구자들 이 음양오행 주제를 더 많이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유로 실험연구보다는 음양오행 이론과 적용 가능성에 대해 제안을 하는 연구의 수가 더 많이 발표되었다. 연구 20) 정은정, 음악치료의 이론적 고찰: Cos와 샤만의 전통과 민간요법 명상에 나타난 음악치료 환경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4). 21) 김자현,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에 대한 연구현황 조사 및 내용검토, 2011 국악학 전국대회: 국 악치료에 관한 연구 성과와 학문적 가능성 모색 (한국 국악학회, 2011), 쪽. 22)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은 국내전문전자 데이터베이스인 국회도서관, 한국 교육학술정보원(RISS4U) 서비스를 이용하여 조사하였다. 한국 학술정보 국내학술지(KISS)가 포함된 학술지 논문들에서도 음 양오행( 陰 陽 五 行 ) 적용연구 11편이 함께 조사되었으나 이는 제외하였다. 학술지의 논문들은 연구자 의 전공이나 학위에 대한 배경정보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조사된 학술 지 논문 총 11편 중 9편의 논문에서 한 사람의 특정인이 단독 저자 및 공동저자로 포함되어 이루어 져 있다. 이는 특정인의 연구 경향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객관적 흐름의 이해를 위해 학 술지의 논문들은 추후 후속연구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석사, 박사 학위 논문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291

3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대상은 정서와 관련된 대상을 가장 많이 택하고 있다. 그 외 연구주제나 음악사용은 연구 들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이를 포함한 기타 내용에 관해서는 내용검토와 분석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Ⅲ. 연구 분류에 따른 내용검토 및 분석 1. 임상 실험 연구 임상실험 연구는 3편으로 이승현 23), 김주연 24), 박태미 25) 의 연구이다. 이들은 각기 누에 의 형질변화, 자폐성 아동의 부적절한 상호작용행동변화, 그리고 한국 전통음악이 인체의 기와 에너지 밸런스 유지 및 조절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박태미(2010)는 연구 에서 정악을 이용하여 들려주는 방법을 이용했다. 그러나 이승현(2003)과 김주연(2005)은 음양과 오행으로 나누어 분류한 음악을 사용하였다. 음악에 대한 음양오행 분류는 이승현 (2003)이 연구에서 가장 먼저 서양음악과 국악에 대해 분류를 하였다. 김주연(2005)은 이 승현(2003)의 연구에서 음양에 대한 분류만 가져다가 음악적 요소를 좀 더 세분화 하여 연 구에 사용하였다. 이승현(2003)의 경우 서양음악에 대한 분류와 서양음악을 사용한 실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연구자는 실험에서 음색의 통일을 위해 비록 서양음악을 사용하였으나 연구내용에서 는 국악에 대한 음양오행 분류와 제안을 중요한 비중으로 함께 다루고 있다. 연구자가 나 타내고자하는 국악의 음양오행 분류와 적용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음악을 적용한 실험내용도 함께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음악사용과 분류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원리로 음양오행을 적용하고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이승현(2003)이 서양음악에서 음악을 음양과 오행으로 분류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양( 陽 )의 음악은 악센트가 있는 리듬과 음표의 길이가 짧은 것, 도약진행의 선율과 도약 상행선율, 음색은 현악기에서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음색이 가볍고 날카로워 빠르게 뻗어 23) 이승현, 오행(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변화에 미치는 영향: 한방음악치료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3). 24) 김주연, 양기의 음악활동과 음기의 음악활동이 자폐성 아동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 (숙명여자 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 석사학위 과제, 2005). 25) 박태미, 한국 전통음악이 성인의 인체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 정악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대 체의학대학원 정신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0). 292

301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나가는 기운이 있는 것을 양의 특성으로 분류하였다. 음( 陰 )의 음악은 악센트가 없는 박의 리듬, 음표의 길이가 긴 것,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순차진행, 포근한 첼로의 음색은 음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러한 음양에는 상대성이 있어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첼로의 음색을 음으로 분류했으나 더블베이스에 비하면 양 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의 오행 분류기준은 선율, 리듬, 화성으로 나누었다 <표 1> 참조. 이에 비해 김주연(2005)은 음악을 음양으로만 분류하여 사용하였고 퓨전국악을 이용하 였다. 또한 음악의 요소를 리듬, 멜로디, 음색, 템포, 조성, 다이내믹으로 세분화하였다<표 2>와 <표 4> 참조. <표 1> 이승현(2003)의 서양음악 오행( 五 行 ) 분류 오행 특징 선율 리듬 화성 음색 목 화 새싹과 같이 부드럽고 연 약한듯하면서도 딱딱한 겉 표면을 깨고 곧게 뻗어나 가는 기운 양기( 陽 氣 )가 사방으로 분열 하여 발산( 發 散 )하는 기세 상행선율 도약선율 순차진행의 빠른 스케일 크레센도와 함께 사용 당김음(syncopation), 점8분음표, 점16분음표 같은 붓점 음표를 많이 사용한 경쾌한 느낌 8분 음표, 16분 음표, 32분 음표 major의 장3화음 부분 major에서 빠른 리듬의 기교 피아노 바이올린 피아노의 빠른기교 토 부드럽고 평안한, 음( 陰 )이 나 양( 陽 )의 성질들을 조화 롭게 하는 결속력 심한 도약진행 없이 3,4도 이내의 음정 4분 음표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온, 안정된 느낌 빠르지 않은 악장의 major부분 첼로 금 펼쳐있는 기운을 내부로 거두어들이는 기세 순차하행 선율 8분 음표와 4분 음표를 적절하게 혼합 minor의 단3화음 플루트 수 내부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움직임이 심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도약하강 진행하는 선율 점2분 음표나 온음표, 긴 음표 뒤에 짧은 음표를 사용하는 리듬 스타일 지정되지 않음 -오르간 -바순 * 오행 분류 음악에 대한 악보의 예는 <부록 2>를 참조할 수 있다. 293

3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표 2> 음악적 요소의 양기와 음기에 따른 분류 26) 리듬 양기( 陽 氣 ) 음기( 陰 氣 ) 리드미컬, 세분화된 박, 강약의 대조적 느낌 내재된 박, 기본박, 부드러운 강약의 변화, 레가토 멜로디 상승하는 느낌의 도약진행 순차진행하며 하강하는 진행 음색 발고, 활기참, 강함, 시끄러움, 높음, 열정적 부드러움, 조용함, 어두움, 낮음, 차가움 템포 =60이상의 빠른 템포 =60이하의 느림 템포 조성 장조, 평조 단조, 계면조 한편, 이승현(2003)의 국악에 대한 음양오행 분류는 산조를 중심으로 하여 장단, 가락, 음색으로 나누었다. 음양은 전체적인 장단의 틀에서 중중모리를 기점으로 하였다고 한다. 진양조와 중모리는 느린 음의 속성, 자진모리와 휘모리, 단모리는 빠른 것으로 양의 속성 에 분류시켰다. 가락은 음계에 대한 견해가 달라서 악상의 의미로 쓰이는 산조의 조( 調 )로 나누었다고 하였다. 우조는 양, 계면조는 음의 속성으로 구분했다. 음색에서도 가야금은 양, 거문고는 음으로 나누었으나 음양에 대한 것은 상대성이 있어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오행 분류는<표 3>을 참조할 수 있다. <표 3> 이승현(2003)의 전통음악 오행( 五 行 )분류 오행( 五 行 ) 특징 장단 가락 음색 목기음악 ( 木 氣 音 樂 ) 화기음악 ( 火 氣 音 樂 ) 토기음악 ( 土 氣 音 樂 ) 발생과 창달을 주도하는 기운 여름에 무성하게 성장하고 분열력 이 있는 기운 음,양의 성질을 조화롭게 포용하 는 기운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중중모리 악상기호로서의 평조를 중 심으로 하는 밝게 튀어 오르는 느낌을 주는 가락. 악상기호로서의 평조를 중심으로 하는 빠르게 움직이는 가락. 우조에서 평조로 바뀌 거나 계면조에서 평조 로 바뀌는 평조중심의 和 平 正 大 한 가락 - 가야금의 밝은 음색 - 대금의 화평하면서도 힘있 는 평취( 平 吹 )주법 부분 - 가야금이나 해금의 휘모리 부분 - 대금의 힘차게 뻗어가는 역 취( 力 吹 )주법 부분. - 활을 사용하여 연음의 부드 러움과 중간음역의 건실함 을 주는 아쟁의 음색 - 평안하고 안정된 대금의 평 취주법부분 26) 김주연, 앞의 논문, 27쪽. 294

303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금기음악 ( 金 氣 音 樂 ) 수기음악 ( 水 氣 音 樂 ) 벌여놓았던 일들 을 거두고 평정을 주도하는 기운 내부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움직 임이 고요한 기운 중모리 아주 느린 진양조 계면조를 중심으로 하 는 조금 슬프게 스며들 면서도 영롱함을 주는 가락 계면조를 중심으로 하 는 무겁게 움직이고 가 라앉는 가락 - 거문고의 차분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음색과 술대로 발현할 때의 영롱함 - 대금이나 해금이 애수 띤 계면조의 조금 느린 가락을 연주하는 부분 - 거문고의 어둡고 차분한 음색 - 느리게 움직이거나 긴 농현의 음( 音 ) - 대금이 저취( 低 吹 )로 연주하 면서 한 音 을 길게 부는 것 * 오행 분류 국악에 대한 악보의 예는 <부록 2>를 참조할 수 있다. 이승현의 연구인 오행(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변화에 미치는 영향 의 내 용을 살펴보면 오행으로 분류한 음악이 각각 목기( 木 氣 ),화기( 火 氣 ),토기( 土 氣 ),금기( 金 氣 ), 수기( 水 氣 )를 발하여 생명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의 목적은 한의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음악치료가 가능함을 보이고 육체의 형질( 形 質 )적인 질병에도 치료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음악의 오행적 분류를 검증하고자 함이었다. 실험의 목적은 누에를 대상으로 오행 음악이 부화준의 누에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함이며 누에알이 개미누에로 깨어날 때까지의 누에알 특성실험을 하였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에게 오행으로 분류한 음악을 들려주고 유충의 경과일수, 5령 된(잠을 4번 잔) 누에의 최대체중, DNJ(식후의 과혈당치 억제)함량조사, 고치무게, 화용비율(강건함의 척도), 견층 비율(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수치)등의 특성조사를 하였다. 방법은 서양음악을 오행으로 분류하고 두 개의 상자에 각각 누에알을 넣은 뒤 음악처리와 무음악 처리로 분류하여 실험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음악들은 음악의 음색을 동일한 조건으 로 주기 위해 서양음악의 현악 합주곡에서 오행음악의 분류에 따라 녹음하여 사용하였다. 실험 결과로는 오행음악으로 처리한 시험구에서 무( 無 )음악 처리한 대조구보다 먼저 누 에가 부화를 하였고 앞에 제기된 특성조사에서도 모두 우수한 결과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특히 목기와 금기음악 처리한 시험구가 사육성적이 우수하였고 목기음악처리에서의 화용비 율이 가장 높아 발생을 주도하는 목기의 영향을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승현의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음양오행이론 적용 을 서양음악에서도 찾아 적용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실험에서는 음색을 동일한 조건 295

3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으로 주기 위하여 서양 음악을 오행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음양오행설 은 동양의학의 기본이니만큼 오행의 특성이 국악을 사용했을 때는 어떻게 다를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국악에 대한 오행 분류를 제안하였지만 이에 대한 결과확인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전통음악을 적용했을 때도 같은 변화가 있을 지, 서양음악과 우리 전통음 악과의 차이는 없을지에 대한 사례가 있다면 더 다양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의 선곡이나 예가 적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나 성금연 류 가야금 산조 처럼 음악의 예시를 일부 제공한 것도 있었지만 서양음악보다 국악의 예들 은 다양하지 않고 한정적이었다. 국악에 대한 선곡들도 너무 간단히 이루어졌다. 또한 국 악에 대한 정보처리가 충분하지 않다. 오행분류에서 악기의 재료가 가지는 성질과 음의 현 상이 불일치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도 해결이 필요하다. 셋째, 오행분류 음악의 특성은 그렇다하더라도 음양의 범위 안에서의 분류체계가 애매하 다. 상대성이라는 것이 있어 음의 속성으로 분류된 악기가 양의 속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분류에 대해서는 좀 더 정교하게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다음으로 김주연(2005)의 연구는 양기( 陽 氣 )의 음악활동과 음기( 陰 氣 )의 음악활동이 자 폐성 아동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 이다. 이 연구에서는 음양오행이론에 근거한 두 가지 음악활동인 양기와 음기의 음악활동 중 자폐성 아동의 부적절한 상호작용 행동(무관심, 무반응, 상동행동, 반향어)의 감소에 더욱 효과적인 음악활동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연구대상은 자폐성 아동으로 판정된 7~8세 아동 3명이다. 실험기간은 약 9주였다. 기초 선(음악활동이 들어가지 않은 초기측정) 9회기 후 양기 음악활동 11회기, 음기 음악활동 12회기로 진행하였다. 측정방법으로는 활동시작 후 5분이 지난 후부터 5분간 관찰하고, 10초 간격의 동간격 기록법으로 행동발생빈도를 측정하였다. 부적절한 상호작용 행동은 음 악적 자극과 악기, 치료사의 노래와 지시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반응, 반향어, 상동행동이 다. 각 음악활동은 10분 동안 진행되며 음악 감상과 즉흥연주 활동으로 구성되었다<표 4 참조>. 음악자극, 음악활동, 사용되는 악기는 음과 양으로 분류하였다. 연구결과로 음양오행이론에 근거한 음악활동은 자폐성 아동의 부적절한 상호작용 행동의 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양기의 음악활동이 음기의 음악활동보다 더 효과적 인 것으로 나타났다. 296

