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조선왕릉 역사문화경관림 자원조사 연구 종합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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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0~2016 년종합평가

3 문화유산헌장 CULTURAL HERITAGE CHARTER 문화유산은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 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 문화의 자산이다. A nation's cultural heritage embodies its intellectual and spiritual contributions to the civilization of mankind. 유형의 문화재와 함께 무형의 문화재는 모두 민족 Cultural properties, whether tangible or intangible, represent both the essence and the basis of national culture. Our Korean cultural heritage are even more dear to us because they have survived various unfortunate chapters of our long history. Our ongoing efforts to understand, explore and nurture this cultural heritage deepens the love of our country and of our fellow countrymen. All of us must work together to protect our historic relics and their surroundings from being damaged or destroyed, since once damaged, cultural heritage can never be restored to their original condition. 문화의 정수이며 그 기반이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유 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재난을 견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일은 곧 나라 사랑의 근본이 되며 겨레 사랑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온 국민은 유적과 그 주위 환경이 파 괴ㆍ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아 갈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 줄 것을 다짐하면서 문화유산 헌장을 제정한다. We thus proclaim this Cultural Heritage Charter, committing ourselves to the supreme task of handing on to future generations, our spiritual and physical assets as they were handed down to us by our ancestors. 1.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1. Cultural heritage must be preserved in their original condition. 2. 문화유산은 주위 환경과 함께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 되어야 한다. 2. Cultural heritage, as well as their surroundings, must be protected from indiscriminate development. 3. 문화유산은 그 가치를 재화로 따질 수 없는 것이므로 결코 파괴ㆍ도굴되거나 불법으로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 3. Cultural heritage must never be destroyed, stolen, or illegally traded under any circumstances, for they are beyond material value. 4.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은 가정ㆍ학교ㆍ사회 교육을 통해 널리 일깨워져야 한다. 4. The value of our cultural heritage must be taught and widely propagated through education at home, in school and in society. 5. 모든 국민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계승ㆍ발전시켜야 한다. 5. All of us must contribute to preserving, developing and transmitting our glorious national culture. 1997년 12월 08일 December 8,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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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출문 문화재청장귀하 본보고서를 2010~2016 년종합평가 의최종보고서로제출합니다 년 12 월 ( 사 ) 한국전통조경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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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ntents 1. 조선왕릉의무기환경ㆍ 13 2) 광릉 159 3) 선릉ㆍ정릉 조선왕릉의식생현황ㆍ18 1) 생태보존지역식생현황 18 2) 중점관리지역수목현황 조선왕릉의동물현황ㆍ140 1) 년야생동물종합분석 140 4) 태릉ㆍ강릉 168 5) 정릉 173 6) 의릉 176 7) 서오릉 180 8) 서삼릉 184 9) 온릉 ) 파주삼릉 ) 파주장릉 조선왕릉의곤충현황ㆍ 조선왕릉의식생구상ㆍ145 1) 적극적보호지역경관림조성및관리 145 2) 생태관리지역보전방안 148 부록 1. 왕릉의수목 각능별수목 조선왕릉 ( 王陵 ) 의식목 ( 植木 ) 파종 ( 播種 ) 관련기록 모든왕릉에씨뿌리고나무심어보존하는방법 조선왕릉의식생보존관리ㆍ149 1) 정비및관리기본목표 149 2) 외래식물정리 149 3) 수목재식및보전관리 나무뿌리와사태방지책 능위잡초제거와떼입힐때유의사항 왕릉의보토 보토 ( 補土 ) 하는방법 참고문헌 왕릉별보존관리ㆍ 154 참여기술자명단 1) 동구릉 154

8 Table contents 표 1 무기환경요소분석 ( 년) 13 표 2 조선왕릉에분포하는관속식물1 18 표 3 조선왕릉에분포하는관속식물2 18 표 4 조선왕릉에분포하는한국특산식물목록 19 표 5 조선왕릉에분포하는희귀식물목록 21 표 6 조선왕릉에분포하는식물구계학적특정식물목록 23 표 7 조선왕릉에분포하는귀화식물목록 26 표 8 조선왕릉에분포하는관속식물목록 30 표 9 동구릉주요군락의특성 60 표 10 동구릉주요군락의계층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62 표 11 홍릉ㆍ유릉의임분별특성 66 표 12 홍릉ㆍ유릉의임분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67 표 13 사릉의임분별특성 68 표 14 사릉의임분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69 표 15 광릉주요군락의특성 70 표 16 광릉주요군락의계층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1 71 표 17 광릉주요군락의계층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2 72 표 18 선릉ㆍ정릉주요군락의특성 73 표 19 선릉ㆍ정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74 표 20 선릉ㆍ정릉의현존식생현황 75 표 21 헌릉ㆍ인릉임분별특성 76 표 22 헌릉ㆍ인릉임분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77 표 23 태릉ㆍ강릉주요군락의특성 78 표 24 태릉ㆍ강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79 표 25 태릉ㆍ강릉의현존식생현황 80 표 26 정릉주요군락의특성 82 표 27 정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83 표 28 정릉의현존식생현황 84 표 30 의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86 표 31 의릉의현존식생현황 87 표 32 서오릉주요군락의특성 88 표 33 서오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89 표 34 서오릉현존식생현황 91 표 35 서삼릉주요군락의특성 92 표 36 서삼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93 표 37 서삼릉현존식생현황 94 표 38 온릉주요군락의특성 95 표 39 온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96 표 40 온릉현존식생현황 97 표 41 파주삼릉오릉주요군락의특성 98 표 42 파주삼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99 표 43 파주삼릉의현존식생현황 100 표 44 파주장릉주요군락의특성 102 표 45 파주장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103 표 46 파주장릉현존식생현황 104 표 47 김포장릉임분별특성 105 표 48 김포장릉군락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106 표 49 융릉ㆍ건릉임분별특성 107 표 50 융릉ㆍ건릉임분별주요수종의상대우점도 108 표 51 조선왕릉천연기념물서석현황 141 표 52 조선왕릉지표종인딱다구리류의서식현황 141 표 53 현지확인된생태계위해우려외래생물등급 ( 곤충 ) 의출현현황및특성 144 표 29 의릉주요군락의특성 85

9 Figure contents 그림 1 사릉임상도 68 그림 2 선릉ㆍ정릉의현존식생도 75 그림 3 헌릉ㆍ인릉임상도 76 그림 4 태릉ㆍ강릉의현존식생도 81 그림 5 정릉의현존식생도 85 그림 6 의릉의현존식생도 87 그림 7 서오릉현존식생도 91 그림 8 서삼릉현존식생도 94 그림 9 양주온릉현존식생도 97 그림 10 파주삼릉현존식생도 101 그림 11 파주장릉현존식생도 104 그림 12 김포장릉의임상도 105 그림 13 융릉ㆍ건릉의임상도 107 그림 14 건원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0 그림 15 현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0 그림 16 목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1 그림 17 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2 그림 18 원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2 그림 19 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3 그림 20 숭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3 그림 21 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4 그림 22 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4 그림 23 홍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5 그림 24 유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5 그림 25 사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6 그림 26 광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7 그림 27 선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8 그림 28 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19 그림 29 헌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0 그림 30 인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0 그림 31 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1 그림 32 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2 그림 33 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3 그림 34 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4 그림 35 명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5 그림 36 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6 그림 37 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7 그림 년홍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8 그림 39 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9 그림 40 서삼릉희릉전수조사 130 그림 41 서삼릉예릉전수조사 131 그림 42 서삼릉효릉전수조사 132 그림 43 양주온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3 그림 44 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4 그림 45 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1 135 그림 46 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2 135 그림 47 영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6 그림 48 파주장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7 그림 49 김포장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8 그림 50 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8 그림 51 건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9 그림 52 왕릉의조류현황 (2014~2016) 140 그림 53 왕릉에서주로서식하는야행성맹금류솔부엉이와소쩍새 142 그림 54 조선왕릉별출현종다양성비교 (2014~2016) 143 그림 55 역사경관림조성 ( 안 ) 146 그림 56 능침주변의소나무림 ( 변경전 ) 147 그림 57 능침주변의소나무림 ( 변경후 ) 147 그림 58 소나무군락식재구조예시도 152 그림 59 소나무식재밀도변경전변경후 152 그림 60 동구릉지형지질보존대책 154 그림 61 동구릉수계정비계획도 156 그림 62 동구릉토양계량도 157 그림 63 동구릉건원릉중점관리지역재식계획도 ( 안 ) 158

10 그림 64 광릉지형지질보존대책 160 그림 65 광릉수계정비계획도 161 그림 66 광릉토양계량도 162 그림 67 선릉과정릉기본계획도 166 그림 68 선릉재식정비 ( 안 ) 167 그림 69 정릉재식정비 ( 안 ) 168 그림 70 태릉과강릉의기본계획도 170 그림 71 태릉재식정비 ( 안 ) 172 그림 72 강릉재식정비 ( 안 ) 172 그림 73 정릉기본계획도 174 그림 74 정릉재식정비 ( 안 ) 176 그림 75 의릉기본계획도 178 그림 76 의릉재식정비 ( 안 ) 179 그림 77 서오릉창릉홍릉재식계획 ( 안 ) 183 그림 78 서오릉경릉순창원재식계획 ( 안 ) 183 그림 79 서오릉명릉수경원익릉재식계획 ( 안 ) 184 그림 80 서삼릉재식계획 ( 안 ) 187 그림 81 온릉재식계획 ( 안 ) 191 그림 82 파주삼릉재식계획 ( 안 ) 195 그림 83 파주장릉재식계획 ( 안 ) 198

11 2010~2016 년종합평가 1. 조선왕릉의무기환경 2. 조선왕릉의식생현황 3. 조선왕릉의동물현황 4. 조선왕릉의곤충현황 5. 조선왕릉의식생구상 6. 조선왕릉의식생보존관리 7. 왕릉별보존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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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조선 왕릉의 무기환경 조선 왕릉의 조성은 산을 등에 지고 동쪽(좌)에 청룡, 서쪽(우)에 백호라 부르 는 산줄기가 서로 양팔로 얼싸안은 듯 감싸고 안산이 앞을 막아주는 공간을 내명당이라고 하고 명당의 혈자리인 능선의 언덕 끄트머리에 봉분을 조성하였 다. 조선 왕릉의 좌우측에서 물이 흘러나와 연못과 도랑물이 왕릉 앞의 명당으 로 흐르며 나지막한 안산을 넘어 멀리 조산을 조망하는 지세를 형성한다. 외청룡과 외백호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 산을 연결하는 범위를 능역으로 정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각 능들은 주변 산림의 지형과 지세에 따라 규모를 달리 하고 있어 그 한계를 구분하기는 어렵다.1) 조선 왕릉의 지형과 수계 그리고 토양의 현황을 조사하고 현재의 모습을 보존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조선 왕릉의 표고는 24~130m 내외 사이로 다양하게 분포하며, 경사는 대부분 이 5~20 에 위치하였고 방위가 다양하였다. 수계는 배후산지의 영향으로 여러 작은 수계가 자연스럽게 합류되어 좀더 큰 수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토성은 사양토, 사질양토, 사질식양토가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토양의 수분함 량은 6~30%로 나타났다. 토양산도(pH)는 조사지역의 대부분이 ph 5.0 이하로 나타나, 산림토양 평균이 ph 5.5인 것을 고려하면, 토양의 산성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표 1 무기환경 요소 분석(2010~2016년) 지형 수계 토양 동구릉 평균고도가 매우 낮고 경사가 완만함 동구릉 내에 형성된 3개의 수계는 하나의 물길로 합류해 왕숙천으로 이어짐 물리성 토성은 사질식양토 수분함량은 7.5%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49 유기물함량은 평균 2.74% 홍릉 유릉 고도 38~370m 경사는 대부분이 23 이하의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방위는 북사 면이 많이 나타남 한강과는 4.5km, 북측의 사 능천과는 1.6km 홍릉과 유릉은 능선에 위치하 며 남측과 북측에 동에서 서 측으로의 수계가 형성됨 물리성 토성은 사질양토로 평균 토양경도는 0.2~5.0(kg/cm ) 수분함량은 12.7~36%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3.96 유기물과 전질소의 함량은 평균 3.68%, 0.16% 평균 전기전도도와 염농도는 각각 0.50dS/m, 0.03%로 양호 1) 조선시대 왕릉의 능역복원에 관한 연구, 2008년, 조운연.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3

14 지형 수계 사릉 고도 48~161m 경사는 대부분이 16 이하의 완만한 경사이 며, 방위는 남동, 동사 면이 많이 나타남 사능천이 사릉의 동측에서 접 하여 남측으로 흐르며 북측의 산줄기는 도로 및 시 설지로 인해 단절되어 수계 또한 단절됨 물리성 토성은 사질양토로 평균 토양경도는 0.2~5.0(kg/cm ) 수분함량은 굴참나무림이 23.8%로 가장 높게 나타남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08 유기물과 전질소의 함량은 평균 2.75%, 0.13% 평균 전기전도도, 염농도는 각각 0.31dS/m, 0.02% 광릉 고도 120~140m 경사는 대부분이 10 이하의 완만한 경사이 며, 방위는 남서 광릉 내에는 2개의 수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세조왕릉과 정희왕후릉 사이에 두 갈래로 수계가 각각 작은 수계가 형 성되어 내려와 합류해 정희왕 후 좌측 수계와 합류됨 물리성 토성은 사양토 수분함량은 14.22%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23 유기물함량은 평균 3.58% 선릉 정릉 고도 30~40m 경사는 5~10 이하 동향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하 천은 위치하지 않음 1.5~1.8km 거리에 탄천과 한 강이 위치 선릉과 정릉이 위치한 산림은 다양한 표고변화로 미지형을 형성하고, 작은 세류들을 형성 물리성 양토, 미사질사양토, 사양토가 분포함 토양함수율은 9.64~32.65%, 평균함수율은 16.08%임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5.65 유기물함량은 평균 23.65% 헌릉 고도 35~285m 경사는 대부분이 22 이하의 경사를 보이 며, 방위는 남사면이 많이 나타남 대모산의 산줄기를 따라 수계 가 형성 인접하천으로는 탄천 3.2km, 한강은 6km 물리성 토성은 양질사토로 평균 토양경도는 0.1~10.0(kg/cm ) 수분함량은 참나무림에서 19.7%로 가장 많은 수분을 함유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56 유기물과 전질소의 함량은 평균 1.97%, 0.10% 평균 전기전도도, 염농도는 각각 3.29dS/m, 0.21% 태릉 35~65m 태릉과 강릉의 경사는 10~15 이하 남향 능선에 위치하여 수계의 직접 적인 영향을 받지 않으나, 하 위 1차 하천을 형성하는 역할 을함 태릉에서 남측으로, 강릉에서 는 서측으로 수계 형성 태릉에서 약 3km 거리에 중 랑천이 위치하고 있음 물리성 양토, 미사질양토가 대부분을 차지함 토양함수율은 9.78~22.83% 사이의 분포를 보이고 있음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65로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토양의 산성화가 진행되었음 유기물함량은 8.50~37.89% 사이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으 며, 평균 유기물함량 19.10%로 높은 비율을 보임 고도 80~90m 경사는 5~12 이하 북동향 태릉에서 약 3km 거리에 중 랑천이 위치 정릉의 능선으로 인해 정릉을 둘러싸고, 북측에서 남측으로 작은 세류가 형성됨 물리성 양토, 사양토가 대부분을 차지함 토양함수율은 10.60~17.52% 사이의 분포를 보이고 있음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68로 나타남 유기물함량은 8.79~16.23%, 평균 유기물함량 11.86%임 의릉 고도 10~30m 경사는 5~10 이하 북동향 동측으로 약 1.1km 거리에 서 울의 남북으로 흐르는 중랑천 이 위치 천장산을 중심으로 작은 수계 들이 형성 북측에 미지형에 의해 형성된 계류가 위치 물리성 양토가 대부분을 차지함 토양함수율은 8.77~22.67%, 평균 14.31%임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46으로 나타남 유기물함량은 10.66~28.60%, 평균 유기물함량 19.56%임 1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태릉 강릉 정릉 토양

15 지형 수계 토양 서오릉 표고 30~45m 명릉, 경릉, 창릉은 5 이하의 평탄지에 위치 수경원, 익릉, 순창원 은 5 10 사이로 비 교적 완만한 곳, 대빈 묘와 홍릉은 사이로 다소 경사지에 위치 향은 명릉, 익릉, 순창 원, 대빈묘는 서향, 수 경원 창릉은 남서향, 홍릉은 북서향이며, 경릉은 평지 각각의 능은 미지형의 영향으 로 1차 유역을 형성하고 배후 산지의 영향으로 서쪽으로 하 천이 흐름 2차 또는 3차 유역을 기준으 로 창릉, 홍릉이 하나의 권역 을 형성하고 있으며 대빈묘, 경릉, 순창원, 익릉, 수경원, 명릉이 또 다른 하나의 권역 을 형성하고 있고, 이들은 서 쪽에서 합쳐서 하나의 하천을 형성 물리성 토성은 사질식양토 함수율은 평균 3.53~20.88% 사이에 분포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5.35 유기물함량은 평균 5.93% 전기전도도는 평균 ds/cm(98.23 / ) 서삼릉 표고 50m에서 60m 내외에 위치 6개의 능 전부가 경사 도 5 10 로 비교적 완만한 곳에 위치 주로 남향과 서향을 이룸 효창원/의경원, 희릉, 예릉 3 곳은 하나의 하천권역을 이루 고 있으며, 효릉과 소경원은 각각의 소규모 유역을 가짐 하천의 흐름은 배후 산지 지 형의 영향을 받아 북서 방향 으로 흘러가며 하나로 합쳐져 유역을 형성 물리성 사양토, 사질양토, 지역이 48.3%로 가장 많았으며 양토는 31%, 식양토와 식토는 17.2%가 분포 평균 함수율은 17.93%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68 평균 유기물함량은 6.68% 전기전도도는 평균 0.06ds/cm (65.68 / ) 온릉 표고 131.8m에 위치 경사도는 로 다소 경사지에 위치하 며, 남동향에 위치 1개의 유역으로 구성되며 배 후 산지와 더불어 전면 구릉 의 영향으로 남서방향으로 하 천이 형성 물리성 토양함수율은 평균 21.72%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32~4.51 유기물함량은 평균 6.06% 전기전도도는 0.04(42.00)~ 0.17ds/cm( / ) 파주 삼릉 전반적으로 표고 30~37m 내외에 위치 3개의 능 모두 경사도 5 10 사이로 완만한 경사지에 속함 순릉은 남서향, 영릉 은 북서향, 공릉은 남 동향 위치 공릉은 배후산지의 영향으로 동쪽으로 흘러가는 1차유역이 형성되고, 북쪽에서 남으로 향하는 하천과 합류 영릉과 순릉은 배후산지의 영 향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 러가는 하천이 형성 공릉과 영릉 및 순릉을 중심 으로 형성된 유역은 영릉의 북서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남 서로 흘러가는 하천을 형성 물리성 토성은 사양토가 7개소로 조사 지역 전체의 47%를 차지함 토양함수율은 평균 22.99%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5.32 유기물함량은 평균 5.90% 전기전도도는 평균 0.04ds/cm (45.89 / ) 파주 장릉 표고 24.7m에 위치 경사도는 15 이상으 로 급경지이며, 남향 에 위치 파주 장릉은 1개의 유역으로 구성되며 남쪽으로 개방되어 있는 배후산지의 영향으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는 하천 이 형성 물리성 토성은 양토로 수분함량은 평균 19.19%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5 유기물함량은 평균 7.23% 전기전도도는 평균 0.07ds/cm (76.18 / )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5

16 지형 수계 김포 장릉 고도 19~140m 경사는 대부분이 12 이하의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방위는 남사 면이 많이 나타남 개발지에 의해 사면이 단절되 어 2차 및 3차 수계를 분포 하지 않음 계양천이 약 1km 거리에 위 치하며 장릉산에서 발원하는 작은 수계가 위치 물리성 토성은 사질양토로 토양경도는 0.2~1.0(kg/cm ) 수분함량은 15.2~26%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3.87 유기물과 전질소의 함량은 평균 4.33%, 0.20% 평균 전기전도도, 염농도는 각각 0.52dS/m, 0.03% 융릉 건릉 고도 26~93m 경사는 대부분이 9 이하의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방위는 남사면이 많이 나타남 개발지에 의해 둘러싸여져 외 부로부터의 수계가 단절됨 북동측남측으로 흐르는 황 구지천이 1.5km에 위치 물리성 토성은 사질양토로 토양경도는 0.5~2.0(kg/cm ) 수분함량은 17.0~23.2%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3.91 유기물과 전질소의 함량은 평균 1.53%, 0.09% 평균 전기전도도, 염농도는 각각 0.52dS/m, 0.03% 소령원 ㆍ 수길원 표고 90~120m 내외 에 위치 경사도는 소령원이 15 이상으로 급경사 지에 위치하고 있으 며, 수길원은 사이, 신도비는 5 10 사이에 위치 소령원은 동향, 수길 원은 남서향, 신도비 는 북동향 소령원, 수길원, 신도비가 지 형에 의해 형성된 계곡을 따 라 남으로 향해 흘러가는 하 나의 유역에 속해 있으며, 북 동쪽과 동쪽에서 흐르는 하천 과 신도비 앞부분에서 합쳐짐 물리성 소령원은 사양토, 사질식양토 수길원 지역은 양토, 신도비 지역은 모두 양토로 분포 함수율은 신도비 지역이 평균 23.05%로 가장 높았으며, 수 길원 지역 22.51%, 소령원 지역이 평균 19.50%로 가장 낮았 음 소령원 권역 전체의 평균 함수율은 21.90%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4.84 유기물함량은 소령원 지역 평균 5.27%, 수길원 지역 6.48%, 신도비 지역 6.32%이며 전체 평균 5.98% 전기전도도는 평균0.06ds/cm (61.85 / ) 순강원 표고 80~90m 사이에 위치 경사는 10 이하 향은 남향 또는 평지 왕숙천의 1차 수계를 형성하 고 있음 물리성 토성은 사질식양토 수분함량은 10.3~11.84%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3.98 유기물함량은 평균 3.06% 휘경원 표고 80~100m 사이 에 위치 경사는 10 이하 향은 동향 및 남동향 이 대부분을 차지 봉선사천의 1차 수계를 형성 하고 있으며, 봉선사천은 300m 거리에 위 치 물리성 토성은 사양토 수분함량은 9.56~12.87%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4.04 유기물함량은 평균 4.14% 명빈묘 표고 80~100m 사이 에 위치 경사는 10~15 이하 향은 남향 및 남서향 이 대부분을 차지 사면 길이가 짧고 경 사가 완만함 용마봉 골짜기에서 수계가 형 성 한강으로 수계가 이어짐 한강이 600m 내에 위치 물리성 토성은 사질식양토 수분함량은 9.2%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3.57 유기물함량은 평균 1.75% 1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토양

17 영빈묘 영휘원 ㆍ 숭인원 안빈묘 연산군 묘 지형 수계 토양 매우 완만한 구릉상에 위치 영빈묘 동측에 능선으로 인한 수계가 형성 남동측의 왕숙천으로 이어지 며 약 800m 거리에 위치 물리성 토성은 사양토 수분함량 6.84% 화학성 토양산도는 평균 ph 3.84 유기물함량은 2.62% 표고 30m 내외에 위 치 경사도는 5 이하 서향 높은 산줄기에서의 직접적인 자연수계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음 동측으로 약 2.5km 거리에 남 북으로 흐르는 중랑천이 위치 하며, 남측으로는 약 2km 거 리에 동서로 흐르는 청계천이 위치 영휘원과 숭인원 사이에 지형 에 의해 형성된 작은 계곡이 위치하여 강우 시 하천의 역 할을 담당 물리성 토성은 사양토 수분함량은 23.68%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5.79 유기물함량은 11.25% 표고 50~100m 내외 경사도는 5~10 이하 남향 바로 건너 산에서의 우수는 남측을 가로지르는 사능천으 로 흘러감 남측은 도로에 의해 단절되어 수계 또한 단절됨 물리성 토성은 미사질양토 수분함량은 19.38%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4.94 유기물함량은 14.20% 표고 20~50m 내외 경사도는 5 이하 남동향 북측 산줄기는 방학로가 개설 되어 수계의 흐름 또한 단절 우이천은 서측으로 약 700m, 중랑천은 동측으로 약 2.5km 에 위치함 물리성 토성은 양토 수분함량은 20.53% 화학성 토양산도는 ph 4.72 유기물함량은 23.56%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7

18 2. 조선 왕릉의 식생 현황 1) 생태보존지역 식생 현황 (1) 식물상 ① 식물상 분포현황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조사한 조선 왕릉 역사문화경관림 자원조사연구에서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은 양치식물 9과 152속 28분류군, 나자식물 5 과 9속 18분류군, 피자식물 112과 393속 772분류군(쌍떡잎식물 98과 311속 613분류군, 외떡잎식물 14과 82속 159분류군)으로 총 126과 417속 818분류군 (703종, 6아종, 87변종, 20품종, 2교잡종)을 확인하였다. 표 2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1 과 속 종 아종 변종 품종 교잡종 분류군 양치식물 나자식물 피자식물 쌍떡잎식물 (98) (311) (522) (6) (65) (19) (1) (613) 외떡잎식물 (14) (82) (139) () (18) (1) (1) (159) 계 능별 분포가 확인된 분류군은 동구릉 443분류군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릉 384 분류군, 파주 삼릉 361분류군, 서오릉 333분류군, 태릉ㆍ강릉 325분류군, 의릉 288분류군, 선릉ㆍ정릉과 서삼릉 278분류군, 파주 장릉 255분류군, 정릉 244 분류군, 홍릉ㆍ유릉 230분류군, 온릉 216분류군, 사릉 180분류군, 헌릉ㆍ인릉 135분류군, 융릉ㆍ건릉 116분류군, 김포 장릉 101분류군으로 나타났다. 표 3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2 과 속 종 아종 변종 동구릉 홍릉ㆍ유릉 품종 교잡종 재배종 분류군 사릉 광릉 선릉ㆍ정릉 헌릉ㆍ인릉 태릉ㆍ강릉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9 정릉 75 의릉 80 서오릉 87 서삼릉 76 온릉 69 파주 삼릉 파주 장릉 김포 장릉 융릉ㆍ건릉 ② 특기할 만한 식물 가) 한국 고유(특산)식물 본 조사에서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한국 특산(고유)식물은 19분류군이 확인되 었다. 동구릉 11분류군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릉 8분류군, 태릉ㆍ강릉 7분류군, 정릉과 의릉 6분류군, 선릉ㆍ정릉과 파주 삼릉 5분류군, 서오릉과 서삼릉 각각 4분류군, 온릉 3분류군, 파주 장릉 2분류군이 확인되었다. 표 4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한국 특산식물 목록 학 명 Abies koreana Populus tomentiglandulosa Clematis trichotoma Berberis koreana Stewartia pseudocamellina Philadelphus schrenkii Indigofera koreana Viola seoulensis Abeliophyllum distichum Forsythia koreana Asperula lasiantha Paulownia coreana Weigela subsessilis Aster koraiensis Chrysosplenium pilosum var. fulvum Galium koreanum Hosta minor Lilium amabile Iris odaesanensis 국 명 구상나무 Ⅰ 은사시나무 할미밀망 매자나무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노각나무 고광나무 민땅비싸리 서울제비꽃 미선나무 개나리 갈퀴아재비 오동나무 병꽃나무 벌개미취 흰괭이눈 참갈퀴덩굴 좀비비추 털중나리 노랑무늬붓꽃 ~2016년 종합평가ㆍ 2 19

20 Ⅰ Ⅷ Ⅻ : 동구릉 : 정릉 : 온릉 Ⅳ Ⅸ ⅩⅢ : 광릉 : 의릉 : 파주 삼릉 Ⅴ Ⅹ ⅩⅣ : 선릉ㆍ정릉 : 서오릉 : 파주 장릉 Ⅶ Ⅺ : 태릉ㆍ강릉 : 서삼릉 나) 멸종위기 식물종 본 조사에서 선릉ㆍ정릉에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환경 부에서 고시한 멸종위기 야생식물은 미선나무(Abeliophyllum distichum) 1분류 군이 식재되어 있었다. 국립생물자원관과 국립수목원에서 IUCN(국제자연보존연맹) 평가기준에 따라 선정한 희귀식물은 생물자원관 선정 희귀식물은 EN(위기종) 3분류군, VU(취약 종) 3분류군, LC(관심종) 7분류군, NE(미평가종) 3분류군, 총 16분류군이며 국 립수목원 선정 희귀식물은 CR(멸종위기종) 5분류군, VU(취약종) 7분류군, LC (관심종) 11분류군, 총 23분류군으로 모두 20과 26분류군이다. 동구릉에서 9분 류군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릉 8분류군, 태릉ㆍ강릉 7분류군, 선릉ㆍ정릉, 의릉 과 파주 장릉이 각각 5분류군, 홍릉ㆍ유릉, 정릉, 서오릉과 서삼릉이 각각 4분 류군, 헌릉ㆍ인릉 2분류군, 사릉과 온릉이 각각 1분류군으로 나타났다. 2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 왕벚나무 태백제비꽃 금강제비꽃 Violaceae 제비꽃과 Viola albida Viola diamantiaca Sapindaceae 무환자나무과 Koelreuteria paniculata 모감주나무 Rosaceae 장미과 Prunus yedonensis LC EN LC VU CR LC CR Hamamelidaceae 조록나무과 Carylopsis gotoana var. coreana 히어리 LC VU LC LC 목련 Magnoliaceae 목련과 Magnolia kobus NE NE VU LC LC Aristolochiaceae 쥐방울과 Aristolochia contorta 쥐방울덩굴 바람꽃 Anemone narcissiflora Ranunculaceae 미나리아재비과 Caryophyllaceae 석죽과 Moehringia lateriflora 개벼룩 주목 VU LC Cupressaceae 측백나무과 Juniperus chinensis 향나무 Thuja orientalis 측백나무 Taxaceae 주목과 Taxus cuspidata EN 구상나무 Pinaceae 소나무과 Abies koreana VU 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느리미고사리 국 명 Dryopteris tokyoensis 학 명 Aspidiaceae 면마과 표 5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희귀식물 목록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22 2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 CR Ⅰ Ⅷ : 멸종위기종 : 동구릉 : 정릉 Ⅱ Ⅸ EN : 위기종 : 홍릉ㆍ유릉 : 의릉 Ⅲ Ⅹ 천마 Orchidaceae 난초과 Gastrodia elata * 창포 두루미천남성 Araceae 천남성과 Acorus calamus Arisaema heterophyllum VU LC LC VU VU CR Ⅳ Ⅺ VU : 취약종 : 사릉 : 서오릉 LC 범부채 노랑무늬붓꽃 부채붓꽃 Iridaceae 붓꽃과 Belamcanda chinensis Iris odaesanensis Iris setosa LC LC EN 나도개감채 Liliaceae 백합과 Lloydia triflora LC VU 왕씀배 CR LC CR Compositae 국화과 Prenanthes ochroleuca VU LC NE 9 Ⅰ LC : 광릉 : 서삼릉 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LC 미선나무 이팝나무 왕과 국 명 Campanulaceae 초롱꽃과 Campanula takesimana 섬초롱꽃 Oleaceae 물푸레나무과 Abeliophyllum distichum Chionanthus retusa Thladiantha dubia 학 명 Cucurbitaceae 박과 Ⅴ Ⅻ 1 Ⅲ : 관심종 4 Ⅱ 8 5 Ⅴ 2 Ⅵ NE : 선릉ㆍ정릉 : 온릉 Ⅳ 5 Ⅸ 4 Ⅹ : 헌릉ㆍ인릉 : 파주 삼릉 4 Ⅷ : 미평가종 Ⅵ ⅩⅢ 7 Ⅶ Ⅶ ⅩⅣ 4 Ⅺ 4 5 ⅩⅢ ⅩⅣ : 태릉ㆍ강릉 : 파주 장릉 1 Ⅻ

23 표 6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 목록 등급 Ⅴ Ⅳ Ⅲ Ⅱ 학 명 Magnolia kobus Prunus yedonensis Thladiantha dubia Abeliophyllum distichum Sceptridium japonicum Pinus parviflora Thuja orientalis Fallopia sachalinensis Moehringia lateriflora Carylopsis gotoana var. coreana Wistaria floribunda Mazus stachydifolius Iris odaesanensis Iris setosa Symplocarpus renifolius Gastrodia elata Dryopteris tokyoensis Abies koreana Juniperus chinensis Taxus cuspidata Ulmus pumila Aconitum longecassidatum Berberiskoreana Stewartia pseudocamellina Rhodotypos scandens Sorbaria sorbifolia var. stellipila Spiraea salicifolia Poncirustrifoliata Acer palmatum Koelreuteria paniculata Syringa reticulata var. mandshurica Cynanchum nipponicum Asperula lasiantha Galium kamtchaticum Glechoma grandis Sambucus latipinna Hosta clausa Lloydia triflora Diarrhena fauridi Phaenosperma globosa Polystichumbraunii Salix rorida Pseudostellaria coreana Aquilegia buergeriana var. oxysepala Caulophyllum robustum Acer triflorum 국 명 목련 왕벚나무 왕과 미선나무 산꽃고사리삼 섬잣나무 측백나무 왕호장근 개벼룩 Ⅰ Ⅳ Ⅴ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개회나무 덩굴박주가리 갈퀴아재비 털둥근갈퀴 긴병꽃풀 넓은잎딱총나무 주걱비비추 나도개감채 광릉용수염 산기장 좀나도히초미 분버들 참개별꽃 Ⅷ 히어리 등 선주름잎 노랑무늬붓꽃 부채붓꽃 앉은부채 천마 느리미고사리 구상나무 향나무 주목 비술나무 흰진범 매자나무 노각나무 병아리꽃나무 쉬땅나무 꼬리조팝나무 탱자나무 단풍나무 모감주나무 Ⅶ 매발톱 꿩의다리아재비 복자기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

24 등급 학 명 국 명 Viola tokubuchiana var. takedana 민둥뫼제비꽃 Sanicula rubriflora 붉은참반디 Primula sieboldi 붉은병꽃나무 Adoxa moschatellina 연복초 Arisaema heterophyllum 두루미천남성 Dryopteris crassirhizoma Polystichum ovatopaleaceum var. coraiense Matteuccia struthiopteris Lepisorus onoei Abies holophylla Lonicera praeflorens Pinus koraiensis Juglans mandshurica Betula davurica Ulmus parvifolia Celtis biondii Lychnis cognata Aconitum jaluense Clematis patens Berberis amurensis Chloranthus japonicus Aristolochia contorta Ⅰ Hylomecon vernale Hylotelephiuim verticillatum Ribes mandshuricum Potentilla cryptotaeniae Malus baccata Oxalis obtriangulata Impatiens nolitangere Euonymus japonicus Buxus koreana Grewia parviflora Gynostemma pentaphyllum Eleutherococcus sessiliflorus Fraxinus mandshurica Nymphoides peltata Cirsium pendulum Hosta minor Polygonatum inflatum Diarrhena mandshurica 2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Ⅴ Ⅳ Ⅸ ⅩⅢ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관중 참나도히초미 청나래고사리 애기일엽초 전나무 올괴불나무 잣나무 가래나무 물박달나무 참느릅나무 폭나무 동자꽃 투구꽃 큰꽃으아리 매발톱나무 홀아비꽃대 쥐방울덩굴 피나물 세잎꿩의비름 까치밥나무 물양지꽃 야광나무 큰괭이밥 노랑물봉선 사철나무 회양목 장구밤나무 돌외 오갈피나무 들메나무 노랑어리연꽃 큰엉겅퀴 좀비비추 퉁둥굴레 껍질용수염 : 광릉 : 의릉 : 파주 삼릉 Ⅶ 이팝나무 Weigela florida : 동구릉 : 정릉 : 온릉 Ⅳ 앵초 Ⅱ Chionanthus retusa Ⅰ Ⅷ Ⅻ Ⅰ Ⅴ Ⅹ ⅩⅣ : 선릉ㆍ정릉 : 서오릉 : 파주 장릉 Ⅶ Ⅺ : 태릉ㆍ강릉 : 서삼릉

25 다)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종 식물구계학적으로 선정된 특정식물종은 서로 다른 지역의 환경을 서로 다르게 표현해 주고, 서로 유사한 지역의 환경은 서로 유사하게 표현해 주는 데 이용되 는 분류군으로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측면에서 중요 한 의미를 지닌다.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종은 분포지역의 범위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Ⅴ등급은 국내에서 고립되어 분포하거나 불연속적으로 분포하는 분류군으로 256분류군, Ⅳ등급은 북방계 또는 남방계식물로서 일반적으로 1개 아구에 분포 하는 분류군으로 384분류군, Ⅲ등급은 북방계 또는 남방계식물로서 일반적으로 2개 아구에 분포하는 분류군으로 316분류군, Ⅱ등급은 비교적 전국적으로 분포 하지만 일반적으로 1,000m 이상 지역에 분포하는 분류군으로 135분류군, Ⅰ등 급은 북방계 또는 남방계식물로서 일반적으로 3개 아구에 분포하는 분류군으로 167분류군이며 총 1,257분류군으로 정리하였다(환경부ㆍ국립환경과학원, 2013). 본 조사에서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은 Ⅴ등급 4분류군, Ⅳ등급 12분류군, Ⅲ등급 24류군, Ⅱ등급 13분류군, Ⅰ급 35분류군 총 88분류군 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Ⅴ등급 4분류군 중 3분류군(목련, 왕벚나무, 미선나무), Ⅳ등급 12분류군 중 7분류군(섬잣나무, 측백나무, 왕호장근, 히어리, 등, 노랑무 늬붓꽃, 부채붓꽃)이 자생종이 아닌 식재종인 것과 같이 많은 종이 식재종이기 때문에 조선 왕릉지역은 식물분포학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라) 귀화식물 본 조사에서 조선 왕릉에 분포가 확인된 귀화식물은 총 21과 55속 68분류군이 다. 따라서 인간 간섭에 의한 자연의 파괴도의 표시 지수로 사용되는 도시화지 수(UI)는 우리나라 귀화식물 309종에 대해 22.01%로 나타났으며, 본 조사지역의 출현종 818분류군에 대한 귀화율은 8.31%로 나타났다. 귀화식물 중 환경부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으로 고시한 생태계 교란 외래식 물(2005, 환경부령 183호)은 애기수영(Rumex acetosella), 도깨비가지(Solanum carolinense), 돼지풀(Ambrosia artemisiifolia), 단풍잎돼지풀(Ambrosia trifida), 미 국쑥부쟁이(Aster pilosus), 서양등골나물(Eupatorium rugosum), 가시상추(Lactuca scariola) 7분류군이 확인되었다.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귀화식물을 과별로 구분하면, 국화과가 전체 귀화식물 68 분류군의 %인 22분류군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벼과가 13.24%인 9 분류군으로 나타났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

26 2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미국자리공 자리공 유럽점나도나물 끈끈이대나물 유럽개미자리 흰명아주 좀명아주 개비름 Phytolaceae 자리공과 Phytolacca americana Phytolacca esculenta Caryophyllaceae 석죽과 Cerastium glomeratum Silenea rmeria Spergularia rubra Chenopodiaceae 명아주과 Chenopodium album Chenopodium ficifolium Amarantaceae Amaranthus lividus 유럽나도냉이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개소시랑개비 서양산딸기 족제비싸리 아까시나무 Barbarea vulgaris Lepidium apetalum Lepidium virginicum Rosaceae 장미과 Potentilla supina Rubus fruticosus Laguminosae 콩과 Amorpha fruticosa Robinia pseudoacacia Cruciferae 닭의덩굴 애기수영 소리쟁이 돌소리쟁이 국 명 Fallopia dumetorum Rumex acetosella Rumex crispus Rumex obtusifolius 학 명 Polygonaceae 마디풀과 표 7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귀화식물 목록 Ⅰ Ⅲ Ⅱ Ⅳ Ⅴ Ⅵ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ⅩⅤ ⅩⅥ

27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 가죽나무 어저귀 종지나물 가시박 달맞이꽃 미국실새삼 미국나팔꽃 둥근잎미국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둥근잎유홍초 컴프리 자주광대나물 Simaroubaceae 소태나무과 Ailanthus altissima Malvaceae 아욱과 Abutilon theophrasti Violaceae 제비꽃과 Viola papilionacea Cucurbitaceae 박과 Sisyos angulatus Onagraceae 바늘꽃과 Oenothera biennis Convolvulaceae 메꽃과 Cuscuta pentagona Ipomoea hederacea Ipomoea hederacea var. integriuscula Ipomoea purpurea Quamoclit coccinea Boraginaceae 지치과 Symphytum officinale Labiatae 꿀풀과 Lamium purpureum 국 명 토끼풀 큰땅빈대 애기땅빈대 학 명 Euphorbiaceae 대극과 Euphorbia maculata Euphorbia supina Trifolium repens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ⅩⅤ ⅩⅥ

28 2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도깨비가지 선개불알풀 큰개불알풀 서양톱풀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 미국가막사리 지느러미엉겅퀴 불란서국화 망초 큰금계국 기생초 붉은서나물 개망초 봄망초 서양등골나물 털별꽃아재비 뚱딴지 가시상추 원추천인국 개쑥갓 큰방가지똥 서양민들레 도꼬마리 개나래새 까락빕새귀리 오리새 Scrophulariaceae 현삼과 Veronica arvensis Veronica persica Compositae 국화과 Achillea millefolium Ambrosia artemisiifolia Ambrosia trifida Aster pilosus Bidensf rondosa Carduus crispus Chrysanthemum leucanthemum Conyza canadensis Coreopsis lanceolata Coreopsis tinctoria Erechtites hieracifolia Erigeron annuus Erigeron philadelphicus Eupatorium rugosum Galinsoga ciliata Helianthus tuberosus Lactuca scariola Rudbeckia bicolor Senecio vulgaris Sonchus asper Taraxacum officinale Xanthium strumarium Gramineae 벼과 Arrhenatherum elatius Bromus sterilis Dactylis glomerata 국 명 Solanum carolinense 학 명 Solanaceae 가지과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ⅩⅤ ⅩⅥ

29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 Ⅰ Ⅶ ⅩⅢ : 동구릉 : 태릉ㆍ강릉 : 파주 삼릉 학 명 Eragrostis curvula Festuca arundinacea Lolium perenne Panicum dichotomiflorum Phleum pratense Poa pratensis Ⅱ Ⅷ ⅩⅣ : 홍릉ㆍ유릉 : 정릉 : 파주 장릉 Ⅲ Ⅸ ⅩⅤ 국 명 능수참새그령 큰김의털 호밀풀 미국개기장 큰조아재비 왕포아풀 Ⅱ : 사릉 : 의릉 : 김포 장릉 Ⅰ Ⅲ Ⅳ Ⅹ ⅩⅥ Ⅳ Ⅵ : 광릉 : 서오릉 : 융릉ㆍ건릉 Ⅴ Ⅴ Ⅺ Ⅶ Ⅷ Ⅹ : 선릉ㆍ정릉 : 서삼릉 Ⅸ Ⅵ Ⅻ Ⅺ Ⅻ ⅩⅣ : 헌릉ㆍ인릉 : 온릉 ⅩⅢ ⅩⅤ ⅩⅥ

30 3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지네고사리 처녀고사리 참새발고사리 Woodsiaceae 우드풀과 Athyrium brevifrons Kodama ex Nakai 참나도히초미 Thelypteris 처녀고사리과 Thelypteris japonica (Bak.) Ching Thelypteris palustris (Salisb.) Schott 왁살고사리 산족제비고사리 가는잎족제비고사리 관중 느리미고사리 좀나도히초미 십자고사리 꼬리고사리 Aspidiaceae 면마과 Arachniodes borealis Serizawa Dryopteris bissetiana (Bak.) C. Christensen Dryopteris chinensis (Bak.) Koidzumi Dryopteris crassirhizoma Nakai Dryopteris tokyoensis (Mats. ex Mak.) C. Christensen Polystichum braunii (Spenner) Fe'e Polystichum ovatopaleaceum var. coraiense (H. Christ) Sa. Kurata Polystichum tripteron (Kunze) Presl Aspleniaceae 꼬리고사리과 Asplenium incisum Thunberg 고사리 꿩고비 고비 Osmundaceae 고비과 Osmunda cinnamomea var. fokiensis Copeland Osmunda japonicia Thunberg Ⅰ 황고사리 잔고사리 고사리삼 산꽃고사리삼 Ophioglossaceae 고사리삼과 Sceptridium ternatum (Thunb.) Lyon Sceptridium japonicum (Prantl) Lyon Dennstaedtiaceae 잔고사리과 Dennstaedtia wilfordii (Moore) Christ Dennstaedtia hirsuta (Sw.) Mettenius ex Miquel Pteridium aquilinum var. latiusculum (Desv.) Underwood ex A.Heller 쇠뜨기 국 명 학 명 Equisetaceae 속새과 Equisetum arvense Linnaeus 표 8 조선 왕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 목록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1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1 은행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일본잎갈나무 독일가문비 백송 소나무 잣나무 섬잣나무 리기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메타쉐쿼이아 Ginkgoaceae 은행나무과 Ginkgo biloba Linnaeus Pinaceae 소나무과 Abies holophylla Maximowicz Abies koreana E.H. Wilson Larix kaempferi (Lamb.) Carrie're Picea abies (L.) H. Karsten Pinus bungeana Zuccarini ex Endlicher 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arini Pinus koraiensis Siebold et Zuccarini Pinus parviflora Siebold et Zuccarini Pinus rigida Miller Pinus strobus Linnaeus Taxodiceae 낙우송과 Metasequoia glyptostroboides Hu et Cheng 화백 향나무 노간주나무 서양측백나무 측백나무 애기일엽초 Polypodiaceae 고란초과 Lepisorus onoei (Fr. et Sav.) Ching Cupressaceae 측백나무과 Chamaecyparis pisifera (Sieb. et Zucc.) Endlicher Juniperus chinensis Linnaeus Juniperus rigida Siebold et Zuccarini Thuja occidentalis Linnaeus Thuja orientalis Linnaeus 국 명 개고사리 뱀고사리 좀진고사리 진고사리 흰털고사리 청나래고사리 야산고비 학 명 Athyrium niponicum (Mett.) Hance Athyrium yokoscense (Fr. et Sav.) Christ Deparia conilii (Fr. et Sav.) M. Kato Deparia japonica (Thunb.) M. Kato Deparia orientalis (Z.R. Wang & J.J. Chein) Nakaike Matteuccia struthiopteris (L.) Todaro Onoclea sensibilis var. interrupta Maximowicz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2 3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주목 가래나무 중국굴피나무 황철나무 은사시나무 호랑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키버들 분버들 선버들 오리나무 물오리나무 오리나무속 spp. 물박달나무 자작나무 까치박달 서어나무 개암나무 참개암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Juglandaceae 가래나무과 Juglans mandshurica Maximowicz Pterocarya stenoptera De Candolle Salicaceae 버드나무과 Populus maximowiczii A. Henry Populus tomentiglandulosa T.B. Lee Salix caprea Linnaeus Salix gracilistyla Miquel Salix koreensis Andersson Salix koriyanagi Kimura Salix rorida Lakschevitz Salix subfragilis Andersson Betulaceae 자작나무과 Alnus japonica (Thunb.) Steudel Alnus sibirica Fischer ex Turczaninow Alnus spp. Betula davurica Pallas 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 (Miq.) H. Hara Carpinus cordata Blume Carpinus laxiflora (Sieb. et Zucc.) Blume Corylus heterophylla Fischer ex Trautvetter Corylus sieboldiana Blume Fagaceae 참나무과 Castanea crenata Siebold et Zuccarini Quercus acutissima Carruthers Quercus aliena Blume Quercus dentata Thunberg Quercus mongolica Fischer ex Ledebour Quercus mongolica var. crispula (Bl.) H. Ohashi Quercus serrata Thunberg Quercus variabilis Blume 국 명 학 명 Taxaceae 주목과 Taxus cuspidata Siebold et Zuccarini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3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 폭나무 풍게나무 팽나무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비술나무 느티나무 두충 꾸지뽕나무 산뽕나무 가새뽕나무 뽕나무 환삼덩굴 좀깨잎나무 거북꼬리 풀거북꼬리 혹쐐기풀 큰물통이 모시물통이 물통이 붉은겨우살이 큰닭의덩굴 닭의덩굴 감절대 Eucommiaceae 두충과 Eucommia ulmoides Oliver Moraceae 뽕나무과 Cudrania tricuspidata (Carr.) Bureau ex Lavalle'e Morus bombycis Koidzumi Morus bombycis for. dissecta Nakai Morus alba Linnaeus Cannabaceae 삼과 Humulus japonicus Siebold & Zuccarini Urtiaceae 쐐기풀과 Boehmeria spicata (Thunb.) Thunberg Boehmeria ricuspis (Hance) Makino Boehmeria tricuspis var. unicuspis Makino Laporteae bulbifera (Sieb. & Zucc.) Weddell Pilea hamaoi Makino Pilea mongolica Weddell Pilea peploides (Gaud.) Hooker et Arnott Loranthaceae 겨우살이과 Viscum album for. rubroauranticum (Mak.) Ohwi Polygonaceae 마디풀과 Fallopia dentatoalata (F. Schmidt) Holub Fallopia dumetorum (L.) Holub Fallopia forbesii (Hance) K. Yonekura & Ohashi 국 명 학 명 Ulmaceae 느릅나무과 Celtis biondii Pampanini Celtis jessoensis Koidzumi Celtis sinensis Persoon Ulmus davidiana var. japonica (Rehd.) Nakai Ulmus parvifolia Jacguin Ulmus pumila Linnaeus Zelkova serrata (Thunb.) Makino Ⅰ Ⅸ Ⅹ Ⅺ Ⅷ Ⅶ Ⅴ Ⅳ Ⅻ ⅩⅢ ⅩⅣ

34 3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미국자리공 쇠비름 석류풀 Phytolaceae 자리공과 Phytolacca americana Linnaeus Portulaceae 쇠비름과 Portulaca oleracea Linnaeus Molluginaceae 석류풀과 Mollugo pentaphylla Linnaeus Caryophyllaceae 석죽과 Arenaria serpyllifolia Linnaeus 벼룩이자리 Cerastium glomeratum Thuill. 유럽점나도나물 Cerastium holosteoides var. hallisanense (Nakai) Mizushima 점나도나물 Cucubalus baccifer var. japonicus Miquel 덩굴별꽃 Dianthus chinensis Linnaeus 패랭이꽃 Dianthus chinensis for. albiflora T.B. Lee 흰패랭이꽃 국 명 호장근 왕호장근 가시여뀌 이삭여뀌 여뀌 개여뀌 명아자여뀌 며느리배꼽 장대여뀌 좁은잎미꾸리낚시 바보여뀌 미꾸리낚시 며느리밑씻개 고마리 기생여뀌 봄여뀌 마디풀 애기수영 소리쟁이 돌소리쟁이 학 명 Fallopia japonica (Houtt.) RonseDecr. Fallopia sachalinensis (F. Schmidt) Ronse Decr. Persicaria dissitiflora (Heml.) H. Gross ex Mori Persicaria filiformis (Thunb.) Nakai ex Mori Persicaria hydropiper (L.) Spach Persicaria longiseta (Bruijn) Kitagawa Persicaria nodosa (Pers.) Opiz Persicaria perfoliata (L.) H. Gross Persicaria posumbu var. laxiflora (Meisn.) H. Hara Persicaria praetermissa (Hooker f.) Hara Persicaria pubescens (Bl.) H. Hara Persicaria sagittata (L.) H. Gross ex Nakai Persicaria senticosa (Meisn.) H. Gross ex Nakai Persicaria thunbergii (Sieb. et Zucc.) H. Gross ex Nakai Persicaria viscosa (Hamilt. ex D. Don.) H. Gross ex Nakai Persicaria vulgaris Webb & Moquin Polygonum aviculare Linnaeus Rumex acetosella Linnaeus Rumex crispus Linnaeus Rumex obtusifolius Linnaeus Ⅰ Ⅳ Ⅴ Ⅶ Ⅷ Ⅹ Ⅸ Ⅺ Ⅻ ⅩⅣ ⅩⅢ

35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 일본목련 목련 오미자 Schisandraceae 오미자과 Schisandra chinensis (Turcz.) Baillon Ⅸ Ⅹ Ⅺ Ⅷ Ⅶ Ⅴ Ⅳ 자주목련 쇠무릎 개비름 Amarantaceae 비름과 Achyranthes japonica (Miq.) Nakai Amaranthus lividus Linnaeus 백합나무 백목련 흰명아주 명아주 좀명아주 댑싸리 Chenopodiaceae 명아주과 Chenopodium album Linnaeus Chenopodium album var. centrorubrum Makino Chenopodium ficifolium Smith Kochia scoparia (L.) Schrader Ⅰ Magnoliaceae 목련과 Liriodendron tulipifera Linnaeus Magnolia denudata Desrousseaux Magnolia denudata var. purpurascens (Maxim.) Rehder et E.H. Wilson Magnolia obovata Thunberg Magnolia kobus De Candolle 국 명 술패랭이꽃 동자꽃 개벼룩 참개별꽃 개별꽃 큰개별꽃 개미자리 끈끈이대나물 털장구채 장구채 가는장구채 유럽개미자리 벼룩나물 쇠별꽃 별꽃 학 명 Dianthus longicalyx Miquel Lychnis cognata Maximowicz Moehringia lateriflora (L.) Fenzl Pseudostellaria coreana (Nakai) Ohwi Pseudostellaria heterophylla (Miq.) Pax ex Pax & Hoffmann Pseudostellaria palibiniana (Takeda) Ohwi Sagina japonica (Sw.) Ohwi Silenea rmeria Linnaeus Silene firma for. pubescens (Mak.) Makino Silene firma Siebold et Zuccarini Silene seoulensis Nakai Spergularia rubra (L.) J. et C. Presl Stellaria alsinevar.undulata (Thunb.) Ohwi Stellaria aquatica (L.) Scopoli Stellaria media (L.) Villars Ⅻ ⅩⅢ ⅩⅣ

36 3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매발톱나무 매자나무 일본매자나무 꿩의다리아재비 남천 으름덩굴 댕댕이덩굴 Lardizabaceae 으름덩굴과 Akebia quinata (Thunb.) Decaisne Menisoermaceae 새모래덩굴과 Cocculus trilobus (Thunb.) De Candolle 매발톱 Berberidaceae 매자나무과 Berberis amurensis Ruprecht Berberis koreana Palibin Berberis thunbergii De Candolle Caulophyllum robustum Maximowicz Nandina domestica Thunberg Ⅳ Ⅰ 투구꽃 흰진범 노루삼 복수초 사위질빵 검은종덩굴 종덩굴 큰꽃으아리 으아리 할미밀망 할미꽃 젓가락나물 미나리아재비 개구리미나리 산꿩의다리 계수나무 Cercidiphyllaceae 계수나무과 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et Zuccarini Ranunculaceae 미나리아재비과 Aconitum jaluense Komarov Aconitum longecassidatum Nakai Actaea aciatica H. Hara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 Aquilegia buergeriana var. oxysepala (Traut. et Mey.) Kitamura Clematis apiifolia De Candolle Clematis fusca Turczaninow Clematis fusca var. violacea Maximowicz Clematis patens C. Morren et Decaisne Clematis terniflora var. mandshurica (Rupr.) Ohwi Clematis trichotoma Nakai Pulsatilla koreana (Yabe ex Nakai) Nakai ex Mori Ranunculus chinensis Bunge Ranunculus japonicus Thunberg Ranunculus tachiroei Franchet et Savatier Thalictrum filamentosum var. tenerum (Huth) Ohwi 생강나무 국 명 학 명 Lauraceae 녹나무과 Lindera obtusiloba Blume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7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 쥐방울덩굴 족도리풀 작약 목단 다래 노각나무 물레나물 고추나물 애기고추나물 좀고추나물 애기똥풀 피나물 Aristolochiaceae 쥐방울과 Aristolochia contorta Bunge Asarum sieboldii Miquel Paeoniaceae 작약과 Paeonia lactiflora Pallas Paeonia suffruticosa Andrews Actinidiaceae 다래나무과 Actinidia arguta (Sieb. et Zucc.) Planchon ex Miquel Theaceae 차나무과 Stewartia pseudocamellina Maximowicz Hyoericaceae 물레나물과 Hypericum ascyron Linnaeus Hypericum erectum Thunberg Hypericum japonicum Thunberg Hypericum laxum (Bl.) Koidzumi Papaveraceae 양귀비과 Chelidonium majus var. asiaticum (Hara) Ohwi Hylomecon vernale Maximowicz 자주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선괴불주머니 현호색 홀아비꽃대 Chloranthaceae 홀아비꽃대과 Chloranthus japonicus Siebold Fumariaceae 현호색과 incisa (Thunb.) Persoon ochotensis Turczaninow pauciovulata Ohwi remota Fischer ex Maximowicz 수련속 spp. Nymphaeaceae 수련과 Nymphaea spp. Corydalis Corydalis Corydalis Corydalis 국 명 새모래덩굴 학 명 Menispermum dauricum De Candolle Ⅰ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8 3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국 명 산괴불주머니 들현호색 금낭화 유럽나도냉이 냉이 좁쌀냉이 황새냉이 싸리냉이 미나리냉이 큰황새냉이 꽃다지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개갓냉이 속속이풀 양버즘나무 히어리 꿩의비름 세잎꿩의비름 가는기린초 기린초 돌나물 숙은노루오줌 노루오줌 괭이눈 흰괭이눈 학 명 Corydalis speciosa Maximowicz Corydalis ternata (Nakai) Nakai Dicentra spectabilis (L.) Lemarie Cruciferae 십자화과 Barbarea vulgaris R. Brown Capsella bursapastoris (L.) L.W. Medicus Cardamine fallax Linnaeus Cardamine flexuosa Wither Cardamine impatiens Linnaeus Cardamine leucantha (Tausch) O.E. Schulz Cardamine scutata Thunberg Draba nemorosa Linnaeus Lepidium apetalum Willdenow Lepidium virginicum Linnaeus Rorippa indica (L.) Hiern Rorippa palustris (Leyss.) Besser Platanaceae 버즘나무과 Platanus occidentalis Linnaeus Hamamelidaceae 조록나무과 Carylopsis gotoana var. coreana (Uyeki) T. Yamazaki Crassulaceae 돌나물과 Hylotelephium erythrostichum (Miq.) H. Ohba Hylotelephium verticillatum (L.) H.Ohba Sedum aizoon Linnaeus Sedum kamtschaticum Fischer & Meyer Sedum sarmentosum Bunge Saxifragaceae 범의귀과 Astilbe koreana (Kom.) Nakai Astilbe rubra Hooker f. et Thomas ex Hookerfil. Chrysosplenium grayanum Maximowicz Chrysosplenium pilosum var. fulvum (N. Terracc.) Hara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39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 국 명 빈도리 매화말발도리 돌단풍 얇은잎고광나무 까마귀밥나무 까치밥나무 바위취 짚신나물 명자나무 모과나무 산당화 산사나무 뱀딸기 터리풀 큰뱀무 죽단화 야광나무 털야광나무 꽃사과나무 가락지나물 딱지꽃 물양지꽃 양지꽃 세잎양지꽃 개소시랑개비 민눈양지꽃 윤노리나무 살구나무 산옥매 옥매 홍매 이스라지 매실나무 귀룽나무 복사나무 학 명 Deutzia crenata Siebold et Zuccarini Deutzia uniflora Shirai Mukdenia rossii (Oliver) Koidzumi Philadelphus tenuifolius Ruprecht et Maximowicz Ribes fasciculatum var. chinense Maximowicz Ribes mandshuricum (Maxim.) Komarov Saxifraga stolonifera Meerburgh Rosaceae 장미과 Agrimonia pilosa Ledebour Chaenomeles japonica (Thunb.) Lindley ex Spach Chaenomeles sinensis (Thouin) Koehne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 Crataegus pinnatifida Bunge Duchesnea indica (Andr.) Focke Filipendula glaberrima (Nakai) Nakai Geum aleppicum Jacguin Kerria japonica for. pleniflora (Witt.) Rehder Malus baccata Borkhausen Malus baccata var. mandshurica (Maxim.) C.K. Schneider Malus floribunda Siebold ex Van Houtte Potentilla anemonefolia Lehmann Potentilla chinensis Seringe Potentilla cryptotaeniae Maximowicz Potentilla fragarioides var. major Maximowicz Potentilla freyniana Bornmu"ller Potentilla supina Linnaeus Potentilla yokusaiana Makino Pourthiaea villosa (Thunb.) Decaisne Prunus armeniaca var. ansu Maximowicz Prunus glandulosa Thunberg Prunus glandulosa for. albiplena Koehne Prunus glandulosa for. sinensis (Pers.) Koehne Prunus japonica var. nakaii (H. Le'v.) Rehder Prunus mume (Sieb.) Siebold et Zuccarini Prunus padus Linnaeus Prunus persica (L.) Batsch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0 4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국 명 만첩홍도 자두나무 산벚나무 겹벚꽃나무 벚나무 앵도나무 개벚나무 처진개벚 왕벚나무 콩배나무 돌배나무 문배 병아리꽃나무 찔레꽃 만첩해당화 산딸기 서양산딸기 줄딸기 멍석딸기 곰딸기 오이풀 쉬땅나무 팥배나무 마가목 일본조팝나무 조팝나무 꼬리조팝나무 국수나무 Laguminosae 콩과 Albizia julibrissin Durazzini 자귀나무 Amorpha fruticosa Linnaeus 족제비싸리 Amphicarpaea bracteata ssp. edgeworthii (Benth.) H. Ohashi 새콩 Astragalus sinicus Linnaeus 자운영 Caraganas inica (Buchoz) Rehder 골담초 Cercis chinensis Bunge 박태기나무 Chamaecrista nomame (Sieb.) H. Ohashi 차풀 학 명 Prunus persica for. rubroplena C.K. Schneider Prunus salicina Lindley Prunus sargentii Rehder Prunus serrulata for. fugenzo 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Maxim.) E.H. Wilson Prunus tomentosa Thunberg Prunus verecunda (Koidz.) Koehne Prunus verecunda var. pendula (Nakai) W.T. Lee Prunus yedonensis Matsumura Pyrus calleryana var. aurieo (C.K. Schn.) Rehder Pyrus pyrifolia (Burm. f.) Nakai Pyrus ussuriensis var. seoulensis (Nakai) T.B. Lee Rhodotypos scandens (Thunb.) Makino Rosa multiflora Thunberg Rosa rugosa for. plena (Reg.) Byhouwer Rubus crataegifolius Bunge Rubus fruticosus Linnaeus Rubus oldhamii Miquel Rubus parvifolius Linnaeus Rubus phoenicolasius Maximowicz Sanguisorba officinalis Linnaeus Sorbaria sorbifolia var. stellipila Maximowicz Sorbus alnifolia (Sieb. et Zucc.) K. Koch Sorbus commixta Hedlund Spiraea japonica Linnaeus Spiraea prunifolia for. simpliciflora Nakai Spiraea salicifolia Linnaeus Stephanandra incisa (Thunb.) Zabel Ⅳ Ⅰ Ⅴ Ⅶ Ⅷ Ⅹ Ⅸ Ⅺ Ⅻ ⅩⅢ ⅩⅣ

41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1 괭이밥 큰괭이밥 선괭이밥 쥐손이풀 이질풀 Geraniaceae 쥐손이풀과 Geranium sibiricum Linnaeus Geranium thunbergii Siebold et Zuccarini 국 명 큰도둑놈의갈고리 도둑놈의갈고리 주엽나무 돌콩 땅비싸리 민땅비싸리 둥근매듭풀 매듭풀 활량나물 싸리 비수리 참싸리 조록싸리 고양싸리 풀싸리 벌노랑이 다릅나무 칡 아까시나무 고삼 회화나무 토끼풀 얼치기완두 나비나물 큰나비나물 광릉갈퀴 새팥 등 Oxalidaceae 괭이밥과 Oxalis corniculata Linnaeus Oxalis obtriangulata Maximowicz Oxalis stricta Linnaeus 학 명 Desmodium oldhami Oliver Desmodium podocarpum ssp. oxyphyllum (DC.) H. Ohashi Gleditisia japonica Miquel Glycine soja Siebold et Zuccarini Indigofera kirilowii Maximowicz ex Palibin Indigofera koreana Ohwi Kummerowia stipulacea (Maxim.) Makino Kummerowia striata (Thunb.) Schindler Lathyrus davidii Hance Lespedeza bicolor Truczaninow Lespedeza cuneata G. Don Lespedeza cyrtobotrya Miquel Lespedeza maximowiczii Schneider Lespedeza robusta Nakai Lespedeza thunbergii ssp. formosa (Vogel) H. Ohashi Lotus corniculatus var. japonicus Regel Maackia amurensis Ruprecht et Maximowicz Pueraria lobata (Willd.) Ohwi Robinia pseudoacacia Linnaeus Sophora flavescens Solander ex Aiton Sophora japonica Linnaeus Trifolium repens Linnaeus Vicia tetrasperma (L.) Schreber Vicia unijuga A. Braun Vicia unijuga var. ouensanensis H. Le'veille' Vicia venosa var. cuspidata Maximowicz Vigna angularis var. nipponensis (Ohwi) Ohwi & H. Ohashi Wistaria floribunda (Willd.) De Candolle Ⅳ Ⅰ Ⅶ Ⅴ Ⅷ Ⅸ Ⅺ Ⅹ Ⅻ ⅩⅢ ⅩⅣ

42 4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애기풀 붉나무 개옻나무 옻나무 Polygalaceae 원지과 Polygala japonica Houttuyn Anacardiaceae 옻나무과 Rhus javanica Linnaeus Rhus trichocarpa Miquel Rhus verniciflua Stokes 중국단풍 단풍나무 홍단풍 고로쇠나무 만주고로쇠 당단풍나무 신나무 복자기 가죽나무 Simaroubaceae 소태나무과 Ailanthus altissima (Mill.) Swingle Aceraceae 단풍나무과 buergeriannum Miquel palmatum Thunberg palmatum var. sanguineeum Nakai pictum ssp. mono (Maxim.) Ohashi pictum var. truncatum (Bunge) C.S. Chang pseudosieboldianum (Pax) Komarov tataricum ssp. ginnala (Maxim.) Wesmael triflorum Komarov 쉬나무 탱자나무 산초나무 Rutaceae 운향과 Evodia daniellii Hemsley Poncirus trifoliata (L.) Rafinesque Zanthoxylum schinifolium Siebold et Zuccarini Acer Acer Acer Acer Acer Acer Acer Acer 깨풀 큰땅빈대 개감수 애기땅빈대 여우주머니 광대싸리 국 명 세잎쥐손이 Euphorbiaceae 대극과 Acalypha australis Linnaeus Euphorbia maculata Linnaeus Euphorbia sieboldiana Morren et Decaisne Euphorbia supina Rafinesque Phyllanthus ussuriensis Ruprecht et Maximowicz Securinega suffruticosa (Pall.) Rehder 학 명 Geranium wilfordii Maximowicz Ⅰ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3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3 모감주나무 노랑물봉선 물봉선 봉선화 칠엽수 낙상홍 푼지나무 노박덩굴 화살나무 회잎나무 줄사철나무 참빗살나무 사철나무 참회나무 회나무 고추나무 회양목 헛개나무 갈매나무 대추나무 Balsaminaceae 봉선화과 Impatiens nolitangere Linnaeus Impatiens textori Miquel Impatiens balsamina Linnaeus Hippocastanaceae 칠엽수과 Aesculus turbinata Blume Aquifoliaceae 감탕나무과 Ilex serrata Thunberg Celastraceae 노박덩굴과 Celastrus flagellaris Ruprecht Celastrus orbiculatus Thunberg Euonymus alatus (Thunb.) Siebold Euonymus alatus for. ciliatodentatus (Fr. et Sav.) Hiyama Euonymus fortunei var. radicans (Miq.) Rehder Euonymus hamiltonianus Wall. Euonymus japonicus Thunberg Euonymus oxyphyllus Miquel Euonymus sachalinensis (F. Schmidt) Maximowicz Staphyleaceae 고추나무과 Staphylea bumalda De Candolle Buxaceae 회양목과 Buxus koreana Nakai ex Chung & al. Rhamnaceae 갈매나무과 Hovenia dulcis Thunberg Rhamnus davurica Pallas Zizyphus jujuba var. inermis (Bunge) Rehder 국 명 학 명 Sapindaceae 무환자나무과 Koelreuteria paniculata Laxmann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4 4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보리수나무 Elaeagnaceae 보리수나무과 Elaeagnus umbellata Thunberg 졸방제비꽃 태백제비꽃 남산제비꽃 단풍제비꽃 둥근털제비꽃 흰털제비꽃 왜제비꽃 잔털제비꽃 흰젖제비꽃 제비꽃 종지나물 흰제비꽃 털제비꽃 고깔제비꽃 서울제비꽃 수까치깨 Sterculiaceae 벽오동과 Corchoropsis tomentosa (Thunb.) Makino Violaceae 제비꽃과 acuminata Ledebour albida Palibin albida var. chaerophylloides (Reg.) F. Maekawa albida for. takahashii (Mak.) W.T. Lee collina Besser hirtipes S. Moore japonica Langsdorf ex Ging. keiskei Miquel lactiflora Nakai mandshurica W. Becker papilionacea Pursh patrinii De Candolle ex Pursh phalacrocarpa Maximowicz rossii Hemsley seoulensis Nakai 어저귀 무궁화 Malvaceae 아욱과 Abutilon theophrasti Medicus Hibiscus syriacus Linnaeus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장구밤나무 찰피나무 피나무 Tiliaceae 피나무과 Grewia parviflora Bunge Tilia mandshurica Ruprecht et Maximowicz Tilia amurensis Ruprecht 국 명 개머루 가새잎개머루 담쟁이덩굴 왕머루 학 명 Ampelopsis brevipedunculata (Maxim.) Trautvetter Ampelopsis brevipedunculata for. citrulloides Rehder 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et Zucc.) Planchon Vitis amurensis Ruprecht Vitaceae 포도과 Ⅳ Ⅰ Ⅴ Ⅶ Ⅷ Ⅸ Ⅻ Ⅺ Ⅹ ⅩⅢ ⅩⅣ

45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5 쇠털이슬 털이슬 달맞이꽃 박쥐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 산수유 말채나무 Onagraceae 바늘꽃과 Circaea cordata Royle Circaea mollis Siebold et Zuccarini Oenothera biennis Linnaeus Alangiaceae 박쥐나무과 Alangium platanifolium var. trilobum (Miq.) Ohwi Cornaceae 층층나무과 controversa Hemsley ex Prain kousa F. Buerger ex Miquel officinalis Siebold et Zuccarini walteri F.T. Wangerin Araliaceae 두릅나무과 Aralia cordata var. continentalis (Kitag.) Y.C. Chu Aralia elata (Miq.) Seemann Eleutherococcus sessiliflorus (Rupr. et Maxim.) S.Y. Hu 독활 두릅나무 오갈피나무 마름 Hydrocaryaceae 마름과 Trapa japonica Flerow Cornus Cornus Cornus Cornus 배롱나무 부처꽃 Lythraceae부처꽃과 Lagerstroemia indica Linnaeus Lythrum anceps (Koehne) Makino 국 명 민둥뫼제비꽃 알록제비꽃 자주알록제비꽃 콩제비꽃 호제비꽃 돌외 가시박 왕과 하늘타리 학 명 tokubuchiana var. takedana (Mak.) F. Maekawa variegata Fischer ex Link variegata var. chinensis Bunge ex Regel verecunda A. Gray yedoensis Makino Cucurbitaceae 박과 Gynostemma pentaphyllum (Thunb.) Makino Sisyos angulatus Linnaeus Thladiantha dubia Bunge Trichosanthes kirilowii Maximowicz Viola Viola Viola Viola Viola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6 4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국 명 가는잎음나무 음나무 철쭉 흰산철쭉 산철쭉 봄맞이 큰까치수염 Primulaceae 앵초과 Androsace umbellata (Lour.) Merrill Lysimachia clethroides Duby 흰진달래 영산홍 진달래 노루발 Ericaceae 진달래과 Rhododendron indicum (L.) Sweet 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aninow Rhododendron mucronulatum for. albiflorum (Nakai) Okuyama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owicz Rhododendron yedoense for. albiflora Chang Rhododendron yedoense for. poukhanense (H. Le'v.) Sugim. Pyrolaceae 노루발과 Pyrola japonica Klenze ex Alefeld Umbelliferae 산형과 Angelica acutiloba (Sieb. et Zucc.) Kitagawa 왜당귀 Angelica decursiva (Miq.) Franchet et Savatier 바디나물 Cryptotaen iajaponica Hasskarl 파드득나물 Heracleum moellendorffii Hance 어수리 Hydrocotyle maritima Honda 선피막이 Hydrocotyle sibthorpioides Lamarck 피막이 Oenanthe javanica (Bl.) De Candolle 미나리 Osmorhiza aristata (Thunb.) Makino et Yabe 긴사상자 Ostericum grosseserratum (Maxim.) Kitagawa 신감채 Ostericum sieboldii (Miq.) Nakai 묏미나리 Peucedanum terebinthaceum (Fisch.) Fischer ex De Candolle 기름나물 Pimpinella brachycarpa (Kom.) Nakai 참나물 Sanicula chinensis Bunge 참반디 Sanicula rubriflora F. Schmidt ex Maximowicz 붉은참반디 Sium ninsi Linnaeus 감자개발나물 Sium suave Walter 개발나물 학 명 Kalopanax septemlobus (Thunb.) Koiczumi Kalopanax septemlobus var. maximowiczii (v. Houtte) HandelMazzetti Ⅰ Ⅳ Ⅴ Ⅶ Ⅷ Ⅸ Ⅹ Ⅻ Ⅺ ⅩⅢ ⅩⅣ

47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7 미선나무 이팝나무 개나리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 수수꽃다리 개회나무 서양수수꽃다리 큰벼룩아재비 Oleaceae 물푸레나무과 Abeliophyllum distichum Nakai Chionanthus retusa Lindley et Paxton Forsythia koreana (Rehd.) Nakai Fraxinus mandshurica Ruprecht Fraxinus rhynchophylla Hance Ligustrum obtusifolium Siebold et Zuccarini Syringa oblata var. dilatata (Nakai) Rehder Syringa reticulata var. mandshurica (Maxim.) Hara Syringa vulgaris Linnaeus Loganiaceae 마전과 Mitrasacme pygmaea R. Brown 노랑어리연꽃 노린재나무 Symplocaceae 노린재나무과 Symplocos chinensis for. pilosa (Nakai) Owhi Menyanthaceae 조름나물과 Nymphoides peltata (Gmelin) Kuntze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Styracaceae 때죽나무과 Styrax japonicus Siebold et Zuccarini Styrax obassia Siebold et Zuccarini 용담 큰구슬붕이 감나무 고욤나무 Ebenaceae 감나무과 Diospyros kaki Thunberg Diospyros lotus Linnaeus Gentianaceae 용담과 Gentiana scabra Bunge Gentiana zollingeri Fawcett 국 명 좀가지풀 좁쌀풀 앵초 학 명 Lysimachia japonica Thunberg Lysimachia vulgaris var. davurica (Ledeb.) R. Kunth Primula sieboldii E. Morren Ⅰ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8 4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애기메꽃 메꽃 실새삼 새삼 미국실새삼 미국나팔꽃 둥근잎미국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둥근잎유홍초 꽃받이 컴프리 꽃마리 참꽃마리 좀작살나무 흰좀작살나무 작살나무 Convolvulaceae 메꽃과 Calystegia hederacea Wallich Calystegia sepium var. japonica (Choisy) Makino Cuscuta australis R. Brown Cuscuta japonica Choisy Cuscuta pentagona Engelmann Ipomoea hederacea Jacguin Ipomoea hederacea var. integriuscula A. Gray Ipomoea purpurea Roth Quamoclit coccinea Moench Boraginaceae 지치과 Bothriospermum tenellum (Hornem.) Fischeret C.A. Meyer Symphytum officinale Linnaeus Trigonotis pedunucularis (Trev.) Bentham ex Hemsley Trigonotis radicans var. sericea (Maxim.) H. Hara Verbenaceae 마편초과 Callicarpa dichotoma (Lour.) K. Koch Callicarpa dichotoma for. dalbifructa Moldenke Callicarpa japonica Thunberg 갈퀴아재비 털둥근갈퀴 참갈퀴덩굴 산갈퀴 갈퀴덩굴 계요등 꼭두서니 갈퀴꼭두서니 Rubiaceae 꼭두서니과 Asperula lasiantha Nakai Galium kamtshaticum Steller ex Schultes Galium koreanum (Nakai) Nakai Galium pogonanthum Franchet et Savatier Galium spurium var. echinospermon (Wallr.) Hayek Paederia scandens (Lour.) Merrill Rubia akane Nakai Rubia cordifolia var. pratensis Maximowicz 덩굴박주가리 산해박 박주가리 Ⅳ Ⅰ 국 명 학 명 Asclepiadaceae 박주가리과 Cynanchum nipponicum Matsumura Cynanchum paniculatum (Bunge) Kitagawa Metaplexis japonica (Thunb.) Makino Ⅴ Ⅷ Ⅶ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49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9 Lyciumc Physalis Solanum Solanum Solanum Solanum Solanaceae 가지과 hinense Miller alkekengi var. francheti (Mast.) Makino carolinense Linnaeus japonense Nakai lyratum Thunberg nigrum Linnaeus Labiatae 꿀풀과 Agastache rugosa (Fisch. et Mey.) Kuntze Ajuga decumbens Thunberg Ajuga multiflora Bunge Clinopodium chinense var. parviflorum (Kudo) Hara Clinopodium chinense var. shibetchense (H. Le'v.) Koidzumi Elsholtzia splendens Nakai ex F. Maekawa Glechoma grandis (A. Gray) Kuprian Isodonexcisus (Maxim.) Kudo Isodoninflexus (Thunb.) Kudo Lamium album var. barbatum (Sieb. et Zucc.) Franchet et Savatier Lamium amplexicaule Linnaeus Lamium purpureum Linnaeus Leonurus japonicus Houttuyn Lycopus lecidus Turczaninow Lycopus maackianus (Maxim. ex Herder) Makino Meehania urticifolia (Miq.) Makino Mosla dianthera (Buch.Hamilton ex Roxb.) Maximowicz Mosla punctulata (J.E. Gmelin) Nakai Perilla frutescens var. acuta Kudo Perilla frutescens var. aponica (Hassk.) Hara Phlomis umbrosa Turczaninow Prunella vulgaris var. lilacina Nakai Scutellaria indica Linnaeus Teucrium viscidum var. miquelianum (Maxim.) Hara 학 명 Caryopteris diviricata (Sieb. et Zucc.) Maximowicz Clerodendron trichotomum Thunberg 구기자나무 꽈리 도깨비가지 좁은잎배풍등 배풍등 까마중 Ⅶ Ⅴ Ⅳ 광대수염 광대나물 자주광대나물 익모초 쉽싸리 애기쉽싸리 벌깨덩굴 쥐깨풀 들깨풀 소엽 들깨 속단 꿀풀 골무꽃 덩굴곽향 Ⅰ 배초향 금창초 조개나물 층층이꽃 산층층이 꽃향유 긴병꽃풀 오리방풀 산박하 국 명 누린내풀 누리장나무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0 5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누은주름잎 주름잎 선주름잎 꽃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오동나무 참오동나무 큰개현삼 선개불알풀 꼬리풀 문모초 큰개불알풀 개오동 쥐꼬리망초 파리풀 질경이 인동 괴불나무 올괴불나무 넓은잎딱총나무 딱총나무 가막살나무 덜꿩나무 불두화 백당나무 Bignoniaceae 능소화과 Catalpa ovata G. Don Acanthceae 쥐꼬리망초과 Justicia procumbens Linnaeus Phrymaceae 파리풀과 Phryma leptostachya var. asiatica H. Hara Plantaginaceae 질경이과 Plantago asiatica Linnaeus Caprifoliaceae 인동과 Lonicera japonica Thunberg Lonicera maackii (Rupr.) Maximowicz Lonicera praeflorens Batalin Sambucus latipinna Nakai Sambucus williamsii var. coreana (Nakai) Nakai Viburnum dilatatum Thunberg Viburnum erosum Thunberg Viburnum opulus for. hydrangeoides (Nakai) Hara Viburnum opulus var. calvescens (Rehd.) Hara 국 명 학 명 Scrophulariaceae 현삼과 Mazus miquelii Makino Mazus pumilus (Burm. f.) Steenis Mazus stachydifolius (Trucz.) Maximowicz Melampyrum roseum Maximowicz Melampyrum setaceum (Maxim.) Nakai Paulownia coreana Uyeki 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el Scrophularia kakudensis Franchet Veronica arvensis Linnaeus Veronica linariaefolia Pallas ex Link Veronica peregrina Linnaeus Veronica persica Poiret Ⅳ Ⅰ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1 2010~2016년 종합평가ㆍ 51 국 명 일본병꽃나무 붉은병꽃나무 병꽃나무 연복초 마타리 뚝갈 쥐오줌풀 넓은잔대 잔대 영아자 초롱꽃 섬초롱꽃 더덕 소경불알 수염가래꽃 도라지 톱풀 서양톱풀 멸가치 단풍취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개똥쑥 참쑥 제비쑥 맑은대쑥 산쑥 쑥 덤불쑥 학 명 Weigela coaeensis Thunberg Weigela florida (Bunge) A. De Candolle Weigela subsessilis L.H. Bailey Adoxaceae 연복초과 Adoxa moschatellina Linnaeus Valerianaceae 마타리과 Patrinia scabiosaefolia Fischer ex Treviranus Patrinia villosa (Thunb.) Jussieu Valeriana fauriei Briquet Campanulaceae 초롱꽃과 Adenophora divaricata Franchet et Savatier Adenophora triphylla var. japonica (Reg.) H. Hara Asyneuma japonicum (Miq.) Briquet Campanula punctata Lamarck Campanula takesimana Nakai Codonopsis lanceolata (Sieb. et Zucc.) Trautvetter Codonopsis ussuriensis (Ruor. et Maxim.) Hemsley Lobelia chinensis Loureiro Platycodon grandiflorum (Jacg.) A. De Candolle Compositae 국화과 Achillea alpina Linnaeus Achillea millefolium Linnaeus Adenocaulon himalaicum Edgeworth Ainsliae acerifolia SchultzBipontimus Ambrosia artemisiifolia Linnaeus Ambrosia trifida Linnaeus Artemisia annua Linnaeus Artemisia dubia Wall. Artemisiaj aponica Thunberg Artemisia keiskeana Miquel Artemisia montana (Nakai) Pampanini Artemisia princeps Pampanini Artemisia rubripes Nakai Ⅳ Ⅰ Ⅴ Ⅶ Ⅸ Ⅷ Ⅹ Ⅺ Ⅻ ⅩⅢ ⅩⅣ

52 5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학 명 Artemisia selengensis Turczaninow ex Besser Artemisia stolonifera (Maxim.) Komarov Artemisia sylvatica Maximowicz Aster ageratoides Turczaninow Aster incisus Fischer Aster koraiensis Nakai Aster meyendorfii (Regel & Maack) Voss Aster pekinensis (Hance) Chen Aster pilosus Willdenow Aster scaber Thunberg Aster tataricus Linnaeus f. Aster yomena (Kitam.) Honda Atractylis ovata (Thunb.) De Candolle Bidens bipinnata Linnaeus Bidensf rondosa Linnaeus Bidens tripartita Linnaeus Breea segeta (Willd.) Kitamura Carduus crispus Linnaeus Carpesium abrotanoides Linnaeus Carpesium divaricatum Siebold et Zuccarini Centipeda minima (L.) A. Braun et Ascherson Chrysanthemum leucanthemum Linnaeus Cirsium japonicum var. maackii (Maxim.) Matsumura Cirsium pendulum Fischer ex DeCandolle Conyza canadensis (L.) Cronquist Coreopsis lanceolata Linnaeus Coreopsis tinctoria Nuttall Crepidias trumdenticulata (Houtt.) J.H. Pak & Kawano Crepidias trumsonchifolia (Bunge) Pak& Kawano Dendranthema boreale (Mak.) Ling ex Kitamura Dendranthema zawadskii (Herb.) Tzvelev Dendranthema zawadskii var. latilobum (Maxim.) Kitagawa Dendranthema zawadskii var. tenuisectum Kitagawa Echinops setifer Iljin Eclipta prostrata (L.) Linnaeus Erechtites hieracifolia Rafinesque Erigeron annuus (L.) Persoon 국 명 물쑥 넓은외잎쑥 그늘쑥 까실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벌개미취 개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참취 개미취 쑥부쟁이 삽주 도깨비바늘 미국가막사리 가막사리 조뱅이 지느러미엉겅퀴 담배풀 긴담배풀 중대가리풀 불란서국화 엉겅퀴 큰엉겅퀴 망초 큰금계국 기생초 이고들빼기 고들빼기 산국 산구절초 구절초 포천구절초 절굿대 한련초 붉은서나물 개망초 Ⅳ Ⅰ Ⅴ Ⅶ Ⅷ Ⅸ ⅩⅢ Ⅻ Ⅺ Ⅹ ⅩⅣ

53 2010~2016년 종합평가ㆍ 53 학 명 Erigeron philadelphicus Linnaeus Eupatorium japonicum Thunberg Eupatorium lindleyanum De Candolle Eupatorium rugosum Houttuyn Eupatorium tripartitum (Mak.) Murata & H. Koyama Galinsoga ciliata (Rafin.) S.F. Blake Helianthus tuberosus Linnaeus Hemistepta lyrata Bunge Hieracium umbellatum Linnaeus Inula britannica var. japonica (Thunb.) Franchet et Savatier Ixeridium dentatum (Thunb. ex Mori) Tzvelev Ixeridium dentatum for. albiflora (Mak.) H. Hara Ixeris chinensis (Thunb.) Nakai Ixeris debilis (Thunb.) A.Gray Ixeris polycephala Cassini Ixeris stolonifera A. Gray Ixeris strigosa (H. Le'v. et Van.) J.H. Pak & Kawano Kalimeris pinnatifida (Maxim.) Kitamura Lactuca indica for. indivisa (Mak.) Hara Lactuca indica Linnaeus Lactuca raddeana Maximowicz Lactuca scariola Linnaeus Leibnitzia anandria (L.) Turczaninow Petasites japonicus (Sieb. et Zucc.) Maximowicz Picris hieracioides var. koreana Kitamura Prenanthes ochroleuca (Maxim.) Hemsley Rudbeckia laciniata Linnaeus Rudbeckia bicolor Nuttall Saussurea pulchella (Fisch.) Fischer Senecio vulgaris Linnaeus Siegesbeckia glabrescens (Mak.) Makino Siegesbeckia pubescens Makino Solidago virgaurea ssp. asiatica Kitamura ex Hara Sonchus asper (L.) Hill Sonchus brachyotus De Candolle Syneilesis palmata (Thunb.) Maximowicz Taraxacum coreanum Nakai 국 명 봄망초 등골나물 골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향등골나물 털별꽃아재비 뚱딴지 지칭개 조밥나물 금불초 씀바귀 흰씀바귀 노랑선씀바귀 벋음씀바귀 벌씀바귀 좀씀바귀 선씀바귀 버드쟁이나물 가는잎왕고들빼기 왕고들빼기 산씀바귀 가시상추 솜나물 머위 쇠서나물 왕씀배 삼잎국화 원추천인국 각시취 개쑥갓 진득찰 털진득찰 미역취 큰방가지똥 사데풀 우산나물 흰민들레 Ⅳ Ⅰ Ⅷ Ⅶ Ⅴ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4 5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국 명 서양민들레 산민들레 민들레 솜방망이 도꼬마리 뽀리뱅이 가래 산달래 산부추 부추 비짜루 은방울꽃 애기나리 윤판나물 큰애기나리 원추리 애기원추리 주걱비비추 참비비추 좀비비추 옥잠화 털중나리 참나리 하늘말나리 맥문동 개맥문동 나도개감채 삿갓나물 각시둥굴레 퉁둥굴레 용둥굴레 죽대 둥굴레 학 명 Taraxacum officinale Weber Taraxacum ohwianum Kitamura Taraxacum platycarpum Dahlstedt Tephroseris kirilowii (Turcz. ex DC.) Holub Xanthium strumarium Linnaeus Youngia japonica (L.) De Candolle Potamogetonaceae 가래과 Potamogeton distinctus A. Bennett Liliaceae 백합과 Allium macrostemon Bunge Allium thunbergii G. Don Alliumt uberosum Rottler ex Sprengel Asparagus schoberioides Kunth Convallaria keiskei Miquel Disporum smilacinum A. Gray Disporum uniflorum Baker Disporum viridescens (Maxim.) Nakai Hemerocallis fulva (L.) Linnaeus Hemerocallis minor Miller Hosta clausa Nakai Hosta clausavar.normalis F. Maekawa Hosta minor (Bak.) Nakai Hosta plantaginea (Lam.) Ascherson Liliumamabile Palibin Lilium lancifolium Thunberg Lilium tsingtauense Gilg Liriope platyphylla F.T. Wang et T. Tang Liriope spicata (Thunb.) Loureiro Lloydia triflora (Ledeb.) Baker Paris verticillata M. Bieberstein Polygonatum humile Fischer ex Maximowicz Polygonatum inflatum Komarov Polygonatum involucratum (Fr. et Sav.) Maximowicz Polygonatum lasianthum Maximowicz Polygonatum odoratum var. pluriflorum (Miq.) Ohwi Ⅴ Ⅳ Ⅰ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5 2010~2016년 종합평가ㆍ 55 국 명 무릇 풀솜대 청미래덩굴 선밀나물 밀나물 청가시덩굴 산자고 상사화 마 참마 부채마 범부채 노랑무늬붓꽃 노랑꽃창포 각시붓꽃 붓꽃 부채붓꽃 별날개골풀 골풀 참비녀골풀 길골풀 꿩의밥 산꿩의밥 사마귀풀 닭의장풀 학 명 Scillas cilloides (Lindl.) Druce Smilac inajaponica A. Gray Smilax china Linnaeus Smilax nipponica Miquel Smilax riparia var. ussuriensis (Reg.) Hara et T. Koyama Smilax sieboldii Miquel Tulipa edulis (Miq.) Baker Amaryllidaceae 수선화과 Lycoris squamigera Maximowicz Dioscoreaceae 마과 Dioscorea batatas Decaisne Dioscorea japonica Thunberg Dioscorea nipponica Makino Iridaceae 붓꽃과 Belamcanda chinensis (L.) De Candolle Iris odaesanensis Y.N. Lee Iris pseudoaconus Linnaeus Iris rossii Baker Iris sanguinea Donn ex Horn Iris setosa Pallas ex Link Juncaeae 골풀과 Juncus diastrophanthus Buchenau Juncus effusus var. decipiens Buchenau Juncus leschenaultii J. Gay Juncus tenuis Willdenow Luzula capitata (Miq.) Miquel Luzula multiflora (Ehrh.) Lejeune Commelinaceae 닭의장풀과 Aneilema keisak Hassakarl Commelina communis Linnaeus Ⅰ Ⅳ Ⅴ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6 5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좀개수염 속털개밀 개밀 겨이삭 뚝새풀 쇠풀 새 털새 까락빕새귀리 실새풀 산새풀 대새풀 개솔새 오리새 광릉용수염풀 용수염 껍질용수염 바랭이 민바랭이 돌피 물피 왕바랭이 능수참새그령 그령 큰김의털 김의털 김의털아재비 왕미꾸리꽝이 쇠치기풀 향모 띠 쌀새 나도바랭이새 Gramineae 벼과 Agropyron ciliare (Trin.) Franchet Agropyron tsukushiense var. transiens (Hack.) Ohwi Agrostis clavata var. nukabo Ohwi Alopecurus aequalis Sobolewski Andropogon brevifolius Swartz Arundinella hirta (Thunb.) C. Tanaka Arundinella hirta var. ciliata Koidzumi Bromus sterilis Linnaeus Calamagrostis arundinacea (L.) Roth Calamagrostis langsdorffii (Link) Trinius Cleistogenes hackelii (Honda) Honda Cymbopogon tortilis var. goeringii (Steud.) HandelMazzetti Dactylis glomerata Linnaeus Diarrhrna fauriei (Hack.) Ohwi Diarrhrna japonica (Fr. et Sav.) Franchet et Savatier Diarrhrna mandshurica Maximowicz Digitaria ciliaris (Retz.) Koeler Digitaria violascens Link Echinnochloa crusgalli (L.) P. Beauvois Echinnochloa crusgalli var. echinata Honda Eleusine indica (L.) Gaertner Eragrostis curvula Nees Eragrostis ferruginea (Thunb.) P. Beauvois Festuca arundinacea Schreber Festuca ovina Linnaeus Festuca parvigluma Steudel Glycerial leptolepis Ohwi Hemarthria sibirica (Gangd.) Ohwi Hierochloe odorata (L.) P. Beauvois Imperata cylindrica var. koenigii (Retz.) Pilg. Melica onoei Franchet et Savatier Microstegium vimineum (Trin.) A. Camus 국 명 학 명 Eriocaulaceae 곡청초과 Eriocaulon decemflorum Maximowicz Ⅳ Ⅰ Ⅶ Ⅴ Ⅷ Ⅸ Ⅺ Ⅹ Ⅻ ⅩⅢ ⅩⅣ

57 2010~2016년 종합평가ㆍ 57 물억새 참억새 진퍼리새 쥐꼬리새 주름조개풀 개기장 미국개기장 참새피 수크령 산기장 갈풀 큰조아재비 갈대 달뿌리풀 솜대 새포아풀 구내풀 왕포아풀 포아풀 이대 좀물뚝새 금강아지풀 강아지풀 수강아지풀 기름새 큰기름새 나래새 솔새 잔디 창포 둥근잎천남성 천남성 Araceae 천남성과 Acorus calamus Linnaeus Arisaema amurense Maximowicz Arisaema amurense for. serratum (Nakai) Kitagawa 큰듬성이삭새 국 명 학 명 Microstegium vimineum var. imberbe (Nees ex Steud.) Honda Miscanthus sacchariflorus (Maxim.) Bentham Miscanthus sinensis Andersson Molinia japonica Hackel Muhlenbergia japonica Steudel Oplismenus undulatifolius (Ard.) P. Beauvois Panicum bisulcatum Thunberg Panicum dichotomiflorum Michaux Paspalum thunbergii Kunth ex Steudel Pennisetum alopecuroides (L.) Sprengel Phaenosperma globosa Munro ex Bentham Phalaris arundinacea Linnaeus Phleum pratense Linnaeus Phragmites communis Trinius Phragmites japonica Steudel Phyllostachys nigra var. henonis (Bean) Stapf ex Rendle Poa annua Linnaeus Poa hisauchii Honda Poa pratensis Linnaeus Poa sphondylodes Trinius Pseudosasa japonica (Sieb. et Zucc. ex Nakai) Makino ex Nakai Sacciolepisi ndica (L.) Chase Setaria glauca (L.) P. Beauvois Setaria viridis (L.) P. Beauvois Setaria pycnocoma (Steud.) Henrard ex Nakai Spodiopogon cotulifer (Thunb.) ackel Spodiopogon sibiricus Trinius Stipa pekinensis Hance Themeda triandra var. japonica (Willd.) Makino Zoysia japonica Steudel Ⅶ Ⅴ Ⅳ Ⅰ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8 5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뚝사초 방동사니 알방동사니 쇠방동사니 Ⅴ Ⅳ 애기부들 부들 Typhaceae 부들과 Typha angustifolia Linnaeus Typhao rientalis Presl Ⅰ 솔잎사초 길뚝사초 청사초 털대사초 도깨비사초 이삭사초 삿갓사초 낚시사초 산뚝사초 산비늘사초 가는잎그늘사초 참삿갓사초 개찌버리사초 애괭이사초 그늘사초 왕비늘사초 괭이사초 바늘사초 대사초 개구리밥 Lemnaceae 개구리밥과 Spirodela polyrhiza (L.) Schleiden Cyperaceae 사초과 Carex biwensis Franchet Carex bostrychostigma Maximowicz Carex breviculmis R. Brown Carex ciliatomarginata Nakai Carex dickinsii Franchet et Savatier Carex dimorpholepis Steudel Carex dispalata Boott Carex filipes Franchet et Savatier Carex forficula var. forficula Franchet et Savatier Carex heterolepis Bunge Carex humilis var. nana (H. Le'v. et Van.) Ohwi Carex jaluensis Komarov Carex japonica Thunberg Carexl aevissima Nakai Carex lanceolata Boott Carex maximowiczii Miquel Carex neurocarpa Maximowicz Carex onoei Franchet et Savatier Carex siderosticta Hance Carex thunbergii var. appendiculata (Trautv. & C.A. Mey.) Ohwi Cyperus amuricus Maximowicz Cyperus difformis Linnaeus Cyperus orthostachys Franchet et Savatier 국 명 두루미천남성 점박이천남성 반하 앉은부채 학 명 Arisaema heterophyllum Blume Arisaema peninsulae Nakai Pinellia terata (Thunb.) Breitenbach Symplocarpus renifolius Schott ex Mlquel Ⅶ Ⅷ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59 2010~2016년 종합평가ㆍ 59 : 동구릉 : 서오릉 Ⅳ Ⅺ : 광릉 : 서삼릉 Ⅴ Ⅻ : 선릉ㆍ정릉 : 온릉 Ⅶ ⅩⅢ Ⅷ ⅩⅣ Ⅳ Ⅰ : 태릉ㆍ강릉 : 파주 삼릉 은대난초 천마 옥잠난초 감자난초 타래난초 Orchidaceae 난초과 Cephalanthera longibracteata Blume Gastrodia elata Blume Liparis kumokiri F. Maekawa Oreorchis patens (Lindl.) Lindley Spiranthes sinensis (Pers.) Ames Ⅰ Ⅹ 국 명 바늘골 물고챙이골 솔방울고랭이 매자기 도루박이 방울고랭이 학 명 Eleocharis congesta D. Don. Eleocharis mamillata var. cyclocarpa Kitagawa Scirpus karuizawensis Makino Scirpus maritinus Linnaeus Scirpus radicans Schkuhr Scirpus wichurae var. asiaticus (Beetle) T. Koyama Ⅶ : 정릉 : 파주 장릉 Ⅴ Ⅸ Ⅷ : 의릉 Ⅸ Ⅹ Ⅺ Ⅻ ⅩⅢ ⅩⅣ

60 (2) 식생 현황 ① 동구릉 동구릉의 식생은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갈참나무군락(Quercus aliena community),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Quercus alienaquercus acutissima community),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Quercus alienaquercus serrata community), 갈참나무오리나무군락(Quercus alienaalnus japonica community), 상수리나 무군락(Quercus community), acutissima community), 신갈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신갈나무갈참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Quercus aliena community),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Quercus serrata community), 졸참나무군락(Quercus serrata community), 서어나무갈참나무군 락(Carpinus laxifloraquercus aliena community), 팥배나무군락(Sorbus alnifolia community), 오리나무군락(Alnus japonica community), 졸참나무와 갈 참나무가 우점하는 낙엽활엽수림(deciduous broadleaf forest), 갈참나무와 졸 참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coniferousdeciduous broadleaf forest), 리기 다소나무식재림(Pinus rigida afforestation), 리기다소나무신갈나무군락(Pinus rigidaquercus mongolica community), 잣나무식재림(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아까시나무식재림(Robinia pseudoacacia afforestation), 밤나무식재림(Castanea crenata afforestation), 백합나무식재림(Liriodendron tulipifera afforestation), 일본목련식재림(Magnolia obovata afforestation)으로 구분되었다. 표 9 동구릉 주요 군락의 특성 A B C D E F G H I J K 조사구 수 교목층높이(m) 교목층식피율(%) 아교목층높이(m) 아교목층식피율(%) 관목층높이(m) 관목층식피율(%) 출현종 수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61 L M N O P Q R S T U V 조사구 수 교목층높이(m) 교목층식피율(%) 아교목층높이(m) 아교목층식피율(%) 관목층높이(m) 관목층식피율(%) 출현종 수 A: 소나무군락 B: 갈참나무군락 C: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 D: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 E: 갈참나무오리나무군락 F: 상수리나무군락 G: 신갈나무군락 H: 신갈나무갈참나무군락 I: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J: 졸참나무군락 K: 서어나무갈참나무군락 L: 팥배나무군락 M: 오리나무군락 N: 낙엽활엽수림 O: 침활혼효림 P: 리기다소나무군락 Q: 리기다소나무신갈나무군락 R: 잣나무군락 S: 아까시나무군락 T: 밤나무군락 U: 백합나무군락 V: 일본목련군락 2010~2016년 종합평가ㆍ 61

62 표 10 동구릉 주요 군락의 계층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H I J K 교목층 소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0.74 팥배나무 오리나무 아까시나무 잣나무 1.51 백합나무 일본목련 밤나무 1.17 산벚나무 굴참나무 1.91 아교목층 소나무 때죽나무 갈참나무 팥배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쪽동백나무 일본목련 2.59 아까시나무 신갈나무 산벚나무 밤나무 서어나무 신나무 7.34 물박달나무 들메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 7.03 야광나무 6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63 A B C D E F G H I J K 쪽동백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산딸기 때죽나무 덜꿩나무 쥐똥나무 아까시나무 철쭉 노린재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갈참나무 산초나무 일본목련 산벚나무 진달래 신갈나무 두릅나무 찔레꽃 당단풍 졸참나무 조록싸리 백당나무 신나무 층층나무 개벚나무 싸리 청미래덩굴 관목층 0.26 C: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 E: 갈참나무오리나무군락 F: 상수리나무군락 G: 신갈나무군락 I: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J: 졸참나무군락 K: 서어나무갈참나무군락 M: 오리나무군락 N: 낙엽활엽수림 O: 침활혼효림 Q: 리기다소나무신갈나무군락 R: 잣나무군락 S: 아까시나무군락 U: 백합나무군락 V: 일본목련군락 A: 소나무군락 B: 갈참나무군락 D: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 H: L: P: T: 신갈나무갈참나무군락 팥배나무군락 리기다소나무군락 밤나무군락 2010~2016년 종합평가ㆍ 63

64 L M N O P Q R S T U V 팥배나무 오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리기다소나무 교목층 잣나무 아까시나무 밤나무 백합나무 일본목련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굴참나무 팥배나무 신나무 아교목층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갈참나무 일본목련 1.24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밤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물박달나무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야광나무 들메나무 잣나무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65 L M N O P Q R S T U V 팥배나무 쥐똥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산딸기 갈참나무 국수나무 아까시나무 덜꿩나무 철쭉 노린재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산초나무 일본목련 산벚나무 진달래 신갈나무 두릅나무 찔레꽃 당단풍 졸참나무 조록싸리 백당나무 신나무 8.47 층층나무 개벚나무 싸리 청미래덩굴 관목층 2010~2016년 종합평가ㆍ 65

66 ② 홍릉ㆍ유릉 홍릉ㆍ유릉의 임상을 임분별로 구분한 결과 소나무림(Pinus densiflora Forests),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and deciduous broadleaf), 신갈나무림(Quercus mongolica Forests),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는 활침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and coniferous), 서어나무와 신갈나무가 우점하는 활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전나무,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우점하는 참나무림 (Oak Forests), 오리나무림(Alnus japonica Forests), 잣나무림(Pinus koraiensis Forests), 잣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는 침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으로 구분되었다. 표 11 홍릉ㆍ유릉의 임분별 특성 기호 임분명 평균수고(m) 평균 흉고직경( ) 목본 밀도(본수/a) D 소나무림 CM 침활혼효림 QM 신갈나무림 HM 활침혼효림 H 활엽수혼효림 QQ 참나무림 AJ 오리나무림 K 잣나무림 C 침엽수혼효림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67 표 12 홍릉ㆍ유릉의 임분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H I 소나무 신갈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오리나무 잣나무 갈참나무 물박달나무 팥배나무 무궁화 느티나무 산벚나무 밤나무 돌배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귀룽나무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쪽동백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은행나무 8.68 산사나무 6.69 산뽕나무 5.84 물오리나무 2.80 주엽나무 2.44 버드나무 2.39 A: 소나무림 F: 참나무림 B: 침활혼효림 G: 오리나무림 C: 신갈나무림 H: 잣나무림 D: 활침혼효림 I: 침엽수혼효림 E: 활엽수혼효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67

68 ③ 사릉 사릉의 임상을 임분별로 구분한 결과 소나무림(Pinus densiflora Forests), 소나 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우점하는 침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굴 참나무림(Quercus variabilis Forests),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우점하는 참나 무림(Oak Forests), 산벚나무와 신갈나무가 우점하는 활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리기다소나무림(Pinus rigida Forests), 리기 다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and deciduous broadleaf), 잣나무림(Pinus koraiensis Forests)으로 구분되었다. 표 13 사릉의 임분별 특성 기호 임분명 평균수고(m) 평균 흉고직경( ) 목본 밀도(본수/a) D 소나무림 C 침엽수혼효림 QV 굴참나무림 QQ 참나무림 H 활엽수혼효림 PR 리기다소나무림 CM 침활혼효림 PK 잣나무림 그림 1 사릉 임상도 6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69 표 14 사릉의 임분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H 소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밤나무 졸참나무 전나무 팥배나무 귀룽나무 서어나무 떡갈나무 개벚나무 아까시나무 7.82 물박달나무 6.65 음나무 5.56 A: 소나무림 E: 활엽수혼효림 B: 침엽수혼효림 F: 리기다소나무림 C: 굴참나무림 G: 침활혼효림 D: 참나무림 H: 잣나무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69

70 ④ 광릉 광릉의 식생은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소나무잣나무군락 (Pinus densiflorapinus koraiensis community), 졸참나무군락(Quercus serrata community), 졸참나무갈참나무군락(Quercus serrataquercus aliena community), 신갈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community), 신갈나무졸참나 무군락(Quercus mongolicaquercus serrata community), 갈참나무군락 (Quercus aliena community), 갈참나무소나무군락(Quercus alienapinus densiflora community),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Quercus alienaquercus serrata community), 서어나무군락(Carpinus laxiflora community), 까치박달들메나무군락(Carpinus cordatafraxinus mandshurica community), 침활혼효 림(coniferousdeciduous broadleaf forest), 리기다소나무식재림(Pinus rigida afforestation), 잣나무식재림(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잣나무서어나무 식재림(Pinus koraiensiscarpinus lax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전나무식재 림(Pinus koraiensisabies holophylla afforestation), 전나무식재림(Abies holophylla afforestation), 전나무졸참나무군락(Abies holophyllaquercus serrata community afforestation)으로 구분되었다. 표 15 광릉 주요 군락의 특성 조사구 수 조사 면적( )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출현종 수(목본) A 5 1, B C 6 1, D E F G H I 조사구 수 조사 면적( )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출현종 수(목본) J K L M N 5 1, O P Q R A: 소나무군락 E: 신갈나무군락 I: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 M: 리기다소나무군락 Q: 전나무군락 7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B: 소나무잣나무군락 F: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J: 서어나무군락 N: 잣나무군락 R: 전나무졸참나무군락 C: G: K: O: 졸참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까치박달들메나무군락 잣나무서어나무군락 D: H: L: P: 졸참나무갈참나무군락 갈참나무소나무군락 침활혼효림 잣나무전나무군락

71 표 16 광릉 주요 군락의 계층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1 A B C D E F G H I 교목층 소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잣나무 전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까치박달 고로쇠나무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아교목층 서어나무 까치박달 때죽나무 당단풍 잣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졸참나무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산벚나무 풍게나무 전나무 관목층 당단풍 까치박달 서어나무 덜꿩나무 때죽나무 국수나무 윤노리나무 팥배나무 작살나무 전나무 생강나무 병꽃나무 개옻나무 쪽동백나무 노린재나무 철쭉 올괴불나무 진달래 ~2016년 종합평가ㆍ 71

72 표 17 광릉 주요 군락의 계층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2 교목층 서어나무 까치박달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아교목층 서어나무 까치박달 때죽나무 잣나무 당단풍 산딸나무 팥배나무 졸참나무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산벚나무 풍게나무 전나무 관목층 당단풍 병꽃나무 서어나무 윤노리나무 까치박달 전나무 덜꿩나무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작살나무 생강나무 개옻나무 쪽동백나무 노린재나무 철쭉 올괴불나무 진달래 J K L M N O P Q R A: 소나무군락 E: 신갈나무군락 I: 갈참나무졸참나무군락 M: 리기다소나무군락 Q: 전나무군락 72 ㆍ B: 소나무잣나무군락 F: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J: 서어나무군락 N: 잣나무군락 R: 전나무졸참나무군락 2010~2016년 종합평가 C: G: K: O: 졸참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까치박달들메나무군락 잣나무서어나무군락 D: H: L: P: 졸참나무갈참나무군락 갈참나무소나무군락 침활혼효림 잣나무전나무군락

73 ⑤ 선릉ㆍ정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선릉ㆍ정릉의 식생은 전반적으로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며, 저습지에 오리 나무와 버드나무가 소규모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선릉ㆍ정릉의 식생을 구성하는 주요 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갈 나참무군락(Quercus aliena 오리나무군락(Alnus community), japonica community), 버드나무군락(Populus maximowiczii community)으로 구분되었으 며,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식재림(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스트로브잣나무식재림(Pinus strobus afforestation)이 조성되어 있다. 표 18 선릉ㆍ정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조사구 수 조사 면적( )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2016년 종합평가ㆍ 73

74 표 19 선릉ㆍ정릉 주요 군락의 상대기여도(RNCDi)에 의한 계층별 주요 수종의 우점도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교목층 소나무 갈참나무 오리나무 신갈나무 산벚나무 오리나무 spp. 졸참나무 아교목층 때죽나무 소나무 팥배나무 층층나무 관목층 산딸기 때죽나무 산뽕나무 팥배나무 칡 철쭉 층층나무 싸리 진달래 초본층 칡 담쟁이덩굴 종지나물 주름조개풀 산딸기 돌피 오리새 큰애기나리 쇠무릎 애기똥풀 쇠무릎 상수리나무 때죽나무 개찌버리사초 국수나무 큰듬성이삭새 서양산딸기 7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75 나) 현존식생 선릉ㆍ정릉의 현존식생은 갈참나무군락이 가장 넓은 21.22%를 차지하며, 다음 으로 소나무군락 21.22%, 소나무식재림 3.69%, 오리나무군락 3.30%, 버드나무 군락 1.89% 순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선릉ㆍ정릉의 현존식생에서 외래성 조 림수종인 스트로브잣나무가 우점하는 스트로브잣나무소나무군락이 1.00%를 차지하고 있으며, 습성군락인 오리나무군락과 버드나무군락이 5.19%인 12, 을 차지하고 있어 선릉과 정릉지역은 상대적으로 토양 습도가 높은 곳으로 판단된다. 표 20 선릉ㆍ정릉의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조사면적( ) 비율(%) Pd 소나무군락 51, Pid PdPik Pik PsPd Qal Aj Sk 소나무식재림 소나무잣나무군락 잣나무식재림 스트로브잣나무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버드나무군락 8, , , , , , , Ga 조경식재 19, Bag 능역 나지(도로 등) 20, , Other 조성지(사무실 등) 3, , 계 그림 2 선릉ㆍ정릉의 현존식생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75

76 ⑥ 헌릉ㆍ인릉 헌릉ㆍ인릉의 임상을 임분별로 구분한 결과 소나무림(Pinus densiflora Forests), 갈참나무림(Quercus aliena Forests), 상수리나무림(Quercus acutissima Forests), 졸참나무림(Quercus serrata Forests), 졸참나무와 굴참나무가 우점하 는 참나무림(Oak Forests), 팥배나무와 졸참나무가 우점하는 활엽수혼효림 (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오리나무림(Alnus japonica Forests), 때죽나무,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는 활침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and coniferous), 리기다소나무림(Pinus rigida Forests), 리기다소나무와 졸참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and deciduous broadleaf)으로 구분되었다. 표 21 헌릉ㆍ인릉 임분별 특성 기호 D QC QA QS QQ H AJ HM PR CM 임분 명 소나무림 갈참나무림 상수리나무림 졸참나무림 참나무림 활엽수혼효림 오리나무림 활침혼효림 리기다소나무림 침활혼효림 그림 3 헌릉ㆍ인릉 임상도 7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평균 수고(m) 평균 흉고직경( ) 목본 밀도(본수/a)

77 표 22 헌릉ㆍ인릉 임분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H I J 소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팥배나무 오리나무 9.44 때죽나무 리기다소나무 굴참나무 다릅나무 단풍나무 당단풍나무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백목련 산딸나무 3.92 산벚나무 서어나무 신갈나무 신나무 아까시나무 쪽동백나무 A: 소나무림 F: 활엽수혼효림 B: 갈참나무림 G: 오리나무림 C: 상수리나무림 H: 활침혼효림 D: 졸참나무림 I: 리기다소나무림 E: 참나무림 J: 침활혼효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77

78 ⑦ 태릉ㆍ강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태릉ㆍ강릉의 식생은 전반적으로 참나무류가 우점하는데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가 섞여 자라는 굴참나무신갈나무군락이 가정 넓게 분포하고, 능선부와 사면 상부에는 소나무가 우점하는 군락이 분포하고, 경사가 완만한 사면 하부에는 상 수리나무와 신갈나무의 식피율이 높게 나타났다. 서쪽 산지에는 리기다소나무의 식피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는 혼효림이 분포하고 있으며, 과거 사격장 부지에 는 소나무식재림이 조성되어 있다. 태릉ㆍ강릉의 식생을 구성하는 주요 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팥배나 무군락(Sorbus alnifolia community), 신갈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community), 상수리나무군락(Quercus acutissima 굴참나무군락(Quercus community), variabilis community), 갈참나무군락(Quercus aliena community)으로 구분되었 으며,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이 조성되어 있다. 표 23 태릉ㆍ강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신갈나무 군락 굴참나무 군락 상수리나무 군락 갈참나무 군락 팥배나무 군락 조사 면적( ) 1,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조사구 수 관목층 높이(m) 7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79 표 24 태릉ㆍ강릉 주요 군락의 상대기여도(RNCDi)에 의한 계층별 주요 수종의 우점도 교목층 소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 갈참나무 아까시나무 아교목층 소나무 철쭉 쪽동백 팥배나무 떡갈나무 물오리나무 관목층 풀싸리 진달래 국수나무 철쭉 때죽나무 팥배나무 생강나무 쪽동백 신갈나무 작살나무 물푸레나무 누리장나무 초본층 주름조개풀 굴참나무 담쟁이덩굴 신갈나무 팥배나무 가는잎그늘사초 큰기름새 강아지풀 닭의장풀 철쭉 큰듬성이삭새 진달래 칡 국수나무 새 누리장나무 선괭이밥 새콩 생강나무 맑은대숙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상수리나무군락 팥배나무군락 ~2016년 종합평가ㆍ 79

80 나) 현존식생 태릉ㆍ강릉의 현존식생은 굴참나무신갈나무군락이 가장 넓은 20.64%를 차지 하며, 다음으로 소나무군락 16.32%,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 9.15%, 신갈나무군 락 8.80%, 소나무군락 8.57%, 소나무식재림 7.75%, 소나무굴참나무군락 6.87% 순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소나무순군락인 소나무군락과 소나무식재림 을 제외한 소나무 우점의 혼효림이 상당히 넓은 16.56%인 185, 를 차지 하고 있다. 태릉ㆍ강릉의 현존식생에서 외래성 조림수종인 리기다소나무군락이 0.11%, 리기다소나무신갈나무군락이 6.19%의 비교적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표 25 태릉ㆍ강릉의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조사면적( ) 비율(%) Pd 소나무군락 95, Pid 소나무식재림 86, PdQm 소나무신갈나무군락 49, PdQa 소나무상수리나무군락 41, PdQv 소나무굴참나무군락 76, PdQal 소나무갈참나무군락 17, Pik 잣나무식재림 1, Pr 리기다소나무식재림 3, PrQm 리기다소나무신갈나무군락 69, Qm 신갈나무군락 98, QmSa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 102, Qv 굴참나무군락 QvQm 굴참나무신갈나무군락 Qal 갈참나무군락 22, , , QalPd 갈참나무소나무군락 4, QaQm 상수리나무신갈나무군락 58, QaQal 상수리나무갈참나무군락 37, Ga 조경식재 17, Seg 초지 9, 능역 18, , W 수계(연지) Bag 나지(도로, 주차장 등) 30, Other 조성지(사무실 등) 30, 계 1,119,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81 그림 4 태릉ㆍ강릉의 현존식생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81

82 ⑧ 정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정릉의 식생은 전반적으로 신갈나무가 우점하여, 신갈나무군락은 팥배나무가 높 은 식피율을 나타내고 있다. 동북쪽 남서사면에 소나무 대경목과 중경목 군락이 분포하며, 서쪽 동사면과 능 주변부에 소나무식재림과 소규모의 잣나무식재림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능선부에 작은 규모의 소나무식재림이 조성되어 있다. 정릉의 식생을 구성하는 주요 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 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팥배나무군 락(Sorbus alnifolia community), 신갈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community) 으로 구분되었으며,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식재림 (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이 조성되어 있다. 표 26 정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조사구 수 신갈나무군락 팥배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조사 면적( ) 8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83 표 27 정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신갈나무군락팥배나무군락소나무식재림 교목층 소나무 100 신갈나무 100 팥배나무 100 졸참나무 4.91 굴참나무 2.11 아교목층 때죽나무 붉나무 100 산벚나무 100 신갈나무 100 소나무 100 팥배나무 관목층 졸참나무 100 진달래 100 때죽나무 싸리 100 갈참나무 팥배나무 아까시나무 신갈나무 철쭉 작살나무 4.62 산초나무 4.62 초본층담쟁이덩굴 때죽나무 주름조개풀 신갈나무 가는잎그늘사초 산딸기 큰애기나리 맑은대쑥 푼지나무 큰기름새 국수나무 갈참나무 9.09 붉나무 5.19 댕댕이덩굴 ~2016 년종합평가ㆍ 83

84 나) 현존식생 정릉의 현존식생은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이 65.47%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소 나무군락 11.85%, 소나무식재림 6.41%, 소나무신갈나무군락 2.54% 순으로 넓 게 분포하고 있다. 정릉의 현존식생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남쪽지역의 신갈나 무팥배나무군락의 일부는 아까시나무의 식피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 교란식 생이 분포하고 있다. 용맥에 해당되는 지역에 분포하는 소나무군락 일부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단절된 상태로 분포하고 있다. 표 28 정릉의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조사면적( ) 비율(%) 34, , , , , Pd 소나무군락 Pid PdQm Pik QmSa 소나무식재림 소나무신갈나무군락 잣나무식재림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 Ga 조경식재 7, Bag 능역 나지(도로 등) 4, , Other 조성지(사무실 등) 21, , 계 ⑨ 의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의릉의 식생은 배후 산지의 경우 전반적으로 신갈나무가 우점하여, 신갈나무군 락은 팥배나무가 높은 식피율을 나타내고 있다. 능선을 따라 중경목의 소나무군 락이 좁게 분포하며, 능역 주변에는 대경목의 소나무림이 조성되어 있고, 북쪽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이의 평지에는 소경목의 소나무식재림이 조성되어 있다. 의릉의 식생을 구성하는 주요 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 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신갈나무군 락(Quercus mongolica community), 팥배나무군락(Sorbus alnifolia community) 으로 구분되었으며,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식재림 (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스트로브잣나무식재림(Pinus strobus afforestation) 이 조성되어 있다. 8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85 그림 5 정릉의 현존식생도 표 29 의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팥배나무군락 조사 면적( )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조사구 수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2016년 종합평가ㆍ 85

86 표 30 의릉 주요 군락의 상대기여도(RNCDi)에 의한 계층별 주요 수종의 우점도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팥배나무군락 교목층 소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 물참나무 아교목층 소나무 때죽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 관목층 신갈나무 때죽나무 진달래 팥배나무 참싸리 밤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개옻나무 초본층 신갈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붉나무 주름조개풀 붉은서나물 큰기름새 새 졸참나무 댕댕이덩굴 바랭이 닭의장풀 돌나물 나) 현존식생 의릉의 현존식생은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이 가장 넓은 39.05%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소나무군락 21.27%, 소나무식재림 11.40%, 소나무신갈나무군락 2.41% 순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소나무순군락인 소나무군락과 소나무식재림 을 제외한 소나무 우점의 혼효림은 4.13%인 11, 를 차지하고 있다. 의릉 의 현존식생에서 외래성 조림수종인 리기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가 섞여 있는 혼효림이 1.72%를 차지하고 있다. 8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87 표 31 의릉의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조사면적( ) 비율(%) 58, , , , , , , Pd 소나무군락 Pid PdPr PdPs PdQm Qm QmSa 소나무식재림 소나무리기다소나무군락 소나무스트로브잣나무군락 소나무신갈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 Ga 조경식재 13, Bag 능역 나지(도로 등) 12, , Other 조성지(사무실 등) 29, 계 273, 그림 6 의릉의 현존식생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87

88 ⑩ 서오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서오릉의 식생은 전반적으로 참나무류가 우점하는데 사면 하부는 갈참나무, 사 면 중ㆍ상부는 남사면 또는 남서사면에 굴참나무, 북사면에 신갈나무가 우점하 고 있다. 소나무군락은 능선부와 남사면 상부에 소규모의 잔존림 형태로 분포하 며, 소나무림 대부분은 식재림이다. 서오릉의 식생을 구성하는 주요 식물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신 갈나무군락(Quercus community), mongolica community), 갈참나무군락(Quercus aliena 굴참나무군락(Quercus variabilis community), 서어나무군락 (Carpinus laxiflora community), 오리나무군락(Alnus japonica community)으로 구분되었으며,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식재림 (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리기다소나무식재림(Pinus rigida afforestation), 아까시나무식재림(Robinia pseudoacacia afforestation)이 조성되어 있다. 표 32 서오릉 주요 군락의 특성 조사구 수 소나무 군락 3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군락 군락 군락 군락 군락 소나무 식재림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89 표 33 서오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교목층소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팥배나무 졸참나무 물푸레나무 3.33 아교목층소나무 팥배나무 산벚나무 때죽나무 서어나무 진달래 철쭉 물푸레나무 산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나무 6.25 잣나무 3.12 관목층때죽나무 진달래 팥배나무 산초나무 쥐똥나무 100 신나무 100 철쭉 신갈나무 산벚나무 쪽동백 아까시나무 찔레 갈참나무 생강나무 족제비싸리 덜꿩나무 굴참나무 ~2016 년종합평가ㆍ 89

90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초본층담쟁이덩굴 100 애기나리 큰애기나리 굴참나무 가는잎그늘사초 담쟁이덩굴 가는잎족제비고사리 고깔제비꽃 100 털대사초 100 주름조개풀 칡 산딸기 신갈나무 때죽나무 국수나무 큰기름새 진달래 때죽나무 달뿌리풀 개맥문동 덜꿩나무 팥배나무 진퍼리고사리 나 ) 현존식생 서오릉의현존식생은갈참나무군락이가장넓은 22.66% 를차지하며, 다음으로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16.13%, 아까시나무졸참나무군락 12.35%, 소나무군락 11.23% 순으로넓게분포하고있다. 소나무군락은대부분식재림으로 7.37% 이며, 자연림소나무군락은 3.86% 로매우적은면적만분포한다. 졸참나무는비교적넓게분포하고있으나순군락은거의없으며신갈나무우점의군락에섞여자라고있다. 서오릉의식생은아까시나무와리기다소나무같은외래성조림수종으로교란된지역이 22.34% 를차지하는것으로나타나고있다. 2003년서오릉산림생태조사연구보고서에서의현존식생도와비교하면군락의분포에큰변화가없으나익릉북서쪽지여에서참나무류의군락이줄고소나무식재림이약간증가한것으로나타나고있다. 9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91 표 34 서오릉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조사면적( ) 비율 69, , Pd 소나무군락 Pid 소나무식재림 Pr 리기다소나무식재림 70, Pik 잣나무식재림 21, PrPd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 30, PrQal 리기다소나무갈참나무군락 24, Qm 신갈나무군락 87, Qal 갈참나무군락 409, Qv 굴참나무군락 62, QalQa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 38, QmQs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291, RopQal 아까시나무갈참나무군락 223, RopQm 아까시나무신갈나무군락 17, RopPr 아까시나무리기다소나무식재림 37, Ga 조경식재 14, Al 오리나무군락 45, Cl 서어나무군락 조성지(주차장, 재실 등) 묘지(능, 원, 묘) 기타(군부대) 계 13, , , , ,808, 그림 7 서오릉 현존식생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91

92 ⑪ 서삼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서삼릉의 주요 식물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갈참나무군락(Quercus aliena community), 졸참나무군락(Quercus serrata community), 오리나무군락 (Alnus japonica community)으로 구분되었다. 소나무군락의 대부분은 식재림이며, 능ㆍ원별로 식생의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태실지역에는 갈참나무(Quercus aliena)가, 효릉지역에는 졸참나무 (Quercus serrata)가, 예릉과 희릉지역에는 소나무(Pinus densiflora)가 우점하 는 식생을 나타내고 있다. 태실지역 북서쪽 경계부에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가 우점하며 소나무가 혼생하는 군락이 소규모 분포하고 있다. 표 35 서삼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조사구 수 9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93 표 36 서삼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교목층 소나무 100 갈참나무 졸참나무 오리나무 100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팥배나무 신나무 2.86 아교목층 소나무 100 철쭉 100 팥배나무 신나무 100 붉나무 싸리 때죽나무 당단풍 서어나무 쪽동백 1.23 관목층 쪽동백 때죽나무 당단풍 100 철쭉 싸리 단풍나무 갈참나무 두릅나무 5.21 개암나무 2.38 물푸레나무 2.38 백당나무 2.38 초본층담쟁이덩굴 큰애기나리 삿갓사초 100 주름조개풀 졸참나무 닭의장풀 8.99 산딸기 6.52 국수나무 4.35 갈참나무 3.04 칡 3.04 짚신나물 2.86 다릅나무 2.38 바랭이 1.74 뱀고사리 1.23 개맥문동 ~2016 년종합평가ㆍ 93

94 나) 현존식생 서삼릉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군락은 소나무군락으로 26.97%를 차지하며, 다 음으로 갈참나무군락 19.96%, 오리나무군락 15.70%, 졸참나무군락 11.88% 순으로 나타났으며, 외래성 조림수종이 리기다소나무가 우점하는 군락은 리기다소나무소 나무군락으로 1.34%의 매우 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표 37 서삼릉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Pd 소나무군락 Pid 소나무식재림 PrPd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 Qal 조사면적( ) 비율 59, , 갈참나무군락 44, Qs 졸참나무군락 26, Al 오리나무군락 35, 묘지(능, 원, 묘) 53, , 계 그림 8 서삼릉 현존식생도 9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95 ⑫ 온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양주 온릉은 굴참나무가 우점하며, 서어나무가 높은 식피율로 혼생하고 있다. 양주 온릉의 주요 식물군락을 식물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결과 침엽수림 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굴참나무군락 (Quercus variabilis community), 신갈나무군락(Quercus mongolica community), 서어나무군락(Carpinus laxiflora community), 갈참나무군락(Quercus aliena community)으로 구분되었다. 표 38 온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조사구 수 2010~2016년 종합평가ㆍ 95

96 표 39 온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교목층 소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4.76 상수리나무 2.86 졸참나무 1.14 아교목층 서어나무 신갈나무 100 팥배나무 100 철쭉 100 쪽동백 때죽나무 7.14 관목층 진달래 덜꿩나무 때죽나무 철쭉 100 초본층 가는잎그늘사초 굴참나무 100 주름조개풀 애기나리 큰기름새 실새풀 쪽동백 잣나무 작살나무 진달래 덜꿩나무 산딸기 붉나무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97 나) 현존식생 양주 온릉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군락은 굴참나무서어나무군락으로 51.74% 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신갈나무서어나무군락 25.96%, 갈참나무군락 8.78% 순으로 나타났으며, 외래성 조림수종이 많이 섞여 있는 군락은 리기다소나무식 재림 0.86%, 소나무리기다소나무군락 1.39%,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으로 3.31%, 아까시나무굴참나무군락 2.59%로 비교적 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표 40 온릉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군락 명 PdPr 소나무리기다소나무군락 QvCl 굴참나무서어나무군락 Qal 갈참나무군락 QmCl 신갈나무서어나무군락 Pr 리기다소나무식재림 PrPd RopQv 조사면적( ) 비율 1, , , ,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 2, 아까나무굴참나무군락 2, 묘지(능, 원, 묘) 4, , 계 그림 9 양주 온릉 현존식생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97

98 ⑬ 파주 삼릉 가) 주요 군락의 특성 파주 삼릉의 식생은 전반적으로 졸참나무가 우점하고, 사면 하부로 갈수록 갈참 나무가 높은 식피율로 분포하며, 사면 상부는 서어나무가 높은 식피율로 혼생하 고 있다. 소나무군락은 능선부와 남사면 상부에 소규모의 잔존림 형태로 분포하 며, 소나무림의 대부분은 식재림이다. 파주 삼릉의 자연림군락은 침엽수림인 소나무군락(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 졸참나무군락(Quercus serrata community), 갈참나무군락 (Quercus aliena community), 서어나무군락(Carpinus laxiflora community)으로 구분되고, 식재림으로는 소나무식재림(Pinus densiflora afforestation), 잣나무식 재림(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리기다소나무식재림(Pinus rigida afforestation), 아까시나무식재림(Robinia pseudoacacia afforestation)이 조성 되어 있다. 표 41 파주 삼릉오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잣나무식재림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조사구 수 9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99 표 42 파주삼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갈참나무군락서어나무군락소나무식재림잣나무식재림 교목층 소나무 100 졸참나무 갈참나무 100 서어나무 잣나무 100 신갈나무 팥배나무 아교목층소나무 100 때죽나무 100 귀룽나무 100 서어나무 산벚나무 밤나무 1.52 당단풍 신나무 6.67 백당나무 6.67 팥배나무 2.38 관목층산벚나무 100 졸참나무 때죽나무 신나무 100 당단풍 100 밤나무 철쭉 진달래 으름 쪽동백 덜꿩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백당나무 6.67 물푸레나무 6.67 초본층주름조개풀 담쟁이덩굴 애기나리 100 졸참나무 100 졸참나무 산딸기 진달래 왕머루 가는잎그늘사초 눈괴불주머니 국수나무 진달래 철쭉 갈참나무 가는잎족제비고사리 6.56 처녀고사리 4.17 들깨풀 ~2016 년종합평가ㆍ 99

100 나) 현존식생 파주 삼릉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군락은 졸참나무군락으로 21.10%를 차지하 며, 다음으로 갈참나무군락 21.08%, 졸참나무갈참나무군락 17.36%, 졸참나무서어나무군락 11.89% 순으로 나타났으며, 외래성 조림수종이 많이 섞여 있는 군락은 총 8.55%이며, 리기다소나무식재림 0.93%,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으 로 3.26%, 리기다소나무졸참나무군락 2.42%, 리기다소나무아까시나무식재림 0.34%, 아까시나무졸참나무군락 1.07%, 잣나무리기다소나무삭재림 0.55%로 주로 능선부에 분포하고 있다. 소나무순군락은 9.03%로 적은 면적이며, 대부분 소나무식재림으로 8.17%를 차지하고 자연림 소나무군락은 0.86%에 불과하다. 표 43 파주 삼릉의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Pd 군락 명 소나무군락 면적 12,764.8 비율(%) 0.86 Pid 소나무식재림 121, Pr 리기다소나무식재림 13, PdPr 리기다소나무소나무군락 48, PrQs 리기다소나무졸참나무군락 35, PrRop 리기다소나무아까시나무식재림 5, Pik 잣나무식재림 49, PikPr 잣나무리기다소나무식재림 8, Qs 졸참나무군락 313, QsQal 졸참나무갈참나무군락 257, QsCl 졸참나무서어나무군락 176, QsPik 졸참나무잣나무군락 8, Qal 갈참나무군락 312, RopQs 아까시나무졸참나무군락 15, SkAg 버드나무신나무군락 32, Ga 조경식재 38, 묘지(능, 원, 묘) 33, 계 10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484,

101 그림 10 파주삼릉현존식생도 14 파주장릉가 ) 주요군락의특성 파주장릉은갈참나무가우점하는식생으로상수리나무, 굴참나무가혼생하고있으며, 능선의북쪽사면에는신갈나무가우점하고있다. 소나무군락은능선을따라좁게분포하며리기다소나무의식피율이높게나타나는교란식생이다. 남쪽경계부에소나무와잣나무의식재림이조성되어있으며, 습한토양환경에오리나무군락이형성되어있다. 파주장릉의주요식물군락을식물사회학적으로구분한결과자연림은침엽수림인소나무군락 (Pinus densiflora community), 낙엽활엽수림인갈참나무군락 (Quercus aliena community), 상수리나무군락 (Quercus acutissima community), 굴참나무군락 (Quercus variabilis community), 신갈나무군락 (Quercus mongolica community), 오리나무군락 (Alnus japonica community) 으로구분되었으며, 식재림은침엽수림인잣나무식재림 (Pinus koraiensis afforestation) 으로구분되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01

102 표 44 파주 장릉 주요 군락의 특성 소나무 군락 조사구 수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오리나무 군락 군락 군락 군락 군락 잣나무 식재림 교목층 높이(m) 교목층 식피율(%) 아교목층 높이(m) 아교목층 식피율(%) 관목층 높이(m) 관목층 식피율(%) 초본층 높이(m) 초본층 식피율(%) 출현종 수 목본 밀도(개체/100 ) 교목 밀도(개체/100 ) 우점종 밀도(개체/100 ) 우점종 평균 흉고직경( )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03 표 45 파주장릉주요군락의상대기여도 (RNCDi) 에의한계층별주요수종의우점도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상수리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잣나무식재림 교목층소나무 100 갈참나무 100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오리나무 100 잣나무 100 졸참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4.29 아까시나무 4.29 팥배나무 2.86 아교목층때죽나무 당단풍 100 잣나무 쥐똥나무 백당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신나무 4.00 딱총나무 4.00 관목층때죽나무 당단풍 100 진달래 쥐똥나무 100 꼬리조팝나무 100 밤나무 서어나무 잣나무 음나무 개옻나무 2.40 산벚나무 1.00 덜꿩나무 1.04 초본층주름조개풀 때죽나무 고마리 100 담쟁이덩굴 이삭사초 개찌버리사초 상수리나무 청가시덩굴 진퍼리새 나도바랭이새 때죽나무 6.60 모시물통이 1.67 쉽싸리 1.67 진득찰 1.67 대사초 ~2016 년종합평가ㆍ 103

104 나) 현존식생 파주 장릉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군락은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으로 57.42%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신갈나무군락 9.51%, 소나무군락 9.01%, 오리나 무군락 5.54% 순으로 나타났으며, 외래성 조림수종이 많이 섞여 있는 군락은 소나무리기다소나무군락으로 4.21%로 주로 능선부에 분포하고 있다. 표 46 파주 장릉 현존식생 현황 군락 기호 Pd PdPr Pik Qa QalQa QmQs Al Seg 군락의 구분 소나무군락 소나무리기다소나무군락 잣나무식재림 신갈나무군락 갈참나무상수리나무군락 신갈나무졸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초지 습지 조성지(주차장, 재실 등) 묘지(능, 원, 묘) 계 그림 11 파주 장릉 현존식생도 10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면적 43, , , , , , , , , , , ,772.9 비율(%)

