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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 - 朝 鮮 漢 文 學 史 서술을 중심으로 崔 英 成 ** ` <목 차> Ⅰ. 머리말 Ⅱ. 天 台 山 人 의 생애 개관 Ⅲ. 天 台 山 人 의 학문 역정 Ⅳ. 조선한문학사 의 위치 Ⅴ. 조선한문학사 의 방법론과 한계 요 약 1930년대 국문학자, 문학사가( 文 學 史 家 )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물 김태준(1905~1949)의 생애와 학문 활동 전반에 걸쳐 살펴보았다. 그간 김태준에 대한 연구가 조선소설사 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한 반성으로, 그의 또 다른 저서 조선한문학사 를 거시적으로 통찰하고, 그것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한계, 연구방법 등을 고찰하 였다. 또 그의 고전 연구가 전통문화에 대한 재평가의 차원에서 이루 어졌음과, 당시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던 국고정리운동에서 많은 영향 을 받았음을 밝혔다. * 2004년 12월 2일,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주최 제4회 又 玄 學 術 祭 (주제 : 실증과 과학으로서의 경성제대학파)에서 발표한 것을 약간 수정하였음을 밝혀둔다. ** 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2 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Ⅰ. 머리말 필자가 1930년대에 활약했던 전설적 인물 천태산인( 天 台 山 人 ) 김태 준( 金 台 俊 )의 저술들을 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한문학에 대해 관 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난날 좌경적 지식인들의 저술이나 작품에 대한 해금( 解 禁 )이 단행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은사님 께서 비장( 秘 藏 )하던 책을 어렵게 빌려 복사해서 보았었다. 천태산인은 26세 때 대학생 신분으로 조선소설사 를 동아일보 에 연재하였고, 그 이듬해 조선한문학사 까지 출간하였다. 필자 역시 대학에 들어간 직후 내 전공인 유학( 儒 學 )과 관련하여 완정( 完 整 )된 한국유학사 를 저 술하겠노라고 굳게 마음 먹은 터였기 때문에, 천재 학자의 왕성한 학 문 활동은 나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족하였다. 천태산인은 내가 한국 유학사 를 저술하는 데 무언( 無 言 )의 힘을 준 정신적인 스승이었다. 그 분의 저술을 처음 접한 때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마침내 5권으로 된 한국유학사상사 (1994~1997, 아세아문화사)를 완간하여 세상에 물을 수 있었던 것도 천태산인이 입언( 立 言 )으로써 끼친 영향 덕분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과정에서 천태산인의 저술들이 모두 해금되 고,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갔다. 참고문헌 에 제시된 바와 같이, 천태 산인의 국문학 연구 와 관련하여 후학들의 연구 논문도 적지 않게 나 왔다. 그러나 천태산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 고 있는 듯하다. 박희병( 朴 熙 秉 ) 교수에 따르면, 두 가지 편향된 평가 가 있는데, 하나는 그의 좌파적 면모와 관련하여 학문적 성과를 평가 절하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가열차고 극적인 삶으로부터 유추 하여 그 학문적 성과를 실제에 부합하지 않게 과대평가하는 경우이 다. 1) 오늘날의 평가도 크게 보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 박희병, 천태산인의 국문학 연구( 上 ), 민족문학사연구 제3호, 1993, 249쪽

3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3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천태산인의 생 애와 학문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는 좌파적 지식인으로서 비극적인 삶을 마친 사람이다. 우리의 시운( 時 運 )은 천태산인이 비명에 죽은 뒤 로 50여 년 동안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 석 자마저 잊혀지기를 강요하 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그의 저서는 이념상의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 하고 금서로 묶였고, 그가 발표한 글들은 공공연히 인용할 수 없어 필 자명을 삭제한 채 제한적으로 인용되었다. 김 준, 김모, 천태산인 등으로 표기되었던 것이 저간( 這 間 )의 실정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의 생애는 자세하게 연구될 수 없었으며, 자료적 한계 등으로 인해 때로는 전설적인 내용 에 의지하는 바 적지 않았다. 본고에서 그의 생 애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려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그간 천태산인과 그의 학문에 대해 일련의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조선소설사 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조선한문 학사 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천태산인의 문학관 등과 관 련하여 그럴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측면에 있지만, 기형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본고에서 조선한문학사 에 주목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이 유에서이다. 끝으로, 문학 내지 문학사 전공이 아닌, 한국철학 전공자가 천태산인 에 대해 이모저모 이야기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한 편 으로 방외자( 方 外 者 )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천태산인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덧붙여둔다. Ⅱ. 天 台 山 人 의 생애 개관 1930년을 기점으로 이후 약 10여 년 동안 국문학자 문학사가 내지 국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김태준( 金 台 俊 )은 마치 잔한( 殘 寒 )의 산등성이

4 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에 홀로 일찍 피었다가 백화난만( 百 花 爛 漫 )한 꽃철을 보지도 못하고 지는 진달래와 같았던 학자이다. 그는 세칭 평치 또는 서한( 西 漢 ) 이 라 불렸던 평안북도 운산( 雲 山 ) 출신으로서,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 음력 11월 22일 평안북도 운산군 동신면( 東 新 面 ) 성지동( 聖 旨 洞 ) 71번 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김하룡( 金 河 龍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 안은 운산 지역에서 소지주( 小 地 主 )로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집안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921년 영변농학교( 寧 邊 農 學 校 )에 들어가 2년을 수료한 뒤 1923년 4월 21일 5년제 관립 이리농림 학교 2) 3학년에 편입하여 1926년 3월 같은 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농 학교에 입학하고 이어 이리농림학교로 편입한 것은 당시 궁벽한 시골 출신으로서는 어쩌면 불가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고향인 운산 언저리를 떠나 천리 타향인 이리에까지 유학하게 된 것은 그의 적성이 실업계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영변농학교보다 명성이 있 는 이리농림에 편입하여 그곳에서 졸업하기 위함이었던 듯 하다. 이리농림을 졸업한 1926년,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진학하였다 ( 支 那 語 支 那 文 學 전공). 재학 중에는 천태산인( 天 台 山 人 ) 3) 이라는 필명 겸 아호로 동아일보 에 조선소설사 를 연재하여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 며, 사회주의 관계 서적을 읽는 독서서클 경제연구회 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1년 3월 9일 대학을 졸업하고, 곧이어 조윤제( 趙 潤 濟 ) 이희승( 李 熙 昇 ) 김재철( 金 在 喆 ) 이재욱( 李 在 郁 ) 서두수( 徐 斗 銖 ) 이숭녕( 李 崇 寧 ) 방종현( 方 鍾 鉉 ) 등 선후배 동학들과 함께 조선어문학회( 朝 鮮 語 文 學 會 )를 결성한 뒤 3년간 회보를 펴냈다. 1934년 진단학회( 震 檀 學 會 )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국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2) 광복 후 농업계 고등학교로 전라북도는 물론 전국에서 유명하였던 국립 이 리농업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산업화 추세에 밀려, 1991년 3월 국립 裡 里 農 工 專 門 大 學 으로 개편되고 1998년 5월 국립 益 山 大 學 으로 교명이 바뀌었다. 현재는 옛자취를 찾아볼 길이 없다. 3) 천태산인 이외에 聖 巖 이라는 아호를 드물게 사용하기도 하였다

5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5 식민지하의 조선에서 조선어를 비롯한 민족문화가 멸절( 滅 絶 )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더욱 열정적으로 국학의 연구와 발전에 노력했다. 한편, 1931년 경학원( 經 學 院 ) 직원( 直 員 )이 되었다가 1935년 3월부터 명륜학원( 明 倫 學 院 : 성균관대학교의 전신) 강사가 되고 이어 명륜전문 학원 강사 조교수를 지냈으며, 1939년에는 일본인 교수 다카하시 도 오루( 高 橋 亨 : )의 후임으로 경성제국대학 강사(조선문학 담 당)로 취임하였다. 그는 1930년을 기점으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여,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48년까지 1백 수십 편의 논고를 발표하였다. 4) 발표할 지면 이 많지 않던 당시인지라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것이 대다수이고 또 짤막한 글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대체로 누구나 읽어서 공감을 가질 만한 내용들이었다. 그의 연구활동에 있어서 두드러진 업적은 조선소 설사 와 조선한문학사 의 체계적인 정리 이외에도 고려가사( 高 麗 歌 詞 ) 의 수집( 蒐 集 )과 연구에 정력을 쏟은 점이라 하겠다. 그는 당시까지 대 개 고려가요 라 일컬어져 오던 것을 고려가사 라고 명명하였다. 이것은 그에 의해 처음으로 붙여진 명칭이라 해도 잘못된 말이 아니다. 5) 그리고, 1940년 7월 그에 의해 훈민정음 해례본( 解 例 本 )이 발굴되 어 한글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서도 국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과 조예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참고로 안동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정철( 鄭 喆 ) 씨의 증언을 인용하여 그 경위를 확인하기로 한다. 4) 1931년 1월에 발표한 柏 舟 시경 읽는 법의 새 발명 ( 新 生 제27호)부 터 1947년 1월에 발표한 고문학 근세문학 자료의 수집 정리 ( 國 學 제2 호)까지 모두 117편의 논저를 확인하였다는 조사가 있다. 김중렬, 김태준 의 국문학연구 검토, 국어국문학 제100호, 1988, 189쪽 참조. 5) 고려가사에 대해 양주동 조윤제와 조선일보 紙 上 을 통해 논쟁을 벌인 바 있다. 1939년 1월 1일자, 5월 28일~6월 4일자, 6월 14일~17일자 참조

