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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史館論叢第 62 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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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地神族 信仰의 흡수 - 67 -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지신족신앙으로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金蛙 시조전승 과 하백의 딸인 유화 시조전승이다. 그 중 유화 시조전승은 주몽 시조전승과 함께 고구려의 개국신화를 구성하는 근간을 이루었다. 때문에 유화 시조전승은 고구려 개 국신화 중에 흡수된 지신족신앙으로서는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속에 실려있는 고구려 개국신화 속의 유화전승 은 소략한 편이며, 오히려 동명왕편 속에 나오는 유화전승을 통해 그 풍부했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명왕편 이나 삼국사기 에 나오는 유화 시조전승에 관한 기록을 비교검토 하면, 하백으로 표방된 지신족신앙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어떻게 흡수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화 시조전승은 본래 地母神으로서 농업신적 성격을 강하게 지녔는데,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면서 지모신앙적 성격은 거의 배제되 었다. 삼국사기 의 고구려 개국신화 중에 유화가 지모신앙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왕자(帶素) 및 諸臣이 주몽을 죽이고자 모의하였다. 주몽의 어머니가 가만히 이를 알아서 고하기를 國人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하는데,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써는 어디 를 가든지 가능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머물러 지체하다가 욕을 당하지 말고 멀리 떠 나라 고 하였다( 三國史記 권13, 高句麗 始祖 東明聖王 卽位年條). 유화부인의 권고로 무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간 주몽은 엄사수가에서 河伯神 의 도움을 받아, 자라와 물고기를 다리로 삼아 강을 건너고 있다. 그런데 유화가 주 몽의 위험을 미리 알았다는 표현을 陰知 라 했는데, 그것이 유화가 주몽을 도운 내용 이다. 물론 이때의 陰知 라는 표현이 유화의 능력을 나타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 만, 반드시 지모신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몽이 자 라와 물고기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外祖인 하백의 능력을 보다 더 선 명히 보여주는 것은 지모신앙과 연관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동명왕편 에서는 주몽이 南下하면서 황급결에 떠났기 때문에 보리 종자를 가지고 오지 못했으므로, 神母인 유화가 신의 사자인 비둘기를 통해 주몽에 게 보리종자를 건네주는 내용이 장황하게 나타나 있다. 그것은 유화의 지모신적 존 재를 크게 부각한 셈인데,38) 그러한 신앙요소가 삼국사기 의 고구려 개국신화 속 38) 金哲埈, 東明王篇에 보이는 神母의 성격 ( 柳洪烈博士華甲紀念論叢, 1971 ; 韓國古代 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p. 37.

- 68 - 國史館論叢 第62輯 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지모신앙의 중요한 요소가 大地이거나 江이었 음을 생각할 때39) 하백은 유화 시조전승의 지모신적 성격을 강하게 시사해 주는 것 이다. 고기와 자라에 관한 내용도 삼국사기 의 고구려 개국신화나 동명왕편 중에 모두 나오고 있지만, 특별히 동명왕편 에는 주몽이 엄사수를 건너서 나라를 세우고는 이웃의 송양국을 병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삼국사기 에는 동명성왕 2년에 송양국이 항복해 오자, 그 땅을 多勿都로 만들고 松讓을 그 주인으로 봉하고 있다. 그런데 송양이 항복해 오는 과정에 대해서 는 삼국사기 의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松讓王이 분개하여 주몽과 더불어 언변으로 싸우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주를 시 험하였으나 능히 대항하지 못했다( 三國史記 권13, 高句麗 始祖 東明聖王 卽位年 條). 