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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산문 부문 심사평.hwp


2015 경제ㆍ재정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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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감사담당관 정책: 행정의 투명성 제고 단위: 민원발생사전예방 1)민원심의위원 수당 70,000원*9명*3회 1, 업무추진비 5,800 5, 시책추진업무추진비 5,800 5, )민원심의 업무추진 250,000원*4회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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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파주178호7월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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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감사목적 1 2.감사기간 1 3.감사위원회 편성 1 4.감사대상기관 2 5.위원회별 감사일정(총괄) 3 6.감사진행 4 7.감사대상기관별 증인 등의 출석범위 5 8.위원회별 감사 사무보조직원 선정 6 9.감사결과 처리의견 7 10.기타 감사의견 9 11.감사

*표1234(1월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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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79회-예결특위 제2차) (10시00분 개의) 위원장 박형덕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동두천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2차 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년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제1회 추가경정 예산안(계속) 위원장 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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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이용하는 라면,햄버그,과자,탄산음료등은 무서운 병을 유발하고 비만의 원인 식품 이다. 8,등겨에 흘려 보낸 영양을 되 찾을 수 있다. 도정과정에서 등겨에 흘려 보낸 영양 많은 쌀눈과 쌀껍질의 영양을 등겨를 물에 우러나게하여 장시간 물에 담가 두어 영양을 되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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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트렌드 책목차를 활용한 시장 예측.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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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꽃보다 아빠 를 응원합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기까지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지금 시작하세요 2016 지 금 시 작 하 세 요 2016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지금 시작하세요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변화가 문화를 만듭니다 보통 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 육아의 기쁨도 일의 행복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발간사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변화가 문화를 만듭니다 용하다가, 육아가 끝나면 전일제로 복귀합니다. 육아를 위한 전일제-휴직-시간 선택제-전일제 사이클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서는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날까, 내 자리가 없어 질까. 하는 걱정으로 육아휴직이나 단축근무 또는 시간선택제 활용을 주저 내게 안기면 낯설어 하던 아이, 뽀로로를 제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게 된다고 하소연합니다. 일명 사내 눈치법 이 존재하는 것이죠. 아빠가 제일 좋아 라고 대답하다니! 육아휴직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수기집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중에서) 저출산과 낮은 여성 고용률에 직면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 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일종의 직장 내 품앗이 로 맞벌이가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요즘, 엄마와 아빠 모두 종일 근무 받아들이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일과 가정 양립이 잘 돼야 방식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아이를 돌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전업 직원들 만족도와 생산성이 높아지고, 국민 이미지도 더 좋아진다는 점을 인지 주부인 아내의 취업 선언으로 육아휴직을 선택한 아빠, 출산 후 경력단절 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대신 회사 최초 육아기 단축근무를 선택하여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엄마 등 직장 육아 선배들의 생생한 노하우가 가득합니다. 주 5일 근무가 하나의 문화가 되었듯이, 육아를 위해 단축근무를 하거나, 휴직을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날이 분명히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강화하였습니다. 취업해 전 부처가 협력하여 뒷받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 전일제 근로자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출산하면 부부가 육아휴직을 순차적 으로 사용하여 만 2세까지 아이를 직접 키웁니다. 만 3세부터는 육아기 근로 2016년 1월 6일 시간 단축제도 또는 시간선택제 전환제도를 통해 단축한 근로시간을 육아에 활 고용노동부장관 2 지금 시작하세요 3

발간사 대한민국의 꽃보다 아빠 를 응원합니다 다행히도 최근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을 실천하는 용감한 아빠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용감무쌍한 선택 때문이 라도 저는 그 분들을 꽃보다 아빠 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에 기여하고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높아진다는 아빠 육아 참여의 대의명 분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이와의 교감을 통해 크나큰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요즘 TV를 보면 아빠들이 육아하는 모습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참 많습니다.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감동적인 깨닫는 현명한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 니다. 에피소드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제 주변에는 이런 프로 그램이 육아하는 아빠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이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번 수기집에 수록된 아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에 대한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현실의 아빠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데 엄마들의 기대 아빠의 사랑이 결코 엄마에 뒤지지 않을 만큼 크고 절절하다는 것을 다시 치만 높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합니다. 한 번 깨달았고, 이 사랑을 더욱 크게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가 분발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아빠들, 힘내세요! 참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의 아빠들이 감히 발을 담그기 어려운 영역이 육아 이고, 그 중에서도 어려운 영역이 남성 육아휴직 입니다. 남성들 의 육아휴직이 여성들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 육아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본인과 가족, 그리고 회사 내에서 아직 만연해 있고, 장시간의 경직된 근로 현실 역시 녹록치 않기 2016년 1월 6일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아빠의 달 제도를 마련하고, 가족친화인증제도, 가족사랑의 날 캠페인 등을 통해 아빠들이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4 지금 시작하세요 여성가족부장관 5

차례 Part1 아빠의 육아휴직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고현철 11 육아휴직, 아이도 자라지만 아빠도 자란다 권성욱 142 오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여 정민승 152 천천히 크렴 심재원 157 보통 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 이재완 23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 지우, 지훈에게 김세연 36 행복을 위한 소중한 정거장,아빠의 육아휴직 최성환 44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다 백종현 51 여보, 내가 육아신청 할게! 강진형 62 아빠 육아휴직,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신청하세요 김찬혁 68 아빠의 육아휴직은 신의 한 수 오세찬 80 친구 같은 아빠 가 되는 법 신경호 90 Part2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기까지 박지애 165 육아의 기쁨도 일의 행복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강윤혜 174 다둥이 엄마의 당당한 선택 윤서영 180 이런저런 고민하지 말고 아이에게 가세요 서주희 187 육아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송희라 193 두 번째 단축근무 신청하던 날 안현서 199 나를 위한 시간, 육아휴직 이민호 97 남성 육아휴직, 참 쉽죠~! 김형욱 105 슈퍼맨 아빠의 좌충우돌 쌍둥이 육아일기 문규영 114 부록 남성 육아휴직제도 안내 206 나는 김주부 입니다. 김윤재 121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안내 212 아빠 육아휴직으로 아이가 달라졌어요 박선우 131 육아하는 아빠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안내 218 6 이 책에 나오는 참여자들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일부 실명)으로 실었습니다. 지금 시작하세요 7

Part1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11 보통 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 23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 지우, 지훈에게 36 행복을 위한 소중한 정거장, 아빠의 육아휴직 44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다 51 여보, 내가 육아신청 할게! 62 아빠 육아휴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신청하세요 68 아빠의 육아휴직은 신의 한 수 80 친구 같은 아빠 가 되는 법 90 나를 위한 시간, 육아휴직 97 남성 육아휴직, 참 쉽죠~ 105 슈퍼맨 아빠의 좌충우돌 쌍둥이 육아일기 114 나는 김주부 입니다 121 아빠 육아휴직으로 아이가 달라졌어요 131 육아휴직, 아이도 자라지만 아빠도 자란다 142 오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여 152 천천히 크렴 157 이 책에 나오는 참여자들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일부 실명)으로 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고현철 (35세 코리아/제조업)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을 때 함 께 있어주고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추억을 만드는 게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아빠로서 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좋아? 뽀로로가 좋아? 첫째 딸 은율이가 세 살이 될 무렵 한창 뽀로로에 빠져 있는 아이에 게 물어봤다. 제 아무리 뽀로로지만 나는 아빠고 너를 낳아 준 사람인 데, 설마 가상의 캐릭터보다는 나를 더 좋아하겠지. 하며 자신 있게 던 진 질문이었다. 뽀로로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아빠라고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10 지금 시작하세요 11

아이가 대답을 하면 아빠도 은율이를 많이 좋아해. 하면서 안아줘야 겠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뽀로로를 선택한 것이다. 안경 쓴 펭귄 에게 인기투표에서 지자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나는 인자하니까, 게 다가 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인기 캐릭터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하 며 마음을 달랬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걸 나는 다시 아이에게 질 문을 던졌다. 아빠가 좋아? 재범이 오빠가 좋아?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빠일까? 가볍게 했던 질문이 가족 안에서의 내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 쓴 펭귄보다도 못하고, 이웃집 재 범 오빠보다도 못하고, 게다가 모두가 꺼리는 배설물보다도 못하다는 건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은율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을 때 옆에 있어주고 재밌 는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재범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은율이와 함께 노는 이웃집 아이다. 우리 딸의 답변은 아빠가 아닌 재범이 오빠였다. 나의 실망은 점점 커 져만 갔다.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마치 벌써 다른 남자에게 우리 딸 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질문은 급기야 아빠가 좋아? 똥이 좋아? 까지 이어졌다. 에이, 설마 똥이 좋을까? 그러나 이번에 도 우리 딸은 똥이 더 좋다며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안고 있던 뽀로로 인형을 더 세게 안는다. 함께 있는 것, 함께 노는 것,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게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 작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없었다. 때때로 재미있게 놀아주기는 했지만, 그럴 때도 내가 먼저 지치고 또 지루해져서 어떻게 하면 이 놀이를 빨 리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당시에 회사의 업무와 대학원 공부를 병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아까지 함께 하는 건 너무 벅찼다. 게다가 그 시기에 둘째를 출산한 아내가 육아휴직중이어서 육아와 가사를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회사 일과 대학원 수업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12 지금 시작하세요 13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지, 아이들과 신나게 놀 아야지. 하면서도 실제로는 업무와 학업에 치여 집에 오면 밥 먹고 쓰 러져 자는 게 일상이었다. 혼이 나곤 했다. 그때 아내는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지만, 말투와 내용 을 자세히 들어보면 마치 나를 혼내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엄마에게 영문도 모른 채 혼이 나니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그러다 집이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다. 조금씩 지쳐갔던 우리 가족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어느덧 아내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돌 아가야 했다. 아내는 일 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적응하는 시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나 역시 아직 학업을 계속 하고 있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했 지만,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 어떤 것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 서도 아내는 묵묵히 가사와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끔씩 자 기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만이라도 내가 가사와 육아를 함께 했다면 아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 고 감정 싸움에 불을 지피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쌍한 건 두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침대에 누웠지만 아내는 끝까지 아이들을 목욕을 시키고 양치질을 하 게 했다. 어린애들이라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고 결국은 꼭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들이 불쌍했고, 아내에게는 미안했으며, 나 에게는 실망했다.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데. 하지만 당시 아내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가사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식기세척 기를 사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집안일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근본 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봄바람처럼 따스했던 아이들의 노랫소리 그러던 어느날, 몸이 좋지 않아 하루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그때 한 손으로는 첫 째 딸 은율이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둘째 아들 성진이를 안 고 갔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은율이의 손과 성진 이의 가슴이 봄기운처럼 따뜻했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은율이가 어린 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다. 성진이는 옹알이를 하며 그 노래를 따 라 불렀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가슴속에서 행복한 기운이 14 지금 시작하세요 15

