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재벌의 양극화 현황 및 기업집단법적 대안 - 김 상 조 * 1. 서론: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이유 2. 최근 재벌의 현황: 경제력집중 및 부실의 동시 심화 (1) 최상위 재벌로의 경제력집중 심화 (2) 상당수 재벌의 부실(징후) 심화 3.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 내용 및 그 시사점 (1) 독일 콘체른법의 내용과 한계 (2) 1990년대 말 이후의 절충적 접근방법 (3) 소결: 한국에의 시사점 4. 정책제안: 기업집단법적 접근의 적용 (1) 상법 개정 사항 (2) 공정거래법 개정 사항 (3) 부실기업(집단) 구조조정 관련법 개정 사항 (4) 금융관련법 개선 사항 (5) 노동법 개정 사항 (6) 하도급법 개정 사항 5. 결론: 경제민주화는 각 경제주체의 권리와 의무 를 재정의하는 과정 *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52 1. 서론: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이유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의제 선점을 통해 2012년 대선 과정을 주도 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2013년 2월 인수위 보고서에서 경제민주화 가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로 대체되더니, 특히 7월 초 경제민주화 입법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는 대통령의 발언을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추진 동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2014년 들어서는 공공기관 개혁,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개혁 등으로 국정의 초점이 확산ㆍ이동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금기어가 되었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통령에 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임시방편의 선거 전략에 불과했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권위주의적 리더 십 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언급ㆍ지시한 과제에 대해서만 행정자원이 집중 배분되 는 양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이상의 정치공학적 요소가 경제민주화 실종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더 라도, 경제학자인 필자가 논할 대상은 아니다. 이 글의 초점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 책수단에 대한 평가와 그 개선 방안에 있다. 다음 <표 1>은 경제개혁연구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및 국정과제 의 내용 및 이행 상황을 평가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강정민(2014.2.20) 참조). 표에 서 보듯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 실적은 주로 공정거래법 및 하도 급법 개정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집행하는 행정규제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1) 한 편, 아직 입법이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국회에 법률 제개정안이 상정되어 어 느 정도 심의가 진행된 공약들의 상당수는 금융위원회가 집행하는 금융 관련 행정규 제들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경제민주화 실종의 또 다른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즉,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수단의 대부분이 공정거래위원회ㆍ금융위원회 등의 감독기관 1) 공정거래위원회(2014.2.20, p.31)는 2014년 업무계획 발표에서 14개의 국정과제 중 8개가 입법완료되 었고, 나머지 6개의 잔여과제는 경제상황을 면밀히 고려하면서 시기와 강도를 조절할 추진할 계획 임을 밝힌 바 있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53 이 집행하는 행정규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입법화 과정에서 각종 예외조항들이 대거 삽입됨으로써 제도 도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고 2), 다른 한편으로는 법제도의 집행 과정에서 감독기관의 의지와 능력을 신뢰할 수 없는 사례들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이러한 행정규제의 문제점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행정규제는 개혁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수단이다. 행정규제는 시 장 경제활동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위반한 자에 대해 벌칙을 부과하는 것인 만 큼, 그 규칙의 공정성과 그 집행의 엄정성을 확보하는 정부의 역할에 주어지는 중요 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규제만으로는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 행정규제에는 편익에 못지않게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특히 행정규제의 구체적 내용이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 할 경우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제한 제도, 상호출자ㆍ순환출자 규 제,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규제 및 그 의결권 제한 등 재벌개혁의 상징적 수단으로 거론되는 규제장치들이 모두 1987년의 정치적ㆍ경제적 환경 속에서 태동된 것임을 감안하면, 사반세기가 지난 현 상황에서 이들 행정규제의 편익과 비 용을 재점검해볼 필요성이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상조(2012.12) 참조). 또 한, 세월호 사건 이후 불거진 관피아 논란에서 보듯이, 사회 전반의 민주적 통제장 치가 미흡한 현실 조건에서 행정규제는 규제자와 피규제자 간의 유착에 따른 지대추 구적 행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표 1>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및 국정과제 내용 및 이행평가 결과(2014.2월말 기준) 대주제 소주제 공약 및 국정과제 배점 처리 법안 Ⅰ. 대기업집단 규제 (20 점) 1.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근절 (10 점) a)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규제를 위해 공정거래법 제 3 장에 신설 b) 이익을 본 총수일가에도 직접 과징금을 부과하여 부당이득 환수, 수혜자에게 부당지원을 받지 않을 의무 신설하고 위반시 제재 c) 부당지원행위 위법성 성립요건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 단순 평가 실효 성 평가 3 3 0 0 3 3 3 2 2 2 2 2 2) 이것이 <표 1>에서 단순평가에 비해 실효성평가의 점수가 낮은 이유다.
54 Ⅱ. 공정거래 질서 확립 (20 점) Ⅲ. 금융회사의 소유지배구 조 개선 (20 점) Ⅳ. 사후구제 및 감독 강 화 (20 점) Ⅴ. 이사의 독립성 강화 (10 점) d) 통행세 제재 2 2 2 1 a) 대기업집단에 대한 신규순환출자 2. 기업집단 규제 5 5 5 2.5 금지 (10 점) b) 대기업집단 현황 공시 확대 5 - - - 1. 전속고발권 폐지 (5 점)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5 5 5 2 2.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5 점) 하도급법 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5 5 2.5 2.5 a)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사인의 3. 사인의 구제수단 금지청구제 도입 3 - - - 확보 (5 점) b)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집단소송제 도입 2 - - - 4. 금융소비자 보호법 (5 점)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 조속처리 추진 5 - - - a)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를 위한 은행법 등 개정 2 2 2 1 b)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1. 금산분리 강화 허용하되, 일정요건 충족시 (10 점)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3 - - - c) 금융보험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5 - - - 2. 대주주 동태적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정을 통해 적격성 심사 (5 점)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 확대 5 - - - 3.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선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체계 개선 5 - - - (5 점) 1. 불법행위자에 대한 처벌 및 양형 강화 (10 점) 2. 사면권 제한 (2 점) 3. 대표소송제도 개선(5 점) 4. 증권집단소송 제도 개선 (3 점) 이사의 독립성 강화 (10 점) a)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 b) 회계부정행위 등 기업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 사면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대기업 지배주주ㆍ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하여 사면권을 엄격하게 상신 5 - - - 5 5 5 4 2 - - -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5 - - - 증권집단소송법 상 자격요건 및 허가요건 등 완화 3 - - - a) 감사위원인 사외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 5 - - - b) 집중투표ㆍ전자투표 의무화 5 - - - 출처: 강정민(2014.2.20.),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평가 Ⅱ, 경제개혁리포트 2014-3호, 경제개혁연 구소, pp.18-19 보다 근본적으로, 개혁 내지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의무를 재정의하 는 과정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경제주체가 자신의 개인적ㆍ집단적 권리를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55 자각하여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하고, 각각의 경제주체가 의무를 위반하기보다는 이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더 유리함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 곧 경제민주화다. 행정규제, 특히 사전적ㆍ금지적 규제 위주의 체계는 이러한 경제주체의 인식과 행동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행정규제 위주로 경제민주화를 사고하는 경향은 비단 권위주의의 함정에 빠진 박 근혜 정부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진보ㆍ개 혁 진영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례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진보ㆍ개혁 진영의 전통적 의제인 경 제민주화를 선점하자 야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보다 선명한 행정규제를 담은 공약 을 남발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이 유권자들에게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믿음 을 심어주는 데는 오히려 실패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대상에서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2년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경제민주화가 불가역의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경제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민주화의 목표와 정책수단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의 강화만을 개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한국의 경제민주화 노력 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특히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경쟁법(공정거래 법)이 아닌 회사법(상법) 개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공정거래 법 등에 의한 행정규제 위주의 관점을 벗어나, 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등 이해관계자 들의 회사법적 권리와 의무를 재정의하는 차원에서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수직적 위계질서에 묶인 기업(집단) 내부의 이해관계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롭고 대등한 사적 계약(시장거래)의 당사자 도 아닌, 그 중간적 성격을 가지는 대-중소기업 하도급 거래에도 기업집단법적 접근을 확대ㆍ 적용하는 가능성을 모색해 볼 것이다. 우선, 2절에서는 최근 들어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이 더욱 심화되면서 동시에 상당 수 재벌의 부실(징후) 위험이 가중되는 모순된 현상에 대해 살펴본다. 이는 일정 조 건에 해당하는 재벌들(예컨대,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규모기업집단 또는 상위 30대 재