105 ⑮ 김포 장릉 김포 장릉의 임상을 임분별로 구분한 결과 소나무림(Pinus densiflora Forests), 갈참나무림(Quercus aliena Forests),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점하는 활침 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and coniferous), 갈참나무와 팥 배나무가 우점하는 활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졸참 나무와 갈참나무가 우점하는 참나무림(Oak Forests), 오리나무림(Alnus japonica Forests), 잣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and deciduous broadleaf)으로 구분되었다. 표 47 김포 장릉 임분별 특성 기호 임분 명 평균 수고(m) 평균 흉고직경( ) 목본 밀도(본수/a) D 소나무림 QC 갈참나무림 HM 활침혼효림 H 활엽수혼효림 QQ 참나무림 AJ 오리나무림 CM 침활혼효림 그림 12 김포 장릉의 임상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05

106 표 48 김포 장릉 군락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갈참나무 졸참나무 오리나무 잣나무 굴참나무 느티나무 돌배나무 때죽나무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4.81 물푸레나무 6.80 버드나무 복자기나무 산벚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음나무 일본잎갈나무 팥배나무 A: 소나무림 E: 참나무림 B: 갈참나무림 F: 오리나무림 C: 활침혼효림 G: 침활혼효림 D: 활엽수혼효림 ⑯ 융릉ㆍ건릉 융릉ㆍ건릉의 임상을 임분별로 구분한 결과 소나무림(Pinus densiflora Forests),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우점하는 침엽수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상수리나무림(Quercus acutissima Forests), 상수리나무와 갈참나 무가 우점하는 참나무림(Oak Forests),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가 우점하는 활엽 수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상수리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우점하는 침활혼효림(Mixed Forest of coniferous and deciduous broadleaf), 갈참나무와 잣나무가 우점하는 활침혼효림(Mixed Forest of deciduous broadleaf and coniferous), 리기다소나무림(Pinus rigida Forests), 잣나무림 (Pinus koraiensis Forests)으로 구분되었다. 10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07 표 49 융릉ㆍ건릉 임분별 특성 평균 수고(m) 평균 흉고직경( ) 목본 밀도(본수/a) D 기호 소나무림 임분 명 C 침엽수혼효림 QA 상수리나무림 QQ 참나무림 H 활엽수혼효림 CM 침활혼효림 HM 활침혼효림 PR 리기다소나무림 PK 잣나무림 그림 13 융릉ㆍ건릉의 임상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07

108 표 50 융릉ㆍ건릉 임분별 주요 수종의 상대우점도 A B C D E F G H I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산벚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귀룽나무 밤나무 서어나무 일본목련 아까시나무 물박달나무 신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A: 소나무림 F: 침활혼효림 108 ㆍ B: 침엽수혼효림 G: 활침혼효림 2010~2016년 종합평가 C: 상수리나무림 H: 리기다소나무림 D: 참나무림 I: 잣나무림 E: 활엽수혼효림

109 2) 중점관리지역수목현황 (1) 동구릉 1 건원릉식재현황 동구릉건원릉의능역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20m 정도를보이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며, 참나무혼효림으로활엽수들이우점하고있다. 건원릉소나무식재림주변을둘러싸고있는활엽수에의한피압이많이진행되어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능역주변으로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쪽동백나무, 오리나무, 때죽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며, 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다. 능역주변으로오리나무, 신나무, 쪽동백, 때죽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2 현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2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비각주변으로 6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남아있으며, 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다. 현릉능침주변소나무림주변을둘러싸고있는활엽수에의해피압이많이진행되어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능역주변으로문종왕릉방향의산책로주변으로산뽕나무, 서어나무, 쪽동백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쪽동백나무, 오리나무, 때죽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09

110 그림 14 건원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그림 15 현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3 목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5~2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인목왕후릉쪽의소나무폭을가장좁게조사되었다. 의인왕후릉주변지역이습하여소나무가생육하기부적합한토양으로판단되며장기적으로주변토양개량과함께소나무의재식계획이필요할것으로판단된다. 의인왕후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경계울타리까지소나무림이남아있으며주변지역은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다. 목릉능침주변소나무림주변을둘러싸고있는활엽수에의해피압이되고있어활엽수에대한관리가필요하다. 능역주변으로문종왕릉방향의산책로주변으로산뽕나무, 서어나무, 쪽동백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쪽동백나무, 오리나무, 때죽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11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11 그림 16 목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4 휘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0~1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휘릉청룡쪽의소나무폭이좁게조사되었다. 휘릉능침주변지역으로소나무를식재하여소나무림을조성하고있으나제향공간지역으로우점한참나무림을정비하여장기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계획이필요할것으로판단된다. 휘릉진입공간주변으로는졸참나무, 오리나무, 갈참나무, 때죽나무등이분포하고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11

112 5 원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소나무는약 2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현재능침주변으로소나무를식재하여수고가높지않는것으로조사되었다. 원릉주변지역이참나무림에의해피압되어제향공간주변으로소나무가피압되고있으며, 장기적으로능침뒤쪽뿐만아니라홍살문앞까지좌측, 우측능선주변으로소나무림을재식하는계획을수립하여야할것으로판단된다. 원릉홍살문좌측으로오리나무가주를이루고있으며상수리, 갈참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등이분포하고있다. 원릉홍살문우측공간에는오리나무, 갈참나무가주로분포하고있으며, 야광나무, 쪽동백, 때죽나무등이아교목층을이루고있다. 원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남아있으며주변지역은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어잔존소나무주변의참나무림을정비하여기존소나무림을지속적으로유지될수있도록정비계획수립이필요하다. 그림 17 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그림 18 원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6 경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경릉청룡쪽의소나무는참나무림에의해피압되어점적으로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경릉능침주변지역으로소나무림이가장많이분포하고있으며제향공간지역으로내려갈수록우점한참나무림이능역공간으로많이잠식해들어오고있다. 따라서장기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계획이필요할것으로판단된다. 11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13 특히휘릉의청룡지역으로오리나무, 산벚나무, 산사나무가주종을이루고있으며아교목층으로쪽동백, 때죽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등이분포하고있다. 7 숭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소나무는약 2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현재능침주변으로소나무를식재하여수고가높지않는것으로조사되었다. 숭릉주변지역이참나무림에의해피압되어백호쪽의제향공간주변으로소나무가피압되고있으며, 장기적으로능선주변으로소나무림을재식하는계획을수립하여야할것으로판단된다. 숭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남아있으며주변지역은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어잔존소나무주변의참나무림을정비하여기존소나무림을지속적으로유지될수있도록정비계획수립이필요하다. 그림 19 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그림 20 숭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8 수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5~2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수릉청룡쪽의소나무는참나무림에의해피압되어점적으로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수릉능침뒤쪽주변지역으로소나무림이가장많이분포하고있으며제향공간지역으로내려갈수록우점한참나무림이능역공간으로많이잠식해들어오고있으며, 잣나무림도분포하고있다. 잣나무림은소나무림과질감과색감의차이가있어장기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계획이필요할것으로판단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13

114 수릉의청룡지역으로소나무, 갈참나무, 오리나무, 상수리나무가주종을이루고있으며아교목층으로쪽동백, 팥배나무등이분포하고있다. 9 혜릉식재현황 능침을중심으로소나무는약 3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현재능침주변으로소나무들이대체적으로양호한상태를유지하고있다. 혜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남아있으며주변지역은참나무혼효림으로인해피압되고있어잔존소나무주변의참나무림을정비하여기존소나무림을지속적으로유지될수있도록정비계획수립이필요하다. 그림 21 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그림 22 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남양주홍릉융릉 1 홍릉식재현황 홍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341본중에소나무가 233본으로 68% 가조사되었고, 홍살문을기준으로왼쪽방향에잣나무 106본으로대체적으로많이나타났으며, 수관밀도가높은것을볼수있다. 11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15 그림 23 홍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유릉식재현황 유릉능침주변소나무조사결과전체 169본중에소나무가 166본으로 98% 가조사되었고, 잣나무 3본으로대체적으로많이나타났으며, 수관밀도가낮으며, 벌근도적은편이다. 그림 24 유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15

116 (3) 남양주사릉 1 사릉식재현황 사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241본중에소나무가 238본으로 98% 가조사되었고, 소나무가주로능침주변을둘러싸고있고봉분오른쪽방향과홍살문오른쪽방향에소나무조림지가있다. 그림 25 사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4) 남양주광릉 1 광릉식재현황 광릉의능역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전나무의너비는약 10m 정도를보이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참나무혼효림으로활엽수들이우점하고있다. 세조왕릉과정희왕후릉주변의전나무림주변을둘러싸고있는활엽수에의한피압이많이진행되어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능역주변으로전나무, 갈참나무, 서어나무, 층층나무, 졸참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11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17 그림 26 광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5) 서울선릉과정릉 1 선릉식재현황 정릉의능침주변소나무는성종대왕릉우측부분에약하게남아있으며능침뒤쪽과좌측으로는약 17m 정도의폭으로소나무림이남아있다. 능침뒤쪽용맥을따라잔존소나무가위치하며정현왕후릉은성종대왕릉보다소나무림이폭넓게위치하고있다. 정현왕후릉청룡능선부로는넓은폭으로소나무가존치하며소나무림이비각앞쪽까지내려오고있다. 선릉능역주변의소나무림과함께오리나무림, 버드나무림, 조경식재지 ( 단풍나무, 때죽나무등 ) 가분포하고있다. 이수목들은현재동원이강릉의형식을고려해볼때문제가있는것으로나타났다. 따라서오리나무와뒤쪽단풍나무, 때죽나무등의수목을단계적으로제거하고사초지로조성할필요가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17

118 선릉의경계부는차폐되지않아위요감이떨어지고있어주변소나무림재식이필요해보인다. 그림 27 선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정릉식재현황 정릉의주변소나무림은대체적으로갈참나무림을제거하고점차확대해나가는것으로조사되었으며, 제향공간주변으로소나무의높이차이가있어균형감이맞지않아보이는문제점이있다. 정릉답장구간에는소나무식재림에섞여잣나무가분포하고있으며질감의차이가있고경관성도결여된다. 정릉의곡장주변의소나무림중에는곡장과 1~1.5m 가까이붙어있는소나무가있는데이는지속적인모니터링이필요할것으로보인다. 11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19 그림 28 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6) 서울헌릉과인릉 1 헌릉식재현황 헌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313본중에소나무가 209본으로 67% 가조사되었고, 오리나무가산책로주변으로길을따라 58본이있었다. 아래그림에서능뒤편으로밀집되어있는것은소나무조림목이있는곳이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19

120 그림 29 헌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인릉식재현황 인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313본중에소나무가 178본으로 57% 가조사되었고, 소나무벌근이많은편이다. 아래그림에서봉분주변으로소나무가있고봉분아랫부분은대부분오리나무이다. 그림 30 인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21 (7) 서울태릉과강릉 1 태릉식재현황 태릉주변의식생현황을보면우백호쪽으로약 60m 폭으로소나무림이분포하며, 좌청룡지역도정자각에서홍살문까지의능역주변으로소나무림이조사되었다. 태릉의사초지내로수목들이많이들어와다른능에비해사초지가좁게느껴지며, 이는참나무림을제거하지않고소나무를참나무앞쪽으로재식한결과로보인다. 근래능역주변으로소나무를재식한수목들은대체적으로약 3m 정도의간격으로재식되어있어소나무가제수형을가지면서성장해나갈수있도록관리할필요가있다. 그림 31 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21

122 능침뒤쪽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일부남아있으며, 소나무상수리나무혼효림으로활엽수 ( 상수리나무 ) 들이점점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태릉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이왜소화되어있는지역과능침곡장주변으로붙어있는소나무가있다. 곡장주변에바로붙어분포하는소나무들은장기적인모니터링을통해능제시설이훼손되지않도록할필요가있어보인다. 2 강릉식재현황 강릉의능역주변의식생현황을살펴보면백호능선부의활엽수를제거하고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능선부를소나무림으로잘조성하고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강릉의능선부소나무림이아직뚜렷이남아있으며현재소나무상수리나무혼효림으로서상수리나무가소나무를지속적으로피압하고있어잔존소나무들이고사할우려가있기때문에능선부의소나무관리를위한계획수립이필요하다. 그림 32 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23 강릉능침주변으로식재되어있는소나무들은밀식되어있어소나무의밀도조절이필요할것으로보인다. 강릉제향공간에서홍살문가지의상수리갈참나무군락이우점하고있으며사초지가매우좁게남아있다. 따라서사초지의폭을넓히고소나무로점진적으로대체할수있는계획이필요하다. (8) 서울정릉 1 정릉식재현황 정릉능침주변식생현황을보면소나무식재가능역주변을둘러싸고있으며, 소나무의너비는약 20~25m 정도로조사되었다. 청룡지역능선의소나무림이백호지역능선의소나무림보다조금더넓게분포하고있다. 능침주변소나무식재배후림으로신갈나무팥배나무림이분포하고있으며소나무의생장을유지하기위해서는지속인관리가필요해보인다. 그림 33 정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23

124 제향공간주변으로는느티나무, 참나무류, 벚나무, 팥배나무등이식재되어있다. 능침지역에새로재식한소나무림은식재간격이너무좁아솎아내기를통해소나무의제수형을가질수있도록정비계획을수립할필요가있다. (9) 서울의릉 1 의릉식재현황 2009년의릉의능침주변소나무는의릉백호지역은약 70m 정도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으며청룡지역은능침주변에조금남아있고능침뒤쪽으로소나무림이연결되어있으며제향공간까지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다. 2011년청룡지역의단절되었던소나무를연결하였으며청룡능선주변으로건물을철거하고지형을복원하고있는모습을볼수있다. 2016년의릉의능역주변소나무림은백호지역에는큰변화가없다. 그러나능침뒤쪽청룡지역으로소나무림이늘어나있는것을확인할수있으며지형을복원한지역도소나무림으로재식한것으로조사되었다. 그림 34 의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25 복원한지역의소나무들은재식한지얼마되지않아소경목으로서지속적인관리가필요할것으로보인다. 의릉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림은청룡맥을따라소경목이 4열재식되어있으며, 백호지역은중경목으로 1열에서 2열로분포하고있다. 제향공간은넓은사초지를유지하고있으나제향공간의소나무식생은미약해보인다. (10) 서오릉 1 명릉식재현황 서오릉명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보면소나무림이능역을둘러싸고있으며, 소나무가분포하고있는너비는약 10~20m 정도를차지하고있다. 명릉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3~2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1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그림 35 명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25

126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일부남아있으며, 소나무림주변으로소나무참나무혼효림으로활엽수들이점점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2 익릉식재현황 서오릉익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살펴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20~40m 정도를보이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30~4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20~3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일부비어있는공간이있으며, 소나무림주변으로소나무참나무혼효림이분포하고있어활엽수들이일부능역주변의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그림 36 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27 익릉백호능선부주변으로소나무식재림을조성하였으며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을재식이필요한공간이조사되었다. 정자각아래까지소나무림의폭은대체적으로양호하며활엽수에의한피압을장기적으로관리해나갈필요가있다. 3 경릉식재현황 서오릉경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0~25m 정도분포하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10~1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15~2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경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참나무림이우점하고있으며, 소나무림주변으로참나무림으로활엽수들이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그림 37 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27

128 경릉소혜왕후릉주변으로소나무림이가장많은피압을당하고있으며경릉덕종왕릉비각주변으로소나무림의추가재식이필요해보인다. 경릉덕종왕릉쪽의정자각주변의소나무림도수관폭이많이넓어장기적으로소나무의이식계획수립이필요해보인다. 경릉정자각아래까지소나무림의폭은대체적으로양호하며활엽수에의한피압을장기적으로관리해나갈필요가있다. 4 홍릉식재현황 서오릉홍릉의능침주변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0m 내외정도를보이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정자각에서홍살문까지일부소나무가남아있으며대부분의신갈나무림이우점하고있다. 홍릉청룡능선부에는 10~15m 정도의소나무폭을능침에서정자각까지이루고있다. 홍릉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참나무림이우점하고있으며, 소나무림주변으로신갈나무림으로활엽수들이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그림 년홍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2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29 5 창릉식재현황 서오릉창릉의능침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주변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0~25m 내외정도를보이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와청룡능선부의소나무는능침에서홍살문까지소나무가연결되어있으나대부분의소나무림들의폭이좁고주변의참나무림이우점하고있어소나무림을피압하고있다. 홍릉홍살문주변에서창릉방향으로리기다소나무림이능침뒤쪽까지우점하고있어정비가필요하다. 창릉은장기적으로외래수종에대한제거와재식계획의수립이필요해보인다. 그림 39 창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29

130 (11) 서삼릉 1 희릉식재현황 서삼릉희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보면소나무림이능역을둘러싸고있으며, 소나무가분포하고있는너비는약 10~15m 정도를차지하고있다. 희릉능침을중심으로백호지역의중계지역까지소나무는약 1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1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일부남아있으며, 소나무림주변으로경마장과의경계울타리가설치되어있다. 희릉정자각에서홍살문까지소나무가점적으로분포하고있으며오리나무와물푸레나무, 산벚나무, 때죽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그림 40 서삼릉희릉전수조사 2 예릉식재현황 서삼릉예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보면소나무림이능역을둘러싸고있으며, 소나무가분포하고있는너비는약 10m 정도를차지하고있다. 13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31 예릉능침을중심으로백호지역의소나무는약 1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활엽수 ( 오리나무등 ) 의피압으로소나무의수세가쇠퇴하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1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백호능선과같이활엽수의피압을받고있다. 예릉능침에서홍살문까지소나무가선형으로분포하고있으며오리나무와신나무, 때죽나무, 상수리나무, 밭배나무, 서어나무등의수목들이분포하고있다. 그림 41 서삼릉예릉전수조사 3 효릉식재현황 서삼릉효릉의능침주변수목현황을보면소나무림이능침뒤쪽으로둘러싸고있으며, 소나무가분포하고있는너비는약 10m 정도를차지하고있다. 효릉백호지역의소나무는활엽수의피압으로점적으로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으며,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남무, 신나무등이분포하고있다. 청룡능선부도역시활엽수의피압으로점적으로소나무림이분포하고있으며장기적으로활엽수를정비하고소나무를재식하여능역주변을정비할필요가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31

132 그림 42 서삼릉효릉전수조사 (12) 양주온릉 1 온릉식재현황 양주온릉능침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0m 정도로매우폭이좁게분포하고있다.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능침에서정자각까지소나무폭이점차줄어들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홍살문까지참나무에피압되어소나무가점적으로분포하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며, 굴참서어나무림이우점하고있다. 양주온릉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이참나무에의해점차적으로피압당하고있어소나무에대한관리가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능침주변으로일정폭의참나무림을제거하고소나무림으로대체하는계획을수립하여야한다. 13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33 그림 43 양주온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 파주삼릉 1 공릉식재현황 파주삼릉공릉의능침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5~25m 정도를보이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약 20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 15m 정도의소나무폭을이루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며, 참나무혼효림들이우점하고있다. 공릉주변의소나무식재림을보면능침주변으로일부소나무림이분포하는것으로조사되었으며백호능선부는홍살문까지소나무림의폭이좁게분포하고있으나청룡능선부의비각부터홍살문까지는활엽수에의한피압이많이진행되어있는것으로조사되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33

134 그림 44 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순릉식재현황 2010년파주삼릉순릉의능침주변을졸참나무림이둘러싸고있으며소나무식재림현황을보면능침뒤쪽으로약 20m 정도로소나무림이남아있다. 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는현재졸참나무림이우점하고청룡능선부에는버드나무신나무군락이우점하고있다. 순릉주변의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므로장기적으로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을조성하는재식계획수립이필요하다. 13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35 그림 45 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 그림 46 순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2 3 영릉식재현황 파주삼릉영릉주변의식생현황을보면능침주변으로졸참나무, 갈참나무림이우점하고있으며, 소나무림현황을보면능침주변으로소나무의너비는약 15m 정도를보이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을식재하여넓은면적을차지하고있으나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의재식계획이필요하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35

136 그림 47 영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4) 파주장릉 1 장릉식재현황 파주장릉능침주변식재현황을보면능역을둘러싸고있는소나무의너비는약 15m 정도를보이고있으며능침을중심으로백호능선부의소나무는정자각에서홍살문까지소나무폭이줄어들고있으며, 청룡능선부에는홍살문까지일정폭의소나무림이유지되고있다. 능침뒤쪽으로용맥을따라소나무림이거의남아있지않으며, 갈참나무상수리나무림이우점하고있다. 파주장릉주변의소나무림을보면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이참나무에의해점차적으로피압당하고있어소나무에대한관리가필요하다. 13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37 그림 48 파주장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5) 김포장릉 1 장릉식재현황 장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351본중에소나무가 319본으로 91% 가조사되었고, 잣나무가 19본으로 5%, 전나무가 6본으로 2% 조사되었으며활엽수는 7본으로 2% 가조사되었다. 수관밀도가높은것을볼수있으며, 홍살문을기준으로왼쪽방향으로소나무가많이출현하였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37

138 그림 49 김포장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6) 융릉건릉 1 융릉식재현황 융릉능침주변수목조사결과전체 337본중에상수리나무가 92본으로 27% 가조사되었고, 소나무가 85본으로 25% 가조사되었다. 수관밀도가높은것을볼수있다. 그림 50 융릉능침주변수목분포현황 13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39 ② 건릉 식재 현황 건릉 능침주변 수목조사 결과 전체 441본 중에 상수리나무가 158본으로 36%, 소나무가 149본으로 33.8%, 잣나무가 111본으로 25.2%가 조사되었다. 수관밀도 가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51 건릉 능침주변 수목분포 현황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39

140 3. 조선왕릉의동물현황 1) 년야생동물종합분석 2014부터 2016년까지조선왕릉역사문화경관림지역에서조사한결과, 총조류상은 76종이관찰되었고, 출현종이가장많은왕릉은동구릉과광릉이었다. 동구릉은왕릉중에가장많은능침이있는대규모면적에내외부의수계망과연못등이발달되어있어서다양한조류상이서식할수있고, 백로류의경우는집단번식을하고있다. 광릉은오랫동안대규모지역을보호지역으로관리해오면서, 인공림과극상림등이잘발달된산림생태계때문에조류종다양성이많다고할수있다. 그림 52 왕릉의조류현황 (2014~ 2016) 나머지대부분의왕릉은독립된숲이거나주변산림이구릉성산림과연계되어있고, 2016년에조사한왕릉처럼도심권역에위치한왕릉의경우는종수가낮은상태로나타난것을확인할수있다. 천연기념물을비롯한법정보호종은총 8종이관찰되었고, 대부분은맹금류였다. 14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41 표 51 조선왕릉천연기념물서석현황 구분 2014년 (7종) 2015년 (6종) 2016년 (4종) 물새류 원앙 원앙 맹금류 ( 주행성 ) 황조롱이, 붉은배새매, 새매 황조롱이, 붉은배새매, 새매 참매, 붉은배새매 맹금류 ( 야행성 ) 소쩍새, 솔부엉이 소쩍새, 솔부엉이 소쩍새, 솔부엉이 산림성조류 까막딱다구리 산림지역의지표종이라할수있는딱다구리류도왕릉에서는많이관찰되었는데, 2014년이가장많은 6종 48개체였고, 2015년이 5종 35개체인데반해, 2016 년에는 4종 10개체에불과하였다. 이또한 2016년의왕릉조사지역이독립된위치에있거나인접한산림의식생이다양하지않거나, 도시화된경관구조의특징을보이고있기때문이다. 표 52 조선왕릉지표종인딱다구리류의서식현황 2014 년 (6 종 48 개체 ) 2015 년 (5 종 35 개체 ) 2016 년 (4 종 10 개체 ) 쇠딱다구리 (19) 아물쇠딱다구리 (2) 큰오색딱다구리 (10) 오색딱다구리 (18) 까막딱다구리 (2) 청딱다구리 (7) 쇠딱다구리 (6) 아물쇠딱다구리 (2) 큰오색딱다구리 (4) 오색딱다구리 (17) 청딱다구리 (6) 아물쇠딱다구리 (1) 큰오색딱다구리 (1) 오색딱다구리 (4) 청딱다구리 (4) 총 18개지역의왕릉에서왕릉의면적, 산림밀도및축적량, 식생의층위구조등조류다양성을지원하는다양한항목이있는데, 이번종합평가에서는기본적인종과개체수현황, 법정보호종, 딱다구리류의개체군크기를비교해보았다. 지속적으로왕릉보고서에서언급한바와같이현재왕릉의입지와산림축적량, 그리고미소서식지의발달등은다양한야생동물을부양할수있는공간이라할수있다. 한편도심권역에위치하면서왕릉경관을유지하기위한하예작업과같은강도높은작업은왕릉을기반으로서식하는소형산림성조류에게먹이자원과둥지자원을감소시키기때문에도심권역의왕릉은인공소상 ( 인공둥지 ) 등을설치하여다양한산림성조류를유인할필요가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41

142 그림 53 왕릉에서주로서식하는야행성맹금류솔부엉이와소쩍새 이러한산림성조류의다양성은궁극적으로왕릉의해충등을먹이로하여개체수조절을할수있기때문이다. 특히솔부엉이와소쩍새는매년왕릉에서주로출현하고있는데, 이들은해충이라할수있는나방류를주로사냥하기때문에이들의서식을유인하면서생태교육프로그램으로활용할수있다. 왕릉에서가장위협적이야생동물에멧돼지와두더지가있다. 두더지는왕릉의능침주변을파고들어가서능침의붕괴위험을초래할수있고, 멧돼지는인명손상및두더지와같이땅을파헤치는행위로능침주변의붕괴나잔디가훼손되기도한다. 특히멧돼지가출현한지역은 2014년의동구릉, 2015년의서삼릉, 2016년의태릉이다. 멧돼지는기본적으로출몰지역에안내시설설치와펜스관리가가장우선되어야하며, 멧돼지출몰지역이대부분주변산림과연계된지역이기때문에지자체의밀렵감시및구조단체와의긴밀한협의가필요할것이다. 두더지는기피제중심으로회피시키는방안이가장시급할것이다. 14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43 4. 조선 왕릉의 곤충 현황 2014부터 2016년까지 조선 왕릉 역사문화경관림 지역을 조사한 결과, 광릉이 554종이 출현하여 가장 출현종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었으며, 연산군묘가 100종 이 출현하여 가장 낮은 지역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휘경원, 서오능, 서삼릉, 태릉ㆍ강릉이 각각 200종 이상 출현한 지역이었으며, 그 외 지역은 101~200종 이 출현하여 비교적 출현종 다양성이 낮은 지역이었다. 그림 54 조선 왕릉별 출현종 다양성 비교(2014~2016) 현지조사에서는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야생동물 I급 및 Ⅱ급은 조사되지 않았으 며, 광릉의 문헌조사에서는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야생동물 I급인 장수하늘소 와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인 대모잠자리, 물장군, 쇠똥구리, 큰수리팔랑나비, 왕 은점표범나비의 5종이 확인되었다. 본 조사기간 방제 또는 예찰이 필요한 생태계위해우려 외래생물등급(국립생태 원, 2012) 곤충은 혹명나방, 미국선녀벌레, 꽃매미, 돼지풀잎벌레, 아메리카동애 등에, 갈색날개매미충의 6종으로 파악되었다(표 53). 초지대에 적응성이 높은 혹명나방은 거의 전 조사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서울 의릉 등 가을에 500개 체 이상 관찰되기도 하였다. 최근 개체밀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 미국선녀벌 레는 대부분 조선 왕릉 지역에서 1,000개체 이상 관찰되었으며, 꽃매미는 미국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43

144 선녀벌레보다는 개체밀도가 낮지만 곳에 따라 어린 벌레시기 대규모 군집을 이 루고 있기도 하였다. 생태계 교란식물인 돼지풀에 적응성이 높은 돼지풀잎벌레 는 서오릉 등에서 관찰되었으며, 아메리카동애등에는 서오릉과 정릉에서만 관찰 되었다. 그리고 산지에서 대규모 관찰된 갈색날개매미충은 서오릉ㆍ온능ㆍ서삼 릉ㆍ파주 삼릉ㆍ파주 장릉ㆍ의릉에서 관찰되었으나 향후 다른 조선 왕릉 지역 에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표 53 현지 확인된 생태계위해우려 외래생물등급(곤충)의 출현 현황 및 특성 곤충 명 조선 왕릉 명 혹명나방 광릉 휘경원 영빈묘 미국선녀벌레 꽃매미 돼지풀잎벌레 아메리카 동애등에 갈색날개 매미충 순강원 동구릉 명빈묘 서오릉 온릉 서삼릉 파주 삼릉 파주 장릉 소령원, 수길원 태릉, 강릉 정릉 연산군묘 선릉 의릉 영휘원 안빈묘 14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45 5. 조선 왕릉의 식생구상 1) 적극적 보호지역 경관림 조성 및 관리 (1) 기본원칙 조선 왕릉 용맥의 흐름에 따라 주산에서 뻗어오는 산맥과 외청룡ㆍ외백호ㆍ내 청룡ㆍ내백호 용맥은 송림으로 조성하여 관리하고, 능침 외 지역은 현재의 식생 대로 보존 관리한다. 능침주변 소나무림을 조성할 경우 목재생산림이 아닌 역사문화경관림으로 재식 에 맞는 잔존 본수(약 200~400본/ha)를 유지한다. 조선 왕릉 문화재 지정구역 내에 식재되어 있는 외래수종은 모두 제거한다. (2) 역사경관림 조성 왕릉의 주산을 잇는 용맥, 중점관리지역 외청룡, 외백호 능선 및 내백호, 내청 룡의 산맥은 반드시 송림으로 조성한다. 단 송림의 조선 왕릉 역사경관림에 어 울리는 하층목(참나무류, 쪽동백, 때족나무, 진달래 등)의 보존을 통한 역사경관 림을 유지한다. 또한 습지지역은 오리나무 등을 보존 관리한다. ① 단기 방안 능원을 중심으로 사면을 감싸고 있는 내청룡ㆍ내백호ㆍ현무ㆍ주작 전체지역을 송림으로 조성해야 한다. 단 문헌기록에 식재(융릉 가래나무 등)한 수목은 존치 한다. 고문헌 기록이 있는 경우에는 문헌기록에 의거 재식한다(예, 건원릉 소나무, 융 건릉 참나무, 광릉 전나무 등). 외래수종은 모두 제거한다.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홍단풍, 꽃개오동나무, 일본목련 등은 모두 제거한다. 면단위(군식) 경우에는 제거 후 소나무를 재식한다. 점단위(단목) 경우에는 제거만 실시한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45

146 ② 장기 방안 주산을 잇는 용맥 및 외청룡ㆍ외백호줄기는 산 능선에서 좌ㆍ우 산아래 7~6부 능선까지 송림을 조성한다. 방화수림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의 활엽수림대는 현황대로 보존하고, 화소를 고려하여 폭 20m 범위 내의 하층목을 제거한다. 그림 55 역사경관림 조성(안) 14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47 (3) 시설물주변경관림조성및관리 능침주변곡장지역송림조성은소나무가성목으로자랐을때수고에해당하는높이만큼곡장에서떨어져송림을조성한다. 곡장주변에작은소나무를재식하는경우에는 7~10m 정도떨어져재식한다. 곡장주변소나무가성목으로더이상수고생장을하지않을경우에는곡장에서수고만큼간격 ( 약 15~20m) 이유지되도록한다. 주간이구부러진수목은경관적가치와도복등을고려하여현장확인후제거한다. 그림 56 능침주변의소나무림 ( 변경전 ) 그림 57 능침주변의소나무림 ( 변경후 )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47

148 2) 생태관리지역보전방안 (1) 조선왕릉의식생분포의안정성유지 외래수종 (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일본목련 ) 등의수종은점진적으로정리 왕릉내의생태계교란식물 ( 애기수영, 도깨비가지, 가시박, 돼지풀, 환삼덩굴 ) 등제거 왕릉내특산식물 ( 할미밀망, 각시둥굴래등 ) 및희귀식물의보존 자연생태지역의침엽수와활엽수는적정분포유지하고생태적식생을위한다층구조화유도 기도입재식된식물군락의적절한밀도조정 (100~400본/ha) (2) 조선왕릉의생태계의안정성유지 세류침식, 우곡침식, 토양침식현상방재를통한안정적인토양환경, 지피식물및식생의다층구조등유지 왕릉주변의수계정비를통해사면토사유실방지및소생물서식환경개선 왕릉내의대표동물 ( 딱다구리류, 야행성맹금류등 ) 에필요한생태계유지 왕릉내두더지, 멧돼지, 뱀등위해동물에대한방재 왕릉내위해곤충및해충발생시적절한대응방안마련 14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49 6. 조선왕릉의식생보존관리 1) 정비및관리기본목표 외래식물 ( 목본, 초본 ) 등왕릉경관에부적합한식물은제거 왕릉경관에적합한소나무분포를확대 자연재해예방과건강한수목유지를위해활용공간은중점관리 2) 외래식물정리 (1) 수목 대표적인외래식물로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일본목련, 백송일본매자나무등이있다. 조선왕릉에는이중과거에인위적으로식재했거나조림했던개체 ( 아까시나무 ) 와그후세목이자연발생하여자연생태지역에세력을확장하고있기때문에장기적인계획수립을통해지속적인관리가필요하다. 아까시나무는제거후구역의기준에따라재식한다. 적극적인관리지역은공간의성격에적합한수종을선택하여인위적경관으로복구하고생태보전지역의경관림은생태적변이및천이등을고려하여다층구조의식생을유도하며일부외래수종은제거한다. (2) 초본류 조선왕릉의귀화식물은애기수영, 미국자리공, 유럽점도나물, 흰명아주, 아까시나무, 애기땅빈대, 종지나물,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 망초, 큰금계국, 뚱딴지, 서양민들레, 왕포풀등이확인되었다. 조선왕릉의생태계교란식물은애기수영,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 서양등골나물 5분류군이확인되었으며외래식물들은지속적인관리를통해제거해나가야한다. 돼지풀은국화과에속하는일년생초본으로북아메리카원산이며유럽과아시아에널리퍼져있다. 우리나라는거의전국적으로분포하고있다. 세계여러나라에서자생식물과의자생지경쟁그리고꽃가루알레르기등의위해성으로인해관리식물로지정되어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49

150 돼지풀은주로도로변, 하천변, 호수변, 농경지와목초지등에잘자란다. 조선왕릉지역에서도주로산책로주변또는관리용도로주변에분포하고있으며, 숲속에는분포하지않았다. 이는인위적제거등의절차가가능한것으로사료된다. 돼지풀은뽑아주기가가장확실한제거방법이다. 현재조선왕릉지역의돼지풀은개화기직전에예초기, 낫등으로베어내기를하면종자를맺지못하기때문에효과적으로제거가가능하다. 단풍잎돼지풀은국화과에속하는일년생초본으로높이 3m까지자란다. 단풍잎돼지풀은북아메리카원산이며미국전역에퍼져있고유럽, 아시아, 호주등에널리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주로중부지방에분포하는데주로접경지에집중분포하고있다. 단풍잎돼지풀은우리나라의자생식물과의경쟁그리고꽃가루알레르기등의위해성으로인해생태계교란생물로지정되었다. 단풍잎돼지풀은주로도로변, 하천변, 호수변, 농경지주변에크게무리를지어자란다. 단풍잎돼지풀의종자는흙을통해서유입되거나, 다른식물의종자등에섞여유입된다. 또한물길을따라이동하므로하천의상류나, 높은지역에분포하는단풍잎돼지풀의제거가우선적으로이루어져야한다. 단풍잎돼지풀은돼지풀과마찬가지로뽑아주기가가장확실한제거방법이지만분포범위가넓은편이어서많은시간과노동력을필요로한다. 따라서일년생이므로개화기직전에분포면적을고려하여예초기, 낫등으로베어내기를하면종자를맺지못하기때문에효과적으로제거가가능하다. 조선왕릉지역에서돼지풀은 8월초순에개화가시작되므로이때가베어내기의최적시기이다. 미국쑥부쟁이는다년생이므로뿌리로월동을하기때문에베어내기는효과가거의없으므로반드시뽑아내기를하여야한다. 개화전에는식별과발견이어렵기때문에개화기에집중적으로뽑아내기를하는것이가장효과적이다. 3) 수목재식및보전관리 (1) 공통사항 소나무숲확대조성은내외사신사의용맥을따라 7부능선까지송림을조성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외래수종, 근대조경수종이생립하고있는지역을우선대상지로하며, 고문헌을근거로능역을중심으로용맥을따라이어지는형태로조성한다. 15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51 도입되는 소나무는 직간으로 자라 기존 소나무와 이질감이 없도록 하며 규격은 조건에 따라 달리할 수 있으며 동일 장소에서도 큰 숲에서는 3가지 이상의 규 격을 사용한다. 기존식생의 일시적 변화로 인한 경관의 질적 관리를 위해 단기, 중기, 장기로 구분하여 15년 계획으로 한다. 수목분포는 조사결과 대부분지역이 밀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특히 능 원의 주변 소나무에서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므로 아래사항을 참고하여 지속적 인 솎아베기를 한다. 일반 산림관리에서는 규격당 잔존본수와 평균수간거리2)는 소나무 흉고직경 20 의 경우 잔존본수 750본/ha, 거리 3.7m, 흉고직경 30 는 405본/ha, 거리 5.0m, 흉고직경 본/ha, 거리 6.1m로 권장하고 있으나 능원의 경우 역사경관림의 역사성과 진정성ㆍ완정성을 위해 정원수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능하면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능원의 소나무 등 교목은 수목의 개체의 수고, 수형, 생태적 특성을 존중하면서 잘 보전하 기 위해 공간의 성격 및 지형의 특성에 따라 본/ha를 유지하도록 한다. (2) 능역 및 활용지역 경관림 능침주변 소나무숲 조성은 용맥의 혈처(주산, 내청룡맥과 내백호맥 지역)를 중 심으로 하되 용맥을 따라 외부로 연계성이 유지되도록 한다. 용맥 혈처의 소나무숲(대) 폭은 최소 50m 이상 유지되도록 하되 사신사의 각용 맥의 능선의 7부능선까지 송림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타 수종과의 경계는 획 일화로 인한 이질감이 없도록 전이공간(경계)은 계곡, 산릉 등 변화되는 자연지 형을 이용하며, 수종 간 경합이 없도록 5~10m의 완충공간을 둔다. 또한 현재 식재되어 있는 소나무 중 소경목는 점진적으로 솎아내기 등을 통해 소나무 제 수형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존 능침주변의 소나무숲 내에 있는 참나무 군락 등 낙엽활수(교목)는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소나무를 재 식하여 보완한다. 능침 주요시설과의 수목 이격 거리는 능침의 형식, 능역규모, 입지조건 등에 따 라 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곡장으로부터 줄기중심 15~20m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이 범위 내에 포함된 큰 소나무가 너무 많아 단순히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많은 관계전문가들의 협의를 거친 이후 능별 확정이 필요하다. 2) 조림학개론, 향문사, p ~2016년 종합평가ㆍ 151

152 능침지역의특성상경계지역수목은불균형적으로발달 ( 개방된지역으로기울어짐 ) 되고, 풍해, 설해의사례도자주발생하고있어솎아베기, 가지전정등지속적이고적극적인관리가필요하다. 능원 ( 진입제향능침공간 ) 지역에서낙엽활엽수와경합하여소나무의피해가심하거나향후피해가예상되는경우서로가치를판단하여결정해야하지만향후소나무분포확대, 소나무군락조성등을충분히고려해야한다. 종간경합이없이홀로있는소나무는가지가많이발생하여지엽이적체되면서설해, 풍해의표적이될뿐아니라관람지역에서는낙지로인한인명의피해도예상되므로주기적인불필요한가지전정이필요하다. 그림 58 소나무군락식재구조예시도 그림 59 소나무식재밀도변경전변경후 15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53 (3) 기타 부속 경관림 아까시나무 등 외래수목이 대규모로 제거된 지역의 소나무 재식은 생태적 안정 과 효과적인 경관유지를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소나무 단순군락이 되지 않도록 기존외래수목 하층에 자생하는 낙엽활엽수 (소교목, 관목)는 최대한 이용하되 부족할 경우 도입하여 부분군집 또는 다 층구조의 하층식생으로 활용한다. 기존수목과의 경계는 획일적인 구분으로 이질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산릉, 계 곡 등의 자연지형을 활용하고 경계에는 10m 이상의 완충공간을 유지한다. 도입되는 소나무는 주변과 같은 직간형으로 하고 10년 이상 사후관리를 전 제로 조성한다. 부속 경관림 내에는 근대에 외래수목을 제거하고 소나무로 갱신한 지역이 상당 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갱신방법이 이행되지 않아 많은 문제점 이 발생하고 있어 다음과 같은 보완정비가 필요하다. 소나무의 대부분이 70~80년대 조경수로 유행한 일명 난장이형(수관중심)으 로 기존수목과는 이질적인 형태가 많아 불필요한 수목을 선정하여 과감한 정리를 한다. 높은 밀도의 수목은 솎아베기를 하고 발생되는 공간에는 낙엽활엽수(소교목, 관목) 소군락 또는 하층재식으로 보완한다. 획일적으로 구분되는 경계는 주변 낙엽활엽수와 조화되도록 정리하고 10m 내외의 완충공간을 유지한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53

154 7. 왕릉별보존관리 1) 동구릉 (1) 지형및지질보존관리 동구릉을조사하면서 GIS 분석을통해이론적으로검토된몇가지사항을현장에서확인할수있었다. 첫째로우려되는사항은경릉묘역에관련된사안으로우곡침식이발생하고있다는것이다. 하천의시작부를중심으로우곡침식이심화되면서 30cm 규모로토층이붕괴되는슬럼프현상이나타나고있으며폭도약수m에이를정도로광범위하게나타나고있다. 하류부가소하천에연결되는상황때문에이처럼두부침식에의한상류쪽으로확산은사면안정성에커다란위해요인이될것으로판단되고있다. 그림 60 동구릉지형지질보존대책 15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55 두번째우려되는상황은여러묘역에서확인할수있었던세류침식과관련된것이다. 경사가완만한잔디지역이많아침식은큰문제가되지않을것으로예측하였으나실제답사를통해확인한결과를보면대부분의묘역이잔디에의해잘보존되고있으나강우시에형성되는세류침식의흔적이여러곳에서나타나고있는것을확인할수있었다. 이러한세류의형성은방치할경우우곡으로발전할수있다는점에서우려할부분이있다. (2) 수계관리 관람로주변으로조성되어있는배수로는세가지유형으로나누어져있다. 돌수로, 현장목재를활용하여만들어진목재배수로, 잔디수로로조성되어있다. 수릉에서건원릉으로이어지는관람동선주변의돌수로의정비가필요하다. 기존돌수로와연계하여돌로정비되어있지않고, 토양의침식이있는지역을대상으로돌수로를정비한다. 원릉에서혜릉으로이어지는관람동선주변의목재수로의정비가필요하다. 되도록인위적인시설을이용한호안정비를지양하고토사정비를통한자연지형과조화를이룰수있도록호안을정비한다. 목릉능침쪽으로잔디수로주변으로목재마감이되어있으나부식이심하며주변잔디가습지화되어가고있어수계정비가필요하다. 휘릉과원릉사이의계곡부수계의양쪽호안토사유실이심각한상황이며자연형돌쌓기호안으로정비하여야하며, 원릉과경릉사이의수계양쪽호안의토사유실지역에자연형돌쌓기호안으로정비하여야한다. 원릉에서부터내려오는동구릉계류의명당수는장대석호안, 견치석호안, 자연형돌쌓기호안, 목책호안등여러가지방식의호안이경관성을해치고있어건원릉에서 43번국도까지장기사업으로자연형호안으로정비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55

156 그림 61 동구릉수계정비계획도 (3) 토양관리 현릉능침부소나무군락지 ph 3.90와건원릉우백호능선부소나무림 ph 3.84, 경릉능침뒤쪽소나무림 ph 3.8 등소나무림쪽의산성화가심각하였으며그외지역은산림지역평균보다는높지만대체로약산성토양으로조사되었다. 동구릉의토양산도 (ph) 는평균 ph 4.49로우리나라산림토양평균 ph 5.5인것과비교하면산성도가낮은편이다. 특히참나무림과소나무림의토양산성화가심하며, 대부분의지역은평균 ph 4.49 내외로산성토양의개량화작업이요구된다. 특히경릉능침지역, 혜릉능침지역, 숭릉능침지역의경우 ph 3.77, ph 3.86, ph 3.83으로산성화가심하게나타났다. 토양의산도가낮은경우에는수목이생육에필요한양분을충분히흡수할수없어수목의생육이불안정해지므로 15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57 평균 ph로높여주기위한토양개량을해줄필요가있다. 따라서토양의 ph를높여주기위해서는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산도를높여주는데이때비료를시비하는방법이매우중요하다. 소나무림주변의 ph 1.0을중성으로변화시키는데 ha당 3,000Kg 소요되므로 ( 이충화, 2007) 산성토양지역에살포하고매년지속적으로관리하여토양산도를적정수준으로유지하도록해야하며, 토양산도가어느정도이루어지면유기질비료로임지비배관리를실시하여야한다. 그림 62 동구릉토양계량도 (4)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역의송림은능원의용맥을따라기맥을잇는뜻에서용맥을따라소나무를재식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현재낙엽활엽교목으로분포하고있는용맥은단계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할수있도록장기적인계획을수립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57

158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동구릉건원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기존의소나무는보존관리하며,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2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으로관리한다. 그림 63 동구릉건원릉중점관리지역재식계획도 ( 안 ) 15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59 능침주변의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 200~4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왕릉주변의수목을제거또는이식을할경우에는반드시고문헌기록에의거하여제거하고소나무를재식할수있도록한다. 소나무림하층목으로는주변에자생하고있는때죽나무, 쪽동백등의아교목을재식하고, 진달래등의관목류와지피류를같이재식한다.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일본목련등외래수종은보존계획을거쳐제거후구역의기준에따라보식한다. 가을에는수목을이식하고봄에재식또는파종을원칙으로한다. 밀도에따라소나무와참나무등을보식한다. 적극적인관리지역은송림을원경관으로보존복원, 복구하고자연자원보존지구는생태적변이및천이등을고려하여다층구조의식생을유도한다. 2) 광릉 (1) 지형및지질보존관리 비교적급경사지에자리잡은광릉지역에서는세가지대책이필요한것으로보인다. 첫번째는능침주변특히혼유석주변으로토양침식이심하여탐방객의출입을제한할필요가있을것으로판단된다. 특히정희왕후를주변으로는침식이매우심각하여거의 1미터높이의계단상지형이만들어질형편으로이에대한대책이요구된다. 이로인해참배로를중심으로방문객들의답압에의해토양침식이상당한정도로발생하고있다. 왕릉의경우에도서측탐방로는 60cm 정도침식이일어나서능침상설도훼손될수있는정도로침식이일어나고있다는점이다. 두번째는이곳의경우에도동구릉일부에서관찰되었던우곡침식이발생하고있다는것이다. 다음그림에나타난것처럼우곡침식이심화되면서 60~70cm 규모로토층이붕괴되는슬럼프현상이나타나고있으며폭도약 3m에이를정도로광범위하게나타나고있다. 이는특히왕후릉의좌측측면부에서많이관찰되고있다. 이지점의경우하류부가소하천에연결되는상황때문에이처럼두부침식에의한상류쪽으로확산은사면안정성에커다란위해요인이될것으로판단되고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59

160 세 번째 우려되는 상황은 여러 묘역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세류침식과 관련된 것이다. 대부분의 묘역은 잔디에 의해 잘 보존되고 있으나 강우 시에 형성되는 세류침식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류 의 형성은 방치할 경우 우곡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부분이 있다. 네 번째로 동물에 의한 토양침식도 우려할 정도로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흙이 교란되면 호우 또는 일정량 이상의 강수가 내릴 경우 침식 가 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되어 근본적인 대책수립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입구~홍살문~정자각에 이르기까지 탐방로는 현재까지는 잘 관리 되고 있으나 비교적 경사가 심하고 길이가 길어 현재와 같은 잘 정비된 유로 정비시설을 잘 유지해야만 침식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64 광릉 지형지질 보존대책 16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61 (2) 수계관리 세조릉과정희왕후릉사이의암반수계정비가필요하다. 세조릉정자각주변수계의정비가필요하다. 정희왕후릉우측수계능침주변의자연형 ( 잔디수로 ) 정비가필요하다. 정희왕후릉능침좌측자연석호안정비가필요하다. 그림 65 광릉수계정비계획도 (3) 토양관리 광릉앞산림지역의경우서어나무군락지 ph 3.71, 갈참나무군락지 ph 3.77 그리고광릉세조대왕릉능침지의졸참나무림 ph 4.15, 광릉정희왕후능침소나무림 ph 3.81 등소나무림쪽의산성화가심각하였으며그외지역은산림지역평균보다는높지만대체로약산성토양으로조사되었다. 광릉의토양산도 (ph) 는평균 ph 4.23으로산림토양평균 ph 5.5인것과비교하면산성도가높은편이다. 특히참나무림과잣나무림의산성화가두드러지며광릉앞서어나무군락지와갈참나무군락지의토양은 ph 3.71, ph 3.77로산성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61

162 화가심하게나타났다. 토양의산도가낮은경우에는수목이생육에필요한양분을충분히흡수할수없어수목의생육이불안정해지므로평균 ph로높여주기위한토양개량을해줄필요가있다. 따라서토양의 ph를높여주기위해서는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산도를높여주는데이때비료를시비하는방법이매우중요하다. 석회는토양내에서이동이거의없고한곳으로몰리게되면땅이굳어지는현상이일어나기때문에시비할때도랑을깊게파고그속에시비하여토양을덮어주거나흙과같이섞어주어표층뿐만아니라하층까지섞일수있도록시비해주는것이중요하다. 소나무림주변의 ph 1.0을중성으로변화시키는데 ha당 3,000Kg 소요됨으로 ( 이충화, 2007) 산성토양지역에살포하고매년지속적으로관리하여토양산도를적정수준으로유지하도록해야하며, 토양산도가어느정도이루어지면유기질비료로임지비배관리를실시하여야한다. 원묘의경우광릉보다더산성화가심하며, 토양의 ph를높여주기위해서는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되도록평균이상으로 ph 산도를높여주어수목의생육에영향을주지않도록토양개량이필요하다. 그림 66 광릉토양계량도 16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63 (4)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역의송림은능원의용맥을따라기맥을잇는뜻에서용맥을따라소나무를재식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현재낙엽활엽교목으로분포하고있는용맥은단계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할수있도록장기적인계획을수립한다.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동구릉건원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기존의소나무는보존관리하며,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2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으로관리한다. 능침주변의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 200~4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왕릉주변의수목을제거또는이식을할경우에는반드시고문헌기록에의거하여제거하고소나무를재식할수있도록한다. 소나무림하층목으로는주변에자생하고있는때죽나무, 쪽동백등의아교목을재식하고, 진달래등의관목류와지피류를같이재식한다.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일본목련등외래수종은보존계획을거쳐제거후구역의기준에따라보식한다. 가을에는수목을이식하고봄에재식또는파종을원칙으로한다. 밀도에따라소나무와참나무등을보식한다. 적극적인관리지역은송림을원경관으로보존복원, 복구하고자연자원보존지구는생태적변이및천이등을고려하여다층구조의식생을유도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63

164 3) 선릉ㆍ정릉 (1) 지형및지질보존관리 선릉과정현왕후릉의백호능선은 1970년대강남개발시훼손되어원형을찾아볼수없는주택지와도로로개발되어원형공간이훼손된상태이다. 중정의정릉청룡능선도 1970년대강남개발시훼손되어원형을찾아볼수없는주택지와도로로개발되어원형공간이훼손된상태이다. 선릉의연지와정릉의연지가능원의전면부에있었던것으로문헌및각종지도, 항공사진등에전하고있으나지금은도시화가심하게이루어져빌딩숲을이루고있어원형을확인할수없는실정이다. 정릉의연지와재실이정릉의좌청룡능선아래에있었던것으로문헌및각종지도, 항공사진등에전하고있으나지금은도시화가심하게이루어져빌딩숲을이루고있어원형을확인할수없는실정이다. 선릉과정현황후릉사이공간의복토와수목식재를통해지형과기능을복원한다. 선릉의정현왕후능침좌강으로넘는동선은용맥을단절하므로, 능역의신성함과엄숙함유지를위해능선의아래로이동하여관람로를설치한다. 선릉의홍살문에서능침까지의좌측동선은이용및보존공간의경계가불명확하여답압에의한잔디면의훼손이일어나고있어, 공간을구분하고포장재료를공간의목적에맞추어선정하고관리할필요가있다. 관람로및인접부에는답압에의한침식과우수에의한세류침식이발생하였다. 특히정현황후릉용맥및좌청룡능선인접관람로는답압에의해수목생장저해및사면침식의우려가있어정비가시급하다. (2) 수계관리 선릉과정릉의수계는 1970년대강남개발로선릉의백호수계와정릉의정룡수계가완전히상실된상태이며선릉과정릉주변의도시화로주변의수계가발달되지못하고있으며기능도상실된상태이다. 단지우기시우수처리등의단순기능에불과한정도이며상징적가치만가지고있어지속적인연구및관리가요구된다. 일부구간의관람로에는배수를위한철재집수시설물이설치되어있으나, 답압에의해휘어져있고, 이질적인경관을보이고있어배수시설의위치를개선과정비가필요하다. 16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65 일부배수구의경우는낙엽및토사에의해막혀있어, 주기적인제거작업이필요하다. 선릉과정현왕후릉사이에는계곡이위치하여배수를위한 1m 이하의 3단석축에의해배수로가형성되어있어두능사이를시각적으로단절시키고있다. 정현왕후릉의우측에는관람로를가로질러자연스럽게형성된표면배수구가위치하고, 산측으로도자연배수가진행되며세굴도함께진행되고있어이에대한관리가필요하다. 일부배수로는목재로경계를처리하고있으나, 목재는자연재료로친환경적이나내구성이약하고, 부식이일어나기쉬워주기적인관리가필요하며, 가능하면, 경관에영향을주지않고내구성이강한소재를사용할필요가있다. 정현황후릉과정릉사이에는자연적으로형성된수계가곳곳에분포하며, 인공시설물의설치를최소화하였으나, 수계인접부에세굴등침식이일어나고있어, 수계경계부의처리가요구된다. 문헌상에존재하였던정릉및선릉의연지를문헌고증을통해상징적표식등부분복원하도록한다. (3) 토양관리 선릉과정릉은양토가과반이상으로분포하며, 토양의평균산도는 ph 5.65로우리나라산림토양평균 ph 5.5인것과비교하여비슷하게나타나며타능원에비해삼림토양의산성화는양호한것으로나타났다. 갈참나무군락을제외하고는비교적우리나라평균적산림토양상태를유지하고있으므로, 현상황을유지할수있도록지속적인모니터링과관리가필요하다. 상시의내용으로선정릉지역의인위적토양시비등의조치는요구되지않으며일반적토양관리수준의지속적관리가요구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65

166 그림 67 선릉과정릉기본계획도 (4)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침주변소나무숲조성은용맥의혈처 ( 주산, 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 ) 를중심으로하되용맥을따라외부로연계성이유지되도록한다. 용맥혈처의소나무숲 ( 대 ) 폭은최소 50m 이상유지되도록하되사신사의각용맥의능선의 7부능선까지송림을유지하도록유도한다. 타수종과의경계는획일화로인한이질감이없도록전이공간 ( 경계 ) 은계곡, 산릉등변화되는자연지형을이용하며, 수종간의경합이없도록 5~10m의완충공간을확보할수있도록한다. 또한현재식재되어있는소나무중소경목는점진적으로솎아내기등을통해소나무제수형을유지하면서성장할수있도록한다. 동원이강릉성종대왕릉과정현왕후릉사이의오리나무숲에있는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사초지로정비하여보완한다. 관람지역의소나무재식은독립성의유지보다는소군락, 대군락이서로연계성이유지되도록하되소나무는기존과유사한 ( 직간 ) 으로하되주변수목에피압되지않도록다소큰규격으로재식한다. 능침주요시설과의수목이격거리는능침의형식, 능역규모, 입지조건등에따라다를수있지만장기적으로는곡장으로부터줄기중심 15~20m 정도이격하 16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67 는것이필요하다. 그러나현재이범위내에포함된큰소나무가너무많아단순히판단하기는어려움이있어관계전문가들의협의를거친이후능별확정이필요하다. 현재선릉능침주변의곡장을훼손할우려가있는소나무는제거가필요하며능침과울타리사이의공간에소나무재식을통한능침주변차폐될수있도록하여야한다. 능침지역의특성상경계지역수목은불균형적으로발달 ( 개방된지역으로기울어짐 ) 되고, 풍해, 설해의사례도자주발생하고있어솎아베기, 가지전정등지속적이고적극적인관리가필요하다. 능원 ( 진입제향능침공간 ) 지역에서낙엽활엽수와경합하여소나무의피해가심하거나향후피해가예상되는경우서로가치를판단하여결정해야하지만향후소나무분포확대, 소나무군락조성등을충분히고려해야한다. 종간경합이없이홀로있는소나무는가지가많이발생하여지엽이적체되면서설해, 풍해의표적이될뿐아니라관람지역에서는낙지로인한인명의피해도예상되므로주기적인불필요한가지전정이필요하다. 그림 68 선릉재식정비 ( 안 )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67

168 선릉과정릉의사초지는현재잘관리되고있다. 그러나사초지주변으로잔디관리를위해때밥주기등으로인해주변석물이나제향공간의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는경우가있으므로 6년주기로잔디를교체하여석물및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지않도록관리하여야한다. 그림 69 정릉재식정비 ( 안 ) 4) 태릉ㆍ강릉 (1) 지형및지질보존관리 사격장일원의가능한부분의원지형복원및역사경관림으로의복구가필요하다. 삼육대학교좌측의능선은강릉의청룡맥이며, 동구릉으로이어지는주용맥이므로생태통로등을이용한용맥의연결이필요하다 ( 문화재청, 2010). 능역의일부가동물, 우수등에의한사면및잔디면의훼손이나타났으며, 보토및잔디식재등의관리가이루어졌다. 하지만부분적인침식면이드러나있고, 잔디면의피해도지속될것으로여겨지므로피해발생시즉각적인복구를 16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69 통해피해확산을방지하도록한다. 능침역주변수복방및비각인접공간은우수에의한침식이두드러지게나타나고있는데, 장기적으로방치할경우, 경관적인측면뿐아니라지표면관리에부정적영향을미치게된다. 따라서지표면을복구하고, 지하배수공설치를통해원활한배수를유도하며, 지표면은잔디또는식물에의한피복을통해표면침식을방지하도록한다. 또한관람동선을구분하여이용공간과보존공간을구분하여관리할필요가있다. (2) 수계관리 태릉주변의계류와연지를정비한다. 태릉의좌측수계는부분적으로석축과통나무에의해수계의경계를구분하고있다. 목재의경우친환경적재료이지만, 내구성이약하고, 부식및훼손가능성이크며, 두가지재료의혼용으로시각적인이질감을보이고있다. 따라서내구성이크고자연적인수계를형성하도록하되, 다듬어진석재에의해직강화한석축쌓기보다는자연적인돌쌓기를통해자연적이고전통적인수계형태를유지하고관리할필요가있다. 관람로또는사초지에위치하는석재또는철재의집수시설물은주기적인관리를통해배수가원활하도록낙엽및토사의제거가필요하며, 관람객의이용이많은구간에는가능하면위치를이동하여시각적이질감을줄일필요가있다. 태릉의일부구간의목재에의한경계면은내구성과부식가능성을고려하여, 내구성이강하고경관적이질감을주지않는범위내에서개선할필요가있다. 능의입구에서홍살문까지의동선의측면은수계의경계및관리가모호하며, 부분적으로는철제배수시설물과자연스럽지않은배수체계가노출되고있어전체적인정비가요구된다. 강릉의경우, 능침의좌측수계는지형에의해자연수계를형성하고있는데, 수목가지및낙엽등이쌓여있어주기적인배수로관리가필요하며, 자연석쌓기등에의해배수로를정비할필요가있다. (3) 토양관리 태릉과강릉의토성은양토와사양토, 미사질양토로조사되었고, 평균토양산도는 ph 4.65로산성화가심하게진행된것으로나타났다. 사초지의경우도토양산도가 ph 5.0에도미치지못하고있어, 능역주변산림과더불어토양개량이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69

170 요구되었다. 토양의 ph를높여주기위해서는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되도록평균이상으로 ph 산도를높여주어수목의생육에영향을주지않도록토양개량이필요하다. 소나무군락의경우, 토양산도는 ph 4.44~4.51인데, 소나무림주변의 ph 1.0을중성으로변화시키는데 ha당석회질비료 3,000Kg이소요되므로산성토양지역에살포하고매년지속적으로관리하여토양산도를적정수준으로유지하도록해야하며, 토양산도가어느정도이루어지면유기질비료로임지비배관리를실시하여야한다. 산림토양산도개선 강릉 수계의주기적정비 산림토양산도개선 계류정비 태릉 자연형수계정비 침식공간의보토이용및보존공간의구분관리 관람로측구정비 금천교및어정복원 그림 70 태릉과강릉의기본계획도 17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71 (4) 식생관리 ① 적극적 보호지역 보전방안 능침주변 소나무숲(대) 조성은 용맥의 혈처(주산, 내청룡맥과 내백호맥 지역)를 중심으로 하되 용맥을 따라 외부로 연계성이 유지되도록 한다. 용맥 혈처의 소나무숲(대) 폭은 최소 50m 이상 유지되도록 하되 사신사의 각 용맥의 능선의 7부능선까지 송림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타 수종과의 경계는 획일화로 인한 이질감이 없도록 전이공간(경계)은 계곡, 산릉 등 변화되는 자연 지형을 이용하며, 수종 간 경합이 없도록 5~10m의 완충공간을 둔다. 소나무 하층은 아교목, 관목류를 부분 재식하되 완충공관은 불에 강한 관목류를 재식하여 능역의 화소(火巢)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소나무숲(대) 내에 있는 잣나무와 참나무류, 팥배나무 등 낙엽활엽수(교목)는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소나무를 재식하거나 자연치수 발생유도 등으로 보완한다. 관람지역의 소나무 재식은 독립성의 유지보다는 소군락, 대군락이 서로 연계성 이 유지되도록 하되 소나무는 기존과 유사한 (직간)으로 하되 주변수목에 피압 되지 않도록 다소 큰 규격으로 재식한다. 능침 주요시설과의 수목 이격거리는 능형식, 능역규모, 입지조건 등에 따라 다 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곡장으로부터 줄기중심 15~20m는 필요하다. 그러 나 현재 이 범위 내에 포함된 큰 소나무가 너무 많아 단순히 판단하기는 어려 우므로 별도로 많은 관계전문과들의 협의를 거친 이후 능별 확정이 필요하다. 능침지역의 특성상 경계지역 수목은 불균형적으로 발달(개방된 지역으로 기울 어짐)되고, 풍해, 설해의 사례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솎아베기, 가지전정 등 지 속적이고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능원(진입제향능침공간)지역에서 낙엽활엽수와 경합하여 소나무의 피해가 심 하거나 향후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서로 가치를 판단하여 결정해야 하지만 향 후 소나무 분포확대, 소나무군락 조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종간 경합이 없이 홀로 있는 소나무는 가지가 많이 발생하여 지엽이 적체되면 서 설해, 풍해의 표적이 될 뿐 아니라 관람지역에서는 낙지로 인한 인명의 피해 도 예상되므로 주기적인 불필요한 가지전정이 필요하다. 태릉 사초지를 잠식하고 있는 제향공간에 분포하는 소나무는 뒤쪽으로 이식하 여 제향공간의 사초지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태릉과 강릉의 사초지는 현재 잘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사초지 주변으로 잔디 관리를 위해 때밥주기 등으로 인해 주변 석물이나 제향공간의 능제시설들이 잔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71

172 디에덮이는경우가있으므로 6년주기로잔디를교체하여석물및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지않도록관리하여야한다. 그림 71 태릉재식정비 ( 안 ) 그림 72 강릉재식정비 ( 안 ) 17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73 5) 정릉 (1) 지형 및 지질 보존관리 능침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잔디면에 의한 관리가 양호하여 우수에 의 한 침식은 그다지 나타나지 않았다. 사초지의 잔디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으 나, 능침 가까이에 위치한 소나무에 의한 타감작용에 의해 부분적인 잔디훼손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소나무는 능침을 향해 기울어져 있고, 지지대에 의해 지 탱되고 있어 능침보호를 위한 수목제거 등 관리가 필요하다. 사초지 이외의 수복방 및 비각 등 시설의 주변은 우수에 의한 침식이 광범위하 게 발생하였으며, 복토를 통해 지형을 복구하고, 하부 유공관 매설을 통한 우수 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용공간과 보존공간을 구분하여 포장재료를 달리 함으로써 적정한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보존공간에는 잔디나 지 피식물의 식재를 통해 지표면 침식방지와 경관 관리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2) 수계 관리 정릉의 수계는 능원의 북서측에서 발원한 물길이 능원의 북서측 능선의 뒤편으 로 흘러 능원의 전면부를 흐르고 능원의 정문인 남동측에서 합류하여 정릉천으 로 흐른다. 능침의 좌ㆍ우측의 수계에는 인위적인 경계 시설물이 없이, 지형에 의한 자연배 수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나뭇가지, 낙엽 등이 쌓여 배수로의 경계가 불명확 하여 관리가 필요하며, 집중강우 시 주변지형의 침식의 우려가 있으므로, 배수 로 정비가 요구된다. 또한 일부는 마사토가 노출되어 강우 시 지표면 토사의 침식 가능성이 높아 부 분적인 수계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정릉의 능역 등산로 등의 지역은 마사토가 답압 등으로 쇠락해 강우 시 훼손되는 현상이 심각한 현상이다. 정릉 남측에 인접한 수계의 경우, 연중 일정한 수량이 유지되고, 능의 기능 및 경관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돌쌓기와 수계 내측의 퇴적된 토사 관리를 통해 그 기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3) 토양관리 정릉 토양의 평균 산도는 ph 4.68로 비교적 낮은 산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73

174 났으며, 토양의산성화가진행되었다. 토양의산도가낮은경우, 수목의생육이불안정해지므로평균 ph로높여주기위한토양개량을해줄필요가있는데, 토양의 ph를높여주기위하여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산도를높여줄필요가있다. 이때비료를시비하는방법이매우중요하다. 석회는토양내에서이동이거의없고한곳으로몰리게되면땅이굳어지는현상이일어나기때문에시비할때는도랑을깊게파고그속에시비하여토양을덮어주거나흙과같이섞어주어표층뿐만아니라하층까지섞일수있도록시비해주도록한다. 산림토양의산도개선 침식복구및나지녹화이용과보존공간의구분 주기적정비자연형계류로개선 자연배수로정비및관리 잔디면복구 그림 73 정릉기본계획도 (4)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침주변소나무숲조성은용맥의혈처 ( 주산, 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 ) 를중심으로하되용맥을따라외부로연계성이유지되도록한다. 용맥혈처의소나무숲 ( 대 ) 폭은최소 50m 이상유지되도록하되사신사의각 17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75 용맥의능선 7부능선까지송림을유지하도록유도한다. 타수종과의경계는획일화로인한이질감이없도록전이공간 ( 경계 ) 은계곡, 산릉등변화되는자연지형을이용하며, 수종간경합이없도록 5~10m의완충공간을둔다. 또한현재식재되어있는소나무중소경목는점진적으로솎아내기등을통해소나무제수형을유지하면서성장할수있도록한다. 능침주변의소나무숲내에있는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등낙엽활수 ( 교목 ) 는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를재식하여보완한다. 능침주요시설과의수목이격거리는뿌리의분포, 수목에의한지피식물 ( 잔디 ) 의보존 ( 타감작용 ), 파충류등능원보존유해동물의퇴치등을고려하여이격거리를두어송림을보존하도록한다. 능침의곡장의능침의형식, 능역규모, 입지조건등에따라다를수있지만장기적으로는곡장으로부터줄기중심 15~20m 확보하여관리하는것이필요하다. 그러나현재이범위내에포함된큰소나무가너무많아단순히판단하기는어려움이있어많은관계전문가들의협의를거친이후능별확정이필요하다. 현재정릉능침주변의곡장주변으로소나무가붙어있으며, 적극적인유지관리가필요하다. 능침지역의특성상경계지역수목은불균형적으로발달 ( 개방된지역으로기울어짐 ) 되고, 풍해, 설해의사례도자주발생하고있어솎아베기, 가지전정등지속적이고적극적인관리가필요하다. 능원 ( 진입제향능침공간 ) 지역에서낙엽활엽수와경합하여소나무의피해가심하거나향후피해가예상되는경우서로가치를판단하여결정해야하지만향후소나무분포확대, 소나무군락조성등을충분히고려해야한다. 종간경합이없이홀로있는소나무는가지가많이발생하여지엽이적체되면서설해, 풍해의표적이될뿐아니라관람지역에서는낙지로인한인명의피해도예상되므로주기적인불필요한가지전정이필요하다. 정릉의사초지는현재잘관리되고있다. 그러나사초지주변으로잔디관리를위해때밥주기등으로인해주변석물이나제향공간의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는경우가있으므로 6년주기로잔디를교체하여석물및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지않도록관리하여야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75

176 그림 74 정릉재식정비 ( 안 ) 6) 의릉 (1) 지형및지질보존관리 의릉은 1990년까지능침의좌우에국가기관이점유하여사용하였던공간으로지형및지질의변화가심했던지역이다. 최근능원의좌우에건물을철거하고지형및역사경관림을복원하고있는실정이다. 아직도일부지역은한국종합예술학교등이사용하고있어능역으로서지형의용맥보존및지형지질의원형이많이왜곡되어있는현실이다. 기타지역능역은대부분이적절하게관리가되고있으며, 침식흔적은나타나지않았고, 지속적인관리를통해현상황을유지시킬필요가있다. 능원의경우인접한소나무에의한타감작용의영향으로일부잔디면이훼손되었으며, 보토및잔디의보식이요구된다. 능원주변의관람로및관리로의이용공간의경우, 굴곡이형성되어강우시우 17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77 수가 흐르는 곳의 쇄골현상 상태를 나타내었다. 능의 주변에는 식물의 타감작용 에 의해 잔디가 부분적으로 훼손되었다. 보토 및 잔디의 보식이 요구된다. 능침의 뒤편에는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답압에 의한 지표면 훼손과 능원의 기능을 고려하여 그 위치를 조정하거나, 이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2) 수계 관리 의릉의 수계는 의릉에 국가기관의 장기간 점거 및 주변의 도시화로 수계 보존 에 많은 왜곡이 있어 왔다. 특히 정자각 전면부에 부정형의 인공연못을 만들었 다가 다시 복원하기도 했으며 좌청룡수의 수계의 왜곡 등이 있었던 곳이다. 일 부 복원되어 있으나 그 원형을 찾기에는 시간이 요구되는 수계이다. 재실 옆에 있던 방지형의 연지도 매몰되어 없으며 좌청룡수 및 우백호수 등의 수계 정비 및 수자원 확보가 요구되는 지역이다. 홍살문 앞 금천교의 좌측과 우측 수계에는 다듬어진 석축, 자연석 등 다양한 구 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경관을 고려하여 통일된 재료에 의한 수계형성이 필요하 며, 수계 내 바위 및 토사 제거를 통한 관리가 필요하다. 능역의 좌ㆍ우측에는 통나무에 의한 배수로를 조성하였는데, 토사가 축적되어 있거나 배수구가 막혀 있어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적 이며 내구성이 강한 재료를 사용하여 수계를 정비하여 물 빠짐 및 경관이 양호 한 수계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능역의 동측에는 배수시설과 함께 배수를 위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위 들이 흩어져 있어 연구를 통해 복원할 필요가 있다. 정자각의 우측에는 저수를 위한 석축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측으로 직선화된 배 수로를 조성하였는데, 우수의 양이 많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므로 선형 및 형태 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수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3) 토양관리 의릉 토양의 평균 산도는 ph 4.46로 일반산림 토양에 비해 산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석회질 비료를 시비하여 산성화된 토양을 개량하고, 수목의 생 육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산도가 높은 지역은 능침을 주심으로 천장산 북 서측 지역이다(그림 75). 소나무군락의 경우는 ph 4.19~4.34로 토양산도가 매우 높으며, 토양의 ph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77

178 중간으로하기위해토양개량제인석회질비료인소석회, 석회고토등을사용하여산도를높여줄필요가있다. 석회를시비할때는도랑을깊게파고그속에시비하여토양을덮어주거나흙과같이섞어주어표층뿐만아니라하층까지섞일수있도록시비해주도록한다. 토양산도가어느정도이루어지면유기질비료로임지비배관리를실시하도록한다. 산림토양산도개량 계류경계부정비 수계시설의복원 배수시설설치 주기적배수구관리 능침상부산책길폐쇄 그림 75 의릉기본계획도 (4)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침주변소나무숲조성은용맥의혈처 ( 주산, 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 ) 를중심으로하되용맥을따라외부로연계성이유지되도록한다. 용맥주변과혈처의소나무숲폭은최소 50m 이상유지되도록하되타수종과의경계는획일화로인한이질감이없도록전이공간 ( 경계 ) 은계곡, 산릉등변화되는자연지형을이용하며, 수종간의경합이없도록 5~10m의완충공간을확보할수있도록한다. 또한현재식재되어있는소나무중소경목는점진적으로솎아내기등을통해소나무제을유지하면서성장할수있도록한다. 17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79 기존능침주변의소나무숲내에있는신갈나무팥배나무군락등낙엽활수 ( 교목 ) 는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를재식하여보완한다. 의릉의사초지는현재잘관리되고있다. 그러나사초지주변으로잔디관리를위해때밥주기등으로인해주변석물이나제향공간의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는경우가있으므로 6년주기로잔디를교체하여석물및능제시설들이잔디에덮이지않도록관리하여야한다. 그림 76 의릉재식정비 ( 안 ) 관람지역의소나무재식은독립성의유지보다는소군락, 대군락이서로연계성이유지되도록하되소나무는기존과유사한수형 ( 직간 ) 으로하되주변수목에피압되지않도록다소큰규격으로재식한다. 능침주요시설과의수목이격거리는능침의형식, 능역규모, 입지조건등에따라다를수있지만장기적으로는곡장으로부터줄기중심 15~20m는필요하다. 그러나현재이범위내에포함된큰소나무가너무많아단순히판단하기는어려움이있어많은관계전문가들의협의를거친이후능별확정이필요하다. 현재의릉능침주변의곡장을훼손할우려가있는소나무는없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79

180 능침지역의 특성상 경계지역 수목은 불균형적으로 발달(개방된 지역으로 기울 어짐)되고, 풍해, 설해의 사례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솎아베기, 가지전정 등 지 속적이고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활용지역에서 낙엽활엽수와 경합하여 소나무의 피해가 심하거나 향후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서로 가치를 판단하여 결정해야 하지만 향후 소나무 분포확대, 소나무군락 조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종간 경합이 없이 홀로 있는 소나무는 가지가 많이 발생하여 지엽이 적체되면 서 설해, 풍해의 표적이 될 뿐 아니라 관람지역에서는 낙지로 인한 인명의 피해 도 예상되므로 주기적인 불필요한 가지전정이 필요하다. 7) 서오릉 (1) 토양 서오릉지역 평균 ph 5.41로 우리나라 평균 산림토양 ph 5.5에 비해 다소 낮았 으나, 수목에 생육에 지장이 없는 토양으로 판단된다. 서오릉지역은 평균 ph 5.5~5.30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보면 산성도 개 선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시비가 이루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오릉지역의 일부지역에서 알칼리성 토양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살 포된 비료가 분해되어 않아 토양과 반응하지 않았거나, 빗물에 의해 경사가 낮 은 지역으로 이동하여 쌓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추후 시비 시에는 토양의 분석을 통하여 적합한 비료의 종류, 시비량, 시비시기를 결정하여 시비 를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2) 우수에 의한 토양침식 피해 관리 서오릉 모든 능역 사초지역에서 발생한 세류침식이 능 좌ㆍ우측 수림대와 잔디 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경사가 낮은 하부로 내려가면서 우곡 침식으로 진행 되고 있으며, 또한 좌ㆍ우측 수림지역 내부에서 우곡침식이 발생하여 하부로 내 려가면서 계곡침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류침식과 우곡침식을 방치할 경우 경관에도 좋지 않으며, 능사면의 안 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침식지형의 정비가 시급히 시행해야 된다. 침식지형의 정비방법으로는 복토를 통한 지형을 복구하고 잔디 및 지피식물을 18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81 식재하여침식을방지하는방법, 기존지형을정비하여빗물을다른지역으로유도하는방법, 침식발생지형토양하부에유공관을매설하고, 복토한후잔디를식재하여, 빗물을유도한방법등의다양한방법이있을수있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을고려하여적합한방법을선택하여시행하여야할것이다. (3) 탐방로주변정비 서오릉지역의대부분의탐방로가흙 ( 마사 ) 포장으로이루어져있고경계를목재로사용하고있다. 흙포장과경계목재는친환경적이기는하나내구성이약하고, 목재는부식이빨라관리가매우어렵다. 공개지역의경우경관에영향을미치지않는범위에서내구성이강한소재를사용하거나, 조경기법을이용하여탐방로를정비할필요가있다. (4) 식물의타감작용에의한피해개선 서오릉조사지역대부분의능에서주변소나무식재지역과능침이매우가까이접하고있어, 식물의타감작용에따른지피식물및잔디의생육부진으로면상침식이발생하고있다. 따라서강우강도가강한국지성집중호우발생시침식의가속화로능사면의안정에영향을줄수있다. 타감작용에따른토양침식을개선하는방법으로는능사면의잔디생육지와가까이접하고있는수목을이식또는제거하거나, 상호타감작용을하지않는지피식물및관목을선발하여수목하부에식재하는방법이있다. (5) 해충 ( 풍뎅이, 굼벵이 ) 과설치류방제 서오릉조사지역의능침주변잔디지역에서굼벵이와두더지, 들쥐에의한피해가발생하고있으며이를방치할경우표토가유실되어사면의안정과미관에영향을미친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에맞는적절한방법을선택하여적극적으로방제하여야한다. 풍뎅이, 굼벵이방제방법으로는성충 ( 풍뎅이 ) 발생시기 (5월중순에서 7월까지 ) 에페로몬트랩설치, 성충의먹이식물과유충부화기 ( 성충방생최성기후 2~4 주경 ) 에집중적으로약제를살포하는방법이있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81

182 저항성발현을예방하기위하여잔디굼벵이방제용약제중계통이다른약제를번갈아사용한다. 땅속에있는굼벵이의몸에약액이잘닿도록강우직후에살포하거나, 충분히관수후약제를살포한다. 페로몬트랩설치시해충의종류및정확한동정파악이필수이다. 두더지, 들쥐퇴치방법에는덫을이용하는방법, 먹이를제거하는방법, 진동에의한방법, 냄새에의한방법, 기피식물을이용하는방법등을제시할수있으나특별하게살충제를이용하여먹이제거방법이외는특별히검정된방법은없다. 따라서두더지와들쥐의먹이인굼벵이를철저히방제하여야한다. (6)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역의송림은능원의용맥을따라기맥을잇는뜻에서용맥을따라소나무를재식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현재낙엽활엽교목으로분포하고있는용맥은단계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할수있도록장기적인계획을수립한다.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아래그림의계획안과같이서오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기존의소나무는보존관리하며,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하여주변소나무림이연결될수있도록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1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으로관리한다. 또한소나무는송진을분비하여잔디의생육에나쁜영향을주며, 소나무의송진에의한산화에매우취약함으로잔디와의일정거리를두고소나무를관리하여야한다. 능침주변의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 100~3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182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83 그림 77 서오릉 창릉 홍릉 재식계획(안) 그림 78 서오릉 경릉 순창원 재식계획(안)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83

184 그림 79 서오릉 명릉 수경원 익릉 재식계획(안) 왕릉 주변의 수목을 제거 또는 이식할 경우에는 반드시 고문헌 기록에 의거하 여 제거하고 소나무를 재식할 수 있도록 한다. 소나무림 하층목으로는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때죽나무, 쪽동백 등의 아교목을 재식하고, 진달래 등의 관목류와 지피류를 같이 재식한다. 적극적인 관리지역은 송림을 원경관으로 보존 복원, 복구하고 자연자원보존지구 는 생태적 변이 및 천이 등을 고려하여 다층구조의 식생을 유도한다. 8) 서삼릉 (1) 토양 서삼릉지역의 토양 산성도는 평균 ph 4.67로 우리나라 평균 산림토양 ph 5.5 에 비해 다소 낮았으나, 수목의 생육에 지장이 없는 토양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서삼릉지역에는 석회질 비료를 시비하여 산도를 개선하는 것이 적합하 다고 판단된다. (2) 우수에 의한 토양침식 피해 관리 서삼릉 지역의 능 사초지에서 발생한 세류침식이 능 좌ㆍ우측 수림대와 잔디면 18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85 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경사가 낮은 하부로 내려가면서 우곡 침식으로 진행되 고 있으며, 또한 좌ㆍ우측 수림지역 내부에서 우곡침식이 발생하여 하부로 내려 가면서 계곡침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류침식과 우곡침식을 방치할 경우 경관에도 좋지 않으며, 능사면의 안 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침식지형의 정비가 시급히 시행해야 된다. 침식지형의 정비 방법으로는 복토를 통한 지형을 복구하고 잔디 및 지피식물을 식재하여 침식을 방지하는 방법, 기존 지형을 정비하여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유도하는 방법, 침식발생 지형 토양 하부에 유공관을 매설하고, 복토한 후 잔디 를 식재하여 빗물을 유도한 방법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환경을 고려하여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3) 탐방로 주변 정비 서삼릉지역의 대부분의 탐방로가 흙(마사)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계를 목재 로 사용하고 있다. 흙포장과 경계목재는 친환경적이기는 하나 내구성이 약하고, 목재는 부식이 빨 라 관리가 매우 어렵다. 내구성이 강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조경기법을 이용하여 탐방로를 정비할 필요 가 있다. (4) 식물의 타감작용에 의한 피해 개선 조사지역 대부분의 능에서 주변 소나무 식재지역과 능침이 매우 가까이 접하고 있어, 식물의 타감작용에 따른 지피식물 및 잔디의 생육부진으로 면상침식이 발 생하고 있다. 따라서 강우강도가 강한 국지성 집중호우 발생 시 침식의 가속화 로 능사면의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의령원/효창원 능침의 좌, 우측에 식재된 소나무의 타감작용과 탐방객이 능침을 관람할 수 있게 설치한 목 계단에 의한 토양 답압으로 잔디의 생육이 부진하여 표토의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타감작용에 따른 토양 침식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는 능 사면의 잔디 생육지와 가까이 접하고 있는 수목을 이식 또는 제거하거나, 상호 타감작용을 하지 않는 지피식물 및 관목을 선발하여 수목 하부에 식재하는 방법이 있다. 의령원/소령원의 경우 답압에 의한 토양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기관 탐방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85

186 객의출입을제한하고훼손된토양을정비하여지피식물, 잔디, 관목등을식재함으로써토양침식을방지하고, 부식의손상된목재계단을내구성이강한소재로교체하여탐방객이안전하게능침에접근할수있게해야한다. (5) 해충 ( 풍뎅이, 굼벵이 ) 과설치류방제 서삼릉조사지역의능침주변잔디지역에서굼벵이와두더지, 들쥐에의한피해가발생하고있으며이를방치할경우표토가유실되어사면의안정과미관에영향을미친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에맞는적절한방법을선택하여적극적으로방제하여야한다. 풍뎅이, 굼벵이방제방법으로는성충 ( 풍뎅이 ) 발생시기 (5월중순에서 7월까지 ) 에페로몬트랩설치, 성충의먹이식물과유충부화기 ( 성충방생최성기후 2~4 주경 ) 에집중적으로약제를살포하는방법이있다. 저항성발현을예방하기위하여잔디굼벵이방제용약제중계통이다른약제를번갈아사용한다. 땅속에있는굼벵이의몸에약액이잘닿도록강우직후에살포하거나충분히관수후약제를살포한다. 페로몬트랩설치시해충의종류및정확한동정파악이필수이다. 두더지, 들쥐퇴치방법에는덫을이용하는방법, 먹이를제거하는방법, 진동에의한방법, 냄새에의한방법, 기피식물을이용하는방법등을제시할수있으나특별하게살충제를이용한먹이제거방법이외는특별히검정된방법은없다. 따라서두더지와들쥐의먹이인굼벵이를철저히방제하여야한다. (6)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역의송림은능원의용맥을따라기맥을잇는뜻에서용맥을따라소나무를재식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현재낙엽활엽교목으로분포하고있는용맥은단계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할수있도록장기적인계획을수립한다.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서삼릉의경우현재원래의능역공간을이루고있지못하기때문에장기적인 18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87 계획을가지고원지형을복원하고역사경관림을회복하는사업을하여야한다. 아래그림의계획안과같이현시점에서서삼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기존의소나무는보존관리하며,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하여주변소나무림이연결될수있도록한다. 현재예릉과희릉의경우소나무가우점하고있으므로장기적으로활엽수림을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림으로능역을회복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1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으로관리한다. 또한소나무는송진을분비하여잔디의생육에나쁜영향을주며, 소나무의송진에의한산화에매우취약함으로잔디와의일정거리를두고소나무를관리하여야한다. 능침주변의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 100~4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그림 80 서삼릉재식계획 ( 안 )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87

188 왕릉 주변의 수목을 제거 또는 이식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고문헌 기록 및 세 계유산관리 규정에 의거하여 제거하고 소나무를 재식할 수 있도록 한다. 소나무림 하층목으로는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때죽나무, 쪽동백 등의 아교목을 재식하고, 진달래 등의 관목류와 지피류를 같이 재식한다. 적극적인 관리지역은 송림을 원경관으로 보존 복원, 복구하고 자연자원보존지구 는 생태적 변이 및 천이 등을 고려하여 다층구조의 식생을 유도한다. 9) 온릉 (1) 토양 산성도 관리 온릉이 평균 ph 5.5로 조사되었으며 우리나라 평균 산림토양 ph 5.5와 같았다. 현재 수목에 생육에 지장이 없는 토양으로 판단된다. 온릉지역은 토양 상황으로 볼 때 산성도 개선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시비가 이 루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온릉의 일부지역에서 알칼리성 토양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살포된 비 료가 분해되어 않아 토양과 반응하지 않았거나, 빗물에 의해 경사가 낮은 지역 으로 이동하여 쌓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추후 시비 시에는 토양의 분석을 통하여 적합한 비료의 종류, 시비량, 시비시기를 결정하여 시비를 시행 하여야 할 것이다. (2) 우수에 의한 토양침식 피해 관리 온릉지역의 능 사초지역에서 발생한 세류침식이 능 좌ㆍ우측 수림대와 잔디면 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경사가 낮은 하부로 내려가면서 우곡 침식으로 진행되 고 있으며, 또한 좌ㆍ우측 수림지역 내부에서 우곡침식이 발생하여 하부로 내려 가면서 계곡침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류침식과 우곡침식을 방치할 경우 경관에도 좋지 않으며 능사면의 안 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침식지형의 정비가 시급히 시행해야 된다. 침식지형의 정비 방법으로는 복토를 통한 지형을 복구하고 잔디 및 지피식물을 식재하여 침식을 방지하는 방법, 기존 지형을 정비하여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유도하는 방법, 침식발생 지형 토양 하부에 유공관을 매설하고, 복토한 후 잔디 를 식재하여, 빗물을 유도한 방법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각 18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89 지역의환경을고려하여적합한방법을선택하여시행하여야할것이다. (3) 식물의타감작용에의한피해개선 조사지역대부분의능에서주변소나무식재지역과능침이매우가까이접하고있어, 식물의타감작용에따른지피식물및잔디의생육부진으로면상침식이발생하고있다. 따라서강우강도가강한국지성집중호우발생시침식의가속화로능사면의안정에영향을줄수있다. 타감작용에따른토양침식을개선하는방법으로는능사면의잔디생육지와가까이접하고있는수목을이식또는제거하거나, 상호타감작용을하지않는지피식물및관목을선발하여수목하부에식재하는방법이있다. (4) 해충 ( 풍뎅이, 굼벵이 ) 과설치류방제 온릉조사지역의능침주변잔디지역에서굼벵이와두더지, 들쥐에의한피해가발생하고있으며이를방치할경우표토가유실되어사면의안정과미관에영향을미친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에맞는적절한방법을선택하여적극적으로방제하여야한다. 풍뎅이, 굼벵이방제방법으로는성충 ( 풍뎅이 ) 발생시기 (5월중순에서 7월까지 ) 에페로몬트랩설치, 성충의먹이식물과유충부화기 ( 성충방생최성기후 2~4 주경 ) 에집중적으로약제를살포하는방법이있다. 저항성발현을예방하기위하여잔디굼벵이방제용약제중계통이다른약제를번갈아사용한다. 땅속에있는굼벵이의몸에약액이잘닿도록강우직후에살포하거나충분히관수후약제를살포한다. 페로몬트랩설치시해충의종류및정확한동정파악이필수이다. 두더지, 들쥐퇴치방법에는덫을이용하는방법, 먹이를제거하는방법, 진동에의한방법, 냄새에의한방법, 기피식물을이용하는방법등을제시할수있으나특별하게살충제를이용한먹이제거방법이외는특별히검정된방법은없다. 따라서두더지와들쥐의먹이인굼벵이를철저히방제하여야한다.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89

190 (5)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아래그림의계획안과같이현시점에서온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거의굴참나무와서어나무군락으로관리되고있으나,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하여주변소나무림과연결될수있도록한다. 현재온릉의능침주변의경우굴참나무와서어나무가대부분우점하고있으므로장기적으로활엽수림을점진적으로제거하고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재식을통해능역을회복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1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잔디면적을높여조선왕릉의탁월하고보편적가치를보존관리한다. 또한소나무는송진을분비하여잔디의생육에나쁜영향을주며, 소나무의송진에의한산화에매우취약함으로잔디와의일정거리를두고소나무를관리하여야한다. 능침주변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정원수의생육특성을유지하는이코모스헌장기준에부합하게 100~4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왕릉주변의수목을제거또는이식을할경우에는반드시고문헌기록및세계유산관리기준에의거하여제거하고소나무등왕릉수목을재식한다. 소나무림하층목으로는주변에자생하고있는때죽나무, 쪽동백등의아교목을재식하고, 진달래등의관목류와지피류를같이재식한다. 적극적인관리지역은송림을원경관으로보존복원, 복구하고자연자원보존지구는생태적변이및천이등을고려하여다층구조의식생을유도한다. 북서측능선의아까시와용맥, 리기다소나무, 중점관리구역의굴참나무등은간벌을통해송림역사경관림으로유도한다. 190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91 그림 81 온릉재식계획 ( 안 )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91

192 10) 파주 삼릉 (1) 토양 산성도 관리 파주 삼릉지역의 토양 평균산성도는 ph 5.30으로 우리나라 평균 산림토양 ph 5.5에 비해 다소 낮았으나, 수목 생육에 지장이 없는 토양으로 판단된다. 파주 삼릉지역은 평균 ph 5.5~5.30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보면 산성도 개선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시비가 이루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 우수에 의한 토양침식 피해 관리 파주 삼릉의 조사지역 사초지에서 발생한 세류침식이 능 좌ㆍ우측 수림대와 잔 디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경사가 낮은 하부로 내려가면서 우곡 침식으로 진 행되고 있으며, 또한 좌ㆍ우측 수림지역 내부에서 우곡침식이 발생하여 하부로 내려가면서 계곡침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류침식과 우곡침식을 방치할 경우 경관에도 좋지 않으며, 능사면의 안 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침식지형의 정비가 시급히 시행해야 된다. 침식지형의 정비방법으로는 복토를 통한 지형을 복구하고 잔디 및 지피식물을 식재하여 침식을 방지하는 방법, 기존 지형을 정비하여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유도하는 방법, 침식발생 지형 토양 하부에 유공관을 매설하고, 복토한 후 잔디 를 식재하여 빗물을 유도한 방법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환경을 고려하여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3) 탐방로 및 주변으로 정비 파주 삼릉지역의 대부분 탐방로가 흙(마사) 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계를 목 재로 사용하고 있다. 흙 포장과 경계목재는 친환경적이기는 하나 내구성이 약하고, 목재는 부식이 빨 라 관리가 매우 어렵다. 공개지역의 경우 경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내구성이 강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조경기법을 이용하여 탐방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19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193 (4) 식물의타감작용에의한피해개선 파주삼릉의대부분의능에서주변소나무식재지역과능침이매우가까이접하고있어, 식물의타감작용에따른지피식물및잔디의생육부진으로면상침식이발생하고있다. 따라서강우강도가강한국지성집중호우발생시침식의가속화로능사면의안정에영향을줄수있다. 타감작용에따른토양침식을개선하는방법으로는능사면의잔디생육지와가까이접하고있는수목을이식또는제거하거나, 상호타감작용을하지않는지피식물및관목을선발하여수목하부에식재하는방법이있다. (5) 해충 ( 풍뎅이, 굼벵이 ) 과설치류방제 파주삼릉조사지역의능침주변잔디지역에서굼벵이와두더지, 들쥐에의한피해가발생하고있으며이를방치할경우표토가유실되어사면의안정과미관에영향을미친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에맞는적절한방법을선택하여적극적으로방제하여야한다. 풍뎅이, 굼벵이방제방법으로는성충 ( 풍뎅이 ) 발생시기 (5월중순에서 7월까지 ) 에페로몬트랩설치, 성충의먹이식물과유충부화기 ( 성충방생최성기후 2~4 주경 ) 에집중적으로약제를살포하는방법이있다. 저항성발현을예방하기위하여잔디굼벵이방제용약제중계통이다른약제를번갈아사용한다. 땅속에있는굼벵이의몸에약액이잘닿도록강우직후에살포하거나충분히관수후약제를살포한다. 페로몬트랩설치시해충의종류및정확한동정파악이필수이다. 두더지, 들쥐퇴치방법에는덫을이용하는방법, 먹이를제거하는방법, 진동에의한방법, 냄새에의한방법, 기피식물을이용하는방법등을제시할수있으나특별하게살충제를이용한먹이제거방법이외는특별히검정된방법은없다. 따라서두더지와들쥐의먹이인굼벵이를철저히방제하여야한다. (6) 식생관리 1 적극적보호지역보전방안 능역의송림은능원의용맥을따라기맥을잇는뜻에서용맥을따라소나무를 2010~2016 년종합평가ㆍ 193

194 재식하는것을원칙으로하며, 현재낙엽활엽교목으로분포하고있는용맥은단계적으로소나무림으로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할수있도록장기적인계획을수립한다. 용맥의혈처인좌우에능선인내청룡맥과내백호맥지역은단기사업으로각왕릉좌우능선에소나무림으로재식한다. 아래그림의계획안과같이현시점에서파주삼릉의내청룡과내백호능선을중심으로거의졸참나무와갈참나무나무군락으로관리되고있으나, 중점관리지역내의수종중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등의수목들은점진적으로제거하고소나무로재식하여주변소나무림과연결될수있도록한다. 현재파주삼릉의능침주변의경우대부분참나무류가우점하고있으므로장기적으로참나무활엽수림을점진적으로제거하고능침주변으로소나무림재식을통해능역을회복한다. 내청룡과내백호능선주변비어있는곳은 200~600본 /ha 정도로소나무를재식하여역사경관림을회복한다. 성목시산불및역사경관림보존을위해 100~300본 /ha으로유지한다. 곡장주변의소나무들은현재수고 H10m~H15m이나석물및잔디보존을위해곡장에서 15~20m 정도이격될수있도록점진적으로관리한다. 또한소나무는송진을분비하여잔디의생육에나쁜영향을주며, 소나무의송진에의한산화에매우취약함으로잔디와의일정거리를두고소나무를관리하여야한다. 능침주변의소나무림의경우도소나무의적정밀도를성목시 100~400본 /ha 조정하여소나무림을관리한다. 왕릉주변의수목을제거또는이식을할경우에는반드시고문헌기록에의거하여제거하고소나무를재식할수있도록한다. 소나무림하층목으로는주변에자생하고있는때죽나무, 쪽동백등의아교목을재식하고, 진달래등의관목류와지피류를같이재식한다. 적극적인관리지역은송림을원경관으로보존복원, 복구하고자연자원보존지구는생태적변이및천이등을고려하여다층구조의식생을유도한다. 194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95 그림 82 파주 삼릉 재식계획(안) 11) 파주 장릉 (1) 토양 산성도 관리 토양의 산성도가 다소 낮은 파주 장릉 평균 ph 4.5% 지역은 석회질 비료를 시 비하여 산도를 개선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2) 우수에 의한 토양침식 피해 관리 파주 장릉 조사지역 사초지에서 발생한 세류침식이 능 좌ㆍ우측 수림대와 잔디 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경사가 낮은 하부로 내려가면서 우곡 침식으로 진행 되고 있으며, 또한 좌ㆍ우측 수림지역 내부에서 우곡침식이 발생하여 하부로 내 려가면서 계곡침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류침식과 우곡침식을 방치할 경우 경관에도 좋지 않으며, 능사면의 안 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침식지형의 정비가 시급히 시행해야 된다. 침식지형의 정비방법으로는 복토를 통한 지형을 복구하고 잔디 및 지피식물을 식재하여 침식을 방지하는 방법, 기존 지형을 정비하여 빗물을 다른 지역으로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95

196 유도하는방법, 침식발생지형토양하부에유공관을매설하고, 복토한후잔디를식재하여빗물을유도한방법등의다양한방법이있을수있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을고려하여적합한방법을선택하여시행하여야할것이다. (3) 식물의타감작용에의한피해개선 조사지역대부분의능에서주변소나무식재지역과능침이매우가까이접하고있어, 식물의타감작용에따른지피식물및잔디의생육부진으로면상침식이발생하고있다. 따라서강우강도가강한국지성집중호우발생시침식의가속화로능사면의안정에영향을줄수있다. 타감작용에따른토양침식을개선하는방법으로는능사면의잔디생육지와가까이접하고있는수목을이식또는제거하거나, 상호타감작용을하지않는지피식물및관목을선발하여수목하부에식재하는방법이있다. (4) 해충 ( 풍뎅이, 굼벵이 ) 과설치류방제 파주장릉조사지역의능침주변잔디지역에서굼벵이와두더지, 들쥐에의한피해가발생하고있으며이를방치할경우표토가유실되어사면의안정과미관에영향을미친다. 따라서각지역의환경에맞는적절한방법을선택하여적극적으로방제하여야한다. 풍뎅이, 굼벵이방제방법으로는성충 ( 풍뎅이 ) 발생시기 (5월중순에서 7월까지 ) 에페로몬트랩설치, 성충의먹이식물과유충부화기 ( 성충방생최성기후 2~4 주경 ) 에집중적으로약제를살포하는방법이있다. 저항성발현을예방하기위하여잔디굼벵이방제용약제중계통이다른약제를번갈아사용한다. 땅속에있는굼벵이의몸에약액이잘닿도록강우직후에살포하거나충분히관수후약제를살포한다. 페로몬트랩설치시해충의종류및정확한동정파악이필수이다. 두더지, 들쥐퇴치방법에는덫을이용하는방법, 먹이를제거하는방법, 진동에의한방법, 냄새에의한방법, 기피식물을이용하는방법등을제시할수있으나특별하게살충제를이용한먹이제거방법이외는특별히검정된방법은없다. 따라서두더지와들쥐의먹이인굼벵이를철저히방제하여야한다. 196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97 (5) 식생관리 ① 적극적 보호지역 보전방안 능역의 송림은 능원의 용맥을 따라 기맥을 잇는 뜻에서 용맥을 따라 소나무를 재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현재 낙엽활엽교목으로 분포하고 있는 용맥은 단 계적으로 소나무림으로 재식하여 역사경관림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 획을 수립한다. 용맥의 혈처인 좌우에 능선인 내청룡맥과 내백호맥 지역은 단기사업으로 각 왕 릉 좌우 능선에 소나무림으로 재식한다. 아래 그림의 계획안과 같이 현 시점에서 파주 장릉의 내청룡과 내백호 능선을 중심으로 거의 갈참나무상수리나무 군락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중점관리지역 내의 수종 중 잣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 등의 수목들은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소나무로 재식하여 주변 소나무림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한 다. 현재 파주 장릉의 능침주변의 경우 대부분 참나무류가 우점하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참나무 활엽수림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능침주변으로 소나무림 재 식을 통해 능역을 회복한다. 홍살문 좌측과 우측에 오리나무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주변지역이 습지화 되어 있어 주변의 소나무림 재식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내청룡과 내백호 능선 주변 비어 있는 곳은 100~600본/ha 정도로 소나무를 재식하여 역사경관림을 회복한다. 성목 시 산불 및 역사경관림 보존을 위해 200~300본/ha으로 유지한다. 곡장 주변의 소나무들은 현재 수고 H10m~H15m이나 석물 및 잔디보존을 위해 곡장에서 15~20m 정도 이격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관리한다. 또한 소나무는 송진을 분비하여 잔디의 생육에 나쁜 영향을 주며, 소나무의 송진에 의한 산화 에 매우 취약함으로 잔디와의 일정 거리를 두고 소나무를 관리하여야 한다. 능침주변의 소나무림의 경우도 소나무의 적정 밀도를 성목 시 100~400본/ha 조정하여 소나무림을 관리한다. 왕릉 주변의 수목을 제거 또는 이식할 경우에는 반드시 고문헌 기록에 의거 및 세계유산보존의 가치를 고려하여 제거하고 소나무를 재식할 수 있도록 한다. 소나무림 하층목으로는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때죽나무, 쪽동백 등의 아교목을 재식하고, 진달래 등의 관목류와 지피류를 같이 재식한다. 적극적인 관리지역은 송림을 원(源) 경관으로 보존 복원, 복구하고 자연자원보 존지구는 생태적 변이 및 천이 등을 고려하여 다층구조의 식생을 유도한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197

198 그림 83 파주장릉재식계획 ( 안 ) 198 ㆍ 2010~2016 년종합평가

199 부록 1. 왕릉의수목 2. 각능별수목 3. 조선왕릉 ( 王陵 ) 의식목 ( 植木 ) 파종 ( 播種 ) 관련기록 4. 모든왕릉에씨뿌리고나무심어보존하는방법 5. 나무뿌리와사태방지책 6. 능위잡초제거와떼입힐때유의사항 7. 왕릉의보토 8. 보토 ( 補土 ) 하는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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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1. 왕릉의 수목 1) 왕릉의 소나무 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9월 30일(무신) 1번째 기사 천둥과 번개가 치다. 서운관 관원들과 종묘를 지을 자리를 논의하다 천둥과 번개가 쳤다. 임금이 서운관(書雲觀)의 관원을 불러 종묘(宗廟)를 지을 땅을 물으니, <서운관 관원이> 아뢰었다. 성(城) 안에는 좋은 땅이 없고, 고려 왕조의 종묘(宗廟)가 있던 옛터가 가장 좋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망한 나라의 옛터를 어찌 다시 쓰겠는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남은이 아뢰었다. 그 옛 궁궐을 헐어버리 고 그 옛 땅을 파내고 새 종묘를 고쳐 짓는다면 어찌 불가함이 있겠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또한 고려 왕조의 종묘가 있는 골[洞]의 소나무를 베지 말라.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 영인본 1책 3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태조 13권,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4월 16일(임진) 2번째 기사 경복궁 왼쪽 산등성이의 소나무가 마르다 경복궁(景福宮) 좌강(左岡)의 솔[松]이 마르므로, 그 가까이 있는 인가(人家)를 철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12장 B면 영인본 1책 120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호구이동(移動) 태조 14권,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5월 16일(임술) 2번째 기사 소나무가 말라 죽고 서리가 내린 것 때문에 도성 감역관 등을 사유하다 임금이 서울 주산(主山)의 소나무가 말라 죽고, 또 여름철에 서리가 내린 이유로써 도승지 이문화(李文和)를 명하여 사사(使司)1)에게 전지하였다. 지난번에 외방(外方)으로 폄직(貶職)된 도성 감역관(都城監役官)을 모두 그 죄를 용서하고, 김서(金恕)는 죄를 결정하여 본래의 직책으로 다시 임명하며, 무릇 외방(外方)으로 폄직된 원인(員人)에 죄상의 경하고 중한 것 을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게 하라. 사사(使司)에서 명을 듣고 이에 복명(復命)하였다. 전하(殿下)께서 이미 두려워하고 반성(反省)하였으니, 시정(時政)의 잘되고 잘못된 점과 민간의 이로운 일과 폐단 되는 일에도 마땅히 물어야 될 것입니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4장 A면 1) 사사(使司) :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01

202 영인본 1책 123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과학천기(天氣) / *농업임업(林業) 태종 5권, 3년(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4월 21일(정묘) 3번째 기사 만여 명을 동원, 송악산 골짜기의 송충이를 잡다 명하여 송충(松蟲)을 잡았다. 승추부(承樞府)ㆍ순위부(巡衛府)ㆍ유후사(留後司)ㆍ오부(五部)와 군기감(軍器監)의 장인(匠人) 및 백관(百官)이 품등(品等)에 따라 사람을 내었으니, 모두 만여 명이었다. 총제(摠制)ㆍ상호군(上 護軍)ㆍ대호군(大護軍)으로 하여금 나누어 거느리고 잡게 하였는데, 한 사람이 석 되[升] 정도 잡아 땅에 묻 었다. 이때에 송충이가 산에 가득하니, 임금이 근심하여 좌우(左右)에게 이르기를, 송충이는 어느 시대부터 있는 것인가? 하니, 좌부대언(左副代言) 김한로(金漢老)가 대답하기를, 전조(前朝)의 원종(元宗) 때에 3백 명의 사람을 시켜 잡아서 강물에 던졌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박석명(朴錫 命)에게 말하기를, 송충이의 재앙은 기(氣)가 시키는 것이므로, 인력(人力)으로 이길 수 있는데, 경들은 어째 서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가? 벌레가 잎을 먹으면 소나무는 반드시 마를 것이다. 하였다. 수일 뒤에 임금이 조영무(趙英茂)에게 묻기를, 송충이를 잡는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니, 영무가 대답하기를, 거의 다 잡고, 송악산(松岳山)의 여러 골짜기만 다 잡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벌레를 잡는 것은 승추부(承樞府)의 책임인데, 내가 명하지 않았으면 어찌하였겠는 가? 하니, 영무가 대답하기를, 신(臣)이 재기(材器)가 없어서, 인부(人夫)가 나올 곳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 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재기(材器)라는 것은 미연(未然)에 앞서 헤아려 꾀하는 것이다. 지금 벌레가 솔을 해(害)하여 잡는 것도 반드 시 재기가 있는 자라야 할 수 있는 것이냐? 하였다. 제릉(齊陵)의 솔에 벌레 하나가 있는데, 크기가 팔뚝 같고, 길이가 한 자[尺]나 되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9장 A면 영인본 1책 263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사(故事) 태종 11권,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5월 2일(신묘) 2번째 기사 태상왕이 흥천사의 계성전에 전을 드리다 태상왕이 흥천사(興天社)에 가서 계성전(啓聖殿)655) 에 친히 전(奠)드리고, 중관(中官)에게 명하여 정릉(貞陵) 에 전(奠)드리게 하였다. 사리전(舍利殿)에 들어가 분향(焚香)하고 부처에게 배례(拜禮)하고서 산릉(山陵)을 돌 아보면서 그칠 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때 공경(公卿) 이하가 정릉(貞陵)에서 1백 보(步) 밖에 집터 를 다투어 점령하고, 소나무를 베어서 집을 짓는 것이 바야흐로 한창이었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0장 A면 영인본 1책 356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주생활택지(宅地) 태종 13권, 7년(1407 정해 / 명 영락(永樂) 5년) 4월 7일(신묘) 3번째 기사 각도의 수령에게 정월에 소나무를 심게 하다 각도의 수령에게 명하여 정월[孟春]에 소나무를 심게 하였다. 충청도(忠淸道) 경차관(敬差官) 한옹(韓雍)이 상 언(上言)하기를, 근래에 병선(兵船)을 만드는 일로 인하여 소나무가 거의 다 되었으니, 비옵건대, 각도(各道) 20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03 의 각관(各官)으로 하여금 소나무가 성장(成長)할 수 있는 산에 불을 금하고, 벌채(伐採)를 금하며, 매양 정월 [孟春]을 당하면 수령이 친히 감독하여 소나무를 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6장 B면 영인본 1책 389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태종 16권,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1월 26일(경오) 1번째 기사 상왕과 더불어 건원릉에 나가 동지제를 행하다 임금이 상왕(上王)과 더불어 건원릉(健元陵)에 나가 동지제(冬至祭)를 행하니, 각사(各司)에서 한 관원(官員)씩 호종(扈從)하였다. 상왕이 초헌(初獻), 주상(主上)이 아헌(亞獻),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윤(河崙)이 종헌(終 獻)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능 옆에 올라 산세(山勢)를 두루 보고, 임금이 공조 판서(工曹判書) 박자청(朴子靑) 에게 일렀다. 능침(陵寢)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없는 것은 예전 법이 아니다. 하물며 전혀 나무가 없는 것이겠는가? 잡풀 을 베어버리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두루 심으라.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42장 B면 영인본 1책 465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풍속예속(禮俗) 태종 17권,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1월 18일(신유) 3번째 기사 건원릉에 소나무를 심도록 명하다 건원릉(建元陵)에 소나무를 심도록 명하였다. 동반(東班) 9품 이상과 서반(西班) 4품 이상에게 각각 품종(品 從)2)을 내게 하고, 또 경기좌도(京畿左道)의 연호군(煙戶軍)과 각사(各司)에 속한 제색(諸色) 장인(匠人)을 차 발하여 부역(赴役)하게 하고, 공조 판서 박자청(朴子靑)과 영양군(永陽君)이응(李膺)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3장 B면 영인본 1책 47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재정역(役) 태종 17권,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2월 12일(을유) 2번째 기사 사헌부로 하여금 사을한산 소나무의 고사를 방치한 병조의 관리를 추핵하게 하다 사헌부에 명하여 병조(兵曹) 관리의 죄를 추핵(推劾)하여 아뢰게 하였다. 사을한산(沙乙閑山)소나무가 벌레가 먹어서 누렇게 고사(枯死)하였는데도, 병조에서 이를 살피지 못한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8장 B면 영인본 1책 474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농업임업(林業)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1월 3일(경오) 2번째 기사 창덕궁과 건원릉에 소나무를 심도록 명하다 창덕궁(昌德宮)과 건원릉(健元陵)에 소나무를 심으라고 명하였다. 2) 품종(品從) : 관리의 품급(品級)에 따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03

204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1장 A면 영인본 1책 523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왕실종사(宗社) 태종 21권, 11년(1411 신묘 / 명 영락(永樂) 9년) 1월 18일(기묘) 1번째 기사 함주에 있는 덕릉과 안릉의 호를 돌에 새기고 소나무를 심게 하다 김서(金恕)ㆍ이양달(李陽達)을 함주(咸州)에 보내어서 덕릉(德陵)ㆍ안릉(安陵)의 호(號)를 돌에 새기고, 그 곁에 소나무를 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21권 6장 A면 영인본 1책 57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태종 24권,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7월 17일(경자) 6번째 기사 큰 바람으로 쓰러진 소나무를 병조로 하여금 축토하게 하다 명하여 근일의 큰 바람으로 쓰러진 소나무를 병조로 하여금 축토(築土)하도록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3장 A면 영인본 1책 643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농업임업(林業) 태종 29권, 15년(1415 을미 / 명 영락(永樂) 13년) 5월 5일(신축) 1번째 기사 단오이므로 건원릉에 참배하다 단오(端午)이므로 임금이 건원릉(健元陵)에 참배하였다. 산릉에 수목(樹木)이 무성한 것을 보고, 일자(日者) 이 양달(李陽達)을 불러 묻기를, 소나무와 밤나무를 함께 심었으니 소나무에 해로울까 생각된다. 밤나무를 제거하면 어떻겠는가? 하니, 이양달이 대답하였다. 밤나무는 노쇠하기 쉬우니, 번거롭게 베어낼 것이 없습니다.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25장 B면 영인본 2책 6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풍속풍속(風俗) / *농업임업(林業) 종 33권,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4월 28일(갑신) 4번째 기사 국가에서 벌채를 금지하는 산의 소나무에 송충이 일다 금산(禁山)3)의 소나무에 벌레가 먹었다.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33장 B면 영인본 2책 159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3) 금산(禁山) :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국금(國禁)한 능역(陵域) 부근의 산. 20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05 태종 34권,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11월 23일(갑술) 1번째 기사 유한우를 금산의 소나무를 베어쓴 일로 의금부에 가두다 유한우(劉旱雨)를 의금부(義禁府)에 가두었다. 유한우는 일찍이 태조(太祖)의 잠저(潛邸)에서 시종하였고, 또 제릉(齊陵)의 땅을 잡는 여러 일을 모두 주장(主掌)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능실(陵室) 근처에 살게 하고, 겸하 여 능침(陵寢)의 일을 규찰(糾察)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산(禁山)안의 소나무를 베어서 사사로이 쓴 일이 발각되어 헌사에서 아뢰니, 3일 동안 가두었다가 석방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32장 B면 영인본 2책 193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세종 11권,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1월 5일(무진) 3번째 기사 지관 이용이 헌릉 왼편 산줄기를 손볼 것을 아뢰다 이용(李庸)이 아뢰기를, 지금 헌릉(獻陵)의 산수(山水) 형세는 회룡고조(回龍顧祖)4)로서 진실로 대지(大地)이오나, 그러나 왼편 산 안 에 조금 밖으로 향한 줄기가 있어 상하고 헤쳐진 언덕이 매우 좋지 못한 것이 되옵니다. 예전에 곽경순(郭景 純)5)이 말하기를, 청룡(靑龍)이 구불구불하였다. 하고, 범월봉(范越鳳)6)노래에도 말하기를, 용처럼 서리었고 코끼리의 코처럼 말렸구나. 안고 돈 것이 정이 있는 듯하여 멀고 가까운 것 없도다. 돌고 안은 것이 분명하 게 먼저 보이어 오무린 발톱과 감추어진 어금니에 배반함이 없도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비뚤어지고 기울 어진 것이 왼편에 있으면 좋지 못한 것이 된다. 하였사오니, 모두가 마땅히 분변하여서 다스리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지현론(至玄論) 7)에 말하기를, 산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법에 규정을 더 첨가시키는 것이 좋 다.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밖으로 향한 줄기에 대해 특히 유사에게 명하여 손질을 하도록 하되, 산 안쪽으 로 향한 곳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어 길기(吉氣)를 배양하게 하소서. 하니, 이양달(李陽達)이 아뢰기를, 수구(水口)에 큰 산이 눌러 막으면, 작은 산은 비록 돌아다보지 않아도 해가 되지 아니합니다. 또 서전(書 傳) 에 말하기를, 혹이 있으면 떼어 버리라. 하였사온데, 항차 이 작은 산은 연한 가지와 남은 생기가 바깥 으로 향한 것이오니, 마땅히 한식에 파헤쳐 버리고 소나무를 심는 것이 의당할까 하나이다. 하니, 임금이 양달의 말을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장 B면 영인본 2책 419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세종 11권,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1월 9일(임신) 2번째 기사 병조에서 선지를 받들어 광효전 등 뒤 언덕에 소나무를 심게 하다 병조에서 선지를 받들고 백관의 품종(品從)488) 과 경기도의 장정 인부를 징발하여 풍양 이궁ㆍ서이궁(西離 宮)ㆍ헌릉ㆍ광효전의 뒤 언덕에 소나무를 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장 A면 영인본 2책 420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 *재정역(役) 4) 5) 6) 7) 회룡고조(回龍顧祖) : 산의 지맥(支脈)이 빙 돌아서 본산(本山)과 서로 대하는 지세(地勢)임.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南朝)사람 곽박(郭璞)으로 지술(地術)의 창시자인데, 경순(景純)은 그의 자(字)임. 범월봉(范越鳳) : 명나라 사람으로 지술(地術)에 정통하였는데, 저서로는 심룡입식가(尋龍入式歌) 가 있음 지현론(至玄論) : 서명(書名).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05

206 세종 15권,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1월 28일(병술) 3번째 기사 벌레가 제릉의 솔잎을 먹다 벌레가 제릉(齊陵)의 솔잎을 먹으므로, 당성군(唐城君) 홍해(洪海)와 동지총제(同知摠制)허권(許權)을 보내어 개성 유후사(留後司)의 인정(人丁)을 동원하여 이를 잡고, 또 소나무를 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15권 6장 A면 영인본 2책 473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왕실종사(宗社) 세종 18권,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윤12월 21일(갑술) 2번째 기사 헌릉에 소나무를 심다 총제(摠制)허권(許權)과 사직(司直)이양달(李陽達)을 보내어 헌릉(獻陵)에 소나무를 심었다. 태백산사고본 6책 18권 27장 A면 영인본 2책 51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세종 18권,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윤12월 22일(을해) 6번째 기사 금산의 소나무를 벤 자의 형률을 논하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금산(禁山)의 소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치는 사람을 금지하기가 어려운데, 삼가 율문(律文)을 상고하여 본즉, 기훼기물가색조(棄毁器物稼穡條)에 말하기를, 나무와 농작물을 훼손하고 베는 자는 절도(竊盜)에 준하여 논죄 (論罪)한다. 고 하였으니, 지금부터 소나무 가지를 벤 사람은 전례에 의하여 금령(禁令)을 어긴 죄로써 논할 것이며, 그 벤 것이 연목(椽木) 이상으로 온 그루[全株]이거든 그의 가장(家長)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또한 모 르고 있는지를 상고하여, 이 형률(刑律)로써 논할까 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6책 18권 27장 B면 영인본 2책 518면 세종 26권,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2월 4일(을사) 5번째 기사 소나무 벌채가 심하여 앞으로 예장에 쓸 관곽을 이어붙여서 만들게 하다 예조에서 예장 도감(禮葬都監) 정문(呈文)에 의하여 계하기를, 본국의 소나무는 근래에 계속 벌채하였기 때문에, 심산 궁곡이라 할지라도 넓은 판자를 만들 만한 재목이 드뭅니다. 그 까닭에 크고 작은 예장(禮葬)에 쓸 관곽(棺槨)을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판을 이어서 관을 만들려 고 하나 세속이 이것을 싫어하고, 반드시 넓은 판자를 구하여 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백변(白邊)까지 합하여 사용하니, <그것은> 도리어 쉬 썩게 되어, 죽은 이를 대접하는데 좋지 못할 뿐만 아니 라, 또한 큰 재목이 점점 드물게 되어 계속하기도 곤란합니다. 간혹 재력이 부족한 자가 넓은 판자를 구하지 못하여 장사지내는 시기를 놓치는 일도 있어, 그 폐단이 염려됩니다. 옛날 제도를 보면 비록 천자와 제후의 장사라도 재목을 쌓아서 관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예장하는 관재(棺材)는 모두 썩기 쉬운 백변을 깎아버리고 황장(黃腸)을 이어붙여서 관을 만들고, 민간에서 사사로이 준비하는 것도 또한 이에 의하여 제작하여, 그 폐 단을 개혁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20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07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28장 A면 영인본 2책 639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풍속예속(禮俗) 세종 32권,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4월 9일(임신) 6번째 기사 개성 유후사의 제릉과 후릉에서 솔잎을 먹는 벌레를 잡게 하다 개성 유후사(開城留後司)에서,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에 벌레가 소나무 잎을 먹으므로, 유후사와 경기도ㆍ황 해도의 정부(丁夫)를 동원하여 잡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3장 B면 영인본 3책 1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 *과학생물(生物) 세종 86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9월 8일(계축) 2번째 기사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는 것은 육전(六典) 에 실려 있사온데, 요사이 유사(攸司)의 검찰(檢察)이 해이하여 져서 소나무를 모조리 베오니 실로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성밑 10리는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전장 (專掌)하여 엄(嚴)히 금하게 하고, 또 사헌부(司憲府)로 하여금 한성부의 근만(勤慢)을 고찰(考察)하게 하며, 10 리 밖은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금단(禁斷)하게 하고, 또 관찰사로 하여금 수령의 근태(勤怠)를 검찰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27장 B면 영인본 4책 235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법제(法制) / *농업임업(林業) 세종 87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10월 4일(기묘) 2번째 기사 김해 읍성에 있는 수로왕 능침에 표석을 세우기를 청하다 경상도 관찰사이선(李宣)이 치계(馳啓)하기를, 신이 순시차로 김해(金海)에 이르러 친히 살펴보온즉, 읍내성[邑城] 서편 길옆에 가락국(駕洛國) 시조(始祖) 수로왕(首露王)의 능침(陵寢)이 수전(水田) 가운데에 침몰되어 있었는데, 혹은 길을 내어 짓밟으며 혹은 마소 를 방목(放牧)하기도 하오니, 다만 마음가짐이 소홀하고 행위가 무례한 것뿐이 아니옵고, 금제(禁制)하는 법률 도 있사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수로왕이 비록 해변 한구석에서 나라를 세웠고, 또 알 속에서 나 왔다는 것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사오나, 나라 다스리기를 1백여 년이나 하였으며, 나라를 계승한 것도 거의 수백 년이나 되었으니, 신라나 백제의 시조에 비하오면 그 공이 비록 우열은 있사오나, 상고 시대에 있어서 농사를 힘쓰는 것으로 나라를 창립하여 백성들이 그 은덕으로 한편에서 편안히 살았사오니, 비옵건대, 신라 시조를 숭앙(崇仰)하던 예전(禮典)에 의하여 그 제도와 예절을 참작하여 능 옆 사방 50보 안에 있는 밭은 모 두 묵히게 하여 갈고 심는 것을 금지하고, 소나무를 심어서 구역의 경계를 정하고 표석을 세우게 하옵시되, 수호하는 1, 2호(戶)를 선정하여 때때로 소제하게 하와 포장하는 예절을 베풀게 하옵소서. 하매, 예조로 내려 보내니, 예조에서 아뢰기를, 수로왕 능침에 표석을 세우고 수호하는 사람을 두게 할 필요는 없으나, 단지 사면(四面)으로 각각 30보씩을 한정하여 밭갈고 나무하는 것을 금하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07

208 세종 93권, 23년(1441 신유 / 명 정통(正統) 6년) 7월 14일(무신) 4번째 기사 소나무의 금벌법에 관한 의정부의 상소문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소나무의 금벌법(禁伐法)은 상세하여 빠진 것이 없사오나, 오직 산지기[山直]의 수효가 근본으로 적은데, 병 조(兵曹)에서 또 산지기에게 많은 홰[束炬]를 거두고, 산지기는 또 소장 인호(所掌人戶)에게 쌀을 거둠으로 인 하여, 산밑에 사는 사람들이 소나무를 작벌(斫伐)하여도 전혀 금지하지 아니하니 실로 옳지 못합니다. 이제부 터는 장실(壯實)한 자를 택(擇)하여 산지기를 더 정하고, 그 홰를 거둬들이는 것을 일체 다 금지하며, 나누어 준 산명(山名)과 인명(人名)을 사헌부에 이관(移關)하여 항상 검핵(檢覈)을 가(加)하되, 30주(柱) 이상을 작벌 한 자는 장물(贓物)로 계산하여 논죄(論罪)해서 외방(外方)에 정역(定役)하고, 병조 낭청(兵曹郞廳)도 또한 분 장(分掌)하여 엄중히 고찰(考察)을 가하게 하여, 만일 맡은 관할 내에 1백 주 이상을 작벌한 자가 있으면 즉 시로 파출(罷黜)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11장 B면 영인본 4책 350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재정(財政) / *사법법제(法制) 세종 114권, 28년(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년) 11월 16일(경진) 1번째 기사 중환에게 서울의 사산에 소나무를 벤 사람을 추핵하도록 명령하였다 중환(中宦)에게 명령하여 서울의 사산(四山)에 소나무를 벤 사람을 나누어 수색하여 백여 호(戶)를 찾아내어 의금부에 내려서 추핵(推劾)하게 하고, 당해 병조의 관리들도 아울러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6책 114권 19장 A면 영인본 4책 712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농업임업(林業) 문종 1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3월 21일(을축) 3번째 기사 헌릉의 소나무 벌레를 잡도록 명하다 벌레가 헌릉(獻陵) 산의 솔잎을 먹으니 군인들을 보내어 이를 잡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7장 A면 영인본 6책 228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문종 1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3월 27일(신미) 4번째 기사 건원릉의 소나무 벌레를 잡도록 명하다 벌레가 건원릉(健元陵)의 솔잎을 먹으니 각품(各品)의 품종(品從)8)을 징발하여 이를 잡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9장 A면 영인본 6책 229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8) 품종(品從) : 관리들이 그 관품(官品)에 따라 나라의 역사(役事)에 내보내어 일을 돕게 하던 종. 세종실록 제44권 을 보면, 모든 공역(工役)에 그 품(品)에 따라 그 복종(僕從)들을 출역(出役)시켜 조력(助力)하던 것을 품종(品從)이라 한다. 하였음. 20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09 문종 12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3월 3일(병신) 5번째 기사 풍수학 문맹검이 각릉과 각처의 풍수에 대해 상언하다 풍수학(風水學) 문맹검(文孟儉)이 상언(上言)하였다. 1. 건원릉(健元陵)의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은 좌지(坐地)가 본래부터 낮고 평평한데, 왼쪽과 오른쪽에 서 나오는 물이 이곳으로 서로 모여드는데도 도랑이 좁은 까닭으로 봄ㆍ여름에 빗물이 많으면 도랑이 막히 고 물이 젖어들어가서 소통(疏通)이 되지 않으며, 가을ㆍ겨울에 얼음이 솟으면 신로(神路)의 전석(磚石)과 비 각(碑閣)의 계체(階砌)9)가 부동(浮動)하여 어긋나고 위태로와 진실로 미편(未便)합니다. 빌건대 왼쪽과 오른쪽 의 도랑을 깊이 파서 소통(疏通)시켜 낮은 곳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소서. 1. 건원릉(健元陵)의 동구(洞口)인 용산(龍山)의 끝에는 인가(人家)가 너무 가까이 있어 밭을 갈고 길을 내어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고, 더구나 화재(火災)가 또한 두렵습니다. 마땅히 인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것입 니다. 1. 헌릉(獻陵)10)과 영릉(英陵)은, 오방(午方)과 미방(未方)의 물이 명당(明堂)11)으로 바로 들어오니, 비록 그것이 길수(吉水)일지라도 바로 들어오는 것은 미안(未安)합니다. 물의 흐름을 인도하여 도랑을 파서 현무방(玄武 方)12)으로 포읍(抱揖)하는 형상을 만들고, 바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1. 둑소(纛所)13)는 백신(百神)이 있는 곳이고 병가(兵家)에 소속되었으니 더욱 엄숙하고 공경해야 될 것인데도, 지금 예조(禮曹)의 담 밖에 있어 인가(人家)에 너무 가까우니 더러움이 매우 심합니다. 깨끗하고 고요한 땅으 로 옮기기를 청합니다. 1. 지금 우리 나라의 도읍(都邑)은 명당(明堂)의 물이 본디는 원류(源流)가 없었는데, 왼쪽으로는 호조(戶曹)의 샘물과 오른쪽으로는 사온서(司醞署)의 샘물이 실제로 명당(明堂)의 원류(源流)가 되었으니, 깨끗하게 하지 않 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복시(司僕寺)가 왼쪽 샘물의 가에 있기 때문에 말똥이 쌓여 있어 그 물을 더럽게 만드니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원컨대 사복시를 개천(開川)가로 옮겨서 더러운 것을 흘러보내게 해서 명당 (明堂)의 물을 깨끗하게 하소서. 1. 명당(明堂)의 왼쪽물과 오른쪽 물이 모여서 흘러 충동(衝動)하여 서로 부딪치는 형세가 있으니, 두 물의 사 이에 마땅히 한 무더기의 작은 돌산[石山]을 만들어, 두 물이 서로 부딪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 대저 사방(巳方)과 오방(午方)에서 온 산맥(山脈)에 창고를 안치(安置)하고 나무를 쌓아 두면 반드시 화재 (火災)가 있는 것은 곧 그 이치입니다. 지금 국도(國都)의 풍저창(豊儲倉)ㆍ광흥창(廣興倉)ㆍ군자감(軍資監)은 숭례문(崇禮門)으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창름(倉廩)을 쌓았으니 화재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마땅히 다른 곳으로 옮겨서 화재를 피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1. 명당(明堂)의 수구(水口)에는 3개의 작은 산을 만들어, 각기 나무를 심어서 수구(水口)를 진압하고 막게 하 는 것이 곧 옛날 사람의 법입니다. 지금 국도(國都) 수구(水口)의 안에 옛날 사람이 3개의 작은 산을 만들어 각기 소나무를 심었지마는, 그러나 이 작은 산이 수구(水口)에 있지 않고서 도리어 수구(水口)의 안에 있고, 또 산이 무너져서 낮으며 소나무는 말라 죽었습니다. 지금 보제원(普濟院)의 남쪽과 왕심역(旺心驛)의 북쪽에 작은 산을 혹은 3개나 7개를 만들어 소나무와 홰나무ㆍ버드나무를 심어서 수구(水口)를 좁게 한다면 매우 다 행하겠습니다. 1. 수구(水口)에 인가(人家)가 빽빽하게 많이 있고, 창름(倉廩)이 많이 쌓여 있어야만 산수(山水)의 기운이 유 박(留泊)14)하는 것은 진실로 이치가 있습니다. 지금 수구문(水口門) 밖의 예성방(禮成坊)은 인구가 희소(稀少) 9) 계체(階砌) : 층계의 섬돌 10) 헌릉(獻陵) : 태종(太宗)과 왕비 원경 왕후(元敬王后)의 능 11) 명당(明堂) : 무덤의 혈(穴) 앞에 편편한 땅을 말함. 12) 현무방(玄武方) : 뒤쪽 13) 둑소(纛所) : 군중(軍中)의 대장기(大將旗)를 세워 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 사당(祀堂)을 세우고 봄에는 경침(驚蟄)에, 가을에는 상강(霜降)에 무관(武官)만이 모여 제사를 지냈음. 14) 유박(留泊) : 멈추고 정지함.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09

