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되었기 때문이다. 1972년 7 4남북공동성명은 6 25전쟁 이래 처음으로 남북이 악수 를 한 사건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이 발표는 이제 곧 통일이 되는 것처럼 온 나라를 흥분 속에 잠 못 이루게 하였다. 그때는 사실 통일의 꿈보다는, 아직 도 6 25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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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교사용) 4-6부

조사구번호 가구번호 - 한국종합사회조사 성균관대학교서베이리서치센터 종로구성균관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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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차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가을은 독서의 계절?! 16

Transcription:

권두언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김 광 억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질화의 70년이 통일 준비의 70년이라는 아이러니 우리는 해마다 8월이 되면 광복의 뜻을 되새기는 데 열중하여 어느덧 분 단의 시간이 길어가고 분단의 상황이 깊어가는 것을 생각하기를 제쳐두었 고 그 결과 거의 망각하다시피 하여왔다. 물론 분단을 말하는 대신에 때로 통일 논의가 정치 공학적 맥락에서 대중 미디어를 통하여 짧게 대중적 유 행을 반복해왔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세대가 청소년이었을 때까지 만 하더라도 우리의 소원 은 애국가에 버금가는 국민의 노래였고 우리 의 맹세 는 국기에 대한 경례만큼이나 중요한 국시( 國 是 )의 하나였다. 그 러다가 어느새 그것들이 사라졌다. 이뿐 아니라 통일 노래는 금지곡이 되 었다. 통일 이 민족의 의무이자 염원에서 어느덧 정치의 수단적 자원으로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1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1972년 7 4남북공동성명은 6 25전쟁 이래 처음으로 남북이 악수 를 한 사건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이 발표는 이제 곧 통일이 되는 것처럼 온 나라를 흥분 속에 잠 못 이루게 하였다. 그때는 사실 통일의 꿈보다는, 아직 도 6 25전쟁이 할퀸 폐허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김신조 사건과 실 미도 사건이 터지고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일으키는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 난다는 고마운 해방감이 더 컸다. 언론매체들은 다투어 국민을 통일의 환 상으로 몰아갔다. 당시 곧 통일이 되어 당장 눈앞에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 문제들, 즉 이북에서 급진적으로 이루어질 도시화의 양상, 월북자와 월남자 가 각각 귀향하여 재정착할 방법, 이북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국가에 몰수된 개인재산의 환수, 민족 공동체 안의 새로운 계급화와 계층구조의 발생 같은 시급한 현안 을 놓고 사회학자와 정치학자가 중심이 되어 벌이는 토론회 에 학생으로 동원된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통일의 꿈은 어느덧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1988년 소 위 7 7선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 15남북공동선언 등이 있어왔다. 7 4남북공동성명에서 근 30년이 지나 서 6 15남북공동선언이 나오고 김대중 노무현 두 현직 대통령이 직접 북한 방문까지 하였지만, 남북 대치와 경쟁 상황은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까지 도 변함이 없다. 오죽하면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남북관계의 진정성 문 제를 들고 나와서 남북한 신뢰 구축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원 리를 천명하였을까. 회고하면, 남북의 정권이 조금이라도 정치적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때마 다 남한의 대중은 미디어가 펼치는 통일 청사진에 들뜨고 설레곤 하였다. 남북 단일팀 구성, 남북이 참가하는 국제대회, 금강산 관광, 평양 방문단,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등 사건적 해프닝이 있을 때마다 미디어들은 국민 마음 깊이 깃들어 있는 통일의 기대를 경쟁적으로 자극하여 통일 로 드맵 (노무현 정부 시절에 유행한 신조어)을 다투어 논하였다. 그러나 언제 2 권두언

