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글 다시 보기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우리의 문자 생활 실태 박용찬 대구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우리는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이라 하여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 (한글)의 반포일을 기념하고 있다. 1) 이렇듯 우리가 한글날을 제정하여 한글 반포일을 기념하는 것은 한글이 우리 고유의 문자일 뿐만 아니라 한 글 창제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가 우리말을 아주 쉽게 그리고 더할 수 없이 완벽하게 적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글 없이는 우리말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생각을 온전하게 글로 표현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한글이 소홀히 대접받 1) 한글날 은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이 1443년(세종 25년)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 반포 한 한글을 보급하고 연구할 것을 장려하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1926년 11월 4일 가갸날 로 정해 처음으로 한글을 기념하기 시작하다가 1928년에 그 명칭을 한글날 로 바꾸고 1945년 에 기념일 날짜를 지금처럼 10월 9일로 변경하였다. 한편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고 1982년에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1991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2006년에 국경 일로 승격되었지만 공휴일이 아니었다가 2013년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냄으로써 한글 날이 명실상부하게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특집. 한글 다시 보기 19
고 있으며 외국 문자에 밀려 그 사용 영역이 점차 축소돼 가고 있다. 젊 은 세대나 몇몇 전문 분야의 문자 생활 및 언어생활에서는 로마자의 남 용 양상이 아주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대 간 및 계층 간의 언어 차이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고 있다. 이는 세대 간 및 계층 간 의사소통의 단절과 상호 이해의 결여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훈민정음 의 서문을 통해 세종의 훈 민정음 창제 취지 및 창제 정신을 알아보고, 외국 문자(특히 로마자)를 남용하고 있는 우리 문자 생활의 실태를 방송 프로그램명, 기업명, 대 중가요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파악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로마자 남용 이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창제 정신에 비추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 는지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이 장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창제 정신을 살펴보고자 한 다. 먼저 훈민정음이 1443년 12월에 창제되었다는 사실은 아래에 제시 한 세종실록 25년 계해( 癸 亥, 1443년) 12월조의 기록을 통해 처음 으로 확인할 수 있다. (1) 是 月 上 親 制 諺 文 二 十 八 字 其 字 倣 古 篆 分 爲 初 中 終 聲 合 之 然 後 乃 成 字 凡 于 文 字 及 本 國 俚 語 皆 可 得 而 書 字 雖 簡 要 轉 換 無 窮 是 謂 訓 民 正 音 (한문 원문) (1') 이달 왕(세종)이 친히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옛 전자( 篆 字 )를 본떴는데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고 그것을 20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합쳐야 글자를 이룰 수 있다. 무릇 문자(한자)와 우리나라의 말을 모두 적을 수 있다. 글자가 비록 간략하나 조합해 씀이 무궁하다. 이를 훈민정음이라 일컫는다.(번역문) 위의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새 문자의 창제자가 세종이라는 사실, 2) 창제된 문자의 글자 수가 스물여덟 자라는 사실, 옛 전자( 篆 字 )를 본떠 서 창제했다는 사실, 3)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음소 문자로 만들었고 그 글자를 음절 단위로 모아쓰도록 했다는 사실, 문자(한자) 와 우리말을 모두 적기 위해 새 문자를 창제했다는 사실, 4) 음소 문자를 음절 단위를 모아쓰도록 함으로써 그 글자의 수효가 스물여덟에 불과 하지만 수많은 음절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 새 문자의 명칭이 훈민정 음 이라는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관련하여, 문자(한자)뿐만 아니 라 우리말을 모두 적기 위해서 새 문자를 창제했다는 사실과 새 문자의 명칭이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이라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새 문자로서 훈민정음을 2) 현재 학계에서는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친제설( 親 制 說 ), 세종의 명으로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명제설( 命 制 說 ), 세종이 주도해서 집현전 학자 및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협찬설( 協 贊 說 ) 등 세 가지 설이 대 립하고 있다. 3) 이전에 세종실록 의 字 倣 古 篆 이라는 기록에 입각해 옛 전자( 篆 字 )를 본떠 훈민정음 의 글자를 만들었다는 고전모방설( 古 篆 模 倣 說 ) 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1940 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로 학계에서는 이 주장을 배제하고 있다. 4) 여기서는 문자 는 한자 를 가리키고, 한자 를 적는다는 것은 한자음 을 적는 것을 뜻한 다. 