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안성두* 1)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 인도에 있어 구술적 전통 최초의 범어문자인 Brāhmī 문자의 발명과 다른 범자 표기법의 발전 4. Brāhmī 문자의 도입과 인도불교문화에 끼친 영향 4.1. 아비달마 철학의 전개와 문자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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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안성두* 1)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 인도에 있어 구술적 전통 최초의 범어문자인 Brāhmī 문자의 발명과 다른 범자 표기법의 발전 4. Brāhmī 문자의 도입과 인도불교문화에 끼친 영향 4.1. 아비달마 철학의 전개와 문자화의 영향 4.2. 대승경전의 편찬과 문자성의 역할 1. 2. 3. Abstract 1.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 인류 역사상 문자가 출현한 시기는 기껏해야 5500여년을 헤아 린다.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문자의 출현은 그 이후 인간정신사 의 발전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후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상형문자, 기원전 2400-3000년경의 인더스 문 자, 기원전 1500년경의 갑골문, 기원전 1500년경의 셈족의 문자, * 安性斗: 충북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92 印度哲學 제13집 1호 기원전 1200년경의 고대 크레타의 문자 그리고 기원전 300년경의 Brāhmī 문자의 발명이 있었다. 문자를 도입하기 이전의 사회는 그들의 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주로 口傳, 즉 口述性에 의거해 있다. 호머의 시에 대한 연구에 있 어 밀란 페리의 발견이 보여주고 있듯이 구술성은 흔히 생각되고 있듯이 보다 자유로운 즉흥적 양식에 의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정형구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특징지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구술문화의 특색은 월터 옹(Walter J. Ong)의 설명 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첨가적이고 집합적이며 장황하고 전통적이며 인간의 생활세계에 익숙하고 상황 의존적이 다. 이러한 구술적 문화는 문자의 발명과 쓰기문화의 확대에 따라 급격히 변화되어 왔다. 구술성과 문자성의 차이에 관한 최근의 연 구는 문자에 의거한 문화가 그 이전의 구술성에 의거한 문화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양태를 갖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된 쓰기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언 어활동과 자율적 담론을 비로소 가능케 만들었다. 정신은 구술적 전통과 기억의 필요성 때문에 그것이 의지하고 있던 정형구적 표 현으로부터 벗어나 더욱 독창적이고 추상적 사고를 지향할 수 있 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식의 객체로부터 지식의 주체를 분리해 내는 것도 가능해 졌다. 지식의 주체로서의 의식은 자기와 는 전적으로 분리되는 객체적 세계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내면적 1) 2) 3) 1) Milan Perry, The Making of Homeric Verse. ed. Adam Perry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기우, 임명 진 역, 문예출판사) p. 36-42 참조. 2) 월터 옹, 위의 책, pp. 60-92 참조. 3) 월터 옹, 위의 책, p. 42. (Oxford) 1971. Walter J. Ong,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93 의식세계 자체를 내성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문자의 특성에 따라 우리의 정신이 보다 직접적으로 또는 추상 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 본 프로젝트의 대전제이지만, 본고 는 일단 이 문제는 접어두고 Brāhmī 문자의 출현과 이와 관련된 인도문화, 특히 불교의 철학적 사유에 나타나는 전반적 변화의 양 태를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4) 2. 인도에 있어 구술적 전통 문자가 발명되기 전 인도-아리안 족의 문화는 주로 구전에 의 해 전승되어 왔다. 소위 4종의 베다가 그것이다. 각각의 베다는 다시 찬가와 제의서, 산림서, 우파니샤드라고 하는 4부분으로 이 루어져 있다. 베다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는 대부분이 불교 의 성립 이후인 기원전 3세기 이후에, 즉 문자의 발명 이후에 이 루어졌지만, 찬가와 제의서 부분의 성립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 원전 7세기까지로 소급되고 있어 베다의 전통에서 구전전승이 중 요시되어 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구술적 전승의 맥락에서 흥미있는 것은 베다의 전승자들은 축 어적 방식에 의해 이를 기억했는지 또는 정형구의 사용에 의해 5) 4)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불교의 많은 용어들이 이중적 의미 로, 즉 외적 대상을 지칭할 뿐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주관적 대응물 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kāma 라는 단어는 욕망의 대상 뿐 아니라 주관적 욕망 자체도 의미한다.