나 그렇듯이 일시적 흥분은 곧 다른 사건들을 쫒아 다니는 미디어에 의하여 잊히곤 하였다. 통일 논의도 하나의 유행적 쏠림에 지나지 않는 듯하였다. 다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걸친 10년간은 통일 이 특정 정치적 정향을 가진 세력의 전유물이 되었다. 냉전체제에 대한 비판이 민족주의와 결합하 여 자주적 통일을 추구하려는 강한 대중적 욕구를 만들어내었고, 이에 신 중론을 펴는 인사는 민족의식이 약하고 시대를 앞서나가지 못하는 도덕적 으로 열등한 사람이라는 낙인찍기가 가해졌다. 각종 통일 사업 이 국가적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원칙론을 들어 대북강경론 을 펼치면서 이번에는 통일 논의에 전향적인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 주의를 국시의 이념적 바탕으로 삼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사상적 좌표를 의 심받게 되었다. 그런 정치적 맥락에서 자의든 타의든 통일 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통 일 대박론 을 말하자 온 나라가 통일론에 다시 들뜨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 은 통일론을 좌우파 간의 경쟁이나 갈등의 요소가 아니라 그리고 특정 세 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과제로 되돌려놓은 의미가 깊은 전환이 라 하겠다. 주요 일간신문들이 통일을 위한 사업 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 작했으니 그 주식시장이 조금은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것도 우리 사 회에서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쏠림현상의 하나로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차분하고 진지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존재를 결정하는 일이며 미래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 토대 를 만들어주는 일이므로 명품과 여가를 즐기는 그런 소비 유행의 쏠림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이념적 레토릭으로서의 통일과 현실로서의 통일 방안 사이에는 많은 복 합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저마다 통일 논의에 공을 세우기를 다투면서도 70년이라는 세월이 남북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간 시간이라는 점에 는 아무도 심각한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가 빚어 진 70년이 통일을 준비해온 70년이라는 멋진 구호로 장식되는 것은 아이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3

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 상황과 이질화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남북이 오랜 기간 대립되는 이념과 체제를 고수하여왔다는 사실로 부터 통일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혹은 과연 진정한 의미의 통일 이 될 것인가를 두고 냉철한 논의를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7 4남북공동성명이 나온 후에 당시 행동과학자들은 이념과 체제가 개인에 게 미치는 학습과 습관화의 영향을 들어 남북의 이질화 현실을 염려하였고, 문화의 지속성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론으 로 김일성만 없어지면 당장이라도 북한 주민들이 휴전선을 걷어치우고 남 북통일에 동참할 것이라고 하였다. 광복 초기 청년들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라는 기치를 걸었던 순수한 혹은 순진한 열기는 민족주의와 더불어 서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있었다. 접근의 차분함과 조심스러움보다 대 중적 흥분을 유도하는 것이 더 유용한 정치자원이 되었다. 그런데 통일 논 의는 경제만능주의의 도전 앞에 놓이게 되었다.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나 통일 후 전체 국가가 정상적인 상황을 지속하려면 경제력이 무엇보다 결정 적으로 중요하다는 이론은, 곧 경제는 정치적 군사적 갈등을 넘어서 평화적 통일을 가능케 하며 남북 간에 경제적 균형이 이루어지면 통일은 자연히 온 다는 기대를 우리에게 주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힘입어, 돈 앞에는 이 념도 체제도 그리고 습관화된 세계관이나 행동방식도 쉽게 바뀌며 남북 간 에는 민족감정과 문화적 공통성이 근본적으로 있으므로 약간의 풍족한 물 질적 기반만 주어지면 사회적 문화적 통합은 간단히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우리를 설득하였다. 이는 오늘날 말하는 통일비용과 연결되며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이념적 추진력이 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과연 지난 30년간 남한 은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루어 북한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니 이제 통일론을 남한이 주도한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4 권두언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즉 경제력 우위가 통일의 결정적 요인이며 민족 통일과 사회적 문화적 통일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궁 극적으로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통일 국민 사이에 안정된 새 나라를 이루는 사회적 통합과 문화적 소통이 여하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찰해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통일론을 주도해온 전문가들 대부분은 남북 간 민 족문화의 토대는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으며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극복 해결하는 문화적 자산이라는 전제하에 통일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우 리에게 심어준다. 거기에 경제력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낙관적 태도 밑에는 역설적이게도 문화적 사회적 이질성과 갈등 요소는 쉽 게 해결될 수 있는 만큼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 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남북 간 왕래와 교류를 일상화하여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마침내는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정치적 통일을 앞당기고 또한 진정한 사회적 문화적 통일을 이루는 길 이라고 강조하는 일종의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한 문화 적 자산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문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 과 연결된다. 과연 체제와 제도적인 통일 전략을 짜는 데 문화적 이질성은 쉽게 해결될 수준의 것이며 동질성이 더 깊고 넓은 것일까? 우리는 이 점을 새삼 심각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남북의 사람, 사회, 그리고 문화의 재인식 우리가 남북 간의 문화적 동질성 혹은 이질성을 논할 때는 겉으로 드러나 는 물질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에 머물기 쉽다. 우리는 평양방송 아나운서 의 말씨와 말의 내용을 접하면 절망에 가까운 이질성을 느끼다가, 어쩌다 만나는 보통 북한 인민의 소탈한 표정과 탈북자들의 적극적 북한 현실 비판 의 자세에서 동질성을 감격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 양극 사이에서 우리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5

