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여전히 중요한 창작 매체로 활용되고 있는 이 두 정형시 양식 어느 쪽도 손쉬운 일반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화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 의 비교 논의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지나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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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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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交 通 放 送 은 96 年 상반기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交 通 專 門 放 送 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委 員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더욱더 사랑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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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Transcription:

연구 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시조와 하이쿠의 형식상 특성에 대한 하나의 비교 분석 장경렬 1. 시조와 하이쿠에 대한 비교 논의를 위하여 한국과 일본의 정형시 양식인 시조(時調)와 하이쿠(俳句)에 대한 비교 논의는 논자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1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 연구는 2014년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것임. 1 시조와 하이쿠에 대한 비교 논의를 시도한 이 분야 선행 연구 가운데 현재의 논의와 관련하여 주목을 요구하는 것은 이어령의 하이쿠의 시학: 하이쿠와 시조로 본 한일문학 (서정시학, 2009)에 수록된 장경렬(張敬烈) 인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 영문과에 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평집으로 미로에서 길 찾기 (1997),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 (2004), 응시와 성찰 (2007), 시간성의 시학 (2013), 즐거운 시 읽기 (2014), 문학이론 연구서로 코울리지 (2006), 매혹과 저항 (2007), 번역서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 (Li-Young Lee, 2000), 야자열매술꾼 (Amos Tutuola, 2002), 먹고, 쏘고, 튄다 (Lynne Truss, 2005), 셰익스피어 (Anthony Holden, 2005), 아픔의 기록 (John Berger, 2008),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Robert Pirsig, 2010), 노인과 바다 (Ernest Hemingway, 2012), 백내장 (John Berger, 2012), 젊은 예술가의 초상 (James Joyce, 2012), 라일라 (Robert Pirsig, 2014), 학제적 학문 연구 (Joe Moran, 2014) 등이 있다. 222 일본비평 14호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여전히 중요한 창작 매체로 활용되고 있는 이 두 정형시 양식 어느 쪽도 손쉬운 일반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화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 의 비교 논의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지나친 단순화라는 위험을 무릅 쓰더라도 원론적 차원에서의 개념 정의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원론적 차원에서의 개념 정의 역시 여전히 손쉬운 일반화를 허락하지 않는 대상을 향해 일반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시조든 하이쿠든 대상에 대한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논의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는 점도 문제될 수 있 다. 다시 말해, 논의 대상이 시조나 하이쿠와 같은 살아 있는 문화적 실체 인 경우, 우리는 시조와 하이쿠가 싹트고 성장한 문화적 환경에서 벗어나 바깥쪽에 논의의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도 자신에 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존재 인식에 핵 심이 되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란 곧 주어진 문화적 에토스를 내면화 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론상 한국 인과 일본인에게 시조와 하이쿠에 대한 비교 논의는 객관적인 것이 되기 어 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난관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 엇일까. 다양한 시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시 형식에 대한 타자 즉,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에토스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제3자 의 이해를 하 시조와 하이쿠를 통해서 본 한일문학의 특성 으로 판단된다. 이 글에서 이어령은 시조와 하이쿠의 특성을 관념화와 물질화(감각화)의 차이 또는 이데올로기 지향적인 시와 비이데올로기의 물질적 시의 차이 에서 찾고 있다(291쪽). 아울러, 이도흠의 한국시가의 동아세아적 지평: 시조와 하이쿠의 미학에 대한 비교 연구 ( 한국시가연구 제21집, 2006), 김정례의 시조와 하이쿠의 창작과 향유 방식 의 비교 연구 ( 세계문학비교연구 제18집, 2007), 신영명의 절구, 시조, 하이쿠의 미학적 비교 ( 우 리 文 學 硏 究 제35집, 2012), 박영준의 시조와 하이쿠의 미의식: 형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 語 文 論 集 第 43 輯, 2010), 時 調 와 하이쿠의 主 題 意 識 比 較 硏 究 : 無 常 感 을 中 心 으로 ( 時 調 學 論 叢 第 35 輯, 2011), 문화적 관점에서 본 시조와 하이쿠의 자연관 비교연구 ( 다문화콘텐츠연구 제12집, 2012), 시조와 하이쿠의 미의식 비교연구: 내용미를 중심으로 ( 時 調 學 論 叢 第 39 輯, 2013), 소메야 도모유키( 染 谷 智 幸 )의 エコクリティシズムと 東 アジア 文 化 文 学 の 自 然 観 : 日 韓 比 較 論 とその 先 を 見 据 えて ( 일본학연 구 제34집, 2011) 등의 선행 연구가 있는데, 모든 논문에서 각각의 논자는 나름의 논제와 관련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논문은 일종의 계보학적 탐구 를 시도하고 있는 본 논 자의 논의와는 시각 및 방법론의 측면에서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23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나의 이정표로 삼을 수도 있다. 문제의 대상에 대한 타자의 이해는 피상적 인 단순화에 머물 수도 있지만, 내부의 시선으로 일반화가 쉽지 않은 특성 을 간명하게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세기 초 서양 문화권의 하이쿠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하이쿠에 대한 당시 서양 문 화권의 능동적인 관심은 프랑스의 문필가이자 번역가인 뽈-루이 꾸슈(Paul- Louis Couchoud)의 번역과 연구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꾸슈의 작업은 영국의 시인이자 이미지즘 운동의 이론가인 프랭크 스튜어트 플린트(Frank Stuart Flint)를 거쳐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에게 알려졌고, 이 는 파운드에게 다음과 같은 논의를 가능케 했다. 어떤 중국인이 오래 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해야 할 말을 열두 줄 안에 담 아 말할 수 없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낫다. 일본인들은 홋쿠( 發 句 )라는 한 결 더 짧은 형태의 진술을 발전시켜왔다. 떨어진 꽃잎, 가지로 되날아가네, / 나비 한 마리. ( The fallen blossom flies back to its branch: / A butterfly. ) 이는 아주 잘 알려진 홋쿠의 내용이다. 빅터 플라르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언젠가 어느 한 일본인 해군 장교와 함께 눈길을 걷고 있을 때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가는 곳에 이르렀다 한다. 그러자 그 장교가 잠깐, 시를 한 편 짓고 있소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대략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한다. 눈 위의 고양이 발자국들, / 자두나무 꽃 (같도다). ( The footsteps of the cat upon the snow: / (are like) plum-blossoms. ) 같도다 라는 말은 원래의 시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의미를 명료하게 전하기 224 일본비평 14호

위해 내가 첨가한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시 는 병치의 시 형식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시상이 다른 하나의 시상 위에 배치되어 있는 시 형식이다. 나는 내가 지하철에 서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빠져 있던 질곡에서 벗어나는 데 이 시가 도움이 된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 나는 31행의 시를 썼으나, 강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폐기했었다. 6개월 후에 나는 절 반 길이로 이 시를 개작했다. 1년 후에는 홋쿠와도 같은 다음의 문장을 완성하 게 되었다. 환영( 幻 影 )과도 같은, 군중 속의 이 얼굴들, / 젖은,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 (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 Petals, on a wet, black bough. ) 내 감히 말하건대, 모종의 사유의 맥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는 무의미 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시에서 우리는 외적이고도 객관적인 사물 자체 가 변용의 과정을 거치는 바로 그 순간, 또는 내적이고도 주관적인 사물로 곧장 바뀌는 그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2 위의 인용 안에 담긴 하이쿠는 아라키다 모리타케( 荒 木 田 守 武, 1473~1549) 의 落 花 枝 に / 歸 ると 見 れげ / 胡 蝶 哉 이고, 인용의 마지막에 담긴 파운 드 자신의 시는 저 유명한 지하철 정거장에서 ( In a Station of the Metro, 1913)다. 파운드가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듯, 아라키다 모리타케의 시나 파운 드 자신의 시 어느 쪽에도 같도다 라는 언사가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전자의 경우 나비가 꽃잎 같도다 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파운드 자신이 이해하고 있듯, 하이쿠는 기본적으로 병치 ( 竝 置, superimposition)의 구조로 이루어진 정형시 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좀 더 주체적으로 말하자면, 하이쿠 란 시간 또는 장소를 지시하거나 연상케 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또는 즉물적 2 Ezra Pound, A Memoir of Gaudier-Brzeska, London & New York: John Lane, 1916, pp. 102~103. 225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 卽 物 的 )인 시적 진술과 순간의 이해 및 깨달음이 담긴 또 하나의 시적 진술 사이의 병치 또는 중첩( 重 疊 )의 구조로 이루어진 정형시라 할 수 있다. 파운드의 논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하이쿠를 병치의 구조로 이루어진 시 형식이라는 정보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 하이쿠가 얼마나 일 상화되어 있는지에 대한 암시일 것이다. 군인이 길을 가다가 시심이 발동하 여 그 자리에서 시를 짓다니! 물론 군인이지만 시적 성향이 남다른 군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인 지망생인 군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 도 길을 가다가 시심이 발동하여 즉석에서 시를 창작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는 경우, 위의 이야기는 하이쿠가 일본인의 삶에 얼마만큼 일상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일 수 있다. 시조가 한국인의 삶에 얼마만큼 일상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를 우 리는 성공회 사제로 1954년 한국으로 와서 20여 년의 세월을 보낸 리처드 러트(Richard Rutt)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형시가인 시조에 대한 이해와 번역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1971년 대나무 숲 (The Bamboo Grove)이라는 영역 시조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이 책의 서문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과외의 시간을 들여 시조창의 기법을 터득하려는 시조 애호가들이 있는데, 그 들은 시조창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결혼식 피로연이나 귀한 손님 을 기리는 연회의 자리에서 읊기 위한 시조 창작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그 들은 15세기 이래 줄곧 한국에서 살아 숨 쉬어 온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다. 또한 이 전통을 이어가는 일에 전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들은 시조창 레코드판 제작을 위한 녹음도 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조창을 선보이기도 하며, 사극 형식의 영화 제작을 위한 녹음 과정에 시조창을 하기도 한다. 심지 어 옛 시조가 영화나 소설 전체의 주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조 전통은 현대 한국에서 또 다른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시골 장 터에서 사람들은 값싼 붓글씨 복사본을 구입할 수 있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 에게 진품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붓글씨 복사본은 때때로 농가에서 226 일본비평 14호

