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제 1장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 이것은 본서의 서론적 표현으로서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을나타 낸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말로 시작되는 여호수아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곧, 전에 모세가 죽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인해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한편여호수아는 110년을 향수하였는데(수 24:29), 그 동안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의통치권과 지휘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나 안 땅 분배에 중추적역할을 담당하였다(수 14-21장). 그로써 자신의 직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호 수아는백성들에 대한 권면을 마지막으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수 23:1-24:31).그런데문제는 막 상 여호수아가 죽고나자 그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사기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여 기록되었다. 즉 여호수아 사후 강력한 통치자가 없던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 들과 미처 정복치 못한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였다. 그러한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한 이들이 곧사사인 바, 사사기는 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서가 여호수하의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8,9에는 다시금 여호수아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이와 관련, 학자들 간에서는 1:1-2:9에 기록된 사건들이 여호수아 의 죽음 이전의 사건들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사건들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뉘고 있다.이에 관한 자 세한 내용은 1:1-20 강해, '본장에 기록된 가나안 정복 사건의 발생 시기 문제'를 참조하라. 여호 와께 묻자와 가로되 -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이러한 표현은 사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타난다(별18:5;20:18,23,28:삼상 10:22;22:10;23:2).구약시대에 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의뜻을 구했는데(출 28:30;민27:21;삼상28:6), 아 마 이때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Keil,Delitzsch).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 성들이 여호수아 사후하나님의 뜻을 물은 이유는 여호수하가 남긴 유업을 마저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즉 비록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 안식을 가졌다 주었지만(수 11:23;21:44;23:1) 아직도 가나안 땅에는 미정복지와 잔존 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의우상들이 존재 하고 있었다. 때문에 가나안 땅을 마저 정복하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사후 이스라엘 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것이다(수24:22-24).따라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이 이 일을 의 논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이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싸우리까 - ' 올라가서'에 해당하는 원어 '알라'(* )는 단순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 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대신 이는 수 8: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을 의 미한다(Lange,Keil & Delitzsch Commentary,Vol. II, p. 250) 때문에 Living Bible은 이를 '전쟁에 나가다'(go to war)로 분명히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질문 속에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던 모세나 여호 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아직도 여전히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는 많은 지역 (수 13:1-7 등)을 정벌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민족적 대과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가 먼저 가나안 족속의정벌에 나서서 백성들의 사기를 복돋워 주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 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가 선봉에 나서 라고 일러주셨다(2절). 가나안 사람 - 정확히 얘기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그곳에 거주하 고 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에 거주하던 '초기 원주민 들'(창 2: 5, 6)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즉시 이스라엘 족속들의 질문에 응답하셨 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여호와께 물은 행위가 옳았음을 가리킨다.이것은 사사 시대 전 반에 걸쳐 되풀이 되던 극심한 타락상과는 달리 사사 시대 초기에는 그래도 여호와 신앙이 유지되었음 을 보여 주는 일례이다. 이러한 사실은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동안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2:7)는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유다
가 올라갈지니라 - 여기서 '유다'란 '유다 지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미정복지 정 벌 전쟁에 이스라엘 여러 지파 둥 유다 지파가 먼저 출전토록명하신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우선 이스라엘 지파들 중 유다 지파의 수효가 가장 많았기 때문(민 1:27 ; 26:22)일 것이다(MathewHenry's Commentary, Vol. II, p.121). (2) 그러나 보다 근본 적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의 예언(창 49:8-12)을 통해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중 가장 탁월 한 지위를차치하리라 축복하셨기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1). 그러므 로 본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우선 출전 명령과 함께 과거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것(수 13:1)과 같은 승리의 약속도 함께 주고 계시는 것이다. 이 땅 - 이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 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해 주었으나 그들이 미처 정복하지 못한 탓에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미정복지 를 가리킨다(수 13:1-7).그런데 혹자는 이를 유다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땅만을 가리키는것으 로 보기도 하나(Bertheau),그 것은 지나치게 의미를 축소시킨 견해이다. 그 손에 붙였노라 - '붙였 노라'에 해당하는 원어 '나탄'(* )은 '넘겨 주다' 또는 '양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 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미 하나님의 작정하에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도록 계획되 어 있음을 의미한다.한편 성경에는 비단 민족간의 전쟁 뿐아니라(민21:2) 개인의 생명(16:23)도 하 나님께서 상대방의 손에 붙이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개인의 생명과 더불어 모든 국가의장래도 곧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1: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함께...싸우자 - 이처럼 유다가 그 형제 시므 온에게 가나안 미정복지 정벌 전쟁에 함께 출전할 것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시므 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자신의 분깃을 나누어 받았기때문이다(수 19:1-9).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행동을 같이 하여 자신들의 기업을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한편 시므온 지 파가 유다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분깃을 나누어 받게 된 까닭은 야곱 당시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과거 시므온은 자기누이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로 과도하게 세겜 사람들을 멸한 일이 있었다(창 34:25-29). 그러자 야곱은 이에 대한 징벌로 시므온 자손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다(창 49:5-7).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는바,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직전에 실시한 인구조사(민 26:14) 때 그 수가 가장적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축복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신 33장). 그리고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독립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유다 지파의 기업 중 일부만을 자신의 몫으로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수19:1-9). 하지만 본절 이하에 의하면 이처럼 열세한 상황에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 지파는 불평 불만에만 빠져 있지 않고, 유다 지파와 협력하여 가 나안 미정복지를 성공적으로 정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다 지파는가장 수가 많고 강한 지파 였으나(민 1:27;26:22)미약한 시므온 지파를 무시해 버리지아니하고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잘 유지 했음도 알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사사 시대 초기 당시는 아직 말기적 현상(20장)과는 달리 각 지파간 의 관계가 돈독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벌에 대한 열망으로 서로의 마음도 똘똘 뭉쳐져 있었다고 하겠다. 제비뽑아 얻은 땅 - 일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줄때 제비뽑기를 통하여 실시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각 지파에게 분배될 땅의 상태가 좋고 나 쁜 데 따르는 시비를 사전에 방지할 뿐 아니라 제비로 결정된땅은 곧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기업이 란 점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6:52-56 강해, '제비 뽑기'를 참 조하라. =====1:4 가나안 사람 - 1절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만 그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즉 이말은 성 경에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가지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 넓은 의미로는 1절에서와 같이 가나안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을 가리킨다(창 10:19).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시돈과 두로의 베니게 지 역 해변가와 요단 강계곡 및 평원에 살았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한 종족을 가리킨다<수 서론, 가나 안의 여러족속들>.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브리스사람 - 이 역시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하나이다(수 3:10;11:3;17:15;24:1).한편 '브리스'에 해당하는 원어 '페리지'(* )는 '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는 장소'라는 뜻의 '페라조트'(* )와 어원이같다(겔