는 결국 두 얼굴을 합쳐서 공식적 표정 뒤에 있는 작은 평범한 표정이 진정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 한다. 그래서 인식의 혼란 속에서도 북쪽 동포 들이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한복을 입고 한식 식사를 하며 전통 민요를 노래하고 전통 춤을 춘다든가, 설과 추석 등 민족명절을 지내고 가 정에서 효를 중시하며 가부장의 권위와 남존여비의 전통을 보인다는 점을 들어 남북 간의 문화적 동질성을 희망에 차서 말한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 하면 이미 이런 부문에서 남북한 사회는 많은 본질적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서 문화란 그러한 형식과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표현하고 자 하는 어떤 의미와 가치의 심층 체계라 한다면,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관 찰의 편린들을 가지고 함부로 상황을 낙관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예 컨대 같은 말을 쓴다 하더라도 그 언어의 사용을 통하여 어떤 사상과 사고 방식과 지식을 전달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의 체제 적응과 순치 과정에 의하여 형성된 특정의 사 고방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감성체계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 앞에 놓 일 때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심리적 갈등 또는 사회적 불일치나 소통 부재 는 개인의 일탈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전체 사회의 혼란으로 귀결된다. 그 것은 군대식 동원 체제와 극장국가 의 생활구조에 훈육된 북한 주민이 남쪽 사회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날 뿐만 아니라 분열적 이기주의 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여겨온 남쪽 사람들이 또한 북한 주민과의 접촉에서 겪는 문화적 혼란과 부적응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을 임기응변 혹 은 대증요법식으로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확대 보급함으로써 해결 하려 들지 말고, 미리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예방에 필요한 것은 한마디로 다른 문화 간의 소통과 이해와 수용 의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이 무엇인지 아는 노력 부터 있어야 한다. 문화는 정치나 경제처럼 사람의 바깥에 있는 이념과 제 도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사고방식, 행동양식, 윤리관, 가치관, 세계관, 심미관, 그리고 무엇이 정상적이고 올바르며 이상적인가를 분류하 6 권두언