같은 내용에 대해 동명왕편 에서는 주몽이 사슴을 잡아 거꾸로 매달아 놓고, 그 울음에 저주를 싣음으로써 장마비가 쏟아져 내리게 하여, 마침내 송양국을 물에 잠기게 하였다는 내용이 장황하게 전개되어 있다. 하백이 장마와 가뭄을 관장하고 있음은 그 자체가 지모신적 신앙을 강하게 내포하 고 있는 것이다. 송양국의 병합에 관한 내용은 본래 유화 시조전승의 지모신 신앙을 배경으로 전개된 것인데, 그것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면서 활을 쏴서 재주 내기를 하는 내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활을 잘 쏘는 것은 주몽 시조전승에서 중요시 되었던 신앙이었다. 말하자면 유화 시조전승은 지모신 신앙을 강하게 내세운 것이었 는데,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면서, 그러한 성격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주몽 시조전승이 유화 시조전승을 흡수하여 고구려 개국신화가 성립되었는데, 본 래 그 두 시조전승은 朱蒙부족과 柳花부족이 각각 성립시켰던 것이다. 주몽 시조전 승과 유화 시조전승은 天帝子인 解慕漱를 매개로 연결되었다. 삼국사기 의 고구 려 개국신화 속에는 해모수와 유화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하백의 딸이며 유화라 부른다. 동생과 더불어 놀고 있을 때에 한 남자가 있 어 스스로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라 하면서, 나를 熊心山 아래의 鴨綠邊에 있는 집으 로 유인하여 사통하고는 가서 오지 않았다. 부모가 중매인도 없이 사람을 따라갔다 고 나무라고는, 드디어 優渤水에 유배보냈다고 했다( 三國史記 권13, 高句麗 始祖 東明聖王 卽位年條). 拙稿, 檀君古記의 이해방향 p. 21. 39) 地母神신앙을 이루는 地神族신화에서는 강이나 동굴, 우물, 해변 등이 大地와 얽혀 종종 神 의 탄생이나 출현지역으로 나타난다.

- 69 이에 비해 같은 내용을 동명왕편 에서는 상당히 길게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 을 요약 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하백의 세 딸인 유화, 萱化, 葦化가 淸河에서 나와 熊心淵에서 놀았다. ② 해모수가 말 채찍으로 땅을 그어서 구리 집과 술상을 만들어 여자들을 유인하 고는, 술이 취하자 급히 나가 유화를 붙잡았다. ③ 하백이 알고 중매도 없이 求婚함을 크게 꾸짖으니, 해모수와 유화는 龍車를 타 고 하백의 나라에 이르렀다. ④ 하백이 해모수와 더불어 재주내기를 하였는데, 하백이 잉어가 되면 해모수는 수달이 되고 하백이 꿩이 되면 해모수는 매가 되었으며, 하백이 사슴이 되면 해모수 는 승냥이가 되는 등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⑤ 하백은 술자리를 벌리고 만취한 틈을 타서 딸과 함께 가죽수레에 넣어, 龍車에 싣고 하늘에 오르게 하였다. ⑥ 수레가 미처 물에서 나오기 전에 해모수는 술이 깨어, 여자의 황금비녀로 가죽 수레의 구멍을 뚫고 홀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⑦ 하백이 딸을 책망하여 입술을 당겨 석자나 늘여 놓고는 優渤水 속으로 추방하 였다. ⑧ 어부가 물속에 이상한 짐승이 돌아다닌다고 함으로, 金蛙王이 쇠그물로 여자를 얻고는 그 입술을 세번 잘라내게 하여 말을 하게 하였다. 東明王篇 에는 유화와 그의 부친인 하백의 나라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熊心淵이나 淸河 또는 優渤水 등과 관련된 하백의 신앙은 본래 지모 신앙을 배경으로 성립된 것임이 분명하다. 잉어나 수달의 등장도 그런 생각을 가능 하게 한다. 그렇지만 하백신앙 속에는 가부장적 모습과 함께 꿩이나 매나 사슴, 승냥 이 등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 이 점은 하백신앙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본래의 그것은 지모신으로 이어지는 시조전승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다음 기록은 그 런 면을 이해하게 한다. 귀신을 공경하며 淫祠가 많았다. 두 곳의 神廟가 있는데 하나는 夫餘神이며 나무 를 조각하여 婦人像을 만들었고, 또 하나는 高登神인데 이는 시조인 부여신의 아들 을 말한다. 아울러 官司를 두고 사람을 파견하여 守護하게 하는데, 대체로 하백의 딸 과 주몽을 말함이다.40) 40) 北史 高句麗傳에 敬鬼神 多淫祠 有神廟二所 一曰夫餘神 刻木作婦人像 一曰 高登神 云是 其始祖 夫餘神之子 竝置官司 遣人守護 蓋河伯女 朱蒙云 이라 하였다.