올라왔다. 그 순간 육아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행복을 오래 도록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약 15분에서 20분 정도의 거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 만, 우리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육아휴 직이 최선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결혼을 해 출가를 했지만, 부모님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도 존중하고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남성 육아휴직 기사와 자료를 검색했다. 그리고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 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현재 남성 육아휴직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조사했다.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남자들 중에 육아휴직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 읽기도 했다. 내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고, 조심스레 나의 육아휴직을 허락해 주었 다. 부모님께서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이제 남은 것은 회사였다. 아직 회사에서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 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회사에 대한 한 가지 확실한 믿음 이 있었다. 우리 회사는 법과 규정을 매우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법규 와 상관없이 성과만을 중시하는 회사에 대한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경험한 우리 회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법과 규정을 준수하 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회사 규정을 찾아보았다. 역시 육아휴직 규정이 있었고 성별과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육아휴직에 대해 말을 꺼냈다. 대답은 하지 않으셨지만 걱정이 많으신 눈치였다. 부모님께는 일단 시 간을 두고 이해를 구하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육아휴직에 대한 생각을 이미 전달했지만 그보다도 뭔가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조금이 라도 여유가 생기면 가사와 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부대찌 개, 궁중 떡볶이 등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고, 아이들 과 몸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들을 했다. 달라진 내 모습에 아 쉽지 않았던 육아휴직 신청 과정 나는 용기를 내 인사부와 우리 부서 팀장님께 차례대로 면담 신청을 했다. 인사부에서는 규정상 육아휴직이 가능하다고 했다. 쉽게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팀장님과의 면담은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계속 듣고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육아휴직이 불 가능한 것 아니냐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들었다. 그렇게, 인사부 및 상 16 지금 시작하세요 17

급자들과 논의해보겠다는 내용으로 1차 면담을 마쳤다. 관련 내용을 알아본 결과, 회사 업무가 없는 주말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 불가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이 부분이 해결되었지만 2차 면담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채용하는 문제가 쟁점이 됐다. 팀장님께서는 우리 집에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닌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데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이해는 되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와 집안에 큰 문제가 있어야만 육아휴직 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육아휴직을 하 는 게 아닐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육아휴직 관련법과 회사 규정을 들며 내 의지를 전했다. 결국 휴직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서 야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우선 아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 가방 안에 많 은 것들을 챙겨 담는다. 나는 가방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면 찾기가 힘 드니까 정리를 하라며 자주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혼자서 두 아이들 을 데리고 외출을 해 보니, 나 역시 아이들의 물건을 가방 안에 한가득 챙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목마를 것에 대비해 물통을 넣고, 생리 현상 을 해결하기 위해 물티슈와 기저귀도 여러 개 넣어야 했다. 음식을 먹 다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수도 있으니 여벌옷도 챙겨야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가방이 한보따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빨래를 개어 옷장에 정리할 때면, 뒤집어진 내 양말과 옷들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아이들이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어질러지는 집을 보면서 그동안 아내가 정말 많이 참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끼니를 챙기느라 밥을 물에 말아 대충 먹기도 했고 설거지를 하려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선 채로 긁어먹기도 했다. 회사에 다닐 때 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건데 좋 은 거 먹어야지. 하며 음식을 가려서 먹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아줌마가 다 된 내 모습을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 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동안 묵묵히 집안일을 해온 아내에게 고마움이 느껴진 다. 집안일도 하지 않으면서 핀잔만 늘어놨던 나의 언행을 참아가며 지금까지 아이들을 잘 키워온 아내에게 존경심마저 생긴다. 아내와의 관계 회복 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감은 육아휴직 의 가장 큰 선물이다. 어린이집에 손잡고 갈 때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소리,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때 들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 리만큼 우리 가족 에게 힐링이 되는 것은 없다. 가끔 아이들이 어린이 18 지금 시작하세요 19

집에 가기 싫어할 때는 근처 공원에 가서 뛰어놀거나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 주는데, 그럴 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 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감에 젖곤 한다. 육아휴직으로 달라진 나, 그리고 우리 가족 유치하지만 최근에 우리 딸에게 다시 인기 조사를 했다. 두려운 마음 에 똥 부터 시작해서, 재범 오빠 와 뽀로로 까지 하나씩 조심스럽게 물 어봤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가 제일 좋아. 라고 대답했다. 육 아휴직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둘째 아들 성 진이의 변화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자주 짜증을 내고 우울해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항상 밝게 웃어서 보람이 크다. 같이 노는 시 간을 늘린 것만으로 아이의 행동과 성격이 놀랍도록 좋아지는 것을 보 면서, 아이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은 그저 같이 있어주고, 함께 놀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 외에 나 자신의 삶에도 몇 가지 좋은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전에 는 바쁘게 생활하느라 주위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부 모님과도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가끔씩 부모님께 전화를 걸 어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부모님과 둘레 길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못지 않게 참 소중한 시간들이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면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쓴 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거실에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의자에 기대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 좋은 구절이 있으면 일기장에 옮겨 적기 도 한다. 그러다 책을 덮고 생각들을 하나씩 일기장에 적어 내려갈 때 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토록 원했던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 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좋은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으니 몸도 건강해진 것 같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육아휴직 이라는 제도 덕분에 아이들에게 나의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앞으로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 과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이 기대된다. 매년 남성 육아휴직자들이 급증하고 있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점차 안정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 성 육아휴직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주 위 친구들과, 대학원 동기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 20 지금 시작하세요 21

게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면 처음부터 우리 회사에서는 불가능할 것 이라며 먼 나라 얘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회사만 해도 나의 육아휴직을 계기로 남자 직원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런 제도가 있느냐. 부터 그게 가능하겠느냐. 고 반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승인을 받았 는지 묻기도 한다. 나는 이런 변화가 조금씩 더 많이 확대되었으면 한 다. 아직 육아휴직 초기이지만, 내게는 벌써 이렇게 많은 긍정적인 변 화들이 찾아왔다. 주위에도 육아와 가사로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많다. 하지만 남자들 이 육아휴직을 선택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좁게는 가정의 행복에서부터 넓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의 육아휴직 제도가 확실하게 정착이 되길 간절히 바라 면서 글을 마친다. 보통 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 이재완 (34세 자동차/제조업) 누군가 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그 누군가 가 부모일 때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나는 한 번쯤은 아이의 진정한 아빠이고 싶었다. 주 중에 사라졌다가 주말에 나타나는 아저씨가 아닌 진짜 아빠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평범한 사람임을 밝 히고 싶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평범 하다는 건, 내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어디서든 튀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조화롭게, 혹은 무던하게 흘 러가기를 희망하며 살아온 보통 남자라는 뜻이다. 이 글은 그런 평범 한 남자의 육아휴직 수기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 직장인 부부다. 동갑내기 친구이니만큼 가정 안에서의 역할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같은 직장인으 22 지금 시작하세요 23

로서 사회생활의 무게 역시 동등하게 보려고 노력 했다. 여기서 노력 이란 건, 가사 분담과 육아 문제,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에 따른 의견 조율(부부싸움)의 좋은 말이다. 결론적으로 난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왠지 등 떠밀려 휴 직을 하게 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게 있어 육아휴직은 실 ( 失 )보다 득( 得 )이 많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서 말이다. 내 아내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진급 누락의 아픔을 겪 었다. 무려 3번이나.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정당한 처사였 는지에 대한 의문은 내버려 두더라도 남편으로서, 같은 직장인으로서, 아이를 잉태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남의 일처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그 책임은 온전히 아 내 혼자 지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낯설고 어색했던 이름 아빠 아이가 태어나자 처가에서 돌봐주셨다. 아내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일부를 이용해 몇 개월간 처가에서 아이를 돌봤다. 그러다 진급 문제 로 회사에 복직했다. 그 해는 아내의 두 번째 진급 평가 기간이었다. 1년 정도 주중에는 장모님께서, 주말에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돌봤다. 주말 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장모님께 데려다주고 나면, 주 중엔 아이 걱정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이를 자주 만나지 않 아서인지 크게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내가 한 아이의 아빠라는 것조차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요일 저녁, 아이에게 안녕, 주말에 또 올게. 하고 인사를 하고 나서는 데,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갓난쟁이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표정이 그날 내내 가슴에 박혔다.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명 내 아이인데, 내가 키 워야 하는 아이인데 그 책무를 나 몰라라 하는 내가 과연 부모의 자격 이 있나 싶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아이와 떨어져 지낸 1년 사이, 힘 든 육아로 인해 많이 야윈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아내와 얘기 를 하고 우리 부모님께 휴직에 대해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다. 그 파장 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부모님은 꽤 개방적인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소한 남성 육아휴직으로 인해 아들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까 봐 걱정하셨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 화살은 아내에게 돌아갔다. 아내는 남아있던 육아휴직 6개월을 다시 사용했고 그로 인해 진급은 또다시 불확실해졌다. 24 지금 시작하세요 25

