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에 대한 형사규제의 정당성 및 합리성 검토 주승희* [대상판결] 대법원 2005.7.22. 선고, 2003도2911 판결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 률위반(변경된 죄명: 전기통신기본법위반) 전기통신기본법위반 [사실관계] 중학교 미술교사인 피고인은 인터넷 개인홈페이지 공간에, 여성의 다리를 벌려 노출된 성기를 정면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인 그대 행복한가 (공소사실 제1항),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의 성기를 그린 무제 (공소사실 제2항), 자신과 자신의 처 가 전라로 함께 서서 정면으로 성기를 노출하여 촬영한 사진 우리 부부 (공소사실 제3항), 청소년이 등장하여 성기가 발기된 채 양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그림인 남 자라면 (공소사실 제4항), 발기되어 있는 남성의 성기 및 그 성기에서 분출되는 정 액을 화면 중앙에 세밀하게 그린 남근주의 (공소사실 제5항), 여성의 음모, 팬티, 엉덩이 등이 노출된 하드코어 포르노물의 일부장면을 동영상으로 편집하고, 그 밑 으로 헉헉 이라는 글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도록 구성한 동영상 포르노 나 볼까 (공소사실 제6항)를 게시하였는데, 검찰은 피고인의 행위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음란한 영상을 공연히 전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기소하였다. [사건경과]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그림 등이 i) 피고인이 호색적인 흥미를 돋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상품화에 반대한다는 제작의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ii) 포르노나 볼까 (공소사실 제6항)는 언뜻 보면 포르노그라피를 연상하게 하는 동영 상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보면 누구나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 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점, iii) 이 사건 그림 등의 전반적인 인상이 선정적으로는 보 이지 않도록 제작되었다는 점, 나아가 iv) 이 사건 그림 등과 피고인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다른 미술작품 및 사진들과의 상관관계 및 전체적인 구성, 피고인의 홈페이 지의 독특한 전개방식 등에서 성상품화를 반대하는 피고인의 제작의도가 쉽사리 파 악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그림 등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통념상 허 용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주로 호색적 흥미를 돋구기 위한 것이라거나, 공연히 성 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이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 1 -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1) 제2심 법원 역시 제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i) 우리부부 사진 (공소사실 제3항)은 사진과 미술에서 신체가 다루어진 역사 및 이에 대한 피고인의 견해를 나체1 부터 나체6 까지 전개되는 형식으로 표현한 나체미학 이라는 범주의 마지막에 들어 있고, ii) 위 사진은 나체1 부터 나체6 까지를 모두 거쳐야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 iii) 포르노나 볼까 (공소사실 제6항)는 여자의 음부, 둔부, 얼 굴 등의 사진을 붙여놓고 빨리 움직이게 한 것이어서 자세히 보려고 할수록 아무런 내용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점, iv) 우리부부 사진(공소사실 제3항)은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5 18 자유공원 내에 상설적으로 전시될 만큼 예술성이 인정된 점 등의 사실을 무죄의 근거로 판결이유에 덧붙였다. 2) 그러나 대법원은 위의 공소 사실 중에서, 제1항과 제3항 그리고 제5항을 음란물로 보아 유죄를 선고하며 파기 환송하였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원심판결을 인용하여 음란성을 부인하였다. [대법원 판결요지] [1] 구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2(2001. 1. 16. 법률 제6360호 부칙 제5조 제1 항에 의하여 삭제, 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65조 제1항 제2호 참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음란'이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 을 말하고, 표현물의 음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표현물의 성에 관한 노 골적이고 상세한 묘사 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 서술이 그 표현물 전체에서 차 지하는 비중, 거기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 서술의 관련성, 표현물의 구성이나 전 개 또는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 해 표현물을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그 표현물을 보는 사람들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느냐의 여부 등 여러 점을 고려하여야 하며,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따라 객관적이 고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2]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고 어느 예술작품에 예술성이 있 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며, 다만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 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3] 미술교사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자신의 미술작품, 사진 및 동 영상의 일부에 대하여 음란성이 인정된다고 한 사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1) 대전지법 2002. 12. 27. 2001고합54 판결. 2) 대전고법 2003. 5. 2. 2003노31 판결. - 2 -
연구 I. 서론 2005년 대법원이 2년 7개월간의 심리 끝에 (무죄를 선고했던) 1심과 항소심을 뒤엎고 일부 유죄를 선고한 대상 판결에 대해서 유독 반사회적, 반문화적, 반교육 적 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3) 그 이유는 대상판례가 현행 음란물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현행법상 음란물죄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성적수치심 이나 성적 도의관 념 이 과연 국가가 형벌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보호해야할 만큼 중대한 법익인지, 다 시 말해서 음란물이 범죄시될 만큼 우리 사회에 유해한 것인지가 자명하지 않다 (II). 또한 현행법의 태도와 같이 성도덕을 보호법익으로 삼는 경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이를 토대로 구성된 음란 개념이 매우 불명 확하다는 것이다. 많은 예술작품들이 성과 몸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음란개념의 명확성은 예술의 자유 등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위한 중요한 조 건이며, 따라서 어렵더라도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III). 한편 음란물의 사회적 유해 성과 음란 개념의 명확성(또는 보다 명확한 개념으로의 재구성 가능성)에 긍정적 대답을 줄 수 있는 경우에라도, 여전히 그 규제 가능성 및 (형사정책적) 합리성에 의구심을 던지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음란물의 배포 판매를 용이하게 하지만 규제는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매체의 발달이다(IV). 4) 음란물을 규제하는 현행법 규정으로는 먼저 그 규제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헌법 제21조 제4항을 들 수 있고, 음란성 판단의 기준의 되는 형법 제243조 및 동 법 제244조가 대표적이다. 그 외 다양한 영역에서의 음란물을 규율하기 위해 특별 법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5) 이들 법에서 상정하고 있는 음란물의 규율 목적이나 의 미가 형법상의 것과 별다를 바 없으므로(이 점은 당해 사건의 항소심 법원도 판결 문에서 명시하였음), 본 논문은 형법 제243조 이하의 음란물죄를 대상으로 삼아 그 규제가 정당한 것인지 또한 합리적인지를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검토 함으로써, 대상판결의 당부를 짚어보고자 한다. II. 음란물죄의 보호법익 3) 대상판결이 나오자마자 문화연대, 전교조 등 문화.교육단체 주최로 김인규 사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유죄교사 김인규와 죄 없는 친구들 전 등 대법원의 태도를 비판하는 각종 전시회와 학술 세미나가 열린 바 있다(인터넷한겨레 11월 18일자). 4)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작성한 정보통신윤리관련 종합 통계 에 따르면 인터넷불법 청소년 유해정보 건수가 총 11만 6,030건으로 지난 2003년에 비해 46.62% 증가했고, 전체심의 건수 음란물 중 사이버 음란물의 비중은 2003년 62.52%에서 2004년 81.3%로 증가했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 형사정책동향, 214면 이하). 5) 청소년보호법(제10조)과 전기통신기본법(제42조, 제66조 제1항 제12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 한법률(제65조), 공연법(제5조, 제40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제14조),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이 있다. - 3 -
