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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북한 산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에 관한 연구 강 호 상 (서울대 객원연구원) 목 차 요약문 3 1. 서 론 5 2. 북한의 자연자원 8 3. 북한의 산림자원 북한의 산림황폐화 원인 및 현황 훼손된 북한 산림생태계의 복원 장기생태연구지 설정 및 연구 동북아시아 국가간 산림 network 조성 및 교류 협력 방안 결 론 45 참고문헌 46

6 3 요 약 문 최근 들어 북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은 핵무기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에 대한 가능성을 보도하는 등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으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의 원인은 여 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연료 문제일 것이다. 즉, 지난 1995년 이후 계속 되는 엄청난 자연 재해로 인해 대부분의 연료림이 파괴되었으며, 구소련시절부터 계속되어 오던 연료공급의 중단 등으로 인해 연료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부득이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 동해야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산사태, 홍수 등 자연재해와 비료 공급량의 부족 등으로 인한 식량 생산의 극심한 감소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던 북한사회체제의 존립에 관한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자연자원과 산림자원에 대한 현황을 개괄한 뒤 산림파괴의 원인과 현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였 다. 북한은 산림면적이 전국토의 약 77%에 달하는 산림국가로 지형이 험준하 고 기후조건이 복잡하여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고 식 약용 자원이 매우 풍부 하다. 그러나 지난 1976년부터 시작된 자연개조사업과 다락밭 조성 사업에 의한 산지의 무리한 개간으로 토사유출 및 산림황폐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더군다나 지난 1995년부터 홍수, 가뭄, 해일 등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대 부분의 산림이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 연료난을 초래하게 되었다. 특히 땔나무의 부분별한 채취와 외화획득용 대규모 벌목사업은 이러한 산 림황폐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훼손된 산림복원을 위해서는 우선 지표면의 안정을 위한 사방 사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녹화, 조림사업이 진행되어야 한 다. 이때 산림생태계의 다양성 등 구조적 측면뿐만 아니라 지속성, 순환성, 안정성 등 기능적으로도 안정된 임분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농산촌은 1970년대 이전 남한 농산촌의 경우처럼 가정에서 임산연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 임산연료를 충 분히 공급하기 위해 연료림 조성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연료림이 성공적으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체연료의 공급이 필요한 데 이는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신갈나무나 기타 활엽수 소경 재를 육지로 운송하여 몇 년간 공급해 줌으로써 조림목의 안정적인 생장을

7 4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은 원 산림에 대한 정보 수집과 함께 장 기적인 산림생태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지속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원시림은 우리나라 강원도와 북한지역과 함께 만 주림 에 속하기 때문에 수종이 동일하고 임분도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앞으 로 북한 산림의 복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강원도 지역 산림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서 반드시 연구해야 할 지역이다. 따라서 러시아 연해주지역과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는 장기생태연구지와 함께 북한의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등의 자연보호구에 장기생태연구지를 설치함으로써 훼손된 북한의 산림생태계 복원 모델 개발 및 지속가능한 산 림관리를 위한 기준 및 지표개발을 위한 중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 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관련 국가간의 원활한 교류 협력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동북아산림포럼과 평화의 숲이 각각 1998년 1999년에 창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와 중국 과학원 산하 심양응용생태연구소, 러시아 과학원 산하 생물 토양과학연구소 그리고 일본 북해도대학 산림연구소 등으로 산림 network를 조성하고 가칭 동북아산림연구센터 를 설치하여 관련 자료의 공유 및 산림 및 훼손된 생태 계복원관련 전문가의 활발한 교류를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답보상태에 있는 남 북한 간의 협력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예산지원 및 안정적인 교류 협력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8 5 1. 서 론 1.1 연구의 목적 최근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지구환경 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21세기의 지구 환경 또한 계속되는 개발 과 이용의 요구 앞에 더 많은 생태계의 파괴와 생산성의 악화가 예상되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특히 집중호우, 대규모 태풍 및 폭풍과 이상기온 등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전 세계가 고 통 받고 있으며 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지구 환경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지 구의 자기정화 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인류의 생존과 존속을 위해서는 환경 의 보존과 회복이 필수 불가결한 과제라는 것이 명백해졌고, 이를 위한 산림 의 환경보전에 대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산림에 대한 자원의 지속생산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공익 기능 유 지를 위한 전 세계적인 관심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 는데, 지난 1972년 스톡홀름 선언을 채택한 후 유엔은 지구환경문제 종합 조 정 기구로 유엔 환경계획(UNEP)을 설치하는 한편 기후, 대기, 해양, 토양, 산림, 폐기물 등 지구환경 선언에 관한 총괄 관리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선 언 20주년인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78개국 정상이 참가한 유엔환경개발 회의(UNCED)를 개최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02년 8월 요하 네스버그에서 열린 유엔지속가능발전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n Sustainable Development)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환경정상회의 (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에서는 생물다양성보전, 기후 개선 그리고 수자원보전 등 산림의 환경적 역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 계유지와 빈곤의 감소를 위한 산림의 사회적 역할을 많이 강조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9월 21일부터 29일까지 캐나다 퀘벡에서 열렸던 제12 차 국제임업총회(World Forestry Congress)에서는 "숲은 생명의 근원 (Forest, source of Life)"라는 주제로 전 세계 약140개국에서 4,0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인간을 위한 숲, 지구를 위한 숲 그리고 숲과 인간의 조화 라 는 제목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참석자의 대부분이 '지속가능한 산림의 관리(sustainable forest management)'를 위해 숲에 대한 다양한 연구 활동 과 더불어 숲의 사회적 기능 등 숲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9 6 이러한 산림의 다양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림의 환경보전 역할뿐 만 아니라 목재 및 기타 자원 생산 기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산림 관 리 방안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산림관리의 한 형 태인 산림생태계 관리(forest ecosystem management)방안이 대두되면서 이 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산림관리를 생태계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목재 및 임산물, 야생동 물, 수자원, 경관, 휴양, 수렵 등을 개별적으로 다루던 이전까지의 저차원적 인 단순 관리개념에서 다차원의 복잡한 관리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산림생 태계관리는 목재생산, 휴양, 환경보존 등의 각 분야와는 전혀 다른 분야까지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산림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동 식물 등 생물자원과 토양, 지 형 등 지리환경 그리고 산림소유자, 지역주민, 정부기관 등 인간의 간섭 등 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함으로써 산림생태계가 보다 친환경적이 고 다양성,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양한 기능을 지 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 한편, 북한 1) 은 지난 1995년과 1996년의 집중 강우에 의한 하천범람과 1997 년의 해일에 의한 방파제의 붕괴, 1998년의 대규모 산불 등에 의하여 약 17 만ha에 달하는 농경지가 유실되었으며, 약 200만ha에 달하는 산림지역이 완 전히 파괴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북한 산림생태계의 파괴 및 황폐화는 여름철 집중 강우시 토사 유출 및 산사태 발생 등으로 농경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어 북한의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게 된 원인은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가 직 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급경사 지역 산림에 대한 다락밭 조성 등 인위 적인 간섭이 더 큰 요인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울러 지속가능한 산림생태 계 관리 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및 연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즉, 영농자재 (비료, 연료, 농기계) 부족과 집단농장체재의 비효율성 그리고 무리한 자연개 조 사업(다락밭조성) 등 북한농업의 구조적 결함과 1993년 냉해, 1994년 우 박피해, 1995년과 1996년의 수해 그리고 1997년의 가뭄 등 대규모 자연 재해 가 겹쳐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김천 등, 1998). 특히 지난 1995년 7월 30일부터 8월 18일까지 내린 약 300mm의 집중 호 우와 1996년 7월 24일부터 28일까지 내린 약 800mm(황해남도가 평년 230mm에 비해 910mm, 황해북도가 평년 310mm에 비해 830mm, 개성직할 시가 평년 130mm에 비해 630mm의 집중강우가 내림)의 폭우에 의해 대부분 의 산림이 파괴되었고, 산사태와 대규모 토사유출로 인해 농경지 및 묘포장 1) 본 논문에서는 서술의 편의를 위해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을 지칭하는 북 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함.

10 7 이 유실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산림생태계가 파괴됨에 따라 연료용 목재 및 다양한 산림 부산물 생산은 물론이고 수자원함양, 산사태방지, 대기정화 등 다양한 환경 적 기능도 마비되어 심각한 환경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지난 1998년 제네바에서 열린 유 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의 북한농업 의 회복과 환경보호에 관한 주제별 원탁회의 에서 국제적인 지원을 요청하 였으며 국가적으로도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자원 및 예산 부족 등으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북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은 핵무기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에 대한 가능성을 보도하는 등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가 크게 위협 받고 있어 북한에 대한 전 세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의 지원도 매 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및 핵무기 보유설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연료 문제이다. 즉, 지난 1995년 이후 계속되는 엄청난 자 연 재해로 인해 대부분의 연료림이 파괴되었으며, 구소련시절부터 무상 지원 되어 오던 연료공급의 중단, 외화난 등으로 인해 연료문제가 심각하기 때문 에 부득이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토의 70%가 넘는 산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연료난에 허덕이 는 원인은 산림 황폐화로 인한 연료림의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이러 한 산림 황폐화로 인한 토사 유출 및 대규모 산사태 등은 농지유실로 인한 식량생산을 격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재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하고 있는 북한 산림의 현황을 살펴보고, 앞으로 다가올 통일을 대비하여 훼손된 북한 산림생태계의 복원, 장기생태연구지 설치 및 동북아시아 국가간 산림 network 조성 등을 통해 북한 산림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2 연구 방법 지난 2000년 남 북 정상간의 역사적인 6 15 선언이후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는 북한에 관한 많은 관심이 증폭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 으나 아직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보다는 간접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 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북한과의 공동연구 혹은 직접적인 방문연구는

11 8 북-미간의 갈등과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연구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따라서 중국, 극동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에 대한 연구와 통일부 등에서 제 공하는 일부 자료를 통해 북한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는 지난 1999년부터 한국과학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이 돈구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 자연자원의 개발과 훼손생태 계 복원 협력연구 를 통해 재중 동포 및 관련 학자들을 중심으로 북한관련 학회지와 정보를 통해 수집한 북한의 산림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 분석하였 다. 또한 최근 들어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산림황폐화 에 대해서는 지난 1998년 제네바 UNDP Round Table 에서 북한이 공식발 표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현재 북한 산림생태계의 피해와 현황 및 앞으로의 복원에 대해 산림생태계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산림생태계에 대한 연구는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장기적인 조사와 자료의 축적이 필요하다. 북한 산림생태계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어려운 시점에서 본 연구자는 북한의 산림과 같은(동일한 수종 분포를 보이는) 만 주림 지역인 극동러시아 연해주지역의 우수리스크 보호구역과 우리나라 강 원도 계방산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장기생태연구지(Long-term Ecological Research; LTER)에 대한 자료 수집 및 비교 분석을 통해 북한 산림생태계 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동안 발표된 북한 산림관련 문헌자료와 제12차 세계임업총회때 발표된 자료들을 통해 북한 산림생태계의 지속적인 관리 및 보전 방안을 제 시하고자 한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간접 연구와 더불 어 관련 과학자들간의 다양한 인적 및 정보 교류가 필수적이다. 현재 동북아 시아 지역내 산림관련 연구자들의 교류 현황을 살펴보고, 북한과학자들과 더 불어 북한 산림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을 위 한 산림관련 network 조성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2. 북한의 자연자원 2.1 북한의 기후 특성 북한의 전체 면적은 한반도 총면적인 222,300km2의 약 55%인 122,762km2 (남한 2) 은 99,800km2)로 중국과 극동러시아 연해주 그리고 남한과 국경을 마

12 9 주하고 있다. 위도 상으로 보면 북위 (황해남도 강령군 등암리, 남쪽 끝)에서 북위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 북쪽 끝), 경도 상 으로는 동경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 서쪽 끝)에서 동경 (함경북도 선봉군 우암리, 동쪽 끝) 사이에 놓여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로 봄, 가을이 짧은데 비해 여름과 겨울이 길며, 연평균기온 은 북한의 남부지방이 11 인데 비하여 북부지방은 3~6 로서 남북의 기온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그림 1). 그림 1.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 및 강수량 (Shin, 2002) 북한의 연 강수량은 평균 926mm로 남한의 1,300mm보다는 적으며, 연 강 수량의 50~60%가 6~9월의 장마기간과 태풍을 통해 집중적으로 내리는 특 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고산지대인 혜산이 606mm로 가장 적으며, 동해안의 장전지역이 1,520mm로 가장 많으며 지역적 차이가 크다(정영상 등, 2002). 2) 본 논문에서는 서술의 편의를 위하여 대한민국 을 지칭하는 남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함.

13 10 겨울철 눈은 북부지방의 경우 10월 하순부터 다음해 4월까지 내리고 4~6 개월간 땅이 얼어붙는다. 특히 원산지방과 마식령산맥, 적유령산맥 지역의 강수량은 연 1,400mm로서 가장 많고 평안남북도의 북부내륙지방은 600mm 이하로 적으며 두만강 유역도 600~800mm 정도로 적은 편이다. 7, 8월의 강수집중도는 고원지대나 동해안지대는 34~44%로 낮고, 서부 평 야지대는 42~54%로 높은 편인데, 이처럼 연 강수량은 작지만 7, 8월의 강 수집중도가 높다는 것은 토양 유실에 대한 취약성이 크다는 의미이며 여름 철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 및 기타 자연재해의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 미한다(정영상 등, 2002). 지난 1998년 UNDP-북한 Round Table Meeting에서 Agricultural Recovery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AREP) 프로그램 회의에서 공식적 으로 제출된 북한의 지역별 월평균 기온과 강수량은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북한 지역별 기온 및 강수량 경 위도 연평균 연강수량 연평균 일조시간 온도( ) (mm) 습도(%) (시간/년) 평양 E, 39 N 평안남도 E, (남서지역) 39 N * 신의주 E, (북서지역) 40 6 N 원산 E, (동부지역) N 청진 E, (북동지역) N *:일조량(%) 출처: UNDP Working Paper Vol. 2 (1998) 2.2 북한의 생물자원 현황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접경지로서 수평적, 수직적 기후 조건이 복잡하고 상록활엽수림부터 한대림까지 다양한 산림대가 분포하고 있어 동일 위도에 비해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다(임경빈, 1985) (그림 2). 북한의 식물자원은 영토의 넓이, 기후대의 위치에 비하여 식물의 종수가 풍부하고, 특산종과 유존종이 많으며, 수평적, 수직적 분포의 경향이 뚜렷하 다. 특히 식물종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고( 古 )지리적 요인과 관계가 깊은데,

14 11 한반도는 오래전에 육지가 형성되어 식생발달의 역사가 길었을 뿐 아니라 중생대 이후부터는 기후와 해수면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어 식생이 안정적 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공우석, 2002). 북한의 식물종 분포에 관한 연구는 지난 1947년 8월 7일 김일성주석이 식 물지 작성을 직접 발기한 후 많은 표본과 자료가 수집되었으나 한국전쟁으 로 모두 소실되었고, 전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1955년에 발표된 조선식물 명집 에서 양치식물과 종자식물 2,840종(변종과 변형을 포함하여 3,370종)을 보고한 바 있으며, 1964년에는 총 3,039종이 수록된 조선고등식물분류명집 이 출판되었다(리용재, 2002). 그림 2. 한반도 산림대 분포 이후 식물학연구소, 중앙식물원, 김일성종학대학의 식물학자들이 1972~ 1979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조선식물지 초판(전 7권)을 발행하였는데, 총 76목 172과 936속 3,064종을 보고하였으며, 1979년에 발행된 부록편에서는 87종을 보충하여 총 3,151종을 보고하였다. 최근 임록재 등(1996~2000)이 발표한 조선식물지 증보판(전 10권)에서는 초판 발행 후 20여 년간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총 80목 181과 1,017속 3,384 종의 종자식물을 수록하였다(표 2). 북한의 주요 경제식물로서는 용재직물 약 100종, 약용식물 약 900종, 산나 물식물 약 300종, 산열매식물 약 30종, 가축사료식물 약 160종, 향료식물 약

15 12 60여종, 기름식물 약 50종, 밀원식물 약 170종, 섬유식물 약 100종, 원림식물 (조경식물) 약 300종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김봉주, 1992). 한편, 남한의 식물자원 현황은 선태식물을 포함하는 고등식물이 약 4,662 종으로 북한보다 다소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구체적인 자료의 확인은 어려운 실정이다(이인규 등, 1996).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 국책연구개발사업인 21세기 프론티어 개발사업의 하나인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 에서 한반도식물지사업 을 전개하고 있으며, 남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조총련 과학협회(과협)와 북한과학 자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한반도 식물자원에 대한 자료가 보다 체계 적으로 정리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박준영, 2002; 박종욱, 2002). 표 2. 조선식물지(증보판) 내 수록된 종수 권 종 구성 목 과 속 종 변종 그림 페이지 종합본 240 계 ,017 3, ,571 3,401 출처: 우리나라 식물지작성을 위한 연구에서 이룩된 성과와 제기되는 과업 (리용재, 2002) 한편, 동물자원으로서는 짐승류 97종, 새류 382종, 개구리류 14종, 뱀류 24 종, 물고기류가 850종 등 1,367종이며 이중에서 특산종은 20여종이 있는 것 으로 보고 되어 있다. 또한 곤충은 곤충분류명집에 의하면 모두 3,597종이, 담수어류는 19목 38과 125속 185종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 리태, 1990).

16 북한의 생태계관리 현황 북한은 환경보호정책의 일환으로 임분이 좋고 희귀한 동 식물이 있는 곳을 자연보호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보호구는 자연의 모든 요 소들을 자연상태로 보호하고 증식시키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설정한 구역으 로 200~300년 이상 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산 동 식물이 많고 과학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며 풍치가 아름다워 문화 휴식터로서 중요한 지 역 이 설정된다(공우석, 2002). 백두산과 오가산이 지난 1959년에 처음으로 설정된데 이어 묘향산, 구월 산, 금강산, 칠보산이 자연보호구로 추가 지정되었다(표 3). 표 3. 북한의 자연보호구 보 호 구 면 적(ha) 특 징 백두산 자연보호구 (량강도 삼지연군), 오가산 자연보호구 (자강도 화평군, 량강도 김형직군) 묘향산 자연보호구 (평안북도, 자강도, 향산군, 구장군, 영원군, 희천시) 구월산 자연보호구 (황해남도 은률군, 안악군) 금강산 자연보호구 (강원도 고성군, 금강군) 칠보산 자연보호구 (함경북도 명천군) 14,000 1,400 9,737 미상 43,890 미상 범, 큰곰, 검은 돈, 누렁이 등 산짐승 50여종,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등 한대성 바늘잎나무 등 47과 162속 650여종의 식물 표범, 사향노루, 날다람쥐 등의 짐승, 1천년 이상 된 주목 등 730여종의 식물 곰, 사향노루, 산양 등 산짐승 33종, 검은 딱따구리 등 115여종의 새류, 식물 600여종 복작 노루, 멧돼지, 고슴도치 등 짐승 30여종, 검은 딱따구리 등 100여종의 새류. 식물 600여종 사향노루, 산양 등의 짐승, 칼새, 밀화부리 등 새류, 식물 750여종 곰, 삵, 여우, 너구리 등 산짐승류, 가시고기, 황어 등 물고기 출처: 북한 자연생태계의 생물지리적 특성 (공우석, 2002)

17 14 현재 약 75,000ha가 이러한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자연보 호구는 앞으로 북한의 훼손된 산림생태계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그 원형(모 델)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 북한은 희귀한 생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동 식물 보호구를 설정하 여 특별관리하고 있다. 자연보호구는 자연환경의 모든 요소들과 자연자원을 종합적으로 보호하는 성격을 지니는 반면, 식물보호구나 동물보호구는 자연 자원의 개별적 요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되었다. 식물보호구는 일정한 식물들을 보호 증식시키기 위하여 법적으로 설정한 구역으로 특산종의 분포지, 희귀종 혹은 전형적인 식물군락 분포지, 쓸모 있 는 식물자원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역, 희귀한 식물의 개체수가 급 격히 감소하는 지역, 학술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지역 등이 설정되며 현 재 14개소의 식물보호구가 설정되어 있다. 동물보호구는 자연 상태에서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늘이기 위해 설정한 지역으로 총 15개소가 있으며, 함남 정평군의 경우 사향노루, 오소리, 너구리 등 산짐승과 100여종의 조류, 양서파충류, 나비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15개소의 바다새 보호구, 4개소의 수자원보호구가 있으며, 전체 산림 면적의 18.4%에 달하는 면적에 백로 및 왜가리 번식 보호구 등 총 9개소를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우석, 2002) (표 4).

18 15 표 4. 북한의 동 식물 보호구 구 분 보호구 이름 위 치 동계 동물보호구 양강 백암군 대흥동 동물보호구 양강 보천군 신전 동물보호구 자강 낭림군 금석 동물보호구 자강 동신군 백산 동물보호구 자강 송원군 당아산 동물보호구 평북 동천군 천불산 동물보호구 함남 신흥군 동 물 사수한 동물보호구 함남 정평군 보호구 천마산 동물보호구 평북 천마군 백산 동물보호구 자강 송원군 양암산 동물보호구 강원 관교군 금수봉 동물보호구 황북 연탄군 대각산 동물보호구 황북 곡산군 수룡산 동물보호구 황북 토산군 크낙새 동물보호구 개성직할시 맹산 흑송보호구 평남 평산군 새마을리 양덕 송이버섯보호구 평남 양덕군 상성리 신미도 식물보호구 평북 신천군 신미도 삭주온천 식물보호구 평북 삭주군 황포만산 식물보호구 자강 장림군 황포리 장산곶 식물보호구 황남 용연군 장산리와 오차진리 식 물 수양산 식물보호구 황남 해주시와 신원군 일대 보호구 멸악산 식물보호구 황북 인산군 두류산 식물보호구 강원 천내군 동흥리 차일봉 식물보호구 함남 부전군과 양강 풍산군 백암 부채붓꽃보호구 함남 부전군 백암리와 문천리 운만대 신의대보호구 함북 화대군 목진리 관모봉 식물보호구 함북 경성군 관모리 무봉 식물보호구 양강 삼지연군 출처: 조선자연지리 (홍순익, 1989)

19 16 3. 북한의 산림자원 3.1 산림 면적 한반도의 산림면적은 전체 육지면적 2,210만ha 중 약 1,587만ha로 한반도 전체의 약 72%가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북한에 940만ha(북한 국토면적의 약 77%), 남한에 약 647만ha (남한 국토면적의 약 64%)가 산림 지역으로서 한반도 전체 산림의 59%가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한에 비해 약 1.5배의 산림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고도별 분포는 약 60%가 해발 100~1000m 이내의 비교적 낮은 고도의 산 지이고, 약 13%가 해발 1000~2000m의 산지, 해발 2000m이상의 산지는 0.26%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해발 100m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98년 UNDP Round Table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산림면 적은 7,551,931ha이며 이중 84%인 6,341,906ha는 천연림이고, 16%인 1,219,025ha는 인공림이다. 북한의 각 시, 도별 산림면적은 다음 표 5와 같다. 표 5. 북한의 시, 도별 산림 면적 행정구역 조림지 (ha) 천연림 (ha) 전체 (ha) 평양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양강도 개성 남포 향산 7,118 90,180 90, ,413 80,956 90, , , , ,046 20,287 3,368 1,220 93, , , , , , ,250 1,076,007 1,045, ,974 33,007 16,767 14, , , ,504 1,067, , , ,619 1,283,104 1,212,777 1,125,020 53,294 20,095 15,566 합계 1,219,025 6,341,906 7,551,931 출처: UNDP Working Paper Vol. 2 (1998)

20 17 산림자원을 임상별로 구분하면 60% 가량이 활엽수림이며, 그 중 참나무류 가 12%를 차지하고 있다. 침엽수림은 전체 산림면적의 25%이며 이 중 절반 가량인 12%가 고산 침엽수림이다. 산림의 ha당 평균축적은 약 50m3이며, 이 중 침엽수림의 축적이 활엽수림 39m3 보다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다. 3.2 북한의 주요 산림 수종 북한지역 산림에 분포하고 있는 수종은 총 83과 269속 1,023종이 있으며, 이 중 침엽수가 약 54%를 차지한다. 침엽수림은 주로 압록강 상류인 자강도 일대와 두만강 상류지역인 양강도와 함경북도 지역에 분포하며, 활엽수림은 북한 전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수종 분포를 기후대별로 보면 한대림 지대인 양강도와 자강도 그 리고 함경북도 일부 지역은 이깔나무, 분비나무, 전나무, 종비나무, 잣나무, 사스레나무, 자작나무 등이 분포하고, 북한의 대부분 지역인 온대림 지대는 소나무, 창성이깔나무, 잣나무, 노간주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음나무, 고로쇠, 황철나무, 사시나 무, 오리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다. 한편, 동 서해안 남쪽에는 비교적 기후가 온화하기 때문에 호두나무, 감나무, 생각나무, 참대 등 난 온대림에서 자라는 수종들이 있다(석현덕, 1999). 이처럼 북한에 자라고 있는 주요 자생 수종은 소나무류(12종), 가문비나무 류(4종), 참나무류(31종), 자작나무류(16종), 단풍나무류(30종) 등으로 알려져 있다(이진규와 이성연, 1992). 북한의 주요 산림지대는 북부지역의 산록이나 습지가 많은 고원지대인데 이곳에는 이깔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주요 수종이다. 북서 부의 낮은 산악지대에는 피나무류, 단풍나무류, 전나무류 등이 상층을 구성 하고, 잣나무, 전나무류 등이 하층에 분포한다. 해발 1,000m이하에서는 참나 무류, 물푸레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가래나무, 황벽나무 등이 분포한다(공 우석, 2002) (표 6). 임상별로 구분하여 보면 약 60%가량이 활엽수림이고, 그 중 참나무류가 12.1%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으며, 침엽수림은 전체 산림면적의 약 25.2%이다. ha당 전체 평균 축적은 40.6m3인데 이 중 침엽수림의 축적이 평 균 51.6m3로 활엽수림의 38.5m3보다 훨씬 높은 축적을 보이고 있다(윤여창 등, 1999). 한편, 북한의 산림자원 중 무산일대의 털종비나무, 풍산의 가문비나무, 구 월산의 만리화, 금강산의 금강초 등은 세계적인 특산종으로 유명하다.

21 18 표 6. 북한의 지대별 수종분포 지대 구분 수 종 고산지대 중간지대 저 지 대 평야지대 분비나무, 전나무, 낙엽송, 소나무,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가래나무 등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자작나무, 황철나무, 분비나무, 잣나무 등 대추나무,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느릅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황경피나무 등 산딸기, 머루, 앵두나무 등 출처: 평화의 숲 홈페이지 ( 4. 북한의 산림황폐화 원인 및 현황 4.1 북한의 산림자원 이용 및 감소 현황 북한에서의 산림 황폐화는 일제하의 산림자원의 변화 즉, 일제의 산림 수 탈정책에 의해 대규모 산림파괴가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해 수립된 조선임정 계획(1926년)으로 북한지역에서는 대규모 산림벌채가 이루어 졌는데, 1927년 산림 총 축적은 약 274백만m3이었던 것이 1941년에는 약 225백만m3로 약 5 천만m3가 줄어들었으며 대부분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울창한 원시림을 중 심으로 이루어졌다(윤여창 등, 1999). 최근 산림자원의 이용현황을 살펴보면, 1970년 약 350만m3의 원목을 벌채 하여 1970년대 연평균 2.0%, 1980년대 0.7%, 그리고 1995년까지 1990년대 0.8%의 비율로 벌채량을 증가하여 1995년 약 473만m3의 원목을 벌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6년에는 최근 경제난의 가중으로 예년 평 균 벌채량에 보다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하여 전년대비 증가율이 5.1%인 약 500만m3의 원목을 벌채하였다. 이는 지난 1970년 이래 산림면적 감소율이 1990년 후반 들어 급속히 증가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북한의 산림면적은 753.3만ha로 1970년 북한이 발표한 977.2만ha에 비해 약 223.9만ha가 감소한 면적으로서 대부분이 농지 로 전환되어 왔다. 지난 28년간 산림면적의 감소율 현황을 살펴보면 1970년 부터 1986년까지 16년간의 감소율이 6.2%이고, 그 후 12년간 감소율은

22 %로 1980년대 후반부터 산림지가 두 배 이상 급속히 감소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최근 3년간 감소율이 7.3%로 1970년 이후 25년간 감소량인 10.7%와 비교해 보면 1990년대 후반의 산림면적감소율이 급속도로 증가하였 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산림면적의 감소원인은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산지를 개간하 고(다락밭) 연료림 채취의 증가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초지로 전 환된 면적 106.6만 ha의 대부분은 황폐지나 무립목지로 변해 있는 실정이다 (그림 3). 그림 3. 산지개간으로 황폐해진 북한의 산림(1999년) (사진: 동북아산림포럼) 지역적으로는 평안도, 황해도 등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고 지형이 완만한 구릉지역에서의 산림훼손은 지난 1970년대 다락밭 개간 사업 등이 주 원인 인 것으로 추측되며, 자강도, 양강도, 함경도에서의 산림 면적의 감소는 1980 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산지 및 북부 내륙의 개발 정책과 목재수급을 위한 벌채가 주된 원인으로 판단된다. 가장 최근의 임업연구원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북한 토지이용 현황분석 연 구 결과에 의하면 북한의 산림면적은 북한 토지 전체 면적인 1,240만 ha의 약 60.7%인 753만 ha로 조사되었다(이승호 2002). 그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인용되고 있던 북한 산림면적 940만 ha에 비해 200만 ha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표 7).

23 20 표 7. 북한의 산림면적의 변화 추이 발표 산림 년도 면적(km2) 자 료 원 비 고 ,632 조선임적조사자료 (배재수, 1997) 1910 조선임야분포도 , 년 한국은행 조선경제년보 (김운근, 1997) 북위 38 이북 ,726 중국 조선주요기상대점자료 (김운근, 1997) 북한발표자료 인용 ,990 남북한경제사회상 비교 (통계청, 1997) 정부 ,070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오봉국 등, 1991) 정부 ,650 FAO 3) 한국협회 (김운근, 1997) FAO ,700 북한의 임업, 사회주의 임업 (하연, 1993) 구 동독 발표 ,980 중국 임업부 북한출장보고서 (김운근, 1997) 중국정부 ,460 임업연구원 (임업연구원, 1996) 위성자료 (1991~1994) ,330 북한발표자료 (UNDP/FAO, 1998) 북한/UNDP ,340 임업연구원 (임업연구원, 1999) 출처: 북한의 산림실태와 황폐화 (이승호, 2002) 위성자료 (1997~1999) 4.2 북한의 산림황폐화 원인 북한의 지형은 산지가 많고 국토의 56.6%가 15 이상의 경사지에 분포하는 급격사 지역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산지의 모암이 대부분 화강암 지역이기 때문에 풍화가 쉽게 이루어지고 토양 유실이 많이 일어나는 원인 이 된다. 더군다나 여름철의 집중호우는 홍수, 산사태 등 대규모 자연재해를 일으켜 산림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북한의 산림황폐화는 이러한 자연재 해에 의한 파괴보다는 주로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파괴가 더 심각한 것으로 3) 유엔식량농업기구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24 21 나타나고 있는데, 첫 번째 원인은 식량증산을 위한 산지개간 정책으로 높은 경사지에 대한 무분별한 농지로의 전환과 토사유출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의 미비와 사후관리 소흘로 대부분의 산림이 파괴되었으며 황폐된 산림에서의 토사유출로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표 8). 표 8. 북한 산지개간 정책의 하나인 자연 개조 5대 방침 구분 목표 내용 밭 관개 40만ha 다락밭 건설 15~20만ha 토지정리, 10만ha의 농지 토지개량 조성 치산치수 - 간석지개발 - 중, 산간지대의 밭 40만ha에 대한 관개추진 - 관개대상 140만ha 중 100만ha(논 전체와 평 야지 역 밭)는 관개 완료 1단계 15만ha, 2단계 15만ha, 3단계 10만ha 경사 16도 이상의 비탈밭(20만ha)을 다락밭 으로 개조하고 관개체계 수립 각 군별로 200ha이상, 전국적으로 총 10만ha 의 농지 조성 - 논 정비(논두렁 제거), 밭 정비 - 철로, 수로, 하천주변 정비 냉 습지 및 산성토양의 개량 홍수피해방지,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한 하상 정비, 제방축조, 배수개선 추진 농지조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기술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므로 장기적으 로 추진 출처: 김일성 저작집(31), 1986, p.334~340 북한의 산지개간 사업의 초기에는 쓸모가 적고 생산성이 적은 산림들을 경제적으로 쓸모 있는 산림으로 개조하는 사업, 생산성이 낮은 산림에서 단 위 면적당 목재축적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사업, 산림의 인민경제적 국토보 호적 기능을 높이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 적극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 는 사업 으로 주로 용재림, 경제림, 연료림 및 보호림 등의 조성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용재림 조성은 목재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건설용재림, 갱목용재림, 침목용재림, 상자용재림 등으로 구분하여 속성수를 중심으로 조성하였고, 탄 광 지역은 갱목림으로, 펄프공장 지역은 제지용재림으로, 과수원 지역은 상 자용재림으로 조성하도록 하였다.

25 22 경제림은 섬유제지원료와 유지원료를 비롯하여 열매, 식료 등 국가 경제발 전과 주민생활 향상에 필요한 각종 공업 원료를 얻기 위하여 조성한 산림으 로 포플러, 이깔나무와 같은 속성수를 심어 섬유 및 제지 원료림을 조성하 고, 호두나무, 가래나무 등은 식용류를 생산하도록 하며, 산열매, 산나물, 버 섯 등 식료품공업 원료와 향료, 도료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특수용재림을 조 성하도록 하였다. 이와 더불어 임산연료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각 지방별 수요를 바탕으로 연료림을 조성하였다. 또한 침식방지, 방풍, 수원함양 등 산림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확대시키 기 위하여 수원함양림, 사방림, 위생풍치림 등으로 산림을 조성하고, 특히 홍 수와 태풍 등에 의한 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한 하천보호림, 토사유실 방지 림, 방풍림, 수원함양림을 먼저 조성하고 이를 용재림, 경제림 등과 연계 체 계를 갖추어 혼효림과 복층림을 만들었다(석현덕 등, 1998).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정책과 더불어 식량생산을 위한 산지의 농지화 등 잘못된 산림정책으로 인해 산림면적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다락밭 개간사업은 1976년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추진하기로 한 5대 자연개 조사업 의 일환으로 경사 16도 이상의 경사지 20만 ha에 다락밭을 건설하 고, 비탈면에 관개체제를 수립하면 생산증대 및 기계화도 가능하다 라는 판 단 아래 시작된 농경지 확장 사업으로 이로 인해 북한의 산림생태계가 급격 히 파괴되고 안정성이 깨어져 결국 여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홍수와 산사태 가 일어나고 가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경지확장을 통한 식량증산을 위해 대대적으로 산지개발을 추진해 온 북한은 구 소련의 붕괴로 물자지원 감소, 비료생산 저하, 자재부족, 비과 학적 영농법 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로 기대목표에 훨씬 못 미쳤고, 더군다 나 지난 1995년과 1996년의 2년 동안 수차에 걸쳐 발생한 대홍수 등의 자연 재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였다. 개발 산지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의해 주변 산림은 물론이고, 하부지역의 기존 하천변 저지대 농경지까지 흘러내린 토사에 의한 농지 매립이라는 크 나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실제로 1995년과 1996년 2년에 걸쳐 홍수 피해가 컸던 황해북도 지역의 인공위성 자료에 해발고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해발 200m 까지는 개간에 의해 임목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해발 300m 이상의 산림에서는 임목 의 보존상태가 다소 양호한 것으로 보고 된 바 있다(김천, 1998). 즉, 1995년과 1996년의 대홍수 피해를 입은 서남평야부의 평안남북 및 황 해남북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고, 농업 의존도가 높아 대규모의 다락밭 개간 이 추진된 지역으로, 이용형태 변화가 비교적 쉬운 해발 200m까지의 개간사 업이 이루어진 결과, 산림황폐화를 초래하였고 홍수에 의한 피해가 더욱 가

26 23 중된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원인은 연료의 부족으로 과다한 임산연료 채취로 인한 산림파괴 이다. 지난 20세기후반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석유 등 연료의 공급이 중단되 고, 집단농장 단위로 배정되어 있던 연료림들이 다락밭 등으로 개간되자 부 족한 연료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과도한 땔나무 벌채로 특히 도시주변의 산 림이 극도로 황폐해진 것이다(그림 4). 그림 4. 땔나무의 과도한 채취에 의한 산림파괴 원래 북한은 산림국유화 이후 약 40만ha의 산림을 전국 3,500개 협동농장 에 분배하여 연료 생산에 이용토록 하였다(이광원, 1996). 따라서 해방이후 신탄재가 북한의 주요 연료원이었으며, 이러한 신탄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 계획에 의거하여 협동농장 단위로 연료림 조성 가능 지역을 분배 하여 관리해 왔다. 하지만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협동농장 소유의 토질이 우수한 연료림의 상당 부분을 다락밭으로 개간하였고, 1990년대 이후 석탄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여 석탄 부족분만큼의 연료를 목재로 대체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손상시키는 과벌과 남벌이 성행하였기 때문에 원래 유지하고 있던 연료림 뿐만 아니라 부락 주변 산림의 파괴가 더욱 심화된 것이다(박동균과 윤여창, 2001). 최근 들어 북한은 심각한 연료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산림 조성과 보 호 사업을 전담하는 국토환경보호성을 별도의 부처로 독립 강화시켜 대대적 인 조림 및 연료림 조성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4). 4)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1999년 3월 3일 정령

27 24 그러나 현재 북한이 연료림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양묘장 훼손 등으로 인한 묘목 공급의 부족으로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되풀이되는 대규모 홍수로 상당부분의 양묘장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UNDP(1998)는 북한의 양묘장은 임업성 산하 90개 양묘장과 각 군( 郡 )단 위로 약 5개의 소규모 양묘장 및 기업소나 기관 관리의 양묘장 등 총 1,000 여개의 양묘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 중에서 임업성 산하 90개 양묘 장이 규모나 시설에서 묘목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나 반복되는 지난 홍 수로 인해 90개 양묘장 중 30개의 양묘장 약 730ha가 피해를 입었고, 30개 중 10개는 시설의 약 75%, 나머지는 이보다 적은 규모의 피해를 입은 것으 로 보고하였다. 피해 양묘장 30개 중 16개는 복구가 완료되었으나 14개는 아 직 복구가 미흡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북한의 전반적인 묘목 생산은 절대 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표 9). 표 년과 1996년 홍수로 인한 산림과 양묘장 피해 현황 지역 산림피해 면적(ha) 피해 양묘장 수 양묘장 면적 (ha) 평안남도 15, 평안북도 12, 자강도 12, 황해북도 4, 강원도 11, 함경북도 14, 양강도 13, 전체 83, 출처: UNDP Working Paper Vol. 2 (1998) 세 번째 원인은 외화획득을 위한 대규모 벌채사업 때문이다. 과거 1990년 대 이전에는 자급자족에만 치중하던 원목사용이 1990년도 이후부터 본격적 으로 수출하기 시작해 수출량이 1990년에 14.2천 톤에서 1996년 405.2천 톤 으로 증가하여 6년 만에 무려 28배 이상이 증가하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제 증가량이 가장 많은 시기는 1995년 이후이고 최근 정확 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더욱 많은 원목이 중국 등 인근 국가로 수출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수출되는 목재는 거의 대 부분이 산업용 원목이며 반면 북한 내 벌채목들은 80~90%가 연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한 연구인력 및 연구시설의 노후화, 산림에 대한 과학적인 관리 및 기술 부재, 정보 교류의 단절로 인한 연구능력의 답

28 25 보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북한산림생태계의 황폐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5. 훼손된 북한 산림생태계의 복원 5.1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은 크게 구조적인 복원과 기능적인 복원 두 측면으 로 나눌 수 있는데 식재 등 조림사업을 통해 일차적으로 구조적인 복원을 우선 진행하되 최종적으로는 원식생에 가까운 식생으로 복원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그 지역에 적응해온 자생수종으로 조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적지적수의 원칙에 따라 수종을 선정하고 지속생산성, 순환성, 생물다양성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그림 5). 생태계 기능 원 생태계 생산성 지속성 환경조절 물질순환 안정성 훼손된 생태계 복원된 생태계 생태적 복원 복귀 계속적인 훼손 생태적 복원 훼손(인간활동) 복원된 생태계 더욱 훼손된 생태계 생물 다양성, 구조적 복잡성, 공간적 이질성 생태계 구조 그림 5.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 모델 (Urbanska 등, 1997) 대규모 산사태나 훼손된 정도가 심한 북한 산림의 경우는 지난 우리나라 제1, 2차 치산녹화사업의 경험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사방사업과 더불어 아 까시나무, 오리나무 등 비료목과 리기다소나무와 같은 사방녹화용 조림 수종 들을 선발하여 식재해야 한다. 이러한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이 이루어지면 산림생태계의 다양한 기

29 26 능 즉, 지속성, 안정성, 물질순환 등도 아울러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산림생태 계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생태적 특성과 더불어 사회적, 경 제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서 적절한 산림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산림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훼손된 북한 산림생태계 복원 방안에 대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5.2 훼손된 북한 산림생태계 복원 방안 사방 사업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 산림파괴의 주원인은 다락밭 조성 등 과다한 산지개간에 의한 파괴가 주 원인이기 때문에 토사유출이 심한 이러한 황폐 산림 복구를 위해서는 산사태나 홍수피해가 심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사방사 업을 추진해야 하며 아울러 하천이나 제방복구사업이 필요하다. 즉, 황폐산 지를 위한 산지사방과 황폐개천에 실시하는 야계사방이 주로 필요한데 먼저 산지사방을 실시하여 더 이상의 토사가 유출되지 않으면 야계사방을 실시해 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방사업의 시행순위는 우선 철로, 고속도로, 주요 시설물, 명승고 적 등에 인접한 지역부터 실시하고, 다음은 토사유실이 심하여 농업생산에 많은 지장을 주는 지역이나 향후 농업생산기반시설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실시하며, 마지막으로는 토사 유출 등에 의해 산림에 피 해를 줄 수 있는 산림황폐지를 대상으로 실시해야 한다(석현덕 등, 1998). 우리나라가 지난 1, 2차 치산녹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방사업에 대한 뛰어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그림 6). 북한 지역도 우리나라와 같이 풍화가 쉬운 화강암지대가 많고 지형이나 수종 구성 등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축적된 사 방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실제로 경상북도 산림과로부터 북한지역 사방 복구사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들은 바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남 북한 임업인들의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 지역에 맞는 사방기술의 개발 및 효율적인 사업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체 산시사방 대상면적은 약 177천ha로 추정하고 있고, 야계사방 대상거 리는 19천km, 사방댐 대상개소는 약 1,900개소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사방

30 27 대상 전체면적에 대한 사업비용은 인건비를 제외한 약 2조220억원에서 인건 비를 포함한 약 8조2,363억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며, 약 7억본의 묘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석현덕 등, 1998). 이러한 사방사업을 대규모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중요하며, 민간차원에서 진행할 수 없는 규모이다. 따라서 정부가 남 북협력기금이나 국제환경기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학계, 전문가 및 비정부기구 등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조림사업 북한에서는 조림 수종의 배치에 있어서 적지적수를 강조하면서 지대별로 수종을 달리하고 있다. 즉, 이깔나무, 종비나무, 분비나무 등은 해발 500~ 8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소나무, 밤나무, 이태리포플러 등은 500m 이하의 상 중부 및 산록지대에 식재하고 있다. 또한 경영목적에 따라 조림수종을 다르게 배치하고 있는데, 유지림 조성대 상수종은 호두나무, 잣나무, 초피나무 등이, 섬유연료림 수종으로는 평양포플 러, 황철나무, 닥나무 등이, 보호림 조성 수종으로는 오리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그리고 일반 용재림 조성 수종으로는 이깔나무, 잣나무, 가래나무 등이 있다(Rao, 1980). 황폐된 북한 산림지역의 조림사업을 위해서는 먼저 훼손 원인부터 파악하 고 대상지에 대한 식물, 지리학적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입지 조 건과 훼손원인이 상이한 만큼 각각의 훼손 유형을 파악하고 그 입지에 적합 한 복원 모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태전문가, 토양전문가, 조림전문가, 황폐지복원전문가, 사회 경제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 이 함께 모여 현지조사 연구팀을 구성하고 대상지역의 주변여건과 식생 그 리고 토질, 토성, 지형, 기후 등 조림과 관련된 환경적 인자들에 대한 체계적 인 조사와 함께 복원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 인력 등 사회제반 여건을 파악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초조사 자료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조림지역과 면적, 조림수종 등을 결정하고 조림을 위한 종자확보, 묘목공급, 필요한 인력과 동원방법, 예 산 등 세부계획을 세운 후 단계별 조림사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훼손된 북한 산림 중 조림사업이 필요한 산지 면적은 약 2,061천ha 로 이중 800천ha는 연료림 조성 대상면적이고 나머지 1,261천ha는 경제림조 성 대상면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림비용은 인건비를 제외한 최소 약 1조 7,890억원에서 최대 약 5조5,778억원에 달하며 묘목 수요량은 약 69억8,300만 본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석현덕 등, 1998).

31 28 그림 년대 우리나라 황폐산지(상), 사방사업후(중), 복구된 모습(하) (출처: 산림청)

32 29 이러한 사방 및 조림 사업은 풍부한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면 통일 비용 절감효과 뿐만 아니라 노임을 현물로 지급함으로써 식량문제 해결 및 복구사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비정치적인 남북협력사업을 통 한 남 북한의 기술 및 인적교류로 상호 신뢰 회복 및 남북교류의 가교역할 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재일본조총련에서 추진하고 있는 평양시 주변 마장리 지역 약 100ha의 조림 복원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하여 훼손된 북한산림 복구를 위한 모델림을 조성함으로써 실연 교육과 함께 성공적인 조림사업을 위한 주민교 육 및 대국민 홍보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5월 일본 동경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방문하여 과협의 황철홍회장과 임정혁 연구부장 및 박준영 생물 농학분과위원장을 만나 남 북한 산림관련 교류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 북한당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산림관련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산림관련 연구자와 관련 기관들과의 교류가 보다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그림 7). 특히 박준영 위원장은 지난 2003년 10월부터 40일동안 북한을 방문하여 산림관련 공동세미나 등 훼손된 북한의 산림생태계 복원을 위한 남 북한 협 력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산림분야의 남북 교류가 보다 활발히 이루 어 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7. 일본 조선대학교 방문 ( ) (좌: 박준영 과협 생물 농학분과위원장)

33 30 3) 연료난 해소 북한의 에너지 정책은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국내 부존 에너지원의 개 발, 생산, 공급 및 소비에 우선 의존하는 주탄종유 형태의 특이한 에너지 수급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즉, 국내 생산이 전무한 석유의 수입을 억제하고 비교적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탄과 수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으 로 정책을 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비교적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석탄도 장기채굴에 따른 갱도 심화로 인한 생산효율감소, 채탄장비의 노후화와 자본 부족에 따른 신규투자 곤란 그리고 산림황폐화로 인한 갱목 공급의 차질 등 으로 생산량이 격감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전체의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연 결되고 있고, 석탄을 통한 발전 및 가정용 취사, 난방 에너지 공급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박동균과 윤여창, 2001). 더군다나 1990년대 초에 석탄배급이 중단되면서 농촌지역은 물론이고 대 도시지역까지 임산연료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도시나 마을 근처의 야산의 도 남벌이 성행하여 거의 대부분이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겨울이 긴 북한의 경우 이러한 연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 속적인 불법벌채 등으로 인해 조림 및 산림복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즉, 대체 연료의 개발로 지속적인 땔나무의 채취를 막지 못하는 한 자 연적인 복구나 인위적인 조림 모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은 동구권의 몰락과 중국으로부터의 석유 도입이 어려워짐에 따 라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풍력, 조력, 원자력 등 대체에너지의 개발 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도로시설 등 사업인프라의 미비와 자금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대체에너지 자원 개발은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박동균과 윤여창(2001)에 의하면 북한의 전체 농산촌 지역에 임산연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약 122만~128만ha정도의 연료림이 필요한데, 신규 조림 은 기성림만 활용할 경우 60만~64만ha, 임산연료 이외의 에너지가 공급된다 는 가정하에서는 70만~74만ha, 대체 에너지가 공급되고 기성림을 활용할 경 우는 35만~37만ha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현재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 정, 양묘 시설과 비료 부족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연료림 조성 사업이 단기 간에 이루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2003년 8월 러시아 연해주지역 블라디보스톡에서 최재근 총영사와의 면담을 통해 러시아는 올해(2003년) 아무르주에서 대규모 수력발전소 2기를 완공시켜 극동러시아 지역의 전력공급량을 초과하였으며, 2008년까지 총 6기 를 완공시켜 장차 북한 및 우리나라로 전력을 수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앞으로 몇 년 동

34 31 안의 단기적인 에너지 대책 즉, 대체 연료의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한 실정이 다. 본 연구자는 지난 2000년부터 극동러시아 연해주지역 산림을 연구해 오고 있으며 지난 2001년과 2002년 연해주 산림청장으로부터 신갈나무 등 활엽수 소경재의 구매 요구를 받은바 있다. 연해주 지역은 북한과 육로로 연결되어 있고(핫산지역에서 평양까지 철로 가 연결되어 있음) 인구가 약 200만명에 불과한데 비해 산림면적이 약 1,200 만ha로 풍부한 산림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사정의 악화 와 중앙정부의 지원 감소로 자체적인 재원을 조달해야 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현재 2차림을 이루고 있는 신갈나무를 벌채하고 그 판매비용으로 임도의 조성(산불 발생시 임도가 없어 진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 잣 나무 등 원래의 자생수종으로 복원, 산림자원 관리(무육, 간벌 등) 등의 사업 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연해주의 매년 산림축적 증가량은 약 17.7백만m3으로 조사되었으며(Prikhod'ko, 1999), 러시아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벌채 가능한 양은 약 8,865천m3이다(Prikhod'ko 등, 2001). 특히 현재 극동러시아 북한 노동자들이 약 5,500명(하바로브스크: 2,300명, 아무르주: 2,300~2,500명, 연해주: 1,200명 등)이 나와서 건설, 임업, 농업 등 에 종사하고 있어 이러한 북한 노동자들을 이용함으로써 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벌채된 나무의 상층부와 하층부는 벌채지에서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폐목재 자원을 이용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이 가 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도 이러한 땔나무 연료를 공급받으로써 조림지의 지속적인 훼손을 방 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몇 년 만 지속되면 성공적인 연료림이 조성되어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이 보다 빨리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부로의 자금 지원과 더불어 남 북한 정부와 그 리고 러시아 현지 산림청 관계자와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운송비와 안 정적인 공급방법 등에 대해서 추가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6. 장기생태연구지 설정 및 연구 산림생태계에 관한 연구는 1~2년의 단기적인 연구가 아닌 장기간의 조사 와 오랜 연구 자료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지난 산림녹화 시기에 경험한 단일수종의 대규모 조림지 조성, 외래수종의 무분별한 도입

35 32 등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효율적이고 친자연적인 방법으로 훼손된 북한의 산림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그러나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원래의 산림생태계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 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원래의 산림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반도는 식물지리학적으로 히말라야 일부와 티벳, 중국 중북부, 만주, 시 베리아 남부, 일본 등이 포함되는 중일( 中 日 )식물구계에 속하며(Good, 1974), 특히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우수리스크 지역부터 우리나라 온대중 북부지역 의 산림은 만주림 으로 불리는 동일한 산림대를 이루고 있으며 식생구조도 매우 유사하다. 만주구계에 속하는 대표적인 수종은 잣나무, 오미자나무, 난티나무, 가래나 무, 신갈나무, 찰피나무, 황벽나무, 오갈피나무, 왕머루, 가문비나무, 측백나 무, 전나무, 거제수나무, 강계버들, 철쭉, 가침박달, 까치박달, 산돌배나무, 복 장나무, 시닥나무, 청시닥나무, 부게꽃나무, 고로쇠, 신나무, 당단풍, 물참대, 땃두릅, 꽃개회나무, 개회나무, 분비나무, 음나무, 난티나무, 물박달나무, 좁은 잎참빗살나무, 회목나무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식물들은 강원도 의 대표적인 식생이며 일부 지리산까지 분포한다(장진성, 2001). 따라서 연해주 우수리스크 보호구역내 원시림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훼손된 북한산림생태계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데 귀중한 자 료로 활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우리나라 강원도 계방산 지역에 설치된 장기생태연구지에 대한 연 구로 북한에 대한 간접적인 조사와 훼손된 2차림의 임분 특성과 동태에 대 한 자료의 비교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6.1 극동러시아 연해주 산림 연해주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이 태평양과 만나는 러시아의 남동쪽 국경지역에 위치해 있다. 남서쪽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중국 그리고 북쪽 은 하바로브스크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연해주의 가장 북쪽(북위 ) 에서 가장 남쪽 (북위 )까지의 거리는 약 900km이고, 경도상으로는 동경 에서 로 동서 최대길이는 430km이며 연해주지역의 전체 면적 은 167.8천km2이다. 연해주의 산림은 약 12.9백만ha로서, 전체 면적의 77%를 차지하고 있으며 높 은 위도에 비해 생물다양성이 높다(그림 8). 연해주 지역 식물상은 총 2,471종의 관속식물이 있으며(Kozhevnikov, 2001), 대부분 산림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Kolesnikov(1969)의 극동러시아 식물지리학적인 분류기준에 의하면, 연해주지역 식생은 크게 침엽수림(타이가림), 침-활 혼효림 그리고 스텝림으로 나누어진다.

36 그림 8. 연해주지방 산림 수종별 분포현황 33

37 34 주요 침엽수로는 잣나무(Pinus koraiensis), 가문비나무(Picea jezoensis), 종비 나무(Picea koraiensis), 분비나무(Abies nephrolepis), 전나무(Abies holophylla), 잎갈나무류(Larix) 등이 분포하며, 활엽수로는 신갈나무(Quercus mongolica), 들 메나무(Fraxinus mandshurica), 고로쇠나무(Acer mono), 복장나무(Acer mandshuricum), 느릅나무과(Ulmus spp.), 자작나무(Betula platyphylla), 거제수 나무(Betula costata), 자작나무류(Betula lanata) 등이 있다(표 10). 표 10. 연해주지역 주요 우점 수종별 분포 면적과 축적 ( 기준) 주요 수종 분포 면적 (천ha) 축적 (백만m3) 평균 전체 성숙림 과숙림 전체 성숙림 과숙림 수령 Pinus sylvestris, P. densiflora Picea jezoensis, P. koraiensis Abies nephrolepis, A. holophylla Larix (all species) Pinus koraiensis sum of coniferous forests Quercus mongolica, Q. dentata Fraxinus mandshurica Acer mono, A. mandshuricum Ulmus Betula lanata, B. costata sum of hardwood broadleaved forests Betula platyphylla Populus tremula Alnus Tilia Populus maximowiczii, P. koreana, P. suaveolens Salix sum of soft-wood broadleaved forests Phellodendron amurense Juglans mandshurica Padus other woody species sum Pinus pumila 출처: 한국과학재단 (2003) 합 계

38 35 연해주 남서쪽에 있는 스텝림은 최근 들어 농경과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신갈나무가 우점하고, 물박달나무, 사시나무류 그리고 개암나무나 싸리 등이 분 포하고 있는 2차림으로 변하였는데 이 지역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북한 지역 식생과 가장 유사한 지역으로 앞으로 훼손된 북한의 산림복원 연구를 위한 중요한 연구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그림 9). 그림 9. 맹아에 의한 신갈나무 2차림 (핫산지역) 주요 수종별 ha당 평균 축적을 살펴보면, 잣나무림이 224m3/ha로 매우 양호한 축적을 보이고 있고, Picea와 Abies림은 150~180m3/ha, Larix림은 약 115m3/ha, 신갈나무와 자작나무림은 92~94m3/ha으로 다소 낮은 축을 보이고 있다. 신갈나 무림이 낮은 축적을 보이는 것은 전체 신갈나무림 중 약 12%가 맹아에 갱신된 2차림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해주 지역에서 희귀 수종(rare species)으로 Red Books에 속해있는 수 종은 가래나무, 음나무, 황벽나무, 주목나무, 노간주나무, 소나무, 전나무, Larix olgensis, 박달나무, 떡갈나무, 마가목, 산돌배, Malus mandshurica, 야광나무 등 이다.

39 연해주 우수리스크 보호구역 산림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원래 생태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보호구역(40,432ha)은 북위 ~43 47, 동 경 ~ 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원 산림과 매우 유사 하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 산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10). 그림 10. 우수리스크 보호구역내 전나무 (흉고직경 121cm) ( ) (왼쪽: Dr. A. I. Kudinov) 주요 수종으로는 잣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들메나무, 가래나무, 피나 무, 거제수, 까치박달나무, 고로쇠, 복장나무, 황벽나무 등이 있으며, 관목은 가시오갈피와 청시닥나무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수리스크 보호구역내 활엽수-잣나무 원시림을 대상으로 60m 80m 조 사구를 설치하여 흉고직경 2cm이상 되는 모든 수종을 측정하여 임분 조사 를 한 결과 다음 표 11과 같다. 총 출현 종 수은 19수종으로 중요도가 가장 높은 수종은 고로쇠이고 다음 은 까치박달, 잣나무 순으로 나타났다. 임분 밀도는 833본/ha이고 상대밀도는 고로쇠나무가 가장 높았으나 상대 피도의 경우는 대경급에 잣나무가 많아 잣나무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 다.

40 37 표 11. 우수리스크 보호구역 조사지내 임분 특성 (0.48ha) 수 종 본수(본/ha) 상대밀도 상대피도 중요도 Abies holophylla Acer barbinerve Acer mandshuricum Acer mono Betula costata Carpinus cordata Corylus manshurica Fraxinus mandshurica Juglans mandshurica Padus asiatica Phellodendron amurense Philadelphus tenuifolius Pinus koraiensis Quercus mongolica Syringa amurensis Tilia amurensis Tilia taquetii Ulmus japonica Ulmus laciniata 합 계 전체 흉고직경급에 따른 본수를 분석한 결과 역J형의 성숙림 구조를 보이 고 있다(그림 11). 우수리스크 보호구역내에는 현재 호랑이가 4~10마리 가량 서식하고 있으 며, 곰(흑곰과 반달곰)도 약 2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등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하며,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강원도 지역산림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 에 우리나라 산림의 지속적 이용 및 보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지역이다. 또한 ha당 임목축적이 약 800m3이 되는 임분도 있어 앞으로 우리가 복원 해야할 모델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숲이다(그림 12).

41 계열2 우수리스크 보호구역 계열1 강원도 계방산 Trees ~10 11~20 21~30 31~40 41~50 51~60 61~70 71~ DBH (cm) 그림 11. 우수리스크 보호구역과 강원도 계방산 지역의 흉고직경급에 따른 본수 분포 그림 12. 우수리스크 보호구역내 잣나무 원시림 (임목축적: 800m3/ha)

42 강원도 계방산 장기생태연구지 계방산은 오대산국립공원 서쪽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 창군 용평면에 속하고, 지리적으로는 북위 , 동경 에 위 치하고 있다. 조사지역의 기후 특성은 연평균 기온 11.1 로, 1월 평균 -7.3, 8월 평균 26 로 연교차가 크며, 연 강수량은 1,141mm내외로 7~8월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 리는 등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주요 출현수종으로는 신갈나무가 가장 우점하고 있으며 음나무, 피나무, 다릅 나무, 느릅나무, 난티나무 등의 활엽수종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침엽수종으로는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이 각각 많이 나타난다. 특히 아한대수종인 가문비나 무와 온대북부수종인 분비나무, 주목나무, 황철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어 연해주 지역 식생과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북한 산림생태계 연구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연구지다. 관목으로는 산겨릅나무, 매자나무, 만병초, 홍괴불나무, 까치밥나무 등이 나타난다(신준환 등, 1996). 초본류는 곰취, 속새, 도깨비부채, 노루오줌, 관중, 수리취, 큰까치수영, 대사초, 동자꽃, 도라지모시대 등이 많이 출현한다(고성철 등, 1991). 조사지역의 가운데는 능선지역으로 경사도는 평균 21.1 로 나타났으며 오른쪽 지역이 경사가 더 심하며 일부지역은 35 이상의 급경사지도 있었다. 조사지내 분포하는 주요 식생의 중요도를 분석한 결과 신갈나무(29)가 가 장 높은 우점도를 보였으며, 다음으로 피나무(10), 박달나무(10), 소나무(9) 순이었다(표 12). 계방산 지역은 흉고직경이 어린 개체가 많은 것으로 보아 천이 초기 단계 의 산림구조를 보이고 있으며(그림 11), 이것은 앞으로 훼손된 북한산림생태 계를 복원할 때 초기 임분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 대된다.

43 40 표 12. 강원도 계방산 조사지내 임분 특성 (1ha) 수 종 * 본수(본/ha) 상대밀도 상대피도 중요도 전나무 복장나무 당단풍 두메오리나무 두릅나무 박달나무 층층나무 개암나무 물푸레나무 음나무 생강나무 다릅나무 함박꽃 산뽕나무 소나무 잣나무 사시나무 산벚나무 신갈나무 진달래 철쭉 쪽동백 피나무 느릅나무 난티나무 기 타 합 계 * 중요도 0.2 이상인 수종만 제시함 6.4 북한의 장기생태연구 북한도 러시아와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요 산림에는 자연보호구를 지정해 서 보호 관리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6개의 자연보호구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다소 면적이 큰 백두산, 묘항산 그리고 금강산 자연보호구에서 장 기생태연구지를 조성하여 연구한다면 북한의 원래의 산림생태계에 대한 자 료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만주림 지역인 극동러시아와 남한의 강원도 지역을 상호 비교, 분석함으로써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연구결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4 41 또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한 기준 및 지표(criteria and indicators) 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매 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백두산 지역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국경지대 보전지역 Transboundary Conversation Areas(TBCAs)로 설정하여 국제자연보호연맹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IUCN)이나 국제열대목재기구(International Tropical Timber Organization; ITTO) 등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장기생태연구지를 설치할 수 있다. 국경지대 보전지역은 정치적으로 국경을 띄고 있지만 야생동물 및 생태적 으로 보전가치가 있는 지역을 공동으로 보전, 관리하는 국제적인 연구 프로 그램으로 백두산 지역의 경우 호랑이, 표범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전뿐만 아니라 원시림이 보전되어 있어 이에 대해 국제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이다. 실제로 러시아 IUCN 대표인 Dr. Victor K. Teplyakov(모스크바 국립대학 교)와 이러한 TBCAs 연구 사업을 논의한 결과 러시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남북한, 중국과 함께 공동으로 추진하고 싶다는 답변을 얻었 다. 또한 최근 급격한 산업발전과 관광객의 방문으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 오염되고 있는 두만강 유역이나 금강산 지역도 장기생태연구지를 설치하고 남 북한 공동연구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금강산은 우리나라의 중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식물분포상 중부식 물분포구를 대표하는 곳이며, 온대남부 계통의 식물부터 고지대의 아한대성 식물에 이르기까지 식물의 종구성이 다양하고 오랫동안 인위적인 훼손 없이 천연상태로 보전되어 온 지역이어서 앞으로 북한의 지속가능한 산림생태계 관리 방안뿐만 아니라 남한의 훼손된 산림생태계 복원 연구에 있어서도 매 우 중요한 연구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보호구내에는 우리나라 의 특산 식물이며 천연기념물인 1속 1종의 금강국수나무와 금강초롱을 비롯 하여 나래사초, 만리화, 금강봄맞이, 봉래꼬리풀, 금강분취, 둥근잎생강나무, 참정향나무 등을 비롯해서 100여종의 특산식물이 분포하고 있다(김철민, 2002). 그러나 최근 들어 (주)현대아산에 의한 금강산 관광 사업 등으로 훼손의 우려가 높아 이 지역에 대한 생태계 보전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남 북한 공동으로 금강산 산림생태계 보전 사업 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 이다. 이러한 장기생태연구지에서는 임분의 발달 및 동태와 주요 야생동물의 관 리 방안 등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식 약용 식물 등 비목재자원에 대한 생산

45 42 (nontimber forest productions; NTFPs)에 대한 연구도 같이 진행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버섯자원과 산삼, 가시오갈피 등 경 제적 가치가 높은 식물자원이 풍부하다. 송이의 일본 수출은 지난 1976년부 터 외화벌이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최근 호두, 송이, 표고버섯 등이 국내로 반입되고 있으며 이러한 산림부산물의 종 류 및 양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산림부산물의 지속가능한 생산방안 을 개발함으로써 외화획득 및 주민 소득 증대로 무분별한 목재의 도, 남벌로 인한 산림의 훼손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 동북아시아 국가간 산림 network 조성 및 교류 협력 방안 최근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기후온난화나 기후변화 등 환경오염문제 는 더 이상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문제이며, 이러한 환경오염 의 방지 및 자원의 보전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관련 전문가들 간의 활발한 교류 및 정보의 공유 가 필요한데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사막화 황막화 방지에 대한 국가 간 및 비정비기구(NGOs)간에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반면, 남 북한간의 과학기술협력사업은 아직 성과가 미약하고, 게다가 정치 적 논리가 개입되어 최근 크게 위축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핵문제를 둘러 싼 북미관계의 악화와 대북 송금사건 등으로 인한 대 북한 지원사업의 침체 가 남 북한 협력사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8년에 창립된 동북아산림포럼 을 통해 중국, 몽골, 러시 아, 북한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훼손된 산림복원 및 보전을 위해 일반 시민, 산림관련 전문가 및 기업인들이 참석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산림복원에 관해서는 평화의 숲 이 지난 1999년 3월에 창립되어 전 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훼손된 북한의 산림복원에 노력하고 있다. 평 화의 숲 은 지난 1999년 북한의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측과 훼손된 북한 산림의 복구사업에 관한 협의를 가진 이래 수목 종자, 비닐하우스 설치 관련 자재, 전정가위, 양묘장에 쓸 비료 등 각종 물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최 근에는(2003년) 평양과 고성 지역에 시범 양묘단지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으 며, 그 외 200개의 시, 군 양묘장 복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5) 5) (사) 평화의 숲 2003년 정기총회 자료

46 43 그 외에도 새천년생명운동, 푸른통일가꾸기운동, 강원도의 솔잎혹파리 방 제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산림복구 지원 활동과 함께 남 북 중국 아까시나무 기술교류회의(2002년 7월, 중국)와 북한에서 열린 각종 실무회의 등 직접 북 한 담당자와의 협의를 통해 북한 산림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산림분야의 대북 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인 요인으로 인한 북한과의 대화 단절과 안정적인 재정 확보문제, 북한 당국 의 비협조 등으로 인해 본격적인 협력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협력사업과 더불어 주변국가의 비슷 한 임분에 대한 상호 정보 및 전문가 교류를 통해 북한산림 복원에 필요한 자료 수집과 지원사업을 벌려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캐나다, 일본, 러시아 등 온대림 보유 국가들 과 함께 몬트리올 프로세스에 참여하여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에 관련한 협 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을 몬트리올 프로세스 및 다양한 유 엔 주도의 각종 국제회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문가들간의 정보 교류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한 효율적 인 협력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북아시아 나라들 중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장기간 교류 를 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 과학원산하의 생물, 토양과학연구소(현지연구실이 설치되어 있음), 중국 과학원산하의 응용생태연구소(1991년부터 협력사업을 하고 있으며, 백두산지역에 장기센터를 보유하고 있음), 일본 북해도대학 forest research station in field science center for northern biosphere(1999 년부터 공동연구 및 연구자 교류 사업을 하고 있음)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 에서는 강원도 가리왕산에서 지난 1990년부터 장기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임업연구원에서는 강원도 계방산에 장기생태연구지를 설치하여 장기간 연구 를 수행하고 있다(그림 13). 따라서 가칭 동북아산림연구소 를 설치하여 앞으로 이러한 연구기관과 의 연구 network을 형성하여 동북아시아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과 지속 가능한 산림생태계 관리 방안에 대한 연구 network 형성을 통해 북한 산림 복원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47 44 북해도대학 연습림 (북해도대학) 백두산 장기생태연구지 (심양응용생태연구소, 중국 과학원) 우수리스크 절대보전지구 (생물, 토양과학연구소, 러시아 과학원) 강원도 장기생태연구지 (서울대, 임업연구원) 그림 13. 동북아시아 산림 network 관련 연구기관 이와 더불어 북한에 제공되는 종자나 묘목 그리고 기타 장비 등 북한산림 복원을 위한 지원 비용은 한반도 산림환경개선에 사용되는 비용으로 간주하 여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산림복구 및 조림녹화는 향후 기후변화 협약시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감안하 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 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복원사업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국가사업이므로 지속적 인 예산확보가 중요하다. 따라서 국제기구와의 공조 형성도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로 FAO, UNDP, 세계식량기구(WFP: World Food Programme), 지구환경기금(GEF: Global Environmental Facility), 세계은행 (World Bank),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 등과 긴밀한 협조 및 공동 지원 등을 통해 안정적인 예산 지 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48 45 8. 결 론 최근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으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연료 문제 일 것이다. 즉, 지난 1976년부터 계속되어온 다락밭 조성사업으로 인한 무분 별한 산지개간사업과 1995년 이후 계속 되는 엄청난 자연 재해로 인해 대부 분의 연료림이 파괴되었으며, 구소련시절부터 계속되어 오던 연료공급의 중 단 등으로 인해 연료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한 다는 것이다. 북한의 산림황폐는 이러한 산지개간과 더불어 땔나무의 부분별한 채취와 외화획득용 대규모 벌목사업은 이러한 산림황폐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훼손된 산림복원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제1, 2차 치산녹화사 업을 계승, 발전시켜 우선 지표면의 안정을 위한 사방 사업이 먼저 이루어져 야 하며, 아울러 녹화, 조림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연료림의 조성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서는 대체연료의 공급이 필요한데 이는 러시아 연해 주지역의 신갈나무나 기타 활엽수 소경재를 육지로 운송하여 몇 년간 공급 해 줌으로써 조림목의 안정적인 생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훼손된 산림생태계의 복원은 원 산림에 대한 정보 수집과 함께 장 기적인 산림생태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지속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원시림은 우리나라 강원도와 북한지역과 함께 만주 림 에 속하기 때문에 수종이 동일하고 임분 축적이 최고 800m3/ha에 달하는 우리의 원시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계방산 지역에 장기 생태연구지를 조성하여 훼손된 2차림의 임분 동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도 백두산, 묘향산 그리고 금강산 등의 자연보호구에 이러 한 장기생태연구지를 설정하여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산림 network를 조성하여 지속적인 교류 협력을 유지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현 재 답보상태에 있는 남 북한 간의 학술교류협력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예산지원 및 안정적인 교류 협력의 토대를 마 련해야 할 것이며 FAO, UNDP, WFP, World Bank 등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협력 및 공동 지원사업도 활발히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 북한 산림협력 사업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력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조건임을 인식하여 대국민 홍보 및 교육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간단 체들 상호간의 공조를 통하여 낭비적인 경쟁을 피하고 협력을 통한 보다 효 율적이고 안정적인 지원방안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49 46 참고문헌 고성철 태경환 이흥수 김용래, 계방산의 식물상. 한남대학교 자연과학 논문집 21:131~159. 공우석, 북한 자연생태계의 생물지리적 특성. 환경영향평가 11(3):15 7~172. 김리태, 우리나라 민물고기상의 일반적인 특징과 동물지리적 구계에 대하여. 생물학 1990(2):39~45. 김봉주, 북조선 산림자원의 전망. 제73회 임학대회강연집. p 12. 김 천, 위성 원격탐사자료를 이용한 북한 홍수피해지역의 환경계측 연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252p. 김철민, 북한의 금강산 자연보호구. 임업정보 제132호. pp. 25~30. 도봉섭, 임록재 식물도감. 사회과학출판사. 리종호, 조선고등식물분류명집. 과학원출판사. 박동균 윤여창, 북한의 연료림 조성 타당성 분석. 산림경제연구 9(2). pp. 14~28. 박종욱, 한반도 종합식물지 발간 사업.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제 42회 학술보고회. pp. 15~29. 박준영, 우리 나라 자생식물의 보전과 개발리용사업은 민족의 급선 무이다.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제42회 학술보고회. pp. 6~9. 석현덕 정정길 유병일, 통일대비 북한 산림관리 방안. 산림청. 227p. 석현덕, 북한의 산림 및 관리 현황. 1999년 한국임학회 정기총회 및 학술연구발표회. pp. 27~37. 신준환 이병천 조현제 배상원 류천인 박해철 심재한 전승훈, 계방산 및 울릉도 산림생태계의 생물다양성. 임업연구원. 366p. 윤여창 박동균 홍성각, 산림부문 남북한 협력 과제 및 추진 전략. 북한연구학회보 제3권 제2호. pp. 53~82. 이인규 최청일 유종수 이상돈, 국내생물종 문헌조사연구. 최종보 고서. (사) 자연보호중앙협의회.191p. 이진규 이성연, 북한의 임업. 임업연구원 연구자료 제72호. 임경빈, 조림학원론. 향문사. 492p. 임록재 등, 1996~2000. 조선식물지 1~9권. 과학기술출판사. 장진성, 이창복 신고수목학의 수정 수목학(2001, ver. 1.0). 333p. 정영상 박철수 정필균 임정남 신제성, 북한 지역의 월 강수량으 로부터 토양 유실 예측 공식 적용을 위한 강수 인자 산출. 한국토 양비료학회지 35(2):87~92.