실제로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종은 집현전 학자에게 명해 우리 나라 한자음의 표준을 정해 한글로 정리한 동국정운 (1448)을 편찬토록 했다. 특집. 한글 다시 보기 21
창제했다는 것은 우리말과, 우리말을 적은 훈민정음으로 백성들의 의 사 표현 더 나아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 다. 그리고 새 문자의 명칭이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이 라는 사실은 백성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 새 문자를 창제했다는 것 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우리말과 우리글로 백성들의 의사 표현, 더 나 아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백성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 세종 이 새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취지는 세종 자신이 직접 쓴, 아래 훈 민정음 의 서문에 좀 더 분명하게 잘 요약돼 있다. (2) 나랏 말 미 中 國 에 달아 文 字 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 로 어린 百 姓 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 爲 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 듧 字 노니 사 마다 수 니겨 날로 메 便 安 킈 고져 미니라.( 國 之 語 音 異 乎 中 國 與 文 字 不 相 流 通 故 愚 民 有 所 欲 言 而 終 不 得 伸 其 情 者 多 矣 予 爲 此 憫 然 新 制 二 十 八 字 欲 使 人 人 易 習 便 於 日 用 耳 )(언해문 및 한문 원문) (2')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한 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 내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현대어 역문) 훈민정음 의 서문을 통해 세종은 먼저 우리말이 중국어와 다르 고 중국어를 적는 데 사용한 한자가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22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인식하고, 그 결과 한자를 익히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 자기 생각을 글 로 전혀 표현할 수 없음을 파악하고, 그리하여 스물여덟 글자로 이루어 진 쉬운 새 문자를 만들어 한자를 익히지 못한 백성도 쉽게 익혀 자기 생각을 글로 아무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말이 중국어와 다르고 중국어를 적는 데 사용한 한자가 우리 말을 적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언급한 것은 한자가 중국어를 적기에 적 합하지만 우리말을 적기에는 부적합하므로,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한, 한자 아닌 새 문자 창제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한자는 중국인의 의사 표현에 유익했을지 모르지만, 중국어보다 음절 구조가 훨씬 복잡 한 우리말을 온전히 적기에 부적합했고, 그 결과 한자를 통한 우리의 의 사 표현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 것이다. 우리의 완전한 의사 표현을 위해서 한자 아닌, 우리말로 적기에 적합한 새 문자의 창제가 필 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자를 익히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 자기 생각을 글로 전혀 표현 할 수 없음을 언급한 것은 당시의 조선 사회에서 양반(또는 사대부) 계 급을 제외한 일반 백성의 대부분이 한자를 아예 모르거나, 배우더라도 익히기가 쉽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그들이 자기 생각을 글로 전혀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파악한 것이다. 일반 백성의 대부분은 문자를 통한 원활한 의사 표현이 불가능 했고 문자 생활의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어리석은 백성이 될 수밖에 없 었다. 한자는 양반 계급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 세종은 5) 양반(또는 사대부) 계급은 일반 백성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필요하거나 바람직하 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우기 어려운 한자를 제격에 맞는 문자로 여겼고 그 한자를 특집. 한글 다시 보기 23