1. 선량한 성풍속 또는 성적 수치심의 보호 가. 학설 및 판례의 태도 형법 제243조 이하에 규정된 음란물죄의 보호법익에 대해 학설은 일치하여 선량 한 성풍속(또는 성적 도의 관념) 이라고 보고 있고, 6) 대상판결 역시 성적 도의 관 념 을 들고 있다. 7)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 의 보호를 들기도 하는 데, 8) 대상판결에서는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성적 수치심 을 성적 도의 관념 의 한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적 수치심 은 성행위의 비공연성 을 근거로 한다는 점 에서 성도덕의 보호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학설이나 판례 의 경우 명시적으로 성행위의 비공연성 이라는 원칙을 밝힌 바 없지만, 음란개념( 및 유해성)이 성행위의 비공연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일본의 판례와 거의 흡사한 점을 볼 때, 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9) 기타 성적 도의관념 이나 일반인의 정상 적인 성적정서, 건전한 성도덕 등등의 조금씩 다른 표현들이 있지만, 음란물 관련 모든 판결이 성도덕을 음란물죄의 보호법익으로 명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10) 이와 같이 음란물이 우리 사회의 선량한 성풍속, 다시 말해서 성도덕을 침해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는 성을 은밀한 것으로 치부하고 성애의 표현을 금기 시했던 유교주의적 전통윤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적 입장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1) 나. 비판 1) 형법에 의한 성도덕보호에 비판적인 사회학적 논의 다수 학설 및 대상판결과 같이 성도덕을 형법으로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적 태 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12) 관련 사회학 6) 김일수/서보학, 형법각론, 2004, 630면; 박상기, 형법각론, 2004, 577면; 배종대, 형법각론, 2003, 699면; 이 재상, 형법각론, 2004, 635면; 임웅, 형법각론, 2003, 720면; 김병운, 음란한 문서 도화의 개념과 판단기준, 형사재판의 제문제(제1권), 115면. 현행 형법이 음란물죄에서 성풍속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삼고 있음은 음란 물죄가 위치한 형법전 제22장의 제목이 성풍속에 관한 죄 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7) 동일한 입장의 기타 판례로는 대법원 1995.6.16. 94도24113; 1995.6.29, 94누2558; 헌재 1998.4.30, 95헌 가16 외 다수. 8) 배종대, 형법각론, 699면. 9) 日 最 裁 昭 和 32.3.13(1957); 日 最 裁 昭 和 44.10.15(1969). 자세한 내용은 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104면 이하를 참조할 것. 우리나라 판례와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법원이 음란성의 개 념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으며, 성적수치심의 보호 이유 등에 관한 논증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10) 기타 1970. 10. 30, 70도1879; 1975. 12. 9, 74도976; 1987. 12. 22, 87도2331; 1991. 9. 10, 91도 1550; 1995. 2. 10, 94도2266; 1997. 12. 26, 97누11287의 판결들이 있다. 11) 이러한 보수주의적 입장은 성이 위험스럽고 파괴적이므로 도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절대주의적 입장 으로 분류되기도 한다(제프리 윅스,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 146면). 12) 이하의 설명은 필자의 석사학위논문의 관련내용을 간략히 요약 소개하는 것으로서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주승희, 현행법상 음란물죄의 비판적 검토 및 합리적 규제방안 모색, 고려대학교 법학석사논문, 1999, 15면 이하를 참조할 것. - 4 -
적 논의들을 살펴보면, 우선 성을 억압 하는 전근대적 도덕규범을 타파하고 성을 해방 시켜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시각에서의 비판을 들 수 있다. 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적이고 건전하며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에 음란물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고 정당하며 유익하기까지 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오히려 음란물을 부당하게 억압 되어 온 인간본연의 모습이 예술로 승화된 것 으로 옹호한다. 13)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장 역시 보수주의적 시각과 마찬가지로 성에 대해 자연주의 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시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후의 사회학적 논의에서 비판 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성 해방 자체를 운운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정치 적 해방과 연계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양성과 공존할 수 있는 삶의 기술, 다양 한 선택에 대처할 수 있는 윤리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바라보는 푸코(M. Foucault)나, 14) 성적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근본적 도덕성에 바탕을 둔 절대주의적 도덕에서 벗어나 다양한 취향의 인정에 바탕을 둔 다원주의적 윤리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윅스(J. Weeks), 15) 다원주의적 성문화는 성찰적 기획으 로서의 현대성이 사적 영역, 친교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결국 사적 영역의 민주화(일 상생활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기든스(A. Giddens)의 관점 등이 그것이다. 16) 성(문화)에 대해 다원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견해들도 음란물을 본질적으로 유해한 것으로 평가하여 형법으로 규제하는 현행법의 태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음란물의 형법적 규제를 반대하는 주장은 일부 여성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난 다. 17) 여성의 자율성 획득을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적 여성주의자 들은 검열이 역사 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한 여성주의자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이 민주주의 정부와 여성주 의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보장책이라는 신념하에, 넓게는 표현의 자유를, 좁게는 음 란물의 자유를 주장한다. 18) 2) (형)법이론적 논의: 형법의 법익보호원칙과 탈도덕화 13) 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42면 이하 참조; Selg, Herbert, Pornography, 50 면. 성의 문제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시각의 사상적 기초에 대해서 는 함재봉, 성해방과 정치해방: 프로이트에서 푸코까지, 사회비평 제13호, 1995; 황정미, 섹슈얼리티의 정치; 일상과 민주주의, 사회비평 제13호, 1995, 123면 이하. 14) 푸코가 조명한 성과 주체성의 관계 및 성담론과 진리와의 관계 에 대해서는 푸코(이현역 역), 앎의 의지, 나남출판, 1997; 이진우, 성, 욕망 그리고 실존의 미학-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 를 중심으로, 감성의 철학, 297면 이하. 15) 성이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협과 투쟁 그리고 인간 주체의 산물이다 라고 선언한 바 있는 윅스는 성 의 형태, 신념, 이데올로기, 행동들의 사회적 가변성을 널리 인정함으로써, 억압/해방의 이분법적인 견지에서 성을 이해하는 본질주의적 접근방법(즉 자유주의적 입장과 보수주의적 입장)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제프리 윅스,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 168면 이하). 16) 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은 기든스에게서는 제도적 성찰성(institutional reflexivity)의 확산이 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기든스(배은경/황정미 공역),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새물결, 1996, 67면 이하 참조). 17) (법)여성주의의 다양한 이론들에 대하여는 주승희, 법여성주의 이론의 흐름과 형사법에의 투영, -성매매특별 법을 중심으로-, 법철학연구 제8권 제2호, 2005년, 275면 이하. 18) E. Marshall, Sandra, Feminism, Pornography and the Civil Law, Recht und Moral, 384면. - 5 -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국가(법)의 임무를 단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의 반경을 설정하여 그를 넘어서는 행동방식만을 통제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고는 형 법의 이념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형법이 사회에 유해하거나 개인의 생명, 신체, 재산과 같은 이익(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만을 금지시킬 것을 요구한다. 19) 형법에 의한 사회제도나 국가권력의 보호는 생명, 신체, 재산과 같은 개인의 자유와 이익 (주관적 권리)을 보호하는 한에서만 부수적으로 보호되는 것으로 간주되며, 20) 형이 상학적 전통윤리나 종교윤리의 경우에도 그 자체가 보호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침해하는 것이 곧바로 개인의 주관적 권리의 침해로 이어질 때에만 형법의 보 호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21) 그렇다면 현행 음란물죄가 보호법익으로 삼고 있는 성도덕이 개인의 어떤 주관적 권리를 보호하는지가 밝혀져야 하는데, 이는 여러모로 불분명하다. 판례는 그 시대 의 건전한 사회통념 이나 선량한 사회풍속 을 지속적으로 내세우지만, 우선 현재 우 리사회의 보편적 성도덕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고, 국가가 국민에 대 해 도덕적 후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 때, 22) 법원이 그 내용을 채울 권한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더구나 경험적 입증의 어려움으로 인해 채울 능력도 없다는 점에서, 이 기준들은 아무런 내용 없는 빈공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23) 더 나아가 오늘날과 같이 윤리적 표상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형)법이라는 강제 수단을 동원하여 형이상학적 전통윤리적 성도덕을 지키고자 하는 국가권력이 그 윤 리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부도덕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24) 이는 국가권력의 음란물 통제가 국가와 정부는(가) 다스려야 할 명분을 스스로 만들고 민중을 끝없이 다독거리며 계몽의 방식 축적을 통해 존립 근거를 정당화해 나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혐의를 두는 경우, 25) 또는 국가기관의 눈에 아름답지 못한 노출을 추한 노출 이라 하여 형벌의 철퇴를 가하는 것은 권력 적인 잣대에서 벗어나는 심미적 취향에 대한 폭력 으로 바라보는 경우, 26) 더욱 그 19) 김일수, 형법총론, 37면 이하; 배종대, 형법총론, 1999, 6면; Hassemer, 'Strafrechtswissenschaft der Bundesrepublik, hrsg. von Dieter Simon, 1994, 259면 이하(배종대 이상돈 편역, 독일의 형법학, 형법 정책, 26면 참조). 20) 일반적으로 인격적 법익론 으로 일컬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김창군, 인격적 법익론, 법치국가와 형법, 1998, 94면; 배종대, 형법총론, 44면; 이상돈, 형법의 근대성과 대화이론, 32면; Hassemer, Grundlinien einer personalen Rechtsgutslehre, in: Arth. Kaufmann-Festschrift, 91면 참조할 것. 21) 물론 형이상학적 종교적 윤리 중에서도 사회유해성을 띤 규범의 경우(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 이미 (핵심)도덕의 영역에 들어온 것으로서 그러한 법규범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사회구성원간에 공감 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넓은 의미의) 도덕 개념을 윤리와 사회규범, (좁은 의미 의) 도덕 (또는 핵심도덕)으로 유형화하고 법과 이들 개념과의 관계를 분석한 문헌으로는 이상돈, 법학입문, 187면 이하. 22) 김창군, 비범죄화정책에 관한 이론적 연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146면. 23) 같은 견해로는 임웅, 비범죄화의 이론, 1999, 91면; 조국, 형사법의 성편향, 2004, 267면 이하. 24) 같은 견해로는 임웅, 성범죄의 비범죄화론, 성균관법학 제2호, 1988, 70면; 김일수, 형법총론, 1999, 35면 이하. 25) 박종성, 포르노는 없다, 2003, 525면. 26) 이상돈, 욕망은 행복을 낯설게 한다, 연극과 인간, 2003, 159면 이하. - 6 -