50 47 한국과학재단, 년도 북방농업의 개발과 연구협력사업 결과보고서. 홍순익, 조선자연지리. 김일성종합대학출판부. Good, R., The Geography of the Flowering Plants (4th ed.). Longman Group, London. Kolesnikov B.P., Vegetation / Southern part of the Far East. Nauka, Moscow, RU. pp. 206~250. Kozhevnikov A.E., An estimation of a modern condition of protection of a vascular plants biodiversity in Primorye Territory in reserved territories on the floristic-systematic data. V Far-Eastern Conference of Nature Conservation Problems, devoted to 80-th anniversary of Academician of Russian Academy of Sciences A.V. Zhirmunsky. Vladivostok, 12~15 October: Collection of Sci. Papers. Dalnauka, Vladivostok, RU. pp Prikhod'ko A.I., Forests and forestry of Primorsky Krai at the present stage.forests and forest formation process in the Far East: Proceedings of international conference, devoted to the 90-th anniversary of B.P. Kolesnikov. IBSS, Vladivostok. pp Prikhod'ko A.I., Solodun V.I., Tsegel'nyuk A.I The basic results of monitoring of forests of Primorye Territory.Classification and dynamics of forests of the Far East: Proceedings of international conference Vladivostok, Dalnauka pp Rao. Y.S., Back-to-Office Report, DPRK. FAO. Shin, Joon-Hwan, Ecosystem Geography of Korea, Pages 19~46 in Lee, D. W. (eds.) Ecology of Korea, 2002, 406p. UNDP, Agricultural Recovery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AREP) Programme, Working Papers Vol. 2, Urbanska, M.K., N.R. Webb and P.J. Edwards Restoration Ecology and Sustainable Develop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397p.

51 49 북한 선군정치와 노동규율 재강화 김 보 근 (한겨레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목 차 요약문 서 론 고난의 행군 과 노동규율 이완 선군정치의 등장과 혁명적 군인정신 혁명적 군인정신의 일반화 선군정치의 한계 결론 102 참고문헌 105

52 51 요 약 문 연구자는 북한이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는 선군정치 의 여 러 기능 중 무너진 노동규율 재강화 기능 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연구자는 북 한 노동신문과 김정일의 활동을 소재로 만든 소설인 불멸의 향도 시리즈 등 을 통해 선군정치의 핵심인 혁명적 군인정신 의 형성과 확산 과정을 파악하고 자 했다. 연구자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북한이 어떻게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 해 노동규율 재강화를 이루고, 이것을 강계정신, 성강의 봉화, 락원의 봉화, 라 남의 봉화 등을 통해 일반 사회에 전파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으로 고난의 행군 이라 는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고난의 행군은 에너지난 자재난에 의해 공 장 가동이 멎고,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에너지난 식량난의 결과였던 노동규율 해이 가 고난의 행군이 장기화하면서 경제 재건에 중요한 걸림돌로 대두한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한다. 북한 지도부는 이 가운데 군부를 중심에 놓는 방식을 해결 방안으로 선택한 다. 북한은 이를 위해 안변청년발전소(금강산발전소) 건설에서 보여준 군인 건 설자들의 성과를 하나의 모범으로 만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전 략을 썼다. 이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은 무리한 공기, 빈약한 지원 및 설비, 무방 비상태에 가까운 안전장치 등 정상적인 노동관행으로 볼 때 많은 문제점을 지 녔다. 이에 따라 군인 건설자들의 희생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그 러나 군인 건설자들이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김정일 명령 결사관철 의 모범을 창출했다며 이들을 영웅화했다. 북한 당국은 이 모범을 혁명적 군인정신 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를 토대로 선군정치 라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만든다. 선군정치는 군대가 국가 보위 도 하고 경제 건설도 하는 것 을 의미한다. 북한은 선군 정치의 등장 배경에 대해 미국과 대치국면 속에서 총대를 틀어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논리를 내세운다. 북한은 더 나아가 군을 통해 경제건설 및 문화건설, 인간성 개조 등 사회의 전 범위를 개조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중 특히 혁명적 군인정신 을 노동자들에게 확산시킴으로써 경제건설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8년 김정일의 자강도 현 지지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혁명적 군인정신 확산 운동에 나서게 된다. 자강 도 사람들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따라 희천기계공장의 가동을 다시 시작하고 많은 수의 중소형 발전소를 건설해 나간다. 이때 자강도 공장은 다수의 기능공 과 기술자 노동자들이 굶어죽거나 굶주림 속에서 공장을 떠난 상황이었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군인정신 이 자강도 사람들에게 혁신의 마음

53 52 을 심어줬다고 주장한다. 자강도 인민들이 혁명적 군인정신 을 이어받아 생산 정상화와 중소형 발전소 건설의 임무를 완수해 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자 강도 인민들의 결사관철 정신을 강계정신 이라고 부르면서 강계정신의 확산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북한은 자강도 외에 여러 차례의 봉화 창출을 통해 공장 내부 재건에 나선 다. 1998년 성진제강에서 맨처음 나타난 봉화는 2000년 락원의 봉화, 2001년 라남의 봉화로 이어지면서 혁명적 군인정신 을 공장 내에서 재현시키는 데 많 은 기여를 한다. 그리고 성강의 봉화, 락원의 봉화, 라남의 봉화로 이어갈수록 과학기술에 대한 강조는 더욱 강해진다. 이러한 봉화정책 은 사상 강조, 결사관철 등을 통해 혁명적 군인정신 을 공 장 노동자들에게 투영시키는 구실을 해왔다. 특히 라남의 봉화 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첨단기계를 완성한 사례로 북한에서 선전된다. 그러나 라남의 봉화 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봉화와 마찬가지로 극한적 노동 규율/노동강도를 강조하는 패러다임이 강할 뿐 북한에서 주장하는 첨단과학과 는 거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혁명적 군인정신 전파를 통한 경제재건 전략 은 무너진 경제를 다 시 돌아가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과는 보완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충하는 측면 이 많다. 왜냐하면 강성대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해 야 하는 데 혁명적 군인정신 의 확산을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 전략을 통해서 는 이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02년 7월1일 이후 시행해 오고 있는 경제개선조치와 혁명적 군인정신의 관계 정립 등 앞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연구 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파악한다.

54 53 1. 서 론 1.1 연구의 목적 북한 경제의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2002년 들 어 7 1 경제관리개선조처 및 신의주 개성 금강산 특구 발표 등 변화 를 예 측하게 하는 경제조처를 잇따라 취했다. 1) 그런가 하면 북한은 <노동신문>이 나 <경제연구> 등 매체를 통해 1999년부터 강성대국 건설을 주장하면서 사회 주의 고수를 강조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이런 북한의 잇따른 조처들에 대한 해석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주된 대립점은 북한의 최근 모습을, 시 장 수용 준비라고 보는 입장과 고난의 행군 시기 무너진 계획경제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2) 개혁 수용 준비론 과 계획 시스템 복구론 으로 나눌 수 있는 이 논쟁에서 쉽게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는 현재 북한 경제의 모습이 어느 한쪽이 맞다고 결론 내릴 만큼 분명한 노선 을 보여주지 않고 있 는 탓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 북한 경제는 한편으로는 개혁 수용 준비 로 평가 받을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획 시스템 복구 로 읽힐 부 분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노동정책을 평가함으로써 북한 경제의 향방에 대해 나름대로 예측을 해보고자 한다. 북한 경제는 현재까지 계획경제 라는 큰 틀을 유지하고 있고, 노동정책도 이에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 의 노동정책은 노동력의 계획적 배치 및 고착화 정책, 노동 평가의 국가 주도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는 노동시장이 존재하는 시장경제와는 확연히 구별되 는 정책들이다. 따라서 북한이 시장 수용쪽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무엇보다 먼 저 노동정책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3) 따라서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이후 어떤 노 1) 북한은 특히 2002년 11월13일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한 이후 개성공업지구법 채택(2002년 11월20일), 개성공업지구법 개발규정 및 기업창설운영규정 채택(2003년 4월24일), 개성공단 착공식(2003년 6월30일), 개성공업지구 세금규정 및 노동규정 채택(2003년 9월18일) 등 개 성공업지구 정비에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대안의 사업체계를 보는 두 개의 눈, 그리고 북한 변화를 진 단하는 두 개의 눈 (김보근, <정치비평> 통권2호호(2002년 하반기) 쪽 참고) 3) 이와 관련해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은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이 규정에서 기업의 노동 자 채용권 이 나진 선봉 및 경수로 건설현장 때와 비교할 때 크게 변했다. 노동규정 제9 조(노력알선 계약의 체결)는 기업은 기능시험, 인물심사 같은 것을 통하여 필요한 노력을 선발할 수 있다 고 규정했다. 나진 선봉 및 경수로 견설현장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북한의 노력알선기관이 노동자를 제공하지만, 개성공단에서는 기업이 제공된 노동자들 중에서 가 장 적합한 인물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됐다. 나진 선봉 등 기존 자유무역지대

55 54 동정책을 펼쳐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북한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 인지 평가하는 중요한 한 방법일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특히 선군정치 와 북한 공장내 노 동규율의 재강화 의 관계에 집중적 관심을 보일 계획이다. 4)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노동정책 역시 두 개의 방향 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상반된 요소들이 존재 하고 있다. 우선 고난의 행군 은 북한이 1990년대 초까지 추진해왔던 경제전략 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공 장의 가동률은 매우 낮은 상태였다. 따라서 사회주의 노동정책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노동력의 계획적 배치와 고착화 정책이 이 기간에 사실상 무너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낮은 가동률은 북한 노동자의 노동규율도 함께 무 너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은 무너진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모범을 만들고 이 를 사회에 전파하는 전략을 세웠다. 본 논문은 그 핵심에 혁명적 군인정신 이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규율을 재강화 하는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 한 노동정책은 북한이 1999년 발표한 사회주의 강성대국 전략 과 일면 합치하 고 일면 상충되는 모습을 보인다. 강성대국 전략은 사상 총대 과학 중시 를 통해 국가 발전을 꾀하겠다는 논리다.이 전략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발전전략 을 모순적으로 안고 있다. 본 논문은 이 모순적 결합이 특히 노동문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판 단한다. 북한 강성대국 전략은 사상 총대 중시 로 대표되는 계획 시스템의 정상화 와, 과학 중시 로 대표되는 실리사회주의 혹은 개혁 수용 준비 의 모 습을 함께 안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혁명적 군인정신 과 노동규율 재강화 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혁 명적 군인정신 이 사상 총대 중시 (계획 시스템 복구)에는 유용하지만 과학 중시 (시장 개방 준비)와는 상충되는 것임을 지적할 것이다. 본 논문은 이에 따라 북한이 혁명적 군인정신 을 강조해나갈수록 강성대국 건설론 에 내재된 모순은 증폭될 것임을 보일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강성 대국 건설론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한 노동규 율 재강화 와는 다른 노동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지적할 것이다. 노동규정에서는 이와 달리 노력알선 기간이 제공하는 노동자를 기업이 채용해야 했으며, 적합하지 않을 때는 채용 뒤 문제제기를 해서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 <주간북한동향> 제 662호. 9-12쪽 4) 북한에서 선군정치 는 국토 방위와 경제 건설을 함께 해나가는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여기 서는 그중에서 경제 건설론으로서의 선군정치 에 주목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개념이 1996년 9월 안변청년발전소 건설과 함께 탄생한 혁명적 군인정신 이다. 논문은 혁명적 군 인정신 과 북한 경제 복구 발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56 논문 구성 및 연구 방법 본 논문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서론인 제1장에서는 본 논문이 다룰 주제와 범위를 밝힌 뒤, 이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서술한 다. 제2장에서는 북한 경제가 파멸적 위기에 처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노동 상황을 살펴본다. 이때 매우 낮은 가동률을 보였던 공장 상황과 생존을 위한 노동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면서 1999년부터 등장한 선군정치 의 내용 을 정리한다. 특히 선군정치의 출발점인 혁명적 군인정신 이 극한적 노동규율 과 노동강도를 강제하는 속에서 나왔음을 지적한다. 선군정치는 이런 혁명적 군인정신 에 바탕을 두고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의 각 영역의 운영체계 로 자리잡아갔음을 지적한다. 이어 제4장에서는 북한이 선군정치의 핵심인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 사회 에 어떻게 전파시켜나갔는지를 살펴본다. 북한은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 사회 에 전파하기 위해 민간인들 사이에 혁명적 군인정신 에 바탕을 둔 투쟁과 혁 신의 사례를 만들어갔다. 북한은 이를 강계정신, 성강의 봉화, 락원의 봉화, 라 남의 봉화 등의 이름으로 정식화한 뒤 제2 천리마 대진군운동 등으로 이를 일반에 확산시켜 나갔다. 제5장에서는 그러나 이러한 혁명적 군인정신 의 확산을 통한 노동규율 재 강화하는 노력이 결국 경제 활성화라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임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선군정치를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는 자본 투자가 상대적 으로 제한된 상황 에서 계획 시스템 정상화 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선 군정치를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다. 그 이후 경제 가 활성화되는 것은 노동규율의 문제가 아니라 낮은 자본투자 상황을 개선 하 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6장의 결론에서는 본 논문에서 지적한 사안들을 요약하고 이후 연구과제 를 정리한다. 본 논문은 이런 사실들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서 <노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 보도와 소설 불멸의 향도 5) 시리즈를 주로 이용했다. 이렇게 북한 언론 5) 불멸의 향도 는 김정일의 혁명활동을 연도별 사안별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기록 소설 의 성격이 강하며,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 으로 평가된 다. 북한은 불멸의 향도 를 김일성의 혁명활동을 소설화한 불멸의 력사 와 함께 북한 소 설문학을 대표하는 총서로 꼽고 있다. 현재 불멸의 향도 는 <총검을 들고>, <강계정신>, <비약의 나래>, <평양은 선언한다>, <력사의 대하>, <서해전역>, <총대> 등이 나와 있 다. 본 논문에서는 이중 특히 경제부문과 관련이 많은 <총검을 들고>와 <강계정신>을 주 로 인용한다.

57 56 과 불멸의 향도 시리즈를 이용한 것은 선군정치 및 혁명적 군인정신 이 탄 생하고 운영되는 과정을 북한 내부 사정에 기초해 판단할 때 훨씬 높은 분석 력과 예측력이 나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를 통해 선군정치를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 정책이 북한 내부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도 경제활성 화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는 것을 보일 것이다. 2. 고난의 행군 과 노동규율 이완 북한은 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1997년 12월31일까지 기간 을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른다. 6) 북한은 이 기간에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 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 기 간중 북한 농업 산출량이 연이은 자연재해와 비료 부족 등으로 급격히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기간 중 북한 공업도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로동신 문> 등 북한쪽 자료를 살펴보면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 공업은 거의 멈춰버 렸다 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 장에서는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 공 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장에서 사례로 든 북한 공장들은 선군정치 시대 혁명적 군인정신 의 일 반화에서 모범이 되는 곳들이다. 이 장에서 이런 상징적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북한의 핵심적 공장마저도 노동규율이 철저히 무너져 있었음을 보이기 위해서 다. 이를 통해 북한 공장을 재건하는 데 왜 혁명적 노동자정신 이 아니라 혁 명적 군인정신 이 필요했는지 그 단초를 살펴보자. 북한 공장들은 고난의 행군 기간 심각한 가동률 저하 현상 을 경험했다. 7) 이런 가동률 저하 현상은 공장 내부에서 볼 때 커다란 변화를 강제한다. 가동 률 저하는 우선 소득과 식량 배급의 감소로 이어진다. 또 노동자들은 감소한 소득과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공장을 떠나 농민시장 등 부업거리를 찾게 된다. 당연히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줄어들고 다시 공장 가동률은 더 떨어진다. 이는 6) 북한은 고난의 행군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계적 판도에서 사회주 의가 붕괴되고 제국주의미치광이들의 압살공세가 절정에 달하고 있던 때에 민족의 어버이 를 잃었다. 여기에 참혹한 자연재해와 경제난, 식량난까지 겹쳐 나라는 사실상 위기의 최 후계선에 서게 되었다. (로동신문 2001년 12월15일) 7) 북한의 공업가동률은 90년대 들어 40% 미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가동률은 더욱 낮아져 30%(<주간북한동향> 273호 13쪽) 미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부 등은 북한 공장 가동률이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단기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한다. 1997년에는 27%로 추락했으며, 1998년 상반기에는 20%(주간북한동향 제409호 44쪽)로 내려앉았다는 게 남한 당국의 분석이다.

58 57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밀어내는 강제력으로 다시 작용하게 된다. 이 절에서 는 북한 공장 내부의 이러한 상황을 북한의 소설과 신문 등을 통해 살펴보기 로 한다. 김정일의 활동을 주제별로 소설화한 불멸의 향도 시리즈 중 하나인 <강계 정신>은 1998년 6월 김정일이 희천공작기계공장을 방문했을 때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일은 당시 공장을 방문해 가장 먼저 가동률 저하에 대해 보고 받는다. 한해에 7~8천대의 공작기계가 꽝꽝 쏟아져나오던 희천공작기 계공장의 월생산실적이 전력부족 때문에 30대 수준으로 급격히 떨 어진 사실이 보고되여온 것이였다. 공장은 돌아간다고 할 수 없었 다. (리신현 2002, 10쪽) 희천공작기계공장뿐 아니라 다른 공장의 상황도 지극히 나빴다. 김정일이 같은해 3월9일 현지지도했던 성진제강련합기업소 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 다. 한민족을 멸족시키려고 그렇게도 악착하게 접어드는 제국주의 원쑤들에게 증오와 저주를 보내던 그 수많은 기대들의 동음이 멎고 조국의 숨결과 같은 전기로들이 마지막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로 동신문 2003년 3월9일) 또 2001년 봉화 를 올렸던 라남탄광기계련합소도 고난의 행군 기간에는 가동률이 매우 낮은 상태였다. 온 나라가 다 그러하였지만 이 기업소도 고난의 행군 을 하면 서 생산이 거의 멎을 형편에 처하게 되였다. 그전에는 차판으로 련 속 실려 들어 오던 각종 규격의 강재공급량이 거의 령에 가까운 수 자를 기록했고 연료 동력사정도 매우 어려웠다. 이렇게 되자 일부 사람들은 현대적인 기계설비제작사업을 나라형편이 풀릴 때까지 일시 중지하고 그시그시 제기되는 대상설비생산과제나 수행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로동신문 2002년 1월21일) 이렇게 낮은 공장가동률은 정상적인 공장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998년 6월 희천공작기계공장 안에 들어선 김정일은 특히 자동베트(벨트)흐름 선 기술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김정일은 곧바로 기술자들의 행방 을 묻는다. 이에 대해 공장 지배인은 고난의 행군 기간에 두명은 사망하고

59 58 나머지 동무들은 건강 때문에 출근을 못한지 오래 8) (리신현 2002, 15쪽)라고 답한다. 주된 원인은 식량난이었다. 극심한 식량난은 당시 상당수 노동자들을 노동현장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식량 배급이 중단되자 식량과 돈 을 구하기 위해 공장 밖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최고 시련을 당하던 1998년의 성강 형편은 사실 돌이켜 보기 조차 눈물겹고 가슴 아프다. 한끼 끓일 풀죽을 위하여 금천으로, 옥 천으로, 30리, 60리 떨어진 산촌을 찾아 녀인들이 집을 떠나던 때였 다.(로동신문 2003년 3월9일-성진제강의 경우) 조국이 모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여서 부족하고 없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식 량난이였다. 어느 날, 현대적인 기계설비설계를 담당한 설계가 한 동무가 출근길에서 쓰러져 기업소에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배인은 자기 집의 쌀독을 털어내여 몇되 가량 되는 식량을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로동신문 2002년 1월21일-라남탄광기계련합 소의 경우) 식량사정이 점점 긴장해 질 때 전우영 동무는 로동자들을 데리 고 라남에서 수백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에 들어가 도토리도 줍고 산나물도 뜯었으며 료양소도 운영하면서 과학자 기술자들의 대렬 을 지켜내기 위해 결사전을 벌리였다. (로동신문 2002년 1월24일- 라남탄광기계련합소의 경우) 물론 식량과 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모두다 공장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 다. 공장에 적을 두면서 부업으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8) 기술자 두명의 사망은 식량난과 상당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은 자강도의 식량난이 심각해진 이유에 대해 게다가 거기에서 생산된 공작기계를 가지고 활발히 진행하던 무역 이 중단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리신현 2002, 10쪽) 소설은 숨진 기술자 두명 중 한명은 전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천리마운동을 발기하셨을 때 보수주의 소극분자들이 머리를 쳐들자 공작기계생산으로 당을 받들자고 분연히 일떠섰 던 기능공 (리신현 2002, 10쪽)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이 사람의 최후에 대해 이렇 게 그리고 있다. 그 유능한 기능공이 공장의 자동베트흐름선이 멎자 이 기대만은 세워두면 안된다, 이 기대 가 돌아가지 못하면 희천공작기계공장이 멎어선 것과 같다면서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일 으켜 며칠 동안 힘겨운 전투를 벌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렁찬 동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자동베트흐름선에 기대앉아 기진맥진하여 버린 채 숨을 거두었다지 않는가? (리신현 2002, 11쪽)

60 59 박용범 동무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 왔는데, 그날 밤 잘 알고 있 는 사이인 고기배의 선장이 찾아왔다. 자기네 고기배의 기관이 고 장났는데 좀 봐달라는 것이였다. 박용범 동무는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밤 새워 기관수리를 해주었다. 기관수리를 끝내고 배에서 내 리려는 박용범 동무에게 선장은 말하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나무라지 말게. 공장일을 하면서 집살림도 생각하게. 며칠 휴가를 받고 우리 배를 타게. 낙지잡이를 며칠만 해도 집살림에 보탬이 될 걸세. 내가 도와 줄테니 그렇게 하세. 박용범 동무는 친구의 그 마 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대답하였다. 고맙네. 생각해 보지. (로동신문 2002년 1월28일)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공장을 떠났다. 하지만 공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규율 은 존재하지 않았 다. 소설 <강계정신>은 당시 노동자들의 상태가 공장에 출근한다는 것 자체 가 불가능 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견디어내며 기적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상 리신현 2002, 14쪽)고 묘사하고 있다. 공장에 단순히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인 상황에서 노동규율을 강조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 이었을 것이다. 현대적인 자동베트흐름선과 다른 기대들도 모조리 숨 죽은 듯 멎어서 있지 않은가. 휑뎅그렁한 현장 안에서 로동자들이 육중한 함마를 맥없이 쳐들어 올리며 느릿느릿 일손을 놀렸다. 시커멓게 기름이 쩌들어 밴 현장의 세멘트바닥 우에 가로세로 놓여 있는 둔 중한 베트 본체에 여러명이 달라붙어 스적스적 줄칼질을 하고 있었 다. 창문 밑에 기진맥진해 누워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였다. 굶주림 으로 인한 기력 부족인가? (리신현 2002, 13~14쪽) 소설 <강계정신>에 묘사된 공장의 모습은 당시 일부 노동자들이 공장에 출근했다 하더라도 정상적 노동을 하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령 노 동자들은 함마를 놀리거나 줄칼질을 할 때도 느릿느릿 스적스적 힘이 빠진 모습을 연출했다. 더욱이 일부는 공장에 출근해서도 일을 하지 않고 창문 밑 에 기진맥진해 누워 있 기도 했다. 소설 <강계정신>에서 노동규율 이 무너진 것으로 묘사된 성진제강 은 북 한에서도 손꼽히는 중요 기업이다. 따라서 규모가 작은 지방공업의 경우는 노 동규율 붕괴 가 더욱 심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61 60 3. 선군정치의 등장과 혁명적 군인정신 북한은 이렇게 고난의 행군 시기 극단적인 노동규율 해이 현상을 경험했 다. 북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규율 강화 를 꾀한다. 이 번 장에서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을 극복하기 위해 채택한 노동규율 강화 방 안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또 선군정치 도 혁명적 군인정신 을 이 용한 일종의 노동규율 재강화 기제임을 설명한다. 북한 고난의 행군 은 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 극심한 자재난 에너지난 식량난으로 공장 가동률이 크게 낮아지고 이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 을 떠나거나, 공장에 나오더라도 노동규율이 크게 훼손돼버린 상태를 의미한 다. 이때 자재난 에너지난 식량난은 고난의 행군의 최초 원인 으로, 노동규 율 훼손은 그 후속 결과 로 파악할 수 있다. 9) 따라서 고난의 행군 극복 방안으로는 최초 원인 이었던 자재난 에너지 난 식량난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이런 극 복 방안을 채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최초 원인 은 국내적 요소뿐 아니라 국외적 요소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10) 국외 적 요소를 살펴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한 경제제재가 50년 가까이 지속돼 오고 있었다. 더욱이 고난의 행군 시기는 북한 붕괴 설이 강하게 퍼져 있던 때였다. 따라서 남한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은 북한에 대해 교류하거나 지원 하기보다 북한 고립화 정책 을 통해 붕괴 시키는 전략에 경도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자재난 에너지난 식 량난 해소를 고난의 행군 극복전략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이 채택할 수 있는 남은 대안은 후속 결과 이지만 고난의 악순환 의 또 하 나의 원인이 된 약화된 노동규율을 재강화 하는 것뿐이다. 3.1 선군정치 이전 노동규율 강화 전략 북한이 고난의 행군 초기에 시도했던 노동규율 재강화 방안 은 김일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1994년 7월8일 세상을 떴지만 김일성의 권위와 김일성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애정은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강하게 남아 있 었다. 북한 당국은 이런 권위와 애정 이 노동규율 재강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 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른바 유훈통치 다. 09) 물론 앞서도 지적했듯이 고난의 행군 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노동규율 약화라는 결과 가 또다시 공장가동률을 더욱 떨어뜨리는 원인 이 되기도 했다. 10) 또 국내적 요소도 경제와 정치가 밀접히 관련돼 있어 정책변화를 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62 61 김정일은 우선 1995년 새해 첫 사업으로 김일성의 주검이 모셔진 금수산 기념궁전 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유훈관철 맹세를 한다. 그리고 인민군대와 인민경제에 대한 현지지도를 이어갔다. 11) 현지지도 때도 유훈 은 적절히 활용됐다. 김정일은 이때 어느 곳에서나 항 상 수령님의 교시를 녹음으로 들었고 그것을 관철할 방도를 구상 했다. 김 정일은 더 나아가 김일성이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1970년)와 제6차 대회 (1980년)에서 한 보고를 전당적으로 다시 학습하도록 했다. 또 북한 최고인민 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1998년) 때에는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한 연설을 육성녹음으로 듣도록 했다. 12) 이러한 유훈통치를 통해 노동규율 재강화 전략 이 잘 드러나는 곳은 대규 모 건설현장이다. 북한은 이후 혁명적 군인정신 의 모태가 됐던 안변청년발전 소를 비롯해 청류다리 2단계공사와 금문2동굴, 평양-향산관광도로를 비롯해 많은 건설물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령님께서 생전에 의도하시고 구상하시였던 것 임을 강조했다. 13) 하지만 유훈통치 는 김일성의 사망 시점에서 멀어지면서 노동규율 재강화 기제로서 점차 효능이 떨어져갔다. 이는 노동규율 재강화 기제를 개인적인 인 격체에 의존하고 있는 한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특히 김일성 사망 뒤 3년 탈상 이 이루어진 1997년 7월 이후에는 유훈통치 를 대체하는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북한은 김일성이 생전에 의도하고 구상 했던 안변청년발전소(금 강산발전소)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게 된다. 이른바 혁명적 군인정신 의 탄 생이다. 3.2 혁명적 군인정신 의 탄생 혁명적 군인정신 은 현재 북한에서 최고의 시대정신이다. 혁명적 군인정신 이 탄생한 것은 1996년 안변청년발전소 건설 현장이다. 안변청년발전소는 군 인 건설자들이 공사를 진행하는 대규모 수력발전소였다. 김정일은 1995년 10월21일 안변청년발전소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완공 하라고 지시했으며, 1996년 6월10일 완공단계에 들어선 발전소를 현지지도했 다. 당시 김정일은 언제(댐)와 취수부를 비롯한 구조물들을 돌아보시고 대형 11) 같은날 김정일은 인민군에 대한 현지지도로 다박솔초소 를 찾아간다. 현재 북한은 이 다 박솔초소 방문이 선군정치의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95년 상황에서 볼 때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는 금수산기념궁전 방문보다 상징성이 떨어지는 사안이었다. 이때 북한 인민들에게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선군정치보다는 오랜 세월 친숙했던 김일성의 유 언이 훨씬 감성적으로 들렸을 것으로 판단된다. 12) 통일여명 편집국 2003, 22쪽. 13) 통일여명 편집국 2003, 23쪽

63 62 물길굴에 몸소 들어가시여 군인건설자들의 고귀한 창조물들을 돌아 봤다. 혁 명적 군인정신 은 이런 현지지도 과정에서 김정일이 최초로 언급한 말이다. 김 정일은 발전소건설에서 보여준 군인들이 발휘한 수령 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 신, 자폭정신을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명명 했다. 14) 김정일은 그 3개월 뒤인 같 은해 9월15일에도 또 안변청년발전소에 대한 현지지도를 벌였고, 현지지도 사 흘 뒤인 같은해 9월18일 안변청년발전소 제1단계 조업식이 진행됐다. 15)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이 어떻게 이루어졌기에 혁명적 군인정신 의 발원지가 되고 이후 북한에서 시대정신 이라고 평가됐을까? 안변청년발전소 공사는 한 마디로 노동규율 과 노동강도 를 극단적으로 높임으로써 공사기간을 크게 단 축한 공사 로 요약할 수 있다. 불멸의 향도 시리즈 중 <총검을 들고>는 안변 청년발전소 건설 과정을 소설화한 것이다. 이 소절에서는 <총검을 들고>를 통 해 안변청년발전소의 노동규율과 노동강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16) 소설 <총검을 들고>는 김정일이 건설을 맡은 장령에게 금강산발전소 건 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함으로써 오늘의 난국을 헤칠 것 과 최단 기간 내에 적어도 1년 내에 100리 물길굴을 완공 하도록 지시한 뒤 군인건설 자들이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송상원 2002, 55쪽) 여기서 특히 강 조되는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 이다. 소설 중 김정일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담지 자가 노동자가 아니라 군인이어야 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정 신을 군인들이 창조해야 합니다. 1950년대 시대정신을 로동계급인 천리마기수들이 창조했다면 오늘의 새로운 환경이 요구되는 시대 정신은 혁명의 기둥인 우리 군인들이 창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군 인들이 창조한 그 정신으로 온 사회를 무장시키고 들끓게 함으로써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고 합니다. 17) 그러나 김정일 명령관철 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앞으 로 해야 할 작업량(100리 물길굴 공사-필자주)이 지난 10년간 해놓은 량과 맞 먹기 때문이다. 이것을 1년간에 해제끼자면 10배의 로력과 건설자재가 필요 14) 통일여명 편집국 2003, 31쪽. 15) 통일여명 편집국 2003, 83쪽 16) 물론 <총검을 들고>가 그리고 싶어하는 것은 결사관철을 위해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군 인 건설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총폭탄 이 돼서 희생을 감내했기 때문에 혁명적 군인정 신 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노동경제학적 용어로 바꾼다면 극단적인 노동규율과 노동강도 강화 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17) 송상원 2002, 55쪽. 이 말은 소설속에 나온 말이지만 김정일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것 으로 평가된다. 이는 불멸의 향도 가 북한에서 김정일의 혁명투쟁을 선전하기 위해 나온 공식문헌 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64 63 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형편에서는 그것(특히 건설자재-필자주)을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이상 송상원 2002, 58쪽) 이에 따라 건설 지휘부에서 는 군인 노동자의 노동강화 를 명령 관철의 핵심으로 보게 된다. 최근 2개월 동안 공사장에는 한 대의 착암기도 한 대의 스키프 와 광차, 한 대의 자동차와 한톤의 기름도 본래의 계획분 외에 더 보충된 것이 없었다. 공사를 책임진 지휘관들은 설비의 리용률을 최대로 높이는 외에 몇곱으로 불어난 작업량을 해제낄 기본수단을 인력으로 보았다. 그들은 굴진 막장수, 말하자면 작업단면을 몇배로 늘이고 매 작 업장들에서 3분의1의 인원을 소환하여 새로운 굴진조를 뭇고 착암 기 대신에 정대와 함마에 의거하는 수굴을 시작하며 여기서 나오는 방대한 버럭은 등짐으로 져내기로 하였다. 그들은 기계보다 군인들을 더 믿었다. 기계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력에는 그것이 없다고 보았다. 그들이 타산한 예비는 사실상 그 것밖에 없었다.(송상원 2002, 63~64쪽) 건설 지휘부는 기계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력에는 그것이 없다 고 했지만, 이는 군인 건설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노동강도를 부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최고사령관 명령 제0026호를 관철하기 위한 군정간부회의에서 는 극단적인 대책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매 작업장들에서 3교대 대신에 맞교대로 넘어가기로 했고 수굴을 하는 군인들이 단번에 1 천5백회의 함마질을 하며 두 사람이 밀던 광차를 혼자서 밀기로 하 였다. 경사각도가 30도 이상에 길이가 수백메터가 넘는 작업갱으로 등에 버럭을 지고 한 교대에 10회 이상 오르내리기로 하였다.(송상 원 2002, 64쪽) 건설 지휘부는 이러한 결정을 채택하면서 모든 군인들에게 육탄이 될 것 을 호소하였다. 건설 지휘부는 군인건설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 내라, 사상 과 의지, 육체의 마력을 다 내라, 매개 군인들이 자기몸에서 바칠 수 있는 것은 다 바치라, 한방울의 피도 한방울의 땀도 수억개 세포의 하나하나도 깡그리 바 치라 고 명령을 내렸다.(송상원 2002, 64쪽) 이렇게 새로운 시대정신 창조를 위한 투쟁은 초인적 노동을 요구하는 것 이었다. 군인 건설자들은 분당 수십톤의 압력으로 쏟아지는 차디찬 석수를 한 가슴으로 밀막으며 착암전투를 벌렸다. 그들은 또 하루에도 몇번씩 무너앉

65 64 는 붕락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가는 열번, 백번 다시 일어나 수천립방메터 의 버럭들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굴뚫기를 중단없이 밀고 나갔다. 군인건설자들은 굴 속에 물이 차면 떼목 우에서 착암을 하고 함 마질을 했으며 바로 그 막장 속에서 쪽잠을 자고 줴기밥(주먹밥-필 자주)을 먹으며 낮에 밤을 이어 천공작업, 발파작업을 벌려나갔다. 뜻하지 않은 일로 두손을 쓸 수 없게 되면 어깨로 착암을 했고 어 깨로 물속에서 버럭광차를 밀었다. 오염된 물에 중독된 발이 퉁퉁 부어올라 더는 운신조차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나 그리고 붕락에 두 발이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도 무릎걸음으로, 등으로 광차를 밀군 하였다.(송상원 2002, 69쪽)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달라붙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 속 에 간직된 것은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신념이였다. 그러기에 폭파작업 중 뜻하 지 않게 열손가락이 잘리워도 그래도 내가 할 일이야 있지 라고 하며 한 손목에 고리가 달린 끈을 감아 매고 온 종일 정대를 잡아 주며 막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였다.(송상원 2002, 69쪽) 운전사들은 매일 15시간 이상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필요한 2천톤의 모래를 공사장에 실어다 주지 못하였다. 이러한 긴 장한 로동강도는 운전사들로 하여금 운전대를 잡고 졸게 만들었으 며 철령을 넘나드는 도중에 몇대의 화물자동차를 벼랑에 구겨박는 사고를 일으키게 하였다.(송상원 2002, 180쪽) 18) 새로운 시대정신 창조에 나선 것은 군인 건설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군인 건설자들의 가족도 나서 함께 결사전을 벌였다. 18) 안변청년발전소 건설 현장에서는 이렇게 강한 노동강도 탓에 산업재해가 빈번했다. 그러 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강한 노동강도 외에 낙후되고 부족한 시설 탓도 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구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다. 그것은 실로 눈물이 나는 일이였다. 석수로 해서 갱내에서는 전구알이 자주 끊어지군 했 다. 어떤 때에는 여러개의 전구알이 동시에 끊어져 작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 면 부득불 전구알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가 와야 했다. 시간을 목숨과 같이 여기는 전 사들은 필사적으로 뛰게 된다. 그들은 전구알을 깨지 않기 위해 안전모에 담아 품에 끼 면서도 자기들의 머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 각으로 칠흑같이 캄캄한 갱안을 마구 내달리였다. 그러다가 바위에 머리를 찧고 빈사상 태에 빠지거나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구알 하나 때문에! (송상원 2002, 258쪽)

66 65 그들(군인 건설자-필자주)의 소박한 념원은 담배 한 대를 꼬나 물고 깊숙이 들이빠는 것이였다. 하지만 석수로 허리까지 물이 차 고 공기마저 젖어 있던 갱내에서 그것은 바라볼 수 없는 일이였다. 갱내에 들어가는 것이 엄금되고 있던 군인가족들과 녀성군인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라붙었다. 그들은 밖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가지고 빨면서 갱으로 들어가 자기 남편과 병사들의 입에 물려주었 다.(송상원 2002, 69쪽) 군인 건설자들이 이렇게 건설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가족들의 노동 참여 때문만은 아니었다. 혁명적 군인정신 창조에는 이외에도 높은 위험도 감수하겠다 는 정신이 함께 포함돼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설에 나오는 직선돌파 정신 이다. 건설 지휘부는 금강산댐건설 막바지 에 이른 상황에서 직선으로 물길굴을 뚫을 경우 굴 붕괴의 위험이 크다는 지 적을 받는다. 이는 많은 군인 건설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 지휘부는 직선돌파 를 택한다. 무엇보다 물자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소설 속 건설 지휘부는 직선돌파 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갱도를 우회해서 뚫는다면 이 모든 형편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직선돌파를 할 때보다 모래와 세멘트가 더 많이 들 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계산해봤습니다. 우리가 우회로를 택하 는 경우 더 들게 되는 물동량은 무려 5만톤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자동차는 120대, 기름은 2천톤입니다. 지금 형편에서 국가로부터 이 것을 추가공급받기는 어렵습니다. (송상원 2002, 109쪽) 혁명적 군인정신 은 이런 과정을 거쳐 100리 물길굴을 1년 안에 뚫어내면 서 탄생했다. 혁명적 군인정신의 창조자들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 다. 지휘성원들은 나를 따라 앞으로! 라는 구호를 웨치며 군관돌격 대 정치일군결사대 기술일군돌격대 를 뭇고 남 먼저 물이 허리 치는 막장에 뛰여 들어 30일, 50일 지어 석달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전투를 벌리며 공사를 지휘했다. 금강산 발전소 건설을 당앞에 책 임졌다는 당적 책임감을 안고 막장에서 1년 365일을 명절날 휴식일 도 없이 전투를 벌린 365일 지휘관 365일 병사 들의 수를 천으로 만으로 헤아리겠는가!(송상원 2002, 쪽) 뜻하지 않은 일로 경사굴을 따라 내려꽂는 광차에 몸을 날려 수

67 66 백명의 군인들을 구원한 어느 사관의 모습도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앞을 볼 수 없는 몸으로 200여일간 막장을 뜨지 않고 초인간적인 헌신성을 발휘하여 줄곧 광차를 민 불사신의 전투원,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전투대오를 떠나지 않은 수천명의 만기복무자들, 위훈을 세 우고 쓰러지는 순간까지 땀에 절은 입당청원서를 가슴 속에만 소중 히 품어온 전사, 그리고 불치의 병으로 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 투장에서 구령을 치고 착암기를 돌리며 메질을 하고 정대를 잡아주 던 지휘관들과 군인들!(송상원 2002, 332쪽) 19) 3.3 선군정치 의 등장 혁명적 군인정신 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선군정치의 핵심이다. 북한은 현재 제국주의 세력이 공산주의의 보루인 북한을 압살하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 국 보위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것이 바로 선군정치 가 등장하는 배 경이다. 그러나 선군정치 는 단지 국가보위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건설을 이끌 어나가고, 사회문화 분위기를 바꾸며,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구실까지 한다. 말하자면 사회변화의 총체적 기제 로 구실하는 것이다. 20) 이 절에서는 선군정치 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됐는지, 또 어떤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사회 속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에서 선군정치 정식화까지 북한은 선군정치 가 시작된 것은 1995년 1월1일 김정일이 다박솔 중대를 현지지도한 때부터라고 주장한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5천년 민족사에 가장 비통한 설날이었던 (노동신문 2001년 12월15일) 새해 첫날에 군부대를 방문했다는 데 큰 의의를 부여했다. 김일성 사후 나라가 어디로 나아 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새해 첫날 다박솔 중대 를 찾음으로써 군 19) 북한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혁명적 군인정신이 인간정신의 최절정 이라고 주장한다. 혁명 적 군인정신은 최고의 자주정신이고 최고의 창조성이며 최고의 의식성"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세상을 놀래우는 선군혁명투사들의 비상한 운명개척능력과 모든 인간적인 아름 다움도 바로 혁명적 군인정신에서 흘러나온다"(이상 노동신문 2002년 9월29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높고 아름다운 혁명적 군인정신 은 몇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북 한의 주장이다. 혁명적 군인정신 은 인민군대에서 창조된 수령 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 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혁명적 군인정신 은 승리와 기적만을 창조하게 하는 사상정신적 원동력 이다.(로동신문 2003년 3월17일) 20) 이는 1950년대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당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단순 히 생산성 향상만이 아니라 인간을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개조하는 인간개조, 사회개조 운동이기도 했다. 조선로동당출판사 1961, 1쪽.

68 67 대를 중시하는 길 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21)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군대를 중시하게 된 데 대해 군대를 김일성에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필승의 신념을 굳게 다지신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나 는 지금까지 수령님께 의거하여 모든 사업을 해왔다, 정말 수령님 을 잃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허전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군대가 있다, 나는 이제부터 군대를 믿고 군대에 의거하여 모든 일 을 해나갈 결심이다 라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수령님의 영전에 서 피눈물의 무게로 다진 이 결심을 안고 찾으신 것이 다박솔길이 었다.(로동신문 2001년 12월15일) 다박솔 중대 방문 이후 김정일의 현지지도에서 군대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 이후 처음에는 전선시찰 보도가 자주 나오고 그에 이어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 배우는 사회적 운동의 불길이 세차 게 타올랐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수도 평양의 당중앙이 아니라 멀고 험한 천 리방선 전선길로 주소가 달라졌다. 또 북한 인민들에게 비친 김정일의 모습도 위장망을 친 최전방지휘소나 바람 세찬 고지 우에 서계시는 전선사령관 이었 다. 북한은 또 장군님의 혁명활동은 집무실이나 회의장이 아니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빨찌산식의 강행군 현지지도로 시대를 진감시켰다 고 주장하고 있다.(노동신문 2001년 12월15일)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에서 선군정치라는 말이 형성돼 갔다. 김정일은 우선 1997년 10월 선군후로 ( 先 軍 後 勞 )라는 개념을 주장하였고 22) 1998년 들어서 선 군혁명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 의 제10기 제1차 회의 개최를 전후해 선군정치라는 개념으로 정착됐고, 23) 1999년에 이르러서야 이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북한에서 이렇게 선군정치라는 단어가 상당 시간이 지난 뒤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이것이 통 21) 그러나 이런 설명은 사후적인 해석이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다박솔 중대를 찾았을 때에는 조금 더 비중을 둔 현지지도 정도였다가 이후 차츰 여러 가지 틀을 갖추게 된 것이기 때 문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에서도 1995년 시점에서는 선군정치의 큰 뜻을 깨닫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군사를 중시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듭되는 말 씀들, 특히 혁명적 군인정신을 온 사회에 일반화할 데 대한 가르치심이 선군정치라는 위 대하고 독창적인 정치방식으로 어버이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 성해 나가시려는 크나큰 뜻이 체현되여 있다는 것을 다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26쪽) 22) <로동신문> 1997년 10월7일치. 23) 로동신문 근로자 공동론설 -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 <로동신문>, 1999 년 6월16일치. 김용현 2001, 17쪽에서 재인용.

69 68 용될 수 있도록 사회정치적으로 조정하는 기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 다. 24) 선군정치 정식화 이전의 군 규율 재점검 북한 지도부는 다박솔 중대 방문에서 선군정치 정식화 때까지, 군대를 앞세 워 정치를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이때 검토했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본 논 문은 선군정치와 노동규율 재강화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몇가지 점을 살펴보려 한다. 그 첫 번째 것은 군대의 규율 문제이며, 두 번째는 군대를 경제건설의 핵심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여부이다. 군대를 앞세우는 정치는, 규율 문제와 관련해 생각할 때, 북한 지도부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군대는 무너진 규율을 복구하는 데 가 장 효율적인 집단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5) 북한에서는 이를 위해 다박솔 중 대 현지지도를 벌였던 1995년 1월1일 이전부터 군대 규율 세우기에 힘을 쏟았 다. 김정일은 우선 1994년 9월20일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을 찾아 군사규정 학습기풍을 세우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킬 데 대해서 강조 했다. 김정일은 군 사규정 학습을 강화하는 것은 부대들에서 지휘체계를 똑똑히 세우는데도 좋고 부대를 장악하는 데도 절실히 필요하다 고 말했다고 한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59쪽)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밖에도 그 해(1994년) 9월23일과 주체 85(1996)년 1월과 3월 등 여러 기회에 걸쳐 군사규정 학습을 강화 할 데 대하여 강조하셨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거듭되는 말씀과 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모든 장병들이 군사규정에 정통 하게 되고 사업과 생활을 규정과 규범의 요구대로 해나가게 되였으 며, 인민군대 안에 혁명적 군풍이 새로운 높은 수준에서 확립되어 가게 되었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60쪽) 24) 이와 관련해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군사독재와 오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정식화를 늦추었다고 밝히고 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만일 처음부터 선군정치를 한다고 하였더라면 군사독재, 군사정권이라는 말이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26쪽) 25) 필자는 고난의 행군 당시 군대 규율도 상당히 무너졌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시기는 북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공장 규율 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회 규율이 무너진 상황이라 고 판단한다. 따라서 군대의 규율 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70 69 김정일은 또 1995년 3월과 4월 인민군 지휘성원들을 만나 인민군대 안에 당의 영군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 강조 했다. 김정일은 이어 한해 뒤인 1996년 4월7일에도 인민군 지휘성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민군대 안 에 당의 영군체계를 보다 튼튼히 세우는 데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도록 요 구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시기 일부일군들이 인민군대 안에서 당 의 영도체계와 영군체계가 서로 병립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 런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아 주시면서 인민군대 안에서 당의 영도체 계를 세우는 문제와 당의 영군체계를 세우는 문제는 다같이 최고사 령관의 유일적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질서를 세우는 문제로 써 표현만 다를 뿐 본질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시 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 밑에 군사지휘관의 유일적 지휘를 실현하는 것이 인민군대의 부대지휘관리 원칙이라 는 것을 뚜렷이 밝히시었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57쪽) 김정일의 이런 해석은 당이 군대를 철저히 장악할 필요에 의해 제기된 것으 로 풀이된다. 26) 북한 지도부가 이렇게 군 지도부를 대상으로 당의 군 지배 를 명확히 하면서 그 다음으로 취한 조처가 군인 대중들에게로 충성과 규율 문제 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1996년 1월 시작된 오증흡 7련대 쟁취운동 를 통해 이루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주체85(1996)년 1월 오중흡 7연대 칭호 쟁취운동 을 발기하시고 이 운동을 전 인민군적인 대중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오중흡 7연대 칭호 쟁취운동 은 전군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모든 인민 군 장병들을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으로 튼튼히 준 비시켜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의 친위대 결사대로 만들기 위한 집단적 혁신운동이라고 하시면서 전군을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 위하는 오늘의 7연대가 되자! 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이 운동을 힘 있게 벌리도록 하셨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56쪽) 26) 북한에서는 이미 당의 군대 지배 가 전통으로 확립돼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선군정치 를 정식화해나가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군대에서 당의 영도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이렇게 북한이 군의 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도 군대도 다른 사회 부문과 마찬가지로 해이해졌거나 동요하는 현상이 나타났을 것 임을 추측할 수 있 다.

71 70 이에 따라 그 뒤 여러 차례 오증흡7련대 칭호쟁취운동 열성자대회 가 열리 는 등 북한군은 이 운동을 군인 대중운동으로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북한 군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규율 문제를 어느 단위보다 먼저 회복하고 또 강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이 규율을 다른 사회부문으로 수출 하는 것이다. 27) 4. 혁명적 군인정신 일반화와 노동규율 재강화 4.1 혁명적 군인정신 확산전략 북한 지도부는 고난의 행군 기간에 전 사회를 통틀어 가장 규율을 군대에 서 찾아 이를 혁명적 군인정신 으로 정식화했다. 이제 북한 지도부가 할 일은 이 혁명적 군인정신 을 사회의 다른 부분에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혁명적 군인정신 을 다른 사회부분에 확산하는 것이 선 군정치의 승리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선군혁명동지로 굳게 뭉친 일심단결은 제국주의와의 최후의 결사전에서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강력한 보검 이다. 그 런데 이는 전체 당원들과 군인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철저히 무장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로동신문 2003년 2월7일) 28) 북한이 이렇게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파하는 이유는 이 정신이 노동계급 정신 등 다른 사회계층의 정신보다 한결 우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27) 북한 지도부는 선군정치를 정식화했지만, 이런 정식화 이전까지는 이와 다른 여러 형태의 정치 형태도 모색됐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국방력 강화와 경제 재 건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룩해내야 했다. 이에 따라 이 두가지 과제를 어떤 형식 으로 결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핵심 그룹 내에서 많은 검토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검토 중에서는 선군정치와 같은 군대 중시 전략에 대한 반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동 신문>의 다음 보도내용은 북한 내부에서 전통적인 혁명 세력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경제 재건, 노동규율 재강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처한 형편에 눈이 휘둥그래져 장군님께서 하루빨리 공장을 찾으 시어 노동계급부터 일으켜 주셨으면 하는 소신을 피력한 편지를 당중앙위원회앞으로 보 내어왔다. 제국주의책략가들의 음모에 추종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정책변화를 점잖게 건의 하거나 지어 강박하는 정치가들도 있었다. (로동신문 2001년 12월15일) 그러나 이런 노동계급 중심의 경제 재건론 은 국방력 강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 으로 짐작된다. 반면 군대를 앞세우는 방식은 국방력 강화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경제 재 건에서 효과가 있음이 차츰 입증돼 갔다. 군인 노동자들이 각종 사회건설 부문에서 혁신 을 세운 것이다. 28) 북한은 이미 혁명적 군인정신 덕에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군사적대결에서의 련전련승, 고난의 행군 과 강행군에서의 빛나는 승리, 경제강국건설을 위한 투쟁에서의 눈부신 비 약 등 최근년간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된 자랑찬 승리 등 성과들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로동신문 2003년 2월21일)

72 71 혁명적 군인정신 은 그것이 단순한 군대의 싸움정신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총대정신 이며 이에 따라 이 정신은 혁명정신의 최고높이로 되며 오늘의 백 두의 혁명정신으로 되기 때문이다.(로동신문 2002년 9월29일) 29) 한마디로 혁 명적 군인정신 은 다른 어떤 계급의 정신보다, 즉 노동계급 정신 보다 월등하 다는 것이다. 30) 어제날의 동지는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호소한 마치동지라면 오늘의 동지는 정의를 위하여 죽음도 각오하고 나서는 총대동지이 다. 마치동지보다 총대동지가 더 세다. 이제는 인류의 정의를 수호 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적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21세기의 선구자, 자주위업의 강력한 주력군이 준비되었다. 전군, 전민의 동지화, 이 것은 새로운 역사적 단계인 선군시대의 높은 요구이며 우리 혼연일 체의 전면적 완성의 근본담보이다. 백두의 영장 김정일 장군의 휘 하에 먼저 총대동지들이 서고 그 뒤에 마치와 낫, 붓대동지들이 천 겹만겹의 성새를 이룰 때 우리에겐 두려운 고난이 없고 무서운 적 이 없다.(노동신문 2002년 4월29일) 노동계급의 혁명정신보다 한단 수 높은 새로운 시대의 말-혁명 적 군인정신이 나오고 온 사회의 노동계급화로부터 혁명강군화에 로 시대의 요구가 높아졌다.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지난 천리마시대, 노동계급의 시대에는 강선이 시대정신의 고향이었다면 장군님께서 펼쳐 주신 선군시대에는 다박솔과 같은 제1의 선군진지가 시대정신 의 분화구로, 발단으로 되었다. 강선의 쇳물철학 이 천리마시대 사 람들의 사상정신적 불꽃이었다면 오늘은 다박솔 총대철학 이 시대 를 선도하는 삶과 투쟁의 좌표가 되었다. 지난날의 노동가정으로부 29) 신문은 이어 바로 이것으로 하여 이 정신은 마치(망치 노동자계급을 뜻함-필자주)가 헤 치지 못하는 난관도 헤치고 마치가 이룰 수 없는 기적도 창조한다 고 하며 군인정신 이 노동자 정신 보다 한결 윗길에 있다고 주장했다. 30) 북한은 김정일이 군대를 모범으로 삼아 배워야겠다 고 판단한 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선, 인민군대의 당 정치사업과 사업기풍을 본받아 사회 의 당 사업과 일군들의 일본새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시였습니다. 주체 85(1996)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대학학생들의 예술공연을 보아 주시였습니다. 그런데 공연은 인민군대 예술소조 공연과는 달리 기백과 양기가 부족했습 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같은 청년들이지만 사회의 대학생청년들이 군인청년들보다 기백과 양기가 부족한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 사회의 당사업에 부족점이 있다는 것을 천 리혜안의 예지로 꿰뚫어 보시였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따라배워 사회의 당 사업과 일군들 의 일본새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실 결심을 내리셨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강좌 : 특강 11회)

73 72 터 군인가정으로 가정혁명화의 척도가 달라졌으며 노동계급의 문 화가 도시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부터 인민군대의 문화가 사회로 흘러드는 새로운 현실이 펼쳐지고 인민군대의 노래가 온 나라를 분 발시키는 군가정치의 새 화폭이 펼쳐지고 있다.(노동신문 2001년 12월15일) 북한은 이에 따라, 당연한 얘기이지만, 당 간부들에게도 혁명적 군인정신 을 배울 것을 강조한다. 이때 북한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구호가 돌격 앞 으로! 와 나를 따라 앞으로! 의 대비이다. 이 가운데 전자는 관료주의적인 행 태의 전형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노동자들을 앞장세 우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나를 따라 앞으로! 는 당 간부가 먼저 행동으로서 모 범을 보이면서 노동자들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노동신문 2003년 8월11일) 중요한 것은 북한에서 당 간부의 모범을 보이는 사례를 군대의 돌격 상황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당 간부의 모범을 혁명적 군 지휘 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당 간부에게 군 지휘부를 닮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렇게 전투 에서뿐만 아니라 회의 등 일상 생활에서도 이어진다. 일군들은 협의회를 열고 무슨 문제를 포치하여도 간단명료하게 전투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협의회나 오래 한다고 하여 좋은 방도 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장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조건에서 협의회를 열고 말공부나 하는 것은 전투적 분위기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는 될수록 협의회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하는 경우에도 짧은 시간에 과업을 주고 처리합니다. 협의회를 열고 말이나 많이 하여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실 천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일군들은 변화되는 환경과 조건에 맞게 사업에서 기본알맹이를 틀어쥐고 신축성 있게 조직하 고 전개해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올해를 강성대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 1999년 1월1일 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일군 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213쪽) 누구를 따라 배울 것인가의 문제가 해결됐다면 다음엔 어떻게 따라 배울 것 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때의 어떻게의 핵심은 인민군 군인들의 실지 투쟁 그대로 이다. 인민군 군인들의 실지투쟁과 생활에서 발양되는 사상정신세계 를 따라배워 사업과 생활에 구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혁명적 군인

74 73 정신을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장과 같은 어렵고 힘든 곳에서 일하는 군인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서도 따라배우고 군인들의 예술공연을 통하여서도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 배울 데 대하여 : 1997년 3월17일 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138쪽) 이렇게 북한은 사회 전체에 혁명적 군인정신 을 확산시키는 것이 강성대 국 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담론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당 일꾼들은 군 지휘 관을 따라 배우고, 노동자 농민들은 군인 전사들을 따라 배우는 운동이 전 사 회적으로 널리 번져나갔다. 우리의 모든 근로자들이 맡겨진 전투과제를 수행하기 전에는 조 국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 말자고 웨치며 죽음도 두려움없이 대형 물길굴을 열어나간 병사들처럼 용감무쌍하게 싸우고, 우리의 모든 일군들이 혁명군대의 지휘관들처럼 대담하게 작전하고 통이 크게 일판을 벌일 때 강성대국의 대통로는 더욱 활짝 열린다.(노동신문 2002년 9월 29일) 혁명적 군인정신은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다 따라배워 야 할 투쟁정신이며 오늘의 난관을 뚫고 승리적으로 전진하기 위한 사상정신적 양식입니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 적 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면 그 어떤 난관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 아도 무서울 것이 없으며 혁명과 건설을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배울 데 대하여 : 1997년 3월 17일 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 저작집> 14권 138쪽) 북한은 혁명적 군인정신 을 이렇게 전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해 참관, 견학, 예술 활동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북한은 혁명적 군인정신의 확산을 위해 혁명적 군인정신에 대한 학습과 발전소의 건설전투장에 대한 참관, 견학사업 이 집중적으로 조직진행 했고, 출판, 보도, 음악예술을 비롯한 여러가지 선전 선동수단을 통해 인민들 속에 혁명적 군인정신을 체득시키기 위한 일대 선전 공세가 벌였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26쪽) 군대를 본보기로 하여 온 사회의 혁명적 기상이 나래치게 하시 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도의 손길은 예술, 체육사업에도

75 74 뜨겁게 어려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 부문에서 일관하게 군대예술을 내세우시고 군대예술의 창작, 창조 기풍을 따 라 배우도록 이끌어 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 군인들의 예술공연은 한결같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자는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고 최고사령관의 명령지시에 대한 무조건성 의 정신이 차 넘치고 있으며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는 붉 은기를 지키리라 는 사상이 꽉 들어차 있다고 하시였습니다.(특강 11강)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생활문화에서도 혁명적 군인정신 을 본받게 되었 으며 31), 당 간부들이 선전 선동을 할 때도 화선식 선전 선동 32) 을 벌이게 됐 다. 이렇게 혁명적 군인정신 으로 온 사회를 일체화할 때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일심단결 이다. 북한은 라남의 봉화도 영도자와 노동계급의 심장과 심장이 합쳐 타오른 일심단결의 불길이고 대홍단의 드높은 숨결도 영도자와 농업근로 자들이 하나되어 높뛰는 혼연일체의 숨결 (노동신문 2002년 1월8일)이라고 주 장한다. 33) 그런데 왜 사회적 확산이 필요한 것일까. 군인들과 노동자들은 어떤 관계일 까. 그것은 모범과 시대정신은 군인들이 창출하지만 사회를 움직여나갈 때는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사회의 핵심역량이며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부대 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켜 내 나 라, 내 조국을 부강하게 하려면 사회의 핵심역량이며 사회주의건설 의 선봉부대인 노동계급부터 각성시키고 분발시켜야 합니다. 우리 세상은 노동계급의 세상이고 우리 나라는 노동계급을 위한 나라입 니다. 노동계급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단결시키면 못해 낼 일이 없습니다. 내가 정초부터 여러 공장들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노동계급을 분발시켜 혁명적 대고조의 앞장에서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에 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 1998년 1월16~21일 등 자강도를 현 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 저작집> 14권 186쪽) 34) 31)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에서도 인민군대 를 앞장에 내세우시고 그 모범을 적극 따라배워 사회주의 맛이 나는 군인들의 생활기풍 이 온 사회에 흘러들도록 현명하게 영도하시였습니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35쪽) 32) 전투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선전을 말함. 33) 논설은 이어 일심단결의 수준을 더한층 높이고 일심단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칠 때 강 성대국은 더 빨리, 더 높이 솟아오른다 고 주장한다.(노동신문 2002년 1월8일)

76 청년과 제대군인 : 혁명적 군인정신의 전파자 북한이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 사회에 확산시킬 때 가장 먼저 대상으로 삼 은 것이 청년들이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그 규율에 있어서 군대에 버금가기 때 문이다.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 사회에 일반화한다는 의미는 전 사회에 노동 의 군사화 를 이루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김용현 2001, 24쪽) 그런데 청 년들이야말로 속도전 청년 돌격대 35) 의 구성 등으로 노동의 군사화 를 이루는 게 사회의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쉽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가장 활력 있는 부대이며 강성대국건설의 돌격대입니 다. 청년들이 피 끓는 청춘과 불타는 심장을 바칠 때 못해 낼 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당은 청년들을 거창한 강성대국건설에로 부르 고 있습니다. 당조직들은 청년들을 힘있게 불러 일으켜 그들이 당 의 부름을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 건설장마다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 우며 모두가 이수복, 길영조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올해를 강성 대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 1999년 1월1일 조선노 동당중앙위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216쪽) 이에 따라 북한이 고난의 행군 기간 중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청 년조직을 정비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으로 불리던 청년 조직은 1996년 1월17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북한 은 이에 앞서 1995년 1월17일 김정일을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기 위한 청년 일군들의 맹세모임을 일제히 벌였다. 또 같은해 2월7일부터는 평양에서 전국 34) 북한은 이밖에도 선봉과 주력의 관계로 군대와 노동계급을 설명하기도 한다. 당조직들과 당일군들은 전체 간부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강성대국건설전투에로 불러 일으키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강성대국건설의 핵심부대는 노동계급입 니다. 우리의 노동계급은 새 조국건설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건설을 비롯한 우리 혁명 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혁명의 영도계급, 핵심부대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 여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혁명이 시련을 겪을 때마다 높은 생산적 앙양으로 당과 수령을 옹호보위하고 받들었습니다. 이런 충실한 노동계급이 있기에 우리가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쌓고 부강조국건설의 밝은 전망을 열어 놓게 되었습니다. (올해를 강성대 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 1999년 1월1일 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216쪽) 35) 속도전청년돌격대는 1970년대 중반부터 당시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의 지도를 받 는 상설조직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조직으로서, 북한의 국가 주요 건설사업을 담당한 전 위대로 기능해 왔다. 속도전 청년돌격대가 준 군사조직으로 평가받는 데 대해서는 다음 을 참조하라.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지도국을 정점으로 군의 부대단위 편성과 똑같이 돼 있으며, 대원들에게 군사칭호가 부여되고 병영생활을 하는 등 군대식 편제와 대원통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단지 군사훈련이 아닌 육체노동에 전념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 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엄격한 집단주의적 노동규율의 관철됨으로써 대규모 국가건설 사업에서 제한적이지만 일정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김용현 2001, 25쪽)

