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_콜로키움_발표문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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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콜로키움 해항도시 네트워크와 문화교섭 하네다 마사시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소장) 아시아 해항도시(port cities) 비교연구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조흥국(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교류 서 승(리츠메이칸대학 Korea연구센터 소장)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이희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아랍-중국-신라의 사회경제적 방정식 남종국(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중세 말 베네치아의 해상 네트워크 : private shipping을 중심으로 이철영(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바다 그리고 바다도시 황을문(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港 都 부산과 海 洋 文 學 배경한 (신라대학교 사학과 교수) 상해사 연구의 현황과 상해 부산 교류사 연구의 전망 주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후원 한국연구재단 장소 종합관 세미나실 C214호

2 차 례 제8회 콜로키움 _ (금) 아시아 해항도시 연구 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제8회 아시아 해항도시 비교연구에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로 1 하네다 마사시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소장) 제9회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교류 9 제10회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37 들어가며 1. 해항도시 과연의 목적과 방법 2. 해항도시 비교연구 가능성 3. 새로운 세계사 제11회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59 들어가며 제12회 중세 말 베네치아의 해상 네트워크 87 제13회 바다 그리고 바다도시 103 항도 부산과 해양문학 103 제14회 상해사 연구의 현황과 상해 부산 교류사 연구의 전망 115 오늘 이런 자리에 오게 된 것은 2007년 제가 일본어로 출판한 [동인도회사와 아시 아의 바다]라는 책을 이수열씨가 우연히 보고 그 내용을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이수 열씨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05년 봄부터 2009년 봄까지 4년간 실시한 공동연구 [17-18세기 아시아지역 해항도시에서의 이문화교류 제상에 대한 비교연구], 통칭하여 해항도시 과연 科 硏 (과연이란 일본학술진흥회의 과 학연구비의 약칭입니다. 연구비총액 3600만엔)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작년에 종료했 고, 이어서 더욱 더 대규모의 공동작업인 [유라시아 근대와 새로운 세계사서술](통칭 유라시아 과연, 연구비총액 9500만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5년 계획으로 2014 년 봄까지 계속됩니다. 오늘은 강연을 통해 작년에 끝난 해항도시 과연 의 내용과 주된 성과를 소개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유라시아 과연 의 목적과 방법을 설명한 뒤, 앞으로의 연구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해항도시 과연의 목적과 방법 (발단) - 페르시아의 반다르 압바스에 있어서의 이문화교류에 대한 관심.

3 - 네덜란드어 습득의 필요성. 동경대학 사료편찬소 동료가 주최하는 네덜란드어 문헌 독서회 참가. - 나가사키 長 崎 와 반다르 압바스의 네덜란드동인도회사 관계문서를 비교하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착목. - 타 동인도회사 관계자료도 함께 사용한 아시아 각지 해항도시에서의 이문화교류의 제상에 대한 종합적 비교 가능성. (목적) -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동인도회사가 상관 商 館 을 설치한 아시아 지역 6개의 해항도시에 대하여, 6개의 포인트를 설정해 이문화교류의 제상을 구체적으로 비교 하고 각 해항도시와 그 배경에 있는 사회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시도한다. (방법) - 가능한 한 동인도회사 관계자료와 현지어 사료 모두를 사용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유럽 언어 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은 유럽과 아시아간의 이문화교류 연구라 고 잘못 이해되기 쉬우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각 해항도시에서의 복합 적, 중층적인 이문화교류의 제상을 밝히고 그것을 다른 해항도시의 예와 동일한 각 도에서 비교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 동인도회사 문서는 각 해항도시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형식. 따라서 동일한 각도에 서 비교하는데 적당하다. - 일본에서 연구가 진전되어 많은 업적이 발표되고 있는 나가사키의 예를 비교의 척 도 로 이용한다.(->일본어로 된 연구의 국제화) [비교의 6개 포인트] 1 동인도회사 상관 및 아시아 여러 지역의 상인커뮤니티의 위치, 부동산 소유관계, 건물의 특징 2 현지/외래자 外 來 者 의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3 상거래 및 하물 운반 방법 4 분쟁 시의 법적 처리 방법(현지 정치권력 VS 외래자) 5 남녀관계의 형태 및 혼혈아의 사회적 지위 6 의복, 음식, 기술, 사상 등의 수용과 거절 [연구대상이 되는 6개 해항도시] 1 나가사키(일본) 2 광동 廣 東 (중국) 3 바타휘아Batavia(자카르타) 4 마드라스Madras(남동 인도) 5 수라트Surat(북서 인도) 6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이란) (연구 과정) - 연구자는 25명 단위로 팀을 만들고, 연 2-3회 전체집회. - 테마 예 : 각국 동인도회사의 비교, 각 해항도시의 6개 포인트를 검토, 나가사키 연 구의 도달점과 앞으로의 과제. 2번의 국제연구집회. 현지조사. (연구 성과) - 연구 분담자에 의한 많은 단독저서(하네다 마사시[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고 단샤 講 談 社, 2007년)는 그 중 하나)와 논문. - 영문 논문집 : Asian Port Cities Local and Foreign Cultural Exchange, NUS Press & Kyoto University Press, 비교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각지의 해항도시와 그 배후에 있는 사회적 특징이 선 명히 드러나게 된다. - 국경을 넘어 보다 넓은 지역의 해항도시의 공통적 특징을 볼 수 있다. 한 예를 들면 : 나가사키와 광주에서는 현지 정권이 해외무역을 관리하려고 들어 해외에서 온 사람들(광주의 경우는 특히 서양인)의 동향을 감시. 해외 사람들을 현 지인들과 구별한다. 통역은 현지 정권이 인정한 사람이 맡는다. 한편 인도양의 해항 도시(반다르 압바스나 수라트 등)의 정권은 기본적으로 해외무역을 관리할 의지가 없다. 통역은 동인도회사 측이 준비.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해항도시에서 자유롭게 거주. 동방유라시아 해역에서는 안 과 밖 의 구별이 확연하다. 이에 비해 남방유라 시아 해역에서는 안 과 밖 의 구별이 거의 없다. 2. 해항도시 비교연구의 가능성 1 일국사 一 國 史 혹은 이국간 二 國 間 관계사의 틀 속에서 해석되고 이해되어 온 역사서술 에 대한 재평가 2 어떤 나라나 지역의 역사적 특징을 새롭게 발견 : 예를 들어 이미 언급한 바와 같 이 동방유라시아 정권은 해외무역과 인적 왕래를 관리. 이 점은 그 지역 정권의 커다란 특징. 남방유라시아와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이해가 가능. 또 동방유라시아 사회의 안 과 밖 구별의 강도. 3 새로운 세계사서술을 구상할 때 활용 가능

4 3. 새로운 세계사 우리는 글로벌화와 함께 서로 연관성을 강화하고 있는 현대세계의 실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세계사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사는 세계는 하나이며 인류는 공통의 운명 하에 놓여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이라 크문제를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파악하는, 그러한 연대감을 자아내는 세계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덴티티(귀속의식)는 역사 속에서 발 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세계사를 고 안해 내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세계사는 유럽(서양)과 비유럽을 확연히 구별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던 유럽인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구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구별은 무의미하며 유해하기조차 하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세계사를 그리려고 한다면 유럽 비유럽의 구별을 극복해야만 한다. 비교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일국사(일본사, 중국사 등)나 지역사(유럽사, 이 슬람세계사 등)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나는 일국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새로운 세계사가 더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이라 고 일괄적으로 이해되는 지역의 역사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6세기 유럽 을 대표하고 있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19세기 어떤 상황에 있었는가? 유럽 사란 과거의 좋은 점만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16-17세기 일본열도의 사람 들은 포르투갈인, 스페인인과 영국인, 네덜란드인을 분명히 구분하여, 전자를 남만인 南 蠻 人 후자를 홍모인 紅 毛 人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시 유럽인 이라는 틀은 없었던 것이 다. 처음부터 유럽 과 아시아 라는 이항대립을 전제하지 않고, 유라시아 를 하나의 단 위로 하는 그런 역사를 서술할 수는 없는가? 서로 다른 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강조하 는 역사서술. 2009년도부터 5년 계획으로 시작한 유라시아 과연 에는 약50명의 역사연구자가 참 가하고 있다. 그 중 20명 정도는 PD나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 일본사에서 유럽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의 폭 넓은 연구자 그룹. 그것은 세분화하여 거의 아무도 읽 지 않는 논문을 계속 생산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학계에 도전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국내, 국외에서 다채로운 테마의 연구집회를 기획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말부터 12월초에 걸쳐 제2회 광주나가사키비교국제회의를 개 최. 금년 1월 9-11일에는 해적, 설탕 砂 糖, 차, 주석 錫, 번역 이라는 토픽을 세계 사적 시점에서 고찰하는 연구집회를 열었다. 현재 한국 연구자의 참가는 없다. 이 기 회에 꼭 공동연구에 관해 상담할 수 있으면 한다. (제8회 콜로키움)

5 제9회 콜로키움 (금)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 교류 조흥국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Ⅰ. 이끄는 말 Ⅱ. 교류의 시작 Ⅲ. 해로를 통한 한구고가 동남아시아 간 교류 Ⅳ.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 왕국 부남 Ⅴ. 6세기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에 대한 추측 Ⅵ. 중국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 Ⅶ. 7세기 백제와 곤륜의 접촉 Ⅷ. 7-8세기 한국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항해 Ⅸ. 맺는 말 Ⅰ. 이끄는 말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의미 의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어난 교류의 역사로, 그 교류는 바다로부터 생각하고, 바다 의 아시아 를 논의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는 주로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이미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다 를 통한 교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항해로, 이것은 항해자가 선박을 적 극적인 의지로 이동시킴으로써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해상 활동이다. 다른 하나 는 표류로, 이것은 선박이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류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2) 항해를 통한 교류의 항로는 주로 연안 항로였다. 그러나 횡단 항로도 일찍부터 가능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한반도 남부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석 묘( 支 石 墓 )를 들 수 있다. 지석묘는 동서양의 해안을 따라서 분포하는 대표적인 해양 문화 교류의 증거 이다. 3)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또 다른 가능성은 표류이다. 1) 하마시타 타케시( 濱 下 武 志 ), 바다에서 본 아시아 - 해국 중국의 등장과 새로운 주변 내셔널리즘, 정문길ㆍ최원 식ㆍ백영서ㆍ전형준 편,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4, 292면. 2) 안경숙, 바다를 통해 교류된 한국 고대 문물, 김영원 외, 항해와 표류의 역사, 서울: 솔, 2003: 260면. 3) 김병근, 수중고고학에 의한 동아시아 무역관계 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2004, 88~90면