56 벌 등)을 획일적 기준에 의해 규제하는 행정규제적 수단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 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3절에서는 독일의 1965년 콘체른법의 한계를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 말 이후 EU 전체 차원에서 또는 개별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기업집단법적 접근의 특징 및 한국에의 시사점을 요약한다. 이어 4 절에서는 한국의 재벌개혁 또는 경제민주화의 진전을 위한 기업집단법적 정책방안을 다양한 법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5절은 요약 및 결론이다. 2. 최근 재벌의 현황: 경제력집중 및 부실의 동시 심화 한국은 재벌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재벌공화국의 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이 심화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상위 4대 재벌 내 지 그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을 포함한 범4대 재벌(범삼성, 범현대, 범LG, SK 그룹 등)로의 집중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젠 30대 재벌 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경제분석을 하거나 정책대안을 구상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둘째, 이들 최상위 재벌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견ㆍ군소 재벌들의 경우 그 위상이 추락하는 차원을 넘어 심각한 부실(징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부 부실그룹들이 연이어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1997년 재벌들의 연쇄부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상위 4대 재벌조차도 각각의 사업구조 위험과 지배구조 위험으로 인해 미래 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래 30여 년 동안 고도성장을 구가하였다. 재벌 위주의 불 균형 성장전략을 택했지만, 그 성장의 과실이 연관산업과 중소기업 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통해 국민경제 전체의 상향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재무적ㆍ사업적 구조조정에 성공한 일부 그 룹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성과를 기록하였으나, 산업간ㆍ대-중소기업간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 낙수효과가 실종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양상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낙수효과의 부활은커녕 재벌들만의 고립된 성장 조차도 기대하기 어 려운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57 경제민주화를 넓게 정의한다면, 경제민주화가 이러한 총체적 난국의 유일한 해결 책이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좁게 정의한다면, 경제민주화 이외에도 창조경제와 경 기활성화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고, 심지어는 경제민주화보다도 더 우선 순위가 높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가치판단 내지 정치적 판단의 문제라고 본다.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과거의 정책수단, 특히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를 강화하는 경직된 방식만으로는 작금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지만, 정책수단의 새로운 패러다 임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1) 최상위 재벌로의 경제력집중 심화 3) 다음 [그림 1]은 재벌로의 경제력집중 추이를 나타내는 통상적인 지표의 하나로 GDP 대비 재벌 자산총액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30대 재벌 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가운데 공기업집단 및 민영화된 공기업집단을 제 외한, 즉 자연인이 동일인인 기업집단 중에서 비금융계열사의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개 그룹을 의미한다. 4대 재벌 은 삼성, 현대차, SK, LG 그룹이며, 범4대 재벌 은 이들 4대 재벌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4) 2002년경에는 외환위기에 따른 하드웨어 구조조정이 일단락되고 또한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열렸는데, 이때를 저점으로 하여 GDP 대비 재 벌의 자산총액 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2002년과 2012년을 비 교해보면, 동 기간 중 30대 재벌 자산총액의 GDP 대비 비율은 1.80배(52.37% 94.02%) 증가하였는데, 범4대 재벌의 비율은 1.91배(33.78% 64.43%), 범삼성그룹의 비율은 2.07배(11.35% 23.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30대 재벌 중에서도 범4대 재벌, 범삼성그룹 등 최상위 재벌의 자산이 더 빠르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 다. 3) 이하의 그림과 표는 위평량(2014.2.11)이 사용한 자료를 정리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4) 범4대 재벌 = 범삼성 + 범현대 + 범LG + SK 그룹 범삼성그룹 = 삼성, 신세계, CJ, 한솔, 중앙일보사 그룹 범현대그룹 =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그룹 범LG그룹 = LG, GS, LS 그룹
58 [그림 1] GDP 대비 재벌의 자산총액 비율 추이 (단위: %) 한편, [그림 1]은 저량(stock)인 재벌의 자산총액을 유량(flow)인 GDP에 대비한 것 이기 때문에, 경제력집중의 적정한 지표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그림 2]에서는 통계청의 국가자산통계( 舊 국부통계) 중에서 비금융법인의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경제가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는 2000년대 중반에는 거의 비중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30대 재벌, 특히 그 중에서도 범삼성그룹 및 범4 대 재벌 등의 최상위 재벌들을 중심으로 점유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과 2012년을 비교해 보면, 동 기간 중 30대 재벌의 점유 비중은 1.14배 (29.27% 37.41%) 증가하였는데, 범4대 재벌의 비중은 1.22배(19.35% 25.63%), 범삼성그룹의 비중은 1.34배(6.36% 9.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내외 경 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와중에도 최상위 재벌들로의 경제력집중은 더욱 심화된 것을 의미한 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59 2012년의 경우 30대 재벌의 자산총액(1,295.1조원)을 기준(100.00%)으로 하면, 삼성 그룹이 1/5(20.92%), 범삼성그룹이 1/4(24.95%), 4대 재벌이 1/2(52.03%), 범4대 재벌이 2/3(68.53%)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한국경제는 30개 가문이 아니라 4개 가문 소속의 그룹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2] 비금융법인 자산총액 대비 재벌의 자산총액 비중 추이 (단위: %) 다른 한편, <표 2>는 우리나라의 비금융회사 중 자산 기준 200대 기업 가운데 30대 재벌의 계열사 수를 나타낸 것이다. 198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단위로 그 추 이를 보면, 68개사 71개사 76개사 91개사 99개사 118개사로 급증하 여, 2012년의 경우 200대 기업의 59.0%가 30대 재벌의 계열사였다. 특히 범4대 재벌 의 계열사 수는 45개사 48개사 55개사 65개사 64개사 84개사로 늘어 났는데, 숫자 비중보다 자산 비중이 훨씬 커서(2012년의 경우 42.0% 대 51.85%) 200 대 기업 중에서도 상위 기업들이 대거 범4대 재벌의 계열사로 편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60 <표 2> 200대 기업 중 30대 재벌 소속 계열사 수 및 자산 비중 (단위: 개사, %) 87 92 97 02 07 12 계열사 자산 계열 자산 계열 자산 계열 자산 계열 자산 계열 자산 수 비중 사 수 비중 사 수 비중 사 수 비중 사 수 비중 사 수 비중 30대 68-71 - 76-91 - 99-118 - 범4대 45 24.72 48 30.40 55 35.20 65 40.48 64 45.24 84 51.85 범삼성 13 5.30 14 8.31 15 11.45 18 12.35 17 14.24 24 19.10 범현대 15 11.22 14 11.22 15 11.21 17 11.84 17 13.24 22 14.45 범LG 10 4.74 11 5.76 14 5.69 18 7.83 17 9.09 21 9.96 SK 7 3.46 9 5.11 11 6.85 12 8.46 13 8.67 17 8.34 (2) 상당수 재벌의 부실(징후) 심화 그러면 재벌들의 재무상황 추이는 어떠한가. 2011회계년도부터 한국채택 국제회계 기준 (K-IFRS)이 적용되면서 연결재무제표가 주된 재무제표가 사용되고 있으나, 재벌 들의 복잡한 다단계 교차출자 구조로 인해 핵심계열사의 연결재무제표에 종속회사로 연결되는 계열사의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통상적으로는 하나의 그룹 내에 복수로 존재하는 연결재무제표 또는 별도재무제표를 단순합산하여 그룹 전체의 재무 비율을 계산하는데, 이 경우 계열사간 내부거래가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그룹의 재 무상황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5) 이에 계열사간 출자 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그룹 전체의 연결부채비율과 연결이 자보상배율 6) 을 계산한 것이 다음 <표 3>이다. 