77 76 청년일군대강습이 진행되었다. 이 맹세모임과 대강습은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청년동맹사업 을 한 계단 끌어올리며 청소년들을 800만의 총폭탄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청소년 교양사업에 있어서 일대고조를 일으키는 계기로 되였 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800만의 청소년들을 총폭탄으로 준 비시키기 위한 청소년 교양사업을 끝임없이 심화시켜 나가시면서 청년영웅, 총폭탄영웅들을 내세우고 그들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 을 적극 벌리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36)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속도전청년돌격대는 2000년 11월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완공하는 등 건설현장에서 커다란 성과를 나타낸 다. 그러나 이 성과 또한 극한적인 노력동원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탄생한 마대전 이다. 이는 고속도로 건설 당시 청년들이 현대적인 건설 장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마 대 와 인력만을 이용해 공사를 진행한 것을 가리킨다. 맨주먹으로 물길굴을 뚫은 안변땅의 혁명적 군인정신과 함께 한 해가 왔고 최후의 순간 평양하늘을 우러러 아, 장군님 을 목메여 부 르며 자폭한 용사들의 위훈으로 또 한해가 흘러갔다. 적들의 유혹 을 물리치고 기어이 장군님품으로 돌아 온 신념의 강자들, 허기져 쓰러지면서도 고난의 행군 의 돌파구를 연 자강도사람들,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강성대국의 대통로를 뚫은 마대전 의 청년투사 들과 초인간적인 결사의 용맹으로 세계를 놀래운 마라톤영웅의 이 야기를 펼치며 일곱해가 흘러갔다.(노동신문 2002년 4월29일) 우리는 그것을 고난의 행군시기 평양-남포 사이의 청년영웅도 로건설에서 세운 청년건설자들의 위훈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 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가슴에 새긴 청년건설자들은 겹쌓이는 애로와 난관을 박차고 충성의 결사전을 벌려 2년도 못되 는 짧은 기간에 백여리의 현대적인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를 보 36) 통일여명 편집국 2003, 47쪽. 북한은 이와 함께 1995년 7월19일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각 종 학교에 청년영웅 들의 반신상을 건립하게 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김일성장군 만세를 높이 부르며 피끓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은 공화국 영웅들과 특출한 위훈을 세운 영웅들, 그리고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고 고귀한 생을 마친 우리 시 대의 영웅전사들 이 그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에 40여개의 고 등중학교, 인민학교들이 영웅들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명명되였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47쪽)

78 77 란듯이 건설하는 기적을 창조하여 세상사람을 놀래였습니다. 주체 89(2000)년 11월13일, 완공된 청년영웅도로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 군님께서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우리 청년들이 또 하나의 기념비적 창조물을 일떠 세웠다고 거듭 치하해 주시고 나서 청년들은 당의 믿음과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혁명의 계승자, 선봉대, 돌격대로 서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통일여명 출판 국 2003, 48쪽) 이렇게 청년들은 혁명적 군인정신 을 사회에 전파하는 하나의 인전대 구 실을 하게 됐다. 그런데 청년과 함께 인전대 구실을 한 집단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제대군인들이다. 제대군인들은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혁명적 군인정신 만은 벗지 않고 간직한 채 사회에 나가 사회를 군인정신으로 일색화하는 데 선봉 구실을 한다. 비록 군복은 벗었어도 어제도 오늘도 최고사령관동지의 병사라 는 영예와 자각을 안고 사는 사람은 여전히 선군시대의 제1선에서 참답게 사는 사람, 장군님의 선군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이다. 군대 를 사랑하는 사람이 위대한 장군님과 가까운 인연을 맺고 사는 사 람, 그이의 선군사상으로 숨 쉬고 그이와 배짱이 맞고 정서가 통하 는 선군시대의 참된 동지라고 할수 있다. 우리 사회의 그 어디에나 제대군인들이 있고 그들이 그 어느 부 문, 그 어느 단위에서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가 군대를 닮아가고 인민과 병사가 한모습을 이루는 군민일치의 실현에서 혁 명적 군인정신의 체현자들, 제대군인들의 역할이 자못 크다. 제대군 인들이 끓으면 온 사회가 끓고 제대군인들이 달리면 온 나라가 달 린다. 제대군인들이여, 최고사령부의 파견원, 혁명적 군인정신의 전파 자로서의 영예로운 책임을 다하라.(로동신문 2003년 2월3일) 4.3 강계정신 북한은 제대군인과 청년들을 매개자로 하여 혁명적 군인정신 을 본격적으 로 노동계급에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 첫 출발은 1998년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 지도다. 37) 김정일은 1998년 자강도 도 소재지인 강계를 비롯해 여러 곳을 현지 37) 왜 김정일이 자강도를 노동계급 중 혁명적 군인정신 의 첫 전파 대상으로 삼았는지에 대 해 북한은 자강도 인민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다른 지방사람들보다 고생을 더 했지만 쓰

79 78 지도 하면서 자강도 인민들이 중소형발전소 건설에서 혁신을 일으켜 다른 도 의 모범이 될 것 을 강조했다. 38)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전후에 강선의 노동계급을 찾아가 시어 천리마운동을 일으키도록 하시었는데 강행군을 하는 오늘 나 는 자강도를 모범으로 하여 강행군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려고 합니 다. 자강도는 모든 일이 잘되며 전망이 휘황합니다. 지금 자강도사 람들은 고난의 행군 이 아니라 광명의 행군, 락원의 행군을 하고 있 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업과 인민생 활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 1998년 1월 16~21일 등 자강도 를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186 쪽) 이 현지지도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오늘의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데서 로동 계급과 달리 일부 일군들의 정신상태가 문제로 된다 며 일부 의 정신상태를 지적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우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넘겨다보는 사 람들을 우리한테 보내주십시오. 이 타닝반으로 그 허물을 다 벗겨주겠습니다 고 답했다고 한다. 또 김정일 총비서가 노동자들에게 애로되는 것이 없느냐고 묻자 노동자들은 일감을 더 주십시오. 실컷 일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김정일 총비서는 여기에 와서 보니 힘이 난다. 우 러지면서도 기대를 지키고 공장을 지켜냈다 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자강도 사람들 은 강의한 의지를 지닌 시대의 선구자들이었고 어려울 때 사회주의를 지켜 당을 받드는 기수들 이라는 것이다. 이는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파할 토양이 풍족함을 보여주는 것이 다. 즉 모든 조건이 다른 지대보다 더 어렵고 불리한 것이지만 혁명성이 강한 노동계급 의 부대가 있는 자강도를 온 나라의 본보기로 내세운다면 그 감화력과 견인력은 대단히 클 것 이라는 것이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77쪽) 38) 김정일 위원장의 자강도 현지지도는 그러나 1998년 들어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1996년 9월 어느날 도당책임일군에게 자강도를 본보기로 내세우시려고 하 니 한번 일을 잘해보라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 주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78쪽) 김 위 원장이 이미 자강도 현지지도가 있기 1년 반 전부터 혁명적 군인정신 의 전파지로 자강 도를 점찍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실현을 1998년으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경제적 환경이 너무 어려웠거나 아직 사회에 전파할 모범 즉 혁명적 군 인정신 을 체계화하지 못한 탓도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특히 혁명적 군인정신 의 탄생지인 안변청년발전소 1단계 건설이 1996년 9월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런 분석에 설 득력을 보탠다. 김정일은 또 자강도 현지지도를 공식화하기 전인 1997년에도 자강도에 중소형발전소 건 설을 지시하고 그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1997년 9월에는 당과 정부간부들이 자강도에 있는 중소형발전소들을 참관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뒤 일군들 을 자강도에 보내여 경험을 배우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본보기 단위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그것을 전국에 널리 일반화해 나갈 구상을 안으시 고 자강도에 대한 역사적인 현지지도의 길에 나섰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78쪽) 즉 자 강도에는 김정일의 현지지도 이전에 이미 모범 이 창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80 79 리 당이 가는 길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고 답한다.(한호석 1999, 9쪽) 자강도 인민들 속에서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 높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자강도 사람들은 의지가 강하며 패배주의란 말 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강도 노동계급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기 대를 세워서는 안된다, 굶어 죽어도 기계설비만은 베고 죽어야 한 다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하였다고 하는데 그 정신이 얼마나 훌륭합 니까. 자강도 사람들의 혁명적 신념과 의지는 거리와 공장 구내에 써붙인 구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 며 가자! 라는 구호는 참으로 좋은 구호입니다. 노동자들과 담화해 보아도 누구나 일감을 달라고 하지 먹을 것이나 무엇을 달라고 하 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낙관적으로 씩씩하게 살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니 힘이 나며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기분이 대단히 좋습니다. 농촌에서도 논밭에 거름을 나르는 발구와 사람들이 길에 늘어섰는데 그들의 기세가 대 단합니다. 자강도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는 사상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 1998년 1월16~21일 등 자 강도를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쪽 185쪽)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지도는 1998년 1월 이후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크 게 두가지 상징을 만들어냈다. 그 첫 번째는 중소형발전소 건설이고 두 번째는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 의 혁신이다. 우선 자강도가 이룩한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중소형 발전소의 대대적 건설이다. 이는 북한 경제난의 출발점 중 하나가 심각한 에너지난이라는 점에 서 북한 당국이 매우 중요시하는 사업이다. 김정일은 자강도 현지지도가 시작 된 1999년 1월에 국방위원회 명령 전당, 전군, 전민이 동원되여 대규모 수력발 전소 건설을 힘있게 다그칠데 대하여 를 하달한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84 쪽) 그리고 인민들의 생활에 쓰이거나 지방공업을 돌릴 수 있는 전력은 중소 형 발전소를 건설해 자체로 해결해나가자는 운동에서 자강도가 앞장을 서게 된 것이다. 두번째로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 상황을 살펴보면 김정일 현지지도 이후 노 동자들의 헌신성이 크게 높아졌다. 39) 우선 공장 당위원회는 500여명의 기술 39) 김정일은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이 돌아가게 되면 전국의 모든 기계공장들을 능히 돌릴 수 있다는 것 이라며 동무들은 나를 믿고 나

81 80 자와 기능공으로 수십개의 4 15기술혁신돌격대 를 조직하고 이 돌격대가 2 월17일 과학자 기술자 돌격대 와 긴밀히 협력하여 생산공정의 종합적 기계 화, 자동화 를 추진 했다. 40) (한호석 1999, 15쪽) 이렇게 희천공작기계공장이 변모한 것은 공장을 버렸던 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에 모이고, 모인 노동자들의 태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현지지 도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공장을 이탈하여 농촌으로 떠났던 노동자들이 공 장에 돌아왔다. <로동신문>은 이 때의 상황을 순간의 실수로 사회의 버림을 받고 종적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사람들이 신념과 각오를 안고 한 사람같이 붉 은기 아래 모여들었다 고 묘사했다고 한다.(한호석 1999, 16쪽) 또 공장에 나온 노동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로동신문>은 공장안의 모든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침식을 현 장에 옮기고 불꽃 튀는 전투를 벌리고 있으며, 노동자의 가족들도 밤이면 생산현장에 나와 일손을 도와주고 있으며, 공장병원 의사들 은 생산현장 곳곳에 현장치료초소 를 설치하고 노동자들을 찾아다 니며 치료하고 저녁마다 오미자차와 콩우유를 공급해주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또 은퇴한 공로보장조 로인 들이 로병돌격대 를 조직 하여 생산현장에 합세했다. 희천시내 인민반원들은 노동자들에게 지원물자를 보냈고, 소년단원들은 꼬마기동예술선전대를 조직하여 생산현장에 찾아갔다. 이런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1998년 6월7일에 는 희천시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노동자 궐기모임 이 진행되었으 며, 6월22일에는 희천시에서 청년전위들의 충성의 궐기모임 이 진 행되었다.(한호석 1999, 16쪽) 이렇게 자강도 인민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자립할 수 있다는 모범 이다. 41) 김정일은 이에 대해 우리가 몇해동안 고난의 행군 는 동무들을 믿고 우리 함께 다가오는 9 9절까지 공작기계생산과제를 수행하자 고 촉구 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98쪽) 40) 이에 따라 몇해째 돌리지 못하던 여러대의 가공중심반, 수자조종보링반, 연마반과 같은 가공설비들이 원상복구 가동되었으며 합성주철생산공정을 비롯한 2백50여건의 기술혁신 안이 생산에 도입 되었다. 한호석 1999, 16쪽. 41) 그러나 이런 자강도 모범 은 순전히 자강도 인민들의 자력갱생의 의지로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강도를 먼저 모범으로 세우기 위해 많은 자재 등이 자강도에 집중됐을 것으로 추론되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일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확인된다. 자강도를 먼저 모범으로 세운 데 대해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는데서 중요한 대상들에 힘을 넣어 하나씩 하나씩 생산을 정상화해 나가야 합니다. 나라의 경제를 한꺼번에 추켜 세울 생각을 하지 말고 개미가 뼈다귀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전술로 경제사업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자강도를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1998년 1월16~21일)

82 81 을 하면서 고생은 하였지만 고생을 해본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고 말한다. 왜 냐하면 고난의 행군 을 하는 과정에 우리 일군들과 인민들 속에서 자체로 살 아가는 생활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42) (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업과 인 민생활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 1998년 1월16~21일 등 자강도를 현지 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188쪽) 물론 이런 혁신의 뿌리는 혁명적 군인정신 이다. 김정일의 현명한 영도 밑 에 자강도 노동계급과 인민들 속에서 창조된 강계정신은 혁명적 군인정신이 사회에 구현되어 창조된 정신이며 강계의 정신이 일반화되는 나날은 곧 인민 들속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이 더 높이 발양되는 나날 임을 강조하고 있다.(통일 여명 편집국 2003, 32쪽) 그러면 강계정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강계정신이란 수 령결사옹위정신, 당의 노선과 정책에 대한 결사관철의 정신, 자력갱 생 간고분투의 정신,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강계정신 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은 수령결사옹위정신이며 그것은 강계정신이 안고있는 모든 내용을 규제하는 근본정신입니다. 강계 정신은 혁명적 군인정신에 뿌리는 두고 있는 정신입니다. 강계정신 은 우리 인민군대에서 발휘되고 있는 혁명적 군인정신이 사회에 일 반화되는 과정에 창조된 정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강계정신은 위 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낳은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 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79쪽) 4.4 성강의 봉화와 제2 천리마 대진군 운동 북한은 자강도에서 모범을 창출한 뒤 모범의 전파를 위한 또다른 모델을 모 색한다. 이른바 봉화 형 모범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시작된 봉화 가 성강의 봉화 다. 여기서 봉화라는 이름은 전 노동계급이 따라 배울 수 있는 모범이라 는 의미를 지닌다. 성강의 봉화는 자강도의 혁신이 일어난 시점과 거의 일치한 다. 그러나 자강도의 강계정신이 공장보다는 중소형 발전소 건설에 좀더 무게 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혁명적 군인정신 전파 기제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1998년 3월9일 성진제강련합기업 소를 현지방문해 공업부문에서도 재건의 기치를 올리게 된다. 43) 42) 북한은 이러한 모범 창조를 일반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 1월29일 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전국 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 이 대회에서는 국가표창 수여 식이 진행되어, 23명에게 로력영웅 칭호와 함께 금메달 및 국기훈장 제1급이 주어졌고, 약 3천명에게 각종 훈장, 표창, 공훈칭호가 주어졌다. 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 는 그 뒤로도 각 지방, 각 부문에서 계속 진행되었다.(한호석 1999, 2쪽)

83 82 당시 성강의 상태 또한 공장 가동이 거의 멈추어버린 상태였다. 전기로를 돌리자고 해도 전기가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원료자재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 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성강이 멈춰서면 강철공업이 멎고, 강철공업이 멈춰 서면 나라가 멈춰서게 된다고 하면서 전기와 원료자재만 넉넉히 대달라고 호 소했다. 기업소의 관리일군들도 머리를 짜내며 토론을 거듭했지만 해결방도 는 좀처럼 찾아내지 못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96쪽) 이런 시점에서 김정 일이 성강을 찾은 것이다. 3월 9일 이른 아침 소문도 없이, 기별도 없이 문득 성진제강련 합기업소에 도착한 김정일 총비서는 로동계급의 고난의 자욱이 어 린 공장의 구내길을 지나서 전기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전기로 앞에서 고난은 많지만 그 속에서도 전기로에 불을 활활 걸고 쇠장 대를 억세게 휘두르고 있는 용해공들의 모습을 말없이, 오래도록 지켜보 았다. 그리고나서 노동자들에게 어려울 때마다 당을 받들어 온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이 다시 한번 천리마를 탄 기세 로 대고조의 선봉에 설 것을 호소 하였다.(한호석 1999, 17쪽) 김정일의 현지지도로 발화된 성진의 봉화 가 이룩한 성과는 크게 세가지이 다. 첫번째는 멈추어버린 용광로를 다시 가동시켰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여기 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제철 방식인 주체철 제조방식 을 창안해냈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기술개건에 나선 것이다. 성강의 봉화에도 노동자들의 희생적 투쟁 은 빠지지 않는다. 우선 노동자들 은 철강 생산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료 확보 에 나선다. 국가에서 철강 원료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주민들이 할 수 있는 방식은 바로 파철 모으기 였다. 그러나 파철 모으기도 단순히 수집이 아니라 생명을 건 투 쟁이라고 북한에서는 설명한다. 쇠물을 끓이자면 파철이 있어야 한다. 땅 우에 파철이 없으면 땅 밑에서 찾고 땅 밑에 파철이 없으면 바다물 밑에서 찾아 내자. 이렇 게 떨쳐 나섰다. 나어린 소녀도 학생복치마를 걷고 바다물에 뛰여 들었고 82살의 할머니도 머리에 파철덩이를 이고 나섰다. 뜻밖에 무너진 파철더미에 묻히여 생명이 경각에 이른 그 순간에 마지막힘 을 모아 손바닥에 관철 이라는 글자를 남기고 숨진 사람도 있었으 43) 성진제강련합기업소는 함경북도에 있는 제철소다. 이 기업소는 북한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노동자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소였다. 즉 해방 직후 1947년 9월26 일 김일성이 이곳을 찾아와 산재와 고역의 상징으로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던 원 철로를 과감히 폭파해버리도록 조치했던 곳이다.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1991, 139쪽

84 83 며 불의의 정황에서 위험에 처한 로동자들을 구원하고 숨지면서도 주체철을 꼭 성공시켜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웃으며 희생된 사람도 있었다.(노동신문 2003년 3월9일) 성강의 봉화 는 이밖에도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기중기운전공이 과로와 허기로 쓰러지면 한 여성노동자가 쓰러진 기중기운전 공을 대신하여 붉은 수건을 머리에 날리며 기중기 우에 올라 가 운전대를 잡 는다. 이런 모범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몸 그대로 견인차가 되여 역에서부 터 파철을 실은 차량을 끌고 밀고하며 현장까지 움직인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극한적 노동을 강요된다. 가족돌격대활동을 언제까지 하겠 는가 하는 당책임비서의 물음에 가족돌격대성원들은 성강이 장군님의 기쁨 으로 될 때까지 라고 답한다. 44) 북한은 성강 노동자가 이렇게 혁신에 나설 수 있었던 데 대해, 선군시대 최전선을 지키는 병사 였기에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즉 성강땅은 사회주 의를 지키는 최전선 이며, 성강의 노동자들은 단순한 로동자가 아니라 선군시 대의 1선병사 라는 것이다. 45) 자기들의 손에 쥐여 진것이 단순한 마치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망상을 깨버리는 무기이며 자기들이 끓이는 것이 단순한 쇠물이 아 니라 제국주의의 도전의 얼음장을 무자비하게 녹여 버리는 총대의 쇠물이라는 계급적자각, 병사가 군인선서를 어기면 비겁쟁이가 되 고 배신자가 되는것처럼 어버이장군님께 다진 맹세를 어기면 성강 사람이 아니라는 신념과 도덕륜리.(노동신문 2003년 3월9일) 이렇게 성강의 봉화에도 자강도와 마찬가지로 혁명적 군인정신 이 밑바탕 에 깔려 있다. 성강의 노동자를 군인으로 보는 이런 시각은 당시 노동현장에서 숨졌던 사람들을 혁명렬사릉에 안치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노동신문 2003년 3월9일) 이런 투쟁을 통해 성강은 놀랄 만큼 변신했다. 이 변신에 대해 <노동 신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시였던 그날에는 컴컴하고 흙먼지가 날리 44) 북한은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다 는 이런 신념이 기적을 낳은 성강의 쇠물철학 의 핵심 이라고 주장한다. 성강의 쇳물철학은 성강의 붉은 쇠물은 끓어도 최고사령관기를 붉게 물들이는 피방울이며 식어도 장군님결사옹위의 보검이 된다는 것 이다.(노동신문 2003년 3월9일) 45) 김정일은 이러한 성강의 봉화 의미에 대해 세기를 주름 잡아 달려야 하겠다고 하시면 서 평보가 아니라 구보로 달려야 한다 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노동신문 2003년 3월9일)

85 84 던 1강철직장이 멀끔하게 때벗이되였다. 전기로의 유압화가 실현되 여 14개의 전동기로 돌리던 로를 1개의 전동기로 돌리고 있으니 거 기에서 울리는 전기로의 동음소리는 전과는 달리 유정하다. 어버이 장군님께서 오시였던 그날에 안타깝게 연기를 내뿜었던 사연 깊은 고압관직장 현장에 지금은 콤퓨터화가 실현되여 고압관들이 시뻘 건 불줄기를 그으며 쭉쭉 흘러 나온다. 지난해에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 져 선군시대의 축복을 받은 성강의 주체철은 그사이에 더 높 은 기술적발전을 이룩하여 야금공업의 밝은 전망을 기쁘게 내다보 게 한다. 련합기업소는 물론 가족돌격대원들에게까지 당중앙위원회감사 문이 전달될 때, 생산을 정상화하고 주체철생산의 결정적돌파구를 열고 기술개건사업에서 위훈을 세운 많은 사람들에게 김일성훈장, 로력영웅칭호가 수여되고 박사칭호가 수여될 때 성강땅을 뒤흔들 던 감격의 환호 그 얼마나 뜨거움에 젖었던가. 성강의 봉화를 통해 혁명적 군인정신 을 공장에 적용시킨 북한은 이를 전 국화하는 작업이 들어간다. 북한 노동신문은 성강의 봉화가 전국에 타올라야 강성대국 건설의 거대한 나래를 펴고 세기의 령마루에로 치달아 오를 것 이 라고 주장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펴 주신 강선의 봉화를 따라 온 나라에 천 리마의 나래가 솟구쳐 오른 것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시대 에 지펴 주신 성강의 봉화를 타고 온 나라에 새로운 비약의 나래가 솟구쳐 올랐다. 성강의 봉화는 조선의 봉화이다. 어데서나 타올라야 할 봉화이다. 누구나 성강의 붉은 쇠물에 마음의 쇠장대를 찍어 기 적의 불을 달아야 한다. 수천수만 모든 사람들의 손이 봉화를 들고 온 나라가 창조의 불바다로 뒤덮일 때 우리 조국은 강성번영의 거 대한 나래를 펴고 세기의 령마루에로 치달아 오를 것이다. 북한은 이렇게 성강의 봉화를 전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해 벌인 운동이 제2 천리마대진군운동 이다. 제2 천리마대진군운동 은 1950년대의 천리마운동 때 의 노동정신으로 다시 돌아가 경제 재건에서 큰 성과를 내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성강의 횃불을 전체 노동계급이 본받아나가자는 운동이다. 즉 성진제 강연합기업소 종업원들은 궐기모임을 가지고 다시한번 천리마를 탄 기세로 세 계를 주름잡으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켜나갈 것을 결

86 85 의한 뒤, 이에 호응할 것을 전국의 모든 노동계급과 근로자들에게 호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강에서는 이렇게 해서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의 봉화 가 타올랐 습니다. 압연강제생산에서 긴장한 기능공 문제가 제기되자 압연공 출신의 일군들이 스스로 압연기를 만가동시켰고 조강직장들에서는 고속도 압연법과 두대치기 압연법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용하면서 매일 계획을 120프로, 150프로 넘쳐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공학관직 장과 유도로직장, 단조직장과 이중탄종합직장들에서도 새로운 혁신 이 창조되었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97쪽) 김정일은 제2천리마 대진군 운동 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준마를 타고 사회 주의 강성대국건설을 위하여 질풍같이 내달려야 한다 고 설명했다. 준마를 타 고 구보로 달린다는 것은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사상정신적 풍모와 투쟁정신을 본받아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새로운 현실의 요구에 맞게 제2의 천리마대진군 을 힘있게 다그쳐 나간다는 뜻을 형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성강의 봉화와 제2 천리마 대진군운동에서도 목적은 혁명적 군인정 신 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깃이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경애하는 장군님 께서 하신 말씀들은 사회에서 군대를 따라 배우고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 하기 위한 선풍을 일으키기 위한 봉화로 되었다 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성강 에서 타오른 봉화가 제2 천리마 대진군 운동 등을 거치면서 온 나라의 일터 와 마을들의 면모를 급속히 일변시켰다 는 것이다. 4.5 락원의 봉화와 과학 중시 정책 북한은 제2 천리마 대진군 운동을 펼쳐가면서 2000년 1월 성강의 봉화를 대신할 새로운 봉화를 찾는다. 바로 락원기계공장을 대상으로 한 락원의 봉화 가 그것이다. 김정일은 현지지도에서 락원기계공장의 노동자들은 빛나는 투 쟁전통을 가지고 있는 락원노동계급이 앞으로도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현대적인 기계설비들을 더 많이 창안제작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김 정일은 락원의 노동자들이 이를 통해 전국의 모범이 됨으로써 어버이 수령님 의 영도업적을 더욱 빛내이고 제2의 천리마대진군에서 온 나라의 앞장에 서야 한다 고 덧붙였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97쪽) 이에 따라 2000년 들어 유압 설비와 유압요소생산 공정을 더욱 완비하고 굴착기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전투 를 통이 크게 벌려나갔 다. 46) 46) 락원의 봉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크게 보아 두가지다. 우선 하나는 2000년까지도 북

87 86 북한은 이러한 락원의 봉화의 성과에서 성강의 봉화와 다른 점은 세계적 수준의 기계를 자체로 만드는 기적들이 창출됐다 고 강조하는 점이다. 한가 지만 실례를 든다면 락원의 노동계급은 주체89(2000)년에 전자유압식조정굴착 기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자유압식조정굴착기라고 하면 세계적으 로 발전되었다고 하는 몇 개 나라들에서만 생산하는 기계설비인데 국제시장에 서 그 한대 값이 십육만달러나 됩니다. 그런데 락원의 노동계급은 다른 나라들 의 것보다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98쪽) 이렇게 과학기술을 강조하게 된 데는 김정일이 1990년대 말부터 과학제일 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1998년 9 월 인공위성 광명성1호 를 쏘아올리고 1999년 정초 현지지도 장소로 과학원 을 택하는 등 과학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전 사회적으로 세계적 수준을 따 라잡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4.6 라남의 봉화와 첨단과학 강조 북한은 2001년 들어 다시 락원의 봉화 대신 라남의 봉화 를 강조하기 시작 한다. 라남의 봉화도 큰 틀은 다른 봉화와 다르지 않다. 즉 라남탄광기계련합 기업소 노동자들이 혁명적 군인정신 을 받아들여 어렵고 힘든 조건에서 혁신 을 창조했다 는 것이다.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노동계급의 주요한 성과는 엄혹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에 2개의 공장을 새끼쳤으며 최근에는 짧은 기간에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현대적인 설비들을 만들어 낸 (노동신문 노동신 문 2001년 11월28일) 것이다. 이런 기적 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노동자들이 혁 명적 군인정신을 체질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체질화한 사람들이다. 라남탄광기계 련합기업소의 일군들은 인민군지휘관들처럼 나를 따라 앞으로! 라 는 구령을 치며 대중의 앞장에서 돌파구를 열어 나가는 기수들이며 이곳 로동계급은 인민군 군인들처럼 영웅적 희생정신을 지닌 사람 한 공업에서 정상화 가 화두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김일성방송대학강좌는 1998년 성 강을 현지지도했을 때와 같은 맥락에서 2000년 현지지도를 정상화를 위한 것 이라고 지 적하고 있다. 주체87(1998)년 3월과 주체89(2000)년 정초를 비롯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공업발전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와 성진제강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여러 제철, 제강소들과 연관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생산정상화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워 주시고 걸린 문제들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통일여명 편집국 2003, 98쪽) 두 번째 사안은 락원의 봉화도 아무 것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현지지도를 실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락원 에서는 김정일의 현지지도 이전인 1999년에 이미 자 체의 힘으로 새로운 유압식 굴착기를 제작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통일여명 편집국 2003, 98쪽)

88 87 들이다. 이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 지도 전투장을 떠나지 않으며 순직한 아버지와 남편의 자리에 아들 이 서고 안해가 달려 나와 일손을 도우면서 당이 맡겨 준 임무를 결사관철한 것이 라남로동계급의 숭고한 헌신성과 희생성의 세계 이다.(노동신문 2001년 11월28일) 라남의 로동계급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현대적인 기계설비를 생 산할데 대한 어버이 수령님의 유훈교시와 당의 방침을 결사관철함 으로써 실적으로 당과 수령을 받들고 옹위하는 빛나는 모범을 창조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조국의 부름으로, 최상의 영예와 더없이 신성한 삶의 요구로 받아 안는 순결한 충성심,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 나 당의 명령지시를 목숨 바쳐 수행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숭고한 인생관, 당의 의도를 관철하는 길에 서는 역경과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죽음도 초월하는 불요불굴의 정신력, 바로 이것이 라남로동계급의 사상정신적특질이다.(노동신 문 2001년 11월22일) 혁명적 군인정신 이 라남의 봉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혁신의 주체들이 대 부분 제대군인 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라남에 집단 진출했다. 그들이 오늘 기업소의 쟁쟁한 초급 일군들로 자라났으며 무슨 일에서나 선봉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이다. 이 들에게는 작업장은 전투장이며, 작업과제는 돌파해야 할 전투대상이다. 군인에 게 전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집행되고 넘어야 하는 과제다. 제대군인들은 이 등식을 그대로 작업장에 대입시켰다. 북한에서 얘기하는 결사관철 정신 이다. 47) 그들에게 윤동락 동무는 말했다. 우리는 제대군인들이다. 언땅 에 배를 붙이고 조국방선을 지키던 병사시절에 명령을 놓고 흥정한 적이 있었는가. 한생을 병사시절처럼 살겠다는것이 말로써가 아니 라 실천에서 나타나야 한다. 47) 군인들의 명령관철, 투쟁의 의지가 어떠했는지는 다음의 일화가 잘 보여준다. 2001년 9월 라남땅에 집단배치된 제대군인들에게 공장에서 한달 휴가를 줬다. 그런데 제 대군인 김익현, 김남철동무들이 휴가를 받은지 이틀째되는 날에 사슬콘베아직장 초급당비 서의 사무실에 들어 섰다. 이들은 휴가를 가는 것도 노동규율 이라는 초급당비서의 말 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저희들은 휴가를 마쳤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 을 받고 달려온 우리가 어떻게 한달 동안 신들메를 풀어놓고 쉴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들 도 기대를 돌리고 싶습니다. 고향집의 부모님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노동신문 2001년 12월30일)

89 88 조국이 시련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당원으로 서, 제대군인으로서 량심적으로 살며 일해야 하오. 그 누가 시켜서 가 아니라 스스로 조국의 짐을 덜줄 아는 사람이 진짜배기로동계급 이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몰랐다. 전화의 나날 적의 화구를 가슴으 로 막아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 제낀 영웅전사들의 혁명정신으로 일 한다면 못해 낼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배짱이였 다. (노동신문 2001년 12월30일) 라남의 봉화 는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극한적 노동규율과 노동강도를 강요 하는 혁명적 군인정신 의 전 사회 확산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48) 그 러나 북한은 라남의 봉화가 이전의 봉화 와 다른 것은 특히 첨단과학시대에 선군정치의 승리를 담보하는 봉화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49) 북한은 라남의 봉화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 최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인 현대 적인 기계설비들을 자체의 힘과 기술, 지혜로 만들어 내는 기적을 창조 한 것 이라고 평가한다.(노동신문 2001년 11월22일) 지난 세기 우리 로동계급이 추켜 들었던 거세찬 봉화들은 사회 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 앞에 조성된 경제적 난관을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극복하고 생산과 건설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 위 한 봉화였다면 라남의 봉화는 우리 당의 위대한 선군정치의 정당성 과 불패의 생활력을 더욱 힘 있게 과시해 나가는 행정에서 타오르 게 된 봉화이다. 라남의 봉화는 비상히 높은 목표와 리상을 내세 우는 비약과 혁신의 봉화이다. 새 세기는 누구나 준마를 타고 구보 로 질풍같이 달려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상과 풍모, 투쟁기풍 과 일본새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면에서 세 계적수준을 돌파하자는것이 당의 의도이다.(노동신문 2002년 11월 29일) 48) 이러한 라남 노동자의 성과에 대해 김정일은 2001년 8월19일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를 찾아 라남 노동계급에게 절대관철의 투사들 이라는 칭호를 남겨주었다.(노동신문 2001년 12월5일) 49) 이렇게 라남의 봉화 에서 첨단과학을 강조하는 것은 라남의 봉화를 통해 21세기의 나아 갈 바를 선전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국이 부흥의 국면을 맞이한 새 세기의 첫해에 라남의 봉화가 타오른 것은 선군 시대 혁명적 대고조의 새로운 발단을 열어놓은 긍지 높은 선언으로, 21세기 혁명의 북소 리가 높이 울리게 하는 전환적 계기로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라남땅에 지펴 주신 봉화 는 전당, 전국, 전민을 새 세기 강성부흥을 위한 총 진격에로 부르는 새로운 비약과 혁신 의 봉화"이다.(노동신문 2001년 11월22일)

90 89 그러나 라남의 봉화는 세계첨단 이 자력갱생 과 쌍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서 일종의 불협화음을 이룬다. 북한의 이러한 불협화음에 대해 오늘날의 자력 갱생은 현대적인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이기 때문에 모순될 것이 없다 고 설명한다. 과학기술을 떠나 오늘의 자력갱생에 대하여 말할 수 없고 그 어 떤 혁신적인 봉화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위훈을 창조한다는 것은 곧 자체의 힘으로 과학기술의 새로운 요새를 점령해 나가는 것이다. 라남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현대적인 기계설비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훌륭히 생산함으로써 우리 당의 과 학기술중시방침의 정당성과 불패의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 다.(노동신문 2001년 2월3일) 그러나 라남의 봉화 의 내용을 뜯어보면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상 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남의 봉화 의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는 것 도 사실상 안변청년발전소, 강계정신, 성강의 봉화, 락원의 봉화 등으로 이어지 는 극단적 노동규율/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생산 정상화와 다르다고 보기 어렵 기 때문이다. 그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단번치기 라남의 봉화를 설명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단번치기 이다. 북 한은 생산조건을 주동적으로 마련하면서 단번치기 와 같은 종전에는 감히 엄 두도 내지 못한 가공방법들을 도입해 생산에서 일대 비약과 혁신을 일으켰 다 (노동신문 2002년 12월6일)고 단번치기를 설명한다. 그 말은 몇해 전 한 광산에 보내줄 대치차(대형 톱니바퀴)를 가공할 때 생 겨난 말이다. 그때 기업소에 맡겨진 과제는 한달 동안에 대치차를 4대나 가공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는 대치차 한대를 가공하는 데만도 40여일이 걸 렸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풀어준 것이 바로 단번치기 다. 그때까지 치차가공은 세번에 나누어 진행되였었다. 가공능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조건에서 단번에 가공작업을 진행하여 시간 을 대폭 줄이자는 발기였다. 대담한 제안이였으나 머리를 기웃거리 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단번치기를 하면 기대가 많은 부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여 치차이발가공에서 자그마한 오차

91 90 를 내여도 육중한 치차소재가 오작품으로 되여 오히려 엄중한 후과 도 빚어 낼수 있었다. 다음날 기업소에서는 예술영화 <압연공들> 에 대한 실효모임이 진행되였다. 드넓은 관람석에는 책임일군들과 치절공들 20여명만이 앉아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1만톤의 강재 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하시였을 때 대담하게 두대 치기를 하여 6만톤 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톤의 강편을 밀어 내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한 강선로동계급의 영웅적투쟁을 감명 깊 게 보여 준 영화는 관람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노동신문 2001 년 12월10일) 50) 이런 과정을 거쳐 노동자들은 단번치기 에 나섰다. 그것은 치절 력사에 없 는 대담한 일이였다. 왜냐하면 대치차의 수백개 이발들을 가공하던 중 단 한 개만 잘못되여도 나라의 귀중한 재부가 하늘로 날아 나는 셈 이었기 때문이다. 라남의 노동자들은 모험이라고 하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번치기 를 시 행했다.(노동신문 2002년 1월24일) 그의 호소에 작업반원들이 떨쳐 나섰다. 그들은 보링반의 작업 대 우에 대치차를 한 부분씩 올려 놓은 다음 이동식로라를 달아 주 고 받치개도 설치하여 치차의 중심을 맞추었다. 그리고 서로의 지 혜를 합쳐 가며 여러가지 치절지구를 자체로 만들어 리용하였다. 최훈, 김철위, 김철준, 류상철동무를 비롯한 기대공들은 현장에서 침식을 하면서 돌격전을 벌렸다. 마침내 그들은 4대의 보링반으로 한주일동안에 한대의 마광기대치차가공을 끝내는 혁신을 창조하였 다. 이것은 전례 없는 기적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기계공업력사에도 보링반을 가지고 마광기대치차를 가공해 본적이 없을것이다. 혁명적군인정신을 체질화한 라남의 로 동계급이 아니고서는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으랴.(노동신문 2002년 1월24일) 50) 여기에는 라남 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가 안변청년발전소를 참관했던 것이 크게 작용 했다. 이것은 잘 알고 있는 그는 40일 후에 보다 중요한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서 일반적연설이 아니라 안변청년발전소를 참관하며 느낀 혁명적 군인정신에 대한 이야 기를 꺼냈다. 그가운데서 인민군 군인들이 명령을 제 기일 내에 관철하자고 물길굴 속에 서 밤낮을 모르고 투쟁한 이야기, 명령을 관철하고서야 조국의 푸른 하늘을 떳떳이 바라 보았다는 이야기는 이날 따라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롭게 새겨 졌다. 동무들, 무산동무 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소.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말씀관철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우 리가 잘 안받침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로동신문 2002년 1월24일)

92 톤 로 에서 10톤 소재 만들기 주강직강에서도 큰 과제가 떨어졌다. 대형베트(벨트) 소재를 부어내야 할 10톤 전기로의 숨결이 멎어 버렸는데, 10여톤에 달하는 현대적인 기계설비 의 베트 소재를 부어내야 할 과업이 제기 된 것이다. 당시 10톤 전기로를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극도 보장 받 을수 없었고 내화벽돌도 엄청나게 모자랐으며 전기사정도 긴장했 다. 그 전기로를 살리자면 어려움을 겪는 나라에 손을 내밀어야 하 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할수 없다고 생각한 라남의 로동계급이였다. 과연 라남의 힘으로 10여톤의 소재를 부어 낼수 없단 말인가. 심각 한 그 물음앞에 라남로동계급 누구나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해 내야 한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들을 믿으시 고 주신 과업인데 죽으나사나 무조건 우리 힘으로 해내야 한다. 이때 로의 밑바닥을 파내고 로벽을 보강하는 방법으로 로 용적을 늘여 장 입량을 보장 하자는 착상이 제기됐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일군들과 기술자 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었고, 여기에서 로벽이 부하를 받으면서 쇠물이 터져 나 오게 되면 그 후과를 생각해 보았는가 고 누군가가 물었다. 이에 착상 제안자 는 가슴을 쭉 펴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쇠물이 터져 나오게 되면 그 쇠물을 우리 용해공들은 가슴으로 틀어 막을 것입니다. (이상 노동신문 2001년 12월5일) 대형 주물 부어내기 주형1작업반원들에게는 아직까지 누구도 해보지 못했던 대형주형을 제작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이에 주형1작업반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 며 억척같은 의지에 의해 한달 동안에 해야 할 대형주형물 제작전투를 20일 동안에 성과적으로 끝내는 혁신이 일어나게 되였다. (로동신문 2001년 12월5일) 페타르를 대용연료로 이용하는 가열료 제작 기업소의 기본가공 소재를 맡은 단조직장에도 과제가 떨어졌다. 페타르를 대용연료로 리용할 수 있게 가열로를 개조 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단조직장 노 동자들은 이미 자체의 힘으로 초무연탄에 의한 증기복합식가열로를 만들어

93 92 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열로개조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미 있던 로 벽체를 허물고 새로운 로를 쌓아야 하였고 연료분사구며 취입구도 새로 만 들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손끝이 닳게 한돌기한돌기 벽체를 쌓고 페타르를 주입하 여 불을 지피는 시험을 여러 차례 진행하였지만 가열온도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그렇게 10차례의 실패를 겪었을 때에는 모두가 지쳐 작업현장에 그대로 주저 않았다.(로동신문 2001년 12월5일) 단조작업반원들이 힘을 낸 것은 항일혁명투쟁 때 투사들의 모습이다. 이들 은 당세포비서와 함께 항일혁명투쟁참가자들의 회상기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 낼 일이 없다>를 읽어내려간 뒤 회상기감상발표모임을 진행했다. 이 자 리에서 당세포총회를 진행한 당원들은 억센 두손을 추켜 들어 결정서를 채 택 했다. 첫째, 로개조가 끝날 때까지 당원들은 전투장을 뜨지 말고 결사 전을 벌릴 것. 둘째, 부족되는 내화벽돌은 당원들이 앞장에 서서 내 부예비를 탐구동원하여 해결할 것. 이어 또다시 가열로 개조전투가 벌어졌다. 이들은 전투장에 내화벽돌이 부족되면 그들은 수십리나 떨어 진 곳에 가서 버럭무지를 헤치며 한장두장 골 라 배낭에 지고 왔다. 이윽고 그들은 11번 실패한 뒤 12번째에 성공할 수 있 었다.(이상 노동신문 2001년 12월5일) 베트 가공 사업 길이가 6메터, 무게는 10여톤에 달하는 베트(벨트)를 한꺼번에 여러대를 가 공해야 하는 과업을 해결한 것도 라남의 봉화 의 성과 중 하나이다. 이 문제는 애초 다른 공장의 방조 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는 조건이 어려워 가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기업소일군들의 협의회에 서 지배인동무는 베트가공을 자체의 힘으로 해제낄 결심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한번도 해보지 못 한 일인데 정밀도를 보장할 수 있겠는가, 제 기일 내에 가공을 끝낼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회의장을 맴돌았다. 이때 찌렁찌렁한 목 소리가 참가자들의 귀청을 때렸다. 우리에게는 물러 설 자리가 없

94 93 다. 죽으나 사나 우리가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베트를 가공하는 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 정책을 관철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그날을 앞 당기기 위해 우리모두 힘과 지혜를 합치자. (노동신문 2001년 12월 10일) 이런 결심으로 라남의 노동자가 택한 방식이 베트 길이의 절반정도밖에 안되는 보링반의 작업대 우에 소재를 올려놓고 가공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 로 정밀하게 가공한다는 것은 기존관념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 다. 하지만 그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떨쳐 일어 나 가공전 투를 벌렸다. 낮에 밤을 이어 가며 진행되는 전투의 앞장에는 일군 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기대공들과 함께 기대를 돌리기도 하고 기 능공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새로운 가공기구를 창안하기도 했으며 쉴 참에는 노래도 함께 부르면서 전투를 이끌어 갔다. 그들의 헌신 적인 투쟁에 의하여 그처럼 어렵다고 하던 베트가공 문제가 성과적 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노동신문 2001년 12월10일) 전력난 돌파 고난의 행군 시기 라남탄광련합기업소가 겪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심 각한 전력난이다. 당시 기업소는 필요한 전력의 4분의 1밖에 공급받지 못했 다. 이 정도의 전기 공급으로는 기업소의 주강로들을 도저히 돌릴 수 없는 상 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소의 간부들은 족답기를 만들어서 선 반을 돌릴 결심 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런 고민 끝에 라남탄광련합기업소 기사 장은 기업소의 전기를 모두 주강로에 집중시켜 쇠물을 뽑자 는 독창적인 방 안을 제시했다. 대상설비생산에서 돌파구를 열어 놓은 집중용해, 집중단조, 집중가공 방법은 이렇게 당의 의도를 관철하는 길에서는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는 라남사람들의 불 타는 심장이 낳은 고귀한 창조의 열매였다. 당정책을 관철하기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비장한 각 오를 가지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느라면 반드시 방도가 나서는 법 이다.(노동신문 2001년 12월10일)

95 94 이렇게 노동자들은 한달에 열흘은 집중용해 를 위해 전력을 집중하고, 또 다른 열흘은 집중단조 에 전력을 모았으며, 나머지 열흘은 집중가공 을 위해 전력을 사용했다. 북한은 라남 노동자들의 이런 지혜를 통해 열악한 전기사정 속에서도 철 생산이 가능해지는 기적 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설계 문제 해결 라남에서 봉화를 올리라는 김정일의 과업이 떨어졌을 때 겪은 또다른 문제 는 준비된 기술력량도 없었고 공작기계들도 모자랐다 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설계가들의 부족이다. 라남의 설계가들은 현대적 인 기계설비에 대한 파악이 별로 없었고 설계경험도 부족 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라남탄광련합기업소 설계사들은 대규모 설계 를 완성해낸다. 그들은 어느 한 공장에서 이미전에 만들다가 실패한 그 기계설 비와 설계문건들을 하나하나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 실패의 원인을 찾아냈으며 조종계통을 비롯한 많은 부분품을 완전히 우리 식으로 새롭게 해야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까지 그 기계설비에 대한 기술적 내용은 세계적으로 비밀에 붙여져 있었고 다른 나라의 문헌 들에도 언급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지혜, 우리의 기술, 우 리의 힘으로 그 기계설비를 만들어 낼 높은 목표를 세우고 낮고 밤 이 따로 없는 긴장한 전투를 벌렸다.(노동신문 2001년 12월28일) 그러나 이런 설계사들의 노력을 보는 로박사들과 이름 있는 설계가들은 의아한 눈빛 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라남의 설계사들이 가지고 있는 학력이 라야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학을 배운 것 뿐 이었기 때문이 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세계적으로도 몇개 나라에서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현 대적인 기계설비의 설계를 우리 식으로 개작할 수 있을 것 으로 기대하기 어 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 설계사들은 혁명적 군인정신 이 살아 있는 한 이것은 가능한 일로 여겼다. 다른 나라의 본을 그대로 따서는 언제 가도 그들을 따라 앞설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설계, 우리의 힘으로 현대적 인 기계설비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습니다. 그들은 인민대학습당 과 룡성, 강계를 비롯한 전국의 방방곡곡을 오가며 자료조사를 진 행하였고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을 밝히며 무려 1만여매에 달하는

96 95 설계도면을 그렸다.(노동신문 2001년 12월28일) 51) 이런 과정과 희생을 뚫고 라남의 설계사들은 1만여매의 설계를 완성해낸다. 이에 따라 라남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계설비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 련된 것이다. 기업소에 손을 내밀어야 작업반의 요구대로 줄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박용범동무는 관을 나무불로 달궈서 설계의 요구대로 구 부릴 것을 결심하였다. 그렇게 해서 꽤 되겠는가 하고 자신을 가지 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박용범동무는 말하였다. 패배주의가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꽤 되겠는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는 것이 패 배주의입니다. 패배주의를 불 사르고 그 어떤 목표도 자기 힘으로 점령하라는것이 당의 요구입니다. 하겠다고 결심해서 못해 낼 일이 없다는 것이 미국놈들이 100년 걸려도 일어 설수 없다고 하던 페허 우에 보란듯이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운 1950년대의 영웅전사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정신이 아닙니까. 해봅시다. 하면 됩니다. (노동 신문 2002년 1월28일) 52) 첨단기계 제작 51) 이 과정에서 많은 설계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영예군인인 그가 그 다리를 끌고 생산현장과 설계실을 오갔다고 생각하니 한석주동무의 눈굽은 뜨거워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우리는 지금 전투를 하고 있소. 설계를 끝낸 다음 병원에 가겠소. 얼마후 동지들의 권고를 뿌리치며 함흥으로 자료조사를 떠났던 황 영재 동무는 현장에서 희생되였다. 그가 남긴 것은 수자들이 빼곡이 씌여진 자료수첩이였 다. 그러던 두해 전 어느 날이였다. 현대적인 기계설비제작에 절실히 필요한 650톤 크랑크프 레스의 설계를 맡은 차광일 동무가 또다시 동지들의 곁을 떠났다. 여러해 동안 권양기직 장의 생산현장에서 침식을 하며 200여매에 달하는 설계도면을 완성한 그는 부분품들의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할 착상을 무르익히다가 겹쳐 드는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끝내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차광일동무는 자기의 착상이 적혀 있는 수첩을 한석주동무에게 넘겨 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라남의 일군들과 로동계급, 기술자라면 누구에게나 자기의 전호 가 있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 당이 준 과업을 끝까지 수행하는 길에서 라남의 기술자들은 돌격전의 앞장에 자기들을 세웠다.(노 동신문 2001년 12월28일) 52) 여기서도 이런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제대군인이라는 점이 특히 강조된다. 박용범 동무는 인민군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작업반을 군사복무 시절의 그 정든 분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혈육보다 가깝고 생사운명을 같이 하는 동지들의 집단이 분대가 무장강행군을 하던 때를 생각하였다. 혁명적 동지애, 전우애가 집중적으로 발현되 는 것도 그 강행군이였다. 무거운 짐을 내가 지고 먹을것은 전우의 입에 먼저 넣어 주는 것도 그때였다. 오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분대가 한마음한뜻이 되여 달렸다. 분대는 오늘도 강행군을 하고 있다. 박용범 동무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병사시절처럼 박 용범 동무는 동지들을 위하여 자신을 묵묵히 바쳤다. (노동신문 2002년 1월28일)

97 96 그러나 설계가 만들어졌다고 세계적으로 발전된 나라들에서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현대적인 새 기계 를 쉽게 만들 수는 없 는 일이었다. 많은 품을 들였으나 실패가 거듭 되였고 그 길에서 목숨을 잃 은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잃은 사람들 도 생겨났다. 특히 기계의 심장부를 이루는 부분을 자체로 만들 수 있는가 없 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 설비를 전문으로 만 드는 공장에서도 만들기 힘들어 하는 실례를 들면서 그것만은 사와 야 하지 않겠는가고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석주동무는 그에 동의할 수 없었다. 기계의 심장부를 이루는 계통을 수입한다 면 거기에 무슨 우리 것이 있겠는가. 남의 심장을 달고서야 어떻게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그 설비도 우리 손, 우리 식 으로 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신문을 보면서도 자신을 채찍질하 였습니다. 달리는 야전차 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것이 자신의 휴 식의 전부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가 걷는 걸음 이 더딘 것만은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노동신문 2002년 1월26일) 이런 정신에 바탕을 두고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과 기술집단 은 간고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세계적으로 기계공업이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 라들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현대적인 기계설비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현대과학과 기술의 종합체 라고 하는 그 기계설비를 본 사람은 없었지만 어 버이 수령님의 유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으로 받아안고 그 관철을 위하여 사생결단의 각오를 안고 떨쳐 나갔기에 가능했던 성공이다 라남의 봉화에 나타난 혁신 평가 라남의 봉화 에 대해 북한은 21세기형 봉화, 첨단과학을 실현한 봉화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한 라남의 봉화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보 면 라남의 봉화 와 첨단과학 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라남의 봉화는 21세기에 맞춰 과학기술 중시라는 북쪽의 정책방향을 선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단번치기 등 봉화의 사례들이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별다른 기술적 검토도 없이 김정일에 대한 결사관철 의지 만으로 시행 된 사례라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폐타르 대용연료 가열로 제작 처럼 심각한 에너지난 연로난 때문에 어 쩔 수 없이 시행했지만, 사실상 효율성은 낮을 것임이 확실해 보이는 사안들도

98 97 있다. 또 5톤 로에서 10톤 소재 부어내기 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러 가지 안전 수칙을 무시한 채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북한이 라남의 봉화가 첨단과학을 실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핵심인 첨단기계의 설계 및 가공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 수준도 낮고 인원도 부족한 설계인력들이 한번도 보지 못한 세계 일류 기계를 설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 능한 일이다. 북한이 완성했다는 설계나 기계도 진짜 세계적 기계와 비교할 때 많은 차이가 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라남의 봉화 는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해 첨단과학을 실현한 것이 라기보다는 21세기에 맞춰 첨단과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선전한 것 으로 해석 할 수 있다. 5. 선군정치의 한계 5.1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론 북한은 1999년 1월1일 북한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 사설을 통해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라는 공 동사설을 발표했다. 이때 강성대국이란 사회주의강성대국 이다. 김정일은 이 에 대해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사는 나 라가 사회주의 강성대국 53) 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에 대한 기대 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강성대국, 바로 그것이었다. 남들처럼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나 라가 아니다. 이 세계의 당당한 강성대국을 일떠세워야 한다는 바 로 이것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이 가도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더욱 뜨겁게만 불타오르는 우리 장군님의 희망이다. 선군, 바로 여 기에 가장 위대한 희망이 있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이 공장이 나 살리고 쌀독이나 채우는데 급급했다면 오늘과 같은 강성대국이 53) 김재호 2000, 2쪽. 강성대국은 영토의 크기나 인구의 대소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민족 의 자주권과 존엄을 확고히 지킬 수 있고 민중들이 국가와 사회의 당당한 주인이 되어 자주적이 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이를 믿음직하게 담보할 수 있는 강유력한 정치, 군사, 경제적 힘을 가진 나라 김재호, 2000, 3쪽. 주로 서방자본주의나라들이 경제대국, 군사대국, 세계의 초대국으로 자처하지만 결코 정치대국으 로는 될 수 없으며 일본 역시 경제대국으로 행세하지만 정치대국으로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주의대국들은 엄연한 의미에서의 강성대국이 아니다. 같은 책 8쪽

99 98 라는 크나큰 목표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시고 는 그이께서는 자본주의는 내일이 없다, 우리는 희망찬 내일을 안 고 산다, 오늘은 좀 남 보다 못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앞날이 있 다, 우리 인민은 순간의 번화가가 아니라 영원한 번화가를 창조하 고 있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노동신문 2002년 3월20일) 강성대국은 크게 두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는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하여 그 어떤 적도 건드릴 수 없는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둘째로, 전체 민중이 아무런 걱정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부흥한 나라를 만들어 야 하는 것이다. 54) 강성대국 건설론이 어떤 방식이냐는 김정일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확인된 다. 우리는 당의 령도적 역할을 더욱 높여 전당과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강성 대국건설을 위한 총 진격에로 힘 차게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김재호 2000, 54 쪽) 이처럼 강성대국 전략은 북한이 총진격 해갈 청사진이다. 그런데 이는 현 재로서는 경제건설론의 성격이 강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강성대국 건설 에서 북한이 시급하게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경제건설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은 세상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정치사상적 위력과 군사적 위 력은 이미 강성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며 이제 우리가 경제건설에 힘을 집 중하여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제 궤도에 올라서서 생산을 꽝꽝하게 만들면 얼 마든지 경제강국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 55) 다 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렇게 경제강국이 되는 시행방법으로 전민이 사상중시, 총대중시, 과학기술중시 로선을 틀어쥐고 총진군을 다그쳐나가야 한다 (노동신문 2003년 1월1일)고 제시한다. 특히 북한은 이중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과학기술은 강성대국건설의 추동력이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이 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이 좌우된다. 과 학의 용마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난해 전선시찰의 길에서 돌아 오시는 길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에 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총대와 과학을 강성대국건설의 보검으 로 틀어쥐신 위대한 실력가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과학을 중시하시 는 위대한 정치가, 최신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 조예가 깊으신 다 재다능한 영도자를 모시어 우리 과학의 용마에는 세기적 비약의 나 래가 돋쳤다. 강성대국의 성공탑은 피땀으로 쌓아지는 것이다. 자기 54) 김재호, 2000, 김정일강성대국 건설전략, 평양출판사, 13쪽. 55) 김재호 2000, 13쪽.

100 99 의 뼈심 들여 일하지 않고 잘 살아 보겠다는 것은 허황한 생각이다. 이악하고 성실한 노동을 바쳐 높은 노력적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조국의 번영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애국자가 많을 수 록 강성대국의 미래가 앞당겨 진다.(노동신문 2002년 1월8일) 혁명적 군인정신 은 이러한 강성대국의 3요소 중 사상중시, 총대중시 의 매 우 강력한 시행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은 물질만능의 원리 가 작용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생명이라면 인민대중이 주인으로 되고 있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상이 생명 (김재호 2000, 17쪽)이라고 강조한다. 김정일은 또 사회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한 민중은 그 어떤 힘으로도 정복 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사상이 확고히 지배하는 사회는 절대로 붕괴하지 않는 다. (김재호 2000, 19쪽)고 밝히고 있다. 56)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고난의 행군 과 강행군을 거치면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행군 극복 만으로 강성대국을 이룰 수는 없다. 고난 의 행군 극복 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혁명적 군인정신 과 선군정치 라 할 때 이 요소들이 강성대국 건설의 또다른 요소인 과학중시 를 충족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혁명적 군인정신 이 과학기술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첨단 과학기술을 담보한 봉화라고 선전한 라 남의 봉화 에서도 봤듯이 혁명적 군인정신 이나 선군정치 를 통한 과학기술 중시 는 한계가 명확해 단지 선전용 으로만 쓰일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이 혁명적 군인정신 은 과학기술중시 와 관련해서는 선전에 치우친 나머지 실질적인 과학기술 발전 에 역행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이렇게 혁명적 군인정신 이 끊임없이 과학기술중시 정책을 방해한다면 강성 대국 건설론은 내부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57) 다음 소절에서는 이런 모 56) 이런 주장은 주변의 경제조건을 무시하는 지나친 낙관론으로 비화한다. 김정일은 이와 관련 해 오늘 이북이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봉쇄를 련이어 받고 있는 조건에서도 민중이 자력갱 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기만 하면 경제강국 건설을 성공리에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굳게 확신 (김재호 2000, 22쪽.)한다는 것이다. 57) 이에 대해 북한은 강성대국과 선군정치(혁명적 군인정신)는 전혀 마찰이 없다고 주장한다. 선군정치도 강성대국의 정치방식이고 일심단결도 강성대국의 참모습이다. 강성대국의 메 아리답게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의 혁명군가가 강산을 찌렁찌렁 울리고 강성대국의 면모를 갖추며 올망졸망 뙈기논들이 번듯하게 정리된다. 위대한 장군님의 높으신 권위로 하여 세 계정치와 국제관계에서 조선이 노는 역할이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되고 있으며 조선은 대 국이라는 목소리가 날을 따라 크게 울려 나오고 있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곧 우리의 강성대국 이라고 웨친다. 강성대국은 위대한 백두산장군을 그대로 닮은 나라이 다. 위대한 장군님의 존엄이 우리 조국의 위신이고 장군님의 위력이 우리 조국의 힘이며 장군님의 모습이 강성대국조선의 모습이다. (노동신문 2002년 1월8일)

101 100 순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5.2 강성대국 건설론과 선군정치의 마찰 북한은 선군정치 와 그 핵심인 혁명적 군인정신 의 전 사회적 전파를 통해 무너졌던 경제를 어느 정도 추스릴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대부분을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북한 경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적 은 폭이지만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를 근근히 지탱해 나가는 것으로는 강성대국 의 목표를 이루어나가기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의 주장대로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여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사는 나라 인 강성대국 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이 지금보다는 월등히 높아져 야 한다. 58) 이때 핵심적인 사안은 강성대국의 세 번째 요소인 과학기술중시 노선을 본격적으로 산업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봤듯이 북한은 극심한 대외경제봉쇄로 자본 및 기술유입이 안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 북한은 이렇게 한정되고 낙후된 자본 의 조건 속에서 극단적 노동규율/노동강도를 강 조하는 혁명적 군인정신 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고난의 행군 을 극복했다. 그러나 이런 노동강도 강화 방식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북한의 경제 상황을 장기적으로는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은 1999년부터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벌여왔으며, 2001년이 시작 된 라남의 봉화 에서는 세계에서 몇 개의 나라밖에 제작하지 못한 첨단 기계 를 제작 하는 성과를 보였다고 밝히고 있다. 59) 과학기술에 대한 강조는 특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매우 강화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과학중시사상에는 과학기술강국건 설의 목표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공화국의 과학기술을 최단기간에 세계적 수준에 올려세우는 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중시사상은 기성관례나 기성 공식에 구애됨이 없이 남들이 몇 백년동안에 한 일을 짧은 기간에 이룩하며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 서 세계적인 것을 창조할데 대한 높은 목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58) 중국이나 베트남 등 개혁 개방에 나선 사회주의권 국가는 1990년대 내내 연 10%에 가 까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따라서 북한이 2000년대 들어와서 소폭의 플러스 성 장으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이들 나라와 비교한다면 계속 뒤쳐지고 있는 셈이다. 59) 북한은 라남의 성과가 과학기술에 기초한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오늘날의 자력갱 생은 현대적인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이다. 라남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당이 맡겨 준 중요대상설비생산과제를 자체의 힘으로 수행하게 된 것은 기술혁신운동을 힘 있게 벌 리고 기술자, 로동자들의 창조적협조를 강화한데 있다. (노동신문 2001년 11월22일)

102 101 (통일여명 편집국 2003, 90쪽)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라남의 봉화 역시 과학적이라기보다는 혁명적 군인정신 관철이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60) 문제는 이런 요인들이 자본-노 동 비율 향상에 대한 절박성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본 투자가 소홀 하더라도 생산성 하락을 대중적 증산운동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유혹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혁명적 군인정신을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 전략은 북한 경제의 장기적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자본비율을 높일 수 없는 것은 북한 내부적인 요소뿐 아니라 외부적 환경탓이 크다. 61) 과학기술 수준 향상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외부적 환경이 북미가 미수교와 그에 따르는 경제제재 및 투자제한이다. 과학기술 수 준 향상을 위해서는 이런 외부적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이런 외부적 환경 변화는 과학기술 수준 향상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이 노 동시장 등 시장정책을 수용할 때 보다 가능성 있는 국내조건을 만든다는 점에 서도 중요하다. 즉 북한이 과학기술수준 향상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강화하 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동원체제를 노동시장제도로 바꾸어나가고자 할 때, 노동자들의 저항이 동반되기 쉽다. 중국에서도 개방 과정에서 노동자들 이 공식 노조인 총공회 의 틀에서 벗어나 독립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개방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함으로 써, 노동자들이 반정부화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것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서방 진영과의 무역 확대가 진행됐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이었 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미국이 경제제재 등 외부적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 한 개방기 중국이 경험한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제는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을 완수하기 위해 사상 총대 중시 가 충분조 건이고 과학 중시 가 충분조건 이라 할 때, 이 충분조건 수행을 위한 과정이 혁명적 군인정신 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한 노동규율 재강화 전략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60) 물론 이에 대해 북한에서는 과학도 사상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기술강국을 건설하 는데서 당의 사상이론적 지침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당의 사상이론적 지침에는 당의 과학기술전략과 영도방식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과학을 어떤 위치에 놓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은 현대정치가의 실력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로 됩니다. (통 일여명 편집국 2003, 89쪽) 61) 지금 우리는 전후시기와 같은 어려운 조건에서 사회주의건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 미에서는 지금의 형편이 전후시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후시기에는 비록 모든 것이 파괴된 빈터에서 복구건설을 시작하였지만 그래도 그때에는 사회주의나라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이 무너진 조건에서 우리가 혁명 과 건설을 하면서 유례없는 시련과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자강도의 모범을 따라 경제사 업과 인민생활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 1998년 1월16~21일 등 자강도를 현지지도 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김정일저작집> 14권 186쪽)

103 102 과학기술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부 세계와 수교 등 관 계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적 군인정신 을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무너진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 뒤 높 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할 때 적합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62) 6. 결 론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으로 고난의 행군 이라 는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고난의 행군은 에너지난 자재난에 의해 공 장 가동이 멎고,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에너지난 식량난의 결과였던 노동규율 해이 가 고난의 행군이 장기화하면서 경제 재건에 중요한 걸림돌로 대두하자 북한 당국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한다. 북한 지도부는 이 가운데 군부를 중심에 놓는 방식을 해결 방도로 선택한 다. 즉 1996년 9월 완공된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에서 행한 군인 건설자들의 건 설 실적을 하나의 모범으로 만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은 무리한 공기, 빈약한 지원 및 설비, 무방비 상태에 가까운 안전장치 등 정상적인 노동관행으로 볼 때 많은 문제점을 지닌 것이다. 이에 따라 군인 건설자들의 희생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군인 건설자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김정일 명령 결사관철 의 모범을 창 출해냈다. 북한 당국은 이 모범을 혁명적 군인정신 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를 토대로 선군정치 라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만든다. 선군정치는 군대가 국가 보위 도 하고 경제 건설도 하는 것 을 의미한다. 북한은 선군 정치의 등장 배경에 대해 미국과 대치국면 속에서 총대를 틀어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북한은 군의 역할을 단순히 국가 방위에 두었던 이전 의 다른 군사정책과는 달리 군을 통해 경제건설 및 문화건설, 인간성 개조 등 사회의 전 범위를 개조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중 특히 경제건설은 혁명적 군인정신 의 민간 확산을 통해 이룬다는 것 이 북한의 전략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8년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지도를 시 62) 이밖에도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한 노동규율/노동강도 강화 전략이 어느 정도 지속성을 지닐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혁명적 군인정신 은 인간의 극한적 한계를 추구하는 것 이기 때문에 계속 정치적 선전을 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이때 정치선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으며, 또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데 혁명적 군인정신 의 일 반화를 통한 경제재건전략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104 103 작으로 본격적인 혁명적 군인정신 확산 운동에 나서게 된다. 자강도 사람들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따라 희천기계공장의 가동을 다시 시작하고 많은 수의 중소형 발전소를 건설해나간다. 이때 자강도 공장은 많은 기능공과 기술자 노동자들이 굶어죽거나 굶주림 속에서 공장을 떠난 상황이었다. 북한은 혁명적 군인정신 이 이런 자강도 사람 들에게 혁신의 마음을 심어줬다고 주장한다. 자강도 인민들이 혁명적 군인정 신 을 이어받아 생산 정상화와 중소형발전소 건설의 임무를 완수해냈다는 것 이다. 북한은 이런 자강도 인민들의 결사관철 정신을 강계정신 이라고 부르면 서 강계정신의 확산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북한은 자강도 외에 여러 차례 봉화 를 올리면서 공장 내부 재건에 나선다. 1998년 성진제강 에서 맨처음 나타난 봉화는 2000년 락원의 봉화, 2001년 라남 의 봉화로 이어지면서 혁명적 군인정신 을 공장 내에서 재현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성강의 봉화, 락원의 봉화, 라남의 봉화로 이어갈수록 과학기술에 대한 강조는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봉화 정책 은 사상 강조, 결사관철 등을 통해 극단적 노동규율/노동 강도를 강조하는 혁명적 군인정신 을 공장 노동자들에게 투영시키는 구실을 해왔다. 특히 라남의 봉화 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첨단기계 를 완성한 사례로 북한에서는 선전된다. 그러나 라남의 봉화 의 내용을 살펴보 면 다른 봉화와 마찬가지로 극한적 노동규율/노동강도를 강조하는 패러다임이 강할 뿐 북한에서 주장하는 첨단과학과는 거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혁명적 군인정신 전파를 통한 경제재건 전략은 무너진 경제를 다 시 돌아가게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론과는 상충하는 측면도 많다. 무엇보다 강성 대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야 하며, 이에는 과학기 술 수준 향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혁명적 군인정신 의 확산을 통한 노동규 율 재강화 전략을 통해서는 이를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기술 수준 향상 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수교 및 경제제재 해소 등 외부적 요인이 변화해야 하 는데, 혁명적 군인정신을 토대로 한 노동규율 재강화 전략은 미국 등 외부세력 을 적대시함으로써 더욱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런 가운데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를 시행했다. 경제관 리개선조치는 쌀값 등 생필품 가격을 대폭 현실화하고, 임금을 크게 올림과 동 시에 실적과 임금의 연계를 크게 강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경제건설 과정에서 물질적 유인 의 의미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 서 이는 혁명적 군인정신 을 통해 노동규율/노동강도를 높이자는 선군정치 식 경제건설론과 대립된다. 아마도 북한은 당분간 강조점이 다른 두 노동정책 및 경제건설정책(경제관

105 104 리개선조치 및 선군정치 식 경제건설론)을 병행 실시하면서 어떤 정책에 더욱 무게를 두어나갈지 고민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외부적 요인 즉, 6자회 담 및 그 결과로서의 북미 관계 변화 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 상된다. 따라서 앞으로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선군정치의 관계, 외부적 요인과 북한 노동정책의 변화 등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106 105 참고문헌 - 단행본 및 논문 - 김용현, 북한의 선군정치 와 체제 군사화에 관한 연구 (서울 : 통일부, 2001) 김정일, <김정일 저작집 제14권>(평양 : 로동당출판사, 박순성, <북한 경제와 한반도 통일>(서울 : 풀빛, 2003) 김재호, <김정일 강성대국 건설전략>(평양 : 평양출판사, 2000) 리신현, <강계정신>(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02) 송상원, <총검을 들고>(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02) 리종렬, <평양은 선언한다>(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0) 박태수, <서해전역>(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0)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조선전사-년표2>(평양 :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조선로동당출판사, <새인간 형성과 천리마작업반운동>(평양 : 조선로동당출 판사, 1961) 통일여명 편집국, <선군령장의 고난의 행군-김일성방송대학강좌 특강>(서울 : 통일여명 편집국, 2003) 한호석, 선군혁명령도 와 제2의 천리마 대진군 (미국 : 통일학연구소, 1999) - 로동신문 논설 년 11월22일, 라남의 봉화따라 강성부흥의 북소리 높이 울리자 2001년 11월28일, 라남로동계급의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정신을 따라 배우자 2001년 12월 5일, 수령결사옹위, 당정책절대관철의 투사들-선군시대에 엮어 진 라남의 영웅서사시(1) 2001년 12월10일, 일군들이 사생결단하고 나서면 못해 낼 일이 없다-선군시 대에 엮어진 라남의 영웅서사시(2) 2001년 12월15일, 선군혁명 천만리-제1편 다박솔언덕에서 2001년 12월28일,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 준 미더운 기술자들-선군시대에 엮어진 라남의 영웅서사시 2001년 12월29일,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으로 새로운 위훈을 창조-선군시대에

107 106 엮어진 라남의 영웅서사시(4) 2001년 12월30일, 거세차게 타오르라, 비약의 불길이여! 선군시대에 엮어진 라남의 영웅서사시(5) 2002년 2002년 2002년 2002년 2002년 2002년 2002년 1월 8일, 강성대국을 향하여 1월21일, 완강한 실천력과 실력을 지닌 행정경제일군 : 선군시대의 전형-라남탄광기계련합소 지배인 로력영웅 최관준동무 1월24일, 높은 정책적 안목과 강한 집행력을 지닌 당일군 선군시대 의 전형-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 전우영 동무 1월26일, 지혜와 실력으로 조국의 부강에 이바지하는 기술자선군시 대 의 전형-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라남탄광기계종합설계사업소 설계가 한석주동무 1월28일, 불굴의 투지로 앞채를 메고 나가는 미더운 초급일군 선군 시대의 전형-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채탄기직장 조립작업반장 박 용범 동무 3월20일, 희망 안고 이 길을 가고 가리라 4월29일, 동지애의 천만리 2002년 9월29일 선군시대의 인간찬가 2002년 11월29일, 라남의 봉화에서 특징 2002년 12월 6일, 라남의 일군들의 투쟁기풍과 일본새 2003년 2003년 2003년 2003년 2003년 2003년 2003년 1월 1일, 위대한 선군기치 따라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을 높이 떨치 자 (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와 공동사설) 2월 3일, 장군님의 영원한 병사 2월 4일, 온 사회를 선군혁명동지의 대오로 만들자 2월21일, 혁명적 군인정신은 선군시대 혁명과 건설의 추동력 3월 9일, 승리의 쇠물이 끓는다 3월17일,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 배울 데 대한 로작발표 6돐을 기념 8월11일, 나를 따라 앞으로의 구호를 외치며 - 기타 - 통일부, <주간북한동향>(통일부) 각호

108 107 민간 통일운동의 변천과정과 현황 연구: 통일NGO들의 성장과정과 특징 분석을 중심으로 김 영 호 (국방대 교수) 목 차 요약문 서 론 민간 통일운동의 개념과 실천주체 민간 통일운동의 전개과정 민간 통일운동단체의 유형과 특성 결 론 153 참고문헌 155

109 109 요 약 문 198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진전된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발전에 힘입어 최 근에는 우리사회에서도 통일에 관한 민간차원의 논의와 방안모색이 상당히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일찍부터 통일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학생 및 재 야단체는 물론, 시민운동 또는 비정부조직(NGO)으로 불리는 단체들과 종교, 학술 및 예술 문화단체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와 실 천적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의 제반 분야에서 문제제기와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의 참여에 대한 꽤 정당성확보와 세력화를 달성한 이들 시민단체 혹은 NGO들은 통일운동분 야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책결정과 폭넓은 국민공감대 형성에의 기여 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만 평가되던 이러한 NGO들의 참여와 영향력 증대 가 최근에 와서는 과연 적절한 수준이고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되 고 있다. 즉, 이들 NGO들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행동이 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대안제시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국 론분열이나 소모적 이념논쟁의 조장으로 치닫는 경우도 늘어난 것이다. 이에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보다 건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NGO들의 참여수준과 참여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논의와 검토가 요구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NGO들의 적절한 참여정도와 방식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 먼저 기존 NGO들이 추진해온 통일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현실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어떤 성격의 단체들이 어떤 주장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해왔으며, 현재 활동 중인 통 일관련 주요 민간단체들이 어떤 성향과 유형을 띠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해방 후 정부수립이 래 민간차원에서 전개되어온 통일운동의 역사적인 변천과정과 현황에 대해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또한 그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민간차원의 통일운 동방향과 통일관련 단체들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첫째, 민간통일운동의 개념과 실천주체에 대해 논의 한 후, 둘째, 해방이후 현재까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어온 통일운동의 전개 과정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았고, 셋째, 현재 활발히 활 동하고 있는 주요 통일관련 민간단체들의 설립시기, 활동영역 및 이념적 성 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끝으로 통일운동단체들의 현황분석을 기초로 민간통 일운동의 발전방향과 향후 전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면서 결론을 맺었다.

