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I. 서 론 비 전시( 非 戰 時 )에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권유린 상황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정치범 수 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해체 는



Similar documents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¾Æµ¿ÇÐ´ë º»¹®.hwp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012~031)223교과(교)2-1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37322DC0CEB1C7BAB8C8A3BCF6BBE7C1D8C4A2C0C7B0DFC7A5B8ED5B315D2E687770>

- 2 -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제9회_북한인권_자료집[1]1.hwp

<B1DDC0B6B1E2B0FCB0FAC0CEC5CDB3DDB0B3C0CEC1A4BAB82E687770>

<B1B9C8B8C0D4B9FDC1B6BBE7C3B3BAB85F BB0DCBFEFC8A35B315D2E706466>


2 주제 2013 년북한인권백서에나타난생명권침해현황 - 사법적집행을중심으로 발표 : 김인성북한인권정보센터연구원 ( 북한인권기록보존소 )

³»Áö_10-6

#7단원 1(252~269)교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152*220

(중등용1)1~27

현안과과제_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_ hwp

ok.

01¸é¼öÁ¤

33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문 * 웅 입주자격소득초과 34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송 * 호 입주자격소득초과 35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나 * 하 입주자격소득초과 36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최 * 재 입주자격소득초

레이아웃 1

....pdf..

ePapyrus PDF Document


º´¹«Ã»Ã¥-»ç³ªÀÌ·Î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이 피해자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공사대금을 지 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으므로 피고인에게 사기죄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 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어 부당하다. 나. 양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법률 제9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도시정비법 이라 한다) 제4조 제1항, 제3항은 시 도지사 또는 대도시의 시장이 정비구 역을 지정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제외한

<322D BACFC7D1C0CEB1C7B9E9C3D6C1BE5B315D2E687770>

DocHdl2OnPREPRESStmpTarget

* pb61۲õðÀÚÀ̳ʸ

CR hwp

5 291

allinpdf.com

기본소득문답2

휴일.hwp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178È£pdf


¹é¹üȸº¸ 24È£ Ãâ·Â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 함선주, 김 영은는 삼성에스디아이(SDI)주식회사(이하 삼성SDI'라고 함)의 협력업체인 영 회사 소속 근로자였고, 피고인 강용환는 또 다른 협력업체인 명운전자 주식회사 소 였다. 삼성SDI는 세계 디스플

2002report hwp

<C5EBC0CFBFACB1B8BFF85FBACFC7D1C0CEB1C7B9E9BCAD B1B9B9AE295FB3BBC1F65FC3D6C1BE5FC0A5BFEB BCF6C1A4292E687770>

ad hwp

º»ÀÛ¾÷-1

나하나로 5호

년 2 월 1 1일에 모 스 크 바 에 서 서명된 북 태 평양 소하 성어족자 원보존협약 (이하 협약 이라 한다) 제8조 1항에는 북태평양소하성어류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 한다)를 설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8조 16항에는 위원회가 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


2003report hwp

피해자식별PDF용 0502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CC hwp

ºñ»óÀå±â¾÷ ¿ì¸®»çÁÖÁ¦µµ °³¼±¹æ¾È.hwp

Çѹ̿ìÈ£-197È£

5권심층-양화1리-1~172

hwp

*5£00̽ÅÈ�

GB AV2š

(명, 건 ) 테러공격 발생건수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ITFGc03ÖÁ¾š

2016년 신호등 3월호 내지A.indd

hwp

untitled

연구노트

2016년 신호등 1월호 내지(1219).indd

Red Dot Award: Communication Design 에 참 하기 결정해 주셔서 기쁩니다. "성공을 위한 안내서"는 등 절 에 대해 안내 니다. 지체 말고 언 든지 연 해 주 오. Red Dot 은 등 절 또는 등 후 절 를 기꺼 와드 겠습니다. 01 Int

성인지통계

단양군지

2015년9월도서관웹용

Jkafm093.hwp

1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수일고등학교 윤 상 2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구성고등학교 류 우 3 [2]2018개방실험-학생2기[

coverbacktong최종spread

!¾Ú³×¼öÁ¤26ÀÏ

03 ¸ñÂ÷

북한인권백서 2001 통일연구원

<BFA9BCBABFACB1B8BAB8B0EDBCAD28C6EDC1FD292E687770>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141018_m

»êÇÐ-150È£

È޴ϵåA4±â¼Û

Á¦190È£(0825).hwp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3131BFF9C8A32E687770>

歯이

2016년 신호등 4월호 내지A.indd

Çʸ§-¾÷¹«Æí¶÷.hwp.hwp

북한 정치범 수용소

p529~802 Á¦5Àå-¼º¸í,Ç×ÀÇ

ps

60

2ÀåÀÛ¾÷

Transcription: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2011년 4월:103~131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 허 만 호* <국문초록> 북한에는 다양한 종류의 집단수용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유린은 정치 범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 종교나 의사 및 표현의 자유와 같이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허용되 어 있는 기본적 권리들도 북한 주민이 누리려 하면 일탈( 逸 脫 )로 간주된다. 이는 북한당국 이 체제의 안전과 시스템의 유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체제 인사나 시스템 비판 자, 종교인,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 된 월경 탈북자들과 같은 일탈 추정자들은 체포, 예심 및 수감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극단적인 고문과 다양한 형태의 비인격적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인권침해들은 제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 어지지만, 많은 경우 가해자들(inflictors)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국 내 구제절차가 작동하지 않아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본 연구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관련하여 자행되는 각종 인권유린들을 로마규약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과 북한 국내법에 따라 분석하였다. 북한의 인권상황을 규정하는 국제 및 국내 규범들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범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정치적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 규범들이 지켜 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성을 고려하면 사안 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래 서 개별 사안 해결이 모여 일반적 구속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인권의식 결여가 북한에서의 인권신장에 가장 큰 장애인 점을 고려하여 인권 교육과 확 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이 정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그 단체들 이 제공하는 인권교육 프로그램과 교재 및 안내서들을 북한주민들이 접근 할 수 있도록 북 한정부에 강력히 촉구해야 된다. 주제어:정치범 수용소, 부메랑 효과, 특별독재대상구역,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인도 에 반한 죄 *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Mail: mhheo@knu.ac.kr - 103-

2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I. 서 론 비 전시( 非 戰 時 )에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권유린 상황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정치범 수 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해체 는 북한정부의 인권정책 변화뿐만 아니라 개혁 개방과 대남정책의 변화를 통해 바 람직한 통일의 동반자로 북한이 거듭난 것 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잣대다. 통일의 한 주체로서 남한 정부와 국민들 은 이 문제에 대해 당연히 관심을 갖고 개 선책을 마련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대북 유 화정책에 편승하여 혹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관심이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인권 억압국가의 인권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근 본적인 대책은 국제인권규범에 저촉되는 구체적 사실들을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압박을 가하여 스스로의 말에 스 스로 굴복하게 하는 부메랑 효과 (Thomas Risse 외, 1999: 17-19)에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고려하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은 지속적으로 부각 시켜야 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와 수용인원 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그간 반북한( 反 北 韓 ) 선전 차원에서 과장되어 온 것이 아 니냐? 는 의구심을 갖는 인사와 단체들이 있다. 공개된 정보는 소수의 탈북자들이 증 언한 것이 전부이고, 특별독재대상구역 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한정 되어 있어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 다. 1) 그런데 필자는 베트남의 경우가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남부 해방 후 북화정책 을 실시하면서 40만 80만 명을 노동개조장 (Trai Cai Tao Lao Dong, 再 開 導 勞 動 )으로 보냈다. 물론 팜 반 동(Pham Van Dong)은 1977년 4월에 겨우 50,000명만이 노동개조장 에 수용되어 있 다고 언급했었다(Kotek et Rigoulot, 2000: 657).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의 대북정책 속 에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고 새로 운 정보 제공도 부족했던 가운데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신동혁 씨야 말로 자신의 존 재를 통해 살아 있는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신동혁, 2007). 그는 1982년에 특별독재 1) 현재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초기모습에 대해서는 대규모의 정치범 교화소로 추정되는 사리원 수용소에 대한 알리 라메다(Ali Lameda, Amnesty International Index: ASA 24/02/79)의 증언이 유일하다. 15호 관리소(요 덕수용소)에 대해서는 그간 비교적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나 출소가 가능한 혁명화구역 이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줄어들면서 최근 정보는 얻기 힘들게 되었다. 22호 관리소 경비원 출신 최종철 씨가 이 수용소에 대해 극히 제한된 증언을 했으며, 13, 22, 26호 관리소에서 경비대 운전병을 지냈던 안명철(1995) 씨는 특별독재대상구역 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아울러 탈출과정에 대해 의구심을 사고 있는 김 용( 월간조선, 2000/5) 씨 또한 14호, 18호 관리소에 대해 많은 증언을 했다. - 104-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3 대상구역 인 개천 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나 2005년에 탈북 할 때까지 수용소에 억류되 어 있었으며, 그의 경험담과 목격담은 안명 철 씨와 김용 씨의 진술 내용을 확인시켜 준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 한 물증이 부족하지만 탈북자들에 대해 정 교한 인터뷰 조사와 교차분석을 통해 많은 정보를 획득 검증함으로써 이를 어느 정 도 만회할 수 있다. 물증이 부족하다고 사 실 전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부정하는 것 은 북한의 위정자들이 인권유린에 대한 정 보 유출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해 더욱 인 권을 유린하는 악순환에 일조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나치정부가 자행 한 만행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알려진 것은 2장의 사진을 통해서다. 외부 세계에 서는 의아해 했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사실 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정치범 집단수용소와 관련된 인권유린 실 태를 정리하여 국제인권법으로 조명해 보 고,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다면 세 가지 차원에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정치범 수용소가 김일성의 권력투 쟁의 맥락에서 탄생하여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 세습과 권력 강화를 위해 운영되고 있 다는 측면에서 정치범 수용소의 탄생배경 과 성격, 수감 대상자들과 관련하여 국제규 범들을 살펴보아야 될 것이다. 둘째, 정치범 수용소 수감 시 절차의 비 법성 즉, 죄형법정주의 부정, 연좌제 외에 적법한 수감절차 생략 등의 문제를 지적해 야 될 것이다. 셋째, 수감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고문 등의 폭력성과 비인격적 대우, 수감된 뒤의 각종 인권유린 등에 대해서 관련 국제규범 들을 살펴보아야 될 것이다. 정치적 이유로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 는 것은 유엔헌장의 인권관련 규정들과 세 계인권선언 및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 한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 한 정치범 수용소의 경우, 이런 일반규범들 에 대한 일탈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 하다. 보다 적확( 的 確 )한 규범적 일탈을 지 적하기 위해서는 1998년 7월 17일에 체결 되어 2002년 7월 1일에 발효된 국제형사 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제7조, 인도에 반한 죄 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 다. 2) 2) 로마규정 7조에 의하면,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라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 부로서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다음의 행위를 범하면 인도에 반한 죄 를 범하는 것이다. 살해, 절멸, 노예화, 주민의 추방 또는 강제이주, 국제법의 근본원칙을 위반한 구금 또는 다른 심각한 신체적 자유의 박탈, - 105-