94 印度哲學 제13집 1호 찬가나 제의서를 보존했는가 하는 점이다. 인도학자들은 축어적 방식에 의한 전승이 보다 개연적이라고 본다. 텍스트 없이 모든 것을 기억에 의해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매우 엄격한 규준을 적 용했다고 보인다. 제의서 속에서 발견되는 관념에 따르면 의례란 기본적으로 신화적 우주적 창조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의례의 각각의 행위가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난다면 그 의례 의 효용성은 손상되고 무가치해진다. 이런 규칙들의 엄격한 준수 는 의례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장단 고저의 규칙에 맞게 발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사제들은 발성을 기계적으로 정확히 수행하는데 매우 전문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베다 산스크리트는 고전 산스크리트에 비해 단어에 엑 센트가 있어 보다 복잡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찬가나 의례의 한 마디 한마디를 완벽하게 전승한다는 것은 순수 이론적 차원에서 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이상에 가깝 다고 보인다. 더욱 베다가 아직 문자로 씌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들이 제대로 전승되었다고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기에, 전승 과정에 있어 변형과 개작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어적 방식의 전승을 개연적이라 간주하는 인도학자의 견해와는 달리 언어학자들은 수사적 기교를 갖춘 정형구의 방식으로 전승 6) 7) 5) L. Renou, The Destiny of the Veda in India (ed. Dev Raj Channa), Delhi 1965: 25-26; A. L. Basham, The Wander That Was India, 1954: 164. 정형구적 요소나 테마적 요소와 같은 구술문화의 특유한 기억술과 관 련하여 베다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월터 옹에 의해 지적되 었다 (앞의 책, p. 104-105). 7) 이런 작업은 후대 인도철학에서 언어실재론의 근거로서 받아들여져 唯名論적 불교와 대립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이후의 과제인 의미론 적 작업에서 다룰 것이다. 6)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95 되었으리라 여긴다. 인도학에서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매우 초보 적 단계에 있기에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 확답할 처지에 있지 는 못하지만, 베다의 전승에 있어 장황한 말투의 사용빈도나 정형 구의 반복적 사용에 대한 말뭉치 이론에 의거한 조사를 통해 보 다 구체적 차원에서 답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3. 최초의 범어문자인 Brāhmī 문자의 발명과 다른 범자 표기법의 발전 인도에 있어 최초의 문자는 인더스문명에서도 보인다. 印章이나 토기, 점토판 등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그것이다. 그 문자는 아직 해독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략 396종의 문자가 있다고 한다. 인 더스 문자는 우에서 좌로 씌어 있지만 2행일 경우는 좌에서 우로 씌어 있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범자는 이 인더스문명의 문자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 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약해서 梵字라고 불리는 Brāhmī lipi (브라마 문자)의 기원이 나 유래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그 문자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되어 왔다고 보이며 표기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변천되 어 왔다. 인도정통학파의 설명에 따르면 문자는 창조신 Brahmā에 8)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의 어휘의 사용빈도에 대한 기초적 조사가 현재 인도팀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이 작업은 아직 문장적 차원에서의 빈도조사는 포함하고 있지는 않 지만 명사형에 따라 정리된 단어의 빈도수 조사는 기초적 통계자료 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96 印度哲學 제13집 1호 의해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Manusaṃhitā에 대한 주 석인 Nārada-smṛti 나 현장의 대당서역기, 法苑珠林 등 에서 발견된다. brāhmī 또는 bambhī 라고 불려지는 이 문자가 인 도의 대표적 문자라는 사실은 Lalitavistara 에서 64종의 문자를 열거할 때 또는 Mahāvastu 에서 20종의 문자를 열거할 때 맨 처음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또한 b rāhmī가 Brahmā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범자의 풀이를 통해서 도 찾아볼 수 있다. 범자의 원어는 brahmī가아니라 brāhmī의 어 형이 표준화된 것이다. brāhmī는 brāhma의 여성형이다. brāhma 는 사제로서의 brahman 또는 brahman에 속하는 이라는 형용사 로 일반적으로 신성한 것으로서의 성스런 문자를 뜻한다. brāhmī 는 브라만신의 여성적 힘이나 말을 가리킨다. 이러한 어원적 설명 은 범자가 梵天(brahm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유래를 보 강해 준다. 이러한 신화적, 어원적 설명을 일단 도외시하더라도 Brāhmī lip i의 기원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고 또 여러 가설들이 있다. 이 가설들을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가 설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자 등의 외부문자로부터의 영향으 9) 10) 11) 12) 13) 9) SBE. 23, p. 58. 10) ( 대당서역기 대정 51: 876c): 詳其文字 梵天所製 原始重則 四十七言 也. 11) 法苑珠林 대정 53: 351c1-2. 12) Lalitavistara의 한역인 普躍經 (대정 3)과 方廣大莊嚴經 (대정 3)에 대략 64종의 자체가 나열되어 있다. 이 양자와 Mahāvastu의 문자의 나열, 비교에 관해서는 山田龍城, 梵語佛典の 諸文獻, Kyoto 1959: 10-11 주 2 참조. 13) J. Jones, The Mahāvastu, vol. I, London 1949: 107; E. Senart, Le Mahāvastu, Tome. I, Paris 1882: 135.