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전통적 형이상학적 윤리는 시민 들의 자율적 통찰에 의해 승인되고 준수될 사항이지 법규범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서, 이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실정법률은 시대착오적 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 다. 27) 이러한 점에서 보편적 법익으로서의 성도덕 및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 보다는 개인적 법익의 침해가능성이 인정되는 성적 수치심 의 야기가 음란물규제와 관련 더 타당한 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추상적인 성도덕의 보호를 위해 음란물의 생산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은 허용하되 원치 않는 자에게 배포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 자체를 금지시키는 현행 음란물관련 형사법은 법익보호원칙을 외면한 것으로 판단된다. 28) 2. 여성의 인격권 보호 가. 반포르노적 여성주의 이론 29) 과 헌법재판소의 입장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음란물의 법적규제 목적이 선량한 성풍속 등의 성도덕이 아 니라 여성의 보호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음란물의 내용에 남성지배 여성종 속,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비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30) 음란물이 여성을 상품 화 객체화함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저하시키고 여성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다. 31) 최근에는 음란물이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 을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주의자로 꼽히는 캐서린 매키넌 의 주장으로, 여성을 채찍질하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여성 스스로 강간을 즐긴다는 내용의 음란물은 법률적 보장의 범주내의 표현(혹은 사상, 관점)이 아니라 그 자체 가 차별행위라는 것이다. 32) 그리고 음란물의 형법적 규제가 헌법에 합치한다고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법재 판소가 그 결정이유서에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그로 인해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파괴되거나 공동체에 소속되어있는 다른 구성원들의 인간성과 인격이 파괴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 특히 주체이자 목적으로 존재하여야 할 인간을 물질적 쾌락이나 상업적 탐욕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표현이나 행위를 헌법이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시한 점에 비추어 볼 때, 33) 헌법재판 27) 이상돈, 법학입문, 2005, 191면, 199면; 법이론, 2005, 162면. 28) 같은 견해로는 이상돈, 여성주의와 형법: 성폭력범죄에 대한 형법정책을 중심으로, 인권과 정의(1997/11), 82면. 29) 반포르노적 여성주의 입장을 풍부히 소개한 문헌으로는 오정진,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규범적 담론 연구, 서 울대학교 법학박사학위논문, 2000. 30) Itzin, Catherine, Social Construction of Sexual Inequality, 65면 이하. 31) 심영희, 위험사회와 성폭력, 1998, 286면. 32) 캐서린 매키넌(신은철 역), 포르노에 도전한다, 개마고원, 1997, 23면 이하. 이러한 입장의 여성주의자들의 견해는 1983년 미국 미네아폴리스시의 반포르노그래피 법령에 반영된 바 있다. 동법령의 위헌여부 논의는 김 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48면 이하; 장호순, 성평등과 표현의 자유-캐서린 맥키 넌의 주장에 대하여-, 173면(신은철 역, 포르노에 도전한다, 부록); 주승희, 석사학위논문, 19면 참조. 33) 헌재 1998. 4. 30, 95헌가16. - 7 -
소 역시 음란물의 (여성의) 인격권에 대한 침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비판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음란물의 대부분이 남성소비자를 겨냥하여 만들어 져 있고, 많은 음란물이 내용적으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34) 그러나 이런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여성을 비인격적으로 묘사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여성의 인격권(또는 평등권)을 직접적 으로 침해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재생 하여 전승시킴으로써 종국적으로는 헌법상의 여성의 인격권(또는 자율성)이나 평등 권 보장을 위태화할 여지도 있으나, 이러한 위험성만으로 형법을 투입하는 것은 앞 서 논한 법익보호원칙이 형법체계에서 수행하는 형법제한 기능을 현저하게 약화시 킬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도 평등권이 형법상 보호법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평등권은 개인 의 국가에 대한 주관적 공권일 뿐이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인간에 주장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부모나, 남성사원과 여성사원을 차별하 는 사주 등 비합리적인 차별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처벌한다면 형법은 무한대로 확 대될 것이며, 불합리한 이유 없이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윤리규범에 속하는 것으로, 형법은 특정한 행위를 통해 법익이 실제로 위협되는 한에서 그러 한 행위를 금지시킬 것을 위해 요청되어야 할 것이다. 35) 물론 인격권이 우리 법질서의 근본규범이라 할 수 있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 엄성 존중 조항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기본권이며, 형법 역시 이를 존중하고 보호해 야할 의무가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추상적 법익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 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갖는지 법관 역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36) 형법의 최 후수단적 특성상 그 보호는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한정 된 집단이 아닌 여성일반에 대한 인격권의 침해를 형법이 보호하고자 한다면 형법 은 무한대로 확대될 위험이 있고, 37) 더욱이 국가가 형법을 통해 여성의 성적 대상 화나 상품화 등 불평등한 기존의 성문화를 평등한 성문화로 개선시켜주기를 바란다 면, 이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문제해결능력을 포기하는 것이고, 생활세계의 자유로운 공론을 초토화시킬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38) 34) 예를 들면, 여성을 고통이나 굴욕감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표현한 것, 강간당하는 동안 쾌감을 느끼는 성 적 대상으로 여성을 묘사한 것, 여성을 성적으로 복종당하며 성적인 노예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 여성을 타고 난 창녀로 표현한 것, 여성의 성기가 물건이나 동물의 성기에 의해 관통된 것을 표현한 것 등. 이러한 포르노 그래피의 내용 및 그 참여여성과 관련 범죄의 분석을 통해 포르노그래피의 여성유해성을 밝히고자 한 문헌으 로는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여성을 소유한 남자들, 동문선, 1996. 35) Hassemer, 'Grundlinien einer personalen Rechtsgutslehre', in: Arth. Kaufmann-Festschrift, 85면 이 하.(인격적 법익론의 개요, 형법정책, 1998, 342면 참조). 36) 동일한 관점에서의 문제제기는 Schick, Peter J., 'Sittlichkeit Sexualmoral Strafrecht', 192면 이하. 37) 음란물에 의한 여성의 인격권 침해를 전제로, 이를 형법의 보호법익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견해로는 Schröder, Friedrich-Christian, Pornographie, Jugendschutz und Kunstfreiheit, Heidelberg 1992, 38면. 38) 이상돈, 여성주의와 형법:성폭력범죄에 대한 형법정책을 중심으로, 인권과 정의, 1997/11, 87면; 형법의 근 - 8 -
또한 음란물을 접하는 남성 중 대다수는 그것이 담고 있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이미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드라마를 포함한 각종 TV프로그램, 신문 잡지 등 출판물, 심리학 철학 등 학술서, 문학서, 가정, 또래집단, 심지어 학교선생님) 전 수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음란물 자체의 영향력, 즉 음란물이 여성의 인격권 및 평 등권 보호를 위태화시킬 위험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3. 강간 등 성범죄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음란물규제를 찬성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또 다른 논거는 남성들이 음란물을 접하 는 경우 성적 자극을 받게 되고, 이것은 강간 등 성범죄를 일으킬 위험성이 있으므 로 유해하다는 것이다. 39) 특히 폭력적인 음란물을 장기적으로 접할 경우 강간신 화 40) 를 쉽게 수용하게 되고, 그 결과 여성들에게 폭력적이 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폭력적 성표현물과 단순 폭력물 모두 비폭력적인 성표현물에 비해서 강간신화에 유 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은 여러 조사연구의 공통적인 결론기도 하다. 41) 법 원 역시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에 관한 판결문에서...특히 근자에 이르 러 성의 문란으로 인한 성도덕과 성풍속의 타락은 퇴폐, 향락 풍조를 조장하고 건 전한 문화발전을 저해하며 각종 성범죄 유발의 동기를 제공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 로부터 사회공동체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을 더욱 크다 할 것인 바,... 라며 이를 긍정하는 양형이유를 밝힌 바 있다. 42) 그러나 성범죄유발 위험성을 이유로 음란물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유해성 의 존재가 입증되어야 할 것이며, 그 입증의무는 입법자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 이다. 43) 만약 그러한 위험성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를 이유로 하는 음란물의 규제, 즉 음란물의 판매 소비자의 음란물향유권의 제한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4) 왜냐하면 사회유해성으로부터 처벌의 필요성을 도출하는 법익사고는 입법자에게 어느 행동의 처벌의 필요성유무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시 키며, 처벌의 필요성이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의 이익으로(in dubio pro libertate) 비범죄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45) 대성과 대화이론, 1994, 75면 이하 참조. 