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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大 巡 대학생 하계 성지순례 자 료 집 宗 團 大 巡 眞 理 會

2 目 次 성지순례의 취지 11 행사 일정표 12 계룡산 동학사 13 천호산 개태사 31 반야산 관촉사 41 모악산 금산사 54 황토현 전적지 92 상제님 생가 시루산 104 모악산 대원사 115 종남산 송광사 126 진안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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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 기 ( 道 旗 ) 우주 자연의 근원적 의미가 도( 道 )라는 개념으로 담겨있는 종단 대순진리회의 도기는 삼원( 三 圓 )과 사대( 四 大 ), 오색( 五 色 )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순이 원( 圓 )이며 원이 무극이고 무극이 태극이라는 말과 같이 원은 우주의 순 환법칙과 무위자연의 이법을 담고 있는데 대순 도기의 삼원은 천( 天 ) 지( 地 ) 인( 人 ) 삼계를 표상한 전우주이다. 동서남북의 사대는 천도( 天 道 )인 원형이정( 元 亨 利 貞 )과 지도( 地 道 )인 춘하추동 ( 春 夏 秋 冬 )과 인도( 人 道 )인 인의예지( 仁 義 禮 智 )의 윤리도덕을 뜻한다. 중앙은 오십토( 五 十 土 )로 사정사유( 四 正 四 維 )와 사대가 만나는 곳으로 신( 信 )을 뜻한다. 오색에는 음양( 陰 陽 )과 오행( 五 行 )의 진리가 담겨있다. 1978년 9월 28일(음 8월 26일) 도기 제작 1978년 10월 20일(음 9월 19일) 사시에 게양 - 3 -

5 종 지 ( 宗 旨 ) 음양합덕( 陰 陽 合 德 ) 신인조화( 神 人 調 化 ) 해원상생( 解 冤 相 生 ) 도통진경( 道 通 眞 境 ) 교리개요( 敎 理 槪 要 ) 음양합덕( 陰 陽 合 德 ) 신인조화( 神 人 調 化 ) 해원상생( 解 冤 相 生 ) 도통진경( 道 通 眞 境 )의 대순진리를 종지( 宗 旨 )로 하여 성( 誠 ) 경( 敬 ) 신( 信 )의 삼법언으로 수도의 요체( 要 諦 )를 삼고 안심( 安 心 ) 안신( 安 身 ) 이율령으로 수행의 훈전( 訓 典 )을 삼아 윤리( 倫 理 ) 도덕( 道 德 )을 숭상하고 무자기( 無 自 欺 )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 人 間 改 造 )와 정신개벽( 精 神 開 闢 )으로 포덕천하( 布 德 天 下 ) 구제창생 ( 救 濟 蒼 生 ) 보국안민( 輔 國 安 民 ) 지상천국( 地 上 天 國 ) 건설을 이룩한다

6 신 조( 信 條 ) 사강령( 四 綱 領 ) 안심( 安 心 ) 안신( 安 身 ) 경천( 敬 天 ) 수도( 修 道 ) 안심( 安 心 ) : 사람의 행동 기능을 주관함은 마음이니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 임에 움직이지 말고 당치 않는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 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한다. 안신( 安 身 ) : 마음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몸이니 모든 행동을 법례에 합당케 하며 도리에 알맞게 하고 의리와 예법에 맞지 않는 허영에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경천( 敬 天 ) : 모든 행동에 조심하여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말고 항상 상제께서 가까이 계심을 마음속에 새겨 두고 공경하고 정성 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도( 修 道 ) : 마음과 몸을 침착하고 잠심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정 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을 스스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잊지 않고 지성 으로 봉축하여야 한다

7 삼요체( 三 要 諦 ) 성( 誠 ) 경( 敬 ) 신( 信 ) 성( 誠 ) :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을 통일하여 만화도제( 萬 化 度 濟 )에 이바지 할지니 마음은 일신을 주관하며 전체를 통솔 이용하 나니, 그러므로 일신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게하는 것은 오직 마음에 있는 바라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 는 것이니 정성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 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름이다. 경( 敬 ) : 경은 심신의 움직임을 받아 일신상 예의에 알맞게 행하여 나아가는 것 을 경이라 한다. 신( 信 ) : 한마음을 정한 바엔 이익과 손해와 사와 정과 편벽과 의지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 며 만고를 통하되 사시와 주야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을 경과하되 강하와 산악이 움직이지 않은 것과 같이 하고 기약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가 있어 정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을 신이라 한다. 목 적 ( 目 的 ) 무 자 기( 無 自 欺 ) 정신개벽( 精 神 開 闢 ) 지상신선실현( 地 上 神 仙 實 現 ) 인간개조( 人 間 改 造 ) 지상천국건설( 地 上 天 國 建 設 ) 세계개벽( 世 界 開 闢 ) - 6 -

8 훈 회 ( 訓 誨 )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 言 德 )을 잘 가지라. 3. 척( 慼 )을 짓지 말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되게 하라. 수 칙 ( 守 則 ) 1. 국법을 준수하며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국리민복에 기여하여야 함. 2. 삼강오륜은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도덕의 근원이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 라에 충성하며, 부부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것이며, 존장을 경례로써 섬기고, 수하를 애휼 지도하고, 친우간에 신의로써 할 것. 3.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엄 금함. 4. 언동으로써 남의 척을 짓지말며, 후의로써 남의 호감을 얻을 것이요, 남이 나 의 덕을 모름을 괘의치 말 것. 5.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

9 연 혁 ( 沿 革 ) 구천상제( 九 天 上 帝 ) 구천상제께서는 원시의 모든 신성ㆍ불ㆍ보살들의 청원으로 서양대법국 천 계탑에 내려오시다.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전북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불에 강림하시다. 30년동안 머무시면서 제세대도의 천명과 신교를 인간에게 내리시다. 인간이 제세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년(1864년)에 그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다. 구천상제께서는 1871년 9월 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씨가에서 인간의 몸으로 현신하시니 존호는 증산( 甑 山 )이시다. 상극의 참상을 진단하시고 상생의 영원한 평화세계를 이룩하시기 위해 천 지공사를 수행하시고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대순진리 를 선포하시다. 1909년 6월 24일, 40년 간에 걸쳐 순회 주유하시며 삼계공사를 마치고 화천하시다. 창도주 조정산( 創 道 主 趙 鼎 山 ) 1895년 12월 4일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에 탄강하시다. 1909년 4월 조부전래의 배일사상을 품으시고 만주 봉천지방으로 망명, 동지 들과 구국운동을 하시다가 도력으로 구국제세할 뜻을 정하시고 입산공부를 하시다. 1917년 2월 10일 구천상제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 를 받으시다. 1917년 4월 9년만에 귀국하시어 전국각지를 편력, 수도하시다. 1925년 4월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설, 무극도를 창도하시다. 1941년 일제의 종교단체 해산령에 의하여 종교활동을 중단하시고 전국을 순회 주유하시며 수도하시다. 1945년 8월 조국광복을 맞이하여 종교활동을 부활하시다. 1948년 9월 도본부를 부산에 설치하시다. 1957년 11월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설법 시행하시다. 1958년 3월 6일 박한경 도전에게 유명으로 종통을 전수하고 화천하시다

10 도전의 종통계승( 都 典 宗 統 繼 承 ) 1958년 3월 6일 도주님의 유명에 의하여 종통을 계승하시다. 1969년 6월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시다. 1972년 3월 대순진리의 포덕ㆍ교화ㆍ수도를 종단기본사업으로, 구호자선사 업ㆍ사회복지사업ㆍ교육사업을 종단중요사업으로 삼다. 1976년 4월 대순장학회 발족 1984년 2월 학교법인 대진학원 설립 1984년 6월 대진고등학교 설립 1986년 12월 여주도장 준공 1987년 12월 재단법인 대순진리회 설립 1988년 2월 대진여자고등학교 설립 1989년 7월 제주 수련도장 준공 1990년 12월 여주도장 현 본전 준공 1992년 3월 대진대학교 개교 1992년 7월 포천수도장 준공 1993년 2월 종단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이전 1992년 12월 대진의료재단 설립 1994년 3월 분당 대진고 개교 1995년 1월 분당 제생병원 기공식 1995년 1월 동두천 제생병원 기공식 1995년 3월 일산 대진고, 수서 대진전자공예고 개교 1996년 2월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준공 1996년 3월 부산 대진전자정보통신고 개교 1997년 4월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휴양소 개관 1997년 11월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미륵불 봉안식 1997년 12월 괴산 보건전문대 기공식 1998년 8월 분당제생병원 개원 2000년 10월 고성제생병원 기공식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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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학생 성지순례 취지 성지순례( 聖 地 巡 禮 )란 말 그대로 성스러운 땅을 순례한다 라는 뜻입니다. 상 제님께서 130여년 전에 강세하시고 천지공사를 하신 곳들을 우리가 순례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의 성지순례( 聖 地 巡 禮 )의 의미는 巡 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큰 진리를 조금이나마 돌아보며 대순의 진리를 자각하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시기 전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인 조선땅에 이르셔서 마침내 전라북도 모악산 금산사의 미륵금불에 영으로써 임하시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30년을 계시다가 1871년 전북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씨가에 강세하셨습니다. 그 후 1901년부터 1909년까지 천지공사를 하신 후 화천하실 때 까지 여러 곳에서 상제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대학생 성지순례를 통하여 우리는 상제님께서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내 려오셨던 놀라운 일들을 실제로 체득하며,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뜻을 가슴깊이 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지를 순례함은 그곳에 직접 가서 그 땅을 밟으며 성스러운 기운을 느껴보 고, 성지가 된 이유를 되새겨보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제 우리 스스로가 상제님께서 주유하신 역사의 장을 더듬어 보며 아직도 상제님의 숨결 을 들을 수 있고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공사지를 돌면서 그 시절 혼란과 도탄속 에서 진멸지경에 빠진 세계창생을 살리기 위해 고통 속에 천지공사를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제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현재 처해 있는 세계를 직시할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성지순례가 갖는 큰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번 대학생 성지순례를 통하여 상제님께서 행하셨던 공사의 의미와 내 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아 더욱 더 신심을 돈독히 하여 학창생활의 큰 보탬이 되고 나아가 도를 바로 인지하고 올바른 수도인이 되는 계기를 삼고자 합니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 방면,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단체활동을 통 하여 호연지기를 높이고 서로 대화로써 뜻을 모아 성숙한 수도생활로 연계되도 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13 대순학생회 대학생 성지순례 일정표 일 자 출발시간 소요시간 프 로 그 램 비고 7월10일 월요일 9시 입소식, 여주본부도장 참배 10시 출발 12시 도착(유성유스호스텔), 방배정, 식사 13시 20분 출발 13시 20분 1시간 40분 계룡산 동학사 15시 40분 출발 15시 40분 40분 천호산 개태사 16시 20분 30분 출발 16시 50분 40분 반야산 관촉사 17시 30분 45분 숙소로 출발 18시 15분 도착(유성유스호스텔) 19시 1시간 석식(유성 유스호스텔) 20시 답사지 설명 및 교화 21시 친화 프로그램 7월11일 화요일 7시 30분 조식(유성 유스호스텔) 8시 30분 1시간 30분 출발 10시 2시간 모악산 금산사 12시 15분 중식(모악산장) 13시 40분 출발 13시 40분 1시간 황토현 전적지, 동학기념관 14시 40분 20분 출발 15시 1시간 상제님 생가, 시루산 17시 50분 숙소로 출발 17시 50분 도착(모악산장) 19시 석식 20시 조별 강사와의 시간 7월12일 수요일 7시 30분 조식(모악산장) 8시 30분 40분 출발 9시 10분 1시간50분 모악산 대원사 11시 30분 출발 11시 30분 1시간 중식(화심 생두부집) 12시 30분 20분 출발 12시 50분 40분 종남산 송광사 13시 30분 30분 출발 14시 2시간 진안 마이산 16시 2시간 숙소로 출발 18시 도착(유성 유스호스텔) 19시 1시간 석식 20시 화합의 한마당 7월13일 목요일 8시 조식(유성 유스호스텔) 9시 1시간 출발 10시 2시간 천안 독립기념관 12시 1시간 중식(독립기념관 식당) 13시 2시간 여주본부도장으로 출발 15시 여주본부도장 도착, 퇴소식