이렇게 문자 생활을 영위할 기본 여건을 갖추지 못한 일반 백성을 안타 깝게 여겼다. 한편으론 당시의 조선 사회는 실제로 쓰는 말과 그 말을 적은 글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언문불일치( 言 文 不 一 致 )의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 다. 한자를 어릴 때부터 익혀서 일상적으로 부려 썼던 양반 계급의 경우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구어)은 우리말인 한국어였지만 글로 쓰는 말(문어)은 중국어였고, 중인 계급의 경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제 한적으로나마 이두와 구결을 사용하여 우리말을 적었다고는 하나 6) 일 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구어)과 글로 쓰는 말(문어)이 완전히 같은 것 은 아니었다. 그 밖의 계급인 상인, 천민에게는 문자를 통한 의사 표현 의 길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자를 아는 계급은 언문 불일치의 언어생활을 하고, 한자를 전혀 모르는 계급은 문자를 통한 언 어생활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언문불일치의 언어생활을 하는 양반이나 중인 계급도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자유자재로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었 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어떤 계급의 사람이건 당시의 일반 백성 모 두 다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자유자재로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현실 을 세종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스물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쉬운 새 문자를 만들어 한자를 익히지 못 한 백성도 쉽게 익혀 자기 생각을 글로 아무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도 일반 백성에게 널리 보급하려 하지도 않았다. 6) 이두는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따라 배열한 뒤 우리말의 조사와 어미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는 표기법을 가리키고,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한문의 단어나 구절 사이에 우리말의 조사와 어미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어 넣는 표기법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두와 구결은 둘 다 얼마간 한자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불완전한 우리말 표기법이 었다. 24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은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배우기도 쉬운 새 문자의 창제를 통해 일반 백성에게도 의사 표현 의 길을 열어서 일반 백성 누구나 문자를 통한 언어생활을 일상적으로 편 하게 영위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조성해 주려 했음을 밝힌 것이다. 세종은 한자가 우리말을 적기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배우기도 어렵고 일반 백성 대부분이 한자를 익히지 못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 악한 결과,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는 새 문자를 창제하였다. 우리말의 음절 및 음소를 정밀하게 관 찰하여 우리말의 음소(자음 17개, 모음 11개)를 찾아내어 그 음소들 각 각에 일대일 대응하는 글자 스물여덟 개를 만들어, 스물여덟 개의 글자 만으로도 우리말을 완벽하게 적기에 거의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또한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 음소들 간의 유기적 관계까지도 대응 글자들의 모양에 반영시킴으로써 글자만 보고도 그 글자의 소릿값을 알 수 있도록 하여 일반 백성이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게 했다. 7) 결국 세종은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쉽게 배우고 쉽 게 쓸 수 있는 새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일반 백성이 일상적으로 자기 생 각을 글로 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문자를 통한 언어생활, 즉 문자 생활의 한 측면이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는 글로 표현된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7) 자음은 그것을 다섯 부류로 나눈 후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각 부류의 기본자를 만들 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나머지 글자를 만들었다. 모음 또한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이 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나머지 글자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음소를 구성하는 음성적 특 징인 변별 자질 등을 글자에 반영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훈민정음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체계를 갖춘 문자가 되었다. 특집. 한글 다시 보기 25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종은 일반 백성이 서로의 생 각을 글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 다. 