는 체계이자 기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한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깃들어 있는 문화에 대한 질적 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철저한 국가의 관리 아래에 있는 북한사회와 북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오직 탈북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정보를 얻는 원천이고 북 한 방송과 출판물의 행간 읽기가 북한을 이해하는 방법일 뿐이니 남북 간의 개방과 교류가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때 북한을 알려는 노력 대신에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는 시도가 유행하였다. 우리는 서구 지향적 현대화에 매몰되어 우리의 정신과 전통을 버리고 오염시켰고 냉전체제의 경직된 시 각에 얽매어 알지도 못하는 북한을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양심적 반성 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대북 시선이 왜곡되었다는 성찰적 통일론이 사 람이 살고 있었네 라는 방북 작가의 말로써 대변되었고, 우리의 이념과 체 제가 오히려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 이는 북한은 전통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고 우리는 너무나 변했다는 점을 대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음식, 북한의 예술은 민 족 고유의 전통과 순수성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 남북교류에는 언제나 예 술, 고고학, 어문학, 자연과학, 공학 등 소위 비정치성 분야의 교류가 우선 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처음 남북교류 행사가 있었을 때 북쪽의 전 통 춤이 빠른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남한의 예술 전 문가들은 북한의 춤이 순수한 것이고 남한의 춤 동작은 어느덧 서구의 물에 젖어 오염된 것이라 반성하였다. 이 신선한 충격에서 점차 우리의 춤 동작 도 북한의 춤 동작을 닮아갔고 북한에서 명성을 떨친 예술가에 대한 재조명 이 시작되었다. 이런 식의 북한 재인식 혹은 우리 반성을 고해성사 하는 심 정으로 다투어 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것은 민족 고유의 순수 예술 형식이 아니라 사회주의 예술의 한 기술이자 방식이었음을 알게 되었 다. 사회주의 예술에 대한 무지가 빚은 환상이었던 것이니 우리가 북한을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7

안다는 수준이 그러했다. 음식이란 재료와 새로운 요리법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변한다. 북한 음식 이 남한 음식에 비하여 재료가 적고 자극적인 맛이 덜한 것을 두고 담백, 순 수, 정결, 건강 등의 단어로 칭한 것 역시 남한의 자기비하와 북한 신화 만 들기의 한 결과다. 이러한 접근의 뿌리에는 결국 남한사회와 남한 사람들이 외래적 요소를 다 버리면 드디어 남북 간에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순진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그런가? 북 한도 사회주의와 구소련 및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제도, 형식, 개념, 스타일 이 모두 변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남쪽 사회의 부정적 경험에 조응하 는 치유적 대안으로서 북한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과연 변하지 않았 는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남북한 모두가 각자의 방식과 과정으로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의 무상한 변화는 그 괴리가 크므로 우리는 이질성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통일 논의가 피상적 수준에 그치는 가장 큰 원인은 남북한의 사 람 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 전문가들은 정치와 경 제 체제, 사회제도, 물질적 생활 조건 등 사람의 바깥에 있는 것들 즉 외부 적 환경에만 관심을 쏟아왔다. 이런 구조주의적 발상은 외부 구조 혹은 외 적 조건만 바꾸면 사람은 자연히 바뀐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문화는 더더 욱 피상적으로 취급하여 언어 종교 풍습 같은 가시적 차원의 것에 머문다. 그러니 언어의 차이는 소통 불능 수준은 아닌 만큼 좀 어려운 점이 있어도 조만간 해결될 문제이며, 예절과 풍속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는 공통적인 것이므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한다. 나아가서 문화는 정치나 경제 체제에 비하면 훨씬 동질적이어서 통일을 위한 문화자산으로서 가치 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화와 사람의 관계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머리에 어떤 사고방식 과 판단 방법을 가지고 있고 가슴에는 어떤 감정과 감성 체계를 가지고 있 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문화는 사람들이 오랜 정치적 경제적 환경과 사회적 8 권두언

경험을 통하여 형성하는 것이다. 기존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 니지만, 이와 동시에, 이미 만들어진 새로운 문화도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낱말 사용을 가지고 언어문화를 논할 것이 아니라 언어와 표현법 속에 들어 있는 그 사용자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꿰뚫어봐야 한다. 동일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되 그 언어로 각각 어떤 역사와 철학과 가치를 배 우고 익히며 말하는지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의 조선족은 우리말 과 우리글을 사용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우리의 역사나 문화가 아니라 한족 중국의 역사와 문화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물질적 조건과 제도의 틀에 의하여 굳어진 가치관, 윤리관, 행위양식, 그리고 역사교육과 집체활 동을 통하여 체득된 사상과 가치체계 등 심층에 자리 잡은 문화가 동일한 언 어를 통하여 어떻게 달리 표현되고 실천되는가를 간파해야 한다. 남북 간 문화적 동질성 혹은 이질성을 논하는 것은 음식과 복장과 낱말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상과 지 식과 능력, 정의, 정당, 공평, 공정성에 대한 판단 기준, 물질적인 부에 대한 가치관, 인간관계의 형성과 실천 방식, 집단과 개인,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상식적 적응, 개인적 욕망과 법의 타협, 자유와 공동체적 질서 의 관계 설정 등에 관하여 우리 자신과 북한 주민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냉 철하게 인지하는 일이다. 어떤 맥락에서 사회질서라는 개념을 해석하고 있 는지를 따지지 않고 그냥 질서 개념을 묻는 단순 질문 방식으로서는 탈북자 들의 심층에 자리 잡은 생각을 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광복과 더불어 남북한은 정치 이념과 국가 체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의 제도와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하였으니 가족제도와 사회 관계의 틀이 바뀌었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일상 차원에까지 침투하여 국민 을 세포화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하나 국가에 직속되며 횡적이고 자치적인 관계의 연망을 스스로 구축하는 훈련이 충분하지 못하다. 이는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데서 극히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9