14 동학사(東鶴寺) 동학사는 충남 공주시에서 약 25, 대전에서 8 정도 떨어진 반포면 학봉리 에 위치한다. 계룡산 동쪽 골짜기 공원관리소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일주문 이 나오고, 1.5 를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남매탑으로 가는 길이 있고, 왼편에는 육모정으로 지어진 세진정(洗塵亭)이 있다. 세진(洗塵)이란 마음속에 있는 욕심 과 더러움을 계곡의 맑은 물로 씻어 내어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세진 정을 지나 암자 입구에 사찰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높다란 홍살문이 있다. 홍 살문을 보면 유학(儒學)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암자를 지나자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 그 옆에 동학사가 위치해 있다. 동학사의 유래와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계룡산 4대 사찰(신원사, 구룡사, 갑사, 동학사)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다. 동학사를 둘러싼 계룡산(鷄龍山)은 조선초 무학대사가 산의 생김새가 금계포 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는 모습)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했 는데, 여기서 닭과 용을 따서 계룡산이라 한 이야기와 천황봉에서 삼불봉을 잇 는 능선과 봉우리의 모습이 닭벼슬처럼 생겼고 봉우리가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몸처럼 보이기 때문에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두 이야기가 전해진다

15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 상원조사(上願祖師)가 터를 잡고 후에 회의 화상(懷議和尙)이 창사하였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 또는 상원사(上願寺)라 하다가, 고려 태조 3년(920)에 도선국사 가 왕명을 받아 중창하였는데,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을 기원했다 해서 원당(願堂) 이라고도 했다. 고려 태조 19년(939)에 신라가 망하자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 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사 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처럼 동학사(東鶴寺) 로 바꾸었다고 한다. 순조 14년(1814)에 금봉월인화상(錦峯月印和尙)이 절을 중건하였고, 고종 원년(1864) 에 보선선사(普詵禪寺)가 대가람을 개축하였다. 동계사, 삼은각, 숙모전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동계사(東鷄祠) 고려 태조(太祖) 19년(939)에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이, 신라 제19대 눌지 왕(訥祉王) 때에 인질로 일본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하고 왜지(倭地)에서 혹형으로 산화한 관설당 박제상(觀雪堂 朴堤上)의 만고충절(萬

16 古 忠 節 )을 기려 이곳에 초혼( 招 魂 ) 제사( 祭 祀 )하고, 왕명으로 동계사( 東 鷄 祠 )를 건립하고 제사를 지냈다. 조선 영조 4년(1728)에 병화를 만나 전소되었다. 그 후 80여 년 동안 빈 터로 내려오다가 순조 14년(1814)에 금봉월인화상( 錦 峯 月 印 和 尙 )이 절을 중건하여 동 학사( 東 鶴 寺 )로 개칭하고, 고종 원년(1864)에 보선선사( 普 詵 禪 寺 )가 대가람을 개축하였다. 사찰입구 초혼각지( 招 魂 閣 址 )에는 숙모전( 肅 慕 殿 )과 삼은각( 三 隱 閣 )이 있다. 근대의 한국전쟁(1950)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 졌다가 1960년 이후 중 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계사는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가 될 수 없다 고 한 박제상 ( 觀 雪 堂 朴 堤 上 )의 항일( 抗 日 ) 충혼을 모신 곳으로, 조선 영조 때 소실 된 후 제사 지내던 것이 폐해졌다가, 1956년( 丙 申 ) 9월에 중건되어 류차달( 柳 車 達 )을 추향( 追 享 )하였다. 2. 삼은각( 三 隱 閣 ) 삼은각은 고려 때 절의를 지킨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등 삼은( 三 隱 )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세 사람의 호가 모두 은( 隱 ) 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삼은각이라 한다. 조선 태조 3년 고려의 유신 길재( 吉 再 )가 월영( 月 影 ) 운선( 雲 禪 ) 두 스님과 함께 단( 壇 )을 설치하고, 고려 태조 및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내다가 포은 정몽주( 圃 隱 鄭 夢 周 )도 아울러 모셨다. 야은( 冶 隱 ) 길재는 이곳에서, 이성계에 저 항하다 죽은 포은 정몽주의 넋을 불러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 곁에 설단하여 초혼 제를 지냈던 것은 당시 삼엄한 조선 집권초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에 조선 정종 1년(1399) 고려 유신 유방택( 柳 方 澤 )이 포은 정몽주의 신당 옆에 목은 이색( 牧 隱 李 穡 )을 초혼하여 함께 제사지냈고, 그후에 야은( 冶 隱 ) 길 재를 함께 모셔 초혼제를 지냈으며, 이듬해에 공주목사( 公 州 牧 使 ) 이정간( 李 貞 幹 )이 건물을 지어 삼은( 三 隱 )만 제사를 지내 삼은단( 三 隱 壇 )이라 하다가 조선 세조 때에 정식 각을 지어 삼은각( 三 隱 閣 )이라 하였다

17 3. 숙모전(肅慕殿) 숙모전(肅慕殿)은 세조에게 폐위당하여 죽은 단종과 이에 항거한 충신들의 위 패를 모신 곳이다. 세조 2년(1456)에 사육신의 비극이 일어나자 매월당 김시습 이 서울 노량진 강변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암매장하고 다음해(세조 3년)에 동학사에 와서 조상치(曹尙治 ) 이축(李蓄) 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 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가려움으로 인한 만신창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세조가 동학사에 와 서 제단에 대해 물으니 단종 승하 후 매월당 김시습이 내사하여 초혼제를 지냈 다하니, 세조가 생각을 뉘우치고 단종의 원을 풀어 주면 몸의 병이 나을까 하여 세조 3년(1457)에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定順王后) 안평대군(安平大君) 금성대군(金城大君) 김종서(金種瑞) 황보 인(皇甫仁) 정분(鄭奔) 등과 사육 신, 그리고 세조찬위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 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토지와 산림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승려와 유생(儒生)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그 뒤 세조 12년(1466) 김시습 등이 증축하여 매년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오 다, 영조 4년(1728)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순조 27년(1827)에 다시 세웠다. 그

18 후 고종 1년(1864)에 초혼각 북벽에 단종의 위패를 모시고, 동벽에는 고려말 충 신인 삼은 삼상 엄흥도 등 7위를, 서벽에는 사육신과 김시습등 7위를 모셨다. 고 종 41년(1904)에 이름을 숙모전(肅慕殿)으로 바꾸고 단종비 정순왕후를 함께 모 셨다. 그 후 충신 26위를 추가해 현재 89위만 봉안되어 있다. 위 세 전사(殿祠)는 신라 고려 조선의 충의지사(忠義志士)를 모신 곳으로 한 민족의 충의절신(忠義節臣)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져 왔다. 4. 전경(典經)에 나오는 내용 전경 교운 2장 57절에는 병신년 三월에 박 한경은 도 주의 분부를 좇아 류 철규 박 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이르렀도 다. 이 절의 경내에 동계사(東溪 祠) 삼은각(三隱閣)과 단종왕의 숙모전(肅慕殿)이 있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추배한 동묘 서묘가 있 동학사 염화실 으니 신라 고려 조선의 삼대 충 의지사를 초혼한 곳이로다. 이곳의 관리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 年)의 후손이고 정기적으로 청주에서 내왕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도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그 후손이 도주께서 불러나온 듯이 미리 와서 문을 여니 도주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 도다. 그리고 동학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 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神明解冤)을 위주한 것이라 고 이르셨도다. 고 하였 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충의지사들의 원한을 풀어 주어 이 원한으로부터 일어나 는 상극과 재앙을 막고, 신명과 인간이 조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주님의 공 부이신 것이라 여겨진다

19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곳을 성지로 여기고 가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 행한 도주님의 신명 해원공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이다. 동계사( 東 鷄 祠 )는 신라때 일본에서 혹형으로 산화한 관설당 박제상( 觀 雪 堂 朴 堤 上 )의 원한을, 삼은각( 三 隱 閣 )은 포은 정몽주( 圃 隱 鄭 夢 周 ), 야은( 冶 隱 ) 길재, 목은 이색( 牧 隱 李 穡 )의 원한을, 숙모전( 肅 慕 殿 )은 단종과 사육신과 생육신 등 의 원한을 각각 도주님께서 이렛동안의 공부로 신명해원 공사를 보신 곳이다. 이는 우리 대순진리회 종지인 해원상생의 이념을 잘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 겠다. 또한 전경( 典 經 )에서 세상에는 충이 없고 효가 없고 열도 없다. 그러므로 천 하가 모두 병들어 있느니라( 世 無 忠 世 無 孝 世 無 烈 是 故 天 下 皆 病 ) 고 하신 것을 명심하여 우리는 충효열이 없는 세상을 바로 잡아 후천 선경세상을 여는 것이 우리 수도인의 임무라 하겠다. 이상과 같이 오늘날 가치관 혼란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충의지사를 초혼 한 동학사가 주는 의미는 크다. 5. 대웅전 대웅전은 1980년에 지어진 것으로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하고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소조의 좌상으로 안치하였다. 6. 삼성각 삼성각은 대웅전 서편에 위치해 있다. 삼성은 곧 칠성( 七 星 ) 산신( 山 神 ) 독 성( 獨 聖 )을 말한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고 인간의 복록을 맡고 있으며, 산신 은 우리민족 고유의 산악숭배의 토속 신앙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 물을 주관하고, 독성은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는 존재이다. 불교 본연의 신앙 대상이 아니므로 건물 이름을 전 ( 殿 )이라 하지 않고 각( 閣 )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 18년(1818)에 지은 것인데, 내부에 단을 설치하여 중앙에 칠성탱화를, 좌우에 산신탱화와 독성탱화를 모셨다

20 7. 남매탑의 전설 신라 선덕왕 15년(646)에 상원( 上 願 )이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 었다. 어느 날 목에 커다란 뼈가 걸려 고생하는 호랑이를 구해 주었는데, 얼마 후 호랑이는 아름다운 처녀를 업어다 놓고 갔다. 상원 스님은 기절한 처녀를 따 뜻이 간호하여 소생시켰다. 그 처녀는 상원의 아내가 될것을 소원하였으나 상원 스님은 사랑과 수행중에 수행을 선택하여, 그녀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면서, 남 매가 될 것을 제의하여 같이 수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두 사람은 비구 와 비구니로 수행하다가 한 날 한 시에 열반에 들었고, 이 소식을 들은 처녀의 아버지는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이 탑을 세워 뜻을 기리니, 후인들이 명하기를 남매탑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석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두 석탑이 나 란히 다정하게 있는 것을 보고 훗날 지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21 박제상( 朴 堤 上 ) 생몰년 미상. 신라 상대의 충신. 김제상( 金 堤 上 )이라고도 한다.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하였다. 삼국사기 에 박제상은 신라 시조 혁거세( 赫 居 世 ) 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 阿 道 葛 文 王 ), 아버지는 파진찬( 波 珍 飡 ) 물품( 勿 品 )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그의 세계 ( 世 系 )는 거의 신빙성이 없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 1) 내물왕의 셋째아들 인 미사흔( 未 斯 欣 )을 왜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 卜 好 )를 고구 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왜와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 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 해 군신을 불러 협의하였다. 그 결과 수주촌간( 水 酒 村 干 ) 벌보말( 伐 寶 靺 ), 일리 촌간( 一 利 村 干 ) 구리내( 仇 里 矩 ), 이이촌간( 利 伊 村 干 ) 파로( 波 老 ) 등 세 사람이 모두 박제상이 그러한 역할을 맡을 역량이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천거하였다. 당시 박제상은 양산( 梁 山 )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 賂 良 州 干 )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장수 왕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귀국한 즉시 왜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 다. 그는 왜에 이르러 마치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속였다. 마침 백 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해 왜를 침입하려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하였다. 이에 왜가 병을 파견해 미사흔과 박제상을 향도( 嚮 導 : 길을 인도하 는 사람)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하였다. 왜의 침략 세력이 신라를 치러 오는 도중에 박제상은 강구려( 康 仇 麗 )와 협력 해 왜병을 속여 미사흔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 자신은 붙잡혀 왜 왕 앞에 끌려갔다. 왜 왕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으나,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왜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해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유형에 처해져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22 이러한 사실이 신라에 알려지자 눌지왕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를 대아 찬으로 추증하고 부인을 국대부인( 國 大 夫 人 )으로 책봉했으며, 둘째 딸을 미사흔 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참고문헌 三 國 史 記, 三 國 遺 事, 朴 堤 上 小 考 ( 金 龍 善, 全 海 宗 博 士 華 甲 紀 念 史 學 論 叢, 一 潮 閣,

