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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과 담 담과 벽 벽과 벽 벽과 방 수문통에서 백마장까지 글 사진 유동현 인천골목이 품은 이야기 劉東鉉 방과 방 방과 창 창과 창 現, <굿모닝인천> 편집장 인천시 대변인실 미디어팀장 그 사이에 골목이 있습니다. 前, 월간<리크루트> 기자, 편집장 옹기종기 다닥다닥 구불구불 울퉁불퉁 오밀조밀 인천골목이 도란도란 품은 얼기설기 이야기 오순도순 올망졸망 몽(夢)땅, 우리의 골목입니다. 골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 지고 있습니다. 인천광역시 대변인실 발행 최근 간행물 인천 똑똑, 대한민국 심장 인천을 만나다 일년이 즐거운 인천 놀토 여행 인천의 핫 트렌드, 키스 더 인천 시간, 먼지 되어 날다 (근간) 유네스코 지정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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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History) 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Story) 의 모음입니다. 우리 인천 은 비류의 미추홀( 彌 鄒 忽 )부터 오늘날까지 숙명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 무대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인천이 품은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드라마틱합니다. 이제 골목은 추억을 지나 역사 로 가고 있습니다. 거창한 건축물이나 유서 깊은 관 광지에만 역사와 이야깃거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오래된 골목은 압착된 시간이 켜 켜이 저장된 기억의 창고이자 우리가 살아 온 역사이며 문화 그리고 문화재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우리 지역 역사책의 첫 줄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오 래된 동네들이 단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해체돼 왔습니다. 늙은 어미를 고려장 하듯 주름진 묵은 공간들을 서슴없이 갖다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골목 있는 원도심이 인천을 따듯하게 만드는 도시의 아랫목 이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시는 해체된 지역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 문화를 회복 시 키고자 인천형 마을 만들기의 일환인 원도심 저층주거지 관리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시민의 지역 사랑 필독서로써 뿐만 아니라 도시 계획과 문화 정 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담당자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골 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명을 얻고 살아나는 창조적 공간이 되길 희망합 니다. 2013년 12월 23일 인천광역시장

4 C O N T E N T S 6 송현동 난민 亂 民 과 빈민 貧 民, 품어 준 수도국산 226 송월동 하얀 원통 건물, 스케치북에서 사라지다 24 송림동 시간이 멈춰선 흑백 黑 白 사진 그 속에 내가 있다 242 율목동 오늘 찍은 사진, 현상해 보니 과거 가 나왔다 40 화평동 냉면, 함세덕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동네 258 신흥동 피고 지고 또 피고 그렇게 꽃처럼 흘러간다 54 화수동 시간의 닻 깊게 내린 무네미 280 사 동 신사 神 社 뒷마당에서 흘러나온 요염한 웃음소리 70 만석동 근대화, 산업화 겪으며 깊게 패인 굵은 주름 292 도원동 복숭아 꽃향기에 실려 온 삶과 죽음 88 창영동 창영학교 소풍 가는 날은 비 오는 날 308 숭의동 과거의 추억도 현재의 풍경도 로터리에서 돌고 돈다 104 북성동 선창가 바람, 붉은 풍등 風 登 흔들다 324 용현동 용현벌 미나리밭에 심어진 하와이 사탕수수 124 경 동 세상의 온갖 물상 物 像 빠르게 넘던 싸리재 338 도화동 불도저로 세운 사학 왕국, 이젠 그 흔적도 그립다 138 내 동 시간이 공간을, 공간이 시간을 이어주며 곱게 늙은 동네 354 옥련동 그 길에는 불편한 진실 이 깔려 있다 162 인현동 싱그러운 웃음 풋풋한 젊음, 가슴에 지우지 못하네 368 십정동 희망의 두레박질은 계속된다 180 용 동 색 色 좋았던 그 동네, 이젠 모든 게 바랬다 382 산곡동 질곡의 외세풍 風 돌고 돈 백마장 194 전 동 쩐 찍어내던 프레스 소리 울려 퍼지다 398 작가의말 夢 (몽)땅, 인천골목 210 송학동 담쟁이 뒤엉킨 축대... 그 곳 영욕 아는 듯

5 송현동 난민 亂 民 과 빈민 貧 民 품어 준 수도국산 동구 송현동은 가깝게는 산을 품고 있고 멀리는 바다를 끼고 있다. 송현동 사람들은 바다를 공장에 내주 고 산으로 들어와 살았다. 수탈과 전쟁에 밀려서 정착한 산등성이의 삶은 늘 고달팠다. 비탈길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비탈졌다. 송현동 사람들은 난민( 亂 民 ) 아니면 빈민( 貧 民 ) 사이의 구차한 삶을 이어갔다. 그 삶을 처절하게 지탱시켜 준 것은 그 산, 수도국산이었다. 수도국산은 그들에게 어머니 품이었다. 산이기에 앞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숨 쉬는 삶의 터전이었다. 송현동 사람들은 하루의 고단한 등짐을 내려놓고 밤새 그곳 에 기대어 있다가 다음날 새벽에 다시 고갯길을 내려가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으로 향했다. 그 산은 따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 신체의 일부와 같은 존재였다.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 松 林 山 ) 혹은 만수산( 萬 壽 山 )이었다. 일제는 1910 년 이 산의 꼭대기에 노량진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를 만들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자기 나라 거류민의 식수와 군수공장의 공업용수 그리고 인천항에 정박하 는 기선( 汽 船 )에 물을 대기 위한 것이었다. 이 배수지를 관할하는 수도국이 생기면서 이 산은 수도국산 으로 불리었다. 만수산이 그 몸통에 물을 채움으로써 이름처럼 만 수( 滿 水 ) 가 된 형국이었다. 수도국산은 근 100년 가까이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구역이었다. 배수지 바깥으로 철조망이 높게 둘러처져 있었고 정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24시간 외부인의 접근을 막 았다. 당시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경계가 철저한 것은 배수지가 국가 주요 시설로서 만약에 간첩이 물탱크에 독약을 타면 인천 시민의 절반이 죽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함부로 그곳에 들어갔다가 잡히면 간첩 죄로 감옥에 갈지 모 른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송현동 7

6 그러나 높고 촘촘한 철조망일지라도 아이들의 몸을 막진 못했다. 숲이 우거진 배 수지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철조망을 뚫은 아이들은 나무총이나 칼을 들고 편을 나 눠 총싸움을 했다. 밀림 속에서의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배고프면 아카시아를 따서 씹어 먹었다. 간혹 여자애들도 곤충 식물채집을 하기 위해 개구멍을 드나들었다. 아예 수도국산에 맞닿은 집은 구멍을 뚫어 놓고 제집 드나들 듯했다. 몰래 그곳에서 봄나물을 채취하거나 겨울 땔감 잡목을 긁어모았다. 지금의 서흥초교 쪽으로는 1960년대 말까지 온통 비탈진 배추밭이었다. 배추 수확 을 하고 난 자리에 웅덩이를 파서 인분을 퍼날랐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이게 얼어붙 어서 땅과 구분이 가질 않았다. 이웃 동네에서 온 아이들은 비탈길을 가로지르다 웅 덩이에 빠지는 난감한 사고 를 당했다. 거대한 판잣집 동네는 산을 중심으로 해서 둥그렇게 형성되었다. 멀리서 보면 마 치 시루떡 포개 놓은 듯 산 밑에서 꼭대기까지 한뼘의 여유 공간도 없이 앞집 어깨를 타고 올라섰다. 틈만 보이면 무단으로 밤새 집을 지었다. 이 때문에 남의 집 마루를 통과해야만 내 집 마당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기형적인 가옥도 생겼다. 70년대 수도국산과 수문통 시장. 18만 1,818m2(5만5,000평)에 1,800채의 꼬방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안방, 건넛 방, 마루할 것 없이 창문을 열면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던 동네. 서울의 난곡과 쌍벽을 이루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은 1998년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에 들어갔고 송현동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터전을 내주고 밀려나갔다. 그 자리에 3,000 가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솔빛마을이 들어섰다. 다행히 배수지 공간은 그대로 살 려두고 공원으로 조성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들의 애환이 담긴 살림살이들은 2005년에 개관한 수도국산 달 동네박물관에 남겨져 있다. 동네가 철거될 때 전국의 고물상이 다 모여 진기한 물건 들을 수집해 갔다. 궁중이나 양반댁에서 사용한 고고한 유물이 아닌 우리 부모들이 사용했던 세간들이 세월 의 때를 덕지덕지 묻힌 채 박물관으로 들어가 추억을 전시 하고 있다. 수도국산과 이어진 작은 산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산을 그냥 돌산 이라고 불렀다. 한때 채석장으로 사용할 만큼 단단한 암석으로 된 산이었다. 이 산 위아래에도 동네 가 있었다. 아래쪽에는 피란민 수용촌이 있었다. 6 25전쟁 때 황해도 등 이북에서 피 난 온 사람들이 합판, 천막 등을 주워서 집을 짓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난민촌을 형성 했다. 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9

7 내래 평안도 순천에서 혼자 내려왔지. 열아홉 살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발 령을 기다리다 전쟁이 터져서 잠시 피한다는 게 벌써 60년이 되었어. 수용소촌에 처 음 발을 딛고 여태까지 이곳에 살고 있지. 아파트 벤치에서 쉬고 있던 최영속(82) 할아버지는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지난 이야기를 하다 곧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수용소촌 옆에는 1960년대 중반 경에 연탄 공장이 있었다. 황해도 피란민 출신 유진성( 劉 鎭 成 ) 사장은 공장의 이름을 자신의 고 향을 따서 황해연탄 으로 지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용소촌에 거주하는 황해도 사람들이었다. 빈손으로 내려와 3 8 따라지 라는 천대 속에서 가난 하게 시작했지만 많은 피란민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강한 의지로 낯설고 물설은 남한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개척해 나갔다. 돌산 위에도 사람들은 위태롭게 집을 짓고 살았다. 밤새 하꼬방집이 들어서 자고 나면 골목이 하나씩 생겨나기도 했다. 여름 장마가 끝나면 이 돌산 동네에는 천연 풀 장이 만들어지곤 했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아이들은 다이빙을 하면서 수영을 했 다. 80년대 초 이 돌산 동네는 인천에서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재개발되었다. 이 대목 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얽힌 이야기가 하나 등장한다. 취임 후 전 대통령은 시찰 할 산업시설로 인천제철을 택했다. 시찰단 일행은 먼저 인 근의 수용소촌과 송현3동사무소를 들렀다. 이어 돌산 밑의 길로 해서 인천제철 쪽을 가 다가 산동네를 보고 깜작 놀랐다. 아니 인천에 아직 저런 동네가 있다니. 이 길은 우 리나라를 찾는 외국 귀빈들의 산업시찰 루트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철거지시가 바로 1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11

8 떨어졌고 전두환 대통령 재개발 지시 에 따라 1982년 불량주택 531채를 철 거하고 그 자리에 10평에서 20평짜리 의 5층 공영아파트 송현라이프 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옛 송현라이프 아파트. 이 아파트 앞쪽 수도국산 산자락에는 1967년에 설립한 숭덕중학교가 있었다. 제 6 교회와 공민학교가 모태가 된 이 학교는 1982년 남동구 만수동으로 이전해 여중과 여고로 분리되어 현재 약 2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학교가 떠난 이 자리에 한 동짜리 누리아파트가 세워졌다. 얼마 전 아파트 바로 앞에 수도국산을 관통하는 터널과 고가도로가 설치되었으나 개통하지 못하고 흉물처럼 남아 있다. 6,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인천은 임해공업도시 라고 설명돼 있다. 바다나 항만 을 끼고 조성한 공업단지를 말한다. 송현동에는 바다를 끼고 있는 중후장대한 공장 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제철이다. 1941년에 설립해 요철을 생 산한 조선이연금속은 광복 후 조업이 중단되었다가 대한중공업으로 재가동되었고 인천제철로 이어졌다. 이후 인천제철은 1978년 4월 현대그룹으로 흡수되면서 현대 제철 로 그 이름이 바뀐다. 이 대목에서 경영인 이명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해 6월 공터에서 배구를 하는 인천중앙장로교회 교인들. 1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13

9 현대제철 사장으로 이명박이 취임한다. 그는 1981년까지 약 3년 동안 현대제철 사장 직을 맡는다. 1991년경 정주영 회장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즈음 이명박 사장은 정 회장에게 현대제철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다는 설이 있다. 일언지하 거절당 했고 이후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송현동 일대는 제철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로 대낮에도 해 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누구 하나 그것을 탓하거나 시비를 걸기보다는 산업화시대 의 자랑거리로 삼던 시절이었다. 송현동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철가루를 들이마셔 일찍 철든다 는 자조적인 말만 오갔을 뿐이다. 당시 전국의 고물은 제철과 제강 공장이 있는 송현동으로 실려 왔다. 쇳덩이는 곧 돈이었다. 고물을 잔뜩 실은 트럭은 동네 청년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화수동 쪽 에서 오는 트럭이 수문통 다리를 지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면 재빨리 트럭에 올라타 돈이 될 만한 쇳덩이를 갯골로 던져 버렸다. 물이 빠지면 전리품 을 주워서 고물상에 팔았다. 그 시절 유난히 송현동에는 고물상이 많았다. 송현동은 원래 산을 제외하고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과 갈대 무성한 습지가 많 던 동네였다. 일본인 요시다는 1939년부터 43년까지 5년에 걸쳐 이 지역을 매립했 고깃배가 드나들던 복개하기 전의 수문통. 1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15

