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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 산 의 예 술 가 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

2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 -문화매개공간 쌈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엮은이 초 판 김상화 1쇄 발행 2014년 12월 29일 펴낸곳 펴낸이 디자인 진 행 기 획 도서출판 호밀밭 장현정 소풍디자인 김정란 남혜련 문화매개공간 쌈 등 록 2008년 11월 12일(제 호) 주 소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 125 남천K상가 B1F 전 화 팩 스 홈페이지 전자우편 [email protected] 값 10,000원 ISBN ISBN (세트) c 2014, 김상화 * 이 책은 의 지원금을 받아 출판 되었습니다. * 잘못된 책은 구입하신 곳에서 바꿔드립니다.

3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 산 의 예 술 가 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 김상화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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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 차 7 Prologue 문화매개공간 쌈 11 1부 쌈수다-2014년 41개의 이야기 179 2부 쌈전시-2014년 쌈전시 189 3부 더 많은 쌈, 더 많은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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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Prologue 문화매개공간 쌈

8 네 번째 책을 내면서 5년이란 세월이 문화매개공간 쌈 을 엮어 왔습니다. 200여 명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쌈수다 를 이어 왔습니다. 젊은 미술가들이 채운 쌈의 전시들은 5년 간 쉼 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독립영화 상영을 비롯한 작은 모임들이 문화매개공간 쌈 을 채워 왔습니다. 도시철도 수영역 지하상가 끄트머리에 자리한 정말 작은 공간입니다. 도시철도라는 공간에 문화예술을 심은 첫 공간입니다. 이후 도시철도 여러 곳에 북카페 도 만들 어지고,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 까지 생겨 날 정도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왕성하게 돌리는 시작이 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 되었던 곳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곳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까이에 계신 분들도 지하상가 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역세권에 있지만 상가는 뚜욱 떨어져 있는 곳이니 일부러 지나는 걸음이 아니면 알아채기 어려운 곳이지요. 이곳도 상가 재개발의 바람을 타고 대규모 개발에 휘청거리기도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껏 그 모습 그대로 상가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물론 문이 닫힌 곳도 있긴 하지만 올망졸망 가게들이 잇대어 있고 걸음들도 끊이진 않습니 다. 바로 옆으로 잇댄 가게들은 캘리그라피 강습소, 한국화 강습소, 도자기 숍들이 들어서면서 자생 적인 아트마켓이 형성될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억지로 성과를 끌어내려 애쓰지 않지만 시나브로 이곳은 부산교통공사의 문화예술 사업의 상징이 되고 있다 자부합니다. 그런데요. 이 일들은 언제부터 대단한 계획을 세워 시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화매개공간 쌈 이 나름 전략을 가지고 연 공간이라고 한다면, 쌈수다 는 없는 운영비로 가능한 프로그램을 고민하 다 있는 게 사람뿐인 일을 덜컥 시작한 게 열 번이 되고 스무 번이 되면서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되었 던 것이고, 그 가운데서 매주 쉬지 않고 진행하는 것 과 부산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문화예술인 으로 원칙같은 틀이 정해져서 서른 번을 지나며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두 가지는 쌈수 다 를 지켜 낸 핵심이었습니다. 그저 그것뿐인 일이었지만 이 일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부산에서 10년이 넘도록 열정을 다하는 젊은 예술가들은 바로 내 곁에 있었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우렁더우렁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점차 깨 닫게 되었고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때에 훅 다가 왔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세상을 살면 서 가장 잘 했다 싶은 일이 쌈수다 이겠다 싶고,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 쌈수다 시간이었으며, 가 장 행복했던 일이 쌈수다 였다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시즌2를 준비합니다. 제가 섭외하고 진행하던 방식에서 진행자를 8분 이상 모시려 합니다. 그 분들은 지난 5년간 쌈수다 와 이런저런 관련을 맺었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모시는 분들도 역 시 10년 이상 활동한 3040 연령대의 예술가들 이겠으나 제가 미숙해 빠뜨려 왔던 여러 가지를 채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

10 워 주실 것이라 기대를 한껏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애정과 격려를 보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 여전히 우리들의 희망은 우리들이다 싶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고마운 인사 넙죽 드립니 책을 네 권이나 내 오면서도 지면을 늘리지 못해 수다로 해 주신 귀한 말씀들을 골라 실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여전합니다. 그리고 죄송스럽습니다. 바다같이 넓은 헤아림이 있으면 좋겠다 싶습 니다. 문화매개공간 쌈 을 있게 하는 수없이 많은 분들의 열정에 작으나마 보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으로 부족한 책을 엮어 봅니다. 2009년 문을 열 당시 부산교통공사 사장 안준태 님, 기획본부장 배광효 님이 시작해 주신 일이 지 금 기획본부장 김영식 님에 이르기까지 애정으로 지원을 해 주신 덕분으로 의미있는 공간이 지속되 고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고객홍보실의 모든 분이 일일이 챙겨주신 손길을 잊을 수 없 지요. 책을 만들어 주시는 도서출판 호밀밭의 대표 장현정 님, 예쁘게 꾸며 주시는 소풍 디자인커뮤니케 이션의 김정란 님, 책이 되도록 일일이 녹취를 푸는데 도움 주신 여러분께 큰 사랑을 보냅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 다해 고마운 인사 올립니다. 2014년 12월 문화매개공간 쌈에서 김상화가 대신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 1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 1부 쌈수다-2014년 41개의 이야기

12 쌈수다-2014년 41개의 이야기 /07 김성연(전시기획자) 대안공간 반디 /14 김현일(대금주자) 우리소리 우리가락 청 /21 배진만(연극배우) 가난한 연극배우 /28 박배일(다큐 감독) 잔인한 계절 /04 배길남(소설가) 자살관리사 /11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18 신문범(국악전문단체 타로) 타악인생-두드린다! /25 송 진(시인) 시 이전의 시 /04 구수경(부산인권포럼) 절망 사회에서 길찾기 /11 양수성(고서점대표&문화기획가) 누런 책방골목의 푸른 사람 /18 여상훈(에프랑) 쟁이와 함께 하는 일상; 또 다른 메세나 /25 임상규(조각가) 종이접기(Dear Story;사슴접기) /01 최의덕(극단 자갈치) 오마이갓뎅 /08 배민기(만화가) 쌈닭-삼백일간의 떼들섬 나라 /15 최연순(발레리나) 피고 지고 그리고 피고 지고 /22 김일두(가수) 문제없어요 /29 김성겸(국악밴드 아비오) 날아라 풍뎅이 /06 류기정(도예가) 취미는 도예가 밥벌인 교육가 /13 전현미(현미밴드) 내 인생의 당기쇼 펼치쇼 부르쇼 /20 신용철(큐레이터)-잠수함 속의 토끼 1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예술가들

13 180 05/27 김지운(다큐멘터리 감독) 일본 속의 조선사람 /03 이현식(극단 새벽) 우공이산 /10 김광우(부산국제록페스티벌) 꿈꾸는 라이브데이 /17 서상호(오픈스페이스 배) 배? 배? /24 김명수(가야금 연주자) 현's tory : 여우를 꿈꾸는 곰 /05 남선주(춤꾼) 불매향( 不 賣 香 ) /12 이승욱(안녕광안리) 안녕광안리 /19 배유안(동화작가) 초정리 편지 /26 이정자(화가) 여름날 꽃비를 기다리며 /02 황경민(카페 헤세이티) 지금 여기, 그리고 시인 /23 사윤주(갤러리 마레) 꽃피우다 /30 홍성률(드럼&퍼커션 연주가) 드럼 뚜드리 /07 차재근(문화상상가, 문화소통단체 숨) 문화판에 뛰어들다 /14 박현주(김해뉴스 문화부 차장) 책과 세상 /21 김창욱(음악평론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28 조대일(남산놀이마당) 타악퍼포먼스 타퍼 /04 정성욱(촬영감독) 카메라에 담긴 영화 /11 이정남(극단 맥) 비나리 /18 강희정(춤꾼) 농담(2014) /25 최윤진(동화작가/문화행정가) 우리 함께 문화의 바다로! /16 윤웅태(부산반빈곤센터) 빈곤과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

14 160 >> 김성연 전시기획자 2014년 1월 7일 대안공간 반디 부산 출생으로 홍익대학, 뉴욕대학, 동명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영상, 사진, 회 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작업을 하며 15회의 개인전과 후쿠오카 트리 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등의 전시에 초대되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대안 공간 반디> 운영, 월간미술지 <B-ART> 발행,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발>, 레지 던시와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전시기획을 포함한 비영리 미술활동을 했으며, 현재 부산에서 강의와 작업을 하고 있다. 대안공간 반디 가 생겨나기 수년 전, 1999년 대안공간 섬 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운영했었습니 다. 30대 초 중반인 3명의 미술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고민한 결과로 탄생시킨 대안공간 섬 은 당 시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안공간 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전시공간이었죠. 부산으로 돌아 온지 얼마 안되었던 저는 작가의 입장에서 마음껏 설치할 여건의 전시 공간이 부족하고 벽 에 못 하나 치는 것도 제약을 받는 부산의 전시환경,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 제공되는 기회 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었고, 당시 상업화랑에서 일을 하던 이영준 큐레이터 는 전시기획의 한계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던 (고)이동석씨는 제도와 행정 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공미술관의 문제를 고민했죠. 이렇게 각자의 고민들이 모여져 시작하게 되었는데 1년 남짓 활동하다 임대로 있던 공간의 빌딩이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중단되었습니다. 1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 이후 내부적으로 다른 공간을 확보하는데 힘들었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이와 유사한 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죠. 그래서 작지만 민락동 동방오거리 근처 제 작업실을 개조하여 2002년부터 반디 라는 이름으로 다시 대안적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전 보다 작은 공간이라 월세 부담도 비교적 적었기에 대관이나 지원 없이 홀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공간 의 성격이나 내용면에서도 일반적인 공간과 차별화된 특정한 성격을 가지려 시도했는데, 특히 미디 어를 비롯한 실험적 작품에 집중했습니다. 혼자 꾸려가다 보니 어려움도 컸지만, 반면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 다. 운영이나 공간의 성격, 전시 등 여러 면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고, 대부분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개인전 공간으로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당시엔 제가 가지고 있 었던 모니터나 프로젝터만 있어도 도움이 되던 시절이었죠. 이 장소에서의 활동이 계속되었고 신양 희 큐레이터 등 식구들도 생겨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한데, 당시 집기 철거와 공간조성을 위해 부산의 젊은 작가, 학생들이 추운 날 고생 하며 함께 했던 시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 많은 작가들과 지원군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요. 목욕탕에서의 대안공간 반디 는 이렇게 탄생했고, 오픈 날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목이 메어 와 말을 잇지 못 했죠. 이러한 마음 때문에 공간운영을 쉽게 생각하거나 사사롭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들 공간을 운영하며 많은 개인전과 기획 전시들을 개최했는데, 섬 에서부터 공모를 통해 작가, 기획자를 선정해 신진작가들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당시의 여느 공모전과는 다른 시도 였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실험적 작업들을 주로 소개하려 했는데, 영상이나 사진, 빛, 소리, 몸이 연 관된 미디어작품이나 설치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이 중요한 작업 등 기존의 화랑에서 소화하기 힘 든 작품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외에도 작가들의 작품을 도록으로 만들어서 해외에 배포하는 일종의 프로모션을 시도했는데, 실제 해외에서 연락이 와서 활동 계기를 만든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 반디에서 전시를 한 이후에 활 동 반경이 커지는 경우가 꽤 생겨나면서 작가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

16 작가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전시도 1년에 한 번씩은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나 도 예술가 같은 프로그램으로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해외나 타지 에서 보낸 이미지를 출력해서 하는 전시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2년은 반디 근처의 주민들과 함 께 진행 했는데, 몇십 만원의 예산으로 한 작은 커뮤니티 프로젝트였죠. 오픈 날 떡볶이 가게 이모가 협찬도 해주셔서 동네 분들이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주변 학교의 학생들과 반디를 놀이터로 이 용하던 인근 아이들과 작가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 등 아래에서부터의 공공미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 다. 이들 활동을 눈여겨 본 분들이 보다 확장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이 동네가 좋 아지면 임대료가 높아져서 우리가 옮겨야 할지도 모르기에 하지 않겠다고 농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2004년부터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였습니다. 영상관련 수업이나 미술대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신진작가에게 도움 되는 내용, 일반인 대상으로 한 미술과 인접 장르를 아우르는 인문수업 들을 주로 방학을 이용해 진행 했었죠. 특히 마지막까지 기획자, 큐레이터 관련 교육은 많은 공을 들 인 프로그램으로 지속되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창기부터 작가만이 아니라 기획자공모 를 하거나 기획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기획자 양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부터 잘 키운 기획자 하나, 열 작가 안 부럽다 는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요. 오직 기획자를 위한 반디의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이었지 요. 물론 영상이나 사진과 같은 매체를 제한하여 진행한 해도 있었으나 국내외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1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7 한 레지던시는 당시만 해도 생소한 시도로 보였지요. 그리고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벌은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는데요. 지역에서 단채널 비디오작품 관련한 행사가 이처럼 지속되기는 쉽지 않은 일 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술 담론을 위한 지역매체의 필요성은 대안공간 섬 을 시작할 당시부터 인식하였는데 여러 여건 상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온라인 매체 발간을 위한 시도 등을 하다가 지속 되지 못했고, 결국 2009년 다들 우려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냥 안하는 것보다는 시도라도 하자는 마 음으로 월간미술잡지 B-ART 를 창간하였습니다. 물론 초기부터 반디의 유능한 식구들과 신양희, 그리고 김만석 등 필진과 편집인들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만 반디의 활동중지와 함께 잡지도 동력이 약해졌지요. 개인적으로는 작업과 기획 혹은 운영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술대학에서 실 기를 전공했고 특히 당시에는 기획 관련 교과 과정 자체가 없었고 기획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을 시기 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타지에서 보내다 부산에 와서 여러 열악한 상황들을 목격하면서 작품 활동만이 아닌 다양한 현실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잘 못했고 스스로 아 쉬웠던 부분들을 후배나 다른 작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것 같고요. 아무튼 기획 관련 일은, 단지 전시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크게는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 지의 문제와도 닿아 있는 것 같은데요,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거나 분류하는 일이라도 의미 있게 한다면 상당히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는 작가 못 지않게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최근에는 기획자의 역할이 과거보다 창의적 활동으로까 지 이어진다는 인식을 대부분 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얘기는 이 정도로 마칠까 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7

18 161 >> 김현일 대금주자 2014년 1월 14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2008년-현재) 문화예술교육사 2급 우리소리 우리가락 청 <이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45호 대금산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43호 수영야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62호 좌수영어방놀이 부산시 무형문화재 2호 수영농청놀이 수다 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수다가 막히면 연주하려고 악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앞으로 부는 악기 와 옆으로 부는 악기가 있는데 아무 것도 끼우지 않고 부는 형태와 리드 라고 하는 (우리말로는 혀 설자를 써서 서 ) 것을 끼워서 연주하는 형태가 있습니다. 또 대나무만 있는 악기가 있고 얇은 막이 붙어 있는 악기로 나뉘기도 합니다. 다 음색을 내기 위한 원리로 되어있습니다. 북간도쪽 훈춘시에 는 퉁소마을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퉁소를 불지 못하게 해서 퉁소 부는 분들이 모여 만든 마을입니다. 퉁소와 대금에는 갈대 안에 얇은 막을 채취해서 말려놓은 것으로 청 이라고 하는 것을 붙입니다. 이 청에 물을 묻혀서 연주를 하면 청이 떨리면서 소리도 커지게 됩니다. 확성기 앞에 있는 막 역할을 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애원성을 연주하는 악기라고 해서 퉁애 라고 합니다. 제가 제일 오래 접하고 여러 선생님을 만난 악기가 태평소입니다. 1994년도에 김동표 선생님을 만 1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예술가들

19 나서 대금산조와 호적시나위를 배우고 2002년에 수영민속보존회에 와서 이성옥 선생님께 옛날 느낌 의 가락을 배웠던 악기가 태평소입니다. 태평소의 서는 갈대로 만드는데 껍질을 한 꺼풀 벗기면 노란 껍질이 나오고 그걸 한 꺼풀 더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데 그걸 가지고 만듭니다. 자세히는 겹 서 라고 합니다. 중요한 연주가 있을 때는 직접 깎아서 만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서당에 다녔었는데 고등학교 때 단소를 좋아하게 되었고 대학교는 한문학 과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탈춤동아리 전통예술연구회에서 탈춤을 출 때마다 쓰이는 음악을 연주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신 김동표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께 태평소를 배우고 대금산조를 배우라는 권유를 하셔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한문학과는 졸업을 하고 다시 수능을 쳐서 국악학과에 입학해 1학년부터 다시 다녔습니다. 한문학과를 다니면서 무형문화재 이수를 하고 공연활동을 계속 했죠. 국악학과를 들어와서도 공연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진 못했습니다. 수영 민속 보존회에서 계속 공연활동을 하였습니다. 국악에 관련된 문헌이 한자 로 되어있어서 한문을 전공한 것이 악기 이름의 유래를 빨리 이해하고 정리를 할 수 있게 된 데 도움 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 한문학과에 들어가서1999년도 졸업과 동시에 한국음악학과에 입학하여 2008년도에 졸 업하고 2010년도에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에서 미학전공으로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식한 딴따라라는 말이 싫었고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표현하고 싶어서 계속 공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9

20 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무형문화재 이수증을 받았는데 인간문화재가 군대에 왔다는 소문이 나서 마지막 1 년 정도는 사단장이 중대규모의 풍물부대를 만들어줘 각종 축제에 불려 다니면서 공연을 했죠. 아무 튼 군대에서도 그렇게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하고 대금선생님께 갔습니다. 부산에는 크게 3개 민속관이 있는데 동래민속관, 구덕민속예술 관, 수영민속예술관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동래민속단체에 계셨는데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를 추천해주셔서 견문도 넓히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소속된 단체 구성원의 평균나 이가 58세 정도 됩니다. 제가 27살에 들어와서 올해 40살인데 아직 막내입니다. 제 밑으로 들어오는 신입이 55살입니다. 평균연령이 계속 올라갈 겁니다.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밑에 들어오는 젊은 사람이 없어 소멸될까 걱정이 되죠. 다들 연세가 있다 보니 큰 변화보다는 유지하려고만 하죠. 악기라는 것이 생명을 가지려면 계속 연주가 되고, 연주가 와 닿고, 다양한 시도도 하며 소통이 되 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는 원형을 보호받지 않으면 한순간의 꿈으로 사라져버 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가치를 가질까하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가서 수업 을 하면 학생들이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악기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 2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21 있고 아이들의 호응도도 높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밤하늘의 별똥별 등을 상상하게 하며 자연과 우리 소리의 소 중함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느린 음악을 좋아하는데 소리 하 나하나에 신경쓰며 연주를 하면서도 대 화를 한다는 느낌. 음 하나하나에 신경 을 쓰려고 해서 느린 음악이 좋은 거 같 아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21

22 162 >> 배진만 연극배우 2014년 1월 21일 가난한 연극배우 1996년 [유리 동물원]으로 연극 시작. [돼지와 오토바이], [해바라기], [김치국씨 환 장하다], [길], [Happy and Dim], [종이뱅기], [어두운 태양],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 하다], [트라우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청춘], [불면증], [반쪽 날개로 돌아온 새], [내 가방], [임대 아파트] 외 다수 연극은 1,2월이 제일 비수기인데 이번 주에 학생들이 하는 단편영화를 하고 2월 초에 단편영화를 할 예정입니다. 상업영화에 2~3번 출연했는데 <마이캡틴 김대출>, <나비>라는 영화에 출연했었습 니다. 학생들 영화는 일년에 서너 편씩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학과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더 전념했어요. 전공서적보다 연극 서적이 더 많을 정도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이벤트 회사에 기획파트로 취직했는데 회원 모집하라 고 해서 그만뒀습니다. 이후 <유리동물원>이라는 작품으로 직업배우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조명을 했던 선배의 권유로 극단 열린무대라는 곳에서 연극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원래 제 고등학교 때 꿈은 한국담배인삼공사에 취직해서 돈 벌어서 술집을 차리는 거였습니다. 2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23 직업으로는 18년째 배우를 하고 있습니다. 프로필을 정리하다 보니까 중복되는 것 빼고 한 60편 정도 작품을 했는데 1/3은 인간관계나 돈 때문에 했고 1/3은 시간적으로 맞아서 한 것 같습니다. 작 품을 하는 기준이 있는데 돈을 많이 주든지, 작품이 좋든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든지 그중 하나는 맞아야 하거든요. 일 년에 한두 작품은 경제적인 이유로 하게 되죠. 뭔가 결핍이 있는 인물들 연기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대단한 인물들보다 결핍 있는 인물을 연 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눈이라도 내렸으면>이라는 장편영화 촬영을 마치고 편집중입니다. 촬영하는 동안 새벽에 잠깐 눈이 내렸었어요. 원래 열린무대는 80년대 후반에 생겼었는데 처음 만들었던 선생님들이 다 나가시고 동갑내기 연출 하고 후배, 경성대학교 막 졸업한 친구들이랑 2000년 정도까지 재미나게 작업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작업들이 최근까지 배우를 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연습하다 술 먹고 싸우고 다시 보고 그런 시절이 5~6년 됐었죠. 그때 공부를 많이 했죠. 싸워서 이기려면 장면분석에 대한 논리를 펴기 위해서 많이 알아야 하니까요. 그때는 장정일씨 작품을 무대에 많이 올렸는데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할 때는 작가인 장정일씨가 직접 오기도 했었어요. 엽기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중 춤추는 장면에서 장정일씨가 집필 중에 가끔씩 펠리칸 춤을 춘다고 해서 그 춤을 술자리에서 배워 작품에 반영했어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23

24 제가 있던 열린무대는 거의 국내작품만 했었습니다. 그 후 다른 극단과 번역 작품을 한 10편정도 했던 것 같아요. 2000년도 <길>이라는 작품을 하고 1년 정도 쉰다고 극단 대표님께 말씀드렸어요. 여배우는 많은 데 남자가 없다보니까 쉬지 못하고 계속 작품을 하다보니 좀 쉬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직장이 있었는데 저만 직장 없이 연극만 해서 극장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지하에서 살다보니 햇빛을 못 보니까 피폐해져갔었죠. 착한 배우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인간적으로 어떻다는 것을 떠나서 무대에서 착한 배우랑 같이 하는 게 편하죠.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이 연기도 아주 잘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제가 연극을 책으로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처음 접한 책에 배우에게 시간약속은 생명과 같다라고 나오는데 요즘엔 시간을 지키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요. 늦으면 1분당 천원 벌금을 내게 하니까 다들 지키더라 고요. 어떤 친구는 지각을 밥 먹듯이 해서 벌금을 내게 한 뒤부터는 공연 전까지 한번밖에 안 늦더라 고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만큼 극단에 소속된 친구들이 없어요. 젊은 친구들이 한 곳에 얽매이지 않 으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연극밖에 할 게 없었는데 지금은 영화도 있고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게 많긴 하죠. 꼭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둘 때 제일 아쉬워요. 예술이라는 관점이 좀 애매합니다. 모든 예술은 수용자에게 갔을 때 예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 극은 인간이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도구입니다. 내가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을 재현해내고 현실에는 없는 인물을 있을 법 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배우라고 생각합니 다. 연극무대에 서면 생각보다 배우들은 집중 하고 있기 때문에 코를 골고 자거나 딴 짓을 해도 관객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는 2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25 데 오히려 같이 공연을 보는 분들에겐 큰 피해가 됩니다. 잡담이나 폰으로 자기 옆 사람을 괴롭히는 관객이 제일 싫어요. 한 두 사람 때문에 다른 관객의 관극을 방해하는 게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한 번도 제 연극을 보러오지 않으셨어요. 다른 가족들은 데뷔작 품인 <유리동물원>을 할 때 왔었는데 그 이후로는 안 오더라고요. 누나만 가끔 일 년에 한번 보러 오 십니다. 제가 가족을 잘 안만나려고 했죠. 가족을 만나는 건 설날, 추석, 아버지 제사, 어머니 생신 일 년에 네 번 집에 갑니다.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무릎 수술하셨을 때 병간호하면서 부모님보다는 먼저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머니께는 일년에 6번 정도 전화를 먼저 드렸는데 최근엔 전화 를 좀 더 자주하게 되었죠. 처음 연극한다고 할 때는 가족과의 사이가 껄끄러웠는데 지금은 가족들과 화해를 많이 했어요. 연극은, 힘들 때 잠시 여행을 가거나 쉬고 다시 돌아오면 더 재밌더군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었 던 것 같아요. 20살 때 몰랐던 것을 30살 때 알게 되고 그때 몰랐던 것을 40살 때 알게 되니 까 이제 조금 연기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이만큼 알아서 재밌는데 더 많이 알면 얼마 나 재밌을까 이런 생각을 하죠. 그러다가도 술 먹고 다음날 되면 또 그만둘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 니다. 일 년을 버티기는 쉬운데 하루를 버티기가 힘든 것 같아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25

26 163 >> 박배일 다큐 감독 2014년 1월 28일 잔인한 계절 2013 <밀양전>(73min) 2012 <나비와 바다>(89min) 2011 <강, 원래 프로젝트> 2010 <잔인한 계절>(60min) 2009 <촛불은 미래다>(28min) 2008 <내사랑 제제>(70min) 2007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13min) 2005 <병을 깨다> (26min) 처음 만든 다큐가 누구에게 인정을 받지 않았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 교영화제에서 제가 만든 영화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어요. 그 상이 다큐를 해도 된다는 격려로 받 아들여졌어요. 제가 학과 수업도 열심히 듣지 않고 다큐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시청자 미디어센 터에서 다큐수업을 받았어요. 그때 처음 생각했던 주제가 장애인결혼이었습니다. 그러다 <내사랑 제 제>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우영이 형을 만났습니다. 우영이형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 했고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6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분은 양산에 살고 형 은 부산에 살았어요. 그때는 양산까지 가는 지하철이나 저상버스가 없어서 한 번도 여자친구를 집 앞 까지 데려다 주질 못했어요. 그래서 우영이 형이 여자친구 집으로 가는 과정을 다큐로 만들게 되었 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도 다행히 상을 받았어요.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못 받았으면 아마 계속 할 수 2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27 없었을 거예요. <밀양전> 같은 경우는 제가 처음으로 현장에 들어가서 만든 다큐입니다. 그전의 영화들은 현장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찍고 싶은 것들을 찍었어요. 그래서 <나비와 바다> 나 그 외 다른 작품들은 제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물론 <밀양전>도 제 생각이 들어 가 있긴 하지만, 그 생각이 나오는 과정은 밀양 할매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가능해요. 저는 2012 년 3월에 밀양에 처음 갔고, <밀양전>은 2013년 10월에 나왔습니다. 빨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사 람들에게 밀양 상황을 알려주고 도움이 되고 싶어 마음이 굉장히 조급했지만 빨리 만들지는 못했어 요. 왜냐하면 밀양이 어떤 곳인지, 밀양 할매들이 어떤 마음으로 송전탑을 막는지, 그리고 이 송전탑 싸움이 본질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1년 반 걸렸어요. 독립다큐멘터리를 한다면 그런 과정, 즉 <내 사랑 제제>에서의 나와 우영이형과의 관계, <밀양전>에서의 나와 밀양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려요. 밀양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사람들이 현재 요구하는 다큐멘터리는 밀양의 이야기를 메인 언론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더 깊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원하는 것 같습 니다. 그런 점에서 <밀양전>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그나마 밀양에서 나온 최초의 다큐이 작은 공간 큰 이야기 27

28 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밀양현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경찰은 어쩔 수 없는 집단이구나. 폭력을 동반하는, 권 력의 개가 될 수밖에 없는 집단이구나. 를 마음속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경찰이나 한전이 아닌 할매 들을 봐요. 어떻게 이렇게 싸울 수 있을까? 어떤 힘으로 매일 새벽 6시에 나오고 핫팩과 비닐 옷, 그리고 얇은 이불 하나에 의지해 바깥에서 잘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할머니들을 보고 믿으 면서 현장을 지켰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찰의 폭력성이나 정부, 한전의 야비함과 악랄함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면 제가 못 견디겠더라고요. 다큐 제작 초창기에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채로 경찰과 싸운 적도 있어요. 하지만 카메라를 돌려 보면서 생각해보니 이 공간에서 저의 역할은 경찰이랑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싸우거나 정부의 정책에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뷰 파인더 너머에 할매가 울고 계시면 같이 울고는 있지만 카메라를 놓지는 않게 되었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최종적인 목표는 제가 만든 영화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그 담론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박배일이라는 사람으로서의 최종 목표는 조금 더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제가 4,50대쯤 되었을 때 다큐멘터리 감 독이 아니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해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겁지만 그것보 2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29 다 더 즐거운 일이 나타났을 때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더 즐거운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29

30 164 >> 배길남 소설가 2014년 2월 4일 자살관리사 201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사라지는 것들> 당선 現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장 2012년 부산민족예술인상 수상 2013년 소설집 자살관리사 (도서출판 전망) 발간 2014년 제14회 부산작가상 수상 지난해 12월에 <자살관리사> 소설을 냈습니다.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배웠고 부산에서 먹고 살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 쓰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인 부분이겠죠. 작년쯤 많이 쪼들린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대화를 하다 이런 말을 했어요. 엄마, 엄마 죄는 내 어 릴 때 60권짜리 세계명작동화를 사준 겁니다. 하고 말이죠. 본격적으로 글을 썼던 것이 2010년도네요. 학원 강사를 10년 넘게 하다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돈 이 살짝 궁할 무렵 우연히 미술관 지하실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소재도 얻고 신춘문 예에 당선된 소설 <사라지는 것들>을 쓰게 되었죠. 완성된 원고를 신춘문예 마감일 밤 12시에 부산 일보 문을 두드려서 주무시는 수위아저씨께 원고를 냈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한 후에 담배를 피며 거지같은 상태로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당선 소식이더군 3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31 요. 삶의 희열을 여러 번 느꼈지만 그땐 정말 강렬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37살이니 늦다면 늦은 데뷔 였었습니다. 신춘문예는 그전에 서너 번 응시했었지만 공력이 많이 딸린 작품들이었죠. 사실 훨씬 일찍 글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습니다. 대학교 졸업할 때 블로그가 한창 붐이었 는데 자작 소설을 올리곤 했었죠. 가끔 지인들에게 네 글은 재미가 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죠. 한편으로는 등단이란 꿈이 너무 멀어 (당시만 해도 신춘문예는 저 하늘 끝의 별보다 요원하게 보였으니까요) 항상 가슴 한편이 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글에 자신감을 얻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포털싸이트 다음 에 만화 시나리오 게재란 이 있었는데 거기에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 시나리오로 만화를 그려도 되겠 느냐? 는 메일이 날아왔더군요. 그것도 두 통이 한꺼번에요. 아마 어느 학교의 만화과 교수가 추천 을 했었나봐요. 어쨌든 다시 확인해 보니 조회 수가 3만 2천이 되어 있더군요. 자신감을 좀 갖게 되 었지요. 저는 살아가면서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간간이 있어 왔어요. 사람들마다 꿈이란 게 존재하는데 저는 그 꿈이 당사자를 힘들게 하는 타입이었습니다. 가장 하고 싶지만 가장 귀찮기도 한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하지만 꿈은 내 정신에서 암세포처럼 자라나 절 대 사라지지 않았죠. 제 소설의 장점이라면 재미에 우선을 둔다는 것입니다. 소설이 주는 재미와 글이 주는 재미를 추구 하는 편이죠. 물론 영상과 음악에 쫙쫙 밀리고 있는 활자이지만 말이죠. 작은 공간 큰 이야기 31