6 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현재 유일본으로 전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경상북도 안 동군 와룡면( 臥 龍 面 ) 주하동( 周 下 洞 ) 이한걸( 李 漢 杰 : 1880~1950)의 집에 가보로 전해 오던 것인데, 일제 말기 경성제국대학 조교수였던 김모(김태 준 인용자주)가 사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한걸은 호를 후촌( 後 村 )이라 하고 본관은 진성( 眞 城 ), 퇴계 이황의 종파( 宗 派 )이다. 일찍이 선조가 여 진( 女 眞 ) 정벌에서 공을 세워 세종으로부터 상으로 받은 훈민정음 이 세 전가보( 世 傳 家 寶 )로 내려오다가 연산조에 와서 한글이 수난을 당할 때 생 명유지책으로 부득이 첫머리 두 장을 뜯어버리고 비장했던 것이다. 이한걸의 셋째 아들인 이용준( 李 容 準 )은 명륜전문학교 학생으로서 김모 의 총애를 받던 제자였다. 그가 고향 안동에 훈민정음 책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에 김모는 귀중한 책이면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모조리 사들 이던 간송( 澗 松 ) 전형필( 全 鎣 弼 )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돈을 얻어가지고 안동으로 가서 현물을 보게 되었다. 결국 김모는 이한걸로부터 학계 에 연구자료로서 양도할 것을 승락 받고 서울로 가져 가 전형필에게 영도 ( 永 渡 )하였는데, 1940년 당시 3천 원이란 큰 돈의 사례금이 전달되었다. 6) 그가 발굴한 훈민정음 해례본 덕분에 대산( 袋 山 ) 홍기문( 洪 起 文 : 1903~1992)의 명저 정음발달사( 正 音 發 達 史 ) 가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7) 김태준은 국학에 대한 연구열과 학자적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39년 이후로 당시 인텔리 계층에 풍미하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 여, 8) 이미 좌파 지식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마찬 6) 국어국문학 제9호, 1954 참조 ; 金 允 經, 韓 國 文 字 及 語 學 史, 東 國 文 化 社, 1954, 179~181쪽 재인용. 7) 홍기문, 洪 起 文 朝 鮮 文 化 論 選 集, 현대실학사, 1997, 360~361쪽 그러 는 중에 김태준 군으로부터 해례가 이 세상에 드러난 것을 듣고 그의 소개 로 직접 해례와 東 國 正 韻 殘 秩 2권을 얻어 보았다. 8) 김태준의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1933년 蘆 汀 金 在 喆 이 요절하였을 때 그가 신문지상에 발표한 弔 辭 가운데 군이 동경하는 사회를, 그리고 유물적 변증법적으로도 반드시 미래에 즐겁게 군을 맞아줄 그 사회를, 그 대중을 버리고 군은 다시 어디로 安 息 의 淨 土 를 구하였든가 ( 김태준전집 제3권,

7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7 가지로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독립을 성취하며, 불공평과 불 의를 청산하는 데는 마르크스주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속에 독이 있을지라도 우선 일제와 싸워 독립을 성취해야겠다는 생각이 앞 섰다. 이것이 식민지 시기의 진보적 인텔리들의 비극이었다. 9) 조선공산 당 재건을 위해 지하활동에 참가하면서 박헌영( 朴 憲 永 )이 이끌던 경성 콤그룹에 가담하여, 독서회사건 등으로 몇 차례 투옥되어 옥고를 겪기 도 하였다. 10) 그는 박헌영을 우리의 최고 지도자 로 받들었다. 박헌영 에 대한 그의 경모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하로 숨어 다니는 수많은 동무들이 이구동성( 異 口 同 聲 )으로 부르려 고 찾는 것은 박동무였다. 누구보담 이론이 우수하고, 직실( 直 實 )하고, 완전히 자기 희생적이고, 투쟁 연대가 가장 길고, 조선 해방운동의 풍부 한 경험을 집대성한 분은 박동무였기 때문에, 조선 민족의 해방 운동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박동무를 최고 지도자로 모시는 데는 이의가 없는 것이다. 11) 한편, 그가 옥고를 겪고 있을 때 노모와 아내, 그리고 젖먹이마저 세 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배일감정( 排 日 感 情 )에 북받치게 된 적지 않은 원인이 되었다. 출옥 후 그는 일제에 대한 복수심과 민족해 방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연안행( 延 安 行 ) 에서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360쪽 제1단)라고 하는 대목을 통해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9) 朴 甲 東, 幻 想 의 터널 그 시작과 끝, 중앙일보 연재 10) 최근 일제시기 식민지 조선의 京 城 에서 노동운동을 펼친 지하혁명조직 경 성 트로이카 의 활동을 복원한 역사소설 경성 트로이카 1930년대 경성 거 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도서출판 사회평론, 2004)가 나와, 경성콤그룹 조선공산당 등의 활동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1) 김태준전집 제3권, 435쪽 하단, 연안행

8 8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수년 전에 감옥에 있을 적에 노모 아내 유아( 乳 兒 )를 잃은 것은 출 옥 후의 나에게 굳센 복수의 염( 念 )에 불타게 하였다. 우리 민족의 원 수, 인민의 원수, 가족의 원수인 일제를 동해 밖으로 격퇴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살 수 없다고 하였다. 12) 그는 어느덧 어엿한 혁명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학자로서 연 구활동을 펴기에는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았고, 운신의 폭이 너무나 좁았다. 다시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보호관찰소에서는 신사참배( 神 社 參 拜 )를 해라, 비행기 헌납금을 바 쳐라, 그의 기관지 사상보국( 思 想 報 國 ) 에 글을 써라, 창씨( 創 氏 ) 를 해라, 일선동조론적( 日 鮮 同 祖 論 的 ) 입장에서 조선사를 써라 라고 온갓 협박적 명령을 계속적으로 내리는데, 이것을 일일이 완곡하게 거 절하노라니 용이치는 않았다. 일본 강아지들은 무슨 냄새나 맡으려고 날마다 오후에 한 번씩 내 집 에 들리는 것이었다. 13) 이에 그는 학자로서의 삶을 잠시 접어두고 공산주의 무장투쟁에 뛰 어들기 위해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요, 조선의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활 약하던 중국 연안으로 갈 것을 결심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하였다. 문학연구니, 역사연구니, 언어연구니 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수립된 후의 일이니, 당분간 이 방면의 서적은 상자에 넣어서 봉해두자. 보는 책은 경제학ABC, 인터내쇼날, 전기( 戰 旗 ), 레닌 선집( 選 集 ) 등 이었다. 나는 좀더 튼튼한 세계관을 수립하려고 모색하였다. 외계( 外 界 ) 에는 공출 배급 징용 징병에 떨며 울고 있는 수천만 형제 자매의 아 우성 소리, 조음( 噪 音 )이 이 이타( 耳 朶 )를 치는데 어느 겨를에 조선문학 이니 조선역사니 찾고 있을 수가 있을 것인가고 하였다. 14) 12) 김태준전집 제3권, 434쪽 하단, 연안행 13) 김태준전집 제3권, 435쪽 상단, 연안행 14) 김태준전집 제3권, 435쪽 상단, 연안행

9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9 그는 연안으로 가기 위해 여비를 마련하고자 집을 팔고, 또 20여 년 가깝게 수집해온 역사 문학 관계 고서( 古 書 )를 팔았다. 15) 학자가 책을 팔 때의 심정이야 오죽하였으랴? 마침내 1944년 11월 27일, 동지이자 두 번째 부인인 박진홍( 朴 鎭 洪 ) 16) 과 함께 경찰의 보호관찰망을 뚫고 중국으 로 탈출, 연안으로 가서 좌파의 김두봉( 金 枓 奉 ) 최창익( 崔 昌 益 ) 무정 ( 武 亭 ) 등이 이끌던 조선독립동맹에 가담하여 항일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조국의 광복과 함께 중국에서 돌아와 건준( 建 準 )에서 선포한 조 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55명)의 일원이 되었고, 문교부장 대리(부장 金 性 洙 )에 선임되었다. 이어 월북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 평안북도 조직책에 선임되었가 다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창건하기 위해 박헌 영과 함께 월남하여 좌익활동을 하였다. 이후 민주주의 민족전선 문화부 차장, 조선공산당 문화부장, 남조선노동당 문화부장, 조선문학가동맹 집 행위원 등에 선임되어 좌익활동을 하면서 반미투쟁을 전개하였다. 김태준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사회주의 활동을 하기 위해 북을 선택 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 환경이 열악하다고 해서 남을 버리고 훌쩍 북 으로 떠나 갈 그런 기질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부인 박진홍과 어린 아 들은 북으로 보냈으면서도 17) 자신은 남쪽에 남았다. 남한에서 맹렬하 15) 이 때 김태준이 팔았던 책은 해방 후 고서점에 나돌았던 모양이다. 이에 관해서는 고 李 家 源 선생의 간접적인 증언이 있다. 성암 김태준은 臨 淵 李 亮 淵 의 시를 가장 사랑하였는데, 나를 위하여 십여 편을 외워주었다. 그 후에 성암이 손수 베낀 임연재집 을 책방에서 구하고는 사랑하여 즐기기 를 마지 않았다 (이가원, 玉 溜 山 莊 詩 話,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0, 732 쪽) 16) 공산주의자(1912~?). 함경남도 명천 출생.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전설적 인물인 李 載 裕 (1905~1944)의 부인으로, 1944년 10월 26일 이재유가 옥사 한 뒤 김태준과 동거하였으며, 이어 駑 馬 萬 里 로 중국 연안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해방을 맞아 귀국하는 길에 아들 金 世 延 을 낳았다. 해방 뒤 월북 하여 북한의 최고 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17 ) 임영태, 혁명적 지식인 김태준, 사회와 사상 창간호, 한길사, 1989, 244쪽

