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_콜로키움_발표문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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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콜로키움 해항도시 네트워크와 문화교섭 하네다 마사시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소장) 아시아 해항도시(port cities) 비교연구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조흥국(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교류 서 승(리츠메이칸대학 Korea연구센터 소장)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이희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아랍-중국-신라의 사회경제적 방정식 남종국(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중세 말 베네치아의 해상 네트워크 : private shipping을 중심으로 이철영(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바다 그리고 바다도시 황을문(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港 都 부산과 海 洋 文 學 배경한 (신라대학교 사학과 교수) 상해사 연구의 현황과 상해 부산 교류사 연구의 전망 주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후원 한국연구재단 장소 종합관 세미나실 C214호

2 차 례 제8회 콜로키움 _ (금) 아시아 해항도시 연구 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제8회 아시아 해항도시 비교연구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1 하네다 마사시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소장) 제9회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교류 9 제10회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37 들어가며 1. 해항도시 과연의 목적과 방법 2. 해항도시 비교연구 가능성 3. 새로운 세계사 제11회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59 들어가며 제12회 중세 말 베네치아의 해상 네트워크 87 제13회 바다 그리고 바다도시 103 항도 부산과 해양문학 103 제14회 상해사 연구의 현황과 상해 부산 교류사 연구의 전망 115 오늘 이런 자리에 오게 된 것은 2007년 제가 일본어로 출판한 [동인도회사와 아시 아의 바다]라는 책을 이수열씨가 우연히 보고 그 내용을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이수 열씨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05년 봄부터 2009년 봄까지 4년간 실시한 공동연구 [17-18세기 아시아지역 해항도시에서의 이문화교류 제상에 대한 비교연구], 통칭하여 해항도시 과연 科 硏 (과연이란 일본학술진흥회의 과 학연구비의 약칭입니다. 연구비총액 3600만엔)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작년에 종료했 고, 이어서 더욱 더 대규모의 공동작업인 [유라시아 근대와 새로운 세계사서술](통칭 유라시아 과연, 연구비총액 9500만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5년 계획으로 2014 년 봄까지 계속됩니다. 오늘은 강연을 통해 작년에 끝난 해항도시 과연 의 내용과 주된 성과를 소개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유라시아 과연 의 목적과 방법을 설명한 뒤, 앞으로의 연구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해항도시 과연의 목적과 방법 (발단) - 페르시아의 반다르 압바스에 있어서의 이문화교류에 대한 관심.

3 - 네덜란드어 습득의 필요성. 동경대학 사료편찬소 동료가 주최하는 네덜란드어 문헌 독서회 참가. - 나가사키 長 崎 와 반다르 압바스의 네덜란드동인도회사 관계문서를 비교하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착목. - 타 동인도회사 관계자료도 함께 사용한 아시아 각지 해항도시에서의 이문화교류의 제상에 대한 종합적 비교 가능성. (목적) -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동인도회사가 상관 商 館 을 설치한 아시아 지역 6개의 해항도시에 대하여, 6개의 포인트를 설정해 이문화교류의 제상을 구체적으로 비교 하고 각 해항도시와 그 배경에 있는 사회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시도한다. (방법) - 가능한 한 동인도회사 관계자료와 현지어 사료 모두를 사용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유럽 언어 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은 유럽과 아시아간의 이문화교류 연구라 고 잘못 이해되기 쉬우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각 해항도시에서의 복합 적, 중층적인 이문화교류의 제상을 밝히고 그것을 다른 해항도시의 예와 동일한 각 도에서 비교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 동인도회사 문서는 각 해항도시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형식. 따라서 동일한 각도에 서 비교하는데 적당하다. - 일본에서 연구가 진전되어 많은 업적이 발표되고 있는 나가사키의 예를 비교의 척 도 로 이용한다.(->일본어로 된 연구의 국제화) [비교의 6개 포인트] 1 동인도회사 상관 및 아시아 여러 지역의 상인커뮤니티의 위치, 부동산 소유관계, 건물의 특징 2 현지/외래자 外 來 者 의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3 상거래 및 하물 운반 방법 4 분쟁 시의 법적 처리 방법(현지 정치권력 VS 외래자) 5 남녀관계의 형태 및 혼혈아의 사회적 지위 6 의복, 음식, 기술, 사상 등의 수용과 거절 [연구대상이 되는 6개 해항도시] 1 나가사키(일본) 2 광동 廣 東 (중국) 3 바타휘아Batavia(자카르타) 4 마드라스Madras(남동 인도) 5 수라트Surat(북서 인도) 6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이란) (연구 과정) - 연구자는 25명 단위로 팀을 만들고, 연 2-3회 전체집회. - 테마 예 : 각국 동인도회사의 비교, 각 해항도시의 6개 포인트를 검토, 나가사키 연 구의 도달점과 앞으로의 과제. 2번의 국제연구집회. 현지조사. (연구 성과) - 연구 분담자에 의한 많은 단독저서(하네다 마사시[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고 단샤 講 談 社, 2007년)는 그 중 하나)와 논문. - 영문 논문집 : Asian Port Cities Local and Foreign Cultural Exchange, NUS Press & Kyoto University Press, 비교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각지의 해항도시와 그 배후에 있는 사회적 특징이 선 명히 드러나게 된다. - 국경을 넘어 보다 넓은 지역의 해항도시의 공통적 특징을 볼 수 있다. 한 예를 들면 : 나가사키와 광주에서는 현지 정권이 해외무역을 관리하려고 들어 해외에서 온 사람들(광주의 경우는 특히 서양인)의 동향을 감시. 해외 사람들을 현 지인들과 구별한다. 통역은 현지 정권이 인정한 사람이 맡는다. 한편 인도양의 해항 도시(반다르 압바스나 수라트 등)의 정권은 기본적으로 해외무역을 관리할 의지가 없다. 통역은 동인도회사 측이 준비.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해항도시에서 자유롭게 거주. 동방유라시아 해역에서는 안 과 밖 의 구별이 확연하다. 이에 비해 남방유라 시아 해역에서는 안 과 밖 의 구별이 거의 없다. 2. 해항도시 비교연구의 가능성 1 일국사 一 國 史 혹은 이국간 二 國 間 관계사의 틀 속에서 해석되고 이해되어 온 역사서술 에 대한 재평가 2 어떤 나라나 지역의 역사적 특징을 새롭게 발견 : 예를 들어 이미 언급한 바와 같 이 동방유라시아 정권은 해외무역과 인적 왕래를 관리. 이 점은 그 지역 정권의 커다란 특징. 남방유라시아와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이해가 가능. 또 동방유라시아 사회의 안 과 밖 구별의 강도. 3 새로운 세계사서술을 구상할 때 활용 가능

4 3. 새로운 세계사 우리는 글로벌화와 함께 서로 연관성을 강화하고 있는 현대세계의 실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세계사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사는 세계는 하나이며 인류는 공통의 운명 하에 놓여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이라 크문제를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파악하는, 그러한 연대감을 자아내는 세계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덴티티(귀속의식)는 역사 속에서 발 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세계사를 고 안해 내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세계사는 유럽(서양)과 비유럽을 확연히 구별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던 유럽인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구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구별은 무의미하며 유해하기조차 하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세계사를 그리려고 한다면 유럽 비유럽의 구별을 극복해야만 한다. 비교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일국사(일본사, 중국사 등)나 지역사(유럽사, 이 슬람세계사 등)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나는 일국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새로운 세계사가 더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이라 고 일괄적으로 이해되는 지역의 역사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6세기 유럽 을 대표하고 있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19세기 어떤 상황에 있었는가? 유럽 사란 과거의 좋은 점만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16-17세기 일본열도의 사람 들은 포르투갈인, 스페인인과 영국인, 네덜란드인을 분명히 구분하여, 전자를 남만인 南 蠻 人 후자를 홍모인 紅 毛 人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시 유럽인 이라는 틀은 없었던 것이 다. 처음부터 유럽 과 아시아 라는 이항대립을 전제하지 않고, 유라시아 를 하나의 단 위로 하는 그런 역사를 서술할 수는 없는가? 서로 다른 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강조하 는 역사서술. 2009년도부터 5년 계획으로 시작한 유라시아 과연 에는 약50명의 역사연구자가 참 가하고 있다. 그 중 20명 정도는 PD나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 일본사에서 유럽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의 폭 넓은 연구자 그룹. 그것은 세분화하여 거의 아무도 읽 지 않는 논문을 계속 생산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학계에 도전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국내, 국외에서 다채로운 테마의 연구집회를 기획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말부터 12월초에 걸쳐 제2회 광주나가사키비교국제회의를 개 최. 금년 1월 9-11일에는 해적, 설탕 砂 糖, 차, 주석 錫, 번역 이라는 토픽을 세계 사적 시점에서 고찰하는 연구집회를 열었다. 현재 한국 연구자의 참가는 없다. 이 기 회에 꼭 공동연구에 관해 상담할 수 있으면 한다. (제8회 콜로키움)

5 제9회 콜로키움 (금)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 교류 조흥국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Ⅰ. 이끄는 말 Ⅱ. 교류의 시작 Ⅲ. 해로를 통한 한구고가 동남아시아 간 교류 Ⅳ.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 왕국 부남 Ⅴ. 6세기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에 대한 추측 Ⅵ. 중국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 Ⅶ. 7세기 백제와 곤륜의 접촉 Ⅷ. 7-8세기 한국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항해 Ⅸ. 맺는 말 Ⅰ. 이끄는 말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의미 의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어난 교류의 역사로, 그 교류는 바다로부터 생각하고, 바다 의 아시아 를 논의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는 주로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이미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다 를 통한 교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항해로, 이것은 항해자가 선박을 적 극적인 의지로 이동시킴으로써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해상 활동이다. 다른 하나 는 표류로, 이것은 선박이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류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2) 항해를 통한 교류의 항로는 주로 연안 항로였다. 그러나 횡단 항로도 일찍부터 가능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한반도 남부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석 묘( 支 石 墓 )를 들 수 있다. 지석묘는 동서양의 해안을 따라서 분포하는 대표적인 해양 문화 교류의 증거 이다. 3)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또 다른 가능성은 표류이다. 1) 하마시타 타케시( 濱 下 武 志 ), 바다에서 본 아시아 - 해국 중국의 등장과 새로운 주변 내셔널리즘, 정문길ㆍ최원 식ㆍ백영서ㆍ전형준 편,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4, 292면. 2) 안경숙, 바다를 통해 교류된 한국 고대 문물, 김영원 외, 항해와 표류의 역사, 서울: 솔, 2003: 260면. 3) 김병근, 수중고고학에 의한 동아시아 무역관계 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2004, 88~90면

6 예컨대 표류한 자가 계절풍과 해류( 海 流 )를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혹은 거꾸 로 한반도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필리핀 해역에서 발원하여 대만과 일본의 쓰시마( 對 馬 ) 섬을 거쳐 한반도의 북동 방향으로 흐르는 쿠 로시오( 黑 潮 ) 난류를 이용하면 동남아시아에서 한반도에 용이하게 도달할 수 있다. 4)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해서는 그동안 상상과 추측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 가 나왔다. 선사 시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간의 교류에 대한 논의는 무엇보다도 쿠 로시오 난류와 이를 이용한 고대인들의 해양 활동을 그 추측의 근거에 두고 있다. 고 고인류학자인 김병모는 그러한 교류의 증거로 입석( 立 石 ), 석관묘( 石 棺 墓 ), 지석묘 등 거석 기념물과 이러한 거석문화와 관련된 농경문화 및 농경사회의 신앙 등을 제시한 다. 종교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입석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에 도 널리 퍼져 있는데, 특히 머리 부분이 모자를 씌워놓은 듯한 인도네시아의 어느 입 석은 전라남도 순천에서도 발견된 것과 비슷한 형상이다. 석관묘는 시신의 매장을 위 한 구조물로 그 분포가 동북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만과 동남아시아와 인 도 등에서도 확인된다. 사자( 死 者 )의 영혼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지석묘는 우 리나라에서는 전라도 지방에 가장 많이 있지만, 만주, 중국,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등 아시아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 대개 하천 유역에서 발견되며 물 을 이용한 농경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지석묘는 그 분포가 암시 하는 것처럼 해양 활동을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5) 김병모는 또한 신라와 고구려의 여러 왕들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소위 난생설화( 卵 生 說 話 )가 인도의 아쌈(Assam), 미얀마,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Kalimantan) 섬과 술라웨시(Sulawesi) 섬과 자와(Java) 섬 그리고 중국 남부의 하이 난( 海 南 ) 섬과 대만 등에도 있다는 점을 중시한다. 이 지역들은 흥미롭게도 모두 오늘 날 동남아시아의 민족들을 형성하고 있는 소위 남부 몽골로이드(Southern Mongoloid) 민족 그룹에 속한다. 6) 그밖에도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지석묘에서 반구형( 半 球 形 )으로 움푹 들어간 곳 이른 바 컵 마크(Cup Mark) 가 확인되는데, 그와 비슷한 것이 인도네시아의 술라웨 시 섬과 자와 섬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상의 증거를 근거로 김병모는 한국의 입 석과 지석묘를 남방 문화적 요소로 간주하며,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난생설화가 퍼져 있는 지역의 지석묘 거석문화와 한국의 지석묘 거석문화 간에 모종의 연관성이 존재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7) 4) 김병근, 앞의 책, 89면, 100면. 5) 김병모, 한국 거석문화 원류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학회 편, 문화론 하나, 서울: 문덕사, 1995, 117~133면 6) 태국의 타이(Thai)족, 아쌈의 아홈(Ahom)족, 하이난의 리( 黎 )족은 모두 따이-까다이(Tai-Kadai) 어계에 속하고, 미얀마의 버마(Bama)족과 카렌(Karen)족과 까친(Kachin)족과 아카(Akha)족과 라후(Lahu)족 등은 중국-티베트 (Sino-Tibetan) 어계의 하위 그룹인 티베트-버마(Tibeto-Burman) 어족에 속하며, 필리핀인과 인도네시아인 그 리고 대만의 고산족( 高 山 族 )은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n) 어계에 속한다. 이에 대해 Amara Prasithrathsint, The Linguistic Mosaic, In Grant Evans, ed., Asia s Cultural Mosaic: An Anthropological Introduction, Singapore: Prentice Hall, 1993, pp. 75~80; 박장식, 동남아시아 언어세계의 다양성, 박장식 외,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 서울: 오름, 1997, 13~23면 참고. 7) 김병모, 앞의 논문, 135~147면. 고고인류학적인 이러한 추측은 한민족과 한국 문화의 남방 기원 및 근원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으로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모두 가설에 불과할 뿐 이다. 한국의 고대 문화가 부분적으로는 남방에서 온 것이라는 한국 문화의 남북혼합 설도 있지만, 8) 이와 관련하여 국내의 학계에서는 한민족의 동북아시아 기원설이 주류 를 이루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 한민족 및 한국 문화와 남방 민족 및 남방 문화 간 상관성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와 시 베리아 그리고 오세아니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거석문화 유물들의 상관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농경문화와 관련된 농기구와 토 기의 유형, 특히 장례풍습 등에 대한 더욱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통속적인 문화연구가인 김병호는 중국 윈난( 雲 南 )성의 나시( 納 西 )족 마을 사람들이 쓰는 지게, 윈난성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는 낫과 호미와 도리깨, 윈난성의 다리( 大 理 )에서 본 상투와 꼭대기에 새를 단 솟대( 鳥 竿 ), 윈난성 이( 彛 )족이 모자에 꽂는 깃 털, 태국 북부 라후(Lahu)족의 색동옷, 아카(Akha)족의 솟대와 새가 장식된 문, 리수 (Lisu)족의 절 풍습 등에 주목하여 이들을 한국의 문화와 연결시킨다. 그는 심지어 고 구려의 멸망 후 중국으로 끌려간 고구려인 포로 20만 명 중 일부가 남하하여 윈난 지 방뿐만 아니라 태국과 라오스 북부에도 갔을 수 있다고 본다. 10) 한편으로는 한국 문 화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남방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윈난 성과 태국 북부의 몇몇 고산족들의 문화가 고구려 유민에 의해 전해진 한국의 전통 문화일 것이라는 이러한 추측은 심증으로부터 나온 것일 뿐 구체적인 물증에 의해 뒷 받침되지 않는다. 윈난성의 나시족 및 이족과 태국 북부의 라후족과 아카족과 리수 족 등은 모두 중국-티베트(Sino-Tibetan) 어계의 하위 그룹인 티베트-버마 (Tibeto-Burman) 어족에 속한다. 한국의 문화와 윈난성 및 태국 북부의 고산족들 간 문화의 유사성을 논하기에 앞서, 동일한 언어 그룹에 속하는 이들 소수민족 상호간의 문화적 유사성을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이며, 그와 더불어 티베트족 및 버마족과 몽골 족 간 관계 그리고 몽골족과 한민족 간 관계의 연결 선상에서 한국의 문화와 윈난성 및 태국 북부의 고산족들 간 문화의 유사성을 조사해야 할 것이다. Ⅱ. 교류의 시작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선 한국사의 삼국 시대 즉 1세기경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이유는 한국 역사가 대략 그 시기부터 비교적 명백한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그 역사의 흐름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중국과 인접한 8)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이선복ㆍ한영희ㆍ노혁진ㆍ박선주,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상), 서울: 소화, ) 김병호, 우리 문화 대탐험 - 민족의 뿌리를 찾아 아시아 10만리, 서울: 황금가지,

7 베트남의 역사를 제외하면 대략 1세기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연구의 주 제를 위에서 언급한 시기부터 고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원 이후의 시기에 대한 이러한 낙관적인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삼국-신라 시 대 즉 1세기부터 9세기까지의 기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해서는 사료가 별로 없으며, 그나마 약간 있는 사료들의 내용도 그 역사적 사실의 여부가 불확실하 다. 사료들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한문 사료밖에 없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관련 사 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측면과 관련하여, 장기 보존이 곤란하거나 불가능 한 재질인 목재, 야자수 잎, 천, 종이 등에 작성된 고대의 역사적 기록은 매우 습하고 무더운 동남아시아 지역의 기후적 특성으로 모두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 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사료의 이러한 제한성 때문에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에 대한 연구는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과 추리 그리고 때로는 직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 으며, 따라서 그만큼 더욱 흥미롭고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때로 는 지나친 비약이 수반된 연구는 독자에게 고대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한 애매모호한 상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것은 일본 사료인 일 본서기( 日 本 書 紀 ) 에 기록되어 있는 6-7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접촉, 그리고 당 ( 唐 )의 승려 의정( 義 凈 )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 과 신라승 혜 초( 慧 超 )의 왕오천축국전( 往 五 天 竺 國 傳 ) 과 당의 승려 혜림( 慧 琳 )의 일체경음의 ( 一 切 經 音 義 ) 에서 엿볼 수 있는 7-8세기 한국의 불교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여행 등 에서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이 두 부분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일본서기 의 백제와 동남아시아 지역 간 6세기 접촉에 대한 기록은 일본과 한 국의 소수 역사학자의 관심을 끌어왔다. 일본의 미키 사카에( 三 木 榮 ) 11) 와 한국의 이 도학, 임길채, 김현구ㆍ박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현구ㆍ박 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등은 백제와 동남아시아 지역 간 접촉이 직접 일어난 것이 아 니라 중국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12) 그에 비해 이도학과 임길채 등은 백제와 동남아시아가 상호 직접 교류한 것으로 간주한다. 13) 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역사적 관계를 다룬 다른 논문에서 일본서기 의 기록에 대한 신중한 해석이 바 람직하다고 썼는데, 14) 그 입장은 여전히 동일하다. 7-8세기 한국의 불교 승려들 특히 혜초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로의 이른 바 구법 ( 求 法 ) 여행에 대해서는 여기서 나열하고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국내외 에서 많은 연구가 되어 있다. 나는 6-7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접촉에 대해서는 11)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 김현구 등,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Ⅱ), 서울: 일지사, )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 니스트, 2003; 임길채, 매몰된 백제 역사를 복원한다! - 해상무역국가로서의 백제의 모습(하), 서울: 범우사, ) 조흥국, 근대 이전 한국과 동남아시아간 접촉에 대한 역사적 고찰, 국제ㆍ지역연구 8(1), 1999, 26~28 면. 사료와 기존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함으로써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 력할 것이다. 그에 비해 불교 승려들의 인도로의 구법 순례를 통한 7-8세기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접촉은 관련 사료를 소개하고 기존의 연구를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한편 9세기에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 간 활발히 해상 무역을 전개한 해상왕 장보고( 張 保 皐 )는 최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그의 해상 활동과 신라 시대 한국 의 동아시아 무역에 대한 많은 연구가 생산되었다. 15) 한국인의 해양 진출 내지는 해 상 무역 활동이 동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에 비해 저조하고 빈약한 한국 역사에서 장 보고의 사례는 학술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보고의 활동은 그의 해상 활동 무대가 한ㆍ중ㆍ일 삼국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를 다루는 본 연구에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Ⅲ. 해로를 통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 고대 한국과 중국 간 교역은 육로 외에 해로( 海 路 )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 해 로는 우회로( 迂 廻 路 )라고도 불리는 연안 항로 혹은 연해로( 沿 海 路 )와 직항로( 直 航 路 ) 라고도 불리는 횡단 항로 혹은 횡단로( 橫 斷 路 )의 두 가지가 있었다. 연해로는 한반도 의 서해 연안에서 서북쪽으로 요동( 遼 東 )반도 그리고 산동( 山 東 )반도의 연안까지 이어 지는 북방 연해로와 산동반도 연안에서 남쪽으로 중국의 동남부 연안까지 연결되는 남방 연해로의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횡단로는 한반도 서남 해안에서 황해를 횡단하 여 중국의 동남부 해안 지방에 이르는 바닷길을 일컫는다. 중국 연안 지방과 한반도 사이의 교류는 대부분 연해로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횡단로도 중요한 루트로 작용했 다. 그리하여 백제는 4세기 후반 중국 동진( 東 晋, )과 교류할 때 그리고 5세 기 후반 중국 북조의 북위( 北 魏, )와 접촉할 때 횡단로에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16) 하지만 횡단로는 그 전부터 한반도와 중국 연안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양 지역 간 교류의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어, 이 해로를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포함 한 남양 세계의 문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고려 시대 불교 승려인 일연( 一 然 )이 쓴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에 아유타( 阿 踰 陁 ) 국 즉 갠지스 강 유역에 있었던 고대 인도의 아요디야(Ayodhyā) 왕국의 공주 허황옥 ( 許 黃 玉 )이 기원후 48년에 한반도에 와 당시 경남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 駕 洛 國 )의 김수로( 金 首 露 ) 왕과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17) 고고인류학자인 김병모 15) 손보기 편, 장보고와 청해진, 서울: 혜안, 1996; 허일 외, 장보고와 황해 해상무역, 서울: 국학자료원, 2001; 권덕영 외, 대외문물교류연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2003; 윤명철, 장보고의 나라, 서 울: 정신세계사, 2003; 강봉룡,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서울: 한얼미디어, 2004; 최덕수, 장 보고와 한국 해양네트워크의 역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663~674면. 17) 일연, 三 國 遺 事, 卷 2, 紀 異 2, 駕 洛 國 記

8 는 허황옥이 기원전 2세기 경 인도의 아요디야 왕국을 떠나 중국의 쓰촨( 四 川 ) 지방 의 안웨( 安 岳 )에 정착한 집안의 후손으로, 47년에 쓰촨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의 와중 에 안웨를 떠나 중국 후베이( 湖 北 ) 지방의 우창( 武 昌 )을 거쳐 황해를 건너 48년에 가 락국에 도착했다고 설명한다. 18) 삼국유사 에 허황옥이 금수( 錦 繡 )와 능라( 綾 羅 ) 등 을 많이 갖고 왔다는 기록도 이들이 중국산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허황후의 중국 경유설이 설득력 있게 보인다. 19) 그러나 허황옥이 인도에서 바로 한반도로 왔다고 볼 수 있는 근거도 있다. 삼국 유사 의 다른 기록은 허황옥이 가락국에 올 때 항해의 안전을 위해 파사석탑( 婆 娑 石 塔 ) 을 배에 싣고 왔는데, 그 석탑의 돌이 우리나라에 나지 않는 것이라고 전한다. 20) 허명철 박사는 파사석탑의 돌이 실제로 한국에는 없고 인도의 아유디야 지방에서만 나는 것임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탑의 형식이 인도의 아잔타(Ajanta) 동굴사원 등에서 볼 수 있는 축소형 불탑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도 밝혀냈다. 21) 그밖에 서울대 의대의 서정선 교수와 한림대 의대의 김정일 교수는 2004년에 허황옥의 후손으로 추 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의 왕족 유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 유골의 주인이 인도 의 남방계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2) 어쨌든 이상 살펴본 삼국유사 의 허황옥 이야기에서 이미 기원 1세기에 바닷길을 이용한 교류가 한반도와 중국 사이는 물론 심지어 인도와도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횡단 해로를 통해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문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로 1-2세기 유적인 전남 해남군의 군곡리 패총과 3세기 유적인 경남 창원시 삼동동의 옹관묘와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진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리구슬을 들 수 있다. 인도 외에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에서 발 견되어 인도-패시픽 유리구슬(Indo-Pacific glass beads) 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인 도 동남부 해안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생산되어 세계 도처로 교역 되었다. 23) 신라 흥덕왕( 興 德 王 )은 834년에 자단( 紫 檀 ), 침향( 沈 香 ), 공작미( 孔 雀 尾 ) 즉 공작새 꼬리, 비취모( 翡 翠 毛 ) 즉 비취새의 깃털 등을 백성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했 다. 이 품목들은 오늘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지가 그 주산지인데, 이 사실 또한 해로를 통해 고대에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간 교류가 일어 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4) 18) 김병모, 한ㆍ일( 韓 ㆍ 日 ) 쌍어문( 雙 魚 紋 ) 비교연구, 민족학연구 1, 1995, 92~93면; 김병모, 김병모의 고 고학 여행 2, 서울: 고래실, 2006, 133~175면. 19) 일연, 三 國 遺 事, 卷 2, 紀 異 2, 駕 洛 國 記. 20) 일연, 三 國 遺 事, 卷 3, 塔 像 4, 金 官 城 婆 娑 石 塔. 21)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강성보, 아유타국, 경향신문 ; 조병철, 허황후, 세계일보 ) 이인숙, 유리와 고대 한국, 실크로드와 한국 문화, 서울: 소나무, 1999, 227~228면. 24) 趙 汝 适, 諸 蕃 志, Translated by Friedrich Hirth and W.W. Rockhill, St. Petersburg: Printing Office of the Imperial Academy of Sciences, 1911, pp. 204~206, 208~209, 235~236; 정수일, 문명교류사연구, 서울: 사계절, 2002, 213~214면. Ⅳ.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 왕국 부남 위에서 살펴본 한반도와 중국 및 남양 간 해로를 통한 교류의 가능성은 고대 한국 의 해양 교류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서기 의 킨메이( 欽 明 ) 천 황 4년 즉 543년의 기록에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가을 9월에 백제의 성명왕( 聖 明 王 )은 전부( 前 部 ) 내솔( 奈 率 ) 진모귀문( 眞 牟 貴 文 )과 호덕( 護 德 ) 기주기루( 己 州 己 婁 ) 그리고 물부( 物 部 ) 시덕( 施 德 ) 마기모( 麻 奇 牟 ) 등을 보내어 부남( 扶 南 ) 산 물품과 노예 2명을 바쳤다. 25) 위의 기록 중 전부( 前 部 ) 내솔( 奈 率 )의 내솔 은 백제의 관등 체계에서 6번째 관등 이었고, 물부( 物 部 ) 시덕( 施 德 )의 시덕 은 8번째 관등이었다. 일본어에서 호( 護 ) 의 음 역 고 와 고( 固 ) 의 음역 코 가 서로 비슷한 점을 고려하여, 호덕( 護 德 ) 을 고덕( 固 德 ) 으로 읽는다면, 호덕 은 9번째 관등에 해당한다. 26) 백제의 성명왕은 한국사에서는 성왕( 聖 王, 재위 )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와 부남 그리고 일본 간 접촉을 시사하는 일본서기 의 상기 기록에 대해 최초로 주목한 자는 일본의 역사학자 미키 사카에( 三 木 榮 )인 것으로 보인다. 미키 사 카에는 부남을 오늘날 태국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놓여 있던 나라로 간주한다. 27) 그러 나 부남은 현 캄보디아 남부와 베트남 남부의 코친차이나(Cochinchina) 지역에 걸쳐 있었던 나라였다. 캄보디아의 남부에서 기원 1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부남 왕국은 6세기 중엽까지 오늘날 캄보디아의 남부와 메콩(Mekong) 강 델타 지역에서 번성했다. 중국 사료 양서( 梁 書 ) 에 의하면, 남쪽에 있는 요( 徼 )라는 나라로부터 귀신을 섬기는 사람인 혼전( 事 鬼 神 者 字 混 塡 ) 이 배를 타고 부남 땅에 도달했다. 28) 요 는 인도나 말 레이 반도 지역으로 간주되며, 귀신을 섬기는 자 는 인도의 브라만 사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베트남 중부 지방에 있었던 참파(Champa) 왕국의 유적에서 발 견된 한 비문에 나타나는 브라만 카운딘야(Kaundinya)와 동일시된다. 29) 위의 중국 역사책은 그가 부남에서 그곳의 여왕인 유엽( 柳 葉 )을 아내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이 설화에서 동남아시아의 초기 왕국 건설 과정에 미친 인도의 영향의 한 단 면을 엿볼 수 있다. 부남은 3세기 초에 크게 팽창하여 그 영향력이 서쪽으로는 말레이 반도 중부에서 미얀마까지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베트남 중부에 닿았다. 이러한 국력의 바탕에는 해 25) 日 本 書 紀, 卷 19, 欽 明 天 皇 4년 秋 9월. 26)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547면. 27)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1934, 22~23면. 28)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남제서( 南 齊 書 ) 에는 혼전의 출신국이 격( 激 ) 으로 표기되어 있다. 南 齊 書, 卷 58, 列 傳 39, 蠻 東 南 夷, 扶 南 國. 29) Georges Cœdès, Les États Hindouisés d Indochine et d Indonésie, Paris: E. de Boccard, 1964, pp. 75~