32 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사투리의 등장입니다. 사투리는 그 속에 수많은 재미와 철학을 담고 있 어요. 예를 들자면 경상도는 야, 자, 온나. 한번 울리고 끝납니다. 산과 바다를 재빠르게 다녀야 하 다 보니 그럴 수밖에요. 사투리를 쓰는 것은 많은 제한이 있습니다. 표현 자체도 표준이 없다보니 헷 갈리고 인쇄 작업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떤 모습이냐구요? 글을 쓸 때 저는 거의 연극배우 수준이 됩니다. 혼자서 연기를 하 고 있어요. 표현하는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지 혼자 연습해 봅니다. 머리에서 계속 굴려보고, 그렇게 굴려 보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상황 자체에 몰입하다보면 서사적인 게 풀어지는 것 같아요. 서사를 만들어가면서 넣으니까 이게 통하더군요. 요즘은 장편소설을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왜관에 관한 소설인데 조선시대 역사소설의 말투와 사투 리를 어떻게 섞어 쓸까 고민합니다. 나만의 버전으로 만들어 가며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죠. 저는 부산에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부산은 소재가 무궁무진해요. 썩은 다리, 허치슨 부두, 초량왜 관 등 이야깃거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전 부산의 행정 중심지는 중앙동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 라를 침략하면서 제일 먼저 삼킨 곳이 바로 조선이 지어주었던 초량왜관입니다. 그곳이 일본인 거류 지가 되며 중앙동이 자연스레 행정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왜관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곳이었고 동 아시아 무역의 허브이기도 했습니다. 부산은 바로 그 중심지면서 전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변방 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부산은 그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소설집 자살 관리사 의 제목이 독특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자살관리사 는 제 소설집의 소 설 <증오하지 말고 심수창처럼>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직업입니다. 자살마저도 관리하고 서비스한다 는 설정이 재밌었죠. 사실 이 자본주의 세상은 그보다 더한 것도 서비스하고 있으니까요. LG에서 16연패를 하고, 10년 넘게 몸담았던 LG에서 방출되어 넥센으로 가게 된 심수창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 있는데 그 선수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다 이 소설의 소재를 얻었었죠.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어떻게 이어가느냐? 바로 그 답은 이야기 입니다. 자살관리 3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33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 그를 살려주게 되죠. 여기에서 팍팍한 자본의 세계를 구할 것은 오직 이야기의 힘이다!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힘은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샤리아르 왕은 처녀와 잠을 잔 후 다 음날 무참히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왕에게 바쳐진 세헤라자데는 살기 위해 천일 동 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결국 그의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그때 들려준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야기의 힘은 이렇듯 수많은 다양함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잘 펼쳐볼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합니다. 이 엉망 진창인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나설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습니다. 청소년 때 소설가의 꿈을 가졌고 무조건 국어국문과를 가야하고 신춘문예도 당선되어야 된다고 생 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정석의 길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꿈 때문에 방황도 많이 했었죠. 이제와 돌아보면 정확한 목표설정에 다가가는 방법은 더디게 가든 일찍 가든 상 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패드 광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숫자, 돈, 수표, 수학, 그런 건 삶의 방법이다. 하지만 네가 즐거울 때가 있었니? 네가 춤출 때, 네가 시를 볼 때, 기쁠 때, 그건 삶의 목적이야. 내가 문학을 하 고 있는 이유는 목적입니다. 삶의 방식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삶의 방식으로는 얼마 든지 다른 걸 할 수 있는데, 제 삶의 목적은 이야기하기 인 셈이죠. 작은 공간 큰 이야기 33

34 165 >> 2014년 2월 11일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지루할 정도는 아니지만 평범한 인생. 2003년부터 취생몽사 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운영. 5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그로 선정. 2011년 한국 100대 블로그로 선정 2011년부터 맛칼럼니스트로 활동. [부산일보] 부산의 노포 와 [국제신문] 에 부산의 요리사들 연재 저는 처음에 블로그로 활동을 시작했고 네이버 블로그를 한지는 1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라는 테마로 블로그 활동을 하였는데 5년 연속 파워블로그로 선정되어 활동을 하였습니다. 40살쯤 되면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 고민을 하다 글 쓰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고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정도 전부터 맛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신문이나 매체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맛 칼럼니스트는 맛집을 소개하거나 음식을 소개하 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직업입니다. 음식평론가와는 다릅니다. 음 식평론가는 음식이나 식당을 평가하는 것이고 맛 칼럼니스트는 맛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서 사 람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의 근대가 궁금하다면 저는 부산의 근대를 3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35 음식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부산의 근대 속에서 음식들은 어떤 역할을 했느냐? 예를 들어 돼지국밥 은 부산에서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떻게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아왔느냐. 어묵은 어떻게 부산에 전해져 서 어떻게 부산어묵이라는 이 명성을 만들어냈느냐. 이런 것들을 제가 연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맛을 표현하는 훈련이 되면 글을 쓰는 훈련에도 도움이 됩니다. 자기 만의 표현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음식을 통해서 보는 독특한 시각이 세상을 보는데도 적용이 됩니다. 어떻게 써야 되는가 보다 어떻게 표현하고 먹어야 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자기만 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맛을 표현하는 것은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실 때 형 용사와 부사를 많이 사용하는 습관은 바꾸어야 합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후쿠오카를 보고 경험했던 것을 담 고자 했습니다. 2013년 12월에 제 첫 책인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를 발행하였습니다. 책을 내고 나서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3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저와 같은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독특하고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덕분에 4월, 8월에 부산에 관한 주제로 책이 두 권 나올 예정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35

36 저는 일본어를 전혀 못합니다. 일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초반에 많이 했었습니다. 언어를 알면 지식을 습득하는데 굉장히 효율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아는 히라가나로 음식에 대 한 기본 메모만 하고 그 메모를 가지고 혼자 매달립니다. 구글 번역기에서도 돌려보고 그것을 가 지고 다른 자료들과 대입을 시켜보면서 점점 방대한 지식들과 자료들이 쌓이게 됩니다. 만 약 언어를 알고 있다면 너무도 쉽게 이해해버리고 말았겠죠. 하지만 이 방법은 제 나름의 방법 이지 꼭 권해드리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2004년도에 규슈에 처음 가게 되었는데 부산사람의 입장에서 정이 가는 도시였습니다. 이후 규슈 를 오고가며 음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규슈라는 도시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다른 지역들을 다니면서 음식이 맛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규슈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음식을 이야기 할 때 간단하게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간장과 미림(맛술)입니다. 이것은 짠맛과 단맛을 이야기 합 니다. 사실 일본음식을 많이 먹으면 금방 질려 버립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규슈의 음식을 먹는데 한국 의 음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슈 음식은 멸치를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의 멸치사용 음 식문화는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입니다. 그 전에는 젓갈형태로 먹었지 말려서 육수를 우려내는 방식은 일본에서 넘어온 방식이지요. 우리의 음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 3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37 터 규슈의 음식들이 다 달라보였습니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규슈는 우리와 교류의 의미가 가장 큰 지역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담는 그릇도 중요시 여깁니다. 음식을 담을 때 색으로도 가장 맛있 어 보이고 앞뒤에 나올 음식도 생각하며 그릇을 선택합니다. 이는 어릴 때부터 생활 속 교육으 로 본능적으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일반가정집에서도 많은 그릇들을 사용합니다. 팬션이나 콘도를 가서 주방의 선반을 열어보면 100명이 사용해도 될 정도의 그릇들이 놓여 있습니다. 당신의 심미안 을 마음껏 펼쳐 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음식문화에서 도자기는 중요합니다. 그릇을 통해서도 일본 인들이 밥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37

38 166 >> 신문범 국악전문단체 타로 2014년 2월 18일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음악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문화영상학과 박사수료 타악인생-두드린다! (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부수석 역임 (현) 국악전문단체 "타로" 공동대표 (사)일통 고법 보존회 부산지회장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전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운영위원 부산예술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 제가 국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면서 부터입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이 국어선생님이 셨는데 여름방학 때 시골 민요를 녹음해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헌데 예외로 농악부에 가입하면 숙제를 면제해 주신다길래 숙제도 안하고 이번 기회에 장단도 배울겸 농악부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 국악과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 고 국악과를 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기 준비를 하였고 재수 끝에 입학을 하였고, 열심히 학교를 다 니다 군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복무기간 동안에도 국악을 놓고 싶지 않아 국악을 계속할 수 있 는 군악대에 지원하여 육군사관학교 군악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에게 단소와 풍물을 가르치고 있을 때 마침 위문 공연을 온 국립국악원의 연주를 보았고 그곳에서 김청만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모실 스승님은 아! 3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39 저 선생님이구나. 라는 생각에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로 찾아가 제대 후 선생님께 꼭 인사 드리러 가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제대를 한 후 1993년에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죠. 그 길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에 계신 선생님께 올라갔다 내려오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 다. 그때 당시 저는 군 복무 중 결혼까지 했던 터라 더더욱 힘든 상황이었죠. 주중에는 학교를 다니 고 주말에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열심히 배웠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공연도 많이 했었고 그럴때 마다 저는 항상 선생님의 공연을 녹화하여 보고 또 보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면 늘 뒷풀 이 술자리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약주를 드시더라도 댁에 가면 그날 공연 한 연주실황음원을 들으며 본인이 틀린 부분은 없는지 항상 체크하시더라고요. 최고의 자리에서도 항상 학습을 하시는 모습이 저는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저 또한 늘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 력합니다. 국악의 장르 중에서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분야는 판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악 (소리북) 역할 또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라고 하는데, 옛 말에 일고수 이명창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고수가 첫째고 소리꾼이 두 번째라는 의미로 고 수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허나 요즘에는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 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습 니다. 관객들이 얼마나 추임새를 잘 넣어주고 함께 하는가가 그 판이 잘되고 못되고를 결정 작은 공간 큰 이야기 39

40 짓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국악에서는 장단을 알면 국악의 90%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장단이 중요합니다.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그 깊이와 성음은 흉내낸다고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판소리에서도 진정한 고수들 은 가락을 많이 치지 않습니다. 소리꾼이 잘 놀 수 있도록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장단만을 칩니다. 지금은 악보가 있지만 예전에는 구전을 통해서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명인선생님들 은 악보나 책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전수받았기에 그 깊이가 요즘 젊은 친구들하곤 차이가 날 수 밖 에 없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음악적 기량이나 학습환경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몸과 마음이 아 닌 악보에 더 익숙하기에 그 깊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요즘 젊은 국악인 들은 전통 기악곡인 산조 한바탕조차 다 외우는 친구들이 잘 없습니다. 악보는 음악적 표현의 한 계가 있기 때문에 그 전통의 깊은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국 공립단체 에서는 다양한 것(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할 줄 아는 단원들을 요구하다보니 예전에 비해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는게 현실이죠. 타악하는 친구들 중에 서양악기 드럼, 젬베, 팀파니 등을 연습하느라 정 작 꽹과리 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못 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현시대가 많은 것들을 원하 긴 하지만 그래도 정통성을 지켜나가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무엇을 4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41 하든 전통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저는 또 국악전문단체 타로 의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타로의 창단공연은 전통과 현대음악을 조 화롭게 이끌어 대중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곡 구성으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부 산에서는 새롭게 처음으로 시도되는 곡들로 구성하였고 그 결과 매회 매진이란 기록을 세우며 지금 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국악 단체입니다. 저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늦은 밤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금, 토, 일 3일은 타 로팀 전체 연습시간입니다. 이 연습을 10년 넘게 계속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국악의 분야는 너무도 많고 평생을 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기에 항상 학습 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이죠.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1

42 167 >> 송 진 시인 2014년 2월 25일 1999년 다층 제 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 2008년 / 문학의전당 나만 몰랐나봐 / 2011년 / 북인 시체 분류법 / 2013년 / 지혜 시 이전의 시 요산창작기금 수혜 부산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다층문학회 회장 지냄 부산작가회의 회원 2013년 한국도서관 협회 문학작가 파견 선정 해운대도서관, 금정도서관 수업 SFLW(Song Feel Love Writing)창작센터 운영 유년 시절에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한여름 밤의 꿈>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었는데, 너무 좋아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평범한 여고시절을 보냈는데 글쓰기를 좋아하다보니 시인이 된 것 같습니다. 등단을 늦게 했습니다. 우연히 여름 시인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시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년도에 등단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시를 쓰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두 번째 시집 <나만 몰랐나봐>에 이어서 세 번째 시집 <시체 분류법>을 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고행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요즘은 시인이 라고 하면 관심을 조금 가져주지만,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분위기가 만들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4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43 등단 14년째인데,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면서 현재의 세계와 과거의 세계를 오갑니다. 아무 것도 없이 혼자서 하는 놀이입니다. 시는 예술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과거나 현재를 이어주면서도 전혀 다른 얼굴인 미 래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머무르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머무는 경계를 뛰어 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시도 써야 하지만 현실적인 생활도 해야 하니까요. 생활을 신경 쓰다보면 시쓰기가 힘듭니다. 시도 생활이고, 생활도 시다. 육아도 시고, 시도 육아다. 그렇게 갈등 요소를 없애면서 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시를 만나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상에 눈감는 내공이 필요했습니다. 청소나 요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혼자서 서점이나 박물관에 가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혼자 산책하는 시간도 늘어났 고요.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신들린 듯 시를 적을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서면에 있는 부전 도서관 근처에 살았는데 그 주변 문화를 흡수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동 보극장, 태화극장, 북성극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는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습니다. 학교만 마치면 영화 보러 갔어요. 도시적인 문화에 놓여 있었지만 저는 시골을 좋아했습니다. 초등 6학년까지 방학 때면 사천 시골 에 가서 지냈는데 하얀 눈 속에 산토끼 잡으러 다니고, 외할머니 따라 밤 마실 나가면 하늘에서 수많 은 별들이 쏟아지곤 했지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에요. 자연을 좋아한 것 같아요. 그 당시 사천 은 전깃불이 없었습니다. 호롱불이 있을 때였어요.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도시에 들 어서면 네온사인에 세상이 환하고, 마치 다른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죠. 완전 다른 세계였는데 그게 판타지였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오는 것도 판타지고,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것도 판타지였어요. 판타지 같은 느낌이 내 온몸을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3

44 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는 과정입니다. 시는 억압받는 과정이 있어야 억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있고, 억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시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송진 시는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다고 말하 기도 합니다. 혹자는 송진 시인의 시가 내 취향이라며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제 세계를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두 권의 시집은 다른 선생님이 제목을 권해주셨습니다. 세 번째 시집 <시체 분류법>은 제가 정했어요.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제 시적경향을 잘 담고 있는 제목이니까요. 시집이 발간되고 시체 분류법이 신체 분류법 으로 잘못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설마 시집 제목이 시체 분류법이겠는가 생각했던 거죠. 시집을 묶을 때는 시의 부를 나누고 시가 실릴 순서를 정합니다. 시를 출력해서 방안 가득 펼쳐놓 고 제목만 보이게 해 마음에 드는 걸 뽑습니다. 제목만 봐도 무슨 시인지 아니까요. 산문시는 산문시 끼리 자유시는 자유시끼리 묶습니다. 송진은 필명입니다. 은진(송), 나루(진)을 쓰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은 나루(진)자의 의미입니다. 강에 배가 한 척 서 있습니다. 나룻배가 서 있는데, 이 배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햇볕이 내려쬐 4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45 면 햇볕을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눈을 맞습니다. 그렇게 서 있다가 사람을 태우고 가고, 내 려주고 나면 혼자 또 서 있습니다. 이슬을 맞고, 사람을 태우고 가고, 저는 그런 게 좋았습니다. 제가 나루터나 배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 없는 나의 상태가 좋습니다. 금강경을 좋아하는데 상념이 없는 상태가 좋아요. 어떤 상도 맺히지 않고, 관념도 없고, 멍하게 있는 게 좋습니다. 멍하게 한 척의 배가 되어서 멍하게 그렇게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5

46 168 >> 구수경 부산인권포럼 2014년 3월 4일 절망 사회에서 길찾기 부산인권포럼 대표 여성주의 극단 자갈치 아지매 대표 부산 교도소 성폭력가해자 교정프로그램 전문강사 부산가정법원 이혼 전 의무상담 전문상담위원 부산인권문화제 집행위원장 부산인권상담네트워크 대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하루하루가 우리들에게 참으로 절망적이라고 다시 말한다는 것 이 절망적입니다. 뉴스를 매일매일 눈뜨고 볼 수 없고 귀 열고 들을 수 없을 만큼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폭력을 실감하며 이 절망의 늪을 어떻게 헤쳐 나올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철이 들고 난 이 후 어느 시절 절망적이지 않은 적 없었던 것 같고, 어느 시절 희망을 버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이 영도인데 하단에 있는 모여고를 13번을 타고 새벽에 등교하고 10시 야자를 끝나고 하 교를 했고, 남포동은 학교에서 단체 영화를 보보기 위해 내려본 적 외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 다. 선생님이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선생님의 말에 추호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학교선생님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는 엄마의 말을 거스르지 않은 착 4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47 한 딸이었습니다. 대학시험을 치고 난 후 친구가 권해서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난장이가 쏘아 올 린 작은 공 을 읽으며 정말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대학입학 전 긴 겨울방 학동안 친구들과 모여서 일주일에 한번씩 독서활동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독서클럽 활동을 하다가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올라 왔는데 부산민주청년회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부민청은 직업직능별로 청년분과, 여성분과, 생산직노동분과, 사무직노동분과 등을 구성 했는데, 저는 여성분과에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분과활동 중에서 실천 활동으로 꽃들나라 라는 탁아소 후원과 자원봉사도 하게 됩 니다. 이것이 아마도 지금의 영유아보호법이 만들어지게 된 시초가 아닌가 싶습니다. 88년, 89년 즈음 일하러 나가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방에 가둬 놓고 사고로 불이 나서 숨지게 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당시 부산에는 부산여성노동자회라는 생산직 여 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평등권을 지원하는 여성단체가 있었는데 한편 일명 그냥 집에 있는 엄마 라 는 주부들에 대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즉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가치화해 보게 되지요. 지금의 전업 주부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 부산지역의 실업계여성들의 삶을 되새겨보면 이는 남성중 심, 아들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낸 불평등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더라도 결혼이나 임신을 한다면 어렵게 들어간 일자리를 내놓아야하기에 임신한 배를 꽁꽁 묶어 다녀야하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7

48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이 있었습니다. 사무직여성들의 여직원회를 조직하고 결혼, 임신퇴직제의 부당 성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지금 남성들도 출산휴가를 얻게 되는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아주 쉬운 일은 아니고, 직장여성들이 결혼, 임신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말입 니다. 그 후 부산지역에 부산여성회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활동을 하였습니다. 회원들은 대부분 사무 직 직장여성들이었는데 퇴근 이후면 사무실이 넘쳐나도록 북적거렸어요. 상담 내용은 직장 내 노동 문제와 더불어 가장 많은 것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문제였습니다. 중앙동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쪽 은 주로 사장과 경리 1명이 근무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 경리들이 사장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근무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임신중절 수술이 잦았어요. 간호사들의 성희롱도 많았습니다. 00성형외과 에서 원장이 오랫동안 여러 간호사를 성폭력해왔는데 법적으로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해서 입법화 운동을 하게 됩니다. 법을 만들기 위해 사건화 시키게 되죠. 성폭력 사건의 경우 100건 중 1건 정도 밖에 신고가 안 되는 시대였고 기소율도 6%도 안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기소율은 40%, 신고율은 10%미만입니다. 94년 성폭력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지 금도 여성의 문제를 많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후 가정폭력상담, 성매매 여성상담 활동, 인권활동에 몸담아 왔습니다. 어느 시절 어느 때라고 절망적이지 않은 적 없었습니다. 절망사회에서 길 찾기는 절망사회를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 활 동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것만이 대안입니다. 90년대 성폭력피해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사망선고를 내렸던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노력하였고 이에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3대 여성폭력피해여성들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폭력피해여성들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유 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성폭력피해여성들의 지원문제만이 아니라 성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해자들에 대한 의식교육을 부르짖었습니다. 성폭력은 가부장적 사회의식과 여성들을 성적으로 바 4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49 라보는 의식의 문제로 인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생각변화가 필요하다는 제기가 비롯되면서 성폭력가 해자들에 대한 교육이 강조된 것이지요. 90년대는 있을 수 없었던 일입니다만 저는 지금 성폭력 사 범들을 만납니다. 지금은 성폭력의 문제는 성적 자율성, 성의 상품화, 힘과 권력의 중심과 배분, 힘 의 근원 등 복잡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복잡하고 절망적인 것은, 모든 개인 및 인간의 존엄성이 강조되 고 있기 때문이고, 한번 뿐인 인생을 위해 권력과 재력과 힘을 가져야하기 때문이고. 즐거 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가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우리의 희망입니다. 인간 누구나 존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늘 끊임없이 반문하며 되묻고 길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봅니다. 그 답이 바로 내 앞에 있지는 않더라도. 걸음이 답이다라 고 말해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49

50 169 >> 양수성 2014년 3월 11일 고서점 대표&문화기획가 누런 책방골목의 푸른 사람 1997년 동방미술회관 내 고서점 오픈 2003년 헌책방 기습전, 헌책방 사진전 기획(고서점) 2004년 김세진의 마임이야기(가톨릭센터.제작 및 기획) 2005년 액터스 소극장 기획실장(권은영, 허경미 등 공연기획) 2004년~현재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 기획 2011년~2012년 파주북소리 행사기획 및 참여 2010년~2013년 부산시 가을독서축제 기획위원 참여 2006년~2011년 부산 KBS 문화관련 라디오 출연 창원, 대구 등 책과 관련된 행사 기획 및 진행 <우리나라 옛문헌전> <나도 미술품 하나사자전>을 비롯 전시기획 수십회 현재 보수동책방골목 번영회 총괄기획팀장, 민간단체협의회 간사, 책마을 문화통 대표 보수동책방골목에서 고서점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로 옛날 책을 팔고 있는데, 책방 일은 안보고 외부의 문화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오늘도 2시간 정도만 서점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올해 나이가 마흔 둘이고 애도 둘인데 아직도 어머니께 욕을 먹고 살고 있어요. 보수동에는 책방들이 모여 있는 책방골목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동광동과 그 일대에 일본인들이 운영했던 인쇄소도 많았고, 특히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 온 지식인들이 유일하게 정 보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책이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가지고 피난 온 이들도 전쟁이라는 난 리 속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파는 이들이 생겨났습니 5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51 다. 어떤 이들은 책꽂이를 들고 나와서 책을 팔았습니다. 판잣집에서 책을 파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 죠. 사과상자 위에 책 몇 권을 올려 팔기도 하고 리어카를 끌고 나와서 팔기도 했습니다. 50년대와 60년대에는 책이 많이 귀했던 시절이라 리어카에 가득찬 책들이 반나절 만에 다 소진될 정도로 책장 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외지에 계셨던 분들도 많이 왔는데 정말 좋은 책들을 싼값에 구입 하는 횡재를 맞이하기도 했지요. 국보급. 보물급 책들이 그렇게 보수동책방골목에서 팔리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도 2~4평 되는 작은 책방이 70개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런 작은 서점들 2~3개를 터서 하나의 책방이 되면서 책방의 숫자는 줄었지만 각 가게의 규모는 많이 커졌습니다. 물론 책방골목의 규모도 전체적으로 커졌지만 가게 수는 많이 줄어 지금은 50여 곳 정도 남아있습니 다. 저는 보수동책방골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부터 책과 같이 있었습니다. 1998년도에 고서점을 맡게 되었는데 손님이 없으니깐 너무 심심하더군요... 해서 책방골목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하 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2003년도에 실천을 했는데 당시에는 획기적인 생각이었죠. 책방에 서 설치미술 전시회를 열었어요. 책방을 갤러리 삼아서 책과 책 사이의 공간에 작품을 끼워 넣 기도 하고 천장에 매달기도 했습니다. 헌책방 사진만 찍는 친구의 사진을 전시하기도 하고, 책방에서 평상을 깔고 술도 먹고 공연도 했습니다. 전시기간이 2달 정도 되었는데 주말마다 사 람을 모이게 하려면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임 하는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고 기타 연주를 하는 형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무용하는 친구를 부르다 보니 재미가 있었습니다. 수육과 막걸리를 함 께 먹고 마시며 즐겼습니다. 그 이후 이런 행사를 만드는 일이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해마다 지속적 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에 지원을 받으려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녀 우여곡절 끝에 지원금으로 3백만 원을 받아서 책방골목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책방골목 행사를 만들게 된 계기는 심심해서도 있지만, 2000년도 초반에 대형서점이 등장하고 인 터넷서점이 등장하면서 보수동 책방골목의 손님이 뜸해졌습니다. 잘 될 때는 신학기 때인데 제일 영 업이 잘되는 책방 한 곳의 매출이 3억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 학기가 되어도 손님이 거의 없어요. 위기감이 많이 들어서 책방골목 행사를 하게 되었고 시행착오를 작은 공간 큰 이야기 51

52 겪어가며 지금까지 지속해왔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 것에 대하여 대단하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 제가 잘해서가 아니고 책방골목이란 콘텐츠와 그 하드웨어가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사실 누가 해도 이렇게 잘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손님이 원하는 책을 잘 못 찾습니다. 예전에는 잘 찾았는데 데이터화를 한 이후에는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쉽지 않죠. 하지만 데이터화를 해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책과 책 사이에 책이 있는데 재고 위치를 벗어난 책은 찾기가 힘듭니다. 한 시간을 넘게 찾기도 합니다. 데이터화를 안 하 는 분들은 기가 막히게 책을 찾아냅니다. 눈이 보배라고 눈으로 책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헌책방은 10권이 들어오면 한권 나가는 게 어렵습니다. 아쉬워서 책을 계속 쌓아놓게 되요. 일반 헌책방들은 일가게 일주인 체제이기 때문에 하루 귀찮으면 책이 이만큼 쌓입니다. 그러다 보면 책이 계속 쌓입니다. 책은 있는데 도저히 찾지를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 갔다가 고서점 거리를 방문하고 문화적인 쇼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전문적인 서점 이 많은데 잡지만 파는 곳이 한군데 있었습니다. 한 권만 디스플레이를 해놓고 다른 권은 쌓아놓았습 니다. 비틀즈 특집으로 한권에 오만엔 하는 비공개 음악의 악보 등을 담은 특집 잡지였습니다. 그것 을 보면서 책방을 계속 운영하려면 특성과 함께 전문적으로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책방골목을 특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문화를 시켜보려고 진행을 했는데 기독교 관련 전문서적 한군데만 현재 만들어졌어요. 보수동책방골목은 교과서나 학습지의 매매가 원활하기 때문에 주로 많 이 취급을 하지요. 결국 잘 팔리는 책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어요. 보수동 책방골목 1세대 분들은 몇 분 남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1.5세대, 2세대가 지속적으로 해 야 되는 부분인데, 이어서 하는 자제분이 많지가 않습니다. 가게를 번듯하게 하면 한 달에 최소한 2 백만 원 이상의 수익이 남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요즘은 책방골목에 오는 젊은 사 람들의 대부분은 사진만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로거들이나 관광객들이 인증사진만 찍는 거죠. 저는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데 평일에 비하여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온다더군 5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53 요. 특히 제 가게는 고서점이라 디피 되어있는 고서적들을 꼭 만집니다. 심지어 사진을 찍으려고 저 에게 포즈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제 직업이 모호합니다. 고서점을 운영하고, 책방골목 행사를 기획하고, 지역에서 발전적인 활동을 하는 모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제 큰 꿈은 책마을입니다. 영국에 탄광촌을 책마을로 만들 어서 혼자서 왕관을 쓰고 책의 제국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책방 하는 사람들의 로망은 책마을 을 만드는 것입니다. 파주의 북소리가 매년 열리는데 몇 년 동안 매년 저도 참여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부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중구에 책방 골목이 있으니까 중구 쪽을 책마을로 바꾸는 게 매력적이란 생각에 중구 전체를 책마을로 만들면 좋을 것 같 다는 생각도 합니다. 산복도로에 폐가가 많은데 폐가를 개조해서 책방을 만드는 거예요. 거기 골목이 예쁘거든요. 원래 제 꿈이 커피 주방장이었습니다. 유명한 카페에서 주방장을 했습니다. 마지막 주방장을 하고 그만둔 이후 요식업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커피점도 서울 생활도 했지만 중국에서 공부하는 와중에 IMF가 터져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서점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데, 애들이 책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원한다면 고서점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53

54 170 >> 여상훈 에프랑 2014년 3월 18일 에프랑 부산경남영업소 소장 쟁이와 함께 하는 일상-또 다른 메세나 고향은 제주도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우도. 일 년에 백만 명의 관광객이 온다는 우도. 부모님이 살 고 계시고 초, 중학교를 우도에서 고등학교는 제주도에서 다니면서 1년 휴학을 했더니 친구들이 배 를 타거나 직장을 다녀서 고3 때 술을 많이 마셨어요. 부산으로 대학 진학을 했는데 제주와 정서가 안 맞아서 애를 먹었지요. 제주는 선후배 개 념보다 모두 친구같이 하대하며 지냈는데, 부산은 선배들한테 존대도 하라하니 가까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던 참에 풍물 동아리를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선후배들이랑 술을 마 시는데 다들 잘 못 마시는 거예요. 그래서 뭔 술을 이리 드시냐며 소주 한 병을 그대로 마셨더니 모 두들 놀랐지요.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제주사람들은 아침에 해장도 많이 한다-해장하러 갑시 다 했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서 별명이 초뺑이 를 따서 초서방이 되었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성이 5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55 초씨인 줄 알아요. 92년 남산놀이마당이 창단할 즈음 우리 대학 동아리도 지도를 받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 고, 여러 단체의 풍물 공연에 끼이거나 뒷일을 해 주면서 풍물을 계속할 생각이었지요. 그러다 제주 도로 방위 근무를 하러 가게 되는데 여기서도 제주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이 풍물이나 연극을 해 친 하게 지내게 되었지요. 그러나 제대를 하고 왔더니 이미 남산놀이마당에는 기량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잘 못하는 재주로 같이 하기 어렵던 차에 동생이 풍물을 하고 있으니 동생은 활 동하게 하고 저는 직장을 다니게 되었어요. 에프랑 이라는 유아용품 회사를 다니다 부산영업을 맡 게 되었지요. 부산영업소 사무실을 구하러 갔더니 마침 옛날 남산놀이마당이나 극단 자갈치들이 연 습실로 쓰던 곳의 근처인지라 그 부근에 사무실을 내고 공연하는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지요. 거기서 춤, 연극, 노래 등의 공연을 다니면서 뒷풀이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자 연스레 깊은 사이가 되었어요. 특별한 공연이 있으면 뒷풀이는 꼭 제가 맡았었지요. 26살부터 아이가 둘이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했었는데, 어느 점주의 가게 옆에 여동생이 하는 분식 집을 드나들었어요. 점주에게 아이 둘이란 건 거짓이고 다리를 놓아 달라고 사정을 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전화번호를 주었더니 연락이 와서 데이트 한번 했어요. 그 후 아버님께 요즘 만나는 여성이 작은 공간 큰 이야기 55