10 다. 화평동과 배다리까지는 갯골로 그냥 남겨 두었고 나머지는 땅으로 만들었다. 그 는 매립으로 떼돈을 벌었고 그 일부로 송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지금은 공립학교이 지만 당시에는 사립학교였다. 매립해 만든 학교라 백중사리 때는 바닷물이 역류해서 교실까지 밀려들어왔다. 가끔 복도에 물고기가 펄떡거리기도 했다. 현재의 화평치안센터와 송현치안센터 사이, 약 200m 거리에는 수문통 이라 불린 갯골 수로가 있었다. 지대가 낮아 인근 동네의 온갖 생활하수가 이곳으로 다 흘러들 었다. 이곳에 종종 탯줄이나 사산아( 死 産 兒 )를 싼 시멘트 봉지가 둥둥 떠다니기도 했 다. 여름이면 악취가 코를 찌르는 똥바다 였다.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밀물은 수문 통을 정화시켰다. 썰물로 나갈 때 온갖 쓰레기는 수로를 따라 바다로 떠내려갔다. 물 때 따라 작은 돛단배가 수문통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멋모르고 고깃배를 쫓아온 갈 매기가 이곳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배짱 좋은 아이들은 수문통 갯골에서 멱을 감기 도 했다. 동네사람들은 이 수문통을 세느강 이라고 불렀다. 결코 낭만적인 삶을 살진 못했지만 송현동 사람들은 빈곤 속에서도 그렇게 늘 낭만을 꿈꿨다. 여름철 장마 때는 전동, 인현동 등 윗동네 하수구로 빠진 공들이 다 떠 내려와 이 곳 아이들은 돈 주고 공을 산 적이 없었어요. 수문통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 역 방송인 한영우(56) 씨의 추억담이다. 화평동 쪽 수문통 끝자락에는 한동안 수상 가옥 이 있었다. 갯골을 일부 복개한 곳 위에 많은 판잣집들이 들어섰다. 안방 밑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렸다. 우리나라 유일 의 수상 가옥이었던 셈이다. 이 곳에 1962년 9월 1일 수문통시장이 개장했다. 슬레이 트 지붕에 판자벽을 한 이 시장의 건물은 일층은 가게이고 이층은 살림집인 일종의 주상복합이었다. 시장으로 시작했지만 화평동 쪽 입구에 순대집과 그 반대편 입구에 과일가게 몇 집만 장사를 하는 등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결국 대부분 주거지로 사용 되었는데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통로는 늘 어둠침침했다. 하루에 두 번씩 바 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방바닥에 누우면 물결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1996년 수문통의 나머지 부분이 복개되었고 수상 가옥은 철거되었다. 수문통 골목에는 아직도 공장 사택으로 사용했던 일본식 주택들이 남아있다. 1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17

11 송현동 개천가에 허름한 노점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밤늦도록 노점들이 불을 밝 히면서 일대는 자연스레 야( 夜 )시장이 되었다. 1936년에 노천시장에 양철지붕을 얹 어 일용품시장 으로 변모하였다. 이후 소성시장으로 불리다가 1950년 4월에 지금의 중앙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앙시장은 동인천역을 끼고 있는 덕분에 늘 사람들 로 번잡한 인천의 대표 시장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은 크게 혼수 상가, 그릇 상가 그리고 양키시장 으로 형성되며 몸집이 커졌다. 그중 가장 중앙시장의 색깔을 진하게 보여준 게 양키시장이었다. 양키시장의 정식 이름은 송현자유시장 이다. 송현동 100번지 양키시장. 물들인 군복, 청바지, 보세옷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은 날 이곳과 얽힌 추억을 한두 개쯤 갖고 있는 무대 다. 1965년 12월 정식으로 시 장 등록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6 25전쟁 직후부터였다. 인천에는 미군부대가 곳곳에 있었다. 부대 뒷문으로 흘러나온 양키물건들이 이곳에서 은밀하게 거래되었다. 양주 와 양담배, 향수, 로션, 초콜릿, 스낵, 통조림 등. 양키 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 보다 는 동경심으로 인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던 물건들이 좁은 선반에 빽빽하게 진열 돼 있었다. 다른 편 가게에서는 간이침대, 야전삽, 수통, 군용식량 등 각종 미군용품 도 거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돈 달러와 이른바 빨간책 이라고 불리던 플레이 보이, 펜트하우스 등 같은 야한 잡지도 구할 수 있었다. 인천에 양키들은 이제 없다. 양키는 갔지만 아직 양키시장은 남아있다. 세월의 무 게를 이겨내지 못한 듯 어스름 조명 아래 늙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다. 양키시장은 일반 시장과는 모습부터가 다르다. 3층 높이의 건물들이 시장을 사방으로 막고 있 다. 시장이라기보다는 골목이다. 100백여 개가 넘는 작은 가게들이 하루 종일 한 조 각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골목에 줄지어있다. 30촉 짜리 백열등 아래서 은밀히 거래하기 딱 좋은 분위기다. 쩨 를 쫓아 드나들던 사람들 발걸음으로 항상 활기를 띠 던 시장도 이제는 바람만이 골목을 쓸쓸히 배회한다. 1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19

12 다 죽었어. 가게 지키던 사람은 늙어죽고 가게는 장사 안 돼 죽었지. 마트에 가면 이 제 미제 물건 다 살 수 있잖아. 오랜 단골이나 그냥 옛 생각나서 가끔 들르는 사람들 밖 에 없어. 아들의 어린시절 별명을 상호로 쓰는 똘똘사 허순영 사장(74)의 설명이다. 양키시 장 가게 주인 중에는 93세 된 현역 김고분 할머니도 있다. 김 할머니는 한 평이 채 안 되는 가게에 매일 나와 미제 물건에 쌓이는 먼지를 털어낸다. 양키시장의 물건은 이 제 더 이상 미군 양키들에게 나오지 않는다. 남대문시장 중간도매상들이 정식으로 수입된 물건들을 이곳에 공급한다. 가게 진열대에 놓여있는 허쉬 초콜릿과 코티 분에 쌓이는 것은 먼지뿐이 아니다. 여러 가지 과거 가 그 위에 쌓인다. 그들이 사고파는 것은 이제 양키 물건이 아니라 추억 이다. 시간에 떼밀려 가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뒷모습은 슬프고 서럽다. 수선, 마크, 명찰, 오바로크 빛바랜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는 양키시장 골목 이 끝나는 곳에 극장이 하나 있다. 애관 2관 이라는 희미한 글자가 붙어있는 오성극 장이다. 마치 시장 위를 올라탄 모습을 하고 있는 오성극장은 씨네팝, 애관 2관으로 이름을 바꾸며 운영되다가 2003년 4월 11일에 스크린을 내렸다. 문은 쇠줄로 굳게 감 겨져 있다. 옛 영화의 잔상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바로 앞에서 50여 년 동안 구제 품 옷을 팔아 온 흥신사 주인에게 극장에 들어가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거긴 뭐 할려 고 올라가요. 아마 귀신 나올텐데.... 극장 바로 앞에는 재난위험시설(D)급 지정 안 내표지판이 붙어있다. 이제 극장은 우리의 기억뿐만 아니라 눈에서도 영원히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2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21

13 그때, 이곳 송현동 Map & Photos 옛 돌산 지역 현대제철 솔빛마을아파트 ➐ (옛 수도국산) 수도국산 ➌,➑ 박물관 ➎ 누리아파트 ➒ 수문통거리(복개천) 동부아파트 송현초 중앙교회 ➍ ➏ 미림극장 ➊ 동인천역 북광장 ➋ 중 앙 시 장 ➊ 순대골목 동인천북광장 옆에 순대 골목이 있다. 얼마 전까지 20여 곳의 순대 국밥집이 그야말로 순대처럼 마주 보고 길게 늘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동인천북광장 조성으로 한쪽이 철거 된 상태다. 이 순대 골목의 뿌리는 30여 년 전의 수문통 시장이다. 당시 화수부두, 만석 부두와 가까운 수문통 주변에는 항만이나 공장 노무자들이 즐겨 먹던 순대 국밥집이 시장통 안에 많이 있었다. 수문통 시장이 헐 리면서 국밥집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고 기 존에 있던 몇몇 국밥집들과 합쳐지면서 순 대 골목이 된 것이다. 숭의동에서 이화순대 와 함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시정순대도 여기서 시작했다. 이 순대 골목은 지난 1997년에 특색음식거리 로 지정됐다. ➋ 중앙시장 1935년 무렵 박영섭이 동인천역 부근에 벌집 모양의 시장을 개설 한 데 이어 인천상공협회 창립자 였던 유창호가 현 중앙시장 인근 개천가에 야시장을 운영하면서 오늘의 시장 개설의 터를 닦아놓 았다. 이어 1949년 송현동을 비 롯 전동, 숭의동, 도원동 등 각처 의 노점 자유상인들의 소성자유 시장자치회가 합동하여 지금의 '중앙시장'이 발족되었다. 개천을 복개한 후 건물을 지어 시장을 만들고 갑, 을, 병 지구로 나누었다. ➌ 제수변실 송현배수지에는 상단이 원통형으로 생긴 제 수변실( 制 水 弁 室 )이 있다. 제수변실은 배수관 의 단수 및 유압 조절 기능을 하는 제수 밸브 를 보호하는 시설로 물을 통제할 수 있는 기 계적인 장치다. 일체식 무근 콘크리트의 원통 형 구조로 상부를 페디먼트로 장식한 출입구 와 창문이 있다. 출입구 위에는 백 번 흐르면 만 번 빛난다 는 뜻의 만윤백량( 萬 潤 百 凉 ) 이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3호 지정돼 있다. ➍ 송현시장 송현시장은 중앙시장과 길 하나를 놓고 마주하고 있다. 1960년 대 초에 개설한 송현시장은 2008년 6월 문화관광부와 지식경제 부, 중소기업청 등으로부터 문화관광형 시장이란 타이틀을 받 았다. 시장 안에는 옛 향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빨래터와 펌프 장 등을 복원해 놓았고 길거리갤러리도 만들었다. 송현시장이 믄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된 것은 인근에 골목들이 그대로 살아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대 달동네였던 곳을 추억할 수 있는 수도국산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➎ 해방 우물 수도국산 주변에는 우물들이 많았다. 그 중 송현시장에서 수도국산 오르는 골목에 있는 해방 우물 이 유명했다. 흔히 층층대 우물이라고도 불렀다. 몇 년 전까지도 이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 은 메워버렸다. 우물을 개통할 때 세운 작은 기념석이 한편에 세워져 있다. ➏ 미림극장 1957년 11월 고희 석 대표가 송현동 중앙시장 진입로에 천막극장을 세워 평화극장 이란 이 름으로 천막을 세 워 무성영화를 상 영하면서 시작되 었다. 영화 뿐만 아니라, 남진과 나훈아 등의 리사이틀 무대이기 도 했다. 참고로 1958년 발행한 인천연감에 의하면 미림극장이 개관한 이듬해인 1958년 한 해 동안 인천에서 영화를 관람한 연 관객 수는 75만 5,848명이었다. 당시 인천 인구가 30만 명 정도 였으니 시민 모두가 1년 동안 두 차례 이상은 영화를 본 셈이다. 지난 2004년 7월 29일 영화 투가이즈 를 끝으로 문을 닫은 미 림은 지난 10월 2일 250석 규모의 실버전용극장으로 리모델링 해 다시 개관했다. ➐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수도국산 달 동네 박물관은 지난 2005년 10월 개관했다. 동네어귀, 구멍가게 등 달동네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고 연탄을 배달한 유완 선 씨, 대지이발관을 운영하던 박정양 씨 등 이곳을 삶의 터전으 로 평생 살아 온 사람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생생함을 더한다. ➑ 수도국산(송현) 배수지 수도국산 정상 부근(2만 5천 평)에 일본인 나카지 마( 中 島 )가 설계해 1906 년 착공하여 1908년 10 월 송현 배수지를 준공한 데 이어 기타 잔여 공사 를 하고 1910년 4월 인 천의 상수도를 운영, 관리 하기 위한 인천수도사무 소를 설치했다. 그해 9월, 마침내 약 4년 여의 공사 끝에 인천에서 노량진에 이르는 인천 상수도 건설 공사를 모두 마무리하였다. 당시 수돗물 공급량은 시민 7만 명이 하루 사용할 수 있는 분량으로 현재의 1백분의1 수준이었다. 수 돗물은 주로 일본인들 위주로 공급되었다. ➒ 적십자병원 1956년 7월 25일 수문통 옆에 경기적십자병원이 개원했다. 주 변에 거주 인구와 큰 공장들이 많았기 때문에 병원의 수요가 많 았다. 1977년 3월 30일 송현동에서 남구 숭의동 숭의로타리 근 처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인천적십자병원으로 바꾸었다. 송현동 자리는 천주교회가 들어섰고 현재는 천주교 성당 재건축을 위해 비어있는 상황이다. 적십자병원은 1996년 6월 5일에 연수동 결 핵요양소 자리로 재차 이전하였다. 2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현동 23