98 印度哲學 제13집 1호 성이 단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문자가 동일한 자체에 대해 유사한 음가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러나 음가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두 문자가 직접적 관계를 갖 고 있다고 보는 것을 어렵게 한다. 반면 커닝햄(Cunningham)이나 반다카르(Bhandakar) 등의 대 다수 인도인 학자들은 Brāhmī 문자가 인도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옹호한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 문자가 초기베다에까지 수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인더스문자에서 파생되었다고 본다. 후자 의 견해를 대표하는 커닝햄은 인도 최고의 상형문자로부터 범자 가 발생했다는 가설을 제시했지만, 그의 가설의 어려움은 고대 인 더스 문명에서 발견되는 인장 등에 새겨진 문자는 상형문자인데 비해 범자는 표음문자라는 본질적 차이 때문에 양자의 연관성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인더스 문자의 음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몇 字体의 형태상의 유사성 때문에 이를 Brāhmī 문자의 원형으로 간주하기에는 양자 사이의 15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너무 크다. 또 우에서 좌의 방향으로의 쓰기(右行)를 기본 으로 하는 인더스 문자와 좌에서 우에로 쓰는 左行의 Brāhmī 문 자의 차이도 간과될 수 없다고 보여진다. 현재 범자는 일반적으로 좌행으로 씌어진다. 인도에 남겨진 최 고의 예는 아쇼카왕의 비문의 예이다. 그러나 우행의 카로스티 문 자도 있는데 초기의 자료 중에는 이런 서법을 보여주는 자료가 상당수 있었다. 이는 후기 페니키아 문자가 우행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에 기인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렇지만 아쇼카왕의 시기에 좌행의 방식이 주도적이었다는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침입과 14) 14) 서방의 영향을 따르는 오늘날의 학자들은 범자의 자형이 셈족의 문 자로부터 직접 기원한 것은 아니고 초기 페니키아 문자로부터 유래 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99 관련된 그리스 문자의 영향의 결과로 보인다. 아쇼카왕의 시대에 있어 페르시아 문화의 인도유입이 있었고 이것이 범자의 좌행적 서법의 유포에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 Brāhmī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 했는가 하는 점이다. Brāhmī lipi (브라마 문자)의 기원에 관해 가 장 확실한 역사적 증거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서기전 3세기 중 반의 아쇼카 왕의 비문에 사용된 문자로서 이것이 인도에 있어 현존하는 最古의 범자이다. 그런데 이 문자가 과연 아쇼카왕 시기 이전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 다. 몇몇 인도학 학자들은 인도에 있어 문자의 시작을 기원전 4세 기나 5세기로 즉 아쇼카왕 이전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이런 입 장에 선 학자들이 제시하는 가장 큰 논거의 하나가 아쇼카왕 비 문의 문자에서 지역적 차이점이 발견된다는 점이고 이는 Brāhmī 문자의 선행성을 증명해 준다고 간주한다. 뷜러는 그러한 차이점 을 인정했던 듯이 보인다. 그러나 동일한 문자가 다른 지역의 비 문에 다르게 씌어 있다는 주장은 실은 일종의 신화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같은 지역의 비문에서도 동일한 문자가 다르게 각인되 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차이는 오히려 개인적 양식 의 탓으로 돌려질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 인도에서 쓰기의 시원에 대한 문제는 Brāhmī의 기원에 대한 문제와는 분리 되어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설사 아쇼카 이전의 인도인들이 문 15) 16) 15) Max Müller, History of Sanskrit Literature, p. 262. 16) S.R. Goyal, "Brāhmī -An Invention of the Early Mauryan Period". The Origin of Brāhmī Schrift (Eds. S.P. Gupta and K.S. Ramacandran), 1979: 7-9.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01 증일아함경 III. 107에서 승려들이 단지 시문 등의 경전만을 듣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경전을 게을리 할 때 믿음이 상실되는 위 험에 대해 경고한다. 