10 10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게 좌익 투쟁을 전개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북조선이 김일성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몹시 못마땅하였다. 그는 이점을 자주 비판하였으며, 박헌영을 중심으로 좌익이 단결해야 함을 역설하곤 하 였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남한은 물론 북한으로부터도 외면당하 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정치적 활동에 대한 평가는 물론 학술 적 측면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당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1949년 초에 남로당 문화부장 겸 특수정보책임자로 있으면서 지리산의 빨치산들을 대상으로 특수문화공작을 수행하다가 그해 7월 26일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어 9월 30일 세칭 지리산 문화공작대 사건 의 주범인 시인 유진오( 兪 鎭 五 ) 등 8명과 함 께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대법상의 이적행위 및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18) 11월 서울 근교 수색( 水 色 )의 형장에서 총살당함으로써 19) 45년 18) 재판장 元 容 德 (준장), 법무사 孫 聖 兼 (대령), 배석판사 元 春 燮 (대령) 李 雲 基 (소령), 검찰관 金 宣 鎭 (소령) 洪 英 基 (소령) 金 根 培 (대위) 등이 재판에 관여하였으며, 이날 사형이 선고된 9명은 다음과 같다. 金 昊 翊 경감 살 해사건 : 李 龍 雲 (36), 趙 庚 順 (20, 金 智 會 妻 ) 지리산 문화공작대 사건 : 詩 部 兪 鎭 五 (27), 영화부 洪 淳 鶴 (29), 음악부 劉 浩 鎭 (21) 남로당 문화부 관련 : 김태준(44) 朴 雨 龍 (27) 李 龍 煥 (29) 李 源 長 (27) 19) 그가 사형을 당한 연도와 일시에 대해 1950년 6월 초순이라는 설이 있다. 1991년 9월 13일자 한겨레신문 발굴 한국현대사인물 (80) 이 그것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도 1950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음의 동아일보 기사와 한학자 老 村 李 九 榮 (1920~ ) 씨 의 증언 등에 의하면 1949년 11월이 옳다고 본다. 동아일보 1949년 11월 8일자 김(호익) 경감 살해범에 대한 군법회의 결과에 있어서 昨 7 일 軍 보도과에서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지난 9월 27일부터 4일간 대법 원 법정에서 공개리에 군법회의를 받은 김경감 살해범 이용운, 김지회의 처 조경순, 남로당 문화부장 김태준 등 9명에 대한 사형언도는 그 후 관 계 상부의 신중한 심사를 거친 결과 이번 이용운과 김태준 兩 名 에 대한 사형판결만이 대통령으로부터 확인되었고, 그 외는 죄상에 비추어 각각

11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1 의 파란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그는 체포될 당시 고려문학사 초고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긴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 처럼 학구적 정열, 특히 국학에 대한 연구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그는 일단 전향 의사를 분명히 했던 것 같다. 이 것은 일치된 증언들이 뒷받침한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 후배이자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던 고 이숭녕( 李 崇 寧 : 1908~1994) 교수는 김 태준은 죽기 전 최후 진술에서 나를 살려 주면 내 학문을 대한민국에 이 바지하는 데 쓰겠다 고 하였다 는 증언을 한 바 있고, 20) 또 평소 김태준과 친분이 있었던 정음사( 正 音 社 ) 최영해( 崔 暎 海 : 1914~ ) 사장이 김태준의 전향 의사를 담은 시집을 출판하여 구명운동을 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 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21) 이와 같이 그가 전향 의사를 밝힘에 따라 구 명 운동도 전개되었던 것 같다. 얼마나 활발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 부 학자 문인 종교인들 사이에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22) 김태준이 어떠한 동기로 사회주의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활동상은 어떠했는지, 이 글에서 장편세설( 長 篇 細 說 )할 여유는 없다. 이미 나온 논 고들이 있으니 만큼 그에 미루기로 한다. 23) 그는 진정 좌우 이데올로기 감형되었다. 따라서 사형인에 대한 총살형은 북한 괴뢰집단의 첩보원 정 의식 등 9명과 함께 근일 모처에서 집행될 것이라고 한다 20) 金 宇 鍾, 大 學 秘 史 (7) 國 大 案 파동의 시발, 한국대학신문 2000년 4월 10일자. 한편, 한겨레신문 1991년 9월 13일자, 한국현대인물사(80) 에 서도 그는 사형을 선고받기 전 최후 진술에서 상아탑에서 고전만 연구 하고 싶다 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 하였다. 21) 이는 최영해의 아들인 최동식 교수(현 고려대학교 화학과)의 증언으로 이 복규 교수(서경대학교 국문학과)가 밝힌 바 있다. 22) 천주교 일각에서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던 尹 乙 洙 신부를 통해 구명 운동을 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趙 珖, 한국 교회의 열 두 장면 : 왼쪽 줄에 선 사람들, 경향잡지 2003년 6월호, 한국카돌릭 중앙협의 회 참조. 23) 임영태, 혁명적 지식인 김태준 참조

12 1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대립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사회주의 자라고 보기 어려운,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마치 서당선생과 같은 근엄 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학자였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일부에서 그 가 광복 후에 발표한 연안행 이라는 글에 근거하여 그를 항일혁명가라 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어디까지나 학자였지 혁명 가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이 전까지 경성제국대학 강사를 지내면서 일정 부분 일제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 때는 일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연구를 했음도 그의 행적 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그를 순전한 항일혁명가라고 볼 수 있겠는 가. 김태준이 광복 후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과거 행적을 분식( 粉 飾 )하려는 듯한 행동을 한 것은, 지난날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학자가 취할 양식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주요 저술로 조선한문학사 (1931), 조선소설사 (1933), 조선 가요집성 (1934), 원본 춘향전 (1939), 청구영언 교열 (1939), 고려가 사 교주 (1939) 및 항일 중국기행문인 연안행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소설사 는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서술된 것으로서, 우리 나라 소설사의 효시이며, 조선한문학사 는 그의 박학과 사재( 史 才 )를 과시한 역저로 서, 이후 한문학사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연안행 은 그 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광복 이후인 당시의 현실과 맞물려 과거 그의 항일행적을 선전하려는 듯한 인상이 적지 않다. 또 여러 대목에서 실지 이상으로 과장한 사실이 없지 않은 데, 자신을 혁명가로 부각시켜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속마음이 엿 보인다. 이 점에 유의해야 될 것이다. Ⅲ. 天 台 山 人 의 학문 역정 김태준은 1926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문과 B조)에 입학하였다

13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3 실업계 학교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한 것은 그가 최초였다. 인문계 학 교에서도 경성제대 입학이 쉽지 않던 터에 실업계 학교 출신으로 대학 입시에서 합격했으니,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업계 학교 출신으로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역시 이리농림을 졸업하고 1928년 경 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여 서양철학을 전공하였던 전 서울대 철학과 교 수 청송( 聽 松 ) 고형곤( 高 亨 坤 : )이다. 고형곤의 회고에 의하 면, 당시 이리농림학교에서는 1주일에 영어를 단 3시간 가르쳤고 실습 이 있을 때에는 그마저도 줄였다고 하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성제 이고보( 京 城 第 二 高 普 )에서는 영어가 1주일에 13시간이었다고 한다. 이 와 같이 여러 악조건에서 공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에 합격하 였다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리농림 재학 당시의 학적부를 보면, 그는 3학년 때에는 석차 2등 으로 결석일수가 전무하였다. 4학년 때에는 석차 4등으로 성적은 이전 과 비슷하게 유지하였으나 총 수업일수 254일 중에서 33일을 결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5학년 때에는 석차가 훨씬 밑돌아 17등에 머물고 있으며, 결석일수도 총 수업일수 232일 가운데 무려 59일에 이르고 있 다. 생각컨대, 4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혼자서 철저하게 준비해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학과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이러한 이유 에서였을 것이다. 이는 시기적으로도 1924년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어 출발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제 그가 어떠한 동기에서 지나문학(중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는 지 그의 술회를 살펴보기로 하자. 중학이라고는 이리농림을 거친 나로서는 어느 선배 사우( 師 友 )에게 문학 이 무엇이라는 구체적 정의( 定 義 )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잡지 한 권, 신문 한 장 읽어보지 못한 채 중학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중학을 졸 업한 후 농업에서 문과를 지원한 동기는, 문학이란 한문학( 漢 文 學 ) 특 히 지나( 支 那 )의 고문을 가리킨 것인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글방에서 한문을 읽다가 한문학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매혹되어 언제든지 기회만

14 1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있으면 이 한문을 철저히 연구하여 보자는 생각이 그치지 않았고, 또 그 시절까지도 구미( 歐 米 ) 각국이라든지, 일본 조선에까지 문학이 있으 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고, 순전히 한문에 중독된 사대주의자가 가진 완 고한 식견에 사로잡혀서, 대학에 가서는 다수한 한문 서적을 한 책도 빼지 않고 독파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각국에는 각국의 문학이 있구려. 왈( 曰 ) 영문학 독문학 노문학 ( 露 文 學 ) 국문학( 日 本 文 學 ) 지나문학 조선문학 등등, 사서삼경 만을 문학으로 알고 있던 재래의 나에게는 가위 천번지복( 天 翻 地 覆 )한 사상적 변천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여러 나라 문학 속에서 한문학이 어 딘가 제일 나은 것 같아서 지나문학과를 선택하고, 24) 한문에 중독된 사대주의자의 완고한 식견 운운한 바와 같이, 어려 서부터 익힌 한문학의 거해( 巨 海 )가 중국문학을 전공하도록 이끌었다 는 것이다. 그는 중국문학의 매력에 대해, 통틀어 지나문학의 매력은 그 방괴자( 方 塊 字 )가 가진 형상미와 그 사 성( 四 聲 )이 가진 해조( 諧 調 )와의 교차 위에서 맛볼 수 있는 특수한 요소 가 잠재해서, 한 번 중독되면 좀처럼 거기서 해탈하기가 곤란하게 됩니 다. 지나고전이 가진 반문반시( 半 文 半 詩 )의 변려사륙( 騈 儷 四 六 )은 황금 으로 도배한 북경고궁( 北 京 故 宮 )이나 대리석으로 뜰을 깐 자금산전( 紫 金 山 殿 )을 보는 것 같습니다. 25) 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국문학의 공죄( 功 罪 )를 거론하면서 지나 문학이 조선 문화사상( 文 化 史 上 )에 준 공죄가 참 큰 것이었습니다. 아 마 지나문학이 없었더라면 조선의 고대문학이 다른 형태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26) 고 하여, 한문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일단을 드러 내기도 하였다. 24) 外 國 文 學 專 攻 의 辯, 동아일보 1939년 11월 10일자. 25) 위와 같음. 26) 위와 같음