38:11). 이로 보아 브리스 사람이란 요새화된 성이나 성벽이 없는 성읍, 또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가 나안의 한 종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성벽을 세우지않은 것은 그들의 거 주지가 주로 산지였으므로(수 17:15) 그지형 자체가 충분한 요새역할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 된다(Kalisch). 베섹 - 이 지명은 본절 외에 삼상 11:8에 딱 한번 언급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베 섹은 기브아와 길르앗의 야베스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곳은 유다 지파의 땅과 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베섹'과 동일한 곳은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올라간 베섹은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Rosenmuller). 따라서 여기서 오늘날의 '베즈카'(Bezqa)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혹자(Lange,P. Cassel)는 '베섹'(* ) 이라는 지명의 뜻을 '빛'(겔 1:14에는 '번개'로 번역되어 있음)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베섹' 이란모래가 많아 태양 빛에 반사되는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나 비약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1:5 아도니 베섹 - '베섹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개인 이름이 아닌 베섹 성읍 통치자의 칭 호이다. 이같은 칭호로는 애굽 왕을 가리키는 '바로'(출 1:11), 그랄 왕을 가리키는 '아비멜렉'(창 20:2) 등이 있다. 창26:1 주석 참조. 한편 혹자(G.E.Wright)는 이아도니 베섹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수10:1)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나 분명치않다. =====1:6 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 포로를 다룸에 있어서 이처럼 불 구로 만들거나 눈을 뽑아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민16:14;삼상11:2;왕하25:7). 이러한 형벌 은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었음은 물론, 실제적인 목적도지니고 있었다. 즉 엄지 손가 락을 자르는 것은 무기를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엄지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도망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MatthewHenry's Commentary, Vol. II, p.122). 그리고 눈을 뽑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실 례로는 일찍이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여(B.C. 331) 헬라의 포로가 되었을 때, 헬라인들이 포 로 들 의 수족과귀 따위를 잘랐던 사건을 들 수 있다(Lange). 아무튼 본절에서 아도니 베섹이 이같은형벌을 당 한 까닭은 일찍이 그가 동일한 방법으로 70명의 군왕들을 능욕했기 때문이다(7절). 비록 단 편적이기는 하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7 칠십 왕 -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왕에' 해당하는 '멜레크'(* )는 종종 일개 성읍의 통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창 14:1,2 ; 수10:3;12:9-24). 따라서 이들은 아도니 배섹 당시 각기 가나안의 군소 성읍을 관장하던군왕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 아 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 마치 개처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행위(마15:27)를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비참하기도 굴욕적인 대접 중 하나에 다름 아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 253).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 타인에게 가한 손상만큼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형벌이 주어지게 하는 동해 보복법(Rex Talionis)은 모세 율법 이외에 함무라비 법전에도 언급되어 있다<출 21:18-36 강해, 동해 보복법>. 이러한 사실을 볼 때아 도니 베섹의 이 한탄의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한 말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인과 응보( 因 果 應 報 )적 사상에 따라 자신이 처한 곤고한 상태를 한탄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이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예루 살렘으로 끌고 간 사실은 아도니 베섹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5절>의 근 거가 되기도 한다. 즉 라이트(G.E.Wright)같은 학자는 예루살렘이 아도니 베섹의 왕도( 王 都 )였기 때문 에 유다 연합군이 그를 그곳으로 끌고 간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추 측적 견해일 뿐 뒷받침될 만한객관적 증거가없다. =====1: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 예루살렘은 이미 여호수아 군대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 었으나(수 10:23,26)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절에서도 유다 자손
이 그 성읍을 치고 불살랐으나 역시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다(21절). 이러한 미정복 상태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다윗이 이를 정복함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삼하 5:6-9). 그런데 혹자는 이와는 약간 다 른 견해를 표명하기도 한다. 즉본시점에서 예루살렘은 유다 연합군에게 완전히 점령되었으나 유다와 시므온 두 지파의 인구가 전지역을 장악할 만큼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곧 다시 여부스 족속들이 예루 살렘을 차지해 버린 것이라고 주장한다(A.E.Cundall).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19절의 기록에 의거하여 여부스 족속 중 평지 거민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유다 지 파가 그 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아무튼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 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그곳에 성전이 건립됨으로 명실 공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부상하였다(삼하5:9). =====1:9 내려가서 - 유다 지경( 地 境 )의 북단 경계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남쪽 경계인 네 게브(Negeb)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산지와 남방과 평지 - 유다 지파가 기업으 로 받은 가나안 땅 지경(수5:1-12)의 지형상 특징 및 구조를 나타내 주고 있는 말이다. 이 중 산지, 즉 유다 산지는 해발 약800m에 달하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지경 내의 산들을 가리킨다. 그리 고 '남방'은헤브론과 가데스바네아 사이의 반사막(semi-arid) 지대로서, 일명 '네게브'라고도 불리운 다. 그리고 '평지'는 히브리어로 '쉐펠라'(* )라고 불리우는 저지대로서, 곧 지중해변의 해 안 평야와 팔레스탄 중앙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지역을 가리킨다 =====1:10 헤브론 -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0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해발 910여m 정도의 고도( 古 都 )이다. 오늘날 '엘 칼릴'(el-Khalil)로 불리우는 도시인데 상공업으로 유명하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창 13:18) 아브라함과 사라가 매장된 곳이기도 하다(창 23:19 ; 25:9). 그리고 후에는 다윗의 통치초기 7년 동안 유다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삼하 5:5). 또한 '연맹'이란 뜻을 가지고있는 이 고대 도시는 이스라엘에 정복된 후 이스라엘의 여섯 도피 성 중 하나가 된다(수 20:7)). 한편 헤브론은 갈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20절;수 14:6-15), 그 이유는 아마 헤브론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 때에 갈렙의 책임 지역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민 13:22 이하).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 헤브론에 거하던 거인족 아낙의 세 자손이다(20절;민 13가 22;수 15:14). 이 중 '세새'는 '애굽 왕 시삭' (왕상 14:25)처럼 '태양'을 의미하고 '아히만'은 이방 신인 '므니'(Meni)의 친구(사 65:11)를 의미한다. 그리고'달매'는 밭고랑을 각각 의미한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파괴되고헤브론왕 호함도 죽임당했었다(수 10:1-27,36,37), 그리고 드빌(11절), 아납 및 기타산지의 성읍들도 헤브론과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었다(수 11:21-23). 그러나 본절에 따르면 그 후에 아낙 자손으로 된 이 세 씨족이 헤브론을 재탈환했던것 같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를 다시금 정복해야 했었는데, 유다 지파 갈렙의 군대가 이를 재정복한 것으로 나와 있 다(수 15:13,14). 한편 이 세 씨족의 이름들은 당시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의 이름에서 본딴 것으 로 가나안 땅에 우상 숭배가 얼마나 만연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럇 아르바 - 헤브론의 본 래 이름으로 '넷으로 된 성읍'(테트라폴리스,Tetrapolis)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당시 서 로의 필요에 의하여 네 성읍이 하나로 연합한 데서 유래된 듯하다(Lange).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이 기럇아르바는 '연합' 또는 '연맹'이란 뜻의 '헤브른'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던 것이다(창 23:20). =====1:11 드빌...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 '드빌'은 헤브론의 남서쪽 약20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븍 당시 이곳에는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수 11:21). 이곳은 오늘날 '히르벳 라붇(Hirbet Rabud)으로 불려지는 지역과 거의 동일시되고 있다. 1968년부터 모쉐 코카비(Moshe Kokhavy) 탐사반이 이곳을발굴한 결과 가나안 정복 당시의 상 황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견되었다 한다. 한편 '드빌'의 본명인 '기럇 세벧' 은 '책의 도시' 또는 '기록의도시'란 뜻이다. 드빌이 본래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웠던 까닭은 그곳에 큰 도서관이나 문서 보관 창고 따위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 15 : 15 주석 참조.