305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표 4> 양기의 음악활동과 음기의 음악활동 프로그램 구분 양기( 陽 氣 )의 음악활동 음기( 陰 氣 )의 음악활동 정의 목( 木 ), 화( 火 )의 기운을 가진 음악 금( 金 ), 수( 水 )의 기운을 가진 음악 구성 음악감상(2분): 양방언 Frontier (리드미컬한 꽹과리와 장구의 리듬을 특징으 로 하며 강약의 대비가 많고 전체적으로 경 쾌하며 빠른 템포의 신나는 느낌)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 (가야금 편곡) * 즉흥연주(8분): 피아노, 투바노 (북), 심 벌, 패들드럼, 카우벨 음악감상(2분) : 양방언 곡 Tear & Arrow (해금의 애절한 음색을 특징으로 한 애 잔, 조용한 느낌, 레가토적, 내재된 박) 비발디 사계 중 가을 1악장 (가야금 편곡) * 즉흥연주(8분): 피아노, 오션드럼, 핑거 심벌,윈드챠임, 핸드벨(아동) 조성과 모드 C Major(각조), G Major, Mixolydian(치조) c minor, a minor(우조), Dorian(상조) 템포 =60이상의 빠른 템포 =60이하의 느린 템포 다이나믹 대조적인 강약을 특징으로 하는 포르테 강약의 대비와 변화가 없는 메조 피아노 멜로디 밝고 활기찬 느낌, 리드미컬한 도약진행, 상 승하는 느낌의 빠른 멜로디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 물 흐르는 듯 한 순차진행, 하강하는 느낌의 내재된 박의 멜로디 김주연의 연구를 분석해 보면 양기와 음기 음악을 분류함에 있어 음악의 구성 외에도 조 성과 모드, 템포, 다이나믹, 멜로디 등의 여러 가지 음악요소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구분하 였다. 음악사용은 국악과 서양음악을 혼합하여 이용하였다. 감상음악에서 퓨전 국악을 사 용하여 전통악기와 서양의 악기들로 함께 연주된 곡이거나 서양의 음악을 가야금으로 편곡 한 형식을 이용했다. 선정한 곡에 대하여 여러 가지 요소 구분이 매우 좋았고 우리의 전통 악기로 연주되는 곡을 선택하여 사용한 것도 좋았다. 그러나 양방언의 곡과 사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이전에 적용을 해보았더니 어떤 반응을 보였었다는 이유정도는 제시를 해야 더 탄탄한 구성이 될 수 있겠 다. 또한 사용음악인 양방언의 프론티어 중에서도 양기의 부분은 어느 부분이라는 것을 좀 더 구체화해주면 좋을 것이다. 혹은 양기에 해당하는 음악, 음기에 해당하는 음악의 그룹 을 제시하고 그 그룹에서 대상에 맞는 곡을 골랐다는 설명이 필요하겠다. 음악요소를 제시 하고 그것에 합당하는 음악들은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추가적 설명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활동방법에서는 감상을 위주로 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즉흥음악연주가 포함되어 적극적이 297

3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고도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음악 감상이 항상 먼저 구성되 어 있어서 행동에 대한 관찰 기록 시 연주활동을 할 때에만 행동변화가 측정되었을 수도 있다. 회기마다 활동의 순서를 바꾸어 본다면 음악 감상과 연주 중 어떤 활동에서 긍정적 인 결과가 나타나는지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험연구 중 마지막 차례인 박태미(2010)의 연구는 한국 전통 음악이 성인의 인체 에 너지장에 미치는 영향: 정악을 중심으로 이다. 연구의 대상은 20대에서 60대 성인 남녀 66명으로, 한국 전통음악이 인체의 기와 에너 지 밸런스 유지 및 조절에 효과적인 대체의학의 도구로써 성인들의 건강예방과 치료에 긍 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보고자 했다. 방법으로는 한국전통음악인 정악 수룡음을 들려주기 전과 후 인체 에너지장 27) 측정기로 측정하여 얻어낸 data (에너지장 안정도 수치, 오행활성도 수치, 색상과 패턴) 28) 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연구결과로는 한국 전통 음악을 듣기 전보다 듣고 난 후에 인체 에너지장의 안정도가 더 높아졌고 오행 활성도의 차이가 더 감소했다고 나왔다. 또한 인체 에너지장의 색상과 패턴 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기에 한국 전통음악을 통한 정신 안정 및 육체적 질병과 치료 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음악사용에서 연구자가 제시한 수룡음의 선정이유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음악이며,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중간의 정서를 일으키고, 음의 밀집도가 촘촘하 지 않고 성긴 편이며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다. 또한 정악은 뇌자극과 심신안 정에 가장 이상적인 파형으로 연구되어 왔다고 하였다. 여기서 이상적인 파형이란 물리학 에서는 f분의 1이라 부르는 것으로, 흔히 α파 음향이라 부르는 자연의 소리에 이 파형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27)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기( 氣 )를 생체 에너지, 즉 생명의 기라고 하며, 인간은 물론 동식물 심지어 돌이나 금속에서도 빛이 나온다. 에너지 장( 場 ) 또는 연결망으로서 살아있는 유기체 내의 시스템과 통합하고, 에너지적 육체적 작용과 유기체 환경내의 시스템을 연결한다. 박태미, 한국 전통음악이 성인의 인체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 정악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석사학위 논 문, 2010), 5쪽. 28) 안정도 수치를 통해 몸의 안정화 및 스트레스 정도, 에너지의 음( 陰 )의 기운정도를 알 수 있다. 수 치 범위 0-100%에서 1을 가장 안정된 상태로 간주한다. 오행활성도 수치로는 한의학에서 인체와 오행의 상관관계에 따른 장부의 활성도를 알 수 있는데, 오행간의 차이가 작을수록 각 장부의 에너 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라 하였다. 색상과 패턴은 기질과 몸의 전반적인 균형 상태를 나타 내는 것으로, 교감신경에서 정상일 때는 노랑과 주황색으로 나타나고 부교감신경에서는 정상일 때 파랑과 초록색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위의 논문, 20-1쪽. 298

307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이 연구에서 생각해 볼 점은 먼저 대상자를 20-60대의 성인 남녀로 통틀어서 한 집단 으로 설정했다. 음악선정도 단 한 곡만 선택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반응 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다. 연령별, 성별로 음악의 선호도도 다르다. 한국의 전통음 악보다 서양음악에 더 익숙해 있는 대상들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국 전통 음악을 사용하였을 때도 같은 결과를 나타낼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서양 음악을 선정하여 사용하였을 때도 똑같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한국전통음악의 효과 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약의 효과를 알기 위해 시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 각한다면 곤란하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선곡기준의 근거가 부족하였다. 연구자는 정악이 α 파 파형이 많이 들어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정확한 확인도 없이 사용하였다. 연구자가 제시 한 선곡의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음악이며,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중간의 정서를 일으키고, 음의 밀집도가 촘촘하지 않고 성긴 편이며, 감 정을 절제한다는 요소들을 고려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조건들에서 중간의 정서라는 기준 이 정확하지 않다. 이 연구는 실험논문으로 결과를 측정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근거와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좋았으나 여러 조건의 실험대상군과 음악들을 분석하고 나누어 함께 비교 제시해야 더욱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활용 방안 및 접근 방법 연구 활용방안이나 접근 방법론에 대해 연구한 논문은 4편이다. 29) 연구자들이 음악치료에 이 용하기 위해 주로 이용한 동양의학의 원리는 칠정 30) 의 개념과 오지상승( 五 志 相 勝 )이론 31), 29) 강성우, 음악치료의 동양의학적 접근방법 연구: 음양오행이론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대체의학 대학원 수기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05). 김병학, 음악치료의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국악기의 활용방안 연구: 칠정학설과 악학궤범을 중심으로, (동의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음악치료 전공 석 사학위 논문, 2008). 박미향, 동양의학 원리에 기초로 한 음악치료의 전통음악 활용 방안, (한양 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2000). 한금희, 스트레스 환자를 위한 음악치유에 관 한 연구,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2000). 30) 칠정( 七 情 )이란 희( 喜 ),노( 怒 ),우( 憂 ),사( 思 ),비( 悲 ),공( 恐 ),경( 驚 )의 일곱 가지 감정을 가리키고 이 칠정이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본다. 장부의 생리활동이 비정상이면 관련 정지( 情 志 ) 즉 정신, 의식의 이상을 초래하고 정지의 이상은 반대로 장부의 생리활동에 작용하여 이상을 일으킨다. 박미 향, 앞의 논문, 32-3쪽 참조. 31) 오지상승( 五 志 相 勝 )이론이란 내경에서 말한 것으로 노승사( 怒 勝 思 )와 사승공( 思 勝 恐 ), 공승희( 恐 勝 喜 ), 비승노( 悲 勝 怒 ), 희승우( 喜 勝 憂 )가 있다. 즉 노여움은 사려를 이기고, 사려는 두려움을 이기고, 299

3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정승정( 以 情 勝 情 ) 요법 32), 그리고 오음을 오행에 배속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박미 향(2000)이 가장 먼저 연구에 이용하였고 이를 후속 연구자들이 따르고 있다. 오음을 오행에 배속한 것은 우주의 모든 사물을 오행에 귀속을 시켜 서로 상호작용하고 변화하며 이루어진다고 보는 오행학설에 따랐다. 자연계의 계절이나 기후, 생물의 변화 뿐 아니라 오색( 五 色 ), 오음( 五 音 ), 오미( 五 味 ), 그리고 인체의 내장, 조직 등도 모두 귀속하였 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오행인 목, 화, 토, 금, 수에 차례대로 오음(각, 치, 궁, 상, 우)과 오장 (간장, 심장, 비장, 폐, 신장)을 배속하였다. 예를 들어 목( 木 )에 해당되는 것은 각 ( 角 ) 음인데 각 음이 간( 肝 ) 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해석한 것이다. 오행 배속에 의해 오행 음악을 오장의 치료방법으로 제안한 연구자는 강성우(2005)이다. 강성우(2005)는 오음, 오성( 五 聲 )을 오행에 배속하여 치료에 쓰일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하 였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오행에 연결한 각, 치, 궁, 상, 우의 차례가 어떤 배열의 원리로 목, 화, 토, 금, 수에 배속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한편, 박미향(2000), 강성우(2005), 김병학(2008)은 오지상승이론에 따른 이정승정 요법 과 칠정이론, 오행배속에 따른 오음적용을 사용하였다. 활용제안과 접근방법을 제안한 연 구자들의 음악분류법은 오행의 특징과 칠정에 따른 오지상승이론에 근거한 이정승정 요법 이다. 박미향(2000)은 이 방법을 치료대상과 연결시켜 국악 선곡들을 제시하였다<표 5 참 조>. 강성우(2005)는 박미향(2000)이 제시한 이정승정 요법과 치료 대상, 명상곡들을 그대 로 차용하였다. 김병학(2008)은 명상곡 대신에 팔음으로 분류한 국악기를 적용했다. 연구 자들의 내용들을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려움은 기쁨을 이기고, 슬픔은 노여움을 이기고, 기쁨은 근심을 이긴다는 내용이다. 신천호, 한 의학의 기초,(서울: 고림서원, 1981), 212쪽. 32) 이정승정( 以 情 勝 情 ) 요법은 오지상승이론을 근거로 하여 의사가 언행, 사물 등을 이용하여 환자의 각종 정지를 자극함으로써 병적인 정서를 조절하는 치료방법이다. 즉 어떤 정지(정신)를 자극함으로 써 다른 좋지 못한 정지(정신)를 억제하는 방법이라 이해할 수 있다. 박미향, 앞의 논문, 33쪽. 300