15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5 경성제국대학 시절 김태준은 뛰어난 한문 실력으로 명성이 자자하였 다. 그는 한문으로 시도 짓고 편지도 썼다. 27) 예과의 한문담당 교수인 다카다( 高 田 眞 治 )는 강의시간에 막히는 대목이 있으면 김태준 선생! 어떻게 좀 해주오 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는 김태준의 실력이 자기보다 낫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카다의 이같은 도움 요청이 있을 때면, 조선학생이고 일본학생이고 할 것 없이 와르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고 한다. 28) 다카다가 본국으로 전임해 가기 전 마지막 한문시간에 칠 판에 전별시( 餞 別 詩 )를 써놓자, 김태준이 이에 화답하였다. 한시를 깊 이 모르는 다른 학생들도 스승과 제자가 글로 화답하는 대목에서 가슴 이 뿌듯했다고 한다. 29) 김태준은 대학시절 중국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조선어문학 조선사학 민속학 등 조선학 전반에 걸쳐 큰 문제의식으로 폭넓은 공부를 추구 하였다. 나중에는 아예 조선문학으로 전공을 바꾸다시피 하였으며, 조선 학 이외에도 현대문학 문예비평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문필 활동을 하였다. 이는 재질이 뛰어난 탓이기도 하겠지만, 당시의 여건이 어느 한 방면을 깊이 파고들어 연구할 수 있도록 놓아두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 다. 이것은 그의 학문 세계를 논함에 있어 적지 않은 약점으로 지적되 기도 한다. 그의 약점은 무엇보다도 박이부정( 博 而 不 精 ) 이라고 지적해 야 될 것 같다. 그의 학문 스타일을 보면 스케일이 크고 거시적인 안목 이 출중한 반면, 논리의 전개와 고증에 있어 부실하거나 정밀하지 못한 점이 적지 않다. 이것은 호방뇌락( 豪 放 磊 落 )하게 글을 쓰는 스타일과도 27) 김태준의 漢 詩 는 이가원 편 玉 溜 山 莊 詩 話 (허경진 역, 연세대학교출판부, 1980)에 몇 수가 실려 있다. 또한 1933년 당시 명륜학원 동료 교수였던 嵋 山 安 寅 植 에게 득남을 축하하는 내용의 시를 직접 써준 것이 전한다. 단아한 인품을 그대로 나타낸 듯한 글씨는 안인식의 아들인 安 炳 周 교수 (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가 소장하고 있다. 28) 李 忠 雨, 경성제국대학, 多 樂 園, 1980, 119~120쪽. 29) 이충우, 앞의 책, 130쪽

16 1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무관하지 않다. 한 예로 우리 나라 전통 시가( 詩 歌 )를 전공하여 조선 시가사강( 朝 鮮 詩 歌 史 綱 ) (1937)이라는 우뚝한 업적을 남긴 조윤제나, 신 라 향가와 고려가요 등 고가( 古 歌 ) 연구에 치력( 致 力 )하여 조선고가연 구 (1942)를 저술함으로써 이 방면에서 새 지평을 연 양주동( 梁 柱 東 : 1903~1977) 등의 정밀하고 세련됨과는 대비가 된다. 의욕이 앞선 나머 지 머리만 크고 손발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은 셈이라고나 할까. 이와 관련하여 고려가사( 高 麗 歌 詞 ) 를 두고 벌어진 학계의 논전( 論 戰 )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1939년 4월 김태준은 고려가사 (학예 사)를 펴냈다. 그러자 먼저 양주동이 이 책의 두찬( 杜 撰 )과 주석상의 오류를 낱낱이 지적하면서 고문학( 古 文 學 )의 일수난( 一 受 難 ) 이라고까 지 통박하였다. 30) 조윤제도 책이 나오기에 앞서 고려가사 라는 명칭, 즉 장르 설정 문제를 가지고 반론 31) 을 펴는 등 학계에 끼친 충격이 적 지 않았다. 김태준은 양주동의 통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이 고려가사 란 명칭하에 노래를 수집한 자도 나요, 고려가사편 이라 는 명칭을 처음부터 붙인 자도 나다. 만일 이 김태준이가 없었던들 고 려가사 라는 네 글자가 집성되어 세상에 나왔을런지? 나왔다 할지라도 더욱 많은 세월의 경과가 필요했을 것이다. 만일 이 고려가사 20여 수 의 잔존( 殘 存 )이 없었다면, 또한 고려 5백년의 문학적 여백을 보전( 補 塡 )할 길은 묘연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부질없는 일이라도 해두지 않았 다면 고문자( 古 文 字 )의 일수난( 一 受 難 ) 의 기문가( 奇 文 家 ) 양주동 씨와 같은 독자가 어디서 비로소 고려가사의 존재를 알았을 것인지 이 역시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볼 만도 하지 아니한가? 32) 30) 양주동, 古 文 學 의 一 受 難 金 台 俊 氏 의 近 著 麗 謠 註 釋 ( 一 ), 조선일보 1939년 5월 28일~6월 4일 연재. 31) 조윤제, 古 代 歌 謠 의 形 成 특히 高 麗 歌 詞 의 명칭에 대하여, 조선일 보 1939년 1월 1일자. 32) 김태준, 高 麗 歌 詞 是 非 梁 柱 東 氏 에 一 言 함, 조선일보 1939년 6월 14일

17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7 당시 중국어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는 그를 비롯하여 경성제대 문과 제1회 졸업생인 최창규( 崔 昌 圭 ) 33) 를 비롯하여 양백화( 梁 白 華 ) 정래동 ( 丁 來 東 ) 34) 등이 있었고, 후배 가운데 경성제대 문과 졸업생으로는 제8 회의 차상원( 車 相 轅 ) 35), 제12회의 이명선( 李 明 善 ) 36) 등이 있었다. 이명 선의 경우, 김태준과 마찬가지로 뒤에 조선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광 복 뒤인 1948년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조선문학사 37) 를 출간 하였는데, 김태준의 연구 성과를 다수 반영하고 있다. 조선어문학 방면 으로는 경성제대 제1회 출신인 조윤제, 제2회의 이희승, 제3회의 김재 철 이재욱, 제5회의 방종현 이숭녕, 제6회의 고정옥( 高 晶 玉 : 1911~ 1968 월북), 제8회의 구자균( 具 滋 均 ), 제12회의 신구현( 申 龜 鉉 : 1912~ 납북) 등이 있었고, 조선사학 방면으로는 제1회의 신석호( 申 奭 鎬 ), 제2 회의 윤용균( 尹 瑢 均 : )이 있었으며, 그 밖에 조선미술사의 고유섭( 高 裕 燮 : 2회)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면서 조선민속 특히 연희( 演 戱 )에 관심과 조예가 있었던 김재철( )과는 관포지교( 管 鮑 之 交 ) 또 는 지음( 知 音 )이라 일컬을 정도로 교의( 交 誼 )가 깊었다. 김재철이 27세 로 요절하자 경성제대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던 조선연극개관( 朝 鮮 演 劇 33)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34) 北 京 에 유학하였으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다가 서울대학교 중어중 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 뒤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 기도 했다. 35) 아호는 淵 坡 (1910~1990).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대한민국 학술 원 회원 역임. 36)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중어중문학과 창설의 주역이다. 1950년 월 북하였다. 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李 慶 善 (1923~사망)이 그의 季 氏 이다. 37) 1980년대(정확한 연도 및 발행처 미상)에 한국문학사 연구총서 4권 가운 데 朴 英 熙 의 현대한국문학사, 金 東 仁 의 춘원연구 와 함께 제2권으로 합본, 영인된 것과 1990년 汎 友 文 庫 (89)로 간행된 것도 있다