9 상 무역을 통한 경제적 힘이 있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던 부 남은 옥에오(Oc-eo) 항구를 중심으로 남중국해의 중계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 다. 30) 또 양서 에 따르면, 부남은 비옥한 메콩 강 델타의 농업 자원 외에도 금, 은, 구리, 주석, 침향( 沈 香 ), 상아 등을 생산했다. 31) 부남의 옥에오 유적에서 2세기에 서 5세기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산 반지, 그리고 비쉬누(Vishnu), 시바(Shiva) 등 인도 신들이 새겨진 주석 호부( 護 符 ) 등이 발견되었다. 또 152년경에 제작된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의 금박 휘장과 마르쿠스 아 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주화가 출토되 었고, 후한( 後 漢 ) 시대(25-220) 중국의 청동거울 파편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옥에오 가 한 때 인도와 중국 간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국 간 교역의 중요한 중계항이었음을 말해준다. 32) 부남의 민족에 대해서는 이들이 몬-크메르(Mon-Khmer) 어족의 민족 즉 오늘날 캄보디아 민족의 선조라는 것과, 33)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 어족의 민족 즉 오 늘날 말레이-인도네시아 민족과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는 것, 34) 그리고 부남의 주민이 이 두 가지 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35)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부남이 다른 말레 이-인도네시아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활발한 해상 무역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을 고려 해볼 때, 그들을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번영했던 부남은 5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 엇보다도 4세기경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무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지역과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남은 5세 기에 참파의 공격을 받았고 6세기 중엽에는 내란으로 국력이 더욱 약화되었으며 마침 내 북쪽에서 내려온 크메르(Khmer)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36) 미키 사카 에는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구입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 2명을 일본에 선물한 543 년은 부남이 크게 약화되어 쇠퇴 일로에 놓여 있던 6세기 중엽의 시점과 일치된다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30) Nguyen The Anh, Indochina and the Malay World, Asia Journal 3(1), 1996, pp. 108~ )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32) Bernard Philippe Groslier, Hinterindien: Kunst im Schmelztiegel der Rassen, Baden-Baden: Holle Verlag, 1980, pp. 62~63. 33) Georges Cœdès, Les Peuples de la Péninsule Indochinoise: Histoire - Civilisations, Paris: Dunod, 1962, p. 65; D.R. SarDesai, Southeast Asia: Past & Present, Boulder: Westview Press, 1997, p ) Daniel George E. Hall, A History of South-east Asia, London and Basingstoke, 1981, p. 25;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 ) Bernard Philippe Groslier, 앞의 책, p )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p. 110~113. Ⅴ. 6세기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에 대한 추측 백제사 연구자인 이도학은 5세기 말에 탐라( 耽 羅 ) 즉 제주도를 그 영향권 하에 넣 은 백제가 탐라국이 이용하고 있었던 해상 활동 루트를 장악함으로써 일본과 중국 푸 젠( 福 建 )성의 푸저우( 福 州 )뿐만 아니라 대만, 류큐( 琉 球 )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그 항 로를 확대했다고 본다. 그는 그 증거로 백제가 일본 조정에 부남의 물품과 노예들을 진상했다는 위의 일본서기 543년의 기록을 든다. 37) 재야 역사학자인 임길채도 백제가 일본에 부남의 노비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백제가 뱃길을 따라 동남아시아에 직접 가서 이들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추측한다. 38) 이도학은 백제의 해상 활동 범위가 심지어 인도까지 미쳤다고 단정하면서 그 증거 로 일본서기 킨메이 천황 15년 즉 554년의 다음 기록을 든다. 겨울 12월에 백제가 하부( 下 部 ) 간솔( 杆 率 ) 문사간노( 汶 斯 干 奴 )를 파견하여 서 신을 올려 말하기를, 백제 왕인 신하 명( 明 )은 [중략] 현재 일이 매우 급하여 배 한 척을 보내어 아룁니다. 좋은 비단 두 필, 탑등( 毾 㲪 ) 하나, 도끼 300개 그 리고 사로잡은 성의 주민으로 남자 2명과 여자 5명을 바칠 따름입니다. 라고 했다. 39) 백제의 사신 문사간노( 汶 斯 干 奴 )의 관직명인 하부( 下 部 ) 간솔( 杆 率 ) 중 간솔 은 백 제의 관등 체계에서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0) 백제의 왕으로 소개된 명 은 일본서기 543년 기록의 성명왕( 聖 明 王 ) 즉 성왕( 聖 王 )을 가리킨다. 이도학이 위의 일본서기 554년의 기록에서 백제의 해외 교역과 관련하여 중시 하는 부분은 백제가 일본 조정에 탑등 이란 품목을 선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그는 탑 등( 毾 㲪 ) 이 페르시아어의 탑탄(taptan) 혹은 타페탄(tapetan) 의 한자 음역에 따른 표기라는 점에 주목하여, 백제가 당시 양모를 주성분으로 하는 페르시아 직물로서 북 부 인도에서 생산되던 양탄자를 일본에 선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백제가 인도와 직접적인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41) 이도학은 백제가 6세기에 인도와 해상 교역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다른 증거로 20세기 초 한국의 역사학자인 이능화( 李 能 和 )가 소개하는 미륵불광사사적기( 彌 勒 佛 光 寺 事 蹟 記 ) 의 다음 기록을 든다. 백제 성왕 4년에 불교 승려 겸익( 謙 益 )이 계율을 구하기로 작심하여 바닷길로 37)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6~97면. 38) 임길채, 앞의 책, 253면. 39) 日 本 書 紀, 卷 19, 欽 明 天 皇 15년 冬 12월. 40)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547면. 41)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7~98면. 임길채(앞의 책, 253~254면)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10 돌아 중인도( 中 印 度 )의 상가나대율사( 常 伽 那 大 律 寺 )에 이르렀다. 42) Ⅵ. 중국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 이도학은 상기 인용의 기록을 겸익이 526년에 배를 타고 직접 인도로 간 것으로 해석한다. 임길채 역시 겸익이 당시 해로를 따라 인도로 유학을 갔다고 말한다. 43) 이 들의 주장에 따르면, 6세기 전반 백제의 해상 교역 범위는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인 도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 된다. 이도학은 6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또 다른 증거로 7세기 중엽에 활동 했던 백제의 신하인 흑치상지( 黑 齒 常 之 )라는 인물을 든다. 흑치상지( )는 의자 왕( 義 慈 王, 재위 ) 말기에 백제의 관리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으며,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중국 당 나라의 장군으로 활약했다. 중국에서 출토된 흑치상지 의 묘지명( 墓 誌 銘 )은 흑치상지의 선조가 백제의 왕족 가운데 하나인 부여씨( 扶 餘 氏 ) 가문의 출신으로 흑치( 黑 齒 )라는 지역에 봉해졌으며, 흑치상지는 그렇게 생겨난 흑치 가문의 후예 중 한 사람이라고 전한다. 이도학은 흑치상지의 왕족 출신 부여씨 선조 가 흑치에 봉해진 것이 백제 시대 왕족을 지방에 분봉하는 이른 바 담로( 擔 魯 ) 체제 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그는 또 이 담로 체제가 538년 이후에는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흑치상지의 선조가 흑치에 봉해진 것이 6세기 중엽 이전에 일어난 일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44)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관계와 관련하여 이도학이 중시하는 것은 흑치 의 개념이 무엇인가 그리고 흑치 가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 것인가의 두 가지 문제이다. 그는 흑 치 의 문자적 의미에 주목하여 흑치 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습속이 널리 퍼져 있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의 지명이라고 본다. 그는 특히 흑치 를 오늘날 필리핀 지 역과 동일시하는 대만의 역사학자인 량자빈( 梁 嘉 彬 )의 견해를 수용한다. 45) 그는 이상 의 몇 가지 단서를 근거로, 일본과의 교역 루트를 확보한 백제가 6세기 전반에 동남 아시아로 무역 활동을 확대하면서 필리핀에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인도와의 교역 을 위한 백제 선박들의 기항지를 설립했으며, 부여씨의 한 백제 왕족에게 흑치씨라는 새로운 성( 姓 )을 하사하여 그를 그 기항지의 관리자로 세웠다고 추측한다. 즉 그는 흑 치씨의 필리핀 분봉을 백제의 동남아시아 진출의 또 다른 형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필리핀에 백제의 식민지가 건설된 것이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일 본에 바친 성왕 시대( )에 일어난 것으로 본다. 46) 42) 이능화, 朝 鮮 佛 敎 通 史 상편, 1918, 聖 王 31년. 43) 이도학, 앞의 논문, 97~99면; 임길채, 앞의 책, 251면. 44)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35~237면. 45)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38~240면; 이도학,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서울: 주류성, 1996, 32~41면. 46)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43면;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457면.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이도학 등의 역사학자들은 백제의 선박이 부남에 직접 갔 으며, 백제 정부가 필리핀에 교역 기지를 세웠으며, 백제의 상선이 인도양까지 진출하 여 인도 시장에서 직거래를 했으며, 백제 승려가 백제의 선박을 타고 한국에서 인도 까지 항해했다는 등 6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역 내지는 교류가 직접적 으로 일어났다고 본다. 백제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류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그 러나 대부분 단편적이고 애매모호한 증거를 그 바탕에 둔 것이다. 특히 백제가 6세기 전반에 필리핀에 무역 기지를 세웠다는 주장은 흑치상지 의 흑치 라는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허무맹랑한 가설에 불과하다.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흑치 의 습속은 사실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지에도 있었다. 47) 특히 흑치 는 660년에 멸망한 백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할 정도로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고 백제와 많은 인적 교류가 있었던 일본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만약 당시에 백제가 필리핀 으로 그처럼 중요한 해외 팽창 사업을 실제로 벌였다면, 그 전통이 후대에 어떤 형태 로든지 간에 이어졌어야 할 것이며, 또 적어도 그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 三 國 史 記 ) 나 삼국유사 등의 한국 사료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백제와 필리 핀 간 모종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단서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인의 필리 핀으로의 사업 진출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을 뿐이다. 백제가 543년에 부남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바쳤다는 일본서기 의 이야기에 대 해 살펴보자. 만약 백제가 부남 왕국과 직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다면, 그것을 입증 하는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남이나 부남 주위의 인도차이 나 지역에서 관련 비문이나 그 지역으로 백제의 선박이 왕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해 양고고학적인 유물은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등 한국 측 사료에도 백제 사람들이 부남 내지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무역 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적어도 그것을 암시하는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백제는 만약 부남에 직접 가지 않았다면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어떻게 획득했을 까? 나는 그것이 중국이라는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 여러 사료들에서 확인되는 6세기 백제와 중국 간 교류와 중국과 부남 간 교류에 주목 하고자 한다. 남사( 南 史 ) 와 양서 는 이미 5세기 초부터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 여 공물을 바치기 시작한 백제가 6세기에 들어서서도 중국에 수시로 조공 사신을 보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48) 고려 시대의 역사가인 김부식( 金 富 軾, )이 편찬 한 삼국사기 는 이 중국 사서들의 기록을 확인시켜주며 때로는 그 내용을 보완해 주기도 한다. 47) 김용운, 한국이 보는 일본, 한국국제교류재단 편, 한국과 세계의 만남, 서울: 지문당, 2002, 243면. 48) 南 史, 卷 79, 列 傳 69, 夷 貊 下 東 夷 西 戎 蠻 西 域 諸 國 北 狄, 百 濟 ;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百 濟

11 예컨대 남사 와 양서 는 무령왕( 武 寧 王 ) 시대( ) 백제가 양( 梁, ) 나라 조정에 조공 사신을 파견한 것이 521년 한 번만 발생한 것으로 기록 해 놓은 것에 비해, 삼국사기 에는 백제가 521년 외에 512년에도 중국으로 사신 을 파견한 것으로 되어 있다. 49) 양 나라와의 교류는 성왕( 聖 王 ) 재위 기간( ) 에도 계속 되었다. 특히 백제가 543년에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바쳤다는 일 본서기 의 기록과 관련하여, 백제의 534년과 541년 양 나라로의 조공 사신 파견은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양서 에 따르면, 백제는 534년과 541년에 양에 수차 사 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진상하면서 중국 정부에게 열반경( 涅 槃 經 )을 비롯한 경서( 經 書 )와 모시( 毛 詩 ) 박사( 博 士 ) 즉 시경( 詩 經 )에 능통한 학자, 그리고 공장( 工 匠 )과 화공 ( 畵 工 ) 등을 요청했는데, 양 조정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50) 삼국사기 에도 양서 의 이 기록과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발견된다. 51) 중국과 부남 간 교류는 중국과 백제 간의 것보다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남제 서( 南 齊 書 ) 에 의하면, 부남은 성이 교진여( 僑 陳 如 )이고 이름이 사야발마( 闍 耶 跋 摩 )라 는 왕이 남북조( 南 北 朝 )의 송( 宋 ) 나라 시대( ) 말기 즉 추측컨대 470년대에 중국의 광저우( 廣 州 )로 화물을 실은 상선을 보냈다. 인도식으로 읽을 때 자야바르만 (Jayavarman) 으로 읽히는 이 왕은 484년경에는 제( 齊, ) 나라 조정에 금박 에 아로새긴 용왕좌상( 龍 王 坐 像 ), 백단( 白 檀 ) 나무로 만든 형상, 상아로 된 탑, 유리 장식품, 빈랑( 檳 榔 )을 놓는 쟁반 등을 바쳤다. 52) 양서 에 따르면, 부남 왕 자야바 르만은 503년에 양 나라 조정에 토산물과 함께 산호로 된 불상을 진상했으며 511년 과 514년에도 조공 사신을 보냈다. 그의 후계자인 유타발마( 留 陁 跋 摩 ) 즉 루드라바르 만(Rudravarman)도 517년, 519년, 520년, 530년, 535년, 539년에 양 나라에 조공 사신을 파견했다. 중국 황제에게 진상된 선물에는 종종 토산물과 함께 불교 관련 물 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53) 김현구 등은 삼국사기 에 나타나는 백제와 중국 간 교류의 기사 가운데 특히 541년의 기록이 중국의 문물과 전문 인력의 백제로의 수입을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541년 시점에 상기 기록의 내용 외에도 다른 물품과 인력이 많이 백제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은 백제가 이 때 부남 산 물품과 노예 2명 도 함께 획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54) 이 설명도 확실한 근거를 바탕에 둔 것이 아닌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본 양 나라와 부남 간 6세기 전반의 교역 및 교류를 감안할 때 백제가 부남에 직접 가서 교역을 했다는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더욱 강하다. 같은 맥락에서 백제가 일본에 진상한 인도 산 탑등 도 백제가 인도에서 직접 구 했다기보다는 중국에서 획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비슷하게 백제 승려 겸익이 49)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6, 百 濟 本 紀 4, 武 寧 王 12년 夏 4월, 武 寧 王 21년 冬 11월. 50)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百 濟. 51)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6, 百 濟 本 紀 4, 聖 王 19년. 52) 南 齊 書, 卷 58, 列 傳 39, 蠻 東 南 夷, 扶 南 國. 53)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54) 김현구 등, 앞의 책, 152면. 526년에 인도에 간 것도 이도학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시 백제와 인도 사이에 직 접적인 해상 교역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백제와 중국 간 교역 관 계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해상 루트를 통한 교역 관계가 발달되어 있 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조 시대( )에 남조의 송, 제, 양 등의 나라들은 전쟁 관계에 있던 북조 의 나라들 때문에 육로를 통한 서역과의 교역이 어렵게 되자 그 대안으로 해상 교역 로를 이용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이러한 관심은 곧 동남아시아의 몇 몇 왕국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Sumatra) 섬과 자 와(Java) 섬 연안의 왕국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와 무역을 하고 있었으며 또 이미 부 남 등을 통해 중국과도 간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다. 중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그에 대한 동남아시아 해양 왕국들의 긍정적인 반응의 결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경유하 여 인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가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55) 남사 에 의하면, 송 나라 황제는 449년에 가라단국( 呵 羅 單 國 ), 파황국( 婆 皇 國 ), 파달국( 婆 達 國 ) 등 세 나라로 사신을 파송하여 그 통치자들을 그 나라의 왕으로 책봉 했다. 56) 이 세 나라들은 모두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자와 섬 혹은 수마트라 섬에 있었 던 것으로 간주된다. 57) 송 조정이 인도네시아의 이 세 왕국에 직접 사신을 파견할 정 도로 관심을 보인 것은 중국인들이 당시 그만큼 이 지역을 경유하여 인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를 중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양 나라가 2만 척에 달하는 선박을 이용하여 동남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와 인도, 그리고 심지어 이란과 이라 크 등지와 교역을 했다고 하는데, 58) 그것도 남양과의 해상 교역에 대한 중국의 능동 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5세기 초에 동진( 東 晋, )의 승려인 법현( 法 顯, )은 인도에서 중국 으로 돌아올 때 믈라카(Melaka) 해협 혹은 순다(Sunda) 해협을 통해 말레이 반도 남 단이나 보르네오(Borneo) 섬의 서부 연안에 도착한 후 거기서 동남아시아의 항구에 들르지 않고 남중국해를 지나 곧장 광둥( 廣 東 )성의 광저우로 왔다. 화교 연구자인 왕 겅우( 王 賡 武 )는 법현이 타고 온 배가 인도 선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59) 법현의 사례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듯이, 중국에서 믈라카 해협 혹은 순다 해협을 거쳐 인도 까지 가는 바닷길은 6세기 전반에 이미 중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고, 당시 중국과 빈번한 교류를 맺고 있던 백제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겸익이 우선 백제에서 중국까지 갔다가 거기서 동남 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갔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인도까지의 항해는 중국 선박을 이용했을 수도 있지만, 중국 항구에 온 인도 상선을 타고 갔을 수도 있고 혹은 수마 트라 섬이나 자와 섬의 동남아시아 왕국에서 온 상선을 타고 믈라카 해협이나 순다 55)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 ) 南 史, 卷 78, 列 傳 68, 夷 貊 上, 海 南 諸 國, 呵 羅 單 國, 婆 皇 國, 婆 達 國. 57) Wang Gungwu, The Nanhai Trade, Journal of the Malay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31(2), 1958, p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660면. 59) Wang Gungwu, 앞의 논문, pp. 42~

12 해협 혹은 말레이 반도 동부 연안의 한 항구까지 갔다가 그 곳에 정박해 있던 인도 상선을 타고 인도까지 계속 여행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Ⅶ. 7세기 백제와 곤륜의 접촉 이도학은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역이 7세기에도 계속 되었다고 보면서, 그 증거 로 일본서기 고쿄쿠( 皇 極 ) 천황 원년 즉 642년의 다음 기록에 주목한다. 60) 백제에서 조문을 위해 온 사신의 시종들이 아뢰기를 [중략] 백제의 사신이 곤륜( 崑 崙 )의 사신을 바다로 던져버렸습니다. 라고 말했다. 61) 백제가 일본에 조문 사신을 보낸 것은 조메이( 舒 明 ) 천황(재위 )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상기 인용에서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 은 곤륜 의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백제 사신이 곤륜의 사신 을 바다에 던진 배경 및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0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 ( 舊 唐 書 ) 에서 곤륜 은 다음과 같이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파악되어 있다. 임읍( 林 邑 ) 이남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고수머리에 몸이 검은데, 그들을 통칭 하여 곤륜이라고 부른다. [중략] 진랍( 眞 臘 )국은 임읍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 본래는 부남의 속국이었으며 곤륜의 부류에 속한다. 62) 상기 인용에서 임읍는 현 베트남 중부 및 남부 일대에 있었던 참파 왕국을 가리키 며, 진랍은 부남을 멸망시킨 크메르족의 나라로 오늘날 라오스 남부와 캄보디아 일대 에 있었다. 구당서 에 따르면, 10세기 중국인들은 곤륜 을 대략 베트남 중부와 라 오스 이남의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 인다. 다시 말하면, 곤륜 은 당시 북부 베트남 지역에 살던 비엣(Viet)족을 제외한 동 남아시아의 피부색이 비교적 검은 야만적인 토착 원주민들을 지칭하던 용어가 아니 었나 싶다. 영국의 동남아시아 역사 연구자인 다니엘 조지 홀(Daniel George E. Hall)은 곤륜 이 원래는 인도차이나 연안에서 해양 활동을 하는 주민들을 지칭한 개 념이었지만 뒤에 도서 동남아시아의 주민들에게도 확대되었다고 추측하는데, 63) 곤륜 을 동남아시아 전 지역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간주하는 그의 이러한 견해 는 구당서 의 곤륜 개념에 가깝다. 그에 비해 동남아시아 고대사 연구자인 폴 휘 틀리(Paul Wheatley)는 곤륜 을 말레이 반도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 연안 지대 60)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8면. 61) 日 本 書 紀, 卷 24, 皇 極 天 皇 원년 2월. 62) 舊 唐 書, 卷 197, 列 傳 147, 南 蠻 西 南 蠻, 林 邑 國. 63) Daniel George E. Hall, 앞의 책, p. 9. 까지의 지역 즉 동남아시아의 대륙부에 사는 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본다. 64) 한 편 한국의 역사학자인 고병익은 그 역시 구당서 의 곤륜 에 대한 설명을 중시하고 있지만, 이를 특이하게 해석하여 곤륜 을 지리적으로는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과 자와 섬을 포함한 지역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말레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간주한다. 65) 그러나 일본서기 의 곤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 당서 에 나타나는 중국인들의 곤륜 개념을 보다 중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 은 중국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본과 남북조의 중국 왕조들 간 교류를 감안할 때, 66) 일본인들이 사용한 곤륜 개념은 중국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에 기초한 것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당서 의 곤륜 개념을 수용한다면, 곤륜의 사신 은 구체적으로 동남아시아 의 어떤 나라의 사신이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 항은 첫째 7세기 중엽이라는 시기, 둘째 그 나라는 당시 중국해를 무대로 해상 무역 활동에 참가하거나 특히 중국과 교류를 하고 있던 나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로는 무엇보다도 7세기 전반에 중국으로 여러 번 사신을 파견한 참파와 진랍 등이 있다. 67) 당( 唐 ) 나라의 태종( 太 宗 ) 통치 시대( )에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친 말레이 반도 동안( 東 岸 )의 반반국( 盤 盤 國 )도 그 후보 국가 중 하나이다. 68)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언급한 폴 휘틀리의 곤륜 개념 에 대한 이해도 적어도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된 7세기의 맥락에서는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 국가 중 곤륜의 사신 을 배출한 나라는 중국, 일본 등에 지리적 으로 비교적 가까운 참파나 진랍이 아닌가 싶다. 백제 사신의 시종들의 진술에 따르면, 백제 사신이 곤륜의 사신을 바다로 던져버렸 는데, 이것을 이도학은 백제 사신이 곤륜 사신을 바다에 밀어넣어 죽인 것 이라고 본다. 69) 그러나 원문에는 단순히 곤륜 사신을 바다 안으로 던졌다 70) 고 되어 있다. 곤륜의 사신이 살해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해석과 관련된 것으로 보 이지만, 자구( 字 句 )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 곤륜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린 배경 및 동기와 관련하여 그들이 곤륜의 사신 이 란 용어의 곤륜 을 어떤 개념으로 이해하고 썼을까? 이 의문과 관련하여, 우선 곤륜 이 구당서 등 중국 사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중국에서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 아시아의 민족들을 가리키는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였다는 점과 백제와 중국 간 교류를 고려할 때, 나는 당시 백제 사람들도 곤륜의 사신 이 명확히 어떤 나라에서 온 것인지를 모르지만 대충 동남아시아 내지는 남양에서 온 사람인 것으로 64) Paul Wheatley, The Golden Khersonese: Studies in the Historical Geography of the Malay Peninsula before A.D. 1500, Kuala Lumpur: University of Malaya Press, 1961, p )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877면. 66) 예컨대 南 史, 卷 79, 列 傳 67, 夷 貊 下 東 夷 西 戎 蠻 西 域 諸 國 北 狄, 倭 國. 67) 舊 唐 書, 卷 197, 列 傳 147, 南 蠻 西 南 蠻, 林 邑 國 및 眞 臘 國. 68) 唐 書, 卷 222 下, 列 傳 147 下, 南 蠻 下, 盤 盤. 69) 이도학, 앞의 논문, 100면. 70) 日 本 書 紀, 卷 24, 皇 極 天 皇 원년 2월: 擲 崑 崙 使 於 海 裏

13 알고 그를 곤륜 사람이라고 지칭했을 것으로 본다. 또 따져보아야 할 문제는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의 사신을 만난 곳은 어디이며 그 를 바다로 던진 곳이 어디인가 라는 점이다. 그들이 곤륜 사신을 만난 곳은 당시 백제의 교역 활동 범위와 곤륜 이란 나라의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항구와 일본의 항구 두 군데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항구일 경우, 백제 사 신이 곤륜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린 곳은 중국 항구나 중국 근해, 혹은 곤륜 사신이 백제 사신의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동행했다면 중국에서 일본으로의 항해 도중 혹은 일 본 근해나 항구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의 사신을 만난 곳이 일본의 항구일 경우, 일본에 온 백제 사신이 일본에 온 곤륜 사신을 만나 그를 일본 항구에서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 된다. 백제 사신이 일본에 온 것은 일본서기 에 의하면 642년 음력 2월이었으며, 백 제가 당 나라에 조공 사신을 파견한 것은 삼국사기 에 의하면 642년 음력 1월이 었다. 71) 항해와 조공에 따르는 제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당에 파견된 백제 사신과 일본에 온 백제 사신이 동일한 인물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642년의 백제 사신은 일본 천황의 서거에 대한 조문을 목적으로 백제에서 일본으로 직접 파송되었을 것이다. 그 렇다면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 사신을 처음으로 만난 곳은 자연히 일본 근해나 항구 가 된다. 백제 사신이 일본에서 만난 곤륜 사신을 왜 바다에 던져버렸을까? 두 사신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백제 사신이 명정( 酩 酊 )의 상태에서 곤륜 사신을 상대로 완력을 자랑 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제 사신이 곤륜 사신으로부터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었는가? 두 사신 간 직접적인 만남이 있었다면, 상호 의사소통 은 어떤 언어로 이루어졌을까? 두 사신 간에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의 배경에 대 한 이러한 상상 외에, 그 충돌을 백제와 곤륜 이라는 나라 간 상업적 이해관계의 갈 등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도학은 곤륜의 나라가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여 일본과의 교역 관계를 독자적으로 수립하려고 하자, 당시 동남아시아 무역 을 독점하여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백제가 곤륜 의 사신 을 해상에서 살해했다고 본다. 72) 곤륜의 나라가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한 것 은 일본으로 그 무역 활동을 확대한 백제와 무역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임길채의 주장도 이도학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73) 곤륜 으로 추정한 참파나 진랍 등 동남아시아 해상 무역 왕국들이 7세기에 일본 과 독자적인 교역 관계를 수립하려고 했다는 것은 일본 사료나 중국 사료 어느 곳에 서도 고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륜의 사신이 일본까지 온 것을 일본에 대한 모종의 상업적 목적 때문이었다는 것보다 더욱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비록 백제가 7세기 중엽에 일본 무역을 독점 하려고 했다는 것이 삼국사기 나 일본서기 등의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71)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8, 百 濟 本 紀 6, 義 慈 王 2년 정월. 72) 이도학, 앞의 논문, 100면. 73) 임길채, 앞의 책, 254면. 백제가 일본의 무역 시장에 곤륜 이란 새로운 나라가 끼어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그 사신을 바다로 밀쳐버렸다는 이도학 등의 주장도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 을 것이다. Ⅷ. 7-8세기 한국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항해 7세기 초 중국이 당에 의해 통일된 이후 한국의 많은 승려들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으며, 그 중에는 불교에 대한 더욱 깊은 공부를 위해 인도로 간 자 들도 적지 않았다. 74) 인도까지 간 한국의 스님들 중에는 중국에서 배를 타고 동남아 시아의 남중국해를 건너간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이 이처럼 당 나라 시대 중국에 서 해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인도까지 여행했던 것은 5세기 이후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해상 교통이 본격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의 의정( )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에는 아리야발마( 阿 離 耶 跋 摩 ) 법 사( 法 師 ), 혜업( 慧 業 ) 법사, 현태( 玄 太 ) 법사, 현각( 玄 恪 ) 법사, 혜륜( 慧 輪 ) 선사( 禪 師 ) 와 익명의 두 사람 등 모두 일곱 명의 신라 스님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인도에 갔 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중 혜륜 선사는 당의 태종( 太 宗 ) 연간( )에 육로를 따 라 인도에 갔으며, 현태 법사는 650년에서 656년 사이에 티베트와 네팔을 거쳐 역시 육로로 인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편 아리야발마 법사와 혜업 법사와 현각 법사 등 의 인도 여정은 그것이 육로인지 해로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75) 그에 비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두 명의 신라 스님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 안( 長 安 )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인도에 가다가 실리불서국( 室 利 佛 逝 國 )의 서쪽에 있 다는 파로사국( 婆 魯 師 國 )에 이르러 그곳에서 모두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76) 실리 불서국 은 7세기에 수마트라 섬 중부 북안( 北 岸 )의 팔렘방(Palembang)을 중심으로 흥 기한 인도네시아의 고대 해상 왕국인 스리위자야(Srivijaya)임이 확실하며, 파로사국 은 수마트라 섬 서북부의 바루스(Barus) 일대에 있었던 고대 왕국으로 추정된다. 77)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은 또 고구려 출신의 현유( 玄 遊 )란 자가 중국의 승철( 僧 哲 ) 선 사를 따라 7세기에 뱃길로 인도에 가다가 사자국( 師 子 國 ) 즉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출 가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전한다. 78) 현유도 익명의 두 신라승처럼 믈라카 해협을 통과 하는 항로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8세기에도 한국인으로서 중국에 공부하러 간 불교 승려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인 도로 구법 순례를 떠난 자들이 종종 있었으며, 그러한 인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74) 고병익, 혜초의 길을 따라, 서울: 동아일보사, 1985, 11~13면. 75)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이용범 역,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1980, 16~17면, 37~41면, 53~54면. 76) 義 淨, 앞의 책, 41면. 77) Oliver William Wolters, Early Indonesian Commerce: A Study of the Origins of Śrīvijay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67, pp. 185~186. 辭 海 - 地 理 分 冊 ㆍ 歷 史 地 理, 上 海 : 上 海 辭 書 出 版 社, 1982, 415면 참고. 78) 義 淨, 앞의 책, 102~104면

