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하였습니다. 올해는 6 25전쟁 55주년과 광복 60년, 을사늑 약 100주년 등 우리나라로서는 역사적으로 매 우 의미 있는 해입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지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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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한민국의 국시 국책을 위반하는 기사 2)정부를 모략하는 기사 3)공산당과 이북 괴뢰 정권을 인정 내지 비호하는 기사 4)허위의 사실 을 날조 선동하는 기사 5)우방과의 국교를 저해 하고 국위를 손상하는 기사 6)자극적인 논조나 보도로서 민심을 격앙 소란케 하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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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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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제1장 마을유래 605 촌, 천방, 큰동네, 건너각단과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마을명을 북송리(北松里)라 하 였다. 2006년에 천연기념물 468호로 지정되었다. 큰마을 마을에 있던 이득강 군수와 지홍관 군수의 선정비는 1990년대 중반 영일민속박물 관으로 옮겼다. 건

농어촌여름휴가페스티벌(1-112)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세지6문제(306~316)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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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K, L 4. 주식회사 동진여객 대표이사 M 피고보조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N 법무법인 O 제 1 심 판 결 부산지방법원 선고 2014구합20224 판결 변 론 종 결 판 결 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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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편 시사토크 출연 `편향성 심각' 친여 64%, 친야 15% 채널A <뉴스스테이션 친여> 83% 본격 선거기간이 시작된 지난 1월 14일(선거 90일전)부터 2 월 13일(선거 60일전)까지 모니터 대상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 치 이슈를 다룬 출연자들의 구성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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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호랑이 턱걸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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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경찰서, 군 시설이 이스라엘 공습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 화됐다. 몇 층짜리인지도 모를 만큼 완전히 파괴된 민간인 거주 주택과 농 장의 비닐하우스도 몰골만 드러내 폭격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냈 다. 주변에는 바리케이드나 폴리스 라인도 없었고,


무공수훈신문(35호)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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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무공수훈신문(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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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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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 소식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문태인의 자 이 좋은 환경에서 더욱 건강하고 씩씩하게 긍심으로 겸손하고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학업에 전념하여 명문고의 전통을 이어 갈 정권 재 창출을 위해 전진하겠다 고 전했 것을 부탁한다 고 축사하고 아울러 이경

2 (제179회-예결특위 제2차) (10시00분 개의) 위원장 박형덕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동두천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2차 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년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제1회 추가경정 예산안(계속) 위원장 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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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활 잔흔들 3



진흙 속에서도 티 한 점 없이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은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 6 다시 읽는 산방한담 04 불란서 여배우 처음 마음으로 09 진정한 법문 숨어서 피는 꽃 14 너무 늦은 후회 시심청심 17 나눔 공감대화로

버블 버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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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인물 4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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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②자(문제)_해설(082~120)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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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국사능력검정시험대비(/, 목) 쪽 문. 다음 선언문의 필자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점][ 회]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힌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 본에서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2010년 1 월에는 아이티 대지진(규모 7.0)이 일어난 바 있고 이어서 같은 해 2월에는 칠레 대지진(규 모 8.8)이 일어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 규모 지진이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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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채널경남 종합 4.1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강석진 당선자 미래와 희망을 위해 함께 나아갑시다 거 함 산 합 군민의 마음을 모으는 소통과 화합, 상생의 정치를 이룩하겠습니다!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새누리당 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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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뜨개질 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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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Ⅱ.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 먼저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을 살펴보면, 표1은 2008년에서 2012년까지 최근 5년간 전국 어린이 교 통사고 발생현황을 나타내고 있다. 1) 표1 13세미만 전국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현황 발생년도 발생건수 사망자 부상자 2008

구절초테마공원 & 산호수마을 단아하고 소담한 구절초의 재발견 이 꽃, 개망초보다는 크고 쑥부쟁이와는 닮은꼴이다. 수수하기는 하나, 볼수록 매력 있다. 시골의 길섶에서 흔히 눈에 띄는 구절초 이야기다. 정읍 구절초테마공원에 만개한 구절초는 어떤 가을꽃보다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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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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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동아 `대통령 선거 개입' 두둔 중앙일보의 < 새누리 150석은 건지겠나 청와대 참모들 한숨뿐>(3/14, 6면) 보도 역시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주도권을 쥐려면 4 13 총선에서 새누리 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필수적 이라는 분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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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운동한 친구의 체력훈련은 중반부터 효과가 눈에 띄었다. 2~3일을 계속 걷고 대피소에서 자며 열악한 로 지 생활에 대비했고, 눈 많은 설악산을 찾아 심설산행도 체험하는 등 팀워크를 다져나갔다. 항공권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직항 대신 한 번 갈 아타는 편으로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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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발전연구원 제주발전연구원 정책이슈브리프 2015년 11월 2일 Vol. 226 발행처 : 제주발전연구원 발행인 : 강기춘 주 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연로 253 TEL FAX 제주발전연구원은 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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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호01~57_최종

제13호 2012년 11월 21일 지난 11월 7일 진주 종합경기장에서 막을 올린 2012 진주국제농업박람회 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도 대박을 터트리면서 지역경제에 효자노릇을 톡톡 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은 생명산업입니다 란 슬로건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국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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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누리 8월호 내지최종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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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12월 건설교통부로부터 지구지정을 받아 2006년에 착공, 2011년 준공하였으며 이후 1단계의 개 발 성과에 따라 2, 3단계 지역도 단계적으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남부권 개발은 광역중심기능을 갖춘 새로운 자원의 미래형 혁신도시 건설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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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람이 되어

발간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하였습니다. 올해는 6 25전쟁 55주년과 광복 60년, 을사늑 약 100주년 등 우리나라로서는 역사적으로 매 우 의미 있는 해입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지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의 삶을 조명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해 가는 역동성과 추진력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보훈처에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국가유공자 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 어주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보훈문예물 공모전을 마련해 왔습니다. 올해에도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 학생부터 고령의 참전용사에 이르 기까지 많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셨습니다. 해를 거듭할수 록 늘어나는 응모작품의 수와 높은 수준에 맞추어 시상인원을 획기적으 로 늘렸으나 워낙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탈락하신 분 또한 많았던 점 안타 깝게 생각합니다. 응모해 주신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특히 우리의 내일을 짊어질 청소년 들이 조국의 참다운 의미와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진솔하고 감 동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국가유공자를 존경하 고 예우하는 마음가짐을 참신하고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을 통해 자라나 는 세대가 건전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수기에서는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과,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 다 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응모하신 분들의 작품이 길이 보존되고 국민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라 는 마음에서 수상작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만, 지면이 한정되 어 가작상을 타신 분들의 작품과 나머지 응모작품을 모두 싣지 못한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 책에 실린 작품을 통해 국가를 수호 하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라사랑 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훌륭한 작품을 엄선해 주신 이영호 한국어린 이문화진흥재단 이사장님과,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님, 김송배 사무 처장님, 송세희 사무차장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보내주신 응모자 여러분께도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5. 7. 국가보훈처장 박 유 철

당신의 나라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갑니다 나라사랑 큰 나무 나라사랑 큰 나무 설명 나라사랑 큰 나무 의상징내용 - 나무의 형상은 대한민국 을 - 태극무늬는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을 - 열매는 오늘의 풍요로움과 내일의 번영 을 - 파랑새와 새싹은 자유와 내일의 희망 을 상징하고 있음. 나라사랑 큰 나무 가 함축하는 의미 -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 과 공헌의 바탕 위에 이룩되었으며 - 이러한 희생 공헌이 정신적 귀감으로 가치있게 받아들여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으로 승화되 어야 함을 의미함.

차례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반쪽이 대한이 조윤주 _ 충주 대림초등학교 17 하모니카 류예빈 _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19 통일의 열차 강슬기 _ 원주 단계초등학교 21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김혜진 _ 전북 이리서초등학교 23 철조망 김은지 _ 광주 태봉초등학교 26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배 한 _ 서귀포 동홍초등학교 28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장채린 _ 마산 신월초등학교 30 국립묘지에서 전대원 _ 목포 북교초등학교 32 나라 지킴이? 우리! 조예은 _ 군산 문화초등학교 34

시 중 고등부 사진 한 장 이성주 _ 여주 진남여자중학교 36 별빛 김미란 _ 서울 창동고등학교 38 하늘 손효철 _ 경남 진주고등학교 40 호국의 종 고유정 _ 마산 호계중학교 42 철조망을 두고 김재임 _ 전남 광양여자중학교 44 푸른 바람이 되어 최송아 _ 과천외국어고등학교 46 붉은 봄 이송희 _ 천안 복자여고 48 승전보 이채석 _ 울산 제일고등학교 50 비가 오면 김예슬 _ 부산디자인고등학교 52

시 일반부 아버지의 군번외우기 조명숙 _ 울산 북구 중산동 54 외할아버지의 목발 정해미 _ 부산 북구 구포3동 56 푸른 잎 배재형 _ 서울 서초구 방배동 58 우리할매 이주연 _ 서울 종로구 명륜동 60 지리산 위령제( )-철쭉꽃 장세진 _ 부산 연제구 연산 4동 62 한탄강의 실안개 이재석 _ 경기 동두천시 생연1동 64

수필 초등부 우리 할아버지 이서연 _ 대전 내동초등학교 69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허장산 _ 마산 월포초등학교 71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소슬미 _ 임실 갈담초등학교 73 할아버지의 눈물 김선영 _ 제주 대흘초등학교 76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권민정 _ 서울 석촌초등학교 79 할머니의 보약 신화진 _ 울산 옥동초등학교 82 끄지 못하는 불 장윤영 _ 평창 면온초등학교 84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유완승 _ 보령 대관초등학교 87 나의 사랑스러운 조국 한국 박지은 _ 군산 서해초등학교 93

수필 중 고등부 민이 이야기 김선아 _ 대전외국어고등학교 95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이승우 _ 인하사대부고등학교 100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이현제 _ 문산 제일고등학교 107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태길 _ 포항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112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이화정 _ 마산 제일여자고등학교 117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 박선희 _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126 바람이 붑니다 양지숙 _ 속초상업고등학교 132 할아버지의 다리 정소진 _ 영암 삼호서중 139 연필을 든 용병과 총을 멘 용병 장유진 _ 울산 학성여자고등학교 142

수필 일반부 호국보훈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홍창재 _ 충남 아산시 온천동 146 태극기 함정금 _ 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 152 2005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 이수진 _ 서울 도봉구 창5동 157 전쟁이 남긴 슬픈 기억 두 토막 박정순 _ 인천 동구 송현동 162 은혜를 기억하는 도리 송채임 _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7 바람꽃 이미숙 _ 전남 목포시 용당1동 172

6 25 남침전쟁 한 병사의 수기 김상현 _ 경북 영주시 휴천2동 178 사선을 넘고 넘어서 김천일 _ 대구 수성구 황금동 205 읽어버린 고향 찾을 길 없나 이정모 _ 서울 노원구 상계7동 230 아주 특별한 태극기 사랑 이성균 _ 서울 중랑구 상봉2동 262 베트남 전쟁을 통한 감회 안흥종 _ 인천 남구 도화3동 309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여 영원하리 정청 _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369

추모헌시 유월의 장미 류진아 _ 부산 남구 대연5동 408 평화의 노래 오유리 _ 대전 중구 선화동 410 우리민족모두가하나되는그날까지 고선민 _ 경기부천시 여월여자중학교 412 한 목숨 바쳐 살려낸 나라 이미진 _ 경북 포항시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416 유월의 노래 임정윤 _ 경기 과천시 별양동 418 초혼제 임종훈 _ 대구 달서구 도원동 421