일반 백성이 훈민정음으로 문자 생활을 일상적으로 편하게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그리고 세종은 단순히 문자 생활의 편이성만 고려해서 새 문자를 창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반(또는 사대부) 계급이 일반 백성이 글 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필요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과 달리, 세종은 일반 백성도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새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한자 또는 한문으로만 가능했던 지식 습득을,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 훈민정 음이라는 문자로도 가능케 함으로써 당시의 지식 및 정보를 대중화하 려 했는지도 모른다. 새 문자의 명칭이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 른 소리) 이라는 데서도 그것을 얼마간 추정해 볼 수 있다. 세종이 새 문 자인 훈민정음을 통해 일반 백성 누구나 당시의 지식과 정보를 쉽게 배 워서 그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라면 지나친 추정일까? 이상으로 우리는 세종실록 의 훈민정음 창제 기록과 세종 자신 이 직접 쓴 훈민정음 의 서문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 취지를 알아보 았다.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이 문자 생활을 일상적으로 편하게 영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창제 취지의 밑바탕에는 한자가 우리말 을 적는 데 적합하지 않아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하도록 새 문자를 만들 었다는 점에서 자주정신이, 일반 백성이 자기 생각을 글로 전혀 표현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도록 새 문자를 만 들었다는 점에서 애민 정신 또는 민본 사상이, 일반 백성이 새 문자로 문자 생활을 일상적으로 편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는 점에서 26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실용 정신 등이 깔려 있다. 훈민정음 의 서문에는 그 밖에도 훈민정 음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에 대한 세종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일반 백성을 위해 창제된 훈민정음은 한글로 그 이름이 바뀌어 우 여곡절을 겪으며 우리말을 적는 우리 고유의 문자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말은 우리의 감정 및 사고, 지식 및 정보, 문화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단지 전달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우 리의 감정 및 사고, 지식 및 정보,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고 유의 문자인 한글도 마찬가지이다. 한글에도 우리의 감정 및 사고, 지 식 및 정보,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말과 한글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 준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말 과 한글을 통해서만 제대로 규정될 수 있다. 한글은 편리한 문자 생활 의 수단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텔레비전, 인터넷, 신문, 잡지, 각종 광고물 등을 통해 문자 로 적힌, 수많은 글을 보며 살아간다. 건물명, 상표명 및 상품명, 안내판 등을 통해서도 짧은 글 또는 문자를 항상 볼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글 또는 문자를 접할 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누리집, 블로그, 트위터 등에 빈번하게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 나 카카오톡으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 언어생활의 중심이 말하기, 듣기 중심에서 읽기, 쓰기 중심으로 바뀌었다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다. 오늘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문자 생활이 큰 비중을 특집. 한글 다시 보기 27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이 우리의 문자 생활을 편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 제한 한글이 최근 들어 수난을 겪고 있다. 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한글 이 소홀히 대접받고, 외국 문자(특히 로마자)의 범람으로 그 사용 영역 이 점차 축소돼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아 래 (3)과 같은 글은 더 이상 그리 어색해 보이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오히려 외국 문자를 배제하고 한글만 쓴 (3')의 글이 더 어색해 보일 정도다. (3) Colorful 대구의 I-WISH 아파트에 살고 있는 P 씨는 평소 LG TV로 Mnet의 <슈퍼스타K5>나 tvn의 <SNL코리아>를 즐겨 시청하고, SK텔레콤에서 출시한 삼성전자의 갤럭시S4로 Daum 에서 2NE1, SS501, f(x), 2PM 등의 노래를 MP3 파일로 내려받 아 듣고, KB국민카드로 그 주에 개봉한 SF 영화를 예매해 CGV 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다. (3') 컬러풀 대구의 아이위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피 씨는 평소 엘지 티브이로 엠넷의 <슈퍼스타케이파이브>나 티브이엔의 <에스 엔엘코리아>를 즐겨 시청하고, 에스케이텔레콤에서 출시한 삼 성전자의 갤럭시에스포로 다음에서 투애니원, 더블에스오공일, 에프엑스, 투피엠 등의 노래를 엠피스리 파일로 내려받아 듣고, 케이비국민카드로 그 주에 개봉한 에스에프 영화를 예매해 시지 브이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다. 