210 하니 실로 미편합니다. 인민(人民)으로서 거주하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나누어 주소서. 1.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는 본디 일체(一體)이니, 하늘에 있어서는 형상(形象)을 이루고 땅에 있어서는 형체 (形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하늘에는 은하(銀河)가 있고 땅에는 황하(黃河)가 있으며, 하늘에 는 구야(九野)15)가 있고 땅에는 구주(九州)16)가 있으며, 하늘에는 삼원(三垣)17)이 있으니, 모두가 천문(天文)ㆍ 지리(地理)의 자연(自然)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의 성인(聖人)이 천문을 쳐다보고, 지리를 굽어 살펴서 경 도(京都)를 세웠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국도(國都)는 위로는 천성(天星)에 응하여 삼원(三垣)의 형상이 환하 게 갖추어졌으며, 중간에는 백악(白嶽)이 있어 만수(萬水)와 천산(千山)이 모두 일신(一神)에게 조회(朝會)하고, 천형(千形)ㆍ만상(萬狀)이 다시 이정(異情)이 없으니, 참으로 천상 북극(天上北極)의 자미원(紫微垣)이라 이를 만합니다. 동쪽에는 낙천정(樂天亭)이 있어 백원(百源)이 와서 모이게 되니, 이것도 또한 천상(天上)의 천시원 (天市垣)입니다. 서쪽에는 영서역(迎曙驛)이 있어 횡성강(橫城江)이 먼 데서 오니, 이것도 또한 천상(天上)의 태미원(太微垣)입니다. 낙천정(樂天亭)과 영서역(迎曙驛)에 장차 이궁(離宮)을 세우려고 하는데, 봄ㆍ가을에 대 가(大駕)가 거둥하는 땅에 잡인(雜人)의 분총(墳塚)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금장(禁葬)하는 법에는 비록 외방(外方)18)이라도 중국 조정의 사신이 지나가는 길가에는 안장(安葬)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하물며 도 성(都城)의 10리 안에 사시(四時)로 임금께서 농사 짓는 것을 관찰하고 유람하러 거둥하는 곳인데도 무덤이 연달아 있으니 신(臣)의 마음은 미편하게 여깁니다. 다만 이것뿐만이 아니라, 낙천정(樂天亭)과 연희궁(延禧 宮)이 서로 떨어져 있는 4, 5리 안에 무덤이 많이 있으니 매우 미편한 일입니다. 낙천정(樂天亭)과 영서역(迎 曙驛) 부근의 분묘는 새 무덤과 옛 무덤을 논할 것 없이 모두 옮겨 가도록 하고, 산등성이와 산언덕을 따라 서 모두 나무를 심고는 벌채(伐採)도 금지하고 기경(起耕)도 금지시켜 산기(山氣)를 배양(培養)하여 만세(萬世) 에 무궁(無窮)한 소용(所用)에 이바지 하소서. 1. 도성(都城)의 세 곳의 물이 모여드는 아래에 마땅히 곡식 창고를 안치(安置)하여 그 산수(山水)의 정(情)을 머물게 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라도ㆍ충청도의 조전(漕轉)19)을 바다로부터 바치는 것은 들여와 용 산창(龍山倉)에 쌓아 두고, 경상도ㆍ강원도의 조전(漕轉)을 강으로부터 바치는 것은 들여와 두모포(豆毛浦)에 쌓아 두어, 산수(山水)의 정(情)을 머물게 하소서. 1. 장의문(藏義門)은 천주(天柱)의 자리인데, 인물(人物)이 밟고 다니는 것이 미편하니 상시로 닫고 열지 아니 하여 천주(天柱)의 자리를 보전하게 하소서. 1. 황해도(黃海道)의 병이 근경(近境)에 흘러 들어오니, 다만 의약(醫藥)으로써는 쉽사리 치료할 수가 없습니 다. 신(臣)은 생각하기를, 푸닥거리[禳]로 진압하고, 부적(符籍)으로 주원(呪願)20)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술(方 術)이 없는 것이 아니니, 도류(道流)21)와 부적(符籍)으로 주원(呪願)할 수 있는 경사(經師)22)를 보내어 병을 치 료하게 하여 그 발단(發端)을 막게 하소서. 1. 지금 우리 풍수학(風水學)을 하는 사람을 본토(本土)23)에서 생장(生長)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산천(山川)도 능히 두루 알지를 못하는데, 하물며 중국(中國)의 산천이겠습니까? 모름지기 중원(中原)의 산천을 답사(踏査) 해야만 그제야 그 지리(地理)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니, 원컨대 풍수학(風水學)하는 사람을 매양 중국에 입조 15) 구야(九野) : 하늘을 아홉 방위로 나눈 호칭. 즉, 중앙은 균천(鈞天), 동쪽은 창천(蒼天), 동북쪽은 변천(變天), 북쪽은 현천(玄天), 서북쪽은 유천(幽天), 서쪽은 호천(昊天), 서남쪽은 주천(朱天), 남쪽은 염천(炎天), 동남쪽은 양천(陽天)임. 16) 구주(九州) : 고대 중국에서 통치를 위해 나누었던 아홉개의 주(州). 요(堯)ㆍ순(舜)ㆍ우(禹) 때의 구주는 기(冀)ㆍ연(兗) ㆍ청(靑)ㆍ서(徐)ㆍ형(荊)ㆍ양(揚)ㆍ예(豫)ㆍ옹(雍)이며, 은(殷)나라 때에는 기(冀)ㆍ예(豫)ㆍ옹(雝)ㆍ양(揚)ㆍ형(荊)ㆍ연 (兗)ㆍ서(徐)ㆍ유(幽)ㆍ영(營)이고, 주(周)나라 때의 구주는 양(揚)ㆍ형(荊)ㆍ예(豫)ㆍ청(靑)ㆍ연(兗)ㆍ옹(雍)ㆍ유(幽)ㆍ기 (冀)ㆍ병(幷)이었음. 17) 삼원(三垣) : 별자리의 세 구획. 즉, 자미원(紫微垣)ㆍ태미원(太微垣)ㆍ천시원(天市垣) 18) 외방(外方) : 지방(地方) 19) 조전(漕轉) : 수로(水路)로 운반하는 세곡(稅穀). 20) 주원(呪願) : 주문(呪文)을 외우고 복록을 비는 일 21) 도류(道流) : 도사(道士) 22) 경사(經師) : 불경(佛經)을 가르치는 법사(法師). 23) 본토(本土) : 조선(朝鮮) 21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1 (入朝)하는 행차에 차송(差送)하게 하소서. 1. 경기(京畿)에 남향(南向)하여 크게 이익되고 쓸 만한 땅은 한정이 있는데, 천세(千世)ㆍ만세(萬世)의 후에 국가의 소용은 한이 없을 것이니 <남향(南向)한 땅은> 이를 금하기를 청합니다. 임금이 풍수학(風水學)에 내려서 이를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23장 B면 영인본 6책 471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 *과학천기(天氣) / *호구(戶口) / *보건(保健) / *교통수운(水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군사금화(禁火) / *재정창고(倉庫) / *풍속예속(禮俗) 단종 3권, 즉위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9월 1일(경인) 2번째 기사 문종의 재궁을 현궁에 안치하다 축시(丑時)에 유사(攸司)에서 천전(遷奠)24)을 올리니, 백관들이 들어와서 제자리에 나아가 부복(俯伏)하고 곡 하고 네 번 절하고 몸을 폈다가 꿇어앉았다. 대전관(代奠官)이 향안(香案) 앞에 나아가서 삼상향(三上香)하고 술을 따라서 영좌(靈座) 앞에 드렸다. 대축(大祝)이 축문(祝文) 읽기를 마치니 백관들이 부복하고 곡하여 슬픔 을 다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폈다. 유사에서 찬(饌)을 거두고 내시가 고명(誥命)과 시책보(諡冊寶) 를 받들어 집사자(執事者)에게 주어 각각 요여(腰轝)에 안치하고 향로(香爐)와 향합(香合)을 받들어 내직 별감 (內直別監)에게 주어 향정(香亭)에 놓았다. 대축이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요여(腰轝)에 안치하고 우주궤(虞 主匱)를 그 뒤에 안치하고, 받들어 길유궁(吉帷宮)에 나아가서 영좌(靈座)에 모셨다. 길유궁은 영장전(靈帳殿) 서쪽에 있다. 내시가 애책(哀冊)을 받들어 요여에 안치하고, 우의정은 수건을 받들고 나아가 재궁(梓宮)을 닦고 아울러 관의(棺衣)를 털었다. 충의위에서 명정을 받들어 앞을 인도하고 좌의정은 여재궁관(舁梓宮官)을 거느리고 재궁을 받들어 순(輴)25)에 올려 놓고, 충의위에서 삽(翣)26)으로 재궁을 가리웠다. 여사(舁士)가 순 (輴)을 받들어 장차 현궁(玄宮)27)에 나아가려 하자, 궁인이 모두 곡하고 종친과 백관이 모두 곡하면서 따라 봉사위(奉辭位)에 이르렀다. 순(輴)이 현궁 문 밖에 이르러서 재궁을 받들어 대관(大棺)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 고 임(衽)28)을 설치하고 관의를 덮고 명정을 취하고 깃대[杠]를 버리고 그 위에 놓았다. 윤여(輪轝)29)로 재궁 을 받들어 연도(羨道)30)로 들어가서 현궁의 탑(榻)31)위에 북쪽을 머리로 하여 안치했다. 영의정이 애책을 가 지고 들어와서 재궁 서쪽에 드리고, 다음으로 증옥(贈玉)32)과 증백함(贈帛函)33)을 가지고 남쪽에 드렸다. 국 장 도감 제조가 그 소속을 거느리고 삽(翣)을 재궁 양쪽에 세우고, 명기(明器)ㆍ복완(服玩)34)등을 받들어 각각 차례로 편리한 대로 진열하여 항(行)과 열(列)을 이루게 하되 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문비석(門扉石)35)밖에 편방(便房)36)을 지어 간직하였다. 처음 재궁이 현궁에 들어가자 백관이 부복하여 곡하고 네 번 절하고 몸을 24) 천전(遷奠) : 발인(發靷)할 때에 드리는 전(奠) 25) 순(輴) :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운반하는 견여(肩轝). 지붕 모양이 있고 사방에 염의(簾衣)와 낙영(落纓)을 드리우고 휘장을 둘렀음. 26) 삽(翣) : 재궁을 가리우는 흉장의 하나. 부채 모양으로 생겼는데, 화삽(畫翣), 불삽(黻翣), 보삽(黼翣)의 3종류가 있음. 27) 현궁(玄宮) : 임금의 재궁을 묻는 광중(壙中)을 말함 28) 임(衽) : 자리. 29) 윤여(輪轝) : 재궁을 대여(大轝)나 현궁의 석체(石砌)에 올리고 내릴 때 사용하던 사다리 모양의 기구. 30) 연도(羨道) : 무덤의 입구에서 부터 시신을 안치한 곳까지에 이르는 길 31) 탑(榻) : 석체 32) 증옥(贈玉) : 죽은 사람에게 예물로 드리던 옥. 길이 1척 2촌, 너비 3촌, 두께 3촌인데, 벽옥을 사용함. 33) 증백함(贈帛函) : 죽은 사람에게 예물로 드리던 폐백을 담던 함. 폐백은 현색(玄色:검은색)이 여섯, 훈색(纁色:분홍색) 이 넷인데, 각각 길이가 8척임. 34) 복완(服玩) : 죽은 이를 위하여 무덤 속에 넣던 의복과 완구 따위의 총칭. 모양은 평상시의 것과 같이 만들되, 다만 조잡하고 크기가 작았음. 35) 문비석(門扉石) : 현궁의 석실 남쪽에 세우던 2개의 돌문. 너비는 3척 2촌 5푼, 높이는 6척 3촌, 두께는 2척임 36) 편방(便房) : 무덤의 석실 앞에 명기와 복완 등의 물건을 갈무리하기 위하여 따로 만든 작은 방. 면석(面石)ㆍ우석(隅 石)ㆍ개석(蓋石)을 갖춘 작은 석실이었음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1

212 폈다가 또 부복하여 곡하여 슬픔을 다하고, 네 번 절하고 몸을 펴서 봉사(奉辭)37)를 마치고 나왔다. 산릉 도 감 제조가 그 소속을 인솔하여 현궁을 닫아 잠그고, 영의정과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가 그 닫아 잠그는 것 을 감독했다. 우의정이 흙 아홉 삽을 덮고, 산릉 도감이 그 작공(作工)38)들을 거느리고 삽질을 계속하여 일을 마치고 지석(誌石)을 내렸다. 서운관(書雲觀) 관원이 현궁의 왼쪽에서 후토제(后土祭)39)를 지내고 대여(大轝) 및 순(輴)에 딸린 것들은 백성(栢城)40)안의 경지(庚地)에서 불태웠다. 명기(明器)41)는 소(筲)42)8개, 3되[升]가 드는데, 서(黍) 1개, 직(稷) 1개, 맥(麥) 1개, 양(梁) 1개, 도(稻) 1개 마 (麻) 1개 숙(菽) 1개, 소두(小豆) 1개이다. 와옹(瓦甕) 3개, 3되가 드는데 혜(醯) 1개, 해(醢) 1개, 가루[屑] 1 개이고, 강계(薑桂)의 가루이다. 와무(瓦甒) 2개, 3되가 드는데, 예(醴) 1개, 청주(淸酒) 1개이다. 와조(瓦 竈) 2개, 와부(瓦釜) 2개, 와증(瓦甑) 1개, 와정(瓦鼎) 12개, 와준(瓦尊) 4개, 와병(瓦甁) 1개, 포작(匏勺) 3개, 와 작(瓦爵) 1개, 와잔(瓦盞) 3개, 변(籩) 12개, 두(豆) 12개, 와보(瓦簠) 2개, 와궤(瓦簋) 2개, 와특종(瓦特鍾) 1개, 와종(瓦鍾) 16개, 와특경(瓦特磬) 1개, 와경(瓦磬) 16개, 와훈(瓦壎) 1개, 지(篪) 1개, 금(琴) 1개, 슬(瑟) 1개, 생 (笙) 1개, 우(竽) 1개, 관(管) 1개, 축(柷) 1개, 어(敔) 1개, 절고(節鼓) 1개, 우(羽) 1개, 약(籥) 1개 간(干) 1개, 척 (戚) 1개, 와방향(瓦方響) 16개, 적(笛) 1개, 퉁소(洞簫) 1개, 필률(篳篥) 1개, 아쟁(牙箏) 1개, 대쟁(大箏) 1개, 비 파(琵琶) 1개, 교방고(敎坊鼓) 1개, 박(拍) 1개, 장고(杖鼓) 1개, 향필률(鄕篳篥) 1개, 대금(大笒) 1개, 향비파(鄕琵 琶) 1개, 현금(玄琴) 1개, 가야금(伽倻琴) 1개, 목공인(木工人) 33명, 목가인(木歌人) 8명, 동궁(彤弓) 1개, 동시 (彤矢) 8개, 착(笮) 1개, 갑옷[甲] 1개, 투구[胄] 1개, 간(干) 1개, 과(戈) 1개, 향로 1개, 향합(香合) 1개, 식안(食 案) 1개, 와반발(瓦飯鉢) 1개, 와시접(瓦匙楪) 1개, 와갱접(瓦羹楪) 1개, 와찬접(瓦饌楪) 9개, 와적접(瓦炙楪) 1개, 와소채포해접(瓦蔬菜脯醢楪) 12개, 식탁 1개, 숟가락[匙] 1개, 젓가락[筯] 1개, 개(蓋) 1개, 궤(几) 1개, 장(杖) 1 개, 관반(盥槃) 1개, 세수대야[盥匜] 1개, 타우(唾盂) 1개, 혼병(溷甁) 1개, 수기(溲器) 1개, 목노비(木奴婢) 각 50 개, 목안마(木鞍馬) 2개, 목산마(木散馬) 2개이었다. 복완(服玩)은 증백(贈帛), 현(玄) 6개, 훈(纁) 4인데, 길이가 각각 18척이다. 자[尺]는 조례기척(造禮器尺)을 사 용하였다. 옥규(玉圭)도 같다. 증옥(贈玉) 1단(段), 길이가 1척 2촌, 너비가 3촌, 두께가 3촌인데 벽옥(碧玉) 을 사용하고, 홍초건(紅綃巾)으로 싼다. 갑(匣)과 자물쇠를 갖추었다. 갑은 나무로 만들고 주색으로 칠하였 다. 면(冕) 관(冠)은 조모라(皂毛羅)로 싸서 판을 덮는데, 밖은 조라(皂羅)이고 안은 홍라(紅羅)이다. 앞뒤에 각각 9개의 유(旒)가 있고, 유는 각각 9개의 옥으로 뒤어 있는데, 오색의 구슬로써 사이사이에 끼웠다. 규 (圭), 길이가 5촌, 너비가 2촌이다. 주머니는 청저사(靑苧絲)를 사용하고 훈초(纁綃)로 싸는데 길이가 7촌, 너 비가 3촌이다. 청의(靑衣), 청초(靑綃)를 사용하는데, 용(龍)ㆍ화(火)ㆍ산(山)ㆍ화충(華蟲)ㆍ종이(宗彝)의 5장 을 그렸다. 훈상(纁裳), 홍초(紅綃)를 사용하는데, 조(藻)ㆍ분미(粉米)ㆍ보(黼)ㆍ불(敝)의 4장을 수놓았다. 중단(中單), 백초(白綃)를 사용하는데, 깃[領]에는 보를 수놓고 소매 끝에는 청색으로 선을 둘렀다. 폐슬(蔽 膝), 홍초(紅綃)를 사용하는데 조ㆍ분미ㆍ보ㆍ불의 4장을 수놓았다. 옥패(玉珮), 화선(花線)을 장식하였 다. 수(綬), 훈색(纁色)이다. 대대(大帶), 안팎은 백라(白羅)인데, 홍색ㆍ녹색으로 선을 하였다. 적석(赤 舃), 홍저사(紅紵絲)로 만들었다. 홍말(紅襪), 홍초로 만들었다. 태의(苔衣) 1벌, 백저포로 만들었다. 수건 1개, 백저포로 만들었다. 이 아래는 시속의 편의에 따라 하였다. 거울[鏡] 1개, 대(臺)와 갑(匣)을 갖 추었다. 자개빗집[螺鈿梳函] 1개, 대빗[竹梳]ㆍ나무빗[木梳] 각 1구씩이다. 토등상(土藤箱) 1개, 홍초단보 (紅綃單袱)를 갖추었다. 주칠 간자(朱柒竿子) 3개, 나무로 바탕을 하였다. 그 지문(誌文)은 이러하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문종 흠명 인숙 광문 성효 대왕(文宗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께서는 세종 장헌 대왕의 37) 봉사(奉辭) : 영결(永訣) 38) 작공(作工) : 무덤을 만들던 공장(工匠). 39) 후토제(后土祭) : 무덤을 만들어 장례를 지낸 뒤 토지신[后土]에게 지내던 제사 40) 백성(栢城) : 무덤 주위의 소나무ㆍ잣나무를 심은 영역. 즉 도국(圖局)의 주위 경계를 말함 41) 명기(明器) : 죽은 이를 위하여 광중(壙中)에 묻던 그릇 따위의 총칭. 보통 때의 것과 같이 만들되, 크기가 작고 조잡하 였음. 42) 소(筲) : 대나무로 만든 그릇. 21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3 맏아드님이시다. 소헌 왕후께서 영락(永樂) 12년43)갑오 10월 초3일 계유(癸酉)에 한양의 사저(私邸)에서 낳으 시니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와 학문을 좋아하였다. 신축년44)에 세종께서 세자로 삼아 성균관에 입학시키니, 이로부터 학문이 날마다 진보되었다. 이듬해 가을에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45)가 낭중(郞中) 진경(陳敬) 등을 보내어 왕세자로 봉하였다. 정통(正統) 10년46) 을축 (乙丑)에 세종께서 병환 때문에 모든 정무에 참여하여 재결하도록 명하였는데, 모든 처리하는 바가 도리에 적합하니, 세종께서 뒤를 부탁할 수 있다고 기뻐하시고 기꺼이 요양하실 수가 있었다. 왕의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상약(嘗藥)47)하고 시선(視膳)48)하는 일을 반드시 몸소 친히 하여 곁에서 모 시고, 밤이 깊을 때까지 이르러도 물러가기를 명하지 아니하면 감히 물러가지 아니하고, 때때로 빈우(賓友)를 불러서 서사(書史)를 강론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병인년49) 3월에 소헌 왕후가 훙(薨)하고 경태 (景泰) 원년 경오50)에 세종께서 또 훙하시니, 음식을 입에 대지 아니한 것이 3일이었고 슬퍼함이 법도에 지 나쳤으며, 상(喪)과 제(祭)를 모두 고례(古禮)를 따르셨다. 세종의 상을 당하여서는 등창병[疽]이 겨우 나아서 창(瘡)이 아직 아물지 아니하였는데, 빈전을 모시고 호곡하며 가슴을 치니, 대신들이 모두 마땅히 물러가서 쉬면서 몸을 조리하소서. 하고 굳이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삭망(朔望)과 상식(上食) 때에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면서 3년을 마쳤다. 금상 황제(今上皇帝)께서 태감(太監) 윤봉(尹鳳) 등을 보내어 와서 사시(賜 諡)ㆍ치제(致祭)하고 부증(賻贈)을 더하고 왕으로 봉하였는데, 인하여 구장 면복(九章冕服)51)과 채단(綵段)을 하사하고 아울러 왕후의 관복과 채단을 하사하였다. 6월에 세종을 영릉(英陵)에 장사지내고 졸곡을 마치고 비로소 정사를 보았다. 경연(經筵)과 윤대(輪對)에 임하 는 것을 일체 세종의 고사에 의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하고 힘써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를 도모하였다. 옛 신하를 바꾸지 아니하고 모두 옛 법을 따랐고, 모든 외임(外任)에 임명되어서 사조(辭朝)52)하는 자들을 모두 인견(引見)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형벌을 삼가라는 뜻을 간곡히 타이르시기에 힘쓰고, 외임으로부터 돌아온 자에게는 명하여 각각 그들이 본 민간의 폐막(弊瘼)을 갖추 실봉(實封)하여 아뢰도록 하였다. 7월에 우리 주상 전하를 세자로 삼았고, 이듬해 정월에 <중국> 황제께서 고명을 내려 주었고, 또 현덕 왕후 를 왕비로 봉하였고, 우리 주상 전하를 왕세자로 봉하였다.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함께 엄체(淹滯)53)되는 것을 염려하여 의정부와 전조(銓曹)로 하여금 경관과 외관의 승출(陞黜)하는 것을 의논하게 하고, 또 수교를 내려 동반(東班)ㆍ서반(西班)의 4품 이상으로 하여금 각각 어질고 재능이 있어서 올려 쓸 만한 자 몇 사람을 추천하게 하고, 겸하여 시정(時政)의 득실과 민간의 폐막을 진술하게 하였다. 이에 어질고 재능 있는 자는 등 용하고 탐관오리는 물리치어,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제거하니, 인심이 기뻐하였다. 4품 이상만 윤대하는 것은 말을 듣고 사람을 보는 데에 넓지 못하다고 하여, 이에 명하여 6품 이상은 모두 윤대하도록 허락하였 다. 반드시 온화한 얼굴과 온순한 말로 허심탄회하게 들어주어 이들로 하여금 말을 다 하도록 하였다. 유신(儒臣)에게 명하여 동국병감(東國兵鑑) 을 편찬하게 하고, 또 5위(五衛)를 설치하고 친히 진법을 만들 어 사졸을 가르치며 모든 군계(軍械)도 또한 정리하게 하였으니, 이로부터 중외(中外)의 군정이 더욱 다스려 졌다. 43) 영락(永樂) 12년 : 1414 태종 14년 44) 신축년 : 1421년 세종 3년. 45)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 : 명나라 태종 46) 정통(正統) 10년 : 1445 세종 27년 47) 상약(嘗藥) : 어버이가 먹을 약을 먼저 맛을 보는 것. 세자의 해야 할 일의 하나임 48) 시선(視膳) : 임금의 수라상을 세자가 몸소 살피고 감독하던 일. 49) 병인년 : 1446 세종 28년. 50) 경태(景泰) 원년 경오 : 1450년 세종 32년. 51) 구장 면복(九章冕服) : 임금이 입던 면복의 하나. 상의에 용문ㆍ산문ㆍ화문ㆍ화충문(華蟲紋:꿩무늬)ㆍ종이문(宗彝紋:그 릇무늬)을 넣고, 하의에 조문(藻紋:마름무늬)ㆍ분미문(紛米紋:쌀가루무늬)ㆍ보문(黼文:도끼무늬)ㆍ불문(黻紋:亞자무늬)을 넣었음 52) 사조(辭朝) : 외임에 임명된 신하가 임지에 부임하기 전에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던 일 53) 엄체(淹滯) : 낮은 지위에 머물러 있음.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3

214 여러 번 휼형(恤刑)54)의 교서(敎書)를 내려 얼사(臬司)55)에게 유시(諭示)하여 경계하고, 일찍이 스스로 탄식하 기를, 어찌하면 정사가 간략하고 형벌을 청정(淸正)하게 하여서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무사하게 하겠는가? 하였다. 백성으로서 유수(遊手)56)가 많고 군사의 액수가 날마다 줄어드니, 전교를 내리어 도승(度僧)57)의 금법을 거듭 엄하게 하고, 일찍이 근신(近臣)에게 말하기를, 석씨(釋氏)의 마음 다스리는 법이 유자(儒者)의 직내 공부(直 內工夫)58)와 서로 근사하나 실상은 서로 심히 멀어서 마침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가 없으니,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또 녹명설(祿命說)59)을 논하기를, 지나간 것은 이미 아는 바이며, 올 것은 모름지기 미리 알 필요가 없다. 고 하였다. 감로(甘露)60)ㆍ흰 까치ㆍ흰 꿩 등을 바치면서 상서(祥瑞)라고 말하는 자가 있었으나 모두 물리치고 받지 아 니하였고, 가뭄 때문에 재해를 구제할 대책을 물으니 혹자(或者)가 경죄(輕罪)를 유사(宥赦)하도록 청하였으 나, 유사를 자주 내릴 수 없다. 하고, 이어서 여러 도의 진선(進膳)61)과 경외(京外)의 공사 영선(公私營繕)을 정지하도록 명하였다. 9월에 황해도에 전염병[疫癘]이 크게 유행하므로 이를 근심하여 손수 제문(祭文)을 지어 관원을 보내어 치제 하고 귀신의 이치를 논하심이 지극히 정밀하였다. 11월에 전교를 내려 고려왕씨의 후손을 찾아 그 작위를 높이고 전택(田宅)과 노비를 하사하여 그 제사를 받 들고, 그 작(爵)을 세습(世襲)하게 하며, 또 고려의 명신(名臣)으로 공덕이 있는 자를 골라 종묘(宗廟)에 배향하 게 하였다. 매양 농상(農桑)과 학교에 마음을 두어 감사와 수령을 보면, 반드시 경작ㆍ개간ㆍ수리 등을 거듭 부탁해 힘 쓰게 하였다. 관각(館閣)의 직을 겸한 대소 유신에게 명하여 돌려가며 성균관에 나아가서 여러 학생에게 강 론을 하게 하고 여러 학생에게 술과 음식을 자주 하사하셨다. 병환과 상중(喪中)의 후로부터 성체가 아직 강 녕하지 못한데도 지나치게 정사에 부지런하고 근심하시므로, 날짜를 건너가면서 정사를 보아서 정신을 수양 하시도록 청하는 이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임금이 낙을 탐하면 비록 천 년을 끌더라도 부족할 것이며, 그렇 지 아니하면 비록 1년이라도 족하다. 반드시 근심하고 부지런해야 하며 스스로 편히 할 수는 없다.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옛날에 안으로는 음탕한 여색에 빠지고 밖으로는 방탕한 사냥에 빠져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며 좋은 집과 사치한 원장을 한결같이 좋아하는 자가 있었으니, 이는 임금의 공통된 병통이었다. 내 성 품이 이를 즐기지 아니하니, 비록 권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좋아할 수 없다. 하였다. 또 근신에게 이르기를, 남녀와 음식의 욕심은 사람에게 가장 절실하므로, 부귀한 집의 자제가 주색으로 몸을 망치는 자가 많으니, 내가 매양 여러 아우를 보면 이를 경계한다. 하였다. 여러 숙부들을 공경하여 섬기고 여러 아우들에게 우애 하여 모두 마음을 기쁘게 하며, 여러 아우의 자식을 사랑하여 자기가 낳은 자식과 같이 하였다. 모제(母弟)62) 광평 대군(廣平大君)이여(李璵)가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하여, 그 아들을 거두어 궁중에서 기르고, 돌보고 사랑 함이 돈독하고 지극하였다. 이해 5월 14일 병자(丙子)에 경복궁 정침(正寢)에서 훙(薨)하시니, 우리 전하께서 나이가 아직 어리나 효성이 지극하여 애모함이 망극하였다.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존호를 받들어 올리고, 9월 초1일에 현릉(顯陵)에 안장 하니, 건원릉(健元陵)의 동남쪽이었다. 54) 휼형(恤刑) : 형벌을 신중ㆍ공정하게 처리하는 일 55) 얼사(臬司) : 법사(法司), 또는 지방 장관. 56) 유수(遊手) : 직업이 없이 놀고 지내는 사람. 57) 도승(度僧) : 도첩(度牒:나라에서 발행하는 중의 신분증)을 가진 중을 말함 58) 직내 공부(直內工夫) : 마음을 바르게 하는 공부. 59) 녹명설(祿命說) : 인간의 운명, 인생의 녹식(祿食)을 예언하는 음양가의 설. 녹명(祿命)은 천명을 말함 60) 감로(甘露) : 임금이 정사를 잘 베풀어 태평할 때 하늘에서 상서(祥瑞)로서 내린다는 단 이슬 61) 진선(進膳) : 여러 도에서 중앙의 각 전(殿)에 매달마다 바치던 물선. 보름 전후로 나누어 망전 진상(望前進上)ㆍ망후 진상(望後進上)이 있었음 62) 모제(母弟) : 동복 동생 21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5 왕위에 계신 것이 3년이고 수는 39세였다. 바야흐로 병환이 위독하자, 여러 신하들이 유사(宥赦)를 청하였으 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훙하기에 미치니, 비록 거리의 아이들과 민간의 부녀들일지라도 슬퍼하여 울부짖지 아 니하는 자가 없었다. 성품이 관홍(寬洪)ㆍ간중(簡重)하고 명의(明毅)ㆍ인서(仁恕)하며, 효성과 우애가 천성에서 나왔다. 위를 섬기고 아래를 대우하기를 오로지 지성으로 하였고, 성색(聲色)을 가까이 아니하였다. 성학(聖學)63)이 고명하여 고금 을 밝게 보고, 더욱 성리학에 깊이 알아 때로 시신(侍臣)과 더불어 역대의 치란(治亂)의 동기와 선유(先儒)들 의 같고 다른 설을 평론하되 한결같이 이치에 들어맞았고, 말씀이 간략하고 의사가 통달하였다. 천문(天文)ㆍ 역산(曆算)ㆍ성음(聲音)에 이르러서도 모두 지극히 정밀하였고, 또 초서와 예서에 능하고 문장[文詞]이 고아 (高雅)하였으나 또한 일찍이 뜻을 두지는 아니하였다. 조정에 임하여서는 고요하고 과묵하여 바라보면 엄연 하나, 군신과 더불어 말씀하면 온화하여 마치 봄바람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말하는 것이 비록 혹시 맞지 않 더라도 또한 너그럽게 용서하니, 말하는 사람도 각각 그 품은 바를 다 말하였다. 세자의 자리에 계신 지 30년에 선왕의 좌우에서 도와서 이룬 것이 실로 많았고, 모든 정무를 대행함에 이르 러서도 공덕이 사람에게 미친 것이 더욱 깊었다. 즉위한 처음에 먼저 언로를 넓히고 선악을 분별하며, 선덕 (善德)이 있다는 평판이 있었고, 농사에 힘쓰고 형벌을 삼가며, 문을 숭상하고 무를 존중하며, 노인을 존중하 고 절의를 권장하며, 수졸(戍卒)을 감하고 조세를 줄이며, 급하지 아니한 역사(役事)를 멈추고 쓸데없는 비용 을 없애며, 포흠(逋欠)64)을 견감(蠲減)하고 무고(無告)를 가엾이 여기었다. 바야흐로 먼 장래의 계획을 넓히 니, 신민이 지극한 치세를 우러러 바랐는데,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애통함을 이길 수가 있겠는 가? 현덕 왕후권씨는 영가(永嘉)65)의 세족으로 증의정부 좌의정(贈議政府左議政) 권전(權專)의 따님인데, 착한 덕 과 아름다운 용모가 있어서, 동궁에 뽑혀 들어와서 승휘(承徽)가 되었다가 뒤에 빈(嬪)으로 올랐는데, 왕보다 11년 먼저 훙(薨)하였다. 시호(諡號)는 현덕이고, 경기안산군소릉(昭陵)에 안장하였는데, 왕이 즉위하자 왕후로 추존(追尊)하여 책봉하였다. 1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드님은 우리 전하이시고 따님은 경혜 공주(敬惠公主)로 봉하여 영양위정종(鄭悰)에게 시집갔고, <뒤에> 사칙(司則) 양씨(楊氏)가 1녀를 낳았는데, 성년[筓]이 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장 A면 영인본 6책 53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역사(歷史) / *어문학(語文學) 예종 8권, 1년(1469 기축 / 명 성화(成化) 5년) 12월 18일(정묘) 1번째 기사 대행 대왕의 존시를 올리고 묘호를 예종이라 하다. 그 시책문(諡冊文)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존시(尊諡)를 올려서 흠문 성무 의인 소효 대왕(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 이라 하고, 묘 호(廟號)를 예종(睿宗) 이라 하였다. 그 시책문(諡冊文)은 이러하였다. 유세차(維歲次) 성화(成化) 666)2월 초5일 갑인(甲寅)에 고자(孤子) 사왕(嗣王) 신은 삼가 재배(再拜) 계수(稽 首)하고 상언(上言)합니다. 그윽이 생각건대, 세덕(世德)을 이어서 크게 경서(經書)에 응하였고, 절혜(節惠)하여 시호를 지었으니, 다만 옛법을 따랐을 뿐입니다. 이에 추숭하는 도리를 다하고 성효(誠孝)를 나타내려고 합니 다. 공경히 생각하니, 총명(聰明)은 옛사람보다도 높고 예지는 하늘로부터 받았도다. 크게 나타내고 크게 이 었으니, 천명은 더욱 깊고 고요한 곳에 융성하고, 진실로 문(文)하고 진실로 무(武)하여, 운수는 바야흐로 영 성(盈盛)한 곳을 어루만졌도다. 양음(諒陰)67)에 거처하여 경경(煢煢)68)하였고, 원대한 모유(謀猷)를 넓히어 업 63) 64) 65) 66) 67) 포흠(逋欠) 무고(無告) 영가(永嘉) 성화(成化) 양음(諒陰) : 관물을 사사로이 소비하여 생긴 결손(缺損)을 배상하게 하던 것을 말함 :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 : 지금의 안동. 6년 : 1470 성종 원년. : 임금이 부모의 상중에 있음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5

216 업(業業)69)하게 여겼도다. 즉위한 지 겨우 1년을 넘었는데, 하늘은 어찌하여 그의 만년(萬年)을 아꼈던가? 옥 궤(玉几)에 비기던 소리 갑자기 일어나는 듯한데, 활을 울부짖던 애통을 어찌 다하겠는가? 생각건대, 충매(沖 昧)한 자로서 외람되게 비도(丕圖)를 승습하였도다. 큰 일을 전해 맡아 어려움에 투신(投身)하였으니, 부하(負 荷)한 책임의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겠도다. 슬픔을 삼키고 걱정을 머금으니 추모하는 생각을 다하지 못하겠 도다. 송종(送終)하는 것이 기한이 있으므로, 인산(因山)70)을 이미 설정하였도다. 이에 천명(薦名)하는 예를 상고하여 적은 찬덕(讚德)의 정성을 펴고자 하여, 삼가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시(尊諡)를 올려 흠문 성무 의 인 소효 대왕 이라 하고, 묘호를 올려 예종(睿宗) 이라 하였도다. 우러러 생각건대, 영령(英靈)은 굽어 받으소 서. 하늘이 길고 땅이 오래도록 휘현(徽顯)한 칭호를 짝하시고, 무성한 소나무와 곧은 대나무와 같이 다시 큰 복조(福祚)를 받으소서.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27장 A면 영인본 8책 43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중종 19권, 8년(1513 계유 / 명 정덕(正德) 8년) 10월 20일(갑인) 6번째 기사 건원릉 소나무에 벼락이 치다 이날 건원릉(健元陵)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7장 A면 영인본 14책 68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중종 19권, 8년(1513 계유 / 명 정덕(正德) 8년) 10월 22일(병진) 1번째 기사 벼락의 변이 있었던 건원릉을 승지 이자화로 하여금 살피게 하다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이 아뢰기를, 20일에 능골[陵洞] 어귀의 백호산(白虎山)71)에 있는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하였다. 우의정 정광필(鄭光弼) 등이 경연(經筵)에 나아가려다가 벼락의 변을 듣고 아뢰기를, 지금은 공구 수성하셔야 하니, 경연을 정지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능침(陵寢)에 벼락의 변이 있으니, 지극히 놀랍다. 경연을 정지함이 합당하다. 또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전 례를 상고하도록 하라. 하고, 곧 승지 이자화(李自華)에게 명하여, 가서 살피도록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0장 B면 영인본 14책 68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중종 19권, 8년(1513 계유 / 명 정덕(正德) 8년) 10월 22일(병진) 3번째 기사 벼락맞은 건원릉에 좌의정 송일을 보내어 안신제를 지내게 하다 68) 경경(煢煢) : 의롭고 의지할 곳 없는 모양. 69) 업업(業業) : 위태로운 모양. 70) 인산(因山) : 왕과 왕후의 장례. 71) 백호산(白虎山) : 주산(主山)에서 오른쪽으로 갈려 나간 산맥. 왼쪽으로 갈려 나간 산맥을 청룡(靑龍)이라 하며, 청룡 과 백호로 싸인 안에다 무덤을 쓴다 21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7 예조 판서 김응기(金應箕) 등이 아뢰기를, 건ㆍ현릉(健顯陵)72)의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으니, 해괴제(解怪祭)와 안신제(安神祭)를 내일 거행해야 하겠 습니다. 전례를 고찰하건대, 성종조(成宗朝)에 공릉(恭陵)73)의 정자각(丁字閣)에 벼락이 떨어졌을 적에 상께서 친제(親祭)하려 하다가 마침 연고가 있어 정지하고, 그 이튿날 참찬관(參贊官) 이숭원(李崇元)을 보내어 안신 제를 거행하였으니, 이번에도 그 전례를 따라 대신을 보내어 제사함이 어떠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좌의정 송일(宋軼)을 보내어 안신제를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1장 A면 영인본 14책 68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중종 74권,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3월 16일(기미) 1번째 기사 벼락이 후릉에 떨어지니 전례에 따라 치제케 하다 예조(禮曹)가 아뢰기를, 이 달 13일 큰 우박이 내리고 벼락이 후릉(厚陵)74)의 소나무를 쳤는데 그때 불이 나서 1간(間) 남짓한 땅을 불태웠으나 마침 비가 와서 저절로 꺼졌다고 합니다. 선왕(先王)의 능에 이러한 재변이 이었기에 전례를 상 고해 보았습니다. 계유년75)에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76) 두 곳 근처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는데 관원을 보내 치제(致祭)하였었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전례에 의하여 관원을 보내 치제하라.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9장 A면 영인본 17책 40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중종 74권,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3월 18일(신유) 1번째 기사 종기와 후릉의 벼락 친 일을 의논하다 내의원 도제조(內醫院都提調) 장순손, 제조 김안로, 부제조 남세웅(南世雄)이 약방(藥房)에 가서 문안하였다. 인하여 승전색 김연손(金連孫)에게 사적(私的)으로 묻기를, 전에 나오던 묽으면서 누르스름한 물은 이제 어떤가? 하니, 김연손이 대답하였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제가 본 것으로 말하자면 때때로 옷안에 물 이 묻어 나오니 창구가 봉합되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교하기를, 나의 건강은 보통 때와 같아서 별다른 증세는 없고 다만 창구가 아물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난번까지는 묽 으면서 누르스름한 물이 자주 나오더니, 이제는 가끔 나오고 있다. 근래 오랫동안 시사(視事)를 폐하여 훌륭 한 사대부들을 만나지 못해 매우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병이 완쾌된 뒤에 시사하겠다. 하고, 인하여 장순손에게 전교하기를, 후릉(厚陵)의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기 때문에 경을 보내 치제(致祭)하기로 하였으니, 경은 가보도록 하라. 전에 건원릉과 현릉의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을 때 관원을 보내 치제했었지만 내 생각에는 친제한 적도 있 72) 건ㆍ현릉(健顯陵) : 건원릉(健元陵)과 현릉.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진 변을 아뢴 것은 건원릉 참봉이나, 여기서 건원릉 과 현릉을 합칭한 것은 두 능이 한 골[洞] 안에 있기 때문이다 73) 공릉(恭陵) : 예종의 비 장순 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의 능. 파주(坡州)에 있다. 74) 후릉(厚陵) : 조선 정종(定宗)과 그의 비 정안 왕후(定安王后)의 능. 75) 계유년 : 단종(端宗) 1년(1453)의 일인지 중종(中宗) 8년(1513)의 일인지 자세하지 않으나 단종 때의 일이 아닌가 추측됨 76)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 : 건원릉은 조선 태조의 능. 지금의 양주군 구리면(九里面) 인창리(仁倉里) 소재 동구릉 (東九陵)의 하나임. 현릉은 문종(文宗)과 그의 비 현덕 왕후(顯德王后)의 능으로 동구릉에 있음.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7

218 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그 날짜가 오래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선왕의 능침에 벼락이 떨어진 일은 큰 재변이니 예사롭게 여겨서는 안 된다. 후릉은 다른 능과는 다르다. 반정 이후 다른 능은 다 친배(親拜)했 다. 제릉(齊陵) 등처는 가까운 능의 경우와는 다른데다가 흉년 때문에 친배하지 못하여, 마음 속으로 매우 미 안하게 여긴다. 이는 친히 제사를 지내고자 하여 의논하는 것이 아니고 내 뜻을 알리고 싶어서 하는 말이 다. 하니, 장순손이 아뢰었다. 능에 참배해야 하는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곤폐(困弊)한 탓으로 참배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상교를 들으 니 실로 감격스럽습니다.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9장 B면 영인본 17책 403면 분류 *의약의학(醫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인조 15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3월 1일(무진) 3번째 기사 예조가 각능의 참봉ㆍ수호군 의 유무 및 베어낸 나무를 살필 것을 청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적병의 동태가 그전과 조금 다르니, 본조의 낭청을 나누어 보내어 각릉(各陵)의 참봉과 수호군의 유무 및 소 나무와 잣나무를 얼마나 베었는지를 적간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48장 B면 영인본 34책 180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인조 28권, 11년(1633 계유 / 명 숭정(崇禎) 6년) 7월 20일(경술) 2번째 기사 건원릉 소나무에 벼락이 치다 건원릉(健元陵)의 소나무에 벼락이 쳤는데 예관을 보내 살펴보고 위안제를 올렸다.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7장 B면 영인본 34책 529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효종 6권, 2년(1651 신묘 / 청 순치(順治) 8년) 4월 28일(갑술) 1번째 기사 함흥부에 큰 바람이 불어 덕릉과 안릉이 피해를 보니 민응협을 보내 봉심하다 함흥부(咸興府)에 큰바람이 불어 덕릉(德陵)77)과 안릉(安陵)78)의 소나무가 많이 뽑혀 예조 참의 민응협(閔應 協)을 보내 봉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6장 B면 영인본 35책 478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과학천기(天氣) 77) 덕릉(德陵) : 목조(穆祖)의 능. 78) 안릉(安陵) : 목조의 비 이씨의 능. 21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19 현종 10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4월 27일(계미) 3번째 기사 헌릉의 화소 안에 있는 소나무에 벼락이 치다 헌릉(獻陵)의 화소(火巢) 안에 있는 소나무에 벼락이 쳤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26장 B면 영인본 36책 462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 *군사금화(禁火) 숙종 6권, 3년(1677 정사 / 청 강희(康熙) 16년) 2월 26일(계유) 2번째 기사 함경도에 큰 눈이 와 여러 릉의 소나무가 부러지고 뽑히니 위안제를 지내다 함경도에 큰 눈이 내려 도로가 막히고 여염(閭閻)의 집들이 짜그라졌으며, 덕안릉(德安陵)ㆍ의릉(義陵)ㆍ순릉 (純陵)ㆍ정화릉(定和陵)ㆍ지릉(智陵)ㆍ숙릉(淑陵)ㆍ준원전(濬源殿)의 소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뽑힌 수가 셀 수 있는 것만도 3천 8백 20여 그루나 되었다. 예(例)대로 위안제(慰安祭)를 지내고, 이어 예조 참판 조위명 (趙威明)을 보내 봉심(奉審)했다.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13장 B면 영인본 38책 349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영조 33권, 9년(1733 계축 / 청 옹정(雍正) 11년) 3월 4일(을유) 2번째 기사 옛 장릉의 나무를 벤 사람의 형벌규정에 대해 논의하다 옛 장릉(長陵)79)의 나무를 벤 사람 가운데 소나무나 회나무 열 그루 이상을 벤 자는 효시(梟示)하는 형률을 감정(減定)하여 3차의 엄중한 형신(刑訊)을 가한 뒤 먼 변방(邊方)에 정배(定配)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는 금호 절목(禁護節目) 가운데 형법이 너무 무거워 행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비변사(備邊司)의 계사(啓辭)를 따 른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25책 33권 26장 B면 영인본 42책 338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命舊長陵犯斫人, 松檜十株以上, 梟示律減定, 以嚴刑三次, 邊遠定配 以禁護節目中, 法重難行, 從備邊司啓也 영조 47권, 14년(1738 무오 / 청 건륭(乾隆) 3년) 1월 25일(무인) 3번째 기사 큰 바람으로 태묘의 소나무 세 그루가 부러지자 위안제를 행하게 하다 이날 큰 바람으로 태묘의 큰 소나무 세 그루가 부러지는 소리가 전내(殿內)에 진동했는데, 경진일(庚辰日)에 위안제(慰安祭)를 행하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5책 47권 4장 A면 영인본 42책 585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79) 장릉(長陵) : 인조(仁祖)의 능(陵).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19

220 영조 49권, 15년(1739 기미 / 청 건륭(乾隆) 4년) 6월 24일(기해) 1번째 기사 큰 바람이 불다. 위안제를 거행하도록 하다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꺾고 기와를 날렸다. 광릉(光陵)ㆍ영릉(寧陵)의 소나무ㆍ노송나무가 꺾어지고 정자각 (丁字閣)의 기와를 손상하였으므로, 위안제(慰安祭)를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6책 49권 28장 B면 영인본 42책 633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영조 80권, 29년(1753 계유 / 청 건륭(乾隆) 18년) 7월 7일(경신) 1번째 기사 봉원 도감 당상에게 정자각의 터를 하문하다 봉원 도감 당상(封園都監堂上)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게 하여 정자각(丁字閣)의 터를 하문하였다. 예조 판서 (禮曹判書) 이익정(李益炡)이 말하기를, 기임각(祈稔閣)을 옮겨 세운다면 정자각이 바르게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처음 이 터를 잡을 때에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면, 이곳으로 정하였을 것이다. 하였다. 공조 참판(工曹參判) 이익보(李益輔)가 말하기를, 각내(閣內)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바로 만지송(萬枝松)이다. 하였다. 이 익정이 말하기를, 잡목(雜木)은 없애지 않을 수 없으나, 이 소나무는 성상께서 손수 심으셨으므로 남겨 두었습니다. 하니, 육오당기문(六吾堂記文) 을 베껴 오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1장 B면 영인본 43책 491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영조 102권, 39년(1763 계미 / 청 건륭(乾隆) 28년) 8월 1일(을유) 4번째 기사 서문배의 아내 정씨와 임동삼의 아내 오소사의 마을에 정표하라고 명하다 전라도 장수현(長水縣)의 사인(士人) 서문배(西門培)의 아내 정씨(鄭氏)와 양인(良人) 임동삼(林東三)의 아내 오소사(吳召史)의 마을에 정표(旌表)하라고 명하였다. 또 능주(綾州)의 사인(士人) 이광리(李光离)ㆍ이광곤(李 光坤)과 장성(長城)의 사인 공필장(孔弼章)에게 휼전(恤典)을 시행하라고 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제도(諸道)에 명하여 효열(孝烈)이 특이한 사람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호남(湖南)의 전 도신(道臣) 인 원경순(元景淳)이 계문(啓聞)했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정씨는 행실이 깨끗한 것으로 향리 (鄕理)에 소문이 났는데 갑자기 강포한 자의 겁침(劫侵)을 당하여 치마를 찢기기에 이르자 정씨가 큰소리로 외치니, 이웃 사람이 달려가 구해주어 드디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면하였다. 정씨가 말하기를, 분변하지 않고 죽으면 누가 나의 뜻을 밝혀줄 수 있겠는가? 하고, 즉시 관(官)에 고발하여 그 강포한 자를 장살(杖殺)케 하였다. 그리고나서 울면서 말하기를, 나의 몸은 비록 더렵혀지지 않았으나 한쪽 팔은 그에게 비틀렸었으니, 이를 그대로 두면 온몸이 더러워진 다. 22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21 하고, 칼을 가져와 베어내고 드디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오소사는 일찍 과부(寡婦)가 되어 시부모를 봉양 하면서 수절(守節)하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개가(改嫁)시키려 하자, 오 소사가 말하기를, 남편의 무덤에 가서 한번 곡(哭)한 다음 허락하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젖먹이 어린아이를 업고 가서 통곡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왜 먼저 가서 나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게 합니까? 하면서, 이에 손으로 얼어 붙은 무덤을 마구 파니 열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하여 아기와 어머니가 드 디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나무하는 여인(女人)이 그것을 보고 불쌍하게 여겨 부축하고 남편의 집안 사람 집 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위로하고 달래었으나 끝내 듣지 않고 약(藥)을 마시고 죽었다. 이광리 형제는 거 상(居喪)을 잘 하였는데, 밤에 실화(失火)하여 시체가 든 관(棺)이 타게 되자 이광리가 불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아우도 따라서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관을 아래 위에서 끌어안은 채 함께 불에 타서 죽었는데, 관은 아무 탈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효성에 감동된 소치라고 일컬었다. 공필장은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는데, 어버이가 돌아가게 되자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장사지내고 나서는 손수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고서 초동 (樵童)들에게 경계시키기를, 이것이 바로 공효자(孔孝子)의 무덤이니, 나무를 베지 말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9책 102권 11장 B면 영인본 44책 142면 분류 *윤리강상(綱常) 及葬手植松栢, 樵童戒之曰, 此乃孔孝子墓, 勿翦也 영조 114권, 46년(1770 경인 / 청 건륭(乾隆) 35년) 2월 7일(갑인) 3번째 기사 장령 최민이 소의 도살과 소나무의 남벌을 금할 것에 관한 상소를 올리다 장령 최민(崔 )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근래 여러 신하들이 시무(時務)를 말하고 군덕(君德)을 논함에 있어 반드시 먼저 몇 마디의 좋은 말을 하다 가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을 만들어 왼쪽을 보나 오른쪽을 보나 조금도 모가 나지 않게 되어야만 비로소 감 히 올리게 되며, 조금이라도 말이 정상적인 투식(套式)에서 벗어나거나 뜻이 순평(順平)하지 않으면 문득 성 색(聲色)을 드러내어 지나치게 견책(譴責)을 가하십니다. 처음에는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에서 나왔으나 마침 내는 뜻밖의 하교를 만나게 되니, 여러 신하들이 장차 자신과 가정에 무슨 이익이 된다고 임금의 귀에 거슬 리는 말을 하려 하겠습니까? 탕제(湯劑)를 돌보아 드릴 때면 물리치라 명하시고, 옛일을 본받아 성명(成命)을 거두기를 아뢰면 문득 책벌(責罰)을 내리시며, 사기(辭氣)의 가운데 중도(中道)에 지나침을 면하지 못하시고, 거조(擧措)의 즈음에는 간혹 타당성을 잃으시니, 신은 가만히 천지(天地)와 같은 크신 덕(德)에 섭섭함이 없지 않습니다. 무릇 소[牛]의 도살(屠殺)과 소나무의 남벌(濫伐)은 나라에서 크게 금하는 바로서 수령(守令)들이 소를 도살하는 경우 죄가 파직에까지 이르고, 산 소나무 한 그루를 베면 죄가 전가 사변(全家徙邊)80)의 율로 되어 있으니, 경국대전(經國大典) 의 엄중함을 진실로 알 수 있을 것인데, 나라의 기강이 점점 해이해져 백성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소의 도살은 더욱 심하고 소나무의 벌채(伐採)는 갈수록 늘어나니 보고 듣는 자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식자(識者)들이 한심스럽게 여깁니다. 아! 산림 천택(山林川澤)에 대한 정책은 삼대(三代) 때에 소중히 여긴 바이니, 벌채를 때에 맞추어 하게 되면 생존한 자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 (葬送)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근년의 충재(蟲災)를 입은 뒤부터 더욱 신칙함이 마땅합니다. 경우(耕牛)에 있어서는 곧 농사짓는 근본인데, 그 힘을 부리고 그 고기를 먹는 것은 군자(君子)가 차마 하지 못하는 바입 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흉년은 소를 도살한 소치(所致)이다. 라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가엾게 여 긴 간절한 말입니다. 요즈음 금패(禁牌)를 거두라는 명령이 여러 차례 내렸는데, 이는 대체로 백성들과 같이 즐기려는 성대한 뜻이며, 사포(賜酺)81)의 전해 내려온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랫 백성들은 미련하고 무 80) 전가 사변(全家徙邊) : 죄인(罪人)을 그 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옮겨 살게 하던 형벌. 조선조 세종 때부터 북변(北邊) 개척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실시되었음 81) 사포(賜酺) :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모여 술을 마시며 즐기도록 허용하는 일. 또는 관(官)에서 음식물을 베풀어 주는 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21

222 식하여 금하지 않는 데에 버릇이 되어 사사로이 도살하기를 거의 매일처럼 하게 되니, 이는 다만 경작(耕作) 에 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강에도 크게 관계가 되니, 거듭 통금(痛禁)을 가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지금 아뢴 내용에서 임금을 사랑함을 알 수 있다. 방금 내국(內局)82)에 신칙하여 낙죽(駱粥)도 정지하라 명 하였음은 뜻이 대체로 이에 있다. 지금은 도살의 금지를 전과 같이 하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폐단이 있겠는 가? 그 금송(禁松)에 있어서는 모리배(牟利輩)들을 엄금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비국(備局)으로 하여금 혹시라도 이런 폐단이 있으면 엄중히 처벌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9장 A면 영인본 44책 347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농업축산(畜産) / *농업임업(林業) 영조 122권, 50년(1774 갑오 / 청 건륭(乾隆) 39년) 4월 9일(신묘) 2번째 기사 구태후를 잡아들이도록 하여 기장현에 충군하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가서 구태후(丘泰垕)를 잡아들이도록 하여, 엄하게 형벌하고 기장현(機張縣)에 충 군(充軍)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구종직(丘從直)의 훌륭함을 생각하고 그 자손을 찾도록 명하여, 구태후를 효릉 참봉(孝陵參奉)으로 삼았는데, 구태후가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하였고 처음으로 능의 서원(書員)들에게 사 략(史略)을 배웠으며, 더러는 능졸(陵卒)과 더불어 서로 너나들이 하게 되니, 능졸의 무리들이 꺼리거나 두려 워하지 않고 능침(陵寢) 가까운 땅에 있는 큰 소나무 두 그루를 베는 죄를 범하였다. 이것 때문에 임금이 놀 라고 통분하게 여겨 이런 명령을 하였다. 사간 최민(崔 )이 말하기를, 이 뒤로는 특별히 전조(銓曹)에 신칙하여 특별한 능관(陵官)을 간택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구태후의 일은 저들의 과실이 아니라, 곧 내가 옛날 사람 <구종직>을 사모하다가 그 렇게 되었으니, 뒤에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1책 122권 8장 B면 영인본 44책 472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역(軍役) / *농업임업(林業) 정조 23권, 11년(1787 정미 / 청 건륭(乾隆) 52년) 1월 9일(무인) 2번째 기사 선혜청 제조 서유린이 의빈묘의 위전을 절수하는 일로 아뢰다 선혜청 제조 서유린(徐有隣)이 의빈묘(宜嬪墓)의 위전(位田)을 절수(折受)하는 일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에 어찌 버려져 있는 땅이 있겠는가? 산허리를 침범해 경작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의 고질적인 폐단이 어서 도끼로 베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곳곳마다 산이 벌거숭이다. 이는 모두 수령들이 공가(公家)에서 세금 을 매기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겨 백성들에게 경작하기를 허락한 것이니, 읍력(邑力)으로 손을 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만약 이를 빙자하여 향으로 쓸 향나무와 숯을 만들 참나무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사방에 서 널리 구하는데 뒤따라 모리(牟利)하는 자들이 동쪽 서쪽을 가리키며 소란을 피우며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내 뜻이겠는가? 경 등은 이런 뜻을 본받아서 궁방(宮房)이나 혹은 영문(營門)ㆍ아문(衛門)을 가 리키며 소란을 피우며 시장(柴場) 가운데서 유명 무실한 곳은 혁파하고, 만일 합당한 곳을 얻으면 품처하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기일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외읍(外邑)에 양안(量案) 밖의 명색(名色)을 획정(劃定) 하지 못하게 하라. 하니, 서유린이 말하기를, 이천부(伊川府)에 마땅한 송산(松山) 한 곳이 있기에 처음에는 황장 봉산(潢腸封 山)으로 여겼었는데, 작년 본주(本州)의 백성이 소송으로 인하여 예조에서 봉산안(封山案)을 조사해 보니 원 82) 내국(內局) : 내의원 22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23 래 기록된 일이 없어서 효창묘(孝昌墓)의 위전(位田)으로 의정(擬定)하였습니다. 본 부사(府使)의 말을 듣건대, 소나무는 아주 무성하나 토지는 척박하여 개간할 수가 없으며, 또 그 옆에 삼화세(蔘火稅) 몇 결(結)이 있어 서 장차 모두 넣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송정(松政)과 삼세(蔘稅)의 두 가지 일에 대해서는 성상의 뜻 을 여러 차례 사륜(絲綸)에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연교(延敎)를 받들건대 더욱 향탄(香炭)ㆍ송전(松田)에 대하 여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니 그대로 봉산(封山)을 만들고 삼화세는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전대 로 수세(收稅)하게 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읍민(邑民)이 진고(陳告)한 것은 처음부터 경청(傾廳)할 일이 아니었고, 설사 또 땅이 척박하지 않고 옆에 삼 세가 없었더라도 지금 산목(山木)이 곳곳마다 민둥산이 되어 있을 때에 크고 작은 나무 천만 주(株)를 베어 내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삼화세는 실로 적자(赤子)83)의 목숨과 관계되는데, 이제 만약 공 가(公家)에 소속시킨다면 급대(給代)할 밑천을 어디서 만들어 내겠는가? 그리고 읍지(邑誌)를 상고하건대, 고미탄(古味灘) 근처에 끼어 있으니 관방(關防)의 중요한 땅이 됨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일찍이 성(城)을 쌓고 소나무를 심은 일이 있었으니 설치한 법의(法意)가 매우 면밀 하였다. 이런 곳들은 거론하지 말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 진고(陳告)한 사람을 마땅히 먼저 엄중히 다스려서 간사한 백성들이 무엇을 엿보고 바라는 습성을 막아야 할 것이다. 대저 산택(山澤)의 정사는 나라의 중대한 일인데, 근래에 백성들의 습성이 아주 교활하여 이런 폐단이 있게 된 듯하니, 반드시 이 한 곳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에는 비록 사사로운 양산(養山)의 절수(折受)라도 비변사를 거쳐서 계하(啓下)해서 행회(行 會)한 것이 아니면 궁방(宮房) 및 영문ㆍ아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스스로 조치해 주지 말라는 일을 탁지(度 支)의 등록(謄錄)에 기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4장 B면 영인본 45책 625면 분류 *농업(農業) 정조 27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2월 12일(기해) 1번째 기사 영릉에서 작헌례를 행한 후 순릉ㆍ공릉을 전알하고, 저녁에 교하군에 머물다 대가가 고양 군재(高陽郡齋)를 출발하여 노차(路次)에서 본군의 부로(父老)들을 불러 접견하고 이어 영릉에 이르러 작헌례(酌獻禮)를 행한 후 순릉(順陵)과 공릉(恭陵)을 차례로 전알하고 저녁에 교하군에 머물렀다. 전 교하기를, 묘 앞의 길을 지나자니 소나무와 삼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월산 대군(月山大君) 사당에 승지를 보내 제사를 올리도록 하고, 종가집이 빈한하니 본도로 하여금 먹을 것을 대주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선왕께서 형제간에 우애하시던 성덕을 본받는 길인 것이다. 하고, 또 화평 옹주(和平翁主)의 묘, 봉조하 홍봉한(洪鳳漢)의 묘, 익성공(翼成公)황희(黃喜)의 묘, 충민공(忠愍 公)이건명(李健命)의 묘,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묘에도 치제하라고 명하였다. 이들의 묘가 대가가 지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8장 B면 영인본 46책 27면 분류 *왕실(王室) 己亥/駕出高陽郡齋, 召見本郡父老於路次, 仍詣永陵, 行酌獻禮, 歷謁順陵 恭陵, 夕次交河郡 敎曰: 路過墓前, 松杉入矚 83) 적자(赤子) : 백성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23

224 정조 27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2월 13일(경자) 1번째 기사 영릉 전알에 수고한 교하군에게 세금ㆍ환곡의 탕감을 명하고, 장릉에서 작헌례를 행하다 대가가 교하 군재를 출발하여 노차에서 본군의 부로들을 불러 접견하고서 특별히 금년 조세의 절반을 견감 해주고 임인ㆍ계묘년 이전의 묵은 환자곡을 탕감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다 하여 탁지부로 하 여금 곡물의 필요한 양을 계산하여 그것으로 영구히 여유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게 하고, 경내의 사서인 중 나이 70세 이상인 사람에게는 음식물을 급여하고, 80세 이상으로 거둥을 세 번 겪은 사람에게는 각각 한 자 급씩을 주게 하였다. 그리고 이어 장릉(長陵)으로 가서 작헌례를 행하고 전교하기를, 고향의 나무도 오히려 공경하는 것인데 하물며 손때가 묻은 나무이겠는가. 선왕조 신해년에 파주(坡州)에서 본 능으로 이장하고서, 효묘(孝廟)께서 옛 능소에다 손수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으셨던 고사를 따라 이 나무 를 심으셨던 것인데 지금 저렇게 울창하다. 만약 이 나무에 표지를 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무에 대부(大夫)의 명호를 붙인 것은 옛날에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물며 더 소중한 이 나무이겠는가. 어의 궁(於義宮)ㆍ용흥궁(龍興宮)의 소나무에도 자급(資級)을 주라고 명하였으니, 이 역시 선대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 방법인 것이다. 선왕이 손수 심으신 잣나무 세 그루에 구리로 울타리를 치고 수식(手植)이란 두 글자를 새겨놓는다면 뒤에 이 능을 전알하고 이 나무를 보는 자가 누가 감히 공경하고 감격하지 않겠는가. 이 전교 를 능지(陵誌)에다 기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8장 B면 영인본 46책 27면 분류 *왕실(王室) / *재정(財政) 先朝手植栢三株, 銅以圍之, 刻以手植二字 後之謁此陵, 見此樹者, 孰敢不敬且感乎? 此傳敎載之 陵誌 정조 48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5월 29일(임진) 3번째 기사 장릉의 나무가 썩은 것에 대해 조사하길 명하다 장릉(長陵)84)의 능관(陵官)이, 본릉(本陵) 국내의 소나무와 잡목이 해마다 저절로 말라 썩어서 꺾어진 것이 매 우 많다는 것으로 예조에 보고하자, 예조가 이 사실을 상에게 계문하고 또 그 말라 썩은 것들을 베어버리고 봄에 새로 나무를 심을 것을 청하니, 전교하기를, 의당 특별히 사람을 보내 적간하여 사실의 본말을 간심(看審)한 다음에 처분해야 한다. 본릉의 산림에 관한 정책은 더욱 자별함이 있다. 옛 장릉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대부분이 영묘(寧廟)85)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고, 신해년에 능을 옮겨 봉안한 뒤에는 선조(先祖)께서 또한 고사를 준행하시어 정자각(丁字閣) 곁에다 친히 두어 그루를 심으셨는데, 지금은 거의 아름드리가 되었다. 연전에 내가 능을 배알했을 때도 동갑(銅甲)을 만들어 그 나무를 보호하여 표지로 삼았었다. 능수(陵樹)를 잘 보호하는 일이야 어는 곳인들 중하지 않으랴마는, 본 릉의 중함은 더욱 이와 같은데, 이런 것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다면 송구스럽고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 니, 어찌 재랑(齋郞)만 책망할 수 있겠는가. 또 선조의 훌륭한 뜻을 우러러 체받자면 그 처분을 엄절하게 하 기를 의당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 숨겨두고 낱낱이 보고하지 않았거나 산을 단단히 금해서 나무를 잘 기르지 못한 해당 재랑 등을 해부로 하여금 잡아다가 엄히 신문하여 공초를 받고, 이번에 한번 적간한 뒤로는 특별 히 획일적으로 법식을 정하여 초기(草記)해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59장 A면 영인본 47책 89면 84) 장릉(長陵) : 인조의 능. 85) 영묘(寧廟) : 효종을 이름 22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25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 *사법(司法) 정조 49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7월 9일(신미) 2번째 기사 각릉(各陵)의 관원을 엄히 단속하도록 명하다 승지 채홍원(蔡弘遠)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명을 받들고 동쪽과 서쪽의 능원(陵園)을 봉심(奉審)했더니 수목이 적어 성긴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심은 것은 점차 소모되고 새로 이식한 것은 잘 배양되지 못해 보기에도 송구스 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었으니 사체(事體)상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해조에게 신칙하여 나무를 얼마 나 심고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에 따라 겨울철과 여름철 근무 성적을 매기게 한다면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는 재랑(齋郞) 등이 성실히 근무하지 못해 빚어진 것으로서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무릇 소나무를 심고 상수 리나무를 씨뿌리는 법을 보건대 봄에는 파종해야 하고 가을에는 심어야 하는데, 구역 안의 여러 곳을 수시로 순찰하여 조금 성긴 곳에는 소나무를 심고 너무 공허한 곳에는 상수리나무를 씨뿌리면서 재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니, 이 방법대로만 해 나간다면 아무리 소모시키려 한들 그렇게 되겠는가. 그리고 설사 하인배가 난 방용 장작으로 탐을 낸다 하더라도 도끼질한 흔적에 따라 잡아내면 될 것인데 이 숫자 역시 구우 일모(九牛 一毛)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듣건대 씨뿌리고 심을 때 주위의 나뭇가지와 잎을 잘라주면 오히려 싹 트고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하인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혜택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니, 이 어찌 공사(公私) 양쪽 모두에 편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조로 하여금 각릉(各陵)의 관원을 엄히 단속하여 올해 가을과 겨울부터 오로지 씨뿌리고 심는 데 뜻을 두 게 하고 매년 3월과 10월에 그 숫자를 보고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해조에서 별단(別單)으로 초기(草記)해 오면 향축(香祝)을 받든 헌관(獻官)이나 봉심하는 승지 혹은 사관(史官)이나 선전관 중에서 추첨 하여 과연 그 숫자대로 소나무를 심었는지 고찰케한 뒤에 그 근무의 성실도에 따라 상을 주고 징계를 내려 야 할 것이며, 상수리나무를 얼마나 밀도있게 씨뿌렸는지에 대해서도 몇 년 간격으로 본보기를 뽑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내용으로 분부하여 각각 재실(齋室) 벽에 써서 붙여놓도록 하라. 그리고 근무 성적을 평가할 때 이것을 가지고 등제(登第)를 기록한다면 필시 별도로 금품을 강요하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니 이 한 조목은 그냥 놔두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장 B면 영인본 47책 9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 *사법(司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정조 52권, 23년(1799 기미 / 청 가경(嘉慶) 4년) 8월 19일(을사) 4번째 기사 창빈묘에 제사드리고 덕흥 대원군묘에 제례토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오늘 새벽 주교(舟矯)를 건너올 때 송추(松楸)86)가 눈 안에 들어왔다. 몇해 전에 묘소에 제사를 지내드린 적 이 있는데 금년은 그분의 환갑이 다시 돌아온 해이므로 강타(江沱)87)와 규목(樛木)88)의 칭송이 생각난다. 자 손에게 복록을 길이 누리게 하였고 나라에 끼치신 공이 크니, 내가 어찌 감히 목묘(穆廟)89)의 마음을 내 마 86) 송추(松楸) : 무덤 둘레에 심은 소나무와 가래나무. 여기서는 서울 한강가 동작동에 있는 선조(宣祖)의 할머니 창빈 (昌嬪)의 무덤을 가리킴 87) 강타(江沱) : 시경 의 편명. 88) 규목(樛木) : 시경 의 편명. 89) 목묘(穆廟) : 선조를 가리킴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25

226 음으로 삼아 그 공을 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승지를 보내 이 제문을 가지고 가서 창빈묘에 제사를 지내드 릴 것이며, 대원군(大院君)90)의 봉사손이나 직계손 중에서 이름을 알아본 뒤에 현재의 목릉 참봉은 임시로 군직에 붙여두고 그 후임으로 오늘 인사행정에 의망하여 그로 하여금 내일 제례에 참가하고 그대로 재소(齋 所)로 들어가 숙직하게 하라.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5장 B면 영인본 47책 20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정조 대왕 행장(行狀) 아, 대행 대왕이 하늘로 떠나신 그 다음달 병술일에 우리 사왕 전하(嗣王殿下)께서 애지(哀旨)를 내려 삼공 (三公)ㆍ구경(九卿)과 관각(館閣)ㆍ삼사(三司)의 신하들로 하여금 묘호(廟號)를 올리게 하여 정종(正宗)이라고 하고, 능호(陵號)를 올리게 하여 건릉(健陵)으로 하고, 시호(諡號)는 문성 무열 성인 장효(文成武烈聖仁莊孝)로 올렸다. 예에 이른바 위대한 공로가 있는 자는 위대한 영예를 받는다는 그것이다. 중략 13년 봄에 영릉(永陵)ㆍ순릉(順陵)ㆍ공릉(恭陵)을 배알하고 또 장릉(長陵)을 배알한 후 하교하기를, 조상의 고향조차도 조심하고 존경하는 것인데 하물며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겠는가. 선왕조 신해년에 본릉 으로 옮겨 심은 것은 효묘(孝廟)가 손수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던 고사를 따른 것으로서 지금 저렇게 푸른 데 만약 표를 해두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하고, 영종이 손수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 두 글자를 새겨두었다. 그때 왕은 원침(園寢)을 옮길 뜻을 이미 결정하고 신해년에 있었던 일에 느끼는 바 있어 먼저 장릉(長陵)을 배알한 다음 홍릉(弘陵)ㆍ창릉(昌陵)ㆍ명릉(明陵)을 두루 배알했고 7월에는 영우원을 옮겨 모실 절차를 정하 였다. 왕은 즉위 초부터 원침의 형국이 너무 좁고 자리도 좋지 않다 하여 계절 따라 살피러 올 때마다 근심 걱정에 싸였었고 언젠가는 또 지사(地師)를 명하여 선릉(先陵)의 표해둔 곳과 기호(畿湖)의 여러 산들을 답사 하게 하였던 바 지난 기해년에 정해두었던 수원(水原)의 화산(花山)이 가장 좋은 자리라는 것이었다. 중략 중략十三年春, 拜永陵 順陵 恭陵, 又拜長陵, 敎曰: 桑梓猶恭敬止, 況手澤所存乎? 先朝辛亥, 遷奉本陵, 遵孝廟 手種松杉故事, 至今鬱然, 若不表識, 後人何知? 命英廟手種栢樹, 銅以圍之, 刻手植二字 時遷園之聖意已決, 追感辛亥故事, 先謁長陵, 歷拜 弘陵 昌陵 明陵, 秋七月, 定永祐園遷奉之禮 王, 自卽阼初, 以園寢之形局淺 狹, 不叶于吉, 時節展省, 怵惕憂懼, 嘗分命地師, 歷審先陵占標及畿湖諸山, 惟水原花山己亥舊占處最吉 至是錦 城尉朴明源上疏, 請亟擧大禮 순조 1권, 즉위년(1800 경신 / 청 가경(嘉慶) 5년) 7월 4일(갑신) 2번째 기사 등극 반교문 등극(登極) 반교문(頒敎文)에 이르기를 중략 90) 대원군(大院君) : 선조의 아버지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말함. 22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27 화성(華城)에 있는 <장헌 세자(莊獻世子)의> 원묘(園墓)를 천장(遷葬)하는 의식(儀式)에 이르러서는 바다처럼 깊은 성인(聖人)의 효심을 더욱 드러냈도다. 산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ㆍ잣나무는 절로 무성하여 백성들은 천 장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해마다 난로(鑾輅)의 행행이 기일(期日)에 맞추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보고서 감 동하였다. 중략 어로(御路)가 곧바로 소나무ㆍ잣나무 사이로 연결되어 있어 정신과 기맥(氣脉)이 서로 관통되고 있으며 유지 (遺志)는 오래도록 분유(枌楡)123) 에 부치려 하였으므로 부로(父老)와 부유(婦孺)들이 아직도 이야기로 전하 고 있습니다. 위제(衞制)가 방금 신읍(新邑)에서 이루어졌으니 임금 노릇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지 않은 그 충 심을 누가 알겠으며, 보정(寶幀)을 행궁(行宮)으로 옮겨 봉안(奉安)하였으니 한가롭게 늙어가지 않았다는 생각 을 혹은 위로하게 되겠습니다. 해원(亥原)의 역사(役事)를 시작함을 당하여 먼저 정자각(丁字閣)을 짓게 되었 습니다. 만년토록 전해갈 능자리는 이미 최상의 길지(吉地)를 택정하였으며 사계절 제사를 올림에 있어서는 가장 편안히 모시도록 도모할 것을 중시하였습니다. 강만(崗巒)이 감싸 보호한 형세를 돌아보아 규경(圭景)의 위치를 측정하였으며 고금의 화려하고 검소한 법도를 헤아려 전에 저축한 내탕금(內帑金)을 내려 주었습니 다. 재목(材木)을 육지나 바다로 운반하여 오는 번거로움이 없었으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며 제도(制度)는 원묘(原廟)의 뜻을 모방했으니 예법이란 진실로 그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 신(神)이 비밀스럽게 아끼던 아름다운 기지는 진실로 날마다 바라보고 날마다 살피던 효성과 합치하였습니다. 잣나무 기둥, 소나무 서까 래 아름다운 장식이 영롱(玲瓏)하게 빛나고 바람에 나부끼는 구름 깃발은 신리(神理)의 기뻐하심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이장(移葬)하던 해를 생각하여 보니 마치 어제의 일만 같은데 이에 한침(漢寢)의 의식을 만 들어 설행(設行)하게 되니 차마 영구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아름다운 송문(頌文)을 지어 긴 대들보를 들어 올리는 것을 돕겠습니다. 어여차, 들보 머리 동쪽으로 저으니, 광교봉(光敎峯)이 새벽 햇빛을 머금고 붉게 달아 오르도다. 황도(黃 道)124) 가 혁연히 빛 중략 순조 27권, 25년(1825 을유 / 청 도광(道光) 5년) 6월 12일(무진) 1번째 기사 헌릉 벌목에 관련하여 책임자들을 모두 엄벌하다 이보다 앞서 광주 유수(廣州留守) 김재창(金在昌)이 헌릉(獻陵)의 나무 밑둥치를 적간(摘奸)한 형지(形止)를 치 계하였는데, 임금이 크게 경척(驚惕)해 능관(陵官) 등을 나문(拿問)하여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능관 서경보(徐 京輔) 등이 공초하여 일컫기를, 지난해 7월부터 호조의 차인(差人)이 와서 베는 역사를 시작하여 11월에 이르러서 마쳤는데, 낙인(烙印)을 찍 은 것이 5백 46주(株)로 큰 것은 한 아름이 넘고 작아도 동량(棟梁)의 재목에 밑돌지는 않았습니다. 혹은 재 단하여 쪼개어 판자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전목(全木)으로 도(棹)를 만들어 사람이나 소로 져서 나르고 끌어 내리느라 어린 소나무와 전나무, 잡목이 부러지고 상한 숫자가 아주 많았습니다. 목상(木商)과 촌민(村民) 및 능졸(陵卒)들이 낙인이 찍힌 이외의 것을 함부로 벤 것이 또 3백 84주나 되어 도끼질하는 소리가 4,5개월 동 안 화소(火巢) 안에서 연달아 들려 보기에도 놀랍고 황송하여 매양 예조에 보고하였으나 속히 끌어내라고만 제사(題辭)를 보내 왔었습니다. 하였는데, 참봉(參奉) 서세보(徐世輔)는 도 삼년(徒三年)에 정배(定配)하고, 영(令) 서경보(徐京輔)는 연한을 한 정하지 않고 절도(絶島)에 정배하라고 명하였다. 인하여 전교하기를, 이번 나무 밑둥치의 일은 실로 전에 없던 변괴여서 내 마음이 놀랍고 송구스러워 더는 선침(仙寢)에 배알(拜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27

228 謁)할 낯이 없을 듯하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해당 능관은 비록 이미 처분하였으나 대저 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호조에서 청해 얻은 데서 말미암은 것인데, 크게 심신(審愼)하지 않아서 차인(差人)이 난잡하고 무엄하게 하는데도 금하지 못한 것이다. 일 처리가 합당하지 못하고 두루 염려를 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견벌(譴罰)을 면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조사를 행한 유수(留守)는 바로 지난 가을과 금년 봄에 봉심(奉 審)한 사람인데, 봉심할 때에는 발견한 바가 없다가 적간한 후에야 비로소 발견하여 알았다는 것인가? 불성 실함이 심하다. 전 호조 판서 김이양(金履陽)과 광주 유수 김재창(金在昌)에게는 아울러 문외 출송(門外黜送) 하는 법을 시행하라. 능사(陵司)에서 여러 차례 보고했는데도 귀가 막힌 듯이 한 것은 유독 무슨 마음이었는 가? 해당 예조 판서 홍의호(洪義浩)에게도 역시 간삭(刊削)하는 법을 시행하라. 호조의 차인(差人)으로 갇혀 있는 자는 추조(秋曹)의 당상으로 하여금 그 무리를 엄히 조사해 엄형하여 절도(絶島)에 그 자신에 한정해서 멀리 정배하라. 능관(陵官)을 이미 중률로 감죄했는데, 이 무리들 역시 어찌 경계함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본 릉의 행수 수복(行首守僕)91)및 수호군(守護軍)의 두목을 아울러서 엄형하고 멀리 정배하여 징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해당자란 그때에 담당했던 사람을 말한 것이다. 가을 사이 작벌(斫伐)할 때에 능사(陵司)에서 현고(現告)에 누락하였는데, 섣달에 제배(除拜)된 사람이 어찌 유독 모면할 수 있겠는가? 납공(納供)하여 발명한 후에 마땅 히 즉시 전관(前官)을 나문(拿問)하기를 청했어야 하는데도 범연하게 형추(刑推)를 청하고, 반드시 특교(特敎) 를 기다린 후에야 나문을 청한 것은 아주 온당치 못하다. 또 그 처음 죄수의 공초가 두서가 없이 아주 어지 러워 거의 미혹된 것과 같았는데도 예에 따라 받아들였으니, 그 직책의 잘못됨이 과연 어떠한가? 판의금부사 김상휴(金相休)에게는 서용하지 않는 율을 시행하고, 여러 당상(堂上)은 월봉(越俸) 3등을 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1장 B면 영인본 48책 25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농업임업(林業) 순조 33권, 33년(1833 계사 / 청 도광(道光) 13년) 1월 15일(정해) 1번째 기사 박기수가 헌릉 경내의 수목을 베는 폐단에 대해 조사할 것을 치계하다 광주 유수(廣州留守) 박기수(朴綺壽)가 치계(馳啓)하여 이르기를, 헌릉(獻陵)92)경내의 수목을 함부로 베는 폐단이 있으니, 신이 몸소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능침(陵寢) 경내의 수목을 이와 같이 함부로 베어낸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 송구스러운 일이니, 어찌 능관(陵 官)들이 수직(守直)하는 뜻이 있다고 하겠는가? 살펴보고 장계하기를 기다려 마땅히 처분하겠다. 다른 능에도 또한 이러한 근심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려우니, 경내의 두 능을 다같이 살펴보고 장계하게 하라. 하였다. 박 기수가 달려가서 두루 살펴보니, 새로이 베낸 나무 뿌리가 소나무ㆍ회나무ㆍ잡목(雜木)을 합하여 2천 1백 24 주(株)나 된다고 아뢰니, 능관을 해부(該府)에 잡아다 신문하고, 베어낸 능에 딸린 하인들은 엄하게 핵실하여 죄상을 감안하여 처단하라고 명하였다. 의금부에서 조율(照律)하여 능관 임백수(任百秀)ㆍ김태현(金台鉉)을 모 두 귀양 보내었다.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1장 B면 영인본 48책 38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행형(行刑) 91) 행수 수복(行首守僕) : 수복의 우두머리 92) 헌릉(獻陵) : 태종(太宗)과 원경 왕후(元敬王后)의 능. 22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29 고종 11권, 11년(1874 갑술 / 청 동치(同治) 13년) 9월 20일(기미) 3번째 기사 전 참봉 홍인섭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하여 상소를 올리다 전 참봉(參奉) 홍인섭(洪寅燮)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현재 당면한 일들은 재정을 잘 다루고, 사치를 금지하며, 농사에 힘쓰고, 간사한 아전들을 통제하며, 곤궁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양전(量田)하며, 군정(軍政)을 바로잡고, 염리(鹽利)를 일으키며, 소나무, 뽕나무, 과일나 무, 닥나무, 옻나무, 참대 등을 기르고, 도량형을 동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곡식을 지키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 어서 미리 대책을 강구한다면 재물이 나올 길을 여는 방도가 왜 없겠습니까? 대개 사람이 살아가자면 입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입고 먹는 것을 제외하고 귀한 물건이 무엇입니까? 금, 은이나 주옥같은 것은 추워도 입을 수 없고 배고파도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물 로 여기는 것은 귀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사치한 것은 패망하는 근본이고 도적도 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 니다. 저 금과 옥으로 단장을 하는 것이 몸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의 눈에 보기 좋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지금의 논의에서는 사치를 엄금하라고 하는 데 그칠 뿐이며, 일찍이 성상께서 몸소 검소하게 생활하여야 아랫사람들이 저절로 교화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대궐에서부터 솔선하면 바람이 불 어 풀이 쓰러지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교화가 될 터이니 저 쓸모없는 물건들을 누가 가져가겠습니까? 금, 은 이나 주옥같은 보물은 몇 해 못가서 흙값과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된 다음에야 백성들은 풍족히 먹게 되고 나라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당면한 급선무는 농상(農桑)에 힘쓰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선비나 농부를 제외한 모리배들에 대해서 는 모두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고 신역(身役)에 채워 넣으며 군포(軍布)를 무겁게 부과하여야 한다고 봅 니다. 그리고 승려들에게도 반드시 도첩(度牒)에 대한 규정을 엄하게 세우고 감히 제 마음대로 머리를 깎지 못하게 한다면 백성들 중에서 누가 본업을 버리고 스스로 천한 무리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농사일은 권고하 지 않아도 저절로 부지런히 하게 될 것이니 창고에 쌀이 쌓여 썩어나는 훌륭한 일은 주(周) 나라나 한(漢) 나 라에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공공의 재화를 도적질해 먹은 자를 포리(逋吏) 라고 하는데 그들은 백성들의 기름을 짜내어 서로 사치를 하 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故) 처사(處士) 조식(曺植)이 말하기를, 조선이 서리의 손에서 망한다. 라고 하였으 니 어찌 대단히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환자법이 백성들을 돕는 것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백성들 의 살을 깎아내는 칼이 되었습니다. 빈 쭉정이 곡식을 나누어 주고는 알찬 곡식으로 받아들이며 온통 뜰에서 는 매질만 하고 형틀과 칼을 찬 죄수가 옥에 차고 넘쳐 신음소리가 길에 사무치고 있으니 어진 사람은 차마 볼 수 없는 판입니다. 심지어 아내를 팔고 아들을 팔고 있으니 원한은 하늘에 사무치고 있습니다. 아! 어떻게 이러한 참상이 있단 말입니까? 대개 나라에는 토지와 백성들이 있을 뿐입니다. 전결(田結)과 백성들의 수효가 낱낱이 정돈된 다음에야 나라 의 규모가 이로부터 정해지는 것입니다.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계를 바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니 측량을 다시 하는 것보다 급한 일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양전(量田)하는 규정을 인쇄하여 널리 포고함으로써 해당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 고을의 토지를 측량하는 데 전부 규정대로 하게 하면 그 고을의 양전 은 불과 몇 달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 달도 못 되는 사이에 사방에서 들썩이며 다른 고을보다 뒤질까봐 두려워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팔도(八道)에 대한 양전은 반 년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전관(量田官)을 따로 파견하여 하나하나 제비를 뽑고 일일이 대조 확인하여 부세(賦稅)를 균등하게 정한다면 숨겨두었던 토지는 전부 드러나게 되고 재정은 풍족하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가 아무리 편안하여도 싸움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위험하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우 리나라는 민심이 안일에 빠져서 적이 들이닥치면 달아날 궁리부터 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군사제도는 정전제 도(井田制度)에서 나왔는데 8가호(家戶)에서 장정 한 명을 내고 7가호는 보(保)가 되어 군사 장비와 잡다한 비용은 그 안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군사 10만을 동원하면 길에는 거의 70만 호가 늘어선다. 는 것은 이것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29

230 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토지 면적에 따라 군사를 내는 것이 명색상 법적 규례이지만 옛날과 지금이 다른 만 큼 거조는 사리에 맞게 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해당 결수를 계산해서 군사와 농민이 크게 서로 지장이 없 게 된 다음에야 군사를 낼 수 있으며, 큰 활과 조총(鳥銃), 긴 창과 큰 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적의 목 을 많이 벤 사람에게는 영광과 은총을 베풀 것이며 목을 벤 급수(級數)에 따라 매 급마다 천금을 준다면 정 예한 군사도 굴복하지 않음이 없고 싸움에서 진 군사들이 돌아가지 못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감히 우리나라 한 치의 땅도 엿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태산의 반석처럼 확고하게 만드는 것은 잠깐 사 이의 일로 되고 말 것입니다. 재물을 다루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소금을 굽는 일만한 것이 없습니다. 소금을 굽는 일에서는 땔나무를 단속 하여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급선무입니다. 열성조(列聖朝) 때에 소나무 남벌을 금지하여 칙유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름만 나라의 산일 뿐이지 나라의 산으로서의 실속은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나라에서 소금을 구워낸 다음에야 백성들이 나라의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소나무를 크게 기르는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뽕나무, 과일나무, 닥나 무, 옻나무, 참대와 같은 것들도 기르면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한 가지 일인 만큼, 집집마다 심어서 소나무 와 같이 크게 기르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백성들이 유감없이 성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도량형(度量衡) 규정 같은 것은 우순(虞舜)이 정사를 하던 초기에 정한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경중과 대소, 장단을 하나로 통일하고 차이 없게 한 뒤에야 나라에 절도가 있게 되고 협잡이 그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시고 착실한 마음으로 시행하소서. 몇 년 안으로 만약 사치한 기풍이 중 지되지 않고 백성들에게 먹을 것이 부족하며, 교활한 협잡이 그치지 않고 전결이 균등하지 않으며, 재정이 부족하고 군정(軍政)이 닦여지지 않으며, 포민(浦民)들이 생업을 잃어 생계가 넉넉하지 못하고 백성들의 풍속 이 한 곳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신은 처형을 당함으로써 허튼 소리한 죄를 명백히 하겠습니다. 하니, 비답하 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하였다. 원본 15책 11권 79장 B면 영인본 1책 476면 분류 *군사군역(軍役)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농업권농(勸農) / *사상불교(佛敎) / *신분중인(中人) / *농업양전(量田) / *군사군정(軍政) / *농업임업(林業) / *수산업염업(鹽業) / *도량형(度量衡) / *풍속풍속(風俗) 고종 26권, 26년(1889 기축 / 청 광서(光緖) 15년) 11월 27일(기사) 3번째 기사 봉조하 김상현이 묘호에 대해 상소를 올리다 봉조하(奉朝賀) 김상현(金尙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듣건대, 종묘(宗廟)의 예에 공이 있는 임금을 조(祖) 라 하고 덕이 있는 임금을 종(宗) 이라 한 것은 칭 호를 매우 중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임금들이 전해 온 큰 전례(典禮)이며 또한 만대에 변치 않을 큰 의리이고 공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전례를 중시하는데,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太祖), 세조(世 祖), 선조(宣祖), 인조(仁祖), 순조(純祖)의 다섯 성조(聖祖)의 묘호(廟號)의 높음이 그 사이에 가장 성대합니다. 조 라 하건 종 이라 하건 높이 받드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공이 있으면 반드시 조 라고 칭하는 것은 보통 과 다른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영종 대왕(英宗大王)은 세상에 드문 임금으로서 매우 어려운 때를 당하여 여러 흉악한 자들을 소탕하고 종묘사직을 다시 편안하게 안정시켰습니다. 임금 자리에 52년간 있었는데, 천덕(天德)과 왕도(王道)가 순전히 바른 데서 나와 삼황 오제(三皇五帝)처럼 대단히 큰 공을 이루었으므로 승하하신 지 이미 수백 년이나 되었 지만, 온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즐거움과 이익을 누리며 잊지 못하고 있으니, 아! 성대합니다. 어 려서는 인현 왕후(仁顯王后)를 섬길 때는 바로 5살이었는데 여러 가지 꽃을 따서 술을 만들어 바쳤습니다. 왕후가 돌아가시니 그 잠저(潛邸)의 별사(別舍)를 감고당(感古堂) 이라는 현판을 써붙여 추모하는 정성을 표 시했습니다. 숙묘(肅廟)께서 편치 않으시자 좌우에서 몸소 부축하셨는데 7년을 하루같이 하였습니다. 세자로 있으면서 여러 번 위기를 겪었으나 그때마다 법도 있게 응대함으로써 마침내 대궐 안에 화목한 기운이 돌게 23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31 하였습니다. 경묘(景廟)께서 병세가 위중해지니 관대(冠帶)를 풀지 않고 구완하면서 왕이 한 숟갈 뜨면 역시 한 숟갈 뜨고 두 숟갈 뜨면 역시 두 숟갈 떴습니다. 이때에 역적 이광좌(李光佐)가 상약(嘗藥)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의약청(議藥廳)을 설치하지 않고 패악한 의원 이공윤(李公胤)을 믿고서 연달아 독한 약제를 시험하 자 왕이 울면서 이공윤에게 이르기를 빨리 온제(溫劑)를 써서 양기를 되살리라고 하였으나, 이광좌가 자기 의견을 더욱 굳게 고집하여 마침내 승하하게 되었는데, 왕이 슬퍼하여 몸이 여윈 것이 정도를 넘었습니다. 인원 왕후(仁元王后)를 섬길 때에는 비록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으나 매번 손을 모으고 달려가서 물건을 갖 추어 봉양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선의 왕후(宣懿王后)를 모후(母后)처럼 섬겨 사랑과 공 경을 다하였으며 장릉(長陵)에 옮겨 모시고 나서 옛 능의 소나무과 잣나무들이 다 효묘(孝廟)가 손수 심은 것 이라고 하여 그 씨를 가져다 손수 새로 파종하였습니다. 사당의 제향은 반드시 친히 거행하였고 능(陵)과 원 (園)은 거의 모두 전알(展謁)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성덕(聖德)이 효도에 기본을 둔 것이니, 아! 성대합니다. 역사상의 무함을 변론하여 두 성왕의 억울함을 씻어냈고 세실(世室)을 정하여 현종(顯宗)을 높였으며, 조경묘 (肇慶廟)를 창건하고 단경왕후(端敬王后)의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선조를 추모하는 중대한 일 이니, 아! 성대합니다. 만동묘(萬東廟)가 설치되자 손수 편액을 써서 걸고 황단(皇壇)을 증축하여 태조 황제(太祖皇帝)와 의종 황제 (毅宗皇帝)를 함께 제사 지내고 기신(忌辰)마다 망배례(望拜禮)를 올리는 것을 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존주(尊周)의 의리이니, 천하 만세에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 성대합니다. 백성을 사랑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풍년을 빌거나 비를 비는 것과 같은 일을 반드시 직접 수고로움을 행하 였고, 요역을 덜어주고 조세를 감해 주는 혜택을 베풀어 여러 번 윤음을 내렸습니다. 차라리 창고에 보관해 둔 곡식을 미리 풀지언정 돈을 주조하는 것을 통렬히 배척하였고 나라의 재용에 많은 보충이 되더라도 광산 을 채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수령(守令)이 하직 인사를 할 때마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도록 경 계하여 타이르고 압슬(壓膝)의 형을 없애고 자비(刺臂)의 법을 금지했으며, 병조에 영장(營將)을 자세히 살펴 택하도록 명하였으니, 신중히 처리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덕이 백성들의 골수에 사무쳤습니다. 아! 성대합니 다. 절약하고 검소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즉위한 초기부터 대포(大布)와 대백(大帛)으로 지은 옷을 입도록 권장 하여 풍속을 고쳤으며, 벽에 바른 칠이 벗어지거나 창문과 기둥이 떨어지거나 벗겨진 것이나 보연(黼筵)과 포석(鋪席)이 변하여 떨어진 것을 여러 해가 지나도 고치지 않았고, 묵은 곡식이 창고에 차고 넘쳤습니다. 삼 남 지방의 대동미(大同米)의 절반을 고을에 남겨두니 집마다 풍속이 순후하고 아름다워졌으며 관리들은 자중 (自重)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효성과 우애가 위에서 흥기하고 풍류가 아래에서 돈독해져 찬란히 서경(西京) 의 융성하던 때와 같았으니 아! 성대합니다. 신축년(1721)에 왕세제 책봉이 결정되었는데, 불령(不逞)한 무리가 속으로 두려워하고 꺼리는 마음을 품었습 니다. 유봉휘(柳鳳輝)가 앞서 상소를 올려 숙묘(肅廟)의 유언을 받들고 인원 왕후(仁元王后)의 수찰(手札)을 받든다. 는 것을 지적하여 우롱하고 협박한다. 하고, 또 인심이 의혹한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묘(景廟)가 병환이 있어 후사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손이 많기를 바란다. 고 했습니다. 이것에서 병을 숨기는 의논이 처 음 생겨났고 조태구(趙泰耉)는 충신이라고 칭찬하였으니, 그가 어떤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 무리가 한 번 변 하여 목호룡(睦虎龍)이 변란을 고발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무옥(誣獄)이 크게 일어나서 왕세제를 책봉하도록 한 대신인 충헌공(忠獻公) 신 김창집(金昌集), 충문공(忠文公) 신 이이명(李頣命), 충익공(忠翼公) 신 조태채(趙 泰采), 충민공(忠愍公) 신 이건명(李健命) 이하가 모두 참혹한 화를 당했습니다. 두 번 변하여 정희량(鄭希亮) 등 여러 역적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세 번 변하여 윤지(尹志)와 이하징(李夏徵)이 흉악한 모의를 하게 되 었습니다. 김일경(金一鏡)과 목호룡은 을사년(1725)에 죽고, 조태구와 유봉휘 등 여러 역적들은 윤지, 이하징 과 함께 을해년(1755)에 역적을 처벌하는 형률을 시행했으며 정희량(鄭希亮) 등은 무신년(1728)에 처단되었는 데, 이것은 무력으로 소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사성(李思晟)은 서쪽에서 앞장서서 부르고 김중기(金重器)는 안에서 호응하였으니 명성과 위세가 서로 이어져 조정과 민간이 벌벌 떨며 놀랐습니다. 왕께서 신기한 방책 을 빈틈없이 운용하여 기회를 타서 승리함으로써 싸움을 차례로 끝내고 다 평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 지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것만 보게 되었으니, 아! 성대합니다.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옛날의 이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1

232 른바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온다. 고 한 것이니, 반드시 큰 역량과 큰 훈로가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주역(周易) 에, 총명하고 지혜롭고 용감하면서 죽이지 않는 자일 것이다. 했고, 서경(書經) 에, 큰 괴수를 죽이고 협박을 받아 따른 자들은 다스리지 않는다. 했으며, 시경(詩經) 에, 상 토(相土)가 열열하시니 해외가 절연히 평정되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반란을 평정하고 의리를 천명한 실제 업적이니, 자연히 번성하던 삼대(三代)에 부합합니다. 그런데 대성인의 덕행과 공로에 대하여 아직 조 라고 부르는 예가 빠졌으니, 어찌 사람들의 마음에 유감이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어찌 성상의 효성에 만족스럽지 않음이 없겠습니까? 신의 나이가 어느덧 80세가 되어 노쇠하고 병든 데다가 눈이 침침하니, 어떻게 감히 국 가의 대전(大典)을 망녕되이 의논하겠습니까마는, 구구한 어리석은 마음에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습 니다. 이에 감히 진정을 피력하여 우러러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소장을 내려보내 조정의 신하들에게 널리 하문하고서 결단하여 행한다면 대례(大禮)가 바르게 되고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나 태평한 세상이 영원 히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신은 다행스럽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우리 영묘(英廟)는 지극한 어짊과 큰 덕과 크고 성대한 공적이 있어서 아! 잊지 못하는 생각이 오래될수록 더욱 간절하다. 이번에 경의 상소를 보니, 실로 온 나라의 다 같은 바람에서 나온 것이지만, 전례가 막중하니 수의(收議)하게 하라. 하였다. 원본 30책 26권 40장 B면 영인본 2책 332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재정재정일반(財政一般) / *역사고사(故事) / *인물(人物) 종 34권, 33년(1896 병신 / 대한 건양(建陽) 1년) 7월 8일(양력) 1번째 기사 능과 원을 봉심하는 관리들을 징계할 것을 명하다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재순(李載純)이 아뢰기를, 남쪽의 여러 능원(陵園)을 봉심(奉審)한 겸장례(兼掌禮) 윤태흥(尹泰興)이 올린 서주(書奏)에 따라, 소나무를 찍는 것을 단속하지 못한 헌릉 전 참봉(獻陵前參奉) 김상우(金商愚)ㆍ이원정(李源正)과 인릉 전 참봉(仁陵前參 奉) 고제은(高濟殷)과 인릉 전 영(仁陵前令)구면희(具冕喜)ㆍ김용배(金容培)와 나무를 찍지 말 데 대한 금령을 위반하고 뇌물을 받아먹어 소동을 일으킨 정릉(靖陵)의 재관(齋官) 이석래(李錫徠)와 나무를 찍어가지고 그릇 을 만들어 바꿈질하고 뇌물을 받아먹은 건릉 전 영(健陵前令)윤명대(尹明大), 건릉 전 참봉(健陵前參奉) 조만 희(趙萬熙)와 현륭원 전 영(顯隆園前令)윤명대(尹明大)와 나무를 찍지 말 데 대하여 금령을 위반한 영회원 전 참봉(永懷園前參奉) 이건식(李建湜)ㆍ이원채(李源采), 영회원 전 영(永懷園前令)정완순(鄭完淳)을 모두 법부(法 部)로 하여금 조율(照律)하여 감처(勘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공경스럽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데서 이렇게 나무를 찍지 말 데 대한 금령을 어긴 일이 있었으니, 재관은 무슨 관리이며, 하는 일은 무슨 일인가? 더없이 놀라워 차라리 말하고도 싶지 않다. 각 능원의 관리는 상주 (上奏)한 대로 모두 법부에서 조율하여 감처하게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각 능에서 금령을 위반하고 소나무를 찍은 김복숭(金福崇) 등 19명(名)과 허다한 작간 (作奸)을 부리면서 나무를 찍는 것을 단속하지 못한 각 능의 하인인 이계식(李桂植) 등 10명을 모두 법부로 하여금 조율하여 감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38책 34권 29장 B면 영인본 2책 59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23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33 고종 34권, 33년(1896 병신 / 대한 건양(建陽) 1년) 7월 10일(양력) 1번째 기사 능과 원을 봉심하는 관리들을 법부로 하여금 조율하여 감처하게 하다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재순(李載純)이 아뢰기를, 동쪽의 여러 능원(陵園)을 봉심(奉審)한 겸장례(兼掌禮) 정인석(鄭寅奭)이 서주(書奏)한 대로 수리한 것이 모 호하고 나무뿌리가 많게 만든 광릉 전 영(光陵前令) 김규명(金奎明)과 수리할 때 공전(公錢)을 나용(挪用)한 태릉 전 참봉(泰陵前參奉) 조중철(趙重轍)과 나무뿌리가 많게 만든 의릉 영(懿陵令) 한성진(韓性鎭)과 순강원 수봉관(順康園守奉官) 안창묵(安昌默)ㆍ원영봉(元永鳳) 등을 모두 법부(法部)로 하여금 조율(照律)하여 정죄(定 罪)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더없이 공경해야 할 막중한 곳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나무뿌리가 많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리가 모호하고 공전을 나용했으니 모두 다 더없이 통분하고 놀라운 일이다. 각 능원의 관리는 서주한 대로 모두 법부로 하여금 조율하여 감처(勘處)하게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광릉을 수리할 때의 서원(書員)이었던 이기영(李基永) 등과 각 능의 소나무를 찍는 것을 단속하지 못한 차도 형(車道亨) 등 여러 놈들도 역시 법부로 하여금 엄격히 조사해 가지고 조율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 니, 윤허하였다. 원본 38책 34권 30장 B면 영인본 2책 59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고종 42권, 39년(1902 임인 / 대한 광무(光武) 6년) 9월 11일(양력) 1번째 기사 이원일이 장릉의 나무에 대하여 아뢰다 장례원 경(掌禮院卿) 이원일(李源逸)이 아뢰기를, 장릉 참봉(章陵參奉) 김승구(金昇九)의 보고와 관련하여 본원의 주사(主事)를 파견하여 능의 나무를 불법으로 찍은 문제를 적간한 결과 능의 오른쪽 산중턱이 패여서 센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가 쉽사리 뽑히는데 현재 넘어진 중소(中小) 소나무가 총 46그루, 전나무가 17그루이고 썩거나 부러진 것은 이미 화목(火木)으로 찍어 쓰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고 합니다. 해자(垓字) 안의 나무가 이렇게 많이 부러지고 상했는데도 애초에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앞질러 화목을 찍 어 땠으니 사체로 보아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수직관(守直官) 민영국(閔泳國)을 엄중하게 견책하며 오른쪽 산중턱의 흙이 패인 곳은 즉시 본군(本郡)에서 모래를 덮고 튼튼히 다지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막중한 곳에서 능의 나무가 이렇게 많이 부러지고 상했는데도 애초에 원(院)에다 보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먼저 찍어 썼으니 해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해당 수령을 파면시켜라. 하였다. 원본 46책 42권 51장 B면 영인본 3책 26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인사임면(任免)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3

234 고종 43권, 40년(1903 계묘 / 대한 광무(光武) 7년) 11월 21일(양력) 3번째 기사 영회원의 소나무가 훼손된 것과 관련하여 두 재관을 파면시키다 장례원 경(掌禮院卿) 조정구(趙鼎九)가 아뢰기를, 영회원(永懷園) 국내(局內)에서 나무를 찍은 흔적이 낭자하다는 말을 듣고 주사(主事)를 보내 적간(摘奸)하게 하였습니다. 중치 소나무 3주(株)와 전나무 2주를 벤 것은 비록 공적인 용도로 쓴 것이 분명하지만 어린 소 나무 1주는 함부로 베어낸 데 해당하며, 심지어 국내의 소나무의 곁가지를 애당초 본원(本院)에 보고도 하지 않고 감히 멋대로 이처럼 많이 베도록 하였습니다. 그 소행을 따져 보면 매우 통탄스럽습니다. 이 일은 심상 하게 여겨 놓아두어서는 안 되니, 해당 입직 재관(齋官)은 법부(法部)로 하여금 조율하여 징벌하게 하며, 원역 (員役)도 본부로 하여금 각별히 엄하게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막중한 국내의 소나무를 거리낌 없이 잘라내다니 매우 통탄스럽다. 두 재관은 우선 본관(本官)을 면직하고서 법부로 하여금 똑같이 엄하게 다스리게 하라. 하였다. 원본 47책 43권 54장 A면 영인본 3책 30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임면(任免) / *사법재판(裁判) 고종 43권, 40년(1903 계묘 / 대한 광무(光武) 7년) 12월 14일(양력) 1번째 기사 영회원 봉사로 근무할 때 구역 안의 소나무를 베어 낸 송기호를 처벌하다 법부 대신(法部大臣) 이재극(李載克)이, 피고 송기호(宋箕浩)는 영회원 봉사(永懷園奉事)로서 입직(入直)하였을 때 구역 안의 소나무 가지들을 장례원(掌禮院)에 보고하지 않고 함부로 무수히 베어냈습니다. 중송(中松) 2주 (株)와 회목(檜木) 2주를 홍살문을 고치는 데 소용된다고 하면서 제멋대로 베어 썼으며, 소송(小松) 1주는 베 어낸 흔적이 분명한데 그것은 모른다고 공술(供述)하였습니다. 비록 공적인 공사에 쓴 것이라고는 하지만 일 의 대체를 손상시키고 제멋대로 찍어냈으니 해당하는 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능원(陵園)의 나무를 몰래 베어낸 것으로 조율(照律)하여 2등급을 참작하여 감하고 태형(笞刑) 80대와 징역 2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김경진(金敬鎭)은 참봉(參奉)으로서, 피고 안광순(安光淳)과 김선일(金善日)은 원역(員役)으로서, 나무를 베어내 는 것을 보고도 막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보고하지 않았으니, 역시 완전히 용서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조율하여 태형 80대에 처할 것입니다. 라고 아뢰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되 징역은 유배(流配)로 바꾸도록 하라. 하였다. 또 의정부(議政府)의 주본(奏本)을 판부(判付)하여 내려보낸 것을 삼가 받았습니다. 을미년(1895)의 극악한 역 적인 우범선(禹範善)은 대명률(大明律) <적도편(賊盜編)>의 모반대역자(謀反大逆者)로 조율하여 참형(斬刑) 에 처해야 할 것이나, 이미 처단되었으므로 나라의 법을 통쾌하게 적용하지 못하였습니다. 형률(刑律) 명례 (名例) 제2조에 따라 이제 가산(家産) 몰수를 시행하도록 하소서. 고영근(高永根)으로 말하면 이미 탕척(蕩滌) 하라는 명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죄안(罪案)에서 해당 죄명을 탕척하도록 하소서. 라고 아뢰니, 윤허하였다. 또 11월 8일 특별 대사령을 실시하는 데 대한 칙서(勅書)를 받고 평리원(平理院)과 각 재판소(裁判所)가 관할 하는 죄수들 가운데 육범(六犯)과 내외(內外)의 석방할 만한 자들인 이영실(李英實) 등 5명에 대해 개록(開錄) 하여 상주합니다. 라고 아뢰니, 윤허하였다. 원본 47책 43권 59장 B면 영인본 3책 30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23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35 고종 45권, 42년(1905 을사 / 대한 광무(光武) 9년) 6월 19일(양력) 3번째 기사 능과 관련된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도록 하다 함경남도 관찰사(咸鏡南道觀察使) 신기선(申箕善)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부임(赴任)한 후에 이미 원산항 감리(元山港監理) 신형모(申珩模)에게 공문을 띄워 일본인들로 하여금 능침(陵寢)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건만 지금 갑자기 원산에 있는 철도감부(鐵道監部)에 있는 와타나베 渡邊 가 말하기를, 인천(仁川)에 있는 철도감부 대좌(鐵道監部大佐) 마키노 牧野 에게 전보로 물어보니 마키노는 전보로 하교하기를, 아무리 능에 관계되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구애됨이 없이 쓸 수 있다. 라고 하였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또 와타나베에게 급히 공문을 보내어 능침의 중한 의리에 대해서와 개인의 산에 서 대신 벌목(伐木)하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하였으나 시답지 않게 듣습니다. 대체로 12일 이후에 벌목한 것이 심지어 300여 주(秼)나 됩니다. 와타나베는 그 이상 더 벌목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그것을 어떻게 믿겠습니 까? 부(府)와 부(部)의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시급히 일본 공사(日本公使)와 사령관(司令官), 군용철도 감부 (軍用鐵道監部)와 교섭해서 더 벌목하는 우환을 막기 바랍니다. 신은 거적자리를 깔고 명(命)을 기다립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궁내부(宮內府)와 외부(外部)에서 법을 세워 금지하게 하라. 경은 대죄(待罪)하지 말고 관 찰사(觀察使)의 직책에 더욱 힘쓰라. 하였다. 원본 49책 45권 53장 A면 영인본 3책 384면 분류 *외교일본(日本) / *왕실종사(宗社) 고종 47권, 43년(1906 병오 / 대한 광무(光武) 10년) 3월 7일(양력) 2번째 기사 예식원 장례 경 조정희가 능을 보는 관리들이 직무에 태만한 것을 처벌할 것을 아뢰다 예식원 장례경(禮式院掌禮卿) 조정희(趙定熙)가 아뢰기를, 동구릉(東九陵)의 재실(齋室) 행각(行閣)에 무뢰 잡배들이 거처하면서 술을 팔고 있다는 말이 낭자하게 보고 되어 주사(主事)를 파견하여 적간(摘奸)하니, 능이 있는 동리에 사는 백성 김한영(金漢永)의 아내 최녀(崔女) 가 본래 술을 팔아 사는 자로, 지난해 8월에 건원릉(健元陵)의 재실 행각에 거처하였는데, 그때 입직한 재관 (齋官)은 참봉(參奉) 구영회(具英會)였습니다. 유칠성(劉七星)은 본래 산릉 사지군(山陵事知軍)으로 자기 아내 김녀(金女)를 데리고 작년 11월 20일에 목릉(穆陵)의 재실 행각에 거처하였는데, 그때 입직한 재관은 영(令) 이순응(李舜應)이었습니다. 이익선(李翼善)은 본래 산릉 사지군으로서 자기 아내 김녀를 데리고 작년 3월 경 에 숭릉(崇陵)의 재실 행각에 거처하였는데, 그때 입직 재관은 전 참봉정택조(鄭宅朝)였습니다. 모두 어리석은 무리로 술을 팔며 살아가고 있는데, 거처할 곳이 없고 의탁할 곳이 없기 때문에 망령되게 잠시 거처할 궁리 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없이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곳에 이렇게 난잡한 무리들이 거처하면서 술을 팔아 먹은 일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니, 법과 기강으로 헤아려 볼 때 참으로 놀랍고 통탄스럽습니다. 거처한 세 놈 은 법부에서 빨리 해당 형률을 시행하도록 하고, 당초에 거처하도록 용인한 건원릉의 참봉(參奉) 구영회, 목 릉의 영 이순응, 숭릉의 전 참봉인 태복사(太僕司) 주사정택조는 모두 먼저 본관(本官)을 파직하고 또한 조율 (照律)하여 엄하게 처벌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건원릉 영 임백선(任百璿), 목릉 참봉이재찬(李載瓚), 숭릉의 영 심능우(沈能友), 참봉이재구(李載九), 전 참봉 익릉 참봉(翼陵參奉) 조일원(趙一元), 경효전 사승(景孝殿祀丞) 윤준구(尹濬求)로 말하면 직임이 재관인 만큼 입번 때를 당하여 몰랐을 리가 없었을 것인데, 즉시 쫓아내지 않고 그럭저럭 덮어두고 해를 넘기기까지 하였 으니, 그 죄가 같습니다. 일체 모두 본관을 면직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더없이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곳에서 이렇게 전에 없던 해괴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참으로 놀랍고 통탄스럽 습니다. 거처한 세 놈은 법부에서 조율하여 엄히 감죄(勘罪)하게 하라. 당초에 거처를 용인한 재관은 모두 본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5

236 관을 면직하고, 이어 법부에서 그 사실을 조사한 다음 조율하여 감죄하도록 하라. 그 후에 입직하고서도 즉 시 내쫓지 않고 그럭저럭 덮어둔 재관들도 모두 본관을 면직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소령원(昭寧園)의 국내(局內)에 새로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가 있다는 말이 보고 되었기 때문에 주사(主事) 를 파견하여 적간해 보니, 청룡(靑龍) 뒤 기슭의 움푹하게 꺼진 곳에 중송(中松) 한 그루와 백호(白虎) 뒤 기 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중송 한 그루가 과연 새로 베어낸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입직한 수봉관(守 奉官) 유창희(柳昌熙)에게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지난 섣달에 원역배(員役輩)가 추위를 막기 위하여 죽은 소나무 한 그루를 베게 해 달라고 재삼 요구하기에 할 수 없이 허락하였는데 원역배가 법의(法意)를 생각지 않고 죽은 소나무를 취하지 않고 몰래 산 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것이 뒤에 드러나, 해당 원역배들을 엄하 게 다스려서 태거(汰去)하였습니다. 또 산 소나무 한 그루는 이웃 동리에 사는 백성이 밤을 틈타 베었기 때 문에 기한을 정해 놓고 수소문하여 잡아다가 장(杖)을 치고 여러 날 가두었는데, 마침 섣달 그믐날 밤이어서 정적(情跡)을 참작하여 엄하게 신칙한 다음 풀어 주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더없이 중한 국내에서 금양(禁養)하는 소나무를 거리낌 없이 벤 것은 그 버릇을 따져 보면 천만번 통탄스럽 고 놀랍습니다. 금령을 어기고 벤 원역배들은 그저 태거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으니, 법부에서 조율하여 엄 하게 처리하게 하고, 금령을 어기고 소나무를 벤 이웃 동리의 백성도 법부에서 일체 조율하게 해야할 것입니 다.재관으로 말하면 비록 몇 대 안 되는 소나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금령을 어기고 베어가는 데도 애초에 원(院)에다 보고하지 않은 채 재소(齋所)에서 단지 태거하거나 장을 쳐서 가두기만 하였다가 멋대로 풀어 주 고 말았으니 사체(事體)로 헤아려 볼 때 매우 놀랍습니다. 해당 수봉관유창희는 2개월간 감봉(減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금령을 어기고 베어낸 놈들은 법부에서 조율하여 엄하게 감처하게 하라. 이에 장을 쳐서 가두기는 하였으나 애초에 원에다 보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풀어준 것은 사체에 어긋나는 점이 있다. 해당 재관에 대해 1개월간 감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본 51책 47권 14장 A면 영인본 3책 42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상업상품(商品) / *식생활주류(酒類) / *인사임면(任免) / *사법재판(裁判) / *농업임업 (林業) 순부 11권, 13년(1920 경신 / 일 대정(大正) 9년) 4월 15일(양력) 2번째 기사 홍릉 부근의 금곡민에게 돈을 하사하다 홍릉(洪陵) 부근의 금곡(金谷) 백성들에게 일금 5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능(陵) 주위 소나무의 벌레를 없 애느라고 수고했기 때문이다. 원본 7책 11권 2장 B면 영인본 3책 614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23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37 2) 왕릉의 잣나무 태조 1권 총서 110번째 기사 태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교서 4월, 공양왕이 중사(中使) 를 보내어 문병하고 억지로 일어나게 하였다. 교서(敎書)를 공신(功臣)에게 내려 그 공로를 칭찬하고 내구마(內廐馬) 1필, 백금(白金) 50냥, 비단과 명주 각 5단(端), 금대(金帶) 한 개를 내리고 이내 내전(內殿)에서 위로하는 연회를 개최하였다. 태조에게 내린 교서(敎書)에 이르기를, 중략현릉의 아버지인 의릉(毅陵) 의 기일(忌日)에 재계할 적엔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천둥과 번개하며 우박 이 내렸으며, 그가 작(爵)을 물려받을 적엔 바람이 조묘(祧廟)와 침원(寢園)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뽑고, 대실 (大室)의 망새[鷲頭]가 부러지고 <고려의 우왕의 아버지릉인 현릉이 기일에 조묘와 침원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바람에 뽑혀 왕조의 멸망을 암사> 태종 16권,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1월 26일(경오) 1번째 기사 상왕과 더불어 건원릉에 나가 동지제를 행하다 임금이 상왕(上王)과 더불어 건원릉(健元陵)에 나가 동지제(冬至祭)를 행하니, 각사(各司)에서 한 관원(官員)씩 호종(扈從)하였다. 상왕이 초헌(初獻), 주상(主上)이 아헌(亞獻),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윤(河崙)이 종헌(終 獻)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능 옆에 올라 산세(山勢)를 두루 보고, 임금이 공조 판서(工曹判書) 박자청(朴子靑) 에게 일렀다. 능침(陵寢)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없는 것은 예전 법이 아니다. 하물며 전혀 나무가 없는 것이겠는가? 잡풀 을 베어버리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두루 심으라.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42장 B면 영인본 1책 465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풍속예속(禮俗) <능침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없는 것은 예전의 법이 아니다 잡풀을 베어버리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두르심게 하다.> 세종 11권,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1월 5일(무진) 3번째 기사 지관 이용이 헌릉 왼편 산줄기를 손볼 것을 아뢰다 이용(李庸)이 아뢰기를, 지금 헌릉(獻陵)의 산수(山水) 형세는 회룡고조(回龍顧祖)93)로서 진실로 대지(大地)이오나, 그러나 왼편 산 안 에 조금 밖으로 향한 줄기가 있어 상하고 헤쳐진 언덕이 매우 좋지 못한 것이 되옵니다. 예전에 곽경순(郭景 純)94)이 말하기를, 청룡(靑龍)이 구불구불하였다. 하고, 범월봉(范越鳳)95)노래에도 말하기를, 용처럼 서리었 고 코끼리의 코처럼 말렸구나. 안고 돈 것이 정이 있는 듯하여 멀고 가까운 것 없도다. 돌고 안은 것이 분명 하게 먼저 보이어 오무린 발톱과 감추어진 어금니에 배반함이 없도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비뚤어지고 기 울어진 것이 왼편에 있으면 좋지 못한 것이 된다. 하였사오니, 모두가 마땅히 분변하여서 다스리는 것이 가 할 것입니다. 지현론(至玄論) 96)에 말하기를, 산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법에 규정을 더 첨가시키는 것이 좋다.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밖으로 향한 줄기에 대해 특히 유사에게 명하여 손질을 하도록 하되, 산 안쪽 93) 94) 95) 96) 회룡고조(回龍顧祖) : 산의 지맥(支脈)이 빙 돌아서 본산(本山)과 서로 대하는 지세(地勢)임. 곽경순(郭景純) :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南朝)사람 곽박(郭璞)으로 지술(地術)의 창시자인데, 경순(景純)은 그의 자(字)임. 범월봉(范越鳳) : 명나라 사람으로 지술(地術)에 정통하였는데, 저서로는 심룡입식가(尋龍入式歌) 가 있음. 지현론(至玄論) : 서명(書名).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7

238 으로 향한 곳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어 길기(吉氣)를 배양하게 하소서. 하니, 이양달(李陽達)이 아뢰기를, 수구(水口)에 큰 산이 눌러 막으면, 작은 산은 비록 돌아다보지 않아도 해가 되지 아니합니다. 또 서전(書 傳) 에 말하기를, 혹이 있으면 떼어 버리라. 하였사온데, 항차 이 작은 산은 연한 가지와 남은 생기가 바깥 으로 향한 것이오니, 마땅히 한식에 파헤쳐 버리고 소나무를 심는 것이 의당할까 하나이다. 하니, 임금이 양달의 말을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장 B면 영인본 2책 419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중종 66권, 24년(1529 기축 / 명 가정(嘉靖) 8년) 11월 14일(병오) 1번째 기사 시강관 김희열이 사대부와ㆍ서인의 장례에 대해 건의하다 석강에 나아갔다. 예기 를 강(講)하다가 시강관 김희열(金希說)이 글에 임하여 아뢰었다. 이 책에 서인(庶人)은 그냥 하관(下棺)하고 봉(封)하지도 않고 심지도 않는다. 고 했습니다. 대개 관혼 상제 (冠婚喪祭)에는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에 따라 높이거나 깎아내리는 등급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봉(封)이라 는 것은 구롱(丘壟)97)이라는 것이고, 심는다는 것은 나무 심는 것을 말합니다. 천자는 소나무를, 제후는 잣나 무를, 대부는 밤나무를, 사(士)는 느티나무를 심고, 서인은 나무를 심지 못하는 등 장사지내는 등급이 이같이 엄격합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일은 모르지만, 유독 장사지내는 일만은 서인ㆍ천례(賤隷)ㆍ장사치들도 재력만 있으면 그 표석(標石) 등이 사대부의 분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례(古禮)로 본다면 지극히 참람하니, 금단 을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태백산사고본 33책 66권 53장 A면 영인본 17책 169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 *풍속예속(禮俗) / *신분천인(賤人) < 천자는 소나무를, 제후는 잣나무를, 대부는 밤나무를, 사(士)는 느티나무를 심고, 서인은 나무를 심지 못하는 > 인조 15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2월 5일(임인) 3번째 기사 화친ㆍ군사지원ㆍ급료지급ㆍ강유 등에 대한 표창 및 장만과 이귀의 처벌 등에 관한 논의 대신과 비국 당상이 청대하니 인견하였다. 윤방이 아뢰기를, 적이 평양에 오래 머물면서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한다면 차라리 국가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따를 수 없습니 다. 강인(姜絪)으로 하여금 결단하고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오윤겸이 아뢰기를, 근일에 남도는 군사들이 제법 모였는데 장만(張晩)은 홀로 외로운 군대로는 싸울 수 없다고 하니, 마땅히 이 군사를 장만에게 나누어 보내어 형세를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김류는 아뢰기를, 장만이 이미 윤훤(尹暄)에게 형률(刑律)을 시행하지 못하고 송경(松京)으로 퇴각하여 주둔하고 있으니, 군사 와 말이 아무리 많은들 장만이 무엇할 것입니까. 국가에 기율이 없어 성을 함락당한 장수도 죄를 받지 않습 니다. 이렇게 얼마 안 되는 오합지졸로 성이 없는 곳에 들여보내면 전일처럼 무너져 흩어지지 않으리라고 어 떻게 보장하겠습니까. 하고, 윤방은 아뢰기를, 군사가 없는 장수로 적을 대적하게 하였으니 장만의 입장에서는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호조 판서 김 신국이 아뢰기를, 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급료 얻기를 청하지만 군량도 부족한데 어떻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부터는 싸우는 군사 이외에 전직 조관(朝官) 및 각사의 하인에게는 급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97) 구롱(丘壟) : 무덤 23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39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저들은 모두 호종하기 위해 들어왔는데 급료를 주지 않을 수 있는가. 또 전 조관으로 서 지키는 관직이 없는데도 죽을 땅으로 들어왔으니 그 뜻이 가상하다. 더욱 급료를 주지 않을 수 없으니 우 선 급료를 주라. 하였다. 정백창(鄭百昌)이 아뢰기를, 유림(柳琳)이 태릉(泰陵)의 계하(階下)에서 말을 방목하고 정릉(靖陵)의 재각 주변에서 나무를 베내어, 선왕의 능침으로 하여금 소나무와 잣나무에 가지가 없게 만들었으니, 어찌 이 렇게 하고서도 장수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윤방은 아뢰기를, 백창의 말이 옳습니다. 하였다. 백창이 아뢰기를, 강유(姜瑜)ㆍ윤명은(尹鳴殷)ㆍ한숙일(韓肅一)ㆍ박일성(朴日省) 등의 상소가 진실로 충직한 말이니 마땅히 표창하여 장려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해조로 하여금 상당한 관직을 제수하도록 하라. 하였다. 최명길이 아뢰기를, 당초 서울을 떠나자는 의논을 어찌 이귀만이 주장하였겠습니까. 이원익 역시 이 의논을 주장하였는데도 대간이 한 마디 말도 없다가, 지금에 와서 이귀가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것 으로 만드니, 종말에는 어떤 사람이 또 이귀처럼 논박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김류는 아뢰기를, 어찌 이귀의 한 마디 말로 이런 큰일을 결정하였겠습니까. 장만에게 항복하지 않으 면 달아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더욱 지극히 과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시에 대론이 과연 전도되었다. 하였다. 장유가 아뢰기를, 모문룡(毛文龍)을 접대하는 일 또한 미리 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명길은 아뢰 기를, 우리 나라가 이런 병화를 입었는데도 그가 한 명의 군사도 내보내 구제하지 않았는데 무슨 면목으로 우리에게 요구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미리 헤아릴 수 없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6장 A면 영인본 34책 16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인사 관리(管理) < 태릉(泰陵)의 계하(階下)에서 말을 방목하고 정릉(靖陵)의 재각 주변에서 나무를 베내어, 선왕의 능침으로 하여금 소나무와 잣나무에 가지가 없게 만들었으니, 어찌 이렇게 하고서도 장수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조 17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11월 17일(경진) 2번째 기사 소대하여 중용 을 강하다. 검토관 민응형 등이 언로가 막혔다는 것과 선ㆍ정릉의 상황을 진달하다 상이 소대(召對)를 명하여 중용(中庸) 을 강하였다. 참찬관(參贊官) 윤지경(尹知敬)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임금의 도리는 단지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것일 뿐입니다. 옛날의 소인은 구별하기가 쉬웠으나 지금의 소인은 구별하기가 어려우니, 임금으로서는 쓰고 버림을 삼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자와 소인이 어찌 고금이 다르겠는가. 하자, 지경이 대답하기를, 옛날의 소인은 비록 참소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그 정적(情跡)이 쉽게 드러나 구별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소인은 겉으로는 충신(忠信)한 듯하나 참소하고 아첨하여 못하는 짓이 없으며 계책이 교묘하 고 치밀하기 때문에 쉽게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로부터 흥망과 치란은 현사(賢邪)에 달려 있는 것이니 등용할 때에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검토관 민응형(閔應亨)이 나아가 아뢰기를, 전하의 초기의 정사를 보면 정신을 가다듬어 치적을 이 루고자 하셨으므로 중고(中古)의 어진 임금을 능가하여 태평성대가 올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4 5년 이래 점차 처음과 같지 못하여 정무(政務)가 고식적(姑息的)이고, 안일에 젖어 날짜만 보내어 국가의 위란(危 亂)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까. 비록 아래에 봉행(奉行)하는 훌륭한 신하가 없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39

240 지만, 외부의 의논은 모두 상께서도 실덕(失德)한 일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쇠약해져 난망(亂亡)의 지경에 이 르게 되었다 고 합니다.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으로 가다듬어 회복하는 계책에 분발하도 록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외부 의논이 무슨 일을 가지고 내가 실덕했다고 하는가? 들어서 고치고 싶 다. 하니, 응형이 대답하기를, 전하께서는 성인(聖人)으로 자처하는 성벽(性癖)이 많아 매양 공의(公議)를 거스르고 간언(諫言)을 거절하는 습성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곧바른 논의를 싫어하고 부드러운 말 듣기를 좋아하여 말 때문에 죄를 입은 자가 전후로 잇따르고 있어 이 때문에 곧은 기개가 꺾이고 언로(言路)가 막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덕(聖德)의 큰 흠이며 위망(危亡)의 화를 부르기에 족한 것입니다. 기타 정사(政事)하는 사이에 실덕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 니어서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워 감히 누누이 진달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기사관(記事官) 정유성(鄭維 城)이 나아가 아뢰기를, 소신이 어제 명을 받들고 선릉(宣陵)ㆍ정릉(靖陵)에 가서 삼가 정릉 안에 유림(柳琳)이 나무를 벤 곳을 살펴 보니 곡장(曲墻) 뒤 10보(步) 안에, 큰나무 30여 그루와 내외 청룡(靑龍)ㆍ백호(白虎)에 크고 작은 나무 4천여 그루를 모두 베었었습니다. 또 정자각(丁字閣) 앞 10보 안에 네 그루의 잣나무가 좌우로 심어져 있는데 이는 백년 된 교목(喬木)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무의 크고 작은 가지도 모두 쳐버려 단지 네 그루 원주(元株)만 우 뚝하니 정자각 앞에 서 있어 보기에 매우 참혹하였습니다. 신이 봉심(奉審)하고 서계(書啓)하였으나, 오늘 입 시(入侍)하였으므로 감히 목도한 참상을 다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답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40장 B면 영인본 34책 238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궁관(宮官) / *농업임업(林業) / *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선릉(宣陵)ㆍ정릉(靖陵)에 가서 정릉 안의 나무를 벤 곳을 살펴보니 곡장(曲墻) 뒤 10보(步) 안에, 큰나무 30여 그루와 내외 청룡(靑龍)ㆍ백호(白虎)에 크고 작은 나무 4천여 그루를 모두 베었다. 또 정자각(丁字閣) 앞 10보 안에 네 그루의 잣나무가 좌 우로 심어져 있는데 이는 백년 된 교목(喬木)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무의 크고 작은 가지도 모두 쳐버려 단지 네 그루 원주(元 株)만 우뚝하니 정자각 앞에 서 있어 보기에 매우 참혹하였습니다. > 경수 3권, 2년(1722 임인 / 청 강희(康熙) 61년) 8월 11일(갑자) 2번째 기사 교서를 내리고 사면령을 반포하다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왕은 이르노라. 영원히 뵐 수 없으니 선장(仙仗)98)이 길이 동위(彤圍)99)를 떠났고, 길일(吉日)을 잘 가리니 신감(神龕)100)이 이에 청묘(淸廟)로 올라갔다. 삼전(三殿)의 성대한 의식을 일제히 거행하게 되었으므로, 팔도 에 윤음(綸音)을 선포하게 되었다. 생각건대 우리 선왕(先王)께서는 50년 동안 크고도 성대한 공렬(功烈)을 이룩하셨고, 후사(後嗣)에게도 진실로 천백세토록 편안하게 할 홍모(弘謀)를 전하여 주셨다. 보단(報壇)에 아 름답고,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니 우리의 의기(義氣)가 배로 증가되었고, 장릉(莊陵)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으 니 사람들의 충간(忠肝)을 격동시켰다. 일찍이 일식(日蝕)ㆍ월식(月蝕)처럼 잘못을 고침에 있어 꺼리는 것이 없었으니, 누가 다시 천지(天地) 같은 그 도량에 유감을 품을 수 있겠는가? 침질(寢疾)이 여러 해를 끌었는데 도 백성들을 위한 걱정은 갈수록 더하였고, 예라(禮羅)를 다시 베푸니, 정성은 암혈(巖穴)의 선비에게 쇠폐(衰 廢)하지 않았다. 성사(盛事)는 서루(西樓)의 발자취를 답습하니 악해(嶽海)의 축하가 바야흐로 깊었고, 유제(遺 制)는 장릉(長陵)의 오른쪽을 비워둔 장법(葬法)을 본받았으니 영령(英靈)의 그림자를 비궁(閟宮)에 모셨다. 어 느덧 상기(喪期)가 지나 저장(苴杖)을 버리게 되었고 갑자기 궤연(几筵)을 태묘(太廟)로 옮기게 되었다. 상률 (商律)이 가을을 알리니 하늘의 월성(月星)처럼 빠른 세월이요, 은례(殷禮)에 의지하여 제사하니 묘중(廟中)의 분향(焚香) 연기가 처연하다. 삼가 성모(聖母)의 신주를 함께 받드니 소자(小子)의 추모하는 감회가 깊어지도 98) 선장(仙仗) : 임금의 의장(儀仗) 99) 동위(彤圍) : 대궐(大闕). 100) 신감(神龕) : 신주(神主) 24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41 다. 천수(天壽)를 길게 누리지 못하였으니 복리(福履)가 면면하지 못하였음이 한스럽고, 옥도(玉度)가 한없이 곧으니 성덕(聖德)이 광복(光復)의 경사에서 드러났다. 금여(金輿)와 옥련(玉輦)은 치도(馳道)의 동서(東西)에서 빛났고 작선(雀扇)과 우모(羽旄)는 신악(神幄)의 앞뒤에 나누어 호위하였다. 의장(儀章)이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으니 변두(籩豆)가 정갈하고도 아름다웠다. 이에 금년 8월 11일 갑자일(甲子日)에 삼가 황고(皇考) 숙종 현 의 광륜 예성 영렬 장문 헌무 경명 원효 대왕(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과 황비(皇妣) 광렬 효장 명현 인경 왕후(光烈孝莊明顯仁敬王后), 황비(皇妣) 효경 의열 정목 인현 왕후(孝敬懿烈貞穆仁顯王后)를 태묘(太廟)에 승부(升祔)하였다. 승배(升配)하는 이전(彝典)이 이미 성취되니 온 세상에 가득한 큰 경사(慶事) 를 보게 되었다. 몸소 제물을 진설하여 영원히 사모하는 뜻을 갱장(羹墻)에 붙이고, 귀에 악기(樂器) 소리 가 득하여 즐겁지 않음을 종고(鍾鼓)에서 듣게 되었다. 아득한 황천길이 끝이 없으니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 을 훔치고, 곤면(袞冕)이 어찌 편안하랴 생각하니, 가슴속에 개연(慨然)한 마음이 가중된다. 정리(情理)와 예문 (禮文)에 흠결이 없으니, 제사지내는 일이 잘 갖추어졌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교계(敎戒)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으니 옥술잔을 받들어 올림에 경건한 마음이고, 성대하게 마치 신(神)이 위에 있는 듯이 느껴지니 옥궤(玉 几)에 기대어 임종(臨終)의 명(命)을 도양(導揚)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깊은 정성으로 선왕(先王)을 받드는 마음을 미루어 큰 은전(恩典)을 널리 천하에 베푸는 바이다. 이달 11일 새벽 이전부터 하도록 하라. 아! 온 나라에 효도가 흥기되지 않는 데가 없는 것은 선조(先朝)께서 감싸 어루만져 준 깊은 은혜를 생각한 것이 고, 만백성들은 똑같이 천성(天性)을 타고났을 터이니, 오늘날 함육(涵育)한 지극한 뜻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교시(敎示)하니 마땅히 죄다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홍문관 제학 김일경(金一鏡)이 지어 올렸다.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3장 B면 영인본 41책 372면 분류 *왕실(王室) 영조 11권, 3년(1727 정미 / 청 옹정(雍正) 5년) 3월 17일(갑진) 2번째 기사 큰 바람이 불어 선릉의 회나무와 잣나무가 부러져서, 위안제를 지내도록 명하다 큰 바람이 불어 선릉(宣陵)의 회(檜)나무와 잣[栢]나무가 부러졌는데, 유사(有司)에게 위안제(慰安祭)를 지내도 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20장 B면 영인본 41책 625면 분류 *왕실(王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선릉(宣陵)에 바람이 불어 회(檜;전나무)나무와 잣[栢]나무가 부러져 위안제(慰安祭)를 지내도록 명하다. > 영조 30권, 7년(1731 신해 / 청 옹정(雍正) 9년) 9월 26일(병술) 1번째 기사 임금이 교하 장릉에 거둥하여 밤 4시경에 친향하고 손수 잣나무를 심다 임금이 교하(交河)장릉(長陵)의 길에 거둥하여, 옛 능에서 옮겨 와 집을 지은 백성들에 대해 묻고, 본군(本郡) 에서 돌보고 도와줄 것을 명하였다. 길에서 군수(郡守)의 치적을 칭송한 목비(木碑)를 보고, 해당 군수 홍중주 (洪重疇)를 불러서 하유(下諭)하기를, 비석을 세우는 것은 실정(實政)이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니, 그것에 힘쓰라. 하였다. 저녁에 새 능에 나아가 홍살문 밖에서 곡(哭)과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고는 능 위와 비각(碑閣)을 봉 심(奉審)하였다. 이날 밤 재전(齋殿)에서 자다가 밤 4시경에 예(禮)대로 친향(親享)을 거행하였는데, 애모(哀 慕)를 스스로 견디지 못하니, 측근의 신하들이 모두 감동하였다. 또 손수 잣나무를 수십 군데 심고 여러 신하 들에게 하유(下諭)하기를, 옛 능에 효종(孝宗)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 있는데, 이번에 옮겨 오지 못해서 마음이 매우 슬프다. 내가 그런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41