나 절의 객사에서 벽지가 부족할 때 그 자리를 메꾸는 데 사용되곤 하는데, 아 주 빈번하게 그 안에 담긴 것은 시조다. 이 자리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은 교훈 적 내용의 시와 윤리 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들이지만, 탈세속적이거나 냉소적인 노래들까지 기꺼운 환영을 받기도 한다. 지적 세련도가 아주 낮은 사람들 사이 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변치 않는다. 심지어 학생들까지도 시조를 읊조릴 수 있 다. 어쩌다 당신이 빛바랜 교복 차림의 추레한 행색의 구두닦이 소년에게 당신 의 구두를 닦게 했다 하자. 소년이 구두를 닦는 동안, 당신이 정몽주의 다음 시 조 구절을 웅얼거렸다 하자. 이 몸이 죽고 죽어.... 그러면 틀림없이 소년이 씩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뒤를 이을 것이다. 일백 번 고쳐 죽어.... 이어서 이 시조를 끝까지 읊조릴 것이다. 3 요컨대, 러트의 관찰과 체험에 따르면, 시조는 한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 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인의 삶에서 시조가 차지하는 위치는 일본인의 삶에서 하이쿠가 차지하는 위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형식의 면에서는 어떤가. 말할 것도 없이, 형식의 면에서 시조는 하 이쿠와 전혀 다른 시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러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주목할 수 있다. 시조 형식은 일반적으로 자체의 의미 구조에 상응하는 것으로, 시조의 의미 구 조는 당시( 唐 詩 )풍의 정형적인 한시(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창작되는 종류의 한시)의 3 Richard Rutt, The Bamboo Grove: An Introduction to Sijo, Ann Arbor: U of Michigan P, 1998, p. 2. 227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그것과 유사하다. 첫째 부분에서 주제가 제시되고, 둘째 부분에서 주제의 발전 이 이루어진다. 이어서 셋째 부분에서 역( 逆 )주제 제시하기 또는 뒤집기가 시도 되고, 마지막 부분에서 무언가의 결론이 제시된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패턴은 종류가 다른 시 형식과 비교가 가능하다. 셰익 스피어의 소네트는 세 개의 사행시와 한 개의 이행 연구( 聯 句 )로 구성되어 있고, 중국의 당시는 4행으로 구성되어 있거니와, 이 모두가 아주 쉽게 위에서 말한 네 겹의 의미를 살리는 데 동원될 수 있다. 하지만 시조는 단지 3행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그 안에 네 겹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행에 마지막 두 겹의 의미를 포개어 넣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효과는 더할 수 없이 만 족스러운 것으로, 첫째 행에서 주제가 소개되고, 운율 면에서 첫째 행과 유사한 둘째 행에서 길이나 강도의 측면에서 첫째 행의 주제 제시에 맞먹는 주제의 발 전이 이루어진다. 곧 이어, 마지막 행의 앞부분에서 시도되는 뒤집기는 그 행의 뒷부분에서 시를 완결하기 전에 일종의 역주제로서의 역할을 한다. 역주제의 역할은 두 방향에서 성취되는데, 먼저 한 마디의 영탄사로 이루어진 경우에서 보듯 앞선 내용을 비트는 말을 감정적으로 토해냄으로써 성취되기도 한다. 또 한 앞선 두 행의 어조와 날카롭게 대조되는 어조의 말이나 생각을 제시함으로 써 성취되기도 한다. 4 러트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나 중국의 당시와 비교하는 가운데 파악하 고 있듯, 시조는 한 마디로 말해 기승전결( 起 承 轉 結 )의 구조로 이루어진 시 형식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 면, 하이쿠가 병치 또는 대비의 구조로 이루어진 정형시라면, 시조는 기승 전결의 구조로 이루어진 정형시라는 간략한 정리가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시조와 하이쿠 사이의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비교 논의를 위한 개념 정리를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파운드의 논의에 담긴 아라키다 모리타케의 하이쿠와 러트의 논의에 담긴 정몽주의 4 Rutt, The Bamboo Grove, p. 11. 228 일본비평 14호

시조를 함께 읽는 경우, 하이쿠 시인과 시조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심의 경 향 (the poetic turn of mind)이 서로 다름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落 花 枝 に 歸 (かえ)ると 見 (み)れげ 胡 蝶 哉 (かな) 5 이몸이 주거주거 一 百 番 고쳐 주거 白 骨 이 塵 土 ㅣ 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向 一 片 丹 心 이야 가 줄이 이시랴 6 물론 단순히 위의 두 작품을 비교함으로써 하이쿠 시인과 시조 시인이 지향하는 바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은 각각 하이쿠와 시조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 정되고 있거니와, 이로 인해 양자 사이의 일별 가능한 특성은 하이쿠와 시 조에 대한 비교 논의에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차이는, 아라키다 모리타케의 하이쿠가 자연의 한 순간에 대한 관찰의 시선을 담고 있다면, 정몽주( 鄭 夢 周, 1338~1392)의 시조는 인간사의 난 제( 難 題 )에 직면하여 자세를 가다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후자는 이방원( 李 芳 遠, 1367~1422)의 시조 하여가 ( 何 如 歌 )에 대응하여 정몽주가 자신의 뜻을 드러낸 작품으로, 여기서 암시되 고 있는 것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시인의 결연한 의지다. 아울러, 정치적 현 실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는 이 작품의 저변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시인의 생생한 현실 인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논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시조의 경우 비록 인간사가 아닌 자연을 노래하더라도 순연히 자연 5 雲 英 末 雄 山 下 一 海 丸 山 一 彦 松 尾 靖 秋 교주 역, 近 世 俳 句 俳 文 集, 小 学 館, 2001, 23쪽. 우리말 번역: 낙화, 가지로 / 돌아가는가 보니, / 나비로구나. 6 정병욱 편, 시조 문학 사전, 신구문화사, 1966, 388쪽. 229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을 그린 게 거의 없다 7 는 김윤식의 지적이다. 즉, 시조 시인의 눈길이 향하 고 있는 것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의 현실 이다. 한편, 전자의 경우, 시인의 눈길은 순연히 자연의 한 순간을 향하고 있다. 시인의 의식 안 에서는 있는 그대로 떨어진 꽃잎과 나비의 날개가 언뜻 하나로 겹쳐졌다가 다시 나뉜다. 바로 이 절묘한 인식의 순간을 간명한 언어로 시화( 詩 化 )하고 있는 위의 하이쿠에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 아닌 자 연의 시간이다. 하지만 자연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 아닌가. 비 록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 자연이지만 자연도 나름의 시간 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거니와, 그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계절의 변화로 요약되는 영원회귀의 시간성이다. 봄을 암시하는 자연의 시간 안에 서 시인은 자연이 일깨우는 찰나적 깨달음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 면, 수많은 하이쿠 작품이 증명하듯, 하이쿠란 인간의 시간 저편에 존재하 는 초월적 세계를 향한 시인의 초월적 인식과 감성을 담기 위한 정형시 형 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찰나적 이해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것이 하 이쿠라면,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현실적 이해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것이 시조라는 정리에 이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시간과 현실을 초 월한 상태에서 존재하는 초시간적 (a-temporal)인 세계 또는 자연에 대한 깨 달음을 드러내기 위한 시 형식이 하이쿠라면, 시조는 시간 안에서 또한 시 간과 함께 현실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인간의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시 형식 이라 할 수 있다. 만일 하이쿠를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초월적 또는 직관 적 형상화에 기초한 상징( 象 徵, symbol)의 시 세계를 지향하는 정형시 양식으 로 규정하고, 시조를 인간의 현실에 대한 경험적 관찰과 이해에 기초한 우 의( 寓 意, allegory)의 시 세계를 지향하는 정형시 양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아무튼, 시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의 현실 자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점에서 볼 때, 하이쿠처럼 간 7 김윤식, 한국 근대 문학 사상, 서문문고, 1974, 23쪽. 230 일본비평 14호

명한 언어로 이루어진 선명한 이미지들 사이의 병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 하기 어려운 시적 정서를 드러내거나 보듬어 안아야 하는 정형시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하이쿠와 마찬가지로 시조의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 가 이미지 자체의 선명함이나 아름다움이지만, 이것만으로 시조가 시조로 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조는 이미지의 선명함이나 아름다움을 요구하 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미지의 극적 전개 발전 전환 종결의 과 정 즉, 기승전결의 과정 을 기본 구조로 하는 시 형식이라 말할 수 있 다. 바로 여기서 시조의 형식 요건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요컨대, 하나의 지극히 짤막한 극시 ( 劇 詩, dramatic poetry) 그것도 선명하고 생생한 시적 이미지들로 구성하되 이들을 극적으로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대사( 臺 詞 )와 다름없는 극시 가 시조일 수 있거니와, 여기서 시조의 시조다움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8 양자가 외형상 짤막한 정형시 양식이지만 짤막함의 정도가 다르다는 측 면에서도 양자 사이의 차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차이는 산술 적인 측면에서도 확인되는데, 기본적으로 하이쿠가 17개(5 7 5)의 음절로 이루어진 정형시라면 시조는 45개(3 4 4 4 3 4 4 4 3 5 4 3)의 음절로 이 루어진 정형시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 같은 피상적인 차원의 비교 를 뛰어넘어, 무엇보다 병치 의 구조와 기승전결 의 구조 자체가 양자 사 이의 근원적인 차이를 암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논자가 근원적인 차이라 함은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이른바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 기 를 수용하는 시적 구조라는 점을 감안해서 하는 말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양자 사이의 차이는 에밀 슈타이거(Emil Staiger)가 말하는 회상 (erinnern)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심지어 미래까지 순간 안에 융해하는 서정시와 재현 (vergegenwärtigen)을 통해 마치 자신의 눈으로 본 것처럼 모 든 것을 우리의 눈앞에 제시하는 서사시 사이의 차이에 비견할 수도 있 8 우의의 시 와 상징의 시 에 대한 논의는 장경렬, 시간성의 시학: 시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하 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278쪽 참조. 231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다. 9 아니, 하이쿠와 시조는 각각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뛰어넘는 초월적 순간 의 시 양식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살아 숨 쉬는 현세적 시간 의 시 양식으로 요약될 수도 있으리라. 2. 시조와 하이쿠, 무엇을 문제 삼을 것인가 이처럼 현세적 시간의 시 형식 또는 시간에 민감한 시 형식 이기 때문 인지는 몰라도, 시조 양식은 이른바 현대화 즉, 20세기 초의 시조 부흥 운동 의 과정에 또렷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 점은, 비록 기인( 奇 人 )으로 알려진 오자키 호사이( 尾 崎 放 哉, 1885~1926)와 같은 20세기 초 일본의 시인이 자유로운 율격의 하이쿠를 시도하는 등 파격이 시도되긴 했지만, 하이쿠 형 식이 20세기에 들어서서도 기본적인 형식의 측면에서 별다른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할 때 특히 주목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시조 의 현대화 과정에 일어난 변화 가운데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조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노래 에서 시 로 변모했다는 점일 것이다. 10 또는 이 같은 변모가 시조 부흥 운동 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시조창( 時 調 唱 )이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악곡 ( 樂 曲 )으로부터 독립한 시조창의 가사 ( 歌 詞 )가 현대 시조의 본류를 형 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당 대의 문화적 현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해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혹시 신문학 운동과 함께 서양에서 이입된 이른바 신체시( 新 體 詩 )에 대한 반대 감정 병존의 심리 (ambivalence)가 그 원인은 아닐지? 우선 외래적인 것을 경 9 에밀 슈타이거의 논의는 William Elford Rogers, The Three Genres and the Interpretation of Lyric, Princeton: Princeton UP, 1983, p. 38 참조. 10 어느 민족 또는 어느 문화의 전통적인 시가들이 그러하듯, 일본의 와카 역시 시조와 마찬가지로 오랫 동안 노래로서 향유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이 와카의 변모 및 발전 과정에 나름의 영향을 미쳤 으리라고 추정되지만, 노래 로서의 와카와 시 로서의 와카 사이에 존재하는 위상차에 대한 논의는 별도의 지면이 요구되는 작업으로 판단된다. 232 일본비평 14호