6 예컨대 표류한 자가 계절풍과 해류( 海 流 )를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혹은 거꾸 로 한반도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필리핀 해역에서 발원하여 대만과 일본의 쓰시마( 對 馬 ) 섬을 거쳐 한반도의 북동 방향으로 흐르는 쿠 로시오( 黑 潮 ) 난류를 이용하면 동남아시아에서 한반도에 용이하게 도달할 수 있다. 4)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해서는 그동안 상상과 추측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 가 나왔다. 선사 시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간의 교류에 대한 논의는 무엇보다도 쿠 로시오 난류와 이를 이용한 고대인들의 해양 활동을 그 추측의 근거에 두고 있다. 고 고인류학자인 김병모는 그러한 교류의 증거로 입석( 立 石 ), 석관묘( 石 棺 墓 ), 지석묘 등 거석 기념물과 이러한 거석문화와 관련된 농경문화 및 농경사회의 신앙 등을 제시한 다. 종교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입석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에 도 널리 퍼져 있는데, 특히 머리 부분이 모자를 씌워놓은 듯한 인도네시아의 어느 입 석은 전라남도 순천에서도 발견된 것과 비슷한 형상이다. 석관묘는 시신의 매장을 위 한 구조물로 그 분포가 동북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만과 동남아시아와 인 도 등에서도 확인된다. 사자( 死 者 )의 영혼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지석묘는 우 리나라에서는 전라도 지방에 가장 많이 있지만, 만주, 중국,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등 아시아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 대개 하천 유역에서 발견되며 물 을 이용한 농경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지석묘는 그 분포가 암시 하는 것처럼 해양 활동을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5) 김병모는 또한 신라와 고구려의 여러 왕들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소위 난생설화( 卵 生 說 話 )가 인도의 아쌈(Assam), 미얀마,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Kalimantan) 섬과 술라웨시(Sulawesi) 섬과 자와(Java) 섬 그리고 중국 남부의 하이 난( 海 南 ) 섬과 대만 등에도 있다는 점을 중시한다. 이 지역들은 흥미롭게도 모두 오늘 날 동남아시아의 민족들을 형성하고 있는 소위 남부 몽골로이드(Southern Mongoloid) 민족 그룹에 속한다. 6) 그밖에도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지석묘에서 반구형( 半 球 形 )으로 움푹 들어간 곳 이른 바 컵 마크(Cup Mark) 가 확인되는데, 그와 비슷한 것이 인도네시아의 술라웨 시 섬과 자와 섬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상의 증거를 근거로 김병모는 한국의 입 석과 지석묘를 남방 문화적 요소로 간주하며,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난생설화가 퍼져 있는 지역의 지석묘 거석문화와 한국의 지석묘 거석문화 간에 모종의 연관성이 존재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7) 4) 김병근, 앞의 책, 89면, 100면. 5) 김병모, 한국 거석문화 원류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학회 편, 문화론 하나, 서울: 문덕사, 1995, 117~133면 6) 태국의 타이(Thai)족, 아쌈의 아홈(Ahom)족, 하이난의 리( 黎 )족은 모두 따이-까다이(Tai-Kadai) 어계에 속하고, 미얀마의 버마(Bama)족과 카렌(Karen)족과 까친(Kachin)족과 아카(Akha)족과 라후(Lahu)족 등은 중국-티베트 (Sino-Tibetan) 어계의 하위 그룹인 티베트-버마(Tibeto-Burman) 어족에 속하며, 필리핀인과 인도네시아인 그 리고 대만의 고산족( 高 山 族 )은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n) 어계에 속한다. 이에 대해 Amara Prasithrathsint, The Linguistic Mosaic, In Grant Evans, ed., Asia s Cultural Mosaic: An Anthropological Introduction, Singapore: Prentice Hall, 1993, pp. 75~80; 박장식, 동남아시아 언어세계의 다양성, 박장식 외,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 서울: 오름, 1997, 13~23면 참고. 7) 김병모, 앞의 논문, 135~147면. 고고인류학적인 이러한 추측은 한민족과 한국 문화의 남방 기원 및 근원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으로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모두 가설에 불과할 뿐 이다. 한국의 고대 문화가 부분적으로는 남방에서 온 것이라는 한국 문화의 남북혼합 설도 있지만, 8) 이와 관련하여 국내의 학계에서는 한민족의 동북아시아 기원설이 주류 를 이루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 한민족 및 한국 문화와 남방 민족 및 남방 문화 간 상관성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와 시 베리아 그리고 오세아니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거석문화 유물들의 상관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농경문화와 관련된 농기구와 토 기의 유형, 특히 장례풍습 등에 대한 더욱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통속적인 문화연구가인 김병호는 중국 윈난( 雲 南 )성의 나시( 納 西 )족 마을 사람들이 쓰는 지게, 윈난성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는 낫과 호미와 도리깨, 윈난성의 다리( 大 理 )에서 본 상투와 꼭대기에 새를 단 솟대( 鳥 竿 ), 윈난성 이( 彛 )족이 모자에 꽂는 깃 털, 태국 북부 라후(Lahu)족의 색동옷, 아카(Akha)족의 솟대와 새가 장식된 문, 리수 (Lisu)족의 절 풍습 등에 주목하여 이들을 한국의 문화와 연결시킨다. 그는 심지어 고 구려의 멸망 후 중국으로 끌려간 고구려인 포로 20만 명 중 일부가 남하하여 윈난 지 방뿐만 아니라 태국과 라오스 북부에도 갔을 수 있다고 본다. 10) 한편으로는 한국 문 화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남방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윈난 성과 태국 북부의 몇몇 고산족들의 문화가 고구려 유민에 의해 전해진 한국의 전통 문화일 것이라는 이러한 추측은 심증으로부터 나온 것일 뿐 구체적인 물증에 의해 뒷 받침되지 않는다. 윈난성의 나시족 및 이족과 태국 북부의 라후족과 아카족과 리수 족 등은 모두 중국-티베트(Sino-Tibetan) 어계의 하위 그룹인 티베트-버마 (Tibeto-Burman) 어족에 속한다. 한국의 문화와 윈난성 및 태국 북부의 고산족들 간 문화의 유사성을 논하기에 앞서, 동일한 언어 그룹에 속하는 이들 소수민족 상호간의 문화적 유사성을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이며, 그와 더불어 티베트족 및 버마족과 몽골 족 간 관계 그리고 몽골족과 한민족 간 관계의 연결 선상에서 한국의 문화와 윈난성 및 태국 북부의 고산족들 간 문화의 유사성을 조사해야 할 것이다. Ⅱ. 교류의 시작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선 한국사의 삼국 시대 즉 1세기경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이유는 한국 역사가 대략 그 시기부터 비교적 명백한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그 역사의 흐름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중국과 인접한 8)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이선복ㆍ한영희ㆍ노혁진ㆍ박선주,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상), 서울: 소화, ) 김병호, 우리 문화 대탐험 - 민족의 뿌리를 찾아 아시아 10만리, 서울: 황금가지,

7 베트남의 역사를 제외하면 대략 1세기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연구의 주 제를 위에서 언급한 시기부터 고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원 이후의 시기에 대한 이러한 낙관적인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삼국-신라 시 대 즉 1세기부터 9세기까지의 기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해서는 사료가 별로 없으며, 그나마 약간 있는 사료들의 내용도 그 역사적 사실의 여부가 불확실하 다. 사료들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한문 사료밖에 없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관련 사 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측면과 관련하여, 장기 보존이 곤란하거나 불가능 한 재질인 목재, 야자수 잎, 천, 종이 등에 작성된 고대의 역사적 기록은 매우 습하고 무더운 동남아시아 지역의 기후적 특성으로 모두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 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사료의 이러한 제한성 때문에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에 대한 연구는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과 추리 그리고 때로는 직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 으며, 따라서 그만큼 더욱 흥미롭고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때로 는 지나친 비약이 수반된 연구는 독자에게 고대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 대한 애매모호한 상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것은 일본 사료인 일 본서기( 日 本 書 紀 ) 에 기록되어 있는 6-7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접촉, 그리고 당 ( 唐 )의 승려 의정( 義 凈 )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 과 신라승 혜 초( 慧 超 )의 왕오천축국전( 往 五 天 竺 國 傳 ) 과 당의 승려 혜림( 慧 琳 )의 일체경음의 ( 一 切 經 音 義 ) 에서 엿볼 수 있는 7-8세기 한국의 불교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여행 등 에서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이 두 부분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일본서기 의 백제와 동남아시아 지역 간 6세기 접촉에 대한 기록은 일본과 한 국의 소수 역사학자의 관심을 끌어왔다. 일본의 미키 사카에( 三 木 榮 ) 11) 와 한국의 이 도학, 임길채, 김현구ㆍ박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현구ㆍ박 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등은 백제와 동남아시아 지역 간 접촉이 직접 일어난 것이 아 니라 중국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12) 그에 비해 이도학과 임길채 등은 백제와 동남아시아가 상호 직접 교류한 것으로 간주한다. 13) 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역사적 관계를 다룬 다른 논문에서 일본서기 의 기록에 대한 신중한 해석이 바 람직하다고 썼는데, 14) 그 입장은 여전히 동일하다. 7-8세기 한국의 불교 승려들 특히 혜초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로의 이른 바 구법 ( 求 法 ) 여행에 대해서는 여기서 나열하고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국내외 에서 많은 연구가 되어 있다. 나는 6-7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접촉에 대해서는 11)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 김현구 등,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Ⅱ), 서울: 일지사, )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 니스트, 2003; 임길채, 매몰된 백제 역사를 복원한다! - 해상무역국가로서의 백제의 모습(하), 서울: 범우사, ) 조흥국, 근대 이전 한국과 동남아시아간 접촉에 대한 역사적 고찰, 국제ㆍ지역연구 8(1), 1999, 26~28 면. 사료와 기존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함으로써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 력할 것이다. 그에 비해 불교 승려들의 인도로의 구법 순례를 통한 7-8세기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접촉은 관련 사료를 소개하고 기존의 연구를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한편 9세기에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 간 활발히 해상 무역을 전개한 해상왕 장보고( 張 保 皐 )는 최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그의 해상 활동과 신라 시대 한국 의 동아시아 무역에 대한 많은 연구가 생산되었다. 15) 한국인의 해양 진출 내지는 해 상 무역 활동이 동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에 비해 저조하고 빈약한 한국 역사에서 장 보고의 사례는 학술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보고의 활동은 그의 해상 활동 무대가 한ㆍ중ㆍ일 삼국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를 다루는 본 연구에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Ⅲ. 해로를 통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 고대 한국과 중국 간 교역은 육로 외에 해로( 海 路 )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 해 로는 우회로( 迂 廻 路 )라고도 불리는 연안 항로 혹은 연해로( 沿 海 路 )와 직항로( 直 航 路 ) 라고도 불리는 횡단 항로 혹은 횡단로( 橫 斷 路 )의 두 가지가 있었다. 연해로는 한반도 의 서해 연안에서 서북쪽으로 요동( 遼 東 )반도 그리고 산동( 山 東 )반도의 연안까지 이어 지는 북방 연해로와 산동반도 연안에서 남쪽으로 중국의 동남부 연안까지 연결되는 남방 연해로의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횡단로는 한반도 서남 해안에서 황해를 횡단하 여 중국의 동남부 해안 지방에 이르는 바닷길을 일컫는다. 중국 연안 지방과 한반도 사이의 교류는 대부분 연해로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횡단로도 중요한 루트로 작용했 다. 그리하여 백제는 4세기 후반 중국 동진( 東 晋, )과 교류할 때 그리고 5세 기 후반 중국 북조의 북위( 北 魏, )와 접촉할 때 횡단로에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16) 하지만 횡단로는 그 전부터 한반도와 중국 연안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양 지역 간 교류의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어, 이 해로를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포함 한 남양 세계의 문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고려 시대 불교 승려인 일연( 一 然 )이 쓴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에 아유타( 阿 踰 陁 ) 국 즉 갠지스 강 유역에 있었던 고대 인도의 아요디야(Ayodhyā) 왕국의 공주 허황옥 ( 許 黃 玉 )이 기원후 48년에 한반도에 와 당시 경남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 駕 洛 國 )의 김수로( 金 首 露 ) 왕과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17) 고고인류학자인 김병모 15) 손보기 편, 장보고와 청해진, 서울: 혜안, 1996; 허일 외, 장보고와 황해 해상무역, 서울: 국학자료원, 2001; 권덕영 외, 대외문물교류연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2003; 윤명철, 장보고의 나라, 서 울: 정신세계사, 2003; 강봉룡,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서울: 한얼미디어, 2004; 최덕수, 장 보고와 한국 해양네트워크의 역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663~674면. 17) 일연, 三 國 遺 事, 卷 2, 紀 異 2, 駕 洛 國 記