시 반쪽이 대한이 하모니카 통일의 열차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철조망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국립묘지에서 나라 지킴이? 우리! 사진한장 별빛 하늘 호국의 종 철조망을 두고 푸른 바람이 되어 붉은 봄 승전보 비가 오면 아버지의 군번외우기 외할아버지의 목발 푸른 잎 우리 할매 지리산 위령제( )-철쭉꽃 한탄강의 실안개

시 초등부 반쪽이 대한이 조윤주_최우수상 / 충주 대림초등학교 6학년 내 얼굴의 한쪽 눈이 내것이 아니란다. 내 얼굴의 한쪽 귀도 내것이 아니란다. 두 눈으로 보면 더선명히볼수있고 두 귀로 들으면 더 또렷이 듣게 될텐데 누가 나를 반쪽이로 만들었나! 내몸의한쪽팔이 내것이 아니란다. 내 몸의 한쪽 다리도 내것이 아니란다. 17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두 팔로 움직이면 더쉽게할수있고 두 다리로 뛰어가면 더 빨리 갈수 있을텐데 누가 나를 반쪽이로 만들었나! 이제는 나의 두눈 찾고 싶어라. 이제는 나의 두귀 찾고 싶어라. 이제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어 50년 동안 겪은 반쪽생활 마치고 싶어라. 반만년 동안 지켜온 단일민족의 문화를 꽃 피우고 싶어라. 온전한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혼신을 다해 싸운 영혼들의 넋을 위해 더 멀리 더 높이 뛰기 위한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조국의 무한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이제는 한몸이 되어 하나의 이름 대한 이로 살고 싶어라. 1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하모니카 류예빈_우수상 /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6학년 증조할머니 머리맡에는 하모니카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살아 계셨으면 나를 귀여워 해주실 작은 할아버지의 하모니카입니다. 작은 할아버지는 오래 전 월남전쟁에 참전용사로 파병되어 자유와 평화의 적과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전사하셨습니다. 이기고 돌아와 증조할아버지께 기쁨을 안겨 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한줌의 흙으로 돌아왔을 때 19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온 동네 사람들도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하였답니다. 작은 할아버지가 소풀을 베다 뒷동산에서 아리랑을 불던 은빛 하모니카 증조할머니 가슴에 소중한 유품으로 간직된 자랑입니다. 해마다 현충일에 허리굽은 증조할머니 모시고 국립묘지에 묵념을 올린 후 옥수수 나무 열매에 하모니카가 달려있네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나에게 증조할머니가 속삭입니다. 꽃중에서 제일 값진 꽃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 흘린 자리에 활짝 피어나는 호국영령들의 넋이라고... 2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통일의 열차 강슬기_우수상 / 원주 단계초등학교 6학년 서울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서울로 우리의 소원을 싣고 통일의 열차는 달려간다. 마음속 깊은 구석 녹슨 지뢰 모두 파내고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봄눈녹인햇살로 통일의 꽃 피우려 21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질끈 묵었던 허리끈을 풀고 두 손 맞잡고 우리는 하나라고 금강산 숲속 새들 노래하는 그날까지 통일의 열차는 달려간다. 2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김혜진_우수상 / 전북 이리서초등학교 6학년 이산가족의 아픔과 슬픔으로 이루어진 휴전선 오늘도 아픔과 슬픔으로 다시 한번 얼룩진다. 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휴전선은 오늘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럴 때,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가? 23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그런 지우개만 있다면 휴전선은 물론 이산가족의 슬픔을 같이 지워 줄텐데 전쟁의 공포와 원수가 없어지는 대신 평화와 사랑과 친구가 생길 텐데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말이야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고 아껴주고 이해해주면 어느 날, 지우개가 나타나서 휴전선을 말끔히 지워 줄거야 말끔히 말끔히 2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휴전선 지워주는 지우개야! 얼른 와 우리나라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렴 25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철조망 김은지_장려상 / 광주 태봉초등학교 3학년 철조망 건너 꽃동산이 넘어가요. 총은 막지만 꽃은 막지 못해요. 철조망 위로 뭉게구름이 지나가요. 칼은 막지만 구름은 막지 못해요. 철조망이 말해요. 2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총을 이기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칼을 이기는 것은 부드러움이라고 27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배 한_장려상 / 제주 동홍초등학교 4학년 운동장의 고무줄 팔딱팔닥 잘도넘네.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마음껏 넘었으면 북한을 왔다갔다 마음 가는데로 언제든 갈 수 있을텐데 비둘기처럼 훨훨 날아서 휴전선도 마음껏 넘어봤으면 2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하루빨리 통일되어 우리들도 휴전선을 팔짝팔짝 뛰어봤으면 29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장채린_장려상 / 마산 신월초등학교 5학년 만약에 만약에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우리는 한반도 민족에게 제일 먼저 필요할거야 붉은 물결 남으로 정답게 밀려오고 파란 벌판 북으로 멀리 멀리 달려가고 한데 한데 3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어울려 보듬고 춤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만약에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건곤감리 태극물결 전 세계에 넘실댈거야 31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국립묘지에서 전대원_장려상 / 목포 북교초등학교 3학년 지금은 땅 속에 누워 우리 조국 생각하는 그 마음이 다시 떠오른다. 오직 나라 위한 마음 하나로 그많은아픔이겨내며 나라 사랑 아픔 이겨 내며 나라 사랑 떠올리던 그 얼굴들이 지금도 시들지 않는 한송이 꽃 되어 묘지 앞에 멈춰 있는걸 만나게 된다. 3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찬바람 옷깃 속 파고 들어도 언제나 변함없는 그 마음으로 우리 조국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라 사랑의 큰 뜻 알게 해 준다. 33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나라 지킴이? 우리! 조예은_장려상 / 군산 문화초등학교 6학년 언니, 나라는 누가 지켜? 물어보는 내 동생 당연히 군인이지 문득 애국자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나라에게 너무 무관심하단 생각이 든다. 나라 따위는 군인에게 내 팽겨둔 채 소중한 우리나라를 잊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건 우리인데 평소에 조금만 더 생각해 주고 3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초등부 평소에 조금만 더 아끼고 사랑하며 애국심을 길러야 하는 우리인데 지나가는 동생을 붙잡고, 말했다. 나라는 군인이 아닌 우리가 지키는 거야. 35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사진 한 장 이성주_최우수상 / 여수 진남여자중학교 3학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물처럼 간직 해온 할아버지 가끔씩 누렇게 뜬 세월을 젖히고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금방이라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올듯한 얼굴들이 50년이 넘게 사진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왼쪽 어깨에 남아있는 파편 조각은 잊었던 아픔을 몰고오는 3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슬픈 훈장이다. 아, 아, 그 날 소나기처럼 퍼붓던 총소리 산기슭 흥건히 적시던 뜨거운 핏물 죽음의 끝에서 마주쳐온 어머니 얼굴 사진 속 이름들을 천천히 기억 해내는 할아버지의 젖은 눈에 쓰러져 가는 전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욱한 포성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의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은 너와 나 우리 모두 간직해야 할 소중한 보물이다. 37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별빛 김미란_우수상 / 서울 창동고등학교 2학년 이 땅을 적시고 적막한 어둠 위로 별이 찬란하게 부서진다. 외로운 밤바람 속 서로의 쓸쓸한 손을 맞잡고 불꽃을 향한 불나방의 가슴으로 그들은 봄을 불사른다. 검붉은 대지위에 푸른 잔광을 흩날리며 조국의 새벽 위해 빛이 되어 부서진다. 이제는 그 시린 빛. 3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흐릿한 꽃 향기 속으로 잊혀진 채 사라져 가지만 지금도 옅은 전등을 끄고 고개를 들면 너른 곳 가득 그들의 얼 피어나듯 밤하늘이 너무나 눈부시다. 39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하 늘 손효철_우수상 / 경남 진주고등학교 3학년 잿빛 하늘에서 천둥소리 들린다 거친 소나기처럼 여린 봉우리 위에 떨어져 화염을 어루만지며 생명의 꽃을 피우던 축축했던 유월의 대지 파편이 딱딱한 뼈 속에 박힌 지 반세기가 지난 유월의 무덤 위 풀들이 무성한데 아직도 이 땅은 두 갈래 지난 세월 깊이 잠든 영혼의 절규는 한민족과 한 핏줄 그리고 역사를 꽃피울 만남이었을까 4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그 만남의 순간이 오면 호수빛 하늘을 담은 천지와 옥빛 바다를 담은 백록이 2인 3각 다리를 묶어 온 산하를 건너보자. 동해 건너 거센 파도를 헤쳐 새 세상을 열어보자. 41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호국의 종 고유정_우수상 / 마산 호계중학교 3학년 어깨 위로 둘러맨 빛과 바람을 동여매고 푸른 메아리로 서성이다가 굽이굽이 냇물따라 바람으로 떠돌다가 벌써 잊혀진 누군가가 묘지 앞에서 울음소리 들리지 않게 흐느껴 울며 함께 외로워져 눈물로 떨어진다. 6월의하늘끝에매달려 온 몸으로 울어서 귀 빌려주고 입까지 빌려준다. 4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잊힐만 하면 길 틔우는 종소리 마침내 조국의 눈 속으로 들어가서 내 나라사랑 가득 품은 빛과 바람을 풀어 놓는다. 43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철조망을 두고 김재임_장려상 / 전남 광양여자중학교 2학년 누가 한반도의 허리를 철조망으로 휘어감아 갑갑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는가. 잔뜩 가시 돋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러움도 토해내지 못한 채 어두운 과거를 한탄하며 맑게 갠 내일만 기다릴 뿐 꼬옥 조여진 한반도는 그날을잊지못하고 아픔 그대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구나. 4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생각만 해도 피 비린 내 물씬 풍기고 많은 이들의 눈물로 절여졌던 전쟁 그 역사적 비극을 신도 세월도 갚아주지 못했다. 오십여 년이란 세월동안 그 답답한 허리띠를 아직도 풀지 못했다. 45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푸른 바람이 되어 최송아_장려상 / 과천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가고싶어도더이상갈수없는땅 휴전선 155마일, 가시철망이 가로막고 선 달려도 더 이상 치달아 오를 수 없는 건너지 못하는 다리, 비무장지대 아아, 나는 지금 한 줄기 푸른 바람이 되어 굳게 닫힌 임진강 저쪽으로 건너고 싶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도 훌쩍 건너고 싶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직 가시지 않은 산하 언제나 북녘 하늘을 보며 할아버지는 두고 온 가족의 안부 때문에 애태우셨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 북녘 하늘이 보이는,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 바람처럼 묻히셨다. 살아생전 가고 싶었던 그리은 고향 그렇게도 보고 싶던 눈에 밟히던 가족 4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새해 맨 처음 소망은 언제나 통일이셨다. 소리 없이 철의 장막이 허물어지기를 해마다 할아버지는 두 손 모아 기도하셨다. 눈물로 고향 그리던 그 간절한 마음 자나 깨나 소망하시던 북녘가족과의 상봉 아직도 못다 이룬 그 꿈 때문에 할아버지는 여전히 잠 못 드시는 걸까. 애틋한 그 소망 들어드리기 위해 나는 한 줄기 임진강 푸른 바람이고 싶다. 할아버지 그리운 안부를 싣고 한달음에 압록강, 두만강으로 치달리는 아아, 가벼운 발걸음의 바람이고 싶다. 47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붉은 봄 이송희_장려상 / 천안 복자여자고등학교 1학년 우리들의 노오란 봄은 손을 흔들지만 그의 불게 물든 붉은 봄은 슬픈 손 짓을 한다. 불게 물든 총성의 교향곡은 우리들의 귀에 과거가 되었지만 불게 물들어 찢어질 듯한 총성의 교향곡은 오직, 그의 귀에만 아프게 울린다. 두만강의 진한 오랑캐꽃은 우리에게 지나간 사진으로 남았고 4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너무나 진해서 멍든 오랑캐꽃 그의 눈에 뜨거운 그리움을 묻힌다. 그는,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눈에 따뜻한 묘향의 봄이 오늘이 되고 우리의 귀에 청천의 물소리가 피어오를 내일을. 49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승전보 이채석_장려상 / 울산 제일고등학교 2학년 바람도 불에 타는 산등성이를 걸어 나아가라 산속깊은곳 죽은 자의 눈물과 산 자의 분노가 응어리지는 곳 그 곳에서 발을 굴렸다 디디는 곳마다 혼의 바알-자국 5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내 육신은 찢어져도 발자국만은 저 어딘가에 남아 후일에도 나아가라 51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중 고등부 비가오면 김예슬_장려상 / 부산디자인고등학교 3학년 소리없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줄기가 굵어져 싸늘한 눈물만 쏟아낸다. 비야! 네가 내리면서 너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도 차가워진다. 네가 내리기 시작해서 너로인해 세상은 검은 베일을 뒤집어 쓴 듯 검고 진한 얼룩이 물들어져만 간다.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5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중 고등부 눈물의 강이 넘칠 것 같아,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겨 본다. 울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비 갠 후 아침처럼 평온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에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53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아버지의 군번 외우기 조명숙_최우수상 / 울산 북구 중산동 돌아가신 아버지 이제 군번 새겨진 양은 목걸이만 남아 책상 속에 남아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받게 되는 군번은 이름보다 군인에게는 소중하다고 항상 걸고 다니면서 백마고지 탈환 한 그 벅찬 승리감에 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다가신 내 아버지,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고 돌아가실 때도 군복을 수의처럼 입고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국민학교 시절 현충일 때였을 것이다. 군번을 목에서 꺼내 보이시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 얼굴이시던지 손때가 묻은 만큼 더 빛나보이던 5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그 아버지의 길고도 긴 군번을 나는 단 한번도 외울 수가 없었다. 군인은 군대를 떠나면서 군번 하나로 남게 된다고 군번 때문에 또 군대를 떠나도 군인이 된다고 치매에 걸려도 군번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상 외우시던 아버지의 군번, 어저면 아버지에게 주민번호 보다 군번은 이 세상 어려운 일들이 다 통하는 비밀번호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어느 고요한 숲 속에서 새와 청솔모를 기르고 눈과 바람과 비와 함께 잠든 비목 앞에도 군인의 이름 대신 군번을 먼저 확인하시던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진 군 번호, 하나 외우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금방 환하게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55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외할아버지의 목발 정해미_우수상 / 부산 북구 구포3동 외갓집에 창고에 목발 하나 있다. 칭칭 감은 헝겊에 때가 묻고 목발의 끝부분이 축축할 정도로 땀이 베인 외할아버지의 목발 하나,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아무도 쓸 일이 없는 나무지게와 함께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발뒤꿈치처럼 닳아진 목발의 끝과 비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몸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 손잡이가 반들반들 한 목발 하나, 어둑어둑한 창고 안에서 5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더 녹이 슬어가는 것들과 함께 먼지 앉아가도 식지않고 아직도 외할아버지의 채취가 풍기는 목발 하나, 온 동네 대소사며 고샅길 너머 동사무소에까지도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던 할아버지의 건강한 목소리도 들려오는 목발 하나, 할아버지의 젊은 날의 뛰는 혈관처럼 아직도 그렇게 아킬레스가 꿈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오동나무로 만든 반질반질한 손때 묻은 목발 하나 고향 집 헛간을 지키며 있다. 57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푸른 잎 배재형 _ 우수상 / 서울 서초구 방배동 마당 한 편 나뭇가지처럼 아버지 허리 굽었다. 겨우내 선잠 자던 햇살이 푸른 잎 앞자락 끌어내리며 봉긋한 허리에 앉아 안마하면 따뜻한 봄 손길 따뜻하신지 6 25전쟁의 참전용사셨던 아버지 일생동안 처마 끝 깊은 제비집처럼 좁고 누추한 마당을 빌려 한 그루 나무에 푸른 잎 기르셨다. 분단의 긴 어둠 속에 서 계셨던 아버지 푸른잎 딱딱한 눈 속 하얀 화석이 될 즈음 퇴근길에 소문도 없이 잎들을 문상하고서는 전쟁 때 돌아가신 어머니 차가운 사진에 따뜻한 입김을 불고 계셨다. 5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비라도 연신 내리는 날엔 오래된 추억이라도 묻어 가지 끝 간신히 살아있는 푸른 잎사귀 작은 상처 틈에다가 발라주셨다. 창 열어 슬쩍 들이마신 온기 가슴에 온전히 돌아 봄 나무 앞에서 허리 굽을 때 잎들마다 가는 혈관 따뜻한 피가 낮은 뿌리 제자리까지 돌아가는 중 허리 편 지아비 통일의 꿈은 돠살아나지 않을까. 아버지 전쟁 같은 허리 두드려 드리면 봄 나무 가장 아끼시는 푸른 잎 속에 남기신 어머니의 유언을 더 단단한 흙 밟으며 듣고 계셨다. 59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우리 할매 이주연_장려상 /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내 손을 이끌고 향하는 곳은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 고쟁이 속 쌈짓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3장의 눈물의 지폐를 나는 달그락 소리내며 6개의 위안동전으로 대답한다. 할매는 동그란 두 개의 창에 삼촌의 이름을 부르며 오십여년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할매는 꼭 살아 돌아오겠다던 삼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삼촌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철쭉화단을 머리에 얹은채 눈물범벅으로 삼촌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있다.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에서 삼촌과 빼닮았다하는 내 얼굴 어루만지며 오십여년의 짧은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6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할매는 6개의 동전에 오십여년의 기다림을! 오십여년의 을! 오십여년의 모정을 담아내고 있다. 61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지리산 위령제( - 철쭉꽃 장세진_장려상 / 부산 연제구 연산4동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낮게 포복해서 넘어가는 빨치산 같은 철쭉들 콩알처럼 돌돌 뭉쳐진 화약 꽃망울을 무수히 쟁여 놓았다가 지지직 꽃망울 속의 뇌관을 향하여 사월의 햇살들이 기관총을 당기듯이 타들어간다. 팔이 잘린 상이군인 같은 고로쇠나무들이 다리 잘린 미군포로 같은 갈참나무들이 타다다닥 연발탄 터지는 소리를 내고 다채색의 폭발음이 잇달아 그날처럼 지리산 계곡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코를 막고 가만히 엎드린다 엎드려 그날처럼 지천에서 쾅쾅 터지는 수류탄 터지는 소리에 6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동굴 깊이 숨은 봄들이 빨치산처럼 손을 번쩍 들고 걸어 나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꽝꽝 터지는 철쭉들의 짙은 꽃내음이 화약냄새처럼 가득한 지리산 위령제에서, 나 한때 빨치산 나의 아버지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총알 같은 아픔을 깨물고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들은 발목이 달아난 채로 저 들판 어디 발목지뢰처럼 묻혀 잠든 씨앗이라도 밟았는지, 스멀스멀 아지랑이 피는 계곡마다 기어오르는 다래 넝쿨들도 탁탁 천왕의 고지를 탈환하지 못한 혼들을 위로하는지 탁탁탁 축포를 무한정으로 쏘아댄다. 63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일반부 한탄강의 실안개 이재석_장려상 / 경기 동두천시 생연1동 푸른 물결이 힘줄로 불끈 솟은 평강군 백암산( ) 실개천을 모아 모아서 새벽의 그리움에 등 떠밀려 살얼음 낀 잠을 털어 내고 굽이굽이 실개천 어깨동무하면 황톳물 속에 단단하게 박힌 옹알이 풀어 헤치며 온몸을 내던져 물길을 감싸주는 136 킬로 분단의 허리를 깨우며 상처난 협곡에서 6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시 일반부 부딪히고 깨어난 동족이 깊숙이 묻어둔 긴 아픔을 어루만지는 江 까맣게 타버린 가슴앓이로 깎아지른 사상( )에 한 서린 울부짖음이 온몸을 휘어 감으며 발목 묶인 채로 멈춰야했던 서러운 땅 하얗게 누워있는 이름 없이 산화한 혼이 분단 문을 밀고 있는데 남북의 강심( 江 )이 몸을 섞으며 설움을 떨쳐내고 파도가 밀려와 하나가 되는 강이 얼싸 안으며 실안개가 먼저 피어나 아픔을 묻어 버린다 6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할어버지의 눈물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할머니의 보약 끄지 못하는 불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나의 사랑스러운 조국 한국 민이 이야기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 바람이 붑니다 할아버지의 다리 연필을 든 용병과 총을 멘 용병 호국보훈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태극기 2005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 전쟁이 남긴 슬픈 기억 두 토막 은혜를 기억하는 도리 바람꽃