업종별ㆍ그룹별 특수상황을 면밀히 5) 경제개혁연구소가 2007~2012년간 연속해서 연결재무비율을 계산한 40개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을 보면,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순합산 부채비율은 100% 미만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연결 부채비율은 50%p 이상 높게 나타나 상당한 정도의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 <표> 40개 그룹의 단순합산 부채비율과 연결부채비율의 평균 비교 (단위: %) 단순부채비율 (증감) 연결부채비율 (증감) 07 08 09 10 11 12 84.31-131.36-106.20 (21.89) 165.13 (33.77) 96.06 (-10.14) 147.01 (-18.12) 91.56 (-4.50) 135.79 (-11.22) 95.90 (4.35) 147.45 (11.66) 92.46 (-3.45) 147.36 (-0.10) 연결-단순 47.05 58.93 50.95 44.23 51.55 54.90 출처: 이수정ㆍ이은정ㆍ채이배(2013.11.4),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연결재무비율 분석, p.8. 6)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이자비용)으로 정의되는데, 이것이 1배 미만이면 본업을 통해 창출한 영업이익 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한다는 것, 즉 원리금 상환을 위해 추가로 부채를 동원해야 하는 상황을 의 미한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61 검토해야 하지만,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고 이자보상배율이 1.00배 미만인 상황이 2~3년 이상 지속되면, 심각한 구조조정을 요하는 부실(징후)기업으로 평가된 다. <표 3>에서 보듯이, 금호아시아나, STX, 웅진, 동양, 대한전선 그룹 등의 5개 그 룹은 이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워크아웃이나 통한도산법상의 법정관리 등의 구 조조정 절차에 들어가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38개 민간재벌(공기업집단, 민영 화된 공기업집단, 금융업이 중심인 그룹 제외) 중에서 절반에 달하는 19개 그룹이 2012년 말 현재 연결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였고, 그 중에서 10개 그룹은 연결이 자보상배율도 1.00배 미만에 해당하였다. 결론적으로, 2012년 말 기준으로 5개 구조 조정 그룹을 포함한 총 43개의 민간재벌 중에서 34.9%인 15개 그룹이 부실 또는 부 실징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들 43개 민간재벌 가운데에는 범4대 재벌의 친족그룹 이 13개 포함되어 있는데, 범4대 재벌 이외의 나머지 30개 그룹에서는 두 개 그룹 중 하나 꼴로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연결부채비율 200% 초과 및 연결이자보상배율 1.00배 미만의 두 가지 조건 이 동시에 충족되는 부실징후 그룹의 연도별 추이를 보면, 5개 구조조정 그룹을 제 외하고 나머지 38개 민간재벌만을 대상으로 할 때, 2007년 2개 2008년 3개 2009년 5개로 점차 늘어나다가 2010년 2개로 일시 회복되었으나, 2011년 5개 2012년 10개로 다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및 중국의 성장세 둔화 등의 국제적 불안정성에 더하여 극심한 내수 침체와 원화절상 압력 등의 요인 까지 가중되면서 향후 재벌들의 재무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추측된다. <표 3> 재벌의 연결기준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추이 (단위: %, 배) 부채 비율 07 08 09 10 11 12 이자 이자 이자 이자 이자 부채 부채 부채 부채 부채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비율 비율 비율 비율 비율 배율 배율 배율 배율 배율 이자 보상 배율 1 삼성 82.9 2.07 99.0 10.31 86.5 17.40 71.64 23.07 78.7 22.86 76.0 34.55 4 현대자동차 183.8 3.29 222.3 3.54 198.3 3.83 161.22 8.99 172.8 12.17 155.4 14.50 5 에스케이 153.1 4.11 205.5 2.85 177.5 2.11 181.01 3.80 152.6 4.48 155.0 2.67 6 엘지 150.6 5.61 159.5 8.54 138.5 9.02 143.76 10.11 158.6 4.77 148.0 5.59 7 롯데 80.7 14.64 79.3 6.70 78.9 7.32 107.69 8.33 101.1 7.50 103.3 5.06 9 현대중공업 305.3 52.44 503.1 90.81 183.8 31.56 196.74 20.06 160.3 15.81 153.5 5.08 10 지에스 201.6 6.20 195.7 3.56 199.0 3.50 184.74 5.01 183.1 6.59 171.5 2.60
62 14 한진 243.2 1.60 345.8 0.49 427.9 0.14 387.90 0.50 558.9-0.02 678.4 0.04 15 한화 371.7 2.32 366.0 1.84 418.6 2.18 124.76 3.43 219.2 1.51 227.5 1.15 17 두산 405.3 3.65 440.7 1.24 411.8 0.71 365.86 2.09 412.3 2.04 405.4 0.89 20 씨제이 198.2 2.18 205.5 2.49 173.2 3.11 129.12 4.53 165.5 3.94 160.4 3.06 21 신세계 153.6 5.90 166.6 5.57 139.0 4.82 93.33 5.96 101.7 7.00 111.2 5.76 23 엘에스 152.1 4.75 203.8 4.97 224.7 2.08 242.95 2.98 223.6 2.15 209.5 2.15 24 동부 277.6-0.06 259.6 0.20 272.1 0.04 250.09-0.12 355.1 0.18 397.6 0.30 26 대우조선해양 450.1 9.53 880.4 32.48 442.1 5.81 296.81 6.37 278.3 7.36 255.7 3.11 27 대림 141.4 6.23 197.6 3.84 172.5 2.92 164.48 2.45 152.0 3.20 178.2 4.17 28 현대 201.4 1.83 223.8 2.92 334.8-1.86 251.21 2.10 473.2-0.83 895.5-1.06 29 부영 1,792.5 1.15 1,542.6 3.57 1,916.2 9.27 341.57 4.23 333.3 13.75 326.6 10.48 30 에쓰-오일 138.5 6.85 125.9 9.94 130.5 3.08 120.94 30.76 152.6 28.99 132.2 9.33 31 오씨아이 205.0 3.97 280.9 7.03 188.0 6.77 167.95 8.12 125.0 9.33 136.8 1.19 32 현대백화점 67.4 26.12 62.2 22.58 63.8 19.03 53.84 20.62 60.3 32.28 57.8 31.82 33 효성 277.1 3.29 249.8 2.34 224.7 2.69 241.64 2.12 325.6 0.69 311.5 0.82 34 대우건설 - - - - - - 196.73-1.64 197.0 1.21 199.9 2.06 36 한국지엠 212.8 9.72 827.5 5.32 396.7 2.39 206.53 4.18 187.4 15.60 307.4-6.99 37 동국제강 213.1 3.03 226.6 6.52 163.6 0.39 206.42 1.63 222.3 1.25 227.3-0.30 38 영풍 98.0 8.36 66.4 10.36 57.5 14.88 56.37 23.49 56.3 38.39 53.4 33.45 39 코오롱 350.3 1.54 402.2 1.94 291.1 2.04 217.87 2.28 249.8 4.42 245.6 1.80 40 한진중공업 226.0 2.04 263.8 3.22 284.4 1.45 267.81 1.01 241.6 0.42 256.1 0.26 42 케이씨씨 59.9 11.01 64.2 4.56 66.9 5.23 55.80 4.75 63.5 4.02 56.7 3.05 43 홈플러스 491.9 0.50 965.5 0.12 772.1 0.20 582.12 2.03 317.5 3.27 255.2 3.77 45 대성 154.0 2.36 129.1 2.23 125.3 1.72 183.82 3.69 176.4 0.69 220.2 0.57 48 한라 - - - - - - - - 263.0 3.19 271.5 0.33 49 현대산업개발 107.8 6.71 126.7 3.65 166.2 1.27 176.03 1.81 172.3 2.82 178.3 1.04 50 세아 97.5 2.56 123.4 6.98 111.6 0.99 109.15 4.72 90.4 6.56 89.8 5.36 51 태광 62.6 11.36 73.8 18.14 51.8 6.90 46.97 15.21 61.4 14.63 62.7 4.88 56 하이트진로 195.1 2.15 216.6 3.03 190.3 2.76 277.68 2.40 276.6 1.52 260.5 1.43 59 이랜드 - - - - - - - - 408.8 2.11 369.1 1.86 60 한솔 - - - - - - - - 249.4 1.00 250.5 1.02 금호아시아나 138.5 2.54 125.9 1.06 3,341.8 0.10 581.7 2.23 - - - - STX 286.5 9.22 480.2 5.51 528.4 0.53 481.1 0.89 - - - - 구조 웅진 109.8 3.24 224.9 2.26 187.0 2.39 258.9 3.03 - - - - 동양 조정 146.9 1.48 244.8-1.26 239.8-0.17 486.7-0.13 - - - - 그룹 대한전선 249.8 1.24 362.2 0.41 394.0 0.24 490.9 0.02 - - - - 주: 번호는 2013.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자산순위임. 붉은색 글씨는 연결부채비율 200% 초과 또는 연결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인 경우. 하늘색 면은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 경우. 출처: 이수정(2011.7.7) 및 이수정ㆍ이은정ㆍ채이배(2013.11.4)의 자료를 정리하여 재구성한 것임. 한편, 부실징후 대규모 기업집단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절차로서 주채무계열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주채무계열제도는 법령적 근거 없이 단지 은행업감독규정에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63 주채권은행 지정에 관한 사항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며, 재무구조 평가 및 불합격 계열에 대한 재무구조개선약정의 체결과 이행점검 등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은행연합회의 자율협약 형식으로 되어 있다(이하의 내용은 이지수ㆍ김상조 (2014.6.10), pp.64-65 참조). 동양그룹 사태 이후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을 총신용공여액의 0.1%에서 0.075%로 하향 조정한 결과 주채무계열 수는 2013년 30개에서 2014년 42개로 증가하였다. 아 래 <표4>는 각 주채권은행별 주채무계열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은행이 16개 계열, 산업은행이 14개 계열 등 대부분의 주채무계열을 국유은행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간은행들이 주채권은행으로서의 부담을 회피한 결과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무개선약정을 체결한 부실계열의 구조조정을 국유은행 주도 하에 진행 하고자 하는 금융감독당국의 의도를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최근 이들 42개 주채무계열 중에서 1/3인 14개 계열(금호아시아나, 대성, 대우건설, 동국제강, 동부, 성동조선, 한라, 한진, 한진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 SPP조선, STX, STX조선해양 등)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대상 으로 선정되었고, 그 외 2개 계열이 신설된 관리대상 계열 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개 약정 체결대상 계열의 주채권은행을 보면, 3개 계열이 우리은행 담당이고, 나머지 11개 계열은 모두 산업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결국 주채무계열제도에 따른 구조조정 추진 부담을 전적 으로 국유은행, 특히 그 중에서도 산업은행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주채무계열제도가 관치금융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 고, 이명박 정부에서 정책금융공사와의 분리를 통해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11월에 발표된 주채무계열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대상계열의 주력기업 들에 대해 이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워크아웃이 진행 중(금호아시아나)이거나 채 권단 자율협약에 의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성동조선, SPP조선, STX, STX조선해양)인 5개 계열은 약정 체결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되어 있다. 나머지 9개 계열 중 한진과 동부는 2013년에 이미 약정을 체결하였고, 따라서 올해 7개 계열이 새로 약정을 체 결하여야 한다. 그 중 우리은행 담당은 1개 계열(한라)이고, 산업은행 담당은 6개 계 열(대성, 대우건설,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이다.