한 번쯤은 진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내의 휴직이 끝나갈 때 즈음 나는 다시 휴직을 고민했다. 누군가 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그 누군가 가 부모일 때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있는데 차선을 고민한다는 게 아이에게 미안했다. 부모의 손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한 번쯤은 아이의 진정한 아빠이고 싶었다. 주중에 사라졌다가 주말에 나타나는 아저씨 가 아닌 진짜 아빠 말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부모님 설득이 가장 어려웠다. 서른 살을 넘게 먹고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웠고, 굳이 허 락을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어린아이 같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부모 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내 스스로가 얼마나 독립적이지 못 하고 의존적 으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각기 다른 시 대를 살아왔기에 많이 달랐고 서로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사 실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조금은 더 부드 럽게, 서로 생채기 없이 의견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부모님의 동의를 포기했고, 부모님도 더 이상 내 의지를 말리지 않으셨다. 내 스스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휴직을 결심했지만, 그다음은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하는 고비가 남아있었다. 나는 육아휴직으로 인해 회사에서 겪게 될 많은 변화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회사에서 쌓아온 나의 경력과 이미지가 달라지는 건 아닌지, 그런 결과들을 충 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결정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등등.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때 어떤 문제가 뒤따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예감은 들었다. 남성의 육아휴 직은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치러지는 경주를 스스로 포기하는 낙인과 도 같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회사에 휴직 얘기를 꺼 낼 땐 이미 모든 고민을 끝내고, 무조건 휴직 허가를 받아내겠다는 굳은 각오를 한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육아휴직에 있어서 허가 라는 것은 없다. 다만 회사에 도의적인 양해를 구하는 것뿐이다. 제일 처음 가장 가까운 상급자에게 말씀을 드렸다. 누군가 휴직을 하 게 되면 다른 팀원들이 그 사람의 업무를 골고루 나눠 받거나, 혹은 임 시직 직원이 대신해 주는데, 내 경우는 전자의 상황이었다. 나는 내 업 무를 대신할 직원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상황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26 지금 시작하세요 27

예상외로 같은 팀원 분들께서 휴직 사유에 대해 공감해 주셨고 같은 가장이자 직장 동료로서 격려와 응원도 해주셨다. 휴직을 하기 몇 개 월 전 나는 새로운 팀으로 발령이 났다. 다행이었다. 전입한지 얼마 되 지 않은 내 업무량이 오랜 기간 일 해온 선배들보다 적었기 때문에, 다 른 팀원들이 불편을 좀 겪게 되더라도 감수해주자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팀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걱정과는 달리 면담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었다. 팀장님은 내 처지를 깊이 공감해주셨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분들도 회사와 국가의 발전에 헌신하느라 아빠 역할에 소홀했던 아픔들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팀장님은 내 상 황을 이해해주셨고, 나는 팀장님이 육아휴직 이라는 불편한 보고를 조 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도록 자필과 워드로 작성한 편지를 드렸 다. 아직은, 아니 아마 한참 뒤에도 팀 안에서 육아휴직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유쾌한 보고 내용은 아닐 것이다. 시일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난 무리 없이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다.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은 딱 한 번만 나눠 쓸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6개월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성 육아휴직이 드문 경우이 니만큼 처음부터 1년을 신청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연장이 필요할 경우 6개월에서 다시 6개월 연장은 가능해도, 3개월 휴직 후 9개월을 연장한다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팀장님과 실장님께서는 예상외로 흔쾌히 양해해 주셨다. 다만 직장 선배로서 후배 사원의 앞날을 진지하게 걱정하셨다. 사실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호되는 직장인 부모의 권리다. 허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 니라는 말이다. 다만 내가 이 부분을 되도록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잡음 없이, 좋은 이미지를 유지한 상태로 휴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고 있 지만, 개인의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 일기 내 휴직원이 회사의 보고체계를 거치는 동안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 졌다. 육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에게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서 어린이집도 그만두게 했다. 이제 막 매질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에 물을 묻히는 셈이었다. 좀 더 강한 고통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되어 남은 6개월을 휴직할 수 있다면 아이가 어린 28 지금 시작하세요 29

이집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하나씩 배워가기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일 처음 한 일은 매주 하나씩 어린이 뮤지컬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좋은 선택이자 나쁜 선택이기도 했는데, 전자는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끝나고 밥을 먹거나 다른 놀이들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나쁜 선택이 되는 이유는 네 살배기 아이는 절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바지를 입히면 한쪽 바지 통으로 양 발을 뺀다 거나 윗옷을 입히려 하면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던지고 나체로 집안을 활보한다. 생각한 즉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행일치( 思 行 一 致 )를 온몸 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실랑이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뮤지컬을 관람하 기도 전에 서로가 지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정해져 있는 체험활동이나 관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이런 일정 하나하나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던 내게 는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행사이자 동력이 되었다. 6개월간의 육아휴직은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 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운다는 열의, 아이와 시간 을 보낸다는 행복감, 5년간 매일같이 출근했던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 다는 해방감으로 지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손을 잡고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머리를 맞 대고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한참 동안 쳐다보기 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상상조차하기 힘들었던 사소한 여유로움이 었다. 이런 일상이 지겨워질 때면 앞서 말했던 어린이 뮤지컬을 가거 나 체험활동을 다녔다. 물론 육아휴직이 행복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휴직 전, 그동 안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거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이란 기대와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아휴직 은 그런 게 아니었다. 육아란, 쉴 틈이 없는 강도 높은 노동이다. 그래서 출산 전,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며 힘들게 직장을 다녔던 산모라 도 몇 개월만 지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육아다. 본 인의 숨겨진 애사심을 발견하게 만드는 게 바로 육아인 것이다. 그래서일 까. 기대와 열정들이 고된 현실과 부딪히면서, 사무실에만 앉아있던 내 저질 체력은 휴직을 한 지 한두 달 만에 다 고갈돼버렸다. 30 지금 시작하세요 31

되돌아보면, 나는 어떻게 하면 육아휴직을 가족과 회사에 어려움 없 이 이해시키고 허락받을 수 있을까 란 과제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 같다. 정작 가장 중요한 육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 던 것이다. 육아라는 본 게임에 들어가면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고 나면 아이를 재우다 지쳐 같이 잠들기 일쑤고, 잠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늦은 밤에 취미활동을 하면 그 다음날에는 피곤에 지쳐 예민해진다. 고된 주부의 일상이 하루하루 반복돼 어느새 호탕하고 착한 역할이 었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낮에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밤에는 후회하는 우울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휴 직 중반기에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육아에 집중하느라 미뤄둔 집안일을 열심히 도왔다. 직 장이 비교적 가까웠던 아내는 점심을 같이 먹거나, 일찍 퇴근해 저녁 을 만들어주었고 밀린 빨래나 청소를 해결했다. 주말에는 아내가 아이 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휴식시간을 줬다. 나는 친구를 만나거 나 늘어지게 늦잠을 자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었다. 마지막 두 달간 나 는 이렇게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쉬지 않고 아이와 놀았다. 그렇게 6개월간의 육아휴직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지금 은 회사에 복직해 예전과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6개월 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팀원 분들도 벌써 복직할 때가 됐냐? 며 놀라셨다. 이런 반응일줄 알았다면 6개월 더 연장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육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집안일은 최소화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놀이 에 초점을 맞췄다. 아침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구성하고, 점심에는 어디든 나가서 놀았다. 일주일 동안 다른 동물원과 수족관을 서너 군데씩 다니고, 문화공간이나 놀이 터, 공원,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몸을 움직이며 함께 관 찰하고, 놀고,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아이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게 되었다. 전보다 밥도 잘 먹고, 잠투정도 줄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대화 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추억꺼리가 생겨 즐거웠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던 소중한 시간 휴직 기간 동안 어려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성 육아휴직의 가 장 어려운 점은 함께 어울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육아가 대부분 엄 마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함께 육아의 고통을 나누거나, 낮에 같이 놀러 나갈 친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아이와 단둘이 지내다 보면 어른끼리의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휴직을 하기 전에 남성 육아휴 32 지금 시작하세요 33

직 모임이나 카페에 가입해서 필요한 정보도 얻고 같이 시간을 보낼만 한 오프라인 친구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가까운 지인 중에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좋기는 하다. 아이들도 또래와 함 께 어울리면 돌보기가 한결 수월해지기 마련이니까. 와서 지내는 또 다른 형태의 삶에 도전하고 있다. 가능한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려고 하지만, 가끔은 어떤 삶의 형태가 옳은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쩌면 세대가 바뀌 고 가치관이 바뀌는, 아직은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휴직에 대한 후회는 없다. 잃은 것보 다 얻은 것이 훨씬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인생의 주체 가 된 것, 그래서 앞으로의 선택이 한결 자유로워질 것이란 점이 내게 는 큰 소득이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했다는 즐거움과, 추억을 바탕으 로 한 아이와의 끈끈한 친밀감도 더 할 나위 없는 보상이다. 육아휴직 자 라는 타이틀이 주위 여성들에게 큰 호응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엄마들이 겪고 있는 육아와 가사 노동의 피로 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남성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육아휴직 을 선택한 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도 우리 아이 세대나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제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 부 부들에게 조금은 더 수월하게 활용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다. 더 많은 아빠들이 용감하고 솔직하게 가족을 위한 자신의 선택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없으니까. 아내에게 평생 생색을 낼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다. 물론 아내가 나 보다 더 힘들게 육아휴직 기간을 보낸 게 사실이지만, 남성 육아휴직 은 그 희소성만으로도 충분히 생색의 기쁨을 누릴 가치가 있다. 그렇 기에 이런 수기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현재 아이는 휴직을 반대하시던 부모님께서 잠시 돌봐주시고 있다. 우리 부부는 주중에는 본가에서 출 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 34 지금 시작하세요 35

그러다가 2015년 1월 말에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아빠를 위한 남성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 지우, 지훈에게 육아휴직 가이드북 과 육아휴직 체험기 아빠는 육아 초보 를 읽게 되었 지. 아빠의 육아휴직이 필요한 이유, 준비와 신청 방법, 선배 아빠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으면서 아빠는 용기를 얻었어. 김세연 (31세 건설/건설업) 여보, 아빠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고 하네. 나도 신청해볼까 하는 지훈이의 100일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아빠도 이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가 되었구나. 나중에 너희들에게 추억이 되고 육아휴직을 고민 하는 아빠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단다. 데 어때? 음. 나야 고맙지만, 회사에서 허락해줄까? 그리고 내가 지우 낳 을 때 직장을 그만둬서 지금도 살림이 빠듯하잖아. 가계 운영 계획은 대충 세워봤는데 고용노동부에서 매달 육아휴직 급여도 지원해주고, 그동안 납입하던 주택 청약저축 해지하면 3개월까 진 가능할 것 같아. 회사에는 내가 얘기해볼게. 아빠와 함께하는 우리 집! 저도 해당되나요? 지우와 두 살 터울인 지훈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와 엄마는 두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지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지. 아빠와 엄마는 걱정이 많았단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시샘을 한다던데. 첫 째도 아직 어린데, 둘째 보고 있을 때 혼자 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 하지?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멀리 계시고 형 지우가 100일 될 때 까지 엄마가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부탁드리기가 어려웠거든. 가이드북 소제목인 아빠와 함께하는 우리 집! 이란 문구가 아빠의 마 음을 설레게 한 덕에 아빠는 엄마에게 큰소리를 쳤지. 그런데 막상 팀 장님께 여쭤보려고 하니까 엄두가 안 나는 거야. 허락해주실까? 안된 다고 하시면 어쩌지? 내가 팀에서 막내인데 내 업무는 누구한테 인수 인계하지? 혼자 끙끙 고민을 하다 보니 출산 예정일이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거야. 출근하는 날 엄마가 다시 물어봤어. 여보, 이제 지훈이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회사 에 얘기 안 했어? 36 지금 시작하세요 37