4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그런데 북한은 로마규정 의 당사국이 아 닐 뿐만 아니라 2002년 7월 이전에 자행한 정치범 수용소 관련 인권유린들에 이 규정 을 적용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북한이 이미 가입한 국제인권규 범들에 따라서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아울 러 북한정부는 여느 인권억압국가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제인권규범들의 효력이 국 제관할권을 갖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 므로 북한 국내규범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보다 효과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이다. II.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형성 과정 북한의 집단수용소로 여섯 곳의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 외에 서방세계의 감옥에 해 당하는 노동교양소와 교화소가 있다. 그리 고 집결소, 노동단련대 등과 같이 단기간 수용되는 강제노동소 외에 식량사정 악화 로 급격히 늘어난 유랑 걸식인들을 수용 하는 시설 등이 있다. 물론 군( 軍 ) 내의 정 치범들을 수용하는 뚝섬 과 같은 특수 집 단수용소도 있는 것으로 최근에 탈북자들 은 증언하고 있다(대한변협, 2010: 89). 그 런데 뚝섬 을 제외하면 북한주민들의 인권 을 가장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는 곳은 정치 범 수용소이다. 3) 1. 정치적 탄압을 위한 수용소의 탄생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해방 직후부터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4) 그런데 오늘날의 강 제수용소 모습으로 변해 간 과정에 대해서 다소 다른 설명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 적하는 사실은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투쟁 과 계급정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문, 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강제임신, 강제불임, 또는 이에 상당하는 기타 중대한 성폭력, 이 항에 규 정된 어떠한 행위나 재판소 관할범죄와 관련하여, 정치적 인종적 국민적 민족적 문화적 및 종교적 사 유, 성별 또는 어떠한 동일시 될 수 있는 집단이나 집합체에 대한 박해, 사람들의 강제실종, 인종차별범죄, 신 체 또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대하여 중대한 고통이나 심각한 피해를 고의적으로 야기하는 유사한 성격의 다른 비인도적 행위. 여기서 절멸 은 주민의 일부를 말살하기 위하여 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 박탈과 같이 생활조건에 대한 고의적 타격을 말한다. 박해 는 집단 또는 집합체와의 동일성을 이유로 의도적이고 심각한 기본권의 박탈을 말한다. 사람들의 강제실종 이라 함은 국가 또는 정치조직에 의하여 또는 이들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을 받 아 사람들을 체포 구금 또는 유괴한 후에 그들을 법의 보호로부터 장기간 배제시키려는 의도 하에 그러한 자 유의 박탈을 인정하기를 거절하거나 또는 그들의 운명이나 행방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것을 말한다. 3) 이를 북한당국은 호 관리소 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고, 주민들은 특별독재대상구역, 정치범 집단수용 소, 유배소, 종파굴, 이주구역 등으로 부르고 있다(최의철 외, 1998: 106). 4) 6 25전쟁 당시 미국 국무부가 노획한 북한의 한 문서에 따르면 1947년 10월에 이미 17개소의 특별노무자수 용소 가 있었다( 萩 原 遼, 1996). 그런데 이 수용소들의 수감자는 소장의 허가를 받으면 가족과 면회도 할 수 있고, 영화 관람을 위해 외출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허만호, 2009: 229). 따라서 이 특별노무자수용소 는 현재의 정치범 수용소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 106-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5 먼저, 탈북자 김용 씨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가 운영하는 정치범 관리소 는 1972년에 당시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의 발의와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 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김용삼, 2000). 이는 로마규정 제7조 상 의 절멸 에 해당된다. 그리고 김용 씨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초기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1968년에 황해남 북도의 군사분계선 주변지역 즉, 개성, 금천, 용연, 장연, 안악, 은율, 취하, 장풍, 개풍, 판문 등지에 거주하 던 월남자 가족과 6 25전쟁 당시 치안대 가 담자, 한국군과 미군에 협조한 자, 지주, 친 일파 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북쪽의 주민 들과 거주지역을 교환한다면서 화차에 실 어서 12곳의 험준한 산악지역에 설정해 놓 은 특수구역으로 대대적으로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 외부와의 접촉은 물론 서신 거래도 못하게 하는 등 사회와 완전히 차단시켰다는 것이다(허만호, 2009: 229). 이와 같은 조치들은 로마규정 제7조 상의 주민의 추방 또는 강제이주 와 동일시 될 수 있는 집단이나 집합체에 대한 박해 및 사람들을 체포 구금 또는 유괴한 후, 그들 의 운명이나 행방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 절하는 사람들의 강제실종 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조치들이 1966년 4월에 실시한 주민들의 사상조사, 즉 주민재등록사업 과 1967년 5월에 유일사상체계 를 노동당의 공식노선으로 채택한 뒤에 취해졌으므로 로마규정 제7조 상의 국가나 조직의 정책 에 따라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행해진 인도에 반한 죄 를 범한 것이 된다. 그런데 그 무렵에는 수용소의 형태를 아 직 완전히 갖춘 것이 아니었고, 수감자 관 리와 시설 운영은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 성) 안전과가 담당했다. 격리 수용된 사람 들 중에서 본인에 한해 죄가 엄중하다고 분 류된 사람들은 개천교화소와 청진에 있는 수성교화소를 정치범 교화소로 개조하여 별도로 수용한 것이 정치범 수용소의 시작 이라고 외부세계에서는 보고 있다(허만호, 2009: 229). 그러나 전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와 탈북자 강철환 씨는 정치범 수용소의 시원 ( 始 原 )을 이보다 더 앞선 시기로 보고 있다. 황장엽 씨는 통제구역 이 1956년 8월 종 파사건 에서 유래되며, 처음에는 종파분자 만 보내다가 나중에는 정치범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김일성이 종파분자 들의 가족들을 산간벽지로 격리시켜 살게 하라 고 해서 1958년 말에 평남 북창군 소 재 득장 탄광지역에 최초로 통제구역 이 설치되었다고 황 씨는 진술하였다(최의철 외, 1998: 107). 강철환 씨는 자신이 요덕수 용소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함경남도 요덕 - 107-