64 <표 4> 2014년 지정 42개 주채무계열 및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대상계열 현황 은행명 개수 담당 주채무계열 우리 16 삼성, LG, 포스코, 두산, 한화, LS, 효성, 대림, 코오롱, 성동조선, 한라, SPP조선, 한국타이어, 아주산업, 이랜드 산업 14 한진, 대우조선해양, 금호아시아나, 동국제강, 동부, 대우건설, 한진중공업, STX, STX조선해양, 현대, 대성, 한솔, 풍산, 현대산업개발 신한 4 롯데, OCI, S-Oil, 하이트진로 하나 4 SK, GS, 세아, 부영 외환 2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국민 2 KT, 신세계 자료: 금융위원회(2014.4.7), 2014년도 주채무계열 (42개) 선정 결과, 보도자료 주: * 볼드체는 2014년 신규 편입 계열 ** 밑줄은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대상 계열 (3) 소결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출발점이 된다는 것 은 분명하다. 그런데 재벌의 최근 상황은 상호충돌하는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4대 재벌 또는 범4대 재벌을 중심으로 더욱더 심화되는 경제력집중 현상을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민간재벌의 1/3 또는 범4대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민간재벌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실(징후)그룹을 효율적으로 구 조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 다는 점이다. 보다 솔직히 표현하면, 작금의 한국사회의 지적ㆍ물적 능력으로는 해결 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2008년 이후의 이 명박 정부 5년 동안 세계사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허송세월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또 다른 원인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의 보수적ㆍ권위주의적 한계로 인해 재벌개혁의 두 가지 과 제를 모두 포기하고 경기부양과 낙수효과 모델로 회귀한 것이다. 다른 한편, 재벌개혁의 상호충돌하는 두 가지 과제는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의 유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들도 그 구체 적인 상황은 제각각이며, 따라서 어느 한두 개의 정책수단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가 어렵다. 4대 재벌 내지 범4대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행정 규제는 여타 재벌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반면, 부실(징후)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65 그룹의 구조조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관치적 개입은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 수단에 각종 예외를 허용하는 빌미가 되고 그 엄정한 집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이 된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대선 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진보ㆍ개혁 정권은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재벌개혁 나아가 경제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그 정책수단의 패러 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행정규제가 반드시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정치적 효과성을 담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이미 많이 늦었지만, 과거의 타성이 빠져 더 이상 허송세월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 내용 및 그 시사점 7) 재벌은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 (a family-controlled corporate group)으로 정 의할 수 있다. 이 때 특정 가문 의 전횡적 지배로 인한 경제력집중 심화와 부당한 사익추구를 막는 것이 재벌개혁의 주요 목표로 인식되었고, 공정거래법 등에 의한 행정규제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여전히 필요하 고 또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세월호 사건이 상징하듯이 공 정거래법이 규율하는 자산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만이 문제가 되는 것 은 아니며, 앞서 2절에서 보았듯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들도 하나의 획일적 기준으 로 규율하기에는 그 특수한 사정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업집단 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규율체계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공정거 래법 등에 의한 행정규제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집단에 대한 일반적 규율 체계를 도입ㆍ보완함으로써 행정규제의 경직성과 사각지대 문제를 극복하자는 것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는 회사법 개혁 차원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기업(집단) 조 직의 효율성 제고와 함께 소액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 보호라는 7) 이하의 논의는 김상조(2012.9)의 핵심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66 두 가지 목적을 균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은 고대 로마법의 전통에 따라 이미 1,000년 전에 확립 된 원리이지만, 유한책임성은 1856년 영국의 주식회사법에 의해 비로소 인정되었다. 그런데 애초의 주식회사 제도는 자연인만이 주주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법인 이 다른 법인의 주주가 됨으로써 모-자회사 관계가 성립되고 이를 기초로 기업집단 이 형성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이다. 따라서 기업집단은 이제 100여년 정도밖에 되 지 않은 새로운 현상이며, 이에 대한 규율체계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나라마다 다르 다고 할 수 있다. 기업집단의 관계사들은 법형식적으로 독립적인 단위(legally separate entities)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조직(economically one entity)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특 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기업집단법 논의의 핵심에 해당한다.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우선, 보통법 국가들은 원칙적으로 기업집단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회사법 원리에 입각하면서, 지배회사의 행위 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 는 기준을 일탈하였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판례법 상의 구제수단을 제공하는 방식 으로 대처하였다(conduct-based 또는 standard-based approach). 반면, 독일을 비롯한 일 부 유럽대륙 국가들은 기업집단의 존재로 인해 주주 상호 간의 또는 주주와 여타 이 해관계자들 간의 내적 균형이 파괴되는 상황 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종속회사의 소액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보호를 위해 지배회사에게 특정한 법적 의무와 책임을 자동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situation-based 또는 rule-based approach). 물 론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한 지를 판단할 선험적 기준은 없다. 기업집단법 논의는 유럽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EEC EC EU 등으로 이어지 는 유럽의 경제적 단일시장 구상에서 서로 다른 법적 전통과 체계를 가진 회원국들 의 회사법을 조화시키는 것이 핵심적 과제로 부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에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유럽에 대거 진출함으로써 경쟁력 위협에 봉착한 유럽의 재 계ㆍ정책담당자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인 노동자 경영참여 관행에 위기를 느낀 노동계도 적극 참여한 것이 기업집단법 논의를 활성화시킨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논의가 독일의 회사법 체계, 특히 독일 특유의 콘체른법 및 공동결 정 제도(이중 이사회 제도를 통한 노동자대표의 감독이사회 참여)에 기반하고 있었 다는 사실이 구체적 성과를 낳는데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영국은 비토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67 권을 행사하고, 프랑스는 침묵을 지키는 양상이 계속 이어졌다. 예컨대, 독일 콘체른 법을 모델로 한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1980년 기업집단법 초안 (Draft of the 9th Directive on corporate group law)은 철저히 무시되었으며, 결국 초안 이 아닌 internal working paper로 격하된 채 EU의 공식 기록보관소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U 차원에서의 논의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유럽 회사법의 위 기 상황이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세계화에 따른 국제경쟁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유럽의 경쟁력은 날로 저 하되는 상황에서 회사법의 위기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사전적 규제 위주의 독일 회사법 체계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반면,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영국ㆍ프랑 스의 법규와 판례가 회사법 논의의 중심을 이루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기업집단법 논의에도 반영되었다. 즉 기업집단과 관련한 규율 체계를 하나의 성문법에 모두 포 괄하는 독일식 접근방법을 공식 폐기하는 대신, 그 핵심 원리만을 다양한 법 영역에 서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절충적 접근방법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초기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종속회사의 소액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지배회사의 책임 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그룹 경영의 편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 는 것도 동일한 비중의 목적으로 부각되었다. 이하에서는 독일 콘체른법의 내용과 한계, 그리고 1990년대 말 이후 새로 등장한 기업집단법 논의의 핵심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독일 콘체른법의 내용과 한계 통상 콘체른법으로 불리는 독일의 성문 기업집단법은 1965년 주식회사법 (Aktiengesetz, 이하 AktG)의 콘체른 관련 규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AktG는 그 이름이 지칭하듯이 종속회사가 주식회사인 경우에만 적용되는데, 독일에서 종속회사의 대부 분을 차지하는 유한책임회사(Gesellschaft mit beschränkter Haftung, 이하 GmbH)와 관 련된 성문 기업집단법은 없다. 따라서 독일이 유럽대륙법적 전통을 대표하는 나라이 지만, 기업집단에 대한 규율은 의외로 GmbH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발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업집단에 대한 규율체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회와 법원 의 공동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68 독일의 기업집단, 즉 콘체른은 두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계약상의 콘체 른 (Vertragskonzern, 이하 contractual group)은 두 회사 간의 계약을 통해 기업집단을 형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계약은 종속회사의 경영진이 지배회사의 지시(direction)를 따를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지배 계약 (Beherrschungsvertrag, domination agreement)과 종 속회사의 이익을 지배회사에 인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익 인도 계 약 (Gewinnabführungsvertrag, profit transfer agreement)을 말하는데, 많은 경우 이 두 가 지 계약이 동시에 체결된다. contractual group이 성립되면, 지배회사는 매 회계연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지난 1년 동안 종속회사가 입은 모든 손실을 일괄적으로 보전 해줄 책임을 진다. 따라서 종속회사의 채권자는 종속회사가 파산 상태에 이르지 않 은 경우에도 지배회사에 대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한편, 종속회사의 소 액주주에게는 선택권이 부여된다. 즉 지배회사 주식으로의 교환 또는 현금 매입을 통해 종속회사 주주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으며, 주주로 계속 남기로 결정한 경우에 는 일정 수준의 배당을 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contractual group은 관계사 간의 계약이라는 형식을 통해 개별 법인격 및 유한책임의 전통적 회사법의 원리를 넘어서서 그룹 경영의 시너지 효과와 소액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보호라는 기업집단 법의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사실상의 콘체른 (faktischer Konzern, 이하 de facto group)은 명시적인 지배 계약이 없는 상태에서 한 회사가 다른 회사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성립되 는 기업집단을 말한다. 이 경우 독일 AktG는 종속회사의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기업집단으로서의 통할 경영을 인정한다. 그 조건의 핵심은 ⅰ) 종속회사 경영이사회는 매 회계연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동 일 기업집단 소속의 관계사들을 상대방으로 하여 이루어진 모든 거래의 내역, 그리 고 그것이 종속회사에 손해를 야기하였는지 여부, 손해를 야기하였다면 이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판단 근거를 상세히 기술한 종속 보고서 (dependency report)를 작성하여야 한다는 것과 ⅱ)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에 손해가 되는 지시를 하 였다면 당해 회계연도 이내에 개개의 지시 건별로 그 손해를 보상하여야 할 책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성문법규에 의한 기업집단 규율 방식은 찬사와 함께 그 이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한계가 노정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contractual group에서의 계약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69 이 과연 대등한 자들 간의 자유로운 합의에 기초한 것이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 된다. 