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입자물리학자이휘소박사 김진의 1977년 6월 16일 ( 수 ), 이휘소박사가시카고에서아스펜으로가던중트럭으로부터굴러나온타이어에치인교통사고로 42세를일기로사망하였다 는소식을 Brown대학에근무할때강경식교수로부터듣고서, 나는가까운사람을잃은큰슬픔을느꼈다. 서울공대같은학과로시작해서같은분야물리학을하게되었던것이항상내마음속에뿌듯하게느껴지곤했었는데 또바로보름전 Fermilab에서뵈었었는데, 그렇게가시다니 이휘소박사는물리학자로서수많은불후의논문들을남겼다. 이들은이특집에서많은분들이언급하리라여겨지기때문에여기서나는개인적으로느낀점을위주로적어보겠다. 나이로보아이휘소박사는나의 11년선배이다. 내가입자물리학을공부하던대학원생때에는학문의대가로서, 연구를시작했던 Post-doc 시절에는새로운아이디어가많은본받고싶은학자로서, 이휘소박사를우러러보고있었다할수있다. 몇년전, 서울대학교화공과 10회이훈택동문의글에서물리학자이기이전의이휘소박사에대한이야기가있었기에이이야기부터소개하고이휘소박사와입자물리학에대한소감을적어보고자한다. 이휘소박사는 1935년 1월생으로 1947년 9월경기중학교에입학하여줄곧우등을하였었다고전해진다. 중학 4학년에진급하자마자 1950년에한국전쟁이터졌고, 1.4후퇴후충남공주를거쳐경남마산으로피난갔다. 부산용두산위의야외와서대신동의가교사로마산에서기차통학을하고중학 5학년 ( 현제도에서는고교 2학년 ) 과정을 1952년 3월수료하게된다. 그러나경기중을졸업하지는않고, 곧검정고시를거쳐서울대학교공과대학화학공학 저자약력 김진의교수는 University of Rochester Ph.D(1975) 로서 Brown University Research Associate(1975-1977), University of Pennsylvania Research Investigator(1977-1980) 를거쳤고 1980 년서울대로자리를옮겨현재물리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서울대재직동안물리학과학과장 (1995), 연구처장 (1995-1997), 이론물리연구센터소장 (1999-2002) 등을역임하였다. 수상업적으로는한국과학상대상 (1987), 호암상 (1992), Humboldt Research Award(2001), 과학기술훈장 ( 혁신장 ) (2002), 최고과학기술인상 (2003) 등을수상하였고, 2006 년국가석학중한명으로선정되기도하였다. (jekim@phyp.snu.ac.kr) 과에입학하였다. 1952년공대입학생은 375명으로알려지고있고이휘소박사가수석이었다고전해진다. 서울대를졸업하였다면 10회이었을것이다. 부산의대신동에위치한서울대가교사에서공대 1년생들은 2개군으로나뉘어수업을받았다한다. 1군은化金土建採라하고 2군은기타였다한다. 1953년이휘소박사가대학 2학년이었을때, 서울수복과함께용두동현서울사대부고위치의임시교사에서수업을받았다. 공릉동의공과대학 ( 현산업대학교 ) 은 1955년 1월유학길에오르기전짧은기간만다녔을것으로사료된다. 이훈택동문의회고에의하면, 이휘소박사는당시에문리대물리학과로전과하고자하였으나, 그때에는전과나복수전공은제도적으로허용되지않아서뜻을이루지못했다. 화공과에서경기 38회전완영교수가당시에물리화학을가르치면서미국유학을준비중이었는데, 이휘소박사는 L. Pauling 과 E. B. Wilson의 Introduction to Quantum Mechanics ( 일본어판으로는量子力學 ) 와유타대학의 H. Eyring의저서 Quantum Chemistry 에실린문제들을그분과같이풀었다한다. 나는이과정이이휘소박사가화학공학을하지않고물리학으로돌아선직접적인이유로여겨진다. [ 필자도화공과를다녔고 1965년이른봄 2학년초현대물리강의중박봉렬교수가소개한그때막출판된아시아판빨간책 Feynman Lectures on Physics Vol. I, Vol. II를읽고 (Vol. III은그때에는출판되지않았음 ), 물리에매료된추억이있음.] 이훈택동문의회고는다음사실도언급해주고있다. 서울수복후이휘소박사는 Benjamin Franklin 자서전을대학동기들과원문으로읽었었다. Benjamin Franklin은펜실베이니아대학이있는필라델피아를근거지로삼고미국독립당시 1776년의미국독립회의를필라델피아에소집했던정치가이자양성자의전하부호를지금우리가택하는양 (+) 으로정했던과학자였다. 또한이휘소박사를가까이서이끌어주었던 C. N. Yang의미국이름이 Frank(Franklin의애칭 ) 임을기억하면, 이휘소박사가 Benjamin을미국시민이름으로택한두세가지이유를짐작하게한다. 필자가참석했던어떤국제학회에서이휘소박사는강연에서필자는알지못한어떤소설의문구를인용한것이기억나는데, 이처럼항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 13