23 박제상설화( 朴 堤 上 說 話 )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에 관한 설화. 박제상이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한 뒤 자신은 죽음을 당한 인물전설이다. 그의 아내가 기다리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죽음 설 화도 포함된다. 삼국유사 에는 김제상으로 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박제상은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 보해( 寶 海 : 삼국사기에는 卜 好 )를 구 하러 변복을 하고 가서, 왕의 추격을 무릅쓰고 같이 탈출하여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음에는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제 미해( 美 海 : 삼국사기에는 未 斯 欣 ) 를 구하러 가서 신라를 도망해 왔다고 하며 왕의 신임을 얻은 뒤에 미해를 탈출 시키고 자기는 붙잡혀서 문초를 받았다. 일본 왕의 문초와 설득에도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 하는 되지 않겠으며, 차라리 계림의 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이나 녹을 먹 지 않겠다. 라는 말로 계림 사람임을 주장한 뒤에, 발바닥의 껍질을 벗기운 채 불타 죽었다. 삼국사기 의 기록과 대조해 보면 등장인물의 이름에 차이가 있고, 왕제의 부하 이름이 삼국유사 에는 보이지만 삼국사기 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것 은 사실상 부사( 副 使 )가 따라간 것을 밝힌 것도 되고, 박제상이 귀환 활동을 할 때 협조를 얻어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이 귀국할 수 있게 설정한 것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에는 고구려왕을 설득하였더니 순순히 왕제를 풀어 주었다고 하여 박제상의 언변을 중시하였고, 삼국유사 는 야간 탈출을 하였다고 해서 담력 과 지혜를 중시하였다. 두 기록 다 박제상이 집에 들르지 않고 즉시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것은 부부나 가정의 정보다 국사가 더 중요하다는 박제상의 충성심을 드러내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드러낸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문헌은 박제상의 사실( 史 實 )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민간설화 측면에서는 박제상 부인 편을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남편이 집을 떠나자 몸부림쳐 울었고(그래서 望 德 寺 앞 모래톱을 長 沙 라고

24 함.), 만류를 뿌리치고 다리를 뻗고 울었고(그래서 그곳을 伐 知 旨 라 함.), 일본에 간 남편을 치술령에 올라가 그리워하다가 죽어서 치술령 신모( 神 母 )가 되었으며, 그 사당이 지금까지 있다는 삼국유사 의 기록은 삼국사기 보다 설화적인 증거를 많이 제시하고 있다. 박제상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쳐 죽어서 망부 석이 되었는데, 그곳의 주민은 아직도 부인의 정렬을 칭송하고 있다 한다. 다른 구전으로는 박제상의 아내는 죽어서 치 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던 세 딸은 술 이라는 새가 되었다고 한다. 또 이들이 떨어져 죽은 치술령고개 밑에는 은을암( 隱 乙 庵 )이 있는데, 이 암자 는 절벽에 떨어져 죽을 때 새 乙 가 되어 숨어서 隱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부인과 딸이 죽어서 새가 된 것은 새에게는 멀리 날아가서 그리운 사람을 만 날 수 있도록 날개가 달려 공간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새라면 바 다를 건너가서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으련만 하고 간절히 바라던 것 이 사후에 새로 변신하여 성취되었다. 죽음을 초월하면서 사랑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며, 살아서 바다 건너로 떠날 수 없는 한을 죽어서 새가 되어 풀고 만난점에서 한국인의 애정관이 절절히 표 출된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새가 된 것도 죽음을 건너 이어지는 부녀 간의 사랑이다. 이때 은을암은 박제상 처자를 모시고 기념하던 당으로서 망부석과 같은 기념 물이라 할 수 있다. 치술령의 산신이나 신모가 된 것은 주민이 박제상 부인을 존경하는 마음과 신앙심이 강조된 현상이며, 산신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당이 지 어진 것이다. 이 설화에는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충성심에 박제상 자신과 그의 아내와 딸의 인간적인 고뇌를 근거로 한 애정 정렬 효도 등의 복합적인 윤리관이 들어 있 다. 구전설화 쪽이 더 인간적이며 가정적인 것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三 國 史 記, 三 國 遺 事, 韓 國 口 碑 文 學 大 系 ( 韓 國 精 神 文 化 硏 究 院, ), 韓 國 口 碑 傳 說 의 硏 究 ( 崔 來 沃, 一 潮 閣, 1981), 朴 堤 上 說 話 論 ( 蘇 在 英, 국어국문학 통권53호, 1971)

25 정몽주( 鄭 夢 周 ) 1337(충숙왕 복위 6) 1392(공양왕 4). 고려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영일 ( 迎 日 ). 경상도 영천 출생. 초명은 몽란( 夢 蘭 ) 또는 몽룡( 夢 龍 ), 자는 달가( 達 可 ), 호는 포은( 圃 隱 ). 추밀원지주사( 樞 密 院 知 奏 事 ) 습명( 襲 明 )의 후손으로 운관( 云 瓘 )의 아들이다. 어머니 이씨( 李 氏 )가 난초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나 낳았기 때문에 초명을 몽란이라 했다가 뒤에 몽룡으로 개명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몽주라 고쳤다. 1357년(공민왕 6) 감시( 監 試 )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해 1362년 예문 관의 검열 수찬이 되었다. 이 때 김득배( 金 得 培 )가 홍건적을 격파해 서울을 수복 하고서도 김용( 金 鏞 )의 음모로 상주에서 효수되자, 그의 문생으로서 왕에게 청 해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냈다. 1363년 낭장 겸 합문지후( 郎 將 兼 閤 門 祗 候 ) 위위시승( 衛 尉 寺 丞 )을 거쳐, 동북 면도지휘사( 東 北 面 都 指 揮 使 ) 한방신( 韓 邦 信 )의 종사관( 從 事 官 )으로 종군, 서북 면에서 달려온 병마사 이성계( 李 成 桂 )와 함께 여진토벌에 참가하고 돌아와 전보 도감판관( 典 寶 都 監 判 官 ) 전농시승( 典 農 寺 丞 )을 역임하였다. 당시 상제( 喪 制 )가 문란해져서 사대부들이 모두 백일 단상( 短 喪 )을 입었는데, 홀로 부모의 상에 여묘( 廬 墓 )를 살아 슬픔과 예절을 극진히 했기 때문에 1366년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이듬해 예조정랑으로 성균박사를 겸임하였다. 당시 고려의 주자집주 朱 子 集 註 에 대한 그의 강설이 사람의 의표를 찌르게 뛰어나 모두들 의아해 하였다. 그러다가 송나라 유학자 호병문( 胡 炳 文 )의 사서통 四 書 通 이 전해지면서 이 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 탄복하였다. 대사성 이색( 李 穡 )은 그를 높이 여겨 동방 이학( 理 學 )의 시조 라 하였다. 태 상소경( 太 常 少 卿 )과 성균관 사예 직강 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372년 서장관( 書 狀 官 )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풍랑으로 배가 난파되어 일행 12인이 익사하였다. 다행히 그는 13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명나라 구조선에 구출되어, 이듬해 귀국하였다. 경상도안렴사( 慶 尙 道 按 廉 使 ) 우사의대부( 右 司 議 大 夫 ) 등을 거쳐,

26 년(우왕 2) 성균관대사성으로 이인임( 李 仁 任 ) 지윤( 池 奫 ) 등이 주장하는 배명친 원의 외교방침을 반대하다가 언양에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났다. 당시 왜구의 침해가 심해 나흥유( 羅 興 儒 )를 일본에 보내어 화친을 도모했으나 그 주장( 主 將 )에게 붙잡혔다가 겨우 죽음을 면하고 돌아왔다. 그에게 앙심을 품 었던 권신들의 추천으로 구주( 九 州 )지방의 패가대( 覇 家 臺 )에 가서 왜구의 단속 을 요청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위태롭게 여겼으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건너가, 교린( 交 隣 )의 이해( 利 害 )를 설명해 맡은 임무를 수행했고, 왜구에게 잡혀갔던 고려 백 성 수백명을 귀국시켰다. 이어 우산기상시( 右 散 騎 常 侍 ), 전공사( 典 工 司 ) 예의사( 禮 儀 司 ) 전법사( 典 法 司 ) 판도사( 判 圖 司 )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380년 조전원수로 이성계를 따라 전라도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하였다. 이듬해 성근익찬공신( 誠 勤 翊 贊 功 臣 )에 올라 밀직부사 상의회의도감사 보문각 제학 동지춘추관사 상호군( 密 直 副 使 商 議 會 議 都 監 事 寶 文 閣 提 學 同 知 春 秋 館 事 上 護 軍 )이 되었다. 1382년 진공사( 進 貢 使 ) 청시사( 請 諡 使 )로 두 차례 명나라에 갔으 나, 모두 입국을 거부당해 요동( 遼 東 )에서 되돌아왔다. 동북면조전원수로서 다시 이성계를 따라 함경도에 다녀온 뒤, 1384년 정당문 학( 政 堂 文 學 )에 올라 성절사( 聖 節 使 )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명나라는 고려 에 출병하려고 세공( 歲 貢 )을 증액하며, 5년간의 세공이 약속과 다르다 하여 고 려 사신을 유배하는 등 국교관계가 몹시 악화되어 있었다. 이에 모두 명나라에 봉사하기를 꺼렸으나, 사신의 임무를 다해 긴장상태의 대 명국교를 회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85년 동지공거( 同 知 貢 擧 )가 되어 우홍 명( 禹 洪 命 ) 등 33인을 뽑고, 이듬해 다시 명나라에 가서 증액된 세공의 삭감과 5년간 미납한 세공의 면제를 요청해 결국 관철하였다. 귀국 후 문하평리( 門 下 評 理 )를 거쳐 영원군( 永 原 君 )에 봉군되었으며, 또 명나 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다시 국교가 악화되어 요동에서 되돌아와, 삼사좌사( 三 司 左 使 ) 문하찬성사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389년(공양왕 1)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워, 이듬해 문하찬성사 동판도평 의사사사 호조상서시사 진현관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영서운관사

27 ( 門 下 贊 成 事 同 判 都 評 議 使 司 事 戶 曹 尙 瑞 寺 事 進 賢 館 大 提 學 知 經 筵 春 秋 館 事 兼 成 均 大 司 成 領 書 雲 館 事 )로 익양군충의군( 益 陽 郡 忠 義 君 )에 봉군되고, 순충논도동덕좌명 공신( 純 忠 論 道 同 德 佐 命 功 臣 )의 호를 받았다. 이초( 彛 初 )의 옥사가 일어나, 당시 조정에서 몰려난 구파정객들에 대한 대간 의 논죄가 끊임없이 계속됨을 보고 이를 부당하다고 말해 탄핵을 받았다. 이에 사직하려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어 벽상삼한삼중대광 수문하시중 판도평의사사병조상서시사 영경령전사 우문관대제학 감춘추관사 경연사 익양군 충의백( 壁 上 三 韓 三 重 大 匡 守 門 下 侍 中 判 都 評 議 使 司 兵 曹 尙 瑞 寺 事 領 景 靈 殿 事 右 文 館 大 提 學 監 春 秋 館 事 經 筵 事 益 陽 郡 忠 義 伯 )이 되었다. 고려 말 다사다난하던 때 정승의 자리에 올라 아무리 큰 일이나 큰 의혹이라 도 조용히 사리에 맞게 처결하였다. 당시 풍속이 모든 상제( 喪 祭 )에 불교의식을 숭상했는데, 사서( 士 庶 )로 하여금 가례 에 의해 사당을 세우고 신주를 만들 어 제사를 받들게 하도록 요청해 예속이 다시 일어났다. 또, 지방수령을 청렴하고 물망이 있는 사람으로 뽑아 임명하고, 감사를 보내 출척( 黜 陟 )을 엄격하게 했으며, 도첨의사사( 都 僉 議 使 司 )에 경력과 도사를 두어 금전과 곡식의 출납을 기록하게 하였다. 서울에는 오부학당( 五 部 學 堂 )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를 두어 교육의 진흥을 꾀하였다. 그리고 기강을 정비해 국체를 확립하고, 쓸데없이 채용된 관원을 없애 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였다. 또, 의창( 義 倉 )을 세워 궁핍한 사람을 구제하고, 수참( 水 站 )을 설치해 조운( 漕 運 )을 편리하게 하는 등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였다. 1391년 인물추변도감제조관( 人 物 推 辨 都 監 提 調 官 )이 되고, 안사공신( 安 社 功 臣 ) 의 호를 더했으며, 이듬해 대명률 大 明 律 지정조격 至 正 條 格 및 본국의 법령을 참작, 수정해 신율( 新 律 )을 만들어 법질서를 확립하려고 힘썼다. 당시 이성계의 위망( 威 望 )이 날로 높아지자, 조준( 趙 浚 ) 남은( 南 誾 ) 정도전( 鄭 道 傳 ) 등이 그를 추대하려는 책모가 있음을 알고 이들을 제거하려 하였다. 그런 와중에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 석( 奭 )을 마중나갔던 이성계가 황주에 서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벽란도( 碧 瀾 渡 )에 드러눕게 되자, 그 기회에 먼저 이성계의 우익( 羽 翼 )인 조준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28 이를 눈치챈 이방원( 李 芳 遠 )이 아버지 이성계에게 위급함을 고해 그날 밤으로 개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한편, 정몽주를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 정몽주도 이를 알고 정세를 엿보려 이성계를 문병하고 귀가하던 도중 선죽교( 善 竹 橋 )에서 이방 원의 문객 조영규( 趙 英 珪 ) 등에게 격살되었다. 그는 천품이 지극히 높고, 뛰어나게 호매( 豪 邁 )해 충효를 겸하였다. 어려서부 터 학문을 좋아해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성리학을 연구해 조예가 깊었다. 그의 시 문은 호방, 준결하며, 시조 단심가 丹 心 歌 는 그의 충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후세까지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문집으로 포은집 이 전하고 있다. 1405년(태종 5) 권근( 權 近 )의 요청에 의해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 전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 大 匡 輔 國 崇 祿 大 夫 領 議 政 府 事 修 文 殿 大 提 學 監 藝 文 春 秋 館 事 益 陽 府 院 君 )이 추증되었다. 1517년(중종 12) 태학생( 太 學 生 ) 등의 상서( 上 書 )로 문묘에 배향되었고, 또 묘에 비석을 세웠는데, 고려의 벼슬만을 쓰고 시호를 적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 지 않은 뜻을 분명히 하였다. 또, 개성의 숭양서원( 崧 陽 書 院 ) 등 13개의 서원에 제향되었고, 묘 아래에 있는 영모재( 永 慕 齋 ), 영천의 임고서원( 臨 皐 書 院 ) 등 몇 곳의 서원에는 그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 시호는 문충( 文 忠 )이다. 참고문헌 高 麗 史, 高 麗 史 節 要, 太 祖 實 錄, 太 宗 實 錄, 圃 隱 集, 治 平 要 覽, 宋 子 大 全, 鄭 夢 周 ( 金 庠 基, 朝 鮮 名 人 傳, 文 豪 社, 1965), 鄭 夢 周 ( 河 炫 綱, 韓 國 의 人 間 像 1, 新 丘 文 化 社, 1969)