- 70 - 國史館論叢 第62輯 하백신앙은 夫餘神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구려에는 두개의 신묘가 있었고 그 각 각에 부여신과 高登神을 모셨는데, 부여신은 유화이며 고등신은 주몽이라 하였다. 그 중 부여신은 부인상으로 모셔졌으며 시조로 추앙받고 있었다. 이것은 유화 시조전승 이 하백신앙의 본모습일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 수된 유화 시조전승은 女系祖先을 내세웠으며, 지모신신앙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 풍부한 신앙요소를 갖추고 있었을 법하다. 주몽 시조전승 속에 흡수되 어 고구려 개국신화로 체계화되면서, 유화 시조전승 속의 지모신신앙의 모습은 퇴색 되어 갔으며 그 내용도 소략하게 전해지게 되었다.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는 유화 시조전승 외에도 많은 시조전승이 흡수되었으며, 그 것은 대체로 지모신 신앙을 가졌을 법하다. 또한 고구려에는 隧神이 있었다. 東盟이 라는 祭天의례가 행해질 때 고구려에서는 天神 외에 따로 나라의 동쪽에 있는 大穴 에서 隧神을 맞아다가 제사하였다. 隧神은 동굴신이었으며 婦人像으로 모셔졌고 부 여신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판단된다.41) 아마 수신은 지모신으로 숭배되었 을 법하다. 고구려의 東盟제의에서 천신과 함께 따로 제사하는 隧神은 고구려 개국 신화 속에 흡수되어 들어온 지신족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고구려 개국신화의 根幹을 이루게 된 유화 시조전승은 그 속에 흡수되어 들어온 다른 시조전승과는 달리, 후대의 지모신 신앙요소를 비교적 많이 전승시키고 있다. 반면 다른 지신족신앙은 유화 시조전승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간추려진 상태로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어 있다. 금와 시조전승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금와 시조전승은 다음과 같다. ① 부여왕 解夫婁가 아들이 없자 山川에 제사하여 後嗣를 구하였다. 그가 탄 말이 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王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밀어 보니, 거기에 금색의 개구리 형상을 지닌 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이 준 것으로 기뻐하며, 그를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金蛙라 하였 다. 그가 장성하자 太子로 삼았다. 그뒤 왕은 재상 阿蘭弗의 勸誘에 따라 都邑을 迦 葉原으로 옮기고 국호를 東扶餘라 하였다. ② 舊都에는 天帝의 아들이라 하는 解慕漱가 와서 都邑을 정하였다( 삼국사기 권13, 高句麗 始祖 東明聖王 卽位年條) 금와는 解夫婁의 養子로 등장하고 있다. 해부루는 금와를 얻기 위해 山川에 제사 를 드리고 있음을 보면, 지신족 신앙형태의 시조전승을 가지고 있었다고 이해된다. 41) 三國志 魏書 高句麗傳에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 置於國東上 祭之 置 木隧於神坐 라 하였다. 동굴과 관계된 신앙은 지모신신앙과 관계가 깊으며, 부여신이 나무로 깍아 만든 목각상이었음을 생각할 때, 같이 나무로 깍아 만든 隧神像도 婦人像이었을 것으 로 판단된다.