상영어서적을독서하는습관은공대시절에도가졌었던것임에틀림없다. 내가 1977년 9월부터이휘소박사가과거에대학원생이었고교수였던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연구원으로근무할때, 이휘소박사의지도교수였던 Abraham Klein 교수가가끔이휘소박사를회고하곤하였었는데, Klein 교수본인은이휘소박사를더지도할것이없었다고했다. 이처럼이휘소박사를가까이서알았던모든분들이그의우수함을한결같이이야기하고있다. 나는이휘소박사와이야기할기회가없었으나, 처음의접촉은 1977년봄이휘소박사가 Milli-weak theory of CP violation 에관한논문을냈을때, 편지로질문한적이있고이휘소박사는곧답장을보내왔다. 이편지는통상의편지지에썼던것이아니고, 과학자들이많이이용하는모눈종이에초록- 노랑중간색의옅은그러나굵은사인펜으로쓴것이었으며, 이편지가오랫동안나에게간직된것으로생각했는데 30년이지난지금에는안타깝게도그종이를찾을수가없다. 그해 5월나는 Fermilab을 1개월방문하여비로소이휘소박사를대면하게되었다. 양자역학의시작이 1920년대중반이라고하면물리학자들은이에토를달지않을것이다. 어떻게보면양자역학의완성은 1970년대이다. 그러나이말 ( 양자역학의완성이 1970 년대라는 ) 은많은물리학자들로부터인정을받지는못할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내가이렇게주장하는이유는양자역학의연산자들사이의교환자관계식 의구조와그여파가 1970년대까지완성되었다고볼수있기때문이다. 즉, 우주에존재하는대칭성들 (Symmetries) 과그발현 (Realization) 이 1970년대까지는다알려졌다볼수있기때문이다. 이양자역학의대칭성이완전히찾아졌던시기 (1960-1980) 는입자물리학의황금기였고, 이휘소박사는이시기에입자물리학이론분야세계적학자들중최정상에도달했었던몇안되는학자들군에속해있었다. 당시에는전세계에서가장큰양성자가속기를가졌던 Fermilab의이론그룹에서책임자였다는것이이를말하고도남는다. 이훈택동문의회고에서처럼도미할때이미쉬뢰딩거방정식에근거한양자역학을깊이익히고있었던이휘소박사는, 유학초기언젠가위교환자관계식의심오함에대해해탈의경지에도달했을것이고곧바로세계적물리학자로발돋움하였을것이다. 입자물리학에서이대칭성의찾음은요사이용어로게이지이론 (Gauge theory) 이라는범주에속했고, 이것이구체적으로자연현상을기술하는이론으로서실험관측에의해정착된것 은대칭군 SU(3)xSU(2)xU(1) 에근거한손잡이꼬임 (Chirality) 을가지는표준모형이다. 1960년대에많은입자물리학자들이 S-matrix 이론으로강한상호작용을이해하려는노력을경주하였으나, 이휘소박사는양자장론으로입자물리현상을이해하려노력하였던몇안되는학자들중한분이었다. 양자장론에서대칭성을고려하고, 우주환경에서이대칭성의발현을생각해보면두가지가있을수있다는것이 1960년대초반에알려지게된다. 하나는소위위그너- 바일발현 (Wigner-Weyl realization) 으로일컬어지는것으로서우주에발현된상태도역시대칭성을보여준다는것이고, 다른하나는남부 -골드스톤발현 (Nambu-Goldstone realization) 으로일컬어지는것으로서우주에발현된상태는대칭성을깬다는것이다. 1960 년이전에는위그너 -바일발현만을대상으로대칭성을연구했다. 이휘소박사가박사학위를받고연구를시작할때는이남부- 골드스톤발현에대한깨달음이입자물리학계에서인식되기시작한때이었다. 입자물리학의당시연구선호도를보면주연구대상은 S-matrix 이론에의한강한상호작용이었고, 작은그룹만이이양자장론적대칭성의연구에큰의미를부여했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이후에는양자장론적대칭성에바탕을둔연구가입자물리학분야를점령하게된다. 