18 18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槪 觀 ) 을 조선연극사 라는 제목으로 출판해준 사람이 바로 김태준이었 다. 38) 김태준과 김재철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성제국대학 졸업대 장( 卒 業 臺 帳 )에도 재적번호가 216, 217번으로 기록될 정도로 언제나 붙 어다녔었다. 성격을 보면, 김태준은 침착하고 말수가 적은 반면, 김재 철은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편이었으며 재담에 뛰어나 늘 좌중을 압도 하였고 즐겁게 하였다 한다. 경성제대 학적부를 보면, 재학시절 김태준은 김재철에 비해 전공과목 에 치중한 듯하고, 김재철은 조선문학은 물론 조선학 전반, 나아가 외국 문학까지 학점을 이수하였다. 학점은 전공에 치중한 김태준이 훨씬 나 은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학점 평가는 우( 優 ) 양( 良 ) 가( 可 )의 기본 3단위에다 각 단위를 +(1.0) 와 -(0.5) 로 세분하여 모두 6단위로 되어 있었는데, 김태준은 김재철보다 성적이 좋아 우 양이 많은 편이다. 당시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교수진을 살펴보면, 먼저 전공인 중국 어문학에는 고지마 겐기로( 兒 島 獻 吉 郞 )가 있었고, 중국철학에 후지스카 지카시( 藤 塚 鄰 ), 조선사학에는 이마니시 류( 今 西 龍 ), 조선어문학에는 오 쿠라 신페이( 小 倉 進 平 ), 다카하시 도오루 등이 있었다. 고지마는 그의 지도교수로서 지나문학고( 支 那 文 學 考 ) (전 3권)라는 방대한 분량의 역 저를 낸 학자였다. 39) 그러나 당시에 이미 연로한 고지마 교수에게 별 로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고, 더욱이 중국문학 연구방법론에 있어 서도 고지마 교수와 김태준은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학문적 38) 1931년 4월 15일부터 6월 28일까지 동아일보 에 연재되었다.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직후 1933년 淸 進 書 館 에서 조선어문학회 총서 로 출판되고, 이후 1939년에는 學 藝 社 에서 조선문고로 다시 간행되었다. 김태준, 朝 鮮 演 劇 史 序 (1933) ; 徐 恒 錫, 朝 鮮 演 劇 史 書 評, 동아일보, 1933년 6월 24일자 참조. 정형호, 김재철의 조선연극사 연구, 한국민속학 제 28호, 민속학회, ) 고지마의 지나문학고 는 나중에 중국의 학자 孫 俍 工 이 번역하여 중국문 학통론 이라는 제목으로 1972년 臺 灣 商 務 印 書 館 에서 간행되기도 하였다

19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9 으로 진한 교계( 交 契 )는 없었던 듯하다. 오쿠라 교수의 경우 김태준이 대학을 졸업한 뒤 그의 연구실에 머물면서 공부를 계속할 정도로 관계 가 깊었으며, 향가( 鄕 歌 ) 해석에 있어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전 한다. 다카하시 교수는 자신의 후임으로 김태준을 천거할 정도로 학문 을 인정하였으며, 나중에 이조문학사의 연구( 李 朝 文 學 史 の 硏 究 ) 를 공 저( 共 著 )하기도 했다. 특히 민요 야담 속담 등의 수집과 연구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그는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석학들에게 배웠으며, 졸업한 뒤 곧바로 대학에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맞 이하였다. 이것은 그의 실력이 그 만큼 출중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1935년 명륜학원 강사가 되고 명륜학원이 전문학원으로 승격 된 뒤 조교수에 승진하였으며, 39년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 문학담당 강사를 겸임하기도 하였다. 당시 대학강사 자리를 얻기란 정 말 하늘의 별따기에 비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대학에서 정 식으로 조선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배인 조 윤제 등을 제치고 강사로 채용된 것은, 명륜전문학원 총재 무정( 茂 亭 ) 정만조( 鄭 萬 朝 : 1859~1936)가 생전에 강력히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하 는 증언이 있으나, 40) 어찌되었든지 일본인 교수들이 그를 학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실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당시 다카하시 후 지스카 두 교수는 경성제국대학 교수에다 명륜학원 강사를 여러 해 동 안 겸임하면서, 같은 명륜학원 강사였던 청년 김태준의 학문활동을 가 까이서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40) 故 誠 庵 金 根 洙 박사 등 몇 분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조윤제는 다카하시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강사로 채용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 다고 한다. 반면에 김태준의 경우, 일본인 교수진과 私 嫌 이 별로 없었고, 특히 1935년 이래 봉직하고 있던 명륜전문학원의 총재 정만조가 경성제대 에도 여러 해 출강하면서, 평소 자신과 교분이 두터운 다카하시 교수에게 생전에 김태준을 강력히 추천하여 강사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20 20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김태준의 술회에 따르면, 지나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후 그는 시경, 당송시문( 唐 宋 詩 文 ) 등 정통 한문학을 다시 공부하였으나, 별 로 신기한 것이 없어 만족감을 얻지 못하였다. 이처럼 방황하고 있을 때, 새로 마요( 馬 堯 )라는 젊은 선생이 오고 선배 최창규가 원곡선( 元 曲 選 ) 을 독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통 고문의 과구( 窠 臼 )로부터 벗 어나 연구영역을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선 원( 元 ) 명 ( 明 ) 청( 淸 ) 시대의 연문학( 軟 文 學 )의 개론적 지식을 얻을 겸하여 명 청희곡소사( 明 淸 戱 曲 小 史 ) 같은 것을 졸업논문으로 꾸미고자 작정하기 도 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일인 학자 아오키 마사루( 靑 木 正 兒 : 188 7~1964)가 같은 제목의 저술 41) 을 출간하였으므로, 다시 졸업논문 소재 를 구하고자 학생 신분으로 북경( 北 京 ) 유리창( 琉 璃 廠 )에까지 다녀오기 도 했다. 이리하여 완성한 것이 성명잡극연구( 盛 明 雜 劇 硏 究 ) 42) 이다. 그는 중국을 직접 다녀온 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 같다. 즉 중국에 는 건설도상( 建 設 途 上 )에 있는 신문학이 많다는 것과, 중국문학 연구의 사 명은 오로지 이 신문학의 수입 소개 번역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정치와 문학을 일원( 一 元 )으로 보기 시작했던 것도 이 때 무렵부터였다. 아 울러 당시 중국에서 활약하던 여러 학자들의 저술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 은 듯하다. 외국문학전공의 변 을 통해 그의 술회를 직접 듣기로 하자.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충동을 준 것은 중국의 가장 우수한 중 견작가 K씨가 쓴 중국고대사회연구 를 읽은 데서 비롯합니다. 나의 머 리에서 사서삼경을 완전히 극복한 것도 이 때요, 고문학을 연구하는 새 로운 방법이 있는 것을 발명한 것도 이 때요, 새로운 세계관을 확실히 파악하려고, 모색하려고 하던 것도 이 때입니다. 그래서 일시( 一 時 )는 41) 支 那 近 世 戱 曲 史 이다. 그의 저술은 靑 木 正 兒 全 集 에 망라되었다. 42) 대다수 연구자들이 김태준의 대학 졸업논문을 조선한문학사 라고 알고 있 으나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 靑 丘 學 叢 제4호(청구학회, 1931)에 실린 昭 和 5년(1930) 경성제국대학 졸업논문 목록 과 경성제대 학적부를 참조할 것

21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21 경제학 서적도 읽어보고 역사과학 책도 읽어보고 잠시 고사( 古 史 ) 연구 에 몰두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의 신문학을 번역하며 소개하 는 것을 일생동안 나의 사명으로 삼고 간간( 間 間 ) 고문학을 과학적 입 장에서 연구해 보고, 겨를이 있으면 지나역사까지 손을 대 볼까 한 것 이 그 후의 나의 야심이었습니다. 호적( 胡 適 ) 씨의 지나철학사대강( 支 那 哲 學 史 大 綱 ) 을 비판한 이계( 李 季 ) 씨의 비판논문과 신주( 神 州 ) 국광 사( 國 光 社 )에서 발행한 중국사회사논전( 中 國 社 會 史 論 戰 ) 같은 것이 당 시 가장 좋은 독물( 讀 物 )이었습니다. 이것은 제2차적 자료가 아닌, 그 자신의 생생한 증언이기에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여기서 소개한 곽말약( 郭 沫 若 : 1892~1978)의 중국고대사 회연구 (1929년 初 刊 ) 등 좌파적 지식인들의 저술은 그에게 지대한 영향 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찍이 곽말약은 당시 중국 학계에서 벌어졌던 국고정리( 國 故 整 理 ) 가 사회를 혁신하는 실천적 성격을 결여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처음으로 맑스와 엥겔스의 사적 유물론( 史 的 唯 物 論 ) 을 중국의 문화 사상에 적용하여 사회구성상의 성격 을 평론하였다. 김태준이 조선한문학사 를 조선한문학의 결산보고서 라 고 전제한 것 자체가 바로 곽말약의 중국고대사회연구 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당시 코민테른의 영향을 받아 1930년대 초 절정에 달 했던 중국사회사 논전( 中 國 社 會 史 論 戰 ) 역시 김태준의 대학시절과 시기 적으로 맞아떨어져 그의 학문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Ⅳ. 조선한문학사 의 위치 조선한문학사 는 193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한 문학사의 개척적인 노작( 勞 作 )으로 인정받고 있는 저서이다. 분량은 총 26장 191면(B6판)에 불과하지만, 한문학의 역사적 흐름과 각 장르별 발

22 2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달과정을 거시적으로 조망하여, 후학들의 한문학사 및 문학사 연구에 이정표 구실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전적 위치를 차지한 다. 43) 1933년에 최창규가 저자는 이미 조선한문학사 를 발표하여 조 선 학계에 단연 혹성적( 惑 星 的 ) 존재가 되었다 44) 고 평한 것이 과찬만 은 아닌 성 싶다. 1931년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 가 선을 보이기 이전까지 문학사 한문학사 분야의 전문적인 서적은 거의 없었고, 오직 자산( 自 山 ) 안확 ( 安 廓 : 1886~1946)의 조선문학사 (경성 : 韓 一 書 店, 1922)가 있을 뿐 이었다. 45) 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국문학사로서 많은 분야를 섭렵하고 있으나, 워낙 적은 분량(135면)이어서 전문서로서의 구실을 기대하기에 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양대 기둥 가운데 하나인 한문학을 사적( 史 的 )으로 조명한 조선한문학사 가 출 간된 것은 학계가 동경( 同 慶 )해야 할 일이라 하겠다. 그의 이 책은 조 선소설사 와 함께 전인미답( 前 人 未 踏 )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저자의 나이 27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 韓 ) 중( 中 )의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수 많은 서적을 열력( 閱 歷 ),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본서를 집필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경외심이 들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저자의 자서( 自 序 )가 없는 까닭에 이 한문학사 를 집필하게 된 구체 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명륜전문학원 강사 43) 1958년에 등사본으로 나온 韶 庭 崔 海 鍾 의 槿 域 漢 文 學 史 ( 靑 丘 大 學 刊 )와 1961년에 간행된 淵 民 李 家 源 의 한국한문학사 (민중서관)에 기본틀을 제 공하고 있다. 陶 南 趙 潤 濟 의 명저인 한국문학사 에서도 한문학 관련 부 분의 서술은 거의 전적으로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 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참고 또는 인용했다는 註 記 하나 없는 것은 유감이다. 44) 朝 鮮 小 說 史 書 評, 조선일보, 1933년 6월 12일자. 45) 自 山 安 廓 國 學 論 著 集 ( 二 ), 여강출판사, 1994 참조. 崔 元 植 교수가 번역한 것도 있다(을유문고 252, 1984)