56 있다 했더니 머리카락 더 빠지기 전에 결혼하라고 하시면서 큰 처형이랑 상견례 날짜를 잡아 버리셨 어요. 10월에 데이트 한 번하고 1월에 결혼을 했지요. 착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요즘에 초여사 로 활약하고 계시지요.(모두 웃음) 결혼 생활 중에 별일이 많았지만 빚을 내어서 메세나를 하는 사람 은 잘 없지요. 그렇게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에피소드 몇 가지만 해도 1시간은 금방 갈 거 같아요. 뒷풀이를 가면 술을 사겠다면서 작품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잘 알지 도 못하면서 불편한 얘기들이 오가는걸 보면서 말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 요.(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누구냐구요?) 그런 사람 실명을 얘기 할 순 없지요. 술을 마셔야 나올 거 같아요. 제 수입은 딴따라 보다는 많이 버는 편이니까 술값을 내기가 편했지요. 그건 영업을 직접 하니까 돈이 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무용단 뒷풀이의 단점은 예쁜 어린 출연자는 일찍 집으로 보내 버리고 선생님들만 남으니 좋지 않 아요. 하하. 1년에 7~80편을 보거나 많게는 100편을 보게도 되는데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얘기를 잘 안 해 요. 술을 마시다 보면 새벽 즈음 가서야 하고 싶은 말이 확확 떠오릅니다. 그러니 몇몇 남은 사람들 하고만 얘기를 많이 하게 되지요. 한때 술을 3개월 정도 안 먹게 된 때를 제외하곤 술을 계속 마셔 왔 지요. 취해서 갈지자걸음이 나오게 되면 그만 둘 생각입니다. 전국의 많은 단체들과 뒷풀이를 하게 되는데 서울은 뒷풀이 관습이 잘 없어요. 경제적 시간적 제약 이 많아요. 동인극단보다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으니 자기 관리를 해야 하고, 거리도 만만치 않으니 잘 하지 않는 거 같아요. 전라도는 술도 잘 마시고 양도 많이 합니다. 목포, 광 주도 센데요. 젤 많이 마시는 곳은 제주도 같아요. 바닷가 쪽 사람이 술을 잘하는 거 같아요. 부산은 뒷풀이 관습이 제일 많아요. 술 마시려고 일하는 거 같아요. 그런 시간에 요즘은 후 배들에게 진지하게 얘기도 하지요. 지금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고는 평가를 잘 받을 수 없 고 관객의 호응도 받을 수 없다며 겉멋만 들어 작품을 최선을 다해 만들지 않는다면 그만 두라고 말 하기도 합니다. 5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57 뒷풀이는 원로 선생님들이나 후원해 주신 분들과 지인들이 오면 공연 후에 모여서 평가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게 되는 자리를 꾸리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제 경우에는 사람도 좋고 하니 빠지지 않고 가려 합니다. 지금까지 뒷풀이에서 쓴 돈을 모았으면 아마도 빌딩 몇 채는 샀을지도... 1차에서는 시끌벅적해서 대화가 잘 안되고, 2차에 가면 평도 떠오르고 해서 계속 가게 됩니다. 사업은 잘 되고 그러다보니 박람회를 다니니 공연 볼 기회가 적어서 빚을 금방 갚을 것 같습니다. 빚 갚고 나면 또 대출해서 제작을 하든지 하겠지만, 우도에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촌을 만들고 싶습니 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당극을 비롯한 춤과 소리의 잔치를 벌이고 휴향지가 되는 우도가 되었 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57

58 171 >> 임상규 조각가 2014년 3월 25일 개인전 종이접기-Deer StoryⅡ 벌거벗은 사슴이야기 (2013.화인갤러리/부산) 외 다수 그룹전 - 카툰과 조각의 만남 (2013.김해 문화의 전당/김해) -CT부산국제 교류전(2013.경성대학교/부산) 외 다수 수상 : 제1회 환경조형미술제 특별상수상, 전국 대학미전 금상수상 논문 : 日 常 에서의 分 離 의 經 驗 에 대한 內 面 的 表 現 집필 : 국정 교과서 캐릭터 창작 집필위원 현재 : 부산미술협회회원, 부산경남애니포름회원, 목금토화 야외조각회회원, 김해 경남 만화 애니 페스티발 자문위원(GCAFE), 부산 바닥화 작품전(SIDE WALK ART CONTEST)운영 위원장, 부산대학교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출강 중 종이접기(Dear Story-사슴접기) 저는 영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하게 되었는데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림 으로 칭찬받는 것이 좋았고 학창시절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으니 소질이 있는가 생각했지 요. 중학교 때부터 갤러리를 직접 찾아다니며 작가의 꿈을 키워 나갔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참 모범생 스타일로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사이사이 나름의 일탈도 있었습니다만 일탈이라고 해서 사고를 치거나 하는 그런 종류는 아니고 80~90년대 의 시대적 고민이 많았던 학창시절이라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작업에 대한, 알 수 없는 무거운 책임 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저는 5~6년 전부터 주로 폐박스를 활용해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조각품을 잘못 만들 5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59 면 정말 처리하기 힘든 산업폐기물이 되어서 그런지 재료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재활용에 대한 관심, 최소한 작가의 손을 거치면 보잘 것 없는 것도 보석 같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종이박스를 활용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사슴을 만드는데 종이접기(Dear Story-사슴 접 기) 시리즈로 다소 변형되고 왜곡된 모습의 사슴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슴이야기 에 우리의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초식동물처럼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짓고 보호색으로 위장한 채 극도로 예민한 촉각을 곧추세워 늘 긴장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현대인의 감정,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과 불안 등 차가운 감정의 표현이 죠. 작업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많은데, 작업실이 서동의 좁고 작은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전시를 앞 두고 바쁘게 작업하는 중에 박스로 만든 사슴 30마리를 잠시 밖에 내어놓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졌습 니다. 너무나 놀라 황급히 찾아보니 한 할머니께서 조그만 손수레에 사슴을 실어서 가시는 거예요. 동네할머니들이 박스를 수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몇 천원에 팔려 버릴 뻔 했습니다. 하하. 사슴을 돌려받으며 죄송한 마음에 작업실에 쌓여 있던 묵은 팸플릿을 잔득 챙겨드렸습니다. 팸플릿들이 두 껍고 무게가 많이 나가서 좋아하시더군요. 자그마하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키보다 높은 종이사슴을 지고 가는 모습이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특이해 보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관심은 작품의 가치가 아니 작은 공간 큰 이야기 59

60 라 kg당 200원하는 무거운 생계구나! 참 작업을 잘 해야겠다. 는 깨우침도 주셨지요. 그것이 인연 이 되어 아직도 틈틈이 팸플릿, 책 등을 챙겨 드립니다. 또 한번은 우리 아이들한테 작품을 보여주면 참 좋겠다. 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맹학교 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아이들이 전시장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학교 운동장에 많은 작 가들과 함께 조각전을 열었지요. 아이들이 작품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지고 안고,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로 태양을 느끼고 발가락을 만지면 머리끝을 이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지요. 습관처럼 스케치 하고, 기록하고, 특이하고 재미있는 소품을 주워 모으고, 왜 수집했는지도 모르지 만 작업을 할 때 기획을 해서 의도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해도 작품이 완성될 때쯤이면 구석에 모아두 었던 이미지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있음을 알게 되고 머릿속에 파편화 되어 있던 생각들이 마치 퍼 즐이 조립되듯이 자연스럽게 군집을 이루게 되는 경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행위, 즐거움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이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학창시절 왜 그렇게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 있었는지 요즘에서야 조금씩 확인하고 털어내 6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61 고 마음의 가벼움을 느낍니다. 마음속으로 울고 싶은데 웃고 있는 경우도 있고, 별로 화가 나지 않은데 근엄한 얼굴을 한다. ~으로서의 나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외면적으로 보여지기를 원 하는 얼굴 눈치를 보며 줄을 서야 하고 애절한 눈으로 그 자리에 납작 붙어 복지부동하며 때로는 분위기를 위해 재주를 넘는다. 예쁘게 포장하고 폐지가 되어 150원하는 박스로 사슴을 접는다. -작업노트 中 페르소나에 대하여- 작은 공간 큰 이야기 61

62 172 >> 최의덕 극단 자갈치 2014년 4월 1일 2001년 극단 자갈치 입단 극단 자갈치 데뷔작 창작 마당극 샛길 더부살이 오마이갓뎅 그 외 출연작 사하촌 둥글어 진다는 것은 낮아짐입니다. 폭포속에 꽃잎을 물고 눕다. 돛달린 나무 오 마이갓 뎅 외 무대가 아닌 곳에서, 뒷풀이가 아닌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 긴장이 됩니다. 그래서 긴장 도 풀고자, 또 의미있는 자리라서 가족들도 함께 하게 되었어요. 조금 늦게 오게 된 것은 아이 밥 먹 이고 오느라 그리 되었습니다. 딴따라 라 스스로 부르고 있는 이유는 놓치지 말아야 할 나의 가치가 아닐까 싶어서입니 다. 어찌 보면 예술인을 낮춰 부르거나 비하해서 하는 말이고 자긍심을 느낄 만한 용어는 아니었지 만 힘들었을 때 내가 뭣이라고 생각해보니 쉽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지금은 나를 지탱해 주 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딴따라 용어보다 머슴 이라는 용어도 좋아요. 어떤 일을 하기에도 편한 말이 기도 하고요. 6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63 극단 자갈치를 만나게 되었던 계기는 대학 때 불림 이라는 풍물패 동아리 선배를 따라 나섰다가 입니다. 신입생 OT를 갔을 때 북을 치는 예쁜 선배에 끌려 동아리에 가봤더니 더 예쁜 선배가 있길래 덮 어 놓고 들어갔지요. 동아리 활동은 여기저기 발을 많이 걸쳤어요. 무대에 서는 일이 너무 좋았어요. 주로 출연했던 역할은 술주정뱅이, 사이버교주, 도둑들이 많았는데 인상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 다. 처음 유한마담(복부인)으로 출연했을 때 청주의 어떤 선배가 자꾸 웃는데 왜 웃나 했더니, 여름 이라 분장했던 립스틱이 녹아 내려서 사람들이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배우 활동을 재미나게 했 던 것 같습니다. 신입단원이야? 하려면 길게 하라고... 10년 이상을 해야지. 라는 말을 오기로 지금까지 하게 되 었습니다. 자갈치 공연 사진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배우가 등을 보이고 있는데 관객들이 웃고 있지 요. 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 나를 지탱하고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무대에 들어서 면 넌 딴따라야. 라는 힘을 주는 사진입니다. 이 배우가 바로 제 아내입니다. 남들 앞에 서면 긴장이 심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관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초대권을 받으신 아버님이 오셨는데 제가 출연하지 않는 공연을 보시고 매우 화를 내시면서 작은 공간 큰 이야기 63

64 극단에 입단하였으니 하숙비로 매월 50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겁니다. 그 전에 극단 활동을 하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해 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만 원 정도를 받아도 생활하는데 문제는 없었는데 규모에 맞게 살아졌습니다. 그런 힘 든 와중에서도 축적되어지는 것들이 있고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어 10년을 버텨 왔 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무대는 샛길 더부살이 라는 작품인데 용역깡패 로 대사가 한마디였습니다. 빨리 비키소. 하 는데 때리는 동작이 잘 안 맞아서 몸짓을 백번도 넘게 연습하고, 대사도 2백번이 넘도록 했는데도 제 대로 안 되어 선배들을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 공연을 마치고 속상해 울기도 했어 요. 한번은 유한마담 여장 역할을 맡았는데 대사가 매우 많았습니다. ( 아이고... 주절주절 대사가 줄줄 계속 이어진다) 옷을 갈아입고 희열을 느꼈어요. 옷도 자주 갈아입어야 하는데 치마도 훌훌 들 춰가며 하던 그 역할이 딱 제 체질이었던 같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사하촌, 모래톱이야기 에서도 머슴 역할을 했는데 그때도 뭔가 이상했어요. 조마이 섬 에서는 양복을 입었는데 대사를 통째로 잊어버렸어요. 그 이후 양복만 입으면 그런 일이 생겨서 징크스가 되 었어요. 저는 또 마지막 공연이 잘 안돼요. 관객들은 잘 모른다 싶지만 알아채는 듯도 싶습니다. 김정한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독후감 공모를 했는데 상을 받았어요. 상금이 몇 달치 월급이라 엄청 술을 샀던 기억도 있어요. 사람답게 살아라! 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게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아 늘 새겨 두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에서는 사이비교주 역을 했 는데 그때는 아주 신명나게 했던 거 같아요. 영도다리, 굿거리 트로트, 헌책방, 아랫목 연탄 등 거의 대부분 소외된 사람들을 소재 로 한 연극을 하던 중에 복지에서 성지로 를 아버님이 보러 오셨는데, 그즈음 돌아가 셨습니다. 굿거리 트로트 에서 가족 전부 6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예술가들

65 가 보러 오셨는데 극중에 상복을 입었는데, 아이구 저 놈이 아직도 상복을 입고 있노? 그러시면서 저 놈이 술만 묵고 돌아 댕기네... 뭐 이런 말씀들을 객석에서 큰소리로 하시는 통에 공연장이 웃 음바다가 되기도 했어요. 연극아카데미 에서 제가 가르치던 8살 아래의 여성과 이리저리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해 남에서 병든 아버님과 살던 어머님은 어느 날 손가락에서 바늘이 쑤욱 나오도록 모르고 사실 정도로 미련한 분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지는 않으려 합니다. 아버님처럼은 살지 않아야 되지 않 을까 해서 가정적이란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가장은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 일 정한 금액을 매월 넣겠다. 존칭을 쓰겠다. 극단 자갈치 운영을 안정화 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하 나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적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맡은 바 일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 하려 합니다. 나는 딴따라다 라고 다잡으면서 사람을 보고 사람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 사 람들 속에서 살았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대에서 늘 함께 했으면 합니다. 후 배들을 좋은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게 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65

66 173 >> 배민기 만화가 2014년 4월 8일 2008년 5월. 24부작 옴니버스 모스키토 신드롬 으로 데뷔. 그 후 쌈닭, 돗가비의 나라, 직도단혼 등 사극위주로 활동하다 2013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지원하는 몽당분교올림픽 으로 현대물 도전과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잘 전달했다는 두 마리 토끼를 얻게 되면서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음. 2012년 7월. 배민기 첫 번째 개인전 Dancing Brush 울산 아리오소 갤러리. 2012년 12월. 부산판타스틱 만화전 대상. pororoca 쌈닭-삼백일간의 떼들섬 나라 대학시절 어떤 교수님께 예술 계통에서 10년만 하면 평생 먹고 살게 되더라. 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제가 생각할 때엔 적어도 만화판에서는 5년 이상만 하면 밥은 먹고 사는 것 같 습니다. 저도 어느덧 데뷔한 지 6년 차인데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냥 저냥 먹고는 사니까요. 만화가로 데뷔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웹툰이 생기면서 연재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진 건 사실 입니다. 포털사이트도 있고, 각종 언론사 만화코너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해서 볼 수 있는 유료화 어플리케이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언뜻 보면 공급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자리 중에 하나의 연재처를 못 찾아서 어찌나 헤맸던지... 그때 깨달았던 건 무명작가인 나를 위한 레드카펫은 없 6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67 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찾아가야 하는 거였어요. 데뷔한 이후엔 연재력을 갖추고 계속 그려내야 합니다. 공모전 출신 작가분들이 처음에 혼란을 겪 는 이유가 몇 달 동안 준비하게 되는 공모전용 작품과 매주 연재를 해야 되는 연재용 작품은 들어가 는 시간과 공이 엄청 다르거든요. 자신이 원하는 작품완성도가 절대 안 나오죠. 연재처의 담당자들은 20%와 120%를 왔다 갔다 하는 완성도보다는 70%~80%를 유지하 는 완성도를 더 선호하거든요. 그것이 연재력이며 진짜 프로의 세계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는 아이디어 싸움이죠. 20대 때는 술을 정말 많이 먹었어요. 술에 취하면 더 이야기들이 넘쳤습니다. 심지어는 메모를 하 다못해 핸드폰으로 녹음까지 해가며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뽑아냈습니다. 제 데뷔작이 모스키토 신 드롬 이라는 옴니버스 24부작이었는데 그때그때마다 아이디어가 넘쳐났습니다. 2년 반 전부터 스토리를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있어요. 제가 만화가를 하려고 했던 것도, 제가 생각하는 것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서였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이 작품이 완결되면 차기작은 반드시 제 스토리로 해보려고 칼을 갈 고 있습니다. 하하. 작은 공간 큰 이야기 67

68 많은 만화가들이 어시스턴트가 있습니다. 저 역시 혼자서만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 저를 포함한 3 명이서 팀 마우스피스 라는 팀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손 많이 갔다, 잘 그렸다 하는 작품은 두 사람 이상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 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원고량의 문제라기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다보니 혼자서 작업하면 정말 고독한데, 팀 작업이면 즐겁죠. 고등학교 때 문하생 생활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6~7명 정도의 팀이 각자의 맡 은바 임무를 이행하던 시절이었어요. 저 역시 지우개질, 자선, 스크린톤 깎는 것 등등 정말 피터지게 했습니다만 지금의 만화가들은 대부분 디지털 작업을 합니다. 타블렛에 펜마우스를 사용하죠. 요즘 엔 한층 더 발전해서 모니터에 바로 대고 그립니다. 만화가에게 펜의 압력이 중요한데 선을 얇게 했 다가 두껍게 했다가 거의 실사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그 기계에 그리면 연필 데생을 뜨고 그 위에 레 이어를 만들어서 펜 터치를 하니까 지우개질이 필요 없어집니다. 기계가 편리해지니 어시스트가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래서인지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이 늘어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다 해 주니까요. 하지만 아직 제가 생각할 때엔 예전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손맛이란 것 말이 죠. 저는 아직 종이에 그립니다. 디지털 작업하는 친구들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저는 종이 만화를 좋아합니다. 한때 잠시 디지털 작업을 했는데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종 이와 펜이 부딪치는 마찰력이 그리웠어요. 만화책을 만드는 옛날식의(?)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지금은 매체가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책보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보는 시대잖아요. 연출방식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이 되어버 린 겁니다. 만화책의 기본연출은 페이지가 끝날 때마다 상황을 궁금하게 만들어서 다음 페이지를 보 고 싶도록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면, 세로로 긴 형식의 지금의 스크롤만화는 캐릭터의 감정상태의 흐름으로 이어나가는 방식이라고나 할까요? 시선방향이 일정해서 컷을 잘게 나누는 분할이 큰 의미 를 잃었거든요. 이 스크롤 방식의 연출은 금방금방 발전해 나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6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69 작가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20대에 제 꿈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져도 삶은 계속되더 라고요. 막상 만화가가 되고, 서른 중반이 되어가니 지금은 꿈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비록 B급 작가라도 좋으니까 평생을 만화가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대박나면 그것도 좋겠지 만, 지금은 그냥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가족들이 먹고 살만큼만 돈을 번다면 만화가로써 소소한 작품을 연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지금의 제 꿈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69

70 174 >> 최연순 발레리나 2014년 4월 15일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 졸업 경성대학교 교육대학원 무용교육 전공(수료) 그랑발레 기획 김옥련발레단 단원 / 훈련장 숲속어린이발레단 교육강사 현대백화점(부산) 문화센터 강사 NC백화점(부산) 문화센터 강사 유치원 특성화활동 체육, 무용 강사 대표작 ' 口 ', ' 心 ', '선택... '외 다수 안무 인포미선 주역 피고 지고 그리고 피고 지고 발레를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말쯤으로 늦게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유년시절 부산시 북구의 한 동네에서 골목을 뛰어다니고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께서는 혹여나 재능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주산 학원, 태권도장, 피아노학원, 미 술학원 등 여러 학원을 보내어 이끌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시장통에서만 뛰놀던 저에게 TV속에 나오는 발레 전막극인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너무 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그날 이후 저는 녹화한 호두까기 인형 비디오를 테이프로 혼자 돌려보며 따라하곤 했답니다. 그후 중학교에 가서 무용반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당시만 해도 키와 몸무게 제한이 있어서 어린 마 음에 아마 어려울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결국엔 육상부로 들어갔습니다. 7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71 육상부에 있던 시절 나름 열심히는 했지만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발레를 해야한다는 욕심이 떠 나질 않았어요. 그리고 1년 후 무용학원에 가서 구경 한 번만 하게 해 달라고 한 것이 두 번, 세 번 가게 되었고 결 국 선생님께서 너 정말 발레가 하고 싶니? 그럼, 엄마 모시고 한번 오지 않을래? 라고 말씀하셨고 그 결과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마음에 저를 무용학원으로 데려가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발레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남들과 같이 예고에 진학하진 못했지만 다양한 대회 및 학내공연을 도맡아 하며 수상의 기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성대학교 무용 학과에 진학하였고 막상 진학을 하고나니 많은 동기들과 선 후배와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용을 너무 사랑해서 들어왔는데 그들의 전문적 경험과 학연이 저의 작음을 느끼게 하더군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정말로 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겸임 교수였던 김옥련 선생 님과의 인연이 찾아오게 됐는데 저에게는 큰어머니같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랑 발레 공 연을 한번 해보지 않을래? 라고 하셨는데 당시 선배들도 못하는 공연을 1학년이었던 제가 할 수 있 도록 영광을 주신 셈이었습니다. 김옥련 선생님의 창작 발레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게 일깨워주신 게 캐릭터 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춤을 계속 추면서 백조처럼 누구나 아는 그 런 발레가 아닌 자신만의 캐릭터 를 만들어가며 춤을 추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춤이 더 사랑스러워졌고 저의 캐릭터를 찾아가면서 계속 춤을 추며 지금도 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71

72 김옥련 선생님은 춤에 있어서는 어머니나 다름없습니다. 발레를 떠나서 움직임으로 일깨워주 신 분이십니다. 숲속발레 공연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데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물론 슬럼프도 왔어요. 왜 나 는 코믹적인 것만 하는가? 라는 고민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 맡은 게 동물캐릭터 펭귄이었 는데 펭귄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입도 삐죽하게 춤을 췄습니다. 그 캐릭터가 너무 강했는지 그 이 후에는 코믹적인 요소는 도맡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당나귀 역을 하는데 김옥련 선생님께서 정해진 안무보다는 스스로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당나귀의 모습을 표현하라며 넌 당나귀야. 당나귀가 잘 하는 게 뭐야? 넌 잘 하는 게 뭐야? 하시며 당나귀를 표현할 수 있게 하셨고 당나귀 스텝을 만들 수 있게도 하셨습니다. 한편 다른 안무자의 공연에서 주인공을 한 적도 있는데 늑대였어요. 모든 캐릭터가 동물, 짐승만 하면 저에게 왔습니다. 어. 이게 뭐지? 나도 우아하고 예쁜 거 하고 싶은데. 작품을 내자.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 라고 생각을 했고 그랑 발레 라는 단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안무를 계속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제작에 대한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지원금은 받지만 너무 적어 개인 돈을 투자해서 만들어 야 했습니다. 10분, 15분짜리 작품 하나에 제 1~2개월 강습료가 모자랄 정도였으니까요. 3~4년은 열심히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제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습니다. 잘나가는 학원 강사로 일해 돈 을 벌면 공연하는데 다 썼습니다. 힘이 들어 작품을 접고 공부를 하기 위해 교육대학원도 진학 했 습니다. 춤은 더 이상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학원 학비도 내야하고, 그랑 발레 를 유지하 기 위해서 작품도 억지로 내야 되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아침에 나 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대학원에 가서 과제도 하며 춤을 추고 있는데 이게 행복한 건가? 하는 회 의가 들었습니다. 춤도 질리고 사회생활도 질리고 모든 게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을 접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변인들과의 연락뿐 아니라 공연하자는 연락도 안 받았습니다. 어느 날 김옥련 선생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것도 경험이고 이것도 지옥 같으면 차라리 춤을 추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춤의 세계에 빠지게 된 거죠. 그러 고 나니 춤을 더 성숙하게 추기 위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이 캐릭터는 어떻게 표현해 야 할까? 고민합니다. 힘든 시기가 저를 더 성장하게 했습니다. 7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73 그러던 어느 날 숲속발레에서 <거인의 정 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즉흥적인 연습 속에 서 그 사람의 장기와 특성을 찾는 것이었습 니다. 즉흥적인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친구 들은 처음 작업하면 힘들어합니다. 계속 표 현해라. 계속 표현해라. 더 표현해라. 주문 을 받게 되는데 어떻게든 해봅니다. 그게 이 해되지 않는 무용수는 달아날 때도 있어요. 한 꺼풀 벗겨내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한계에 부딪쳐서 부산 무용계를 떠나는 사람도 때론 있답니다. 한번은 숲속발레라는 작품을 하면서 준비 과정이 힘들었는데 마지막 공연에 객석으로 무용수가 서 서히 다가가면서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별을 향해서 꿈을 향해서 걸어가는 장면인데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지금까지 힘든 과정을 모두 씻어주는 탁월한 약이구나. 모 든 게 다 치유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춤은 어떤 것이냐? 어떤 존재냐? 고 묻는다면 저에게 춤이란 정말 물음표(?) 이자 느낌표(!)라고 말합니다. 항상 과정이 힘든데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막이 오르면서부터 음악 과 함께 무용수들과 관객과 일치되었을 때 말하지 못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 라 관객의 호흡이 느껴지고, 관객과 함께 호흡할 때, 내가 하고자 하는 걸 관객이 느끼고 있을 때 말 할 수 없는 희열이 있습니다. 커튼콜을 하면서 항상 우는 것 같습니다. 내 몸짓이 필요한 이 순간이 이 관객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내가 정말 행복했을까? 오케이. 그러면 된 거야. 그런 생각이 들면 과정은 너무 힘든데 그날 하루만큼은 정말 행복합니다. 춤을 추고 나면 무대가 던져주는 힘이 너무나 강합니다. 과정은 힘들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하죠. 작은 공간 큰 이야기 73

74 175 >> 김일두 가수 2014년 4월 22일 문제없어요 밴드 지니어스-Genius 기타 보컬. 앨범 Mamason 1집 - Yangatchi (2009) Ginius 1집 - Birth Choice Death-2010 Ginius 2집 - Beaches (2014) 솔로 앨범 1. 김일두 하헌진 스플리트 곱고 맑은 영혼-2013 책 -Kim met Johnny-2014 저에게는 더 이상 벼룩신문이나 잡코리아를 보지 않는 것이 인기의 척도예요. 저는 끊임없이 벼룩 신문뿐만 아니라 교차로, 부산시대, 잡코리아 외 모든 것들을 다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인기가 없어 요. 밴드앨범들은 솔로로 하는 음악과는 다르게 많이 시끄러워요. 원래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앨범입니다. 저는 솔로앨범도 좋지만 그보다는 밴드앨범들을 더 좋아해요. 사실 문제없어요 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여자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술을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 멍해질 때가 있잖아요. 언젠가 지하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집에는 가기 싫고 시계는 2시가 넘 7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75 어가고, 집에는 가야되는데 택시비는 많이 나올 것 같고... 이런 온갖 고민들을 하다가 아무도 없는 bar를 보면서 상상을 했어요. 제가 만약 여기서 누군가를 만나면 사랑을 고백하겠다라고... 그 느낌 을 집에 와서 쓴 내용인데,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 노래 때문 에 집세를 몇 번 낸 기억이 있어서 좋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정이 가는 노래는 아니에요. 밴드 미국 투어는 13개주를 돌아다니느라 40일 동안 스케줄이 빡빡했습니다. 계속 공연하고 자는 생활의 반복이여서 정신이 없었어요. 이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저희 밴드 멤버들이 미국친구들이예 요. 이 친구들과 6~7년을 같이 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밴드생활을 한다는 것이 제 인생에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이 친구들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드 럼 치는 친구에게 고향갈 때 함께 가자고 했어요. 근데 사실 현실적으로 미국에 가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직장도 다녀야 하고 아버지도 계시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같 이 가게 되었어요. 공연이 주가 된 여행이라기보다는, 7년 동안 같이 놀았던 친구들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 가게 되었던 여행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75

76 일은 충동적으로 그만뒀어요. 사장님도 너무하시고, 제가 너무 지쳐 있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어요. 작년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뭐하겠냐.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때 5년 정도 일하면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권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저 도 관두기가 아까운 회사였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해보자 해서 충동적으로 그만둬버렸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안 좋은 점은 살이 자꾸 찐다는 거예요. 그 외에 안 좋은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돈 걱정은 잘 안 해요. 일하고 싶으면 다시 일하면 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7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77 사실 전 예쁜 말로는 가사를 잘 못써요. 그렇다고 가사에 욕을 집어넣고 싶진 않습니다. 욕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전 제 노랫말들에 자신이 있습 니다. 앞으로도 많이들 들어주세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77

78 176 >> 김성겸 국악밴드 아비오 2014년 4월 29일 날아라 풍뎅이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석사과정 현) 브니엘 예술 고등학교 강사 국악밴드 아비오 대표 국악밴드 아비오에서 작곡을 하며 피리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한국음악을 전공 하셔서 어릴 때부터 한국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태평소를 불게 되었는데 재미가 있어서 아버지께 태평소를 불고 싶다고 했더니 피리를 배워야한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가서 음악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는데 군악대에 가게 되어 작곡도 하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음악 하는 친구를 만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어떻 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을 많이 했고 그때 작곡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화성학을 몰라도 누구 나 작곡은 할 수 있습니다. 편곡은 좀 더 스킬이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하지만 작곡에 재미를 붙이면 7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79 서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어요. 음악적 발전을 하게 된 것은 아비오를 함께 하고 있는 윤승환씨를 만나면서입니다. 윤승환씨는 부산대학교 02학번으로 국악과에서 만났습니다. 국악과는 여학생 40명, 남학생이 5명 이어서 남자친구가 없었고 서로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어요.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며 행사를 하곤 했는데 갑자기 윤승환씨가 팀을 하나 하자 제안했습니다. 클럽에서 힙합 팀이랑 공연을 했는데 윤승환씨가 보름에 7곡을 썼어요. 처음 곡을 쓰기 시작할 때라 그렇게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열정으로 곡을 썼습니다. 그때 나왔던 곡 중 2곡으로 대회를 나갔는데, 곡도 잘나왔고 곡을 썩히는 게 아까웠습니다. 그 뒤 로 여러 활동을 하게 되었고, 또 다른 멤버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흘러와서 지금까지 하게 되었습 니다. 아비오를 8년 동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비오를 하면서 많이 싸 웠습니다. 안 싸울 수가 없죠. 힘든 순간마다 좋은 공연들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는데 힘들어도 무대 에서 30분, 1시간 공연하며 즐거웠던 순간들이 큰 힘이 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요. 음악 을 함께 하는 팀원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또한 큽니다. 곡을 쓰다 보면 마음이 먼저 우러나와야 곡 작은 공간 큰 이야기 79