이후지금까지입자물리학을이끌었던학자들 ('t Hooft, Veltman, S. Weinberg, Abdus Salam, Glashow, Gross, Wilczek, Politzer) 이무슨연구로노벨위원회로부터인정을받았는지보면쉽게알수있는일이다. [ 현재주류연구인초대칭성이맞지않는다면, S-matrix 연구때보다더큰빗나간연구의역사가기록될것이다.] 어느시기에는주류연구에서벗어난비주류이었지만결국자연을올바르게기술하는분야를연구할수있었다는것은엄청난행운이다. 나의 30여년의연구경험에비추어볼때, 연구자가어떤주제를택해연구하느냐하는것은그연구자일생의영욕을결정짓는첫번째관문이라할수있다. 어떤분야를택한다는것은운 (chance) 으로밖에설명할수없다. 이행운의신은 누가더명석하느냐? 로대상을선택하지는않을것이다. 물론, 그택한분야에서탁월한업적을이룩할수있는것은명석함과준비와노력에의해서이루어지지만. 이와관련해필자는흔히학생들에게 't Hooft가게이지이론을연구분야로택하게된것을예로들곤한다. 다알다시피 't Hooft는수학적능력이탁월한명석한학자이다. 그가네델란드에서게이지이론에관심이많았던 Veltman을지도교수로택하지않았다면, 입자물리학에서그가이룬것에버금가는훌륭한업적을다른분야에서성취할수있었을까? 물론그의명석함과유능함으로판단하건대, 어느분야에서건괄목할만한업적을이루었을것으로추측할수있지만, 그에 14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
게만꼭들어맞는분야로여겨지는게이지이론에서이룩한수준의업적을다른분야에서는이룩하지못했을것으로여겨진다. 그가 Veltman을지도교수로택한것은행운이었다. 이휘소박사가 ( 게이지이론을선도하게되는분야인 ) 대칭성및남부 -골드스톤발현에이미 1960년대에관심을가졌던것도엄청난행운이었다. 물론, 지도교수 Abraham Klein은양자장론으로연마된핵물리학자이었으므로지도교수로부터의영향은없었을것으로사료되며, 이휘소박사는박사학위를받은후연구자생활을통해점진적으로이분야에매력을느꼈을것으로본다. 이휘소박사는유명여름학교에서중요한강연노트들을많이남겼을뿐만아니라, 책이나개괄논문으로서도한권의책, 두편의 Reviews of Modern Physics (RMP) 논문및한편의 Physics Reports 논문을남겼다. 1970 년 Cargese 여름학교에서의강연을쓴책 Chiral Dynamics [Gordon and Breach, Science Publishers, Inc., 1972], Simple Groups and Strong Interaction Symmetries [R. E. Behrends, J. Dreitlein, C. Fronsdal, and W. Lee, Rev. Mod. Phys. 34, 1 (1962)], Gauge Theories [E. S. Abers and B. W. Lee, Phys. Rep. 9, 1 (1973)], Search for Charm [M. K. Gaillard, B. W. Lee and J. L. Rosner, Rev. Mod. Phys. 47, 277 (1975)] 이그것들이다. 이들에는공저자들도있으므로공저자가있는세편의개괄논문들을보면연구원초창기때완성한것으로여겨지는 1962년의 RMP 논문이외에는모두이휘소박사의주도로집필된것이분명하다. 1973년의 Physics Reports 및 1975년의 RMP(1974년여름투고 ) 논문들은게이지이론의황금기에나타난모든물리학자들에게길잡이가되었던논문들이다. 이들은 게이지이론이재규격화가가능하다 는이휘소박사의주연구업적이후에쓰인논문들이므로, 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증명이전의개괄논문및책에나타난이휘소박사의관심을먼저살펴보자. 대칭성의논의에서는군론의지식이필수적이다. 이휘소박사의 1962년 RMP 개괄논문 Simple Groups and Strong Interaction Symmetries 의저자들은모두펜실베이니아대학에주소를두었고 1962년 RMP 첫번째호에실렸다. RMP에서는투고후출판되는데통상 1년의기간이소요됨을감안하면, 1955년 1월에도미한이휘소박사로서는도미후만 6년에가서 RMP에투고하였을것이고, 오하이오주의마이애미대학및피츠버그의피츠버그대학을거쳐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옮긴점을감안하면이제막박사학위를받은연구원으로서이개괄논문에서는주도적역할을했다고보기는힘들다. 