14 송림동 시간이 멈춰선 흑백 黑 白 사진 그 속에 내가 있다 송림의 산들은 100년 넘게 사람을 안고 살았다. 이발관, 한약방, 목욕탕, 솜틀집, 국수집 그 산을 터전 삼아 살던 사람들의 오랜 삶의 공간들이다. 한자리에서 4,50년은 기본. 아직도 그곳에 남아 엄연한 현재 의 사진첩을 구성하는 소재들이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내쉰 숨이 만들어낸 기억과 시간이 훑고 간 흔적 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성냥개비로 지은 양 집들이 산산조각 파편처럼 흩 어졌고 이곳저곳에서 부엌 가스통이 폭발해 불길이 계속 퍼졌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 지 못하고 거대한 흙더미 속에 마을 전체가 묻혀 버렸다. 외할머니댁에 놀러온 어린 남 매, 새벽에 가게 일을 하고 잠시 집에 들른 주부, 폭우가 쏟아져 날품 팔 일 없어 집에 있던 가장 등 26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1990년 9월 11일 낮 12시 40분, 동구 송림5동 박문여고와 선인중학교 사이 흔히 부처 산 이라고 부르는 야산 축대가 무너지면서 수백 톤의 흙더미가 21가구가 살고 있는 가 옥 12채를 덮쳤다. 이 산은 돌부처 88개가 똬리를 틀고 있던 일본 절이 있었다는 이유 로 혹은 산등성가 부처 형상이라 하여 부처산 혹은 부채산 이라고 불리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 부처님의 자비는 없었다. 전달부터 야산 중턱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빗물에 쓸려서 많이 기울어져 주민 들은 밑둥을 베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 나무에 걸려 있던 흙더 미가 며칠동안 내린 집중호우로 높이 15m 가량의 야산 중턱에 내려앉으면서 축대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당시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합동분향소와 매몰지를 방문해 유 가족을 위로했다. 송림동 25

15 송림동의 산들은 이렇게 늘 위태로웠다. 거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도 늘 위태 로웠다. 1900년대 초 일본군이 중구 전동 부근에 주둔하면서 일제에 쫓겨 온 사람들이 송림동 이쪽저쪽 산등성이에 움막을 지었다. 이어 6 25 전쟁이 터지자 황해도 등 이북 사람들이 산비탈에 솥단지를 걸었다. 그들은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임 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반백년( 半 百 年 )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6,70년대 접어들 면서 공장 일자리를 찾아 충청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식솔을 이끌고 산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불꽃을 피어낸 장본인들이다. 송림동의 산들은 그렇게 100 년 넘게 사람을 안고 살았다. 송림동을 품고 있는 대표적인 산은 송림산( 松 林 山 )이다. 송림산은 해발 58m의 아트 막한 산이다. 나중에 수도국 배수지가 산 정상에 들어서면서 수도국산 으로 불렸다. 송림산을 동서로 나눈다면 한쪽은 송림동, 다른 한쪽은 송현동이다. 서쪽 송현동 기슭 은 대부분 재개발이 돼 솔빛마을 이란 동네가 되었다. 송림동 쪽은 아직까지는 불도저 의 삽날을 피해가고 있다. 떠나고 들어오기를 몇 번. 주인은 바뀌었지만 집은 그대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 애초에 빈 땅에 말뚝 박고 집을 지었기 때문에 동네는 산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다. 남의 집 마루와 안방을 지나야 내 집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기형적인 가옥들과 사람이 죽어도 관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골목이 있었다. 등 굽은 골목들은 마치 쟁기 질한 것처럼 길게 산 밑으로 구불구불 내려간다. 산 아래에는 송림로터리, 현대극장, 현대예식장, 동부시장, 노동회관 등 도시 기능의 요소를 두루 갖춘 안 송림동 이 있다. 이곳이 송림동의 안쪽이요 그 밖은 송림동의 바깥이다. 6,70년대 송림동은 실제로 인 천 도심의 끝이었으며 개건너 등 교외에서 들어오는 첫 지역이었다. 그 시절 안 송림 은 일종의 다운타운이었다. 안 송림은 지대가 낮다. 동네 옆으로 바다와 통하는 갯골이 굽이 흘렀다. 주변은 온 통 미나리깡 아니면 배추밭이었다. 낮은 곳을 북돋워 평지를 만들었지만 비만 오면 물 이 고였고 사리 때는 바닷물이 범람하기 일쑤였다. 1965년도에 개교한 서흥초교 학생 들은 한동안 등교할 때마다 다 탄 하얀 연탄을 들고 와 운동장에 던지는 게 일이었다. 이 벌판에 곡마단 천막이 쳐지고 원숭이를 앞세운 약장수들이 모이면서 이 땅은 활기 를 얻었다. 1960년대 초 큰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500평 규모의 2층짜리 현대극장이다. 시내 도 아닌 변두리에 극장이 들어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시내 영화관 에서 몇 달 전에 내린 영화 두 편을 동시 상영했다. 한국인이 만든 중국 영화와 스토 리 엉성한 에로 영화가 주로 올려졌다. 그나마 비가 줄줄 새는 필름은 끊어 먹기 일쑤 지금은 사라진 부처산 아랫동네. 이곳에 동산휴먼시아 아파트가 들어섰다. 2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27

16 옛 현대극장. 였다. 그래도 인근 노동자와 서민들의 안식처요 시네마 키드들의 더할 나위 없는 꿈의 공간이었다. 영화 대신 땅딸이 이기동, 비실이 배삼룡이 쇼를 하는 날이면 극장 앞길은 인산인해였다. 현대극장은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이 일대는 송림동이란 명칭보다 현 대극장 동네로 통했다. 주변의 상가나 가게들은 현대 라는 상호를 붙이는 것을 자랑스 럽게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근의 대한중공업도 현대그룹에 넘어가면서 현대 제 철이 되었다. 현대극장은 1998년 2월에 문을 닫았다. 한동안 비어 있다가 지금은 할인 마트가 들 어섰다. 극장의 외관은 앞면만 조금 바뀌었을 뿐 지붕과 시멘트 벽 등은 개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뒷면 벽에 현대극장 이라고 쓴 빛바랜 페인트 글씨 는 시간의 흐름을 대변해 준다. 현대극장 바로 옆에는 현대예식장이 있었다. 중구 용동에 있는 신신예식장과 쌍벽 을 이루던 예식장이었다. 김포, 강화는 물론 서구 지역에 마땅한 결혼식장이 없었기 때 문에 시외버스가 닿는 이곳에서 결혼식이 많이 열렸다. 주말이면 하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로 교통 혼잡을 빚곤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제과점과 정형외과가 들어섰다. 그 뒤편으로 아주 독특한 2층짜리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통로에 회랑이 길게 놓여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좁은 골목이 격자형으로 뻗어있다. 2층은 각 집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으며 각 동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임에도 불 구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백열등이 켜져 있다. 그만큼 어둠침침하다. 일명 똥고개 라 불리던 송림 송현동 고개. 2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29

17 이 건물의 이름은 현대상가. 아래층은 가게, 윗층은 살림집인 일종의 주상 복합 건물 이다. 상가가 건립되기 전까지 이 터는 인근에서 키운 배추 등 채소 경매가 이뤄지고 노 점상들이 장사를 하던 곳이다. 70년에 현대상가 건립을 추진하면서 노점상들을 길 건 너 시장 깡마당 빈터로 강제 이주시켰다. 1971년 4월 현대식으로 지은 상가를 완공하고 연면적 13평씩 점포당 300 ~ 350만 원에 분양했다. 당시 집 한 채 값에 맘먹는 액수다. 그즈음 쫓겨난 노점상들은 결속을 다지며 상권을 형성해 그해 12월 24일에 동부시 장을 설립한다. 이후 원예협동조합공판장, 동구상가, 궁현상가, 송육상가, 중앙상가 등 을 현대시장 의 이름으로 한데 아우르며 한때 인천 최대의 시장으로 발전한다. 반대로 현대상가는 몇몇 포목점들이 장사를 했을 뿐 제대로 분양이 되지 않았다. 결국 상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1층 가게도 값싼 주택으로 세를 주면서 점차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두 시장의 신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현대상가는 지금 경쟁에서 밀려난 채 초췌하 고 늙수그레한 모습으로 그렇게 4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현대극장 못지않게 유명한 건물이 노동회관이었다. 한국노총의 사무실이 있었기 때 문에 그런 이름을 얻었지만 실제는 지역 복지회관의 성격이 강했다. 원래는 50년대 말 혹은 60년대 초에 현대극장 자리에 세우려고 했으나 땅을 파고 보니 개펄이 나와 포기 했다. 제삼교회 바로 앞에 터를 잡은 3층 건물에는 목욕탕, 이발소, 미용실, 예식장, 식 당 등이 들어섰다. 지역민에게 인기 있었던 시설은 바로 목욕탕과 이발소였다. 다른 이 발소가 200원 할 때 회관 구내이발소는 30원이었다. 영등포, 수원 등에서 날 잡아서 온 가족이 머리를 자르러 왔어요. 이발한 후 목욕하 고 짜장면 한 그릇 먹고도 돈이 남거든. 한창때는 이발사만 15명을 두고 일했어요. 3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31

18 2000년 동구청소년수련관이 건립되기 전, 끝까지 노동회관에 남았던 구내이발관 이 송철(73) 사장의 설명이다. 한국노총이 떠나면서 회관이 폐쇄되자 그는 바로 옆에 회 관이발관 을 열고 지금까지 가위를 놓지 않고 있다. 얼마 전부터 37세의 아들이 같은 자리에서 가위손의 대를 잇고 있다. 현대극장 옆으로 알록달록한 간판을 단 주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닭알탕 을 주메뉴로 파는 집들이다. 닭알은 죽은 암탉의 뱃속에서 꺼낸, 달걀이 안된 알이다. 50년 전 맞은편 현대시장 닭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닭알을 포장마차에서 얼큰하 게 찌게로 끓여 내놨다. 현대제철과 인근 철공소에 다니던 노무자들의 입맛을 사로잡 았다. 이후 공락주점을 시작으로 형제, 창석, 왔다, 풍차, 현대주점 등 6곳에서 앞다퉈 닭알탕을 칼칼하게 끓여내면서 닭알탕 거리 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송림동에는 개건너~ 제물포역 ~ 동구청 ~ 동인천역 ~ 현대제철을 이어주는 로터리가 있다. 인천에서 숭의로터리와 쌍벽을 이루던 로터리였다. 이 로터리 밑에 사연과 곡절 이 많은 지하도가 있다. 1988년 2월, 로터리 밑 땅속을 파기 시작했다. 딱 2년 후면 3평 남짓한 점포 102개와 지하도로를 갖춘 1만1,100m2 규모의 지하상가가 들어선다는 장밋 빛 기대감 속에 진행됐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시공을 맡은 회사가 넘어갔 고 또 다른 시공사도 부도났다. 인천시가 1993년 4월에 떠맡았지만 사업은 제대로 진척 되지 않았다. 상가만 들어서지 않았지 지하통로는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출입문이 봉 쇄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잊혀져 갔고 지하도는 점차 도시의 흉물이 되었다. 3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33

19 송림아뜨렛길의 휴식 공간. 특히 여름에 인기다. 2012년 8월 이곳에 빛이 들어왔다. 거의 15년 만의 일이다. 귀신 나올 것 같았던 어 두침침한 공간이 산뜻하게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송림아뜨렛길 이란 멋진 이름도 얻었다. 이곳에는 LED 조명을 이용해 상추와 배추, 무 등을 키우는 식물공장 동이네다 랑채 를 비롯해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널찍한 북카페와 사진,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조성됐다. 개장하자마자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으며 특히 일본 NHK 는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농산물의 안전성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송 림아뜨렛길 를 취재해 방송했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된 것이다. 송림동과 송현동의 접경 지역인 서흥초교 옆으로 가파른 고갯길이 나있다. 사람들 이 똥고개 라 부르던 마루턱이다. 송림동 사람들이 수도국산 옆으로 해서 화수동, 만 석동으로 다니던 길이다. 이 고개를 따라 배추, 호박, 복숭아 등을 키우는 밭이 널려 있 었다. 그 밭에 똥거름을 주었기 때문에 똥고개 라는 이름을 얻었다. 겨울이 되면 얼어 붙은 구덩이에 아이들이 빠지는 난감한 일이 종종 생기기도 했다. 지금의 송림동 이마 트 자리는 매립하기 전에 바다였다. 인분을 실은 똥차들이 이곳에다 똥을 버렸다. 바로 옆 염전에서 멱을 감던 아이들은 변소에 빠트린 동전을 줍기 위해 똥차를 따라 다녔다. 실제로 똥차는 가끔 동전을 흘리고 다녔다. 3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35

20 송림동이 인분과 맺은 인연은 오래 갔다. 1977년 똥고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송 림6동 옛 대주중공업 뒤편, 현 백병원 부근에 송림위생처리장이 설립되었다. 이전에 숭의동과 연희동 등에서 처리되었던 인천 전역의 분뇨가 이 똥공장 에서 처리되었다. 여름날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역한 냄새에 주민들은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동네에서는 밥 먹는 시간을 배꼽시계에 맞추질 않았어요. 처리장이 가동을 멈춰 야만 그때 숟가락을 들었을 정도였어요. 어휴, 냄새 대단했지. 송림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윤배(55) 씨는 불현듯 기억 속의 냄새를 맡았는지 미간이 살짝 접혔다. 이 처리장은 1996년 9월에 폐쇄되었다. 이 부지는 2014 인천아시 아경기대회 배구장으로 재탄생했다. 똥공장 자리에 세워진 배구장의 이야기는 송림동 의 극적인 발자취의 하이라이트다. 3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37