110 서 론 남북분단은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독립이 아닌 연합국 승리의 결과 로 맞이하게 된 불완전한 독립에서 시작되었고, 뒤이은 미 소 양대 진영간 의 냉전적 대립구도 하에서 6 25전쟁을 거치는 동안 한국화되었으며, 그 후 계속된 남북한 당국간의 체제경쟁 속에서 점차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물론 분단이후 이제까지 평화통일을 향한 남북한 당국간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이산가족상봉 및 문화예술단 상호방문, 남북단일팀의 국제체육대회 참여,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 체결, 남북한비핵화선언, 그리고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화해와 협력을 위한 시도도 꽤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남 북한간 대화와 통일논의 대부분은 그럴듯한 수사적 표현이나 외관과는 달리, 진지한 통일의지의 반영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나 정치적 선전 을 위한 공허한 제의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진지하고 전향적인 평화통 일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은 불과 수년전인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제 대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도 정권과 체제유지에 몰두하 고 있는 북한지도부의 소극적 자세와 간헐적 돌출행위로 인해 아직도 완전 히 통일논의가 제도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논의와 실천노력이 남북한 정부당국 차원에서만 이루 어진 것은 아니다. 분단 직후부터 민간차원의 통일노력은 미미하나마 간단없 이 경주되어 왔고, 1980년대 말부터는 급속도로 진전된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발전에 힘입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통일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학생운동 및 재야단체는 물론, 시민운동단체 또는 비정부조직(NGO)으로 불리는 사회단체들과 종교와 학술 및 예술 문 화단체들까지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민간차원의 통일논의와 방안모색이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사회 제반 분야에서 문제제기와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의 참여에 대한 상당한 정당성 확보와 세력화를 달성한 NGO 혹은 시민단체들은 통일문제논의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NGO들의 정책과정에의 참여확대와 영향력증대는 정책결정의 투명성 과 민주성 제고, 그리고 정책에 대한 폭넓은 국민공감대 형성에의 기여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한두해 사이에 우 리사회에서 분출되고 있는 집단적 의사표출 사례들은 NGO를 비롯한 사회운 동단체들의 정책참여 범위와 영향력정도에 대해 새로운 검토의 필요성을 제 기한다. 즉, 여중생사망사건, 교육행정전산망 NEIS실시, 새만금간척사업, 위

111 112 도 방사능폐기장 건립계획, 화물연대 파업, 이라크 파병안처리 등 일련의 사 안들을 둘러싸고 전개된 사회단체들의 시위나 정치적 행동은 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대안제시도 있었지만, 일부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국론 분열과 소모적 이념논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보다 건설 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민간사회단체들의 참여수준과 방식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NGO들의 참여정도와 방식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해당 이슈영역 에 관여하고 있는 NGO들의 역사적 활동내역과 현황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통일분야에서도 먼저 기존 NGO들이 추진해 온 통일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현실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우선시 되 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과연 어떤 성격의 단체들이 어떤 주장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해왔으며, 현재 활동 중인 통일관련 주요 민 간단체들이 어떤 성향과 유형을 띠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해방 후 정부수립이래 민간차원에서 전개 되어온 통일논의 혹은 통일운동의 역사적인 변천과정과 현황에 대해 정리하 고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그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전개될 민간차원의 통일운동방향과 통일관련 단체들의 발전적 진로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의 구체적인 구성은 첫째로 민간통일운동의 개념과 실천주체에 대 해 논의할 것이다. 둘째는 해방이후 현재까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어온 통 일운동의 전개과정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시기별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셋째로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주요 통일관련 민간단체들의 설립시기, 이념적 성향, 그리고 활동영역별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 넷째는 이러한 통일 운동단체들의 현황분석을 기초로 민간통일운동의 발전방향과 향후 전망에 대해 논의하고 이에 필요한 정책적 고려사항을 제시하려고 한다. 2. 민간 통일운동의 개념과 실천주체 2.1. 민간 통일운동의 개념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이란 특정사회의 일정 분야 또는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문제해결은 물론, 한발 더 나 아가 사회전반의 연관질서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적 움직임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문제제기와 해결방안 강구를 위한 기존의 법적 제도적 통로나 정책적

112 113 메카니즘에 의존하지 않고 일반대중의 직접적인 참여와 실천활동을 통해 문 제의 해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흔히 사회운동은 비제도권 혹은 장외정 치 영역으로 간주된다. 주로 제도권 밖에서 사회변혁을 추구한다는 점으로 인해 사회운동은 대개 정부나 제도권 정치영역과 갈등관계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운동이 추구 하는 목표가 단순히 기존의 법질서와 제도 혹은 관행만의 개선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 제도권 정치영역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혁의 대상이 사회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이나 기존 정치권 력과 연계된 사안인 경우 사회운동과 제도권간에는 긴장과 갈등의 관계를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비제도권 정치영역이라고 해서 활동의 장과 방식이 항 상 반제도적이거나 반정부적인 것만은 아니다. 즉, 사회운동이 정부와 제도 권정치를 타도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부정적 비판과 반대만을 일삼는 것 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혹은 정부의 이념과 정책노선에 따라 때로 는 정부와 협력적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한발 더 나아가 정부의 대변자적 역할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마을운동이나 바 르게살기운동 등과 같은 정부주도의 의식개혁운동이나 소비자보호나 환경오 염방지와 같은 기업감시활동의 경우는 정부와 유관 사회운동단체간의 긴밀 한 협력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통일운동도 운동이란 말이 시사하듯이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간주할 수 있 다. 그렇다면 통일운동이 제기하는 문제, 즉 변화시키려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반도의 분단이다. 다시 말해 통일운동의 목표는 남북으로 갈 라져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별개의 국가로 살아가고 있는 분단된 우리 민 족을 하나로 합쳐서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극복을 목표로 하는 통일운동의 내용은 무엇일까? 협의와 광의의 두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우선 먼저 통일의 실현을 위해 추진되어야 할 구체 적인 방안을 찾아내고 연구하며, 정립된 통일방안을 실천에 옳기는 직접적인 활동만을 국한하여 통일운동의 내용으로 간주하는 협의적 개념규정이 있다. 그런데 실제 어떤 활동이 통일에 기여하게 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단기간 에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통일실현에의 기여가 입증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사회 문화적 교류의 경우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예술단의 교환이나 공동학술회의 개최와 같은 활동들은 당장은 효 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상호이해를 넓히고 인식과 사고의 동질성회복에 도움을 주어 궁극적으로는 통일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통일운동의 개념을 광의로 규정하여, 남북 한 긴장완화와 이해증진 및 관계개선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교류 협력활동

113 114 을 모두 포함하고자 한다. 1) 통일운동을 규정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다음 사항은 통일운동이 실현하려 는 통일은 평화적 통일이라는 점이다. 무력행사나 전쟁을 통한 폭력적 수단 에 의해 통일을 지향하는 활동은 제외된다는 뜻이다. 또한 상대방 내부의 무 장봉기나 내란을 교사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도 제외된다. 즉, 간첩활동이나 납치 및 테러와 같은 상대방에 대한 악의적 적대행위는 제외되며, 대화와 합 의와 같이 무력을 동반하지 않는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통일을 실현하려는 활동만이 통일운동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통일운동을 논의함에 있어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문제는 통일운동의 대상설정의 문제이다. 본 연구는 남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민간차원의 통일 운동만을 다룬다. 그런데 이러한 남한의 통일운동이 통일실현을 위해 남한사 회를 대상으로 의견수렴, 교육홍보 및 민간역량강화에 노력하는 경우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 대상이 북한인 경우는 정확히 그 대상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통일운동의 대상을 북한이라 고 할 경우 북한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북한정권, 일 반주민, 혹은 북한지역의 영토적 공간 등이 될 수 있다. 2) 그런데 여기서 문 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일반주민이 대상이 되는 경우이다. 모든 북한주민을 대 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표격인 북한의 사회운동단체를 접촉과 교류 의 대상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이 때 문제는 북한에는 진정한 의미, 아니면 최소한 우리와 같은 성격을 띤 사회운동단체나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명목상 북한에도 비정부적 사회단체가 존재한다. 북한에서 출판된 정치용어사전 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사회단체를 사회의 일정한 계급 및 계층들이 혁명투쟁에서 같은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자원적 원칙에서 조직 한 단체를 말한다. 우리 나라 사회단체들은 4천만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창시된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자원적이며 혁명적인 대 중적 정치조직이며 당의 외곽단체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3) 그러나 실질적 으로 이런 단체들의 역할은 독자적인 활동보다는 당의 사상을 전파하고 홍 보하는 수단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대표적 사회단체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국통일민주주 의전선, 조선직업총동맹, 김일성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조선민주녀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문학 예술총동맹, 조선대외문화련락위원회 등 1) 통일운동을 광의로 규정하는 것은 최근 일반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 해서는 김광용, 통일운동에서의 NGO와 지식인의 역할,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 자료실 < 참조. 2) 통일운동의 대상설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김광용, 위의 글 참조. 3) 정치용어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9), pp

114 115 이 있는데, 이들 단체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계층별, 성별, 그리고 연 령별로 조직된 단체로서 보다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공산당의 북한사회통제 를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짐작케 한다. 4) 따라서 통일운동의 궁극적 대상을 북한으로 설정할 때 북한의 정권, 일반주민, 사회단체 등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민간 통일운동의 실천주체 민간차원에서 추진되는 통일운동의 주체는 말 그대로 통일관련 민간단체로 구성 된다. 흔히 이런 단체를 최근에는 흔히 비정부조직(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이라고 부른다. 어원적으로 따져볼 때 NGO라는 말은 UN 헌장 제71조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대표적 정부간 조직(international governmental organization, IGO)인 UN의 창설에 기여한 NGO의 공로를 인정하고, 향후 UN활동에의 지 속적인 공헌을 명시하는 뜻에서 UN헌장에 제시된 개념인 것이다. 5) 그 후 UN 경제사회이사회의 보다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정책결정과 집행에 대한 NGO들의 기여를 인정하고 기대하면서 NGO들의 협의적 지위를 세 가지로 구분한 내용의 결의안 제288조를 채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 우리사회에서도 영어 원어의 약어 그대로인 NGO란 표 현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 방식의 개념규정인 NGO란 표현대신 긍정적 개념규정을 적용 한 시민사회단체(civil society organization)나 민중조직(people's organization) 또는 제3섹터(the third sector)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NGO의 주요 특성으로는 대개 공익성, 비영리성(non-profit), 자발성(voluntariness) 등을 꼽 는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한다 는 의미에서 NGO의 첫 번째 특징으로 공익성이 꼽힌다. 그런데 공익(public interests) 혹은 공공선의 개념이 정확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또 다 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비영리성이 NGO의 두 번째 대표 적 특징으로 지칭된다. NGO는 공공성을 띤 정부와 구분되지만 영리를 추구하 는 기업체나 상점과 같은 민간 행위자들과도 구별된다. 물론 NGO도 사업추진 과 조직유지를 위한 재원이 필요하고 때로는 수익성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 4) 이들 단체들의 자세한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조민, 통일과정에서의 민간단체의 역 할 연구보고서 (서울: 통일연구원, 1996), pp 을 참조. 5) 해당 UN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may make suitable arrangements for consultation with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which are concerned with matters within its competence. Such arrangements may be made with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where appropriate, with national organizations after consultation with the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concerned."

115 116 만, NGO의 경제적 행위는 해당 NGO의 임원이나 회원의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영리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셋째로 자발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NGO에의 가입과 활동에의 참여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이루어짐을 의 미한다. 6) 현대사회에서 제5의 권부라고 불리기도 하는 NGO의 역할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7) 첫째로 권력비판 및 감시의 기능이 있다. NGO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정부의 권력행사나 정책집행을 감시하고, 권력의 오용과 남용,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집행 및 운용의 기능을 들 수 있다. NGO는 단순히 사회적 문제 의 쟁점화나 해결방안의 제안을 넘어 NGO가 직접 해결을 위한 방안을 강구 하고 수행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공익실현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는 말이다. 이는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능동적인 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만 때때로 정부나 기업체의 대행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셋째로 NGO는 정책비판 및 옹호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궁극적으로는 당면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정책결정자를 설득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활동을 의미한 다. 정책결정자들을 직접 만나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과 언론이나 대중동원을 통한 간접적인 입장표명의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NGO는 교육 및 계몽역할을 수행한다. 자신들이 개선하려는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정 당성과 필요성,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들이 제시하는 실천방안의 적절 성을 널리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NGO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운동 혹은 사회운동단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둘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 니다. 다시 말해 NGO와 사회운동단체는 상당부분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NGO가 사회운동단체는 아니며 또한 반대로 모든 사회 운동단체가 NGO도 아니다. NGO 중에는 사회운동단체와 달리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활동하지 않는 조직도 있고,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지 않는 조직이 있다. 사회운동단체 중에도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NGO 6) NGO의 유사개념과 특성에 대해서는 Riva Krut, Globalization and Civil Society: NGO Influence in International Decision-making (Geneva: UN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1997), Lester M. Salamon and Helmut K. Anheier, Defining the Nonprofit Sector: A Cross-national Analysis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7), 주성수, 시민사회와 제3섹터 (서울: 한양대 출판부, 1999), 박상필, NGO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서울: 한울, 2001) 등 참조. 7) Leon Gordenker and Thomas G. Weiss, "Pluralizing Global Governance: Analytic Approaches and Dimensions," Leon Gordenker and Thomas G. Weiss, eds., NGOs, the UN and Global Governance (Boulder, CO: Lynne Reinner, 1996), pp. 7-8.

116 117 와는 달리 특정계층이나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상 공익성 띤다고 보기가 어려운 단체도 있다. 8) 이러한 NGO와 사회운동단체의 개념차이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하면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엄격히 말해 NGO나 사회운동단 체는 시민운동 혹은 시민사회운동, 그리고 신사회운동과 민중운동 등의 개념 과도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9) 사실 전통적 의미에서 시민운동은 민주화 운동이나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s)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 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 표현이 NGO와 가장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단체는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 고 평화적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하며, 무조건적 비판보다 는 합리적 대안제시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 고 있다. 비슷한 표현이지만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운동과도 구별된다. 시민사 회운동이란 네오 막시스트인 그람치에게서 유래된 개념으로 변혁적이고 진 보적인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사회운동을 의미한다. 또한 흔히 시민운동은 신사회운동과 혼용되기도 하는데, 신사회운동은 서구 선진국가에서 1960년대 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신봉하고 삶의 질 개선에 초점 을 둔 생태 문화적 운동을 지칭한다. 계급운동이나 노동운동과 같은 전통적 사회운동과 구분짓기 위해 신 사회운동이라고 이름지어 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의 산물로 전통적 시민운동인 민주화운동과 전통적 사 회운동인 노동운동이 결합한 민중지향적 변혁운동이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민족 민주 민중운동 이라고 명명된 이 변혁운동은 소위 재야나 좌경세력, 그리고 학생운동권이라 불리던 인사들에 의해 추진되어 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엄밀한 의미상 차이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NGO, 시민운동단체, 민중운동단체들을 모두 연구대상에 함께 포함시키려고 한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의 개념만을 가지고 민간차원에서 추진되는 통일운 동을 논하는 것은 부분적이고 편파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 했듯이 본 논문에서는 통일운동을 광의의 개념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통일 운동단체도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다루어질 통일관련 단체는 시민운동, 교육홍보, 남북교류, 국제협력 등을 통 하여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하거나, 또는 평화통일을 실현 8) 이러한 사회운동단체와 NGO의 개념적 차이에 관해서는 J. Smith, C. Chatfield, and R. Pagnucco, eds., Transnational Socical Movements and Global Politics: Solidarity Beyond the State (Syracuse, NY: Syracuse University Press, 1997), 제1장 참조. 9) 시민운동과 신사회운동 및 시민사회운동과의 개념차이와 시민운동의 유형에 대해서는 유 팔무,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와 나아갈 길, 한국NGO지도자협의회 주최 쎄미나, 한국NGO운동의 과제와 방향은 무엇인가? ( ) 참조.

117 118 하기 위해 민간역량을 배양하고 통일의식을 고양하고자 하는 데에 설립목적 을 갖는 단체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10)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 단체는 연구와 조사활동을 통해 이룬 업적을 출판하거나 쎄미나와 토론회를 통해 여론 형성에 힘쓰는 조직도 있고, 문화적 교류나 경제교류 혹은 인도적 지원활동에 참여하는 기관도 있으며, 이산가족이나 실향민문제, 나아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단체도 있을 수 있다. 활동의 내용이나 이념적 성향 에 있어서도 재야와 진보 및 보수를 모두 망라하여 포함할 것이다. 3. 민간 통일운동의 전개과정 남북 분단이후 현재까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어 온 통일운동의 전개과정 은 크게 4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우리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민주화가 진척 되기 시작하고 시민사회의 발전과 시민운동이 발흥하게 된 시기를 6.29선언 이 있었던 1987년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11) 이런 일반적인 시각을 받아들여 본 논문도 민간 통일운동의 본격적 시발점을 1987년으로 하고 그 이전의 시 기를 하나로 묶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학생운동 및 과거 재야단체를 중심으 로 통일운동이 활성화되었던 1987년부터 1994년까지를 두 번째 시기로 규정 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대북 인도적 지원 활동을 계기로 종교단체와 시민운 동단체를 중심으로 가속화된 통일운동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절정에 이 르게 된 1995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으로 민간 통일운동의 도약기로 규정 했다. 마지막 네 번째 시기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기해 남북교류가 최 고조에 다다랐던 2000년을 시작으로 점차 남남갈등이 표면화되고 진보와 보 수진영이 분극화 양상을 보이며 통일운동이 조정적 국면에 접어든 최근까지 의 기간을 하나로 묶었다 제1기: 침체기(1987년 이전) 앞서 언급하였듯이 민주화가 시작된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이전 까지 공개적으로 전개된 통일운동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약했다고 할 수 있 다. 정부당국이 추진하는 통일정책만이 있었을 뿐이지 민간차원에서는 통일 10) 이러한 통일관련 단체의 개념은 조민의 개념규정을 따랐다. 조민, 앞의 글, p ) 이와 관련하여 한국 현대정치사를 제도권 정치와 운동권 정치의 상호작용이라는 시각에 입각하여 시기별로 구분, 상세히 설명한 글로 조희연 편,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동학 을 참조할 것.

118 119 운동은 고사하고 통일에 관한 논의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단지 탄압을 무 릅쓴 재야나 진보적 운동권 인사들에 의해 그나마 민간 통일운동의 명맥이 겨우 유지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시기의 통일운동을 정권별로 살펴보면,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희박한 실현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 을 공공연히 주장했던 남한정부의 정책노선으로 인해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은 상상조차 하기 힘었 다. 게다가 6.25전쟁으로 고조된 삼엄한 냉전적 국제질서 또한 그 시기의 자 유로운 통일논의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런 상황 하에서 미력하나마 재야와 학생 및 혁신적 정치세력에 의해 제 시된 통일방안이 몇몇 있었는데 그 중 최초가 1948년 10월 45명의 제헌의원 들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남북평화통일방안 7원칙 이 다. 그 내용은 1 외국군대 철수, 2 남북의 모든 정치범 석방, 3 남북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 정치회의 개최, 4 남북정치회의에서 선거를 통해 최고 입법기관을 구성, 5 최고입법기관은 헌법을 제정하고 통일 중앙정부기관을 수립, 6 반민족 행위자를 처단, 7 조국방위군의 재편성 등을 주요 골자로 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승만 정권은 해당 국회의원들을 구속하였고, 이것 이 바로 소위 국회 프락치 사건 이었다. 12)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이 시기의 민간 통일운동으로는 1955년 당시 서울 대생이었던 김낙중이 남북 양쪽 정부에 제기한 통일독립청년고려공동체수 립안 이 있다. 또 1956년 진보당의 당수였던 조봉암의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통일 실현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으로 인해 조봉암은 사형까지 당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흥미있는 또 다른 통일제의로는 사회대중당, 혁 명동지연맹, 재미교포 김용중 등에 의해 제창된 한반도 영세중립화론 이 있 었으나 별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13) 1950년대 중반이후로 접어들어 와서는 북한당국이 민주기지론 으로 무장 하고 중공군 철수완료를 발표(1958년)하면서, 외국군 철수, 남북 상호감군, 교류협력 및 원조제의, 남북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협의회 구성 등 상당히 공세적 대남 제의를 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남한 정부는 별 특별한 대응을 보이지 않다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자유당독재가 붕괴되 고 민주당 장면내각이 등장하면서 다시 잠시나마 통일논의가 활기를 되찾았 다. 민주화물결을 타고 그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정당들에 의해 다양 하게 통일방안들이 제안되었다. 그러던 중 서울대 주도로 결성된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 에 의해 남북한 학생회담이 추진되었고, 김창숙 외 8명의 급진 12) 이장희, 해방후 민간통일운동과 정부의 통일정책, 통일경제 (1998.9), p ) 노중선 엮음, 연표-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50년 (서울: 사계절, 1996), p. 78, 80, 96.

119 120 적 인사를 중심으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민자통)가 결성되면서 좀 더 본격적인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이 개시되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뒤 이은 5.16쿠데타로 인해 민간 통일운동은 다시금 수면 아래로 잦아들게 되었 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삼고 선건설 후 통일 노선을 견지하면서 일체의 민간 통일운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 1972년에 와서는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한간의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해내고, 적십자회담을 재개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듯했다. 그러나 뒤이어 단행된 10월유신으로 인해 남북한관계는 물론 민간 통일운동도 또다 시 경색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년대) 북한당국은 시종일관 미군철수와 UN한국위원 단 해체를 주장하며 상호감군 및 교류, 그리고 남북 제 정당 사회단체 연석 회와 연방제통일안 등을 제의해왔고, 남한정부는 강력한 승공기치를 내걸고 유엔감시하의 남북동시선거,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상호불가침조약체결 등을 북한에 제안하면서 선평화 후통일 정책을 고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민간 차원에서는 민자통과 학생운동세력이 제기한 중립화론과 재야 혁신세력 및 야당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제안한 몇몇 통일방안이 있었다. 그나마도 불온 시되어 정부의 탄압을 받기가 일쑤였다. 14) 침체에 빠져있던 남북한관계에 다시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남한정부가 북한당국의 수해물자제공을 수락하면서였다. 이는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해 남한정부가 대북 자신감을 갖게됨으로써 가능해진 조치 였다. 그러나 1985년 많은 기대 속에 이루어진 이산가족고향방문과 예술단 상호교환이 다른 후속조치나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남북 당국간 대화 는 또다시 마이동풍격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엇박자식의 남북한 당국간 상호 통일제의로는, 남한의 최고책임자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은 제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주장하고, 이를 되받아 남한이 다시 당국 및 정 당 사회단체 회의를 열 것을 제의하고, 북한이 이를 다시 거부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민간차원에서는 그 동안 축적되어온 학생 및 재야단체들의 통 일의지가 결집되어 1985년 3월에 와서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과 민주 통일국민회의 를 통합하여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하는 민주 통일민중운 동연합 (민통련)을 결성하고 소위 변혁지향적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15) 14) 이에 해당되는 사례들로는 인민혁명당사건(1964), 통일혁명당(1968), 남조선혁명전략당 (1968), 민주청년학생전국연맹(1974),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 사건 등이 있다. 이장희, 민족통일과 민간통일운동의 과제, 한국NGO지도자 협의회 주최 쎄미나, 한국NOG운동 의 과제와 방향은 무엇인가? ( ), p ) 노중선, 위의 글, pp

120 121 남한 국내에서의 움직임과 더불어 해외에서도 종교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남 북한간의 교류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민간차원의 통일논의가 서서히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종교계에서는 이 시기에 인권과 민주화에 크 게 기여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의 역할이 돋보였는데, 통일문제상 설위원회를 자체 내에 기구로 설치하여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세계기독교협의회 (WCC)와의 연대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구축과 남 북한간 군축제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제회의 참석과 교회평화선언에 앞장 서서 활동한 바 있다. 16) 요컨대 이 시기의 민간 통일운동은 주로 재야, 야당,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남한 정부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지향한 정치사회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2기: 발흥기(1987년-1994년) 이 시기는 한국현대사에 하나의 큰 전환점으로 자리매김되는 1987년 6.29 선언으로 시작된다. 즉, 우리 정치사회의 민주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기간 으로, 그 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누리게 된 물질적 풍요와 여유를 바탕으로 정치적 권리와 삶의 질에 대한 시민적 의식이 각성되고 이를 실현하려는 욕 구가 조직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정치제도는 물론 사회적 관행과 시민의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요구도 보다 조 직화되고 응집력 있게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의 흥미있는 점은 그 동안 군부독재 타도와 권위주의 정치 체제 청산이라는 기치 하에 하나로 뭉쳐 민주화운동에 매진해온 우리사회 내 제반 운동세력들이 정치권의 3김구도와 지역주의적 정서와 맞물려 각기 서로 다른 분파로 재편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선 민주화운동의 전위조직으로 가장 치열하게 6월항쟁에 참여했던 민 족 민주 민중운동세력은 6.29선언의 성과에 힘입어 재야정치인과 지식인, 학생, 종교인들의 주도가 아닌 보다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 속에 7월과 8월에 연속하여 노동자파업 및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어 학교교사, 농민, 빈민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체들을 결성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세 력을 양성하고 저변확대를 도모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동조합의 경우 6.29선언 이후 가장 많이 생겨 난 민간단체였으며, 그 후 지역별, 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를 거쳐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노협)로 조직화되었다. 학교교사의 경우는 1987 년에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 (전교협)의 결성을 시작으로 도, 시, 군, 16) 이장희, 앞의 글, pp

121 122 구 단위의 교사협의회의 결성을 거쳐 1989년 5월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로 발전되었다. 농민단체의 경우도 카톨릭농민회 와 기독교농민회 가 1989년 통합하여 전국농민연합 을 결성하였고, 그 후 1990년에는 전국농 민회총연맹 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아울러 빈민들도 1989년 전국빈민연합 을 결성하였다. 민중운동세력의 후원 하에 결성된 이들 단체들은 반정부적 성격 이 강한 운동조직체들로 1989년 전국적인 연합전선기구인 전국민족민주운동 연합 (전민련)으로 연대조직을 결성하고 운동의 노선을 조율하고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요컨대 이들 단체들은 변혁지향적 혹은 민중지향적 운동단체들로 군부독재 타도, 반미자주통일, 민중민주주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 하며 국가권력과 자본을 상대로 투쟁하였다. 따라서 이들 단체들은 정부로부 터 불온시 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7) 민중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사회운동단체와는 달리, 독재타도를 통한 자유민 주주의의 구현에 목표를 두었던 세력들은 6.29선언 이후 대부분이 정당활동 과 제도권내 정치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설령 운동정치의 영역에 남아있더 라도 합법적이고 비폭력적 수단을 선호하고, 무조건적 비판보다는 대안을 함 께 제시하는 비판을 택하는 쪽으로 운동방식에서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이 러한 배경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운동세력이 바로 시민운동단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출범한 경제정의실천국민협의회 (경실련)가 바로 이런 시민운동단 체의 효시이자 대표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비계급적 혹은 초계급적 목표 와 주체, 그리고 온건한 운동방법을 내세우며 등장한 경실련은 기존의 반정 부적 사회운동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경실련에 자극을 받아 1990년 대 초에는 여러 분야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반핵 운동과 반공해운동을 함께 해오던 변혁지향적 사회운동단체였던 공해추방운 동연합 (공추련)이 1993년 환경연합이라는 시민단체로 재편된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그 이전까지 변혁지향적 민중운동단체와 연대했던 한국여성단체연 합 (여연)이 전민련으로부터 분리,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게 된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일이다. 6.29선언이라는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추진이라는 국내적 상황과 아울러 1980년대 후반은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충격과 파장 에 의해 시민운동단체들의 활성화는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1980 년 후반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초로 접어들면서 수적 증가와 질적 다양화 를 거치게 된 시민운동세력들은 1994년에 이르러서 기존의 사회운동세력의 연대적 조직과 별개로 경실련, 환경연, 흥사단, 녹색교통운동 등 54개 시민단 17) 유팔무, 비정부사회운동단체(NGO)의 역사와 사회적 역할, 유팔무 김정훈 편, 시민사 회와 시민운동 (서울: 한울, 2001), pp

122 123 체 대표들이 모여 시민단체협의회 (시민협)이라는 독자적 연대기구를 결성하 였다. 이로서 한국사회 사회운동단체들은 전민련과 시민협을 중심으로 크게 양분되게 되었는데 이 구도는 1994년 말에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참여연대) 의 출범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18) 경실련의 출범과 함께 우리사회에서 시민단체들에 대한 참여와 호응이 커 지게 되면서 반정부적이고 민중지향적이였던 사회운동권에서는 운동의 침체 와 수세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구적인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보 다 합법적인 방법과 대중적 관심에 부응하는 구체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쪽 으로 변화를 보였고, 마침내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운동을 목표로 하 는 참여연대를 결성하였다. 이 참여연대는 시민운동을 표방하면서도 재야 및 노동운동단체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입장을 취하여, 소위 구사회 운동 과 신사회운동 간의 사안별 연대를 구축하기도 했다. 19) 이러한 시민사회 또는 시민사회운동 전반의 지각변화와 세력판도는 통일 운동 부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6.29선언 이후 사회 전반의 민주 화로 인한 집단적 행동이 보다 용이해진 상황에서 민간 통일운동단체들도 보다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주의 주장을 표현하고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변혁지향적 운동단체들의 경우 그들의 통일원칙인 반미자주통 일을 주장하는데 훨씬 위험부담이 적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다른 한 편으로 6.29선언을 유도해냄으로써 생겨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바탕으 로 새롭게 대두된 신사회운동적 시민운동이 많은 호응을 받게되면서 상대적 으로 과격하고 불온시 되기까지 하는 민족민중운동진영에 대한 관심과 참여 는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 통일운동은 1985년 결성된 문익환 목사가 이끄는 민통련과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 의 국내외적 대북 접촉 및 교류활성화 추진요구에서 시작 되었다. 그 후 1988년 발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대협)를 중심으로 학생운동권이 제기한 6.10남북학생회담의 추진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 되었다. 정부의 저지로 회담자체는 무산되었지만 종교계, 학계, 문화예술계, 민중운동단체들을 망라한 학생회담개최 압력과 교류증진 요구는 1988년 노 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이 나오는 데 이바지하였다.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으로 발표된 7.7선언은 6개항으로 남북간의 왕래와 교류 및 교역을 적극 추진하고 북한과 다른 국가간의 수교에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민중운동세력 측에서는 7.7선언이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한 상태에서 18) 유팔무, 위의 글, p ) 1987년 이후 전개된 시민운동의 변천과정에 대한 보다 깊은 이론적, 경험적 논의에 대해 서는 유팔무 김정훈 엮음,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2 (서울: 한울, 2001)를 참조할 것.

123 124 의 남북교류협력 추진이란 점과 교류협력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음을 지 적하고, 민통련, 민총련 등 재야 11개 단체를 중심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 (조통협)를 결성하고, 보다 직접적인 대북 접촉 과 교류추진을 위해 자체적인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무산된 6.10학생회담을 계승한 8.15 학생회담을 다시 추진하였고, 88올림픽 남북한 공동개최를 위한 투쟁선언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 족대회 추진본부 를 조직하기도 했다. 결국 이 조직이 기폭제가 되어 2년 후 비록 남한 단독의 대회였지만 제1회 범민족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 민간차원 통일운동 중 가장 많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1989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의 방북이었다. 실제로 1989년에는 여러 차례 의 남측 인사의 방북이 이어졌었다. 정주영 현대회장의 방북(1월)을 시작으 로 문익환 목사(3월), 소설가 황석영(4월), 문규현 신부(6월), 대학생 임수경 (7월-8월)의 방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식허가 하에 이루어진 정주영 회장의 방북을 제외한 다른 인사들의 방북은 보수와 진보진영간에 치열한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이에 남한정부는 유사 사태발생에 대처하고 방북의 범 위와 수준을 조절하기 위해 남북접촉과 교류를 허가제로 바꾸는 남북교류협 력기본지침 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의 조치로 민간 통일운동단체가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특 히 전대협과 전민련 등을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단체들은 8.15평양축전 참가 와 이듬해인 1990년 범민족대회 개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런데 이러 한 민중운동단체의 남북교류노력은 자유총연맹, 민족통일협의회, 1천만이 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등 58개의 보수성향 단체의 범민족대회에 참여 시도 라는 의외의 돌발사태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저지로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자 민중운동단체는 또다시 범민 족대회 개최를 위해 1990년 11월 남 북 해외동포 통일운동단체 대표 베를 린 3자회담을 통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범민련)을 결성하였고, 1991년 1월 에는 남측추진본부를 출범시키면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1992 년에 이르러서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범청학련)을 추가로 결성하여 범민족대회의 개최에 더욱 몰두하였다. 학생회담과 범민족대회와 같은 남북교류사업과 병행하여 민중운동진영에 서는 이 시기에 국가보안법철폐, 군축 및 평화협정체결, 미군핵무기철수 등 을 주장하며 각종 집회 및 시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서 결 성된 단체로는 1990년 6월 발족된 한반도 통일을 위한 평화통일 군축협의 회, 1991년 3월 출범한 반핵평화운동연합, 1991년 11월 창립한 민주주의민 족통일전국연합 (전국연합) 등이 있다. 이들 단체 중 전국연합은 남한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조국통일투쟁, 반미자주화, 민중생존권 쟁취투쟁 을 위한 운

124 125 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이 시기의 대표적 민중운동진영의 연합전선단체 로 활동하였다. 또한 1991년 12월에 남북당국간에 기본합의서 가 체결되고 비핵화공 동선언 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자 이들 합의의 성실한 이행촉구가 국가보안 법철폐와 함께 통일운동단체의 또 다른 초점으로 부각되었다. 1993년은 김영 삼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대학교총학생회연합 (한총련)의 출범이 있었던 해였고,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남한의 대북 정책이 다시금 경색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에 1994년 1월 민간 통일운동의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였던 문익환 목사가 서거하였는데, 문목사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민중 운동진영에서는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민족회의)를 창립하였다. 그런데 이 단체는 민중운동진영에서 추구해오던 강경일변도의 운동방식에서 한발 물러 나 보다 유화적이고 대중적인 운동방식을 추구하였다. 한편 1994년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 미 제네바합의가 이루어진 해이기 도 하며, 동시에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이 통일협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통 일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이는 다음시기인 1995년부터 활발 히 전개된 시민운동단체들의 대북 지원사업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제3기: 도약기(1995년-2000년) 이 시기 통일운동의 첫 번째 특징은 단연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엄청난 홍수피해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에 봉착한 북한이 UN의 인도지원국(UNDHA)을 통해 긴급구호지원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은 종교계, 시민운동단체, 민중운동단체를 망라 하여 참여하였고, 현재는 대북 통일운동의 핵심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 면 1995년부터 민간차원에서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온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995년 북한의 참혹한 홍수 피해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한정부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대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수해 로 인해 북한지역의 200개 시 군 가운데 145개 지역에서 5백20만명의 이재 민이 발생하고 피해가 1백50억불에 이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20) 당시 소규 모지만 교류와 지원을 통한 통일운동을 이미 전개해오고 있던 종교계를 중 심으로 북한주민을 돕자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곧바로 신도들을 상대로 헌금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대한적십자사(한적)를 단일 창구로 지 정하고 한적을 통한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을 허용하는 대신, 민간차원의 20) 동아일보

125 126 모금이나 직접적인 지원, 그리고 언론사나 개별기업체의 지원활동 개입은 제 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원불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불교 조계종 등에서 개 별적으로 시작된 북한 수재민돕기 모금운동 은 10월 20일에 6대 종단의 연 대기구로 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 추진위원회 를 결성하여 대대적인 공동 모 금캠페인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때는 대북 민간지원의 태동기였고, 남한정 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국민적 호응도가 낮아, NGO들의 노력에 비해 실 적은 저조한 편이었다. 지원의 방법에 있어서도 남한정부의 간접지원방침에 따라 정부는 국제기구를, 민간은 대한적십자를 통해 지원물자를 북한에 우회 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 대북 지원활동이 더 강하게 추진되지 못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의 무력적 도발행위 때문이었다. 실 제 이 시기에는 여러 차례 북한의 도발행위가 있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사 례가 1996년 9월 18일에 발생한 북한잠수함의 강릉 침투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이미지는 형제 보다는 적 에 더 가깝게 비춰지게 되었고, 고조된 비판적 여론은 남한정부로 하여금 대북 지원중단이라는 강경조치를 단행하게 만들었다. 그 해 연말 북한외교부의 공식 사과성명이 발표되고서야 비로소 인도적 지원활동이 재개될 수 있었다. 북한의 공식사과로 잦아들긴 했지만, 그래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의 여파 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저조했던 인도적 지원활동이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사건발생 이후 6개월 정도가 지난 1997년 2월에 이르러서 였다. 종교계를 비롯한 사회원로인사 40여명이 시국간담회 및 기자회견을 통 해 북한동포돕기운동 을 호소하였고, 뒤이어 3월 초 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 에서 국내외 각계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민간단체 주도로 북한 식량난에 관한 국제협의회(Musgrove I)"을 개최하였다. 이 협의회를 통해 북한 식량 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널리 알리고 대북 지원을 위한 민간단체들간의 연 대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다시금 지원활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이후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활동도 그 이전 시기와 마찬가 지로 크게 2개의 축으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 시기 민간차원 대북 지원활동 분야에서 나타난 통일운동진영의 양분은 서로 대결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건 설적인 경쟁을 통한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의 축은 1996 년 6월 21일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등 6대 종단과 시 민, 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 주 체가 되어 추진한 북한동포돕기 범국민캠페인 이다. 다른 하나의 축은 앞서 언급한 1980년대 이후 성장한 노동, 청년, 여성, 지역 등의 변혁적 사회운동 의 제반 조직들이 결집해서 1997년 4월 10일에 설립한 겨레사랑 북녘동포돕

126 127 기 범국민운동 이 벌인 모금운동이다. 21)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을 중심으로 한 통일운동단체들이 1997년 3월 말 실시한 북한동포돕기 옥수수 1만톤 보내기 범국민캠페인 은 불과 열흘 여 만에 목표를 달성하여, 다시 4월초 옥수수 10만톤 보내기 캠페인을 추진하기 도 했다. 한편,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 은 소속된 운동단체들이 부문별, 지역별로 모금을 조직적으로 벌여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북 한동포를 위한 하루 한끼 굶기운동 은 단기간에 많은 모금에 성공한 것으 로 알려졌으며, 최종 모금액에 있어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을 앞선 것으로 보고되었다. 22) 한편, 국민적 호응과 참여가 커지자 대북 지원의 향후 발전방향과 제도적, 정책적 개선 모색을 위한 논의도 민간단체들 간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1997년 6월 말경에 개최된 북한식량난에 관한 국제협의 회(Musgrove II)"인데, 국내의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물론 10여 개의 국제 적인 민간단체들도 함께 참여하여 북한의 식량실태와 중장기적인 대북 지원 방향을 논의하였다. 또한 대통령선거를 앞둔 작년 11월 중순에는 이회창, 김 대중, 이인제 등 대선후보를 초청하여 통일과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정 책토론회 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게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노력이 점차 보다 더 조직화되고 연대를 통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게 됨으로서 대북 지원 운동에 대한 국민적 참여열기도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표 1>에서 보이듯 이 지원실적도 크게 증가되기 시작했다. 1997년 내내 크게 활성화되었던 NGO들의 대북 지원활동은 1998년에 들어 서면서 보다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한 국민의 정부 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활기를 띨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사실 이 시기 김대중 정부는 대 북 지원 민간운동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998년 3월 18일 대북지원 협의 및 모니터링을 목적으로 하는 방북을 허용하고, 협력사업방식의 대북 지원도 허용하였으며, 또한 기업과 언론사의 모금행사 참여와 ARS를 통한 모금방 송도 허용하는 대북지원 활성화 조치 를 발표하였다. 이에 겨레사랑 북녘 동포돕기 범국민운동 등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구호물자의 분배확인 및 대북 지원 협의를 위해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왔고, 북한동포를 위한 국제금식의 날 행사( )에 언론사의 후원과 ARS모금이 허용되기도 했다. 23) 21)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기획조정실(2001). 22) 위의 글. 23) 통일백서 2002, p. 213.

127 128 <1995년 이후 대북 인도적 지원> (단위: 만불) 구 분 계 정 부 23, ,667 1,100 2,825 7,863 7,045 8,375 53,380 민 간 ,056 2,085 1,863 3,513 6,494 5,117 21,308 합 계 23, ,723 3,185 4,688 11,376 13,539 13,492 74,688 국 제 사 회 5,565 9,765 26,350 30,199 35,988 18,177 35,725 25, ,496 출처: 통일부 인도지원국 자료 뿐만 아니라, 1999년 2월 10일에는 정부가 진일보하여 민간단체 대북지원 창구다원화 조치 를 단행함으로써 민간단체들의 오랜 불만이었던 창구단일 화방침을 마침내 철회하였다. 그 동안 민간단체들은 대한적십자를 통한 간접 지원으로 인해 절차의 번거러움과 소량 적기지원의 어려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해왔었다. 따라서 창구다원화조치는 지원시간단축과 절차간소화 는 물론 민간단체 명의의 독자적인 대북 직접지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획기 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치 후 2월 19일에 유진벨 재단이 가장 먼저 독자창구 개설 허가를 받고 직접접촉을 통한 첫 지원을 단행했다. 24) 뒤이어 다른 단체들도 독자창구 개설을 추진하여 1999년 12월말까지 한국이웃사랑 회 등 10개 단체가 독자창구개설을 인가받아 67억원 상당의 물자를 북한에 직접 지원하였다. 25) 그러나 이러한 유리한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의 실적은 매우 저조하였다. <표 1>에서 보듯이, 대북 민간지원의 규모는 1997년 2천56만불에서 1998년 2천85만불로 현상유지를 보이다가 1999년에 1천863만불로 오히려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 렇게 나빠진 가장 주된 이유는 IMF사태로 인한 남한의 경제침체 때문이었 다.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모금에 대한 국민호응이 줄어들게 된 것도 문제였 지만,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은 대북 지원활동에 참여하는 민간단체들 의 양적 감소였다. 즉, 연쇄부도와 대량실직사태로 인해 실업자와 노숙자 문 24) 이금순, 대북 인도적 지원 개선방안: 개발구호를 중심으로 (통일연구원, 2000), p ) 통일백서 2002, p. 214.

128 129 제가 가장 시급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많은 종교, 및 사회단체, 그리 고 언론사들이 대북 지원운동보다는 실업기금 모금이나 실업자 지원활동으 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이다. 26) 대북 지원이 저조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북한의 도 발행위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우리 국민여론을 악화시킨 주된 사건들로는 1998년 6월 속초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되어 나포된 사건과 같은 해 8 월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시험이 있었다. 여기에 가장 결정적인 사 건으로는 1999년 6월 서해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해군간의 교전사태였으며, 이 로 인해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의 대북 간접지원은 1999년 말까지 잠정 유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비록 전체적인 지원규모에서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긴 했지만 지원 내용 면에서는 이 즈음 특기할 만한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먼저 지원물품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전의 곡물위주의 지원에서 영농기구, 젖염소, 의류, 학용품, 생필품, 운동기구, 장난감 등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이 북한으로 보내졌다. 또 다른 변화는 북한의 식량난이 장기화되면서 단순한 긴급구호 차원의 식량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농업생산력 회복과 환경개선을 위한 대북 개발지원의 필요성을 민간 통일운동단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 몇몇 민간단체들 은 남북한간의 농업지원 및 협력사업을 위한 방북과 대북 직접접촉을 추진 하였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등으로 국내 경제사 정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의 민간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외로 눈을 돌리 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8년 4월 25일에 개최된 북한동 포를 위한 국제 금식의 날 행사로, 전 세계 36개국 107개 도시에서 동시에 실시되어 북한 식량난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호 소하였다. 또한 1999년 2월에는 일본 동경에서 인도적 대북지원을 위한 한 일 NGO 포럼 을 개최하였고, 같은 해 5월에는 북경에서 인도적 대북지원 에 관한 국제 NGO회의 를 개최하여 대북 지원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도모 하기도 했다. 1999년 말에 접어들면서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된 다. 그 주된 이유는 IMF 외환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한 데다가, 정부의 대북 민간지원에 대한 새로운 획기적 조치 때문이라 고 할 수 있다. 즉, 1999년 10월 21일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분배의 투명성을 상당수준 보장받 26)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기획조정실,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의 성격과 전개과정 (2001), < 우리민족서로돕기 인터넷 홈페이지 자료실.

129 130 을 수 있거나,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수반하는 사업으로 인정되면, 정부 가 민간단체에게 남북협력기금에서 자금을 지원해준다는 조치를 담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민간 통일운동단체들의 지원이 규모에 비해 남북간 직접교류를 촉진하고 분배투명성 확보 면에서도 비교적 효과적이라는 평가 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간 민간 지원단체들의 축적된 대북 지원경험과 실적 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 인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7) 따라서 이를 계기로 정 부의 안정적 재정협력 하에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이 보다 확대, 지속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북한당국이 대북 지원을 하는 국제기구의 경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관계자의 방북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민간 지원단체들의 직접적인 북한주민 접촉활동은 중장기적 차원에서 교류확산 및 상호이해 증진에 기여 하는 바가 크다. 이는 실지로 1999년도에 분배투명성 모니터링을 위해 8차에 걸쳐 이루어진 우리 민간단체들의 방북이 상당히 효과를 거둔 것에서 타당 성이 엿보인다. 또한 이미 일회성 지원을 넘어 다원화와 특화를 이루면서 농 업개발, 보건의료, 산림복구 등의 분야에서 특정 지원대상을 구체화하여 지 속적인 대북 개발지원 쪽으로 지원활동의 방향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민간단 체들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기로 한 결정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강 력한 부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의 재정지원조치 결정에 따라 2000년도 한해 동안 유진벨 재 단, 한민족복지재단, 국제옥수수재단, 월드비전, 한국이웃사랑회, 우리민 족서로돕기, 남북나눔운동, 한국JTS 등 8개 단체의 9개 사업이 선정되어, 남북경협기금으로부터 54.1억원의 자금지원을 약속받았다. 구체적인 내용별 로 보면 농업개발분야 5개 사업 27억원, 보건의료분야 2개 사업 16.5억원, 취 약계층지원 2개 사업 10.6억원 등이다. 28) 이렇게 활성화된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에 참여했던 주요 통 일운동단체들과 그들의 활동 내역을 정리한 것이 <표 2>이다. 표에서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대북 지원에 참여한 국내 민간단체들 중에는 종 교적 배경을 가진 단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이는 대북 지원활동의 성격자체가 문자 그대로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이 가기도 한다. 게다가 남북한이 아직도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 점을 고려한다면 종교단체들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 념적 대립을 피해 상대적으로 보다 자유롭게 접촉과 지원활동을 할 수 있다 는 점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극심한 식량 난으로 북한이 최초로 긴급구호지원을 국제사회에 호소했을 즈음인 1995년 27) 이금순, 위의 글, p ) 통일백서 2002, p. 214.

130 131 을 전후해서는 때마침 종교계가 중심이 되어 남한 내 통일운동을 주도하고 있었고, 당시 소규모지만 대북 지원을 종교계가 이미 추진하고 있었던 것도 종교단체가 지원활동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종교단체들 스스로는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의 의미를 4가지 정도로 규정한다. 첫째로 기아와 질병에 고통받는 생명을 살리려는 인간의 양심에 기초한 인도주의 운동 임을 표방한다. 둘째로는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대립 과 갈등의 세월을 청산하고 남북화해와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운동 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인도적 지원을 통한 남북한간 신뢰회복에 기초하여 어느 한 쪽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이 아닌 진정한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운동 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넷째는 대결과 반목의 남북분 단사를 극복하고 민족화합을 이루고 나아가 평화사상과 인도주의까지 포괄 하는 열린 민족주의 운동 이라고 주장한다. 29) 여기에 불교 측 운동단체는 민족자존심 회복운동과 한국경제 회생운동이라는 2가지 의미를 덧붙이기도 한다. 30) 요컨대 이들 종교단체들은 자신들의 대북 지원활동이 다른 일반 시민단체 들의 단순한 통일운동과는 구분되는, 인도주의 정신의 바탕 위에 민족주의와 평화주의를 포괄하려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대북 지원활 동이 가진 동기의 순수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 형평성 및 독립성은 보장 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31) 종교적 배경의 단체 다음으로는 표에서 보듯이 순수 사회복지단체들과 시 민운동단체들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남북나눔운동, 이웃사 랑회, 평화의 숲, 한민족복지재단 등이 이에 속한다. 이에 뒤질세라 민중 통일운동단체들도 대북 지원활동에 나섰는데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와 어린이 의약품지원본부 등이 대표적인 단체라고 할 수 있다. 29)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기획조정실, 앞의 글과 서경석, 남북한 민간교류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1998), < 자료실. 30)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 민족돕기와 통일 (1998), pp 우리민족서로돕 기운동 기획조정실, 앞의 글에서 재인용. 31) 통일에 관한 여러 다른 시각들, 민족주의, 발전주의, 인도주의에 관한 논의로는 김병조, 인도주의적 통일론과 정부 및 NGO의 대북 인도적 지원,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논문 집 제2호 (2000)을 참조. 통일에 대한 접근에 있어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여러 민간단 체들의 유형, 즉 통일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 북한돕기운동단체, 국제NGO, 기업관련단체 등에 관한 논의는 박명규, 한반도 통일과 비정부기구(NGO)의 역할, 21세기 민족화해 와 번영의 길 (크리스찬서적, 2000)을 참조.

131 132 단 체 명 성격 지원 개시 국제옥수수 재단 <표 2> 주요 대북 인도적 지원 NGO 농업 1998 북한측 교섭창구 북한농업 과학원 남북나눔운동 기독교 1997 조선그리스도 교도연맹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불교종단협의회 (불추위) 어린이의약품 지원본부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독자창구 개설일 주요 대북 지원 내용 비료, 옥수수종자, 씨감자 분유, 운동화, 의류, 온실자재 사회 운동 두유, 구충제, 영양과자, 장난감 불교 1995 조선불교도 연맹 식용유, 비료, 생활용품, 의류 의약계 1996 아태평화위 콩기름, 기초의약품 감귤, 계란, 건초, 씨감자, 6대 종단 1996 아태평화위 의류 손수레, 젖염소, 학용품, 냉동차 월드비전 기독교 1994 아태평화위 의류, 분무기, 보일러, 자전거, 온실기자재, 비료, 밀가루 유진벨-한국 기독교 1995 이웃사랑회 천주교민족 화해위원회 평화의 숲 큰물피해 대책위 사회 운동 1998 해외동포 원호위 조선천주교도 천주교 1996 연맹, 아태평화위 결핵약, 결핵백신, x-ray기계, 검진차, 휠체어, 온실세트, 경운기, 양수기 사료용 콩, 비료, 농약분무기, 양말, 담요, 의류, 의약품 옥수수, 분무기, 의류, 설탕, 분유 환경 운동 1999 아태평화위 소나무종자, 묘목, 비료, 전지가위, 비닐, 분무기 한국JTS 불교 1997 나진 선봉 인민위원회 설탕, 분유, 밀가루, 비료, 탁아소, 유아원물품 한민족 복지재단 재미 한인 의사 1995 아태평화위 병원 개보수자재, 시멘트, 앰블런스, 병원용 침대, 의료기자재, 빵제조설비 이들 단체들의 대북 지원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원분야 가 크게 3가지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즉, 긴급구호를 위한 식량지원, 의

132 133 료 및 보건위생에 관한 각종 물품 및 기구, 그리고 농업복구지원을 위한 종 자 및 기자재 등 3가지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근에 와서는 단순히 재해재난에 대 한 일회성 긴급구호 차원을 넘어 보다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개발지원의 사 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단순한 식량지원에 치 중하던 국내NGO들이 이제는 대부분이 품종개량이나 비료공급, 농기구 지원 등 농업구조 개선사업에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보건의료분야에서 도 의약품 지원 단계에서 벗어나 집단 구충사업과 어린이 보건사업이나 결 핵퇴치사업 등 협력사업으로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32) 요컨대, 이러한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을 통한 민간 통일운동의 합법화와 활성화는 해방이래 지난 50여년 간의 남북관계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를 보 여주는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간 통일운동의 성격도 이념 적, 정치적 분야에만 편중된 것이 아니라 구호, 복지, 환경, 사회문화적 분야 등으로 상당히 다양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통일운동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류는 북한인권문제에 관심 을 갖는 시민운동단체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통일운동단체의 다양 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사실 북한인권에 대한 논의는 일찍이 극우 보수단체들에 의한 북한체제 비판에서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 도 외국 인권단체들과 국제기구의 관심표명으로 거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6년 출범한 북한인권시민연합 과 1999년에 결성된 북한 민주화시민네트워크 와 같이 본격적으로 운동차원에서 북한인권을 다루는 국 내 시민운동단체들의 출현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의 경 우는 국제적 연대와 국제무대에서의 북한인권문제 거론에 보다 많은 전문성 을 같고 있는 단체이다. 반면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경우는 과거 주사파 학 생운동권출신들의 주도로 결성한 단체로 북한사정에 정통하며 북한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김정일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단체이다. 비록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정책과 민중통일운동 진영의 곱지 않은 시각 때문에 위상이나 진로 에 현재는 애로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전문성과 활동성을 지니 고 있기 때문에 정부정책이나 사회여론에 큰 변화가 있을 경우는 큰 영향력 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통일운동 주체와 노선 다변화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 민운동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인 통일운동에의 참여와 이에 자극을 받은 민중 운동단체들의 노선조정이 크게 작용하였다. 물론 범민련을 중심으로 범민족 대회 개최를 고수하며 여전히 강경노선을 고수하는 민중운동단체들도 있었 32) 조한범 외,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남북한 교류 협력 증진 방안 연구 통일연구원, 협동연구총서 (2000), p. 90.

133 134 지만, 이와 달리 보다 대중화되고 유화적인 방향으로 운동방식의 전환을 모 색하는 단체들의 목소리도 민중통일운동진영 내에서 커지면서 1996년부터는 범민족대회와는 별개로 통일대축전 개최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 었다. 33) 이는 민중운동진영 입장에서 보면 분열책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만, 통일운동 전반의 입장에서 보면 양진영간의 거리를 좁혀질 수 있는 계기 가 마련된 것이었다. 즉, 민중통일운동진영 내부의 변화와 시민운동단체들의 적극적인 통일운동에 참여는 통일운동진영 전체가 사안에 따라서는 이념과 노선을 초월하여 연대활동을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그러한 연대가능성이 실현된 것이 바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화 협)의 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9월 3일 출범한 이 단체는 이념과 계 파, 직업과 직능분야를 모두 초월하여 204개의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하나로 뭉쳐 만든 명실상부한 연합전선 통일운동단체이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인도적 지원분야를 제외하고는 통일운동이 경색되고 과격화될 소지가 있는 상황이 었다. 북한의 핵사찰 거부와 NPT 및 IAEA탈퇴, 그리고 서울 불바다론 등 으로 인해 1990년대 중반 이후 김영삼 정부의 대북 정책이 노태우 정부 시 절보다 오히려 더 강경해지면서 자칫 통일운동이 상당히 위축될 수도 있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분야가 활성화되었고 그 이후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국면전환이 가능해지 긴 했지만, 그렇다고 민화협과 같이 폭넓은 대표성을 지닌 민간 통일단체의 출현 또한 쉽게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민화협의 결성은 그 만큼 큰 의의를 갖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민화협 결성의 의의는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34) 첫째는 남북대화에 앞서 남남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대북 정책에 대한 다양 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감상적 또는 이념적 통 일운동단계를 넘어 실사구시적 통일운동을 위한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보 다 체계적으로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민화협은 민간차원에서 추진하 는 남북한간 화해협력의 실질적인 주역으로서, 민간부문을 대표하여 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남북교류를 선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민화협의 출범 배경에 통일부의 주선과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평가는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35) 33) 백승대, 대수시민의 통일의식과 통일운동의 과제, 통일문제연구협의회,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과 민간통일운동의 진로 (1999), p ) 정영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민간단체의 통일운동, 통일문제연구협의회, 위의 책, p.7. 35) 1998년 통일대축전 개최관계로 남과 북, 그리고 남남간의 의견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자, 통일부가 나서서 보수와 진보를 모두 망라하여 4개 정당과 8개의 시민단체간의 간담회를 주선하였고, 7차례에 거친 만남과 격론 끝에 비로소 민화협 결성이 합의되었다. 이장희,

134 135 반대로 바로 이러한 평가 때문에 민화협에 대해서는 다른 단체들보다 더 큰 역할이 기대되었고 그것이 때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민 화협에 대한 기대는 대개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첫째로, 민화협 결성 이 정부주선으로 시작됐고 그 후에도 지속적인 정부지원이 있어왔기 때문에 민화협은 순수 민간 통일단체로서의 선명성을 유지하는 데 각별히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선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이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친정부적이라는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와의 관계에서 협조적 비판자로서 자세를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명실상부하게 남한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직 가입하고 있지 않은 다른 주요 민간단체들의 영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출범 당시 범민련과 한총련 그리고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는 가입하지 않았 다. 비록 법원이 이적단체로 판시하긴 했지만 범민련이나 한총련은 현실적으 로 무시할 수 없는 통일운동의 주요 세력임에는 틀림이 없고, 한나라당은 제 1야당일 뿐만 아니라 원내 다수당인 상황이다. 따라서 개인자격으로라도 이 들 단체의 인사들을 가입시키는 문제에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로는 다양한 노선과 상이한 직능분야 단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 문에 조직의 효율성과 건강성 유지를 위해서 내적 결속화 작업에 더욱 신경 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조직내의 민주성, 도덕성, 투명성 확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받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대내적으로나 대 외적으로 모두 명분과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고, 활동의 성과와 효율성도 떨 어지게 되어 국민의 기대와 여망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6) 이렇게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이 활동범위 면에서나, 조직화의 면에서 모두 자체적 역량을 강화되고 축적하게 되면서, 정부차원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도 아울러 커다란 결실을 보게 되어, 마침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의 역사 적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이는 실로 남북관 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커다란 사건으로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에의 기 대를 한껏 부풀게 하였으며, 남북교류와 협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4기: 성숙기(2000년-현재)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부터 지금까지를 묶은 이 시기의 통일운동 에 대한 정확한 서술과 평가는 아직 좀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앞의 글, p. 32; 정영태, 위의 글, p ) 이장희, 앞의 글, pp

135 136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내용들이 아직도 완전히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고, 최근 다시금 제기된 북한 핵개발문제로 인해 남북간의 대화나 교류가 정상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 통일운동 내부 에서도 몇몇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방향성을 단언 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대한 서술과 평 가는 당연히 개략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이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커다란 전환점이자 통일과정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해방이래 처음으로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고 교류 협력과 통일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은 실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게다가 정상 회담기간 동안 보여준 김정일 위원장의 태도와 환대는 의외성 요소가 가미 되어 남한 국민들로 하여금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그 결과 북한 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도 상당히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정상회담 제일의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남북한 두 정상 이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 이다. 이 선언의 의의는 우리 통일부의 자체 적 평가처럼, 남북정상간의 직접적인 합의와 서명을 담은 문서로서 향후 남 북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규범력을 가지며,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을 확인하였고, 통일에 앞서 평화공존의 단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담고 있으며,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37) 또한 남북공동선언과 더불어 정상회담 이후 진행되기 시작한 남북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별 정부간 대화, 남북경협사업의 진전,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확대, 이산가족상봉과 인도적 문제해결 등은 남북관계의 가시적 변 화를 실감케 하였으며 점진적인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나아가 통일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한껏 고조시켰다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 영향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활성화된 남북교류의 실태를 잠시 살펴보면, 우선 인적왕래 측면에서 1999년에는 3,317명이 북한 을 방문했었는데 그 숫자가 2000년에는 5,599명, 2001년에는 7,280명, 2002년 에는 8,551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38) 구체적인 방문내용으로는 2000년에 이루어진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을 비 롯해 남북교향악단 서울합동연주회, 2001년의 남측 창극단의 춘향전 평양 공연, 이영희의 민족옷 전시회와 패션쇼, 그리고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개최 된 남북공동사진전 백두에서 한라까지, 2002년에 와서는 분단 후 최초로 37) 통일부, 평화와 협력을 향하여, 남북정상회담 2주년 해설자료 (2002.5), p ) 통일부, 통일백서 2003, p. 191.

136 137 열린 남북공동전시회, 평양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합동연주회 등이 포함된다. 문화분야 뿐만 아니라 체육분야에서도 2000년 통일축구대회 를 비롯해 2001년에는 금강산국제자동차경주대회 가 열 렸고, 2002년에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 대규모의 북한선수단과 응원단 668명이 참가했으며, 북한태권도시범단 이 서울을 방문해 두 차례 시 범경기를 갖기도 했다. 이외에도 각종 종교행사와 노동절행사, 농민통일대회, 여성통일대회, 청년학생통일대회 등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공동으로 개최 되기도 했다. 39) 2000년에 열린 남북한간의 교류행사 중 민간 통일운동과 관련된 가장 획 기적인 사건은 북한노동당 창건 55주년 행사에 대한 남한 시민사회단체의 방북 참관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행사( )에 남측의 시민단체 30개를 초청했고, 이를 우리 정부가 수용, 지원하여 성사되었다. 남측의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진보적 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의 지원 하에 참관자 자격으로 창건행사에 성공리에 참가하고 귀국하였다. 40) 또한 2001년에는 6.15 공동선언 발표 1주년 기념으로 치러진 민족통일대 토론회 와 평양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축전 이 가장 괄목할 만한 행사 라고 할 수 있다. 정상회담 이전까지 남측 민화협을 상대하지 않고 범민련만 을 고집하던 북측 민화협이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남측 민화협 측 인사와 북 경에서 만나 협의하여, 범민련과 한총련을 포함한 통일연대와 함께 6.15 공 동선언 발표 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 를 개최한 것이다. 금강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민화협, 7개 종단, 통일연대에서 각각 2명씩 참여하여 성공 적으로 행사를 치렀으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도 했다. 41)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축전 에는 300명이 넘는 대규모 방문단이 방북하여 민간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이듬해 2002년에는 서 울에서 개최된 8.15 민족통일대회 에 북한측의 민간대표 116명이 답방하 여 그 의의를 더 높았다. 42) 대북 인도적 지원도 이 시기에 더욱 더 활기차게 추진되었다. 사실 정상회 담 직후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은 다소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왜냐하면 정상회담성사를 계기로 북한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남한 정부의 지원에만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려 39) 통일부, 앞의 글, 평화와 협력을 향하여..., pp ; 이철기, 6.15선언 이후 민간교 류의 현황과 과제, 통일뉴스 창간 2주년 기념토론회, 최근 한반도 정세와 6.15남북선언 의 의의 발표논문 ( ), pp ) 이장희, 앞의 글, p ) 이장희, 앞의 글, p ) 이철기, 앞의 글, p. 25.