80 이 써집니다. 8년을 함께 한 팀원들이에요.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많이 보는 친구들이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이만큼 함께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저는 음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밤을 새워 가며 음악을 만들어요. 밤이 되면 감성적인 마음이 되어서 집중이 잘 됩니다. 사실 레슨이나 아르바이트 할 자리는 많은데 그걸 하다보면 곡 쓸 시간이 없습니다. 곡 쓰는 일이 오랜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 일인데, 그러다 보면 음악 하는 이유 가 없더라고요. 우리가 레슨 하려고 음악을 배운 게 아니니까요. 한 달에 40~50만원으로 살아집니 다. 내 삶에 만족해요. 음악을 하면서 행복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게 8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81 많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욕심만 버리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빈곤합니다만. 아비오는 대금 연주자 김은경씨가 기획을 하고 윤승환씨, 기타리스트 박현철씨와 함께 만든 곡이 서른 곡 정도 있어요. 앞으로도 아비오는 좋은 공연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갈 것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81

82 177 >> 류기정 도예가 2014년 5월 6일 현) 온새미학교 대표 브리지스쿨이사장 공방운영 개인전 7회, 기타그룹전 생활문화공동체마을만들기 기획 및 진행 (2010~2012) 별별솔루션 생명이 떠나는 마을 생명을 불어넣는 마을공방 총괄운영 (2012) 취미는 도예가 밥벌인 교육가 대안학교 온새미는 2009년 8월에 중 고등통합학교로 시작하였고 기존 중고등대안학교는 우다다 학교가 있었고 저희가 두 번째입니다. 설립 초기엔 심수환선생님께서 교장을 맡으셨고 이후 이철호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교장선생님이 변경되었습니다. 처음 이철호선생님을 만났을 때 여행을 무지 좋아하고 낙천적인 기질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정과 대외사업은 제가, 교육과정 은 교장선생님이 맡는 이원화 구조로 온새미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온새미 아이들은 중1때 일본으로 교육 환경 여행을 갑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며 여행하고 직접 밥도 해먹습니다. 중3때는 인도, 네팔을 40여일 가는데 안나푸르나까지 갑니다. 그리고 고2가 되면 유럽공연여행을 가고 있습니다. 충분한 경비를 가지고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기에 공연을 통해 돈을 벌어가며 부족한 돈 8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83 을 채우며 여행해야 합니다. 또한 그 나라의 문화, 사회를 공부하고, 운동도 하고, 마라톤도 뜁니 다. 국내 무전여행을 하며 사전 경험을 축적합니다. 부산부터 시작해 서울까지 갔다 오는 과정인데 공연해서 돈을 벌어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아이들은 야생 자체라고 간단히 말합니다. 유럽여행을 위한 준비 과정은 학생들끼리 기본적인 모든 것을 진행합니다. 온새미학교에서 행정과 대외사업을 맡고 있지만 저는 도예가입니다. 영도 절영해안 산책로 입구 근처에 작업실이 있습니다. 공간 안은 전시공간, 작업공간, 교육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입 주 조건이 1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해야 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꾸준하게 개인전을 하고 있습니다. 제 청소년 시절은 불행했습니다. 고1 겨울방학에 다니기 싫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다가 형 을 따라 미술학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재미있었고, 다른 학원생들이 미대를 가는 걸 보고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전공을 도자기와 목공예 중 선택해야 했는 데, 흙이 가진 느낌이 좋아 도자기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에선 정말 열심히 생활했어요. 제 인생에서 20대는 행복 자체였습니다. 창녕 폐교에 2년간 들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를 돌 아보게 되었습니다. 인적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다 보니 처음 6개월을 견디게 하는 힘은 분 노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속에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기 시작 작은 공간 큰 이야기 83

84 했습니다. 우선 경제적으론 돈도 없고 지출을 줄여야하니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정신적으론 늘 수 동적인 삶을 살았던 도시에 비해 정적인 농촌이라 그런지 제 움직임을 관찰하는 힘이 생겼고 삶을 스 스로 결정하는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이때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혼자 놀다보니 재미있기도 해서 한동안 머리를 깎을까 (수도자)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내 적 세상을 탐구하느냐 외적 세상을 탐구하느냐 고민 하는데 여러 상황이 발생해서 부산으로 다시 복 귀하게 되었습니다. 35살 이후에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뭐랄까 너무 소모적이고 축적되는 게 없었어요. 대 학 강사 10년 해서 남는 게 없는 것처럼, 암튼 여러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대안학교를 설립해야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주위 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을 때 반신반의 했던 거 같고요. 그게 그렇게 어려 운 것인가? 처음 학교을 개교하고 두 달 간 학생이 한명도 안 왔습니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아이 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쉽게 생각한 부분도 없진 않았던 거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명 한명 학생 들이 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온새미란 이름도 첫 번째 입학한 학생이 지었는데 한 달 후 그만 두었 습니다. 초기 내, 외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보니 여러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조금씩 매년 성 장하여 지금은 90여 명의 학생들과 20여 명의 선생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경영하면서도 작업을 계속 해왔습니다. 공방을 운영하며 도자기수업이나 작품을 제작해 팔 아 본 적도 있었는데 주업으로 하다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다 보니 답답해 지더라구요. 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기류 만드는 것보다 장식적인 항아리들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주 업으로 하는 도자 작업은 스트레스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취미로 도예활동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취미로 하다 보니 굳이 팔아야 할 이유도 없고 제작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거 죠. "왜 작업을 치열하게 하지 않느냐?"는 선배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의 제 삶이 치열하고 사회에서 하고 있는 일이 하나의 작업 활동이라고 생각하다보 8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85 니 굳이 도자작업까지 치열하게 할 생각이 없어졌다 현재 저에게 도자기를 만드는 행위는 저를 치유나 위로하는 일이며 제가 사회에서 받는 일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취미활동을 통 해 스트레스를 풀듯이, 저는 작업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다. 온새미 학교 아이들을 보면 과거의 제 청소년기를 돌아보게 되고 그 시간들 속에서 받았던 여러 상 처들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일은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일이며 그것이 예술 활동이 든, 교육활동이든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끔씩 제 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힘듭니다. 직업이 무엇 이냐고 묻는 질문인데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라는 답이 스스로 내린 정답입니다. 지금은 대 안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20대는 예술가들을 주로 만났고 30대에는 사회복지, 정치, 예술교육 분야 사람들을 만났었거든요. 최근엔 모금에 관심이 많아서 모금 쪽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 며 일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늘 새로운 일에 대해 배우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85

86 178 >> 전현미 현미밴드 2014년 5월 13일 현미밴드 대표 정선 군립 예술단 정선아리랑극 <메나리> <양반전> 외 다수 작/편곡 음악감독 예술의 전당 창작 가족뮤지컬 <저 별까지 날아라> 음악 작/편곡 음악감독 외 다수 작/편곡 부산연극제 대상작 <BC 2430> <PLAY5> <대숲에는 말이 산다> <죽어피는 꽃> 외 다수 음악 작/편곡 음악감독 시립극단 <동토유케> 외 다수 음악 작/편곡 부산연극제 무대예술상 수상(30, 31회) 내 인생의 당기쇼 펼치쇼 부르쇼 저는 연극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음악을 전공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후에 필요에 의해서 음악공 부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가지고 있던 음악적 감성을 이론적으로 재정립하게 되었습니 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음악과 상관없는 철학과 를 가게 되었죠. 아시잖아요?? 학력고사 세대들의 성적맞춤 지원이랄까,,,,?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다섯살 때 입니다. 어머니께서 기독교 신자이셨는데 교회 반주자가 필요해 서 저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것 같아요. 하하. 어릴 적부터 피아노 치고 성가 부르고 노래하 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집안 형편상 음악을 하는 것이 미래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피아노를 포기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8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87 대학교에 들어가 민중가요를 노래하는 노래패 동아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노래 부르고 반주하고 하는 것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수업은 안 가도 동아리 방에 한명 두명 모여서 기타치 고 건반치고 화음 넣고 같이 불렀던 그 신남이 아마 지금의 연극음악의 뼈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극음악작업은 졸업하고 난 후에 인식을 하게 되었는데 작곡을 필요로 하는 극단에 들어가게 되 었던 것이 그 출발이었죠. 처음으로 들어간 곳이 어린이 뮤지컬을 만드는 극단이었습니다. 그렇게 연 극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 십여 년간 수많은 어린이 뮤지컬 곡들을 만들었죠. 그러다 가 주위분들 소개로 부산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곡 잘 만든다는 소리도 들었습니 다. 아마 오래 지속적인 작업을 하다보면 생기는 일종의 노하우 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과 많은 팀들을 만나게 되면서 또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과 욕구들이 생기더라 고요. 바로 연주에 대한 갈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는 찰나에 오치운 연출이 음악과 연극이 함 께 하는 밴드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2008년 당기쇼 펼치쇼 부르쇼 라는 공연을 만들게 되었는데 일명 쇼쇼쇼 라고 통칭을 했죠!! 그때의 모습이 바로 지금의 현미밴드의 특징을 잘 모아내었던 공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과 연 극이 함께 공존하는 무대랄까?!! 관객을 당기고 무대를 펼치고 노래를 부른다는 의도였습니다. 처음 에 현미밴드는 제 이름의 현미가 아니라 곡물 현미의 현미였습니다. 몸에 좋은 곡물을 섞어서 사람들 에게 맛좋은 노래를 선물하자는 의미였었습니다. 지금은 멤버도 바뀌게 되고 곡물의 의미보다는 제 작은 공간 큰 이야기 87

88 이름의 의도가 강해졌습니다. ㅎ 현미밴드의 특징은 배우 출신 보컬 세 명과 온갖 잡스런 악기를 다 다루는 세션 두 사람으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뭐 제가 연극 바닥에 있다 보니 노래 잘하는 배우들을 당기게 되더 라고요. 그래서 더 다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가진 극적인 요소가 음악을 더 풍성하 게 만들 때가 많거든요. 현미밴드의 곡은 전 멤버들이 함께 만듭니다. 다들 작사, 작곡을 잘 해요.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합 니다. 제 곡은 별로 없답니다. 연극작업이 바빠서 멤버들한테 넘기는 거죠. 하하. 현미밴드가 추구하는 장르를 이야기하라면 잡스럽다 입니다. 장르를 불문하죠. 재즈, 펑키, 블 루스,가끔은 뽕짝도 하죠!! 저희는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장르에 구애받기보다 같이 즐기는 것이 관건이죠. 그래서 잡스러운 거죠. 저희는 연주를 기똥차게 잘하진 못하더라도 같이 사람들과 함 께 신나게 놉니다. 그래서 열심히 내공을 쌓고 있는 중입니다. 음악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냐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사실 한 우물을 계속 파니 물이 보이더라고요. ㅎㅎ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전 제가 먹고 싶은 안주를 사 먹을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뭐 소주에 얼큰한 찌개,,,소주에 전어회,,? 정도,,,?!! 소박한 거죠.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각 작품의 연출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여 8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89 러 스타일의 연출들이 있는데 그것 자체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정말 여러 별별 연출들이 많거든요 ㅎㅎ 연극은 사람의 작업입니다. 연극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노는 장소에 내가 들어가면서 섞여서 나 오는 하나의 또 다른 음악입니다. 고생도 많이 하죠. 노가다(?)도 많이 하고. 고생을 한 작품 중 생각나는 하나는 <정선 아리랑>을 작업한 때입니다. 그 작업의 경우 정선에 가 서 예술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패턴으로 진행되는데 작품 하나에 올인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지만 아침부터 새벽까지 음악작업 식사 음악작업 식사 음악작업 식사의 반복 패턴은 거 의 노가다와 같은 맥락인거죠. 행복+불행? 이랄까... 그리고 고생한 한 달이 지나고 첫 공연이 올라가는 날은 모든 스텝진들과 배우진들과 함께 아침 일 찍 고사를 지내고 드레스 리허설을 하고 첫 관객을 맞아들이게 되는데 그 첫 공연을 바라보는 저는 되게 벅참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정선 아리랑>이 가지는 그 감성과 역사를 내가 얼마만큼 잘 받쳐 주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게 되는 자리니까요. 뭐 벅차더라고요 ㅋ 요즘에는 아리랑이 참 좋습니다. 국악과 아리랑의 매력에 좀 빠져있어요. 아리랑 작업을 한다하면 국악을 빼놓을 수 없는데 국악은 작업 자체가 힘들고 빡셉니다. 국악은 컴퓨터 음 악의 영역이 아닌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국악기들이 더 좋고 매력적인가 봅니다. <정선 아리랑> 작업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그 정서를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시도들이 뒤따랐습니다. 결국은 해냈습니다. 완벽이란 없기 때문에 부족함을 또한 인식합니다. 또 앞으로 하게 되겠죠. 힘들었던 작업이었던 만큼 지금은 <정선 아리랑>이 또한 위안이 되기도 합 니다. 힘들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일종 의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할까... 그러다가 불현 듯 어떠한 시절이 생각날 때 그 음악이 생각나는 것...그래서 그 사람도 생각나고,.. 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악이란 늘 일상에 따라 오기 때문에 오히려 잊고 살지만, 어느 날 음악은 문득 다가와 나를 일깨운다는 것!! 작은 공간 큰 이야기 89

90 179 >> 신용철 큐레이터 2014년 5월 20일 잠수함 속의 토끼 인제대학교 외래교수, 겸임교수( ) (주)KGN 부설 디지털콘텐츠연구소 연구원( ) 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혼미디어 대표( ) 보수동책방골문화관 학예실장(2010) 민주공원 큐레이터(2011-현재) 저는 여러 직업을 가졌었습니다만, 가장 오랫동안 해온 직업은 대학강사이고 15년을 했습니다. 학 부에선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미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헤비메탈을 좋아해서 대학 에 가면 밴드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시를 쓰고 그것을 가사로 곡을 붙여 노래하고 싶었 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선 국문학과를 가야 하는 줄 알았죠. 그 때 친구들 중에는 대학가요제에 나가 려고 대학을 가려던 친구들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갔던 대학의 밴드 서클 이름은 블랙나이트 (Black Knight)인데 흑기사란 뜻입니다. 오디션 을 보기 위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st)의 Epitaph 를 불렀습니다. 그랬 더니 선배들이 이 곡을 모르더라고요. 한 곡 더 불러보라고 해서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 를 불렀습 니다. 듣던 선배 중에 자네는 성악을 해라. 고 하더군요. 며칠 뒤 연락하겠다더니 베이스를 치라고 9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1 하더군요. 노래를 하러 온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뒤 6개월 뒤에 다시 노래를 하라고 해서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시를 쓰고 싶어 했습니다. 김남주, 박노해, 백무산 등의 민중문학 계열의 시도 좋긴 했 지만, 장정일, 김영승 등의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더 자주 보곤 했는데 그걸 갖고 과친구들이 이상한 놈 취급을 하더군요. 80년대 말 국문과 학생들 분위기는 민중문학만 문학으로 인정하던 시절이었습 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놀이패 학생들이 모여서 탈춤 연습을 하는 곳에서 같이 먹고 자고 술도 얻어 먹고 놀던 어느 날 통영오광대 탈춤 전수에 다녀오면서 한국전통연희에 관심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극단 자갈치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마당극에 깊이 빠지면서 굿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휴학을 하고 전라남도 해남에 굿을 배우러 갔습니다. 20대 초까지 서양음악(록음악)을 많이 들었는 데, 한국전통음악과 연희를 만나면서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복학을 하고 대학원에서 김열규 선생님을 모시고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민족미학연 구소에 있으면서 국책사업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프로젝트 한국인의 탈과 탈춤 등등의 문화콘텐츠 관련 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화원형을 스토리텔링 하여 갖가지 매체로 쓰임새 를 만드는 굉장히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문화라는 질료가 공학을 만나면서 다양한 활용 가 능성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미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1

92 미술가들과도 많이 만나게 되고 미학 공부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메타크리에이션 작가 ver.1 이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은 예술 과 인권 을 주로 다룬 것입니다. 대상으로 삼은 작가 여럿 중 마지막 작가의 촬영을 마치고 어떤 전 시 뒤풀이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린 거죠. 정신을 잃고 다음 날 일어나보니 다른 사람이 저를 인 터뷰 하고 찍어 놓은 것입니다. 술 취한 저는 영상 속에서 독일작가 게오르규의 말을 빌려 잠수 함의 속의 토끼가 잠수함의 산소를 먼저 감지하듯이 예술가는 사회의 산소를 먼저 감지하 는 토끼가 되어야 한다. 고 지껄이고 있더군요. 제가 나중에 기획한 민중미술 2014, 민중미술 2015 전시의 제목이 잠수함 속의 토끼 가 된 것은 이런 창작과정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작품에선 작가들의 말을 올곧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제 가 흔들리려고 할 때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미술비평은 작가들의 생각이 어떻게 작업 속에 녹아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잘 전달하는 것, 기획자 서문 의 바탕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비평의 글도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여깁니다. 우리 사회의 현장과 비평이 각자 따로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몇 달을 전시 준비하며 작가의 예술론을 들었습니다. 치유된 치유자 라는 말은 무당이라는 말입 9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3 니다. 자기가 먼저 아프고 스스로 왜 아픈지 알아차려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는 무당, 가 장 낮아져야 때로 가장 높은 데에 설 수 있습니다. 무당은 일상에서는 늘 천대받지만 굿이 열리면 신 을 대신합니다. 그것이 큐레이터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물관의 사료가 말을 하 지는 못하지만 박물 사료의 말을 나의 몸이 받아서 대신 얘기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2011년 민주공원에 큐레이터로 가면서 저 스스로 약속했던 4가지 사업이 있습니다. 해마다 해오 는 레퍼토리 전시를 말합니다. 부산을 다룬 전시, 민중미술 특별 전시, 신인작가 발굴 전시, 미술교 육 관련 전시를 꼽았습니다. 그 중 2013년 3, 4, 5월까지 한 달씩 한 작가의 전시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던 멋대로 보는 부산 을 예산 삭감 문제로 한 해를 묵혀 2014년 올해 어렵게 열었습니다. 여러 해 작업을 차근차근 보면서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이 기획은 매년 할 계획입니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는 2011년 쥐 잡은 고양이, 봄이기도 하고, 시(문학)의 이미지가 바탕이 되 는 기획으로 제목만 던져 드렸는데, 역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만화, 영상, 조각, 공예 등 다양한 장르 의 작품들로 표현하였습니다. 2013년 잠수함 속의 토끼 는 민중미술 소장 작품 500여 점을 활용하여 민주공원, 가톨 릭센터, 책방골목문화관, 또따또가의 전시공간에 동시 분산 전시를 하였습니다. 공간마다 전 시를 나누어 투어 코스를 만들어 냈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돈이 없이 시작한 전시를 기획 네트워크 로 해결하였습니다. 이 기획은 매년 하기로 되었습니다. 올해는 여섯 군데에서 나뉘어 열립니다. 민 주공원에서는 민중미술가열전 첫 번째로 홍성담의 야스쿠니 신사 신작전시가 열리고,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와 로비에서는 팝아트조합 전시와 전국시사만화협회의 망각금지 전, 보수동책방골목문 화관에서는 80년대 민중미술 판화와 사료 전시, 또따또까(스페이스닻, 또따또가갤러리)에서는 현실 주의 계열 젊은 작가들의 기획전이 열립니다. 록음악이 가정 번성했을 때의 헤비메탈 음악만을 록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민중미술도 그런 식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에 창작된 작품만을 민중미술이라고 여기는 시각들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 에 새로운 담론을 꺼내어서 2, 30대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로 꾸렸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3

94 180 >> 김지운 다큐멘터리 감독 2014년 5월 27일 일본 속의 조선사람 이스크라21 대표 2001~ 현재 KNN 외주제작 2005 다큐멘터리 <한바다호 40일간의 항해> 제작(KNN 방영) 2006 다큐멘터리2부작 <끝나지 않은 탈출 탈북청소년 이야기>(KNN방영) 2010 다큐멘터리 <도시농업> (부산KBS 방영) 2011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영상기록 2013 금정산 생명문화축전 기록영상 2011~현재 부산은행 사내방송 외주제작 2009~현재 남산놀이마당, 하연화무용단 공연영상제작 2013~현재 공간소극장 극단 일터 극단 자갈치 공연영상제작 2010~현재 동포넷 민족유적답사, 연길민족문화전수, 어린이희망학교 기록 영상 및 다큐멘터리 제작 2012~현재 오사카 민족극단 항로, 달오름, 메이 공연영상 제작 및 다큐멘터리 <항로> 제작중 부산에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은 1세대이지 싶습니다. 2001년부터 PSB(현KNN)에 VJ물이 생 기기 시작하면서 외주제작을 시작했고 2003년 학과 후배들과 함께 이스크라21 영상제작회사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스크라 는 학과 엠블럼이었는데 나름 학과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서 21 을 붙 여 이스크라21 로 지었습니다. 회사를 만들고 KNN, 부산MBC, 부산KBS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제 작하고 지금은 BS금융그룹 사내방송을 전담해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가 일본사회에서 살아왔던, 살아온 의미 -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 왜 중요한지. 치마저 고리는 왜 입는지. 우리 학교에 아이들을 왜 보내야 하는지. 그들의 현재 삶은 어떤지 - 를 연극으 로 만들어서 함께 하고 있는 '항로'라는 유닛극단이 있는데, 김철의 는 <메이>라는 극단의 대표이고 9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5 김민수 는 <달오름>이라는 극단의 대표인데, 2개 극단의 대표가 만든 것입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선인도 일본 사람이라고 했습 니다. 그러다 1945년 패망 이후 1947년 헌법 발표를 앞두고 쇼와 일왕의 마지막 칙령으로 조선적을 외국인으로 만들었구요. 조선인들에게 외국인등록증을 주면서 국적을 조선으로 부여했습니다. 조선적은 1965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수교 이후 한국 정부 는 북한 정부에 우위를 점하려 동포들에게 국적 취득을 권유했습니다. 이때 많은 재일동포들이 국적 을 한국으로 바꾸었지만, 북한을 지지하거나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거나 자 기 자신 및 가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분들이 조선적을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현재는 4만명 정도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남아 있습니다. 미수교국인 북한은 일본에서 보면 나라가 아니므로 체류나 등록증 표기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는 일본에 단 한명 도 없습니다. 김철의는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력을 이어가는 경우입니다. 여하튼 김철의와 김민수가 주요하게 활동하는 항로 라는 극단을 중심으로 2년째 기록하고 있습 니다. 극단 항로, 메이, 달오름의 극단 활동, 현재 재일동포들의 삶 그리고 김철의씨의 국내입국거부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5

96 문제로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오사카 민족극단 단원들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일동포들 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저희 자신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일본에는 후원 제도도 없고 또 일본정부가 민족극단에 지원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배우들이 아르바이트 등 을 해서 매달 돈을 모아 동포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립니다. 현재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극단은 오사카에 있는 김철의와 김민수가 만드는 작품 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철의는 1년에 서너 작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자주 공연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극장이 없으니 대관에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일정들이 잘 맞지 않기도 합니다. 소극장이 있어서 공연을 자주 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큐멘터리 항로의 공동체 상영비 전액 그리고 일본 상영에서의 수익금을 소극장 임대 비용 및 극단 운영비로 기부하기 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최근에 보수화된 일본정부에서는 우리학교(조선학교)에 보조금도 끊어 버리고, 재특회(재 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재일동포에 대한 횡포-항로 다큐멘터리에도 나옵니 9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7 다-가 늘어나고 있고, 도쿄에선 수만 명이 모여서 집회를 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조선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돌을 던지거나 옷을 찢거나 넘어뜨리거나 하는 행위들이 계속 있어 왔지요. 조선적 재일동포의 국내입국을 허가해주지 않는 문제는 크게는 인권의 문제, 그리고 이미 오래전 에 우리 정부가 해결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외면해 왔던 역사적 책임의 문제, 그리고 국내에 입국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국가적 폭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 그리고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문제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역사이고 통일한 국의 미래의 역사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준다면 그리고 정치권의 의지만 있 다면 해결 못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항로 >는 2014년부터 국내 여러단체 들이나 모임에 시사회 겸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려고 계획중이며, 2015년 1월에는 오사카를 시작으 로 일본 전역에서 정식상영을 시 작하려고 합니다. 해외영화제 출 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 상 영은 2015년 5,6월쯤으로 준비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오사카 민족극단들의 활동, 그리 고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삶에 애 정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7

98 181 >> 이현식 극단 새벽 2014년 6월 3일 우공이산 1998년 극단 새벽 입단 현 극단새벽 대표이자 무대감독, 극단새벽 병설 인디밴드 ACT 드러머 효로 연극학교 상임강사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히바쿠샤, 이의있습니 다, 새허생이야기, 아일랜드 외 연극작품 다수 출연 극단 새벽은 3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연극배우이지만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잘 안합니 다. 1992년도 대학 시절에 처음 극단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배들보다 극단 선배들을 많 이 따라 다녔습니다. 거의 극단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연극을 배운다기보다는 선배들한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대학교 때 토목과였는데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전업으로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교 학창시절에는 연극하는 곳이 있다면 찾아가서 공연을 봤습니다. 1998년도에 극단 새벽에 입단을 한 이후에는 아직까지 이곳에서 쭉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가 된 이후에 말하기도 글쓰기 도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표로 있으면서 책임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9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99 저는 노역을 많이 했는데 제 나이보다 20살 이상의 역을 많이 했습니다. 20대 후반 때부 터 40대 역을 시작해서 제 나이의 역을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노숙자 역할, 감옥의 장기수 등... 어렸을 때부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음악을 배우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연극을 하며 타악을 배웠는데 어느 날 연극작품을 준비하며 드럼을 맡게 되어 20일을 남겨두고 속성으로 배웠습 니다. 연극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워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 드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극단 후배에게 전수를 하고 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 빨리 배우는 것 같습니다. 제가 4개월 걸렸던 것을 이 친구는 2주 만에 하더라고요. 인디밴드 ACT의 이름을 지을 때 무엇을 하고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해 서 고민하다가 ACT가 되었습니다. 연극집단이기에 actor의 의미도 있고 행동하고 실천한다는 의미 가 있습니다. 저는 악보를 잘 보지 못합니다. 서양이 가진 박 체계와 한국의 박 체계가 달라 어려움이 있습니다. 드럼을 치는 것이 즐겁기는 하지만 옛날처럼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평상시의 놀이나 일상이 작은 공간 큰 이야기 99

100 아닌 하루하루 소화해야 하는 일과가 되어버린 느낌이 되어버려서 재미가 덜해진 것 같습니 다. 다른 밴드 멤버들 같은 경우 악보만 보면 어떻게 쳐야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이 콩나 물이 어떤 느낌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답답한 거죠. 이제는 좀 나아진 것이 귀가 좀 열려서 멜로디를 들으면 이때는 이렇게 쳐야 하겠다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후배를 가르쳐주면서 저도 더 공부를 하게 됩니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이종화씨가 주로 작곡을 하고 글은 극단의 상임연출이자 인디밴 드 ACT의 디렉터인 이성민 선생님이 쓰십니다. 저는 대본을 참 못 외우는 사람입니다. 대본을 글 그 자체로 외우면 잘 외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되지 않으면 외우기가 힘듭니다.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 길고 제가 맡은 역할과 관계된 것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인물만이 아니라 사건 등. 대사를 까먹은 적도 많습니다. 한번은 아주 긴 대사였는데 순간 하얀 백지장이 되는 것입니다. 제 기분으로는 10분 정도 멍하니 가만히 있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 들어보니 30초 정도 그러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길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연극이 좋았던 것은 사람이 좋았던 것과 재미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힘든 과정 후에 느껴지는 보람도 컸던 것 같습니다. 직업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세상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제가 가진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연극이 맞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 께서 고무공장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곳의 노동자들이 넉넉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힘들게 생활을 하 고 정리해고를 당하고 하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음에 물음을 찾 던 때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데 그 의문의 답들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연극이었 습니다.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런 부조리한 것들을 발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극장보다는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까운 거리의 관객들에게 대 사를 통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매회 똑같은 공연으 10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01 로 보이실 수 있지만 매번 관객이 다르기 때문에 공연은 매번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관객 들이 쏘는 총과 같습니다. 관객들과 마주보는 눈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부인은 저와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는 친구로 기획 일을 하는 친구입니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 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배였는데 초반에는 꼰대 같은 행동을 좀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워져 함께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살도 많이 쪘습니다. 예전에는 다양한 관객층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관객수도 많이 줄고, 20대 초반으로 국한된 것 같습 니다. 일상에서 문화적인 것을 수용하고 향유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새벽의 공연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건드리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건드려서 불편하게 만드는 게 있습니다. 갈등의 해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점이 관객을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재미있게 본 것이 끝이 아니라 무엇 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지 생각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요즘 극단 새벽은 효로아트홀 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01

102 182 >> 2014년 6월 10일 김광우 부산국제록페스티발 꿈꾸는 라이브데이 프리덤콘서트 대표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프로그램감독 부산선셋라이브 프로듀서 저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프로그램 감독을 8년째 맡고 있고, 프리덤 콘서트라는 회사를 12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밴드생활을 했어요. 밴드생활을 좀 하다 보니 저는 노래보다는 사람 들을 모으는데 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기획을 시작하게 됐는데, 공연기획을 전문적 으로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스쿨밴드나 취미밴드들의 공연을 기획하다보니 인디밴드 공연도 맡게 되고, 어느 순간 제가 소위 메이저 밴드들까지 섭외하고 있더라고요. 밴드를 하게 된 계기는, 예전 구덕운동장 근처에 있던 록클럽에 록밴드를 하는 친구를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공연을 보는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거예요. 저도 언젠 10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03 가는 정식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장인밴드 같은 취미밴드를 만들었어요. 그 당시는 본조비나 라디오헤드 등 여러 가지 음악들을 카피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포동에 있는 재즈창고라는 곳에서 다른 인디밴드랑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 밴 드들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 팀을 보고 저도 자작곡으로 연주하고 CD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원래 팀을 탈퇴하고 아로아밴드 라는 새로운 팀을 만들었어요. 아로아밴드 로 쭉 활동을 하다가 저희가 다른 팀에 비해 음악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밴드를 그만두고 3 개월 동안 자격증 공부를 했어요. 주위사람들은 칼날을 세워서 공부하는데 저는 절실하지 않아서 그 런지 공부가 잘 안되더라고요. 자격증시험을 봤지만 결국 낙방을 했어요.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다시 클럽으로 갔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니 공 연에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학교밴드 공연을 기획했어요. 시 간이 지나다보니까 헤머, 피아, 넬, 루시드폴 같은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국제록페스티벌에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연을 만들고 투어를 하다 보니, 조용필 선생님, 유희 열, 토이 콘서트를 진행을 해달라는 제의도 받았어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03

