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적 성격을 중심으로 염상섭 소설 다시 읽기 (김학균 지음/한국학술정보/2009년 1월/262쪽/17,000원)
염상섭 소설 다시 읽기 (김학균 지음/한국학술정보/2009년 1월/262쪽/17,000원) 책 소개 횡보 염상섭의 통속소설 범주에 속하는 몇 편의 소설에서 추리소설적 성격을 끌어내어 정리하면서 소 설의 배경과 인물, 스토리와 플롯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이제까지 소설적 흥미를 동원해 교훈을 전 달하기 위한 장치로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던 염상섭 소설의 통속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염상섭의 예술소설론에 따라, 염상섭 소설의 통속성은 그것 자체가 작가의식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통속소설, 추리소설의 이면의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는 횡보 소설 다시 보기이다. 저자 김학균 1970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를 수료한 문학박사이다. 현재 고려대 BK21 한국어문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승옥 소설에 나타 난 화자의 성격 연구 염상섭 소설의 추리소설적 성격 연구 사랑과 죄 에 나타난 연애의 성립 과정 등 염상섭 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머리말 Ⅰ. 서론 1. 연구사 검토와 문제제기 2. 연구의 시각 Ⅱ. 신여성의 비밀을 탐구하는 남성의 시선 1. 역진적 구성과 정보의 지연 2. 비밀의 은폐와 혼사의 실현: 사랑과 罪 Ⅲ. 중산층 의 욕망과 몰락에 나타난 범죄의 일상성 1. 범죄의 불가피성과 대안의 모색 2. 중산층 몰락의 반복과 세대 모티프 Ⅳ. 전쟁의 예측과 공포에 나타난 서스펜스의 양상 1. 가족 갈등에 나타난 전쟁의 위협 2. 무력한 남성에 의한 혼사의 위기 Ⅴ. 결론 참고문헌 - 2 -
염상섭 소설 다시 읽기 서론 연구의 시각 염상섭 소설에 미친 추리소설의 영향 한국에서는 서양의 추리소설에 해당하는 송사소설의 전통이 있었고 중국에서는 포청천으로 대표되는 공안소설의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전통과 서양 소설의 영향 아래서 한국의 작가들은 추리소설 에 큰 관심을 보였고, 개화기에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범죄에 대한 담론들이 일상적으로 유통되면서 신 소설에는 범죄 모티프가 폭넓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해조는 소설의 대중화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이 면서, 정탐소설 이라는 제목으로 쌍옥적 (1911)을 발표한다. 그의 소설은 한국의 추리소설이 이성 중 심주의와 계몽주의의 자장에서 성장 발전한 중요한 근대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1920년대 초부터 추리소설은 가장 대중적인 소설 장르의 하나였는데, 초기에는 무쇠탈 등의 번안소 설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이 시기 학생들 사이에는 연애소설과 추리소설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이 런 대중들의 요구에 신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1930년대에 이르면 번역물이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해조, 채만식, 김내성을 중심으로 창작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채만식은 서동산 이란 이름으로 염마 (1934)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김내성의 추리소설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형식적 요소는 갖추고 있지만, 서사가 전개되는 과 정에서 추리소설의 본질적 요건인 추리의 과정이 약화됨으로써 독자의 흥미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양상 을 보이고 있다. 즉 탐정의 소개, 범죄의 단서들, 조사 는 있으나 해결의 공표 와 해결에 대한 설명 이 없이 곧바로 대단원 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서양의 고전적 추리소설의 기준에 맞는 작품은 1930년대 중반 이후에 김내성에 의 해서 창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구분하면서 전자를 추켜세우고 후자를 폄하하는 태도가 독자들을 문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탐정과 범인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자와 작가의 지적 게임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요구 에 순응하는 여타의 대중문학과는 구별되는 중간 문학 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 추리소설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염상섭의 통속소설론 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염상섭은 본격소설의 반대지점에 통속소설을 놓지 않고,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의 중간지점에 위치시킴 으로써 통속소설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는 탐정소설 이 대중들의 읽을거리로 등장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취재와 묘사가 어려운 대중소설의 공백을 메우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반가운 일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런 진술로 미루어 보면, 염상섭 자신은 추리소설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본 것인데, 실제 그의 소설에서는 탐정 모티프 가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추리소설의 기법이 다양하게 실 험되고 있다. 