14 있는 혜초가 있다. 신라에서 704년경에 출생한 혜초는 719년에 중국에 가서 불교 중 에서도 특히 밀교( 密 敎 )를 공부했다. 그는 723년에 당시 중국 남부의 최대 항구였던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의 바닷길을 통해 인도양 벵골만의 서북부 연안에 위치해 있었던 동천축국( 東 天 竺 國 )에 도착한 후 인도의 여러 지방과 오늘날 파키스탄 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여행했다. 그는 727년에 중국의 신장( 新 疆 )성을 통해 수도인 장안에 돌아온 후 780년에 입적할 때까 지 중국에 머물면서 밀교 경전들을 번역하고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79) 혜초는 그가 뱃길을 따라 인도까지 간 여정에서와 인도와 그 주위 나라들에서 보 고 듣고 겪은 것을 왕오천축국전 이란 여행기에 기록했다. 왕오천축국전 은 1908년 프랑스의 폴 펠리오(Paul Pelliot)라는 한 동양학자가 중국 간쑤( 甘 肅 )성의 둔 황( 敦 煌 )의 한 석굴에서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왕오 천축국전 은 혜초가 쓴 원래의 여행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8세기에서 9 세기 사이에 당 나라에서 활동한 혜림( )이 편찬한 일체경음의 를 통해 드 러났다. 당시까지 중국에 알려져 있던 주요 불교 서적들에 실려 있는 난해한 단어들 의 음과 그 의미를 설명해 놓은 일종의 주석서인 일체경음의 는 혜초가 썼다는 왕오천축국전 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왕오천축국전 은 모두 세 권으 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수록된 어휘를 폴 펠리오가 발견한 두루마리 사본의 것 과 비교한 결과, 둔황 석굴의 왕오천축국전 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 원본의 절 략본( 節 略 本 )이며 그것도 첫 부분 전체와 두 번째 부분의 앞머리와 끝 부분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80) 혜림의 일체경음의 를 통해 알 수 있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혜초가 중국에 서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갔다는 사실이다. 일체경음의 에 각멸( 閣 蔑 ) 이란 지명이 소개되어 있다. 혜림은 이 단어를 곤륜( 崑 崙 ) 지방의 말이다. 옛 이 름은 임읍국( 林 邑 國 )이다. 여러 곤륜 지방의 나라들 중에 이 나라가 최고로 컸는데 이 나라 또한 삼보( 三 寶 )를 공경하고 믿었다. 라고 설명한다. 81) 중국어 발음으로 거몌 가 되는 각멸 은 그러나 임읍국 즉 참파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늘 날 캄보디아에 대한 현지인들의 명칭인 크메 즉 크메르(Khmer)로 읽어야 타당할 것 이다. 이 주장은 진랍 즉 캄보디아에 대한 다른 명칭으로 길멸( 吉 蔑 ) 을 소개하는 당서( 唐 書 ) 의 기록에 의해 뒷받침된다. 82) 각멸 은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축국전의 상권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 이다. 이것은 혜초가 중국의 광저우에서 출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캄보디아에 들 렀거나 그 연안을 지나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83) 그밖에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 79)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2004, 36면;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하)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해왔는가, 서울: 창비, 2005, 33면. 80)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2004, 37~49면. 81) 慧 琳, 一 切 經 音 義 10, 김혜경 역, 서울: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2000, 342면. 82) 唐 書, 卷 222 下, 列 傳 147 下, 南 蠻 下, 眞 臘. 83)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876면. 축국전의 상권에는 큰 바다가 넘쳐 솟아오르는 것 을 묘사하는 발해( 渤 澥 ) 와 큰 파도가 용솟음치는 것 을 묘사하는 분궁창( 湓 穹 蒼 ) 과 바다에 떠다니는 큰 배 를 가 리키는 압박( 壓 舶 ) 등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84) 이것은 혜초가 캄보디아를 들렀거 나 그 연안을 지나간 후 인도를 향해 계속해서 배를 타고 여행했다는 것을 시사한 다. 85)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축국전의 중권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는 나형 국( 裸 形 國 ) 이다. 혜초가 문자 그대로 벌거벗은 주민들을 만난 것으로 보이는 이 나라 는 대개 말레이 반도 북부 서안( 西 岸 )의 한 왕국이거나 수마트라 섬의 북부 바다에 있는 니코바르(Nicobar) 제도로 간주된다. 86) 혜초는 캄보디아 남부 연안을 거쳐 니코 바르 제도 혹은 말레이 반도 북부 서안에 도달하기까지 도중에 믈라카 해협을 통과했 을 것이다. 옛날부터 남중국해에서 인도양으로 혹은 인도양에서 남중국해로 항해할 때는 일반적으로 믈라카 해협을 지나는 뱃길이 이용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7세기 익 명의 신라 스님들이 수마트라 섬 서부의 바루스까지 간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승려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믈라카 해협을 지나가는 항해 여정 을 선호했다. 중국에서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불교 승려들은 이 해협을 끼고 발 달해 있었던 스리위자야 왕국에 들러 종종 머물렀다. 예컨대 의정은 671년에 스리위 자야에 와서 6개월간 머물면서 산스크리트어 문법을 배운 후 그 이듬해 인도에 갔 다. 87) 그는 또 689년에 광저우에서 중국 승려 네 명을 데리고 다시 스리위자야에 가 서 694년까지 그 곳에 체류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고 자신 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역잡경론( 譯 雜 經 論 ), 남해기귀내법전( 南 海 寄 歸 內 法 傳 ) 등을 집필했다. 88) 의정이 인도로 가려는 불교 승려들에게 산스크리트어를 배우 고 불경을 공부하는 데 적합한 곳으로 추천한 스리위자야는 이처럼 7세기 후반에 인 도로 가는 중국 승려들에게 인도 유학을 위한 일종의 예비 학습 장소였다. 89) 고병익 은 혜초가 의정의 저술들을 읽었을 것이며 그 책들에 나와 있는 의정의 행적을 따라 스리위자야에 들러 그곳에서 몇 달 혹은 1-2년 체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90) 혜초가 중국 광저우에서 인도까지의 뱃길에 들렀거나 지나갔을 것으로 보 이는 각멸 과 나형국 등을 고려할 때, 상기의 추측은 그다지 무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84) 慧 琳, 앞의 책, 345~346면. 85) 고병익, 앞의 논문, 874면. 86) 고병익, 앞의 논문, 882~885면; 정수일, 앞의 책, 50면. 87) Oliver William Wolters, 앞의 책, p ) Daniel George E. Hall, 앞의 책, p. 48; 이용범, 해제,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1980, 191면. 89) Oliver William Wolters, 앞의 책, p ) 고병익, 앞의 논문, 879~880면

15 Ⅸ. 맺는 말 참고문헌 6-7세기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접촉의 가능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우리나라의 고대 대외관계 연구가 종래 중국, 일본, 류큐 등 동북아시아와의 관계에 집중되어 온 현실에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지역 간 해상 교류의 가능성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보 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연구들에서 제기된 주장은 이 글에서 지적된 것처럼 대부분 근거가 희박하고 비약이 심하다. 예컨대 6세기에 백제 가 부남 산 물품과 노예 그리고 인도 산 양탄자를 획득한 것, 백제의 승려 겸익이 배 를 타고 인도에 간 것은 백제가 부남 및 인도와 직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 백제와 중국 양 나라 간 교역과 양 나라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관계를 고려하여 중국을 경유하여 혹은 중국을 매개체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서기 의 기록을 바탕으로 주장되는 백제 와 동남아시아의 곤륜 간 7세기 접촉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을 매개체로 이루어진 것 으로 추정된다. 나는 백제와 곤륜 간 접촉이 상업적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 에 동의했지만, 그것 역시 확실한 전거가 아니라 추측에 바탕을 둔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이 글에서 살펴본 삼국-신라 시대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서 그 흔적이 가장 분명한 것은 7-8세기 인도로 갔거나 가려던 불교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여행일 것이 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중국을 거쳐 바로 동남아시아 및 인도로 간 것이 아니라, 중국 에서 장기간 체류하다가 중국 승려들이 당시 인도로 갈 때 취한 뱃길을 따라 동남아 시아 혹은 인도로 갔다. 이 점에서 그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여행은 한국과 동남아 시아 간 해상 교류라기보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류의 연장선상에서 이 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그들을 다룬 것은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의정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에서 언급한 익명의 신라 스님 두 사 람과 고구려 출신 현유 스님 등이 동남아시아에서 어떤 여정을 밟았는지에 관해 아무 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특히 혜초가 동남아시아에서 어떤 나라들을 방문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현존하는 왕오천축국전 에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동남 아시아를 거쳐 간 한국 스님들의 여행기가 제대로 전해 내려와 있다면, 우리는 7-8세 기 한국인들의 눈에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비쳤는지 혹은 그들이 동남 아시아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과 추리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강봉룡,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서울: 한얼미디어, 강성보, 아유타국, 경향신문 고병익, 혜초의 길을 따라, 서울: 동아일보사,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권덕영 외, 대외문물교류연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김병근, 수중고고학에 의한 동아시아 무역관계 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김병모, 한국 거석문화 원류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학회 편, 문화론 하나, 서울: 문덕사, 김병모, 한ㆍ일( 韓 ㆍ 日 ) 쌍어문( 雙 魚 紋 ) 비교연구, 민족학연구 1, 김병모,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서울: 고래실, 김병호, 우리 문화 대탐험 - 민족의 뿌리를 찾아 아시아 10만리, 서울: 황금가지, 김부식, 三 國 史 記. 김용운, 한국이 보는 일본, 한국국제교류재단 편, 한국과 세계의 만남, 서울: 지문당, 김현구ㆍ박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Ⅱ), 서울: 일지사, 박장식, 동남아시아 언어세계의 다양성, 박장식 외,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 서울: 오름, 손보기 편, 장보고와 청해진, 서울: 혜안, 안경숙, 바다를 통해 교류된 한국 고대 문물 교류, 김영원 외, 항해와 표류의 역사, 서울: 솔, 윤명철, 장보고의 나라, 서울: 정신세계사,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이도학,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서울: 주류성,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이선복ㆍ한영희ㆍ노혁진ㆍ박선주,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상), 서울: 소화, 이용범, 해제,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이인숙, 유리와 고대 한국, 실크로드와 한국 문화, 서울: 소나무,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일연, 三 國 遺 事. 임길채, 매몰된 백제 역사를 복원한다! - 해상무역국가로서의 백제의 모습(하), 서울: 범우사,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정수일, 문명교류사연구, 서울: 사계절,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하)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해왔는가, 서울: 창비, 조병철, 허황후, 세계일보 조흥국, 근대 이전 한국과 동남아시아간 접촉에 대한 역사적 고찰, 국제ㆍ지역연구 8(1), 최덕수, 장보고와 한국 해양네트워크의 역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하마시타 타케시( 濱 下 武 志 ), 바다에서 본 아시아 - 해국 중국의 등장과 새로운 주변 내셔널리즘, 정문길ㆍ최원식ㆍ 백영서ㆍ전형준 편,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서울: 문학과 지성사, 허일ㆍ강상택ㆍ이창억ㆍ최재수, 장보고와 황해 해상무역, 서울: 국학자료원, Amara Prasithrathsint, The Linguistic Mosaic, In Grant Evans, ed., Asia s Cultural Mosaic: An Anthropological Introduction, Singapore: Prentice Hall, Cœdès, Georges, Les Peuples de la Péninsule Indochinoise: Histoire - Civilisations, Paris: Dunod, Cœdès, Georges, Les États Hindouisés d Indochine et d Indonésie, Paris: E. de Boccard, Groslier, Bernard Philippe, Hinterindien: Kunst im Schmelztiegel der Rassen, Aus dem Französischen übersetzt von Leopold Voelker, Dritte Auflage, Baden-Baden: Holle Verlag, Hall, Daniel George E., A History of South-east Asia, Fourth Edition, London and Basingstoke, Nguyen The Anh, Indochina and the Malay World, Asia Journal 3(1),

16 SarDesai, D.R., Southeast Asia: Past & Present, Fourth Edition, Boulder: Westview Press, Wang Gungwu, The Nanhai Trade, Journal of the Malay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31(2), Wheatley, Paul, The Golden Khersonese: Studies in the Historical Geography of the Malay Peninsula before A.D. 1500, Kuala Lumpur: University of Malaya Press, Wolters, Oliver William, Early Indonesian Commerce: A Study of the Origins of Śrīvijay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舊 唐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南 史, 北 京 : 中 華 書 局, 南 齊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唐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辭 海 - 地 理 分 冊 ㆍ 歷 史 地 理, 上 海 : 上 海 辭 書 出 版 社, 梁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이용범 역,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趙 汝 适, 諸 蕃 志, Translated by Friedrich Hirth and W.W. Rockhill, St. Petersburg: Printing Office of the Imperial Academy of Sciences, 慧 琳, 一 切 經 音 義 10, 김혜경 역, 서울: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日 本 書 紀, 坂 本 太 郞, 家 永 三 郞, 井 上 光 貞, 大 野 晋 校 注, 東 京 : 岩 波 書 店, 질 의 문 발표하신 논문(혹은 최근 출판하신 책,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은 서 두에서 지적하셨듯이 바다로부터 생각하고 바다의 아시아, 특정하게는 바다를 통한 교류에 관해 논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무관심의 영역에 있었거나 말(추측) 만 무성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전근대시기의 교류의 제상에 대한 이해를 높 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보충 논의를 통해 풀었으면 하는 의문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1. 선생님의 바다를 통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거칠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다에로 의 시각 전환(즉 바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보는 시각)이 기존 역사서술 방식 (혹은 다른 역사가들의 논의수준)의 어떤 면을 보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어떤 면에서 새로운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 특히 중국과 일본을 매개로 하여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가 구성되는 측 면이 많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보면, 선생님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연구는 다음 작업, 즉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같은 연구를 예약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치 않고서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교류사의 의미가 제 맥락 을 찾지 못할 뿐 아니라 바다의 아시아 전체상을 그리는 데에도 부족하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본 연구단의 연구주제: 동아시아의 해양문화 교섭에 대한 연구방향을 찾아 가는데 도움을 구하고자 하기에 여쭙니다. 혹여 그런 구상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특히 동아시아 해양문화 교섭을 연구하는 데에 경험상 필요한 사료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 주시기 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발표하신 부분에 대한 몇 가지 잔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서기 킨미에 천황 4년 즉 543년 기록에 대해서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하나는 부남 산 물품과 노예 2명 에 대한 해석 부분에서 부남 산 물품과 부 남 산 노예로 번역하셨는데, 꼭 부남 출신 노예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요. 또 다른 하나는 진상 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이는 일본서기 554년의 기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비단 두 필, 탑등 하나, 도끼 300개) 2. 문제는 교류 입니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

17 어도 발표문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6-8세기에는 접촉 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 교류 나 접촉 의 성격 또한 분명히 재고될 필요 가 있다고 보입니다. 당시의 해로를 통한 교역이라는 것은 사실상 근대식으로 표현하자면, 해적(약탈)무역과 노예무역이 주였다는 해석이나, 부남이 노예무역 과 해적행위로 이름 높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때문에 제 생각 으로는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구입 했는지, 해적했는지 는 분명치 않으 며, 부남산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진상 했다 하더라도 이 사실 자체가 부남 혹 은 동남아시아와 교류했다는 가정을 성립시키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입니다. 중 국을 통한 간접교류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조 공(공식무역)의 회수 또한 적었다고 보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바 진상의 규모가 국가 수준이었다고 보기에는 작았다는 것, 그리고 일본서기 543년 사로잡은 성 의 주민 (7p) 기사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9회 콜로키움)

18 제10회 콜로키움 _ (화) 종교적 관용성과 야스쿠니 신사 -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서 승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소장) 1.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2. 종교적 관용과 일본종교 3.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 4. 종교적 관용과 정치의 다이나미즘 1.종교적 관용과 일본종교 1) 종교적 관용의 기원-유럽의 종교전쟁-30년전쟁과 베스트파리아 조약 2) 원시 일본종교-애니미즘, 샤마니즘, 多 神 論 의 세계 3) 중세 일본불교-밀교( 天 台 宗 ), 정토종, 선종 4) 무로마치불교의 세속화-정치세력으로의 예속과 반항 5) 근세 일본불교-도꾸가와막부의 헤제모니와 기독교 탄압, 淨 土 眞 宗 의 권력유착 6) 명치의 신또의 태두와 폐불정책 7) 천황권력의 확립과 국가신또 2.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 1) 1867년-- 明 治 정부 수립-- 도쿄쇼콘샤 東 京 招 魂 社 2) 1879년( 明 治 12)-- 야스쿠니징쟈 靖 國 神 社 로 개칭--국민의 이념통제를 위한, 천황 을 신의 정점으로 하고, 그 전사한 신민을 신위에 오르게 하고, 국가가 직접 관리 하는 國 家 神 道 3) 군시시설로서의 야스쿠니 ㄱ. 육군성과 해군성이 관할하고, 군사예산으로 경영되고, 주로 육군 대신이 사제장 宮

19 司 를 겸임한 군사시설.-- 병사들을 전쟁에 몰아세우고, 독려하는 심리전의 장치. ㄴ. 야스쿠니신사의 合 祀 자 일본의 내전(1877년 西 南 전쟁)까지)과 아시아 침략전 쟁의 전사자를 軍 神 으로 합사. 恩 給 을 지급 ㄷ.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독립종교법인 으로 둔갑 ㄹ. 현재 246만여 명이 영새부 靈 璽 簿 에 등재. ㅁ. 1970년까지 B C급 전범 1000명을 합사, 1978년 10월 17일에 A급 전범 14 명을 합사. ㅂ. 大 東 亞 聖 戰 사관-- 대동아성전은 자위의 전쟁, 아시아민족해방전쟁 ㅅ. 영새부에 등재되는 명표 名 票 가 일본 후생성 원호국 조사과에서 야스쿠니에 공 급. ㅇ. 일본 수상의 참배(수상은 15명, 회수로는 64회), 장관,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참 배 ㅈ. 침략신사의 넷 워크 일본각지에 호국신사, 식민지 각국에 신사(조선신사, 대만 신사, 건국신사 등) 3. 종교적 관용과 정치의 다이나미즘 ㄱ. 설명(인지욕구를 채워주는)장치로서의 종교 ㄴ. 인간의 유한성과 우주의 무한성을 매개하는 종교 ㄷ. 기복적인 종교 ㄹ. 윤리 기범으로서의 종교 ㅁ. 정치적인 가치체계로서의 종교 ㅅ. 사상, 심리적인 통제, 동원장치로서의 종교 ㅇ.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다양성과 단일성 열린 사회로서의 해양도시, 교역도시 (제10회 콜로키움)

20 제11회 콜로키움 _ (금)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고대 아랍-중국-신라의 사회경제적 방정식 Cultual Confluence along the Maritime Silk Roads: Socio-economic studies on the triangle relations among Arab-China-Shilla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프롤로그 ; 바다는 말이 없다. 1. 동시 패션 시대를 살아간 아랍인과 신라인 2. 해상로의 전개와 무슬림 상인들의 중국 진출 3. 진주와 유향 4. 신라로 떠난 아랍상인 5.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6. 바닷길을 따라 온 처용의 등장 7. 무슬림들의 고려진출 8. 무슬림이 남긴 문화유산 9. 바닷길의 문화교섭 프롤로그;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는 말이 없다. 어떤 형상도 문화재도 남기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피 안의 세상을 향한 인류의 동경은 헤엄을 치고 배를 저어 그곳으로 그곳으로 나아갔 다. 점점 큰 배와 점점 빠른 속도로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는 이 세상과의 관계 를 씨줄과 날줄로 이어갔다. 이어진 길을 따라 물자와 기술은 물론 신화와 사상, 믿 음과 패션이 건너갔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피를 섞어 인연을 나누었다. 물길로 이어지는 문명의 젖줄. 우리는 이 선과 면을 바다의 실크로드라 부른다. 이동은 속도의 전쟁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에 의하면 속도는 자본이고 동 시에 권력이었다 1). 정확한 목표를 찾아 가장 안전한 단거리로 이동해가고, 고부가의

21 물자를 공급해서 차익을 얻기 위해서는 천체에 대한 학문적 축적, 선박 제조기술, 고 도의 항해술, 해항도시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엄청난 초기투자, 시장 상황에 대한 종 합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이동의 법칙에 따라 바다는 시대가 흐를수록 육지 를 누르기 시작했으며, 유럽이 바다에 관심을 갖기 8백년도 전에 걸프해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의 해안도시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바닷길이 한창 번성하던 8-9세기경에 유럽의 콘스탄티노플-걸프해 입구 오만의 소하르-인도의 서부 해안도시-말라카-중국의 남부의 광주-중국 동부항구 항주/ 양 주-흑산도-울산으로 이어지는 긴긴 바닷길을 따라 이 도시들간에는 이미 상당부분 서로 물자를 통한 교통이외에도 문화와 지식을 나누는 폭넓은 교섭의 단계로 접어들 었다. 사람들의 고급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희귀한 물자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 종 교와 신화, 정보와 시스템이 도입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간선들이 거미줄처럼 발달하였다. 각각의 간선들은 거래되는 교역품에 따라 옥의 길, 모피의 길, 스키타이의 길, 불교의 길, 말의 길, 차( 茶 )의 길, 유리의 길, 황 금의 길, 카페트의 길 등으로 불렸다. 7세기부터 13세기 중엽까지는 아라비아와 동아시아 무역에서 육로보다는 해로가 선호되었다. 당시 세계는 동양에서는 5호 16국, 남북조 시대로 분열과 혼란을 거듭 하고 있었고, 오리엔트에서도 세계 양대 제국인 비잔틴과 페르시아 사이에 끈질긴 소모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때 바다는 정치적 장애와 통과무역의 위험부담을 현저 히 감소시켜 주었다. 동진( 東 晉 )의 법현( 法 顯 )과 당( 唐 )나라의 의정( 義 淨 ) 등은 인도 에서 돌아올 때 이 바닷길을 오가는 남해선( 南 海 船 )에 편승하였다. 혜초도 인도로 구 법여행을 할 때, 많은 구간 남방 해로를 이용하였다. 바다의 실크로드가 아랍-페르시 아 상인들에 의해 번성을 누리는 것도 이 때이다. 해로는 육로와 달리 장점과 장애를 동시에 지닌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배의 이 동을 가능하게 하는 계절풍이라는 주기적인 자연의 섭리와 기후와 날씨와 같은 자연 적인 항해조건에 크게 제약을 받는다. 때로는 항로의 좁은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해 적의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물과 식량의 보급, 몬순 계절풍에 따른 풍향이나 파고, 시기별로 가능한 항해로의 조건 때문에 4월 첫주에 출발하여 최대 1년까지 속도가 지연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해로는 육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잇점을 갖고 있다. 첫째, 해로는 정치적인 갈등이나 분쟁으로 인해 통행로가 차 단되거나 서로 다른 국경을 지나갈 때마다 부과해야 하는 과중한 통행세로부터 자유 로울 수 있었다. 생산 코스트가 떨어져,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해로는 대량수송이 가능하다. 아라비아와 중국 무역에 동원된 정크선 1대에는 낙타 1000마 리가 싣고 갈수 있는 물량을 실을 수 있다. 특히 도자기와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고 깨어지기 쉬운 물품인 경우에는 바닷길이 훨씬 안전하고 수지타산에서 유리하다. 그 래서 바다의 실크로드를 도자기의 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항해 술과 조선기술의 발달로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육로보다도 수송기간을 더 줄일 수 있었다. 걸프해에서 광주까지의 항해거리가 통상 6개월이었다. 1년에 두 차례 교역 이 이루어질수 있는 거리와 항해기술을 갖고 있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몬순의 길이었다. 그만큼 계절풍이라 불리는 몬순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다 바다의 흐름을 파악하는 해류 지식과 항해기술이 실크로드 의 성공을 보장해 주었다. 몬순의 주인공은 그리스인에 이어 단연 아랍인들이었다. 몬순(monsoon)이란 단어가 바로 아랍어의 기후, 계절 을 의미하는 '마우심 (mausim)'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5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인 도양을 중심으로 남서풍이 불어닥친다. 인도양의 순풍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4월 첫 주에는 걸프내해의 가장 중요한 교역항인 바스라나 최소한 걸프해 길목의 호르무즈 를 출발해야 한다. 6월까지는 인도양의 말라바르 해안에 당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래야 중국까지 갔다가 10월부터 3월까지 불어오는 북동의 찬 바람을 타고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몬순이 단순히 순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폭풍우를 동반 하기 일쑤다. 몬순은 언제나 은총과 저주, 파괴와 생명이라는 두 얼굴로 다가온다.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만나는 기회의 창이거나,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어 생명을 이 어가게 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추수를 앞둔 양식을 앗아가 버리는 잔혹한 신의 심판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몬순의 경험을 통해 연약한 인간은 신을 배우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겸허함도 배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결코 바다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이와 같이 배경으로 육로와 해로의 선호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육해상 실크로드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번성하기 보다는 교차적으로 발전하는 경 우가 일반적이다. 바닷길이 알려지기 훨씬 이전 시기인 기원전부터 6세기경 까지는 처음에는 북방의 스텝루트가, 그 후 장건의 서역경영으로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에 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오아시스 루트가 각광을 받았다. 물론 육로도 일방통행은 아 니었다. 서역남로와 북로, 천산남로와 북로 등으로 동서가 연결되었고, 남북으로도 1) 폴 비빌리오, 2004, 속도와 정치, 그린비. pp 바다의 길이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지는 못했다. 13세기 중엽 칭기스한에 의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동서아시아 전역이 통일됨으로써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육상 실크로드가 다시 활성화된다. 이제 몽골제국의 통행증 하나로 고려에서 헝가리까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다. 더욱이 실크로드를 정보와 교류의 장으로 인식한 몽골 조정이 국제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역참제도를 통해 무역상들을 보호해주었기 때문 이었다. 이는 생산코스트가 해로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인류역사상 육상 실크로드가 가장 번성하고, 물자와 문화교류의 파고가 동서아시아

22 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시기이다. 동시에 해로는 1258년 아랍의 압바스 제국이 몽골 에 멸망당한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동안 해로상의 주도권은 15세기 초반 ( ) 명나라의 정화에 의해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8차의 대원정의 시대를 거쳐 16세기부터는 향료와 황금에 눈이 먼 유럽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1. 동시 패션 시대를 살아간 아랍인과 신라인 오늘날 걸프해는 석유와 전쟁의 상징이다. 역사성과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그 명칭 조차도 평화롭지 못한 지역이다. 이란에게는 페르시아만(Persian Gulf)으로 아랍국가 사이에서는 아라비아 만(Arabian Gulf)으로 불린다. 우리 동해의 명칭싸움과 같은 맥 락이다. 팔레비 시절 서방과 이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아무 의심 없이 우리 모두 페 르시아만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 가장 거북한 반미국 가로 돌변함에 따라 어느덧 미국과 서방은 슬그머니 보통명사인 걸프를 고유명사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란의 바다'를 뜻하는 페르시아만에 미국군대를 진주시키 고, 평화와 세계안정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명분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오늘날 걸프해는 엄청난 전쟁을 한 차례 치르고, 또 다시 월남전 이후 가장 가공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걸프해는 그 누구의 바다도 아닌 미국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걸프해는 아랍뿐만 아니라, 세계 동서 해상 무역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지닌다.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원래 진주와 산호 채집으로 살아가던 자그만 어촌들은 석유라는 20세기의 황금을 만나면서 새로운 얼 굴로 다시 등장한다. 세계 원유의 70% 이상이 매장되어 있고, 중동 원유 물동량의 거의 대부분을 움직이는 해안이 되었다. 이는 세계경제의 급소에 해당된다. 소위 아 랍의 OPEC 산유국들은 모두 이 걸프내해에 집결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이라크가 1991년 쿠웨이트 를 침공한 것도, 이를 빌미로 아랍 내부의 문제인 걸프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것도,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라크를 공격해 석유시장 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생떼도 따지고 보면 수천 년간 내려오는 걸프해가 갖는 세계 무역의 핵심적 역할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걸프해의 모습과 그 기능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걸프해는 지난 1500년간 세계의 유행과 삶의 패턴을 바꾼 문화와 물자의 공 급처였다. 따라서 한국과 서아시아와의 접촉과 문화교류도 1970년대 석유위기 이후 형성된 경제적 이해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1000년전 부터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긴밀한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특히 바다길을 통한 외래문화의 접촉과 수용 이 두드러졌다. 이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이다. 우리문화의 깊숙한 기층에는 여러 문화가 중첩되어 있다. 아주 먼 시기부터 바다라 는 물길을 따라 들어 온 문화라는 이름의 영양소는 우리를 살찌우고 새로운 삶의 방 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자극제였다. 가까운 동북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 문 명젖줄의 가장 먼 맞은편에 있던 아랍과 이슬람의 흔적도 예외 없이 한반도라는 문 화 용광로로 흘러들었다. 고대 한반도는 다른 세상에 열려 있었고, 다른 문화의 수용 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한국인들의 국제문화감각은 당시의 세계적 흐름을 그대로 꿰 뚫고 있었으며, 이질적인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자기화에 성공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다양화를 두텁게 해주었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발굴되는 다양한 서아시아 교역품과 양식기법의 출토, 아랍 인의 신라 진출, 경주 괘능의 이방인 석상들, 처용의 존재에 관한 새로운 논의 등이 오래 전부터 멀리 서아시아의 문화가 한반도로 흘러 들어왔다는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경주 괘능 앞의 문인석상은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 는데 반해, 무인석상은 페르시아 군인의 모습을 띠고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여러 토 용의 모습에서도 아리안이나 투르크계 서역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고대 문화교류는 흔히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신라 진출이 본격화되는 8-9세기경에는 세계적 대도시인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슬람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당나라 수 도 장안-신라 수도 경주>간에는 문화적으로 거의 동시패션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콘 스탄티노플의 상류사회 왕족들이 사용하던 장식품이나 공작새 꼬리털, 비취모, 공예 품, 보석류, 여성 소품들과 장신구, 바그다드 일대로부터 전해진 여러 용도의 페르시 아 카페트, 모직 말안장, 카페트 장식품, 아라비아의 유향과 몰약, 옥 빗과 에메랄드 제품, 유리제품, 금속 수공예품 등이 중국 장안을 거쳐, 혹은 이슬람 상인들의 직거 래를 통해 신라수도 경주에까지 활발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화려하고 진귀한 수입 품과 사치품들은 신라 귀족사회의 고급문화를 일구어냈다. 경주고분에서 발굴되는 무수한 서아시아계 출토품들과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아랍상인들의 교역품 목록들 이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동시패션시대>라 함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까지 전달되는 고부가의 교역품 수 송기간이 낙타를 이용한 육상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서 6개월이면 가능했다는 뜻 이다. 교역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옛 상인들의 열망은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빠 른 방법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경주시장에 다른 상인들과 속도경쟁을 벌이며 도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육-해상 교역 모두 전속력으로 한 목표시장을 향해 달 리는 경우보다는 중간 기착지에서 수많은 교역을 계속하면서 필요한 상품들이 필요 한 지역으로 운반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에 이르는 9000km의 실크로드를