계하고 전통적인 것을 지키고자 하는 거부 심리가 당시 문인을 포함한 지식 인들의 눈길을 시조로 돌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즉, 신체시에 맞서는 전통 적인 시 형식의 가능성을 시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는지도 모 른다. 11 이와 관련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가 된 신체시는 명백히 자유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거니와, 이 점은 형식의 면에서 정형시적 요소를 지닌 시조와 날카롭게 대비된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와 동시 에 새로운 것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사람들의 심리에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심리가 그들에게 시조란 악곡 이라는 낡고 거추장스러 운 옷 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이 같은 옷 을 벗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은 아 닐지? 다시 말해, 소리 내어 읽든 눈으로 읽든 새로운 형식의 시에 대한 선 망과 동경이 시조의 악곡 을 포기하게 했던 것은 아닐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현대화 과정에 시조가 거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면, 이는 시조의 주류가 단시조에서 연시조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 즉, 시조의 연시조화 ( 聯 時 調 化 )가 시조 시단의 대세가 되었다. 물론 연 시조 형식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연시조를 남긴 최초의 인물로 알 려진 맹사성( 孟 思 誠, 1360~1438)의 강호사시가 ( 江 湖 四 時 歌 )를 비롯하여, 이황 ( 李 滉, 1502~1571)의 도산십이곡 ( 陶 山 十 二 曲 ), 이이( 李 珥, 1536~1584)의 고산구 곡가 ( 高 山 九 曲 歌 ), 윤선도( 尹 善 道, 1587~1671)의 오우가 ( 五 友 歌 ) 등에서 볼 수 있듯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연시조는 일련의 단시조를 하나의 제 목 또는 주제 아래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이었다. 즉, 옛날의 연시조는 작품 으로서의 독립성이 확보된 단시조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의 연시조는 그 자체로서 유기적인 통일체 를 이룬다. 즉, 표면적으로 볼 때 몇 수의 단시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단시조 단위의 시편( 詩 片 )들은 독자 11 당대 한국의 문인들 가운데 일부가 시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일본에서 단카( 短 歌, たんか)가 널리 향유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이에 상응할 만한 고유의 정형시가 형식이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주목하고, 그들은 시 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233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성을 상실한 채 한 작품의 구성 요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그와 같 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혹시 여기에도 서양에서 이입된 새로운 형태의 시에 대한 반감과 호감이 그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즉, 일정치 않은 수( 數 )의 연( 聯 )이나 행( 行 )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향이 강한 새로운 형 태의 신체시에 맞서 시조를 내세우되, 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확장 가능한 것이 시조라는 논리가 남모르게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 물론 오늘날에도 단시조 창작은 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연시조 창 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양적으로 대단치 않다. 특히 전통적 의미에서의 연시조 창작은 극히 드물다. 즉, 어느 쪽도 주류라고 할 수 없다. 주류가 아님은 오늘날 발간되는 시조 시집들뿐만 아 니라 시조 문학상의 수상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온 최고 권위의 시조 문학상인 중앙시조대상이다. 한 해 동안 창작된 시조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것으로 판 단되는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온 이 문학상의 수상 작 가운데 단시조는 제1회 수상작인 김상옥의 삼련시 2수, 제5회 수상작 인 박재삼의 단수 3편, 제24회 수상작인 홍성란의 바람 불어 그리운 날 이 전부다. 물론 제1회 수상작과 제5회 수상작은 하나의 제목 아래 독립적 인 여러 수의 작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연시조 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삼련시 2수 나 단수 3편 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제목으로 보기 어렵기에 그냥 단시조 모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전통적 형식의 연시조는 제21회 수장작인 이정환의 원에 관하여 5 한 편뿐이다. 사설시조 형태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나, 거의 모든 수상작이 새로운 형태의 연시조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같은 시조의 변모 과정에 동기로 작용한 것이 무엇이든, 이른바 연시 조화 현상은 시조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 다. 단순 비교가 허락된다면, 이는 명백히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변화로 정리할 수 있거니와, 앞서 검토한 정몽주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초창기의 시조는 형태상 단시조였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변 234 일본비평 14호

화를 놓고, 인간의 삶과 현실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바뀜에 따라 현실에 민감한 시간성의 시가인 시조는 필연적으로 변모 과정을 거칠 수밖 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 논리일 수 있다. 삶과 현실의 복잡화는 유독 20세기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자가 시조 의 변모 과정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인 조선 후기 사설시조의 출현을 주목하고자 함은 이 때문이다. 명백히, 변화는 20세기 이전에도 있었다. 그 리고 그와 같은 변화를 요약하는 경우 시조는 단시조에서 사설시조로, 다시 연시조로의 변모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거니와, 이를 감안하더라도 여전 히 시조는 형식상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모했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변모를 확대 지향성 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리라. 한편, 하이쿠는 현실적 시간의 변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시 양식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기본적으로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지 않아왔다. 물론, 하 이쿠를 독립된 시 양식으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마쓰오 바쇼 ( 松 尾 芭 蕉, 1644~1694)의 작품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듯, 5 7 5의 음수율 을 지키지 않은 하이쿠도 존재한다. 즉, 양식상의 변화를 꽤한 파격 이 없 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처럼 기본 음수율에서 벗어난 이른바 지아마리- 노-쿠 (じあまりのく, 字 余 りの 句 )도 나름의 원칙을 따른 것이기에 이른바 변 화를 예고하는 파격 이라 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음수율의 원칙에서 벗어난 자유율의 하이쿠가 오늘날 창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의 하이쿠 가 겪어온 변화란 그리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없다. 더욱이 오늘날 시조의 연시조화 에 대응되는 형태의 급격한 변화는 하이쿠의 세계 어디서도 확인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이쿠는 큰 변화를 거부하는 굳어진 시 양식일까. 물론 하이쿠만을 떼어놓고 보면 그렇다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거니와, 하이쿠 양식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의 과정은 하이쿠 역시 작지 않은 변화의 산물임을 확인케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하이쿠는 와카( 和 歌, わか)와 렌가( 連 歌, れんが)를 모태로 하여 생성된 시 양식으로,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하이쿠 역시 양식상 중요한 변화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도 간소화의 경향을 반영한 양식상 변화의 산물이라고 235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판단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여 논자는 하이쿠를 축소 지향성 의 시 형식으 로 규정하고자 한다. 1) 하이쿠, 또는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어떤 의미에서 축소 지향 인가. 논자가 하이쿠를 축소 지향 의 시 양식으 로 규정하고자 하는 논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위해 우 리는 무엇보다 하이쿠에 대한 계보학적 탐사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하이쿠 라는 명칭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는 하이카이-노-쿠 ( 俳 諧 の 句 )에 서 나온 말로, 19세기 말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마사오카 시키( 正 岡 子 規, 1867~1902)의 제안에 따라 붙여지고 그 이후 일반화된 명칭이다. 마치 시절 가조 ( 時 節 歌 調 )를 줄인 말인 시조 라는 명칭이 조선의 영 정조 시대에 들어 서서야 비로소 일반화되었듯. 12 아무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쿠가 하이쿠 로 불리기 전에는 앞서 파운드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 홋쿠 ( 發 句, ほっく)로 불렸는데, 홋쿠는 원래 렌가의 첫 구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렌가는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쇠퇴하기 전까지 실로 오랜 세월 일본인 의 사랑을 받던 시 형식으로, 이 시 형식의 작품은 8세기 중엽에 편찬된 만 요슈 ( 万 葉 集 )에서도 한 편이 확인된다. 佐 保 川 (さほがは)の 水 (みず)を 堰 (せ)き 上 (め)げて 植 (う)ゑし 田 (た)を ( 尼 作 る) 刈 (か)れる 初 飯 (はついひ)は ひとりなるべし ( 家 持 続 く) 13 12 일반적으로 시조 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이는 영조 시대의 가객 이세춘( 李 世 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이런 정보가 일반화하게 된 것은 영조 시대의 문신 신광수( 申 光 洙, 1712~1775)가 자신의 문집에서 가객 이세춘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조 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 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광수의 문집에 처음 등장한 시조 라는 명칭은 그 후 종종 문헌에 등장한다. 13 佐 竹 昭 広 외 교주, 万 葉 集 제2권, 岩 波 書 店, 2000, 308쪽. 우리말 번역: 사호 개울을 / 막아 물을 멈 추고 / 모낸 논에서 (여승이 읊다) // 거둬들인 햅쌀은 / 나만의 것 돼야지 (야카모치가 계속하다). 236 일본비평 14호