같은 경전 II. 147에서 많이 듣고 교설을 기 억하고 있는 승려들이 경을 독송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 들이 죽음과 더불어 불교도 쇠퇴할 것이라는 언급이 보인다. 여기 서 책에 대한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 만일 책이 일반적으로 사 용되고 있었다면 이런 경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 련하여 율장의 조목이 관심을 끈다. 사원에서 매달 해탈계경의 규 칙적 독송을 행할 때 만일 아무도 규칙을 아는 승려가 없다면 이 웃 사원에 해탈계경의 규칙을 암송하러 승려를 보내야 한다는 규 칙이다. 이러한 율장의 규칙은 당시의 인도사회가 문자를 사용하 고 있지 않았거나 인도인 대부분이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단적으 로 보여준다. Brāhmī 문자가 점차적 발전의 소산이 아니라 어느 누군가에 의 해 창제된 문자라는 사실은 산스트리트 문법과의 관련에 대한 연 구에서 잘 드러난다. 아쇼카 이전의 문법의 발전은 보통 문자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전제는 여러 다양 한 단계를 통해 발전해 온 문자의 경우에는 타당하고 따라서 문 법은 문자보다 이후라고 여겨지지만 Brāhmī의 경우는 그렇지 않 다. Brāhmī의 창제자는 산스크리트 문법과 음운론에 매우 익숙해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Brāhmī 자모는 산스크 리트 문법학자들의 음운론적 분석이 발견했던 그러한 음성의 미 묘함을 매우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고, 또 Brāhmī의 고형은 산스크리트를 쓰기 위해 학자에 의해 형성된 문자라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 문법학자에 의해 Brāhmī 19) 20) 19) 이것은 Taylor의 설이다. S.R. Goyal, op. cit., p. 11에서 재인용.

102 印度哲學 제13집 1호 문자가 창제되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① 다섯 비음 문자와 장음기호는 일상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음성학자와 문법학자를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다른 고대의 문자 에는 없다. ② 음성학적으로 다르지만 어원적으로 동일한 기원을 가진 śa, ṣa, sa를 위한 다른 기호. ③ 반모음 va를 통해 모음 u를 나타내는 것. ④ a 음을 발음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모든 자음 속에 내재해 있다고 간주하는 문법학자의 영향으로 보인다. ⑤ 모든 발성된 음과 발성된 문자와 씌어진 문자 사이의 동일 성을 위해 독립된 기호의 사용, 발성하는 위치에 따라 문자를 같 은 列(varga)로 분류하고 anusvāra와 anunāstika, visarga를 위해 구별된 기호를 쓰기 등이다. 21) 자이나교의 문헌에서는 18종의 문자를 나열하고, Lalitavistara 에 64종의 문자의 명칭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Brāhmī 문 자는 맨 앞에 언급되어 있다. 이 Brāhmī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좌행의 서법으로 씌어진다. 法苑珠林 에는 Brāhmī 이외에 다른 2종의 범자가 언급되어 있는데, 하나는 카로스티 (Kharoṣṭhī) 문자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 비디(Drāviḍī 또는 Ḍāmilī) 문자이다. 전자는 이전에 박트리아어, 아리안어 등으로 불려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우행의 문자 이고, 후자는 Brāhmī 문자의 변형으로 여겨진다. 22) 20) Bühler, op. cit., p. 18. 21) Goyal, op. cit., p. 11-14 22) 53: 351c1-2. 法苑珠林 대정 참조; Bühler, op. cit., p. 18.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03 뷜러에 따르면 기원전 300년경에 mātṛkā 라고 불리는 범어의 기본자모의 대략적 숫자가 약 46개로 확정되어 사용되었다: 그 것들은 a, ā, i, ī, u, ū, e, ai, o, au, aṃ, aḥ (모음 12종); ka, kha, g 23) a, gha, ṅa, ca, cha, ja, jha, ña, ṭa, ṭha, ḍa, ḍha, ṇa, ta, tha, da, d 자 음 34종)이다. 