6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군에는 1959년 이전에 이미 강제수용소의 일부분이 건설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요덕군의 비옥한 지역에는 원주민( 原 住 民 ) 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시기부터 타지 ( 他 地 )에서 추방당해 온 사람들이 원주민들 과 섞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1959년경부터 원주민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시작되어 1964 년경에는 완료되었다는 것이다(강철환, 2003/9/28). 이런 조치는 1958년 연말에 시 작되어 2년간 계속된 중앙당 집중지도사 업 과 깊은 연관이 있고, 이런 맥락에서 요 덕수용소가 탄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은 조치들은 시점 상 로마규정 이 채택되 기 이전에 취해졌지만 내용과 성격은 전술 한 바와 같이 인도에 반한 죄 에 해당된다. 그런데 김일성이 1968년에 관리소 안에 서 계급의 원수들이 폭동을 번번이 일으킨 다면 군대를 배치해서 다시는 폭동을 일으 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고 교시를 내렸던 것으로 봐서 1968년 이후에 각 경비소에 군 대(경비대)가 배치되어 오늘날의 수용소 형 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허만호, 2009: 230). 따라서 1968년 내지 1969년경을 오 늘날의 정치범 수용소의 시원으로 볼 수 있 을 것 같다. 그 후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에서 김정 일이 당권을 장악한 후에 권력세습 반대자 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15,000여 명을 특별 독재대상구역 에 수감하였으며, 중 동부 유럽에서 공산주의체제들이 붕괴되자 1990 년대에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특별독재 대상구역 이 확대 개편되었다고 한다. 그 래서 1997년경부터 평남 개천, 함남 요덕, 함북 회령 청진 등지에 약 20만 명을 수감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최의철 외, 1998: 108: 대한변협, 2010: 430). 이와 같은 집단적 체계적 지속적인 인 권유린들은 명백히 로마규정 을 위반하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로마규정 을 적용하는 데 2002년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는 시점 상 의 문제가 있고, 그 후의 행위들에 대해서 도 북한이 가입국이 아니므로 유엔 안전보 장이사회의 결의를 얻어 내야 하는 현실적 인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북한이 1981년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 제규약 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 제규약 에 각각 가입하였고, 집단살해범죄 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에 1989년에 가입하였으며,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에 1990년에 가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1년 에는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에도 가입하였다. 따라서 북한정부가 이 국제인권규범들의 해당 규정들을 위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부메랑 효과 를 기대할 수 있다. 2. 정치범 수용소의 종류와 변화 북한당국이 1990년대에 들어 기존의 정 치범 수용소 12개소를 통폐합하여 현재까 - 108-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7 지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하는 5개소와 인 민보안성이 관리하는 1개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집단수용소들은 대부분 피수용인들이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종신 수용되는 완전통제구역 (특별독재대상구 역)이나, 15호 요덕수용소의 일부지역과 18 호 수용소는 피수용인들이 공민권을 유지 하며 일정한 형기를 마친 후 출소 할 수 있 는 혁명화구역 (혁명화대상구역)이다(통일 원, 1994: 65-66; 대한변협, 2010: 431-433). 먼저, 14호 관리소는 평안남도 개천군 보 봉리와 외동리에 위치하며, 280km 2 정도의 크기에 약 5만 명이 수용되어 있다. 이 관리 소 내에서 태어나 자란 신동혁 씨는 이 수 용소가 1983년에 이전하기 전에는 평안남 도 개천과 봉창을 포함한 지역에 위치했다 고 진술한다(신동혁, 2007: 34). 1950년대 말 1960년대 말 사이에 김일성 체제에 반 대했던 당 정 군의 고위관료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 한국에 1999년 12월에 입국한 탈북자 김 용 씨의 경우를 보면, 간첩죄로 처형된 사 람들의 가족도 수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용 씨는 아버지가 1957년에 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뒤에 호적을 위조하여 전쟁고아로 신분위조를 했다가 뒤늦게 발각되어 1993 년 5월에 수용된 경우이다. 당시 14호 관리 소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 다고 한다(김용삼, 2000). 신동혁 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 수용소는 본 마을과 5개 골안(골짜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수용되면 주로 4, 5호 골안에 수용되어 독신생활을 하다가 일을 잘 하면 1, 2, 3호 골안으로 옮겨져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은 못해도 결혼하여 아이도 낳을 수 있 으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한 다. 4, 5호 골안 피수용인들은 골 밖으로 나 올 수 없어서 아이들은 학교도 다닐 수 없 다고 한다. 신동혁 씨는 자신이 2005년 1월 에 탈출할 때까지 골안으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은 많이 보았어도 방면되어 나가는 사 람은 못 보았다고 한다(신동혁, 2007: 34-44). 15호 관리소는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 하며, 약 460km 2 의 면적에 5만 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 피수용인들은 주로 월남자 가족, 지주 및 자본가 가족, 재일교포 가족 중에서 당과 국가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사 람들이다. 그런데 이 수용소에는 당 정 군에서 혁명화 대상자로 분류된 사람들도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이 혁명화 대상자들 은 공민권을 유지한 채 수용되며,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석방되는 사람들로서 비 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관리소는 강철환 씨가 1977년부터 1987년 까지 수감되어 있던 곳으로 1992년에 탈북 해서 한국에 온 이후 탈북자 안혁 씨와 함 께 그 실상을 외부에 알려 왔다.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 109-

8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요덕수용소의 혁명화구역에서 출소한 탈북 자들도 잇달아 입국하고 있어 비교적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함경남도 화성군 고창리에 위치한 16호 관리소는 아직까지 그 규모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만 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 전 부 주석 김동규의 경우처럼, 1970년대 1980 년대 초 사이에 김정일 후계체제 형성과정 에서 이에 반대하여 반당 반혁명 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허만 호, 2009: 232). 함경북도 회령시에 위치한 22호 관리소 는 그 크기가 중봉리, 굴산리, 행영리, 락생 리, 사을리, 남석리 등에 걸쳐 약 650km 2 에 이르며, 5만 여 명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용소는 1974년에 설립되 었는데, 일제시대 지주, 순사, 자본가, 기생, 종교인, 월남자 가족, 종파분자 가족, 유일 체제 반대자 가족, 치안대 가담자 가족이 수감되어 있다. 그래서 25세 45세가 70% 를 차지하고, 남녀 성비도 4:6정도가 된다 고 한다(대한변협, 2010: 431; Lakin, 2002: 14-16). 5) 25호 관리소로도 불리는 청진시 수성 정 치범 교화소는 청진시 수남구역에 위치하 며, 약 3천명이 수용되어 있다. 여기에는 평 양에서 추방된 인사들의 가족, 종교지도자 가족, 재일교포 가족 등으로 국가 사회체 제에 반항했거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수 용되어 있다. 그 실례로 과거 재일교포 출 신 강회택 씨의 가족이 수용되기도 했으며, 황해남도의 목사와 장로들의 가족이 수용 되어 있다고 한다. 인민보안성(구 사회안전부)에 소속된 18 호 관리소는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리에 위 치하며, 2만 5천 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 이 수용소는 1983년에 14호 관리소가 대동 강 북쪽으로 옮겨 가면서 그 자리에 생긴 것이다. 여기에는 월남자 가족, 종교인 가 족, 상습범죄자 가족, 혁명화 대상자들이 수 용된다. 이들은 의사( 醫 師 ) 황순일의 경우 처럼, 사회제도에 불만과 불평을 토로하다 가 억류된 사람들로서 공민권은 유지하며, 일정 기간 수용된 뒤에는 사회에 환원된다 고 한다. 그런데 이 18호 관리소의 최근 변화에 대 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15호 요덕 관 리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완전통제 구역 으로 전환되었다. 혁명화구역 의 규모 가 줄어든 것은 가족연좌제에 의해 가족 전 체가 수감됐던 과거와 달리 당사자만이 수 감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북한 위정자들 의 인권의식이 신장된 결과라기보다는 경 제난과 극심한 식량난으로 사회질서가 과 5)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일반인들이 아무런 실증자료를 접하지 못했던 2002년에 22호 정치범 수용소의 일부인 행영지구와 중봉지구가 위성사진으로 J. 라킨(John Lakin) 기자에 의해 처음 공개되었다. - 110-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9 거처럼 유지되기 힘들어졌고,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 이들을 모두 과거처럼 엄하게 처 벌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봐야 될 것이다. 15호 관리소의 경우 1987년 이전에는 요 덕군 구읍리, 립석리, 대숙리를 포함해 수용 소 면적 절반 정도가 혁명화구역 이었고, 벼농사가 가능한 평야지대인 룡평리, 평전 리가 완전통제구역 이었다. 그러나 1987년 경 구읍리, 립석리 혁명화구역이 완전통제 구역으로 전환되면서 이 지역에 수감되어 있던 가족세대는 15호 관리소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숙리로 옮겨졌다. 그래서 수용소 의 80%가 완전통제구역 으로 변하고 대숙 리만이 혁명화구역으로 남았다(강철환, 2001/ 11/06).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다시 혁명화구 역의 가족세대가 완전통제구역으로 옮겨가 거나 대거 출소하게 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1995년에 출소한 이영희 씨(가명, 증언 당 시 38세)의 진술에 따르면 혁명화구역의 수 감자들은 1987년부터 꾸준히 풀려나기 시 작했는데, 일본에서 온 북송교포 세대가 먼 저 나가고 일반 세대도 점차 풀려났다고 한 다. 강철환 씨도 기억하고 있는 수감자들로, 1984년에 일본에서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북 한을 방문했다가 아들 딸과 함께 수용소 에 수감됐던 이춘옥 씨 가족은 출소해서 함 남 고원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그러나 20년 이상 장기 수용돼 관리소 고정재산 으로 불리던 북송교포 김대인 씨 가족과 박순옥 씨 가족은 다시 완전통제구 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들처럼 악질반 동 으로 분류된 가족세대는 완전통제구역 출처: 강철환, 2001/11/06 [그림 1] 15호 관리소의 변화 - 111-