렌가의 원형에 해당하는 위의 시는 어느 한 여승이 첫 구를 짓고 오토모 야카모치( 大 伴 家 持, 718~785)에게 그 뒤를 이어달라고 부탁하여 완성된 작품 이라 한다. 여기서 일별할 수 있듯, 렌가의 창작에는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할 것이 요구된다. 이 같은 공동 창작물인 렌가에는 단렌가( 短 連 歌 )와 조렌가( 長 連 歌 )가 있다. 단렌가란 위의 예에서 보듯 두 사람이 참여하여 각각 5 7 5 와 7 7의 음절로 이루어진 시구를 차례로 읊는 방식의 렌가를 말하며, 세 사람 이상이 참여하여 창작한 다수의 시구로 이루어진 렌가를 조렌가라고 한다. 조렌가의 경우에도 5 7 5와 7 7의 음절로 이루어진 시구들이 차례 로 이어지는데, 심지어 80명이 모여 1000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렌가가 창 작되기도 했다. 이 같은 렌가 가운데 단렌가는 외관상 형태만으로 보면 이른바 와카 14 로 불리기도 하는 단카( 短 歌, たんか)와 다를 것이 없다. 그 예를 하나 들어 보 기로 하자. 만요슈 에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만요슈 및 고킨와카 슈 ( 古 今 和 歌 集, 905)와 함께 일본의 3대 와카집으로 일컬어지는 신코킨와카 슈 ( 新 古 今 和 歌 集, 1205)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고, 가장 오랜 세월 일본인의 사 랑을 받아온 시집인 오구라하쿠닌잇슈 ( 小 倉 百 人 一 首 )에 수록되어 있기도 한 다음의 작품은 단카를 대표하는 한 예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春 (はる) 過 (す)ぎて 夏 (なつ) 来 (き)にけらし 白 妙 (しろたへ)の 衣 (ころも) 干 (ほ)すてふ 天 (あま)の 香 具 山 (かぐやま) 15 14 일반적으로 와카 는 넓은 의미에서의 와카와 좁은 의미에서의 와카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의 와카는 일본의 전통적 시가 문학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이며, 좁은 의미에서의 와카는 5 7 5 7 7의 형태로 창작된 정형시인 단카를 지칭하는 용어다. 15 鈴 木 日 出 男 山 口 愼 一 依 田 泰, 原 色 小 倉 百 人 一 首, 文 英 堂, 1997, 10쪽. 우리말 번역: 봄이 지나고 / 여름이 온 것 같네 / 희디흰 천의 / 빨래 말린다 하는 / 성스러운 가구산. 237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초여름의 밝은 녹색과 널어놓은 빨래의 하얀색 사이의 색조 대비가 인 상적인 지토 천황( 持 統 天 皇, 645~703)의 이 작품과 같은 단카에서 하이쿠의 기원을 찾을 수는 없을지? 다시 말해, 5 7 5 음절의 윗구 ( 上 の 句 )와 7 7 음절의 아랫구 ( 下 の 句 )로 세분할 수 있는 5 7 5 7 7 음절 구조의 단카에 서 윗구가 독립하여 하이쿠로 발전한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 지만 이 같은 추론이 가당치 않은 것임은 위의 단카에 대한 간단한 구문 분 석 또는 의미 분석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 단카의 윗구와 아랫구 사이에는 구문 또는 의미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 야 할 것이다. 위의 예에서 구문 또는 의미의 경계는 제2행과 제3행 사이에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을 와카의 표현 기법상의 용어로 는 니쿠기레 ( 二 句 切 れ, にくぎれ)라 부르는데, 실제로 만요슈 의 단카에서는 이 같은 니쿠기레뿐만 아니라, 제4행과 제5행 사이에 경계가 존재하는 시 쿠기레 ( 四 句 切 れ, しくぎれ)가 종종 확인된다. (어떤 경우든, 윗구만을 따로 떼어놓는 경우, 구문 또는 의미의 면에서 불완전한 것이 된다.) 한편, 고킨와카슈 시대에는 제 3행과 제4행 사이에 경계가 존재하는 산쿠기레 ( 三 句 切 れ, さんくぎれ)가, 신 코킨와카슈 시대에 이르러서는 산쿠기레는 물론이고 제1행과 제2행 사이 에 경계가 존재하는 쇼쿠기레 ( 初 句 切 れ, しょくぎれ)가 비교적 많이 확인된다 고 한다. 16 심지어 이 같은 경계가 두 군데 존재하는 예도 있는데, 오구라 하쿠닌잇슈 에 수록된 다음 작품을 주목하기 바란다. 見 (み)せばやな 雄 島 (をじま)の 海 人 (あま)の 袖 (そで)だにも 濡 (ぬ)れにぞ 濡 (ぬ)れし 色 (いろ)は 變 (か)はらず 17 16 鈴 木 日 出 男 山 口 愼 一 依 田 泰, 原 色 小 倉 百 人 一 首, 131쪽. 17 鈴 木 日 出 男 山 口 愼 一 依 田 泰, 原 色 小 倉 百 人 一 首, 114쪽. 우리말 번역: 보이고 싶어 / 오지마의 어부 의 / 소매까지도 / 젖고 또 젖었지만 / 핏물 들진 않았지. 238 일본비평 14호

인푸몬인-노-다이후( 殷 富 門 院 大 輔, 1130~1200)라는 여성의 작품으로 알려 진 이 작품에서는 쇼쿠기레와 시쿠기레가 동시에 확인된다. 어부의 소맷자 락이 바닷물에 젖고, 자신의 소맷자락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흘리는 눈 물에 젖었지만, 아무런 자국이 남지 않는 어부의 소맷자락과 달리 자신이 흘리는 눈물은 피눈물이기에 소맷자락에 자국이 남아 있음을 전하는 동시 에 그리고 그 소맷자락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절절한 마음 을 드러내는 이 단카는 실로 비교가 허락되지 않는 빼어난 절창( 絶 唱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제2행에서 제4행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의미 구조상 세 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작품 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의미 구조의 측면에서 단카는 렌가 와 구별되지 않을 수 없는데, 렌가의 경우 첫째 시구인 홋쿠, 둘째 시구인 와키( 脇, わき),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시구들 사이에는 창작자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미나 구문의 경계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바로 이 점만을 놓고 보더라도, 하이쿠를 단카의 윗구에서 직접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찌 보면, 가회( 歌 會 ) 즉, 렌가 창작을 위한 모임의 자리 에 참석한 사람들이 단카의 시 양식을 취하여 윗구와 아랫구 를 주고받는 과정에 5 7 5와 7 7 사이에 자연스럽게 경계가 지어지게 되 었고, 궁극적으로 여기서 하이쿠의 생성이 가능케 되었다 할 수 있다. 한편, 가회에 특별한 손님이 참석한 경우에는 그가 홋쿠를 제시하고 가회를 준비 한 사람이 와키를 잇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는데, 이는 렌가의 시작을 알리 는 홋쿠를 특별히 중시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리라. 이처럼 홋쿠를 특별하 게 여기는 가운데 이른바 홋쿠가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홋쿠 가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가운데 비로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하이 쿠의 탄생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단카가 독립적인 시 양식으로서 줄곧 일본인의 사랑을 받아오던 것도 사실이지만, 앞서 말했듯 렌가 역시 오랫동안 일본인의 사랑을 받아오던 시 양식이다. 물론 렌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름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인 데, 단렌가는 헤이안 시대(794-1185)의 중기에 이르러 쇠퇴하기에 이르고, 239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헤이안 시대 말기에 이르러 조렌가가 렌가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렌가가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 시 창작을 위한 다양한 규칙 이 른바 시키모쿠( 式 目 ) 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엄청나게 복잡한 규칙 가운데 하이쿠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홋쿠에는 반드시 시를 짓는 때의 계절을 암시하거나 가리키는 기고 ( 季 語 )가 들어가야 하며, 끊는 글자 라는 뜻의 기레지 ( 切 字 )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기레지란 시구의 중간 에 야 (や)나 나리 (なり) 또는 카나 (かな)나 케리 (けり)와 같은 글자를 넣 어 시의 속도를 늦추거나 시적 여운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한편, 이 같은 규칙은 홋쿠가 렌가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시 이른바 하이쿠 의 위 상을 확립한 다음에도 여전히 중요한 규칙으로 인정되어왔다. 그렇다면, 홋쿠에 하이쿠 라는 별칭 부여를 가능케 한 이른바 하이카 이 란 무엇인가. 이때의 하이카이 는 하아카이-노-렌가 ( 俳 諧 の 連 歌 )를 가 리키는 말로, 이는 16세기에 들어서서 렌가가 귀족적인 렌가의 틀을 벗어나 익살과 해학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함에 따라 생겨난 렌가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하이카이의 예 가운데 자주 인용되는 예를 하나 들기로 하자. 霞 (かすみ)の 衣 (ころも) すそはぬれけり 佐 保 (さほ) 姫 (ひめ)の 春 (ほる) 立 (た)ちながら 尿 (しと)をして 18 위쪽의 시구 마에쿠 ( 前 句, まえく) 에는 봄이 되어 온 세상에 안개가 18 이는 하이카이시( 俳 諧 師 )였던 야먀자키 소칸( 山 崎 宗 鑑, 1465?~1554?)이 1592년에 편찬한 신센이 누쓰쿠바슈 ( 新 撰 犬 筑 波 集 )에 수록된 시구들로, 아래쪽의 구 즉, 쓰케쿠 ( 付 け 句 ) 는 소칸 자신 의 것이다. 木 村 三 四 吾 井 口 壽 교주, 竹 馬 狂 吟 集 新 撰 犬 筑 波 集, 新 潮 社, 1988, 119쪽 참조. 우리말 번역: 안개의 옷자락이 / 촉촉이 젖어 있군 // 봄의 여신인 / 사호 공주가 서서 / 소변을 보니. 240 일본비평 14호