- 71 - 또한 해부루의 기도에 응하여 금와는 鯤淵 가의 바위 밑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 어서 지신족신앙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해부루는 宰相인 阿蘭弗의 권유에 의해 迦 葉原으로 옮기고 있다. 이 점은 주몽이 새로운 천지를 찾아 개척하여 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과 비교하여 사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解夫婁나 金蛙집단은 解慕漱를 위해 미리 거주지를 옮기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며, 주몽 시조전승에서와 같 이 새로운 천지를 찾아 개척해 가는 면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금와 시조전승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지신족신앙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와 시조전승 외에도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는 많은 지신족신앙의 시조전승이 흡 수되었다. 예를 들면 주몽이 南下하면서 동행한 烏伊 摩離 陜父나, 이들과 같이 새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천지를 찾아가는 도중에 만나서 같이 가게 되는 再思 武骨 默居 등도 지신족신앙의 시조전승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특히 재사가 입었던 麻 衣는 종교적 성격을 띤 의복이며, 納衣도 검은색 옷으로 무당이 입었던 옷이었고, 水 藻衣 역시 오리발이나 水生조류를 달아놓은 시베리아 무당의 옷이었던 것으로 파악 되었다.42) 재사나 무골 묵거가 모두 무당, 곧 제사를 주관한 부족장으로 파악될 수 있는 존재라면, 그들은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될 당시에 지신족 시조전승을 가 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몽은 재사와 무골 묵거에게 각각 克氏와 仲室氏 少室氏라는 姓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賜姓은 고구려 연맹왕국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그 연맹 내에 흡수된 세력에 게 내리고 있음이 흥미롭다. 다음 기록을 참고하기로 하자. 왕이 군사를 내어 부여를 칠 때 沸流水에 이르러 물가를 바라보니, 어떤 여인이 솥을 들고 遊戲하는 것 같아서, 가보니 솥만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밥을 짓게 하였 더니, 불을 지피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데워졌다. 밥을 지어 온 군사를 배부르게 먹였 다. 갑자기 한 장부가 나타나 이르기를 이 솥은 본래 내 집 물건인데 내 누이가 잃 어버렸으나, 지금 왕이 발견하였으니 짊어다 드리겠습니 다 고 하므로 그에게 負鼎氏 라는 姓을 내렸다( 三國史記 권14, 大武神王 4년 12월條). 비류수 위에서 솥을 들고 遊戲하는 여인의 모습은 女司祭가 祭儀를 주관하는 모습 으로 이해된다.43) 저절로 데워진 솥으로 밥을 해서 온 군사를 배부르게 먹이는 모습 42) 李玉, 朱蒙硏究 ( 韓國史研究 7, 1972. 3) p. 75. 그리하여 이옥씨는 고구려에 3종류의 무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는데, 곧 흰옷을 입은 무당과 검은 옷을 입은 무당, 물의 세계 다시말해 死者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水下 무당 이 있었다고 했다. 43) 강영경, 韓國古代社會의 女性 三國時代 女性의 社會活動과 그 地位를 중심으로 ( 淑 大史論 11 12 합집, 1982) p. 171.