젊은 세대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는 위 (3)의 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제대로 읽어 내기조차 어렵다. 이는 젊은 세대와 28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기성세대 간의 언어생활, 특히 문자 생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로마자를 남용하고 있는 문자 생활의 실태를 방송 프로그 램명, 기업명, 대중가요 등을 통해 좀 더 확인해 보기로 하자. 먼저 2013 년 9월 9일(월)부터 9월 15일(일)까지 방송된 지상파 방송 3사(4채널) 의 정규 방송 프로그램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로마자 사용 실태는 표 1 과 같다. 표 1 제목에 로마자를 사용한 지상파 프로그램 채널 KBS 1TV KBS 2TV MBC SBS 계 프로그램 총수 85개 64개 75개 67개 291개 로마자 사용 프로그램 수 26개 (30.6%) 7개 (10.9%) 26개 (34.7%) 20개 (29.9%) 79개 (27.2%) 프로그램명 KBS 걸작 다큐멘터리, KBS 글로벌 24, KBS 뉴스, KBS 뉴스 12, KBS 뉴스 5, KBS 뉴스 7, KBS 뉴스 9, KBS 뉴스 광장, KBS 뉴스 라인, KBS 오늘의 경제, KBS 중계석, KBS 청소년 기획 위기의 아이들, KBS 파노라마, KBS 네 트워크, KBS 바둑왕전, KBS 스포츠 중계석, KBS 특선 다 큐, TV 동화 빨간 자전거, TV 비평 시청자 데스크, TV 소 설 사랑아 사랑아, TV 쇼 진품 명품, 한국 현대사 증언 TV 자서전, 취재 파일 K, T 타임; 강연 100, K-SORI 악동 KBS 뉴스 타임, KBS 스포츠 타임, KBS 아침 뉴스 타임, TV 유치원, TV소설 은희, VJ 특공대, 비바 K-리그 MBC 100분 토론, MBC 경제 뉴스, MBC 뉴스, MBC 뉴 스 24, MBC 뉴스 데스크, MBC 뉴스 투데이, MBC 다큐 스페셜, MBC 생활 뉴스, MBC 여성 토론 위드, MBC 월 드 리포트, MBC 이브닝 뉴스, MBC 정오 뉴스, MBC 파 워 매거진, MBC 네트워크 특선, MBC 스포츠, MBC 플 러스 특선; 키즈 CSI 과학 수사대, TV 속의 TV, TV 특종 놀라운 세상, 바비킴 이루마의 TV 예술 무대, 섹션 TV 연 예 통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찾아라! 맛있는 TV, PD 수첩, 경제 매거진 M, 불만 제로 UP SBS 12 뉴스, SBS 5 뉴스, SBS 8 뉴스, SBS 8 뉴스, SBS 가이드, SBS 골프, SBS 뉴스, SBS 뉴스 퍼레이드, SBS 생 활 경제, SBS 스페셜, SBS 애니갤러리, SBS 인기 가요, SBS 컬처 클럽, SBS 토론 공감, TV 동물 농장, 열린 TV 시 청자 세상, 한밤의 TV연예, 궁금한 이야기 Y, 스타다큐 K 팝 히어로 2, 서바이벌 오디션 I'm Super Model 특집. 한글 다시 보기 29
지상파 방송 3사(4채널)의 프로그램 79개가 그 제목에 로마자를 그 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이는 전체 291개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27.2% 를 차지한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그대로 노출된 로마자는 KBS, MBC, SBS, CSI, TV, PD, VJ, K, M, T, Y,, K-SORI, UP, I m Super Model 등이다. KBS, MBC, SBS, CSI처럼 로마자 두자어로 된 회사명이 나 기관명(고유 명사)은 거의 예외 없이 로마자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TV, PD, VJ처럼 로마자 두자어로 된 일반 명사도 로마자를 그대로 노출 시켰다. 한편 K( Korean, Key, Knowledge, Kindness 등에서 첫 글자 를 딴 것), M(Money, Marketing, Management, Man 등에서 첫 글자를 딴 것), T( Tea), Y( Why) 등처럼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로마 자로 제시하거나 UP, I m Super Model처럼 영어 단어나 문장을 로마자 그대로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서 로마자 노출은 로마자 두자어의 사용, 영어의 남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을 통해 로마자 두자어로 된 회사명이나 기관명 등의 고유 명사에서 거의 예외 없이 로마자를 그대 로 노출시켰음을 확인하였는데, 이번에는 기업명을 통해 이러한 실태 를 좀 더 확인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공식 적인 기업 이름에서 로마자 사용 양상을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8) 공식 적인 기업 이름은 네이버의 바로가기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하였다. 전체 100개 기업 가운데 34개의 기업이 그 이름에 로마자를 사용하 고 있었다. CJ, E1, GS, IBK, KB, KT, KT&G, LG, LIG, LS, SK, S-Oil, STX 8) 우리나라 100대 기업은 2012년 12월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여 선정하였다. 