수필 초등부 우리 할아버지 이서연_최우수상 / 대전 내동초등학교 4학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햇살이 눈부신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일찍 잠 을 깬 나는 어머니를 재촉하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계신 할아버 지를 뵈러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상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작은아버 지께서 기다리는 동부고속터미널로 향하였습니다. 어머니, 할아버지는 왜 또 입원하셨어요? 응, 다리가 자꾸 더 아파 와서 서울 육군보훈병원으로 진찰 받으러 가 셨는데 많이 악화되셔서 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는구나. 어쩌면 여러 차례 받으셨던 수술을 또 받으셔야 할지도 모른단다. 왜 다리를 다치셨는데요? 서연아! 너는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지금부터 55년 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 왔단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는 군인이셨는데 1951 년 6월 어느 날 철원 피의 500고지 전투에서 싸우시다 북한 공산당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부상을 당하셨단다. 목이 메이신지 말꼬리를 흐린 어 머니의 눈은 눈물로 꽉 차 있어 까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 어머니가 우시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도 눈물이 핑 돌 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봄 운동회 때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6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우리 반은 손님 모시기란 경기를 하였습니다. 출발선 앞에 써 있는 카드 를 주워 보니 어른과 함께 라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크게 불 렀습니다. 언제 들으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띠시며 제게 로 뛰어 오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갑 자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저와 할아버지는 자꾸 뒤로 쳐져 꼴찌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비록 봄 운동회 때 꼴찌를 했지만 훌륭한 할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댁에 가면 다른 집보다 문패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나라지 킨 용사의 집 이라고 쓴 문패와 할아버지가 받으신 무공훈장이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마다 80만원씩 다른 집은 받지 못하는 돈을 국가로부 터 받고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다리를 절룩거리게 하고 한 달에 서너 차례 병원을 다니시며 고통을 겪으시게 한 공산당은 우리 가족의 원수이며 우리 민족의 원수입니다. 언젠가 도덕 시간에 선생님께서 호랑이한테 물려 보지 못한 사람은 호랑이가 무서운지 모른다 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여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우리들도 금강산을 관광 할 수 있 게 되었으나, 지금도 남침 야욕을 버리지 못하여 북한에서 고통을 겪거나 식 량이 부족하여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귀순해 온 가족과 벌목을 하던 사람 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산당이 망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산당이 망하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 의 철도가 남북을 이어주어 함흥까지 달려가는 통일의 그 날이 온다면 천만 명이나 되는 이산 가족들도 다시 만나게 되어 서로 기쁨의 춤을 추고 제가 가보고 싶던 백두산에 마음대로 가볼 수 있을텐 데 생각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작약꽃 같은 뭉게 구름이 북쪽으로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습니다. 7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허장산_우수상 / 마산 월포초등학교 6학년 지난해 2004년에는 우리집에 큰 경사가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국 방부장관이 수여하는 무공훈장을 받으셨다. 사실은 1995년도에 받으셔야 되는 훈장이 었는데 그동안 할아버지의 이름이 누락되어 오늘날에야 받 게 되셨다고 하셨다. 우리집안 가족과 친척들은 5월 20일 마산보훈지청으로 할아버지의 수 상을 축하하러 갔다. 물론 나는 학교 수업중이라 갈 수 없었지만 그날 저녁 약주를 한잔하고 오신 할아버지가 아주 기분이 좋으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 이 축하해 주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결혼한 이후에 전쟁이 나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족 때문에 앞장서서 싸우기 힘들었지만 나라가 먼저 있고 가족이 있 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공산당을 무찌르셨다고 한다. 몇 번의 죽을 고비도 넘기고 부상을 입기도 하였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속되있던 부대는 전쟁이 끝날 무렵 북한군을 격퇴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셨다. 전쟁이 끝나면서 할아버지는 무공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7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무슨 이유에선지 훈장을 받지 못하셨다. 어떤 이유냐면 할아버지가 한번 도 무공훈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고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인데 늦게나마 훈장을 받게되니 오히려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하신 우리할아버지, 칠순이 넘은 나이에 요즘은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동네 경로당을 맡아 지금도 열심히 생활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럽다. 나도 할아버지의 손자로부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 해야겠다. 7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소슬미_장려상 / 임실 갈담초등학교 5학년 우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호국원이 있다. 여기에는 6 25 전쟁 때에 참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다가 돌아가신 국군들과 월남전쟁에 참 가하였던 용사들을 모셔놓은 곳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현충일이 돌아오면 이곳 호국원에 가서 비석을 깨끗이 닦는 일을 한다. 작년에도 우리는 호국원에 있는 비석을 닦았다. 우리는 미리 집에서 비 석을 닦을 수건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씽씽 달렸다. 우리는 소풍이나 가 는 것처럼 시끌벅적 소란을 피웠다. 도착하자마자 안내원 아저씨에게 설 명을 듣고 호국탑 앞에 가서 묵념을 하였다. 묵념을 하면서 잠시나마 생각 해 봤다. 전쟁터에서 다치고 죽고 피나는 싸움을 한 사람들이 생각만 하여 도 고마웠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날씨가 더워 묘비를 닦는게 힘들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묘비를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묘비를 닦다가 주위를 둘 러보니 묘비가 참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죽어갔 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숙연해졌다. 73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걸레가 너무 더러워져서 수돗가에 빨러 갔다. 그런데 물장난을 하고있 는 친구들이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묘비앞에서 시끄럽게 물장난을 하니까 예의가 없어 보였기 때문 이다. 묘비를 다 닦고 나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전 했던 전쟁이 어떤 전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6 25전쟁과 베트남전쟁 이 있었음을 알았다. 같은 민족끼리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면서 싸우 고 38선이 생겨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남한에서는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50년이 넘게 살아왔다는 것이 서글펐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텔레비젼으로 가끔 본다. 나이 어린 나도 그 분들의 가슴 아픔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6 25전쟁으로 인해 한 나라가 둘로 나뉘고 고향도 갈 수 없는 분들의 상처가 하루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그 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어 가고싶은 고향땅을 갈 수 있도록 정치하는 어른들이 많이 노력해 주셨으면 좋겠다. 북한에 살고있는 어린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용돈을 아껴쓰고 돈을 모아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어른이 되었을때 북한에 가 북한 친구들과 함 께 일도 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베트남전쟁은 월맹군과 베트남군이 싸운 전쟁이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에 대한 우방국으로 참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군인이 베트남을 위해 베트남군과 미 국군과 더불어 싸운 것이다. 남의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고 싸우다 부 상을 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당 7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나지도 말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 전쟁의 후유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나는 호국원에 가서 비석을 닦으면서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목숨을 바 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강하고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 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몸도 튼튼히 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7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할아버지의 눈물 김선영_우수상 / 제주 대흘초등학교 6학년 명절 때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 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설날에는 할아버지께서 눈시울을 적시고 창 밖을 보시다가 두 눈을 지긋이 감으시더니 우릴 부르셨다. 우리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이젠 선영이도 다 컸으니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음성이었다. 항상 인자하시고 우리들을 귀여워 하시는 다정한 음성과는 달랐다. 친척들이 왜 없냐고 물었었지? 사실 할아버지도 형제가 있단다. 아마 너희만한 손주들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는 아직 그 친척들을 만날 수 없 단다. 왜요? 사실 할아버지는 6 25때 북에서 내려왔단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남 으로 가고 있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폭격으로 다 부서지고 중국군들 이 밀려온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잠시 남으로 피신해야지 생각하고 내 려왔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혼자 남으 7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로 내려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고생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이 그리워 잠을 자지 못했던 때라고 하 셨다. 작년에 야영을 하면서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었을 때 다 잠이든 밤 이 되자 외롭고 무서웠던 생각이 스쳐갔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선영아, 할아버지가 남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시신들을 보았단 다. 그 중에서 군인들의 시체를 본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그 사람들 은 나라를 위해 무조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아니겠니? 그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할아버지가 살 수 있었던거고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가족들이 보고 싶은 밤이면 할아버지가 보았던 그 시체 들이 떠오르고 악몽에 시달리곤 한단다. 할아버지의 눈물 속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있는게 아니었다. 할아 버지 가슴 속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전쟁의 잔혹성과 이름없이 죽어간 호국영령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 많은 아픔을 안고 55년 세월 을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를 아껴주셨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 속에 감추어 온 아픔이 더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그냥 울었다. 해마다 6 월이 되면 학교에서 여러가지 행사를 하고 호국영령들에 대하여 묵념도 하고 조기도 달지만 우리 할아버지 가슴 속에 이러한 슬픈 기억이 있을 줄 은 꿈에도 몰랐다. 할아버지 진작 말씀하시지 왜 지금에야 말씀하세요? 77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너희가 할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때 말하려고 했단다. 아마 할아 버지의 아픈 세월을 너희가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나를 필요로 하신거였다. 할아버지의 아픈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가족과의 헤어짐과 그 슬픔을 내가 위로해 드릴 때가 된 거였다. 할 아버지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름 모를 군인들의 죽음에 대한 고마움과 처 참함을 내가 이해해 드릴때가 되었다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늘 나를 안아 주셨지만 그 심장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나를 반성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을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할아버지를 외롭거나 슬프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할아 버지의 슬픈 기억 속에서 찾아낸 호국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나라를 빛내는 미래의 기둥이 될 것이다. 7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권민정 _ 장려상 / 서울 석촌초등학교 4학년 우리나라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사는 민족인 것 같다. 역사를 거슬러 올 라가면 전쟁도 많았고 식민지 지배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로 부터 다시 나라를 찾는데 이바지한 독립 유공자 나 대한민국 건국에 도움을 준 건국 유공자 또는 6 25 전쟁때 열심히 싸 운 전쟁 유공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편하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젠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을때 할아버지께서 내가 죽으면 국립묘 지로 갈까? 선산으로 갈까? 하고 물으신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는 아니지만 군인 생활을 오래 하시고 월남 전쟁 도 갔다 오셔서 국립묘지로 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소리를 들을때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실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아빠, 고모들이 너무 보고 싶어 편지를 매일 쓰셨다고 한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할머니가 보관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편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견디며 나라를 7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위해 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 다면 못 할 것이다. 나는 아침 7시 50분에 일어 나는 것도 힘들다고 아침마다 엄마에게 투 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반찬이 맛이 없다고 투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저절로 반성이 된다. 다시는 투정 같은거 하지 않기로 내 자신과 약속을 할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거나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은 자기 집도 아닌 곳에서 추 위나 배고픔을 참아가며 보고싶은 가족을 못 본다는게 얼마나 힘들었을 까 생각하니 저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나라에서도 국가 유공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 같다. 국가 유공자 자녀들은 대학교 등록금이 나오거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가 산점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제도가 국가 유공자들에게는 보람과 위안 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위해 일하느라 가정을 잘 보살피지 못했으니 나라에서 어느 정 도 도움을 주는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나라도 빼앗겼고 6 25 전쟁도 생겼으니 우선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요즘 TV에서 보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무슨 행사 까지 벌이는걸 보고 분노를 느꼈다. 분명히 독도는 한국땅이다. 경상북 도 울릉군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이란 노래도 있 는 우리땅을 다케시마란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 니까 한국사람들 모두 나가라니 정말 기가 막힌다. 세계 각국의 다른 나라들도 일본이 우리보다 잘 살고 힘이 있는 나라니 8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까 일본편을 들어 줄 것 같다. 우리가 일본보다 못 사니까 억울하게 당하 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가 하루 빠리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꿈은 외교관인데 내가 빨리 커서 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나라는 더 잘 발전할 수 있 게 되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나라가 될거라고 믿는다. 온 국민이 나 라를 사랑할 나라땅 생각만 해도 희망이 생기고 기분도 좋아진다. 다른 나라를 탓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회 사원들은 일 잘하고 군인들은 나라를 잘 지키고 정치인들은 싸우지 않고 정치를 잘 한다면 정말 살기 좋은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라에 큰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한 존중과 이름을 널리 알리 고 온 국민이 존경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 분들에 대한 보답하는 길이 되 리라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다케시마 날을 만드는걸 보고 우리 국민들은 분노를 느 끼기도 하고 우리 나라 영토는 우리가 지켜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 같았다.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를 가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독도를 무척 가보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독도 화이팅! 대한민국 화이팅! 8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할머니의 보약 신화진_장려상 / 울산 옥동초등학교 4학년 우리가족은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대전 국립묘지로 간다. 다른 가족 들은 현충일이면 쉬는 날이라고 하지만 우리 가족은 특별히 삼촌을 만나러 가는 나들이를 한다. 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모두 침묵을 지키고 조용하다. 수다쟁이 동생 유진이도 이날 만큼은 얌전한 유진이가 된다. 우리 가족은 청춘 신고합니다 를 보지 않는다. 군대에서 돌아가신 삼 촌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빠는 청춘 신고합니다 를 볼 때마다 삼촌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우리 아빠와 삼촌은 정말 우애 깊은 형제였다고 한다. 삼촌이 초등학교 를 입학 하셨을 때에는 아빠와 삼촌은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단다. 또 두 분 다 개구장이여서 할머니께 혼나면 같이 혼나고 서로 위로 해 주셨다고 했다. 국립묘지에 도착하면 할머니의 모습은 애써 아픈 마음을 감추시고 무덤 덤한 표정으로 계신다. 그 때는 아무도 할머니께 말을 걸거나 장난치지 못 한다. 할머니는 그냥 한아름 국화꽃만 쳐다 보시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에 눈물이 흐른다. 나와 동생은 돌아가신 삼촌 이야기는 여쭈어 보지 못한다. 삼촌이 어떤 8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다.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는 꺼낼 수 없는 힘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삼촌 이야기를 모르신다. 그리고 할 머니와 아빠에게는 아픈 상처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운전하시는 옆 모습을 보면서 삼촌은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상 상해서 그려본다. 우리 아빠를 닮았다면 멋쟁이 미남이셨을것 같다. 우리 가족은 기쁜 날, 슬픈 날이 있을 때마다 삼촌을 찾아간다. 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새 묘지가 생기고 그 묘지 앞에서 슬프게 엉엉 소리내어 우는 가족들을 보게된다. 