염상섭의 통속소설 은 형식과 내용이 불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소설에 가깝다고 하겠다. 혼사 장 애나 탐정 모티프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작가의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 에서 염상섭의 소설은 한국적 대중소설인 예술소설의 시조이다. 그런 점에서 염상섭 소설의 통속성은 통속성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의 모순과 그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고, 이와 동시에 일제의 엄 - 3 -
격한 검열제도를 견뎌냈다고 할 수 있다. 염상섭이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그가 남방의 처녀 라는 외국의 탐정소설을 번 역한 것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은 작가미상의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추리소설의 기법에 따라 전 개되고 있어서 염상섭의 소설 창작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횡보의 중기소설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중산층 가정의 가족 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으면서 살인 사건 이 일어나고,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나 의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자들은 도덕적으 로 우월한 것으로 그려지면서 이들이 중산층 가족들의 속물적인 욕망을 추리하고, 폭로하는 역할을 맡 으면서 탐정 모티프 가 나타나고 있다. 사랑과 죄 광분 삼대 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사회 주의자와 그를 후원하는 동정자의 등장은 이들을 추적하는 형사를 동반하면서, 서사적 긴장을 유발하게 되는데, 사랑과 죄 광분 이심 삼대 무화과 효풍 이 여기에 속한다.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주인공이나 서술자가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소설들은 고전적 추리 소설의 기법을 보이고 있어서, 횡보의 초기 소설 중에 신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우도 연구의 대상 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염상섭 소설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혼사 장애 모티프나 연애의 삼각 관계 역시 제한된 정보 속에서 상대의 내면을 추리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추 리소설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염상섭의 중기 소설에서 죽기 전까지 발표한 대부 분의 장편소설이 해당된다. 신여성의 비밀을 탐구하는 남성의 시선 역진적 구성과 정보의 지연 남편의 편지와 신여성의 자살 : 除 夜 除 夜 는 초기 삼부작 가운데서 가장 긴 분량일 분 아니라 화자와 시점에 있어서도 문제적인 작품이 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을 통해 자유연애를 신봉하게 되고, 정혼한 남자를 두고도 자유연애를 실천하 면서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 신여성이 남편에게 쓴 편지이다. 이 작품은 여성을 화자 로 내세워서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에서 내포작가와 화자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고, 이 간극으로 인해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작가는 신여성을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 움으로써 신여성의 입장에서 당대의 현실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독자들이 신여성을 다르 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 최후의 순간은 가장 중대한 사명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절대적 종결을 고합니다. 그러면 그 뒤 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만 공( 空 )이올시다. 공으로부터 공에 흘러가는 거기에 영원한 안주 가 있고 절대적 해탈이 있고 진순( 陳 淳 )이 있고 신성이 있고 지선( 至 善 )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 除 夜 ) 최후의 순간, 절대적 종결, 절대적 해탈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편지의 서두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단어들로 유추해보면, 주인공은 죽음을 계획한 상태에서 이 편 지를 쓰고 있다. 주인공의 죽음의 예고는 미스터리소설의 플롯 전개상 사건의 발생에 해당한다. 자살의 선택은 사건의 발생에 해당하고, 편지를 쓰고 있는 주인공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사건의 서술자에 해 - 4 -