8 는 허황옥이 기원전 2세기 경 인도의 아요디야 왕국을 떠나 중국의 쓰촨( 四 川 ) 지방 의 안웨( 安 岳 )에 정착한 집안의 후손으로, 47년에 쓰촨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의 와중 에 안웨를 떠나 중국 후베이( 湖 北 ) 지방의 우창( 武 昌 )을 거쳐 황해를 건너 48년에 가 락국에 도착했다고 설명한다. 18) 삼국유사 에 허황옥이 금수( 錦 繡 )와 능라( 綾 羅 ) 등 을 많이 갖고 왔다는 기록도 이들이 중국산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허황후의 중국 경유설이 설득력 있게 보인다. 19) 그러나 허황옥이 인도에서 바로 한반도로 왔다고 볼 수 있는 근거도 있다. 삼국 유사 의 다른 기록은 허황옥이 가락국에 올 때 항해의 안전을 위해 파사석탑( 婆 娑 石 塔 ) 을 배에 싣고 왔는데, 그 석탑의 돌이 우리나라에 나지 않는 것이라고 전한다. 20) 허명철 박사는 파사석탑의 돌이 실제로 한국에는 없고 인도의 아유디야 지방에서만 나는 것임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탑의 형식이 인도의 아잔타(Ajanta) 동굴사원 등에서 볼 수 있는 축소형 불탑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도 밝혀냈다. 21) 그밖에 서울대 의대의 서정선 교수와 한림대 의대의 김정일 교수는 2004년에 허황옥의 후손으로 추 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의 왕족 유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 유골의 주인이 인도 의 남방계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2) 어쨌든 이상 살펴본 삼국유사 의 허황옥 이야기에서 이미 기원 1세기에 바닷길을 이용한 교류가 한반도와 중국 사이는 물론 심지어 인도와도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횡단 해로를 통해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문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로 1-2세기 유적인 전남 해남군의 군곡리 패총과 3세기 유적인 경남 창원시 삼동동의 옹관묘와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진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리구슬을 들 수 있다. 인도 외에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에서 발 견되어 인도-패시픽 유리구슬(Indo-Pacific glass beads) 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인 도 동남부 해안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생산되어 세계 도처로 교역 되었다. 23) 신라 흥덕왕( 興 德 王 )은 834년에 자단( 紫 檀 ), 침향( 沈 香 ), 공작미( 孔 雀 尾 ) 즉 공작새 꼬리, 비취모( 翡 翠 毛 ) 즉 비취새의 깃털 등을 백성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했 다. 이 품목들은 오늘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지가 그 주산지인데, 이 사실 또한 해로를 통해 고대에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간 교류가 일어 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4) 18) 김병모, 한ㆍ일( 韓 ㆍ 日 ) 쌍어문( 雙 魚 紋 ) 비교연구, 민족학연구 1, 1995, 92~93면; 김병모, 김병모의 고 고학 여행 2, 서울: 고래실, 2006, 133~175면. 19) 일연, 三 國 遺 事, 卷 2, 紀 異 2, 駕 洛 國 記. 20) 일연, 三 國 遺 事, 卷 3, 塔 像 4, 金 官 城 婆 娑 石 塔. 21)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강성보, 아유타국, 경향신문 ; 조병철, 허황후, 세계일보 ) 이인숙, 유리와 고대 한국, 실크로드와 한국 문화, 서울: 소나무, 1999, 227~228면. 24) 趙 汝 适, 諸 蕃 志, Translated by Friedrich Hirth and W.W. Rockhill, St. Petersburg: Printing Office of the Imperial Academy of Sciences, 1911, pp. 204~206, 208~209, 235~236; 정수일, 문명교류사연구, 서울: 사계절, 2002, 213~214면. Ⅳ.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 왕국 부남 위에서 살펴본 한반도와 중국 및 남양 간 해로를 통한 교류의 가능성은 고대 한국 의 해양 교류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서기 의 킨메이( 欽 明 ) 천 황 4년 즉 543년의 기록에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가을 9월에 백제의 성명왕( 聖 明 王 )은 전부( 前 部 ) 내솔( 奈 率 ) 진모귀문( 眞 牟 貴 文 )과 호덕( 護 德 ) 기주기루( 己 州 己 婁 ) 그리고 물부( 物 部 ) 시덕( 施 德 ) 마기모( 麻 奇 牟 ) 등을 보내어 부남( 扶 南 ) 산 물품과 노예 2명을 바쳤다. 25) 위의 기록 중 전부( 前 部 ) 내솔( 奈 率 )의 내솔 은 백제의 관등 체계에서 6번째 관등 이었고, 물부( 物 部 ) 시덕( 施 德 )의 시덕 은 8번째 관등이었다. 일본어에서 호( 護 ) 의 음 역 고 와 고( 固 ) 의 음역 코 가 서로 비슷한 점을 고려하여, 호덕( 護 德 ) 을 고덕( 固 德 ) 으로 읽는다면, 호덕 은 9번째 관등에 해당한다. 26) 백제의 성명왕은 한국사에서는 성왕( 聖 王, 재위 )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와 부남 그리고 일본 간 접촉을 시사하는 일본서기 의 상기 기록에 대해 최초로 주목한 자는 일본의 역사학자 미키 사카에( 三 木 榮 )인 것으로 보인다. 미키 사 카에는 부남을 오늘날 태국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놓여 있던 나라로 간주한다. 27) 그러 나 부남은 현 캄보디아 남부와 베트남 남부의 코친차이나(Cochinchina) 지역에 걸쳐 있었던 나라였다. 캄보디아의 남부에서 기원 1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부남 왕국은 6세기 중엽까지 오늘날 캄보디아의 남부와 메콩(Mekong) 강 델타 지역에서 번성했다. 중국 사료 양서( 梁 書 ) 에 의하면, 남쪽에 있는 요( 徼 )라는 나라로부터 귀신을 섬기는 사람인 혼전( 事 鬼 神 者 字 混 塡 ) 이 배를 타고 부남 땅에 도달했다. 28) 요 는 인도나 말 레이 반도 지역으로 간주되며, 귀신을 섬기는 자 는 인도의 브라만 사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베트남 중부 지방에 있었던 참파(Champa) 왕국의 유적에서 발 견된 한 비문에 나타나는 브라만 카운딘야(Kaundinya)와 동일시된다. 29) 위의 중국 역사책은 그가 부남에서 그곳의 여왕인 유엽( 柳 葉 )을 아내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이 설화에서 동남아시아의 초기 왕국 건설 과정에 미친 인도의 영향의 한 단 면을 엿볼 수 있다. 부남은 3세기 초에 크게 팽창하여 그 영향력이 서쪽으로는 말레이 반도 중부에서 미얀마까지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베트남 중부에 닿았다. 이러한 국력의 바탕에는 해 25) 日 本 書 紀, 卷 19, 欽 明 天 皇 4년 秋 9월. 26)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547면. 27)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1934, 22~23면. 28)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남제서( 南 齊 書 ) 에는 혼전의 출신국이 격( 激 ) 으로 표기되어 있다. 南 齊 書, 卷 58, 列 傳 39, 蠻 東 南 夷, 扶 南 國. 29) Georges Cœdès, Les États Hindouisés d Indochine et d Indonésie, Paris: E. de Boccard, 1964, pp. 75~