=====1:12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 갈렙이 이처럼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을아 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고대의 포상( 褒 賞 ) 관습(삼상 17:25;18:17,27)을 따른것이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신앙의 용사를 사위로 맞이하려 한 갈렙의 신앙제일주의 사상이 작용하였던 것 같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16 주석을 참조하라. =====1:13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 본절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이 되며 갈렙은 그나스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KJV,NIV,RSV과 같은영어 성경도 따르는 바이다(Othniel the son of Kenaz,Caleb's younger brother). 그러나 공동 번역은 본절을 '갈렙의 동생 크나즈의 아들인 오드니엘'로 번역하고 있다.그에 따르면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가 되며 그나스 는 갈렙의 동생이자 옷니엘의 아비가된다. 이는 Living Bible이 취하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Caleb's nephew, Othniel,son of his younger brother Kenaz).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은 성경의 원문이 그 어느쪽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때문에 학자들 간에 는 옷니엘이 갈렙과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이 중대표적인 견해를 들자면 은 곧 다음과 같다. (1) 옷니엘은 갈렙의 이복( 異 腹 )동생이라는 견해(Bertheau):이는 갈렙이 '여분네 의 아들'(민 13:6;수 14:14)인 데 반해 본절에서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 에 근거하고 있다. (2)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라는 견해(De Wette, Ewald, Pulpit Commentary) : 이는 갈렙과 옷니엘간의 현격한 연령 차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서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다(수 14:10). 그러나 당시 옷니엘은혈기 왕성한 젊은 용사였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 사람은 형제간이 아니라 숙부와 조카 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옷니엘과 갈렙은 다같이 그나스 집안의사람들로서 친척이라는 견해(Lange) : 이는 민32:12에 갈렙이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아들'로 나와 있으며 본절에선 옷니엘이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오늘날 대체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 고 있는 견해는 두번째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 : 1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성경 에는 그나스란 이름과 관련하여 동명 이인( 同 名 異 人 )으로 에돔 사람 '그나스'(창36:11)가 나온다. 따라서 이 자를 옷니엘의 아비인 '그나스'와 혼동해서는 안 될것이다. =====1:14 악사가 출가할 때에...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 이는 이스라엘의 '모하르'(* )풍습 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모하르'란 시집가는 딸에게 아비가 주는 결혼선물, 또는 남자가 처 녀를 아내로 데려갈 때 장인에게 치루는 '대가'를 가리킨다. 성경에선 대개 이 둘중 전자를 가리켜 ' 빙물'( 聘 物 )이라 하고 후자를 가리켜 '빙폐'( 聘 弊 )라 한다<1 : 1-20 강해,빙폐와 빙물>. 물론 부모 가 결흔하는 딸에게 '모하르'를주는 경우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리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악사는 옷니 엘에게로 출가하면서 이 '모하르' 관습에 따라 아비에게 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악사가요 구한 밭이 어느 곳의 어떠한 밭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대개는 여타 밭과는 다 른 특정한 밭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8 주석을 참조하라. =====1:15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 KJV는 이를 '당신께서 내게 남쪽 땅을 주셨으 니'(for thou hast given me a south land)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악사가 밭을요구한 데 대하 여(14절) 갈렙이 '남방', 즉 '네게브'(Negeb) 땅을 준 것으로 이해하고서 행한 번역이다. 어쨌든 악사 가 출가하여 옷니엘과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곳은 네게브 지역이었는데, 그곳이 '드빌'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12절). 샘물도 내게 주소서 - 남방(Negeb)은 거의 사막과 같은 곳이었다(9절 주 석 참조).때문에 급수( 給 水 )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자들에게 있어 절대 중요한 문제였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악사였기에 그녀는 현명하게 아비에게 샘물도 요구한 것이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 을...두었더라 - 이 샘들의 위치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혹자는 헤브론 부근에 있 었다고 한다(Robinson). 그곳은 아마 옷니엘이싸워 정복한 드빌 땅과 헤브론 지역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는 헤브론 남방 약 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에 서 두 샘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Wycliffe). 아무튼 재치있고 현
명한악사로 말미암아 본래 가난한자였던 옷니엘은(Raschi)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후에 이스라 엘의 사사로 그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같다(3 : 9) 이에 관한 보다자세한 내용은 수 15 : 19 주석을 참조하라. =====1:16 본절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들 어왔음을 보여 준다. 민 10:29,30에 따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또는 르우엘)와 처남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자고 요청했으나호밥은 처음에 이를 거절했었다. 그 러나 본절을 통해서 볼 때 호밥은 후에 이같은 청을 수락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그의 처남 호밥은 원래 가나안원주민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 중 하나인 겐 족(Kenites)이다. 이 겐 사람에 대한 최초의 성서 기록은 창 15:19에 나타나며 발람의 신탁 속에 등장하는 '가인 사람'도 역시겐 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 24:21,22). 이들은 주로 홍해 부근, 즉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Aqaba) 만 일대에 거 주했었는데 점차 모압 경계선 북부(민 21:4),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까지 북상하였다. 아무튼 모 세 이후부터 이들 겐 사람은 히브리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출 2:15-22)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 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삼상 15:6;30:29). 그리고 본절에서는 이 겐 족이 유다 지파의 지 경내( 地 境 內 )에 거하므로서 이스라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종려 나무 성읍 - 일명 '향기의 도시', '달( 月 )의 도시'로도 불리웠던 여리고를 가리킨다(신 34:3;대하 28:15). 예루살렘 동북방 약27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인데,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종 려나무 성읍'(the City of palms)으로 불리웠다.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최초로 정복한 성읍이 기도 한 바, 이에 대하여서는 수6장을 참조하라. 한편 혹자들은 겐 족이 유다 지파와 처음부터 함께 아랏 남방의 헤브론과 드빌로 갔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종려나무 성읍은 헤브론에서 상 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리고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Cundall). 그러나본절에 보 면 겐 족이 처음에 머문 곳은 분명히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이며 그 후에 유다와 시므온이 남방 을 정벌할 때 아랏 남방으로 내려가 유다 백성과 함께 거주한것임을 알 수 있다(Hervey). 아랏 남방 - 아랏은 헤브론 정남쪽 2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성읍이다. 넓고 완만하게 경사진 황무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곳은 아브라함 당시 이미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N.Glueck). 한편 아랏과 여리고는 약 85km 가량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겐 족의 이주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 혹자는 '백성'에 해당하는 원어 '암'(* )이 '아말렉'과 첫 두 자음이 일치하며, 겐 족속이 아말렉 (* )과 깊은 연판이 있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들어(삼상 15:6), 여기서 '그 백성'이란 아말렉 을 가리키는 것이라고주장한다(Cundall). 그러나 이미 앞에서 유다가 언급되었고 '암'이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덧붙어 있으므로 '그 백성'이란 유다 지파를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도 겐 족 이 다윗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처음의 주장은 분명히 옳지 않다(삼상 30:29). =====1:17 스밧...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 스밧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그러 나 오늘날의 '텔 엘 밀'(Tell-ei-Milh)이거나 '텔 에쉬세리아'(Tellesh-Sheriah)인 것 으로 추정된다. 전자는 브엘세바에서 약 10km 정도, 후자는 약2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 다. 한편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스밧을 진멸한 뒤'호르마'라 칭하였는데, 이는 '완전히 파괴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읍의 파괴가 신들에게 언약의 맹세를 표하는 하나의 종교적 예식임을 암시하는 말 로서 당시 고대 근동에서 널리 행해지던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진멸은 잔인한 면도 있으나 전쟁에 뒤따르기 쉬운 것들, 즉 예를 들면 강간, 약탈 등의 추한 행위들을 미리 예방해 주는 이점도 있었다. 특히 유다 지파의 이러한 철저한 도륙은 그 땅에 뿌리박고있던 우상과이방 종교의 척결이란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깊다. 한편 호르마라고 불리우는 이 스밧은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지경내에서 얻 은 시므온 지파의 기업이었다(수 19:4).