23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23 로 있을 때 그에게 배웠던 이가원 이진영( 李 鎭 永 ) 씨 등의 증언에 의 하면, 그가 대학 재학시절 일본인 학자들이 우리의 문학사, 특히 소설사 와 한문학사를 집필하려 하자, 이에 발분하여 우리의 문학사야말로 우 리가 먼저 내놓아야 한다 는 취지 아래 본서와 조선소설사 를 집필하 게 되었다고 한다. 46) 바로 여기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의 기개 와 학구적 정열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그가 1934년에 조선한 문학사 방법론 이라고 하는 자저자평( 自 著 自 評 )에서도 밝힌 바 있다. 돌아보건대 수년 전 아직도 머리 위에 대학모를 젖혀 쓰고 공리적( 功 利 的 ) 영웅심에 패기가 발발( 勃 勃 )할 때에 그 실( 實 )은 어리석고 용매 ( 庸 昧 )하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문견( 聞 見 )을 가지고, 대담스럽게 조선 수천년 문화사 속에 가장 양으로 풍부한 한문학을 시스템 세워보려고 하였다. 물론 선배 없는 학계를 탄식하여 가며 조선을 사랑한다는 마음 도 움직인 것이었다. 47) 그런데, 의도적으로 일본인 학자에 앞서 저서를 내놓으려는 강박관 념이 앞서다 보니, 내용 및 체계 구성에 있어 부실한 곳이나 오류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가면서 시문학 부분에서 상당 한 분량의 안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약술( 略 述 )에 그친 것은 아쉬 움이라 하겠다. 서술에 있어서도 재래 한문학자들과 같은 구투( 舊 套 )가 46) 특히 한문학사의 서술에는 일본인 학자 다다 세이치( 多 田 正 知 )의 영향이 있었던 듯하다. 이것은 李 朝 의 漢 文 學 源 流 ( 新 興 제5호, 1931)라는 논 고 첫머리에서 내가 한문학사를 草 한 지 歲 餘 에 벌써 정인보 씨는 고대 편을 소개하고 多 田 氏 는 고려편을 소개하였기에, 나는 이조편의 원 류를 그 골자만 잠깐 소개한다 고 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정인보의 저술은 朝 鮮 文 學 源 流 草 本 (연희전문학교 文 科 硏 究 集 제1집 조 선어문연구, 경성 : 연희전문학교 출판부, )을 말한다. 多 田 正 知 의 高 麗 朝 漢 文 學 史 는 1930년 6월부터 8월까지 3회에 걸쳐 조선총독부에 서 펴내는 朝 鮮 통권 181호~183호에 연재되었다. 47) 學 燈 제6호, 1934, 65쪽 ; 김태준전집 제3권, 1쪽

24 2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의연하고 문장이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늘어 지고 호흡이 길어 문맥이 불통한 대목이 많다. 또 박람강기( 博 覽 强 記 ) 에 의존한 것이 많아 인용문이 원전과 어긋나거나 잘못 인용 해석한 대목이 적지 않고, 오자 탈자 연자( 衍 字 ) 등이 일일이 헤아릴 수 없 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것을 보면, 윤문( 潤 文 )과 교정이 거의 이루어 지지 않은 것 같다. 저자의 자술( 自 述 )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필자가 원고를 급히 하는 일벽( 一 癖 )으로 이조편은 중요한 골자를 많 이 누설( 漏 泄 )하였기 때문에 화룡점정( 畵 龍 點 睛 )의 감이 없지 못하며, 오자가 많았던 것도 그 역시 필자의 방만한 허물의 소치( 所 致 )였다는 것을 사과하여야 하겠다. 48) 이와 같은 점은 신문 연재 초판 발행 증보판 발행으로 이어졌던 조선소설사 와 비교해 보면 더욱 정도가 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추후에 이루어진 한문학사 남본( 藍 本 )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한문학사 에서는 한문학만을 전문적으로 논하기보다는 한문학 을 위요( 圍 繞 )한 당시 문화 전반에 대하여 개설적이며 폭넓게 다루려 하였다. 그런 까닭에 작품 분석에 대한 아쉬움이 남거나, 작가와 작품 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전배( 前 輩 ) 학자들의 논설을 다수 인용함으 로써 저자 자신의 주견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20대 후반인 저자의 학문적 위치와 함께 저술 을 서두르게 된 배경 등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줄로 안다. 저자가 한문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술방법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방법에 다수 의지하고 있는데, 이는 선행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 연천( 年 淺 )한 후학으로서 보다 공정한 판단 과 조심성을 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48) 학등 제6호, 1934, 67쪽 ; 김태준전집 제3권, 3쪽

25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25 어찌되었든 이러한 문제점과 한계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본서와 조선소설사 의 학문적 가치를 크게 내려 깎지는 못할 것이다. 당시 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전 시기에 착수하기 어려웠던 통사를 저술하여, 후세에 이정표 구실을 수행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학계 의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또 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이나 오류는 후학들에게 좋은 숙제( 宿 題 )로 남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조선한문학사 는 한문학의 여러 장르를 모두 섭렵하여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전제로도 알 수 있다. 1. 본고가 조선소설사 와 중출( 重 出 )되는 부분이 많은 까닭에, 그러 한 곳은 대강 말하여 두고 될수록 새로운 재료와 실례( 實 例 )로써 설명하였다. 2. 불가사문( 佛 家 沙 門 )의 한문학은 다른 기회에 발표키로 하고 합술 ( 合 述 )치 아니하였다. 3. 조선한문학사는 이조 이후에는 경기 삼남( 三 南 ) 사람들의 산물이 며, 더구나 서북( 西 北 ) 일로( 一 路 )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김태준, 1931 : 6~7쪽) 본서와 조선소설사 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따라서 보다 완 정( 完 整 )된 한문학사 의 이해를 위해서는 조선소설사 와의 비교 검토 가 불가피하다. 김태준은 조선소설사 에서 조선문학을 다섯 부문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한문학을 설화 가요 소설 희곡과 함께 하나의 영역으로 설 정하였다(김태준, 1939 : 27쪽). 따라서 조선한문학사 역시 조선문학 사의 범주내에서 그 서술의 일환으로 집필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조선한문학사 에서는 한글로 된 작품만을 국문학 작품으로 치고 있어, 이에 대한 입장 변화 여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문학을 국문

26 2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학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던 것이 1930년대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였음 을 감안할 때, 중요한 입장의 변화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사는 이조 이후에는 경 기 삼남 사람들의 산물이며, 서북 일로( 一 路 )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고 하였다. 한문학의 불모지요, 사각지대( 死 角 地 帶 )라 할 수 있는 평안도 출 신 김태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말은 자못 의미 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서북 출신 인사들에 대해 평치 라 하여 천시하고 차별하 는 기존의 지방색에 대해, 조선한문학사 에서 은연중 비판하였다. 관서일도( 關 西 一 道 )는 왕화( 王 化 )에 균점( 均 霑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 로 천이불용( 賤 而 不 用 )하게 되는 시대가 왔다. 그 후부터는 평안도 놈! 서한( 西 漢 )! 평치! 하는 것이 대명사가 되었다. (김태준, 1931 : 173쪽) 또한 지방색을 타파한 이시항 이라는 일절( 一 節 )을 베풀고(172~173 쪽), 한문학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동향 선유( 同 鄕 先 儒 ) 화은( 和 隱 ) 이시항( 李 時 恒 : 1672~1736)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서북 사람들의 응어리진 심정을 간접적으로 대변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조선한문학을 결산하는 사적( 史 的 ) 연구를 자임하였으니, 남다른 감회가 있었으리라.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 는 먼저 중국문학에 예속된 한문학이 아닌, 우리 나라 독자적인 한문학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데 주안이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부( 淺 膚 ), 이속( 俚 俗 ), 장만( 長 漫 ), 미약( 靡 弱 ) 이것이 결점 아님은 아니다. 웅장( 熊 掌 )과 추환( 芻 豢 )은 먹는 자의 기호에 따라 경중 대소 를 선택할 것인즉, 조선 명류( 名 流 )의 시문을 선택하여 중국 대가에 대 치( 對 峙 ), 혹은 비교해 보는 이 소논문도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김태준, 1931 : 5~6쪽) 그는 우리 나라 한문소설을 중국 소설의 한 방계( 傍 系 )로 보려는 것