10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관리소 측은 이 들을 사회로 내보낸다고 안심시킨 후에 사 람과 짐을 국가안전보위부 트럭에 싣고 이 동시켜버렸다고 한다. 여기에는 재독( 在 獨 ) 학자 송두율 교수의 권유로 가족과 함께 북 한에 들어갔다가 북한 대표단의 유럽 방문 시 통역원으로 다시 유럽으로 나온 후 탈출 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오길남 씨의 부인인 신숙자 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이 포함돼 있 다고 한다. 그리고 최초의 김일성 전용기 조종사였다가 1978년에 곁가지사건(김정 일의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권력투쟁 사건) 으로 수용됐던 김형락 씨와 그의 아들 딸, 그리고 1978년에 월남한 이영선 씨의 부모 형제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혁명화구역에 남게 된 800 1,000명가량 의 독신자들은 대부분 해외파견자, 북한 내 외에서 체포된 탈북미수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치범 수용소의 종류와 성 격, 수감 대상자들을 놓고 보면 재론의 여 지가 없이 로마규정 7조 상의 절멸, 박 해, 사람들의 강제실종 에 해당되고, 법 적용의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북한의 최 고 위정자들이 인도에 반한 죄 를 범한 것 이다. 그리고 로마규정 을 접어두더라도 북 한정부는 이미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집단살해범 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아동의 권 리에 관한 협약,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 폐에 관한 협약 의 해당 규정들을 위반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식량난이 본격화되면서 요덕수용소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한 다. 이백룡(이영국의 가명) 씨는 대숙리의 800명 독신자 가운데 1년에 200명이 영양 실조와 강제노동으로 사망했다 고 증언한 다. 이들은 하루 80g의 옥수수와 시래기국 으로 연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수들이 보충되기 때문에 아무리 죽어도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요 덕수용소에서는 한때 국제 인권단체에서 요덕을 방문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겨울에 집을 모두 부순 뒤에 땅을 파고 그 속에서 20일간 기거하면서 추위에 떨기도 했다고 이백용 씨는 증언한다(이백용, 2003/6/18). 피수감인들에 대한 이런 처우는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UN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에 위배되는 것이다. III. 정치범 수용소 수용과정에서의 인권유린 정상국가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기본적 권리들인 시민적 정치적 권 리, 종교 및 신앙의 자유, 의견 및 표현의 자 유 등을 북한주민들이 향유하고자 하면 북 한당국은 이를 정권안보와 체제유지를 위 - 112-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1 해 일탈( 逸 脫 ) 시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의 혐의자들 즉, 정권 혹은 체제 비판자, 종교 인, 탈북 도강자, 중국에서 체포되어 돌아 온 탈북자에 대해서도 체포, 예심 및 정치 범 수용소에 수용하는 과정에 적법한 절차 를 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각종 비인격적 처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자의적 구금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서 2006 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 에서 수사기관이 체포를 할 때 법적절차를 준수하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0%가 아니라고 답했으며, 구금시설 수용 시 법적 절차를 준수하는가? 라는 질문에 71.1%의 응답자는 영장발부 없이 2개월 이상 수사 를 계속 했다 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되었어야 할 북한의 1999년 형사소송 법 제11조에는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나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 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속할 수 없다. 사 람을 체포하였을 때에는 48시간 안으로 그 의 가족 또는 소속단체에 체포 날자, 리유 같은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검사는 비법으 로 체포 구류되여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고 규정되어 있다. 대한변협에서 2008년과 2010년에 각각 100명과 200명의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 시한 인터뷰 조사에서도 이런 북한의 형사 법 및 형사소송법 적용 실태가 개선된 것으 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이 두 차례의 조사 에서 체포, 구금결정서 등을 제시받았다 고 답한 사람은 4.7%와 7.1%로, 체포, 구금되 었을 때 수사기관에서 그 사실을 가족들에 게 통지해 주었다 고 답한 사람들은 34.9% 와 39.7%로 각각 나타났는데, 다소간의 변 화는 있으나 표본추출의 문제를 생각하면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2004년과 2005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 에서는 모두 1999년 형사소송법 제11조의 내용을 더욱 세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5 조에 국가는 형사사건의 취급처리에서 인 권을 철저히 보장하도록 한다 라는 규정과 제8조에 국가는 형사사건에 대한 취급과 처리를 이 법에 규정된 원칙과 절차, 방법 에 따라 하도록한다 라는 규정이 있다. 177 조에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법에 규 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는 사람을 체포, 구속할수 없다. 검사는 비법적으로 체포, 구 속되어 있는 자를 발견하였을 경우 그를 놓 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제167조에는 예심 원은 피심자에게 강제의 방법으로 범죄를 인정시키거나 진술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 다 는 등, 비법적인 체포, 구속과 강제적인 심문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2004년 및 2005년 개정 형법에서는 법일군이 비법적 으로 사람을 체포, 구속, 구인 (중략) 한 경 - 113-

12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우에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제252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8 년에 실시한 대한변협의 탈북자 인터뷰 조 사에서 수사 받을 때 범죄사실에 대한 자 백을 강요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진 술했다. 2010년에 실시한 인터뷰 조사에서는 만 일 수사 받는 범죄사실에 대해 부인할 때는 어떤 식으로 수사가 진행됩니까? 라는 질 문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폭력 과 협박, 구금 연장[ ID 054(2010), ID 200(2010) ] 등으로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 과 억지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진술하였다. 2004년 및 2005년 개정 형사소송법 제 178조에는, 체포, 구속처분은 형사책임추 궁결정을 한 다음에 한다. 특별히 필요한 경우 형사책임추궁결정을 하기전에 예심원 은 검사의 승인을 받고, 체포, 구류구속처분 을 할수 있다. 이 경우 10일안으로 형사책 임추궁결정을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구 류구속처분을 취소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범 에 대해서는 전 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한변협의 2006년 인터뷰 조사에서 2명 의 답변자는 다른 용무로 지정한 날에 방 문하라고 하여 체포한다 며 탈북자 안혁 씨 가 1980년대에 경험한 것(안혁, 1995: 61) 이 아직도 유효한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 다. 그리고 야밤에 그 누구도 모르게 체포 하여 끌고 간다 고 진술한 응답자도 3명 있 었다. 이런 진술은 2008년 및 2010년 인터 뷰 조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재판과 수감절차에 대해 전 국가안전보 위부원 윤대일 씨는 변호인이나 방청객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요식절차는 거친다고 주장하고(윤대일, 2000: 134-135). 북송교 포 출신 탈북자 신정애 씨의 두 아들과 질 녀는 거의 1년 가까운 예심기간을 거친 뒤 재판을 받고 각 10년과 5년의 교화형을 언 도 받았다. 그러나 신정애 씨 자신은 재판 절차 없이 1년간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수감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2006년 인터뷰 조사에 응답한 고문피해 사례3의 경우도 재 판 없이 요덕수용소에 3년 수감되었고(대 한변협, 2006: 117-120), 2008년 조사와 2010년 조사에서도 정치범의 경우 재판절 차 없이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다 는 진술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안혁 씨는 중범자 로 판명 될 경 우에 형기도 알려주지 않고 완전히 밀폐된 호송차에 태워 별도로 교화소로 이송하는 데, 그가 잡혀가는 것과 동시에 여러 명의 보위부원들이 그 범죄자 의 집을 급습하여 전 재산을 몰수하고 그 가족을 관리소로 이 송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 및 2005년 개정 형법 제27, 28, 33조에 재산몰수형, 2000 년 개정 공민등록법 제13조에 공민증 회 수 를 각각 규정하고 있어서 이는 현재까지 유효한 것으로 짐작된다. - 114-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3 그리고 2004년과 2005년의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윤대일 씨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는 모든 사건을 형 사소송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김 부자 가계의 추문에 대한 언급 이나 소문을 퍼뜨린 8, 9번 사건(10호실 사 건) 은 형사소송법에 규정이 없어서 지키지 않는다 고 한다. 그래서 김 부자의 권위를 손상시킨 행위 로 판명되면 재판도 없이 비 밀리에 처형한다는 것이다(윤대일, 2000: 134). 비록 형사소송법이 그 후에 개정되었 어도 관련조항이 여전히 없고,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아무런 작용을 못하는 것으 로 보인다. 3차례에 걸친 대한변협의 조사로 밝혀진 북한의 체포 구금 과정은 북한의 형법, 형 사소송법 등 국내법에도 저촉되고,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에도 위반되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는 이혼이라는 방법을 통해 배우자에 대해서 는 그 피해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직계 가족 에게는 여전히 해당되는 연좌제나, 재산몰 수형 과 공민증 회수 등은 세계인권선언의 각 해당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의 적 구금과 그 과정에서의 인권유린은 제도 적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강하지 만 가해자들의 자의적 행위인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국내 구제절차가 작동되지 않 아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 체포 및 예심과정에서의 고문 북한정부는 모든 공식적인 문건이나 선 언에서 고문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예 를 들어, 북한정부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에 대해 가장 최근에 제출한 정기보고서(CCPR/C/PRK/2000/2, 4 May 2000), 제7조에서 북한에서는 고문 과 비인간적 처우가 금지되어 있음 을 강력 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한 최고인민회 의 상임위원회에서 1999년에 수정 보충 한 형사소송법 제93조에 예심원은 피심자 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범죄사실을 시인 시키거나 진술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 강 압적인 방법으로 받은 피심자의 진술은 증 거로 쓸 수 없다 고 규정하였다. 이 조항은 더욱 발전되어 2004년 5월과 2005년 7월에 각각 수정 보충한 형사소송법에서 공히 제 98조에 강압, 유도의 방법으로 받은 피심 자, 피소자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피 심자, 피소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 에는 그의 범죄를 증명하지 못 한 것으로 한다. 자수, 자백한 자료도 그와 관련있는 다른 증거를 찾아내야 인정한다 라고 규정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피수용인들 특히 정치 범 혹은 정치적 범죄 혐의자 에게 가해지 는 고문은 인간의 가학성( 苛 虐 性 )이 이념적 - 115-