할머니께서는 그 동안 슬피 우셨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절대 표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할머니의 가슴 속은 검게 탄 숯덩어리가 되어 있을것 같다. 요즘은 할머니 마음이 안정을 찾았는지 많이 우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할머니댁을 찾아 갈 때면 약주를 많이 드시고는 삼촌이 효자라고 혼잣말을 하시면서 우실 때가 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술을 드신다 할머니께서는 술은 삼촌을 잊게 하는 보약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술이 삼촌을 잊게하는 보약이라지만 할 머니의 건강을 생각하셔서 조금만 드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하는 손녀의 바램을 할머니께서 알고 계실까?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제가 효성스런 손녀가 될께요. 83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끄지 못하는 불 장윤영_장려상 / 평창 면온초등학교 5학년 해가 환하게 비추더니 갑자기 저녁때도 아닌데 어둑우둑해지고는 비가 내린다. 일기 예보에는 어제 저녁부터 내린다고 했는데 야속하게도 비는 이제야 내린다. 이렇게 비가 야속한 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산불 때문이 다. 며칠 전부터 계속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하더니 어제 식목일을 전후로 해서 전국에는 정말 많은 산불이 났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도 타버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도 움을 주고 행복을 주던 나무와 집이 너무나 많이 타버렸다. 이 비가 어제 쯤이라도 시원하게 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대단한 자연의 힘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반가운 비가 저 휴전선 근처 비무장 지대에도 내리고 있을까? 벌써 열 흘 가까이 북한에서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불을 지뢰가 많이 묻혀 있는 곳도 있고 군 사 지역이라 마음대로 불을 끄러 들어갈 수 도 없다는 것이었다. 8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정말 그렇게 활활 타고 있는 불을 며칠씩이나 바라보고 있어야 하고 불 이 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 곳에서 살던 동물들은 연기와 뜨거운 불 때문에 얼마나 당황하고 아파할 까? 이렇게 슬픈 현실은 전쟁으로 만들어진 휴전선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긴 것이 아니고 그 누구도 진 것이 아니기에 생긴 휴전선, 언젠가 선생 님께서는 휴전선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쉬고 있다는 뜻이라 고 말씀해 주셨다. 세계에서도 유일한 분단국이고 전쟁 중이라는 말이 나 를 정말 놀라게 했다. 비무장 지대가 타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이 몇 십년 전의 전쟁할 때의 모습과도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너무나 무섭고 다 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간절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6 25 전쟁 때 팔에 총을 맞은 자국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징그럽고 보기조차 무섭고 이상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정말 우 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힘든 고난을 이기시기 위해 내신 상처라 는 생각을 하니 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웠고 할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셔서 우리나라를 지키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조금만 손이 베어도 아파서 밴드를 붙이고 엄살을 하는데 그렇게 커다란 상처를 내고도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신 할아버지를 비 롯한 많은 참전 용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북한말과 우리말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과 북한이 쓰는 말이 너무나 달라서 많이 놀랐다. 수수께끼 문제 중에 한 평생 논딱총을 놓고 서 있기만 하는 것은? 하는 문제가 나왔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신호등 이었는데 아무리 이해하 8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말을 보고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런 말이 다 있던가 하는 생각에 우리가 정말 같은 민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서로가 한 민족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생각을 하 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요즘은 일본이 독도가 지기네 땅이라고 엉뚱하게 우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하고 마음 아파한다. 더구나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찾 아낸 우리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모습을 보면 참전 용사들은 얼마 나 땅을 치고 통곡을 하실까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우리의 통일은 비무장 지대의 불처럼 이루지 못하고 쳐다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서 두려워만 하면서 쳐다보기만 해야하는 것 일까? 저 비무장 지대에서 살고 있던 갖가지 동물과 식물들이 우리에게 말하 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통일을 해서 이곳을 잘 지켜달라고. 촉촉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그렇게 활활 타던 불이 꺼지듯 우리의 노력 이 얼른 결실을 맺어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 생명을 버리거나 피해를 입 히는 일이 없이, 더 이상 아픈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면 서 통일이 더 이상 끄지 못하는 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8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유완승_장려상 / 보령 대관초등학교 6학년 우리나라는 특정한 날이 많이 있다. 그 중 나는 현충일이 가장 뜻 깊은 날이라고 생각된다. 그 날은 우리나라를 위한 일에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 모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 음을 더욱 돈독히 하는 날이다. 내가 특히 이 날을 더욱 마음에 두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 바친 유관순 누나의 이름이 바로 내 별명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내가 유 씨여서 별명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나는 이 별명이 마음에 들고 자랑 스럽다. 현충일은 해마다 있는 날이다. 현충일하면 독립 운동가들이 생각난다. 이 준, 김 구, 이봉창, 유관순 등의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 분들의 공 통점은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고 나라를 사랑하였다는 점이 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시다. 나는 이 분들의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다. 이 분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나라 가 통일이 되길 바라고,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화합하며 잘 살아가길 바라 고 계실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꽃다운 나이에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만세를 외치다 목숨을 잃은 열사이다. 별 87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명을 유관순으로 받았는데 유관순 열사처럼 나도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 까 생각해 본다. 나는 유치원 때까지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1학년 때부터 1등을 해 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마침내 5학년 때부터 1등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 다고 본다. 유관순 열사가 살아계셨더라면 그것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나 도 이 별명답게 앞으로도 1등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고 나라를 사랑하 는 것도 유관순 열사 못지않게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라를 위해 목 숨을 걸고 싸운 분들을 기억할 때 유관순 열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그분은 바로 이 준 열사이다. 나는 이 준 열사가 일본과 강제로 맺어야 했던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고발하려고 하다 가 잡힌 일이 두고두고 억울하며 안타깝다. 내 친구 중 이 준이라는 별명 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이 준 열사처럼 아주 억울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떠들었는데 자기만 혼난 것이다. 그것은 자기 가 대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용납하지 못하겠나 보다. 나도 이 친구가 이 준 열사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준 열사 다음으로 또 빼놓을 수 없는 분은 백범 김 구 선생님이시다. 김 구 선생님은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에 임 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만주로 피 신하여 김이언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김 구 선생님은 이 때 오로지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셨다. 이런 일 이 쉬운 듯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쉬웠다면 우리나라 사람 들 누구나 다 김 구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해에 우리나라에 귀국 8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한 김 구 선생님은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었다. 김 구 선생님은 일본인을 얼마나 원수로 여겼느냐하면 씹어 먹어도 시 원치 않을 만큼 원수로 여겼다. 다행히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어 사형이 집 행되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주로 가서 계속 독립운동을 하시 게 되는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김 구 선생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이시다. 나는 이런 분들과 독립을 위해 애쓰신 김 구 선생님이 자랑스럽다. 나는 이봉창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주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난 겨울방학 에 천안 독립기념관에 체험학습을 가서 그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는 사진 자료와 여러가지 서적, 영상자료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 봉창 의사는 일본 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일로 재판을 받게 되 었을 때 일본의 재판을 거부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거늘 어찌 너희들이 내게 이렇게 무례히 대하느냐? 많은 일본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이렇게 말하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 다. 이 말은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인들에게 사용하면 목숨이 위태로 울 말인데 용기를 내어 정의롭게 맞서 싸우심에 더욱 감명 깊었다. 이봉창 의사를 생각하니 또 떠오르는 위인이 한 분 더 있다. 그 분은 바로 김 구 선생님과 이봉창 의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윤봉길 의사이시다. 윤 봉길 의사는 이봉창 의사처럼 일본 사람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 그래 서 일본의 유명한 대장과 그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일로 윤봉길 의 8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사는 결국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가장 소중한 목숨도 내놓으신 분들을 생각해 볼 때 고개가 저절로 숙 여진다. 나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없는데 실 제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런 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가슴 속 깊이 그 정신을 담고 생활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위인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은 우리 외할아버지시다.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살아계 시는데 6 25사변이 일어났을 당시 직접 전쟁에 나가셔서 북한 공산당과 싸움을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부상당하시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우리 외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 공으로 나라에서 국가 유공자로 정하여 예우를 해 주시고 금으로 만든 훈장도 상으로 주셨다고 하셨다. 내가 지난 번에 외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그 훈장을 보여주시며 6 25사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외할아버지가 나는 얼 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나도 외할아버지처럼 우리나라를 위해 조금 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일을 해 내고 싶다. 전에 읽었던 마사코의 질문 이라는 책에서 보았던 방구 아저씨 김봉 구 라는 분도 그러셨다. 김봉구 아저씨는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나도 봉 구 아저씨처럼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특히 이 김봉구 아저씨한테 가장 본받을 점은 일본사람에게 이봉창 의사처럼 한국말로 당당하게 말한 것이 본받을 점이다. 김봉구 아저씨는 일본어로 말하라는 일본사람들에게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했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너희가 와서 행패냐? 라고 말이다. 나라면 그냥 겁나 서 도망갈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또 이 9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책의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것은 책 제목이기도 한 마사코의 질문 이다. 마사코가 할머니에게 왜 미국이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날렸느냐고 물어보 았다. 마사코의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 미국만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미국과 싸우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일본이 우리 나라 외에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니까 간이 커져서 미 국까지 차지하려 했기 때문인데 말이다. 미국만 잘못했다고 하는 할머니 가 나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친하다니 뭔 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일본이 얼마나 치사한지도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일본사람처 럼 치사한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 는 일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다케시마 라고 부르는 독도는 명백한 우 리 대한민국의 땅이다. 하지만 자기네 땅이라고 계속 우기면 우리나라는 곤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수출 국가인데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아지면 수 출길이 막혀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들었다. 또한 각박한 외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하늘이 일본에게 천벌로 지진을 내려 보내주셨나 보다. 그 지진의 피해 는 막대하다. 그 지진으로 일본사람들은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 안되겠다고 반성 좀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큰 지진이 일어 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나는 지금 일본사람들에게 이봉창 의사처럼 이 렇게 말하고 싶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영원히 지진 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지진으로 망해버릴 것이다 라고 말이다. 9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우리나라가 얼른 통일을 해 세력을 길러서 일본의 이런 억지에도 끄떡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학생의 신분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 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나 라를 빛낼 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유관순이라는 자랑스러운 내 별명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9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초등부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한국 박지은_장려상 / 군산 서해초등학교 6학년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것 같다. 작년 여름방학 때 난 중국 연태로 5주간의 연수를 다녀왔다. 그때난주로 연태사범대학 안에서 생활하였는데 그곳은 정말 넓었다. 대학안에 미용 실 등 많은 상점들이 있었고 학생 기숙사와 유학생 기숙사가 따로 있었다. 우리 기숙사 안에는 작은 TV 한대가 있었는데 그 작은 TV가 비록 흑백이 지만 우리나라 방송 KBS1을 보여주었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이 괜스레 울렁거렸고 뉴스에서 사람들의 소식이 들릴때마다 가슴이 두근거 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거의 KBS1에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고 잘 안보던 뉴스까지 도 재미있게 보았다. 그 방법이 조국에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나라에 와 있으니 그 동안은 잘 느끼지 못했던 나라의 소중함과 우리 나라의 기술 그리고 우리나라가 참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 다. 학교 매점에 있는 우리 나라 과자가 맛있다며 사가는 외국인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학교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우리 나라 차 티코나 소나타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우습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내 93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초등부 가 다녀온 곳은 중국의 작은 일부지만 그 일부인 연태시와 역시 대한민국 의 일부인 나의 고향 군산시를 비교해 보면 환경, 음식, 기술 그 어느것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중국 사람들이 내 게 말을 걸거나 배울 때가 자랑스러웠고 또 놀라웠다. 또 그 학교 대학생들이 겨울연가 대본을 들고 한글을 배우는 모습 또 한 보기가 좋았다. 지금까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것 을 보았지만 한국에서 한글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한글을 쓰고 말하는 것을 보니 왜 이리 놀랍던지! 그리고 한글을 쓰고 할 줄 아는 중국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까지 느꼈 다. 그리고 한글을 배워 우리 나라에 와 돈을 많이 벌겠다는 나의 과외 선 생님 말씀에 우리 기술의 발달을 느꼈다. 작년 중국여행은 참 힘들고 고달 펐지만 나에게 나라의 소중함과 애국심은 일깨워준 참 의미 깊은 나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9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민이 이야기 김선아 _최우수상 / 대전외국어고 1학년 민이는 좋겠다. 대단하신 할아버지가 계셔서... 희숙이가 모두들 들으라는 듯 민이에게 빈정대는 말이었다. 요즘 희숙 이와 민이는 앙숙이 되었다.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 있었다면서 둘은 앙 숙이 되었다. 방금 전, 식당에서도 희숙이는 민이의 뒤에 앉아서 민이에 대한 너스레를 늘어 놓았다. 우리 반에 민이 있잖아. 걔, 할아버지가 국가 유공잔가 뭐거든 그래서 걔,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학교에 입학한 거야. 공부는 별로거든... 밥을 먹던 민이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교실로 향했고, 희숙이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교실에 따라와서까지 그 말을 계속했다. 책상에 엎 드려 울고 있는 민이에게 너무하다 싶어서 희숙아, 그만해. 민이 울잖아. 그 말을 듣고 민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가방을 싸 벌떡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래, 나 공부 못해. 나 같은 게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다 우 리 할아버지 덕분이야.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너희들이 싫다면 학교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고... 9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그리고 민이는 훌쩍 교실을 나가버렸다. 반 아이들도 너무나 놀라서 입 만 벌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민이는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 날 희숙이는 담임 선생님께 심한 꾸중을 들었던 모양이다. 종례를 마 치고 가방을 챙기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 민이네 집에 같이 안 갈래? 