29 사육신( 死 六 臣 ) 1456년(세조2)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된 6명의 신하. 곧 박팽년( 朴 彭 年 ) 성삼문( 成 三 問 ) 이개( 李 塏 ) 하위지( 河 緯 地 ) 유성원( 柳 誠 源 ) 유응부( 兪 應 孚 )의 여섯 사람을 말한다. 사육신 사건으로 김문기( 金 文 起 ) 박쟁( 朴 崝 ) 권자신( 權 自 愼 ) 성승( 成 勝 )윤 영손( 尹 令 孫 ) 허조( 許 慥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으며,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하여 집현전을 혁파하였다.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로 즉위한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왕자로 야심이 만만한 호걸이었다. 그는 문종이 죽고 단종이 13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게 되자 왕위에 야심을 품고 정인지( 鄭 麟 趾 ) 신숙주( 申 叔 舟 ) 한명회( 韓 明 澮 )등을 당여( 黨 與 ) 로 삼아 무리를 만들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먼저 고명대신( 顧 命 大 臣 )인 영의정 황보 인( 皇 甫 仁 ), 좌의정 김종서( 金 宗 瑞 ) 등을 살해한( 癸 酉 靖 難 ) 다음 1455년(단종3) 6월에 드디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 세조의 잔인한 왕위찬탈에 분개한 6신은 시기를 보아 단종을 복위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마침 세조가 상왕( 上 王 : 단종)을 모시고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광 연전( 廣 延 殿 )에 초청하는 자리에서 성승(성삼문의 아버지)과 유응부를 별운검 ( 別 雲 劒 : 칼을 차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직책)으로 임명하자 곧 그 자리에서 거사하여 세조와 측근관료들을 제거하고 상왕을 복위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명회의 주장으로 장소가 협소하다 하여 세조가 연회당일에 별운검을 폐지하도 록 명하고 또 왕세자도 질병 때문에 연회자리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성승과 유 응부 같은 무장들은 결행을 주장한 반면, 성삼문과 박팽년 같은 문관들은 훗날 을 기약하자고 말렸다. 결국 박팽년과 성삼문의 주장으로 거사를 뒤로 미루게 되었다. 이 때 단종복위에 참여하였던 집현전학사 출신의 성균사예( 司 藝 ) 김질 ( 金 礩 )이 장인 우찬성 정창손( 鄭 昌 孫 )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정창손이 즉시 김 질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 반역을 고발하였다. 세조는 이들을 직접 국문하였는데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이 차례로 국문을 당하였으나 모두 늠 름한 태도로서 공초에 승복하였다. 박팽년은 옥에서 죽고 유성원과 허조는 거사 실패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자결하였다. 이들은 옥이 일어난 지 7일 만인 6월

30 일에 모두 군기감( 軍 器 監 )앞에서 모두 거열형( 車 裂 刑 :수레에 묶어 사지를 찢어 죽임)으로 처형되었다. 1691년 (숙종 17) 12월에 이르러 사육신을 정식으로 국가에서 공인하여 복관 시키고 묘우( 廟 宇 )를 만들어 제사지내게 하였다. 1791년(정조 15) 2월에는 절의 숭상의 범위를 더 넓혀 단종을 위하여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 ( 御 定 配 食 祿 )을 편정( 編 定 )하였다. 즉, 육종영( 六 宗 英 : 安 平 大 君 을 비롯한 6인의 종친) 사의척( 四 懿 戚 : 송현수를 비롯한 4인의 외척) 삼상신( 三 相 臣 : 황보 인 김종서 정분( 鄭 苯 ) 육신( 六 臣 : 성삼문 이개 유성원 박팽년 하위지 유응부) 삼중신( 三 重 臣 : 閔 仲 趙 克 寬 김문기) 양운검( 兩 雲 劒 : 성승 박정) 등으로 구분선정하여 정단배식인원( 正 壇 配 食 人 員 )을 32인으로 편정하고 있다. 이 어정배식록은 정조가 그 당시의 내각과 홍문관에 명령하여 <<세조실록>>을 비롯한 국내의 참고문헌을 널리 고증하게하여 신중히 결정한 국가적인 의전이었 다. 성삼문 : 세조를 가리켜 진사( 進 賜 : 종친에 대한 호칭) 라 호칭하고 떳떳하게 모의사실을 인정하면서 세조가 준 녹( 祿 )은 창고에 쌓아두었으니 모두 가져가라 하였다. 참고자료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사, ) 이덕일, 교양 한국사, 휴머니스트,

31 생육신( 生 六 臣 ) 조선 제6대왕 단종이 그 숙부 수양대군( 首 陽 大 君 )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세조 에게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6인의 신하. 곧 김시습 ( 金 時 習 ) 원호( 元 昊 ) 이맹전( 李 孟 專 ) 조려( 趙 旅 ) 성담수( 成 聃 壽 ) 남효온 ( 南 孝 溫 )을 말한다. 이들은 세조 즉위 후 관직을 그만두거나 아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찬탈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지내다 죽었다. 중종반정 후 사 림파가 등장, 사육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게 되면서 이들의 절의 또한 새 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뒤 조정에서 시호를 내려주는 등 크게 추앙받았다. 참고문헌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사,

32 개태사( 開 泰 寺 ) 1.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됨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개태사는 고려 초인 936년(태조 19) 에 시작하여 940년(태조 23) 12월에 이르기까지 4년여에 걸쳐 완성되었다. 개태 사의 창건 이전에 이미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삼국사기 등에 황산불사( 黃 山 佛 寺 ) 라는 절이 보인다. 여기서 황산은 후일 개태사가 들어선 천호산과 동일한 산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작은 규모의 사찰 자리에 개태사가 창건되었던 것이다. 절이 완성되자 태조는 친히 소문( 疏 文, 발원문)을 지어 화엄법회를 개최하기 도 하였다. 고려사 에 이러한 창건의 사실이 간단하게 전하지만 조선 중엽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창건 당시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천호산 개태사에는 고려 태조의 진전( 眞 殿 ) 1) 이 있다. 고려 태조 19년에 백제를 정벌하여 큰 승리를 거두니 하내( 河 內 )의 30여 군과 발해국 사람들 이 모두 귀순하였다. 드디어 유사( 有 司 )에게 명하여 개태사를 창건하고 친 히 원문( 願 文 )을 지어 손수 이르기를, 백성들이 백가지 근심을 만나니 많 은 고통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군사는 경내에 얽매이고 재난이 진한( 辰 韓 ) 을 시끄럽게 하니 사람들은 의탁하여 살 길이 없고 집들은 온전한 담이 없 습니다. (중략) 2. (태조는)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기를, 큰 간악한 무리를 섬멸, 평정하여 백 성을 도탄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나이다. 하였다. 위로 부처님의 힘에 의탁 하고 다음으로 하늘과 신령의 위엄에 의지하여 20여 년간의 수전( 水 戰 )과 화공( 火 攻 ) 속에서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천리 길을 남으로 치고, 동 으로 쳐서 친히 방패와 창을 베개로 삼았다. 병신( 丙 申 )년 가을 9월에 숭선 1) 왕의 초상화인 어진( 御 眞 )을 봉안하고 제사지내던 곳

33 성( 崇 善 城 )에서 백제의 군사와 대진( 對 陣 )하여 한번 부르짖으니 군사의 무 리가 와해되었다. (중략) 3.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에 보답하고, 산신령의 도와주심을 갚으려고 특별히 관사( 官 司 )에 명하여 불당을 창건하고는 산이름을 천호( 天 護 ), 절이름을 개 태라고 하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연산현 <불우> 개태사 위의 글은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하여 8만 7천의 대군을 인솔하여 천안부와 일선군( 一 善 郡 ) 등지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였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 神 劍 )은 전세가 기울자 황산군(지금의 연산 면)에서 마침내 투항하게 되었고, 이러한 대승리를 기념하여 개태사를 창건한 것이다. 후삼국 통일 대업을 이루고 고려를 개국한 것이 하늘과 부처님의 도움 으로 이룩했다는 의미에서 개태사 뒷산인 황산( 黃 山 )의 이름을 하늘이 보살핀 다 는 천호산( 天 護 山 )으로 바꾸고, 만세태평의 시대를 연다 는 의미로 개태사( 開 泰 寺 )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후백제의 지역에서 부처님의 음덕으로 지 기( 地 氣 )를 누르고 전쟁의 상처를 부처님의 위엄으로 덮어 보려는 의도가 엿보 인다. 이후 개태사는 태조 왕건의 진영을 모시고 기일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전 형적인 호국사찰이 되었다. 2. 연혁 - 김광영에 의한 중창 개태사는 국왕의 명에 의해 창건된 국찰( 國 刹 )이므로 화엄법회가 개설되 는 등 고려 중엽까지 더할 나위 없는 번성을 누렸다. 고려 고종( ) 때는 팔만대장경 교정 불사를 수행하 면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30권을 저술하고, 이를 대장경에 편입시켜 현 재 해인사 장경각에 경판으로 보존되