9 상 무역을 통한 경제적 힘이 있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던 부 남은 옥에오(Oc-eo) 항구를 중심으로 남중국해의 중계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 다. 30) 또 양서 에 따르면, 부남은 비옥한 메콩 강 델타의 농업 자원 외에도 금, 은, 구리, 주석, 침향( 沈 香 ), 상아 등을 생산했다. 31) 부남의 옥에오 유적에서 2세기에 서 5세기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산 반지, 그리고 비쉬누(Vishnu), 시바(Shiva) 등 인도 신들이 새겨진 주석 호부( 護 符 ) 등이 발견되었다. 또 152년경에 제작된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의 금박 휘장과 마르쿠스 아 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주화가 출토되 었고, 후한( 後 漢 ) 시대(25-220) 중국의 청동거울 파편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옥에오 가 한 때 인도와 중국 간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국 간 교역의 중요한 중계항이었음을 말해준다. 32) 부남의 민족에 대해서는 이들이 몬-크메르(Mon-Khmer) 어족의 민족 즉 오늘날 캄보디아 민족의 선조라는 것과, 33)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 어족의 민족 즉 오 늘날 말레이-인도네시아 민족과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는 것, 34) 그리고 부남의 주민이 이 두 가지 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35)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부남이 다른 말레 이-인도네시아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활발한 해상 무역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을 고려 해볼 때, 그들을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번영했던 부남은 5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 엇보다도 4세기경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무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지역과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남은 5세 기에 참파의 공격을 받았고 6세기 중엽에는 내란으로 국력이 더욱 약화되었으며 마침 내 북쪽에서 내려온 크메르(Khmer)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36) 미키 사카 에는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구입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 2명을 일본에 선물한 543 년은 부남이 크게 약화되어 쇠퇴 일로에 놓여 있던 6세기 중엽의 시점과 일치된다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30) Nguyen The Anh, Indochina and the Malay World, Asia Journal 3(1), 1996, pp. 108~ )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32) Bernard Philippe Groslier, Hinterindien: Kunst im Schmelztiegel der Rassen, Baden-Baden: Holle Verlag, 1980, pp. 62~63. 33) Georges Cœdès, Les Peuples de la Péninsule Indochinoise: Histoire - Civilisations, Paris: Dunod, 1962, p. 65; D.R. SarDesai, Southeast Asia: Past & Present, Boulder: Westview Press, 1997, p ) Daniel George E. Hall, A History of South-east Asia, London and Basingstoke, 1981, p. 25;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 ) Bernard Philippe Groslier, 앞의 책, p )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p. 110~113. Ⅴ. 6세기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에 대한 추측 백제사 연구자인 이도학은 5세기 말에 탐라( 耽 羅 ) 즉 제주도를 그 영향권 하에 넣 은 백제가 탐라국이 이용하고 있었던 해상 활동 루트를 장악함으로써 일본과 중국 푸 젠( 福 建 )성의 푸저우( 福 州 )뿐만 아니라 대만, 류큐( 琉 球 )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그 항 로를 확대했다고 본다. 그는 그 증거로 백제가 일본 조정에 부남의 물품과 노예들을 진상했다는 위의 일본서기 543년의 기록을 든다. 37) 재야 역사학자인 임길채도 백제가 일본에 부남의 노비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백제가 뱃길을 따라 동남아시아에 직접 가서 이들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추측한다. 38) 이도학은 백제의 해상 활동 범위가 심지어 인도까지 미쳤다고 단정하면서 그 증거 로 일본서기 킨메이 천황 15년 즉 554년의 다음 기록을 든다. 겨울 12월에 백제가 하부( 下 部 ) 간솔( 杆 率 ) 문사간노( 汶 斯 干 奴 )를 파견하여 서 신을 올려 말하기를, 백제 왕인 신하 명( 明 )은 [중략] 현재 일이 매우 급하여 배 한 척을 보내어 아룁니다. 좋은 비단 두 필, 탑등( 毾 㲪 ) 하나, 도끼 300개 그 리고 사로잡은 성의 주민으로 남자 2명과 여자 5명을 바칠 따름입니다. 라고 했다. 39) 백제의 사신 문사간노( 汶 斯 干 奴 )의 관직명인 하부( 下 部 ) 간솔( 杆 率 ) 중 간솔 은 백 제의 관등 체계에서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0) 백제의 왕으로 소개된 명 은 일본서기 543년 기록의 성명왕( 聖 明 王 ) 즉 성왕( 聖 王 )을 가리킨다. 이도학이 위의 일본서기 554년의 기록에서 백제의 해외 교역과 관련하여 중시 하는 부분은 백제가 일본 조정에 탑등 이란 품목을 선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그는 탑 등( 毾 㲪 ) 이 페르시아어의 탑탄(taptan) 혹은 타페탄(tapetan) 의 한자 음역에 따른 표기라는 점에 주목하여, 백제가 당시 양모를 주성분으로 하는 페르시아 직물로서 북 부 인도에서 생산되던 양탄자를 일본에 선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백제가 인도와 직접적인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41) 이도학은 백제가 6세기에 인도와 해상 교역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다른 증거로 20세기 초 한국의 역사학자인 이능화( 李 能 和 )가 소개하는 미륵불광사사적기( 彌 勒 佛 光 寺 事 蹟 記 ) 의 다음 기록을 든다. 백제 성왕 4년에 불교 승려 겸익( 謙 益 )이 계율을 구하기로 작심하여 바닷길로 37)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6~97면. 38) 임길채, 앞의 책, 253면. 39) 日 本 書 紀, 卷 19, 欽 明 天 皇 15년 冬 12월. 40)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547면. 41)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7~98면. 임길채(앞의 책, 253~254면)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10 돌아 중인도( 中 印 度 )의 상가나대율사( 常 伽 那 大 律 寺 )에 이르렀다. 42) Ⅵ. 중국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역 이도학은 상기 인용의 기록을 겸익이 526년에 배를 타고 직접 인도로 간 것으로 해석한다. 임길채 역시 겸익이 당시 해로를 따라 인도로 유학을 갔다고 말한다. 43) 이 들의 주장에 따르면, 6세기 전반 백제의 해상 교역 범위는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인 도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 된다. 이도학은 6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또 다른 증거로 7세기 중엽에 활동 했던 백제의 신하인 흑치상지( 黑 齒 常 之 )라는 인물을 든다. 흑치상지( )는 의자 왕( 義 慈 王, 재위 ) 말기에 백제의 관리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으며,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중국 당 나라의 장군으로 활약했다. 중국에서 출토된 흑치상지 의 묘지명( 墓 誌 銘 )은 흑치상지의 선조가 백제의 왕족 가운데 하나인 부여씨( 扶 餘 氏 ) 가문의 출신으로 흑치( 黑 齒 )라는 지역에 봉해졌으며, 흑치상지는 그렇게 생겨난 흑치 가문의 후예 중 한 사람이라고 전한다. 이도학은 흑치상지의 왕족 출신 부여씨 선조 가 흑치에 봉해진 것이 백제 시대 왕족을 지방에 분봉하는 이른 바 담로( 擔 魯 ) 체제 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그는 또 이 담로 체제가 538년 이후에는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흑치상지의 선조가 흑치에 봉해진 것이 6세기 중엽 이전에 일어난 일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44)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관계와 관련하여 이도학이 중시하는 것은 흑치 의 개념이 무엇인가 그리고 흑치 가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 것인가의 두 가지 문제이다. 그는 흑 치 의 문자적 의미에 주목하여 흑치 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습속이 널리 퍼져 있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의 지명이라고 본다. 그는 특히 흑치 를 오늘날 필리핀 지 역과 동일시하는 대만의 역사학자인 량자빈( 梁 嘉 彬 )의 견해를 수용한다. 45) 그는 이상 의 몇 가지 단서를 근거로, 일본과의 교역 루트를 확보한 백제가 6세기 전반에 동남 아시아로 무역 활동을 확대하면서 필리핀에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인도와의 교역 을 위한 백제 선박들의 기항지를 설립했으며, 부여씨의 한 백제 왕족에게 흑치씨라는 새로운 성( 姓 )을 하사하여 그를 그 기항지의 관리자로 세웠다고 추측한다. 즉 그는 흑 치씨의 필리핀 분봉을 백제의 동남아시아 진출의 또 다른 형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필리핀에 백제의 식민지가 건설된 것이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일 본에 바친 성왕 시대( )에 일어난 것으로 본다. 46) 42) 이능화, 朝 鮮 佛 敎 通 史 상편, 1918, 聖 王 31년. 43) 이도학, 앞의 논문, 97~99면; 임길채, 앞의 책, 251면. 44)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35~237면. 45)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38~240면; 이도학,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서울: 주류성, 1996, 32~41면. 46)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2005, 243면;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3, 457면.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이도학 등의 역사학자들은 백제의 선박이 부남에 직접 갔 으며, 백제 정부가 필리핀에 교역 기지를 세웠으며, 백제의 상선이 인도양까지 진출하 여 인도 시장에서 직거래를 했으며, 백제 승려가 백제의 선박을 타고 한국에서 인도 까지 항해했다는 등 6세기 백제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역 내지는 교류가 직접적 으로 일어났다고 본다. 백제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류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그 러나 대부분 단편적이고 애매모호한 증거를 그 바탕에 둔 것이다. 특히 백제가 6세기 전반에 필리핀에 무역 기지를 세웠다는 주장은 흑치상지 의 흑치 라는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허무맹랑한 가설에 불과하다.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흑치 의 습속은 사실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지에도 있었다. 47) 특히 흑치 는 660년에 멸망한 백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할 정도로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고 백제와 많은 인적 교류가 있었던 일본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만약 당시에 백제가 필리핀 으로 그처럼 중요한 해외 팽창 사업을 실제로 벌였다면, 그 전통이 후대에 어떤 형태 로든지 간에 이어졌어야 할 것이며, 또 적어도 그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 三 國 史 記 ) 나 삼국유사 등의 한국 사료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백제와 필리 핀 간 모종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단서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인의 필리 핀으로의 사업 진출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을 뿐이다. 백제가 543년에 부남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바쳤다는 일본서기 의 이야기에 대 해 살펴보자. 만약 백제가 부남 왕국과 직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다면, 그것을 입증 하는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남이나 부남 주위의 인도차이 나 지역에서 관련 비문이나 그 지역으로 백제의 선박이 왕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해 양고고학적인 유물은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등 한국 측 사료에도 백제 사람들이 부남 내지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무역 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적어도 그것을 암시하는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백제는 만약 부남에 직접 가지 않았다면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어떻게 획득했을 까? 나는 그것이 중국이라는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 여러 사료들에서 확인되는 6세기 백제와 중국 간 교류와 중국과 부남 간 교류에 주목 하고자 한다. 남사( 南 史 ) 와 양서 는 이미 5세기 초부터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 여 공물을 바치기 시작한 백제가 6세기에 들어서서도 중국에 수시로 조공 사신을 보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48) 고려 시대의 역사가인 김부식( 金 富 軾, )이 편찬 한 삼국사기 는 이 중국 사서들의 기록을 확인시켜주며 때로는 그 내용을 보완해 주기도 한다. 47) 김용운, 한국이 보는 일본, 한국국제교류재단 편, 한국과 세계의 만남, 서울: 지문당, 2002, 243면. 48) 南 史, 卷 79, 列 傳 69, 夷 貊 下 東 夷 西 戎 蠻 西 域 諸 國 北 狄, 百 濟 ;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百 濟

11 예컨대 남사 와 양서 는 무령왕( 武 寧 王 ) 시대( ) 백제가 양( 梁, ) 나라 조정에 조공 사신을 파견한 것이 521년 한 번만 발생한 것으로 기록 해 놓은 것에 비해, 삼국사기 에는 백제가 521년 외에 512년에도 중국으로 사신 을 파견한 것으로 되어 있다. 49) 양 나라와의 교류는 성왕( 聖 王 ) 재위 기간( ) 에도 계속 되었다. 특히 백제가 543년에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바쳤다는 일 본서기 의 기록과 관련하여, 백제의 534년과 541년 양 나라로의 조공 사신 파견은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양서 에 따르면, 백제는 534년과 541년에 양에 수차 사 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진상하면서 중국 정부에게 열반경( 涅 槃 經 )을 비롯한 경서( 經 書 )와 모시( 毛 詩 ) 박사( 博 士 ) 즉 시경( 詩 經 )에 능통한 학자, 그리고 공장( 工 匠 )과 화공 ( 畵 工 ) 등을 요청했는데, 양 조정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50) 삼국사기 에도 양서 의 이 기록과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발견된다. 51) 중국과 부남 간 교류는 중국과 백제 간의 것보다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남제 서( 南 齊 書 ) 에 의하면, 부남은 성이 교진여( 僑 陳 如 )이고 이름이 사야발마( 闍 耶 跋 摩 )라 는 왕이 남북조( 南 北 朝 )의 송( 宋 ) 나라 시대( ) 말기 즉 추측컨대 470년대에 중국의 광저우( 廣 州 )로 화물을 실은 상선을 보냈다. 인도식으로 읽을 때 자야바르만 (Jayavarman) 으로 읽히는 이 왕은 484년경에는 제( 齊, ) 나라 조정에 금박 에 아로새긴 용왕좌상( 龍 王 坐 像 ), 백단( 白 檀 ) 나무로 만든 형상, 상아로 된 탑, 유리 장식품, 빈랑( 檳 榔 )을 놓는 쟁반 등을 바쳤다. 52) 양서 에 따르면, 부남 왕 자야바 르만은 503년에 양 나라 조정에 토산물과 함께 산호로 된 불상을 진상했으며 511년 과 514년에도 조공 사신을 보냈다. 그의 후계자인 유타발마( 留 陁 跋 摩 ) 즉 루드라바르 만(Rudravarman)도 517년, 519년, 520년, 530년, 535년, 539년에 양 나라에 조공 사신을 파견했다. 중국 황제에게 진상된 선물에는 종종 토산물과 함께 불교 관련 물 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53) 김현구 등은 삼국사기 에 나타나는 백제와 중국 간 교류의 기사 가운데 특히 541년의 기록이 중국의 문물과 전문 인력의 백제로의 수입을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541년 시점에 상기 기록의 내용 외에도 다른 물품과 인력이 많이 백제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은 백제가 이 때 부남 산 물품과 노예 2명 도 함께 획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54) 이 설명도 확실한 근거를 바탕에 둔 것이 아닌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본 양 나라와 부남 간 6세기 전반의 교역 및 교류를 감안할 때 백제가 부남에 직접 가서 교역을 했다는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더욱 강하다. 같은 맥락에서 백제가 일본에 진상한 인도 산 탑등 도 백제가 인도에서 직접 구 했다기보다는 중국에서 획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비슷하게 백제 승려 겸익이 49)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6, 百 濟 本 紀 4, 武 寧 王 12년 夏 4월, 武 寧 王 21년 冬 11월. 50)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百 濟. 51)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6, 百 濟 本 紀 4, 聖 王 19년. 52) 南 齊 書, 卷 58, 列 傳 39, 蠻 東 南 夷, 扶 南 國. 53) 梁 書, 卷 54, 列 傳 48, 諸 夷, 扶 南 國. 54) 김현구 등, 앞의 책, 152면. 526년에 인도에 간 것도 이도학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시 백제와 인도 사이에 직 접적인 해상 교역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백제와 중국 간 교역 관 계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해상 루트를 통한 교역 관계가 발달되어 있 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조 시대( )에 남조의 송, 제, 양 등의 나라들은 전쟁 관계에 있던 북조 의 나라들 때문에 육로를 통한 서역과의 교역이 어렵게 되자 그 대안으로 해상 교역 로를 이용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이러한 관심은 곧 동남아시아의 몇 몇 왕국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Sumatra) 섬과 자 와(Java) 섬 연안의 왕국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와 무역을 하고 있었으며 또 이미 부 남 등을 통해 중국과도 간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다. 중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그에 대한 동남아시아 해양 왕국들의 긍정적인 반응의 결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경유하 여 인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가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55) 남사 에 의하면, 송 나라 황제는 449년에 가라단국( 呵 羅 單 國 ), 파황국( 婆 皇 國 ), 파달국( 婆 達 國 ) 등 세 나라로 사신을 파송하여 그 통치자들을 그 나라의 왕으로 책봉 했다. 56) 이 세 나라들은 모두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자와 섬 혹은 수마트라 섬에 있었 던 것으로 간주된다. 57) 송 조정이 인도네시아의 이 세 왕국에 직접 사신을 파견할 정 도로 관심을 보인 것은 중국인들이 당시 그만큼 이 지역을 경유하여 인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를 중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양 나라가 2만 척에 달하는 선박을 이용하여 동남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와 인도, 그리고 심지어 이란과 이라 크 등지와 교역을 했다고 하는데, 58) 그것도 남양과의 해상 교역에 대한 중국의 능동 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5세기 초에 동진( 東 晋, )의 승려인 법현( 法 顯, )은 인도에서 중국 으로 돌아올 때 믈라카(Melaka) 해협 혹은 순다(Sunda) 해협을 통해 말레이 반도 남 단이나 보르네오(Borneo) 섬의 서부 연안에 도착한 후 거기서 동남아시아의 항구에 들르지 않고 남중국해를 지나 곧장 광둥( 廣 東 )성의 광저우로 왔다. 화교 연구자인 왕 겅우( 王 賡 武 )는 법현이 타고 온 배가 인도 선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59) 법현의 사례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듯이, 중국에서 믈라카 해협 혹은 순다 해협을 거쳐 인도 까지 가는 바닷길은 6세기 전반에 이미 중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고, 당시 중국과 빈번한 교류를 맺고 있던 백제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겸익이 우선 백제에서 중국까지 갔다가 거기서 동남 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갔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인도까지의 항해는 중국 선박을 이용했을 수도 있지만, 중국 항구에 온 인도 상선을 타고 갔을 수도 있고 혹은 수마 트라 섬이나 자와 섬의 동남아시아 왕국에서 온 상선을 타고 믈라카 해협이나 순다 55) Nguyen The Anh, 앞의 논문, p ) 南 史, 卷 78, 列 傳 68, 夷 貊 上, 海 南 諸 國, 呵 羅 單 國, 婆 皇 國, 婆 達 國. 57) Wang Gungwu, The Nanhai Trade, Journal of the Malay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31(2), 1958, p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660면. 59) Wang Gungwu, 앞의 논문, pp. 42~