=====1:18 가사...아스글론...에그론 - 아스돗, 가드와 더불어 블레셋의 5대 성읍으로 꼽히던도시들 이다(수 13:3). 이 중 가사(Gaza)는 예루살렘 남서쪽 80km, 지중해에서 내륙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아스글론(Ashkelon)은 가사 북쪽,아스돗 남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 였다. 마지막으로 에글론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가장 북쪽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유다와 시므온 연 합군은 남쪽에서부터 점차 북쪽으로북상하면서 블레셋 성읍들을 정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그곳의 거민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였는 바, 이들 성읍들은 다시금 블레셋의 장중에 들어갔으며 이후이스라엘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대적이 되었다(14:19;삼상 5:1,10;7:7,8). =====1:19 본절에서는 두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 신 앙 적 으 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9절)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고다른 하나는 불신앙 적으로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 내지 못한 사건이다. 철병거가 있으므로 - 인 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 족속(Hittites)에 의해서 였다(성경 총론,'구약과 고대 근동 문화' 참조).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창 23:3 ; 26:34)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재 무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재 무기 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다(삼상 13:2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 려워한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 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불신앙이라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에여호수아는 가나안족들에게 철병거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요셉 지파에서 주지시켰던 적이 있었다.(수 17:16-18). 그리고 실제로 사사 시대에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9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4:13-16). 따라서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적에 대해 미리 겁을 집어먹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으로 인하 여 정복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로 레 호리쉬'(* )는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내지는 고의적 회피 행위를 의미한다. 족 유다 지파는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겁을 집어 먹고 아예 이 일을포기했던 것이 다(Lange). =====1:20 모세의 명한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 일찍이 모세의 가나안 정탐꾼 파송사 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과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모세에게 회의 적인 보고를 하였었다(민 13장).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이스라엘이 능히 가나안 땅을 정 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민14:6-9). 그러자 모세는 갈렙에게 축복하기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 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14:9)고 하였다. 그같은 약속에 근거해 갈렙은 여호수아 생 존 당시 헤브론을 요구,기업으로 받았었던 것이다(수14:13-15). 본절은 바로 그 사건을 다시금 얘기 하고 있는것이다. 아낙의 세 아들 - 이미 10절에서 언급된 아낙 자손의 세 씨족인 세새, 아히만,달 매를 가리킨다. 한편 갈렙을 대장으로한 유다 자손이 이들을 무찌른 기사는 수 15:13,14에 상세히 나 와 있다. 그러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1:21 본절에는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수 15:63에는 유다 자손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이 두 기록 은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베냐민과 유다의 경 계는 벤 힌놈 골짜기와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수 15:8 ; 18:28). 그러 므로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한 책임은 이 두 지파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보다 자 세한 내용은수15: 63주석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 -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서(창 10:16). 예루살렘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그래서 고대에 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도 불렀다(19:10 ; 수 15:18 ; 18:28 ; 대상 11:4 등). 한편 볘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이같은 공격 실패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19:10-12),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된다(삼하 5 : 6-10). 그러 나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부분적이나마 여부스사람의 예루살렘 거주는 계속 허용된 듯하다 (삼하 24:16).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당하고 여부스 족이 축출당한 때는 다윗 시대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리키는 '오늘날'이란 B.C.1050-10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바, 본서의 기록 연대 역시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사사기 서론참조. =====1:22 본절은 베냐민 지파와는 달리 요셉 지파가 믿음으로 정복 사업에 나아갔음을 보여주 고 있다. 요셉 족속 - 여기서 '요셉 족속'이라 함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 다(수 17:17). 그들은 유다와 시므온처럼 기업을 함께 할당받았기 때문에(수16:1-4) 연합하여 벧엘 정복에 나섰음이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 258). 벧엘 - 예루살렘에서북 쪽으로 1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이다. 이곳에는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 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았었다. 본래의이름은 '루스'(23절)인데, 야곱에 의해 '하나님의 집' 이란 뜻의 '벧엘'로 바뀌었다(창 28:16-19). 한편 이러한 벧엘은 본래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수 18:22)이었으나 요셉 족속의 남쪽 경계선과도 서로 맞물려 있었다(수 16:1,2). 따라서 요셉 족속도 벧엘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많 았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요셉 족속이 벧엘 정복에 나선 것이다.한편 벧엘 정복에 관한 기사는 성 경상에 상세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추측컨대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수 8장) 곧 이 어 벧엘도 일시 정복했던 것같다(수12:16). 그러나 벧엘은 다시금 가나안 원주민들의 수중에 넘어갔 으며 이에 본절에서요셉 족속이 재차 정복에 나선 것 같다(Goslinga). 아무튼 이러한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벧엘은 왕정 시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2:26-33; 왕하 17:27-33 ; 렘 48:13).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 요셉 족속이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게 된동인 ( 動 因 )이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이다(삼상 17:47). =====1:23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 여기서 '정탐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투르'(* )는'경비 가 엄한 지역을 몰래 살피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모세가 가나안에 염탐꾼들을 보냈던것(민 13:1-20)과 비슷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요셉 족속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그들이 참으로 믿음 가 운데 서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루스 - '벧엘'의 본명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이란 이 름은 야곱이 처음 붙인 것이며(창 28:19) 가나안 족들은 그곳을 '루스'라했다. '루스'(* )란 ' 왜곡되다', '떠나다'라는 뜻인데 벧엘의 우상 숭배 역사와 잘 부합되는 이름이다.한편 수 16:2에는 "벧엘에서부터 루스가 나아가"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마치 벧엘과루스는 서로 인접해 있는 다른지 역인 것처럼 생각케 해준다. 때문에 혹자는 루스의남쪽을 '벧엘'로 보고 있기도 하다(Cassel). 그러 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껏 살펴보아왔듯 이 '루스'와 '벧엘'은 동일한 지역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16:2 주석을 참조하라. =====1:24 본절에 기록된 사건은 여리고 정탐시에 기생 라합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수 2장). 아무튼 이는 요셉 족속이 어떻게 견고한 요새 벧엘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를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벧엘 정복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셨음(22절)도 잘 보여 준다. 성읍의 입구 - 이것은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벧엘사람들이 요셉 족속의 성문 출 입을 허용 할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요새화된 벧엘에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루트(root)나 방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9). 선 대하리라 - 원문을 직역하면 '자비를 보이겠다'.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다.여기서 '자비', '은 혜'에 해당하는 원어 '헤세드'(* )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 또는 인간과 인간 간의 ' 변함없는 신뢰'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창19:19; 삼하16:17 ; 시59:17). 여기서는 정탐꾼이 벧엘 거