34 고 있다. 전성기의 개태사에는 천여 명의 대중(스님)이 경판조성사업에 참여하 여 개태사 경내는 하나의 촌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대의 명승 의천( 義 天 )과 균여( 均 如 ) 등이 간경( 刊 經 )을 위해 이곳에 왕래하였다. 현존하는 개태사의 경 판은 1218년(고종 5)에 간행된 범서총지집( 梵 書 總 持 集 ) 이 있다. 고려 말인 1362년(공민왕 11)에 왕이 개태사의 태조진전( 太 祖 眞 殿 )에 관리 이 인복( 李 仁 復 )을 보내 강화도로 천도하는 여부를 점치게 하였고, 태조진전에 옷 과 옥대( 玉 帶 )를 헌납했다는 내용이 고려사 에 있다. 고려 말은 절의 역사에 있어서 쇠퇴기에 해당한다. 공민왕 이후로 왜구의 침략이 더욱 극심해지면서 1376년(우왕 2)에서 1381년(우왕 14) 사이에 왜구의 침탈은 개태사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쳤다. 왜구를 막기 위해 양광도원수( 楊 廣 都 元 帥 ) 박인계( 朴 仁 桂 )가 파 견되었지만 개태사 전투에서 최후를 맞는 등 치열한 전란의 와중에서 가람도 크 게 파괴되었다. 조선 초에 들어와서 1432년(세조 14)에는 절의 승려가 큰 수정 2개를 세조에 게 헌상하였고, 세조의 불교진흥책으로 일시 중흥의 기틀을 보였다. 그러나 그 후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절터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폐찰( 廢 刹 )로 변해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절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원래 개태사는 현재 의 위치에서 300m 위쪽에 있었다. 개태사에 있는 개태사창건주김대성화공덕비 에 나와 있는 내용을 참고해서 중창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개태 사 용화대보궁 자리에 관세음보살만 홀로 있던 것을 1930년에 김광영( 金 光 榮, 大 成 華 보살로 불렸다)이라는 여인이 발견하였다. 김광영이 관세음보살에게 정성 을 들이기 30여년이 되는 해에, 관세음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아미타불(미륵불) 과 대세지보살(지장보살)이 있는 곳을 계시하여 두 불상을 발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38년에 삼존법당( 三 尊 法 堂 )을 지어 삼존불을 모셨다. 그 후 김광영은 병 자들을 안수( 按 手 )로 치료하는 능력을 가지면서 추종자들이 생겨 광복 후 이들 을 규합하여 용화회( 龍 華 會 )를 조직하였고, 1945년에 절 이름을 개태도광사( 開 泰 道 光 寺 )라 하였다. 용화회는 유불선 삼교합일의 법으로 미륵불이 도래하는 용 화 세계를 맞이하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35 3. 가람( 伽 藍 )의 배치와 불상 현재 개태사의 전각 명칭은 전통적인 불교 사찰의 관례와는 다르다. 이것은 김광영이라는 분의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개인 사찰로서 유지되 어 왔기 때문이다. * 용화대보궁( 龍 華 大 寶 宮 )과 삼존석불입상( 三 尊 石 佛 立 像 )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 지붕으로 삼 존석불을 모시고 있다. 이 삼존석불은 화 강암으로 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보물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발굴 당시 우협시보살만 온전하고 본존불과 좌 협시보살은 크게 훼손되어 있었으나 지금 은 복원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본존불은 높이 4.51m로 사각형의 연꽃 대좌 위에 서 있다. 얼굴은 둥근 모양으로 살짝 뜬 눈에 눈꼬리는 귀까지 이어질 만 큼 길다. 이마에는 백호가 뚜렷하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왔다. 코는 작은 편이며 입 가에는 천진한 미소가 담겨있다. 손과 발이 몸에 비해 크고, 수인( 手 印 )은 오른 손은 시무외인( 施 無 畏 印 )이고 왼손은 여원인( 與 願 印 )이다. 좌협시보살은 높이 3.84m로 본존불과 비슷한 양식이지만 보살상의 특징을 그 대로 반영하여 화려한 장식과 옷주름의 섬세한 표현 등이 빼어나다. 수인은 오 른손은 여원인( 與 願 印 )이고, 왼손은 시무외인( 施 無 畏 印 )이다. 우협시보살은 높이 3.72m로 좌협시보살과 비슷한 모습이다. 수인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염두에 둔 양식이다. 고려 초기 지방색을 띄고 있는 이 석불 입상들은 매우 건장한 체구에 넓은 얼 굴, 머리띠 장식, 두툼한 손, 통통한 몸집, 선명한 발톱 등 전반적으로 조각의 선

36 이 굵고 강한 느낌을 주어 후삼국을 통일한 굳건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는 고려 시대의 대표적 석불이다. 마치 기골 장대한 늠름한 무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 러나 석불 입상이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미륵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미륵삼 불이라 불리기도 한다. * 삼일지상정천궁( 三 一 地 上 正 天 宮 )은 과거의 용화전이었으며, 1946년에 세워 나반존자( 那 般 尊 者 )를 봉안하였는데, 1996년에 그 나반 존자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나반존자상을 다 시 모셨다고 한다

37 나반존자 [ 那 般 尊 者 ]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 사찰에서는 독성각( 獨 聖 閣 )에 모셔지며 산신 칠성과 함께 삼성각에 모셔지기도 한다. 남인 도 천태산( 天 台 山 )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 에 열매가 맺는 것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삼명( 三 明 )과 자리이타( 自 利 利 他 )의 능력을 지녔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 보는 숙명명( 宿 明 明 ), 미래를 보는 천안명( 天 眼 明 ), 현세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 漏 盡 明 )을 말한다. 이러 한 능력으로 자리이타, 곧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므로 중생의 공양을 받게 되었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부처의 제자가 된 나한으로 말 법시대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교화한다고 하나 부처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이름이 없고, 이 름을 거론한 경전도 없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단군신앙에서 생겨난 우리나라 고유의 신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에 독성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93년(숙종19) 이며, 18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설 로 십육나한 중 한명인 빈두로존자로 보기도 한다. 흰 머리와 흰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 어준다고 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말에 나반존자 신앙이 더욱 성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험이 큰 성인이나 성격이 매우 엄하고 무서워 공양을 드릴 때는 목욕재계는 물 론이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찰 전각에는 대개 그림으로 모셔 진다. * 정법궁( 正 法 宮 )이자 창운각( 創 運 閣 ) 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모시 고, 그 옆에는 단군의 영정과 관성제 군( 關 聖 帝 君 )을 봉안하였다. 이것은 불교에 민간 신앙이 습합( 習 合 )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관성제군은 과 거에 우주당( 宇 宙 堂 )에 모셔져 있었 는데, 현재 정법궁으로 옮겨져 있다

38 우주당은 본래 뫼 산( 山 ) 자의 형태였는데, 최근 산 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개 축하여 우주당이라는 현판은 내리고 종무소 및 요사체( 寮 舍 体 )로 쓰고 있다. 4. 개태사 철확( 鐵 鑊 ) 지름 3m, 높이 1m, 둘레가 9m인 무 쇠가마솥(철확)이며, 고려 태조 왕건이 개태사를 세우고 승려 오백여 명의 밥 지을 솥으로 하사한 것이라고 전한다. 1706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 ( 輿 地 圖 書 ) 에 개태사 철확에 대해 언 급하고 있다. 즉, 이 솥은 고려 때 절에 서 사용하던 것으로 가뭄이 심한 곳으 로 가져가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로 인해 연산읍 부근까지 옮 겨졌다 고 하였다. 이 가마솥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자. 고려 말에 왜적의 침입 시 솥을 우리 군사들을 위하여 다시 쓰게 되었는데, 이 솥으로 밥을 지어 먹은 군사들은 이상하게도 잘 싸워서 그때부터 왜적을 물 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1887년(고종 24)경에 대홍수로 떠내려 가 묻혀있던 솥 이 1909년에 일본인들이 발굴하여 경성박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1935년에 일제는 이 솥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부산까지 가지고 갔는데, 솥에서 큰 소리 가 나서 조선총독부로 다시 옮겼고, 논산에서 가뭄의 피해가 계속되자 다시 개 태사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1944년에 일제가 이 솥을 무기로 만드는데 사용하 려고 징발하였다. 일본인들이 솥을 깨려고 내리치는 순간,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어나고 세찬 소나기가 내리면서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므로, 일본인들이 무서 워 모두 도망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고려 태조 왕건이 개태사를 창건한 이후에 절이 날로 번창 하였는데, 어느 스님 한 분이 개태사에 와서 향후 대홍수가 날 것이니, 이 큰 무 쇠솥으로 삼존석불로 향하는 물길을 막으면 석불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후 대홍수가 났고, 가마솥 덕분에 삼존석불은 안전하였다. 그렇게 떠내려간

39 가마솥을 나중에 찾았으나 솥뚜껑은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솥뚜껑은 어 딘가 숨어 있어 가끔 쇠울음소리가 땅에서 들려온다고 한다. 나라에서 백성들을 괴롭힐 때면 땅 어딘가에 숨어 있는 솥뚜껑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개태사 철확은 어떠한 철로 만들었기에 천년 세월 동안 부식되지 않고 견디어 왔는지 신기하지만, 고려 초에 만들어진 후에 여러 차례의 곡절을 겪으면서 지 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철확이 지닌 어떤 불가침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1981년에 김광영 여인의 딸 유진팔이 연산공원에 있던 개태사 철확을 옮 겨와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용화대보궁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고, 개태사 철확은 넓은 의미의 솥( 鼎 )이 고 뫼 산( 山 ) 자 형상의 우주당이 그 옆에 나란히 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대순진 리회의 연원( 淵 源 )과 종통( 宗 統 )을 개태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솥 고대사회에서 솥은 천제를 지내는 제기의 으뜸으로 국가의 운명을 가늠하는 신 성스런 영물이었다. 고대 동양문화권에서 솥은 왕권의 상징이었다. 세발솥은 안정 감과 완벽함을 의미하여, 이른바 정립( 鼎 立 )이란 말이 거기서 비롯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솥이 부활, 회춘의 상징이었다. 유럽 문화사에서 가마솥(Cauldron) 은 물질의 풍요로움, 수용과 양육이라는 여성성을 상징하였다. 때때로 가마솥은 성배( 聖 杯 )와 동일시되었으며, 마녀의 가마솥은 마술의 주력( 呪 力 )을 뜻하였다. 우리에게 밥해 먹는 솥은 사람의 목숨을 부지시키는 신기( 神 器 )였다. 우리는 전 통적으로 부뚜막의 솥에 조왕이 깃들여 있다고 여기고 아낙들이 아침저녁으로 정 성껏 모셨다. 조왕은 중국에서도 부뚜막의 불을 상징하는 절대신으로 가정의 안 녕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솥은 때때로 재앙을 예고 해 주기도 한다. 국 난이 닥치면 반드시 울었다는 연산 개태사의 솥이 그 예다. 민간신앙에 의탁하는 바가 많았던 금산사의 미륵불이 구태여 솥에 올라섰음은 이 같은 속신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주강현,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해냄,

40 관우 [ 關 羽,?~219] 중국 촉한( 蜀 漢 )의 관우( 關 羽 )를 신격화( 神 格 化 )하여 관제( 關 帝 ) 관왕( 關 王 ) 관성제군( 關 聖 帝 君 )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산시성[ 山 西 省 ] 윈청현[ 運 城 縣 ]인 하동군 해현( 河 東 郡 解 縣 ) 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운장( 雲 長 ). 후한말( 後 漢 末 )의 동란기에 탁현( 褶 縣 : 河 北 省 소재)에 서 유비( 劉 備 )를 만나, 장비( 張 飛 )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평생 그 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200년에 유비가 조조( 曹 操 )에게 패하였을 때, 관우는 사로잡혀 조조의 귀순 종용과 함께 예우를 극진히 받았다. 이에 관우는 조조의 대적( 大 敵 ) 원소( 袁 紹 )의 부하 안양( 顔 良 )을 베 어 조조의 후대에 보답한 다음, 기어이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208년 적벽전( 赤 壁 戰 ) 때에는 수군( 水 軍 )을 인솔하여 큰 공을 세우고, 유비의 익주( 益 州 : 四 川 省 ) 공략 때는 형주( 荊 州 : 湖 北 省 )에 머물러, 촉나라의 동방방위를 맡는 등 그 무력과 위풍( 威 風 )은 조조와 손권( 孫 權 )마저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형주에서 촉나라 세력의 확립 을 위하여 진력하다가 조조와 손권의 협격( 挾 擊 )을 받아, 마침내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였 다. 관우는 소설 삼국지연의( 三 國 志 演 義 ) 에서 충신의 전형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송나 라 때 이후로 관제묘( 關 帝 廟 )를 세워 그를 무신( 武 神 ) 또는 재신( 財 神 )으로 모시는 등 중 국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때 그를 무신( 武 神 )으로 모신 묘( 廟 )가 경북 성주( 星 州 )와 안동( 安 東 ) 지방에 남아 있다. 1602년(선조35) 명나라 신종( 神 宗 )의 칙령( 勅 令 )으로 만든 서울 동대문 의 동묘( 東 廟 )는 관제를 사주( 祀 主 )로 모신 대표적인 묘이다. 관제를 받드는 관성교( 關 聖 敎 ) 등에서는 그를 지상지존( 至 上 至 尊 ), 삼계( 三 界 )의 복마대성( 伏 魔 大 聖 )으로 받들고, 병 을 고쳐 주고 자손을 주는 수음자( 授 淫 者 )이며 소원을 달성케 하는 축복자로 여긴다. 중국인들이 최고로 받드는 신( 神 )은 바로 관우 신이다. 문화대혁명 때 미신타파로 모든 신 상들이 파괴되었는데 공자상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관우신상만은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니 중국인들의 관우숭배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관우숭배신앙은 중국을 넘어서 한국 등으로도 널리 퍼졌다. 관우가 그렇게 숭배된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봉건통치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 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고, 봉건사회 계급투쟁 중 의사( 義 士 )를 요구하는 환경에 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한다. 민간문학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고 순전히 민간에서 그러하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최근 관우숭배신앙 기원에 관한 아주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삼국 당시 형주 인민들이 동오( 東 吳 )에 협조하여 관우를 잡아 죽인 뒤 관우의 원혼을 두려워하여 영전을 차려놓고 빈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사소설 삼국지(한국방송출판 刊 )>에서의 관우 숭배신앙의 기원에 관한 설명내용이다