이상돈은 법이 생활세계의 자율적 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이 를 법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라고 부른다(이상돈, 법학입문, 2005, 65면). 39) 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37면 이하; 정완, 사이버공간상 불법 유해정보의 합 리적 규제방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5, 35면. 서구의 연구로는 Brownmiller, 1975; Dworkin, 1981, 1985; Machinnon, 1984; Morgan, 1980; Ratterman, 1982(이은경, 대중문화의 선정성이 청소년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 40면 이하 참조). 40) 강간신화란 강간, 강간피해자, 강간가해자에 대한 편견적이고, 스테레오타입화(고착화)되어 있고, 잘못된 믿 음(Burt, M. R, 'Cultural Myths and Supports for Rap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80) 으로서, 남자가 금지된 행동을 하도록 허용하고, 사건 후에 이를 합리화 정당화하도록 허용한다. 예를 들면 i)강간은 심각한 범죄가 아니다. ii)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원한다. iii)특정 여성만 강간당할 뿐 좋은 여자 는 강간당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심영희, 위험사회와 성폭력, 나남출판, 1998, 353면 이하). 41) 이은경, 대중문화의 선정성이 청소년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 42면 이하. 42) 1992.12.28, 92고단10092. 43) 같은 견해로는 Kaiser, Günther, Kriminalisierung und Entkriminalisierung, in: Festschrift für Ulrich Klug, Köln, 1983, 580면. 44) 같은 견해로는 Müller-Dietz, Heinz, Strafe und Staat, 41면. - 9 -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된 경험적 연구가 제대로 행해진 바 없다. 46) 성을 금기시하는 유교이념이 성과 관련된 과학적 연구를 저해하는 측면도 있겠지 만, 47) 성의 체험 자체(성욕의 유발, 성범죄욕구 유발 등)가 본래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객관적이고 일반화된 결과의 도출에 대한 기대가 애당초 무리인 듯하다. 서구의 경우에 유해성의 입증만큼 무해성(오히려 교 육적이며, 치료효과가 있고, 오락적인 기능 및 성적 즐거움을 증진시키는 등의 유익 성까지)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도 상당수 있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48) 결국 음란물 이 성범죄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은 확인되지 않은 가정에 불과한 것이 다. 49) 4. 청소년 보호 가. 음란물의 청소년 유해성 음란물의 유해성 여부에 관하여 가장 폭넓은 합의가 도출되는 부분은 바로 음란 물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해한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많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음란물관련 법규정과 학술연구에서 제시 하고 있는 청소년유해성의 내용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청소년보호법 제10조는 i)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 이거나 음란한 것, ii)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iii)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행사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iv)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비윤리적인 것, v)기타 청소년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음란물의 영향력을 조사 한 연구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볼 때, 성표현 접촉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성표현을 노골성이라는 하나의 수준에 45) 이상돈, 법이론, 92면 이하: Müller-Dietz, Heinz, Strafe und Staat, 43면.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의 이익 으로 원칙이 실제로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입법자에게 적절한 헌법적인 구속을 작동시키는 근본규범으로 여겨 질 수 있느냐가 문제시될 수 있는데, 이 원칙은 서구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다음과 같은 상황 즉, 통제해 야 하는 사회적 유해성이 충분하게 밝혀지지 않았거나 가능하지 않은 경우 입법자는 그의 개입의 필요성에 대해 입증할 수 없는 곳에서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일종의 권능추정, 자유추정으로 발휘되어왔다. 마치 형 사소송절차에서 의심스러울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진행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Müller-Dietz, Heinz, Strafe und Staat, 41면 이하). 46) 음란물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유해적 영향력에 대하여 제한적인 방법을 통한 경험적 연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김준호/박해광, 음란물과 청소년 비행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47) 우리사회연구학회, 현대사회와 여성, 정림사, 1999, 93면. 48) Alternativ-Entwurf eines Strafgesetzbuches, BT, Sexualdelikte, 1968, 41면(임웅, 비범죄화의 이론, 92 면 재인용). 음란물과 성폭력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국내 문헌으로는 조국, 전게서, 279면 이하. 49) 인터넷 음란사이트 접촉의 영향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 음란물을 접촉한 경우, (음란)게시물을 본대로 해보 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는 등의 행동강화가 일어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적고, 오히려 게시물을 보고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는 등의 혐오감 을 느낀 경우가 더욱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박형민, 인터넷유해사 이트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5, 134면 이하). - 10 -
서 논의하고 또 대응할 수 없다는 점, 선정성보다는 폭력적 성표현, 특히 성폭력을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내용이 더욱 유해하다는 점이 제시하고 있다. 50) 음란물과 청 소년 성비행 에 관한 다른 연구들의 결과도 위 연구원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 다. 51) 청소년 유해성과 관련된 음란물에는 단순한 성욕의 자극이나 성폭력을 내용 으로 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형법상의 음란 개념보다 넓은 것으로 이해되기 도 한다. 52) 나. 음란물 규제를 통한 청소년 보호의 한계 1) 음란물의 유해성 정도 음란물의 청소년유해성의 내용에 관한 연구결과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음란물 접 촉보다는 음란물을 통해 형성된 여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가 결국 성비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음란물에서 뿐만 아니라 TV, 잡지 등 각종 언론매체, 학교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가진 여 성비하적 사회 문화적 환경이 반영된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음란 물자체가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3) 2) 특정 성도덕 강화의 문제점 성비행에 대한 영향력 외에 음란물의 청소년 유해성으로 논해지는 것은 대부분 성도덕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성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적 개방사회에서 일정한 합의의 도출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기의 성경험이나 혼전성행위, 동성애, 간통, 혼음 등 기타 기존에 비윤리적인 것으로 유해성이 긍정되는 성행위들도 개인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평가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어떤 성표현물(작품)이 청소년에게 어떤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판단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도덕관을 잣대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어느 성표현물이 청소년에게 어떠한 해악을 끼치느냐는 개개의 청소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54) 아동 청소년을 포괄적으로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 영향력 을 일반화시키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개인적 상대성). 둘째, 무엇이 청소년에게 유 해한가 그리고 그 수용한계는 어디까지인가의 문제는 시대마다 다르며, 이러한 시 50) 김은경, 대중문화의 선전성이 청소년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 15면 이하. 51) 정상적인 가정의 청소년들도 상당수가 음란물에 접촉하고 있으나 비행까지는 발전되지 않지만, 기능적으로 문제 있는 가정의 청소년들이 음란물을 접촉하게 되면 비행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정 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김준호/김혜원, 음란물과 청소년 성비행, 건전한 청소년 성문화 창출을 위한 서 울시민 대토론회 발표자료집(성문화와 성폭력에 미치는 음란물의 영향), 한국성폭력상담소1997.10, 44면 이 하). 52) 박용상, 표현의 자유와 음란규제 및 청소년보호, 헌법논총 제14집, 14면. 53) 기타 입시위주의 반교육적인 학교체계, 빈부격차로 인한 청소년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 절대빈곤으로 인 한 교육기회 자체의 박탈과 생활의 불안정 등이 더 심각한 청소년비행의 원인이라는 견해로는 이형근, 표현의 자유와 매체물에 대한 규제-청소년 보호법안 검토, 이달의 민변, 특집1:표현의 자유와 법, 1996.12, 12면. 54) 즉 청소년의 가정환경, 사회환경, 교육, 성장배경, 연령, 발달정도 등이 해악의 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 11 -