309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표 5> 이정승정 요법을 토대로 한 명상음악 방법 五 音 적용 특징 명상곡 제시 치료대상 노승사법 ( 怒 勝 思 法 ) 희승우법 ( 喜 勝 憂 法 ) 비승노법 ( 悲 勝 怒 法 ) 사승공법 ( 思 勝 恐 法 ) 木 - 각( 角 ) 火 - 치( 徵 ) 土 - 궁( 宮 ) 金 - 상( 商 ) - 노여움으로써 우울함을 억누르고 기쁨으로서 노여움을 풀어주는 원 칙이라고 설명. - 기쁨은 근심을 억누른다고 하여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는 명상곡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함. - 슬픔은 노여움을 이긴다고 하여 비애의 기를 소모하는 작용을 이 용하면 내부에 쌓인 기를 해소하 고 항진하는 정서를 억누를 수 있 다고 한다. - 사려( 思 )가 지나치면 기가 쌓여 신( 神 )이 손상된다. 사려로 두려 움을 다스릴 수 있는데 이는 사려 를 통해 두려움을 야기하는 원인 을 배제함으로써 두려움을 이기는 목적에 도달함을 말한다. - 단소로 연주된 청성곡 - 한범수류 대금 산조의 진양조 - 황병기 가야금 작품 중 숲 - 춘향가 - 산조음악 중 자 진모리 부분 - 경기민요 - 회심곡 - 판소리 심청가 - 금강산 타령 - 이생강의 대금 산조 - 수제천 - 가야금 산조 중 진양조 - 남창 가곡의 계 면 삼수대엽 - 한갑득류 거문 고 산조 등. - 외상 후 스트레 스 장애 - 수면장애 - 우울증 - 노인질환 - 화병 - 울화병 환자 - 성격장애, 공 포, 히스테리, 편집, 자기애, 과민성 대장염 환자 공승희법 ( 恐 勝 喜 法 ) 水 - 우( 羽 ) - 두려움을 해소하는 원리로 놀람이 나 두려움은 인체의 신정( 神 情 )에 해로우며, 이를 두렵게 하는 기를 하강시킴으로써 지나친 기쁨으로 인해 신정이 쇠한 증후를 억누름. - 한일섭류의 아 쟁산조 - 구음 시나위 곡 - 강박장애 박미향(2000)의 연구는 동양의학 원리에 기초로 한 음악치료의 전통음악 활용 방안 이 다. 전통음악의 활용을 음악치료 영역에서 이론적으로 임상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전통음악 의 동양철학적인 원리와 그 활용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음악치료의 전통음악 활용 방법은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이정승정 치료방법을 토대로 한 명상음악의 방법 이다. 이는 전통음악의 오음을 치료수단으로 삼아 병적인 정서를 조절하는 방안이라고 하 였다<표 5 참조>. 301

3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두 번째 방법은 올프 슐웍(Orff Schulwerk)의 방법을 이용한 전통음악 활용 방안이다. 올프 슐웍이란 칼 오르프(Carl Orff)가 음악교육의 방법으로 발달시킨 것으로 집단 경험 속에서 동작리듬, 소리 언어 등의 음악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는 세 가지의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프로그램의 대상은 정신지체, 자폐, 노인으로 한꺼번 에 통일하였다. 첫 번째는 색깔별 캔디 찾기 프로그램이다. 주의집중, 자기표현, 지각훈련의 목적이며 그룹 안에서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전통 타악기와 리듬악기를 연주해 주는 동안 환자의 기 운에 맞도록 오행에 의해 정한 색깔의 캔디를 찾는 게임이다. 두 번째는 전래동요와 국악 창작 동요 부르기 프로그램이다. 다섯 가지 기운의 소리를 통한 카타르시스 경험과 노래를 통한 정서적 경험을 목적을 한 것이다. 선창과 돌림노래 형식으로 진행되며 각, 치, 궁, 상, 우에 해당하는 선율 악기를 준비하였다. 각 은 대금, 치 는 피리, 궁 은 가야금, 상 은 거문고, 우 는 해금으로 적용했다. 미리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를 듣고 곡에 대한 분위기를 다섯 가지 감정인 노( 怒 ),희( 喜 ),사( 思 ),비( 悲 ),공( 恐 )에 가 장 가깝게 느낀 감정을 표현하도록 했다. 느낀 감정에 따라 어린 시절이나 회상을 이야기 하고 노래 부르기를 하는 동안 한 환자는 장구로 흥을 돋우고 다른 환자는 선율악기로 반 주를 하며 정신을 다스리도록 하는 활동이다. 세 번째는 악기대화 프로그램이다. 화병과 스트레스 개선의 목적이다. 징, 북, 꽹과리, 장구를 이용하여 악기가 연주되는 동안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도록 하였다. 전통음악 활용의 실험 사례도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 실험 사례에서는 감기 증상 의 4세 여아에게 치료의 공포심을 경감시키기 위해 국악창작동요를 들려주고 의사와 아동 의 엄마가 음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울음을 그치고 치료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두 번째 실험 사례에서는 감기환자 대상(남아5명, 여아5명)의 전통음악 감상에 따른 환 자의 반응조사결과 자신의 담당의사가 전통음악에 선호도가 없는 의사의 경우보다 선호도 가 있는 경우에 진찰과정에서 가장 공포심을 보이지 않았고 남아보다 여아가 국악창작동요 에 즐거운 관심을 보였다고 하였다. 세 번째 실험사례는 신경정신과 치료 대상 환자들에게 전통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비교하 여 들려주는 실험이다. 실험목적은 설문지 작성시간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의사가 만든 설 문에 환자가 얼마나 솔직하게 마음을 여느냐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결과로는 전통음악을 들은 실험군이 클래식음악을 들은 실험군보다 설문을 더 빨리 끝냈다고 하였다. 여기에 사 용된 음악은 불안한 기분을 진정시켜주는 음악으로 바흐 환상곡과 푸가 G단조, 토카타 등 이었으며 전통음악으로는 회심곡, 해금 산조 등을 사용했다. 302

311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박미향의 연구를 검토해보면 전통음악 활용방안을 연구하며 이론과 개념 설명으로만 끝 내지 않고 프로그램과 활동 제안, 그리고 음악치료의 실험까지 해본 것은 새로운 시도였 다. 그러나 음악치료 전공의 배경이 아닌 연구자였기에 프로그램의 내용과 실험사례들은 구성과 내용이 알맞지 않는 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론과 개념 설명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후속 연구들에 비해 여러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보였다. 이 연구에서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명상음악 방법에서는 이정승정 법의 다섯 가지 치료법에 의한 치료 대상 환자를 구분해 놓고 그에 맞는 명상음악을 제시 하였다. 어떤 음악적 요소에 따라 음악을 분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준은 나와 있지 않 다. 제안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 연구는 대상 환자들에게 제시된 해당 음악들을 들으면 치유가 될 것 같은 처방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이정승정 요법과 치료 대상의 연결도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치료대상의 특성을 설명하고 어떤 이유를 가지고 명상곡과 연결을 했는지도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오음의 기운을 흐르게 하는 곡이라고 제시했는데 오음에 해당된 곡을 듣는다고 해서 성격장애나 기타 증세들이 치유되지 않는다. 제안을 하 고자 했다면 관련된 임상 실험을 해보고 결과를 제시하여야 더 알맞은 대상 환자와 치료목 적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승정 요법에서 노승사법( 怒 勝 思 法 )에 대해서는 노여움으로 우울함을 억누르고 기쁨 으로써 노여움을 풀어주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는데 노( 怒 )와 사( 思 )의 성격을 구분해서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올프 슐웍의 방법을 이용한 프로그램에서 전래동요와 국악 창작 동요 부르기 프로그램을 보면 각 음은 대금, 치 음은 피리와 같은 형식으로 오음에 해당하는 선율악기를 제시하였다. 선율악기와 오음에 대해 어떠한 연유로 서로 배속이 되었는지 기준이 없다. 또한 환자들이 직접 반주를 하도록 구성하였다. 반주악기로 제시된 악기들을 보면 대금, 가야금, 해금, 거 문고였다. 음악적 배경이 없는 일반 환자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용성이 없다. 악기를 제시하려면 이들에게 연주가 용이한 것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 치료 목적과 알맞은 대상을 연결시키지 않고 정신지체, 자폐, 노인그룹에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였다. 음악치료는 대상 환자의 연령, 기능, 치료 목적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하고 그에 따른 활동 내용이 적합한지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요 부르기는 성인에게 알맞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성인에게는 그들에게 적합한 노 래를 선곡해야 한다. 실험사례들에서는 대상 환자의 치료목적과 실험의 입증관계가 약하고 결과에 대한 객관 적 데이터 자료가 없다. 명상 방법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상자의 반응을 주관적으로 평가하 303

3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고 있다. 예를 들어 종속변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국악창작동요에 대한 즐거운 관심, 혹은 의사에 설문에 얼마나 마음을 솔직하게 여느냐 등에 대한 것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 는 변인들이다.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평가가 될 수 있는 것을 결과 리스트로 만들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김병학(2008)은 그의 연구인 음악치료의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국악기의 활용방 안 연구: 칠정학설과 악학궤범을 중심으로 를 통해 칠정학설과 악학궤범 중 악기도설이 중 심이 되는 6,7,8권의 일부를 분석,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한의학적 모델과의 연관성 을 통해 음악치료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김병학은 악학궤범의 악기를 팔음( 八 音 ) 분류에 따라 분류했다고 하였다. 금( 金 ), 석( 石 ), 사( 絲 ), 죽( 竹 ), 포( 匏 ), 토( 土 ), 혁( 革 ), 목( 木 )으로 재료 분석을 하고 관, 현, 타악기로 기 능분석을 하여 오지상승을 활용한 음악치료접근을 제안했다. 악기적용은 <표 6>과 같다. 김병학의 연구는 음악치료에 국악기 사용에 대한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 다. 그러나 제시된 악기들 중에는 악학궤범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악기들도 있었다. 향 비파 등과 같이 현재 쓰이지 않는 악기보다는 실용적 악기를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오지상승이론에 의한 다섯 가지 치료법과 분류된 악기 연결에 대한 설명에서 목부, 토부, 금부는 재료에 의한 분류로, 사부 악기와 혁부 악기는 연구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가 지고 적용하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오지( 五 志 )에 따르는 악기분류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거나 성악 음악치료에 이용하면 좋을 것 이라는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는 음악치료의 방법으로 주로 명상만을 제시한 방법들과는 구 별될 수 있었으나 국악기를 가지고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 프로그램을 제시 해주는 것이 더 실질적인 정보가 될 수 있겠다. <표 6> 오지상승이론에 근거한 적용 대상 및 악기활용 해당 기( 氣 ) 적용 대상 제시한 악기 노승사법 ( 怒 勝 思 法 ) 목기( 木 氣 ) - 목부악기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 대상 동( 動 )적인 치료가 필요 - 멜로디 없는 단순한 악기 - 악학궤범 악기 중 박 을 추천 희승우법 ( 喜 勝 憂 法 ) 오행 기( 氣 ) 제시되지 않음- 사부( 絲 )악기 우울증 환자 기쁨을 느끼고 자신 있게 연주 할 수 있도록 한다. - 화려한 멜로디 악기 - 관악기는 연주가 어려워 감상에 적용 - 현악기로는 향비파, 월금 사승공법 토기( 土 氣 )- 쉽게 놀라거나 공포증이 많은 환자 - 흙으로 만든 악기, 훈과 304

313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해당 기( 氣 ) 적용 대상 제시한 악기 ( 思 勝 恐 法 ) 토부악기 감상이나 GIM활동이 적합 평소 자 기가 좋아하는 악기 적합 부가 적당하나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악기를 권함 비승노법 ( 悲 勝 怒 法 ) 금기( 金 氣 )- 금부악기 화병, 울화, 노여움을 호소하는 환자 치료를 통한 감정을 분출하도록 함 - 꽹과리, 징 추천 공승희법 ( 恐 勝 喜 法 ) 수기( 水 氣 )- 혁( 革 )부악기 지나친 기쁨이나 들뜸으로 일이 손 에 잡히지 않은 환자 대상 정( 靜 )적인 치료가 필요 - 울림이 길고 중저음을 내 는 악기가 적합. - 장고, 소고, 대고 등 강성우(2005)의 연구는 음악치료의 동양의학적 접근방법 연구: 음양오행이론을 중심으로 이다. 연구의 목적은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신체적 질병의 치료 수단으로써 오행 (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인체 장부에 영향을 주는 것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이론, 이정승정 요법, 명상곡 예시<표 5 참조>까지 박미향(2000)의 연구를 그대 로 따르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박미향(2000)은 이정승정과 관련된 명상 프로그램 외에 여러 가지 치료 활동 프로그램들과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강성우의 연구는 한의학 분야의 이론 설명이 주요 내용이었고 박미향(2000)이 사용한 명상곡을 제시한 것에 그치고 있다. 조금 추가된 내용은 오음의 특징과 오음이 장기에 영향을 주는 치료에 대해 서술하였다 <표 7 참조>. 또한 오성 33) 을 표출하는 행위를 통해 환자 스스로 몸과 마음에 균형을 유지 할 수 있는 치료로 쓰일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첫째, 다른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치료에 대한 프로그램은 없다. 둘째, 오음을 장기와 연결하여 음과 소리들의 치료 효과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오행에 오음을 배속하여 해당되는 장기 즉, 간( 肝 )심( 心 )비( 脾 )폐( 肺 )신( 腎 )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 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단순히 오행으로만 연결하여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적 용한 입증 사례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각, 치, 궁, 상, 우가 어떤 배열의 원리 로 오행에 적용되었는지도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음악으로 보지 않고 소리의 특성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해당되는 소리를 골라서 임상을 해보고 설명을 해주는 작업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실 기존의 있는 음악에서 악 곡 전체가 이러한 구성을 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음악을 만들어서 사용해보는 33) 호( 呼 )성(부르짖는 소리), 소( 笑 )성(웃는 소리), 가( 歌 )성(노래하는 소리), 곡( 哭 )성(슬피 우는 소리), 신( 呻 )성(신음하는 소리) 305