12 해협 혹은 말레이 반도 동부 연안의 한 항구까지 갔다가 그 곳에 정박해 있던 인도 상선을 타고 인도까지 계속 여행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Ⅶ. 7세기 백제와 곤륜의 접촉 이도학은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역이 7세기에도 계속 되었다고 보면서, 그 증거 로 일본서기 고쿄쿠( 皇 極 ) 천황 원년 즉 642년의 다음 기록에 주목한다. 60) 백제에서 조문을 위해 온 사신의 시종들이 아뢰기를 [중략] 백제의 사신이 곤륜( 崑 崙 )의 사신을 바다로 던져버렸습니다. 라고 말했다. 61) 백제가 일본에 조문 사신을 보낸 것은 조메이( 舒 明 ) 천황(재위 )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상기 인용에서 백제와 동남아시아 간 교류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 은 곤륜 의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백제 사신이 곤륜의 사신 을 바다에 던진 배경 및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0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 ( 舊 唐 書 ) 에서 곤륜 은 다음과 같이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파악되어 있다. 임읍( 林 邑 ) 이남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고수머리에 몸이 검은데, 그들을 통칭 하여 곤륜이라고 부른다. [중략] 진랍( 眞 臘 )국은 임읍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 본래는 부남의 속국이었으며 곤륜의 부류에 속한다. 62) 상기 인용에서 임읍는 현 베트남 중부 및 남부 일대에 있었던 참파 왕국을 가리키 며, 진랍은 부남을 멸망시킨 크메르족의 나라로 오늘날 라오스 남부와 캄보디아 일대 에 있었다. 구당서 에 따르면, 10세기 중국인들은 곤륜 을 대략 베트남 중부와 라 오스 이남의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 인다. 다시 말하면, 곤륜 은 당시 북부 베트남 지역에 살던 비엣(Viet)족을 제외한 동 남아시아의 피부색이 비교적 검은 야만적인 토착 원주민들을 지칭하던 용어가 아니 었나 싶다. 영국의 동남아시아 역사 연구자인 다니엘 조지 홀(Daniel George E. Hall)은 곤륜 이 원래는 인도차이나 연안에서 해양 활동을 하는 주민들을 지칭한 개 념이었지만 뒤에 도서 동남아시아의 주민들에게도 확대되었다고 추측하는데, 63) 곤륜 을 동남아시아 전 지역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간주하는 그의 이러한 견해 는 구당서 의 곤륜 개념에 가깝다. 그에 비해 동남아시아 고대사 연구자인 폴 휘 틀리(Paul Wheatley)는 곤륜 을 말레이 반도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 연안 지대 60)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1991, 98면. 61) 日 本 書 紀, 卷 24, 皇 極 天 皇 원년 2월. 62) 舊 唐 書, 卷 197, 列 傳 147, 南 蠻 西 南 蠻, 林 邑 國. 63) Daniel George E. Hall, 앞의 책, p. 9. 까지의 지역 즉 동남아시아의 대륙부에 사는 주민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본다. 64) 한 편 한국의 역사학자인 고병익은 그 역시 구당서 의 곤륜 에 대한 설명을 중시하고 있지만, 이를 특이하게 해석하여 곤륜 을 지리적으로는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과 자와 섬을 포함한 지역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말레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간주한다. 65) 그러나 일본서기 의 곤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 당서 에 나타나는 중국인들의 곤륜 개념을 보다 중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 은 중국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본과 남북조의 중국 왕조들 간 교류를 감안할 때, 66) 일본인들이 사용한 곤륜 개념은 중국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에 기초한 것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당서 의 곤륜 개념을 수용한다면, 곤륜의 사신 은 구체적으로 동남아시아 의 어떤 나라의 사신이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 항은 첫째 7세기 중엽이라는 시기, 둘째 그 나라는 당시 중국해를 무대로 해상 무역 활동에 참가하거나 특히 중국과 교류를 하고 있던 나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로는 무엇보다도 7세기 전반에 중국으로 여러 번 사신을 파견한 참파와 진랍 등이 있다. 67) 당( 唐 ) 나라의 태종( 太 宗 ) 통치 시대( )에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친 말레이 반도 동안( 東 岸 )의 반반국( 盤 盤 國 )도 그 후보 국가 중 하나이다. 68)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언급한 폴 휘틀리의 곤륜 개념 에 대한 이해도 적어도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된 7세기의 맥락에서는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 국가 중 곤륜의 사신 을 배출한 나라는 중국, 일본 등에 지리적 으로 비교적 가까운 참파나 진랍이 아닌가 싶다. 백제 사신의 시종들의 진술에 따르면, 백제 사신이 곤륜의 사신을 바다로 던져버렸 는데, 이것을 이도학은 백제 사신이 곤륜 사신을 바다에 밀어넣어 죽인 것 이라고 본다. 69) 그러나 원문에는 단순히 곤륜 사신을 바다 안으로 던졌다 70) 고 되어 있다. 곤륜의 사신이 살해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해석과 관련된 것으로 보 이지만, 자구( 字 句 )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 곤륜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린 배경 및 동기와 관련하여 그들이 곤륜의 사신 이 란 용어의 곤륜 을 어떤 개념으로 이해하고 썼을까? 이 의문과 관련하여, 우선 곤륜 이 구당서 등 중국 사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중국에서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 아시아의 민족들을 가리키는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였다는 점과 백제와 중국 간 교류를 고려할 때, 나는 당시 백제 사람들도 곤륜의 사신 이 명확히 어떤 나라에서 온 것인지를 모르지만 대충 동남아시아 내지는 남양에서 온 사람인 것으로 64) Paul Wheatley, The Golden Khersonese: Studies in the Historical Geography of the Malay Peninsula before A.D. 1500, Kuala Lumpur: University of Malaya Press, 1961, p )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877면. 66) 예컨대 南 史, 卷 79, 列 傳 67, 夷 貊 下 東 夷 西 戎 蠻 西 域 諸 國 北 狄, 倭 國. 67) 舊 唐 書, 卷 197, 列 傳 147, 南 蠻 西 南 蠻, 林 邑 國 및 眞 臘 國. 68) 唐 書, 卷 222 下, 列 傳 147 下, 南 蠻 下, 盤 盤. 69) 이도학, 앞의 논문, 100면. 70) 日 本 書 紀, 卷 24, 皇 極 天 皇 원년 2월: 擲 崑 崙 使 於 海 裏

13 알고 그를 곤륜 사람이라고 지칭했을 것으로 본다. 또 따져보아야 할 문제는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의 사신을 만난 곳은 어디이며 그 를 바다로 던진 곳이 어디인가 라는 점이다. 그들이 곤륜 사신을 만난 곳은 당시 백제의 교역 활동 범위와 곤륜 이란 나라의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항구와 일본의 항구 두 군데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항구일 경우, 백제 사 신이 곤륜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린 곳은 중국 항구나 중국 근해, 혹은 곤륜 사신이 백제 사신의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동행했다면 중국에서 일본으로의 항해 도중 혹은 일 본 근해나 항구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의 사신을 만난 곳이 일본의 항구일 경우, 일본에 온 백제 사신이 일본에 온 곤륜 사신을 만나 그를 일본 항구에서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 된다. 백제 사신이 일본에 온 것은 일본서기 에 의하면 642년 음력 2월이었으며, 백 제가 당 나라에 조공 사신을 파견한 것은 삼국사기 에 의하면 642년 음력 1월이 었다. 71) 항해와 조공에 따르는 제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당에 파견된 백제 사신과 일본에 온 백제 사신이 동일한 인물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642년의 백제 사신은 일본 천황의 서거에 대한 조문을 목적으로 백제에서 일본으로 직접 파송되었을 것이다. 그 렇다면 백제 사신 일행이 곤륜 사신을 처음으로 만난 곳은 자연히 일본 근해나 항구 가 된다. 백제 사신이 일본에서 만난 곤륜 사신을 왜 바다에 던져버렸을까? 두 사신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백제 사신이 명정( 酩 酊 )의 상태에서 곤륜 사신을 상대로 완력을 자랑 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제 사신이 곤륜 사신으로부터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었는가? 두 사신 간 직접적인 만남이 있었다면, 상호 의사소통 은 어떤 언어로 이루어졌을까? 두 사신 간에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의 배경에 대 한 이러한 상상 외에, 그 충돌을 백제와 곤륜 이라는 나라 간 상업적 이해관계의 갈 등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도학은 곤륜의 나라가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여 일본과의 교역 관계를 독자적으로 수립하려고 하자, 당시 동남아시아 무역 을 독점하여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백제가 곤륜 의 사신 을 해상에서 살해했다고 본다. 72) 곤륜의 나라가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한 것 은 일본으로 그 무역 활동을 확대한 백제와 무역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임길채의 주장도 이도학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73) 곤륜 으로 추정한 참파나 진랍 등 동남아시아 해상 무역 왕국들이 7세기에 일본 과 독자적인 교역 관계를 수립하려고 했다는 것은 일본 사료나 중국 사료 어느 곳에 서도 고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륜의 사신이 일본까지 온 것을 일본에 대한 모종의 상업적 목적 때문이었다는 것보다 더욱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비록 백제가 7세기 중엽에 일본 무역을 독점 하려고 했다는 것이 삼국사기 나 일본서기 등의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71) 김부식, 三 國 史 記, 卷 28, 百 濟 本 紀 6, 義 慈 王 2년 정월. 72) 이도학, 앞의 논문, 100면. 73) 임길채, 앞의 책, 254면. 백제가 일본의 무역 시장에 곤륜 이란 새로운 나라가 끼어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그 사신을 바다로 밀쳐버렸다는 이도학 등의 주장도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 을 것이다. Ⅷ. 7-8세기 한국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항해 7세기 초 중국이 당에 의해 통일된 이후 한국의 많은 승려들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으며, 그 중에는 불교에 대한 더욱 깊은 공부를 위해 인도로 간 자 들도 적지 않았다. 74) 인도까지 간 한국의 스님들 중에는 중국에서 배를 타고 동남아 시아의 남중국해를 건너간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이 이처럼 당 나라 시대 중국에 서 해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인도까지 여행했던 것은 5세기 이후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해상 교통이 본격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의 의정( )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에는 아리야발마( 阿 離 耶 跋 摩 ) 법 사( 法 師 ), 혜업( 慧 業 ) 법사, 현태( 玄 太 ) 법사, 현각( 玄 恪 ) 법사, 혜륜( 慧 輪 ) 선사( 禪 師 ) 와 익명의 두 사람 등 모두 일곱 명의 신라 스님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인도에 갔 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중 혜륜 선사는 당의 태종( 太 宗 ) 연간( )에 육로를 따 라 인도에 갔으며, 현태 법사는 650년에서 656년 사이에 티베트와 네팔을 거쳐 역시 육로로 인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편 아리야발마 법사와 혜업 법사와 현각 법사 등 의 인도 여정은 그것이 육로인지 해로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75) 그에 비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두 명의 신라 스님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 안( 長 安 )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인도에 가다가 실리불서국( 室 利 佛 逝 國 )의 서쪽에 있 다는 파로사국( 婆 魯 師 國 )에 이르러 그곳에서 모두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76) 실리 불서국 은 7세기에 수마트라 섬 중부 북안( 北 岸 )의 팔렘방(Palembang)을 중심으로 흥 기한 인도네시아의 고대 해상 왕국인 스리위자야(Srivijaya)임이 확실하며, 파로사국 은 수마트라 섬 서북부의 바루스(Barus) 일대에 있었던 고대 왕국으로 추정된다. 77)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은 또 고구려 출신의 현유( 玄 遊 )란 자가 중국의 승철( 僧 哲 ) 선 사를 따라 7세기에 뱃길로 인도에 가다가 사자국( 師 子 國 ) 즉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출 가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전한다. 78) 현유도 익명의 두 신라승처럼 믈라카 해협을 통과 하는 항로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8세기에도 한국인으로서 중국에 공부하러 간 불교 승려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인 도로 구법 순례를 떠난 자들이 종종 있었으며, 그러한 인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74) 고병익, 혜초의 길을 따라, 서울: 동아일보사, 1985, 11~13면. 75)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이용범 역,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1980, 16~17면, 37~41면, 53~54면. 76) 義 淨, 앞의 책, 41면. 77) Oliver William Wolters, Early Indonesian Commerce: A Study of the Origins of Śrīvijay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67, pp. 185~186. 辭 海 - 地 理 分 冊 ㆍ 歷 史 地 理, 上 海 : 上 海 辭 書 出 版 社, 1982, 415면 참고. 78) 義 淨, 앞의 책, 102~104면