242 까닭으로 친히 심는 것이니, 그것이 자라기를 기다려 나누어 심는다면 이것도 또한 계술(繼沭)인 것이다. 하 였다. 남원군(南原君)이설(李 )에게 가자(加資)하였으니, 그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23책 30권 27장 A면 영인본 42책 279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 < 영조가 신장릉(長陵)에 참배가 새벽 네시경에 일어나 손수 잣나무를 수십 군데 심고 여러 신하들에게 하유(下諭)하기를, 옛 능에 효종(孝宗)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 있는데, 이번에 옮겨 오지 못해서 마음이 매우 슬프다. 내가 그런 까닭으로 친히 심 는 것이니, 그것이 자라기를 기다려 나누어 심는다면 이것도 또한 계술(繼沭)인 것이다. > 조 85권, 31년(1755 을해 / 청 건륭(乾隆) 20년) 7월 17일(기축) 3번째 기사 밤에 대풍이 불어 문묘ㆍ서무가 부서지자 위안제를 지내다 밤에 비바람이 크게 불어 문묘(文廟) 서정(西庭)의 큰 잣나무 한 그루가 부러져 서무(西廡)의 기둥과 처마가 상했다. 예조에서 아뢰어 위안제(慰安祭) 행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1책 85권 11장 B면 영인본 43책 590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왕실(王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밤에 큰바람이 불어 문묘(文廟) 서정(西庭)의 큰 잣나무 한 그루가 부러져 서무(西廡)의 기둥과 처마가 상했다. 예조에서 위 안제(慰安祭) 행하다.> 영조 102권, 39년(1763 계미 / 청 건륭(乾隆) 28년) 8월 1일(을유) 4번째 기사 서문배의 아내 정씨와 임동삼의 아내 오소사의 마을에 정표하라고 명하다 전라도 장수현(長水縣)의 사인(士人) 서문배(西門培)의 아내 정씨(鄭氏)와 양인(良人) 임동삼(林東三)의 아내 오소사(吳召史)의 마을에 정표(旌表)하라고 명하였다. 또 능주(綾州)의 사인(士人) 이광리(李光离)ㆍ이광곤(李 光坤)과 장성(長城)의 사인 공필장(孔弼章)에게 휼전(恤典)을 시행하라고 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제도(諸道)에 명하여 효열(孝烈)이 특이한 사람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호남(湖南)의 전 도신(道臣) 인 원경순(元景淳)이 계문(啓聞)했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정씨는 행실이 깨끗한 것으로 향리 (鄕理)에 소문이 났는데 갑자기 강포한 자의 겁침(劫侵)을 당하여 치마를 찢기기에 이르자 정씨가 큰소리로 외치니, 이웃 사람이 달려가 구해주어 드디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면하였다. 정씨가 말하기를, 분변하지 않 고 죽으면 누가 나의 뜻을 밝혀줄 수 있겠는가? 하고, 즉시 관(官)에 고발하여 그 강포한 자를 장살(杖殺)케 하였다. 그리고나서 울면서 말하기를, 나의 몸은 비록 더렵혀지지 않았으나 한쪽 팔은 그에게 비틀렸었으니, 이를 그대로 두면 온몸이 더러워진다. 하고, 칼을 가져와 베어내고 드디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오소사는 일찍 과부(寡婦)가 되어 시부모를 봉양 하면서 수절(守節)하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개가(改嫁)시키려 하자, 오 소사가 말하기를, 남편의 무덤에 가서 한번 곡(哭)한 다음 허락하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젖먹이 어린아이를 업고 가서 통곡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왜 먼저 가서 나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게 합니까? 하면서, 이에 손으로 얼어 붙은 무덤을 마구 파니 열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하여 아기와 어머니가 드 디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나무하는 여인(女人)이 그것을 보고 불쌍하게 여겨 부축하고 남편의 집안 사람 집 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위로하고 달래었으나 끝내 듣지 않고 약(藥)을 마시고 죽었다. 이광리 형제는 거 상(居喪)을 잘 하였는데, 밤에 실화(失火)하여 시체가 든 관(棺)이 타게 되자 이광리가 불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아우도 따라서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관을 아래 위에서 끌어안은 채 함께 불에 타서 죽었는데, 관은 아무 탈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효성에 감동된 소치라고 일컬었다. 공필장은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는데, 어버이가 돌아가게 되자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장사지내고나서는 손수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고서 초동 (樵童)들에게 경계시키기를, 이것이 바로 공효자(孔孝子)의 무덤이니, 나무를 베지 말라. 하였다. 24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43 태백산사고본 69책 102권 11장 B면 영인본 44책 142면 분류 *윤리강상(綱常 < 장사지내고 나서는 손수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고서 초동(樵童)들에게 경계시키기를, 이것이 바로 공효자(孔孝子)의 무덤이 니, 나무를 베지 말라. >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8월 9일(경오) 4번째 기사 예조가 대성전의 나무가 부러진 일로 위안제를 지낼 것을 청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어제 비바람으로 인해 대성전(大聖殿) 동쪽 정원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부러졌습니다. 위안제 (慰安祭)를 오는 12일에 지내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3책 109권 16장 B면 영인본 44책 262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천기(天氣)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 *왕실종사(宗社) < 비바람으로 인해 대성전(大聖殿) 동쪽 정원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부러졌습니다. 위안제(慰安祭)를 올리다. > 영조 127권, 52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3월 6일(정축) 12번째 기사 신시에 소렴례를 행하다 신시(申時)에 소렴례(小殮禮)를 행하였다. 왕세손이 침문(寢門) 밖에 부복(俯伏)하고 집사(執事) 박명원(朴明源) ㆍ김한기(金漢耆)ㆍ김효대(金孝大)가 소렴례를 행하였다. 하령하기를, 모든 일은 헷갈리게 되기 쉬우니, 집사들이 각각 의대(衣襨)를 가지고 차례로 깔라. 하였다. 집사하는 자가 먼저 용문석(龍紋席)을 설치하고 그 다음에 욕(褥)을 깔고 그 다음에 교(絞)101)를 깔고 그 다음에 유청 금선 금(柳靑金線衾)을 깔고 그 다음에 백운문 대단 고(白雲紋大緞袴)를 깔고 그 다음에 진홍 강사포(眞紅絳紗袍)를 깔고 그 다음에 옥색ㆍ자적ㆍ초록 광직 삼색 중치막(玉色紫的草綠廣織三色中赤莫)을 깔 고 그 다음에 연록 운문 대단 협수(煙綠雲紋大緞狹袖)ㆍ연두색 희문단 협수(烟荳色稀紋緞狹袖)를 깔았다. 끝 나고서 협시(挾侍)가 영상(靈床)을 염석(殮席)에 옮겨 모셨다. 집사하는 자가 우임(右袵)하고 빈 곳을 남광직 토수(藍廣織吐手)ㆍ백광직 행전(白廣織行纏)ㆍ다홍 대단 도포(多紅大緞道袍)ㆍ다홍 항라 조복(多紅杭羅朝服)으 로 채웠다. 금(衾)을 여미려 하는데, 왕세손이 영상(靈床)을 잡고 반호(攀號)102)하며 떨어지지 않으므로, 신하 들이 교(絞)를 묶기를 청하였다. 교를 묶고 나자, 왕세손이 부복해서 곡하여 극진히 애도하고 자리에 있던 자 도 다 곡하였다. 협시(挾侍)와 집사가 어상(御床)에 도로 모시니, 왕세손이 영상 동쪽에 나아가 부복해서 곡하 여 극진히 애도하고 자리에 있던 자도 다 곡하였다. 별간역(別看役) 허규(許圭)가 어상곁에 들어가 견양(見樣) 을 내었는데, 길이는 일곱 자이고 너비는 두 자 한 치이고 높이는 한 자 한 치였다. 종척(宗戚)과 여러 신하 들이 물러나갔다. 소렴할 때의 의대(衣襨)는 다홍 광직 공복(多紅廣織公服)ㆍ옥색 유문단 배자(玉色有紋緞背 子)ㆍ강사포(絳紗袍)ㆍ남유문사 도포(藍有紋紗道袍)ㆍ보라 유문단 중치막(甫羅有紋緞中赤莫)ㆍ백초 횡교(白綃 橫絞)ㆍ초록 유문사 답호(草綠有紋紗褡 )ㆍ초록 유문단 장의(草綠有紋緞長衣)ㆍ백초 장교(白綃長絞)ㆍ다홍 광 직 조복(多紅廣織朝服) 상(裳)ㆍ폐슬(蔽膝)을 갖추었다. ㆍ초록 유문 향직 중치막(草綠有紋鄕織中赤莫)ㆍ유 록 금선 금(柳綠金線衾)ㆍ두록 유문단 중치막(豆綠有紋緞中赤莫)ㆍ보라 유문릉 중치막(甫羅有紋綾中赤莫)ㆍ 보라 향직 장의(甫羅鄕織長衣)ㆍ초록 광직 도포(草綠廣織道袍)ㆍ보라 유문릉 장의(甫羅有紋綾長衣)ㆍ남공단 협수의(藍貢緞狹袖衣)ㆍ남광직 도포(藍廣織道袍)ㆍ보라 유문 대단 장의(甫羅有紋大緞長衣)ㆍ보라 공단 협수의 101) 교(絞) : 염습할 때에 시신을 묶는 베. 교포(絞布). 염포(殮布). 102) 반호(攀號) : 반백비호(攀柏悲號)의 준말. 중국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의 왕부(王裒)가 아버지 왕의(王儀)가 사마 소(司馬昭)의 손에 죽자, 묘소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하면서 조석(朝夕)으로 묘소 곁에 있던 잣나무를 붙잡고 곡하니, 나무가 눈물에 의해 고사(枯死)했다는 고사(故事). 즉 어버이의 상(喪)에 몹시 슬퍼함.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43

244 (甫羅貢緞狹袖衣)ㆍ초록 유문릉 장배자(草綠有紋綾長背子)ㆍ옥색 유문단 중치막(玉色有紋緞中赤莫)ㆍ남공단 중치막(藍貢緞中赤莫)ㆍ두록 유문단 중치막(豆綠有紋緞中赤莫)ㆍ두록 유문릉 장의(豆綠有紋綾長衣)ㆍ연남 공 단 중치막(軟藍貢緞中赤莫)ㆍ옥색 유문릉 장의(玉色有紋綾長衣)ㆍ두록 무문주 장의(豆綠無紋紬長衣)ㆍ다홍 광 직 도포(多紅廣織道袍)ㆍ자적 유문단 답호(紫的有紋褡 )ㆍ난두색 답호(爛豆色褡 )ㆍ남공단 중치막(藍貢緞中 赤莫)ㆍ침향 희문단 장의(沈香稀紋緞長衣)ㆍ백운문 대단 고(白雲紋大緞袴)ㆍ연남 공단 중치막(軟藍貢緞中赤莫) ㆍ다홍 유문릉 답호(多紅有紋綾褡 )ㆍ남광직 토수(藍廣織吐手)ㆍ자적 향직 중치막(紫的鄕織中赤莫)ㆍ옥색 광 직 장의(玉色廣織長衣)ㆍ백광직 행전(白廣織行纏)ㆍ초록 광직 중치막(草綠廣織中赤莫)ㆍ옥색 향직 장의(玉色鄕 織長衣)ㆍ옥색 광직 중치막(玉色廣織中赤莫)ㆍ남선단 도포(藍扇緞道袍)ㆍ보라 궁초 장의(甫羅宮綃長衣)ㆍ초록 광직 중치막(草綠廣織中赤莫)ㆍ초록 대단 답호(草綠大緞褡 )ㆍ옥색 유문 광직 장의(玉色有紋廣織長衣)ㆍ자적 광직 장의(紫的廣織長衣)ㆍ유록 대단 답호(柳綠大緞褡 )ㆍ옥색 유문사 배자(玉色有紋紗背子)ㆍ두록 광직 장 의(豆綠廣織長衣)ㆍ초록 유문사 배자(草綠有紋紗背子)ㆍ보라 유문릉 장의(甫羅有紋綾長衣)ㆍ두록 유문단 배자 (豆綠有紋緞背子)이었다. 소렴례가 끝나자, 조정(朝廷)에서 중궁전(中宮殿)에 정후(庭候)하고 정원(政院)ㆍ옥당 (玉堂)ㆍ약방(藥房)에서 중궁전ㆍ혜빈궁(惠嬪宮)ㆍ세손궁(世孫宮)ㆍ빈궁(嬪宮)에 정후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9장 B면 영인본 44책 536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반백비호; 시묘(侍墓)하면서 조석(朝夕)으로 묘소 곁에 있던 잣나무를 붙잡고 곡하다.> 정조 13권, 6년(1782 임인 / 청 건륭(乾隆) 47년) 6월 2일(정묘) 2번째 기사103) 첨지중추부사 정술조의 내수사를 혁파하는 것 등에 관한 상소문 중략 함흥(咸興)의 본궁(本宮)은 곧 우리 성조(聖祖)께서 용잠(龍潛)하시던 구기(舊基)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 울 창창하여 아직도 당일의 수택(手澤)이 남아 있고 궁전(宮殿)이 엄숙하고 근엄하여 아직도 유민(遺民)들이 우러러 의지하고 있으니, 상재(桑榟)의 고향은 거의 한(漢)나라고조(高祖)의 풍산(豊山)ㆍ패수(沛水)와 같고 활 과 삿갓을 보장(寶藏)한 것은 주(周)나라의 홍벽(弘壁)ㆍ완염(琬琰)과 같으니, 이것이 얼마나 지중(至重)하고도 지경(至敬)스러운 곳입니까? 그런데 삼가 듣건대 향사(享祀) 때에는 단지 내사(內司)의 소임(所任)으로 하여금 관천(祼薦)하는 예(禮)를 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신은 의당 전주(全州)에 있는 경기전(慶基殿)의 예(例)와 같이 인근에 있는 수령을 택차(擇差)하여 제향을 지내게 하는 것이 실로 사의(事宜)에 합치된다고 여겨집니다. 국 가의 사전(祀典)은 오세(五世)가 되면 조천(祧遷)하게 되어 있는데 세자(世子)의 묘(廟)에 이르러서도 그 예 (禮)는 이를 따른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 소현묘(昭顯廟)3181) 는 이미 신위(神位)를 철거하 고 묘향(廟享)을 파하기에 합당한 것인데 더구나 처지가 제향할 바가 아니고 또 불경(不經)스러운 것인데야 말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순회 세자(順懷世子)3182) 의 신위(神位)가 아직도 봉은사(奉恩寺)의 한 칸 방에 봉안되어 있는데, 매양 기일(忌日)이나 명절(名節)을 당하면 치곤(緇髡)들이 제향을 지낸다고 합니 다. 당초 이 절에다 이 신위를 봉안하게 된 경로가 매우 의아스럽고도 괴이합니다. 세상에서는 혹 그 묘(墓) 가 있는 것을 인하여 원당(願堂)3183) 을 세우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미 묘의 곁이 아니니 원당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이미 원당이 아니라면 향사(享祀)를 지내는 것이 또 불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예전 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실로 설만스러운 폐단이 있습니다. 의당 파거(罷去) 하는 것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대저 원(園)의 뜻은 능(陵)의 버금이고 묘(墓)보다는 중한 것입니다. 삼가 한(漢)나라와 송(宋)나라의 고사(故 事)를 상고하건대 모두 성인(聖人)을 낳으시어 종사(宗社)와 신인(神人)의 주인이 되게 한 데 대한 공을 갚고 덕에 보답하기 위한 방도였던 것인데, 아조(我朝)에서 봉원(封園)하는 것도 또한 이를 모방하여 행하는 것으 로 실로 조상에게 제사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에 합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명원(仁明園)을 창설한 103) 고려의 우왕의 아버지릉인 현릉이 기일에 조묘와 침원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바람에 뽑혀 왕조의 멸망을 암사 24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45 데 이르러서는 끝내 고례(古例)가 아닙니다. 원과 묘가 다른 것은 단지 한 글자 사이를 다투는 것이지만 융 쇄(隆殺)하는 즈음에 있어서의 예의(禮義)는 절연(截然)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비록 묘라고 일컫더라도 다른 빈어(嬪御)의 산(山)에 견주어 보면 이미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인명원(仁明園)의 원(園)자는 이를 그대 로 보존시켜 후세에 보이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중략 < 함흥(咸興)의 본궁(本宮)은 곧 우리 성조(聖祖)께서 용잠(龍潛)하시던 구기(舊基)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울창창하여 아직도 당일의 수택(手澤)이 남아 있고 궁전(宮殿)이 엄숙하고 근엄하여 아직도 유민(遺民)들이 우러러 의지하고 있다. > 정조 22권,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8월 10일(경술) 1번째 기사 민회묘의 수리를 명하다 민회묘(愍懷墓)104)를 수리하라고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민회(愍懷)의 친척에게 들었는데, 국내(局內)에 있는 묘소에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지한 바람에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얽히고 설켜서 보기에 매우 참혹하다고 하였다. 이번 민회묘를 수리한 일은 영릉(寧陵)105)께서 형 제간에 우애하였던 성덕을 본받은 것이다. 더구나 숙종무술년106)에 빈(嬪)의 작위(爵位)를 회복하고 이어 민 회의 묘소에 합장(合葬)을 하면서 사실을 기록한 시(詩)까지 지으시고, 특별히 국내의 묘소에 제사지내는 것 을 금지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또 선왕조 갑오년107)에 민회의 선영 묘소에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지 말라 고 하셨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또 수교(受敎)를 따르지 않아 이처럼 황폐해져 버렸다고 한다. 본 고을과 묘 소 밑에 살고 있는 옛 정승의 자손들에게 지시하여 같이 수리하게끔 하라. 또 숙종께서 지으신 글을 보건대, 강문명(姜文明) 등의 묘소에 모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금지하지 말라. 는 분부가 있었으니, 지금 역시 이 분부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얼마 안되어 문정공(文貞公)강석기(姜碩期)의 후손 강명달(姜命達)을 조용(調用)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19장 A면 영인본 45책 589면 분류 *풍속예속(禮俗) < 민회(愍懷)의 친척에게 들었는데, 국내(局內)에 있는 묘소에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지한 바람에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얽히 고 설켜서 보기에 매우 참혹하다고 하였다. > 정조 27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2월 13일(경자) 1번째 기사 영릉 전알에 수고한 교하군에게 세금ㆍ환곡의 탕감을 명하고, 장릉에서 작헌례를 행하다 대가가 교하 군재를 출발하여 노차에서 본군의 부로들을 불러 접견하고서 특별히 금년 조세의 절반을 견감 해주고 임인ㆍ계묘년 이전의 묵은 환자곡을 탕감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다 하여 탁지부로 하 여금 곡물의 필요한 양을 계산하여 그것으로 영구히 여유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게 하고, 경내의 사서인 중 나이 70세 이상인 사람에게는 음식물을 급여하고, 80세 이상으로 거둥을 세 번 겪은 사람에게는 각각 한 자 급씩을 주게 하였다. 그리고 이어 장릉(長陵)으로 가서 작헌례를 행하고 전교하기를, 고향의 나무도 오히려 공경하는 것인데 하물며 손때가 묻은 나무이겠는가. 선왕조 신해년에 파주(坡州)에서 본 능으로 이장하고서, 효묘(孝廟)께서 옛 능소에다 손수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으셨던 고사를 따라 이 나무 104) 105) 106) 107) 민회묘(愍懷墓) :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빈(嬪) 강씨(姜氏)의 묘. 영릉(寧陵) : 효종(孝宗). 무술년 : 1718 숙종 44년 갑오년 : 1774 영조 50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45

246 를 심으셨던 것인데 지금 저렇게 울창하다. 만약 이 나무에 표지를 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무에 대부(大夫)의 명호를 붙인 것은 옛날에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물며 더 소중한 이 나무이겠는가. 어의 궁(於義宮)ㆍ용흥궁(龍興宮)의 소나무에도 자급(資級)을 주라고 명하였으니, 이 역시 선대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 방법인 것이다. 선왕이 손수 심으신 잣나무 세 그루에 구리로 울타리를 치고 수식(手植)이란 두 글자를 새겨놓는다면 뒤에 이 능을 전알하고 이 나무를 보는 자가 누가 감히 공경하고 감격하지 않겠는가. 이 전교 를 능지(陵誌)에다 기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8장 B면 영인본 46책 27면 분류 *왕실(王室) / *재정(財政) < 정조가 장릉(長陵)에 들러 고향의 나무도 오히려 공경하는 것인데 하물며 손때가 묻은 나무이겠는가. 선왕 조 신해년에 파주(坡州)에서 본 능으로 이장하고서, 효묘(孝廟)께서 옛 능소에다 손수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 으셨던 고사를 따라 이 나무를 심으셨던 것인데 지금 저렇게 울창하다. 만약 이 나무에 표지를 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무에 대부(大夫)의 명호를 붙인 것은 옛날에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물며 더 소 중한 이 나무이겠는가. 어의궁(於義宮)ㆍ용흥궁(龍興宮)의 소나무에도 자급(資級)을 주라고 명하였으니, 이 역 시 선대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 방법인 것이다. 선왕이 손수 심으신 잣나무 세 그루에 구리로 울타리를 치고 수식(手植)이란 두 글자를 새겨놓는다면 뒤에 이 능을 전알하고 이 나무를 보는 자가 누가 감히 공경하고 감 격하지 않겠는가. 이 전교를 능지(陵誌)에다 기재하라.> 정조 대왕 행장(行狀)108) 중략 13년 봄에 영릉(永陵)ㆍ순릉(順陵)ㆍ공릉(恭陵)을 배알하고 또 장릉(長陵)을 배알한 후 하교하기를, 조상의 고향조차도 조심하고 존경하는 것인데 하물며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겠는가. 선왕조 신해년에 본릉 으로 옮겨 심은 것은 효묘(孝廟)가 손수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던 고사를 따른 것으로서 지금 저렇게 푸른 데 만약 표를 해두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하고, 영종이 손수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 두 글자를 새겨두었다. 그때 왕은 원침(園寢)을 옮길 뜻을 이미 결정하고 신해년에 있었던 일에 느끼는 바 있어 먼저 장릉(長陵)을 배알한 다음 홍릉(弘陵)ㆍ창릉(昌陵)ㆍ명릉(明陵)을 두루 배알했고 7월에는 영우원을 옮겨 모실 절차를 정하 였다. 왕은 즉위 초부터 원침의 형국이 너무 좁고 자리도 좋지 않다 하여 계절 따라 살피러 올 때마다 근심 걱정에 싸였었고 언젠가는 또 지사(地師)를 명하여 선릉(先陵)의 표해둔 곳과 기호(畿湖)의 여러 산들을 답사 하게 하였던 바 지난 기해년에 정해두었던 수원(水原)의 화산(花山)이 가장 좋은 자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와서 금성위(錦城尉)박명원(朴明源)이 상소하여 대례(大禮)를 서둘러 거행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왕은 대신(大臣)ㆍ각신(閣臣)ㆍ예관(禮官)ㆍ종친(宗親)ㆍ의빈(儀賓) 그리고 문관ㆍ음관ㆍ무관 2품 이상을 다 불러 그 상소문을 보이자 입을 모아 이르기를, 도위(都尉)의 상소야말로 종묘 사직을 위한 한도 끝도 없는 대계(大計)이온데 감히 이의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 까. 하였다. 왕은 울면서 하교하기를, 산리(山理)가 있는지 없는지 그야 내가 어떻게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선유(先儒)들도 저기가 좋겠다 여기 가 좋겠다라고 한 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그러한 이치가 없다고 할 수도 없겠으나 그러나 그 술인(術 人)들 말만 믿고 경솔하게 영역(瑩域)을 옮긴다는 것은 필부ㆍ서인으로서도 그래서 안 될 일인데 더구나 국 108) <능침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없는 것은 예전의 법이 아니다 잡풀을 베어버리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두르심게 하다.> 24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47 가의 지극히 중대한 일이겠는가. 다만 나에 있어서는 너무나 원통한 한이 수십 년을 두고 지금까지도 밤낮 마음에 맺혀 있어 부모의 장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흙이 피부에 닿는다는[土親膚] 이 세 글자만 생각하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싶은 것이다. 도위가 상소문 내에다 5개 조항을 열거했는데 그것은 도위 일개인의 말이 아닌 것이다. 지금 내 뜻이 먼저 정해져 있는데 다행히도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으니 옮겨 모시는 일을 서둘러야겠다. 그런데 옮겨 모시자면 수원의 화산만한 곳이 없다. 신해년의 의궤(儀軌)가 있고 옛분들의 문자에도 이미 정론이 있으니 이제야 숙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수원 그 한 곳을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 겨 오늘까지 기다려주었으니 그것이 어디 사람 힘으로 될 일인가. 하여, 제신들이 같은 목소리로 칭하하였다. 이에 대신과 예관 그리고 서운관ㆍ장작감의 제신들을 명하여 우 선 영우원 봉심부터 하게 했는데 여러 사람들 의견이 도위의 상소 내용과 꼭 들어맞았고 또 새로 지정한 수 원 땅도 봉심하게 했는데 모두가 하늘이 만들어둔 길지라고 하여 이에 화산의 계좌(癸坐)바닥에다 원침을 정 하고 계축년 영릉(寧陵) 천장 때와 신해년에 장릉(長陵) 천장 때의 의궤를 참고 모방하여 행하기로 하였다. 원침을 정한 후에는 또 상설(象設) 일을 계획하도록 하면서 총호사(摠護使)에게 하교하기를,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 자기 어버이에게까지 절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성인의 교훈일진대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는 다하여 되도록 최고로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다. 하고, 병풍석(屛風石)과 와첨(瓦簷) 그리고 상석(裳石)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하교하기를, 내가 원침 상설에 있어 무엇이든지 최고를 쓰려고 한 것은 광릉(光陵)의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성조(聖祖)의 수교(受敎)도 있는데 만약 이 뒤의 사왕(嗣王)이 오늘의 이것을 보고서 혹시라도 제도 에 벗어나는 일을 다시 한다면 그것은 나의 본의(本意)가 아니다. 하였다. 중략<영종이 손수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 두 글자를 새겨두었다.> 순조 1권, 즉위년(1800 경신 / 청 가경(嘉慶) 5년) 9월 2일(신사) 2번째 기사 국장 도감에서 올린 건릉 정자각의 상량문 중략 어로(御路)가 곧바로 소나무ㆍ잣나무 사이로 연결되어 있어 정신과 기맥(氣脉)이 서로 관통되고 있으며 유지 (遺志)는 오래도록 분유(枌楡)에 부치려 하였으므로 부로(父老)와 부유(婦孺)들이 아직도 이야기로 전하고 있습 니다. 중략. 잣나무 기둥, 소나무 서까래 아름다운 장식이 영롱(玲瓏)하게 빛나고 바람에 나부끼는 구름 깃발은 신리(神 理)의 기뻐하심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중략 철종 대왕 애책(哀冊文) 중략 푸른 잣나무가 두 능침(陵寢)을 뒤덮고 있습니다. 일찍이 우모(羽旄)가 여기에 임어(臨御)한 적이 있었는데, 진실로 좋은 성토(星土)임을 말하였습니다. 이곳은 만년을 안주할 택조(宅兆)인데 성인(聖人)이 안장(安藏)되 기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중략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47

248 순부 10권, 12년(1919 기미 / 일 대정(大正) 8년) 2월 13일(양력) 2번째 기사 홍릉의 빈전에 민영후로 하여금 향을 올리게 하고 친히 제문을 짓다 홍릉(洪陵)의 빈전(殯殿)에 친히 진향(進香)하는 것은 자작(子爵) 민영휘(閔泳徽)를 보내어 섭행(攝行)토록 하 였다. 친히 지은 제문(祭文)에, 인자한 모습이 떠나보낸 지 이에 2기(紀)가 되었는데, 휘음(徽音)은 어제와 같도다. 유쾌한 얼굴빛은 어느 때 였든가? 시와 노래로 자식을 보살펴 기르셨도다. 하늘과 땅은 끝이 없는데 동성(東城)은 밀접하고 가까웠도 다. 능(陵)의 잣나무는 이미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근심을 품고 걱정하니, 훌륭하신 아버님에 의지할 뿐이 다. 금일 아버님이 돌아가셔 거듭 재앙이 내리니, 황황(皇皇)한 슬픔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뼈를 사무치는도 다. 빠른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장차 발인(發靷)하려 하는데 금곡(金谷)에 아버님이 생전에 정하신 무덤자리 는 그 점괘가 길조로다. 어찌 부우산(鮒隅山)에서 점을 치고 어찌 상설(象設)로 옮겨 오묘한 조화를 다시 보 겠는가? 옥음(玉音)을 받들자니 정신이 혼미하여 슬픔에 의지하였다. 찬궁(欑宮)과 장막(帳幕)은 고요하기만 한데 보이는 곳마다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도다. 슬픔에 빠져 어찌 맡은 일을 감당하겠는가? 영세토록 편안하 게 받들고자 하니 우뚝 선 저 오잠(烏岑)에 감히 향을 마련하여 비오니 높으신 영혼은 흠향하소서. 하였다. 원본 7책 10권 5장 A면 영인본 3책 607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3) 왕릉의 전나무 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0월 27일(갑술) 3번째 기사 예조에서 봉상시서 만드는 원단은 제사후 새로 갖추어 사용토록 건의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삼가 두씨통전 을 상고하건대, 주나라에서 하늘에 제사할 때에, 술 담는 준(尊)과 제물 담는 그릇에 있어 서, 기물은 질그릇[瓦]으로 하고, 술잔[爵]은 바가지[匏]로 하고, 또 전작(樿勺)을 썼다. 하였는데, 주(注)에 이 르기를, 백리목(白理木)109)으로 구기[勺]를 한다. 하였습니다. 이번 봉상시(奉常寺)에서 만드는 원단(圓壇)의 제기 속에 보(簠)ㆍ궤(簋)ㆍ대준(大尊)ㆍ상준(象尊)ㆍ호준(壺尊)ㆍ저준(著尊)ㆍ희준(犧尊)ㆍ산뢰(山罍)ㆍ뇌세(罍 洗)ㆍ향로(香爐)는 자기(磁器)를 쓰고, 촉대(燭臺)와 전작은 백리목을 써서 모두 체제에 의하여 제조하고, 박술 잔은 봉상시로 하여금 씨를 심어서 예비하게 할 것이며, 그 촉대와 전작과 박술잔 등은 쓴 뒤에는 묻어버리 도록 하고, 비록 제사에 쓰지 아니한 것이라도 입추(立秋)후에는 법식에 의하여 땅에 묻고, 다음 제사 때에는 다시 갖추어 제사하도록 하여야 되겠나이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7책 22권 8장 B면 영인본 2책 56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세종 48권, 12년(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년) 5월 24일(계해) 1번째 기사 병조에서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 병선을 제조할 것을 건의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109) 백리목(白理木) : 전나무 24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49 각 포(浦)의 병선은 모두가 마르지 아니한 송판(松板)으로 만들고 또 나무못을 썼기 때문에, 만일 풍랑을 만 나면 이어 붙인 곳이 어그러지고 풀리기 쉬우며, 또 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새고 젖어서 빨리 썩게 되어 7, 8년을 견디지 못하고, 또 개조하기 때문에 연변의 소나무가 거의 다 없어져 장차 이어가지 어려울 형편입 니다. 중국 배도 역시 소나무로 만들었으나, 2, 30년을 지날 수 있사오니, 청컨대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서 쇠못을 써서 꾸미고 판(板) 위에는 회(灰)를 바르며, 다시 괴목판(槐木板)을 써서 겹으로 만들어 시험하되, 만 약 괴목을 구하기 어려우면 각 포(浦)에 명하여 노나무[櫨]ㆍ전나무[檜]ㆍ느릅나무[楡]ㆍ가래나무[楸] 등을 베 어다가 바다에 담가 단단하고 질긴가, 부드럽고 연한가를 시험하여 사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5책 48권 23장 A면 영인본 3책 238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 *교통수운(水運) 광해 121권, 9년(1617 정사 / 명 만력(萬曆) 45년) 11월 17일(무인) 5번째 기사 인왕산에 나무를 심도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인왕산(仁王山)은 벌거숭이산이 되고 나무가 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소나무 씨가 나는 곳에 속 히 통지하여 넉넉히 받아다가 도감의 차지중사(次知中使)와 내원내관(內苑內官)의 입회하에 오는 정월부터 시 작해서 후원 곳곳에 심도록 하고, 백향목(白香木)과 전나무[檜木]도 유의하여 곳곳에 심게 할 것을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미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32장 B면 영인본 32책 638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농업임업(林業) 순조 27권, 25년(1825 을유 / 청 도광(道光) 5년) 6월 12일(무진) 1번째 기사 헌릉 벌목에 관련하여 책임자들을 모두 엄벌하다 이보다 앞서 광주 유수(廣州留守) 김재창(金在昌)이 헌릉(獻陵)의 나무 밑둥치를 적간(摘奸)한 형지(形止)를 치 계하였는데, 임금이 크게 경척(驚惕)해 능관(陵官) 등을 나문(拿問)하여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능관 서경보(徐 京輔) 등이 공초하여 일컫기를, 지난해 7월부터 호조의 차인(差人)이 와서 베는 역사를 시작하여 11월에 이르러서 마쳤는데, 낙인(烙印)을 찍 은 것이 5백 46주(株)로 큰 것은 한 아름이 넘고 작아도 동량(棟梁)의 재목에 밑돌지는 않았습니다. 혹은 재 단하여 쪼개어 판자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전목(全木)으로 도(棹)를 만들어 사람이나 소로 져서 나르고 끌어 내리느라 어린 소나무와 전나무, 잡목이 부러지고 상한 숫자가 아주 많았습니다. 목상(木商)과 촌민(村民) 및 능졸(陵卒)들이 낙인이 찍힌 이외의 것을 함부로 벤 것이 또 3백 84주나 되어 도끼질하는 소리가 4,5개월 동 안 화소(火巢) 안에서 연달아 들려 보기에도 놀랍고 황송하여 매양 예조에 보고하였으나 속히 끌어내라고만 제사(題辭)를 보내 왔었습니다. 하였는데, 참봉(參奉) 서세보(徐世輔)는 도 삼년(徒三年)에 정배(定配)하고, 영(令) 서경보(徐京輔)는 연한을 한 정하지 않고 절도(絶島)에 정배하라고 명하였다. 인하여 전교하기를, 이번 나무 밑둥치의 일은 실로 전에 없던 변괴여서 내 마음이 놀랍고 송구스러워 더는 선침(仙寢)에 배알(拜 謁)할 낯이 없을 듯하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해당 능관은 비록 이미 처분하였으나 대저 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호조에서 청해 얻은 데서 말미암은 것인데, 크게 심신(審愼)하지 않아서 차인(差人)이 난잡하고 무엄하게 하는데도 금하지 못한 것이다. 일 처리가 합당하지 못하고 두루 염려를 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견벌(譴罰)을 면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조사를 행한 유수(留守)는 바로 지난 가을과 금년 봄에 봉심(奉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49

250 審)한 사람인데, 봉심할 때에는 발견한 바가 없다가 적간한 후에야 비로소 발견하여 알았다는 것인가? 불성 실함이 심하다. 전 호조 판서 김이양(金履陽)과 광주 유수 김재창(金在昌)에게는 아울러 문외 출송(門外黜送) 하는 법을 시행하라. 능사(陵司)에서 여러 차례 보고했는데도 귀가 막힌 듯이 한 것은 유독 무슨 마음이었는 가? 해당 예조 판서 홍의호(洪義浩)에게도 역시 간삭(刊削)하는 법을 시행하라. 호조의 차인(差人)으로 갇혀 있는 자는 추조(秋曹)의 당상으로 하여금 그 무리를 엄히 조사해 엄형하여 절도(絶島)에 그 자신에 한정해서 멀리 정배하라. 능관(陵官)을 이미 중률로 감죄했는데, 이 무리들 역시 어찌 경계함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본 릉의 행수 수복(行首守僕)110) 및 수호군(守護軍)의 두목을 아울러서 엄형하고 멀리 정배하여 징계하도록 하 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해당자란 그때에 담당했던 사람을 말한 것이다. 가을 사이 작벌(斫伐)할 때에 능사(陵司)에서 현고(現告)에 누락하였는데, 섣달에 제배(除拜)된 사람이 어찌 유독 모면할 수 있겠는가? 납공(納供)하여 발명한 후에 마땅 히 즉시 전관(前官)을 나문(拿問)하기를 청했어야 하는데도 범연하게 형추(刑推)를 청하고, 반드시 특교(特敎) 를 기다린 후에야 나문을 청한 것은 아주 온당치 못하다. 또 그 처음 죄수의 공초가 두서가 없이 아주 어지 러워 거의 미혹된 것과 같았는데도 예에 따라 받아들였으니, 그 직책의 잘못됨이 과연 어떠한가? 판의금부사 김상휴(金相休)에게는 서용하지 않는 율을 시행하고, 여러 당상(堂上)은 월봉(越俸) 3등을 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1장 B면 영인본 48책 25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농업임업(林業) 고종 42권, 39년(1902 임인 / 대한 광무(光武) 6년) 9월 11일(양력) 1번째 기사 이원일이 장릉의 나무에 대하여 아뢰다 장례원 경(掌禮院卿) 이원일(李源逸)이 아뢰기를, 장릉 참봉(章陵參奉) 김승구(金昇九)의 보고와 관련하여 본원의 주사(主事)를 파견하여 능의 나무를 불법으로 찍은 문제를 적간한 결과 능의 오른쪽 산중턱이 패여서 센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가 쉽사리 뽑히는데 현재 넘어진 중소(中小) 소나무가 총 46그루, 전나무가 17그루이고 썩거나 부러진 것은 이미 화목(火木)으로 찍어 쓰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고 합니다. 해자(垓字) 안의 나무가 이렇게 많이 부러지고 상했는데도 애초에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앞질러 화목을 찍 어 땠으니 사체로 보아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수직관(守直官) 민영국(閔泳國)을 엄중하게 견책하며 오른쪽 산중턱의 흙이 패인 곳은 즉시 본군(本郡)에서 모래를 덮고 튼튼히 다지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막중한 곳에서 능의 나무가 이렇게 많이 부러지고 상했는데도 애초에 원(院)에다 보 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먼저 찍어 썼으니 해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해당 수령을 파면시켜라. 하였다. 원본 46책 42권 51장 B면 영인본 3책 26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인사임면(任免) 고종 43권, 40년(1903 계묘 / 대한 광무(光武) 7년) 11월 21일(양력) 3번째 기사 영회원의 소나무가 훼손된 것과 관련하여 두 재관을 파면시키다 장례원 경(掌禮院卿) 조정구(趙鼎九)가 아뢰기를, 영회원(永懷園) 국내(局內)에서 나무를 찍은 흔적이 낭자하다는 말을 듣고 주사(主事)를 보내 적간(摘奸)하게 110) 행수 수복(行首守僕) : 수복의 우두머리 25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51 하였습니다. 중치 소나무 3주(株)와 전나무 2주를 벤 것은 비록 공적인 용도로 쓴 것이 분명하지만 어린 소 나무 1주는 함부로 베어낸 데 해당하며, 심지어 국내의 소나무의 곁가지를 애당초 본원(本院)에 보고도 하지 않고 감히 멋대로 이처럼 많이 베도록 하였습니다. 그 소행을 따져 보면 매우 통탄스럽습니다. 이 일은 심상 하게 여겨 놓아두어서는 안 되니, 해당 입직 재관(齋官)은 법부(法部)로 하여금 조율하여 징벌하게 하며, 원역 (員役)도 본부로 하여금 각별히 엄하게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막중한 국내의 소나무를 거리낌 없이 잘라내다니 매우 통탄스럽다. 두 재관은 우선 본관(本官)을 면직하고서 법부로 하여금 똑같이 엄하게 다스리게 하라. 하였다. 원본 47책 43권 54장 A면 영인본 3책 30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임면(任免) / *사법재판(裁判) 4) 왕릉의 가래나무 세종 6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12월 7일(정축) 4번째 기사 예조에서 정종의 장례에 쓰지 말자고 아뢴 물품의 목록 예조에서 계하기를, 태조의 장의(葬儀) 에 기재된 황두(黃豆), 흙으로 만든 사람[土人], 흙으로 만든 새[土雀]와 복숭아나무 생 [桃木栍], 가래나무 생[楸木栍], 잣나무 생[白木栍], 뽕나무 생[桑木栍], 느릅나무 생[楡木栍]과 가짜 금ㆍ은덩 이[假造金銀錠] 등 물품은 장서횡간(葬書橫看) 111) 및 신서(新書) ㆍ 수금결(袖金訣) ㆍ 잡론(雜論) 과 같은 책에 나타나 있으나, <이번에는> 이미 덜어버리고 쓰지 아니하였으며, 큰 둥근 거울[大圓鏡]ㆍ손거울 [手鏡]ㆍ비인(飛人)ㆍ사덕(四德)ㆍ오방신(五方神)ㆍ십이지신(十二地神) 등 물품은 출처를 찾지 못하였고, 참토 제(斬土祭)에 소용되는 오색 돌[五色石]은 지금 <제정한> 후토제의(后土祭儀)에 없는 것이니, 위의 각항 물건 을 이번 순효 대왕(順孝大王)112)의 장례에는 쓰지 마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0장 B면 영인본 2책 348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종 48권, 12년(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년) 5월 24일(계해) 1번째 기사 병조에서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 병선을 제조할 것을 건의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각 포(浦)의 병선은 모두가 마르지 아니한 송판(松板)으로 만들고 또 나무못을 썼기 때문에, 만일 풍랑을 만 나면 이어 붙인 곳이 어그러지고 풀리기 쉬우며, 또 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새고 젖어서 빨리 썩게 되어 7, 8년을 견디지 못하고, 또 개조하기 때문에 연변의 소나무가 거의 다 없어져 장차 이어가지 어려울 형편입 니다. 중국 배도 역시 소나무로 만들었으나, 2, 30년을 지날 수 있사오니, 청컨대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서 쇠못을 써서 꾸미고 판(板) 위에는 회(灰)를 바르며, 다시 괴목판(槐木板)을 써서 겹으로 만들어 시험하되, 만 약 괴목을 구하기 어려우면 각 포(浦)에 명하여 노나무[櫨]ㆍ전나무[檜]ㆍ느릅나무[楡]ㆍ가래나무[楸] 등을 베 111) 장서횡간(葬書橫看) : 횡간은 횡서(橫書)로 물목(物目)을 열기(列記)한 것. 112) 순효 대왕(順孝大王) : 정종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1

252 어다가 바다에 담가 단단하고 질긴가, 부드럽고 연한가를 시험하여 사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5책 48권 23장 A면 영인본 3책 238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 *교통수운(水運) 세종 80권,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3월 25일(기유) 3번째 기사 사헌부에서 중들의 부역과 일재를 금할 것을 건의하다 사헌부에서 상소하기를, 그윽이 생각하오니, 범람[濫觴]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에 넘치는 걱정을 이루게 되며, 서리 를 밟을 때에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굳은 얼음이 오는 것을 보게 됨은 사세(事勢)가 반드시 그런 것이며, 고금에 통한 걱정거리입니다. 근일에 흥천사 사리각(舍利閣)을 수리하도록 명한 것은 성상께서 불교를 높이 고 믿어서 이런 거조가 있은 것이 아니고, 다만 성조께서 창건한 것이 기울어져 무너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중수시킨 것뿐이니, 이것은 또한 성상께서 조상을 높이는 성심이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조상이 심었 던 것이라 하여> 공경한다는 뜻에 근본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을 쓰시기를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습니다마는, 그러나 중들은 이러한 본뜻은 모르고 이 역사를 빙자하여 망령되게 우리 불도(佛道)가 다시 일어난다 하고, 모두 즐거운 모습으로 서로 축하(祝賀)하여 구름이 모이듯 수레 바퀴통에 바큇살이 모여들듯 거리에 가득하 고, 길을 메우며 앞에서 부르고 뒤에서 응하여 멋대로 행하기를 그치지 않고, 공양하면 복을 얻는다고 유혹 하면서 서로들 선동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허망한 말에 사람들이 벌써 깊이 빠졌고, 인과(因果)라는 말이 사람을 미혹하게 한 지도 이미 오래였으므로, 인심의 추향(趨向)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흐 르듯 하여 귀인ㆍ천인 할 것 없이 재물을 마구 내어서 시주하기를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 하여, 찬물을 바치 는 무리가 잇달아 왕래하면서 일재(日齋)한다. 고 오니, 신 등은 생각하기를, 지금 성군이 위에 계시고 큰 도 가 바야흐로 통하는 때인데도 서울에서 오히려 이와 같으니, 만약에 금방하는 법을 엄하게 세워 그 길을 끊 지 않으신다면 석가가 성해지는 것은 여기에서 조짐될 뿐 아니라, 사방 백성이 전하는 풍설(風說)을 듣고 숭 봉(崇奉)하는 자가 나날이 성하여져서 물결에 흐르듯 바람에 쏠리듯 하는 폐단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엎 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온다는 경계를 생각하고 사특한 것과 바른 것이 소 장(消長)하는 기틀[幾]을 살피시어, 특히 유사에게 명하여 부역하는 중들에게는 단지 양식만을 주어서 노역시 키고, 그 외에 나들면서 사대부를 속이고 꾀는 자는 이 부역이 끝날 때까지 일체 쫓아버릴 것이며, 사녀들이 일재(日齋)를 베푸는 것도 또한 모두 금단하여 사람마다 사리각을 새롭게 하는 것은 부득이하여 하는 일임을 환하게 알게 하여, 뒤에 오는 사람의 의혹을 끊고 장래의 폐단을 막으소서. 신 등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 면서도 어물어물하고 계달하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중들은 나날이 많아지고 사녀는 구름처럼 모여서 성상의 다스림을 더럽히오니, 신 등은 직책이 언관에 있는지라 마침내 잠자코 있을 수 없어, 하늘같은 위엄 을 우러러 무릅쓰고 엎드려 성상의 결단하심을 기다립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34장 A면 영인본 4책 138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 / *정론간쟁(諫諍) 세종 83권,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2일(계해) 1번째 기사 임금이 송도를 지날 때 생도와 부로 등이 가요를 바치다 친히 제릉(齊陵)에 제사지내고 목청전(穆淸殿)에 배알할 제 길이 송도로 지나게 되니, 생도(生徒)와 부로(父 老) 등이 가요(歌謠)를 바쳤다. 그 학생의 가요에 이르기를, 엎드려 뵈오니, 주상 전하께옵서는 총명 예지하신 성인으로 조종(祖宗)의 적덕누인(積德累仁)하신 기초을 계 승하시어 충만하게 하시고, 성취된 것을 지키시어 능히 태평한 정치를 이루었나이다. 조상을 받들고 효도를 25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53 생각하시어 더욱 근본을 보답하는 정성을 이룩하실 제, 몸소 <제사 음식을> 만드시고 맛보시어 <신이 있듯 이> 영험을 드러내시고, 서리와 이슬을 밟으실 제 사모하고 슬프심이 더하셨나이다. 이에 옥 같은 발걸음을 옮기시어 원릉(園陵)에 배알하실 제, 인해 송도 옛거리로 지나시니 송도 사람들의 다투어 기다리는 마음을 크게 위로하시매, 산과 내가 빛이 나서 아름다운 기상이 들과 거리에 서려 있고, 부로(父老)가 기뻐하여 찬송 하는 소리가 도로에 들끓나이다. 신 등은 초야(草野)에서 생장하였으나, 은택을 성한 풀같이 입었사옵니다. 푸른 일산이 더욱 장엄하오니 흔연히 천일(天日) 같은 얼굴을 우러러 뵈옵고, 푸른 옷의 선비가 기뻐 손벽치 면서 감히 미나리를 햇볕에 말려 바치는 정성을 드리나이다. 하고, 그 가사(歌詞)에 이르기를, 이 우리 옛 서울은 숭산(崧山)의 옆에 있고, 아름다운 새 서울은 한강의 북쪽일세. 연기가 운집하고 서기(瑞 氣)를 빚는 곳에 능침이 계시누나. 장하올손 열성조(列聖朝)시여. 후세 자손에게 좋은 복조 끼쳐 주며, 우리 임금 이어받아 계승하고 지키셔서 광채 더욱 빛나시네. 큰 산소 몸소 강신할 제 근신하여 제수(祭需) 만드셨 네. 저 높은 능 바라보니 소나무ㆍ가래나무 울창도 하올세라. 서리 이슬 내린 뒤면 사모하심 더욱하여, 이 첫 겨울 접어들면 몸소 정결히 제사지내어, 정성으로 성실하고 공경함으로 효도하심 능히 펴셨서라. 용 그린 깃 발 지나실 제 우리 송도 사람 위무하옵셨네. 이것으로 백성을 보살피심이요. 높으신 것 아니옵고 사냥하심 아니로세. 신(神)과 사람 모든 경사 기쁜 빛이 산천에 넘치도다. 더벅머리 아이놈과 흰 터럭의 늙은이도 앞뒤 쫓아 뛰놀면서, 머리 조아려 복을 축원하옵기는 우리 임금 만년 장수하오리라. 미치고 못난 소신(小臣)들이 하늘 같은 은택(恩澤)아래 뛰놀다가, 좋은 광명 얻어보고 기쁜 마음 금치 못해, 시와 노래 지어 올려 이 좋은 소리 기념하옵니다. 하고, 그 노인들의 가요(歌謠)에는 말하기를, 엎드려 주상 전하를 뵈오니, 지극하신 총명으로 임금이 되시어서 성덕(聖德)을 가지시고 정치하시는데 인덕 (仁德)을 베푸시니, 지극한 정치는 삼대(三代)보다 융성하옵니다. 뜻을 받아 국사에 힘쓰시니 성효(聖孝)는 백 왕(百王)보다 높으시나이다. 제사올리기를 때맞추어 하옵시니 추모(追慕)하심이 망극하신지라, 이에 서리 오고 이슬 내리는 절기에 감용하시니, 슬퍼하시는 회포 더욱 깊사와 능침에 배달하옵시고 그 길로 순시하시어 살 피시랴 하옵시니, 위로는 조상 받드시는 효도를 이루시고, 아래로는 임금 기다리는 마음을 위로하신지라, 경 사가 신(神)과 사람에게 흡족하고 기쁨이 조야(朝野)가 같사옵나이다. 신 등은 창포나 버들같이 쇠약한 체질 에 곱사같이 쇠잔한 형상이오나, 오랫동안 은택으로 길러 주신 은혜를 입사와 인수(仁壽)의 지경에 도달함을 얻었사온지라, 봉연(鳳輦)에 와서 머무심을 우러러 뵈옵고 참새처럼 뛰면서 환호(歡呼)하오며, 삼가 손잡고 절 하며 머리를 조아리어 노래 가락을 우러러 사뢰나이다. 하고, 그 가사에 이르기를, 힘쓰고 힘쓰시는 우리 임금 극진히도 성덕(聖德)을 밝히셨네. 성덕을 능히 밝히시니 빛날세라 계승하심이며, 시절따라 잊지 않으시니 효도하시는 법측일세. 봄ㆍ가을 게으르지 않으시고 제사올림에 착오(錯誤)없네. 이슬 흰 서리되니 해도 또한 10월일세. 이곳에 오시어 제사올리시니 할머님께 올림이라. 변두(邊豆)가 아름다우니 그 향기도 아련하옵세라. 효도로써 올리오니 주렁주렁 복을 내리시네, 네 말[四牡]이 날개 돛인듯 여덟 난새 [八鸞] 푸르도다. 누른 깃발 바라보니 용이 되고 광채되네. 나를 만져 주시고 나를 길러 주시니 진실로 참 임 금이실세. 이런 은혜의 임금이시니 백성의 부모로다. 누른 터럭 어린애 같은 이빨로 편안하게 살아가니, 날마 다 먹고 마시는 것, 그의 극진하신 은혜 아님이 없사오라. 하늘이 도우시어 만년이나 수하시어 무한하게 은 혜 주옵시고, 자손이 천(千)이요 억(億) 되게 하옵소서. 이런 왕국(王國)에 태어났으니 즐거움이 어떠하랴. 어 른 아이가 머리 조아려 이런 노래 지었나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6책 83권 3장 B면 영인본 4책 167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예술음악(音樂) / *재정진상(進上)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3

254 숙종 38권, 29년(1703 계미 / 청 강희(康熙) 42년) 9월 1일(갑진) 7번째 기사 김집ㆍ이경여 등의 사우 건립을 바라는 부여 유생 민진여의 상소 충청도부여(扶餘) 유생 민진여(閔鎭輿)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부여읍은 천계(天啓)113)연간에 고(故)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문경공(文敬公) 신(臣) 김집(金集)이 유일(遺逸) 로 수령에 임명되어 관직에 있은 지 5년만에 유화(儒化)가 크게 행해졌고, 숭정(崇禎)114)초년에는 고 영의정 문정공(文貞公) 신 이경여(李敬輿)가 학사(學士)로 복거(卜居)하면서 나갈 때가 적고 물러날 때가 많아 향리에 서 보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별세한 지 모두 40여년이 되었으나, 백 리의 동향(桐鄕)115)에 유택(流 澤)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한 구역 상자(桑柘)116)속에는 옛집이 그대로 남았으니, 바로 학문에 힘쓰시고 거 니시던 처소(處所)입니다. 그곳에 사우(祠宇)를 세워 존모(尊慕)의 정성을 나타내려는 것은 실로 원근 공공(公 共)의 의논으로서, 어찌 성조(聖朝)에서 기덕(耆德)을 추념하고 유술(儒術)을 배양(培養)하는 도리가 아니겠습 니까? 김집은 일찍이 임피(臨陂)를 맡았기에 그곳에도 사우(祠宇)를 세워 얼마 전에 사액(賜額)의 은전을 입 었습니다. 지금 신 등의 청은 첩설(疊設)에 관계될 듯도 합니다만, 듣건대 문순공(文純公)박세채(朴世采)는 첩 설은 마땅히 금해야 하지만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는 여러 현인(賢人)과 큰 명현(名賢)은 똑같은 준례로 금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성상께서는 그 말을 특별히 옳게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김집의 도덕 학 문은 마땅히 금한(禁限)에 구애되어서는 안될 것이니,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빨리 유사(攸司)로 하여금 두 신 하의 학문과 사업의 본말을 상고하게 하시어 금한(禁限)으로써 미루지를 마시고 즉시 사우를 세워 나란히 제 향(祭享)하게 하신다면 사림(士林)과 사문(斯文)에게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해조(該曹)에 내리라고 명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45책 38권 21장 A면 영인본 40책 45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숙종 61권, 44년(1718 무술 / 청 강희(康熙) 57년) 5월 19일(정묘) 2번째 기사 민회빈에게 시책을 선포하는 예를 행하다 민회빈(愍懷嬪)에게 시책(諡冊)을 선포하는 예(禮)를 행하였다. 도감(都監)에서 18일에 시책을 내전(內殿)에 바 쳤는데, 이날 시책을 선포하고 제주(題主)를 고치는 예를 행했다. 시책문(諡冊文)에 이르기를, 구천(九天)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추후하여 위호(位號)를 회복시켰고 절혜(節惠)117)라는 두 글자를 게시함에 있어 이장 (彛章)을 따랐는데, 나의 마음으로 결단하여 저 여러 사람들의 소망을 위로하였다. 생각하건대, 소현 세자빈 (昭顯世子嬪)께서는 친히 묘선(妙選)에 응해 일찍이 원량(元良)의 배필이 되었다. 훌륭한 아버지의 훈사(訓辭) 를 받들어 몸에 밴 거룩한 행실이 있었으므로 가인(家人)의 정위(正位)에 자리하매 안팎이 서로 화목하게 되 었다. 즐겁고 온유한 마음으로 양궁(兩宮)을 오래도록 받들었는데, 경계(警戒)를 어찌 하루라도 잊었겠는가? 그 사이에 오랑캐들이 침입하여 핍박하던 때를 만나서 갑자기 국운(國運)이 창황(蒼黃)하게 되자, 종묘 사직 을 따라 강도(江都)로 가서 온갖 험난한 일을 겪었으며 심관(瀋館)118)에 볼모가 되어서는 여러 성상(星霜)을 보내었다. 학가(鶴駕)가 나라로 되돌아오게 되어서는 아울러 세자빈께서도 무양하였었는데, 어찌 고생하다가 편안하게 된 지 얼마되지 아니하여 갑자기 불행한 일이 잇따랐다. 신세(身世)가 미망인이 된 것을 애통해 하 113) 천계(天啓) : 명(明)나라 희종(憙宗) 때의 연호 114) 숭정(崇禎) : 명나라 의종(毅宗) 때의 연호 115) 동향(桐鄕) : 지명(地名).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동성현(桐省縣)의 북쪽에 있으며, 본래 춘추 시대의 동국(桐國)이었 음. 한(漢)나라 때 주읍(朱邑)이란 사람이 이곳의 지방관이 되어 어진 정사를 폈으므로 대개 지방관이 선정(善政)한 곳을 뜻함. 116) 상자(桑柘) : 뽕나무와 가래나무. 옛날에 집 담 밑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으므로 전(轉)하여 향리(鄕里)의 주택, 또는 고향을 이름. 117) 절혜(節惠) : 시호를 내려주는 것 118) 심관(瀋館) : 심양관(瀋陽館)을 가리킴. 25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55 여 그저 피눈물을 흘렸고 하늘이 불쌍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원망하니, 의지가 지없는 것 같았도다. 아아! 나 라의 운수가 더욱 불행하여 거듭 궁액(宮掖)119)의 변고가 있게 되었도다. 요사스러운 것을 어찌 빈이 스스로 하였겠는가? 참소하고 이간하는 짓이 더욱 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말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끝 내 은혜와 사랑을 보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슬프게도 모자(母子)가 운명을 함께 하였고 참 혹하게도 형제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외로운 무덤이 오래도록 소나무의 가래나무 숲에 의지하여 있으니 이미 부묘(祔墓)를 하지 못하였고, 사묘(私廟)에서 겨우 향화(香火)를 이어 왔으니 어찌 정문(情文)에 합치되 는 일이겠는가? 도로의 사람들이 이 때문에 탄식하고 슬퍼하니, 부인과 아들들도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지 않 는 이가 없도다. 옥사(獄事)를 날조한 흉악한 역적들이 형벌을 받았으니, 족히 천도(天道)는 되돌리기를 좋아 하는 것을 징험하는 것이로다. 그 원통함을 호소하던 강직한 신하도 다시 복관(復官)시켰으니, 성조(聖祖)의 은미한 뜻을 알 수가 있도다. 문정(文貞)120)의 아름다운 업적을 열람하니 세덕(世德)을 알 수 있고, 영경(永 敬)의 남아 있는 사당을 바라보니 감회가 더욱 절실하도다. 온 집안의 억울함을 모두 씻어버리니 왕세자 배 필의 자리가 더욱 빛나도다. 의장(儀章)을 한결같이 새롭게 하여 추후 진저(震邸)의 예에 견주었고, 물채(物 采)가 모두 갖추어진 것은 경실(京室)에 있을 초기와 같게 하였다. 나라의 예전(禮典)이 이로부터 마땅함을 얻게 되었으니 신리(神理)도 응당 유감이 없을 것이다. 삼가 태묘(太廟)에 고함에 있어 어찌 선조(先祖)에서 하지 못한 것을 혐의할 것이 있겠으며, 별궁(別宮)으로 옮겨 봉안하니 다행히 오랫동안 폐기되었던 예전(禮 典)이 잘 거행됨을 보게 되었도다. 삼가 신(臣)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 유명웅(兪名雄)을 보내어 아아! 단서(丹書)121)의 구적(舊籍)을 삭제시켜 외로운 혼령을 위로하고, 동관(彤管)122)의 신사(新詞)에 의탁하여 영원 한 후세에 전하기를 바라노라. 아아! 슬프도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42장 A면 영인본 41책 2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정조 48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4월 25일(기미) 2번째 기사 벼와 묘목을 손상시키는 벌레를 제거하기를 당부하다 전교하였다. 벌레가 벼와 묘목(墓木)을 손상시키고 있으니, 어떻게 잡아 제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사(經史)에서 상고 해보면 옛부터 그러하였으니, 주관(周官) 의 서씨(庶氏)ㆍ전씨(剪氏)의 직(職)이 모두 이를 위해 설치된 것 이다. 벼줄기를 갉아먹는 것은 명(螟)이고 잎을 갉아먹는 것은 등(螣)이며, 뿌리를 갉아먹는 것은 모(蟊)이고, 마디를 갉아먹는 것은 적(賊)이다. 그리하여 못된 벌레를 불태워달라.[秉卑炎火]는 것은 전조(田祖)의 신령께 비는 말이고, 구덩이를 파고 태워서 묻는 것은 당(唐)나라 때 요숭(姚崇)에게서 비롯되었는데, 역대에 이를 인 습하여 마침내 성헌(成憲)으로 만들고 모두 민력(民力)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자양(紫陽)123)의 훈계에도 이르 기를 어찌 사람들을 부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다만 견식이 있는 사람 은 이해(利害)의 실상을 잘 파악하여 자신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안일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서 스 스로 원망하지 않을 뿐이다. 근자에 원침(園寢)의 뽕나무ㆍ가래나무에도 충해(蟲害)가 있어, 나무를 심은 10읍의 수령들로 하여금 관속들 을 거느리고 벌레를 제거하게 해서 잠시 수고로움이 길이 안일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을 부쳤다. 그러나 관속 들도 백성인지라 그들이 뜨거운 볕에서 사역하는 것을 생각하니, 자못 침식할 마음도 잊게 된다. 이에 구양 수(歐陽脩)의 시에 관전 스무 냥으로 한 말씩을 사들이니, 잠시 동안에 산더미같이 쌓이누나.[官錢二十買一斗 頃刻露積如京坻]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특별히 벌레를 사들이는 방식을 창안하고 나니, 어쩌면 일은 절반만 하고도 공은 갑절이나 얻을 수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아직도 스스로 편치 못한 것이 있으니, 그 것은 바로 이 벌레는 이미 벌이나 누에와 같은 공이 없는데다 해독은 모기나 등에보다도 더 심한 것이다. 그 119) 궁액(宮掖) : 소용(昭容) 조씨(趙氏)를 가리킴 120) 문정(文貞) : 강석기(姜碩期)의 시호 121) 단서(丹書) : 죄안(罪案). 122) 동관(彤管) : 사관(史官). 123) 자양(紫陽) : 주희(朱熹)의 호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5

256 러나 이것도 꿈틀거리는 생물이니, 성인이 벌레에 대해서 그의 공도 기록하고 그의 해독도 명시한 뜻을 준수 하여 의당 잡아 제거해야 할 것이나, 그 제거하는 즈음에도 방편적인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의당 생물 살리는 덕을 그 사이에 병행하도록 해야 하니 해독이 되는 것도 그 종류에 따라 각각 크고 작은 다름 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몰아서 늪으로 내친 것은 또한 불질러 태워버린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더구나 잡아 서 불태워달라.[秉卑炎火] 는 싯귀는 그냥 의탁하는 말일 뿐이고, 불태워 묻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 상 고와 후세의 구별을 또한 족히 볼 수가 있다. 일찍이 듣건대, 벌레가 날아서 바다에 들어가면 어하(魚蝦)로 변화한다고 하였고, 복파(伏波)가 무릉(武陵)을 다스릴 때의 밝은 징험도 아직까지 전하고 있으므로, 여러날을 조용히 연구한 끝에 법령을 내리기로 결심하 였다. 앞으로는 벌레를 주워서 구포(鷗浦)와 해구포(海口浦)에 던져버리도록 하라. 그곳은 나무 심은 곳과 멀 지 않아서 20리 거리밖에 되지 않으므로, 벌레를 사는 데 있어서는 인력(人力)을 줄일 수 있고, 벌레를 바다 에 던지는 것은 고사를 본받는 일이니, 의리에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수신(守臣)을 소견하고 이 뜻을 하유 하라. 그리고 또 여강(驪江)의 능수(陵樹)에도 충해가 있다고 하니, 벌레를 사는 일과 바다에 던지는 일을 각 각 일체 화성(華城)에 새로 반포한 식령(式令)에 의거해서 하면 결코 추호도 안될 것이 없다고 본다. 이어서 도백의 장계를 보니, 벌레를 다 주워내기는 아직 묘연한 실정인데, 이때에 백성을 부리는 것은 농정(農政)에 방해가 될 것이라, 걱정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 이에 당장 촛불을 밝히도록 하여 이 내용을 써서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해도(該道)에 알리도록 하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어디든지 모두 이것을 예로 삼을 일로 예 조와 한성부에 분부하라.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47장 A면 영인본 47책 83면 분류 *농업(農業)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고사(故事) 정조 52권, 23년(1799 기미 / 청 가경(嘉慶) 4년) 8월 19일(을사) 4번째 기사 창빈묘에 제사드리고 덕흥 대원군묘에 제례토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오늘 새벽 주교(舟矯)를 건너올 때 송추(松楸)124)가 눈 안에 들어왔다. 몇해 전에 묘소에 제사를 지내드린 적 이 있는데 금년은 그분의 환갑이 다시 돌아온 해이므로 강타(江沱)125)와 규목(樛木)126)의 칭송이 생각난다. 자 손에게 복록을 길이 누리게 하였고 나라에 끼치신 공이 크니, 내가 어찌 감히 목묘(穆廟)127)의 마음을 내 마 음으로 삼아 그 공을 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승지를 보내 이 제문을 가지고 가서 창빈묘에 제사를 지내드 릴 것이며, 대원군(大院君)128)의 봉사손이나 직계손 중에서 이름을 알아본 뒤에 현재의 목릉 참봉은 임시로 군직에 붙여두고 그 후임으로 오늘 인사행정에 의망하여 그로 하여금 내일 제례에 참가하고 그대로 재소(齋 所)로 들어가 숙직하게 하라.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5장 B면 영인본 47책 20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124) 송추(松楸) : 무덤 둘레에 심은 소나무와 가래나무. 여기서는 서울 한강가 동작동에 있는 선조(宣祖)의 할머니 창빈 (昌嬪)의 무덤을 가리킴. 125) 강타(江沱) : 시경 의 편명. 126) 규목(樛木) : 시경 의 편명. 127) 목묘(穆廟) : 선조를 가리킴 128) 대원군(大院君) : 선조의 아버지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말함 25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57 5) 왕릉의 잡목 세종 76권, 19년(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년) 1월 2일(임진) 2번째 기사 초목을 불태우는 것을 금지시키다 임금이 말하기를, 원전(元典) 에, 초목이 무성한 연후에 지기(地氣)가 수분이 있고 윤택하여진다. 하였고, 또 흉년에는 상 수리[橡]와 밤[栗]을 주워서 생활하여 나가기 때문에 산과 들을 불태우는 것을 금하는 것인데, 지금 헌의(獻 議)하는 자가 말하기를, 흉년이 든 여러 도의 민생이 가석(可惜)하니, 진휼하여 살리는 방법으로써 잘못된 계 책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개 산나물이나 들나물은 백성들이 많은 도움을 받는데, 소채(蔬菜)의 성질이 무 성한 숲이나 우거진 풀 사이에서는 성하지 아니하고 불태운 곳에서 푸르고 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 니다. 각 고을의 수령들이 육전 에 구애되어, 산과 들의 원습(原顯)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불태우는 것을 금하여, 소채가 나지 않게 만드니 참으로 염려되는 일입니다. 각도로 하여금 소나무와 참나무 기타 수목이 무성하여 울밀한 곳은 종전대로 엄금하고, 그 나머지 산과 들에는 우선 금분(禁焚)을 정지하고 수령으로 하 여금 불태울 만한 곳을 가려서 경칩(驚蟄) 때에 친히 불태워서 소채가 무성하게 하여, 주린 백성의 먹을 것 을 돕게 하소서. 하는데, 그 의논이 어떠한가. 하였다. 영의정(領議政)황희(黃喜) 등이 의논하기를, 따로 새 법을 만들 것이 아닙니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6권 1장 A면 영인본 4책 47면 분류 *농업임업(林業)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구휼(救恤) 성종 13권, 2년(1471 신묘 / 명 성화(成化) 7년) 11월 10일(무신) 2번째 기사 전국에서 일제히 개화(改火)의 법을 따라 불을 나누어 주게 하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지난 번에 전교(傳敎)를 받자오니, 개화(改火)129)의 법은 경외(京外)가 같지 아니하니, 금후로는 옛 제도를 따라 시행(施行)하라. 하였으므로, 삼가 주례(周禮) 를 안험하니, 사관(司爟)이 행화(行火)130)하는 정령(政 令)을 맡아, 4시(四時)로 국화(國火)를 변화시켜서 때때로 퍼지는 질병을 구원하였다. 하고 그 주(註)에 이르 기를, 봄에는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柳]에서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棗]와 은행나무[杏]에서 불을 취하며, 하계(夏季)에는 뽕나무[桑]와 산뽕나무[柘]에서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갈참나무[柞]와 느릅나무[楡]에 서 불을 취하며, 겨울에는 느티나무[槐]와 박달나무[檀]에서 불을 취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제 경중(京中)은 옛 법을 준용(遵用)하되 외방(外方)은 봉행(奉行)하지 않으니, 청컨대 금후로는 경중은 한성부(漢城府)로 하여 금 불을 본조(本曹)131)에서 받아 5부(五部)에 나누어 주게 하고, 외방도 또한 이 예(例)를 따르게 하여, 여러 고을로 하여금 집집마다 나누어 주는 것을 일제(一齊)히 거행하게 하여, 어기는 자는 과죄(科罪)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5장 A면 영인본 8책 609면 분류 *풍속풍속(風俗) 129) 개화(改火) : 불씨를 새롭게 하는 뜻으로, 병조(兵曹) 및 각 지방 관청에서 매년 사계(四季)의 입절일(入節日)과 늦여 름의 토왕일(土旺日)에 나무를 서로 비비어 불을 새로 만들어 궁전(宮殿)에 진상(進上)하고 민가(民家)에 나누어 주 고 전의 불을 끄게 하던 일 130) 행화(行火) : 개화(改火). 131) 본조(本曹) : 예조.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7

258 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5일(을축) 4번째 기사 임사홍으로 하여금 승명패의 글을 쓰도록 하다 오목패(烏木牌)132)1백을 승정원으로 내려보내며, 이르기를, 이것은 외방 관원의 승명패(承命牌)이다. 임사홍(任士洪)으로 글씨 써서 새기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3장 A면 영인본 13 책 610 면 분류 *출판(出版) 연산 60권, 11년(1505 을축 / 명 홍치(弘治) 18년) 12월 24일(갑술) 5번째 기사 세시에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를 쏘는 것을 사시 개화할 때도 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砲)를 쏘는 것은 벽사(辟邪)133)하는 것이니, 어찌 세시(歲寺)134)에만 할 것인가. 사시 (四時) 개화(改火)135)할 때에도 아울러 행하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역질을 쫓는 사람의 복색은 봄에는 푸르 게, 여름에는 붉게, 가을에는 희게, 겨울에는 검게 절후에 따라 바꿔 입게 하되, 세시에는 네 가지 색깔을 같 이 쓰게 하라. 역질을 쫓을 때 사람의 수(數)가 너무 많으니, 앞으로는 좌우 상(廂)을 합쳐 한 상으로 만들어 줄일 수 있는 사람은 줄이되, 방상씨(方相氏)136)와 귀신을 부르는 사람은 줄이지 말라. 그리고 노니는 사람을 4대(隊)로 만들어, 사시에 아울러 쓰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21장 A면 영인본 14책 33면 분류 *풍속예속(禮俗) / *보건(保健) 선조 50권, 27년(1594 갑오 / 명 만력(萬曆) 22년) 4월 17일(을축) 2번째 기사 대신과 비변사 당상이 봉공에 대한 중국 조정의 논의, 왜노 조총의 위력, 납속자의 채용 등의 일을 아뢰다. 중략 이순신(李舜臣) 진중의 정운(鄭雲)이라는 사람이 그 대포를 맞고 죽었는데 참나무(眞木) 방패 3개를 관통하고 도 쌀 2석을 또 뚫고 지나 정운의 몸을 관통한 다음 선장(船藏)으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항복한 왜노의 큰 조총(鳥銃)을 꺼내오게 하여 제재(諸宰)들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광해 58권, 4년(1612 임자 / 명 만력(萬曆) 40년) 10월 1일(신유) 4번째 기사 이항복이 선릉과 정릉을 살피고 그 수리하는 일에 대해 아뢰다 132) 133) 134) 135) 오목패(烏木牌) : 참나무의 검은 속으로 깎아 만든 것 벽사(辟邪) : 사귀를 물리치는 것 세시(歲寺) : 설. 개화(改火) : 불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나무를 서로 비벼 신화(新火)를 내어 구화(舊火)를 고치는 의 식. 병조에서 입춘(立春)ㆍ입하(立夏)ㆍ입추(立秋)ㆍ입동(立冬)의 입절일(立節日)과 토왕일(土旺日)에 불을 만들어 각 궁전에 진상하고 모든 관아에 나누었는데, 입춘에는 버드나무 판에 느릅나무로 입하에는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로, 토왕일에는 산뽕나무 판에 뽕나무로, 입추에는 참나무 판에 가락나무로, 입동에는 박달나무 판에 홰나무로, 판의 구 멍을 비벼 불을 냈음. 각 고을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음. 136) 방상씨(方相氏) : 방상은 주(周)나라의 벼슬 이름으로 주로 역질(疫疾)을 쫓는 일을 맡았음. 그는 곰 가죽을 쓰고 황 금으로 만든 눈 4개를 달고 검은 곳에 붉은 치마 입고 창을 짚고 방패를 들었다고 함. 주례(周禮) 하관(夏官). 25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59 이항복이 아뢰기를, 신들이 명을 받들고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선릉 대왕위(大王位)의 병풍석 위 진을간 (辰乙間)137)에 묵은 흙이 1자[尺] 정도 무너져 있었고, 건방(乾方)138)에 1자 남짓되는 참나무 두 그루가 있었으 며, 그 나머지에는 잡초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술방(戌方)139)에 병풍석과 지대석(地臺石)을 연결하는 석회가 떨어져 나갔는데 다른 데에도 간간이 석회가 떨어져 나간 곳이 있었습니다. 정릉은 능 위의 사초(沙草)는 별 로 손상된 곳이 없었으나 병풍석만 진방(辰方)140)에서 계방(癸方)141)과 축방(丑方) 등에 빠져서 떨어지거나 물 러난 곳이 많았고, 그 이외에 돌을 연결한 곳도 간간이 떨어져 나갔었습니다. 석물(石物)이 잘못된 곳은 의당 석회를 다시 바르도록 해야겠으나, 능 위의 사초는 이번에 새로 고친다 하더라도 몇 년만 지나면 으레 이러 합니다. 능 위의 공사는 대단히 부득이한 곳이 아니고서는 하기가 매우 미안하니 꼭 개조할 것이 없습니다. 명년 한식에 쑥대 등을 뽑을 적에 잡초들만 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릉의 왕후릉은 대왕릉의 위 치와 서로 바라다 보이는 다른 산줄기에 있는데, 능 위 오정간(午丁間)142)에 사초가 모두 무너져 능 위는 모 두 잡초로 덮이고 사초는 거의 없었습니다. 난간석(闌干石)의 유회(油灰)가 간간이 떨어져 나갔고 장명등(長 明燈)의 덮개 돌과 동쪽의 망주(望柱)도 기울어져 있었으며, 신로(神路)의 석교(石橋)도 많이 퇴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릉 정상에 약간 내려 앉은 듯한 데가 있었는데, 일반 집안의 분묘도 오래되면 흙이 삭아서 평평하 게 되는데 대개가 다 그러합니다. 옛말에 언덕이 점점 평평해진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현상입니다. 수리하 지 못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고, 봉심(奉審)한 도형(圖形) 3장을 같이 입계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해조에서 속히 개수하도록 하라. 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72장 B면 영인본 32책 11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숙종 3권,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3월 9일(정묘) 5번째 기사 부임하는 전라도 순무사 이세화에게 내린 응행 절목의 내용 전라도 순무사(全羅道巡撫使) 이세화(李世華)가 나갔다. 그 응행 절목(應行節目)에 이르기를, 전선(戰船)의 체제는 크기ㆍ높이ㆍ두께를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하여 말하는 것이 여러가지이니, 반드시 바람 이 어지러운 날에 바다 가운데에 멀리 들어가 배를 저어 회선(回旋)하며 편리한지를 시험할 것. 전선(戰船)ㆍ병선(兵船)ㆍ사후선(伺候船) 등의 격군(格軍)143)과 방수(防戍)하러 번든 사부(射夫)ㆍ포수(砲手) 등 의 액수를 낱낱이 점고하여 그 실수(實數)를 알 것. 주사(舟師)144)를 검열(檢閱)한 뒤에 사수ㆍ포수와 그 진(鎭) 관하의 군관(軍官)에게 사시(射矢)ㆍ방포(放砲)를 시험하여 본도(本道)의 방군 유포(防軍留布)145)로 차등을 두어 상줄 것. 무변(武弁)인 수령(守令)과 각진(各鎭)의 변장(邊將)도 재예(才藝)를 시험하여 분수(分數)를 개좌(開坐)할 것. 수사(水使)와 연변(沿邊) 수령의 현부(賢否)와 민폐를 상세히 염문(廉問)할 것. 변장 가운데에서 근간(勤幹)한 자와 용람(庸濫)한 자와 직임(職任)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를 구별하여 서계(書 137) 진을간(辰乙間) : 동쪽과 동남쪽 사이. 138) 건방(乾方) : 북서쪽. 139) 술방(戌方) : 서쪽과 서북 간방. 140) 진방(辰方) : 남동쪽. 141) 계방(癸方) : 북쪽과 북동쪽 사이. 축방도 같음 142) 오정간(午丁間) : 남쪽과 남서 사이 143) 격군(格軍) : 곁군의 취음(取音)ㆍ수부(水夫)의 하나로서 사공(沙工)의 일을 돕는 사람. 선격(船格). 144) 주사(舟師) : 수군(水軍) 145) 방군 유포(防軍留布) : 방수하는 군사에게 주기 위하여 유치한 베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59

260 啓)하고, 가장 심하게 군졸을 침학(侵虐)하는 자는 계문(啓聞)하여 파출(罷黜)하되, 결곤(決棍) 30도(度) 이하는 스스로 결단할 것. 연변 각읍(各邑)의 무사(武士) 가운데에서 용력(勇力)이 뛰어나고 기예(技藝)가 뛰어난 자와 도내(道內)의 사자 (士子) 가운데에서 행의(行誼)와 재국(才局)이 있는 자도 다 물어서 계문할 것. 또 각 진포(鎭浦) 전선(戰船)은 격군ㆍ사수ㆍ포수를 다 토병(土兵)으로 급대(給代)하고 충보(充補)하여 사변에 대비하나, 각 고을에서는 빈 배를 포(浦) 가에 걸어 두기만 하므로, 사변이 있더라도 결코 제때에 장비하여 떠날 수 없는 형세이니, 늘 주사를 정제(整齊)하여 사변에 대비할 방책에 대하여 편의한 것을 물어서 계문할 것. 능로군(能櫓軍)은 전혀 충정(充定)하지 않으므로 습조(習操) 때마다 촌백성을 물아서 구차하게 채우거니와, 충 정한 고을이 있더라도 선소(船所)가 멀기 때문에 여느 때에 지키고 급할 때에 징발하여 쓰기가 다 불편한데, 부근에 있는 육군의 속오(束伍)146)로 바꾸어 충정하면 수군ㆍ육군이 다 편리할 것이니, 참작하여 계문할 것. 각 진포의 사졸(士卒)은 이미 살길이 없거니와, 능로군의 양료(粮料)도 나올 곳이 없는데, 변통할 도리로는 둔 전(屯田)만한 것이 없으니, 둑을 쌓고 개간하기에 합당한 곳을 살펴서 적어 아뢸 것. 연해(沿海)의 금송(禁松)하는 곳에 각 아문(衙門)에서 설치한 둔전이건 여러 궁가(宮家)ㆍ사대부(士大夫)의 농 장(農庄)이건 물론하고 모두 적간(摘奸)하여 계문할 것. 해도(海島)에 들어가 사는 백성은 엄히 금단(禁斷)하여 낱낱이 몰아 내고, 금산(禁山)의 참나무도 소나무와 마 찬가지로 배양(培養)할 것. 선재(船材)를 기르는 곳에는 목장(牧場)이 많으므로 피차가 서로 다투어 방해되는 일이 많으니, 각도(各島)를 두루 살펴보고 선재가 무성한지, 말떼가 살이 쪘는지, 토질이 소나무를 기르기에 합당한지, 수초(水草)가 목 장을 두기에 합당한지 낱낱이 서계(書啓)하여 변통할 바탕으로 삼을 것. 통영(統營)147)을 처음 설립하였을 때에는 삼남(三南)의 해리(海利)를 모두 구관(句管)하였으므로, 군향(軍餉)ㆍ 기계(器械) 등 장사(將士)에게 지공(支供)할 것이 다 여기에서 나왔는데, 요즈음 듣기로는 여러 곳의 어기(漁 磯)가 많이 본도의 감사(監司)에게 빌려주어 수세(收稅)의 반이 감영(監營)에 들어가므로, 통영은 곡식을 얻는 길이 날로 점점 줄어 간다 하는데, 이제 모두 도로 붙여서 해방(海防)의 중진(重鎭)에 군향(軍餉)이 넉넉하게 하는 바탕으로 삼지 않을 수 없으니, 두 영(營)을 사문(査問)하여 아뢸 것. 능로군의 모자란 액수는 각영(各營)의 물선(物膳) 등 군사에서 정장(丁壯)을 가려서 낱낱이 채워 줄 것. 또 변장(變將)ㆍ변수(邊帥)가 군례(軍禮)를 행할 때와 군병의 시재(試才) 때에는 오례의(五禮儀) 의 변방에 서는 변복(變服)하지 않는다는 예(禮)에 따라 융복(戎服)으로 거행하되, 수사(水使) 이하는 갑주(甲胄)를 갖추 고 지영(袛迎)하여 예를 행하고, 통제사(統制使)는 감사가 상견(相見)하는 예에 따라 함께 북벽(北壁)하여 객 (客)은 동쪽에 주(主)는 서쪽에 나란히 앉을 것. 하였는데, 대개 묘당(廟堂)에서 의논하여 정한 것이다. 경상도 순무사권대재(權大載)ㆍ충청도 순무사최관(崔 寬)ㆍ제주 순무사 이선(李選)이 잇달아 나갔는데, 절목은 같았다. 제주에서는 문과(文科)ㆍ무과(武科)를 설행 (設行)하여 사람을 뽑고, 또 신해년148)의 조곡(糶穀)149)을 모두 면제한다는 뜻드로 별유(別諭)하여 보냈는데, 묘당의 의논에 따른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4장 B면 영인본 38책 250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軍事) / *농업전제(田制) / *농업수리(水利) / *사법법제(法制) / *인사선발(選拔) 146) 속오(束伍) : 조선조 선조(宣朝) 27년(1594)에 훈련 도감을 설치하고, 역(役)을 지지 않는 양인(良人)과 천인(賤人) 가 운데 조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편성한 군대. 평상시에는 군포(軍布)를 바치고, 나라에 큰 일이나 사변(事變) 이 있을 때에만 소집되었음. 147) 통영(統營) : 통제사(統制使)의 군영(軍營) 148)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149) 조곡(糶穀) : 나라에서 봄철의 춘궁기(春窮期)에 창고의 곡식을 내어 백성들에게 꾸어 주던 일, 또는 그 곡식. 26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61 숙종 19권, 14년(1688 무진 / 청 강희(康熙) 27년) 2월 14일(정사) 3번째 기사 각릉 향탄소에 기경을 금하다 임금이 명하여 백성들이 각릉(各陵)에 향탄소(香炭所)150)로 봉(封)하여진 곳에 기경(起耕)하는 것을 금(禁)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1책 19권 6장 A면 영인본 39책 12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법제(法制) / *농업개간(開墾) 영조 88권, 32년(1756 병자 / 청 건륭(乾隆) 21년) 10월 15일(기묘) 2번째 기사 사헌부의 건의로 파주 목사 이언소를 파직시키다 헌부 지평 이보관(李普觀)이다. 에서 전달을 거듭 상달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또 상달하기를, 파주 목사(坡州牧使) 이언소(李彦熽)는 상도(常道)에 어긋난 정사(政事)를 말하자면 한가지로 족하지 아니합 니다. 그 읍면(邑面)의 수효대로 참나무를 깎아 곤장을 만들었는데, 길이는 양척(量尺)만 하고 크기는 어린아 이의 팔뚝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곤장에 각기 면(面)의 이름을 쓰고 그 끝에 낙인(烙印)을 찍어 이것으로 백성을 치기도 하고, 이것으로 양전(量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고을에 한 사람이 그 어버이의 상(喪)을 당했는데, 장기(葬期)가 마침 환곡을 갚을 때 있었으므로, 장사를 치른 뒤 즉시 바치겠다는 뜻으로 시기를 늦 추어 달라고 애걸하였더니, 관(官)은 단지 형장(刑杖)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른다. 는 제사(題辭)를 내리고는 물 리쳐 버렸습니다. 진실로 조금이나마 인효(仁孝)의 마음이 있다면 어찌 차마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포악하고 사나우며 잔인하고 야박한 사람을 결코 자목(字牧)의 직임에 둘 수 없습니다. 청컨대 파직 하소서. 하니, 왕세자가 답하기를, 잡아다가 처리하라. 하였다. 또 상달하기를, 후릉 참봉(厚陵參奉) 한지(韓芷)는 본디 불학 무식한 사람으로서 부모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가도(家道)가 엉 망입니다. 심지어 천예(賤隷)들이 부끄러워하는 행실까지 있어 친척들이 부끄럽게 여기고 인아(姻婭)들이 버 렸습니다. 이처럼 윤기(倫紀)가 없고 행검(行檢)이 없는 사람을 의관(衣冠)의 반열에 둘 수 없으니, 청컨대 영 원히 사판(仕版)에서 깎아 버리소서.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또 충훈부(忠勳府)에서 무신년151)원종 공신(原從功臣)으로 군공(軍功)을 세운 자의 자식에게서 포(布)를 징수하는 것은 제감(除減)한 것을 청하니, 상달한 대로 하게 하였다. 또 전후로 금양(禁 釀)을 범하여 섬으로 유배된 자를 다시 연수(年數)를 한정해 그 율(律)을 의정(議定)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자신이 법을 관장하는 관원이 되어 연수를 한정하기를 청하니, 더욱 지극히 한심하다. 하였다. 이보관이 인피(引避)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2책 88권 20장 A면 영인본 43책 634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윤리강상(綱常)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農業) / *인사(人事) / *군사군역 (軍役) 150) 향탄소(香炭所) : 능(陵)ㆍ원(園)ㆍ묘(墓)에 쓰는 향나무와 숯 굽는 참나무를 기르기 위하여 능ㆍ원ㆍ묘 부근에 지정 한곳 151) 무신년 : 1728 영조 4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61

262 정조 23권, 11년(1787 정미 / 청 건륭(乾隆) 52년) 1월 9일(무인) 2번째 기사 선혜청 제조 서유린이 의빈묘의 위전을 절수하는 일로 아뢰다 선혜청 제조 서유린(徐有隣)이 의빈묘(宜嬪墓)의 위전(位田)을 절수(折受)하는 일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에 어찌 버려져 있는 땅이 있겠는가? 산허리를 침범해 경작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의 고질적인 폐단이 어서 도끼로 베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곳곳마다 산이 벌거숭이다. 이는 모두 수령들이 공가(公家)에서 세금 을 매기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겨 백성들에게 경작하기를 허락한 것이니, 읍력(邑力)으로 손을 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만약 이를 빙자하여 향으로 쓸 향나무와 숯을 만들 참나무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사방에 서 널리 구하는데 뒤따라 모리(牟利)하는 자들이 동쪽 서쪽을 가리키며 소란을 피우며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내 뜻이겠는가? 경 등은 이런 뜻을 본받아서 궁방(宮房)이나 혹은 영문(營門)ㆍ아문(衛門)을 가 리키며 소란을 피우며 시장(柴場) 가운데서 유명 무실한 곳은 혁파하고, 만일 합당한 곳을 얻으면 품처하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기일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외읍(外邑)에 양안(量案) 밖의 명색(名色)을 획정(劃定) 하지 못하게 하라. 하니, 서유린이 말하기를, 이천부(伊川府)에 마땅한 송산(松山) 한 곳이 있기에 처음에는 황장 봉산(潢腸封山)으로 여겼었는데, 작년 본 주(本州)의 백성이 소송으로 인하여 예조에서 봉산안(封山案)을 조사해 보니 원래 기록된 일이 없어서 효창묘 (孝昌墓)의 위전(位田)으로 의정(擬定)하였습니다. 본 부사(府使)의 말을 듣건대, 소나무는 아주 무성하나 토지 는 척박하여 개간할 수가 없으며, 또 그 옆에 삼화세(蔘火稅) 몇 결(結)이 있어서 장차 모두 넣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송정(松政)과 삼세(蔘稅)의 두 가지 일에 대해서는 성상의 뜻을 여러 차례 사륜(絲綸)에 나 타내셨습니다. 이제 연교(延敎)를 받들건대 더욱 향탄(香炭)ㆍ송전(松田)에 대하여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니 그대로 봉산(封山)을 만들고 삼화세는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전대로 수세(收稅)하게 하기를 청합 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읍민(邑民)이 진고(陳告)한 것은 처음부터 경청(傾廳)할 일이 아니었고, 설사 또 땅이 척박하지 않고 옆에 삼 세가 없었더라도 지금 산목(山木)이 곳곳마다 민둥산이 되어 있을 때에 크고 작은 나무 천만 주(株)를 베어 내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삼화세는 실로 적자(赤子)152)의 목숨과 관계되는데, 이제 만약 공 가(公家)에 소속시킨다면 급대(給代)할 밑천을 어디서 만들어 내겠는가? 그리고 읍지(邑誌)를 상고하건대, 고미탄(古味灘) 근처에 끼어 있으니 관방(關防)의 중요한 땅이 됨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일찍이 성(城)을 쌓고 소나무를 심은 일이 있었으니 설치한 법의(法意)가 매우 면밀 하였다. 이런 곳들은 거론하지 말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 진고(陳告)한 사람을 마땅히 먼저 엄중히 다스려서 간사한 백성들이 무엇을 엿보고 바라는 습성을 막아야 할 것이다. 대저 산택(山澤)의 정사는 나라의 중대한 일인데, 근래에 백성들의 습성이 아주 교활하여 이런 폐단이 있게 된 듯하니, 반드시 이 한 곳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에는 비록 사사로운 양산(養山)의 절수(折受)라도 비변사를 거쳐서 계하(啓下)해서 행회(行 會)한 것이 아니면 궁방(宮房) 및 영문ㆍ아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스스로 조치해 주지 말라는 일을 탁지(度 支)의 등록(謄錄)에 기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4장 B면 영인본 45책 625면 분류 *농업(農業) 정조 34권, 16년(1792 임자 / 청 건륭(乾隆) 57년) 4월 4일(임인) 4번째 기사 각신 이만수가 영남의 불법 조세 수취 현황을 아뢰자 시정을 지시하다 152) 적자(赤子) : 백성 26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63 각신 이만수가 아뢰기를, 작년에 경시관(京試官) 서영보(徐榮輔)가 돌아와 아뢴 것으로 인하여 순흥(順興)과 풍기(豊基)에서 유래해 오 던 단대곡(單代穀)을 모두 현재에 있는 곡식 이름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봉화(奉化)의 환곡(還穀) 중에 회록(會 錄)은 콩[大豆] 1만 2천여 섬인데, 벼로 대신 받아들인 지가 이미 1백여 년도 넘었습니다. 백성들이 일제히 호소하고 있고 사건이 이미 같으니, 원하는 대로 시행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또 듣건대 이 밖 에 도내의 여러 고을에 단대곡이라는 명색이 많이 있어 봉화 한 고을에 그치지 않는데, 처음에는 잘못을 인 습하고 끝내는 또 죄를 두려워하여 덮어둔다고 합니다. 지금 곡식 장부를 정리하게 되었으니 두루 상세히 조 사하고 어느 해의 어떤 조목인가를 상고하여 햇수가 오래 된 것은 또한 순흥과 풍기 두 고을의 예에 의하여 고쳐 기록하고, 근년의 단대곡은 해당 수령에게 엄히 신칙하여 가을을 기다려 도로 본색(本色)으로 만들어 환곡 장부가 문란해지는 폐단이 없도록 묘당(廟堂)에 물어 처리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순흥과 풍기의 일은 처분이 이미 특별한 은전(恩典)에 관련된 것인데 봉화(奉化)에서도 이와 같고 다른 각 고을에서도 이와 같다 하니, 지금부터 단대곡에 관한 법을 임시로 속전(續典) 에서 삭제하는 것이 안 될 것은 없지만 국가의 기강으로 헤아려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그러나 죄는 수령에게 있는데, 곤란을 당하는 자는 백성들이니, 지금 만약 폐단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크게 백성을 위하는 본 뜻이 아니다.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감사에게 엄히 신칙하여 먼저 봉화(奉化)로부터 순흥과 풍기의 준례에 의하여 낱낱이 정리하고 제일 먼저 범법한 수령은 이름을 지적하여 죄를 논하고 법대로 처단하며, 그 나머지 인습한 자는 특별히 모두 논 하지 말라. 폐단이 되고 있는 다른 고을은 이처럼 좋은 기회에 미쳐 모두 자수하도록 하되 다만 제일 먼저 범법한 수령은 신문하여 처결하라. 하였다. 이만수가 또 아뢰기를, 금산군(金山郡)도암면(道巖面)에 향탄위전(香炭位田)153)을 신설할 때에 신도 또한 그 개략을 알았습니다. 조 정의 본 뜻은 혹시 조금이라도 민간에 해를 끼칠까 염려하여 전일에 내린 전교가 말할 수 없이 엄격하였고 받아들이는 세금도 본래 매우 적었습니다. 지금 듣건대 제방을 쌓은 곳이 전부 모래와 돌이라서 한 번 장마 를 겪기만 하면 문득 번거롭게 개축(改築)해야 하므로 근방의 5개 고을에서 부역하는 백성들이 해마다 수천 명이 넘고 흙을 져나르고 모래를 메우는 노력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금으로 거두는 섬[石] 수도 점점 감축되니, 위전(位田)이 유명무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당초 백성을 위하려던 성상의 뜻과 다릅니다. 해조 (該曹)에 분부하여 본도에 왕래하며 혹은 다른 곳으로 옮겨 정하고 혹은 기경(起耕)하는 것에 따라 세금을 받 아 매년 백성을 부역시키는 폐단을 없애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민폐가 이와 같으면 어찌 한 시각이라도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묘당에서 해조에 분부하여 즉시 혁파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편한 대로 기획하도록 하라. 본 토지는 영남의 방백에게 소속시켜 기경(起耕)하는 대 로 세금을 받든지 혹은 똑같이 아울러 세금을 면제하든지 좋을 대로 거행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7장 A면 영인본 46책 285면 분류 *구휼(救恤) / *농업(農業) / *재정(財政) 고종 29권, 29년(1892 임진 / 청 광서(光緖) 18년) 5월 6일(계해) 2번째 기사 의정부에서 영릉 등의 사태가 난 곳을 보축하는데 쓸 물력에 대해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여주 목사(驪州牧使) 이호면(李鎬冕)의 보고를 보니,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구역 내의 사태(沙汰)가 난 곳들을 보축(補築)하는 데 쓸 물력(物力)을 마련하는 일에 대해 아래에 기록한 대로 조처하여 획급해 달라 153) 향탄위전(香炭位田) : 능ㆍ원ㆍ묘에 쓰는 향나무와 숯을 굽는 참나무를 기르기 위하여 부근에 지정한 전답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63

264 는 내용이었습니다. 첫째는, 공사할 곳이 방대하므로 물력을 마련할 전(錢) 9,000냥(兩)을 획급해 달라는 일입니다. 둘째는, 빈 가 마니 8,000립(立)을 각읍(各邑)에 분정(分定)해 달라는 일입니다. 셋째는, 말목(抹木) 5,000개(箇)와 참나무 말 뚝 10석(石), 굵은 섶나무 400태(駄), 마른 박달나무 700개를 각 읍에 분정해 달라는 일입니다. 넷째는, 쇠로 만든 기계와 여러 가지 물건은 고을에서 빌려 쓰도록 해 달라는 일입니다. 다섯째는, 상지관(相地官)과 주시 관(奏時官)을 각 해사(該司)로 하여금 정하여 보내도록 해 달라는 일입니다. 공사를 시작할 날을 이미 받았으니 거기에 소용되는 물력을 응당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 청한 것이 너무 많으니, 선혜청(宣惠廳)의 전 2,000냥에 한해서 구획(區劃)하되 되도록 견고하게 쌓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목재와 빈 가마니를 각 읍에서 마련하는 문제와 기계를 편리한 대로 세를 내어 쓰게 하는 문제 는 전례에 따라 시행하게 하고, 상지관과 주시관은 각 해사에 분부하여 그들로 하여금 정하여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33책 29권 17장 B면 영인본 2책 41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재정국용(國用) 순종 1권, 즉위년(1907 정미 / 대한 융희(隆熙) 1년) 10월 10일(양력) 1번째 기사 각 능과 원의 토지 증명서를 새 규정에 의거하여 수정해 올 것을 명하다 각릉(各陵)과 각원(各園)의 해자(垓字) 안팎과 향탄산(香炭山 : 향나무와 숯 굽는 참나무를 기르는 산)의 사방 경계를 자세하게 측량하여 새 규정에 의거한 토지 증명서를 수정해 가지고 오라고 명하였다. 장례원(掌禮院) 에서 주청하였기 때문이다. 원본 2책 1권 20장 A면 영인본 3책 49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법법제(法制) 예종 7권, 1년(1469 기축 / 명 성화(成化) 5년) 8월 14일(을축) 5번째 기사 중외의 관부에 유시하여 소나무 외의 잡초는 금하지 말게 하다 중외(中外)의 관부(官府)에 유시(諭示)하여, 소나무 외의 잡초(雜樵)는 금하지 말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소나 무와 상수리나무를 베는 것을 매우 엄하게 금하여, 서울의 땔나무 값이 매우 비쌌는데, 임금이 이를 알고서 이 명이 있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7장 B면 영인본 8책 410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 *농업임업(林業) 숙종 29권, 21년(1695 을해 / 청 강희(康熙) 34년) 9월 19일(무인) 2번째 기사 금년의 흉년을 맞아 여러 궁방의 재물을 해청에 내려 구급케 하도록 하교하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금년의 큰 흉년은 옛날에 없었던 것으로, 절기(節氣)가 수확(收穫)의 때에 당하여 이미 굶어 죽은 자가 있으 니, 오는 봄에 <시체가> 구렁텅이를 메우는 참혹함을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으며, 생각이 이에 미치매 심장이 끊기는 듯함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생각건대, 흉년의 구급(救急)은 상수리나무의 열매만 같음이 없는 까닭에, 일찍이 이에 유의(留意)하여서 분부하여 대궐 안의 여러 곳에서 착실하게 주워 모으게 하였으나, 이 것도 또한 열매맺지 아니하여 얻은 것이 겨우 20두(斗)인데, 뜻이 백성을 구(救)하는 데 있다면 반드시 많고 26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65 적음에 구애(拘礙)될 것이 없기 때문에 특히 이를 해청(該廳)154)에 내린다. 또 여러 궁방(宮房) 중에 더욱 판 탕(板蕩)한 것을 제외하고 내수사(內需司)의 쌀 1백 석, 목면(木綿) 8동(同), 포자(布子) 7동과 수진궁(壽進宮) ㆍ용동궁(龍洞宮) 두 궁방의 정조(正租) 각 1백 50석을 모두 해청에 내려 진자(賬資)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태 게 한다. 그러나 그 중에 수진궁은 제사를 받드는 궁가로서 유저(遺儲)가 넉넉치 못하여 이제 바야흐로 궁핍 하니, 추후로 내어 주겠다. 내탕고(內帑庫)에 보관되어 있는 것 중에서 녹비(鹿皮) 15장, 호초(胡椒) 20두(斗), 단목(丹木) 3백 근, 백반(白磻) 2백 근도 또한 해청에 내리노니, 알아서 거행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15장 B면 영인본 39책 395면 분류 *왕실(王室) / *재정상공(上供) / *구휼(救恤) 영조 95권, 36년(1760 경진 / 청 건륭(乾隆) 25년) 1월 22일(무진) 1번째 기사 동지 이천구가 도성을 방어하는 방법을 조목별로 상서하자, 비변사에 내려 보내다 중략 1. 토성의 꼭대기는 너비를 열 길[丈]로 하고 성 안팎으로 상수리나무와 밤나무를 세 줄로 빽빽히 심어서 세 월이 오래 되어 나무가 자라게 되면, 전란을 당하였을 때 세 길 정도만 남겨 두고 그 윗 줄기는 가로로 묶고 그 아래를 촘촘하게 울타리 같이 방패 모양으로 그 사이에 줄줄이 세워 두면 의거할 곳이 되기에 충분할 것 이고, 또 그 사이에 숨어서 조총(鳥銃)과 시석(矢石)을 쓴다면 견고함이 석성(石城)보다도 더 나을 것입니다. 정조 49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7월 9일(신미) 2번째 기사 각릉(各陵)의 관원을 엄히 단속하도록 명하다 승지 채홍원(蔡弘遠)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명을 받들고 동쪽과 서쪽의 능원(陵園)을 봉심(奉審)했더니 수목이 적어 성긴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심은 것은 점차 소모되고 새로 이식한 것은 잘 배양되지 못해 보기에도 송구스 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었으니 사체(事體)상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해조에게 신칙하여 나무를 얼마 나 심고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에 따라 겨울철과 여름철 근무 성적을 매기게 한다면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는 재랑(齋郞) 등이 성실히 근무하지 못해 빚어진 것으로서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무릇 소나무를 심고 상수 리나무를 씨뿌리는 법을 보건대 봄에는 파종해야 하고 가을에는 심어야 하는데, 구역 안의 여러 곳을 수시로 순찰하여 조금 성긴 곳에는 소나무를 심고 너무 공허한 곳에는 상수리나무를 씨뿌리면서 재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니, 이 방법대로만 해 나간다면 아무리 소모시키려 한들 그렇게 되겠는가. 그리고 설사 하인배가 난 방용 장작으로 탐을 낸다 하더라도 도끼질한 흔적에 따라 잡아내면 될 것인데 이 숫자 역시 구우 일모(九牛 一毛)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듣건대 씨뿌리고 심을 때 주위의 나뭇가지와 잎을 잘라주면 오히려 싹 트고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하인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혜택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니, 이 어찌 공사(公私) 양쪽 모두에 편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조로 하여금 각릉(各陵)의 관원을 엄히 단속하여 올해 가을과 겨울부터 오로지 씨뿌리고 심는 데 뜻을 두 게 하고 매년 3월과 10월에 그 숫자를 보고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해조에서 별단(別單)으로 초기(草記)해 오면 향축(香祝)을 받든 헌관(獻官)이나 봉심하는 승지 혹은 사관(史官)이나 선전관 중에서 추첨 하여 과연 그 숫자대로 소나무를 심었는지 고찰케한 뒤에 그 근무의 성실도에 따라 상을 주고 징계를 내려 야 할 것이며, 상수리나무를 얼마나 밀도있게 씨뿌렸는지에 대해서도 몇 년 간격으로 본보기를 뽑아 자세히 154) 해청(該廳) : 진휼청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65

266 살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내용으로 분부하여 각각 재실(齋室) 벽에 써서 붙여놓도록 하라. 그리고 근무 성적을 평가할 때 이것을 가지고 등제(登第)를 기록한다면 필시 별도로 금품을 강요하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니 이 한 조목은 그냥 놔두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장 B면 영인본 47책 9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 *사법(司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6) 왕릉의 느릅나무 태종 11권,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3월 24일(갑인) 6번째 기사 예조에서 계절에 따라 불씨를 갈아 쓰는 것에 대해 아뢰자 의논하여 시행케하다 개화령(改火令)을 내렸다. 예조에서 아뢰었다. 삼가 주례(周禮) 를 상고하면, 하관(夏官) 사훤(司烜)이 행화(行火)155)의 정령(政令)을 맡아 사철에 나라의 불[國火]을 변하게 하여 시질(時疾)을 구제한다. 하였습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불씨[火]를 오래 두고 변하게 하지 아니하면, 불꽃이 빛나고 거세게 이글거려 양기[陽氣]가 정도에 지나쳐서 여질(厲疾)이 생기는 까닭으로, 때에 따라 바꾸어 변하게 한다. 그 변하게 하는 법은 찬수(鑽燧)156)하여 바꾸는 것인데, 느릅나무 [楡]와 버드나무[柳]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杏]와 대추나무[棗]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取)하고, 계하(季夏)157)에 이르러 토기(土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뽕나무[桑]와 산뽕나무[柘]의 황색(黃色) 나 무에서 불을 취(取)하고, 작유(柞楢)는 희고 괴단(槐檀)은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철의 방위 색 [方色]에 따라 불을 취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불이라고 하는 물건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이나 상 용(常用)되므로 그 성질에 따르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오래되고 법이 폐지되어 불씨를 바꾸 는 법령이 오랫동안 행해지지 아니하여, 섭리(燮理)하는 도리에 미진(未盡)함이 있습니다. 원하건대, 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영(令)을 내려, 경중(京中)에는 병조(兵曹)에서, 외방(外方)에는 수령들이 매양 사철의 입절(入 節)158)하는 날과 계하(季夏) 토왕일(土旺日)159)에 각각 그나무를 문질러, 그 철의 불씨로 바꾸어 음식을 끓이 는 데 사용하면 음양(陰陽)의 절후가 순조롭고, 역질(疫疾)의 재앙이 없어져서, 섭리(燮理)하여 조화(調和)하는 일이 갖추어지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예천백(醴泉伯)권중화(權仲和)가 내게 이르기를, 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것은 예전에 그 제도가 있었으나, 우 리 나라에서는 옛 제도를 따르지 아니하여, 이 때문에 화재(火災)가 일어난다. 고 하였는데, 내가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있다. 하고 드디어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2장 B면 영인본 1책 352면 분류 *풍속풍속(風俗) / *역사고사(故事) 155) 행화(行火) : 절기(節氣)에 따라 불씨를 바꾸는 일. 봄에는 느릅나무ㆍ버드나무에서, 여름에는 살구나무ㆍ대추나무에 서, 가을 겨울에는 작유(柞楢)ㆍ괴단(槐檀)에서 불씨를 얻었음 156) 찬수(鑽燧) : 나무를 문질러 부벼 불을 일으킴. 157) 계하(季夏) : 음력 6월 158) 입절(入節) : 입춘ㆍ입하ㆍ입추ㆍ입동. 159) 토왕일(土旺日) : 음양(陰陽) 오행(五行)에서 말하는 음력 6월에 토기(土氣)가 왕성한 날. 대개 입추(立秋) 전 18일 동 안을 말함. 26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67 오례 / 흉례 의식 / 치장 치장(治葬) 5개월 만에 장사(葬事)를 지낸다. 기일 전에 예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가 서운관(書雲 觀)의 관원을 거느리고 땅의 장사(葬事)지낼 만한 곳을 가린다. 의정부(議政府)의 당상관(堂上官)이 다시 살펴 보고 계문(啓聞)하여, 택일(擇日)을 정하여 영역(塋域)을 파 헤친다. 영역[兆]의 네 모퉁이[四隅]를 파서 그 흙 을 밖으로 퍼내고, 가운데를 파서 그 흙을 남쪽으로 퍼내는데, 각각 한 표말을 세우고, 남문(南門)에는 두 표 말을 세운다. 서운관(書雲觀)의 관원이 중간 표말의 왼쪽에서 후토(后土)에 제사지낸다. 제사(祭祀)지내기 3일 전에 마땅히 행사(行事)할 집사관(執事官)들은 모두 2일 동안을 산재(散齋)하고, 1일 동안을 치재(致齋)한다. 그날에 집사자 (執事者)가 후토씨(后土氏)의 신위(神位)를 중간 표말의 왼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왕골자리[莞]를 편다. 헌관 (獻官) 자리를 신위(神位)의 동남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집사자(執事者)의 자리를 그 뒤에 설치하되, 서향하 게 하고 북쪽을 상(上)으로 한다. 알자(謁者)와 찬자(贊者)의 자리를 집사(執事)의 남쪽에 설치하되, 모두 서향 하게 하고 북쪽을 상(上)으로 한다. 축판(祝版)을 신위(神位)의 오른쪽에 드리고, 향로ㆍ향합과 초[燭]를 신위 (神位) 앞에 설치하고, 다음에 제기(祭器)와 찬(饌)을 담은 기구(器具)를 설치한다. 변(籩) 8개는 왼쪽에 있어 3행(行)이 되고, 오른쪽이 상(上)이 된다. 제1행(行)에는 형염(形鹽)이 앞에 있고, 어숙(魚鱐)이 그 다음에 있으 며, 제2행(行)에는 건조(乾棗)가 앞에 있고, 율황(栗黃)과 진자(榛子)가 그 다음에 있으며, 제3행(行)에는 능인 (菱仁)이 앞에 있고, 검인(芡仁)과 녹포(鹿脯)가 그 다음에 있다. 두(豆) 8개는 오른쪽에 있어 3행(行)이 되고 왼쪽이 상(上)이 된다. 제1행(行)에는 구저(韭菹)가 앞에 있고, 탐해(醓醢)가 그 다음에 있으며, 제2행(行)에는 청저(靑菹)가 앞에 있고, 녹해(鹿醢)와 근저(芹菹)가 그 다음에 있으며, 제3행(行)에는 토해(兎醢)가 앞에 있고, 순저(筍菹)와 어해(魚醢)가 그 다음에 있다. 보(簠)ㆍ궤(簋)가 각각 1개씩 변(籩)ㆍ두(豆) 사이에 있는데, 보(簠) 는 왼쪽에 있고, 궤(簋)는 오른쪽에 있다. 보(簠)에는 도(稻)와 양(粱)을 담는데, 양(粱)이 도(稻) 앞에 있고, 궤 (簋)에는 서(黍)와 직(稷)을 담는데 직(稷)이 서(黍)의 앞에 있다. 작(爵) 1개는 보궤(簠簋)의 앞에 있다. 준(尊) 을 신위(神位)의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고, 또 그 남쪽에 관세(盥洗) 2개를 북향하여 설치하는데, 헌관(獻 官)의 세(洗)는 동쪽에 있고 집사(執事)의 세(洗)는 서쪽에 있다. 행사(行事)할 집사관(執事官)들은 각각 공복 (公服)을 갖추어 입고 시각이 되면, 알자(謁者)와 찬자(贊者)가 먼저 배례(拜禮)하는 자리에 나아와서 북향하 여 두 번 절하고, 이를 마치면 자리에 나아간다. 알자(謁者)가 대축(大祝)과 집사자(執事者)를 인도하여 들어 와서 배례하는 자리에 나아와서 북향하여 서게 한다. 찬자(贊者)가 재배(再拜)하라. 말하면, 대축(大祝) 이하 의 제관(祭官)이 두 번 절하고, 이를 마치면 각각 자리에 나아가나다. 알자(謁者)가 헌관(獻官)을 인도하여 들 어와서 자리에 나아가게 한다. 찬자(贊者)가 재배(再拜)하라. 말하면, 헌관이 두 번 절한다. 알자(謁者)가 헌 관을 인도하여 관세위(盥洗位)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게 하고, 홀(笏)을 꽂고 손을 씻고 손을 수건에 닦으 라. 고 찬(贊)하면, 헌관이 손을 씻고 손을 수건에 닦는다. 이를 마치면, 홀(笏)을 내어 쥐라. 고 찬(贊)하고, 인도하여 준소(尊所)에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게 한다. 집준자(執尊者)가 멱(羃)을 들고 술을 따르면, 집사자(執 事者)가 작(爵)으로써 술을 받는다. 알자(謁者)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神位) 앞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게 하고, 꿇어앉아 홀(笏)을 꽂으라. 찬(贊)하고, 삼상향(三上香)하라. 찬(贊)한다. 집사자(執事者)가 작(爵)을 헌 관에게 주면, 헌관이 작(爵)을 잡아 작(爵)을 드리고, 작(爵)을 집사자(執事者)에게 주어 신위(神位) 앞에 드리 게 하고, 홀(笏)을 꽂고, 부복(俯伏)하고 일어나라. 찬(贊)하여 조금 뒤로 물러가서 북향하여 꿇어앉는다. 대 축(大祝)이 신위(神位)의 오른쪽에 나아가서 동향하여 꿇어앉아 축문(祝文)을 읽는다. 이를 마치면, 알자(謁者) 가 부복(俯伏)하였다가 일어나라. 찬(贊)하여 뒤로 물러가서 그전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찬자(贊者)가 재배 (再拜)하라. 말하면, 헌관이 두 번 절한다. 알자(謁者)가 인도하여 나간다. 다음에 대축(大祝) 이하의 제관(祭 官)을 인도하여 배례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한다. 찬자(贊者)가 재배(再拜)하라. 찬(贊)하면, 대축(大祝) 이하 의 제관(祭官)이 두 번 절한다. 알자(謁者)가 인도하여 나간다. 알자(謁者)와 찬자(贊者)가 배례하는 자리에 나 아가서 두 번 절하고서 나간다. 집사자(執事者)가 제찬(祭饌)를 걷어치우고 축판(祝版)은 구덩이에 묻는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67

268 시각이 되면 이에 광(壙)을 파는데, 깊이는 10척,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한다. 뒤에도 이와 같다. 나비는 29 척, 숯가루로써 쌓아 올리는데, 두께는 동쪽과 서쪽이 각각 5촌이다.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 등 세 가지 물질을 서로 배합하여 쌓아 올리는데, 두께는 동쪽과 서쪽이 각각 4척이다. 석실(石室)은 동쪽ㆍ서쪽 방석(旁石)의 두께가 각각 2척 5촌이고, 중간 격석(隔石)의 두께는 4척이다. 동쪽ㆍ서쪽 실내(室內)의 나비는 각각 5척 5촌이니, 합계가 29척이다. 길이는 25척 5촌이다. 남쪽과 북쪽에 숯가루와 <석회(石灰)ㆍ세사(細 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로써 쌓아 올리는데, 두께는 모두 위의 것과 같다. 북쪽 우석(隅石)의 두께는 2척 5촌이고, 문비석(門扉石)과 문의석(門倚石)의 두께는 각기 2척이다. 석실(石室) 안의 길이는 10척이니, 합 계가 25척 5촌이다. 남면(南面)을 터서 연도(羨道)로 만든다. 그 석실(石室)의 능(陵)은 같이 하고 실(室)은 다르게 하면, 서쪽을 상(上)으로 한다. 제도는 격석(隔石)ㆍ방석(傍石)ㆍ우석(隅石)의 당처(當處)와 지석(支石) ㆍ박석(博石)의 입배(入排)하는 땅에는 깊이 2척 5촌을 더 파서 그 남면(南面)의 박석(博石)은 문역석(門閾石) 이라 한다. 지석(支石)과 박석(博石)의 높이는 합계 2척 5촌이다. 그 밑바닥의 흙을 그대로 쌓아 올린다. 먼 저 지석(支石)을 배치(排置)하여 높이는 1척, 나비는 1척 5촌이고, 길이는 적당한 데 따른다. 세로로 두되, 무릇 두 줄로 하는데, 광(壙) 밑바닥의 흙과 가지런하게 한다. 그 박석(博石) 양쪽 머리의 당처(當處)를 버티 게 하는 까닭으로 지석(支石) 이라 한다. 그 지석(支石) 사이에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을 사용하여 쌓아 올린다. 석회(石灰) 3분(分)과 황토(黃土)ㆍ세사(細沙) 각각 1분(分)을 유피(楡 皮)160)닳인 물에 이를 탄다. 재궁 대석체(梓宮臺石砌)의 당처(當處)에도 또한 깊이 7촌을 더 파서 굵은 모래[麤土]와 본 흙을 사용하여 도 로 메우고 쌓아 올리지 말게 하며, 협석(挾石)의 있는 곳은 단단히 이를 쌓아서 동망(銅網)을 두 실(室)에 양 쪽으로 1망(網)인데, 길이는 각각 10척 2촌이고, 나비는 각기 5척 7촌이다. 석실(石室)의 안에 펴고, 동망(銅 網)은 석실(石室) 안의 길이와 너비보다는 조금 크게 하고, 그 망(網)의 사변(四邊)은 사면(四面)의 지석(支石) 위에 각각 1촌을 가(加)한다. 유회(油灰)를 지석(支石) 위에 펴고, 다음에 박석(博石)과 높이는 1척 5촌, 길이 는 3척 9촌이다. 격석(隔石) 아래의 박석(博石)은 길이는 4척 4촌이고, 너비는 적당한 데 따른다. 문역석(門 閾石)을 두 실(室)에 각각 1개를 사용하는데, 너비는 각각 3척, 두께는 각각 2척, 길이는 각각 7척 5촌이다. 양쪽 끝을 깎아서 방석(傍石) 아래와 격석(隔石) 아래의 박석(博石)에 각각 5촌씩 들어가게 하고, 문비석(門扉 石)이 들어갈 곳에는 깊이 4촌, 길이 6척 5촌, 너비 2척 5촌을 깎아서 줄이고, 내변(內邊)에 높이 4촌, 너비 5촌을 남겨두어 문역(門閾)을 만드는데, 그 높이는 석실(石室) 안의 지면(地面)과 가지런하게 한다. 무릇 양쪽 돌이 서로 대이는 곳에는 모두 유회(油灰)로써 이를 발라 빈틈이 없게 한다. 가(加)한 후에 격석(隔石)을 높 이는 5척 5촌, 두께는 4척, 길이는 14척이다. 북쪽 끝의 1척을 양쪽 귀로부터 안쪽을 향하여 비스듬히 파는 데, 양쪽 귀의 서로 떨어지기는 그전대로 4척으로 하고, 그 뾰족한 끝은 각각 5촌인데, 비스듬히 판 곳이 좌 우(左右)로 서로 떨어지기가 3척이고, 뾰족한 끝이 각각 5촌씩 들어가서 양쪽 우석(隅石)이 서로 맞닿은 곳에 접(接)하게 하고, 내변(內邊)의 오목한 사이의 남쪽 끝은 3척이니, 동변(東邊)과 서변(西邊)에 각각 깊이 5촌씩 파서 줄여 2척으로써 문비(門扉)가 들어가도록 마련하고, 나머지 1척은 문비(門扉) 밖에 나가게 한다. 가운데 창 구멍[窓穴]이 있는데, 돌 양면(兩面)에서 구멍을 만들어 각각 사방이 1척 6촌, 깊이가 각각 1척으로 한다. 사방 1척의 작은 구멍을 거듭 만드는데, 구멍 북쪽으로부터 우석(隅石)에 떨어지기가 3척 7촌이나 되고, 구멍 남쪽으로부터 문비석(門扉石)에 떨어지기가 4척 7촌이나 된다. 양쪽 석실(石室) 사이에 설치한다. 다음에 북쪽 우석(隅石)과 양쪽 석실(石室)에 각각 1개를 사용하는데, 높이는 5척 5촌, 두께는 2척 5촌, 길이 는 10척이나 된다. 서실(西室) 북쪽 우석(隅石)의 서쪽 끝의 내변(內邊)이 방석(傍石)의 볼록한 부분에 당한 곳을 파서 오목한 모양으로 만드는데, 오목한 것이 깊이는 5촌, 너비는 1척으로 하여, 오른쪽 방석(傍石)의 북쪽 끝 안에 볼록한 부분이 오목한 곳에 들어가도록 마련한다. 서쪽의 1척 5촌은 깎아내지 아니하여, 방석 (傍石)의 북쪽 끝 서변(西邊)의 깎은 곳에 접(接)하게 한다. 동실(東室) 북쪽 우석(隅石)의 동쪽 끝 내변(內邊) 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서실(西室) 우석(隅石)의 동쪽 끝과 동실(東室) 우석(隅石)의 서쪽 끝이 서로 접 (接)하는 곳에는 그 내변(內邊)을 파서 합하여 오목한 모양을 만들어, 격석(隔石) 북쪽 끝이 들어가도록 마련 한다. 오목한 부분은 깊이가 1척인데 입구는 좁고 속은 넓다. 입구의 너비는 3척, 속의 너비는 4척인데, 입구 160) 유피(楡皮) : 느릅나무 껍질. 26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69 의 양쪽 가에서 속의 양쪽 가에 이르기까지 좌우(左右)를 각각 비스듬히 파서 모양을 키[箕]와 같이하여, 격 석(隔石) 북쪽 끝의 양쪽 귀를 오목한 부분의 속의 넓은 곳에 넣어서, 이를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지 못하게 한다. 방석(傍石)과 양쪽 석실(石室)에 각각 1개를 사용한다. 높이는 5척 5촌, 두께는 2척 5촌, 길이는 12척 5촌이다. 남쪽 끝의 내변(內邊) 2척은 깊이 5촌을 파서, 위에서 밑바닥까지 통하여 문비석(門扉石)이 들어가 도록 마련하고, 북쪽 끝의 외변(外邊)은 깎아 줄여서, 내변(內邊)의 볼록한 부분은 5촌을 나오게 하고 두께는 1척으로 하여, 북쪽 우석(隅石)의 오목한 곳에 넣게 한다. 무릇 방석(傍石)과 격석(隔石)이 서로 대하여 깎고 파낸 곳에는, 모두 위에서 밑바닥을 통해서 격석(隔石) 아래와 북쪽 우석(隅石) 아래의 박석(博石)을 광(壙) 안에 각각 2촌씩 들어가게 하고, 방석(傍石) 아래의 박석(博石)을 광(壙) 안에 3촌씩 들어가게 하고, 문역석 (門閾石)을 광(壙) 안에 5촌씩 들어가게 한다. 우석(隅石)과 방석(傍石)의 서로 접(接)한 곳에는 모두 파서 대 인정(大引釘)을 쳐서 대인정(大引釘)은 허리의 길이는 1척 2촌 1푼, 너비는 2촌 7푼, 두께는 2촌 2푼이요, 머 리의 길이는 3촌, 너비는 4촌 9푼이다. 중인정(中引釘)은 허리의 길이는 1척 4촌, 너비는 2촌 1푼, 두께는 2 촌이요, 머리의 길이는 2촌 2푼, 너비는 4촌 8푼이다. 무릇 인정(引釘)을 만들 적엔 먼저 정철(正鐵)로써 정 (釘)을 만드는데, 모양이 공자(工字)와 같게 하고, 다음에 수철(水鐵)로써 녹여 붙인다. 물러 나가지 못하게 한다. 서실(西室) 북쪽 우석(隅石)의 서쪽 끝 내변(內邊)과 오른쪽 방석(傍石)의 북쪽 끝 외변(外邊)과 동실(東 室) 북쪽 우석(隅石)의 동쪽 끝 내변(內邊)과 왼쪽 방석(傍石)의 북쪽 끝 외변(外邊)이 서로 접(接)하는 곳에는 모두 2개를 사용하고, 양쪽의 북쪽 우석(隅石)은 1개를 사용하고, 양쪽 개석(蓋石)의 서로 접(接)하는 곳에는 3개를 사용하고, 밖에 배치(排置)한 정지대석(正地臺石)이 잇달아 접(接)하는 곳에는 모두 12개를 사용하고, 면석(面石)과 우석(隅石)이 서로 접(接)하는 곳에는 모두 24개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대인정(大引釘)이요, 만석 (滿石)이 서로 접(接)하는 곳과 인석(引石)의 아래에는 모두 12개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중인정(中引釘)이다. 다음에 석체(石砌)를 설치하는데, 양쪽 석실(石室)에 각각 1개씩인데, 전석(全石)을 사용한다. 높이는 1척 8 촌, 길이는 8척 7촌, 너비는 3척 9촌이다. 그 중간을 통해 파고 사변(四邊)의 두께는 6촌은 남겨 둔다. 그 사방에 모두 협석(挾石)을 두고, 높이는 각각 1척 5촌, 너비는 각각 5촌, 길이는 적당한 데 따른다. 석체(石 砌)는 격석(隔石)과 북쪽 우석(隅石)과 서로 떨어지기는 각각 5촌이고, 방석(傍石)과 서로 떨어지기는 1척 1촌 이고, 문비석(門扉石)과 서로 떨어지기는 8촌이다. 협석(挾石)으로써 서로 떨어진 사이에 끼우는데, 남북(南 北)이 각각 1개씩이고, 동서(東西)가 각각 2개씩이며, 박석(博石)과 문역석(門閾石)과 가지런하게 한다. 그 석 체(石砌)의 통해 판 곳에는 세사(細沙)와 황토(黃土)를 사용하여 단단히 쌓아 올려서, 석체(石砌)와 가지런하 게 하고, 협석(挾石) 사이에는 굵은 모래와 본 흙[本土]를 사용하여 이를 메워서 협석(挾石)과 가지런하게 한 다. 석체(石砌)는 땅에 들어가기를 1척 3촌이나 하고, 땅에서 나오기를 5촌이나 한다. 그 외면(外面)에는 모래 와 흙을 다시 파서 도로 펴고서 단단하게 쌓아서 새어들어오는 물기운을 방비(防備)하게 한다. 다음에 개석 (蓋石) 각각 1개를 양쪽 석실(石室)의 위에 가(加)하고, 두께는 3척, 너비는 10척, 길이는 14척 5촌이다. 남쪽 끝의 하변(下邊)이 문비석(門扉石)에 접(接)하는 곳에 2척을 파서 줄여서, 깊이는 4척, 너비는 6척 5촌으로 하 여, 문비석(門扉石)이 들어가도록 마련하고, 풀자리[草席]로써 흙과 모래자갈을 담아서 양쪽 석실(石室)의 안 팎에 메우고, 그 위에 흙을 얹은 후에 개석(蓋石)을 끌어다가 얹어둔다. 그 양쪽 개석(蓋石)이 서로 접(接)하 는 곳에는 유회(油灰)로써 이에 채운다. 무릇 양쪽 돌이 서로 접(接)하는 곳에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개석 (蓋石) 1개를 너비는 5척, 중간의 두께는 1척 5촌, 양쪽 가의 두께는 3촌, 길이는 14척 5촌이다. 중간은 높고 양쪽 가는 비스듬하게 낮다. 양쪽 개석(蓋石)의 사이에 더 얹어둔다. 다음은 격석(隔石)의 창구멍[窓穴]에 소 나무 황장판(黃腸板)으로써 막고, 모래흙과 석회재(石灰滓) 등의 깨끗한 물질을 사용하여 수실(壽室) 안에 메 우고, 가문비석(假門扉石)으로써 가로로 두어 이를 막고, 또 수회(水灰)를 사용하여 틈에 바른다. 이에 양쪽 석실(石室)의 우석(隅石)ㆍ방석(傍石)ㆍ문비석(門扉石)의 밖에 각각 4척씩 떨어져서 빙 둘러 판자(板子)를 설치 하고,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로써 단단히 쌓아올리고, 또 그 판자(板子)를 올려서 점점 쌓아올린다. 그 세 가지 물질[三物]의 밖에 광변(壙邊)에 떨어지기 5촌 안에는 숯가루를 사용하 여 이에 쌓아올린다. 쌓아올린 것이 밖에 배치(排置)한 지대석(地臺石)의 하면(下面)에 서로 대이는 곳에 이 르면, 판자(板子) 안의 사방 모퉁이에 작은 판자(板子)를 가로로 세워서 빈 곳이 있게 하여, 본 흙을 빙 둘러 연달아 쌓도록 마련한다. 만약 작은 판자(板子)를 가로 세우지 않는다면, 아마 사방의 모퉁이가 지대석(地臺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69

270 石)에 붙어서 본 흙의 쌓은 것이 서로 연맥(連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의하여 빙 둘러 쌓아서 더 얹어둔 개석(蓋石) 위에까지 이르러, 가운데는 높고 사방을 낮게 하여 물이 새어 들어오는 걱정이 없게 한다. 그 개석(蓋石)과 더 얹어둔 개석 위의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 세 가지 물질[三物]ㆍ숯가루[炭末]를 쌓는 데는, 돌의 높낮이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그 돌 위에 따라 상항(上 項)이 예에 의해서 이를 쌓는다. 그 광(壙) 밖을 평지(平地) 위의 동쪽ㆍ서쪽ㆍ북쪽 3면(面)에는 그 지대석 (地臺石)이 배치(排置)된 곳을 헤아려, 그 밑바닥을 단단히 쌓아 올린다. 그 개석(蓋石)을 끌어들일 때에 동 면(東面)과 서면(西面)의 판 곳에는, 지석(支石)과 흙을 사용하여 메워서 쌓아 올린다. 먼저 초지대석(初地臺 石) 24개를 배치(排置)하고 높이는 각각 2척, 길이는 각각 6척 1촌 5푼, 넓이는 각각 3척 3촌이다. 12면(面) 에 각각 2개의 돌을 사용하여 흙을 파서 이를 배치(排置)하고, 상면(上面)은 지면(地面)과 가지런하게 한다. 그 돌의 상면(上面) 외변(外邊)에는 5촌을 깎아 줄이고, 깊이도 또한 5촌으로 하여, 외박석(外博石)의 윗 끝이 들어가도록 마련한다. 우석(隅石)은 모양이 경쇠[磬] 모양처럼 굽게 한다. 뒤의 것도 이와 같다. 그 남면(南面) 에 설치한 돌은 현궁(玄宮)을 닫기를 기다려 그 후에 면석(面石)을 설치한다. 우석(隅石)도 또한 이와 같이 한 다. 정지대석(正地臺石) 12개를 높이는 각각 2척 1촌, 너비는 각각 3척, 길이는 각각 12척 3촌이다. 상면(上 面)의 외변(外邊) 5촌을 새겨서 복련(覆蓮)을 만들고, 하면(下面)의 6촌을 파서 줄여서 외박석(外博石)의 윗 끝 이 들어가도록 마련한다. 하변(下邊)의 판 곳 6촌을 줄여서 박석(博石) 위에 나오게 하는데, 높이가 1척 5촌 이다. 그 초지대(初地臺) 상변(上邊)의 판 5촌과 정지대(正地臺) 하변(下邊)의 판 6촌이 모두 1척 1촌이니, 외 박석(外博石) 상단(上端)의 두께 1척 1촌과 서로 비긴다. 돌[石]마다 상면(上面)의 외변(外邊)에 깊이 1촌 5푼과 너비 4촌을 깎아 줄여서 면석(面石) 하면(下面)의 잇발을 받는다. 지대석(地臺石)마다 서로 접(接)하는 곳에는 외변(外邊) 가까이 각각 5푼을 깎아서 사방 너비가 1촌이나 되는 1개의 구멍을 합해 만들고, 유회(油灰)를 구 멍 속에 메운다. 그 구멍은 위에서 밑바닥을 통하고 가로로 비스듬하게 밖으로 향하여 외박석(外博石)의 상 단(上端)에서 지대석(地臺石)의 위에 들어간다. 또 상면(上面)의 외변(外邊)이 면석(面石)과 우석(隅石)이 서로 접(接)하는 틈의 아래에서 오목한 곳을 파는데, 오목한 곳은 전후(前後)의 직경(直徑)이 4촌이요, 좌우(左右)의 직경(直徑)이 2촌이다. 내변(內邊)의 깊이는 5푼이고, 외변(外邊)의 깊이는 1촌 5푼인데, 그 형세가 기울어져 밖으로 향하게 하여 비록 새어들어오는 물이 있더라도 쉽사리 밖으로 빠지게 한다. 초지대(初地臺)의 위에 두고, 다음에 우석(隅石) 12개를 운채(雲彩)를 새기는데, 높이는 각각 2척 1촌, 두께는 각각 3척, 길이는 각 각 6척이다. 돌[石]마다 양쪽 끝의 외면(外面)에 잇발을 만드는데, 잇발의 길이는 2촌, 두께는 4촌이며, 면석 (面石)의 판 곳과 서로 걸쳐서 합친다. 또 하면(下面)의 외변(外邊)에 잇발을 만드는데, 길이는 1촌 5푼, 두께 는 4촌이며, 지대석(地臺石) 상면(上面) 외변(外邊)의 깎아 줄인 곳과 서로 걸쳐서 합친다. 상면(上面)의 외변 (外邊)에 깊이 1촌 5푼과 너비 4촌을 깎아 줄여서 만석(滿石) 하면(下面) 외변(外邊)의 잇발을 받게 하고, 면 석(面石)과 우석(隅石)이 서로 접(接)하는 곳에도 또한 각각 깊이 5푼과 너비 1촌을 파서 사방 1촌이 되는 구 멍을 합쳐 만든다. 구멍은 위에서 밑바닥까지 통하는데, 유회(油灰)를 구멍 속에 메운다. 그 구멍은 지대석(地 臺石) 상면(上面)의 외변(外邊)에 조그마하게 네모로 판다. 면석(面石) 12개를 높이는 각각 2척 1촌, 두께는 각각 3척, 길이는 각각 6척 4촌이다. 돌마다 외면(外面) 한복판에는 그 방위(方位)의 신(神)을 새기고, 사방에 운채(雲彩)를 새긴다. 그 양쪽 끝은 각각 2촌이다. 깊이 5촌을 깎아 줄여서 우석(隅石) 끝의 잇발과 서로 걸 쳐서 합치게 하고, 하면(下面)의 외변(外邊)에 잇발을 만드는데, 잇발의 길이는 1촌 5푼, 두께는 4촌이며, 지 대석(地臺石) 상면(上面) 외변(外邊)의 깎아 줄인 곳과 서로 걸쳐서 합친다. 정지대석(正地臺石)의 위에 두고, 다음에 만석(滿石) 12개를 높이는 각각 1척 4촌, 너비는 각각 3척 3촌, 길이는 각각 12척 3촌이다. 돌마다 하면(下面) 외변(外邊)의 5촌에 앙련(仰蓮)을 새겨 만들고, 또 잇발을 1촌 5푼, 두께를 4촌을 만들어 면석(面 石)ㆍ우석(隅石)의 상면(上面) 외변(外邊)의 깎아 줄인 곳과 서로 걸쳐서 합친다. 돌 끝마다 서로 접(接)한 곳 의 상면(上面)을 등분(等分)하여 깎아 파서, 너비는 1척 5촌으로 하고, 깊이는 6척으로 하여, 인석(引石)에 들 어가게 하고, 그 양쪽 돌의 서로 접(接)한 끝은 조금 높게 하고, 좌우(左右)는 낮고 깊게 하며, 또 내변(內邊) 을 조금 높게 하고, 외변(外邊)은 점차로 낮게 하여, 만약 새어드는 물이 있더라도 스며 들지 못하게 한다. 우석(隅石)과 면석(面石)의 위에 두고, 또 인석(引石) 12개로써 길이는 각각 6척, 두께는 각각 1척 2촌이다. 돌마다 외단(外端)에 혹은 모란[牧丹]을 새기기도 하고, 혹은 해바리기꽃[葵花]을 새기기도 하여 서로 섞어서 27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71 배설(排設)하고, 그 새긴 꽃의 끝은 만석(滿石)의 밖에 1척 가량 나오게 한다. 하면(下面)의 만석(滿石)을 접 (接)한 곳에는 만석(滿石)의 높고 낮은 데를 따라 서로 맞대어 꼭 들어맞게 한다. 만석(滿石) 위의 판 곳에 가(加)하게 한다. 그 사면(四面)의 배치(排置)한 돌의 안과 숯가루의 위에 본 흙을 사용하여 단단히 쌓아올려서 만석(滿石)의 상변(上邊)에 5촌을 이르지 못해서 그치는데, 가운데는 높고 사방을 낮게 한다. 이에 개석(蓋石)의 내면(內面) 에 묵(墨)으로써 유연묵(油烟墨)을 사용한다. 천형(天形)ㆍ일월(日月)ㆍ성신(星辰)ㆍ은하(銀河)를 그리되, 모 두 전차(躔次)161)에 의거하고 해는 주색(朱色)을 사용하고, 달과 성신(星辰)ㆍ은하(銀河)는 분(粉)을 사용하여 이를 그린다. 그 천상(天象)의 밖과 사방의 방석(傍石)에는 모두 분(粉)으로써 바탕을 삼아, 동쪽에는 청룡(靑 龍)을 그리고 서쪽에는 백호(白虎)를 그리고 머리는 모두 남향하게 한다. 북쪽에는 현무(玄武)를 그리고 머리는 서향하게 한다. 남쪽은 문비(門扉)의 양쪽 돌이 서로 합치는 곳에 주작(朱雀)을 그린다. 양쪽 문비 (門扉)에 나누어 그려서는 합하여 한 형체(形體)로 이루게 하고, 머리는 서향하게 한다. 그 사수(四獸)의 줄 머리[行頭]는 격석(隔石)의 창(窓) 아래를 따라서 그린다. 다음에 소나무 황장판(黃腸板)을 길이와 너비는 석 체(石砌)와 같고, 두께는 4촌이다. 검은 칠을 한다. 석체(石砌)에 두고, 지의(地衣)와 욕석(褥席)을 그 위에 펴 고, 또 석체(石砌) 밖의 지상(地上)에 빙 둘러 대자리와 돗자리를 펴고 재궁(梓宮)을 욕석(褥席) 위에 안치(安 置)하고 그 재궁(梓宮)을 들여 안치(安置)하고 명기(明器) 등을 간수하는 절차는 별도의 의식과 같다. 마침 내 발[簾]을 문 안에 드리운다. 문 안의 상변(上邊)의 좌우(左右)에 작은 갈구리[小鉤]를 설치하여 발을 매단 다. 산릉 도감(山陵都監)의 제조(提調)는 일하는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현궁(玄宮)의 문비석(門扉石)을 닫고 양쪽 석실(石室)에 각각 2개씩이니, 너비는 3척 2촌 5푼, 높이는 6척 3촌, 두께는 2척이다. 그 문비(門扉)는 방속 (傍石)과 격석(隔石)의 판 곳에 각각 5촌씩 들어가고, 개석(蓋石)과 문역석(門閾石)이 판 곳에 각기 4촌씩 들 어간다. 다만 수실(壽室)의 문비석(門扉石)과 문의석(門倚石)은 능록(陵麓)의 경방(庚方)에 묻고, 돌에 새겨 표 말을 세운다. 마침내 문의석(門倚石)을 가(加)한다. 양쪽 석실(石室)에 각각 1개씩 사용하는데, 높이는 5척, 두께는 2척, 너비는 6척 5촌이다. 그 돌의 당처(當處)에는 지대석(地臺石)을 설치하고, 적당하게 문역석(門閾 石)에 연해 배치(排置)하고, 다음에 유회(油灰)로써 꽉 차게 바르고, 다음에 의석(倚石)을 가(加)하고, 또 자물 쇠를 설치한 곳에 자물쇠의 모양에 준하여 이를 파서 꼭 들어맞게 한다. 그 의석(倚石)의 밖에 돌로써 편방 (便房)을 만들고 면석(面石) 1개의 길이는 2척 2촌, 높이는 1척 2촌, 두께는 4촌이고, 우석(隅石) 2개의 길이 는 각각 1척 6촌, 높이는 각각 6척 2촌, 두께는 각각 4촌이요, 개석(蓋石) 1개의 길이는 3척, 너비는 1척 6촌, 두께는 4촌이다. 면석(面石)과 우석(隅石)으로써 문의석(門倚石)의 밖에 설치하여 3면(面)을 만들고, 개석(蓋 石)을 가(加)하여 편방(便房)을 만든다. 방(房) 안의 길이는 2척 2촌, 너비는 1척 2촌이다. <석회(石灰)ㆍ세사 (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과 숯가루를 쌓아 올리되, 3면(面)을 쌓아 올리는 법과 같이 한다. 그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ㆍ숯가루의> 네가지 물질[四物] 밖에 돌로써 배열(排列)하고 흙을 섞어 서 메워 쌓은 후에 초지대석(初地臺石)을 석실(石室)의 전면(前面)에 배치(排置)하고, 다음에 정지대석(正地臺 石)을 두고, 다음에 우석(隅石)과 면석(面石)을 두고, 다음에 만석(滿石)을 두고, 다음에 인석(引石)을 두고 그 돌을 배치(排置)하고 흙을 쌓고 못[釘]을 당기게 하는 법은 모두 3면(面)과 같이 한다. 다음에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을 만석(滿石)의 안에 채우고, 만석(滿石)의 상변(上邊)으로부터 5촌을 쌓아 올리지 못해서 비로소 빙 둘러 쌓는데, 모양이 엎은 가마솥[覆釜]과 같으며, 두께는 2척 5촌이 되면 그만 그친다. 그 만석(滿石)의 상면(上面) 외변(外邊) 1척에는 <석회(石灰)ㆍ세사(細 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을 쌓아 올리지 아니하고, 다만 본 흙을 쌓아 올릴 때에 아울러 이를 쌓아 올린다. 또 본 흙을 그 위에 쌓아 올리되, 뾰족하고 둥그스름한 데[剡圓]에 이르러 그친다. 사토(莎土) 로써 덮는데, 능(陵)의 높이는 만석(滿石)으로부터 위가 12척 5촌이나 된다. 또 12면(面) 초지대석(初地臺石)의 밖에, 먼저 나간 아래 지대[欄干下地] 12개와 두께는 각각 1척 5촌, 너비는 각각 3척, 길이는 각기 9척 3촌 이다. 우석(隅石) 12개를 두께는 각각 1척 5촌, 너비는 각각 3척, 길이는 각각 6척이다. 지대석(地臺石)과 우석(隅石)의 너비 3척 내에서 1척 5푼은 외박석(外博石)의 하단(下端)에 들어가고, 1척 5촌은 밖에 나온다. 161) 전차(躔次) : 성좌(星座).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1