지배회사가 이미 종속회사의 주주총회 및 경영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맺어지는 불평등한 계약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de facto group에서는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에 손해가 되는 지시를 하였을 경우에 개개의 지시 행위별로 보상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지배회사의 경영 개입이 복합적ㆍ암묵적으 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소액주주나 채권자 등의 외부자가 특정 손해의 원 인이 된 특정 지시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dependency report는 비공개가 원칙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AktG는 성문 기업집단법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지만, 회사법적 전통을 달리 하는 나라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업집단법과 관련한 유럽의 초기 논의가 난항을 겪은 것은 공동결정 제도를 둘러싼 독일과 영국의 갈등에 주로 기인하지만, 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독일 AktG 자체에 내 재한 경직성의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그 결과 독일식 접근방법을 채택한 나라는 브라질(1976), 포르투갈(1986), 헝가리(1988), 체코(1991-2012), 슬로베니아(1993), 크로 아티아(1993), 알바니아(2008), 터키(2012) 등에 불과하다(Conac(2013), p.200). (2) 1990년대 말 이후의 절충적 접근방법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의 새로운 흐름은 Forum Europaeum Report(1998)로부터 비 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orum Europaeum Konzernrecht(Forum Europaeum Corporate Group Law)는 1992년 Tyssen Foundation의 재정적 지원 아래 Peter Hommelhoff, Klaus J. Hopt, Marcus Lutter, Peter Doralt, Jean Nicolas Druey, Eddy Wymeersch 등 6명의 회사법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연구그룹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유럽 각국의 전문가들과 협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1998년에 기업집 단법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Forum Europaeum Report는 유럽집행위원회 차원의 공식 보고서는 아니지만,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에 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최초의 문서이고, 이후 EU 전체 차원의 또는 각 회원국 차 원의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제안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70 무엇보다 먼저, Forum Europaeum은 (독일의 AktG 또는 유럽집행위원회의 9th Directive 초안처럼) 기업집단에 관한 규율체계를 하나의 성문법규에 담는 시도, 특히 그것을 EU 전체 차원에서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폐기하였다. 기업집단법의 핵심 원리 를 각 회원국의 특수한 사정에 맞게 일반 회사법에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세법ㆍ 금융법ㆍ경쟁법ㆍ노동법 등에도 이와 보조를 맞추어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 규정들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Forum Europaeum은 이러한 접근법이 단일 성문법 규를 제정하는 것보다 덜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독일 AktG를 모델로 한 기존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종속회사의 소액주주ㆍ채 권자ㆍ노동자 권익 보호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Forum Europaeum은 그룹 경영의 편익 또는 그룹 공통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도 기업집단법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명 확히 제시하였다. 이는 Forum Europaeum 이후의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생략할 수 없 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Forum Europaeum이 주목한 것이 프랑스 대법원의 1985년 Rozenblum 판결이다. Rozenblum 원리는 원래 형사 사건에서 정립된 것이지만 곧 민 사 사건으로까지 확대 적용되었는데, 종속회사의 이사가 그룹 전체에는 이익이 되나 당해 회사에는 손해가 되는 경영 행위를 한 경우 어떤 조건 하에서 면책이 인정되는 가를 다룬 것이다. 프랑스 대법원은 그룹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ⅰ) 관계사들의 사업 활동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그룹의 구조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firm structural establishment of the group), ⅱ) 위기 시의 일시적 지원 차원을 넘어, 그룹 전체의 공통 이익을 추구하는 일관된 경 영전략이 존재해야 하고(coherent group policy), ⅲ) 관계사들과의 거래로부터 발생하 는 이익과 부담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balanced distribution of benefits and burdens) 는 것이다. 앞의 ⅰ)과 ⅱ)는 지배회사를 사실상의 이사 (de facto director, 한국 상법 제401조 의2상의 업무집행지시자)로 추정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배회사의 경 영 개입 여부 및 이사로서의 신인의무(fiduciary duties;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위 반 여부를 case-by-case로 확인해야 하는 보통법 국가의 접근방법에 내재된 한계를 보 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ⅲ)은 그룹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허용 되는 조건을 명시한 것으로서,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이익과 손해의 상계를 인정함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71 으로써 독일 AktG의 de facto group 규정에 내재된 경직성을 보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 그러한 의미에서 프랑스의 Rozenblum 원리는 독일식 접근과도 다르고 영국식 접근과도 다른, 또는 이 양자를 절충한 것으로서, 기업집단법 논의의 새로운 준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Forum Europaeum은, 프랑스 Rozenblum 원리에 따라 그룹 공통의 이익을 인정한다 는 전제 위에서, 종속회사의 소액주주ㆍ채권자 9)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을 모 색하였다. 우선, 종속회사의 소액주주 보호와 관련해서는 그룹에 편입될 때 지분을 팔고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영국식 의무 공개매수 제도(mandatory offer)와 같은 것인데, 차이점은 거래소에 상장된 주식회사만이 아니 라, 주식 이전에 제한이 없는 모든 공개회사에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소액주주 의 정보권을 보강하면서 사후 구제수단의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룹 차원의 특별조사권(special investigation) 제도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유럽에서는 이미 개별 회사 차원의 특별조사권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이 많은데, 이를 기업집단 차원 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일정 요건을 갖춘 주주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선임하는 특별조사관은 필요한 경우 기업집단 내 모든 관계사와의 거래 관계에 대해 조사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 조사의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며, 조사보고서는 원칙적으로 당해 회사의 이사회에 제출되나, 주주가 요구하고 법원이 승인하면 주주에게도 제공된다. Forum Europaeum은 특별조사권 제도가 지배회사의 부당행위를 적발하고 예방하는, 지금까지 고안된 제도 중 가장 효과적인 제도임을 강조하였다. 종속회사의 채권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부도에 근접한 시점(vicinity of insolvency)에 서 지배회사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부도가 현실화된 이후의 채권자 보호 장치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Forum Europaeum은 영국이 1986년 도산법에 도입한 부당한 거래 (wrongful trading) 금지 원 칙에 주목하였다.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이사는 즉각 파산절차에 들어가거나 또는 구조조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의무를 게 을리 했을 경우 이사는 채권자의 손해에 대해 연대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영국 8) 이탈리아의 2004년 개정 회사법은 Rosenblum 원리를 성문 규정화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9) 독일식 공동결정 제도를 둘러싼 회원국간의 갈등을 겪은 이후 노동자 권익 보호 문제는 경제 영역이 아 닌 노동사회 영역으로 넘겨졌다. 그 결과가 4절 (5)항에서 설명하는 EU의 1994년 European Works Council Directive이다.
72 도산법의 특징은 부도 이전의 상황으로까지 이사의 책임이 확장된다는데 있고, 또한 이를 사실상의 이사 개념과 결합함으로써 기업집단의 지배회사에 대한 책임으로까지 확장한다는데 있다. 한편, Forum Europaeum Report의 핵심 내용은 유럽집행위원회에 의해 승계되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오랜 침묵을 깨고 EU 차원의 회사법 개혁을 위한 노력을 재개한 것이 2002년 High Level Group of Company Law Experts의 Report(위원장의 이름을 따 라 Winter Report라고도 한다)이다. Forum Europaeum Report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 여했던 전문가 중 다수가 Winter Report 작업에도 참여하였기 때문에 이 두 보고서는 매우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 핵심 내용은 2003년 유럽집행위원회의 Action Plan에도 대부분 반영되었다. 즉 Winter Report에 담긴 유럽 회사법의 현대화를 위한 제안 내용들을 대부분 공식 의제화하면서, 이를 단기(2003~2005년), 중기(2006~2008 년), 장기(2009년 이후) 과제로 분류하고, 그 이행 수단 및 절차를 명기한 것이다. 그 러나 2005년에 성장과 고용을 위한 수정 Lisbon 전략이 채택되었고, 그 일환으로 유 럽집행위원회가 규제완화 기조로 돌아서면서 Action Plan은 추진력을 상실하는 우여 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2005년 이후 진행된 회사법 상의 규제완화 기조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면서, 유럽집행위원회는 2010년 각 회원국의 회사법 전문가로 구성된 Reflection Group을 설립함으로써 21세 기의 두 번째 10년을 맞아 유럽 회사법의 현황 및 과제를 점검케 하였다. 그 결과가 2011년 Reflection Group Report로 발표되었는데, 유럽집행위원회는 이를 기초로 이해 관계자와의 광범위한 협의 과정을 거쳐 2012년 12월에 새로운 Action Plan을 발표하 였다. 그 중 기업집단법과 관련한 핵심 내용은 ⅰ) 투명성 제고를 위한 그룹 관련 정 보 제공의 강화(group publicity), ⅱ) 그룹 공통의 이익(common interest of group) 인정 을 위한 조건 모색, 그리고 ⅲ) 1인 주주 회사(single member company)에 대한 지배구 조 특례 허용 등인데, 2014년 중으로 추진방침(initiative)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최근 EU 차원의 새로운 기업집단법 논의가 어떤 성과를 낼 지는 아직 불확실하지 만, 1998년 Forum Europaeum Report와 2002년 Winter Report의 기조가 이어지면서, 과 거 어느 때보다 지지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Conanc(2013), pp.203-205).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73 (3) 소결: 한국에의 시사점 이상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 특히 1990년대 말 이후의 절충적 접근방법이 한국 의 재벌개혁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개별 법인격(separate legality)과 유한책임(limited liability)이라는 전통적 회사 법의 원리에만 입각해서 기업집단의 문제를 다루는 나라는 없다. 미국ㆍ영국ㆍ호주 ㆍ뉴질랜드 등 보통법 전통의 나라들도 판례법 상의 예외적 구제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를 성문 규정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 최근 들어서는 독일의 AktG와 같은 단일 법률로 기업집단의 모든 문제를 규정하려는 노력을 새롭게 시도 하는 경우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EU 전체 차원에서도 그렇고 개별국가 차원에 서도 그렇다. 따라서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새로운 흐름이 보여주듯이, 기업집단 법의 실체적 핵심 요소들을 회사법ㆍ세법ㆍ회계법ㆍ도산법ㆍ경쟁법ㆍ금융법ㆍ노동법 등의 다양한 법영역에서 부분적ㆍ상호보완적으로 도입하는 절충적 접근법이 기본적 인 추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업집단법의 다양한 요소들 중 어떤 부분을 도입할 것인지, 그리고 이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일관된 규율체계를 구성할 것 인지는 각국의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향후 한국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두 가지 큰 논의 과제가 있다. 첫째,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의 핵심 주제로 부상한, 그룹 공통 의 이익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업집단 자체가 죄악은 아니며, 따라서 기업 집단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나라는 없다. 나아가 기업집단은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 과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기업집단에 대한 규율체계의 사각지대를 오남용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따라 서 경제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기업집단에 대해 그 편익과 부담을 조화시키는 것은 경쟁력 제고와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필수적 과제다. 이러한 노력의 준거가 될 수 있는 것이 프랑스 대법원의 Rozenblum 판결 원리다. 특수관계인들 간의 거래로 인해 특정 계열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를 상쇄하는 간접적 이익이 존재하거나 또는 직접적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그 손해발생 행위에 대해 형사적ㆍ민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Rozenblum 원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과 절차에 대해 많