30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표 2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이름에 로마자를 사용하는 기업 로마자 사용 기업 수 34개 (34%) 기업명 CJ그룹, CJ제일제당, E1, GS, GS건설, GS글로벌, GS리테일, IBK기업은행, KB금융그룹, KT, KT&G, LG, LG디스플레이, LG상사, LG생활건강, LG유플러 스, LG이노텍, LG전자, LG화학, LIG손해보험, LS그룹, SK, SK가스, SK네트웍 스, SK이노베이션, SK케미칼, SK텔레콤, SK하이닉스, S-Oil, STX, STX조선해 양, STX팬오션, 삼성SDI, 아모레G 처럼 대부분 로마자 두자어로 된 이름이다.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은 100 대 기업 가운데 포스코, 이마트 등도 POSCO, emart처럼 로마자를 사용 한 이름이 널리 쓰이고,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도 로마자 두자 어로 된 이름인 켑코(KEPCO), 코가스(KOGAS) 등이 더 널리 쓰인다. 이러한 로마자의 남용 양상은 대중가요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국내의 대표적인 음악 전문 사이트인 멜론(www.melon.com)의 시대 별 차트 에서 2012년도 가요 차트 100위권에 올라 있는 대중가요를 대 상으로 가수명 및 곡명에서 로마자 사용 실태를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공식적인 가수 이름에서 로마자 사용 실태는 표 3과 같다.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에서 가수를 검색했을 때 먼저 제시된 것을 그 가 수의 공식적인 가수 이름으로 삼았다. 46명의 가수가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적고 있었다. 전체 66명 가운 데 69.7%를 차지하여, 2012년 시대별 차트 100위에 드는 가수의 대부 분이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적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9) 로마자로 적는 가수 이름은 대부분 영어식으로 작명되었고, 이 가운데 10cm, 2AM, 9) 한 가수가 부른 두 곡 이상의 곡이 100위권에 오르기도 하고, 둘 이상의 가수가 함께 부른 곡이 100위권에 오르기도 하여, 실제 100위권에 오른 곡을 부른 가수의 총수는 66명이다. 특집. 한글 다시 보기 31
표 3 멜론 시대별 차트 2012년 100위 가수 이름의 로마자 사용 실태 로마자를 사용한 가수명 로마자를 사용하지 않은 가수명 10cm(10센치), 2AM(투에이엠), 2NE1(투애니원), 4minute(포미 닛), Ailee(에일리), Beast(비스트), Bigbang(빅뱅), Block B(블락 비), Boa(보아), Busker Busker(버스커 버스커), CNBLUE(씨엔블 루), Davichi(다비치), December(디셈버), Dynamic Duo(다이나믹 듀오), Epik High(에픽 하이), f(x)(에프엑스), FTISLAND(에프티아 일랜드), G.NA(지나), Gain(가인), G-Dragon(지드래곤), Geeks (긱스), Hanna(한나), Hyuna(현아), Infinite(인피니트), IU(아이유), John Park(존박), Juniel(주니엘), K Will(케이윌), Kara(카라), Lyn (린), Mighty Mouth(마이티 마우스), Miss A(미쓰에이), Orange Caramel(오렌지 캬라멜), Primary(프라이머리), Psy(싸이), Secret (시크릿), Seven(세븐), Shinee(샤이니), Sistar(씨스타), Sunnyhill (써니힐), T-Ara(티아라), Teen Top(틴탑), Urban Zakapa(어반 자 카파), Verbal Jint(버벌진트), Wonder Girls(원더걸스), Zia(지아) 나얼, 노을, 로이킴, 박진 영, 백지영, 별, 소녀시대, 소유, 양요섭, 양파, 용감 한 녀석들, 울랄라 세션, 이승기, 이정, 이하이, 정 준영, 허각, 현승, 형돈이 와 대준이, 효린 46명(69.7%) 20명(30.3%) 2NE1, 4minute, f(x), Juniel, Hanna 등은 로마자로 적은 이름만 쓰고 10센치, 투에이엠, 투애니원, 포미닛, 에프엑스, 주니엘, 한나 처 럼 한글로 적은 이름은 거의 또는 아예 쓰지도 않았다. 2012년도 가요 차트 100위권에 올라 있는 대중가요 제목에서 로마 자 사용 실태는 표 4와 같다. 전체 100곡의 대중가요 가운데 총 41곡이 그 제목에 로마자를 사용 하였다. 이 가운데 로마자만 사용한 경우(31곡)도 있고 로마자와 한글 을 함께 사용한 경우(10곡)도 있지만 로마자만 사용한 경우가 더 많았 다. 이렇게 로마자를 사용한 대중가요의 제목 대부분은 영어를 쓰고 있 었는데, 단순히 영어 단어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영어의 구나 문장을 그 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대중가요 가운데 몇몇은 가사 내 용의 50%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들어 우리의 대 32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표 4 멜론 시대별 차트 2012년 100위 대중가요 제목의 로마자 사용 실태 곡명에서 로마자를 사용한 대중가요 곡명에서 로마자를 사용하지 않은 대중가요 기타 2HOT, BAD BOY, BLUE, DAY BY DAY, Electric Shock, Falling, FANTASTIC BABY, Good Boys, Heaven, Hey You, I 돈 Care, I Love You, I Need You, Ice Cream, illa illa(일라 일라), Like this, LOVE DAY, Lovey-Dovey, Loving U(러빙 유), Midnight(별 헤는 밤), Missing You, MONSTER, Officially Missing You, Officially Missing You Too, Only One, Pandora, POISON, SEXY LOVE, She's Gone, Sherlock 셜록(Clue+ Note), STILL ALIVE, Touch, Trouble