나는 희숙이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시선을 통해 사건의 개요를 대충 짐 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숙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직접 민 이의 집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 이다. 그러고 싶지만 나는 민이네 집을 모르는데? 선생님께서 약도를 그려 주셨어. 희숙이와 찾아 간 민이의 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요즘에도 이런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희숙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희숙이가 생각하 던 민이네 집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희숙이는 항상 명랑 한 얼굴에 교복도 말숙하게 빨아 입어서 모두들 부유한 집안의 딸로 이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희숙이와 내가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을 때, 골목 저 쪽에서 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다 왔어요. 되돌아 보았을 때, 나와 희숙이는 또 한 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민 이 할아버지가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쩔룩거리시고 있었고, 민이는 할아버 지를 부축하여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희 9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숙이는 국가 유공자라는 단어에 대해서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 었다. 그 공이 무엇인지 그의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 는지 솔직하게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민이는 할아버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한 쪽으로 쓰러질 듯이 몸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민이에게 기댄 할아버지는 못내 안쓰럽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민이야! 의외로 민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 것은 민이보다는 민이의 할아버지였다. 어이구, 민이의 친구들이니? 이리 이리 어서들 들어가자. 내가 곶감 한 개씩 줄게 할아버지는 힘든 발걸음을 재겨 놀리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셨다. 그 허둥대는 발걸음이 안쓰러워서 희숙이와 나는 할아버지를 옆에서 부 축하였다. 왜들 이러니? 됐다 됐어. 이 할애비도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동란 때는 90킬로짜리 포탄을 메고 산과 산 사이를 누비던 몸이야. 할아버지는 됐다는 우리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장독의 뚜껑을 열어 곶 감을 꺼내셨다. 어여들 먹어 어여들...그라고 우리 민이하고 친하게 지내야 혀. 동란 때 형제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것도 억울한디. 같은 반 친구들끼리 는 친하게 지내야지. 마치 할아버지는 우리들이 집을 찾아 온 내력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씀을 해 주셨다. 희숙이는 민이의 집에 도착하기 전 까지 짜증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제 그 표정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97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안다. 희숙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민이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고,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민 이는 그 흔한 학원 한 번 가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무엇 을 의미할까? 그런 상황에서도 공평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민이는 어린 나이 때부터 해왔던 것이다. 할아버 지가 들려주시는 6 25 참전 이야기는 그 날의 처참함을 깨닫게 해 주었 다. 그 뿐이 아니고, 할아버지의 한 쪽 다리가 얼마나 고결한 희생이었으 며,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인해서 현재의 우리들이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 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 주었다. 사실, 희숙이와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 부할 수 있는 모든 것도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목숨을 바치고, 신체의 일부를 바치며 조국을 위해 희생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 지는 극구 당신의 영웅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 하신다. 할아버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뭘, 그때 다리 한 짝을 잃어갖고. 민이 아범은 핵교도 제대로 못 댕기고 저렇게 막노동꾼이 되어 가지고... 할아버지! 민이가 급히 할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민이의 할아버지는 이 부분의 이 야기가 나오면 밤새 엉엉 우신다고 한다. 당신의 다리 한 쪽 잃은 것보다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한스럽다고 하신다. 민이의 집을 나오며, 희숙이가 민이를 살포시 안았다. 미안해...정말 미안해...정말 미안해...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희숙이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마 희숙이도 내 눈을 보며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과 신체의 9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일부를 바치신 그 숭고한 분들을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랜 세월 잊고 있었다 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되시는 그 분들이 조국을 위해 바친 희생에 비해, 조국이 그 분들에게 준 것은 처절한 가난의 되물림이라고 생각했을 때, 눈 가가 촉촉하게 젖어옴을 느꼈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흘러간 역사는 엄연히 현재의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우연도 아니며 인간의 노력에 의한 끊임없는 고 통과 희생의 댓가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끝없는 행복감은 누구 의 고통과 희생의 댓가인가?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발이 가볍다. 민이는 다음 날 학교에 등교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전날처럼... 9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이승우_우수상 / 서울 인하사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새벽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애매모호한 바탕화면의 시간, 춥진 않지만 아직 내 입 주위엔 하얀 김이 맴도는 시간,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 는 귀 따가운 알람시계 소리. 알람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면서 늦겨울 의 찬 공기가 느껴진다. 올 것이 왔구나 내 몸을 감싸던 따스한 이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곧이어 나를 잠에서 깨우시는 분이 계셨으니 그는 나의 소중한 아버지셨다. 매주 일요일이 되 면 무의식중에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등산 갈 준비를 마친다. 이젠 이런 생활은 나에게는 습관처럼 굳어졌다. 두 달 전만해도 고등학 교 3학년이라는 이유로 수면부족, 고3병 운운하며 온갖 핑계를 아버지께 말씀드리며 아침 일찍 등산을 하지 않으려고 꾀를 부렸던 나였지만, 이제 는 일요일에도 학교를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등산을 시작한 것이다. 집을 나와 산 입구를 향해 걸어 간 지도 20분이 넘게 흘렀다. 아버지 산에 오르기도 전에 지치겠습니다. 오늘은 왜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지 않는거죠? 나의 투정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계속 앞서 걸어 나가셨다. 10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우리집에서 산 입구까지의 거리는 약 4km, 보통 같으면 산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갔는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걸어가신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까? 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입구에는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많이 운집 해 있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등산하기 딱 좋구나! 언제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등산하기 전에 꼭 한마디씩 말씀하신다. 시계를 보니 정각 9시를 가리켰다. 자! 힘내서 정상까지 가자! 아버지의 출발 소리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매주 같은 산을 오르지만 아 버지는 남달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만을 선택하신다. 산을 올라 간 지 10분도 채 안되어 나는 그만 지쳐버렸다. 너무 힘에 부쳐 앉을 곳을 찾던 중 옆에 넓적하고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 다가가 앉아서 아버지께 조르듯 말했다. 아버지 좀 쉬었다 가죠. 너무 힘들어요. 내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아셨는지 좀처럼 쉬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셨다. 많이 힘드니? 그래도 우리는 지금 이 푸른 산하에서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 을 치르셨단다. 아버지의 말씀에 힘들고 지친 나의 몸에 용기가 솟아올랐다. 옛 선조들께서는 우리나라 땅을 지키려고 수많은 피를 흘리셨지만, 결 국 이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안타까운 분들도 많단다. 네 증조할아버 지 또한 그런 안타까운 분들 중 한 분이란다. 10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아버지께서는 내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어렸을때 자장가삼아 들 려주셨다. 친할아버지의 아버지되시는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시다 그만 옥살이를 하셨다는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한다. 증조할아버지 에 대해 궁금한 나머지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아버지께서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당연히 알고말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니?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지금의 북한에 위치한 황해도 연백이란다. 할아버 지는 1919년 3월 연백군 유곡면 영성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신 애국지사이셨단다. 할아버지께서 1921년 2 월에는 고향사람들과 3.1운동 기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시다 체포되어 가택 수색때 숨겨둔 태극기와 총기 등을 압수 당하셨단다.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흥 형무 소에서 옥고를 치르시고 3년뒤 나오셨는데 몸에 성한 부분을 찾을 수 없 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셨다고 하더구나. 결국 할아버지께선 시름시 름 앓다가 광복의 빛을 못보시고 황해도 연백에서 숨을 거두셨단다. 정말 안되셨지. 아버지의 말 끝이 흐려지셨다. 항상 역사책에서만 보아왔던 그런 일본 의 행패에 증조할아버지께서도 당하셨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한참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점심을 먹고, 나와 아버지는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앙상한 나무들 과 메마른 풀밭 사이를 지나자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니 어 두운 나무들의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밝은 햇살이 정상을 향해 10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비추었다. 아버지께서는 갈증을 느끼셨는지 물 한 통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벤치가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아버지, 외할아버지도 나라를 위해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신 적 이 있다고 들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좀 알려주세 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들은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역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6 25전쟁과 월남 전쟁에 참전하셨다는 말씀에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말씀드 렸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외할아버지도 정말 대단한 분이시지. 6 25전쟁때 참전하시고 월 남 전쟁에도 참전하신 예비역 육군 중령이시단다. 나도 네 어머니께 들은 거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집에 돌아오신 적이 거의 없으셨고 몸에는 총알이 스친 자국이 많이 있었다는 정도밖에는 모른단다. 외할아버지께 서는 나와 네 어머니가 결혼하기 2주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셨단다. 그래서 네 어머니는 아직도 결혼식 이야기만 하면 가끔 눈물을 보이시더 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기분이 우울해 졌다. 하늘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새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 산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다 누구 덕인줄 아느냐? 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국가 유공자들이 계셨기 때문 이란다. 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는데도 불구하 103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고, 결국 이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란다. 네가 밟고 있는 그 흙은 국가유공자들의 피와 살이란다. 얼마나 이 땅이 아름다운지 이제 알겠니? 아버지의 질문에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며, 국가유공자들에 대해서도 그냥 형식적인 대우를 했을 뿐 그분들에 대해 존경심과 고마움에 대해 생 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쑥스러운 마음에 물끄러미 땅바 닥만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잠시 깊은 생각을 하시는 듯이 입을 열지 않으셨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좀처럼 밝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분위기 가 계속 진행되고 빗방울이 하나 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집에 가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집에 가야겠어요.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그제서야 입을 여셨다. 승우야, 아까 말한 이 아버지의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겠니? 네, 아버지. 이제 알겠어요. 제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요.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조상님들이 노하셨나보구나.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라니. 하늘이 온통 흐린 탓에 내 마음도 덩달아 서서히 불안해지고 있었다. 아 버지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이 국가 유공자분들의 고마움을 모른단다. 안 10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타까운 일이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다 국가 유공자들 의 희생이 뒷받침이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나도 우리 할아버지께서 독립 운동을 안하셨다면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고 지냈을거다. 아니 아예 국가 유공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거야.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자 의 이익만을 챙기며 살아오느라 그들의 노력을 모르지. 너희 학교는 국가 유공자들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지만, 학생들은 귀찮아하고 웃어넘기는게 현실 아니니? 아버지의 말씀에 순간 가슴이 뜨끔하였다. 또 나는 현충일, 광복절 등 국경일에 내가 한 번도 태극기를 손수 달아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계 속 말씀하셨다. 이 한반도는 예전부터 다른나라의 침략과 전쟁이 빈번했던 곳이란다. 우리는 이 한반도를 지켜 나간 사람들, 그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역사를 지키고 보전해야한단다. 우리 땅, 우리 나라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도 곧 국가 유공자들의 노력과 희생을 아는 길이란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에 아버지와 내 옷이 흠뻑 젖었다. 정상에 있던 많 은 사람들은 서둘러 다 떠나고 없었다. 아버지와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누고 서야 결국 하산을 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그 어둠보다도 더욱 어두웠던 지난 날의 나의 의식을 머릿속에 되 새기며, 축축히 젖어 미끄러워진 잎들을 밟으며 내려오니 나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한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오늘 있었던 10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일을 곰곰이 되새기며 눈을 감고 반성했다. 반성하며 나는 값지고 중요한 것을 얻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이 땅을 밟을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 했던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이었음을 오 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와 멀지 않은 조상님께서 독립투사였고, 참전 용사였다는 것이 나의 가슴 한 구석에 애국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 깨워주었다. 내일 난 다시 그 분들이 먼저 새겼을지도 모르는 발자국을 따라 다시 걸 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피흘림으로 지켜주셨던 그 길을. 10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이현제_우수상 / 문산 제일고등학교 2학년 따사로운 봄 햇살이 유리창을 넘어 집안 구석까지 봄 향기를 퍼트린다. 얼어있던 대지도 한껏 봄기운을 머금으며 참았던 숨을 내쉬고, 겨울내 잠 자고 있던 작은 씨앗들도 빼족 말간 고개를 내밀고 햇살에 안긴다. 봄기운이 완연한 한가로운 주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갑 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봄 햇살의 미소에 홀렸는지, 파란 하늘을 이불 삼아 졸고 있는 전선 위의 새 한마리에게 끌렸는지,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산책을 하기로 하고 뒷산에 올라갔다. 산에 올라가 가득 봄기운을 만끽한 후 천천히 산등선을 따라 걸었다. 작 은 산에 안겨있는 우리 마을이기에 나는 어느새 마을 옆모습이 보이는 얕 은 언덕에 서있었다. 100년이 넘게 우리 마을을 지키고 있는 큰 은행나무 의 뿌리에 걸터앉자 때마침 아직은 조금 겨울 내음을 가지고 있는 바람이 다가왔다. 조용하고 나른하면서도 역동적인 봄, 그 봄에게 안겨 나는 살풋 잠이 들었다. 내가 문득 조금은 오래된 그 일이 떠오른 건 봄에 취해 나른 해진 나에게 봄바람이 가져다 준 기억의 단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른한 봄기운에 안긴 채 하얀 종이위로 기억의 조각을 새 겼다. 107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그건 그러니까 6년 전,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 교는 전교생이 100명이 조금 넘을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였다. 한 반 이라고 해봤자 20명이 채 안되었던 우리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 대 개 반 전체가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현장체험 학습을 중요시 하셨던 담 임선생님은 그런 우리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이곳저곳 체험 학습을 시키 셨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5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는 현충일을 앞두고 현충원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당시 나는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 다. 여름이 일찍 왔는지 햇빛은 뜨거웠고 간간히 부는 바람 또한 무더웠 다. 그 때의 나는 현충원, 자운서원 같은 곳보다 놀이공원이 더 반가운 나 이였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쩔수 없이 선생님의 손에 이 끌려 왔지만 다들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께 호되게 혼나고 나서야 겨우 투덜거림을 멈췄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 았다. 묘비에 국화꽃 한 송이라도 바치고 오라는 선생님의 엄명에 아이들 은 국화 한 송이씩을 사들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 또한 국화 한 송이를 들 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직접 관계있는 사람도 아니고 황금 같은 주말에 내가 뭐 하러 이 고생을 해야 되? 어휴, 덥고 귀찮은데 아무데다 꽂아두고 아이스크림 먹 으러 가야지. 아이스크림 생각에 더욱 모든 일이 귀찮아진 나는 아무데나 꽃을 두려 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할 머니 한 분이 묘비에 국화 한 송이를 꽂아두고 계셨다. 