41 참고문헌 1)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12, 사찰문화연구원, ) 김남용, 국보와 보물이 있는 옛 절터 이야기, 일진사, ) 손혜경, 한국 사찰의 이해, 남두도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EnCyber.com. 6) 브리태니커백과사전. 7) 대순소식 24호,

42 관촉사( 灌 燭 寺 ) 관촉사는 경내에 있는 은진미륵이 토성도장의 미륵불과 같은 형태로 되어있어 도인들에게 유명해진 사찰이다. 1. 혜명 2) 에 의해 창건됨 논산시내에서 3km 정도 떨어져있는 반야산 기슭(충청남도 논산시( 論 山 市 ) 관 촉동( 灌 燭 洞 ) 254번지)에 위치한 절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 사이다. 968년(광종 19)에 혜명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정문과 법당은 1386년(우 왕 12)에 처음으로 건립되었으며, 1581년(선조 14)에 백지( 白 只 )가 중수하였고,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 智 能 )스님이 개수하였고 1735년(영조 11)에는 성능 ( 性 能 )스님이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는데, 흔히 은진미륵 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이 불상은 관촉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은진미 륵 외에 석탑, 석등, 배례석 등이 미륵전과 더불어 배치되어 있는데, 은진미륵을 위시하여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이 중에 미륵전은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법 당 밖의 은진미륵이 보이도록 창을 두어 참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 사찰의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과 보물 제232호 인 석등,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 拜 禮 石 ),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 2) 혜명( 慧 明 ): (?~?) 고려의 승려. 968년(광종 19)에 충청남도 은진( 恩 津 ) 반야산( 般 若 山 )의 땅속에서 큰 돌이 솟아나자 조정에서 는 그 돌로 불상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조각할 사람을 구했다. 이때 혜명이 지원하고 나서 공장 100여 명을 감독하여 970년부터 37년간 작업하여 1006년(목종 9)에 높이 55척 5촌의 거대한 미륵불상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를 세울 길이 막막하던 차에 하루는 사제촌( 沙 梯 村 )에서 동자 2명이 3단으로 된 불상을 쌓아가며 세우는 것을 보고 깨우쳐 그 방법으로 마침내 불상을 세웠 다. 이들 동자는 문수( 文 殊 )와 보현( 普 賢 )이 현화( 顯 化 )했던 것이라 한다. 이 불상이 오늘날 충 청남도 논산군 은진면 관촉사( 灌 燭 寺 )에 있는 은진미륵이다.(브리태니커백과사전)

43 79호인 석문( 石 門 ), 그 밖에 5층 석탑 사적비( 事 蹟 碑 ) 등이 있다. 미륵보살상이 조성되기 전에는 절의 이름이 관촉사가 아니었으나 관촉사로 불 리게 된 유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광종 19년에 사제촌( 沙 梯 村 )에 사는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서불 골짜기에서 나는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라고 혜명에 게 명하였다. 불상을 완성하여 세우자 미간의 옥호( 玉 毫 )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는데, 중국의 승려 지안( 智 眼 )이 그 빛을 좇아와 예불하였으며, 아아, 그 빛이 마치 촛불과 같이 빛난다. 하여 관촉사 라 절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한다. 2. 창건시기 관촉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재 절에 관한 가장 오 래된 기록은 고려말 이색( 李 穡, 1328~1396)이 남긴 시이고, 다음은 조선 중엽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은진( 恩 津 ) <불우( 佛 宇 )>조이다. 이후 1743년(영조 19) 에 관촉사사적비명( 灌 燭 寺 事 績 碑 銘 ) 이 건립되면서 구체적인 절의 연혁이 정 리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몇 가지 기록은 한결같이 미륵보살입상에 관한 이야기 로 일관할 뿐, 절의 창건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절의 창건시기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 다만 미륵보살의 조성이 969년(광종 20)에 시작하므로 이 무렵에 이미 절이 존재하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3. 관촉사 내의 구조물 관촉사에는 일주문 천왕문 석문 종루 미륵전 대웅보전 명부전 삼성각 요사 종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창건 당시나 과거의 가람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지금의 가람은 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하 나 갖춰진 것이다. 반야산의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 그 정면의 석등과 석탑, 그리고 배례석 등은 고려시대의 번성했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44 있다. *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관촉사의 상징이라 할 만큼 매우 중 요한 불상으로 두 발은 모두 화강암반 위에 조각돼 있으며, 허리를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 두 부분은 다른 돌로 조 각되었다. 전체 높이가 18.12m로 조선 시대 이전의 것으로는 국내 최대의 석 조보살 입상이다. 머리 위에는 속세의 왕이나 쓸 수 있는 면류관이 상, 하 2 중으로 올려져 있다. 현재 보물 제 218 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의 조성 시기는 조선 영조 19년 (1743)에 세워진 관촉사사적비명 에 잘 나타나 있는데, 969년(광종 20년)에 승(僧) 혜명(慧明)이 조정의 명을 받아 970년(광종 21)에 시작하여 1006년(목종 9)에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으 로 보아 불상의 조성이 2대 왕조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무려 37년간이란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마의 백호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기(墨 記)에는 968년(광종 19)이라는 기록이 있다. 관촉사사적비명 이 조성당시와 거리가 먼 조선후기의 기록이고 묵기는 불상의 조성과 함께 봉안되었을 것이므 로 불상의 조성 시기는 968년이라는 설이 더욱 유력하다 볼 수 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해탈문에 들어서면 눈앞에 거대한 이 미륵보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불상에서 풍기는 인상은 불상이라기보다는 친근 한 이웃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다. 얼굴의 표현이 이마가 좁고 턱이 넓으며 코와 귀, 입을 다소 크게 나타냈기 때문이다. 눈은 양옆으로 길게 새기 고, 귀 역시 어깨에까지 닿을 만큼 길다. 미간사이의 백호에는 근래에 가공한 수 정을 넣었다. 머리에는 간략하게 보발을 나타냈고, 그 위에 방형의 2중 보관을

45 올렸다. 아래 보관에는 8엽의 연꽃으로 장식하였고, 네 귀퉁이에는 청동방울을 매달았다. 목이 무척 굵은 것이 거대한 불상의 머리를 지탱하기 위한 배려이다. 삼도의 표현이 뚜렷하고, 어깨에는 통견의 법의를 걸쳤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근처까 지 올려 금속으로 만든 연꽃가지를 들었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여래의 중품하생인이다. 신체는 별다른 굴곡 없이 직선적으로 표현 하였고, 법의가 길게 내려와 U자 모양의 주름을 이룬다. 불상은 자연암반을 대좌삼아 딛고 서 있다. 투박한 솜씨로 암반위에 발을 조 각하였다. 불상에 사용된 화강암 석재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즉 암반대좌, 다리에서 허리까지, 그 위에서 불두까지, 그리고 2매의 보관으로 구분된다. 불상 뒷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다. 조성 당시에는 뒤까지 입체적으로 조각하려 했는 지 정으로 쪼은 자국만 남아있다, 고려시대이후 미륵신앙이 서민의 대중적 신앙으로 유지되면서 서민적 삶을 그 대로 닮은 투박하고 인간적인 돌미륵이 곳곳에 조성되었다. 그래서 미륵불하면 세련된 장식이나 고귀함보다는 거친 듯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 다. 이러한 점에서 관촉사의 불상은 가장 미륵불답다. 많은 대중들에게 차별 없 는 지혜와 자비를 주기 위해 소박하지만 커다란 모습으로 늘 거기에 서 있는 것 이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미륵불

46 석조미륵보살입상에 얽힌 전설 고려 광종 때 어느 해 봄이었다. 사제촌에 사는 한 부인이 어느 날 반야산 에서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어디서인지 아이 우는 소리를 나서 가보았더니 아 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 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 서는 이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 은 1백여 명의 공장과 30여 년 동안 공사를 벌여 1006년 불상을 완성했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 날 사제촌에서 동 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본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마침내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주었고, 서기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 玉 毫 )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고 한 다. 중국의 승려 지안( 智 眼 )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했으며, 그 광명의 빛이 촛 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했다고 한다. 이 석조미륵보살입 상이 유명해져서 관촉사는 오히려 그 이름이 은진미륵절로 알려질 정도이다. 고려 초 때에는 외적의 침입을 수차 받아왔다. 언젠가 북쪽 오랑캐의 침략 이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오랑캐들의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강변에 집결해 있었다. 오랑캐들은 압록강의 수심을 알 길 없어 건너오지 못하고 우 왕좌왕하고 있을 때였다. 이 불상이 스님으로 변하여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채 강을 건너 마치 얕은 냇물을 건너듯이 다리만 걷어 올리고 건너오고 있었다. 오랑캐들은 스님이 건너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때 적장 은 보아라. 저기 스님이 건너오고 있다. 그곳으로 강을 건너자 하면서 진군 명령을 내렸다. 오랑캐들은 스님이 건너오던 곳으로 우루루 몰려 강물로 뛰어 내려가 강을 건너려 했다. 그러나 멋모르고 그냥 강으로 뛰어 들어간 오랑캐 들은 수심이 깊어 텀벙텀벙 모두 물속에 빠져죽고 말았다. 스님을 찾아라 하 며 명을 내렸다. 그 중을 찾아 원수를 갚자고 했다. 중을 찾아낸 적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차고 있던 칼로 삿갓을 내리쳤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스님은 간 곳이 없고 쓰고 있던 삿갓 한쪽만 떨어져 있었다. 후에 이 흔적이 불상에 그대로 나타났는데 현재 한쪽 귀퉁이가 깨진 채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때의 상처라고 한다.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 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

47 * 미륵전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다. 즉 미륵 전 안에 들어서면 정면의 불단위로 마련 된 유리를 통해 밖의 미륵보살입상이 보 인다. 즉 불전을 봉안하지 않고도 미륵전 은 거대한 석조미륵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특별한 전각은 몇 군데 더 찾아볼 수 있 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와 경상북도 문경의 윤필암이 그러하다. 이런 경우는 불상을 전각안에 모시지 못할 만큼 큰 규모일 때 주로 활용한다. 한편 미륵전에 는 근래에 조성된 신중탱화와 지장탱화를 봉안하였다. * 명부전 미륵전 남쪽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건물이다. 저승세계를 상징하 는 사찰 건물로 그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명부시왕( 十 王 )을 봉안하고 있어서 시왕전( 十 王 殿 )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다고 해서 지장전( 地 藏 殿 )이라 하기도 한다. 안에는 명부세계의 주인공인 지장보살상을 보존으로 시 왕상과 지장보살상, 그리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에 도명존자( 道 明 尊 者 )와 무독귀왕( 無 毒 鬼 王 )을 협시로 봉안 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봉안하고 각 시왕 앞에는 동자상을 안치하였 다. 후불탱화로는 지장보살 뒤에 지장탱화를, 시왕의 뒤에 명부시왕탱화를 봉안 한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향해 우측 편에 위치한다