간적 종속성은 에로티즘과 성관련 분야에서 더욱 특징적이다(시간적 상대성). 참고 로 독일의 경우 1962년의 판결에서는 혼전성교를 명백히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 로 청소년유해성을 긍정했지만 오늘날은 이러한 이유로 청소년유해성을 파악하지는 않는다. 55)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언론매체 등을 통해 성에 관한 지식을 이른 나이부터 습득하기 때문에 일정한 내용의 성표현물이 주는 충격은 과거보다 적으리 라 예상된다. 셋째, 청소년유해성 개념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즉 국가의 위 치 및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같은 국가라도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대도시 와 농촌이 다를 수 있고, 특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는 유해성의 폭이 더 욱 넓으리라 본다(공간적 상대성). 3) 청소년의 자율성 존중 음란물의 유해성으로부터 아동 청소년을 보호해야 함은 바로 국가가 미성년의 국 민들로 하여금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인간상에 맞게 성장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동 청소년이 사회공동체내에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 있 는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56) 그렇다고 해서 아동 청소년을 권위적이고 후진적인 정치문화 속에서 여전히 타율적 인 보호 규제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 역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헌법상 보장된 모든 기본권의 주체이며, 단지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미성숙을 이 유로 일정한도 내에서만 기본권행사가 제한될 뿐이기에, 필요이상의 제한은 아동 청 소년의 인격적 주체성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89년 유엔이 선포한 아동 청소년권리에 관한 국제협약(A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57) 제12조 의견존중의 원칙(Respect for the child's opinion)은 아동이 자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관하여 스스로의 견해를 자유로이 표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특히 이 원칙은 아동 청소년의 의견표명권의 보장에 있어서 그들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 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며, 58) 성도덕의 형성 이나 성문화의 향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4) 음란물과 청소년성비행간의 인과관계 입증의 결여 음란물의 청소년유해성의 입증, 즉 음란물과 청소년성비행간의 인과관계 존부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 없다. 59) 관련 법령이나 연구들의 경우에도 55) Vlachopoulos, Spyridon,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41면. 56) 김선택, 아동 청소년보호의 헌법적 기초-미성년 아동 청소년의 헌법적 지위와 부모의 양육권, 헌법논총, 제8 집, 1997, 84면 이하. 57) Commission of Human Rights in UN Economic and Social Control : 'The Sale of Children, Child Prostitution and Child Pornography', 1998(류은숙 역, 아동매매, 아동매춘 그리고 아동포르노, 유네스코포 럼, 1998 가을, 90면 이하). 58) 김태천, 아동권리협약, 국제인권법, 제1호, 1996, 187면. 59) 우리나라의 경우 공격적 표현물, 폭력물의 영향에 관해서만 약간의 실증적 연구가 있을 뿐이고, 성표현물 또 는 선정성의 영향에 관해서는 아직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 YMCA나 YWCA 등 각종 청소년 및 여성단 - 12 -
당연히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전제하고 진행된 것이지, 인과관계를 입증 하는 작업은 아닌 것이다. 60) 사실 행동의 동기 라는 심리적 요소가 작용하는 부분 이기에 인과관계의 명백한 입증자체가 처음부터 어려운 점도 있다. 특히 청소년유 해성의 문제를 윤리적 측면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윤리적 관점 은 대중매체가 아동 및 청소년의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확실한 과학적 인식을 결여하고 있기 마련이다. 61) 결국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적인 가능성 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단순한 청소년보호의 이익 과 표현의 자유 라는 이익의 충돌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보호할 가능성 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현실적인 침해 의 비교형량이 남는 것이다. 62) 따라서 언제나 청소년의 보호에만 손을 들어줄 것이 아니라 개별사안에 따라 신중한 이익형량이 필요하리라 본다. 5. 소결 음란물죄의 보호법익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성도덕을 형법으 로 보호하고자 하는 시도는 국가에 의한 윤리의 강제로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덕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전제나 조건이 아니라 그 목표이므로 형법의 법익이 되기 어렵고, 63) 윤리는 법적강제가 아닌 자율적 통찰에 의해서만 성장하는 것이기 에 법은 이 영역에서의 부도덕을 감수해야 하리라 본다. 64)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실질적 의미의 범죄는 다른 세계관이나 다른 도덕관을 가졌기 때문이 아 니라, 어느 행위로 인해 사회적 공동생활 자체를 위한 여러 조건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침해된 경우에야 비로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65) 한편 음란물이 여성의 인격권(평등권)을 침해한다거나 강간신화를 조장함으로써 성범죄유발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음란물이 그 원인이 아니라 오랜 역사 를 가진 여성비하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결과물일 뿐이며, 그 위험성이 실제로 입증 되지 않은 현시점에서는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고, 이러한 가정만으로 형사규제를 체에서 대중매체의 선정성 문제를 모니터링한 조사결과들 및 이에 관련한 단편적인 글들이 있으나. 이러한 보 고서들은 음란물의 영향력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적 표현물의 유해성 이라는 선험적 가 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어, 여전히 과학적 경험적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이은경, 대중문화의 선정성이 청 소년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 25면 각주5) 참조). 60) 음란물과 청소년의 비행간의 인과관계의 입증은 대부분 미국의 심리학적이 연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의 문화가 선정적이고 대중적이며, 극도의 개인주의화로 인하여 사회구성원간에 정서적 공동의식이 매우 단절되어 있는 사회의 연구결과를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이형근, 표현의 자유와 매 체물에 대한 규제- 청소년 보호법안 검토, 11면). 61) 이러한 과학적 경험적 입증의 결여는 관련 영역에서 가치상대주의 및 다원주의적 사고를 초래하기도 한다. 독일과 같이 가치상대주의 및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어느 성표현물의 청소년유해적 성격이 극히 예외적이고 심각한 경우에만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Vlachopoulos,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41면). 62) 이형근, 표현의 자유와 매체물에 대한 규제- 청소년 보호법안 검토, 이달의 민변, 특집1표현의 자유와 법, 1996.12, 11면. 63) Marx, Zur Definition des Begriffs 'Rechtsgut', 1992, 84면 이하. 64) 동일한 관점에서 형법에 의한 윤리교육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시민들의 윤리적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은 이상돈, 형법의 근대성과 대화이론, 18면. 65) Zipf, Heinz, Kriminalpolitik, 1980(김영환 외 2인 공역, 형사정책, 한국형사정책연구원, 1994, 177면). - 13 -
한다면 이는 형법의 법익보호사상에도 반하리라 본다. 형법이 아닌 올바른 성교육 과 차별적인 성문화의 개선, 필요한 경우 행정규제 등이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있 다는 점에서 형법은 한걸음 물러서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법과 도덕의 분리, 다른 적절한 수단의 선택은 자유법치국가에서 형법이 사회통제의 최후수단이어야 한다는 보충성원칙에도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음란물규제가 유의미한 부분은 바로 원치 않는 성인(성적수치심 보호) 과 청소년이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와 관련해서 앞서 지적한 요소들을 고려할 때, 다소 과도한 노출이 있거나 비윤리적 내용이라 평가받는 성표현물이라도 일정 연령 이상의 청소년이 접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인다. 청 소년이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예술 문화를 향유할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보다 는, 청소년 자신의 판단이나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접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 는 것이 그들의 인격적 주체성을 존중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청소년들이 성인들과 같은 내용의 영상, 활자매체를 보고, 듣고, 읽으면서 성장하여 그 식견이나 정서적 발달이 과거 기성세대의 청소년기보다 매우 일찍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66) 여러 연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이미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초중학교시기에 음란물을 음성적으로 접하고 있으며, 67) 오늘날 인터넷 의 발달로 더욱 그 접근이 용이해졌음을 고려할 때 과거와 같은 일률적인 금지는 규범과 현실간의 괴리를 더욱 넓힐 뿐이며, 청소년의 규범에 대한 신뢰의 약화도 함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68) III. 음란 개념의 명확성 여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다수의 학설 및 판례가 음란물죄의 보호법익을 선량한 성풍속 등의 성도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상, 음란 개념 역시 추상적으로 정의 내 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상판결의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 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 69) 과 같 은 음란의 정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느 성표현물이 음란한가 여부를 확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므로 법관의 자의적인 법적용을 막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70) 법치국가에서 형법의 법익보호 과제는 고도의 정형화된 66) 청소년의 성적조숙경향을 참작하여 미성년자보호연령의 인하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견해는 임웅, 비 범죄화의 이론, 99면 이하. 67) 김준호/박해광, 음란물과 청소년 비행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163면; 정완, 사이버공간상 불법 유해정보의 합 리적 규제방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5, 31면 이하. 68)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꼬집은 글로는 박종성, 포르노는 없다, 2003. 참고로 오스트리아 음란물규 제법은 원칙적으로 영리목적 음란물죄만을 처벌하지만, 16세 미만자에 대한 음란물의 경우 영리목적이 없어 도 처벌하고 있고, 독일형법은 18세 미만자에 대한 음란물의 제공 양여 광고 등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69) 대판 1995. 6. 16, 94도2413; 대판 1997. 8. 27, 97도937; 대판 2000. 10. 27, 98도679; 대판 2005. 7. 22, 2003도2911 등 다수. 70) 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1992, 31면; 임웅, '성범죄의 비범죄화론', 성균관법학, 제2호, 1988, 72면 이하. - 14 -