- 72 - 國史館論叢 第62輯 은 大地母神의 生育能力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女司祭와 지모신 신앙 으로 이어진 후대 負鼎氏의 시조전승이었음이 분명하다. 大武神王은 부여를 정벌하 러 가는 도중에 뒤에 부정씨로 불리우는 부족집단을 흡수하였으며, 그 부족장에게 賜姓하고 있다. 이 점은 주몽이 재사와 무골 묵거에게 성을 내리는 것과 흡사하다. 부정씨의 시조전승이 본래 지모신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재사와 무골 묵거 등도 부정씨의 시조전승과 비슷한 지신족신앙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에 주몽이 남하할 당시에 동행한 烏伊 摩離 陜父도 각각 지신족 계통의 시조전 승을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된 지신족신앙은 세 부 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유화 시조전승이다. 그것은 지모신적 신앙의 모습을 비교적 많이 간직하고 있다. 둘째는 금와 시조전승이다. 그것은 지모신적 신앙이 거 의 탈락된 모습을 하고 있다. 셋째는 재사나 무골 등 주몽이 새 국가를 건설해 가는 도중에 결연된 인물들의 시조전승이다. 이들은 지모신적 신앙이 완전히 배제된 모습 을 하고 있다.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된 지신족 신앙계통의 모든 시조전승은 처음에 각각 독 자의 풍부한 지모신 신앙을 간직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유화 시조전승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기 이전에, 말하자면 東明王篇 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양적으로 풍부하면서도 지모신의 생육능력을 강하게 보여주는 내용을 담은 시 조전승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던 것이 유화 시조전승은 주몽 시조전승과 함께 고구 려 개국신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지모신신앙을 나타내 주는 설화 가 많이 생략되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지신족신앙으로서 손색없는 관념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또한 금와 시조전승은 解慕漱와 얽히었을 뿐 아니라, 해모수 시조전승을 내세우는 부족이 도래하기 이전에 유화 시조전승을 가진 부족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 문에, 그나마 지신족신앙 체계를 다소 남길 수 있었다. 반면 재사나 무골 묵거를 위시하여 烏伊 摩離 陜父 등도 각각 지신족의 시조전승을 가졌을 것이지만,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는 그러한 성격을 전혀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고구려 개국신화가 영웅전설적 성격으로 형성되어진 것과 표리관계에 있다. 어쩌면 고구려 개국신화의 영웅적 성격은 고구려 국가가 연맹왕국 체제를 확고히 하 면서, 정복국가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위의 작은 성읍국가나 부족세력을 확실 하게 장악하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 흡수된 시조전승이 독자의 지 신족신앙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나타날 수 없었다. 바로 이 점은 신라 건국신화 속 에 흡수된 여러 시조전승이 본래의 신앙체계를 알려주는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동명왕편 에서는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유리 시조전승이 상당히 장황하게 서술 되어 있다. 이 점은 그것이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흡수되어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던 것이 삼국사기 의 高句麗本紀를 편찬할 때에 朱蒙 시조전승과 유리 시조

- 73 - 전승이 부자관계로 기술되면서, 年代記 史料로 각각 분리되어 기술되었다. 유리 시조 전승과 비슷한 양상으로 기술된 백제의 온조나 沸流 시조전승도 본래는 고구려 개국 신화 속에 흡수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될 수 있겠다. 琉璃나 溫祖 및 沸流의 시조전승이 독립된 신화체계를 이루게 되는 것은, 그들 집 단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거나 또는 그 내의 세력다툼에서는 패배했을지라 도,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국가를 건설해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면은 신 라 건국신화 속에서도 나타난다. 곧 金閼智신화나 昔脫解신화가 다시 독립되는 경우 가 그것이다. 다만 온조나 비류 및 유리 시조전승도 영웅전설적인 성격을 간직하고 있음이 흥미롭다. 이런 면에 대해서는 새롭게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Ⅳ. 맺 음 말 고구려 개국신화는 東明型神話에 속하는 것 중 가장 풍부한 내용을 간직하였다. 그것의 주된 내용은 三國史記) 속에 실려있지만, 東明王篇 에는 보다 더 자세 한 것이 실려 있다. 本稿에서는 고구려 개국신화의 모습을 비교적 소상하게 재구성 하고 고구려 초기 사회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끌어내고자 한다. 