끼어 있고 산자락의 아래쪽이 물에 젖어 있는 듯 어두운 빛깔을 띠고 있는 봄의 정경이 묘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스소 (すそ, 裾 )는 옷의 아랫자 락 을 뜻하는 동시에 산기슭 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의해 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같은 시적 발언에 대한 응답에 해당하는 아래쪽의 구 쓰케쿠 ( 付 け 句, つけく) 는 위의 묘사에 대한 엉뚱하면서도 재치 넘 치는 재해석에 해당한다. 봄을 알리는 여신인 사호 공주가 옷 추측건대, 기모노 을 입은 채 서서 소변을 보다니! 당시의 일본인 특유의 생활 습관 을 감안하더라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활달하고도 대담한 상상력이 여 기서 감지되지 않는가. 해학과 익살로 빛나는 이 시구는 일본의 하이카이가 추구하는 시적 정조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익살과 해학을 추구한다고 해서 시가 곧 속되고 천박해짐을 뜻하는 것은 아 닐 것이다. 아무튼, 단순한 재치와 언어 유희를 뛰어넘어 영적 깊이와 미적 감수성을 겸비한 시 장르로 자리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인이 다름 아닌 하이세이( 俳 聖, はいせい) 즉, 하이카이의 시성( 詩 聖 ) 로 불리는 마쓰오 바쇼다. 마사오카 시키가 하이쿠라는 명칭을 부여했을 때 모르긴 해 도 하이카이의 시적 지위를 확고하게 했던 마쓰오 바쇼의 업적을 염두에 두 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단카에서 렌가와 하이카이로, 렌가와 하이카이에서 다시 하이쿠로 이어지는 발전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면, 일본의 정형시는 간소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복잡한 것에서 다시 간소한 것으로 변모해왔 다고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하이쿠를 단카나 단렌가와 순전히 형식면에서 비교하는 경우에도 간소화라 특징지을 수도 있거니와, 이런 관 점에서 보면 일본의 정형시는 복잡한 것에서 간소한 것으로 변모 과정을 이 어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발전 과정에 비춰보면, 앞서 잠깐 제기한 바 있는 한국의 연시조에 대응되는 형태의 하이쿠란 애초 있을 수 없는 일종의 변칙( 變 則, anomaly)이 아닐 수 없다. 주제의 자유로움이 나 작품의 규모 면에서 연시조를 능가하는 렌가가 존재하는 이상, 하이쿠가 굳이 연시조와 같은 형태가 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연성도 없다. 이와 관련 241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하여, 관심도의 면에서 하이쿠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이를 통한 렌가 창작이 오늘날 여기저기서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이 하이쿠의 시대라 해서 렌 가도 그렇지만 단카도 완전히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와라 마치( 俵 万 智 )의 단카 시집 샐러드 기념일 (サラダ 記 念 日 )이 1987년 발간되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 신년 초하룻날 천황이 직접 참여하는 황실 시회 인 우타카이하지메( 歌 会 始, うたかいはじめ)에서 단카 창작이 시도된다는 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 2) 시조, 또는 확대 지향 의 시 형식 이제 시조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계보학적 탐사 또는 통시적( 通 時 的 ) 인 검토를 시도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 시조의 발생학적 모태가 된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신라 향가에서, 혹자는 고려 가요에서 시조의 기원을 찾 으려 하나, 그 어느 쪽도 아직까지는 설득력 있는 논리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신라 향가나 고려 가사 어느 쪽도 시조의 맥을 짚어 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원전 자료를 우리에게 허락하고 있지 않다. (아, 역사 에 기록된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 ( 三 代 目 ) 등의 고전 시가 모음집이 기적과도 같이 우리에 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런 가운데, 고려 가요 만전춘 ( 萬 殿 春 )의 제2연과 제5연에서 시조 고유의 시상 전개 방식을 추적할 수 있다는 논리 아래, 여 기서 시조의 출발점을 찾는 학자들도 있다. 물론 이는 나름의 의미를 갖는 주장이지만,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몇몇 학자는 또 한 편의 고 려 가요 정과정 ( 鄭 瓜 亭 )을 주목하기도 하는데, 19 그들은 정과정 이 계면조 ( 界 面 調 ) 악곡의 원류에 해당한다는 점과 시조의 악조가 대체로 계면조라는 점에 근거하여, 또한 정과정 의 대엽조( 大 葉 調 )가 가곡 만대엽( 慢 大 葉 )으로 발전하고 만대엽에 시조를 얹어 창을 해왔다는 점에 근거하여, 악조와 선율 구성 등의 악곡 요소를 시조창과 대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19 대표적인 예로 윤덕진, 정과정 의 성립 과정, 한국고시가문화연구 제34권, 2014 참조. 242 일본비평 14호

가사( 歌 詞 )의 언어적 또는 의미론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시조의 음악 적 측면에서 시조의 발생학적 근거를 추적하는 학문적 시도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논의도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여 전히 마찬가지이거니와, 시조의 발생학적 근거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 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시조의 발생학적 모태를 논의할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한시( 漢 詩 ) 즉, 러트가 거론한 바 있는 당시풍의 정형적인 한시 다. 따지고 보 면,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가 문학에 한시가 미쳤던 영향 력은 서양 문학에서 라틴어 문학이 미쳤던 영향력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 다. 특히, 러트가 언급한 바 있듯, 시조와 당시풍의 정형적인 한시 사이의 상관관계는 동일한 시상 전개 방식 즉, 기승전결 의 의미 구조 에 기대 고 있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추측건대, 시조에 대한 한시체 번역이 성행했 고, 그것도 기승전결의 시상 전개가 고유의 특성인 칠언절구( 七 言 絶 句 )나 오 언절구( 五 言 絶 句 )의 한시체 형식에 기댄 경우가 수적( 數 的 )으로 우세한 이유 는 이 때문이리라. 아마도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고려 시대의 문신 이조년( 李 兆 年, 1269~1343)의 시조에 대한 조선 시대의 문신 신 위( 申 緯, 1769~1845)의 칠언절구( 七 言 絶 句 )체 한역( 漢 譯 )일 것이다. 梨 花 에 月 白 고 銀 漢 이 三 更 인제 一 枝 春 心 을 子 規 ㅣ야 아라마 多 情 도 病 이냥 여 못드러 노라 梨 花 月 白 三 更 天 이화에 달빛 환한 자정 무렵 밤하늘 啼 血 聲 聲 怨 杜 鵑 피를 토하듯 우는 두견이 원망스러워 儘 覺 多 情 原 是 病 다정도 본디 병인 줄 이제야 깨닫나니 不 關 人 事 不 成 眠 인간사에 무심해도 잠 못 들어 하노라 20 20 이조년의 시조 및 신위의 번역은 정병욱 편, 시조 문학 사전 의 396쪽 참조. 시조 문학 사전 에 수 243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위에 인용한 이조년의 작품과 신위의 번역을 비교할 때 무엇보다 눈에 띄는 차이점은 말할 것도 없이 전자가 3행시라면 후자는 4행시라는 점일 것이다. 아울러, 양자를 내용면에서 살펴보면, 나름의 의미상 변조가 있긴 하나 칠언절구의 제1구와 제2구는 시조의 초장과 중장에 대응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칠언절구의 제3구와 제4구는 각각 시조의 종장 전구 와 후구에 대한 번역이다. 요컨대, 신위는 자신의 번역에서 기승전결의 시 상 전개 방식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신위의 시문집인 경수당전고 ( 警 修 堂 全 藁 )의 소악부 ( 小 樂 府 )에 수록된 40수의 한역 시조를 검토하면, 시조와 절 구 형식의 한시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같은 시상 전개 방식의 유사성을 감안 한 듯, 종장을 둘로 나눠 한시체 번역의 제3구와 제4구로 처리한 작품이 수 적으로 단연 우세하다. 21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시조에 대한 조선 시대의 한역은 대략 1200 여 수로, 이 가운데 시조의 3장6구 형식을 살려 4언6구체나 5언6구체로 번 역된 예도 있긴 하나 칠언절구체를 포함하여 7언4구체로 번역된 예는 양적 으로 가장 우세한 500여 수에 달한다고 한다. 22 이처럼 한시의 대표적인 정 형 형식 가운데 하나에 맞춘 번역이 많다는 점에서 시조와 한시 사이의 연계 성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시의 정형성과 시조의 정형성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빤한 지적이긴 하지만, 한시의 4구체 또는 절구체가 4개의 구( 句 )로 구성되어 있다면, 시조는 3장 6구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인이 4라는 수 대신 3 또는 6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5행시 형식의 단카 또는 3행시 형식의 하이쿠에서 암시되 록된 신위 번역의 제4구 첫 글자가 覺 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어 이를 不 로 바로 잡았다. 우리말 번 역은 논자의 것임. 21 황위주에 의하면, 신위의 시조 번역의 경우, 복잡한 삽입과 생략의 과정을 거친 2수의 작품을 제외하 면, (1) 종장을 둘로 나눠 제3구와 제4구로 처리한 예가 17수, (2) 중장을 생략하고 초장과 종장을 각 각 둘로 나눠 각각 제1구와 제2구 및 제3구와 제4구로 처리한 예가 2수, (3) 초장을 둘로 나눠 제1구 와 제2구로 처리한 예가 14수, 그 외의 다양한 예가 5수다. 이를 종합하면, 다양한 번역 방식 가운데 종장의 의미 구조를 살린 경우가 38수 가운데 모두 19수다. 이상의 논의는 황위주, 조선후기 소악부 연구, 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3, 52쪽 참조. 22 김문기 김명순, 조선조 시가 한역의 양상과 기법, 태학사, 2005, 29쪽, 31쪽. 244 일본비평 14호

는 5 또는 3이라는 수에 대한 일본인의 선호는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두 민 족의 언어적 경향 (linguistic turn)이나 문화적 에토스 또는 혼( 魂 ) 에 대한 천 착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떤 경로를 거쳐 3장6구의 정형시 요건이 확립되었든, 우리에게 전해 오는 작품을 검토하는 경우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시조 형식은 고려 말인 13~14세기경에 정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정몽주와 이조 년의 시조는 초창기의 시조를 대표하는 작품들일 것이다. 문제는 형식이 확 립된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약 400에서 500여 년 동안 시조 에는 형식상의 실질적인 변화가 거의 짚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 숨 쉬 는 시가 형식이 변화에서 비켜선 채 이처럼 오랜 세월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해왔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이를 가능 케 한 요인은 무엇일까. 논자가 러트의 다음 지적에 유의하는 것은 이 물음 에 대한 답을 위해서다. 어찌 보면, 그의 지적은 한국 문화를 바깥쪽에서 바 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수 있다. 18세기 이전에는 시 창작이 전문적인 시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다른 동아 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교육 받은 모든 이들이 문학과 창작 면 에서 훈련 과정을 거쳤다. 한글로든 한자로든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심 지어 무신까지도 시를 창작했다. 그 결과로 산출된 시적 자산은 서양의 것과 아 주 다른 것이 되었다. 시 창작자들이 전문적인 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서양 시인들의 작품에 비해 덜 모험적인 것이 되는 동시에 더 형식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형식에 대한 실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 역 사적으로 서양의 시가 거쳐온 시기에 상응하는 시기 동안 기대해볼 만큼의 발 전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전통적인 한시 창작법이 사용되고 있긴 했지만, 15세 기 이후 줄곧 한글로 창작된 시에는 단지 두 종류밖에 없었다. 하나는... 가사 ( 歌 辭 )였고, 다른 하나는 시조였다. 23 245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덜 모험적인 것이 되는 동시에 더 형식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와 형식에 대한 실험이 거의 없었[다] 는 지적은 가치 판단보다는 상황 진 술을 담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모험적이고 실험적이어야 반드시 예술 또는 문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거나 탁월한 작품의 탄생이 약속되는 것은 아 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시조가 정립된 이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 안 형식의 측면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주옥같은 작품이 연이어 탄생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트가 지적하듯, 이른바 시조에 목 숨을 거는 전문가 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울러, 문학과 창작 면에서 훈련 과정 을 거친 교육 받은 이들은 곧 양반 계급 으로, 시조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때 문에 시조가 살아 숨 쉬는 시가 형식이면서도 변화와 발전을 보이지 않았 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렌가가 가마쿠라 시대(1185~1333)를 거치면서 귀족뿐만 아니라 승려나 신흥 사무라 이 또는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기는 시가 양식이 되었고, 이에 따라 눈에 띄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과 비교된다. 또한 무로마치 시 대(1336~1573)에 들어서면서 전문적으로 렌가 창작을 주도하거나 이를 지도 하는 이른바 렌가시( 連 歌 師, れんがし)가 등장한 것도 한국의 상황과 비교된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 시조의 역사에 또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에게 시인 이라는 칭호가 어색 한 경우가 적지 않음은 이런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조를 창작했다 해 서 누구에게나 시인 또는 가인 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 어렵지 않은가. 예컨대, 시인 정몽주 나 가인 정몽주 와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 이런 사정 은 일본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지만, 그래도 바쇼와 같은 이에게는 시인 바쇼 나 가인 바쇼 라는 표현은 자연스럽다. 그는 이른바 전문적인 시인 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에 상응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른바 가객 으 로 불리는 시조 창작 또는 시조집 편찬에 힘썼던 인물들 예컨대, 김천택 23 Rutt, The Bamboo Grove, pp. 3~4. 246 일본비평 14호