3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통악기를 사용하여 자연의 원리에 근접한 음 악을 제시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 7> 연구에 서술된 오음( 五 音 )의 특징과 활용 오행 오음 오장 오음의 특징 오음의 활용 목 각 간 화 치 심 토 궁 비 - 나무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처럼 둔탁하 며 울림이 적은 소리 -진동의 여운이 짧은 소리 - 불타는 듯한 속성처럼 억압된 에너지가 발산되는 형의 진동 - 흙의 속성대로 부드럽고 껴안는 듯한 느 낌의 진동 금 상 폐 - 쇠의 속성대로 가늘고 맑은 진동 수 우 신 - 물의 속성처럼 부드럽고 맑으며 변화하기 쉬운 진동 간과 담에 영향 분노, 권태감, 눈의 피로를 다스림 심장과 소장에 영향 지나치게 기쁘거나 들뜸을 다스림 위장과 비장에 영향 슬픔이나 망상을 다스려 줌 폐와 대장에 영향 우울증과 외로움을 다스림 신장과 방광에 영향 공포나 두려움을 다스려 줌 마지막으로 한금희(2000)의 연구는 스트레스 환자를 위한 음악치유에 관한 연구 이다. 연구의 목적은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는 전통음악을 적용시켜 스트레스 환자들에게 전 통음악 감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방법은 심상요법과 정서적 대화를 거쳐 스트레스가 높은 집단(15명)과 낮은 집단(15명) 을 선정한 후 음양오행에 관련한 전통음악 13곡을 선곡하였다. 환자의 정서에 맞는 곡을 들려줌으로써 예전에 겪었던 체험을 회상하고 각 곡에 대한 반응을 결과 분석하여 스트레 스 감소에 대한 전통음악의 상관성을 고찰하였다. 연구자는 스트레스가 높은 집단은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여 성격이 소극적이고 부 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스트레스가 낮은 집단은 대체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실험군이라고 정의하였다. 평가방법으로는 전통음악 13곡(<표 8>을 참조)을 반복 청취한 후 음양오행에 관련된 전 통음악 곡 느낌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하고 스트레스 감소에 대한 곡의 순위를 함께 알아보았 다.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전통음악 곡 느낌에 대한 10개 문항 질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 다. 지루함을 느낀다, 지루함 감소, 수면을 취하는데 도움,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 밝은 기 분 되는데 도움, 나의 감정 이해 도움, 편안한 마음 가지는데 도움, 소음과 혼란 벗어나는 306

315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데 도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 정리 하는데 도움, 화가 났을 때 벗어나는데 도움 등 이 다. 연구결과로는 정서반응 설문조사결과 스트레스 높은 집단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한 곡은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라는 곡이었고 스트레스가 낮은 집단에서는 신푸 리 에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높은 집단은 느리고 슬픈 느낌 음악 에 반응하고 스트레스 낮은 집단은 경쾌하고 빠른 음악에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 였다. 스트레스 감소와 전통음악 상관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로는 두 집단 모두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하였다. <표 8> 연구에 사용된 전통음악 선곡 오행 선곡 선곡 이유 토 종묘제례악 (보태평지곡) 온후, 여유, 안정감에 유창한 선율로 이루어짐 토 신쾌동류 산조 중 중모리 온후하고 안정감 있는 느낌 수 대금 독주곡 청성곡 장엄함 속에서 번뇌로 얽혀있는 머리를 정화시킴 금 구음 시나위 합주 애절하면서도 힘찬 소리가 울려 조화의 극치를 이 루므로 긴장과 이완의 반응을 줄 수 있다고 여김 금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애절하면서 마음을 승화시켜 주는 곡 -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정보가 제시되어 있지 않음 목 황병기 가야금 창작곡 중 비단길 마음이 맑아지고 화평한 느낌 목 대금 독주곡 중 상령산 평화스럽고 정갈한 악상이 인자, 화평한 느낌 화 양청도드리 빠르고 경쾌한 느낌 화 신푸리 경쾌한 느낌과 빠른 속도감이 火 의 특징 화 판소리춘향가 중 사또부임 대목 경쾌한 느낌이 火 의 특징과 동일 수 취타 힘차고 씩씩한 느낌, 장엄한 느낌: 水 의 특징 수 해령 장엄한 가락이 특징인데 水 의 특징과 동일하다 함 이 논문을 살펴보면 우선 실험을 위한 전통음악의 선곡 기준에 대한 이유를 보았을 때 이 연구도 선곡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연구자의 개인적인 느낌을 통해 오행에 따른 곡을 분류하고 선정하였다. 연구자가 선곡한 곡에 대하여 대상자들이 곡에 대해 어떤 반응과 느 낌을 보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였으나 그것은 치료효과라기보다는 특정 곡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조사에 더 가깝다. 특히 스트레스 높은 집단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307

3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는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라는 곡에 대해서는 곡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연구결과에서도 연구자의 의도인 스트레스 치유에 대한 전통음악의 효과를 입증하기 보 다는 선정된 13곡 중 어떤 곡에 대해 가장 많은 반응을 보이느냐에 대한 설명으로 마쳤다. 이러한 결과는 앞의 일부 연구들처럼 음악치료가 어떤 음악이 어떤 증상에 좋다는 처방으 로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접근이다. 또한 스트레스 환자 분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충분하지 않았다. 상담을 통해 결정했 다는 주관적인 분류보다는 확인 가능한 점수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설문지에 대한 개인의 점수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 감소 에 미치는 주관적 평가를 하기 위해 10개 문항 질문지를 보면 그 역시 기준과 내용이 일 정하지 않고 모호하다. 부정적 감정에 대한 느낌은 지루함을 느낀다 뿐이고 나머지 문항 은 모두 긍정적 감정의 내용이다. 평가는 좀 더 객관적인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행해야 할 것이다. Ⅳ. 결론 및 논의 본 연구는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 관련 음악치료 연구의 내용을 분석 하여 살펴 본 연구이다. 분석 대상 연구들을 음악 치료적 관점에서 살펴 본 결과 많은 차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악치료 전문가들은 연구나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만들 때에는 대상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 치료목적, 연령, 선호도 등 다양한 조건들을 분석하고 고 려하여 치료 목표를 세우고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치료 대상도 지적, 정신적, 신체적 장애 를 포함한 아동에서부터 노인과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치료 프로그램의 방법은 음 악 감상 외에 음악적 배경이 없는 대상자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 노래 가사 토론 등 여러 가지를 다각도로 사용한다. 특히 음악치료의 목적은 병을 낫게 한 다는 개념이 아니라 현재의 기능 상태를 좀 더 긍정적으로 개선시키는 재활의 개념이다. 음악치료 연구는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치료 대상에 대한 진단과 평가, 치료 목적에 맞 는 프로그램 계획 후 실험한다. 데이터 수집도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것을 가지고 한다. 실험 연구가 아니더라도 연구의 내용 속에 대부분 대상자에 대한 집중 분석과 음악 프로그 램을 적용했을 때의 변화에 대해 제시를 하는 단계까지 나타난다. 임상과 연구는 일반적으 로 위에 설명된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308

317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반면 국악을 음양오행이론과 접목하여 음악치료에 적용한 연구들에서는 음악치료 전공 배경이 아닌 연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 음악치료 전문가들과 같은 절차나 방법을 적 용하여 프로그램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연구의 방법은 동양의학의 이론을 주로 설명하였고 이론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친 연구도 있었다. 체계적인 실험을 한 것은 두 편 정도였다. 그 외 연구들 중에는 실험이나 사례제시를 했어도 대상자에 대한 분석이나 객관 적 평가를 통해 효과를 입증한 결과가 아니었다. 특히 음악치료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라는 것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국악이라는 소스만 가지고 음양오행 적용이라는 이름 으로 연구가 행해진 것도 있었다. 국악에 대한 정보 역시 충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구의 목적은 질병 치료 수단이 가장 많았다. 무엇보다 동양의학의 이론으로만 연결하 여 구체적 근거나 치료 사례도 없이 오행배속에 속한 음들이 병증에 치료가 될 것이라는 제안과 주장을 한 내용들이 많았다. 한의학의 이론만 오행과 연결시켜 놓는 일에 치중이 된 연구들도 있었다. 음양오행체계를 한방음악치료에서도 이용하고 실험도 했지만 이론적 인 면에서는 아직도 미완의 단계이다. 활용 방안은 주로 음악 감상이라는 방법에 편중되어 있다. 음악을 오행으로 분류하여 제 시하기도 했다. 오행 분류라는 것도 사실 음양과 오행의 특성에 따른 분위기와 느낌을 음 악에 적용하여 분류한 것이다. 특히 몇몇 연구들에서는 음악선곡을 해놓고도 과연 그 선곡 들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가 어렵다. 국악기 활용 방안에 있어서는 향비파 같이 현재 쓰이지 않는 악기를 제시한 면도 보였다. 분류와 제시만 해놓고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거나 구하기 힘든 악기라면 소용이 없는 작업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연구될 국악 소재 음양오행 연구 방향에 대해서 몇 가 지 해결 방안 및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임상 실험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치료라고 한다면 타당성을 입증 하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에 대한 이론을 음악치료와 국악에 막 연하게 접목시킨 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결론을 제시하는 연구는 지양해야 한다. 치료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고 요구된다. 임상적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는 실험이 많이 시행되어 그것에 따른 연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음양오행을 근거로 삼은 음악치료 연구에서는 실험 연구는 3편에 불과했다. 앞으로 연구를 할 때는 검증된 이 론을 가지고 대상자의 치료 목적에 맞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계획 후 실험을 거쳐 데이터 를 제시할 수 있는 논문이라야 음악 치료적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음에서 각 음을 들으면 간장에 영향을 주고 치 음을 들으면 심장에 좋다는 식의 근거 없는 제안이 계속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309

3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둘째,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음양오행과 관련한 음악치료의 이론적인 근거나 기반이 아직 은 충분하지 않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설명과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이 론을 내세워 음악과 연결시키는 것은 음악치료의 이론적 토대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적어 도 음악의 어떤 요소들이 신체나 심리에 어떻게 영향을 주어 무슨 변화를 주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음악치료에서 왼쪽 뇌가 손상된 실어증 환자의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음악의 멜로디 윤곽(melody contour)과 언어에서의 억양(intonation)은 같은 신경학적 과 정을 공유하고 있다. 노래 부르기는 발화를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데 그 이유로는 멜 로디나 화성과 같은 음악적 요소를 담당하는 오른쪽 뇌의 기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사 실을 제시할 수 있다. 추후 연구에서는 음양오행이론과 관련하여 치료목적이나 대상자에 따른 구체적인 음악치료의 이론적 토대를 정확하게 마련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음악치료 방법을 살펴보면 주로 음악 감상에 의존한 연구들이 많았다. 연구의 내용 에서 악기연주나 노래 부르기 등의 방법을 사용한 연구의 수는 한정적이며 대부분 음악 감 상을 통한 방법들이었다. 또한 감상 후에도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음악치료 연구에 서는 음악을 들었다면 객관적 검증을 위해 음악에 대한 자율신경계 반응을 측정한다든지 하 여 데이터를 내기도 한다. 활동 방법에 있어서도 마음의 변화나 신체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방법으로 수동적인 감상보다는 때로는 적극적인 음악활동도 필요하다. 감상 위주에서 벗어 나 노래 부르기나 즉흥 연주와 같은 다양한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 연구가 필요하다. 넷째, 음악분류에 대한 기준 및 선곡 문제이다. 음악분류에 있어서는 음양과 오행의 방 법에 의한 분류 시도가 있었다. 베토벤이나 바흐의 음악 같은 서양 음악까지도 가져다 오 행으로 분류를 한 것은 매우 재미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음양의 분류와 오행에 대한 설명 은 있지만 분류와 선곡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그리고 선곡의 예들이 한정적이고 다양한 악곡제시가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국악에 대한 샘플이 적었다. 또한 유형에 따른 악곡분 석이 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분류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음악요소 를 좀 더 세분화 하여 음악에 대한 음양의 분류를 설명함과 동시에 다양하고 많은 샘플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곡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섯째, 국악기도 음악치료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국악기 사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서양 악기에서 피아노나 기타와 같은 악기도 음악치 료 세팅 안에서는 전공자들만이 사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치료 목적을 위해 음악적 배경 이 없는 대상자들도 연주가 가능하도록 여러 방법을 개발한다. 국악기에 대한 충분한 정보 가 있다면 치료 환경 안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은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음악이다. 음악치료 프로그램에서도 310