아. 그러게. 오늘은 꼭 얘기할게. 엄마한테 약속을 하고 출근을 했는데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 있지. 팀장님한테 점심 약속이 있으시냐고 슬쩍 여쭤봤어. 회의가 있 어서 점심은 어렵고, 오후에 잠깐 휴식시간을 갖자고 하시더라고. 그 리고 오후가 되었어. 팀장님, 상담 드릴 게 있습니다. 아빠는 조심스레 A4 용지 두 장을 탁자 위에 올려뒀어. 거기엔 아빠 가 맡고 있는 업무 내용, 업무 주기, 업무 상 연락할 사람, 앞으로 3개 월간 예상되는 주요 이슈 등이 적혀 있었지. 아시다시피 둘째가 곧 태어나는데요. 육아휴직을 써도 될까요? 팀장님께서는 잠시 머뭇하시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어. 그래. 잘 선택했어. 지금 자네 때에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지. 인수 인계는 걱정 말고. 그리고 팀의 선배님들 한 분 한 분께도 말씀을 드렸지. 아빠가 주로 운영 업무를 하고 있어서 선배님들이 대신하기엔 귀찮을 수도 있는데, 육아 부담을 함께 져주신다고 하니까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빠는 육아휴직 신청을 하고 인수인계를 할 때 정말 열심히 일했어. 이렇게 배려해주는 회사가 고마웠거든. 그래서 충성심도 곱절이 되었단다. 울고 있는 세 남자, 당황해하는 한 여자 아빠는 평소에 육아서적도 많이 읽었고, 집안일도 잘 돕는 남편이라 고 생각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하더라도 경제적 문제 말고는 큰 걱정 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아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겨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어. 하루는 엄마가 1시간 정도 혼자 외출하 고 왔는데 세 남자가 울고 있었단다. 지우는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징 징 거리고, 지훈이는 젖 달라고 울부짖고 있고, 아빠는 어떻게 할지 몰 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던 거야. 후후, 그때 당황해하던 엄마의 표 정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둘째는 신생아라 3시간에 한 번씩은 수유를 해야 하고, 첫째는 아빠 의 안경을 부러뜨려서 혼나고도 3초 뒤면 놀자! 놀자! 를 외쳤어. 분 명 첫째를 같이 키웠는데도 아빠의 무력감과 피곤함은 마치 내일 병장 진급 예정이었다가 갑자기 막내 이등병으로 강등된 것처럼 막막했지. 무엇보다 엄마나 너희들이나 아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있는데, 아 빠의 능력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어. 38 지금 시작하세요 39

아빠는 설거지와 쓰레기 정리에 약간의 집안일만 더하면 된다고 생 각했는데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장난감이며 기저귀며 아무리 해도 집안 일은 끝이 없었지. 주말에는 늘 그랬듯이 형이랑 놀이터 한번 다녀오 고 자전거 한번 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형은 같은 책을 내리 열 번을 읽어달라고 조르고 놀이터에서도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 는 거야. 아빠는 비로소 알게 되었어. 그동안 육아와 집안일에 대해 얼마나 단 편적이고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 라,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아내라는 것을 말이야. 한 번은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었지.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너희 둘을 돌봐야 하고, 식사 도 챙겨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니 정말 너무너무 지치더라고. 엄마도 엄청 힘들어했지. 밤에 너희들 재우고 나서 엄마는 아빠한테 그랬어. 여보! 내가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알아? 우리 엄마 생각하면 서. 정말 몰랐어. 우리 엄마도 아플 때가 있었을 텐데, 나는 늘 엄 마한테 투정만 했어. 아빠랑 엄마는 손을 잡고 울었어. 그리고 다짐했 지. 서로를 더욱 사랑하자고, 너희 둘을 더 잘 키우자고, 그리고 양가 부모님들께 더 효도하자고.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길 아빠가 만약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야. 엄마한테 너희들 잘 챙기라고 하면서 출근했어도 지훈이 젖 주고 지우 밥 먹이 고, 설거지하고, 지훈이 기저귀 갈아주느라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을. 또, 지우가 장난을 많이 치는 건 발달 단계의 자연스러 운 현상이고 놀이터 가는 짧은 길에도 인사할 친구들(해바라기, 감나 무, 콩벌레 등)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지훈이가 꼼지락거리는 손짓이며 울음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아 빠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걸 말이야. 아빠가 육아휴직을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걸 그냥 지나쳤겠 지. 분주함과 피곤함을 핑계로 미루던 자기계발도 결국 의지의 문제더 라고. 지금은 예전보다 더 바쁘고 더 피곤하지만 아빠는 회사로 돌아 갈 때를 준비해서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리고 아파트 단 지에서 야구를 하던 어린이들이 실은 조기축구회 때문에 운동장에서 놀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초등학교에 건의를 해 아이들 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게 도와줬어. 남은 육아휴직 기간에도, 업무복귀를 한 후에도, 아빠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아빠가 될 40 지금 시작하세요 41

때도 아빠가 다니는 회사처럼 건강한 기업문화를 갖춘 회사들이 많아 아빠들을 위한 TIP 질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아이를 키우기에 더 행복 한 나라가 되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을 거야. 우리 1 최소한 휴직 시작 예정일에서 한 달 전에는 상사와 동료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 하는 것이 좋다. 안내서만으로도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준비하고, 업 두 아들,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마워! 무상 연락을 하던 분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가계 운영 계획을 세울 때 2015년 11월 온마음 다 해 아빠가 는 기존의 생활비 지출 평균치에 휴직기간 동안 예상되는 경조사 등을 고려해서 지출 규모를 산정한다. 여기에 휴직기간 동안의 수입 규모를 파악해서 조정해야 한다. 단, 평소 생활비보다 조금 더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생각보다 식비를 많이 쓰게 된다. ^^) 아빠들을 위한 TIP 2 육아와 집안일에 있어 아빠의 역할에 대해 아내와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좋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에도 놀랄 수 있으니 아빠들의 놀 이법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 아가사랑(www.agasarang.org)과 같은 육아정보 사 이트를 참고한다. 인근 놀이터, 장난감 도서관, 어린이 도서관, 육아종합지원센터, 문화센터 중 아이가 좋아하고 다니기 편리한 공간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놀이법은 아빠가 아이를 인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아 닐까 싶다. 42 지금 시작하세요 43

아내의 갑작스러운 취업 선언 행복을 위한 소중한 정거장, 아빠의 육아휴직 최성환 (38세 기업/제조업) 육아휴직이라는 정거장에서 저는 참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간 들은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 습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열차를 타고 계속 달려왔습니다. 결혼 이란 역에서 남편 이라는 이름과 동반자를 얻었고, 출산 이란 역에서 소중한 아들이 탑 승하면서 아빠 라는 이름도 생겼습니다. 아내는 출산 이후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습니다. 아내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해 보였고, 저도 직장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아대로 계속 잘 달려가면 되 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달리던 열차에 생각지 못한 신호등이 켜졌습니 다. 아내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경력을 쌓지 않으면 영원히 일을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는 애원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선포이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하려는 일 은 방송영상 제작 분야이고 지방 출장과 밤샘 작업이 많은 직종이어서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아이는 어떻게 하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전보다 는 손이 좀 덜 가겠지만, 초등학교는 오히려 유치원보다 하교 시간이 빠르고 챙기고 살펴줘야 할 일들이 많다던데. 돌봐주실 할아버지 나 할머니도 안 계신데. 난감해하는 제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좀 돌봐주면 되잖아. 아들한테는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회사에 육아휴직이라도 알아보면 어때?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 좀 알아봐. 거침없이 육아휴직 을 얘기하는 아내를 보며 당황했습니다. 나도 직장 44 지금 시작하세요 45

에서 중요한 시기인데 말이나 꺼낼 수 있을까, 유난 떤다고 괜히 욕이나 먹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끄럽기도 하고, 유난을 떠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참 민망했던 시간이었 습니다. 얼마 후 담당 임원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무님은 이미 보고를 양보가 아닌 또 하나의 선택, 아빠의 육아 휴직 오랫동안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아내의 애원은 매일같이 반복됐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조금 양보하면 아내와 아들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고 어쩌면 이건 양보가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지 않 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받은 상태고, 저는 간단하게 신청 취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상무님은 육아휴직을 수락하면서 하나의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것은 팀원들에게 직접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팀원들이 저의 빈자리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부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진솔하게 설명하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람을 채용해서 근무를 시키기에는 어려운 회사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저는 상무님의 말씀을 따르 기로 했습니다. 조심스레 회사에 문의를 해 보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남성 육아휴직 을 신청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와, 내가 처음은 아니구나. 왠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래, 한번 가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팀장님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팀장님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강박감 에 세세한 가정사까지 털어놓게 됐고 팀장님은 담당 임원과 의논을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상사에게 사생활을 너무 자세히 밝혔나 싶어서 부 육아휴직 신청을 하고 나서, 팀원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를 만들었습 니다. 팀원들에게 육아휴직을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고,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1년만 쓰려고 하니 아무쪼록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고맙게 도 팀원들은 1년간 잘 지내고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부 담을 주게 돼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부담은 근로자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져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다른 아빠들도 이 런 어려움을 겪겠구나. 하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생겼습니다. 46 지금 시작하세요 47