14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동기로 격려되고 집단목표 성취 로 포장되 면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사례로 보인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체포 송환 된 뒤에 그들이 중국에서 남한 사람이 나 종교인들과 접촉했는지 여부를 조사받 으면서, 그리고 다시는 탈북을 시도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나 인민보안성, 노동단련대, 구류장 등에서 엄청난 구타와 온갖 비인격적인 처우를 받 았다고 진술한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는 등, 북한정부가 내 부단속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특정 시기에 는 보위사령부로부터도 같은 처우를 받은 것으로 2006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 확인되었다(대한변호사협 회 북한인권소위원회, 2006). 이와 같이 체포 및 예심 과정에서 폭행과 각종 가혹행위를 가하는 것은 세계인권선 언 제5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체포 후 무조 건 죄인 시 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1조 1) 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김일성 김정일 가 계 비밀을 언급하였다고 처벌하는 것은 11 조 1)항과 2)항을 동시에 위반하는 것이다. 예심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하게 한 것 자 체가 큰 죄악이고 각종 북한 국내 법규들과 국제인권규범들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피 살자의 죄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간주 되어 그의 가족에게 해악이 미치게 된다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1조 1)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현대사회에서 금하고 있는 연좌제 를 적용하는 것이다. 도강죄로 탈북자들을 처벌하고, 특히 한 국행을 시도하였다고 사형 혹은 정치범 수 용소에 보내는 등,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이동 및 거주의 자유를 규정한 세계인권선 언 13조 1)항과 나라를 떠나고 돌아올 자유 를 규정한 13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14조 1)항을 위반하는 것이 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종교인들을 접하 였다고 극형에 처하는 것은 종교탄압으로 세계인권선언 18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범 이란 성립될 수 없 는 개념인데, 북한에서 정치범을 체포하면 강제이혼 시키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6조 3)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그들의 공민권을 박탈하는 것은 15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이 며,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17조 2) 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북한이 아직까지 고문방지협약(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공식적인 문건 이나 선언에서 고문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으므로 앞에 소개된 사례들은 북한정부 가 고문방지협약에 규정된 내용을 준수하 고 있다는 공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 - 116-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5 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관련 규정들을 위반하는 것이다. IV. 국제인권규범을 통해서 본 수용소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북한 정부당국이 북한의 민간인들을 정 치범 수용소에 수감하는 목적이나, 수감하 는 절차, 수감 후의 처우 등은 예외 없이 로 마규정 제7조 상의 제 조항들에 해당된다. 6)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은 로마규정의 당사 국이 아니어서 이 규정을 적용하는 데 일정 한 한계가 있지만, 각종 인권유린의 범죄행 위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으로 로마규정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규정이 발 효된 2002년 이후에도 이런 인권유린이 대 규모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다면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전 혀 없는 것은 아니다. 1.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신동혁 씨가 기억하는 관리소의 10대 법 과 규정 (신동혁, 2007: 59-62)은 2005년 1 월에 탈출할 때까지 14호 관리소에서 적용 되고 있었으므로 국제인권규범들을 적용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 관리소의 10대 법 과 규정 에 따르면 경미한 규정위반들에 대 해서도 총살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제1조 1항 도주 시 즉시 총살한다, 2항 도주기 도 시 목격하고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2조 1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 의 승인 없이 다른 지역으로 무단 이동할 경우 즉시 총살한다, 2항 보위원 마을로 승인 없이 무단 침입하거나 시설물을 파괴 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3조 1항 무기 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는 즉 시 총살한다, 2항 무기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를 신고하지 않거나 공모 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3항 관리소내의 모든 식량을 도둑질하거나 감추는 자는 즉 시 총살한다, 4항 관리소내의 모든 기자 재를 고의적으로 파손하거나 도둑질 한 자 는 총살한다. 제4조 1항 담당 보위원 선 생님에게 불만을 품거나 구타를 하였을 경 우 즉시 총살한다, 2항 담당 보위원 선생 님의 지시에 불성실한 자, 불복종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5조 1항 외부인을 감추 어두거나 보호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2항 외부의 물품을 소지하거나 감추어둔 자, 공모한 자,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 한다. 제7조 1항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에 태만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경우 법에 불만 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총살한다. 제8조 1항 승인 없이 남녀간에 신체접촉이 6) 이와 관련하여 David Hawk는 잔인함의 집결 에서 14가지로 집약하여 지적하고 있다 (David Hawk, 2007: 22-29). - 117-

16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있을 경우 즉시 총살한다. 제9조 1항 자 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죄에 대하여 불복종하거나 의견을 갖는 자는 즉시 총살 한다. 이와 같은 규정들은 피수감자들을 철저 하게 외부로부터 고립시킨 채, 의견 및 표 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최소한의 신체적 자 유도 박탈하여 노예노동에 순응하도록 하 기 위한 것이며, 로마규정 제7조 상의 살 해, 절멸, 노예화 에 해당된다. 2. 과도한 노동과 영양부족 수용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수용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고, 각 수용소에서도 시 기와 업무에 따라 다소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큰 틀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 으로 보인다. 새벽 5시에 기상(안혁 씨가 수용되었던 15호 관리소에서는 4시에 기상) 하여 6시까 지 아침식사를 하고, 6시 30분에 대열점검 을 한 뒤에 7시에 작업장에 간다. 작업장에 도착하면 갱에 들여보내기 전에 몸수색을 하여 폭약 소지 여부를 확인한다. 그래서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작업을 하고, 12시부터 12시 30분까지 점심식사를 한 뒤 에 곧바로 20시까지 오후작업을 하게 되는 데, 15호 관리소에서는 오후에 휴식시간이 한번 있는데 비해 14호 관리소에서는 없다 고 한다. 김용 씨의 증언으로는, 14호 관리소에서 는 토 일요일 휴무( 休 務 )가 없고, 1월 1일 하루만 휴무하는데, 관리소 규정에는 김일 성, 김정일 생일이 휴무일로 되어 있으나 이날도 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신동혁 씨는 매달 1일이 휴일인데, 이 날도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며 작업반 정리나 산에 화목( 火 木 ) 채취하러 가는 등 상대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게 된다고 진술한다(신동혁, 2007: 45). 그리고 김용 씨의 경험으로는, 14호 관 리소의 경우 수감자들의 생산성이 워낙 낮 아 생산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 만, 18호 관리소에서는 생산계획이 있어 이 작업량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하 루 평균 12시간 노동을 하는데, 작업계획에 따른 작업량이 달성되지 않으면 보통 23시 까지 작업을 하여 하루 평균 15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이 규약의 당사국은 특 히, (d) 휴식, 여가 및 합리적 근로시간의 제 한, 공휴일에 대한 보수와 정기적인 유급휴 일이 확보되는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 을 모든 사람이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라고 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 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 7조 제 d항에 위배된다. 김용 씨의 증언에 따르면, 14호 관리소 수감자의 한 끼 양식은 통강냉이 20 30알 과 배춧잎이 둥둥 뜬 소금국이 전부라고 한 - 118-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7 다. 그 결과 수감자들이 갱도에서 100미터 이동하는데 15분 이상이 걸리고, 삽질 한 번 하는 것도 현기증이 난다는 것이다. 수 감자 대부분이 펠라그라(pellagra)라는 단 백질 결핍증에 걸려 있으며, 영양 결핍에서 오는 각종 전염병과, 심지어 정신병까지 앓 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은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에 위 배되는 것이다. 수감자들은 이런 극도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 돼지사료도 훔쳐 먹고, 심지어 생선저 장탱크 씻은 물에 밥을 말아먹는 일도 있으 며, 쥐와 벌레도 잡아먹고, 나무껍질도 벗겨 먹고, 풀도 뜯어먹는다고 한다(안명철, 1995: 189-196; 안혁, 1995: 85; 강철환, 2003: 154-164; 대한변협, 2010: 440). 그나마 이 런 일도 허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도원에 게 들키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가혹한 징벌을 받는다고 한다. 3. 수용소 내에서의 처벌 북한의 정치범 들에게는 두 종류의 구류 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용소에 최종 적으로 수감되기 전에 예심을 받으면서 수 감되는 마람초대소 와 같은 구류장과 수용 소 내의 구류장이 있는 것 같다. 수감자들 에게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어느 쪽이든 비슷해 보이는데, 수 용소 내의 구류장의 경우 수감자가 일단 끌 려가게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한 후에 1차로 모두 매를 때려 초죽음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질질 끌고 가서 두 무릎 사이 에 4각 각자( 角 字 )를 끼우고 24시간 동안 꿇어앉히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불 손하게 행동하면 사정없이 구타한다는 것 이다. 하루에 100그램의 콩밥과 시래기 소 금국이 지급되는데, 그것도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움직이면 처벌로 밥을 주지 않는다 고 한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일주일 후부 터는 살이 썩어 들어가도 참는다고 한다. 그 결과 3개월 후에는 폐인이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가 5개월 후에는 병사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감자들 사이에는 구류장에 들어 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 되어 있다는 것이다(안명철, 1995: 107-108). 그런데 김용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구류장을 18호 관리소에서는 특수 아지 트 혹은 영창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김용 삼, 2000: 328). 김용 씨는 14호 관리소에서 2년 동안 15 건의 즉결처분을 목격했고, 18호 관리소로 이송된 뒤에는 3년 동안 30회 정도의 공개 처형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14호 관리소 에서는 공개처형 대신에 주로 비밀처형을 했는데, 이렇게 공개처형이 비밀처형으로 바뀐 것은 수용소 내에서 너무 자주 공개처 형을 해서 일벌백계( 一 罰 百 戒 )의 효과가 없 고, 오히려 수감자들을 자극하여 1990년에 - 119-