104 그렇게 밤새서 일하고 술도 마시다보니 2년 2개월 전에 위암수술을 받았어요. 위암판정 을 받고 수술하고 난 뒤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2년 정도 쉬고 난 후 이제 다시 해보려고 서 울과 부산에 사무실을 작게 내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록페스티벌은 제 자존심이기 때문에 계속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도 록페스티벌을 열심 히 준비하고 있고, 되도록이면 계속 부산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레이니선, 피아, 에브리싱 글데이 같이 유명한 서울의 인디밴드들도 부산 출신입니다. 그 분들이 터를 많이 닦아 놓긴 10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05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산밴드들은 로컬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굳이 서울에 가지 않고도 부산에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부산에서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인디밴드나 연극, 뮤지컬 하시는 분들도 힘 들지만 클래식 공연하는 친구들도 힘든 경우가 많아요. 본인들의 돈으로 공연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대행사를 통해서 공연을 해도 프로그램이 열악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요즘 클래식아티스트들과의 6월에 영화의 전당에서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05

106 183 >> 2014년 6월 17일 서상호 오픈스페이스 배 배? 배? 2006년까지 7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을 참여하며 작가와 기획자 두 가지 일 을 하다가 공간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으로 2006 수정동 산복도로, 2007~2009 안창마을-안.창.고, 2010 산복도로1번지 등 공공미술을 지역 처음으로 공론화하며 실행하였다. 2006년부터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며 대만,홍콩,마카오,중국,일본 등 아시아 도시들과 2014년부터 런던의 기관과 작가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네트워크 를 형성 중이다. 전시 기획으로는 AFI(Artis Forum International) 과정으로써 공공, 2007 기 억의 더께를 넘어서, 2010 동아시아 커넥션, 2012 영화의 전당 야외설치 전, 2013, 2014 AIA (Aisa Independent Art) 등을 기획했다. 현재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회장, 부산문화연대 대표, 오픈스페이스 배 디렉터 로 활동 중이다. 오픈스페이스 배 를 운영한지 10년이 됩니다. 그 이전에는 아트인오리 란 이름으로 하다가 바 꿨는데 그때부터 하면 15년 정도 되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서 홀로 선다는 것이 힘들었습니 다. 그때는 정이 있었어요. 선배 일을 도와주면 밥 사주고, 도와주고, 그런 연대 정신이 있 었습니다. 그 시기에 부산에 젊은 예술가들 몇몇이 모여서 교류했습니다. 부산 행정구역 제일 끝, 장안사 끝 에 집단 창작촌이 생겼습니다. 그 때는 레지던스란 개념도 없었고 살기 위해서 협업하며 살았는데 그 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 당시 땅값도 싸고, 시골에 청년들이 오니까 좋아했습니 다. 빈 축사를 빌려서 썼습니다. 10명이 공동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전시회를 열고 평가 를 했어요. 우리는 학연을 없애보자 했었습니다. 불과 15년 전인데 화랑에서 일주일을 빌리면 하루 10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07 에 10만원씩 줘야했습니다. 그 당시는 화랑의 문턱이 높았고, 벽에 그림을 건다는 게 어려웠습니다. 1년 정도 하니 외부에서 전시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이후에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트인오리를 3~4년 하니 집값이 올라서 과감하게 오리를 나왔습니다. 어딘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오게 되었고 조각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짐이 많았습니 다. 어느 산속에 창고가 있는데 거기에 짐을 놔두고, 다른 곳을 물색하러 다니다가 문득 여기서 해보 자 싶었습니다. 산속에 있고 들어가는 길은 말도 안 되고, 산 중턱에 있어서 등산을 해야했습니다. 이 넓은 곳에서 전시를 할 수 있으면 예술가들에게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과감하게 선택을 했죠. 선 배들이 도와줬습니다. 돈이 없었는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만방에 알렸습니다. 조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100일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품을 보 태는 사람은 품을 보태주고, 작가들끼리 모여서 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10명이서 그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도 감동적인 일인데 대학교 은사님께서(왕경애 선생님) 아무런 조건 없이 현금 천만 원을 주셨습니다. 그때 안 받아야 했는데 지금도 가슴에 큰 짐이 되어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하. 오픈스페이스 배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공간을 시작하면서 철저 하게 시스템화 하려고 했습니다. 작가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서 전시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 큐레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07

108 이터가 관여하면서 진행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런 기획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큐 레이터를 양성하자고 했죠. 코디네이터와 큐레이터의 역할 분담, 디렉팅이라는 용어 사용, 예 술 감독 명칭을 썼습니다. 미술판에서 학연을 없애려고 노력했고 작품이 좋으면 서로 데려가려 합니다. 우리는 이력을 보지 않습니다. 200번 정도의 기획을 했는데 외부의 압력에 의한 대관 한 번 없었습니다. 살림이 어려울 때는 유혹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해온 작가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대관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많이 묻는데, 처음에는 되게 신경 쓰였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주 수입원 이 무엇이냐고 궁금해 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다른 기관에서 전시를 할때는 여러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요. 조금만 지원해도 훨씬 좋은 작품을 생산합니다. 배에서 전시한 작가구나. 라고 했을 때, 우리 공간에서 전시했다는 이력이 다른 일을 도모할 때에 도움이 됩니다. 잘 된 작가들이 후원을 많이 해줍니다. 입장료는 받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이 행사 위주로 진행되고,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가속으로 굴러 가듯이 갈수록 수월해집니다. 오픈스페이스 배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10명 정도 됩니다. 상근이 4명 이고 비상근 교육 팀이 있는데, 다들 월급을 가져갑니다. 사회적 기업을 해보자 하는데, 저는 문화로 기업화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팔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가지 않기 때문에 팔지 않습니다. 팔기 위해서 작품을 하고 전시 회서 팔아야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참 모호한데 현대 미술이 라는 것이 실험적이고, 그런 언어들이고, 그런 작품이다 보니 소장하기가 힘듭니다. 작가들은 돈을 많이 벌겠단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내 가치를 세우고 싶어 하고, 내 그림이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고, 이슈화되기를 원합니다. 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죠.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인턴을 모집합니다. 우리나라의 인턴 처우에 대해 소모적인 활용을 하는 것에 분개합니다. 방학동안 4명을 뽑아서 1명만 계약직 코디네이터 직함을 줍니다. 작은 돈입니다. 미술 판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취직 할 곳이 없어요. 국공립미술관이나 화랑에 10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09 취직해야하는데 수요가 너무 적어요. 달맞이에 있는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람들 월급이 백 만 원이 안 됩니다. 저희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벌써 배 출신 인력이 주변 문화재 단에 정규직, 계약직 3명이 직업을 가졌지요. 여기서 첫 걸음을 시작해서 다른데 가더라도 꿈을 버리 지 않게 해주고 싶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예술가들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 입니다. 화랑 가면 눈치 봐야하고, 미술관에 가면 눈치 봐야하고, 학교에 가면 눈치를 봐야하지만, 여기서 만큼은 안봤으면 좋겠다고 만든 커뮤니티입니다. 그래도 눈치 보는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기 오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잘하려고 하지 말고, 다시 올 수 없는 너의 의지를 남겨두 고 가는 것이다. 라고 그들에게 얘기합니다. 오픈 하우스를 일 년에 2번 합니다. 백 명 이상으로 전국에서 많이 옵니다. 거대한 것이 들어오 면 작은 것은 사라져요. 제가 추구하는 예술이 그렇습니다. 이제 그 배는 또다시 어디로 항 해 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단한 목표는 없습니다. 아마 곧 배의 항해는 멈출지도 모릅니다. 제 안에 늙은 생각들이 꽉 차 들어가니까요. 곧 새로운 동지들이 나타나길 기대해 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09

110 184 >> 김명수 가야금 연주자 2014년 6월 24일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음악학과 박사 수료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8호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이수자 현's tory : 여우를 꿈꾸는 곰 저는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8호 가야금산조를 이수하고 현재 (사)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 존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야금은 전통 가야금 중의 하나인 산조가야금을 말합니다. 12줄로 되 어있는 전통 가야금은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으로 두 종류, 개량 가야금은 17현 가야금 18현 가 야금 22현 가야금 25현 가야금 네 종류로 유( 流 )파도 가장 많고, 가야금의 종류도 가장 많아요. 그래서 사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나올 때마다 사야 하니...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는 1989년에 부산광역시에서 지정한 지방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 정되어 있는데요. 무형문화재는 보유자, 보유자후보,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전수장학생, 일반전수 11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1 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야금을 처음 접한 게 고1때예요. 처음에는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 지더라고요. 피아노를 살포시 등한시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보유자이신 신명숙 선생님께 데리고 가셨 어요. 나중에 물어봤더니 엄마가 가야금을 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가야금을 권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피아노와 달라서 이 길이 맞나 아닌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음악에 대 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대학교를 가고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그러고 보면, 처음 가야금을 했을 때 손에 물집이 생겼는데 아프지 않았어요. 가야금을 하다가 물집이 터졌는 데 저는 누가 옆에서 물을 뿌린 줄 알았어요. 물집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야금이 좋아진 것은 대학원을 가면서부터였습니다. 대학을 가고 석사를 했는데, 대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예술대의 느낌이 적응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석사졸업을 6년 만에 했어요. 그리고 무언 가에 끌리듯이 무작정 박사과정을 이론으로 들어갔어요. 지금은 실기(악기 연주)박사과정이 있지만 제가 박사과정 갈 때만 해도 없었거든요. 그때 있었다고 해서 가진 않았을 거 같아요. 무대에 섰다가 내려오면 항상 아쉬워요. 가야금과 함께한 20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여러 순 간들이 기억나지만 그래도 독주회 때가 가장 기억이 나요. 지금까지 2010, 2011, 2012년에 걸쳐 3 번의 독주회를 했는데, 그 경험은 다른 때와는 또 다르게 많은 걸 느끼게 만들었고, 무엇이든 남들보 다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게 만든 거 같아요. 제 공연의 공연명은 현 s tory 예요. 그 의미는 첫 번째로 현( 絃 )은 현악기를 의미하고, tory(토리)는 경상도나 어느 지역 민요에서 그 지역의 특색이나 특징을 말하는 국악용어로 경토리, 육자배기토리라고 씁니다. 바로 현( 絃 )의 특징이라는 의미죠. 두 번째로 현( 絃 )의 story라고 해서 현 악기들의 이야기도 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현의 특징을 잘 살려서 현악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현의 특징을 가진 악기는 가야금 외에도 우리의 전통악기 중의 하나인 거문고, 그리고 아쟁 등 다른 현악기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하고 싶었어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11

112 마지막으로 현 s tory 에서 현을 빼면 s tory 로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현재, 과거, 미래 그리고 당신과 나, 가족, 누구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담고 싶다는 저 의 작은 소망을 담고 있어요. 2010년도에 처음 독주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응이 어린데 하려고? 그런 반응이었습 니다. 난 독주회 할 거야. 마음먹고 일을 냈죠. 그리고 두 번째 연주 때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원금 을 받아서 했는데, 그 당시에는 개인이 지원금을 받아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문화재단은 주로 직업이 있다거나 프로필이 좋은 사람에게 주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은 유행처럼 지원금을 받아 서 연주를 많이 하고 있지요. 가야금 연주자로서의 꿈은 작은 걸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처음 독주회를 할 때도 그 당시 제 또래 의 젊은 사람이 독주를 하는 사람이 없었고, 지원금을 받아서 연주회를 할 때도 그런 경우가 없었습 니다. 이후에 다른 연주자들도 지원금을 받아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첫 독주회 는 아무것도 없이 맨바닥에 헤딩하듯이 했습니다. 두 번째는 어, 두 번째 독주회네. 하며 놀라워했 고, 세 번째는 지난번에 지원금을 받았는데 또 받았어?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주 목을 받았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거겠죠. 세 번째 연주회 때 <꿈꾸는 곰>은 소제목으로 붙였는데요. 아마도 주위의 반응에 답하고 싶었나 11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3 봐요. 곰이 일반적인 느낌으로 느리고 약삭빠르지 않지만, 민첩하게 움직이고, 꾸준하게, 계속 흔들 리지 않고 원하고자 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사실 엄마의 꿈으로 가야금을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좋아서 악으로 깡으로 가는 것도 있었어요. 남들에게 당신들이 가는 길만이 옳은 길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곧 또 다른 길이 될 것이 라는... 마지막으로 우리음악은 잠 오고 지루하다고 먼저 생각하는데, 그건 우리가 받은 음악교육이 재미 없어서였다고 생각해요. 태교 때부터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태어나서도 우리음악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없죠. 그러다보니 국악공연은 자연히 더욱 더 멀어지게 되는 거죠. 생각보다 재미있는 곡이 많아요. 잘 모르니까 관심이 생기지 않고 관심이 없으니까 잠이나 지루함이 먼저 생각나는 게 아닐까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다 보면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게 된 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이 재미있어하는 퓨전음악으로 관심을 가지게 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창작곡만 할 수는 없 어요. 퓨전음악도 당연히 시간이 흐른 후 전통이 되겠지만, 옛 전통이 있기에 지금의 음악도 있는 거 고, 그렇기에 전통은 함께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줘야 해 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음악, 찾지 않는 음악은 사라져가게 되니까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13

114 185 >> 남선주 춤꾼 2014년 8월 5일 불매향( 不 賣 香 ) 전)경성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년 새앎춤회 대표 역임 년 현)남선주 무용단 대표 수영구 문화원 강사부상 무용협회 분과위원 개인공연 5회 이상의 다수 공연 안무작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 노란손수건", "어머니의 거울", "너의 옆자리를보라", "다만, 바람이 지나간 것이다", "관계로부터 존재한다", "인연이야기", "찰나속으로" 등 다수 안무 수상경력 2009 태화강 물축제 선공개최 유공표창 - 울산광역시장상 2011 부산 젊은 예술가상 수상 2013 동래 전통예술 경연대회 우수상 수상 5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서 춤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는데, 남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춤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무대에 올라가서 많이 울었다고 해요. 그 단련이 40년 가까이 되어 있으나 아직도 낯은 좀 가리고 무대에 서면 떨리지만, 그 떨림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춤에서 정신적인 토대가 만들어진 건 이영희교수님을 만나고부터입니다. 교수님의 제자들이 모 여서 춤을 추는 동인 단체 새앎 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새앎은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는 들꽃처 럼 자립심이 엄청 강합니다. 교수님이 늘 의식적인 춤을 강조하셨기에 아름다운 춤을 추기보다 퍼포 먼스 같이 표현하는 창작 춤을 많이 췄는데, 오래전에 (현 이슈가 되는) 핵에 대한 주제로 춤을 만들 고, 쓰레기 문제가 있기 이전 20년 전에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그 당시는 공주처럼 11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5 예쁜 드레스를 입고 추는 춤이 주류였는데 저희는 실험적인 무대를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무대에 실 제 닭을 두고 닭이 날아다니게도 했습니다. 한번은 큰 불상을 두고 불상을 깨셨는데 형상 그 실체를 깨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쁜 춤을 추고 싶어 대학에 들어왔는데, 춤에 대한 환상이 깡그리 깨졌지요. 어릴 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제가 춤을 짤 때 사회 적 이슈를 꼭 넣습니다. 참 무서운 가르침이지요? 10년 넘게 새앎대표를 했는데 최근에 그만두었습니다. 10년을 제가 대표를 하면서 알아서 하다 보 니 너무 믿고 맡기고, 혼자만 힘든 것 같았어요. 낮에는 학교 가서 돈 벌어야지 저녁에는 여기 가서 뛰고 저기 가서 뛰고, 그러니까 가정에 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새앎 회장을 그만둬야했습니다. 모여서 하는 건 많이 못하고 개인적인 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단체는 그렇게 자유롭습니다. 나가 겠다면 안 잡고 들어오겠다면 안 말립니다.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10년을 하면서 10년이란 시 간동안 지켰기 때문에 또한 단원들이 잘 따라주었기에 지금까지 새앎이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입니 다. 그런 자부심은 있습니다. 이번에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토끼와 거북을 춤추게 하라>공연을 합니다. 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 를 얻어서 만든 창작 극무용입니다. 별주부전 이야기는 그대로 가지고 오는데 대신 주제를 바꿨습니 다. 토끼 간이 아니라 사회이슈가 되는 석유를 주제로 했어요. 토끼가 석유를 가지고 있고, 거북이가 석유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전쟁이 석유로 싸웁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정신적인 모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15

116 든 토대를 만들어주신 분이 교수님이시죠. 서울에서 생악을 하시는 분을 불렀습니다. 판소리, 국악, 신디, 드라마 작곡자 등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무대에서 즉흥 연주를 할 것입니다. 판소리로 극적 장면들은 묘사를 해 주면서 표현될 것입니다. 춤은 참 힘든 것 같아요. 연습시간도 많고 돈도 많이 들어갑니다. 한복 한 벌도 최하 백만 원 이 상 듭니다. 공연 하는데 800만원 지원 받으면, 800만원이 더 들어갑니다. 미친 짓이죠. 아르바이트 해서 8백을 벌기도 힘든데... 미치지 않으면 못합니다. 이치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목표가 없습니다. 뭐가 되겠다든지, 교수가 되겠다든지, 명무가 되겠다든지, 그런 게 없습니 다. 내가 가야 될 고지가 없지만 가야하는 길에 계속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어 요. 왜 하냐구요? 제가 좋아하기에, 즐기기에... 합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들 걱정되는 일이 많다고 해서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습 니다. 하나씩 해결해가는 걸로 문제를 풀어갑니다. 인생으로 보면 바람이 슥 지나간 것인데, 바 람 한번 맞은 것일 뿐입니다. 힘들어도 보면 바람입니다. 태풍이 아니에요. 나만 그런 걸 겪겠는가? 11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7 세상에 더 많은 사연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울고 있는다고 누가 해결해 줄 것도 아니고, 힘들다 해서 누가 알아 줄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주변에 친한 동료나 가족이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공연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러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새앎이 울부짖고 있 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어느 동인 단체보다 굳건하게 잘 살아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요. 또 개인적으로는 나를 평가하는 일입니다. 이제 한 시간짜리 안무 할 수 있네. 괜찮게 안무 했 네. 스스로 평가합니다. 남들이 평가하는 걸 들으면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그것 때문에 발판이 돼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제 공연이 끝나고 나면 엄마가 차디찬 평을 늘 해 주십니다. 그만두면 안 되겠냐 걱정하시 면서도 서포터를 해주시죠. 공연이 끝나고 엄마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날은 아무 평가도 필 요 없습니다. 엄마가 니 이번에는 좀 하더라. 하시면 그때의 자신감이란, 명무입니다. 아 무것에도 비할 데가 없어요. 꾸준하게 지금처럼 열심히 해가다 보면 뭔 길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막 연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부산 무용계에서 제가 얼마나 버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열심히,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17

118 186 >> 이승욱 안녕광안리 2014년 8월 12일 안녕광안리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발행인 2012 부산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 집행위원장 2013 바다미술제 축제행사감독 2014 무빙트리엔날레 축제감독 2014 부산문화재단 문화예술기획아카데미 기획 <안녕광안리>는 1년에 4차례 발간하는 계간지이고 무료로 배포합니다. 13호를 발간했으니 벌서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원래 동구 수정동에서 살다가 1980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안리 로 이사를 와서 이곳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87년 서울로 가서 2009년 다시 부산으로 돌 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인이기도 한 양면적인 시각을 가졌는데 이런 입장이 광안리 잡지를 만드는데 반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광안리에서 문화잡지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광안리에 무슨 문화가 있는지, 내세울 것이 뭐가 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잖았습니다. 반면에 부산에 원어민 강사들을 포함해서 많은 외국인 거주자 가운데 광안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외국인들은 종종 광안리를 스페인 11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19 바로셀로나에 있는 해변이나 프랑스의 니스, 멕시코의 칸쿤 해변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런 비교를 하면 오히려 부산 사람들이 선뜻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비웃음을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 히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해외의 유명 해변을 가보면 실제로 광안리 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지하철 에서 내려서 5분만 가면 해변이 펼쳐지고 카페와 바 테라스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와 맥주도 마시고 해변을 따라 산책이나 운동도 하고 온갖 종류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적어도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메트로폴리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공간입니다. 외지인들은 너무 좋아하는데 오히려 부산 사람들이 폄하하는 것은 너무 친숙해서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정말 부 산다운 것, 그래서 무엇이 가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녕광안리 2호의 주제가 <광안리, 포구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광안리를 해변 휴양지 로만 알고 있지만 광안리에 있는 민락항 포구에는 여전히 90여척의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고 10 여명의 해녀들이 매일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광안대교라는 거대한 도시 구조물 아래 테왁 이라고 부르는 빨간 물통을 매고 동동 헤엄을 치는 해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광안리입니다. 이런 아스트랄 한 풍경은 잘 구획된 해운대 해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역설적으로 광안 리의 매력은 철저히 도시계획이 실패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자취와 체취가 켜켜이 쌓이 면서 일종의 무질서의 미학을 성취한 결과입니다. 마치 산복도로가 오랫동안 무질서와 빈곤의 그늘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19

120 로만 치부되었다가 부산만의 독특한 문화자산으로 재조명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이제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 지역의 특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안녕광안리>가 때로는 호 들갑을 떨며 광안리를 예찬 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시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흔히 영세한 잡지들은 창간호가 폐간호 란 속설이 있습니다. <안녕광안리>가 소규모 잡 지면서 3년 넘게 버티는 비결은 적게 쓰고 가볍게 진행하는 것입니다. 한 호를 만들 때 700만 원 정도 비용을 쓰는데 매호 적게는 3000부에서 5000부를 찍는 것을 감안하면 비용을 적게 쓰는 편 입니다. 원고료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필자들에게 잡지에 기고하고 참여하는 보람을 돌려드리려고 애 씁니다. 상근 직원은 없고 7~8명이 모여서 한 달에 두세 차례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모아서 기획 을 하고 잡지를 발간하는 동아리처럼 운영을 합니다. 초기에는 참여하는 분들이 조금씩 출자도 하고 재능기부를 해서 비용을 분담했고 둘째 해부터는 공공 기금을 받아서 일부 비용을 충당하며 운영하 고 있습니다. <안녕광안리>에 참여하는 보람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희들은 소위 깔때기 혹은 자뻑 으로 버 티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광안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활력이 생겼는데 저는 모두 <안녕광안 리>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씀드립니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서울 홍대 지역이 갑자 기 젊은 문화의 상징으로 부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90년대 중반에 어느 TV매체에서 우리가 잘 아는 12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21 노브레인, 크라잉넛 과 같은 밴드가 활동했던 드럭 이란 클럽을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비판했 는데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홍대 인디음악, 펑크음악의 성지 같은 곳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습니다. 홍대 지역이 뜬 이유가 그 사이에 갑자기 새로운 것들이 생겨서가 아니라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사 람들의 시선과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광안리가 활력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광 안리에서 낙후했다고 혹은 촌스럽다고 폄하하던 것을 오히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취향과 기 준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광안리의 활력은 모두 <안녕광안리> 때 문이라고 자뻑 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녕광안리>는 제가 부산으로 돌아와서 좋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 를 제공했습니다. 잡지를 만들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진행하게 됐습니다. 창간호를 내면서 넓은 테라스가 있는 해변의 식당에서 발간파티를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 다음 호에는 광안리 해변에서 야외공연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돼서 2012년 여름에는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 라는 다소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광안리 해변에서 대형 그래피티 작업부터 다양한 음악, 공연이 어우러진 해변축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부산의 여러 시각예술, 공연예술, 인문학단체들이 협력해서 부산 원도심에서 진행하는 복합문화예술 축제 무빙트리엔날레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산이 새로운 문물을 앞서 받아들였던 관 문도시답게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잘 수용하고 융합시키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산의 특성을 잘 살려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추구한다면 제2의 도시, 서울 다 음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부산만의 고유한 가치와 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21

122 187 >> 배유안 동화작가 2014년 8월 19일 부산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고교에서 국어교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동 화와 청소년소설 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초정리 편지 지은 책 초정리 편지 스프링벅 창경궁 동무 콩 하나면 되겠니? 분황사 우물에는 용 이 산다 다 알지만 잘 모르는 11가지 한글 이야기 아홉 형제 용이 나가신다 할 머니, 왜 하필 열두 동물이에요? 서라벌의 꿈 뺑덕 등 다수. 국어 선생님을 했었습니다. 육아 등 이런 저런 일로 그만둬야 할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 두 고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몇 년 지나니,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읽었지 요. 그것 말고는 살림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소설, 에세이, 역사, 여행기 등. 장바구니에 책 하나 넣어 오는 게 큰 위로였죠.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다, 내 인생은 내가 가꾸는 거다, 같 은 거요. 아이들 책을 골라 주느라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그게 어른이 읽기에도 아주 좋은 거예요.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들도 생각나고요. 동화의 매력을 새로 발견한 것이 지금 동화작가가 된 바탕 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어요.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한국 단편들을 다시 읽었는데 그 게 내 전공과 문학을 다시 찾게 해 주었지요. 물론 그 박완서, 황석영, 이문열 등의 신간 소설에도 흠 뻑 빠졌어요. 잘 다듬어진 문장을 즐기는 맛도 다시 찾았고요. 나중에 보니 나도 모르게 소설 구성과 12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23 문장 공부를 한 것 같아요. 나중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꼭 했던 것은 아닌데, 책 읽으며 밤을 샐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아닐까요? 글을 쓰는 일은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하는 게 아닐 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첫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지요. 소설은 즐겨 읽었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고, 드라마에 관심을 가져 봤는데 내게 안 맞는 것 같고, 시 모임에 참여해 봤더니 그것도 내 몫은 아니었죠. 그러다 동화를 만났는데 이거다 싶었어 요. 아이들 키우며 창작동화도 많이 읽었고, 동화의 매력도 새로 발견한 터이니 이미 동화 창작이 내 게 제법 준비되어 있더군요. 신작 동화를 찾아 읽으며 습작을 시작했는데 늘 하던 일들을 하면서 글 을 쓰려니 집중이 잘 안 되었어요. 단편 하나 쓰기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자잘한 일들에 늘 노출되어 있는 주부 입장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소재를 찾기도 어려웠고, 겨우 하나 건져서 낑낑대며 써도 공부 그룹에 가져가면 반응이 시큰둥했어요. 1년이 지난 후에 글은 이렇게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공부가 필요했고, 읽고 쓰는 데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 어요. 영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동창회 모임, 다도회 모임, 운동 등 여러 곳에 몸을 걸치 고 있었는데 그걸 정리하기 시작했죠. 기본 살림을 안 할 수도 없고, 잠을 안 잘 수도 없으니까요. 모 임의 친구들에게 3년 후에 보자고 했어요. 자기가 무슨 작가 한다고? 하며 은근히 비웃는 친구도 있 었고, 빠지고 싶으니까 핑계 대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모임을 끊고 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23

124 스로 왕따가 되어 번 시간에 읽고 쓰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신간도서를 탐색해서 사들이고, 작가들 강연을 찾아다녔어요. 모임을 안 하니 옷 값, 유흥비가 안 들었어요. 대 신 책을 많이 사고 강연 들으러 서울에도 가고 했지요. 책값이 제일 쌌습니다. 치열하게 습작했어요. 글 쓰는 일보다 관련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글을 쓴다는 게 사실 쓰 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머리 굴리며 빈둥거리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남들이 보 면 노는 거지만 저에게는 그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한 줄 못 쓸 때가 많고 밤새 쓴 것을 다음날 아침에 몽땅 버려야 할 때가 더 많아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뭘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변에 바쁜 척을 했어요. 경조사에도 잘 안 갔어요. 부모님한테도 덜 가 고 명절에도 얌체처럼 후다닥 다녀오고요. 여러 사람을 서운하게 하면서 작품에 매달렸어요. 그렇게 3년이 지나니 단편과 중편 공모에 당선되어 있었어요. 다시 2년 후에 장편 공모에 당선하 여 첫 책을 내는 데 성공했어요. 당당하게 인세 받고 책 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했죠. 첫 장편 <초정리 편지>는 그야말로 수십 번을 고치고, 고칠 때마다 좋아졌습니다. 떨어지기도 여러 번 했어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하는 마음으로 창비 출판사에 응모했는데, 응모한 다음날, 먼저 응모했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치는데 열중해서 응모했다는 것도 잊고 있었어요. 편집자 말이 당선 은 아닌데 편집자의 생각이 심사위원들과 다르다며 책으로 내자는 거였지요. 잠시 갈등을 했지만 미 비하니까 당선이 되지 않은 게 아니겠느냐, 더 손보겠다고 하며 사양했죠. 함께 손보면 안 되겠느냐 는 것도 거절했어요. 최선을 다 했으니 새로 응모한 곳에 베팅을 한 거죠. 두 달 후 창비에서 당선 소 식을 들었어요. 어린이 역사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과 함께요. 풀쩍풀쩍 뛰다가 울다가 했던 기 억이 납니다. 첫 책이 나왔을 때는 품고 잤죠. 그게 데뷔작이자, 아직은 대표작이에요. 첫 책 치고는 성공했어요. 평도 좋았고 많이 팔렸어요. 외국에 번역도 되었고요. <초정리 편지>를 쓸 때는 훈민정음과 관련한 논문 자료를 많이 뒤적였어요. 그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들은 물론이고, 돌을 어떻게 깨는가, 당시의 종이 사정은 어땠는가? 등등 자료를 찾기 위해 도 서관을 많이도 들락거렸어요. 세종대왕의 캐릭터를 찾기 위해 조선왕조실록 왼역본을 검토해 보기도 했죠. 한 줄이라도 놓칠까 싶어 자를 대고 읽었어요. 실록 행간에 세종의 성품과 의지가 살아 있었어 12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25 요. 기록의 위대함을 벅차게 깨달았어요. 그 런데 놀랍게도 한글 연구에 대한 기록은 하나 도 없었어요. 혼자 다 하 것도 아닐 텐데 말이 죠. 새 글자를 완성했다는 게 실록에 나온 한 글의 첫 기록이었어요. 비밀리에 연구했다는 거죠. 세종이 엄청 힘들었겠다 싶어 눈물이 나더군요. <초정리 편지> 주인공이 석수잖아요. 돌을 깨본 적이 없으니 야외에 나가서 돌을 만져보 기도 하고, 석수가 나오는 소설이 없나 찾아 보기도 했습니다. 박물관 강좌에서 한국의 불상 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 래도 석수가 돌 깨는 장면은 묘사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평생 돌하루방을 깎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나오는 거예요. 방송을 보며 얼른 녹화를 했습니다. 그걸 되풀이해 보고서야 석수의 팔뚝과 망치를 든 각도를 묘사할 수 있었어요. 나는 짧은 단편이라도 두 달 후 마감 같은 거 청탁 받아서는 글을 못 써요. 글 쓸 게 준비 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이 없어서예요. 어느 작가는 청탁이 오면 글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 게 안 되더군요. 나는 무엇이 쓰고 싶다. 무엇을 말하고 싶다. 라는 게 분명할 때 씁니다. 모든 작 품이 다 그런데요, 소재를 묵히고 삭히면서 관련 자료를 탐구하고 주제를 설정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준비가 잘 되면 막상 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아요. 청소년 소설 <스프링벅>은 2년 을 머릿속에 궁굴려서 한 달 만에 썼어요. 물론 쓰다가 막힐 때가 훨씬 많아요. 쓰다 보면 내 안에 습 득된 내공이 없어서 이건 못 쓰겠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쉽습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체화된 지식과 감각이 부족함을 많이 느 껴요. 앞으로도 계속 쓸 거예요. 쓰고 싶은 것도 많이 있어요. 정말 명작 하나 쓰고 싶어요. 그 래서 내게 늘 말하곤 합니다. 아직 나의 대표작은 나오지 않았다고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25