( 金 天 澤, 1680년대 말~?), 김수장( 金 壽 長, 1690~?), 송계연월옹( 松 桂 烟 月 翁,?~?), 이 세춘( 李 世 春,?~?), 안민영 ( 安 玟 英, 1816~?), 박효관( 朴 孝 寬,?~?) 로, 이들의 출 현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들의 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그 무렵 조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되돌아보지 않 을 수 없는데,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쳐 조선 사회는 왜란( 倭 亂 )과 호란( 胡 亂 )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기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혼란기를 보 낸 조선 사회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안정을 되찾게 되었는데, 그처럼 안정 을 되찾는 동안 신분 이동과 계층 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와 함께 시조를 향유하는 계층이 평민에 이르기까지 넓어지게 되었는데, 이 같은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가객 들 즉, 중세 일본의 렌가시에 상응하는 역할을 한 이들 이다. 우리는 시대의 변 화와 관련하여 이들 가객이 양반층이 아닌 대체로 중인층( 中 人 層 )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중인층 출신의 전문 가객의 출현 및 활발한 활동에 발맞춰 시조의 형식 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사설시조( 辭 說 時 調 )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조가 융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논자가 등장 대신에 융성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설시조의 등장이 18세기 이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문서상으로 확인 가능한 최초의 사설시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 고응척( 高 應 陟, 1531~1605)과 백수회( 白 受 繪, 1574~1642)의 문집에 나오는 작품들이며, 왜 란 당시 왜군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김충선( 金 忠 善, 1571~1642)의 문집에도 이러한 형식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설시 조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 광범위하게 창작되거나 애송된 것은 18세기 이후 의 일이다. 사설시조의 융성이 18세기 이후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무엇보다 시조가 더 이상 어느 한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남아 있지 않게 된 상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제 시조는 전문 가객의 출현과 함께 중인층을 포함하여 평민 계층의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즐기는 시가 양식으 로 변모를 꾀하지 않을 수 없었거니와, 이에 따라 시조는 그들의 세속적인 247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현실 인식과 솔직하고 직설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 아래 융성하게 된 것이 사설시조로, 시조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시간성의 시 형식 임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사설시조는 이전의 시조에 대한 극단의 변형이 라 할 수 있다. 즉, 기승전결의 시상 전개를 3장 안에 담는다는 것과 종장을 3음보의 어휘로 시작한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이전의 시조와 유사점을 찾 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이미 확립된 정형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 은 하이카이의 대두 과정에도 확인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하이카이는 렌가 의 복잡하고 정교한 시키모쿠에 구애를 받지 않는 운문 형식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익살과 해학이 하이카이의 두드러진 특성이듯 사설시조의 두드러진 특성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무언가 근엄하고 고상 하거나 진지한 내용을 담고자 했던 것이 대체로 이전 시조 사설시조와 구 분하고자 할 때, 단시조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조 형식 의 일반적 경향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절차와 격식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평민 계층까지 즐기게 되면서 이제 시조는 형식면에서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과거의 고답적인 태도와 표현을 벗어던지게 되 었다. 거듭 말하지만, 시조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 되는 동시에 세속적 인 것이 되기 바라는 평민 계층의 요구 또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나름 의 변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부응하여 용성하게 된 것이 곧 형식 의 측면에서 자유로워진 해학과 익살의 사설시조다. 사설시조의 해학과 익살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이 단순히 표면적이고 언어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재치에 넘치는 말장난 또는 언어유희의 차원에서 해학과 익살이 시도되었 던 것만은 아니다. 거듭 힘주어 말하거니와, 시조는 현실과 인간의 삶에 민 감한 우의적인 시가 양식으로, 필연적으로 그 안에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적 인 것이든 또는 인간적인 것이든 현실에 대한 이해와 비판을 담지 않을 수 없다. 익살과 해학은 이 같은 이해와 비판을 우의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언 어 장치 또는 수사( 修 辭 )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설시조는 정치( 精 緻 )하고 신 248 일본비평 14호

랄한 풍자의 시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탁월한 예 가운데 한 편을 소개하자면, 조선 영조 때 하급 관리였던 이정진( 李 廷 鎭 )의 다음과 같은 작 품을 앞세울 수 있다. 가버슨 兒 孩 ㅣ들리 거뮈쥴 테를 들고 川 으로 往 來 며 가숭아 가숭아 져리가면 니라 이리 오면 니라 부로 니 가숭이로다 아마도 世 上 일이 다 이러 가 노라 24 언뜻 보기에 위의 인용은 발가벗은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으며 놀고 있 는 정경을 담은 작품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기 위해 속임수를 쓰고 있음을 전한다.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고. 물론 아이 들이 잠자리에게 쓰는 속임수야 속임수일 수 없다. 잠자리는 아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아이들은 잠자리가 자기네들의 말을 알아들을 것을 기대 하고 던지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들고 있는 거뮈쥴 테 는 속임수임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속임수다. 요컨대, 잠자리를 잡기 위 해 아이들은 속임수가 아니면서 속임수인 속임수를, 또한 속임수임을 밝히 고 있지 않지만 속임수인 속임수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속임수이 면서 여전히 속임수가 아닌 속임수 또는 속임수이지만 속임수임이 감추어 진 속임수가 만연해 있는 것이 인간사 아닐까. 이것이 바로 시인이 이해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삶의 현실이리라. 속임수가 아니면서도 속임수이고 속임수이면서 속임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의 다층성은 시어에서 도 확인되는데, 가숭이 라는 말 자체에 유의하기 바란다. 즉, 가숭이 는 발가벗고 노는 아이들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빨간 빛깔의 고추잠자리를 지 시하기도 하지 않는가. 이 같은 절묘한 언어유희 때문에도 이 시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또 한 편의 예를 들면, 우리는 다음 작품을 뒤세울 수 있을 것이다. 24 정병욱, 시조 문학 사전, 209쪽. 249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두터비 리를 물고 두험우희 치 라 안자 것넌 山 라보니 白 松 鶻 이 잇거 가슴이 금즉 여 풀덕 여 내 다가 두험 아래 바지거고 모쳐라 낸 낼 만졍 에헐질번 괘라 25 작자 미상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백송골 과 두터비 와 리 는 먹이 사슬 관계에 있는 생명체들이다. 이들 가운데 먹이사슬의 중간 단계에 있는 두터비 의 몸짓과 말을 해학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것은 당시의 관료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우의적 비판이다. 이 작품의 백송골 과 두터비 와 리 는 각각 당시의 상급 관리, 하급 관리, 백성을 암시하거니 와, 리 로 비유되는 백성을 쉽게 배를 채울 밥 으로 생각하는 하급 관리 는 두터비 로 비유되고 있으며, 하급 관리가 두려워하는 상급 관리는 백 송골 로 비유되고 있다. 백송골 이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놀라 두터비 가 몸을 숨기다가 풀, 짚 또는 가축의 배설물 따위를 썩힌 거름 (국립국어원 인 터넷 표준국어대사전) 아래 넘어지면서도 날래게 몸을 피한 자신의 행동에 자 부심을 갖는 모습에서 해학과 익살뿐만 아니라 유쾌한 반어( 反 語, irony)와 신 랄한 현실 비판까지 읽을 수 있다. 이처럼 극적 변모의 과정을 거친 시조가 20세기에 들어서서 다시 한 번 새로운 극적 변모의 과정을 거쳤던 점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소상하게 밝 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이 같은 시조의 극적 변모 과정 또는 현대화 과 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인 가람 이병기( 李 秉 岐, 1891~1968)의 다 음과 같은 제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古 來 의 時 調 에는 한 首 가 한 篇 이 되게 하여 完 全 히 한 獨 立 한 생각을 表 現 했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生 活 相 은 예전보다도 퍽 複 雜 하여지고 새 刺 戟 을 많이 받게 됨에 따라, 또한 作 者 의 成 功 도 가지가 25 정병욱, 시조 문학 사전, 169쪽. 250 일본비평 14호

지로 많을 것이다. 그것을 겨우 한 首 로만 表 現 한다면, 아무리 그 線 을 굵게 하 여 하더라도 될 수 없으며, 된 대야 不 自 然 하게 되고 말 것이니, 자연 그 表 現 方 法 을 전개시킬 수밖에 없다. 워낙 時 調 形 그것부터가 얼마라도 展 開 시킬 수 있 게 된 것이다. 필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表 現 方 法 을 展 開 시키자는 것은 곧 連 作 을 쓰자 함이다. 26 時 調 는 革 新 하자 (동아일보 1932. 2. 12.)라는 글에 담긴 위의 제안을 한 마 디로 요약하자면 連 作 을 쓰자 일 것이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연작 이란 感 情 의 統 一 을 담보한 것이지, 한 題 目 만 가지고 여러 首 를 지어 羅 列 한 것 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여러] 首 가 各 各 獨 立 性 을 잃더라도 全 篇 으로서 統 一 만 되 어 있는 시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27 즉, 그는 단순 나열도 경계하지만, 이와 동시에 연시조 고유의 특성을 상실한 연시조도 경 계한다. [여러] 首 가 各 各 獨 立 性 을 잃더라도 全 篇 으로서 統 一 만 되 어 있 는 시조를 받아들이는 경우, 잘못하다가는 時 調 가 아니고 다른 것이 되고 말 수 있기 때문이다. 28 요컨대, 가람은 오늘날 우리의 生 活 相 은 예전보다 도 퍽 複 雜 하여지고 새 刺 戟 을 많이 받게 되었음을 그 이유로 들어 연시조 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날 시조 시단을 지 배하고 있는 이른바 새로운 형태의 연시조를 마음속에 구상하고 있었던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단순히 감정의 통일 을 넘어서 한 편의 유기적 통일체 로 존재하는 연시조가 시조 시단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단시조 형식의 시편( 詩 片 )들이나 새로운 형태 의 연시조 형식의 시편들이 사설시조 형식의 시편들과 한데 어우러져 유기 적 전체 를 이루는 독특한 형태의 시조가 창작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가 시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든, 또한 어디 26 이병기, 가람 문선, 신구문화사, 1971, 327쪽. 27 이병기, 가람 문선, 327~328쪽. 28 이병기, 가람 문선, 327쪽. 251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에서 찾을 수 있든, 현재의 상황에 비춰 판단할 때 논자는 시조를 정녕코 확대 지향 의 정형시 양식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시조의 시간성과 하이쿠의 초시간성 연시조가 단시조나 사설시조를 압도하는 한국의 정형시 시단과 하이쿠가 단카나 렌가를 압도하는 일본의 정형시 시단 사이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동어반복일 수도 있겠지만,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한국의 시조가 확대 지향적 이라면 일본의 하이쿠는 축소 지향적 이라는 것이 논 자의 잠정적인 결론이거니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 양자에 대한 비교 논 의는 각각의 시 형식이 지니고 있는 본원적 특성을 시간성의 측면에서 다시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논자의 판단이다. 시간성의 측면에서 볼 때, 시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탐구의 시가라면, 하이쿠는 세계에 대한 순간적이고도 초월적 인 이해와 탐구의 시가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시간성을 초월하고자 할 때 언어적 측면에서 보이는 간소화 경향은 필연적인 귀결이 될 수밖에 없거 니와, 길게 이어지는 언어적 표현은 때때로 불필요한 췌사( 贅 辭 )가 될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의 현실은 원인과 과정과 결과의 구조로 이해될 수밖에 없 기 때문에, 이를 단계별로 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적 표현이 요구된다. 그 결과, 시조의 경우, 짤막한 단시조라 하더라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하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단시조라는 간명한 시 형식이 강요하 는 한계와 시인의 복잡한 세계 인식 사이에는 갈등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 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시조가 단시조에서 사설시조로, 다시 사설시조에 서 새로운 형태의 연시조로 변모를 거듭하게 된 원인은 여기서도 찾을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하이쿠가 지니고 있는 초시간적 특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혹 시 그 원인이 단카나 렌가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의 문과 관련하여,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 만요슈 는 크게 천황과 관련된 노 래나 여행의 노래 또는 자연과 사계절을 노래한 시가 등 여러 동기에서 창 252 일본비평 14호