27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27 에 대해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 한 문학을 중국문학의 아류( 亞 流 ) 또는 부용( 附 庸 )으로 보려는 태도에 반 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과 관점에 따라 자료 나열 식의 정리를 하다 보니, 우리 한문학이 중국문학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체 적으로 볼 때, 김태준이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중국문학과의 연계를 주 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나라 한문학을 중국문학의 한 방 계로만 보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제 어용관학자들의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역사를 보다 공정하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저들이 당파성 ( 黨 派 性 ) 문약성( 文 弱 性 ) 등을 우리 민족의 천성으로 파악한 데 대하 여 이를 시종 비판하였다. 학자들에게 당돌히 묻고자 하노니, 잔열( 孱 劣 ) 패배 등등 모든 허물 이 이 민족의 타고난 결점일까. 이 땅의 이 현실은 이 민족의 선천적인 당쟁성 문약성 해태성( 懈 怠 性 )에 의한 것 같이 말하나, 당쟁의 역사는 다수하게 증가하는 기생층( 寄 生 層 )들이 그들의 생활의 기초를 농민의 위에 둔 만큼, 그들의 팽창하여 가는 현상을 계속하기 위한 단말마적( 斷 末 魔 的 ) 추태였던 것이요, 문약성이란 것도 이조 5백 년의 지배자 철학 인 유교 향약적( 鄕 約 的 )으로써 도주( 陶 鑄 )한 환경의 산물이요, 해태성도 그들의 생활 방도를 잃기 때문에 생긴 일인 것이다. 최근 전혀 역외( 域 外 )의 독점판매시장이 된 경제적 의 소산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든 것인가. 그러면 과거의 그때그때에 그러한 지 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것이 그때그때의 환경의 소사( 所 使 )에 불과하거늘, 그 무슨 심사로 이것으로써 이 땅의 선천성을 만드려 하는가? 물론 그들 의 정략적인 비학술적 심사는 그 뱃속을 보는 것처럼 뻔한 일이다. 우리는 허망한 관학자( 官 學 者 )들의 선입견에 일격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한다. 49) 49) 김태준, 樂 浪 遺 蹟 의 意 義, 三 千 里 8 4, 1936 ; 김태준전집 제3권, 243~244쪽

28 28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이러한 기본 입장은 조선한문학사 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가 우리 한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나선 것은 바로 조선사의 종속성 부용성을 주장하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탈피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Ⅴ. 조선한문학사 의 방법론과 한계 김용직( 金 容 稷 ) 교수는 조선한문학사 에 대하여 이 책은 일정한 시기의 여러 사실들을 각각 독립된 상태에서 시간에 따라 열거 기술 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방법론에 대하여 고민한 단면이 드러나지 않 는 문학사에 해당한다 고 평하였다. 50) 방법론이 분명하지 않고 한문학 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인과관계에 의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 판이다. 이것은 적확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자신도 이러한 비 판을 예상한 듯, 역사과학적 입장 에서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친 바 있다. 이처럼 (조선의) 한문학은 지배계급의 잠꼬대가 아니면 풍월타 령이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의 생활을 엿볼 만한 아무 것도 없었다. 한 문학사를 초( 草 )하기처럼 공허를 느끼는 것은 아마도 많지 않으리라. 그 래서 연대순으로 현저한 한문학자 한시인( 漢 詩 人 )을 열거하고 그들의 사실( 史 實 )을 첨부한 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사( 史 ) 라는 명명( 命 名 ) 뿐 이요 명실( 名 實 )이 불부( 不 副 )하는 허명( 虛 名 )이다. 요컨대, 나의 재래의 서술이 어느 것이 자료 나열식이 아님이 없으되, 그 중에도 한 문학사만은 가장 심한 자( 者 )이었다. 앵무지언( 鸚 鵡 之 言 )에 무슨 사적 ( 史 的 ) 발전이 있었을까 하니, 한문학사에 무슨 방법론이 필요할 것인가 하는 느낌을 품게 된다. 51) 50) 김용직, 한국근대문학논고, 서울대학교출판부, 1985 참조. 51) 학등 제6호, 1934, 65쪽 自 著 自 評 조선한문학사 방법론 ; 김태준전

29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29 한문학에 대한 저자의 위와 같은 시각과 관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조선한문학사 가 조선소설사 와 거의 동시에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방법론과 전체적인 구성 등에서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한 차 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문학에 대한 저자의 시각과 입장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늘 과학적 연구 를 외치면서도, 정작 우리 나라 한문학에 관계된 통사 한 권이 없는 처지에서 사상초유( 史 上 初 有 )의 논고를 엮다 보니, 여러 가지 한계와 고민이 적지 않았을 법 하다. 이는 그가 외국문학 전공의 변 에서 지나의 고문학( 漢 文 學 )은 신문학보다 과학적 입장에서 연구해 보려고 노력한 연대가 퍽 짧다 고 토로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지 조선한문학사 가 지 닌 기본적인 한계성은 과도기적 불가피성 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의 뚜렷한 한문학관( 漢 文 學 觀 )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해야 될 것 같다. 조선한문학사 는 거시적으로 볼 때 연구방법론 내지 서술방법에 문 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해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방법론상 으로 몇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있다. 조선한문학사 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까지 문이재도( 文 以 載 道 ) 또는 문도일치( 文 道 一 致 ) 라는 종래의 도학적 문학 관념이 지배적이었던 풍 조 속에서, 이를 과감히 거부하고 미의식( 美 意 識 )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문학관을 선명히 제시하였다 52) 는 점이다. 집 제3권, 3쪽 참조. 52) 김태준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상으로 따져보면 일체 학술의 성질 을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고 하면서, 과학은 知 的 학문으로 眞 을 구하는 것이요, 문학은 情 的 학문이어서 美 를 구하는 것이며, 철학은 意 的 학 문이어서 善 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라 하였다(김태준, 1931 : 2~3쪽). 이 러한 삼분법은 독일철학의 이론을 수용한 것으로서, 春 園 李 光 洙 문학론 의 토대이기도 하다. 황종연, 하나의 국문학을 넘어서 국문학 연구와 문 학이론, 비평 2000년 상반기, 비평이론학회 참조

30 30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문학은 미( 美 )를 구함이며 감정을 표현함이니, 나는 될수록 유가( 儒 家 )의 작품을 사인( 詞 人 ) 문장( 文 匠 )의 범위에서 배제하고 논하고자 한 다. (김태준, 1931 : 134쪽) 조선한문학사 의 서문을 쓴 김재철은 저자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였다. 지금도 한문학이라고 하면 딱딱한 성리학까지 포함된 줄 알고 세인 ( 世 人 )은 흔히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철학은 철학이요, 문학은 문 학이다. 군의 이 저서에는 물론 사단( 四 端 )도 없고 칠정( 七 情 )도 없다. 즉 유가의 작품을 한문학사상에서 단연히 배제하고 순전히 문학적 방면 만을 역사적으로 연구하였다. 물론, 이에 대해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재래의 한문학 작가들 중에는 순수 문학가라고 일컬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요, 또 한문학은 시든 문이든 간에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 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점은 서양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민홍( 李 敏 弘 ) 교수는 김태준의 의중을 꿰뚫어 대변한 김재철의 서문 을 이끌어 조선한문학사 의 근저에 서양식 삼분법이 깔려 있다고 하 면서 서정( 敍 情 ), 서사( 敍 事 ), 희곡 의 3대 문체의식( 文 體 意 識 ) 53) 을 가지고 한문학을 보려 한 것은 방법론상으로 매우 잘못되었다고 비판 하였다. 이러한 시각으로 역대 한문학 작품들을 연구할 경우, 남아나는 것이 거의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당대에는 별 의미가 없던 약간의 53) 김태준과 김재철은 서로 知 音 의 관계에 있었다. 두 사람의 연구업적은 이 삼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크게 볼 때 서정 영역의 조선한문학사 (김태준), 서사 영역의 조선소설사 (김태준), 희곡 영역의 조선연극사 (김재철)로 구별할 수 있다. 이들 양인은 서로 긴밀하게 지내면서 학문적 으로 진한 교분을 나누었던 만큼, 연구 영역의 분담까지도 유추할 수 있 을 듯하다

31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31 작품들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다. 54)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하더라도, 문학을 도학으 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는 당시로서는 실로 전인미답( 前 人 未 踏 )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라 하겠다. 지금이야 물론 문학과 철학의 영역을 분리하여 연구하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경성제대의 조선문학 강 의시간에 퇴고왕복논변( 退 高 往 復 論 辨 ) 이 강독될 정도로 전문학( 專 門 學 )을 구분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적 예 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예의식은 바로 도학(또는 성리학)에 종속되었 던 문학의 영역을 되찾고 한문학의 범주를 확정지으려는 의욕적인 시 도임에 틀림없다. 이 방면에 있어 선구적인 안목을 갖춘 학자가 아니 고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태준은 종래의 문언체( 文 言 體 ) 문학에 대하여 골동품에 비유하는 등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으며, 본서를 조선한문학의 청산을 위한 결산 보고서라고 하였다. 가장 한심한 것은 현재 조선에 남아 있는 한문학자들은 한문학 이라 고 하면, 선진( 先 秦 ) 양한( 兩 漢 )과 당송팔대가의 문장이 아니면, 포 ( 鮑 ) 사( 謝 ) 두( 杜 ) 육( 陸 )의 시율( 詩 律 )에 그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은 옛말이요, 망발이다. 중국 민족의 정신적 유동( 流 動 )을 볼 수 있 는 문학은 전혀 중국 현대의 구어체인 백화( 白 話 )에 있으므로, 이제는 고대의 문언체 시문은 하나의 골동품을 구경하는 셈밖에 되지 아니하 며, 나의 이 제목도 한낱 고전연구에 그친다. 문언체의 한문을 배워서 한문을 짓는 시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 이러한 연구는 고대 문화 의 결산, 정리에서만 의미가 있고( 漢 文 學 史 의 使 命 -특히 조선한문학), 독자편에서 보면 박물관에 가서 석기시대의 도끼나 화살촉을 보고 선영 ( 先 塋 )의 분묘 앞에서 해골을 발견한 느낌이나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물론 아직도 도성( 都 城 )이나 방간( 坊 間 )에 시구나 모을 줄 아는 사람이 54) 이민홍, 韓 國 漢 文 學 연구 분야와 방법론의 새 地 平, 동방한문학 제21 집, 동방한문학회, 2001, 8~9쪽 참조