23 중간 중간 대상숙소의 상황과 낙타의 이동속도, 고대 교역에 대한 역사적 사료 등을 감안하면, 육로로 6-7개월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낙타는 하루 10시간씩 40km 정 도를 거뜬히 이동해 갈 수 있다. 이는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고 20~30km마다 산재 해 있는 카라반 사라이(대상숙소)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이동해 가는 경우다. 바닷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속도로는 자칫 사업을 망치기 일쑤다. 만약 1주일 만 늦게 도착하여 다른 경쟁자가 유사한 물품을 시장에 이미 풀었다면 그는 결정적 인 타격을 입게 된다. 전 재산과 목숨을 담보하고 험난한 실크로드를 달려온 보답치 고는 너무나 허망한 치명상이다. 그래서 일단 물품목록과 목표지가 정해지면 가장 부가가치가 높고 이익이 많이 남는 물품은 곧장 시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간다. 6개월이면 세계 어느 지역의 물건과 유행, 패션 등이 경주까지 올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낙타는 500kg나 되는 짐을 가득 싣고 400km를 계속해서 이동해 갈 수 있는 사막의 배다. 17일간이나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놀라운 수송력을 가졌 다. 발견과 대항해시대는 어디까지나 유럽인들에게 국한된 지극히 서구중심적인 생각이 고 역사인식이었다. 그들이 아직 지구의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에 목숨을 걸고 있 을 때,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에 두고 아라비아와 중국 동남부 사이에는 일찍부 터 바닷길이 열려있었다. 앞선 항해기술과 계절풍을 이용하여 내해처럼 아라비아해 와 인도양을 가로질렀다. 중국의 자료에 의하면 이미 3-4세기경 중국의 거대한 정크선이 중국해안을 출발하 여 걸프해로 항하고, 나아가 강을 따라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상류까지 항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랍사료에도 5-6세기경 중국의 선박들이 걸프해의 시라프항까지 도 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6세기까지 중국과 아라비아 사이의 해상교역은 중국 상인들의 걸프해로의 직접진출보다는 아랍상인들의 중국진출이 압도적으로 빈번했음 을 시사해주고 있다. 두 나라 사이의 해상교역은 7세기 이슬람의 성립이후 더욱 빈 번해지고 따라서 많은 기록들이 양측의 사료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육로 못지 않게 서아시아 문화의 한반도 유입에 바닷길이 결정적 통로역할을 했다. 고대부터 뚫려있던 바다라는 무한의 가능성을 통해 사람이 왕래하고 기술을 주고받 으면서 한반도는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었다. 걸 프해에서 출발한 아랍선단은 6개월 후면 중국 동남부 해안에 도달하고, 그곳에 정착 해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때로는 중국 해안가에서 또 때로는 인접의 한반도로 직접 내왕하면서 아시아의 끝과 끝은 그 때부터 서로 나누고 친분을 맺은 사이가 되 었다. 통일신라 이전까지는 주로 육상의 오아시스 실크로드가 선호되었던 반면에, 8 세기부터는 중국 동남부 해안과 한반도간의 직접적인 해상교역이 더욱 활발해진 것 으로 보인다. 더욱이 8세기 장보고의 해상세력이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동북아경 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 아랍상인들간의 교류는 주로 중국에 서의 간접교역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장보고 세력이 몰락하고 시장질서의 교란이 일어나는 9세기 중반 이후에는 아랍상인들의 직접적인 한반도 진출이 빈번하게 일어 나기도 했다. 아랍 사료의 기록이 빈번히 등장하고, 구체적인 교류의 흔적이 감지되 는 시기와도 맞아떨어진다. 2. 해상로의 전개와 무슬림 상인들의 중국 진출 1498년 5월 22일, 바스코 다가마는 아랍인 항해사 아흐마드 빈 마지드(Ahmad Bin Madjid)를 앞세워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부 캘리컷에 도착했다. 이어 1492년에는 인도를 향해 출발한 콜럼버스가 항해술의 미숙으로 아메리카 대륙 에 도달함으로써 유럽인들의 화려한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중세의 긴 암흑의 터널에 서 새롭게 유럽이 깨어나는 역사의 전환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소위 지리상의 아랍역사학자 마수디(Mas'udi)의 대표작인<황금초원과 보석광산>에 의하면 7세기경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실은 중국상선들이 아라비아 동부와 걸프해로 들어와서 교역을 했고, 이븐 알 칼비(Ibn al-kalbi)의 언급에 의하면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는 중국 시장이 형성될 정도라 했다. 중국인들은 주로 겨울철 북동풍 몬순을 이용하여 중국 남쪽 광동( 廣 東 )지방의 광주( 廣 州 )를 출발하여, 아라비아해로 향했으며, 4월부터 10 월 사이에 불어오는 남서계절풍을 이용하여 회항하는 항해를 반복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교역은 직접적인 내왕보다는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중간 기점으로 하는 경우가 더욱 경제적이고 실질적이었다. 아랍-페르시아 상인들도 처음에는 직접 중국 까지 가기보다는 인도 말라바르 해안의 케랄라와 스리랑카, 말라카와 수마트라 해안, 좀 더 북상해서는 베트남 남부의 참파를 근거지로 해서 중간교역의 이득을 챙겼다. 8세기이후부터 항해술과 대양횡단항로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중국의 광 주( 廣 州 )까지 직접 내왕하는 교역량도 점차 증가하였다. 걸프해에서 출발한 아랍상인들의 중국진출 항로를 보자. 계절풍이 불기 시작하는 4월초 시라프 항이나 호르무즈 섬에서 짐을 적재한 교역선은 처음에는 대양의 폭풍 우와 항로이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잘 알려진 연안항로를 선호하며 중국으로 향했 다. 첫 번째 기항지는 통상 걸프해 입구에 있는 오만해협의 소하르(Sohar)나 무스카 트 항이었다. 여기서부터 인도까지는 고대 그리스-로마 상인들이 이용했던 연안항로 보다는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대양횡단의 모험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충분한 물과 식량, 살아있는 소를 싣는다. 그리고는 약 한 달간의 항행 끝에 말라바르 해안 을 따라 인도 남서부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다시 먹을 것과 물을 싣고는 스리랑카 남부 해안을 향하기 위해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니코바르 군도를 목표로 두 번째 대 양횡단을 시도한다. 그러면 가장 위험한 코스는 일단 통과하게 된다. 15세기에 쓴 이븐 마지드의 저술에는 인도양 대양횡단대신 파키스탄의 신드를 통해 인도 서해연

24 안을 따라 남하하는 코스도 소개되어 있다. 스리랑카 남단을 우회한 배는 말레이 반 도를 따라 남진하다가 동서 해상교역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인 말라카에 도달한다. 이어 싱가포르에 들렀다가 동쪽의 파타니, 성클라를 거쳐 태국의 시암만에 도착하게 된다. 말라카에서 약 10알간의 항행이다. 다시 10-20일쯤 지나 풀로켄도르 (Pulocendor)군도에 도달하여 물과 식량의 보급을 받는다. 여기서 한 달쯤 뒤면 캄 보디아와 참파를 거쳐 드디어 중국 남부해안의 항구에 도착하게 되는데, 최종적인 목표지는 통상 칸톤(Canton)이라 불리는 광주였다. 1980년 오만 정부는 고대 바다의 실크로드를 재현하기 위해 똑같은 범선을 제작 하여 걸프해의 중요한 출항지였던 소하르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광주까지 실제로 항 해 시험을 한 적이 있었다. 165일만에 건조된 27m길이의 옛 범선은 1981년 1월에 무스카트를 떠나 다음해 7월 11일에 중국 광주항에 도착했다. 6개월에 9656km를 달린 바다의 대장정이었다.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소하르라 명명되어진 이 범선이 옛 기록에 거의 정확하게 부합하는 항해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오만인들을 주축으로 한 고대 아랍인들의 항해기술과 바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역시 10년이 지난 1990년 11월에는 오만 술탄의 개인 탐사선인 풀쿠 알 살 라마(Fulk al-salama)가 유네스코의 해상실크로드 조사를 위해 베니스에서 우리나라 의 부산항까지 고대 교역로를 따라가며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필자도 한국대 표로 승선한 이 탐사에서 고대 항해코스와 교역품, 해류나 항해술 조사를 통해 바다 의 실크로드가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그러나 고대 뱃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시라프-광주간 직항 바닷길이 열려있었던 것 은 아니다. 자신들의 경험에 익숙한 바닷길을 통해 중간 상권을 형성하고, 점차 그 세력을 넓혀 가는 방식이었다. 고대부터 그 중간 거점의 역할을 한 곳은 인도양을 가로질러 만나게 되는 인도 서부 해안이었다. 특히 말라바르(Malabar) 해안의 케랄 라(Kerlala)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케랄라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금화가 많이 발견된다. 시저나 트라얀, 하드리안 황제의 모습이 새겨진 로마 금화를 통해, 적어도 1800년전부터 그리스-로마 상인들이 인도 서부와 활발한 교역을 행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주된 목적은 후추였을 것이다. 한 타밀 시인의 글에도 케랄라 중부 항구 무즈리스를 아름답고 큰 그리스 선박들이 물결을 출렁이며 금은보화를 싣고 오는 곳 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마 역사학자 플리니(Pliny)도 무즈리스 항을 가 리켜 최초의 인도 국제무역항 을 불렀다. 인도의 후추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수 입한 비단과 옷감, 계피, 인도네시아 군도로부터의 진주, 보석, 거북껍질 등이 케랄라 에서 구입하는 주된 물품이었다. 남부 인도와 중동 사이의 해상무역은 이미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교역은 그리스인들이 계절풍인 몬순을 뱃길에 이용하는 1세기경 이후였을 것이다. 이 때쯤이면 아프리카 동부의 곶을 출발한 로마 선박이 케랄라 항에 도달하는 것은 40일밖에 걸리지 않았을 정도였다. 바닷길을 따 라 서양과 중국을 잇는 고대 국제항으로서 케랄라의 위상은 16세기 이후 새로운 서 구 해상세력의 인도진출로 그 성격이 변질되었다. 진정한 교역항에서 그들을 위한 일방적인 물자 조달창구로 바뀐 것이다. 이 때 케랄라의 또 다른 중부 도시 코친이 서부해안에서 봄베이에 이은 제2의 국제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유위기와 중동 건설 붐은 케랄라의 입장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수많은 케랄라 남성들이 증동시장으로 외화벌이를 떠났기 때문이다. 수천년간 인도와 걸프해 사이 에 놓여진 바닷길을 따라 이번에는 수많은 케랄라인들이 걸프해 산유국으로 몰려갔 다. 매년 10억불의 외화가 고향으로 유입되었다. 케랄라의 230개 대학에서 배출되는 매년 수천 명의 엘리트 자원이 새로운 시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절대적인 경쟁 력이다. 3-4년 열심히 일하다 돌아와서는 카스트의 장벽을 뚫을 정도로 새로운 신분 으로 받돋음하였다. 저택과 자동차, 값비싼 가전 제품으로 인생의 대역전극을 시도하 는 새로운 사회현상이 케랄라에 불어닥치고 있다. 중동건설 붐이 일었던 1970년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케랄라에 가보면, 우선 그 도시 자체가 힌두문화가 맹위를 떨치는 다른 도시와는 완연히 다르다. 다양성이 녹아든 바닷길 문화 전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인구의 60% 는 힌두이고, 20%는 크리스천, 그리고 나머지 20%는 무슬림이다. 이곳의 크리스천 들은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침략의 물결 속에 묻어 온 종교의 씨앗은 아니다. 그 들의 조상은 시리아 크리스천들이었다. 소위 시리아 동방교회의 연원을 갖고 있다. 그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미 서기 52년 사도 토마스가 힌두교로 개종했을 정도로 오 랜 역사적 뿌리를 내렸다. 역사학자들도 4세기 이후부터 이 곳에 기독교인들이 정착 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유대인 공동체도 상당한 규모였으나, 1948 년 이스라엘 독립이후 새로운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대거 이스라엘로 몰려가 지금 은 명목만 유지되고 있다. 이슬람 공동체 역시 만만치 않다. 7세기초 이슬람의 예언 자 무함마드 생존시에 이미 케랄라에 모스크가 건설될 정도로 초기 무슬림 상인들의 케랄라 진출이 활발했다고 믿고 있다. 퀼론에는 지금도 페르시아 양식의 고대 모스 크가 과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3. 진주와 유향 당시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던 물품들은 주로 일상용품들 보다는 고 부가 상품인 사치품과 희귀품 등이었다. 13세기의 페르시아 시인 사디의 저서에는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황, 중국에서 비잔틴으로 자기, 비잔틴에서 인도로 비단, 인 도에서 시리아로 강철, 시리아에서 예멘으로 유리, 예멘에서 페르시아로 무늬옷감을 실어 나른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중국으로 가져온 물품들은 상아, 향수, 향료, 유리

25 제품, 보석, 진주, 양념류, 보석원석 등이었다. 이들 교역품과 교환하여 중국에서 수 입해 갔던 물품들은 종이, 차, 실크, 도자기, 섬유, 잉크, 공작털, 말안장, 펠트, 계피, 약재, 원단 등이었다. 이들 제품들은 한 곳에서 정해진 다른 목표로 곧장 이동해 가 기보다는 중간기착기에서 수많은 거래와 교환을 거치면서 가격의 흐름에 따라 동서 로 종횡으로 전달되었다. 특히 걸프해의 진주는 전세계 상류사회를 매료시켰던 고부가 상품이었다. 쿠웨이트 와 바레인을 중심으로 채집되는 걸프진주는 빛깔과 광택, 모양에서 단연 최고의 상 품가치를 지녔다. 오랫동안 진주잡이는 뗏목을 타고 해저를 훓고 다니는 숙달된 잠 수부의 몫이었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전문 선박을 동원한 조직적인 채취가 이루어졌 다. 바레인에서 만난 모크타르(Mokhtar)란 선원은 그의 30년 진주잡이 노하우를 생 생하게 전해 주었다. 6월에서 10월 사이에 채취되는 진주조개는 주로 해저 7-20 바(ba'a) 사이에 서식한다고 한다. 1 바의 길이가 보통 한 뼘의 길이이니 2m에서 5m사이가 된다. 한 번 잠수에 보통 2분까지 숨을 참으며 20개 정도의 조개를 건져 올린다. 유능한 선원은 하루 50회 이상을 잠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주잡이는 위험 과 중노동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걸프해 식인상어의 위협을 받아야 했 고, 수중 압력 때문에 폐가 손상되어 각종 질병이나 호흡곤란증에 시달리기 마련이 다. 며칠동안의 작업이 끝나면 채취된 모든 진주는 공동으로 균등하게 배분된다. 가 장 큰 몫은 역시 선장에게 돌아가고, 잠수부들이 다음 몫을 그리고 요리사, 기관사 등 비잠수요원들이 그 다음 몫을 챙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배에 동승한 악사가 잠수부와 똑같은 몫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극도의 긴장과 위협 속에서 잠수 사이의 잠깐의 휴식을 노래와 악기로 달래주는 그의 역할이야말로 진주잡이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량제이기 때문일까. 진주 못지 않게 걸프해에서 세계시장으로 흘러간 가장 중요한 품목은 단연 유향이 었다. 유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의 선물이었다. 일찍이 로마 시대 플리 니는 유향무역을 장악하고 있는 남부 아라비아야 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 라 라고 부러워했다. 유향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신전제사의 향불로, 세례와 의약 품으로, 화장품 재료로 널리 선호되었다. 독약에 대비되면서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 는 신비의 영약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기독교 시대에도 아이가 출생하면 유향의식을 치렀다. 아마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귀한 유향을 선물로 가져왔기 때문이리라. 로마 시대만 해도 유향수요가 급증하여 연간 3000톤 이상이 생산되어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면서 문화적 향유와 종교적 신심을 충족시켜주는 도구 역할을 했다. 바로 오 만의 도파르(Dofar)가 그 중심지였다. 알 카디르 부족이 장악하고 있는 도파르 지방 의 유향은 거의 1년 내내 생산이 가능한 데,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 나름대로의 비 법을 고집하고 있다. 우선 척박한 석회석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뻗어나가는 유향나무는 끊임없이 내리쬐는 열대의 햇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조건이라면 아라비 아 전역이 쾌적한 유향산지가 될 수 있을 텐데, 여기다 몬순으로 인한 풍부한 습기 가 전제되어야 한다. 도파르 지방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몬순이 지나가는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9월말에 노란 꽃을 맺는 유향나무는 3-5m 정도의 키에 옆으로 뻗어나가는 사막의 쉼터 역할도 한다. 유향나무 껍질을 벗기면 하얀 우유 같 은 수액이 방울방울 맺힌다. 공기에 노출되면 바로 굳어지는 수액 방울을 모아 유향 을 만든다. 그러나, 알 카티르 부족들은 그 귀한 수액을 버린다. 그리고 몇 주쯤 지 나 다시 껍질을 벗겨 생겨난 두 번째 수액도 버린다. 껍질 표면이 아닌 나무 뿌리의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세 번째 수액을 통에 받아 유향을 만든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유향이다. 그러니 고작 년간 생산량이 지금은 수 천 킬로그램에 불과하다. 한 나무에서 기껏해야 15kg 정도를 생산한다. 나머지 수요는 값싼 인도나 소말리아 산 유향이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고대부터 도파르의 유향은 알 무칼라, 카나 항구를 끼고 있는 예멘을 가로질러 지 금 예멘의 수도인 사나로 가서 홍해연안을 따라 아라비아 사막을 지나고 육로교통의 집산지인 페트라를 거쳐 로마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유향의 길이다. 더욱이 하드 라마우트 왕국의 수도였던 샤브와 시바왕국의 중심지였던 마리브는 중요한 유향의 집산지였다. 솔로몬과 시바로 익히 알려진 시바왕국에서 솔로몬에게 바친 선물에도 유향은 빠지지 않았다. 로마에서의 유향선호는 화장풍습과 신전 의례와 관련하여 거 의 절대적이었다. 로마 황제 네로는 그의 왕비 포파에아(Poppaea)의 장례에 1년치 아라비아 유향을 소모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 또한 기독교 출생의례에 서 유향은 금과 몰약을 능가하는 신성성의 상징이었다. 유향과 함께 대표적인 또 다른 방향제인 몰약은 주로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그 집산지는 예멘 남쪽의 마블라카 계곡이다. 하얀 나무에서 채취되는 몰약은 한 때 유 향 값의 세 배에 해당될 정도로 귀한 방향제이다. 일반적으로 몰약은 종교적 기름부 음 의식에 사용되거나 요리나 방부제로 많이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의 방 부처리에 몰약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비단 미라뿐만이 아니라, 이 집트에서 방향제는 중요한 종교적 제의에 널리 사용되었다. 아마 유향에 관한 최초 의 기록은 기원전 15세기경 하셉수트 여왕의 묘당에 있는 벽화일 것이다. 유향을 얻 기 위해 지금의 소말리아 지방으로 군사원정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기원전 5세기 그 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아라비아 전역에는 아름다운 향내로 가득하다 고 묘사했 다. 실제로 지금도 아랍의 가정에 초대를 받으면 맨 처음 유향의 하얀 연기를 얼굴 과 옷 속으로 품어주는 것이 최고의 손님접대로 남아있다

26 4. 신라로 떠난 아랍상인 아랍상인들의 교역 목표지인 광주항에는 이슬람 시기 직전인 7세기초부터 아랍-페 르시아 상인들의 집단거주지와 전문상점이 존재했다고 믿어진다. 중국 동남부 해안 지역의 상권을 장악한 아랍-페르시아계 상인들은 점차 교역권을 넓혀나갔다. 광주에 서 출발하여 천주( 泉 州 ), 복주( 福 州 ), 항주( 杭 州 ), 양주( 揚 州 )를 중심으로 하는 5대 국 제도시에 대규모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해 갔다. 신라 사람들의 거주지가 신라방 으로 불린 것처럼, 아랍-페르시아인들의 거주는 번방( 蕃 坊 ) 으로 불렸다. 당시 번방 의 규모와 영향력은 상상을 추월한 정도로 막강했으며, 해상교역 관련 고위관직에도 많은 수의 아랍인 후예들이 등용되었다. 무슬림들을 위한 자치공동체인 번방에서 그 들은 종교적 자유와 행정적 자치를 누렸고, 까디(Qadi) 라는 행정책임자와 세이크 (Sheikh) 라는 종교지도자를 선출하여 이슬람 율법과 고유의 관습을 유지해 나갔다. 당시 국제무역에서 신라인과 무슬림들의 접촉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교역권의 형성을 보면, 대강 양주를 기점으로 북쪽의 중국-신라-일본 교역권은 장보고를 중 심으로 한 신라해상세력이 장악하였고, 남쪽의 중국-인도차이나-아랍제국 을 연결 하는 남해무역은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수중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두 해상세력의 상권 경계는 중국 동남부 국제항구인 양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놀 랍게도 양주에는 드물게 아랍상인들의 자치거주지역인 번방과 신라인들의 행정자치 구역인 신라소가 이웃해 있었다. 무역을 위해 험난한 바닷길을 뚫고 당도한 양주에 서 아랍상인들이 바로 이웃의 구매력이 있는 국제도시 경주를 놓칠 리가 없었을 것 이다. 그리고 양주에는 아랍인들에게 경주에 대한 가장 정확한 상품정보를 제공할 신라인들이 바로 이웃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주를 중심으로 한 중국 동남부 무역항 에서 또는 무슬림들의 직접적인 한반도 방문으로 광범위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9세기 중엽, 아부 자이드(Abu Zayid), 슐레이만 알-타지르(Sulaiman Al-Tajir) 같 은 아랍 여행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876년의 황소의 난 기간 중 중국 동남부 해안지대에서만 1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상되었다고 한다. 그 수가 다소 과장되 었다 해도 당시 그곳에 정착해 있던 외국인의 절대다수가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이었 다는 사실에 비추어 무슬림들의 수적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존재가 지척의 통일신라로 교역을 위해 진출하는 필연적인 전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라인과 아랍인은 중국에서 일차적인 교류가 이루어졌고, 나아가 흑조해류를 따라 바로 열흘 내지 보름간의 항해거리에 있는 지척의 울산항으로 쉽게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서아시아인 아라비아 일대에서 해로를 통해 많은 아랍상인과 해상세력들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시기는 9세기 중반이후 통일신라시대였다. 장보 고의 해상세력이 몰락하면서 동북아 경제권에 대한 헤게모니가 혼란에 빠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두 아시아 문화권의 접촉은 일회성이거나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치밀한 계획과 광범위한 상호탐색을 통해 맺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다. 예비적 인 상호이해와 교류의 장은 중국이었다. 아랍과 페르시아계 무슬림들과 신라사람들의 접촉과 교류는 중국에서의 정치, 외 교, 문화, 통상적 교류와 중국 동남부에 거주하던 무슬림 상인들의 직접적인 한반도 진출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세계문명의 집산지이며, 아시아 정치의 중심 지였던 당의 수도 장안( 長 安 )에는 이슬람제국의 사절이 빈번히 내왕하였고, 무슬림 상인들에 의한 희귀한 아랍, 서역 물품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당세력과 제휴하여 삼국을 통일하고 당과의 긴밀한 정치, 경제 관계를 유지하던 통일신라의 사절, 유학생, 불교승 등이 장안에서 이슬람권 사절들과 혹은 그곳에 거주하던 무슬 림들과 다방면에 걸쳐 접촉을 하게 된다. 신라는 매년 1회 이상의 사절을 장안에 파견하였는데, 년 사이에 46회 이 상의 대규모 사절단이 당 조정의 각종 행사에 신라를 대표했다. 동시에 중국 역사서 에도 년 사이에 최소한 37회의 아랍 사절단이 장안에 당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 日 本 書 記 ) 753년의 기록에도 장안에서의 궁중하례에 신라나 일본 사 절단 이외에도 아랍 사절의 참석을 전하고 있어, 당 조정에서의 신라-이슬람 제국 사절간의 접촉을 짐작케하고 있다. 문화적인 접촉면에서도 중국에서 활동한 신라 불교승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인도를 내왕하면서 때때로 이슬람화 되어 있던 서역 및 아라비아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9세 기 중엽 일본승려 엔닌( 圓 仁 )은 당에 10년간 체류하면서 도처에서 수많은 신라승을 만났다고 전하고 있고, 당나라 승려 의정( 義 淨 )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에는 인도와 서역 기행을 한 7명의 신라 구도 승려의 전기를 담고 있 다. <왕오천축국전( 往 五 天 竺 國 傳 )>으로 유명한 혜초( 慧 超 )는 인도에서의 순례를 마치 고, 돌아오는 길에 이란, 아라비아 및 서역 일대를 거쳐 727년에 장안에 당도했다. 특히 일부 불교승들이 해로를 통해 인도를 순례하면서 남방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무슬림 상인들의 교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신라 불교 승려들과 무슬림들의 종교적 접촉을 시사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슬람 상인들에 의한 사치품의 수입과 신라사회의 오염된 도시문화는 결국 한국

27 역사상 최초의 IMF형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주도된 세계각지 의 고가품과 사치품이 신라사회에 범람하자, 고삐 풀린 수입개방은 결국 신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이리하여 흥덕왕 9년인 834년에는 호화 수입 사치품을 금하고 풍속을 바로 잡는 금령이 발표되기도 했다. 5.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고려사의 기록에 훨씬 앞서 이슬람 학자들의 저술에서는 무슬림들의 신라 진출과 신라의 위치, 자연환경, 산물 등에 관한 유의할 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9세기-15 세기 사이에 이슬람 역사학자, 지리학자, 여행가들에 의해 집필된 상당수의 아랍어 역사서 및 지리서에서 신라에 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븐 쿠르다드비 (Ibn Khurdhadbih)는 신라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이슬람 지리 학자였으며 마수디(Mas'udi)는 한반도에 이라크인이 진출, 거주했다고 전하고 있다. 신라의 무슬림들에 대해 특징적이고 유의할 만할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디마쉬키 (Dimashiki), 알-누와이리(Al-Nuwairi), 알-마크리지(Al-Maqrizi) 등의 저서인데, 이 들은 놀랍게도 우마이야(Umaiya)왕조( )의 박해를 피한 일부 알라위족들이 한반도에 망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인근 중국 동남부에서의 이슬람문화 의 유입과 발전과정을 생각한다면, 신라에 진출한 무슬림들에 의한 종교적 영향, 이 슬람문화의 부분적 소개, 또 후일 고려에서의 대규모 무슬림 상인에 의한 이슬람 종 교의 도입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아랍인의 신라 진출에 관한 가장 주목할만한 정보는 846년에 편찬된 이븐 쿠르다 드비의 <왕국과 도로총람>이다. 아랍인들이 직접 신라로 진출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846년에 비로소 나타난다. 바로 그해 장보고가 살해되면서 청해진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해상세력이 붕괴되는 시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 금껏 동북아 무역을 완전 통제하고 있던 장보고 해상세력과 상권 분점 상태에서 간 접 교역을 행하는 아랍인들이 힘의 공백상태에 빠진 한반도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열흘의 항해거리에 있던 신라로 직접 내왕하는 것은 지극 히 당연한 상인들의 기본적인 속성이었다. 이제 아랍인의 신라진출에 관한 기록도 이 때를 기점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왕국과 도로총람>에서는 두 구절에 걸쳐 신라에 관한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기사 가 실려있다. 이다. 그 곳은 금이 많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비단, 검, 사향, 노회(알로 에), 말안장, 담비모피, 도기, 범포, 육계 등이 있다... 신라로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 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정착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 카즈위니와 바쿠위 같은 학자는 신라의 쾌적한 자연환경에 대해 극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븐 사이드나 아불 피다 같은 학자들의 책에는 신라를 동양의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의 마지막 나라인 신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완벽한 위생조건으로 인해 그곳 사람들은 질병을 모르고 건강하다. 집집마다 호박향 내가 그득하고..., 아무리 불치의 병에 걸려도 신라에 오기만 하면 씻은 듯이 나아버 린다. 동쪽 대양의 끝에는 신라라고 하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서쪽 끝에 있는 '이상향 (Khalidat)'에 대비될 정도다. 서쪽의 이상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라는 비옥하고 쾌적힌 기후를 가진 실제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이다. 이처럼 17명의 아랍-페르시아 학자가 쓴 20여권의 책에서 신라에 대한 다양한 내 용을 발견할 수 있다. 산수가 뛰어난 쾌적한 자연환경은 물론,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교역품의 생산과 특히 양질의 금이 생산된다는 사 실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환상 속에 많은 아랍인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최적의 휴양지로, 남은 인생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망명처 로 신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더욱이 신라의 금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이드리스가 1154년에 편찬한 세계지도에는 신라가 5개의 큰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이 지도는 한국에 관한 세계최초의 지도로 평가된다. 이드리스의 세계지도를 포함하여 많은 자료에서 신라가 여러 개의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슬림 상인들이 육로가 아니라, 중국 동남부 해안을 떠나 해로로 한반도에 도착했음을 시 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신라로 출발하는 항구는 자치거주지인 번방이 형성되어 신 라인과의 빈번한 접촉이 가능하던 항주나 양주였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랍필사본에 나타난 신라관련 기록은 서양학자들에 의해 분 류되고 정리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아랍 지역 도서관에 산재되어 있는 약 200여만권에 달하는 아랍어 고문서 필사본이 제대로 연구되고 분류된다면 신라와 관한 귀중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의 동쪽 깐수의 맞은 편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 산이 많고 왕이 많은 나라

28 6. 바닷길을 따라 온 처용의 등장 심국유사에 처용이란 심목고비한,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이방인이 등장한다. 880년 경의 일이다. 바닷길을 따라 외국의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지금의 울산항인 개운포 에 나타난 것이다. 외관이 특이하고 지금껏 접촉해 본적이 없는 이방인은 신화의 대 상이 되고 악을 쫓는 선신으로 널리 숭상되기 시작했다. 그가 만약 역사적인 실존인 물이라면, 당시 교역상황과 바닷길 상업 구도에 비추어 처용은 아랍-페르시아계 상 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널리 인식되어 왔다.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좁은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눈을 주변으로 당시 동북아와 서 아시아의 해상교역을 떠올리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876년 발발한 황소의 난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중앙 정부 관료로의 꿈이 무산된 소 금장수 황소가 산동반도에서 난을 일으켜 닥치는 대로 재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 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남진한 것이다. 당시 최대의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동남부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번방을 형성하고 교역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랍-페르시 아계 상인집단들이었다. 잔혹한 살해와 약탈이 그들에게 들이 닥쳤다. 살해된 사람 만 120,000명에서 200,00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했던 사람은 아랍 학 자 아부 자이드이다. 물론 그의 기록은 참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숫자를 다소 과장했 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세계 최대도시 장안의 중심주 인구가 50만으 로 본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대규모 이슬람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며 중국 동남부 해안에 살고 있었다. 양주, 항주, 복주, 천주, 광주가 이슬람 상인들이 집거하 는 5대 도시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이슬람인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해안도시를 떠나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그룹도 있었 다. 그들은 중국성과 이름을 새로 만들고, 의상과 관습에서 중국식을 받아들였다. 오 늘날 회족으로 불리는 중국인 무슬림들의 선조가 된 셈이다. 중국화 된 무슬림들은 마( 馬 ) 씨로 많이 개명했다. 마호메트(Mahomed), 무함마드(Muhammad), 마흐무드 (Mahmud), 마수드(Mas'ud) 등 아랍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의 시작부 분에 마 자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8세기 이후 중국 동남부에 연원을 둔 마( 馬 )씨 성의 70% 이상이 무슬림이었음을 밝힌 마천영의 보고서도 이와 관련해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한화( 漢 化 )의 길을 택했단 그룹과는 달리 바다라는 삶의 터 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무슬림 집단들은 아예 중국을 떠나 인근 동료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해 갔다. 그리고 일부는 살기 좋고 그 들이 동방의 유토피아라고 묘사했던 신라라고 하는 목표를 놓칠 리가 없었을 것이 다. 이미 그들은 한반도와 긴밀한 교역을 있었고, 적지 않은 동료들이 신라를 오가며 쾌적한 풍토와 교역의 이익을 챙기고 있던 지역이었다. 황소의 난이 거의 끝나 가는 무렵에 돌연 울산항에 도달하는 처용이 과연 누구일까. 과연 당시의 역사적 인과관 계 없이 단순한 한 사건으로만 처용을 바라볼 것인가. 황소의 난 이후 삶의 기반을 빼앗긴 중국 동남부 해안도시의 이슬람 집단의 일부가 모든 재산을 싸들고 내해처럼 자유롭게 왕래하던 지척의 신라로 망명해 온 것임에 틀림없다. 처용은 아랍-페르시 아계 바닷길 무역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7. 무슬림들의 고려진출 아랍-페르시아계 상인집단들로 구성된 무슬림들의 신라 진출에 관한 아랍사료와는 달리 우리 기록에는 11세기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식상인으로 지칭된 아랍상인들의 한반도 진출을 기록하고 있다. 1024년 고려사( 高 麗 史 ) 현종( 顯 宗 ) 15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10월에 대식국에서 알라자 등 1백인이 와서 교역품을 바치다( 是 月 大 食 國 悅 羅 慈 等 一 百 人 來 獻 方 物 ) 이어 현종 16년(1025년) 9 月 에도 9월 신사에 대식만으로부터 하선과 라자 등 1백명이 와서 교역품을 바치다( 九 月 辛 已 大 食 蠻 夏 詵 羅 慈 等 百 人 來 獻 方 物 ) 이라 하였고, 정종( 靖 宗 ) 6년에는 11월 병인에 대식국 상인 보나함 등이 내왕하여 수은, 용치, 점성향, 몰약, 소목 등 교역품을 바치니, 임금은 유사에게 명하여 객관에서 후이 머물게 하고, 돌아갈 때에 금백를 하사하였다( 十 一 月 丙 寅 大 食 國 客 商 保 那 盒 等 來 獻 水 銀 龍 齒 占 城 香 沒 藥 蘇 木 等 物 命 有 司 館 得 優 厚 及 還 厚 賜 金 帛 ) 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여기서 아랍인을 지칭하는 대식상인은 열라자( 悅 羅 慈 )--->Al-Raza, 하선( 夏 詵 )--->Hassan, 라자( 羅 慈 )--->Raza, 보나함( 保 那 盒 )--->Barakah 등으로 음역될 수 있어 그들이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1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왕을 만나고 국빈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국제교역은 밀무역과 민간무역은 엄격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무역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국제교역은 조공무역의 형태로 왕실이 직접 관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의 기록에서도 아랍상인들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리는 일회성의 소규모 무역이 아니라, 왕실을 상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직적인 프로그램 을 가지고 거래를 했다는 것이 명백해 진다. 통일신라 이후 구축되어 있던 국제무역 망이 고려시대에 와서도 그대로 기능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29 한편 고려에 대한 중세이슬람 역사학자들의 부분적인 기록도 보인다. 몽골시대 페 르시아 일칸제국의 역사학자 라쉬드 알-딘(Rashid-al-Din)의 <Jami al-tawarikh ( 綜 合 史 )>와 오스만 제국 초기의 알리 아크바르(Ali Akhbar)가 저술한 <Hitayname(키타이 書 )>가 대표적이다. 일칸제국의 역사학자, 행정가, 의사인 라쉬드 알-딘( )의 <종합사>는 이 슬람 역사 뿐만이 아니라, 투르크, 몽고, 인도, 중국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일종의 종 합 세계사로서, 특히 이슬람 역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종합사>에서 라쉬드 알-딘은 이슬람 학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신라가 아닌 고려 (Kao-li) 로 호칭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원나라를 12개 성( 省 )으로 분류하면서, 고려를 원의 1개 성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의 고려에 관함 지식과 설명은 부분적이 고 단편적이지만,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라쉬드 알-딘의 <종합사>에 이어 한반도를 고려로 표기하면서, 고려에 대한 지식 을 싣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문헌은 알리 아크바르의 중국 여행서, <키타이 書 >이 다. 오스만 터키 제국의 학자, 여행가인 알리 아크바르는 16세기초 호탄을 거쳐 실 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방문한 후 1516년에 <Hitayname>를 편찬, 당시 오스만 제국 의 술탄 야우즈 셀림(Yavuz Selim )과, 그의 사후에 다시 술탄 카누니 술레이만 (Kanuni Sulaiman )에게 바쳤다. 원전이 페르샤어로 기록된 이 작품은 중국 명나라의 정치적 성격, 사회상, 대외관계, 산물 등에 관한 독창적이고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고려는 상업이 발달한 풍요로운 나라로 묘사되 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 하나는 최근 중국 광주박물관에서 발견된 고려인 관련 묘 비문이다. 그 비문에 따르면, 1349년 고려인 라마단이 광주에 와서 병을 얻어 사망 한 후, 이슬람묘역에 안장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미 고려사회의 무슬림들이 국내는 물론 중국과도 긴밀한 해상교류관계에 있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좋은 자료이다. 한반도로 몰려오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중앙아시아 위구르-투르크계로 추정되는 무슬림( 回 回 人 )들은, 몽골의 고려 침공 시에는 몽골군의 일원으로서, 후일 고려의 원 나라 지배하에서는 몽골 관리, 역관( 譯 官 ), 서기( 書 記 ), 시종무관( 侍 從 武 官 ) 등의 직책 을 가진 준지배 세력으로서 한반도에 유입, 정착하였다. 그들은 고려 조정의 벼슬을 얻거나, 몽골 공주의 후원을 배경으로 권세를 누렸으나, 점차 고려 여인과의 결혼을 통하여 동화의 과정을 거쳐갔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1274년 고려 충렬왕의 왕비가 된 몽골 여인 제국공주( 齊 國 公 主 )의 시종으로 따라온 삼가( 三 哥 )라는 회회인( 回 回 人 )의 경우이다. 그의 부친 경 ( 卿 )은 원나라 세조를 섬겨 서기가 되었고, 삼가는 고려 여인과 결혼하여 고려에 귀 화하였다. 그는 왕으로부터 장순룡( 張 舜 龍 )이란 이름을 받고, 벼슬이 장군에 이르렀 다. 현재 덕수장씨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가 아랍계 무슬림이라는 종래의 주장과는 달리, 중앙아시아 위구르-투르크계 무슬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에 거주하던 무슬림 회회인들은 왕실과 특수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활동으로 부를 축적해 갔으며,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자신들의 고유 한 습속, 언어, 종교 등을 보존하면서 개성 및 인근 도시에 자치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고려가 망한 후 조선초기까지도 집단 생활을 하며, 고유한 전통복장 을 입고, 종교의식을 계속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슬림 지도자들은 궁중 하 례 의식에도 정례적으로 참석하여, 꾸란 낭송이나 이슬람식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 녕이나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15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종교적 자치권과 민족적 정체성은 1427년에 발효한 왕의 칙령으로 금지되고 만다( 世 宗 實 錄 9년 4월 條 ). 예조가 아뢰기를 회회의 무리가 의관이 달라,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는 바, 이 미 우리 백성이 되었으니, 마땅히 우리 의관을 쫓아 차이를 없애야만 자연 혼인하게 될 것이다.... 또 회회인들이 대조회( 大 朝 會 )때 송축( 頌 祝 )하는 예도 폐지하십시요 하니 이를 승락하셨다. 8. 무슬림이 남긴 문화유산 이슬람 상인들의 해상을 통한 활발한 교류는 통일신라에 전성기를 이루며 고려중 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바다의 파고는 그러나 1259년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받으면 서 잠잠해지고 대신 육상 실크로드의 전성기가 열리면서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이 이 칙령 이후 무슬림들의 종교적, 민족적 동질성은 와해되고, 급속한 동화의 단계 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후, 국내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기사가 사라져 버린다. 한편,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슬람권과의 접촉의 결과, 부분