아빠 에서 주부 로 살아가기 아이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 그렇게 해서, 저는 올해 1월부터 육아휴직 이라는 정거장에 서 있습 니다. 가정주부와 아이 돌보미라는 이름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설 거지와 청소는 전에도 조금씩 했었지만, 요리를 하고 아이 등하교를 돌봐주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는 일들은 참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TV에서 방영되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 면서 조금씩 요리도 배워갔습니다. 그렇게 주부라는 이름이 차츰 익숙 해져 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엔 조금 여유가 생깁니다. 집안일에 조금 익 숙해지고 나서는 종종 집 근처의 도서관에 갑니다. 전에는 바빠서 읽 지 못 했던 책들을 지금까지 100권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 서 하는 인문학 강좌도 듣고 평생 학습관에도 가보았습니다. 전에는 잘 몰랐고 또 참석할 의지도 없었던 강좌들이었지만, 육아휴직이 기회 가 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들의 일상과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보다 아빠를 더 친근하게 여기고 일과 를 얘기하는 아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정이 갔습니다. 같이 목욕하고 잠을 자면서 부자간의 신뢰도 많이 쌓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가 저를 너무 믿는(?) 나머지, 출장이 잦아지는 부작 용이 생기기도 했죠. 하지만 자신의 일을 찾고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라 여기고 이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가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부의 역할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의논하며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연말이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게 됩니다. 며칠 전 팀장 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회사의 여러 가지 달라진 상황과 복직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알려 주시더군요. 회사에 복귀하면 어떻게 일해 야 할지 걱정도 되지만, 육아휴직을 신청했던 용기(?)로 열심히 일하다 보면 곧 적응할 수 있겠지요. 복직을 하고 내년부터는 어떻게 아이를 돌볼지 아내와 의논을 하고 있고, 아이에게도 아빠가 곧 회사에 출근 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 이라는 정거장에서 저는 참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 간들은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 했을 소중하고 행복한 시 간들이었습니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 48 지금 시작하세요 49

합니다. 아직 남성 육아휴직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 역 시 저보다 앞선 사례가 있었기에 용기를 얻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 니다. 앞으로 육아휴직이 보편화되어 가정과 회사, 사회 곳곳에 양성 평등을 통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다 백종현 (36세 기업/제조업) 이 땅의 모든 아빠 엄마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힘내세요! 휴직을 하니까 하루하루 감사할 일이 늘어난다. 집이 있어서 감사, 세탁 기가 있어서 감사, 아이들이 있어서 감사, 아내가 있어서 감사, 따뜻한 봄 을 주셔서 감사, 막내와 함께 산책할 수 있어서 감사. 저는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며 7살, 5살, 3살의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올해 5월부터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들과 소소 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용감한 아빠이기도 합니다. 결혼 후 세 아이를 출산한 아내는 한 아이마다 일 년 정도 육아휴직을 사용했습니다. 아내 가 육아휴직을 한 덕분에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 었습니다. 2013년 2월에 셋째가 태어났을 때도 아내는 육아휴직을 사 용해 세 아이를 돌봤습니다. 그러다 2014년 5월에 복직을 했습니다. 50 지금 시작하세요 51

맞벌이 부부와 세 아이들의 정신없는 하루 저는 단체급식 회사에서 일하는 조리사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점심 식사하는 고객이 천백 명가량 되는 곳이어서 업무량이 많았고 근 무시간도 길었습니다. 아내가 복직할 때 제 근무시간은 11시간이었습 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을 했습니다. 아침 7시 에 집을 나서야 했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8시가 다 되었습니다. 때 문에 육아를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아내의 출근 시간은 9시여서 8시 30분에 운행하는 아이의 유치원 차 량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세 아이를 깨 우고, 씻기고, 입히고, 먹였습니다. 매일 아침을 이렇게 정신없이 보냈 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첫째는 걸 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막내를 품에 안고, 떼쓰 는 두 아이를 양손에 붙잡은 채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보낸 후에야 비로소 출근을 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아내는 저녁 6시에 퇴근을 해서 또다시 세 아 이를 혼자서 데려왔고 저녁을 먹였습니다. 퇴근 후에도 쉴 틈 없이 밀 린 집안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직장일과 세 아이의 양육을 함께하면 서 아내는 점점 지쳐 갔습니다. 저도 퇴근을 하면 아이들 목욕시키기 나 설거지를 도왔지만 아내가 감당하고 있는 육아의 짐을 덜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습니다. 아픈 아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 2014년 11월 즈음에 큰 아이가 고열로 병원에 입원 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패혈증이라고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20분씩 걸어서 유치원을 갔던 게 여섯 살짜리 꼬마에겐 힘에 부쳤나 봅니다. 그 무렵부터 큰 아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습니 다. 혈액 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조금 높게 나온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 도 없이, 원인 모를 고열로 심하게 앓았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을 도보로 등 하원 시켰던 게 못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차를 한 대 더 구입할 수 있는 형편도 아 니었습니다. 처가가 근처에 있지만 장인 장모님께서 처남의 아이를 돌봐주고 계신 상황이어서 연로하신 두 분께 저희 아이들까지 부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친가 부모님도 시골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제 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52 지금 시작하세요 53

힘든 시기인가 보다. 큰아이는 왜 열이 40도가 넘을까? 원인이 뭘 까? 의사도 모르겠다고 하고, 단지 항생제만 처방할 뿐. 지금 시간은 10시 반. 퇴근해서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집에 오니 9시. 식구 들 저녁도 못 먹고 빵으로 때우고 잔다. 큰아이는 열이 펄펄 끓고, 애 들 엄마는 이 추운 날 아이들 셋 등 하원 시키느라 지쳐가고, 회사일 은 버겁고. 아. 사는 게 정말 녹록치 않구나. 인생은 산 넘어 산이 다. 이 고비가 있으면 저 고비가 있고, 각자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다르니 언젠간 평지도 나오고 오아시스도 나오겠지. 그동안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맡긴 것 같아 남편으 로서, 아버지로서 정말로 미안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게 되자, 맞벌이 를 하면서 세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이 근무하고 있던 실장님의 발령도 얼마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머릿 속이 걱정거리로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용기를 내어 실장님께 말 씀을 드렸습니다. 예상대로 실장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회사 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육아휴직을 하면 복직 후에 불이익 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회사보다 가족이 우선이 었기 때문에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연말에 거래처와 재계약이 성사됐습니다. 이듬해 3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실장님께서 부임하셨고 전 실장님과의 인수인계 과정에서 저의 육아휴직 계획을 알게 되셨습니다. 실장님께서는 새 근 무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 육아휴직을 보류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점을 감안해서 3월에 육아휴직을 쓰려던 것이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너무 답답했습니다.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육아휴직을 결심한 뒤에는 직장에 보고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때 제가 근무했던 거래처와 저희 회사와의 재계약 시기가 다가왔고, 그로 인해 지점장님이 무척 예민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같 육아휴직, 그 험난한 여정 실장님과 밀고 당기는 조율이 이어졌고 그러던 중에 일을 하다가 손 을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육아휴직때문에 실장님과 마찰을 겪다 보니 복잡한 마음에 업무 중 실수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조리사가 손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그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54 지금 시작하세요 55

하나? 무엇을 위해서? 자꾸만 절망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게 불행하다고까지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 저희 회사에서는 남자가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저의 휴직을 말렸습니다. 회사에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는 결심을 굳히고 지점장님과 팀장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지점장님 께서는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안색이 어두워지셨고 팀장님께서는 우리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일단 인사팀에 알아보 라고 하셨습니다. 인사팀 담당자에게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 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육아휴직은 부부가 합쳐서 1년간 가능한 것입니다. 배우자가 이미 사용했다면 상대 배우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인사팀 담당자조차 육아휴직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이 었습니다. 만약 저도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면 포기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인사팀 담당자에게 고용보험 홈페이지를 통해서 육아휴직 정보를 알려 주었고, 시정을 요청하는 메 일을 보냈습니다. 곧바로 인사팀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본인이 육아휴직 제도를 잘 알지 못했고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사례가 많지 않아서 실수를 했다며 사과까지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의 단체협약에도 육아휴직 제도가 정확하게 명시돼 있었기 때문에 육아휴 직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아 두 달 정도 지나고서야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직을 앞두고 회사를 오가는 동안 마음속으로 수백 통의 이별 편지 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정든 직장을 잠시 나마 떠나려니 미안한 생각에 매일매일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함이 몰 려왔습니다. 마지막 출근하던 날, 동료들과 상사 분들에게 그동안 현 장에서 일하며 찍었던 사진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저의 마음을 담아 인 사를 드리고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혀있는 이해 육아휴직 신청서 56 지금 시작하세요 57

관계와 업무적인 부분들 때문에 육아휴직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은 참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직장생활로 가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때에는 느껴보지 못한 소소 한 행복을 새삼 발견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휴직 후에 썼던 제 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아빠가 집에 있어서 좋아요 드디어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사실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 다는 해방감은 있었지만 앞으로 시작될 생활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맞벌이에서 갑자기 외벌이가 되니 적어진 수입 때문에 경 제적인 부담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적은 수입 규모에 맞게 절약하며 생활했습니다. 고용보험에서 매달 나오는 육아휴직 지원금도 요긴하게 썼습니다. 그동안 육아를 도맡아 해온 아내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고 직접 육 아를 맡으면서 지쳤던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 다. 아빠,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유치 원과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했던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큰아이가 이유 없는 고열로 앓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말하더군요. 요즘은 아빠가 집에 있어서 좋다. 고요. 바쁜 휴직을 하니까 하루하루 감사할 일이 늘어난다. 그동안 기쁨과 감사 가 메말랐었는데. 집이 있어서 감사, 세탁기가 있어서 감사, 청소기가 있어서 감사, 집안 청소를 할 수 있어서 감사, 라디오가 있어서 감사, 아이들이 있어서 감사, 아내가 있어서 감사, 따뜻한 봄을 주셔서 감사, 막내와 함께 등원하며 산책할 수 있어서 감사. 앞으로 더 많은 감사 들을 느낄 수 있길.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작은 것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간혹 주변에서 육아를 빙자한 휴직이 아니냐. 집에서 쉬니까 좋으냐. 고 물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휴직을 했다고 해서 해방과 자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직 업이 조리사여서 아이들 끼니를 챙겨주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집안일은 전적으로 휴직한 사람의 몫입니다. 아침에 아이들 깨워서 씻기고, 입 히고, 먹이고, 등원 시키고, 설거지, 빨래, 집안 청소를 하고 나면 직장 에서만큼 하루가 빠르게 흘러갑니다. 물론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 에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그동안 해보지 못 했던 취미활동도 하면서 58 지금 시작하세요 59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육아휴직 이라는, 가정을 위한 선택을 한 아빠들이 용감한 아빠 라 는 말 대신, 역시 우리 아빠!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남성 육아휴직 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위해 용기를 내세요 최근에,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5.1%를 달성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사회적 시선과 직장 내 편견 때문에 대 부분의 남성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감한 아빠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로 안타깝기 도 했습니다. 부모라면 가정을 안전하고 편안한 보금자리로 만들기 위 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당연 한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 일하는 부모들에게 육아휴직 은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자녀는 손님이다 라는 말이 있더군요.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난다는 말이겠죠. 성장하고 때가 되어 자기 삶을 찾아 날아갈 수도 있을 테고,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부모의 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 셋을 돌보며 집안일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제 곁을 떠날 아이들에게 손님 대접 을 제대로 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60 지금 시작하세요 61