할머니의 종이 가 10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방엔 아직도 국화꽃이 많이 남아있었다.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스럽게 국화 꽃을 꼽고 기도를 드리는 그 모습은 어딘지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었 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할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은 그 할머니는 20송이가 넘게 국화꽃을 꽂아두고도 여전히 국 화꽃 꽂는 일을 계속하셨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는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할머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응?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지. 기억하는 일이요? 그래, 기억하는 일.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할머니는 내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그리곤 이내 국화꽃 꽂는 일을 계속하셨다. 기억하는 일 이란 게 무슨 뜻인지 궁 금했지만 진진하게 기도드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차마 다시 질문할 수 없었다. 이도저도 할 수 없이 나는 할머니 곁에서 묵묵히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은 말이야. 기도를 드리고 할머니의 국화꽃이 다 없어지자 나와 할머니는 큰 아름 드리 나무 아래 앉았다. 잠시 후 할머니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으신 채 말씀 하셨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잊혀지게 마련이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세월 이 가면 그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진단다. 할머니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시간을 주시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셨다. 이 곳에 누가 있는지 아니? 10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갑자기 바뀌어 버린 화제에 나는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아랑 곳 하지 않으시며 계속 말씀하셨다. 이곳엔 높은 관직의 장교도 있고 전쟁에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 유공자 들도 있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영광스런 사람이 있지. 그것은 이름이 잊 혀진 사람들 이란다. 다리가 아프네 라며 할머니는 잠시 무릎을 두드리시곤 다시 말문을 여 셨다. 6 25 전쟁 때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전적지가 되었지. 많은 사람들 이 목숨을 잃었단다. 내 남편도 6 25전쟁에 참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 했어. 아직도 눈 감으면 남편이 집을 나서던 그날의 그 모습이 눈앞에 선 하단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생사 여부도 모르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지. 할머니의 자글자글 주름진 눈가에 눈물 방울이 아롱거렸다. 내 남편은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는 거지. 이 늙은이는 그것이 슬펐단다. 그래서 내 남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었 지. 결국 나는 이렇게 그들을 잊지 않는 것 이것 하나만 지키고 있는 거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6 25를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닌 나 로서는 할머니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음성에서 간간히 베여나오는 슬픔의 향기는 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할머니 는 다시 빙그레 웃으시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 나가셨다. 나는 멀 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 뒤로 고고히 피어있는 국화꽃 한 송이를 보았다. 11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할머니께서 국화꽃을 나누는지 확인할 길 은 없지만 나는 왠지 아직도 이름없는 묘비에 할머니의 국화꽃이 놓여져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인데 뭐.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 숨 바쳤다는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나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 웃, 마을 그리고 삶을 위해서. 사람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진다고 했다. 아마 그들도 그런 이유가 아니였을까? 우리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소중한 미래의 일부 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조금은 오래된 그 시간속의 영 웅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그들이 흘린 피 만큼 붉은 정열과 용기를 본받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힘찬 새싹들을 보며 나는 오늘, 이름이 잊혀진 영웅 들에게 따사로운 봄 햇살 한 줌을 보내며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돌아본 은행나무는 봄바람을 품으며 햇살보다 더 투명하게 웃고 있었다. 11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태길_우수상 / 포항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3학년 무궁화는 아무리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어 꽃잎이 찢겨지고 줄기가 끊어질지라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깊숙이 뿌리 내린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비바람도 햇볕도 죽음도 두 렵지 않았다. 나는 이른 새벽에 꽃이 피고 저녁 무렵에 지는 무궁화가 조국을 수호하 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진 참전용사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무궁 화가 저녁에 질지라도 다음날이면 다시 우아하고 옅은 빛깔을 머금은 채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국수호 참전용사들도 적으로부터 무참히 짓밟히고, 온몸의 뼈마디가 깨어지고 흩어져 목숨을 잃는다 해도 다시 일어나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던 것이다. 만약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그들의 충성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없는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 우 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누리고 있는 사회적 혜택과 발전된 문화, 선 진국으로 도약하는 국제적 지위, 인간으로서 존중과 자유는 생각도 못했 을 것이다. 이만큼 그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이 현재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나는 아직도 충혼탑에 이르는 돌계단에 올라서서 보았던, 포항을 감싸 안고 있던 푸른바다를 잊지 못한다. 그때 바다의 모습은 마치 포항을 지키 려는 용감한 학도의용군처럼 의지와 용기가 강해보였기도 하거니와 어머 니의 모습처럼 따뜻하고 온화하였기 때문이다. 가을 소풍으로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왔던 나는 전에도 이곳에 와 봤던지라 처음에는 이런 딱딱하고 답답한 곳에 왜 또 와서 아까운 시간 을 허비해야 되나? 하고 여러 친구들과 나는 이리저리 불만이 많았다. 차라리 놀이공원이나 갔으면 이렇게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전시품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 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런 생각은 나라를 위해 싸운 그들의 애국심과 충 성심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학도의용군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학도의용군은 6 25 전쟁 당시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고 여린 손에 총을 쥐고 전쟁에 참전했던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이었 던 것이다. 붓 대신 총을 들어야만 했던 학도의용군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 던 충혼탑에 묵념을 하면서 그들에게 사죄의 말을 마음 속 깊이 되 뇌여 보았다. 군번도 계급도 받지 못하고 젊은 기백하나로 조국을 위해 싸워야 만 했던 학도의용군의 울려 퍼지는 함성과 적을 향해 나아가는 몸짓이 머 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지금 19살인 나보다 나이가 더 어리고 동급인 학도들이 어떻게 죽음이 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전쟁터로 향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당시 내 가 학도의용군의 단원이었다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마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그만 굴복해 버리고 도망쳤을 113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나는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얄팍한 지식을 가지 고 물질적 충족만을 위해서 공부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나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학도의용군의 정의로운 죽음이 무의미하게 남겨질 까봐 두렵기까지 한다. 나 역시 학도의용군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퇴색 시켜 놓은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끝이 없다. 학도의용군은 어리고 여린 무궁화 꽃봉우리였지만 그 애국심과 충성심 은 어느 조국수호 참전용사만큼이나 훌륭하고 의젓했다고 생각한다. 이 미 그들은 무궁화 꽃봉우리를 활짝 피었던 것이다. 학도 의용군의 정신이 스며있는 충혼탑이 아직도 내 뇌리 속에서 숨쉬 고 있는 건 그날 그렇게 장엄했던 충혼탑의 모습으로 봐선 이 세상에 없다 할지라도 조국을 지키려는 마음이 계속 남아있어서 인건 아닐까?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조국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많은 용사들을 위해 지금 남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과 애국심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 금의 실정은 어떠한가? 참전용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도 잘 이루어지 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청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거느리고 호화롭게 살고 있지만 정작 나라를 위해 몸 까지 내던진 조국수호 용사들의 후손들은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 는 사회적 약자로서 소외되어가는 현실에 직면되어있다. 무엇이 나라를 위해서 또 이들을 위해서 올바른 것인가? 처음에 잘못 끼운 첫 단추 하나 114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로 인해 국가 유공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맞보게 해야 하 는 것인가? 처음에 잘못 끼운 첫 단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들에 대 한 제도적 보장은 시급하다. 잘못된 단추가 제 자리로 놓기 위해서 노력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취한 행동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우 리는 대한민국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 이 보여준 애국심과 충성심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런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의 정신과 용기를 이어받아 지금 국민 모두가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에 반박하여 동쪽 끝의 작은 섬이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기상을 닮아 의연하고 호젓한 독도를 수호해 야 할 때가 온 것이다. 6 25전쟁 때부터 계속 독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 러낸 일본에 대항하여 우리 땅을 지킨 독도의용수비대의 꿋꿋한 의지를 본받아 독도를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과 배고픔을 물리치며 목숨을 걸어서 자신들의 가족과 자식을 버 리면서까지 독도를 지키려했던 의용수비대의 희생은 한반도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죽음의 고비를 맞으면서까지 독도에서 외로운 전쟁 을 치러야만 했던 그들의 희생의 가치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금까 지 독도를 내팽겨 치듯 하고 오늘날의 상황까지 이끌어버린 우리는 그들 의 희생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지난 3월 1일은 여태껏 한번도 태극기를 단 적이 없던 내가 그 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처음 내 손으로 대문에 태극기를 달았던 아주 뜻 깊은 날 이었다.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양새가 아주 부드럽기도 했지만 바람에 흩 115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날리는 태극기는 힘차 보였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은 한반도의 빛나는 불꽃이요, 한반도의 진정한 영 웅이다. 아무리 한반도의 운명에 큰 시련과 좌절이 닥쳐올지라도 한반도의 사람 들은 또 일어서고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무궁화의 타오르는 용기와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 그리 고 한없이 나라를 사랑하는 무궁화의 가슴이 한반도 사람들의 마음과 머 릿속에 고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116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이화정_장려상 /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나라 사랑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테야. 아직도 난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불렀던 노래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북적거리는 교실 안, 창가 옆 햇빛이 내려앉는 자리에 앉아있던 내 옆으 로 짝지인 미정이가 다가왔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막 들어왔는지 얼 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다음 시간은 음악이라며 책을 주섬주섬 꺼내 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나도 덩달아 책상 위에 음악책을 펼쳤다. 수업이 시작되고 또각또각 바른 소리를 내는 선생님의 오르간 리듬에 맞춰서 많 은 친구들과 사탕 같은 입술로 옹알옹알 부르던 동요가 바로 나는 자라 서 무엇이 될까요? 이다. 대한민국 초등학생이라면 모두 배웠을 테지만, 나와 미정 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동요가 되었다. 미정 이와 나의 인연은 어렸을 때부터, 아니 세상에 눈을 떴을 때부터일 지도 모른다. 어머님 두 분 모두 같은 산부인과에서 우리를 낳으셨으니 말 이다(비록 일자는 다르지만). 같은 동네친구였던 미정 이는 7살 때, 나와 같은 토끼 반에 입학하였고 함안초등학교, 함안여자중학교의 졸업식 사 진은 항상 우리 둘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산제일여고 2학년, 서로를 알 고 지낸지 18년째이지만 사실, 함께 지내온 시간으로 따지자면 10년도 안 117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1반이었던 이후로는 계속 반이 엇갈릴 때가 많 았고 심지어 중학교 3년 하고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한 번도 같은 반 이 된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반이야? 하며 실망도 많이 했지만 다시 다음 해 같은 반으로 배정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런 우리의 기다림이 하늘 까지 닿았는지 드디어 나와 미정이는 올해 같은 반에 배정받게 되었다. 나와 미정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꿈이다. 미정이와 난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될 거라고 습관처럼 말했 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미정이도 질세라 나도, 나도! 하면서 소리 치던 게 생각난다. 이렇게 우리에겐 서로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다른 친구 들보다 더 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정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에서 고귀 한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치셨고, 아버지는 민주운동에 앞장서시다가 많 은 부상과 오랜 감옥살이로 인해 다리 한 쪽을 쓰시지 못했다. 정말 집안 대대로 애국자 집안이란 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정이 또한 나라 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현충일만 되면 빠지지 않고 기념 행사에 참석했고, 삼일절에는 기념행사를 TV로 보느라 집 밖으로 나올 생 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삼일절에 미정이 집에 놀러 갔었다. 대문에 달 린 조기를 보고는 옷을 다시 바로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미정이 집에 놀 러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미정이네 가족은 엄숙한 분위기로 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러셨듯이 가족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거 같았다. 미정이는 항상 밝았다. 아버지가 다리가 그렇게 되시고 나서 어머니가 118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혼자서 가족을 이끌어 나가신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얼굴에 그늘을 내비 추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되셔서 매달 연금이 나온다고도 스치듯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미정이네는 조금 힘들 어 보였다. 어린 동생들이 둘이나 있는데, 어머니 혼자서 버시느라 집안일 에는 신경을 쓰실 겨를이 없어 미정이가 동생들을 다 돌보고 있다고 했다. 나도 동생이 둘인데, 아직 내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끙끙대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해져 있는 미정이는 예전과는 많 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몇 년 동안 오고가면서 인사만 나누고 얇은 농담만 주고받았으니, 미정이의 속사정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미정이의 성격 상 걱정시킬까봐 남들에게 말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런 데 이번에 같은 반이 되면서 어렵사리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씩 듣게 되었 고, 이제는 제법 미정이의 고민상담은 내가 전담할 정도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직 서로를 몰라 어색해할 때, 선생님이 나의 꿈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친구들의 꿈 중 에서 의사, 변호사, 간호사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건 역시 선생님이었다. 언제부턴가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뜨면서 너도 나도 교사가 되겠 다고 진로를 바꾸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회에서 당초 순수한 취지로 선 생님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미정이와 나도 선생님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 미정이도 꿈이 교사니? 미정이는 좋겠다. 국가유공자는 10% 가 산점이 더 있으니깐 말이야. 다른 친구들보다 선생님 되기 쉬울 거야. 그때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가유공자 가산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는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내 친구가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신기해 119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서라고 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선생님의 그 말이 있으신 이후부터는 우리 교실의 주된 이슈는 국가유공자 가산점 에 대해서였다. 입시의 불길이 발등에 떨어지니 더욱 민감한 모양이었다. 80점만 받아도 쟤는 90점으로 된다며? 진짜? 완전 거저 주는 거네! 공무원 중에 반 이상은 다 국가유공자래. 자기가 애국자도 아니면서 가산점은 왜 준다고 그래? 미정이가 교실에서 모른척하며 들어야 했던 얘기는 대충 이런 이야기였 다. 나와 같이 다니면서도 이런 말을 여럿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 거리는 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몇 번 괜찮으냐고 넌지시 물어 봤었는데 그때마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미정이가 난 너무 안쓰러 웠다. 뒤에 들어보니,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중학교 때도 국 가유공자의 자녀라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자유롭게 지원을 할 수 있어서 친구들의 시기를 샀었다고 한다. 같은 반이 아니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전혀 알지를 못했다. 그렇게 반에서 점점 미정이는 소외되어 가는 듯 했다. 일주일 쯤 지난 사회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토론시간을 가져보라고 말씀하셨다. 주제를 뭘로 정할까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난 국가유공자 가 산점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주 셨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난 미정이에 관한, 크게 말해 국가유공자에 관한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국가 유공 자 혜택에 관해 찬성하는 사람은 나와 미정이를 포함해서 고작 다섯 명뿐 이었다. 나머지 30명은 모두 반대를 한다고 손을 들었다. 너무 황당하고 120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