48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석가여래이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육도( 六 道 )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자신의 성불을 미루면서 악도에서 헤매거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모두 성불하기까지 그 스스로가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보살이기에 대원본존( 大 願 本 尊 )이라 부르기 도 한다. 이 지장보살은 원래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쥐고 오른손에는 보주( 寶 珠 )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는 삭발한 머리에 석장( 錫 杖 )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중생은 자기가 지은 업보를 따라 생을 받아 윤회하고, 보살은 자기가 세운 원력을 성취 하기 위해서 자기가 구원할 중생이 있는 곳에 찾아간다고 하는데 지장보살이 아무도 가기 를 꺼려하는 지옥에 간 것은 당신의 원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을 부 를 때 원력크기로는 으뜸이신( 大 願 本 尊 )지장보살이라고 하며 49재를 지낼 때도 지장보살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한다. 명부시왕 명부는 중생들이 현세에서 생명이 다하여 죽은 후에 가는 곳이다. 현세에서 지 은 공덕과 죄업을 이곳에서 49일 동안 심판 받아 다시 윤회를 하거나 음덕이 높 은 사람은 육도윤회를 하지 않고 선계로 올라가며 죄업이 많은 사람은 명부의 지 옥에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닌 끝없는 고통을 받는다 한다. 명부에 있는 열명의 왕을 명부시왕이라 하는데 중생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죄를 이들 앞에서 심판받게 된다고 한다. 처음 7일간은 제 1 진광대왕( 秦 廣 大 王 )에게 눈이 지은 죄를 심판받고, 두 번째 7일간은 제 2 초강대왕( 初 江 大 王 )에게 귀가 지 은 죄를, 세 번째 7일간은 제 3 송제대왕( 宋 帝 大 王 )에게 코가 지은 죄를, 네 번째 7일간은 제 4 오관대왕( 五 官 大 王 )에게 혀가 지은 죄를, 다섯 번째 7일간은 제 5 염라대왕( 閻 羅 大 王 )에게 몸이 지은 죄를, 여섯 번째 7일간은 제 6 변성대왕( 變 成 大 王 )에게 뜻이 지은 죄를, 일곱 번째 7일간은 제 7 태산대왕( 泰 山 大 王 )에게 속마음 으로 지은 죄를 심판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49일간 자기가 지은 죄를 심판받고 죄의 경중에 따라서 다음 생에 갈 곳이 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망 자를 위해 공덕을 짓기 위해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10분의 명부왕이 있는 데 유독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이유는 죽은 뒤에 몸이 지은 죄를 심판 하는 분이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몸으로 짓는 죄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지은 죄 의 경중과 형량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 49일 이후 100일간 제 8 평등대왕( 平 等 大 王 )이, 100일 이후 일년간은 제 9 도시대왕( 都 市 大 王 )이, 1년 이후에는, 제 10 오도전륜대왕( 五 都 轉 輪 大 王 )이 최종적으로 명부의 형량을 가리게 된다. 고등법원 대법원의 항소 상고와 비슷하다고 여기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49 명부시왕 심판하는 죄 기간 제 1 진광대왕( 秦 廣 大 王 ) 눈이 지은 죄 1 7일 제 2 초강대왕( 初 江 大 王 ) 귀가 지은 죄 2 7일 제 3 송제대왕( 宋 帝 大 王 ) 코가 지은 죄 3 7일 제 4 오관대왕( 五 官 大 王 ) 혀가 지은 죄 4 7일 제 5 염라대왕( 閻 羅 大 王 ) 몸이 지은 죄 5 7일 제 6 변성대왕( 變 成 大 王 ) 뜻이 지은 죄 6 7일 제 7 태산대왕( 泰 山 大 王 ) 속마음으로 지은 죄 7 7일 제 8 평등대왕( 平 等 大 王 ) 제 9 도시대왕( 都 市 大 王 ) 제 10 오도전륜대왕( 五 都 轉 輪 大 王 ) 지은 죄의 경중과 형량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49일에서 100일간 100일 이후 1년간 1년 이후

50 * 천왕문(天王門) 관촉사 입구 천왕문 안에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 각되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사왕천 (四王天)의 주신(主神)으로 사대천왕(四大天 王)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 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수미 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 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 (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 : 毘沙門天 王)을 말한다. 그 부하로는 견수(堅手) 지만(持鬘) 항교(恒憍)가 있는데, 이들은 수미산의 아 래쪽에 있다. 또한 사천왕은 이들 외에도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쌍산(持雙 山) 등 일곱 겹의 산맥과 태양 달 등도 지배하고 있다. 예로부터 한국의 사찰에서는 일주문(一柱門)과 본당 사이에 천왕문을 세워, 그림으로 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사천왕의 조상(彫像)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 다. 그들은 보통 검(劍 : 持國天), 비파(琵琶 : 多門天), 탑(塔 : 廣目天), 용(龍 : 增長天)을 지물(持物 : 들고 있는 물건)로 하고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의 목조 사천왕상, 경북 경주 석굴암의 석조 사천왕상이 유명하다

51 * 석문 - 해탈문 관촉사 경내에 들어가려면 이 석문( 石 門 )을 통 과하여야 한다. 일주문과 사천왕문( 四 天 王 門 )을 지나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계단 맨 위 암반 위에 석문이 있는데 1984년 5월 17일 문화재자 료 제 79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문은 다른 사찰에서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양쪽 돌기둥에 해탈문( 解 脫 門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폭 47cm 43cm의 화강석을 방형으로 깎아 양쪽 기 둥을 세웠다. 뒷면에는 장대석을 각각 깊이 172cm가량 연결하여 쌓아 터널을 이 루고 있으며 천정석은 긴 장대석 5개를 걸쳐 얹어 천정을 덮었다. 문 양옆으로 는 높이 86cm, 길이 240cm 정도의 석벽을 연결하여 쌓아져 있다.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고 사찰이라는 도량 ( 道 場 )에 들어서기 위한 문이란 뜻에서 해탈문( 解 脫 門 )이라고도 한다. 구전에 의하면 미륵보살입상을 세운 후 참배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 불상을 보호하기 위 해 담장을 쌓고 석문을 축조하였으나 그 뒤 담장은 없어지고 석문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전하다. * 석탑과 배례석 미륵보살 정면에는 높이 3.43m의 고려시대 석탑이 있다. 원래 제자리가 아니고 다른 곳에 서 흩어져 있는 부재를 다시 조립해 놓았다. 이 과정에서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남아 있지 않 다. 즉 지금은 4층의 모양으로 남아 있으나 원 래는 5층탑이다.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 기단은 지 대석과 함께 땅속에 묻혀있다. 1층 기단의 면석 에는 안상이 있고, 2층 기단에는 동자주( 童 子

52 柱 )가 3개 조각되었다. 기단과 탑신의 사이에는 별석 1매를 두어 고려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옥개석은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옥개받침 을 얇고 깊숙이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상륜은 보주만을 간략히 나타냈다. 전체적 으로 탑이 신앙의 대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고려초기의 작품이라 단순하고 형 식화된 모습이다. 석탑의 바로 옆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53호로 지정된 배례석이 있다. 미륵보살이 조성된 고려시대에는 석등에 불을 밝히고, 이곳에서 보살상을 참배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배례석과 석등사이에 석탑이 가로 막고 있다. 배례석은 장방형으로 길이가 2.04m, 폭이 1.03m, 그리고 높이는 0.4m이다. 하나의 석재이 지만 땅에 닿는 부분에 2단의 괴임을 새기고, 그위의 면석에는 앞면에 3개, 옆면 에 2개의 안상을 나타냈다. 배례석의 윗면에는 8엽의 연꽃을 섬세하게 양각하였다. 연꽃의 중앙에 원을 돌리고 주위에 자방을 연이어 음각하였다. 이 배례석은 물론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지만 조각수법이 미륵보살입상이나 석등과는 상당히 다르게 부드럽고 정교 하다. 아마도 보살상이나 석등을 조성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거나 또는 조성 시기가 달랐던 것이라 생각된다. * 석등( 石 燈 ) 석등은 높이가 5.45m에 달하는 거대한 규 모로 미륵보살입상과 조화를 이루며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대석과 상대석, 그리고 화사석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보물 제232호 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관촉사 앞뜰 원래 위 치에 보존되어 있으며, 조성연대는 보살입상 과 같이 968년(광종 19)으로 추정된다. 하대석은 사각형인데 2m의 각 면에 안상을 3개씩 나타냈다. 그 위에 8엽을 지닌 복련의 연화대를 새겼다. 간석( 竿 石 )은 3개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북과 같은 형태이다

53 상하의 돌에는 반원형 띠가 두 개씩 있고, 중석에는 3개의 띠를 둘렸다. 상대석 은 2단의 받침을 얹고 그 위에 8엽의 앙련을 크고 굵게 새겼다. 화사석( 火 舍 石 ) 은 2층으로 1층은 양련 위에 1매의 사각형 별석을 놓고 그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웠다. 그런데 이 기둥이 석등의 전체 규모에 비해 너무 가늘어 화창( 火 窓 )이 더욱 넓어 보인다. 화사석이라기보다는 그저 지붕을 받치는 기둥공간이라고 부 르는 게 나을 정도이다. 1층 화사석의 옥개석에는 네 귀퉁이에 큼직한 귀꽃을 새겼다. 2층 화사석은 현저히 체감시켜 2면만 개방시켰고 옥개석은 1층과 동일 하나 한쪽의 귀꽃은 결실되었다. 석등의 맨 위에는 단순하고 큼직한 보주를 올 렸다. * 관촉사사적비( 灌 燭 寺 事 績 碑 ) 미륵보살입상의 우측에 관촉사사적비가 있다. 이 비는 화강암으로 한 변이 115cm 크기의 대석위에 80cm 75크기의 방형 비좌를 마련하였고, 대리석으로 만 든 비신은 60cm 30cm 133cm의 크기로 측면에 [ 灌 燭 寺 事 績 碑 銘 ]이라 쓰여 있 다. 우진각 지붕모양의 옥개석은 80cm 97cm 크기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비는 1743년(영조 19)에 각혜( 覺 慧 )스님과 속인으로 구성된 불량계원( 佛 粮 契 員 ) 다수가 조성한 것으로 이를 통해 미륵보살입상의 자세한 조성경위와 절의 연혁을 알 수 있다. 이 비는 귀부와 비신, 옥개석을 모두 갖추었지만 그 양식은 무척 단순하다. 따라서 유물적인 가치보다는 비문을 통해 귀중한 절의 역사를 알게 해 준 문헌적 의미가 더 크다. * 삼성각 미륵보살입상의 남쪽에 자리 잡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독성과 산신, 그리고 칠성을 탱화로 봉안하였는데 칠성탱화만이 1962년 에 조성되었다는 화기를 남기고 있다

54 참고문헌 1)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통서, 사찰문화연구원,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3) 성보문화제연구원, 한국의 불화, 불지사,

55 금산사( 金 山 寺 ) 1. 금산사가 위치한 곳 - 모악산( 母 岳 山 ) 전라북도의 대표적 명산 모악산( 母 岳 山, 801m)은 노령산맥의 서단( 西 端 )부에 위치하며 호남평야와 전라북도 동부 산간지대의 경계가 된다. 행정구역으로는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에 속한다. 암석은 산의 북동에서 남서방향에 걸 쳐 함금석영맥( 含 金 石 英 脈 )이 많다. 금이 많다는 뜻인데, 주변의 금산면과 금구 면을 흐르는 원평천 두월천은 사금을 채취했던 곳이다. 그래서 절 이름이 금산 이 된 듯하다. 그런데 금산사지 에서는 모악산은 옛말로 큰 뫼 라는 뜻을 지 닌 엄뫼 라고 하였다. 한자를 사용하면서 엄뫼 는 모악산이 되었고, 큰 뫼 는 큼 을 소리 나는 대로 바꿔 금( 金 )으로, 뫼는 산으로 고쳐 금산이라는 절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금이 나는 산이어서 금산사라고 했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한편 정상에 어미가 어린 애를 안고 있는 듯한 바위 가 있어 산 이름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도 전해 내려온다. 모악산의 중심 능선은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다. 동쪽 사면은 만경강 의 집수( 集 水 ) 구역이 되고 계곡의 물은 구이면의 전주 저수지에 유입하여 삼천 으로 흐른다. 서쪽 사면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원평천 집수구역이 된다. 여 기서 시작된 두월천과 원평천이 바로 그 유명한 백제 벽골제( 碧 骨 堤 )의 원류가 되었다. 어미산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악산은 곳곳에 생명의 근원인 물을 베 풀어 준다. 동으로 구이저수지, 서로 금평저수지, 남으로 안덕저수지, 북으로 불 선제 중인제 가마제 등 사방으로 호남평야를 온통 적시는 어머니의 젖꼭지 같 은 역할을 한다. 금산사는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많은 곡절을 겪어왔다. 후백제의 견훤은 새로 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야망이 좌절되어 935년 이 곳 금산사에 석달 동안이나 유 폐되기도 하였다. 근세에 와서는 봉건왕조의 부패에 대항하여 동학혁명의 깃발 을 높이 세웠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 곳 모악산 출신이었다. 모악산에 금산사