137 138 와 달리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활동도 더욱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대북 지원규모 면에서는 앞의 <표 1>에서 보듯이, 1999년 1,863불에 서 2000년 3,513불로 약 2배 가량 증가했고, 2001년 6,494불로 또다시 2배 가 량의 증가를 보였다. 또한 창구다원화가 최초로 실시된 1999년에는 10개 민 간단체가 독자적 창구를 개설하여 67억원 상당의 대북 지원을 한데 비하여, 2000년에는 13개 단체가 307억원 상당, 2001년에는 19개 단체가 558억원 상 당을 지원하였다. 43) 이는 정상회담이 대북 지원활동에 꽤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것을 대변한다. 지원규모의 증가 외에 정상회담 이후 1-2년 간 전개된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의 특징으로는 첫째, 긴급구호 지원에서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협력 사업, 즉 농업협력사업과 보건의료지원사업 등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둘째 남한에서 남아도는 잉여물자의 대북 지원사업이 활발해졌다. 셋째 지방자치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이 추진되었다. 예컨대, 강원도는 농 업용 비닐을, 제주도에서는 감귤을, 전라남도에서는 김과 미역을 각각 북한 에 지원하였다. 넷째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통일부의 남북협 력자금이 2000년도에는 7개 민간단체(7개 사업)에 33.8억원, 2001년에는 12개 단체(15개 사업)에 38.4억원이 지원되었다. 다섯째, 대북 지원단체들의 국내 외 연대 및 협력이 활발해졌다. 44) 예컨대 국내 단체끼리의 정보교환, 공동로 비, 사업운영협조를 위해 2000년도에는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가 공식 발 족했다. 45) 아울러 해외단체들과의 공조와 홍보를 위해 국제회의나 공동사업 도 추진되었는데, 한 미 일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2000년부터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는 대북지원 국제NGO대회 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지원분야가 다양화되었지만 <표 3>에서 보듯이, 단체별로 전문성을 살려 지원분야의 자발적인 분업화와 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지원 단체간의 불필요한 소모적 경쟁을 피하고 경험축적을 통한 사업의 효율성을 높임은 물론, 지원단체에 대한 북한의 신뢰도를 높여줌으로써 사업의 지속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다고 하겠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김대중 정부의 강력하 43) 독자창구를 개설한 구체적인 단체는 <표 3>을 참조. 44) 서경석, 민간단체의 대북교류협력: 현황과 실천, 대북협력국제NGO회의 조직위원회, 제 3회 대북협력국제NGO회의 발표논문 ( ), pp 독자창구개설 단체의 수와 정부지원 액수는 통일백서 2003, p. 244에서 인용. 45) 민간단체끼리 만이 아니라 정부까지 포함시킨 민관협의 제도화 의 필요성에 따라 2001 년에는 워크샵과 간담회, 그리고 두 차례의 준비모임을 거친 후 대북 지원에 관련된 민간 단체, 전문가 및 정부부처가 함께 하는 정책논의의 장인 '민관 정책협의회'가 정식으로 설립되기도 했다. 통일부, 민관 정책협의회 추진경과 ( ) 통일부 홈페이지의 주 요업무현황 중 인도적 지원 자료, <

138 139 고 일관된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힘입어 정상회담 이후 1-2년 간은 민간차원 의 교류와 지원활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획기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 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민간 통일운동의 커다란 흐름에 또 한번의 변화조 짐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표 3> 민간단체 주요 지원분야 지원분야 전염병 퇴치 결핵치료 간염예방(유진벨) 지원단체(지원사업) 결핵예방(대한결핵협회/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보건 의료 병원 현대화 기타 농기계 지원 평양안과병원 건립(굿네이버스/라이온스협회) 아동병원 현대화(굿네이버스/한민족복지재단) 어린이심장병센터 건립(한민족복지재단) 구충사업(한국건강관리협회/남북어린이어깨동무/한민족복지재단) 어 린이영양관리지원(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남북어린이어깨동무) 제약생산시설복구지원(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남북어린이어깨동무) 수리공장 건설(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경운기 파종기 등 각종 농기계 지원(경기도/새마을운동중앙회) 농업 복구 축산 젖소 젖염소 목장(굿네이버스/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양계 닭목장(굿네이버스), 산란 종계장(새마을운동중앙회) 종자개량 씨감자(농발협/월드비전), 옥수수(국제옥수수재단) 기타 솔잎혹파리방제(강원도), 묘목지원(평화의 숲), 연어자원보호 증식(강원도), 채소재배온실 지원(월드비전) 일반 구호 아동시설 급식지원을 위한 국수 제빵 영양식 공장 운영 일반구호 (남북나눔/한국JTS/한마음한몸운동본부/남북어린이어깨동무) 출처: 통일백서 2003, p 변화의 조짐이란 다름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조직화와 세력화라고 할 수 있다. 민화협의 결성 자체와 민화협의 주도 하에 추진된 활발한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다방면의 교류활동에서 보여지듯이,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 남북정상회담 때까지는 대북 정책에 대한 이념적 갈등이 그리 첨예하게 나 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상황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한 내 보수진영들의 각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 지 않아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야당인 한나

139 140 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정부정책은 물론 우 리사회가 지나치게 친북화되어 간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들은 반공, 국방 및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과 보 다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우리정부의 대북정책 전개를 주문하면서, 세력 확장과 행동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보수노선의 부시행정부 등장과 9.11테러의 발생으로 인한 미국정책 의 강성외교노선은 북한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정 세 속에서 대북 정책에 추진에 있어 한미간 불협화음이 생기고 서해교전과 같은 북한의 도발행위가 터져 나오자, 보수진영의 세력결집 노력과 조직화된 의사표시는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변혁지향적 민중운동진영도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기 시작 했다. 우선 부분적으로나마 민화협을 통한 연합전선에 동참했던 민중통일운 동 세력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연대조직인 6 15남북공동선언실현과한반도 평화를위한통일연대 (통일연대)를 결성하였다. 2001년 3월 변혁지향적 민중운 동사회단체 48개가 모여 조직한 통일연대는 확산되고 있는 국민대중의 반 미감정을 범국민적인 반전반미투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부시정권과 반통일 수구세력의 전쟁분열정책을 저지하고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여는 것 을 목표로 한다고 선언하면서 통일노선의 색깔을 분명히 하였다. 46) 여기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사망사건이 터지고 이라크전쟁과 연계하여 미국의 대 북 선제공격가능론이 개진되면서, 기존의 반전 혹은 평화운동단체들에다 중 도적 시민운동단체들까지 여중생추모와 반미 쪽으로 가세하는 경향을 보이 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진영 쪽에서는 안보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정권타도의 기치를 더욱 높이는 국면이 전개되었고, 급기야 최근에는 성 조기와 인공기가 양쪽 진영에 의해 각기 찢기고 불태워지는 상황에까지 이 르게 된 것이다. 당국간 남북관계는 물론 민간 통일운동의 획기적인 도약에 기폭제이며 추 진동력을 제공했던 담당했던 남북정상회담이 다른 한편으로는 남남갈등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대북정책의 앞날을 오히려 불투명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민간 통일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해봐 야 할 것 같다. 특히 중대한 당면 현안인 북핵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점 을 찾느냐에 따라 일차적인 상황의 전개방향이 결정될 것이며, 좀 더 장기적 으로는 현 참여정부의 정치력과 국민적 인기도에 따라 궁극적인 영향을 받 게 될 것이다. 46) 시민의 신문, 한국민간단체 총람 2003, p. 386.

140 민간 통일운동단체의 유형과 특성 이제까지는 민간차원에서 전개되어온 통일운동의 주요 흐름에 대해 살펴 보았다. 지금부터는 현재 활동중인 통일관련 주요 단체들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단 체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1987년 6.29이 후 우리사회에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 결사의 혁명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통일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전문단체들이 민간차원에서 조직되었다. 따라서 가용한 기존의 자료들을 조합하여 추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2003년 현재 통일부 허가를 받은 법인단체로는 통일활동 전반에 관 여하는 단체 41개, 학술연구단체 25개, 교류협력분야 17개, 인도적 지원분야 15개 단체, 통일교육 단체 1개를 합쳐서 모두 99개가 있다. 47) 그러나 법인신 고를 하지 않은 단체도 있고 행정부의 다른 부처에 법인 인가를 낸 단체도 있기 때문에 실제 통일관련 활동을 수행하는 단체는 이보다 더 많다. 이와 관련 참고 할 수 있는 것이 최근 시민의 신문이 발간한 한국민간단체총람 2003 이다. 현재 민간단체에 관해서는 가장 체계적이고 방대한 자료를 수록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총람에 따르면, 통일과 평화에 관련된 단체는 112개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통일관련 분야에서 활동이 두드러지면서도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 예컨대 경실련, 전국 연합, 흥사단 등은 따로 분류되어 취급되고 있다. 또한 여성과 인권문제에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분류된 단체들도 통일운동 및 논의에 활발히 참여하 는 단체들, 즉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국제인권옹 호한국연맹,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이탈주민회, 4월 혁명회 등이 있다. 또 1990년대부터 눈부신 활동을 전개해온 인도적 지원단 체들인 이웃사랑회, 유진벨재단. 월드비전, 한국JTS, 평화의숲 등 도 고 려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본 연구에서 다루기로 한 단체의 수는 132개이다. 이는 통일부 인가 법인단체와 한국민간단체총람 2003 에 수록된 단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낸 단체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밝혀두어 야 할 점은 기존 자료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는 단체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설립취지, 연도, 활동내용 등이 명기되어 있지 않는 경우나 자체적인 홈페이지가 없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정확한 이념이나 활동방향에 대해 판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들 47) 통일부 홈페이지 자료실, <

141 개의 통일관련 민간단체들의 주된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보다 체 계적인 검토를 위해 설립시기상 특징과 활동분야 및 이념적 성향으로 나누 어 살펴볼 것이다 설립 시기 앞서 언급하였듯이 1987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시민사회의 조직화도 급격히 진행되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간 억눌려 왔던 욕구들이 일제히 표출되었고, 이들은 조직화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목 표달성과 보다 큰 이익획득 및 세력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야말 로 결사의 붐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표 4>를 보면 그러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1990년대 생겨난 단체의 수는 그 이전 시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러 한 시민단체의 양적 확대는 시민의 권리의식 제고에서 연유되기도 했지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 기반인 사회운동단체 들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해준 데도 이 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48) 원인이야 어찌됐건 이로 인해 우리 시민사회의 조직화는 가속화되었고, 그러한 양적 증대는 질적 수준의 향상으로 발전되는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즉, 각 분야마다 시민단체들의 자율성과 전문성 이 향상되고, 단기적인 고발이나 문제제기 수준을 문제해결을 위한 보다 구 체적이고 정책적인 제언까지 할 수 있는 단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시민 혹은 사회운동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통일운동단체들의 경우도 1987년을 계기로 보다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48) 김영삼 정부의 시민단체와 관계에 대해서는 유팔무, 비정부 사회운동단체의 역사와 사회 적 역할: 시민운동과 정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동서연구, 제10권 2호 (1998)을 참 조. 김대중 정부의 경우는 이연호, 김대중 정부와 비정부조직 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 정치학회보, 제35집 1호 (2001)을 참조.

142 143 <표 4> 민간단체 설립 추이 전체 분포: 892 / 단위: % 구 분 시민사회 일반 여 성 청년학생 법.행정. 정치 인권 추모사업 평화통일 소비자 생활 전 체 출처: 시민의신문, 21세기 NGO의 대동여지도, 2003 한국민간단체총람 출판기념회 ( ) 배포 자료, p.11. <표 5>에서 볼 수 있듯이 통일 및 평화관련 단체들도 1987년 이후 들어 와서 더욱 더 많이 결성되었다. <표 4>와 달리 <표 5>는 김영삼 정부와 김 대중 정부 시기를 구분해보고자 10년 단위가 아닌 5년 단위로 구분하여 정 리해보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영삼 정부 때보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 더욱 많은 수의 단체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힘입 어 통일에 대한 논의와 지원 훨씬 활성화되고 보다 많은 단체들이 출범하였 음을 입증해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표 5>는 1987년 이전에도 의외로 많은 단체가 존재했음을 보여준 다. 그 이유는 1987년 이전에는 정부의 통일정책을 홍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많은 관변단체들이나, 안보와 반공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보수성향의 단 체가 꽤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1964년 결성되었다가 1976년 해산한 최초의 민간통일단체라고 할 수 있는 북한해방통일촉진회가 있었 고, 49)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는 국민정신중흥회 (1968), 북한연구 소 (1971), 국제안보연구소 (1977), 민족통일협의회 (1981), 일천만이산가족재 회추진위원회 (1982), 국제평화연구소 (1987.2)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형식적 으로나마 북한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단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예컨대, 49) 통일부, 통일백서 1995.

143 144 대한예수교장로회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1971), 기독교북한선교회 (1974), 민 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1984), 한민족세계선교원 (1984) 등이 그런 단체라고 할 수 있다. <표 5> 시기별 통일관련 민간단체 출범수 시 기 구 분 단 체 수 (%) 1970년 이전 3 (2 %) (8 %) (8 %) (19 %) (29 %) (35 %) 계 132 (101 %) 물론 1987년 이전에도 재야와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세력이 주도하는 비합법적인 통일관련 단체들은 몇몇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이 통일보다는 민주화와 독재타도를 더 우선시 하였기 때문에 본 연구가 종 합한 자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이 시기의 진보적 단체로 민간 단체총람 에 수록된 것은 1971년 백기완씨가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가 유 일하다고 하겠다 활동분야와 성향 통일관련 민간단체들의 종류를 분류하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 다. 대표적인 예로 김영래교수와 정연정박사의 분류를 들 수 있다. 먼저 김 영래교수는 활동목적을 기준으로 통일관련 NGO를 3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 고 있다. 50) 첫째는 진보적 통일운동 지향형 으로 정부의 통일정책을 미진하 고 보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보다 강한 압력을 통해 정부의 정책변화를 유도 하려는 단체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경실련통일협회, 민주주의민족통일 연합, 범민련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대북원조 지향형 인데, 식량 및 의료품 부족으로 고통에 처해있는 북한주민들을 돕고 지원하 자는 인도적 단체들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연계하여 조건 50) 김영래, NGO와 정부와의 상호작용 연구, 국제정치논총 제39집 3호 (1999), p. 164.

144 145 부 지원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부터 북한체제와 고통받는 일반주민들을 구분 하고 주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주장하는 단체가 모두 포함된다. 대표 적인 기관으로는 유진벨재단, 월드비전, 국제옥수수재단 등이 있다. 셋째 로는 혼합형 이 있는데, 통일운동에 대한 정책수립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진 보적인 통일시각을 정부에 전달함과 아울러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함께 추진 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들은 중장기적인 교류협력사업이 통일과정에 큰 기여 를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 단체로 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이 있다. 이러한 3가지 유형의 단순한 분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연정박사는 활동 목적, 핵심사업분야, 활동전개방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등을 기준 으로 네가지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51) 첫째는 점진적 통일준비형 이다. 이에 속하는 단체는 교류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 통일을 추구하면서 핵심사업분야는 인도적 지원과 교류확대 활동이다. 사업추진 방식은 인력과 기술의 대북 지원과 함께 남한 내에서의 캠페인활동이 주가 된다. 대표적인 예로 국제옥수수재단, 월드비전,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조건적 지원형이다. 이들 단체는 북한의 인권과 구조변화를 조건으 로 한 대북지원을 추구한다. 핵심사업으로는 인권운동과 탈북자돕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남한 내부에서의 캠페인사업과 더불어 국제 인권기구에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북한실상을 홍보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인다. 대표적 단 체로서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이탈자주민후원회 등이 있다. 셋째로는 단순지원형 이 있는데, 이 단체들의 활동목적은 오로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과 북한주민 돕기이다. 대북지원을 위한 식량과 물품을 모 금하고 홍보를 통해 정부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유도하려고 노력하기 도 한다. 대북 지원 창구의 다원화를 주장하면서 더 많은 양의 대북지원을 추진하는 단체들로서, 남북나눔운동, 좋은벗들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 다. 넷째는 민주적 조건지향형 이라고 지칭되는데, 이에 속하는 단체들은 남 한사회의 변화를 더욱 우선시 하는 경향이 짙다. 즉, 남한 사회의 정치적 민 주화를 달성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먼저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민중의 주도에 의한 남한 사회의 변혁과 자주적 통일 추구에 촛점을 두고 남한 대중의 인식전환과 국 가보안법철폐와 미군철수를 강조한다. 이를 위한 홍보, 캠페인, 범국민운동, 정책토론회 등의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한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범민련, 전 국연합, 민족회의 등이 있다. 51) 정연정, 남북관계와 통일 NGO," 국제정치논총, 제40집 4호 (2000), pp

145 146 통일관련 단체에 대한 분류는 사용하는 기준에 따라 달리 유형화가 이루 어질 수 있겠지만, 본 연구의 일차적 목적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통일관련 민간단체들의 현황파악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여기서는 주로 어떤 성향을 지 닌 단체들이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활동하고 있느냐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자 한다. 활동분야는 통일활동 전반, 학술 및 조사, 교류협력, 인도적 지원, 그리고 통일교육이라는 다섯 가지 분야로 구분하고, 이념적 성향 혹은 대북 활동의 동기는 보수, 중도, 진보, 및 종교로 구분한다. 이념적 성향구분에는 단체의 설립취지와 목표, 지도부의 경력과 이념성향, 그리고 활동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주관 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단체들의 노선을 완벽하 게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손치더라 도 단체임원들이 내리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런 경우 대개 설문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통일 관련 NGO들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보려는 본 연구의 취지 상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단체에 관한 문헌, 인터넷자료의 면밀한 검 토, 그리고 몇몇 통일운동관련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판단을 시도하였다. 우선 첫째로 통일활동 전반 에 걸쳐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이들 의 수는 모두 62개에 달한다. 통일활동 전반이라 함은 우선 통일에 관한 범 국민캠페인, 서명운동, 국민대회 등과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및 선전활동, 합창대회나 사진전 혹은 달리기대회나 등반대회 등과 같은 이벤트 성 행사를 통한 통일의식 고취활동, 그리고 아래에서 서술하는 다른 분야인 학술 및 조사연구활동이나 교류협력활동 등에 다방면에 걸쳐 활동을 전개하 는 단체들을 일컫는다. 본 연구의 표본인 132개 단체 중에는 진보적 단체보다는 보수적 단체가 조금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된 이유는 실제로 진보적 단체의 수가 적어서라기보다는 진보적 단체의 경우 법인으로 설립된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진보적 단체의 경우 아직도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열악한 경우가 많아 총람의 경우 조사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적으로는 약간 열세에 있지만 활동 의 강도에 있어서는 보수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정책제 언도 하긴 하지만 시위나 집회 등을 통한 세력과시에는 진보적 단체들이 더 우세한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146 147 <표 6> 통일활동 전반 관련 민간단체 성향 보 수 중 도 / 연 합 진 보 21세기통일봉사단, 국민정신중흥회, 다물민족연구소, 대한민국팔각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족통일협의회, 민주통일촉진회 범민족화합통일운동본부,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민족연합 세계민족평화통일협의회, 세계평화청년연합, 통일건국민족회 통일기념사업회, 통일안보중앙협의회, 통일한민족회의 평화문제연구소, 평화와통일을위한복지기금재단, 한국미래연구학회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한국통일교육연구회, 민족운동지도자연합회 한민족운동지도자연합회, 한민족통일교육연구소 한민족통일여성중앙협의회, 한민족통일촉진협회, 한민족협의회 경실련통일협회 미래전략연구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세계평화여성연합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4월혁명회, 6.15남북공동선언과한반도평화를위한통일연대 미군기지확장반대평택대책위원회, 민족사회운동연합 민족통일촉진회, 민족화합운동연합, 민주주의민족통합전국연합 우리끼리통일의문을여는통일촌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의정부시민연대회의,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통일맞이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인권연대, 평화통일을위한시민연대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한반도평화를위한시민네트워크 종 교 가톨릭평화지기,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대한기독교자유연맹, 동학민족통일회 민족에스라운동협의회, 민족통일복음화운동본부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국불교자유총연맹, 한민족세계선교원 <표 6>에서 중도 혹은 연합으로 분류된 단체들의 경우는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1987년 이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비추어 본다 면 중도에 속하는 단체의 성격도 당연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주장과 활동도 적어도 모두 시민운동단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47 148 중도라기보다는 온건진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진보라 고 지칭한 변혁지향적인 민중단체들과의 차별화가 필요하고, 이들 단체들이 보수와 진보단체들을 모두 포함한 연대조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도/연 합이란 항목으로 이름을 붙였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중도라는 표현의 정확 한 의미보다는 단체들의 성향을 대략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라고 생각함이 더 나을 것 같다. <표 6>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종교단체의 성향이다. 엄격히 말하면 종교단체의 경우도 진보냐 보수냐를 구분 지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 피 북한은 공산주의체제다. 즉, 공산주의체제하에서는 종교란 인정되지 않는 다. 따라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남한의 종교단체가 반공이념전파 에 동원되어질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자신의 종교를 선교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북 교류를 추진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보수적인 통일 운동을 하는 대북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보다 적극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종교단체도 있다. 남한의 민주화과정에서 종교단체들이 많은 희생 과 노력을 했던 것처럼 통일과정에서도 진보적 종교단체의 활동도 큰 영향 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종교적 접근 자체가 보수와 진 보라는 이념 차원과는 다른 범주이기 때문에 따로 달리 구분하였다. 두 번째 분야로는 학술 및 조사연구 영역이 있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는 통일방식과 과정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통일정책을 개발하며, 통일에 관한 토론회 및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통일에 관한 여론수렴과 홍보 활동을 전개하는 단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도 보수적 단체가 진보적 단체의 수보다 많게 나타났 다. 언뜻 생각하면 학술 및 조사단체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선도와 정책 개발을 위해서 이념적으로 중도에 위치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 나 학술단체라고 해서 이념적 혹은 정치적 이해타산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또한 때로는 추구하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 방편과 전략이나 합리 화를 위한 명분을 찾는 일이 학술 및 조사기관의 역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술 및 조사연구단체도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의 성향을 띨 수 있 는데, 유독 보수 쪽이 많은 것은 현재 남한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와 자 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보수라고 해서 학술단체의 경우는 소위 수구적인, 막힌 보수 혹은 반동적 보수 만을 지 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신봉하고 지키려는 시각을 가진 긍정적 의미의 보수단체들도 모두 포함된다.

148 149 <표 7> 학술 및 조사연구 민간단체 성향 보 수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21세기남북문화연구원, 국제안보연구소 국제평화연구소, 남북사회문화연구소, 북한사회과학연구원, 북한연구소 통일경제연구협회, 통일문제연구협의회, 통일문화연구원, 통일시대연구소 통일안보연구소, 평화연구원, 평화통일운동연합, 한국발전연구원 한국사회문화연구원, 한민족통일연구중앙협의회 중 도 / 연 합 남북체육연구학회 서울평양학회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 한국청년정책연구소 진 보 국제평화전략연구원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통일문제연구소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세 번째 분야는 "교류 및 협력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은 상호 인 적, 물적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바꾸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활동이 포함된다고 하겠다. 음악이나 미술적 교류나 작품교환, 혹은 공연이나 체육대회의 공동 개최 등을 통해 분단으로 서로 달 라진 문화와 예술적 인식의 폭을 좁히고 서로에 대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예배나 미사, 혹은 통 일기원 예불과 같은 활동도 이에 속하며,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교환 학생이 나 수업참관, 혹은 공동프로젝트의 추진 등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사람, 물건,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남북한간에 이해증진이 이루어지 는 활동이면 모두 포함될 수 있다고 하겠다. 이 분야에 속한 단체는 의외로 적다. 이는 반대로 넓은 의미로 말하면 모 든 단체가 교류협력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술활동이건 인도적 지원이건 궁극적으로는 인적, 물적 접촉과 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넓게는 교류와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류협력만을 따로 떼어내어 하나의 범주로 분류했을 때 정히 이 범주에만 속한다고 말할만한 단체를 찾기가 힘 들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단체의 수가 적은 것뿐이다.

149 150 <표 8> 교류협력 민간단체 성향 보 수 중 도 / 연 합 겨레하나되기운동연합, 남북소년통일교류회 민족문화교류재단, 민족화합통일운동연합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평화통일복지협의회 한겨레평화통일협의회 강원도협력협회 민족통일체육연구원 통일경모회 진 보 남북문화교류협회 남북민간교류협의회 남북코리아미술교류협의회 종 교 기독교북한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민족통일선교협회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사실 이곳에 추가로 꼭 더 포함되어야 할 단체로는 문화, 예술 및 체육인 교류협력 단체들이다. 일찍이 남한의 진보진영에서는 민족예술가총연합회 이 나 학술단체협의회 등을 통해 북한과 많은 교류와 협력사업을 진행시켜 왔 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에 대한 기존 발간자료나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 체계적인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이는 학술, 음악, 미술, 연구, 공연, 전시 및 경기 단체들의 남북교류협력 실태에 대해 보다 많 은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교류협력사업의 중장기적인 효과에 대해 서도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는 "인도적 지원과 교육분야"가 있다. 북한주민의 식량부족과 궁 핍한 생활을 인도적 차원에서 돕고, 노약자나 어린이, 그리고 여성과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구호활동도 모두 포함된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공, 농업 기반시설 확충, 헐벗은 산에 나무심기 등의 활동들이 전부 이 분야에 속한다 고 할 수 있다.

150 151 <표 9> 인도적 지원 및 교육분야 민간단체 성향 보 수 중 도 / 연 합 진 보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한국이웃사랑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한민족복지재단, 국제옥수수재단 평화의숲, 남북제주도민운동본부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북한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 종 교 남북나눔운동, 월드비전, 유진벨재단 한국JTS, 남북사랑나누기협의회, 좋은벗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민족통일선교협회 이 분야에는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여러 종교단체와 긴급구호 단체를 필두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민간 단체들의 약진과 압력으로 1999년에는 창구 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2000년부터는 남북교류기금에서 재정적 지원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제도적 활성화조치에 힘입어 상당히 많은 민간단체들이 보다 더 대북 지원에 박차를 가해 최근에도 상당히 활발히 활 동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야에서는 인도적 지원 분야답게 말 그대로 중도노선의 단체와 종교 적 배경을 가진 단체가 월등히 많다. 과거 관변단체로 이름을 날렸던 새마을 운동본부가 최근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여하여 큰 활약을 하고 있다. 평 화의 숲과 같은 단체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분야도 점차 식량지원과 긴급구호에서 보다 더 다양하고 전문성이 있는 영역으로 활동범위와 참여단 체가 커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 표에 언급된 단체들 말고도 상당수의 교류협력이나 종교단체들이 이 분야에 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기도 한다.

151 152 교육분야도 요즘은 여러 단체에서 화해아카데미 혹은 통일연수 등의 이름 으로 다양하고 수준높은 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이 통일교육협의회라고 할 수 있다. 이 협의회는 통일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단체들의 협의기구로 현실감있고 효과적인 통일교육을 위해 많은 토의와 상 호지원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과 관련해서 민간단체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분 야가 "북한인권문제"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과거 남북간에 체제경쟁이 한 창일 때는 북한에 대한 비판과 공세의 차원에서 정부당국이나 관변단체에 의해서만 다루어져 왔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로 들어오면서 시민운동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인권단체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다. 최근에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의 경우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북한의 인권을 논의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슈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보수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속하는 단체들로는 전통적인 우익보수 단체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와 전통적인 인권단 체인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 그리고 최근에 등장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와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이 있다. 과거 학생운동권의 주 사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주화네트워크는 열악한 북한 내 인권실태 고발에 주력하면서 김정일 정권의 압제로부터 북한주민을 구해내야 한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시민연합의 경우는 국외 다른 인권단체 나 명망가, 그리고 국제인권기구들에 북한의 인권침해상황을 탄원하고 북한 에 압력을 가하도록 하는 데 주로 힘을 쏟고 있다. 이와 아울러,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오 고 있다. 혹시 북한정권과 마찰이 생겨 다른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에 차질 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정부 당국과 민간차원에서 모두 탈북자의 탈북 및 정착에 대한 지원활동을 꾸준 히 성의를 가지고 추진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 단체로는 북한인권개선 운동본부, 탈북자동지회, 북한이탈주민후원회 등이 있다. 이제까지 통일과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을 분야별로 성향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비록 이념과 노선은 다르지만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민간차원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획일적이고 일원적인 특성을 가진 북한과 이렇게 여러 색깔을 가진 단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 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 치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다양성을 남남갈등 증거로 비판만 하기보다는 인식을 전환하여 보다 발전적인 대북 통일운동 전략으로 간주해봄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접촉과 교류를 통해 전해주는 내용

152 153 물도 중요하지만 접촉과 교류를 하는 방식의 다양함 또한 북한을 변하게 하 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5. 결 론 본 연구는 해방이후 민간차원에서 전개되어온 통일운동의 변천과정을 짚 어보고, 현재 활동 중인 주요 단체들의 종류와 활동분야에 대해 성향별로 구 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3가지 큰 변화추이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부담이 점차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1987년 이전까지는 철저히 정부당국에 의해서만 독점적으로 추진되어오던 통일논의 와 통일노력이 1987년 이후 점차 민간에게 이양되어 오는 추세이다. 정부에 의한 간섭과 통제도 줄어들고 있으며, 보다 다양하고 심도높은 대북 접촉과 교류가 민간차원에서도 가능해졌고 또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 간단체들의 자율성과 전문성도 제고되어 민간 통일역량도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더 많은 민간영역의 확대와 활성화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둘째로는 대북 활동영역의 수렴화 현상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초 기 민간 통일운동은 남한사회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어 왔기 때 문에 주로 이념적, 정치적 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보다 많고 다양한 운동주체의 참여와 함께 민간통일운동 의 영역이 점차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의 활성화는 북한에 대한 동포애를 바탕으로 통일운동의 탈이데올로기화를 가 능케했으며,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대북 자신감과 포용력을 갖게 해주는 등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족과 민중을 강조하며 정치적 통일운동에 전념하던 변혁적 통일운동진영도 대중 과 보다 가깝고 합리적인 이슈와 통일방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통일운동이 이념과 노선을 넘어 순수한 남북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기반 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셋째는 최근 우리사회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이념적 분극화현상이다. 이 는 우선 국내적으로는 햇볕정책의 지속적 추진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가 없 는 북한당국의 태도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실망감과 좌절감에서 기인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대화와 교류의 진척을 지연시키는 북한당국의 태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변화 된 국제정세이다. 9.11테러사건으로 강성일변도로 변화한 미국 부시행정부의 세계전략은 북한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핵개발이라는 극단적이 고 부정적 방식의 정권안보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153 154 우리사회의 변혁적 진보세력들은 반미자주화의 기치아래 미군철수와 민족공 조를 외치게 되었고,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반핵반김시민운동을 전개하며 한 미공조와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 추진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다시금 양극화로의 분열양상을 보일 때가 아니다. 하루빨리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국력을 모아 통일과 번영을 향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지난 10여년간 추진해온 민간 통일운동의 경험을 되새기고 그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 는 해법과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 누구도 햇볕정책의 기본 정신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 다. 다만 그 정책의 추진방법과 과정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 견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바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조화롭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부는 과감하게 통일관련 분야에서 보다 폭넓은 민간의 참여를 허용하고 장려해야만 한다. 접촉과 교류는 민간주도로 이루어나가되, 대신 정치와 군사 분야는 더욱 철저히 정부가 책임지고 챙겨 야 한다. 정부 혼자서 강온 양면전략을 모두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 다. 민간단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민간단체도 이제까지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진지하고 내실있는 교류가 되도록 배가의 노력을 경 주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인권이나 다른 내부 문제에 관해 동포애적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관심을 표명하고 필요하다면 도 움의 손길을 제공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154 155 참고문헌 1. 국내 문헌 김광용, 통일운동에서의 NGO와 지식인의 역할.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 자료실 < 김영래, 비정부조직의 정치참여에 관한 연구. 공공경제연구 제4호 김병조, 인도주의적 통일론과 정부 및 NGO의 대북 인도적 지원.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논문집 제2호 노중선 엮음, 연표: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50년 서울: 사계절 박명규, 한반도 통일과 비정부기구의 역할. 21세기 민족화해와 번영의 길 크리스찬서적 박상필, NGO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서울: 한울 백승대, 대구시민의 통일의식과 통일운도의 과제. 통일문제연구협의회.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과 민간통일운동의 진로 서경석, 남북한 민간교류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우리민족서로돕기 홈페이지 < 자료실. 시민의신문, 21세기 NGO의 대동여지도, 2003 한국민간단체총람 출판기념 회 ( ) 배포 자료,, 한국민간단체총람 신범철 백승주, 국방관련 NGO 현황 및 대응정책 방향. 한국국방연구원 유팔무,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와 나아갈 길. 한국NGO지도자협의회 주최쎄미나. 한국NGO운동의 과제와 방향은 무엇인가? ( )., 비정부사회운동단체(NGO)의 역사와 사회적 역할. 유팔무 김정훈 편. 시민사회와 시민운동2 서울: 한울 우리민족서로돕기 기획조정실,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의 성격과 전개과정. 우리민족서로돕기 홈페이지 < 이금순, 대북 인도적 지원 개선방안: 개발구호를 중심으로 통일연구원 이정희, 통일관련 사회단체의 이념적 차별성 연구: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인식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42집4호 이장희, 해방후 민간통일운동과 정부의 통일정책. 통일경제 (1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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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57 한민족 경제 문화공간 으로서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관한 연구 김 재 기 (전남대 연구교수) 목 차 요약문 서 론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경제 문화적 접근 중국 조선족 집거구의 현황과 특성 중국 조선족 집거구 인적 물적 자산 활용방안 결론 198 참고문헌 201

157 159 요 약 문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한국은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600만 명 규모의 재외한인의 존재에 대하여 한민족의 발전전략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 요가 있다. 그 이유는 21세기에는 우리 민족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를 무 대로 활동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600만 명 규모의 재외한인은 민족발전 의 중요한 인적 물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불행과 수난의 역사를 짊어졌던 우리 재외동포가 이제 세계화의 선구자로서 민족적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600만 규모의 재외한인은 90%이상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대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이주시기와 원인이 다르 고 거주국의 정책에 따라 특이한 거주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을 제외한 재외한인들의 대부분은 대분산 소집거 의 거주 특성으로 보 이며 거주국에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거주하며 일정 규모만이 집거구 나 코 리아타운 을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다. 특히 중국 조선족은 다른 지역 재외한인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거주특 성을 보이고 있는 데 이는 동북3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거구를 형성하 여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의 집거구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하여 장백조선족자치현, 46개의 조선족민족향 그리고 기층 자치조직으로 2,000여 개의 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북경, 천진, 청도, 위해, 대련, 단동 등 대도시와 근교에 새로운 집거구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 조선족의 거주 특성은 다른 지역 동포사회에는 없는 중국 의 민족구역자치와 촌민자치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집거구 내에서는 헌법 과 민족구역자치법 그리고 촌민위원회조직법 에 의거하여 각각의 민 족자치지역에서 조선족에 의한 민족구역자치와 촌민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집거구 내에서 당이나 행정책임자를 조선족이 담당하고 정책결정 및 집행에 있어서 조선족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이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이 집거 하는 지역은 동북3성 주요 철도교통의 요충지 에 집거하고 있는 특성도 한민족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길림성 연변 을 중심으로 흑룡강성과 요녕성 지역의 집거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층차로 나뉘어진 닭 볏의( 鷄 冠 形 態 ) 혹은 부채형태를 이루고 있다. 동북3성 의 교통요지에 집거 하는 특성은 향후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연결되면 TCR(중국횡단철도) TMR(만주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 등과 직 접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전략 추진에 있어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58 160 특히 중국 조선족 집거구는 북한과 접경하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특 성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지역들은 현재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되고있는 탈북자문제, 대북 경제교류의 통로라는 측면에서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조선족만의 이러한 집거 특성에 대하여 한민족의 경제와 문화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러한 조선족 집거구는 한민족의 발전이라 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활용이 가능하다. 첫째, 세계 한민족 공동체 구축 에 있어서 중국 지역의 주요 거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선 족 집거구들은 중국 동북지역 주요도시와 교통 요충지에 집거하고 있어 러 시아 연해주와 중국의 동북3성 그리고 동부 연해지역을 한반도와 연결하는 주요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조선족들이 밀집되어 거주하는 연변을 중심으로 장춘-하얼빈-심양-목단강-통화-단동-대련 등이 제시될 수 있다. 또한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의 경제진출과 조선족의 인구유동으로 새로운 집거구가 형성되고 있는 북경-천진-연대-위해-청도-상해 등으로 거점을 확 대할 수 있다. 둘째, 참여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에 대외적인 측면에서 인적 물적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접경하는 삼각지역의 교통 요지에 거주하는 동북3성 조선족 사회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민족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 집거구는 한반도와 유라 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주요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 횡단철도 가 개통될 경우 중국의 만주철도, 몽고철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는 주요 거점지역에 크고 작은 집거구를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이는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에 있어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물류기지로서 활용이 가능 하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중국진출과 한국에서 경제활동에 있어서 중국 조선 족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중국 조선족 인력을 활용하여 한국 상 품 시장개척에 활용할 수 있으며 중국의 화교자본을 한국에 투자하는 데 매 개체 역할이 가능하다. 셋째,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한 통일과정에 있어서 매개체적 역할이 가능 하다. 중국 조선족과 남한 그리고 북한은 비록 이질적인 체제, 문화환경으로 각자의 사회지위, 정치태도, 가치관 등에서 많은 이질성을 보여주지만 민족 적 측면에서 일체성과 동일한 문화전통과 풍속습관, 역사, 민족의식 그리고 혈연친지관계 등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과계민족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특 히 개혁개방 이후 중국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을 다 드나들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이전에 정치적으로 북한 일변도적인 입장과 남한을 자본주의 국가라 고 적으로 간주하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 조선족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일정부분 역할이 가

159 161 능하다. 또한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 를 통해 시장경제적 요 소를 도입하였는데 이는 조선족 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경제를 경험했 기 때문에 북한 개혁개방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조선족이 정치체제와 언어, 문화와 풍습에 있어서 북한과 비슷하기 때문에 북한의 거부감 없이 시 장사회주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 넷째, 현재 국제사회는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국가경계의 약 화 와 민족연계의 강화 라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 서 중국 조선족 집거구는 세계화시대의 확대된 한민족 영역으로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조선족 집거구가 고유한 한민족 문화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국 조선족의 독특한 특성이다. 조선족의 문화는 고유한 집거지역 속 에서 면면히 이어 온 전통문화와 한족중심의 중국 사회주의체제에 적응 발 전한 근대 대중문화의 독특한 융합, 그리고 1990년 이후 한국과 교류이후 한 국 대중문화의 유입으로 생성된 중국 조선족 특색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타민족 문화에 대하여 관용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민족문화영역이 배타적 혈연공간이 아닌 세계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접근은 한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적 요소 와 상호간 경제이익 을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중국과 같이 민족문제가 정치적으로 예민한 국가에서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160 서 론 현재 국제사회는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국가경계의 약화 와 민족연계의 강화 라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1) 탈냉전 이후 국제사 회는 진영간 이념적 반목과 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전 지구 적 차원에서 정보와 경제 그리고 인적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화의 진척 으로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의 증가는 국가 간 경계가 약화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국가와 지역간에 경계를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적교류의 증가와 경제교류의 확대 그리고 정보통신의 발달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화 현상으로 기존의 제한된 국민국가의 범위와 활동영역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한국은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600만 명 규모의 재외한인의 존재에 대하여 한민족의 발전전략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21세기에는 우리 민족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 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하며, 이러 한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에 거주하는 600 만 명 규모의 재외동포는 민족발전의 중요한 인적 물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반도와 접경을 하고 있는 곳에 위치하며 중국의 공식 적인 지방행정구역인 조선족 집거구들은 세계화시대 확대된 한민족 영역 2) 으로서 접근할 수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는 다른 지역 재외한인들과는 확연 하게 구별되는 거주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동북3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거구 3) 를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의 집거구는 길림 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하여 장백조선족자치현, 동북3성 지역에 50여 개 의 조선족민족향 그리고 기층 자치조직으로 2,000여 개의 촌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의 경제적 진출과 함께 북경, 천진, 심양, 하얼빈, 장춘, 청도, 위해, 연대, 대련, 단동 등 대도시 근교에 새로운 집거구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 조선족의 거주 특성은 다른 지역 동포사회와 달리 집거구 내에서 민족구역자치와 촌민자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 조선족은 집거구 내에서 헌법 과 민족구역자치법 그리고 촌민위원회조직 법 에 의거하여 각각의 민족자치지역에서 조선족에 의한 민족구역자치와 촌 민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당가작주( 當 家 作 主 ) 4) 의 원칙에 의해 집거구 내에서 1) 조정남, 동아시아의 민족환경과 재외한인, 평화연구, 제8호, (고려대 평화연구소, 2000), pp ) 이종철, 우리나라 재외동포정책의 현황과 과제- 확대된 민족국가 개념을 중심으로, 21세기해외 한민족공동체 발전전략 (전남대 개교48주년기념국제학술회의), (전남대 아태지역연구소,2000), pp ) 재외동포 밀집지역을 코리아타운 이나 집거구 라 부른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주로 코리아타 운 이라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소수민족들이 밀집되어 거주하는 지역을 집거구 라 부른다.

161 164 당이나 행정책임자를 조선족이 담당하고 정책결정 및 집행에 있어서 조선족 에 의한 민족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이 집거 하고 있는 지역은 동북3성 주요 철도교통의 요충지에 집거하고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조선족 최대 집거지인 연변자 치주를 중심으로 흑룡강성과 요녕성 지역의 집거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서 층차로 나뉘어진 닭 볏의( 鷄 冠 形 態 ) 혹은 부채형태를 이루고 있다. 동북3 성의 교통요지에 집거 하는 특성은 향후 한반도횡단철도(TKR)가 연결되면 TCR(중국횡단철도) TMR(만주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 등과 직 접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과정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조선족 집거구는 북한과 접경하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특 성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지역들은 현재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탈북자문제, 대북 경제교류의 통로라는 측면에서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조선족만의 이러한 칩거 특성에 대하여 한민족의 경제와 문화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이 한민족의 발전과 도약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대하여 첫째, 경제 문화적인 접근의 필요성과 의의를 검토해 보고, 둘째, 집거구의 형성 및 수립과정, 셋째, 집거구의 현황과 특성 을 분석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족 집거구의 인적 물적 자산 들을 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활용방안을 모색해 볼 것이다. 이 연구의 범위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분석단위는 중국 조선족 집거구이 다. 최대 규모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장백조선족자치현을 비롯하여 동북3성에 위치한 50여 개의 조선족민족향(진)이 포함된다. 이 민족향(진)에는 1000여 개의 조선족 행정촌이 포함된다. 동북3성은 주로 길림성의 연변, 장춘, 길림, 요녕성은 심양, 단동, 대련, 흑룡강성은 하얼빈, 목단강, 영안, 해림, 상지 등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북 경, 천진, 위해, 청도, 대련, 단동 등도 포함된다. 주요 연구방법은 중국 현지 조사, 주요 관계기관 방문을 통한 자료수집, 문헌분석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4) 당가작주란 민족자치지역의 사무는 스스로 해결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규정은 1984년에 공포된 민족구역자치법에 규정되어 있다; 中 央 統 戰 部 民 族 宗 敎 工 作 局 編, 中 國 民 族 工 作 五 十 年 理 論 和 實 踐 ( 北 京 : 中 央 民 族 出 版 社, 1999), p

162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경제 문화적 접근 우리의 재외한인은 600만 명 규모로서 90%이상이 미국, 중국 등 4강대국 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이주시기와 원인이 다르고 거주 국의 정책에 따라 특이한 거주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제외한 재외한인의 대부분 은 대분산 소집거 의 거주특성으로 보이며 거주 국에서 광범위하게 분산되 어 거주하며 일정 규모만이 집거구 나 코리아타운 을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 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200만 명 규모의 중국 조선족 동포 들은 공식적인 행정구역의 하나로서 동북3성 지역을 중심으로 집거구를 형 성하여 거주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 조선족 집거구는 다른 지역 동포사회와는 달리 한민족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민족공동 체로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집거구는 한민족의 혈통과 문화(언어, 관습, 전통) 등을 공유하는 민족구성원 사이의 상호교류의 연결 망이 가능하 며, 문화적 일체성을 배경으로 경제적 교류협력의 네트워크와 연결이 될 수 있다. 5) 이는 장차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면서 정치적으로 예민하지 않은 한민족 경제 문화공동체 건설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러한 집거구에 대해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의 필요성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화시대 확대된 민족영역으로서 재외동포사회에 대한 접근이다. 탈냉전이후 국제사회는 진영간 이념적 반목과 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 유스럽게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정보와 경제 그리고 인적교류가 확대되고 있 다.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의 증가는 국가 간 경계가 약화되는 현상을 초 래하고 있다. 특히 국가와 지역 간 경계를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교류의 확대와 정보통신의 발달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기존의 제한된 국민국가의 범위와 활동영역이 국경을 초 월하여 확대되고 있다. 즉 한 국가의 영토는 특정지역을 지칭하는 공간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같은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장소로 확대시 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개념 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이 밀 집되어 거주하는 집거구 에 대해 한민족의 활동공간으로서 문화영토 (cultural territory)와 경제영토 (economic territory)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조 선족 집거구에 대해 한국의 통치권이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 간으로 접근할 경우 중국과 정치외교적 마찰을 가져오기 때문에 비정치적인 5) 김재기, 중국 조선족 집거구 해체위기와 대응, 재외한인연구, 제12집, 재외한인학 회, 2002), pp

163 166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접근은 한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적 요소 와 상호간 경제이익 을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중 국과 같이 민족문제가 정치적으로 예민한 국가에서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현재 국제사회는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국가경계의 약 화 와 민족연계의 강화 라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동일한 민 족집단간에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국제사회의 새로운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 다. 민족상호간에 연계를 강화하려는 현상은 중국, 이스라엘, 이태리, 인도 등과 같은 해외에 대규모 재외동포를 갖고있는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6,000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 해외 화교와 화인을 갖고 있는 중국은 세계화상 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세계화상네트워크 구축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다. 6,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외동포를 갖고 있는 이태리는 재외 동포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해외 이태리 공동체를 이태리의 대외관계 네 트워크를 강화하는 교두보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560만 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를 갖고 있는 그리스는 원칙적으로 이중국적 으로 허용하고 있고, 그리스와 재외 동포 공동체간의 상호협력관계를 중시하 고 있다. 이런 나라들을 포함해서 이스라엘, 인도 등도 재외동포들에게 국내 출입국 및 투자, 구직 등의 경제활동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재외동포를 자국의 세계경제력 고양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중국, 이스라엘, 이태리, 그리스, 인도와 같이 큰 규모의 재외동포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재외동포를 자국의 경제발전과 세계화전략에 활용하려고 적 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세 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이고 남북한이 분단된 상황에서 한민족의 발전전략으 로서 해외 한민족의 네트워크 구축은 불가피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경제적 접근의 필요성 때문이다. 최근 세계경제는 하나의 열린 시장으로 통합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다. 상품교역은 물론 서비스 및 자본시장이 대외적으로 개방되고 거래 대상국도 다변화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특성을 갖고 있는 해 외시장을 개척해 가는데 있어서 다문화적인 능력과 소양을 갖춘 인력을 확 보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 세계 600만 규모의 재외 한인은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귀중한 인적 자산이다. 그리고 재외한인의 경제활동은 모국의 GNP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으나, 소 비생활 면에서나 생산활동 면에서 모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무역 수지 면에서도 이들은 모국 상품의 바이어 역할을 하고, 현지의 최근 소비성 향이나 유통체계에 대해 신속하고 밀착된 정보를 모국 기업에 제공하여 기 업들의 해외 시장개척에 기여한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에서의 인맥과 경험을

164 167 활용하여 본인들의 자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자본을 모국에 유치하는데 매 개역할이 가능하다. 또한 재외한인들은 대외거래활동에서 수반되는 운수나 보험 등 무역외수지나 해외에서 습득한 고부가가치의 첨단과학기술을 모국 에 이전하는 효과도 낳는다. 6) 참여정부의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에 있어서도 중국 조선족 집거구와 조선 은 중요한 인적기반이며 물적 토대가 된다. 중국 조선족은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동북3성 지역 집거구들은 경제적 진출에 있어서 중요 한 물적 기반이 된다. 특히 집거구내 토지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집 거구들이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 넷째,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한민족문화영역으로서 접근이다. 한민족문화 영역은 전세계 한민족에 대해 혈연을 바탕으로 하되, 민족문화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내부의 이질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상호이해에 의한 문화통합 개념 이다. 중국 조선족 집거구에 대해서도 이러한 민족문화영역의 관점에서 접근 할 수 있다. 중국 조선족은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장백조선족자치현 그리고 50 여 개의 조선족향(진)을 중심으로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여 수 세대에 걸쳐 민족문화와 언어를 계승하며 강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 서 조선족 집거구는 혈연, 지연, 언어, 역사, 전통, 관습에 기초한 한민족문화 공동체의 일부분이다. 이 가운데 고유한 문화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국 조선족의 독특한 특 성이다. 조선족의 문화는 고유한 집거지역 속에서 면면히 이어 온 전통문화 와 한족중심의 중국 사회주의체제에 적응 발전한 근대 대중문화의 독특한 융합, 그리고 1990년 이후 한국과 교류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으로 생성 된 중국 조선족 특색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타민족 문화에 대하여 관용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민족문화영역이 배타적 혈연 공간이 아닌 세계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6) 윤인진, 재외동포 모국투자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2002년 재외동포재단보고서, (2002. 재 외동포재단), pp.1-2.

165 중국 조선족 집거구의 현황과 특성 3.1 중국 조선족 집거구의 형성과정 역사적으로 중국과 한반도는 지리상 서로 인접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빈번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었다. 특히 한민족은 중국의 동북지방에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고대국가를 세우거나 산동, 복건, 절강 등 연해지구에 신라방을 이루며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요, 금, 원, 명, 청 등 시기에 적지 않은 한민족들이 중국 땅에서 살았지만 거의 대부분 이 동화되었다. 7) 현재와 같은 조선족 집거지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 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에 걸쳐 중국으로 이주한 한민족에 의해 서이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조선족 사회는 200만 명 규모로 중국 55개 소수 민족 중 13번째의 규모이다. 조선족의 대다수는 길림성(63%)과 흑룡강성 (24%), 요녕성(11%) 등 동북3성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8) 이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집거구를 형성한 것은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년 이전에 중국으로 이주한 한민족은 대략 26만 명 정도였 고 그들 대부분은 자연재해 혹은 국내 통치계급의 횡포 등의 원인에 의하여 청조 말기부터 지속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 경내에 진입하였다. 1881년 중국의 두만강 유역은 이미 조선인에 의해서 12만여 무( 畝 )에 달하는 토지가 개간되었고, 이 토지에 의지해 생활하는 조선인이 만 명 정도였다. 1845년 조선 평안북도 초산군의 80호 농민이 중국의 요녕성 통화와 관전의 훈강 유역에 이주하여 땅을 개간하여 경작하였고, 연이어 흥경, 환인, 단동 등지도 개간하였다. 일부 조선인은 러시아의 연해지역으로 이동하고, 이들이 다시 흑룡강성 우수리강을 건너 북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오상, 아성, 빈강 등지에 집거지역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이주는 조선 왕조의 폭정과 부패 그리고 자연재해에 의한 것으로 조선인을 중국 동북지역으로 전입하게 한 원인이었다. 또한 19세기 중엽 청 정부의 국내외적 위기도 동북지역의 봉쇄정책에 한계를 보여주었다. 1840년 아편전쟁, 1851년의 태평천국혁명으로 청 정부의 기반이 약화되고, 러시아 영국 등 서구 열강이 동북지역을 침략하려하자 봉쇄정책을 풀고 변방으로 7) 예로 현재 화북성 청용현 팔도하자향 탑구촌과 대장자향 맹가고포촌을 중심으로 한 400여 명, 요녕성 맹현 진돈향 박가구촌의300여명, 요녕성 본계현 산성자향 박보촌 구재곡촌, 히 피촌 등의 박씨 성을 가진 조선족은 그 조상이 명말-청초에 중국의 동북으로 이주한 중국 최초의 조선족 중의 일부분이다;김병호, 중국의 민족이론정책과 법률에 있어서의 연변조 선족의 지위, 평화연구, 제8호, (고려대 평화연구소, 1999), p ) 정신철, 전게서, pp

166 169 이민을 추진하였다. 특히 1885년 청 정부는 두만강 북부 광활한 지역을 조선 인 전용의 개간구역으로 만들고, 대량의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하 고, 집단 거주할 수 있도록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1890년에서 1894년까 지 조선인이 개간한 땅을 측량하여 사( 社 )를 세우고 호구 편제를 하며, 그 에 따라 이름을 올려 세금을 납부하게 하고, 국( 局 )을 세워서 사람을 모아 개간한다 는 정책을 실행하였는 데 모두 4개의 보( 堡 ), 39개의 사( 社 ), 124개 의 갑( 甲 )과 415개의 패( 牌 )로 나누었다. 9) 두 번째 단계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부터 1931년 9.18 사변이전까지의 기 간이다 년 사이에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40만 명 전후였고, 1931년에 중국 동북지역에 약 70만 명 정도가 거주하였다. 이 시기에 이주한 인원 중에 조선의 삼남지역 특히 경상도 지역의 인원이 많았다. 이 시기에 전입한 조선인은 대부분 안봉선( 安 奉 線 ) 철로를 이용해 봉천(심양)으로 와서 다시 무순, 개원, 철영, 길림 등 지역으로 분산되었고 계속 무순에서 흥경, 통하 방면으로, 개원에서 해룡, 유하 방면으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는 농민뿐 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도 많았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전개한 토지조사사업 은 조선농민의 토지 약탈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토지 를 잃은 농민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22년까지 동북3성 지역에 이주한 조선인의 수가 65만 명을 넘었으며, 이중 한반도와 접경을 하고 있는 두만강 과 압록강변에 거주하는 수가 44만 명에 달했다. 10) 세 번째 단계는 1930년대 이후의 이주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년에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100만 명 정도로 1945년에 조선인 총 인구는 170만 명 정도였다. 이 시기는 조선총독부가 1931년 선인이민사회건설계획안( 鮮 人 移 民 社 會 建 設 計 劃 案 ) 을 마련하여 만주 로의 이주정책을 적극화하였으며, 이민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으로 강제 이주케 했다. 1930년에는 약 60만 명, 1940년에는 114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 이 이주하였다. 이 시기 대부분의 조선인은 직접 흑룡강성으로 들어와서 정 착했는데 기차를 이용하였다. 1934년에 두만강과 목단강이 기차로 연결되면 서 이 지역으로 이주자가 증가하였으며, 193년 두만강과 가목사 간의 열차가 개통된 후 합강지역으로 이민이 증가하였다. 194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 로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였기 때문에 집단적 중국 이주는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인의 40% 정도가 한반도로 귀환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때에는 100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9) 金 鐘 國 主 編, 黨 的 民 族 定 策 與 延 邊 朝 鮮 族, ( 延 吉 : 延 邊 大 學 出 版 社, 1998), p.9. 10) 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 (심양:요녕민족출판사), p.6.

167 170 <표-1> 년 중국 만주 조선인 인구 증가 통계 (단위:명) 연도 인구 연증가인구 연도 인구 연증가인구 , ,657 29, , , ,865 27, ,118 13, ,127 12, ,338 19, ,857 3, ,070 10, , ,318 46, ,185 10, ,461 9, ,280 16, ,772 24, ,052 18, ,198 69, ,677 20, ,427 28, ,119 9,422 자료: 金 炳 鎬, 中 國 朝 鮮 族 人 口 簡 論, ( 北 京 : 中 央 民 族 學 院 出 版 社, 1993), p.53.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중앙정부와 해당된 지방정부에서는 중국인민정 치협상회의 공동강령 의 규정에 근거하여 전국적인 범위 내에서 민족자치지 역을 건립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다. 1947년 처음으로 건립한 내몽고자치구는 성급의 민족자치지역이고 건국후인 1950년 5월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되는 현급 민족자치지역인 감숙성 천축장족자치구를 건립하였으며 11월에는 처음 으로 시급의 민족자치지역인 서강장족자치구를 건립하였다. 11) 이어서 중국의 서북, 서남, 중남,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집거 지역에 민족자치지역을 건립하 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중국에서는 이미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와 124개 자치현( 縣 ), 기( 旗 )를 건립하였고 민족자치지역의 면적 은 중국 총면적의 64.3%나 차지한다. 12) 중국의 민족구역자치 정책은 1978년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 차 전원회의 후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1982년 12월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 회 제5차 회의에서 제정하고 통과한 헌법은 민족구역 자치권을 회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구역 자치지방의 자치권을 폭넓게 확대하였다. 1984년 5월 제6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 치법 을 통과시켜 주석령 제3호로 공포하였는데 이것이 헌법이 규정한 소수 민족 조항을 더욱 구체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다. 1984년에 발표된 민족구 역자치법 에 각 민족구역자치기관의 인민정부기관은 구역자치를 실행하는 민족성원이 위주로 되어 구성하여야 하고 동시에 자치구역내의 기타 소수민 족과 한족의 성원도 포함되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으며, 각 민족자치구역 11) 王 戈 柳, 民 族 區 域 自 治 制 度 的 發 展,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p ) 國 家 民 族 事 務 委 員 會, 中 國 民 族 工 作 50 年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1999), p

168 171 의 자치기관은 자치구역내의 각 민족이 모두 민족평등 권리를 향수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하며, 각 민족들이 서로의 언어문자, 풍습습관 및 종교신앙 을 존중하도록 교육하여야 하며, 민족 간에 기시와 압박을 금지하고 민족분 쟁을 선동하는 그 어떤 행위도 금지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13) 이와 같은 중국의 민족구역자치제도는 중국의 3대 정치제도의 하나이다. 14) 중국 조선족이 중국 공민으로서 지위가 확정된 것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 치구가 성립된 이후이다. 중국은 1952년 8월 9일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 을 선포한 후 연변에서 각 민족인민대표회의 준비위원회가 성립되어 조례를 비 준하여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성립되었다. 당시 조선족 인구는 관할 구역의 71%를 점하게 되었고, 자치구 지역 조선족의 간부는 78%를 차 지하였다. 1954년 공동강령 을 제정하여 민족구역자치에 관한 규정을 정하여 자치지방의 행정지위를 자치구, 자치구, 자치현의 3급으로 개칭하고,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구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하였다. 연변자치주의 행 정구역은 연길, 돈화, 도문, 용정, 훈춘, 화룡 등 5개시와 안도, 왕청 2개현, 39개 진, 70개 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룡강성과, 요녕성, 내몽고자치주 등 조선족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50여개의 민족향을 건립하여 민족자치를 실 시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1백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국 조선족은 자신들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체계를 형성,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선 진적인 모범민족으로 발전하였다. 15) 1958년 9월 15일에는 현급인 장백조선족 자치현이 건립되었고, 195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중반이후 민족구역자치법 이 통과된 후 동북3성 지역 민족향(진) 급 집거구 50여 개가 건립되었다. 3.2 중국 조선족 집거구 현황 중국 조선족은 이주 초기부터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등을 중심으로 동 북지역에 집거하고 있다. 1953년에 동북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는 110만 3천명으로 중국 내 조선족 인구의 99.2%를 차지하였다. 1990년 인구센서스 에 따르면 동북3성의 조선족 인구는 18만 5천 명으로 전체 조선족 인구의 97.1%를 차지하고 있다. 13) 김경진, 중국의 경우:민족구역자치의 실시, 민족연구 7집(경기대 민족연구소, 1999), pp ) 중국의 3대 정치제도는 인민대표대회, 다당합작의 정치협상회의, 민족구역자치제도를 말 한다.; 毛 公 宇 王 鐵 志, 跨 世 紀 民 族 問 題 硏 究 与 探 索 ( 北 京 : 中 央 民 族 大 學 出 版 社,2000), p ) 중국 국무원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88년과 94년 민족단결진보모범자치주 로 지정하였다.

169 172 <그림1> 중국 동북3성과 조선족 집거지역 동북3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거구들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 롯하여 장백조선족자치현, 동북3성에 50여 개의 조선족민족향(진) 그리고 기 층 자치조직으로 2,000여 개의 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촌을 근거지로 집 거구를 건립한 조선족은 기층단위 집거구인 촌은 거의 대부분 조선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중국 동북3성에는 연변자치주에 1,000여 개, 흑 룡강성에 500여 개, 길림성에 연변을 제외한 산거지구에 300여 개, 요녕성에 260여 개, 내몽고자치구에 30여 개의 조선족 촌이 있다. 구체적으로 흑룡강 성의 경우 목단강시에 176여 개, 송화강 지구에 116개, 가목사시에 70여 개, 계서시에 37개, 밀산시에 31개, 하얼빈에 29개, 수화지구에 19개, 칠대하시에 15개, 치치하얼시에 13개, 이춘시에 11개 등이다. 요녕성은 심양시에 40개, 무순시에 49개, 철영시 19개, 반금시에 14개, 요양시에 5개, 영구시에 4개, 단 동시에 3개 등이다. 길림성에는 장춘시, 길림시, 매하구, 집안과 통화, 훈강, 백성지구 등에 촌락 집거지를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16) 16) 정신철,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천과 전망, (심양:료녕민족출판사, 1999), pp ; 김병호, 중국 민족문제와 조선족, (서울:도서출판 학고방, 1997), pp ; 金 炳 鎬, 中 國 朝 鮮 族 人 口 簡 論 ( 北 京 : 中 央 民 族 學 院 出 版 社, 1993)

170 173 <표-2> 길림성 조선족 현황 지역 인구 조선족비율 장춘시 길림시 통화시 사평시 료원시 혼강시 백성지구 연변조선족자치주 48, ,474 99,963 8,773 7,234 25,286 4, , 자료: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 (심양:요녕민족출판사, 1999), pp <표-3> 길림성 조선족 민족향 지명 설립시기 建 鄕 민족인구 동풍현 삼합만족조선족향 영길현 토성자만족조선족향 교하시 오림조선족향 류하현 삼원포조선족진 류하현 강가점조선족향 휘남현 루가조선족향 통화현 대천원조선족만족향 통화현 금두조선족만족향 집안시 량수조선족향 매하구시 화원조선족향 매하구시 소양만족조선족향 ,391 12,195 3,745 3,420 4,281 2,700 5,426 3,116 1,706 3,879 3,714 자료: 鐵 木 尒, 中 國 民 族 鄕 統 計 分 析 与 對 策 硏 究,( 北 京 : 民 族 出 版 社,2002),pp ; 沈 林, 中 國 的 民 族 鄕,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p 그리고 최근에는 북경, 천진, 연태, 청도, 위해, 대련, 단동 등 대도시 근교 에 새로운 집거구들이 형성되고 있다. 조선족 집거구 현황을 동북3성과 최근 한국기업의 진출과 함께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대도시와 화동지방을 중심으 로 살펴보겠다.