이것을 현재 범어의 자모와 비교해 보면 ṛ, ṝ, ḷ, ḹ의 4종 모음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네 모음은 아쇼카 왕의 비문이나 Lalitavistara에서의 자모의 나열, 그리고 47종으로 범자 를 나열한 현장에게서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는 ai, au, aṃ, aḥ의 모음이 보여주듯이 이들 Brāhmī 자모가 산스 크리트를 위해 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방 셈족의 문자는 22개의 자모로 이루어져 있는데, 발달된 범 어의 자모는 약 50개이다. 이들을 대비해 보면 원 자모가 추정되 지만 범자는 이것들의 확장을 통해 현재의 자모수로 발전되어 왔 다. ha, na, pa, pha, ba, bha, ma, ya, ra, la, va, śa, ṣa, sa, ha, ḷa ( 24) 문자가 발명된 후 인도에서는 여러 형태의 범자의 자모 가 이에 근거하여 생겨났고 발전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 본적인 범자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Brāhmī 25) 23) G. Bühler, op. cit., p. 2. 24) 46 kṣa 상기 종의 자모에 를 첨가해 47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Bühler, op. cit. p. 2 참조. 불교문헌에서의 자모 숫자의 상위에 대해서는 이 태승, 智廣의 悉曇字記 硏究. 밀교학보 3, 2001 참조. 25) 여러 범자의 기본형태와 그것들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개관을 위해 서는 Bühler, Indian Paleography. Supplement. Strassburg 1896; Lore Sander, Paläographisches zu den Sanskrithandschriften der Berliner Turfansammulung, Wiesbaden 1968; R.K. Vasishtha, Brāhmī Schrift. Its Palaeography. Delhi 2001. Sander 의 부록 참조 이 중에서 특히 의

104 印度哲學 제13집 1호 형: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사용된 문 자로 아쇼카왕의 비문에 사용되어 있다. 이 자형은 크게 북방 아 쇼카 문자와 남방 아쇼카 문자로 대별된다. 북방계는 方形문자이 고 남방계는 圓形문자라는 특색이 있다. 그 중에서 범자의 발전과 관련이 깊은 것은 북방계 문자로서 이것은 다시 Brāhmī 문자와 카로스티 문자로 대별된다. Brāhmī 문자는 悉曇(Siddham) 문자의 원형이 된다. 카로스티는 페르시아문자에 기원한다. 2) Mahārāṣṭra 형: 대표적인 것은 1세기 경 Mathurā의 지방장 관이었던 Mahārāṣṭra의 비명의 각문과 화폐이다. 이와 유사한 것 이 쿠샤나(Kuṣāṇa)왕조에서 사용된 쿠샤나 범자이다. Mahārāṣṭr a 형은 悉曇자모로 발전하기까지의 초기형태를 보여주는 字體이 다. 3) Gupta 형: 서기 320년에 굽타왕조가 성립하여 북인도에 문 화적 번영기가 찾아왔을 때 사용된 자모이다. 이 범자는 널리 유 포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체이다. 후대의 범자는 모두 굽 타문자를 모태로 해서 발전된 것이다. 6-6세기의 실담문자는 굽타 형의 변형으로 서북인도 캐쉬미르 지방에서 사용된 것이다. 4) 실담자모(Siddhamātṛkā) 형: 굽타형에서 발전되어 나온 형 태로 중국에 전해진 범자이다. 5) Nāgarī 형: 6세기 경 동인도지방에서 유행했던 굽타형의 변 형으로 초기의 형태는 실담자모와 유사하다. 11세기 전 인도에 퍼 져 13세기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데바나가리(Devanāgarī) 문자 의 기초가 되었다. 데바나가리는 신성한 용의 문자 라는 의미이 다. 6) Śārada 형: 7세기 경에 유행된 굽타형의 변형으로 서북인도 1) Maurya 책은 불교사본의 해독에 매우 유용하다.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05 와 펀잡지역에서 사용되었다. 7) 전기 벵갈 형: 11세기 나타난 굽타형의 변형으로서 근대 벵 갈문자의 기초가 되었다. 8) Kuṭila 형: 11세기 네팔에서 사용된 문자이다. 이것은 서방 의 샤라다형과 전기 벵갈리 문자가 혼합된 형태로 15세기까지 사 용되었다. 4. Brāhmī 문자의 도입과 인도불교문화에 끼친 영향 아쇼카 왕의 시대에 인도최초의 문자인 Brāhmī 문자가 발명되 고 도입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이 전 인도로 퍼져 나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느 집단이 문자의 사용에 보다 호의적이었는가에 관해 우리는 결정적 증거는 갖고 있지 못하지 만, 구술성에 강력히 의존하고 있던 전통적 사제 계급의 보수성 때문에 새로운 문자성에의 이행은 주로 비정통파 철학체계인 자 이나교와 불교에 의해 주도되어왔다고 보인다. 브라만교도는 교의 의 전승을 구전이나 비의적 방식으로 전승한 반면 불교는 교설의 포교에 있어 비밀스런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 방식을 택했기 때문 에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인도의 전 지역에 불교도에 의한 문자 의 배포는 보다 용이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자의 보급 에 있어 불교도가 정통브라만 종교에 비해 보다 적극적이었다는 것은 불교문헌에 나타나는 문자와 관계된 용어의 사용이 빈번하 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물론 초기의 불교교단도 구전에 의거해 붓다의 가르침을 전승