그러나공저자들중에서유독이휘소박사가그후이분야에서대성한것을보면, 대칭성에관한것을누구보다도꿰뚫어보고있었다고사료된다. 내가펜실베이니아대학에 있을때, 핵물리학자 Ralph Amado 교수로부터들은이야기는당시의군론에대한이휘소박사의심정을잘대변해준다. 당시펜실베이니아대학의수학과에서도군론은깊이연구되고있었으나그들은논리적으로만군론을연구하였던것이분명하다. 물리학자들은 SU(2) 군의표현을흔히파울리의 σ-행렬로표현해서보는데, 펜실베이니아대학수학과교수들 ( 아마도이휘소박사가대화를나누었었던수학과교수들이었을것으로사료됨 ) 이이것을모른다는것을보고이휘소박사는놀랐었다고한다. 필자도 Amado 교수로부터이이야기를듣고놀랐다. 어떻든이러한비가환대칭성을이휘소박사는이미 1961년에깊이알고있었음에틀림없다. Zweig와 Gell-Mann 의 SU(3) 쿼크모형이 1963년말에가서나정립 (1964년출판 ) 되었을것을감안하면, 유명개괄논문인 RMP에출판할정도로이휘소박사의군론에대한깊은지식을엿볼수있다. 그다음에출판한 Chiral Dynamics 의목차를살펴보면, Chiral SU(2)xSU(2), The σ-model, Renormalization of the σ-model, Ward-Takahashi identities 등이실려있다. 이들은현대입자물리학에서흔히접하는말들이며, 게이지이론이 1971년부터재규격화 (Renormalization) 가가능한이론으로받아들여진것을감안하면이미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가증명되기전에거기에필요한모든도구들을이휘소박사는익히고있었다고볼수있다. 이책에서, 파이중간자의질량이거의없음을 파이중간자는골드스톤보존이다 라는 Gell-Mann-Oakes-Renner에의해발견된 Chiral SU(2)xSU(2) 대칭성의자발적깨짐이논의되고있다. 게이지이론을공부한학자들은여기에나타난골드스톤정리를익히접해보았을것이다. 목차로부터알수있듯이이러한자발적으로깨진대칭성 ( 비록광역대칭성에국한되었지만 ) 을가지는이론에서의재규격화가이책에서기술되고있다. 서문에서적고있듯이재규격화에대해서는 Abraham Klein의지도교수였던 Schwinger의 Stony Brook 체재가이휘소박사에게큰영향을미쳤을것으로사료된다. 이책을쓰게된 1970년의 Cargese 여름학교강연! 아마도 't Hooft는학생으로서이여름학교에참가하지않았을까? 이휘소박사가대칭성과대칭성의자발적깨짐을깊이알고있었었다는것은신이내린크나큰행운이었다. 그러나이휘소박사는대칭성과대칭성의자발적깨짐을깊이알고있었었는데도왜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를첫번째로는증명하지못했을까? 나는이와관련하여 S. Weinberg에대해서도, 그의 1967년 Phys. Rev. Lett. 논문이 Renormalizable 할것이라는가능성을제시하고있었기때문에, 같은의문을가졌었고그에게아직까지이점에대해물어볼기회는없었다. 30년전 Weinberg의학생이었던 Lay Nam Chang에게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 15
이점을물어본게전부이고, Lay Nam Chang의대답은 Weinberg는 Faddeev-Popov의논문을모르고있었었다고답변해주었다. 추측컨대, 이휘소박사는 Faddeev-Popov의논문을 1968년말에는알았을것으로보이지만그중요성을나중에야알았을것이다. 왜냐면, 이것을등한시한恨 (?) 으로인해러시아판 Faddeev-Popov의논문을이휘소박사가번역하였을것으로사료되기때문에. 강주상교수는이점을잘알고있을것으로생각된다. 't Hooft의지도교수였던 Veltman 은 Faddeev-Popov의논문내용및중요성을일찍부터알고있었던것같다. D. Gordon과이휘소박사가영문으로번역한 Faddeev-Popov의논문서문에이논문을어디서구한논문인지다음과같이밝히고있으므로 : The present text is based on an informal translation of the original Russian version that Professor M. T. Veltman arranged in Paris in 1968. 