Maker, Twinkle, Volume Up, 거기서 거기(Without You), 너뿐이야(You're The One), 니가 필요해(I Need You), 립스틱 (LIPSTICK), 이러지 마 제발(Please Don't...), 크레용(Crayon) 강남 스타일, 곰 인형, 굿모닝, 귀여워, 그, 그댈 마주하는 건 힘들어(그마 힘), 그리워 그리워, 꽃송이가, 나 혼 자,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 나쁜 놈, 난 리 나, 남자 없이 잘 살아, 남자도 우나 요, 내가 노래를 못해도, 너도 나처럼, 너랑 나, 널 사랑하겠어, 니가 싫어, 닐 리리 맘보, 되돌리다, 떠나간다, 뜨거 운 안녕, 말리꽃, 먼지가 되어, 목소리, 미치겠어, 바람 기억, 벚꽃 엔딩, 베짱 이 찬가, 보여 줄게, 사랑은 다 그런 거 래요, 생각날 거야, 서쪽 하늘, 소나기 (주르르루), 씨스루, 아름다운 밤, 아 름다운 밤이야, 아프다, 안 좋을 때 들 으면 더 안 좋은 노래, 애상, 어땠을까, 여수 밤바다, 외로움 증폭 장치(브래 드 드럼 한판 쉬기), 우리 사랑했잖아, 이럴 줄 알았어, 이상형, 정말로 사랑 한다면, 지독하게, 첫사랑, 추격자, 춥 다, 충분히 예뻐, 피어나, 하루 끝, 하 지 못한 말, 휘파람 1, 2, 3, 4 (원, 투, 쓰리, 포),?(물음표) 41개(41%) 57개(57%) 2개(2%) 중가요가 외국에서 케이팝(K-pop) 이라 불리며 지속적인 한류의 확산 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제목과 가사가 로 마자로 도배돼 있다시피 한 케이팝이 우리의 진정한 대중가요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영어권 팝송의 변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상으로 방송 프로그램명, 기업명, 대중가요 등을 통해 몇몇 전문 분야에서 로마자가 남용되고 있는 문자 생활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분 야별로 얼마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로마자의 남용 양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로마자의 남용 양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특집. 한글 다시 보기 33
표 5 공문서 작성 시 한자와 외국 문자의 사용을 규제하는 관련 법령 국어기본법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14조(공문서의 작성) 1 공공 기관의 공문 서는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다. 2 공공 기관이 작성하는 공문서의 한글 사용 에 관하여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 로 정한다.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 법 제14조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공공 기관의 공문 서를 작성하는 때에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 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 新 造 語 ) 를 사용하는 경우 살펴본 방송 프로그램명, 기업명, 대중가요 등의 몇몇 분야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이러한 사정은 더 악 화될 듯하다. 우리나라는 표 5에 제시한 2005년 1월 27일 제정된 국어기본법 (법률 제7368호) 제14조 및 2005년 7월 27일 제정된 국어기본법 시행 령 (대통령령 제18973호) 제11조를 통해 공공 기관의 공문서 작성 시 한자 및 외국 문자의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10)11) 공공 기관에서 공문서 를 작성할 때에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괄 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공 기관 및 공문 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규정의 적용 대상 및 범위가 크게 달 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극히 사적인 글쓰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문 10) 우리나라는 1948년 10월 9일 대한민국의 공문서(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라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 을 제정하여 한자 의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였다. 이 법률은 2005년 1월 27일 제정된 국어기본법 제14조로 승 계되었다. 이때 조항 내용에 한자 외에 다른 외국 문자 를 더 추가하여 제시하였다. 11) 문자 생활적 측면에서 외국 문자인 로마자 외에 한자의 사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 나 최근의 문자 생활 양상(한자를 노출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 이는 크게 문제 가 되지 않으므로 이 글에서는 로마자 사용 및 남용에만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했다. 34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자 생활에서는 이 규정을 준용할 필요가 있다. 방송 프로그램명, 기업 명, 대중가요 등도 이 규정의 준용 대상임은 두말할 필요도 있다. 이렇듯 국어기본법 및 국어기본법 시행령 을 통해 공문서에서 외 국 문자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자 생 활에서 로마자의 남용은 아주 심각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 다. 