14 있는 혜초가 있다. 신라에서 704년경에 출생한 혜초는 719년에 중국에 가서 불교 중 에서도 특히 밀교( 密 敎 )를 공부했다. 그는 723년에 당시 중국 남부의 최대 항구였던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의 바닷길을 통해 인도양 벵골만의 서북부 연안에 위치해 있었던 동천축국( 東 天 竺 國 )에 도착한 후 인도의 여러 지방과 오늘날 파키스탄 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여행했다. 그는 727년에 중국의 신장( 新 疆 )성을 통해 수도인 장안에 돌아온 후 780년에 입적할 때까 지 중국에 머물면서 밀교 경전들을 번역하고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79) 혜초는 그가 뱃길을 따라 인도까지 간 여정에서와 인도와 그 주위 나라들에서 보 고 듣고 겪은 것을 왕오천축국전 이란 여행기에 기록했다. 왕오천축국전 은 1908년 프랑스의 폴 펠리오(Paul Pelliot)라는 한 동양학자가 중국 간쑤( 甘 肅 )성의 둔 황( 敦 煌 )의 한 석굴에서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왕오 천축국전 은 혜초가 쓴 원래의 여행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8세기에서 9 세기 사이에 당 나라에서 활동한 혜림( )이 편찬한 일체경음의 를 통해 드 러났다. 당시까지 중국에 알려져 있던 주요 불교 서적들에 실려 있는 난해한 단어들 의 음과 그 의미를 설명해 놓은 일종의 주석서인 일체경음의 는 혜초가 썼다는 왕오천축국전 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왕오천축국전 은 모두 세 권으 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수록된 어휘를 폴 펠리오가 발견한 두루마리 사본의 것 과 비교한 결과, 둔황 석굴의 왕오천축국전 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 원본의 절 략본( 節 略 本 )이며 그것도 첫 부분 전체와 두 번째 부분의 앞머리와 끝 부분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80) 혜림의 일체경음의 를 통해 알 수 있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혜초가 중국에 서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갔다는 사실이다. 일체경음의 에 각멸( 閣 蔑 ) 이란 지명이 소개되어 있다. 혜림은 이 단어를 곤륜( 崑 崙 ) 지방의 말이다. 옛 이 름은 임읍국( 林 邑 國 )이다. 여러 곤륜 지방의 나라들 중에 이 나라가 최고로 컸는데 이 나라 또한 삼보( 三 寶 )를 공경하고 믿었다. 라고 설명한다. 81) 중국어 발음으로 거몌 가 되는 각멸 은 그러나 임읍국 즉 참파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늘 날 캄보디아에 대한 현지인들의 명칭인 크메 즉 크메르(Khmer)로 읽어야 타당할 것 이다. 이 주장은 진랍 즉 캄보디아에 대한 다른 명칭으로 길멸( 吉 蔑 ) 을 소개하는 당서( 唐 書 ) 의 기록에 의해 뒷받침된다. 82) 각멸 은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축국전의 상권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 이다. 이것은 혜초가 중국의 광저우에서 출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캄보디아에 들 렀거나 그 연안을 지나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83) 그밖에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 79)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2004, 36면;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하)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해왔는가, 서울: 창비, 2005, 33면. 80)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2004, 37~49면. 81) 慧 琳, 一 切 經 音 義 10, 김혜경 역, 서울: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2000, 342면. 82) 唐 書, 卷 222 下, 列 傳 147 下, 南 蠻 下, 眞 臘. 83)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876면. 축국전의 상권에는 큰 바다가 넘쳐 솟아오르는 것 을 묘사하는 발해( 渤 澥 ) 와 큰 파도가 용솟음치는 것 을 묘사하는 분궁창( 湓 穹 蒼 ) 과 바다에 떠다니는 큰 배 를 가 리키는 압박( 壓 舶 ) 등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84) 이것은 혜초가 캄보디아를 들렀거 나 그 연안을 지나간 후 인도를 향해 계속해서 배를 타고 여행했다는 것을 시사한 다. 85) 일체경음의 의 혜초왕오천축국전의 중권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는 나형 국( 裸 形 國 ) 이다. 혜초가 문자 그대로 벌거벗은 주민들을 만난 것으로 보이는 이 나라 는 대개 말레이 반도 북부 서안( 西 岸 )의 한 왕국이거나 수마트라 섬의 북부 바다에 있는 니코바르(Nicobar) 제도로 간주된다. 86) 혜초는 캄보디아 남부 연안을 거쳐 니코 바르 제도 혹은 말레이 반도 북부 서안에 도달하기까지 도중에 믈라카 해협을 통과했 을 것이다. 옛날부터 남중국해에서 인도양으로 혹은 인도양에서 남중국해로 항해할 때는 일반적으로 믈라카 해협을 지나는 뱃길이 이용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7세기 익 명의 신라 스님들이 수마트라 섬 서부의 바루스까지 간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승려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믈라카 해협을 지나가는 항해 여정 을 선호했다. 중국에서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불교 승려들은 이 해협을 끼고 발 달해 있었던 스리위자야 왕국에 들러 종종 머물렀다. 예컨대 의정은 671년에 스리위 자야에 와서 6개월간 머물면서 산스크리트어 문법을 배운 후 그 이듬해 인도에 갔 다. 87) 그는 또 689년에 광저우에서 중국 승려 네 명을 데리고 다시 스리위자야에 가 서 694년까지 그 곳에 체류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고 자신 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역잡경론( 譯 雜 經 論 ), 남해기귀내법전( 南 海 寄 歸 內 法 傳 ) 등을 집필했다. 88) 의정이 인도로 가려는 불교 승려들에게 산스크리트어를 배우 고 불경을 공부하는 데 적합한 곳으로 추천한 스리위자야는 이처럼 7세기 후반에 인 도로 가는 중국 승려들에게 인도 유학을 위한 일종의 예비 학습 장소였다. 89) 고병익 은 혜초가 의정의 저술들을 읽었을 것이며 그 책들에 나와 있는 의정의 행적을 따라 스리위자야에 들러 그곳에서 몇 달 혹은 1-2년 체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90) 혜초가 중국 광저우에서 인도까지의 뱃길에 들렀거나 지나갔을 것으로 보 이는 각멸 과 나형국 등을 고려할 때, 상기의 추측은 그다지 무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84) 慧 琳, 앞의 책, 345~346면. 85) 고병익, 앞의 논문, 874면. 86) 고병익, 앞의 논문, 882~885면; 정수일, 앞의 책, 50면. 87) Oliver William Wolters, 앞의 책, p ) Daniel George E. Hall, 앞의 책, p. 48; 이용범, 해제,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1980, 191면. 89) Oliver William Wolters, 앞의 책, p ) 고병익, 앞의 논문, 879~880면