모습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특히 명확성원칙은 시민의 자유이익의 보장이라는 법적 안정성의 확보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71) 음란물죄와 관련하여 이러한 정형화 과제는 개인이 생산 또는 판매 구입하고자 하는 성표현물이 음란물에 포함되는가 여부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형사제재를 받게 될는지 여부를 예견할 수 있을 때 실현될 것이다. 1. 음란 개념 및 그 판단 기준 가. 전체적 고찰방법 기준 대상판결의 판결요지에서 보듯이, 기존의 음란개념의 추상성과 불명확성을 극복 하기 위해 법원은 당해 표현물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 서술의 정도 와 그 수법, 묘사 서술이 그 표현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거기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 서술의 관련성, 표현물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 적 자극의 완화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표현물을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 로 그 표현물을 보는 사람들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느냐의 여부 등 여러 점을 고려 하여야 하며,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해당 작품의 부분만이 아닌 전부를 기준으로 해서 출판(전시 상영) 장소나 독자(관중)의 부류와 같은 부수적 사정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 구하는 다수설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전체적 고찰 방법). 72) 그러나 음란성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 예술의 자유, 문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 가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명 화로 인정되고 있는 고야의 나체의 마야 를 음란물로 평가하거나, 대상판결에서 일 부 작품들이 음란물로 인정된 것을 볼 때, 전체적 고찰 방법 역시 자의적 법적용의 위험을 떨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제가 된 작품들을 보고 성욕을 느끼 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기준으로 음 란성을 판단한다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음란성의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다. 73) 판례나 학설의 주장처럼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사실 법적 용의 자의성을 무한정하게 허용할 뿐이라는 점은,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이 하급심법 원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내세운 작가적 의도 (예를 들면 그대 행복한가 라는 문 71) 김일수, 형법총론, 39면; 배종대, 형법총론, 46면. 명확성원칙은 이론적으로 볼 때 법익보호원칙과 서로 제한 하는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기도 하다(이상돈, 형법의 근대성과 대화이론, 94면 이하). 72) 한편 대법원은 나체의 마야사건(대판 1970.10.30, 70도1879) 과 사방지사건(대판 1990.10.16, 90도1485) 에서 상대적 음란개념 을 따른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석되고 있는데, 즉 음란성 판단에 있어서 동일한 내용의 물건이라도 그 외에 기타의 부수적 사정, 예를 들어 작가나 출판사의 의도, 판매 및 선전방법, 대상독자의 제 한성 등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세계적인 명화나 명작으로 인정된 작 품이더라도 용도에 따라서는 음란물이 될 수 있다. 상대적 음란개념은 전체적 고찰방법의 한 요소로 평가될 여지가 있으므로(장영민, 음란물죄에 관한 약간의 고찰, 고시연구, 95.2, 44면), 별도의 논의는 생략하기 로 한다. 73) 배물성욕(fetishism)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성행위가 직 간접적으로 묘사된 거의 모든 고전작 품들(심지어 성경(아가서)까지)과 나체사진이 실린 의학서, 성교육서등이 음란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 15 -
구를 통해 보통 사람을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 당혹스럽게 하겠다는 것)나 홈페이지 의 전체적인 구성, 독특한 전개방식, 오늘날 우리사회의 다분히 개방된 성관념 등 을 고려 판단했음에도 상반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 사회통념과 평균인 기준 전체적 고찰 방법이 안고 있는 자의적 법적용의 위험은 법원이 사회평균인 의 입 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 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경우 감소되어야 할 것이지만, 앞서 보호법익에 관한 논의에서 살핀 바와 같이 사회통념 의 구체적 내용은 그 기준이 되는 평균인이 확정되지 않는 한 공허한 기준에 머무 르기 쉽다. 사회평균인의 확정에 있어서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음란물들이 널리 유통 소비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들 다수의 소비자를 평균인에서 배제시키는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특히 평균인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성의 향 유에 있어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을 전제로 하기 쉽상인데,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구별이 허용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법원의 가치 충전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규범적 사항이며, 법원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를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필자가 사회통념 평균인이라는 법언어의 불명확성 자체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법언어의 다의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형법의 불명확성은 형법의 현실 관련성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산물일 뿐만 아니라, 사건을 심판할 때 개별적 정의 를 지향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곧바로 명확성원칙의 침해라고 단정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74) 오히려 음란물죄와 관련하여 정상적 성적정서라는 애매하고 비합리적인 계기와 결합하였다는 점에서 명확성원칙의 침해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75) 그런 점에서 대상판결에 대한 판례비 평에 제기된 어느 시민단체의 다음과 같은 물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주비엔 날레 작품심사위원들과 5.18 자유공원 전시품 심사위원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와 5.18 자유공원내 미술작품들을 돌아보며 김인규 교사의 우리 부부 사진에서 별 성 적 흥분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예술가적 혼이나 실험정신을 감지했던 우리 사회의 일반보통인은 그럼 다 음란한 마음을 품은 음란의 동조자들이란 말인 가. 76) 다. 전문가의 의견 존중 음란성이 주로 문제시되는 영역은 소설이나 영화 등 예술 분야이다. 예술성과 음 란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대법원은 양자의 양립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고, 다만 예술성에 의해 음란성이 완화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이 점은 대상 판결의 판결요지 2 에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77) 예술성이 인정되는 작품을 음란 74) 배종대, 형법총론, 68면 참조. 75) 동일한 관점에서의 비판으로는 임웅,비범죄화의 이론, 91면. 76) 판결비평 광장에 나온 판결 2005-3, 4면. - 16 -
물로 보아 생산 및 판매 방영을 금지하고 관련자를 형사처벌하는 경우 헌법상 보장 된 예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칼자루를 쥔 법관 의 대부분은 예술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그리 높지 않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 현실에서 관련 전문가의 의견 청취가 적절한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 다. 78) 그러나 시대적으로 새로운 양식의 예술은 예술전문가 들 혹은 동료예술가들로부 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79) 특히 현대예술의 경우 새롭고 모험적 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 평가의 어려움 역시 매우 클 것이 다. 80) 무엇보다 예술비평가나 학자 등의 전문가들의 가치평가 역시 주관적이고, 중 립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그들 상호간의 의견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 들 전문가들의 감정은 참고할 만한 견해가 될 수 있을 뿐 구속력 있는 기준은 될 수 없고, 81) 실제 사법판단에 있어서도 종종 예술전문가들의 감정이 의심스러운 경 우가 있다. 82) 따라서 예술전문가들의 역할은 문학텍스트의 해석이나 예술의 새로운 형태 경향에 대하여 정보를 주는 일에 국한시켜야 할 것이지, 83) 예술성의 유무나 정 도를 심사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개인이 누리는 예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높 고, 84) 또한 국가가 예술전문가(혹은 전문가단체)를 공정하게 선정하는 일 자체도 어렵겠지만, 선정된 전문가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비예술로 판정한다면 이는 예술다원주의(Pluralität der Kunst)에도 부합하 지 않을 것으로 본다. 85) 라. 소결 77) 문학성 내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므로 어느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 내지 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다만 그 작품의 문학적 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 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대상 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대판 2000. 