30 적인 이슬람문화가 한반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헤지라력으로 알려진 순태음력인 이슬람역법( 回 回 曆 法 )의 도입이다. 세종 때 편찬된 <칠정산외편( 七 政 算 外 篇 >은 역법의 기원과 성격, 계산법에서 이슬람역법인 회회역법 의 원리에 따라 우리나라에 도입, 정착된 과학이었다. 그외에도 조선초기에 집중적으 로 개발된 과학기기나 의학분야에 있어서도 당시 중국에 도입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 던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슬람과학과 의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흔적들이 있다. 이슬람문화는 음악, 미술, 도자기( 回 靑 의 사용과 靑 瓦 白 磁 의 제조) 등 예술분야와 문 자(위구르문), 언어(위구르어)에 이르기까지 조선사회에 폭넓게 전파되었다. 바다를 무대로 한동안 번성했던 이슬람 문화의 한반도 전파는 15세기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의 정치적 변혁으로 장벽에 부닥친다. 명나라의 건국과 조선왕조의 성립, 새 왕조의 유교사상의 강조로 인한 보수 전통주의의 채택, 이슬람 해상 세력을 제압 한 서구 해상세력의 동아시아 진출로 인한 국제정치 질서의 재편과 같은 대내외적 요인에 의해 이슬람 세력은 현저한 퇴조를 보인다. 그 결과 19세기말 동아시아 국가 들의 문호개방이 있을 때까지 4세기 이상의 긴 단절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런 다음 에는 해방 이후 미국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잣대에 세상을 온통 맞추어가는 반세기의 긴 문화식민지의 후유증으로 이슬람은 우리에게 가장 생소하고 가장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9. 바닷길의 문화교섭 문화는 섞일수록 풍부하다. 고대 신라와 서아시아와의 해로를 통한 문화교류는 매 우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과 신라의 경주사이에도 동시 패 션이라 할 만한 문화적 접촉 빈도가 높았고, 예상을 뒤엎는 문화적 상호영향이 컸다. 가장 중요한 문화적 결과는 무엇보다 아라비아 해에서 인도양을 거쳐 동남아와 중국 동남부 해안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문화벨트의 형성일 것이다. 오늘날 파키스탄 서부 의 신드주를 시작으로 인도서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남부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화는 물론 중국의 광주-천주-복주-양주-항주에 이르는 중국 동남부 해안 도 시의 이슬람 문화의 수용과 영향은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랍인에게 지금도 광주는 칸톤(Canton), 천주는 자이툰(Zaitun:올리브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오늘날 두바이와 걸프해 아랍 도시들을 채우고 있는 인도와 동남아 무 슬림들의 진출도 고대이후 계속되어 온 광범위한 인적교류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의 서역 경영, 아프라시압 고분도의 신라사절 등 우리 문화의 서아시아 진출도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 해양도시간에는 적어도 9세기 이후 활발한 상호교류와 빈번한 직 접 접촉으로 인해 문화가 소통되고 기술과 삶의 다양한 방식들이 동시다발적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문헌 이희수, 1991 <한-이슬람 교류사> 서울:문덕사 양승윤 외, 2003, 바다의 실크로드, 청아 楊 永 昌 1982 早 期 伊 嘶 蘭 敎 學 術 在 中 國 傳 播 情 況 的 探 討 < 伊 嘶 蘭 敎 在 中 國 > 甘 肅 省 : 甘 肅 省 民 族 硏 究 所 Abdurreshid Ibrahim Alem-i Islam, Istanbul, Ahmed Saqi Beg Printing House Al-Idrīsī Nuzhat al-mushtaq fī ikhtiraq al-afaq (E.J.Brill). Napoli Arnold,T.T The Preaching of Islam. Lahore, Sh. Muhammad Ashraf Broomhall, Marshall Islam in China: A Neglected Problems. London, Morgan & Scott Ltd. Ch'en, Yuan Western and Central Asians in China Under the Mongols. Los Angeles, Monumenta Serica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Ferrand, Gabriel Relations De Voyages Et Textes Gēographiques Arabes, Persans Et Turks Relatifs A L'Extrēme-Orient Du VIII Au XVIII Siēcles. Paris, Ernest Leroux Ēditeur Henthorn, Willian E Korea: The Mongol Invasions. Leiden, E.J.Brill Hirth,F. and Rokhill,W.W.(trs) Chau Ju-Kua:His Work on the Chinese and Arab Trade in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entitled Chu-fan-chi. St.Petersburg, Imperial Academy of Sciences Ibn Khurdādbih Kitāb al-masālik wa'l mamālik(ed.m.j.de Goeje). Leiden Israeli, Raphael Muslims in China. London, Curzon Press Langlois, John.S.(ed.) China under Mongol Rule.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Lee,Hee-Soo The Advent of Islam in Korea-A Historical Survey. Istanbul. IRCICA. Lewis, Bernard(이희수 역), 1998, 중동의 역사, 까치 Lin Yih-min 1967 <Ali Ekber'in HITAYNAME adli eserinin Cin kaynaklari icin mukayese ve tenkidi> Taipei. Mas'ūdi Kitāb al-tanbīh wa'l-ishraāf. Baghdad Sulaiman al-tājir Akhbār al-sin wa'l Hind(ed. trs.j.savagat). Paris Yoon, Kyung Sun Islam in Korea. Michigan, The Hartford Seminary Foundation.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문화의 상호교류성에 따라 혜초의 대식진출, 고선지

31 질 의 문 중동 및 이슬람 전문가로서 이에 대한 정보가 크게 부족한 한국 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연구소의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어 젠더에 필수적인 여러 정보를 얻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서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걸치는 거대 권역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바다를 통한 교류의 실상을 큰 그림으로 제시해 주셔서 아직까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권역에 시선이 머무르고 있는 우리 연구진의 구상에 큰 자극을 제공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 자신 역시 중동 지역이나 이슬람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 비전공자이지만, 선생님의 발표를 통해 이들 지역과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사이에 끊임없는 상호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지 자격 없는 토론자이지만 토론자의 역할에 맞춰 몇 가지 저희들에게 도 움을 구하는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관 을 유럽인들보다 수 세기 앞서 제시하고 있었다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 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아랍 및 이슬람 역사 문헌들을 보시고 직접 이용하 시고 계시므로, 아랍 및 이슬람의 역사가 및 역사학적 전통에 대해서도 많은 부 분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아랍 및 이슬람 지역의 역사관의 흐름과 역사학에 대해 값진 정보를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3. 저희들이 선생님을 초빙하여 말씀을 들은 궁극적 이유는 저희들이 해항도 시의 문화교섭학 연구를 수행하는 데 선생님의 조언과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발표문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시사점과 정보들을 얻어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선생님께서, 바다를 통한 문화교섭 현상에 접목하려는 저희 연구진들에게 이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시각과 관련해 좀 더 직접적인 권유나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인류학 적 방법이나 시각을 저희 연구진들이 해항도시의 문화 현상을 바라볼 때 활용 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1. 발표문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입니다. 발표문에서 우리는 아랍 지역과 동아 시아와의 바닷길을 통한 교류가 주기적인 부침을 겪으며 활발하게 이루어졌음 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동아시아의 끝에 있는 한반도와 의 교류 부분이 될 터인데, 우리 연구소의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부분에 깊은 관 심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보아온 중국 쪽 사료나 삼국사기, 고려사 같은 한국 쪽 사료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슬람 및 아랍 쪽 사료를 이용하여 한 반도 관련 내용들을 재구성하시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이는 이 발표 문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다른 논문에서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발 표문에서 주로 제시된 내용은 아랍이나 이슬람 쪽에서 우리에게 남긴 영향 등 인데, 반대로 우리 쪽에서 아랍 지역에 어떤 흔적을 남긴 부분은 없는지 하는 것입니다. 즉 중국이나 신라의 생활양식이나 문화적 요소가 아랍지역이나 이슬 람 권역에 흔적을 남겼거나 또는 주목되는 인물이 거론되거나 하는 것을 아랍 및 이슬람 문헌에서 찾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2. 발표문과 좀 무관한 내용이지만, 평소 제가 궁금하게 여기던 것이고 언젠가 아랍 및 이슬람 전문가를 뵙게 되면 여쭤보려고 생각했던 질문입니다. 최근 한 국에도 유럽중심주의 세계관의 극복이나 세계사 나 글로벌히스토리 등에 대 한 관심으로 역사(학)이 유럽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는 아니지만 아랍 및 이슬람의 역사가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븐바투타 여행기 가 번역되었고, 작년에 는 이븐 할둔 이라는 아랍 역사가에 대한 연구서가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습 니다. 특히 이븐 할둔의 경우에는 유럽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여겨져 온 근대적

32 (제11회 콜로키움)

33 제12회 콜로키움 _ (금) 중세 말 베네치아의 해상 네트워크 Maritime networks between Mediterranean and Atlantic in the Later Middle Ages 1. 서론 2. 직항로의 개통 3. 주요 수송선박과 상품 4. 해상 네트워크의 수준 1. 서론 남종국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1270년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직항로가 개설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대서 양과 지중해를 오가는 선박이 있었지만 두 바다를 정기적으로 연결하는 해상수송이 이루어진 것은 13세기 후반에 들어서였다. 대서양 노선을 처음으로 개척한 세력은 제 노바였다. 곧 이어 카탈로니아와 베네치아 상인들이 뒤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15세기 초엽 피렌체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선박 서비스에 동참했다. 대서양에서 지 중해 선박들의 주요 기항지는 브뤼헤, 런던과 Southampton이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직항로의 개설은 중세 말 유럽 경제에 큰 변화를 가 져온 중요한 사건이었다. 새로운 수송 인프라의 개통은 상업 활동 전체에 막대한 영 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선단의 항해 주기는 항구 도시의 상업 리듬을 결정했다. 직항 로의 개설은 전체 교역량을 증대시켰다. 그렇지만 직항로의 개설은 지중해와 북부유 럽을 연결시켜주었던 기존 상업 루트인 샹파뉴 정기시의 교역량을 감소시키기도 했 다. 대서양 직항로 개설은 지중해 모직물 산업을 육성시켰다. 피렌체가 영국과 플랑드 르에서 생산된 원모를 가공해 중세 말 유럽의 대표적인 모직물 생산지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해로를 통한 대규모 원모 수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 또한 직항로를 개설하고 이를 주도했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해상 도시국가들은 국제 무역에서 더욱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 1) A. A. Ruddock, Italian merchants and shipping in Southamprton (Southampton, 1951), pp 직항로의 개통과 그로 인한 상호 교역 증대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선행연구들이 있 다. 그 덕분에 교역 상품, 투입된 선박의 종류, 교역 상인들에 관한 상당한 양의 정보 가 축적되었다. 기존의 선행연구들은 얼마밖에 남지 않은 제한된 사료를 이용해서 이 를 분석했다. 영국 항구도시의 관세기록, 제노바의 관세기록, 베네치아의 원로원 기록 과 같은 공적인 성격의 기록들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선단이나 중요한 노선에 관한 정 보는 상세한 반면 개별 선박들의 운행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자세한 편이다. 3) 예 컨대 베네치아 원로원 기록은 플랑드르 행 갤리선단에 관해서는 매우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개별 선박의 운행에 관해서는 별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주요 선단 들의 운항 주기는 전체 상업 활동의 리듬과 주기를 규정했다. 중세 말 유럽 제일의 해 상 강국인 베네치아는 두 번의 큰 정기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기시는 주요 선단의 항 해 주기에 맞춰져 있었다. 4) 최근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베네치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운 영하는 선단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정부 주도 하의 선단이 베네치아 수송 인프라의 근간이었고 개별적으로 운항하는 개인 소유의 선박의 비중은 낮았다고 결론 지었다. 5) 기타 연구들도 이러한 기본 틀 위에서 이루어졌다. 레인의 연구에 따르면 투 자와 그에 따른 이윤 실현 주기도 주요 선단의 운항 주기에 따랐다. 향신료의 경우 이 윤 실현 주기는 1년이었고, 면화의 경우 이윤 실현 주기는 6개월이었다. 향신료를 수 송하는 갤리 선단의 수송 주기는 1년이었고, 면화 선단의 주기는 6개월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6) 지중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 하는 주요 선단의 운행 주기도 1년이었다. 예컨대 동지중해 키오스를 출발한 제노바의 대형 범선들, 베네치아의 플랑드르 행 갤리선단, 피렌체의 갤리 선단은 매년 한 번 대 서양 노선을 주파했다. 그러나 주요 선단들이 만들어내는 상업 활동의 주기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고 정 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좀 더 작은 규모의 노선과 흐름을 놓칠 수 2) Lewis는 왜 대서양 선박들이 직항로 개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는지를 다음 논문에서 설명했다. A. R. Lewis, "Northern european sea power and the Straits of Gibraltar, A. D.", Order and innovation in the Middle Ages: essays in honor of Joseph R. Strayer (Princeton, 1976), p ) 관세 기록에는 항상 누락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 상인들과 선장들은 여러 가지 편법을 사 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노바 관세기록에 따르면 1376년 4척의 제노바 선박이 플랑드를 지방을 다녀왔다. 하 지만 공증인 문서에는 공적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선박들이 나온다. B. Foster, The local port book of Southampton (Southampton, 1963); J. Day, Les douanes de Gênes (Paris, 1963); Archivio di Stato di Genova, San Giorgio, sala 14/54 Caratorum Veterum; Archivio di Stato di Venezia, Senato Misti, Senato Mar, Senato Incanti di galere. 4) 베네치아에는 무다(muda)라 불리는 제도가 있었다. 무다는 여러 의미로 쓰였는데 정기 선단을 뜻하기도 했지만 특정 지역에서 하물 선적이 허용된 기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3월과 9월 무다는 동지중해에서 하물 선적이 허용 되는 시기를 뜻했다.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무다는 베네치아 시장의 리듬과 주기를 결정했다. 15세기 초 상업 안 내서에 따르면 베네치아에서 가장 바쁜 시기는 9월 무다를 위해 동지중해로 출발하는 선단에 선적할 상품을 구 입하는 8월경이었다. 두 번째로 바쁜 시기는 3월 무다를 준비하는 1월 중순에서 2월 10일까지의 기간이었다. F. C. Lane, "Fleets and fairs", Venice and History(Baltimore, 1966), p. 131;. Idem, "Rhythm and rapidity of turnover in venetian trade of the Fifteenth century", Venice and History(Baltimore, 1966), p ) 최근에 이에 대한 반론은 제기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E. Congdon, "Private venetian ships and shipping c. 1400", Al-Masaq. Islam and the medieval Mediterranean, 10(1998), pp ) F. C. Lane, "Rhythm and rapidity of turnover in venetian trade of the Fifteenth century", Venice and History(Baltimore, 1966), pp

34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 말 이탈리아 상인이 남긴 편지는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교류와 접촉이 훨씬 더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당시 대서양 제일의 항구였던 브 뤼헤에 상주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은 거의 매달 지중해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편지 를 보냈다.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편지를 전달하는 연락선이 있었음을 간접적 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 연구는 해로를 통한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교류와 접촉이 얼마나 빈번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선박은 상품 수송뿐만 아니라 소 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결국 얼마나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는지는 얼 마나 자주 선박들이 드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중세 말 지중해와 대서양을 오갔던 선박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상인 편지의 경우에도 상황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직항로를 개척한 제노바 상인들과 뒤이은 카탈로니아와 베네치아 상인들은 본 연구를 수행하는 데 충분한 편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특정시기 즉 14세기 말과 15세 기 초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자료가 남아 있다. 중부 이탈리아 작은 도시마을인 프라 토 출신의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가 남긴 상업문서가 바로 그것이다. 7) 다 티니는 지중해 선박의 주요 기항지였던 런던과 브뤼헤에 지점을 개설하지는 않았지만 대리인이나 사업상의 동료를 통해 거래를 했다. 이들이 지중해에 있는 다티니와 다티 니 상사의 다른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가 3천 통 정도 남아 있다. 8) 다티니 사료는 본 연구를 수행하는데 특히 유용하다. 다티니의 사람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대서양 선단 을 운영하지 않았던 피렌체 출신의 상인들이었기 때문에 특히 선박 운행에 관련된 정 보에 민감했다. 이들은 주로 제노바와 베네치아 선박을 이용했으며 편지에 항상 선박 에 관련된 정보를 언급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서양으로부터 지중해로 보낸 편 지는 많이 남아 있지만 반대 방향의 편지는 아주 소량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중해 로 보낸 대다수 편지의 서두에는 지중해로부터 받은 지난 번 편지를 언급하기 때문에 상호 편지 교류가 얼마나 활발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브뤼헤의 주재원인 Gulglielmo Barberi는 발렌시아의 동료에게 보내는 1397년 10월 26일자 편지에서 지난 달 26일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이야기를 했습 니다. 그 후 이달 14일에 나는 8월 29일과 9월 4일에 쓴 당신 편지 두통을 받았습니 다. 곧바로 답장하는 것입니다(A di 26 del passato, vi mandai l'ultima e dicie vi quanto fu di bisongno. Poi, a di 14, ebe 2 vostre, fatte a di 29 d'aghosto e a di 4 settebre. Apresso vi rispondo.). 9) 7) Archivio di Stato di Prato, Francesco di Marco Datini. 8) 표)브뤼헤에서 지중해로 보낸 편지(총 2830) 바르셀로 수신지 발렌시아 마요르카 제노바 피렌체 피사 이비사 나 편지 수 표)지중해로부터 브뤼헤로 보낸 편지(20통) 발신지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제노바 루카 편지 수 표) 런던에서 지중해로 보낸 편지(총 274통) 수신지 피렌체 제노바 바르셀로나 피사 마요르카 발렌시아 편지 수 ) F. Melis, Documenti per la storia economica del secoli XIII-XVI(Firenze, 1972), p172; Archivio di Stato 2. 직항로의 개통 중세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수송 수단은 강이나 바다를 이용한 수상 수송이었다. 육상수송의 경우 도로 상태가 열악했으며 도적떼의 위험이 상존했고 빈번하게 발생하 는 전쟁 또한 교역을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수상 수송은 육로 수송에 비해 운송비가 저렴했고 상대적으로 대규모 수송도 가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알프스를 넘어 샹파뉴까지 가는 육로 수송보다는 지브롤터를 돌아 대서양 항구도시로 가는 해상 수 송이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라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3세기 말에 가서야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직항로가 개통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한계 때문이었다. 우 선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관문인 지브롤터 해협의 물리적 환경이 두 바다 사이 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 표층수는 대서양으로부터 지중해로 흘러들며 유속은 3에 서 6노트 정도로 매우 빨랐다. 좀 더 염분이 많은 심층수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지 브롤터 해협에서 늘 부는 바람은 서풍이었고 동풍이 부는 경우는 드물었다. 10) 이러한 자연 환경은 대서양에서 지중에로 들어오는 선박에게는 매우 유리했지만 반대로 지중 해에서 대서양으로 진출하려는 선박들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11) 빠른 역 물살과 역 풍을 헤쳐나기기 위해서는 노가 필수적으로 필요했으며 범선의 경우 동풍이 불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말까지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선박들은 동풍 이 불기를 기다리면 해협 주변의 항구에서 3개월 동안이나 머물렀다. 게다가 지중해와 대서양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바다였다. 한 마디로 지중해에 비해 대서양은 거친 바다였다. 그런 연유로 고대이래로 지중해라는 바다에 적응해왔던 지 중해 선박들이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13세기 중엽 이후 이러한 문제점은 점진적으로 해결된다. 대서양에서 사용되던 원형 범선 코 가(Cocca)가 지중해에 되입되어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12) 코카 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전까지 지중해에서 사용되던 원형 범선과 달랐다. 기존의 원형 범선에는 측면에 방 향타 2개가 부착되었던 반면 코카선의 경우 선미에 방향타 1개만 있었다. 평평한 사 각형 고물에 방향타를 설치함으로써 큰 배를 건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화물 을 실을 공간도 늘어났다. 둘째로 기존의 원형범선이 삼각 돛을 이용했던 반면 코가 선은 사각 돛을 채택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은 이전까지 주로 전투함으로 사용 되었던 갤리선을 개량해 상선으로 활용한 것이다. 갤리 상선은 노가 있어 바람이 불 di Prato, Francesco di Marco Datini, passim; H. Bradley, "The Datini factors in London, ", Trade, devotion and governance(dover, 1994), pp ) A. R. Lewis, "Northern european sea power and the Straits of Gibraltar, A. D.", Order and innovation in the Middle Ages: essays in honor of Joseph R. Strayer (Princeton, 1976), p ) J. H. Pryor, Geography, technology, and war. Studies in the maritime history of the Mediterranean (Cambridge, 1988), p ) 코카 선에 대한 최초의 제노바 기록은 1292년 문서다. M. Balard, "Assurances et commerce maritimes à Gênes, dans la seconde moitié du XIVe siècle, Annales de Bretagne et des pays de l'ouest(anjou, Maine, Touraine), 85(1978), p

35 지 않거나 맞바람에도 전진할 수 있고, 전투용 갤리에 비해 화물 창고를 크게 해 더 많은 상품을 실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3세기 말 이후 베네 치아를 중심으로 보급된 대형 갤리 상선은 대서양 노선에 가장 적합한 선박이었다. 이런 장점을 잘 알고 있었던 베네치아 정부는 플랑드르 노선에 가장 크고 새로 건조 한 갤리 상선을 투입했던 것이다. 13) 베네치아는 15세기 말까지도 갤리 상선을 대서양 노선에 투입하지만 제노바는 점차 갤리선을 포기하고 주로 초대형 범선을 이용하게 된다. 14) 직항로의 개통을 지연시킨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적 요인이었다. 13세기 중반까지 지브롤터 해협을 장악하고 있었던 세력은 이슬람이었다. 지브롤터 해협은 매우 좁았고 북서풍이 주로 불었기 때문에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주 대피를 해야만 했다. 그런 연유로 기독교 선박이 지브롤터를 통과해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알메리아, 말라가, 카디스, 리스본 과 같은 항구들과 북아프리카 해안 지역을 장악한 정치세력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 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었다. 13세기 중엽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은 남부의 알모하드 이슬람 왕조가 장악하고 있던 해상기지들을 차지하게 되었다. 1262년 카스 티야 함대가 지브롤터 해협의 중요 항구도시인 카디스를 점령했다. 카스티야는 해상 거점들을 장악하는데 아라곤과 제노바의 원조를 받았다. 특히 제노바 출신의 우고 벤 타(Ugo Venta)는 1264년 카스티야 함대를 총괄하는 제독이 되었고 이 직책은 이후 에도 그와 제노바 출신이 맡았다. 15) 그런 점에서 제노바는 대서양 노선을 열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북유럽은 미개척 시장이 아니었고 다수의 이탈리아 상 인들이 이미 현지에서 확고한 상업 기반을 확립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남 아 있는 과제는 보다 안전하게 대량으로 상품을 대서양으로 수송할 수 있는 해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사업이었지만 13세기 말 여러 면에서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제노바 상인들이 처음으로 대서양 노선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1278년 일군의 제노바 상인들은 3척의 갤리선 (Sancuts Johannes, Sanctus Anthonius, Alegrancia)을 임대해서 영국으로 향했다. 이후 제노바 상선들은 정기적으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오갔다. 16) 13) 초기에 대서양 노선에 투입된 선박이 주로 갤리 상선이었다. D. Stökly, Le système de l'incanto des galées du marché à Venise(fin XIIIe-milieu XVe siècle)(leiden, 1995), p ) H. Bradley, "The Datini factors in London, ", Trade, devotion and governance(dover, 1994), p ) A. R. Lewis, "Northern european sea power and the Straits of Gibraltar, A. D.", Order and innovation in the Middle Ages: essays in honor of Joseph R. Strayer (Princeton, 1976), pp ) 1281년 제노바 갤리선은 런던에서 34자루의 원면과 9천 개 이상의 양털 가죽을 선적했다. 1287년 7월 제노바 갤리선은 영국 샌드위치 항에서 원면을 선적했다. 두 명의 제노바 선장들이 1304년 런던에 입항했고 4척의 제노 바 갤리선이 1306년 런던에서 1417자루의 원모를 선적했다. 에드워드 2세 통치기에 적어도 6척 이상의 제노바 갤리선이 런던을 들렀다. A. A. Ruddock, Italian merchants and shipping in Southamprton (Southampton, 1951), pp 주요 수송선박과 상품 대서양 노선을 처음으로 개척한 세력은 제노바였다. 제노바의 뒤를 이어 13세기 말에 카탈로니아(바르셀로나, 마요르카, 발렌시아)가, 14세기 초엽에 베네치아가, 15 세기 초엽 피렌체가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상 수송에 동참했다. 제노바 상인들이 대서양 노선을 개척한 첫 번째 이유는 명반 수송이었다. 1278년 최초로 일군의 제노바 상인들이 3척의 갤리선을 임대한 목적은 명반을 영국으로 수송 하기 위해서였다. 17) 명반은 직물산업에 꼭 필요한 원료로써 섬유의 기름을 제거하거 나 착색재로 사용된 일종의 돌가루였다. 제노바 상인들은 비잔티움 황제 미카엘 8세 가 제노바 출신의 베네데토 자카리아(Benedetto Zaccaria)에게 가장 큰 명반산지인 소아시아의 포체아를 봉토로 수여한 1275년부터 15세기 중반까지 명반 교역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소아시아 명반의 가장 큰 소비처는 모직물 산업의 중심지인 플랑드 르였다. 18) 15세기 말까지 대서양으로 가는 제노바 선박의 화물 중에서 명반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중해로 수입되는 가장 중요한 품목은 영국산 원모와 모직물이었다. 제 노바 선박은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디스와 말라가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도 시에 들러 현지 상품을 선적했다. 19) 다티니 문서고에서 나온 자료 선장 노선 화물 Paolo Centurione 명반 2800칸타르, 라카 180파르델로, 후추 679폰도, 생강 174 지중해 - 플랑드르 (1398) 폰도, 육계 73폰도 Gabriele Grillo 명반 5444칸타르, 원면 390자루, 면사 11자루, 후추 188폰도, 지중해 - 플랑드르 (1401년) 생강 107폰도, 육계 56폰도, 설탕 13상자, 라카 63파르델로 모직물 134자루, 원면 535자루, 꼭두서니 124자루, 양가죽 41 Stefano Grillo와 Petro Dentuto G. da Mare 영국-이베리아-제노바 플랑드르-이베리아-제 노바 자루, 수은 100bollo, 밀랍 2자루, 가죽 74개, 늑대 가죽 1자루, 설탕 47상자, 코르도바 모직물 1자루, 무화과 24스포르타, 참치 242통 원면 16자루, 모직물 25자루, serge 4자루, 양가죽 15자루, 꼭 두서니 64자루, 가죽 787개, 밀랍 43자루, 기름 16폰도, 생선 60통, 설탕 114통, 견직 39파르델로, opera di terra 10통 14세기 중반 이후 제노바의 대서양 노선은 두 가지 구조적 변화를 겪는다. 첫 번 째 변화는 코카 선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 문서에는 코카 대신에 캐 랙(carrack)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4세기 후반 제노바 해상 보험 계약서를 분석한 M. Balard의 연구에 따르면 대형 갤리선은 금액 기준으로 5% 의 수송을, 대형 원형 범선이 73%를 담당했다. 20) 아마 이러한 현상은 수송비 차이와 17) A. A. Ruddock, Italian merchants and shipping in Southamprton (Southampton, 1951), p ) M. L. Heers, "Les Génois et le commerce de l'alun à la fin du Moyen Age", Revue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 XXXII(1954), pp ) J. Heers, "Il commercio nel Mediterraneo alla fine del sec. XIV e nei primi anni del XV", Archivio Storico Italiano, CXIII(1955), pp ) M. Balard, "Assurances et commerce maritimes à Gênes, dans la seconde moitié du XIVe siècle,