15 Ⅸ. 맺는 말 참고문헌 6-7세기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접촉의 가능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우리나라의 고대 대외관계 연구가 종래 중국, 일본, 류큐 등 동북아시아와의 관계에 집중되어 온 현실에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지역 간 해상 교류의 가능성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보 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연구들에서 제기된 주장은 이 글에서 지적된 것처럼 대부분 근거가 희박하고 비약이 심하다. 예컨대 6세기에 백제 가 부남 산 물품과 노예 그리고 인도 산 양탄자를 획득한 것, 백제의 승려 겸익이 배 를 타고 인도에 간 것은 백제가 부남 및 인도와 직접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 백제와 중국 양 나라 간 교역과 양 나라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관계를 고려하여 중국을 경유하여 혹은 중국을 매개체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서기 의 기록을 바탕으로 주장되는 백제 와 동남아시아의 곤륜 간 7세기 접촉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을 매개체로 이루어진 것 으로 추정된다. 나는 백제와 곤륜 간 접촉이 상업적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 에 동의했지만, 그것 역시 확실한 전거가 아니라 추측에 바탕을 둔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이 글에서 살펴본 삼국-신라 시대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류에서 그 흔적이 가장 분명한 것은 7-8세기 인도로 갔거나 가려던 불교 승려들의 동남아시아 여행일 것이 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중국을 거쳐 바로 동남아시아 및 인도로 간 것이 아니라, 중국 에서 장기간 체류하다가 중국 승려들이 당시 인도로 갈 때 취한 뱃길을 따라 동남아 시아 혹은 인도로 갔다. 이 점에서 그들의 동남아시아 및 인도 여행은 한국과 동남아 시아 간 해상 교류라기보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인도 간 교류의 연장선상에서 이 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그들을 다룬 것은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의정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에서 언급한 익명의 신라 스님 두 사 람과 고구려 출신 현유 스님 등이 동남아시아에서 어떤 여정을 밟았는지에 관해 아무 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특히 혜초가 동남아시아에서 어떤 나라들을 방문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현존하는 왕오천축국전 에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동남 아시아를 거쳐 간 한국 스님들의 여행기가 제대로 전해 내려와 있다면, 우리는 7-8세 기 한국인들의 눈에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비쳤는지 혹은 그들이 동남 아시아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과 추리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강봉룡,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서울: 한얼미디어, 강성보, 아유타국, 경향신문 고병익, 혜초의 길을 따라, 서울: 동아일보사,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불교와 諸 科 學 : 개교80주년기념논총,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권덕영 외, 대외문물교류연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김병근, 수중고고학에 의한 동아시아 무역관계 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김병모, 한국 거석문화 원류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학회 편, 문화론 하나, 서울: 문덕사, 김병모, 한ㆍ일( 韓 ㆍ 日 ) 쌍어문( 雙 魚 紋 ) 비교연구, 민족학연구 1, 김병모,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서울: 고래실, 김병호, 우리 문화 대탐험 - 민족의 뿌리를 찾아 아시아 10만리, 서울: 황금가지, 김부식, 三 國 史 記. 김용운, 한국이 보는 일본, 한국국제교류재단 편, 한국과 세계의 만남, 서울: 지문당, 김현구ㆍ박현숙ㆍ우재병ㆍ이재석,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Ⅱ), 서울: 일지사, 박장식, 동남아시아 언어세계의 다양성, 박장식 외,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 서울: 오름, 손보기 편, 장보고와 청해진, 서울: 혜안, 안경숙, 바다를 통해 교류된 한국 고대 문물 교류, 김영원 외, 항해와 표류의 역사, 서울: 솔, 윤명철, 장보고의 나라, 서울: 정신세계사, 이도학, 백제의 교역망과 그 체계의 변천, 한국학보 63, 이도학,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서울: 주류성, 이도학, 살아 있는 백제사, 서울: 휴머니스트,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주류성, 이선복ㆍ한영희ㆍ노혁진ㆍ박선주,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상), 서울: 소화, 이용범, 해제,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이인숙, 유리와 고대 한국, 실크로드와 한국 문화, 서울: 소나무, 이종호, 한민족ㆍ한국인은 누구인가(2), 국정브리핑 ) 일연, 三 國 遺 事. 임길채, 매몰된 백제 역사를 복원한다! - 해상무역국가로서의 백제의 모습(하), 서울: 범우사,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정수일, 문명교류사연구, 서울: 사계절, 정수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서울: 학고재,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하)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해왔는가, 서울: 창비, 조병철, 허황후, 세계일보 조흥국, 근대 이전 한국과 동남아시아간 접촉에 대한 역사적 고찰, 국제ㆍ지역연구 8(1), 최덕수, 장보고와 한국 해양네트워크의 역사, 서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하마시타 타케시( 濱 下 武 志 ), 바다에서 본 아시아 - 해국 중국의 등장과 새로운 주변 내셔널리즘, 정문길ㆍ최원식ㆍ 백영서ㆍ전형준 편,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서울: 문학과 지성사, 허일ㆍ강상택ㆍ이창억ㆍ최재수, 장보고와 황해 해상무역, 서울: 국학자료원, Amara Prasithrathsint, The Linguistic Mosaic, In Grant Evans, ed., Asia s Cultural Mosaic: An Anthropological Introduction, Singapore: Prentice Hall, Cœdès, Georges, Les Peuples de la Péninsule Indochinoise: Histoire - Civilisations, Paris: Dunod, Cœdès, Georges, Les États Hindouisés d Indochine et d Indonésie, Paris: E. de Boccard, Groslier, Bernard Philippe, Hinterindien: Kunst im Schmelztiegel der Rassen, Aus dem Französischen übersetzt von Leopold Voelker, Dritte Auflage, Baden-Baden: Holle Verlag, Hall, Daniel George E., A History of South-east Asia, Fourth Edition, London and Basingstoke, Nguyen The Anh, Indochina and the Malay World, Asia Journal 3(1),

16 SarDesai, D.R., Southeast Asia: Past & Present, Fourth Edition, Boulder: Westview Press, Wang Gungwu, The Nanhai Trade, Journal of the Malay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31(2), Wheatley, Paul, The Golden Khersonese: Studies in the Historical Geography of the Malay Peninsula before A.D. 1500, Kuala Lumpur: University of Malaya Press, Wolters, Oliver William, Early Indonesian Commerce: A Study of the Origins of Śrīvijay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舊 唐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南 史, 北 京 : 中 華 書 局, 南 齊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唐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辭 海 - 地 理 分 冊 ㆍ 歷 史 地 理, 上 海 : 上 海 辭 書 出 版 社, 梁 書, 北 京 : 中 華 書 局, 義 淨, 大 唐 西 域 求 法 高 僧 傳, 이용범 역, 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趙 汝 适, 諸 蕃 志, Translated by Friedrich Hirth and W.W. Rockhill, St. Petersburg: Printing Office of the Imperial Academy of Sciences, 慧 琳, 一 切 經 音 義 10, 김혜경 역, 서울: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三 木 榮, 日 暹 交 通 史 考, 東 京 : 古 今 書 院, 日 本 書 紀, 坂 本 太 郞, 家 永 三 郞, 井 上 光 貞, 大 野 晋 校 注, 東 京 : 岩 波 書 店, 질 의 문 발표하신 논문(혹은 최근 출판하신 책,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은 서 두에서 지적하셨듯이 바다로부터 생각하고 바다의 아시아, 특정하게는 바다를 통한 교류에 관해 논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무관심의 영역에 있었거나 말(추측) 만 무성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전근대시기의 교류의 제상에 대한 이해를 높 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보충 논의를 통해 풀었으면 하는 의문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1. 선생님의 바다를 통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거칠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다에로 의 시각 전환(즉 바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보는 시각)이 기존 역사서술 방식 (혹은 다른 역사가들의 논의수준)의 어떤 면을 보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어떤 면에서 새로운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 특히 중국과 일본을 매개로 하여 한국의 동남아시아 교류사가 구성되는 측 면이 많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보면, 선생님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연구는 다음 작업, 즉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같은 연구를 예약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치 않고서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교류사의 의미가 제 맥락 을 찾지 못할 뿐 아니라 바다의 아시아 전체상을 그리는 데에도 부족하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본 연구단의 연구주제: 동아시아의 해양문화 교섭에 대한 연구방향을 찾아 가는데 도움을 구하고자 하기에 여쭙니다. 혹여 그런 구상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특히 동아시아 해양문화 교섭을 연구하는 데에 경험상 필요한 사료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 주시기 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발표하신 부분에 대한 몇 가지 잔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서기 킨미에 천황 4년 즉 543년 기록에 대해서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하나는 부남 산 물품과 노예 2명 에 대한 해석 부분에서 부남 산 물품과 부 남 산 노예로 번역하셨는데, 꼭 부남 출신 노예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요. 또 다른 하나는 진상 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이는 일본서기 554년의 기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비단 두 필, 탑등 하나, 도끼 300개) 2. 문제는 교류 입니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

17 어도 발표문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6-8세기에는 접촉 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 교류 나 접촉 의 성격 또한 분명히 재고될 필요 가 있다고 보입니다. 당시의 해로를 통한 교역이라는 것은 사실상 근대식으로 표현하자면, 해적(약탈)무역과 노예무역이 주였다는 해석이나, 부남이 노예무역 과 해적행위로 이름 높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때문에 제 생각 으로는 백제가 부남의 물품과 노예를 구입 했는지, 해적했는지 는 분명치 않으 며, 부남산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진상 했다 하더라도 이 사실 자체가 부남 혹 은 동남아시아와 교류했다는 가정을 성립시키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입니다. 중 국을 통한 간접교류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조 공(공식무역)의 회수 또한 적었다고 보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바 진상의 규모가 국가 수준이었다고 보기에는 작았다는 것, 그리고 일본서기 543년 사로잡은 성 의 주민 (7p) 기사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9회 콜로키움)

18 제10회 콜로키움 _ (화) 종교적 관용성과 야스쿠니 신사 -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서 승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소장) 1. 야스쿠니와 일본신또( 神 道 ) 2. 종교적 관용과 일본종교 3.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 4. 종교적 관용과 정치의 다이나미즘 1.종교적 관용과 일본종교 1) 종교적 관용의 기원-유럽의 종교전쟁-30년전쟁과 베스트파리아 조약 2) 원시 일본종교-애니미즘, 샤마니즘, 多 神 論 의 세계 3) 중세 일본불교-밀교( 天 台 宗 ), 정토종, 선종 4) 무로마치불교의 세속화-정치세력으로의 예속과 반항 5) 근세 일본불교-도꾸가와막부의 헤제모니와 기독교 탄압, 淨 土 眞 宗 의 권력유착 6) 명치의 신또의 태두와 폐불정책 7) 천황권력의 확립과 국가신또 2.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 1) 1867년-- 明 治 정부 수립-- 도쿄쇼콘샤 東 京 招 魂 社 2) 1879년( 明 治 12)-- 야스쿠니징쟈 靖 國 神 社 로 개칭--국민의 이념통제를 위한, 천황 을 신의 정점으로 하고, 그 전사한 신민을 신위에 오르게 하고, 국가가 직접 관리 하는 國 家 神 道 3) 군시시설로서의 야스쿠니 ㄱ. 육군성과 해군성이 관할하고, 군사예산으로 경영되고, 주로 육군 대신이 사제장 宮

19 司 를 겸임한 군사시설.-- 병사들을 전쟁에 몰아세우고, 독려하는 심리전의 장치. ㄴ. 야스쿠니신사의 合 祀 자 일본의 내전(1877년 西 南 전쟁)까지)과 아시아 침략전 쟁의 전사자를 軍 神 으로 합사. 恩 給 을 지급 ㄷ.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독립종교법인 으로 둔갑 ㄹ. 현재 246만여 명이 영새부 靈 璽 簿 에 등재. ㅁ. 1970년까지 B C급 전범 1000명을 합사, 1978년 10월 17일에 A급 전범 14 명을 합사. ㅂ. 大 東 亞 聖 戰 사관-- 대동아성전은 자위의 전쟁, 아시아민족해방전쟁 ㅅ. 영새부에 등재되는 명표 名 票 가 일본 후생성 원호국 조사과에서 야스쿠니에 공 급. ㅇ. 일본 수상의 참배(수상은 15명, 회수로는 64회), 장관,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참 배 ㅈ. 침략신사의 넷 워크 일본각지에 호국신사, 식민지 각국에 신사(조선신사, 대만 신사, 건국신사 등) 3. 종교적 관용과 정치의 다이나미즘 ㄱ. 설명(인지욕구를 채워주는)장치로서의 종교 ㄴ. 인간의 유한성과 우주의 무한성을 매개하는 종교 ㄷ. 기복적인 종교 ㄹ. 윤리 기범으로서의 종교 ㅁ. 정치적인 가치체계로서의 종교 ㅅ. 사상, 심리적인 통제, 동원장치로서의 종교 ㅇ.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다양성과 단일성 열린 사회로서의 해양도시, 교역도시 (제10회 콜로키움)

20 제11회 콜로키움 _ (금) 바닷길을 통한 문화교섭: 고대 아랍-중국-신라의 사회경제적 방정식 Cultual Confluence along the Maritime Silk Roads: Socio-economic studies on the triangle relations among Arab-China-Shilla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프롤로그 ; 바다는 말이 없다. 1. 동시 패션 시대를 살아간 아랍인과 신라인 2. 해상로의 전개와 무슬림 상인들의 중국 진출 3. 진주와 유향 4. 신라로 떠난 아랍상인 5.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6. 바닷길을 따라 온 처용의 등장 7. 무슬림들의 고려진출 8. 무슬림이 남긴 문화유산 9. 바닷길의 문화교섭 프롤로그;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는 말이 없다. 어떤 형상도 문화재도 남기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피 안의 세상을 향한 인류의 동경은 헤엄을 치고 배를 저어 그곳으로 그곳으로 나아갔 다. 점점 큰 배와 점점 빠른 속도로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는 이 세상과의 관계 를 씨줄과 날줄로 이어갔다. 이어진 길을 따라 물자와 기술은 물론 신화와 사상, 믿 음과 패션이 건너갔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피를 섞어 인연을 나누었다. 물길로 이어지는 문명의 젖줄. 우리는 이 선과 면을 바다의 실크로드라 부른다. 이동은 속도의 전쟁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에 의하면 속도는 자본이고 동 시에 권력이었다 1). 정확한 목표를 찾아 가장 안전한 단거리로 이동해가고, 고부가의