12. 27, 98도679; 대판 2002. 8. 23, 2002도2889; 대판 2005. 7. 22, 2003도2911) 78) 이은영, 법여성학 강의, 2004, 232면; 조국, 형사법의 성편향, 274면. 79) 오늘날 위대한 예술로 평가받는 작품들도 당대에는 음란 하다거나 비기독교적 이라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로댕의 키스, 뒤러의 아담과 이브 등이다. 이 외에도 자신들의 작품 때문에 형사문제화된 예술가들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막스 에른스트, 하인리히 하이네, 입센, 에리히 케스트 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Erhardt, Kunstfreiheit und Strafrecht, 17면 이하 참조). 80) Vlachopoulos, Spyridon,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82면. 81) 장영수, 예술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장의 의의와 한계, 102면; Erhardt, Kunstfreiheit und Strafrecht, 80면; Vlachopoulos,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83면. 82)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의 항소심(서울형사지법 93노446)에서 검찰측과 피고인측에서 각각 추천한 감정인 두명 모두 음란성을 부정하는 감정서를 제출하였는데, 재판부는 다시 다른 감정인들로 하여금 감정서 를 제출케 하여 감정인 세명중 두명은 음란성이 긍정된다는 취지로, 나머지 한명은 음란성이 부정된다는 취지 로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83) Vlachopoulos, Spyridon,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83면. 84) 특히 그 논거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체하는 예술(또는 학문)의 옷을 입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추구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보수적 성향에 의한 성적 소수자의 박해)에서 나온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장 된 이익정치(verkleidete Interessenpolitik) 로 특징지우고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견해로는 Schünemann, Bernd, 'Kritische Anmerkungen zur geistigen Situation der deutschen Strafrechtswissenschaft', GA, 227면 이하. 85) Vlachopoulos, Spyridon, Kunstfreiheit und Jugendschutz, 84면. - 17 -
이처럼 음란성 개념의 추상성과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기 준들 또한 구체적인 사안의 적용에 있어서는 객관성의 담보가 어렵기 때문에 음란 개념의 불명확성을 제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형법이 음란 성과 같은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개념(규범적 개념)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현행 형법에서와 같이 일반인이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워 자기행위의 가벌성 여부를 미리 예견하기 어려운 정도로 불명확하다면 이는 형법규범으로서의 정당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음란개념의 불명확성은 본죄의 보호법익이 선량한 성풍속이 라는 법률외적인 규범영역, 즉 형법이 결별을 선언해야할 도덕(또는 사회윤리)이라 는 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보호법익의 내용이 불확정한 상태에서 는 이에 대한 침해 역시 불확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원 적인 사회에서 특정집단의 사회윤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명확 한 행동지침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86) 결국 현행 음란물죄는 그 보호법익의 설 정과 불명확한 법언어로 인해 국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위험이 높으며, 대상 판결도 그와 같은 한계를 전혀 극복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IV. 음란물의 형사규제의 합리성 검토 1. 정보통신매체의 발달과 심화된 집행의 결손 현행 음란물죄의 존속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큰 요인은 바로 집행의 결손이 다. 87) 오늘날 낙태죄나 마약범죄, 환경범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행의 결손이라는 문제가 만성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음란물규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 로 보이는데, 이는 인쇄술이나 오늘날의 인터넷 등 각종 기술의 발달과도 큰 관련 성을 갖는다. 음란물은 항상 새로운 매체를 적극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음란 물은 책과 잡지의 형태로 대중화되었고, 88) 이어 발명된 사진술은 누드화를 확산시 켰으며, 그 후 등장한 비디오 등 전자미디어는 더욱 빠른 속도로 더 많은 대상층에 음란물을 전달하는 매체로 이용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개인용 컴퓨터와 CD복제 술의 확산이 개인에 의한 음란물의 불법복제를 가능케 했고, 이후 등장한 인터넷 등 정보통신매체의 발달은 정보의 바다 인 인터넷을 음란물의 바다 로 만들기에 충 분했다. 이제 음란물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지 않더라도, 한번의 클릭만으로 음란사이트로 연결해주는 스팸메일이 하루에도 수십통씩 날아드는 현재의 상황 속 86) 같은 견해로는 Zipf, Heinz, 형사정책, 162면 이하. 87) 여기서 '집행의 결손(Vollzugsdeifizit)'이란 법률이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뿐 만 아니라 그 적용이 매우 불균등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Hassmer, Winfried, Kennzeichen und Krisen des modernen Strafrechts, ZRP 1992, 378면 이하(이상돈(역), 현대형법의 위기, 형법정책, 1998, 202면)) 88) 현대적 의미에서의 음란물(법률적 예술적 범주로서의 포르노그래피)은 19세기에 들어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 했는데, 16세기에서 18세기에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음란물이 인쇄문화의 전파에 힘입어 서서히 별개의 범주로 출현했다고 한다(Hunt, Lynn,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12면). - 18 -
에서, 누구라도 음란물 단속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거나 또는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9) 대상 판결에서처럼 가끔씩 행해지는 단속 과 처벌은 일회적인 의미만을 갖게 하고, 그물망수사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한다. 2. 상징형법으로서 갖는 음란물죄의 허구성 이러한 집행의 결손은 음란물죄가 갖는 상징형법 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90) 매우 효과적인 법률이라도 상징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상징형법이라는 이유 만으로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겠지만, 91) 규범의 외관(선언기능)과 실제 (잠재기능)가 일치하지 않고, 잠재기능(latente Funktion)이 선언기능(manifeste Funktion)보다 클 때 비난받을 만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음란물죄의 경우, 그 규제를 통해 선량한 성풍속의 보호라는 선언적 기능은 사실 상 거의 달성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잠재적 기능(즉 검열을 통한 국가권 력의 우위확인, 92) 약화된 정치적 위상의 반전, 특정계층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함으 로써 얻는 정치적 이익 등)이 우선시 되고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93) 이 경우 형 사사법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파괴되어 형법규범의 불안정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3. 음란물의 형사규제가 갖는 비합리성, 비실용성 그리고 비효율성 형사처벌은 가장 가혹한 수단을 지니는 국가행위이기 때문에 합리성, 실용성, 효 율성과 같은 실행원칙들이 적용된다. 94) 합리성 을 선험적 또는 개인윤리적으로만 용인될 수 있는 요청들을 형사정책의 영역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95) 현행 형법상의 음란물죄는 우리 사회의 특정 계층의 성윤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비합리 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음으로 실용성 은 형사사법을 형성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실제적인 적용가능성이 하나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며, 96) 같은 맥 89) 특히 P2P 방식을 이용한 음란물 공유는 음란물규제에 결정타를 날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2P(peer to peer)는 다수의 컴퓨터(peer)들이 서로 직접 연결되어 동영상, 텍스트파일 등의 정보자원을 공유하는 시스 템으로, 감시나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2P방식이용자의 규제에 대하여는 이천연, P2P방식 이 용자 및 제공자의 형사책임, 형사정책연구(2004/가을), 267면 이하를 참조할 것. 90) 상징형법 은 아무런 효과없이 금지된 행위를 단순히 억압하고 줄이는 규범으로서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볼 땐 비합리적인 법률이지만,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일정한 기능을 갖고 있는 법률을 의미한다(배종대, 정치형법 의 이론, 법학논집, 제26집, 고려대학교법학연구소, 1991, 243면 이하 참조). 91) 배종대, 정치형법의 이론, 247면 이하. 법률의 상징성 이란 존재 부존재의 양자택일적인 개념이 아니라, 좀더 많거나 적음을 뜻하는 비교개념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살인죄에도 사람의 생명에 대한 주의를 상징적으로 강화 하고자 하는 예방적 기대가 나타나 있다(Hassemer,, Symbolisches Strafrecht und Rechtsgüterschutz, NStZ 1989, S.556). 92) 우리나라에서의 검열의 성격과 역사에 대해서는 이상돈/이소영, 법문학, 54면 이하. 저자들은 문학을 검열하 는 법이 문학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를 비판함으로써 법과 문학의 교류방식을 개선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법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을 법문학의 과제중 하나로 꼽는다(같은 책 77면). 93) 검열이 갖는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상돈/이소영, 법문학, 52면 이하, 70면 이하; 박종성, 포르노는 없다, 2003. 94) Zipf, Heinz, 형사정책, 88면. 95) Zipf, Heinz, 형사정책, 89면; 김일수, 형법개정과 제재제도의 개선방향, 10면. 96) Zipf, Heinz, 형사정책, 89면 이하. - 19 -