아빠가 육아휴직하기, 왜 이렇게 힘든가요? 여보, 내가 육아신청 할게! 강진형 (37세 기업/서비스업) 육아와 직장 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고, 내 아이에게 아빠라 는 존재를 확실히 알려주면서 내 아이가 자라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방법.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육아휴직을 권하고 싶다. 나는 바로 육아휴직으로 휴직원을 올렸다. 하지만 다음 날 결재 반려 처리가 되었다. 지사장과 면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 다. 나는 바로 지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지사장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꼭 육아휴직을 해야만 되나? 주위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요.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7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남의 손에 자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면담 후 다시 휴직원을 올렸고 결재를 기다렸다. 그러나 2주가 지 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다시 면담을 신청했고 결재가 진 행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업무를 대신 맡을 후임을 구 둘째를 낳고, 집에서 두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가 복직을 하게 됐다. 여느 맞벌이 부부들의 고민처럼 우리 부부에게도 둘 다 직장을 나가면 육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양가 부모님들은 지방에 계셔서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여 러 날을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육아휴직 신청을 할게. 아내는 농담으로 들었는지, 그렇게 해. 라고 짧게 말했다. 하고 있는데 대체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문직이나 기술직은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가 어려워 육아휴직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날 회사 CEO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간을 더 두고 생각해 보라 면 서, 집에서 육아 도우미를 쓸 수 있도록 회사 복지 차원에서 경제적 지 원을 해주겠다. 고 했다. 육아 도우미 지원에 대한 내용은 파격적이었 다. 사규에도 없는 복지정책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62 지금 시작하세요 63

사실 육아휴직을 결심하기 전 알아본 육아 도우미의 비용은 천차만별 이었다. 주 5일 출근으로 한 달에 많게는 300만원까지 한다는 말에 혀 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비용을 회사에서 일부 지원해준다니, 사 실 중소 벤처기업에서 이런 지원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 지만, 난 정중히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통화가 끝 나고, 다음 날 CEO와 인사담당자가 지사로 내려왔고, 대체인력과 운 영방안에 대한 회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날 밤, 나의 육아휴직 원에 대한 결재가 처리되었다. 여를 신청해 가계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의 가정이 엄마 보다 아빠의 수입이 더 많으니 육아휴직 급여가 조금 상향 조정되었으면 좋겠다.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어야 남성 육아휴 직 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현재 육아 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40%(상한액 100만원, 하한액 50만원)를 월별 로 받을 수 있다. (그 금액의 85%는 매월 지급받고 나머지 15%는 직장 복귀 6개월 후에 받을 수 있다.) 매월 초,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접속해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하고 받는 일은 이제 꼭 해야 하는 일이 됐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육아휴직 급여 챙기기 상상을 초월하는 육아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도 우리 부부에겐 또 다른 고민이 생겼 다. 맞벌이였지만 아내보다 수입이 더 많은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됐 으니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감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가 계지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이 점이 남성 육아휴직을 택하는 가정들의 가장 큰 고충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같은 자녀에 대해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첫 1개월 육아휴직 급여로 통상 임금의 100%(최대 150만 원)를 지원하는 아빠의 달 제도가 있다. 물론 나도 매월 육아휴직 급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부터 소리 없는 전쟁은 시 작된다.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고민하는 문제인 밥 먹이 기!. 이 최대의 난제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는 부모와 조금이라도 덜먹겠다는 4살 첫째 아들과의 한판 줄다리기, 여기에 7개월 된 둘째 딸의 이유식 먹이기까지. 동시에 첫째 어린이집 등원 준비도 해야 하는 아침에는 전쟁 같은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젠 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점이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 는 것이었다. 혼자라면 대충 먹고 말텐데, 내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내가 차려주는 것만 먹었지 해보지 64 지금 시작하세요 65

는 않았던 요리를 난생 처음 하려니 참 난감했다. 겨우 요리에 익숙해 지고 나니 이번엔 여느 주부들처럼 뭘 해먹이나. 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는 아빠라면, 미리 아이들의 식습관에 관심을 가지고 간단한 요리와 집안일을 익혀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기심 많고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들의 행동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일까지 동시에 하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멘붕이 온다. 회사에서 야무지게 일하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어리바리한 신입 처럼 허둥지둥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처음 3개월 정도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날마다 전쟁을 치르며 진땀을 흘려댔다. 낮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했 다. 쯧쯧, 남자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회사도 안 다니고 있으 면 어쩌느냐. 라며 혀를 차는 어르신도 있었다. 남성 육아휴직이 법적 으로 보장되는 제도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저 육아휴직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아빠가 아이를 돌보 는 게 가능하냐? 는 반응과, 육아휴직을 하면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거 아니냐? 는 반응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아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려줄 수 있는 육아휴직을 강추합니다 이런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 를 건네며 어울렸다.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정보 를 공유했다. 어린이집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해서 아빠는 육아를 못 한다. 는 편견을 깨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아빠 로 알려졌다. 어느새 나는 주변의 가정 과 지인들에게 아빠 육아휴직을 권유하는 홍보맨이 되었고 덕분에 많 은 아빠들이 육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다. 육아와 직장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려줄 수 있는 방법. 아이가 자라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 켜보며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육아휴직이 다. 이런 경험을 하고 싶은 아빠들에게 육아휴직을 권하고 싶다. 66 지금 시작하세요 67

다둥이 아빠 가 되는 꿈 아빠 육아휴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신청하세요 김찬혁 (37세 협회/사회복지업) 남성 육아휴직 제도의 훌륭한 혜택을 받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둘째 아 이를 왜 빨리 갖지 않았을까, 임신을 알고 왜 그렇게 불안해했을까. 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는 20대 학부모 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서른 살이 넘어 결혼 을 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꿈인 다둥이 아빠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 했지만 말이죠. 아빠가 된 후 실감나게 다가온 얘기들 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임신할 시간은 있냐., 애 키울 능력은 되냐. 하는 말. 빈정거림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를 걱정해주는 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임신 자체가 힘든 세상 이라거나 태아보험부터 가입해라. 라는 말. 환경호르몬이나 스트레스의 영향으 로 수정 자체가 안 되거나 성공하더라도 출산까지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격려 담긴 말이었습니다. 5년 전, 우리 부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로 아이들 태명까지 미리 정해 놓고 임신을 준비했습니다. 사계절에 맞춰 아이 넷을 낳기로 한 것이죠. 제겐 누나가 한 명 있고 아내는 혼자 자랐습니다. 누나와 함께 자랐다곤 하지만, 다섯 살 터울이라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나는 0교시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때 문에 제가 잠을 잘 때 등하교를 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중학교에 입 학할 무렵부터 누나는 멀리서 자취를 하며 3개월에 한 번씩 집에 왔습 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부는 둘 다 아이 욕심이 있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면 당연히 아이가 생기는 건 줄만 알았는데 아이는 정 말 신이 주는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바라던 임신에 성공했 습니다. 4년 전 늦겨울, 드디어 아빠가 됐습니다. 부부만 있는 2인 가 정 에서 아이까지 있는 3인 가정 으로, 평범한 한 가족이 탄생하는 순 간이었습니다. 저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까지 세 명의 아이를 더 낳자고 아내를 졸라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되겠어, 오빠. 병원에 가는 게 어떨까? 였습니다. 피임 수술을 하라는 거였죠. 68 지금 시작하세요 69

맞벌이를 하면서 첫아이를 낳고 보니 그제야 현실이 보인 겁니다. '돈'만 생각하며 살고 싶진 않았는데, 상자 째로 쌓아 놓은 기저귀가 보 름도 채 못 가 동이 나는 걸 보며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 습니다.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일이, 단순히 숟가락 하나 만 더 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현실로 느낀 거죠. 예전엔 뉴스에서 아 이를 버리는 부모들이 나오면 쯧쯧 하며 혀를 차고 했는데, 언젠가부 터 오죽하면 그랬을까. 라며 범죄자들의 심정을 생각하는 저를 보면서 두통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위기의 연속 아내와 저, 둘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할 위기는 계속해서 찾아왔 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다쳐 병원에 갔을 때 저는 직장에서 아 무 일 없는 듯이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두 살배기 아들이 다리를 절더군요. 어느새 혼자서도 잘 뛰는 아 이를 보며 좋아하던 게 며칠 전 일인데. 혹시 아이가 평생 다리를 절 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이 들면서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내는 90일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모두 쓰고 직장으로 돌 아갔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습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수유를 억지로 끊어야 하는 심정을 말이죠. 왜 여 성들이 육아휴직이 끝나고 나서도 직장에 돌아가지 않고 일을 그만두 는지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만큼 남편의 육아참여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지만 무얼 어떻 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해도 아이 하나 낳아 기르기가 이렇게 벅찬데 부부가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 넷을 낳겠다는 건, 또 그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을 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 습니다. 다음날 결국 깁스까지 하게 됐죠. 아내에게 어린이집에 찾아가서 CCTV를 확인하자고 했지만, 아내의 대답은 두 사람 중 하나가 직장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신경 끄자. 였습니다. CCTV를 확인할 경우 엔, 문제가 있건 없건 우리 아이를 그 어린이집에 다시 맡기기 어려워 질 거라는 생각이었죠. 맞습니다. 만약 그 어린이집에 아들을 못 맡기 게 되면 다른 어린이집에 접수를 하고 대기번호를 받은 채 기다려야 하죠. 그러면 우리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는 꼼짝없이 아이를 직접 돌 봐야 하는데 어떻게 직장을 다닐 수 있겠습니까. 아내 말이 다 맞는 말 이라 더 원통하더군요. 그 뒤 어린이집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원장 선생님에 게 그저 아이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준비해 간 붕어빵 한 아름을 70 지금 시작하세요 71