272 난간과 석주(石柱)와 동자주(童子柱)를 세운다. 설치하되, 서로 섞어서 배치(排置)하고, 초지대석(初地臺石)과 난간 아래 지대석[欄干下地臺石]은 우석(隅石)의 사이에 양쪽 박석(博石)의 서로 접(接)하는 곳을 헤아려서 각 각 지석(支石)을 설치하고, 그 돌 사이에는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을 사 용하여 단단히 쌓아 올리고, 위에는 외박석(外博石)을 설치하여 위의 너비는 각각 4척이요, 아래의 너비는 각각 5척이며, 위의 두께는 각각 1척 1촌이고, 아래의 두께는 각각 7촌이요, 길이는 각각 4척 6촌이다. 12면 (面)의 모퉁이마다 각각 1개를 사용하고, 면(面)마다 각각 2개를 사용하는데, 합계 36개이다. 밖을 향하여 기 울어지게 하여 물을 멈추어지지 못하게 하고, 박석(博石)의 상단(上端)은 초지대석(初地臺石)과 정지대석(正 地臺石)의 사이의 판 곳의 5촌에 들어간다. 석주(石柱) 12개로써 높이는 각각 6척이고, 사방의 너비는 각각 1척 1촌이다. 상단(上端) 1척으로써 원수(圓首)를 만들고, 다음에 1척 3촌을 나누어 앙복련(仰覆蓮)을 만들고, 다음에 9촌으로써 죽석(竹石)의 끝 부분에 넣고, 다음에 2척 1촌으로써 양방(兩傍)에 나누어 앙복련엽(仰覆蓮 葉)을 만들고, 사이에 원주(圓珠)의 앙련엽(仰蓮葉)과 경죽석(擎竹石) 끝의 복련엽(覆蓮葉)을 세겨서, 우석(隅 石)을 누르게 하는데, 합하여 높이는 5척 3촌이나 된다. 그 복련엽(覆蓮葉)의 아래 7촌에는 빙 둘러 원경(圓 徑) 7촌을 깎아 줄여서 우석(隅石)의 판 속에 세운다. 우석(隅石)의 위에 세우고, 다음에 동자석주(童子石柱) 12개로써 높이는 각각 2척 9촌, 사방의 너비는 각각 1척 1촌이다. 상단(上端)의 1척 1촌으로써 앙련엽(仰蓮 葉)과 경죽석(擎竹石)의 연접(連接)하는 곳을 만들고, 다음에 1척 1촌으로써 기둥[柱]을 만들고, 하단(下端)의 7 촌으로써 빙 둘러 원경(圓徑) 7촌을 깎아 줄여서 지대석(地臺石)의 판 속에 세운다. 지대석(地臺石)의 위에 세우고, 돌기둥 사이에 세운다. 죽석(竹石) 24개를 길이는 각각 6척 9촌이다. 8면(面)이 각각 3촌이고, 직 경(直徑)은 3촌이다. 석주(石柱)의 사이와 동자석주(童子石柱)의 위에 가로로 세우고 한쪽 끝은 석주(石柱) 의 앙복련엽(仰覆蓮葉) 사이에 접하고, 한쪽 끝은 동자석주(童子石柱)의 위에 접한다. 차례로 빙 둘러 연하여 배치(排置)하고, 그 서로 접(接)하는 곳에는 모두 유회(油灰)를 사용하여 이를 채운다. 난간의 1면(面)은 길이가 15척 3촌이니, 12면(面)의 둘레는 1백 83척 6촌이나 된다. 우석(隅石)마다 외면(外面) 에 흙을 파서 외지석(外支石) 12개를 너비는 각각 2척, 두께는 각각 1척 5촌, 길이는 각각 6척이다. 우석(隅 石)마다 외면(外面)이 땅에 들어가서 떠받치게 한다. 배치(排置)하여, 우석(隅石)을 물러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 지대석(地臺石)과 우석(隅石) 밖의 공지(空地)에 빙 둘러 너비 3척, 깊이 2척 가량을 파서 <석회(石灰)ㆍ세 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을 단단히 쌓아 올리고, 동쪽ㆍ서쪽ㆍ북쪽의 3면(面)에 원장(垣墻) 으로써 두르는데, 높이가 3척 4촌이다. 북장(北墻) 아래에 2개의 층계를 설치하고 담[墻] 안에 석양(石羊) 4개 를 높이는 각각 3척, 너비는 각각 2척, 길이는 각기 5척이다. 네 개의 다리 안에는 파지 아니하고서 초형(草 形)을 새긴다. 대석(臺石)은 발과 연하여 높이가 1척이다. 대석면(臺石面)은 땅과 가지런하게 한다. 동쪽과 서 쪽에 각각 2개씩을 설치하고, 석호(石虎) 4개를 높이는 각각 3척 5촌, 너비는 각각 2척, 길이는 각각 5척이 다. 대석(臺石)은 석양(石羊)과 같다. 북쪽에 2개,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를 설치하되, 석양(石羊)의 사이에 있다. 모두 밖을 향하게 한다. 남쪽에 3개의 층계를 설치하고 석실(石室)의 남쪽 7척쯤에 땅을 깊이 5척을 파서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을 사용하여 밑바닥을 쌓아 올리되, 두께는 1 척 5푼으로 한다. 유회(油灰)로써 지석(誌石)의 내변(內邊) 4변(四邊)을 잠시 발라서 자획(字畫)에 침근(侵近)하 지 못하게 하고, 곧 개석(蓋石)으로써 서로 합친다. 또 유회(油灰)를 양쪽 돌의 합봉(合逢)한 틈에 바르고, 동 철승(銅鐵繩)으로써 이를 묶되, 가로와 세로를 각각 1개씩으로 하여 판 땅의 속에 설치한다. 그 사방과 상면 (上面)에는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 물질[三物]로써 서서히 쌓아 올려서, 두께를 1척 5푼이 되게 한 후에 본 흙으로 메워 쌓서 이를 묻는다. 또 석실(石室)의 남쪽 한복판에 석상(石床) 1개를 두 고, 길이는 9척 9촌, 너비는 6척 4촌, 두께는 1척 5촌이다. 족석(足石)이 4개인데 형상은 북과 같으며, 사면 (四面)에 물고기 머리를 새긴다. 사방의 모퉁이에 각각 1개씩 두는데, 높이는 1척 5촌이고 원경(圓徑)은 2척 5 푼이다. 아래에 지대석(地臺石)이 있다. 그 좌우(左右)에 석망주(石望柱)를 세우고, 길이는 각각 7척 3촌인 데, 상단(上端) 1척으로써 원수(圓首)로 만든다. 다음에 1척 3촌으로써 위에는 운두(雲頭)를 새기고 아래에는 염의(簾衣)를 새긴다. 다음에 4척 3촌으로써 8면(面)을 만든다. 염의(簾衣)의 아래 내면(內面)에는 귀를 만들 어 구멍을 파고, 하단(下端)의 7촌은 빙 둘러 깎아 줄여서 대석(臺石)을 판 속에 세운다. 대석(臺石)의 높이는 각각 3척 6촌인데, 상단(上端)의 2척 6촌으로써 고루 나누어 상층(上層)ㆍ하층(下層)을 만들고, 그 중간을 허 27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73 리로 만든다. 허리의 길이는 6촌 1푼인데, 상층의 하변(下邊)에는 앙련엽(仰蓮葉)을 새기고, 하층의 상변(上邊) 에는 복련엽(覆蓮葉)을 새기고, 하변(下邊)에는 운족(雲足)을 새긴다. 상하(上下)의 원경(圓徑)이 각각 2척 1촌 이고, 상층ㆍ하층과 허리가 모두 8면(面)이다. 그 하층의 1척은 땅 속에 들어간다. 중계(中階)의 한복판 북쪽 가까이에 장명등(長明燈)을 설치하고, 정자석(頂子石)의 높이는 2척 5촌인데, 상단 (上端)의 1척 5촌으로써 원수(圓首) 2층(層)을 만들어, 층마다 아래에는 연주(連珠)를 새긴다. 하단(下端)의 1척 가량은 빙 둘러 둥글게 깎아서 개석(蓋石) 꼭대기를 판 구멍 속에 넣는다. 그 원수(圓首)의 깎은 곳에는 사면 (四面)을 오목하게 파서 밑바닥으로부터 제 2층의 연주(連珠) 사이에 이르게 된다. 사방의 옆을 통해 파서 연 기(烟氣)를 흩어지게 한다. 개석(蓋石)은 8면(面)이 운각(雲角)이다. 상단(上端)에는 앙련엽(仰蓮葉)을 새기는 데, 높이는 2척 5촌, 상경(上徑)은 1척 1촌, 하경(下徑)은 4척 5촌이다. 한복판에 구멍을 통해 파서 정자(頂子) 의 하단(下端)이 들어가도록 마련한다. 격석(隔石)ㆍ대석(臺石)ㆍ지대석(地臺石)을 합쳐서 높이가 6척 9촌인데, 그 위의 1척 8촌으로써 격석(隔石)을 만들어 8면(面)이 된다. 그 속을 통해 파서 사면(四面)에 창(窓)이 있는 데, 직경(直徑)은 2척 5촌이다. 다음에 4척 1촌으로써 대석(臺石)을 만들어, 그 위의 1척 2촌으로써 앙련엽(仰 蓮葉)을 새기고, 다음에 1척 1촌으로써 허리를 만들어 모퉁이마다 연주(連珠)를 새긴다. 다음에 1척 8촌으로써 위에는 복련(覆蓮)을 새기고, 아래에는 운족(雲足)을 새긴다. 상층ㆍ하층과 허리가 모두 8면(面)이고, 상하(上 下)의 직경(直徑)이 각각 3척 3촌이다. 다음에 하단(下端)의 1척으로써 지대(地臺)를 만들어 땅 속에 들어가게 한다. 좌우(左右)에 문석인(文石人) 각각 1개와 관대(冠帶)를 착용(着用)하고 홀(笏)을 쥐고 있는 형상을 새 긴다. 키는 8척 3촌, 너비는 3척, 두께는 2척 2촌이다. 대석(臺石)은 발까지 연하여 높이는 3척 4촌이다. 땅 밖에 나온 것이 6촌인데, 운족(雲足)을 새기고 땅에 들어간 것이 2척 3촌이다. 석마(石馬) 각각 1개씩을 세 운다. 높이는 3척 7촌, 너비는 2척, 길이는 5척이다. 대석(臺石)과 사각(四脚)의 안은 석양(石羊)과 같다. 문 석인(文石人)의 남쪽 조금 뒤에 있다. 하계(下階)의 좌우(左右)에 무석인(武石人) 각각 1개를 세우고, 갑주(甲胄)를 입고 검(劍)을 차고 있는 형상을 새긴다. 키는 9척, 너비는 3척, 두께는 2척 5촌이다. 대석(臺石)은 문석인(文石人)과 같다. 또 석마(石馬) 각 각 1개를 세우되, 무석인(武石人)의 남쪽 조금 뒤에 있다. 모두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마주보게 한다. 석실 (石室) 정남방(正南方)의 산기슭에 정자각(丁字閣)을 건축하고, 예감(瘞坎)을 그 북쪽의 임지(壬地)에 판다. 그 동쪽에는 비각(碑閣)을 세우고, 만약 내상(內喪)이 먼저 있으면, 비(碑)는 세우지 아니한다. 남쪽에 고방(庫 房)을 설치하고, 그 재주(齋廚)와 재방(齋坊)은 땅의 적당한 데 따라 세운다. 능지기[陵直] 2인과 수호군(守護 軍) 1백 호(戶)를 두어서 청소(淸掃)와, 초채(樵採)를 금지하는 일을 맡게 한다. 영인본 5책 387면 태백산사고본 46책 134권 20장 B면 성종 13권, 2년(1471 신묘 / 명 성화(成化) 7년) 11월 10일(무신) 2번째 기사 전국에서 일제히 개화(改火)의 법을 따라 불을 나누어 주게 하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지난 번에 전교(傳敎)를 받자오니, 개화(改火)162)의 법은 경외(京外)가 같지 아니하니, 금후로는 옛 제도를 따라 시행(施行)하라. 하였으므로, 삼가 주례(周禮) 를 안험하니, 사관(司爟)이 행화(行火)163)하는 정령(政 令)을 맡아, 4시(四時)로 국화(國火)를 변화시켜서 때때로 퍼지는 질병을 구원하였다. 하고 그 주(註)에 이르 기를, 봄에는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柳]에서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棗]와 은행나무[杏]에서 불을 취하며, 하계(夏季)에는 뽕나무[桑]와 산뽕나무[柘]에서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갈참나무[柞]와 느릅나무[楡]에 서 불을 취하며, 겨울에는 느티나무[槐]와 박달나무[檀]에서 불을 취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제 경중(京中)은 162) 개화(改火) : 불씨를 새롭게 하는 뜻으로, 병조(兵曹) 및 각 지방 관청에서 매년 사계(四季)의 입절일(入節日)과 늦여 름의 토왕일(土旺日)에 나무를 서로 비비어 불을 새로 만들어 궁전(宮殿)에 진상(進上)하고 민가(民家)에 나누어 주 고 전의 불을 끄게 하던 일. 163) 행화(行火) : 개화(改火)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3

274 옛 법을 준용(遵用)하되 외방(外方)은 봉행(奉行)하지 않으니, 청컨대 금후로는 경중은 한성부(漢城府)로 하여 금 불을 본조(本曹)164)에서 받아 5부(五部)에 나누어 주게 하고, 외방도 또한 이 예(例)를 따르게 하여, 여러 고을로 하여금 집집마다 나누어 주는 것을 일제(一齊)히 거행하게 하여, 어기는 자는 과죄(科罪)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5장 A면 영인본 8책 609면 분류 *풍속풍속(風俗) 연산 60권, 11년(1505 을축 / 명 홍치(弘治) 18년) 12월 24일(갑술) 5번째 기사 세시에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를 쏘는 것을 사시 개화할 때도 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砲)를 쏘는 것은 벽사(辟邪)165)하는 것이니, 어찌 세시(歲寺)166)에만 할 것인가. 사시 (四時) 개화(改火)167)할 때에도 아울러 행하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역질을 쫓는 사람의 복색은 봄에는 푸르 게, 여름에는 붉게, 가을에는 희게, 겨울에는 검게 절후에 따라 바꿔 입게 하되, 세시에는 네 가지 색깔을 같 이 쓰게 하라. 역질을 쫓을 때 사람의 수(數)가 너무 많으니, 앞으로는 좌우 상(廂)을 합쳐 한 상으로 만들어 줄일 수 있는 사람은 줄이되, 방상씨(方相氏)168)와 귀신을 부르는 사람은 줄이지 말라. 그리고 노니는 사람을 4대(隊)로 만들어, 사시에 아울러 쓰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21장 A면 영인본 14 책 33 면 분류 *풍속예속(禮俗) / *보건(保健) 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5월 14일(경자) 3번째 기사 함경 북도 병사 홍하명이 두만강 서쪽의 강물 범람의 대책에 관해 장계 함경 북도 병사(兵使) 홍하명(洪夏明)이 장계를 올리기를, 육진(六鎭)은 오랑캐의 땅과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하여 그들은 강의 동쪽에 있고, 우리는 강의 서쪽에 있는데,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서 강물이 장마로 인하여 붇게 되면 물이 서쪽으로 밀려서 갈래가 집니다. 그리하여 본래 흐르던 갈래는 점점 물이 적어지고, 새로 생긴 갈래는 점점 물이 많아져서 경흥부(慶興府)의 가장 가까운 강변(江邊)이 물결의 충격으로 언덕이 붕괴되니, 그 형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갈라진 물 을 감하여 물을 옛길로 돌리려고 한다면, 비록 도민(道民) 전체의 힘을 동원시킨다 하더라도 또한 어려울 것 입니다. 지금이라도 피해가 더욱 심한 곳에다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꽂아서 울타리 같은 모양을 만들고 그 안쪽으로 토석(土石)을 메운다면,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되어 서로 연결되어 버티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책(下策)에 불과합니다마는 구급(救急)하는 방도를 강구(講求)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하니, 이 일을 비국(備局)에 내리도록 하였다. 164) 165) 166) 167) 본조(本曹) : 예조 벽사(辟邪) : 사귀를 물리치는 것. 세시(歲寺) : 설. 개화(改火) : 불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나무를 서로 비벼 신화(新火)를 내어 구화(舊火)를 고치는 의 식. 병조에서 입춘(立春)ㆍ입하(立夏)ㆍ입추(立秋)ㆍ입동(立冬)의 입절일(立節日)과 토왕일(土旺日)에 불을 만들어 각 궁전에 진상하고 모든 관아에 나누었는데, 입춘에는 버드나무 판에 느릅나무로 입하에는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로, 토왕일에는 산뽕나무 판에 뽕나무로, 입추에는 참나무 판에 가락나무로, 입동에는 박달나무 판에 홰나무로, 판의 구 멍을 비벼 불을 냈음. 각 고을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음 168) 방상씨(方相氏) : 방상은 주(周)나라의 벼슬 이름으로 주로 역질(疫疾)을 쫓는 일을 맡았음. 그는 곰 가죽을 쓰고 황 금으로 만든 눈 4개를 달고 검은 곳에 붉은 치마 입고 창을 짚고 방패를 들었다고 함. 주례(周禮) 하관(夏官) 27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75 태백산사고본 39책 35권 23장 B면 영인본 39책 597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정조 50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11월 30일(기축) 1번째 기사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구언 전지에 대한 배의 등 27명의 상소문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農書)를 구하는 윤음을 내렸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내년 기미년은 바로 선왕께서 적전(籍田)에서 친히 밭을 간 해이다. 50년 간을 임금 자리에 계시면서 온 나 라를 덕으로 함육하셨는데, 대개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것으로 정사와 교화의 근본 을 삼았으며, 오래 사는 공효의 바탕으로 삼았다. 크고도 높은 공으로 크게 무궁한 터전을 닦으셨는데, 태세 성(泰歲星)169)이 한 바퀴 돌아서 예전의 그 기미년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나 소자가 어찌 감히 선왕께서 남기 신 뜻을 공경히 이어받아 그 빛나는 위업을 만분의 일이나마 드날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농사를 지어 살아간다. 그러니 농사가 잘 되지 못하면 백성들에게 곡 식이 없게 되니, 백성들이 곡식이 없으면 나라가 어찌 다스려지겠는가. 나 자신이 먹는 것은 줄일 수 있지만 백성들이 끼니를 거르게 할 수는 없으니, 백성들이 끼니를 거르는 것은 그 책임이 농사를 잘못 짓는 데 달려 있다. 농사를 부지런히 짓지 않으면 어찌 가을걷이할 것이 있겠는가. 백성들이 농사지음에 있어서는, 비록 천시(天時)를 따라야 하나 마땅히 지리(地利)를 다하여야 하며, 비록 지 리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여야 하는 법이다. 오행(五行)이 교대로 운행하는 것을 따르고 사계절에 붙어 왕성하는 토(土)의 성질을 체득하여 흙에 의지해 농사짓는 것이 백성들의 사명 (司命)인바, 밭에서 일하는 수고로움이 또한 많다. 거름을 져내는 수고와, 물을 대는 수고, 호미질하여 풀뽑는 수고, 밭갈이하는 수고, 씨뿌리는 수고, 김매고 북돋아 주는 수고, 들밥 나르는 수고, 짐승 기르는 수고가 바 로 그것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1백 일은 족히 수고하는데다가 가을이 되어 곡식이 익으면 또 이를 베어 거두 어들이는 수고와 타작을 하는 수고가 있다. 그러나 수고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에 따라 풍년이 드느냐 흉년이 드느냐가 결정되니 아, 우리 농민들이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주부자(朱夫子)가 천주(泉州)와 장주(漳州)에서 관리가 되었을 때 산골에서 농민들을 위로하면서 새로 빚은 술을 마주하고 곡식을 적기에 수확할 것에 대한 시[銍艾中熟之詩] 를 지었는데, 그것은 대개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고하는 자는 백성들이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아전들이다. 백성들이 수고하고 있는데 관리들이 어찌 감히 편안히 지내겠는가. 돌아보건대 우리 나라는 산으로 덮이고 바다로 둘러쌓여 있으며 기름진 들판이 많아 본디부터 입을 것과 먹 을 것이 풍족한 지역이라고 칭하여 왔다. 그런데도 농사짓는 방법에 어둡고 게으른 습속이 있으며, 권농관(勸 農官)은 제 직책을 다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고 있다. 그리하여 한번 수재나 가뭄을 만나기만 하면 입을 것 이나 먹을 것이 모두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어째서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이 제 할 일을 다하지 못 하고 지리를 다 이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농사짓는 근본은 부지런함과 수고함에 달려 있는데, 그 요체는 역시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고 농작물을 토질에 맞게 심으며 농기구를 잘 마련하는 것뿐이다. 이 세 가지가 그 요체인데, 그 가운데서도 수리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첫번째를 차지한다. 주역(周易) 에서 수(水)와 지(地)가 합쳐진 것이 비괘(比卦)이고 지와 수가 합쳐진 것이 사괘(師卦)가 되는데, 이것이 정전법(正田法)의 기본 원리이다. 토질에 잘 맞게 하고자 한다 면 물을 놔두고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공류(公劉)170)가 황무지에 살다가 황간(皇澗)을 끼고 있는 곳으로 옮겼고, 태왕(太王)171)이 서호(西滸) 가에 집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농삿일에 밝은 원성(元聖)172)도 먼저 장인 169) 태세성(泰歲星) : 목성을 말함 170) 공류(公劉) : 후직(后稷)의 증손 171) 태왕(太王) : 고공단보(古公亶父). 주 문왕의 조부로 처음 주나라를 세웠음 172) 원성(元聖) : 이윤(伊尹).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5

276 (匠人)을 두어 크고 작은 수로를 만들었으며, 이를 주관(周官) 에 기록하였다. 위(魏)나라에는 이회(李悝)가 만든 하천이 있었고, 진(秦)나라에는 정국(鄭國)의 도랑173)이 있었으며, 한(漢)나라에는 문옹(文翁)의 못이 있 었고 당(唐)나라에는 위단(韋丹)의 못이 있어서 물을 끌어 저축해 놓았다가 이것으로 밭에 물을 대었다. 그리 하여 비록 비가 제때에 내리지 않더라도 6, 7월에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제언(堤堰)에 관한 정사를 오랫동안 버려두어 제언에다 불법적으로 경작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호남 지방의 벽골제(碧骨堤)와 호서 지방의 합덕지(合德池), 영남 지방의 공검지(恭儉池), 관북 지방의 칠리(七里), 관동 지방의 순지(蓴池), 해서 지방의 남지(南池), 관서 지방의 황지(潢池)와 같은 제언은 나라 안 에서 큰 제언이라고 칭해지는데 터놓을 곳을 터놓지 않고 막을 때 막지 않아서 장마가 지나간 뒤 즉시 말라 붙어 해마다 흉년이 들고 있다. 오늘날의 커다란 계책으로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큰 제언들을 먼저 손보는 것보다 더 앞서는 일이 없으며, 이를 미루어 나가서 모든 일을 골고루 베풀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러 도로 하여금 각자 자기 관할 구역 안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다 바치게 한다면 정성과 노력이 이르는 바에 따라 그 효과가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수리의 효과는 토질의 적절함과 서로 잘 맞은 뒤에야 나타나는 법이다. 평평한 땅과 습한 땅, 밭두둑 과 밭고랑은 각각 등급이 다르고, 늦벼와 올벼, 기장과 조는 성질이 다르며, 습한 땅에는 벼가 잘 자라고 마 른 땅에는 오이를 심는 법이다. 빈(豳) 땅 사람들은 밭을 새로 일구어서 보리를 심었고, 기(岐) 땅 사람들은 잡초를 베고 밭을 갈았으며, 온(溫) 땅 사람들은 보리를 중하게 여기고 낙(雒) 땅 사람들은 벼를 중하게 여겼 으니, 이는 바로 시경(詩經) 에서 읊고 있는 것이다. 벼는 높고 건조한 땅에 심고 기장은 평평하고 비옥한 땅에 뿌리는가 하면 기름진 땅은 모두 다 담배와 차를 심는 밭이 되고 말아서 농사가 형편없게 되었고, 명산 (名山)은 대부분 화전(火田)으로 일궈졌으나 곡식은 흔해지지 않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것이 북쪽 지방에는 적당치 않으며, 산골짜기에 잘 자라는 것이 들판에서는 잘 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남쪽 지방이 나 북쪽 지방이나 농사짓는 방법이 똑같고 언덕과 습지를 구별하지 않고서 이앙법(移秧法)만을 위주로 하고 씨를 심는 자가 드무니,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의 이해가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필경에는 해로운 점이 둘일 경우 이로운 점은 한 가지가 될 뿐이다. 이에 제때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흉년이 드는데, 이는 어느 곳 이나 다 그러하다. 농기구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이르러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더더욱 어두워서 복희씨(伏羲氏)나 신 농씨(神農氏) 시대 이전과 다름이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시경 에 나오는 창고나 풀 베는 기구가 진실로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단지 그 가운데서 긴요한 것만 말한다면, 수차(水車)는 가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고, 수레는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며, 대바구니는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고, 방아는 곡식을 찧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를 사용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돌아보건대, 그 일을 제대로 해서 그 이익을 다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느니 농사지어 보아야 굶기만 할 뿐이라느니 한다면, 이는 나무를 거꾸로 심어놓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것에 가깝지 않겠는가. 구공(九功)174)으로 독려하고 구가(九歌)로 권장하여 도롱이를 입고 논밭에서 일하는 백성들로 하여 금 모두 다 각자의 힘을 다하게 하고 지혜를 다 쓰게 하여서, 밭은 개간되지 않은 곳이 없고 개간된 밭에는 씨뿌리지 않은 곳이 없으며, 씨뿌린 곳은 먹지 못하는 곳이 없게 한다면, 관자(管子) 에 이른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부지런한 데 달렸으니 부지런하면 굶주리지 않는다. 고 한 것과, 위지(魏志) 에서 이른바 사람들이 모두 부지런히 일하면 풍년드는 해가 자주 있을 것이다. 고 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될 것 이다. 내가 일찍부터 근본을 돈독히 하고 실제적인 데 힘쓰는 정사에 뜻을 두고 농서(農書)를 편찬하여 여러 주와 173) 진(秦)나라에는 정국(鄭國)의 도랑 : 전국(戰國) 시대에 한(韓)나라가 진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수공(水工) 정국 (鄭國)을 시켜서 진(秦)나라에 가서 대대적인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게 하여 진나라를 피폐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 진은 이 관개사업으로 관중(關中)이 비옥해져서 막대한 국력을 양성할 수 있었다. 사기(史記) 권29 하거서 (河渠書). 174) 구공(九功) : 구공은 육부(六府)와 삼사(三事)를 가리키는데, 육부는 수(水)ㆍ화(火)ㆍ금(金)ㆍ목(木)ㆍ토(土)ㆍ곡(穀)을 맡은 곳이며, 삼사는 정덕(正德)ㆍ이용(利用)ㆍ후생(厚生)을 말한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27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77 군에 반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옛날과 지금은 사정이 서로 다르고 풍토(風土)가 똑같지 않으며, 가난하고 부유함을 고르게 하기 어렵고 일과 힘이 미치지 못하여서, 획일적으로 정하여 놓고 그것만을 지키게 할 수가 없었다. 대궐은 만리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 좋은 방책을 진달하라. 그러면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여 절충해 쓸 것이니 그런즉 농가(農家)의 대전(大典)이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농삿일이란 위로 중성(中星)에 속하고 겉으로는 기운(氣運)과 잘 맞아야만 하는 법이다. 축월(丑月)175)의 중간은 대한(大寒)의 절기로서 토(土)의 기운이 처음으로 생겨나고, 미월(未月)176)의 중간은 대서(大署)의 절기 로서 토를 습하게 하는 태음(泰陰)의 기운이 비로소 생겨나니, 축월이 미월과 더불어 상대되어서 토가 비로 소 용사(用事)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미 지나간 일은 뒤쫓기 어려움을 개탄하고 앞으로의 도움이 있기를 기 대함으로써 다가오는 새해를 일으키고 농부들을 격려하는 바이다. 중요한 것은 일찍 서두르는 것이니, 어찌 새봄이 오기를 기다려 교서를 내리겠는가. 오늘은 축일(丑日)이고 내일이면 축월(丑月)이 된다. 미시(未時) 정 각에는 절기가 교대로 이르니 토우(土牛)를 빚어놓고 풍년들기를 기원하기에는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더구 나 전의 공적을 일으키기를 도모하고 그때의 날과 달을 따르는 것이 실로 내가 선왕의 뜻을 우러러 이어받 는 한 가지 일이 되는 데이겠는가. 아, 경외(京外)의 대소 관료와 백성들은 모두 다 모름지기 잘 듣고 알도록 하라. 농삿일에 도움이 될 만한 자 신의 견해가 있으면, 상소를 올리거나 책으로 엮거나 하여, 서울은 묘당에 바치고 지방에서는 감사에게 바치 라. 그리고 이속(異俗)에 빠지거나 예전 방법에 구애되지 말고, 바닷가와 산골,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에 맞 추어서 각자 마땅한 방법을 진달하라. 사람들의 계책이 진실로 훌륭하면 능히 하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풍년을 내려 곡 식을 많게 하여 우리 백성들이 쌀밥을 먹고 태평 세월을 누리게 된다면, 이것은 우러러 우리 선왕께서 백성 들을 편안케 하고 농정에 힘쓴 훌륭한 덕과 지극한 사랑에 부응하는 것이 될 것이며, 또 나 소자(小子)의 씨 뿌리고 수확하는 데 대한 지극한 정성과 애달픈 마음을 돕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농정(農政)을 일으키고 농서(農書)를 한 곳으로 모으려고 하는 것은 농부들이 가을 수확을 고대하는 것보다도 더 간절하다. 내가 즉위한 지 22년 째 되는 해 축월(丑月)이 되기 하루 전날인 기축일(己丑日) 미시 정각에 교서를 내린 다. 하였다. 이에 이 구언 전지에 응하여 글을 올린 자가 27인이었는데, 충의위 배의(裵宜), 홍주(洪州)의 유학 신재형(申 在亨), 전 동지(同知) 김천숙(金天肅), 대구(大邱)의 유학 유동범(柳東範), 부호군 복태진(卜台鎭), 영암(靈巖)의 유학 정시원(鄭始元), 전 감찰 이우형(李宇炯), 수위관(守衛官) 윤보(尹溥), 전 영(令) 염덕우(廉德隅), 수위관 유종섭(劉宗燮), 전 찰방 강요신(康堯愼), 전 충의(忠義) 장지한(張志瀚), 전 순릉 참봉(純陵參奉) 이상희(李尙 熙), 부사과 이인영(李仁榮), 전 군수 윤홍심(尹弘心), 신계(新溪) 유생 정석유(鄭錫猷), 순장(巡將) 정도성(鄭道 星), 전라 도사 김하련(金夏璉), 영월 부사(寧越府使) 이경오(李敬五), 삼가(三嘉) 유학 정응참(鄭應參), 언양(彦 陽) 유학 전만(全萬), 후릉 영(厚陵令) 김응린(金應麟), 전 동지 김양직(金養直)ㆍ최세택(崔世澤), 상주(尙州) 유 학 이제화(李齊華), 순안(順安) 진사 김치대(金致大)였다. 전 지평 윤재양(尹在陽) 역시 시무 상소(時務上疏)를 올리면서 농정(農政)에 대해서도 덧붙여 진달하였다. 농서(農書)를 올린 자는 40인이었는데, 남원(南原) 유학 장윤(張 )ㆍ허호(許顥)ㆍ허질(許耋)ㆍ노익원(盧翼遠), 공주(公州) 생원 유진목(柳鎭穆), 공주 유학 임박유(林博儒), 양주(楊州) 유학 안성탁(安聖鐸), 서울에 사는 서 민 이필충(李必忠), 홍천(洪川) 유학 이광한(李光漢), 고성(高城) 유학 권현(權炫)ㆍ노재황(盧再煌), 흡곡(歙谷) 유학 조지영(趙之榮)ㆍ정치일(鄭致一)ㆍ표헌정(表憲正), 보은(報恩) 유학 이동응(李東膺), 덕산(德山) 유학 이의 주(李宜璹), 수원(水原)의 절충(折衝) 원재하(元在夏), 정산(定山) 유학 김훈(金勳), 서울에 사는 유학 이만록(李 晩祿), 교하(交河) 유학 이문철(李文哲), 나주(羅州)의 유학 나민휘(羅敏徽)ㆍ나학신(羅學愼), 순창(淳昌) 유학 신보권(申輔權), 영광(靈光) 진사 이대규(李大奎), 전주(全州) 유학(幼學) 김상직(金尙直)ㆍ이여효(李汝孝)ㆍ송상 175) 축월(丑月) : 음력 12월. 176) 미월(未月) : 음력 6월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7

278 휘(宋相彙)ㆍ이장렬(李章烈), 진안(鎭安) 유학 박종혁(朴宗赫), 고부(古阜) 유학 박도흠(朴道欽), 능주(綾州) 진 사 남익(南熤), 광주(光州) 진사 이의우(李宜 ), 유학 박문찬(朴文燦)ㆍ정윤국(鄭潤國), 무장(茂長) 유학 강석운 (康錫運)ㆍ강순(康洵), 남원(南原) 전 현감 장현경(張顯慶), 장련(長連) 진사 박재설(朴載卨), 해주(海州) 유학 김호(金皓)ㆍ이훈(李薰)이었다. 배의(裵宜)의 상소에 아뢰기를, 농사에는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전에는 곡우(穀雨)에 씨를 뿌리고 하지에 모내기를 하였으니 농사 철이 오히려 일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씨뿌리기와 모내기를 곡우와 하지 두 절기보다 먼저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늦다고 여깁니다. 이에 씨뿌리기와 모내기를 일찍하도록 힘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보리가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점이 벼 못지 않은데, 사람들은 보리를 밭에 심는 것만 좋은 줄 알고 논에다 심는 것도 좋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릇 논은 추수한 뒤에는 그대로 빈 땅이 되어버리는데 빈 땅으로 되었을 때 물을 빼내고 건답(乾畓)을 만들어서 수만 평의 논에 모두 보리를 심었다가 보리를 수확한 뒤 곧바로 모내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혹 벼가 가을에 제대로 여물지 않았을 경우에도 보리로 굶주림 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서로 돕는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의 경우에는 밭갈고 씨뿌릴 철에 소와 종 자가 없어서 농사를 못짓는 자가 많습니다. 이러 병통을 고치자면 고을의 수령들이 면이나 리의 부로(父老) 를 골라 뽑아서 그들에게 권농관(勸農官)의 책임을 지운 후 각기 면과 리의 부자와 가난한 자를 조사하여 장 부를 만든 다음 부자로 하여금 종자 곡식을 내어 가난한 자에게 꾸어주게 합니다. 면이나 리에 부자집이 없 을 경우에는 관청에서 곡식을 내어주었다가 가을이 되거든 도로 받아들입니다. 만약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부자는 손해가 없고 가난한 자는 의지할 바가 있을 것입니다. 또 소를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엄하게 하 면 소가 저절로 흔해질 것입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생업에 안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수령들에게 달렸는바, 수령들을 적임자로 임명하기만 하 면 농사에 힘쓰는 것은 그 가운데서 저절로 될 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농정(農政)에 대해서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듣고자 해서 특별히 교서를 내려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나 의 말이 사리에 어두워서 합당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현재의 급선무 가운데 어찌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겠는 가. 그런데도 교서를 내린지 여러 날이 되도록 의견을 개진하는 상소가 올라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었다. 너는 공신(功臣)의 후손으로서 교서에 응하여서 조목별로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모두가 실용에 적당한 것이 었다. 씨뿌리기와 모내기를 반드시 일찍해야 한다는 말과, 벼가 혹 미처 여물지 않더라도 보리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고 한 것이나, 부자가 종자와 식량을 내어 꿔주었다가 가을에 도로 받아들이며 또 면이나 리의 부로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권농관의 책임을 지우라고 한 것 등은 모두가 정확히 보고 충분히 헤아려 보 고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죽은 말 뼈다귀를 사서 천리마를 구한다는 뜻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개 진한 사람을 가상히 여기고 포상해야 마땅하겠으나, 혹 말하려고 하던 자들이 이를 혐의스럽게 여겨 물러나 버릴까 염려되기에 우선은 교지를 내리지 않겠다. 그러니 너는 물러가서 묘당에서 부르기를 기다렸다가 사실 대로 다 말하라. 하였다. 신재형(申在亨)의 상소에 아뢰기를, 무(戊)와 기(己)는 천간(天干)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되고, 축(丑)과 미(未)는 지지(地支)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됩니다. 천간과 지지가 합하여 기미(己未)가 되었는바, 기와 미는 모두 토에 속하는데, 토는 농사의 근본 이 되고, 농사는 먹는 것의 근본이 되며, 먹는 것은 백성들의 근본이 됩니다. 백성들을 농사에 힘쓰도록 이끌 고 농삿일을 절기에 맞추도록 힘쓰는 것은 오로지 다음해인 기미년에 있습니다. 대개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나서 지리(地利)를 다 이용하고, 지리를 다 이용하고 나서 천시(天時)를 기 다려야 하는 법입니다. 수리 사업을 일으키고 토질에 맞는 것을 잘 살피며, 농기구를 잘 정비하는 것이 모두 사람이 응당 하여야 할 일들입니다. 천시(天時)에 있어서는 3년 동안 가뭄이 들고 3년 동안 홍수가 지며, 10 년에 한 차례 크게 가뭄이 들고 10년에 한 차례 크게 홍수가 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가뭄의 피해가 홍수의 27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79 피해보다 더 심하니, 우리 나라는 논이 많아서 일단 가뭄을 만나기만 하면 농민들이 속수 무책입니다. 이것 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모판을 만들었다가 모내기를 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성(箕聖)이 처음에 정전법(正田法)을 가르친 때부터 높고 건조한 곳은 마른 땅에 씨를 심고 낮고 습한 곳에 서는 물을 대고 씨를 뿌렸는데,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그것을 일러 마른씨뿌리기[乾播], 물씨뿌리기[水 播]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중기부터 비로소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移秧法)이 생겨났습니다. 세속에서 전 하기를 이 이앙법은 임진 왜란 때에 비로소 생겨났다고 하는데, 이 법이 한 번 유행되자 농사를 망치는 백성 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절기가 곡우 때가 되어서야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데 이때 만약 가뭄이 들면 아무리 부지런한 농사꾼이더라도 매번 하늘의 구름만 쳐다보다가 시기를 놓친 다음에야 볍씨를 뿌리게 됩니다. 또 하지 때에 가서는 모내기를 할 수 있지만 하늘이 이때에 가뭄을 내리면 번번이 비가 적은 것을 걱정하는데, 한 번이라도 제 시기를 놓치기만 하면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씨를 심는 부종법(付種法)의 경우에는, 겨울에 쌓인 눈이 녹고 봄비가 촉촉히 내릴 때에 올벼는 일찍 심고 늦벼는 늦게 심으며, 마른 땅에는 마른씨뿌리기를 하고 물이 있는 곳에는 물씨뿌리기를 하므로, 종자가 싹트 고 줄기가 서는 데 있어서 가뭄과 홍수가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만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김매 는 데 있어서 이앙법의 경우에는 두어 차례만 김을 매주면 그만이지만 부종법의 경우에는 적어도 3, 4차례 이상 매주어야만 합니다. 부유한 백성들은 토지를 겸병(兼幷)하여 농사를 많이 짓고자 하여 적게는 3, 4석씩, 많게는 6, 7석씩을 한꺼번에 모를 부어 노동력을 줄이고 한꺼번에 모내기를 하여 수고를 줄입니다. 그리고 비록 가뭄을 당하더라도 좋은 논이 많으므로 수확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의 경우에는 모를 붓고 모 내기하는 것을 맨 나중에야 하게 되므로 가뭄이 들거나 흉년을 만나면 입에 풀칠할 길이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내년부터 모 붓는 법을 폐지하고 부종법을 쓴다면 비록 한때의 수고로움은 있을 지언정 한 해 동안 먹을 것은 넉넉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오로지 고식적인 것만 좋아하고 영구적인 계책은 세울 줄을 모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삼농(三農)의 일에 힘쓰고자 하신다면 만대를 두고 전해질 법을 세우소서.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이미 있는 큰 제언(堤堰)부터 착수하여야 한다. 고 하교하셨습니다. 대개 산에 가까운 곳은 제언을 만들어서 물을 가두고, 들에 가까운 곳은 보(洑)가 있어서 물 을 끌어대며, 바다에 가까운 곳에서는 제방을 쌓아서 바닷물을 막습니다. 이 둑과 보, 제방 세 가지는 수리 (水利)를 일으켜서 가뭄과 재앙에 대비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산과 들판을 낀 고을들이 수놓은 것처럼 뒤 섞여 있고 호수와 바다를 낀 고을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는데, 옛사람들이 수축해놓은 것이 없는 곳이 없 습니다. 그러나 제언은 모래에 막히고 보는 돌에 파괴되고 제방은 조수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이를 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언사(堤堰司)에서 감사와 수령들에게 신칙하여 작은 곳은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큰 곳은 관가의 힘을 들여 초봄에 역사를 시작하여서 물을 끌어다 채우게 하되, 혹 부지런히 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과(考課)하여 징계합니다. 또 새로 쌓을 만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늠료(廩料)를 출연하고 인력을 내어 역사를 시작하며, 그 러고서도 또 힘이 모자라면 국곡(國穀)을 내어 공사를 끝내게 합니다. 그리고 만약 부유한 백성이 재물을 출 연하고 힘을 내어 백성들이 그 이익을 입게 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특별히 상을 내려서 다른 백성들을 흥기 시키는 방도로 삼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산간 고을이나 바닷가 고을이 어찌 올해와 같이 크게 흉년이 들겠 습니까. 토질에 잘 맞는 것을 살피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하교하시기를 남쪽 지방에 잘 맞는 것은 북쪽 지방 에 맞지 않고 산골짜기에서 잘 자라는 것은 들판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토질을 잘 살피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조그마한 땅뙈기마저 모두 다 양안(量案)에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진 들판이 지금 혹 묵어가고 넓디넓은 습지가 지금 혹 버려진 채 있으니, 누군들 그것을 개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봄에 개간을 하여 경작하기만 하면 가을에는 세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토지 를 개간하고 백성들을 모여 살게 하라. 고 책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개간할 만한 토지 는 백성들에게 개간하게 하고, 경작할 만한 토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경작하게 한 다음, 토질이 기름지고 메 마른 정도에 따라서 세금의 많고 적음을 정하되, 6, 7년이나 혹 4, 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어 입을 것과 먹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79

280 것이 없는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넓은 은혜 아래에서 배부르고 따스히 지내게 한다면, 토질에 맞는 것을 살 피는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부연 설명한 무(戊)와 기(己)는 천간(天干)의 토(土)이고 축(丑)과 미(未)는 지지(地支)의 토인데, 천간과 지지가 합하여 기미(己未)가 되었으니, 기와 미는 모두 토에 속한다. 토는 농사의 근본이 되고, 농사는 먹는 것의 근본이 되며, 먹는 것은 백성들의 근본이 되고,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이 된다. 라는 말은 이치를 잘 터 득한 것으로서 참으로 취할 만한 말이다. 그리고 기성(箕聖)께서 처음 정전법을 가르친 때부터 마른 땅에는 마른 대로 씨를 뿌렸고 습한 땅에는 물을 대고 씨를 뿌렸는데, 우리 조선조에서 마른씨뿌리기니 물씨뿌리기 니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앙법이 유행되자 농사를 망친 사람이 많다. 그러니 내 년 기미년부터 모 붓는 것을 폐지하고 부종법(付種法)을 행하면 그 이익이 클 것이다. 고 한 것은, 바로 요즈 음 묘당에서 강구하고 있는 계책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따르게끔 할 수는 있어도 이치를 알게끔 할 수는 없으 며, 또 백성들을 다스리는 법은 생선국을 끓이는 것과 같아서 뒤흔들면 옛날의 훌륭한 법을 본받는다 하더라 도 반드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니, 지나친 것을 제거하는 방도는 감사나 수령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 가까운 곳에는 제언이 있는데 물을 가두기 위한 것이고, 들판에 가까운 곳에는 보가 있는데, 보는 물을 끌어대기 위한 것이며,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는 제방이 있는데 제방은 바닷물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산 과 들판을 낀 고을들이 수놓은 것처럼 섞여 있고, 호수와 바닷가의 고을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는 곳마다 옛사람들이 수축해 놓지 않은 곳이 없지만, 제언은 모래가 쌓여 묻히고 보는 돌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제방은 조수에 의해 무너졌다. 작은 곳은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큰 곳은 관가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초봄부터 역사를 시작하여 수리하되 부지런함과 태만함을 조사하여 고과할 때 성적을 매긴다. 예전에는 쌓지 않았으나 지금은 쌓을 만한 곳은 또 공곡을 내어 역사를 마친다. 혹 재물을 출연하여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입히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특별히 포상한다. 고 한 것도 적절한 의견이라고 할 만하다. 묘당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초기(草記) 를 올리게 해서 개간하기 전에 조처를 취할 수 있게 하겠다. 또 묵고 버려진 땅을 누군들 개간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봄에 개간하여 농사지으면 가을이면 곧바로 세금을 매긴다. 이렇게 하면서 토지를 개간하고 백성들이 모여 살게 하라고 책할 수 있겠는가. 개간하고 경 작하도록 권장하고 토지의 비옥하고 척박함에 따라 세금의 높낮이를 정하며, 6, 7년이나 4, 5년 동안을 기한 으로 해서 입을 것 없고 먹을 것 없는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따스하고 배부르게 지내게 하라. 고 한 것은, 바 로 3년 동안 경작하도록 권장하고 차등을 두어 속전(續田)으로 등급을 내려주는 뜻이다. 얼마 전에 영남 지 방에 이런 뜻을 알린 일이 있는데, 근래에 과연 성과가 있었는가? 끝부분에서 진달한 조항과 함께 묘당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이에 대해 비변사가 복계(覆啓)하기를, 제언과 보ㆍ제방을 수축하라고 신칙하는 일에 있어서는,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관에서 인력을 동원하며, 부 지런함과 태만함을 조사해서 고과에 반영하라. 고 한 그의 말은, 바로 조금도 늦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관에서 인력을 동원하는 가운데에는 또 자연히 얼마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작지 않은 역사를 일으킨 곳에는 으레 반드시 힘을 들여서 해마다 수리해야 합니다. 먼저 각 고을의 제언과 보ㆍ제방 가운데서 많은 이익을 주면서도 심하게 무너지거나 막힌 곳을 각각 몇 군데씩 정한 다음, 천 명이나 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야 될 곳에 대해서는 진휼할 곡식으로 떼어놓은 곳 가운데서 몇 석을 떼내어 양식으로 삼은 뒤 날짜를 따져서 기어이 완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는 실로 흉년에 공사를 일으키는 정사에 합당한 것이며, 장정들이 여기에서 품삯을 받아 먹으면 필시 진구할 대상자가 줄어서 민간에 곡식을 나누어 주는 것에도 기대 밖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이런 내용으로 삼남(三南)의 감사에서 분부하여 수령들과 직접 의논한 다음 수축하기에 합당한 곳을 즉시 계문하게 하고, 반드시 얼음이 풀린 뒤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맞춰 모두 공사를 끝내게 하며, 그에 대한 상황을 본사(本司)에 치보하게 합니다. 그 러면 본사에서 품지(稟旨)하여 각별히 농삿일을 잘 알고 수리(水利)에 해박한 사람을 택하여 이들을 나누어 보내어 살펴보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수축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수축할 만한 곳에 대해서는, 십분 의심이 없는 곳을 제외하고 28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81 는 한꺼번에 영을 내려 소요를 일으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대소 민인(民人)을 막론하고 형편 을 보아서 공사를 이룬 자가 있다면 그 가상함이 어찌 재물을 출연하여 진휼을 보탠 공에만 그치겠습니까. 감사가 그런 사람을 계문하면 특별히 논상해야 합니다. 수령들의 업적을 고과하는 것은 본디 수령 칠사(守令七事)177)를 따지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농정은 칠사 가운데서 으뜸을 차지하는바, 농사를 장려한 것을 가지고 고과를 하는 것은 바로 법의 본뜻입니다. 이 뒤로 는 먼저 농정(農政)의 우열(優劣)을 기록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정사를 기록하라는 내용으로 규정을 정하여 알 려야 합니다. 대개 이 제방의 수축에 대한 일은 삼남 지방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 다른 여러 도에서도 똑같이 거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기와 관동ㆍ관서ㆍ관북 지방은 사정이 각각 조금씩 다르니 이 복계(覆啓)한 내용 을 간추려서 알려야 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유동범(柳東範)의 상소에 아뢰기를, 신은 단지 영남 지방 일대에서 보고 들은 것만을 가지고 진달드리겠습니다. 대체로 농사에 재앙을 끼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뭄이 가장 큰 재앙이 되며, 농사에 중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소가 가 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환곡을 나눠주는 것이 균등치 않아서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생업을 잃고, 첨정(簽 丁)이 많이 숨어 있어서 잔약한 농민들이 견디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 일군 토지에 대해 세금을 정하여 서 개간하는 면적이 넓지 못합니다. 벼는 습한 땅에 맞고 기장은 마른 땅에 맞으며, 목화는 햇빛을 좋아하고 삼은 비를 좋아한다는 등의 것에 이르러서는 모두 농사꾼들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요체가 되는 것이 여섯 가지가 있는데, 제언과 못을 깊게 파내는 것, 물을 절도있게 쓰는 것, 가축을 번식시키는 것, 환곡을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는 것, 누락된 장정을 찾아내어 신역을 부담시키는 것, 새 로 개간한 밭에는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근년에 들어서 해마다 가뭄이 들고 있는데, 사람들은 하늘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신은 사람들이 자초한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무릇 여름에는 반드시 비가 내리나 때때로 가물 때도 있으며, 겨울에는 반드시 눈이 내리 나 때때로 가물 때도 있으며, 또한 겨울에 이미 눈이 내렸는데 봄에 또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이 녹은 물과 비가 고인 물을 한 국자도 낭비하지 않고 가는 물줄기까지 모두 가두어 둔다면, 겨울과 봄 5, 6개 월 동안에 받은 물로 여름 3개월 간의 가뭄을 막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제언과 못은 그 깊 이가 헤아릴 수 없었는데, 깊기 때문에 물을 가둔 것이 많았고, 많았기 때문에 가뭄을 막기에 넉넉하였습니 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뚝을 쌓은 것이 점점 깍여지고 흘러든 모래가 쌓인 것이 몇 천 섬이나 되는데도 10 년 동안에 한 번도 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검지(恭儉池)는 예로부터 아무리 흉년이 든 해라도 마르는 것 을 보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가문 지 몇 달도 안 되어서 물이 고갈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단지 바깥만 수축하고 안을 파내지 않은 탓입니다. 안을 파내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어떤 제언의 물을 받아쓰는 백성들의 힘이 넉넉하지 못할 경우에는 관가에서 다른 제언의 물을 받아쓰는 백성들 을 조발하여 힘을 합하여 함께 쳐내게 해야 합니다. 이 제언을 쳐낸 다음에는 다른 제언을 쳐내며, 해마다 반드시 한 차례씩 쳐내되 깊게 파내도록 하며 파낸 흙으로는 그 제방을 더 쌓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제언이 어찌 깊어지지 않겠으며, 물이 어찌 많아지지 않겠으며, 가뭄이 어찌 재앙이 되겠습니까. 이른바 제언과 못을 깊이 쳐낸다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대체로 백성들은 생각이 멀리까지 미치지 못하여 가뭄이 들었을 때에 한 국자의 물도 얻지 못하다가도 비가 조금 내리기만 하면 아끼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이미 땅이 젖었는데 물을 가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라고 합니 다. 무릇 논에서 이미 수확을 한 뒤에도 물이 남아 있을 경우에는 봄에 미쳐 갈아 엎기에 급급하므로 차례차 례 물을 뽑아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언을 쌓았을 경우에는 참으로 터진 곳을 수리하여 물을 가두 어 두어야만 합니다. 여름철에 모내기할 때를 당하여서는 하룻 동안만 물을 대면 4, 5일 간의 가뭄을 견뎌내 177) 수령 칠사(守令七事) : 고려 때부터 지방관의 행정 지침이었던 일곱 가지 조목. 농상을 장려하는 일[農桑盛], 호구를 증가시키는 일[戶口增], 학교를 흥기시키는 일[學校興], 군정을 정비하는 일[軍政修], 부역을 고르게 하는 일[賦役均], 송사를 처리하는 일[詞訟簡], 간활한 짓을 종식시키는 일[姦滑息] 등인데 고과에 반영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81

282 기에 충분하니, 아침에 물꼬를 트고 저녁에 막고 다시 4, 5일이 되기를 기다려서 물꼬를 틉니다. 이것을 기 준으로 하여야지 한결같이 모두 쏟아버려서 이곳에는 물이 남아돌고 저곳에는 남는 물이 없게 해서는 안 됩 니다. 이른바 물을 씀에 있어서 절도가 있게 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무릇 농사짓는 데 있어서는 깊게 가는 것이 중요한데, 깊게 가는 것은 소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를 함부로 도살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법전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들 가운데에는 소가 없는 탓에 밭갈이를 못하는 자가 10에 5, 6은 됩니다. 그리고 환곡을 받아들일 때에는 반드시 소가 있는 자를 먼저 장 부에 올려 그로 하여금 소를 팔아서 곡식을 납부하도록 독촉하고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가 작통법(五家作統法)을 거듭 밝힌 다음 한 통(統) 내에서 재물을 합하여 소를 마련하게 하고, 3, 4년에 한 차 례씩 고치는 것을 허락해주며, 또 환곡을 받아들일 때 소를 팔아서 곡식을 납부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장차 사람마다 모두 소를 소유하여서 모두들 깊게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가축을 번식시켜야 한 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물이 풍족하고 소가 있는데도 오히려 농사짓지 못하는 것은 농사철 동안의 양식이 없어서입니다. 환곡은 본 디 부자나 가난한 자나 고르게 먹게 하기 위한 것으로, 봄에 고르게 받아가게 하므로 가을에 거두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자 백성은 하나도 환곡을 받지 않고 있으니, 가난한 백성이 치우치게 많이 받게 되는 것은 형세상 당연한 일입니다. 치우치게 받아 먹으면 곤궁하게 되는 것은 형세상 당연하며, 곤궁하게 되면 농사를 망치는 것 역시 형세상 당연한 것입니다. 비단 호별(戶別)로 내주는 환곡뿐만 아니라 전결(田結) 에 따른 환곡도 있는데, 가난한 자는 전결이 없으니 이치상 당연히 환곡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간혹 양 호(養戶)를 하는 간사한 백성이 많이 있는바, 가난한 백성에게 전결에 따른 환곡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 입니다. 그리고 또 받아들이기를 일시 중지한 묵은 환곡이 있을 경우 비록 한 해 풍년이 든다 하더라도 여러 해 동안 쌓인 환곡을 갚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양호(養戶)를 하거나 부자를 빼어놓는 폐습을 통렬히 혁파한다면 가난한 백성들의 환곡이 줄어들 것이며, 이웃집에서 징수하거나 소를 팔아 내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른바 가난한 자와 부자에게 환곡을 고르게 나누어 준다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 고 한 말입니다. 예전에는 군포(軍布)가 2필이던 것이 지금은 1필로 되었으니 백성들이 더욱 넉넉해져야 마땅한데 도리어 더 욱 가난해진 것은 어째서입니까. 누락된 군정(軍丁)을 찾아내지 못해서입니다. 파총(把摠)이나 초관(哨官)들은 모두 자기 일가를 보호하고 있고 풍헌(風憲)이나 약장(約長)들 역시 일가 전체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신의 생 각에는 수령들을 엄하게 신칙해서 이른바 파총이나 초관, 풍헌, 약장 같은 자들에 대해서 본인 한 사람을 제 외하고는 모두 군역에 충당시키게 하고, 그 나머지 숨겨둔 자들을 엄명하게 조사해 찾아내도록 한다면 군정 이 전보다 열 배는 많아지고 양정(良丁)과 부유한 자들도 모두 다 편호(編戶)의 역에 충당될 것으로 생각됩니 다. 이른바 누락된 군정을 찾아낸다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대체로 풀이 없는 목장터나 버려진 빈터 가운데 개간할 만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토지가 없는 가 난한 백성들이 감히 개간하여 농사짓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개간하자마자 곧바로 세금을 매기는데, 새로 개간한 땅의 소출이 혹 세금을 내기에도 부족한 경우마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어찌 경작 하려고 하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버려진 땅을 개간한 것에 대해서는 10년 동안을 기한으로 세금을 물리 지 않고 10년 후에라도 절대로 높은 등급으로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경작하기를 원할 것 으로 생각됩니다. 이른바 세금을 매기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너는 영남 사람으로서 농서(農書)를 구한다는 교서를 보고서 전지에 응하여 상소를 올렸 는데, 그 진달한 것이 모두 근거할 만한 점이 있는바, 인재는 거리가 멀고 가까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더욱더 알 수 있겠다. 몹시 가상하다. 이른바 농사에 재앙이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가뭄의 재앙이 가장 크며, 농사에 중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소가 가장 중요하다. 가난한 농사꾼은 환곡 때문에 생업을 잃고 잔약한 농부는 첨정(簽丁) 때 문에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제언과 못의 깊이가 헤아릴 수조차 없이 깊어서 물고기나 용이 숨어 살고 배가 떠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공검지와 같이 큰 제언도 가뭄이 들면 그 즉시 말라버려서 한번 흘러가 버리면 그만인 물과 같으니 물을 씀에 절도가 없다. 풀이 없는 목장이나 내버려진 밭들을 백성들이 감히 개 28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83 간하지 못하며 이익을 보기도 전에 피해가 먼저 미친다. 고 한 것 등은 너의 말이 옳다. 사람마다 각자 힘을 다해 부지런히 농사지으면서 천시(天時)를 인하여 지리(地利)를 일으킨다면 재해가 유행 할지라도 어찌 식량이 부족한 지경에야 이르겠는가. 사람의 노력을 대신하고 사람의 노동력을 돕는 것으로 있으면 땅이 개간되고 없으면 땅이 묵는바, 소 한 마리의 힘은 백 명의 인력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소의 도 살을 금하는 법이 사람을 죽인 살인죄에 비해 두 등급만 감하도록 법전에 실려 있는데, 근래에 대신의 말로 인하여 금령을 거듭 신칙하였다. 환곡과 첨정에 대한 폐단 및 물길을 소통시키고 개간을 권장하는 일에 대해 서는 묘당에 회부하여 다른 사람들이 올린 상소를 참조해 보고 좋은 쪽으로 품의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복태진(卜台鎭)의 상소에 아뢰기를, 농삿일에 있어서 급선무는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며, 수리의 공효는 제언 을 쌓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신이 일찍이 고 처사 유형원(柳馨遠)이 지은 반계수록(磻溪隨錄) 을 읽어보니, 거기에 부안(扶安)의 눌제(訥堤), 임피(臨陂)의 벽골제(碧骨堤), 만경(萬頃)의 황등제(黃藤堤)는 소위 호남 지방의 3대 제언이다. 처음에 그 제언을 쌓을 때에는 온 나라의 힘을 다 들여서 완성시켰는데 중 간에 훼손되자 내버려두었다. 지금 불과 몇 고을의 힘만 동원하여 예전처럼 수선해 놓으면 노령(蘆嶺) 이북 은 영원히 흉년이 없을 것이며 호남 지방의 연해 고을이 중국의 소주(蘇州)나 항주(杭州)처럼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근세에 국가를 경륜할 만한 선비로는 유형원을 으뜸으로 꼽는데 그의 말이 이와 같으니, 이 세 제언의 이익 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조정의 신하 가운데 이 분야에 능숙한 자를 잘 가려 뽑 아 봄이 되기를 기다려 공사를 시작하게 하되, 굶주리는 백성을 정밀히 뽑아 그들을 부역시키고 관가에서 먹 을 것을 대주어, 보리가 익을 때까지 그렇게 하소서. 그러면 이 제언이 완성되자마자 백성들의 먹을 것이 넉 넉해질 것입니다. 담배와 차의 재배로 곡식의 생산이 줄어드는 피해가 몹시 심합니다. 신은, 원장(元帳)에 등재되어 있는 토지 에는 차를 심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산을 깎고 숲을 불사르는 버릇을 금지시켜야 하니, 무익한 작물을 지어 유익한 것을 해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술과 소와 소나무에 대한 금령은 실로 국가의 금석과 같은 법전입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는 술에 대한 금령이 몹시 해이해졌습니다. 이에 술에 빠져 화를 부르며 곡식을 낭비하는 해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사에 쓰는 것과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는 술까지 모두 금지시킬 수는 없지만, 신의 생각으로는 사사로이 술을 빚는 것은 금하지 말고 술을 매매하는 것만 금지시킨다면, 백성들의 식량에 도움을 주는 것이 결단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소에 대한 금령은 아마도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수레를 뒤집어 엎는 사 나운 소나 늙어서 쓸모없는 소는 처리할 방도가 없어서 가두어 둔 채 여물만 먹입니다. 그리고 1백 일 동안 수고한 뒤 하루를 즐기는 날이 바로 설날로, 사람들이 모두들 소를 잡고 술을 빚어 친구들이 모여 잔치하면 서 마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은, 사사로이 도살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영은 엄하게 해야만 하나, 설날에 한 차례 도살하는 것은 특별히 너그럽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의 네 부류의 백성들 가운데에는 농사꾼이 몹시 적으며, 관리들이 농사꾼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주 심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관리의 정원수를 정하여서 큰 고을은 40, 50명을 넘지 않게 하고 작은 고 을도 반 정도 줄인 다음 그 나머지 관리들은 모두 돌아가서 농사짓게 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팔도를 통틀어 계산하면 토지를 개간할 수십만 명의 백성을 더 얻게 될 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3일 동안 정무를 본 뒤끝에 무언가 목에 걸려 있는 듯한 것은, 호서의 너와 호남에 사는 장현경(張顯慶)을 등용하려다가 번거롭게 특별히 제수하는 것이 혹 너무 서두르는 듯하여 제수하지 못해서이다. 너와 장현경은 모두 여러 해 동안 사관(史官)으로 있었는데, 너는 다시 등용된 뒤 임기가 차서 자급이 올라갔으나 아직 실 직(實職)에 임명되지 못하였고, 장현경은 임신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내년이면 70이 되는데도 아직도 당하관 자리에 있다. 이번에 너의 상소를 보건대 경륜(經綸)의 계책을 성대히 진달하였는바, 몹시 가상하다. 묘당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83

284 로 하여금 품의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정시원(鄭始元)의 상소에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는 기름진 들판이 수천 리나 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간혹 공한지로 내버려 둔 것이 많습니다. 이 는 바로 물을 끌어댈 방도가 없어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통(筒)을 설치하여 물을 끌어대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부터 지형에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물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논을 만든 곳이 물 아래 쪽에 있더라도 그 사이에 구릉으로 가로막혀 있거나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으면 끌어오는 물길이 중간에서 끊어지고 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기름진 들판이 있더라도 버려두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인 것입니 다. 신이 말한 통을 설치하는 법은, 질그릇 통을 굽되 속은 통하게 하고 밖은 둥글게 만들어 상류에서부터 고기 비늘처럼 차례로 이어 땅 속에 묻은 다음 통 속으로 물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시내나 골짜기 를 만나면 지형에 따라서 물 밑으로 통을 묻어서 낮은 곳을 넘어가게 하며, 높은 언덕이 가로막혀 있을 경우 에는 지세에 따라서 언덕 가에 통을 세워 높은 곳을 넘어가게 합니다. 이것은 딴 이치가 아닙니다. 원류(源 流)가 높은 곳으로부터 흘러 통 속으로 들어가면 물이 통 속에 가득 차서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높은 곳을 올라가 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물을 끌어댈 경우 높거나 낮거나 멀거나 가깝거나를 따질 것 없 이 물을 대어 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제언과 보를 만들어 얻는 이익뿐이겠습니까.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이미 통을 설치하여 물을 끌어대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 옛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고 상소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그리고 이어 그 방법을 말하면서 질그릇 통을 굽되 안은 텅 비어 통하게 하고 밖은 둥글게 만들며, 골짜기를 만날 경우에는 통을 파묻어 낮은 곳을 뛰어넘고 언덕을 만나면 통을 세워서 높은 곳을 넘어가게 한다고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는 시험해 보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니, 즉시 호조와 선혜청의 당상관들로 하여금 상소를 가져다가 따져본 뒤 초기(草記)를 올리게 하겠다. 하였는데, 호조 판서 조진관(趙鎭寬)이 아뢰기를, 신과 선혜청 당상 정민시(鄭民始)가 정시원을 불러다가 물어보니, 그가 말하기를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 은 물의 본성이 그런 것이다. 만약 기계를 설치하여 물을 쳐서 올라가게 한다면, 이는 물의 본성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는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은 불가능하며, 작은 양은 할 수 있으나 많은 양은 할 수가 없다. 지금 진달한바, 통을 설치하여 물을 끌어대는 것도 역시 물을 쳐서 올라가게 하는 것과 비슷 하다. 그러나 사실은 상류의 물을 받아들이는 곳이 하류의 물이 흘러나오는 곳보다 높아서, 비록 수백 보나 되는 먼 거리를 구부러지면서 돌고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낮게 내려가기도 하나, 결국에는 물이 뿜어져 나오 는 곳을 물이 흘러드는 통 입구에 비하면 얼마쯤은 낮다. 이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물의 성질이 끝내 는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가기 때문이다. 일찍이 시골에 있으면서 대나무로 통을 만들어 시험해 보았 으므로 그것이 의심할 바 없음을 분명히 안다. 만약 진흙을 구워 통을 만들어 서로 맞붙는 부분의 양쪽 아가 리를 맞물리게 하고 바깥쪽에다 작은 고리를 끼운 다음 그 틈을 유회(油灰)로 채우면 물이 새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그의 말대로 대나무 통을 가지고 시험해 보았더니 여러 차례 돌려서 높였다 낮추었다 하여 산(山) 자 모양을 만들었는데도 과연 물을 끌어들이고 토해내기를 법과 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글 등을 보니 두 쪽에 불과하였는데, 단지 이 법에 대해서만 논하고 다른 제도에 대해 언급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체로 예로부터 용골(龍骨)이나 옥형(玉衡)과 같은 물에 관한 기구들은 모두 다 땅에서 물을 끌어올려 충격 을 주어 높이 올려보내는 것으로, 물의 본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흐르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시 행하지 못하였고 폐단이 없지 않았습니다. 농서(農書)에 들어있는 통을 연결하여 물을 끌어대는 법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이를 미루어 크게 한 것일 뿐으로, 물을 끌어대는 다른 기구에 비하여 쉽게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여름에는 장맛비에 모래가 밀려들어 속이 막히기도 하고, 겨울에는 물이 혹 미처 다 빠 지기 전에 안에서 얼어터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니 봄 가을로 보수하여야 하는 것은 형세상 뻔한 일입니다. 28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85 비록 진흙을 구워 만든다 하더라도, 수백 보나 혹은 몇 리나 되는 먼 거리를 끌어올 경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야 여사(餘事)이고 구워 만든 것이 흠이 없어서 쓰기에 알맞으리라는 것을 기필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의 말에는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그는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이니 지형이나 수세(水勢)로 보아 설치할 만 한 곳을 아마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본도로 하여금 지방관에게 알려 그의 말에 의거해서 알맞은 곳을 골라 설치하여 시행해 보게 한 다음 성공하기를 기다려 여러 도에 반포하소서. 하니, 따랐다. 이우형(李宇炯)의 상소에 아뢰기를, 신은 수리(水利)에 대한 설을 약간 강구해 본 바가 있어서 일찍이 수차 바퀴를 만들어서 물을 대는 논의를 진달하여 한편으로는 호조에서 만들게 하고 한편으로는 감사로 하여금 시험해 보게 하라는 비답을 받았습니 다. 그러나 공역은 방대하고 힘은 딸려서 지금까지 질질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신이 전에 상소를 올릴 때 미 처 진달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를 막고 제언을 쌓는 법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보를 쌓는 자가 몹시 많으나 모두 그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재력만 헛되이 낭비하고 효과 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삼가 생각해 보건대, 제언을 쌓는 데에도 역시 방법이 있습니다. 네모난 벽돌 을 많이 굽되 기와보다는 조금 크게 하며 너비는 각각 몇 자 가량 되게 구운 다음 이를 차례차례 쌓아 도랑 을 만들되 아래로부터 점차 위로 쌓아 올라갑니다. 그런 다음 물을 가두고자 할 때는 닫아서 막고 물을 빼려 고 할 때에는 열어서 빼내면 되니 돌을 쌓고 나무로 가로막는 법에 비해서 훨씬 편리하며 쌓은 것도 자연 견고합니다. 신이 일찍이 농정전서(農政全書) 에서 그 도보(圖譜)를 상고하여 수책(水柵)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다음에 야 비로소 보를 쌓는 묘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평평한 습지가 개울가에 있어서 못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이 있을 경우 5리나 10리쯤 되는 상류의 여울이 많은 곳에 가보아 돌이 서려 있 어서 보의 입구를 만들기에 합당한 곳에다가 기둥을 세우고 말뚝을 박되 간가(間架)를 반드시 긴 복도와 같 이 만들어서 개울의 너비를 가로질러 쭉 뻗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 목책(木柵)의 아래 위 양쪽 곁에다가 나 무를 엮어 세워두고 큰 돌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뒤 큰 돌이나 작은 돌을 가리지 않고 뒤섞어서 쌓되, 나무를 엮은 곳까지 쌓아 올립니다. 그 목책이 일단 완성되면 돌산이 개울을 가로질러 뻗은 것 같아서 물을 아주 단단히 막으면서도 사용하는 나무는 매우 적게 들고 돌을 쌓은 것이 실로 많으면, 그 사이에 모래 와 진흙이 엉겨 붙어서 장마가 지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니 만전의 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 래가 많은 개울일 경우에는 짚이나 갈대 같은 것으로 목책의 주위를 둘러 막고 그 안에다 흙과 돌을 채워 넣어 물이 새지 않게 하면 역시 쌓은 것이 견고해집니다. 이렇게 한 뒤에도 언덕이 개울보다 한두 장쯤 높고 반드시 축과 바퀴가 있어야만 물을 가두었다가 관개할 수 있습니다. 수차(水車)의 제도가 몹시 많으나 오직 용미(龍尾)가 가장 좋습니다. 용미는 둥근 나무로 축을 만들되 아래와 위가 고르게 되게 하고, 도랑[溝]은 비 스듬히 나선형(螺旋形)으로 만들되 판자를 엮어 칸을 막고 얇은 널판으로 둘러싼 다음 석회나 역청(瀝靑)으로 발라 틈이 없게 합니다. 또 철추(鐵樞)를 만들되 양쪽 끝이 직각삼각형 모양이 되게 만들어 세우고 곳곳마다 톱니가 8개가 되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축(軸)을 눕히고 바퀴를 세운 뒤 그 톱니가 맞물리게 하고, 그 곁에 있는 한 바퀴에 물을 받는 날개[箑]를 붙이면 세 개의 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서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 도 물이 흐르는 힘으로 인해 저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물이 판자로 만든 도랑을 따라 위로 솟아오 르게 되는바, 그 제도가 다른 수차에 비해 더욱 묘합니다. 이 밖에도 고전통차(高轉筒車)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흐르는 물에서 쓸 수 있습니다. 강 언덕의 높이를 살펴보고 큰 바퀴를 만들어 물 흐름에 맞추어 설치합니다. 그런 다음 그 바퀴테[輞]에다 판자를 가로로 매어 물살에 부딪혀서 돌아가게 하고, 거기다 물통을 세로로 매달아 물을 퍼가지고 올라가서 쏟아붓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 효과가 용미보다 못지 않으나 물을 퍼 올리는 것이 약간 적습니다. 못이나 우물과 같이 땅이 약간 깊은 곳에서는 항승차(恒升車)로 물을 퍼 올릴 수가 있습니다. 물통의 길이를 언덕과 나란히 되게 하고 하단(下端)을 얇은 판자로 막고 모나고 둥글고에 따라 구멍을 뚫은 다음, 쇠를 벼 리어서 혓바닥을 만들어 여닫는 기구를 만들고, 판자에다는 별도로 긴 장대를 박아 오르내리게 합니다. 그러 면 이것은 마치 풀무에서 바람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물이 통속으로부터 끊임없이 콸콸 쏟아져 나 옵니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85

286 옥형(玉衡)의 반호(盤壺)나 쌍통(雙筒) 및 홍흡법(虹吸法)과 같은 것은 모두 구리나 주석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이 시험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상이 수차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삼남 지방과 경기에는 수리(水利) 공사를 일으킬 만한 곳이 마을마다 있으니, 새로 쌓거나 예 전에 있던 곳을 수리하여 보를 만들거나 제언을 쌓으면 그에 따른 이익이 몹시 클 것입니다. 그러나 드넓은 평야 지대로 큰강을 끼고 있어서 보를 막을 수 없는 곳에서는 수차를 이용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수리(水利)에 대하여서 부지런히 힘쓰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듣고는 너의 성의가 가상해서 한번 만들어 시험해보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시험해 보지 않았다고 하니, 근래의 일이 모두 다 이 모 양이다. 너의 상소를 묘당에 내려보내어서 이 뒤에 모여서 의논할 때에 너를 불러 자세히 물어본 다음 반드 시 한 차례 시험해보게 하겠다. 하였다. 염덕우(廉德隅)의 상소에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잘 가르치는 것이 몸소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선대왕(先 大王)께서 이미 시행한 규례를 준행하여 친경(親耕)과 친잠례(親蠶禮)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는 국가에서 농가를 장려하는 큰 정사이므로 장려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장려될 것입니다. 농정에 있어서는 첫째는 백성들을 소요시키지 않고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농사지을 종자(種 子)를 보조해 주고 농사지을 동안 먹을 양식을 대주는 것이며, 셋째는 미리 씨를 뿌리면 잘 자라고 부지런하 면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이며, 넷째는 전정(田政)을 균등히 하고 토지를 개간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의(義) 로 가르치고 형(刑)으로 징계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으로서 근본이 흔들리 면 나라가 존재하기 어려우며, 농사짓는 데에는 철이 있는데 철을 놓치면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 다. 그리고 농사지을 종자를 보조해 주고 농사지을 동안 먹을 식량을 대주라고 한 것은, 맹자가 말한 봄에는 밭갈이하는 것을 살펴보아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가을걷이하는 것을 살펴보아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도와준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불쌍한 우리 농민들은 한 해 동안 내내 고생하였 는데 가을에 추수할 때가 되어서는 모조리 관가로 실어가 버립니다. 이에 실곡(實穀)은 모두 감영이나 고을 로 들어가고 모곡(耗穀)은 간사한 아전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버리며 농민들이 받아먹는 환곡은 피곡(皮 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흉년이 들게 되면 혹 탕감해 주거나 기한을 연기해 주거나 다른 곡식으로 대신 바치는 것을 허락해 주기도 하지만 탐욕스럽고 교활한 무리들이 공문(公文)을 숨기고는 마구 매질을 해대며 독촉해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 토지가 없고 인족(隣族)이 없어서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 뒤에 이르러서야 관문(關文)을 뜯어봅니다. 이에 이른바 탕감해 주고 연기시켜 준 실제 혜택은 모두다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 는 자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는바, 이는 실로 농민들의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폐단이 북쪽 지방 에 가장 심한 것은 다름아니라 계축년과 갑인년 이후 암행 어사를 파견하는 법을 혁파하였기 때문입니다. 미리 씨를 뿌리면 잘 자라고 부지런하면 수확할 것이 있다고 한 것은, 봄에 일찍 밭갈이를 하지 않으면 가을 에 수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농민들이 어찌 일찍 서둘지 않겠습니까. 여름 동안 도롱이를 입은 채 밭갈고 씨뿌리고 김매기를 하여 가을에 추수하는 것은, 시경 칠월편(七月篇)에서 말한 모든 것을 다 미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정(田政) 역시 농정에 속하는 것입니다. 북도(北道)는 병오년에 양전(量田)한 뒤 무신년과 기유년 이 후부터 물길이 변하였는데도 전세(田稅)는 한결같이 병오년의 양안(量案)에 따라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전 세가 이와 같이 불균등한데 농정을 어떻게 장려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와 수령을 각별히 잘 가려뽑아 전정을 균등히 한 다음에야 농사에 수확을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토지를 개간해야 한다고 한 것은, 우리 나라의 폐사군(廢四郡)을 오랫동안 내버려 둔 채 개간하지 않고 있었 습니다. 그러다가 일찍이 갑인년에 서쪽의 자성(慈城)과 북쪽의 후주(厚州) 두 진(鎭)의 지역을 백성들이 개간 하도록 허용한다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후주는 진을 설치한 지 3년만에 민호(民戶)가 8백 호로 불어났는데 나라의 금법에 구애되어 더이상 개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군(四郡) 지역을 개간하도록 허락하여 날마다 모여드는 백성들로 하여금 이곳에 들어가 농사짓게 한다면, 이는 실로 농사를 권장하는 하나의 큰 정사가 될 28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87 것입니다. 의로 가르치고 형벌로 징계한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토지를 개간하여 농사짓고 배불리 먹 고 편안히 지내는데 의로 가르치지 않을 경우 백성들의 윤리 기강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쳤는데도 법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형벌로 다스린 다음에야 인륜이 밝아지고 왕법이 시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친정과 친잠은 바로 우리 열성조들께서 시행하던 전례(典禮)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돌아보건대 정사나 교 화가 열성조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먼저 의식 절차에 관한 일에서부터 선대왕들이 하시던 바를 따라 하겠는가. 선대왕들의 뜻을 잘 받들어 이어가는 실제는 지난 축월(丑月)에 반포한 교서가 조금이 라도 실제적인 효과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관북 지방에 아직까지 암행 어사를 차임해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처 겨를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에 이미 대신(臺臣)에게 내린 비답에서 말하였으니, 앞으로 형세를 살 펴보고서 내려보내겠다. 이 외에 진달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유의하겠다. 하였다. 유종섭(劉宗燮)이 상소하여 아뢰기를, 다스리는 방도에 있어서는 책임을 전담시키지 않으면 일이 한결같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주관(周官) 사 도(司徒)의 관직에 의거해서 권농사(勸農司)를 별도로 설립하고 토지를 균등히 하는 관리, 물을 다스리는 관 리, 농기구를 담당하는 아전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각자 여러 고을과 마을들을 감독하면서 편리한 방법을 들 어주고 품의한 뒤 시행하게 하고, 때때로 감사와 수령들의 근만(勤慢)과 허실을 살펴서 모두 논계하게 하소 서. 그러면 방백과 수령들이 반드시 고무되는 바가 있어서 농삿일을 권장하는 데 힘쓸 줄을 알게 될 것입니 다. 농부들의 걱정은 전세가 균등치 못하고 물을 이용하기가 힘들며 농기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데 있습 니다. 만약 전세를 균등히 하고 수리(水利)를 일으키고 농기구를 제대로 갖추게 한다면 하늘과 땅, 사람의 때 와 힘이 저절로 합치될 것인바, 또한 어찌 위에서 명령을 내려 일일이 신칙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전세(田稅)와 수공(水功)과 농기구 세 가지에 대하여 조목별로 진달한 너의 말이 몹시 이치에 맞다. 권농함 에 있어서 마땅히 이를 주관하는 관서가 있어야 한다고 한 것도 너의 말이 맞다. 모두 묘당에서 품의하여 조 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윤재양(尹在陽)의 상소에 아뢰기를, 오늘날에 있어서 시급하게 변통해야 할 것이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병작(並作)하는 것을 고르게 하 는 것이며, 둘째는 백징(白徵)을 견감해 주는 것이며, 셋째는 담배의 경작을 금지하는 것이며, 넷째는 백성들 에게 버려진 땅을 경작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양역(良役)을 충당시키는 것이며, 여섯째는 환곡 법을 바로잡는 것이며, 일곱째는 아전들의 정원수를 줄이는 것이며, 여덟째는 과거의 폐단을 없애는 것입니 다. 병작하는 것을 고르게 하는 것은 실로 토지가 없는 자에게 토지가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백징을 견감해 주 는 것은, 논의 경우에는 당초에 씨를 뿌리지 못하였거나 모내기를 못한 땅에 대해 재결(災結)로 처리해 주는 규정이 있어서 특별히 세금을 내지 않도록 허락해 주는데, 밭의 경우에는 현재 묵었거나 전부터 묵어서 나무 가 숲을 이룬 땅에 대해서도 모두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재 백성들은 모두 진전(陳田)을 조 사하여 한 줌, 한 단이라도 백징하는 폐단이 없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담배의 경작을 금하는 것은, 곡식을 생산하는 토지가 점차 줄어들고 백성들의 생활의 어려움이 더욱더 심해 지고 있으니, 담배의 해로움이 이에 이르러 극심한바, 금지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백성들에게 버려진 땅 을 경작하도록 허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5군문(軍門)과 각 궁방(宮房), 충훈부(忠勳府), 세도가의 전지를 막 론하고 경작할 만한 곳을 묵혀버린 곳이 많은데, 그 주위에 사는 백성들이 경작을 하면 본주인이 도로 빼앗 아 가버리므로 영원히 묵혀버린 채 경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땅을 백성들로 하여금 경작하여 먹도 록 허락한다면 백성들에게는 곡식을 생산하는 이익이 있을 것이며, 국가에는 세금을 거두는 이익이 있을 것 입니다. 양역(良役)을 충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양정이 부실한 폐단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바, 입번(立番)을 면제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87

288 받은 군관(軍官)과 시골에 있으면서 신역을 면제받은 자들을 일체 혁파한다면 죽은 사람의 번(番)을 채워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환곡법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환곡과 향미(餉米)를 모두 절반은 창고에 보관해 두고 절반은 나누어 주되, 경사(京司)에서 발매(發賣)하는 규례에 의거해서 봄에 작전(作錢)하 고 이어 싯가에 준하는 범위 안에서 값을 낮추어 파는 것을 허락하며, 가을이 된 뒤 싯가에 따라서 그 돈을 가지고 햇곡식을 사들이며, 다음해 봄에는 작년 봄에 창고에 남겨두었던 나머지 절반을 발매하도록 합니다. 대체로 봄과 가을의 싯가가 싸고 비싼 차이는 있겠지만 값을 낮춘 가운데서 한 말당 반드시 3전(錢)의 우수 리를 관가에서 취하고 그 나머지의 이익을 전부 백성들에게 돌아가게 합니다. 그럴 경우 관가에서는 독촉해 받아들이느라 수고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백성들은 이웃이나 친척들의 것까지 물어내는 고통을 면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아전들의 정원을 줄이는 것은, 크고 작은 고을을 막론하고 아전들로 인한 피해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만큼 그 고을의 크기를 따져서 정원을 알맞게 조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과거의 폐단을 혁파하는 것은, 오늘날의 계 책으로는 서울의 유생들에 대해서는 사학 교수(四學敎授)가 오부(五部)의 거안(擧案)을 받고 각 문체별로 과 거 시험의 제목을 내어 시취(試取)한 다음, 합격자의 방(榜)을 성균관에 제출하면, 대사성(大司成)이 사학에서 합격한 사람들을 모아 앞에서 시험치른 후 예조에 합격자의 명단을 통보합니다. 그리고 시골에 사는 유생들 의 경우에는 각각 해당 고을에서 각 면에서 올린 단자(單子)를 받아 과제(科題)를 내어 뽑기를 한결같이 사학 (四學)에서 하는 것과 같이 한 다음 각각 예조에 제출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고서 대과(大科)와 소과(小科)를 치를 때 예조에 비치되어 있는 것과 대조하여 조사하면 영원히 억울함을 당하거나 요행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네가 농삿일에 대해 진달하면서 곁들여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진달하였는 바, 몹시 가상하다. 병작(並作) 을 고르게 하는 것은 정전 제도(井田制度)나 한전 제도(限田制度)를 제외하고는 가장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기강이 확립된 다음에야 부차적인 항목이 시행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주자(朱子)와 같이 재 주와 식견이 뛰어났던 사람도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늘상 신중하게 처리하면서 하루아침에 즉시 고쳐야 된다고 말한 적이 일찍이 없었는바, 이 일 역시 그와 비슷한 일이다. 백징(白徵)을 견감하는 일 은 너의 말이 참으로 옳다. 조금 풍년이 든 해를 기다려서 진전(陳田)을 조사하도록 하겠다. 담배의 경작을 금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껄끄러운 점이 있을 듯하다. 백성들 에게 관가의 전지나 부자들의 전지로서 묵혀버린 곳을 경작해 먹도록 허락해 주는 일은, 그것은 전적으로 감 사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양역(良役)을 어린이와 노인에게까지 지우는 것에 대한 폐단이야 이루 말할 수 있 겠는가. 번(番)을 면제하고 역(役)을 면제하는 것을 없애느냐 그대로 두느냐 하는 문제 역시 조정에서 다시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여러 고을에서 제대로 잘 시행하고 있는가만 조사하면 되는 일이 다. 환곡의 폐단에 있어서 반을 창고에 남겨두는 일은 바로 요즈음에 방도를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크고 작은 고을의 아전들을 줄이는 일은, 일찍이 다른 사람의 상소로 인하여 묘당에서 여러 차례 복계(覆啓) 하였었다. 과거의 폐단을 개혁하는 일은, 내가 처음 즉위하여서 물어본 일 가운데 한 가지 일인데, 지금까지 세월만 끌어온 것은, 시행할 만한 좋은 법이 없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법만 부질없이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 이다. 향거(鄕擧)와 이선(里選) 및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孝悌] 농사에 힘쓰는 사람[力田]을 추천하는 등의 제도를 지금 시행하였다가 만에 하나라도 명목만 있고 실재가 없게 될 경우, 애당초 경솔하게 시행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처음부터 잘 계획하는 체모에 합당할 것이다. 근년 들어 내가 수령을 반드시 삼사(三司)의 관원 중에서 뽑고 사람을 쓸 경우 반드시 수령들 가운데서 뽑아쓰는 것은 등용하는 것을 구하는 것과 같게 하고 자 해서이다. 그러나 두루 물어본 다음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겠다. 하였다. 정석유(鄭錫猷)의 상소에 아뢰기를, 신은 먼저 우리 나라의 지리(地利)와 전토(田土)와 농기구에 대하여 논한 다음 시기를 놓치지 않는 방도와 살 곳을 잃지 않는 방도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28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89 옥저(沃沮)는 산이 많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대방(帶方)은 골짜기가 깊고 냇물이 깊으며, 낙랑(樂浪)은 서북 쪽은 산을 등지고 있고 동남쪽은 들판이 널려 있습니다. 삼남 지방은 물이 깊고 토질이 비옥하며, 해서와 경 기 지방은 토질이 척박하고 산이 가파른데다가 바닷가에는 염분이 많고 바다 가까운 곳에는 모래와 돌이 많 습니다. 신이 일찍이 집에 있으면서 궁리한 바가 있는데, 온 나라에서 두루 쓸 수 있는 것으로 마른 땅이나 습한 땅 이나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쓰기에 알맞은 기구는 오로지 달구지[田車]뿐입니다. 대개 달구지를 쓰면 이 로운 점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봄에는 거름 수레가 되는데, 수레 1대가 운반하는 양이 소 5마리에 싣는 것만큼이나 되니 한 사람이 수레 한 대를 쓰면 소 네 마리와 사람 네 사람을 줄이는 격으로 소와 사람의 노동력이 모두 여유가 있게 되는 바, 이 것이 첫번째 이로운 점입니다. 농사가 한창 바쁠 때에는 밭에 거름주는 일이 더욱 급하여 한시라도 먼저 내 면 소출이 배로 불어나고 한시라도 늦으면 수확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때 만약 거름 수레를 쓰면 제때에 맞춰 일을 민첩하게 할 수 있는 바, 이것이 두 번째 이로운 점입니다. 가을에는 부리는 수레[役車]가 되는데, 곡식은 한창 거두어들일 때 소가 있으면 노동력이 남게 되고 소가 없더라도 지게로 지고 다니는 수고가 없 는바, 이것이 세 번째 이로운 점입니다. 각 군현(郡縣)에서 환곡을 받아들일 때 눈이나 빙판으로 길이 막히게 되면 소발굽은 미끄러질까 겁나고 사람들의 어깨는 빠질듯 아프게 되는데, 이때 만약 부리는 수레[役車]를 이용하면 큰 수레는 멍에를 지워 끌고 작은 수레는 뒤에서 밀면서 갈 수 있는바, 이것이 네 번째 이로운 점 입니다. 그리고 소나 말의 병은 항상 어깨와 발에 나는데, 이는 짐은 무거운데 힘이 딸려서 그런 것입니다. 만약 수레를 쓰면 소나 말이 모두 병나지 않을 것인바, 이것이 다섯 번째 이로운 점입니다. 신이 듣건대, 조종조 때 전화(錢貨)를 통용시키려고 하였지만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자, 당시 고(故) 상신 김육 (金堉)이 역참(驛站)에서부터 시행하기를 청하였다고 합니다. 대개 역참에서부터 시행하기를 청한 것은, 역참 은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모두 지나는 곳이며 익숙히 보고 들어왔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수레에 대 한 제도도 역참에서부터 시행한다면 반드시 점차적으로 본받아서 백성들이 소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개 팔 도의 공부(貢賦)를 운반하는 때에 으레 모두 말을 전세내어 운반하는데, 1천 리를 운반하는 경우 2천 전(錢) 을 전세값으로 주는바, 짐 한 바리를 운반하는 값이 거의 말 한 마리 값과 맞먹습니다. 만약 군현에서 운반 하여야 하는 모든 짐바리들을 죄다 수레로 운반한다면 역참에서 말을 세놓는 자들도 앞으로 말 대신 수레를 세놓아 생업을 잃지 않을 것이며, 점차적으로 이를 서로 본받아서 온 나라에 두루 퍼질 것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오늘날에 있어서 급선무는 두 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 네 가지 이로운 것을 일으키는 것만한 것이 없습 니다. 무엇이 두 가지 해로운 것이냐 하면 쓸데없는 관리와 쓸데없는 군사가 그것입니다. 무엇이 네 가지 이 로운 것이냐 하면 어진 인재를 가려뽑고, 전제(田制)를 고르게 하며, 노는 토지를 개간하고 환곡법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환곡의 폐단에 대해서는 이미 책문(策問) 제목으로 내어 물었으니 어찌 혹시라도 쓸데없는 빈말을 하였겠는 가. 수십 년 전에 감사나 병사가 녹봉을 출연(出捐)하거나 방역(防役)하는 등과 같은 자질구레한 명색(名色)에 대해서는 거의 다 그 문서를 없애고 빚을 받는 것을 중지시켰지만 필경에는 이자로 받아들인 곡식에다 손대 는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서울에 있는 관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원도의 삼(蔘)이니, 노비의 신공(身貢)이니 하는 것들은 그 가운데 특히 큰 것이고 그 나머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조차 없다. 무 릇 법이란 것은 그릇을 땅에 놓아둔 것과 같아서 오로지 어떻게 쓰는가 하는 데 달려있는 것이다. 환곡이 백 성들에게 있어서 절박한 폐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공물을 줄여서 다른 물품으 로 대체해 주고 은택을 내려 부담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 수십 만 가지도 넘는다. 그런데 만약 그에 대해서는 양쪽이 다 편리한 방도를 별도로 강구하지 않고서 지시만 내리면서 어쩌고저쩌고 한다면 어찌 옳겠는가. 첨 부하여 올린 견해에 대해서는 묘당에 내려 상세하게 살펴본 뒤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정도성(鄭道星)의 상소에 아뢰기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89

290 대체적으로 볍씨는 강한 종자도 있고 약한 종자도 있는데, 약한 종자는 가뭄을 당하면 잘 자라지 못하고 쉽 게 말라 죽으며, 강한 종자는 홍수나 가뭄에도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대개 볍씨에는 강한 종자가 세 가지가 있는데, 천상도(天上稻), 두어라산도(斗於羅山稻), 순창도(淳昌稻)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볍씨는 그 성질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논에는 모를 붓고 밭에는 씨를 뿌리는데, 2월에 땅을 갈고 3월에 씨를 뿌리면 늦모를 낼 때쯤 이 세 종류의 벼는 줄기가 이미 절반 정도 성장하며, 결실 역시 빨라서 비록 가뭄이나 홍수를 만나더라 도 조금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삼남 지방에는 논이 많고 나머지 다섯 도에는 밭이 많으니 이 세 가지 벼 종 자를 심는 법을 시행한다면 삼남 지방에는 그 이익이 더욱 클 것입니다. 춘궁기에는 가난한 백성들이 종자곡을 마련하기가 어려워 걸핏하면 농사철을 놓치고 마니 특별히 환곡을 꿔 주어 그들로 하여금 농사철을 놓치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관가에서 시골 백성들에게 지시를 내려 농 토를 일구게 하면 들판이 묵고 황폐해지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 게을러서 농사짓 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암행 어사를 파견하여 놀고 먹는 백성들을 찾아내게 한다면 백성들이 모두 농사 에 힘쓸 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올린 글이 10여 줄에 불과하지만 세 가지 벼 종자를 심는 법과 소의 도살을 금지하라고 진달한 것은 모두가 실용(實用)에 힘쓴 적당한 말들이다. 유사 당상(有司堂上)이 이미 전라 감사를 지낸 자인만큼 그를 불 러다가 의견을 묻는 한편, 너의 말대로 시험해 볼 만한 남쪽 고을에서 시험해 볼 것이니, 뒷날 반드시 성과가 있 을 것이다. 하고, 전교하기를, 물어보는 것은 실제적인 것에 힘쓰기 위한 것이니 전지에 응하여 상소하는 것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근 래에 올라온 여러 글들 가운데서 실속이 있는 것은 이 사람의 글에서 처음으로 보겠다. 좌상이 불러보고 등 용하기에 합당할 것 같으면 초기(草記)를 올리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정도성을 불러다가 내력을 물어보니, 살림살이가 웬만큼 넉넉하여 진구곡(賑救穀)을 내고 직첩(職帖)을 받는 은혜를 입었으며, 글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남에게 말을 해주고 대신 쓰게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착실하고 말 역시 믿을 만하나 등용하기에 합당한지의 여부는 감히 분명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김하련(金夏璉)의 상소에 아뢰기를, 수차(水車)를 만드는 재목으로는 참나무와 박달나무만을 쓰는데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은 이를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자성(慈城)ㆍ우예(虞芮)ㆍ여연(閭延)ㆍ무창(茂昌) 등 사군에는 아름드리가 넘는 나무로서 수차 바퀴나 배의 돛대, 집의 대들보감으로 쓰기에 충분한 좋은 재목이 산과 들에 가득 차있습니다. 바닷가에 사 는 백성으로서 그곳에 가서 수차와 배의 재목을 베어오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공문을 내주어 각자 원하는 바 에 따라 수차를 만들거나 배, 뗏목을 만들게 한 다음, 자성 부근에서부터 강물을 타고 내려오게 하면, 용천 (龍川) 바다 어귀까지 3, 4일 정도면 도착하고, 용천서부터 경강(京江)이나 삼남 지방까지는 열흘을 넘지 않아 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수차를 만드는 법은 전 찰방 이우형(李宇烱)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우형을 특별히 자성에 보내어 수차를 많이 만들게 한 뒤 그것을 바닷가의 고을마다 1대씩 나누어 주어 각 고을의 농민들이 이를 본 받게 하면 몇 해 안 가서 수차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법이 온 나라에 두루 퍼질 것이고 어민들이 농민들에 게 도움을 주는 것도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묘당으로 하여금 논의해본 뒤 품의하여 조처해서 농정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 하였다. 이경오(李敬五)의 상소에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논밭이 많이 황폐해지고 베틀마저 텅 비어 있는데, 이것은 농서(農書)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 29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91 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마땅히 먼저 손을 써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한 사 람이 농사짓지 않으면 천하 사람들이 굶주린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백성들은 아전이나 하인들의 무리 속으로 함부로 의탁하고 저자거리의 거간꾼 무리를 쫓아다니며, 이보다 못한 무리들은 편한 길을 따라 장사 를 배우거나 기회를 틈타 도적질을 하면서 모두들 놀고 먹으려고만 합니다. 이에 떠돌아다니는 자가 꼬리를 물고 호구수가 날로 줄어들어서 팔도의 백성들 가운데 농사를 짓지 않는 자가 거의 절반이나 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현재 농정에 있어서의 급선무는 놀고 먹는 백성들을 모조리 몰아다 농토로 돌아가 농 사를 짓게 하는 것이며, 그런 다음에야 농서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이어 본부(本府)의 삼(蔘)을 캐는 폐단에 대해 논하면서 이를 중지시켜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이른바 백성들로 하여금 고향에서 농사짓게 한 뒤에야 농서가 필요한 것이라고 한 것은, 간략하면서도 할 말을 다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의 잘못된 습속은 오로지 조그마한 이끗만 노릴 줄 아는 것인데, 이를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근본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먼저 네가 살고 있는 고을의 노는 땅부터 시작하여 몸소 전준(田畯)이 되어 오늘 한 모퉁이를 개간하고 내일 한 고랑을 개간하여 날마다 개간하는 성과가 나타나게 한다면 너를 알아준 나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 사에게 하유하여 앞으로 있을 여름과 겨울의 근무 평정때 해당 수령의 실적을 항목 아래에다가 주를 달아 기록하게 하겠다. 이른바 삼 캐는 것을 권장하는 규정이 한갓 삼상(蔘商)들이 이끗을 노리는 길만 열어놓았고 온 도의 농사를 방해하는 해독을 빚어낼 뿐이다. 고 한 것은, 사리가 분명하다. 이미 그런 말을 들은 이상 어찌 그 폐단을 그 대로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감사에게 하유하여 이에 대해 속히 장계를 올리게 하겠다. 하였다. 김만(金萬)의 상소에 아뢰기를, 천시(天時)를 따르고 지리(地利)를 이용하며 인사(人事)를 닦는 것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본령(本領)이며, 수리 사업을 일으키고 토질에 알맞은 것을 살피며 농기구를 이용하는 것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급선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남쪽과 북쪽 지방에 잘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과 산골짜기와 들판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느냐 하는 것 및 모를 붓고 씨를 심는 것의 이해(利害), 담배와 차를 심고 화전(火田)을 일구는 것이 편리한지의 여부 등은 작은 절목에 해당되는 일들입니다. 우리 나라가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남북이 수천 리 나 되니 풍토와 기후가 같지 않고 토질이 현저히 다른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모를 붓는 것에 대한 득실 여부는 가장 신중하게 헤아려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이 풍부한 경우에는 물씨뿌 리기를 하는 것이 좋고 토질이 부드러울 경우에는 마른씨뿌리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습하여도 비옥하지 않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곳이나 혹은 흙덩이가 단단하여 쟁기가 들어가지 않아 물을 대면 갈 수 있고 마 른 채로 갈면 갈 수가 없는 땅이 곳곳마다 반반씩 뒤섞여 있으니, 모를 붓는 것은 농사에 게을러서 그런 것 이 아니라 대개 토질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것을 금지하는 경우에는 법으로 금하여야 하겠지만 신은 감히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화전을 일구는 이익 역시 큽니다. 명산(名山)을 벗겨내는 것이 과연 염려되기는 하지만 천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폐단을 하루아침에 금지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통렬히 금지해야 할 것은 담배와 차를 재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재배하는 것을 금하 자면 반드시 먼저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환곡에서 발생하는 허다한 폐단은 그 근본 원인이 뒤섞어 보관해두는 데 있으니, 그 폐단을 구제하자면 면 (面)별로 창고를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각 고을에 그 전에 있던 창고를 그 대로 두고 그 안에다 그 고을의 면수에 따라서 벽을 쌓아 칸을 막되, 칸의 크기는 면의 대소에 따라 적당히 하며, 해당 면에서 바친 곡식은 다른 칸으로 옮겨 쌓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벽에다가는 해당 면의 이름을 써 서 구별합니다. 그리고 곡식을 바칠 때에는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창고에 바치게 하고 곡식을 내줄 때에도 그와 같이 하여 창고문에서 지급해 주도록 합니다. 그리고 위에다 자물쇠와 열쇠를 설치하여 아무때나 함부 로 여닫지 못하게 합니다. 또 각영(各營)의 모곡(耗穀)과 관청에서 내려주는 잡역곡(雜役穀)은 수시로 출납하 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별도로 창고 하나를 세웁니다. 이상과 같이 할 경우 백성들이 관가의 창고를 보기를 개인의 창고 같이 보아 오로지 곡식이 깨끗하지 못할까만 걱정할 것입니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1

292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네가 상소에서 진달한 바는 갑자기 구언 전지에 응하여 올린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바, 너의 정성이 몹시 가상하다. 묘당에서 논의해 본 다음 방안을 첨부하여 아뢰게 하겠다. 하였다. 비변사가 복주(覆奏)하기를, 모내기는 토질에 따라서 하고 화전을 일구는 것은 금할 수 없으며 담배와 차의 경작을 금하는 것과 제언을 수리하는 등의 일은 모두가 이미 전후로 올린 복계(覆啓)에서 이미 진달드린 것입니다. 환곡의 폐단을 구제 하는 방법으로 있던 창고에다 면의 숫자에 따라 벽을 쌓아 칸을 막는 일은, 관고(官庫)에다 사창(社倉)의 뜻 을 붙여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의 물품처럼 여겨 서로 자신을 위해 모의하게 하자는 것이니, 지금 논한 것이 채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을에는 크고 작음이 있고 면수는 많고 적음이 있는 만큼 일률 적으로 시행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언양(彦陽) 한 고을에서부터 백성들의 의견을 널리 물어보고 백성들의 힘을 번거롭히지 않으면서 그것이 편리한지의 여부를 시험해본 뒤에 과연 성과가 있을 것 같으면 여러 고을에서 이를 본받아 차례로 시행해 나가도록 해당 도에 분부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환곡의 폐단에 대해서는 해당 고을에서 먼저 시험해 보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 해당 수령에게 엄히 신칙해 서 거행하게 하라. 하였다. 김양직(金養直)의 상소에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농가잡설(農家雜說) 에 말하기를 부용꽃이 필 때 가장 먼저 핀 꽃 한 송이를 따가지고 그 무게를 달아보아 이듬해의 쌀값이 쌀지 비쌀지를 알 수 있다. 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다음해에 어떤 곡식이 풍년이 들 것인지를 알고자 하면 먼저 올해에 다섯 가지 나무 가운데 어느 것이 무성하게 자랐는가를 알아 보고 그에 따른 곡식을 심는다. 벼는 대추나무나 버드나무에서, 기장은 느릅나무에서, 콩은 느티나무에서, 팥 은 오얏나무에서, 삼은 버드나무나 가시나무에서 알아낸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보건대 작년에는 대추나무 잎이 무성하였고 늙은 버드나무가 무성하였는바, 금년에는 벼농사를 권장할만 하겠습니다. 또 사시입절가(四時立節歌)를 보건대, 거기에 동짓날 날이 맑고 햇빛이 희미하면 이듬해에는 태평가가 울려 퍼진다. 고 하였고, 입춘시(立春詩)에는 입춘날 하루만 맑게 개어라. 농부들이 농삿일에 힘들지 않으리. 라고 하였으며, 제석가(除夕歌)에는 이날에 청명한 좋은 날씨 만났으니 농가에 분부하여 마음 기쁘게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신이 보건대 작년 동지에는 하늘빛이 과연 맑고 햇빛이 희미하였으며, 입춘날에도 또다시 맑게 개였으며 이날이 또 제일(除日)178)을 겸하였습니다. 신이 이 세 구(句)의 시의 뜻을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이 것은 모두 다 길한 징조입니다. 또 보건대 설날에는 서풍이 약하게 불고 동쪽에 누런 구름의 길한 기운이 있 었는바, 올해 풍년이 들 것임을 점칠 수 있겠습니다. 또 고방(古方) 을 보니, 거기에 이르기를 정월 3일에 비가 내리면 4월달에 물이 풍부하고 4일에 비가 내 리면 5월달에 물이 풍부하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보건대 금년 정월 3일에는 하늘에서 눈이 내렸고 4일날 저녁에는 비가 내렸으니 이것은 길한 징조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4월과 5월은 농가에서 가장 중요한 달로서 농민들이 이 두 달 동안에 제때 일찌감치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 뒤에 비록 작은 가뭄이 있더라도 크게 농사에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신의 생각에는 금년에는 농사를 일찌감치 시작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집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진달한 바에 모두 소견이 있다. 묘당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이제화(李齊華)의 상소에 아뢰기를, 농정전서(農政全書) 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좋은 농사법입니다. 이 책을 출간하여 중외에 널리 유포한 다면 농사에 힘쓰도록 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을 조사해내어 부자집에 나누어 배 178) 제일(除日) : 섣달 그믐날. 29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93 정한 뒤 토지를 주고 종자와 식량을 주게 하면 그해 안으로 신역(身役)을 지거나 환곡을 갚지 못하는 어려움 이 없을 것이고, 이를 몇 해 동안 시행하면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 안에는 제언이 없는 고을이 없지만 막히고 말라붙었습니다. 또 아랫보가 있으면 윗보를 만드는 것을 금 하는 것이 이미 고질적인 폐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보를 만들 만한 곳에 일체 보를 열게 한다면 실로 백성 들과 나라에 있어서 다행이겠습니다. 고구마를 심는 것은 구황(救荒)하는 데 있어서 가장 알맞은 것입니다. 여러 도에 널리 유포한다면 실로 식량을 보충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진년부터 영남의 조세 곡식을 영남의 백성들이 영남의 배로 실어다가 바치기 때문에 60여 척이나 되는 배 를 다시 만들고 고치는 일이 없는 해가 없으며 그 재목을 대느라 원래 정해준 그루 수 외에 함부로 더 베는 것이 3, 4배가 넘는 바람에 주위에 있는 봉산(封山)들이 지금은 모두 민둥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천여 석이나 실은 배의 선주와 사공이 모두 뱃일에 서투른 농사꾼들이기 때문에 배가 전복되는 걱정을 해마다 면 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조창(漕倉)에다 예전대로 보관해 두고 경강(京江)의 뱃사람들로 하 여금 각 조창으로 배를 끌고 내려가서 나누어 싣고 올라와 바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럴 경우 전혀 뱃일 에 서투른 사람들이 자주 파선시키는 걱정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60척의 배를 3대(隊)로 나누어 배정한 뒤, 그 대에서 각자 특별히 단속하게 하고 혹시라도 배가 전복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해당 선대 20척의 배에서 힘을 합해 다시 마련해 바치게 합니다. 그러면 영남 지방의 백성들은 저절로 농삿일에 돌아 가 안착할 수 있을 것이고, 봉산(封山)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는 폐단과 해당 고을 백성들에게 세곡을 거듭 징수하는 폐단을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을 내리기를, 진달한 내용 중에 쓸 만한 말이 많았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내용을 첨부하여 품의한 뒤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비변사가 복주하기를, 농정전서 를 중외에 널리 유포하는 일은, 농가류(農家類)의 저서 가운데에서 이 책이 가장 상세하게 쓰여 져 있다고 칭해지고 있는바, 양남(兩南) 지방에 조금 풍년이 들기를 기다려서 간행하여 반포하게 하겠습니다. 가난한 백성을 뽑아내어 부자집에 나누어 맡기는 문제는, 궁한 백성을 먼저 돌보아 주는 일로서, 바로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는 의리입니다. 이는 마을에 좋은 풍속이 있으면 권면하지 않아도 나름대 로 해나갈 것이며, 관가에서 명령을 내릴 경우에는 반드시 어거지로 배정할 염려가 있습니다. 신역을 옮겨 지우고 환곡을 대신 징수하는 것은 더더욱 백성들을 인도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도리가 아닙니다. 내버려두소 서. 제언에 대한 일은, 제언에 함부로 법을 어기고 경작하는 것을 금하는 법이 지극히 엄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제언을 수축하기를 신칙하는 때를 당해서 도리어 개간하는 것을 허락하라고 청한 것은 사체를 잘 모른 소치 에서 나온 것인 듯합니다. 아울러 우선은 내버려두소서. 고구마를 심는 데 대한 일은, 고구마는 구황하는 데 있어서 실로 중요한 종자입니다. 남쪽 바닷가의 고을 가운데 심는 곳이 많이 있고 연전에도 이미 심도록 신 칙하였는데,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시금 여러 도에 신칙하겠습니다. 영남 지방의 조운선에 대한 일은, 조운선은 실로 소나무를 해치는 좀벌레인바, 이 때문에 배 만드는 제도를 변경하자는 논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경강(京江)의 뱃군들에게 나누어 실어오게 하자는 논의는 비록 나름대로 소 견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창을 설치하고 조졸(漕卒)을 단속하는 데 대해서는 이미 정해놓은 규례가 있으니 사소한 폐단으로 인해서 갑자기 뜯어고치자고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우선은 내버려두소 서. 하니, 전교하기를, 농정전서 를 중외에 널리 유포시키는 일은, 근래에 찍어낸 책이 있는 곳이 드무니, 이것이 어찌 편찬하 도록 명하고 인쇄하도록 명한 본뜻이겠는가. 이번에 진달한 여러 설들 가운데 채용할 만한 설들을 종류별로 보충해 편찬하여 널리 배포할 바탕으로 삼도록 할 일을 주자소(鑄字所)에 분부하라. 고구마를 심는 일은, 그 효과가 콩이나 조와 거의 같은데 배를 채우고 위장을 기름지게 하며 맛 역시 좋다. 사다가 심는 방도에 대해 서도 역시 별도로 새로운 영을 반포할 필요가 없다. 각 해당 도의 감사들로 하여금 각자 심어 먹을 방도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3

294 생각하되, 혹시라도 으레 신칙하는 지시로 보아넘기지 말게 하라. 영남의 조운선을 다시 경강선(京江船)으로 바꾸고 조운선을 대(隊)로 편성하는 일은, 곡식을 배로 실어나르는 정사에 대해서 밤낮으로 고심하고 있는데, 이것은 배 만드는 숫자를 줄이고 병선(兵船)과 경선(京船)을 통용 하여, 산에 나무가 헐벗지 않고 강물의 흐름이 막히지 않게 함으로써, 농정(農政)과 함께 다같이 이익을 보는 방도에 있다 하겠다. 전에 이미 이에 대하여 두루 물어보았으니 다만 한 차례 말한 것을 실천해 보는 것이 마땅할 뿐이다. 이 조항은 우선 내버려두라. 앞으로 여러 도에서 구언 전지에 응하여 올린 상소와 책자 및 묘당의 회계(回啓)와 비답(批答) 내용까지를 반드시 모두다 기록하여 해당 도에 내려보내서, 감사로 하여금 그 사람들을 관청으로 불러다 놓고 정복을 갖추어 입은 뒤 직접 전해주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조정의 명령 을 미덥게 하고 한편으로는 체모를 높이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상소를 올린 사람들이 대부분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상이 한결같이 너그러운 비답을 내 리고 묘당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였다. 김천숙(金天肅)ㆍ윤보(尹溥)ㆍ염덕우(廉德隅)ㆍ강요신(康堯 愼)ㆍ장지한(張志澣)ㆍ이상희(李尙熙)ㆍ이인영(李仁榮)ㆍ윤홍심(尹弘心)ㆍ정응삼(鄭應參)ㆍ김응린(金應麟)ㆍ최세 택(崔世澤)ㆍ김치대(金致大) 등의 상소는 분명하게 건의한 바가 없었다. 김치대는 문장이 다른 사람에 비교하 여 뛰어났으므로 특별히 주자서(朱子書) 한 질을 하사하였다. 장윤(張 ) 이하 농서(農書)를 바친 자에 대해서 는 그때마다 묘당에 명하여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였고, 조금이라도 취할 만한 좋은 점이 있으면 내각(內閣) 에 명해서 새로 편찬하는 농서에 채택하여 넣게 하였다. 이만록(李晩祿)과 이문철(李文哲)은 가장 먼저 전지 에 응하여 상소를 올렸으며, 이만록은 또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인재를 얻는 것보다 더 좋은 방도가 없다고 하였는데, 상이 근본을 제대로 알았다고 하면서 대전통편(大典通編) 을 하사하였고, 이문철에게는 운서(韻 書)를 하사하였다. 유진목(柳鎭穆)이 올린 상소는 전지의 내용에 가장 잘 맞았으므로 관직을 제수하였다. 유진목이 농서를 올렸는데, 그 내용에, 신은 삼가 교서를 받들어 읽고서 감히 농사를 가르치는 것, 농삿일을 다스리는 것, 농사에 이로운 것, 농사 에 해가 되는 것들을 조목별로 나열하여 15가지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1. 향약법(鄕約法)을 거듭 밝히고 농민들을 부지런히 힘쓰도록 권장하는 것입니다. 1. 토지를 3등급으로 나누고서 씨를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는 것을 각각 그 토질에 맞게 하는 것입니다. 1. 바닷가나 평야지대 고을의 각 창고에 보관하는 잡곡을 종자곡으로 나누어주어 대신 파종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1. 널리 제언을 쌓아서 물을 잘 이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산의 나무를 베는 것을 엄히 금하여 수원(水源)을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수차의 제도를 반포하여서 물을 끌어대는 것을 편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1. 물을 균등하게 이용하게 하여 농민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1. 농가집성(農家集成) 을 참고하여 오늘날의 실정에 맞는 농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1. 여름 농사철에 백성들을 소요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1. 목화밭에 대해 재결(災結)로 처리해 주어 목화 농사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1. 논에 가을 보리를 심도록 신칙해서 농사철의 식량을 넉넉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사창법(社倉法)을 모방하여 시행함으로써 농량(農粮)을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1. 봄과 여름에 밭갈고 김매는 것을 가난한 농부집부터 먼저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소의 돌림병에 대한 치료법을 널리 물어서 농서에 첨부하는 것입니다. 1. 농민을 귀하게 여기고 선비들을 권장하며 마을의 풍속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박유(林博儒)도 농서를 진달하였는데, 유진목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유진목과 함께 책을 올렸는 데, 그 내용에, 1.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를 잘 가려 임명하고 제대로 농사를 장려하였는가 하는 것을 근무평정에 반영하여 29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95 게으른 농민들을 권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산의 벌채를 금지하여 나무를 길러서 수원(水源)을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1. 냇가의 둑을 다시 수축하고 제언을 더 설치하여 수리(水利)를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1. 둑을 수리하고 제언을 설치한 뒤 법조문을 엄하게 세워 관개를 균등히 하는 것입니다. 1. 수차(水車)의 제도를 반포하여 물을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1. 한전법(限田法)을 정립하여 게으른 농민을 진작시키는 것입니다. 1. 논을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모내기를 하거나, 씨뿌리기를 하거나, 다른 작물을 파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 연해 고을의 각 창고의 곡식은 잡곡으로 바꾸어 보관해 두고 이를 환곡으로 나누어주어 벼 대신 파종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1. 환곡을 나누어 줌에 있어서는 반드시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한 차례 넉넉하게 나누어주어 농사지을 동 안의 양식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1. 향약법을 신명하여서 농사에 힘쓸 바탕을 마련해 주는 일입니다. 1. 농민을 귀하게 여겨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지을 마음이 생기게 하는 일입니다. 1. 차와 담배의 재배를 엄하게 금지시켜서 농사짓는 전지를 넓히는 일입니다. 1. 토질을 살피고 곡식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하는 일입니다. 하였다. 이에 대하여 비변사가 복계(覆啓)하기를, 유진목이 올린 책자를 가져다가 보니, 그 조목이 문란하지 않았고 그 내용이 근거할 만하였는데, 필경에는 그 요지가 향약법을 시행하는 데로 귀결되었습니다. 다만 농정이 점차 성과가 있는가를 살펴보아 한(漢)나라 에서 시행하였던 법과 똑같이 별도로 효제(孝悌)와 역전(力田)의 과목(科目)을 세워도 늦지 않을 것이니, 우선 은 내버려두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일찍이 선정신(先正臣) 송 문정공(宋文正公)179)이 공주 목사(公州牧使) 신숙(申洬)이 편찬한 농가집성(農家 集成) 의 서문을 쓴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말하기를 주자가 쓴 책 가운데 권농문(權農文) 몇 조목은 참으 로 뭇 백성들이 일용(日用)으로 할 것들이다. 효제(孝悌)니 예의니 하는 것이 일찍이 제언을 수축하고 토지를 일구는 것에 대한 방문(榜文)과 아울러 언급되지 않은 적이 없었은즉, 다른 데서 구하지 않더라도 그 힘을 쏟아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고 하였는바, 그 말뜻이 절실하기도 하다. 참으로 농가(農家)의 지침이 되는 것이 며, 풍속을 교화시키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근래에 날마다 올라와 쌓이는 상소문을 보건대 여기에 대해 언 급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오로지 공주 생원 유진목만이 능히 말하였다. 이 책을 편찬한 자가 바 로 공주 목사였는데, 지금 1백 46년이 지난 뒤에 그 말이 또 공주에 사는 선비에게서 나왔으니,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진달한 15조항은 모두 주자가 남강(南康)에서 내린 방문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이른바 향약법을 거듭 밝혀 농민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2월에 술과 음식을 싸가지고 교외로 나가 부호들을 만나 보고서 농상(農桑)에 힘쓸 것과 효제(孝悌)를 돈독히 할 방도를 일러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씨를 심거나 모를 내는 것을 각각 토질에 맞게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주자가 말한 씨를 물에 담궈두었다가 모를 부으며 깊게 갈고 얕게 김매라고 한 뜻이다. 이른바 잡곡을 대신 파종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말한 제때에 논을 갈아엎고 밀과 보리를 많이 심는다는 법이다. 이른바 수레의 제도를 널리 반포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 가 말한 숙(塾)이 있는 자는 수레와 두레박의 힘을 힘입는다는 방법이다. 이른바 수리(水利)를 균등히 나눈다 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말한 못과 연못이 얕거나 샐 경우에는 힘을 합쳐서 파낸다는 방책이다. 이른바 농사철에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빈민이나 하호(下戶)가 억울하게 불려나 간다는 깨우침이다. 이른바 목화농사를 장려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성자현 지사(星子縣知事) 왕문림 (王文林)의 뽕나무를 심는 방법 등을 알아내어 세 현(縣)에 내려보낸 규례이다. 이른바 사창제도(社倉制度)를 모방하여 시행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제갈가(諸葛家)와 천능가(千能家) 등 집안의 쌀을 창고에 쌓아 179) 송 문정공(宋文正公) : 송시열(宋時烈)을 말함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5

296 두었다가 대신 나누어주자고 한 논의이다. 이른바 갈고 김매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가난한 농민의 집부터 먼 저 하게 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말한 빈궁한 농민을 기쁘게 하는 근본이라고 한 것이다. 이른바 소 의 돌림병을 고치는 방법을 두루 물어보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말한 농사짓는 품은 전적으로 소의 힘 에 의지하는바 제때에 잘 먹여 기르고 잡아먹지 못하게 하라는 훈계이다. 이른바 농민을 귀하게 여기고 선비 들을 권면하라고 한 것은, 바로 주부자가 말한 도를 배우고 몸을 닦아 민호(民戶)를 흥기시킨다고 한 뜻인 것이다. 이른바 산을 벌채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시키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은 주부자가 언급하지 않은 것인 데, 이것은 주부자가 있던 남방 지방에는 물이 많고 산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예전에 시험해 본 것들로서, 오로지 수령들이 어떻게 독려하고 신칙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묘당에서 그가 진달한 책자 가운데 있는 여러 조항들을 문서 뒤에다 기록하여 본도 이외의 7도 및 화성부(華城府)에 내려보내라.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자 상세히 살펴본 다음 관하의 수령들을 잘 신칙해 서, 본받을 만한 조항들을 관심을 두고 채택해 시행해서 기어이 실효가 있게 하라. 그 가운데서도 밭에 거름을 주는 것은 농사짓는 데 있어서 더욱 요긴한 것이다. 버들가지를 밭에 펴고, 개흙 을 재[灰]에 섞고, 지붕의 짚을 썩히고, 짠물을 흙에 붓는 등의 방법을 써서, 땅이 비옥해지면 갈나무 잎을 펴서 지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흙이 부풀어 오르면 가는 모래를 고르게 섞어서 소출을 배로 거두는 것은, 그 나름대로 묘리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사람들이 부지런하냐 게으르 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번에 내린 교서에서 근(勤) 이라는 한 자를 뽑아내어 교서문의 핵심 글자로 삼았는데, 지금 이 글에서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능히 근 자에다 귀결시켰으니, 몹시 가상하다. 이 비 답 내용을 해당 도에 내려보내어 그로 하여금 유진목에게 등사해서 주게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또 아뢰기를, 임박유(林博儒)가 진달한 14개 조목 가운데 10개 조목은 유진목이 진달한 것과 내용이 같습니다. 그 가운데 한전제도(限田制度)를 정하자는 것과 몇 기분의 환곡을 합하여 나누어 주자는 것, 담배와 차의 재배를 엄히 금지시키라는 것, 백성들에게 절약하도록 장려하라는 것은 유진목이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전제도 를 시행하자는 것은 말은 그르지 않지만 갑자기 논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담배와 차의 재배를 금 지하는 것은, 금지시키기는 참으로 쉬우나 역시 효과와 피해가 서로 엇비슷할 것입니다. 어공(御供)은 빠뜨릴 수 없다고 운운한 것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극히 외람스럽습니다. 시골 유생이 비록 사체를 제대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감사가 어찌 살펴보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해당 감사를 추고하소서. 그 가운데 환곡을 나누어 주는 한 가지 일은 채용할 만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사로 하여금 영하(營下)의 고을 백성들에게 시행해보게 하고, 편리하다고 여겨지면 여러 고을에 시행하는 것 역시 안 될 것이 없겠습니다. 하니, 전교하 기를, 한전제도에 대한 일은 말인즉 좋으나 형세상 용이하게 논의하기가 어렵다. 비록 성세였던 하ㆍ은ㆍ주 삼대 때를 두고 말하더라도, 한 사람이 받는 전지가 하나라에서는 50묘(畝)였고 은나라에서는 70묘였으며, 주나라 에서는 1백 묘였었으니,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비용이 점점 불어남에 따라 전지 역시 늘려주었다는 것을 대개 알 수가 있다. 진(晋)나라태강(泰康)180)때에는 한 사람당 70묘를 받는 제도가 있었지만 토지를 주고 받 는 제도가 역사책에 쓰여져 있지 않다. 위(魏)나라효문제(孝文帝)가 비로소 균전제도를 시행하였는데 백성들 이 가지고 있는 전지를 균등히 나눈 데 지나지 않았다. 당 태종(唐太宗)이 시행한 호구별로 나누어서 대대로 이어가게 한 규정 역시 이것을 모방한 것이었는데, 영휘(永徽) 연간에 토지의 겸병(兼並)이 옛날과 같게 되었 다. 대개 진(秦)나라에서 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이 1천 6백 년이 되었는데 능히 전지를 나누어주고 토지를 균 등하게 하는 법을 시행한 기간은 2백 년에 불과하였으니, 저절로 혁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형세가 그러 하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 6도(道)의 토지 대장에 등재되어 있는 전지의 총수를 경외의 사람 숫자에 비교해 보면 문무관(文 武官) 3천여 명을 제외하고 사람마다 1결(結)씩만 나누어준다고 할 때 6백 63만 6천여 결이 부족하게 된다. 조정에서는 내가 즉위한 초기부터 가장 먼저 전정(田政)을 바로잡는 데 유의하여, 매번 이에 생각이 미칠 때 180) 태강(泰康) : 무제(武帝)의 연호. 29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97 마다 밤까지 평상을 빙빙돌면서 생각해 보았으나 그 요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몇 기분의 환곡을 합하여 나누어 주는 일은, 양반이라는 명색만 있고 거느리고 부리는 사람이 없는 자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구걸하여서 환곡을 받아가는데, 늘상 이들에게 뜯겨서 잃어버리는 것이 원래부터의 공통된 폐단이었다. 그리하여 비록 몇 말의 환곡을 받아갈 때에도 오히려 관속들의 침탈과 점주(店主)들의 비용으로 뜯기는 것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더구나 몇 섬을 한꺼번에 아울러서 받아갈 경우, 능히 종자곡과 농 사지을 양식으로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은 한두 고을에서만 시험해 보는 것도 안 될 것은 없다. 담배와 차의 재배를 금지하는 일은,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이 엇비슷하여 술을 빚는 것과 같은 점이 있는바, 가볍게 논의해서는 안 된다. 이는 신풍 장공(新風張公)181)의 말에서 충분히 근거삼을 수 있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절약하도록 장려하는 일은, 오히려 조정에서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어 찌 백성들에게 책할 문제이겠는가. 경들부터 참으로 검소한 생활에 솔선수범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자연히 우 역(郵驛)으로 명을 전하는 것처럼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점에 대하여 스스로를 반성하겠 다. 하였다. 그리고는 장윤(張 )과 안성탁(安聖鐸)이 또 유진목에 다음간다고 칭찬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장윤이 올린 농서(農書)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토질을 잘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곡식을 심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토질을 잘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곡식 을 심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내린 교서에서 유시한 바가 있으니 대소의 백성들 가운데 이를 환히 아 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분발하여서 성과를 거두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어떤 땅에는 어떤 곡식 을 심으라고 말하여 마치 규정을 정해놓는 것처럼 하기는 어렵습니다. 내버려두소서. 1. 농기구 가운데에서 수차(水車)와 역거(役車)가 농삿일에 있어서 더욱더 긴요한데, 그 가운데서도 역거는 외 바퀴수레를 쓸 수 있다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수차의 제도는 일리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효과가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법이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생각건대, 그 만드는 법이 교묘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 장인(匠人)들 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반 민호(民戶)에서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이 바로 우리 나라가 수차 만드는 제도를 잘 몰랐던 것이 아니면서도 그것을 편리하게 이용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말하는 자들은 중국에서 쓰는 것을 어느 곳에서인들 쓰지 못하겠는가. 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장인은 솜씨가 뛰어나고 중국의 재물은 풍족합니다. 그리하여 아주 가난한 자를 놓고 본다면 우리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과 다름이 없 지만, 조금 부유한 자를 놓고 본다면 그 재산이 우리 나라의 부유한 자들보다 천만 배도 넘습니다. 그러므로 수차 한 대가 만들어지면 뭇 공장들이 이를 본따고 한 동네가 만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이에 응합니다. 이 때문에 만들기가 쉽고 광범위하게 시행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도에서 이를 시험해 보고자 할 경우 반드시 영읍(營邑)이 힘을 합친 다음에야 한두 대의 수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일반 백성들이 서로 모방한다는 것은 결코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역거에 이르러서는, 각도의 습속이 서로 다른바, 역시 영을 내려서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버려두소서. 1. 호남 지방에 오랫동안 양전(量田)을 하지 않아서 전지(田地)가 균등치 않고 부세(賦稅)가 공평치 않다는 데 대해서입니다. 토지를 다시 양전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복계(覆啓)에서 진달드렸습니다. 풍년을 기다려서 품정(稟定) 하여 거행하겠습니다. 1. 무주(茂州)와 순천(順天) 사이에는 사금(沙金)을 캐는 자가 줄을 잇고 농부가 아주 드물게 있는바, 이를 일 체 금지시킬 경우 놀고먹는 무리들이 저절로 돌아가 농사지을 것이라는 데 대해서입니다. 금의 채취를 금하는 것은 원래 법전에 엄격히 실려 있고 농사를 해치는 일로도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 니다. 각별히 엄하게 금지시키라는 뜻으로 감사들을 엄하게 신칙하소서. 181) 신풍 장공(新風張公) : 장유(張維)를 가리킴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7