작된 다양한 노래를 포함한 조카 ( 雑 歌, ぞうか) 및 주로 남녀 간 사랑의 노래 로 이루어진 소몬카 ( 相 聞 歌, そうもんか)와 세상을 떠난 사람이나 죽음과 관 련된 노래로 구성된 반카 ( 挽 歌, ばんか)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분류 방식 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전통은 단카에도 이어져, 인간사 의 여러 단면이 시가의 내용을 이룬다. 특히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및 사계 절 변화하는 일본의 자연을 노래하는 시가가 내용 면에서 단카의 주류를 이 룬다. 이러한 사정은 렌가 창작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간의 사랑과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풍광이 주된 소제가 되어왔다. 요컨대, 단카나 렌 가 어느 쪽도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배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이쿠가 초월적 세계 이해와 표현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외적인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쿠로 독립되기 이전부터 렌가의 홋쿠가 지녀왔던 역할과 의미를 천착하는 경우 이는 자연 스러운 귀결로 보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홋쿠란 공동 창작물인 렌가 의 맨 앞을 장식하는 일종의 리딩 엣지 (leading edge)에 해당하는 것임에 유 의하기 바란다. 리딩 엣지 라니? 이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대기와의 접 촉이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프로펠러나 날개의 맨 앞쪽 모서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화무쌍하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역동적( 力 動 的 )인 렌가를 하나 의 움직이는 물체로 보고자 할 때 동원될 수 있는 표현이다. 아니, 동양적 비유를 동원하자면, 비행기보다는 하늘을 나는 용( 龍 )의 코끝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렌가는 정지해 있다기보다는 날고 있는 비행기나 용에 비유되는 것이 제격일 수 있거니와, 렌가를 시작하는 홋쿠의 첫 글자인 홋( 發, ほつ)- 이 정지해 있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함 을 의미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세상의 어떤 시가도 렌가 만큼 역동적인 것은 없으리라. 아무튼, 비행기나 용이 하늘을 날기 위해 땅 을 박차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비행기의 날개나 프로펠러의 맨 앞 모서 리 또는 용의 코끝과 그 앞을 가로막는 대기 사이에는 순간적인 접촉이 이 루어진다. 이 같은 대기와의 순간적인 접촉을 감당하는 리딩 엣지 또는 용 253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의 코끝과도 같은 것이 홋쿠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순간 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촌음( 寸 陰 )의 순간은 곧 세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 한 렌가의 홋쿠에게 주어진 인식의 순간일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것이 홋쿠 에게 주어진 인식의 순간이라면, 어찌 홋쿠에게 허용된 인식 활동이 순간적 또는 찰나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찰나적인 또는 순간적인 인식 활동은 결코 일정한 시간의 경과를 암시하는 인간사의 이야기 예컨대, 시 조나 한시의 절구를 이루는 기승전결 구조의 시적 정보 를 수용할 수 없 다. 바로 이 같은 홋쿠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하이쿠라면, 어찌 하 이쿠가 어느 한 극적인 순간을 담기 위한 시적 장치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 는가. 그렇기에, 하이쿠는 자연스럽게 초월적 세계 이해와 표현을 지향하는 시 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홋쿠에 시간을 암시하는 기고가 필수 요소가 된 이유는 무엇일 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아무리 찰나적인 것이라 해도 인간의 세계 인식 은 절대적인 초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초 월 공간 안에 제시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비유 에 기대자면, 비행기나 용이 하늘을 날기 위해 대기가 필요하듯, 찰나적인 세계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찰나적인 것을 찰나적인 것으로 규정해 줄 요건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찰나적인 세계 인식이 찰나적인 것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찰나적인 것임을 인식케 하는 판단 기준(the point of reference)의 역할을 하는 시간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찰나적인 것 이라 해도 인간의 세계 인식은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비교가 불가능한 절대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움직인다 해도 움직이는 것으로 감지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컨대, 순간적이고 초월적인 세계 인식 이라 해도 그것이 순간적이고 초월적인 세계 인식으로 의미 있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순간성과 초월성을 지시해줄 일종의 기준점이 요구되거니 와, 기고가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기준점의 역할이 아닐까. 물론 오늘 날의 하이쿠 작품에는 이 기고마저 배제되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 지만, 순간의 시 형식인 하이쿠에 기고가 인식론적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254 일본비평 14호

것인가는 결코 간과해서 안 될 것이다. 한편, 시조가 현실에 민감한 시간성의 시가 양식으로 정착하는 데 근원 적인 동인의 역할을 한 것이 있다면, 이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시조의 역사 적 변모 과정에 대한 논의에서조차 자칫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특성이 존재 하거니와, 간략하게나마 이에 대한 검토 작업이 요구된다. 즉, 애초에 시조 가 시간성의 시가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이후에도 중요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 묻자면, 독자적인 시가 형식으로 정립되는 과정에 어떤 요인이 작용했기에 시조는 이른바 시 간성의 시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시조 형식이 정립된 시기로 일컬어지는 고려 말 에 시조 작품을 남긴 인물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 즉, 최충( 崔 沖, 984~1068), 우탁( 禹 倬, 1263~1342), 이조년, 성여완( 成 汝 完, 1309~1397), 이색( 李 穡, 1328~1396), 원천석( 元 天 錫, 1330~?), 정몽주, 이존오( 李 存 吾, 1341~1371) 이 성 리학자였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시조 창작을 주도했던 인물들 즉, 조준( 趙 浚, 1346~1405), 길재 ( 吉 再, 1353~1419), 맹사성( 孟 思 誠, 1359~1438), 황희( 黃 喜, 1363~1452), 이방원( 李 芳 遠, 1367~1422), 변계량( 卞 季 良, 1369~1430) 도 예외 없이 성리학에 조예가 깊 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일 수 없으리라. 널리 알려져 있듯, 성리학은 중국의 송나라 시대에 확립된 유학 사상 체계이며, 이 유학 사상 체계를 종교의 차 원으로 승화한 것이 유교다. 아울러, 유학 사상과 유교가 지향하는 바는 지 극히 현실주의적인 정치 윤리 사회적 실천 규범이다. 이 자리에서 열거한 성리학자들의 시조에는 예외 없이 현실주의적인 세계 이해 및 실천 논리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거니와, 시조가 현실 지향적인 시간성의 시가가 될 수밖 에 없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으리라. 유학 사상과 유교는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의 지배 이념과 종교가 되었 다는 점에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조선 시대 양반 계급의 주된 시가 양 식이었던 시조가 가사( 歌 辭 )와 함께 현실주의적인 소재와 내용을 담을 수밖 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설시조의 등장과 함 255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께 소재와 내용의 측면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앞 서 제시한 예들이 보여주듯 현실 세계와 삶에 대한 관심 자체가 약화된 것 은 아니다. 오히려 한층 더 적극적인 것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조의 이 같은 특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미국의 저명한 비교문학자 얼 로이 마이너(Earl Roy Miner)의 논의를 주목할 수도 있는데, 그는 특히 중국 과 한국에서 는 시란 사실(fact)에 입각한 것이라는 믿음이 매우 강하다 29 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허구적(fictional)인 것이 아닌 실제로 존 재했던 특정한 인간 및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시인에게 시적 소재와 주제가 되는 경향이 한국과 중국에서는 강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마이너는 두보( 杜 甫 )의 오언고풍장편 ( 五 言 古 風 長 篇 )의 형식으로 창작된 가인 ( 佳 人 )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한때 양가집의 딸이었던 여인이 거친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약간의 패물과 한 명의 시종( 侍 從 )만이 남아 있는 것처 럼 보인다. 그녀가 꺾는 꽃은 약간의 푼돈을 벌기 위한 것임을 두보는 우회적으 로 전하고 있다. 한때 그리도 우아하던 그녀의 환한 의상은 이제 닥쳐오는 험한 계절을 견디기에 처량할 정도로 얇다. 그녀의 형제는 살육을 당했고 남편은 등 을 돌린 상태여서, 그녀가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으며 이제 곧 그녀 는 자신에게 닥친 새로운 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불운의 나락에 떨어진 여인에 관한 시 또는 그런 여인의 목소리를 빌려 사 연을 전하는 시가 중국에는 많다. 그런 시 가운데 많은 것이 남성의 창작품으 로, 이는 관직을 잃었거나 왕이나 고관대작의 총애를 잃은 문신( 文 臣 )이 원망의 마음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창작된 것이다. 가인 도 그러한 시일까. 만일 그렇다 추정하면, 이 시는 우의( 寓 意 )일까. 30 29 Earl Roy Miner, Comparative Poetics: An Intercultural Essay on Theories of Literature, Princeton: Princeton UP, 1990, p. 108. 한편 마이너는 이 책의 113쪽에서 일본의 서정시풍은 한중 및 서양의 관행과 유사한 동시에 상이하다 는 지적과 함께 대략 950~1000년경까지 일본의 서정시는 사실적 경향이 강했으나, 그 이후 허구적 경향이 강해졌음을 밝히고 있다. 30 Miner, Comparative Poetics, pp. 109~110. 256 일본비평 14호