21 물자를 공급해서 차익을 얻기 위해서는 천체에 대한 학문적 축적, 선박 제조기술, 고 도의 항해술, 해항도시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엄청난 초기투자, 시장 상황에 대한 종 합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이동의 법칙에 따라 바다는 시대가 흐를수록 육지 를 누르기 시작했으며, 유럽이 바다에 관심을 갖기 8백년도 전에 걸프해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의 해안도시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바닷길이 한창 번성하던 8-9세기경에 유럽의 콘스탄티노플-걸프해 입구 오만의 소하르-인도의 서부 해안도시-말라카-중국의 남부의 광주-중국 동부항구 항주/ 양 주-흑산도-울산으로 이어지는 긴긴 바닷길을 따라 이 도시들간에는 이미 상당부분 서로 물자를 통한 교통이외에도 문화와 지식을 나누는 폭넓은 교섭의 단계로 접어들 었다. 사람들의 고급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희귀한 물자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 종 교와 신화, 정보와 시스템이 도입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간선들이 거미줄처럼 발달하였다. 각각의 간선들은 거래되는 교역품에 따라 옥의 길, 모피의 길, 스키타이의 길, 불교의 길, 말의 길, 차( 茶 )의 길, 유리의 길, 황 금의 길, 카페트의 길 등으로 불렸다. 7세기부터 13세기 중엽까지는 아라비아와 동아시아 무역에서 육로보다는 해로가 선호되었다. 당시 세계는 동양에서는 5호 16국, 남북조 시대로 분열과 혼란을 거듭 하고 있었고, 오리엔트에서도 세계 양대 제국인 비잔틴과 페르시아 사이에 끈질긴 소모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때 바다는 정치적 장애와 통과무역의 위험부담을 현저 히 감소시켜 주었다. 동진( 東 晉 )의 법현( 法 顯 )과 당( 唐 )나라의 의정( 義 淨 ) 등은 인도 에서 돌아올 때 이 바닷길을 오가는 남해선( 南 海 船 )에 편승하였다. 혜초도 인도로 구 법여행을 할 때, 많은 구간 남방 해로를 이용하였다. 바다의 실크로드가 아랍-페르시 아 상인들에 의해 번성을 누리는 것도 이 때이다. 해로는 육로와 달리 장점과 장애를 동시에 지닌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배의 이 동을 가능하게 하는 계절풍이라는 주기적인 자연의 섭리와 기후와 날씨와 같은 자연 적인 항해조건에 크게 제약을 받는다. 때로는 항로의 좁은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해 적의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물과 식량의 보급, 몬순 계절풍에 따른 풍향이나 파고, 시기별로 가능한 항해로의 조건 때문에 4월 첫주에 출발하여 최대 1년까지 속도가 지연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해로는 육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잇점을 갖고 있다. 첫째, 해로는 정치적인 갈등이나 분쟁으로 인해 통행로가 차 단되거나 서로 다른 국경을 지나갈 때마다 부과해야 하는 과중한 통행세로부터 자유 로울 수 있었다. 생산 코스트가 떨어져,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해로는 대량수송이 가능하다. 아라비아와 중국 무역에 동원된 정크선 1대에는 낙타 1000마 리가 싣고 갈수 있는 물량을 실을 수 있다. 특히 도자기와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고 깨어지기 쉬운 물품인 경우에는 바닷길이 훨씬 안전하고 수지타산에서 유리하다. 그 래서 바다의 실크로드를 도자기의 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항해 술과 조선기술의 발달로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육로보다도 수송기간을 더 줄일 수 있었다. 걸프해에서 광주까지의 항해거리가 통상 6개월이었다. 1년에 두 차례 교역 이 이루어질수 있는 거리와 항해기술을 갖고 있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몬순의 길이었다. 그만큼 계절풍이라 불리는 몬순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다 바다의 흐름을 파악하는 해류 지식과 항해기술이 실크로드 의 성공을 보장해 주었다. 몬순의 주인공은 그리스인에 이어 단연 아랍인들이었다. 몬순(monsoon)이란 단어가 바로 아랍어의 기후, 계절 을 의미하는 '마우심 (mausim)'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5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인 도양을 중심으로 남서풍이 불어닥친다. 인도양의 순풍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4월 첫 주에는 걸프내해의 가장 중요한 교역항인 바스라나 최소한 걸프해 길목의 호르무즈 를 출발해야 한다. 6월까지는 인도양의 말라바르 해안에 당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래야 중국까지 갔다가 10월부터 3월까지 불어오는 북동의 찬 바람을 타고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몬순이 단순히 순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폭풍우를 동반 하기 일쑤다. 몬순은 언제나 은총과 저주, 파괴와 생명이라는 두 얼굴로 다가온다.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만나는 기회의 창이거나,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어 생명을 이 어가게 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추수를 앞둔 양식을 앗아가 버리는 잔혹한 신의 심판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몬순의 경험을 통해 연약한 인간은 신을 배우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겸허함도 배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결코 바다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이와 같이 배경으로 육로와 해로의 선호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육해상 실크로드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번성하기 보다는 교차적으로 발전하는 경 우가 일반적이다. 바닷길이 알려지기 훨씬 이전 시기인 기원전부터 6세기경 까지는 처음에는 북방의 스텝루트가, 그 후 장건의 서역경영으로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에 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오아시스 루트가 각광을 받았다. 물론 육로도 일방통행은 아 니었다. 서역남로와 북로, 천산남로와 북로 등으로 동서가 연결되었고, 남북으로도 1) 폴 비빌리오, 2004, 속도와 정치, 그린비. pp 바다의 길이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지는 못했다. 13세기 중엽 칭기스한에 의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동서아시아 전역이 통일됨으로써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육상 실크로드가 다시 활성화된다. 이제 몽골제국의 통행증 하나로 고려에서 헝가리까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다. 더욱이 실크로드를 정보와 교류의 장으로 인식한 몽골 조정이 국제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역참제도를 통해 무역상들을 보호해주었기 때문 이었다. 이는 생산코스트가 해로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인류역사상 육상 실크로드가 가장 번성하고, 물자와 문화교류의 파고가 동서아시아

22 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시기이다. 동시에 해로는 1258년 아랍의 압바스 제국이 몽골 에 멸망당한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동안 해로상의 주도권은 15세기 초반 ( ) 명나라의 정화에 의해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8차의 대원정의 시대를 거쳐 16세기부터는 향료와 황금에 눈이 먼 유럽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1. 동시 패션 시대를 살아간 아랍인과 신라인 오늘날 걸프해는 석유와 전쟁의 상징이다. 역사성과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그 명칭 조차도 평화롭지 못한 지역이다. 이란에게는 페르시아만(Persian Gulf)으로 아랍국가 사이에서는 아라비아 만(Arabian Gulf)으로 불린다. 우리 동해의 명칭싸움과 같은 맥 락이다. 팔레비 시절 서방과 이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아무 의심 없이 우리 모두 페 르시아만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 가장 거북한 반미국 가로 돌변함에 따라 어느덧 미국과 서방은 슬그머니 보통명사인 걸프를 고유명사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란의 바다'를 뜻하는 페르시아만에 미국군대를 진주시키 고, 평화와 세계안정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명분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오늘날 걸프해는 엄청난 전쟁을 한 차례 치르고, 또 다시 월남전 이후 가장 가공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걸프해는 그 누구의 바다도 아닌 미국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걸프해는 아랍뿐만 아니라, 세계 동서 해상 무역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지닌다.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원래 진주와 산호 채집으로 살아가던 자그만 어촌들은 석유라는 20세기의 황금을 만나면서 새로운 얼 굴로 다시 등장한다. 세계 원유의 70% 이상이 매장되어 있고, 중동 원유 물동량의 거의 대부분을 움직이는 해안이 되었다. 이는 세계경제의 급소에 해당된다. 소위 아 랍의 OPEC 산유국들은 모두 이 걸프내해에 집결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이라크가 1991년 쿠웨이트 를 침공한 것도, 이를 빌미로 아랍 내부의 문제인 걸프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것도,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라크를 공격해 석유시장 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생떼도 따지고 보면 수천 년간 내려오는 걸프해가 갖는 세계 무역의 핵심적 역할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걸프해의 모습과 그 기능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걸프해는 지난 1500년간 세계의 유행과 삶의 패턴을 바꾼 문화와 물자의 공 급처였다. 따라서 한국과 서아시아와의 접촉과 문화교류도 1970년대 석유위기 이후 형성된 경제적 이해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1000년전 부터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긴밀한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특히 바다길을 통한 외래문화의 접촉과 수용 이 두드러졌다. 이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이다. 우리문화의 깊숙한 기층에는 여러 문화가 중첩되어 있다. 아주 먼 시기부터 바다라 는 물길을 따라 들어 온 문화라는 이름의 영양소는 우리를 살찌우고 새로운 삶의 방 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자극제였다. 가까운 동북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 문 명젖줄의 가장 먼 맞은편에 있던 아랍과 이슬람의 흔적도 예외 없이 한반도라는 문 화 용광로로 흘러들었다. 고대 한반도는 다른 세상에 열려 있었고, 다른 문화의 수용 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한국인들의 국제문화감각은 당시의 세계적 흐름을 그대로 꿰 뚫고 있었으며, 이질적인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자기화에 성공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다양화를 두텁게 해주었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발굴되는 다양한 서아시아 교역품과 양식기법의 출토, 아랍 인의 신라 진출, 경주 괘능의 이방인 석상들, 처용의 존재에 관한 새로운 논의 등이 오래 전부터 멀리 서아시아의 문화가 한반도로 흘러 들어왔다는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경주 괘능 앞의 문인석상은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 는데 반해, 무인석상은 페르시아 군인의 모습을 띠고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여러 토 용의 모습에서도 아리안이나 투르크계 서역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고대 문화교류는 흔히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신라 진출이 본격화되는 8-9세기경에는 세계적 대도시인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슬람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당나라 수 도 장안-신라 수도 경주>간에는 문화적으로 거의 동시패션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콘 스탄티노플의 상류사회 왕족들이 사용하던 장식품이나 공작새 꼬리털, 비취모, 공예 품, 보석류, 여성 소품들과 장신구, 바그다드 일대로부터 전해진 여러 용도의 페르시 아 카페트, 모직 말안장, 카페트 장식품, 아라비아의 유향과 몰약, 옥 빗과 에메랄드 제품, 유리제품, 금속 수공예품 등이 중국 장안을 거쳐, 혹은 이슬람 상인들의 직거 래를 통해 신라수도 경주에까지 활발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화려하고 진귀한 수입 품과 사치품들은 신라 귀족사회의 고급문화를 일구어냈다. 경주고분에서 발굴되는 무수한 서아시아계 출토품들과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아랍상인들의 교역품 목록들 이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동시패션시대>라 함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까지 전달되는 고부가의 교역품 수 송기간이 낙타를 이용한 육상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서 6개월이면 가능했다는 뜻 이다. 교역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옛 상인들의 열망은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빠 른 방법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경주시장에 다른 상인들과 속도경쟁을 벌이며 도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육-해상 교역 모두 전속력으로 한 목표시장을 향해 달 리는 경우보다는 중간 기착지에서 수많은 교역을 계속하면서 필요한 상품들이 필요 한 지역으로 운반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에 이르는 9000km의 실크로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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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축 사 2003년 11월 5일 수요일 제 652 호 대구대신문 창간 39주년을 축하합니다! 알차고 당찬 대구대신문으로 지로자(指걟者)의 역할 우리 대학교의 대표적 언론매체인 대구대 신문이 오늘로 창간 서른 아홉 돌을 맞았습 니다. 정론직필을 사시로 삼고 꾸준히 언로 의 개척을 위해 땀흘려온 그 동안의 노고에 전 비호가족을 대표하여 축하의 뜻을 전하 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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