무엇보다 로마자의 남용은 앞의 용례 (3)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특정 분야 전문가 와 비전문가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저해한다. 이는 세종이 문자 생활 의 편이성과 지식 및 정보의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새 문자를 창제하려 했던 정신에 크게 반한다. 문자 생활의 편이성과 지식 및 정보의 대중 화는 일반 백성이 새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 고받으며, 모든 지식과 정보를 쉽게 습득하여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 기 위함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 생활에서 로마자의 남용은 외래어, 외국어(특히 영어)의 남용 과 깊이 관련된다.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에서 더 나아가 우리말로 정 착되지도 않은 영어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과정에서 그것 을 로마자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데까지 이르렀다. 외래어, 외국어의 남 용은 젊은 세대, 전문 분야 또는 집단(전문가 계층)에서 더 두드러진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엔 계급 간 언어생활의 차이가 큰 문제였다면, 최근 에는 세대 간, 계층 간(전문가 계층과 비전문가 계층) 언어생활의 차이 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세대 간 및 계층 간 의사소통 의 단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세종이 계급 차이에 상관없이 일 반 백성 모두가 문자를 통한 언어생활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 기 위해 새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정신에 크게 반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앞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말과 한글이 언어생활 또는 특집. 한글 다시 보기 35
의사소통의 수단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도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로마자 같은 외국 문자나 영어 같은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로마자나 영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할지라도 훈민정음의 창제 정 신을 오늘에 되살려 그것을 어떻게 발전적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4 이상으로 우리는 훈민정음 의 서문을 통해 세종의 훈민정음 창 제 취지 및 창제 정신을 알아보고, 로마자를 남용하고 있는 최근 문자 생활의 실태를 방송 프로그램명, 기업명, 대중가요 등을 통해 실증적으 로 파악해 보았다. 세종은 자주정신, 애민 정신 또는 민본 사상, 실용 정신을 바탕으로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도 문자 생활을 일상적으로 편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문자 생활의 편이성), 그리고 일반 백성 누구나 새 로운 지식과 정보를 쉽게 배워 그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지식과 정보의 대중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한편 최근 들어 우리 의 문자 생활에서 외국 문자(특히 로마자)를 남용해 쓰는 양상이 아주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로마자의 남용이 외국어(특히 영어)의 남용 과 깊이 관련돼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로마자 및 영어의 남용 양상은 세대 및 계층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로마자 및 외래어, 영어의 남용이 세대 간, 계층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로마자 36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
및 영어의 남용은 세종이 계급 차이에 상관없이 일반 백성 모두 문자를 통한 언어생활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 문자인 훈민 정음을 창제했던 취지 및 정신에도 크게 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로마자 남용에 초점에 맞추어 우리 문자 생활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는데 어쩌면 이는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점일 수 있 다. 그 밖의 문자 생활의 다양한 양상 및 우리 문자 생활의 전반적인 문 제점에 대해서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정 신은 시대 변화 및 시대적 요청에 따라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현 시대에 걸맞게 재해석하고, 그 것에 근거하여 우리 문자 생활의 문제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특집. 한글 다시 보기 37
참고 문헌 강신항(1990), 훈민정음연구 (증보판), 성균관대학교출판부. 고영근(2010), 표준 중세국어문법론 (제3판), 집문당. 박창원(2005), 훈민정음, 신구문화사. 안병희(2007), 훈민정음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이기문(1998), 국어사개설 (신정판), 태학사. 38 새국어생활 제23권 제3호(2013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