위의 물음에 이어, 마이너는 제임스 J. Y. 류(James J. Y. Liu), 폴린 유(Pauline Yu), 리처드 A. 랜험(Richard A. Lanham)의 논리에 기대어 두보의 가인 이 우 의의 시 그것도 서양의 우의와는 달리 구체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추적이 가능한 우의의 시 임을 밝힌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도 두보의 가 인 에 상응하는 특유의 우의적 문학 작품 즉, 여성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사연과 심경을 전하는 우의적으로 드러내는 문학 작품 이 있거니와, 앞서 잠깐 언급한 바 있는 고려 중기의 문신 정서( 鄭 敍,?~?)의 정과정 에서 시작 하여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 鄭 澈, 1536~1593)의 사미인곡 ( 思 美 人 曲 )과 속미 인곡 ( 續 美 人 曲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시조에도 정치적 현실이나 삶의 현실에 대해 우의적으로 노래한 예가 적지 않거니와, 논자가 시조를 시간성의 시가로 규정함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3. 맺는말, 또는 남는 문제 앞서 진행된 모든 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하이쿠가 축소 지향 의 시 형식이라면 시조는 확대 지향 의 시 형식임은 계보학적 검토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내재적 특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는 것이 논자의 결론 이다. 아울러, 시조와 하이쿠의 성립과 발전은 각각의 정형시 양식이 내적 요건 또는 외적 여건에 따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논자의 결론 이기도 하다. 남는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정형시 양식을 싹트게 한 두 문화권의 문화적 에토스(cultural ethos)는 무엇인가다. 다시 묻건대, 간명하다 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지만 시조와 하이쿠처럼 특성과 성향이 다른 정형시 를 지배적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로 만든 문화적 에토스는 무엇일까. 아울 러, 3 4 4 4나 3 5 4 3 또는 5 7 5나 7 7 음절 단위의 언어 표현을 주된 정형 요건으로 만든 언어적 경향 은 과연 어떤 문화적 에토스에서 비 롯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문화 자체에 대한 총체적 검토 가 요구되는 지난한 작업으로, 논자의 능력 바깥의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257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수 없다. 이제까지의 논의와 관련하여 한 마디 덧붙이자면, 시간성과 초시간성 사이의 대비 작업은 자칫하면 엉뚱한 가치 판단을 이끌 수도 있거니와, 이 는 초시간적인 것 또는 초월적인 것 수사( 修 辭 )의 차원에서 보면, 상징( 象 徵, symbol) 이 시간적인 것 또는 현세적인 것 즉, 우의( 寓 意, allegory) 보 다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문학적 사유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유 경향이 일깨우는 가치 판단은 미국의 문학이론가 폴 드 만(Paul de Man)의 지적대로 문학 취향이라든가 문학 비평, 또는 문학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상투적인 생각 31 일 뿐이다. 초월적인 것이 현세적인 것 에 비해 우월하다는 생각은 바로 이 미망에서 싹튼 것으로, 진정한 의미에 서의 문학은 오히려 시간이 원초적으로 구성 개념 32 이 되는 우의적인 것 또는 현세적인 것에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무엇보다 언어를 통해 초월의 순간을 드러내거나 초시간적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망( 迷 妄 )에 불과한 것으로, 인간의 언어 행위는 언어가 본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시간성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고 해서 논자가 시간적인 것이 초시간적인 것에 비해 우위에 놓인다는 주장 을 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성과 초시간성 사이의 대비에 자칫 끼어들 수 있는 그 어떤 가치 판단도 무망( 無 望 )한 것이 되리라는 점을 지적 하고 싶을 따름이다. 쟁점화가 가능한 또 하나의 논제가 있다면, 이는 단카를 제쳐놓은 채 하 이쿠만을 문제 삼아 시조를 비교 논의하는 일이 타당한가다. 시조는 한때 단가( 短 歌 )로 불리기도 했거니와, 명칭만을 놓고 보아도 시조와 단카 사이의 친연성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단카와 시조 사이의 비교 논의 는 나름의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이쿠가 그러하듯 단카 역시 지극히 간결한 정형시가라는 점을 제외하 31 Paul de Man, Blindness and Insight: Essays in the Rhetoric of Contemporary Criticism, 2nd ed.,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1983, p. 189. 32 De Man, Blindness and Insight, p. 207. 258 일본비평 14호

면 구조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시조와 상이한 시가 양식임을 부정할 수 없 다. 따라서 시조와 비교 논의하는 데 어느 쪽이 더 적절한가의 문제에 대한 답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따지고 보면, 비교 논의란 어떤 경우든 자의적 ( 恣 意 的 )인 것이 될 수 있거니와, 이 때문에 비교 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교의 근거가 무엇인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일본의 정형 시를 대표하는 것은 하이쿠라는 점과 이에 상응하는 한국의 정형시는 시조 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양자 모두 오늘날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폭넓은 관심과 향유의 대상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정형시 양식이라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근거 하는 경우, 비교 논의는 일차적으로 시조와 하이쿠를 대상으로 하여 진행하 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요컨대, 한국과 일본의 살아 숨 쉬는 정형시 양식 이 시조와 하이쿠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먼저 양자 사이의 비교 논의가 이루 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시조와 하이쿠는 과거에 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간단없이 이어지며 전승( 傳 承 )과 변화의 궤적을 그려 온 한국인과 일본인의 시적 심의 경향 그것도 차원 높은 시적 심의 경 향 을 추적하는 데 최적의 자료 역할을 할 수 있거니와, 이 점에서 양자에 대한 비교 논의는 두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이다. 259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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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조선족의 일본행과 한국행은 한 가족 세대 간에 동시에 진행되는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포괄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족의 가족 분산과 재결합은 바로 가족의 생존전 략이자 생활실천을 의미하며 그 함의는 초국가적이며 지역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주제어: 가족의 분산과 재결합, 가족 생존전략, 이동, 도일, 정주화 연구논단 확대 지향 의 시 형식과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시조와 하이쿠의 형식상 특성에 대한 하나의 비교 분석 장경렬 투고일자: 2015. 10. 2 심사완료일자: 2015. 11. 30 게재확정일자: 2016. 2. 3 일반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시 형식인 시조에 상응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시 형식으로 하이쿠가 지 목된다. 아울러, 이 두 시 형식에 대한 비교 논의가 줄곧 시도되어왔다. 명백히 시조와 하이쿠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한 시 형식이지만, 두 시 형식 사이에는 또렷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조가 기승전결이라는 구도 안에서 시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시 형식이라면, 하이쿠는 두 개의 이미지를 중첩의 구조로 제시하는 시 형식이다. 이 글에서 논자는 이런 관점에 근 거하여 시조와 하이쿠에 대한 역사적 및 내재적 특성에 대한 비교 분석 및 논의를 시도한다. 그 결과, 논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단시조에서 사설시조로, 사설시조에서 새로운 형태의 연 시조로 발전해온 시조를 확대 지향 의 시 형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단카에서 발원한 렌가에서 하 이쿠로 발전해온 하이쿠는 축소 지향 의 시 형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아울러, 축소 지향 의 시 형식 으로 정립되는 데 근거가 된 하이쿠의 본원적 특성을 초시간성 에서 찾을 수 있다면, 확대 지향 의 시 형식으로 정립되는 데 근거가 된 시조의 본원적 특성은 시간성 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결론 과 관련하여 한 마디 첨언하자면, 시조와 하이쿠에 대한 논자의 분석은 결코 두 시 형식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확대 지향성과 축소 지향성이라는 개념 및 시간성과 초시간 성이라는 개념은 양자 가운데 어느 쪽이 우월한 시 형식이라는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교 분석 을 통해 양자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주제어: 시조, 하이쿠, 확대 지향, 축소 지향, 시간성, 초시간성 구조개혁과 일본형 경제시스템의 변화 정진성 투고일자: 2015. 12. 4 심사완료일자: 2015. 12. 17 게재확정일자: 2016. 2. 3 일본 정부는 1990년대에 들어 기존의 일본형 경제시스템을 보다 시장지향적 시스템으로 변혁하고자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정책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0년경까지 고용, 금융, 기업지배구 조에 관한 법제도의 기조는 종래의 장기적 관계 중시에서 시장원리 중시로 크게 이동했다. 그러나 실 제의 시스템 운영에서는 여전히 시장지향의 방향성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며 복수의 시스템이 경합, 혼 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로는 제도 간 보완성의 존재, 교육훈련시스템과 같은 제도 개혁의 곤란, 가계의 안정자산 선호와 같은 경제주체의 행동패턴에서 나타나는 고착성 등을 들 수 있다. 주제어: 구조개혁, 일본형 경제시스템 305 국문초록

ARTICLES The Poetic Form of Extension and of Intension: A Comparative Analysis of Korean Sijo and Japanese Haiku JANG Gyung Ryul Sijo, a traditional Korean poetic form, is often mentioned side by side with what may be termed its Japanese counterpart, haiku; and these two poetic forms have frequently served as objects of comparative studies. Indeed, it is fair to say that they are positively comparable in many aspects; however, sijo and haiku are more different than similar poetic forms. Most important of all, while sijo introduces poetic images through the four steps in composition, i.e., introduction, development, turn, and conclusion, haiku presents them through the superimposition of one image on another. Based on this distinction, I have attempted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historical and inherent characteristics of the two poetic forms. My conclusion is as follows: first, sijo may be described as the poetic form of extension that has been developed from dansijo to sasolsijo to new-style yonsijo, while haiku as that of intension that has been developed from renga, evolved from tanka, to haiku; second, sijo can be defined as the poetic form of temporality, whereas haiku as that of a-temporality. Faced with my argument, one might be suspicious of value-judgments; however, my conclusion as well as my analysis is neither intended nor meant for any kind of value-judgment. I simply want to make clear the relative characteristics of the two poetic forms, sijo and haiku. Keywords: sijo, haiku, extension, intension, temporality, a-temporality The Change of the Japanese Economic System under the Structural Reforms during the Long Recession of 1990s CHUNG Jin Sung In the early 1990s, the Japanese government had advanced the structural reforms aiming to transform the old relationship-oriented economic system into the new market-oriented system, as the major policies to revitalize the sluggish Japanese economy during the long recession. As the result of the reforms, until about 2000, the major reforms were achieved in the areas of employment system, financial system and corporation governance. However, around 2010, we could yet observe coexisting plural systems based on the different mode. And it is not clear whether the system will converge on the market-oriented system due to reasons such as: the institutional complementarity, difficulty of change in certain systems such as education-and-training system, and households persistent preference for riskless asset. Keywords: structural reform, Japanese economic system 310 일본비평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