건네는 것 정도였습니다. 저는 고작 붕어빵을 사들고 간 초라함과 원 통함 사이에서 내내 혼란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아이는 일요일 밤에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가뜩이나 밀리는 월요일에 출근 시간을 두세 시간 앞두고 응급실을 오간 게 여러 번입 니다. 회사에 미리 보고를 해도 지각은 피할 수 없었죠. 그런 일이 반 복되다 보면 애 엄마는 뭐 하냐, 그런 건 여자가 하는 것 아니냐. 라고 타박하는 상사도 생깁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굳이 이 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웃고 마는 걸 아실테니까요. 다만, 잠 한숨 못자서 몸이 피곤한 건 참고 일할 수 있는데, 아이의 상태가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건 괴로웠습니다. 지각을 했 기 때문에 칼퇴근 도 할 수 없었죠. 아이 한 명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 데, 넷이라니요. 시간과 비용, 이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니 아이 셋 을 낳는 행복한 상상이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잘못 도 아닌데 말이죠. 결국 우리 부부의 결론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1980년대 구호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머릿속에 그려보는 가족의 행복한 미래 속에는 항상 아이가 있습니 다. 아들과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가족을 먼저 그립니 다. 동물원에서 낙타를 봤던 일, 여행지에서 돌고래를 봤던 일. 아들 의 행복했던 기억은 대부분 주말에 함께 했던 일들입니다. 특별한 날 시간을 내서 함께 했으니 좋았겠죠. 그렇게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 이 계속될 수는 없을까요?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아들의 머리 위 로 그런 물음표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듯합니다. 제 머리 위로는 그럼, 일은 누가 하고!, 돈은 누가 벌고! 라는 느낌표가 떠오르고요. 아들 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두면 함께 쓸 비용을 만들 수 없으니 고민이 날로 커져갔습니다. 불현듯 찾아온 두 번째 선물 그렇게 4년을 보내다 올해 초, 계획하지 않은 임신 소식이 찾아왔습 니다. 가을에 태어날 예정이라 계획대로 가을이 란 태명을 지어줬죠. 하지만 우리 부부의 분위기는 첫째 임신 때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첫째 때는 소소한 기쁨의 연속이었지만, 이번엔 아니겠지, 아닐거야. 라는 절망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타났을 때, 산 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나왔을 때, 우리 부부는 누구에게 임신 사 실을 알리지도 못한 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네 아이의 부모가 되려던 꿈을 포기하기까지 우리 부부에겐 많은 다 툼이 있었습니다. 그런 다툼 끝에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72 지금 시작하세요 73

건데 이를 어째야 할지. 둘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이 내내 불행할 것만 같았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첫째 육아휴직을 하고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꼭 엄마가 육아를 해야 하나, 아빠인 내가 육아휴직을 사 용하면 되는데. 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조금 더 빨리 생각하지 못한 게 지금은 무척 후회됩니다. 배 속의 아이는 빠른 속도로 자라 갔지만 우리 부부에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임신 중이니 다툼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주 제는 서로 일찌감치 싹을 잘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임신과 출산 관련 정보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찾게 됐고, 그러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제가 소홀히 여기고 놓쳐왔 던 많은 부분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된 것이죠. 한 아이를 대상으로 부부 중 한 명만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있 는 줄 알았는데 각각 1년씩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부모 중 한 명이 육아휴직 제도를 이미 사용했다면 다음에 그 아이를 대상 으로 육아휴직을 하는 부모는 정부에서 첫 달에 최대 150만 원까지 지 원한다는 아빠의 달 제도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 을 수 없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 두 가지였는데, 직장을 잠시 쉬면서도 그 두 가지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나니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았습니다. 남자가 무슨 육아야. 라 는 사회의 시선, 직장에서 받을 크고 작은 불이익들이 가장 먼저 떠올 랐습니다. 임산부인 아내와 싸움이 생길까 봐 가급적 피하려 했던 민 감한 주제란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만 많아지고, 괴상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평일 낮 시간에 30대 후반 남성이 평상 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라 는 편견까지 생긴 것이죠. 용기를 내서 아내와 상의한 뒤에는 부모님 의 호통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심하고 아내가 동의해 준 뒤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됐습니다. 육아휴직서를 제출하니, 직장 내 첫 남성 육아휴직자 라는 타이틀과 알게 모르게 구설수가 따르기도 했지만 서류는 잘 처리됐습 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대체인력이 뽑혔고 중요한 업무도 문제없이 인계할 수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경험담들은 육아휴직 제도 시행 초기에 벌어진 일들이고 제겐 아직 일어나지도 않 은 일이니까 일단 정부를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물 흐르듯 시간이 흘러 어느새 둘째 아이의 출산일이 다가왔고 직장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몇 년이나 고민한 끝에 둘째 갖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 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육아휴직을 결정하기까지 74 지금 시작하세요 75

고민을 하는 과정이 힘들고 불안했던 것이지, 실제 육아휴직 제도 자 체는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확실한 정책이란 걸 깨달았 습니다. 저처럼 생각만 하고 주저하는 분들, 선뜻 육아휴직서를 내지 못하는 분들, 육아휴직서와 사직서를 함께 품에 안고 있는 많은 남성 분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육아휴직을 신청하라. 고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둘째의 특별한 100일 까. 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나를 위한 제도란 걸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첫째 아이 때처럼 임신 초기부터 행복했 을 텐데.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좋은 제도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부부가 모두 사회복지사이면서도 우리 가족이 누릴 수 있는 복지 서비스에 대해서 는 잘 몰랐던 겁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는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 필 요한 제도입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그리고 가족의 행복과 안정적인 미래 사회를 위한 쓸모 있는 제도인 만큼 선택이 아닌 필수 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우리 부부에겐 이번 크리스마스가 특별합니다. 둘째 아들 생일이 9 월 17일인데, 사람들이 고백 데이 라며 축하를 해주더군요. 고백 데 이 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기 100일 전 날을 말하는데, 그 날짜 가 바로 9월 17일이라는 거죠. 서울광장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만 들었다는 뉴스를 보며 둘째 아들 백일잔치를 서울시와 정부가 나서서 해주네. 라고 우리 부부는 농담까지 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임신했 을 때 좌절하고 불안해했던 기억을 씻어버리고 싶어서 더 행복하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의 훌륭한 혜택을 받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둘 째 아이를 왜 빨리 갖지 않았을까, 임신을 알고 왜 그렇게 불안해했을 시간과 비용을 한 번에 얻는 방법 글을 쓰며 결혼과 출산을 돌이켜보니 우리 부부가 아이를 더 낳지 않 으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비용 이었습니다. 모든 부모에게 공 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육아휴직 제도가 안겨준 시간과 비용 덕에, 두 아들과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 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빈칸을 맞춰 가듯 하루하루가 짜릿합니다. 물론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10%를 넘으면 빈곤 확률이 높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가정도 곧 빈곤층이 되겠구 나. 하는 걱정도 듭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육아휴직 제도가 아직 76 지금 시작하세요 77

완벽하지 않은 건 맞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남성 육아휴직을 꿈꾸 는 많은 분들이 주저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육아휴직을 시작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 다. 당장 월 75만 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픔에 잠길 수도 있겠죠. 노력을 아끼지 않을 저와 이 제도를 계속해서 발전시킬 정부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신청할 겁니다.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신청해서 임신 초기부터 행복을 느끼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휴직을 신청하기 전 초조함과 불안함 에 빠져있던 저를 훨씬 행복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제도라는 건 분명합 니다. 특히 정부가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해주는 아빠의 달 제도는 파격적인 시간과 비용을 제공해줬죠. 아이들과 친해진 걸 생각하면 그 효과는 200만 원, 아니 1,000만 원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 스럽습니다. 내년부터 아빠의 달 이 3개월로 늘어난다고 하니 더욱 기 대가 됩니다. 지금은 첫째 아들의 육아휴직 중이니까 나중에 둘째 아 들 때도 이 제도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제도를 이용 해 본 저로서는 아빠의 달 3개월뿐만 아니라 1년을 모두 사용하고 싶 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출산휴가 중인 아내 역시 둘째 아들의 육 아휴직을 꼭 사용해야겠네요. 저보다 가정 경제에 민감한 아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가장 넘기 힘든 산은 직장과 사회 보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 가족, 친지들인 것 같습니다. 남자가 무슨 육아야. 라는 편견의 벽을 깨는 건 육아에 78 지금 시작하세요 79

었습니다. 지난 1월,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 마냥 아빠의 육아휴직은 신의 한 수 오세찬 (34세 도서관/공공기관) 마라톤을 완주하고 웬만큼 험한 산행도 거뜬히 해내는 제가 생후 30개월 이 된 아들의 활동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저녁 6~7시면 녹초가 됩니다. 아이를 안고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걸 산후 조리 중인 아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기다리던 둘째 소식, 그러나. 저는 2013년에 결혼한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지난 9월 말, 둘째 아 이가 태어난 뒤 육아휴직을 했고 현재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와 집안일 을 하는 데 보내고 있습니다. 전과는 일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가족과 더 끈끈한 정을 나누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회사의 승낙을 받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둘째의 산후조리와 첫째 아이의 육아를 동시 에 해야 한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첫째 아들은 생후 20개월 이 된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활동량이 한창 늘고 있어서 육아가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을 때였죠. 둘째가 태어날 무렵이면 더할 텐데, 산후 조리를 해야 할 아내가 두 아이의 육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습 니다. 그렇다고 제가 도와줄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고 주말에도 대부분 일을 해서 육아에 도움을 주기가 힘들었 습니다. 다가오는 3월부터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육아부담을 조금 덜 수 있겠지만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엘 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의 4층에 삽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 면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산후조리를 해야 할 아내에게는 무 리였습니다. 둘째의 육아와 첫째 아이 어린이집 등원 문제로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대세가 황혼 육아인데 부모님의 도움 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도 도움을 청 할 상황이 아니었고 베이비시터를 쓰기엔 제 급여에 맞먹는 비용이 너 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베이비시터를 생각하던 중 조금 다른 80 지금 시작하세요 81