319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우리에게 보다 알맞은 음악 소스가 될 수 있다. 국악과 음악치료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좀 더 충분하게 뒷받침 된다면 음양오행이론 활용 음악치료 연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국악을 보다 효과적으로 접목시 킨 다양하고도 발전된 음양오행적용 음악치료 연구들을 기대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김우겸. 한의학과 현대의학.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대한동의생리학회편. 동의생리학. 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배병철. 기초 한의학. 서울: 성보사, 신천호. 한의학의 기초. 서울: 고림서원, 이승현. 한방음악치료. 서울: 군자출판사, 전창선, 어윤형. 음양이 뭐지?. 서울: 와이겔리, 채우식. 한의학 개론. 서울: 열린 책들, 최병철. 음악치료학. 서울: 학지사, 논문 김자현.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에 대한 연구현황 조사 및 내용검토 국악 학 전국대회: 국악치료에 관한 연구 성과와 학문적 가능성 모색 한국 국악 학회, 명재남. 음양오행론의 상담심리치료 적용 가능성 탐색.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석사학위 논문, 이승현. 사상체질인의 병증치료를 위한 한방음악치료에 관한 연구. 대한한의학 원전학회지 20(4). 대한한의학 원전학회, 정은정. 음악치료의 이론적 고찰: Cos와 샤만의 전통과 민간요법 명상에 나타난 음악치료 환경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한명희. 음양오행사상과 한국의 전통음악.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 3권. 동아시아 문화학회,

3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부록 1> 음양오행 관련 음악치료 연구 목록 강성우. 음악치료의 동양의학적 접근방법 연구: 음양오행이론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대체의학 대학원 수기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김병학. 음악치료의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국악기의 활용방안 연구: 칠정학설과 악학궤 범을 중심으로. 동의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음악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김주연. 양기의 음악활동과 음기의 음악활동이 자폐성 아동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 숙명여자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 석사학위 과제, 박미향. 동양의학 원리에 기초로 한 음악치료의 전통음악 활용 방안. 한양대학교 교 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박태미. 한국전통음악이 성인의 인체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 정악을 중심으로. 경기 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정신치료 전공 석사학위 논문, 이승현. 오행(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변화에 미치는 영향: 한방음악치료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박사학위 논문, 한금희. 스트레스 환자를 위한 음악치유에 관한 연구.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석사학위 논문, <부록 2> 오행음악( 五 行 音 樂 )의 예 출처: 이승현. 오행( 五 行 )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변화에 미치는 영향 : 한방음 악치료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대학원 한의학과 박사학위 논문,

321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악보 1> 서양음악의 목기( 木 氣 ) 음악의 예 <악보 2> 서양음악의 화기( 火 氣 ) 음악의 예 313

3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3> 서양음악의 토기( 土 氣 ) 음악의 예 <악보4> 서양음악의 금기( 金 氣 )음악의 예 314

323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악보 5> 서양음악의 수기( 水 氣 ) 음악의 예 <악보 6> 전통음악의 목기( 木 氣 )음악의 예 315

3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악보 7> 전통음악의 화기( 火 氣 )음악의 예 <악보 8> 전통음악의 토기( 土 氣 )음악의 예 316

325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악보 9> 전통음악의 금기( 金 氣 ) 음악의 예 <악보 10> 전통음악의 수기( 水 氣 ) 음악의 예 317

3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The Review of Studies Based on the Yin-Yang and the Five Elements Theory in Music Therapy Studies using Korean Traditional Music Cho, Yeonjin (PhD candidate Sookmyung Women's Univ.) Oriental medicine has used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to explain physiological and pathological changes in the human body. Therefore this study examines how the authors of seven theses and dissertations have aplied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to music therapy. Many music therapy research projects have been published in the literature on neuroscience, psychology, geriatrics and children with disabilities. However, few studies have used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authors of these studies, unfortunately, are rarely music therapists. It is important to investigate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from the perspective of music therapy and music therapists. In addition, clinical trials of the us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in music therapy programs are needed. The analysis of research studies should yield some insight for future directions in the research and aplic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n the basis of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The analysis of studies focused on the background of researchers, study type, research outcome, and composition of music therapy. The results indicated that the majority of researchers do not have degrees in music therapy. In addition, most of the studies that have been done were theoretical, not practical. It was found that listening to music is the most frequently used type of music therapy, and that the criteria for the classification and selection for music were not accurate. Finally, researchers who are familiar with the Yin-Yang and Five Elements theory in music therapy studies have used music as a treatment for symptoms of mental illness or the five viscera. 318

327 국악을 활용한 음악치료 연구 중 음양오행관련 연구 성과 검토 In conclusion, in order for music therapy to be accepted, experimental research must prove its validity. It is important to have diverse music therapy method, a precise standard of selection for music is necessary and it has to be more informed about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traditional instruments. Key words: Yin-Yang and the Five Elements Theory, Korean Traditional Music, Music Therapy, Oriental Medicine Music Therapy, Korean Classical Music Therapy.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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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번역문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의 음악문화* 34) 이 용 식 옮김** 35) Ⅰ. 전통음악 투르크멘의 전통음악문화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우즈베키 스탄에 이르는 투르크타니 지역과 카자흐-키르기스 지역이라는 (<그림 1>) 두 거대한 이 웃 지역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1) 투르크타니 지역과 공유하는 현상으로는 찰현악기인 기 작(ghidjak), 아랍-페르시아 계통의 운율 패턴의 사용, 괴로글리(Görogly) 서사시와 현대 의 낭만적 이야기의 운율형과 상상력과 보급 등을 들 수 있다. * 이 글은 다음의 글을 옮긴 것이다. Mark Slobin, Slawomira Zerañska-Kominek, Tatima Abukova- Nurklycheva, Turkmenistan,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nd ed., ed. Stanley Sadie,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 2001, v. 25. 이하 각주는 모두 옮긴이주. ** 전남대학교 국악과 교수 1) 투르크메니스탄의 인접지역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의 음악문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 참조. Theodore Levin, Razia Sultanova, 이용식 옮김, 우즈베키스탄의 음악문화, 음악과 문화 제21 호(대구: 세계음악학회, 2009), 쪽. 알마 쿠난바예바, 사이다 엘레마노바, 이용식 옮김, 실크로드의 음악 I - 카자흐스탄, 동양음악 제31집(서울: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10), 쪽. 마크 슬로빈, 라리사 도도우도예프, 이용식 옮김, 실크로드의 음악 2 - 타지키스탄, 동양음악 제32집(서울: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10), 쪽. 321

3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그림 1> 투르크메니스탄 지도 카자흐-키르기스 지역과 더 관련된 특징은 전통적으로 무용이 발달되지 못한 점, 타악 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점, 말총으로 된 현을 갖는 찰현악기인 코부즈(qobuz) 연주, 노 래 경연, 그리고 숙련된 연주자에 의한 다성적 루트(lute) 2) 연주가 고도로 발달된 점을 들 수 있다. 야르야르(ÿar-ÿar) 결혼식 노래, 투르크 운문 형태, 철제 구금인 고푸즈(gopuz) 의 사용 등 투르크멘 음악에서 보여지는 몇몇 현상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공통된 것이다. 투르크멘 음악문화는 투르크 언어 계통의 동쪽과 서쪽 극단의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투 르크멘 언어와 매우 닮은 것이다. 투르크멘 음악은 세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직업적인 음유시인이 부르는 구전서사시와 설화이야기, 독립적인 기악 레퍼토리, 그리고 민속음악이다. 1. 음유시인 1) 영감, 훈련, 레퍼토리 투르크멘에서 직업적인 음악가에 의해 연행되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남성 바그쉬(bagşy) 2) 루트(lute)는 몸통과 분리되는 목을 가진 악기를 일컫는 음악학 용어이다. 우리나라의 해금이나 비파 가 루트류 악기에 해당한다. 322

331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가 연행하는 성악음악이다. 바그쉬는 시인이자 가수이자 음악가이자 신성한 음유시인이다. 바그쉬란 용어는 투르크어의 박(bak) 또는 박막 (bakmak)에서 기원한 것인데, 이는 자세 히 들여다보다 또는 보다(watch) 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키지(bakyjy) 또 는 바그쉬(bagşy)는 관찰하는 자 또는 예언하는 자를 의미한다. 바그쉬는 점쟁이나 무당이 면서도 현자( 賢 者 )이자 스승이자 수호자이기도 하다. 이 용어는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위 구르인에게도 무당, 예언자, 주술을 내뱉어 병을 고치는 자, 마법사 등을 일컫는 용어 로 쓰이고, 우즈벡인들에게는 서사시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투 르크멘 고대 역사에서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은 무당의 몫이었다. 이런 관련성은 바그쉬의 인식에 여전히 남아있고 바그쉬가 전승하는 전통의 많은 부분을 알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 다. 투르크멘의 바그쉬는 잠을 잘 때 그의 수호신인 바바 감브마르(Baba Gambmar) 또는 아쉬크 아위딘(Aşyk Aÿdyñ)에게서 시( 詩 )를 선사 받는다. 전통적으로 시를 배우는 과정은 그의 집이나 몇 년 동안을 머무는 스승의 집에서 훈련하면서 이루어진다. 훈련과정을 마치 면 새로운 바그쉬는 파타(pata)라는 축복스러운 입사의식(initiation)에서 할립타(halypta) 라는 스승에 의해 지역민에게 소개되어진다. 파타를 받지 못한 자는 불법적인 연행자로 취 급되면서 하람(haram)이라고 불린다. 바그쉬의 레퍼토리는 데싼(dessan)과 노래를 포괄한다. 데싼은 산문으로 된 서사이야기 인데, 보통 데싼치-바그쉬(dessanç-bagşy)라는 특별한 바그쉬가 독백이나 대화로 연행한 다. 투르크멘의 데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오구즈 이야기(Oguz nama)>, <데데 코르쿠트의 서( 序 )(Gorkut attanyñ kitaby)>, <괴로글리(Görogly)>로 구성된 서사이야기 와 18세기 투르크멘 시인인 구르바날리 마그루피(Gurbanaly Magrupy)가 지은 <유수프- 아메트(Yusup-Ahmet)>를 포괄한다. 다른 하나는 민속 소설 인데, 이는 구전에 의한 민 속이야기와 고전적인 소설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다. 많은 작품이 작자 미상이다 (예를 들어 <샤세넴-가리프(Şasenem-Garyp)>, <네제프 오글란(Nejep Oglan)>). 그러나 민속 에서 전승되는 설화, 우화, 이야기나 페르시아와 투르크 고전문학을 연행자가 나름대로 해 석한 것도 있다(예를 들어 구르바날리 마구르피(Gurbanaly Magrupy)의 <세이펠멜레크- 메타제말(Seÿpelemelek-Methajemal)>과 누르무하메트 안달리프(Nurmuhammet Andalyp, )의 <유수프-쥘레이하(Yusup-Züleyha)>). <괴로글리>나 <유수프- 아메트>와 같은 영웅적 데싼이나 주로 북부 투르크메니스탄에 전승되는 작자 미상의 데싼 은 두타르(dutar, 2현의 목이 긴 발현악기)나 기작(ghidjak, 찰현악기)의 반주로 연행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남동부 지역, 특히 욜라텐 지방에서 데싼은 한 대나 두 대의 두타르 반 주로 연행된다. 데싼을 연행하는 것을 욜(ÿol)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길 또는 여정 을 의 323