18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는 이 관리소 내에서 폭동이 일어나 1,500 명의 수감자가 사살된 적도 있기 때문이라 고 한다(김용삼, 2000: 339). 안명철 씨의 증언에 따르면, 경비대는 도 주자를 잡으면 크게 표창한다는 말에 수감 자들을 사살하는 일이 빈발하였다고 한다. 수용소의 경계철조망으로부터 50미터 이내 는 통행금지구역이지만 그 안쪽은 수감자 들이 다녀도 되는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 런데 1987년 10월말에 13호 관리소 19반 농산분조 달구지공이 새벽에 쥐를 잡으러 산에 올라갔는데 경비원 강영철이 그를 사 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피살자는 경계 선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도주자 로 몰렸으며, 강영철은 그 공으로 추천되어 1989년 8월에 김일성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한다(안명철, 1995: 62-63). 같은 맥락에서 1988년 함남 요덕 15호 수용소에서는 경비대원 2명이 산에서 부식 토를 모으고 있던 수감원들을 강제로 철조 망을 넘게 한 뒤에 사살했다고 한다(안명 철, 1995: 64). 개천 14호 관리소에서는 피수용인들이 늙어도 은퇴나 노동에서 면제해 주는 일은 없어서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된다고 한 다. 신동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수용소 에 60세 80세 노인작업반이 있는데, 1999 년 12월경에 10리 정도 거리의 경사지 밭에 노인 4명이 거름을 지게에 가득 지고 나르 다가 중간에 쉰 것이 담당 보위지도원에게 들키어 영하의 추위 속에 속옷 바람으로 오 후 2시부터 7시까지 무릎을 꿇려 벌을 새운 뒤, 다시 휴게실의 구들장에 꿇려 앉혀서는 장작불을 때서 동상과 화상을 입혀 죽게 했 다고 한다(신동혁, 2007: 76-77). 4. 영아 살해( 嬰 兒 殺 害 )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는 김일성의 교시가 철저 하게 지켜진 결과는 영아 살해 라고 볼 수 있다. 수용소에 가족 단위로 수감된 예외적 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 정치범 수용소 내 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앞에 소개한 관리소 의 10대 법과 규정 제8조 1항에 의하면 총 살형에 처해지는 중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 서 본인들은 죽음에 이르는 처벌을 받게 되 며, 아기는 곧 바로 살해되는데 그 방법 또 한 처참하다 는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비인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아 살해에 대한 증언은 여러 맥락 에서 있어 왔다. 그 한 예로, 13호 관리소 19반 수감원 최 양(회계원)이 경비대 부소 대장 김만순과 성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자 보위1과에서 아이를 개에게 던져주고 최 양 은 성기( 性 器 )와 배에 막대기를 꽂아 살해 했다고 한다(안명철, 1995: 40-41). 이는 상기 로마규정 제7조, 고문방지협 약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입한 아동의 권 - 120-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19 리에 관한 협약 과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을 위반하는 것이다. 다음은 자신이 경험한 영아살해에 대한 이명숙(2003년 12월 탈북, 2008년 12월 한 국 입국) 씨의 증언이다(이명숙, 2011/2/25). (2005년) 11월 29일에 애를 낳았다. 아 침에 그날 일하러 나가는데 만삭이어서 빨 리 걸을 수 없어 천천히 가다가 보위원들이 천천히 간다고 엉덩이를 발로 [차는 바람 에] 맞아 넘어지면서 양수가 터졌다. 아프 다 하니 수용소 밖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오늘 안 낳으면 죽인다 했다. 같이 간 죄인이 병원 문 앞에서 머리 나온다 했 다. 챙피하다 하고 병원 복도로 갔다. 낳았 더니 그 언니가 딸이다 했다. 언니가 이빨 로 탯줄을 잘랐다. 아이를 엎어놓은 다음에 아이 죽이겠냐 살리겠냐 물어본다. 보위부 원이 애를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를 묻는 데, 내가 못 죽인다 하니 구두발로 아무 곳 이나 막 때려 어금니도 나가고 얼굴이 상처 투성이다. 애는 살려야 된다 했는데... 애를 엎어놓았는데도 애가 몇 시간을 울었다. 그 때 내가 정신을 잃었다. 내 속옷이라도 싸 주고 싶었지만 말았다. 밤 12시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았고, 새벽 3시에 들어와서 5시 부터 일어나 다시 일했다. 아래로 피가 흐 르는데 댈 것이 없어서 양말로 댔다. 같이 있던 애들이 몰래 담요를 잘라서 대주기도 했다. 5.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 性 的 虐 待 )와 살해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여성들의 경우 얼굴이 예쁘게 생길수록 수난을 많이 당하 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위부장이었던 김 병하는 관리소에 내려오면 자기 별장에서 예쁘게 생긴 여자들을 골라 동침하고는 보 위부 3국(예심국) 국장에게 넘겨 실험용으 로 쓰이다가 죽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한 사례에 대해 같 이 수감되어 있던 김영일을 통해 들은 김용 씨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14호 관리소에 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 양에서 부부장급이 내려오면 숙식하는 일 종의 특각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 오면 여성 수감자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21 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 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성적( 性 的 ) 노리 개로 삼은 후 비밀유지를 위해 도주분자 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답니다 (김용삼, 2000: 339). 이는 로마규정 제7조 1항에 규정된 강간, 성적 노예화, 살해의 죄를 저지른 것 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입한 모든 형태 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병하는 보위원들과 여자 수감 원들 간에 성추문(부화사건)이 자주 생기자 모든 관리소에 얼굴이 곱게 생긴 여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1970년대 말에는 250여 명의 여수감원들이 처형되었 다고 한다(안명철, 1995: 129). - 121-