고구려 개국신화는 英雄傳承的 성격을 지니는데, 사실은 동명형신화는 모두 영웅 전승적 성격을 지녔다. 다만 고구려 개국신화는 天帝의 아들인 解慕漱와 河伯의 딸 인 柳花사이에서 태어난 朱蒙의 행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金蛙王의 왕자인 帶 素형제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새로운 천지를 찾아 떠나가게 된다. 동명형신화 중 부 여국의 개국신화로 이어질 수 있는 槀離國이나 索離國 시조인 동명 시조전승에는 天 神과 地神의 관념이 고구려 개국신화와 비교하여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동명 시조전승에서는 天神的 존재가 氣로 표현되었는가 하면, 河伯女는 王의 侍婢로 나타났다. 다같이 영웅전승적 성격을 지닌다고는 하지만, 고구려 개국신화에서는 武士團과 農業神的 성격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주몽이 南下하면서 같이 내려간 烏伊, 摩離, 陜父 등의 무리는 武士團的 성격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중도에서 동행하게 된 再思 武骨 默居는 주몽이 거느린 무사단에 의해 흡수된 부족집단을 의미할 수 있다. 보리 종자를 건네주는 柳花는 地母神으로 이해되며, 이러한 농업신은 철제농기구를 사용 하는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강조되었다.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는 對偶婚的 모습이 나타나 있다. 곧 유화는 해모수와 정을 통하고는 다시 金蛙와 혼인하였다. 대우혼은 초기 농경사회가 여성 중심으로 정착됨 으로써 생겨나는 母系制의 유풍을 알려준다. 주몽은 松讓王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부

- 74 - 國史館論叢 第62輯 여에 있을 때 禮氏 부인을 두고 있어서 가부장적인 혼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에 비해 신라의 개국신화는 朴赫居世와 閼英의 一夫一妻制가 정착된 분위기를 느끼 게 한다. 그러므로 고구려 개국신화는 모계적 遺習과 父系的 多妻婚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얽혀 있는 過渡期的 성격을 지녔다. 고구려 개국신화는 家父長的 질서를 성립시켜가는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형성됨으 로써 영웅전승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자연 그것의 성립은 고구려 초기사회의 지 배세력이 바뀌면서 정복국가 체제를 성립시켜 간 太祖王系의 등장과 깊은 연관이 있 다. 태조왕계는 慕本王을 시해하면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왕실은 解氏부 족에서 高氏부족의 지배로 바뀌게 되었고, 그것은 涓奴部를 대신하여 桂婁部가 왕족 으로 된 사실을 가리킨다. 太祖王代까지 고구려가 연맹왕국으로서의 팽창은 일단락되었다. 태조왕은 정복국 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沃沮를 정복하였으며 漢郡縣과 빈번하게 전쟁을 수행하였다. 또한 태조왕의 母系는 夫餘人이어서 고구려와 부여는 서로 제휴하기에 이르렀다. 고 구려 개국신화가 부여계의 동명형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영웅전승적 성격으로 갖추어 지는 이유가 이런 데에서 찾아질 수 있다. 태조왕 이후 고구려가 정복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이전 연맹왕국의 영역을 확실하게 장악해가는 분위기 속에서 고구려 개국 신화가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는 고구려 연맹왕국 속에 편입된 성읍국가의 시 조전승이 地神信仰의 모습으로 흡수되어 있다. 그러한 것으로 柳花 시조전승을 비롯 해서 金蛙 시조전승을 들 수 있고, 또한 烏伊, 摩離 등 고구려 왕실로부터 성을 하사 받은 여러 部族 집단도 본래는 지신족신앙을 가졌다. 고구려 개국신화가 영웅전승적 성격으로 성립되면서, 여러 부족의 지신신앙은 거의 대부분 신화적 요소를 전승시킬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고구려 개국신화의 근간을 이 루는 유화 시조전승은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전승시키고 있는데, 東明王篇 과 비 교하여 三國史記 에 수록된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체계화된 유화 시조전승은 지모 신앙적 내용을 탈락시키고 있다. 지모신앙으로서 풍부한 내용을 가졌던 여러 부족의 지모신앙은 초기 고구려 개국신화 속에 상당한 분량으로 전승되었을 법한데, 그것이 영웅전승으로 갖추어지는 과정에서 시조전승의 모습은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개국신화는 비록 영웅전승적 성격을 지녀서 그 속에 흡수된 여러 시조전승 의 모습을 탈락시켜 갔을 지라도, 그것과 연관된 많은 시조전승이 함께 전해져 있다. 琉璃나 溫祚 沸流 시조전승이 바로 그런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시조전승은 대체로 동 명형신화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들이다. 고구려 개국신화와 이들 시조전승과의 관 계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추 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