3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미한다. 티르메치-바그쉬(tirmeçy-bagşy)라는 예술가도 있는데, 이들은 다른 데싼 장르의 시가 ( 詩 歌 )를 노래하거나 마그팀굴리 피라기(Magtymguly Pyragi, )나 누르무함메 트 안달리프, 압딜라 샤벤데(Abdylla Şabende, ), 세위트나자르 세위디 (Seÿitnazar Seÿidi, ), 구르반두르디 젤릴리(Gurbandurdy Zelili, ), 케미네(Kemine, ), 몰라네페스(Mollanepes, ) 등의 이름난 시인이 지은 시가를 노래한다. (1) 이벤트, 텍스트, 스타일, 발성기법 바그쉬의 공연은 여행 이라는 의미의 욜(ÿol)이라고 하는데, 이는 서주( 序 奏 ), 중간 부 분, 종결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서주 부분은 공연을 소개하는 내용이고 공연의 예정된 시 간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 중간 부분은 공연에서 가장 긴 부분이고 바그쉬가 올바른 길 에 들어간 상황 인데, 이는 그의 음악적 스타일과 감정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종결부는 공연의 절정이지만 비교적 짧고 소수의 노래로 구성된다. 투르크멘 전통에서 공연의 세 부 분은 세 개의 음역과 일치하는데, 이는 노래의 저음역, 중간 음역, 고음역과 관련된 것이 다. 고음역으로 올라가는 것은 두타르의 조율을 바꾸면서 이루어진다. 공연이 시작되면 바 그시는 두타르를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역에 맞춰 조율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는 악기의 음정을 1/4음 또는 반음 높게 조율하는데, 이는 바그시의 감정표현이 확대되 고 감정적인 긴장감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는 관객들은 환호한 다. 연주 중에 이루어지는 빈번한 조율에도 불구하고 투르크멘 음악가들은 두타르에서 세 개의 주요한 음역을 구분하는데, 이는 페스 체킴(pes çekim)이라는 저음역, 오르타 체킴 (orta çekim)이라는 중간 음역, 그리고 베이크 체킴(beik çekim)이라는 고음역이다. 저음 역은 a d 부터 c -f 까지의 음역이고, 중간 음역은 c -f 부터 e a 까지의 음역이고, 고 음역은 e a 보다 높은 음역이다. 특정한 노래는 특정한 음역과 관련되었고, 또한 공연의 특정한 부분과 관련되었다. 투르 크멘 바그시의 노래 레퍼토리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연의 앞부분에 낮은 음역 으로 부르는 노래인 얍빌다크 아위딤라르(ÿapbyldak aÿdymlar), 공연의 중간 부분에 중 간 음역으로 부르는 노래인 오르타 아위딤라르(orta aÿdymlar),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 부 분에 높은 음역으로 부르는 노래인 체킴리 아위딤라르(çekimli aÿdymlar)이다. 저음역의 노래는 4도나 5도 정도의 좁은 음역에서 부르는 것이 특징적이고, 중간 음역의 노래는 한 324

333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옥타브 정도의 적당한 음역, 그리고 고음역의 노래는 한 옥타브 이상의 넓은 음역에서 부 르는 것이 특징적이다. 공연에서 작품의 엄격한 음역 순서는 철저하게 지켜진다. 바그쉬 노래의 노랫말은 바르마크(barmak)라는 운율법에 기초하는데, 이는 한 구에 배 치되는 동일하고 변하지 않는 수의 노랫말이 특징적이다. 대부분 한 구에 7자, 8자, 11자 의 노랫말이 붙는데, 각 구는 불규칙적으로 나뉘어진다. 바그쉬 노래의 일부는 아랍-페르 시아 계통의 아루즈(aruz) 체계에 의해 쓰여진 노랫말이다. 투르크멘 음악에서 노래의 시 와 음악 층위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통절형식의 노래(strophic verse form)는 노래 의 악절 구분이 가락의 악절 구분에 맞추어진 것이지만, 이런 악절의 가락은 노랫말의 악 구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그쉬의 노래는 시가 음악에 맞추는 자유로운 형 식과 관련된 카쿠(kaku; 카크마크(kakmak)는 박을 세다 라는 의미이다)라는 10박의 시 적 리듬 모델(metrical-rhythmic model)에 토대를 둔 것이다. 기본적인 카쿠 형식은 두 타르(dutar)를 연주하는 손동작의 구음 패턴에 의해 구별된다. 그러나 실제 연행에서 형식 은 종종 변형되어 투르크멘 음악의 특징을 이루는 불규칙 리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런 노래 연행양식을 욜(ÿol)이라고 부른다. 투르크멘의 바그쉬는 최소한 8가지 연행양식을 구분하는데, 이는 요무트-괴글렌 (Yomut-Göglen), 초우두르(Çowdur), 아타(Ata), 아르사리(Ärsary), 사리크-살리르 (Saryk-Salyr), 아할-페케(Ahal-feke), 다마나(Damana), 그리고 가잔지크(Gazanjyk, 서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요무트(Yomut)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등이다. 오늘날 전승되는 이런 연행 스타일은 아마도 지난 200여 년 동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투르크 멘 부족들이 유목생활을 중단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18세기부터 20세기 까지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생태문화적 환경으로 인하여 두 가지 주된 연행 스타일이 형성 되었는데, 이는 요무트-괴글렌, 초우두르, 아타 스타일을 포괄하는 북부 스타일과 사리크- 살리르로 대표되는 남부 스타일이다. 바그쉬의 발성기법의 중요한 특징은 과다한 비음악적 음향효과의 사용인데, 이는 무당의 마법적인 낭송과 관련된 현상이다. 이는 대개 세 가지 종류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코 고는 소리, 신음 소리, 중얼거림), 고함 또는 울부짖음, 주크-주크(juk-juk)라고 하는 짖는 소리 또는 딸꾹질 소리 이다. 앞의 두 가지 소리는 북부 스타일 연행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에이, 아이 야레 이, 하, 아 등의 감탄사는 특정한 음정이 없다. 남부 스타일은 훨씬 더 제한적이다. 남 부에서 흄레메크(hümlemek, 휴(hü) 음절을 소리 내는 약간 비성( 鼻 聲 )이 들어간 창법)라 고 하는 부정확하고 걸걸하게 내는 음향 효과는 낮은 음역에서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된다. 주크-주크는 북부와 남부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노래 장식기법이다. 남부 스타일에서 이 기 325

3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법은 횡경막에서 매우 가늘고(대개 모음인 이 또는 유 에서 나타난다) 매우 깊게 연행된 다. 북부에서 이 기법은 모음인 에, 아, 우 에서 연행되는데 얕고 거칠게 연행된다. 남 동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바그시는 대개 넓고 공명이 좋고 약간 콧소리를 내면서 노래한 다. 바그시가 매우 높은 음역에서 노래하는 것은 전형적인 남부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다. 쉰 목소리로 내는 평평하고 막힌 창법은 북부 스타일인데 이는 부정확한 억양의 낭송 조로 나타난다. 빠른 템포와 팔란도(parlando) 3) 스타일의 장식은 종종 가락선의 명확성을 흐리게 한다. 높은 음역에서 창법은 지연된 강렬한 울부짖음으로 바뀌곤 한다. (2) 악기와 레퍼토리 기악 레퍼토리는 세 가지 악기로 반주하는 성악곡을 포괄하는데, 세 가지 악기는 두타르 (dutar), 가르기 튜듁(gargy tüdük, 길고 세로로 부는 관악기, <그림 2>), 기작(ghidjak) 이다. <그림 2> 튜듁을 연주하는 투르크멘 음악가 남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바그시는 한 대, 때로는 두 대,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세 대의 같은 음정으로 조율된 두타르 반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두타르는 매우 부드러운 소리를 내 는 악기인데 음악의 선율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리듬을 지키는 기능을 한다. 바그시는 줄을 약하게 쳐서 훌륭한 울림소리를 낸다. 북부에서 두타르는 투르크멘 음악에는 없는 북을 대 3) 팔란도는 이야기하는듯한 낭송조의 창법을 일컫는다. 326

335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신해서 타악기의 효과를 내는 악기로 쓰인다. 바그시의 연주법은 매우 날카롭고 두타르 소 리는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다. 노래는 기작으로 시작한다. 주로 북부 스타일에서 연행되는 기작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는 노래의 억양과 가락의 정확성을 높인다. 두타르 음악으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기악 레퍼토리는 괴크데페 유파(Gökdepe school, 아할 지역)로부터 시작되어 아쉬가바트의 두타르치(dutarçy, 두타르를 전문으로 하는 음악 가)에 의해 널리 연행된다. 기악 레퍼토리는 무캄(mukam, 공구르바쉬(Gongurbaş), 아위 랄리크(Aÿralyk), 부캄라바쉬(Mukam,larbaşy, 샤딜리(Şadilli) 등을 포함한다), 7곡으로 이루어진 기르클라(Gyrklar) 모음곡(딜린 키르크(Dillin kyrk), 케첼리 키르크(Keçeli kyrk), 멘다그 키르크(Mendag kyrk), 셀비냐즈 키르크(Selbinyaz kyrk), 얀딤 키르크 (Yandym kyrk), 되블레트야르 키르크(Dövleyar kyrk)), 한 곡목의 여러 변주곡으로 이 루어진 살티클라르(Saltyklar) 연곡 등이 있다. 투르크멘 두타르의 기본적인 왼손 주법은 낮은 줄을 엄지손가락으로 짚고 높은 줄은 나 머지 손가락들로 짚는 방법으로서,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을 짚는데 안정적인 버팀목 이 되는 것이다. 오른손 주법은 다양한 타법을 구사한다. 두타르의 지판은 두 개의 높은 지판 사이가 장2도로 된 반음계의 음계로 놓인다. 두타르 악곡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두 가 지 기본적인 형식이 있다. 하나는 각 섹션이 ABA 형식으로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섹션으로 구성된 작품인데, 매 섹션은 중심음보다 높은 음(4도, 5도, 옥타브 등)으로 시작 하여 점차 하강진행해서 중심음(개방현)으로 종지한다. (3) 민속음악 투르크멘의 민속음악은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는 않았다. 민속음악은 연례행사나 일생주 기의 행사와 관련되어 연주되는 레퍼토리와 적은 수의 일노래를 포함한다. 라마단의 첫 날 을 축하하기 위한 매우 많은 캐롤(carol)이 전승된다. 야 라마잔(ya ramazan)이라고 하는 캐롤은 대개 유쾌하고 풍자적인 내용으로 된 것인데 디와나(diwana)라고 하는 데르비쉬 (dervish)의 4) 합창으로 부르기도 하고 7세에서 15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부르기도 한다. 10 월혁명 전에는 모든 투르크멘 부족들은 라마단의 마지막 날인 가디르 기제시(gadyr gijesi), 전능한 밤, 운명의 밤 이라는 의미)에는 매우 엄숙한 의식을 거행했다. 의식은 밤 새도록 거행되는데, 성 히지르의 묘소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때 지크르(zykr)라고 하는 의식춤을 추고 춤꾼들은 결국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춤을 추는 동 4) 데르비쉬(dervish)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Sufi)파 결사집단의 탁발 수도승을 일컫는다. 327

3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안 가젤(ghazel)이라고 하는 종교적 시가 낭송된다. 일생주기와 관련된 음악은 후우디(huwdi)라고 하는 자장가, 랄레(läle)라고 하는 소녀들 의 노래, 욀네르(ölňer), 토위 아위딤라리(toÿ aÿdymlary), 야르-야르(ÿar-ÿar) 등의 지 역적 명칭을 갖는 결혼노래, 지크르(zykr)라고 하는 결혼식 춤, 아기(agy), 타우쉬 (tawuş), 세스 에트메크(ses etmek) 등으로 불리는 장례노래 등이 있다. 소녀들의 놀이노 래인 랄레는 트레몰로 효과를 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목을 치면서 부르는 다막 랄레 (damak läle), 손가락으로 윗입술을 치면서 부르는 도다크 랄레(dodak läle), 한 발을 구 부리고 상체를 격렬하게 흔들면서 부르는 디즈 랄레(dyz läle, 디즈는 무릎 이라는 의미; 아야크 랄레(aÿak läle, 아야크는 다리 라는 의미)라고도 부른다), 에긴 랄레(egin läle, 에긴은 등 이라는 의미; 힘밀(hymmyl)이라고도 한다) 등이 있다. 이는 두 명의 소녀가 춤 동작을 가미해서 계속하는 놀이의 일종이다. 결혼노래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가 없다. 결혼노래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신부가 신 랑의 집으로 신행을 가기 전과 신행길에서 부른다. 결혼노래는 대부분이 대화형식의 노래 인데, 둘 또는 세 명의 여성 소리꾼으로 구성된 두 노래패가 부르거나 신랑과 신부가 부른 다. 서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결혼 축하연의 중요한 요소는 소위 유희 지크르라는 것이다. 이는 연속되는 몇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각 부분은 다른 동작, 리듬, 가락을 갖는다. 이는 디와나(diwana), 비르 데핌(bir depim), 세드라트(sedrat), 유치 데핌(üç depim), 오투르 마 가잘(oturma gazal), 젬-젬(zem-zem) 등이다. 결혼식 지크르 연행에는 후-후, 아 -하, 알라 하는 추임새가 따른다. 서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비르 데핌과 위치 데핌을 변형한 쿠쉬트데프메(kuştdepme)라고 하는 결혼식 노래와 춤도 또한 성행한다. 일노래는 대부분 서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녹음되었는데, 곡식을 빻으면서 부르는 노래 인 데기르멘치(degirmençi)와 소젖을 짜면서 부르는 노래인 호우룸(howhum)을 포함한다. 다른 노래로는 유혹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몬주-카드티(monju-kadty) 등이 있다. 민요는 대부분 바르마크(barmak) 체계라는 통절형식으로 된 것인데, 이는 3+4자 또는 4+3자로 된 7자의 노랫말을 갖는 것이다. 민요의 리듬구조는 바그시의 노래에 비해 매우 단순하다. 민요는 대개 2박 계통(4/4박자 또는 2/4박자)과 3박 계통(3/4박자 또는 6/8박 자)으로 되었다. 투르크멘 민요는 4도 이내의 좁은 음역에서 불려지고 불규칙적인 조성구 조로 되어있다. 전문가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민속음악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연행양식을 갖고 많은 장르가 있다. 투르크멘 민요의 연행양식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시김새, 장식, 조 성 등이다. 투르크멘 민속악기는 그다지 많지 않은데 목동의 홑서 관악기인 딜리 튜듀크(dili 328