74 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자칫 총수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역효과 를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Rozenblum 원리를 다룬 사건은 1985년 이 래 총 75건이었는데, 그 중 이사 또는 지배회사의 면책이 인정된 것은 9건에 불과하 고, 나머지 66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즉 프랑스 법원은 Rozenblum 원리를 매 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Rozenblum 원리가 인정한 것은 그 룹 공통의 이익이지, 지배주주의 사익이 아니다. 각 계열사가 그룹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합법적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노 력이 필요하다. 평상시에는 규율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야 배임ㆍ횡령 및 분식회계로 처벌하는 현재 한국의 재벌 규율체계는 그룹 경영의 법적 예측가능성 확보에도 실패하고 이해관계자 보호에도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이라 고 할 수 있다. 둘째, 기업집단법의 본래 목적은 지배회사 또는 지배주주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부터 종속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자의 권익 보호 목적이 인정된다고 해서 언제나 법적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법적으로 개 입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수단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보호 장치들 의 보완ㆍ대체 관계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ⅰ) 기업집단의 형성ㆍ유지ㆍ소멸에 이르는 전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서 이해관계자 보호 장치를 강구할 것인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룹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으면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법도 있고, 그룹 내에 머무르도록 하면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방법도 있고, 그룹이 해체될 때 잔여재산의 분배에서 우선순 위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또한, ⅱ) 법적 보호 장치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의 강제력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지배회사에 대해 특정 행위를 금지하거나 이해관계자 보호 의무를 직접 부과하는 강행규정 방식 (mandatory rule)도 있고, comply or explain 원리에 따른 모범규준을 제정하거나 이 해관계자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간접적 방식(enabling rule)도 있다. 마지막으로, ⅲ) 의사결정자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수단의 효과적 조합을 확보하여야 한다. 경제법의 집행은 당사자의 직접 행동, 특히 민사적 손해배상 소송 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적 자치의 원리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들인 사외이사의 독립성ㆍ기관투자자의 적극적 행동ㆍ효율적 소송제도 등을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75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기관과 검찰을 동원한 처벌이 언제나 효율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민사적ㆍ행정적 ㆍ형사적 재제수단의 유기적 조합 및 일관된 집행 체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의 재벌 규율체계는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에 과도하게 편향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도 있겠고, 또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겠으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 는 없다. 소액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재정의하고 스스로 행 동하게 하는 방향으로 규율체계 전체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정책제안: 기업집단법적 접근의 적용 10) 이하에서는 2절에서 살펴 본 재벌의 최근 현황, 그리고 3절에서 살펴 본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의 최근 동향을 기초로 한국의 재벌개혁 나아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정책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하의 정책방안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는 학계의 진지한 연구와 치열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부정하 지 않으며, 따라서 이 방안들을 모두 단기간 내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 위주의 접근방법에 내재한 딜레마, 즉 한편으로는 경제관료들의 적극적 재량권 행사를 통한 개입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 으로는 경제관료들의 재량권 남용에 따른 관치를 비판해야 하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 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러한 모순은 진보ㆍ개혁정권이 들어 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라고 본다. 결국은 기업집 단에 대한 규율체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룹 경영의 합법적 경계선을 명 확히 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장치들을 다양한 법영역에 상호보완적으로 도입하는 것, 이것이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새 로운 기업집단법 논의 흐름이 한국에 주는 교훈이라고 판단한다. 10) 이하의 내용은 김상조(2012.3), 김상조(2012.9), 김상조(2012.12), 김상조(2013.4.26), 김상조(2013.12.18), 이지수ㆍ김상조(2014.6.10)의 내용을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76 (1) 상법 개정 사항 상법(회사편)은 경제법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법에는 기업집단 규율에 필 요한 규정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것이 공정거래법 등에 의한 행정규제의 부 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상법은 재벌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포 함한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일반법이므로 너무 경직적이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상 법상의 규제 공백과 과중한 규제라는 양 극단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법에는 기업집단 규율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도입하면서, 특수한 정책목적을 위해 특정한 대상을 보다 엄격한 기준 하에서 규제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ㆍ금융관련법 등의 여타 법률에서 다루는 방향으로 규율체계를 정립하여야 할 것이 다. 1 연결회계 상의 지배 개념에 의한 기업집단 정의 우리나라의 현행 상법에는 지배 (control)에 관한 정의 자체가 없고, 따라서 지배 주주 및 기업집단 에 관한 그 어떠한 규정도 찾아볼 수 없다. 한편, 현행 공정거래 법은 사실상의 지배 (de facto control) 개념을 통해 기업집단을 정의하고 있는데, 다 만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 에 한정해서 특별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상법에서는 기업집단에 관한 규율체계가 공백인 반면, 공정거래법에서 는 기업집단의 정의는 포괄적이나 실제 적용대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 상 황은, 재벌개혁 차원과는 별개로, 경제법 체계상 심각한 흠결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 서 조속히 보완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에 대한 대안 중 하나는 공정거래법상의 사실상의 지배 개념을 상법에 확대 적 용함으로써 기업집단 일반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지만, 사실상의 지배 개념은 (독일 AktG의 domination 개념과 마찬가지로) 사전적으로 확정하기가 어렵다는 난점 이 있고, 따라서 이를 상법상 일반 개념으로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회 사법 개혁 차원에서 진행된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에서도 연결회계상의 지배 개념 을 기초로 기업집단을 비교적 좁고 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부터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 (K-IFRS)을 도입하여 연결재무제표 를 주된 재무제표로 사용하고 있다. 연결재무제표는 기업집단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77 공시 자료이다. 물론 회사법과 회계법상의 기업집단 범위가 반드시 일치해야 할 필 요는 없으나, 이 양자가 불일치함으로 인한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정책의 대상)이나 금융관련법 상의 금 융그룹(그룹 통합감독의 대상) 등과 같이 특정한 정책목적에 따라 기업집단을 보다 포괄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각각의 법영역에서 별도로 규정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법의 기본인 상법에서는 K-IFRS의 지배 개념에 근거하여 기업집단을 상 대적으로 단순하게 정의하는 규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2 지배주주 의 공정성 의무 (duty of entire fairness) 전통 회사법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이사에게 부과되는 신인의무(fiduciary duties; 선 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이다. 그런데 신인의무는 회사에 대한 의무로서, 소액주주ㆍ 채권자ㆍ노동자 등의 이해관계자에 대해 직접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이 통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속회사에 대한 지배회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지 배회사를 사실상의 이사 로 간주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해야 하고, 대표소송에서 원 고로 나서는 종속회사의 소액주주가 입증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집단에 서 지배회사 내지 지배주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운 주된 이유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모델 회사법 및 판례에서와 같이, 지배 주주가 본인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와 거래를 하는 경우 그 거래 조건 및 절차에서 모두 최선의 공정성을 유지할 의무(duty of entire fairness)를 상법에 규정하 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지배주주가 자연인이 아니라 법인인 경우, 지배회사의 경영 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및 일정 범위 내에 친족)에 대해서도 공정성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3 소액주주의 정보권 및 다중대표소송권 주주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주주에게는 당해 회사만이 아니라 관계사 에 대해서도 그 경영 상황 및 거래 내역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 여야 한다.
78 한편, 회계정보 등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열람 권만을 허용하는 것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또는 상당한 비용을 부담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법원이 일정 요건을 갖춘 주주의 청구를 승인한 경우에는 회사의 비용 부담 하에 법원이 선임한 전문가가 관련 정보를 열람ㆍ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특별조사권(special investigation)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별조사권의 적용 범위 역시 당해 회사만이 아니라 관계사로 확대해야 한다. 유럽 의 전문가들은 특별조사권 제도가 지배회사 내지 지배주주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통 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배주주 또는 이사가 신인의무 및 공정성 의무를 위반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주주가 당해 회사는 물론 관계사의 이사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 송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많은 한계가 있지만, 2013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 이미 다중대표소송 제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국회는 조속히 심의ㆍ통과 시켜야 할 것이다. 4 그룹 공통의 이익 고려: Rozenblum 원리의 성문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그룹 공통 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데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그룹 공 통의 이익과 각 계열사의 이익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조정하는 기준으 로서 프랑스 대법원의 Rosenblum 원리가 제시되고 있다. Rosenblum 원리는, 지배회사가 그룹 전체에는 이익이 되나 일시적으로는 종속회 사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지시를 내리고 종속회사가 이를 수용ㆍ이행하는 경우에, 이 에 따른 민형사상 면책을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이다. Rozenblum 원리의 세 가지 조건 중 앞의 두 가지, 즉 기업집단 구조의 확립 및 일관된 경영전략의 추구 의 충족 여 부를 확인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관건은 세 번째 조건인 이익과 부담의 균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특히 종속회사의 손해를 상쇄 시키는 보상적 이익(compensatory advantages)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유럽의 모든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와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79 같이, 이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즉 그룹 소속이라는 사실로부터 유래하는 암묵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자금조달 상의 재무적 이익 (financial advantages) 또는 수익 창출과 관련된 경제적 이익 (economic advantages) 또는 장기이윤 극대화를 위한 전 제조건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사회적 이익 (social advantages) 등의 측 면에서 구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의 존재를 입증하는 책임은 지 배주주 또는 지배회사ㆍ종속회사의 이사들에게 부과되어야 한다.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를 한국에 적용할 때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Rozenblum 원리이다. 그룹 공통의 이익은 회사의 이익이지 지배주주의 사익이 아니다 라는 간명한 원칙을 한국의 검찰ㆍ법원이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 추었다고 인정받을 때 Rozenblum 원리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2) 공정거래법 개정 사항 상법에서는 K-IFRS상의 지배 개념을 기초로 기업집단을 보다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공정거래법에서는 사실상의 지배 개념을 기초로 기업집단을 폭 넓게 정의하는 대신 그 대상을 대규모 기업집단에 한정하여 보다 엄격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부분은 현행 공정거래법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기업집단법적 접근의 관점에서 볼 때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 분은 기업집단의 조직형태별 규제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즉 다단계 교차출자 구조 의 재벌체제와 수직적 출자구조의 지주회사체제 사이에서 규제가 약한 쪽을 찾아다 니거나(regulatory shopping) 또는 규제가 강한 쪽에 규제완화 로비 압력이 집중되어 규율공백이 발생하는(race to the bottom)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기업집단을 형성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조직형태를 취할 것인가는 자율적 선택의 대 상이다. 하지만 조직형태와는 무관하게 동일한 위험에 대해서는 동일한 강도의 규율 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1 대규모 기업집단의 대표회사 지정 및 그룹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 우선, 대규모 기업집단을 대표하는 회사(이하 대표회사)를 지정하도록 한다. 지주 회사체제로 전환한 기업집단의 경우에는 최상위 지주회사가 대표회사가 된다. 다단