이 생각하는 국가라는 것은 무엇이며 국가와 개인 혹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 는 어떠한가? 개인이 스스로를 사회의 주인으로 인식하는 의식과 권리의식 이 억눌려 있다. 그렇다고 남쪽의 우리는 모범적인 시민사회를 이루고 있 는가? 법치사회의 강조는 어느덧 법을 악용하는 기술의 발달을 촉진하였고 사회정의와 제도적 법정 사이에 괴리를 낳고 있다. 경쟁과 이기심으로 이웃 에 대한 배려를 상실하고 어떤 일에나 승패를 가리는 전투의식과 경쟁의식 으로 충만하다. 여기서 문화와 사회적 범주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 이웃을 만드는 능력과 기술이 부족함은 말할 것도 없다. 초정권 탈정치의 문화지평 넓히기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지난 70년간 우리들 사이에 이질화가 어떻게 진 행되었는가를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처음에는, 정치체제와 제도의 차이로 굳어진 사상과 생활방식의 차이는 정치와 경제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의 특 유한 적응력에 의하여 조만간 극복 해결된다는 낙관론과 그 조만간이라는 기간에 치러야 할 사회적 대가를 감당할 경제력 확보 여부가 통일 논의를 주도하는 의제였다. 결국 경제결정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동질성과 이질 성의 논의를 통일의 맥락에서 논할 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 제와 일당독재 및 사회주의 체제가 그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국가로 된다는 견지에서 쉽게 중국과 독일을 참조한다. 중국의 탈집체주의와 시장경제의 도입은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 나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과 범죄 및 비정상적 사건 등을 대가로 치르 게 만들었다. 그것은 관리가 부정부패한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 와 인민이 공히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탈집체화에 적응력이 부족하 거나 잘못된 데에서 비롯한다. 다만 아주 강력한 국가 통치 체제가 가동하 고 인민이 이미 그 통치 체제에 순치되어 있으며 사회주의의 기본 체제가 남 아 있기 때문에 중국 특유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 같으 10 권두언