21 그때, 이곳 송림동 Map & Photos ➊ 도축장 ➍ 동명초교 ➐ 계명원 ➋ 배다리 ➏ ➎ ➍ 현대극장 ➌ 송림 로터리 ➊ 동구청 서흥초교 동부시장 가좌동 ➓ 재능대 ➑ ➒ 동산 중 고 제물포역 ➐ 현 동구청 자리는 인천보건조합이 운영했 던 도축장이었다. 1933년판 인천부사에 의하면 인천도축장은 1916년 9월 6일에 허가를 시작으로 부지 평수 689평, 건물 평수 99평, 직원으로서는 부서기 1명, 도 살부 3명을 두었고 소와 돼지를 중심으로 연 평균 6천여 마리를 도살했다고 기록하 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곳을 때려 잡는 다 는 일어( 日 語 ) たたく다다꾸 에서 와전된 다데기깐 으로 불렀다. 1968년 1월1 일 동부, 북부 출장소를 합병하여 도축장이었던 이곳을 동구청사로 사용하였다. 초 창기에는 도축장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구청 마당에는 도축장에서 희생 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편 도축장은 1974년까지 인천 시 관영으로 학익동 제 1도축장, 갈산동 제 2도축장으로 운영했고 이후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구월동으로 이전했다. 현재는 십정동에 있다. ➋ 송림동 성당 1956년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로 유명한 이희태에 의해 세워 진 성당이다. 이희태는 명수대성 당(1954), 혜화동성당(1960) 등을 통해 입방체형의 근대 성당 건축 을 시도해 그의 건축물들은 당시 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평 가 받았다. 송림동 성당은 종탑과 본당이 구분된 독특한 구성으로, 건립 당시 성당 주변의 한옥을 의식한 듯 모던한 벽면에 리듬감 있는 창호 계획과 재료를 달리 적용하여 분절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전쟁 후 가톨릭 구제회에서 밀가루와 헌옷 등 구호물자를 보내 주었는데 이 걸 받으려 성당에 나오던 밀가루 신자 가 많았다고 한다. ➌ 송림리 수켓장 인천은 축구, 야구 등 서양의 스포츠들이 들어온 개항장이었다. 겨울철 대표적 스 포츠인 스케이트도 비교적 많이 보급되 었다. 1925년 제1회 전( 全 )인천빙상경기 가 한적한 교외였던 송림리 옛 현대극장 이 있는 송림오거리 부근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정식 빙상경기장이라기보다 공터에 물을 채워 얼린 경기장이었다. 당시 신문에는 스케이트를 수켓 이라고 표기했고 경기장을 수켓장 이라고 불렀다. 30년대 이후부터는 각종 스케이트 경기를 숭의운 동장에 물을 얼려 빙상장으로 만들어 치렀다. 설립자 박창례 선생은 1929 년 도원동 보 각선원에서 관 서학원으로 시 작해 1931년 유동에 일본 인의 땅을 빌려 현 동명초교의 근간이 된 동명학원 을 설립한다. 그러나 1939년 일제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東 明 聖 王 )의 이름을 딴 간판은 내걸 수 없다 는 트집을 잡아 학교 이름을 일 본식 이름인 소화강습회 ( 昭 和 講 習 會 )로 개명했다. 1946년 8월 일본 동경대 전염병연구소의 실험용 우사를 인수해 지금의 동명 초교 터를 만들었다. ➎ 인천 두묘제조소 일제강점기 때 송림동에는 동양에서 유일한 두묘 제조소가 있었 다. 두묘( 痘 苗 )란 우두약으로 당시 일본인들은 한우인 송아지에서 뽑는 두묘를 일본. 중국, 미국 등 전 세계로 공급했다. 두묘는 봄 가을 2회에 걸쳐 제조되었는데 1회 생산품이 350만 명 분이었다 고 한다. 당시 송아지 값이 1,000원이었는데 우두로 사용하면 1 년에 한 마리에서 약 3만 원의 수입을 올릴 만큼 질이 좋았다. ➏ 노다 장유공장 1905년 11월 10일 모기와 다카나시 가문이 조선으로 건너와 인천부 송림리 19통 에 일본장유주식회사 인천공 장을 설립하였다. 일본장유주 식회사는 8대를 걸친 노다장 유 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 해 1917년 노다장유주식회 사( 野 田 醬 油 株 式 會 社 )로 명 칭을 바꾸고 된장, 간장, 조미 료, 향료, 청주, 소주 등을 생 산하는 종합식료품 제조회사로 변신하였다. 일본 간장과 일본 된장을 대량으로 생산해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과 만주에 거주하 는 일본인에게 장류를 판매했다. 당시 인천은 간장과 된장의 주 원료인 대두를 경기도와 황해도에서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입 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50년 인천동부경찰서가 노다 장유 공장으로 이전했다. 현재는 인천경찰기동대가 사용하고 있다. 현 진로아파트 자리에 1951년 11월에 세워진 고아원이다. 60 년대 계명원의 원생들은 3, 4년씩 늦은 나이에 인근 서림초교 에 진학했는데 이들이 들어간 축구부 등 서림초교의 운동부 는 인천 시내 학교 대항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1996년 10월 21일 강화군 양도면으로 이전했다. ➑ 인천상업강습회 1938년 7월 율목동에서 인천 1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던 이흥선의 주도로 인천상업강습회를 설립했다. 이는 조선인의 순수 재원으로 운영된 유일한 민족학교였다. 1939년 인천상 업전수학교로 개편했고 1941년 11월 영원농원 배 밭이 있던 송림동 현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고 1946년 동산중학교로 교 명을 변경했다. ➒ 박문여자중고등학교 1940년 5월 18일 송림심상소학교(현 송림초등학교)의 교실 두 칸을 빌려 2개 학급에 120명(조선인, 일본인 여학생 각 60 명)을 모아 첫 입학식을 치렀다. 당시 인천부에는 여학교로 는 인천공립고등여학교가 유일했기 때문에 이 여학교의 개교 는 인천부민의 염원을 이룬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1945년 9 월 30일 인천박문여자중고등학교로 학교명을 변경했고 1956 년 8월 30일 부평교사에서 현 송림동 교사로 신축 이전하였 다. 이 학교는 곧 송림동 시대를 마감한다. 박문여중은 2014 년 2월에, 박문여고는 2015년 2월에 연수구 송도동으로 배움 의 터를 옮긴다. ➓ 동산공원( 東 山 公 園 ) 70년대 인천시사 에 의하면 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 고 시 제13호로 지정된 곳으로 원래 도시계획상 아동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복 후 무선고등학교(현 대헌공고) 부지로 일부 편입되었고 특히 선인재단이 무허가 로 체육관을 건설하면서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 3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송림동 39

22 화평동 냉면, 함세덕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동네 도시를 가로지르는 철도로 인해 중심지에서 조금 비켜서 있던 화평동.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요리책 어느 페이지에도 없던,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냉면의 발생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냉면 삶는 냄새를 뒤로 하고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우리는 인천이 낳은 거인들의 발자취를 쫓을 수 있다. 비가 오면 인천 곳곳을 거쳐 온 빗물이 이곳에 모였다. 이 물은 갯골을 따라 바다로 나갔다. 화평동에서 태어난 이 들은 빗물처럼 거친 바다로 나가 세상에 그 이름을 남겼다. 화평철교를 사이에 두고 중구와 동구가 갈린다. 동인천 지역이 한창 융성할 때는 화평철교가 도심의 화려함과 거주지의 소박함을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동구 에 속한 화평동의 뿌리는 평동( 平 洞 )이다. 동네가 평평해서 얻은 이름인데 일부 지역 은 평평하기 보다는 지대가 낮다. 낮다보니 비가 내리면 물이 모이곤 했다. 이 물은 갯골을 만들었다. 화평치안센터 앞에는 화강암으로 된 다리 표지석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송현교 라 고 새겨진 이 표지석은 마치 뽑다만 덧니처럼 박혀 있었다. 예전에 위쪽으로 다리가 있었던 흔적인데 남은 표지석을 기준 삼아 발걸음으로 어림잡아 측량해 보면 다리는 폭 3m, 길이 15m 정도의 크기였다. 이 다리 밑으로 화평동 일대로 모인 물과 바다에 서 밀려 들어 온 짠물이 만나 흘렀다. 수문통이라 불린 이곳부터 옛 인천극장이 있는 언덕배기까지가 화평동이다. 화평동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아무래도 냉면 때문일 것이다. 전통 적인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 측에서 보면 이단아 라고 할 수 있는 화평동 냉면은 일 단 지름 30cm 가까운 세숫대야처럼 생긴 그릇을 대하는 순간, 모두들 써프라이즈. 이 특이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맛에도 뒤지지 않 화평동 41

23 는다. 고추장 양념과 오이, 무, 열무, 깨 등의 채소 고명의 조화는 특유의 얼큰하고 시 원한 맛을 자아내고 있다. 같은 종류의 음식점이 한데 모이면 슬슬 원조 다툼이 시작된다. 화평동 냉면도 예외는 아니다. 원조에 대한 규명은 결국 그 골목에 대한 역사를 더듬어 보게 된다. 6 25전쟁 이후 화평철교를 기점으로 경인철로 변을 따라 무허가 집과 가게들이 들어 섰다. 1980년대 초 인근 화수시장에서 서너 평 정도의 소규모 냉면집을 운영했던 상 인들이 동인천역으로 가는 길목인 이곳에 하나 둘 개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냉면 골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 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현재 냉면 골목 중간쯤에 자리 잡은 아저씨 냉면집 의 간판을 원조 밝히기의 단초 로 삼을 만하다. 길 건너편 허름한 집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집으로 거짓이면 다른 집에서 이의를 제기할 것 이라고 당당하게 간판의 반 이상을 할애해 적어 놨다. 이 간 판이 아무 문제없이 계속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다른 냉면집들도 이 집을 원조로 순순 히 인정하는 모양이다. 원조 로 추정되는 아저씨집에서 냉면을 시켜놓고 취재에 응하기를 요청했다. 한사 코 인터뷰를 거부하는 아저씨. 시간이 좀 지나자 식탁을 맴돌면서 하나둘씩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아저씨가 냉면을 말기 시작한 것은 현재 서른다섯 살 된 아들이 태어나기 한두 해 전, 그러니까 1976년경이다. 지금은 경인선 복복선 공사로 다 헐리고 없어졌지만 건 너편에는 양화점과 양복점 등 가게들이 즐비했다. 아저씨는 솜틀집 옆 작은 가게에 서 탁자 한 개를 놓고 냉면집을 시작했다. 당시 인천 냉면집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경 인면옥의 냉면 값이 4,500원 할 때 이 집은 500원짜리 냉면을 팔았다. 지금은 4,000 원. 아직도 당시 경인면옥의 냉면 값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가격에 비해 양은 풍성했다. 엄청난 양을 담기 위해서 두터운 스테인레스 재질의 양푼을 개당 9,900원에 금형 떠서 특별 주문했다. 만들고 보니 세숫대야 모양의 그릇 이 되었다. 지금의 이 그릇이 그때 만든 것이냐 고 했더니 30년 넘게 닦았더니 두께 가 거의 절반으로 닳았지만 그 그릇을 아직도 내 놓는다 는 다소 믿기 힘든 답변이 돌 아왔다. 80년대 초만 해도 인근 대성목재, 동일방직, 인천제철 그리고 인천항 부두 근로자 들이 작업복 입은 채로 허름한 냉면집을 찾았다. 한창 때는 새벽 6시 동틀 무렵에 가 게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원한 냉면으로 해장도 하고 배도 채우기 위해서다. 전성기 때는 골목 양쪽으로 23개나 있었던 냉면집이 이제는 10여 곳만 남았다. 이 마저도 곧 불어 닥칠 재개발로 인해 자리를 지키며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을지 궁금하 다. 대신에 이곳을 고향으로 둔 화평냉면이 인천 시내는 물론 서울 등 전국으로 면발 처럼 길게 퍼져 나가고 있는 것에 그나마 위안 삼아야 할 것 같다. 철길이 넓어지기 전 현재의 냉면집 맞은편에는 양화점과 양복점들이 늘어서 있었 다. 양화점은 주로 맞춤과 기성품을 병행하는 집이었다. 특히 인근에 공장들이 많이 4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평동 43

24 있었던 까닭에 군화를 물들인 안전화를 많이 팔았다. 기성화를 갖다가 파는 구둣방 도 몇 집 있었다. 길 한쪽 줄이 통째로 철거되었다. 두어 집은 동인천 쪽으로 이전해 지금도 장사를 하고 있다. 이곳 양복점은 경동거리 양복점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 다. B급이랄까. 간판도 내부 장식도 화려하지 않은 동네 양복점이었다. 럭셔리 고급 양복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마음먹고 한 벌 장만하는 수수한 양복들을 만들었다. 이들 틈에 솜틀집들이 있었다. 그중 인천에서 가장 오랜 솜틀집은 은율면업사. 황 해도에서 피난 온 박재화 씨는 고향 은율에서 하던 목화업을 이어가 이곳에서 은율 면업사를 열었다. 아들 박현석 씨 그리고 손자 박길주 씨에 이르기까지 2000년까지 삼대째 솜틀집을 운영하였다. 10여 평의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기계는 기름때 묻은 솜틀기계 하나. 60년대 방직공장에서 쓰던 중고를 사다 개조한 것이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민들이 사용하던 이불속 목화솜을 가지런히 펴는 작업에 정성을 다했다. 솜뭉치 속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겨울 엄동설한에 연탄불도 없는 구들장에서 온 가족이 한이불에 덮고 자던 기억, 가 난한 살림을 줄여 큰맘 먹고 첫 신접살림으로 장만했던 일 등. 솜이불에는 우리의 추 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확장 공사 직후의 화평철교. 4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평동 45