106 印度哲學 제13집 1호 하고, 또 이를 위해 持經者, 持律者 또는 持法者로서 해당 경전의 암송과 전승에 전문화된 특별히 교육받은 승려들이 있어왔고 그 들이 문자적 전통이 확립된 이후까지 계속 승가 내에 존속해 왔 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도에 있어 문자문화의 본 격적 개시에는 불교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것은 기 원 전후를 거치는 동안 불교경전의 표준 범어화 작업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반면 다른 정통파 철학체계의 문헌들은 기원 400 년 이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편찬되기 시작했다고 보인다. 불교에서 문자의 출현, 즉 문헌의 출현과 더불어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철학적 분석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다. 초기불교가 사물을 그 존재요소로 분해함에 의해 사물을 명칭 적 존재(prajňaptisat)로서 간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아 를 5온으로 분해한다든지, 인지적 구조를 12처나 18계의 범주로 구성함에 의해 어떤 고정된 실체나 단일성의 관념을 파괴하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초기불교에서 이런 실체관념의 파괴는 다양하 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본격적인 철학적 논의로 발전되 지는 않고 다만 근저에 놓여진 사유방식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고 보여진다. 내용적으로 볼 때 그 이유는 초기불교의 실천적 관 심에서 찾을 수 있지만, 형식적으로 볼 때 문자의 도입 이전의 구 술적 전승이 가진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두 가지 점에서 문자가 도입될 무렵 인도불교의 사 상적 변화를 문자성과의 관련 하에서 간략히 논의하고자 한다. 하 나는 아비달마의 분석적 방법이 어떻게 문자성에 의해 강력히 영 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승경전에서 발견되는 寫經에 대한 강조와 문자성의 관계이다. 아직 이러한 관점에서 다 룬 선행연구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의 자료의 취급과 해석은 어느 정도 자의적이고 또 試論的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07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사상의 발전을 일견하는 것도 전혀 무의미 하지는 않을 것이다. 4.1. 아비달마 철학의 전개와 문자화의 영향 붓다의 열반 후에 그의 가르침에 대해 여러 차례 결집이 이루 어졌지만 이것은 문헌적 편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암송하고 독송하기 쉬운 형태로 가르침이 정리되고 분류되었다는 것을 의 미한다. 이 작업은 법을 분류,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法數에 따라 이루어졌다. 법수에 따른 분류는 가르침의 주 내용을 수에 따라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런 작업은 경에 대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 니라 율과 논에 대해서도 이루어졌다. 이 방법은 분명 붓다의 가 르침을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승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소위 論藏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문자성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보이는 점이다. 문자의 도입, 문헌의 편찬과 더불어 이런 분류적 사고는 논장에서 한층 분석적 이고 체계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고, 여러 개념 간의 상호 관계 내 지 범주 상호간의 관계 등의 문제도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 었다. 불교사상사에서 아비달마 불교의 전개라고 말하는 시기가 이에 해당된다. 아비달마불교가 문자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이유는 아마 구술적 문화의 특색인 정형구의 사용이 불교의 경전 에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있고, 따라서 암송의 어려움에 26) 26) 이 점에서 신화연구나 문학작품의 구전전승과 철학적 종교적 문헌의 구전전승과는 차이가 많다고 보인다. 따라서 월터 옹의 설명이 어느