171 174 첫째, 동북3성 중 가장 많은 수가 거주하는 길림성이다. 길림성은 18만 7,400km2의 면적으로 삼림자원, 석탄, 니켈, 옥수수, 대두 등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교통운수 설비, 기계, 석유화학, 방직, 제약, 목재, 식품가공, 관광 등의 산업이 발달해 있다. 길림성은 중국 동북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북한, 한국, 일본, 몽고 등과 연결 되고, 흑룡강성과 요녕성을 연결하는 동북을 관 통하는 교통요새이다. 자연자원이 매우 풍부하여 경작지가 396만 헥타르에 달하여 옥수수, 대두, 당료의 생산기지 및 목축업기지이다. 또한 長 白 林 海 라 불리울 정도로 삼림면적이 786.5만 헥타르로 중국 6대 임구중의 하나로 목재 생산기지이다. 東 北 之 寶 라 불리는 인삼, 녹용의 생산지로 전국 수위를 달 리고 있으며, 특히 집안시 신개하 인삼은 세계 제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중-러, 중-북한에 인접하여 변경무역이 활성화 된 연 변자치주는 변경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조선족이 밀집된 길림성의 동부지대에는 쌀, 담배의 생산기지로 벼농사와 임업을 주로 하고 있다. 청 말부터 이주한 조선인에 의해 봉금정책( 封 禁 政 策 )으로 황무지로 변해 있던 만주지역은 개간되었다. 연변자치주에는 80만 명 규모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10여 개의 민족향에서 40만 명 규모 가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 최대 밀집 집거구인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행정구역 은 연길, 돈화, 도문, 용정, 훈춘, 화룡 등 5개시와 안도, 왕청 2개현, 39개 진, 70개 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변주의 경우 연길시와 용정시, 화룡시, 도 문시만이 조선족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연변자치주 이외의 길림성 조선족 민족향은 <표-3>과 같이 11개이다. 또 한 장춘시, 길림시, 사평시 요원시, 통화시, 백산시, 송원시, 연변주 등 길림 성의 주요도시에도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지역 내에서는 한족이나 만주족과 혼거하는 특성이 보이나 농촌지역 집거구들은 대부분 조선족만으로 구성되 어 있다. 둘째, 흑룡강성은 45만 3,800km2의 면적으로 중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성이 다. 이곳에는 석탄, 석유, 금, 은, 동, 아연 등의 풍부한 광산자원들을 바탕으 로 석유화학, 중형기계, 정밀기기, 목재가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또한 광활 한 대지에 농업이 발달하여 옥수수, 밀, 감자, 대두, 약초 등이 생산되고 있 다. 흑룡강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일제시대 한반도로부터 이주한 이주민으로 전라도나 경상도 등 남부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러시 아 연해주에서 재이주한 경우도 있다. 현재 조선족 민족향은 10개 있으며 민 족향 이외의 일반 시에도 촌 단위를 이루며 집거하고 있다. 민족향은 <표-5> 와 같이 목단강시지구와 상지시, 오상시, 밀산시 등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172 175 <표-4> 흑룡강성 조선족 현황 지역 인구 성내 조선족 비율 하얼빈시 치치할시 목단강시 가목사시 수화지구 대경시 계서시 학강시 쌍압산시 이춘시 칠대하시 송화강지구 흑하지구 대흥안령지구 부금시 철력시 밀산시 49,963 19, ,963 47,645 14,796 5,035 34,952 10,236 3,398 3,622 10,545 78,527 4,654 1, ,716 25, 자료: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 (심양:요녕민족출판사, 1999), pp 흑룡강성 조선족 인구는 50만 명 정도로서 한국에 친척이 있어 한국 방문 이 빈번하며 또 러시아와 국경을 접해 있어 연해주 지역으로도 진출해 있다. 대부분이 만주철도와 수빈철도를 따라 집거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하얼빈과 목단강시를 사이에 두고 상지시, 오상시, 연수현, 아성시 등지와 계서시, 밀 산시에 이르는 철도를 따라 집거하고 있다. 동북지역 주요 곡창지대인 삼강평원이 흑룡성에 있는데 이곳은 흑룡강, 송 화강, 우수리강 등 3대하천이 합류하는 지대로서 흑룡강성 면적의 32%를 차 지한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조선족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173 176 <표-5>흑룡강성 조선족 민족향(진) 지명 성립시기 建 鄕 민족인구 의란현 연란조선족향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상지시 하동조선족향 상지시 어지조선족향 해림시 해남조선족향 해림시 신안조선족진 영안시 와룡조선족향 영안시 성동조선족만족향 영안시 강남조선족만족향 동녕현 산차구조선족진 화천현 성화조선족향 탕왕현 탕왕조선족향 밀산시 화평조선족향 밀산시 흥개호조선족향 계동현 명덕조선족향 계동현 계림조선족향 우의현 성부조선족만족향 몽북현 동명조선족향 수화시 흥화조선족향 철력시 년풍조선족향 북안시 주성조선족향 ,665 5,326 6,012 2,842 7,362 7,944 5,409 5,409 9,075 7,365 3,781 8,800 5,377 4,048 3,139 9,350 2,159 3,576 3,642 2,806 1,758 자료: 鐵 木 尒, 中 國 民 族 鄕 統 計 分 析 与 對 策 硏 究,( 北 京 : 民 族 出 版 社,2002),pp ; 沈 林, 中 國 的 民 族 鄕,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p 셋째, 요녕성은 14만 5,700km2의 면적으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망간 등의 풍부한 광산물 자원을 바탕으로 철강, 석유화학, 전력, 방적, 공작기계, 대형 산업기계 산업 등이 발달한 중국의 중화학 공업기지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일본, 한국, 홍콩, 싱가폴 등지로의 본격적인 임가공 수출 및 외자유치로 식 품, 신발 가전 등 경공업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174 177 <표-6> 요녕성 조선족 현황 지역 인구 성내 인구비율 심양시 대련시 안산시 무순시 본계시 단동시 금주시 연구시 부신시 료양시 반금시 철영시 조양시 금서시 83,329 5,280 10,061 49,508 14,407 15,445 1,595 6,580 1,126 6,024 11,865 23,464 1, 자료: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 (심양:요녕민족출판사, 1999), pp 요녕성은 중국 동북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지 이다. 한반도의 2/3에 해당하는 이곳은 조선족이 23만명 가량 거주하고 있 다. 가장 많은 기업이 투자된 심양을 비롯하여 가장 대규모적인 투자가 이루 어진 대련과 대북교역이 가장 활발한 단동 등이 있다. 이곳에는 한족(84.3%)를 포함하여 만주족(12.6%), 몽고족, 회족, 조선족 등 44개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주요도시인 심양, 대련, 무순, 단동, 반석 등의 도시 주변에 조선족 촌이 형성되어 있다. 20여개의 조선족 민족향은 <표-7> 와 같다. 최근 대도시에는 한국인의 중국진출과 함께 신집거지가 형성되고 있다. 한 중수교 10년 동안 중국은 한국의 두번째 교역 대상국이 되었고,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교역상대국이 되었다. 한류( 韓 流 )가 중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열기도 뜨겁다. 지난해 양국을 오고간 여 행자수는 178만명으로 한국인 130만명이 중국으로 갔고, 중국인 48만명이 한 국을 찾았다. 6월말 현재 전년 동기 대비 43%와 17%가 증가하였다. 한편 한 중수교 10년 동안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은 20만 명에 이른다. 상가주재 원이나 투자진출기업인 및 가족들이 15만명, 나머지 5만명은 유학생이다. 한 국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성은 산동성으로 5만명이며, 랴오닝성 3만명,

175 178 <표-7> 요녕성 조선족 민족향(진) 현황 지명 설립시기 建 鄕 민족인구 심양시 동릉구 흔하참조선족향 심양시 석불조선족석백족향 심양시 우홍구 대흥조선족향 안산시 송삼태자조선족만족진 무순시 전전조선족진 무순시 리석채조선족진 무순현 대남조선족만족향 신빈현 왕청문조선족진 청원현 남팔가조선족진 환인연 아하조선족향 환인현 륙도하조선족향 환인현 괴마자조선족향 환인현 보락보조선족진 관전현 하로하자조선족향 개원현 석백족조선족향 대와현 영흥조선족향 해성시 송치자조선족만족진 ,018 6,000 4,262 6,000 5,141 5,558 4,200 3,192 1,392 11,500 7,000 12,200 7,451 1,468 17,413 5,000 6,945 자료: 鐵 木 尒, 中 國 民 族 鄕 統 計 分 析 与 對 策 硏 究,( 北 京 : 民 族 出 版 社,2002),pp ; 沈 林, 中 國 的 民 族 鄕,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p 지린성 2만 8,000명. 베이징에 2만 5,000명, 텐진에 2만 1,500명 순이다. 초기 에는 동북3성과 산동성에 집중되었으나 지금은 상하이나 광동성 등지로 확 산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인과 함께 조선족은 전체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20만명 이상 이 북경, 천진, 상해, 위해 등 산해관 이남으로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이 는 1992년 8월 한중수교를 전후하여 대륙시장 공략을 목적으로 한 한국기업 의 중국진출과 관련이 있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중심을 한 한국 투자기 업의 진출과 중국 관광열풍은 조선족에게 새로운 생활터전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북경시의 조선족 인구는 80년 말까지 7,300명에 불과했 으나 1998년에 6만 5,000명으로 늘어났다. 상해와 광주시에는 2만-3만명 수 준이고 대련시에 5만명, 연태시에 5천명, 위해시에 2만명, 청도에 6만명 등 산해관 이남지역에 20만명 규모가 이주하였다. 최근 10여년 동안 중국 전역

176 179 에 산재한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의 인구규모는 전체의 10%에 이르고 있 다. 이러한 관계로 조선족과 한국인이 결합된 집중촌은 베이징의 코리아 타운 인 왕경과 청도, 위해, 연태 등지에서도 나타난다. 북경 동쪽 외곽에 있는 왕 경( 望 京 )은 90년대 후반부터 개발된 신 아파트촌이다. 이 곳은 서울의 강남 쯤 되는 북경의 부촌 이다. 98년부터 한국인들이 모여들더니 불과 4년만에 2,500가구의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베이징 속의 리틀 서울 이 되었다. 신청 4 5구와 다시양 화자디를 합치면 1만-1만5천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 다. 베이징 전체 한국인 5만명의 20%를 웃돈다. 이중에서도 왕경신성( 望 京 新 城 )은 한국인들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한국어 간판이 줄줄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한국식 음식점, 체육시설, 병원, 유흥업소, 이미용 시설 등이 입주해 있다. 북경시 조양구 부근의 동안촌과 고려촌, 그리고 오도구의 코리 아타운 에는 1,000~1,500개의 조선족 기업이 있지만 대다수가 음식점, 노래 방, 가라오케 등 유흥업소이다. 조선족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베이징 동쪽 외 곽에는 고려촌 으로 불리는 조선족 타운도 형성되었다. 조양구의 이륭빈관 뒤편에는 250가구가 한 골목을 끼고 모여 있다. 17) 산동성 위해시는 온 도시가 코리아타운 이다.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던 이곳 이 한국기업이 진출하면서 불과 10년만에 인구 50만 명의 신흥공업도시가 되었다. 한국기업 800개가 진출하여 이곳에 종사는 인력이 시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다. 그리고 시 세금의 3분의 1을 한국기업이 내고 있다. 또한 이 곳에는 조선족이 6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고 조선족 업체도 400여 개나 된 다. 청도시 이창구 이촌지역은 4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이곳에 현 재 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빈하로 양쪽에는 한국 물품점, 식당, 의류, 식 품점, 광고회사 등이 즐비하게 있다. 이촌 지하 농산물 시장에는 조선족이 60여 개의 매장을 차리고 장사를 하고 있다. 한국인 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청양구나 유정진에도 한인과 관련된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최근 북한의 신의주 특구 개방으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단동지역에 조선족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는 신의주 특구가 본격화 될 경우 한반도와 물 적 인적교류가 더욱 강화돼 동포들의 본거지인 동북3성이 경제적으로 부유 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단동에는 이전에는 1만 8천명에 불과 했던 조선족이 최근 유동인구를 포함해 3만 여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 다. 17) 동아일보,

177 조선족 집거구의 특성 과계민족적 특성 조선족의 지역분포는 연변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층차로 나뉘어진 닭 볏( 鷄 冠 形 態 ) 혹은 부채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흑룡강성 조선족 인구 중 64.9%를 점하고 있는 목단강시, 송화강 지구, 할빈 시는 각각 길림성의 연변자치주, 길림시, 장춘시와 연결되어 동북부의 제1연 결 층을 이루면서 이것을 토대로 흑룡강성의 제2연결 층인 계서시, 칠대하 시, 가목사시, 수화지구, 안달시를 이룬다. 그 외의 일부는 바깥테두리 연결 층차라고 할 수 있는데 인구비율이 매우 낮다. 요녕성 조선족 인구 중 46.27%를 점하는 철령, 무순, 본계, 단동 등 지역은 각각 길림성의 통화, 사 평지구와 서로 연결되어 서남부의 제1연결 층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요녕성의 제2연결 층은 부신, 심양, 요양, 안사, 영구, 대련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18) 조선족의 분포형식은 잡거를 위주로 하여 집거, 잡거, 산거가 결합된 거주 형식이다. 민족자치지역에 거주하는 수가 85만명 규모로 전체 인구의 약 43%를 차지하고 약 56%는 잡거, 산거에 속한다. 그중 50개 조선족 민족향 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총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조선족의 대부분은 자체 로 촌을 이루고 작은 범위이지만 집거하고 있다. 흑룡강성은 조선족 인구의 60.7%이상이 54개 현의 501개 조선족 촌에 살고 있다. 조선족 촌의 95% 정 도가 순수한 조선족만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다른 민족과 혼합된 촌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모여 산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 집거지역은 과계민족(Cross-border Ethnicity) 19) 적 특 성으로 북한과 접경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연변자치주가 함경북도와 양강 도와 접경을 하고 있고, 장백현도 양강도와 접경을 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 족의 집거 특성으로 남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족이 신중 국의 성립과 함께 중국 공민으로 편입되어 중국 국민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의 모체민족은 한반도에 주권국가를 수립하여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정 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과계민족으로서 존 재하고 있다. 과계민족은 1978년 대외개방이후 접경지역에서 발생하는 민족 18) 김병호, 중국 조선족 농촌사회의 위기와 대책,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 제3권1호, (전 남대 아태지역연구소, 2000), pp ) 과계민족을 학자에 따라 跨 境 民 族 (Trans-border Ethnicity), 跨 國 民 族 (International Ethnicity) 이라고도 하는데 의미는 상통한다; 曺 興, 跨 界 民 族 問 題 及 其 對 地 緣 政 治 的 影 向, 民 族 硏 究, 第 6 期 ( 北 京 : 中 國 社 會 科 學 院 民 族 究 所, 1999),pp.6-8.

178 181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과계민족은 중국내 민족 간 문제이면서 국경을 하고 있는 국가의 민족과 관계라는 측면에서 국제적인 성격을 갖는다. 과계민족이 거주하는 곳 이 접경지역이기에 접경하는 국가와 교류과정에서 민족 간 갈등이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20) 이와 같이 과계민족이 갖는 민족문제의 국제성은 대부분이 국경 근처에 생활하고 있고, 과계민족이 언어가 상통하고, 풍습이 비슷하고, 민간왕래가 밀접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과계민족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기 가 된다. 21)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민족지구의 대외개방과정에 서 과계민족이 갖는 딜레마이다. 모체민족과 경제교류를 통해 민족지구의 발 전을 가져올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모체민족들의 영향을 받아 체제 불 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과계민족은 경제적인 측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이 민족지구를 대외 통상구로 개방한 것은 동일한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는 민족구성원 사이의 교류가 상호간 신뢰를 증가시키고 거래비용을 낮추는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과계민족으로서 중국 조선족은 남북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경제적 특 성을 갖는다. 첫째, 중국정부는 동북3성의 조선족들이 서장의 티베트인이나 신강 지역의 위글족 및 내몽고지역의 몽고족의 경우와 같이 일부 분리독립 세력에 의한 민족분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한국이 과거 에 동북3성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갖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조선족과 동족국가인 남북한이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고 이들과 긴밀한 교류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갈등이 잠재 되어 있다고 경계하고 있는 실 정이다. 이는 한국의 재외동포법 입법과정 22) 에서 양국간에 외교적인 갈등이 발생하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둘째, 모체민족이 남북한으로 분단된 특 수한 상황에서 북한과 접경하고있는 조선족은 남북통일 문제에 일정부분 개 입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과 남한 그리고 북한은 비록 이질적인 체제, 문화 환경으로 각자의 사회지위, 정치태도, 가치관 등에서 많은 이질성을 보여주 지만 민족적 측면에서 일체성과 동일한 문화전통과 풍속습관, 역사, 민족의 식 그리고 혈연친지관계 등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과계민족의 특성을 공유하 20) 김재기, 남북협력시대 과계민족( 跨 界 民 族 )으로서 중국 조선족과 남북관계, 6.15남북공 동선언과 한민족발전전략 국제학술회의논문집, (광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한국동북아 학회, 2001), pp ) 葛 公 尙, 試 析 跨 界 民 族 相 關 理 論 問 題, 民 族 硏 究, 第 6 期 ( 北 京 : 中 國 社 會 科 學 院 民 族 硏 究 所 ), 1999, pp ) 재외동포의 지위향상을 구체화 한 재외동포법안은 애초 한민족 혈통을 지닌 자 가운데 외국 국적 취득자 로 포괄적으로 적용대상을 정했으나, 중국 등이 혈통주의를 내세워 우 리 나라 거주민을 재외동포법상의 동포로 포함시키는 것은 주권침해행위 라고 항의하여 중국과 구소련지역 동포 대부분이 이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한겨레신문,

179 182 고 있다. 특히 개혁개방이후 중국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을 다 드나들 수 있 게 되었고 따라서 이전에 정치적으로 북한 일변도적인 입장과 남한을 자본 주의 국가라며 적으로 간주하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 가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 조선족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일 정부분 역할이 가능하다. 중국 조선족이 남북한 문제에 개입한 것은 북한 식 량난 문제와 이산가족 문제 탈북자 문제로 한정적이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23) 집거구 기층단위에서 촌민자치 중국 조선족 집거구의 기층단위는 촌민자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촌민자치 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1949년부터 1957년까지 전국적으로 향진 인민 대표대회와 인민위원회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시기 농촌의 기층조직은 행정 촌이었다. 그런데 1958년 이후 전국적으로 인민공사운동이 실시되면서 향진 의 인민위원회 및 행정촌은 철폐되고 인민공사를 중심으로 한 3급 조직체계 ( 人 民 公 社 - 生 産 大 隊 - 生 産 隊 )가 건립되었다. 24) 그런데 1978년 개혁개방정책과 함께 실시된 농가호별청부제는 농민의 생 산경영의 자주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결국 1958년 이래로 유지되어 온 인민 공사의 경제적 기반은 와해되었다. 1983년 인민공사의 폐지와 향정부의 건립 과정에서 촌급조직의 재건을 착수하였는데, 인민공사의 생산대대를 대신하는 촌민위원회 와 생산소대를 대신하는 촌민소조 를 건립하고, 또한 촌 내에 촌 당지부를, 촌민소조에 당 소조를 설립하였다. 25) 그 결과 기층정부로서의 향 진( 鄕 鎭 )정부와 대중자치조직으로서의 촌민위원회( 村 民 委 員 會 )로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농촌사회의 조직개편 과정에서 개혁정책과 함께 나타난 각종 사회 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촌민의 직선에 의한 촌민자치의 실시를 전면적 으로 추진하였다. 1987년 제6차 전인대를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촌민위원 회조직법(시행)>으로 1995년 말까지 전국에는 29개 성, 자치구와 직할시에서 촌민자치 시범현시 63개, 시범향진 3,917개, 시범촌 82,266개를 확정하였다. 그리고 1997년 말까지 중국 전역에 905,804개의 촌민위원회가 설립되었고 3,788,041명의 촌민위원회 간부가 직선에 의해 선출되었다. 23) 최영관 임채완 김재기, 한국통일과 중국동북3성 조선족에 관한 연구, 한국동북아논 총, 제6권2호, (한국동북아학회, 2001), pp ) 김종현, 중국 촌민자치의 집체주의적 특징, 국제지역연구, 제5권 제4호, (한국외국어 대 외국학종합센터, 2002), pp ) 김원곤, 鄕 村 自 治 를 통한 중국의 기층조직관리, 국제지역연구, 제5권 제4호, (한 국외국어대 외국학종합센터, 2002), pp.9-10.

180 년 11월 제9차 전인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촌민위원회조직법 이 재차 법규로 명문화되었다. 이 법 제2조에는 촌민위원회는 촌민의 자아관리( 自 我 管 理 ) 자아교육( 自 我 敎 育 ) 자아복무( 自 我 服 務 에 의한 기층 군중성 자치조 직이며 민주선거( 民 主 選 擧 ) 민주결책( 民 主 決 策 ) 민주관리( 民 主 管 理 ) 민주 감독( 民 主 監 督 )을 시행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촌민자치는 촌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민주적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민주적 정책결정 및 민주적 관리와 민주적 감독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 는 제도적인 장치로 촌민자치의 핵심적인 기초이며 자치의 가장 중요한 지 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촌민자치를 위한 기본적인 조직은 중요 정책결정기구로서 전체 촌 민이 참가하는 촌민회의 와 집행기관으로써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촌민위원 회 로 구성된다. 먼저 촌민위원회는 주임과 부주임 및 위원 등 모두 3-7인으 로 구성되며, 촌민의 직선에 의해서 선출되고, 임기는 3년이며 연임이 가능 하다. 촌민위원회의 역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치성을 띤 역할이다. 즉 농촌의 공공사무와 공익사업, 촌민간의 분쟁 조절, 사회 치 안의 유지, 문화활동의 전개, 촌 내의 집체자산의 보호와 관리, 촌의 경제활 동에 대한 협조와 서비스, 환경보호 등이다. 둘째로 향진정부의 행정적 기능 에 협조하는 행정적 성격을 띤 역할이다. 예를 들면, 농민의 납세, 병역, 의 무 교육, 가족 계획, 농산품 수매 계약 등의 의무의 이행 등을 추진하고 이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촌민회의는 전체 성인 촌민으로 구성되며, 전체 촌민의 이익과 관련된 사무를 토론하고 결정한다. 촌민자치는 직접 민 주제이기 때문에 촌민회의는 촌민자치의 최고결정기관으로 촌민위원회는 촌 민회의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그 업무를 보고해야 하며, 촌민회의는 촌민위 원회의 성원을 교체할 권리를 가진다. 26) 농촌을 근거지로 집거구를 건립한 조선족도 이러한 촌민자치의 권리를 누 리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3-4회 정도의 촌민선거를 치렀다. 동북3성 조선 족의 가장 기층단위 집거구인 촌은 거의 대부분 조선족으로만 구성되어 있 는 특징이 있다. 중국 동북3성에는 연변자치주에 1,000여 개, 흑룡강성에 500 여 개, 길림성에 연변을 제외한 산거지구에 300여 개, 요녕성에 260여 개, 내 몽고자치구에 30여 개의 조선족 촌이 있다. 그런데 촌민자치는 촌민위원회가 거주민의 거주지역을 범주로 하는 지역 경제 및 생활조건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자치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결정의 집행과 관련해서는 상급기관의 영역과 상충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26) 全 國 人 大 常 委 會 法 制 工 作 委 員 會 國 家 法 行 政 法 室, 國 務 院 法 制 辦 公 室 政 法 勞 動 社 會 保 障 法 制, 民 政 部 基 層 政 權 和 社 區 建 設 司 編 著, 村 民 委 員 會 組 織 法 學 習 讀 本 ( 中 國 民 主 法 制 出 版 社, 1998),pp

181 184 된다. 따라서 민주적 원칙에 입각한 촌민의 자주적 관리를 강조하면서도 당 의 영도와 상급기관의 지도, 국가의 법률이나 정책 준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촌민자치의 핵심인 민주 와 자주 는 한계 27) 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에게 촌민자치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첫째, 동북3성 조선족의 집거형태가 대부분 조선족만으로 구성된 촌을 구성 하고 있고, 그 규모가 2,000여 개나 된다는 점이다. 촌무( 村 務 )를 조선족 스 스로 자주관리와 자아복무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그 대표들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에 상급정부에 의해서 촌간부를 임명하여 영향 력을 행사하던 시대와는 다른 촌민의 직접참여에 의해 기층민주주의를 훈련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촌의 주요 업무를 조선족에 의해서 처리한다는 점 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촌당 서기와 촌민위원회 주임과 위 원들을 모두 조선족이 담당하고 촌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농촌에서 이농현상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토지와 같 은 집체 자산의 보호와 관리 그리고 향진기업 건설 등은 매우 중요한 사안 들인데 이러한 업무를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토지 에 대한 집체조정은 자연적인 인구의 증감, 이농으로 인한 농지포기현상 등 이 발생할 경우 경영능력이 있는 농가에 주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촌 간부 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족간부들은 촌 통폐합과 같은 국가정책에 대하여 다른 민족 집거구로 흡수통합 되는 것을 민족적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다. 또한 농장제 등 규모경영을 하려면 집체와 촌간부들의 행정적 역할이 중시 된다. 셋째, 촌의 민족간부들은 향정부나 시 및 성정부 등 상급단위 정부로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넷째, 조선족 촌들은 동북3 성 주요 철도교통과 직접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집거한다는 점에서 한 국의 진출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고 있다 집거구 내에서 민족구역자치 중국 조선족은 동북3성 지역에서 민족자치주 민족자치현 민족자치향 민족촌까지 다양한 집거구를 형성한 조선족의 경우 헌법과 민족구역자치법 의 자치권리규정에 의거하여 제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조선족 최대 집거구인 연변조선족자치주를 1952년에 건립하였고 현급인 장백조선족자치 현은 1958년에 건립하였다. 그리고 연변과 장백 이외의 동북3성 지역에 50여 27) 이러한 촌민자치에 대하여 촌민자치가 기층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간주하고 중국 민주주의 건설의 출발점이라는 관점에서부터 이러한 입장은 촌민자치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평가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까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이정남, 개혁기 중국 농촌의 정치 참여와 통제: 촌민자치제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41집 2호, (한국국제정치학회, 2001), pp

182 185 개의 민족향(진) 28) 을 건립하여 자주적으로 사무를 관리하고 있다. 조선족은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국가사무에 참여하며, 지방정권기관 사무 의 관리에 참여하고 있다. 제1차부터 제9차에 이르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 국정치협상회의 위원에 조선족 대표가 참가하고 있다. 2,978명의 전인대 대 표 중 조선족이 17명으로 대표 총수의 0.57%를 점해 조선족 총인구(0.169%) 의 3배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부부장급 이상 간부가 10여명 있 다. 국가기관과 당 기관의 영도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선족은 총인구의 3% 로 한족의 1.5배에 달한다. 길림성에 부성장 1명, 수명의 청국장, 위원회 주 임, 자치주 주장, 자치현 현장, 일반 현과 시의 행정책임자도 조선족이다. 연 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간부는 자치주 총 간부의 45%를 점하며, 전체 자 치주 조선족 인구 39.5%의 인구비율보다 높다. 29) 1985년 8월 반포된 연변조선족자치주조례 에는 지방정부 자치조례와 단행 조례제정, 인사관리권, 재정경제관리자주권, 문화 교육발전자주권, 지방 공 안부대조직의 권리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 조례에 민족자치간부의 임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치주 주장은 조선족 공민이 담당한다, 부주장과 비서, 국장, 위원회 주임 등 정부 구성원 중에서 조선족 구성원이 반수를 초과할 수 있다. 자치주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조직 구성원 중에서 조선족이 반수를 초과할 수 있다. 30) 또 자치주 조례에는 조선언어문자의 사용에 관해서도 명확하게 규정하였 다. 자치기관이 직무를 집행할 때,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를 통용하며, 조선 어 문자를 위주로 한다. 자치주내의 국가기관과 기업, 사업단위의 문건발 행과 포고 시에는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의 문자를 사용해야하며, 공인과 간 판은 일률적으로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 문자를 사용한다. 법원과 검찰원 의 심리안건과 법률 제정문건은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 문자를 사용해야 한 다. 조선족 교육에 관해서도 조선족의 특징에 근거하여 조선족의 중 소학교 의 학제와 교육계획과 유관학과 교육요감을 확정하며, 조선어로 된 각 과 교 재와 참고자료, 아동들의 읽을 거리를 편역 출판한다. 조선족 중학교는 조선 족 역사를 역사교과목 교육 내용중의 하나로 한다. 조선족 문화에 대해서는 도서관과 박물관 건설로 민족서적의 수집, 정리, 번역, 출판을 중시한다. 조 선어로 된 뉴스, 출판, 방송, 텔레비전 사업 발전을 중시한다. 고 규정하고 28) 중국에는 1271개의 민족향(진)이 있는데 그중 조선족은 46개로 9번째로 많다; 沈 林, 中 國 的 民 族 鄕,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 ) 김종국, 세기교체기의 시각에서 본 중국 조선족, (연길:연변인민출판사,1999), pp ) 7장 75조 구성된 연변조선족자치주조례는 중국 내 민족구역자치 지역에서 최초로 반포된 조례로서 중국 민족구역발전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胡 中 安, 民 族 自 治 地 方 自 治 條 例 選 編, ( 北 京 : 中 央 民 族 大 學 出 版 社, 1995), pp.1-13.

183 186 있다. 이와 같이 중국 조선족이 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소수 민족정책과 관련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집거구를 스스로 개척했고 또한 신중 국의 건립 과정에 있어서 많은 희생을 통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이주한 조선족이 중국 땅에서 민족구역자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첫째, 당가작주 원칙에 의해 크고 작은 자치구역내에서 행정과 당 책임자를 조선족이 담당하고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민족권리를 최대한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치구역내에 서 민족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와 풍습을 보존하고 민족학교를 운영한다는 것도 민족정체성 유지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셋째, 이러한 민족공간은 세계 한민족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민족의 발전을 도 모할 수 있는 한민족경제문화영역 의 인적 물적 토대이며 근거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집거구 해체론과 집중촌 건설 현상 집거구 해체 위기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후 조선족 집거구들이 해체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 의 경제개혁 정책은 우선 농촌에서 점진적으로 시작되었고, 1984년 개혁의 중점이 도시로 옮겨졌다. 1987년 제13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자대회 사영경 제가 합법화된 후 시장경제를 기초로 한 도시개혁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도시중심의 산업화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농촌에서 대도시로 이동하 는 농민공( 農 民 工 )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1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 던 조선족 사회가 개혁개방정책이후 대도시로 민족분산 31) 이라는 민족공동체 를 뒤흔들어 놓을 규모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초래 한 것은 1978년 이후 경 제개혁개방정책의 결과이다. 선부론( 先 富 論 )에 의해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장기간 도시의 우선 발전은 농촌의 대부분 자원을 도시에 집중시켰기에 농촌과 도시간의 불균등은 심화 되었다. 중국 조선족의 거주분포는 거의 대부분 동북3성의 농업지구에 집거 하고 있으며 조선족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수전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 와 같은 취약한 농업중심의 산업구조는 개혁개방이후 조선족 농촌사회 위기 를 초래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민공사의 해체와 농 31) 유병호, 중국 조선족 인구위기에 관한 연구, 재외한인연구, 제9호, (재외한인학회, 2000), p.141.

184 187 가생산책임제의 실시로 농촌인구를 인민공사로부터 해방시켜 농촌 잉여노동 력이 발생하였다. 이어 행해진 경제개혁 및 경제발전은 도시의 노동력 수요 를 증가시켜 농촌의 잉여노동력의 도시유입을 촉진시켰다. 개혁개방초기 조선족 인구 유동은 인척관계에 따라 진행되었고, 새로운 정 착지에서 음식점이나 김치장사와 같은 소규모 상업활동을 시작하였다. 80년 대 초기에는 중국 동북3성 도시로의 이동이 주를 이루었다. 연변의 경우 연 길, 화룡, 용정, 훈춘 등지로 조선족의 유동이 많았고, 동북3성은 주로 심양, 장춘, 하얼빈, 대련, 단동 등으로 경제적인 이유와 자녀 교육의 목적으로 이 주하고 있다. 32) 조선족 전체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20만명 이상이 북경, 천진, 상해, 위해 등 산해관 이남으로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이는 1992년 8월 한중수교를 전후하여 대륙시장의 공략을 목적으로 한 한국기업의 중국진출과 관련이 있 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중심을 한 한국 투자기업의 진출과 중국 관광열 풍은 조선족에게 새로운 생활터전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33) 그 결과 북경시의 조선족 인구는 80년 말까지 7,300명에 불과했으나 1998년에 6만 5 천명으로 늘어났다. 상해와 광주시에는 2만-3만 명 수준이다. 연대시에 5천 명, 위해시에 2만 명, 청도에 3만 명 등 산해관 이남지역에 20만 명 규모가 이주하였다. 34) 최근 10여년 동안 중국 전역에 산재한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 족은 전체 인구의 10%가 도시로 이동한 셈이다. 이러한 대도시와 중소도시 에도 인구유동으로 연변자치주의 경우 조선족 인구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 고 있던 연길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의 인구가 연길을 제외하고 모두 감 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35) 집중촌 건설 현상 중국 조선족이 집거하는 산재지역 농촌 집거구의 해체위기에 대응하기 위 해 집중촌 건설론이 대두되고 있다. 집중촌 에서 집중 은 보다 목적 의식적 인 지향과 행동의 의미이다. 촌( 村 ) 자는 중관촌 화원신촌 등 도시 아파트 단지나 구역에서도 널리 쓰이는 명사이기에 광의적인 의미에서 도시의 조선 족 집거구나 조선족 타운도 통칭 할 수 있다. 동북3성 조선족 집거구에서 집 중촌 건설 바람이 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36) 32) 沈 林, 中 國 城 市 里 的 少 數 民 族 聚 落, 城 市 中 的 少 數 民 族,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 2001, pp ) 鄭 信 哲, 人 口 流 動 給 朝 鮮 族 社 會 發 展 帶 來 的 喜 与 懮, 城 市 中 的 少 數 民 族, ( 北 京 : 民 族 出 版 社, 2001), pp ) 길림신문, 조선족 새집거구 형성에 대한 추적, ) 延 邊 統 計 局 編, 延 邊 統 計 年 鑒, ( 中 國 統 計 出 版 社, 1998), p ) 김재기, 중국 조선족 집중촌 건설현상과 네트워크 구축, 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조

185 188 첫째, 다민족국가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조선족의 생존전략이다. 민족의 집 거는 소속된 민족성원의 생명적 안전을 위한 것만이 아니고 그 민족집단의 생활방식, 언어와 문화, 전통과 풍속, 도덕과 윤리 등도 보전하여 정체적으로 그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거 지가 파괴되고 그 성원들이 타민족의 생산과 생활권으로 이주할 경우 언어, 문화, 전통, 풍속까지도 동화되어버리는 결과는 초래하기 때문에 민족의 집 거가 중요한 생존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집거구들이 추구해야할 가치로 소수 민족으로서 주체민족인 한족의 거대한 영향하에서 그들과 화합하면서 자기 민족의 개성적인 존속과 발전을 도모하는 화이부동( 和 而 不 同 ) 의 전략이 제 시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집거지 건설을 통해 조선족의 한족으로의 동화 를 지연시키거나 조선족 집거구의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조선족 집중촌을 건설해 상대적으로 많은 조선족들이 집거되면 민 족경제, 민족교육, 민족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 민족의 보존과 발전은 민족 문화의 존재와 발전을 떠날 수 없으며 민족문화의 개성과 발전은 민족교육 을 떠날 수 없으며 민족교육은 조선족 집중촌을 떠날 수 없다. 언어 문자와 풍속습관은 민족문화의 핵이다. 조선족 집중촌 건설은 조선족언어, 문자와 미풍양속을 계승발전 시키는데 유리하다. 37) 둘째, 이러한 민족 집거형태도 규모가 커지고 도시화되는 방향에 맞게 새 롭게 건설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다. 집거형태의 변화는 사회발전의 척 도로 되는 생산방식의 변화와 관련된다. 생산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키는 힘이 커지며 따라서 더욱 안전하고 편하며 문화적인 거 주형태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 유형은 산거형태, 농촌집거형태, 도시집거형태 가 있는데 어느 형태를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거주이전과 토지이용에 관한 법과 제도, 경제적 능력, 생산방식과 수단 성격 등이 관련된다. 새로운 집거 지 건설은 개방화, 세계화, 민족화, 현대화(정보정보화, 하이테크화, 디지털 화), 생태환경화, 문화화한 조선족 발전의 생산과 생활의 현장으로서 민족과 국가 발전이 크게 기여하는 생산과 생활의 새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셋째, 집중은 분산보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집중촌은 조선족 자 본과 인력, 기술, 교육 등이 집중되는 민족공동체이다. 한 곳에 집중시킬 경 우 그 효과는 배가된다. 주변부에 위치한 촌들을 중심으로 모으고 집중시키 면 농업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규모 영농이 가능한 것이다. 교육에 있어 서도 촌마다 있는 소학교를 통합하여 집중촌에 교사와 학생을 집중시키면 양질의 교육환경을 만들 수 있다. 자본의 경우도 산재지구에 분산시키기보다 는 집중시키는 것이 경제적 효과가 크다. 선족 인구문제와 그 대책 에 관한 국제학술회의(2003년 10월 11-12일 북경), pp ) 안화춘, 민족 살리는 조선족 집중촌, 길림신문

186 189 이러한 집중촌의 유형은 심양시 서탑거리나 북경의 왕경신성 같은 대도시 형 집중촌, 요동반도와 산동반도에 주로 나타나는 곳으로 한국의 기업진출 과 함께 코리안 타운을 형성하는 연해도시형 집중촌, 심양시 근교의 만융촌 이나 장춘시 근처의 신광민속촌 같은 대도시 근교 집중촌, 상지, 계동, 아성 등과 같은 중소규모 도시에 건설되는 중소도시 근교 집중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4. 중국 조선족 집거구 인적 물적 자산 활용 방안 4.1 세계 한민족공동체 구축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 세계 곳곳에 분산되어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계하 려는 현상은 중국, 이스라엘, 이태리, 인도 등과 같은 해외에 대규모 재외동 포를 갖고있는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재외동포를 정교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국의 경제발전과 세계화전략에 활용하려고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6,0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해외 화교와 화인을 갖고 있는 중국은 세계화 상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세계화상네트워크 구축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태리는 재외동포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해외 이태 리공동체를 대외관계를 강화하는 교두보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리 스도 은하수 모델 을 통해 그리스와 재외 동포 공동체간의 상호협력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민족 간 연계 강화 현상은 동일한 민족집단간에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교류협력을 강화하여 상호간의 발전을 꾀하면서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140여 개 국가에 600만 규모의 재외한인이 있는 한국의 경우도 이를 정교하게 네트워크 하여 국가사회 발전과 재외한인 사회 발전을 동시에 도 모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계한민족공동체 구축이라는 한민족 발전전략으로 제시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는 남북한과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한민족의 혈통과 문화적 공통성을 기초로 한민족 구성원들간에 다 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유대와 귀속감을 발전시키고,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증진하며, 이를 통해 민족구성원들의 생존, 안녕, 발전, 복지를 함께 도모하는 공동체 38) 라고 할 수 있다. 38) 성경륭 외, 21세기 한민족네트워크공동체의 비젼과 전략, (한국방송공사, 1999), pp ;이만우, 한민족공동체(KC) 이론정립, 21세기 한민족공동체 형성과 과제,

187 190 여기서 네트워크는 관계의 집합(set of relation) 으로서 구성원간에 국경을 초월하여 혈연, 지연, 학연, 업연(같은 직업이나 사업상 연고), 교연(같은 종 교상의 연고) 등 다양한 관계들을 상호 연결시켜주고 구성원들간의 응집성 을 갖게 해 준다. 대표적인 네트워크 중 하나인 화교네트워크는 혈연, 지연 및 업연 등을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을 발휘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각종 사 업행위의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네트워크는 방( 幇 ), 세계화상대 회, 동창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화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구성원들간에 통 신, 방문, 학술, 문화 등의 교류와 무역과 투자 등 다양한 경제적 거래를 촉 진시키는 기반이 된다. 그리고 공동체란 특정한 사회적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독특한 사회적 경 험과 환경,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적 집단들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공 간(area), 상호작용(interaction), 공동의 유대(common bonds)를 그 구성요소 로 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일정한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원들끼리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이를 통해 공동의 유대와 귀속감을 발전시킬 때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구성원들간의 연결망의 밀도에 영향을 받게 되고, 이러한 밀도는 구성원들간 상호 연결고리의 다양성과 유효성에 의존한다. 그 리고 이 연결망의 밀도는 바로 공동체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나타내는 주요 한 지표인 것이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 공동체는 다른 지역 동포들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 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한민족공동체 구축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첫째, 집거구 내에서 민족구역자치와 촌민자치라는 자치활동을 하고 있고, 둘째, 고유한 민족문화영역을 갖고 있고, 셋째, 한글교육을 하고 있고, 넷째, 중국사회에서 정치적 지위가 높고, 다섯째, 민족의식이 강하면서도 타 민족에 관용적이며, 여섯째, 한반도와 인접하여 남북한 통합에 완충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선족 집거구들은 중국 동북지역 주요도시와 교통 요충지에 집거 하고 있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의 동북3성 그리고 동부 연해지역을 한반도 와 연결하는 주요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조선족들이 밀집되어 거주 하는 연변을 중심으로 장춘-하얼빈-심양-목단강-통화-단동-대련 등이 제시 될 수 있다. 또한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의 경제진출과 조선족의 인구유동 으로 새로운 집거구가 형성되고 있는 북경-천진-연대-위해-청도-상해 등으 (해외한민족연구소, 1999),pp.9-41;정영훈, 한민족공동체 형성과제와 민족정체성 문제, 2002년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회의논문집( 국회소회의실), pp.1-6;이종훈, 한민족 공동체와 한국정부의 역할, 2002년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회의논문집( 국회소회의 실), pp.27-29;박창규, 새로운 국제환경과 한민족공동체, 평화연구, 제11권 2호, (고려대 평화연구소, 2003),pp

188 191 로 거점을 확대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심양의 서탑가와 만융촌, 하얼빈의 도리구와 향방구 등이 새롭게 코리안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하얼빈-수분하 철도구역에 아성-오상-상지-해림-동녕 등의 지역도 조선족 민족향들이 밀집 되어 있는 곳으로 중요한 거점들이다. 한국과 가까운 산동반도의 청도시의 경우 이창구와 청양구, 유정진에 10만이 넘는 한민족이 거주하고 4000개 규 모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어 거점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또한 조선족 집거구는 한민족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서 역할 을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확산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 소비기호에 적합한 제품을 창출하거나 연구 개발을 수행할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중국의 경제, 투자, 물류, 금융, 수출입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러한 재외한인 밀집지역(코리아타운)이 정교한 네트워크 로 구축이 될 경우 한민족의 경제 문화 생활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4.2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의 인적 물적 기반으로 활용 참여정부는 12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 을 주요 과제 로 채택하였다.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은 지난 수세기 동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 속에서 주변화 된 변방으로 존재 해온 한반도를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의 중추지역 으로 부상시키려는 국가전략이다. 그 중심내용 중에 하나가 한상네트워크 등 분야별 재외동포 네트워크 구 축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39) 이는 참여정부가 핵심적인 국가전략으로 추진 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에 있어서 재외동포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각 분야별 재외한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인 적 물적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한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시급히 추진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재외한인의 경제활동은 모국의 GNP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으나, 소 비생활 면에서나 생산활동 면에서 모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상품 수지 면에서도 이들은 모국 상품의 바이어 역할을 해내고, 현지의 최근 소비 성향이나 유통체계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모국 기업에 제공하여 기업들의 해외 시장개척에 기여를 한다. 그리고 재외한인들은 현지에서의 인 39) 최근 노무현정부는 재외동포 네트워크 구축 을 12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인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론 의 분야별 사업으로 선정하였다. 국정홍보처, 참여정부 국정비전과 국정과 제, (국정홍보처, 2003), pp

189 192 맥과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자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자본을 모국에 유치하는데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재외한인들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최근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 미국의 국제경제연구소(IIE)에 의뢰하여 발표한 자료에서 알 수 있다. 발표 자료에 의하면, 재외한인의 자산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하는 1천2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연구결과는 재 외한인이 한국 수출의 16%와 수입의 14%를 차지하며, 미국 경제뿐만 아니 라 전 세계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40) <그림2>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체계도 세계 각 국에서 재외동포의 역량을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활용하여 성공 한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 세계 화교를 개혁 개방 정책에 끌 어들여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1978년 이후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 의 약 70%가 화교자본일 정도로 화교( 華 僑 )들은 중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연간 6~8%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세계 화상( 華 商 )의 중국 투자와 무역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 에 주룽지 총리는 2001년 9월 난징( 南 京 )에서 개최된 제6차 세계 화상회의 에서 세계 화상들의 투자와 무역이 경제성장에 막대한 기여를 했음을 지적 하고, 이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화상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숫자나 경제적 역량뿐만 아니라 자본의 세계 화 측면에서 고조되었다. 초국가적 기업이 보편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이들은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경제와 연계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 40) Imbom Choi and Marcus Noland, Korean Diaspora Makes Sizable Contribution to Korean and U.S. Economics,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IIE), 2003), p.1.

190 193 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해외 화상의 투자에 크게 힘입었다면 그 역으로 중국의 발전에 따라 화상네트워크가 경제력과 단결력이 강화되어 현 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와 화상네트워크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 상호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41)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 조선족도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에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집단이다. 첫째, <그림-3>과 <그림3>철의 실크로드와 한민족의 세계진출 같이 조선족 집거구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주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 횡단철도가 개통될 경우 중국의 만주철도, 몽 고철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는 주요 거점지역에 크고 작은 집거구를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이는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에 있어서 대륙으로 진 출하기 위한 물류기지로서 활용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조선족 수도라 할 수 있는 연변주를 비롯하여 흑룡강성 성도인 하얼빈과 상지, 오상, 목단강시, 계서시, 밀산시 등이 제시될 수 있다. 길림성의 경우 성도인 장춘을 비롯하 여 길림시, 교하시, 통화시, 집안시 등이 포함된다. 요녕성의 경우 성도인 심 양시와 북방의 명주이며 경제중심인 대련시와 북한 신의주와 국경을 하고있 41) 이문형, 세계 華 商 네트워크 분석과 한 華 人 경제권 협력 강화방안, 산업자원부 지 원 용역보고서 (산업연구원, 1999), pp.1-25.

191 194 는 단동이 제시될 수 있다. 둘째, 한국기업의 중국진출과 한국에서 경제활동에 있어서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중국 조선족의 저렴한 노동력과 이중언어 특성은 참여정부의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특히 중소기 업등의 3D 업종의 인력난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 조선족 인력을 활용하여 한국 상품 시장개척에 활용할 수 있 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의 31개 성( 省 )과 자치구( 自 治 區 )에 모두 거주하고 있 으며, 국경을 하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 하바로프스크와 동남아시아 등지에 서 무역활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활용이 가능하다. 넷째, 중국의 화교자본의 한국투자에 매개체 역할이 가능하다. 1979년부터 화교들이 중국에 투자한 규모는 전체 해외집적투자(F야)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화상들의 유동자본은 매년 3조 달러에 이르며, 화교의 80%이 상이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거 주하고 있어 같은 유교문화권에 있는 한국에 투자하는데 중국 국적인 조선 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북아의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접경하는 삼각지역의 교 통 요지에 거주하는 동북3성 조선족 사회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대외적 민족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4.3 북한 개혁개방과 통일과정에서 가교 역할 중국 조선족이 한반도 문제에 처음으로 개입한 것은 항미원조( 抗 美 援 朝 ) 라는 기치를 들고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이 후 한중수교가 되기까지 남북한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은 없었다. 그런데 한 중수교이후 교류가 증가하면서 조선족 사회가 한반도 정세와 민족통일 그리 고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가고 있다. 북한과 국경을 하는 곳에 집거구를 형성하고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은 혈 연적 이념적으로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은 남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에 매개체적 역할이 가능하다. 귀하는 남북한의 통일실현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192 195 반 응 구 분 (%) N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약간 기여할 수 있다 별로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거의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모르겠다(무응답) (11.0) 192(38.4) 131(26.2) 53(10.6) 69(13.8) 자료:전남대 아태지역연구소, 중국 조선족 사회 조사연구, 2001 실제로 중국 조선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통일과정과 인도적 인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들이 남북 통 일과정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의 질문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에 11%, 약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에 38.4%의 반응으로 보이고 있다. 이 는 50% 정도의 조선족들이 직간접적으로 남북한 문제 개입할 것이라는 것 을 보여준다. 귀하는 남북한의 교류협력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반 응 구 분 (%) N 경제교류 이산가족 상봉 사회문화 교류 학술 및 예술 체육 교류 기타 (19.4) 163(32.6) 79(15.8) 38(7.6) 123(24.6) 자료:전남대 아태지역연구소, 중국 조선족 사회 조사연구, 2001 남북한의 교류협력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 의 질문에 이산가 족 상봉에 32.6%, 경제교류에 19.4%, 사회문화 교류에 15.8% 순으로 나타났 다. 특히 이산가족상봉 하나의 질문에 대해 80%가 도움을 주겠다는 답을 하 였다. 이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혈연적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남북 한 당국자가 공식적으로 3차에 걸쳐 이산가족상봉을 하였지만 이는 한계가 많다. 비공식적으로 생사여부를 알아보고 제3국인 중국에서 만남을 주선한다 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 조선족의 북한과 혈연적 긴 밀성을 활용하여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귀하는 한국이 추진하고있는 남북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참여하여 도

193 196 움을 줄 생각이 있으십니까? 반 응 구 분 (%) N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약간 도움을 줄 것이다 별로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 거의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기타 (27.0) 262(52.4) 34(6.8) 24(4.8) 45(9.0) 자료:전남대 아태지역연구소, 중국 조선족 사회 조사연구, 2001 또한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 조선족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 포애로서 이들을 보살펴 주고 도와주는 현상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공안에 신고되면 벌금을 물어야하기에 조심성도 있다. 42.6%에 이르는 조선 족들은 음식만 제공하겠다 하고 신변보호는 17.8%, 숙식제공은 12.8%로 낮 게 나타났다. 고발한다는 의견도 2.6%로 나타났다. 귀하는 북한에서 연변지역으로 온 탈북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도와주시 겠습니까? N 신변보호 음식만 제공 반 응 구 분 (%) 숙식제공 취업알선 고발 무관심 기타 (17.8) 213(42.6) 64(12.8) 40(8.0) 13(2.6) 31(6.2) 50(10.0) 자료: 전남대 아태지역연구소, 중국 조선족 사회 조사연구, 2001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중국 조선족이 남북한 통일과정과 북한 개혁개 방과정에서 활용방안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화해와 협력시 대에 한반도 통일과정의 개입이다. 중국 조선족은 다른 지역 동포들보다 지 리적으로 가깝고,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지 않아 남북의 통일과 민족의 화 해과정에서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의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가 대두되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조선족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조선 족 집거구가 탈북자들의 은신처가 되고 내륙도시나 한국으로 가기 위한 임 시체류지가 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식량이나 의약품 등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며,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조선족들은 북한을 방문하여 식량을 전달해 주는 창구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음으로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중개역할이 가 능하다. 남북한간에 공식적으로 실시했던 이산가족 만남은 한계가 많다. 지

194 197 금의 방법으로 1,000만 명 규모의 이산가족이 모두 상봉한다는 것은 현실적 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 신청하지 않고 연변이나 장백과 같 은 조선족 사회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에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경제적인 측면에서 역할이다. 남북한이 직접교류를 하기 전에 대북 사업은 거의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조선족이 중요 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조선족 집거구가 있는 주요 중국 변경지역에서 북 한과 변경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연변지역의 도문, 남평, 권하, 사 타자 등의 지역이 북한의 변경도시와 활발한 경제교류를 하고 있으며, 조선 족장백현이 북한의 혜산시와 집안시는 북한의 만포시와 단동시는 신의주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남북한간 직접교류를 진행하면서도, 변경무역을 하는 조선족과 한국 무역인이 합작을 통해 변경무역은 더욱 활성화 할 필요 가 있다. 셋째,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된 역할이다. 북한은 지난 7월 사회주의 경 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시장경제 요소들이 도입되다. 중국의 홍콩과 심천을 모델로 한 신의주 특구지정, 가격체계, 배급제, 협동농장체제, 노동에 대한 <표-8> 1990년대 연변의 대북한 각 해관 수출입 화물 비교 (단위:톤) 도문(중) 남양(북) 사타자 권하 남평 고성리 삼합 개산툰 자료:임금숙, 연변과 조선변경지역간의 경제무역교류 현황과 전망,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우세와 발전전략, (연변인민출판사, 2001), pp 인센티브제 등의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중국식 점진적 개혁개방 모 델을 추진한다면 20년 동안 조선족 사회의 경험은 북한 개혁개방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선조치에 조선족이 북한의 거부감 없이 시장사회주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 정치체제와 언어, 문화와 풍습에 있어서 북한과 비

195 198 슷하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조선족을 선호할 것이다. 특히 조선족 학자들은 계획경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국가들이 관심을 갖는 농업관리체제이 론, 공업관리체제이론,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관계이론, 소유제이론, 가격개 혁이론 등에 대하여 전수가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체 제를 모두 경험한 조선족 사회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연습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미국과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중 국이다. 이러한 중국에 북한과 접경하는 지역에 조선족이 집거구를 형성하여 밀집하여 거주하며 교류협력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남북관계에서 중 요한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문제, 북한 식량문제, 변경무역, 경제개혁과 개방 문제 등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가 중국의 정치적 특성과 소수민족이 라는 한계로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 다. 그러나 다른 지역 동포들과 비교하여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동질성이 라는 과계민족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5. 결 론 한민족공동체는 남북한이 중심이 되고 세계 각 국에 거주하는 한민족들이 인적 물적 토대로서 주요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 거점 을 형성해야하는 데 각 지역의 한인 밀집지역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중에 서도 중국 동북3성 지역과 요동/산동반도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한 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지역으로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 치하고 있으며 규모도 25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한반도와 중국과 러시아의 교통의 요충지에 집거하고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동북3성의 교통 요충지(단동(신의주)-심양-장춘-하얼빈- 목단강-수분하(연해주)로 중국대륙과 러시아 연해주를 통해 시베리아횡단철 도 그리고 남북한을 이어줄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거구를 형성하여 집거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한민족 문화공동체로서 혈통과 문화(언어, 관습, 전통) 등을 공유하는 민족구성원 사이의 상호교류의 연결 망이 가능하며, 문화적 일체성 을 배경으로 경제적 교류협력의 네트워크 연결이 쉽게 이루질 수 있게 해준 다. 이제 한반도와 접경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한민족의 발전전략 과 연계시켜 활용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196 199 첫째, 세계 한민족 공동체 구축에 있어서 북방지역의 인적 물적 토대와 거 점을 제시해 준다.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은 지 난 수 세기 동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 속에서 주변화된 변방으로 존 재해 온 한반도를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의 중추 지역으로 부상시키려는 국가전략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북아의 중국과 러 시아 북한과 접경하는 삼각지역의 교통 요지에 거주하는 동북3성 조선족 사 회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민족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집거구들이 동 북3성 주요 철도교통과 직접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집거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진출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고 있다. 둘째,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한 통일과정에 있어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과 남한 그리고 북한은 비록 이질적인 체제, 문화환경으로 각자의 사 회지위, 정치태도, 가치관 등에서 많은 이질성을 보여주지만 민족적 측면에 서 일체성과 동일한 문화전통과 풍속습관, 역사, 민족의식 그리고 혈연친지 관계 등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과계민족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을 동시에 왕래하면서 이전에 정치적 으로 북한 일변도적인 입장과 남한을 자본주의 국가라고 적으로 간주하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북한은 2002년 7월 경 제관리 개선조치 를 통해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였는데 이는 조선족 사회 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경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 개혁개방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조선족은 정치체제와 언어, 문화와 풍습에 있어서 북한과 비 슷하기 때문에 북한의 거부감 없이 시장사회주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 셋째, 현재 국제사회는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국가경계의 약 화 와 민족연계의 강화 라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 서 중국 조선족 집거구는 세계화시대의 확대된 한민족 영역으로서 접근할 수 있다. 중국의 조선족이 밀집되어 거주하는 집거구 에 대해 한민족의 활동 공간으로서 문화영토 (cultural territory)와 경제영토 (economic territory)라 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넷째, 조선족 사회는 한민족 문화영역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고유 한 한민족 문화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국 조선족의 독특한 특성이다. 조 선족의 문화는 고유한 집거지역 속에서 면면히 이어 온 전통문화와 한족중 심의 중국 사회주의체제에 적응 발전한 근대 대중문화의 독특한 융합, 그리 고 1990년 이후 한국과 교류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으로 생성된 중국 조 선족 특색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타민족 문화에 대 하여 관용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민족문화영역이 배타적 혈연공간이 아 닌 세계와 공존하는 문화 공간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족 집거구에 해체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어려움에 처해

197 200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집중촌 건설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조선족 사 회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최근 중국에서는 약 200억 위안(3조원)을 동북공정 이라는 프로젝트에 투입하여 고구려와 발해연 구를 진행하고 있다. 42) 이 프로젝트는 중국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고구려 및 발해의 역사를 당나라의 지방정부로 격하하고 그들 주류민족의 지방정권으 로 편입하려는 시도로서 북한정권 붕괴나, 한반도가 통일이 되었을 때 국경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정부가 2002년 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3관(조국관, 민족관, 역사관) 43) 교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사상 교육이다. 이와 같은 조선족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당면문제들은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선족 지성인들의 노력과 함께 한국정부와 경제계 그리고 학계와 민간단체 들의 관심과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이 요구된다. 42) 이진영, 中 당보 고구려사는 중국사 신동아 2003년 9월호 43) 민족관은 한(조선)민족이기는 하되,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민족관, 살고 있는 곳인 중국 이 조국이라는 조국관, 조선족의 역사는 50년이며, 이는 중화민족의 역사의 일부분이며, 또한 중화민족의 역사가 조선족아 배워야 할 자체의 역사라는 역사관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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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207 WTO/DDA 수산부문 협상과 남북 수산협력 활성화 방안 송 경 석 (호서대 교수) 목 차 요약문 서 론 WTO/DDA수산부문협상과정과 남북한 수산협력 전개방향 WTO/DDA수산부문협상의 남북한수산협력사업에 대한 영향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 활성화 방안 결 론 266 참고문헌 269

204 209 요 약 문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는 가히 격변기라 할 만큼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긴장을 야기할만한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 경제교류와 협력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류과정에서 수산분야의 협력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규모도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 경제교류와 협력을 계속 활성화기 위해 서는 국제적인 정치경제적 변화에 남북한간 경제협력이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법률 적 행정적 제도와 법규의 마련도 중요하며, 여러 가지 절차를 구비하는 것 도 필요하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WTO/DDA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 데 공산품, 농산품분야 등에 대한 논의는 독립된 의제로 설정되어 진행되기 때문에 변화의 움직임, 논의방향 등에 대한 전개가 명확히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 그리고 남북한간 경제교류과정에서 중요한 부문임에도 WTO/DDA 협상과정에서 수산부문협상은 비농산물분야 가운데 하나의 의제 로 설정되어 진행되고 있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비관 심분야의 하나로 취급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남북한간 경제교 류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될 것이 예상되고 이 과정에서 남북한간 수산물분야 의 협력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WTO/DDA 수산물분야의 협상전개를 주목하고 이 협상의 전개가 남북한간 수산물분야 협력사업에 미치게 될 영향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남에 따라 향후 DDA 협상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일부 국가들 간에 양자협의과정이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 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칸쿤회의에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각료회의 기간 중 의견접근이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 협상의 토대 로 삼기로 했다. 따라서 향후 협상의 전개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남북한 수산부문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이들 협상에 의 해 영향을 받게 될 분야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북 수산분야 협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동어로사업, 현지투자사업 등은 WTO/DDA 수산 보조금논의와 수산물 무역논의 결과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 다. 남북한간의 수산분야 협력 문제는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 ), 제5 차 남북장관급회담( ), 그리고 제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2002.

205 )등에서 당국자간에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남북협력기 금지원지침에 수산물과 관련한 지원사항이 명기되어 있는 상태이나 지금까 지의 대북 수산분야 협력사업은 충분한 당국자간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개 별기업차원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해당 어업인들의 반발에 따른 사업승 인 불허, 협력추진 중단 등 사업이 대부분 답보상태인 실정이다. 더욱이 실 질적이고 효과적인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이 가능하려면 북측의 수산부문의 자동화, 현대화 등의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북한은 경제교류사업을 통상적인 국가간 경제활동인 국제무역이나 국제투자행위로 다루지 않고 민족 내부거래로 간주하고 있는 데 지금처럼 남북한간 경제교류의 규모가 미미한 상태에서는 국제적인 관심사항이 아니 지만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규모가 확대될 경우에는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민족내부거래로 취급하는 것이 국제적인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WTO/DDA수산분야 협상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과정을 살펴 볼 때 북측과의 경제협력규모가 미미한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남북한간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 다면 북한의 수산분야를 현대화시키기 위한 남측의 지원은 특정성을 갖는 수산분야 보조금으로 간주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실질적이고 효과적 인 지원이 가능하려면 북측 산업전반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북한 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강구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수산분야에 대한 대북지원도 이러한 전반적인 지원방안의 하나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양국이 국제사회에서 양국간교역을 역내교역 으로 인정받았던 것처럼 남북한간 교역에 대한 역내교역취급을 국제사회로 부터 인정받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양국간 경제교류를 모두 역내교류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수산분야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협력을 현재와 같이 민족내부거래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통일단 계에 도달하기 이전까지는 국가간 거래로 간주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필 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 경제교류 및 협력의 초기단계인 현재는 남 북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교류 및 협력사업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 제적으로 큰 논란이 되지 않겠지만 남북간 교류규모가 일정단계에 달하고 북측의 개방화가 진전되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비중을 갖게 된다면 문제 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남북간의 경제교류를 단일국가와 민 족내의 거래로 간주한다면 남측에 의해 이루어지는 북측에 대한 지원은 상 당부분 보조금지원 및 시장접근측면에서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 서 지금부터라도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간의 경제교류 및 협력에 대한 로드 맵을 설정하고 북측 경제발전 및 개방에 대한 체계적이며 전반적인 대응책

206 211 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의 남북한 수산물협력사업의 세부적인 사업추진 상황을 살 펴보면, 수산분야의 협력활성화를 위하여 협력주체별 기능분담이 필요할 것 으로 판단된다. 중앙정부차원에서는 협력사업에 관한 안정적인 제도 마련, 재정자금 및 운영기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한간에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어업협력합의서 를 체결하는 한편, 어로활동 보장, 안정조업 및 질서 유지, 어업자료 교환, 어업인 교류, 합영 및 합작사 업 등의 논의를 위한 남북공동어업위원회 설치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수협중앙회 차원에서는 수산협력관련 외환 및 행정업무 지원, 협력사업 정보 제공 및 조직화, 독자적인 수산협력사업 수행 등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가공 및 유통업에 대한 대북협력은 북측 수산물 유통시설의 낙후성 을 감안할 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식업의 경우는 동해안의 가리비 굴 우렁쉥이 수하식 양식과 서해안의 백합 피조개 가 리비 살포식 양식, 그리고 새우 축제식 양식 등에 대한 추진은 검토해 볼만 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선어업(어로합작사업)의 경우는 북한의 일정한 수역 (동해어장) 입어료지불 형태로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으로 사업내용별 추진분담을 통한 방안으로는 수산자원의 공동개발 및 합작사업추진, 감척어선 대북공여, 동해안연어자원개발, 수산기술협력, 남 북공동 어로구역 설정 및 공동조업, 제3국 공동개척 및 합작생산어획물, 직수출 및 국내반입 등도 분야별 각 기관이 분담 및 협력을 통한다면 협력 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수산분야 협력은 생산기간이 짧아 사업추진이 용이하 며 주민접촉이 일부에 국한되는 장점이 있고 상호 실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수산분야 협력시 경제적인 성 과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겠지만, 경제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은 전반적으로 경제기반(인프라)이 열악하기 때문에 초기단계에서는 경제적 이익측면 보다는 동족애 차원에서 협력을 추 진하는 방향의 거시적인 시각 및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207 서 론 1.1 연구의 목적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가히 격변기라 할 만큼 숨 가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여러 가지 긴장을 야기할만한 상황 속에서도 남북한간 경제교류 및 협력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류과정에서 수산분야의 협력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규모도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렇듯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한의 경제교류 및 협력을 원활하게 진행하 고 활성 할 수 있으려면 국제적인 정치경제적 상황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 을 만큼 남북한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법 률적 행정적 제도와 법규의 마련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절차를 구비하는 것 도 필요하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WTO/DDA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 데 공산품, 농산품분야 등에 대한 논의는 독립된 의제로 설정되어 진행되기 때문에 변화의 움직임, 논의방향 등에 대한 전개가 명확히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 그리고 남북한간 경제교류과정에서 중요한 부문임에도 WTO/DDA 협상과정에서 수산부문협상은 비농산물분야 가운데 하나의 의제 로 설정되어 진행되고 있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비관 심분야의 하나로 취급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남북한간 경제교 류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될 것이 예상되고 이 과정에서 남북한간 수산물분야 의 협력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WTO/DDA 수산물분야의 협상전개를 주목하고 이 협상의 전개가 남북한간 수산물분야 협력사업에 미치게 될 영향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한간에 이루어지는 경제교류사업을 국가간 경제활동인 국제무역 이나 국제투자행위가 아니라 민족 내부거래, 즉 역내거래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남북한간 수산물분야의 협력사업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 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국제교역 및 투자와 관련한 중요한 국제기구인 WTO에서 진행되고 있는 WTO/DDA 수산물분야의 협상전개를 주목하고 이 협상의 전개가 남북한간 수산물분야 협력사업에 미치게 될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수산물분야 경제교류사업을 민족내부거래로 취급할 경우 WTO/DDA 수산 물분야 협상가운데 보조금관련 논의의 전개가 남북한 수산물분야의 경제교 류사업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208 214 따라서 WTO/DDA 수산부문협상의 전개방향, 특히 수산 보조금부문의 협 상전망과 수산물 시장자유화 협상전망을 분석하여 이들 협상이 남북한 수산 부문경제교류사업에 미치게 될 영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들 협상의 전개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남북한 수산부문 경제교류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들 협상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분야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을 위해 중요한 분야인 공동어로사업, 현 지투자사업 등이 WTO/DDA 수산부문 보조금논의와 수산무역논의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 인다. 1.2 연구의 방향 본 연구는 WTO/DDA 수산부문협상의 전개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한간 수산분야의 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 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남북한 수산협력을 더욱 증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아울러 통일의 기초가 될 수 있도록 경제교류 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WTO/DDA 수산부문 협상과정, 즉 수산보조금분야와 수산물무역분야에 대한 논의 동향 및 전개방향을 먼저 살펴본다. 아울러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남북한 수산협력사업 현황과 북한현지투자사업의 실상을 파악하여 WTO/DDA 수산보조금분야 및 수산무역분야의 협상이 남북한 수산분야 협 력사업에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남북한간 수산분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면 북한 현지투자사업의 분야 및 금액의 확대가 요구된다. 또한 남북한 공동어로사업의 확대 및 활성 화를 위해 남측의 북한지역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 등이 필요한 것도 현실 이다. 또한 남북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교류를 민족내부거래 로 규정할 경우 남북한간 물자반출입에 대한 무관세조치 등 긍정적인 효과 를 얻을 수는 있으나 WTO/DDA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산분야 논의의 전 개방향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WTO/DDA 수산보조금협상이 남북한수산분야 협력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 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수산분야 뿐만 아니라 남북한간 경 제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안정적인 남북경제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여러가지 검토와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9 WTO/DDA 수산부문 협상과정과 남북한 수산협력 전개방향 2.1 WTO/DDA 수산부문 협상동향 WTO/DDA 협상 전개과정 1929년 대공황 전후로 각국에서 전개된 관세인상, 수입수량 제한 등의 보 호주의 체제를 종식시키고자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가 출범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원래 국제통화를 담당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투자를 담당하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일명 세계은행), 그리고 국제무역을 관장할 국제무 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 ITO)로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미 국 등의 반대로 ITO가 설립되지 못하고, ITO의 설립을 전제로 체결되었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 GATT)이 ITO를 대신해 국제무역정책 조정의 중심기구로서 기능을 하게 된 다. GATT는 법률적인 국제기구가 아닌 국제협정에 불과하지만 사무국, 총 회, 이사회 등의 운영을 통해 사실상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런 불완전한 GATT체제는 국제경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현안을 포괄 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국제무역기구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86년부 터 시작된 UR협상의 결과 1994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 WTO)가 탄생한다. WTO체제는 WTO협정과 WTO법에 따라 운영되는 전 세계 144개(중국과 대만포함)국가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제무역분야의 UN"이라 할 수 있 는 기구이다 1). 도하개발아젠다(Doha Development Agenda: DDA)는 WTO 1) WTO를 국제무역분야의 UN이라 지칭하는 이유는 WTO의 다음과 같은 역할 때문이다. 첫째 무역규범 및 시장개방의 확대를 들 수 있다. WTO는 다자간 무역협상을 위한 논의 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세계적 무역자유화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종전의 GATT체제 하에서는 공산품의 시장개방만 추진되었으나, WTO체제에서는 공산품뿐만 아 니라, 농산물, 서비스상품 등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한 국제무역규범의 정립과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국제무역규범의 강화를 들 수 있다. WTO는 국제 경제 및 무역관계에 있어 보다 성숙된 법의 지배가 가능하도록 합의된 규칙에 근거한 국 제질서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국가들의 일방적인 국내법 대신에 국제적으 로 합의된 WTO 규범이 세계의 무역규범으로 자리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국가 가 승복할 수 있는 일정한 규칙을 설정하는 것이 WTO의 중요한 역할이다. 끝으로 분쟁 해결 등 사법적 기능을 들 수 있다. WTO는 회원국간에 발생하는 무역분쟁을 자체의 분 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 DSB) 및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WTO는 분쟁해결기구의 결정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교차보복 등 보복조치를

210 216 체제에서 전개되고 있는 첫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우루과이라운드협상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고 있는 관세 등 각종 무역장벽의 감축, 세계무역환경 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환경이나 지적재산권 등과 같은 새로운 무역 관련 이슈들을 논의하기 위한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4차 WTO 각료회의 2) 에서 채택된 각료 선언문에 따라 논의가 이루 어지고 있다. 도하개발 아젠다의 협상방식(modality)은 모든 의제에 대한 협의를 동시에 진행하여 동시에 종결하고, 모든 참가국이 협상결과를 수용하는 일괄타결방 식(single undertaking : package deal)이다. 일부 분야의 협상결과만을 선별 적으로 채택한다면 협상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UR협상과 마찬가지로 일괄타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만, 조기합의 사항은 조기 시행이 가능하 도록 합의하고 있다. 협상기한은 2005년 1월 1일 이전이다. 모든 분야의 협 상이 종결되면 특별각료회의를 개최하여 협상결과의 채택 및 이행에 관한 마무리조치를 취하게 된다. 일반이사회 산하 무역협상위원회(Trade Negotia tion Committee:TNC)는 전반적인 협상과정을 총괄하고 있는데, 2002년 1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개최된 제1차 TNC를 통해 기설정의제(built-in agen da)인 농산물 및 서비스시장의 추가개방문제 뿐 아니라 규범, 환경, 비농산 물시장접근, 지적재산권, 분쟁해결 등 7개 협상그룹을 설치하였다. 3) 그렇지 만 DDA협상의 핵심분야인 농업과 비농산물 분야는 협상세부원칙 합의기한 인 2003년 3월말과 2003년 5월말까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 고 있다.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제 5차 WTO 각료회의에서 진행상황을 중간평가 하고 협상시한을 넘긴 이슈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여 2003년 5월 16일에 배포 된 의장초안(TN/MA/W/35)을 중심으로 개괄적인 타결을 시도하였다. 그러 나 각료회를 준비하는 제네바협상과정에서 농업과 비농산물에 대한 세부원 칙 합의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하에 세부원칙의 기초가 되는 기본골격(fra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분쟁해결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2) WTO의 중요한 기구는 각료회의와 일반이사회이다. 각료회의는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서 회원국 대표들이 주기적(원칙적으로 2년)으로 모여 주요사안을 결정하며, 상설기구인 일반 이사회(주로 각 국의 WTO대사가 대표로 참석)는 각료회의의 결정을 집행하며 평상시 각 료회의의 임무를 대행한다. 3) 도하개발 아젠다 협상원칙 :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은 모든 새 회원국들의 효율적인 참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모든 참여국들에게 이익이 균등하게 분배 되도록 협상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WTO 일반원칙이 적용된다. 국제무역 및 투자에 있어 차별이 없어야 한다. 협상을 통해 시장개방 및 자유화를 추진해야한다. 구속력 있는 약속을 제시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인다. 공정경쟁을 촉진한다. 경제개발 및 개혁을 장려한다.