126 188 >> 이정자 화가 2014년 8월 26일 여름날 꽃비를 기다리며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유화과 석사과정을 마 치고 아홉 번의 개인전과 40여회 단체 기획전에 참가했음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고, 그림과 관련한 강의를 하면서 얘기하는 일을 제외하고 태어나서 처음 으로 남들 앞에 섰습니다. 늘 화요일이 강의랑 겹쳐 오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휴강이 예정 되어 있어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걱정도 됩니다. 김해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부산광역시로 편입이 되어있습니다. 주변은 논과 잔잔한 먼 산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장들이 많고 논 위로 고속도로도 생겨 그때에 비해 삭막합니다. 그 당시 미술학원이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경험을 할 수 없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부터 크레용을 보면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김해군의 실기대회에서 입상을 하게 되었는데 기분도 좋았고 주변의 칭찬에 그림 그리는 일을 즐겨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미술부를 하게 되면서 12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27 미술대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미술대학 을 가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3학년이 되어서야 미술학원을 다니며 혼자 습득한 그림 그리는 습관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장학금도 좀 받고 하면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체 활동도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자아도 없고 한계를 느 끼면서 94년 유학을 중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사실적인 인물 공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 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있었지만 중국이 사실적인 그림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운도 좋아 시간 적인 낭비 없이 과정을 마칠 수 있게 되었죠. 그전에는 개인적으로 나를 돌아 볼 시간과 여유가 없었 는데 그런 여유가 있게 되고 역량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가 한국 에서 가졌던 사회적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개인적인 시간보다 사회적 역할을 깊이 생각하다 보니 책임감과 의무감이 무겁게 오랫동안 있었는데, 어느 시 기에 한계에 다다르면서 힘들었습니다. 그 시기는 청년미술공동체, 미술대학학생연합회, 청년미대한 마당이라든지 조직 활동을 모색하고 실제로 해 내던 시기였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있었고,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지만 제 스스로 눈을 뜨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며 그런 활동을 하게 되었 어요. 중국(북경중앙미술학원)에 가서야 미대를 가면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것들을 제대로 경험하게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27

128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맡겨 놓는 것이라면 중국은 열려 있었고, 모델 수업은 어린이 를 제외하고 노인들까지 풍부하고 다양하게 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주일에서 한 달씩 기차를 타고 만리장성이라든지 돈황이라든지 남부지역까지 돌면서 사생하고 저녁이면 평가하였던 시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역량이 많이 키워졌던 것 같아요.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좋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수업 속에서 만족을 얻 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단체 활동과 집단창작은 개 인적 욕심을 채워내지 못했어요. 막연하지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논리적인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들에 한계를 느끼거나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 생 각이 중국 유학에 오르게 한거죠. 유학에서 돌아온 어느 날 꽃이 제게 다가왔어요. 매화가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데, 이런 것 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꽃에 대한 표현이 다양해지고 만족스러워 졌습니다. 강박 처럼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것보다 느낌이 강하게 있는 것에 대해 끌림이 가면 저절로 그려지는 듯합 니다. 그 전에 꽃을 잘 몰랐어요. 매화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살아가야 될 문제라든지 여러 가 지 고민 속에 있던 차에... 밀양에 있는 선배 집을 놀러 갔다가 달밤에 핀 매실 밭의 매화향과 꽃을 보게 되면서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수향매, 화엄사의 홍매, 김해에 있는 고목인 매 화, 섬진강에 무리로 핀 매화들을 보면서 그림의 소재로 삼습니다. 그저 산골에 슬쩍 피어 있는 매화 들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고 풍기는 향도 좋아요. 그 매화들이 지금도 제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 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어느 정도 제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그려내는 일도 여전히 고 민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꽃을 그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상이 여유롭습니다. 특별히 고뇌하고 고민하는 것에 나를 두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 단 순하게 삽니다. 능력도 없지만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며 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보질 못했 12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예술가들

129 고, 가지치기를 해야 될 가지도 없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는 일(느낌)이어야 하게 되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찾아가며 많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꽉 막힌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때는 영화(시네마데크)를 보러 다니기도 합니다. 제가 놓여 있는 주변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는데 3,40대부터 60대까지 수강생들이 옵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생계유 지는 예고에 강의를 10여 년 나가고, 도서관 문화센터에서 강의하여 왔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일 에 몰두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막연하지만 미술시장이 총체적으로 난국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난국인 시간입니다. 매화를 통해서 제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 욕구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29

130 189 >> 황경민 카페 헤세이티 2014년 9월 2일 부산 영도 출생. 대학에서 시공부. 평생 놀았음. 재작년 2월 부산에 내려옴. 물장사 시작. 카페헤세이티 대표 종업원, 입간판쟁이. 입간판 1,000여편 씀. 우주 최초 입간판 장르개척자. <불법무단사설야매 시인학교> 교장. <옥상의 정치> 필자. 올 가을 입간판 묶어 책 출간. 지금 여기, 그리고 시인 시인 황경민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저는 시인이 자기 입으로 시인이라고 하는 게 듣기 싫습니다. 시인들끼리 김시인, 박시인 그렇게 부르는 걸 싫어합니다. 카페 헤세이티를 하며 입간판을 쓰고 있습니다. 카페 운영도 하고, 노래도 만들고, 부르기도 하고, 기타도 가르치고, 시도 가르치고, 야매로 하고 있습니다. 헤세이티는 부산의 인문학 공부모임 <금시 정> 친구들이 만든 카페였습니다. 시민과, 대중과 소통하자는 취지로 카페라는 장소를 만들어서 1년 몇 개월 운영하다가 운영난으로 카페를 접게 되었어요. 그 친구들이 카페를 만들 때 옆에서 지켜봤지 요. 돈이 없어서 아주 힘들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닫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닫게 되더라도 버텨보 다가 닫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타까워서 지금 아프리카 가 있는 김동균씨와 함께 헤세이티를 인 수하게 되었습니다. 25년 서울에서 살다가 카페 때문에 부산에 내려 왔습니다. 김동균씨는 농업대학 13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31 에서 버섯을 전공했는데, 2년을 다니다가 휴학하고 저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작년에 복학 하러 올라가서 졸업한 뒤 아프리카에 버섯 기술을 전수하러 가 있습니다. 헤세이티를 운영해온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인문학을 말하는데 인문학자들이 쓰는 언 어가 대중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쓰 는 입말, 쉬운 말로 인문학적 소통을 하고자 했습니다. 부산을 왔으니 부산 말을 써야겠다고 생 각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알 수 있게 말을 쓰려고 했습니다. 책을 보려면 우리 카페에 오지 말고 책은 각자 자기 집에서 읽고, 카페에 와서는 읽은 책을 이야기 하든지 토론하라고 했습니 다. 책 안 읽는 인문학 카페, 책을 못 읽게 하는 북카페입니다. 입간판은 천편 넘게 썼습니다. 거의 매일 쓰게 되었고, SNS에서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 다. 헤세라는 고양이랑 입간판이 유명해졌어요. 헤세는 주워다 기른 고양이입니다. 그동안 쓴 입간 판을 묶어서 내년 초에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25년을 살다가 왔지만 부산 영도 출신입니다.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었고 나와서 살다보니 부산에 와야겠단 생각을 안했습니다. 문예창작을 전공했는데, 소설을 써야겠단 생각을 했 습니다. 대학에 가서 글을 안 썼습니다. 그 때 대학에 가면 사물놀이를 배울까? 영화동아리에 들어갈 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갈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을 갔는데 꽹과리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렸 습니다. 풍물패에 들게 되었습니다. 풍물을 하면 학습도 해야 하고, 연습도 해야 하고, 데모도 해야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1

132 하고, 할 게 많았습니다. 군대를 갔다가 제대를 하고 시를 썼습니다. 독학으로 1년 반 정도 배우다가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 후 우연히 MBC라디오 캠페인을 쓰게 되었어요. 세계로 50년, 미래로 50년 그런 캠페인을 쓰게 되 었는데, 9시 방송 전에 5분 정도 캠페인이 나왔습니다. 그 캠페인을 쓸 때 일주일에 두 번 3~4편 글 을 쓰면 원고료가 나왔습니다. 집에서 글 쓰면 되었기에 취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대하고 복 학 하니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전반에 유행했습니다. <비포선라이즈> 같은 영화가 나 왔고, 담론이 개인주의로 옮겨졌습니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죠. 그게 저랑은 맞지 않았습니 다. 저는 생태주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방송국에서 작가 생활을 좀 하다가 농사를 지 으러 갔습니다. 97~98년쯤인데, 그 당시 귀농하는 사람들이 초창기여서 사람들이 실패를 많이 했습 니다. 저도 실패하고 다시 올라와서 혼자 놀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궁리를 했습니다. 부산이 고향이고, 부산에 오면 어머니도 계시니 잘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부 산이 아주 개방적이기도 하지만, 아주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굴러온 돌 느낌을 받았어요. 카 페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부산의 시민운동이랄까, 문화판에 대해 욕하는 입간판을 썼 습니다. 아직도 부산에서 헤세이티가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못 받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렇지 않은데, 헤세이티는 그렇습니다. 대놓고 배척하진 않는데, 배척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부분 중앙을 해바라기합니다. 막상 지역 문화, 지역이 주체적으로 자립하는 문화에 대 해 이야기하는데, 만나면 열패감이랄까? 열등감이 보입니다. 부산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반적 으로 그럴 거예요. 실제로 지역 문화는 고유성이 있습니다. 저는 입간판을 사투리로 씁니다. 왜냐하 면 부산의 표준말은 부산말입니다. 부산에서 부산말을 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글을 쓸 때도 부 산말을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말은 부산말을 쓰고, 글은 서울말로 쓰는 일이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어 있습니다. 지역 내부에서 인지하면서 바꾸어가지 않으면 중앙과 비교하게 됩니다. 인문학의 본질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리가 편하면, 등 따시고 배부르면 고민을 안 합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야 이 세상을 제대로 보려고 합니다. 불편함이 있고, 긴장 속에 있어야 만 제대로 봅니다. 13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33 카페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형, 동생, 친구, 삼촌 이런 관계가 아니라 어떤 긴장을 유지하면서 탈핵 공부 모임처럼 어떤 모임을 같이 합니다. 그렇게 만나서 같이 하는 게 좋고, 그 나머지는 다 하기 싫어요. 카페가 잘 유지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적자입니다. 입간 판도 저 혼자 쓰고, 모든 것을 저 혼자 합니다. 헤세이티는 본질적으로 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는 망해야 하고, 망한 뒤에 누군가가 이렇게 해서 망했는데 앞으로는 다르게 해보자고 다 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인문학 카페는 망해야 합니다. 조합 방식이든, 회원제 방식이든, 공 동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일을 왜 추진하지 않느냐면 그 것도 결국에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못 하고 있지만 그렇게 넘어가야 할 겁니다. 그래서 인 문학 카페이든, 아니면 입간판을 쓰는 행위든,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할 일이에요. 찌질한 사람들, 아닌 사람들, 없는 사람들이 우리 문화, 우리 기반을 만들어갈 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 많아져야 해요. 장소를 매체로 해서 생각을 나누고, 일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3

134 190 >> 2014년 9월 16일 윤웅태 부산반빈곤센터 현) 부산반빈곤센터 대표 부산장애인차별철페연대 감사 전) 부산철거민연합 연대사업팀장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조직부장 아시아공동체학교 준비위 기획단장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 사업지원팀장 주거복지부산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당시 건설교통부가 주거가 열악한 주택(인구)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 업입니다. 1단계, 2단계, 3단계 사업으로 나누어서 추진하였는데 만덕5지구는(당시에는 만덕5지구 와 만덕8지구로 나누어져 있었음) 2단계사업으로 2001년에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에서 서울 강남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과 경기도 판교 등 신도시의 개발 사업 이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다 는 기사가 거의 매일 주민들을 유혹하고 있던 때입니다. 이 당시 부산 지역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도 개발세력들이 현재 평수대로 아파트를 주고, 그래도 남는 평수가 있 으면 현금으로 보상해주겠다 는 달콤한 말로 주민들을 현혹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주민들 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되면 좀 더 나은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 는 생각을 하게 되어 주민들이 13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35 동의를 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물론 이 동의도 현재진행 중인 만덕5지구 지구지정해제 소송에서 밝혀졌듯이, 토지 소유자 1/2와 세입자 1/2의 동의가 있었다는 것은 조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LH공사는 기존에 주민에게 한 약속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공시지가(평당 240~300만 원 정도)로 보상한다고 공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돈으론 주변의 전세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 문에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차라리 내 집에서 내가 살겠다 며 2011년부터 지금까지 싸워 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LH공사와 북구청, 부산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주민들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만덕 주거환경개선사업 주민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당시 만덕3지구에 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외롭게 싸워 온 어르신과 상담을 하였는데, 이 분은 2호연립에 홀로 거 주하시며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연인 즉, 주민 몇 분과 LH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 였으나 패소하고 항소를 하려했으나 주민들이 뜻을 모으지 못해 항소하지 못하자 수소문 끝에 제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 방문과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2007년 대책위를 결성하고 싸웠으나 LH공사의 회유와 내부분열로 2008년 주민들은 흩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대책위는 해소되고 주민들 은 흩어졌으나 몇 분과는 계속 인연을 가지게 됩니다.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함께 대책을 강구하였 으나 그날 이후로 그 분을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5

136 부산반빈곤센터 는 2010년 4월 1일에 출범을 하는데, 그 전에 주거복지 부산연대 에서는 상임 집행위원장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지역 전반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들과 관련하여 주민 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싸웠더랬지요. 재개발, 재건축이 대체로 사기처럼 진행된 일이 많습니 다. 처음 보상을 약속했던 것에서 실제 집행되는 것이 턱없이 적게 되니 주민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1998년 말부터 부산철거민연합 (부철연)에서 연대사업팀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부산은 80 년대 중후반부터 도시정비사업으로 여러 곳에서 철거가 진행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철거민대책위원 회 가 철거 지역별로 생겨났어요. 당시 주민들과 연대단체들의 일은 용역깡패들의 강제 철거를 온몸 으로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활동가와 주민들이 구속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점점 활동가들 과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철연은 위기의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자청해서 실무를 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2002년 1월을 마지막으로 부 철연은 단체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때는 막노동 등을 해서 돈을 벌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철거민 활동이 대학생들과의 연대가 계속되어야 했는데, 2002년 졸업생들을 마지막으로 연대활동을 계속 해 나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돈 버는 일들을 했습니다. 일용직노동자 등을 하였는데, 당시 급식을 위해 학교마다 식 당을 만든다고 두꺼운 벽을 뚫어 문을 만들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그러던 차에 2002년 8월에 화물연맹의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에서 화물노동자 조직을 만들 계획 이라며 함께 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상근 활동가 5명으로 시작이 되는데, 저는 전국운송하 역노동조합 조직부장으로 부산경남본부 교육선전부장을 하면서, 부산, 울산, 경남지역 등에서 교육 과 조직, 교섭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활동비를 주는데, 여태까지 활동을 하며 활동 비를 처음 받아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전의 조직에서는 돈을 벌어 가면서 했는데, 노동조합에서는 13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37 활동비가 나오더군요. 하여튼 2002년 10월 화물연대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화물연대 가 발족하면서 조합 활동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화물연대 는 100여명의 발기인으로 시작되었지만 2달 쯤 1,400명으로 늘어 나고, 2003년 4월 말에는 10,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밤낮으로 팩스로, 우편으로 인편으로 가입원 서가 전국에서 들어 왔었습니다. 그 이후 화물연대 는 수많은 투쟁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선봉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화물연맹의 산별조직인 전국운송노동조합과 화물연맹의 화물연대 가 조직적인 통합을 결정하게 됩니다. 저는 2005년 10월에 빈민운동으로 복귀할 것을 결정하고 노 동조합을 그만두고, 이후 빈곤운동을 준비하게 됩니다. 빈곤한 사람을 빈민이라고 얘기하는데,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켜 빈민 이라고 말하는 경 우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노점상운동을 하면서 철거민운동을 하기도 힘들고, 철 거민운동하면서 노점상운동이나 불안정노동운동을 하기도 힘들며 또한 빈곤운동하기도 힘 든 것이 사실입니다. 각각을 따로 책임질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빈곤 이라는 개념으로 통일, 확 장하여 빈곤운동을 하고자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부산반빈곤센터 는 재개발과 주거권 문제, 생존권, 불안정노동,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관한 상담, 교육 등과 이와 관련된 연대 활동을 하 고 있습니다. 철거민운동과 빈민운동, 노동조합운동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이 경 험들을 잘 살려보고자 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7

138 191 >> 사윤주 갤러리 마레 2014년 9월 23일 꽃피우다 현) 갤러리 마레 대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인회 회장 부산 화랑협회 이사 전) 미술학원 연합회 부회장 조선일보 미술 심사위원 Color art Academy 색채 연구위원 갤러리를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장소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갤러리 마레 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다인데, 마레에서 수영강과 해운대 바다가 보인다는 이 유 하나만으로 나머지는 노력으로 풀어 나가기로 하고 시작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미술 아트페어에 나가서 열심히 홍보하고,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많은 경비와 사전 준비 가 필요한 것이 페어의 특성이라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트렌드에 맞는 작품, 깊이 있는 작품을 골라야 하기에 자연히 작품에 대한 안목과 미술에 대한 깊이가 쌓이게 되는 거 같아요. 지금 부산에는 약 130여개 정도의 크고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들로 문을 닫 고 새로 시작하는 갤러리가 있기도 합니다. 13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39 경제적인 능력이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일이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화 려함보다는 많은 고충과 노력이 필요한 일 중 하나가 갤러리인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많이 부족하고 어려움을 수반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늘 행복하고 지금도 노력하 는 중 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이외에는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본 게 없는 거 같습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 한다 고 칭찬을 들으니 자연스레 그림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태리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함께 공부하고 돌 아와 13년 간 미술학원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제가 좋아하는 일 을 하니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학원을 하면서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 수업 내용이나 환경 등을 남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오는 친구들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게 하며 그 림과 친해지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했던 것 같아요. 뭐든지 시작하면 집중력이 있는 편이라 미술 학원을 하면서도 다행스럽게 몇백 명의 원생을 지도하는 규모의 학원으로 커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 시점에 평소에도 늘 꿈이었던 갤러리를 시작하게 되고 1,2년 동안은 어떻게 해 왔는지도 모 르게 지나왔던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는 갤러리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전시 이외에도 인문학 강좌나 미술강의 등 홍보에 주력했습니다. 갤러리에 그림을 구매하러 오시는 분들은 주로 사업하는 분들이나 사모님들이 많지만 요즘은 직장 인들도 좋아하는 작품을 할부형식의 부담 없는 방법으로 구입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주로 고객에게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39

140 권하는 그림들은 독특함, 일반적인 회화보다는 알리고 싶은 작가들, 사진 중에서도 테마를 가지는 특 별함이 있는 것들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갤러리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매까지 이어져야 하니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만 전시하지는 못합니다. 갤러 리스트가 작가의 작품을 판매로 연결하지 못하면 갤러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 습니다. 그런 말씀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을 갤러리에서 좋은 홍보와 판매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갤러리의 소임을 못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 래서 판매에 대한 갤러리의 부담감은 저나 다른 갤러리나 마찬가지로 늘 커다란 숙제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작가를 얘기하라시면, 그림도 사람이 하는 작업인지라 솔직하게 작품도 좋고 인격적으로 존경스럽고 좋은 작가분께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거 같습니다. 저는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에는 형 태보다는 작업의 색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색을 잘 쓰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한 느낌이 더 나는 거 같습니다. 미술은 사랑입니다. 미술과 삶을 떼어놓고 생각 할 수는 없죠. 저도 작업을 열심히 했던 시간이 있었네요. 저의 작품을 보시는 분들은 대개 독특하다는 얘기들을 14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41 많이 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붓을 놓은 지가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갤러리를 시작하면서 좋은 작품들과 늘 만나다 보니 제가 그리는 그림 보다는 좋은 작품의 작품을 대하는 행복에 더 빠진 거 같 습니다. 더러 갤러리 대표의 집은 어떠할지 궁금해 하시는 사모님들이 제법 있습니다. 갤러리가 아닌 저의 집에 걸린 작품을 사시는 경우도 다소 있는 편이구요, 작품을 보는 느낌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될 때 가끔씩 홈스튜디오에서 티타임을 갖기도 하지 요. 미술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잘 그리는 작가들이 있는데 시장에 잘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발굴이 되어 작품이 소개되고 작가가 알려지는 일 또한 갤러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고 선진대열에 합류하여도, 문화가 함께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 사회는 진정한 선진국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문턱이 아직도 너무 높기만 한 미술시장의 발전 을 위해서는 갤러리가 해야 할 노력도 많거니와 더불어 관객이 자연스럽게 소통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큽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외면 속에 문화는 자꾸만 뒤로 뒷걸음쳐지게 마 련입니다. 가까운 미술관, 작은 갤러리에 들러 작가의 작품과 자꾸 눈 마주치다 보면 어느새 미술과 친해져 있는 나를 만나보게 되실 겁니다. 저도, 저희 갤러리도 그런 아름다운 문화를 꽃 피울 수 있 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41

142 192 >> 홍성률 2014년 9월 30일 드럼&퍼커션 연주가 드러머, 퍼커션연주가 음악감독 및 프로듀서 문화예술교육자 드럼 뚜드리 고스락2집, 올라이즈밴드3집, 쿨8집, 이지라이프1집, 쥬드2집 앨범참여 다카츠키 재즈 페스티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선셋라이브, 양산시립합창단, 진해시립합창단, 진주전통국악단, 효산가야금단, 다수오케스트라 세션연주 다원예술 "판판 프로젝트 음악 감독 및 연주가" 잉스문화예술 교육연구소 수석 연구원 부산재즈협회 정책위원장 동아대, 동부산대 출강 북 은 한국말로 해서 북이고, 영어로는 드럼입니다. 퍼커션은 드럼 외에 여러 가지를 칭하는 것입 니다. 두드려서 쳐서 소리 나는 것을 타악이라고 합니다. 드럼을 치지만 북이란 단어가 친근감이 있 어서 북이라고 말하길 좋아합니다. 하루일과는 매일 조금씩 변화가 있습니다. 요즘은 학교 수업이 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갑니다. 대학교 수업도 가고, 여기저기 수업을 합니다. 오후에는 연습이 있고 저녁에는 레슨을 합니 다. 밤늦게 연주가 있는 날은 연주를 하고, 연주가 없는 날은 사색을 즐기곤 합니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9급 공무원 딴따라라고 말합니다. 피곤하면 일찍 자고. 취미 생활 도 하고, 연습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술자리는 좋아하는데 술이 몸에 받는 스타일은 아닙니 다. 술 안 먹어도 술 취한 듯이 잘 놉니다. 14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43 예전에는 기타나 다른 악기를 쳤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게 꿈이었는 데, 기타를 하니까 속에 천불이 나더군요. 다른 악기에 비해 세심한 부분이 있는데, 17살부터 기타를 3년 정도 치다가 20살부터 결단을 내렸습니다. 기타는 아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밥 먹 고 살 정도는 아니었어요. 처음 스틱을 잡았을 때 손으로 느끼는 진동에 짜릿함이 느껴졌습니 다. 첫날 연습할 때 피도 나고, 열 손가락에 물집도 생기고, 하지만 짜릿한 전율이 좋았습니 다. 소리가 바로 느껴지는 게 좋았어요. 그때부터 드럼을 쳤습니다. 20살 때부터 드럼을 시작했 는데 많이 늦게 시작한 편이었어요. 초창기에는 레슨을 받았지만 그 당시는 혼자 연습하는 게 많았습 니다. 혼자서 연습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4~5시간씩 연습했고, 한창 많이 했 을 때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 연습했습니다. 저는 드럼 외에도 다른 악기들을 하는 것 또한 좋아합니다. 한번 씩 연주 때 노래 부르기도 합니 다. 요즘은 다른 장르와 결합해서 공연을 하는 걸 즐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무용하는 분들과 함께 하 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이 있는 데서 하기도 하고, 즉흥으로 하기도 합니다. 황당했던 경우가 있었는 데, 무용하는 분이 산고의 고통을 연주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어떤 건지 되게 황당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악기를 놓고 원초적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분이 선입견을 깰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저 하늘의 별을 따는 느낌. 강가에 홀로 남아있는 느낌. 그런 주문을 하면 저도 그 느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43

144 낌으로 연주를 하는데 같이 작업하시는 분들이 좋다고 말합니다. 느낌을 갖고, 제 감정을 표현하는 거니까. 공연을 하다보면 제가 변신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농도가 짙을 때도 있고, 옅을 때도 있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있습니다. 주위가 보이지 않고 집중도도 높아집니다. 고등학교 때 노래자랑을 나가서 노래 부르고 상 탔던 기억이 2번 정도 있습니다. 대학교에 서 테크니컬 이란 밴드 동아리를 했습니다. 그 후 친구들, 형님들과 모여서 사오정 이란 팀을 만 들어 1년 정도 활동을 했습니다. 제대 후 1년 정도 더 활동했어요. 서울 가서는 꽤나 잘나가는 고스 락이란 인디밴드를 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2년 반 정도 했는데 29살 때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들었 습니다. 그때 서울 생활이 힘들고 사회를 삐딱하게 봤었죠. 그 무렵 악기를 1년 정도 때려치웠습니 다. 제일 큰 문제는 생활고였습니다. 10년 정도 열심히 해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29살 정도 되니 남들은 취직해서 결혼준비하고 그럴 때인데, 나는 악기를 하지 않으면 거 지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 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음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부 모님과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니곤 했었죠. 결국 취직은 안했어요. 취직을 하려고 여러 가지 사항 들을 봤는데, 음악을 안 하고 보통의 잣대로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아무 능력이 없더군 요. 서울에서, 무대에서 사람들 박수도 받고 그랬는데 갑자기 그렇게 되니 힘들더군요. 그래서 공무 원 공부도 해보았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장염이 걸리더군요. 당연히 떨어지고 공부도 14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45 그만했습니다. 그 당시 되게 힘든 시기여서 표정이 되게 어두웠습니다. 길 가다가 불심검문도 당했 어요. 좀도둑이 이 동네에 많은데 가방 한번 봐도 되냐? 제가 거울 봐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연 습실에 한번 갔다가 1년 만에 드럼을 쳤는데, 그 끝에 거울이 하나 있었어요. 제 눈이 딱 마 주쳤습니다. 그 기분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질풍노도 시기 전에 밝은 저의 얼굴이었습니다.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음악을 함에 있어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연주를 할 수 있 음을 감사하게 되었죠. 부산에 와서 회복을 하고, 뭔가를 해보려 하는데 우연히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 계기가 터닝 포인 트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배가 고파도 이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100% 들었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음악하는 데 힘이 되고, 함께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록을 하다가 재즈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재즈를 시작하고 또 여러 가지 장르도 하 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타악기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재즈 하는 팀들을 자주 만났는 데 재즈의 선율이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듣고 좋고 그러면 됩니다. 너무 많이 분석하 려 하지 말고 너무 많이 진지하지 않으려 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다 좋습니다. 제 성 향이 한 장르보다 넓게 음악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느낌들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이 사람들과 이런 걸 할 때는 이런 느낌, 저 사람들과 할 땐 또 다른 느낌,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나만 하면 지루 할 수 있잖아요. 예술은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예술을 원초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저의 무한한 가능 성을 열어 놓으려고 합니다. 다양한 예술을 저의 언어로 소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저 의 언어로 즐거움을 공유하려 합니다. 예술은 즐거움입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45

146 193 >> 차재근 2014년 10월 7일 문화상상가, 문화소통단체 숨 문화판에 뛰어들다 현) 문화소통단체 숨 대표 북구 창조문화활력센터 넌버벌 퍼포먼스 <힙합고 D반 시즌1~3> 제작 외 다수 문화콘텐츠 제작 <공원아 놀자> 축제 기획(2010~2013), 광복로 <차 없는 거리> 공연(2012), <조선통 신사> 공연(2011~2012) 외 다수 축제 및 공연 기획 <복병산 창작여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필 예술가 레지던스로, 중앙동 미문화원 맞은편에 복 병산 그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임대해주는 형태로 집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임대 받기 위해 10년을 계속 시도하다가 딱 10년째 그 집에 살게 되었네요. 2년째 살고 있는데, 보 통 5년 계약입니다. 전체가 한 집인데 나누어서 분할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 집을 구할 때 주변에 선 배님과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때 돈이 없어서 일 년치만 주시면 내가 어떻게든 유지하 겠다고 했습니다. 일 년을 쓰고 그 다음은 문예진흥기금을 받아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필하는 작업 실로 작가들이 입주해서 살고 있습니다. 웹툰 작가, 소설가, 영화 연극 시나리오 작가들이 와서 꾸준 히 작업하고 있어요. 북구에 <스트릿 624>가 만들어졌는데, 위탁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그 공간은 시에서 조성해서 진 14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47 행되었습니다. 사하구는 젊음의 거리, 사상구는 Cats 공간, 북구에는 스트릿 624라는 공간이 만들어 졌습니다. 공연장 108석, 커뮤니티 공간 3실이 있고, 춤추는 친구들 연습실, 카페가 있습니다. 저는 예술가를 꿈꾸었거나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뒤늦게 대학을 들어가서 창업 프로그램으로 고민을 하다 아트마켓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술가들을 위한 수공예 마켓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2003년도 부산에서 아트마켓을 처음 열었습니다. 학생문화회관에서 아트마켓을 했 죠. 그 당시 여러 친구들을 만났는데, 우리가 문화공간을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범 내골 상공회의소 건너편에 아트마켓, 레지던스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2년 만에 보증금 다 까먹고 쫓 겨났어요. 그 이후 여러 곳을 전전했습니다. 29살에 시작했는데 4,5년 지나니까 다른 할 일이 없었 습니다. 36살에 취직하기도 애매하고, 발을 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같이 했던 친구들도 많았습니 다. 순간순간 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들이 많았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 를 만들어 볼 거라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스트릿 댄서들과 같이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춤추는 친구 들과는 지금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공호흡이라는 거리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부산대, 경성대, 신라대 등 각 예술대 학생들과 교보 문고에서 삼성생명 거리까지 거리 행사를 했습니다. 춤추는 친구들, 공연하는 친구들, 여러 학생을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47