락에서 형법규범의 해석에서도 규범의 절차적인 관철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 루어져야 하는데,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현재 음란물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 아 집행의 흠결이 크다는 점과 기존의 음란개념의 확장된 해석은 실용성의 결여를 의미한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의 원칙이 추구하는 바는 법규범이 도달하 고자 하는 목표를 단순하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97) 또한 이를 위해서는 규범의 명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규범의 인식가능성은 법적 불안정성에 의한 과도한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형법의 보장기 능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98) 음란개념의 불명확성은 이점에서도 문제가 되 는 것이다. 더 나아가 행위의 당벌성 또는 사회적 유해성이 미약한 범죄를 경미범 죄 라 볼 때 99), 음란물죄와 같은 경미범죄를 비범죄화 100) 하는 것은 형사사법제도의 부담을 덜어주고, 한정적인 인력과 수단을 좀 더 중한 범죄와 위험한 범죄자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결국 형사사법의 효율(기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 요하리라 본다. V. 결론 및 대안 결론적으로 선량한 성풍속의 보호를 목표로 삼고 있는 현행 음란물죄는 그 보호 법익의 부적절성과 음란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정당화되기 어렵고, 이를 기준으 로 삼고 있는 대상 판결 역시 그와 같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행 음란물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 및 원치 않 는 성인의 보호 등 실질적인 법익의 보호 및 개념의 명확성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 다. 그 구체적인 대안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본 판례평석이 아 무런 구체적 대안도 없는 비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필자의 미완의 견해나마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보호법익과 관련하여서는, 사회유해성 의 관점에서 성욕을 자극하고 성적수 치심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성표현물이라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생산 배포를 허용하 되, 원치 않는 성인과 아동 청소년에 대한 배포만을 처벌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 다. 101) 원치 않는 성인에 대한 배포 는 성인의 원하지 않는 성표현물에 노출되지 97) Zipf, Heinz, 형사정책, 90면. 98) Zipf, Heinz, 형사정책, 91면. 99) 임웅, 비범죄화의 이론, 법문사, 1999, 43면. 100) 비범죄화는 좁은 의미에서는 범죄화에 대칭하는 말로서 지금까지 형법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던 것을 폐지 하여 범죄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말하지만(배종대, 형사정책, 1999, 98쪽), 넓은 의미로는 법정책상의 변화로 말미암아 국가형벌권 행사의 범위를 축소시킬 의도로 일정한 형사제재규정의 폐지 또는 부적용이 일 어나거나 형사제재를 보다 가볍게 하려는 모든 시도 를 뜻한다(Council of Europe, Report of Decriminalisation, Strasbourg 1980(임웅, 비범죄화의 이론, 6쪽 재인용). 비범죄화는 다시 법률상의 비 범죄화(De jure decriminalisation)와 사실상의 비범죄화(De facto decriminalisation)로 나뉘기도 한다.(배종 대, 형사정책, 1999, 99쪽 이하). 101) 장영민, 음란물죄에 관한 약간의 고찰, 51쪽. 이러한 관점이 서구의 몇몇 나라의 입법례와 판례에 널리 반 영되어 있는데(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169면 이하), 대표적으로는 청소년보 호와 원치 않는 성인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법을 개정한 독일형법을 들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주승희, 석 - 20 -
않을 자유 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근래 스팸메일규제와 관련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 는 정보적 방어권(원치 않는 정보를 받지 않을 권리) 에 포함되어, 그 상위개념인 (정보)프라이버시권의 침해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보호의 경우, 음란물의 청소년유해성의 경험적 입증은 어렵지만, 청소년보호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청소년 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 형법적 규제의 정당성이 도 출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102) 물론 그 위험성의 판단 및 규제 범위에 있어서 기존 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도덕관을 잣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 시간적 공간 적 상대성을 고려해야 하며, 청소년의 인격적 주체성을 고려할 때, 청소년 자신의 판단이나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 요하다고 본다. 음란 개념의 재구성과 관련하여, 우선 헌법재판소 입장의 수용 103) 과 포르노그래 피용어로의 대체 104) 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 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 이라는 헌법재 판소의 정의는, 헌법재판소가 내세운 음란개념의 판단기준인 예술성의 유무나 정치 성 유무를 심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일 뿐만 아니라 자칫 법관의 주관적인 예술관이나 정치관, 외부의 어떠한 정치적 압력 등으로 자의가 개입할 우려가 높아 위험하기까지 하고, 이는 학문성의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 렵다. 대상판결의 경우에도 피고 미술교사는 자신이 올린 사진들은 평소 학생들에 게 교육하는 내용과 상통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반면, 대법원은 학문성 여부에 대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러한 사진들이 비교육적이라고 판 단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회적 가치도 없이 인간을 단 순히 동물적인 성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노골적인 성표현물 이라는 가치판단의 결과를 내재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 라는 용어의 경우, 기존에 음란물로 분류되었 던 단순나체묘사 성표현물의 생산이 허용된다는 면에서는 탈윤리적 형법에로 진일 보한 점이 인정되지만, 소프트코어 와 하드코어 의 구분 잣대가 여전히 불명확하다 는 단점이 있고, 같은 노골적 성표현물이라 하더라도 표현대상과 방법, 표현내용, 매체에 따라 상이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따라서 법적 규제에 있어서도 각각 의 요소를 고려한 차별적인 접근이 요구되어지는데, 이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 다. 105) 따라서 필자는 현행형법상의 음란 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음란성 여부 의 판단기준을 선량한 성풍속(성도덕)에 두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 위반 여부 사학위논문, 68면 이하). 102) 같은 견해로는 Münchner Kommentar-Hörnle, Strafgesetzbuch(Bd. 2/2), 184, Rd. 2, 2005, 103) 헌재 1998.4.30, 95헌가16. 104) 김영환/이경재, 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 144면. 105) 같은 견해로는 김준호/김은경, 음란물의 유해성과 그 규제실태에 관한 연구, 97면 각주 48. 양 개념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자세한 내용은 주승희, 석사학위논문, 78면 이하를 참조할 것. - 21 -
를 기준으로 삼는 헌법합치적 음란개념 을 제안하고 싶다. 즉 음란물을 헌법적 가 치에 반하는 내용의 성표현물이나 노골적 성표현물 을 총칭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내용의 성표현물이란 대표적으로 인간 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헌법 제10조에 반하는 것 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강간 등 성폭력을 미화하는 내용의 성표현물은 인간의 존엄성의 발현형태인 인격권(구체적 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음란물에 해당한다. 수간이나 아동성폭행 을 미화하는 성표현물 등도 헌법가치에 반한다는 점에서 음란물에 해당할 것이다. 헌법적 가치 라는 기준 역시 규범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대법원이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선량한 성풍속 만큼 불명확해 보일 수 있다. 그 러나 헌법합치적 음란개념 은 기존의 음란개념과 달리 윤리성이나 예술성, 정치성, 학문성 등 다양하고 난해한 가치판단의 요소를 제거하였고,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성윤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존속과 발전이라는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합의가능한 합리적인 목표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이다. 특히 보수주의적 (또는 절대적) 성윤리에는 반하는 행위태양이 헌법적 가치에 위반되지 않는 것으로 헌법합치성을 띌 수 있으므로 개념의 폭은 더 좁다. 예를 들어 혼외성관계를 미화 하는 성표현물은 혼전순결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적 성윤리에 반하지만, 인간의 존엄 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합치적이다. 이러한 헌법합치적 음란개 념은 헌법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규범적 개념으로서 그 외연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동성애나 근친혼에 대한 국내외적인 인식의 변화가 그 예이다. 헌법합치적 음란개념은 기존의 음란물죄로 규제되던 대부분의 성표현물의 생산 판 매의 비범죄화를 전제하는 것이며, 기존의 음란개념의 정의와 달리 형사규제보다는 주로 행정규제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성표현물을, 어 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요구되어진다. - 22 -
Towards a more rational, justifiable and efficient regulation of Pornography -A Critical Note on the Supreme Court Decision 2003Do2911 Delivered on July 22, 2005- Ju, Seung-Hee 주제어 : 음란물(음란성), 청소년보호,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예술성), 선량한 성풍속, 페미니즘, 인격권, 강간신화, 헌법합치적 음란개념 Key words : Pornography, obscenity, freedom of expression, feminism, sexual moralism, liberalism, sexual agression -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