337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tüdük, <그림 2>)와 구금( 口 琴 )인 고푸즈(gopuz) 등이 있다. 딜리 튜듀크로 연주하는 악 곡은 대부분 느리고 유장한 가락으로 시작해서 빠르고 흥겨운 가락으로 마친다. 고푸즈는 예전에는 샤먼의 악기였지만 지금은 여성들의 유희용 악기로 쓰인다. 투르크멘의 춤은 전통적으로 소수의 민속춤밖에 없다. 민속춤 가운데에는 카스피해 근처 의 크라스노포드스크 지방의 원무( 圓 舞 )인 쿠쉬튜프미(kushtüpmi)가 있는데, 이는 춤꾼들 이 춤을 추면서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악절은 선소리꾼이 노래하는 것으로 맺는다. 이외에도 소녀들의 놀이춤과 여성들의 결혼춤, 그리고 목동들의 춤이 있다. 소비에트 투르크멘 음악은 이웃 나라들의 음악보다는 더 점진적으로 발전되었고, 홀마흐 메도프(Kholmahmedov)와 누리모프(Nurimov) 등의 인물로 대표되는 투르크멘 작곡가의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한 음악가인 타쉬마흐메도프(Tashmahmedov)의 주 도로 민속악기로 구성된 앙상블이 결성되었다. 최근에는 전자 두타르가 두타르의 부드러운 소리와 피아노와 결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Ⅱ.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실내음악 투르크멘 작곡가의 작품은 대부분 러시아와 서유럽 문화전통에 기초한 것이다. 대부분의 투르크멘 작곡가들은 러시아에서 음악교육을 받았다. 여느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마찬가 지로 예술음악 장르(오페라, 발레, 심포니, 실내악, 성악)는 전통 투르크멘 음악장르에서 추출된 요소와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오페라는 투르크메니스탄 음악 장르의 새로운 범주에 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페라와 더불어 투르크멘과 유럽 음악 원리의 혼합을 위한 방법의 개량화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음악을 위한 표현적 가능성이 모색되었다. 오페라의 발전은 특정한 두 장르로부터 비롯되었다. 유명한 서사시인 데스탄(destan)를 주제로 창작 된 오페라가 여러 차례 유행하였는데, 당가타르 오베초프(Dangatar Ovezov)의 <레일리 메즈눈(Leyli Medjnun, 1946)>, 아드리안 샤포쉬니코프(Adrian Shaposhnikov)와 오베 초프의 <샤쉬세넴 이 가리브(Shashsenem i Garib, 1944)>, 벨리 무하토프(Veli Mukhatov)와 샤포쉬니코프의 <조흐레 이 타히르(Zokhre i Takhir)>, 누리 무하토프 (Nury Mukhatov)의 <케이미르 케르(Keymir Ker, 1977)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품 들은 1941년 설립된 오페라발레극장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현대적인 주제로 작곡된 오페라는 대부분 소비에트 사상을 표현한다. 음악적 관점에서 329

3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이들 작품은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방법론을 위한 도구라는 가치를 갖는다. 이런 종류의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벨리 무하토프의 <피비린내 나는 분수령의 종말(Konets krovavogo vodorazdela, 1967)>을 들 수 있다. 오페라와 거의 동시에 투르크메니스탄에 예술로 소개된 발레는 예술장르로서는 덜 발전했는데, 이는 춤이 투르크멘 문화에서 성행 하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다양한 주제의 발레가 창작되고 오페라발레극장에서 공 연되었는데, 이는 쿨리예프(K. Kuliyev)의 <행복(Schast ye, 1970)>, 누리예프(D. Nuriyev)의 <아름다운 여자마법사(Dobraya volshebmitza)>와 <누사이(Nusai, 1979)>, 챠리 누뤼모프(Chary Nurïmov)의 <쿠기탕 비극(Kugitanskaya tragediya, 1972)> 등을 들 수 있다. 교향곡은 1960년대 이전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많은 교향곡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창작되었다. 최근에는 표제음악으로부터 벗어난 작품이 창작되었는데, 이런 경향은 알라야 로프(R. Allayarov)와 휘뒤로프(D. Khïdïrov)의 교향곡에 보인다. 그러나 벨리 무하토프의 작품에서 보이듯이 표제음악적인 작품도 창작되었다. 교향곡 장르의 틀에서 투르크멘 전통 음악과 유럽전통이 혼합된 작품은 특별히 혁신적인데, 차리 누뤼모프의 작품에서 이런 경 향이 보인다. 실내악은 매우 선호되는 장르이다. 1970년대 말 이후 새로운 실내악 스타일이 모색되었 는데, 누뤼모프의 4중주, 레제포프(R. Redzhepov)의 첼로 소나타, 할마메도프(N. Khalmamedov)의 4중주 등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소규모 성악곡에는 아시아 전통시 의 편곡이 성행하고 있는데, 카라자오글란(Karadzhaoglan), 알라야로프(R. Allayarov), 아가지코프(A. Agadzhikov), 뉘뤼예프(D. Nürïyev), 쿠틀리예프(R. Kutlïyev), 아흐메도 프(V. Akhmedov) 등의 노래곡이나 연곡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하이네와 푸쉬킨과 같은 유럽 시인의 작품에 근거한 성악곡도 창작되었다. 1970년대 이후 투르크메니스탄 예 술음악은 민족적 특성과 양식적 특징이 매우 발전했고 투르크멘 작곡가들의 작품은 고도의 예술성을 보이는 것이다. 330

339 투르크메니스탄의 음악문화 <참고문헌> V.M. Belyayev and V.A. Uspensky, Turkmeniskaya muziak (Moscos, 1982). M. Slobin, Music in the Culture of Northern Afghanistan (Tucson, AZ, 1976) N.N. Abubakirova, Narodnye pesni zapadnogo Turkmenistana (MS, Leningrad, 1982). S. Gullayev, Iskustvo turkeminskikh bakhshi (Ashkhabad, 1985) Türkmen halk sazlary [Traditional music of the Turkmen people], Melodiya M to (1987) S. Zerañska-Kominek, Mode: Process and/or Structure: Analytical Study of Turkman Mukam Gökpede, L'analisi musicale: Reggio nell'emilla (1989), S. Zerañska-Kominek, The Classification of Repertoire in Turkmen Traditional Music, AsM, xxxi/2 (1990), S. Zerañska-Kominek, The Turkmen Bakhshi: Shaman and/or Artist, European Studies in Ethnomusicology: Historical Developments and Recent Trends, ed. M.P. Baumann (Berlin, 1992), Turkmenistan: Music of the Bakhshi, GMP XXII, VDE-GALLO CD 651 (1992) Turkmen Epic Singing: Köroglu, Auvidis D 8312 (1994) S. Zerañska-Kominek, The Turkmen Musical Traditional and the Soviet Culture, Lux Oriente: Festschrift Robert Günther, ed. K.W. Niemöller and others (Kassel, 1995), Turkmenista: Songs of Bakhshi Women, Inedit W (1995) Mark Slobin, Slawomira Zerañska-Kominek (1), Tatima Abukova-Nurklycheva (2) 331

340

341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부록>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제 1 장 총 칙 개정 제 1 조(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국립국악원(이하 국악원 이라 한다.)의 국악원논문집 (Journal of National Gugak Center)(이하 학술지 이라 한다.) 발간에 관한 제 반사항을 규정하는 데 있다. 제 2 조(발행일자) 본 학술지는 6월 30일과 12월 20일에 연2회 발행한다. 제 3 조(학술지 구성) 1 본 학술지는 일반 연구논문, 기획논문, 보고논문 등으로 구성한다. 2 제1항에 해당하는 논문 이외에 서평과 음반평 및 자료 소개 성격의 발표문 등 도 편집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게재할 수 있다. 제 4 조(편집위원회 구성) 1 편집위원회는 위원장 1인, 위원 6인, 간사 1인으로 구성하 되, 구성원의 임기는 1년(1~12월)이며 연임할 수 있다. 2 편집위원장은 국악연구실장으로 하고, 편집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직 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악연구실장 직무대리자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 3 편집위원 6인 중 한 명은 국악연구실 소속 학예연구관으로 하며, 편집간사는 학술지 담당 학예연구사로 한다. 4 외부 편집위원은 전통공연예술 관련 전공자로서 학술활동이 우수하고 국내외적으 로 지명도가 있는 자 중 담당부서의 추천을 거쳐 국립국악원장이 위촉한다. 333

3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제 5 조(편집위원회 기능) 편집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의결한다. 1. 학술지의 심사와 편집에 관한 사항 2. 투고논문의 주제, 원고분량, 논문의 적합성 등을 검토하여 1차 심사를 하고, 그 결과를 원고 반려, 2차 심사 로 결정 3. 2호에 해당하는 2차 심사 결정된 논문에 대한 3인의 심사위원 구성 4. 저자윤리규정에 위배되는 사안이 발생한 경우, 본 사안의 연구윤리위원회 이 첩 여부 결정 5. 기획논문의 심사 여부에 관한 사항 제 6 조(편집위원회의 개최) 1 편집위원회 회의는 투고논문이 접수 완료된 후나, 위원장 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개최한다. 2 위원회는 위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2/3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 3 위원장은 표결권을 가지며 가부동수인 경우에는 결정권을 가진다. 제 7 조(수당 등) 위원회에 참석한 위원에게는 예산의 범위 안에서 수당 등 기타 필요한 경비를 지급할 수 있다. 제 8 조(예외사항) 본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은 편집위원회에서 협의하여 결정한다. 제2장 투고규정 제 9 조(투고자격) 논문투고 자격은 전통공연예술 및 관련 분야 연구자로 제한한다. 제 10 조(연구범위) 투고 가능한 논문의 연구 범위는 전통공연예술 관련 분야로 한다. 제 11 조(접수기한) 논문의 접수기한은 3월 31일, 9월 30일까지로 한다. 단, 상황에 따라 논문 제출 기한을 일정 기간 연장할 수 있다. 334

343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제 12 조(투고방법) 투고자는 논문을 글 프로그램을 사용한 컴퓨터 파일로 작성하여 전 자메일로 제출해아 한다. 제 13 조(편집형식) 투고 논문은 다음의 형식을 따른다. 1 용지 크기: A4(210mm 297mm) 2 용지 여백: 위 아래 20, 왼쪽 오른쪽 30, 제본 0, 머리말 15, 꼬리말 15 3 줄 간격: 글자모양: 장평 100, 자간 0, 크기 10(각주, 인용 9), 바탕 제 14 조(내용 및 체재) 1 투고자는 국문초록(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및 영문초록(A4 1매 내외), 국 영문으로 된 논문제목, 성명, 소속, 핵심어(Key word) 5개 이상 을 논문과 함께 제출해야 한다. 2 논문의 본문과 각주는 한글로 작성하고, 한자나 외국어 표시가 필요한 경우 괄호 속에 넣어 병기한다. 3 외국어 논문은 투고자가 한글로 번역하여 투고한 후 게재한다. 경우에 따라 외국 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투고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번역은 국악원이 한다. 4 공동 연구 논문일 경우 저자명은 연구 기여도에 따라 순서대로 기재한다. 5 필자의 소속은 본문 첫 쪽 하단에 각주로 처리하며, 연구비의 출처를 밝힐 경 우에는 본문 첫 쪽 하단에 각주로 처리한다. 6 투고논문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50매 내외이며, 서평과 음반평은 원고지 15~20매 내외로 한다. 논문이 게재될 경우 원고료 지급기준은 국악원 사례 규정 을 따르되, 최대 100매까지 지급한다. 단 여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논문에 대한 원고료는 지급하지 않는다. 7 주석은 각주를 사용하며, 작성 요령은 다음과 같다. - 저자명, 논문명, 인용학술지명 권(호,집)(출판지: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 연도), 쪽수. 8 참고문헌은 논문의 끝에 실으며, 작성 요령은 다음과 같다. - 저자명. 논문명, 학술지명 권(호, 집). 출판지: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 판연도. 9 표와 보례(악보)의 번호는 표와 악보의 상단 좌측에 < >에 넣어 표시하고, 도상 자료(사진, 그림 등)의 번호는 도상자료의 하단 중앙에 < >에 넣어 표시한다. 예) <표 1> 제목 335