신은왜이렇게완전하게준비된이휘소박사에게러시아어를배우고 Faddeev-Popov 논문의중요성을인식하라는계시의행운을주지않았을까? 이휘소박사는파리에서 1968-69 안식년을보냈다. 이것이 1970년대이휘소박사의불후의논문들에서프랑스학자들 (Zinn-Justin, Gaillard) 의이름을발견하게되는이유일것으로사료된다. 나는이것이이휘소박사의행운인지프랑스학자들의행운인지가끔궁금해질때가있다. 이휘소박사는 1972년부터 5년여근무하게되는마지막근무지 Fermilab으로주소를옮기고, 여기서그의일생중가장왕성한학문활동을벌이게된다. 그의나이 37세이었다. Fermilab에설치된당시세계에서가장큰가속기는 1972년부터가동에들어가한동안 100 GeV 정도에너지를가지는 muon-neutrino 실험을하게된다. 이때에는이미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가 't Hooft, Veltman, 이휘소박사에의해증명이된이후여서입자물리학에서의새로운발견이 Fermilab으로부터기대되던때이었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의기간중입자물리학분야에서는많은중요한현상들이발견되게된다. 강한상호작용을기술하는이론이 QCD라불리는 SU(3) 로정착되는것을가능하게한 Asymptotic freedom의발견, 표준모형의재규격화와맞물려예견된네번째쿼크 charm quark의발견, 비가환게이지이론에서자기홀극 (Monopole) 해및순간자 (Instanton) 의발견및 Strong CP Problem 등장등등. 이기간중이휘소박사의불후의논문 Search for Charm 의 Preprint가 1974년여름에나왔고, 이때부터 c 쿼크를포함하여표준모형이거의믿어지게되었다. [ 표준모형과관련해, 아래에 1977년상황을좀더자세히적음.] 물론이보다먼저 M. K. Gaillard와계산한 c 쿼크질량 (1.5 GeV/c 2 ) 은학계에서받아들여지고이후 Gaillard-Lee 계산은입자물리학입자예견의좋은본보기가되어왔다. 이휘소박사의 c 쿼크질량예견 1.5 GeV/c 2 및 Search for Charm Preprint는 Brookhaven에서실험하는 Ting 교수에게어느에너지영역을쳐다볼지알려주었을것이고, Ting 교수는 1974년 8월말에 e + e - 에너지 3.1 GeV에서입자를보았다고알려져있다. 그후이 3.1 GeV/c 2 입자는 11월하순에가서야 November Revolution이라불리며입자물리학계를강타한다. 이입자는현재 J/ψ라불리고논문은 Brookhaven의 Ting 그룹과 SLAC의 Richter 그룹에서동시에나왔다. 이로써, 입자물리학분야는 Parity violation에이어서중요한이론적예견이실험으로발견된두번째경험을하게되었다. 1974년부터이휘소박사가어떤위치에서게되었는지가히짐작할수있다. 내가계산한그예측이맞았다. 는기쁨을맛볼수있는과학자가과연몇명이나될까? 누구나 November Revolution 이후이휘소박사가맛보았을기쁨을추측하기는어렵지않을것이다. J/ψ의발견으로 Ting과 Richter는 1976년노벨상을공동수상하게된다. 1977년은이휘소박사가서거한해이다. 이해초에 Fermilab 가속기에서는 muon-neutrino 실험으로부터 Tri-muon event 들을보았다는발표가있었고, 전세계는이 Tri-muon event 를설명하려는노력을경주하게되었다. 지금받아들여진 SU(2)xU(1) 표준모형으로는 Fermilab에서발표한 Tri-muon event를설명할수없었다. 이에이휘소박사는 S. Weinberg 와 SU(3)xU(1) 모형을 Phys. Rev. Lett. 에발표한다. 이모형은 SU(2)xU(1) 모형이설명하는것들은물론 Fermilab의 Tri-muon event를설명하려하였다. 결국더많은데이터의축적으로, Fermilab에서원래발표한 Tri-muon event는사라지게되었다. 어떻든, 이로써 Fermilab은 1973년의 중성류 (Neutral current) 가없다 는발표와 1977년의 Tri-muon event 로두번의불명예를역사상안게되었다. 