211 217 mework)에 대한 합의를 목표로 회의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국간 의 이해관계 대립,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비록 합의는 이루지 못하고 당초 의도했던 Ministerial Text" 대신 Ministerial Statement"를 채택했지만 각료회의 기 간 중 의견접근이 이루어진 사안은 향후 협상의 토대로 삼기로 함에 따라 이는 향후 협상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WTO/DDA 수산부문 협상동향 DDA 협상과정에서 수산분야는 규범과 환경부문에서 보조금문제를, 관세 및 비관세장벽문제는 비농산물시장접근에서 논의하고 있다. 1) 수산물 보조금관련 논의 수산물보조금지급과 관련하여 WTO/DDA 출범 이전에는 무역과 환경위원 회(CTE)에서 수산보조금지급에 따른 어획남용과 자원고갈 등 환경에 미치 는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무역왜곡현상에 대해 주로 논의되었다. 반면 제4 차 도하각료회의 각료의정서에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 에 부합되 는 수산보조금의 규범을 명확하게 하고 개선한다는 내용이 포함됨에 따라 수산보조금문제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본격적인 논의의 주제로 대두되 게 된다. 수산보조금을 환경과 관련된 문제로 취급하던 이전과는 달리 WTO/DDA 협상과정에서는 수산보조금문제를 규범문제로 인식하고 규범협 상그룹에서 수산보조금의 규범화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수산보조금 문제에 대한 주요국가의 입장 > 주요 국가 입 장 Fish Friends Group 주) 수산보조금은 무역왜곡과 수산자원 고갈을 야기, 유해 수산보조금을 제대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수산보조금을 별 노르웨이 등 20여 개국 도로 논의하고 별도 협정을 체결해야 함 (sectoral approach) 우리나라, 일본, EU, 캐나다 수산보조금이 무역을 왜곡하거나 수산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실 질적인 증거 없음 수산보조금은 현행 WTO 체재대로 제조업, 임업 등 여타 산업 의 보조금과 함께 다루어야 함(general approach) 주) 뉴질랜드, 호주, 칠레,에콰도르, 아이슬란드, 페루, 필리핀, 미국 등. 수산보조금 문제를 주로 논의하고 있는 "WTO 규범" 협상분야 회의는 2001년 11월 DDA 출범 이후 8차례 개최되었다. 2003년 7월 현재 Fish

212 218 Friends Group 8개국, 미국, 뉴질랜드, 한국 4), 중국, 일본 등에서 수산보조금 에 대한 16개의 제안서가 제출되었다. 여기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Fish Friends Group은 수산보조금이 무역을 왜곡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므로 이를 규제하거나 감축 내지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 등은 반대하고 있다. Fish Friends Group은 수산보조금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필 요하다는 기존 입장(sectoral approach)을 고수하면서 수산보조금을 규제대 상과 비규제 대상으로 구분하려 시도하고 있다. 한편 EU는 수산보조금의 환 경적 측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으며, 서로 입장이 비슷한 한 국과 일본은 수산자원 고갈의 주요인은 수산보조금이 아니라 부적절한 어업 관리라는 입장(general approach)을 보이고 있다. EU가 제안한 금지보조금과 허용보조금에 대한 분류는 수산보조금 논의 진척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 가되고 있지만, 미국 등 Fish Friends 그룹은 EU의 분류는 금지보조금의 범 위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2002년 10월 제출한 "Korea's Views on the Doha Development Agenda Discussions on Fisheries Subsidies"라는 제안서에서 Fish Friends Group의 주장이 부적절 함을 지적하였다. 한편 칸쿤에서 개최된 제5차 각료회의 기조연설에서 Fish Friends Group 은 수산보조금 규제강화 필요성을 강조함으로 Ministerial Text" 중 수산보 조금 관련 문안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각료회의 기간 중 반덤핑, 보조금, 수산보조금 등 규범 협상분야는 서비스, 환경, 지적재산권 등과 함 께 각료회의 기간 중 Other Issues"로 분류되어 논의되었다. 5) 각료회의과정 에서 Ministerial Text" 초안(8.24)에 수산보조금은 이슈 파악 단계에서 해 결방법 모색단계로 전환한다는 수준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뉴질랜드 등 Fish Friends Group은 수산보조금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문안 변경을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우리나라는 일본과 공조하여 동 시도에 강 력히 대응키로 하고 Other Issues" 의장(facilitator)에게 Fish Friends가 수 산보조금 문안강화를 시도할 경우 Ministerial Text 합의가 어려워 질 것이 라는 의사를 표시하고, 의장은 환경 및 지적재산권만 의제로 다루고 수산보 조금을 논의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에 따라 Fish Friends도 수산보조금 문 제를 제기치 못하였다. 이에 따라 수산보조금 관련 Ministerial Text" 초안 (8.24)내용 6) 은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앞으로의 수산보조금에 대한 논의과정에서는 1 기존 쟁점(sectoral vs 4) 한국은 3개의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5) 각료회의 기간 중 협상분야는 농업, 비농산물, 싱가폴이슈, Other Issues로 구분되어 논의되었 다. 6) 이슈파악단계에서 해결방법 모색단계로 전환 (shifting its emphasis from identifying issues to seeking solutions)

213 219 general)에 대한 협상과 병행하여 2 각 국의 수산보조금규모 및 종류 등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고, 3 현행 WTO/SCM(보조금협정) 개정, 4 각 보조금 별 규제방법 및 감축기간 등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WTO/SCM 협정상 보조금의 개념을 수산보조금과 관련한 논의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수산보조금의 정의에 특정성 의 개념 을 적용하는데서 제기되는 모호성, 수산보조금의 범위와 관련하여 일반서비 스 부분의 포함여부, 수산보조금 논의기관의 설정문제, 보조금 분류체계의 문제 등이 그 예이다. 2) 수산물 무역자유화 관세인하방식(modalities)을 중심으로 수산물에 대한 시장접근을 논의하고 있는 "비농산물시장접근" 협상그룹 회의는 2002년에 5차례 개최되었으며, 2003년 5월말까지 관세인하방식을 결정할 예정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 7차 회의에서 회원 국들이 Girard의장이 발표한 의장 초안 7) 을 중심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에 대한 세부협상원칙(Modalities) 타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선진국과 개도 국간 현격한 입장차이로 협상시한인 2003년 5월 말까지의 협상타결에 실패 했다. 이처럼 비농산물분야에 대한 세부원칙의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임 에 따라 제5차 칸쿤각료회의에서는 세부원칙의 기본골격만 합의를 하려 도 모하였으나 이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7) 2003년 5월에 제시된 의장초안을 중심으로 전개된 금번 회의의 핵심쟁점은 관세인하공식 과 분야별 관세철폐 로서 의장초안에 제시된 관세감축의 경우 모든 품목을 감축대상으로 하되(line by line approach), 기존의 높은 관세율은 감축폭을 크게 하고 낮은 관세율은 상 대적으로 낮게 감축하도록 하는 변형된 스위스공식으로서, 미국, EC, 뉴질랜드 등 선진국 은 의장초안이 개도국에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시장접근 개 선효과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며 목표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동 초안이 수정되기를 바 란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반면 인도, 이집트 등 개도국은 관세인하공식에 적용되는 계수가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동일하게 적용됨으로 개도국에 대한 특별한 배려(S&D, 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가 반영되지 않고 있어 개도국에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 고 있다.

214 220 < UR협상시까지 논의된 수산부문 관세인하 동향 > 시 기 선 언 주 요 내 용 통상장관선언 (푼타델에스터선언) 통상장관회의 (브뤼셀선언) 마라케쉬협정 UR협정 - 수산물 무역문제 협의를 위해 천연자원산품 협상그 룹 설치 - 천연자원산품 협상그룹 을 시장접근 협상그룹 에 통합 - 관세 1/3cut를 합의하고 가능한 최대품목을 양허하 기로 체결 - 한국: 양허율43%(388품목중 144개품목 양허) 평균관세율 24% 18% - 일본: 양허율85%(301개품목중 254개품목 양허) 평균관세율 8.5% 6.4% - 미국: 양허율100%(188개 전품목 양허) 평균관세율 3.2% 2.4% WTO/DDA 출범 이전 수산부문 관세인하와 관련한 논의동향은 표와 같 다. 수산물 무역자유화부문은 WTO/DDA 뉴라운드 협상과정에서도 UR협상 과 마찬가지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수산물부문 은 종전대로 공산품과 함께 시장접근그룹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UR 협상때 보다는 시장접근을 위한 개선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WTO/DDA 출범시 이루어진 제4차 WTO각료선언문가운데 수산물 시장 자유화와 관련한 내용은 관세 및 비관세장벽 감축 내지 제거를 목표로 한 다 8) 고 표현되어 있다. 수산물분야 시장접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관세 인하방식에 대한 각국의 제안을 보면, 한국은 단순선형방식으로 관세를 20% 일괄 감축하여 관세정점(단순평균의 2배이상)과 고관세(25%이상)를 제거하 고 감축결과가 목표감축률(무역가중평균 40%)에 미달할 경우에는 추가 감축 을 통하여 목표감축률을 달성하는 방식을 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선진국의 관세정점과 개도국의 고관세의 감축에 효율적이며 한국처 럼 임 수산물산업이 취약한 경우 관세를 통한 보호가 가능한 방식이다. 8)...reduces or as appropriate eliminate tariffs, including the reduction or elimination of tariff peaks, and tariff escalation, as well as non-tariff barriers...

215 221 < WTO/DDA 수산물시장접근 논의 동향 > 회의 시기 논의내용 무역협상위원회 1차회의 WTO일반이사회 정례회의 비농산물시장접근 1차회의 시장접근세미나 비농산물시장접근 비공식회의(4회) 비농산물시장접근 2차회의 시장접근협상그룹 제1차회의 비농산물시장접근 3차회의 비농산물시장접근 7차회의 시장접근협상그룹신설(비농산물시장접근의제논의) TNC 산하 협상기구 의장단 선임 협상방식에 관한 제안 말까지 도출합의 최빈국의 효과적 협상참여를 위한 조치의 일환 - 과거 협상 사례 및 쟁점 설명 - 선후진국간 의견차이를 고려한 재수정안 제시, 합 의도출시도 개국 제안서 제출(EC,미국,뉴질랜드,한국,일본) 협상방식에대한 제안제시 및 말까지 협상방 식에 관한 공동향해, 까지 합의도출 - 협상목표, 범위, 협상Modality,기준관세율 등 논의 * 노르웨이, 싱가포르 서면제안서 제출 의장초안을 중심으로 협상세부원칙 타결 시도, 실패 반면 미국은 2단계에 걸쳐 2015년까지 비농산물 전체를 무세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1단계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현재 5%이하의 관세가 부과 되고 있는 수산물을 포함한 무역규모가 큰 17개 품목은 무세화 하고, 5%이 상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품목은 8% 미만으로 감축하며, 2단계로 2015년 까지는 모든 품목의 관세를 년도별 균등 감축하여 무세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방식은 지나치게 급격한 관세 감축방식으로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EU는 현재의 모든 관세를 "flatter range"로 압축하여 감축하는 Compres sion mechanism을 제안하였다. 9) 특히 최빈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비농산 물을 가능한 한 100% 관세양허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Compre ssion mechanism이라는 관세인하방식은 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개도국 의 관세인하 폭이 커 관세율 인하 폭에 형평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 인다. 또한 관세인하에 있어 품목별 신축성 부여가 곤란하다는 문제점도 노 출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무역가중평균양허세율을 이용하여 목표 관세율을 정하고, 국 9) 구체적인 방식이나 범위는 밝히지 않고 있다.

216 222 가별 민감도에 따라 품목별 감축폭을 정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지 만 현행세율이 높은 국가의 감축폭이 커 개도국의 반발이 예상되고 관세정 점과 고관세 해소에는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스위스는 공식을 적용하여 모든 품목을 양허할 것을 주장하고, 멕시코는 현행 양허세율을 기초로 모든 품목에 대해 평균 관세율만큼의 감축을 제안하였다. 10) < 수산물 관세 관련 Ministerial Text 초안(8.24) 및 수정안(9.13) 비교 > 초안 [분야별 접근] - Girard 의장안은 참조(reference) - 무세화 혹은 관세조화 추구 - 모든 회원국의 참여가 중요 [관세인하공식] - 품목별로 적용되는 비선형공식(a nonlinear formula applied on a line-byline basis) 수정안 - 좌동 - 좌동 - 대상품목(product coverage) 및 강제성 여부 추후 결정 - 좌동 칸쿤 각료회의과정에서 수산물을 무세화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협상 여지는 확보하였으나, 관세인하공식을 적용하는 경우 민감품목에 대한 신축 성은 반영되지 않았다. 수산물을 무세화 대상으로 지목한 Girard 비농산물 시장접근 협상그룹 의장 초안이 협상의 기초(basis)가 아닌 참조(reference) 로 격하되고, 무세화 및 관세조화 대상품목을 추후 결정키로 함에 따라, 수 산물을 무세화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전체회의, 분야별회 의 및 주요 국가와의 양자 협의시에 수산물 등 민감품목에 대한 신축성 (flexibility) 부여를 일관되게 주장하였으나, 호응하는 국가가 적어 반영되지 않았다. 비록 칸쿤 각료회의가 무산되었으나 향후 논의과정에서 Fish Friends Group은 수산물 무세화 그리고 관세조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할 것으로 예상 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 대만 등과 공조하여 이를 저지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금번 Ministerial Text수정안에 반영되지 못했지만 관세인하 공 식 적용시 신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0) 수산물 평균관세를 보면 우리나라 18%, 일본 7%, 칠레 7%, 미국 2%, 캐나다 1.8%, 뉴질 랜드 1%, 호주 0%으로 나타나고 있다.

217 남북한 수산협력 전개방향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경제환경 속에서도 90년대 이후 적극 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은 동북아경제의 중요한 부분으 로 자리 잡고 있다. 남북한 경제협력은 최근에는 북한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제적 비중도 상당히 커졌다. 따라서 안정적인 남북한 경제협력이 가능하려면 세계경제환경의 변화에 의해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이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 야 할 것이다. 특히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WTO/DDA 수산부문 협상 은 남북한 수산분야협력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경제협력사업 추진현황 197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한 7-4 남북공동선언 은 남북간에 지금까지의 적대적 관계를 종식시키고 상호 화해와 협력의 바탕위에서 선의의 경쟁을 지향할 것을 약속한 것이었지만, 양측이 그것을 성실히 이행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고, 대내외적 제반 여건도 성숙되지 못한 탓에 이 선언은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에 의한 소위 민족화 해와 협력에 관한 7-7선언 이후 비로소 남북 경제교류에 대한 제도적인 뒷 받침이 이루어지게 된다. 당초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 이 란 명칭으로 발표된 이 7-7선언의 내용은, 먼저 자주 평화 민주 복지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민족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적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간다는 것을 천명하고 6개항 11) 을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6개항의 기본 원칙의 천명과 더불어, 남한정부는 남북한간의 문호 개방과 경제교류를 가능케 할 제도적인 후속조치를 단행하였다. 같은 해 10 월 남북물자교류지침 을 제정하여 무엇보다도 남북한간의 경제적 거래를 통 11) 첫째,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 모든 남북동포간의 상호 교류의 적극 추진과 해외동포의 자유로운 남북왕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문호의 개방, 둘째, 남북 적십자회담 타결 이전이 라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 주소의 확인, 서신왕래, 상호 방문 등의 적극적인 주선, 셋째, 남북간의 교역을 민족내부교역으로 간주. 넷째, 남북 모든 동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달을 희망하며, 비군사적 물자에 대 한 우방 제국의 북한과의 교역 허용, 다섯째, 남북간의 소모적인 경쟁과 대결 외교의 지 양과, 북한의 국제사회에서의 발전적 기여를 가능케 하는 남한의 협력과 그리고 남북대표 가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나 민족의 공동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토록 함, 여섯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여건 조성과 관련하여 남한은 북한이 미국, 일본 등과 의 관계 개선에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남한도 구소련,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 나 라들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218 224 상의 국제무역으로 다루지 않고 우리 민족 내부거래로 간주한다는 정부 입 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이듬해에는 남한기업의 대북한 경제교류를 확대시 키기 위한 조치로 관련 법규의 제정과 최소한 3,000억원 규모의 남북경제협 력기금의 설치 등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12) 남한측의 이러한 적극적인 대북 교류-협력정책에 부응하여, 북한도 90년대 들어 외국자본과 기술 그리고 외국기업의 유치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취 하였다. 우선 1984년에 제정된 합영법 이 그간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91년 12월에 중국,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인 나진-선봉 지역에 자유무역 지대 설치를 계기로 외국자본 유치를 허용하는 일부 헌법 개정과 함께 92~ 93년간에 외국인 투자 관련 각종 법령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13) 이러한 제 도적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외자유치실적은 극히 부진한 편이었 다. 14) 1998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추진된 대북 햇볕정책, 그리고 현 노무현정 부의 평화번영정책 은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 된다. 대북 포용정책이란 이름 아래 경제적으로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일방 적인 대북 지원정책을 펼쳐지고 있다. 우선 민간 차원에서 98년 11월 현대그 룹에 의한 금강산 관광사업이 개시되고, 그밖에도 정부-민간 차원에서의 각 종 대북 협력사업이 활발하게 추진중인 가운데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 상회담이 개최되고 여러 가지 합의를 이루게 된다. 15) 이후 남북장관급회담이 12) 정부측의 이러한 대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제반 조치에 힘입어 민간기업 수준에서도 1989 년부터 대북한 교역 전담반을 설치하고 북한의 실정을 직접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기업 인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또한 북한물자 반입에 열을 올리는 등, 남북 사이에 경제교류 를 증진시키기 위한 분위기가 한결 고조되었다. 이 무렵, 남한 재벌급 대기업들은 앞다투 어 북한 방문 러쉬를 일으키고, 별 쓸모도 없는 북한물자를 경쟁적으로 반입하여 국민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공동개발계획 을 비롯하여 원산조선소 건설, 철도사업, 시베리아 개발사업에의 공동참여 등 적극적인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러한 여건의 성숙에 힘입어 1990년 8월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과 동 시행령, 그리고 남북협력기금법 과 동 시행령 등이 제정되고, 또한 92년 2월에는 남북한간에 화 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기본 합의서 가 발효됨과 동시에 또한 연이어 경제교 류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남북경협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 가 상당히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13) 예컨대, 92년중에 외국인의 100% 전액투자를 인정하는 1 외국인투자법, 2 외국인기업 법, 3 합작법 등이 제정되고, 93년중에는 다시 4 자유무역지대의 설치와 관련한 자유경 제무역지대법을 비롯하여, 5 외화관리법, 6 토지임대법, 7 외국투자은행법 등 무려 20 개에 달하는 관련 법규 및 규정의 제정, 공포를 가져왔다. - 동용승 외, 남북경협 - 이 렇게 풀자, 삼성경제연구소, 1995, p. 19 참조. 14) 이를테면, 위의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설치와 함께, 북한측은 유럽, 일본, 홍콩, 심지어 남한기업에 이르기까지 투자유치를 위한 각종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 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투자유치실적은 94년까지 단 한건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같은 책, p. 21 참조. 15)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5개항의 공동선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19 225 열리면서 실질적인 경제협력의 토대가 마련된다. 철도 도로 연결, 개성공단 개발, 금강산관광 활성화,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등 경제협력을 위한 구체적 인 협의가 진전되었다. 이와 함께 남북경제협력사업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경협실무접촉을 통해 투자보장, 이중과 세방지, 청산결재, 상사분쟁해결 등 4개의 경제협력합의서 16) 를 2000년 11월 에 채택하게 된다. 특히 2000년 12월 16일 열린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북한당국이 남북당국자간 어업협력 회담을 제의하였고 북측은 남측에 동해 어장의 일부를 제공할 의사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협 의가 계속되어 진행되어 왔으며, 2002년 10월 19일 개최된 제8차 남북장관급 회담 그리고 2002년 11월 9일 개최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 3차 회의 부터에서는 남측 어민들의 북측어장 일부 이용 문제와 관련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합의하여 남북간 수산협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상품교역 현황 1989년 이후 남북간에 정상적인 경제적 거래관계가 성립된 이후 오늘까지 남북간 경제교류실적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확대되 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교류 첫 해인 1989년의 북한물자 반입실적은 25 개 품목에 66건으로 18.7백만 달러에 이르러 북한상품 반입에 경쟁적이었다. 1990년에는 전년 대비 35% 감소한 12.3백만 달러로 규모면에서 약간 줄었으 나, 이 해에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정 등 관계개선의 분위기가 성숙되 1 자주적인 방법으로의 남북통일 실현, 2 양측의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 3 이산가족의 상봉, 장기수 문제의 해결, 4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사 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의 활성화, 5 당국간 대화를 조속히 개최토록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4항의 상호 경제혁력을 통한 균 형적인 민족경제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각 분야 교류 협력 강화조항에 의거하여, 그 중 에서도 특히 경제분야의 교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제반 후속조치가 이루어졌다. 무엇 보다도 같은 해 12월 제4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정치적, 이념적 마찰요인을 제거하고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요구되는 4개 선결과제, 곧 1 투자 보장, 2 소득에 대한 이중과 세 방지, 3 상사분쟁 해결절차의 규정, 4 청산결제에 관한 규정 등에 양측이 합의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4개 합의서의 조문 내용에 대해서는, 김연철 외, 남북경협 가이드, 삼성경제연구소, 2002, <부록> 4개 합의서 참조. 16) 경제협력관련 4개 합의서의 채택으로 남북간 경제교류와 협력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발효가 되지 못하고 있다. 4 개합의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투자보장 은 투자자산을 보호하고 송금 출입 체류 등 상 대지역에서 자유로운 투자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청산결재는 청산결재대상품목에 대해 서는 신용한도 설정 및 결재은행 지정 등을 규정하고 청산결재대상이 아닌 품목에 대해 서는 국제관례인 일반결재방식을 적용토록 하였다. 이중과세방지 는 사업소득, 이장, 배 당, 로열티 등 과세대상 소득별로 과세권의 소재와 범위를 규정하여 세금이 이중으로 부 과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조세정보의 교환, 조세관련분재의 해결방법을 명시하였다. 상 사분쟁해결 은 공동분쟁기구인 남북상사중재위원회의 구성과 기능 그리고 분쟁해결절차 등을 규정하였다.

220 226 면서 1991년에는 1억 달러 이상이 교역될 정도로 발전하였다. 이후 1993년 북한의 NPT탈퇴선언 등 핵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일시 경색되기도 하였지 만 1994년 남북경협활성화조치 등으로 1995년부터 남북교역규모가 2억달 러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1998년에는 남한의 외환위기로 인한 대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로 남북교역도 위축되어 교역규모가 전년대비 28% 감소한 2억 22백만달러에 그쳤지만 이후 남한측의 경기회복에 따라 교역규모는 다 시 확대되기 시작한다. 2000년에는 농수산물 반입증가, 전기전자제품 등의 위탁가공교역 확대, 대북비료지원, 경수고 본공사 착 수 등으로 남북교역이 4억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2002년에는 거래성교역의 꾸준한 증가세, 비거래 성교역인 대북식량차관, 철도 및 도로연결공사 관련자재와 장비 지원 등으로 교역규모가 6억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 남북교역 현황 > (단위 : 백만 달러) 반입 반출 합계 건수 품목 금액 건수 품목 금액 건수 품목 금액 , , , , , , , , , , , , , , , , , , , , , , , , , 合 計 25,708-2, ,804-1, ,792-3,570.9 자료: 통일부, 월간 남북교류동향, 보도참고자료 등. 남북교역 초기의 반입물자는 주로 금괴를 비롯한 선철, 아연괴 등 광산물 이 대종을 이루었다. 반면 북한으로의 반출은 1993년까지의 반입실적에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였다. 남한으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반입해 갈만한 구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광산물의 반입이 현저히 줄고 각 종 농수산물이 반입품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반출품의 경우에 는 화학제품이 전체의 1/3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섬유류가 20%정

221 227 도, 각종 기계류 및 운반용 기기가 12%, 철강 금속 전기 전자 등이 15% 로 공산품이 대부분이다. 2002년의 주요 반입품목은 농림수산물 36.8%, 섬유 류 31.6%, 철강금속제품 6.9% 의 순이다. 2002년의 주요 반출품으로는 농림 수산물 29.8%, 화학공업제품 24.4%, 섬유류 18.2%, 기계류 10.2%, 철강금속 제품 7.1% 의 순이다. 교역추이를 보면 금액 면에서는 크게 늘지 못했다 할지라도 건수나 대상 품목 수에서는 계속 늘고 있다. 2001년 중 반입건수는 4,720건으로 95년의 1,124건에 비해 약 4.2배 증가하였으며, 반입품목은 같은 기간 중 105개에서 200개로 늘어 1.9배나 증가하였다. 반출의 경우 1995년 대북 지원사업이 본 격화된 이후부터 교역건수와 반출품목이 대폭 증가하였다. 즉 1994~2001년 기간 건수는 495건에서 3,034건으로, 품목의 경우에는 92개에서 무려 490개 로 늘었다. 이처럼 교역의 건수나 품목면의 급속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교역 규모(금액)기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남북간의 건별 교역단위가 갈수 록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 정책성 물자공급실적 및 대북 교역수지 > (단위 : 백만 달러) 상업성(A) 정책성(B) 綜 合 收 支 (A+B) 반입 반출 수지 輕 水 爐 KEDO 重 油 금강산 대북 지원 대북 협력 搬 出 計 搬 入 計 반입 반출 收 支 합계 1, , , , 자료: 위의 표와 같음. 90년대 후반이후 민간베이스의 남북한 상품교역이 정체된 것은 남한측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측으로부터 반입할 수 있는 물자 가 한계를 나타내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으로부터 반입되는 물자는 대부분 광

222 228 산물이나 농 수산물이었는데, 이를 통해 남한의 구매력을 계속 창출하기에 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반입의 한계는 반출규모를 축소시키게 된다. 민간 베이스의 반출은 대금결제문제를 수반하므로 반입규모가 줄어들게 되면 반 출규모 역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반출규모가 늘어난 것 은 민간의 상업거래에 의한 실적이 아니라 정부에 의한 정책적 물자의 공급 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남북한 교역규모가 남과 북의 총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정책 성 교역까지를 포함한 총액 기준으로 할 때, 남한의 경우 대체로 0.1% 수준 에 머물고 있으나, 북한의 경우에는 90년대 전반에는 총대외무역의 9% 이하 였으나, 90년대 후반부터 비중이 크게 높아지기 시작하여 1998년에는 15.4%, 1999년에는 22.5%, 2000년에는 21.6%에 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대외무역 자체가 90년대 이후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북 한경제에 있어서는 이 정도 교역규모로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 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17) 위탁가공사업 현황 위탁가공교역은 남한의 원부자재를 북한으로 반출한 후 이를 가공하여 완 제품이나 반제품으로 다시 반입하거나 제3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의 교역이다. 1992년부터 시작된 위탁가공사업은 상품교역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 면서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92년 코오롱상사 등 4개 업체가 위탁 가공을 통한 대북 교류를 시작한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참여 업체수 역시 매년 꾸준히 늘어 2000년에는 157개사까지 늘고 2002년 현재 108개에 이르고 있다. 위탁 생산 품목수 역시 92년의 9개 품목에서 2000년에 는 238개 품목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위탁가공을 통한 교역규모 역시 92년의 84만달러에서 95년에는 4,589만 달러 수준으로, 다시 2000년에는 1억 2,920만 달러, 2002년에도 1억 7,118만달러 수준으로 급증세를 보여주고 있 다. 위탁가공사업의 대상 품목도 갈수록 다양하게 고급화되고 있다. 처음에 는 섬유류, 가방, 신발 등 소비재류나 농산물과 같은 단순 가공품목이 대부 분이었으나, 점차 컬러 TV나 스피커, 카세트 테이프 등 전기-전자제품, 자 17) 1990년대 이후 남북교역이 남과 북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남한측 북한측 연도 남한측 북한측 % 0.32% 주: 남, 북한의 무역액을 가지고 필자 계산

223 229 동차 및 자전거 부품, 컴퓨터 모니터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200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섬유류가 전체 반입액의 75.6%를 차지하고 전기- 전자제품이 11.4%, 농수산물이 4.5% 등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거래과정을 보면, 위탁가공을 원하는 남측의 업자가 북측의 무역회사 와 당해 계약을 체결하고 북측의 무역회사는 다시 북한내 생산공장에 가공 생산을 위탁, 주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제품 등과 같이 북측이 그 가공생산설비를 갖추지 못한 품목을 위탁할 경우, 남측이 먼 저 당해 가공설비 자체를 북측에 무역 형태로 팔고 그 대금을 위탁가공비로 상계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위탁가공사업은 교역의 형태를 띠는 한편 다른 편으로는 투자 형태를 띠는 방식이다. 따라서 현재 남북한의 제반 경제사정에 비추어 위탁가공사업이 남북경제교류를 확대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 대북 민간투자사업 승인 현황 > 투자기업 사업 내용 북측 파트너 투자액(백만$) 승인날짜 (주) 대우 南 浦 공단, 가방, 셔츠, 자켓 등 3개사업 삼천리총회사, 합영 (주) 녹십자 의약품 제조 광명성총회사, 합작 태창 金 剛 山 샘물 개발 능라888무역, 합영 韓 國 電 力 (주) 輕 水 爐 건설지원사업 原 子 力 총국 11,430(2차) 97.8 미흥식품 水 産 物 채취 가공 조선철산무역, 합영 韓 國 通 信 (주) 輕 水 爐 건설 通 信 지원사업 北, 체신성 태영수산/LG상사 가리비 양식, 생산 광명성총회가, 합영 외환은행 輕 水 爐 사업 부지내 은행 설립 경수로사업국 (주)아자컴뮤니케 인쇄물, TV광고 제작 금강산국제관광 편당 두레마을영농조합 나진, 선봉지대 합영농장 운영,계약재배 라선경제협조사,합작 국제옥수수재단 새품종생산력검정시험,수퍼옥수수개발 농업과학원,조사연구 216억원 98.6 (주)현대상선/현대 아산/관광공사 금강산관광사업(98.9) 관광 및 개발 사업 조선아시아태평양 위원회 9,583 18,739( , 2차증액) (4차변경) (주)코리아랜드 부동산개발(임대, 분양), 컨설팅업 묘향경제연합체 백산실업 버섯재배, 생산, 도입(표고, 느타리, 진주 등) 선봉군온실농장 (주)현대시스콤/KT 금강산관광용 통신협력사업 금강산국제관광사 (주)평화자동차 자동차 수리 및 조립공장 조선연봉총회사,합영 5, 韓 國 電 力 (주) 輕 水 爐 건설사업 본공사 삼성전자 南 北 S/W 공동개발 조선컴퓨터센터 (주)하나빗즈닷컴 南 北 프로그램 공동개발 평양정보센터, 합영 (주)엔트랙 정보기술, 공동제품개발을 위한 고려 정보기술센터 건립 광명성총사, 합영 (주)G-한신 북한내 유리제품생산시설 건립 광명성총공사 국양해운 해상운송사업, 하역시설개선사업 개성무역총사 (주)훈넷 인터넷 게임S/W 공동개발 및 서비스 범태,조선장생무역사 자료: 통일부, 보도지침자료 일자, pp. 17~19 참조.

224 230 최근 들어 위탁가공실적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유를 보면, 우선 그것은 북 측에게 매력적인 대남 협력사업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을 들 수 있다. 말하자 면, 북측으로서는 추가적인 자본투입 없이 임가공 수입을 통한 외화 획득을 도모할 수 있을뿐더러, 공장시설, 생산과정 등을 직접 관리할 수 있기 때문 에 체제위해적인 외부정보의 유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필요한 기술 습득이 용이하며 국제시장에서의 정보수집 등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그들에 게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남한 기업측에서도 위탁가공의 경우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없지 않다. 예컨 대 직접적인 상품교역에 비하여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손쉽게 반입할 수 있 는 손쉬운 방도일 뿐만 아니라, 직접투자 방식에 비하여 투자에 따른 위험이 매우 적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북한 내부의 낮은 임금을 활용함으 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장래 직접투자로 전환하기 위한 전단계 조치로서 필요한 정보 수집 등 여건 조성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투자협력사업 현황 투자협력사업은 투자주체면에서 정부 당국에 의한 투자사업과 민간기업에 의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컨대, 지금 핵심적 현안으로 되고 있는 경의 선 및 동해선 복구사업이라든가, 문산 - 개성간의 도로연결사업, 임진강 공 동 수해방지사업, 전력협력사업 등은 전자의 정부에 의한 대북 투자협력사업 이라 할 수 있고, 남한기업에 의한 대북 직접투자 내지 합작 합영사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후자에 속한다. 후자의 민간에 의한 직접투자에 관해서만 살펴보면 표와 같다 남북한 수산분야 경제협력 일반적으로 경제협력은 상호간에 이득이 있어야 추진 가능하다. 따라서 남 북한간 수산분야의 협력 역시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과 자원(어 장)의 결합이 가능하다면 상호간에 비교우위가 존재함으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반면 수산업이 처한 현실에서 제기되는 협력의 필요성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이다. 첫째, 한 중 일 어업협정으로 인한 어 장축소의 대안 모색, 둘째, 남 북한 국민(한민족) 모두 수산물을 매우 선호 하고 있다는 점, 셋째, WTO뉴라운드 협상에서 수산물수입자유화(무세화) 및 수산보조금 축소논의에 대한 해결방안 등을 들 수 있다 남북한의 수산협력의 필요성

225 231 북한이 1986년부터 제3차 7개년 계획을 시작한 이후, 기존에 총교역량의 70%에 달하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이 현저하게 감소되기 시작하 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경제개방이 필요성이다. 남한의 경제 적 급상승과 계속되는 대북 개방정책 실시는 그러한 압력을 일층 가중시키 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분야에 있어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경제개방조치 대상의 하나가 수산업이다. 수산업은 생 산의 수행장소가 바다 혹은 특정 해안지역에 한정되고, 수산물 생산 및 수출 에 필요한 국외로부터의 원재료 수입이 거의 없으며, 수산협력을 실시하는 경우에 어장 자원관리 등의 명분을 내세워 생산활동을 통제하는 일이 용이 하다는 점을 유리한 점으로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국제수지 적 자에 따른 외화부족은 산업운영에 필수적인 기본 원자재의 반입을 곤란하게 만드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수산업을 중 요한 외화획득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남한측에서는 최근 북한과의 교류를 계기로, 식량난을 비롯한 북한 경제난 에 대해 동포애가 고조되는 한편, 식량자립 및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 이 증대되는 가운데, 중국 등지로부터의 수산물 반입에 대한 문제가 노출되 면서 외국산 반입수산물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북한산 수산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에 따른 어 장축소 등으로 어업인을 위시한 일반 국민들의 수산업에 대한 비관적 인식 이 팽배되고 있는 가운데 수산업에 대한 능동적이고 새로운 비젼 제시의 일 환으로서 남북한 수산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18) 한편, 남한내 수산업은 계속적인 어업비용 상승과 수산물 가격정체로 경영 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한 일, 한 중 어업협정에 따른 어장축소로 경영의 안정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데, 어선감척에 편중되는 어업구조조정 만으로는 산업적 대책으로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WTO체제하에서는 경 영의 수익성 향상에 직결되는 정책지원 마저도 어렵게 됨으로써 어업투자 대상을 개발하는 일이 절실하게 되었는바, 대안적 방안으로서 남북한 수산협 력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어업인의 요구도 매우 크다 해양경계의 변화에 따른 남북한 수산협력의 필요성 남북한이 중국, 일본 등과 어장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협정을 체결, 개정하 는 과정에서 많은 수산물생산능력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남한의 경 18)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과정에서 동북아지역 어장의 공동관리 필요성이 증대되고, 동북아지 역 국제 어업관리체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어장에 대한 국제적 공동관리를 위해서는 다자간 협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어장이용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남한 측으로서는 북한과의 공조체제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226 232 우 일본, 중국과의 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폭의 수산물생산능 력이 축소되어 수산물조업능력의 축소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경우에 는 과거 중국, 일본, 러시아와 체결, 확보하고 있는 어획능력을 유류와 생산 자재부족 등으로 인해 모두 소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매년 발생되고 있 다. 따라서 남한의 경우 조업능력확대를 위해서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을 적 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존재한다. (1) 한 중 일 어업협정에 따른 남한의 어장 축소 가. EEZ체제하의 어장이용 변화 연근해어업의 주 조업대상 어장은 1960년대에는 울릉도, 제주도, 소흑산도 를 중심으로 한 내측해역이었으나 어선세력의 증대와 성능의 향상으로 자원 이 감소됨에 따라 어장이 점차 외연으로 확대되어 1980년대 이후 한 중 일 어업협정 19) 이 체결되기 이전까지는 동쪽으로 대화퇴 근해, 남쪽으로는 동 중국해까지 확장된 어장을 지속적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한 중 일 어업협정으로 어장이 크게 축소되었다. 즉, 한 중 일 협정으로 인하여 국내 연근해어장이 60%(기존 946천km2에서 568천km2가 축소) 되어 378천km2만 이용이 가능하게 되고, 기존 946천km2에서 211천km2(22%)가 한 중 일간에 공동조업 및 공동관리 해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좁아진 연근해 어장에서의 경합적인 조업으로 인한 분쟁, 어업종류간의 갈등 이 가속화되는 등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나. 신한 일어업협정에 따른 어장 축소 1965년 체결된 한 일 어업협정(1965년)은 33년 동안 양국 어업관계의 기 본적인 틀로서 유지되어 오면서 양국간의 어업협력 및 어업분쟁 해결에 크 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어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한 일 어업협정상 공동규제수역내 어획량이 일본측을 상회하게 되고, 1980년대 이 후에는 일본측 연안까지 진출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양국간 어업분쟁이 지속적으로 야기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 한 일 어업협정 20) 이 1999년 19)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로 연안국의 관할권이 12해리에서 200해리까지 확대되었으나, 한 중 일간에는 400해리가 되지 못하고 영유권 분쟁 등으로 영구적인 배타적 경계 획정이 곤란하여, 일정수역을 중간수역, 과도수역 및 잠정조치수역으로 설정하는 잠정 어업협정 을 체결한 것임. 20) 1999년에 발효된 신 한 일어업협정은 첫째, 1994년11월 유엔해양법협약의 발효에 따라 양국의 EEZ을 선포하였고, 둘째, 단속 및 재판관할권은 기국주의, 한국측 수역에서만 공

227 233 1월 22일 발효되고, 1999년2월5일에 상대국 EEZ수역내 어획할당량 및 조건 에 합의하고, 1999년3월18일에는 추가어업실무협상이 타결되어, 현재까지 협 정의 효력이 지속되고 있다. 신 한 일 어업협정은 기존의 어장축소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일본의 오끼 섬 주변해역에 약 10만km 2, 제주도 인근해역에 약 2만8천km 2 등 한반도 면 적의 약 1.3배에 해당하는 일부 수역에 대해 한 일 양국이 공동으로 어업관 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협정의 내용 중에서 기존 조업실적 부문은 명 태 1년간 15천톤, 대게 2년간 기존의 50%, 기타어류의 경우에는 일본과 3년 후 등량으로 하도록 되어 있고, 어업협정 효력은 발효 후 3년간은 지속되도 록 되어 있으며, 일방파기 선언 후 6개월이 지나야 소멸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협약 발효 3년 후인 2002년부터는 일본과 조업량을 등량으로 유지하 도록 되어 있어 일본측에 비해 할당량이 많은 우리측 어업인의 조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21) 다. 한 중어업협정과 어장 축소 상호적대적 관계에 있던 시기에는 한국측에서 양국 어선의 접촉을 막기 위해 중 일 어업협정선의 동쪽 30마일에 조업자제선을 설정하여 출어를 금 지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과 더불어 중국 어선들이 우리 나라 연안으로 대거 출어함에 따라 양국간의 어업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2001년6월30일 한 중 어업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22). 한 중 어업협정은 최초 5년간 유효, 이후 1년 전에 서면으로 상대국에 통보할 경우, 1년 후 협정종 료(협정발효 4년째부터 협정의 종료의사를 상대국에 통보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한 중 어업협정으로 우리측은 중국EEZ에서 연간 1만2천톤의 어 획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 된다 23). 그러나 협정에 따라 양자강 보호수역 어 장 및 하절기 휴어제 등 중국EEZ내 조업규제가 예상되는 통발, 저인망, 안 강망 등의 조업이 협정발효 2년차( ~12.31)부터 일부업종 조업축소가 동규제수역 설정 등 기존의 어업협정이 유엔해양법협약의 규정에 맞지 않고, 셋째, EEZ 경계 획정시 중간선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먼저 어업협정을 개정하고, 경계획정 협상은 계속하기로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1) 한 일양국 2001년 기준 EEZ할당량 : 우리측 109,773톤(1,464척), 일본측 93,773톤(1,459 척) 한국측의 할당량이 16,000톤이 더 많음 22) 양국간의 국교 수립 이후 1998년11월 한 중 어업협정이 가서명되었으나, 중국측의 양자 강 하구수역 조업금지가 쟁점화되어 후속 입어교섭 지연이 되었고, 마침내 2000년8월3일 한 중 어업협정 정식서명, 2001년6월30일 한 중 어업협정 발효되었다. 23) 그렇지만 중국측은 우리 EEZ에서 최소 20만톤 이상 어획량 감소가 예상됨으로, 연간 최소 3 천억원 이상의 우리측 어업생산성 향상 및 서해안의 중국어선 불법 조업행위 방지, 무질서하 던 서해안의 어업질서 구축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228 234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한, 서해안의 경우도 한 중간에 잠정조치수역과 과도 수역이 설정되어, 과도수역은 협정발효 4년 후에 양국에 귀속되나, 잠정조치 수역은 8만3천km 2 으로 양국이 공동조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2) 러 일 중 북간 해양경계와 어업관계 가. 러시아와 북한간의 해양경계 및 어업관계 북한은 동해에 있어서는 구소련과 1985년에 영해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을 체결하여 두만강 하구의 경계획정을 한 바 있으며, 또한 1986년에는 구소련 과 배타적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관한 협정 을 체결하였고, 1990년에는 1985 년에 체결된 영해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을 시행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함으 로써 경계를 공식화하였다. 특히 구소련과는 1974년에 체결된 어업협정을 통하여 1990년도에 소련수 역에서 약 20만톤으로 추정되는 무상어획할당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본 어선이 위장으로 북한기를 달고 조업하다 소련당국에 나포된 사건을 계기로 1991년 소련과의 어업협상에서부터 무상 어획할당량이 중지되었다 24). 1992년 에 북한은 유상 3만톤 무상 3만톤 합계 6만톤의 할당량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류와 생산자재 부족 등으로 원양어선의 조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할당량의 상당부분을 소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24) 대신 여타 외국어선들과 동일하게 일정액의 입어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연간 3만톤의 명태어획할당량을 인정받고 있으며, 북한에서 어획되는 청어와 소련수역에서 어획되는 명태를 상호교환하는 조건하에 3만톤의 특별할당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9 235 < 남북한 수산물 생산량 추이 > 년 도 남 한 북 한 비 율 ,135 2,410 3,103 3,275 3,348 3,244 3,243 2,835 2,910 2,514 2, ,304 1,700 1,781 1,455 1, 나. 일본과 북한간의 해양경계 및 어업관계 북한이 1977년 동해와 황해에 배타적 경제수역과 50해리 군사경계수역을 선포하고 이를 시행함에 따라 일본은 기존에 조업하던 기존어장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과 협상을 하게 된다 25). 협상의 결과 북한과 일본은 1977년 9월 5 일 북한의 조선동해수산협동연맹과 일본의 일조어업협의회간에 민간차원의 일 조 어업협력에 관한 잠정합의서 를 체결하고, 1977년 10월 발효하게 된 다. 제1차 합의서에서 일본 어선의 활동범위를 동해 북한 군사경계선 외측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하며, 어선 규모는 200톤 이하로 정하고 유효기간을 매 년 연장하고 있다. 그러나 1994년 1월 이후에는 잠정합의서의 유효기간을 연 장하는 새로운 합의가 없었으므로, 현재까지 양국간 어업협력관계가 중단된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 중국과 북한간의 해양경계 및 어업관계 25) 구소련이 1976년 12월 10일 배타적 어업수역법을 제정하고 1977년 3월 1일 배타적 어업 수역(EFZ)를 선포한 바 있다. 구소련은 이를 1984년 2월 28일 최고회의 간부회의 포고령 에 의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변경하였다. 일본은 1977년 7월 1일 어업수역에 관한 잠정조치법을 제정 공포함에 따라 배타적어업수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이 법률의 적용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은 이 법률을 1996년 7 월 20일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관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EFZ에 관한 잠정조치 법을 폐지하고 EEZ체제로 전환하였다. 이에 북한이 대응함이 당연한 것이다.

230 236 중국과 북한간의 어업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황해에 있어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함에 있어 중간선으로 추 정되는 바다 반분선으로 경계를 정한다 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경계선의 내용을 밝힌 바는 없으며, 수역전체를 군사수역으로 선포하고 있 다 남북한 수산협력 현황 1970년대 초까지 남한보다 많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던 북한의 수산물생 산량은 최근에는 1997년 이후 남한 생산량의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고 있다. 남한은 원양어업과 양식어업부문이 1980년대까지 크게 발전함에 따 라 수산물생산량이 300만톤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 되었음에 반해 북한의 경우에는 최근까지도 연근해어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으며 어획량의 상당부 분을 차지하고 있던 명태와 정어리의 자원이 크게 감소함에 따라 수산물생 산량은 답보에 머물고 있다. 1998년 현재 북한의 수산물 생산량은 1960년대 수준을 밑도는 63만톤에 머물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최근에 는 양식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26). 남한의 수산물 수출입추이를 보면 수출은 1990년대 들어 정체되고 있는 반면 수입은 급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산 수산물 반입실적을 보면 반입이 시작된 1989년에는 17만불 수준으로 극히 적었지만 이후 꾸준히 증 가하였으며 특히 1996년 이후에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 북한산 수산물 반입 추이 > (단위 : 천$) 년도 1989 ~ 반입액 566 3,052 5, ,723 2,810 9,758 14, ,327 41,566 45,316 70,530 자료: 통일부 26) 1997년 6월 국방위원장이 황해남도 용연군을 시찰하면서 양어사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 킬 것을 지시한 이래 과학원 수산과학분원 산하 양어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양식어종을 개발 보급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양어장 보수 및 건설에 치중하였고, 동시에 수산자 원 조성과 보호 및 단속에 관한 규정 ( ), 물자원법 ( ), 바다오염방지 법 ( )등 관련법규를 연이어 제정하였다. 1998년에도 양강도내 공장 기업소 들은 164개소에 총 40정보 규모의 양어장을 건설하였고, 개성시와 배천군도 6정보의 양어장을 건설 보수하였다. 1999년에 들어서 김정일은 조선인민경비대 제1216부대 양어장(5월), 나 효진이 지배인으로 일하는 양어사업소 양어장(8월), 차주현이 지배인으로 일하는 양어사 업소 양어장(8월)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양어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것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통일부, 통일백서 - 경제부문, 2000.

231 년에는 2,828만불이었으며 2000년도에는 24,633톤에 4,200만불의 실적 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체반입액 1억5천2백만불의 27%를 점유하는 실정이 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남한이 일본에 이어 제2의 수출대상국이 되었으 며 향후 수출국으로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 류 패 류 기타연체 갑 각 류 해 조 류 기 타 < 년도별 북한산 반입어종의 수 > 합계 자료: 수산물검사소 반입은 국내 어업인에게 피해가 우려되는 8개 품목 27) 을 제외하고는 자유 롭게 허용되고 있다. 년간 반입 한도물량을 정하여 운영하는 품목은 년간 한 도물량의 범위 내에서 반입량을 통일부에서 임의승인하고 있다. 28) 매년 북한산 반입량은 상황에 따라 변동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남한 의 내수경기, 환율변동, 주요 반입어종의 남북한 어황 변동, 중국의 수출가격 변동 등의 요인과 함께, 남북한 정치관계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 로 보인다. 북한산 수산물 반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6년 이후 년도별 반 입어종(해조류 포함)의 수는 1996년 15개 어종, 1997년 25개 어종, 1998년 34 개 어종, 그리고 1999년 45개 어종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냉동품 냉장품 가공품 활어 < 제품형태별 반입수산물 > 합계 자료: 수산물검사소 ) 반입제한품목은 미꾸라지(산것), 냉동홍어, 꽃게(산것, 신선냉장), 냉동꽃게, 새우젓, 냉동 가리비, 냉동오징어, 냉동낙지 8개품목이다. 28)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제14조 및 남북한교역대상물품및반출 반입승인절차에관한 통일 부 고시 제3조

232 238 반입어종의 다양화와 함께 동일 어종내에서도 제품형태가 다양화되고 있 는 데, 제품형태를 냉동품, 냉장품, 가공품, 활어로 구분할 때, 반입에 있어 냉동품 및 활어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최근에는 냉장품 및 가공품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반입 1건당 평균물량 및 금액을 보면, 1996년의 경우 각각 17.5톤 및 45.6 천불이었던 것이 1999년에는 각각 13.6톤 및 192.2천$로 감소 추세에 있다. 단위 반입규모의 소형화와 수량의 소량화는 전술한 7대 주요어종에 비해 단 위반입량이 적은 기타어종의 반입이 늘어나고 있는데 원인이 있으며, 금액의 소형화는 7대 주요어종의 평균가격 저하에 기인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는 중 견 반입업자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는 7대 주요어종의 반입은 장기간에 걸 친 거래관계에 의해 거래 리스크 경감과 현지 수집활동의 효율화를 통해 반 입가격을 부단히 하락시켜 왔다고 할 수 있는 데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한편 북한산 수산물 반입사업의 신규참가자들은 7대 주요어종의 취급이 상대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새로운 어종 품목을 취급하게 되고, 그 결과 사업 자체가 투기성을 면치 못하게 되어 사업자들의 유입 이탈이 빈번히 나타나게 되었다. 2000년 4월 현재 통일부에 등록되어 있는 수산물 반입사업 체 수는 54개업체였으나, 실제조사 결과 조사 불가능한 사업체가 약 70%인 37개 업체로 나타났다. 29) 남 북 수산분야 협력 실태를 보면 2000년 12월 현재, 남북교류협력에 관 한 법률(제16조 및 제17조)에 따라 사업자승인은 4개업체(P수산, M식품, T 수산, (주)H사)이며, 사업승인 2개업체(M식품, T수산) 등 총 6개 업체가 있 으며, 개별회사, 수협중앙회 등도 북한측과 접촉하여 수산분야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업추진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대북 수산협력분야 추진현황 > 구분 업체명 북측상대회사 설립회사명 추진현황 (주)해주 광명성총회사 풍어수산물합작회사 사업승인불허 어선어업 전어총 민족경제협력연합회 - 사업신청서반려 (공동어로) (주)A, C사 민족경제협력연합회 - 보 류 양식업 태영수산, 라진바다가양식사업소 라진수산합영회사 답보상태 LG상사 수산가공업 미흥식품 조선철산수산총회사 조중합영철산수산회사 추진실적 없음 어민단체 수협중앙회 - - 추진중단 29) 한편, 2000년 8월 현재 한국 무역진흥공사 전산자료에 입력된 반입사업체수는 195개 업체 로 파악되었는데, 양기관 자료상의 업체수 격차는 통일부의 북한주민접촉 승인 여부에 크 게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며, 따라서 많은 업체들이 제도적 요건조차 갖추지 않고 단발적 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233 WTO/DDA 수산부문협상의 남북한 수산 협력사업에 대한 영향 최근 한국 수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수산물 수입자 유화 및 수산보조금 축소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이다. WTO/DDA에서 논의되 고 있는 수산분야의 주요 쟁점은 수산보조금 폐지와 시장접근 개선을 위한 관세인하 등과 같은 수산물시장자유화문제이다. WTO뿐만 아니라 OECD, APEC 등에서도 수산물분야에 대한 여러 가지 자유화조치에 대한 논의가 이 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수산물 관세인하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큰 변화가 나 타날 것으로 판단되며, 수산보조금의 축소 논의도 수산업의 어려움을 한층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외적인 여러 가지 변화 움직임 속에서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남북한간의 수산분야의 협력은 수산물의 수입대 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 남북한간 수산물분야의 교류는 현재 민족내부거래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경우 외국과의 무역에 의한 수산물수출입 에 비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한간 수산분야의 협력 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WTO/DDA협상 논의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관세 인하를 통한 시장자유화 그리고 지급보조금의 제거 내지 인하와 같은 문제 가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응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3.1 남북한 수산협력에 영향을 미칠 WTO/DDA 수산물 협상 현재 남북기본합의서 는 남북한사이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 로 규정하 고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엄연 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30)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국가와 국 가사이의 국제법상 관계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특수한 분단국의 법적관 30) 남한의 입장에서 헌법상 영토조항(제3조)에 의한 한반도의 유일합법성론의 규범성에 기초 하고 있으며, 이 규정은 국가보안법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 로 보게 하는 법적 근거이기 도 하다. 반면 북한에서도 비록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이나 형법에서 직접적으로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노동당규약 등에서 남한을 국 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북은 서로 상대방의 조직구성원을 외국인으로 보지 않고 내국민으로 간주하고 있는 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34 240 계를 형성하고 있다. 31) 이에 따라 남북경협을 위한 세부합의서의 내용에서도 남북경협을 민족내부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32) 이러한 남북의 특수관계를 반 영하여 국내적으로는 남북교역을 민족내부교역으로 보아 관세부과를 배제하 고 있다. 33) 따라서 한국에서는 남북한 무역거래가 WTO체제상의 회원국의 일반적 의 무로서의 최혜국대우 등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 상호관계를 국가간의 관계로 보지 아니한다는 점에서 남북한이 민족내부거 래 라고 규정한 남북한 무역거래에 대해서는 WTO 협정의 제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북한이 국제연합에 별개의 국가로서 가 입하였다는 점에서 어떠한 면에서는 상호 상대방의 국가성을 인정하였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으며, 다른 WTO회원국들 역시 남북한 무역거래를 국가 간의 무역거래로 보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남북한 무역거래가 성사되자 1991년 4월 남한 정부는 남한 쌀과 북한 무연 탄 및 시멘트와의 직접교환을 내용으로 하는 구상무역을 승인하였는데, 미국 의 도정협회가 이의를 제기하였고, 미국 정부도 우리측에 남북한 무역거래에 대한 GATT협정 적용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34).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에도 남북한간 경제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 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이러한 경제교류의 확대를 통하여 장기적으로 남 북한간 평화적인 통일을 도모한다고 한다면 동서독이 통독전 양독간 교류를 내독거래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경우처럼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민족내부 거래 로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조치를 취할 것 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35) 그렇지만 남북한간 물자반출 31) 이에 따라 남북간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등에 관한 협의과정에서 국가간의 합의를 전제 로 하는 통상의 협정 이라는 명칭 대신 합의서 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32) 남북기본합의서 는 제 15조에서 민족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33) 이외에도 남북이 서로 국가승인의 명시적 배제, 통상적인 대사관 개설보다는 남북연락사 무소의 설치 추진 등의 조치를 특수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내용으로 들 수 있다. 34) 경향신문 1991년 4월 12일; 서울신문 1991년 4월 12일; 내외경제신문 1991년 4월 12일 등 참조. 35) 동서독은 1951년 베를린협정 에 의해 양독간 경제교역에 대한 제반규정을 두게 된다. 즉 경제적으로는 양독의 화폐가 각각 통용되는 두 개의 통화지역의 생성을 강조함으로 독일 을 두가지 화폐가 사용되고 있는 하나의 경제단위로 간주하였으며 이로써 동서독 교역을 국제교역이 아닌 내독교역으로 취급하게 된다. 이에 기초하여 동서독기본조약(1972)에도 내독교역규정을 두게 된다(제7조, 부속의정서). 한편 국제사회에서 내독교역의 인정을 위 하여 1951년 4월 구 서독정부가 GATTDp 가입하면서 양자간에 체결한 트로키의정서 (Torquay Protocol)의 부속문서에서 GATT에 의한 동서독간 교역의 내독적 성격을 인정 받음으로 독일을 원산지로 하는 재화를 대상으로 하는 내독교역은 국제적 규제에서 배제 (GATT협정 제1조 최혜국대우원칙 적용면제)되었다. 또한 1957년 3월 유럽경제공동체 (EEC)창설을 위한 로마조약 체결시에도 구서독정부는 동조약부속의정서( 내독 교역 및 관련문서에 대한 의정서)에서 회원국으로부터 구동독에 대한 관세부과면제를 보

235 241 입의 경우에는 민족내부거래조치에 의한 관세부과면제조치가 남북한간 경제 교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지만, 남북한간에 투자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특히 남북한간 경제교류가 활성화 될 경우 북측지역의 여러 가지 경제개발을 위한 남측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민족내부거래를 적용할 경우 보조금성격의 특정성 등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다분히 존재한다 하겠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 류 활성화과정에서 상당기간은 북측의 경우 수산물과 같은 일차상품을 중심 으로 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문제는 중요 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간의 경제교류나 협력을 민족내부거래로 간주 하려 할 경우 대북관련 정부보조금지원이나 남북교류협력기금지원 등의 방 식이 국제사회로부터 특정성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은 없는지, 그리고 수산분 야와 관련해서 남북한간 수산물교류과정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밖 에 없는 남한측의 수산보조금체계의 변화필요성은 없는지 또는 여타 외국과 의 수산물교역 자유화조치가 남북한수산물교류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 지 등에 대한 분석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대한 지원조치 WTO체제에서 남북한간 무역거래에 대한 민족내부거래 지위는 최혜국 (MFN: Most-Favoured-Nation)대우를 규정한 GATT 제I조가 남북한 무역 거래에 적용되는 여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GATT 제I조는 WTO회원국 이 WTO회원국인 여부에 관계없이 다른 국가에 부여한 혜택을 다른 회원국 에게 무조건적으로 즉시 부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36) 따라서, 남북한 무역 거래의 경우 WTO회원국인 남한은 WTO회원국이 아닌 북한에게 부여한 무 관세 대우 등 특혜를 다른 WTO회원국에게 부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런데 남북한은 서로의 물자교류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약속하였 으며, 실제로 남한은 관련 국내법규정에 따라 북한으로부터 반입된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GATT 제I조에서 규정된 최혜국대우는 장받게 된다. 제성호 남북한 특수관계론, 한울, pp69-70 참조. 36) GATT I:1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With respect to customs duties and charges of any kind imposed on or in connection with importation or exportation or imposed on the international transfer of payments for imports or exports, and with respect to the method of levying such duties and charges, and with respect to all rules and formalities in connection with importation and exportation, and with respect to all matters referred to in paragraphs 2 and 4 of Article III, any advantage, favour, privilege or immunity granted by any contracting party to any product originating in or destined for any other country shall be accorded immediately and unconditionally to the like product originating in or destined for the territories of all other contracting parties.

236 242 GATT는 물론이고 WTO체제에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러한 GATT 협정상의 최혜국대우의 지위는 우선, GATT의 첫 조항에 규정되어 있는 점 에서 확인할 수 있다. WTO회원국이 가장 우선하여 준수하는 의무가 최혜국 대우 의무인 것이다. 둘째, GATT 제I조의 수정은 WTO회원국들의 만장일 치를 얻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최혜국대우 의무의 변경에 대하여 전 체 WTO회원국들의 의사가 일치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반입된 상품에 대하여 남한이 부여한 특혜는 다른 WTO회원국 의 동종상품에게도 조건 없이 즉시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 GATT 제I조의 내용이다. 남북한 무역거래에 GATT 제I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의 주 된 논거는 북한이 GATT 제I조상의 외국 (any other country)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GATT 제I조가 국가간의 국제무역에 적용되는데, 남한과 의 관계에서 북한은 외국이 아니므로 남북한 무역거래에 GATT 제I조가 적 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에서 외국이 되지 않는 이유로 는 남한 헌법 3조의 영토조항과 남북합의서에서 남북한 관계가 정상적인 국 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계속 발전시키면 남북한 무역거래는 하나의 WTO회원국, 즉 남한의 내부거래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GATT협정상의 권리와 의무는 실제에 있어서 휴전선 이남에만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휴전선 이북에 대한 남한 정부의 실제적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합의서에서 남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 고 존중한다는 것은 남북쌍방이 상대방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남북정부의 실질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는 의미이다. 37) 또한1민족 2체제의 남북한은 1991년 UN에 동시에 가입함으로써 국제법적 으로는 각기 주권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서의 존재를 확인 받았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38) 한반도의 남북한 분단의 현실과 남북한 통일의 이상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하여 남북한이 그들의 관계를 특수한 관계라고 규명한 것이다. 더욱이 GATT 제I조의 적용을 위하여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에서 국가로 서 외국이냐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WTO에서 국 가가 아닌 관세영역 39) (customs territory)과 국가 40) (state)를 분별하고 있 37) 통일원, 남북기본합의서 해설, (1992), p ) 이영준, 남북한의 UN동시가입과 한반도의 법적 관계, 국제법학회논총 제36권 제2호 ( ), p.143 참조. 39) WTO협정은 회원국이 될 수 있는 관세영역을 통상관계 등의 수행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보유한 영역이라고 규정한다. WTO협정 XII:1조. 또한 GATT에서는 다른 영역과의 관

237 243 으며, 국가는 물론 관세영역도 WTO의 회원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1) 남 한과 별개의 정치 경제적 실체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에서 나라와 나라 의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될 수 있지만, 별개로 WTO회원국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GATT 제I조상의 국가(외국)가 될 수 있다. 다만 GATT 체약국과 비체약국의 특별한 무역관계에 대한 GATT 체약국 단의 몇 가지 결정이 남북한 무역거래에 약간의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우선, GATT 체약국단은 미국의 남태평양 군도에 대한 무관세특혜 부여를 승인하 였다. 42) 즉, 국제연맹체제에서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Marshall, Caroline 및 Marianas군도가 UN체제에서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들 군도의 경제적 발전과 이들 군도가 과거 일본통치 아래에서 일본에 대 한 수출에 특혜대우를 받았던 사실 등을 고려하여, 미국은 이들 군도로부터 의 수입품에 대하여 무관세대우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결국, 체약국단은 이 러한 미국의 조치에 관하여 GATT 제I조상의 의무를 면제하기로 결정하였 다. 43) 미국과 이들 군도의 신탁통치라는 특별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GATT 협정상 미국은 이들 군도와 별개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즉, 이들 군도는 GATT 제I조의 외국(any other country)으로 인정되었다. 국제법상 국가성이 인정되지 않은 이들 군도가 GATT 제I조의 적용에서 외 국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점에서 GATT 제I조의 외국은 WTO회원국은 물론 GATT협정의 목적상 대내외적으로 국제경제적 독립성을 보유하는 국제법상 실체이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GATT 체약국단은 이탈리아의 리비아에 대한 특별관세대우 부여를 승인하였다. 44) 즉, 이탈리아는 제2차대전 전부터 리비아에게 특별관세대우를 부여하고 있었다. 리비아가 독립하고 리비아에 대한 이러한 특별대우를 중지 할 경우 리비아의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됨에 따라 이탈리아는 그 특별대우 를 존속시키고자 하였다. 문제는 이탈리아의 리비아에 대한 특별관세대우의 부여가 리비아산 상품에만 국한되고, 다른 체약국의 동종상품에는 적용되지 계에서 별도의 관세 또는 다른 통상규정 (separate tariffs or other regulations of comme rce)이 적용되는 영역을 의미한다. GATT XXIV:2조. 40) WTO협정 XII:1조; GATT I:1조. 41) 홍콩과 같은 국가가 아닌 실체도 WTO회원국이 되고 있다. 또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 세동맹과 같은 지역통합도 회원국이 될 수 있다. 유럽공동체 (EC)는 개별적으로 WTO회 원국럽국가들로 구성되며, WTO의 창립 회원국이다. WTO협정 XI:1조. 42) Waiver in respect of the Trust Territory of the Pacific Islands, Decision of 8 September 1948, GATT, BISD II/9-10 (1952). 43) 미국의 이들 군도에 대한 무관세대우의 부여가 미국의 GATT I조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미국이 이들 군도에 대한 무관세대우를 다른 체약국의 동종상품에게는 부여하지 않기 때 문이다. 44) Waiver for the Continued Application by Italy of Special Customs Treatment to Certain Products of Libya, Decision of 26 October 1951, GATT, BISD II/10 (1952).