36 무역구조의 변화로부터 기인했다. 14세기 갤리선 운임은 코카선 운임보다 4배나 비쌌 다. 그리고 갤리선은 주로 향신료 수송을 전담하는 선박이었는데 14세기 말 이후 동 지중해 향신료 무역은 점차 베네치아 상인들 수중에 들어가면서 갤리선의 이용 빈도 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1) 그렇다고 제노바 갤리선이 대서양 노선에서 완전 히 퇴출된 것은 아니었다. 22) 두 번째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제노바를 경유하지 않는 직항로의 부상이었다. 1350년경 제노바를 경유하지 않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직항 노선이 제노바 상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수송노선으로 부상했다. 23) 브뤼헤의 다 티니 주재원이 피렌체 동료에게 보낸 1402년 1월 17일자 편지에 따르면 7척의 제노 바 캐랙 선이 브뤼헤에 도착했는데 그 중 다섯 척은 동지중해로부터 직접 왔고 나머 지 두 척만이 제노바로부터 온 선박이었다. 24) 더욱 중요한 사실은 14세기 후반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노선은 제노바의 가 장 중요한 수송노선으로 부상했고, 당시로는 가장 큰 초대형 원형 범선이 이 노선에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제노바로부터 출발하는 노선 중에 영국의 사우스햄프턴 항으로 가는 노선이 제일이었고, 제노바를 경유하지 않는 노선 중에는 동지중해로부터 대서 양으로 직항하는 노선이 가장 핵심적인 노선이었다. 25) 제노바의 뒤를 이어 카탈로니아도 대서양 수송 노선에 참여했다. 카탈로니아 선박 들은 1300년 전후부터 대서양 노선에 출항했던 것 같다. 14세기 초반 영국 해적들은 카탈로니아의 범선과 갤리선을 약탈하곤 하였다. 1340년 강, 브뤼헤와 이프르 시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카탈로니아 선박의 운행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 다. 이후에도 영국 해적들은 카탈로니아 선박을 자주 약탈했다. 그런 연유로 1389년 바르셀로나는 대서양으로 가는 선박의 중간 기항지인 마요르카와 발렌시아와 함께 아 라곤 왕 후안 1세에게 무장 갤리선이 대서양 수송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 했다. 이에 왕은 매년 바르셀로나 무장 갤리 2척과 마요르카 무장 갤리 2척을 대서양 노선에 파견하는 것을 허용했다. 26) 하지만 무장 갤리선은 추가로 궁수를 승선시켜야 했고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못 한 적재 공간을 궁수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추가 수송비를 부담해야 했다. 결국 상인 들은 왕에게 갤리 선단이 출발하기 전 3달과 출발한 후 한 달 반 동안에는 어떤 선박 도 대서양으로 출항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왕은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이 러한 특혜에도 불구하고 카탈로니아 무장 갤리 선단의 운행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 했다. 1397년 대서양 노선에 두 척의 무장 갤리선을 투입할 것인지 말건지에 관한 토 론이 있었고 이후 1427년까지 무장 갤리 선단에 대한 기록은 없다. 수송비 부담뿐만 아니라 마요르카를 경유하는 베네치아 갤리 선단과의 경쟁이 카탈로니아 무장 갤리 선단의 운행 중단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 같다. 27) 그렇다고 카탈로니아 선박들이 대서 양 노선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8) 베네치아 상인들은 제노바와 카탈로니아 상인들보다는 늦게 대서양 노선에 참여했 다. 베네치아 정부가 대서양으로 가는 정기적인 수송 서비스 제도 즉 플랑드르 행 갤 리 선단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해는 1314년이었다. 실제로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 에 대서양에 도착한 것은 이듬해인 1315년이었다. 29) 베네치아 정부가 갤리 선단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동지중해에서 들여온 상품을 대 서양 지역에 내다팔고 대서양 상품을 지중해로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플랑드르 행 갤 리 선단에 선적하는 핵심 상품은 후추와 생강이 주종을 이루는 향신료, 설탕, 면화, 포도주였다. 선적의 기본 원칙은 비싸고 부피가 적은 고가품을 우선적으로 선적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향신료와 설탕이 제일 우선품목이었다. 때론 향신료를 선적 하기 위해 면화나 포도주를 싣지 못할 수도 있었다. 30) 현지에서 선적하는 화물은 원 모, 모직물과 주석 등이었다. 아래의 두 표는 1400년경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의 화 물 목록이다. 1401년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 화물 목록 목적지 화물 후추 119폰도, 생강 196폰도, 푸른 생강 11폰도, 육계 38콜리, 정향 32콜리, 기타 향신료14콜리, denti davorio 9, 라카 63콜리, spigho 21, 설탕 40상자, 종이 130자루, 면화 396자루, 면사 19자 플랑드르 루, 구리 302자루, 구리 3천 리브르, 구리 28콜리, 주석 12콜리, 혼방면직물 24자루, 포도주 582 통, 비단솜 29파르델리 1400년경 4척의 갤리선단의 화물 목록 목적지 선적 화물 생강 576폰도, 후추 156폰도, 육두구 28콜리, 기타 향신료 158콜리, 라카 8상자, 포도주 85통, 종이 브뤼헤 214자루 생강 78폰도, 푸른 생강 31폰도, 후추 12콜리, 육계 10콜리, 기타 향신료 15콜리, 포도주 257통, 런던 종이 32자루 Annales de Bretagne et des pays de l'ouest(anjou, Maine, Touraine), 85(1978), pp ) J. Day, Les douanes de Gênes (Paris, 1963). 22) ASP, Datini, busta / ) M. Balard, La Romanie génoise(xiie -début du XVe siècle)(roma, 1978), pp ; L. Balletto, "Commerce et lignes de navigation entre Occident et Proche-Orient au XVe siècle: importance de l'île de Chio", G. Jehel(ed.), Orient et Occident du IX au XVe siècle(paris, 2000), pp ) ASP, Datini, busta / ) M. Balard, "Assurances et commerce maritimes à Gênes, dans la seconde moitié du XIVe siècle, Annales de Bretagne et des pays de l'ouest(anjou, Maine, Touraine), 85(1978), pp ) Cl. Carrère, Barcelone centre économique à l'époque des difficultés (Paris, 1967), pp ) 1394년 12월 19일자 편지에서 시모네 벨란디는 프란체스코 다티니에게 다음 해 3월 플랑드르로 출발하는 베 네치아 갤리 선단에 향신료를 선적해 마요르카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Cl. Carrère, Barcelone centre économique à l'époque des difficultés (Paris, 1967), pp ) 1404년 10월 13일 런던에서 작성된 한 편지에 따르면 플랑드르에 3척의 선박이 도착했는데 한 척은 베네치아 선박이고 나머지 2척은 각각 카탈로니아와 마르세유 선박이었다. ASP, Datini, busta / ) G. Giomo는 첫 플랑드르 갤리 선단의 도입 연도를 1314년 잡았다. 하지만 이는 연도 계산을 잘못한 오류 때문 이었던 것 같다. D. Stökly, Le système de l'incanto des galées du marché à Venise(fin XIIIe-milieu XVe siècle)(leiden, 1995), p ) 1429년 5월 11일 베네치아 원로원은 향신료, 설탕과 종이를 우선적으로 선적하지 않고 다른 상품들 예컨대 포 도주, 건포도와 부피 나가는 다른 종류의 곡물을 선적할 수 없다는 규정을 공표했다. L. Dorez, Chronique d'antonio Morosini: extraits relatifs à l'histoire de France(Paris, 1901), vol. 3, pp

37 베네치아의 원형 범선인 코카 선들도 대서양 노선에 동참했다. 개인 소유의 코카 선들이 대서양 노선에 참여한 핵심 이유는 크레타 섬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대서양으 로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31) 대서양 노선이 개통된 14세기 초 베네치아 정부는 플랑드 르 지방으로 포도주 수출을 장려했다. 1317년 2월 베네치아 원로원은 관세 없이 크 레타 포도주를 플랑드르 지방으로 수송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령을 반포했다. 32) 14세 기 초부터 대서양 노선에 투입된 갤리 선단의 포도주 수송은 허용되었지만 33)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포도주를 대량 수송하기에는 원형 범선이 더 적합했다. 베네치 아 정부의 공식 기록은 개인 소유의 코카 선의 운행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는 않지만 크레타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노선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34) 15세기 중엽 포도주를 대서양으로 수송하는 선박들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자 베네치아 정부는 이를 규제하고 밀거래를 처벌하려고 노력했다. 35) 대서양 노선에 가장 늦게 참여한 후발주자는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15세기 초 피 사 항을 얻은 후 베네치아 갤리 선단을 모방해 갤리 선단을 운영했다. 피렌체 갤리 선단이 처음으로 대서양으로 출항한 시기는 1425년이었다. 36) 4. 해상 네트워크의 수준 14세기 말과 15세기 초 구체적으로 어떤 선박들이 얼마나 자주 지중해와 대서양 노선을 오갔는지를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일차적인 이유는 선상서기(scriba navis)가 작성하는 항해일지처럼 선박의 모든 항해 일정을 기록한 문서가 거의 보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의 운영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 는 베네치아 원로원 문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갤리 선단의 운영에 관련된 모든 법령과 규칙을 원로원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티니가 남긴 편지들은 선박의 이름, 선장과 항해 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지 만 얼마나 많은 선박들이 얼마나 자주 지중해와 대서양을 드나들었는지 정도는 알려 준다. 왜냐하면 편지는 선편을 통해 전달되었고 수신인은 받은 날짜를 편지에 기록했 기 때문이다. 또한 선박의 입출항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거의 대다수 편지 에는 이에 관한 정보가 나와 있다. 31) NAM, Jong Kuk, Le commerce du coton en Méditerranée à la fin du Moyen Age(Leiden: Brill Academic Publishers, 2007), pp ) "Vinum de Creta possit portari in Flandriam sine datio," R. Cessi, Le deliberazioni del consiglio dei rogati(senato)(venezia, 1960), vol.1, p )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포도주 수송은 항상 허용되었다. 34) 1403년 대서양으로 가던 도중 카디스 근처에서 제노바 해적선에 나포된 베네치아 코카 선의 화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주였다. Ph. Braunstein, "La capture d'une coque vénitienne sur la route de Flandre au début du XVe siècle", Horizons marins, itinéraires spirituels (V-XVIIIe siècle)(paris, 1987), p ) U. Tucci, "Le commerce vénitien du vin de Crète", K. Friedland(ed.), Maritime food transport(koln, Wiemar and Vienna, 1994), p ) M. E. Mallett, The florentine in the fifteenth century(oxford, 1967), pp. 38,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선박들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주요 선박들의 입출항이 특정시기에 집중되었다. 중세 말 상업 안내서에 따르면 브뤼헤에 배가 가장 많이 입항하는 달은 6월과 12월이었다. 37) 또 다른 상업 안내서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대서양으로 가는 제노바 선박들은 3-4월에 제노바를 출발했다. 안내서에는 대서양 현지 도착시기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대략 2달 정도가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지 도착 시기는 6월경으로 추정된다. 제 노바 선박들은 8월에 플랑드르를 출발해 다시 제노바로 귀환했다. 다티니가 남긴 상 업 편지들도 제노바 초대형 범선인 캐랙 선들이 주로 이 시기에 런던과 브뤼헤에 입 항했음을 보여준다. 38) 플랑드르 행 베네치아 갤리 선단도 비슷한 항해 일정표를 가지고 있었다. 14세기 후반세기 베네치아 갤리 선단은 통상적으로 3월 말과 4월 중순 사이에 베네치아를 출 발해 대서양으로 향했다. 39) 15세기 초 상업 안내서에 따르면 4월은 플랑드르 행 갤 리 선단에 선적할 상품을 구입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40) 최종 목적지이자 가장 중요한 기항지는 브뤼헤(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브뤼헤의 외항이었던 슬루이스)였다. 갤리 선 단은 이곳에서는 45일에서 50일 정도 정박했다. 갤리 선단은 빠른 경우 5달 만에도 베네치아로 귀항했지만 통상적으로 6개월 내지 8개월 사이에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즉 플랑드르 갤리 선단은 11월 무렵에 베네치아로 귀항했다. 종종 다음 해 1월에 도 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베네치아 정부는 1375년과 1389년 플랑 드르 선단의 출항 일을 앞당긴다는 규정을 반포했다. 1401년부터 갤리 선단은 다시 3월과 4월경에 출항했다. 41) 14세기 말과 15세기 초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의 운행일정 42) 연도 베네치아 출발일 대서양 도착일 베네치아 귀항일 투입 선박수 월 7일 11월 20일 월 21일 7월 14일-8월 3일(브라방) 월 16일(?) 1395년 4월 20일 월 1일 월 14일 가능하면 8월 15일전까지 월 27일 7월 6일 3 37) <A Bbruggia è una fiera di marzo che vi gitta gran charo e al giungnio e al dicenbre per ispaccamento di navi.> F. Borlandi, El libro di mercantantie et usanze di paesi(torino, 1936), p ) C. Ciano, La pratica di mercatura Datiniana(Milano, 91464), pp ) 15세기 중엽 이후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은 7월 중순에 베네치아를 출발하게 되었다. F. C. Lane, "Rhythm and rapidity of turnover in venetian trade of the Fifteenth century", Venice and History(Baltimore, 1966), p ) F. Borlandi, El libro di mercantantie et usanze di paesi(torino, 1936), p ) 베네치아 정부는 겨울 이전에 귀환을 위해 베네치아로부터의 출항 시기를 앞당기려고 노력했다. 15세기 중엽 이후 출항 시기는 7월 중순으로 늦춰졌다. D. Stökly, Le système de l'incanto des galées du marché à Venise(fin XIIIe-milieu XVe siècle)(leiden, 1995), pp ) D. Stökly, Le système de l'incanto des galées du marché à Venise(fin XIIIe-milieu XVe siècle)(leiden, 1995), pp

38 도착(플랑드르) 월 4일 월 21일 2 6월 경 브뤼헤 월 3일 정박 43) 4 8월 말 브뤼헤 1396 정박 44) 월 19일 월 13일 1411년 1월 20일 4 다티니 주재원들의 편지 또한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주요 선단들이 5-7월에 대서양 항구도시를 들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런던에서 피렌체로 발송된 1392년 5월 11일 자 편지에 따르면 3월 21일 베네치아를 출발한 플랑드르 행 갤리 선단은 런던에 정 박 중이었다. 1395년 7월 8일자 편지에 따르면 브뤼헤 항에 5척이 선박이 정박해 있 는데 그 중 두 척은 피사 로 나머지 3척은 제노바로 떠날 예정이었다. 45) 1396년 8월 브뤼헤에 상주하는 다티니 주재원은 2자루의 모직물을 베네치아 갤리 선단에 선적했 다. 46) 1402년 7월 13일자 편지에 따르면 베네치아 갤리 선단이 런던에서 하물을 싣 고 있었다. 47) 주요 선단이 집중적으로 입항하는 시기는 가격 상승기이기도 하다. 피 렌체 상인들은 베네치아의 갤리 선단과 제노바의 초대형 범선인 캐랙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고 불평했다. 12월 또한 가격이 올라가고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달이었다. 48) 상업 안내서 에 따르면 제노바의 중소형 규모의 선박인 Lignum은 겨울에 대서양 항구에 입항했 다. 49) 1401년 12월 27일자 편지에 따르면 런던 주재 다티니 사람들은 다른 상인들 과 함께 동지중해로부터 온 5척의 제노바 선박 중 2대와 수송계약을 체결했고 임대한 선박의 선장은 니콜로 로멜리니(Niccolo Lomellini)와 파가니노 다비아스트라 (Paganino Dabiastra)였다. 선박의 주요 화물은 명반이었다. 1402년 1월 17일 런던 에서 작성된 편지는 지중해로부터 도착한 7척의 제노바 선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403년 1월 4일 런던에서 작성된 편지에 따르면 Caccini Domenico e Cambini Piero 상사는 제노바 선박에 모직물 23자루를 제노바로 발송했다. 50) 1405년 12월 10일자 편지에 따르면 런던에 정박 중인 제노바 선박(Paolo Italiano가 선장)이 브뤼 헤로 출항할 예정이었다. 51) 여름보다는 덜 했지만 12월 경 또한 지중해 선박의 기항 43) ASP, Datini, / ) ASP, Datini, busta / ) ASP, Datini, busta 648.9/ ) ASP, Datini, buast / ) ASP, Datini, busta 664/308919; H. Bradley, "The Datini factors in London, ", Trade, devotion and governance(dover, 1994), pp. 58, ) H. Bradley, "The Datini factors in London, ", Trade, devotion and governance(dover, 1994), p ) Lignum은 6월에 제노바를 출발해 플랑드르 현지에서 겨울을 나고 다음 해 제노바로 귀항했다. Ciano, La pratica di mercatura datiniana sec. XIV(Milano, 1964), pp ) ASP, Datini, busta / ) ASP, Datini, busta /308912, , busta 885/ 이 늘어나는 시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선박의 입출항이 집중되는 달 이외의 시기에는 상황이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편지 발송일과 수신일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분석 해 보자. 지중해 선박이 가장 자주 들렸던 런던과 브뤼헤로부터 대서양 노선을 주도 했던 지중해 항구도시였던 제노바, 베네치아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발송된 편지들을 분석하자. 그러나 아쉽게도 다티니가 남긴 문서 중에는 대서양에서 베네치아로 보낸 편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약간 이후시기에 베네 치아 상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대신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 사례는 대서양 노선에 선단을 운영하지 않았지만 자국 상인들이 대서양에서 활발한 상업 활동을 하고 있었 던 피렌체로 발송된 편지를 다룰 것이다. 편지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다티 니 상사원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모든 편지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2) 둘 째 대서양 항구 도시를 방문했던 모든 선박이 편지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런 던과 브뤼헤에 상주하는 다티니 상인들은 피렌체 출신으로서 수송 시 주로 제노바 선 박을 이용했기 때문에 베네치아와 카탈로니아 선박의 운항에 상대적으로 덜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편지 분석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와 결론은 제한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분석을 통해 얻은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는 편지 발송이 없었던 달은 없다는 것이 다. 일반적으로 상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편지를 썼고, 두 달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반면 서신 교환 주기와는 달리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 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단이었던 베네치아의 갤리 선단과 제노바 초대형 범선들은 일 년에 한 번 대서양과 지중해를 오갔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주요 선단의 입출항 이 집중 되는 시기 이외에도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선박들이 존 재했음을 의미한다. 53) 플랑드르 갤리 선단을 육성하기 위해 선단이 떠난 후 2달 이내 에 개별 선박들이 플랑드르 지방으로 상품을 수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베네치아 원로 원 규정은 정기 선단 이외에 개별 선박들도 대서양과 지중해를 오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54) 실제로 편지는 주요 선단 이외의 선박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1395년 한 해 동 안 런던에서 지중해로 발송된 편지에 언급된 선박들은 다음과 같다. 52) 1395년 12월 14일 편지에는 11월 30일에도 편지를 썼다는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11월 30일자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사례들이 다티니 문서에서 종종 확인된다. ASP, Datini, busta /313029(1395년 10 월 13일자 편지), /313030(1395년 12월 14일자 편지). 53) ASP, Datini, busta /407471(1392년 3월 16일 편지:3월 런던 항에 정박 중인 베네치아와 제노바 선박 에 언급). ASP, Datini, busta /407474(1392년 3월 26일 아침 베네치아 선박이 런던 항을 떠날 예정이 다.). ASP, Datini, busta /407464(1393년 3월 제노바 선박이 사우스햄프턴 항을 떠날 예정이다.). ASP, Datini, busta /407454(1393년 4월 제노바 선박이 대서양에서 제노바로 출항 할 예정이다.). ASP, Datini, busta /407453(1393년 4월 Manuel Dona의 선박이 제노바로 떠날 예정이다.). 54) D. Stökly, Le système de l'incanto des galées du marché à Venise(fin XIIIe-milieu XVe siècle)(leiden, 1995), p

39 1395년 지중해와 대서양을 오갔던 선박 목록 선장 국적 운행 일정 사료 Rigo 제노바 1월 9일 편지에 따르면 사우스햄프턴 항에서 상품 선적 사우스햄프턴 - 런던 - 제노바 / Piero Scorzuto 사보나 1월 15일 편지에 따르면 사우스햄프턴에서 모직물 선적 / Bartolomeo G. 제노바 Rigo의 선박과 함께 2월 7일 영국을 출발 / Gian Damortoio 제노바 3월 초 런던 도착 / 베네치아 갤리선단 베네치아 3월 8일 4척의 갤리 선단 베네치아 출항 / 명반 선박 사보나 5월 명반 선박 플랑드르 도착 / 월 1일까지 런던 정박 중 528.3/6365 배 한 척 사보나 명반 선박과 함께 도착 / 월 1일까지 런던 정박 중 528/3/6365 Della Ringhe? 피사 항 도착 소식 알게 됨 / P. Lercario 제노바 5월 Lercario의 선박 런던 입항 / 무장 갤리 사보나 편지에 언급 / 갤리 카탈로니아 편지에 언급 / 월 1일자 편지에 언급된 5척의 선박 2척은 위에서 언급된 사보나 선박(Piero Scorzuto, Giovanni 5척의 선박 Dallesandri) 528.3/6365 2척은 피사 행, 나머지 3척은 제노바 행 / 월 14일자 편지에 따르면 안전하게 지중해로 귀항했다는 소식을 알게 됨 10월 13일자 편지에 언급된 5척의 선박 5척의 선박 제노바 3척은 대서양 행(2척의 향신료 선박 런던 행, 한 척의 명반 / 선박 플랑드르 행), 나머지 2척은 에스파냐 행 12월 14일자 편지에 따르면 2척의 선박 사우스햄프턴 도착 2척 제노바 하물 하역을 위해 플랑드르로 출발 예정 / 갤리선 제노바 12월 14일자 편지에 따르면 사우스햄프턴 도착 예정 / 지도: 제노바 수송 노선 편지가 대서양에서 지중해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적으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였다. 소요 시간은 물리적인 거리보다도 상호 교역 관계, 대서양 수송 노선의 운영 여부에 따라 더 크게 달라졌다. 대서양에 수송선단을 파견했던 제노바, 베네치아 와 바르셀로나는 대서양으로부터 가장 빨리 소식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피렌 체는 거리상으로는 베네치아보다 대서양에 더 가까웠지만 대서양과 피렌체 간의 서신 교환 속도는 2배 정도 느렸다. 편지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가장 빨리 전달한 경우는 20일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본 연구는 다티니 서신을 분석한 결과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측면들을 밝힐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도 발견했다. 그것은 다티니 서신 에 언급된 선박들은 다티니 주재원들의 편지를 수송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런던에서 작성된 편지가 제노바와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데 평균 한 달 정도 걸렸지 만 대서양 항구도시를 떠난 선박이 지중해 항구 도시에 도착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 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1395년 2월 7일 영국 사우스햄프턴 항을 떠난 제노 바 선박이 5월에도 제노바에 귀항하지 못했지만 3월 1일 런던에서 작성된 편지는 4 월 6일 제노바에 도착했다. 55) 그렇다면 3월 1일자 편지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플랑드르 행 베네치아 갤리 선단의 운항 노선 55) ASP, Datini, busta /313025,

40 다티니 편지(1395년 5월 22일 런던 발송-1395년 6월 17일 제노바 수신) 1. 브뤼헤에서 제노바로 발송된 편지 작성 장소 작성일 수신 장소 수신일 소요기간 브뤼헤 1395/01/15 제노바 1395/02/14 브뤼헤 1395/01/21 제노바 1395/02/21 브뤼헤 1395/01/29 제노바 1395/02/26 브뤼헤 1395/02/08 제노바 1395/03/27 브뤼헤 1395/02/18 제노바 1395/03/17 브뤼헤 1395/02/20 제노바 1395/03/17 브뤼헤 1395/03/06 제노바 1395/04/19 브뤼헤 1395/03/27 제노바 1395/05/01 브뤼헤 1395/03/31 제노바 1395/04/24 브뤼헤 1395/04/16 제노바 1395/05/09 23일 브뤼헤 1395/04/16 제노바 1395/05/30 브뤼헤 1395/04/19 제노바 1395/05/14 브뤼헤 1395/05/10 제노바 1395/06/10 브뤼헤 1395/05/11 제노바 1395/06/10 브뤼헤 1395/05/16 제노바 1395/06/06 21일 브뤼헤 1395/05/24 제노바 1395/06/17 브뤼헤 1395/06/07 제노바 1395/06/28 21일 브뤼헤 1395/06/07 제노바 1395/07/28 브뤼헤 1395/06/11 제노바 1395/07/11 브뤼헤 1395/07/10 제노바 1395/08/06 브뤼헤 1395/07/24 제노바 1395/08/16 21일 브뤼헤 1395/08/11 제노바 1395/09/02 브뤼헤 1395/08/16 제노바 브뤼헤 1395/09/05 제노바 1395/10/06 브뤼헤 1395/09/30 제노바 1395/11/07 브뤼헤 1395/10/02 제노바 브뤼헤 1395/10/28 제노바 1395/12/18 브뤼헤 1395/11/03 제노바 브뤼헤 1395/11/21 제노바 브뤼헤 1395/11/27 제노바 1396/01/08 브뤼헤 1395/12/13 제노바 1396/01/14 브뤼헤 1395/12/25 제노바 1396/01/14 20일 브뤼헤 1396/01/01 제노바 1396/01/26 브뤼헤 1396/01/06 제노바 1396/02/11 브뤼헤 1396/01/12 제노바 1396/02/04 브뤼헤 1396/01/24 제노바 1396/03/04 브뤼헤 1396/01/25 제노바 브뤼헤 1396/01/27 제노바 1396/02/24 브뤼헤 1396/02/18 제노바 1396/03/20 브뤼헤 1396/02/18 제노바 1396/04/13 브뤼헤 1396/03/07 제노바 브뤼헤 1396/03/23 제노바 1396/04/13 브뤼헤 1396/04/09 제노바 1396/05/03 브뤼헤 1396/04/20 제노바 1396/05/18 브뤼헤 1396/04/23 제노바 브뤼헤 1396/04/?? 제노바 1396/05/09 브뤼헤 1396/05/09 제노바 1396/06/01 브뤼헤 1396/05/21 제노바 1396/06/14 브뤼헤 1396/06/04 제노바 1396/06/26 브뤼헤 1396/06/15 제노바 브뤼헤 1396/06/15 제노바 1396/07/07 브뤼헤 1396/07/16 제노바 1396/08/08 브뤼헤 1396/07/31 제노바 1396/08/30 브뤼헤 1396/08/15 제노바 1396/09/08 브뤼헤 1396/08/25 제노바 1396/09/14 브뤼헤 1396/09/25 제노바 1396/11/18 브뤼헤 1396/10/15 제노바 1396/11/

41 브뤼헤 1396/10/20 제노바 1396/11/24 브뤼헤 1396/10/31 제노바 1396/11/25 브뤼헤 1396/??/?? 제노바 1396/11/24 브뤼헤 1396/12/02 제노바 1396/01/03 브뤼헤 1396/12/12 제노바 1397/01/22 브뤼헤 1396/12/26 제노바 1397/03/07 브뤼헤 1397/01/12 제노바 1397/02/10 브뤼헤 1397/01/13 제노바 1397/02/19 브뤼헤 1397/01/20 제노바 1397/02/13 브뤼헤 1397/01/27 제노바 1397/02/19 브뤼헤 1397/02/09 제노바 1397/03/09 브뤼헤 1397/02/27 제노바 1397/03/26 브뤼헤 1397/05/17 제노바 1397/06/25 브뤼헤 1397/05/23 제노바 1397/07/07 브뤼헤 1397/05/30 제노바 1397/07/12 브뤼헤 1397/06/20 제노바 1397/07/12 브뤼헤 1397/09/03 제노바 1397/10/14 브뤼헤 1397/09/03 제노바 1397/10/14 브뤼헤 1397/09/03 제노바 1397/10/25 브뤼헤 1397/09/30 제노바 1397/10/13 브뤼헤 1397/10/03 제노바 1397/11/07 브뤼헤 1397/10/06 제노바 1397/11/07 브뤼헤 1397/10/06 제노바 1397/11/05 브뤼헤 1397/11/17 제노바 1397/12/29 브뤼헤 1397/12/03 제노바 1397/12/29 브뤼헤 1397/12/11 제노바 1398/01/05 브뤼헤 1397/12/28 제노바 1398/01/22 브뤼헤 1397/12/31 제노바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수 브뤼헤에서 바르셀로나로 발송된 편지 작성지 작성일 수신지 수신일 소요 기간 브뤼헤 1395/01/04 바르셀로나 1395/01/ /01/ /01/ /01/ /01/ /01/ /02/21 23일 1395/03/ /04/ /03/ /04/ /03/ /04/ /04/ /04/ /04/ /04/24 22일 1395/04/ /06/ /04/ /05/ /05/ /05/ /05/ /05/ /05/ /05/28 20일 1395/05/ /05/ /07/ /06/ /07/ /07/ /08/ /07/ /08/ /07/ /08/ /07/ /09/ /08/ /09/ /08/ /09/ /08/ /08/ /09/ /08/ /09/ /08/ /08/ /09/ /08/ /09/ /08/ /10/ /08/ /10/ /09/ /10/ /09/ /11/ /10/ /11/ /10/ /10/ /10/ /11/ /10/ /11/ /10/ /11/ /10/ /11/ /10/ /11/18 21일 1395/11/ /12/ /11/ /11/ /11/ /11/ /11/ /01/ /11/ /12/ /12/ /12/ /01/ /12/ /01/ /01/ /03/ /01/ /02/ /01/ /02/ /01/ /02/ /01/ /02/ /01/ /02/ /02/ /02/ /02/ /03/ /02/ /03/ /02/ /03/ /03/ /04/ /03/ /04/ /03/ /04/ /04/ /05/ /04/ /05/ /04/ /05/ /04/ /04/ /05/ /04/ /05/ /04/ /05/ /05/ /06/ /05/ /06/ /05/ /06/ /05/ /06/ /05/ /06/ /05/ /06/ /06/ /07/ /06/ /07/ /06/ /07/ /06/ /07/ /07/ /07/ /08/