그러나지금에는이들이모두데이터축적과정의일부로취급되고있다. 이에피소드들은물리현상발견의발표에신빙성이얼마나있는지깊이살펴보아야만한다는교훈을우리에게던져주고있다. [ 참고로부연하면, 표준모형이현재에받아들여진형태로정착된것은 1977년의 Tri-muon event라는대혼돈을거쳐 1978년여름에가서야 SLAC의편극된전자 -중수소산란결과발표이후이루어졌다. 이휘소박사는이것을지켜보지못하고떠났다.] SU(3)xU(1) 모형과관련하여, Phys. Rev. Lett. 에서는 Lee-Weinberg-Shrock으로더자세한논문을예고해놓고도, 이예고된논문에서 Weinberg는이름을뺀다. 아마도, SU(2)xU(1) 이라는본인의모형이있는데, 실험적의문이뒤따르는문제에더큰주장을하기싫어서이었을것으로생각된다. 참고로부연하면, Glashow, Salam, Weinberg가 16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
1979년노벨상을받게되는것은 ( 필자도나중 RMP에출판하게되는 ) 약한상호작용의중성류발견에기인한것이었다. SU(2)xU(1) 이예견한 Z보존은 1982년말에가서야 CERN의 SPS 가속기에서발견되었다. Z 보존의발견은입자물리학에서이론적예견이실험으로증명되는세번째중요한예이다. 중성류현상은표준모형의정착에서넘어야할관문이었고, SU(2)xU(1) 모형에서는 Z보존에의한중성류가꼭나타나므로, 1972년이휘소박사는 Z보존은있으나뉴트리노산란실험에서중성류현상이나타나지않는모형을 Prentki, Zumino와함께만든적이있고 Georgi, Glashow는아예 Z 보존이없는모형을만들기도하였다. 1977년이휘소박사는 S. Weinberg와불후의마지막논문을남기고세상을떠난다. Phys. Rev. Lett. 7월 25일자에실린 Cosmological Lower Bound on Heavy Neutrino Masses 이며이휘소박사가서거한지 1개월여만에출판되었다. Referee 과정이모두끝나도물론출판되었겠지만, 전해들은바로는이논문은투고중사망하면 Editor에의해출판해준다는관행에의했다한다. 논문접수일자가 5월13일인점을감안하면알수있는점이다. 약한상호작용을하는입자중질량을자유로택해볼수있는입자는당시에는뉴트리노뿐이었다. 1972년에이미뉴트리노질량이 O(100 ev) 이면우주의임계질량을채운다는점이알려졌다. Lee-Weinberg 논문에서는가상적인약한상호작용을하는입자로서당시에생각할수있는무거운뉴트리노를생각하고우주의임계질량을주는무거운뉴트리노질량을계산한논문으로서질량이 2-5 GeV보다크면안된다는것이었다. 암흑물질을설명할때이용하는 WIMP라는말중 W는약한상호작용의 Weak 를뜻한다. 요사이초대칭이론에서암흑물질을예견하는것이가장큰장점처럼주장하는학자들이많은데, WIMP의상호작용을매개하는초대칭성입자들의질량을대개 100 GeV - 1000 GeV로잡기때문에약한상호작용과견줄수있기때문이다. 즉 WIMP 아이디어의원논문은바로 Lee-Weinberg의논문이다. R-parity를도입한초대칭이론에서가장가벼운초대칭성입자를 LSP라부르고있다. LSP가우주의진화과정중평형으로부터벗어나기시작할때의우주온도즉 T f 는 LSP 질량의 1/20으로쓰고있는데, 이수치도 Lee-Weinberg 논문에이미계산되어있다. 이처럼이휘소박사는이분야즉입자천체물리학 (Particle astrophysics 또는 Particle cosmology) 을열어놓고세상을떠났다. 나는 1977년가을 Weinberg의일반대중을위한유명한저서 The First Three Minutes 를읽고큰감명을받았다. 아마도이책은많은입자물리학자들에게감명을주었을것이다. 이는이후의입자천체물리학의폭발적인연구결과들을보면 가히짐작할수있는일이다. 1978년의대통일이론에서 Baryogenesis의유도, 1979년의대통일이론에서의우주의자기홀극문제존재인식, 1981년의팽창우주론제창, 1982년의 New inflation 제창및우주배경복사계산, 1983년의 Axion cosmology 도입, 1984년의초중력자의우주론적영향등. 이휘소박사가생존해있었다면, 이모든분야에서주도적역할을담당했을것임에의문의여지가없다. 입자천체물리학을개척함은물론, 위에열거한모든분야를논의할준비가가장완벽하게갖추어진학자임에틀림없었으므로. 