수필 중 고등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지만, 미정이를 봐서라도 흔들리지 않으 려고 애썼다. 첫 번째 친구가 말하기를, 국가유공자라고해서 매달 연금에, 여러 가지 혜택까지 누리는 건 불공평하다는 내용이었다. 미정이와 난 그런 이야기 가 나올 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들으니 또 울컥한 모양이었다. 말을 꺼 내지 못하는 미정이를 대신해서 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 해주신 분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목숨을 담보로 나라 를 위해 싸운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한 그 이 상의 용기와 다짐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다짐을 하신 분 들에게 고작 배당 된 보조금으로 그 넋을 위로한다는 것 자체가 전 너무 죄송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어려 있는 피를 조금이라도 아 시는 분이라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분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결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조금 술렁거리더니, 두 번째 친구가 국가유공자의 혜택을 비판하는 것 이 아니라, 그 가족까지 혜택을 보는 것에 불평등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건 미정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미정이의 얼굴을 보기 가 가슴 아팠다.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유공자 분들 중에서는 지금 이생에 명을 다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런 분들이 혈혈단신이셨을 것 같습니까? 분명히 아 닐 것입니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셨을 겁니다. 하루 아침에 가정의 가장이 사라진 가정의 모습은 어떨까요? 슬프다 못해 참담할 것입니다. 그런 가정과 보통 가정이 같은 대우를 받는 단 자체가 모순입니다. 헌법에 121 푸른 바람이 되어