108 印度哲學 제13집 1호 기인했을 것이다. 또 철학적 교의적 문제를 다룬 논서들의 경우 암송에 의해서만 이를 전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달마는 그 단어가 말해주듯이 존재요소에 대한 분석을 목 적으로 한다. 이러한 분석은 먼저 論母(mātṛkā)라고 불리는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논모를 암기하고 수지하는 사람은 mātṛkādhara로 불려지고 있어, 이것이 문자화되기 이전의 단계에 서 법의 분석을 간략히 정리해 놓은 일종의 리스트였다고 생각될 수 있다. 이런 리스트의 오래된 것은 대부분의 경의 성립연대보다 앞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분류적 방식이 아직 문자화된 텍스 트가 출현하기 전의 구전전승 속에서 불교교설을 보존하는 유력 한 수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분류적 형태의 사유가 문자의 도입과 함께 극도 로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본다. 소위 아비달마의 시기에 불교는 하 나의 실체를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분류하는 체계를 발전시켰 는데, 이러한 매우 번쇄적이고 분석적인 체계의 성립은 문자에 의 존하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인다. 아비달마 시기 이전에는 주로 기억에 의거한 구술전승이 사상과 관념의 전달을 위한 기본적 수단이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문자에 의거한 추상 적 논의가 완연히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분열에 관한 언 급이 아쇼카왕의 석주에 언급되는 것으로 미루어 아쇼카왕의 재 위시기를 전후해서, 즉 Brāhmī 문자가 처음 창제되기 시작한 직 27) 28) 정도 불전의 구전전승에도 타당한지에 관해서는 보다 상세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27) 이 점에서 우리는 월터 옹과 그가 의지한 학자들의 작업에 의해서는 간과되었지만 문학적 소재에 있어 구전성과 종교적 소재에 있어 구 전성의 차이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8) J. Bronkhorst, "Dharma and Abhidharma". Bulletin of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vol. 48, Part 2, 1985: 305-320.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09 후 부파의 분열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문자화와 부파의 분열 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자의 도입과 사용 은 각 부파의 고유한 관념들을 구체화시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 었을 것이고 또 그들의 철학적 추상적 관계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했으리라 보인다. 따라서 각 부파들이 그들의 체계를 구축하 기 위해 구술성 보다는 문자성에 더 의존했을 것이라고 하는 추 정은 매우 개연적이라고 보인다. 아비달마론자들은 존재요소들의 특성의 파악과 그 분류가 그들의 철학적 사명이라고 여겼고, 이런 명백함을 획득하는 작업은 경의 설명의 다의성과 비유적 언명에 비해 우수하다고 여겼다. 29) 4.2. 대승경전의 편찬과 문자성의 역할 문자성과 관련해 고려되어야할 두 번째 요소는 대승불교 경전 의 경우이다. 우리는 대승경전의 편찬에 있어 문자성에의 강조가 대승적 믿음과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 아쇼카 왕의 비문과 이와 관련된 최초의 범문자인 Brāhmī 문자의 인도전역으로의 유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초기의 대승경전 에 속하는 묘법연화경 이 편찬되기 시작했던 기원전후의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기존의 구술성에 의존한 受持, 讀誦 외에 寫經의 공덕이 매우 강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기록은 대승불교가 다른 여러 학파들보다 문자성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다. 인도에서 전통 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던 구술성이 처음으로 30) 29) Abhidharmakośabhāṣya (ed. P. Pradhan) 133,16; 278,8; 333,8 30) 9: 51b8-9; 61c13-14; 61c22. 묘법연화경 대정 참조.