이휘소박사가서거한지 4개월이지난후, 급히소집된 Unification of Elementary Forces and Gauge Theories 를주제로한 Ben Lee Memorial Conference가 1977년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Fermilab에서개최되었다. 이휘소박사를존경하는많은학자들이모였으며, 그규모면이나내용면에서이를능가한추모학회를나는들어본적이없다. 나는최근에이학회 Proceedings에참가자들이적혀있지않고이휘소박사에관해추모이야기를한학자들도완전하게는적혀있지않아서기록으로서는좋지않은 Proceedings라는것을발견하게되었다. 이학회에는나를포함하여한국학자들도다수참석하였다. 결국노벨상을받게되는학자들도다수참석하였는데, 내기억에남는학자들은 Fowler, Glashow, Lederman, Politzer, Veltman, Weinberg, Wilczek 등이다. 30년이지난후돌이켜보건대, 이학회에대한나의기억에는중요한게두개있다. 첫째는, 이휘소박사가 't Hooft와함께증명한비가환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에관한관련당사자들의언급이다. 내기억에 Veltman은이학회에서이휘소박사를존경했다고말한기억이있다. 그러나재규격화에대해어떤것을어떻게구체적으로말했는지기억이나지않는다. Veltman이노벨상받은후인몇년전 Ann Arbor의학회에서학회만찬후 Veltman과오래동안 Strangeness의발견및그후입자물리뒤이야기를하였을때, Veltman은이휘소박사가훌륭한학자라고하면서 Ben Lee Memorial Conference의단편을이야기해주었다. Veltman 본인은거기에서이휘소박사에대해좋게말했지만, Weinberg는그렇지않았다고했다. Weinberg의원고는그러나편집자의권고에의해마지막에고쳐져서 Proceedings에 Veltman이보기에는만족스럽지않았지만괜찮게출판되었다했고, Even there are good words. 라고말해주었다. Veltman 본인은원고를쓸기회가없어서원고를편집자에게보내지않았고, 나에게한번 Weinberg의글을읽어보라고했다. Conference Summary에서 Weinberg의재규격화에대한언급은 For these reasons, there was little interest in a conjectured fourth flavor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 17
until 't Hooft and Ben Lee proved the renormalizability of gauge theory in 1971. 이다. 여기에는후에표준모형의재규격화증명으로 't Hooft와노벨상을공동수상하게되는 Veltman의이름이빠져있다. 잘알려져있듯이 Veltman이간주했던표준모형에서의재규격화완성은 Weinberg의 1967 년 Phys. Rev. Lett. 에서 Renormalizable 가능성을언급만한것으로완성되었던것이아니라 Glashow-Iliopoulos- Maiani의 c 쿼크의도입에의해 Anomaly가없는 SU(2)xU(1) 모형으로만들어야완성된다는것이었다. [ 지금은세번째입자족인 tau-neutrino, tau, b 쿼크, t 쿼크까지도입해 Anomaly가없게표준모형을만들고있다.] 학자들사이서로학문적업적을인정하는데있어서재미있는것은, 여기에적혀있듯이 Weinberg에게는 c 쿼크의도입이재규격화가증명될때까지는별로흥미가없었다는것이다. 이말에 Glashow는동의하지않을것이다. 그러나 1971년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증명이후 1972년에가서야두그룹 (Gross-Jackiw, Bouchiat-Iliopoulos-Meyer) 에서 't Hooft 의 Dimensional regularization을이용한재규격화증명은 Anomaly가없어야완성된다. 는논문이나온것을보면, Veltman과 Weinberg의주장모두일리가있다고여겨진다. 게이지이론의재규격화와 c 쿼크의발견에결정적기여를한이휘소박사! 