수필 중 고등부 도 국가유공자 등의 근로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한다고 나와 있 습니다. 그런데 국가유공자 가산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도 첫 자녀 만 해당할뿐더러 그 범위가 2세대를 넘기지 않습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불공평하다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한동안 교실은 조용했다. 그러자 어떤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하 는 것이었다. 전적으로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또 그 혜택을 받는 것 또한 정당하 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유공자 가산점의 경우만은 예외입니다. 10%가 입니까? 소수점 하나에 시험의 당락이 결정되는 데 10점은 너무 터무니없는 점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 또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한 애였다. 나와 미정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엷게 미소를 짓는 미정이에게 나도 엷게 웃어보였다. 선생님이 발언하지 않을 거냐고 물어오셨다. 난 다 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국가유공자 가산점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취업 시험도 그렇고 특히 공무원 시험 때문에 더 가산점에 대해서 사회 많은 사 람들이 민감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시험에 가산점을 주 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정고시, 사법고시와 자격증 시 험에는 가산점이 적용되지 않더군요. 회사 입사 시험에서는 가산점을 받 아서 합격 라인에 들어가더라도 국가유공자 취업의 비율이 정해져 있으 므로 모두 합격될 수도 없습니다. 교사 임용시험에 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것 또한 무한히 불공평한 것은 아닙니다. 10%의 가산점으로 받고 합격 할 수 있을 정도면 시험 성적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아까 그 친구가 다시 일어나 여전히 임용 고시에서의 불공평을 언급했 122 국가보훈처 _ www.mpv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