20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1989년 가을 경 종성관리소 풍계지구 17 반 보위원 자살사건이 있었는데 안명철 씨 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7반 지도원(보위원)은 자기 담당 작업반 내의 정치범 여자들을 모두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그 중 통계원 여자 수감원이 임신 을 했다가 발각되자 보위1과 계호원들이 그 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밟아 죽이고, 산모의 음부에 지렛대를 박아 전기를 투입 해 죽였다고 한다. 그 보위원은 정치범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는 것이다 (안명철, 1995: 128-129). 신동혁 씨는 이와 같이 자세한 증언은 하 지 않았지만, 보위원들이 여자들을 집적거 리는 것을 다 알고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 나지만 아무 말도 못한다. 보위원들이 처녀 를 건드려서 임신한 경우에 임신 사실이 알 려지면 처녀는 그 즉시 사라진다. 이렇게 임신한 처녀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 다 고 포괄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시켜 주 었다. 그 뿐만 아니라 대한변협이 2006년, 2008년, 2010년에 각각 의뢰하여 실시한 탈북자 인터뷰조사에서도 구체적인 일화들 이 소개되고 있다(북한인권정보센터, 2006;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08; (사)북한 민주화네트워크), 2010). 6. 예고된 사고들 인명을 경시하는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각종 사고로 정치범 들이 생명을 잃는 것 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안명철 씨가 11호 관리소에 경비원으로 있었던 1987년 6월 중순 어느 날 관리소 앞 산 구역에서 불이 났는데 약 2,000명의 수 감자들을 동원하여 불을 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관리원들이 수감자들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불 끄는 데에만 몰두하여 수 감자들을 불 속에 몰아넣는 바람에 5명이 질식하여 죽었고, 2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안명철, 1995: 18-21). 안명철 씨가 22호 관리소에 있었던 1993 년 10월 어느 날 초소를 허물고 다시 짓는 공사를 하면서 무리하게 서두른 바람에 골 재해체 작업에 동원되었던 남녀 수감자 20 여 명이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20여 명은 락생지구 야산에 공동 매장 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안명철, 1995: 91-95). 북한정부가 외화부족으로 제때에 군견 ( 軍 犬 )을 확보해 주지 못하자 관리소에서는 수감자 감시를 위해 잡종견으로 민견( 民 犬 ) 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이 민견들은 관리 원(보위원이나 경비원)과 수감자를 구분하 고, 수감자들에게 사납게 굴도록 길들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89년 5월에 13호 관리소에서 이 민견들이 학교에 갔다 오던 동포지구 19반 정치범 여학생(13살) 2명 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관리소 부부장은 민견 관리병들을 개를 잘 - 122-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21 길렀다 며 칭찬하였다고 한다. 1991년 22호 회령관리소에서도 중봉지구 29작업반 여자 정치범 2명이 산에서 도토리를 줍다가 민 견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희생자들은 조 용히 암매장되고 말았다는 것이다(안명철, 1995: 118-127). 이와 같은 현실은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 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을 지키지 않은 것 이지만, 이에 앞서 피수용인들을 계급의 적, 종파분자 로 규정하여 집단 또는 집합 체와의 동일성을 이유로 기본권을 심각하 게 박탈 한 "박해"를 가한 것이 된다. V. 유엔의 인권제도에 의한 강제조치들 2005년에 유엔 인권위원회가 세 번째 대 북 결의를 채택하자, 북한 외무성은 4월 20 일자 성명을 통해 우리 공화국을 악랄하게 모해 중상하는 결의"라며 허위자료와 독 소조항으로 일관돼 있는 결의는 무엇보다 우리의 제도전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아울러 외무성 대변인은 이 성명 에서 우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인권문제 라는 것을 거들면서 우리를 무근거하게 헐 뜯은 이번 결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적대세력들의 대( 對 )조선 고립 압살 책동 의 일환으로 단호히 전면 배격 한다 고 말 했다. 그리고 인권문제가 반공화국( 反 北 韓 ) 적대행위의 공간으로 계속 악용된다면 우리는 그에 결정적 조치로 대응할 것 이라 고 경고했다. 7) 따라서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후 속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 지, 그 조치들의 신빙성과 구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8) 1.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한 강제조치 가능성 유엔헌장 제7장에 의하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 과 인도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행동 이행을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할 수 있 다.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아울러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 혹은 회복하기 위하여 권고를 하거나 군사 적 혹은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유엔헌장 제39조). 유엔 안보리는 1990년대 이후 일련의 국 제인권침해사례에서 인권침해사태가 평화 에 대한 위협 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일련의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취하거나, 가 맹국으로 하여금 군사적 개입을 허용하는 7) 북, 유엔 北 인권결의안 채택에 적대소동 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cat_id=11&res_id=62067&page=2 (검색일: 2005.5.24). 8) 기존의 유엔 인권위원회, 인권이사회 및 총회 결의들은 강제조치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제외한다. - 123-

22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조치를 취해 왔다. 예를 들어, 1991년 이라 크의 쿠르드족(Curds) 박해사건(안전보장 이사회 결의 제688호), 1992년 소말리아에 서의 내전과 그에 수반하는 기아 등의 사태 (제794호), 1993년 구유고 내전과 그에 수 반된 인권탄압 사태(제757호, 제836호)와 앙골라에서 반정부세력에 의한 군사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사태(제864호), 1994년 르완 다 내전과 그에 수반된 집단살해 등의 사태 (제918호, 제929호) 및 아이티 군사정권에 의한 민정복귀합의의 불이행 사태(제940 호) 등이 그것이다. 이 일련의 유엔 안보리 의 결의들은, 한 국가 내에서의 인권침해가 유엔헌장 제39조 상의 '평화에 대한 위협'을 구성한다는 것을 확인한 유엔 안보리의 성 숙된 관행으로 평가되기도 한다(김석현, 1995: 40-43; 김태천, 2011/2/24). 이런 전례들에 따라 북한에서의 대규모 인권유린 사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강제 조치를 논의 할 경우 2가지 쟁점이 대두된 다. 먼저, 구유고 내전이나 르완다 사태 등 과 같이 내전이나 국제적 무력충돌을 통해 대규모의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전제되어 야 하는데, 북한에서의 인권침해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무력충돌 없이 압제에 의한 구 조적 체계적 인권침해의 양상을 띠고 있 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강제조치를 취하기 가 용이하지 않겠지만, 현재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한 정치변동 이나 체제변동이 발생하면 무력분규는 충 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는 강제조치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권침해가 대규모적이고 중대할 경우 대부분 기존의 행정적, 준사법적 혹은 사법적 인권보장제도는 그 실효성이 없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에 의한 강제조치 혹은 군사적 개입 허용조치는 실효성도 있고 현 실적인 필요성도 있다. 유엔 안보리가 1994 년에 아이티사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 입을 허용함으로써, 아이티에서의 민주정 부 수립과 국민의 인권보호를 확보하게 된 사례가 좋은 예다. 그런데 문제는 유엔 안 보리가 평화에 대한 위협 이라고 확인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인권침해의 내용이 무엇인 가를 규정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평화 에 대한 위협 의 인정대상이 되는 분쟁 혹 은 사태의 범주가 과거에 비해 매우 확대되 었다는 사실을 유념하면 북한의 인권문제 에 대한 강제조치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 다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체제변동기에 무 력분규가 동반 될 경우 충분히 있다. 아울 러 최근에 리비아정부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안보리가 제제결의를 만장일치로 채 택한 것은 북한에 대해서도 고무적인 메시 지를 주고 있다. 그리고 유엔 헌장 제2장 6조에 따르면 유 엔 회원국이 헌장에 있는 원칙들을 지속적 으로 어길 경우에 유엔 총회는 안보리의 권 - 124-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23 고에 따라 그 회원국을 추방할 수 있다. 따 라서 북한을 유엔에서 추방할 수도 있는 것 이다. 2. 국제사법제도 한국과 서방의 몇몇 인권단체들은 국제 형사재판소에 김정일이 지난 수 십 년 간 대량학살 (genocide)과 인도에 반하는 죄 를 저지른 것으로 제소하는 운동을 그 동안 전개해 왔다. 이런 시도가 국제사회에서 어 느 정도 호응을 얻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 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비중 있는 인권단체들과 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추진 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인권법(조약 혹은 관습법)상의 분쟁 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에 속한다. 그 리고 집단살해방지조약 제9조에 의하면, 만 약 위 조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어떤 두 나 라나 혹은 여러 나라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 지 못할 경우에는 이들 국가 중 한 국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그 해석을 의뢰할 수 있 다. 인종차별철폐조약(제20조)과 고문방지 조약(제30조 제1항))도 그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집단살해, 인종차별 및 고문에 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비 록 당사국이 국제사법재판소의 강제관할권 을 수락하는 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 각 조약의 당사국이라면 국제사법재판소는 위 각 조약 규정에 근거하여 강제관할권을 가 질 수 있다. 그간 국제사법재판소는 쟁송적 절차와 권고적 절차에서 인권문제의 심사를 종종 요청받아 왔다. 경우에 따라 국제사법재판 소는 인권조약의 해석을 직접 하기도 했고, 발생한 인권문제를 간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Schwelb and Alston, 1982: 266). 9) 따 라서 북한의 인권사안들 중에 국가의 개인 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관련 조약의 해석을 통해 북한의 억지논리를 저지시킬 수 있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을 민간인 납 북자 문제 등과 같이 인권침해와 관련된 국 가 간의 분쟁(dispute) 해결에는 일정한 기 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에 대해 대량학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은,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이 소급되 지 않기 때문에 로마규정 이 발효된 시점 인 2002년 7월 1일 이후의 범죄에만 한정 되며, 자국 영토 내에서 범죄가 발생한 국 9) 전자의 예로는, 비호권 사건(1950년)과 Haya de la Torre 사건(1951년), 제노사이드조약유보 사건(1951년), 그리고 1950년부터 1971년 사이의 Namibia 사건 및 구유고 내전에 있어서의 제노사이드조약위반 사건(1994 년)60)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로는, 평화조약해석 사건(1950년), 유엔행정법원의 보상판결효력 사건 (1954년), 바르셀로나전력회사 사건(1970년), 핵실험 사건 (1974년), 테헤란미대사관원인질 사건(1979년) 등 이 있다(김태천, 2011/2/24)). - 125-