그는한국이낳은양자역학완성기의입자물리학지도자로서영원히기억될것이다. Weinberg의마지막문장인이휘소박사에대한회고는 I want to say a word about this conference and Benjamin Lee. I think that Ben would have enjoyed this conference very much. For one thing, Ben tried throughout his working life to break through the barriers of specialization, and to cover the widest possible range of problems in physics. This conference has brought together a fantastic variety of concerns within physics, ranging from cosmological and galactic down to the level of atoms, nuclei, elementary particles, and underlying substratum of quantum fields. Ben would have found all of it stimulating, and would have illumined every part of our discussion. 이다. 내보기에정확한표현인것같다. 둘째로는, 이 Ben Lee Memorial 학회에서 Weinberg와 Wilczek은 Peccei-Quinn 메카니즘은액시온을내포한다는발표를한것이다. 이것은아주새로운폭탄선언이었기에이학회기간중 Lederman이 Weinberg를뒤따라다니며어떻 게발견할지물어보았던장면이내눈에선하다. Weinberg는학회 Summary에서액시온은 1년내로발견될것이라고언급했다. 일생액시온에서흥미를잃지않았던나에게이학회는특별한것이었다. 나는이학회에서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돌아온직후, Langacker, Segre 및연구원들과함께 Weinberg 와 Wilczek의이야기를이해하려노력했고이틀이지나서야앞뒤를완전히알게되었다. 우리는 1년후각자 Strong CP Problem을푸는모형들을제시했고, 나만이액시온방법으로문제를해결하였다. 이제내가일생동안많은노력을경주했던아주가벼운액시온에관련된 Fermilab 관련에피소드를적어보자. 1977년 5월한달동안내가 Fermilab을방문하고있을때, Helen Quinn은 5월중순 Fermilab Theory 그룹세미나에서 Peccei-Quinn 논문에관한발표를하였고, 나는이때처음 Peccei-Quinn 대칭성을접하게되었다. 이조그만세미나청중중에는 1개월후작고하게되는이휘소박사도있었다. 당시세미나실탁자들은 U자형으로배열되어있었다. Peccei-Quinn 대칭성은기본적으로쿼크에대한손잡이꼬임 (Chirality) 을힉스입자까지포함하여확장한것이었다. Peccei-Quinn 대칭성은광역 U(1) 대칭성이며, 힉스스칼라는진공기대치를가지게되므로 Peccei-Quinn 대칭성을자발적으로깨게되고, 따라서골드스톤입자가존재하게되며이입자가액시온으로불린다. 그러나소위이페차이- 퀸-와인버그- 윌첵액시온은 1978년여름에는이미존재하지않음이알려졌고, 따라서 1978년에는액시온이아닌방법으로강한상호작용의 CP 문제를해결하려는노력이폭넓게이루어지고있었다. 이러한배경하에서나는 Peccei-Quinn 대칭성을힉스이중장이아닌 SU(2)xU(1) singlet 장에도입하는방법으로 1979년초아주가벼운액시온을얻었고현재차가운암흑물질후보로여겨지는것이바로이아주가벼운액시온이다. SU(2)xU(1) singlet 장은표준모형을뛰어넘는이론에나타나므로, 나는이후자연스럽게표준모형을포함하는대통일이론및초끈이론을아주가벼운액시온과관련지어연구하게되었다. 나는대학입학학과와학문적으로추구하는분야가이휘소박사와일치했던것을자랑스럽게생각한다. 그리고가끔생각해본다. 이휘소박사는보지못했지만, 나의액시온연구가이휘소박사마지막 1년의발자취에서그씨앗이나오고있음이, 또한액시온은 Ben Lee 추모학회로부터연속되어오고있음이, 신의구도인지도모를일이라고. 18 물리학과첨단기술 November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