당한다. 독자들은 서술자가 제시하는 증거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신여성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신여성은 이미 과거를 가진 여성이므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자 피해자이고, 내포작 가는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설명하는 서술자이며, 독자들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거나 주인공 의 경험을 공유하는 관찰자이고, 여자의 상대역인 남자 주인공은 추리를 강요받는 탐정의 역할을 맡는 다. 정인의 편지 내용을 보면,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있고, 그것은 정인이 죽음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정인 부부는 매파를 통해서 정략결혼을 했으며, 남편은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재혼남이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사랑의 결핍 으로 정조를 깨뜨리고 귀족의 자제 에게로 감으로써 결혼이 파탄났으며, 남편은 두 번째 부인인 정인에게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두 번째 결혼도 파탄이 났다는 것이 정인의 평가이다. 남편은 겉으로는 자유연애에 동의하고 있지만, 내적으로 는 인습적 결혼제도 와 부친의 가부장권과 폭력적 위압 을 취하는 위선자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첩의 자식이자 사생아였던, 25세의 노처녀인 나 는 그런 가부장적 구습에 취해 있는 남편의 재취자리 에 적합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전에 이미 처녀가 아니었고, 결혼한 뒤에도 최씨 가문의 부정한 피를 이어받고 약 간의 독서로부터 얻은, 소화도 잘 되지 않은 비지 같은 지식, 즉 자유연애의 논리를 따라 여러 남자들 과 관계를 맺고 마침내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임신을 한 지 4개월이 된 상태이다. 그녀의 정조관에 의하면 A와의 정교가 계속할 때에는, A에 대하야 정조 있는 정부가 될 것이요, B와 부부관계가 지속될 동안은, 또한 B에 대하야 정숙한 처만 되면 고만 이어서 그녀는 결코 간통을 저지른 범죄자가 아니라 사상의 실천가가 된다. 정인은 동경 유학생활 중에 청년들의 여왕이 되어 향락을 즐기고, 최종적으로 기혼남인 P 씨와 E 씨 사이를 오가다가, E 씨와 독일유학을 예정하였으나, E 씨 집안의 반대와 그녀 부친의 결혼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혼전 임신이 들통 나서 남편에 의해 친정으로 쫓겨난다. 소설의 초 반부에는 아내를 사랑치 않은 남편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정인의 과거와 관련된 정보가 제 공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정인이 범죄자가 되고 남편은 희생자가 된다. 아내의 임신을 알게 된 남편은, 한 달 동안의 고민 끝에 아내를 일방적으로 친정에 돌려보낸다. 남편은 아내가 현재의 상황에 이른 자초지종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이것이 정인이 남편에게 긴 장문의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다. 남편은 신앙인의 자세로서 아내를 용서하고, 이를 통해 두 생명 을 구하고자 한다며 편지를 보내왔지 만 정인은 남편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웃는다. 신이 인간을 용서하는 것처럼 남성은 신의 위치에, 여성 은 용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불평등한 관계임을 고발하면서, 입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고, 아 내의 과거를 용서한다고 하지만 내면으로는 아내를 자신보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남편의 권위적인 시선 을 짚어낸 것이다. 이것이 정인의 자살 이유에 대한 최종적인 설명, 즉 사건 해결의 공표가 될 것이다. 초기 삼부작과 평 론에서 제시된 개성론을 전제할 때, 정인의 죽음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도덕적 잣대로 평가받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분석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여성 해방에 있어 염상섭보다 급진적인 - 5 -
지식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염상섭이 신여성들이 표방한 자유연애의 의미를 알고 있었음을 전제하 면, 정인의 자살은 역설적이게도, 근대적 개인을 대망하는 작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중산층 의 욕망과 몰락에 나타난 범죄의 일상성 범죄의 불가피성과 대안의 모색 모녀의 삼각관계와 아버지의 부재 : 狂 奔 광분 의 전반부는 연애의 삼각관계가 전개되면서 살인의 전조가 나타나다가 후반부에는 딸이 실종되 는 사건이 발생한다. 실종된 딸이 그녀의 방안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 사건은 미스터리소설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횡보의 중기 장편소설은 가족 갈등을 다루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 게 된다. 광분 의 주인공들은 동경에서 돌아와 조선의 부호인 민병천의 집으로 모여든다. 