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s who have absolute power 066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068 우고 차베스(Hugo Chavez) 070 폴 비야(Paul Biya) 071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072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EPA=연합뉴스) 영원한 권력을 꿈꾸는 사람들 권불십년( 權 不 十 年 ) 이라는 고사가 있다.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계의 지도자들 중 일부는 정해진 기간을 넘어 수십 년 가까이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 지난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세게 불어 닥친 민주화 바람 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선거 라는 제도를 활용해 끊임없이 권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권위적인 지배 체제와 높은 인기를 토대로 법을 개정하며 장기 집권을 실행하고 있다. 푸틴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세계의 철권 통치자들을 소개한다.
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 3월 4일 10만여 명이 운집했다. 그들의 시선은 연단 위에 선 한 남성에게 쏠렸다. 키는 작지만, 몸집이 다부지고 인상이 강렬한 그는 블라디미르 푸 틴 총리였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비치기도 했던 푸틴 총리는 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약속했고 우린 이겼다. 공개 적이고 정직한 선거에서 완벽하게 승리했다 고 말했다. 자신의 3 선을 확정할 대선 투표가 끝난 직후였다. 후계자인 메드베데프로부터 배턴을 넘겨받을 푸틴은 이미 보리스 옐친에 이어 러시아의 두 번째 대통령으로 8년을 보냈다. 소련 국 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자 연방보안국(FSB) 수장을 역임한 푸틴은 1999년 8월 옐친 전 대통령에 의해 총리 대행으로 지명되 면서 러시아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4개월 뒤에는 건강이 악 화된 옐친이 사임하자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부상했다. 이듬해 3월에 열린 대선에서 53%의 표를 얻은 푸틴은 정식 대통 령으로 취임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사회를 안정시켰으며,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재벌에 대한 사정을 단행했 다. 푸틴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70%대까지 치솟았다. 언론과 야당 탄압, 체첸 주둔 러시아군의 인권 유린, 관료들의 부 정부패 등이 푸틴 정권의 문제점으로 거론됐으나 그의 인기는 사 그라지지 않았다. 푸틴은 두 번째 임기를 마친 뒤 많은 국민의 반 발을 야기할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대신 총리 로 물러나는 방 법을 택했고, 화려하게 크렘린으로 복귀했다. 이번 대선의 잠정 개표 결과 푸틴의 득표율은 63.60%였다. 2위 인 공산당의 겐나디 쥬가노프 후보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2008년 11월 러시아 의회가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 린 결과, 푸틴은 201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또한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해 최장 2024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다. 한편 선거 직후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푸틴이 예전처럼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견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푸틴은 대선을 앞두고 이전보다 많은 자금과 강한 행정력 을 동원했다. 야권 세력의 대항이 만만치 않아 개혁 과 실용 을 외 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야권과의 대결 형국 을 타개하려면 지방 정부 직선제 부활, 정당 설립 간소화, 정치적 자유 확대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푸틴 지지자들이 대선 직후 모스크바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푸틴은 60%대의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당선이 결정됐다. Vladimir Putin 블라디미르 푸틴, 21세기 차르의 귀환 그가 돌아왔다. 강력한 러시아 를 건설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대통령으로서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는 서방의 주장을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 예스 맨 이 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66 201204 201204 67
서민들을 위한 각종 복지 정책을 내놓으면서 인기를 끈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좋지 않은 경제 상황, 만성적인 주택 부족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차베스는 50% 전후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번 베네수엘라 대선은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 가 올해 주목해야 할 9개의 선거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큼 주의를 모으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단일화에 실패해 왔던 야권이 엔리케 카프릴레스 라돈스키 미란다 주지사를 단독 후보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40세의 젊은 정치인인 카프릴레스 주지사는 차베스의 실책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호평을 받은 정책은 수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업 군인으로 복무했던 우고 차베스는 1992년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수포가 된 뒤 1998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곧바로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고, 두 차 례 연임이 가능하며, 국회를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꾸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권위적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을 혼합한 볼리바르 혁명론 을 내세웠던 차베스 대통령은 2000 년과 2006년 대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됐다. 2009년에는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하 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그가 이번 대선에도 나설 수 있게 된 이유이다. 우고 차베스, 반미를 부르짖는 남미의 맹주 거침없는 언변과 독특한 정책으로 유명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0월 7일 4선에 도전한다. 최근 암 수술과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차베스는 노동자와 빈민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Hugo Chavez 68 201204 201204 69