42 1396/08/ /09/ /08/ /09/ /08/ /09/ /08/ /09/ /08/ /09/ /09/ /09/ /09/ /09/ /09/ /09/ /10/ /10/ /10/ /11/ /10/ /11/ /10/ /11/ /10/ /11/ /10/ /11/ /11/ /12/ /12/ /01/ /12/ /12/ /01/ /12/ /01/ /12/ /01/ /12/ /12/ /01/ /01/ /01/ /01/ /01/ /01/ /01/ /01/ / /01/ /01/ /02/ /01/ /02/ /01/ /02/ /01/ /02/ /01/ /02/ /02/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3/ /04/ /03/ /04/ /03/ /05/ /03/ /04/ /03/ /05/ /04/ /04/ /04/ /04/ /04/ /04/ /04/ /04/ /05/ /05/ /05/ /05/ /05/ /05/ /05/ /05/ /05/ /05/ /05/ /05/ /05/ /07/ /05/ /06/ /05/ /05/ /06/ /05/ /06/ /05/ /06/ /05/ /06/ /05/ /06/ /05/ /06/ /06/ /07/ /06/ /06/ /07/ /06/ /07/ /07/ /07/ /07/ /07/ /07/ /08/ /07/ /07/ /08/ /08/ /08/ /08/ /08/ /08/ /09/ /08/ /09/ /08/ /09/ /08/ /09/ /08/ /09/ /09/ /10/ /09/ /10/ /09/ /09/ /10/ /09/ /10/ /09/ /10/ /09/ /10/ /09/ /10/ /09/ /10/ /10/ /11/ /10/ /11/ /10/ /11/ /10/ /11/ /10/ /11/ /11/ /11/ /11/ /11/ /11/ /11/ /12/ /11/ /12/ /11/ /01/ /11/ /11/ /11/ /11/ /11/ /12/ /11/ /12/ /12/ /02/ /12/ /01/ /12/ /02/

43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수 런던에서 제노바로 발송된 편지 작성지 작성일 수신지 수신일 소요 시간 런던 1395/01/09 제노바 1395/02/ /01/ /03/ /03/ /04/ /03/ /05/ /04/ /05/ /05/ /06/17 25일 1395/10/ /12/ /12/ /12/ /12/ /01/ /01/ /02/ /02/ /03/ /03/ /04/ /03/ /04/ /03/ /05/ /04/ /05/03 30일 1396/05/ /05/ /06/ /07/ /09/ /09/ /11/ /10/ /12/ /01/ /02/ /05/ /06/ /06/ /07/ /08/ /10/ /08/ /10/ /08/ /10/ /09/ /12/ /11/ /12/29 달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수 런던에서 피렌체로 발송된 편지 작성지 작성일 수신지 수신일 소요 시간 런던 1401/01/23 피렌체 1401/03/ /02/01 피렌체 1401/03/ /03/ /05/ /04/ /06/ /06/ /07/ /07/ /08/ /08/ /09/ /08/ /10/ /09/ /11/ /09/ /11/ /10/ /10/ /12/ /10/ /01/ /11/ /12/ /12/ /02/ /12/ /02/ /12/ /01/ /02/ /01/ /04/ /03/ /06/ /03/ /04/ /04/ /06/ /04/ /05/ /05/ /09/ /05/ /07/ /05/ /06/ /06/ /08/ /06/ /08/ /07/ /08/ /07/ /09/ /07/ /10/ /09/ /12/ /10/ /12/ /11/ /01/11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수 브뤼헤에서 피렌체로 발송된 편지 작성지 작성일 수신지 수신일 소요 시간 브뤼헤 1401/01/06 피렌체 1401/02/ /01/ /02/ /01/ /02/ /02/ /03/ /02/ /03/ /03/ /03/ /04/ /03/ /04/ /04/ /05/ /04/ /05/ /04/ /05/ /04/ /05/ /04/ /05/ /04/ /06/ /05/ /06/ /05/ /06/ /05/ /06/ /05/ /06/ /06/ /06/ /06/ /07/ /06/ /07/ /07/ /07/ /07/ /07/ /07/ /08/ /08/ /09/ /08/ /09/ /09/ /11/ /09/ /10/ /10/ /12/ /12/ /02/ /01/ /02/ /02/ /04/ /04/ /04/ /04/ /05/ /05/ /06/

44 1402/05/ /06/ /06/ /07/ /06/ /07/ /08/ /07/ /09/ /08/ /09/ /08/ /10/ /09/ /10/ /10/ /12/ /11/ /12/ /12/22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수 대서양에서 베네치아로 발송된 편지 (로 렌 초 돌 핀 이 수 신 한 서 신 목 록 ) 작성지 작성일 수신지 수신일 소요시간 브뤼헤 1422/08/07 베네치아 1422/08/21 14일 런던 1422/08/27 베네치아 1422/10/31 브뤼헤 1422/10/10 베네치아 1422/11/05 브뤼헤 1423/01/26 베네치아 브뤼헤 1423/02/20 베네치아 브뤼헤 1423/02/21 베네치아 브뤼헤 1423/08/01 베네치아 1423/09/10 브뤼헤 1423/09/20 베네치아 1423/10/27 브뤼헤 1424/02/20 베네치아 1424/04/04 브뤼헤 1424/03/06 베네치아 1424/04/27 브뤼헤 1424/03/31 베네치아 1424/04/20 20일 브뤼헤 1424/04/06 베네치아 1424/04/28 22일 브뤼헤 1424/09/18 베네치아 브뤼헤 1424/10/15 베네치아 브뤼헤 1425/03/23 베네치아 1425/07/12 브뤼헤 1425/03/23 베네치아 1425/07/15 브뤼헤 1425/04/15 베네치아 브뤼헤 1425/11/29 베네치아 1425/12/25 브뤼헤 1426/11/27 베네치아 런던 1429/08/09 베네치아 런던 1429/10/28 베네치아 런던 1429/12/22 베네치아 1430/02/09 런던 1430/03/07 베네치아 런던 1441/10/30 베네치아 런던 1441/12/10 베네치아 런던 1442/10/11 베네치아 런던 1443/01/11 베네치아 런던 1443/02/27 베네치아 1443/04/04 런던 1443/07/03 베네치아 1443/08/08 런던 1443/09/21 베네치아 1443/11/02 런던 1445/03/13 베네치아 1445/04/15 런던 1445/10/12 베네치아 1445/11/16 런던 1446/01/07 베네치아 1446/03/02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편지 수 질 의 문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중세 말 유럽의 경제 현상에 대한 전문가이신 선생님을 모시 고, 중세 말의 유럽 해상 네트워크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듣게 되어 깊이 감사드립니 다. 저희들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연구진들은 지금 현재 아시아권의 경제 및 교역 양상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언제나 전지구적 시각에서 이런 양상들을 자리매 김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서 제공해 주 신 중세 말 유럽의 지중해와 대서양간에 전개되던 교역 양상에 대한 정보는 차후 저 희들이 연구를 수행해 나가야 할 전망과 관련하여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됩니 다. 중세사 전공자도 경제사 전공자도 아닌 제가 선생님이 제공하신 정보에 대해 특별 한 코멘트를 한다는 것 어불성설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부족하나마 토론자로서의 역 할에 충실하기 위해 몇 가지 궁금한 부분들에 대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발표문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발표문만이 아니라 많 은 다른 논문들에서도 이탈리아 도시의 문서보관소들에 보존된 상인들의 서신을 주요 자료로 지속적으로 활용하시고 계십니다. 사실 이런 자료가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다 는 것만으로도 항상 사료의 부족 문제로 허덕이는 한국사나 다른 지역사의 현실로 보 자면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인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활용하시는 주요 자료인 상인들의 서신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무역이나 사업관계 내용 외에 다른 내용들(예컨대 서신 발송지역의 정치상황이나 대리인들의 사생활 관계 등)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런 서신들이 현재 어느 정도 남아있고, 어느 정도로 역사학적 자료로 활용 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서신들에 대한 접근에서 유의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도 알 고 싶습니다. 2. 위의 질문과 관련하여, 선생님이 말씀하시듯 이렇게 지중해와 대서양간에 광범위 하고 주기적이며, 빈도수도 꽤 높은 상업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이와 연관되 어 인적, 문화적(지적) 교류 역시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육상 루트가 아닌 선생님이 제시하신 해상 교역로를 통한 인적, 문화적(지적) 교류의 양상과 흐름 이 있었다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3. 역시 연관된 질문인데, 선생님은 발표문에서 서신 왕래의 시간적 편차를 계산하 여 정기선단의 왕래 외에 다른 형태의 해상로를 통한 교류가 우리의 일반적 생각보다 더 빈번하게 있었을 것이라고 시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당시 남유럽과 북유럽 간 의 육로를 통한 통신체계나 우편체계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 다. 아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이에 대해 저희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셨으면 합 니다. 4. 발표 내용과 좀 동 떨어진 질문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중세 말 지중해의 면직 무 역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불어로 된 학위 논문 전체를 세밀하게 살펴 볼 수 없었지만, 그 논문의 내용에는 유럽만이 아니라 북 아프리카와 동지중해의 사정에 대한 설명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생님의 초청 발표에서 학위논문에서 밝힌 이런 남유럽-북아프리

45 카-동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네트워크에 대한 세밀한 설명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개략적으로나마 선생님께서 이 부분을 전면적으로 다룬 전문가이시기에, 이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서아시아와 인 도 심지어 동남아시아로 연결되는 커다란 해상 교역로의 그림과 연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자료의 부족 속에서도 전근대 시기 해상 교역의 실상을 지 중해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해 오셨습니다. 이런 실제 적이고 시사적인 작업 경험에 입각하여 현재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어젠더를 수행 하고 있는 본 연구소의 연구진들이 해항도시와 그 도시들간의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론적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12회 콜로키움)

46 바다 그리고 바다도시 제13회 콜로키움 _ (화) 이철영(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I. 머리에 II. 바다 그리고 바다-문화로서의 바다 III. 지중해와 바다도시-지중해 문명사 IV. 인도양과 바다도시-인도양 문명사 IV. 대서양과 바다도시-대서양 문명사 V. 태평양과 바다도시-태평양 문명사 VI. 맺으면서 I. 머리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활동공간이 며, 다양한 문물이 교류되는 네트워크공간으로서 자리매김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바다에 무늬를 아로새겨 왔다. 바다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무늬, 그것은 바로 해양문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바다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무뉘는 시대에 따라 바다에 따라, 그리고 인간의 활동내 용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지중해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무늬 는 인도양의 그것과 다르고,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그것과도 다르다. 또한, 바다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무늬를 자연의 바다에서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자 연의 바다는 이러한 무늬를 오래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습관적으로 지워왔기 때문 이다. 그리고, 바다와 도시 시리즈에서 다루는 바다는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적인 바다이 며 해양문화/문명이 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한 결과물의 총체로서 그 생명은 공유성( 公 有 性 )이다. 그리고, 인류문명은 자생( 自 生 )과 모방( 模 倣 ), 즉 여러 가지 문명 이 자생적으로 탄생한 후 상호교류에 의한 모방을 거쳐 발전하다. 그러므로 문명이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며,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문명도 아직 문명의 목적지에 도달해 본 적이 없다. 는 아 놀드 토인비의 지적은 흥미롭다. 바다용어인 항구와 항해에 비유하여 문명의 동적인 성질과 지속성을 지적하고 있다. 바다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무늬를 탐색하는 일은 시대에 따른 바다 및 바다에서의 인간활동, 그리고 그 활동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바다도시의 특성 및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바다도시는, 토인비의 지적에 따른다면, 항구로서 그 시대의 문명을 대표하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그 시대의 국제적인 표준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할 있다. 일반적으로, 바다도시는 바다나 하천에 접하여 바다를 매개체로 한 교역에 적당한 입지, 또는 항구를 중심으로 거대한 배후지를 갖는 인구집중지역, 즉, 항시( 港 市, Port City), 또는 항시항체( 港 市 港 體, Port Polity), 나아가서는 이들의 집합체로 형성된 국 가 등을 말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바다도시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생성 발전 소멸해왔다. II. 바다 그리고 바다-문화로서의 바다 이 책은 바다란 무었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하고 있다. 바다는 너무나 깊고 망막하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완전히 파악하기 는 어렵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자연으로서의 바다 보다는 문화로서의 바다에 중점 을 두었다. 인간이 만든 언어인 바다 라는 단어로 바다를 설명할 때, 이미 바다는 문화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다와 도시 시리즈 의 첫 번 째 책으로서,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바다의 탄생 제 1 장 바다의 탄생 에서는, 바다의 탄생에 얽힌 전설과 신화를 비롯하여 대홍수 와 바다, 그리고 오늘 날의 바다가 형성될 때까지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지구 온난 화에 따른 미래의 바다모습에 대해 다루었다. 1.1 전설의 바다 8 신화 속의 바다 8 바다탄생의 과학-염산의 바다 바다의 형성 23 바다의 전진과 후퇴 23 대홍수와 바다 25 전설 속의 대홍수

47 홍수의 실체 33 변화하는 바다 35 지중해 39 페르시아 만 40 인도 42 순다랜드 47 데 오스트레일리아-사흘 대륙 48 바하마 군도 49 미래의 바다 50 바다-선과 악의 상징 110 바다-선과 악, 그리고 인간의 승리 117 바다-인간의 존업성이 꽃피는 사랑스러운 대상 121 바다-자연으로의 회귀, 그리고 인간성 회복의 원천 129 바다-무관심한 자연 131 바다-가혹한 극한공간 135 바다-영원한 묘지 138 바다-인류의 미래을 위한 생태공간 143 바다-인류 최후의 공간 바다의 이미지(1) 4. 환상의 바다 제 2 장 바다의 이미지(1) 에서는 자연의 바다가 아니라 인문학적인 바다를 대상 으로, 다양한 문헌 속에서 바다가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것을 몇 개의 패턴으로 나누어 정리한, 이른 바 문화로서의 바다가 주된 내용이다. 제 4 장 환상의 바다 에서는 바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스테리에 가득 찬 수수 께끼 같은 일들-유령선의 전설과 꿈의 계시, 소멸공간 버뮤다 해역, 아틀란티스 대륙 -에 대해 다루었다. 2.1 상징으로서의 바다 56 시작과 끝 56 자연으로서의 바다 59 바다-신의 영역 61 변화의 바다 69 삶과 죽음의 바다 73 비유의 바다 바다의 이미지(2) 4.1 유령선의 전설 155 유령선-마리 셀레스트 호 155 방황하는 네덜란드 호의 저주 164 꿈의 계시와 유령선 신비로운 소멸공간-버뮤다 해역 176 선박과 항공기의 소멸 164 악마의 공간 180 아틀란티스-전솔 속의 대륙 195 제 3 장 바다의 이미지(2) 에서는 제 2 장의 확장으로서, 바다를 다룬 문헌 중 특 히, 해양소설-청춘, 폭풍 속에서, 백경, 죠스, 노인과 바다, 황제, 오픈 보트, 찬셀러 호의 땟목, 얼음 섬의 어부, 해저목장, 그 날이 오면, 오디세이아를 대상으로 바다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를 다루었다. 3.1 해양문학과 바다 해양소설 속의 바다 89 바다-도전과 모험, 자유, 그리고 인생의 패러다임 89 바다-청춘의 동경과 낭만의 공간 96 바다-거대한 자연, 그리고 인간의 미덕이 빛나는 성숙의 공간 고대의 항해 제 5 장 고대의 배와 항해 에서는 고대의 인류가 바다와 접촉하거나 바다를 이용 하는 데에 사용된 배들에 대해 살펴보고, 고대인류가 수행한 위대한 항해와 이를 입 증하기 위해 현대에 수행된 탐험항해에 대해 다루었다. 5.1 고대의 배와 항해 204 배와 항해 204 5,2 탐험항해 219 콘티키 호 탐험항해

48 라(RA) 호와 티그리스(Tigris) 호의 탐험항해 229 라(RA) 호의 탐험항해 229 티그리스(Tigris) 호의 탐험항해 추억의 바다 제 6 장 바다의 추억 에서는 바다와의 추억과 관련하여 저자가 발표한 수필 중에 서 몇 점을 선정하여 바다와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정리하였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26 로마와 이탈리아 화려한 문명의 바다 제 2 장 화려한 문명의 바다 에서는 자연으로서의 에게 해, 에게문명 및 에게 해 에서의 항해에 대하여 다루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델로스를 비롯하여 호머의 작 품 오디세이아 에 등장하는 항구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바다와의 만남(1) 235 바다와의 만남(2) 242 바다와의 만남(3) 251 바다와의 만남(4) 260 바다와의 남남(5) 267 바다와의 만남(6) 271 바다와의 만남(7) 에게 해 바다도시 55 항구도시 델로스 55 오디세이아의 항구 지중해의 뿌리-그리스 주( 註 ) 및 참고문헌 III. 지중해와 바다도시-지중해 문명사 제 3 장 지중해의 뿌리-그리스 에서는 그리스가 역사에 등장하는 과정과 식민활 동에 대해 살펴보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알키메데스의 도시-시라쿠사, 아테네의 외항-피레이우스, 탈레스의 도시-밀레투스, 피테우스의 도시-마르세이유, 세계의 중 심-델피를 비롯하여, 그리스시대의 선고와 항만의 특징 등에 대해 다루었다. 이 책은 바다와 도시 시리즈 제 2 권으로서, 고대세계에 있어서 대서양을 제외하 고는 가장 큰 바다였고, 동시에 빛의 바다라 불리던 지중해를 중심으로 바다 및 바다 에서의 인간활동(항해), 그리고 바다도시와 네트워크에 대해 고찰하고 있으며,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도시의 바다-지중해 제 1 장 도시의 바다-지중해 에서는 지중해의 자연, 바다로서의 지중해에 대한 인 식,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도시국가의 생성 발전 소멸과정과 지중해에서의 항 해에 대해 다루었다. 3.1 그리스세계의 등장 바다도시 74 알키메데스의 도시-시라쿠사 75 아테네의 외항-피레이우스 78 탈레스이 도시-밀레투스 82 피테우스의 도시-마살리아(마르세이유) 86 세계의 중심-델피 90 키레니아 항의 키리니아 호 92 고대 그리스시대의 선고( 船 庫 )와 원형항만 지중해의 모습 바다의 유목민-페니키아 1.2 도시. 그리고 항해 18 에게 해와 문명 18 제 4 장 바다의 유목민-페니키아 에서는 베일 속에 가려진 해양민족 페니키아인의 등장배경 및 활동내용을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성서의 기원-비블로스, 시돈과 티루

49 스, 숙명의 라이벌-가디르와 타르테소스, 비운의 도시-카르타고, 그리고, 우가리트 유 적과 페니키아 선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4.1 베일 속의 페니키아 바다도시 113 성서의 기원-비블로스(Byblos) 113 페니키아 제일의 도시-시돈과 바다의 여왕-티루스 114 숙명의 라이발-가디르와 타르테소스 119 비운의 도시-카르타고 121 우가리트 유적과 페니키아 선박 잊혀진 지중해의 뿌리-아프리카 바다도시 173 이븐 바투타가 잠든 도시-모로코의 탕헤르 173 튀니지의 튀니스 175 리비아의 도시-트리폴리와 렙티스 마그나 이집트 180 파라오의 나라 181 나일강과 지중해 항해 183 푼트 대원정 우리의 바다-로마 제 5 장 우리의 바다-로마 에서는 로마제국의 등장과 발전, 로마시대의 지중해 항 해 및 선박, 그리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푸테올리와 오스티아에 대해 살펴보고, 바 다의 제국-비잔티움에 대해 다루었다. 5.1 로마제국의 등장 로마시대의 지중해 항해 136 사도 바울의 항해 148 인티키테라 난파선 바다도시 153 푸테올리(오늘 날의 포치올리)와 오스티아 바다도시 192 베일 속의 고대도시-알렉산드리아 192 나일강의 도시-카이로와 후스타드 199 베니 핫산의 벽화 204 국경도시-아스완 206 백개의 문이 있는 도시-룩소르 이슬람의 바다-지중해 제 7 장 이슬람의 바다-지중해 에서는 지중해와 이슬람의 관계, 지중해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 살펴보고, 바다도시로서 가우디의 도시-바르셀로나, 말라가, 다르다넬 스 해협의 요충-차낙칼레, 이즈미르와 에페수소 등에 대해 다루었다. 7.1 이슬람과 지중해 바다의 제국-비잔티움 아프리카와 이집트 7.2 지중해의 이슬람 국가 219 코르도바 회교왕국과 에스파냐 219 오스만 투르크 223 제 6 장 아프리카와 이집트 에서는 잊혀진 지중해의 뿌리-아프리카에 대해 전반적 으로 고찰하고, 바다도시로서 이븐 바투타가 잠든 도시-탕헤르, 튀니지의 튀니스, 리 비아의 도시-트리폴리와 랩티스 마그나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특히, 이집트에 대해서 는 이집트의 파라오체제 및 나일강과 지중해의 항해, 푼트 대원정 등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알렉산드리아, 나일강의 도시-카이로와 후스타드, 아스완, 문이 백개 있 는 도시-룩소르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7.3 바다도시 227 가우디의 도시-바르셀로나 227 말라가 229 르다넬스 해협의 요충-차낙칼레 231 이즈미르와 에페수소

50 8. 바다공화국과 베네치아 IV. 인도양과 바다도시-인도양 문명사 제 8 장 바다공화국과 베니치아 에서는 이탈리아의 바다공화국-아말피,제노바, 피 사, 베네치아의 입지 및 해양활동과 바다도시로서 제노바, 나폴리 등에 대해 살펴보 고, 지중해의 여왕이라 불리던 베네치아의 해양제국 형성과정과 십자군과의 관계, 지 중해의 항해-교역 및 거점, 베네치아의 해운 및 항만 등에 대해 다루었다. 8.1 바다공화국 바다도시 246 콜럼버스의 고향-제노바 246 세계 3대 미항-나폴리 지중해의 여왕-베네치아(Venezia) 252 십자군과 해양제국의 형성 252 항해, 교역 및 거점 베네치아의 해운 및 항만 270 해운과 무역 270 상인길드의 항만 지중해와 동양 및 서양 제 9 장 지중해와 동양 및 서양 에서는 동방견문록을 통한 지중해와 동양과의 관 계, 지중해와 남해바닷길을 통한 교역 등을 다루고, 도시의 바다-지중해가 유럽의 일 원, 즉 대서양세계로 통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9.1 동방견문록의 세계 지중해와 남해바닷길 유럽의 지중해 311 주( 註 ) 및 참고문헌 책은 바다와 도시 시리즈 제 3 권으로서, 오랜기간 이슬람의 바다라 불리던 인도 양을 중심으로 바다 및 바다에서의 인간활동(항해), 그리고 바다도시와 네트워크에 대 해 고찰하고 있으며,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도시와 국가의 바다-인도양 제 1 장 도시와 국가의 바다-인도양 에서는, 기원전후 및 대항해시대에 있어서 인 도양에서의 교역항로에 대해 살펴보고, 특히 인도양의 향로루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1.1 인도양의 교역항로 8 인도양의 모습 8 초기의 탐험 및 과학적 탐사 8 교역항로 10 기원전의 바닷길 10 기원후의 바닷길 16 대항해시대 인도양과 향로루트 고대의 항해와 바다도시 제 2 장 고대의 항해와 바다도시 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시대의 도시, 배 및 항 해에 대해 다루고, 역사상 최초의 바다도시 우르, 안도의 로탈과 에리트레아 해 항 해기 에 등장하는 바다도시를 비롯하여, 홍해의 바다도시 미오스 호르무스, 크세르, 수단항과 사와킨, 보데이다와 모카, 동아프리카의 몬바사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2.1 고대 메소포타미아 51 수메르 51 최초의 바다도시-수메르의 우르(Ur) 59 바다로 연결된 강의 도시-인도의 로탈(Lothal) 에리트레아 해 항해기 의 바다도시 홍해의 바다도시

51 옛홍해의 항구-미오스 호르무스 84 이슬람시대의 항구도시-크세로(쿠세이다) 87 포트 수단항과 사와킨 88 국제무역항 보데이다와 모카 89 동아프리카의 몬바사 아라비아 제 3 장 아라비아 에서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막의 나라, 아랍인과 바 다, 전설 속의 시바왕국과 아라비아해의 배(다우) 및 항해자를 비롯하여 신드바드의 항해에 대해 살펴보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고대박물관-사나, 잃어버린 옛도시-마 리브, 행복한 아라비아-아덴, 마스카트와 소하르, 사라라와 삼하람, 현대와 중세가 혼 재하는 도시-두바이, 카라치 등에 대해 다루었다. 3.1 아라비아 반도 95 사막의 나라-아라비아 95 아랍인과 바다 103 전설 속의 시바왕국 아라비아해의 배와 항해자 116 아랍선원 116 인도양의 낙타-다우 118 신드바드의 항해 아라비아의 바다도시 127 고대박물관-시나 127 잃어버린 옛도시-마리브 128 행복한 아라비아-아덴 131 해양국가 오만의 마스카트(무스카트)와 소하르 133 아름다운 마을-사라와와 삼하랑 136 현대와 중세기 혼재하는 도시-두바이 137 아라비아해 휴식의 항구-카라치 인도 제 4 장 인도 에서는, 인도대륙의 유장한 특성에 대하여 다루고, 인도세계와 연계 하여 향료, 도자기,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포교 등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 았다. 4.1 신비의 대지-인도 146 거대한 불랙 홀 향료, 진주, 도자기, 그리고 그리스도교 157 향료 157 진주 164 중국도자기 167 그리스도교와 성 토마스(토마) 인도-스리랑카의 바다도시 제 5 장 인도-스리랑카의 바다도시에서는 인도의 바다도시, 황금의 고아, 몸바이, 카라치, 망갈로르, 마르바르의 옛항구-캘리컷,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코친, 코모 린 곶, 칼카타, 환초군도 몰디브 등에 대해 다루고, 콜롬보를 비롯한 스리랑카의 바다 도시에 대해 살펴보았다. 5.1 인도의 바다도시 180 황금의 고아 180 몸바이(봄베이) 184 카라치 186 망갈로르 187 마라바르의 옛항구-캘리컷 189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코친 193 인도 최남단, 코모린 곶( 岬 ) 201 하천도시-칼카타(콜카타) 204 환초군도 몰디브 스리랑카의 바다도시 210 인도양에 떨어진 눈물 한방울-스리랑카 동남아시아 제 6 장 동남아시아 에서는,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동남아세계의 구도변화 및 동인 도회사에 대해 살펴보고, 바다도시로서 스마트라의 반다 아체, 자카르타, 카라치, 수라 바야를 비롯하여 말라카 왕국, 보로부두르와 수마란, 해양민족 부기스의 마을-타나베 르, 향료의 보물섬-몰루카 제도, 말fp이반도 등에 대해 다루었다

52 6.1 동남아세계의 구도 224 피테아스의 북극 탐험항해 동인도 회사 237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237 VOC 조직과 동남아에서의 활동 바다도시 244 인도네시아 244 스마트라의 반다 아체 249 인도네시아의 바다도시-자카르타 253 수라바야 256 말레이반도의 말라바왕국 257 자바의 보로부두르와 수마란 260 해양민족 부기스의 마을-타나베르 263 향료의 보물섬-몰루카제도 265 말레이반도 270 주( 註 ) 및 참고문헌 IV. 대서양과 바다도시-대서양 문명사 이 책은 바다와 도시 시리즈 제 4권으로서 암흑의 바다, 국가의 바다라 불리는 바다로서의 대서양과 대서양에서의 인간활동(항해), 그리고 바다도시와 네트워크에 대 해 다루고 있으며,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국가의 바다-대서양 제 1 장 국가의 바다-대서양 에서는 한노의 아프리카 일주항해, 피테아스의 북극 탐험항해 등 고대의 대서양에서의 탐험항해, 바이킹의 아메리카 발견과 바다도시, 바 이킹의 유산-오슬로, 코펜하겐, 북구의 베네치아-스톡홀롬, 백야의 도시-헬싱키에 대 해 다루고, 한자동맹과 이에 관련된 바다도시, 자유한자도시-함부르크, 토마스 만의 도시-뤼베크, 바이킹의 도시-비스비, 라트비아의 창문-리가, 지붕없는 중세박물관-브 르쥬, 중세의 맨해튼-엔트워프, 그리고, 발트해의 바다도시, 탈린과 그단스크에 대해 살펴보았다. 1.1 고대의 대서양 항해 9 한노의 아프리카 일주항해 바이킹의 아메리카 발견과 바다도시 17 아메리카 발견 17 바다도시 27 바이킹의 유산-오슬로 27 코펜하겐-코벤아벤 30 북구의 베네치아-스톡홀롬 32 백야의 도시-헬싱키 한자동맹과 바다도시 36 한자동맹 36 자유한자도시-함부르크 43 엘베의 치수( 治 水 )공사와 항만개발 46 토마스 만의 도시-뤼베크(Lubeck) 50 바이킹의 도시-비스비(Visbia) 52 라트비아의 창문-리가(Riga) 53 지붕없는 중세발물관-브루쥬(부뤼헤) 55 중세의 맨해턴-엔트워프(Antwerp) 57 발트해의 도시-탈린과 그단스크 58 에스토니아의 탈린 58 폴란드의 그단스크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제 2 장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에서는 먼저, 포루트갈의 해외팽창과 엔리케 왕자의 원정을 비롯하여 포르투갈이 대서양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다루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대항해시대의 바다도시-리스본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다음으로 에스파 냐에 대해서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달과 남미의 정복자들, 에스파냐의 대서양항해 에 있어서의 활동과 대서양의 지배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세비야에 대해 살펴보았 다. 2.1 포르투갈 65 포르투갈의 해외팽창 65 엔리케왕자의 원정 68 케이프 타운 72 포르투갈의 대서양

53 대항해시대의 바다도시-리스본 에스파냐 81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달 81 남미의 정복자들 93 에스파냐의 대서양 95 에스파냐의 바다도시-세비야 네덜란드와 프랑스 제 3 장 네덜란드와 프랑스 에서는 먼저, 네덜란드의 무역과 해운, 대서양에서의 네덜란드의 활동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암스테르담 과 로테르담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다음으로 네덜란드를 뒤이어 대서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의 대서양에서의 활동, 세력확장 및 죄절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 보르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3.1 네덜란드의 무역과 해운 105 네덜란드의 조선과 해운 105 네덜란드의 해운 107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109 네덜란드의 대서양 바다도시 118 세계적인 상업도시-암스테르담 118 세계적인 물류도시-로테르담 125 제 4 장 영국 에서는 거대한 해양제국을 구축한 영국의 대서양에서의 활동을 해양 제국의 건설, 대서양제국의 구축, 영국과 노예무역 등의 관점에서 다루고, 바다도시로 서 노예무역의 중심지-리버풀을 비롯하여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항만이라고 할 수 있 는 런던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다. 4.1 영국과 대서양 144 해양제국의 건설 144 대서양제국의 구축 146 영국과 노예무역 149 노예무역의 중심도시-리버풀 바다도시-런던 156 초기의 런던항 157 와핀저(Wharfinger) 169 워터맨(Waterman)과 라이트 맨(Lighterman) 170 육상포터(Porter) 172 산업혁명과 도크회사 173 초기의 도크체계 177 철도와 증기선과 도크 181 근대항만의 등장 185 템즈 강 컨서번시(템즈강 관리위원회) 186 런던 포트오소리티(Port Authority) 187 런던 도크랜드의 재개발 미국 3.3 프랑스 129 프랑스와 대서양 130 에스파냐와 프랑스 130 민간주도의 대서양 진출 131 프랑스의 대서양 진출 134 북동항로 항해와 퀘벡의 건설 134 대서양으로의 세력확장 136 프랑스의 좌절 138 와인향기의 바다도시-보르도 영국 제 5 장 미국 에서는 미국의 발전패턴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어 고찰하고, 수송로 로서의 미시시피 강과 철도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바다도시로서 보스턴을 비롯하여 현대의 대표적인 항만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 대해 상세히 다루었다. 5.1 미국의 발전 195 미국의 남부와 북부 195 보스턴과 뉴욕 203 미시시피 강 207 뉴올리언즈 207 마크 트웨인과 미시시피 214 철도시대