56 가 자리 잡으면서 산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었다. 미륵신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신앙이다.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 이 땅에 하생할 미륵불을 열망 하는 민중의 소망은 지금도 그치질 않는다. 근래 들어 새롭게 등장한 여러 신흥 종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미륵신앙을 바탕에 두고 있다. 모악산과 금산사의 지세를 풍수지리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기도 한다. 모악산의 정기를 듬뿍 받은 금산사 혈장은 그야말로 천혜의 터전으로 신비스러 울 정도로 사면팔방이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맥이 수려하고 다정다감하 면서도 꿈틀거리는 듯하고 온화한 모습이어서 이곳을 찾는 이를 말없이 반기는 듯하다. 모악산은 동쪽에 정상봉이 높이 솟아 좌우로 지맥을 내려 보내는데, 왼편 산맥은 금산사 혈장 입구 방향을 감싸면서 금수형( 金 水 形 )의 자태를 부드럽게 보 이고, 혈장 입구 방향을 감싸면서 혈장 아래로 늘어서 있다. 오른편 지맥은 금산 사의 주산을 만들면서 직룡으로 입수하고 북서향으로 이어지는 지맥은 둥글게 솟 고 길게 서남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이어져서 둥글게 혈장을 감싸면서 크게 휘감 아 길게 늘어져 입구에 있는 또 하나의 혈장에 이른다. 금산사 혈장의 양기( 陽 基 )를 보면 길지( 吉 地 )라는 확신이 든다. 길지는 천지의 정기가 모였다가 생기를 발하는 곳이며 풍광명미( 風 光 明 媚 : 자연의 경치가 매우 맑고 아름다움) 상탄( 賞 嘆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하는 땅이다. 이 곳 금산사 혈장은 문자형( 文 字 形 )으로 볼 때 야( 也 )자형이다. 문자형의 길형으로는 용( 用 ), 다( 多 ), 야( 也 ), 내( 乃 ) 등이 있다. 용( 用 )자는 일( 日 )과 월 ( 月 )의 합자( 合 字 )이며 다( 多 )자는 다상( 多 祥 )을, 야( 也 )자는 유종( 有 終 )을, 내 ( 乃 )자는 자( 子 )를 더하여 잉( 孕 )자, 즉 생산을 말하는 경사스런 의미가 있다. 금 산사 혈장은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은 지형으로 모악산 정상계곡의 청룡수( 靑 龍 水 )와 북쪽 계곡의 백호수( 白 虎 水 )는 금산사 혈장 서쪽에서 만나 계곡 아래로 남 류한다.(임학섭, 사찰풍수 1 57~58쪽 밀알) 산의 정상에 오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곡창인 김제와 만경평야가 한 눈에 펼 쳐진다. 동으로 전주가 있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로는 변산반도가 있어 아름다 운 산세의 조화를 절감하게 한다. 우리는 산과 더불어 살아왔다. 산이 울창하게 번성하면 사람의 삶은 그만큼 푸르고 윤택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전쟁을 일으키고 이런 와중에서 산은 그 본모습을 잃고 생명력을 잃어간다. 정유재란과 동학혁명,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도 모악산은 크게 변하

57 지 않고 원시적 산림을 지닌 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호남사경( 湖 南 四 景 )이라고 해서 계절별로 호남의 절경을 손꼽는다. 첫 번째가 금산사의 봄경치이고, 다음이 변산반도의 여름풍경, 내장사의 가을 단풍, 그리고 끝으로 백양사의 설경( 雪 景 )이다. 굳이 따로 나누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분류이 다. 우리의 산악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늘 산뜻하고 신선한데 모악산도 바로 그런 곳이다.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쉽게 산을 찾게 되었다. 전주 시내에서 23km, 호남고속도로에서 5km, 김제에서 19km, 정읍에서 26km 정도이니 산 입구까지는 불과 30분 만에 닿는다. 197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 정된 후로는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참배객과 등산객이 줄을 잇는다. 한때 산내에는 무려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 지금은 여러 사암이 산자락 곳곳에서 법등을 이어가고 있지만 역시 모악산의 상징은 금산사이다. 또한 금산 사는 만물을 감싸는 부처님의 지혜처럼 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2.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母 岳 山 )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사적( 金 山 寺 事 蹟 ) 에 의하면 600년(무왕 1)에 창건되었으며, 백제 법 왕이 그의 즉위년(599)에 칙령으로 살생을 금하고, 그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 인의 승려를 득도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는 그 규모나 사격( 寺 格 : 절의 품격)으로 볼 때 별로 큰 사찰이 아니었으며, 1492년(성종 23)에 쓴 금산 사오층석탑 중창기 에 의하면 과거불( 過 去 佛 )인 가섭불( 迦 葉 佛 )때의 옛터를 중 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에 오랜 불연( 佛 緣 )이 있음을 강조 한 것이다. 금산사가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시기는 진표( 眞 表 )가 중창을 이룩한 경덕왕 대 이후로 보고 있다. 중창주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의 순제( 順 濟 )에게 가서 중이 되었고, 그 뒤 금산사를 떠나 선계산 부사의암( 不 思 議 庵 )에서 참회법( 懺 悔 法 )을 닦아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계법( 戒 法 : 계율을 엄수하는 수행법)을 전해

58 받은 뒤 금산사로 돌아와서 중창을 시작하였다. 762년(경덕왕 21)에 시작하여 766년(혜공왕 2)에 중창을 끝낸 진표는 미륵장륙상( 彌 勒 丈 六 像 )을 조성하여 주불 ( 主 佛 : 법당의 중심이 되는 부처)로 모셨고, 금당( 金 堂 : 미륵전)의 남쪽 벽에 는 미륵보살이 도솔천( 兜 率 天 )에서 내려와서 그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 이 절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 法 相 宗 )의 근본 도량이 되었 으며, 고려시대에도 법상종에 속해 있으면서 법화현찬( 法 華 玄 贊 ), 유식술기 ( 唯 識 述 記 ) 등의 법상종 관계 장소( 章 疏 :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글)들을 간 행하였다. 진표의 중창 이후 후백제 견훤의 보호를 받아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법 상종의 대종사이자 왕사인 혜덕( 慧 德 )이 1079년(문종 33) 금산사 주지로 부임하 여, 퇴락한 절을 보수하고 새로운 법당을 증축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 존하는 금산사의 중요 석물인 석련대( 石 蓮 臺 ) 오층석탑 노주( 露 柱 ) 등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절의 남쪽에 광교원( 廣 敎 院 )을 설립하 여 간경( 看 經 :경전을 읽음) 법석( 法 席 :법회) 등을 주관하는 장소로 사용하였 다. 그의 노력으로 금산사는 창건 이후 가장 규모가 큰 대도량이 되었다. 그러나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1601년 수문( 守 文 )은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635 년(인조 13) 낙성을 보았다. 그 당시 수문을 도와서 역사에 참석했던 승려는 지 훈( 智 訓 ) 덕행( 德 行 ) 석준( 釋 俊 ) 천정( 天 淨 ) 응원( 應 元 ) 학련( 學 蓮 ) 태전 ( 太 顚 ) 운근( 雲 根 ) 등이었다. 1725년(영조 1) 금산사에서 남악( 南 岳 )이 화엄대 법회를 열었다. 고종 때에는 총섭( 摠 攝 : 주지)으로 취임한 용명( 龍 溟 )이 가람 을 일신하여, 미륵전 대장전( 大 藏 殿 ) 대적광전( 大 寂 光 殿 ) 등을 보수하였고, 1934년 성렬( 成 烈 )이 다시 대적광전과 금강문( 金 剛 門 ) 미륵전 등을 보수하였으 며, 1998년 방등계단 앞에 적멸보궁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 머물렀던 고승으로는 진표와 혜덕을 비롯하여 문종의 여섯 째 아들로 서 중이 된 승통( 僧 統 ) 도생( 導 生 ), 원나라 왕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던 유 식학( 唯 識 學 )의 대가 해원( 海 圓 )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절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 1,000여 명을 이끌고 전투 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처영( 處 英 )과 서산의 선지( 禪 旨 )를 이어받았던

59 태능( 太 能 ), 편양파( 鞭 羊 派 )의 후계자인 남악 태우( 泰 宇 ) 등이 머물렀다. 또한 포광( 包 光 )이 지은 금산사지 에 의하면, 금산사에서 처음 주지라는 칭 호를 사용한 것이 신라 문성왕 때부터라고 하였으며, 그 이전까지는 화상( 和 尙 ) 또는 사주( 寺 主 )라고 불렀고, 1592년에는 총섭, 1902년에는 섭리( 攝 理 )라고 불렀 다고 한다. 3. 금산사의 구조물 1) 전각 유물 유적 중 일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임진왜란 후의 조형물들이 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거대한 사역에 대사( 大 寺 ) 봉천원( 奉 天 院 ) 광교원의 3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총 86채의 당우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없어진 뒤 40년 만 에 대사지역의 건물만 재건되었고, 나머지 사지( 寺 址 )는 절의 동북쪽 넓은 지역 에 유지만 전해지고 있다. 근년에 월주( 月 珠 )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이래 모든 당우와 도량을 정비하여 수도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약 500m 밖에 위치하는 일주문을 비롯하여, 금강 문 보제루( 普 濟 樓 )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승당( 僧 堂 ) 서전( 西 殿 )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였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유물로는 보물 제22호인 노주, 보물 제23호인 석 련대, 보물 제24호인 혜덕왕사진응탑비( 慧 德 王 師 眞 應 塔 碑 ), 보물 제25호인 오층 석탑, 보물 제26호인 석종, 보물 제27호인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8호인 당간지 주, 보물 제828호인 석등, 보물 제827호인 대장전 등이 있다. * 미륵전( 彌 勒 殿 ) 보제루를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국보 제 62호인 웅장한 규모 의 미륵전이 보인다. 일찍이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미륵전을 세웠다.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60 의 불상양식을 보이는 높이 11.82m 의 거대한 미륵장륙상과 조선 후기 보살상의 양식을 갖춘 높이 8.79m의 좌우협시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남쪽 벽에는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조성하였다. 이후 미륵전은 금산사의 상징처럼 오랜 세월동안 중수를 거듭하면서 금산사의 미륵신앙,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 다. 지금의 모습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5년(인조 13) 수문대사가 재건하였고, 이후 1748년(영조 24) 1897년(광무 1) 1938년 1994년 등 여러 차례의 보수를 통해 이루어졌다. 건물은 팔작지붕의 3층 구조이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줄어든다. 전각을 세우기 위해 장대석의 기단을 마련하 고 그 위에 막돌초석을 올렸다. 여기에 민흘림의 기둥을 세워 창방과 평방을 짜 올리고,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사이에 얹은 다포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추 녀에는 활주(活住)를 세워 건물의 무게를 분산시켰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 는 미륵전 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우선 대자보전이란 미륵을 뜻하는 범어 Maitreya 를 한자로 번역하여 자씨(慈氏)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하였

61 다. 용화지회는 미륵이 석가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사바세계에 도래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다는 의미이다. 즉 용화지회는 미륵의 하생을 뜻한다. 이 처럼 하나의 건물에 3개의 편액이 걸렸지만 결국 미륵을 모셨다는 미륵전이라는 이름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 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황룡사에 구층목탑을 세우 면서 축적된 기술적 미학적 아름다움은 국토 곳곳을 불국토의 장엄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한편 오른쪽 벽에는 1890년(고종 27) 조성한 제석천탱화(가로 222.3cm, 세로 206cm)가 봉안되어 있다. 용준( 聳 俊 ) 정선( 定 善 ) 오종( 午 從 ) 등의 금어( 金 魚 ) 가 그려져 있는데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62 * 대적광전( 大 寂 光 殿 ) 보물 제476호인 대적광전( 大 寂 光 殿 )은 미륵전의 서쪽, 즉 가람의 중심에 자리 하고 있으며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건물이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 본래 모 습대로 복원되었다. 대적광전은 대웅대광명전( 大 雄 大 光 明 殿 ) 또는 대법당이라고도 불렸다. 신라 때 진표율사가 창건하면서 지금의 미륵전을 금당( 金 堂 )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자리에는 법당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 수가 있어오면서 대적광전은 꾸준히 이 자리를 지켜왔다. 동쪽의 방등계단이 계 율사상의 중심 역할을 하고, 이 건물에서는 직접 수계( 受 戒 : 부처의 가르침을 받드는 사람이 지켜야 할 계율을 받음) 설계( 說 戒 : 계를 받을 사람에게 계율 을 일러 주는 일) 설법( 說 法 ) 등의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대적광전이 지금의 웅장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1635년 수문대사의 중창에 의 해서였다. 정유재란 때 절이 전소된 후 대사가 중창하면서 소실되기 전에 있었 던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나한전 등의 다섯 전각을 대적광전 하나 로 통합해 창건하였던 것이다. 1986년 12월 6일 밤 전소되기 전의 대적광전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고 기둥 을 올렸으며 귀솟음기둥을 세워 처마 끝이 하늘로 향하게 하였다. 거대한 규모 이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러한 한국 전통건축의 기능적 예술적 지 혜 덕택이다. 금산사가 미륵전을 토대로 미륵신앙을 표방하였지만 한국불교의 이러한 회통 불교적 경향은 고려시대 이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마 침내 대승불교의 대표적 부처와 보살을 모두 수용한 대전각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4년에 전각을 복원하면서 아미타 석가 비로자나 노사나 약사여래의 다 섯 분 부처님과 대세지 관음 보현 문수 월광 일광의 여섯 분 보살상을 새 로 봉안하였다. 그리고 각 여래의 목조 불단 밑에는 법장( 法 藏 )비구의 비원인 48대원과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모습, 노사나불이 불교의 근본경전인 화엄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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