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중국의 경우로부터 우리는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즉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체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이 곧 장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적응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탈북자 중에서 남한 체제에 그렇게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 가 많다는 사실이 그 증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통일이 된다 고 해서 북한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이행되 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한의 우리들도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자본주의 체 제가 통일이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사회주의 체제와 타협과 조정을 할 수 있을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와 사회에 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독과 서독은 비록 분단되었지만 우리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그들의 역사 경험은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분단 이 전에 하나의 독립국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세계사에서 긍정적 이든 부정적이든 주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분단되었으나 우리처럼 동족 상잔의 처참한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가족이 찢어지고 자신이 주인 이었던 삶의 터전에서 뿌리가 뽑힌 채 쫒겨나지 않았으며 씻을 수 없는 증 오와 한으로 서로를 바라볼 만큼 이질화되지는 않았다. 남북처럼 역사 인 식을 달리하고 상호 존재에 대한 부정과 배타적 대립을 해오지 않았다. 누 구는 남북 간의 이러한 한과 증오도 통일되는 그 순간 한 줌 바람이 되어 흐 트러질 것이라거나 한판 민족의 대동 굿판으로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 으로 기대한다. 혈연과 지연과 각종 사회적 관계의 끈이 얽히는 한국적 사 회 문화 체제 속에서 그러나 해원은 실지로 그리 쉽지 않다. 서로 이해관계 를 달리해온 오랜 현실 생활 속에서 맺힌 불공평, 부정, 증오, 한이 통일이 라는 새로운 현실에서 쉽게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직도 일제 청산을 두고 국론이 갈리고 그때 이루어진 불공정한 관계가 여전히 재생되고 있듯 이, 그런 혼란과 대결과 분열의 사회적 문화적 소용돌이 속에 또다시 휘말 릴지도 모른다.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11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리는 현실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북한의 동포가 어 떤 물질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 떤 문화가 형성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와 비교하여 그 차이 를 소통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첫째,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남북교류를 해야 한다. 남북교류 과정에는 순간적으로 파행이 야 기되지만 흔들림이 없이 지속하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남북의 교류는 통일 이 정권의 전유물이거나 정치권의 이용물이 아니라 전체 민족의 항상적이 고 공통적인 관심이자 일이 되어야 한다. 둘째, 북한에 대한 접근을 전시 전략의 차원에서만 하지 말고 일상 차원 의 사회적 문화적 이해로써 진행해야 한다. 즉 정치결정론과 경제결정론의 환상에서 벗어나서 사람 을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간파하는 노력이 중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인류학적,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철학적 접근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작금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를 케이 팝(K-pop)이나 한류 차원에서 운운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있지만 문화는 근본적이며 무거 운 것이라는 진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그럼으로써 이질성을 냉철하게 비교학적으로 파악하고 수용하여 제삼의 소통과 융합의 지혜 즉 문화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미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한 소설가가 사람이 살고 있었네 라고 북한 방문기를 전하고, 이어 또 한 소설가는 남쪽에서 외롭게 큰 형이 월북한 아 버지가 남긴 배다른 북쪽의 혈육을 연변에서 상봉하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형이 베푸는 모든 것들에 대해 부정하고 비난하며 공화국의 우월성을 강조 하던 동생이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형이 꼬깃꼬깃 접어서 내미는 달러를 말없이 받아 쥔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다 북한 동포가 사상 교육과 체제 적응 습관에도 불구하고 그 깊숙이는 본능에 가까운 마지막 인간적인 소통 과 화해의 가능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동에만 젖을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 자신을 성찰하 는 계기를 또한 가져야 한다. 12 권두언

이질화의 내용과 깊이를 진지하게 간파하자는 제안은 우리가 그것으로 써 민족 분단의 현실을 정당화하려 함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소통 을 통하여 새로운 동질화의 불씨를 지펴나가는 희망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하여 사소한 가능성을 부풀려서 모든 기대와 희망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분단 혹은 통일의 현실은 무대 위의 예술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걸려 있는 생존의 현실세계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 야 할 평화적 통일의 길은 계절풍처럼 주기적으로 펼치는 축제의 바람이 아 니라 남북 간에 이질화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심층적으로 꿰뚫며 그 것을 포용함으로써 마음의 장벽을 넘어 더 큰 소통과 포용의 지평을 만드는 정직하고 진지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일이다. 김 광 억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중국 산동대학 일급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인류학을 전공 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회인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의 정치학을 중심 주제로 삼아 중 국과 한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 한국문화인류학회 장, 동아시아인류학자연합회회장, 유네스코 세계인문학포럼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대통령 직 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이다. 중국 문명의 다원성과 보편성 (2014), 문화의 정치와 지역사회의 권력 구조: 안동과 안동 김씨 (2012), 세상읽기와 세상만들기: 사회과학의 이해 (2008), 광복 60년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2006), 종족과 민족 (2005), 혁명과 개혁 속의 중국농민 (2000), Re-Orienting Cuisine: East Asian Foodways in the Twenty-First Century(2015) 등의 저서(공저)와 편서가 있다. 김광억 진지함으로 남북 이질화의 분단 70년을 성찰할 때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