298 하니, 윤허하였다. 전교하기를, 그 가운데에서도 농사철에 대해 상세히 진달한 것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들이다. 거기에서 말한 우수(雨水) 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驚蟄)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春分)에는 올벼를 심고 청명(淸明)에는 올기장을 심으며, 곡우(穀雨)에는 호미질하러 나가고 입하(立夏)에는 들깨를 심으며, 망종(芒種)에는 모시와 삼을 거두 고 하지(夏至)에는 가을보리를 거두며, 입추(立秋)에는 메밀을 심고 처서(處暑)에는 올벼를 수확한다. 반드시 절기에 앞서 갈고 심으며 절기에 앞서 물을 가두며, 또한 제때에 모를 내고 제때에 김을 매준다. 모를 낸 지 20일 뒤에 초벌김을 매며, 초벌김을 맨 지 13일이 지난 뒤에 두벌김을 매며, 두벌김을 맨 지 15일이 지난 뒤 에 세벌김을 매면 곧바로 추수할 때가 된다. 만약 제때를 어긴다면 곡식이 잘 자라나게 하려 해도 될 수 있 겠는가. 라고 한 것은, 말한 바가 형식적인 것을 벗어던지고 실제적인 것이었으니 기쁘다. 또 김을 매는 과정 도 일일이 조목조목 진술하였다. 그러니 해당 고을의 수령으로 하여금 그를 특별히 권농관의 직임에 차임하 고 가을 추수 뒤에 부지런함과 태만함을 고과한 뒤 감영에 보고하게 하고, 그런 뒤에 감사가 장계를 올리라 고 해당 도의 감사에게 분부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16장 B면 영인본 47책 138면 분류 *금융(金融) / *상업(商業) / *출판서책(書冊) / *식생활(食生活) / *인물(人物)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 役) / *과학(科學) / *재정(財政) / *구휼(救恤) / *향촌(鄕村) / *왕실사급(賜給) / *향촌(鄕村) / *교통육운(陸運) / *인사선 발(選拔) 정조 50권, 22년(1798 무오 / 청 가경(嘉慶) 3년) 11월 30일(기축) 2번째 기사 안성택과 이광한 등 관동 지방에서도 농서를 올리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안성택이 올린 농서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치 풍조가 만연되어 농삿일을 게을리하고 있으니, 지금 이후로는 시정의 무뢰배들은 감히 담비와 양가 죽옷을 입지 못하고 여염의 일반 백성들은 감히 명주나 비단옷을 입지 못하며, 양인(良人)은 도포를 입지 못하고 중인(中人)은 당혜(唐鞋)를 신지 못하며 가노(家奴)는 갓을 쓰지 못하고 상점 사람들은 탕건을 쓰지 못하도록 일체 통렬히 금지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이 모든 조목들은 대부분 법전에 실려 있는바, 오로지 유사가 그때그때 지나치게 심한 자를 금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1. 뽕나무 1천 그루를 심은 것도 역시 부자의 재산인데 가난한 사람은 이를 심을 만한 넓은 땅이 없고 부자 들은 뽕나무를 심어 관작을 얻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힘자라는 대로 심게 하되, 많이 심은 자에 대해서는 비단옷을 입는 것으로 상을 내리고 심지 않은 자는 집에 나무 를 심지 않은 데 대한 벌로 포를 내게 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근원은 농상(農桑)에 달려있으니, 뽕나무를 많이 심은 자에 대해서 무슨 상인들 아끼겠습 니까. 다만 생각건대 비단옷을 입도록 하는 것은 늙은이와 젊은이의 복장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게 정해지기 전에는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숫자에 맞추어서 심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면천(免賤)이 나 면역(免役), 가자(加資)를 따지지 말고 원하는 바에 따라서 시행하소서. 그리고 양주(楊州)는 토질이 뽕나 무를 심기에 가장 적당하니 우선 양주 고을부터 먼저 특별히 시험해 보도록 하고, 나무를 심지 않은 벌로 포 를 내게 하는 것은 우선은 내버려두소서. 1. 향약법을 신칙하는 것은 풍속을 바로잡고 농민들을 장려하는 커다란 근본이니, 멀리로는 주(周)나라 사람 들이 정전(井田)을 중심으로 힘을 합해 농사짓던 의리를 따오고, 가까이로는 남전 여씨(藍田呂氏)182)의 규 약을 취해다가 아래에다 역력히 진술하는 데 대해서입니다. 향약법이 농민을 권장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정론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다소간 어려운 점이 182) 남전 여씨(藍田呂氏) : 여조겸(呂祖謙)을 가리킴 29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299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진달드렸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복계(覆啓)는, 잘 강구하여 시행하는 곳은 가상히 여겨 장려하고, 미처 강구하여 시행하지 못하는 곳은 아마도 억지로 시행하도록 할 필요는 없을 듯합 니다. 1. 농기구와 농기계를 빌려주고 소와 양식을 대주는 규정을 각 마을의 집강(執綱)들에게 각별히 신칙하여, 밭 갈거나 모를 내거나 김매거나 수확하는 때를 막론하고 원주인이 먼저 3일을 쓴 뒤 가난하고 잔약한 사람 들에게 파급시키며, 곡식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팔거나 빌려주는 것을 다른 면이나 다른 지방으로 벗어 나지 못하게 하고 단지 한 동네 안에서만 사고 팔게 한다면 무역하는 것을 걱정할 것 없고 변통해 쓰기에 크게 이로울 것인바, 법령이 이와 같은데도 이를 준행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각별히 치죄하며, 이 를 신칙하는 것은 모두 수령에게 달려 있는데 조정의 명령을 봉행하면서 단지 책임이나 때우려고 할 경우 감사가 농정을 제대로 하였는가, 소홀히 하였는가 및 수리(水利) 사업을 제대로 하였는지를 살펴서 근무 평 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소나 농기구를 빌려주어 돕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년 농사를 권장하는 교서를 내릴 때마다 이에 대해 간 곡히 당부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깨우쳐주고 경계시켜서 진심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것은 오로지 수령들에게 달려 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근무 행정을 하도록 전에 이미 알렸습니다. 원래의 주인이 먼저 며칠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일에 이르러서는 조정에서 한계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 곡식이 여유가 있는 자 에게 다른 면으로 내가지 못하도록 하고, 단지 한 동네 안에서만 변통하여 쓰도록 하라고 운운한 것과 같은 일은, 혹 수령이 일시적인 임시 방편으로나 쓸 수 있는 계책이지 조정에서 외방을 모두 똑같이 보지 않는 뜻 이 있는바, 그것을 법령으로 정한다는 것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신은 이상의 여러 조항에 대해서 하나하나 물어보았으며, 또 말은 좋지만 그 사이에는 두루 반포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뜻으로 말하면서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말하기를, 두루 시행하기가 어렵 다면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양주 고을부터 결단성 있게 시행해 보아서 그 성과를 징험해 보고, 이어 두루 시 행하는 것 역시 가까운 데부터 시행하여 멀리까지 미쳐가는 방도가 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것 을 위주로 하는 정사에 해롭지 않으니, 감사로 하여금 해당 목사에게 분부하여서 그로 하여금 조목조목 상세 히 살펴본 다음 시행할 만한 것을 채택하여 그 즉시 시행해 보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전교하기를, 안성택이 한 말은 결단코 구언 전지를 보고서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니, 몹시 가상하다. 사치 풍조의 폐단이 어찌 한갓 농사에만 방해가 될 뿐이겠는가. 나라나 집안에 온갖 폐해가 일시에 닥친다. 법으로 금지 하는 것은 백성을 교화시키는 데 있어서 말단적인 방법이다. 참으로 조정에 궁궐과 복장을 검소하게 하는 덕 이 있고 경들에게 하인의 숫자를 줄이고 풍악을 줄이는 풍속이 있다면 도성 백성들이 이를 본받고 사방 백 성들이 모범으로 삼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아래와 위가 서로 힘쓸 곳이 아니겠는가. 여러 조항들을 해당 목 사에게 내려보내서 시행할 만한 것을 채용하여, 먼저 양주 한 고을에서 시험해 보게 하자는 것은, 경의 말이 옳다. 그리고 안성택의 말 가운데 작은 이끗을 좇는다고 운운한 것은 더더욱 현재의 폐단을 정확히 맞춘 것 이다. 관문(關門)과 저자에서 본인인지 확인하며 일일이 점고하는 것은 비록 시행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만약 조정에서 단지 농사를 장려하는 것만 힘쓰고 백성들이 한갓 농사에 힘쓸 줄만 알아서 이에 반하는 것은 일 체 반드시 금지시키고 억제시킨다면, 그 효과는 장차 위에서는 기강이 서고 아래에서는 분업(分業)이 정해져 서, 거간꾼 노릇하는 퇴폐스런 풍조가 없어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가 나라다움을 유지함에 있어서 사대부들의 힘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성현의 글을 많이 읽어 시정(市井)의 이익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시정배들처럼 하는 것이 비천 한 짓임을 알고 사대부들처럼 하는 것이 고상하다는 것을 분명히 본다면 서울이나 지방의 백성들이 그들의 청렴함과 위엄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공명정대함에 감복해서 서로 믿고 관장(官長)의 명령을 잘 따라 감히 근 본이 되는 농삿일을 버리고 장사꾼의 길로 들어설 계획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대부들은 바로 옛날 의 사대부들이다. 이 한 조항에 대해 어찌 다시 권면하기를 기다려서 더욱 힘씀으로써 안성택 등으로 하여금 캄캄한 방안에서 지나친 걱정을 하게 하겠는가. 마침 비답의 내용을 불러주어 쓰게 하는 때를 당하였기에 부 득불 대략 언급하는 것이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299

300 그 가운데 버드나무를 심은 한 가지 일은, 수(水)가 목(木)을 내는 것이 비록 오행(五行)의 순서이기는 하지 만, 산이 초목으로 무성하게 덮여 숲을 이룬 뒤에야 지맥(地脉)이 축축해져 샘이 솟아오르는 법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언덕과 산기슭의 도처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어서 열흘만 가물면 시냇물이 그 즉시 마르고 며칠만 비가 내려도 하천변이 잘 무너져서 논밭이 모두 손실당하니, 어찌 버드나무 한 종류뿐이겠는가. 소나무ㆍ가 래나무ㆍ흰느릅나무ㆍ느릅나무ㆍ노나무ㆍ오동나무ㆍ신나무ㆍ옻나무도 안 될 것이 없다. 연전에 고 상신(相臣)이 찬집해낸 송정 절목(松政節目)에 1만 그루 이상을 심었을 경우 특별히 상을 주자는 의논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개의 도나 한 개의 고을에서도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 다. 이와 같고서야 어찌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서 따라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 별도로 조목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옛날의 규정을 잘 밝혀서 백성들로 하여금 사시(四時)가 순행하는 것을 믿듯 조정의 명령을 믿게 하는 데 달려 있다. 뽕나무를 심는 일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의식(衣食)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는데, 곡식 은 식량의 근본이 되고 누에는 옷감의 근원이 되는바, 어느 한 가지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산동 지방의 뽕과 형주 지방의 뽕이 비록 심는 방법에는 각자 차이가 있지만, 원래 흙이 기름지고 비옥하기를 기다릴 필 요가 없이 산이건 들이건 언덕이건 습지건간에 어떤 땅에서나 심어놓기만 하면 자라나는 것이다. 뽕이 있으 면 저절로 누에가 생겨나고 누에가 있으면 누에고치가 자연히 생겨나는데, 화려한 비단옷을 어째서 중국 사 람들만 입게 하겠는가. 오늘날의 감사나 수령들 역시 옛날의 감사나 수령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찌 칠보 (七寶)의 뽕나무 밭에 관해서는 완평(完平)이상(李相)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겠는가.183)무릇 재배 하고 심는 것은 참으로 겨울이나 봄을 기다려야 되지만 땅뽕[地桑]에 대한 한 가지 법만은 제철을 당하여 오 디를 채취하는 것이다. 이 책자 가운데 있는 근(勤) 이란 한 글자는 바로 이러한 곳에서 효과를 거두기에 부 합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뜻으로 신칙해야 할 도에 두루 신칙하여서 실제적인 성과가 있도록 하라. 그런데 매번 법령을 내려보낼 때마다 생선을 끓이듯 은근히 하기를 구하지는 않고 오로지 참새를 잡듯이 몰 아붙이기만 하니, 되겠는가. 잠실을 짓거나 뽕나무를 심는 데 대한 법의 뜻이 어떠한가. 연래에 엄하게 신칙 한 바가 있었는데도 요즈음 들으니 한결같이 유명 무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나의 지역이니 너의 땅이니를 따지겠는가. 내부(內府)건 외조(外朝)건 혐의치 말고 올해부터는 경이 감사ㆍ수령들과 거듭 논의하 여서 별도로 조목을 만든 뒤에 초기(草記)를 작성하여 아뢰도록 하라. 화전에 대한 한 가지 일은, 산허리 이상은 일구지 못한다는 금령이 본디 있으나 특별히 곡식을 생산하여 식 량을 넉넉히 한다는 뜻에서 아직은 획일적인 법을 적용치 않고 있는바, 엄하게 금하기 전에는 마땅히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다. 언덕배기 밭으로 땅이 기름져서 바곳과 씀바귀마저도 단맛을 내는 곳에도 농부들이 농사 를 지으면서 한 해 동안 내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차마 한 줌, 한 단이나마 더 세금을 매길 수 있 겠는가. 더구나 저 돌투성이의 산전(山田)은 나무를 불사르고 돌을 골라내느라 사람은 발꿈치가 부르트고 소 는 한 쪽 발을 끌면서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을 넘나들며 한 줌의 이삭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는데, 곡식이 누렇게 익기도 전에 먼저 시퍼런 싹에다 세금을 매기는 것이야 어찌 차마 어진 군자로서 할 짓이겠는가. 뼈 를 깍는 듯한 백성들의 고통을 안다면 속히 이를 깨우쳐주어 추수철까지 끌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책자 가운데 있는 미리한다는 뜻의 예(豫) 라는 한 자는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해 시행하기에 합당한 것 이다. 공전(公田)이건 사전(私田)이건 둔전(屯田)이건간에 따질 것 없이 범례로 화전(火田)이 있는 고을에서는 반드시 곡식이 다 익은 다음에 실지대로 세금을 매기되 한결같이 대전통편(大典通編) 에 있는 25일 갈이 를 1결(結)로 한다는 규정을 준수하여 혹시라도 어기는 일이 없게 하라. 그리고 정채(情債)에 관한 잘못된 관 례는 엄하게 금지시키라. 암행 어사가 싸가지고 가는 사목에 이상의 조항을 더 첨가해 써넣으라. 183) 칠보(七寶)의 뽕나무 밭에 관해서는 완평(完平)이상(李相)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겠는가. : 칠보는 일곱 가지 이로운 점이 있는 뽕나무를 말한다. 즉 잎은 잠업에, 뿌리와 속껍질은 약재로, 열매는 식용으로, 뽕나무 겨우 살이는 약재로 쓰이는 등 이로운 것이 일곱 가지가 있다. 완평 이공(完平李公)은 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킴. 이원익이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나갔을 때 관서 지방에서 유독 안주 고을만 누에를 치지 않았다. 이에 이원익이 누에를 치게 하자 고을 사람들이 토질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익이 집집마다 오디를 씨뿌리게 하니 몇 년이 못 되어 잠업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지금까지도 안주 지방의 뽕나무 밭을 이공상(李公桑) 이라고 한다. 오 리집(梧里集) 속집(續集) 부록(附錄) 권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01 하였다. 이광한(李光漢)이 올린 농서는 모두 22조목이었다. 상이 가상히 여기고, 전교하기를, 관동은 지방이 조그맣고 치우쳐 있는데도 진언한 자가 많기가 여러 도들 가운데서 으뜸이니, 백성들의 풍습 이 순후한 것이 몹시 기쁘다. 홍천(洪川)에 사는 유학(幼學) 이광한이 올린 농서를 보건대, 근래에 농정에 관 한 전지에 응하여 글을 올린 것으로 자못 볼 만한 것이 많았으나, 진심으로 나의 뜻을 받들고 성의를 다해 상고하기를 이와 같이 성실하게 한 것이 없었다. 농정의 방도를 밝힌 조항이 22개이고 농사짓는 방법을 밝힌 조항이 28개이다. 변려문으로 시작해서 기사문으로 끌어가다가 비유법으로 끝을 맺었는데, 그 말은 경륜의 대책이고 그 글은 이해하기가 아주 쉬웠다. 여기에서 옛날 문장가들의 규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자가 있 음을 알 수가 있었는바, 내 몹시 훌륭하게 여긴다. 주부자가 매번 말하기를 온 천하가 생강이 맵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직접 먹어본 다음에야 참으로 맵다는 것을 믿는다. 고 하였다. 만약 직접 밭두둑 사이에서 농사지어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러한 방도를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보살펴주고 길러서 이로써 태평 시대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바로 여러 사람들이 말하지 않 았던 바이다. 그리고 소학 의 도는 바로 농서(農書)이고 인도해 이끄는 교화는 바로 농정이며 임금의 마 음은 바로 원기(元氣)이다. 라고 운운한 것은, 비록 예전의 명신들이 올린 글 속에다 끼워넣는다 하더라도 부 끄럽지 않다고 할 만하다. 아깝구나. 어찌하여 연전에 관동의 훌륭한 선비를 추천할 때에 해당 관서의 추천 장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을 아뢰지 않았는가.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조목별로 복계(覆啓)하게 하고, 이어 인사 업무를 맡은 자로 하여금 잘 알게 하여, 이 러한 사람들을 주자가 말한 문을 닫아걸고 밥만 먹는 중 이 되지 말게 하라. 또 고성(高城)에 사는 유학 권현(權炫)이 농서에서 진달한 여러 조항을 보건대, 그가 소박하고 진실하여 숨 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한 허다한 폐단 가운데서 해폐(海弊)에 관한 한 가지 일은, 조정에 서 전후로 조처하고 신칙하여 금한 것이 어떠하였는가. 그런데 봉진(封進)할 때 폐단을 짓고 있다. 는 말이 또다시 전지에 응하여 올리는 글 속에 들어있단 말인가. 이른바 조처라고 하는 것이 비록 연전의 일을 가리 키는 것 같지만 연전과 금번, 이 고을과 저 고을을 따질 것 없이, 모든 봉진을 할 때 영속(營屬)들이 규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묘당으로 하여금 감사에게 특별히 엄하게 신칙해서 기어이 조사해 내어 죄를 다스리게 하라. 토지를 개간하는 것 역시 급선무이다. 경작할 만한 땅이 있는데도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어찌 이 런 이치가 있겠는가. 이 역시 감사로 하여금 편리한 쪽으로 도와주어서 날마다 더 개간하는 성과가 있게 하 라. 그 이외의 여러 조항에 대해서도 개혁하거나 구제해 줄 만한 것은 모두 해당 도에 내려보내어서 되도록 좋은 쪽으로 처리하게 하라. 또 흡곡(歙谷)에 사는 유학 조지영(趙之榮)ㆍ정치일(鄭致一)ㆍ표헌정(表憲正)이 올린 농서를 보니, 먼 바닷가 지방이고 고을 역시 10가구 정도의 작은 고을인데 이 세 사람이 글을 올렸다. 그 말을 채용할지의 여부는 차 치하고 그 성의가 가상한바, 나머지 3백 고을의 몇만 명의 사람들을 고무시킬 만하다. 그 가운데서 대동미 (大同米)를 지고다니는 폐단과 전결(田結)에 따른 부역이 해가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감사에게 분부하여 조처 를 취할 바탕을 마련해 주라. 일이란 눈앞에 드러난 것만 중시하기 마련이니 다른 면도 미루어 헤아려 보도 록 하고 이 이외의 다른 고을도 잘 살펴보게 하라. 또 고성(高城)에 사는 유학 노재황(盧再煌)이 올린 농서를 보았는데, 여섯 건의 농사에 관한 설이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지 말라. 말하는 자는 바로 자기의 의견을 제시한 것인즉, 이것을 소홀하게 보아 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연전에 삼일포(三日浦)를 함부로 경작한 데 대해 김락(金洛)이라고 하는 자를 엄하게 조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묵혀버리고 개간하지 않는다는 말이 해당 지방에서 나왔으니, 혹시라도 삼 일포의 일에 경계되어서 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땅을 헛되이 버려두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호수를 밭으로 만드는 것은 금해야 하겠지만 늪지를 밭으로 만드는 것이야 어찌 금지하겠는가. 다른 조항들과 함께 자세히 살펴보고 해당 도에 지시하여서 이익을 일으키고 농사를 이롭게 할 바탕을 삼도록 하라. 묘당에서는 여러 유 생들을 불러다가 이런 내용을 읽어준 다음 한 부씩 깨끗하게 등서해서 나누어 주고 보고하라고 강원 감사에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01

302 게 하유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32장 B면 영인본 47책 146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商業)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사법 (司法)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농업권농(勸農) / *사법(司法) 순조 1권, 즉위년(1800 경신 / 청 가경(嘉慶) 5년) 9월 2일(신사) 2번째 기사 국장 도감에서 올린 건릉 정자각의 상량문 국장 도감(國葬都監)에서 건릉(健陵) 정자각(丁字閣)의 상량문(上樑文)을 올렸는데, 이르기를, 삼가 생각건대, 제향(帝鄕)184)으로 진유(眞遊)가 아득히 멀어지니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어도 올라갈 계단이 없으며, 주구(珠丘)185)에 서기(瑞氣)가 성하니 하루도 못되어 정자각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지개 형태의 대들보 가 길이 공고하게 받히고 있으니 봉력(鳳曆)186)이 더욱더 창성할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정종 문성 무열 성인 장효 대왕 전하(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殿下)께서는 단군(檀君)ㆍ기자(箕子) 이래 요(堯)ㆍ순(舜)처럼 계승해 탄생하였습니다. 영조[英考]께서 효성스럽다고 하시니 매양 할아버지는 손자를 의지하고 손자는 할아 버지를 의지한다는 옥음(玉音)을 받드셨으며, 천하는 인덕(仁德)에 귀의하는 법이니 직책에 있는 신하들의 도 움을 기다릴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민사(民事)에 부지런하며 제사를 경건하게 지내고 군사 를 잘 다스리는 등 허다한 성절(盛節)과 같은 것은 태사씨(太史氏)187)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며,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호위하며 검약을 숭상하고 풍속을 바로잡은 제반 홍규(弘規)는 삼대(三 代)188)이상의 정치처럼 환히 빛났습니다. 공 부자(孔夫子)189)의 금성 옥진(金聲玉振)190)이 오늘날 비로소 임금 으로서 스승을 겸하셨으며, 주 고정(朱考亭)191)의 지부 해함(地負海涵)192)은 다행하게도 사문(斯文)193)이 하늘 이 끝날 때까지 실추됨이 없게 되었습니다. 위대하게도 한(漢)나라초원(初元) 때의 애조(哀詔)194)를 내렸으며 크게 노(魯)나라 춘추(春秋) 의 강기(綱紀)를 내걸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월(鈇鉞)195)을 지극히 정미(精微)하 게 가하는 뜻을 붙였으니 천지에 내세울 수 있으며, 의리(義理)를 더할 수 없이 엄대(嚴大)하게 하였으니 해 와 별처럼 빛날 뿐만이 아닙니다. 아!상성(上聖)께서 24년 동안 고심(苦心)한 것은 모든 몽매한 사람들이 다 유도(牖導)되기를 바란 것이며 아! 5월 30일의 말명(末命)은 만세(萬世)에 대경(大經)을 확립한 것입니다. 원 래 임금의 임무를 한결같이 전일하게 한 것은 오직 정일(精一)하게 하는 그 심법(心法)에 근본한 것입니다. 대개 체용(體用)과 본말(本末)은 정의(精義)를 극진히 미루어 나가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정령(政令)과 시위 (施爲)가 강하(江河)를 터놓아 물이 기운차게 흐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훈도(薰陶)하는 은택이 바야흐로 온 나라에 흠뻑 젖게 되었는데 모두가 슬퍼함은 갑자기 하늘에 사무침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보령(寶齡)196)이 중년(中年)도 못되었는데 저 푸른 하늘은 어찌하여 차마 이런 일을 내린단 184) 제향(帝鄕) : 하늘 185) 주구(珠丘) : 임금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옛날 순(舜)임금의 무덤에 빙소(憑霄)라는 새가 청사주(靑砂珠)를 물어 날라 언덕을 이루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임 186) 봉력(鳳曆) : 달력인데 여기서는 오랜 세월을 뜻함. 187) 태사씨(太史氏) : 사관(史官). 188) 삼대(三代) : 하(夏)ㆍ은(殷)ㆍ주(周). 189) 공 부자(孔夫子) : 공구(孔丘) 190) 금성 옥진(金聲玉振) : 금은 종(鍾)이고 옥은 경(磬)으로 팔음(八音)을 연주할 때 먼저 종을 쳐서 시작하고 마지막에 경을 쳐서 끝마치는데, 전(轉)하여 사물을 집대성(集大成)하는 것을 말함. 191) 주 고정(朱考亭) : 주희(朱熹). 192) 지부 해함(地負海涵) : 큰 땅 깊은 바다라는 말로 사람의 지식이 넓고 크고 정미롭고 깊이가 있다는 뜻임 193) 사문(斯文) : 유교(儒敎) 194) 초원(初元) 때의 애조(哀詔) : 초원은 한 경제(漢景帝)의 연호이고, 애조는 형벌이 무거운 것을 안타깝게 여겨 형률 (刑律)을 가볍게 하는 조서(詔書)를 내린 것을 말함. 195) 부월(鈇鉞) : 형벌(刑罰). 30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03 말입니까? 지리(至理)는 뒷일에서 증험할 수 있는 것이어서 대성인(大聖人)은 반드시 좋은 자리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이 화성(華城)의 거북점에 합치된 산등성이를 돌아보니 지난 봄 난가(鑾駕)가 머물렀을 때 점쳐 두 었던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원침(園寢)과 가까우니 마치 아침 저녁 달빛 아래 노니는 것 같고 산천(山川)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체세(體勢)는 하늘이 만들어 냈음을 믿게 합니다. 어로(御路)가 곧바로 소나무ㆍ잣나무 사이로 연결되어 있어 정신과 기맥(氣脉)이 서로 관통되고 있으며 유지(遺志)는 오래도록 분유(枌楡)197)에 부 치려 하였으므로 부로(父老)와 부유(婦孺)들이 아직도 이야기로 전하고 있습니다. 위제(衞制)가 방금 신읍(新 邑)에서 이루어졌으니 임금 노릇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지 않은 그 충심을 누가 알겠으며, 보정(寶幀)을 행궁 (行宮)으로 옮겨 봉안(奉安)하였으니 한가롭게 늙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혹은 위로하게 되겠습니다. 해원(亥 原)의 역사(役事)를 시작함을 당하여 먼저 정자각(丁字閣)을 짓게 되었습니다. 만년토록 전해갈 능자리는 이 미 최상의 길지(吉地)를 택정하였으며 사계절 제사를 올림에 있어서는 가장 편안히 모시도록 도모할 것을 중 시하였습니다. 강만(崗巒)이 감싸 보호한 형세를 돌아보아 규경(圭景)의 위치를 측정하였으며 고금의 화려하 고 검소한 법도를 헤아려 전에 저축한 내탕금(內帑金)을 내려 주었습니다. 재목(材木)을 육지나 바다로 운반 하여 오는 번거로움이 없었으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며 제도(制度)는 원묘(原廟)의 뜻을 모방했으니 예법 이란 진실로 그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 신(神)이 비밀스럽게 아끼던 아름다운 기지는 진실로 날마다 바 라보고 날마다 살피던 효성과 합치하였습니다. 잣나무 기둥, 소나무 서까래 아름다운 장식이 영롱(玲瓏)하게 빛나고 바람에 나부끼는 구름 깃발은 신리(神理)의 기뻐하심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이장(移葬)하던 해를 생각하여 보니 마치 어제의 일만 같은데 이에 한침(漢寢)의 의식을 만들어 설행(設行)하게 되니 차마 영 구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아름다운 송문(頌文)을 지어 긴 대들보를 들어 올리는 것을 돕겠습니다. 어여차, 들보 머리 동쪽으로 저으니, 광교봉(光敎峯)이 새벽 햇빛을 머금고 붉게 달아 오르도다. 황도(黃 道)198)가 혁연히 빛나 교화를 수립한 것 같아서 그 용광(容光)이 반드시 만백성을 비추어 환히 깨우치게 하리 라. 어여차, 들보 머리 서쪽으로 저으니, 산등성이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마루턱에는 오동나무 낮게 드리워 있 어, 기주(箕疇)의 도(道)199)를 전하던 땅을 상상하니, 성통(聖統)은 일반이라 함께 대등하리라. 어여차, 들보 머리 남쪽으로 저으니, 만년제(萬年堤) 저 물에 성은(聖恩)이 젖어 있네 취화(翠華)200)는 어찌하여 다시는 오 지 않고, 우리 백성들만 즐겁게 먹고 마시게 한단 말입니까? 어여차, 들보 머리 북쪽으로 저으니, 화산(花山) 의 서기(瑞氣)가 길게 뻗혀 있도다. 종남(終南)과 청한(淸漢)이 어디매인가? 삼보(三輔)201)가 본래 경국(京國) 을 옹호하는 법이라오. 어여차, 들보 머리 위로 저으니 태일(太一)202)이 중앙에 있고 뭇 별들이 둘러싸고 있 도다. 종손(宗孫)과 지손(支孫)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아! 순일한 덕을 밝혀 하늘의 마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여차, 들보 머리 아래쪽으로 저으니, 아침 저녁 사관(祠官)이 부지런히 소쇄(掃灑)하네. 때로 산에서 구름 나와 태허(太虛)에 비내리니, 해마다 풍년들어 아름다운 곡식이 들판에 가득하네. 삼가 바라건대 상량(上樑) 한 뒤에는 신도(神道)가 항상 편안하고 영구(靈邱)가 더욱 공고하여져 묘정(廟庭)에 오르내리시는 영령께서는 오례(五禮)를 갖춘 제사를 흠향하시고 보호하고 도와주시어 백세(百世)토록 창성하게 하여 주시며, 억만년이 되도록 경명(景命)203)을 맞이하고 높은 강릉(岡陵)처럼 보록(寶籙)204) 누리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영부사(領府事) 이병모(李秉模)가 지었다. 196) 보령(寶齡) : 임금의 나이. 197) 분유(枌楡) : 고향을 가리키는 말로 옛날 한 고조(漢高祖)가 고향 땅인 풍(豐)에서 느릅나무 두 그루를 심어 토지의 신(神)으로 삼은 데서 온 말임. 여기서는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이라는 말로 쓰였음. 198) 황도(黃道) : 태양이 운행하는 궤도(軌道). 199) 기주(箕疇)의 도(道) :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을 말함.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으로 본래는 우(禹)임금이 천계(天啓)에 의해 얻은 것임. 홍범 구주(洪範九疇). 200) 취화(翠華) : 임금의 기(旗). 201) 삼보(三輔) :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서울인 장안(長安) 부근의 땅을 셋으로 나누고 임명한 장관을 가리키는 말로, 경조윤(京兆尹)ㆍ좌풍익(左馮翊)ㆍ우부풍(右扶風)임. 여기서는 근방의 지형이 모두 능묘(陵墓)를 향하고 있다는 뜻으로 쓰였음. 202) 태일(太一) : 별 이름으로 천제(天帝)를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능묘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 203) 경명(景命) : 하늘의 큰 명. 204) 보록(寶籙) : 임금의 자리에 오를 조짐.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03

304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1장 A면 영인본 47책 33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語文學) 7) 왕릉의 잔디 세종 94권, 23년(1441 신유 / 명 정통(正統) 6년) 10월 4일(정묘) 1번째 기사 사헌부에서 축성 감독을 소홀히 한 박근과 정이한의 파출을 청한 상소문 사헌부에서 상소하기를, 상벌(賞罰)은 임금의 대권(大權)이오라, 상벌의 법이 없다면 사람을 권장하고 징계할 바가 없으니 그 공을 바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임자년에 파저강(婆猪江)의 작은 오랑캐들이 전하께서 회유(懷柔)하시는 은혜를 생 각지 아니하고, 산천이 험하고 막힘을 믿어, 변경에 틈을 내어 서쪽 국경을 침략하여 사나운 피해가 참혹하 였사오므로, 전하께서는 혁연(赫然)205)히 군사를 정비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셨으되, 얼마 후에는 구악(舊惡)을 생각지 아니하시고, 그 포로를 돌려주었사온데, 오랑캐들은 전혀 뉘우치지 아니하고 감히 방자 히 날뛰며 틈을 엿보다가 몰래 나타나서 침략하기를 마지 아니하오매, 전하께서는 적자(赤子)들이 죄 없이 해를 입는 것을 가엾게 여기시와 동ㆍ서ㆍ북 국경에 모두 성보(城堡)를 쌓기를 명하사, 만세에 도적을 방어 하는 좋은 계책을 세우게 하셨으니 심히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농시 윤(典農寺尹)박근(朴根)은 본시 아첨하고 말만 잘하는 간사한 소인(小人)이옵고, 재집(宰執)206)을 인연하여 시대에 알게 되어, 사복 소윤(司僕 少尹)정이한(鄭而漢)과 더불어 친히 중요한 명령을 받아 서북 국경에 가서 성을 쌓는 방식을 갖추 지시하였 고, 일에 임하여 계획함도 또한 자기의 주먹 속에 있었는데, 박근과 정이한(鄭而漢)은 성상께서 밤낮으로 백 성을 근심하시는 뜻을 몸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속히 이루어서 벼슬과 상(賞)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경영 할 즈음에 방식에 따르지 아니하여, 밖에는 주먹돌을 쌓고 안에는 잔디와 흙을 채웠사오매, 그것이 단단하고 실하지 못하여 허물어질 것은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그 도의 관찰사정분(鄭 苯)이 그 까닭을 밝게 보고, 효유하기를, 이 성이 견고하지 못하여 주먹을 휘둘러도 쳐 깨뜨릴 수 있으니, 반드시 오래 지나지 못할 것이니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습니다. 쌓기를 감독하는 수령의 말이 이와 같 고, 그 반복하여 깨우침이 이처럼 정성되고 간절하였거늘, 박근과 정이한은 그래도 듣지 아니하였사오니, 이 는 진실로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한 해를 지나지 못하여 한 번 장맛비를 만나자 과연 문득 허물어졌사오니, 백성의 힘을 괴롭히고 국고를 허비한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사온데, 경사(慶赦)를 만나 구차히 형벌을 면하였 사오니, 이는 박근과 정이한에게는 다행한 일이오나 국가와 백성에게는 진실로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지휘를 받아서 일을 시킨 수령들은 모두 파직을 당하고 강제로 양식을 싸 가지고 와서 성을 고쳐 쌓아 그 책임을 보상(報償)하게 하였사오나, 박근과 정이한은 좋은 직품(職品)을 전처럼 띄고, 또 전일의 공을 바라 는 마음으로 동북방(東北方)에 가서 성을 쌓게 하였사오매, 상벌(賞罰)의 법에 어긋남이 있을 뿐 아니라, 이것 과 저것을 상고해 헤아리건대, 오늘날 동북방의 성보를 감독해 쌓음에 어찌 능히 단단하고 실하게 하여 무너 지지 않도록 하오리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역소(役所)207)에 있을 때에 급히 파출(罷黜)을 명하사 서북(西北) 으로 잡아 보내어 일체 차사(差使)한 수령의 예에 따라 시행하여 백성의 바라는 바를 사례하고 뒷사람을 경 계하옵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2장 A면 영인본 4책 365면 205) 혁연(赫然) : 성내는 모양 206) 재집(宰執) : 집권하는 재상 207) 역소(役所) : 일하는 장소 30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05 분류 *외교야(野) / *사법탄핵(彈劾) / *군사관방(關防) / *정론(政論) 성종 94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7월 23일(임오) 2번째 기사 의정부ㆍ육조ㆍ대간들을 불러 절도죄의 처벌과 광릉을 견고하게 수축할 방안을 논의하다 증경 정승(曾經政丞)과 의정부(議政府)ㆍ육조(六曹)ㆍ대간(臺諫)들을 불러서 정사를 의논하였다. 1. 어떤 이는 말하기를, 절도죄(竊盜罪)는 3범(犯)이면 마땅히 사형(死刑)에 처해야 한다. 고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재범(再犯)하면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 고 하며,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재범일 경우 장물(贓 物)의 많고 적음을 계산해서 사형에 처해야 한다. 는 것에 관한 일이다. 정창손(鄭昌孫)ㆍ한명회(韓明澮)ㆍ신준(申浚)ㆍ고태필(高台弼)ㆍ김순명(金順命)은 의논하기를, 절도죄는 장물의 많고 적은 것을 막론하고 3범이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율문(律文)에 기재되어 있는데, 근 래에 와서 도적이 점차 성하여지므로, 재범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한 것은 다만 폐단을 덜 생기게 하려는 한 때의 방책인 것이니, 만일 도둑이 차차 병식(屛息)되면 3범에서 사형에 처하는 법을 도로 시행하는 것이 옳 겠습니다. 예로부터 창고의 돈이나 곡식을 도둑질한 외에는 장물의 다소(多少)를 계산한다는 일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대 도둑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정해서 장물의 다소를 계산할 것 없이 재범이면 사형에 처 하되, 그 가운데 정상이 불쌍한 사람은 임금이 재량껏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심회(沈澮)ㆍ윤필상(尹弼商)ㆍ이극배(李克培)ㆍ홍응(洪應)ㆍ강희맹(姜希孟)ㆍ허종(許琮)ㆍ어유소(魚有沼)ㆍ 이극증(李克增)ㆍ양성지(梁誠之)ㆍ어세공(魚世恭)ㆍ윤흠(尹欽)ㆍ윤계겸(尹繼謙)ㆍ이극균(李克均)ㆍ신정(申瀞)ㆍ 유지(柳輊)ㆍ강자평(姜子平)은 의논하기를, 재범의 절도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속록(續錄) 에 실려 있 고, 또 지금 도둑이 너무 극성하니 잠잠해질 때까지는 장물의 다소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하는 것이 좋겠습니 다. 하고, 윤사흔(尹士昕)ㆍ김국광(金國光)ㆍ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절도 3범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것 이 율문(律文)에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 도둑이 너무 극성한 까닭에 재범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법을 특별히 세운 것은 역시 일시적인 임시 편법일 뿐입니다. 다만 오늘 한 푼의 돈을 도둑질하고 내일 한 개의 참외[瓜] 를 도둑질했다고 해서 다 사형에 처한다면, 생사(生死)가 지극히 중한 일인데, 어찌 애석하지 아니할 수 있겠 습니까? 법에 관(官)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장물의 다소(多少)를 계산해서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제 부득이하여 재범을 사형에 처하기로 한다면 재범의 장물이 1관(貫) 이상에 달하는 자만 사형에 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박양신(朴良信)ㆍ김자정(金自貞)은 의논하기를, 장물의 다소는 인가(人家)에 재물 이 많은가 적은가에 관계되는 것이지, 도둑질하는 자의 마음에 본래 많고 적은 것을 계산해서 훔치는 것이 아니니, 장물의 다소를 계산하지 말고 사형에 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은(鄭垠)ㆍ김극유(金克忸)는 의논하기를, 절도(竊盜) 3범을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율문에 상법(常法)으로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 도둑이 점점 극성하기에 특별히 재범(再犯)을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세워서 일시적인 폐단을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제 만일 장물의 관(貫) 수의 다소를 막론하고 다 사형에 처한다면 호생(好生)의 덕(德)에 어긋남이 있으니, 장물을 계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이맹현(李孟賢)은 의논하기를, 절도 3범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것이 율문에 실려 있어 우리 나라에서도 이 법을 시행하여 온 지가 또한 오래인데, 요즈음 도둑이 점점 극성하므로 시폐(時弊)를 막고자 하여 장물의 관(貫) 수의 다소를 막론하고 재범자를 모두 사형에 처하는 것은 호생(好生)의 덕(德)에 어긋나는 일이 됩니 다. 하물며 형벌이 어떤 세대에서는 가볍게 되기도 하고 어떤 세대에서는 무겁게 되기도 하여 형벌을 공평하 게 해야 하는데, 우리 나라는 중국의 법을 쓰고 있으므로 시폐(時弊)를 막기 위한 임시 편법을 가지고 만세 의 법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율문에 따라 3범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겠고, 이제 만일 가볍 게 고칠 수 없다면 모름지기 재범에서는 장물의 다소를 계산해서 교수형에 처하도록 하소서. 하고, 김유(金紐)ㆍ안관후(安寬厚)ㆍ최반(崔潘)ㆍ안선(安璿)ㆍ이세광(李世匡)ㆍ유인호(柳仁濠)는 의논하기를, 1 전(錢)을 훔친 것 따위는 비록 재범이라도 장물이 지극히 적고, 남에게 해를 입힌 것도 적으며, 또 사람마다 범하기 쉬운 일이므로, 비록 아침에 죽이고 저녁에 죽인다고 해도 역시 금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모름지기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05

306 재범으로서 장물을 통틀어 계산해서 총액 10관 이상인 자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전 지하기를, 그전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1. 광릉(光陵)208)의 사토(莎土)가 해마다 무너지는 것을 견고하게 수축하는 것에 관한 일이다.정창손ㆍ한명회 ㆍ심회ㆍ윤사흔ㆍ김국광은 의논하기를, 예로부터 능실(陵室)은 모두 안에는 석실(石室)을 만들고 밖에는 대석(臺石)을 두게 한 것이 실로 만세의 영 구한 방법입니다. 우리 세조(世祖)께서 유교(遺敎)로 석실과 대석을 금하신 것은 검소한 덕을 숭상하도록 하 신 소이(所以)이므로, 이는 영구한 계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훗날 신서(臣庶)들의 분묘(墳墓)와 구별이 없게 될 것이니, 대체(大體)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쳐서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능 위가 무너지는 까닭은 오로지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삼물(三物)209)로 딴딴하게 쌓아 놓아서 잔디뿌리가 깊이 뻗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니, 이제 마땅히 삼물을 좀 얕게 깍아 내리고 황토를 두껍게 쌓은 연후에 사토 (莎土)로 덮으면 잔디뿌리가 깊이 들어가 얽혀서 붕괴(崩壞)될 염려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삼물을 깎아 버린다 해도 빗물이 스며들 까닭은 없습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옛날에 제왕(帝王)의 능실은 다 구릉(丘陵)처럼 만들어서 거의 한 길이 나 되게 하였기 때문에 무너질 염려가 없었습니다. 세조께서 이런 형편을 깊이 생각하셔서 사대(莎臺)와 석 실(石室)을 버리고 다만 토릉(土陵)을 만들게 하셨으니, 이는 만세(萬世)의 계책이며, 또한 검소를 숭상하는 아름다운 뜻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능을 만드는 사람이 삼물(三物)로써 단단하게 쌓고 사토(莎土)를 입혔기 때문에 잔디뿌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해서 자연지세(自然之勢)로 무너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마땅히 삼물을 조금 깎아내고 흙을 두껍게 덮어서 너무 높지만 않게 하면 거의 옛 제도에 맞고, 무너질 염려도 없을 것이며, 또한 유교(遺敎)에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ㆍ김극배(金克培)ㆍ홍응(洪應)ㆍ강희맹(姜希孟)ㆍ허종(許琮)ㆍ어유소(魚有沼)ㆍ이극증(李克 增)ㆍ양성지(梁誠之)ㆍ어세공(魚世恭)ㆍ윤흠(尹欽)ㆍ윤계겸(尹繼謙)ㆍ이승소(李承召)ㆍ신정(申瀞)ㆍ유지(柳輊)ㆍ 신준(申浚)ㆍ고태필(高台弼)ㆍ김순명(金順命)ㆍ이맹현(李孟賢)은 의논하기를, 광릉(光陵)의 사토가 해마다 무너진 것은 능히 지형(地形)이 높고 가파른데다가 안에 삼물이 견고하게 높이 쌓여 있어서 밖에 쌓은 사토가 잘 붙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흙비[霾雨]가 스며들면 쉽게 무너지게 된 것 입니다. 대체로 지형이 높고 가파르면 무너지기가 쉽고, 그 터가 넓고 두터우면 견고한 것이니, 마땅히 삼물 을 깎아 내고 사토를 쌓아서 그 터는 넓게 하고 위는 높고 가파르지 않도록 하면 무너질 염려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석실(石室)과 사대석(莎臺石)을 쓰지 말라는 유교(遺敎)가 매우 엄하여 광릉(光陵)뿐만 아니라 영릉 (英陵)210)ㆍ창릉(昌陵)211) 공릉(恭陵)212)ㆍ순릉(順陵)213)등의 여러 능도 다 그러하니, 이제 경솔하게 의논할 수 는 없습니다. 하고, 이극균(李克均)ㆍ강자평(姜子平)ㆍ박양신(朴良信)ㆍ김극유(金克忸)ㆍ정은(鄭垠)ㆍ김자정(金自貞)은 의논하 기를, 세조(世祖)께서 평일(平日)에 사대석을 설치하는 것을 금하셨고, 예종(睿宗)께서 그 유교(遺敎)를 이어받았는 데,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또 능침(陵寢)을 모신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이제 와서 대석(臺石)을 설치 한다는 것은 마음에 또한 온당하지 못합니다. 능침의 형태가 높고 가파르니, 점점 이 때문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마땅히 난간석(欄干石)을 그만두고 축토(築土)를 더하여 능의 형태를 비스듬히 비탈지게 하여 영구 (永久)히 유지되도록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김유(金紐)ㆍ안관후(安寬厚)ㆍ최반(崔潘)ㆍ안선(安璿)ㆍ이세광(李世匡)ㆍ유인호(柳仁濠)는 의논하기를, 광릉의 사토가 이와 같이 무너진 것은 삼물(三物)의 혼합(混合)이 돌덩이같이 단단하게 되어 있고, 지세(地 208) 광릉(光陵) : 세조와 세조비 정희 왕후의 능 209) 삼물(三物) : 회삼물(灰三物) 210) 영릉(英陵) : 세종과 세종비 소헌 왕후의 능 211) 창릉(昌陵) : 예종과 예종 계비 안순 왕후의 능 212) 공릉(恭陵) : 예종비 장순 왕후의 능. 213) 순릉(順陵) : 성종비 공혜 왕후의 능 30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07 勢)가 또한 높고 가파라서 잔디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니, 이제 만일 그 위를 깎아내어 좀 얕게 하고 그 터를 늘려서 쌓는다면 영구히 견고하게 되어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신도 (神道)는 고요함[靜]을 숭상하니, 능 위에 올라가서 동작하는 것은 불가하다. 고 합니다만, 신 등의 생각으로 는 이것이 만세(萬世)ㆍ영구(永久)의 계책이라면 잠시 이안(移安)214)하더라도 아무런 불가할 것이 없다고 여깁 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정창손(鄭昌孫) 등의 의논에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5책 94권 23장 B면 영인본 9책 632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치안(治安) /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성종 94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7월 26일(을유) 1번째 기사 광릉의 분묘를 넓히고 황토를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광릉(光陵)의 사대석(莎臺石)을 지금은 만들 수가 없으니, 마땅히 삼물(三物)을 깎아 없애버리고 황토(黃土)로 쌓아서 뗏장[莎土]으로 하여금 잔디 뿌리가 잘 들어가 박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물을 깎아 없애 버린다면 반드시 고탁(叩椓)215)의 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동지사(同知事) 서거정(徐居正)이 말하기를, 깎아 없애버린다면 진실로 성상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을 것이니,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옛날 한(漢) 나라문제(文帝)가 패릉(霸陵)216)을 만드는 데에 와기(瓦器)를 쓴 것은 덕(德)이 지극히 검소한 때문이었고, 세 조(世祖)께서도 검소한 덕을 숭상하셨기 때문에 유명(遺命)으로 석실(石室)과 사대석(莎臺石)을 쓰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왕의 능침(陵寢)은 석실과 사대석이 없을 수 없으니, 이어서 이제부터는 모름지기 제도로써 정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세조께서 영릉(英陵)에 수기(水氣)가 있는가 의심하여 천 장(遷葬)하려 하시기에 신이 친히 가서 살펴보니 석실(石室) 안에 있는 기장(器仗)217)이 어제와 같았습니다. 오늘날은 보판(補板)으로써 석실(石室)을 대신하니, 공이[杵]로 다질 때 판자(板子)가 휘어 구부러져서 단단하 게 쌓을 수가 없으며, 또 쉽게 썩거나 수기(水氣)가 스며들어 안으로는 재궁(梓宮)218)이 젖고 밖으로는 삼물 (三物)까지 젖으니, 이는 석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건원릉(健元陵)219)ㆍ현릉(顯陵)220)ㆍ헌릉(獻陵)221)은 자 주 무너지는 폐단이 없는데 유독 광릉(光陵)만이 쉽게 무너지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대석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한명회(韓明澮)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 분묘(墳墓)를 넓게 하고 황토(黃土)를 더 쌓는 것 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좋다. 하였다. 사간(司諫) 경준(慶俊)과 장령(掌令) 임수경(林秀卿) 이 낙산사(洛山寺)의 구로(舊路)를 열어줄 것과 백성들의 어렵(漁獵)을 금한 것을 파(罷)하도록 청하였으나, 모두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5책 94권 26장 A면 영인본 9책 633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경연(經筵) / *건설건축(建築) / *수산업어업(漁業) / *사상불교(佛敎) 분류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 / *정론간쟁(諫諍) 214) 이안(移安) : 다른 곳에 옮겨서 모심 215) 고탁(叩椓) : 짐승 따위가 쪼고 찍고 함. 216) 패릉(霸陵) : 문제(文帝)의 능 217) 기장(器仗) : 병기(兵器)와 의장(儀仗). 218) 재궁(梓宮) : 임금의 관 219) 건원릉(健元陵) : 태조의 능. 220) 현릉(顯陵) : 문종과 문종비 현덕 왕후의 능 221) 헌릉(獻陵) : 태종과 태종비 원경 왕후의 능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07

308 성종 153권, 14년(1483 계묘 / 명 성화(成化) 19년) 4월 21일(계미) 2번째 기사 산릉의 제도를 의논하다 또 산릉(山陵)의 제도를 의논하니, 정창손(鄭昌孫)ㆍ심회(沈澮)ㆍ윤사흔(尹士昕)ㆍ윤필상(尹弼商)ㆍ노사신(盧思 愼)은 의논하기를, 산릉(山陵)의 체제(體制)는 언덕을 쌓아서 넓게 석난간(石欄干)을 설치하도록 하여 광릉(光陵)과 대소(大小)의 차이가 판이하지 않게 하소서. 하고, 정창손이 또 아뢰기를, 신이 광릉(光陵)을 보건대, 쉽게 무너지는 까닭은 오로지 삼물(三物)222)로 견고 하게 쌓아서 잔디 뿌리로 하여금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서 그러합니다. 이번에는 마땅히 삼물(三物)을 감하여 잔디와 흙으로 하여금 서로 연결하여 뿌리가 깊이 뻗을 수 있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 말은 이치가 있으니, 그 의논을 도감(都監)에 보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3책 153권 21장 A면 영인본 10책 45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중종 24권, 11년(1516 병자 / 명 정덕(正德) 11년) 2월 7일(무오) 4번째 기사 대간과 홍문관이 서로 논박하는 것에 대해 전교하다. 정광필이 선릉 보수에 대해 상소하다 상이 조방언ㆍ김함ㆍ문관의 아뢴 바와 장옥의 아뢴 바 내용을 정광필ㆍ김응기에게 이르기를, 조방언 등은 논박을 당했으니, 마땅히 체직시켜야 한다. 전날 홍문관이, 사헌부가 이청을 추문할 것을 청하 여 공함을 내고 사령을 많이 보내어 심하게 욕보였다는 것으로 그르다 하여 공박하므로 체직시키려 하였는 데, 지금 사간원의 계(啓)를 들으니 사헌부에서는 실상 욕보인 일이 없는데, 홍문관이 사헌부를 논박하여 체 직케 하는 것은 미편하다고 하였다. 요즈음 보건대, 대간과 시종이 서로 공박하고 있으니 지극히 아름답지 못한 일이요, 홍문관이 이미 사헌부를 그르다고 했으니 옳든 그르든간에 그대로 직에 있게 할 수는 없다. 그 러나 사헌부가 잘못한 것이 없다면 체직시키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니 어쩌면 좋겠는가?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홍문관이 지적하여 말한 것은 최중연에게만 관계되는 것이요 다른 관원(官員)에게는 관계되지 않는 것입니 다. 또 언제나 공함은 오늘 함문(緘問)하여 이튿날 회답을 받지 못하면 으레 반드시 독촉을 하는 것인데, 이 일을 들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대저 홍문관이 스스로 미안하게 생각하여 피혐하거나 혹 중연 만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사헌부를 전부 체직시키라고 청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합니다. 요즈음 겸양하는 기풍은 없고 서로 공박하는 폐단만 있으니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청 등의 말은 사사로운 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헌부가 추문하는 것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홍문관이 아뢴 것이다. 또 홍문관은 말하기를, 최중연이 말한 것은 그른데도 사헌부가 그르지 않다고 하고 성세창의 말은 옳은데도 사헌부가 도리어 논박하니, 이것이 실상 잘못이라고 한다. 지금 사헌부 는 이미 홍문관의 논박을 입었다는데 헌납(獻納)은 사헌부를 갈지 말라고 청하니, 사헌부로 하여금 다시 취 직(就職)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지금 이미 논박을 입었으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고, 김응기는 아뢰기를, 재상ㆍ대간ㆍ시종의 의견이 제각기 다르면 가부(可否)를 알맞게 조정하여야 하는 것이요 서로 공박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요즈음 서로 공박하는 것으로 인해 대간이 자주 갈리는데, 이것은 매우 미편합니다. 222) 삼물(三物) :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의 세 가지를 한 데 섞어 버무린 물건. 광중(壙中)의 방회(傍灰)ㆍ천 회(天灰)로, 또는 건축 따위에 많이 쓰임. 회삼물(灰三物). 30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09 하였다. 정광필이 이어 아뢰기를, 신이 선릉(宣陵)을 봉심(奉審)하니 사대석(莎臺石)이 부서진 곳이 있는데, 오래 된 능(陵) 위로 큰 돌을 끌어올리면 잔디와 흙이 반드시 모두 무너져 내릴 것이니 일이 매우 중대합니 다. 지금은 물이 스며들지 않으니 석회로 두껍게 그 틈을 바르고 만일 물기가 스며내리면 고쳐 쌓는 것이 옳 겠으나 짓밟으면서 고쳐 쌓는 것은 부당합니다. 하고, 김응기는 아뢰기를, 헌릉(獻陵)에 부서진 돌이 하나가 있었는데, 물이 스며내리지 않기 때문에 석회만을 발랐었습니다. 하니, 상 이 이르기를, 그 공사(公事)를 알기만 하고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군인(軍人)이 많이 들어가 짓밟는 것은 과연 미안하다. 하매, 김응기가 아뢰기를, 잔디와 흙을 고칠 뿐 아니라 능 위에다 새 돌을 고쳐 쌓아야 하니 이 또한 미안한 일입니다. 신의 생각으로 는 석회를 단단히 바르고 그대로 보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짓밟는 것은 과연 미안하 니 그대로 보수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상은 또 조방언 등이 아뢴 내용으로 좌우에게 이르기를, 조정이 시비로 시끄러우니 크게 관계되는 바가 있다.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다만 서로 가부(可否)를 논할 뿐 서로 공박해서는 안 됩니다. 시종은 논사를 주로 하고 대간은 언책을 맡아 각각 그 직분이 있는 것인데, 사람마나 대간을 논할 수 있다는 말은 잘못이며, 대 간끼리 서로 공박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지금 사간ㆍ헌납이 아뢴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장옥이 아뢴 것 은 곧 자기들끼리 서로 공박하는 것입니다. 하고, 김응기는 아뢰기를, 대간과 시종이 서로 공박하는 것도 오히려 옳지 못하거늘, 하물며 대간끼리 서로 공박하는 것이겠습니까? 모름지기 그 시비를 살펴 그른 자는 체직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정광필이 아뢰기를, 지금 사간 등이 아뢴 것은 옳으나 장옥의 말은 심히 망령된 것입니다. 만일 대간 이 시종들로 하여금 일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면 대간의 잘못을 논할 수 있겠으나, 지금 홍문관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이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홍문관을 추문하는 것이 가하며, 장옥이 아뢴 내용에 대해서는 신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근자에 대간ㆍ시종이 매양 분쟁을 하는데, 이 때에 모름지기 시비를 결정짓는 것이 옳 겠다. 하매, 신용개가 아뢰기를, 성세창의 말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대간이 지나친 말을 했다고 하여 매양 공박한다면 반드시 완전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홍문관이, 사헌부가 이청 등을 추문하여 욕보였다고 하는데, 신이 보건대 지금 삼공 이 하가 추문을 받게 되면 사헌부가 반드시 공함(公緘)을 독촉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욕을 당했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승지(承旨) 윤은보(尹殷輔)는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사헌부에서 이청 등 4인에게 공함을 냈는데, 마침 4인이 한 집에 모인지라 사령들도 그 집으 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지적하여 사령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합니다. 하고, 김전(金詮)은 아뢰기를, 근래 대간ㆍ홍문관이, 논의가 번다하여 제각기 의의(義意)를 주장하고 있으니 이는 미풍(美風)이 아닙니다. 공함을 내고서 독촉하는 것은 곧 예사(例事)입니다. 하고, 신용개는 아뢰기를, 조방언 등이 아뢴 말은 그르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건의 수말(首末)을 조사하여 조정의 기강(紀綱)을 진작시키는 것은 곧 대간의 직분이 니, 뭐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홍문관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홍문관에 잘못된 일이 있다면 어 찌 사령을 보낼 수 없겠는가? 다만 이청 등은 서로 공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편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서로 가타부타 하는 것뿐인데, 대간이 추문을 청하므로 홍문관이 말한 것이다. 하였다. 김전이 아뢰기를, 한 사람의 의견을 가지고 사헌부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 역시 홍문관이 체통을 잃은 것입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5장 A면 영인본 15책 141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09

310 선조 73권, 29년(1596 병신 / 명 만력(萬曆) 24년) 3월 8일(을해) 6번째 기사 예조에서 현릉의 잔디가 불탔으니 곡림ㆍ변복 및 위안 등의 의식을 행할 것을 청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지금 들으니, 현릉이 실화(失火)하여 잔디가 모두 탔다고 합니다. 의당 지난해의 지릉(智陵)ㆍ강릉(康陵)의 예에 의해 곡림(哭臨)ㆍ변복(變服) 및 위안 등의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문적(文籍)이 남아 있지 않아 시행 절 목을 의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지릉(智陵)이 실화하였을 때 상은 대내에서 곡 림하고 소복(素服)에 감선(減膳)하였으며, 백관들의 모임을 철회하고 각 아문은 3일 동안 소복을 입었습니다. 이 예에 의해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10장 A면 영인본 22책 65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군사금화(禁火) / *왕실의식(儀式) 광해 50권, 4년(1612 임자 / 명 만력(萬曆) 40년) 2월 13일(무인) 1번째 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희릉과 효릉의 개수 문제에 대해 아뢰다 우의정 이항복이 봉심(奉審) 후 아뢰기를, 신 등이 명을 받들어 희릉(禧陵)223)과 효릉(孝陵)224)을 가서 살펴보니 희릉의 옛 잔디가 완전하지는 못하나 현재 허물어진 곳은 없으니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난간석 사이를 메운 회가 모두 떨어져서 유회(油灰) 를 발라야겠습니다. 또 정자각도 난리 후 처음 창건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비해 낮고 작은 듯했으나 다시 지 을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비가 새는 곳과 단청이 벗어진 곳은 고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효릉의 능 상부는 희릉에 비해 다소 심한 듯했으나 봉분 위에 특별히 무너진 곳은 없었습니다. 다만 동쪽편 잔디가 모두 잡초로 변해 있었고 그 외 고사(枯死)하거나 손상되었는지의 여부는 지금은 싹이 돋지 않아서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한식 전에 쑥을 뽑아내고 여름 장마에 그 퇴락 여부를 보아서 조처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체로 오래된 분묘를 고치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로서 영혼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가 아니기 때문에 난리 전에는 반드시 능의 형체가 퇴락한 뒤에야 비로소 개수했습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는 계속 개수하기를 청하 여 풀이 일부 고사하거나 흙이 일부 무너져도 모두 즉시 개수하니 사체에 미안합니다. 성인의 말씀에 옛날 에는 분묘를 개수하지 않았다. 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감히 아울러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91장 A면 영인본 32책 10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인조 38권, 17년(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4월 3일(경인) 2번째 기사 장릉의 잔디 개수에 대해 하교하다 예조가, 장릉의 잔디[莎草]를 개수할 날짜를 8월 11일로 택정(擇定)하여 아뢰니, 상이 하교하기를, 풀이 자랄 때에는 가을이나 겨울과는 다르니, 덮은 것을 철거하고 잔디는 개수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하니, 예조가 회계하기를, 우선 덮은 것을 걷어서 비와 이슬을 맞게 하면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 새싹이 다 223) 희릉(禧陵) : 중종(中宗)의 계비 장경 왕후(章敬王后)의 능. 224) 효릉(孝陵) : 인종(仁宗)의 능 31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11 시 자라나 불탄 흔적이 전혀 없게 될 것이니, 성상의 분부대로 잔디를 개수하지 마소서. 하자,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21장 A면 영인본 35책 5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인조 48권, 25년(1647 정해 / 청 순치(順治) 4년) 8월 28일(병신) 1번째 기사 강릉의 잔디를 개수하다 강릉(康陵)의 잔디를 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32장 B면 영인본 35책 30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숙종 8권, 5년(1679 기미 / 청 강희(康熙) 18년) 10월 1일(임술) 3번째 기사 정릉을 스스로 보수하여 상을 받았던 참봉 안중현을 파직시키다 정언(正言) 이수징(李壽徵)이 진계(陳啓)하여, 정릉 참봉(貞陵參奉)에게 내릴 상전(賞典)을 품처(稟處)하라고 한 명을 중지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앞서 정릉의 내맥(來脈)에 무너진 곳이 있는 것을 흉 년으로 인해서 미쳐 보수를 못하였는데, 참봉 안중현(安重鉉)이 사사로이 노력하여 날마다 기워 쌓아서 잔디 를 입히고 어린 소나무를 심었으므로, 예조 판서 민암(閔黯)과 오시수(吳始壽)가 번갈아 포상할 것을 청하여, 마침내 품처를 명하였다. 때문에 이수징이 그것을 논한 것이다. 뒤에 윤휴가 극력 진달하여 참봉은 잡아다 국문하고 예관(禮官)도 죄를 주어야 된다고 하였으며, 이어 대각(臺閣)을 지척하니, 임금이 참봉은 파직시키고 예관은 추고(推考)하였으며, 이수징과 헌납(獻納) 박진규(朴鎭圭)는 인피(引避)하다가 체직을 당하였다. 정언 (正言) 유성삼(柳星三)이 비로소 잡아다 국문을 하라는 계청을 발의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45장 B면 영인본 38책 42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영조 85권, 31년(1755 을해 / 청 건륭(乾隆) 20년) 6월 5일(정미) 2번째 기사 통명전에 나가 봉원 도감 제조 이하를 인견하다 임금이 통명전(通明殿)에 나아가 봉원 도감 제조(封園都監提調) 이하를 인견하였다. 김상로(金尙魯)가 원소(園 所)의 도형을 올리고 아뢰기를, 원소의 사초(莎草)로 들어갈 양을 지방관 및 인근 고을에 나누어 정했으니, 청컨대 한결같이 계유년의 예에 의해 저치미(儲置米)를 획급하여 민폐를 없애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은인(銀印)의 제양(制樣) 및 죽책(竹冊)의 서식(書式)은 모두 계유년의 예에 의해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말 하기를, 옳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원소의 구 표석(表石)과 석물(石物) 역시 계유년의 예에 의해야 하고, 곡장(曲墻)은 옮기지 말며 또한 구례에 의해 단지 기와만 고쳐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원소의 국내(局內)에 있는 촌사(村舍)는 철거하게 하고, 전답은 묵히게 해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묘(墓)를 지키는 노복(奴僕)은 이미 면천(免賤)하게 하였으니, 더불어 살고 있 는 양민(良民)과 함께 수호군에 충정해서 그대로 살게 하고, 국내의 전답은 본래 원소에 속한 것이며, 국외의 백성들 전답은 모두 해조로 하여금 사들여 위전(位田)을 만들어 묵히지 말게 해야 한다. 하였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11

312 태백산사고본 61책 85권 3장 A면 영인본 43책 586면 분류 *왕실(王室) / *신분(身分) / *농업(農業) 영조 111권, 44년(1768 무자 / 청 건륭(乾隆) 33년) 8월 7일(임술) 3번째 기사 채제공이 흉년의 구제에 관한 일로 상소를 올리다 사직(司直) 채제공(蔡濟恭)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우리 전하께서 한 번 백성의 근심을 들으시면 성념(聖念)을 지나치게 쓰시어 밤낮으로 애쓰시니, 성궁(聖躬) 을 손상하실 염려가 없지 않기 때문에 신하의 천성으로 타고난 심정에서 이를 두려워합니다. 무릇 재해와 흉 년에 관계된 것이 밖으로의 장문(狀聞)과 안으로의 연백(筵白)225)에는 위곡(委曲) 완전(宛轉)한 것이 많고 명 백(明白) 직절(直截)한 것이 적습니다. 경기 고을 한 수령은 밤중 사이에 벌레가 간 곳이 없으니 일이 기이(奇異)하다. 고 논보(論報)하여 상청(上聽) 의 주달함에 이르렀으니, 신이 보건대 일이 반드시 기이한 것이 아니라, 말을 올려 보낸 것이 기이합니다. 이 것이 어찌 성세(聖世)에 마땅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북도(北道)의 흉년은 신이 목격한 것입니다. 신이 6월 보름 사이에 재[嶺]를 넘어 북계(北界)에 들어가니, 지나는 곳의 논바닥이 모두 갈라져서 이미 가을에 성숙할 희망이 없는데, 백성들이 말하기를 4월 초에 먼지를 적실 만한 비가 내린 이후로 석 달 동안 크게 가물었 다. 고 합니다. 신이 북청(北靑)에 도착하여 침보(寢補)의 하교를 얻어서 수일 만에 길을 되돌아 왔는데, 그 사이에 독충(毒蟲)이 성하게 발생하여 산과 들을 덮어 조[粟]를 먹기를 다하면 기장[黍]을 먹고 기장이 다하 면 콩을 먹으며 심한 것은 잔디 잎까지 먹는 데 이르니, 북청에서 안변(安邊)까지 6백여 리 사이에 잎이 푸 른 것이 적습니다. 북도는 작년에 흉년이 들어서 백성이 아직 소생되지 않았는데, 또 거듭 전에 없던 재해와 흉년을 만나니 여러 고을이 이미 대부분 유산(流散)하였으며, 비록 아직 흩어지지 아니한 자라 하더라도 모 두 아침에 저녁거리를 꾀하지 못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신의 행차가 지나감을 듣고 수 없는 사람들이 말[馬]을 막고 손을 모아 말하기를, 원하건대 돌아가서 우리 임금님께 아뢰어 우리 억만의 생명을 살리게 하라. 고 하니 그 말이 몹시 비참합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천하의 일이 급함을 당하여 늦출 수 없는 것은 흉년을 구제하는 정사다. 라고 하였으니, 원하건대 전하께서 는 온화한 유시(諭示)를 급히 내려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일도(一道)에 반포해 보이게 하고 또한 묘당(廟堂) 에 신칙하여 구제할 계책을 강구(講究)하여 사기(事機)를 잃지 말고 풍패(豊沛)226)의 옛 백성으로 하여금 재 생(再生)의 혜택을 입게 하소서. 하였는데, 비답(批答)하기를, 늙은 나이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왕(先王)의 백성 위한 일을 추모하다가 이제 경의 글을 보매 아픈 것이 몸에 있는 것과 같으나, 헐후(歇後)227)하게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물며 금년은 어떤 해이며, 이 도(道)는 어떤 도인가? 이를 들으니 어찌 차마 예사로이 품처(稟處)하겠는가? 마땅히 삼공(三公)과 구관 당상(句管堂 上)을 불러서 물을 것이니, 경도 모름지기 같이 들어오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10장 A면 영인본 44책 296면 분류 *정론정론(政論)/*농업농작(農作)/*구휼(救恤)/*과학생물(生物) 225) 연백(筵白) : 임금의 앞에서 아룀 226) 풍패(豊沛) : 왕의 출생지인 함경도를 가리킴 227) 헐후(歇後) : 어떤 성어(成語)의 끝을 생략하고 그 부분만으로 전부의 뜻을 갖게 하는 일종의 은어(隱語)임. 당(唐)나 라 소종(昭宗) 때 정계(鄭啓)가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고 시를 잘 지었는데, 시로 시사(時事)를 논함에 직설적 으로 표현하지 않고 해담(諧談)이 많았으므로, 당시 그 시체(詩體)를 정헐후체(鄭歇後體)라 칭하였음 31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13 영조 121권, 49년(1773 계사 / 청 건륭(乾隆) 38년) 10월 27일(임자) 2번째 기사 행 부사직 구선행이 상소하여 북한 산성의 방비 등에 대해 아뢰다 행 부사직(行副司直) 구선행(具善行)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예전 기해년228)에 근본을 튼튼하게 하라. 는 성교(聖敎)는 북한산(北漢山) 옛 성(城)을 수축하고 또 조지서 (造紙署) 동구(洞口)를 막아서 난리가 나면 이어(移御)할 장소로 삼으려고 하신 것이니, <이러한> 예지(睿智)와 신략(神略)229)은 도성(都城)이 먼저 허물어지는 근심을 개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묘년230)에 계술 (繼述)한 성단(聖斷)은 천고(千古)에 우뚝하여 비로소 북한 산성을 쌓아 근본을 굳게 지키는 계책을 삼았으며, 정묘년에 이르러 우리 성상께서는 큰 계책을 정하고 뭇 사람의 꾀를 모두 거두어서 도성을 지키자는 윤음(綸 音)이 금석(金石)처럼 견고하고 사시(四時)처럼 미더웠습니다. 또한 일찍이 하교에 이르기를, 총융청(摠戎廳) 에 이르러서는 그 책임이 더욱 중하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북산(北山)을 먼저 점거하는 자는 이긴다. 고 하였으니, 북한산은 바로 도성의 요충(要衝)이다. 적이 만약 이를 점거하면 어떻게 손을 쓰겠는가? 그러므 로 옛날 여기에 산성(山城)을 쌓고 수문(水門)을 설치하였으며, 근래에는 총융사(摠戎使)가 경기 병사(京畿兵 使)를 겸하여 탕춘대(蕩春臺)에 있는 것은 대저 이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일지군(一枝軍)으로 하여금 사록(沙麓) 사이를 막으면, 적이 감히 수문을 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현(沙峴)도 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저 북한 산성은 연병대(鍊兵臺)와 더불어 국도(國都)의 후관(後關)이 되며, 하늘이 만든 금성 탕지(金城湯池)로서 도성(都城)의 등[背]을 옹위(擁圍)하고 있습니다. 사면(四面)이 험하고 높아서 지키기는 쉽 고 공격하기는 어려우니, 또한 남한 산성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주객(主客)과 공수(攻 守)의 이해(利害)를 깊이 연구하지 못하고 또 전후(前後)에 도성을 버리고 파천(播遷)한 지난 일에 현혹되어, 도성을 굳게 지키자는 논의를 감히 주장하지 못합니다. 아! 총융청을 연병대로 옮긴 뒤에 선신(先臣)이 마음 을 다하여 서성(西城)의 축조를 마치고, 또 동쪽 산록(山麓)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형제봉(兄第峯) 아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나뭇군이 다니던 길을 통해 모래흙이 흘러내려서 언덕이 점점 허물어지게 되었으니, 그 외면(外面)에 새로이 흙을 보충하여 잔디를 입히고 나무를 심어서 곡성(曲城) 밑에까지 연접하게 하고 이어서 산책(山柵)을 만든다면, 높이 솟은 절벽을 누가 감히 쉽게 올라오겠습니까? 더욱이 서성(西城)은 꾸불꾸불한 모양으로 북쪽은 향림(香林)으로부터 남쪽은 불암(佛巖)에 이르기까지, 거듭 쌓인 금성 탕지(金城湯池)를 이루 었으며, 한북문(漢北門) 길은 약간 석천(石川)이 열렸으나 파자(巴字)로 굴곡(屈曲)하여 좌우가 막히고 좁아서 말을 타고 열(列)을 이루기 어려우며, 또 다른 길로는 들어갈 수가 없으니 또한 어찌 감히 경기(輕騎)가 두 산머리의 화살과 돌 밑에 날뛸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 성을 한번 견고하게 한다면 어찌 적병(賊兵)이 깊이 침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허다한 화기(火器)가 어느 것이나 쓸모가 없지만, 조화 순환포(造化循環 砲)와 일와 봉전(一窩蜂箭)은 모두 만인(萬人)을 대적할 것입니다. 신이 이 몇 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는데, 과연 신기(神機)가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징험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제 경의 글을 보니, 경의 정성이 가상하다. 내가 묻고자 하는 일이 있으니 내일 진찰하는 자리에 우의정 과 같이 입시(入侍)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0책 121권 13장 A면 영인본 44책 464면 분류 *정론(政論) / *군사관방(關防) 정조 28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9월 7일(경인) 3번째 기사 천원 도감 제조가 원역의 어려움을 아뢰다 천원 도감의 제조 윤숙(尹塾)이 아뢰기를, 228)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229) 신략(神略) : 신묘한 계략. 230) 신묘년 : 1711 숙종 ~2016년 종합평가ㆍ 313

314 모화관(慕華館)의 잔디[莎]를 떠내는 지역이 매우 좁아서 금번 원역(園役)에 필요한 수량대로 떠내기가 어렵 습니다. 건원릉(健元陵)은 능 위에만 북녘의 잔디[北莎]를 썼고 병풍석(屛風石) 이하에는 다른 곳의 잔디를 전 부 썼습니다. 지금 이 수원부(水原府)의 잔디를 모화관의 잔디에 비교해 볼 때 그다지 우열이 없습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대성인(大聖人)이 세운 법은 마땅히 만세의 아름다운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 다. 하니, 재가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7장 B면 영인본 46책 52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28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10월 16일(무진) 1번째 기사 현륭원의 공역이 완공되어 안원전을 거행하다 현륭원(顯隆園)의 공역이 완공되었다. 안원전(安園奠)을 거행하였다. 상이 연신(筵臣)에게 이르기를, 나는 원(園)을 옮기는 한 가지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경영하고 조처한 것이 있는데, 반드시 비용을 덜 들이 고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신연(神輦)과 여교(轝轎) 및 촉롱(燭籠)은 정련(正輦)을 쓰고, 신 연(神輦)을 배호(陪扈)하는 군대와 의장은 법가군(法駕軍)을 썼으며, 계원(啓園)할 때에는 자문감(紫門監)의 군 사를 쓰고 여사(轝士)와 상여를 끌어당기는 시민, 잔디를 떠내는 사람 및 각종 운반을 맡은 군정들도 다 내 탕고에 비치해 둔 돈을 꺼내어 그 양식과 비용을 후하게 주었으며, 의복까지도 자체로 마련하는 것을 금하고 역시 내탕고와 호조의 비용으로 만들어 주게 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다들 나라의 전법(典法)에 없는 일이고 체모에 관계된 일이라는 점을 누차에 걸쳐 말을 하였지만, 나의 구구한 본의(本意)는 오로지 선왕의 뜻을 이 어나가려는 앙술(仰述) 두 글자에 있었으므로 모두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밖에 순여(輴轝)를 메는 군사는 따로 별계군(別契軍)을 썼고, 양반 집에서 거느린 장정으로서 자원하여 응모하는 자들 또한 일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전해 오는 대여(大轝)는, 멜채[杠幹]가 너무 무겁고 가로 세로로 놓인 대[井架]가 너무 빽빽한 까닭에, 힘이 약한 여사(轝士)들은 어깨가 서로 부딪쳐 길을 가는 데에 불편하였다. 그래서 그 멜채를 잘라냈고, 가로 세로 로 놓인 대를 줄이도록 하였다. 또 습의(習儀)를 세 번에 걸쳐 하는 것은 모이고 기다리는 폐단이 있으므로 두 번은 줄였다. 발인하는 날에는 도청의 낭청 및 근시하는 무신에게 나누어 명하여, 떡과 고기를 싸가지고 가다가 10여 리를 갈 때마다 한 번씩 먹이게 하였고, 또 역참길에 식량을 지급하고 초소를 설치하여 밥을 지 어 먹이게 하였으며, 신방제중단(新方濟衆丹)을 만들어 사람들마다 몇 알씩 지급하여 줌으로써 한기(寒氣)를 막게 하였다. 옛 원에서부터 신원까지의 노정이 실히 백여 리나 되어 여사(轝士)들이 모두 20번이나 교대하 면서 운반하였는데, 첫날 강가에서 출발을 한 때가 이미 해가 돋은 후였는데도 정오가 되기 전에 과천(果川) 의 숙참(宿站)에 안치할 수 있었다. 그 이튿날 새벽녘에 신원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채 신시(申時)가 되기 전 에 정자각(丁字閣)에 도착하였다. 원(園)을 연 때로부터 원에 안치할 때까지 역사(役事)를 감독한 신하들과 호 위한 장사(將士)들 및 여부(轝夫)ㆍ장수(匠手)ㆍ역부(役夫)들이 죄다 몸성히 돌아와, 마치 도와준 사람이 있는 듯하였으니, 참 기이하고도 기이한 일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8장 A면 영인본 46책 68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30권, 14년(1790 경술 / 청 건륭(乾隆) 55년) 7월 1일(기묘) 1번째 기사 한강을 건너기에 편한 배다리에 관한 어제 주교지남(舟橋指南) 의 내용 배다리[舟橋]의 제도를 정하였다. 상이 현륭원(顯隆園)을 수원(水原)에 봉안하고 1년에 한번씩 참배할 차비를 하였는데, 한강을 건너는 데 있어 옛 규례에는 용배[龍舟]를 사용하였으나 그 방법이 불편한 점이 많다 하여 31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15 배다리의 제도로 개정하고 묘당으로 하여금 그 세목을 만들어 올리게 하였다. 그러나 상의 뜻에 맞지 않았 다. 이에 상이 직접 생각해내어 주교지남(舟橋指南) 을 만들었는데, 그 책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배다리의 제도는 시경(詩經) 에도 실려 있고, 사책(史冊)에도 나타나 있어 그것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지역이 외지고 고루함으로 인하여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한가한 여가를 이용 하여 부질없이 아래와 같이 적었다. 묘당에서 지어 올린 주교사(舟橋司)의 세목을 논변(論辨)하고 이어 어제 문(御製文)을 첫머리에 얹혀 주교지남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지형이다. 배다리를 놓을 만한 지형은 동호(東湖) 이하에서부터 노량(露梁)이 가장 적합하다. 왜냐하면 동호는 물살이 느리고 강언덕이 높은 것은 취할 만하나 강폭이 넓고 길을 돌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빙호(冰湖)는 강폭이 좁아 취할 만하나 남쪽 언덕이 평평하고 멀어서 물이 겨우 1척만 불어도 언덕은 10척이나 물러나가게 된다. 1척 정도 되는 얕은 물에는 나머지 배를 끌어들여 보충할 수 없으므로 형편상 선창을 더 넓혀야 하겠 으나 선창은 밀물이 들이쳐 원래 쌓은 제방도 지탱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새로 쌓아서야 되겠는가. 건너야 할 날짜는 이미 다가왔는데 수위의 증감을 짐작하기 어려워 한나절 동안이나 강가에서 행차를 멈추었던 지난해 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또 강물의 성질이 여울목의 흐름과 달라서 달리는 힘이 매우 세차고 새 물결 에 충격을 받은 파도가 연결한 배에 미치게 되므로 빙호는 더욱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몇가지 좋은 점 을 갖추고 있으면서 이들 몇가지 결함이 없는 노량이 가장 좋다. 다만 수세가 상당히 높아 선창을 옛 제도대 로 쓸 수 없는 점이 결점이다. 이것 역시 좋은 제도가 있는만큼 아래 선창교(船槍橋) 조항에 보인다. 염려 할 것은 없다. 이제 이미 노량으로 정한 이상 마땅히 노량의 지형을 살피고 역량을 헤아려 논의해야 하겠다. 물의 넓이이다. 중략잔디를 까는 일이다. 배다리를 놓는 방법을 강구한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잔디를 까는 일을 걱정해본 적 이 없으니 이는 몹시 소홀한 처사이다. 대개 잔디는 다른 풀과 달라서 한해에 몽땅 떼어내면 5년 동안은 되 살아나지 않는다. 지난해의 공사에 첫날에는 5보 이내의 간격으로 떼어냈고 다음날에는 10보 이내의 간격으 로 떼어냈는데, 다음날 공력의 성과가 첫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식으로 미루어 금년에 1백 보 밖에 서 떼어내고 명년에 수백 보 밖에서 떼어내면 그 공사비용도 따라서 몇배로 늘어날 것이다. 또 역군을 모집 하는 방법도 본디 낭비가 많다. 더구나 오합 지졸(烏合之卒)을 일일이 통솔할 수 없는 데다가 복잡하고 소란 한 가운데 아전들의 농간이 늘어나게 된다. 매년 배다리의 부역에 잔디를 까는 일이 첫째의 폐단이 된다. 이미 각자의 배를 하나씩 연결하는 방법을 쓰는 이상, 각 배가 모이기 전에, 또 서로 연결하기 전에 즉시 각 배로 하여금 각각 그 배 위에 깔 잔디가 몇 장이나 들겠는가를 계산하게 한 다음, 미리 지나는 길에 양화 (楊花)나 서강(西江)같은 곳이다. 각 배의 사공들이 힘을 합쳐 떼어내어 각기 자기 배에 싣고 갔다가 배를 연결한 후 각기 자기 배에 깔도록 미리 규정을 정하여, 그 선주들이 거행할 줄을 알게 한다면 이른바 만인이 힘을 합치면 하루도 못되어 완성한다는 격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하나 이미 대오를 편성한 아래 대오를 결성한다는 조항에 보인다. 데다가 이익까지 보게 되었으니 형편상 마다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삼태기나 가래와 같은 도구는 관청에서 마련하여 각 배에 나누어주고 혹시 그 배가 바뀌게 되면 아래 상벌조항에 보인다. 즉시 인계하여 영구히 맡아서 사용하되 연한을 정해 야 한다. 혹시 기한내에 분실할 경우 각자 변상대치하도록 일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난간이다. 난간은 어로(御路)의 가장자리에 말뚝을 세워 만드는 것이다. 1발마다 말뚝 1개씩 박는다면 좌우편 에 드는 말뚝이 선창까지 7백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은 대발로 둘러치는데 대발마다 각각 5발로 기준한다 면 좌우편에 드는 대발이 선창까지 1백 5, 60부(浮)에 불과하다. 중략 정조 32권, 15년(1791 신해 / 청 건륭(乾隆) 56년) 4월 16일(경신) 4번째 기사 현륭원의 여러 가지 일을 마친 김사목ㆍ원관 등에게 사상하는 일로 전교하다 전교하기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15

316 원소(園所)231)경내에 나무를 심고 씨를 부리고 흙을 돋우고 잔디를 깎는 일과 동구 3군데의 못에 돌을 쌓고 곤신지(坤申池)의 석축을 고쳐 쌓으며 배양치(培養峙)에 벽돌을 까는 일과 대왕교(大王橋)를 돌로 쌓고 용주 교(龍珠橋) 가운데 작은 돌다리 6곳을 새로 쌓는 일이며 낡은 청사를 철거하고 새로 짓는 등의 여러 가지 일 들이 끝났다고 한다. 이제는 미진하다는 탄식이 거의 없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일을 감독한 사람들이 성실 하고 근면하게 한 결과이다. 지방관 김사목(金思穆)에게 특별히 대표피(大豹皮) 1장을 내리고, 원관(園官) 등 은 벼슬을 올려주며, 일을 감독한 수령과 군교(軍校)는 차등 있게 상을 주라. 하고, 이어 부역군(赴役軍)에게 과거를 베풀어 시취(試取)하고 차등 있게 상을 주도록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45장 A면 영인본 46책 216면 분류 *왕실(王室) / *군사(軍事) / *인사(人事) 정조 35권, 16년(1792 임자 / 청 건륭(乾隆) 57년) 9월 15일(신해) 6번째 기사 양산 군수 성종인이 홍수에 의해 붕괴된 제방의 복구 문제로 상소하다 양산 군수(梁山郡守) 성종인(成種仁)이 상소하기를, 5월 16일의 비와 6월 16일의 비, 25일의 비바람으로 말미암아 강해(江海)가 분탕되고 온 고을이 침몰되어 어디를 봐도 남은 곡식이 없이 붉은 땅만 있었는데, 7월 23일 밤중의 비바람은 임술년과 을해년에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익사한 사람과 떠내려간 가축이 매우 많았으니, 산과 들이 뒤바뀌고 가옥이 허물어진 것은 또 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본군에 3개의 큰 제방이 있는데, 그 하나는 읍평(邑坪)의 20리 되 는 제방이고 그 하나는 본군 남쪽 거도(巨島)의 30리 되는 동서(東西)로 이어진 제방이고 그 하나는 황산역 (黃山驛)의 좌우로 이어진 긴 제방입니다. 이른바 읍언(邑堰)은 본군의 앞 큰 평지에 있고 강어귀와 다소 떨 어져 있으므로, 양산 백성의 농장(農場)과 생업(生業)이 대부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산골짜기에서 나 오는 여러 물줄기가 모두 그곳으로 모여 군기(郡基)를 침범하고 농토를 파손시키므로 임술년의 홍수 이후 그 당시 도신이 20리에 이르는 긴 제방을 쌓았던 것인데 을축년에 또 붕괴되었을 때 조정에서 쌀을 내어 증축 하였습니다. 그 이후 수재(水災)가 있으면 백성을 동원하여 손질해오고 있었는데 이번에 전에 없던 큰 홍수 를 만나서 붕괴되어 터진 곳의 길이가 1천 1백여 장(丈)이나 되며 그 밖의 세 발짝이나 다섯 발짝 씩 파손 된 곳은 곳곳이 모두 그러합니다. 이른바 도언(島堰)은 길이가 도합 3만여 장이 되는데 흙을 채취하고 잔디 를 입히는 일을 모두 제방 아래에서 할 수 있으므로 힘이 매우 적게 드는데, 금년 여름의 비로 인하여 온 섬 이 침몰되었으며 평지가 드러난 후 파손된 곳을 측량해 보니 터져서 시내가 되고 파여서 구덩이가 된 곳이 3천여 장이나 되었습니다. 대개 본군에는 2천 1백 80여 호가 있는데, 떠내려가고 묻힌 가옥이 6백 65호이며 그중에 도민(島民)의 가옥이 3백 62호이니 수재를 당한 참혹함이 또한 본군에서 제일 심합니다. 이른바 황산 언(黃山堰)은 우관(郵館)이 있는 곳으로서 제방 안의 농토가 모두 마위(馬位)232)이며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식 의 힘을 많이 받고 있는데, 금년 여름의 큰 홍수에 떠내려간 가옥이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으며 제방 아래 수전(水田)과 한전(旱田)이 물에 잠겨 늪지로 변해 버렸으니 역민(驛民)인들 어떻게 보존될 수 있겠습니까. 이 상 3개의 제방은 실로 백성의 목숨과 관계된 것이어서 개축하는 일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황산언은 보수하는 것이 편리한지 폐지하는 것이 편리한지 본군에서 억측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삼가 생각건대, 도언은 쌓지 않을 수 없으며 읍언은 아주 파손된 곳은 다시 쌓을 수 없으나 마구 흐르는 물줄기를 또 막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읍언에 제방을 쌓는 일은 가령 다시 재력(財力)을 소비하여 종전보다 증축한다 해도 내년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반드시 불행한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구 흐르는 물을 그대로 방 치하고 막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생업이 크게 곤궁해 질 뿐만 아니라 읍리(邑里)의 성부(城府)도 지탱하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지세(地勢)를 살펴보니 자연적인 물줄기를 따라 사람의 힘을 약간만 써서 뚫 어서 소통시키고 비스듬히 새로 제방을 쌓으면 8백 장 정도면 옛 물줄기로 모여 통할 수 있어서 급류를 진 231) 원소(園所) : 현륭원(顯隆園). 232) 마위(馬位) : 역마를 사육하기 위해 지급한 토지 31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17 정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공역(功役)이 크게 줄고 후일의 재앙도 피할 수 있어서 농토는 경작할 수 있고 읍리는 붕괴될 염려가 없게 될 것입니다. 도언의 경우는 낙강(洛江)이 진흙이 차서 막힌 뒤로 제방 에 물이 새어 파손되는 근심이 해마다 있었던 듯한데 금년 여름과 같은 홍수가 또 있기라도 한다면 한 제방 으로서는 능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이 도언 또한 다시 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본도(本島)는 동서 10리, 남북 25리에 토질이 비옥하여 1말의 씨를 부리면 3섬의 곡식을 수확하는데 수전과 한전의 결수(結數) 가 모두 1천 50결이며, 적내(籍內) 적외(籍外)의 가옥이 대략 적어도 7백 구(口)가 되는데 그들은 또 고기잡이 와 갈대 채취로 모두 생활이 충분합니다. 이제 그곳의 백성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땅을 버리고자 한다면 제방을 쌓을 필요가 없겠으나, 백성을 갑자기 옮길 수 없고 그 땅을 모두 버릴 수 없다고 한다면 도언 또한 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읍언에 새로 쌓을 곳이 8백 장이고 도언에 다시 쌓을 곳이 3천 장이 되는데 여기에 투입될 역정(役丁)의 수를 헤아려 보면, 읍언은 넓이가 6장이고 높이가 2장이어서 각 장마다 10명의 역정이 필요하니 8백 장의 역정에는 8천 명이 필요합니다. 도언은 넓이가 3 장이고 높이가 1장 조금 넘어서 각 장마 다 4명의 역정이 필요하니 3천 장의 역정은 1만 2천 명이 되므로, 합하여 계산하면 적어도 2만 명이 못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곡물을 얻어 매 역정에 하루의 고가(雇價)로 피곡(皮穀) 1말 5되를 준다면 1천 5백 석 (石)만 소비하면 1만 5천 명의 역정을 구할 수 있고 부족한 5천 명은 관민(官民)이 상의하여 형편에 따라 뽑 아서 맡긴다면 자연히 역사(役事)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더구나 역사를 시행하면서 주기(賙飢)의 정 치를 겸할 수 있어서 각종 폐단이 자연 없어지고 여러 가지 이익이 자연 수반될 것입니다. 신의 말에 채택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안으로 묘당(廟堂)에서부터 밖으로 방백(方伯)에 이르기까지 후일에 안정할 수 있는 계획을 널리 자문을 구하여 별도로 무휼해 주는 일을 속히 강구하소서. 그러면 끝내 잔폐된 국면을 유지하여 70주(州)의 하나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신이 아침 저녁으로 바라는 바이며, 양산 군민 도 이 조치를 보고 흩어진 자를 모으고 죽어가는 자를 살려주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양산 백성이 수재를 가장 심하게 당했다는 것은 연신(筵臣)의 말을 통해 들었었고 도백 (道伯)의 장계를 보고 대략 짐작은 했었으나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었다. 백성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치 눈앞 에 보는 듯하다. 이제 알았으니 속히 구제하지 않을 수 없고, 구제해 주려면 또 보충해 주고 도와 주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상소 안의 소청을 윤허하여 족식(足食)의 공(功)을 완성할 수 있게 하겠다. 도백으로 하여금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힘써 강구하여 속히 한 가지 방법을 장계로 보고하게 할 것이니, 너는 부로(父老)와 민서(民庶)를 소집하여 조정에서 염려하고 있는 사유를 다방면으로 효유하여 모두 안심하고 생업을 정할 수 있도록 하여 차견(差遣)된 본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63장 A면 영인본 46책 335면 분류 *농업(農業) / *물가(物價) / *정론(政論) 정조 37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1월 11일(을사) 2번째 기사 주교사가 주교 절목을 올리다 주교사(舟橋司)가 주교 절목(舟橋節目)을 올렸다. 절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봄 가을로 능원(陵園)을 배알할 적에 나루를 건너야 할 때를 만나면 선창 에서 물을 건너는 데에 쓰이는 크고 작은 선박의 숫자가 4, 5백 척에 달하므로, 서울과 지방에서 배를 찾아 구하다 보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뱃사람들이 받는 폐단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런데 현륭원(顯隆園)을 수원으로 옮긴 뒤로는 해마다 한번씩의 행행에 나루를 통해 건너야 했으므로, 이에 성상께서 뱃사람의 폐단 을 깊이 진념하시어 특별히 배다리[舟橋]의 제도를 만듦으로써 배를 찾아 다니는 일은 영원히 혁파하고 단지 경강(京江)의 큰 배들만을 가져다가 연결시켜 교량을 만들어 놓으니, 폐단은 사라지고 일은 간단해졌으며, 공 력이 줄고 비용도 적어져서, 실로 이것이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는 도구인지라 이에 영구한 법으로 삼는 바이 다. 1. 배다리의 배치는 당연히 물길이 좋은 곳을 가려서 해야 한다. 동호(東湖)로부터 그 하류로 강폭이 좁 고 양쪽 언덕은 높으며 여울진 곳과 멀어서 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으로는 노량(露梁)이 제일이다. 또 연(輦)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17

318 의 거둥 길도 평탄하고 곧아 우회됨이 없으므로, 물길은 노량 나루로 정한다. 선릉(宣陵)ㆍ정릉(靖陵)ㆍ장릉 (章陵)ㆍ현륭원에 행행할 때와 온천에 행행할 때에도 모두 이 길을 이용하고, 헌릉(獻陵)ㆍ영릉(英陵)ㆍ영릉 (寧陵)을 행행할 때에는 광진(廣津)에 옮겨 설치한다. 1. 선창의 배설은 으레 큰 배를 강가에 대놓고 언덕의 좌ㆍ우측에 긴 나무를 늘어 세우고서, 그 안에는 모래와 흙으로 채워 배의 높이와 수평을 이루게 한다. 그 일에 드는 비용은 극히 많이 소요되었으나 행사를 치르고 나면 헐어버리고 매년 이를 다시 설치해야 하니, 그 비용을 지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침내 돌로 그것을 대신 쌓기로 하고 강가의 잡석을 모아 고기 비늘 모양처럼 가지런히 맞물려 높게 쌓아 올리고 석회로 그 빈 틈들을 메꾸면 그것이 완고하고 튼튼하여 한번 쌓아서 영구히 쓸 수 있게 되겠기에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중략 1. 이전에는 배 위에다 발[芭子]을 깔고서 모래와 흙을 채우고 그 위에 잔디를 깖으로써, 설치하고 철거할 때 에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만일에 비라도 만나게 되면 언제나 매우 질척거려서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었다. 양호(兩湖)에 나누어 맡긴 장송판(長松板)으로 너비는 한 자, 두께는 세 치, 길이는 어가(御駕)의 길 너비 4발 [把]의 폭에 한정된 것을 고기 비늘처럼 나란히 종보 위에 가로로 깔고, 두 판자가 맞닿는 곳에는 드러나지 않게 못을 박아 서로 맞물리게 한다. 또 아래쪽에는 견마철(牽馬鐵)로 두 판자가 맞닿는 곳에 걸쳐 박고, 또 판자의 양쪽 끝에는 보이지 않게 구멍을 뚫어 삼 밧줄을 꿰어서 왼쪽과 오른쪽의 종보에 묶어 움직이거나 노는 폐단이 없게 한다. 1. 깔판의 좌우 양쪽에는 먼저 중방목을 설치하고 다음으로 짧은 기둥을 매양 한 칸 에 한 개씩 늘어 세우고, 벽련목(劈鍊木)을 가지고 가로로 열십자 모양의 난간을 만들어 두 기둥 사이에 연 이어 박아넣되, 먼저 기둥 한쪽에 서로 맞보게 변석(邊錫)을 뚫어서 난간이 서로 맞붙고 드나들게 하는 뒷받 침으로 삼는다. 정조 39권, 18년(1794 갑인 / 청 건륭(乾隆) 59년) 1월 20일(무신) 3번째 기사 영의정 홍낙성 등이 경모궁 참배를 중지토록 혜경궁에 호소하다 영의정 홍낙성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뜰에서 혜경궁에게 계달하기를, 이해 이날 전하의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져서 경모궁에 참배한다는 명이 있었습니다. 타고나신 뛰어 난 효성과 생신을 맞이한 느낌으로 인하여 몸소 참배하심으로써 조금이나마 정리와 예의를 펴려고 하시니, 오늘의 모든 신하들이 누군들 감동하여 체인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모든 신하들의 마음이 매우 초조하고 절 박한 점이 있어서 여러 차례 면대하기를 요청하였으나 접견을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호소할 길이 없어 더더 욱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에 외람됨을 피하지 않고 다급한 말로 자궁께 우러러 진술합니다. 일전 현륭원에 직 접 제사를 드릴 때의 경황없고 초조했던 정상에 대해서는 어머님의 뜻을 잘 받드시는 우리 전하의 효성으로 혹시라도 어머님의 마음에 걱정을 끼칠까 염려하여 아마 어머님께 알려지지 않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그랬다 면 우리 자궁께서 어떻게 굽어 살필 수 있었겠습니까. 청컨대 그 내용을 대략 말하여 내일 참배하는 일을 결 단코 만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출궁(出宮)하던 날에는 밤새도록 거둥하여 마치 무엇을 찾는 것처럼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고, 현륭원에 이르 러서는 아침 수라도 들지 않은 채 겨우 위패(位牌) 앞에 나가자마자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고 향을 피울 때에 는 엎드려 흐느끼면서 목이 메이고 가슴이 막혀서 의절(儀節)을 행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대신과 근 신들이 죽을 죄를 무릅쓰고 좌우에서 부축하여 겨우 침문(寢門)을 나와서는 그대로 원(園) 위로 올라갔습니 다. 이때의 이 정경은 사람의 마음을 지닌 자로서는 차마 우러러볼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진영(眞影) 가까 이에 이르러서는 슬픔을 더욱 억제하지 못하여 옥체를 땅바닥에 던지고 눈물을 한없이 흘리면서 손으로 잔 디와 흙을 움켜잡아 뜯다가 손톱이 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때 전하께서는 기운과 정신을 잃기까 지 하셨는데, 그때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탕제(湯劑)를 한 번 올리고 강변(薑便)을 두 번 올렸으며, 차를 끓여 올린 것이 또 몇 번인지도 모를 정도였건만 그때마다 물리치고 들지 않으시므로 점점 더 초조해져서 평상시의 예절을 차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신이 직접 업으려고까지 하였고 혹은 31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19 상의 손을 잡고 혹은 어의(御衣)를 부여잡기까지 하였으나, 뭇신하들의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상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날이 이미 저문 뒤에는 모든 신하들이 전하께서 이때의 마음으로 자궁(慈宮)의 이때의 마음을 우러러 생각 한다면 결코 감정대로 절도를 넘어서 이처럼 자신을 가볍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라는 뜻으로 누누이 아 뢰고는 죄를 무릅쓰고 부축하여 겨우 재전(齋殿)으로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그날의 일을 자궁께서 직접 보셨 더라면 자궁의 안타깝고 절박하실 그 마음을 어찌 뭇신하들의 마음에 비하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심장과 간장이 모두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내일 경모궁을 참배하게 되면 사모하는 효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요전보다 갑절이나 더할 것이고, 또 그날의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일이 다시 빚어질 것입니 다.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옥체의 손상을 받은 것은 이미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아랫사람들의 놀란 마 음도 여태까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한 번 있게 되면 종묘는 어떻게 하며 사직은 어떻 게 하겠습니까. 오늘 뭇신하들이 자궁의 마음이 바로 전하의 마음이요 전하의 마음이 바로 자궁의 마음임을 모르는 바가 아 닌 만큼 이때에 이런 말씀을 어떻게 차마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라의 중함을 깊이 생각하시고 슬픔 을 애써 억제하는 방도를 생각하시어 전하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도 우리 자궁께 달려 있고 전하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우리 자궁께 달려 있습니다. 원컨대 자궁께서는 전하를 잘 이끌어서 기필코 참배한다는 명을 속 히 중지하게 하여 주시기를 천만 간절히 바랍니다. 하니, 혜경궁이 언문으로 비답을 내리기를, 이제 곧 내전에서 권고하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9장 A면 영인본 46책 440면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정조 46권, 21년(1797 정사 / 청 가경(嘉慶) 2년) 2월 6일(정축) 2번째 기사 예조에 일러 각 능ㆍ원ㆍ묘의 수개를 편의대로 하되 신중을 기하게 하다 예조가 각 능ㆍ원ㆍ묘의 봉심(奉審)한 곳에 대해 빨리 수개할 것을 아뢰자, 비답하기를, 능상(陵上)의 소중함은 정자각(丁字閣)이나 비각(碑閣)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선조(先朝)에서 특별히 수교(受 敎)를 내려 능의 잔디 파종을 정식으로 해서 능관이 편의에 따라 거행하도록 했는데 더구나 정자각과 비각에 관한 것이겠는가. 이 뒤로는 일체 파종에 관한 예에 따라 수교하여 정식을 만들어서 편의에 따라 수개할 곳 은 편의에 따라 보수하되, 능관이 거행하는 것이 한 가지라도 신중하지 않음이 있으면 봄 가을로 봉심하는 행사 때 경기 감사가 그 근만(勤慢) 상태를 고과하여 계문토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14장 B면 영인본 47책 7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정조 53권, 24년(1800 경신 / 청 가경(嘉慶) 5년) 1월 24일(정축) 2번째 기사 좌의정 심환지가 의식의 절차에 관한 내용의 차자를 올리다 좌의정 심환지가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만화(萬化)의 근본을 맑게 하시고 백행(百行)의 근원을 두터이 하시면서, 선대를 추모하는 황급한 마음으로 인해 임금의 자리에도 즐거움이 없이 40년을 하루같이 지내셨습니다. 면 류관과 곤룡포를 차리고 나면 전하께서는 시름에 싸이고 악기 소리를 들으면 따라서 곧 슬퍼지시며, 보좌(寶 座)에 앉아서는 길이 한숨을 쉬시고 좋은 음식을 대해서도 맛을 전혀 모르십니다. 태평한 세월은 비록 뭇 신 하들의 칭송에 담아졌지만, 금니(金泥)와 옥첩(玉牒)으로 성대한 의식 꾸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끝없 는 효심은 오랠수록 더욱 그치지 않고, 효성을 미처 다하지 못한 슬픔은 세월이 오래가도 다하지 않아서 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19

320 (周)문왕(文王)이 난수(灤水) 가에 아버지 무덤을 쓴 예233)를 거행하고, 한 고조(漢高祖)가 신풍현(新豊縣)을 만든 방법234)을 계승하여, 행궁(行宮)을 두어 호위하는 형세를 성대히 하고, 어진(御眞)을 모시어 우러러 의지 하는 정성을 부쳤습니다. 그 지극한 정성과 예가 백대 제왕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지만, 그래도 일찍 별세한 어버이에 대한 효심에는 조금도 위로될 수가 없었고, 어버이 은혜에 대한 보답은 조금도 펼 수가 없었습니 다. 그러니 전(傳)에 이른바 지극한 덕과 중요한 도는 신명(神明)을 통하고 천지를 감동시킨다. 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인의 효도는 천지에 순종하고 신명에 부합하여, 교화가 널리 유통하고 국가의 운명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명전(承明殿)의 수많은 저작(著作)들과 굉유 석사(閎儒碩士) 의 문장으로도 또한 그 효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거늘, 우리 동방 6천 리 강토 안에 사는 백성들로서 누군들 격앙하여 흠모하지 않겠으며, 누군들 보고 느끼어 효심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늘과 조종(祖宗)들께서 두터이 보살펴주어, 온갖 복이 찾아들고 세 가지 경례를 한꺼번에 아울러 거행하게 되었으니, 억만년토록 나라가 태산 반석처럼 편안할 기초가 지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하 의 하늘에 사무친 성효는 경사를 만나 더욱 새로워져서, 매양 연석에 참여하여 전하의 하교를 듣다 보면 구 구한 걱정으로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감히 잠시도 마음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한밤중부터 어가를 준비시켜 저물녘에 현륭원을 가서 제사를 지낼 적에는, 술잔을 부어 올리는 즈음에 예절 을 신중히 행하심으로써 지게문을 나올 때에 영혼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으며, 향기가 올라가 신령의 기가 사 람을 엄습하여 아득히 신령과 서로 간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재실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현륭원 을 하직할 적에는 전하께서 현륭원 잔디 위에 엎드려 우시니 눈물이 소매에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슬픈 감정 을 전혀 억제하지 않으시고, 건강에 해롭다는 주위의 말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므로, 아침부터 한낮에 이르 기까지 대소의 신료들이 몹시 당황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으로서 중도에 지나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가가 막 서울에 돌아와서는 이내 경모궁에 가시어, 하룻밤 사당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삼조(三朝)에 문안 드리던 때를 어슴푸레 떠올리셨습니다. 이때에 후원의 나무에는 서리가 내리고 시간은 점점 깊어갔는데, 삼 가 생각하건대 성상께서는 이때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신은 외람되이 여러 신하들의 뒤를 따라 내전으 로 환어하시기를 우러러 청하여 심지어는 누차 번거롭게 정청(庭請)까지 함으로써 겨우 성상의 마음을 돌리 게 되었는지라, 몹시 애타던 나머지에 서로들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삼가 성상의 하교를 보니 2일의 경례 때에는 친히 정전에 임어하지 않을 것이고 백관이 동궁에 게 하례 올리는 의식도 권정례로 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신이 비록 매우 어리석으나 성상의 의중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나라의 중대사 중에 세자 책봉의 예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습니다. 융성하던 삼대(三 代) 때의 문헌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마는, 한(漢)나라효명제(孝明帝)로부터 비로소 태자 책봉의 의식에 임금 이 직접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당(唐)나라 개원례(開元禮) 의 오례(五禮) 가운데서는 그 두 번째가 가례 (嘉禮)인데, 50 가지나 되는 의식 가운데 열여덟 번째가 임금이 대청에 나앉아 황태자를 책봉하는 의식이었 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것이 만세의 법칙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 왕조에 이르러서는 훌륭한 선왕들이 서로 뒤를 이음으로써 제도가 크게 빛나서 세자 책봉의 의식을 가장 신중히 하였습니다. 임금이 정전에 친히 임어 하는 것은 체모(體貌)를 높이기 위한 것이고, 책문과 인장을 친히 내리는 것은 전례(典禮)를 중히 여기기 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례를 지극히 중히 여기기 때문에 체모도 또한 높아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대를 추모하시는 것은 곧 성상의 지극한 정리이고, 전례는 바로 열조(列 233) 주(周)문왕(文王)이 난수(灤水) 가에 아버지 무덤을 쓴 예 : 주 문왕의 아버지인 계력(季歷)의 묘에 난수(灤水)가 밀 어닥쳐 관(棺)의 앞 부분이 환히 보일 정도로 씻기었는데, 문왕이 이것을 보고 대단히 놀라며 말하기를 선군(先君) 께서 틀림없이 군신 백성(羣臣百姓)들을 한 번 보고자 하시기 때문에 하늘이 짐짓 난수를 시켜 관이 보이게끔 씻겨 가게 한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관을 꺼내어 군신 백성들이 모두 임곡(臨哭)하게 한 다음 다시 장례를 지냈다는 고사이다 234) 한 고조(漢高祖)가 신풍현(新豊縣)을 만든 방법 : 한 고조의 고향은 본디 풍(豊)이었는데, 뒤에 천자가 되어 도읍을 장안(長安)으로 옮겨 정했을 때, 자기 아버지가 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므로, 고조가 마침내 장안의 한쪽에 건물과 길거리 등을 모두 개축(改築)하여 풍 고을처럼 만들고, 또 풍 고을 백성들을 모두 그곳으로 이사시킨 다음 이곳을 신풍현(新豊縣)이라고 명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32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21 朝)에서 남긴 제도이니, 지극한 정리야 물론 억지로 가라앉히기가 어렵겠지만, 열조의 제도 또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례대로 거행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그만둘 만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태종조(太宗朝)의 고사는 아예 끌어댈 만한 규례가 아닙니다. 일마다 조종의 성덕(盛德)을 본받 으시는 전하로서야 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환히 아시는 바가 있을 듯합니다. 심지어 동궁의 축하 의식도 권정례로 하라고까지 하신 데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기축년에는 이것이 처음 있 었던 일이니, 오늘날에는 옛 규례대로 거행할 뿐입니다. 또 더구나 경례를 거행할 날짜가 가까이 다가오고 기후도 화창해지니, 벙어리ㆍ귀머거리ㆍ절름발이ㆍ앉은뱅이들까지도 다 우리 행사장에 나와서 구중궁궐에 계 시는 전하의 용안을 우러러 뵙고 모두 함께 만세 삼창의 환호를 올리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뭇사람의 뜻에 굽어 보답하시어 성대한 의식을 크게 이루는 일을 어찌 행여라도 더 주저하실 것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새로운 명을 내리시어 나라의 예를 중히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빈을 임명할 때 정전에 나가지 않으려는 것과 책문과 인장을 침전(寢殿)에서 전하려는 것 은, 한편으로는 선대를 추모하는 마음의 만분의 일이나마 부치고자 함이요, 또 한편으로는 성조(聖朝)에서 이 미 행하신 일을 따르고자 함이니, 의식 절차는 비록 너무 간략한 듯하지만 실상은 여기에 정밀한 의리가 있 는 것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9장 A면 영인본 47책 231면 분류 *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순조 18권, 15년(1815 을해 / 청 가경(嘉慶) 20년) 5월 6일(경인) 1번째 기사 광릉의 대왕릉 위의 잔디가 불타서 위안제를 행하다 광릉(光陵)의 대왕릉(大王陵) 위에 잔디가 불탔으므로, 위안제를 행하도록 명하였다. 정부(政府) 이하가 나가 서 살펴보고 능관(陵官)을 잡아서 문초하였으며, 수복(守僕)과 능군(陵軍)을 엄중히 추핵(推覈)하였고, 정전(正 殿)을 피하여 감선(減膳)ㆍ철악(撤樂)한 지 사흘만에 그쳤다.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10장 A면 영인본 48책 7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예술음악(音樂) 순조 23권, 21년(1821 신사 / 청 도광(道光) 1년) 3월 22일(임신) 2번째 기사 영돈녕 김조순이 장례에 대하여 상소하다 영돈녕 김조순(金祖淳)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이 요사이 서운관 제거(書雲觀提擧)의 임명을 삼가 받았으므로, 상사를 감독하는 예조의 신하와 같이 건릉 (健陵)235)에 나아가 신릉(新陵)을 합장하는 것이 적당한지의 여부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는 물론 예전(禮典) 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건릉의 자리에 대해 항상 근심하고 두려움이 마 음속에 맺혀서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으므로 감히 이렇게 만번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합니다. 신은 재주가 없 고 지식이 없어서 보통 학술(學術)의 길에도 일단면을 엿보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풍수 지리의 오묘한 것을 두루 찾아서 위로 산릉(山陵)의 중대한 일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신이 진달하고자 하는 바는 원래 술가(術家)의 논의가 아니고, 깊이 믿는 바는 바로 선현(先賢)의 말이므로, 혹시 근거가 없는데로 돌아가지는 않겠기에, 스스로 참람하고 망령됨을 잊었습니다. 옛날 송(宋)나라주 문공(朱文公)236)이 영부릉(永 阜陵)에 관해 의논한 상소에 수미(首尾) 2천여 마디의 말이 명백하고 간절하였습니다. 거기에 수황 성제(壽 皇聖帝)께서 승하하시니 온 천하가 슬퍼하고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좋은 땅을 얻어서 장사지내어 후 235) 건릉(健陵) : 정조(正祖)의 능 236) 주 문공(朱文公) : 문공은 송대(宋代)의 학자인 주희(朱喜)의 시호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21

322 손에게 좋은 한 계책을 전해 주어서 영구히 다함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고, 또 장사라는 말은 간직한다는 뜻인데 자손으로서 선조의 유체(遺體)를 간직할 적에는 반드시 신중(愼重)과 성경(誠敬)의 마음을 다하여 편안하고 견고하여 오래 가게끔 함으로써 그 형체가 온전하고 신령이 편안하게 합니다. 그러면 그 자 손이 번성하여 제사가 끊기지 않는데 이는 자연적인 이치인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며 또 옛날 사람들은 장사 지낼 적에 반드시 땅을 고른 다음 점을 쳐서 결정하였는데, 길하지 않을 경우 다시 골라 재차 점을 쳤습니 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점치는 법이 폐지되기는 하였으나 땅을 고르는 설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라고 하 였고, 또 혹시 땅을 정밀하게 고르지 못하여 땅이 좋지 못할 경우 반드시 샘물이나 땅강아지나 개미나 땅바 람 등이 그 안을 해치게 되어, 죽은 이의 형체와 정신을 불안하게 하고 자손들도 사망하여 후손이 끊어지는 근심이 있으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라고 하였고, 또 많이 파고 뚫은 곳에는 지기(地氣)가 이미 새어버렸 기 때문에 비록 길지(吉地)라 하더라도 온전한 기운이 없고, 선조의 묘지 곁에 자주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 놀라게 해도 재앙을 초래합니다. 라고 하였으며, 또 땅을 고를 때 반드시 그 주세(主勢)의 강하고 약함과 풍 기(風氣)의 모이고 흩어짐과 수토(水土)의 얕고 깊음과 혈도(穴道)의 바르고 치우침과 역량(力量)의 온전하고 온전하지 않음을 논해야만 그 땅의 좋고 나쁨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영부릉에 관해 논한 상소의 요지와 격언으로서, 만세에 어버이를 장사지내는 자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신은 주 문공 의 말에 대해 마음을 조용히 갖고 묵묵히 징험해 보니, 건릉(健陵)의 자리가 대단히 근심스럽고 두려워서 천 만년의 계획이 될 수 없는 단서가 매우 많았습니다. 산기슭이 약하여 웅장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없으니 주세 의 강약은 논할 것조차도 없고, 묘역이 높은 것은 오로지 보충해 쌓은 것이므로 질고 습하여 사철 내내 마르 지 않으니 수토의 깊고 얕음은 논할 것조차도 없고, 가로로 떨어진 줄기가 도움이 없이 고단하게 내려가 오 른쪽은 닿아서 높고 왼쪽은 기울어져서 푹 꺼졌으니 혈도의 바르고 치우침은 논할 것 조차도 없고, 좌청룡 (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가 갖추어지지 않고 안산(案山)이 참되지 않는가 하면, 독성(禿城)이 높이 솟아서 바위가 쫑긋쫑긋 서 있고 넓은 들판이 바로 연하고 큰 시내가 바로 흘러 달아나니 역량의 온전하고 온전하 지 않는 것은 논할 것조차도 없으니, 능의 잔디가 항상 무너져 줄어드는 것과 습한 곳에서 벌레가 생기어 서 식하는 것은 다만 미세한 근심입니다. 밖으로 나타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이와 같다면, 안에 숨겨져 볼 수 없는 것은 또한 어떻게 반드시 평안하고 반드시 길하여 만에 하나라도 근심이 없으리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 까? 이로 말미암아 말하면, 주 문공이 이른바 정밀하게 고르지 못하여 땅이 좋지 못하면 반드시 샘물이나 땅강아지나 개미나 땅바람 등이 있다. 는 것으로서, 오래도록 편안하고 견고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제사가 끊 어지지 않는다는 이치가 아니니, 두렵고 근심스러워서 마음이 섬뜩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신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대개 능을 봉한 이후로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잊지 못하는 숨은 근심으로 <그 근심을> 품지 아니한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풍수가(風水家)가 떠들어대는 말과 민간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는 더욱 이루 다 말할 수 없어서,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는 온 나라 사람들의 동감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감 히 앞서 대뜸 진달하지 못하였던 것은, 진실로 이 일이 지극히 공경하고 지극히 삼가야 하며 더할 수 없이 중대한 일이어서 잠깐 사이에 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성상께서 독단적으로 그 즉시 거행하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픔을 머금고 원통함을 품었으나 굳게 참고 입을 닫은 지 20여 년이 되 어갑니다. 이제 불행하게도 갑자기 큰 일은 당하였는데, 이때에 다시금 말하지 않을 경우 다시 어느 날을 기 다리겠습니까? 더구나 신이 은밀히 방외(方外)에 술수에 통한 자의 말을 들어 보니, 본릉은 금년 연운(年運) 과 맞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 말대로라면 합장은 애초에 논할 바가 아닙니다. 비록 이와 같지 않더 라도 위에서 진달한 것처럼 본릉의 자리가 좋지 않으니, 결코 다시 그럭저럭 넘기어 후손에게 편안함을 전하 면서 영구히 다함이 없게 하는 도리를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신이 또 명백히 진달할 것이 있는 데, 바로 본릉의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한 까닭입니다. 세상에 모르는 사람은 혹시 이는 선대왕께서 정하신 땅 이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유년237)에 원침(園寢)238)을 옮긴 뒤에도 성상께 서 후일을 생각하여 원침에 참배하실 때마다 대뜸 산을 순행하셨는데, 예를 들면 향교의 옛터와 용주사(龍珠 寺) 뒤의 산기슭이 그곳입니다. 향교 터는 성상께서 매양 촉박하고 좁아서 맞지 않는다고 한탄하셨고 용주사 237) 기유년 : 1789 정조 13년. 238) 원침(園寢) : 사도 세자의 능묘 32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23 뒤의 산기슭은 여러 논의가 모두 기울고 드러나서 안된다고 하였으므로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경신년239) 봄 거둥하실 때에 비로소 지금의 자리를 살펴보셨는데, 이는 수원부(水原府)에 사는 어떤 풍수가가 말한 것 으로서, 이른바 옛 군기고(軍器庫)의 터입니다. 그때 심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서 열 자 너머에 무엇이 있 는지 분변할 수 없었고 나무가 우거지고 촘촘한 안에서 돌아다닐 수 없었으므로, 그루를 조금 베어낸 뒤에 겨우 발을 옮겨서 잠깐 살펴보셨습니다. 그 사람을 돌아보고 하교하시기를, 사방이 잘 보이게 하려면 많은 나무를 베어야 할 것이니, 우선 푯말을 세워 놓고 다시 살펴보자. 고 하셨는데, 신이 이날 모시고 일의 자초 지종을 보았고 직접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뒤로부터 다시 왕림하지 못하시고 마침내 상설(象設)을 갑자기 설치하고 말았으니, 아! 슬픕니다. 만약 구애없이 다니고 앉을 수 있고 마음대로 바라보실 수 있었더라면, 항 상 말씀과 행동을 신중히 하신 선왕께서 한두 번만 살피지 않고 반드시 해를 지내고 달을 지내면서 정중히 선택하였지, 어찌 두어 걸음의 땅에 서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결정하시었겠습니까? 그런데 승하하신 초기에 간사한 사람이 마음대로 하여 갑자기 유명(遺命)이라고 하면서 능 자리로 정하였던 것이니, 어찌 참으로 선 왕께서 정하진 것이며 선왕의 유명이겠습니까? 이것이 특히 신이 매우 한스러워서 변명하려고 하였던 것입 니다. 설사 참으로 선왕의 유명이라고 하더라도 길지(吉地)가 아닐 경우 마땅히 계획을 바꾸어야 할 것인데, 더구나 땅이 유감스러운 점이 많고 또 절대로 선왕의 뜻이 아닌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의논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아! 이곳에다 합장할 수 없다면, 새로이 좋은 자리를 고르기에 하루가 시급합니다. 그 런데 의논하는 자는 대부분 동릉(東陵) 국내(局內)에 아직 남은 자리가 있다. 고 하나, 10리의 주변에 일곱 능침이 서로 뒤섞여 있고, 또 주 문공이 파서 뚫은 곳이 많으면 지기가 많이 새어 나가고, 선조의 묘역 곁에 서 놀라게 하면 재앙을 초래한다. 고 하였으니, 진실로 경솔히 의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밖의 푯말을 세워 놓은 땅에도 옛날 명사(名師)들이 잡아 놓은 곳이 많으니, 지금 만약 그 가운데서 정밀하게 고른다면 반드시 격(格)에 합치하는 편안하고 좋은 자리로 건릉보다 몇백 배나 나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이장 할 곳을 정하고 합장하는 예를 행하여 우리 선대왕의 형체와 신령이 수풍(水風)ㆍ사력(沙礫)ㆍ충의(蟲蟻)의 근심을 영구히 받지 않고 우리 왕대비께서 합장의 소원을 이루게 한다면 일거에 둘 다 완벽할 것이니, 이보 다 무엇이 더 아름답겠습니까? 좋은 경사가 자손에 미치고 복조가 길이 전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런 자손이 번창하여 천지와 더불어 무궁할 것이니, 종묘에 만년 동안 제사지내는 계책이 이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 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이 글을 조정에 내려서 대신과 경재로 하여금 같이 의논한 다음 살펴서 처리하 게 하소서. 아! 신이 평일에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어찌 앞에 나서서 입을 놀리며 망령되게 국가의 대 사를 논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위로는 세상에 드문 선왕의 은혜를 생각하고 아래로는 주 문공의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생각하다 보니, 충정(衷情)이 격발하여 눈물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만약 신의 말이 오늘날 시 행될 경우, 비록 내일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대행 대비께서 평소 이 일을 매우 근심하여 여러번 소자(小子)에게 하교하신 것이었 다. 이제 경의 상소를 보니 더욱 목이 찌져지고 답답하고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다. 즉시 대신과 경재로 하 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28장 A면 영인본 48책 173면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고종 24권, 24년(1887 정해 / 청 광서(光緖) 13년) 9월 5일(기미) 2번째 기사 예조에서 영릉 등의 보수에 대해 아뢰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방금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관원의 보고를 보니, 본 능의 능구역 안에 잔디가 벗겨진 나간 곳이 많습니 다. 라고 하였습니다. 보수하는 일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 만큼 전례대로 지방관 여주 목사(驪州牧使)로 하여 금 자세하게 봉심(奉審)하고서 장계로 보고하게 한 뒤에 품처(稟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 239) 경신년 : 1800 정조 24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23

324 하였다. 원본 28책 24권 34장 B면 영인본 2책 27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토목(土木) 고종 32권, 31년(1894 갑오 / 청 광서(光緖) 20년) 8월 13일(정사) 3번째 기사 종백부에서 수릉의 잔디를 고쳐 입힐 날짜와 시간을 아뢰다 종백부(宗伯府)에서 아뢰기를, 수릉(綏陵)의 잔디를 고쳐 입힐 날짜와 시간을 이달 8월 16일 손시(巽時)로 추택(推擇)하여 계하(啓下)받았습 니다. 그 전에는 능에 잔디를 고쳐 입힐 때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거행한 규례가 있었으며, 또 특교(特敎)에 의하여 의정부(議政府) 이하의 관리들이 가서 감독한 전례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관제가 고쳐졌으니 신의 부 (府)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원임 대신(原任大臣)과 소종백(小宗伯)이 하직인사를 그만두고 떠나라. 하였다. 원본 36책 32권 36장 B면 영인본 2책 515면 32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25 2. 각 능별 수목 1) 서오릉 수목 (1) 경릉지(敬陵誌)의 나무 심기 떡갈나무는 음력 10월에 심고 심을 때에는 쟁기를 이용하여 땅을 파고 단단히 심어야 한다. 매년 10월 얼어붙기 전과 정월 해동하는 초기에 반드시 역군으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어떤 사람들을 떡갈나 무 씨앗을 뿌리게 하고(떡갈나무 씨앗 뿌리기는 마땅히 음력 10월에 한다.),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은 어린 소 나무를 옮겨 심게 한다.(옮겨 심을 때는 곡 가문 시절이라, 가물고 한 곳에서는 어린 나무가 살아남기 심 히 어렵다. 이름 심고 고칠 때에 손으로 잡아당기고 하여 대부분이 살지 못한다. 반드시 가래와 같은 도구들 로 땅을 파고 나무를 꽂아 넣을 때에 마땅히 단단하고 깊에 하여 요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240) 경릉지 (敬陵誌) (2) 경릉지의 잡목 기르기 관련 이 기록은 동일한 내용으로 명릉지, 창릉지에도 있음 해충에 약한 소나무와 잣나무 외에도 잡목을 기르되 송백으로 인해 잡목의 성장이 방해받지 않고 무성해지도록 유념할 것 예조판서 민진후가 아뢰었다. 능침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벌레 때문에 손상을 입은 후로 수호의 방법으로 잡 목을 길렀습니다만 능관이 보기에 잡목이 소나무나 잣나무보다 작고 가벼워 잡목이 무성할 수가 없습니다. 각별하게 신칙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수목이 무성하고 빽빽함이 광릉만한 곳이 없다. 일찍이 능행할 때에 보니 그 산에 가득하고 울창한 것들이 모두 잡목들이었다. 능침을 수호하는 방법에 송백이니 잡목이니 할 것이 없다. 오로지 무성한 것을 위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각별하게 잡목을 지키고 기르는 일에 유념할 것을 당부한다. 241) 경릉지(敬 陵誌) (3) 명릉지 기록 노송나무와 잣나무를 심고 계속하여 적간하여 살핌 240) 敬陵誌 每十月 未凍之前 及正月解凍之初 必使 役軍合番 或播槲子(播槲宜在十月) 或移種稚松(移種 則必旱 旱 處 得生甚難 栽之校時 以手抽之 則多不生 必以鍫鍤之屬鑿之 揷時宜堅深不搖動) 241) 敬陵誌 禮曹判書 閔鎭厚 所啓 陵寢松柏, 蟲損之後, 守護之道, 惟在培養雜木, 而陵官視雜木差輕於松柏, 故雜木不能 茂盛. 各別申飭何如 上曰 樹木之茂密 無如光陵 曾於陵幸時 見其滿山叢鬱者 皆雜木也 守護陵寢之道 無論松柏與雜木 惟以茂盛爲主.自今各別護養雜木事 申飭.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25

326 노송나무 천 여 그루은 3월 1일 중에 지사 김선필로 하여금 나아가 간검하게 하고 심도록 하였으며, 잣나무 960주는 곡장의 뒤와 정자각 좌우 앞줄에 심고, 노송나무 2950주는 잣나무의 뒷줄에 심게 하고 또한 평지에 흩어 심게 하였습니다. 5월 1일 동상별감 서기인이 전지를 받들고 나아가 그 살아있는 것을 적간하니 곧 원래의 심은 수에서 잣나 무 살아있는 것은 240주, 노송나무 살아있는 것은 820주입니다. 8월 16일 서기인이 또 전교를 받잡고 나아 가 다시 수를 헤아린 것은 잣나무입니다.242) 명릉지(明陵誌) (4) 창릉지 기록사초 사초의 씨앗을 좋은 것으로 잘 보관하였다가 망가진 곳에 뿌림 을유년 우의정 이유가 아뢰기를 사초의 종자를 골라서 잘 보관하고 있다가 능상의 사초가 마르고 손상한 곳 과 드물어진 곳에 파종하여 싹이 트는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243) 창릉지(昌陵誌) (5) 익릉지 기록 식목 서무 정해진 식대로 봄과 가을에 상수리 씨앗, 어린 소나무를 심음. 한번 심고 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잘 살도록 도움 이미 봄 가을로 도토리나무 씨앗을 뿌리고 소나무를 심는 정해진 법식이 있습니다. 지금 신칙하신 것의 부지 런히 함과 태만함을 고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전교하셨는데 능관이 봉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누군들 감히 조금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씨 뿌리고 심은 나무의 수효가 대부분이 모두 뿌 리를 내리고 차츰 싹이 나온 후에는 거의 유명무실의 폐단이 없다고 하므로 가을철에 심는 것이 이미 다 끝 났다고 하지 말고 봄에 심은 것과 아울러 다시 잘 살피게 하고, 뿌리 내린 것은 하나하나 흙을 북돋아 주고 마르고 시든 것은 낱낱이 모구 고처 심어 실효가 있게끔 하고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다가오는 봄에 나무를 심는 일을 할 때에는 그 중 나무가 드문드문한 곳에 힘써 널리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합니 다.244) (6) 서오릉 관련 나무 심은 종전 기록 소나무 심는 것과 관련한 전례를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함. 단지 하급 관청에 보낸 문서에만 소나무를 심으라는 명이 있을 뿐임. 이광좌가 아뢰기를, 소나무를 심는 일은 전례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습니다. 근년 들어서는 명릉(明陵)은 익릉 (翼陵)ㆍ창릉(昌陵)ㆍ경릉(敬陵) 옆에 있고, 익릉 때에도 그러하여 휘릉(徽陵)ㆍ숭릉(崇陵)ㆍ혜릉(惠陵)이 모두 242) 明陵誌 檜木千餘株, 三月初一日中, 使知事金善弼, 出來看檢 栽植 栢木九百六十株 植於曲墻後 及丁字閣左右前行 檜木二千九百五十株植於栢木之後行 亦且散植於平地矣 五月初一日 東山別監 徐起仁 奉傳旨 出來摘奸牧數其生者 則 元數內栢木生者 二百四十株 檜木生者八百二十株 八月十六日 徐起仁又奉傳敎 出來更爲牧數 則栢木. 243) 昌陵誌 乙酉 因右議政 李濡所啓 莎草鍾子摘置 善爲藏置 陵上莎草枯損與稀踈處 播種 以爲萌生之地 肅宗 乙酉 8 月 244) 翼陵誌 旣有春秋播植之定式 今有考察勤慢之飭敎 敎是則在陵官奉行之道 孰敢不一念殫竭 而世論播植數爻之多少擧 皆着根 次第茁長然後 庶無有名無實之弊是如乎 勿謂秋植之已畢 竝擧春植更審察 着根者 一一培土 枯萎者 這這改植 俾有實效 毋至疎忽爲㫆 來春植役 隨其稀疏 務役廣播多植 32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27 오릉(五陵) 안에 있기 때문에 모두 소나무를 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릉(長陵) 및 영릉(寧陵)을 천장 (遷葬)할 때에는 분명 있었을 것이므로 두루 상고해 보았으나 역시 없었습니다. 장릉은 새로 정하여 써서 소 나무를 심는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식송 차사원(植松差使員)을 애초에 산릉도 감에서 청하였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다시 도감에 묻게 하니, 전례가 없으며 이렇게 거행하는 것이 좋을 듯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명릉 밖 안산(案山)의 소나무를 기르는 일은 당시 총호사가 청대(請對) 하여 진달해서 지방관이 하도록 분부하였으나, 탑전에서는 애초에 식송(植松) 두 자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고, 단지 관문(關文)에만 소나무를 널리 심으라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예에 의하여 양주(楊州)의 관 리에게 분부하여 소나무를 심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리 하라. 하였다. 승정원일기(1) 영조 즉위년 갑진(1724, 옹정2) (7) 비변사가 아뢰기를, 서오릉 화소 안팎의 나무가 드물어짐. 파종하고 나무를 심는 일을 능관이 잘 못한다 하여 곧바로 군문으로 옮길 수는 없음. 방금 경기 감사 서용보(徐龍輔)의 장계를 보니, 고양 군수(高陽郡守) 왕도상(王道常)과 양주 목사(楊州牧使) 한광근(韓光近)의 첩정을 낱낱이 열거하였는데, 서오릉(西五陵) 화소 안팎에 나무가 성글어진 상황에 대해 자 세히 말하였습니다. 이어 명릉 화소의 경계가 정해진 뒤로 능관의 보고로 인해 백성을 모집하여 화소의 동 쪽에 살게 하고 연호 잡역(煙戶雜役)을 줄여 준 것은 오로지 금양(禁養)을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또 병오년 (1726, 영조2)에 비국이 결정하여, 연서천(延曙川)을 경계로 표석(標石)을 줄지어 세워 비록 군문의 송패(松牌) 나 한성부의 금리(禁吏)라도 난입을 허락하지 않고, 명릉과 익릉의 두 능관으로 하여금 소나무의 금양을 전 적으로 맡아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즉 역계(驛契), 사계(沙契), 토정리(土井里), 갈현리(葛峴里)로 불리는 네 개 동(洞)입니다. 네 개의 동네 안에서는 능의 하례의 힘이 미쳐 도움을 받지만 밖으로는 금패(禁牌)가 단속하는 우려가 없어, 금지하여 보호하는 곳이 마침내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재직한 능관에 대해서는 오래전 에 있었던 일이므로 일일이 소급하여 다스릴 수 없어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종하고 나무를 심어 금하여 보호하는 방도로 볼 때 지금 감히 군문 소속으로 돌려주는 일을 갑자기 의논 할 수는 없습니다. 금표 이내에는 봄이 되기를 기다려 널리 파종하여 나무를 심게 하며 이어 두 능관으로 하 여금 유념하여 금양하게 하고 혹 몰래 스스로 나무를 베고서 숨긴 채 보고하지 않으면 그 그루 수를 세어서 법에 비추어 감처하여 다스려 한결같이 화소 내에서 나무를 베었을 때에 적용하는 예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 다. 모두 묘당으로 하여금 상에게 여쭈어 처리하게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국역일성록 정조18년 갑인(1794,건륭 59) > 11월21일(을사) > 2) 온릉 수목 수목이 울창하여 묘의 햇빛을 가려서는 안 됨 온릉(溫陵)의 국내(局內)에 있는 성씨(成氏)의 여러 묘의 나무를 적당히 베어버리라고 명하였다. 이는 경기 감 사 서정수(徐鼎修)의 아룀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전교하기를, 능침(陵寢)의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사릉(思陵)에 이러한 조처가 있었고 본 릉(本陵)에도 또한 그렇게 한 것은 성후(聖后)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삼고 우러러 받드는 방도를 본받으려는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27

328 것이다. 울창하게 덮힌 수목은 베어내고 너무 가까이 있는 수목은 제거하여 여러 묘로 하여금 햇빛을 받게 하면 위에서 오르내리는 밝은 성후(聖后)의 영혼이 어찌 향기로운 제사에 즐거이 강림하지 않겠는가. 이러므 로 사체(事體)와 신리(神理)가 서로 경중(輕重)이 있어 감히 상례(常例)만을 고수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뜻으 로 능관(陵官)과 주가(主家)에 분부하라. 245) 조선왕조실록 정조 16년 임자(1792,건륭 57) 3월26일 (을미) 3) 서삼릉 수목 나무 심는 시기 : 음력 4월 10일 무렵은 적당하지 않으므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심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으나 초가을 에 나무를 심기로 결졍함. 이에 김대근이 아뢰기를, 새 능[예릉(睿陵)]은 두 능[희릉(禧陵)과 효릉(孝陵)] 사이에 위치하여 수목이 상당 히 무성합니다. 그러나 터를 파헤치고 길을 닦느라 자연히 손상이 있었고, 또 산릉을 꾸미는 인부 수천 명과 여사군(轝士軍)들이 내왕하는 길에 여린 가지들이 자연 서로 짓이겨서 상하는 것은 형세상 부득이한 것이었 습니다. 지금[음력 4월 10일경]은 절후가 식목할 시기가 아니니,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에 경기 감영으로 하여 금 각별히 보충하여 심게 하되, 물자는 따로 구획해야 되겠습니다. 이는 결소(結所)에 봉납하지 않은 돈 5백 40냥 7전에다 부족분 4백 59냥 3전을 도감에서 충급하여 1천 냥이 차도록 하여 책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좋 을 듯합니다. 이에 감히 진달합니다. 하니, 대왕대비전이 아뢴 대로 하라고 하였다. 거조(擧條)를 냄 이어서 하교하기를, 초가을에 나무를 심 는 것이 좋겠다. 246)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1년 갑자(1864, 동치3) 4월 10일(경진) 4) 파주삼릉(순릉) 수목 왕릉에 적당한 수종에 관한 논의 ① 상록수가 사철 푸르기 때문에 좋지만 해충에 약하다. ② 잡목활엽수는 봄과 여름에는 무성하지만 겨울철에는 나무가 없는 것과 같다. 순릉(順陵)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다. 심단이 아뢰기를, 오릉 안에 수목이 무성할 때에는 행인들이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수목이 점점 줄어들어 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다 보입니다. 새 능은 오직 나무가 잘 자라도록 힘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245) 朝鮮王朝實錄 乙未/命溫陵局內成姓諸家樹木, 量宜除代 因京畿監司徐鼎修啓言 敎以, 陵寢事體之至重, 非不知 之, 思陵而有是擧, 本陵亦然者, 欲以聖后之心爲心, 思効仰體之方也 蔭翳者開剔, 逼擁者除拔, 使衆塚獲照天日之光, 則於昭聖后, 陟降在上, 豈不悅豫臨格於芬苾焄蒿之際乎? 此所以事體與神理之互有輕重, 而不敢膠守常例也 以此意, 分付陵官及主家 246) 大根曰, 新陵在於兩陵之間, 樹木未嘗不茂密, 而基址之疎剔, 御路之開廣, 自然損傷, 匠募數千及轝士軍來往之路, 稚幹 柔枝, 自相蹂踐, 事勢不得不然, 而見今節候, 非植木時, 待秋末冬初, 令畿營各別補植, 而物財自當區劃, 結所未捧錢爲 五百四十兩七戔, 不足錢四百五十九兩三戔, 自都監充給, 以準一千兩, 劃付似好, 故敢此仰達矣 大王大妃殿曰, 依爲之. 仍敎曰, 待冬初植木爲好矣 32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29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목을 앞으로 어떻게 조성하려고 하는가?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는 겨울철에도 잎이 지지 않지만 그 외 에 다른 나무는 봄철과 여름철에는 비록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무성하지만 가을철과 겨울철에 잎이 진 뒤에는 나무가 없는 것과 진배없다. 새 능과 같은 곳에는 사계절 잎이 떨어지지 않는 나무를 길러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광좌가 아뢰기를, 사계절 잎이 지지 않는 나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근심거리가 있으니, 한번 해충의 재해 를 겪고 나면 바로 한꺼번에 다 말라 죽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오릉 안에 모두 잡목(雜木)을 길러서 숭릉과 휘릉은 다른 능보다 나은 듯합니다. 그 밖의 다른 능으로 순릉(順陵)은 나무가 자란 것이 다른 능만 못하고, 헌릉(獻陵)은 전나무가 하늘까지 빽빽하게 치솟아 해를 가리고 간간이 잣나무가 있습니다. 신이 본 것을 말씀드리자면, 평지에는 잡목이 잇달아 무성하게 뻗쳐 있는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오릉의 국내는 자주 사람을 보내어 적간(摘奸)하게 한다면 수목이 반드시 더욱 무성해질 것입니다. 국역승정원일기1 영조 즉위년 갑진(1724, 옹정2) 9월 25일(을축) 5) 파주장릉 수목 효종이 장릉(張陵)에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고, 영조도 새 능침에 손수 세 그루의 소나무를 심음 <장릉(長陵)에 수목(樹木)의 씨를 뿌리고 수목을 심도록 하는 하교 > 능침(陵寢)의 국내(局內)에 있는 수목을 보호하는 방도로 말하자면 어느 능인들 엄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는, 본릉이 더욱 각별한 것은 영릉(寧陵 효종(孝宗)을 말함)께서 손수 심으신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옛 능침 에 있는데 선조(先朝) 신해년에 또 성조(聖朝)의 자취를 따라 새 능침에 손수 세 그루의 소나무를 심으셨기 때 문이다. 내가 기유년에 처음으로 이 능침에 참배하였을 때 직접 세 그루의 소나무를 살펴보고는 동(銅)으로 둘러 표시하였으니, 본릉의 나무 한 그루와 가지 하나를 공경히 보전하고 아끼는 것이 어떠해야 하겠는가.247) 나무가 많이 죽었으므로 가을과 겨울에 상수리를 파종하고 소나무를 심고 봄이 되었을 때에 정성을 기울이고 가을에 정성을 다하라. 간심(看審)한 계사(啓辭)를 보건대 말라 죽은 수효가 많은 정도만이 아니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보식(補植) 하는 데 전념함으로써 수목이 울창해지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능군(陵軍) 수십 명에게 어떻게 그 일을 책임 지울 수 있겠는가. 총융사(摠戎使) 신대현(申大顯)이 이 일을 관장하되, 물러가서 지방관, 능관(陵官), 도백(道伯)과 상의하여 이번 가을과 겨울에 상수리를 파종하고 소나무를 심도록 하라. 그 런 다음 내년 봄을 기다려서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가을에도 이렇게 한다면 몇 년이 되지 않아서 파종한 상 수리는 싹이 나오고 심은 소나무도 쑥쑥 자라 다시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니, 그렇게 큰 힘 이 들지는 않을 듯하다. 파종하고 심을 수효는 묘당에 의논해서 편리한 대로 조정하라.248) 247) 弘齋全書卷三十六 敎七 <長陵樹木播植敎 > 陵寢局內樹木拱護之方 何陵不嚴重 而本陵尤爲自別 以其有寧陵朝 手植松梓之在於舊陵 而先朝辛亥 又遵聖蹟 手植三松於新寢 予於己酉初謁是陵也 親審三松 圍銅以封識之 本陵 一樹一柯之恭敬保惜 當如何 248) 弘齋全書卷三十六 敎七 觀其看審之啓 枯損數爻 不可但以夥然言 爲今之計 莫如專意補植 俾有蔚然之效 而 以陵軍數十名 何以責役乎 摠帥申大顯 管此役 退與地方官陵官道伯相議 自今秋冬 播橡實 植松樹 待開春 益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29