25 이제 솜 트는 기계 소리를 더 이상 화평철교 인근에서 들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은율면업사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솜틀기계는 고인의 유언대로 송현 동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 기증돼 전시되고 있다. 오늘도 박 씨 삼대는 박물관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고 대지이발관 박정양 씨, 연탄가게 유완서 씨를 이웃으로 두 고 여전히 솜을 틀고 있다. 화평동을 냉면으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아쉬운 동네다. 화평동 골목에는 우리나라 연극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의 태가 묻혀 있다. 골목 어귀에서 오래된 기와 집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이 동네를 거닐다보면 먼저 함세덕 이란 이름 석자와 만나게 된다. 극작가 함세덕( )은 1915년 화평동 455번지에서 태어났다. 1936년 조선문학에 희곡 산허구리 를 발표하면서 연극계에 명함을 내민 뒤 39년 1막 짜리 단막극 동승 으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무의도 기행, 도념( 道 念 ) 해연 등 20여 편의 역작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혼돈기에 나온 그의 작품은 가난과 자유가 주 테마였고 토속 적이고 때론 치열한 서정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시대를 초월한다. 그러나 월북 작가 라는 이유로 40여 년 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한 함구 대상 작가였다. 그의 생가가 궁금했다. 번지 주소와 사진 한 장만 갖고 탐문한 끝에 마침내 생가를 찾아냈다. 반가움도 잠시, 폐업한 소주방으로 변해 버린 집을 보고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옥상에 올라가서 뒷집을 내 려다 볼 수 있을까요? 뒷집에 뭐 볼게 있다고. 뒷집의 정체 를 몰라 마뜩잖은 눈치를 보이는 아줌 마의 시선을 뒤로 하고 이웃집 옥상에 올라가서 생가 함세덕 일가 (어린아이가 함세덕). 소주방으로 바뀐 함세덕 생가. 4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평동 47

26 를 내려다보았다. 낡았지만 조부 함선지, 부친 함근욱 2대가 누린 68평의 한옥 기와 집의 골격은 그대로 남아있다. 옥상에서 보니 기다란 경인선 철도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른 새벽 화평철 교를 털컹거리며 지나는 철마 소리에 잠을 깨고 수문통에서 묻어나온 바다 특유의 내음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화평동의 바람과 냄새는 그의 작품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1935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고개 라는 시는 19세까지 인천에 머물렀던 시절에 쓴 것이다. 이 고개 가 혹시 집 앞 화도고개 를 맘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다른 골목, 화평동 37번지에서는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목 과 마주한다. 1919년 이곳에서 태어난 석남 이경성 선생(2009년 작고)은 인천시립박물관 초대관장 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했다. 무엇보다 인천시립박물관 시절 6 25 전쟁의 난 리통 속에서도 귀중한 문화재를 몸으로 지켜냈다. 박물관 아래 시장 관사 방공호에 문 화재급 유물 19점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빌려온 55점 등 유물 200여 점을 포장해 옮 겨 놓았다. 그의 이런 행동이 없었다면 중요한 유물들은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 는 우리나라 미술비평 1세대로 미술행정가와 평론가, 화가로 일생을 살았으며, 한국 미술사 (1962), 한국근대미술연구 (1975), 한국근대회화 (1980) 등의 저술을 남겼다. 냉면 골목 중간쯤, 주위 분위기와 동떨어진 4층짜리 건물이 있다. 입구에는 평안 수채화의 집 이란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수채화가 박정희(90) 할머니가 거주하며 이웃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집이다. 박 할머니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 을 만든 송암 박 두성 선생의 따님이다. 송암 선생과 함께 율목동에 살다가 결혼해서 1949년부터 이 곳에 살기 시작했다. 목조 건물이었던 것을 의사 남편 유영호 박사(작고)가 콘크리트 건물로 짓고 평안의원 이란 간판을 걸었다. 지금은 건물 외벽 전체에 당시 평안의원 의 모습과 의사 가운을 입은 남편 유영호 박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이 건물이 제일 높았겠네요 4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평동 49

27 지금도 제일 큰데 내가 이 동네 터줏대감이여.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제2공립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근무했고 이 후 30년 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서른 살 때부터 그림을 이웃에게 가르 치다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그가 키워 낸 제자는 200여 명이 된다.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 공장 노동자, 주부, 학생 등 지위 고하나 재산의 많고 적 음에 관계없이 이 안에선 모두 평안한 예술가였다. 박 할머니는 아직도 현역이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50점 정도를 그린다. 전시회를 통해 마련한 그림값은 시각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수채 화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정작 주위와 나누고 싶었던 건 그림이 아니라 사랑인 듯했다. 화수동, 만석동, 전동의 꼭지점 역할을 하면서 변두리의 중심지 였던 극장 주변은 바로 앞에 화수자유시장이 자리 잡고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모 이면서 자연스럽게 건달들도 등장했다. 가끔 인천극장 앞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 건 들이 지역 신문을 장식하곤 했다. 지금은 마트, 헬스센터 등 복합상가로 바뀌었지 만 아직도 그 극장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극장에서 냉면골목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황인의원이 나온다. 병원 간판에는 좀처 럼 쓰지 않는 Since 1958 이란 표식이 있다. 병원 개원이 58년 개띠 로 인천에서는 연 조 있는 병원임을 은근히 내세운 것이다. 주변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고 비교적 중 심가에 자리 잡은 덕에 환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동네병원 격이지만 인천에 종합병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의 환자들과 전염병 치료에 한몫을 담당했다. 굳건히 한 지역을 고수하며 대를 이어서 산재를 당한 주변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의술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동인천역이 북쪽으로도 출입구가 나있고 북광장도 있지만 예전에는 인현 동 쪽으로만 나있고 송현동 쪽은 철로로 막혀 있었다. 화평동은 중심가와 거리상으 로는 가깝지만 사람들의 동선( 動 線 )과 심리적으로 인해 변두리로 치부되었다. 이런 화평동에도 한때 인천극장이란 영화관이 있었다. 인천 이란 지명의 이름을 딴 극장 임에도 불구하고 이 극장은 삼류극장인 동시상영관이었다. 동인천 주변의 개봉 영화 관과는 달리 서울에서 이미 개봉이 끝나 스크린에서 내려버린 영화 두 편씩을 동시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5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51

28 그때, 이곳 화평동 Map & Photos ➊ 화평철교 ➍ 평안 수채화의 집 ➏ 삼화목욕탕 ➏ ➎ (구)인천극장 화도진 ➋ 화수자유시장 송현동 ➌ ➐ 냉면 거리 ➍ 황인의원 만석동 ➊ 동인천 경 인 선 철 도 전동구름다리 전동 옛 인천여고 앞길에서 송현동으로 가는 내리막에 있는 경인선 철교를 말한다. 당 초 철로는 1899년 동인천역 앞 대한서림 쪽으로 휘어져 있었는데 1900년도 일본 철도운송조합에서 직선화하며 이 철교가 생겼다는 설이 있다. 경인선 개통 당시 약 7.5m로 자동차 두 대가 교차하기에는 쉽지 않은 철교를 1964년 11월 20m(차도 14m, 보도 3m) 폭으로 확장했다. 이후 약간의 확장 공사를 통해 오늘의 모습을 유 지하고 있다. ➋ 화수자유시장 화수 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옛 인천극장 바 로 앞에 있는 화평동 생활권 시장이다. 원래 이 자리는 대한성냥공장이 있었고 공장이 이 전한 후 40여 년 전부터 시장이 형성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시장들은 지붕이 없었는데 이 시장은 70년대 초 튼튼한 철근으로 엮은 슬 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그 아래 상가와 노점 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화도진터에 있던 달 동네가 공원으로 개발되고 피란민 동네가 아 파트로 변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천극장이 나가고 그 자리에 대형마 트가 들어서면서 시장의 기능을 거의 잃었다. ➌ 함세덕 동승 문화재청은 함세덕의 희곡집 '동승' 초판본을 근대문학유물 로 목록화했다. 이 작업은 개화기부터 1950년대까지 발간된 문학 관련 저작물 중 문화재로서 연구 보존 가치가 높은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다. 그의 희곡집에는 동승, 무의도기 행 등 5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각 작품 첫머리마다 홀수 별 면에 삽화를 넣어 극의 배경을 짐작케 했다. 국내 최고령 수채화 화가 박정희( 朴 貞 嬉 90) 화백의 집이자 작 업실이다. 그는 예순이 넘은 1985년에야 어릴 적 꿈인 화가에 도전했다. 30여 년 가까이 수채화가로 활동한 박 화백은 전시회 수익금을 시각장애인 장학금, 개안 수술비, 점자도서관 건립 비 용 등으로 지원한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다섯 남매를 키워 온 과정을 담은 일기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2001) 는 당시 생활사와 교육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손으로 직접 쓰고 삽화를 그려 넣은 원본은 국가기록원 에 기증될 계획이다. 평안 이란 이름은 의사 남편 유영호 박사가 이 자리에서 평안의원 을 개업한 데서 비롯되었다. ➎ 인천극장 동인천 부근에 있었지만 동시상영관으로 삼류 취급을 받았다. 한때 불량배가 많기로 소문난 극장이었다. 1955년 3월 이민 씨 와 김태훈 씨가 연극 전문극장으로 개관하였다. 이듬해 1956년 4월 24일 화재가 일어나 전소되었다. 1960년대 시민극장에서 인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해 오다 2001년 9월에 문 을 닫았다. 화평동 만화로 사 거리에서 송현초교 로 가는 좁은 골목 길에 50년대 후반에 서 60년대 초 개장 한 목욕탕이다. 그동 안 주인은 몇 번 바 뀌었지만 한 장소에 서 계속해서 영업을 한 목욕탕으로 현재 인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 된다. ➐ 석남( 石 南 ) 이경성 이경성( 李 慶 成, )은 1919년 2월 17일 화평동 37번지 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복 후인 1945년 10월 31일 초 대 인천시립박물관장(당시 인천 부립박물관)에 취임하였다. 27세 의 젊은 나이였다. 이후 이화여자 대학교박물관, 홍익대학교박물관, 홍익대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 관, 워커힐미술관 등에 근무하면서 박물관, 미술관과의 인연 을 계속 이어갔다. 해외에서는 일본 소게츠 미술관 명예관장 을 맡기도 했다. 이경성은 1954년 사임할 때까지 10년간 인 천시립박물관장으로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박물관의 소장 품을 수집하는 한편 인천지역의 문화유적에 대한 조사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경성은 박물관 미술관의 행정가로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비평의 개척자, 교육자로서도 인정 을 받고 있다. 고유섭 이후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에 매진했 던 거의 유일한 존재 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1년 미술인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후부터 35세 미만 작가에게만 시상하는 석남미술상을 제정하여 신 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쏟아 왔다. 5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평동 53

29 화수동 시간의 닻 깊게 내린 무네미 사람만 표정이 있는 게 아니다. 도시도 표정이 있다. 느린 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세상에서 화수동 은 여전히 아날로그식 표정을 짓고 있다. 바닷물이 넘어 들어 왔다고 해서 무네미 라고 불렸던 이곳은 한 때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온갖 생물로 인천에게 젖을 물렸다. 인천의 개발 청사진에서도 비껴나 있는 덕분에 어느 때 가도 냄새와 소리로 인천인의 몸속에 체화된 강렬한 추억을 이끌어내는 몇 남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이제 동구 화수동 183번지 를 기억해야 한다. 그곳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태동한 곳이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산업화 시절의 노동운동과 군사정권 시절 민주 화의 불씨를 키워온 곳이다. 1961년 9월 미국 감리교의 조지 오글 목사는 화수동 183번 지의 낡은 초가를 구입해 인천산선(인천도시산업선교회) 을 설립했다. 그는 추방되기 전 까지 이곳에서 한국인 목회자들과 함께 빈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인천산선은 김근태 등 유력한 민주화 운동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화수동 주변에는 동일방직,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 이천전기, 한국유리 등 큰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선교회는 산업사회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한 화해자로서의 사명으로 직접 작업 현장에 들어가 이른바 노동자 의식화 사업을 펼쳤다. 한때 도시산 업선교회는 도산 이라 불렸다. 도시산업선교회가 기업에 침투하면 그 기업은 도산한 다며 산선을 빨갱이, 공산당 이라고 몰아세우며 끊임없는 감시와 무차별 탄압을 펼쳤 다.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화수동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산선이 있던 골목에 어슬렁 거렸다. 산선의 노동자교회 자리는 이제 일꾼교회 와 사회복지선교회 로 바뀌었다. 교회 현 관 입구에는 70년대 까지 49m2(15평)짜리 초가지붕 건물이었던 인천산선 회관의 흑백 화수동 55

30 도시산업선교회 간판이 걸린 초가집과 집회 모습. 사진과 선교회를 돕던 조지 오글 목사가 미국으로 추방되는 모습의 사진들이 걸려 있 다. 현재 이 교회는 집회 사진과 보고 문서 등 도시산업선교회 활동 자료를 30여 박스 가량 소장하고 있다. 또한 동일방직 여공들이 피신해 있던 지하방 등 민주화 운동의 흔 적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에는 교회 밖 노동의 현장, 가난의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선교라 고 생각했다. 고 말하는 일꾼교회 담임 김도진 목사는 이제 동구푸드마켓 운영과 장애 인 및 저소득층 자녀교육 등 사회복지선교회로서의 소명을 이어가고 있다. 화수동의 국수집 하나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민들레 국수집 은 국수 맛 때문에 뜬 집이 아니다. 그곳은 주리고 배고픈 자들을 위해 매일 하 늘창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천상( 天 上 )의 식탁을 차려낸다. 2003년 만우절(4월 1일)에 문을 연 민들레 국수집 은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공간이 다. 거짓말 같이 문을 열어, 공갈 처럼 많은 사랑이 모여들어, 구라 같은 이야기를 만 들어내며, 믿기지 않게 10년을 버텨오고 있다. 이곳 주인장은 서영남 씨다. 그는 25년 동안 가톨릭 수사( 修 士 )로 지냈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기 위 해 수도복을 벗어 던졌다. 이곳에서는 줄을 서지 않습니다. 무조건 가장 오래 굶은 사람이 먼저 먹습니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이곳 에서나마 줄서기와 눈칫밥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서 씨의 깊은 배려가 깔려 있다. 5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57