24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가 또는 피의자의 국적국이 로마규정 의 당사국인 경우에 관할권이 행사 될 수 있어 서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리비아사태처 럼 유엔 안보리로부터 사건이 회부된 경우 에는 로마규정 의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국 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어 서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엔의 전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비팃 문타폰 교수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13 차 회의에 제출한 그의 마지막 보고서에서 북한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들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민간 인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과 이에 대한 인식 을 전제하며 피해 자들을 보호하고 효과적인 구제책이 제공 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할 수 있도록 유엔 의 안보리와 같은 유엔 시스템이나 국제형 사재판소와 같은 산하기구들의 총체성을 높일 것 을 강조하였다 (문타폰, 2010: 46-47, 58). VI. 결 론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여러 측면이 있고, 이를 규정하는 근본원인도 강조점에 따라 다르게 부각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의 근간( 根 幹 )은 공산주의 단일주체제 (monolithic regime)를 건설하고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난 반 세기 가까이 실시 운영해 온 계급차별정 책과 정치범 수용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리고 대부분의 북한 인권현안들은 전체주 의적 통제와 체제의 비효율성에 그 근본 원 인이 있어서 정치적 민주화와 체제변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개선 노력에 일정한 한계 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신장 노력을 통 해 정치적 민주화와 다원주의의 도입이 가 능하고, 특정 인권유린 현상들은 정치변동 을 전제하지 않고도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간의 북한 인권문제는 그 성격상 남북 한 간의 완강한 적대자 관계에서 비롯되는 바가 컸다. 그리고 그 해결책 또한 이런 남 북한 관계 때문에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는 기 존의 계급정책과 더불어, 체제가 극도의 비 효율성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데에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제한된 사회적 가 치들을 핵심계층에 집중시켜 체제의 유지 를 도모함으로써 소외된 일반인들과 체제 이탈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그 구조적 성격 때문 에 자체적으로 개선시키기는 어려울 것이 다. 그래서 외부의 개입(engagement)이 절 대적으로 요청된다. 따라서 관련 국가들과 논의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북한의 인권문제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난점은 공식적인 선언 - 126-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25 과 현실 간에 현저한 괴리가 있고, 이를 북 한당국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 방법 을 강구할 수 없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개 선시키는 일의 핵심은 이 간극을 어떻게 효 과적으로 좁혀 갈 것인가에 있다. 유엔 회원국들 중에서 인권문제 때문에 유엔에서 추방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이 런 선례의 부재는 인권신장을 촉구하기 위 한 유엔 헌장 제6조 적용의 신빙성을 떨어 뜨리기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기는 힘들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그것을 규정하는 국제 적 국내적 규범은 마련되어 있지만 그 규 범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 심이다. 특히,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규범들 의 국내관할권을 거부하는 북한정부의 비 타협적 태도를 고려할 때 많은 유인 및 강 제 요인들을 개발하는 것이 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그리고 현실적 여건을 생각할 때 사건별 현안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런 접근을 통해 개별적 합의 해결이 누적되어 일반적 규정력(general binding force)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바 람직 할 것이다.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한국정부 는 현재까지 거의 방임하는 자세를 취해 왔 다. 불가역적 적대자(strident antagonists) 관계에서는 개입을 하려해도 방법이 없었 다. 그러나 H. 라이화 교수(Howard Raiffa)가 가정한 협상이 가능한 최소한의 전제조건 인 협력적 적대자(cooperative antagonists) 관계가 형성 되면 한국이나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 개입할 수 있는 지렛대(leverage) 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문제 에 실제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노력들이 가능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강명도(1997). 북한의 인권. 북한의 인권문 제.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 1997년 통 일안보포럼 자료집.(1997.11.21) 강철환(2003). 수용소의 노래 上. 서울: 시대 정신. 김석현(1995). 인권보호를 위한 안보리의 개 입. 국제법학회논총 40(1). 김용삼(2000). 북한의 아우슈비치 14호 관리 소의 내막, 월간조선.(2000.5)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소위원회(2006). 북 한인권 실태조사 보고.(2006.10.20) 대한변호사협회(2010). 2010 북한인권백서. (2010.11.9) 문타폰, 비팃(2010). 유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 화국 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 유엔인권이 사회 제13차 의제 항목 4 유엔인권이사회의 관심이 요구되는 인권 상황. 생명과 인권. 제56권. 북한인권시민연합. pp.28-58.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08 북한인권실태 조사보고서. (발주기관: 대한변호사협회). (2008.4.17). 2010 북한인권실태 조사 보고서. (발주기관: 대한변호사협회). - 127-

26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2010.5.12). 북한인권정보센터(2006). 북한인권 실태조사 보고. (발주기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 소위원회). (2006.10.20). 신동혁(2007).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 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 서울: 북한인권정보 센터. 안명철(1995). 그들이 울고있다. 서울: 천지 미디어. 안혁(1995). 요덕 리스트. 서울: 천지미디어. 윤대일(2000). 악의 축 집행부 국가안전보위 부의 내막. 서울: 월간조선사. 최의철 송정호(2008). 북한인권백서 1998. 서울: 민족통일연구원. 통일원(1994). 북한의 인권실태. 서울: 통일 원 정보분석실(1994.8). 허만호(2009). 북한의 개혁 개방과 인권. 서 울: 명인문화사. 萩 原 遼 (추원 료)(편)(1996). 北 朝 鮮 の 秘 密 文 書 ( 上 ). 東 京 : 夏 の 書 房. Hawk, David(2003). The Hidden GULAG, Exposing North Korea's Prison Camps. Washington, D.C.: 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7). 잔인함의 집결. Freedom House. Good Friends(2004). Human Rights in North Korea and the Food Crisis. A Comprehensive Report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ssues. Seoul: Good Friends.(March.2004) Kanto, Hiroshi. et al.(research)(2004). Are They Telling US the Truth? -Brutality Beyond Belief-. Tokyo: LFNKR & NKDB. Kotek, Joël. et Pierre Rigoulot(2000). Le siècle des camps. France: JC Latts. Lakin, John(2002). North Korea Exposed- Kim's Slave Camps. Far Eastern Economic Review.(Dec.12) Lameda, Ali(Amnesty International Index: ASA 24/02/79). Ali Lameda: A Personal Account of the Experience of a Prisoner of Conscience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 publication of Amnesty International. In Haruhisa Ogawa & Benjamin H. Yoon(1988). VOICES FROM NORTH KOREAN GULAG. Seoul: Life & Human Rights Press. Heo, Man-Ho(2002). Contrôle social et changement politique dans les sociétés communistes subsistantes : une application des cas chinois et est-allemand à la Corée du Nord. Revue Internationale de Politique Comparée 9 No.3.(Hiver) Risse, Thomas. Stephen Ropp and Kathryn Sikkink (ed.)(1999). Power of Human Rights: International Norms and Domestic Chang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chwelb, E. and P. Alston(1982). The Principal Institutions and Other Bodies Founded Under the Charter. In Karl Vasak(ed.). The International Dimensions of Human Rights. Westport, Connecticut: Greenwood Press. 북, 유엔 北 인권결의안 채택에 적대소동. 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 detail&cat_id=11&res_id=62067&page=2. (2005.5.24) 강철환(2001.11.06). 요덕수용소 에선 지금 무슨 일이? 탈북자들 살벌 기류 증언. NKchosun.com, http://nk.chosun.com/news/ news.html?act=detail&cat=4&res_id= - 128-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27 12176. (2003.9.28) 김태천. 유엔인권보장제도의기본구조. http://www.humanrights.or.kr/hrlibrary/h RLibrary1-tckim8.htm#6.(2011.2.24) 이백룡 씨의 증언: http://monthly.chosun.com/html/200101/200 101220008_2.html.(2003.6.18) http://monthly.chosun.com/html/200101/200 101220008_3.html.(2003.6.18) http://monthly.chosun.com/html/200101/200 101220008_5.html.(2003.6.18) 이명숙 씨의 증언( 끔찍했던 북한의 감옥생활 ): 북한인권시민연합, 탈북자 증언 수기 http://kor.nkhumanrights.or.kr/board/bbs_vie w.php?no=151&board_table=bbs_evidence &page=1&word=&searchitem=&cate_id=(2 011.2.25) - 129-

28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4권 1호) <Abstract> North Korean Political Prison Camps ; A View From International Norms of Human Rights 10) Heo, Man-Ho* There are various kinds of detention camps in North Korea. Among these detention camps, the most serious human rights abuses occur in the political prison camps. Basic rights taken for granted in a normal state such as civil and political rights and the freedom of religion, opinion, and expressions are considered to be deviations when attempted to be enjoyed by North Korean civilians. This is for the security of the regime and the maintenance of the system on part of the DPRK s authorities. Therefore, the suspects of such deviation, such as dissents of the regime or the system, people with religions, escapees or border crossers, and repatriates arrested in China and returned to North Korea, are known to not even undergo due process of arrest or preliminary hearing in the process of detaining them and also to put them under extreme forms of torture and various forms of inhumane treatment. These human rights violations do take place institutionally or systematically, but, in many cases, by arbitrary acts by the inflictors. The situation is made even worse as the domestic remedial procedures do not work. The current research examines the infringements of human rights in North Korea based on international norms, especially Rome Statute, and North Korean domestic norms. The international and domestic norms which define North Korean human rights conditions have been established. Yet these norms are not being adhered to. The key to solving this problem is political / diplomatic negotiation which will persuade others to follows these norms. In realistic terms, a case-by-case approach would be appropriate. Efforts should be aimed at establishing a general binding force through a succession of disparate consensual resolutions. Assuming that the lack of human rights awareness is the most serious obstacle to improving the North Korean situation, education and the dissemination of human rights should have first priority. Therefor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hould be urged to accept regular visits from human rights organizations and allow its people access to the educational programs, guidebooks, * Professor, Dept. of Political Scienc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 130-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바라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29 or manuals provided by such organizations. Key Words:Political Prison Camp, Boomerang Effects, District Under Special Dictatorship, Rome Statute,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Crimes Against Humanity 11) 투고일: 11.02.28, 심사종료일: 11.04.07, 게재확정일: 11.04.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