80 계 교차출자 구조의 재벌체제에서는 자산 규모, 출자 관계, 사업 내용 등을 감안하여 해당 기업집단과 공정위가 협의하여 대표회사를 지정한다. 대표회사가 곧 그룹 전체 및 각 계열사의 경영 판단에서 자동적으로 최종 지배회 사(또는 사실상의 이사)로 추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표회사 및 그 이사회에는 그룹 전체와 관련된 정보를 공시할 책임이 부여된다(group publicity). 즉 국내외 모든 계열사를 연결한 재무적 정보, 그룹의 출자구조와 의사결정구조, 그룹의 사업 전략 및 전망, 관계사들 간의 거래 내역 등의 비재무적 정보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 는 평이한 문장으로 서술한 (가칭) 그룹 지배구조 보고서 를 연간 단위로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표회사의 감사위원회는 각 계열사의 감사위원회와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재무적 위험 및 지배구조 위험을 관리할 책임을 지도록 한다. 2 기업분할,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 현행 공정거래법 제7조는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기업결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제7조의 심사를 통과하여 기업결합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이에 따른 독과점의 폐해, 시장지배력의 남용, 또는 경제력집중 심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경우에 도 이를 원상회복할 수 있는 구조적 조치 수단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경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분할 명령제, 그 리고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업 분할ㆍ계열분리 명령을 발동하는 경우에는, 이것 이외에는 경쟁질서를 회복할 수단 이 존재하지 않음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최후의 수단이 라고 할 수 있다. (3) 부실기업(집단) 구조조정 관련법 개정 사항 2절 (2)항에서 본 바와 같이, 최근 상당수 재벌들의 재무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수단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는, 살아 있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재벌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이 더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81 부실징후 기업은 일차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구조조정한 다음, 그래도 처리 되지 않은 부실기업은 도산법원으로 넘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실징후 기업을 조기에 포착하는 회계ㆍ공시 시스템도 미흡할 뿐만 아니라, 사모펀 드ㆍM&A 등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본시장적 수단도 성숙되어 있지 못하고, 나아가 도산법원의 능력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특히 개별 법인격 및 유한책임이 라는 회사법적 원리를 오남용하는 부실 기업집단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채권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절차에 주로 의존하 고 있는데, 과도기적 조치로서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관 치금융을 통해 오히려 부실을 은폐ㆍ확대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 서 채권은행 주도 구조조정 절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 법적 근거 를 강화하는 한편, 기업집단법적 접근의 관점에서 통합도산법을 보완하는 것이 반드 시 필요하다. 1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및 주채무계열제도의 개선 일시적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처했지만 회생가능한 기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절차 로서, 통합도산법에 의한 기업회생절차(소위 법정관리) 이외에,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에 의한 워크아웃 절차가 있다. 법정관리의 여러 가지 문제점, 특히 기업경영에 대한 법원의 전문성 부족과 이로 인한 신규 (시설)자금 공급(DIP financing)의 어려움 때문 에, 필요악적 선택으로 워크아웃 절차를 당분간 존치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점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재무구조개선약정의 내용 및 그 이행실적 등에 관한 주요 정보를 주기적으 로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현행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8조 제2항 제3호는 인원 ㆍ조직ㆍ임금 등의 조정과 관련한 노동조합의 동의서를 약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어, 채권단이 사실상 백지위임의 노동조합 동의서를 징구하는 과정에서 노사 갈등을 야기하거나 또는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노동조합 의 협조 없이는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약정 체결의 조건으 로서 노동조합의 동의서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그 대신 채권단이 노동조합에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보를 성실히 제공하고 협의에 응하도록 하는 규정 을 신설하는 것은 물론, 이견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조정 절차 내지 사법
82 적 절차도 명기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나 도산법원 밖에서 채권자-채무자간의 자율적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절차를 갖고 있다. 이때 이해관계자간에 100% 동의가 이루어진 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일정 기준 이상의 다수결을 통해 약정을 체결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일정 요건을 갖춘 부동 의 이해관계자들이 제3의 기관(예컨대, 법원)에 약정의 체결 여부 및 그 내용의 적정 성에 대한 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해관계자간의 형 평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한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워크아웃 절차는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의 대기 업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대부분이 기업집단 소속의 계열사이다. 문제는, 부실 기 업집단의 구조조정 절차에 관해서는 법적 근거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즉 현 행 주채무계열제도는 은행업감독규정에 최소한의 근거만을 둔 채 그 세부적인 내용 은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관치 논란을 야기하고 이해관 계자들의 피해를 방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따라서 주채무계열제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주채무계열제도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통합규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즉 대상기업(집단)에 대한 주채권은행의 상시적 재무평 가의 근거 및 이를 위한 자료제출 요구권, 구조조정 대상기업(집단)의 선정 절차, 재 무구조개선약정의 체결 및 이행점검, 부동의 채권금융기관의 채권매수청구권 및 조 정절차, 구조조정 졸업 또는 중단의 기준 및 절차 등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주채무 계열제도의 공통 내용을 일관성 있게 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집단에 대한 선 제적 구조조정과 그 소속 주요 계열사에 대한 본격적 구조조정 간의 연계성을 높이 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통합도산법에 기업집단법적 요소 도입 프랑스 대법원의 1985년 Rosenblum 판결 원리 함께,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새 로운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제도적 요소 중의 하나가 영국의 1986년 개정 도산법에 도입된 부당한 거래 (wrongful trading) 금지 원칙이다. 회사가 부도가 나면 지배권이 주주에게서 채권자에게로 이전된다. 문제는, 이미 부 도가 난 상황에서는 상법이나 통합도산법 상의 채권자 보호 장치는 큰 효과가 없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83 는데 있다. 현행 통합도산법은 부도가 난 이후의 상황에서 회사의 효율적인 회생ㆍ 파산 절차,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채권자 간 동등대우 원칙을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 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 이전의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채권자를 보호하는 장 치가 필요하다. 기업집단에 소속된 종속회사는 부도에 근접할수록 지배회사의 기회 주의적 행동에 노출될 위험이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부당한 거래 금지 원칙은 회사의 존속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을 때(crisis point 또는 vicinity of insolvency)에는 부도 이전 상황에서도 회사가 추가적인 채무 부담 행 위를 하지 못하도록 할 의무를 이사에게 부여하고, 이 의무를 위반하여 파산한 경우 에는 이사가 채권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종속회사의 경영 에 대해 지배회사가 사실상의 이사로서 개입했다면, 지배회사 또는 지배회사의 이사 도 책임을 진다. 이러한 원칙이 통합도산법에 도입된다면, 경영권 유지 욕심에 매몰 된 나머지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결국 특정 계열사의 부실 위험을 그룹 전체로 확산시키는 재벌총수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제어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 다. 한편, 기업집단의 지배회사는 종속회사의 사업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충분한 자 본을 출자하지 않고, 대신 채권-채무 형태로 필요한 자금을 공급할 유인을 갖게 된 다. 개별 법인격의 유한책임 원리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부도에 근접한 상 황일수록 이러한 기회주의적 행동의 유인은 커지며, 따라서 종속회사의 채권자는 큰 위험에 노출된다. 이에 영국의 1986년 도산법 개정을 주도하였던 Cork 위원회, 그리 고 1998년 호주의 도산법 개정안을 마련하였던 Harmper 위원회는 일정 조건 하에서 기업집단 내부의 채권(즉 계열사간의 자금대여)을 외부채권에 대해 후순위화하는 방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종속회사의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 지배회사의 채권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 기 위해 그 적용 대상을 K-IFRS에 따라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기업집단으로 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집단 전체의 재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순위로 취급되는 채권을 보유한 계열사는 파산절 차가 진행되는 법원에 소명 자료를 갖추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EU의 다수 회원국에서는 이사 자격제한 제도가 회사법 및 도산법의
84 규율을 보완하는 행정적 제재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 적인 예가 영국의 1986년 Company Director Disqualification Act이다. 회사의 파산에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는 자에 대해 도산법원이 직권으로 다른 회사의 이사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거나, 또는 파산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중대 범죄행 위로 형사상 유죄 판결을 받거나 회사법 상의 의무를 악의적으로 위반한 자에 대해 서는 소관부처 장관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이사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사 자격 제한 기간은 최장 15년이며, 그 명단은 등기소에 고시되고, 명령을 위반한 것 자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영국에서는 매년 1,500~2,000명이 이사 자격제한 조치를 받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합도산법에 이사 자격제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세모그룹(세월호 사건)의 경우와 같이 도산법의 맹점을 악용하여 그룹을 재건하거나 또는 재벌총수가 전문경영인의 자율적 판단을 제약하여 부실을 확대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 관행을 개선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4) 금융관련법 개선 사항 기업집단의 조직형태에 따른 규제격차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금 융부문이다.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대부분 은행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였는데, 금융지 주회사에 대해서는 계열사간 출자를 공제한 순자본을 기준으로 그룹 전체의 자본적 정성 규제(BIS자기자본비율) 및 자산운용규제(특수관계인 신용공여 한도 등)를 적용 하는 등의 그룹 통합감독 체계(group-wide supervision 또는 consolidated supervision)가 구축되어 있다. 반면, 재벌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비은행부문에는 금산결합 하의 다단계 교차출자 구조가 지배적이며, 여기에는 그룹 통합감독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비은행부문에서의 금산분리 규제는 금산법 24조와 같은 소유규 제나 공정거래법 11조와 같은 의결권 제한 등의 사전적ㆍ금지적 행정규제 위주로 이 루어지고 있는데, 지금 당장 이를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이러한 규제의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다. 따 라서 EU의 2002년 Financial Conglomerate Directive와 같이, 조직형태와는 무관하게, 동일 위험에 대해서는 동일 강도의 규제감독 기준을 적용하는 그룹 통합감독의 원칙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85 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조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1 금융그룹의 대표회사 지정 및 그룹 통합감독 체계 구축 우선, 앞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의 대표회사 지정과 마찬가지로, 금융그 룹(또는 금산결합그룹 내의 금융소그룹)을 대표하는 대표회사 를 지정토록 한다. 대 표회사에게는 금융그룹 지배구조 보고서 를 작성ㆍ공시하는 책임뿐만 아니라, 금융 그룹 전체의 자본적정성 규제(capital adequacy regulation), 산하 계열금융회사의 임원 에 대한 적격성 심사(fit and proper test), 그룹 내부거래 및 신용공여 규제(intra-group transactions and exposures regulation), 위험집중 규제(concentration regulation) 등을 포괄 하는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책임도 부여되어야 한다. 한편, 금융 통합감독 체계의 출발점은 계열사간 출자를 제거한 순자본을 기준으로 자본적정성을 규제하는 데 있다. 자본은 위험에 대한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데, 지배 목적의 계열사 출자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룹 전체의 연결재무제표가 이용가능한 경우에는 계열사간 출자가 이미 제거된 연결재무제표상 의 순자본을 기준으로, 그리고 연결재무제표가 이용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후적 으로 계열사간 출자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금융그룹 전체의 자본적정성 지표를 산정 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금 융지주회사에 대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규제기준을 이미 시행하고 있으 나, 다단계 교차출자 구조의 금융그룹에 대해서는 총차감 방식 (total deduction method)이라는 매우 제한적인 의미의 간이평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조직형 태별로 심각한 규제격차를 유발하는데, 재벌들이 다수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도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지 않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큰 유인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그룹의 자본적정성 평가 방법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 다. 다만, 선행해야 할 작업이 하나 있다. 