방법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많은 비용을 들여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느 니 내가 그 역할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고민 의 퍼즐이 풀려갔습니다. 한동안 일을 놓고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우며 아이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전까진 좋은 아빠의 역할을 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항상 일에 시달렸고 시간과 체력에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아이에게 소 홀해졌고 때론 지쳐서 아이에게 짜증도 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저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놀이를 할 때나 밥 먹을 때, 씻을 때, 늘 제 손길은 외면한 채 울면서 엄마를 찾았습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저를 밀 쳐내기 일쑤였습니다. 아이에게 친근한 아빠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게 가장 큰 고민거 리였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업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아내의 산후조리까지 도울 수 있다면 아빠 로서, 남편으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렇게 해서 둘째의 출산 예정일에 맞춰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 다. 예상치 못한 아내의 반대 육아휴직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내를 설득 하는 데 두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생각을 반겨 줄 거라 기대하면서 육아휴직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내는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휴직 기간 중엔 평소만큼 급여 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생길 것을 걱정했습니다. 조금 힘들겠지만 자신이 두 아이를 다 돌볼 수 있고 큰 아이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직접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산후조리 중엔 무리를 해선 안 된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내가 산후조리 중에 무리 를 해서 몸이 상할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제겐 경제적 손실보다 아내 의 건강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 간도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육아 휴직 급여 제도가 있으니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아내는 고민 끝에 제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직장의 승낙을 받는 건 큰 부담이 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은 수시로 야근을 할 정도로 업무량이 엄 청납니다. 직원 중에 결원이 생기면 다른 동료들이 그 업무를 대신해 82 지금 시작하세요 83

야 하기 때문에 제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 수 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생긴 이래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한 전례가 없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했던 여직원들이 진급에 영향을 받았 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과 입장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처리 중인 업무들은 며칠 밤을 새 워서라도 꼭 마무리 짓고 휴직을 하겠다고 선처를 구했습니다. 결국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아내가 만삭이었던 9월 한 달 동안은 제가 맡 은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거의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때가 있는 법. 지금은 직장보다는 집안일에 더 신경 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기관장님께 면담을 요 청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관장님은 놀라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는 한참 동안 아무 말씀 없이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승낙을 해야 할지, 반대를 해야 할지, 반대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 는 듯했습니다. 5시간처럼 느껴졌던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관장님은 결국 만류 를 하셨습니다. 가뜩이나 업무가 많아서 일처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휴직을 하는 건 회사에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 이를 다른 데 맡기는 방법도 있고, 일하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방법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예상했던 일이었습 니다. 관장님은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재의 제 상황 산적+주부 가 된 아빠 지난 9월 말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이 시작됐습니다. 요즘 의 저는 산적+주부 의 모습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히 움직이 다 보면 면도할 시간이 없어서 외모는 산적 에 가깝습니다. 물론 하루 일과는 보통의 주부 들과 크게 다를 게 없죠. 아침엔 눈 뜨기가 무섭게 첫째 아이 밥을 챙겨서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서 어린이집에 데 려다줍니다. 그리고는 빨래,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합니다. 태어 나서 처음으로 밥도 지어봤습니다. 그리고 잠깐씩 둘째 아이도 돌봅니 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첫째 아이의 어린이 집 끝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사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엔 큰 아이가 어 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큼은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에 좋아하는 운동이나 등산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려고 했습 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현실은 숨 쉴 틈 도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야말로 빡빡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84 지금 시작하세요 85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중요한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집안 일 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알게 된 겁니다. 그전엔 아내가 집 안일에 소홀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습니다. 늦은 시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장난감과 서랍 속의 물건들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고, 집안 곳곳엔 먼지와 얼룩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엔 여유가 있을 텐데 아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불만이었 습니다. 결국 부부싸움으로 이어진 경우도 종종 있었고요. 껴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가 왜 집에 없는지를 계속 얘기해주고 허전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도록 함 께 놀아줬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제 자신이 어색했지만 계속 함께 놀 다 보니 저 스스로도 아이가 돼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엄 마보다는 힘이 센 아빠와 노는 걸 더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체력이 되는 데까지 열심히 놀아줬습니다. 안고 업고, 목마도 태우고, 공도 던지면서 놀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내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제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 일을 하기는 정말 힘이 듭니다. 특히 낮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을 하면 저녁 시간에는 아이를 돌볼 힘이 없습니다. 육아휴직하면서 아내의 고 충을 알게 돼서 참 다행입니다. 아들 녀석의 마음 을 얻다 육아휴직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사랑하는 아들 녀석의 마음 입니 다. 그전까지 아들은 저를 멀리하고 엄마에게만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동생을 낳고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이 불안해했습니다. 종일 시 무룩해 있고 밤에는 울다 지쳐서 잠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꼭 아이들은 참 단순하더군요. 아빠를 무서워하고 거리감을 두던 아이 가, 언젠가부터 저를 볼 때마다 압!, 압!~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 리고 엄마가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땐 더 이상 엄마에게만 의존하 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샘을 내면서 엄마에게 안기기도 했지만 제게 안기는 시간도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각방을 씁니다. 작 은 아이가 밤에 많이 울어서 같이 자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큰 아이 가 저와 함께 자는데 다행히 엄마를 많이 찾진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잠자리에 들 때 아이가 제게 안고 자자. 라는 말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뭉클했습니다. 아이가 이제 아빠를 인정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먹여주고, 놀아주고, 씻겨주 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 시간이 저와 아들 모두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란 걸 깨닫고 있습니다. 86 지금 시작하세요 87

에 더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다른 모든 일 육아휴직은 신의 한 수 였다 젊은 아빠가 늘 집에 있다 보니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육아 휴직 중이라고 얘기하면 더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어린 이집에 데려다줄 때도 그랬습니다. 학부모 면담 시간에 참석했더니 어 린이집 선생님이 크게 놀라시더군요. 아빠와 면담하는 건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야 내가 아빠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옳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잘 풀린다는 가화만사성( 家 和 萬 事 成 ) 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복직이 한 달 남은 지금, 휴직 기간을 연장할까 고민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의 가치는 그 무 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아빠들이 있다면, 저는 주저하지 말고 선택하라고 전하고 싶 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화목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감 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휴직을 한 건 신의 한 수 였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웬만큼 험한 산행도 거뜬히 해내는 제가 이제 생후 30개월이 된 아들의 활동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저녁 6~7시면 녹초가 됩니다. 아이를 안고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모든 걸 산후조리 중인 아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지난주 둘째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습니다. 둘째를 돌보기 위해 아내가 일주일 간 병원에서 생활할 때도 제가 함께 병간호를 하며 큰 아이를 돌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내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가족 간 88 지금 시작하세요 89

육아휴직 7일째, 일상이 된 육아 친구 같은 아빠 가 되는 법 신경호 (35세 엔터테인먼트/게임제작업) 전 윤호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윤호가 커서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됐을 때도 아버지를 어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평생 즐거움 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버지 가 되고 싶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새벽 6시다. 윤호는 다른 아이에 비해 잠을 많이 안 잔다. 몇 시에 자든지 새벽 5~6시만 되면 일어나 왕성한 에너지를 뽐내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이제 7 일째!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을 실감한다. 일어날 시간이면 저절 로 눈이 떠지고 아이가 배고플까 봐 이유식을 데우러 주방으로 향한 다. 전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준비해놓은 거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도 강한 모성애 때문에 반사적으로 일어나지만, 출근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억지로 눕혀버린다. 그러기 위해 내가 휴직을 한 거니까. 난 2008년부터 햇수로 7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고객 센터에서 일 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으앙~ 으앙~ 피곤에 지쳐 한참 꿈나라를 헤매던 나는 익숙하게 90도로 몸을 일 으켜 울고 있는 윤호에게 다가간다. 잘 자던 아이가 두세 시간 간격으 로 일어나 울고 보채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얼른 안아서 열은 없 는지 혹은 뒤척이다 숨이 막혀 그런 건 아닌지 확인한다. 그리고는 습 관처럼 그냥 울었단 사실에 오히려 감사하며 어둠과 윤호를 같이 안고 15분 정도 토닥이다 나도 기절해 버린다. 있다. 동시에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도 상상을 초월한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는 윤호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통해 1 년 반 가까이 육아를 전담했다. 나도 돕긴 했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설 거지, 아내가 밥할 때 아이 봐주기, 기저귀 갈아주기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는 꽤나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자부했었다. 그 상 태로 이어진다면 쭉 해피 했을 텐데,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가자 우 리 부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90 지금 시작하세요 91

아내와 내가 출근을 한 뒤에 윤호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보통은 양가 부모님이 봐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정말 부 럽다 ㅠ.ㅠ) 서울에 사는 우리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시고 창원에 사는 장모님은 예전에 항암치료를 받으셔서 윤호를 돌봐주실 수 없었다. 현 재 우리 식구는 아내의 직장 때문에 연고가 없는 인천에서 거주하고 있 는데, 거리도 그렇고 집안 사정도 그렇고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건 꿈 도 꾸지 못 했다. 처음에는 베이비시터도 고용했었다. 하지만 필요한 시간에 딱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찾는다고 해도 베이 비시터에게 주는 급여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엄마 아빠의 마음에는 너무 불안했다. 직장에서 첫 남성 육아휴직자 가 되다 결국 아내와 상의해서 남성 유아휴직 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일 하는 회사는 외국계 회사인데, 7년 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 회사가 국내 법을 충실하게 지킨다는 거였다. 다른 회사에서는 직원이 선뜻 사용하 지 못하는 복지 혜택을 우리 회사에선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 자가 아닌가. 우리 회사에서 아직까지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회사를 믿고 조심스레 육아휴직 얘 기를 꺼냈다. 허탈할 정도로 쿨 하게 승인이 떨어졌다. (남성 육아휴 직은 법적으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 육아휴직을 신청 해보지 않은 남자들은 그게 얼마나 큰 모험인지 모를 거다.) 나는 2015 년 3월 14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 지금까지 윤호를 내 손으로 키우 고 있다. 육아 초보에서 육아 전문가로 남자로서 처음 해 보는 육아는 정말 끝없는 도전 이었다. 이유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이의 빨래는 무슨 세제를 써야 하는지, 육 아휴직과 더불어 내가 맡게 된 집안 청소와 정리는 어떻게 해야 효율 적인지, 이런 가정적인 문제와 함께 아이가 울 때는 왜 우는지, 목욕은 어떻게 시키고 어떻게 재워야 아이가 안심하고 잘 수 있는지. 수많 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겨우 적응된다 싶으면 그사이 아이가 자 라 또 다른 행동을 하고, 거기에 내가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무 한 반복됐다. 또 한 가지 힘든 점은 경제적인 여건 이었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고용공단으로부터 매월 기본급의 40%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아이 92 지금 시작하세요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