31 민들레 국수집과 서영남 씨(오른쪽). 낡은 식탁 하나로 시작한 가게는 24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최근 바로 옆에 공간 하나를 더 마련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찾아오는 손님 은 400명에서 500명 정도. 하루 짓는 쌀만 20kg짜리 예닐곱 포대를 풀어야 한다. 오늘 화수동 사람들이 동인천역 방향으로 갈 때 반드시 넘어야 했던 화도고개. 이집의 식단은 계란말이, 마늘장아치, 열무김치, 어묵조림, 미역국 등이고 후식은 수박 화채다.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민들레 국수집 에는 정작 국수 가 없다. 초기 식단은 국수였지만, 밀가루로는 손님 들의 허기를 달랠 수 없어 메뉴를 변경했다. 언젠가 모든 이들이 배고프지 않은 그날, 국수는 그저 간식으로 내놓을 수 있길 바라며 가게 이름도 국수집을 고수하고 있다. 이 곳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집배원, 회사원, 주부 등 뜻을 함께하는 순수 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한다. 식당 안 식자재 창고에는 전국 각지의 발송지가 적힌 쌀, 고추장, 채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중년의 남자 한 명이 검은 봉투 하나를 식탁에 슬쩍 놓고 간다.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겨져 있다. 저 분, 기장님이세요, 기장님이요?, 예, 대한항공 조종사예요. 서울 등촌동에 사는 윤종원 씨는 비행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한다. 이곳에서 5년 동안 계란말이를 도맡아 만들어 이제는 계란말이의 달인이라는 칭 호까지 받고 있다. 국수집에서 150m쯤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떨어졌다.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이 문을 열었다. 형편이 어려운 동네 아이들은 물론 맞벌이 등 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울려 쉬며 밥과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36m2의 1층에는 식당이, 비슷한 넓이의 3층에는 공부방이 자리 잡고 있다. 화수동 언덕은 요새였다. 외국함대와 상선 등 이양선( 異 樣 船 )이 인천 앞바다에 자주 출몰하자 조선 정부는 고종 16년(1879)에 강화도에서 캐온 돌을 이용해 화도진( 花 島 鎭 ) 을 구축했다. 화도진은 묘도(괭이부리)북변포대, 호구(논현동)포대 등 인천 해안선을 빙 둘러싼 포대들을 예하부대로 둔 야전사령부 같은 역할을 했다. 1894년 10월 말경에 폐쇄됐고 광복 전에 인근 지역이 매립되면서 터는 완전히 그 자취를 감췄다. 화도진은 지난 1988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화도진도( 花 島 鎭 圖 ) 를 토대로 복원됐다. 복원 공사를 할 당시 이 터에는 피란민과 도시 빈민의 허름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5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59

32 옛 화도고개. 100여 년 전 화도진은 소나무 숲으로 뒤덮였고 바닷물이 진지 바로 밑까지 밀려들어 왔으며 제물포(현 도심지)로 통하는 한 줄기 오솔길이 화도고개를 넘어갔을 뿐이라고 전해진다. 정문 옆에 약 20여 채의 민가가 있었으며, 간혹 말을 탄 병사가 총이나 창을 비켜들고 왕래했고 어쩌다 가마를 탄 양반들이 드나들곤 했다. 화도진 옆 작은 마당에는 사람 키 높이만큼의 한미수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 서 미국과 조약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조약 체결 장 소는 이곳이 아니라 자유공원 석정루 아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이 설득력 을 얻고 있다. 이로 인해 동헌 안에 있는 조약식 재현 밀랍인형들이 머쓱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화도진 언덕에 올라서면 영종도와 작약도가 한눈에 들어 왔다. 지금도 고층 아파트와 공장들 사이로 어렴풋이 바다가 보인다. 오늘도 화도진은 100년 질곡의 역사를 품은 채 앞바다에 떠있는 이양선 들을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화도진 뒤쪽 동네로 내려오면 쌍우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천 향토지에서조차 이 우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다만 화도진도에 우물 정( 井 )자가 표기된 정도다. 무 네미의 쌍우물은 맑고 시원해서 화도진 병사들도 길어다 마셨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 다. 안타깝게도 두 개의 우물 중 건너편에 있던 우물은 민가가 생기면서 없어져 지금은 명칭만 쌍우물일 뿐이다. 물맛은 좀 짰어. 그래도 물이 잘 나와서 만석동, 송현동에서도 물지게 지고 와서 하 루종일 줄 서서 퍼갔지. 6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61

33 쌍우물 옆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 19세 때 이 동네로 시집와서 50년 넘게 근처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가 우물의 과거를 전한다. 지금은 우물 뚜껑이 굳게 닫혀져 있고 특이하게도 우물 몸통에 수도꼭지가 달 려 있다. 가끔 그 꼭지를 통해 물을 빼버릴 정도로 우물은 여전히 원기왕성하다. 매년 10월 살아있는 이 우물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쌍우물축제가 열린다. 화수동은 아직도 주변에 공장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들고 나는 동네다. 이 런 동네에 복덕방은 여전히 중요한 필수업소다. 한쪽은 쌀가게, 다른 한쪽은 복덕방을 하는 강화부동산도 그 중 하나다. 사장 김송자(75) 할머니는 1978년에 가게 문을 열었 다. 이 자리에서 장사하던 강화 사람이 40년 전에 취득한 양곡매매신고서와 간판을 고 스란히 양도 받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쌀을 사러왔다가 동네 셋방 사정을 물어보곤 했다. 평소에 귀 동냥을 해서 들은 정보로 이 방 저 방을 소개해 주곤 했다. 그 댓가는 계란 한 판, 박카 스 한 박스 등이었다. 김 할머니는 아예 싸전 옆에 강화복덕방 간판을 내걸었다. 물론 자격증은 없었지만 하루에도 두세 건은 거뜬히 계약을 성사시켰다. 복비는 정해진 게 없었다. 쌀을 자주 사가는 사람에게는 반값.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에게도 공짜. 숟가 락 하나 달랑 들고 이사 온 농촌 총각에게는 월급 받은 후 주는 대로. 6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63

34 그에게는 낡은 다이어리 수첩이 10여 권이 있다. 그 수첩에는 30여 년 동안 거래한 매물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수첩 하나를 들쳐봤다. 백구두 할아버지, 이빨 빠진 키 큰 아저씨, 천식 있는 아줌마, 귀걸이 많은 아줌마, 원룸 노처녀, 예쁜 제주도 색시 등 신체적인 특징을 적어 놓았거나 혹은 경숙이 이모, 미륭아파트 사는 젊은 엄마, 봉 섭이 누나. 다 기억하지. 그게 내 암호여. 이름은 까먹어도 그 사람 특징은 한번 쓱 보고 수첩에 적어놓으면 생생하게 기억나요. 이 동네는 전국 각지에서 직장을 찾아 올라온 젊은이 들이 많아요. 방 얻으러 왔다가 중신 좀 서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간혹 있지요. 집주 인들도 며느리감이나 사위감 될만한 사람을 골라서 세놓고 싶어 해요. 화수동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는 날까지 두 평짜리 복덕방 책상에 놓인 할머니 다 이어리 수첩에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들이 계속 채워질 것이다. 6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65

35 화수동을 화수동답게 했던 것은 화수부두다. 화수부두는 6,70년대 연평도 조기잡이 배를 비롯해 옹진, 강화, 충청도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가득 실은 배들이 드나들던 우리나라 3대 어항이었다. 선박의 주소지는 덕적도, 연평도 등 섬이었지만 생선을 판 매하는 곳은 화수부두였고 선주들은 인근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1960년대 에 이미 자가용을 부릴 정도로 자산가였다. 화수부두에는 수협공판장, 얼음공장, 어구 상점, 식당 등이 즐비했고 새우젓 배들이 입항하는 날이면 큰길까지 비릿한 난장이 서 곤 했다. 여름날 인근에 사는 아이들은 얼음공장에서 선박으로 나르는 공중 파이프에 서 떨어지는 얼음조각을 주워 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제 화수부두는 도시의 오지( 奧 地 )가 되었다. 문명도, 문화도, 세인의 관심 도 모두 비껴 간 안쓰러운 부두가 되었다. 옛날의 화려한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고달픈 삶의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다. 이제 공장과 북항 개발로 포구로서의 여백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출항도 가물에 콩 나듯 하는지 경찰 마크 뜯긴 선박출입통제소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한동안 비린내 맡기도 힘들었던 이 부두가 최근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5월 화수부두 수산물직매장이 문을 열었다. 부둣가 옆에 자리 잡은 이곳은 화수부두에 정 박하는 어선의 선주 32명이 직접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판다. 철저하게 100% 자 연산만 판매하고 있어 입맛 까다로운 식도락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뚝딱뚝딱~. 부두 후미진 곳에서 망치소리가 들린다. 조그만 창문을 낸 흰 장막이 사 방을 두르고 있다. 틈새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전부인 그곳에 나무 배 한 척이 통째로 들어차 있다. 19세부터 어부로 살아 온 유동진(68) 씨가 혼자서 목선을 만들고 있다. 벌써 3년째다. 9톤짜리 내 배를 만들고 있어요. 재미있어요. 절약도 하고 튼튼하게. 무엇보다 내가 내 마음대로 디자인한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배가 될 거예요. 일종의 DIY(Do-it-yourself) 방식으로 배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연필을 들었다. 종이 는 따로 없다. 구겨진 지난 신문을 두 손으로 쫘악~ 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볼펜 을 쥔 손은 굳은살로 두텁다. 이제 머지않아 방수처리를 한 후 엔진, 스크루 그리고 각종 기계를 목선의 빈 공간 을 채우게 된다. 이 목선이 완성되면 선광호 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일생 동안 그가 탄 배들은 모두 선광호 였다. 다섯 번째 이 선광호를 완성하면 화수부두에서 진수식을 할 것이다. 선광호 키를 잡고 부두를 벗어나 큰 바다로 나가는 유 선장의 행복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림자 길어진 시간, 부두를 빠져 나오는데 어디선가 추억이 스며있는 비린내와 뱃 고동이 바람에 실려 왔다. 6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67

36 그때, 이곳 화수동 Map & Photos ➊ 이천전기 변신했다. 수산물직매장이 문을 열면서 시민들의 발길은 화 ➐ 보라매보육원 일제강점기 1938년에 설립 된 군수공장으로 광복 후 변 압기 등을 생산하는 이천전 기로 재도약했다. 1993년 삼 수부두를 바쁘게 오고 가기 시작했다. 화수부두에 정박하는 선주 32명이 운영하는 이곳은 어부들이 직접 잡은 100% 자 연산만을 판매한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화수부두는 바다의 맛으로 깊어지고 있다. 1951년 3월 영종 도에 김보경 원장 이 설립했다 년 10월 현재의 위 성에 인수되었다가 1998년 12월 일진그룹의 자회사로 ➍ 이즉 묘 치(화수동 140번 지)에 이전했다. 현 편입되면서 일진중공업이 되 화수동에는 고성 이씨, 소성 이씨가 여러 대에 걸쳐 자리를 잡 재 건물은 2008년 었고 2002년 일진전기로 다 고 살아왔다. 지금의 화수2동 일대에는 조선 인조 때 반란을 에 신축했다. 시 사명이 바뀌었다. 일으켰던 이괄의 선조인 이즉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후 인조는 이곳에 있던 이즉의 묘를 모두 파내라 ➑ 인천공작창 ➋ 인천부립공중욕장(부영탕) 우리나라에 대중욕탕이 처 음 설립된 것은 1924년 평 고 지시를 했다. 그런데 관원들이 묘를 찾으러 왔을 때 짙은 안 개가 껴 찾지 못하고 그냥 되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 다. 그만큼 이곳이 명당이라는 이야기다. 1937년 7월 일본 차량주식회사 인천 공장으로 설립되었 양에서다. 부( 府 )에서 직접 운영하였으며 관리인을 따 ➎ 황해도평산소놀음굿 고 광복 후 1945 년 12월 상공부 직 로 임명하였다. 인천에서는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무당이 소 모습으로 꾸미고 농사의 풍 할 조선차량주식 1932년 신화수리(화수동)에 년과 장사의 번창,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며 노는 굿놀이다. 정 회사로 발족했다 m2의 규모로 부립 공 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뿔뿔이 흩어졌던 중욕장이 설립되었다. 욕탕 인천 동구에는 황해도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을 400여 명의 종업원들을 불러들여 공장 안에 방치된 미완성의 이 폐쇄되고 그 자리에 화도교회 선교원이 들어섰다. 통해 이 놀음굿이 전승되고 있고 화수동에 보존회가 있다. 화 기관차, 객차, 화차 등을 손질해 화차 7량을 완성시켜 인천~영 도진에서 매년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을 공연한다. 인천시 중요 등포간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1950년 10월 교통부로 다 ➌ 화수부두 무형문화재 제90호다. 시 이관하여 인천공작창으로 바뀌었다. 1980년 대전공작창으 로 통폐합해 대전으로 이전했고 부지 2만3천 평에는 동부아파 ➏ 대건중학교 트 등이 들어섰다. ➒ 서울식당 가장 인천적인 곳, 화수부두에 서울 간판을 단 식당이 ➒ 두산인프라코어 ➌ 화수부두 ➊ 일진전기 있다. 40여 년 된 서울식당은 복 잘 하는 집으로 유명 월미도 만석동 인천역 두산인프라코어 만석초 화 도 진 ➏ ➐ 화도진중 현대제철 ➑ 동부아파트 쌍우물 ➍ ➎ 민들레국수집 ➋ 화도교회 화평동 화수부두는 1970년대 까지 새우젓 전용 고깃배들이 입항으로 수도권에서 알 아주는 새우젓 전문시장이었다. 연평도와 백령도 등 먼 바다에서 잡은 생선들 도 속속 화수부두로 들어왔다. 부두 얼음공장에서는 쉴 틈 없이 얼음을 쏟아내 고 닻 공장은 닻을 산더미처럼 만들었다. 1970년대 초 연안부두가 생기면서 화수부두는 차츰 쇠락하기 시작했다. 화수부두를 가득 채우던 어선들이 연안 부두로 안식처를 옮겼고 주변은 점차 공장들이 터를 넓혔다. 그러나 어부들의 배는 여전히 화수부두를 안식처로 삼고 있다. 화수부두는 2013년 5월 새롭게 화도진 부지 일부에 1945년 9월 영화중학교, 1953년 11월 영 화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63년 대건중학교로 변경되었고 88년 중학교는 폐교되고 고등학교만 남았다. 이마저도 1988년 연수구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 영풍아파트가 들어섰다. 하다. 주인장 안문 숙 할머니(85)가 직접 담아 온 장으로 복탕을 만든다. 복은 강원도 주문진에서 살아있는 것을 직송해 온다. 인천에 새로 부임하는 고위공직자 나 탤런트들이 많이 찾는 맛 집으로 알려져 있고 20~30년 넘 게 이곳을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6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화수동 69