148 만났고 연계를 시켰죠. 인공호흡을 계기로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사람이 숨을 쉬는 공간이 란 뜻으로 인공호흡 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거리가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 고 싶었습니다. 서면에 차 없는 거리를 하면서 비보잉도 하고, 아트마켓하고, 다양한 일들을 했어요. 동생들이 전화해서 형, 술 한 잔 해요. 하면 내가 필요하구나 싶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필요한 인간으로 각인이 될 때가 행복합니다. 저도 이용될 때가 좋고 상호 도움을 줍니다. 어느 순 간에는 제가 도움 준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받기만 한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프랑스에 한 달 갔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기획자입니다. 우연히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데 기회가 왔습니다. 2007년도에 문화부 프로젝트에서 원하는 지역에 한 달 동안 가서 지내다 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팁을 하나 드린다면, 문광부 사이트에 들어가서 모든 연 계된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세요. 그럼 메일링을 200개를 받게 되고, 문화관련 정보들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기업 사이트도 다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거기에도 좋은 정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차 한 대를 공짜로 받을 수 있을까? 현대 자동차 사이트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기회로 다큐멘 터리를 찍었고, 재작년부터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1차 편집은 끝났어요. 동남아 버스킹을 했습 니다. 공연이 별로 없는 시기가 1월~3월 사이입니다. 4월부터는 공연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니 그 시기에 갈 수 있는 곳이 동남아가 적합했습니다. 우리끼리 가면 재미가 없으니 주변에 같이 갈 사 람들을 모아서 같이 갔습니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8명이 갔는데 비행 기 값과 방값으로 일인당 80만원을 가지고 18박 19일을 갔습니다. 동남아에서 버스킹을 했는데 반 응이 좋았습니다. 태국에서는 지역 애들과 같이 공연하고, 말레시아에서도 지역민과 함께 했습니다. 2007년도부터 1년에 3개월 정도는 외국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갈 수 없으니, 돈을 받 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되었죠. 문광부 프로젝트로 다녀왔습니다. 여러 공간들을 둘러보았고 그때 봤던 문화 공간들이 모토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연구월을 주자. 외 국을 안 나가도 3개월은 쉬자. 그 시간에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에 가면 한군데서 한 달 두 달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체코에 한 달, 베를린 한 달 있었습니다. 한 도시에 한 달 지내는 14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예술가들

149 데, 짧으면 2~3주 머물러요. 유럽을 갔을 때 Le104 공간을 한창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Le104는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장례식 장 하나가 그 주변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게 없어지면서 빈민가가 되죠. 프랑스는 가장 낙후된 지역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이 문화공간입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오픈 때 록밴드가 와서 공연을 하더군요. 엄청나게 넓은 공간인데 출입이 안 돼서 아이디카드 하나를 얻어 출 입하고 촬영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라진 공간에 대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재능이 뛰어났 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창조해 냈어요. 언제 폐허가 되고 없어질지 모르는 공간인데, 다시 지어지기 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어떻 게 변화시킬까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리는 오래된 것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거 기는 멋있었어요. 그들은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변경하는데 애를 많이 쓰고 돈을 들여 또 다른 공간으로 재창조 했습니다. 거기 있는 작가가 하는 말이 여기에서 오케스트라는 저 아이들 의 소리다. 아이들이 공차고 노는 소리. 프랑스 도심에서 아이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도심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행복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일부러 그 주변을 찾아다니는 사 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게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49

150 194 >> 박현주 2014년 10월 14일 김해뉴스 문화부 차장 책과 세상 동의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동의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수료. 미화당백화점 사보편집장 동보서적 <책소식> 편집장, 동의대학교 시간강사를 거 쳐 현재 부산일보 자매지 <김해뉴스> 취재보도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동보서적 에서 20년간 기획홍보업무와 <책소식> 편집을 맡으며, 책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매달 한국문학의 현장을 찾아가는 독자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 (동보서 적 국제신문 공동주최)을 100회 진행했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주제로 부산 중구청, 또따또가문화재단, 부산 백년어서원, 김해문화의전당, 김해기적의도서관 등 에서 강의했다. 현재도 책과 관련한 기사를 부산이야기 예술에의 초대 어린이 문예 등의 매체에 쓰고 있고, KNN 라디오 방송 클릭투데이 에서 <박현주의 북킹 토킹>에 출연하고 있다. 어질 현( 賢 ), 구슬 주( 珠 ) 박현주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일부러 이름의 한자를 물어 봅니다. 이름에 대해 물어 보면 그 다음 이야기하기가 편하고, 기억하기도 좋고 해서 잘 물어 보는 편입니다. 본적은 부산인데, 창녕 대합면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교사여서 제가 아장아장 걸 어 다닐 때 김해 이북면으로 이사를 갔어요. 지금은 이북 면이 한림 면으로 바뀌었지만, 학교 이 름은 여전히 이북초등학교 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 김해 합성초등학교 사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학교 사택에서 산다는 건 일요일 날 학교 전체가 나의 놀이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김해읍내에서 선생 딸 은 피곤한 역할이었어요. 조금만 잘못해도 부모님의 레이다에 걸려드는 그런 상황에서 반발심이 컸지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아버지가 보시는 삼국지도 읽고 왕비열전도 읽고 그랬지요. 한 달에 한 15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1 번 <어깨동무>라는 잡지가 배달됐어요. 모파상의 <목걸이>,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도 읽었어요. 뭘 알고 읽었을라고요. 글자를 봤겠죠. 무시무시하게 그려진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삽 화를 보면서 그냥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요. 70년대에 경남지역에서 학교도서관 운동이 벌어졌던 겁니다. 마침 합성초등학교에 도서관이 생깁 니다. 책이 귀한 시절이었지요. 실컷 읽었습니다. 부유한 친구네에 있는 세계명작동화를 빌려 보려 고 그 친구랑 고무줄, 살구 받기 놀이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 김해 동광초등학교는 개교 117주년, 합성초등학교는 개교 106주년입니다. 제가 김해에서 합성초 를 나왔으니 그나마 김해에서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김해에서는 동광 혹은 합성초-김해중-김해고 나 김해여고를 나와야 대우를 받아요. 김해사람들은 대개 저를 처음 보면 몇 기고? 하고 묻습니다. 예? 김해여고 몇 기고? 저는 부산에 삼성여고 나왔는데요. 칫, 그런 학교도 있나? 그럽 니다. 그래서 요즘은 합성초 나왔는데요. 라고 선수를 쳐요. 그러면 아~ 합니다. 사실은 합성초 에서 6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 부산 대신초등학교로 전학을 옵니다. 대신여중으로 진학하니 도서관(초등학교에서 본 것이 도서실이었다면 대신여중은 도서관이었습 니다)에 책이 가득 차 있는 겁니다. 이건 동네서점만 보다가 대형서점에 간 경험을 하는 것 같았습니 다. 도서관을 맛본 저는 도서관에 매일 갔어요. 그 당시에는 청소년 관련 서적이 거의 없었죠. 그 도 서관에서 세계명작을 읽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시험시간이었는데, 문제를 풀고 나니 시간이 반 넘게 남은 겁니다. 그래서 겁도 없이 <제인 에어>를 꺼내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선생님이 발견하곤 책을 뺐었다가 시험과 관련 한 책이 아니니 돌려 주셨어요. 그 잠깐의 시간에도 왜 책을 빨리 안주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어릴 때 한글도 만화를 보면서 깨쳤습니다. 아버지는 만화를 보는 것을 그다지 나무 라지 않으셨어요. 실컷 보고 나니 자연스레 동화책으로 관심이 옮겨지더군요. 제가 책을 많 이 좋아하긴 했나봐요. 책이 좋아서 문헌정보학과 로 대학진학을 했지요.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도 벌고, 글도 쓰고 싶어 학보사에 들어갔어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1

152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지,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신문을 만드는지, 그렇게 졸업을 하고 미화당백화점으로 취직을 합니다. 회사사람들은 사보기자 라고 저를 부르면서도 제가 무슨 일을 하 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단지 회장 이름, 자기 이름만 제대로 나왔는지 보더라고요. 3년을 일하고 보 니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걸 다 써먹은 기분이 들더군요. 더 이상 기획도 나오지 않고요. 모래를 손으로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다 빠져 나가고 모래를 잡았던 흔적만 남는 것처럼 허전한 겁니다. 조만간 바보가 되거나 똘똘한 후배가 들어오면 쫓겨나겠구나 싶은 겁니다. 내가 뭘 모르는지 자체를 모르니까 걱정되고, 외롭기도 하고, 나를 점검해 주는 사람도 없 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믿을 건 책 밖에 없다 는 생각을 하던 차에 동보서적 편집자를 구한다 는 정보를 듣습니다. 곧바로 일을 할 수 있는 실무자를 뽑는 조건이 저랑 딱 맞아지면서 일을 시작했지요. 동보서적에 입사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문을 닫는 순간까지 20년 동안 일을 했습 니다. 출근을 하면 매장으로 내려가서 신간을 20권 정도 들고 와 제자리로 가져다 놓고, 정독해야지 하면서 6권 정도 골라 놓으면, 한 달에 100권에서 120권 가량이 쌓입니다. 틈틈이 읽어가면서 책 한 권을 원고지 1장으로 정리를 하면서 <책소식>을 만들어 갔습니다. 밤늦게 일하거나 야근을 하는 게 전혀 짜증나지 않았어요. 항상 신간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늘 행복했습니다. 좋은 책을 보면 당장 안 읽더라도 꾸준히 샀습니다. 십일조 헌금하듯이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책을 사는 데 썼지요. 국제신문과 문학기행을 기획해 10년 동안 100회를 진행했습니다. 동보서적 같은 미련한 회사 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학기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에피소드도 많 았습니다. 동보서적이 많은 일을 했는데 1986년부터 글쓰기 대회 를 열었습니다. 글쓰기 대회 가 뭐냐 라 는 질문도 많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라는 취지였습니다. 대회 를 마치고 나서 상을 주기 위해 연락을 하면 설마 우리 아이가 상을? 하는 반응도 있었지요. 공부 를 잘 하지 못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쓴 글을 뽑았으니까요. 학교에서 한 번도 상을 받은 적 이 없는 학생은 상을 받으러 오면 무대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기도 했죠. 15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3 동보서적은 청소년연극제도 1986년부터 시작했는데, 실업계 학교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한 여학 교에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를 공연했는데, 주인공 역할을 맡은 학생의 집안환경도 연극 속 제제 처럼 힘들었나봅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이 연극을 본 뒤 울면서 학생을 안는 모습을 보며 모두 울음 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학생이 집안의 희망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인문의 힘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문제아(?)였던 학생이 연극을 통해 학교의 스타가 되기도 했죠. 연극으로 선생 님들에게 칭찬을 받고, 후배들과 선배들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주목해 주니까 그 학생은 어쩔 수 없 이(?) 모범생이 되어 학생회 간부도 하고, 나중에는 대기업에 취직까지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교보문고가 옆에 생기고, 온라인에 인터넷 서적쇼핑몰-저는 온라인 서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 다-이 생기면서 동보서적은 문을 닫았습니다. 서점이 문을 닫았던 그 해는 마음이 어지러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해 왔던 일. 라디오로 매주 2권씩 소개하는 일과 부산문화회관에서 발행하는 < 예술에의 초대>에 이달의 읽을 만한 예술 관련 책 3권을 소개하는 일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즐겁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장하지요. 책은 그 나라 문화의 최고의 정수입니다. 글자를 알면서 책을 읽지 않는 것 그건 가장 큰 손해입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에서 더 이상의 가산점은 없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3

154 195 >> 김창욱 음악평론가 2014년 10월 21일 나는 이렇게 들었다 음악학박사(Ph. D) 음악풍경 기획위원장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이사 계간 예술문화비평 편집위원 부산음악협회 부회장( ) 부산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제16, 24호 공모논문 선정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공모논문 선정(2006) 외 다수 공모논문 선정 한국음악사학회 제5회 신인논문상 수상(1999) 부산음악협회 제29회 부산음악상 수상(2004) 부산예술단체총연합회 공로패 받음(2011) 출판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홍난파 음악연구, 청중의 발견 제가 사는 곳이 당리 라는 곳입니다. 당리는 하단 쪽에 있는데 부산 4대 상권 중의 하나입니다. 서부산권, 거제 쪽으로 빠져나가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이주노동자들도 많 고 굉장히 복잡한 동네죠. 그리고 없는 술집이 없고, 없는 은행도 없습니다. 저는 시가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산 쪽에 있습니다. 하늘과 가깝고 세속과는 거리가 멀지요. 근래 제가 아주 열심히 일하는 곳은 '음악풍경'이라는 뎁니다. 일종의 문화네크워크죠. 2013년 11 월에 문을 열었고, 실제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지난 6월 달부터 시작했 으니, 아직은 7~8번 정도 밖에 안됩니다. 원래 음악기획도 하고, 장사도 좀 하려고 했는데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지요. 15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5 강좌도 한 번씩 하고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우리가 몰랐던 악기이야기 며,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나노래)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삶과 음악을 접목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지난 주에는 부산시립교향악단 플루트 연주자인 조성철 선생을 초청해서 악기에 대한 설명과 3곡 정도의 실제연주를 감상하고 악기와 연주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죠. 음악의 소통과 공감을 매개로 내년에는 음악하는 사람 말고 비전문가 중 관록이 있는 분들, 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분들을 한 달에 한 번씩 초청해서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분들의 인생 역정( 歷 程 ) 에서 큰 감동을 받았던 7~8편의 음악을 뽑아 그걸 동영상이나 실제연주로 들으면서 토크를 하는 겁 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통해 오늘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관객과 함 께 공유해 보자는 거지요. 지금까지 평론갑네 하며, 여기저기 지적질을 많이 했죠. 그런데 제 지적이 반영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한 거지요. 음악풍경의 프로그램은 가능한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것을 개발하려 합니다. 차별화되고 특화된, 말하자면 색다른 무엇을 만들 어 보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년음악가 발굴 프로젝트, 변주곡 발굴 프로젝트 등도 계획하 고 있습니다. 음악풍경에는 사장님이 따로 있습니다. 음악사회의 환경이나 음악하는 사람들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죠. 세상에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참 많지만, 이걸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사 람은 드뭅니다. 저희 사장님은 그렇게 잘 버는 분은 아닙니다만,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분이죠. 요즘 사회적 기업이란 것이 많이 생겨났어요. 더러 예술단체들도 있죠. 그러나 저는 예술단체가 사 회적 기업이 되는 것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수집이나 밥집을 한다면 실제 이를 팔아서 이익 남기기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예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사회적 기업은 '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이 아닙니까? 반드시 이익이 발생해야 합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5

156 대중예술이 아닌 다음에야 어렵죠. 1980년대 전반기, 저는 성악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 저의 노래를 듣고 감동 하거나 관심을 갖는 이가 정말 없었죠. 한 마디로 노래가 신통찮았던 거지요. 그래서 군에 갔다와서 이내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새로 전공하게 된 작곡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요. 대위법 화성학과 같은 이론을 병행해서. 얼마 안가서 이 역시 제 체질에 맞지 않더군요. 특히 이 무렵에는 서구 최신음악이라면 무조건 '최고'라는 인식이나 풍조가 많았습니다. 피아노 현 위에 탁구공을 부어 서 연주한다든지, 그 밖의 방법으로 악기의 순수한 음향을 왜곡시켜 연주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퍼포 먼스가 즐겨 행해졌죠. 저는 이러한 퍼포먼스를 왜 하는가? 퍽 의아해 했습니다. 서양음악사를 보면, 20세기 무조성 음 악, 12음 기법이 만들어지게 되는 역사적 과정이나 명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 니지요. 그냥 서구에서 높이 치는 최신양식이니까 무분별하게, 무반성적으로 수용한 것일 뿐이었죠. 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해서 나라가 결딴 나고 있던 때가 아닙니까?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저도 졸업 때는 그런 식으로 썼습니다. 커리큘럼에 따라야 했으니까요. 다 만 제목을 '씻나락'이라 떡하니 붙였어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의미였죠. 작곡에 회의를 느낄 무렵 음악과 삶, 음악과 사회, 음악과 역사를 논의한 책들이 많이 나왔지요. 이강숙 이건용 노동은 등 쟁쟁한 분들이 주창한 '민족음악론'에 크게 매료됐죠. 그래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대학원을 음악학 전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는 분 야였죠. 이걸 하고 나서부터는 이 길이 내 길이다 라고 생각되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후 회한 적이 없습니다. 뒤돌아 보면, 대학음악교육이 사회와 매우 유리되어 있었다고 생각돼요. 이게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지상주의적 태도죠. 예술은 현실과 거리가 멀고,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거지 15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7 요. 그같은 낭만주의 미학이 서양음악 수용과 함께 들어왔고, 이후 100년 동안 제도권 음악계를 지 배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음악하는 사람들이 판에 박힌 행위를 하는 것 같고 그걸 보는 게 너무 답답 했죠. 그래서 생각을 좀 하면서 사는 글쟁이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겁니다. 사실 글과의 인연은 대학 때 학교 신문사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입학 때 수습기자 모집 광고를 봤는데 원고료도 주고, 장학금도 준다더군요. 여기에 혹한 셈이죠. 평론가는 첫째 평론을 해야 하고, 둘째 자신의 평론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죠. 말하자 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그럴 자격이나 용기가 없다면 함부로 '평론가'를 쓰 지 말아야 하죠. '평론가'가 무슨 장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7

158 196 >> 2014년 10워 28일 조대일 남산놀이마당 타악퍼포먼스 타퍼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진주, 삼천포 농악 이수자 남산놀이마당 대표역임, 현 (사)남산놀이마당 상임이사 남산놀이마당 20주년 기념공연 가람지기, 타퍼 연출 서양문학으로 풀어보는 우리연희 하얀 납의 고백 연출 풍물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6~7살 때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풍물을 하셨기 때문에 외가댁에 가 면 풍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죠. 고등학교 2학년때 풍물로 진로를 정할까, 이 길로 인생을 살아볼까? 생각하고 그때부터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북이 너무 마음 에 들어서 북소리에 빠졌는데, 북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농악 북을 좋아했어요. 풍 물은 일반적으로 농악 악기입니다. 학교 동아리나 외할아버님의 지인 분들께 가르침을 받다가 전문적인 학원을 통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네가 하겠다면 해라. 집에서 도와준다는 건 기대하지 마라. 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스스로 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저에게 큰 힘이었 습니다. 풍물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사람이 자기가 의지한 대로 살 15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59 수도 없고, 의지한 대로 살아지지도 않습니다. 저도 그만두려고도 많이 했었는데 하다보니까 결국에 는 또 하게 되었어요. 어머님은 한마디로 표현하셨어요. 그게 네 팔자다. 팔자니까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억지로 하지 말라고 그만둔다거나 네가 억지로 안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거면 진작 그만뒀을 거다. 지금 하고 있는 데서 열심히 해라. 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모든 인생을 팔자 로 정의 하시더군요. 20살 때 경주에 내려가 예술단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서 일을 하면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여기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예술단이란 곳이 제가 좋아하는 전통 예 술을 하루 종일 계속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개월은 즐겁게 지냈어요. 학원에서 1년 배운 것으로 공연을 했는데, 그걸로 연습하고 공연을 하다 보니 4개월쯤 되니 지겨워지고 배움에 대한 욕구가 안 채워지더군요. 단원 중에 한분이 부산에 남산 놀이마당에 계시던 분이셨는데 술자리에서 나는 네가 풍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풍물 기량을 더 쌓는 것도 좋은데, 부산 남산 놀이마당에 가면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면 더 배울게 많다. 고 얘기 하셨습니다. 2000년에 장구 하나 보따리 들고 부 산을 내려왔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북으로 시작했지만 소고란 악기에 빠지게 되면서 소고를 더 배 우고 싶었습니다. 연주도 있지만 연희라고 해서 연주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인데, 소고의 매력은 자 유로움에 있습니다. 음악을 타면서 몸을 움직이고, 리듬을 타면서 사람을 움직이고 그게 매 력입니다. 부산남산놀이마당이란 단체가 전국에서 소고를 제일 잘하는 농악을 같이 하는 곳입니다. 처음 부산으로 와서는 엄청 힘들었습니다. 부산사람 텃세가 심했어요. 대화를 잘 하다가도 말투가 다 르면 배척하고 그 당시에는 무시하는 기분도 느끼고, 그래서 부산에서 살려면 부산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 부산 말을 연습했습니다. 텃세 부리던 사람들도 10년간 알아가니까 정도 많고 좋아요. 우리는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숙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풍물 인력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면접을 처음 보러오면 이친구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떤 성격인지를 보고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살면서 서로를 대하는 예의와 도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기본적인 인성교육을 같이 했습니다. 지금은 이전보다는 많이 약화되었습니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59

160 다. 지금은 젊은 친구들이 없어서 교육시킬 친구들이 없어요. 소고를 열심히 했습니다. 소고에서 꽹과리로 넘어왔어요. 풍물패, 혹은 농악패라고 하는데 풍물소 리는 태평소, 상쇄(꽹과리), 징, 북, 소고가 있습니다. 밖에서 농악은 연주도 중요하지만 연희도 중요 합니다. 장구를 얼마나 예쁘게 치느냐. 소고를 얼마나 예쁘게 치느냐. 치는 모습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많이 합니다. 꽹과리의 매력에 빠지면서 꽹과리 소리가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 서 꽹과리를 배우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꽹과리가 대장이기도 하고 악기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악기 입니다. 조금만 마음을 갖지 않고 치면 꽹과리가 시끄러운 소리가 됩니다. 그 소리로 사람들에게 즐 거움을 주고, 아름답게 느끼도록 치는 게 그게 매력입니다. 풍물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소고, 장 구, 징, 꽹과리를 기본적으로 다 합니다. 요즘은 풍물을 할 장소가 없어졌습니다. 시끄럽다고 신고 들어오고 거리에서 칠 곳이 없어요. 지신 밟기도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가서 치기가 어렵습니다. 시장에서는 지신밟기를 하지만 시장 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1월 1일부터 정월까지 보름 기간 안에 한 두 번 밖에는 없습니다. 그만큼 안 찾습니다. 3년 전부터 남산 놀이마당 거리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희는 거리에서 하는 음악 입니다. 풍물은 누구나 길가다가 어디서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화하기 16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61 위해서 극장으로 자꾸 들어왔지만 우리에게 전문화는 극장이 아닐 수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거리 음악인데 태생이 거리인데 거리를 버렸기 때문에 거리도 우리를 외면한 게 아닌가 싶어 요. 어릴 때는 동네에서 아무 때나 풍물을 쳤는데, 지금은 행사나 축제를 해도 신고를 하고 해야 합 니다. 풍물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원래의 목적으로 생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거리에서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는 남산놀이마당을 하고 싶습니다. 굿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은 남산놀이마 당의 슬로건인데, 그 슬로건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남산놀이마 당은 전국에서 풍물하는 단체로 최고지 않나 생각해요. 남산놀이마당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 나가 풍물을 통해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풍물을 하면서 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 밖 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산 놀이마당은 풍물로 얘기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공연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풍물을 통해서 항상 표현하 고, 그걸 통해서 세상을 바꿔나가려고 하고,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풍물의 개념과 달랐습니다. 굿으 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슬로건이 왜 달려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 년에 230회~240회 정 도의 공연을 합니다. 9월, 10월이 제일 성수기에요. 축제 기간이기도 하고 풍물 쪽 행사도 많습니다. 추워질수록 보릿고개는 같이 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공연할 때마다 짜릿함을 자주 느껴요. 좋았던 공연은 풍물로 내가 뭔가를 이야 기 하고 있구나 느낄 때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풍물로 이야기 하면서 그 속에 내가 있 을 때 그럴 때마다 행복합니다. 그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것은 남산놀이마당 와서 첫 정기 공연 때 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61

162 197 >> 정성욱 촬영감독 2014년 11월 4일 카메라에 담긴 영화 장편영화 <작별들>, <이웃사람>, <무서운 이야기2>, <아일랜드-시간의 섬> 촬영감독. 개구쟁이 두 아들 녀석들이 기억할만한 영화를 찍고 싶은 촬영감독. 제가 부산에서 영화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부산에 살고 있어서인데요, 서울은 여러 모로 지내 기도 만만치 않고 연고가 없기도 하구요. 어쨌든 지역을 떠나서 한국에서 영화 일을 한다는 것이 넉 넉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나아지면 좋겠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대개 길 드(조합)가 잘 되어 있어요.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길드에 가입되어 있어야만 하지 요. 조합에 소속되어 있어야 촬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또한 에이전시 시스템이 잘 되어 있 어 그곳에 소속되어 일을 소개 받고 투입되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학연, 지연 같은 인맥의 형성에 따라 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제가 그나마 제도권에서 영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독립영화를 하면서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풍 토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촬영감독으로 일찍 일을 시작한 것도 그 16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63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작업한다는 필모가 제작사나 투자사의 담당자에게 늘 색안경을 끼게 만들었 죠. 실제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주로 찍어 왔는데 정성욱 촬영감독을 쓰는 일을 재고해 보라는 말 을 감독에게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려 왔던 영화를 눈앞에서 필모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많은 영화인들 과 호흡하며 영화를 만들고 싶으며 또 삶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저와 제 가족의 터전을 지키는 일 이 가장으로서 제가 할 도리이니까요! 저는 <만추>, <바람난 가족>, <거짓말>, <카트> 등을 촬영한 김우형 감독에게서 촬영을 배웠습니 다. 2001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부터 촬영감독 조수로 활동을 같이 했지요. 영화와 삶 두 가 지 영역에서 제게 멘토 같은 분입니다.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은 전수일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입니다. 35mm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데, 그 즈음 필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없어지는 추세였기에 제 데뷔작이자 마지막으로 필름을 사용해 촬영한 영화입니다. 작품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이래저래 일거리로 광고도 찍고... 제게는 화면을 구성하는 다양 한 방법을 터득하게하고 움직임을 연구하는 기회를 주며 동시에 생계를 해결케 해주는 보물 같은 일 들이었습니다. 저는 2008년에 결혼을 했고 아내는 다른 일을 하다가 지금은 아이들 키우느라 전업 주부로 있습니다. 15년 정도 촬영 일을 하다 보니 저는 나름대로 이래저래 살아갈 판이 보이기도 하 는데요. 저와 일을 같이 한 친구들이나 후배들,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미래가 걱정인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촬영을 많이 해서 더불어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늘 견디고 기 다리며 버티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립영화를 많이 경험하면서 생긴 오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지금껏 장편영화를 10편 정도 찍었는데요, 늘 찍고 나면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63

164 7~8편째 찍으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편하게 감독들과 나누기도 합니다. 최근에 제주에 가서 촬영한 영화가 있는데요. <아일랜드 : 시간의 섬>이 라는 영화인데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 만난 박진성 감독과 13년 만에 이 작품으로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뭔가 새로운 연대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서 참 즐거운 작업이 되었어 요. 저예산 영화였고 제주에서 모두 찍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여건이 좋지는 않았지만 감독님의 창의 성과 여러 배려가 스탭들과의 좋은 소통을 낳게 하였습니다. 많은 장면들을 현장에서 오랜 시간 대화 하고 계획하여 촬영하였고 그 결과를 스탭들과 함께 확인하면서는 이 작업이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 라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딘가 원하는 사건이나 인물에 카메라 를 들이대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즉흥적으로 맞춰 가는 상황이 재미있어요. 결정체 같은 걸 느끼고 희열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 중에 유독 화학작용이 잘 일어났던 몇 분이 있는데요, 김백 준 감독의 <작별들>이라는 영화를 작업하면서 촬영에 자신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버 려진 조선족 남매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인데, 한국 사회의 소외된 면을 부각시키기도 하는 영화죠. 김백준 감독과는 10여 년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고민의 시간으로 해결하여 꼼꼼하게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감독님과 함께 만든 두편의 영화는 제가 영화적 으로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휘 감독이 있습니다. <이웃사람>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억척스러운 대기업 투자사로부터 16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65 저를 많이 비호해 주셨던 분입니다. 넉넉한 인품으로 제작사 대표처럼 스탭들에게 잘 해주는 그의 인 품을 늘 배우고 싶습니다. 김백준 감독과 함께 우리 세 명이 십 수년 전 꼭 영화 함께 하자는 다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제가 두 사람에게 그나마 쓸모 있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 각을 가끔 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영화를 너무 좋아하셔서 덕분에 비디오로 보게 된 영화도 많았고, 동보극장에 아 버지 손을 잡고 ET를 보러 갔던 기억도 있고 더러 영화를 보러 갔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엔 보림극장, 삼성극장 같은 2편 동시 상영 극장에 많이 갔었는데요. 가난한 영화학도에게는 참 좋은 장소였습니다. 의외로 좋은 영화들을 그곳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공부 하기 싫으니 음악 듣고, 영화보고, 자전거 타고 영화 보러 많이 다녔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영화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소개하는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우여 곡절을 겪으며 찾아보면서 영화에 깊이 빠지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대학을 영화과로 가면 그런 영화 들을 다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대학에서도 평론이나 이론에 관심이 많 았기에 대학원을 가려 했으나 집안 형편은 안 좋고 해서 졸업 후 동숭아트센터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때 그곳에서 김우형 촬영감독과 만나게 되었지요. 16mm 필름 워크샵의 조교를 하면서 촬 영감독 김우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수일 감독님이 자신이 준 비하는 영화에 조감독을 맡으라는 제안을 했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건 촬영이다 했더니 그냥 니 가 촬영해라. 며 그 다음 날 시나리오를 주시더군요. 일주일 쯤 생각하다 덜컥 하겠다고 해 버렸지 요. 적은 제작비였지만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아끼고 아끼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작품 을 찍으면서 나름 힘들고 지쳐 혼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필름의 마지막 세대로서 제 첫 영화를 필름으로 남길 수 있게 되어 너무나 다행스럽고 아직까지도 기쁩니다. 매체가 어떻던, 독립영화이든 메이저권 영화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꾸준히 영화를 찍고 싶은 것이 제 꿈 중 하나입니다. 그곳이 부산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65