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 이 벧엘 사람은 요셉 족속의 정탐꾼으로말 미암아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므로 이처럼 성읍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을 수도 있다.그러나 정탐꾼이 그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한 점으로보아(9절) 자발적인 행동이었을가능성이 더 크다. 즉 그는 여리 고 성의 라합처럼(수2:8-11).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족속과 함께 하심(22절)을 감지했기 때문에 정탐 꾼의 요청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 라합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켰다(수6:17).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전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과거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오늘날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 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롬5:18). 물론 구원은 최종적으로 개개인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 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타인의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구원에로 인도할 수는 있으므로, 성도의 힘쓸 의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 후 2:15, 16 ; 딤후 4:2). =====1:26 헷 사람의 땅 - 헷 족속은 인도 유로피안(Indo-European) 족이다. 이들은 B.C.1800-1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었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나 모세 율법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헷 족속의 법률이나 관습들, 특히 이들의 종주권계약(suzerainty treaties)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 을 발견했다. 한편 시리아 지역은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헷 족속의 온 땅'으로 불리워졌다(수 1:4). 따라서 본절에서 벧엘 거민이 이주하였다는 '헷 사람의 땅'은 시리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음 이분명하다.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 이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정착지에 다가 벧엘의 옛이름인 '루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떠나다'라는 뜻 외에도<23절> '편도나무'(almond)라는 뜻을 지닌 '루스'라는이름에 근거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즉 편도나무로 유명했던 고대 헷 족속의 땅으로는 북부시리아의 '쿠프로스'가 있으므로 이곳이 곧 루스 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Cassel). =====1:27<므깃도의 곡식저장 창고> 본절은 벧엘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의 영토내에 있 는 많은 가나안 인들의 성읍들이 그대로 존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성읍들은 '돌'을 제외하고는 모 두 이스르엘과 에스드렐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도시들 중 몇몇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었으나(수12:21,23), 나머지 성읍들에 대한 정복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아마 그들은 철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Goslinga).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까지도 곧 독립하였을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본절의 끝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거하였더니"라는 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항이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벧스안 - 요단 계곡과 이스라엘 골짜기의 교차 지점, 곧 요단 강 서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요새이다. 라암세스 3세 때(B.C.1175-1144)까지 이곳에 애굽 수비대가 상주했었으며, 그 후 블레셋이 이곳을 점령했었다. 그 향리 - 즉 큰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형성되었던 촌락 이나 위성 도시를 가리킨다. 다아낙 - 므깃도 남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역사상 이 성읍은 당시 에스드렐론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서 통로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돌 - 가이사랴 북방 약 13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 팔레스틴 해안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읍 이다. 이곳에는 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이났기때문에 고대로부터 페니키 아인들이 정착해 살았었다. 한편 솔로몬 당시 돌과 그 인근지역은 솔로몬 왕국의 제4행정 구역에 편 입되었던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르암 - 샤론 평야 동쪽,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성읍이다. 오늘날에 '길벳 빌 암메'(Khirbet Billameh)와 동일시 되는데, 이는 므깃도 남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므깃도 - 하이퍼 남동쪽 약 30km 지점의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한 고 대 도시이다.이곳은 B.C. 12세기 중반까지 애굽의 지배 하에 었었다. 고고학자 스트라툼(Stratum)7
세는 므깃도가 갑자기 멸망당했음을 밝혀냈는데, 그것은 5 : 19에서 암시하고 있는드보라의 숭 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lbright) =====1:28 본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므낫세 뿐만아니라 다른 지파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람들 이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 인들을 그 땅에서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그리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있을 즈음에는, 가나안인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혀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강성한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라 보다 가나안 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성 한 후 -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물른 이스라엘의 국력이 최고로 신장( 伸 長 )된 때 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기(B.C.1005-931)이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꾸 준히 국력을 길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때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만큼 국력이신장된 때임에 만은 분명하다.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 이처럼 이스 라엘이 가나안 인들을 사역시킨 경우는 이미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다. 즉 여호수아는 이스라 엘을 속여 화친 조약을 맺었던 기브온 거민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었던 것이다(수9:22-27). 또한 솔로몬은 자신의 건축 사업에 가나안 인들을 동원, 인부로 사용하기도 했었다(왕상9:19-22). 그 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가나안땅에서 모든 원주민들을 멸하고 쫓아내는 것이 었지(신20:16-18) 결코 그들을 남겨,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잘 못이 있었는 바, 이후 이스라엘은가나안의 이방 우상 숭배 종료와 사악한 풍습에 점차 물들어 가고 말았던 것이다. =====1:29 게셀 - '쉐펠라', 즉 가나안 평지<9절>의 돌출부에 위치한 전략 도시로서 예루살렘 서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특히 에브라임의 영토 중 최남서쪽 경계와 맞물려 있는 이곳은 지중해변에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한편이 게셀은 애굽의 문서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 애굽의 바로가 솔로몬에게결혼 선물로 이 성읍을 줄때까지(왕상9:15-17) 이 성읍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오지 않았었다. =====1:30 스불론의 영토에 있는 두 성읍 기드론과 나할롤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바 가 없다. 기드론 - 예루살렘과 감람 산 사이를 흐르는 시내인 '기드론'(삼하1:23)과는 엄연히 틀린 곳이다. 하이퍼(Haifa)의 남동쪽에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 파르(Tell el-far)인 듯하다. 나할롤 - 또는 '나할랄'으로도 불리우던 성읍이다(수19:15 ; 21:35). 아크레 평 원남단, 하이파 동쪽 8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엔 나흘(Tell en-nahl)로 추측된다(Albright). =====1:31 본절에 언급된 성읍 중에서 악고, 시돈, 알랍, 악십은 모두 갈멜 산 북쪽 해안에위치 해 있었다. 이곳 거민들은 다른 지역의 가나안 인들과는 달리 커다란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에 이 곳은 중요한 해양 국가인 베니게(Phoenicia)로 발전하였고, 다윗과솔로몬 시대(삼하5:11 ; 왕상 5:1-12). 그런데 레니게의 공주 이세벧이 아합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옴으로써(왕 상16:31-34) 이스라엘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아셀 지파의 성읍들을 간략히 도표화하여 살펴보면 곧 다음과 같다. 이름 비 고 악고 페니키아의 항구 도시. 갈멜 북쪽 6km 지점의 지중해 연변에 위치. 사도 바울 당시에는 '돌레마이'(행 21:7)로 불리웠음. 시돈 두로 북쪽 약 35km, 베이루트 남쪽 약 35km 지점에 위치한 베니게 의 중요 항구 도시. 솔로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돈의 우상 신 '아스다롯'을 숭배하였음(왕상 11:5,33).
알랍 두로 북동쪽 약 6.4km 지 점에 위치한 성읍. 이름의 뜻은 '비옥함', '풍성 함'으로서 당시 경제적으로 상당히 윤택한 도시였음을 짐작케 해줌. 악십 악고에서 두로에 이르는 도로상에 위치한 지중해 연변 도시 악고 동남쪽 약 11 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키산'(Tell Kisan)과 동일시됨. 헬바 정확한 위치 불명. 일명 '알람'(Ahlab)으로도 불리운 듯함. 아빅 일명 '아벡(Aphek)으로도 불리웠음(수 19:30). 하이퍼(Heifar) 만에서 4.8 km 정도 떨어진 악고 평원에 위치. 베니게와 애굽을 잇는 도로 상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함. 르홉 악고 평원 동남방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갈비'(Tell el Gharbi). =====1:32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 증에거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브라임과 스불론 지파의 경우(29,30절)와는 대조되는 기록이다. 즉 위의 두 지파는 가나안 거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이 점령한 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 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아셀 및 납달리 지파(33절)는 오히려 그들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한 것으 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아셀과 납달리 지파의 지경 내에서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주도권을 장 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아마 그 까닭은 가나안 사람들이 숫적으로 우세하며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가그들에게 대하여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1:33 벧세메스 - '태양의 집'이란 뜻, 이것은 이곳에 태양 신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음을암시 한다. 갈릴리 고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한 편 성경에는 '벧세메스'란 이름은 같으나 서로 다른 지역인 곳이몇 군데 더 나온다. 그중 하나는 법궤 사건으로 유명한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수15:10)인 벧세메스이고(삼상6:10-16) 다른 하나는 잇 사갈 지파의 경계지인 벧세메스이다(수19:22).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애굽의 성읍인 벧세메스이다(렘 43:13) 따라서 본절에 나오는 납달리 지파의 벧세메스를 이들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벧아낫 - '아낫의 집'이란 뜻이다. 이로 보아 이곳에는 피요의 여신이며 바알의 아내인 '아낫'에게 바쳐진 신전 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 '아낫'(Anath)은 우가릿(Ugarit)의 전쟁의 여신이었다. 한편 이곳 역 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다만 밸세메스 부근에 위치하였던 것으로만 추정할 수 있다. =====1:34 본절에서는 단 지파가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와는 달리(31-33절) 가나안인 가운데 거하지도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단지파의 일부는 아모 리 족속을 피해 유다의 영역이나 팔레스틴 최북단 지역의 라이스(Laish)로 이주해야만 했다 (18:1-31). 아모리 사람 -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까지 그곳에 거주하던 모든 가나안 족 속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창15:16). 그러나 엄격히 구분하면 주로 팔레스틴 계곡이나 해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가나안인'이라 일컬은 데 반해 팔레스틴 산지에 주로 거주하던 자들을 '아모리인' 이라했다. 이들은 본래 팔레스틴, 시리아, 바벨론등지에 널리 흩어져 살았었다. 그러나 팔레스틴 내에 서는 당시 에게 해 연안출신으로서, 가나안 남서부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오던 블레셋에게 쫓겨 골 짜기나 산지로 밀려나고 말았다. 따라서 단지파가 산지로 쫓겨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이 다.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 단 지파가 본래 기업으로 받은 땅은 가나안의 서부지역 산간과 해변에 이르는 비옥한 땅이었다(수19:40-46). 그러나 이들은 아모리사람들에게 밀려 산지로 쫓겨났고 급기야는 그곳에서조차 정착치 못하고 결국 '라이스'에로까지 이주해야만 했다(수 18장).