병천은 미 국 유학생이고 그의 둘째 부인인 숙정은 교회학교 출신이어서 서양식 생활을 하며, 문화주택식의 양옥 반쪽을 이번에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맏딸 경옥에게 맡기려고 한다. 광분 에서 경옥의 졸업과 적성좌 (조선의 연극단체)의 두목인 주정방의 귀국을 축하하는 잔치가 서 양식 건물인 양관( 洋 館 )에서 벌어지는데, 이들은 여기에서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미리 보고, 시간에 맞 춰서 라디오를 켜고, 서양에서 발명된 토키(발성활동사진)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횡보의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곧 미래 문명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내포한다. 이것은 미래를 전망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주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실보다 나은 미래상을 그리고 있을 때, 현실은 환멸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그런 점에서 광분 의 인물들의 부정성은 이를 극 복하고 지양한 뒤의 세계를 상정한다. 횡보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으로 가정을 택한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돈을 벌기 위한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가족이라는 1차적인 인간관 계까지 파괴한다. 광분 의 민병천은 연극단을 후원하는 실업가이고, 삼대 의 조의관은 수만금을 들 여 족보를 만드는 거부이며, 무화과 의 이원영 역시 신문사를 운영할 만한 재력가이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형제와 자매가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한다. 숙정은 유부녀이면서도 적성좌의 두목인 주정방과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주정방 역시 유부남이 면서도 민병천의 외동딸 경옥과 몰래 연애 중이다. 그는 연극단 적성좌 의 운영을 위해 숙정의 애정공 세를 뿌리치지 못한다. 주정방-노숙정-민경옥의 삼각관계는 전반부의 주요 서사를 형성하면서 긴장을 유발한다. 숙정은 정방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옥을 처조카와 결혼시키려고 서두르고, 정방은 숙정 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사촌동생을 경옥에게 소개시켜주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숙정은 변원 량을 통해서 경옥이 주정방과 깊은 관계임을 알게 되고, 주정방의 혼담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죄소설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누구나 살인자가 될 가능성을 지니는데, 횡보의 소설에 서는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변원량이 대표적인 경우로, 그는 숙정 친정집 청지 기의 아들로 친정집의 돈을 빌려다가 흥청만청 써버린 전력을 가진 자이다. 원량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와 같은 눈과 피 묻은 사자의 입 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면서 욕망의 화신이나 범죄자로 그려진다. - 6 -
숙정은 정방의 거짓 혼담을 알게 되는 순간, 정방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녀는 정방 에 대한 분노를 의붓딸이자 경쟁자인 경옥에게 쏟으려고 한다. 숙정은 정방에 대한 애정을 철회하고, 원량과 통정하기에 이르면서 삼각관계는 민병천-노숙정-변원량으로 이동한다. 숙정의 간통은 몸종인 을순이에 의해 적발되고, 경옥에 의해 의심되면서 후반부의 서사를 결정짓게 된다. 원량과 숙정의 간통 이 을순에 의해 발견되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낳고 있다. 하나는 원량과 숙정을 범죄자로 규정함으로 써 윤리적인 우월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후반의 살인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다. 을순은 신분적 한 계로 인해 이들을 고발하지 못하고 이 사건은 복선으로 설정된다. 진태는 을순과 같이 민병천 가족들의 속물적인 삶을 고발하는 인물이다. 그는 경성제대 의대생으로 병 천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기숙하는 중이고, 경옥과 을순의 호감을 받는다. 그는 주정방과의 연애로 늦 게 귀가하는 경옥을 도와줌으로써 숙정에게 욕설을 듣고 병천의 집을 떠나게 된다. 욕망에 충실한 숙정 과 원량, 그리고 정방과의 자유연애를 실천하고 있는 경옥의 삶은 진태의 삶과 대비된다. 계모와 원량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 챈 경옥은 동경으로 몸을 피해, 원량을 멀리하라는 편지를 아버지 에게 보낸다. 이 편지로 인해 숙정과 원량은 경옥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되고, 뒤늦게 이 편지를 읽게 된 민병천은 숙정과 원량에 경계심을 느끼면서 또 다른 첩을 얻는다. 숙정은 이 같은 남편의 처사에 분노 하면서 온천으로 휴양을 떠나고, 여기에서 원량과 그의 하수인인 조선은행 자동차 운전수 김진수를 만 나면서 어떤 음모를 예감케 한다. 결국 경옥이가 실종되고, 병천의 요청으로 주정방과 진태가 그녀의 행방을 추적한다. 미스터리소설의 규칙에 따라, 실종된 경옥은 시체로 발견되고, 이때부터 경찰이 개입한다. 