330 홍재전서권36 교서 7 領議政 洪致中 등이 입시하여 本陵 및 恭順의 守護軍으로 하여 長陵에 나무를 심게 하는 문제를 논의함 이번 3월 3일 장릉(長陵)을 봉심한 대신과 당상이 머물며 기다리게 하였다가 인견하여 입시하였을 때에 영의 정 홍치중이 아뢰기를 장릉에 새로 심은 회나무와 잦나무는 미처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추운 겨울을 당하여 절반이 시 들거나 손상되었고, 남아있는 것도 앞으로 비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산다는 것은 기약 할 수 없으며, 명당(明 堂) 근처의 땅버들[浦柳] 등 잡목(雜木)은 제때에 가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못을 파는 역사 또한 시 작하는 것이 적합한데 아무리 이 일이 능침(陵寢)에 관계된다 하더라도 이 때에 연군(烟軍)을 조발(調發)하는 것은 매우 중대하고 어려우며, 역사 또한 번잡하고 많은데 이르지는 않아야 하니 단지 본릉(本陵) 및 공순(恭 順) 두 능의 수호군(守護軍)을 시켜 부역하게 하여도 완전히 마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감히 진달합니다. 249) 국역비변사등록 영조 8년 1732년 03월05일(음) 조(正祖) 13년(1789) 2월에 임금이 영릉(永陵)에 거둥하여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인하여 장릉(長陵)에 나아가서 하교(下敎)하기를, "선조(先祖)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 나무[梓]도 오히려 공경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수택(手澤 손자취)이 있는 곳이겠는가? 선조(先朝 영조) 신해년(辛亥年 1731년 영조 7년)에 이 능을 옮겨 모시고 효묘(孝廟)의 고사(故 事)에 따라 손수 소나무와 삼(杉)나무를 심어서 지금 울창한데, 만약 표지(表識)가 없으면 어떻게 선왕(先王) 의 손수 심은 것임을 알겠는가?"하고, 백동(白銅)으로 둘레를 하고, 수식(手植)이란 두 자(字)를 새겼다. 증 보문헌비고 제71권 <산릉> 6) 소령원 사초 가뭄으로 인하여 사초가 망가지지 않도록 평소 물을 많이 주어 보호하라. 사초가 망가지면 고치기 위해 민폐를 초래하게 된다. 원상의 사초는 오래도록 가물게 되면 반드시 말라 손상을 입는 폐단이 있게 된다. 원사園司는 필수적으로 매 일매일 봉심하고 물통에서 물을 대어 사초가 충분히 젖어들게 하되 비가 내리는 날에 한하여 그칠 일이다. (만약에 이처럼 사초를 위하지 않는다면 말라 손상을 입게 되어 해조에 보고하게 되면 수리하고 고치는 데에 물력이 들이 민폐가 되니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250) 加著意 秋亦如之 則不出數年 將見播者出土 植亦茁然 復舊觀之美 似不至於甚用力 擧行播植之數 議廟堂 從 便拮据 弘齋全書卷三十六 敎七 249) 今三月初三日長陵奉審大臣及堂上, 留待引 見入侍時, 領議政洪所啓, 長陵新植檜柏, 未及着根, 猝當凍寒, 太半枯損, 餘 存者前頭雖得雨, 生活不可期, 而明堂近處浦柳等雜木, 不可不及時 長養, 且鑿池之役, 亦宜爲始, 而雖是事關陵寢, 此 時調發煙軍, 殊甚重難, 事役亦不至浩多, 只使本 陵及恭ㆍ順兩陵守護軍赴役, 足以完畢, 故敢達矣, 250) 昭寧園誌, 昭寧園官員奉職式例 : 園上莎草 當久旱 則必有焦損之弊 園司必須日日奉審 灌水於水雨筩 霑洽莎草 限天雨乃止事(若不此之爲莎草 枯損報該曹 修改則物力民弊 可勝言哉) 33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31 소녕원지(昭寧園誌), 소녕원관원봉직식례(昭寧園官員奉職式例) 7) 태릉(泰陵) 강릉(康陵)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숙종 15년 1689년 07월04일(음) 영의정(領議政) 권대운(權大運) 등이 인견입시(引見入侍)하여 능침(陵寢)의 枯死松(고사송)을 작거(斫去)하는 문제에 대해 논 의함 이번 7월 초3일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여 입시하였을 때에 영의정 권대운이 아뢰기를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에 마른 소나무가 더욱 많아 어린 소나무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냥 두는 것은 무 익하겠으며 보기에도 참담하였습니다." 예조판서 민종도(閔宗道)가 아뢰기를 "신이 요전에 목릉(穆陵)을 살피고 오던 길에 직접 두 능[강릉(康陵)과 태릉(泰陵)]을 보 았는데, 소나무가 말라 죽은 참담함은 참으로 대신이 진달한 바와 같았습니다. 그전에는 송충이가 나무에 가득하여 갉아먹 으면 곧 말라죽으므로 벌채하려고 하나 두루 다 벌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올봄부터는 송충이가 갑자기 없어졌으니 지금 벌 레 먹은 소나무를 베어버린다면 어린 소나무들이 무성해질 것입니다. 본조의 낭관을 보내어 본릉참봉(本陵參奉)과 함께 베 어 버리게 하소서. 두 능 이외의 다른 능에도 벌레 먹은 소나무가 많으니 마찬가지로 베어 버리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 다." 상이 이르기를 "강릉ㆍ태릉 뿐만 아니라 서로(西路)의 각 능이 역시 그렇다고 하니 예조의 낭관을 보내어 참봉과 함께 베어 버리게 하라. 今七月初三日, 大臣ㆍ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權所啓, 康泰陵尤多枯松, 有妨於稚松之長養, 置之無益, 所見亦慘然矣, 禮曹判書閔宗道曰, 臣於頃日, 奉審穆陵之路, 目見二陵松樹枯損之慘, 誠如大臣所陳, 在前則松蟲滿樹, 食輒枯死, 雖欲斫之有難遍斫, 自今春蟲災忽 然寢息, 今若斫去蟲蝕之松, 則稚松亦得茂盛, 發遣本曹郞官, 與本陵參奉, 眼同斫去, 二陵外他陵, 亦多蟲蝕之松, 一體斫伐似當 矣, 上曰, 非但康泰陵, 西路各陵亦然, 發遣禮曹郞官, 與陵官, 眼同斫去可也 비변사등록 철종 8년 11월 弊端을 조목조목 열거한 京畿暗行御史 洪鍾雲의 別單과 그에 대한 대책을 보고하는 備邊司의 啓( (음))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경기암행어사 홍종운(洪鍾雲)의 별단을 보면, 그 하나는, 태릉(泰陵)의 화소(火巢) 안에 논을 만든 곳을 도신 및 지방관에 게 엄중히 금단하도록 하고, 이어서 나무를 심도록 하는 일입니다. 출입을 금하는 곳을 개간한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는 모르지만, 일의 체모에 있어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도신에게 엄중히 신칙하여 능관(陵官)과 함께 평평하게 메우 고 나무를 심도록 하며, 각 능(陵)ㆍ원(園)ㆍ묘소도 일체 적간(摘奸)하고 엄중히 신칙하여 금단하라고 예조에 분부해야 하겠 습니다. 司啓曰, 卽見京畿暗行御史洪鍾雲別單, 則其一, 泰陵火巢內作畓處, 令道臣及地方官嚴加禁斷, 仍爲植木事也, 禁標內起墾, 未知創自何時, 而事體所在, 不可仍置, 嚴飭道臣, 眼同陵官, 使之堙平植木, 各陵園墓所一體摘奸嚴飭禁斷之意分付禮曹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1

332 8)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선정릉지(宣靖陵誌) 禁養 (1) 매년 2월 15일과 10월 15일 입직관은 능군과 합번하고 소나무와 잡목을 국내의 나무가 드문 곳에 심는다. 관원이 몸소 일을 감독하여 힘써 빽빽이 심게 한 후 일을 마치고 나면 나무 수의 많고 적음, 나무를 심은 곳, 심기를 시작한 날짜와 심기를 마친 날짜 등 일의 상세한 전말을 예조에 보고한다.(아울러 유수영에도 보고함.) o 每年, 二月十五日, 十月十五日, 入直官, 合番陵軍, 植松木雜木於局內樹木稀少處. 官員親自董役, 務令密植, 而畢役後, 以株數 多寡, 植木處所, 某日始役, 某日畢役, 形止論報禮曹. (竝報留營) 선정릉지(宣靖陵誌) 禁養 (2) 매년 가을마다 능군에 명령하여 상수리 씨앗을 주워 모아 관청에 내도록 한다.(한 사람마다 한 말씩을 거두게 함.) 가을철 나무를 심을 때에 적당히 헤아려 상수리 씨앗을 뿌리고, 그 나머지는 양지바른 곳에 파묻어 두고 다음해 봄 나무를 심을 때 를 기다렸다가 씨앗을 뿌리고 나서 상수리 씨앗의 말 수를 예조와 광주에 보고한다. o 每年秋, 知委陵軍, 拾聚橡實, 俾納于官(每一名 收一斗). 秋植木時, 量宜播種, 餘則埋置向陽處, 待明年春植木時, 以爲播種, 而斗數, 竝報禮曹廣州. 선정릉지(宣靖陵誌) 禁養 (3) 가을철에 나무를 심은 후에는 매번 당년 해동할 때에 뿌리를 내린 것이 견고하지 못하여 쉽사리 말라 죽을까 염려되므로 봄철 나무를 심을 때에 아울러 함께 단단히 밟아 준다. o 秋, 植木後, 每當年解冬時,所着之根, 慮不堅固,易致枯死, 春, 植木時, 幷令堅踏. 승정원일기 영조 3년 정미(1727, 옹정5) 3월 17일(갑진) 흐림 홍호인이 예조의 뜻으로 아뢰기를, 방금 선릉 참봉(宣陵參奉)의 보고를 보니 본 능의 대왕릉 능상(陵上) 계축(癸丑) 방향 곡장(曲墻) 바깥의 20보쯤에 있는 오래된 잣나무 1그루와 홍살문 안 오른쪽에 있는 회나무 1그루와 금천교(禁川橋) 남쪽에 있는 회나무 1그루가 이달 16일 해 가 질 무렵 큰 바람이 불 때 꺾여 부러졌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능상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나무가 꺾여 부러지 는 우환이 생겼으니, 위안하는 조처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위안제(慰安祭)를 택일하지 말고 오는 19일에 설행하도록 통지하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洪好人, 以禮曹意啓曰, 卽接宣陵參奉所報, 則本陵大王陵上, 癸丑曲墻外二十步許, 老柏子一株, 紅箭門內右邊檜木一株, 禁川橋南邊檜木一株, 今月十六 日黃昏大風時, 摧折云 陵上至近之地, 有此樹木摧折之患, 不可無慰安之擧, 慰安祭, 不卜日來十九日設行事, 知委, 何如? 傳曰, 允 33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33 3. 조선 왕릉(王陵)의 식목(植木) 파종(播種) 관련 기록 1) 소나무 재식 기록 1724년 무렵까지는 왕릉에 소나무를 심는 법식이나 전례가 존재하지 않음 이광좌가 아뢰기를, 소나무를 심는 일은 전례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습니다. 근년 들어서는 명릉(明陵)은 익릉(翼陵)ㆍ창릉(昌陵)ㆍ경릉(敬陵) 옆에 있고, 익릉 때에도 그러하여 휘릉(徽陵) ㆍ숭릉(崇陵)ㆍ혜릉(惠陵)이 모두 오릉(五陵) 안에 있기 때문에 모두 소나무를 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릉(長陵) 및 영릉(寧陵)을 천장(遷葬)할 때에는 분명 있었을 것이므로 두루 상고해 보았으나 역시 없었습니 다. 장릉은 새로 정하여 써서 소나무를 심는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식송 차사원(植松差使員)을 애초에 산릉도감에서 청하였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다시 도감에 묻게 하니, 전례 가 없으며 이렇게 거행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51) 光佐曰, 植松事, 使求前例, 而終未得之矣, 蓋近年以來, 明陵在翼陵ㆍ昌陵ㆍ敬陵傍, 翼陵時亦然, 徽陵ㆍ崇陵ㆍ 惠陵, 俱在於五陵之內, 故竝無植松事, 而長陵及寧陵遷葬時, 必有之故, 遍考而亦無之, 長陵則新卜而用之, 似當 有植松事, 而未知何故無之矣 植松差使員, 初自山陵都監請之, 故使之更問都監, 則以爲非有前例, 如是擧行似好, 故爲之云, 2) 나무 재식 주관 1796년 정조 20년에 나무 심고 씨 뿌리는 일을 누가 주관할 것인가를 정함 이로 인하여 법식으로 정할 것이 있다.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것은 해마다 해야 하는 일인데, 이처럼 거 행하는 데 주관하는 곳이 없으니, 정해진 예대로 당상관과 내영의 제조가 구관(句管)하여 거행하도록 또한 분부하라. 하였다.252) 因此而有定式者 播植係是年年爲之之事 而似此擧行 主管無所 定例 堂上與內營提擧 句管擧行事亦爲分付. 251)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 ( ) 252) [일성록] 정조20년 ( )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3

334 3) 직접 심은 나무 종류 소나무(松), 밤나무(栗), 버드나무(柳), 잣나무(栢), 노송나무(檜) 삼나무(杉), 개오동나무(檟), 가래나무(楸), 잡목(雜木), (1) 소나무(松), 밤나무(栗), 버드나무(柳) 〇 별단(別單)은 다음과 같다. 현륭원 영은 수호군(守護軍) 50명과 안산(案山)의 산지기 70명을 거느리고 2월 11일부터 역을 시작하여 30일 에 마쳤다. 소나무 6만 2882그루를 심었는데, 경계(經界)는 초봉(草峯) 위의 좌우와 갈현(葛峴) 뒤부터 성황산(星皇山) 북 쪽 기슭의 윗부분과 가운데 부분, 남쪽 기슭의 아랫부분까지이다. 밤나무 2806그루는 재실(齋室) 동쪽 담장 뒤부터 곡촌(谷村)의 위와 아래까지 심었다. 버드나무 363그루는 성황산의 나무 심기를 시작한 곳과 마친 곳에 둘러 가며 심었다.253) 別單 園令率守護軍五十名 案山直七十名 自二月十一日 始役 三十日 畢役 植松木六萬二千八百八十二株 經界自草峯上左右葛峴後至星皇山北麓上端中端南麓下端 栗木二千八百六株 自齋室東墻後 至谷村上下 柳木三百六十三株 星皇山 植木初終境環植 (2) 잣나무(栢) 이번에 나무를 심을 때 관동의 잣나무 그루와 피백자(皮栢子)를 가져다 쓴 것이 많다. 즉시 선혜청으로 하여 금 감동한 장신(將臣)에게 물어서 공곡(公穀)으로 넉넉하게 값을 지급한 뒤에 후록(後錄)하여 장계로 보고하 게 하라고 공문을 보내 알리라. 하였다. 254) 敎曰 今番植木時 關東栢朶皮栢子 取用者 夥然卽令惠廳 問于監董將臣 以公穀 從優給價後 後錄 狀聞事行會 (3) 노송나무(檜) (장릉 章陵의) 주봉(主峯)에서부터 화소(火巢)의 안과 밖에까지도 모두 불에 탔지만 왼쪽에는 말라 죽은 소나 무가 3분의 2이고 오른쪽에는 3분의 2의 소나무가 말라 죽지 않았으며, 능 안의 좌우에 심어 놓은 회(檜)나 무와 잣나무는 손상된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255) 自主峯至火巢內外, 皆爲燒火, 而左邊則松木枯損者, 三分之二, 右邊則松木三分之二, 不至枯損, 陵內左右列植檜 253) [일성록] 정조20년 병진( 월24일) 254) [일성록] 정조16년 ) 255) [승정원일기] 인조 15년( ) 33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35 柏, 所傷者不多 (4) 삼나무(杉) 또 하교하기를, 상재(桑梓)도 오히려 공경하는데, 더구나 수택(手澤)이 남아 있는 나무에 있어서이겠는가. 선 조 신해년(1731, 영조7)에 파주에서 본릉으로 이장하고서, 효묘(孝廟)께서 구릉(舊陵)에다 소나무와 삼나무를 손수 심으셨던 고사를 따라 이 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지금 저렇게 울창해졌다. 만약 이 나무에 표지를 하지 않는다면 후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무에 대부의 명호(名號)를 붙인 것은 옛날에도 그러하였는데, 더구나 더 소중한 나무에 있어서이겠는가. 어의(於義)와 용흥(龍興)의 구궁(舊宮) 소나무에도 자급을 주라고 명하였으 니, 이 또한 선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 가지 일이다. 본릉(장릉 長陵)의 선조께서 손수 심으신 잣나무 10그루 에 구리로 울타리를 치고 손수 심으셨다 手植 는 두 글자를 새겨 놓는다면, 뒤에 이 능을 전알(展謁)하고 이 나무를 보는 자가 누군들 감히 공경하고 감격하지 않겠는가. 이 전교를 능지(陵誌) 에 기재하라. 256) 又敎曰 桑梓猶恭敬止 況手澤所存者乎 先朝幸亥 自坡州 遷封本陵 遵孝廟手種松杉於舊陵故事 而行焉 至今鬱然 若不表識 後人何以知之 命號大夫 古猶然矣 況此樹所重乎 於義龍興舊宮之松 猶命賜資 此亦仰述之一端 本陵先 朝 手種栢木十株 銅以圍之 刻以手植二字 後之謁此陵 見此樹者 孰敢不且敬且感乎 以此傳敎 載之陵誌 (5) 개오동나무(檟) (현륭원의) 화소(火巢)의 경계를 정할 때에 이르러 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용호(龍虎)를 수호하는 곳에 삼 가 나아가 소나무와 개오동나무를 심게 하고, 나무를 심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은 백성들로 하여금 갈아 일구 도록 해 주었다.257) 至若火巢之定界也 又命有司 謹就龍虎拱護處 種植松檟 不合種植者 許民耕墾 (6) 가래나무(楸) 상이 이르기를, (건릉의 비각과 정자각에 물이 새는 곳은 없던가? 하니, 홍승억이 아뢰기를, 물이 새는 곳은 없었고, 좌우의 등성이도 이지러진 곳이 없었으며, 소나무와 가래 나무도 전보다 더욱 빽빽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258) 上曰, (健陵)碑閣ㆍ丁字閣無滲漏處乎? 承億曰, 無滲漏處, 而左右岡, 無空缺處, 松楸茂密, 比前尤勝矣 (7) 잡목(雜木) 상이 묘혈(墓穴) 앞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곳은 전나무나 잣나무를 심어야 마땅하지만 잡목을 심어도 괜찮 다. 하니, 수릉관이 아뢰기를, 잡목을 심으면 여름에는 무성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반드시 민둥민둥하게 될 것입니다. 259) 上指穴前曰, 此處則當種之以檜栢, 而雜木亦可樹之矣 守陵官曰, 樹之以雜木, 則夏雖茂盛, 而冬則必濯濯矣 256) 257) 258) 259) [일성록] 정조13년 기유( ) [일성록] 정조20년( ) [승정원일기] 고종 12년( ) [승정원일기] 영조 1년 ( )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5

336 4) 씨앗을 뿌려 기른 나무와 풀 기장(稷), 풀씨(草種)=떼(莎草), 단풍나무(楓實), 잣(栢子), 상수리(橡實), 소나무 씨(松子) (1) 기장(稷), 풀씨(草種) 화소로 추가 지정한 홍범산(洪範山)은 사초(莎草)가 벗겨진 곳이 많아 직(稷)을 파종하거나 풀씨를 파종하여 덮어씌우는 방도로 삼는 것을 늦출 수 없습니다. 직의 씨앗은 경기 감사와 상의하여 들어오는 대로 가져다 쓰고 풀씨의 씨앗은 시임 부사로 하여금 경내(境內)에서 값을 넉넉히 주고 사서 쓰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 다.260) 加定火巢洪範山 多有莎脫處 或播稷 或播草種 以爲掩覆之道者 不可緩矣. 稷種與畿伯相議 隨所入取用 草種使時 府使 就境內厚價貿用爲宜 (2) 단풍나무(楓實), 잣(栢子, 海松子) 원군(園軍), 모군(募軍), 승군(僧軍)은 대내(大內)에서 내린 단풍나무 열매 2말을 재실 근처와 용호(龍虎)의 안 쪽에 뿌리고, 안변의 잣 8말을 재실 동쪽 담장 밖에 모판을 만들어 뿌리고, 성주(星州)의 잣 10말을 화성에 모판을 만들어 뿌렸다.261) 園軍 募軍 僧軍 播植內下 楓實二斗 齋室近處 龍虎內邊 播植安邊栢子八斗 齋室東墻外 注秧 星州栢子十斗 華城 注秧 상이 의릉(懿陵)의 묘혈(墓穴) 앞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곳은 전나무나 잣나무를 심어야 마땅하지만 잡목을 심어도 괜찮다. 하니, 수릉관이 아뢰기를, 잡목을 심으면 여름에는 무성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반드시 민둥민둥하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능에 들어오는 동구(洞口)를 빙 둘러싸고 있는 곳에는 또한 반드시 수목을 기르기는 하지만, 여기 동구는 넓 게 트여서 나무를 기르지 않을 수 없겠다. 수릉관이 아뢴, 해송자를 뿌려 심자는 말이 매우 좋으니, 소재지의 관원으로 하여금 많은 수량을 능소로 실어다가 바치도록 하고, 백호 끝 모래가 있는 데에는 우선 착실하게 소나무를 심도록 하되, 모두 해당 조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라. 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1년 을사(1725, 옹정3) 1월 16일(을묘) 上指穴前曰, 此處則當種之以檜栢, 而雜木亦可樹之矣 守陵官曰, 樹之以雜木, 則夏雖茂盛, 而冬則必濯濯矣 上曰, 雖洞口回抱處, 亦必長養樹木, 而此洞口廣闊, 不可不養木矣 播種海松子之說, 陵官所達, 儘好, 以所在官, 使之多數輸納于陵所, 至於白虎砂端, 則爲先着實植松事, 竝令該曹擧行, 可也 260) [일성록] 정조16년( ) 261) [일성록] 정조20년 병진( 월24일) 33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37 (3) 상수리(橡實), 소나무 씨(松子) 씨 뿌리기는 3월 4일에 역을 시작하여 9일에 마쳤다. 각 능에서 실어 온 상수리가 351섬 14말, 상림(上林)의 상수리가 20섬 6말, 재실의 상수리가 25섬, 용주사(龍珠寺)의 상수리가 7섬, 도합 404섬 5말이다. 화성(華城)의 소나무 씨가 6섬, 안변(安邊)의 소나무 씨가 8말, 천성포(天城浦)의 소나무 씨가 5말, 김인후(金 仁厚)가 기증한 소나무 씨가 1말, 도합 6섬 14말이고, 직(稷 메기장)이 2섬이다.262) 경계는 초봉부터 고서문(古西門), 성황산 남쪽 기슭, 북쪽 기슭, 동쪽 기슭의 나무를 심은 곳까지이다. 播種 三月初四日 始役 初九日 畢役 各陵輸來橡 實三百五十一石十四斗 上林橡實 二十石六斗 齋室橡實 二十五石 龍珠寺橡實 七石 合四百四石五斗 華城松子 六石 安邊松子 八斗 天城松子 五斗 金仁厚松子 一斗 合六石十四斗. 稷 二石. 經界自草峯 古西門 星皇山南麓北麓東麓 植木處. 5) 나무를 심거나 씨를 뿌린 양 정조 20년(1796년) 3월에 현륭원의 외남산 보토 및 나무 심기 작업을 통해 심거나 뿌린 것이 나무는 947,170 주 씨앗 670여섬 사초 451,700장에 이른다. 또 전교하기를,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는 일이 해마다 한 해의 과제가 되었다. 올해는 10개 고을이 심은 것이 100만 그루에 가깝고, 그 밖에도 현륭원 영(顯隆園令)과 차사원(差使員) 등이 감독하여 심은 것이 또 수 십만 그루에 가깝다. 뿌린 상수리도 마찬가지로 도합 700섬이나 된다. 소중히 여기는 바를 위하여 수고한 것 에 보답하는 도리로 볼 때 기념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263) 又敎曰 年年播植 歲以爲課 而今年則除却十邑所植 近百萬株 園令差員等所監 植又近數十萬株 橡實播種亦然 都 數爲七百餘石 其在爲所重 醻其勞之道 不可無記念之擧. 262) [일성록] 정조20년 병진( 월24일) 263) [일성록] 정조20년 병진( 월24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7

338 주체 현륭원 현륭원 합 계 식수 파종 내용 경계 소나무 62,882주 초봉(草峯) 위의 좌우와 갈현(葛峴) 뒤부터 성황산(星皇山) 북쪽 기슭 의 윗부분과 가운데 부분, 남쪽 기슭의 아랫부분까지 밤나무 2,806주 재실(齋室) 동쪽 담장 뒤부터 곡촌(谷村)의 위와 아래까지 버드나무 363주 성황산의 나무 심기를 시작한 곳과 마친 곳에 둘러 가며 심음 상수리 씨앗 404섬 5말, 소나무씨 6 섬 14말, 메기장 2섬 초봉부터 고서문(古西門), 성황산 남쪽 기슭, 북쪽 기슭, 동쪽 기슭의 나무를 심은 곳까지 단풍나무 열매 2말, 잣 18말 단풍나무 열매는 재실 근처와 용호 안쪽, 잣은 모판에 뿌림 소나무30,482주 성황산 주봉(主峯) 좌우부터 북쪽 기슭의 윗부분까지 회목 156, 버드나무 342, 소나무 165 유근교(逌覲橋) 좌우부터 유첨현(逌瞻峴)까지 소나무35,835주 대황교(大皇橋) 초입부터 수철점(水鐵店) 뒷산 기슭의 가운데까지 버드나무 134주 소나무 심기를 시작한 곳과 마친 곳, 용주사의 청룡(靑龍) 안쪽 소나무 45,162주, 잡목 1,500주 황산 동쪽 기슭의 윗부분부터 수철점의 뒤쪽 기슭까지 소나무 174,526주, 밤나무 2,806주, 버드나무 839주, 잡목 1500주, 회나무 156주. 상수리씨 404섬5말, 소나무 씨 6섬14말, 잣 1섬3말, 단풍나무열매 2말, 메기장(직) 2섬 고을명 심거나 뿌린 내역 용인현 심은 소나무가 94,452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62,634주, 뿌린 상수리가 23섬 양성현 심은 소나무가 38,536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34,413주, 뿌린 상수리는 17섬 진위현 심은 소나무가 50,528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12,200주, 뿌린 상수리가 28섬 수원부 심은 소나무가 191,182주인데, 그 가운데 나누어 받은 소나무는 68,060주이고, 사 온 소나무는 109,341주, 뿌 린 상수리가 65섬이고, 풀씨가 4섬이고, 사초가 45 1,700장 안성군 심은 소나무가 3만 1277주이고, 뿌린 상수리가 32섬 광주부 심은 소나무가 140,645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9만 8655주, 심은 잡목이 2115주이고, 뿌린 상수리 가 35섬 과천현 심은 소나무가 60,737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9001주, 심은 잡목이 5110주이고, 뿌린 상수리가 7 섬, 피직(皮稷)이 6섬 안산군 심은 소나무가 58,956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1만 128주, 뿌린 상수리가 12섬, 피직(皮稷)이 4섬 남양부 소나무 50,781주, 왕수(王修)가 자원해서 심은 소나무가 3,000주, 뿌린 상수리가 23섬 시흥현 심은 소나무가 40,024주인데, 그 가운데 사 온 소나무는 6,093주 합계 심은 소나무가 757,118, 왕수가 자원해서 심은 소나무가 3,000주, 심은 잡목이 7225주, 뿌린 상수리가 242섬, 피직(皮稷)이 10섬, 풀씨가 4섬, 사초(莎草)가 451,700장 33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39 4. 모든 왕릉에 씨 뿌리고 나무 심어 보존하는 방법 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7월 9일 1798년 승지 채홍원(蔡弘遠)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명을 받들고 동쪽과 서쪽의 능원(陵園)을 봉심(奉審)했더니 수목이 적어 성긴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 습니다. 옛날에 심은 것은 점차 소모되고 새로 이식한 것은 잘 배양되지 못해 보기에도 송구스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었으니 사체(事體)상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해조에게 신칙하여 나무를 얼마나 심고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에 따라 겨울철 과 여름철 근무 성적을 매기게 한다면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는 재랑(齋郞) 등이 성실히 근무하지 못해 빚어진 것으로서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무릇 소나무를 심고 상수리나무를 씨 뿌 리는 법을 보건대 봄에는 파종해야 하고 가을에는 심어야 하는데, 구역 안의 여러 곳을 수시로 순찰하여 조금 성긴 곳에는 소나무를 심고 너무 공허한 곳에는 상수리나무를 씨 뿌리면서 재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니, 이 방법대로만 해 나간다면 아무 리 소모시키려 한들 그렇게 되겠는가. 그리고 설사 하인배가 난방용 장작으로 탐을 낸다 하더라도 도끼질한 흔적에 따라 잡 아내면 될 것인데 이 숫자 역시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듣건대 씨를 뿌리고 심을 때 주위의 나 뭇가지와 잎을 잘라주면 오히려 싹트고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하인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혜택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니, 이 어찌 공사(公私) 양쪽 모두에 편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조로 하여금 각릉(各陵)의 관원을 엄히 단속하여 올해 가을과 겨울부터 오로지 씨 뿌리고 심는 데 뜻을 두게 하고 매년 3 월과 10월에 그 숫자를 보고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해조에서 별단(別單)으로 초기(草記)해 오면 향축(香祝) 을 받든 헌관(獻官)이나 봉심하는 승지 혹은 사관(史官)이나 선전관 중에서 추첨하여 과연 그 숫자대로 소나무를 심었는지 고찰하게 한 뒤에 그 근무의 성실도에 따라 상을 주고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며, 상수리나무를 얼마나 밀도 있게 씨를 뿌렸 는지에 대해서도 몇 년 간격으로 본보기를 뽑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내용으로 분부하여 각각 재실 (齋室) 벽에 써서 붙여놓도록 하라. 그리고 근무 성적을 평가할 때 이것을 가지고 등제(登第)를 기록한다면 필시 별도로 금 품을 강요하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니 이 한 조목은 그냥 놔두어라."하였다. 承旨蔡弘遠啓言: 臣嘗承命奉審於東西陵園, 則樹木之稀踈, 日甚一日 舊種者漸就消耗, 新植者不善培養, 所見旣甚悚悶, 事體不容任置 申飭該曹, 以樹木培植之多少勤慢, 爲冬夏殿最之一事, 庶或爲責效之道 敎曰: "齋郞等未能致勤之致, 殊可駭然 凡植松播橡之法, 春則宣播, 秋則宜植, 局內諸處, 以時巡察, 稍踈處植松, 太曠處播橡, 務令栽培, 得其手法, 則雖欲消耗得乎? 設有下屬, 貪於煖炊之用, 而斧斤痕跡之執捉, 此不過九牛一毛 且聞種樹時剪柯葉, 反 爲茁長之助, 在下屬亦足沾漑, 豈不公私之兩便? 令該曹嚴飭各陵官, 自今秋冬, 專意播植, 每年三月十月, 以其數爻, 報來後, 自 該曹別單草記, 則當以受香之獻官, 奉審之承旨, 又或史官 宣傳官中, 抽栍考察, 其果然如數植松, 以爲懲慢賞勤之地 而播橡踈 密, 亦當間數年拔例致察, 以此分付各令, 書付齋壁 至於殿最時, 以此書等第, 必有別岐討索之弊端, 此一款, 置之 "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39

340 5. 나무뿌리와 사태 방지책 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8월 4일 (1798년) 하교하였다. "근래 능관(陵官)이 산을 순찰하는 임무에 불성실하여 도벌(盜伐)을 아예 금지하지도 않고 있다. 이번에 앵봉(鶯峰)의 가을철 적간(摘奸)을 행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특별히 며칠 동안을 기한으로 두루 살펴보게 하였더니, 창릉(昌陵)의 경우 주봉(主峰) 과 구역 안 가까운 곳의 한 줌 정도 되는 나무들이 새로 도벌된 흔적이 많았으며 각릉(各陵)에 당초 산을 순찰하는 수호군 (守護軍)도 없었다고 하였다. 이 어찌 통분스럽고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일체 서계(書啓)한 대로 등급을 나누어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창릉의 능관 등은 해부(該府)로 하여금 나문(拿問)하여 공초(供招)를 받게 하고 수복(守僕) 및 두목군(頭目軍) 역시 기백(畿 伯)으로 하여금 각별히 엄하게 다스린 뒤 장계로 보고하게 하라. 명릉(明陵)의 능관은, 구역 안의 수목 가운데 새로 도벌된 숫자가 적다고는 하나 금지하고 단속하는 일을 불성실하게 한 것은 마찬가지이니 역시 나문하여 처치하라. 익릉(翼陵)ㆍ흥 릉(弘陵)ㆍ순회묘(順懷墓)의 관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다시 보고 싶으니 우선 중하게 추고토록 하라. 경릉(敬陵)의 능 관은 우선 추고만 하라.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또 특별히 적간하는 관원을 파견하여 10여 일 동안 다시 주밀하게 살피는 등 성실도 여부를 조사토록 하겠다. 그런데 각 능원(陵園)의 구역 안에서 사태(沙汰)가 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적간할 때 탈 잡힐 나무 뿌리를 숨기는 데 연유 하는데 이 때문에 비가 한번 오기만 하면 띠가 뽑히면서 흙이 빠져나오곤 하는 것이다. 이 뒤로 적간할 때 찍어낸 흔적이 있을 경우에는 혹 관대히 용서해 줄 수도 있지만 뿌리를 숨긴 흔적이 있을 경우에는 특별히 두 배 정도 무겁게 율(律)을 적 용할 것이니, 이 뜻을 각처의 재랑(齋郞)에게 엄히 신칙하여 선갑(先甲)) 의 유시를 잘 따르도록 하라. 敎曰: "近來陵官之不勤於巡山, 初不禁飭偸斫 今番鶯峰秋摘奸, 使之拔例限數日遍察, 則昌陵主峰與局內近處, 拱把之木, 新 斫痕損夥多, 而各陵初無巡山之守護軍云 豈不痛駭乎? 一從書啓, 當分等處分 昌陵陵官等, 令該府拿問捧口招, 守僕及頭目 軍, 亦令畿伯, 各別嚴治狀聞 明陵陵官, 則局內樹木之新斫雖數少, 而其爲不勤禁飭一也, 亦爲拿處 翼陵 弘陵 順懷墓官員 等, 更欲觀前頭, 爲先從重推考 敬陵陵官, 則爲先推考 待落木後, 又當別遣摘奸限十餘日, 更爲周察, 以考勤慢 各陵園之局內沙汰, 專由於爲掩摘奸時株根, 一番下雨, 以致茅拔土脫 此後摘奸時斫痕, 雖或寬恕, 掩痕另當加倍勘律, 此意嚴飭 各處齋郞, 俾遵先甲之諭 " 34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41 6. 능 위 잡초 제거와 떼 입힐 때 유의사항 인조실록 19권, 인조 6년 10월 20일 (1628년) 경기 감사 최명길(崔鳴吉)이 각릉을 봉심하고 치계하기를, "신이 가을 순시 때 여러 능을 두루 배알했는데 능 위에 잡초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물어보니 해마다 한 식에 한 번 쑥 따위를 뽑아버린 뒤에는 감히 능 위에 손을 댈 수 없어서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므로 저절로 무성해진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능침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본래 가볍게 손대선 안 됩니다만 잡초가 능 위에 뿌리 를 내리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론, 해조에서 별도로 사목(事目)을 세워 한식 때 뽑아 버린 뒤라 하더라도 조석으로 능에 올라가 있는 대로 잡초를 뽑아버린다면 공력이 매우 적게 들 것이고 떼도 저절로 우거 질 것이니, 실정과 예로 헤아려 봐도 불가할 것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각릉에 도감을 설치하여 수리할 때에는 상신 및 관상감과 선공감의 제조, 예조의 당상과 낭청, 본도 감사가 일제히 나가 감 독하여 공역을 완성하기 때문에 대소 인원들은 대신을 어려워하여 오래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독촉해대어 그 공역을 구차 히 완성합니다. 그래서 흙을 다진 것이 대부분 굳건하지 않아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떼 입히는 장인도 눈앞에서 잘 보일 것만 신경을 써서 뿌리 부분을 많이 잘라내고 얇게 떠서 능 위에 깔기 때문에, 보기에는 아름다우나 풀뿌리는 이미 손상되 었으므로 말라죽는 게 태반입니다. 이제부터 떼를 고쳐 입힐 때에는 빨리 하려고도, 잘 보이려고도 말며 오직 튼튼히 할 것 만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대신 이하 많은 관원이 왕래하는 것은 그 일을 중시해서입니다만 음식 대접과 영접 전송에 한 도 가 온통 분주합니다. 도내 19능 30위소(位所)에 떼를 고쳐 입히는 공역이 없는 해가 없다시피 하여 간혹 한 해에 거듭 있기 도 합니다. 신의 망령된 견해로는 허다한 정승 판서를 보낼 필요 없이, 다만 본도 감사로 하여금 관례에 따라 춘추로 봉심 하게 하고 고칠 곳이 있으면 사유를 갖추어 계문하게 한 뒤, 예조 및 선공감이나 관상감의 당상 가운데 1원이 나와서 봉심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역을 시작할 때도 따로 도감을 설치하지 말고 단지 본도 감사와 본 고을 수령 및 본능 참봉으로 하여금 함께 역사를 감독하게 하고, 예조의 낭청도 도청(都廳)의 칭호를 쓰지 말고 머물러 있으면서 감독하게 합니다. 역사 가 완공된 뒤에 미쳐서 대신이나 아무 아문의 당상이나 상께서 특별히 보낸 중사(中使)가 살펴보고, 미진한 점이라도 있으 면 감사와 수령 등을 법대로 죄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체가 중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능에 관한 역사는 십분 유 감이 없을 수 있습니다. <중략> 하니, 예조가 회계하기를, "본릉 참봉으로 하여금 시절에 구애되지 말고 잡초가 나는 대로 즉시 뽑아버리게 해야 합니다. 다만 침원(寢園)은 지엄하니 고제(告祭)가 없이 능에 오르는 것은 사체상 온당치 않으므로 가벼이 의논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옛날부터 능침을 개수할 때는 반드시 대신이 해조의 당상, 해사의 제조 등과 더불어 봉심하였으니 곧 그 일을 중히 여긴 것입니다. 한 때의 민폐 때 문에 조종조로부터 유래하는 규칙을 가벼이 바꿀 수 없습니다. 정릉은 참봉이 없는데다가 또 수호군이 없어서 벌목꾼이 함부로 들어가게 하여 수목이 자라지 못하니, 지금 마땅히 수호군 을 신칙하여 벌목과 화재를 금하게 해야 합니다. 정자각은 일찍부터 조성하지 않았으니 반드시 그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창건하는 것은 일이 중하니 대신에게 의논하소서." 하자,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정자각 일은 우선 보류하라."하였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41

342 京畿監司崔鳴吉, 奉審各陵馳啓曰: "臣秋巡時, 遍謁 諸陵, 陵上雜草頗多 臣問其由則云: 每年寒食, 一番蓬艾拔去之後, 不 敢下手於陵上, 任其長養, 自至茂盛 臣竊念, 陵寢一草一木, 固不當輕易下手, 而致令雜草着根於 陵上, 誠極未妥 臣之愚 意, 自該曹別立事目, 雖寒食拔去之後, 朝夕上陵, 隨卽拔去雜草, 則功力甚省, 莎草自茂, 揆以情禮, 恐無不可 凡各陵設都監修理時, 相臣及觀象監 繕工監提調, 禮曹堂上 郞廳, 本道監司, 一齊出去, 監董完役, 故大小人員, 敬重大臣, 不 欲其久留, 乃令催迫, 苟完其役 是以築土多不堅密, 易致傾頹 莎土匠人, 亦以目前致精爲務, 削其根土, 作爲薄片, 排帖陵上, 故觀瞻雖美, 而草根已傷, 枯損居半 今後改莎之時, 毋欲速 毋過精, 惟務堅完 且大臣以下多官之往來者, 乃所以重其事, 而 廚傳 送迎, 擧一道奔走 道內十九 陵三十位, 所改莎之役, 殆無虛歲, 或至一年疊出 臣之妄意, 不必送許多卿相, 只令本道 監司, 依例春秋奉審, 其有可改處, 具由啓聞後, 禮曹及或繕工監 觀象監堂上中一員, 出來奉審; 及其始役, 亦不必別設都監, 只 令本道監司 本官守令及本 陵參奉, 眼同監役, 禮曹郞廳, 勿稱都廳之號, 留在檢督;及其完役, 或大臣 或某衙門堂上 或自上特 遣中使看審, 如或未盡, 則監司 守令等, 依法科 罪, 事體不患不重, 而陵上之役, 可保十分無憾矣 <중략> 禮曹回啓曰: "當令本陵參奉, 不拘時節, 雜草之生, 隨卽拔去, 而但寢園至嚴, 無告祭而上陵, 事體未安, 似難輕議 自古陵寢修 改時, 必大臣與該曹堂上 該司提調等奉審, 乃所以重其事也 不可以一時民弊, 輕變 祖宗朝流來之規 貞陵旣無參奉, 又無守 護軍, 致令斧斤闌入, 樹木不長 今宜申飭守護軍, 使之禁伐 禁火 丁字閣則曾不造設, 必有其意 創建事重, 請議大臣 " 答曰: "依啓 丁字閣事, 姑徐 " 34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43 7. 왕릉의 보토 세종 105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7월 17일(갑자) 3번째 기사 좌찬성 하연 등을 보내 헌릉의 서쪽 혈을 보토하게 하다 좌찬성하연ㆍ예조 판서김종서ㆍ예문 대제학(藝文大提學)정인지(鄭麟趾)ㆍ공조 판서최부(崔府)ㆍ참판이사검(李 思儉)ㆍ우승지강석덕(姜碩德)ㆍ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어효첨(魚孝瞻)ㆍ성균 직강(成均直講)윤통(尹統)과 술자 (術者) 고중안(高仲安)ㆍ문맹검(文孟儉) 등을 보내어 헌릉(獻陵)의 서쪽 혈(穴)을 보토(補土)하게 하였으니, 이 는 장차 수릉(壽陵)264) 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9장 A면 영인본 4책 57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세종 121권, 30년(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7월 29일(계축) 1번째 기사 윤형이 앞으로의 폐단을 지적하며 불당 설치의 불가함을 아뢰다 대간(臺諫)이 합사(闔司)하고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유음(兪音)을 듣기를 원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나왔습니다. 하였고, 윤형(尹炯)이 또 말하기를, 옛날에 민의생(閔義生)이 예조 판서(禮曹判書)가 되고, 형(炯)이 참판(參判)이 되었었는데, 주산(主山)의 내맥 (來脈)을 보라고 명하시므로, 그때에 아뢰기를, 주산의 내맥이 얕고 약하니 보토(補土)하여야 합니다. 하여, 성상께서도 허락하시었습니다. 지금 불당을 산기슭에 영건하여 내맥을 끊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불당을 더욱 세울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알았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지금 불당을 세우는 것이 오늘날에 있어서는 큰 폐단이 없는 것 같으나, 만대 뒤에는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당이 궁금(宮禁) 뒤에 있어서 조금도 막히지 않았으니, 이렇게 하여 마지않으면, 두렵건대, 후궁(後宮)이 소향(燒香)을 칭탁하고 왕래하는 것을 금함이 없어서, 남녀가 혼잡하게 될 것이니 장차 어떻게 금하시렵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32장 A면 영인본 5책 93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문종 3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9월 8일(기유) 4번째 기사 풍수학에서 왕세자의 태실을 옮기도록 청하다 풍수학(風水學)에서 아뢰기를, 태장경(胎藏經) 에 이르기를, 대체 하늘이 만물(萬物)을 낳는데 사람으로써 귀하게 여기며, 사람이 날 때 는 태(胎)로 인하여 장성(長成)하게 되는데, 하물며 그 현우(賢愚)와 성쇠(盛衰)가 모두 태(胎)에 매여 있으니 태란 것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릇 태(胎)에서 내려온 지 3월에는 명칭을 화정태(和正胎)라 하고, 5월에는 연장태(軟藏胎)라 하고, 3년에는 장응태(壯應胎)라 하고, 5년에는 중부태(中符胎)라 하고, 7년에는 향 264) 수릉(壽陵) : 임금ㆍ왕후의 생전에 미리 만드는 능.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43

344 양태(向陽胎)라 하고, 15년에는 과양태(過陽胎)라 하니, 이를 육안태법(六安胎法)이라 이른다. 고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경서(經書)에 이르기를, 남자가 15세가 되면 학문에 뜻을 둘 나이고, 여자가 15세가 되면 남편을 따라야 할 나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남자는 마땅히 연장태(軟藏胎)ㆍ중부태(中符胎)ㆍ향양태(向陽胎) 중의 연월(年月)에서 간수하여 학문에 뜻을 둘 나이를 기다려야만 하고, 여자도 또한 화정태(和正胎)ㆍ장응태(壯應 胎)ㆍ과양태(過陽胎)의 연월(年月)에서 간수하여 남편을 따라야 할 나이를 기다려야만 하니, 남자가 만약 좋 은 땅을 만난다면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고, 구경(九經)에 정통(精通)하며 단상(團爽)265) 하여 병이 없으며, 관직이 높은 곳에 승진되는 것입니다. 지금 왕세자(王世子)의 태실(胎室)이 성주(星州)의 여러 대군(大君)들의 태실(胎室) 옆에 기울어져 보토(補土)266) 한 곳에 있으니 진실로 옳지 못합니다. 태경(胎經)의 땅을 가리는 법 에 의하여 길지(吉地)를 경기(京畿)와 하삼도(下三道)에 널리 구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31장 B면 영인본 6책 280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문종 10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10월 28일(계사) 3번째 기사 승정원에서 영릉에 보토할 군사의 숫자를 계산하여 아뢰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영릉(英陵)에 보토(補土)할 군사의 숫자를 계산하여 아뢰었다. 이때에 군인 1백 명이 먼저 역사할 곳으로 갔는데, 진무(鎭撫)를 보내어 가서 그 중에 홑옷을 입은 자를 살펴서 데리고 오도록 하고, 이 어서 명하기를, 날씨가 매우 추우니, 보토하는 역사를 정지하라. 하고, 또 군인들에게 술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5장 A면 영인본 6책 44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왕실사급(賜給)/*군사군역(軍役)/*군사휼병(恤兵) 문종 12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2월 21일(을유) 3번째 기사 영릉 부근의 산맥을 보축하게 하다 비석소 제조(碑石所提調) 정분(鄭苯) 등이 비(碑)를 세우고 와서 복명(復命)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비석(碑石)이 매우 커서 세우기가 가장 어려우므로 자나깨나 잊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일이 마쳐졌으 니 내가 매우 기쁘다. 하였다. 거듭해 말하기를, 장지(葬地)에 이해(利害)가 있다는 설(說)은 족히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나, 음양가(陰陽家)는 반드시 산등성 이를 보고 길흉을 정하게 되는데, 영릉(英陵) 부근의 산맥(山脈)은 예전부터 사람들이 왕래하여 마침내 좁은 길이 나서 산등성이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나는 차마 볼 수가 없다. 지금 봄철에 방패(方牌) 60명과 당령 선 군(當領船軍)을 사역(使役)하여 산맥을 보축(補築)하려고 한다. 하니, 정분(鄭苯) 등이 아뢰기를, 산등성이가 끊어진 것은 마땅히 산맥을 보축(補築)해야 되겠지마는, 3년의 상제(喪制)를 마친 후에 여러 곳 의 영선(營繕)과 옛 것을 수리할 곳도 자못 많으니, 경군(京軍)은 사역(使役)하지 못할 듯합니다. 신(臣) 등은 생각하기를, 지금 선군(船軍) 1천 명 중에서 1백 명을 덜어내어 흥인문(興仁門)에 역사(役事)를 하고, 9백명으 로써 혹은 천천현(穿川峴)에 역사하기도 하고, 혹은 건원릉(健元陵)에 역사하기도 한다면, 인력(人力)이 나누 어져서 아마 쉽사리 성취하지 못할 듯하니, 다른 역사(役事)를 제쳐놓고 영릉(英陵)에 함께 부역(赴役)시킨다 면 일이 쉽사리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265) 단상(團爽) : 얼굴이 둥글고 상쾌하게 생김. 266) 보토(補土) : 우묵한 땅을 흙으로 메워서 채운 곳 34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45 경(卿) 등의 말이 매우 옳다. 만약 백성의 노력이 모자란다면 천천현(穿川峴)과 건원릉(健元陵)의 역사는 비 록 올 가을을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또 장지(葬地)는 돌자갈을 기(忌)하게 되니 보토(補土)에는 돌자갈을 사 용하지 말라. 하였다. 정분이 아뢰기를, 돌이란 것은 산의 골격(骨格)이므로 음양가(陰陽家)에서도 또한 이를 기(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흙만 사용하여 쌓도록 하는 것도 또한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8장 A면 영인본 6책 46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건설토목(土木) / *군사군역(軍役) 단종 1권, 즉위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5월 29일(신유) 1번째 기사 세조가 산릉에 보토한 것을 살피다 세조가 의정부 당상과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와 더불어 가서 산릉에 보토(補土)한 것을 살피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8장 B면 영인본 6책 50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선조 13년 묘를 봉하고 입석하여 근신이 치제하게 하다 선조 대왕 13년 경진년(1580)에 전교하기를, 영월군(寧越郡)노산군(魯山君) 묘에 지난 병자년에 관리를 보내서 제사를 지내어 그 혼(魂)을 위로하였으나, 이제 관찰사 정철(鄭澈)의 장계(狀啓)를 보니, 세월이 점점 오래 되어 초동 목수[樵牧]가 서로 침입하고, 의물 (儀物)을 갖추지 못하여 묘도(墓道)가 황폐하였다고 하니, 묘를 봉(封)하고 입석(立石)하여 근신(近臣)이 치제 (致祭)하게 하라. 하고, 신사(辛巳)에 승지(承旨) 이해수(李海壽)를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문일(文逸)하였다. 묘를 봉하고 입석(立石)할 때 사유를 고하는 계문[封墓立石時先告事由祭文] 유충(幼沖)으로 왕위를 이어받고 집안이 비운(否運)을 만나서 손위(遜位)하고 동쪽에 거하니, 6월의 강 고을 [江郡]에 푸른 산을 한 손으로 움켜잡겠습니다. 정령(精靈)이 그전부터 의지한 지 1백 26년에 의물이 없어지 게 되었고, 초동 목수[樵牧]가 서로 침범하여 거칠어졌어도 수축하지 못하였으니, 두견새[蜀禽]가 슬피 울고 금수(錦水)267)가 유유(悠悠)합니다. 사대부(士大夫)는 실심(失心)하고 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을 닦으매, 방백 (方伯)이 장계(狀啓)를 갖추어 천폐(天陛)에 아뢰니, 느낌이 신충(宸衷)에 통하여 관(官)에 명하여, 예를 의논하 여 입석(立石)하고 묘를 다스려 빨리 첨시(瞻視)를 엄하게 하였습니다. 저 형역(塋域)을 보건대, 유택의 위치 가 무너졌으니, 먼저 거기에 보토(補土)를 하고 성대한 예(禮)를 거행하려 하오니, 신령(神靈)께서 강림(降臨) 하여 흠양하시고 영원히 이곳에서 편히 계시기 바랍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 영인본 7책 44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역사(歷史) / *어문학(語文學) 세조 11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윤2월 12일(경오) 2번째 기사 우찬성 황수신 등을 건원릉에 보내 보토한 곳을 살피게 하다 267) 금수(錦水) : 영월 앞 강.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45

346 우찬성 황수신(黃守身)ㆍ중추원부사 박강(朴薑)ㆍ행상호군 김구(金鉤)ㆍ예조 참판 이순지(李純之)ㆍ동부승지 정식(鄭軾)을 보내어 건원릉(健元陵)의 보토(補土)한 곳을 가서 살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3장 A면 영인본 7책 25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세조 32권, 10년(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3월 11일(갑자) 3번째 기사 지리학 최양선이 천천현로를 막을 것을 상언하다 지리학(地理學) 최양선(崔楊善)이 늙어서 서산군(瑞山郡)에 살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서(上書)하여서 천천현로(穿天峴路)268)를 막도록 청하였다. 임금이 좌의정(左議政) 구치관(具致寬)ㆍ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질 (金礩)ㆍ공조 판서(工曹判書) 김수온(金守溫)ㆍ행 상호군(行上護軍) 임원준(任元濬) 및 승지(承旨) 등을 불러서 의논하고, 이어 어서(御書)를 내리어 이르기를, 지리학 최양선이 천천현로를 막도록 청하였는데, 천천령(穿川嶺)을 적당하게 두터이 보토(補土)하고 돌을 펴 서 성(城)을 쌓고 길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대저 일기(一氣)는 음양(陰陽)이 없는 것이고 둘로 나뉘어짐으로써 음과 양이 되는 것이며, 음양이 있기 때문에 천지(天地)ㆍ일월(日月)ㆍ사시(四時)ㆍ주야(晝夜)가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길흉(吉凶)이 형성(形成)되는 것이니, 이를 하나의 근본에 만 가지의 다름이라. 고 이르는 것 이다. 인간(人間)의 일신(一身)의 향배(向背)에도 스스로 음양(陰陽)이 있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과 동정(動靜) 에도 모두 다 길흉이 있는데, 하물며 산천(山川)의 향배에 음양(陰陽)ㆍ길흉(吉凶)이 없겠느냐? 이런 고로 길 (吉)한 것을 따르고 흉한 것을 피하는 것이 인사(人事)의 큰 것이니, 어리석게 지키고, 몽매(蒙昧)하게 두어서 스스로 흉(凶)과 화(禍)를 되돌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리(地理)ㆍ복서(卜筮)의 설(說)이 있고, 경권(經權)을 변통(變通)하여 세상에 재액(災厄)을 없게 하는 것이며, 이른바 패설(稗說)에 이르러서도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이다. 경권이란 무엇이냐? 천지(天地)가 상경(常經)하지 아니하여 한 서(寒暑)가 차례를 대신하고, 인도(人道)가 상경하지 아니하여 문무(文武)를 바꾸어 쓰게 되고, 이치가 상경하 지 아니하여 길흉이 섞이어 일어난다. 지리(地理)의 설은 착한 것을 상(賞)주고, 악한 것을 벌(罰)주며, 약(弱) 한 것을 붙들어 주고, 강(强)한 것을 누르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마치 나라의 치적(治績)을 내는 데 에, 다스림에 정한 정치가 없고, 사람의 병(病)을 다스림에 병에 정한 증세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산천(山 川)을 의지하고 산천은 사람을 우러러보며, 사람으로 인(因)하여 존재(存在)하기도 하고 상(喪)하기도 하고, 산 천으로 인하여 화(禍)가 되기도 하고 복(福)이 되기도 한다. 흙은 살[肉]에 비하고 물은 피[血]에 비하며 돌은 뼈[骨]에 비하는 것이니, 육골(肉骨)인 자는 살고, 골육(骨肉)인 자는 죽으며, 양혈(養血)269)하는 자는 건장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로 인(因)하여 변(邊)이 생기어 혹은 골육(骨肉)으로서 살고, 육골(肉骨)로서 죽으며, 피를 버림으로써 편안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경권(經權)이다. 비록 하나로 하는 자도 모름지기 경권(經權)을 변통(邊通)한 뒤에 세상에 재액(災厄)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일가(一家)의 설(說)에 국한(局限)한다고 하면 보토 (補土)하는 것도 또한 군살[贅肉]이다. 이제 두텁게 보토를 하고자 하는 것은 조종(祖宗)의 끊어질뻔한 맥(脈) 을 이어지게 하는 소이(所以)이며, 이것이 보은(報恩)의 땅에 포석(布石)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만약 성(城) 을 쌓고 길을 폐한다면 돌이 비록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석강(石岡)도 또한 천성(天成)으로 있는 것이요, 또 두터운 흙 위에 쇄쇄(碎碎)한 돌로 <쌓는 것이> 어찌 끊어진 것을 잇는 데에 관계가 있겠느냐? 후세(後世)에 망령되게 의논하는 자가 쉽게 길을 열까봐 깊이 염려하는 것이다. 단산법(斷山法)에는 교로(交 路)에 장사지내는 것을 불가(不可)하다 하였으므로 산가(山家)의 금기(禁忌)하는 바이니 어찌 중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최양선의 설(說)이 이것인데, 이치로 말하면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북돋우어 주면 지엽(枝葉) ㆍ화과(花果)가 번식(繁殖)할 것이요, 선골(先骨)270)이 편안함을 얻으면 자손(子孫)ㆍ종손(宗孫)이 번창할 것이 268) 천천현로(穿天峴路) : 광주(廣州) 269) 약을 먹어서 피를 도와 보함. 270) 선골(先骨) : 선조의 뼈. 34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47 니, 이것도 필연(必然)의 이치로서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저 번식하는 가운데에도 편고(偏姑)271)하 는 자가 있고, 번창하는 가운데에도 타락하는 자가 있으며, 편고하다가도 혹 다시 무성할 수가 있고, 궁곤(窮 困)하다가도 혹 다시 부귀(富貴)할 수가 있는 것은 어떠한 까닭일까? 이것도 또한 경권이 한결같지 않고 분 수(分受)가 가지런하지 않고 수폐(修廢)가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즉 이치는 반드시 하나가 될 수 없고, 일 도 항상 같을 수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인사(人事)에 있는 것이다. 하물며 다시 본 뿌리는 말랐으되 옮겨 심 는 것은 지엽(枝葉)이 무성하고, 부모(父母)는 죽었으되 자손은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어찌 음양(陰陽)의 설 (說)에 구애하겠느냐? 비록 길은 막지 않더라도 또한 가(可)한 것이다. 가령 천천현(穿川峴)을 파서 끊는다고 하면 대모(大母)의 산(山)에 초목(草木)이 없겠느냐? 반드시 깊은 도리를 찾지 말 것이다. 하였다. 이어 전지 (傳旨)하기를, 최양선은 망령된 사람으로 비록 술법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도 또한 막고자한 지 오래이니, 우선 그 의 견에 따르겠다. 하고, 드디어 최양선을 불러서 여러 재추(宰樞)에게 명하여 변힐(辨詰)하게 하였더니, 능히 굴 복시키는 자가 없었다. 임금이 이르기를, 길을 막는 의논은 내가 이미 정하였다. 하고, 인하여 최양선에게 물 어 이르기를, 너는 내전(內典)272)을 읽었느냐? 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벽곡(辟穀)273)치심법(治心法)을 배웠고, 나이 60에 적은 견성(見性)274)을 하였으며, 70 에 큰 견성을 하였고, 80에 능히 대천 세계(大千世界)275)를 보았습니다마는 구구한 경문(經文)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요즈음의 중들이 승상(繩床)에 앉아서 이름하기를 참선(參禪)을 한다고 하나 실상인즉 하 나도 그 도(道)를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김수온(金守溫)이 견성 성불(見性成佛)의 설(說)을 물으니, 최양선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크게 웃으면서 의복(衣服)을 하사하고 그를 보내었다. 최양선은 성질이 우활하고 기괴하며 험악(險惡)하여 자기의 소견(所見)이 옳다 하고, 문자(文字)를 알지 못하면서도 정주학(程朱學)을 비난하며, 망령되게 불법(佛法)을 엿 보고 견성(見性)을 말하고, 술법(術法)을 잘못 풀면서 음양(陰陽)ㆍ지리(地理)에 정통하다고 하니, 천하(天下)의 망인(妄人)이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28장 B면 영인본 7책 613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인물(人 物) 예종 1권, 즉위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9월 30일(병술) 2번째 기사 종친과 재추에게 명하여 정흠지의 묘자리를 살피게 하다 종친과 재추에게 명하여 정흠지(鄭欽之)의 묘자리를 가서 살피게 하였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가 아 뢰기를, 정흠지의 무덤 밑에 유견(兪堅)의 무덤이 있는데, 그 혈(穴)이 매우 좋아서, 신의 소견으로는 이 산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니, 승정원에 명하여 고령군 신숙주(申叔舟) 등에게 치서(馳書)하여 아울러 살펴보게 하였다. 밀성군이침(李 271) 편고(偏姑) : 은택이 한쪽으로 치우침 272) 선골(先骨) : 선조의 뼈 273) 벽곡(辟穀) : 곡식은 안먹고 솔잎ㆍ대추ㆍ밤 등을 조금씩 먹고 사는 일. 274) 견성(見性) : 모든 망혹(妄惑)을 버리고 자기 본연의 천성을 깨달음. 275) 대천 세계(大千世界) : 삼천 세계(三千世界)의 세째.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해ㆍ달ㆍ사대주(四大州)ㆍ육욕 천(六欲天)ㆍ범천(梵天)을 합하여 한 세계라 이르고, 이것을 천배 한 것을 소천 세계(小千世界), 소천 세계를 천배 한 것을 중천 세계(中千世界). 중천 세계를 천배 한 것을 대천 세계(大千世界)라 하며, 이를 다시 천배 한 것을 삼 천 대천 세계(三千大千世界)라 함.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47

348 琛)ㆍ영순군 이부(李溥)와 신숙주 등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유견의 무덤을 보니 쓸 수가 없고 정흠 지의 무덤은 능침으로 매우 합당합니다. 다만 주혈(主穴)이 단정치 못한 것이 흠이 될 만하나 상지관(相地官) 들이 보토(補土)하면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오직 최호원(崔灝元)ㆍ전찬(全贊)만은 쓸 수 없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일 마땅히 2품 이상의 종친과 재추를 불러 다시 의논하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3장 A면 영인본 8책 27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예종 1권, 즉위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10월 1일(정해) 2번째 기사 종친과 재추에게 정흠지의 묘자리가 능침에 적당한가를 아뢰게 하다 밀성군(密城君)이침(李琛)ㆍ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ㆍ하성군(河城君)정현조(鄭顯祖)ㆍ사산군(蛇山君) 이호(李 灝)ㆍ강양군(江陽君) 이융(李瀜)ㆍ정양군(定陽君)이순(李淳)ㆍ팔계군(八溪君)이정(李瀞)ㆍ하동군(河東君) 정인지 (鄭麟趾)ㆍ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ㆍ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ㆍ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ㆍ능 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ㆍ좌의정 박원형(朴元亨)ㆍ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ㆍ영성군(寧城君)최항(崔 恒)ㆍ남양군(南陽君) 홍달손(洪達孫)ㆍ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ㆍ산양군(山陽君)강순(康純)ㆍ우의정 김질 (金礩)ㆍ중추부 영사(中樞府領事) 심회(沈澮)ㆍ좌찬성 김국광(金國光)ㆍ좌참찬 유수(柳洙), 중추부 지사 김개 (金漑)ㆍ한계희(韓繼禧)ㆍ어효첨(魚孝瞻)ㆍ윤사흔(尹士昕)ㆍ홍응(洪應)ㆍ구종직(丘從直)ㆍ서거정(徐居正), 공조 판서 김예몽(金禮蒙)ㆍ예조 판서 임원준(任元濬)ㆍ이조 판서 성임(成任)ㆍ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ㆍ참판 (參判) 정자영(鄭自英)ㆍ보덕(輔德) 최사로(崔士老)ㆍ문학(文學) 김계창(金季昌)ㆍ사경(司經) 성현(成俔)ㆍ설서 (說書) 최숙정(崔淑精)과 승지(承旨)들을 불러 여차(廬次)에 들어 오게 하였다. 도승지 권감(權瑊)으로 하여금 상지관(相地官)을 하나하나 불러서 묻기를, 너희들이 어제 본 정흠지(鄭欽之)의 묘자리에서 그 산세(山勢)의 길흉(吉凶)을 숨김없이 다 아뢰라. 하니, 안 효례(安孝禮)ㆍ최호원(崔灝元)은 대답하기를, 산세가 능침(陵寢)에 적당하나 다만 주혈(主穴)이 기울어져서 보 토(補土)하여야 쓸 수 있습니다. 하고, 홀로 조수종(曹守宗)은 말하기를, 백호(白虎) 안에 작은 언덕을 없애면 더욱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에게 묻자, 모두 말하기를,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안효례 등은 아뢰기를, 있어도 무방합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유견(兪堅)의 무덤은 어 떠한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서거정ㆍ임원준에게 묻기를, 상지관의 말한 바가 경들의 뜻에 어떠한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산세가 매우 기이하여서 바로 원릉(園陵) 에 적합합니다. 그 국내(局內)의 작은 언덕의 길흉은, 청컨대 여러 책을 상고하여 계달하게 하소서. 하니, 임 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또 종친과 재추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경들을 인견(引見)한 것은 품은 뜻을 진술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각각 모두 말하라. 하니, 어효첨ㆍ김예몽이 대답하기를, 신 등도 이 산이 매우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언덕을 없애지 아니하는 것이 도리어 좋은지를 어찌 알 겠습니까? 하니, 정인지에게 묻기를, 경이 좋지 못하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광평 대군(廣平大君)ㆍ평원 대군(平原大君) 두 대군(大君)과 문종(文宗)의 묘자리를 살펴 볼 때에 신이 산을 보니, 청룡(靑龍) 밖에 산수(山水)가 등을 져서 흐르고 주혈(主穴)이 기울었으며 또 돌이 많기 때문에 쓸 만하지 못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릉은 내가 이미 정하였으니, 27일 후에 친히 가서 보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4장 A면 영인본 8책 27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34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49 예종 1권, 즉위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10월 3일(기축) 1번째 기사 정흠지의 묘자리의 길흉에 대해 앞뒤의 말이 다른 최호원을 추국하게 하다 의금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지난번에 상지관(相地官) 등을 불러 모아서 정흠지(鄭欽之)의 분영(墳塋)의 길흉을 물으니, 최호원(崔灝元)이 다만 명당(明堂)이 비뚤어져서 보토(補土)하여야만 쓸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어제 친히 거둥하여 다시 물으 니 최사로(崔士老)와 부동하여 말하기를 명당이 좁아서 쓸 수 없다고 하면서 억지로 변명하기를 그만두지 아 니하니, 반드시 남의 촉탁을 들은 것이다. 추국(推鞫)하여 계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5장 B면 영인본 8책 280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성종 3권, 1년(1470 경인 / 명 성화(成化) 6년) 2월 21일(경오) 2번째 기사 여러 원상과 대신에게 풍수학과 함께 창릉과 경릉을 가서 살피게 하다 고령군(高靈君)신숙주(申叔舟)ㆍ상당군한명회(韓明澮)ㆍ영의정 홍윤성(洪允成)ㆍ좌참찬(左參贊) 임원준(任元濬) ㆍ호조 판서 서거정(徐居正)ㆍ행 사정(行司正) 안효례(安孝禮)에게 명하여 풍수학(風水學)과 함께 가서 창릉 (昌陵)의 보토(補土)할 곳과 경릉(敬陵)의 여러 무덤을 철거할 곳을 살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1장 B면 영인본 8책 467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성종 3권, 1년(1470 경인 / 명 성화(成化) 6년) 2월 22일(신미) 4번째 기사 신숙주 등이 창릉과 경릉을 살펴보고 보토의 편부와 철거할 무덤의 수를 아뢰다 신숙주(申叔舟) 등이 두 능(陵)에 가서 살피고 돌아와서 보토(補土)의 편부(便否)와 철거할 여러 무덤의 수를 서계(書啓)하니, 전교하기를, 여러 무덤을 만일 모두 철거한다면 백성의 원망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여러 무 덤의 있고 없는 것이 이해(利害)에 관계가 되는가? 하였다. 신숙주 등이 아뢰기를, 그 이해는 감히 적확히 알지 못하오나, 다만 안산(案山)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철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 자손들이 왕래하여 배소(拜掃)하면서 실화(失火)하는 근심이 있을까 두렵 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산천은 늘어나지 않고 길지(吉地)는 한계가 있고, 천만세에 능실(陵室)은 끝이 없 으니, 후세의 인민이 장사지낼 산도 없고 경작할 땅도 없을까 염려된다. 이제부터 입법(立法)하여 넓게 하지 말도록 금하여 제한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능소(陵所)는 사산(四山) 바깥 땅에 안장하 고, 밭을 경작하는 것은 금하지 말게 하소서. 또 종친(宗親)ㆍ재추(宰樞)의 묘는 보수(步數)를 이미 한계를 정 하였는데, 지금도 지나치게 점령하는 자가 있으니, 청컨대 일체 모두 금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경릉(敬陵) 은 전에도 여러 무덤이 있었으나 별로 해되는 일이 없었으니, 내가 그대로 두고 철거하지 말게 하려 하는데, 어떠한가?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윤당합니다. 그러나 주산(主山)의 내맥(來脈) 산등성이의 무덤은 철거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경릉(敬陵)의 외안산(外案山)에 큰 무덤이 하나 서로 바라보이는 땅에 있으니, 철거하여야 합 니다. 그 나머지 내맥의 줄기 끝에 있는 9백 10총(塚)과 경릉의 도국(圖局) 바깥 왼쪽 능선 안에 있는 두 개 의 큰 무덤은 그대로 두고 철거하지 마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또 전교하기 를, 지금 말하기를 창릉(昌陵)의 주산(主山)의 보토(補土)는 인력으로 할 수 없다 하니, 그렇다면 무릇 능실의 보 토는 모두 불가한 것인가? 또는 인력이 부족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인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낮고 이지러진 곳 같은 것은 보토할 만하지만, 주산에 보토하는 것은 무익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49

350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2장 A면 영인본 8책 468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성종 153권, 14년(1483 계묘 / 명 성화(成化) 19년) 4월 18일(경진) 1번째 기사 서거정 등이 산릉을 다녀와서 지형을 보고하다 달성군(達城君)서거정(徐居正)ㆍ우승지(右承旨) 성현(成俔)ㆍ봉상시정(奉常寺正) 최호원(崔灝元)이 산릉(山陵)을 왕심(往審)하고 와서 아뢰기를, 주혈(主穴)은 축좌 미향(丑坐未向)이고, 주산(主山)의 청룡(靑龍) 사이는 인방(寅方)ㆍ갑방(甲方)이 약간 낮고, 또 혈(穴) 아래의 좌우 전면(左右前面)이 부족하니, 아울러 보토(補土)함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3책 153권 18장 A면 영인본 10책 45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중종 21권, 10년(1515 을해 / 명 정덕(正德) 10년) 3월 29일(병술) 1번째 기사 도승지 손중돈이 산릉의 묘자리에 돌이 있어 옮기는 일을 아뢰다 도승지 손중돈(孫仲暾)이 산릉(山陵)으로부터 와서 아뢰기를, 전에 잡은 자리에 금정(金井)을 5자쯤 파내려가니 큰돌이 가로질러 있고, 그 뿌리가 방박(磅礴)276)하여 끝내 파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 아래에 수도(隊道)를 삼으려고 파게 한즉 돌덩이가 있기는 하지만 윗자리 같 이 큰 덩어리는 아니었습니다. 아랫자리로 옮기면 산형(山形)의 향배(向背)가 윗자리와 다름이 없고, 백호(白 虎)ㆍ청룡(靑龍)과 그 수파(水破)277)가 모두 틀리지 않으니 쓰는 것이 지당하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큰일이라 마음대로 하는 것은 불가하므로 정승들이 신으로 하여금 아뢰게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전 교하기를, 아랫자리의 길흉을 다시 지리관에게 물어 아뢰라. 하고, 곧 지리관 조윤(趙倫)을 불러서 물으니, 조윤이 아뢰기를, 산형(山形)이 곧으므로 아랫자리에 옮기더라 도 백호ㆍ청룡이 전혀 어그러지지 않고, 산형의 향배 또한 모두 같은데, 수파는 오히려 윗자리보다 승합니다. 당초 자리잡을 때에 모두들 아랫자리에 쓰라고 하였는데 다만 아랫자리를 쓰면 3단 계석 밖에 약간 보토(補 土)할 곳이 있으므로 위로 옮겨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러면 아랫자리로 옮겨 씀이 가하 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1권 73장 B면 영인본 15책 6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중종 69권, 25년(1530 경인 / 명 가정(嘉靖) 9년) 9월 17일(계묘) 2번째 기사 총호사 심정이 묘자리가 방해될 것이 없다고 아뢰다 총호사가 산릉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오늘 다시 산릉의 좌향을 살펴보니 계방(癸方)의 산이 간좌(艮坐) 곤향(坤向)이어서 앞서의 좌향과 달랐습니 다. 당초에 초목이 무성하여 빽빽했기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못했고, 나무를 베어 내고 보토(補土)를 함에 미 276) 방박(磅礴) : 돌이 크고 단단한 모양 277) 수파(水破) : 묘소 앞으로 흐르는 물. 중국 송(宋)나라 풍수학자(風水學者) 호순신(胡舜申)의 지리신법(地理新法) 에 묘소 앞의 물이 길방(吉方)에서 와서 흉방(凶方)으로 흘러가면 생생(生生)하는 기운을 산출하여 길하고, 반대로 흉방에서 흘러와 길방으로 들어가면 생왕(生旺)하는 기운을 충파(衝破)하여 흉하다. 하였다. 조선조 초기부터 호순 신의 물길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풍수설이 많이 유행되었다. 35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51 쳐서야 다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해로울 것은 없었습니다. 태백산사고본 35책 69권 22장 A면 영인본 17책 252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중종 85권, 32년(1537 정유 / 명 가정(嘉靖) 16년) 5월 6일(갑신) 6번째 기사 관상감 제조 유보 등이 이장할 곳으로 옹암의 언덕과 취적동을 추천하다 관상감 제조 유보(柳溥), 예조 판서 윤인경(尹仁鏡), 경기 관찰사 김희열(金希說)이 산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아뢰었다. 헌릉(獻陵) 근처 8 9곳을 보았는데 다 쓰지 못하겠고, 희릉(禧陵) 2 3리 쯤에 있는 옹암(甕巖)의 언덕이 쓸 만합니다. 산은 감수(坎水)278)에 자좌 오향(子坐午向)이고 수파(水破)는 이록(二祿)인데, 청룡(靑龍)279)이 낮은 듯하나 외청룡(外靑龍)이 첩첩이 싸였으니 역시 무방한 자리입니다. 언제든지 내청룡(內靑龍)이 낮더라도 외 청룡이 있으면 썼습니다. 혈(穴) 끝에 비록 돌이 있으나 바로 지상에 있는 것을 제거하면 무방하고, 또 혈 뒤 1백 보(步) 쯤에 구덩이가 있지만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길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맥(地 脈)이 통하지 못할 데는 아니니, 보토(補土)만 해주면 무방할 것입니다. 단지 주산(主山) 근처에 잔돌이 많이 있을 뿐입니다. 지상에는 돌이 있더라도 지하에는 없을 수도 있고, 지상에는 돌이 보이지 않더라도 지하에는 있을 수도 있으니, 금정(金井)만 파보아서는 돌이 있고 없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취적동(吹笛洞)은 희릉의 남산(南山) 화소(火巢)280)밖에 있으니, 범안(凡眼)으로 보아서는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임산(壬山)281)에 자좌 오향(子坐午向)이요, 수파(水破)는 삼문곡(三文曲)인데, 단, 화산(火山)282)인 것입니다. 금년은 연극(年克)283)이 니, 명년에 쓰면 매우 좋습니다. 상지관이, 간산(看山)하여 이와 같은 땅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합니다. 만일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명년 2월이 바로 길삭(吉朔)284)이라 하니, 그때에 쓰면 무방할 듯하므로 아뢰는 것입니다. 신이 보기로는 주산(主山)ㆍ안산(眼山)285)청룡(靑龍)ㆍ백호(白虎)286)가 모두 단정 하여 그 형세가 마치 공수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 언덕 위에는 고총(古冢)이 몇 군데 있고 주산 근처에는 유 생(儒生) 우성윤(禹成允)의 묘가 있어 장사한 지 겨우 3년이 지났는데, 명당(明堂)은 아니었습니다. 전례에, 다른 묘지가 있더라도 만일 나라에서 사용해야 한다면 상관하지 않고 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때문 에 이상 두 산을 그림으로 그려서 아뢰는 바입니다. 태백산사고본 43책 85권 9장 A면 영인본 18책 7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명종 31권, 20년(1565 을축 / 명 가정(嘉靖) 44년) 4월 26일(임진) 1번째 기사 영관상 감사 윤원형 등에게 산릉의 심정에 관하여 전교하다 영관상 감사(領觀象監事) 윤원형(尹元衡), 총호사(摠護使) 심통원(沈通源), 예조 판서 박영준(朴永俊)이 명을 받 278) 감수(坎水) : 북방(北方). 279) 청룡(靑龍) : 주산(主山)에서 갈라져 나간 왼쪽의 산맥. 산맥이 여럿 있을 경우는 내청룡(內靑龍)ㆍ외청룡(外靑龍)으 로 구분해 일컫기도 한다. 280) 화소(火巢) : 산불을 막기 위해 능원(陵園) 등의 해자(垓子) 밖에 있는 숲을 불살라 버린 곳 281) 임산(壬山) : 북방에 위치한 산 282) 화산(火山) : 오행(五行) 중에서 화(火)에 속한 산 283) 연극(年克) : 음양가(陰陽家)의 말로, 그 해 운수가 나쁘다는 뜻. 연기(年忌)와 같은 말 284) 길삭(吉朔) : 좋은 달. 285) 안산(眼山) : 맞은 편에 있는 산. 풍수학상 주산(主山)ㆍ청룡(靑龍)ㆍ백호(白虎)와 함께 요소로 꼽는다. 안산(案山) 286) 백호(白虎) : 주산에서 오른쪽으로 갈려 나간 산맥. 여러 산맥이 있을 경우엔 내백호ㆍ외백호로 구분해 말한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1

352 고 예궐(詣闕)하니, 전교하기를, 산릉(山陵)을 심정(審定)하는 일은 매우 중대하니 진실로 십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신정릉(新靖陵)이 비록 산소의 허술한 곳에 신불(神佛)의 임목(林木)이 보비(補裨)하는 것을 길상(吉祥)으로 삼고 있다. 고는 하나, 외 강(外江)이 약간 보여서 보토(補土)하는 공역(工役)이 있으며 봉은사(奉恩寺)가 또한 너무 가까우니, 내 생각 으로는 온당치 못하다. 또 임술년287)중묘(中廟)의 능을 천장(遷葬)한 뒤로 나라에 좋은 일이 없었고, 3년 안 에 두 번이나 경통(驚慟)의 변고가 있었으니, 선릉(宣陵)의 산이 구정릉(舊靖陵)보다 특별히 나은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미 지난일은 뉘우쳐도 도움이 없으니, 당초 자세히 살펴서 정하느니만 못하다. 지금 속히 제산 (諸山)에 다시 가서 두루 찾아 정밀히 가려 서계(書啓)한 뒤에 다시 의정(議定)하되 지리를 아는 조관(朝官)을 아울러 거느리고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윤원형 등이 회계하기를, 지리에 관한 일은 아득하여 알기 어렵고 상지관(相地官)의 무리들도 이름이 드러난 자가 없으며, 조관으로서 능히 지리를 아는 자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선릉과 구정릉이 묘지가 어느 곳이 나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초 천릉(遷陵)할 때에 지금 정한 산은 의도가 있어 택한 것이니, 전부터 대왕과 왕비의 능은 한 산 안에 정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의 분부가 이러하시니 신들은 다시 가서 살펴보아 모든 곳의 길지 (吉地)를 서계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의견이 또한 마땅하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31장 B면 영인본 21책 1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37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4월 29일(계축) 2번째 기사 정원이 정릉을 다시 구릉으로 정하라고 아뢰다 정원이 아뢰기를, 정릉(靖陵)을 옮긴 것은 이미 재해를 피해서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 리잡은 곳의 위치가 낮아 홍살문 안의 태반은 다른 곳의 흙으로 보토(補土)하였으니 만세의 택조(宅兆)로 합 당하지 않음이 분명하므로 당시 사람들이 누구인들 이 점을 원통하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일이 매우 중요하여 감히 가벼이 의논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망극한 변고를 만나 다시 구릉으로 정하신다면 장 구히 유명(幽明)간에 서운함이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외람되이 근밀(近密)한 지위에 있으므로 우러러 성총 (聖聰)을 번거롭힙니다. 하니, 상이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43장 A면 영인본 21책 699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선조 72권, 29년(1596 병신 / 명 만력(萬曆) 24년) 2월 8일(을사) 4번째 기사 종묘 수조 도감에서 산릉이 파괴된 곳의 보토(補土)를 건의하다 종묘 수조 도감(宗廟修造都監)이 아뢰기를, 종묘(宗廟)를 영선(營繕)하는 역사를 비록 함부로 일으킬 수 없으나, 산릉(山陵)이 파괴된 곳에 있어서는 이 미 여러 해가 지나도록 보토(補土)를 하지 못함으로써 지맥(地脈)이 손상되고 풍기(風氣)가 누설되어 인정에 있어 너무도 애통합니다. 해동(解凍)한 후 의당 보토해야 할 일인데 공역(功役) 또한 그리 크지 않습니다. 더 287) 임술년 : 1562 명종 17년 35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53 구나 종묘의 역사는 의당 귀근(貴近)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데이겠습니까. 역사를 시작하는 날에 종친(宗親) 과 문무 백관(文武百官)으로 하여금 각각 장노(壯奴) 한 사람씩을 내게 하여 지역을 나누어 보토하되 모두 1 일씩으로 끝내며, 이것으로 부족할 경우 5부(五部)의 방민(坊民)으로 하여금 차례로 부역하게 하면 충분히 보 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일의 부역을 누가 꺼리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성의가 없다. 속히 보토의 역사를 마치고자 하면 만에 하나라도 역군들이 와륵(瓦礫)이나 잡토(雜土)로 구차스레 메울 염려가 없지 않으니, 특별히 검찰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금 산(禁山)에서 흙을 채취해서는 안되니 각별히 유의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4책 72권 4장 B면 영인본 22책 64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토목(土木) 선조 127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7월 25일(병인) 3번째 기사 영의정 이항복 등이 포천 신평의 산지 간심 결과를 아뢰다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이헌국, 우의정 김명원, 이조 판서 한응인, 지중추부사 윤자신, 예조 참판 유영길, 병 조 참판 한준겸, 좌윤(左尹) 성영(成泳)이 포천(抱川)신평(新坪)의 산지(山地)를 간심한 후 아뢰기를, 포천 신평의 형세가 쓸 만한 것에 대해서는 술관 등의 논의가 처음부터 이견이 없었는데, 쟁론하며 결정하 지 못하는 것은 다만 임화(壬火)와 자수(子水) 두 산의 분별에 있었습니다. 천하의 산천은 나름대로 일정한 방위가 있으나, 사람이 분별할 적에는 반드시 침석(鍼石)을 써야 능히 방위를 정할 수 있는데, 털끝만큼이라 도 착오가 있으면 방위가 저절로 달라집니다. 난리를 겪은 후 술관이 소지한 침석이 대개 사조(私造)한 것이 많고 상세히 교정한 침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미진한 폐단이 있을까 염려하여 좌윤 성영과 함께 마 침 평시에 간의대(簡儀臺)에서 교정한 것으로서 분수(分數)가 극히 정밀한 침석이 있어 이것으로 방위를 정하 였습니다. 주산(主山)과 낙혈(落穴)이 모두 임화산(壬火山)이 되고 수파(水破)는 삼문곡(三文曲)이 되므로 국용 (國用)에 있어 흠이 없었습니다. 또 정혈(正穴)에 쌍분을 만들 수 있을 지의 여부를 간심하는 일로 전교하셨 기에, 신들이 사조(辭朝)할 때 일변 술관을 강릉(康陵)에 파견하여 쌍분의 석난간(石欄干) 주위를 측량해 오게 하여 그것을 지금의 새로 지점한 여섯 곳에 대조하여 비교해 보았는데, 좌측이 기울어져서 반드시 혈심(穴 心)에 보토(補土)를 한 연후에야 쌍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혈심에 보토를 해야 하므로 쓰기가 어려 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측의 장혈(長穴)은 정혈에서 백호(白虎)가 되므로 쓸 수 없다는 뜻을 전에 이미 계달하였거니와 지세가 협착하여 더욱 쌍분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남침(南鍼)이 비록 피 차 다른 것이 있으나 천신(天神)이 지교(指敎)한 바가 아니니 그 척촌(尺寸)의 방위를 누가 알겠는가. 애매하 여 믿기 어려울 듯싶다. 다만 이곳은 쌍분을 만들수 없고 또 우측의 혈을 쓸 수 없다고 하니 이 산은 쓰기가 어렵다. 대개 중국에서는 수산(壽山)을 미리 만드는데 우리 황상께서도 또한 이미 만들어 놓았다. 마침 이 기 회에 나의 훗날 처소를 만들고 싶다. 유독 대행을 위할 뿐만이 아니다. 이곳을 만약 쓸 수 없다면 비록 며칠 길 밖이라도 또한 해롭지 않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34장 A면 영인본 24책 104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27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7월 25일(병인) 4번째 기사 삼공 등이 장지 조성에 대해 아뢰다 삼공(三公) 이하가 회계하기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3

354 국장을 쓸 만한 산이 원래 그 숫자가 많지 않은데 형세와 향배가 구비하여 흠이 없으며 그윽하고 한적한 산 은 진실로 얻기가 어렵습니다. 쌍분을 안배할 곳에 대해서는 좌측의 낮은 곳이 정혈의 높은 곳과 그리 현격 하지 않아 신들의 논의 또한 다른 점이 많습니다, 혹자는 보토를 하면 마땅히 좌측의 낮은 곳과 사용할 혈 처에 함께 보토를 해야 하는데, 사대부의 장사에는 이와 같은 일이 많으나 국용에 있어 객토로 혈처를 보충 하는 것은 미안할 것 같다. 하고, 혹자는 대개 산롱(山壠)의 넓이가 이 산과 같은 곳이 없다. 만약 이 산롱 을 기울어져서 쌍분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면 비록 다른 곳을 구한다 하더라도 이곳보다 넓은 데는 있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결코 한 혈처에 쌍분을 만들 곳이 없다. 비록 혈처에 보토를 하더라도 이른바 객토는 다만 금정을 안치하는 겉면에만 할 뿐 그 광중(壙中)은 모두 순전한 본토이니 겉면의 보토로 인해 이 처럼 얻기 어려운 산을 버린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고 합니다. 또 우리 나라의 인산(因山)에 대한 제도는 후세로 내려올수록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지금 측량해 온 강릉 석난간의 주위를 조종릉(祖宗 陵)에 견주어 보면 매우 넓고 큽니다. 지금 마땅히 오례의 에 제정된 척수(尺數)로 특별히 외도감 당상(外 都監堂上)을 차임해 지관(地官)을 대동시켜 건원릉(健元陵)으로 보내 그 넓이를 측량하게 하고, 이것을 다시 쌍분의 제도로 비교하여 신평(新坪)의 산지를 왕심하게 하면 쌍분을 안치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당장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의 생각은 대개 이와 같은데 지금은 밤이라 우선 서면으로 아뢰고, 명일 면대하여 곡 절을 상세히 진술하려 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啓辭)는 아뢴 대로 하라. 정혈(正穴)을 쓴 후 백호(白虎)에 쓸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말 인가? 들으니 여염의 사대부들은 백호뿐 아니라 청룡(靑龍)에 대해서도 두루 썼다고 한다. 그리고 백호에 쓰 지 못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은 말하지 않고 한사람만이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 어찌 이와 같은 일을 알겠는가. 또 시험삼아 섭정국(葉正國)에게 묻기를 만약 정혈을 쓰면 백호와 청룡은 모두 쓰지 못하며 수파(水破)는 보지 않느냐? 고 하되, 이 곡절을 믿을 만한 윤근수(尹根壽)같은 이로 하여금 묻게 하라. 하였 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34장 B면 영인본 24책 104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27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7월 26일(정묘) 1번째 기사 장지의 선정과 조성 문제로 대신들과 논의하다 사시(巳時)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이헌국, 우의정 김명원, 이조 판서 한응인, 지 중추 윤자신, 예조 판서 이호민, 좌윤 성영, 예조 참판 유영길, 병조 참판 한준겸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이 상의(李尙毅), 주서(注書) 이유연(李幼淵), 기주관(記注官) 허균(許筠), 기사관(記事官) 정입(鄭岦)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아뢸 일이 있으면 아뢰라.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술관 등이 모두 포천의 산을 매우 좋은 곳으로 여기는데, 다만 자(子)와 임(壬)을 분 변하지 못함으로 의문을 삼고 있었습니다. 지금 정밀한 침석(鍼石)을 얻어 여러 대신과 더불어 다시 간심해 보니, 분명 임산이 되며 수파 역시 좋아 쓸 만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혈은 어떠한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만약 정혈 위의 흙을 깎아서 편편하게 하면 그 정기가 상실될까 염려되기 때문에 마땅히 그 밑에다 보토(補 土)하여 써야 합니다. 비록 보토를 하더라도 객토가 광중을 범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이미 어제 쓸 만하다는 것으로 계달하였으나 문장이 뜻을 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면대하여 자세히 진달하려 하였습 니다. 대개 혈도(穴道)의 평정 풍후하기가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곳에 쌍분을 만들 수 없다면 다른 산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어제 계사에 이미 그 산을 결정하였는데, 성상께서 범연히 보시고 지나칠까 염려되 기에 면대를 청한 것입니다. 대개 바람이 자고 양지가 바르며 청룡ㆍ백호가 모두 좋고 앞에 명당(明堂)이 있 35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55 으니 최상의 길지(吉地)입니다. 쌍분의 제도는 반드시 먼저 정혈을 정한 연후 그 곁에 푯말을 세워 놓았다가 쓰는 것입니다. 다만 신혈(新穴)이 기울어져서 만약 보토를 하게 되면 객토가 섞일 것이니 이것이 의심될 뿐 입니다. 성영과 한준겸이 모두 지리를 아는 사람이니, 하문하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 뜻은 하나의 혈처에 쌍분을 만드는 것일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천수산(天壽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고 그 장제(葬制) 또한 알 수 없으나, 역대 2백 년 동안 모두 이 산에 장례하였다.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아 수파가 비록 좋더라도 연운(年運)이 불길하면 쓰지 아니하므로 각기 능을 차지하여 기내 (畿內)에 널려 있다. 우선 정릉(靖陵)으로 말하더라도 정릉ㆍ희릉(禧陵)ㆍ태릉(泰陵) 3릉을 각각 다른 곳에 썼 다. 유명(幽明)이 그 이치는 같은 것인데 어찌 미안한 일이 아니랴. 내 생각에는 이번 산릉의 일을 계기로 하 나의 대산(大山)을 얻는다면, 비록 천수산의 제도와는 같지 못하여 몇 대 밖에 못 쓴다 하더라도 오히려 산 릉을 각기 정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처음 간심할 때 내가 내관(內官)에게 이르기를 길가의 비천한 곳은 비록 길지라 하더라도 나는 취하지 않는다. 만약 길지를 얻지 못하면 며칠 길 밖이라도 또한 무방하다. 고 하 였으니, 나의 말은 오늘날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곧 만세의 계책이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사가에서는 웃대의 조상을 모처에 장례하면 그 자손은 길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그 곁에 장례하는데, 지관 에게 문의하니, 선조가 만약 길지에 묻히면 자손은 그 여음(餘蔭)을 입어 체백(體魄)도 안녕하다고 합니다. 그 러나 국장(國葬)은 반드시 정혈을 가려서 쓰는 것이니 이미 정혈을 지정하면 청룡ㆍ백호의 방위가 자연 분리 되기 때문에 후에 다시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중원의 제도는 이와 같지 않기 때문에 여러 대를 같은 산에 장 례하는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중조(中朝)뿐만 아니라 송경(松京)의 제도 또한 그러한데 만월대(滿月臺) 및 남대문 (南大門) 밖의 일정한 곳에 모두 장례하였습니다. 하고, 명원은 아뢰기를, 송경의 남대문 밖에 또한 분묘가 있으니, 이는 필시 만월대에 자리가 없은 뒤에 이 곳으로 옮겨 썼을 것이며 반드시 창업한 임금의 유교(遺敎)가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대로 준행하였을 것입 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풍수(風水)에 구애되어 산릉이 기내(畿內)에 널려 있습니다. 세종(世宗)을 처음에는 헌릉(獻陵)안에 장례하였다가 뒤에 영릉(英陵)으로 옮겼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 다. 광릉(光陵) 근처에 필시 쓸 만한 땅이 있을 것이나 수목이 몹시 울창하여 알 수 없습니다. 광묘(光廟)는 광릉 근처에서 사냥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그 곳을 보고 후일 자신이 묻힐 곳으로 잡아두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야 어떻게 천수산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비록 이와 같이 한다 하더라도 후세에 가서 논의가 달라지면 반드시 준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평은 그 형세가 구비하고 먼 산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비록 여러 대의 용처는 되기 어려우나 쌍분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고, 항복은 아뢰기를, 어버이의 장지를 위해서는 사대부도 오히려 길지를 구하는데 하물며 국장(國葬)이겠 습니까. 사사로운 의견이 생기어 도리어 의혹되었기 때문에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길가에 집을 짓는 것처럼 의견이 분분하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백호에 쓰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이의신(李懿信)의 말에 의하면 옥수진경(玉髓眞經) 에 백호는 곧 땅속에 있는 용신호두(龍身虎頭)의 위엄 있는 무서운 신으로 만약 그 혈(穴)을 침범하면 반드시 진노하므로 결코 쓸 수 없 다. 고 하였다. 합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우측의 장혈(長穴)이 아니니 만약 이를 쓰면 청룡이 멀어지고 백호가 너무 가깝게 된다고 한 것이 이의신의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염 사람들이 장례할 때 백호에 쓰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다 쓰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만약 그 혈을 범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방서(方書)에 백호는 쉬이 노하기 때문에 한번 그 위치를 침범하면 반드시 화가 생 긴다. 고 하였습니다. 전교하신 본의가 지극하십니다. 우리 나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 기전(畿甸)은 모두 짐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5

356 승의 소굴이 되어 백성들이 필시 많은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제도는 알 수 없으나, 전조(前朝)의 만수산(萬壽山)은 고려 태조로부터 모두 이곳에 장례하였는데, 그 후 노국 대장 공주(魯國大長公主)를 위해 특별히 대릉(大陵)을 세우느라고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호순신(胡舜申) 의 법이 전조에 시행되지 않았 기 때문에 수파를 따지지 않고 썼는데, 그 법이 이미 우리 나라에 행해짐으로써 풍수에 구애되어 폐단이 만 연되니, 식자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술법이 비록 애매하나 화복을 말해 놓았으니, 신자(臣子)의 심정으 로는 차마 쓸 수가 없습니다.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되 능히 이와 같이 못하는 것은 연운(年運)에 구애되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고, 성영은 아뢰기를, 서경덕(徐敬德)이 선왕조(先王朝) 때 상소하기를 연대가 오래되면 기내(畿內)는 모두 짐승의 소굴이 될 것이다. 고 말하였는데, 지금 상의 하교를 받드니 후세를 위하여 염려하심이 지극합니다. 신이 경인년에 아비가 죽은 후 직접 신평산을 답사해 보았는데, 국장지로 치부해 놓은 것 중에 이 산처럼 좋 은 곳이 없었습니다. 만약 쌍분을 만든다면 달리 구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국장의 제도에 의물(儀物)이 몹시 많으므로 보토(補土)를 하지 않으면 모양을 이루기 어려운데, 이곳은 비록 보토를 한다 하더라도 현궁(玄宮) 은 본토(本土)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또 백호에 쓰는 것을 술관이 가장 꺼리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들을 하지만 여염에서는 산은 제한되어 있고 자손은 다함이 없으니 어찌 백호를 버리고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지리는 알지 못하나 이는 필시 좌(左)가 동(東)이므로 청룡이라 하고 우(右)가 서(西)이므로 백호라 하였을 것이니, 어찌 그 속에 참으로 용호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설령 주산(主山) 이 주작(朱雀)이 된다 해도 그 밑에 또한 새[鳥]가 있겠는가. 이치 밖에 물건이 없는 법이니, 영상(領相)의 생 각은 어떠한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옛날의 산을 보는 방법은 산형(山形)과 수세(水勢)로 기(氣)가 모이고 흩어진 것을 따져 결정하였는데, 그 후에 와서 성신(星辰)의 방위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기내에 한 산만이 아니고 곳곳의 무덤마다 각각 청룡과 백호가 있는데 그렇다면 한 기내에 용신 호두의 신 이 어찌 그처럼 많을 수 있겠는가. 만약 백호의 방위를 침범할 수 없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반드시 백호 의 산에 호(虎)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실로 허황한 것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술관은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고 다만 방서(方書)에 의하여 말할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혈(正穴)ㆍ진룡(眞龍)의 말은 역시 비유하는 말이다. 어찌 진룡이 있겠는가? 하니, 명원이 아뢰기를 술가(術家)가 이와 같이 아니하면 어찌 후세를 현혹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준 겸이 아뢰기를, 신이 오례의 를 상고해 보건대, 동ㆍ서로 두 개의 석실(石室)을 만들어 1실은 먼저 쓰고 1실은 석회를 그 속에 채워 두며, 문비(門扉) 등의 돌은 산기슭의 경지(庚地)에 묻어 두었다가 훗날의 용도로 삼는다고 하였으 니, 이것으로 보면 연운 또한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례의 를 찬술하기 이전에도 미리 석실을 만들었 는지의 여부를 모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정혈(正穴)이 넓지 않더라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 기를, 이것이 나의 본의이다. 하자, 헌국이 아뢰기를, 영릉(英陵)은 격장(隔葬)을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혈이 좁은 것 같다 하니, 훗날 쓰고자 하면 반으로 나누어 쓸 수는 없겠는가? 하 니, 항복이 아뢰기를, 남위(男位)를 먼저 중앙에 정한 후에 여위(女位)를 그 곁에 쓰는 것이 장산(葬山)의 제도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위치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 훗날에 쓰는 것이야 신자로서 어찌 차마 입에 담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한(漢)나라 때에도 수릉(壽陵)이 있었으니 장 35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57 릉(葬陵)ㆍ패릉(霸陵)ㆍ두릉(杜陵)이 그것인데, 한곳에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오릉(五陵)이 모두 한 곳에 있습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오릉은 지명이 아닙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천하의 부실(富實)한 자를 오릉에 이주시켰으니 이것은 능임이 분명하다. 한(漢)나라 때 1년의 전세(田稅)로 능침(陵寢)을 경영한 경우도 있었다. 대명 태조(大明太祖)가 승하하였을 때 7일만에 장례하였으니, 이는 반드 시 평소에 먼저 조치해 두었기 때문에 천자의 상을 또한 7일만에 장례한 것이다. 호원(胡元)의 일은 거론할 것이 못되지만, 기연곡(起輦谷)은 사막 가운데에 있는데 여러 대를 모두 이곳에 장례하였고, 장례의 기간도 모두 며칠 안에 있었다. 그 당시 술사(術士)가 매우 성하였으나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었 다. 하자, 헌국이 아뢰기를, 한나라 때도 미리 경영해 놓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물만 흐르게 하였을 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원(元)나라의 장제(葬制)는 극히 이상하다. 산을 택하지 않고 평지에 장례하여 온갖 우마가 밟게 하였으니, 그 일이 매우 흉악하다. 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오랑캐의 제도입니다. 신이 중국의 사대부들을 보니 역시 평지에 장례하고 신도비 (神道碑)를 세워 표시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섭정국이 본 산은 어떠한가? 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술업(術業)이 서로 다른 터라 결코 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국이 술업에 정밀하다는 것을 내 일찍이 들었다. 황상의 수릉(壽陵)도 이 사람이 정하였다고 한다. 대개 중국 사람은 잡술을 많이 아는데, 우리 나라는 그 조박(糟粕)만을 알 뿐이다. 정국이 정한 것이 필시 정묘할 것이지만 다만 무엇을 근거로 믿을 것인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격국(格局)이 다릅니다. 그가 말한 곳을 보니 결코 쓸 수 없습니다. 하고, 응인은 아 뢰기를, 난리 후에 술관들이 술업에 정통한 자가 없습니다. 신평을 처음 간심할 때 장혈(長穴)을 정하였는데, 이의신 (李懿信)이 주산(主山)에 올라 간심하고 단혈(短穴)을 쓸만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서로 쟁론하다가 지금에야 결정한 것입니다. 조종조로부터 모두 술관의 말을 믿었으니, 지금 다른 말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의신은 어떤 사람인가? 하니, 성영이 아뢰기를, 광주(光州) 사람으로 서얼(庶孽)인데 허통(許通)되어 초시(初試)에 합격한 자입니다. 그는 모든 산을 편답하여 팔도 중에 여섯 도를 다 보았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의 서계(書啓)를 보니 글을 아는 사람이다. 술업은 어떠한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술업의 고하는 알 수 없습니다. 옥수진경(玉髓眞經) 을 전공하고 다른 방서는 많 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성영은 아뢰기를, 산을 보는 법이 매우 익숙하여 내맥(來脈)을 알아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의신은 수파를 따지지 않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산의 형세가 좋으면 수파를 보지 않습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정사룡(鄭士龍)의 묘를 쓸 때 수파가 좋지 않다고 말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세 아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수파 또한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호민은 아뢰기를, 임화(壬火)의 산지라면 수파 또한 좋습니다. 하였다, 헌국이 또 아뢰기를, 이지방(李之芳)의 묘산을 남사고(南師古)가 제왕의 산지에 적합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국용에 기록되었는데, 큰 길가에 있어 천로(淺露)한 것 같습니다. 하고, 성영은 아뢰기를, 지나가는 산이므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7

358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세가 뭉쳐 모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일 이지홍(李之洪)은 길지라고 하였는 데, 경들의 소견은 어떠한가? 하니, 호민이 아뢰기를, 이의신(李懿臣)이 취하지 않았으므로 술관도 그렇게 여깁니다. 하고, 준겸은 아뢰기를, 소신이 이호민과 함께 가 보니, 청룡ㆍ백호는 내향(內向)하는 형세가 없고 주산(主 山)은 그냥 지나가는 형세이며, 혈도(穴道)가 평정하고 풍후하기는 하나 깊숙이 틀고 앉지는 않은 것 같습니 다. 하고, 응인은 아뢰기를, 큰길에서 바라보면 정혈이 환히 드러나 보이니 길을 막으면 좋을 듯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길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과 같은 것으로 결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평산에는 사대부의 분묘가 없던가? 하니, 호민이 아뢰기를, 화소(火巢) 안에 한두 곳 있으나 이 또한 매우 멀어서 꼭 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성영은 아뢰기를, 명당(明堂) 안에 인가가 많으니, 이것은 매우 좋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미리 광(壙)을 팔 수는 없겠는가. 지리에 정통한 자는 땅속에 돌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하니, 모 든 일을 의논하여 하라.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미리 파는 것이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고, 성영은 아뢰기를, 술가(術家)들의 말로는 미리 광을 파면 지기(地氣)가 샌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려운 일이다. 하였다. 이호민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한 곳에 모두 쓰라고 하신 하교에 대해 감격하기 그지없습니다. 일찍 이 내관의 취품(取稟)으로 인해 성상의 뜻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근일 산을 볼 때 반드시 지산(支山)을 택하였 는데, 지금 신평은 지엽의 산맥이 매우 많으니 필시 쓸 만한 곳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준겸은 아뢰기를, 전교하신 것처럼 다만 바람이 자고 양지가 바른 곳만 택한다면 어찌 그런 자리가 없겠습니까. 하고, 항복은 아뢰기를, 만약 성상께서 결정하신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역대로 계승하여 반드시 정통의 산맥에 썼는데, 신자된 자로서 어찌 이와 같이 구간 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어제 대신이 청대(請對)한 의도는, 대행 왕비가 승하하신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아 직 능산을 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직접 성교(聖敎)를 받들어 속히 조처하려는 뜻에서였습니다. 만약 이 산 을 결코 쓸 수 없다고 한다면 오늘 결의하고 나아가 다시 다른 산을 택하겠습니다. 하고, 준겸은 아뢰기를, 이의신(李懿信)이 소신에게 말하기를 이와 같은 산은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술가 에선 상하분(上下墳)으로 하는 것을 별로 꺼리지 않는다. 고 하였으니, 이 한 조항을 강정(講定)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어떠한가? 하니, 성영이 아뢰기를, 술가의 말에 한 산에 3곳 이상은 쓰지 못한다. 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상하분 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전부터 상하분의 제도가 있지 아니하므로 감히 경솔히 상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예문에 상하분을 하지 말라는 말이 없다면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니, 준겸이 아뢰기 를, 이와 같이 하면 향배(向背)와 수파가 동일하나 법규 밖의 일이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못한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상하분은 전부터 그런 규례가 없으니,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염에도 상하 분이 있는가? 하니, 모두 상하분을 쓴다고 하자, 상이 이르기를, 쌍분과 상하분의 일은 측량한 후에 술관과 다시 의논하여 정하라. 하였다. 영길이 아뢰기를, 소신이 지리는 알지 못하나 신평은 하늘이 만든 길지로서 때를 기다린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산을 쓰면 모든 일이 매우 편할 것입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상하분 과 쌍분을 물러가 결정하겠습니다. 하고, 준겸은 아뢰기를, 한 산에 같이 쓰라고 하신 하교는 실로 우리 나라가 평소 하고자 하면서도 행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신평 산뿐 아니라 광릉(光陵)ㆍ창릉(昌陵)ㆍ경릉(敬陵) 및 다른 능의 화소(火巢)안에도 필시 쓸 만한 곳이 많을 것 35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59 인데, 지금은 수목이 무성하여 간심할 수 없습니다. 서서히 낙엽이 지기를 기다린 후에 여러 능을 두루 간심 하여 쓸 만한 곳을 선택해서 국용(國用)으로 등록해 만세의 계책을 삼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상의 (尙毅)는 아뢰기를, 이는 여염에서 일찍이 강론하던 일입니다. 성상께서 천수산(天壽山)의 제도를 말씀하셨는데, 만약 한때의 논 의로 그치고 말게 되면 후에 근거할 데가 없을 것이니, 글로 기록하여 후세로 하여금 준행하게 함이 좋겠습 니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난리를 겪은 후 의궤와 등록이 모두 보존된 것이 없으므로 오직 견문에만 의거하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명목의 가짓수가 너무 많으므로 이처럼 물력이 탕갈한 때를 당하 여 공역을 쉽게 성취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모든 일에는 본말과 경중이 있는데 만약 말절(末節)에만 전력 하면 대사에 미치지 못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장례의 일로써 예를 들어 말하면 의금(衣衾)의 정결함과 관곽 의 견고함은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의당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해야 할 것이요, 불삽(髴翣)의 휘황함과 치봉 (雉鳳)의 찬람함은 말절(末節)인 것입니다. 또 회탄(灰炭)의 정미함은 근본이며 의물(儀物)의 번다함은 말절입 니다. 그리고 한번 정해진 후에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물력이 비록 빈약하더라도 힘써 정성과 노력 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시로 개조할 수 있는 재수(齋守)와 낭무(廊廡)의 등속은 우선 조그마한 집으 로 꾸며도 무방한데, 유사(有司) 등은 한결같이 옛 규모대로 하여 감히 그 사이에 감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신의 생각에는 위의에 관한 물건들을 반드시 헤아려 줄인 연후에야 모든 일을 조처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신이 외람되이 총호(摠護)의 책임을 맡았는데 영악(靈幄)이 만약 샌다면 미안한 일이 니, 옹가(甕家)의 유둔(油芚)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소용되는 물건의 품목을 미리 작성해 둔 후에야 해관(該官)이 스스로 준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명원은 아뢰기를, 지금은 물력이 탕진된 때이므로 마땅히 이항복의 말과 같이 가능한 한 간 략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외부의 의논 역시 그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전일 해조가 복정해 놓은 것이 많아 내가 이미 말하였다. 이런 일은 도 감(都監)이 살펴서 하라.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반드시 공사(公事)가 있은 후에야 해조가 다시 이에 따라 살펴서 시행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상사에 관련된 물건은 감축할 수 없다. 그 밖의 의물(儀物)이 야 어찌 일일이 다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석물(石物)도 어찌 반드시 높고 크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는 실로 무익한 일이다. 하였다. 준겸이 아뢰기를, 석물은 정해진 척수(尺數)가 있어 가감할 수 없는 것인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커져서 강릉(康陵)ㆍ태릉(泰陵)의 석물은 매우 큽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건원릉(健元陵)과 헌릉(獻陵) 등의 석물을 자로 재어와 오례의 에 정한 척수와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헌국이 아뢰기를, 장인(匠人)이 매우 적어서 두어 달 안에 미처 조치하지 못할 듯싶으니 이 때문에 염려됩니다. 김시헌(金時獻)이 풍수(風水)를 안다고 예조 판서가 말하니 이 사람을 참석시키는 것이 좋겠습니 다. 하니, 상이 좋다고 하였다. 헌국이 아뢰기를, 성영과 한준겸도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35장 A면 영인본 24책 104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 仰) 선조 128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8월 11일(신사) 1번째 기사 인산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총호사(摠護使) 이헌국(李憲國)이 아뢰기를, 신이 이충원(李忠元) 등이 인산(因山)에 대하여 현지의 형편을 살펴보고 와서 서계한 것을 보고 술관(術官) 이의신(李懿信)을 불러서 물었더니 고총(古塚)을 파내어 좀 올리거나 내리거나 하고 혈을 재어서 장사지내면 풍수(風水)에는 별로 꺼릴 것이 없으니, 지금 그 옛 구덩이를 피하여 약간 올려 다시 혈을 정하여 쓰면 무방 하다. 고 하였습니다. 아래에서 마음대로 하기는 어려우니 상께서 재결하소서. 하니, 비망기로 답하기를, 앞서 아뢴 대로 하라. 들으니 돌을 운반하던 군인이 부상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마땅치 못한 일이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59

360 다. 정자각(丁字閣)은 높고 크게 할 필요가 없으며 돌을 운반하는 데에 있어서도 인력을 많이 투입시킬 필요 가 없다. 재실(齋室) 같은 경우는 하인(下人)들이 있는 곳이니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분영(墳塋)을 만드는 것만은 정성과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보토(補土)하는 일은 전적으로 마음을 기울여 해서 세월이 오래된 뒤에도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군인은 수천 명을 동원하고서도 충분하지 않 다고 하니, 어찌 그렇게 많이 써야 한단 말인가. 듣건대 사역시킬 적에 통솔하는 것이 조리가 없다고 하니, 아마도 인원수를 낭비하는 걱정이 있을 듯하다. 이 뜻을 알아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4장 B면 영인본 24책 110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29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9월 18일(무오) 1번째 기사 총호사 이헌국이 대행 왕비의 묏자리에 대해 아뢰다 총호사 이헌국, 공조 판서 이충원(李忠元), 예조 참판 유영길(柳永吉), 행 사직(行司直) 정구(鄭逑) 등이 아뢰 기를, 신들이 윤근수ㆍ양문성(楊文成)과 함께 구지도를 살펴보았더니, 문성은 제왕이 묻힐 터도 아니며 또 청룡 등성이가 없다. 하였고, 박상의와 이의신은 모두 나라에서 쓸만한 자리이다. 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상 교를 받들어 강물이 넘쳐 들어오는가를 알아보려고 어떤 노인에게 물었더니 경진년 홍수에 물이 산 아래까 지 찼었다. 고 하였습니다. 정구는 말하기를 형세가 외지고 엷으며 결국(結局)도 얕고 촉박하다. 고 하였습니 다. 사람들의 의견이 이와 같이 엇갈리고 있으니 민망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정릉(靖陵)을 보지 못하였는가. 수환(水患)이 염려스럽다. 288)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8책 129권 14장 B면 영인본 24책 126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30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10월 9일(기묘) 2번째 기사 대행 왕비의 묏자리에 관해 논의하다 이항복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교하현에 가서 바로 이문통이 점찍은 저현산(猪峴山)에 이르러 자(尺)로 재어 보았더니, 앞쪽의 보토(補土)할 곳의 길이가 대략 80자 쯤으로 보토할 곳이 아주 높아 객토(客土)가 너무 많이 들어야 하니 좋 지 않은 듯합니다. 또 문통의 법은 옛 투식을 따르지도 않고 보통 쓰는 예들도 쓰지 않았는데, 그가 칭찬해 말하는 것은 모두 보통 사람의 평범한 식견으로는 능히 헤아리지 못할 것들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전부터 준 수하여 쓰던 정해진 법식이 있는데, 이제 우리 나라의 법식을 가지고 본다면 혈도(穴道)가 바르지 못한 데다 가 한쪽으로 치우친 지맥(支脈)의 경사져 내린 곳일 뿐입니다. 안대(案對)와 조종수(朝宗水)는 비록 명려(明 麗)한 듯 하나 산맥이 향하는 바와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안쪽의 용호(龍虎)289)도 낮게 쳐져 있으며 좌우 도 모두 허전합니다. 오직 박상의(朴尙義)만은 이는 반룡(蟠龍)의 형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고 했으나, 술 관들은 끝내 흠점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만일 문통의 말과 같이 한다면 무덤의 형태가 주롱(主隴)과는 비껴 나고, 용미(龍尾)의 뒤가 아주 허전하여 가려주는 것이 없게 될 것으로, 이 하나만 가지고도 감히 경솔하게 288) 정릉(靖陵)을 보지 못하였는가. 수환(水患)이 염려스럽다. : 고양(高陽)의 원당(元堂)에 있던 정릉을 보우(普雨)가 봉 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자기의 세력을 굳히고자 지금의 자리인 봉은사 곁으로 이장하였는데, 물이 범람하 면 강물이 넘쳐들어 강물을 막느라 보토(補土)공사에 많은 돈이 소비되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11 명종 조고사본말(明宗朝故事本末) 요승보우지찬(妖僧普雨之竄). 정릉은 중종의 능 289) 용호(龍虎) :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36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61 쓰자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신들이 이미 다시 살피라는 명을 받았으니 여러 신료들의 소견을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어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옳고 그르고 간에 이곳을 쓰고자 한다. 바깥의 의논들은 어느 곳을 쓰고자 하는가? 하자, 회계하기를, 지금 전교하신 뜻을 가지고 반복해서 논의하였는데 박상의는 쓸 만하다고 하였고 송윤(宋崙)의 의견은 교하 현의 뒷산이 쓸만하다고 하였으며, 김덕원(金德遠)과 김여견(金汝堅)은 신평을 쓰자고 했습니다. 술관들의 의 견은 별도로 기록하여 아뢸 것이며, 성영(成泳)과 정구(鄭逑)는 각자 계달할 것입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30권 6장 B면 영인본 24책 134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외교명(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30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10월 10일(경진) 5번째 기사 대행 왕비의 인산에 관해 논의하다 이항복ㆍ이헌국ㆍ김명원(金命元) 등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 인산(因山)을 정하는 법도는 사대부의 묘산(墓山)을 정하는 법규와는 자별(自別)합니다. 형세 와 향배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우선 혈도(穴道)가 광활하여 석물(石物)을 놓을 수 있고, 명당(明堂)이 넓게 툭 틔어 재궁(齋宮)을 지을수 있으며, 청룡과 백호가 분명하고 마주 보이는 산들이 법대로 된 다음이라야 나 라에서 쓰는 자리에 합치됩니다. 지금의 저현산은 청룡과 백호가 낮게 쳐지고 용미(龍尾)가 아주 허전하여 가려주는 것이 없으니 형세와 향배 가 상규에서 벗어났고, 혈도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바르지 못하며, 뒤와 좌우가 모두 허(虛)하여 바람을 받 는 결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토해야 할 곳의 길이가 자그만치 80자[尺]나 되는데, 겨울철에 보토한 곳은 땅이 단단하지 않습니다. 수도(隧道)의 앞쪽을 전부 객토로 메울 경우 봄철이 되어 만일 흙이 풀려 무너져 내리는 일이라도 있게 된다면 나라의 일이 후회해도 소용 없게 될 것입니다. 단지 문통의 일시적인 말만을 가지고 갑자기 국모의 장지를 정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뜻을 살펴보더라도 끝내 미안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 결정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의 뜻이 이와 같기에 감히 진달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곳은 비단 중국 사람만이 말한 것이 아니라 술관 박상의도 좋다고 한 곳이니, 무엇을 의심할 것이 있겠는 가. 정구(鄭逑)와 성영(成泳) 같은 무리는, 학문이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꿰뚫고 하는 말마다 경훈(經訓)이 된 다는 것은 내가 믿겠다. 그러나 감여술(堪輿術)을 알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비단 나만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도 웃을 것이다. 나도 지리에 대해서 능통하다. 왼쪽에 한 산이 솟았으니 청룡(靑龍)이고 오른쪽에 한 산이 우뚝하니 백호(白虎)이며, 앞쪽에 한 산이 높이 솟았으니 주작(朱雀)이고, 뒷쪽에 한 산이 높다라니 현무(玄武)이며, 그 아래 조그만 한 언덕이 있으니 정혈 (正穴)로서 장사지낼 만한 곳이다. 이것이 우리 나라 여러 사람들의 지리술이니 이런 것이야 누군인들 알지 못하겠는가. 무릇 얄팍한 소견으로 망령되이 깊은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바라 보는 것과 다르겠는가. 이제 옛사람의 찌꺼기와 천박한 학문으로서 각기 자기의 소견을 내세워 장단(長短)을 다투는 것이 마치 아이들의 장난과도 같으니, 참으로 자신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무릇 지리술이란 반드시 위로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겸하여 망기(望氣)290)에도 능한 다음이라야 지맥(地脈) 의 묘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지는 못하겠다만 우리 나라 사람 중에 이에 능한 자가 있겠는가. 이 것이 바로 내가 평소부터 우리 나라에는 지리술에 능한 자가 없다고 단정해서 말했던 까닭이다. 농사일은 당 연히 늙은 농사꾼에게 물어야 하고 군사일은 당연히 늙은 장수에게 물어야 하는 것으로 무엇인들 이것과 다 290) 망기(望氣) : 멀리서 떠 있는 기운을 보고서 조짐을 아는 일.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61

362 르겠는가. 다른 곳에 쓸 만한 곳이 있다면 어찌 반드시 이곳에다 쓰려고 하겠는가. 나의 견해는 이와 같으니 경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30권 7장 B면 영인본 24책 134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선조 130권, 33년(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10월 17일(정해) 2번째 기사 인산 도감에서 산릉 역군의 징발에 대해 아뢰다 인산 도감(因山都監)이 아뢰기를, 새로 잡은 교하현(交河縣) 저현은 보토(補土)하는 역사(役事)가 신평(新坪)보다 10배나 되며, 또한 연극(年克) 에 걸렸기 때문에 반드시 동지(冬至)를 지나고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일이 많지 않아 더욱 군박한 데다가 대부석(大浮石)을 조계(曹溪)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교하와는 거의 4식정(息程)이나 되어 운반 하는 데 소요되는 인력이 신평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본래 정한 5천 명 외에 병조로 하여금 4 천 명을 더 뽑아 보내 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30권 14장 B면 영인본 24책 138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군사(軍事) / *재정(財政) 광해 27권,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윤3월 3일(무신) 1번째 기사 봉릉국의 설치는 연기하되, 수호군과 참봉은 먼저 차출케 하다 봉릉국(封陵局)을 별도로 설치할 것에 대해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이항복이 의논드리기를, 봉릉은 본디 별도로 한 국을 설치해야 합니다. 다만 공사가 방대하여 사용되는 수 만의 군사에 대해 쉬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듣자니, 보토(補土)해야 할 곳이 다른 때보다 갑절이나 많다고 합니 다. 지난해의 흉년은 근래 없던 것이었고, 현재 실시되고 있는 모든 공사도 근래에 없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조사(詔使)의 행차도 멀지 않으니, 문물(文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근본이 먼저 손상될까 깊이 염려스럽습니 다. 명호(名號)가 이미 정해졌고 세부 절차도 이미 구비되었으니, 영당(靈堂)과 토석(土石) 공사의 완공이 두 어 달 지연된다 하더라도 별로 흠되는 일은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번 가을을 기다려서 추곡이 잘 익 고 조사가 돌아가 피로한 백성들이 안정된 뒤에 내년 봄이 되거든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전 교하기를, 의논대로 추수가 끝나고 조사가 왔다 간 뒤에 다시 의논해서 공사를 시작하도록 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수호군(守護軍)은 전례대로 더 배정하고, 능전(陵殿)의 참봉을 차출하는 일은 먼저 거행하라. 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70장 A면 영인본 31책 51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광해 32권,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8월 18일(경인) 1번째 기사 예조에서 대신의 의논으로서 성릉을 보토하고 정자각을 세우는 문제를 논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완평 부원군(完平府院君)이원익(李元翼), 영부사 윤승훈(尹承勳), 영의정 이덕형(李德 36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63 馨), 청평 부원군(淸平府院君)한응인(韓應寅)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듣건대 성릉(成陵)에 보토(補土)할 곳이 지 극히 가파르고 좁아 공사하려면 많은 인력이 소요된다고 하니, 이는 참으로 막대한 중역(重役)이라 하겠습니 다. 이제 막 칙사의 행차를 치른 탓으로 경기 지역의 백성들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국가의 비축이 고갈된 때를 당하여 또 이런 공사를 시작한다면 형세상 지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듭 백성의 원망을 불러 일 으킬 것이고, 게다가 낮 시간마저 짧아져 가고 있는 만큼 노력은 배로 들면서 공사의 진척은 더디기만 할 것 이니, 이 점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내년 봄에 할 경우에는 또 농사철을 빼앗게 될까 두렵습니다. 따라 서 밭갈고 김매는 작업이 다 끝나고 삼농(三農)291)이 한가하게 될 즈음에 인부를 동원하여 기일에 맞게 성사 토록 한다면 매우 온당하게 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또 좌상 이항복(李恒福)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처음 의논드릴 때 내년 봄을 기다려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토목 공사를 벌일 때 날씨가 추우면 끝내기가 어려워 백성의 힘만 지치게 할 뿐 일을 완성할 기약이 없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빨리 하거나 천천히 하거나 간에 원래 급급히 서두를 일이 아닌 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 비록 급히 인부들을 모은다 해도 다 동원 할 때쯤이면 초겨울이 될 것인데, 날씨가 무섭게 추워져 손발이 얼어 터지고 부상당하는 백성들이 필시 많아질 것이니,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렸 다가 공사를 급히 진행시키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듣건대 능 아래에 옛날부터 있던 집이 매우 허술하 여 제대로 모양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니, 만약 영건청(營建廳)에 몇 개의 대목(大木)이 남아 있거든 지금 우선 정자각(丁字閣)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또 우상 심희수(沈喜壽)는 의논드리기를 이미 추숭(追崇)하는 성대한 일을 거행한 이상 원릉(園陵)을 개수하 는 이 하나의 일이야말로 성상께서 효도하는 도리에 비추어 볼 때 급급히 거행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듣건대 이 공사에 드는 수고와 비용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지금 칙사가 지나간 뒤라서 백성의 힘이 다 소진 되고 국가의 비축이 고갈되었으니, 쉽사리 공사를 시작했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해의 길이가 짧아지는 상황에 서 일의 두서가 채 잡히지 못하는 탄식이 있게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우선 내년 봄까지 기다렸다가 하더라 도 4, 5개월 정도 지연시키는 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추모하는 효심에 손상되는 점은 없을 듯합니다. 하 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논대로 하라. 정자각을 만들 곳도 한가한 날을 택해 형세를 봉심한 뒤에 내년 봄을 기 다렸다가 공사를 시작하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7장 A면 영인본 31책 56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광해 39권,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3월 7일(정미) 5번째 기사 성릉에 흙을 보강하는 문제로 상의하라고 하다 전교하였다. 듣자니 성릉(成陵)292)의 보토(補土)할 곳이 좌우의 산세가 험준하여 공사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비록 감히 힘을 아끼지는 않지만 축조한 뒤에 영원히 견고하여 무너져 내릴 근심은 없는가. 내가 매우 염려 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달리 선처할 방도는 없는가? 도제조와 더불어 반복하여 상의해서 아뢰도록 하 라.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38장 B면 영인본 31책 607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291) 삼농(三農) : 봄철의 밭갈이, 여름철의 김매기, 가을철의 수확을 말함. 292) 성릉(成陵) :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恭嬪) 김씨의 능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63

364 광해 39권,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3월 24일(갑자) 2번째 기사 봉릉 도감이 성릉의 규모 등을 그려서 올리다 봉릉 도감이 아뢰기를, <봉분은 다른 능에 비해 얼마나 작으며 석물(石物)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모두 그림으로 그려서 입계하라 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신들이 오늘 동서의 여러 능의 도형을 가져다가 상의하여 마련해 보니, 각능의 봉분 중에 지름이 큰 것은 40여 척이고 작은 것은 20여 척이었는데, 크기가 같지 않아 이처럼 현격한 차이가 났 습니다. 이로 보건대 신들이 전날 아뢴 내용 중에 봉분의 크기는 원래 정해진 제도가 없다고 한 것이 가까운 듯합니다. 곡장(曲墻) 안의 동서의 거리와 문무석을 배치하여 세운 거리 역시 그에 따라 달랐는데, 곡장 안의 거리가 가장 넓은 것은 70여 척이고 그 다음은 60여 척이고 좁은 것은 50여 척이었으며, 문무석의 거리는, 먼 것은 6, 7십여 척이고 그 다음은 4, 5십여 척이고 가까운 것은 30여 척이었습니다. 지금 성릉(成陵)의 예전 봉분도에는 지름이 15척 5촌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만약 4척 5촌을 넓힌다면 20척 이 되어 경릉(敬陵)293)보다 3척 정도만 부족하게 됩니다. 곡장 내에서 동서로 예전의 터와의 거리가 21척인 데, 지금 만약 19척을 물려 쌓는다면 합하여 41척이 됩니다. 봉분 20척을 제외하면 좌우에 남는 공간은 각각 10척 5촌이 있게 됩니다. 그 안에다 지금 배치해야 하는데, 봉분 밑에서 석난간(石欄干)까지는 그 사이가 1척 이고, 난간석의 두께는 1척 5촌이며, 석난간에서 석호(石虎)까지는 마땅히 2척의 사이를 두어서 사람이 통행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석호의 길이는 5척이니 석호는 곡장에서 1척의 거리에 배치하여 세웁니다. 이것을 근거로 상세히 참작해 본다면 곡장 내에 의물(儀物)을 배설하는 거리는 다른 능에 비해 간혹 한 자 남짓 부 족한 점이 있으나 또한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닙니다. 곡장의 기반의 하단은 흙을 쌓고 돌을 쌓아 대략 계단 의 형태로 만듭니다. 문무석의 거리에 있어서는, 유릉(裕陵)294)의 제도는 33척이니 지금 비록 몇 척을 감하더 라도 부족할 근심은 없을 듯합니다. 이에 의하여 해나간다면 보토(補土) 작업은 비록 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힘도 덜들이고 일도 쉽게 성취할 수 있으니, 역군을 그리 많이 쓰지 않더라도 강원(岡原)과 혈도(穴道) 역시 본 모습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각능의 도형과 별록이 매우 번잡하고 자잘하기에 긴요한 부분만 뽑아 따로 하나의 별록을 만들어, 보시기에 편하도록 하였습니다. 모두 올리오니 전하께서 재량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보니 상세히 살펴 참작하였다. 아뢴 대로 시행하라. 성릉의 본분(本墳)의 분광(墳廣) 여부와 보토 등의 일은 술관(術官)이 모두 모인 뒤에 상의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59장 B면 영인본 31책 61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建設) 광해 42권,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6월 3일(신미) 2번째 기사 정부ㆍ예조의 당상, 관상감ㆍ선공감의 제조가 목릉을 봉심하다 정부(政府)ㆍ예조의 당상, 관상감ㆍ선공감의 제조가 목릉(穆陵)을 봉심하였다. 능의 왼쪽 무석(武石) 아래의 보토(補土)한 곳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가서 살핀 후 장차 개축하려는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8장 A면 영인본 31책 63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인조 8권, 3년(1625 을축 / 명 천계(天啓) 5년) 3월 16일(갑자) 1번째 기사 호우로 목릉이 훼손되자 중사와 사관을 보내 봉심하다 293) 경릉(敬陵) : 덕종 능 294) 유릉(裕陵) : 선조 전 왕비 박씨의 능 36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65 크게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려 목릉(穆陵)의 사초(莎草)가 5 6칸 가량이 무너지고, 섬돌 밑의 보토(補土)도 10 칸 가량이나 흐물흐물 무너졌다. 그 날로 중사(中使)와 사관을 보내 봉심하였다. 예조가 위안제(慰安祭)를 지 내기를 청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4장 B면 영인본 33책 68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인조 11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2월 9일(임오) 1번째 기사 계운궁의 묘소를 김포로 결정하다 예장 도감(禮葬都監)이 아뢰기를, 도감의 당상인 이정구(李廷龜)ㆍ정광적(鄭光績)ㆍ김신국(金藎國)ㆍ구굉(具宏)이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김류 (金瑬)ㆍ서성(徐渻)과 회동(會同)하여 전후 간산(看山)한 곳의 산론(山論)과 도형(圖形)을 가지고 다시 술관(術 官)들에게 각기 소견을 쓰게 하여 그곳의 고하에 대한 등제를 매겼는데 모두들 고양(高陽)ㆍ김포(金浦)ㆍ교하 (交河)를 일등지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희주(鄭熙周)는 교하 객사(客舍)의 뒷산이 귀격(貴格)은 있으나 주산 (主山)이 파손된 데가 있는 것이 큰 흠이다. 고양 고군(古郡)의 뒷산은 형세가 매우 아름답지만 수파(水破)가 곧게 나간 것이 흠이다. 그러나 둑을 조금 쌓아 오방(午方)으로 흐르게 하면 매우 길하여 교하보다 낫다. 김 포 객사의 뒷산은 별로 흠될 곳이 없다. 하였고, 송건(宋健)은 고양 고군의 뒷산이 제일이고 다음은 김포이 고 또 그 다음은 교하 객사의 뒷산이다. 하였고, 이갑생(李甲生)은 김포 객사의 뒷산은 제일이고 그 다음이 고양 고군의 뒷산이고 또 그 다음이 교하 객사의 뒷산이다. 하였고, 최남(崔楠)은 교하는 길격(吉格)에 합치 되지만 혈도(穴道)가 부서졌으니 보토(補土)한 뒤에야 쓸 수 있다. 고양의 옛고을은 형격(形格)이 매우 길하지 만 수파(水破)가 정지(丁地)로 나 있으니 둑을 조금 쌓으면 매우 강하다. 김포는 형세(形勢)가 모두 순하여 달 리 논할 것이 없다. 하였고 오세준(吳世俊)은 교하가 제일이고 김포가 제이이고 고양이 제삼이다. 하였습니 다. 신들은 모두 풍수(風水)에는 어두워 그 우열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자들이 논한 것을 가지고 되풀이하 여 상의해 보건대 고양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저들의 말이 각기 같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 좋다고 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의 재결을 바랍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다시 간심(看審)하게 하여 고양으로 결정하고 난 뒤에 다시 외방의 지관들을 대동하고 간심하니 고양은 흠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 서 다시 김포에 가서 간심하라고 명하였는데 군의(群議)가 모두 길하다고 하였으므로 드디어 그곳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39장 A면 영인본 34책 73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인조 22권, 8년(1630 경오 / 명 숭정(崇禎) 3년) 5월 4일(계미) 1번째 기사 대신들이 건원릉의 둘째 능선이 길한 것으로 아뢰다 대신들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전후 지관(地官)들이 건원릉 둘째 능선과 영릉이 있는 홍제동 두 곳의 형세에 대해 논한 것을 보건대, 그들의 견해가 조금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 그러나 두 곳의 길한 면을 논하면서 둘째 능선의 청귀(淸 貴)한 점과 홍제동의 진밀(縝密)한 점 모두를 극구 칭찬하였고, 두 곳의 하자를 논하면서 둘째 능선의 왼쪽 산등성이가 조금 낮고 가는 듯하니 지금 보토(補土)하면 결국은 완전한 지형이 될 것이라고 한 반면, 홍제동 의 정혈은 두 개의 무덤 형태가 있고 그 밑에도 고총을 파낸 흔적이 많이 있어 땅의 기운이 빠져나갈 우려 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파도 길하지 않다 하였으니, 이런 곳은 사대부들의 집에서도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만으로도 취사 여부를 살펴 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둘째 능선은 선왕께서 후일에 쓸 것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65