110 印度哲學 제13집 1호 문자성에 의해 도전받은 것은 바로 대승불교에 의해서였고, 문 자성을 이용함에 따른 포교 등에 있어서의 대승불교의 상대적 성 공은 다른 학파들에게 문자의 수용과 유포를 가속화시켰을 것이 다. 그렇지만 사경 등의 공덕을 강조하는 일부 대승경전의 경우 문 자성에의 의존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강조가 교리적 철학 적 면에서 내용상의 깊은 변화를 초래했는지의 여부는 회의적이 고, 포교나 사경과정에 있어 정신집중과 관련되어 강조된 듯이 보 인다. 따라서 대승에 있어 문자성의 채용이 곧 추상적 사고의 전 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유형에 속하는 초기대승경전의 경우 우리는 이들이 보다 구술성에 가까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가장 좋은 예는 반야경 의 경우라고 생각된다. 반야경 의 성립에 있어 가장 기본적 역할 을 한 것은 <소품반야경>에 속하는 8천송 반야바라밀다경 으로, 이 경이 확장되고 증광되어 <대품반야경>에 속하는 이만오천송 31) 32) 平川彰의 이론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성립에 있어 재가신자의 역할은 지대했다 (The Rise of Mahayana Buddhism, Memoirs of the Toyo Bunko No. 22, 1963). 이런 그의 입장은 특히 초기 대승운동에서 두 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많은 경우 재가가 승단의 엘리트주의적 불교에 대한 비엘리트주의적 불교운동을 대변하고 있다고 간략히 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寫經 등의 공덕을 찬양하는 초기대승경들의 태 도는 문자성이 널리 재가신자들에까지 퍼져나갔음을 방증해 주는 것 이다. 문자성의 수용에 있어 재가신자들의 적극적 역할은 그들이 교 육받은 지식인계급이었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반면 대다수 민 중들이나 여성들이 문맹이었을 것이라면 이런 초기대승운동의 주체 를 일의적으로 비엘리트주의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32) 초기 아비달마의 논서와 초기 대승의 역사적 선후 관계와 상호 영향 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초기 대승경전의 성립은 아 쇼카 왕의 재위시대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31)

범어 문자의 성립과 사유방식의 변용 111 반야경 과 십만송 반야경 으로 발전되었다고 판단되고 있다. 왜냐하면 <대품>과 <소품> 사이에는 상호 유사한 章과 합치하 는 문장이 많고 <대품>이 <소품>에 근거하여 발전되었다고 보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장에 있어 정형구의 반복적 사용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이며,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구술성 의 특징으로 언급했던 일정한 정형구의 반복적 사용이란 특징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반야경 등의 대승경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구전적 전통에 더 가까이 있다고 간주될 수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반야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경의 공덕의 강조는 문자성에 대한 직접적 어필이라기보다는 암송과 受持라는 구전성 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채택되고 강조된 것이라 보여 진다. 이러한 해석은 문자와 개념적 사고가 실재에 대한 인식을 왜곡 시킨다고 하는 대승불교의 근본적 입장과도 부합된다. 대승불교에 있어 언어적 파악이 실재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끌게 된다는 그들의 핵심적 언어관과 관련시켜 볼 때, 문자는 언어보다 분별적 성격이 강하고 또 찰나적 사물에 대한 고착적 인식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 있어 사경 등의 강조는 그들의 교의의 핵심적 내용과 어느 정도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고 방편적 인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실재성을 사물화하려는 모든 종류 의 시도에 대해 강력히 거부했던 대승불교가 문자의 전파에 주도 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역설일 것이다. 33) 33) 赤沼智善, 佛敎經典史論, p. 264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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