37 만석동 근대화, 산업화 겪으며 깊게 패인 굵은 주름 만석동은 한 세기 전 인천의 신도시 였다. 일제는 갯벌을 메우고 산업단지와 위락시설을 유치하면서 신 천지의 꿈을 키웠다. 이로 인해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을 품은 괭이부리섬(묘도)은 깡그리 파헤쳐져 지 도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그곳에 아카사키 라는 일제의 쇠말뚝을 박은 후 유곽을 끌어들이고 나중에 병 참 공장까지 세운다. 광복 후 바다로는 피란민을 받아들이고 육지로는 농촌의 노동자들을 받아들인 만석 동은 이제 할머니의 쪼그라든 젖가슴처럼 말라 비틀어진 포구 하나를 가슴에 부여안고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경성을 떠난 지 두어 시간 힘차게 달려 온 철마는 철길 옆으로 해변이 길게 뻗은 종 착지 인천역에 다다른다. 마중 나온 갈매기 한 마리가 열차 위를 선회하며 길을 안내한 다. 열차는 질주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시원한 해풍으로 씻어낸다. 오른쪽 차창으로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너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한가롭게 떠있다. 눈앞에 솟 아 있는 영종도와 강화도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모습은 100년 전 만석동의 풍경이다. 만석동의 본래 태생은 바다. 현재의 만석동 대부분은 갯벌을 메워 만든 매립지다. 바다와 접한 만석동은 1900년 초만 해도 조선인 20 ~ 30가구 만 사는 아주 한적한 마을 이었다. 이곳을 일본인 사업가 이나다( 稻 田 )가 1906년 9월 만석동 앞의 갯벌을 메웠다. 이 매립으로 약 50만m2(15만 평)의 새로운 땅이 생겼다. 그는 조선인 집들을 몰아내고 이곳에 정미소와 간장공장을 유치했다. 그런데 거기 까지였다. 더 이상 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 매립으로 한몫 단단히 챙기려 했던 이나다 는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보게 되었다. 고심 끝에 그가 내놓은 방안은 유흥업소 유치였 다. 당시 선화동에 있던 창녀촌 부도유곽을 본떠 묘도유곽 을 만들었다. 만석동 71

38 묘도( 猫 島 )는 만석동 앞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매립지에서 묘도 가는 언덕 에 6, 7채의 객실과 고급 음식점 그리고 해수탕을 갖춘 2층짜리 팔경원 을 건립하고 주 위를 홍등가로 만들었다. 팔경원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구릉지에 서 보았다. 주위에 비해 살짝 높았지만 시 야가 트여 전망이 좋은 편이다. 그들은 그때 그곳에서 어떤 팔경( 八 景 )을 감상했을까. 조선총독 이토히로부미는 인천에 오면 이곳 팔경원에 가끔 들렀다고 한다. 술과 여자 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돈이 풀리고 사람들이 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이곳은 너무 외져서 이토의 발길도 지역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그 땅의 일부는 중국인의 채소밭으로 전락하거나 대부분 오랫동안 잡초 무성한 황무지로 방치되었다. 만석동 매립지에 본격적으로 공장이 들어선 것은 동양방적(현 동일방직)이 문을 열 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이 동양 최대 라고 자랑한 이 공장은 1934년 10월 1일 종업원 3,000명에 직조기 1천292대로 조업을 시작했다. 하루 품삯이 쌀 2되 정도로 비교적 높 은 편이어서 조선인들은 동양방적에 들어가길 원했다. 유니폼 입은 종업원들은 스스 로 동대( 東 大 ) 에 다닌다고 할 정도로 큰 자부심을 지녔다. 일설에 의하면 인천 출신 영 화배우 도금봉(본명 정옥순)도 이 공장에서 잠시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락시설 팔경원의 모습. 대단했제. 우리 큰딸이 동일방직에 다녔는데 그 애 덕분에 동생들 다 공부했어. 월 급날에는 이 일대가 하루 종일 들썩거릴 정도였으니까. 48년 전 전남 남원에서 올라와 만석동에 정착해 육 남매를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살 고 있는 김성순(80)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 공장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한 획을 긋는 현장이 된다. 유신 말기인 1978년 여성 노조원들은 이른바 똥물 테러 를 당한다. 이 똥 물은 부메랑이 되어 유신정권이 뒤집어쓰게 된다. 동양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 공장은 이후 섬유업 퇴조에 따른 생산 시설 이전 등으로 만석동 시대를 서서히 접고 있 다. 기다란 공장 담장 안에서는 여공들의 재갈거림 대신 늦여름 매미 소리만이 한가롭 게 넘어왔다. 7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73

39 현 두산인프라코어인 조선기계제작소 전경.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를 빼놓고는 만석동을 얘기할 수 없다. 이 회사 는 1937년 6월 광산용 기계 생산업체로 설립되었다. 공장 터를 조성하면서 괭이부리섬 묘도를 깡그리 뭉갠 것으로 보인다. 묘도의 위치는 현재의 삼미사 혹은 옛 한국유리공 장 앞 도로 부근으로 추측된다. 당시에는 육지의 끝 지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인천을 대륙 병참 기지로 삼는다. 1943년 4월 말 조선 기계제작소는 일본육군조병창으로부터 잠수함을 건조하라는 명령 을 받는다. 잠수함 을 진수시키기 위해 도크를 신축하고 1천300여 명의 인력을 확충하고 그들을 위한 숙 사( 宿 舍 ) 112동을 새로 건축한다. 이때에 세워진 집들이 현재의 아카사키 촌 의 근간이 된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화장실도 없는 쪽방으로 집을 지었다. 골목은 딱 어른 어깨 넓이다. 60년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근로자들이 묵었던 왜색풍 의 집들이 힘겨운 채 곳곳에 남아 있다.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여전히 공동변소 를 사용한다. 잠수함 1호기는 명령받은 지 1년 만에 제작돼 진수되었다. 광복이 될 때까지 총 4척 의 잠수함이 만석 독(Dock)을 통해 태평양으로 나갔다. 광복을 맞아 진수되지 못한 두 어 척의 잠수함들은 60년대 초반까지 독에서 녹슨 고철이 돼 나뒹굴었다. 그래서 한동 안 사람들은 만석동을 잠수함 만들던 동네 라고도 불렀다 전쟁 후 주로 배를 타 고 황해도에서 건너 온 피란민들이 이 동네에 정착했다. 이어 6,70년대 산업화 시기에 는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의 터전이 되었다. 7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75

40 조선기계제작소 독에서 나뒹굴던 부숴진 잠수정들.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살았을거요. 옛날 판유리공장 뒤편에 나가면 바지 락이 지천이었는데 그거 잡으며 살았지. 그거 팔아도 충분히 먹고 살았으니까. 나중에 인천시 도움을 받아 5톤짜리 조그만 뗏마(배) 40척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같이 낚시배 부리면서 살았어요. 이용준(86), 양순옥(83) 노부부는 아카사키 촌의 터줏대감이다. 난리통에 황해도 옹 진군에서 피난 나와 매일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며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만 석동은 70년대 까지 반어반노( 半 魚 半 勞 ), 어부와 노동자가 반반이었던 동네였다. 주인 집은 배를 부리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은 공장에 다녔다.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만석동에 비치 가 있었다. 지금처럼 빡빡하게 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갯벌과 모래가 뒤섞인 바 닷가를 끼고 있었다. 그걸 추억이라도 하듯 2002년에 재개발된 고층 아파트의 이름을 만석비치타운 이라고 지었다. 만석비치타운의 자리는 원래 대성목재(조선목재공업)가 있었다. 1936년 설립된 조 선목재공업은 라왕 합판 등 항공자재를 제조했던 군수공장이었다. 광복 후 대성목재 로 이름을 바꿔 합판 등 건축 목재를 생산했다. 6,70년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인천에 올 라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성목재밖에 갈 곳이 없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만큼 당시 에는 규모가 아주 큰 회사였다. 옛 대성목재. 7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77

41 숨을 잃는다. 해마다 인근 동네에서는 1, 2명의 아이들이 이런 사고를 당해 생명을 잃 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선생님들은 반 학생들에게 저목장에서 놀지 말 것을 신 신당부하곤 했다. 이 회사는 앞바다에 저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 지름 1.5~2m, 길이 15~20m 가량의 거대한 수입 원목들을 수천 개씩 띄워 놓았다. 이 저목장의 원목은 벌이가 없던 주민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주민들은 끝을 납작하게 만든 빠 루 를 이용해 원목의 껍질을 떼어내 햇빛에 말린 뒤 일반 가정집에 팔거나 자기 집 땔 감으로 사용했다. 좁은 마당에는 물론 골목마다 원목 껍질을 쌓아 놓아 비좁은 골목이 더 비좁았다. 간혹 도난 사고가 발생해 이웃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 나무껍 질을 태우면 군불이 오래 가기 때문에 연료로는 최고였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어떤 이 는 멀리 배를 타고 나가 원목을 실은 배에 올라가 나무껍질을 떼어내기도 했다. 회사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공정상 원목 껍질은 베껴내야 하기 때문에 굳이 이를 못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대성목재의 저목장은 이처럼 주민들이 입에 풀칠하는 데 큰 보탬을 주는 장소였지 만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공간이기도 했다. 여름철 아이들은 저목장에서 수영을 하 거나 띄워 놓은 통나무 위에서 묘기를 부리며 뛰어 놀았다. 순간, 미끄러져 통나무 사 이로 빠지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원목 아래로 떨어지면 수압 때문에 물 속 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고 빠져나오려 발버둥쳐도 통나무에 막혀 쉽게 나오질 못해 목 비록 퇴락했지만 만석동이 바다를 완전히 잃은 게 아니다. 여전히 부두와 섬을 품고 있다. 질펀한 부두의 옛 정취는 다 사라졌지만 이곳을 통해 사람들은 바다로 나간다. 낚시배를 타든 조개잡이배를 타든 바다로 나가려면 포구 끝에 있는 해경 만석파출소 에서 승선 신고를 해야 한다. 만석부두에는 두 개의 포구가 있다. 파출소가 자리 잡고 있는 포구와 쌍용기초소재 공장 정문과 만석낚시점 사이로 들어가면 짠 하고 나타나 는 또 다른 포구가 있다. 이 포구는 낯설다. 남의 공장에 들어가는 길인 줄 지레 짐작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파출소 쪽 포구는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성형을 했다면 공장 쪽 포구는 화장기 하나 없는 쌩얼 그 자체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만석비치타운 옆의 새로운 굴막들. 78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79

42 만석동 바다를 젖줄 삼아 온 굴막이 있다. 굴막은 만석동 아낙들이 섬에 나가 굴을 캐 와서 껍 질을 벗기는 하꼬방 같은 작은 공간이다. 바다 바람, 세월 바람에 스러진 굴막들은 공 장 담벼락에 기댄 채 마치 어두운 굴( 窟 ) 속에 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 물때가 그들의 집합시간이었다. 아낙들을 태운 굴배는 희뿌연 새벽 바다를 가른다. 판유리공장, 북성부두, 대성목재, 월미도를 비켜 세 시간 넘게 물살 헤쳐 간 배는 이작 도 옆 작은 무인도에 머리를 들이댄다. 할아버지섬, 진달래섬, 참섬, 뽕아리섬, 개발섬, 돌때리는 섬. 이 섬들은 굴까는 아낙네들에게서 이름을 받았다. 상륙 후 흩어져 본격 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쪼새로 쉴 새 없이 바위를 쪼아댄다. 쉴 틈이 없다. 목마르고 허 기지면 그냥 굴을 삼킨다. 섬 가득 바위 쪼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손 빠른 사람은 하루에 80kg짜리 두 세 포대씩은 거뜬하 다. 해가 늬엇늬엇 질 쯤 굴 포대를 배에 잔뜩 싣고 다시 만석포구로 향한다. 공장 담장에 늘어선 굴막까지의 운반 이 만만치 않다. 배에서 굴 포대를 짊어지 고 얼기설기 엮은 나무다리를 건너는 일은 위험하고 힘에 부친다. 잘못하면 포대와 함 께 바닷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굴막 안으로 끌어 놓았지만 일이 끝난 게 아니다. 굴 까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굴막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만 들어졌다. 30여 년 전에 한 두 사람이 무거운 굴 포대를 집으로 이동하느니 포구 움막 에서 작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짓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거적대기로 만들었고 후에 판자와 비닐을 사용해 바람을 막았다. 한창 많을 때는 만석부두 주변에 굴 캐는 사람이 300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굴 파시였다. 당시 이 포구에는 40여 개의 굴막이 늘어섰다. 굴막 하나에 두어 명씩 들어가 밤샘 작업을 했다. 바닷가에서는 닭 대신 갈매기가 새벽을 깨운다. 갈매기 우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굴 막 문을 열고 다시 배 타러 나간다. 굴막을 잠시 비우더라도 문단속을 단단히 해야 했 다. 그곳에는 이불, 곤로, 옷, 호롱불, 라디오 등 귀한 세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부턴가 굴막에는 1호, 2호라고 글씨를 적어 놓거나 아예 문 앞에 문패를 달기도 했다.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주문이 많아 집에도 못 가. 백중사리 때는 굴막 앞까지 물이 찰랑 거려 오도 가도 못해. 그냥 굴막에서 촛불을 켜고 굴을 까며 밤을 지새곤 했지. 45년 전 굴막 일을 한 넙죽이 영배 엄마(74)의 이야기다. 8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81