경찰은 주정방과 진태, 숙정 과 원량 등을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를 진행하다가 원량의 거짓말과 위조된 편지로 인해 진태를 범인으 로 지목한다. 그러나 진태는 범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사건은 더욱 복잡해진다. 형사들은 을순과 귀순을 취조하던 중 숙정과 원량의 불륜을 알게 되고, 시체를 방안에 들이기 위해 사용된 자물쇠 뭉치 가 발견되면서 숙정이 살인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한다. 이것이 횡보의 소설에서 설정한 의외의 결말이다. 경찰은 원량의 첩의 집에서 경옥이가 가지고 있던 가방과 옷가지를 발견하고, 이 증거품을 통해서 원량 과 김진수 일당이 살인범으로 밝혀진다. 원량은 숙정과 모의하여 김진수와 또 다른 하수인으로 하여금 동경에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친 중촌을 부산에서 전송하고 있던 경옥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원량 의 첩의 집에서 살해한 뒤에 병천의 경옥이 방에 자살한 것처럼 꾸며 시체를 가져다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해야 하는 것은 경옥이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중재할 만한 인물이 부재했다 는 점이다. 숙정과 경옥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었던 민병천은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가족 간의 갈 등을 방치한 부재하는 아버지 였던 것이다. 그는 살인이 일어난 뒤에도 사건 수사를 방관하면서 범인 을 검거하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돈으로 모든 가치들을 환원시키고, 화폐 획득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살인은 빈번 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죄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고, 근대사회의 구성원들은 잠재적인 범죄자 가 된다. 가족 살해 사건은 이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가족 관계에서도 경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는 더욱더 물신적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을 수 없다. 광분 은 - 7 -
범죄 사건을 통해 독자들에게 실제 현실을 환기시킴으로써 공포를 유발한다. 가족 간에도 서로 경쟁하 고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소설적 진실이 현대사회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결론 미스터리소설은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여 범죄자가 반드시 처벌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독자들에게 추리의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현실을 잠시 잊도록 유도하지만, 염상섭의 소설은 이런 구도가 역전되어 있다. 신여성들이 자유연애로 인해 고통을 받다가 죽거나 자살을 하는 비극에 이르는 것은 사회가 이들 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 중심적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1920년대 신여성들은 자유연애를 통해 자아의 각성 과 개성의 발견 에 이르려고 시도하였으므로, 이 들의 비밀은 곧 자유연애를 통한 자율적 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노력은 권위적인 남성들 의 시선에 억눌려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거나 비밀로서 감춰져야 하는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범죄소설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줌으로써 독자들이 범인을 추리하도록 유도 하기 때문에 도서형( 倒 敍 型 ) 추리소설 이라고도 한다. 범죄소설에서는 미스터리소설처럼 누가 범인이 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와 같은 관심보다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와 배경에 초점을 맞추게 되 고, 결국은 독자들에게 소설을 통해 환멸적 현실을 환기하도록 이끌게 된다. 또한 범죄소설은 범죄자의 처벌보다는 범죄를 발생시키는 부르주아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회 구성원들을 통합시키기보다는 분리시키는 기능을 한다. 염상섭은 추리소설의 서사구조를 통해 신여성의 자유연애와 중산층의 몰락 과정, 그리고 해방 후의 긴 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개인과 계층 그리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염상섭의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자유연애를 하는 신여성들은 근대적인 자율적 개인상을 상정하고 있고, 중산층의 몰락은 조선의 전근대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이를 대체할 신세대를 대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방 후 가족들의 분열 과 갈등을 묘사한 작품들은 민족의 분열은 곧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 로 염상섭의 추리소설 기법은 미래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