32 3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많지만, 영어를 쓸 줄 안다고 모두가 영문학자는 아닐 것이며, 오늘의 한문학자도 옛날의 타세( 惰 勢 )일 뿐이다. 알지 못하겠지만, 이후에도 다 시 월( 月 ) 상( 象 ) 계( 谿 ) 택( 澤 )이 나고 삼당( 三 唐 ) 사가( 四 家 )가 나 리라고는 믿지 아니한다. 이 점에서 나의 한문학사 는 조선한문학의 결 산보고서가 된다. (김태준, 1931 : 6쪽) 이러한 그의 인식은 결론 부분 말미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재래의 한문학은 경향( 京 鄕 )에 약간 잔천( 殘 喘 )을 보존하고 있지만, 자연도태로써 신선하게 쇄소( 刷 掃 )되는 것을 우리는 본다. 낡은 것을 정 리하고 새로 새 것을 배워서 신문화의 건설에 힘쓰자! 이것이 조선한 문학사 의 외치는 표어라 하노라. (김태준, 1931 : 191쪽) 그러기에 그는 문학사의 사명을 논하면서 문학 진화( 進 化 )의 과정 을 알며, 그 성쇠 변천의 인과( 因 果 )를 살펴, 금후( 今 後 )에 대한 문학의 추세를 추측하는 것이 문학사의 사명이지만, 이 조선한문학사 의 사 명만은 이와 좀 다르다 (김태준, 1931 : 3쪽)고 하였던 것이다. 김태준은 이러한 한문학의 추세에 대해 헤겔의 변증법으로 볼 때 반( 反 ) 이라는 운명을 어찌할 수 없다 (김태준, 1931 : 191쪽)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데에는 당시의 시대적 풍상( 風 尙 )과도 밀 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개명적 지식인들은 대부분 과거를 청산하고 유신( 維 新 )을 외치는 데 급급하여, 전통문화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신해혁명 이후 중국에서 일어났던 국고정 리운동( 國 故 整 理 運 動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 조선한문학사 는 물론 조선의 역사에 대한 분류사적인 여러 업적들이 대개 그러한 인식 아래 저술되었던 것이다. 조선한문학사 는 정통 한문학인 시문, 그것도 산문보다 시에 비중 을 두고 집필되었다. 물론 저자가 별도로 조선소설사 를 저술한 바 있으므로 소설 등에 있어서는 자연 중첩을 피하고자 했겠지만, 한문학

33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33 의 주류를 시문학으로 보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이후 한문학 연구의 범위에서 한문소설이 소외되는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데 일조를 하게 된다. 그가 한시와 고문( 古 文 )으로 대표되는 정통 한문학 만을 한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켰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체적 인 맥락에서 그 개연성은 적지 않다. 김태준은 조선한문학과 조선문학의 관계에 있어서 델리킷(delicate) 한 측면이 있음을 전제한 뒤, 조선문학이란 것이 순전히 조선문자인 한글 로 향토 고유의 사상 감정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진대, 다만 조선 어로 쓴 소설 희곡 가요 등이 이 범주 안에 들 것이요, 한문학은 스 스로 구별될 것이다 (김태준, 1931 : 3~4쪽)고 하였다. 이는 곧 우리 나라 한문학을 우리 문학의 울타리 밖으로 내쳐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이전의 춘원( 春 園 ) 이광수( 李 光 洙 ) 등 선학들의 주장과 전적으로 동궤 ( 同 軌 )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후 수십년을 두고, 한문학을 한 국문학으로 정립시키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김태준의 이러한 입장은 철저하게 지켜지지 못하였다. 무엇 보다도 조선한문학의 중요 장르 가운데 하나인 한문소설이 조선한문 학사 에서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 조선소설사 에서는 국문소설 과 한문소설을 구별 없이 수록하는, 체재상의 모순을 범하였던 것이다. 단순한 모순일까? 아니다. 이것은 그의 문학관과 직결시켜 볼 때, 다분 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태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정, 서사, 희곡 등 서양의 3대 문체의식을 가지고 조선한문학사 의 저술에 임하였던 것 같다. 이 삼 분법 가운데 서정 은 주로 서정시, 서사 는 서사시와 소설 등으로 구현 되었는데, 특히 서사 의 주된 영역은 소설이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태준은 서정 보다 서사 적 영역을 더욱 중시하였던 것 같다. 그가 조선한문학사 보다 조선소설사 에 더 심혈을 기울였으며, 저술 에 임하는 태도 역시 판이하였던 것은 여기에 원인이 있다. 그는 조 선한문학사 서론에서 조선의 한문학은 순전히 시가, 사륙( 四 六 ), 문장

34 3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에 그치고 말았다 (김태준, 1931 : 4쪽)고 하여, 우리 나라 한문학의 범 위를 사실상 시문학으로 한정시키고 심하게 평가 절하하였다. 그가 한 문학 가운데서도 시문학에 대해 유난히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매거 할 수는 없지만, 조선한문학사 방법론 이라는 글이 압축적으로 대변 하고 있다. 그러나, 한문소설의 경우, 평가에 있어 시문학에 비해 덜 인색하다. 그것은 곧 소설이 시문학에 비해 조선적 정감( 情 感 ), 사회적 성격, 역사적 의의 등에 있어, 그리고 민중의 생활을 엿보는 데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제어 : 조선학, 조선소설사, 조선한문학사, 국고정리운동, 예술성, 미의식( 美 意 識 ) 참고문헌 김태준, 김태준전집 전 5권, 寶 庫 社, 김태준, 張 璉 瑰 역, 조선한문학사,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 김태준, 김태준 문학사론 선집, 현대실학사, 김태준, 崔 英 成 校 註, 定 本 조선한문학사, 도서출판 심산, 李 忠 雨, 경성제국대학, 多 樂 園, 鄭 尙 均, 金 台 俊 論, 국어교육 제38호, 국어교육연구회, 沈 慶 昊, 천태산인의 조선한문학사 檢 證, 한문교육연구 제1호, 한국 한문교육연구회, 金 重 烈, 김태준의 국문학연구 검토, 국어국문학 제100집, 국어국문 학회, 임영태, 혁명적 지식인 김태준, 사회와 사상 창간호, 한길사, 朴 熙 秉, 김태준의 국문학연구( 上 下 ), 민족문학연구 제3 4호, 창 작과 비평사,

35 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35 李 東 英,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고, 국어국문학연구 제25집, 영남대학 교 국어국문학과, 柳 浚 弼, 국문학사 연구의 의의와 방법 김태준을 예증으로, 관악어 문연구 제18집,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柳 浚 弼,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와 증보 조선소설사 의 대비, 한국학 보 제88집, 일지사, 柳 浚 弼, 김태준 조선한문학사 와 魯 迅 漢 文 學 史 綱 要 의 문자 문제, 국제고려학회 논문집 제1호,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柳 浚 弼, 魯 迅 과 김태준의 문학사 서술 비교, 국제고려학회 한국지부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柳 浚 弼, 형성기 국문학연구의 전개 양상과 특성 趙 潤 濟 金 台 俊 李 秉 岐 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白 永 吉, 金 台 俊 과 동아시아 문학 중국 현대문학론 및 延 安 行 을 중심 으로, 翰 林 日 本 學 硏 究 제2호,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1997 ; 서연호(외), 한국 근대 지식인의 민족적 자아 형성 (도서출판 小 花, 2004) 제1부 제2장에 재수록. 白 永 吉, 金 台 俊 的 中 國 現 代 文 學 論 及 魯 迅 觀, 중국현대문학 제17호, 한 국중국현대문학학회, 양영길, 김태준의 문학사 인식방법 趙 美 媛,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와 魯 迅 의 中 國 小 說 史 略 의 비교 연구 소설사 저술의 배경 및 소설관을 중심으로, 중국어문학논 집 제12호, 중국어문학연구회, 노꽃분이,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석사 학위논문, 한겨레신문사(편), 발굴 한국현대인물사 80, 국문학자 삶 떨치고 공산 주의 활동 김태준, 한겨레신문 1991년 9월 13일자. 趙 潤 濟, 조선한문학사 서평, 靑 丘 學 叢 제7호, 李 鍾 洙, 조선한문학사 서평, 東 光 2월호,

36 3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46 輯 ) <Abstract> Life, Researches and the Reassessment of Classics of Kim, Tae-jun - Based on the words of Chosun's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 Choi, Young-sung Life and activities of Kim, Tae-jun(1905~1949), who was a renowned literature historian in the 1930's were thoroughly examined. So far, studies on Kim, Tae-jun was limited on his work Chosun's History of Novels. As an introspection, research method, the limitations and status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of Kim, Tae-jun's another work Chosun's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was examined macroscopically. Also, it was found that his studies on classics was done as a reevaluation of traditional culture, and it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Movement of Guo Gu Zheng Li which was in effect in China at the time. 최영성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전화: (연구실), choiys60@hanmail.net 이 논문은 2005년 4월 30일 투고하여 2005년 5월 30일까지 심사완료하여 2005년 6월 30일 간행함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통합 우리나라 ⑵ 조상님들이 살던 집에 대 해 아는 어린이 있나요? 저요. 온돌로 난방과 취사를 같이 했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조상님들은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살았어요. 주무르거나 말아서 만들 수 있는 전통 그릇도 우리의 전통문화예요. 그리고 우리 옷인 한복은 참 아름 답죠?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 남자는 바지와 조끼를 입어요. 명절에 한복을 입고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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