=====1:35 헤레스 산 - '태양의 산'이란 뜻으로서, 이곳 역시 우상 신전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암시해 준다. 이곳은 수19:41에 나오는 '이르세메스'(태양의 성읍)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되는데 오늘 날 '아인 세메스'(Ain Shemes)라 불리우고 있다(Keil, Goslinga등). 한편 이스라엘이 정복하는 데 실패한 도시들의 이름이 대부분 우상과 관련된 것으로 볼 때<33절>.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적인 차원에서 설명이되어야 할 것 같다. 아얄론 - 여리 고와 지중해 사이의 고지에 위치한 성읍. 오늘날의 '얄로'(Yalo)인것으로 추정된다. 여호수아가 아 모리족을 격퇴할 당시 야얄론 골짜기에 달이 머문사건으로 유명하다(수10:12). 사알빔 - 예루살렘 서쪽 약 24km 지점, 아얄론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 오늘날의'셀비트'(Selbit)로 추정된다. 솔로몬 당 시 이곳은 식량 공급을 위한 행정중심지였다(왕상4:9).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사역 을 하였으며 - 단 자손들은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고 산지에서 조 차 아모리인들의 공격으로 고난을 받았었다. 그러나 훗날 요셉 족속, 엄밀히 말하면 에브라임 지파 는 단 지파의 영토에까지 새력을 확장, 아모리인들로 하여금 사역케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모리인 들이 비록 단 지파의 지경에서 단 지파를 쫓아 내긴 했으나 그 지역이 결국에는다시금 이스라엘의 영 토로 회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1:36 아모리 족속이 단 지파의 영토를 차지한 것(34,35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도 팔레스틴 전역에 널리 잔존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이를 위해 본절은 당시 아모리 족 속이 거주하던 땅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곧 유다 족속이 기업으로 분배받은 가나안 땅 의 최남단 경계와 일치한다(수15:1-4).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 '아그랍빔'이란 '전 갈'이란 뜻이다.아마도 이 지역에 전갈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Pulpit Commentary).이 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민34:4과 수15:3에 의거하면 사 해 남쪽지역에서부터 브엘세바, 즉 유다 남부 구릉 지역의 평지까지 이르는 가파른 절벽 지대로 추정 된다. 다음으로 '바위'에 해당하는 원어 '하쎌라'(* )는 헬라어로'페트라'(Petra)에 해당된다. 민 34:3과 수15:1에 의거할 때 이는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에돔 지경( 地 境 )의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듯 하다(Lange, Wycliffe). 그러나 혹자는 '하쎌라'를 에돔 지경의 산악지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닌 그냥 바위가 많은지역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마지막으로 여기서 '그 위'란 서 쪽지중해변을 가리키는 바, 이는 민 34:5 ; 수 15:4에 의거할 때 지중해로 흘러드는 '애굽 시내'부근 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사기 제 2장 ====2:1 여호와의 사자가 갈길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하고 인 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 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 여기 이른바 "여호와의 사자"(* )는 실상 여호와 자신이시다. 그 것은, 그가 친히 "내가 너희를...내가...내가"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 신 이가 그 자신이심을 밝히신 말씀이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자신으로서 구약 시대에 제시 ( 提 示 )되신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 3:1에는"언약의 사자"(*)라 고 하였으며, 히 3:1에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였다. "길갈"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 아의 지도 아래서 가나안의 산악지방을 정복할 동안 머물렀던 근거지이다. 그리고 "보김"은 "벧엘"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70인역(LXX)은 "보김"이란 땅 이름에 "벧엘"(* )이란 말을 첨부하였 다. "보김"은 "벧엘"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5 절). 전에는 법궤가 길갈에 있었지만(수 5:9), 이 때에는 벧엘로 옮겨진 것이 사실 이다(20:26-27).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 는 것일까? 이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 割 禮 )로 언약을 확고히 하신 그가(수 5:9, 13-15) 이제 "보김"에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가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창 13:14-15) 그들을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신 것은, (1) 그의 진 실성을 증명하며, (2) 그의 구원의 능력을 실증하며, (3)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사 43:1-4). 그러므로 그는 절대로 믿을 만한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만큼 그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내용
(창 17:8)의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니,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자비는 무 궁하시다. 애 3:22참조.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일찌기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민족과 "언 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여 주셨다(출 23:32-33, 34:12, 16; 신 7:2; 수 23:12-13). 여호와 하나 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족속과 교류하며,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납하는 의미에서 언약 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 제단을 파괴해야 된 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나안 족속의 제단을 파괴하려면 전쟁의 강한 정 신이 요구된다. 오늘날 기독자들이 이 세상의 그 무엇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하는 심리로만 할 수 있게 된다. 성경 은 우리에게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야 된다고 가르친다(히 12:4).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하여는 희생, 용기, 결단, 수고, 또는 죽음까지라도 각오하는 심각한 전투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세우는 경우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 민족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어 주시지 않 겠다고 이미 경고하신 바 있었다(수 23:12-13). 여기 이른 바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란 말은 그 들이 죄를 용납한 결과로 당하게 될 화( 禍 )를 의미한다. 기독자들도 죄와 싸우지 않는 때에 그 죄가 가시처럼 그들을 괴롭히며 덫처럼 그들을 잡아 거꾸러지게 만든다. =====2:4,5 하나님("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지적하시고(2절), 그들이 그 불 순종한 죄값으로 가나안에서 화를 당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실 때에 그들은 저희의 죄를 뉘우치고 큰 소 리로 울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로 임하신 영( 靈 )이시니 만큼 그들의 심령에 압도적으로 큰 충격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들도 통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 이름을 "보김"(* ),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 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대속( 代 贖 )하기 위한 속죄제( 贖 罪 祭 )였을 거싱다. 그들이 통회 ( 痛 悔 )한 것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한 저희의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신앙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은 죄악 문제에 대한 해결책, 곧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속죄의 제도에 순종한 신앙인 것이다. 기독 신자들도 그들의 죄악 문제에 대하여 원 통한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 로 만족한 회개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믿음을 오래 동안 지속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씨 뿌리는 비유에 있어서 돌밭에 뿌리운 씨의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 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말라버림과 같은 것이다(마 13:20-21). 또한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와 같다고도 할 수 있으니, 곧 말씀을 듣고 반응을 보이다가 세상 염려 때문에 결실하지 못 함과 같은 것이다(마 13:22). 참된 경건은 좋은 밭에 뿌리운 씨와 같아서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다(눅 8:15). =====2:6-10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또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을 목도한 지도자들("장로 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섬겨왔다. 이 사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교회에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이란 것은 인간적인 어떤힘을 의 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적 운동은 하나님의 영력의 간섭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 런데 하나님의 영적 능력도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서 실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롬 10:17 에는 말하기 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사 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세우신 기관은 역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도하시며 다스리심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 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통하여 각 개인을 지도하신다면 더욱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별히 세워서 자기 백성을 위해 영적으로 더욱 유력하게 일하시는 방면이 있다. (1) 그것은, 지도자를 모본으로 세워주셔서 그들의 신앙 생활이 구체화되도록 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연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영력을 받아 구원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용기를 얻는다. 성경은 확실히 이 방면을 제시하여 준다. 곧, 성경이 우리에게 기도의 용기를 주 기 위하여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고 하였다(약 5:17-18). (2)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 한 체휼( 體 恤 ) 때문이다. 지도자의 눈물이 피지도자들의 눈물을 발생시키고, 지도자의 사랑의 수고가 지도를 받는 자들의 마음 속 깊이에 아름다둔 덕행의 동기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오직 인간인 지도자 를 통로( 通 路 )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사들은 고난 당하는 일도 없고 눈물도 없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10 절 상반) 곧,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 는 뜻이다. 정통 학자들 중에서 이 문구를 내세( 來 世 )과 관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세대 사람들이 죽어서 그 영혼으로 앞서 간 성도들이 가 있는 복된 세계로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 (10절 중간) 이것을보면 인생은 올바른 영적 교육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 이라고 하여 그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거나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뿐 아 니라 국가적, 또는 사회적 교육 기관이 참된 종교 교육을 보장하는 일도 매우 드물다. 어떤 시대에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잘 공경하도록 권장하는 일이 있게 되면 그 때에 부모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착실히 실시해야 된다. 그렇게 못하면, 그 부모들이 별세한 뒤에 그들의 사회는 불신앙과 세 속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실시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신 6:6-7; 시 78;5-8). 이 일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지도할 자는 교회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 시대만 책임 진 것이 아니고 장래 세대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일해야 된다. 딤후 2:2에 말하기를, "또 네가 많은 증 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고 하였다. =====2:11-13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하여 말한다. (1) 그들이 참된 신, 곧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살아 계신 여호와를 버렸음.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는,선을 악이라 하 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강퍅한 행동이다. 이렇게 행한 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사 5:20). (2) 그들이 다른민족들의 신( 神 )들을 따름. 곧, 그들이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 - 을 섬 겼으니, "바알과 아스다롯" - 이었다. "바알"(* )은 소유주(owner)란 뜻인데 이스라엘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예컨대 베니게 족속들과 아람 족속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그리고 "아스다롯"(* )은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신( 母 性 神 )이었다. 그들이 이 두 가지 우상을 농신( 農 神 -풍년 들 게 하는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그렇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미신( 迷 信 )으로 타락했던가? 이것은 우리로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 리가 다음 몇가지 원인을 알 때에 이 의문이 풀린다. (1)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효과적인 증거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10절). 인간은 특별히종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제 시( 提 示 )를 보수( 保 守 )하지 않는 한( 限 ), 어두운 미신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 이 조상 때부터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하나님을 떠난 것이 곧 죽음임) 어두워졌기 때문이다(엡 2:1). (2) 음란의 미혹에빠진 원인도 있었다(민 25:1-3). 겔 16:17, 20:30, 23:3참조. 이 참조 귀절 들에 지적된 말씀은 영적 음행, 곧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따름에 대한 비유적 언사이다. 그때의 우상당( 偶 像 堂 )에는 창녀( 娼 女 )가 배속되어 있어서 그 우상 숭배 행위의 한 순서로 음행도 들어 있었 다. =====2:1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그들로 노략을 당