54 5.2 바다도시 뉴욕 215 세계의 허브-뉴욕 215 뉴욕항의 발달 216 해운의 변화 219 철도회사와 부두 221 포트 뉴아크(Newark) 224 세계의 그레이트 포트 226 항만공사(Port Authority) 226 해륙공의 복합운송 미국독립의 산실-보스턴 233 역동적인 바다도시, 보스턴 233 티 파티(Tea Party) 사건 중남 아메리카 제 6 장 중남 아메리카 에서는 콜럼브스 이전 시대에 남미를 방문한 다양한 항해 자들과 아즈텍과 잉카 등 중남미에서 꽃피운 문명의 멸망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바다 도시로서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해 다루었다. 브리질 268 남미의 미항-리우데 지네이루 270 아르헨티나의 심장-부에노스 아이레스 272 아르헨티나 272 탱고의 본고장-부에노스 아이레스 274 주( 註 ) 및 참고문헌 V. 태평양과 바다도시-태평양 문명사 이 책은 바다와 도시 시리즈 제 5 권으로서, 중세까지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바 다 중의 바다, 태평양에서의 바다 및 바다에서의 인간활동(항해), 그리고 바다도시와 네트워크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바다 중의 바다-태평양 제 1 장 바다 중의 바다-태평양에서는, 태평양과 라피타문화, 유럽인의 탐험항해 및 태평양의 탄생과정, 대권항로의 발견 등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멕시코의 아 카풀코와 마닐라에 대해 살펴보았다. 6.1 콜럼버스 이전의 항해자들 240 구렛나루를 기른 백인 240 마야의 전승 240 구앙치족과 올맥 문명 245 다양한 항해자들 피정복과 피식민의 역사 256 아즈텍과 잉카의 정복 256 아즈텍의 멸망 256 잉카 멸망 바다도시 264 우루과이의 수도-몬테비데오 264 우루과이 264 남미의 작은 파리-몬테비데오 266 브라질의 옛수도-리우데 자네이루 태평양과 라피타 문화 9 바다 중의 바다 9 라피타 문화 12 남미 아메리카로의 항해 17 항구도시 티아우와나코와 폴리네시아 17 페루와 에콰도르, 그리고 이스터 섬 19 폴리네시아-에콰도르 커다란 만 -태평양 25 태평양 탐험항해 25 태평양의 등장 31 대권항로의 발견 35 에스파냐와 중국 38 은과 교역 41 바다도시-아카폴코와 마닐라 43 멕시코의 아카폴코

55 필립핀의 마닐라 자본주의시대의 태평양 제 2 장 자본주의시대의 태평양 에서는, 제임스 쿡의 탐험항해, 태평양제도의 식민 지화와 유럽세계로의 편입과정, 미국과 태평양 등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 서 태평양의 탐험항해 및 태평양제도의 실태에 대해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시드니, 오 클랜드, 로스엔젤리스와 롱비치, 샌프란시스코, 벤쿠버, 남미의 발파라이소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2.1 태평양과 제임스 쿡 47 태평양과 네덜란드 47 영국과 프랑스 50 쿡의 태평양항해 53 포경선의 진출 자본주의시대의 태평양 66 태평양제도의 개발 66 독일의 진출과 태평양의 분활 67 사모아, 통가, 피지 70 사모아 70 통가 71 피지 72 프랑스와 독일 74 미국과 태평양 75 태평양의 불꽃-바다도시 호놀룰루 77 태평양제도의 현황 80 태평양제도의 독립 80 태평양제도 현황 바다도시 84 세계의 미항( 美 港 )-시드니 84 요트의 도시(City of Sail)-오클랜드 88 천사의 도시-로스엔젤레스, 그리고 롱비치 91 금문교의 도시-샌프란시스코 95 캐나다의 관문도시-밴쿠버 97 칠레의 진주-발파라이소 남해바닷길과 교역 제 3 남해바닷길과 교역 에서는, 남해바닷길에서의 항해 및 교역을 시대적인 흐름 과 중국, 아랍, 서구열강이라는 관점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바다도시로서 향기로운 도시-홍콩과 동양의 여왕-상해에 대해 다루었다. 3.1 아시아와 남해바닷길 102 아랍세력의 등장 113 송나라 시대 115 송-원나라 시대 119 해금정책과 정화의 대원정 123 서구세력의 등장과 중국 도시-홍콩과 상해 137 향기로운 도시-홍콩( 香 港 ) 139 동양의 여왕-상해( 上 海 ) 중국의 해운 제 4 장 중국과 해운 에서는, 중국의 배와 항해, 정화의 대항해에 대하여 다루고, 정화의 대항해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해역 및 바다도시로서 말라카해협의 동쪽해역, 말라카해협과 말라카, 인도양해역과 바다도시, 아프리카 동해안과 바다도시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4.1 중국의 배와 항해 정화의 대항해와 바다도시 171 말라카해협의 동쪽해역 174 말라카해협 및 말라카 177 인도양해역 180 삼도라 파세 180 벵골만 주변해역 180 인도양 주면해역 182 몰디브제도 183 바다도시 쿠론 184 말라바르 지방과 캘리컷

56 구자라트와 캄바야 186 호르무즈와 아덴 187 아프리카 동해안 중국의 바다도시 제 5 장 중국의 바다도시 에서는 중국에서의 항의 기원, 특히 해항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고, 남중국해의 바다도시로서 천주, 광주, 북중국해의 바다도시로서 천주, 복주, 영파, 양주 등에 대해 다루었다. 5.1 항만의 기원 191 해항( 海 港 )의 기원 197 발해북안의 항구-갈석항( 碣 石 港 ) 200 해상루드의 번영 남중국해의 바다도시 205 잊혀진 도시-천주 209 중국의 남대문-광주 212 참파왕국과 신주항 261 세계문화유산-호이안( 會 安 ) 267 운하도시-호치민과 망콕 271 동양의 파리-사이공=호치민 271 천사의 도시-방콕 273 세계최고의 중계무역도시-싱가포르 동북아시아 제 7 장 동북아시아 에서는 나당일 바닷길로 이어지는 동북아 해양네트워크를 중 국과 신라, 신라와 일본으로 구분하여 다루고, 대표적인 바다도시로서 신라시대의 청 해진과 울산, 일본의 하카다를 비롯하여 현대의 대표적인 항만인 부산과 요코하마에 대해 살펴보았다. 7.1 동북아시아의 해양네트워크 285 중국과 동북아시아 285 해양네트워크와 신라 288 신라와 아랍상인 북중국해의 바다도시 218 붉은 꽃이 만발한 마다도시-천주 223 송나라시애 고대선 진열관 227 천주 외항-숭무진( 崇 武 鎭 ) 229 복건성의 성도-복주 230 견당사의 항구-영파 232 운하의 도시-양주 인도차이나 제 6 장 인도차이나 에서는, 인도차이나의 여러나라가 역사적으로 남해바닷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다루고, 바다도시로서 옥에오, 참파왕극의 신주항, 호이안, 사 이공, 방콕, 싱가포르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7.2 나당일 해로 298 북방항로 298 횡단직항로 301 한일항로 바다도시 308 나당일 중계무역항-청해진( 淸 海 鎭 ) 308 신라 수도, 경주의 외항-울산 311 동북아의 중추항만도시-부산 314 일본의 주요거점-하카다( 博 多 ) 316 미래지향적인 바다도시-요코하마 318 주( 註 ) 및 참고문헌 인도차이나와 남해바닷길 바다도시 257 고대유적의 바다도시-오케오(옥애오, Oc-eo) 257 VI. 맺으면서 이상에서 5권의 저서를 해양문화의 관점(바다 그리고 바다)과 해양문명사의 관점(지

57 중해와 바다도시, 인도양과 바다도시, 대서양과 바다도시, 태평양과 바다도시)에서 간 략하게 소개하였으나, 아래에서는 저서에서 다룬 내용을 포함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해두기로 한다. 1. 바다 그리고 바다-해양문화의 관점 (1) 바다의 탄생신화 및 대홍수에 대한 사실은 전승에 의해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 및 대륙의 이동 등에 의해 육지에 대한 대양의 상대 적인 위치 및 형태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전혀 달랐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바다 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리할 수 있다. - 신전항과 상항이 공존하는 시대(고대/원형항만) - 왕권이 지배하는 상항시대(로마시대/원형과 육각형부두) - 상인이 지배하는 운하항시대(베네치아,암스테르담) - 공기업이 관리하는 근대항만시대(런던/복합항만) - 공기업이 관리하는 현대항만시대(뉴욕/Triport) 그리고, 이상의 발전과정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해양문명은 오늘 날 대서양문 명이 지중해/인도양/태평양을 지배하는 형태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2) 바다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바다가 지닌 거의 절대에 가까운 위상 때문에 장님 이 코끼리 만지듯 상대적인 접근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해양소설에서 다루어지는 바다는 대부분 공간으로서의 바다, 상징지거으로는 선과 악으로 대표되는 바다가 그 주제였다. (3) 오늘 날 인류는 우주공간을 탐색하고 있으나 그것은 바다에 대한 탐험이 모두 완료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바다에 대한 탐색이 어렵기 때문에 우주로 나아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이다. 바다에는 버뮤다 트라이 앵글처럼 아직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지닌 미지의 공간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3. 해양문명을 지배하는 요인 - 지정학적인 입지(Site) - 인간의 욕망(Desire) - 제국주의(Imperialism) - 근대화(Modernism) - 자본주의(Capitalism) - 신앙/종교(Religion) (4) 고대인이 현대인 보다 탐험항해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현대인의 생각은 틀 린 것이다. 고대인들은 선박자체의 부력을 이용한 반잠수선과 같은 갈대선과 조류를 이용하여 어떤 대양이라도 항해할 수 있었다. 2. 지중해,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과 바다도시-해양문명사의 관점 (1) 대양은 그 크기와 대륙과의 상대적인 위상 및 문화적인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 이 그 특성을 정리할 수 있다. 즉 -지중해-도시의 바다 -인도양-도시와 국가의 바다 -대서양-국가의 바다 -태평양-바다 중의 바다 따라서, 바다도시의 규모와 배후지 등은 이러한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2) 그 시대 문명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도시의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

58 港 都 부산과 海 洋 文 學 제13회 콜로키움 _ (화) 황을문(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 해양문학 에피소드 - 부산의 해양문학과 문인들 - 해양문학의 난제 難 題 와 과제 課 題 해양문학 에피소드 10여 년 전 한 여류소설가가 나에게 해양문학이 뭔가요?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 어왔다. 바다이야기를 인간이 하는 것이지요. 추상적으로 답해놓고 국내 어느 지역 보다 해양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자평하던 터에 부산문인의 질문이란 점에 자못 당혹 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양문학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긴 했다. 문인이 모른다면 일반인들은 더욱 그러리란 생각에 해양문학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내려야할 필요 성이 -바다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삶과 정서, 사상을 체험과 상 상을 통해 문자로 묘사하는 정신적 노력의 산물- 로 도출, 2003년 9월에 처녀출간 된 해양문학 전문지 <해양과 문학> 창간호에 해양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하 題 下 로 게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 후 몇몇 학자들과 해양문인들의 노력으로 이젠 적 어도 부산문인들 만큼은 해양문학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던 2005년 2 월에 지금의 C&그룹 전신인 쎄븐 마운틴 그룹 후원으로 한강 유람선 올림픽호 선상 에서 해양문학 진흥의 밤 을 개최했다. 보름 달빛이 교교한 한강 위로 강은교 시인이 자작시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을 낭랑히 펼쳤고, 영화 서편제 로 잘 알려 진 오정해의 판소리와 해양문학을 의식 해서 특별히 골랐다는 레퍼토리 뱃노래 가 도도히 흐르는 한강 물 위에서 출렁거렸 다. 그 외에도 일일이 거명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산, 경남은 물론 타 지역 문인들의 자작해양시 낭송 등으로 대성황을 이룬 것은 좋았는데 왜 해양문학 행사를 바다가 아 닌 강에서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이들도 더러 있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과 강 그리고 바다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부재가 문제였다. 모든 강물은 바다 로 흘러가지요. 간단히 답했다. 한강에서 행사를 하자는 스폰서의 요구도 있었으나 아무튼 서울에 해양문학을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서울에는 해양문학 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부산에 오니 해양문학이야기를 들 을 수 있구나. 서울문인들의 자조 自 照 를 들은 적 있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해양문 학 창작방법에서 바다 바라보기가 첫 단계인데 바라 볼 바다가 없으니 관심이 없어 안하는 거고 두 번째 단계인 바다를 알지 못하니 못하는 걸로 단정 지을 수밖에 없 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한강은 그 중심을 가로지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떤 면도 부산이 서울을 능가할 수없지만 해양문학만큼 은 서울이 부산을 따라 잡을 수없다는 점을 과시 하고픈 속내가 어떤 이유보다 앞서 있었다. 그 속내가 취재차 부산에서부터 동행했던 최학림 기자에게 간파되었던지 행 사 치른 다음날 부산일보에 부산해양문학 한강에 진출하다. 란 제호로 행사 내용이 대서특필 되었다. 또 다른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하나. 한국해양대학교에서는 해양문학의 창달을 위 해 중앙의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해양문학 부문도 추가하자는 교섭을 했다. 물론 시 상금은 학교부담으로 제안했지만 해양문학의 중앙 진출 시도는 바다와 해양문학에 대 한 인식부재로 무산되었다. 다행히 부산일보가 제의를 받아드려 금년에 2회째 신춘문 예 해양중편소설부문 수상자를 배출, 해양수도 海 洋 首 都 로 자처하는 부산의 해양문학 메 카Mecca화에 기여하게 된 것은 특기할 일이었으나, 사정에 의해 금년부터 이 제도가 파기되어 기성, 예비문인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부산의 해양문학과 문인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천만원대 시상금을 내건 해양문학상은 해양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해양문학상(금년 4회째), 부산시가 주최하는 한국해양문학상이 있다. 상의 권위는 시상기구의 역사와 전통, 수상작품의 수준이 주요관건이지만 상금액수도 무시 할 수없다. -대체로 일반문인이나 뱃사람들의 형편이 풍요롭지 못한 점을 감안하고 해양문학의 풍요를 기한다면 앞으로 시상금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전업 작가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금년에 14회째가 되는 부산시 주최, 부산문인협회가 주관하는 한국해 양문학상 이 가장 큰 상인 동시에 한국해양문학 창달에 선도자 역할을 해 온 공로로 볼 때, 과연 해양문학의 메카로 자처할 만도 하다. 그러나 국내 제일의 항구도시라는 지정학적 요건을 떠나 이러한 칭송의 이면에는 해양인, 즉 뱃사람들의 역할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해양문인들 중 상당수가 전, 현직 뱃님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해양문학의 대표적인 두 장르 해양시와 소설의 선구자 역할을 한 김성식과 천금성은 둘 다 선장출신인 동시에 부산이 배출한 작가들이다. 몇 년 전에 작고한 김 성식은 서울태생이지만 생활과 문학의 근거지는 부산이었다. 게다가 부산의 자랑스러 운 문인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의 체험에 의한 해양시는 단연 독보적이다. 문학

59 에서 체험은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특히 해양문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해 양문학의 원조로 일컬어지고 우리에게 율리시즈 로 더 잘 알려진 <오디세이아>의 작가는 대서사시인 호메로스 로 추정만 되기 때문에 그의 해양체험은 거론할 바가 못 된다. <모비 딕>의 H. 멜빌 은 포경선 1년, 해군복무 등 통산 4년의 승선경력이 있고 E. 헤밍웨이 는 쿠바 인근해역에서 청새치 낚시 다닌 경험이 있으므로 아마도 해양소설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인과 바다>는 그 체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추정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영국이 자랑하는 J. 콘래드 는 하급 선원에 서부터 선장까지 근 20여 년간의 승선체험을 반영한 여러 편의 소설로 인해 세계문학 사에서 해양소설가 로 지칭되고 있다. 이들에 비해 천금성은 10여년 어선선장 체험을 통해 20편이 넘는 해양소설을 발표 하였고, 김성식 처럼 33년간의 승선경력을 토대로 한 시인은 세계문학사에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가 모두 해양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우리 해양 문학사의 아이러니다. 응모 할 군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응모작뿐 만 아니라 우수 해양문학 작품을 선정해서 시상하는 제도도 절실히 요구된다. 당장이 아니라면, 부산시에서 매년 여름에 시행하는 한국해양문학제 를 통해서라도 우수 해 양문인을 예우하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이들의 뒤를 이어 제2회 한국해양문학상을 수상한 어선선장 출신 장세진은 전업작 가로 활동하고 있고, 8회 해양소설 부문 수상자 김종찬은 원양선 기관장으로 현재에 도 바다에 나가 있으며, H상선 1등기관사 천태봉은 바다에서 수필을 보내오고 있다. 또한 김성식의 후예로 기대되는 11회 한국해양문학 대상을 수상한 이 윤길 선장은 지 금쯤 동지나해에서 500톤급 어선을 몰고 꽁치 떼를 쫒으면서도 시상 詩 想 을 떠올리고 있을 그는 제13회 한국해양문학 소설부문 우수상을 수상, 2관왕이 되었다. 또한, 신익 교는 격일로 바다에 나가 해양시조에 나이를 잊는다. 바다로 나가는 이들의 1차 목표 는 자신들의 생업 때문이지만, 부차적으로는 해양문학을 위한 체험 쌓기란 점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바다의 역군 役 軍 들이 해양문학의 역군도 되지만, 바다에서의 체험이 뱃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란 점을 부각시킨 작가들도 있다. 제1회 부산일보 신춘문 예 해양중편 소설부문 수상자인 김부상은 선박회사 근무시절 이미 상당한 해양체험을 쌓은 데도 불구하고 남태평양 피지 섬까지 날아가 참치 연승선에서 또 다른 바다와 체험을 찾고 왔다. 더 특이한 사례로 유덕희, 유연희 두 여류소설가는 체험을 통한 해 양소설의 소재 발굴을 위해 26일간 한국해양대학교 원양항해 실습선 한나라호에 편승 한 편승기를 부산일보에서 간행하는 <더 씨The Sea > 지에 발표한 후 현재 해양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이 용감한 두 자매의 의지와 행적은 바다가 더 이상 남성들만 의 무대가 아님을 주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작가들의 대 다수는 부산에 거주하거나 연고를 두고 있다. 이들 외에도 전국의 알려지지 않은 작 가나 작가 지망생들이 해양문학 창작에 진력 盡 力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 까닭은 단순 히 수상이라는 개인적 욕망과 명예뿐만이 아니라 21세기 들어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있다. 는 인류에 대한 바다의 존재의미가 지구촌 곳곳에서 팽배한 것도 결코 무 관하지 않을 것이다. 해양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학이라는 양식을 빌어 바다에 대 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어디보다 먼저 한국해양문학상 을 제 정해 바다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부산시의 견인차 역할과 이를 제의 한 당시 부산문협 김상훈회장 은 인류의 미래를 선각 先 覺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해양문학의 난제 難 題 와 과제 課 題 앞에서 내린 해양문학의 정의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장르든 간에 한 작품이 해양문학의 범주에 속하는지의 여부가 상당한 논란의 대 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해양문학 응모작 심사에서 가장 고심하고 심 사위원들 간의 이견을 좁히기 힘든 것도 해양성에 대한 부분이다. 해양성 결여로 판 정된 경우에는 작가의 자존심을 배려해 해양성이 부족하다. 가 아니고 간이 맞지 않다. 또는 소금기가 부족하다. 는 말로 대신한다. 해양문학의 범주에 대한 내노라 할 교본 敎 本 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도 광의의 문학과 협의의 문학이 있듯이 현재 해양문학의 범주를 확대하자는 측도 있고 축소하자는 측도 있다. 해양문학의 저변을 확대하자면 극단적인 예로 바다 란 용어만 들어가도 해양문학으로 간주하면 되겠지 만, 해양문학의 위상 정립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섰다. 나름대로 해 양문학 창작의 방법으로 바다를 보고, 알고, 해보고, 정붙이고, 깨우쳐라( 見 知 行 情 覺 ) 는 5단계로 설정해 <해양과 문학> 지 제2호와 해양문학 강좌의 교재로 개발한 <해양 문학의 길>에 게재해 두었다. 창작을 하거나 평가를 할 적에 어느 단계에 속하는 작 품인지를 규정할 수 있다면, 현재 해양문학의 가장 큰 난제로 대두되는 해양문학에 속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난제 해소와 해양문학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지침 이 될 수 있을 것이 란 기대에서였다. - 이 5단계를 잣대삼아 보면 주변에 있는 국내 외 해양문학작품들이 대개 3번째 해보기 단계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아 좀 더 수준 높은 4~5 단계에 이르는 작품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있다. - 해양문학의 또 다른 난제는 예산과 해양문인의 저변확대이다. 몇 년 전, 한국해양대 학교에서는 1억원 고료로 부산일보에 해양장편소설을 연재하려는 기획은 했으나, 학 교가 담당할 일이 아니란 내부 반발로 무산된 적 있다. 예산 탓이다. 대체로 바다 일에 종사하는 해양인들의 글에서는 문학성이 결여되고 일반문인들의 원고에서는 해양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예 창작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 다시피 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 들이 엮어내는 삶의 수기도 저변확대를 위해 해양문예응모 부문에 포함하는 것을 재고 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문학의 정체성을 고수해야 한다면 해양문학제의 백일장에 학생부 수기나 수필 부문에 해양수기를 추가하는 것도 한 방편은 될 수 있다. - 해양문화재단 주최 해양문학상에 4회째인 금년부터 해양논픽션,수필 부문을 추가 총 6개 부문을 공모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부산소재 한국해양문학가협회에서 반년 간

60 으로 13호까지 발간한 해양문학 전문지 海 洋 과 文 學 과 해양문학 창달이란맥락을 같이하는 문학바다 창간호를 2009년 12월에 발간, 서울에서도 해양문학에 대한 관 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에 걸맞게 대 도시 다운 모든 면모는 다 갖추고 있지만 문화적인 측면이 뒤쳐진다는 평도 듣는 것이 사실이다. 이 런 점을 감안할 때, 다른 도시에 앞서 해양문화를 창달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해양문학은 해양문화의 꽃이다. 금년 8월에도 부산시 주최로 거행될 14회째 한국해양문학제가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더욱 더 의미 있는 행사로 발전하여 부산이 명실상부한 한국해양문학의 메카 로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제13회 콜로키움)

61 상해사연구의 현황과 전망 제14회 콜로키움 _ (금) 배경한 (신라대학 사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2. 상해사연구의 유행과 주요 연구기관, 연구자들 3. 상해사연구의 전망과 부산-상해교류사의 가능성 1. 들어가는 말 1) 매력의 도시 상해 2) 중국근현대사 연구에서 상해사가 차지하는 비중 3) 도시사 연구로서의 상해사 연구 4) 근대 와 근대성 의 현장 5) 동서문화 융합의 실험실 6) 조계( 租 界 )의 해방공간(혁명, 독립운동) 7) 경제와 문화( 海 派 文 化 )의 중심 조우우( 周 武 ) : 근현대사상사, 상해사, 도시사 랴오따에이( 廖 大 偉 ) : 상해사, 정치사상사 2 상해사범대학 중국근대사회연구중심( 꾸오쉬인( 郭 緖 印 ) : 방회사( 幇 會 史 ), 흑사회사( 黑 社 會 史 ), 동향단체( 會 館, 公 所 ) 쑤즈량( 蘇 智 良 ) : 방회사, 여성사, 위안부 샤오용( 邵 雍 ) : 방회사( 幇 會 史 ), 민간신앙, 문화사 조우위민( 周 育 民 ) : 방회사, 민간신앙, 경찰 3 푸단( 復 旦 )대학, 화둥( 華 東 )사범대학 푸단대학 역사학계( 쟝이화( 姜 義 華 ) : 사상사, 정치사 우징핑( 吳 景 平 ) : 상해금융사, 상회사( 商 會 史 ), 쑹즈원( 宋 子 文 ) 쟝칭( 章 淸 ) : 문화사, 사상사 쑨커즈( 孫 科 志 ) : 상해한인사회, 한국독립운동사 화둥사대 역사학계( 천쉬루( 陳 旭 麓 ) : 근현대 정치사, 사상사 마오하이지엔( 毛 海 建 ) : 변법운동, 강유위, 양계초 양퀘이숭( 楊 奎 松 ) : 국공관계사, 코민테른사, 1950년대사 쉬지린( 許 紀 霖 ) : 사상사, 문화사(오사운동) 4 기타학술단체( 中 山 學 社, 上 海 市 檔 案 館 등) 마창린( 馬 長 林 ) : 상해사, 조계( 租 界 )사 씽지엔롱( 邢 建 榕 ) : 정치사, 사상사 마커리에( 馬 克 烈 ) : 쑨원( 孫 文 ), 쑹칭링( 宋 慶 齡 ) 왕차오광( 汪 朝 光 ) : 중국사과원근대사연구소, 상해영화사 리페이떠( 李 培 德 ) : 홍콩대학, 상해경제사, 금융사 2. 상해사연구의 유행과 주요 연구기관, 연구자들 1) 상해 지역의 연구기관과 연구자들 1 상해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 장중리( 張 仲 禮 ) : 19세기 신사층( 紳 士 層 ), 상해경제사, 동남연해도시사 탕즈쥔( 湯 志 鈞 ) : 근대경학사, 무술변법, 량치차오( 梁 啓 超 ) 슝위에즈( 熊 月 之 ) : 근현대정치사상사, 上 海 通 史, 中 國 近 代 民 主 思 想 史 졍주안( 鄭 祖 安 ) : 상해사, 근현대경제사 2) 일본상해사연구회 ( 후루마야( 古 廐 忠 夫 ) : 중국근현대사, 노동운동사, 상해사 다카쯔나( 高 綱 博 文 ) : 인물사, 일본교민, 전시상해( 戰 時 上 海 ) 코하마( 小 浜 正 子 ) : 社 團 (자선단체, 救 火 會 ), 공공성(공공영역) 쿠보( 久 保 亨 ) : 경제사, 관세정책 카네코( 金 子 肇 ) : 상회( 商 會 ), 민족자본 기쿠치( 菊 池 敏 夫 ) : 상해직업사회

62 이시카와( 石 川 照 子 ) : 여성사, 상해YWCA 손안석( 孫 安 石 ) : 재중일본조계, 청국일본유학생, 미디어사(신문, 방송) 이이지마( 飯 島 涉 ) : 동아시아 전염병(콜레라, 페스트)사 3) 구미지역의 상해사 연구 Marie-claire-Bergere : 민족자본( 江 浙 資 本 家 ), 상해사 Frederic Wakeman, Jr. : 상해경찰사, 특무기관, 전시( 戰 時 )상해 Yeh Wenshin( 葉 文 心 ) : 상해대학사회, 시민생활(생활주간), 문화공간, 공산주의운동, 현대화와 현대성 Bryna Goodman : 동향회, 공공영역, 언론공간(신문, 미디어) Elizabeth J. Perry : 노동운동 Emily Honig : 동향회, 이민, 여성사 5) 부산-상해교류사의 전망 1 上 海 和 橫 濱 ( 華 東 師 大 出 版 社, 1997) : 두 도시의 비교연구, 상해일본조계, 요 코하마의 화교사회, 건축, 교역, 전염병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연구 2 서울, 베이징, 상하이, 도쿄의 대도시로의 성장과정 비교연구 1, 2 (서울시립 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6) : 도시계획과 도시공간 구조의 변화과정 비교연구 3 大 阪 市 立 大 學 도시문화연구센타 상해사연구그룹 4 京 都 大 學 經 濟 學 硏 究 科 上 海 센타 4) 한국 학계의 상해사 연구 김태승 : 상해지역 노동운동사 박혁순 : 양무운동(상해의 공업화) 이승휘 : 국민혁명시기 상해정치사, 상해총상회( 上 海 總 商 會 ) 하세봉 : 상해기업사( 榮 家 企 業 ), 박람회( 博 覽 會 ) 배경한 : 정치사, 상해지역 한인사회, 한중관계사 이병인 : 상업사, 상회사( 商 會 史 ) 전인갑 : 동향회( 同 鄕 會 )와 노동운동, 생활주간(Modernity) 김승욱 : 상해금융(은행)사, 도시사 정문상 : 학생운동사, 대학문화(청년문화) 김지환 : 경제사, 공업사, 금융사 임대근, 조병환 : 도시문화, 영화 3. 상해사연구의 전망과 부산-상해교류사의 가능성 1) 전통우위(중국 본위)의 연구경향 2) 시각의 확대(상해와 아시아, 상해와 세계) 3) 문화의 포용성, 다양성(이민사회, 외국인사회) 4) 상해의 한인사회(재중 한인사회)->한국의 화교(부산의 화교사회) (제14회 콜로키움)

63 질 의 문 본 연구소의 아젠다인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연구는 특수한 생활공간 속에 서 이질적이 것이 동적으로 교섭 혼교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장으로서 해항도시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본 아젠다의 접근방식은 해항도시의 관계성에 대하여, 共 鳴 空 間 으로서의 지역이라는 개념을 중시하고 있다. 이 개념은 하나 의 해항도시 내부의 교섭 혼교뿐만 아니라 해항도시간의 관계성, 즉 해항도시간 네트워크를 통한 교섭 혼교를 중시하고 있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경향과는 차이 가 있고, 이런 점에서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연구의 중요성은 多 言 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본 연구소의 아젠다 수행에서 上 海 는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고, 오늘 배경한 선생님이 상해사연구의 전반적인 경향과 부산-상해교류 사의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하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선생님이 제시한 목차에서 상해에 대한 특징 가운데 근대와 근대성의 현장 동서문화 융합의 실험실 이라는 표현 등이 주목된다. 이를 상해지역 한인 사회와 관련하여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둘째, 우리 아젠다 연구에서 중심에 두고 있는 해항도시간 네트워크를 통한 교섭 혼교 는 해항도시와 권역의 구조적 특성을 연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중 시하고 있다. 특히 이 방법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국가간의 관계를 중시 하는 기존의 시각에서 탈피하고 해항도시 상호간의 교섭을 일차적으로 중시하 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해항도시간의 교류에서 국가의 역할 이다. 본 연구소의 1단계 2년차 과제 해항도시와 국가의 길항관계 도 이점을 염두에 두고 설정된 것이다. 중국 근대 해항도시를 대표하는 상해와 관련하여 선생님의 고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셋째, 상해 전문가이신 선생님께서 본 아젠다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연구의 심화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을 제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반도-동남아해양교류-해양대콜로키움[1].hwp

한반도-동남아해양교류-해양대콜로키움[1].hwp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 교류 조흥국(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Ⅰ. 이끄는 말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동 아시아 세계에서 일어난 교류의 역사로, 그 교류는 바다로부터 생각하고, 바다의 아시아 를 논의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는 주로 바다를 통 해 이루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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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F0B0E82D313132C8A328C0DBBEF7BFEB292E687770> 2012년 7월 17일 발행 통권 제112호 112 발행인:李圭衡/편집인:金尙勳/주간:金泰詢/발행처:社)退溪學釜山硏究院 (우614-743) 釜山市釜山鎭區田浦洞608-1 819-8587/F.817-4013 出處가 분명한 공직사회 인간이 가지는 인성은 그 특성이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판단 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과 측면에서 논하느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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