43 노을 지는 만석부두. 이제 만석포구의 굴막은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집주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아직 쪼새를 놓지 못했을지라도 이곳에서 더 이상 굴 까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만석동 고가 밑 알루미늄 새시로 만든 굴막으로 이주했다. 그렇다고 이 포구 굴막이 완전히 폐쇄된 것은 아니다. 서너 채는 여전히 영업 중 이다. 날이 차지면 굴막 몇 개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나온다. 그런데 이마저도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현재 화수부두 ~만석부두~북성포구를 잇는 포구 둘레길이 입안되고 있다. 둘레길은 이 굴 막 앞을 지나가게 된다. 누추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 굴막은 철거 대상으로 입에 오 르내리고 있다. 2013년 말, 이 자리에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섰다. 만석부두에 서면 봉분처럼 솟은 섬 하나가 보인다. 멀리뛰기라도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다. 작약도다. 이 섬의 행정구역은 만석동이다. 얼마 전에 만석동 작약로 라는 새 주소를 얻었다. 일제가 묘도를 뭉갤 때 매립하지 않고 섬으로 그대로 놔둔 게 고마울 따름이다. 8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83

44 만석동 작약로 라는 새 이름이 붙은 작약도. 7만 2,727m2(2만2,000여 평)의 크기에 섬 둘레가 1.5km 밖에 되지 않는 앙증맞은 섬이 다. 섬 정상에는 무인등대가 있다. 표지석에는 무치섬 등대 라고 쓰여 있다. 개항을 요 구하던 외국 선박들이 한강 하류를 거슬러 오르기 위해 거쳐 갔던 작약도의 원래 이름 은 물치도 였다.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 함대가 이곳에 잠시 머물며 섬 이름을 보아 제 라고 불렀고 신미양요(1871) 때 미국인들은 섬에 나무가 많다하여 우디아일랜드 라 고 명명했다. 섬 소유주였던 일본인 스즈끼가 패전 후 본국으로 급히 돌아갈 때 십 억 환어치의 금괴를 가져갈 수 없자 어쩔 수없이 몰래 작약도 어느 한구석에 해골과 함께 파묻고 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후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철야 작업을 하며 이곳저 곳 산을 파헤쳤지만 섬만 골병들게 했던 일화도 있다. 광복 후 건너편 화수동에 살던 이종문이란 사람이 이곳에 고아원을 설치해 운영했으나 6 25 전쟁으로 폐쇄되었다. 작약도는 배편이 시원치 않아 멀리 갈 수 없었던 시절인 6,70년대 만해도 수도권에 서 알아주던 해상 유원지였다. 이름값 하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손을 탄다고 했던가. 동림산업, 한보개발, (주)원광, 진성토건 등으로 넘어갔다가 결국 경매시장에 나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 물치섬은 그렇게 시류에 치 받히면서도 굳굳이 오늘도 만석 앞바다를 지키고 있다. 84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85

45 그때, 이곳 만석동 Map & Photos ➊ 인천판유리 공장 ➌ 만석우체국 ➎ 조선소 북성포구 월미도 만석포구 굴막 두산인프라코어 ➊ ➎ 송현동 ➏ 부두입구 두산인프라코어 옛 팔경원 아카사키촌 만석비치아파트 (옛 대성목재) ➍ 동일방직 ➋ ➌ 인천역 1954년 운크라(유엔한국재건기구)의 계획으로 1956년 만석동 부지 12만 2,314m2 (3만 7,000평)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59년 9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판유리 공장이 자리한 만석동은 안면도 승언리 해변 등의 밀가루 같은 보드라운 모래를 배편으로 실어오기에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생산량과 수입 등 공급과잉 현 상이 심화되자 1981년 인천 공장의 명성은 저물어 갔고 현재는 빈터로 남아 있다. ➋ 동일방직 의무실 동일방직 안에는 공장 건물과 어울리지 않은 목조 단층 기와집이 한 채 있다 년에 신축된 이 건물은 한때 강당, 사내 직업훈련원, 부속 의무실 등으로 사용되다 가 현재는 비어있다. 경인선 철로에 양쪽으로 이웃한 만석동과 송월동은 같은 생활 권으로 주민들은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니며 자유롭게 교통했 다. 1962년 9월에 문을 연 만석우체국은 두 동네가 만나는 길 목에 있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어부가 뭍에 나와 맨 먼저 달려온 곳도 이곳이고 한 달 봉급을 받은 공장 근로자도 먼저 발길을 돌린 곳도 이곳이다. 그러던 중 안전을 위해 철로변에 차단벽이 세워지고 그 위로 만석고가 도로가 생겼다. 단절은 곧 퇴락으로 다가왔다. 발길이 끊긴 우체 국은 이제 만석동과 같이 그렇게 쓸쓸히 늙어가고 있다. ➍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 작품의 배경 인 괭이부리말 은 6 25 전쟁 후 가난 한 피란민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오래 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작가 김중 미 씨는 1987년부 터 괭이부리말에서 살며 지역 운동을 해 왔다.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초등학교 5 학년인 숙희와 숙자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려 나갔다. 2001년 11월부터 방송된 MBC의 새 오락프로그 램 느낌표 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국민 필독서 로 선정되면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만석부두를 감 싸고 있는 공장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갯벌 위에 레일이 깔 려 있는 등 다소 낯선 바다가 나 온다. 후미진 그 바닷가에는 우 리가 도시에서 쉽게 보지 못하 는 광경이 펼쳐 진다. 선박을 만 드는 중소 규모 의 조선소들이 있고 그 옆으로는 고장난 배들을 수리하는 일종의 선박 병원 이 있다. 모퉁이를 돌면 선박을 해체하는 독이 있다. 수만리 바다를 항해한 여객선, 화물선 등이 그 생명을 다하고 장기가 적출되는 현장이다. 이렇듯 만석동 뒷바다에는 요람부터 무덤까지 선박의 일생이 있다. ➏ 굉이부리 나루 만석동에 굉이부리 라는 나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옛 판유리 공장 자리인 이 굉이부리에는 호랑이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곳은 해변가로 산림이 울창한 외진 곳이었다고 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부녀자 5 6명이 나물을 캐 고 있었는데, 그 곳에 굴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그 안에 호랑이 새끼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호랑이 새 끼들이 하도 귀여워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미 호랑이가 나타나 어흥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나물바 구니를 내버린 채, 집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들의 나물바구니가 마을 앞에 놓여 있었다. 호랑이가 제 새끼 를 해치지 않아 고마운 표시로 나물바구니를 물고 갖다 놓았다 는 전설 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곳은 괭이부리 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86 골목, 살아 [사라] 지다 만석동 87

46 창영동 창영학교 소풍 가는 날은 비 오는 날 창영동은 개화를 알리는 기적( 汽 笛 ) 소리에 잠을 깨며 한동안 신식 동네로 살아왔다. 인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가는 길목인 이 동네는 인천의 근대교육, 기독교, 노동운동이 발아한 곳이다. 한동 안 묵은 것만 움켜쥐고 바튼 기침하며 점점 박제가 돼 가던 이 동네는 하마터면 큰 수술을 받을 뻔했다. 이 동네에 불어 닥친 개발 바람은 호불호의 논쟁을 일으키며 오히려 관심과 활기를 불어넣었다. 오랫동 안 수면 무호흡증에 빠져있던 동네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인천의 자존심을 지키며 나잇값 하는 꼰 대 로 돌아오고 있다. 장면 1 풍랑을 헤치고 온 기선( 汽 船 )이 아침 일찍 제물포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 조그만 목 선들이 기다렸다는 듯 큰 배를 에워싸고 사람과 짐을 옮겨 싣는다. 제물포 포구에 내 린 벽안( 碧 眼 )의 이방인은 조랑말 한 마리에 올라탄다. 고삐를 잡은 조선인 말잡이는 서둘러 포구를 벗어나 가파른 언덕으로 길을 잡는다. 갯벌 냄새가 좀 가시나 했더니 이번엔 인분 냄새다. 언덕 밑에서 청국인 옷차림을 한 농부들이 밭에 거름을 뿌리고 있다. 길가 곳곳에 싸리나무가 무성하다. 길은 좁은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바닷물이 들어 왔었는지 질퍽하다. 갈매기 두어 마리가 갯골 위를 배회한다. 납작하게 엎드린 초가집들 옆으로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흰 무명끈을 머리에 질끈 맨 노무자들 네 명이 한 조가 돼 기다란 쇳덩이를 옮기고 있다. 철길을 놓는 것이다. 마치 소뿔처럼 생 긴 언덕길을 힘들게 오른 말잡이는 잠시 숨을 고른다. 뒤돌아보니 멀리 앞바다에 정박 한 기선 굴뚝에서는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방인은 말잡이에게 가던 길을 빨 리 가자고 눈짓을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한양 성문이 닫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내 말 머리는 동쪽 길로 향한다. 몇 발자국 더 떼자 이제는 민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창영동 89

47 장면 3 주변에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거래가 활발했던 50년대 배다리 시장 모습. 하루 종일 포클레인의 굉음소리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이미 보상을 받고 떠난 이웃 의 빈집들이 거대한 삽날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소문에 의하면 산업도로가 마을 한가 운데로 난다고 했다. 수인역을 지나 철교 밑으로 해서 수도국산을 뚫고 나간다고 한 다. 그 시커먼 터널 속으로 배다리 영혼이 빠져 나갈지 모르는데. 헌책방을 운영하 는 곽 사장과 의상실 박 씨 아줌마를 중심으로 배다리 사람들이 모였다. 얼마 후 구월 동에 있던 문화공간 스페이스빔이 비어있던 양조장 건물로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산 업도로 개통 반대 운동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끝내 도로 개통은 무산되었고 집을 철거 한 곳은 바리깡이 지나간 것처럼 흉물스럽게 남았다. 스페이스빔을 중심으로 다행공 방, 아침햇살, 한점갤러리, 사진공간 배다리, 달이네 등 크고 작은 문화 공간들이 자리 잡으면서 배다리 일대가 삐까 번쩍해졌다. 장면 2 곳곳이 폐허가 되었다. 다행히 학교와 교회 그리고 여선교사 집은 포탄 세례를 용케 피했다. 송림학교 아래 넓은 공터에는 매일 큰 장이 섰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돈 될 만한 것들을 갖고 나와 좌판을 차렸다. 옆집의 순이는 어 제부터 엿판을 목에 걸고 시장으로 나갔다. 어디선가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색다른 냄 새가 흘러들었다. 아침부터 철도길 옆 공터에서는 큰 무쇠 솥에 죽을 끓였다. 깡통과 바가지를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걸쭉한 죽을 받아 든 사람들은 철길에 걸터앉 아 허겁지겁 들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맛 같기도 한 오묘한 맛이 꿀맛이다. 허겁지겁 마시다시피 하는데 갑자기 뭐가 씹혔다. 담배꽁초다. 까뗌 주워들은 욕을 내뱉었다. 다행히 오늘은 한 개만 씹혔다. 깡통을 다 비웠을 쯤 철길이 흔들렸다. 요란한 기적을 울리며 시커먼 검댕이 연기를 내뿜고 탱크를 실은 화물기차가 서울 쪽으로 지나갔다. 철교 밑에 헌책방이 생겼다. 책을 읽은 지 얼마 만인가. 콘사이스를 한 권 살 겸 그곳 으로 향했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책방 안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고물 장수 아저씨들이 책방 앞 손수레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90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창영동 91

48 산업도로가 관통할 뻔한 창영동은 인천의 근대 역사가 관통하는 곳이다. 1899년 경 인선 철도가 놓이기 전 제물포항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 길을 거쳐야 했다. 개항 후 포 구에서 싸리재를 거쳐 배다리 옆을 지나 쇠뿔고개로 가는, 이름하여 경인가도( 京 仁 街 道 )다. 이방인들이 오고가다 보니 낯선 풍경의 집들도 들어섰고 별난 이야기도 만들 어졌다. 창영초등학교는 인천 최초로 조선 어린이들을 가르치고자 1907년 인천공립보통학 교 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910년 3월 첫 졸업생 18명을 배출했다. 현재도 건재한 빨간 벽돌의 교사( 校 舍 )는 당시 교육을 열망하는 조선인 유지들이 정성껏 모금한 2만 원을 밑거름으로 1922년에 완공했다. 인천의 3 1운동 만세 불씨는 이 학교에서 지펴졌다. 1919년 3월 6일 인천공립보통 학교 상급반 학생들이 만세의 첫 깃발을 올렸다. 그들은 어느 단체의 지령이나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자발적으로 항일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정오에 학교 를 출발해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배다리에서 합류해 동인천 역 부근 채미전 거리 등 시내 중심지에서 독립선언문을 배포하고 대한독립 을 외치면 서 시민들이 궐기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이 학교 학생 25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3학년이었 던 김명진(18)은 징역형 2년, 4학년이었던 이만용(18)과 박철준(19)은 각각 태형 90대 를 선고 받았다. 김명진은 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지금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복심원에 항소했다. 그는 일본인 판사 앞에서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 도에 바탕한 의사 발동이지 결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는 결국 1 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국가보훈처는 1996년 92 골목, 살아 [사라] 지다 창영동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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