366 이라고 분부하였으니, 또한 이미 정해진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둘째 능선에는 넘어다 보는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쓰기가 미안하다. 다시 의논하여 정하라.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신들이 전후로 산에 대해 논한 것들을 가져다 상고해 보았으나, 넘어다 보는 봉우리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 습니다. 그래서 의심을 금할 수가 없기에 즉시 최현(崔睍) 이하 여러 사람을 불러 물어 보니, 모두들 둘째 능선의 자리에는 본래부터 넘어다 보는 산은 없다. 그런데 청룡(靑龍) 쪽의 조금 낮은 곳으로 멀리 빼어난 봉우리가 있으니, 그러나 만약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는다면 확실히 하나의 성봉(星峯)이 되므로 길하기는 해도 흉하지는 않으며, 조금 밑에다 자리를 잡는다면 넘어다 보는 산이 된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들의 한바탕 논설로 그친 데 지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잡은 자리에는 별로 넘어다 보는 산이 없습니 다. 하니, 답하기를, 그렇다면 둘째 능선으로 정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38장 A면 영인본 34책 378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인조 31권, 13년(1635 을해 / 명 숭정(崇禎) 8년) 3월 18일(무진) 2번째 기사 좌의정 오윤겸 등이 능을 봉심한 후 손상된 실상과 이유를 아뢰다 좌의정 오윤겸, 예조 판서 홍서봉, 선공감 제조 신경진(申景禛)이 두 능을 봉심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대왕 능의 무너진 곳은 자지(子地)에서 인지(寅地)까지는 포백척(布帛尺)으로 재어본 바 길이 15척, 넓이 4척 에 구덩이진 곳으로 깊은 경우 1척 남짓하고 얕은 곳은 4촌(寸) 남짓하며, 유지(酉地)는 길이와 넓이가 4척에 깊이는 8촌 내지 6촌 남짓하고, 술지(戌地) 사초(莎草)가 5촌 남짓 물이 새어 나오고 오지(午地)는 아래쪽에 젖어 있는 곳이 3척이며, 인지(寅地)는 아래쪽에 수렁진 곳의 깊이가 6촌인데 역시 무너져 있으며, 오지(午 地)ㆍ미지(未地)ㆍ묘지(卯地) 등의 곳은 만석(漫石)과 병석(屛石) 사이에 다 같이 물이 새어 젖은 곳이 있었습 니다. 왕후 능은 능 위의 사초가 무너져 쌓인 것이 유지에서 인지까지 길이가 23척이고, 축대 전면 서편의 보토(補 土)가 무너진 곳이 길이 33척에 너비 32척이었습니다. 대개 두 능이 무너진 것은 갓 입힌 사초가 아직 뿌리가 내리지 않고 갓 돋운 흙이 아직 굳어지지 않아서 물 이 그 틈서리를 타고 들어가므로 사초가 벌어지면서 흙이 파여 나온 뒤에 빗물이 쏟아져 들어가서 점차 구 덩이가 진 것으로, 형편상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들이 본 바로는 분명히 수재로 해서 무너진 것 이지 달리 의심할 만한 단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의 능침 제도가 옛날의 제도와 같지 않아서 윗머리는 펑퍼짐하면서도 넓고 아랫머리는 조금씩 줄어든데다 중간허리는 크기 때문에 상두에는 물이 고일 우려가 있고 하두에는 물이 흘러 내릴 길이 없습니 다. 오늘날의 재변이 이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수리 때에는 건원릉(健元陵)의 제도를 본받 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선왕의 능침 제도를 본받아서 다시는 이러한 문제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참봉이 당초 능의 재변을 보고해 왔을 적에는 온 나라가 온통 놀라와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만약 이러한 때에 사안에 따라서 진계(陳啓)한다면 노한 하늘을 혹시 돌이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간관은 인 사가 잘못된 탓으로 돌리고 예관은 수환(水患) 탓으로 돌려서 다만 부묘(祔廟)의 대례(大禮)를 며칠 물려 거 행하고만 말아 길흉을 뒤헝클어 놓았으며, 봉심한 서계마저도 사실대로 아뢰지 않고 그저 능의 제도가 옛날 과 같지 않아서라고 함으로써 임금에게 하늘을 경멸하고 재변을 숨기는 마음을 더 주었으니, 마음 아프기 그 지 없다. 36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67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11장 B면 영인본 34책 587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역사편사(編史) 현종 4권, 2년(1661 신축 / 청 순치(順治) 18년) 4월 18일(정유) 4번째 기사 영릉의 개수를 명하다 영릉(寧陵)의 개수를 명하였다. 처음에 능을 봉(封)할 때 도감의 관원 등이 속히 완결지으려고만 하고 보토 (補土)와 석물(石物) 등의 일을 모두 견고하고 정밀하게 하지 않았던 관계로 기울어지고 틈이 생겨 매년 개수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통분스럽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13장 B면 영인본 36책 29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현종 21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4월 2일(신축) 1번째 기사 영릉의 일을 의논하다 상이 대신 및 주사(籌司)의 여러 재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영림 부령(靈林副令) 이익수 (李翼秀)를 불러오게 하여 묻기를, 상소한 것 이외에 또 말할 것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봉심할 때에 참봉이 말하기를 기해년295)국장(國葬) 때 감동관(監董官)이 병환 중이 라서 보토(補土)하는 일을 제 기간 안에 하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밤에도 흙을 다져 쌓았으며 공 역을 서둘러 나무 조각을 사용하여 막았는데, 오래 되자 나무 조각이 썩어 날이 갈수록 점점 기울어지고 무 너진다. 고 하였습니다. 또 들으니, 전일에 능관(陵官)이 빗물이 고인 정상을 예조에 보고하니 수일 뒤에 처 음으로 와서 살펴보았는데, 그때 고였던 물이 이미 말랐으므로 속였다 하여 능관을 도태시켜 버렸다. 고 하였 습니다. 하였다. 대사헌 김휘가 아뢰기를, 나무 조각으로 메우고 채웠다는 말은 일이 매우 놀랍습니다. 이 말이 진실 이라면 감동관을 효시(梟示)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서서히 처리하고, 능관을 도태시켜 버렸는지의 여부를 자세히 조사하도록 하 라. 하였다. 익수가 아뢰기를, 틈이 가장 큰 곳은 그 안이 매우 넓어서 목척(木尺)으로 헤아려 보면 막힘없이 깊 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니, 좌상 김수항이 아뢰기를, 외면의 회(灰)를 걷어 버리고 틈안의 깊이와 너비 및 청석(靑石)이 많은지 적 은지를 일일이 조사해야 되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신, 정경(正卿), 삼사(三司)의 장관은 익수와 함께 가서 살펴 보라. 하였다. 김휘가 나아와 아뢰기를, 공릉 차제 감찰(恭陵差祭監察)이 조사서를 올리기를 헌관(獻官) 안경(安鏡) 이 남여를 타고 안향청(安香廳)에서 홍문(紅門)까지 갔고 향배 서리(香陪書吏)로 하여금 말을 타게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능침(陵寢)은 지극히 공경해야 할 곳인데 어찌 감히 이렇게 했단 말입니까. 매우 무식합니다. 안 경을 파직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안경을 잡아다 심문하여 처치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A면 영인본 37책 36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건설(建設) 295)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67

368 현개 4권, 1년(1660 경자 / 청 순치(順治) 17년) 8월 27일(경술) 1번째 기사 영릉에 행행하다 상이 영릉(寧陵)에 행행하였다. 5경(更)에 동가(動駕)하였는데 동관왕묘(東關王廟)에 이르러서는 연(輦)에서 내 려 양마교(兩馬轎)를 탔으며 송계(松溪)의 동쪽에서 주정(晝停)하였다. 진시(辰時)에 능소(陵所)의 막차(幕次)에 이르렀는데 조금 있다가 상이 최복(衰服)을 갖추고 소교(小轎)를 타고서 막차를 나아와서 홍문(紅門) 밖으로 나아갔으며 문안에서 배릉례(拜陵禮)를 행하였다. 곡(哭)을 하면서 행보하여 능위로 나아가 돌난간 밑에 이르 러서는 손으로 돌난간을 어루만지며 머리를 석주(石柱)에 조아리고 통곡하니, 좌우가 감동하여 슬퍼하였다. 도승지 오정일(吳挺一)이 앞으로 나아가 내키는 대로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 것을 청하였으나 상이 곡을 그치 지 않았다. 우부승지 유계(兪棨)가 나아가 아뢰기를, 대신(大臣)과 예관(禮官)을 불러 속히 봉심(奉審)하소서.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가주서(假注書) 이숙달(李叔達)이 나아가 대신과 예관을 부르니, 영의정 정 태화(鄭太和), 예조 판서 윤강(尹絳), 참판 김수항(金壽恒), 참의 강백년(姜栢年)이 나아왔다. 상이 능위를 빙둘 러 살펴보고 나서 진방(辰方)의 상석(裳石)에 틈이 난 곳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이것이 이른바 틈이 벌어졌다고 하는 곳인가? 하니, 태화가 대답하기를, 이곳이 그곳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어진 곳에 틈이 있고 또 똑바르지도 않은 것 같다. 하고, 또 이르기를, 이른바 짧은 것을 보충했다는 죽석(竹石)은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니, 태화가 대답하기를, 묘지(卯地)의 죽석에 틈이 난 것이 가장 큰데 과연 돌 조각으로 짧은 것을 보충했고 또 유회(油灰)를 발랐습 니다. 상석의 틈은 진실로 미안스럽습니다만, 바로 퇴광처(退壙處)에 있으니 아마도 해동(解凍)이 되면서 땅이 꺼져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겨울에 흙을 쌓는 역사(役事)는 이렇게 될 걱정이 없지 않다. 돌의 색깔이 고르지 않은 것 같은 것은 대단한 흠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죽석은 고치기가 어렵지 않 고 가석(駕石)과 병풍석(屛風石)은 틈이 있기는 하지만 넓게 벌어지는 데 이르지는 않았으니, 메워서 보수해 도 되겠다. 하고, 또 이르기를, 상석은 이전 것을 그대로 수보(修補)해도 되겠는가? 하니, 태화가 대답하기를, 이는 바로 하현궁(下玄宮)한 뒤에 배치한 돌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보해도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 이 이르기를, 나의 소견으로는 능(陵)을 개봉(改封)하는 것은 사체가 중대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를 인하 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지금 이 봉심(奉審)은 사체가 지극히 중대한데 우의정 원두표(元斗杓), 유도(留 都) 원임(原任) 이경석(李景奭)ㆍ정유성(鄭維城)은 다른 능(陵)의 제관(祭官)에 차임되었으니, 육경(六卿)과 삼 사(三司)를 명소(命召)하여 널리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주서 박신규(朴信 圭)가 나아가 이조 판서 홍명하(洪命夏), 형조 판서 조형(趙珩), 대사간 이정영(李正英), 지평 곽제화(郭齊華), 교리 이민서(李敏叙) 등을 불러 나아오게 하였다. 상이 각기 소견을 진달하게 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신이 봄에 제관(祭官)으로 여기에 왔을 적에 목도하고서 연석(筵席)에서 진달했었습니다만, 지금 또 봉심하니 과연 미안스럽습니다. 신이 일찍이 예관(禮官)으로서 장릉(長陵)을 봉심한 적이 있었는데 또한 사소한 틈이 생긴 곳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기유년296)에 목릉(穆陵)의 병풍석(屛風石)이 기울어 주저앉았기 때문에 개축한 규례가 있습니다. 지금 상석과 죽석은 병풍석과는 차이가 있으니, 개봉(改封)할 필요가 없다는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하고, 조형은 아뢰기를, 지금 이렇게 보니 과연 미안스럽습니다. 신이 경기 감사로 있 을 적에 여러 능을 봉심했었는데 역시 석물(石物)에 틈이 벌어진 곳이 있기도 했으니, 이 때문에 개봉(改封)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윤강ㆍ이정영도 개봉하는 것은 중난(重難)하다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이민 서가 아뢰기를, 능을 개봉하는 것은 진실로 중난한 일입니다만 오지(午地)의 죽석은 고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하고, 곽제화는 아뢰기를, 석회로 틈을 바른 곳을 살펴보니 당초에 틈이 있었던 것으로 지금 와서 틈이 벌어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 정태화는 아뢰기를, 능을 개봉하지 않는 것은 이제 이미 상의 앞에서 품정(稟定)했습니다만, 진지(辰地)의 상석과 묘지(卯地)의 죽석을 수개하는 이외에 고쳐야 할 다른 데에 대해 296) 기유년 : 1609 광해군 1년. 36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69 서는 도감에서 스스로 계품하여 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능을 개봉하지 않는 것은 이미 정당(停 當)한 것이다. 하였다. 이어 윤강에게 하문하기를, 이른바 통망처(通望處)와 보토처(補土處)라고 한 것은 어느 방향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산세(山勢)가 앞이 탁 트였기 때문에 통망이라고 한 것이지만 건너편 산맥(山脈)이 보이는 데에는 이르지 않 습니다. 또 동쪽의 지세가 조금 야윈 상태이므로 대략 보토를 한 것입니다. 하였다. 사시(巳時)에 상이 능 위 에서 내려와 정자각 동쪽에 이르러 기와가 비에 씻긴 곳을 하문하니, 비에 씻긴 뒤에는 누런 빛이 없어졌다 는 것을 오정일이 상세히 진달하자 상이 그러냐고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빗물이 진 뒤에는 사초(莎草)가 으레 손상을 당하는 걱정이 있게 마련이니 예판(禮判)은 도승지와 함께 뒤에 남아서 상세히 봉심하도록 하 라. 하였다. 상이 이어 소차(小次)로 들어갔고 좀 있다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예를 끝내고 소차로 돌 아왔는데 조금 있다가 또 홍문(紅門) 안으로 나아가 사릉례(辭陵禮)를 행하였다. 그리고 나서 소교(小轎)를 타 고 막차로 돌아와서 경기 감사 유철(兪㯙)에게 표피(豹皮) 한 벌을, 양주 목사(楊州牧使) 권대운(權大運)에게 는 궁전(弓箭) 한 벌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오시(午時)에 동가(動駕)하여 돌아오다가 주정소(晝停所)에 머물 렀으며 미시(未時)에 관왕묘(關王廟)에 이르러서는 연(輦)을 타고 신시(申時)에 환궁하였다. 이어 수개 도감(修 改都監)을 설치하고 윤강(尹絳)ㆍ여이재(呂爾載)ㆍ이만(李曼)을 당상으로 삼았다. 삼가 살피건대 영릉(寧陵) 석물에 틈이 벌어진 것은 사람이 일을 극진하게 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니, 당 초 일을 맡았던 신하들은 진실로 죄가 없을 수 없다. 이번에 여러 신하가 누차 봉심한 뒤에 보수할 것인가 개축할 것인가에 대한 뭇 의론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이 직접 봉심하여 신하들과 상의한 다음 드디어 보수할 것으로 의논을 결정하였다. 끝내 개축하는 것은 미안스럽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뒤 틈이 벌어지고 낮게 꺼진 곳은 해마다 수보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이에 영림령(靈林令) 익수(翼秀)가 몰래 가서 그림으로 그려다가 소장을 올려 아뢰어 결국은 천릉(遷陵)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추가(追加)로 봉 축(封築)함이 미안스럽기는 하지만 그대로 보즙(補葺)하여 오래도록 편안하지 못한 것이 더욱 미안스러운 것 이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 는 송시열의 당초 헌의(獻議)를 채용했더라면 또 어찌 천릉(遷陵)하는 거조가 있었겠는가. 익수의 무리는 이것을 가지고 조신(朝臣)을 경함(傾陷)시킬 계책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광중 (壙中)에 아무 탈이 없는 상태에서 경솔하게 15년 동안 평안히 모셨던 곳을 헐어버리자 채 1년도 못 되어 대 상(大喪)이 잇따라 났다. 이에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천릉(遷陵)에 대한 의심이 없을 수 없게 되었으니, 통분 스러움을 견딜 수 있겠는가.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4장 A면 영인본 37책 192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개 4권, 1년(1660 경자 / 청 순치(順治) 17년) 12월 10일(신묘) 3번째 기사 흥정당에 나아가 삼복을 시행하고 공사를 의논하다 상이 흥정당에 나아가서 삼복(三覆)를 시행하는데, 사형을 받은 자가 18명, 사형에서 감형된 자가 3명이었다. 영의정 정태화가 아뢰기를, 계복(啓覆)의 죄인은 이미 처단을 하였습니다만, 계절이 마침 한겨울인데다 새해 가 또 멀지 않으니, 전옥서의 죄수 역시 탑전에서 소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일후에 소결하라. 하였다. 형조 판서 정치화가 아뢰기를, 국가의 기강이 해이되어 관리들이 사정 으로 공사를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을미년 추쇄(推刷) 때에 녹안(錄案)된 노비가 이제 와서 더러 상언을 하여 다시 면천을 받는 자가 많으니, 이는 청리(聽理)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고, 정태화가 아뢰기를, 이뿐만 아닙니다. 반정 이후의 죄인이 적몰(籍沒)당한 노비를 이제 와서 감히 도로 찾아갈 생각을 내어 상언하는 자가 또 많으니,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정원이 이 내용을 알아서 이제부터는 추쇄 노비로서 상언하는 일을 일체 금단하되, 비록 잘못 해조에 내려 져서 이미 회계를 거친 일일지라도 격례를 어긴 이유를 들어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릉(寧陵)의 석물이 또 쓰러졌다니 이 무슨 연고인가? 하자, 태화가 아뢰기를, 아마 보토가 제대로 다져지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69

370 지 않아서 이런 변이 생긴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만약 빗물이 스며들 우려만 없다면, 이처럼 추운 날씨에 역사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따스한 봄날을 기다려서 수축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58장 B면 영인본 37책 209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왕실종사(宗社) 현개 19권, 9년(1668 무신 / 청 강희(康熙) 7년) 4월 3일(신미) 1번째 기사 노비 신공ㆍ인사 적체 등을 논하다. 조복양ㆍ김좌명ㆍ조한영을 추고하다 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침을 맞은 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예조 판서 조복양이 아뢰기 를, 영릉(寧陵)의 석물을 봉심해 보니, 상석(裳石)이 물러나온 곳은 술지(戌地)에서부터 손방(巽方)까지로 8, 9분이 물러나기도 하고 1촌 3, 4분이 물러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바로 보토(補土)한 곳으로서, 상석은 으 레 지대(地臺) 위에 배치하므로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난간석(欄干石) 바깥의 전석(磚石)이 견고하지 못한 탓에 이와 같이 된 것이니, 이 돌을 치운 다음 견고하게 쌓고서 회로 채운다면 좋을 듯합니다. 석공(石工)에 게 물어보니 역시 고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다지면서 쌓는 것이 비록 미안스러운 듯은 하지만 여 기에 구애되어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영구히 보전하는 계책이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먼 뒷날을 위한 계책으로 말한다면 바깥의 전석을 치우고 광릉(光陵)의 제도와 같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쉽게 할 수가 없으니, 우선은 가을 추수가 끝나기를 기다려 처리하라. 하였다. 대사헌 이경억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비망기를 보건대, 말뜻이 간절하였는바, 신하들 치고 그 누가 감동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뒤에 즉시 비가 내렸으니 감응하는 이치가 매우 신속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태가 지나갔다 하여 성상의 뜻이 혹 해이해진다면 어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응답 하는 도는 참으로 공구 수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만약 폐단을 혁파하고 백성들 을 구원하는 정책에 미쳐가지 않는다면 역시 끝내는 무익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각사(各司)의 노비 신공(奴婢身貢)을 각각 반 필을 감하여 이미 실제적인 혜택을 주었습니다. 한 집안에 여자 가 많은 자들도 변통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백성들 가운데 나이가 겨우 16세밖에 안된 자들은 반드 시 신역(身役)을 스스로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니, 혹 20세로 한계를 정한다면 타당할 듯합니다. 하고, 영상 정태화가 아뢰기를, 이것은 효종조에 강구하였던 일입니다. 20세로 한계를 정하는 것이 마땅합니 다. 하고, 호조 판서 김좌명이 아뢰기를, 전년에 이미 반 필을 감해주었는데 지금 또 나이를 물린다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정태화가 아뢰 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다른 군역(軍役)을 지고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그런 마음을 먹을 것이니, 다른 대신 들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여쭈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이경억이 또 아뢰기를, 재변을 당한 호서 지방 고을들의 제반 신역(身役)을 지난번에 관찰사 민유중의 장계로 인하여 반으로 감하 였으며, 내노비(內奴婢)의 신공(身貢)도 똑같이 반으로 감해주었습니다. 경기ㆍ해서(海西)ㆍ원양(原襄) 세 도의 재변을 당한 고을의 노비 신공도 호서 지방의 예에 의거해서 시행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돌보아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이경억이 또 아뢰기를, 이처럼 재변을 당하여 도움을 구하는 때에는 재야에 있는 유신(儒臣) 송준길ㆍ윤선거 등을 특별히 불러 오는 것이 마땅하며, 오랫동안 올라 오지 않고 있는 이상 진(李尙眞)과 교외로 물러가 있는 이단상(李端相)의 경우에도 모두 징소하여 기어이 조정에 나오게 하여야 합 니다. 그리고 이숙(李䎘) 등 8인은 이미 직첩(職帖)을 주었으니, 거두어 서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는데, 상이 자못 받아들일 뜻이 있었다. 또 아뢰기를, 승문원의 참하(參下) 중에는 적체된 자가 많아 40여 명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서열이 아주 낮은 자는 6품으로 오를 기약이 없는데, 그 가운데 어찌 쓸만한 사람이 없겠 습니까. 사일(仕日) 수가 많은 것을 기준으로 승천시키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정태화가 아뢰기를, 전에 성균관에 참하관이 몹시 많았으므로 한 도목(都目)에 두 사람씩을 승출(陞出)시켰습니다. 지금도 이에 의거해 서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이조 판서 박장원이 아뢰기를, 적체된 것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승문원의 참 하관을 찰방(察訪)으로 차출해 보내는데, 광흥창ㆍ사재감ㆍ제용감 등 세 곳의 참봉도 역시 문신 참하관의 자 37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71 리입니다. 이번에도 실관(實官) 외에는 이 예에 의거해서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자, 정태화가 아뢰기를, 한 도목에 두 사람씩을 승출시키는 것도 성균관의 규례를 써야 합니다. 하니, 상이 모두 윤허하였다. 성균 관의 규례는 6월에는 두 사람을 승출시키고 12월에는 한 사람을 승출시키는 것이었다. 이조 참판 민정중이 뒤에 다시 아뢰어 이에 의거해서 거행하였다. 김좌명이 아뢰기를, 이경억이 진달한 인재를 불러쓰고 정신 을 모우라는 말은 참으로 절실하고도 지극한 말입니다. 다만 허다한 여러 신하들을 위에서 어떻게 다 살필 수가 있겠습니까. 현재 참으로 죄가 없는데도 거두어 쓰지 않고 있는 자가 있는데, 이는 대개 조정에 당론(黨 論)이 있어서 자기 편 의견만 주장하고 반대 편 의견은 배척해서이니, 어떻게 공론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인 조조에는 전랑(銓郞)의 권한이 가벼웠는데, 지금은 권한이 낭관에게 있어서 주의를 할 즈음에 당상이 마음대 로 하지 못합니다. 대개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일에 있어서 한쪽 편 사람들은 추존하고 한쪽 편 사람들은 배척하고 있습니다. 신 역시 색목(色目)을 면할 수 없어서 두 사람을 존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이로 인하여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영구히 폐기해서야 되겠습니까. 현재 벼슬길이 막힌 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위에서 여러 신하들을 보는 것은 하늘이 만물을 굽어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치우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 니까. 비록 대간으로서 말했다 하더라도 한 번 시의에 거슬리면 문득 폐기당합니다. 상께서 만약 어떤 사람 이 무슨 죄로 벼슬길이 막혔는지를 물어본다면 무고하게 폐기당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 박장원 이 아뢰기를, 근래에 마침 참판이 없고 단지 실랑청(實郞廳)만 있으나 김좌명의 말과 같이 권한이 중한 자는 없습니다. 하고, 조복양이 아뢰기를, 붕당이라는 명목은 만력(萬曆)을해년297)에 비롯되었는데, 이는 실로 전 고에 없던 고질적인 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계해년298)이후로는 심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어찌 의논 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거두어 쓰이지 못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쓸 만한데도 버림을 당했던 사람을 김좌명에 게 물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좌명이 어찌 감히 말머리를 감춘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니, 김 좌명이 아뢰기를, 상께서 만약 물으신다면 일일이 대답하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 를, 붕당의 폐단이 점점 성해지는데 어찌 점점 쇠해진다고 말하는가. 조복양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 다. 하였다. 조복양이 아뢰기를, 전에는 한쪽 편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 반대 편 사람들은 모두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계해년 이후로는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뒤섞어 써서 전과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 니다. 하자, 김좌명이 아뢰기를, 조복양과 박장원은 모두 면전에서 상을 속이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박장 원과 조복양이 면전에서 속인다는 지척을 당하였다는 이유로 쟁변하기를 마지않았다. 정태화가 아뢰기를, 좌명의 말은 몹시 불평스러우며, 조복양이 진달한 바도 타당치 않습니다. 색목(色目)에 대한 말을 어찌 임금 앞에서 할 수 있으며, 면전에서 속인다고 말한 것은 김좌명이 잘못한 것입니다. 하고, 이경억이 아뢰기를, 김 좌명이 면전에서 속인다고 한 말은 적당치 않으며, 조복양이 쟁변하는 즈음에도 불평스러운 말과 기색이 있 었습니다. 사체에 있어서 모두 온당치 않으니, 아울러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이에 조복양과 김좌명 이 일어나 나가려 하자, 상이 모두 도로 앉도록 명하였다. 헌납 윤형성이 또 아뢰기를, 부총관 조한영(曺漢 英)은 이미 마음대로 직소(直所)를 떠난 잘못을 저질렀는데, 지난번에 기우제의 제관에 차임되어서도 또 병을 핑계대고 나아가지 않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상이 우선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장 A면 영인본 37책 605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군사군역(軍役)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사상유학(儒學) /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정론(政論) / *재정역(役) / *신분(身分) / *구휼(救恤) 현개 26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4월 2일(신축) 1번째 기사 김수항이 접위관의 장계를 읽고 관소를 옮겨 달리는 왜인의 청에 대해 아뢰다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좌상 김수항(金壽恒)이 접위관(接慰官)의 장계를 297) 을해년 : 1575 선조 8년 298) 계해년 : 1623 인조 1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1

372 상의 앞에서 읽고 아뢰기를, 관소(館所)를 옮겨달라는 왜인의 청에 대해 우리쪽에서 줄곧 모호하게만 답변할 수 없으니 명백하게 답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이 일로 인해 도주(島主)가 강호(江戶)에 죄를 얻어 죽고 양국이 우호 관계를 단절하게까지 되는 등 모두 그가 말한 대로 된다 할지라도 따를 수는 없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될 리가 또 어찌 있겠습니 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만약 동래 근처의 관방(關防)을 설치하지 않은 지역을 청한다면 다시 의논해 볼 수 도 있지만 웅천(熊川)의 경우는 결코 들어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답변토록 하라. 하였다. 상이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영림 부령(靈林副令) 이익수(李翼秀)를 불러오게 한 뒤 그에게 하문하기를, 상소한 내용 외에 또 할 말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봉심(奉審)했을 때 참봉이 말하기를 기해년 국장 때에 감독하는 관원 이 마침 병에 걸려 보토(補土)하는 공사를 기한 내에 끝마치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도감이 독촉하는 바 람에 야간에까지 공이로 다지면서 공사를 끝마치기에 급급한 나머지 나무 조각을 많이 사용하여 메꿨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썩어 날이 갈수록 점점 기울어지고 무너지게 된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전일 능관 (陵官)이 빗물이 고인 상황을 예조에 보고했더니 며칠이 지난 뒤에야 와서 살폈는데 고였던 물이 이미 다 말 라버리고 없자 능관이 속인 것이라고 하면서 도태시켜 버렸으므로 그뒤로는 감히 다시 보고하지 않았다 합 니다. 하였다. 대사헌 김휘(金徽)가 아뢰기를, 나무 조각으로 메꿨다는 이야기야말로 놀랍기 그지없는데, 과 연 이런 일이 있었다면 적발해서 효시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에 대해서는 서서히 처리하 도록 하고, 능관을 도태시켰는지의 여부를 조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상이 또 이익수에게 하문하기를, 현재 틈이 벌어진 상태가 갑진년에 보았을 때와 비교해서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회와 돌 사이가 마치 인 가의 대청 마루에 댄 판자 사이의 틈과 같은데, 나무자로 재보니 깊이 들어가기만 할 뿐 걸리는 것이 없었습 니다. 대체로 전에 보았던 것에 비해 훨씬 틈이 넓어졌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갑진년에 봉심하고 나 서 왜 진달하지 않았는가? 하니, 이익수가 아뢰기를, 즉시 상달하려고 했습니다만 부형(父兄)이 혹 죄를 입 을까 염려하여 울며 금지하였기 때문에 생각이 있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비로소 죽음을 무릅쓰고 앙달했는데 다행히도 사대(賜對)하는 은혜를 받았으니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가령 전 폐(殿陛)의 돌이 기울어져 바르지 못하게 된 경우일지라도 개조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텐데, 능침이 얼마 나 중한 관계가 있는 일인데 한 사람도 실상대로 상달한 자가 없었단 말입니까. 정말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대가 거리끼는 일이 있는데도 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던 것을 말하였으니 정말 가상하다. 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 기와와 자갈로 보충해서 메꿀 때에 어떤 사람이 봉심했는가? 하니, 수항이 아뢰기를, 회를 바를 때의 감역관(監役官)이 의레 감독했을 텐데 그가 어찌 감히 이렇게 했겠습니까. 지금 모름지기 외 면의 석회를 떼어내고 틈 속의 깊이와 넓이 및 기와와 자갈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일일이 봉심해야 하겠 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내가 병 때문에 직접 살피지를 못하니, 대신ㆍ육경ㆍ삼사(三司)의 장관ㆍ한성 판윤이 이익수와 함께 같이 가서 봉심토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57장 B면 영인본 38책 14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 현개 27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5월 1일(경오) 3번째 기사 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죄수를 심리하다 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과 삼사 및 금부 당상을 인견하고 죄수를 심리(審理)하였는데, 사형 죄수 외에는 모두 경중을 분간하여 처결하였다. 송지렴 등의 추안에 이르러 상이 이르기를, 이 율(律)은 어떠한가? 하니, 판의금 조형이 아뢰기를, 훼대사구단(毁大祀丘壇)의 조목에 따르면 장 일백 유 삼천 리의 율을 적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개 보토(補 土)할 때 기한이 촉박했던 데다가 마침 혹한기였고 보토할 곳의 길이가 무려 60척(尺)이나 되었으니, 아무리 견고하게 쌓게 해도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형세였습니다. 다만 그들의 원정(原情)을 보면 서로 책임을 떠넘 37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73 기고 있었는데 이 일은 부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좌ㆍ우 부석소 감조관(浮石所監造官)이었던 송지렴ㆍ신명규ㆍ한시중ㆍ이정기와 보토 감조관(補土監造官)이었 던 이최만은 모두 정배하라. 호상 중사(護喪中使) 윤완(尹完)은 금정(金井)을 설치하고 현궁(玄宮)을 내릴 때 및 정자각(丁字閣)을 상량(上樑)할 때 명을 받들고 왕래했을 뿐 능소(陵所)에 머물면서 연일 감독한 일은 없 었으니, 똑같이 논죄할 수 없다. 풀어 보내라. 하였다. 우의정 김수흥이 아뢰기를, 경중을 논한다면 보토관의 죄가 다른 사람보다 더욱 중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보토한 속에 잡물(雜物)을 집어넣었다는 등 운운하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은 그 허실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극변(極邊)에 정 배하라. 하였다. 장령 김수오가 아뢰기를, 감독한 신하들이 일단 모두 죄를 받았고 보면, 윤완이라고 해서 또 한 어찌 전연 무죄로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가 만약 역사를 감독했었다면 본래 용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간여한 바가 없는데 어떻게 벌을 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부교리 김만중이 아뢰 기를, 이미 호상 중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제신(諸臣)에게 죄를 매길 때 그만 홀로 죄를 면하게 될 경 우 외부 사람들이 또한 어떻게 그 곡절을 알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삭직(削職)하고 풀어 보내라. 하였다. 조형이 아뢰기를, 전일 봉심한 뒤 인견하셨을 때 상께서 능에 틈이 벌어진 분수(分數)가 예 전에 비해 어떠하던가? 라고 하교하셨는데, 아래에서 상세히 답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전후 에 사용한 자에 길고 짧은 차이가 있어 분수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신 해년의 서계(書啓)에는 4, 5분(分)의 틈이 벌어졌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1촌(寸)이 넘는다. 봉심할 때의 도량형 은 모두 공척(工尺)을 쓰는데 어떻게 차이가 나는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김수흥이 아뢰기를, 신의 아우 김 수항이 현재 대죄(待罪)하고 있는 중이라서 신이 이 일에 대해 감히 진달드릴 입장이 못됩니다마는, 대체로 그 실상을 듣건대 석회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틈이 더 벌어졌는지 상세히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러나 사리로 미루어 보건대, 3년이 지난 뒤였는데도 별로 증가된 것이 없었다고 말한 것은 너무도 그럴 듯하 지 않은 말이니, 상의 하교가 어찌 지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증가(增加) 라는 말 위에 대 단(大段) 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면 그래도 혹 괜찮을 수 있다. 그런데 단지 별로 증가된 것이 없었다고 말 했으니, 이 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그때 참봉이 보고한 내용 가운데 회 바 른 데가 떨어지지 않은 곳은 그 벌어진 틈의 분수(分數)를 정확히 재지 못했고 단지 회가 이미 떨어진 곳을 자로 쟀을 뿐이다. 는 말이 있는데, 이는 형세상 혹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자를 범연히 보아 넘 기다니 정말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토록 중대한 일을 그만 자세히 살피지 못해서 그 런 것이지, 어찌 문서를 소홀히 다뤄서 그런 것이겠는가. 하였다. 김만중이 아뢰기를, 근래 산릉(山陵)의 일 때문에 대신 이하 많은 사람들이 죄를 받는 대상에 들어 있어 상하가 의심하며 막혀 있고 인심이 침울하기만 하였는데, 지금 문서를 소홀히 다뤄서 그런 것이겠는가. 라고 하신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서야 지난날 아랫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능침에 대한 일이 불행히도 이 지경에 이르러 상께서 바야흐로 황급해 하시며 애통해하시는 중에 계시게 되 었으니 죄를 받은 신하들로서는 죽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전에 봉심했던 신하는 모두 죄를 면 하고 신해년에 봉심했던 신하들에 대해서만 유독 위를 속였다는 죄명(罪名)을 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산릉의 사체가 얼마나 중대한데 어떻게 눈으로 틈이 더 벌어진 것을 보고서도 고의로 숨겨 군부(君父)를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살펴보 는 날에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그것이 될 일이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3년 뒤에 봉심했는데도 별로 증가된 것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해 문서를 가지고 살펴 보니 지극히 수상하기 에 그런 식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 하였다. 만중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평상시에 대신을 대하실 때에는 얼마 나 신임하고 예모를 갖추셨습니까. 그런데 이에 이르러 그만 실정 밖의 분부를 내리셨는데, 신의 생각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꼭 상하가 의심하여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사용한 자의 길이가 같지 않았다는 설에 대해서는 신이 그 곡절은 모르겠습니다 만, 과연 똑같은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틈의 크기를 잰 분수(分數)가 차이 나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 다. 하고, 동의금 김우형(金宇亨)이 아뢰기를, 두 개의 자를 서로 썼던 문서를 신이 지금 가지고 왔습니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3

374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상이 이르기를, 정지화ㆍ남용익ㆍ이준구는 모두 삭직하여 방송하고, 예조의 낭청 은 간여한 일이 없으니 방송하라. 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상께서 가뭄의 재해를 안타깝게 여기며 걱정하 느라 겨를이 없으신 나머지 이렇듯 심리하는 거조를 취하게 되셨으니 신도 부득이 염치를 잊고 나오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대간 가운데 패소(牌召)에 응하지 않은 자가 많은데, 병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만, 비망록으로 책려하신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다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오래 전에 차출된 수령 가운데 서 경(署經)을 받지 못한 사람이 5인이나 되는데, 각읍(各邑)의 인마(人馬)가 오래도록 머물러 있게 되는 폐단 역 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소에 응하지 않은 대간을 모두 체차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1장 A면 영인본 38책 14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정론간쟁(諫諍) 현개 27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5월 5일(갑술) 2번째 기사 상이 우의정 김수흥 등을 인견하고 산릉 개조 여부를 하문하다 상이 우의정 김수흥, 예조 판서 조형, 참판 이은상, 참의 이혜를 인견하고 산릉(山陵)을 개조할 것인지 옮길 것인지의 여부를 하문하였는데, 모두 대답하기를, 보토(補土)한 것이 기울어지고 함몰되어 오늘날과 같은 변을 초래했으니, 지금 비록 개축한다 하더라도 뒷날 무사하리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길지(吉地)를 가려 능을 옮기는 외에 는 다른 대책이 다시 없습니다. 하니, 상이 하교하기를, 영릉(寧陵) 능 위의 석물(石物)이 점차 틈이 벌어진 것이 당초 잘 안배(按排)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대 체로 보토를 견고하게 하지 못해서 해마다 틈이 벌어지는 환란을 초래한 것이니, 능의 봉분을 개조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보토가 일단 견고하게 되지 못한 이상 뒷날 환란이 일어나지 않 는다고 꼭 보장할 수 없는데, 만세토록 영원히 모셔야 할 도리에 있어 끝내 고식적으로만 처리하고 끝낼 수 는 없는 일이다. 능을 옮기는 일이 막중하고 막대한 일이라는 것을 본디 알고 있지만 그야말로 사세가 만부 득이해서 하는 일이다. 예관은 지관(地官) 및 지술(地術)에 정통한 사부(士夫)들을 데리고 먼저 근방의 여러 산에 가 살펴보도록 하고, 관상감 제조도 동행토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장 A면 영인본 38책 14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현개 27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5월 27일(병신) 1번째 기사 영릉의 형세에 대해 지관과 논하다 산릉 도감(山陵都監) 당상인 조형과 민유중이 여러 산을 살펴보고 들어오니, 상이 희정당에서 인견하였는데, 우의정 김수흥도 입시하였다. 상이 차례로 여러 산의 우열을 하문하니, 김수흥 등이 여러 지관(地官)의 말로 대 답하기를, 화접동(花蝶洞)의 형세가 꽤 좋지만 혈(穴)위에 10여 개의 옛무덤이 있으니 쓸 수 없을 듯하고, 영릉(寧陵)의 백호(白虎) 밖 첫 번째 언덕이 영릉에 비교해 낫지만 마무리되는 마당이 작으니, 모두 영릉(英陵) 안쪽 홍제 동(弘濟洞)의 순수하게 좋은 곳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보토(補土)한 곳은 없던가? 하니, 유중이 아뢰기를, 곡장(曲墻) 밖에 조금 있었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5장 B면 영인본 38책 147면 37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75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화접동(花蝶洞)의 형세가 꽤 좋지만 혈(穴)위에 10여 개의 옛무덤이 있으니 쓸 수 없을 듯하고, 영릉(寧陵)의 백호(白虎) 밖 첫 번째 언덕이 영릉에 비교해 낫지만 마무리되는 마당이 작으니, 모두 영릉(英陵) 안쪽 홍제동(弘濟洞)의 순수하게 좋은 곳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보토(補土)한 곳은 없던가? 하니, 유중이 아뢰기를, 곡장(曲墻) 밖에 조금 있었습니다. 현개 27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6월 14일(임자) 1번째 기사 전 참의 장응일이 유지에 응하여 상소하다 전 참의 장응일(張應一)이 유지(有旨)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신의 나이 80에 박두하여 오래도록 병상에 있다 보니 거의 죽어가는 상태에서 정력이 이미 다 떨어져 세상 의 일에 대해서는 자연 귀머거리나 소경처럼 되었습니다마는, 세 조정을 거쳐 살아남은 목숨이 일념으로 나 라를 걱정하는 것만큼은, 늙었다고 해서 혹 해이해지거나, 위치가 보잘것없다고 해서 잠시라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늦게야 듣건대, 영릉(寧陵)의 석물(石物)에 틈이 벌어지는 변고가 생겼다 하는데, 이 이야기가 참말입 니까? 신이 혼자 스스로 생각하기를 국가의 변고로 이보다 큰 것이 없는데, 선왕을 만세토록 모실 능침(陵 寢)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보토(補土)를 빈틈없이 하지 못하고 사람의 계획이 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택조(宅兆)가 길하지 못하고 신도(神道)가 안정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성상께서 마음 속으 로 얼마나 근심하시며 몸둘 바를 몰라 하시겠는가. 하며 처분이 어떻게 내려질지 귀를 기울이면서 밤낮으로 우울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전후의 비망기(備忘記)를 보고서야 감독한 관원들과 봉심(奉審)한 대신들이 모두 죄를 받았다는 것과, 능을 옮기는 일이 성상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이 는 불행 중 다행으로서 국가의 복이라 할 것입니다. 다만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아 심리(審理)하도록 명을 내리시고 봉심한 신하들의 불경스럽고 불충(不忠)한 죄 까지 모두 사면해 주셨는데, 전하께서 대신을 대우하는 면에서 보면 극진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선왕을 섬기 는 도리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선왕의 오르내리는 영(靈)께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울적한 마음을 갖 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대저 심리라고 하는 것은 범죄 사실이 중하기는 해도 그 정상에 용서해 줄 만한 점이 혹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봉심한 대신들의 불경스럽고 불충한 죄에 대해 전하께서는 그 정상에 혹 용서해 줄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불경스럽고 불충한 죄야말로 인신(人臣)의 대 죄(大罪)로서 왕법(王法)에 비추어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것인데, 전하께서 이처럼 법을 굽혀 죄를 사면해 주 시다니,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켜 비가 오게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신은 염려됩니다. 능침을 봉심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또 더구나 영릉이 어떤 능침입니까. 그런데도 한두 대신이 전하의 뜻을 몸받지 못하고 그저 인정에만 구애된 나머지 봉심하라는 명을 받고서도 사실대로 보고드리지 않음으로써 전하로 하여금 이제야 변고를 처음 아시게 하였으니, 성상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마음을 가지 셔야 하겠습니까. 보통의 인정으로 말하면 진정 원수로 대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마땅한 것으로서 완전히 석 방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성인의 심정에 보통 인정과는 다른 점이 있어 서 그러신 것입니까? 전하께서 차라리 남의 제어를 받는다는 이름을 얻을망정 감히 대신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 는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 하더라도, 우선 꾹 참고서 신릉(新陵)의 공사를 완료한 뒤에 곡진하게 처 리해 주신다 해도 늦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만 급급하게 심리하는 잘못된 거조를 취하시어 조 위봉(趙威鳳)의 말에 대해 책임이나 메꾸려는 듯이 하는 점이 있게 함으로써 나랏 사람들이 비웃도록 만드셨 단 말입니까. 아, 필부가 어버이를 장사지낼 때에도 자기 정성을 다하는 법인데, 천승(千乘)의 임금으로서 선왕을 장사지내 면서 오히려 필부보다도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삼가 듣건대, 당초 능을 살펴 정하던 날 지술(地術)을 아는 사부들 모두가 말하기를 수원(水原)에 있는 산이 가장 길지(吉地)이다. 고 했었는데, 누가 영릉을 꼭 써야 한 다는 의논을 주도하여 전하로 하여금 이렇듯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망극한 변을 맞게 했단 말입니까. 윤선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5

376 (尹善道)가 상소하여 산에 대한 이야기를 갖추어 진달하였는데도 불태워진 채 정원이 끝내 전하께서 보시도 록 봉입(捧入)하지 않았던 것은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만약 하문해 보신다면 선도의 상소에 나오는 뜻 을 모두 아실 수 있을텐데, 대저 그런 뒤에야 전하께서 영릉은 제왕의 장지(葬地)가 못된다는 것과 당초에 벌써 운운(云云)하는 설이 있었다는 것을 환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영릉을 꼭 써야 한다는 의 논을 주도한 자야말로 전하의 집안 일을 망치고 선왕에게 크게 불충한 짓을 했다는 것이 분명한데, 임금의 옷을 입고 임금의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이런 짓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길에 전파된 소문을 듣건대, 봉분을 개조하여 쌓자는 설을 가지고 탑전에 진달한 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과 연 이런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의 흉참(匈慘)한 의도는 봉심한 신하들보다도 죄가 크다고 할 것이니, 어찌 가 슴이 서늘해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좌우에 있는 대소의 신하를 믿을 수 없는 점이 이와 같으니, 뒷 날 능을 옮길 때 영릉에서 전일 발생했던 환란이 반드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재궁 (梓宮)을 옮겨 모시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대신에게 위임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직 접 신릉과 구릉 두 곳에 가시어 반드시 성(誠)과 신(信)에 입각한 효도를 완전히 이루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그대가 올린 소의 내용을 보고 그저 나의 효성이 형편없음을 한탄하였는데 오장이 찢어 발겨지는 듯 나도 모르게 비통한 울음만 나올 뿐이었다. 다만 감독한 사람들의 죄가 중하다는 상소의 내용은 그래도 괜찮다마 는, 기타 사건들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곡절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게 소문이 전파되어 그런 것인가? 그리고 수원과 관련된 한 조목 및 대신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매우 아 름답지 못한 일로서 내가 대단히 놀랍게 여기는 바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7장 B면 영인본 38책 148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역사전사(前史)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현개 27권,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10월 13일(기유) 1번째 기사 상이 김수흥을 인견하고 구릉에 관하여 이르다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우의정 김수흥(金壽興)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구릉(舊陵)의 석물(石物) 을 이미 헐어내 걷어버리고 간심(看審)하였는데, 오른쪽은 빗물이 새지 않은 반면 왼쪽은 스며든 흔적이 현 저하였다. 당초 보토(補土)한 관원의 책임으로 돌려 중하게 논죄했었는데, 지금 보면 보토를 잘못한 죄가 아 니고 본래 석물(石物)을 주관한 자의 죄가 중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석회 공사 역시 형편없기 짝이 없는데, 엎어 놓은 솥 형태로 쌓은 곳이 가로 세로로 갈라져 터진 것은 모두 삼물(三物)299)을 잘 섞지 않아서 생긴 결과이다. 하니, 김수흥이 아뢰기를, 회를 잘 섞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힘들여 쌓지 않아서 이런 결과를 빚 은 것인데, 대체로 볼 때 모두가 사람들이 일을 잘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송(宋) 판부사의 소 중에 흙을 몇 자 파내려 갔을 때 벌써 수내(隧內)에는 아무 일 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일을 맡은 신하들이 망극한 사람들의 말을 겁낸 나머지 개봉(改封)에 관한 의논을 끝내 감히 내놓지 못했다. 는 말이 있었다. 그때 일을 맡은 신하들이 과연 이런 의논을 하고서도 감히 꺼내지 못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들은 이런 의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혹 현궁(玄宮)에 아무 일이 없다 하더라도 이런 지경에 이른 이상 어떻게 감히 개봉할 생각을 갖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설령 수내(隧內)가 무사하다 하더라도 흙을 파낸 뒤에는 옛날의 석물을 쓸 수 없는 데다 새로 만들려면 필시 몇 개월이 걸릴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했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현궁을 열어보기 도 전에 이미 축축한 물기가 사방의 석물 밑에까지 번졌다 하는데, 그 안이 무사하리라는 것을 또 어떻게 안 단 말인가. 옮겨 모시는 대례(大禮)를 다행히 무사하게 마쳤는데 지금 와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매우 마음 299) 삼물(三物) : 석회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를 말함 37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77 이 편치 못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표석(表石)의 일과 관련하여 내가 주저하며 구차하게 여기면서도 자기 말 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진정 행해선 안 될 일이라면 아무리 판부사의 말이 중하다 하더라도 어찌 구차하게 따르겠는가. 전일 우상의 물음에 대해 내 뜻을 이미 모두 말했는데, 판부사가 어찌 이를 듣지 못했 겠는가. 하니, 김수흥이 아뢰기를, 이것 역시 성상의 뜻을 모르고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양주(楊州)와 여주(驪州) 두 읍은 별도로 우대하여 구휼해 주어야 마땅하니, 올봄 대 동미(大同米)를 전액 감면토록 하라. 하였는데, 수흥이 또 죽산(竹山)ㆍ음죽(陰竹)ㆍ지평(砥平)ㆍ용인(龍仁)ㆍ양지(陽智) 등 5개 읍도 대동미를 2두 (斗)씩 감해 줄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수흥이 아뢰기를, 적곡(糴穀)은 역시 정식(定式)대로 거두어들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전에 나눠 준 것은 3분의 1만 받아들이고 새로 나눠 준 것은 정식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8장 A면 영인본 38책 16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사법(司法) / *구휼(救恤) 숙종 1권, 즉위년(1674 갑인 / 청 강희(康熙) 13년) 9월 13일(갑술) 1번째 기사 산릉을 건원릉 안의 혈을 사용하도록 결정하다 영릉(寧陵)을 봉심(奉審)하는 대신 및 총호사(摠護使) 이하의 모든 당상(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김수항(金 壽恒)이 이르기를, 중론(衆論)은 건원릉 안으로 귀일(歸一)되었습니다. 이상진(李尙眞)만이 전미(全美)한 땅을 구하려고 합니다. 하니,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전미한 땅을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선 건원릉 안 으로 정하고 또한 다른 산을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김수항이 아뢰기를, 이미 역사(役事)를 시작하 였는데, 달리 구한다면 이것은 건원릉 안을 부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자성(慈聖)의 뜻이 이미 건원릉 안에 있고, 나의 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 달리 간산(看山)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후일(後 日)에 쌍릉(雙陵)을 만들 제도를 미리 알지 않아서는 안된다. 대왕의 능(陵)은 정혈(正穴)을 쓰되, 쌍릉의 척수 (尺數)가 부족하면 보토(補土)할 수 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B면 영인본 38책 20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숙종 6권, 3년(1677 정사 / 청 강희(康熙) 16년) 2월 28일(을해) 1번째 기사 선왕의 능이 무너지자 위안제를 거행하고 개수하게 하다 예조(禮曹)에서 숭릉(崇陵)의 사초(莎草)가 무너진 것을 들어, 위안제(慰安祭)를 거행하고 대신 이하를 보내 봉심(奉審)하게 하기를 계청(啓請)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또 사관(史官)ㆍ중사(中使)를 보내 봉심하게 했 다. 임금이 날을 받지 않고 행행(行幸)하여 봉심하려고 하므로, 약방(藥房)에서 아뢰기를, 궂은 비가 지루하고 봄날씨가 아직도 차가우며 여염(閭閻)에는 또한 꺼리는 병이 많이 있으니, 동가(動駕)를 정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 마음에 놀랍고 애통함이 한이 없는데, 어찌 대신들에게만 맡겨버리 고 친히 봉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임금이 또한 당초에 마음을 다해 굳게 봉분을 쌓지 않았기 때 문에 이처럼 무너지는 변이 있게 되었다 하여, 그 때의 산릉 도감(山陵都監) 당상(堂上) 이정영(李正英)ㆍ민정 중(閔鼎重)ㆍ김휘(金徽)와 도청(都廳) 이헌(李藼)ㆍ임규(任奎) 및 낭청(郞廳)ㆍ감조관(監造官)ㆍ감동 중사(監董 中使)를 모두 잡아다가 추문(推問)하여 정죄(定罪)하고, 사초장(莎草匠)도 잡아다가 죄를 다스리도록 명했었다. 영의정 허적(許積)이 봉심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능 위의 무너진 데가 9척이나 되고 주위는 57척 넓이인 데 흙이 사초 따라 무너져서 꺼진 데도 있었는데, 만일 이번에 새 흙을 붙인다면 반드시 견고하지 못할 것이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7

378 어서 이 점이 염려스럽습니다. 또 봉분이 사면을 깎아지른 듯이 가파르게 높이 쌓아 무너져 꺼지기 쉬우니, 이번에는 마땅히 덜 가파르게 다시 쌓아야 하겠습니다. 자방(子房) 곡장(曲墻) 밖도 무너진 데가 너비는 68척 이고 가장 높은 곳은 26척이나 되었는데, 이는 곧 능의 왼쪽이고, 전면의 무너진 곳은 너비가 40여 척에다 높이는 20여 척이었는데, 무너져 내리는 기세가 매우 급했었기 때문에 평지로 무너져 내린 것이 또한 80여 척이나 되고 더러는 50여 척이나 되어, 마치 산이 물로 사태가 난 모양과 같았습니다. 대개 해동(解凍)하는 때에 소나기가 덮치므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또 당초에 석물(石物)를 배치할 자리가 매우 좁았기 때문에 보 토(補土)한 데가 있었는데, 그 보토를 한결같이 산 형세에 의해 또한 매우 가파르게 했기에 이런 병폐가 있 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마땅히 지사(地師)와 함께 상의(商議)하여 조금 판판하고 완만하게 한 다음에야 뒷날 의 염려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고, 허적이 또 아뢰기를, 길 닦는 역사를 하려면 마땅히 백성들의 힘을 많이 써야 할 것인데, 이런 농사철에 당해서는 백성을 사역하기가 매우 민망합니다. 하고, 이어 친히 봉심하기로 한 명을 정지하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으므로, 허적이 좌의정 권대운(權大運)과 함께 서로 극력 말하니, 임금이 비로소 윤허하고 봉분을 고친 뒤 8월 무렵에 전성(展省)300)하겠다고 명하였다. 그뒤에 허적이 권대운과 함께 경연(經筵)에서 아뢰기를, 봉분을 고칠 참에도 농시(農時)가 이미 박두해 버려 민간의 인부를 조용(調用)할 수가 없고, 모군(募軍)을 하 면 모두 오합(烏合)인데다가 급하게 모으기도 어렵습니다. 하고, 유혁연(柳赫然)이, 별대(別隊) 17초(哨) 중에 7초를 쓰고 어영군(御營軍) 10초 중에 절반을 쓰고, 수어청(守禦廳)ㆍ정초청(精抄廳)ㆍ총융청(摠戎廳)의 군병 (軍兵)과, 체부(體府)의 기고수(旗鼓手)들을 또한 다소에 따라 조용하기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 고, 이어 능(陵) 형태를 그전처럼 높이 깎아지른 듯하게 하지 말아 후환을 방지하게 하도록 명하고, 봉분 고 치는 일이 끝나기 전에는 경연(經筵)을 정지하도록 명했다. 허적ㆍ권대운이 또 아뢰기를, 역사가 끝난 다음 에는 군병(軍兵)들을 마땅히 본아문(本衙門)으로 하여금 상을 주게 하고, 또한 조가(朝家)에서도 호궤(犒饋)하 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드디어 권대운(權大運)을 수개 도감 도제조(修改都監都提調)로 삼아, 3월 초사흗날 역사를 시작하여 초아흐렛날 역사를 끝냈는데, 권대운이 등대(登對)하여 아뢰기를, 사초(莎草)가 무너지게 된 것은 대개 얼었다가 풀어지는 참에 급하게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 때문이고, 흙 을 조심해서 쌓지 않은 소치는 아닌 듯했습니다. 만일 그전 흙을 모두 제거하고 새 흙으로 다시 쌓으려면 실 로 완고하게 해야 할 것인데, 또한 감히 절구질하여 쌓을 수가 없었고, 장인(匠人)들도 모두의 말이 그전의 흙위에다 새 흙을 덧붙이면 반드시 잘 붙지도 않고 견고하게 되지도 않는다. 고 했는데, 다시 다른 방책이 없 기에 점토(粘土)를 더 붙이면서 조금 가파른 형세를 낮추기만 했습니다. 섬돌 아래 묘방(卯方) 쪽 땅이 항시 물기가 많아 흙이 매우 질기 때문에, 비록 보토(補土)를 하고 굳게 쌓기는 했습니다마는, 견고하게 되지 않았 을 듯합니다. 하였다. 한때 유생(儒生) 이장(李㙊) 등이 상소하여, 숭릉(崇陵) 전알(展謁)은 마땅히 시급하게 해 야 함을 말하니, 임금이 그의 말에 감동하여 좌상(左相)ㆍ우상(古相)에게 묻기를, 이 상소의 말은 바로 나의 뜻과 맞는다. 당초에는 진실로 친히 가서 봉심(奉審)하려고 했다가, 봉릉(封陵)의 역사가 하루가 급한데, 만일 친히 가기를 기다렸다가 역사를 시작한다면 지체되겠다 싶기 때문에 대신들의 말에 따라 참으며 정지했었지마는, 이제는 봉분 역사를 이미 마쳤으니 이달 안으로 날을 가려 능을 참배해야 한다. 하매, 권대운 등이 모두 찬성하며 드디어 3월 17일에 능에 행행하기로 정했었다. 이때 임금이 장차 선 성(先聖)을 배알(拜謁)하기로 하는데, 이장이 또 상소하여, 능소(陵所)에 나아가기 전에 먼저 반궁(泮宮)에 행 행함은 미안한 일이라 하여 조금 날짜를 물리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 말도 옳게 여기어 먼저 능에 행행하고 다음에 알성(謁聖)하기로 명했다. 산릉 도감(山陵都監) 제신(諸臣)들의 죄를 의금부(義禁府)에서 탈고신(奪告 身) 으로 조율(照律)하니, 임금이 마음을 다해 하지 않은 소치는 아니라 하여 파직만 하도록 명하자, 허목이 아뢰기를, 능침(陵寢)에 관한 일이므로 엄중하게 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왕가(帝王家)의 일은 범인들의 집 일과는 다른 것이어서, 선수(膳羞)가 조금만 정결하지 못해도 선부(膳夫)의 죄가 매우 무거웠습니다. 주 례(周禮) 에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대개 후환(後患)을 방지하려 한 것일 것입니다. 하물며 지극히 중한 능 침(陵寢)이겠습니까? 300)전성(展省) : 성묘(省墓). 37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79 하고, 권대운이 또한 허목의 말을 옳게 여기며 아뢰기를, 만일 마음을 다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죄가 어찌 탈고신 에 그치게 되었겠습니까? 마땅히 해부(該府)에서 아뢴 대로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민희(閔熙) ㆍ이우정(李宇鼎) 등이 또한 모두 말을 하니, 임금이 비로소 그대로 따랐다. 이에 사간원에서 논쟁(論爭)하기 를, 감동(監董)한 제신(諸臣)들을 무겁게 죄를 과하지 않아서는 안되는데도 옥사(獄事)를 다룬 신하들이 조율 (照律)을 매우 가볍게 했으니, 추고(推考)하기 바랍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선왕(先王)의 능 이 무너지게 된 것은 진실로 당초에 봉분 쌓기를 조심해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추위가 지나가고 해동하 는 판에 거센 바람과 쏟아지는 비가 그렇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일반 사람들의 묘역(墓域)은 무너졌음을 들 어 볼 수 없는데 유독 새 능에만 이런 변이 있었으니, 봉분을 조심해서 쌓지 않은 죄를 조금도 용서할 수 없 습니다. 산릉 도감의 당상(堂上)과 낭청(郞廳)을 모두 정배(定配)하도록 명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 기를, 흙 쌓은 것은 견고했었으니, 마음을 다하지 않은 소치는 아니다. 이미 참작하여 조율한 것이니, 정배하 는 것은 지나치다. 하고,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또 개수 도감(改修都監)의 당상과 낭청을 가자(加資)하도록 명하매, 사간원에서 또한 도로 거두기를 청하여 아뢰기를, 개수(改修)하는 역사는 사초(莎草)를 고쳐 덮고 이지러진 데를 보완하 기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산릉 도감에게 상전(賞典)을 내리는 예(例)를 인용함은 진실로 과당합니다. 하니, 답 하기를, 전례가 있기도 하고, 또 정자각(丁字閣)을 개조한 때에도 또한 상전을 내렸었다. 능 위의 봉분 개수 는 사체(事體)가 더욱 중하니, 외람한 상이 아니다. 하고, 오래도록 따르지 않았다. 권대운(權大運)이 매양 경연 (經筵)에서 아뢰기를, 이 상은 산릉 도감에게 주는 상전과 차별이 없게 함은 진실로 과람한 일입니다. 또한 성(城)을 쌓았을 적에도 역시 장마를 겪었어도 완전하고 튼튼한 것을 본 다음에야 상주었으니, 설사 상을 주 더라도 아직은 후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니, 그 뒤에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대계(臺啓)대로 윤허했다.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14장 B면 영인본 38책 350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군사중앙군(中央軍) / *인사임면 (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영조 80권, 29년(1753 계유 / 청 건륭(乾隆) 18년) 8월 21일(계묘) 1번째 기사 도감 도제조 김상로가 인죄하니 위유하다 도감 당상(都監堂上)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도감 도제조(都監都提調) 김상로(金尙魯)가 누누이 인죄(引罪)하니, 임금이 위유(慰諭)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정자각(丁字閣) 뒤에 옛 무덤이 있습니다. 하 니, 임금이 말하기를, 버려두라.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평토(平土)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하니, 임금 이 말하기를, 평토하지 말고 다만 좌우에 보토(補土)하여 옛 무덤의 형상을 없애게만 하라. 그 위에 나무가 났으면 내가 마땅히 뽑게 하였을 것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8장 A면 영인본 43책 495면 영조 89권, 33년(1757 정축 / 청 건륭(乾隆) 22년) 6월 20일(경진) 3번째 기사 여차에 나가 총호사 등을 인견하고 농사의 형편, 산릉의 보토 등을 하문하다 임금이 여차(廬次)에 나아가 총호사 및 제도(諸道)의 차원(差員)을 인견하고, 농사의 형편과 민간의 폐단 및 산릉(山陵)의 보토(補土)할 역사에 대하여 하문하자, 좌의정 김상로(金尙魯)가 아뢰기를, 선릉(先陵)의 뒤 산맥(山脈)은 바로 사석(沙石)의 땅으로, 수목(樹木)이 적으니, 널리 심고 금양(禁養)하지 않 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명릉(明陵)의 능관(陵官) 두 자리는 장릉(長陵)의 예에 의거하여 모두 참봉(參奉)으로 만들되 봉사(奉事)와 직장(直長)은 그대로 그곳에서 으레 승진시키게 하고,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되기를 기다린 후에 승륙(陞六)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시임관(時任官)은 다른 관직으로 옮기게 하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79

380 라. 하였다. 김상로가 또 말하기를, 산릉(山陵)의 재력(財力)을 경술년301)에 견주어 너무 지나치게 재감(裁減) 하였으므로, 도감의 지용(支用)을 진실로 조처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진휼청(賑恤廳)이 돈 2천 냥(兩)과 관 서(關西)별향고(別餉庫)의 돈 2천 냥을 획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여기에 신하들이 이미 물러나자, 또 예조 판서 이익정(李益炡)을 불러 국휼 등 록(國恤謄錄)을 가져다 열람하면서 인산(因山) 때의 명기(明器)를 줄여서 정하는 일에 대해 윤음(綸音)을 적도록 명하기를, 명기(明器)와 복완(服玩)이 비록 목노비(木奴婢)나 공가인(工歌人)의 형상과는 다름이 있지만, 더러 사치스러 운 데 가깝고, 더러 장난에 가깝고, 더러 긴요하지 않은 것이 있는, 더러 쓸데없는 것이 있다. 그 사치스러운 데 가깝다는 것은 나전(螺鈿)으로 된 소함(梳函) 같은 것이고, 그 장난스러운 데 가깝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기용(器用)의 물건이고, 그 긴요하지 않다는 것은 토등상(土藤箱)ㆍ타우(唾盂)ㆍ수기(溲器) 같은 것이고, 그 쓸 데없다는 것은 주준(酒樽)ㆍ주잔(酒盞) 같은 것이다. 더구나 공가인을 이미 없앴는데, 악기(樂器)를 그대로 두 는 것은 또한 핵심을 보존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 상례보편(喪禮補編) 을 개정하는 때를 당하여 비록 한결같이 모두 제거한다 하더라도 혹 불가할 것이 없겠지만 공자(孔子)가 예(禮)를 사랑한 뜻302)을 따라서 그 번문(繁文)은 제거하고, 그 예기(禮器)ㆍ관(冠)ㆍ의(依) 등속은 홀[圭]ㆍ면류관[冕] 상의(上衣)ㆍ하상(下裳)ㆍ대 대(大帶)ㆍ중단(中單)ㆍ방심패(方心)ㆍ패옥(佩玉)ㆍ수(綏)ㆍ폐슬(蔽膝)ㆍ홍말(紅襪)ㆍ적석(赤舃)을 보존하고, 자 기(磁器)는 반발(飯鉢) 하나, 시첩(匙楪) 하나, 잔[爵] 하나, 보(簠) 하나, 궤(簋) 하나, 향로(香爐) 하나를 보존 하고, 와기(瓦器)는 부(釜) 하나 정(鼎) 하나를 보존하고, 죽기(竹器)는 서직(黍稷)ㆍ도량(稻梁)ㆍ마자(麻子)ㆍ숙 (菽)ㆍ소두(小豆)ㆍ맥(麥)을 담는 초(筲) 여덟, 멱(冪) 여덟을 보존하되, 변(籩)은 절반을 줄여 여섯 개만 보존 하고, 목기(木器)는 두(豆)는 절반을 줄여 여섯 개만 보존하고, 악기(樂器)의 팔음(八音)은 바로 명(明)나라에서 하사(下賜)한 것이니, 단지 동종(銅鐘) 하나, 자경(磁磬) 하나만 보존하고 틀[機]은 없애며, 훈(壎) 하나, 당금 (唐琴) 하나, 생(笙) 하나, 소(簫) 하나, 고(鼓) 하나만 보존하고, 틀과 축(祝)은 없애고 그 나머지도 없앤다. 홀 [圭]과 패옥(佩玉)을 만약 평상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여 사용하게 한다면 더 만들지 말도록 한다. 내상(內 喪)의 경우는 오례의 에 실린 의복(衣服)의 제도가 이미 예관(禮冠)과 적의(翟衣)가 아니므로 그 제도가 이 상한데, 이미 유의(遺衣)를 썼으니, 지금 줄이는 것이 적당하다. 소함(梳函)에 이르러서는 바로 없어서는 안되 는 것들이니, 나전(螺鈿)과 구갑(具匣)은 없애고 거울 하나만 쓰되, 이 두가지 물건이 만약 평상시에 쓰시던 것이라면 더 만들지 말도록 하라. 이번에 보존한 것이나 줄인 것은 내상(內喪)이나 외상(外喪)을 논하지 말고 거행하는 일을 상례보편 에 기재하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31장 B면 영인본 43책 653면 분류 *왕실(王室) / *구휼(救恤) / *신분(身分) / *인사(人事) / *재정(財政) / *출판(出版) 영조 97권, 37년(1761 신사 / 청 건륭(乾隆) 26년) 4월 1일(경오) 1번째 기사 구선복에게 명하여 명릉 꾀꼬리봉에 보토하는 역사를 감독하게 하다 구선복(具善復)에게 명하여 명릉(明陵) 꾀꼬리봉[鶯峰]에 보토(補土)하는 역사를 감독하게 하고 호조의 쌀 3백 석(石)과 병조의 무명[木] 2동(同)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15장 A면 영인본 44책 6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301) 경술년 : 1730 영조 6년 302) 자(孔子)가 예(禮)를 사랑한 뜻 :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에 공자의 제자(弟子)인 자공(子貢)이 삭일(朔日)에 고 묘(告廟)하는 생양(生羊)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가 꾸지람하기를, 사(賜:자공(子貢)의 이름)야 너는 이 생양을 아깝다 고 생각하느냐 나는 옛날의 아름다운 예교(禮敎)를 더 아까워 한다 고 한 고사를 인용한 것임 38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81 영조 97권, 37년(1761 신사 / 청 건륭(乾隆) 26년) 4월 25일(갑오) 2번째 기사 구선복이 명릉의 벌고개를 보토하고 돌아옴에 상전을 베풀다 구선복(具善復)이 명릉(明陵)의 벌고개[蜂峴]를 보토(補土)한 뒤에 돌아와서 아뢰니, 간역(看役)인 예조 판서 이익정(李益炡) 및 능관(陵官) 이하에게 모두 상전(賞典)을 베풀었다.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18장 A면 영인본 44책 6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영조 98권, 37년(1761 신사 / 청 건륭(乾隆) 26년) 8월 13일(기묘) 1번째 기사 명릉에 거둥하다 임금이 명릉(明陵)에 거둥하였다. 임금이 천담 융복(淺淡戎服)을 갖추어 입고 보연(步輦)으로 광달문(廣達門) 밖에 이르러 말을 탔다. 선전관(宣傳官)을 불러들여 영기(令旗)로서 작문(作門)303)에 알리게 하여 말하기를, 만약 시끄럽게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군률(軍律)에 의거하도록 하라. 하고, 궁을 지키는 종사관(從事官)을 불러들여 말하기를, 위내(衛內)에서 시끄럽게 하는 자는 수궁 대장(守宮大將)에게로 보내고, 위외(衛外)에서 시끄럽게 하는 자는 유도 대장(留都大將)에게로 넘겨주라. 하였다. 임금이 창릉(昌陵)의 점(店) 길 곁을 지나 는데 구걸하는 아이가 호소하고 있으므로 임금이 보고 감동하여 특별히 쌀을 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릉 (明陵)에 나아가 천담복(淺淡服)과 익선관(翼善冠)을 갖추고 능상(陵上)을 봉심(奉審)하였으며, 이어서 난간석 (欄干石)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는데, 때가 마침 따가운 햇빛의 정오(正午)였다. 여러 신하가 초조하고 민박(憫迫)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정성으로 우러러 진달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심이 지(沈履之)가 말하기를, 전하의 이 거조는 성효(聖孝)의 만분의 일을 펴는 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선왕(先 王)과 선후(先后)께서 양양(洋洋)하게 척강(陟降)하시는 곳에 도리어 슬픔을 끼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곧 일 어나서 새 명릉과 익릉(翼陵)ㆍ경릉(敬陵) 두 능에 나아가 전알 봉심(展謁奉審)하고 봉현(蜂峴)을 들려 구선복 (具善復)과 지관(地官) 안재건(安載建)을 소견(召見)하고 보토(補土)하는 데 대해 장(長)ㆍ광(廣)ㆍ고(高)ㆍ저 (低)를 하순(下詢)하였으며, 도로 재실에 나아가 임금이 사지 겸사복(事知兼司僕)ㆍ보련 차비 별감(步輦差備別 監)ㆍ호련대(扈輦隊)ㆍ근장 군사(近仗軍士)에게 각각 무명 1필(匹)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7책 98권 9장 B면 영인본 44책 7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영조 112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3월 8일(신묘) 1번째 기사 명릉의 보토에 대한 고유제에 쓸 지영하고, 릉의 일에 대해 하교하다 임금이 명릉(明陵)의 보토(補士)에 대한 고유제(告由祭)에 쓸 향을 숭정전(崇政殿) 뜰에서 지영(祗迎)하고, 이 어서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갔다. 전설사(典設司)에 임어하여 예조 판서 구윤명(具允明), 금위 대장 구선복(具 善復)을 불러 두 능(陵)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이때 명릉에 일이 있어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으므 로, 임금이 매번 불러서 물어 보고 또 사람을 시켜 그 근만(勤慢)을 감독하게 하였었다. 구윤명이 말하기를, 모군(募軍)ㆍ요포(料布)를 마땅히 마련해야 합니다. 매일 5백 명씩 사용해야 하는데, 신사년304)에 견줄 것이 아닐 듯하니, 마땅히 쌀 몇 석, 베 몇 동(同)을 가져다 쓰면 되겠습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쌀 5백 석, 베 20동을 가져다 쓰는 것이 좋겠다. 하자, 구윤명이 말하기를, 지나친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4백 석을 가져다 쓰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303) 작문(作門) : 지키는 병사를 두고 출입하는 것을 단속하는 군영(軍營)의 문. 304) 신사년 : 1761 영조 37년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81

382 모든 일은 커지기 전에 미리 방비하는 것이 귀중하니, 작은 것으로 인하여 큰 것을 이루고 적은 것으로 인 하여 많은 것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능관(陵官)이 산을 순시할 때 비록 갈라진 조그마한 땅이 있다 하더라 도 본래 오릉(五陵)의 수호군이 있으니, 뜻을 다해 보토(補土)했다면 어찌 이러한 폐단이 있었겠는가? 이와 같이 보토한 후에는 수시로 적간(摘奸)하되, 대수롭지 않게 여겨 간과(看過)하여 능관은 무슨 능이라고 말하 지 말라. 곧 이는 한 국내(局內)이다. 오릉의 능관 가운데 작은 것은 그 직임(職任)을 태거(汰去)하고 큰 것은 금고(禁錮)시킬 것이니, 모두 자세히 알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3장 B면 영인본 44책 32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영조 112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3월 14일(정유) 2번째 기사 능역을 심봉한 승지에게 스스로 와서 역사를 도운 백성이 있는지를 묻다 임금이 능역(陵役)을 봉심(奉審)한 승지를 소견하고 경외(京外)의 백성 가운데 스스로 와서 역사를 도운 자가 있었는지 물어 보니, 승지가 깊은 인애(仁愛)와 두터운 은택(恩澤)이 백성들에게 두루 미친 까닭에 백성들이 스스로 와서 역사를 도왔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나를 저버리는 자가 거의 없을 것이 다. 하였다. 이때 보토(補土)하는 역사가 매우 컸는데 임금이 역사를 속히 마치고 싶어 하니, 일을 맡은 자가 술과 음식을 사용하여 경외(京外)의 한잡인(閑雜人)들을 모집하고는 스스로 왔다고 일컫고, 또 그 명수(名數) 를 많이 속여서 아뢰었는데, 임금이 번번이 믿고 그렇게 여긴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5장 A면 영인본 44책 32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영조 112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3월 28일(신해) 3번째 기사 명릉의 보토에 역사한 자들에게 상을 주고 소재지인 고양의 전조를 견감하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가서 명릉(明陵)의 보토(補土)에 역사한 사람들에게 상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 임금이 보토의 역사가 호대(浩大)하여 곧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공역(工役)을 마쳤 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마침내 문에 임어한 것이다. 원래 정한 역부(役夫) 외에 자원해 와서 부역(赴 役)한 자가 4만 3천여 인이었고, 제주(濟州)의 백성들도 또한 온 자가 있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선조(先朝)의 혜택이 미친 때문이다. 하고, 이에 역사한 자들을 노문(勞問)하고 모두 쌀을 내려 주었다. 역사 를 감독한 대장 구선복(具善復)에게 가자(加資)하고, 예조 판서 구윤명(具允明)에게 구마(廐馬) 1필을 면급(面 給)하였으며, 도청(都廳) 조완(趙 )ㆍ김상옥(金相玉)과 역사를 보살핀 변흥서(卞興瑞)에게 아울러 가자하였고, 변흥서는 선지(善地)의 첨사로 조용(調用)하게 하였다. 서극제(徐克齊)ㆍ김도정(金道鼎)도 또한 가자하였고, 영 역 부장(領役部將) 10인은 아울러 변장(邊將)을 제수하였으며, 전후에 간심(看審)하기 위해 왕래했던 승지들도 또한 호피[皐比]를 내려 주었다. 또 고양(高陽)에 전조(田租)의 반을 특별히 견감해 주게 하였는데, 본릉이 소 재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7장 A면 영인본 44책 32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재정전세(田稅) / *재정역(役) / *구휼(救恤) 영조 113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8월 18일(정묘) 1번째 기사 금위 대장 구선복에게 군사를 모아 명릉의 역사를 추진하게 하다 38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83 약방에서 두 번째 입진하였다. 임금이 대신과 금위 대장 구선복(具善復)을 인견하였다. 이때에 명릉(明陵)의 보토(補土) 역사를 장차 마치게 되었는데, 명릉의 능관이 또 화소(火巢) 밖에도 마땅히 보토해야 할 곳이 있 다고 말하였다. 영상 홍봉한(洪鳳漢)이 이를 말하자, 임금이 구선복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구 선복이 돌아와서 형지(形止)를 아뢰니 임금이 구선복에 명하여 품군을 모집해서 역사를 추진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5장 B면 영인본 44책 330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영조 113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8월 19일(무진) 1번째 기사 명릉을 보토한일에 대한 고유제에 쓸 향을 전하다 임금이 숭정전(崇政殿) 월대(月臺)에서 명릉(明陵)을 보토(補土)한 데 대한 고유제(告由祭)에 쓸 향을 친히 전 하고,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을 보내어 섭행(攝行)하게 하였으며, 내전으로 돌아왔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5장 B면 영인본 44책 330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명릉 보토 고유제의 향을 내리고 영의정이 섭행하다. > 영조 113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8월 30일(기묘) 1번째 기사 태묘의 삭제에 쓸 향을 지영하다 임금이 연화문(延和門) 밖에서 태묘(太廟)의 삭제(朔祭)에 쓸 향을 지영(祗迎)하고 내전으로 돌아왔다. 예조 판서 이은(李溵)을 소견하고 명릉(明陵)의 보토(補土)하는 역사에 대해 물어 보았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7장 A면 영인본 44책 33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영조 113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9월 1일(경진) 1번째 기사 영의정 홍봉한ㆍ예조 판서 이은 등을 소견하고 보토의 역사에 대해 묻다 임금이 연화문(延和門)에 나아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 예조 판서 이은(李溵), 금위 대장 구선복(具善復)을 소견하고, 보토(補土)하는 역사에 대해 물었는데, 역사하는 곳이 호대(浩大)한데도 전 좌상 김양택(金陽澤)이 봉심(奉審)한 바가 상세하지 못하다 하여 파직(罷職)하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7장 A면 영인본 44책 33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영조 113권,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9월 11일(경인) 3번째 기사 명능과 익릉의 보토를 마치니 감동한 예조 판서 등에게 상을 주다 명릉(明陵)과 익릉(翼陵)의 보토(補土)하는 역사를 거의 마치게 되었으므로, 감동(監董)한 예조 판서ㆍ금위 대 장에게 말을 내려 주고, 역사를 감독한 장교들에게 혹은 가자(加資)하거나 혹은 변장(邊將)을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8장 B면 영인본 44책 332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83

384 영조 119권, 48년(1772 임진 / 청 건륭(乾隆) 37년) 8월 29일(신묘) 2번째 기사 명릉을 보토한 일로 구선복을 가자하다 구선복(具善復)에게 특별히 한 자급을 가하였는데, 명릉(明陵)의 보토(補土)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고, 도청(都廳) 신대현(申大顯)과 영역 부장(領役部將) 등에게도 역시 가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24장 A면 영인본 44책 43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재정역(役) 정조 20권,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8월 7일(갑신) 1번째 기사 낙헌례를 행하여 공역을 마친 것을 고하고, 관원에게 상을 주다 영우원(永祐園)에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보토(補土)하는 공역(工役)을 끝마친 것으로 인하여 사유(事由)를 몸소 고(告)하고, 감동(監董)한 당상관 이하의 관원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3장 A면 영인본 45책 536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20권,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10월 8일(갑신) 2번째 기사 경릉과 홍릉의 역사가 끝나 감독한 신하들에게 상을 주다 경릉(敬陵)과 홍릉(弘陵)의 보토(補土)하는 역사(役事)가 끝나매 감독한 여러 신하들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30장 A면 영인본 45책 540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22권,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8월 24일(갑자) 2번째 기사 이문원이 영릉의 보토 공사가 끝났음을 보고하다 영릉(寧陵) 국내의 좌우 청룡(靑龍), 백호(白虎)의 산등성이에 사태가 난 곳이 있어서 행 사직 이문원(李文源) 을 파견하여 보토(補土)의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끝났다고 보고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23장 A면 영인본 45책 591면 분류 *왕실(王室) / *건설(建設) 정조 22권,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9월 27일(정유) 3번째 기사 원소 뒤 산 기슭 물길을 다른 곳으로 내지 말도록 명하다 정릉에서 영우원(永祐園)으로 나아가 전배하고 나서 편여(便輿)를 타고 국내(局內)를 두루 살펴보았다. 뒤 산 기슭 밑에 이르러 금성위(錦城尉)박명원(朴明源)과 지사(地師) 차학모(車學模) 등을 불러 보고 물길의 형세를 살펴보라고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엊그제 원소(園所) 뒤 산기슭 밑 물길에 관해 옥당 이청(李晴)이 거론하였으나, 일이 중대하여 유사도 마음 대로 하지 못하고 대신(大臣)이 봉심할 것을 청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보토(補土)나 식목(植木)하는 일과는 달 라 대신도 결정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직접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이미 중신의 상소 비답에 언급하였다. 그 38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85 런데 지금 두루 형세를 살펴보고 사실을 자세히 물어보니, 과연 처음에 예상하였던 바와 틀리지 않았다. 대 체로 물길은 50년을 전후로 변천하는데, 이 새로운 물길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찌 십전(十全)의 수법(水 法)에 맞지 않은지 알 수 있겠는가? 지사 차학모가 이른바 물이 오면 기운이 온다고 한 말이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금성위도 물이 북방을 에워싸면 길하다고 하였고 여러 의견도 같았다. 그리고 이른바 물이 부 딛치는 곳에 큰 돌이 버티고 있어서 모래가 쌓여 언덕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필시 뚫고 들어가는 염려는 없 을 것이다. 평지에 잔잔히 흐르는 물은 애당초 물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이청의 말에 따라 시행하기는 어렵 다. 설령 제방을 쌓으려고 한다면 몇 만 명의 인부를 써도 효과가 없을 것이고 반대로 지리(地理)에 무익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길을 다른 곳으로 내는 일은 그만두도록 하라. 지금 직접 살펴보고 결정한 것이니, 이를 본원(本園)의 등록(謄錄)에다 기록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33장 A면 영인본 45책 596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27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7월 13일(정유) 2번째 기사 영우원의 천장터를 살펴 보고, 이에 관해 담당관들과 논의하다 상이 묏자리를 살피고 온 여러 신하들을 불러 보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이르기를, 지금 대신의 장계를 보니 내 마음이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이런 큰 일을 당하여 어찌 마음을 너그 럽게 먹고 슬픔을 억제하는 것을 주로 삼아 힘쓰고자 하지 않겠는가마는 종전에 가슴에 맺혔던 것이 나도 모르게 아무 때나 드러난다. 하고, 이어 소견을 물으니, 김익이 아뢰기를, 위로 주봉(主峯)에서부터 아래로 혈(穴) 자리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윗쪽에 있는 혈 자리의 약간 높은 곳에 앉아 국세와 청룡 백호를 둘러보니, 국세가 평탄하고 반듯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청룡 백호가 에워싸지 않은 것이 아니나, 평탄하고 반듯한 속이 너무 넓고 크다는 느낌이 없지 않고, 에워싼 속 역시 견고하게 결 속된 형세가 약간 모자랐으며, 안계(眼界) 역시 조밀하고 번잡한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평탄한 곳이 라고 하는 곳에 앉아서 둘러보니 국세가 평온하고 청룡 백호가 긴밀하며 또 혈 좌우를 매미가 날개를 양쪽 으로 펼친 듯한 형국이 있으며, 안계도 매우 조용했습니다. 시야 속에 작은 돈(墩)이 혈 자리와 직선으로 대 치해 있는데, 이곳이 본래부터 칭송되어오는 서린 용[盤龍]의 형상이고, 이 돈을 서린 용이 희롱하는 구슬[弄 珠]이라고 한 말이 신의 범안(凡眼)으로 보아도 정확한 논평인 것 같았습니다. 대안(對案)으로 말하면 두 개 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만약 봉우리로 향을 놓아 안산(案山)으로 삼으면 두 봉우리의 기세를 다 끌어 들일 수 없을 것 같고, 두 봉우리 사이의 빈 곳으로 향을 놓으면 두 봉우리의 기운이 합쳐 하나의 안(案)이 되니, 예로부터 이른바 구슬을 안대해 빈 곳으로 향을 놓는다[對珠向空]는 말이 이런 뜻에서인 듯합니다. 세 지사(地師)의 말이 이미 모두 계좌 정향(癸坐丁向)으로 통일되었으니 바뀔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원을 비록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밤낮으로 상상하면서 마음속으로 헤아린 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경 등의 말을 내가 헤아린 바와 비교하면 더 보탬은 있고 줄임은 없다고 하겠다. 하였다. 김익이 아뢰기를, 원소를 이제 이미 결정하였으니, 읍치(邑治) 옮기는 일을 잠시도 늦출 수 없습니 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원이 비록 기내(畿內)에서 약간 충실한 고을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나라의 역사를 당했는데 다시 무슨 힘 이 있어 고을을 옮길 수 있겠는가. 옮겨야 할 민가(民家)가 얼마나 되는가? 하자, 김익이 아뢰기를, 2백여 호는 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큰 일에 경비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미 평소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니, 이 밖에 무엇을 조처해 주선할 것이 있겠는가. 균역청의 사목(事目)이 본래 엄중한 것은 오로지 백성들의 부 역을 막으려는 선대왕의 성덕에서 나온 것이고, 이번에 경비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도 백성을 위한 것이다. 균역청의 돈 10만 냥을 수원에 떼어주어 모든 일을 처리하게 하고, 서울과 지방의 도감은 10만 냥을 금위영 과 어영청에서 가져다 쓰면 좋겠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85

386 하였다. 김익이 아뢰기를, 창고의 재물이 임금의 재물이 아님이 없는데, 이런 큰 일을 당하여 무엇 때문에 영문(營門)의 유고(留庫)에 구애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전의 연석(筵席)에서 이미 천하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어버이에게 박하 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다. 이것은 대개 어버이 장례에는 진실로 자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 지고 최선을 쓰지 않음이 없는 도리에까지 미룬 것이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수고롭히거나 경비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면 지극히 아름답게 하여 마지막 일에 정성을 조금이나마 펴보고 싶다. 병신년에 원(園)으로 봉할 때 영릉(永陵)305)의 옛 제도를 따랐을 뿐만이 아니라 바로 고사(故事)를 준용(遵用) 하였다. 대체로 옛 능에 석물(石物)을 새로 세우는 것과 비기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이미 옮겨 모시기 로 하였으니 정성을 다해 규례대로 하고자 한다. 그러니 도감으로 하여금 자세히 알게 하라. 석재(石材)는 꾀 꼬리봉 및 산성(山城) 밖에 떠내기에 적당한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석재의 품질이 합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남양(南陽)ㆍ강화(江華) 등지의 석재라야 난간석(欄杆石)과 병풍석(屛風石)의 용도에 합당하니 떠내 어 운반해 오는 노력은 따질 겨를이 없다. 나의 정리(情理)는 오직 자주 봉심해 정성을 펴는 데 있을 뿐이니, 여염집들을 다 옮긴 뒤에는 어가(御駕)를 수행하는 백관(百官)들이 한데서 거처하게 될 것을 염려해야 한다. 보존할 만한 관청은 철거하지 말아서 여러 신하들이 들어가서 거처하는 곳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 다. 민시가 아뢰기를, 원소를 완전히 봉안한 뒤에는 독성 산성(禿城山城)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온당하지 않습 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산성의 산 꼭대기가 혈(穴) 위에서 바라보면 지극히 가까운 것 같지만 서로의 거리가 10리나 멀리 떨어져 있다. 밥짓는 연기나 닭ㆍ개의 소리가 원래 묘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니, 병기(兵器)를 간직해 두는 따위 도 이해를 논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산소를 매만져 다듬는 방법은 그 산의 형세를 그대로 따를 뿐이니, 보토 (補土)를 고대(高大)하게 하는 것을 나는 옳지 않게 생각한다. 더구나 이 묏자리의 혈체(穴體)는 유두(乳頭) 밑에 웅덩이가 파여 있어 음양이 서로 붙어 있는 데 그 신묘함이 있으니 흙을 파낼 때 유두를 파지 말라. 혈 앞의 남은 기운이 생동해 구르고 있는데 만약 지나치게 흙을 보충하면 천연으로 이루어진 정교함을 잃기 쉬 우니 원형 그대로 띠를 입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릉(章陵)을 천장해 모실 적에 성내(城內)를 경유하도록 길을 냈으니 이번에도 이 전례를 따르는 것이 마땅 하겠으나, 비단 조조(朝祖)의 절차가 중대할 뿐 아니라 자궁(慈宮)의 망극하신 심정이 다시 어떠하시겠는가. 천장해 모실 때에는 몸소 가서 보시겠다고 매양 말씀하시므로 현재 마음을 너그러이 먹고 슬픔을 억제하시 도록 청하고 있는 참인데 만약 상여(喪輿)가 성내로 지나는 것을 보시게 될 경우 장차 무슨 말로 위로드릴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모두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가 이에 미치셨으니 마땅히 성외(城外)로 길을 내겠 습니다. 하였다. 상이 판윤 김문순(金文淳)에게 이르기를, 내가 즉위한 이후로 한 번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입힌 일이 없는데, 더구나 본원에 관계된 일로 백성들을 수 고롭히겠는가. 백성을 수고롭히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뜻을 경들도 반드시 알 것이다. 상여군이 되는 것이 비록 방민(坊民)들이 응당 행하는 부역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군정(軍丁)을 고용하고자 하니 민역(民 役)에 관계된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모두 줄이도록 하라. 경이 돈체사가 되었으니 나의 뜻을 깊이 헤아리라. 하니, 연석에 참여한 모든 신하가 아뢰기를, 국전(國典)에도 없는 바이고 체모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42장 B면 영인본 46책 44면 분류 *왕실(王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물가임금(賃金) 정조 44권, 20년(1796 병진 / 청 순치(順治) 1년) 3월 24일(경오) 3번째 기사 현륭원의 보토 및 식목을 감독한 관원에게 상을 내리다 305) 영릉(永陵) : 진종(眞宗)의 능 38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87 현륭원(顯隆園)의 보토(補土) 및 식목(植木)을 감독한 수령 이하에게 차등 있게 논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36장 A면 영인본 46책 640면 분류 *왕실(王室) 정조 47권, 21년(1797 정사 / 청 가경(嘉慶) 2년) 7월 16일(계미) 1번째 기사 예조 판서 조종현을 파직하고 이시수를 대신 임명하다 예조 판서 조종현(趙宗鉉)의 직을 파면하였으니, 영릉(寧陵)306)보토(補土)의 택일을 잘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 다. 이시수(李時秀)를 대신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5장 B면 영인본 47책 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정조 47권, 21년(1797 정사 / 청 가경(嘉慶) 2년) 8월 6일(임인) 1번째 기사 영릉의 보토가 완료되니, 감독관 채홍리를 지중추부사로 삼다 영릉(寧陵) 국내(局內)의 보토(補土)가 완료되었음을 고하자, 감독관인 지방관 채홍리(蔡弘履)를 특별히 지중 추부사로 발탁하고, 능관(陵官)과 차사원(差使員) 등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0장 A면 영인본 47책 37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정조 47권, 21년(1797 정사 / 청 가경(嘉慶) 2년) 10월 3일(무술) 1번째 기사 능을 보토할 때 큰 곳은 예조 등에서, 작은 곳은 본능이 거행케 하다 각 능을 보토(補土)할 때에 큰 곳은 예조 및 경기 감영에 보고하고 작은 곳은 본능(本陵)에서 거행하도록 명 하였다. 경기 관찰사 이재학(李在學)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29장 A면 영인본 47책 4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建設) 순조 1권, 즉위년(1800 경신 / 청 가경(嘉慶) 5년) 10월 21일(경오) 2번째 기사 산릉의 사초와 보토군에 관해 대왕 대비가 하교하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산릉(山陵)의 사초(莎草)와 보토군(補土軍)으로 내려가 있는 부류들에게 역사(役事) 를 시키지 않고 그대신 돈을 강제로 받아들이는데, 돈을 바칠 수 없는 사람은 심지어 기계(器械)를 빼앗고 쫓아 보내기 때문에 원성(怨聲)이 길에 가득하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전일에 애휼(愛恤)하여 조금도 폐를 끼 치지 않는 성의(聖意)를 우러러 본받는 일이겠는가? 여러 당상(堂上)들에게 모두 오등(五等)을 감봉(減俸)케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0장 A면 영인본 47책 33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군사군역(軍役) / *재정상공(上供) 306) 영릉(寧陵) : 효종의 능.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87

388 순조 6권, 4년(1804 갑자 / 청 가경(嘉慶) 9년) 9월 10일(병신) 2번째 기사 명릉ㆍ익릉에 보토한 도신 이하에게 상을 베풀다 명릉(明陵)ㆍ익릉(翼陵)에 보토(補土)한 도신(道臣)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베풀었다.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36장 A면 영인본 47책 491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인사관리(管理) 순조 6권, 4년(1804 갑자 / 청 가경(嘉慶) 9년) 10월 30일(을유) 2번째 기사 건릉과 현륭원을 봉심했던 각신과 영돈녕 김조순을 소견하다. 김조순이 능원의 일을 보고하다 건릉(健陵)과 현륭원(顯隆園)을 봉심(奉審)했던 각신(閣臣)과 영돈녕 김조순(金祖淳)을 소견하였다. 김조순이 능원(陵園)의 일을 조목별로 진달하기를, 능 위의 내룡(來龍)에 보토(補土)하는 것, 양산(陽山) 밖 두 봉우리에 떼를 입히고 금양(禁養)하는 것, 원소(園 所)의 재실(齋室)을 옮겨 짓는 것, 노적(露積)ㆍ양산 두 봉우리에 보토하는 것, 독성(禿城) 서문(西門) 밖 양산 (陽山)의 여러 산록에 늘어서 있는 백성들의 무덤을 물자를 보조해 주어 파서 옮기도록 하는 것, 세람교(細藍 橋)에 나무를 심는 것, 독성 남쪽에 암문(暗門)을 설치하는 것, 양산 동쪽 산록 및 독성 동문(東門)에 나무를 더 심는 것, 원소(園所)의 물건을 개수(改修)하는 것은 다른 능원의 예에 의거해 예조에 보고하고 호조에서 갖추어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관(園官)의 포폄(褒貶)은 침관(寢官)의 예에 의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 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1장 B면 영인본 47책 493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궁관(宮官) / *인사(人事) 순조 7권, 5년(1805 을축 / 청 가경(嘉慶) 10년) 1월 25일(경술) 2번째 기사 산릉을 재차 간심한 신하들이 산릉을 결정하는 하교를 기다린다로 아뢰다 산릉을 재차 간심한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신 등이 상지관(相地官)을 데리고 당일 오시(午時)에 원릉의 능 윗쪽 왼편으로 달려가서 주봉(主峯)에서 혈처 (穴處)에 이르기까지 다시 상세히 간심했는데, 지사(地師)들이 모두들, 혈성(穴星)의 존엄함과 체세(體勢)의 균정(均正)함이 처음 간심할 때에 견주어 더욱 분명함을 깨닫겠다. 고 했습니다. 비록 신 등의 범안(凡眼)으로 도 더없는 대길지(大吉地)임을 알 수 있었으니, 신리(神理)와 인정(人情)에 의거 헤아리건대, 일마다 흡족하게 되어 더없이 다행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비록 다른 곳에 이와 대등한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진 실로 이를 버리고 저것을 취할 수 없는데, 더구나 국내(局內)의 두 곳을 두루 살펴보고 의의(擬議)하는 사람 들이 용세(龍勢)와 수법(水法)에 차등이 나는 것이 현저하게 드러나 대등한 위치에 두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 니다. 그리고 본릉(本陵)의 왼편은 지세(地勢)가 평탄하게 여유가 있어서 상석(象石)의 설치를 물려서 안배하 기에 충분하였으며, 곡장(曲墻) 밖의 보토(補土)할 곳은 수십 척(尺) 안팎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어 여러 지사 들과 함께 정혈(正穴)의 좌향(坐向)에 대해 되풀이하면서 상의했는데, 모두들 오른쪽의 원혈(原穴)에 따라 또 한 해좌 사향(亥坐巳向)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우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릉을 결정하는 하교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전례에 의거 봉표(封標) 한 뒤 이어 되돌아갈 계획으로 있습니다. 봉표하는 곳이 이미 본릉의 곡장 안쪽에 있으니, 고유(告由)하는 절 차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전례를 살펴 마련하게 하소서. 봉표에 관한 길일(吉日)ㆍ길시(吉 時)도 또한 추택(推擇)하여 계하(啓下)해서 거행하게 하소서. 하였다. 38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89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5장 A면 영인본 47책 499면 분류 *왕실(王室) / *사상(思想) 순조 7권, 5년(1805 을축 / 청 가경(嘉慶) 10년) 1월 27일(임자) 3번째 기사 산릉을 재차 간심한 신하들을 여차로 소견하여 산릉 배설에 대해 논의하다 산릉을 재차 간심한 여러 신하들을 여차(廬次)로 소견(召見)하였다. 총호사 서매수가 말하기를, 봉표한 곳에 대해 지사들이 모두들 조금도 원조(原兆)만 못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더없이 다행스러운 마음 견딜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봉표한 곳이 원조와의 거리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 하였다. 서매수가 말하기를, 두 능침의 석물(石物)을 각각 배설할 경우에는 다만 재혈(裁穴)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까 염려스러울 뿐만 이 아니라, 보토(補土)하는 역사가 지나치게 호대(浩大)하게 됩니다. 만일 숭릉(崇陵)의 제도를 준행하여 두 능침 사이에 상석(象石)의 설치를 통틀어 안배한다면, 곡장(曲墻)을 원지(原地)에 쌓을 수 있고 보축(補築)도 단지 훈대(暈臺)에만 있게 되어 조역(兆域)의 형체가 또한 매우 넓고 짜임새 있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본릉 (本陵)의 난간 횡석(欄干橫石) 두 개, 수석(竪石) 세 개, 면우석(面隅石) 네 개는 형편상 이동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은 반드시 품정(稟定)한 연후에야 봉행할 수 있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동하는 곳이 어느 방위(方位)인가? 하였다. 서매수가 말하기를, 본릉의 인방(寅方)입니다. 하고, 도감 당상 이면긍(李 勉兢)은 말하기를, 신 등이 숭릉(崇陵)의 상석 설치를 봉심하였는데, 대왕릉의 자방(子方)과 왕비릉의 오방 (午方)의 주석(柱石)과 면우석(面隅石)을 모두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양쪽편의 난간이 활처럼 굽어 연접(聯接) 된 곳의 상하 두 석주(石柱)의 모가 난 것이 앞쪽 두 모퉁이로 나와 있었고, 축(丑)ㆍ미(未)ㆍ사(巳)ㆍ해(亥)의 방위를 나누어 써놓은 아래로 석구(石溝)를 설치하여 두 능 사이의 수도(水道)를 통하게 했습니다. 지금 만약 이 제도를 모방하여 할 경우에는 인방(寅方)의 석물을 철거하고 축(丑)ㆍ묘(卯) 방위의 석물을 다시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한결같이 숭릉의 제도를 따라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의 인산(因山)은 이미 구능침(舊陵寢)과 같은 등성이에다 하게 되었는데, 상석의 설치를 새로 배치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는가? 하니, 서매수가 말하기를, 단지 혼유석(魂遊石)ㆍ난간석(欄干石)만 새로 배치하면 되 는데, 난간과 곡장은 전의 것에다 연결시켜 빙 둘러싸게만 할 뿐입니다. 정자각(丁字閣)은 이미 본래의 정자 각이 있기 때문에 다른 가각(假閣)을 건립했다가 3년이 지난 뒤에 헐어버리면 됩니다. 단지 견고하게만 할 뿐이요 화려하고 아름답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5장 B면 영인본 47책 499면 분류 *왕실(王室) 순조 7권, 5년(1805 을축 / 청 가경(嘉慶) 10년) 10월 12일(신묘) 1번째 기사 건릉에 보토하고 식목을 끝내고 감동한 각신 이하의 관원에게 시상하다 건릉(健陵)에 보토(補土)하고 나무를 심는 일을 끝냈다. 감동(監董)한 각신(閣臣) 이하의 관원에게 차등 있게 시상(施賞)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0장 A면 영인본 47책 516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89

390 순조 8권, 6년(1806 병인 / 청 가경(嘉慶) 11년) 4월 9일(병술) 2번째 기사 영릉ㆍ영릉의 보토하는 역사가 끝나자 당상에게 가자하고 관원에게 시상하다 영릉(英陵)ㆍ영릉(寧陵)의 보토(補土)하는 역사(役事)가 끝났다. 당상(堂上)인 여주 목사(驪州牧使) 김효건(金孝 建)에게는 가자(加資)하고 겸감역(兼監役) 이하의 관원에게는 시상(施賞)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6장 A면 영인본 47책 543면 분류 *인사(人事) / *왕실(王室) 순조 18권, 15년(1815 을해 / 청 가경(嘉慶) 20년) 5월 18일(임인) 1번째 기사 세종과 효종의 능에 보토를 마치다 영릉(英陵)307)과 영릉(寧陵)308)의 보토(補土)를 마친 뒤에 당상관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10장 B면 영인본 48책 79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순조 25권, 22년(1822 임오 / 청 도광(道光) 2년) 윤3월 8일(계미) 1번째 기사 건릉의 보토 역사가 끝나다 건릉(健陵)의 보토(補土) 역사가 끝났다. 당상인 수원 유수 이하의 사람들에게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8장 A면 영인본 48책 203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순조 26권, 23년(1823 계미 / 청 도광(道光) 3년) 10월 27일(임술) 1번째 기사 휘경원에 보토와 식목을 마치고 당상 양주 목사 이종운에게 가선을 가자하다 휘경원(徽慶園)에 보토(補土)와 식목(植木)을 마치고 당상 양주 목사(楊州牧使) 이종운(李鍾運)에게 가선(嘉善) 을 가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2장 A면 영인본 48책 236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순조 27권, 25년(1825 을유 / 청 도광(道光) 5년) 3월 1일(무자) 1번째 기사 익릉에 보토하는 일을 감독한 당상 낭관 이하에 시상하다 익릉(翼陵)에 보토(補土)하는 일을 감독한 당상 낭관 이하에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24장 B면 영인본 48책 249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307) 영릉(英陵) : 세종 및 왕비 소헌 왕후의 능. 308) 영릉(寧陵) : 효종 및 왕비 인성 왕후의 능. 39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91 순조 27권, 25년(1825 을유 / 청 도광(道光) 5년) 8월 28일(임오) 1번째 기사 경릉과 홍릉에 보토하는 일을 한 감독관에게 시상하다 경릉(敬陵)과 홍릉(弘陵)에 보토(補土)하는 일을 감독한 당낭(堂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5장 A면 영인본 48책 254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순조 28권, 26년(1826 병술 / 청 도광(道光) 6년) 8월 14일(계해) 2번째 기사 승릉의 수개 관계자에게 시상하다 숭릉(崇陵)의 수개(修改)하는 역사(役事)를 마치고 당상관과 낭관 이하에게 시상(施賞)하고, 보토 당상(補土堂 上)인 양주 목사(楊州牧使) 서유구(徐有榘)에게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13장 B면 영인본 48책 26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순조 32권, 31년(1831 신묘 / 청 도광(道光) 11년) 5월 19일(경오) 1번째 기사 동칠릉의 주산의 산맥을 보토하는 역사를 종료시킨 양주 목사 이하에게 시상하다 동칠릉(東七陵)의 주산(主山)의 산맥이 사태로 퇴락한 곳에 보토(補土)하는 역사를 마치자, 당상인 양주 목사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7장 B면 영인본 48책 369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王室) 순조 32권, 32년(1832 임진 / 청 도광(道光) 12년) 4월 16일(임진) 1번째 기사 정릉 보토의 감독을 맡은 예조의 당상 이하에게 시상하다 정릉(貞陵)을 보토(補土)할 때 감독했던 예조의 당상 이하에게 시상을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22장 A면 영인본 48책 377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헌종 2권, 1년(1835 을미 / 청 도광(道光) 15년) 10월 12일(정묘) 2번째 기사 산릉의 보토 담당 당상 이하에게 시상하다 산릉(山陵)의 보토(補土)를 담당했던 당상(堂上)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施賞)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3장 A면 영인본 48책 441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헌종 14권, 13년(1847 정미 / 청 도광(道光) 27년) 3월 25일(갑진) 1번째 기사 여주 목사 송지양을 가자하라고 명하다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1

392 영릉(英陵)ㆍ영릉(寧陵)의 보토 당상(補土堂上) 여주 목사(驪州牧使) 송지양(宋持養)을 가자(加資)하라고 명하 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14권 3장 B면 영인본 48책 521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헌종 15권, 14년(1848 무신 / 청 도광(道光) 28년) 5월 4일(병자) 1번째 기사 동팔릉 보토 당상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주다 동팔릉 보토 당상(東八陵補土堂上)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5장 A면 영인본 48책 530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철종 2권, 1년(1850 경술 / 청 도광(道光) 30년) 5월 14일(을사) 2번째 기사 영릉ㆍ영릉 두 능의 보토 당상 이하의 관원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두 능의 보토 당상(補土堂上) 이하의 관원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고, 여주 목사(驪 州牧使) 김재전(金在田)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5장 B면 영인본 48책 556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관리(管理) 철종 9권, 8년(1857 정사 / 청 함풍(咸豊) 7년) 12월 24일(신미) 2번째 기사 묘호와 존호를 추상할 때의 도감 도제조 이하 등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다 묘호(廟號)와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할 때의 도감 도제조(都監都提調) 이하와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에 보 토(補土)할 때 이를 감동(監董)한 당상(堂上)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施賞)하였다. 제조인 상호군(上護軍) 이 돈영(李敦榮), 좌참찬 남병철(南秉哲), 호군(護軍) 김병학(金炳學), 도청(都廳)인 응교(應敎) 이면우(李勉愚), 부 사과(副司果) 박도빈(朴道彬), 대축(大祝)인 헌납(獻納)윤치성(尹致聖), 독옥책관(讀玉冊官)인 호군(護軍) 이공익 (李公翼), 독금보관(讀金寶官)인 호군(護軍) 임백경(任百經), 욕주 대축(浴主大祝)인 헌납 윤치성(尹致聖), 존호 를 추상할 때의 독옥책관인 형조 참판 한정교(韓正敎), 독금보관안 부호군 박제소(朴齊韶), 보토(補土)할 때의 당상(堂上)인 여주 목사(驪州牧使) 이병문(李秉文)에게 아울러 가자(加資)하엿다.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8장 A면 영인본 48책 623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 철종 12권, 11년(1860 경신 / 청 함풍(咸豊) 10년) 3월 10일(갑술) 2번째 기사 인릉 보토 감동 이하에게 차등있게 시상하다 인릉(仁陵)보토 감동(補土監董)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施賞)하고, 유수(留守) 김영근(金泳根)에게는 가자 (加資)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12권 2장 A면 영인본 48책 637면 분류 *인사(人事) 392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93 고종 1권, 1년(1864 갑자 / 청 동치(同治) 3년) 3월 15일(을묘) 5번째 기사 대신들과 능 공사의 진척 정도와 산릉 도감의 재원 문제를 의논하다 산릉(山陵)의 금정(金井)을 열 때 보러 나아갔던 대신 이하 여러 신하들을 소견(召見)하였다. 대왕대비가 이르 기를, 역사를 시작한 뒤로 봉토(封土)를 잇달아 올리기에 가져다가 보니 과연 좋았다. 하니, 영중추부사정원 용(鄭元容)이 아뢰기를, 흙 색깔이 누렇고 윤기가 있어서 아주 길하다고 일컬어지며, 산세가 수려하고 국면(局面)이 안온하여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모두 극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아주 다행입니다. 하니, 대왕대비가 이르기를, 산세와 토질이 모두 아주 좋다고 일컬으니, 망극한 가운데에서도 참으로 아주 다행이다. 하였다. 총호사(總護使) 김좌근(金左根)이 아뢰기를, 산릉도감(山陵都監)과 빈전도감(殯殿都監)의 장인들에게 줄 요미(料米)를 계속해서 줄 수가 없으니, 선혜청의 쌀 250석을 획하(劃下)하여 안배해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대왕대비가 이르기를, 능소(陵所)의 공사가 지금 어느 정도 되었는가? 돌을 다듬는 공사 는 또한 잘 되어 가는가? 하니, 김좌근이 아뢰기를, 정자각(丁字閣)은 그 사이에 이미 기와를 이었고, 석물(石物)은 모두 예전의 석물을 갈아서 썼는데, 돌의 품 질이 모두 너무나 좋습니다. 혼유석(魂遊石)을 다듬는 공사는 아직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정원용이 아뢰기를, 문무석(文武石)이 근래의 제도에 비해 약간 컸으며, 돌의 품질이 과연 좋았습니 다. 하니, 대왕대비가 이르기를, 일찍이 듣건대, 예전에는 석물이 아주 크지는 않았는데, 이번의 이 문무석은 과연 조금 더 큰가? 보토(補土)할 곳은 또한 많지 않은가? 하니, 김좌근이 아뢰기를, 전후 좌우로 보토할 곳 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이미 다 공사를 마쳤습니다. 하였다. 원본 5책 1권 49장 A면 영인본 1책 14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토목(土木) / *물가임금(賃金) / *왕실비빈(妃嬪) 고종 15권, 15년(1878 무인 / 청 광서(光緖) 4년) 5월 20일(기사) 1번째 기사 여차에 나아가 산릉을 간심한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을 인견하다 상(上)이 여차(廬次)에 나아가서 산릉(山陵)을 다시 간심(看審)한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使) 이유원(李裕元), 총호사(總護使)김병학(金炳學), 판중추부사(判 中樞府事) 홍순목(洪淳穆), 영의정(領議政) 이최응(李最應), 우의정(右議政) 김병국(金炳國), 산릉도감 제조(山陵 都監提調) 김보현(金輔鉉),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김수현(金壽鉉), 예조 판서(禮曹判書) 윤자승(尹滋承)이 다. 하교하기를, 산릉에 대한 논의와 별단(別單)은 이미 상세히 보았다. 소견들이 어떠한가? 하니, 김병학이 아뢰기를, 왼쪽 널찍한 데는 과연 원만(員滿)한 길지(吉地)였습니다. 상지관(相地官)의 말도 모두 그러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렇다면 그 땅은 곡장(曲墻)의 안인가 밖인가? 그곳과의 거리는 어떠한가? 하니, 김병 국이 아뢰기를, 곡장 밖에서 불과 몇 척(尺)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렇다면 보토(補土) 할 곳은 없는가? 하니, 김병학이 아뢰기를, 보토할 곳은 약간 있지만 아주 넓지는 않은 듯합니다. 하였다. 김병학이 아뢰기를, 산릉은 지금 이미 두 번 간심하였습니다. 마땅히 다음 의절(儀節)이 있어야 하겠는데, 하교를 받은 뒤에야 거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을축년의 규례대로 하면 어떠한가? 하니, 김병학이 아뢰기를, 을축년의 규례에는 두 번 간심한 후에 이어 봉표(封標)하였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을축년의 규례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김병학이 아뢰기를, 산릉을 두 번 간심한 다음에 봉표하는 것을 을축년의 규례대로 하라고 명하셨는데, 길일을 예조(禮曹)로 하여금 고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3

394 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19책 15권 16장 A면 영인본 1책 573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고종 16권, 16년(1879 기묘 / 청 광서(光緖) 5년) 9월 24일(갑오) 1번째 기사 영릉 보수를 윤허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방금 영릉(寧陵)의 보토 당상(補土堂上) 여주 목사(驪州牧使) 홍순형(洪淳馨)의 장계를 보니, 영릉 구역 안 의 사태가 나서 떨어져 나간 곳들을 고쳐 짓는 비용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소서. 라고 한 일에 대 해 계하하셨습니다. 이전 규례를 상호 참고해서 선혜청(宣惠廳)의 돈 400냥(兩)을 구획(區劃)하여 그로 하여 금 절약하여 나눠 쓰도록 하며, 그 밖의 물자와 용역은 각 아문과 본 도에서 적당히 나누어 보내게 하고, 공 사를 완성하는 일은 곳에 따라 몸소 주관하도록 엄하게 신칙하여 통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 였다. 원본 20책 16권 35장 A면 영인본 1책 60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토목(土木) / *재정국용(國用) 고종 16권, 16년(1879 기묘 / 청 광서(光緖) 5년) 10월 29일(무진) 2번째 기사 영릉을 보토할 때의 감동 당상 이하에게 시상하다 영릉(寧陵)을 보토(補土)할 때의 감동 당상(監董堂上)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고 여주 목사(驪州牧使) 홍순 형(洪淳馨)은 가자(加資)하였다. 원본 20책 16권 36장 B면 영인본 1책 60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고종 23권, 23년(1886 병술 / 청 광서(光緖) 12년) 4월 7일(경오) 1번째 기사 의정부에서 영릉과 영릉을 보수하는 데 대하여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보토 당상(補土堂上)인 여주 목사(驪州牧使) 김명규(金明圭)가 올린 장계(狀啓)를 보니, 영릉(英陵)과 영 릉(寧陵)의 국내(局內)에 태락(汰落)한 곳을 보축(補築)하는 데 드는 물력(物力)을 마련하여 뒤에 기록하였으 니, 묘당(廟堂)에서 품처(稟處)하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공사할 곳이 매우 넓고 크니 물력(物力) 을 마련하는 데 쓸 돈 5,000냥(兩)을 구획(區劃)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말목(抹木) 1,500개(箇), 달고목(橽古 木) 500개, 축말목(杻抹木) 4석(石), 땔나무 巨薪 150태(駄), 그물과 빈가마니 2,000립(立)을 각읍(各邑)에 나누어 진배(進排)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철기계(鐵機械)와 잡물을 고을에서 빌려 쓰는 일입니다. 보 축하는 공사는 중대한 일이니 거기에 드는 수량을 빨리 조치하여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전례를 참작해서 선 혜청(宣惠廳)의 돈 2,500냥을 구획하여 절제하여 나누어 배정해 쓰고 도처에서 직접 맡아 해서 빨리 공사를 완공토록 해야 합니다. 목재와 빈가마니를 각읍에 분정(分定)하여 공급하도록 하고 기계 등의 물자는 본목(本 牧)에서 편리한 대로 빌려 쓰라고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27책 23권 15장 A면 394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95 영인본 2책 231면 분류 *건설토목(土木) / *재정국용(國用)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고종 23권, 23년(1886 병술 / 청 광서(光緖) 12년) 5월 19일(신해) 1번째 기사 의정부에서 영릉과 영릉 경내의 추가된 공사비를 내려 보낼 것을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보토 당상(補土堂上)인 여주 목사(驪州牧使) 김명규(金明圭)의 장계(狀啓)를 보니, 영릉(英陵)과 영릉(寧 陵) 경내의 무너져내린 곳에 대한 공사를 지금 끝냈는데, 획하(劃下)한 돈 2,500냥 외에 추가된 돈 388냥을 조처하여 획하하는 절차를 묘당(廟堂)에서 품처하게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이전에 내려 보낸 것이 참작하 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장계하여 청한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가입(加入)된 돈을 선혜청(宣惠廳)에 저축하고 있는 것 가운데서 그 수량대로 획송(劃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27책 23권 33장 A면 영인본 2책 240면 분류 *건설토목(土木) / *금융화폐(貨幣) / *왕실사급(賜給) 고종 23권, 23년(1886 병술 / 청 광서(光緖) 12년) 5월 26일(무오) 1번째 기사 영릉 등을 보토할 때 참가한 감동 이하에게 시상하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보토할 때 참가한 감동(監董) 이하에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다. 여주 목사(驪州牧 使) 김명규(金明圭)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원본 27책 23권 33장 B면 영인본 2책 24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고종 39권, 36년(1899 기해 / 대한 광무(光武) 3년) 5월 7일(양력) 2번째 기사 영릉, 영릉의 복토 공사에 윤교영이 감독할 것을 아뢰다 궁내부 대신서리 협판(宮內府大臣署理協辦) 윤정구(尹定求)가 아뢰기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의 보토(補土) 공사를 앞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겸장례(兼掌禮) 윤교영(尹喬榮)으로 하여금 급히 달려가서 봉심(奉審)하고 그대로 머무르면서 감동(監董)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원본 43책 39권 23장 B면 영인본 3책 97면 분류 *건설토목(土木) / *왕실종사(宗社) 고종 39권, 36년(1899 기해 / 대한 광무(光武) 3년) 11월 19일(양력) 2번째 기사 영릉 등을 보토할 때 감독한 겸장례 이하에게 시상하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의 주산 줄기 아래가 무너져 내린 데를 보토(補土)할 때 감독한 겸장례(兼掌禮) 이하 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다. 원본 43책 39권 83장 A면 영인본 3책 127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사(宗社)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5

396 8. 보토(補土)하는 방법 말목(抹木) 배치 섶으로 메우기 흙 전교하기를, 장마를 거친 뒤에 빗물에 쓸려서 떨어져 나간 곳을 보토하고 축석하지 못하더라도 말목을 견고하게 배치하 고 또 섶으로 메워 그곳을 채워서 층층이 유지되게 한다면 그 상태가 평평하면서 긴밀할 것이니 설령 혹 다 시 빗물에 쓸려 떨어져 나가게 되더라도 흘러 내려간 토사가 그 층의 말목 안으로 들어가서 섶과 더불어 사 이사이 끼어들어 달라붙게 되면 물은 그 사이에서 도리어 고르게 뒤섞어 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이 모여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결코 허물어지는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예조 판서로 하여금 각처의 재랑(齋郞)을 엄히 신칙하여 올여름부터는 이대로 하게끔 하고 각각 벽에 써서 붙여 명심해서 거행하 게 하라. 하였다. 국역 일성록 정조21년 정사(1797,가경 2) 3월18일(무오) 잡석과 진토를 섞어 메우고 그 위에 광석(廣石)과 사초(莎草)를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보토한 방식이 소개되고 있음. 산등성이 아래 작은 골짜기는 길이가 30보(步), 넓이가 1보, 깊이가 반(半) 장(丈) 정도 되는 곳에 보토하고 축석하였습니다. 그 아래 대처(大處)는 길이가 38보, 넓이가 7보 혹은 34보, 깊이가 3장 혹은 2장 반(半)인 데 잡석과 진토(眞土)를 서로 섞어 메워 막은 후 광석(광석)과 사초를 어린(魚鱗)의 방식으로 층을 쌓았습니 다. 309) 영릉보토소등록(英陵補土所謄錄) 보토에 사용된 것 ; 말목(抹木), 달고목(撻古木), 유말목(杻抹木), 그물처럼 짠 빈 가마니 철기계(鐵器械), 잡물(雜物), 거신(巨 薪) 의정부가 아뢰기를, 방금 보토 당상(補土堂上)인 여주 목사(驪州牧使) 홍순형(洪淳馨)의 장계를 보니, 영릉(寧陵) 국내의 헐려나 간 곳을 보축하는 데 들어가는 물력(物力)을 마련하여 후록(後錄)하니, 묘당으로 하여금 품지하여 분부하게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그 한 가지는, 공사하는 곳이 넓고 커서 공사를 시작할 때 급하게 들어가야 할 돈 700냥을 지금 떼어 주는 일이고, 또 한 가지는, 말목(抹木) 1000개, 달고목(撻古木) 300개, 유말목(杻抹木) 3 석(石), 그물처럼 짠 빈 가마니 400립(立), 철기계(鐵器械), 잡물(雜物) 등을 각 아문으로 하여금 진배(進排)하 게 하는 일이고, 또 한 가지는, 거신(巨薪)을 70바리[䭾]에 한하여 각 고을에 나누어 배정해서 진배하도록 하 는 일이고, 또 한 가지는, 상지관(相地官)과 주시관(奏時官)을 각기 해사로 하여금 정하여 보내는 일입니 309) 英陵補土所謄錄 山脊下細谷 長三十步 廣一步 深半丈 補土築石. 其下大處 長爲三十八步 廣七步或三四步 深三丈 或二丈半等處 以雜石與眞土 相雜塡塞後 以廣石幷莎草 魚鱗築層. 396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97 다.310) 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광서5) 9월 24일(갑오) 맑음 보토에 사용된 것 : 숙석(熟石), 잡석(雜石), 사초(莎草), 거신목(拒薪木) 장계하기를, 영릉(寧陵) 곡장(曲墻) 밖 청룡(靑龍) 안쪽의 사태(沙汰)로 탈이 생긴 곳을 보토할 때 들어가는 숙석(熟石) 1 만 2808괴(塊), 강가의 잡석(雜石) 2만 7505괴, 사초(莎草) 2만 4595장(張), 거신목(拒薪木) 556부(負)를 홍살 문 밖에 운반해 놓은 다음, 이달 12일 새벽에 먼저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같은 날 묘시(卯時)에 일을 시작 하였습니다. 14일과 15일은 제향(祭享)할 때 시끄러울 염려가 있고, 절일(節日)을 만났는데 많은 군정(軍丁)을 억지로 일을 시키기 어려워, 이틀간 일을 정지하는 사유를 전교를 받기 전에 이미 감영에 보고하였습니다. 12일부터 13일까지 보토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태가 난 제1처(處)는 길이 13척(尺), 위 너비[上廣] 8척 5촌(寸), 아래 너비[下廣] 5척, 깊이 2장(丈) 또는 1장 반(半)이고, 제2처는 길이 38척, 위 너비 5척, 아래 너 비 8척, 깊이 2장 또는 1장 반인데, 흙과 돌을 섞어 채워 완전히 쌓고 사초를 입혔습니다. 그 아래 구덩이가 파인 곳이 7곳이고, 좌우 옆으로 터진 곳이 10곳이며, 백호(白虎) 안의 사태로 구덩이가 파인 곳이 4곳인데, 차례로 보토하겠습니다. 국역 일성록 정조10년 병오(1786,건륭 51) 8월16일(병진) 1) 서오릉 보토 명릉 앵봉의 보토 : 두텁게 배토하고 수십년이 지나 수목이 숲을 이룸 경릉과 홍릉의 인후에 해당하는 곳 : 풍우 마멸로 보토 및 식목 필요함 내가 이르기를, 국내(局內)의 공역(工役)할 곳을 봉심하였는데 과연 어떠하던가? 하나하나 소상히 진달하라. 하니, 이문원이 명릉(明陵)과 영릉(永陵)의 국내에 대한 도형(圖形)을 올리고 아뢰기를, 명릉 국내에 있는 여러 능침(陵寢)의 내외(內外) 형국(形局)을 일체 봉심한 뒤에 이어 영릉에 나아가 내외 형 국을 또한 하나하나 봉심하였는데, 크게 탈이 있는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명릉 앵봉(鸎峰)의 그동안 보토(補土)한 곳에 다른 근심거리가 없었는가? 하니, 이문원이 아뢰기를, 보토한 곳이 지금 수십 년이 지나서 곧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땅과 같아졌고 수목 이 숲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흙을 두텁게 배토(培土)하였기 때문에 쉽게 뿌리가 내릴 수 있어서이니, 그 무성 한 것이 온전한 땅보다 낫습니다. 다만 명릉과 창릉(昌陵) 중간에 한 기슭이 있는데 나뉘어 두 형국을 이룹 니다. 이 기슭 중에 과협(過峽)이 있는데 인하여 뇌후(腦後)가 되었고,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경릉(敬陵)이 310) 議政府啓曰, 卽見補土堂上驪州牧使洪淳馨狀啓, 則寧陵局內汰落處, 補築物力, 磨鍊後錄, 請令廟堂稟旨分付矣 其一, 役處浩大, 始役時急, 容入錢七百兩及今劃下事也, 其一, 抹木一千箇ㆍ撻古木三百箇, 杻抹木三石, 網罟空石四百立, 鐵 器械襍物, 令各衙門進排事也 其一, 巨薪限七十馱, 分定各邑, 以爲進排事也 其一, 相地官ㆍ奏時官, 令各該司定送 事也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7

398 되고 다른 하나는 홍릉(弘陵)이 되었습니다.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곳이 수백 년 동안 풍우(風雨)에 마멸되어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꺼졌는데 그 너비가 20여 보(步)가 되고 길이가 거의 16, 7보가 되니, 흙을 메워 나무를 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국역일성록 정조9년 을사(1785,건륭 50) 6월16일(계사) O 필요한 돌은 잡석으로 충분함. O 바탕 흙의 성질 : 모래도 아니고 돌도 아니면서 매우 단단함 내가 이르기를, 흙을 가져올 곳의 거리는 얼마나 되겠으며, 돌을 가져올 곳의 거리는 또한 얼마나 되겠는가? 하니, 이문원 이 아뢰기를, 능침 안에서는 흙을 가져와서는 안 되고, 화소(火巢) 밖이라면 멀게는 3리(里)에 불과하고 가깝 게는 2리쯤에 불과합니다. 가져올 돌은 잡석(雜石)에 불과한데, 여러 능침의 국내에 많은 잡석이 있으니 가져 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시급히 해야 할 우려는 없지 않겠는가? 하니, 이문원이 아 뢰기를, 이곳 흙의 성질은 모래도 아니고 돌도 아니며 매우 견고하여 수백 년 동안 풍우에 손상된 것이 오히려 1장 (丈)이나 반 장 남짓에 불과하니, 올해 비록 누차 장맛비가 있다 하더라도 손상될 것이 1푼 1치도 넘지 않을 듯합니다. 그 대체를 논하면 보토하지 않을 수 없지만 시급한 역사는 아니니, 이러한 한더위에 동역(董役)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국역일성록 정조9년 을사(1785,건륭 50) 6월16일(계사) 보토와 식목을 통해 행인들이 왕릉 주변 길 (봉현 등)을 다니지 못하도록 함 이문원이 아뢰기를, 겨울이 되기 전뿐만 아니라 내년 봄이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봉현(蜂峴)의 행로(行路)를 막는 일에 대해 신칙하는 하교가 있자마자 신은 형편을 살피기 위해 명을 받들고 나갈 적에 봉현을 경유하는 것으로 길을 삼았습니다. 본릉(本陵)의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니, 이 봉현의 행로를 막은 것은 지난 계미년(1703, 숙종29)에 본릉 수릉관(守陵官)인 여산군(礪山君) 이방(李枋)이 상소하기를, 이 봉현의 행로는 금지할 수 있 는 형세가 전혀 아니니, 끝내 막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개의 길을 허락하는 것이 낫습니다. 라고 하자, 상소를 해조(該曹)에 내려서 지형을 간심(看審)한 뒤 이전 행로는 막고 별도로 봉수봉(烽燧峰) 우측 아래에 한 개의 길을 내게 하였습니다. 그 후 60여 년 동안 이 길이 패어 깊이와 너비가 각각 수 장(丈)쯤 됐기 때 문에 그 당시 능관(陵官) 윤심협(尹心協)과 남태헌(南泰憲)이 이러한 정황을 예조에 논보(論報)하자, 신사년 (1761, 영조37)에 구선복(具善復)에게 명하여 보토하고 길을 막게 하며 인하여 나무를 심게 하였는데 지금은 숲을 이루고 인적이 통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봉현의 길은 바로 여산군이 막도록 청한 길입니다. 신사년에 봉수봉 아래 길을 막은 뒤로 이 길이 차 츰차츰 열리게 되었기 때문에 전후로 조정에서 엄금한 것이 수차례일 뿐만이 아니었지만 끝내 금지하지 못 하였습니다. 신축년(1781, 정조5)에 능관 민이현(閔彛顯)과 오언교(吳彦敎)가 능군(陵軍)만 영솔하여 돌을 쌓아 막아서 행인을 금하려고 하였는데, 그 석축(石築)의 길이는 40여 파(把)이고 높이는 1장(丈)이나 반 장이었습 니다. 그 석축으로 막은 것으로 본다면 길을 통행하기 어려울 듯하지만, 각각의 능졸(陵卒)이 지름길을 취하 여 석축의 끝을 우회하여 벼랑을 타고 몰래 통행하여 다시 작은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미 국내의 여러 곳을 간심하라는 명을 받들어 본릉의 능관인 별검(別檢) 김상우(金商雨), 참봉 박철원 398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399 (朴喆源), 고양 군수(高陽郡守) 김이중(金履中)과 함께 상의하여 능군 80명, 연군(烟軍) 50명, 익릉(翼陵)의 능 군 3, 4십 명을 거느리고 2일씩 나누어 동역하여, 석축 끝 좌우로 우회하는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산허리에 이르기까지 반 장여를 봉현 내외에 연결하여 쌓고 잡목(雜木)을 안배하여 심음으로써 몰래 통행하는 폐단을 방지하도록 하였고, 또 사초(莎草)로 여러 틈이 난 길을 덮어서 길의 흔적을 없애도록 하였으니, 현재의 소견 으로는 이전과 같은 우환은 없을 듯합니다. 다만 대체로 여러 능군이 편의를 취해 왕래할 때 매양 이 봉현을 경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십 리(里)를 구불구불 돌아간 뒤에야 능소(陵所)에 들어갈 수 있으니,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 능군들이 편의를 취하려고 하여 또 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하였다. 국역일성록 정조9년 을사(1785,건륭 50) 6월16일(계사) 2) 서삼릉 희릉 보토 禧陵의 補築 시기를 4월 전후로 늦추고 物力과 器械는 임시로 구획할 것을 청함 철기계와 잡물 : 삼군문(三軍門)에서 진배(進排) 공석(空石)과 목재류 : 각 영문(營門)과 호조(戶曹) 등 비변사에서 달(達)하기를 방금 경기감사 김렴(金鐮)의 신본(申本)을 보니, 희릉(禧陵) 경내에 사태로 퇴락한 곳을 보토하여 쌓는 역사 (役事)가 매우 크니, 소요되는 비용으로 먼저 4천 냥을 획하하고, 철기계(鐵器械)와 잡물은 삼군문(三軍門)에 서 진배하여 사용한 뒤 돌려주며, 공석(空石)과 목재류는 각 영문(營門)과 호조와 총융청 및 본영에서 분정하 여 진배하고, 역군(役軍)은 규례에 따라 삯군을 사용하며, 상지관과 주시관은 해사(該司)에서 정송하게 하는 일을 묘당에서 품령(稟令)하여 분부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능역(陵役)은 사체가 중대한 만큼, 이미 간심(看 審 자세히 조사함)하고 연길(涓吉)하였으면 오직 기일에 대서 역사를 시작하여 조금도 늦추지 말아야 하 겠으나 다만 지금은 각 능묘의 역사를 일시에 많이 아울러 거행하고 또 행행(幸行)과 상치하여, 경기 고을 백성들이 힘을 펼 수 없습니다. 또 새로 탈이나 시급한 것과는 다름이 있어 한 달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4월 초열흘 전후에 다시 택일하여 거행하고, 물력(物力)과 기계는 그 때에 가서 구획하는 것이 어떻겠습니 까? 하니, 그리하라 하였다.311) 비변사등록 순조 28년 2월 ( (음)) 311) 備邊司謄錄 司達曰, 卽見京畿監司金鐮申本, 則以爲禧 陵局內汰落處補築之役, 極爲浩大, 物力錢, 先以四 千兩劃下, 鐵器械雜物, 自三軍門進排, 用後還下, 空 石木物, 自各營門ㆍ戶曹ㆍ摠戎廳及本營分定進排, 役 軍依近例雇軍使用, 相地 官奏時官, 令該司定送事, 請 令廟堂稟令分付矣, 陵役事體, 旣重且大, 已行 看審而涓吉, 惟當趁期始役, 不容少緩, 但今 各陵 墓役事, 一時多有竝擧, 適又幸行相値, 畿邑民力, 無以自紓, 且與新頉之時急有異, 容俟一朔之暇, 以 四月旬前後, 更爲擇日擧行, 物力與器械, 臨時區劃 何如, 答曰, 依 2010~2016년 종합평가ㆍ 399

400 3) 파주 장릉 보축 왕릉의 백호(白虎) 부분은 보토를 행하지 않음. 수일 전에 우의정(右議政) 김창집(金昌集)이 청대(請對)하여 아뢰기를, 일찍이 임만정(林晩楨)의 상소(上疏)로 인하여 숭릉(崇陵)의 손을방(巽乙方)에 보토(補土)하는 일은 봄을 기다 려 의논하여 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일찍이 전에 장릉(長陵) 백호(白虎)의 낮고 평평한 곳도 또한 보축(補築)하 려고 하였으나, 그 때에 백호는 보토할 수 없다는 의논이 있어 마침내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백호에 보토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상진(李尙眞)의 말이었는데, 기타 신경윤(愼景尹) 등 여러 사람들은 모두 해로울 것이 없다고 하였으나, 유독 한구(韓構)만이 술가(術家)의 꺼리는 바라고 말하여 필경은 거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 다. 이제 이 손을방(巽乙方)도 또한 백호(白虎)가 되는지라, 신중(愼重)하게 하는 도리로 보아 다시 품처(稟處)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2)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 37년 신묘(1711,강희 50) 2월4일 (계해) 312) 朝鮮王朝實錄 癸亥/前數日, 右議政金昌集請對啓曰: 曾因林晩楨疏, 崇陵巽乙方補土事, 使待春議定矣 曾前長陵白 虎低平處, 亦欲補築, 而其時有白虎不可補土之議, 終不得擧行 白虎之不可補土者, 乃李尙眞之言, 而其他愼景尹等諸 人, 皆以爲無所害, 獨韓構以爲術家所忌, 竟不擧行 今此巽乙方, 亦爲白虎, 其在愼重之道, 不可不更稟 400 ㆍ 2010~2016년 종합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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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 자문위원 김학범(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최기수(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조경학과 교수) 이은복(전 한서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전영우(국민대학교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이원호(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신병철(중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박상진(경북대학교 교수) * 연구진 책임연구원 이창환(공학박사, 상지영서대학교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문화재(조경)수리기술자,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연구원 최종희(공학박사, 배재대학교 교수, 충청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수리기술자) 남궁원(문학박사, 강원대학교 강사, 강원과학고등학교 한문교사) 홍문표(식물생태학박사, 강릉원주대 자연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 한갑수(공학박사,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백인환(산림자원학박사, 국립중앙과학관 위촉연구원) 백문기(생물학박사, 한반도곤충보존연구소 소장) 이기열(공학석사, (주)디오스조경디자인사무소 소장) 황규만(공학석사, (주)디오스조경디자인사무소 이사) 연구보조원 정남호((주)디오스조경디자인사무소 부장) 김주현((주)디오스조경디자인사무소 과장) 이상기((주)예일 소장) 전병선((주)우림NR 차장) 박병민(강릉원주대학교 대학원) 홍지선(강릉원주대학교 대학원) 소윤경(강릉원주대학교 대학생) 홍보람(강릉원주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김주경((사)한국전통조경학회 사무국장) 황보세진(배재대학교 조경학 연구원) 2010~2016년 종합평가ㆍ 407

408 2010~2016 년종합평가 인쇄일 : 2016년 12월 1일발행일 : 2016년 12월 15일등록번호 : 용역수행 : ( 사 ) 한국전통조경학회편집 : ( 사 ) 한국전통조경학회인쇄 : 한국학술정보 ( 주 ) 본보고서는 16 년조선왕릉역사문화경관림자원조사연구용역보고서의 최종성과물로작성되었습니다. 이책에실린글과그림, 사진, 내용을포함한제반사항은 저작권자와협의없이무단전제및복제를금합니다. 국제표준도서번호 IS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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