계열사간 출자를 공제하기 위해서는 계열사 지분에 대한 공정한 가치평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유독 보험 업에서만 보험업감독규정이라는 하위규정을 통해 공정가액이 아닌 취득가액으로 평 가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삼성생명ㆍ삼성화재 등의 계열보험사를 보유한 삼성 그룹에 대한 특혜일 뿐이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86 공정가액은 19.1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보험업법상의 취득한도(자기자본의 40%와 총 자산의 2% 중 적은 값)인 4.7조원을 크게 초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받지 않는 이유가 취득가액인 2.6조원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의 취지를 하위 감독규정이 왜곡하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근 이종걸 의원이 대 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ㆍ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2 금융그룹의 조직구조에 대한 규제 그룹 단위의 자본적정성 평가와 위험관리 시스템의 구축이 통합감독 체계의 기본 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금융그룹의 위험전이 문제(contagion risk)를 완전히 예방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금융 그룹에 대한 감독의 마지막 보루로서 금융그룹의 조직형태 및 출자구조에 대한 규제 수단이 필요하다. 특히 금산결합그룹의 위험전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은행지주회사를 포함하여 은행이 포함된 금융그룹에 대해서는 엄격한 금산 분리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즉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금지하고, 은행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도 금지하는 사전적ㆍ금지적 규제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 비은행지주회사의 경우에는 사전적ㆍ금지적 방식의 금산분리 규제는 일부 완화하되, 금융계열사의 수와 자산규모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중간금융 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금융부문과 산업부문 간의 위험전이를 차단하는 방 화벽(firewall)을 두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다단계 교차출자 구조의 금산결합그룹에 대해 자본적정성 평가와 위 험관리 시스템의 구축만으로 위험전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 우에는 감독기구가 중간금융지주회사의 설치 또는 계열분리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다. (5) 노동법 개정 사항: 그룹 노사협의회 설치 초기에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를 주도한 주요 동력 중 하나는 다국적기업에서의 노동자 보호 문제였다. 일국적 차원의 노동운동이 다국적기업의 경영전략에 대해 효 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87 공동결정 제도를 비롯한 노동자 경영참가 문제는 기업집단법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 는 가장 큰 장애물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 보호 문제는 회사법 또는 기업 집단법의 이슈에서는 사라진 채 노동ㆍ사회 분야의 안건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암묵 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법영역에서 논의하든 간에, 종속회사의 노동자가 기업집단 전체의 전 략적 경영판단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협의를 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근로계약을 맺은 해당 회사의 경영판단보다 도 기업집단 전체의 경영판단이 노동자의 지위에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공동결정 제도 등의 채택 여부와는 무관하게, 각 사업장ㆍ기업ㆍ기업집단 단위로 직장평의회(works council)가 결성되어 있고, EU 의 1994년 European Works Council Directive의 제정에 따라 일국의 국경을 넘는 다국 적 기업집단 차원에서도 노동자의 정보권과 협의권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협약 적용률이 모두 10%의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 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대기업-남성-정규직 중심으로 조직된 결과 기업규모별ㆍ성별 ㆍ고용형태별 근조조건의 격차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것이 노동시 장의 분절 및 사회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이하 근로자참여법)에 의거 하여 상시 고용인 30인 이상의 사업장에는 노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함 으로써 노동자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안에 대한 정보 제공과 함께 사안별 로 의결ㆍ협의ㆍ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노사협의회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 권이 있는 개별 기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만 설치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근로자참여법을 개정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집단에는 그룹 노사협의회 를 의무 적으로 설치토록 함으로써 소속 회사, 고용형태, 노동조합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기 업집단 전체 차원으로 노동자의 정보권과 협의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룹 노사협의 회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지도 알 수 없다. 해당 그룹의 노사관계의 특징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전략적 경영판단은 그룹 차원 에서 이루어지는데, 노사관계는 개별기업 단위에서만 협의하도록 하는 현행 법제도 환경 하에서는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룹 노사협의회는 이러한 문
88 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한편, 그룹 노사협의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근로자위원의 대표성 확보라고 할 수 있다. 현행법은 근로자 및 사용자를 대표하는 동수의 위원(각 3~10인)으로 노사협의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룹 노사협 의회가 그룹 내의 다양한 노동자들을 대표하기에는 위원 숫자가 너무 적다. 따라서 각 계열사별로 최소 1인 이상의 근로자위원이 임명되도록 하되, 일정 수 이상의 비 조합원ㆍ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도 각 1명씩 임명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6) 하도급법 개정 사항: 기업집단법적 접근을 하도급 거래에 확대 적용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대등한 자들의 자유로운 시장거래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번 거래상대방을 탐색하고 거래조건을 협상하기보다는 수직적 위계 질서 하의 기업조직을 만들어 내부화하는 것이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적일 때가 많다. 기업집단도 그러한 의미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시장거 래와 기업조직의 중간적 성격을 갖는 관계도 있는데, 이를 준내부조직(quasi-internal organization)이라고 한다. 장기지속적인 관계 하에 주문생산 거래를 하는 하도급 거래 가 그 대표적인 예다. 독과점적 산업구조가 고착화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에 현격한 협상력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적 자치의 원리를 액면 그대로 적용하 면 불공정 하도급 거래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하도급 거래를 사적 계약으로 보 는 현행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도 급 거래에 기업집단법적 접근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하도급 협력사가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집단법적 접근 의 기초적인 원리를 부분적으로만 적용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을 개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우선,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대기업 또는 기업집단의 경우 하도급 협력사의 명단 과 함께 거래 규모ㆍ조건ㆍ기간 등에 대한 주요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투명성의 제고가 불공정성 문제를 치유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89 집단 내부의 특수관계인간 거래보다는 공시의 엄격성 및 거래조건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원사업자의 공정거래 의무를 1차 협력사만이 아니라 2차ㆍ3차 협력사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1차-2차-3차 협력사간의 거래에 개입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개입하는 것이 법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 사적 자치의 원리 에 따른다면 그렇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차-2차-3차 협력사간의 거래조건은 원사업 자와 1차 협력사간의 거래조건에 의해 사실상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에 는 1차 협력사 중 상당수는 중견기업 내지 대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원사업자가 1차 협 력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을 때, 이들이 2차 이하의 하도급 거래에서 공정거래 의무 를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넣고 이를 관리할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 발전의 기본은 중소기업 자체의 경쟁력 제고에 있다. 그런데 개개의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제품ㆍ기술ㆍ디자인ㆍ인력 개발이나 새로운 판매ㆍ구 매 시장 개척 등의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다수의 중소기업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동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정책적 지원을 집중하는 노 력이 필요하다. 그 전제조건 중의 하나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중소기업들의 공동 사업에는 공정거래법상의 담합규제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것이다. 현행법에도 이에 대한 근거규정이 있지만, 실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법령상의 요건을 보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5. 결론: 경제민주화는 각 경제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재정의하는 과정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되었다. 물론 그 주된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있지만, 정책수단에도 문제가 있다. 공정거래법 등의 사전적ㆍ 금지적 행정규제에 과도하게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규제는 신상필벌의 경기 규칙을 정하고 집행하는 수단으로서, 개혁을 위해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행정규제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환경 변화에 유 연하게 조응하지 못하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행정규제의 제도
90 화 및 집행 과정에서 수많은 왜곡 현상이 발생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 공권력에 대 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관심 사항에만 행정자원이 집중되는 권위주의 적 리더십 체제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증폭된다. 한편, 진보ㆍ개혁 진영이라고 해서 경직적 행정규제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시장과 국가를 대립적 ㆍ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으로 인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자의적 개입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최 근 재벌의 동향은 행정규제 위주의 개혁전략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재벌부문 내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범4대 재벌(삼성ㆍ현대차ㆍSK ㆍLG 그룹 등의 4대 재벌 및 이들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로의 경제력집중 현 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12년의 경우 30대 재벌의 자산총액(1,295.1조원)을 기준 (100.00%)으로 하면, 삼성그룹이 1/5(20.92%), 범삼성그룹이 1/4(24.95%), 4대 재벌이 1/2(52.03%), 범4대 재벌이 2/3(68.53%)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한국경제는 30개 가문 이 아니라 4개 가문 소속의 그룹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 른 한편으로, 범4대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의 절반 정도가 부실 내지 부실징 후 상태에 있다. 5개 그룹은 이미 워크아웃ㆍ법정관리 등의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 있으며, 연결부채비율 200% 초과 및 연결이자보상배율 1.0배 미만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부실징후 그룹이 10개에 이른다. 더구나 (5개 구조조정 그룹을 제외한) 부 실징후 그룹의 숫자가 2010년 2개 2011년 5개 2012년 10개로 급격하게 증가하 는 추세에 있다. 국내외 경제환경의 불확실성 증대에 따라 향후 재벌들의 재무 상황 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의 재벌의 양극화 현상은 박근혜 정부가 갈지 자 행보를 보이는 근본 배경이 되었다. 범4대 재벌로의 경제력집중 억제와 여타 부 실(징후)그룹의 구조조정 지원이라는 상충하는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행정규제 수단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ㆍ 개혁 정권이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재벌개혁 나아가 경제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정책수단의 패러다임 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행정규제가 반드시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정치적 효과성을 담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 김상조 91 경제민주화는 각 경제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각각의 경제주 체가 자신의 개인적ㆍ집단적 권리를 자각하여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하고, 각각의 경제주체가 의무를 위반하기보다는 이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회 전체에도 더 유리함을 체득하게 하는 과정이 곧 경제민주화다. 이러한 관점에 서 이 글에서는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에 주목하였다. 유럽의 기업집단법 논의가 경쟁법(공정거래법)이 아닌 회사법(상법) 개혁의 차원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행정규 제 위주의 사고를 벗어나서 그룹 경영의 합법적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소액 주주ㆍ채권자ㆍ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다양한 법제도적 장치들을 모색하는데 풍부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집단 에 대한 모든 규율수단을 하나의 성문 법규에 담으려고 했던 독일 콘체른법의 경직 성을 폐기하고, 기업집단법의 기본 원리를 다양한 법영역에 부분적ㆍ상호보완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새로운 논의 흐름으로부터 한국의 재벌개 혁 및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대안들의 단초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상법ㆍ공정거래 법ㆍ통합도산법ㆍ금융관련법ㆍ노동법ㆍ하도급법 등의 6개 법영역에 걸쳐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정책대안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