Islam Karimov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벡을 틀어쥐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은 지금 까지 이슬람 카리모프 한 명뿐이다. Paul Biya 폴 비야, 베일에 가려진 6선 대통령 아프리카에는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고 있는 국가 수장이 많다.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30년째 통치하고 있지만, 알려진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인물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0년 카메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천180달러이다. 반면 폴 비야 대 통령은 2009년 프랑스에서 휴가를 즐기는 등 호화 생활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폴 비야 대통령은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프랑스의 명문인 파리정치학교를 다녔고, 아히조 대 통령 정부에서 교육청년문화부 차관과 국무장관을 지냈다. 1975년부터 총리를 맡았던 그는 1982년 정치적 스승인 아히조가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0년 가까이 1당 지배 체제를 유지했던 폴 비야 대통령은 1990년 다 당제를 허용했다. 그리고 2년 뒤 개최된 카메룬 총선에서는 집권당 인 카메룬 인민민주운동(RDPC)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는 사건 이 발생했다. 이후 폴 비야 대통령은 공정 선거 가 담보되지 않는다 는 야당의 비판 속에도 연임을 거듭했다. 2008년 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폴 비야 는 종신 대통령 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대선에서는 20여 명 의 경쟁자를 큰 차이로 누르고 또다시 7년 임기를 보장받았다. 85.9%와 91.9%, 88.1%. 이슬람 카리모프 대 통령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이다. 대선 때마다 여러 명 의 정치가가 입후보했지만 결과는 항상 카리모 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심지어 7년 임기의 대 통령을 뽑는 2007년 대선에서는 세 명의 후보 들이 카리모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카리모프는 국민투표를 통해 두 차례 임기를 늘렸다. 1995년에는 한시적으 로 2000년까지 임기를 연장했고, 2002년에는 5년에서 7년으로 변경했다. 카리모프는 서방에 철권 통치자 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우즈베키스탄 동부 도시인 안디잔에서 개혁을 바라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무자비한 진 압으로 반정부 시위대 수백 명이 사망했기 때문 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카리모프는 반대 세력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한편 카리모프는 지난해 대통령 임기를 다시 5 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은 7년 임기의 3연임 을 금지한 헌법 조문과 관계없이 다시 한 번 대통령에 도전 할 수 있게 됐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쳐 왔다. 1990년대에는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2000년대에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었다. 70 201204 201204 71
짐바브웨 동부의 고원 도시인 무타레에서 지난 2월 25일 성대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주인공은 32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식장에 들어섰 고,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기뻐했다. 이에 앞서 무가베는 21 일 국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나 외에는 승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며 집권 연장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 가나가 독립하는 과정을 지켜본 뒤 교사에서 무장투쟁 활동가로 변신했던 무가베는 1980년 총리에 취임했다. 짐바브웨의 실질적 인 지도자였던 그는 유화적인 정책을 폐기하고 정적을 제거하면 서 권력 집중화를 꾀했다. 그리고 1987년 1당 지배 체제의 대통령 이 된 뒤에는 2002년까지 3선을 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지난 선거에서 신승한 뒤 야당과 연립정부를 꾸렸던 무가베 대통 령은 다음 대선에도 출마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주변의 상황은 호 의적이지 않다. 일단 고령 이라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다. 전립선암 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해 가을에는 진료를 받기 위 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또한 무가베의 장기 집권에 저항하는 야 권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Y 무가베 대통령은 연립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조기 대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야권의 반대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로버트 무가베, 88세 맞은 최고령 통치자 아프리카 남부 내륙 국가인 짐바브웨의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6년이 지난 1924년에 태어났다. 영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그는 독립을 이룬 1980년부터 짐바브웨를 다스리고 있다. Robert Mugabe 72 201204 201204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