3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제15조(저작권) 투고 원고가 학술지에 게재되었을 경우 저작권은 국립국악원과 공동으로 소유하며, 저작권과 관련한 별도의 별지 제2호 서식 에 의거하여 계약서를 작성 해야 한다. 제 3 장 심사규정 제 16 조(심사대상) 심사는 국악원이 청탁한 기획 논문을 제외한 모든 투고논문을 대상으로 한다. 단, 심사의 필요성이 제기될 경우에는 기획논문의 경우도 편집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심사할 수 있다. 제 17 조(심사위원 구성) 1 심사위원은 학술 활동이 우수한 관련 분야의 연구자 가운데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인물로 구성된다. 2 심사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한다. 제18조(심사) 1 심사위원은 심사 의뢰받은 논문을 객관적으로 심사하고, 별지 제1호 서식 에 의거하여 심사 평가서를 작성한다. 2 심사위원은 심사 대상 논문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판정할 경우에는 심사서에 수정 보완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게재불가로 판정할 경우 그 이 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3 심사 의뢰 시 투고자의 인적사항은 비공개로 한다. 제 19 조(심사결과) 1 심사위원 3인의 심사결과에 따른 학술지 게재 여부는 다음과 같이 처리하며, 그 결과를 투고자에게 통보하되 심사자는 밝히지 않는다. 심사자 1 심사자 2 심사자 3 결 과 1 게재 가 게재 가 게재 가 게재 2 게재 가 게재 가 수정후 게재 게재 3 게재 가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4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5 게재 가 게재 가 게재불가 수정후 재심 6 게재 가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수정후 재심 7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수정후 재심 8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9 게재 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2 심사결과가 제1항의 1, 2에 해당하는 논문은 이를 수정 없이 게재한다. 336

345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3 심사결과가 제1항의 3, 4에 해당하는 논문은 투고자에게 수정 권고 사항을 통 보하여 논문을 수정한 후 게재한다. 5, 6, 7에 해당하는 논문은 투고자에게 수정 권고 사항을 통보한 후 수정된 논문으로 재심을 실시한다. 4 심사결과가 제1항의 8, 9에 해당하는 논문은 게재하지 않는다. 5 투고자는 심사자의 수정의견을 따라야 한다. 단 수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 유가 있는 경우에는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며, 편집위원의 동의하에 수정하지 않을 수 있다. 6 수정 후 재심은 1회에 한하며, 재심을 맡은 심사위원은 수정 권고 사항을 이 행한 내용을 검토하여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7 1회 제출 시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은 논문을 동일제목, 동일 내용으로 1회 더 투 고할 수 있으나 2회 투고 시에도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 투고할 수 없다. 제 4 장 연구윤리위원회 운영규정 제 20 조(연구윤리위원회 운영) 편집위원회의 의결로 이첩된 표절, 중복게재 등 연구부정행 위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연구윤리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고 한다)를 둔다. 제 21 조(저자 윤리규정) 1 (표절 금지) 표절 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 혹은 결과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 없이 도용하는 것으로 연구자는 표절에 해당하는 행 위를 해서는 안 된다. 2 (위조 금지) 위조 는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또는 연구결과 등을 허위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연구자는 위조에 해당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3 (변조 금지) 변조 는 연구 재료, 과정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사실과 다 르게 변형 삭제함으로써 연구내용 또는 결과를 왜곡하는 것으로 연구자는 변조 에 해당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4 (연구자료 등의 중복 게재 및 이중 출판 금지) 연구자는 이미 발표한 자료나 연구결과를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 없이 본 학술지에 중복 게재 및 이중 출판을 해서는 안 된다. 단, 학술대회 발표 논문은 이 규정에 적용되지 않는다. 5 (인용 및 참고문헌 표시) 연구자가 공개된 학술자료를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337

3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차 용할 경우에는 인용 여부를 밝혀 어떤 부분이 선행연구의 결과이고 어떤 부분이 본인의 독창적인 생각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22조(구성) 1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하여 7인으로 구성된다. 2 위원장은 편집위원장이 겸임하며, 위원은 위원장이 임명하되, 국악연구실 학예 연구관 1인은 당연직 위원이 된다. 3 위원장은 사안별 이해 당사자가 모두 동의하는 위원 5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제23조(기능) 1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성립하고 출석위원의 3분의 2 이 상의 찬성으로 피조사자의 행위가 연구부정행위임을 확인하는 판정을 한다. 2 연구부정행위 확인 판정이 내려진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제재를 가하거나 이 를 병과 할 수 있다. 1. 연구부정논문의 게재취소 2. 연구부정논문의 게재취소사실(저자명, 논문명, 논문의 수록 호수, 취소일 자, 취소이유 등)의 공지 3. 투고자격의 정지 4. 관계기관에 통보 5. 기타 적절한 조치(원고료 회수, 향후 3년간 투고 금지 등) 3 위원장은 회의 최종 결과만을 사안 이해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4 위원장은 위원회의 결과를 서면으로 작성하여 피조사자 및 제보자, 편집위원회 등 관련자에게 통지한다. 제 24 조(연구부정행위 조사) 1 위원회는 제23조 제2항 각 호에 해당하는 연구부정행위의 구체적인 제보나 의혹이 있을 경우 연구부정행위 존재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2 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및 참고인에 대하여 출석과 자 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3 피 조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또는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는 혐의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4 위원회는 연구기록이나 증거의 상실 파손 은닉 변조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338

347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제 25 조(기피 제척 회피) 1 피조사자 또는 제보자는 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 운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이유를 밝혀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인용 된 경우에는 기피 신청된 위원은 당해 조사와 관련하여 배제해야 한다. 2 당해 조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안건의 심의 의결 및 조사에 관 여할 수 없다. 3 제25조 제1항 또는 제2항의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는 위원은 회피를 신청할 수 있다. 4 위원장은 위원 중 당해 조사 사안과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에 대해서는 당해 조사 사안과 관련하여 위원의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 제 26 조(진술기회의 보장) 위원회는 조사 사실에 대하여 피조사자에게 의견을 제출하거나 해명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제27조(재심의) 피조사자 또는 제보자는 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제23조 제2항의 조치사항에 대한 통지를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그 사유를 서면으로 작성하여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제 28 조(비밀유지의 의무) 1 위원회는 제보자를 보호하고 피조사자의 명예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2 제보 조사 심의 의결 및 건의 등과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비밀로 하되, 공 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공개할 수 있다. 3 위원 및 조사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자는 심의 의결 조사 및 기타 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부 칙 이 규정은 2011년 6월 30일부터 시행한다. 339

3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별지 제1호 서식 국악원논문집 논문 심사 평가서 대상논문 심사위원 성 명 : 연락처(휴대전화) : 소 속 : 이 메 일 : 은행명 : 계좌번호 : 주 소 : 연구의 필요성 및 문제의식(20) 연구 주제의 독창성(20) 평가지표 기존성과의 검토 및 활용정도(20) 논리적 적합성(20) 용어 개념의 적절성(20) 총점(100) 게재 여부 80 이상 이하 게재 가 ( ) 수정 후 게재 ( ) 게재 불가 ( ) 심사소견 340

349 국악원논문집 원고 계약서 별지 제2호 서식 국악원논문집 원고 계약서 국립국악원(이하 갑 이라 한다)과 (이하 을 이라 한다)은(는) 갑 의 국악원논문집 제 집 에 게재할 원고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계약을 체결한다. 제1조(목적) 이 계약은 갑 의 국악원논문집 (이하 학술지 라 한다)에 게재할 원고와 관련한 제반사항을 정함으로써 갑 과 을 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고 향후 발 생할 수 있는 법률적 분쟁을 미연에 방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2 조(저작자 및 저작물) 저작자 표시 성 명 : 연락처 : 주민등록번호 : 주 소 : 저작물 표시 제 목 : 저작물의 내용 개요 : 제 3 조(논문투고) 1 본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 등은 국내 외에서 미간행 된 논문 등 이어야 하며, 학위논문을 투고하는 경우에는 미리 학위논문임을 밝혀야 한다. 2 본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 등이 연구윤리위원회에 의하여 표절, 이미 게재된 논문 또는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된 논문 등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편집위원회 는 논문 등의 게재를 취소하고 원고료 회수, 인터넷상 공지, 향후 3년간 투고금 지 등의 제재조치를 가할 수 있다. 제 4 조(저작권의 보증) 1 을 은 원고의 내용(원고에 포함된 그림, 도표, 사진 등을 포 함한다)이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음을 보증한다. 341

3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2 제1항과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을 은 자기의 책임과 비용으로 이를 해 결하며, 갑 은 이에 협력하기로 한다. 3 을 은 제1항의 보증이 허위일 경우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갑 의 손해를 배상 해야 한다. 제 5 조(저작재산권의 귀속 등) 1 을 은 위 저작물의 저작자(집필자)로서 위 저작물의 저작재산권(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저작물작 성권) 전부를 갑 과 공동 소유한다. 2 갑 은 제1항의 권리에 기초하여 갑 이 시행하는 사업에 한하여 을 의 별도 동 의 없이 을 이 집필한 저작물의 출판, 영상물화, 이미지화, 인쇄물의 제작, 기타 장래 개발되는 새로운 방법이나 매체로의 이용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갖는다. 3 을 은 제1항의 권리에 기초하여 갑 의 별도 동의 없이 본 저작물에 대한 복 재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행사할 수 있다. 4 갑 과 을 은 제1항에서 명시한 권리를 저작권신탁관리단체에 신탁하는 경우 상 호 협력하여야 하며, 갑 은 그 이용료를 을 이 단독으로 수령하는 것에 동의한다. 제 6 조(저작인격권의 존중 및 저작물의 변경) 1 갑 은 을 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해야 한다. 2 갑 은 부득이한 경우 을 의 승인을 얻은 후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호를 변 경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제 7 조(계약의 해제 및 손해배상) 1 갑 또는 을 은 상대방이 이 계약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서면으로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 있다. 다만,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당사자 일방이 제1항에 따라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다. 3 제1항에 의한 계약의 해제는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342

351 국악원논문집 원고 계약서 제8조(불가항력) 천재지변 등 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에 의하여 계약의 이행이 지체 또는 불가능하게 되는 때에는 갑 과 을 은 협의에 의하여 이 계약을 해제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제 9 조(계약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 이 계약에서 정함이 없는 사항은 저작권법과 민법 에서 정한 바에 따르고, 이 계약 각 조의 해석에 대하여 다툼이 있을 경우에는 갑 이 제정한 규칙과 관행에 따름을 원칙으로 하되, 갑 과 을 이 상호 성실히 협 의하여 정한다. 제 10 조(소송의 합의 관할) 1 본 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시 갑 과 을 은 제소 에 앞서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조정을 받도록 한다. 2 갑 과 을 사이에 제기되는 소송 관할은 갑 의 소재지 관할 법원으로 한다. 추가약정사항: 위 계약내용을 증명하기 위하여 계약서 2통을 작성하여 갑 과 을 이 서명, 날인하고 각 1통씩 보관하기로 한다 갑 주 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서초동 700) 사업자등록번호 : 국립국악원장 : (인) 을 주 소 : 주민등록번호(사업자등록번호): 기관 단체명 : 성 명 : (인)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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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유은선(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편 집 위 원: 김영희(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김우진(단국대학교 교수) 박소현(영남대학교 교수) 송지원(서울대학교 규장각 HK연구교수) 송혜진(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신상미(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상규(전주교육대하교 교수) 임병옥(청주교육대학교 교수) 조영배(제주대학교 교수) 간 사: 이윤주(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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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國 樂 院 論 文 集 제24집 발 행 일: 발 행 인: 발 행 처: 기 획: 책임편집: 편 집: 인 쇄: 2011년 12월 20일 이동복(국립국악원장) 국립국악원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서초동) 전화: / 팩스: 유은선(국악연구실장) 김영희(학예연구관) 이윤주(학예연구사) 원화디앤피( ) 본 논문집의 내용은 지적재산권이 국립국악원 소유이므로 국립국악원의 이용 허가 없이 임의로 무단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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