케" 하셨으므로 그들이 즉시 이방 세력에게 삼키웠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현상은 신약 교회의 예 표가 되었던 것이다. 신약 교회도 하나님을 떠나면 속화( 俗 化 )되는 법이다.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 "어디를 가 든지"란 문구에 있어서 "가든지"란 말(* )은 전쟁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왕하 18:7 ; 신 28:25 참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패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일찌기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바이다. 신 28:15, 25 참조. 본서의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약신( 契 約 神 ) 성격을 역설( 力 說 )하여 하나님 의 진실성을 지적한다.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는 언제든지 먼저 예언하신 것을 그대로 성취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절대적 신앙의 대사응로 계시( 啓 示 )되어 계신다. 누구든지 그를 믿지 않는 것은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2:16,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지도자로 "사사"( 士 師 )를 세워 주셨 으나 그들이 극히 타락했을 때에는 사사의 지도도 순종하지 않았다. "사사"란 말의 히브리어(* )는 재판하는 자를 가리키지만(D.K. Budde, der Grundbegriff dafurist Recht schaffen), 이는 일반 국가 행정에 속하는 재판장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 기 위하여 세우신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말을 "사사"라고 번역함보다는 구원자란 뜻을 내포 하는 "심판자"라고 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쫓아" - (17절 상반) 란 문구의 히브리어(*)는 "다른 신들을 쫓아 음란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음란하여"란 말(* )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니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섬기는 자를 가리켜서 음란한자라고 하시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다.(1)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니 만큼, 신자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은 여호와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 님 한 분에게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만 섬겨야 된다(신 6:5). (2)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신자를 사 랑하시되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 같이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것(엡 5:25). 그러므로 그는 신자도 그렇게 전심 전력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 신자가 하나님을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때에 그는 질투하신다고 하였다(출 20:5). 이것은 신자에게 대한 그의 사랑이 불붙듯하시다는 사 실을 알려준다. 속히 치우쳐 - (17절 하반). 여기 "속히"(* )란 말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얼마 전까지 하나님 여호와를 공경하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속히 타락했을까 함이다.그러나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된다. 인류가 아담의 타락 후 이미 종교적으로는 타락되어있으니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는 그의 부패성이 발동하게 된다. "치우쳐"란 말(* )은 배반함(turned aside)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쫓는 배신 행위를 가리킨다.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 (17절 끝). 곧, 사사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즐이 그들의 신실했던 선조들처 럼 행치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 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니 - 곧, 사사의 구원 능력의 근원이 하 나님이신 사실을 지적한다.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사사기의 이 말씀은, 그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가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도자 없이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사회에도) 지도자들을 세워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시하시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신 동기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가 사사를 세우신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 때문에 일어난 그의 긍휼이었다. "슬피 부르짖으므로." 곧, 그들이 애달프게 기도했다는 것이다. 큰 죄인이라도 그 지은 죄를 진실히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 어주신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호 6:6).
======2:19-21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지도자가 별세한 뒤에는 또 다시 우상을 섬기며 범 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특별히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19절 끝)란 말씀은, 그들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강퍅해진 사실을 지적한다. 사람의 일반적 범죄는 성령을 근심케 하고(엡 4:30), 그의 강퍅성은 벌을 초래한다.(창 6:5-7). ====2:22,23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거민, 곧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던 그 족속들을 더 이상 쫓아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시는 목적을 밝혀준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 (22절 하반)고하였다. 여기 "시험 "이란 말(* )은 시련( 試 鍊 )을 의미한다. "시험하려 함이라"고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할 때에 그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으로 인하여 연단을 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잘 믿는 신자들의 주위에도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하는 시험거 리들을 남겨두신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역시 그들을 시련하시려는데 있다. 신자들은 시련을 통하여 성화( 聖 化 )되어 간다. 벧전1:6-7; 욥 23:10 참조. 사사기 제 3장 =====3:1<블레셋족의 단지>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 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12:7; 출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 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 戰 後 ) 세대는 그 선조 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 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 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 (PulpitCommentary). =====3:2 그것을 기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 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 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족속을 남겨 놓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 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통해 하 나님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 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 兵 器 )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 이다(A.C.Hervey,A.E.Cundall,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 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 신데에도 깊은 경륜( 經 綸 )이 담겨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 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 역시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3:3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인종학 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에 속한다. 이들은 사 사 시대는 물론(10:7 ;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13:19-22 ; 14:52)와 남북 분열 왕 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 사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 로 알렉산더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당했다(B.C. 332). 다섯 방백 -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 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이스의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 또는 '타이라노 스'(*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그리이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성경에서'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 세렌'(* )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족속에게만사용되어졌다(16:5 ; 수 13:3 ; 삼상 5:8 ; 6:4 ; 7:7 ; 29:3,9 ; 대상 12:19). 한편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 돗 등 다섯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가나안 모든 사람 -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가리킨다. 1:1주석 참조. 당시 이를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 사람 -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서, B.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 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 후에 이들은 베니게인(Phoenicians)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 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 15:3). 1:31 주석 참조.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 13:5에 근거해 팔레스틴 최북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 한다(Lange Commentary, 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75). 다음으로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가리키는지 분명치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 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 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북동쪽에 위 치한 '르보(*, 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히위 사람 - 히 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 대상 1:15)'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 어 진다.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참조.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족 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 )의 '와우'(* )와 '호리'(* )의 '레쉬 '(* )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흘리바마 가 창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25) 호리 족속으로 기 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Age, B.C. 15세 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 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 )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 들의 호칭이었다(IDB). =====3:4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 여기서 말하는 시험의 뜻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의 뜻 과는 다르다. 1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시험'이란 2:22에서 의미하듯 열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2 주 석을 참조하라. 모세로...명하신 명령들 -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하
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3:5 마침내...거하여 -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수없이 반복하여 주신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 진멸하고그들과 언약을 맺거 나 통혼치 말며 우상 숭배치 말라는 것이었다(출 34:10-17 ; 신7:1-5 ; 수 23:11-26). 그리고 그 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 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 나안족속들을 용납한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6절). 가나안 사람과...여브스 사람 -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합하여 소위 '가나 안의일곱 족속'이라 불리우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거주하던 자 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리웠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 들'과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참조하라. =====3:6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 과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조항을 이제 이스라엘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조항이란 곧 신 7:3,4에 나오는 이방인과의 통혼( 通 婚 ) 금지 명령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와 그것을 어졌을 경우의 결과가 분명히 언급 되고 있다. 먼저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므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 의 돌연한 멸망이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그들이 갖 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창 6:1-5은 당시 하나님 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러서도 믿는 자는 믿지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도( 勸 導 )가 주어 지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고후 6:14). 그들의 신들 -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즉 라스 솨마라서판(Ras Shamra)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 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 '(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이 있다. 그리고 일 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리운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 '(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 롯'(Astaroth)신 등도 언급되어 있다(F.M.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 안 신으로서는 블레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성 격이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 異 名 同 神 )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신을 '다곤신 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I.D.B.). 또한 라스 솨 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 상 11:5)등으로도 불리운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 신들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과 본서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아뭏 든 이처럼 다양한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것도 한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섬겼더라 - 이 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 )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 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고있다. =====3:7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 )의기본 뜻 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 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중심에 여