166 198 >> 이정남 극단 맥 2014년 11월 11일 비나리 극단 맥 대표/연출가, 부산연극협회 부회장 부산시지정 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이수자 주요작품 비나리, 환생신화, 독도이야기, 뮤자컬 얄개시대, 개똥할매, 신고합니다, 늙은날의 초 상, 광대유사, 동래별곡, 뮤지컬 프로포즈, 뮤지컬 박차정, 흉가에 볕들어라, 내 마음 의 풍경 등 공연 나에게 있어 연극은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신비로운 세계였고, 계획하고 있던 미래를 바꿀만한 꿈이 되었습니다. 00대학 00캠퍼스에 논술 고사를 치러 가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거예요. 야, 눈이 내리네. 시험은 치러가야겠고 눈은 내리고. 시험치러가기 싫다. 시험을 치러 가면 이 즐 거움이 사라질 것 같다. 결국 시험을 포기해 버리고 눈밭에서 그냥 놀았어요. 그러면서 그 해에 대학을 안 가게 되었죠. 지 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마 제가 연극으로 접어들게끔 한 시점 아닐까 싶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연극 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거든요. 16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67 부산에 친한 친구가 연극을 했는데 이 친구가 1989년 겨울에 갑자기 저를 부르는 거예요. 시민회 관 소극장에서 아동극을 하는데 줄을 당겨줄 스텝이 없다며 저더러 빨리 오라더군요.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줄을 당기다 무대를 보니 뭔가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제가 조명이란 걸 그때 처음 봤거든요. 하루 이틀 하면서 야. 저것 참 괜찮네. 만약에 내가 연극을 한다면 나는 조명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죠. 그도 그럴 것이 색깔이 너무 예뻐요. 그리고 공연 하는 중에 매일 같이 풀통 하나 들고 포스터 옆구리에 가득 끼고 밤에 풀팅을 하러 다니는 거죠. 차 비도 안주고 밥도 안 사주고 매일 고생인데 그것도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무실에 늘 상주하는 선배 들이 있어요. 매일 10원짜리 고스톱을 해요. 밤새도록 따봐도 50원이에요. 여튼 그렇게 연극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 작품이 끝나자마자 우연찮게 지져스 크라이스트 슈퍼스 타 라는 작품을 부산에서 제작을 했어요. 윤복희라는 배우가 마리아 역을 하고 저는 스텝이 아닌 무 대에 코러스로 출연을 했었죠. 이때 배우로 첫 입성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게 참 좋고 재미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죠. 전공도 다른 나에게 연극 연출은 어려운 시작이였습니다. 무모한 도전들을 시작했습니다. 부산 연극제에 출품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20대 최연소로 연출상, 단체 대상, 전국연극제 장려상 수상... 게을리 하지 않았던 시간들의 결과로는 충분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67

168 작품 제작하고 지원 사업을 받아도 1년에 600만원 최대 1000만원에다 이게 매년 받는 게 아니니 까 공연은 해야 되겠고 단원들한테 차비는 줘야 되겠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 니 전국에 연극 경연대회가 여러 군데 있더라구요. 초반에는 야외공연도 하고 노가다 정신으로 멘 땅 에 헤딩하며 2~3년은 힘들게 했어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니 경연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방법이 생기더군요. 전국의 경연대회에서 10여 차례의 단체상과 5번의 연출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3~4년 정도는 가는 데마다 상을 다 받으니까 별명을 얻게 되었어요. 머니 헌터라고. 상금으로 금련산역 6번 출구 소극장을 만들었습니다. 소극장에서 저희가 공연을 하기도 하고 저희 가 계속 공연을 할 수 없으니 대관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들이 공연하지 않을 때는 젊은 친구들 에게 저렴한 대관료로 제공을 하는 거죠. 연극은 어렵고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극단을 단지 운영이 아니라 경영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시작이 한국 공연의 세계화였습니다. 아비뇽, 유럽을 가기 전에 사라예보, 터키를 먼저 갔었고 유럽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는가가 궁금해 전시공간에서 공 연을 했죠.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예술을 하시는 분들, 평론하시는 분들, 언론 기자 분들을 섭외 해 달라고 해서 150명 정도 왔던 것 같아요. 비나리 라는 작품을 선을 보였는데 탑 퀄리티 정도 되겠다. 자신감을 갖고 한번 해봐라. 해서 호주를 갔어요. 그런데 전문가들이 보는 것과 관중들이 보는 게 너무 다른 거예요. 완전히 엎어졌죠. 168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69 그리고 아비뇽의 오퍼 조직위원장이 이 작품을 보고 이게 무슨 작품이냐 이런 걸 들고 오려면 오지 마라. 하며 박살났죠. 보편성을 가져라. 한국 색깔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띄면 성공할 수 있 다. 는 팁을 주는 거예요. 보편성. 제가 유럽의 보편성이 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작품을 보여주 며 이태리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작품을 유럽에 맞게끔 다 뜯어 고쳤 죠. 그렇게 해서 비나리 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부산국제연극제에 공연을 올리고 그 해에 아비뇽에서 공연을 하게 됐죠. 밖이 너무 시끄러워서 알게 되었는데 홍보프레이드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홍보를 위해 나갔는데 퍼레이드는 거의 끝나가요. 저희는 끝물에 나가서 홍보도 못하고 "완전 큰일 났다. 이걸 어떻게 하 지?" 했는데 결국 그 퍼레이드 끝에 붙어서 가기로 했죠. 작품과 상관없이 화려한 한복에 어우동 모 자와 상모를 들고 나갔는데 거리에 우리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술렁임이 시작된 거죠. 상모만 돌리기 시작하면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고 한복 사진 찍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렇게 하고 첫날 공연을 하는데 50명 정도가 보러 왔어요. 그 중에 프랑스 기자 한 명이 왔는데 그 기자는 우리랑 같은 공연장을 쓰는 대만팀 공연을 보러왔 다가, 비나리 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공연 중 무대에서 관객이 함께하는 장면에 마침 올라온 사 람이 그 기자였어요. 기자가 그게 너무 좋았던지 공연을 마치고 리뷰를 쓸 테니 자료를 보내 달라하 더라구요. 현지 프로듀서가 난리가 난거에요. 기자가 가고난 뒤 관객이 몰려오기 시작했죠. 이 프랑 스 기자가 이 공연이 너무 좋으니 가서 봐라. 하니 거의 매진인 거예요. 조금 이름 있는 사람이 리뷰를 쓰면 소문이 나거든요. 아비뇽의 극단 관계자들한테 입소문이 나고 대박을 쳤어요. 그 기자가 바로 르 피가로 신문의 문화부 기자였던것입니다. 앞으로 맥이 지향하는 점, 연극이 나아가는 점, 한국의 연극들이 해외 시장으로 뻗어 나갈 때 맥의 역할들을 지켜봐주시고 박수쳐 주시면 저희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69

170 199 >> 강희정 춤꾼 2014년 11월 18일 일리노이대학 (UIUC) MFA 졸업 Illinois Dance Theater, Laughing Stone 활동 현대무용단 주-ㅁ대표 역임 현) 예술공동체 마르 대표, 현대무용단주-ㅁ 상임안무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영산대학교 연기뮤지컬과 초빙교수 농담(2014) 대표 안무작 무용- '농담', '의자', '개인적중력', '청춘- 꼼지락거리는 구두를 벗다',' 거짓말', '다섯개 의 기둥',외 다수 연극- '트라우마', '변신', '어떤 싸움의 기록', '희생자들', '실내극', 외 다수 뮤지컬- '뮤즈의 부활', '징', '내생에 최고의 여자', '사랑은 비를 타고 오네', '미스터 옹 대 옹' 외 다수 한국에서 춤을 배울 때는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같은 무용 장르 자체를 춤이라고 생각했습니 다.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무대라는 공간 자체가 저에게 중요한 곳이 되면서 장르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어요. 무용계, 미술계처럼 계 라는 것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줄을 서야하는 부조리한 곳이 라면 제가 그곳에 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 곳에서 나오면서 더 많은 관 객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춤을 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제가 너무 활동적이니까 어머니께서 얌전해지라고 무용학원을 잠 시 보내셨었어요. 춤을 전공시키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고요. 그 후로 학교에서 취미반으로 무용을 하거나 무용과 관련된 학교행사들에 나가곤 했어요. 그러다 입시가 다가오고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17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71 된 거죠. 공부를 하면서 살 자신도 없었고 공부가 그리 재밌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무용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조언도 있고 해서 무용을 하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했어요. 춤을 꼭 춰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도 막상 그 말을 하고 나니까 오랫동안 그걸 하고 싶었던 것처럼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선생님 앞에서 너무 서럽게 우니까 선생님이 부모님을 만나서 희정이가 무용을 너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제가 뱉은 말이니 책임을 졌어야 했어요. 부모님이 원치 않은 대학을 가면서 부모님 말을 거역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제가 모든 걸 책임치 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제가 88학번인데 그때는 예술을 전공 하는 대학생이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나 선배들의 요구나 조언이 있었어요.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사 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고. 지금의 학생들과 상대적으로 봤을 때 졸업하고 먹고 살 걱정은 별로 안했던 것 같아요. 삶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압력 같은 건 별로 못 느꼈었고, 겁 없 이 뭔가 해볼 수 있었죠.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의 불안과 현실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볼 때면 가슴 아프고, 어른으로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이 없었지만 저는 졸업하면 무조건 외국에 유학을 갈 거라고 생각했어 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거든요. 미국에서 4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다니러 왔는데 모 교에서 수업을 요청했고 수업을 해보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원래는 한국에서 귀국공연을 한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71

172 번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공연을 하고 보니 한국에서도 재미있게 작업을 할 수 있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98년에 타 장르의 작업자들-작곡, 성악, 미술, 사진, 패션 등- 과 의기투합해서 예술 공동 체 마르 를 창단을 했습니다. 무용단이 아니라 각자 장르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콜라 보를 하는 단체였어요. 복합장르의 작품을 만들다보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연극을 연출하는 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많은 연극에 안무로 참여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들은 열린 소극장에서 했던 작품입니다. 그 중 특별하고, 소중한 작품은 부산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구현철 작, 연출의 '트라우마'라는 작품입니다. 그때가 안무 가로서 제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되었고, 대사와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그림을 만들어내 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때는 많은 연출가들이 안무가들에게 작품설명을 잘 해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대본도 안 주고 음악을 딱 줘요. 안무가를 그냥 춤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고요. 하지만 트라우마 때는 연출가와 같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작품분석을 하고 세세 한 것 하나까지 함께 만들었어요. 제가 작업자로 강희정 스타일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면, 그 경험적 인 공부는 열린소극장에서 다 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지금도 존경하고 무한 신뢰하는 사람들도 만났 습니다. 저는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에 작업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 다면 공연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사람이 먼 저 모인다면 목돈이 없더라도 작업은 가능해요. 제가 했던 작업들은 모두 그렇게 이루어졌고요. 물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실패들도 했지만 내 사람들이 지금처럼 함께한다면 언제든 지 작업으로 다시 모일 거라고 믿어요. 물론 저도 아르바이트로 작업을 할 때가 있습니다. 거대 PD 들이 대작을 진행할 때는 저도 꽤 돈을 많이 받는 안무자입니다. 그때 돈을 벌어서 하고 싶은 작품,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하는 거죠. 17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73 무용작품으로는 농담시리즈를 계속하고 싶어요. 이미 솔로부터 트리오, 퀄텟, 7명이 하는 군무 등 으로 농담버전을 확장했는데, 농담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소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 해 주변에 있지만 눈에 잘 뛰지 않는 소수들 -노처녀, 백수들, 전쟁고아, 무명의 예술가들-의 이야 기, 흔히 말해 루저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그걸 좀 더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보통 작품들은 밀도가 높은 사건을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자 세히 들여다보면 재밌거든요. 배우, 무용수 들이 연습을 마치고 술을 한 잔 하고 구부정하게 집으로 돌아갈 때. 텅 비어 있는 뒷모습 같은 그림들이 저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대단한 사회 의식이 있어서 일부러 루저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작고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제가 상상하는 세상의 모습 -자유로운 개인, 자치하는 사 회, 자연스러운 세계-과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성향의 작품을 하는 것 같습니다. 20대 때는 춤추는 사람으로서의 꿈과 목표가 거창했었지만 지금은 지방촌부로 많이 소박해졌습니 다. 저는 아직도 무용을 하고 있고, 주변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해하는 편이예요. 어느 순간부터 내 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이런 것들을 꿈꾸기에는 현실적으로 제 능 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이 일이 제일 재밌고 할 만 하거든요. 저는 예비 예술가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보다 나은 천재적인 학생들이 있다면 내 춤은 아니지 만 그들을 통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73

174 200 >> 2014년 11월 25일 최윤진 동화작가/문화행정가 MBC 아동문학대상 수상, 동화작가로 등단 근로자문학제 시나리오 입선 부산대 해양과학과 졸업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수료 한국광고연구원 카피라이터과정 수료 우리 함께 문화의 바다로! 저는 부산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시 산하의 출연기관으로 지역의 예 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문화를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무실 은 남구 감만동의 옛 동천초등학교 폐교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감만창의문화촌 에 있으며 이곳 은 각 교실마다 지역 예술인의 작업실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한국해양대학교 홍보팀장에 이어 조 선통신사문화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부산시가 지금의 재단을 설 립하고, 부산의 문화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문화관련 기관들을 통합하던 시기에 사업 회가 재단으로 흡수되면서 저도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17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75 전국 광역 시도에는 12개의 문화재단이 있습니다. 부산은 올해 5년차로서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비전을 수립하고 전국적으로 재단의 위상을 많이 올렸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재단들이 우리 재단을 부러워하고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민, 예술인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지원 면에서도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더욱 개선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무원이 아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사업을 하고 재단을 운영 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금도 잘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작활동이 대다수인 문화예술계는 행 정이나 경영부분이 취약합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단체는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원금은 결국 내가 낸 세금이다 라는 인식이 점점 확산된다면 헛되 게 돈을 낭비하거나 대충 정산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제 개인사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살면서 제 스스로에게 평생 해야 할 일과 꼭 하고 싶은 일이 뭘까 하고 되물으면 그 접점에는 항상 글쓰기 가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때론 시로 때론 소설로, 영화로 완성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비록 월급쟁이로 살고 있지만 텍스트와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는 글쟁이의 삶을 지금도 꿈꾸고 있 습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75

176 저의 막연한 글쓰기 에 대한 동경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동화작가 등단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 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고시촌에서 지내던 시절이었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살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중 우연히 MBC아동문학대상 공모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도전해보자고 마음먹고 지금은 문을 닫은 서면 동보서적에 갔었습니다. 책 살 돈이 없어서 눈치 보며 서서 동화책을 읽었습 니다. 어머니들이 어떤 동화책을 선호하고 구매하는지 옆에서 살펴보고 인기 동화들의 소재와 패턴 이 무엇인지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썼고 운이 좋아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이 되었습 니다. 하지만 동화작가만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부모님과의 타 협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한국광고연구원에서 늦깎이 공부를 했고 올라간 김에 문학학교, 영상작가원을 다니면서 시, 소설, 영화시나리오 등 텍스트 전반 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되었어요. 그리고 부산에 내려와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틈틈이 습작 을 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월급을 2년 정도 못 받은 적도 있었고 30대 중반까지 개고 생만 잔뜩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꿈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곤두박질치던 절망의 시절이 그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 이어 글을 쓴다면 청소년에 관한 소재를 다루고 싶습니다. 우리 주 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부산에는 청소년문화 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시절, 청소 년극단 눈동자에서 겪은 일들이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희곡이라는 글쓰기를 배우려면 연 극을 알아야겠기에 어느 극단을 찾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지금의 눈동자 대표님과 몇몇 젊 은 분들과 공연을 기획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시민회관에서 무대를 올리기도 했었죠. 청소년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좋은 소재가 있다면 여러분께 부탁드 립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유독 젊은 분들이 눈에 띕니다. 저 분들에게 지금 은 늘 자신의 꿈을 의심 17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77 하고 조급해 하는 시기일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지 고민하고 계실 겁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장 정답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지 마 세요. 더욱 고민하시고 부딪혀 보십시오. 꿈이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꿈은 늘 성장하고 자신이 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의 경우 정답 대신 찾은 해답이 글쓰기 입니 다. 옛날의 조급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직장생활 하면서 10년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돌고 돌아 흘러온 곳이 재단이고 일하면서 작가와 예술인들을 많이 알게 되어 그 꿈에 한결 가까워졌다고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10년 뒤 시장 한 켠에서 칼국수집 하면서 글을 쓰고 있을 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부산문화의 성장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비싼 해외공연만큼 지역 예술인들의 공 연에, 영화 관람만큼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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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2부 쌈전시

180 2014년 쌈전시 01/06~01/17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텍스타일-복고와 클래식 01/20~02/07 노영효 개인전 02/10~02/28 문정희 개인전-마음 그림자 04/21~05/09 엄현철 개인전 05/26~06/13 선미영, 윤주희 2인전 06/16~07/04 이소을 개인전 07/07~07/18 워너비 전-고등학생들의 자신의 희망을 담은 전시 07/21~08/ 이작가를 주목하라 기획전 08/11~08/29 박화숙 개인전 09/01~09/19 차이슬 개인전 10/13~10/31 배유미 개인전 11/03~11/21 윤길식 개인전-경계의 저편 11/24~12/12 디딤돌 전-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12/15~01/09 작은 그림전 18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81 경성대 공예디자인학과 텍스타일-복고와 클래식 ~01.17 노영효 개인전 ~02.07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81

182 문정희 개인전-마음 그림자 ~02.28 엄현철 개인전 ~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83 선미영, 윤주희 2인전 ~06.13 이소을 개인전 ~07.04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83

184 워너비 전-고등학생들의 자신의 희망을 담은 전시 ~ 이작가를 주목하라 기획전 ~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85 박화숙 개인전 ~08.29 차이슬 개인전 ~09.19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85

186 배유미 개인전 ~10.31 윤길식 개인전-경계의 저편 ~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87 디딤돌 전-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12.12 작은 그림전 ~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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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3부 더 많은 쌈, 더 많은 수다

190 쌈수다는 나의 힐링캠프 홍경임 문화매개공간 쌈에 가면, 즐거운 수다가 있다. 유쾌한 수다 속에 찐한 인생이 있고, 아름다운 사람 이 있다. 그 수다에는 우리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 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수다를 나누며, 소통하고, 공감하며 마음 한편 빈 공간을 온기로 채운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곳, 쌈수다. 나에게 쌈수다란? 하고 묻는다면, 쌈수다는 나의 힐링캠프다! 매주 화요일 저녁, 쌈수다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쌈수다는 나에게 따뜻한 쉼표가 되어주었다. 희미해진 꿈과 사그라진 열정,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 는 내게 삶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자신만의 꿈을 가진다는 것, 뜨거운 열정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 지칠 때 지치더라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꾸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 마나 멋진 일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삶의 긴 여정에서 어느 길 위에 있던,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가진 긍정의 에너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데 큰 힘이 된 다. 밝은 에너지와 열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도 긍정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내 안의 온도가 1도는 더 상승되어 훈훈해진다. 그런 만남이 기분이 좋다. 즐거워지는 마음에 내 자신이 힐링이 된다. 좋다. 한 주가 시작되면, 화요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오늘은 어떤 주인공을 만날까? 궁금해 하며, 발걸 190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91 음이 쌈으로 향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매주 새로운 사람을 만 나에게 쌈수다란? 나는 일은 두근두근 설레는 일이다. 쌈수다의 주인공으로 참 하고 묻는다면, 석하는 분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을 의지 있게 쌈수다는 나의 힐링캠프다! 살아 내온, 꿈을 이뤄가고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아름다 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수다는 진실하고 솔직하다. 진정성이 담긴 수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묵직한 울림 하나를 안고 간다. 인생 수업이 따로 있나, 이런 게 인생 수업이지 않나 생각한다. 귀한 배움을 얻어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보는 일이, 바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 없는 일이 될 수도 있 고,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많은 것을 통해 배우고 지식을 쌓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일은 더없이 큰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쌈수다와 함께한 시간은 인생수업 이고, 그런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맑은 눈빛과 환한 웃음, 열 정이 담긴 목소리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수받았으니, 그 힘으로 다시 꿈을 꾸고, 앞으로 씩씩 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200회 쌈수다 때, 김상화 교수님께서 직접 손글씨를 써 주셨던 게 생각난다.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도 한 분야에서 10년을, 20년을, 그 이상의 세월을 오래도록 걸어가는 예술 가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미치지 않으면 그리 살 수는 없 는 인생, 만만치 않은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열정을 쏟아내며 의지 있게 살아가는 예술가를 만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 귀한 자리가 쌈에서 이뤄진다. 화요일마다 예술가를 만나서 수다를 나누는 일이 가능한 곳, 이웃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곳, 술잔을 기울이 며 함께 취할 수 있는 곳이 쌈이다. 쌈수다가 아니면, 경험해 보지 못할 스페셜한 만남이 화요일마다 일어난다. 널찍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술수다로 이어지고 헤어짐이 아쉬워진다. 쌈수다에 갈 때, 항상 물음 하나를 가지고 간다. 인생을 어떻게 살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91

192 아야할까요?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의 답을 찾는 일은 평생의 쌈수다의 가장 큰 매력은 과제이겠지만,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내온 인생의 선배들에게 사람이다. 묻고 싶었다. 때론 질문을 하기도 하고, 때론 마음으로 물어보 사람냄새가 향기로운 곳이다. 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질문은 사라졌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순간이 오더라. 인생을 사는데 정답은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굴곡 이 없는 인생은 없지 않을까. 인생의 고비에서 스스로를 굳건히 세우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힘을 우 리는 다 가지고 있다. 힘든 순간은 있으나, 딛고 일어날 힘이 있다는 것을 쌈수다를 통해 배울 수 있 었다. 쌈수다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이다. 쌈에 가면, 사람이 있다. 수다가 있다. 술이 있다. 사람냄새가 향기로운 곳이다. 꽃보다 사람이 더 예쁘고 더 찐한 향을 가진다. 꽃보다 사람이 먼저인 쌈수다에서 수다를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다. 한 사람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더 밝게 만들고, 그것이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로 공유되고, 또 다른 열정으로 새로운 기운을 일으킨다. 바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수다의 힘이 거기에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 한 다. 둘이든, 셋이든, 그 이상이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것이 비록 작은 일지라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더불어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쌈수다는. 그래서 정 감이 가고, 그래서 발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을 만나러, 사람이 있는 쌈수다 에 간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쌈수다를 통해 만난 모든 분들에게. 쌈수다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나에겐 커다란 삶의 위로가 되었다.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따뜻했 고, 수다는 즐거웠고, 술은 달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유쾌한 수다를 나누었던 날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192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93 언론에 비친 쌈수다 200회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93

194 경향신문 부산 쌈수다 벌써 200번째 글 사진 권기정 기자 문예인 시민, 올 마지막 행사 성악가 감독 등 재능 기부 자유로운 주제로 토크쇼 문화 소외 지역민과 소통 부산지역 30~40대 문화예술인과 시민이 격의 없이 이야 기하고 떠드는 토크쇼 쌈수다 가 25일로 200회를 맞는다. 쌈수다 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부산시민들이 접하기 어려웠 던 문화예술 영역을 가까이에서 이해하는 것은 물론 편하게 문화예술인들의 삶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성과를 거 두고 있다. 부산지하철 수영역 지하상가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커피숍을 닮은 공간 쌈. 2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공간 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후 7시30분 쌈수다 가 열린 다. 부산에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과 시민이 모여 말 그대로 수다를 떠는 행사다. 2010년 1월 춤꾼 김옥련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99차 례 쌈수다 가 열렸다. 출연자는 성악가 배우 국악인 무용가 화가 사진작가 등 공연과 전시회의 주인공에 국한하지 않았 다. 감독 연출가 문화기획자 등 부각되지 않는 예술인도 만 날 수 있다. 파워블로거 평론가 다도인 분장사 등 다양한 직 업인도 시민들과 수다 를 떠는 데 참가했다. 쌈수다 의 진행은 진지하지 않다. 오프라인과 비공개라는 점을 살려 다소 사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수위 높은 사회적 비 판까지 공감 속에서 수다가 진행된다. 때론 공격적이거나 황 당한 얘기까지 자유로운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지난 18일에는 장르를 넘나들며 춤을 추고 안무를 기획하 는 춤꾼 강희정씨가 농담 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풀어놓았다. 춤을 시작한 계기, 연극인 등과 함께 작품활동을 하기까지의 애환 등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돈이 있어 미국 유학을 간 것 아니냐 무용계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것 아니냐 는 불 편한 질문도 쏟아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식 행사가 끝나면 소주잔을 기울 이며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술수다 로 이어진다. 편하 고 자유로운 분위기 탓일까. 우연히 들렀다가 고정 팬이 된 시민도 많다. 한 시민은 직업에 대한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 소되고 예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유익했다 고 말했다. 200회를 이어가기까지는 첫 회부터 쌈수다 를 지키고 있 는 부산예술대 김상화 교수의 재치 있는 진행이 한몫을 했 다.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출연자의 말을 끊기도 하 고, 수다 도중 지하상가를 지나는 사람을 불러들이기도 한 다. 강의보다는 편안하게 수다 떨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김 교수는 무대나 전시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인과 직접 대면하면서 수다의 형식으로 소통한 것이 장수의 비결 이 된 것 같다 고 말했다. 쌈 은 부산교통공사가 제공한 공간이다. 당시 예비 사회적 기업인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문화예술사업단이 빈 상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며 수년간 부산교통공사를 설득한 끝 에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평소에는 젊은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회와 문화예술 강좌 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가 없을 때는 기부금을 내고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책을 열람할 수 있는 북카페로 변신한다. 25일 열리는 200회를 마지막으로 올해 행사는 끝을 맺는 다. 내년부터는 8명의 진행자가 돌아가며 쌈수다 를 진행한 다. 194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195 한겨레신문 화요일 밤마다 문화예술 쌈싸먹어요 김영동 기자 조(34 프로그래머)씨는 춤꾼, 만화가, 성악가, 화가, 사진작 가, 배우, 시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예술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 어나 예술인들의 삶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이들과 친해진다 는 점이 매력적 이라고 말했다. 문화카페 쌈 200회 정모 춤 회화 노래 사진 영화 등 꾼들 불러내 시민과 대화 지난 25일 저녁 7시께 부산 도시철도 3호선 수영역 지하 상가 2번 출구 근처의 문화공간 쌈. 70m2가량 공간의 오른 쪽엔 예술 관련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늘어서 있고, 왼쪽엔 커피점이 있었다. 벽면에는 동아대 회화학과 학생들 의 작품 13점이 걸려 있었다. 이날은 쌈 수다 수다꾼으로 부산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동 화작가 최윤진씨가 나왔다. 시민들은 최 작가에게 부산시의 최상윤 부산문화재단 이사장 임명 논란 청소년 문화시설 기 반 부족 등 날 선 질문을 했다. 분위기는 청문회를 방불케 했 다. 학원을 소재로 한 동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최 작가에게 시민들은 학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동화로 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밤 9시께 쌈 수다 가 끝나자 최 작가와 시민들은 근처 술 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 수다 를 이어갔다. 이곳에선 화요일 저녁마다 쌈 수다 가 열린다. 쌈 수다 는 부산의 30~40대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자리다. 2010년 1월14일 시작해 이날로 200회를 맞았다. 쌈 의 살림을 꾸리고 있는 쌈장 남혜련씨는 쌈 은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쌈싸먹는다 는 뜻으로, 시민을 위한 문화 소통 공간이다. 고 말했다. 쌈 수다 를 진행하는 김상화 부산예술대 교수는 쌈 수다 는 예술인과 시민이 함께하는 잔치다. 예술인들을 직접 보 고, 사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작품 구상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 를 수다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쌈 수다 는 내년부터 더 다양한 수다꾼을 모으기 위해 김 교수 등 8명이 진행할 예정이다. 저녁 7시30분 쌈 수다 가 시작될 때쯤 27개의 의자는 청 중으로 가득 찼고, 늦게 온 10여명은 둘러서서 쌈 수다 를 기 다렸다. 지난해 8월부터 쌈 수다 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임성 작은 공간 큰 이야기 195

196 부산일보 '쌈수다' 본 뒤 부산에 사람없단 말 쏙 들어갔어요 '쌈수다 시즌1' 기획한 김상화 씨 "우리 주변에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요. '쌈 수다'를 들은 시민들도 이젠 '사람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2010년 1월부터 '문화매개공간 쌈'(부산 도시철도 2호선 수영역 지하상가 내)에서 '쌈 수다' 진행을 맡아 온 '두꺼비' 김상화(52 전 부산예술대 교수) 씨. 25일이면 200회를 끝으 로 '쌈 수다 시즌 1'을 마감하는 그는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매주 화요일 수영역서 '수다' 200회 마감하고 시즌2 시작 숨은 재주꾼 발굴은 큰 성과 정달식 기자 '두꺼비'는 그의 별명. 인상이 두꺼비를 닮았단다. 심지어 명함에도 '쟁이들과 함께 노는 사람'과 함께 '두꺼비 김상화' 라고 새겨 놓았다. 부산에서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30~40 대 젊은 예술가들. 그들은 지역 예술 판을 꾸리는 보배 같은 사람들이지만 제대로 가치를 부여 받지 못했다.이들을 끄집 어내려는 의도로 '쌈 수다'를 기획해 그동안 섭외와 진행을 맡아 왔던 이가 그였다. 삭막한 지하철 역사에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나 할까? "5년 정도 됐네요. 200회가량을 이어 오면서 해외 출장 으로 참석하지 못한 서너 번 말고는 빠진 적이 없었던 것 같 아요." 출장을 가더라도 화요일 '쌈 수다'를 진행해야 하기에 될 수 있으면 월요일에 돌아오는 것을 잊지 않은 그였다. 그 만큼 '쌈 수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지난 5년간 여름 휴가철인 7월과 수다로 풀어낸 것을 책 으로 만드는 시기인 12월을 제외하곤 1년에 40~42회가량 을 수다꾼들의 수다로 풀어냈다. 한 번 '쌈 수다'에 나온 사람은 다음 '쌈 수다'엔 나올 수 없 다는 게 원칙. 그중에는 수다가 넘쳐, 다음 수다까지 이어지 는 경우를 제외하곤 이 원칙을 깨지 않았다. 지금까지 200 회가량을 이어 왔으니 '쌈 수다'에 나온 젊은 예술인도 대충 200명 정도 된다. "공연이나 예술하는 분들은 자기표현에는 익숙하지만, 의 외로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더라고요." 시민들은 그런 걸 보면서 예술가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예술가의 진솔한 삶을 들었을 때, 친밀감 같은 게 생기나 봐요. 유대감도 깊어 지고." 그러면서 시민들은 그들의 팬이 되어 갔다. 재미있 는 것은 실제 '쌈 수다'도 인기였지만 '쌈 수다' 끝나고 하는 ' 술 수다'(일종의 뒤풀이)를 은근히 더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 다는 것. 그는 스스로 '쌈 수다' 기획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 만, 좀 길었죠. 이젠 좀 변화를 주려고요." 시즌 2에선 8명이 진행을 담당한다. 물론 그도 8명 중에 포함돼 있다. "진행자 의 재량에 따라 '쌈 수다'의 형식도 많이 달라질 겁이다. 시즌 1보다 더 다양화해 '시즌 2-쌈 수다'로 다가갈게요." 196 문화매개공간 에서 만난 부산의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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