호와가 아닌 다른 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은 '풍요'와 '다산'( 多 産 )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어머니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참조하라.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 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 용한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해당하는 히 브리어 '엘로힘'(* )을 들 수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 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 1:1 주석 참조.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 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 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 던 바알과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2:11 주석을 참조하라. =====3:8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과 티그 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 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거리상 지나치게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9,10절). 때문에 레온 모리스 (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 이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흑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 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 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옷니엘의 싸움에 별의문이 제기 되지 않을 것이다.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 만'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 )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 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 '(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Vol. II, p. 293).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 )로서 사람을노예로 파는 것(신 21:14 ; 28:68)을 가리킨다. 2:14 주석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항복하게 하다'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 )는 '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 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출 2:23).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 한다. 그리고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 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 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 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15절;5:14;8:22).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6 주석을 참조하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 갈렙의 아 우인지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그에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여기서 '여호와의 신'(*, 루아흐 예호와)이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 모로 활동 하셨던 성령을 가리킨다. 창 1:2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의 미한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 명을 잘 감당할 수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했던적이 있다(6:34;11:29;13:25;삼상 10:9,10;16:13;대상 12:18). 여호와의 신은 가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민 27:18;단 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출 31:3;35:31;민 11:25). 이는 오순절 이후로(행 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요 14:17). 여호와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 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 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기도하다(9절). =====3: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옷니엘이 죽었더라 - 이와 같은 표현은 다른 사사들의 행적을 마무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0절 ; 5:31 ; 8:28). 아무튼 본절은 옷니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 前 轍 )을되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고 만다 (12-14절). =====3:12 이스라엘 자손이...악을 행하니라 -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은 40여년에 걸친 평화로운 세 월을 구가하는 동안(11절)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 생활하던때의 비참함(8절)을 까맣게 잊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사기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바 그 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여건 가운데서 살다 보면 우리도 자칫 향락과 정욕,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더 경성하여 자신 의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할 것이다(빌 1:20). 모압 - '모압 족속'은 아브 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 상간( 近 親 相 姦 )에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 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 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음란 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 24:10 ; 25:1-3).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암 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신 23:3-6). 에글론 -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서부 지역을 한때 강점( 强 占 )하였었다(13절).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여기서 '강성케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 )는 '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 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3:13암몬 - 롯과 그 둘째딸 사이에서 난 '암몬'(창 19:38)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따라서 모압 족속(12절)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한 지역에 거주하였 는데 곧 요단 동편 지방이다(신 3:11). 이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 왕하 24:2) 일찍이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기도 하였다(신 23:3-6). 아말렉 자손 -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창 36:15,16).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사도 지니고 있다(6:1-7:25). 종려나 무 성읍 -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 대하 28:15).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선 이후 그곳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었다(수 6:26). 때문에 이후 여리 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 탓에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95). 아무튼 이들이 이처럼 여 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 다. =====3:14 이스라엘 자손이...십 팔 년을 섬기니라 -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하였어도 연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곧잘 간주하였던 것이다. =====3:15 베냐민 사람...에훗 - 이스라엘의 제2대 사사인 '에훗'이 베냐민 출신이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에글론의 압제하에 있던 여리고 성이 곧베냐민지파에게 기업 으로 할당되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수 18:21). 왼손잡이 - 원어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 )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 혀 쓰지 못하는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 스'(* ),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왼손이 발달된 자를 의미하 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 베냐민 지파중에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 (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p. 295 f). 그를 의탁하여...공물을 바칠 때에 - 여기서 '그를 의탁하여'란 말은 '베야도'(* )로서 '그의 감독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공물바치는 일을 에홋이 관리,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Commantary, Vol. II, p. 296). 공물 - 이 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 )의 원뜻은 '예물', '선물'이다(KJV). 그러나 여기서는 속국의 백성들이 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 朝 貢 )을 가리킨다(RSV, NIV). =====3:16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빗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곧 일반 규빗과 성전 규빗이다. 그중 일반 규빗은 신약 시대에도 널리 사용되던단위로 한 규빗은 45.6cm였다. 그리고 성전 규빗은 일반 규빗보다 손바닥 폭만큼 더긴 53.2cm였다(겔 40:5). 본절 에서는 에훗이 칼을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숨겼다가 왼손으로 빼어 사용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칼은 일반 규빗으로 한 규빗인 칼이었던것 같다. 좌우에 날선 칼 - '칼'에 해당하는 '헤레브'(* )는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검(dagger)을 포함한 모든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 이 준비한 칼도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일종의 단검이었다. =====3:17 비둔한 자 - '비둔한'에 해당하는 원어 '바리'(* )는 '통통한', '배부른','풍성한' 등의 뜻으로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 상태를 의미한다. 에글론은 참으로 비만한 자였는데 그것은 그 가 에훗의 칼에 찔렸을 때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던 점으로서도 알 수 있다(22절). 그런데 사사 시 대 후기의 제사장 엘리도 심히 비둔한 자였다.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 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와 관련 성경 기자는 엘리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 때 문이라고 언급하였다(삼상 4:18)
=====3:19 길갈 - 성경에는 이름은 같으나 실제로는 다른 곳인 '길갈'이 여러 곳 나온다. 즉여리고 근처의 길갈(수 4:19)이 있는가 하면 갈릴리 지역의 길갈(수 12:23), 유다 경계지의 길갈(신 15:7)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에발 산 근처의 길갈(신 11:30) 및 엘리야와 엘리사가 관계된 길갈(왕하 2:1)도 있다. 여기서는 그가운데 사무엘의 순회 통치지이기도 하였던(삼상 7:16) 여리고 근처의 길갈을 가리 키는 듯하다. 돌 뜨는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페실림'(* )의 기본 뜻은 '새기 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견해를 달리한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집약되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채석장의 의미 : KJV와 Living Bible은 이 해석을 취한다. 이것은 '돌을 뜨다'를 의미하는히브리어 동사 '파살'(* )에 따른 번역이 다(Keil). (2) 기념 비석의 의미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테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비석들을 가 리킨다는 견해이다(A.E. Cundall). (3) RSV, NIV, 공동번역에는 '페실림'이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페실림'이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곳이 있다(신 7:25 ; 사 21:9 ; 렘 8:19). 이 세 가지 해석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번째 견해이 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의단수형 '페셀'(* )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Lange, C.F.Pulipit Commentary). 은밀한 일 - 공동 번역은 이를 '은밀히 드릴 말'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정보' 곧 보안을 필요로 하는 중대사( 重 大 事 )를 가리킨다. =====3:20 서늘한 다락방 - 고대 근동 지방의 건축 양식에 따르면 지붕 위에 통풍이 잘 되도록 여 러 개의 창문을 낸 다락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했던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도 이러한 다락방이었다(막 14:15).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 방에서는 지붕 위에 이러한 다락방을 만들어 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Shaw, Wycliffe Commentary).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고할 일이 있나이다 -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달 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실 때, 이미 그에게 에글론을 죽이고 그의 압제로부터 이 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것이다(15절).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명'이란 바로 그 러한 명령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에홋은 단순히 에글론을 암살키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MatthewHenry).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 대 적 모압사람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28절)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혹자(Bertheau)는 에글론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97). 그러나 본문에는그러한 의미가 전혀 나타 나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에글론이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일어났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한 내용을 담고 있는것으로 추측하여 더욱 비밀을 유지하기 위 해 에홋과의 거리를 좁히려고좌석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3:21 에훗이...왕의 몸을 찌르매 -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에글론에게전 달될 하나님의 명령(20절)이 에글론의 귀가아닌 가슴(heart)에 즉각적으로 그리고말 그대로 전달되 었다고 강해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136). =====3:22 칼자루도...등뒤까지 나갔고 -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게 에글 론의 몸에 꼽혔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칼을...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 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한편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여타 암살 행위(삼하 2:27 ; 4:6)와는그 성격이 다르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