238 244 않는 점이었다. 즉, 이탈리아는 리비아와의 관계에서 다른 체약국들에 대하 여 GATT 제I조상의 최혜국대우 의무를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GA TT 체약국단은 리비아에 대한 특별관세대우가 지속될 수 있도록 1952년 9 월 30일까지 이탈리아의 GATT 제I조상의 의무를 면제하기로 결정하였다. 셋째, 서독은 일관되게 동서독 무역거래에 대한 국제법상 특별한 지위를 요구하였으며, 결국 다음과 같이 그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우선, 1951년 영국의 토키(Torquay)에서 개최된 다자간무역협상에서 GATT체약국단은 GATT 제I조의 최혜국대우의무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GATT 가입으로 독일 에서 생산된 상품의 독일내 무역의 지위가 수정될 필요는 없다고 결정하였 다. 이렇게 서독은 동독에서 반입되는 동독산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 지 않을 수 있는 예외를 인정받았다. 또한,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창설하는 로마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독일내부무역의정서 가 동 조약에 부 속되어 독일의 분단된 상황을 고려하여 동서독 무역거래에 특별한 지위가 인정되었다. 참고로, 서독이 동서독 무역거래를 독일내 무역으로 인정한 것 과 달리 동독은 동서독 무역거래를 국제무역으로 간주한 사실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러한 동서독 무역거래의 다른 성격 규명에도 불구하고, 동독은 서 독과의 무역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으며, 서독은 서베를린에의 통행 보장 등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동독은 같은 언어의 사용과 지리적 인접성 및 동독 상품의 서독내 무관세 반입 등의 이유로 서독과의 무역거래 가 중요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GATT 제I조의 해석과 GATT의 관 행을 고려할 때, WTO회원국인 남한이 관련된 남북한 무역거래에 GATT가 당연히 적용되며, 남한의 북한산 상품에 대한 무관세 대우 등 특혜의 부여는 GATT 제I조의 최혜국대우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 한편으로 중국, 대만, 홍콩 등은 각각 별도의 관세구역으로 WTO에 가입 되어 있는 바, 이들은 상호간의 교역을 민족내부거래로서 최혜국 대우원칙의 적용을 받지 아니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없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간의 경제교류에 대한 민족내부거래성에 근거한 최혜국대우 원칙의 배제는 이들 간의 경제교류에서의 대우 문제와도 직결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여러 가지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한편 남측정부에서 취하고 있는 여러 가지 지원조치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남측이 취하고 있는 여러 가지 보조금성격의 정부지원 이 WTO 보조금협정의 특정성문제 등을 야기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보조금시비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에 대 한 지침의 수정 등에 대한 조치가 필요할 것을 판단된다. 예를 들면 1999년 에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남북경제교류협력에대한남북협력기금지원지침 제 11조를 보면 지원대상으로 우선지원대상을 명시하고 있으며 우선지원대

239 245 상업종에 농림수산업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특정성시비를 야기할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하겠다 한국수산보조금 체계 SCM협정상 보조금 개념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 먼저 SCM 협정 상 보조금의 정의를 수산보조금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보 조금의 정의가 광의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각국이 보조금의 분 류에 대한 개념을 매우 다양한 형태로 해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SCM상에 서는 회원국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정부나 공공단체의 재정적 기여 를 보 조금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직 간접적인 기여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에 따른 분쟁의 소지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수산보조 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는 먼저 보조금의 개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즉 SCM 협정 상 규제대상 보조금은 첫째, 상품교역과 관련 하여 둘째, 정부에 의해 셋째, 재정적 기여로 넷째, 혜택이 부여되는 경우 다 섯째, 특정성이 있는 대상에게 수여하는 경우 해당된다 45). 또한 SCM 협정 상의 보조금 정의를 수산부문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특정 성개념의 모호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상계조치를 발동하는 대상 보조금 을 판명하는 근거로서 사용되는 특정성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각국 정부가 자국법에 따라 일방적으로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함으로써 많은 국가들이 자국산업의 보호를 위하여 상계관세를 빈번히 부과 하는 상황이 발생되고 있다. 수산보조금 개념을 논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OECD보고서 에서 수산보조금의 약 77%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반서비 스 부분을 보조금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보조금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기반시설 투자와 자원조사, 어장평가, 감 시비용과 같은 어업관리비용이 암묵적보조금(Implicit Subsidy) 이나 간접보 조금(Indirect Subsidy)으로 간주되어 보조금의 범주에 포함될 것 인가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보조금의 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보조금의 개 념을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보조금이 발생시키는 실제 효과를 중요시할 것인가에 따라 제기되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OECD처럼 정부재정이전을 어업부문에 대한 주요한 시 장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보다는 FAO처럼 단기 또는 중장기측면 에서 기업의 이윤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활동으로 넓게 정의함으로써 이 45) 여기에서 말하는 정부의 재정이전은 수산분야에서 제공되는 수산보조금의 개념과 일치

240 246 러한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보조금 분류체계와 관련한 문제이다. SCM 협정 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국제기구나 국가들이 수산보조금의 분 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SCM 협정에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 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각국의 상이한 산업현실에 일률적으로 이 협정을 적용하는 데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다. WTO 체제의 보조금은 농업보조금(농업협정)과 일반보조금(SCM 협정) 을 따로 분류하고 있으며 분류체계는 금지보조금, 조치가능보조금, 허용보조 금으로 구분되어 있다. SCM 협정의 보조금 분류체계를 살펴보면 다음 <표> 와 같다. 금지 보조금 < WTO/SCM 협정 상의 보조금 분류 > 구 분 종 류 보조금의 정의 수출보조금 수입대체보조금 허용보조금 조치가능보조금 -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인한 혜택으로서, 무상지원, 대출, 대출보증, 조세감면, 정부의 상품 또는 용역제공, 상품구입, 소득 또는 가격지지 등 - 단, 사회간접자본 성격보조금 제외 (어항건설 등) - 수출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보조금 - 수입대신 국내상품의 사용을 조건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국내 주전산기 확대 사업 등) - 연구개발, 낙후지역개발, 환경보호 등 특정성은 있으나 일정 조건 하에 지급되는 보조금 -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본래 의미의 허용보조금 - 직접적으로 정의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금지보조금과 허용보조금을 제외한 여타의 보조금을 포괄 -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으로서, 동 보조금이 교역상대방에게 부정적 효과를 줄 경우, 상대방이 상계관세 부과 또는 WTO 제소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보조금 - WTO에 정기적으로 통보되는 보조금의 대부분 - 특정성 개념 : 보조금 지급이 객과적 기준이나 조건을 명시 함이 없이 일부기업에 제한되거나, 소수의 특정기업에 지나 치게 거액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특정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금지 또는 상계가능보조금으로 분류하여 규제 가능) 협상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수산보조금 실질적으로 남북한 수산협력이 활성화될 경우 남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이나 보조가 북한수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남한이 법률적으로 북한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남북한 간 경제교류를 민족내부거래로 보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한 수산물협력의 규모가 커질 경우 남북한간 경제협력행위나 사업이 현재 논의가 이루어지고

241 247 있는 WTO/DDA 수산물보조금이나 시장자유화조치의 논의결과에 의해 영향 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절대적으로 요 구된다 하겠다. < 한국의 수산보조금에 대한 국제기구 기준에 따른 분류 > 사업명 WTO OECD FAO UNEP 미국 상계가능 면세유 조세감면 비용감축 자본비용보조금 경비절감 또는 금지 연근해어업구조조 허용 취역해제계획 미확인 취역해제계획 지속가능어업과 정 일반서비스 제1,3종 어항건설 허용 기반시설투자 비용감축 기반시설투자 지속가능어업과 일반서비스 인공어초시설 허용 관리, 연구, 단속 비용감축 어업관리서비스 지속가능어업과 일반서비스 상계가능 영어자금 소득지지 비용감축 자본비용보조금 경비절감 또는 금지 어촌종합개발사업 허용 일반서비스 미확인 어업관리서비스 소득지지 제2종 어항건설 허용 기반시설투자 비용감축 기반시설투자 지속가능어업과 일반서비스 수산기술개발 허용 관리, 연구, 단속 비용감축 어업관리서비스 지속가능어업과 일반서비스 어장정화 허용 관리, 연구, 단속 비용증대 어업관리서비스 지속가능어업과 일반서비스 주: 한국 정부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영어자금(이외 원양어업개발지원, 수산물 가공개 발지원, 양식어업개발지원)을 상계가능보조금으로 WTO에 통보하였으나(산업자원부 공보관실 보도자료, ), 보조금의 해석 여하에 따라 금지되거나 또는 규모 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DDA협정 타결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수산보조 금 현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수산보조금 지급규모는 90년대 말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어업용 면세유류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 다. 그 가운데서도 어선감척사업과 어업용 면세유류 지원액이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연근해어업구조 조정 및 국제규제로 인한 어업인 지원사업이 완료되는 2004년 이후 수산보 조금 지급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일어업협정의 발효에 따라 이루어진 여러 가지 규제에 따른 어업인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조치 로 약 4천억원의 폐업지원금이 지원되었기 때문이다 46). 한국의 수산보조금이 WTO를 포함한 국제기구의 분류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를 구분해 보면 47) 다음 <표>와 같다. 표는 수산보조금 집행액의 46) 1999년 기준으로 어선감척(국제규제, 연금해구조조정)에 대한 지원액이 4,167억 원으로 전 체보조금의 38.8%, 면세유류 수혜액이 4,037억 원으로 37.6%를 차지하고 있다. 47) 물론 개별사업의 목적 및 효과에 대한 분석이 명확하게 도출되기 전까지는 다음과 같은

242 248 약90%를 차지하는 9개 사업부문 48) 에 대해서 국제기구들의 분류기준을 적용 한 것이다. 감 축 가 능 보 조 금 < 수협중앙회의 수산보조금 분류 > 구 분 사 업 명 세금감면 가격지지 우대금리 운영자금 융자 우대금리 시설투자 지원 해상보험 기타 허용가능 보조금 자료: 수협중앙회 어업용 면세유류,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 혜택 등 농안기금 지원 (정부비축사업, 민간가격안정사업) 영어자금, 경영안정특별자금, 조합경영개선자금, 수산물유통자금지원, 해외시장개척자금, 어망생산운영자금, 귀어가정착자금, 해외자원생산 자금, 가공업체운영자금지원, 신어장개발자금, 전 업어가 육성, 어업 인 후계자, 선도어가육성 어선건조 및 시설현대화, 수산물종합판매장, 수산물산지종합 처리시 설, 공동양식어장개발, 설비보완, 수산물냉동냉장시설, 양식어장개발, 수산물산지가공시설, 수산물종합가공단지조성, 활어선위판장 및 폐 수처리시설, 담수어양어장시설, 대단위담수 어양식단지, 수산물특수가 공시설, 어선기술개발, 수산물가공시 설현대화, 폐염전활용 새우양식 시설 어선 및 선원공제료 정부지원 상업적 기술개발, 수출보조 등 수산기술개발(자원증산개발사업 등), 연근해어업구조조정, 국제 박람 회참가지원, 수산물소비촉진, 인공어초시설, 제2종어항건 설, 어장정 화, 종묘배양장시설, 어촌민속전시관건립, 무선국시 설및운영, 지방해 양수산과학관건립, 수산물공동폐수처리시설, 폐선처리장, 원양어업구 조조정, 어장정비정리, 김유기산처리제구화사업, 어장정화선운영지원, 종묘매입방류, 담수어치어방류(토산어치어, 연어치어), 자영수산과지 원, 민간어업협정지원, 수산물HACCP도입, 수산물유통구조개선연구, 급유급수시설, 수산물원산지관리, 수산물가공식품규격제개정, 어업질 서확립자금지원, 폐유수거용기설치, 어촌종합개발사업, 해양수산연수 원보조, 한국선박기술협회,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수산계특성화대학 지원, 부산감천항수산물도매시장건립, 가공단지수질정화운영비지원, 한국어항협회보조, 어촌관광휴양단지조성, 광주수산물도매시장, 서해5 도공동운반선운영지원, 어업인교육(지도사업) 또한 이 보조금들을 세부 항목별로 분석해서 철폐나 축소 논란이 생길 가 능성이 있는 수산보조금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수협중앙회 49) 는 1997년부 터 최근까지 각종 국제기구 논의 및 관련 논문, 세미나 등을 종합 검토한 결 과, 어업경영지원과 가격지지 성격의 수산보조금은 감축가능보조금으로, 자 분류가 확실히 부합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기존 논의과정에 따라 유사성 근거한 개 괄적 분류라 할 수 있다. 48) 면세유, 연근해어업구조조정, 제1, 3종 어항건설, 인공어초시설, 영어자금, 어촌종합개발사 업, 제2종 어항건설, 수산기술개발, 어장정화 등의 사업부문임. 49) 수협중앙회 조사연구팀, WTO 수산분야협상과 수협의 대응방안,

243 249 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은 허용가능 보조금으로 분류될 가능성 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해양수산개발원의 수산보조금 분류 > 구 분 사 업 명 분류 우선순위 1 1순위(1) 면세유 영어자금, 경영안정특별자금, 조합경영개선자금, 수산물 유통자금 2순위(10) 지원, 해외시장개척자금, 어망생산운영자금, 귀어가정착자금, 해외 자원생산자금, 가공업체운영자금지원, 신어장개발자금 수산기술개발, 수산물 종합판매장, 특정수산기술개발, 수산물 산지 금지가능성 종합처리시설, 공동양식어장개발, 어선건조, 설비보완, 수산물 냉동 있는 냉장시설, 어선용 기계공급, 양식어장개발, 수산물 산지가공시설, 보조금(34) 수산물 종합가공단지조성, 어업인 후계자, 전업어가육성, 활선어 3순위(23) 위판장 및 폐수처리시설, 국제박람회 참가지원, 담수어양어장시설, 대단위 담수어 양식단지, 수산물 특수가공시설, 수산물 소비촉진, 어선기술개발, 수산물 가공시설 현대화, 폐염전활용 새우양식시설, 선도어가육성 연근해어업구조조정, 제1 3종 어항건설, 인공어초시설, 제2종 어 항건설, 어장정화, 종묘배양장시설, 어촌민속전시관 건립, 무선국 시설 및 운영, 지방해양수산과학관 건립, 수산물 공동폐수처리시 설, 폐선처리장, 원양어업구조조정, 어장정비정리, 김유기산처리제 구입, 지도선 건조, 적조방제사업, 시도지도선 운영, 통영해역 해양 목장화사업, 어장정화선운영지원, 종묘매입방류, 담수어치어방류 허용보조금(43) 2 (토산어 치어, 연어 치어), 자영수산과지원, 민간어업협정지원, 수 산물 HACCP 도입, 수산물 유통구조개선 연구, 급유급수시설, 수 산물 원산지관리, 수산물 가공식품 규격 제개정, 어업질서확립자금 지원, 폐유수거용기설치, 어촌종합개발사업, 해양수산연수원 보조, 한국선박기술협회,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수산계 특성화대학지원, 부산감천항 수산물도매시장 건립, 가공단지 수질정화운영비 지원, 한국어항협회 보조, 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 광주 수산물 도매시 장, 서해5도 공동운반선 운영지원, 어업인 교육 주 1. 1순위; 비용절감목적으로 어민에 대한 직접지원형태 2순위; 비용절감 및 수익증대를 위해 우대금리에 의한 운영자금 융자지원 3순위; 비용절감 및 수익증대를 위해 우대금리에 의한 직 간접 시설투자지원 2. 자원조성, 구조조정, 그리고 연구개발 등의 일반서비스. 3. 괄호 안은 해당 사업 수 4. 국제기구의 분류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일 기준으로 분류하기는 곤란함. 따라서, 관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협상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분류도 제안될 수 있을 것임 한편 해양수산개발원 50) 은 자원의 지속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과 무역왜곡을 조장하지 않는 보조금은 허용보조금으로 명확하게 분 류할 수 있지만, 해석이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보조금은 금지보조금이나 자원의 지속가능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 또는 무역왜곡 조장 50) 해양수산개발원, 수산정책자금의 효율성 제고방안,

244 250 가능성이 있는 보조금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51) < 미국측 기준에 의한 한국의 부정적 수산보조금 > 구 분 세 부 항 목 내 역 영 향 가격지지 가격지지 세금감면 어업용면세유류 면세로 인한 혜택 가장 큰 영향 예상됨 (어업경비 10~14%) 부가세영세율 부가세면세 혜택 41개 어업용기자재 정부비축을 통한 자금 운영 총 금액 고등어, 조기 등 관련업 종 피해 김, 미역, 멸치, 오징어, 민간가격안정 - - 우대금리 운영자금 융자 우대금리 시설투자 지원 영어자금 시중금리와 차액보전 모든 어업인 해당 경영안정특별자금 - - 조합경영개선자금 - - 수산물유통자금 - - 어망생산운영자금 - - 귀어가정착자금 - - 해외자원생산자금 - - 가공업체운영자금 - - 신어장개발자금 - - 어업인후계자지원 - - 전업어가육성 - - 선도어가육성 - - 수산물종합판매장 - - 수산물산지종합처리시설자금 - - 공동양식어장개발 - - 어선건조 및 설비보완 보조금+융자이차 어선 어업자 해당 수산물냉동냉장시설 - - 어선용기계공급 - - 양식어장개발 - - 수산물산지가공시설 - - 수산물종합가공단지조성 - - 활선어위판장및폐수처리시설 - - 담수어양어장시설자금 - - 대단위담수어양식단지 - - 수산물특수가공시설 - - 수산물가공시설현대화 - - 폐염전활용새우양식시설 - - 보험 어선및선원공제료지원금 정부보조 모든 어업인 해당 해양수산개발원은 일차적으로 WTO, OECD, FAO, 미국의 보조금 분류기 준에 따라 각종 수산보조금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재분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WTO와 미국의 기준은 금지보조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 51) 단, 금지보조금에 대한 WTO와 미국의 보조금 분류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OECD와 FAO 등 국제기구의 분류를 고려하여 한국 수산정책자금을 금지가능성이 있는 보조금과 허용 보조금으로 분류하고 있다.

245 251 기 때문에 금지보조금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모호한 OECD와 FAO의 경우보다는 가중치를 높게 두어 보조금의 금지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52). 면세유처럼 직접지원형태 53) 를 취하는 것을 금지보조금의 1순위로 하고, 직접지원과 효과는 동일하지만 정부재정의 직접지원이 아닌 금융기관을 통 한 간접지원의 경우는 2, 3순위로 구분하고 있다. 허용보조금은 국제기구에 서 언급하고 있는 자원조성, 구조조정, 어업관리 등에 대한 일반서비스에 대 한 지원의 경우가 해당된다. 미국의 수산보조금 분류체계를 이용하여 분류한 한국의 수산보조금 가운 데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감축이 예상되는 수산보조금을 보면 <표>와 같다 수산물자유화 WTO/DDA협상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산물시장자유화와 관련한 논의 도 남북한 수산물협력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산물시장자유화와 관련하여 협상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쟁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관세인하방식을 들 수 있다. 논의되고 있는 관세인하방식으로는 모 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일정비율의 관세를 인하하는 방식(일관선형인하 방식)과 공식을 적용하여 품목별관세를 결정하는 방식(공식적용방식), 국가 별로 각각의 품목에 대한 요청과 제안을 하는 방식(Request/Offer), 특정부 문에 대한 관세만 인하하는 방식(부문별 협상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EU 는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을 기초로 고관세 및 관세율 경사구조, 미소관세 철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섬유 등에 대한 고관 세 유지를 위해 Request/Offer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민감 품목에 대한 고 려 없이 일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식에는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 이고 있다. 일본은 공식적용방식을 중심으로 관세분야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고관세 제거에 효과적이라 보고 있다. 둘째, 관세협상의 기준세율과 관련한 내용이다. 기준세율을 양허세율로 할 것인지 아니면 실행세율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 52) 총 5점의 배점으로 금지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는 5점, 명백한 허용보조금인 경우는 1점 을 부여하였으며, 가중치는 WTO는 1, 미국은 1.5, 그리고 OECD와 FAO의 경우는 0.75 를 주고 계산하였다. 53) OECD의 수산보조금 분류기준에 의하면, 직접지원형태(Direct payments)는 정부재정의 이 전(transfers)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FAO의 보조금의 정의에 의하면, 보조금은 크게 4가지 의 범주(Set)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 세번째의 범주가 보조금과 수산자원과 무역에 잠재적 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과 생산의 왜곡(불완전성)을 시정함에 있어 정부개입의 부 재 혹은 불충분의 결과로 발생되는 단기의 생산자 이익이다. 따라서 여기서 직접지원형태 라는 것은 정부재정의 이전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부개입의 부재 혹은 불충분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익을 의미한다. FAO, op.cit.

246 252 다.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기준세율은 양허세율을 기준으로 협상하되 양허세 율이 없는 경우에만 실행세율을 기준으로 하기로 의견접근을 보았다. 셋째, 관세협상의 기준년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과세협상의 기준년 도를 협상의 시작년도로 할 것인지 아니면 UR협상의 이행이 완료되는 시점 으로 할 것인가 등과 관련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UR협상당시에는 UR출 범을 공식으로 선언한 1986년 9월의 관세율을 기준으로 했지만 UR 협상에 따른 양허세율 인하의 이행기간이 종료되지 않는 품목의 경우에는 뉴라운드 의 이행기간과 중복될 우려도 제기된다.

247 253 < WTO/DDA 관련 수산물 자유화 쟁점 내용 > 쟁점 개요 협상범위/방식 관세인하방식 고관세/미소관세제거 관세율경사구조 제거 관세협상의 기준세율 관세협상의 기준연도 개도국에 대한 우대조치(S&D) 자발적 자유화추진 내용 - 수산물은 UR협상에서 시장접근그룹에 포함하여 논의 - 농산물과 달리 비농산물(공산품)에 포함되어 협상 타협상분야의 협상결과에 의한 영향은 불가피함 - 협상범위: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완화 - 협상방식: 초기단계에서는 double track방식으로 운영하고 2단계 부터는 시장접근관심에서 논의 formula방식을 통한 관세인하협상 추진 후, request-offer 방식으 로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원칙으로 관세와 비관세분야로 분리하여 각각의 협상그룹회의에 논의 - 인하방식: 일관선형방식, 공식적용방식, 부문별협상방식 - 고관세: 선진국의 평균관세율은 3-5%수준이나 개도국들이 경쟁력 을 가지고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대부분 20-30%를 상회하는 관 세율을 가지고 있음. 이에 대한 제거 논의가 쟁점이 되고 있음 - 미소관세: 통상의 관세징수비용보다 낮은 3%이하의 관세를 의미함 - 차등세율에 따라 실질적인 수입제한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무역 왜곡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 관세율구조의 단순화를 통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됨 - 양허세율과 실행세율의 택일 문제 -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양허세율을 기준으로 협상을 하되, 양허세율 이 없는 경우에만 실행세율을 기준으로 하기로 대체적으로 의견 이 일치되고 있음 미국과 싱가폴은 실행세율의 적용을 주장, 한국은 양허품목은 UR 최종 양허세율을 미양허품목은 DDA협상출범 당시 실행세율의 적 용을 주장 - 협상기준년도를 협상시작년도와 UR협상 이행완료연도중 어느 것 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 미국은 2000년, UR은 2001년, 일본은 2002년 등 각기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음 - 개도국에 대한 관세율 인하폭의 축소 및 관세인하 이행기간의 연 장에 대한 특별우대조치의 허용여부문제 인도,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개도국들은 GATT에 규정한 개도국 에 대한 비상호주의원칙과 S&D원칙의 폭넓은 적용을 주장 한국은 S&D문제는 개도국과 최빈개도국에 대한 특별한 배려라는 기본원칙하에 협상방식과 관련한 개도국들의 능렵범위내에서의 적극적인 기여를 촉구함 - UR협상과는 별도로 각국이 수행하고 있는 자발적인 무역자유화 에 따른 관세인하수준에서의 협상시작여부 문제 이에 대해 사후에 credit를 부여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 고 있음 넷째, 자발적 자유화 추진에 대한 문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UR 협상과 같은 국제적 약속과는 별도로 각국은 자발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고 있 는데 이러한 자발적 자유화조치의 이행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 발적 자유화에 따른 관세인하의 수준에서 협상을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도 회원국간에 사전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뉴라운드 출범이전에

248 254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자유화를 추진한 것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credit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이다. 이러한 합의는 개도국들이 WTO에서의 약속 이상으로 자발적인 자유화를 활발히 추진해온 점을 고려함으로 추가적 인 자유화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 성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개도국의 WTO협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관세율 인하폭의 축소, 이행기간의 연장 등과 같은 특별한 우대조치가 필요 한지에 대한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시애틀 각료회의에서도 개도국 에 대한 특별우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회원국간에 형성되어 있다. 한국이 개도국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하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 다. 3.2 남북한 수산협력 사업 추진상의 문제 아직까지 한국의 수산분야 협력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다. 앞에서 살펴본 사례처럼 공동어로 합작사업의 경우는 서해안 어업인의 반발로 사업승인이 보류되고, 동해안의 경우는 조업수역에 대한 어장 정보 부족, 동해안 지역 어민의 반발, 남 북 합의서 내용상의 문제 등으로 사업의 추진이 난항을 겪 고 있다. 정부에서는 수협 등 민간단체의 주관하에 남 북경제협력사업을 추 진할 경우는 감척어선 지원이 가능하지만 개별기업의 경우에는 지원이 곤란 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되어 있다. 또한, 양식업이 나 수산가공업 등의 분야에서 수협중앙회와 협력을 추진하는 경우도 사업이 답보상태에 있거나 추진이 중단되는 등 가시적인 사업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렇듯 남 북 수산분야 협력 추진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정부기관 성격을 지니고 있는 북한측 협력 파트너를 선정하는 과 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남북간에 체계적인 제반 협정이 체결되 어 있지 않고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세규모의 수산업체가 독자적으로 북한측 교섭창구를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 우 어렵다. 더우기 수산부문의 현지 투자 교섭은 대부분 대기업의 협력사업 에 대한 구색 갖추기로 이루어져 북한측에 의하여 선별적으로 허용되고 있 다. 결국 현재의 수산협력사업은 남북경제교류사업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거 나 북한측이 형식적으로 대응하고 북한측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 도 있다. 또한 북한측 협력파트너인 국영무역회사는 중앙부서와 하부 위원회 마다 조직되어 있어 조직체계가 복잡하고 중앙정치 행정기관에 의해 직접 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249 255 따라서 어선의 북한내 조업 등과 같이 민감한 제반사항에 대해서는 북측 협력대상기관이 북한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았는지가 불명확 하여 협상의 효력이 의문시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군사 적 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하여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업주체인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현지투자사업의 경제성여부이다. 수산분야에서 남한측 협력기업의 투자 목적은 북측의 풍부한 어장과 수산자원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높은 자본수익률인데 반해 북측이 기대하는 경제적 이익은 출자 몫에 따른 경상이익보다는 고용기회의 확대와 이에 따른 임금수입이다. 협력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남북한 수산협력사업과정에서 남측의 투자는 현물 투자 중심이며 어선을 비롯한 어업시설은 이미 생력화투자가 이루어져 고도의 기술이 투하되어 있는 어업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 어업시설에 투입되는 북한의 노동력은 임금수준의 확보를 일차적인 목표로 하고 있어 적정규모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지 투자 협력사업시 북한 노동력의 과잉 채용에 따른 인건비부담과 같은 경제 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지 투자에 따른 수익규모 등을 대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공동어로 합작사업의 경우는 경제성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셋째, 연근해 어업인과 이해관계가 상충됨에 따라 특정 단체를 선별적으로 지원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서해안 및 동해안의 공동어로 합작사 업의 경우는 연근해 일반 어업인과 동일한 어장에서 어로사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당 어업인들과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밖에 없다. 북한측 해안의 어 종별 회유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명태, 대구, 꽁치, 오징어, 조기, 홍어 등 동 서해안에서 어획되는 어종은 대부분 회유성 어종이다. 따라서 북한측 해역에서 공동어로 합작으로 조업을 할 경우 남하하는 어류들이 차 단되어 동서해 접적지역 소형어선 어업인의 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산 대구, 홍게, 털게, 조기, 홍어 등은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 공동 어로 대상수역으로부터 이들 어종이 대량 반입될 경우 가격하락에 따른 해 당 어업인의 반발도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실질적인 생산자단체나 어업인 대표기관으로서의 명분이 불분명한 특정단체에 대한 사업승인이 이루어질 경우 다수 어업인으로부터 특혜의구 심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동해안 회유어종과 관련하여 경합관 계에 있는 단체에 대한 어획을 허용할 경우 연안 어업인들은 특정 소수어선 에 대한 특혜조업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250 남북 수산분야 협력 활성화 방안 남북한경제교류과정에서 수산물분야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에서도 살펴 본 바와 같이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산업구조상, 그리고 남북한간 긴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수산물과 같은 일차산업의 교류는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경우 수산물분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으로 남북한간 경제교류에 대한 개념정립, 그리고 여러 가지 지원조치 들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검토와 해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WTO/DDA협상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국제경제 변화에 대한 대 응전략을 수립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략의 수 립이후에 남북한수산물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1 대북관련 지원조치들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응책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남북기본합의서 및 그 부속합의서들의 내용에 는 남북교역을 민족내부거래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의거하여 남한은 북한 산물품의 반입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민족내부거래에 따른 우대조 치의 부여는 WTO협정상의 호혜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다른 회 원국들로부터 이의가 제기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다자간 협의사항이기 때문에 이의 제기하는 국가가 모든 자료를 준비하여 남북한에 제시해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의가 제기되기 전에 남북경제교류 규모가 커 질 경우에 대비한 남북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국 내법적으로 남북경제교류를 민족내부거래로 규정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이러 한 내용들이 국제사회 특히 WTO 회원국들로부터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고 있지 않지만 향후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또한, 남북경협을 광의로 해석하여 중국, 일본, 미국 등에 거주하는 해외동 포들의 참여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들 해외동포와 북한 과 또는 남한과의 경제교역을 민족내부거래성을 갖는 것으로 일정한 특혜가 부여되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 직은 전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으며, 향후 남북간의 경제교류에 대해 민족 내부거래성에 부합되는 우대조치의 부여가 현실화된다면 다시 재론될 가능 성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해외교포기업들에 대한 북한당국의 태도가 남한

251 257 기업에 비해 호의적인 것으로 보이며, 일부 재일교포실업인은 대북투자를 통 하여 모란봉합영회사와 같이 상당한 성과를 이미 얻고 있다. 이와 함께 고려 해야 할 점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지만 북한의 반대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한 남북경협이다. 현재 진행 중인 UNDP의 두만강개발계획은 물론 IMF, IBRD, ADB, UNIDO, ESCAP 등의 국제기구에 북한의 가입을 돕거나 이 기구를 통하여 간접적인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국제기구를 통한 경협은 남북간 교통 통신망 및 북한내 사회간접시설의 건설과 같이 장기적이면서 규모가 큰 사업분야에서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위탁가공 및 1차산품의 반입이 중심이 되어있는 남북교 역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맞아야 한다. 북한의 천연자원을 공동 개발하여 남 한으로의 반입과 제3국으로의 수출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우리기업들이 극 동지역과 중국의 동북3성에 진출하여 확보한 자원들의 수송에 북한지역을 이용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경제난에 처한 북한 에 구매력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되 고 있는 남북경협에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정보력 과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접촉하여 협상하기가 어렵다는 현실과 대기업 또한 대규모의 첨단분야의 진출이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저임금 양질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진출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추 진 중인 중소기업들의 대북한 공동진출에 있어서도 동일한 지역에 진출하려 는 대기업들의 협력이 수반될 때에 그 효과가 커질 것이다. 한편, 남한 기업들의 대북한 투자는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경향을 본다면 경제협력사업자의 승인을 받은 기업이 대폭 증가하 고 있는 중이므로 앞으로도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남한 정 부에서는 1995년 6월 <대북투자 등에 관한 외국환 관리지침>을 마련하여 대북투자를 민족내부간 거래로 인정하였고 1996년에는 대북투자의 상한선을 확대하는 등의 활성화조치를 취해 왔다. 1996년 9월의 나진, 선봉 국제투자 포럼에서와 같이 북한이 정치적으로 남한의 투자의도를 왜곡하거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방해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대북한 투자는 안정적으로 확대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대북투자의 문제점은 정치적 여건의 변동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경제거래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동안 남북한과 같은 분단국가의 GATT/WTO협정상의 지위는 그 동안 WTO 내에서 정식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지만, 54) 남북한 무역거래의 규모가 54) 동서독의 경우는 서독이 GATT에 가입할 당시 가입의정서에서 동서독 무역거래에 대한

252 258 다른 WTO회원국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증가하게 된다면, WTO에서 논 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특히 북한이 WTO 가입을 신청하였다면 그러 한 논의는 필연적인 것이 될 것이다. 앞서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지적하였 지만, 남북한간의 경제교류는 남북한이 상호간의 관계를 국가간의 관계가 아 닌 특수한 관계라는 근거로 남북 경제교류는 민족내부거래로서의 성격을 갖 는다고 할지라도 현재까지의 북한의 태도를 보아서도 그렇지만, 민족내부거 래성을 근거로 WTO의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최혜국 대우 이상의 대우를 남 북한간에는 예외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현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의 법령에서 그리고 남북간의 합의서에서 최혜국대우 이상의 대우를 남한과 그 주민에게 부여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면 지난 50여년의 GATT/WTO 협정의 운용을 볼 때, 남북한 무역거래는 동서 독 무역거래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취급을 인정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러한 경우, 북한이 WTO에 가입하기 전이라도 북한의 동의를 요함이 없이 WTO협정상의 의무면제 (waiver)조항을 원용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렇 게 되면 WTO협정 IX조에 규정된 의무면제에 따라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에 서 최혜국대우 의무의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다. 그 동안 GATT/WTO체제 에서 최혜국대우 의무에 대한 면제는 비교적 활발히 허용되었지만, 그러한 의무면제가 허용되려면 WTO회원국들 3/4의 찬성을 요한다. WTO회원국의 수가 140개국이 넘는 현재의 상황에서 100여개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이를 위한 남북한의 적극적인 자세(북한의 관련 법 및 남북합의서에 민족내부거래성에 맞는 우대조치의 삽입)와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경우, 우리는 남북한 무역거래 문제를 남북한 분단의 역사성과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접근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를 보장하며 궁극적으 로 세계평화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WTO체제내에서 남북한 무역 거래에 대한 특별한 취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한 의 자유무역지대 (free trade area) 설립이 좋은 대안이라는 주장도 북한이 남한과 진정한 내부시장을 의미하는 자유무역지대의 설립에 합의한다는 것 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탁 상공론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자신의 법령에서는 물론이고 남북한 이 체결하는 합의서에서도 조세 등의 분야에서의 우대라는 측면에서 민족내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박노형, 남북한 직교역의 GATT체제에서의 문제점, 국제경제법연구 1992년호 (국제경제법연구회, 1992년), pp 참조.

253 259 부거래성의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족 내부거래성의 법적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시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의 북한의 태도 특히 합의서의 체결을 위한 협상과정과 협정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민족내부거래성과 관련하여 남북간의 경제문제 특히 분쟁 등을 외국 등 외부의 힘을 빌지 않고 남북한이 직접 협의를 통하여 해 결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자 세로는 민족내부거래성에 입각한 WTO체제에서의 예외인정도 그리 쉽지만 은 아니할 것이다. 따라서 민족내부거래성에 부합될 수 있도록 최혜국 대우 의무로부터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북한이 먼저 자신의 법령에서 남한과의 경제교류에 그러한 내용의 규정을 두어 시행하고 남북간의 합의서에 그러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 의거한 무관세 등 대북 교역에 대한 우대조치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조치에 불과하며 남북간의 경제교류가 커지고 특히 북한 의 대외개방이 본격화되는 경우, 분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남측정부의 북측에 대한 지원이나 교류협력기금을 통한 지원 등의 조치도 다분히 WTO 등에 의하여 보조금 특정성 시비를 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각종 대북관련 지원지침 등에 특정 성을 야기할 수 있는 특정산업에 대한 명시조항 등은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산업전반에 대한 지원 조치 등의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2 WTO/DDA 협상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에 대한 대안 WTO/DDA 수산부문 협상과정에서 남한이 중요하게 추구하는 목표는 수 산보조금협상과정에서 수산보조금을 농업을 제외한 여타 일반산업의 보조금 과 동일하게 규율하는 현행 SCM협정의 기본골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SCM협정이 수산보조금을 규율하는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Fish Friends Group의 주장처럼 수산보조금을 여타산업과 별도로 논의할 경 우 수산보조금이 집중적인 공격대상이 되어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산보조금을 다른 산업의 보조금과 같이 취급할 경우 각 산업의 상이한 이해관계로 인해 규제여부에 대한 결정이 용이하지 않을 것 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산보조금에 대한 별도 논의가 불가피할 경우 수산보조금에 대한 새로 운 규범이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교섭해야 할 것이다. 기업형 어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미국이나 아이슬랜드와는 달리 한국은 생계유지형

254 260 어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산업이 다원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 보조금 협상이 각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여 어업인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산보조금협상이 수산물무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응 Fish Friends Group은 수산보조금이 무역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고 주장 하고 있다. 수산보조금은 어업경비를 절감시키고 소득과 가격을 지원하는 것 이므로 보조금을 지급받는 어업인이 생산하는 수산물이 보조금을 지급받지 않는 어업인이 생산하는 수산물보다 가격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Fish Friends Group의 주장이 협상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될 경우 생계유지형 어업 위주로 수산업이 영위되고 있어 이를 적절한 산업구조로 전환하고자 여러 가지 보조금지급을 통하여 진행중인 수산업분야의 구조조정이 큰 영향을 받 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과정에서 상당부분 보조금형태의 지원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협상의 논의는 남북 한 수산협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FAO는 수산보조금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대한 경험적 지 식은 아주 제한적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55). APEC도 수산보조금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56). 따라서 한국의 경우 수산 물협상과정에서 Fish Friends Group의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활용하여 수산보조금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는 수산보조금의 무역왜곡여부를 논의하는 것을 차단하도록 노 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협상과정에서 현재 FAO나 OECD 등에서 관련 연구 가 진행 중인바 결과를 기다려 수산물보조금 논의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 다는 논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 수산업에 대한 사례연구 등을 통해 한국의 경우에 수산보조금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산보조금협상이 수산자원관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응 Fish Friend Group은 인류의 중요한 식량자원인 수산자원의 고갈 현상이 55) The empirical knowledge of the magnitude of effects of subsidies on trade remiains limited, FAO, Report of the Expert Consultation on Economic Incentives and Responsible Fisheries, ) the effects of ubsidies on trade are not always self-evident, APEC, Study into the Nature and Extent of Subsidies in the Fisheries Sector of APEC Member Economis, 2000.

255 261 부적절한 어업관리와 각국이 지급하고 있는 보조금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과잉어획능력(over-capacity)과 남획(over-fishing) 등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여러 국가가 공 동 이용하는 공해(hish seas) 수산자원은 EEZ 내 수산자원에 비해 수산보조 금의 부정적인 영향에 더욱 취약하며 공해내에서의 과잉어획이 인접한 EEZ 에서의 조업 및 수산물 가격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산보조금과 수산자원간의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는 것으로 FAO, OECD, APEC 등의 연구결과 57) 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Fish Friends Group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위의 연구결과를 통하여 수 산보조금에 대한 규제보다는 적절한 자원관리를 통하여 수산자원을 조절해 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수산보조금의 산업특정성논의에 대한 대응 현행 SCM협정에 따르면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한 보조금 58) 이 특정적인 경 우 금지보조금, 조치가능보조금, 상계조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보조금지급 대상이 특정기업으로 한정되는 경우 특정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 1999년 5월 WTO 보조금 및 상계조치위원회에서 미국과 EU는 수산보조금은 특정 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협상과정에서 수산보조금의 특정성여부가 쟁 점화되고 있다. 수산보조금의 특정성 논란은 SCM협정상 산업의 범위를 어 떻게 적용할 것인지와 관련된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여 한국은 영어자금, 면 세유 등과 같은 수산보조금이 다른 산업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인지 여부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산업에 주어지는 것과 동일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특정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 SCM 협정은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의 사용을 통하여 다른 회원 국의 국내산업에 피해를 미치거나 다른 회원국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경우 조치가능보조금으로 분류된다. 특히 상품에 대한 종가기준 총보조금지 금이 5%를 초과할 경우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조항 (Article6.1.a)의 경우 1999년 말로 동협정 Article31(잠정적용)에 따라 실효되 었지만 이 조항에 대한 부활이 논의되고 있어 이 조항이 금번 협상과정에서 부활될 경우 수산보조금지급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어 이 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57) FAO, ibid, APEC, ibid, OECD, Government financial transfers and resource sus tainability, )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한 재정적기여(무상지원, 대출, 면세 등)나 소득지원 또는 가격지지 가 있고 이로 인해 혜택이 부여되는 경우 보조금으로 간주한다.

256 262 한편 특정성이 없는 보조금과 특정성보조금 가운데 연구활동지원보조금, 낙후지역개발보조금, 환경요건적응지원보조금, 민영화보조금(개도국한정)은 허용보조금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조항 역시 심각한 손상조항과 함께 1999 년말 실효되었지만 캐나다가 자국제안서에서 허용보조금부활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동조항의 부활 및 개정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2003년 9월 이루어질 칸쿤각료회의 이후부터는 수산보조금의 분류(금지, 허 용) 및 규제방법(폐지,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SCM 개정협상이 이루 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허용보조금 부활과 관련하여 한국의 보조금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가 필요하며 대응책의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4.3 효율적인 남북한 수산협력 방안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의 기본방향은 첫째, 남북한 수산분야의 공동발전을 도모하되 국내 생산어업인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 여야 하며, 둘째, 투자보장협정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후에 협력사업을 확대하여야 한다. 특히 남북협력사업의의 특성상 정부차원에서 남북협력 활 성화에 필요한 제도마련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협력사업이 확대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주요 사업을 살펴보면, ⅰ) 북 한산 수산물의 반입 활성화, ⅱ) 반입수산물의 상품성제고를 위해 현지 수산 물 가공공장의 건설투자 및 운영, ⅲ) 양식어장과 연어부화장의 조성 운영 및 기술협력, ⅳ) 북한측 수역에서 우리 어선의 조업을 위한 남북한 어업자 원 공동조사 및 기술협력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들이 장기적 으로 남북한 통일의 기초가 되면서 남북한 경제협력의 실질적인 주력분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고 효율적인 지원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WTO/DDA 수산분야협상의 전개방향을 볼 때 남측의 일방적 인 북축에 대한 지원이나 보조가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한이 북측과의 거래를 민족내부거래 즉 동일 국가내 거래로 간주하고 있 는 상황, 북측과의 효율적인 수산분야 협력을 위해서는 남측으로부터 북측으 로 일방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하 다 하겠다 북한산 수산물 반입사업의 발전 방안 국내 수산물 수급상황을 보면 어장축소에 따른 국내 생산의 감소와 수입

257 263 자유화, 국내 수산물 소비시장 확대 등의 요인으로 수입이 총공급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산 수산물의 국내 반입은 부족 한 수산물을 충당하는데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실 적으로 북한의 수산업부문이 낙후되어 있어 반입수산물의 질적수준을 제고 하고 수산분야 협력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대응책이 요구된 다. 이를 위해 수산물을 일정량 집하하고 집하지역내에 보관할 수 있는 물적 수단과 체계가 요구된다. 또한 선도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선상처리용 냉동시 설도 부족하고 노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력사정도 여의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선별 규격화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실정이며 위생관리를 위 한 시설과 기술도 낙후되어 있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 되고 있는 WTO/DDA 수산분야에 대한 협상과정을 살펴 볼 때 남측이 동일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측에 대한 수산부문에 대한 지원이 과연 부당지 원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산업이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특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수산분야에 대한 지원만을 고려하기보다는 산업 전반에 대 한 현대화지원체계의 일환으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체계 적인 지원책의 마련이 요구된다 하겠다 대북수산분야 민간부문 투자협력사업의 발전 방안 1998년부터 이루어진 수산분야 대북 민간부문 투자사업으로 미흥식품과 태영수산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사업성과는 1999년이후 답보상 태에 머물러 성공적인 협력사업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두 기업만을 기준으 로 투자협력사업을 평가하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1980년대 후반이후 이루어 진 대북 합영 합작 사업들이 실패하거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요인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북한측의 원자재 공급이 계약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 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사회간접자본이 미비하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과 다하게 소요된다는 점, 특히 전력공급이 불안정하여 조업중단 상황이 빈번하 게 발생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합영회사 종사자들이 책정된 임금중에 서 일부만을 받고 있어 장기적으로 노동의욕이 상실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제적인 요인 이외에 관료의 부패, 계약이행 경시, 행정서비스 취약 등 북 한사회의 비합리성도 중요한 실패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측기업들이 대북 합작투자과정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 은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열악한 행정서비스를 고려할 때

258 264 사업의 성공을 위해 일정기간 동안 중앙차원의 공적 창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측은 자본주의적 경영이 미숙한 상태이므로 사업의 성공을 위해 경영권과 인사권을 남측의 투자자가 확보해야 하고 경영진과 핵심기술 자들은 현지에 상주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가발전으로 전력을 공급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합영에 관한 계약은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문서 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의 외국인 투자와 합영에 관한 법규정 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2002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 차 회의에서 합의된 것처럼 남북 당국이 수산분야협력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합의하는 등 여러 가지 정 부차원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수산분야의 협력이 가 능하려면 이러한 조치들이 구체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있도록 해당 분야 전문 가들에 의한 실무적인 접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수산분야의 대북 합작투자사업시 사업방향을 보면 유통시설의 낙 후성 등을 감안할 때 수산물의 가공과 유통을 패키지화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수산물 가공사업도 북한의 기술수준을 감안할 때 부가가치를 증대시키 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상품성의 유지 보전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측의 투자여건 등을 감안할 때 남한에서 원재료를 조달하여 재반 입하거나 수출하는 임가공형태의 진출은 시기상조로 판단된다 남북한 공동어로사업의 발전 방안 공동어로사업과 관련한 남북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업수 역에서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조업이 용이해야 한다. 북측이 제의한 어 장에서 지속적인 조업활동이 이루어지고 협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조업 수역의 상업적 가치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조업활동의 용이성도 중요하지 만 남북관계의 특수성, 선박안전관리, 해상기상여건, 어획물 양륙항 및 항행 거리 등도 고려되어야 할 요인이다. 다음은 조업선원의 신변보장과 조업선박의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남 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조업수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어로활동 보장과 조업선원의 신변 및 선박의 안전보장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 어업협 력 기본합의서에 기본적인 사항을 명시하고 부속서 또는 별도합의서에 명문 화가 필요하며, 남북어업공동위원회 등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례별로 반드시 명문화 되어야 할 것이다. 조업어선의 안전과 원활한 조업활동을 위해 어선 통과지점설정, 어선통제방안, 어선표기식별방법, 어선과 육지간의 통신대책도 강구되어 야 한다. 그리고 북측이 제의한 어장이나 우리측이 요구하는 어장의 어업자원에 대

259 265 한 자세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본격적인 어업협력사업은 곤란하므로 사 전에 어업자원조사의 실시가 필요하다. 상업적 조업의 선행단계로 시험조업 을 실시하여 조업수역에 대한 경제성 및 조업여건 등을 파악하여야 하며, 시 범조업은 수협중앙회 등이 주관하고 참여업종 및 입어척수는 조업수역이 동 해인 점을 감안, 강원 경북지역 해당업종 어선 중에서 일정척수를 선발하여 실시하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다. < 공동어로 합작사업 방식 > 구 분 주요내용 실현 가능성 비고 북한수역조업방식 북한측의 일정한 경제수역내의 특정화하여 당해 어장내에서 남한측어선의 조업을 허용 하는 방식 남 북장관급 회담 논의 및 일부 추진중 공동어로수역조업 방식 남 북한 양측이 경제수역내의 일정범위를 특정화하여 당해 어장내에서 양측어선의 조 업을 동시에 허용하는 방식 ++ 남한측 이용어 장 없는 실정임 호혜적 특정수역입어방식 남 북한 양측이 호혜적으로 각각 자국 수 역내에 특정수역을 정해 서로 상대방 어선 의 조업을 허용하는 방식 + 남한측 이용가 능 어장없음 입어료지불방식 남 북한 양측이 입어료지불의 조건하에서 상대방 어선의 조업을 허용하는 방식 +++ 남한측 어장없 고 일본이 북한 수역 입어시 사용 고용어로계약방식 자원보유주체로서의 북한이 남한측 어업자 와 어로계약을 체결하여 어로노력에 대한 보수로서 일정금액이나 어획고의 일정비율 을 어획물로써 지불하는 방식 ++++ 유사한 형태로 추진중임 사업내용별 분담을 통한 활성화 방안 남 북 수산분야협력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업내용별 분담을 통하여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먼저, 수산자원의 공동 개발 및 합작사업추진 분야의 경우, 북한 동해수역에서의 감척어선 공여 및 유상입어 등과 같은 수산자원개발, 수산물저장 가공 기술 협력은 민간업자 의 진출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며, 자원개발사업방식의 무상공여, 경제협력 사업 등을 통한 공여감척어선 대북공여는 수산자원 공동개발과 연계하여 생 산자 단체인 수협중앙회를 중심으로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수협중앙회를 중심으로 사업을 조직화하거나 별도의 사업 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개별적인 기업보다도 이들 조직에 대한 정책지원방안을 강구함으로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

260 266 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동해안연어자원개발(치어방류 타당성조사), 수산기술사업, 첨단기 술에 의한 자원공동개발 등은 대학, 연구소 등이 중심, 제3국 공동개척 및 합작생산어획물 직수출 및 국내반입(해외 수출시장 공동개척, 합작수산물 국 내반입) 등은 수협중앙회, KOTRA, 북한 해외무역사업소 등의 협력을 통한 사업추진이 바람직할 것이다. < 남 북 수산분야협력사업의 내용별 추진방안 > 사업내용(안) 주요내용 추진 방법 수산자원의 공동개발 및 합작사업추진 검토 - 북한동해수역의 수산자원개발 (감척어선 공여 및 유상입어 등) - 수산물저장 가공 기술 협력 - 수협중앙회를 중심의 민 간업자 진출 감척어선 대북공여 - 자원개발사업으로 무상공여 - 경제협력사업에 따른 공여 - 수협중앙회 중심 동해안연어자원개발 - 치어방류타당성조사 - 대학, 연구소 수산기술협력 남 북 공동 어로구역 설정 및 공동조업 제3국 공동개척 및 합작생산어획물 직수출 및 국내반입 - 수산기술정보 교환 - 양식기술 공동개발 - 첨단기술에 의한 공동 개발 - 동서해안의 일정한 해역 - 어획대상 및 조업에 과한 제 반 사항 - 해외 수출시장 공동개척 - 합작수산물 국내반입 등 - 대학, 연구소, 수협중앙회 등 - 수협중앙회 및 관계기관 (당국자간 교류협력합의 전제) - 수협중앙회, KOTRA, 북한 해외무역사업소 등 협력 5. 결 론 남 북한간의 수산분야 협력 문제는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 ), 제 5차 남북장관급회담( ), 그리고 제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에서 당국자간에 논의되는 등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러나 지금까지의 대북 수산분야 투자사업은 충분한 당국자간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개별기업 차원에서 북측과 접촉하여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해당 어업인들의 반발에 따른 사업승인 불허, 협력추진 중단, 방북자체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등 사업이 대부분 답보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또한 실질적인 남북한 수산분야 협력이 가능하려면 북측의 수산업부문의 자동화, 현대화 등 의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61 267 그렇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WTO/DDA 수산분야 협상과정 을 살펴 볼 때 북한을 자국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거래를 민족내 부거래로 간주하고 있는 남한이 북한에 대해 지원하는 규모가 커질 경우에 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과의 경제협 력규모가 미미한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남북한간 경제교류가 활 성화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다면 북한의 수산분야를 현대화시키기 위한 남측의 지원은 특정성을 갖는 수산분야 보조 금으로 간주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이 가능 하려면 북측 산업전반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북한 산업에 대 한 지원방안을 강구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수산분야에 대한 대북지원도 이러 한 전반적인 지원방안의 하나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수산분야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협력을 현재와 같이 민 족내부거래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통일단계에 도달하기 이전까 지는 국가간 거래로 간주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 다. 남북간 경제교류 및 협력의 초기단계인 현재는 남북간에 이루어지고 있 는 다양한 교류 및 협력사업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되 지 않겠지만 남북간 교류규모가 일정단계에 달하고 북측의 개방화가 진전되 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비중을 갖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 한 상황에서도 남북간의 경제교류를 단일국가와 민족내의 거래로 간주한다 면 남측에 의해 이루어지는 북측에 대한 지원은 상당부분 보조금지원 및 시 장접근측면에서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간의 경제교류 및 협력에 대한 로드맵을 설정하고 북측 경제 발전 및 개방에 대한 체계적이며 전반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 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지금까지의 사업추진 상황을 살펴보면 북측 수산물 유통시설 의 낙후성을 감안할 때 수산물가공 및 유통업에 대한 대북협력은 신중한 검 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양식업의 경우는 동해안의 가리비 굴 우렁쉥 이 수하식 양식과 서해안의 백합 피조개 가리비 살포식 양식, 그리고 새우 축제식 양식 등에 대한 추진은 검토해 볼만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어선 어업(어로합작사업)의 경우는 북한의 일정한 수역(동해어장) 입어료지불 형 태로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이러한 수산분야의 협력활성화를 위하여 협력주체별 기능분담이 필 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중앙정부차원에서는 협력사업에 관한 제도 마 련, 재정자금 및 운영기금에 대한 문제를 선행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남북어업협력합의서 를 체결하는 한편, 어로활동 보장, 안정조업 및 질서 유지, 어업자료 교환, 어업인 교류, 합영 및 합작사업 등의 논의를 위한 남

262 268 북공동어업위원회 설치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수협중앙회 차원에서는 수 산협력관련 외환 및 행정업무 지원, 협력사업 정보제공 및 조직화, 독자적인 수산협력사업 수행 등이 필요하고, 대기업 및 사업단에서는 대북사업 창구 및 조직내 조정자 역할을, 단위수협 및 개별기업 등에서는 수산기술정보 교 환, 협력사업 세부내용 협의 결정, 다른 협력업체들과 사업수행 협의 등을 통한 역할을 수행하여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사업내용별 추진분담을 통한 방안으로는 수산자원의 공동개발 및 합작사업추진, 감척어선 대북공여, 동해안연어자원개발, 수산기술협력, 남 북공동 어로구역 설정 및 공동조업, 제3국 공동개척 및 합작생산어획물, 직수출 및 국내반입 등도 분야별 각 기관이 분담 및 협력을 통한다면 협력 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수산분야 협력은 생산기간이 짧아 사업추진이 용이하 며 주민접촉이 일부에 국한되는 장점이 있고 상호 실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수산분야 협력시 경제적인 성 과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겠지만, 경제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은 전반적으로 경제기반(인프라)이 열악하기 때문에 초기단계에서는 경제적 이익측면 보다는 동족애 차원에서 협력을 추 진하는 방향의 거시적인 시각 및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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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271 최수영, 북한의 제2경제, 통일연구원,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4차회의, 2001년 4월 5일, 실리가 나지 않는 공정들 을 대담하게 털어 버리고 투자의 효과성을 늘려야 한다. 최영옥, 현시기 우리 당이 제시한 무역정책과 그 정당성, 경제연구, 1997년 제2호, 17쪽 최정윤, 수산업 교류협력을 위한 남북한 공통과제, 남북한 수산협력에 관 한 국제심포지엄 자료, 부경대학교, 통일부, 박성쾌 외, 21세기 통일기반구축을 위한 남북수산협력 방안, 해양수 산부 통계청, 해방 전후 남북경제사회상 비교, 통일부, 남북교역실무, 통일부, 남북장관급회담 실천과제, 통일부, 통일과정에서 본 우리의 대북 정책, 통일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 추진방향, 통일부, 평화와 협력을 향하여, 통일부,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 결과, 통일부, 통일백서. 각년도. 통일연구원, 북한 경제난의 현황과 전망, 통일연구원, 한국수산회, WTO-DDA 협상 자문그룹 제2차 회의자료, 한국수산회, WTO/DDA 수산보조금 협상 전망과 대응방안, 한국정치연구회, 북한정치론, 백산서당, 1990 해양수산부, WTO-DDA 수산분야 관련 각 국 제안서 및 국제기구의 연 구결과, 2002 황의각, 북한경제론 :남북한 경제의 현황과 비교, FAO, The Information on Fisheries North Korea Attachment,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Harmonized Tariff Schedule of United States, WTO, WTO MINISTERIAL CONFERENCE Fourth Session, MININSTER- IAL DECLARATION(WT/MIN(01)/DEC/W/ 1), Doha, 9-14 November 2001 << 인터넷 자료>>

266 273 김일성의 5 25 교시 전후 경제사회적 변화에 관한 연구 송 정 호 (통일연구원) 목 차 요약문 서론 교시와 사회주의 건설 노선의 정립 교시 전후 경제적 변화 교시 전후 사회적 변화 결론: 5 25 교시 전후 변화의 현재적 함의 320 참고문헌 324

267 275 요 약 문 1997년 말 김정일이 당 총비서로 취임한 이후 체제를 정비하고 경제부문 에 대한 현지지도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최 근의 경제적 변화들은 북한의 체제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 다. 역사적으로 현존하였던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를 비교하여 분석하여 볼 때 정치적 차원의 전체주의와 경제적 차원의 중앙집권적 명령경제, 사회적 차원의 개인의 국가에 대한 완전한 종속과 다원주의의 말살은 서로 관련되 어 있어 이러한 특징들의 연계된 이완을 체제적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간 주목받지 못한 1967년의 5 25 교시는 계급투쟁과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 수령 에 대한 극단적 우상화 등을 통해 북한 사회를 극좌( 極 左 ) 체제 로 변화시킨 전환점이었다. 이 교시는 1960년대 중반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의 도입에 의한 반시장적 조정 기제의 심화와 혁명적 대사변 도래 에 따른 전쟁 준비에 의해 뒷받침되었으며, 이는 국가가 개인과 사회를 완전히 제압하여 저항이 소멸되고 탈계급화되는 상태를 가져왔다. 따라서 5 25 교 시를 계기로 수령에 대해 절대복종 과 충성 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교시 당시 소련 동구의 시장적 조정 기제 강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라는 계획화 체계의 정비와 이에 기반한 당 기구 중 심의 경제관리체계 구축은 북한 경제의 침체를 가져온 기원이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적 근대화에 따른 테크노크라트적 합리성을 억제하고 대안적 사고 의 유포를 방지하기 위한 관료들의 대대적인 교체와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 정권의 핵심지지 세력의 강화와 조직화된 통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신분 제적 계층구조의 제도화, 사회적 감시 통제 체계들의 강화, 당-국가의 통일 적인 행동 의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령 우상화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는 이후 서구적 의미의 사회 를 해체시키고 체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다원성이 생성 될 수 있는 근원을 말살시켜 버렸다.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가 형해화되면서 밑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생 존 차원의 시장적 흐름은 북한 체제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위를 불가역적으 로 바꾸어 놓고 있고,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반관료적 조정 기제로서의 성격 을 갖는 과도기적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정치적 통제의 단계적인 이완을 바탕으로 장차 경제적 분권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증대시켜 사회 의 재형성을 유도할 것으로 보이 며, 5 25 교시를 통해 강화된 북한의 왕권적 전체주의 의 성격도 점차 탈색 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268 서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1998년 9월에 제10기 최고인민회의가 개최 되고 공식적으로 김정일 체제가 출범하였다. 이후 2000년에 역사적인 남북정 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 체제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냉전 시기에 확고 히 뿌리내린 김일성의 이른바 수령제 를 기반으로 김정일의 체제가 공식 출 범한 것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김일성 시대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이해에 있 어 수령제 1) 를 핵심 사항으로 지적한다. 즉 북한 체제를 수령제 사회주의 라 는 표현을 통해 설명하며, 수령제가 북한을 다른 사회주의와 구분짓는 특수 성 의 요체이기 때문에 북한 사회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수령제의 형성과 발 전, 변화의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석 들 중에는 시각에 관계없이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이 북한내 모든 사안 을 통제할 수 있고, 모든 인민들을 그들의 의지와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 직일 수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연구들도 많다. 북한에서 이러한 수령제적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 수 령제의 구조는 1950년대 후반 이후 권력 집중과 동원 모델을 통해 급속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이루어갔던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2) 그리고 ) 수령체계는 북한의 설명에 의하면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를 말한다. 수령의 유일적 영 도체계는 수령의 혁명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수행하며 수령의 명령, 지시에 따라 전당, 전국, 전민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게 하는 령도체계 이다. 김민 한봉서, 령도체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5), 79쪽;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 수령체계 에 대한 개념 규정들은 다양하게 나타나나, 문제의 인식방법, 사용하는 핵심 개념과 내용 등이 사실상 동일한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자세한 지적은 박형중, 북한정치 연구, 분 단 반세기 북한 연구사 (서울: 한울, 1999) 참조. 박형중은 수령제의 개념 대신에 린쯔 (Linz)와 스테판(Stepan)이 제시하는 전체주의, 왕조주의(sultanism)의 개념 정의를 바탕 으로 왕조적 전체주의 (totalitarianism-cum-sultanism) 개념을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최근 북한 변화에 대한 분석은 박형중, 북한의 변화 능력과 방향, 속도와 동태 (서 울: 통일연구원, 2001) 참조; 린쯔와 스테판의 개념에 대해서는 Juan J. Linz and Alfred Stepan, Problems of Democratic Transition and Consolidation: Southern Europe, South America, and Post-Communist Europe (Ba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6)의 part Ⅰ 참조. 2) 수령제 확립 시기를 두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제도적 성립 시점과 그를 뒷받침하는 이 데올로기의 형성 시점으로서 1960년대 후반이나 1970년대를 주목한다. 대표적으로 이종 석은 1967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정치 사회 문화 방면에서 대격변이 일어나고 김일성 절대권력이 제도화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북한의 사 회문화적 공간이 이전과는 다른 공간으로 굴절이동 한다고 본다. 이종석, 조선로동당 연 구 (서울: 역사비평사, 1995), 296~315쪽 참조. 이에 대해 김연철은, 기존 논의들이 이데 올로기로서 유일사상의 체계화 시점(1967년 제4기 15차 전원회의), 수령제의 공식적 제도 화 시점(1972년 주석제 신설) 혹은 후계자론의 공식화 시점(1980년 제6차 당대회)을 북한 정치체제 형성의 특징적 계기로 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회주의 산업화의 위기와 정치 체계 형성 사이의 인과관계에 주목하며 수령제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형성되는 시점인

269 278 년대 후반 당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와 5 25 교시 이후에 수령제적 기본골격이 완전히 갖추어지면서 그 특징이 구체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였 다.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갑산파 가 숙청되어 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권 력내 이론( 異 論 )의 여지가 제거되고 5 25 교시 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잠금 장치로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입장이 정립됨으로써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위한 수령 김일성의 절대화와 이를 위한 사회 각 방면의 급격 한 변화가 유도되었다. 북한은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 방법의 모색으로 이후 중국 소련과는 다 른 사회주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5 25 교시를 통한 과도기의 관한 독자적인 입장이었다. 중국이 1970년대 후반부터 실용주의 노선의 채택을 바탕으로 개혁 개방의 길로 접어들어 사회주의 초 급단계론, 유생산력설 등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으로 나아가고, 소련 이 1985년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페레스트로이카 와 글라스노스트 를 외치 면서 근본적 개혁으로 나아간 데 반해, 북한은 독자적인 과도기 이론 아래 사회주의 완전 승리 와 이를 위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 완수를 내걸 고 우리 식 사회주의 의 길로 나아갔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오늘날 김정 일 체제의 기본적인 성격과 특징이 형성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수령제의 구조적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5 25 교시 전후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고찰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간 5 25 교시와 관련한 연구는 주로 북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트의 독재에 관한 소련 중국과의 입장 차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차이 등에 주목하는 것들이었다. 기존 연구들은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에 관한 입장 정립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계속혁명과 계급투쟁에 관한 이론 도출이 기왕에 취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 도입, 상품생산에 가치법칙 에 대한 입장 정립 등과 같은 극단적인 관료적 조정 기제 3) 와 관련하여 어떠 한 정책적 노선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였다. 또한 수령제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있어 5 25 교시를 전후하여 발생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변화들에 대한 주목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북한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5 25 교시를 전후한 여러 가지 변화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권력 상황의 변 동과 그 사유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수령에 대한 절대 복종 과 충성 메커니 즘의 형성 과정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적어도 체제적 변동에 대한 상황적 1950년대 후반에 주목한다. 金 鍊 鐵, 北 韓 의 産 業 化 過 程 과 工 場 管 理 의 政 治 (1953~70) - 수령제 政 治 體 制 의 社 會 經 濟 的 起 源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5~6쪽. 3) 관료적 조정(bureaucratic coordination)에 대해서는 Janos Kornai, The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pp. 91~109 참조.

270 279 배경에 대한 규명과 동시에, 그러한 변화가 어떠한 논리 속에서 포장되었으 며, 그를 전후하여 변화된 사항은 무엇인지 등이 총체적으로 밝혀질 때에 수 령제 작동의 구조적 전모가 파악될 수 있다 교시 와 사회주의 건설 노선의 정립 교시 의 실체와 배경 교시 의 실체 탈북자들은 5 25 교시 4) 를 북한사회를 특이한 형태의 극좌( 極 左 )로 몰아 가는 하나의 전환점 5) 으로 인식하거나, 5 25 교시를 계기로 계급투쟁과 프 로독재의 강화, 수령 우상화의 심화, 인텔리 혁명화를 몰아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극좌적인 바람이 불어닥쳤다 6) 고 증언한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5 25 교시란 1967년 5월 25일에 김일성이 당사상사업 부문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즉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 제에 대하여 7) 를 말한다. 황장엽은 1966년 김일성종합대 창립 20돌 기념논문집에서 과도기 문제를 다룬 사회발전의 동력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 데, 이에 대해 당시 당 조 직부장인 김영주와 중앙당학교 교장인 양형섭이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약화시키는 반당적 수정주의 글 이라고 김일성에게 보고하였고, 이에 4) 북한을 연구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숫자를 보게 되는데, 이런 숫자들은 대개 세 가지 의 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나 현지지도 날짜에 대한 기념일, 둘째, 해당 단위의 창립 준공 기념일, 셋째,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하나의 표상(예를 들어, 1982 년 4월 제막된 주체사상탑의 높이 등) 등을 나타낸다. 김일성의 교시 는 단순히 이데올로 기적 선전과 선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교시의 주요한 기능이 북한주민들에 대한 충성 심 제고와 국가정책 동원이기는 하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적 교육적 기능 도 담당한다. 체제 운영의 방향을 제시하여 관료들과 북한주민들에게 수용하도록 하는 기 능도 하고, 정책 변화와 당면 과제 제시 등 정보 전달의 기능도 한다. 그리고 관료들의 정책집행과정에서의 결함과 태도에 대한 비판 및 그에 대한 시정 방법 등을 제시하는 기 능도 한다. 5)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서울: 한울, 1999), 148쪽. 6) 성혜랑, 등나무집 (서울: 지식나라, 2000), 312~313쪽. 7) 김일성,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당사 상사업부문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67년 5월 25일), 김일성저작집 21 (평양: 조선로동 당출판사, 1983), 259~276쪽; 이전 1967년 1월에도 과도기에 관한 기본 입장을 밝힌다. 김일성, 교원들을 혁명화하며 학생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과학교육부문일군협의회 에서 한 연설, 1967년 1월 27일), 김일성저작집 21, 89~90쪽.

271 280 대해 김일성이 이론의 대가인 것처럼 자처하면서 결론을 내린 것이 5 25 교시라고 증언한다. 8) 성혜랑은 1967년 5월 4~8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4 기 15차 전원회의를 5 25 교시가 나온 회의로 기억하면서 이것이 갑산파의 숙청과 중앙당 엘리트의 숙청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9) 그간 국내의 많은 연구들은 수령제 형성의 계기로 당 중앙위원회 4기 15 차 전원회의에 주목해 왔다. 이 전원회의는 김일성이 일명 갑산파 로 명명되 는 세력에 대한 제거 10) 를 당의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확정짓는 회의였다. 갑 산파 사건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영향과 우상화 분위기의 고조, 경제 국방 병진노선에 따른 빨치산파의 약진과 당료파의 위기, 김영주의 부상과 김일성 의 후계를 둘러싼 불만 등이 당시 북한이 처한 경제적 안보적 요인과 복합 적으로 결합하면서 김일성에게 권력을 고도로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11) 이러 8)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147~148쪽. 황장엽은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김일 성이 자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 회복의 발언을 하였다고 증언한다. 같은 책, 163쪽. 9) 성혜랑은 5 25 교시를 1956년 8월 전원회의 다음으로 더없이 무서운 추억 으로 기억하 였다. 성혜랑, 등나무집, 312쪽. 이 회의 전후의 상황 재구성에 대해서는 이종석, 조선 로동당 연구, 303~311쪽, 탈북자의 증언에 대해서는 申 敬 完, 곁에서 본 金 正 日 ( 上 ), 월간중앙 (1991년 6월호), 396~399쪽 참조. 10) 북한의 갑산파의 숙청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은 갑산파들이 당의 혁명전통 을 헐뜯고 당 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당 정책 교육과 혁명전통 교육을 방해하였으며, 당 안에 온갖 반당반혁명 사상을 유포하였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첫 째, 김일성의 혁명사상 반대와 김일성의 권위와 위신 훼손, 둘째, 당의 혁명전통 훼손 및 혁명전통 교육 약화, 셋째, 자립적 민족경제노선과 경제 국방 병진 노선에 대한 반대, 넷 째, 대안의 사업체계에 대한 문제제기, 다섯째, 높은 경제발전 속도에 대한 반대, 여섯째, 천리마운동에 대한 반대, 일곱째, 일당백 의 구호 반대, 여덟째, 우경기회주의적 과도 기론 등 사상이론분야에서 부르주아 수정주의 사상 유포, 아홉째, 가치법칙 활용과 물질 적 자극 강화 등 자본주의적 방법의 도입, 열째, 10개년계획 등 사회주의애국주의 교 육 왜곡과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유포를 통한 청년들의 타락 유도 등이었다. 김정일, 반 당반혁명분자들의 사상여독을 뿌리빼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울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6월 15일), 김정일선집 1 (평양: 조 선로동당출판사, 1992), 232~236쪽; 김정일,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 의 전통 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1982년 10월 17일), 김정일선집 7 (평양: 조선로동 당출판사, 1996), 263~264쪽;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위대한 령도자 김정 일장군 략력 (평양: 평양출판사, 1996), 42~44쪽;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조선로동당 력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1), 430~431쪽;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조선로동당 략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599쪽; 사회과학원 력 사연구소, 조선전사 31 (평양: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1982), 27~28쪽. 11) 당시 김일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구조적 상황적 조건을 살펴보면, 첫째, 중 소의 이 념분쟁 등 사회주의권의 분열, 베트남전쟁의 발발, 남한의 군사쿠데타에 의한 군부정권 등장과 뒤이은 한 미 일 삼각동맹의 성립 등 동북아정세의 변화 등 외부적 환경의 변 화를 들 수 있다. 둘째, 계획체제 자체의 모순과 북한의 강행성장 전략의 지속으로부터 비롯되는 불균형의 심화와 자원 분배의 왜곡, 그로 인한 각급 단위의 조직 이기주의의 심화 등 경제적 문제점의 확대와 동시에 사회주의권으로부터의 원조의 중단, 경제 국방 병진 노선 및 4대 군사노선의 선택, 혁명적 대사변의 도래 준비 등 안보적 요인에 의한 경제적 혼란의 가중 등의 경제적 조건을 들 수 있다. 셋째, 지도부의 계획집행 규율의 강 화 시도와 계획화 체계의 변화 및 주민들의 사상적 동원을 내세운 속도 의 강조, 중간관

272 281 한 갈등은 형식상 경제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났다. 갑산파들은 김일성 의 중공업 우선 노선을 반대하면서 경제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고 경제는 테 크노크라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수재론 12) 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 은 1967년 2월 말 한 정치위원회에서 간부 임명 및 배치 문제를 두고 폭발 하였다. 13) 이 회의 직후 김일성은 빨치산파와 갑산파 제거를 논의하고 김영 주로 하여금 갑산파 인물들에 대한 비행과 죄상을 파악하도록 하였다. 14) 이 를 바탕으로 갑산파 숙청을 확정짓기 위해 이 전원회의가 개최되었다. 김일 성이 이미 과도기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고 갑산파의 배치 문제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아 이 전원회의 이전, 적어도 제2차 당대표자회 이후에는 갑산 파에 대한 청산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도기에 관한 5 25 교시는 이러한 숙청에 대한 반발을 제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인 자물쇠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시는 사회주의 건설 의 임무와 방향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당시 북한 지도부가 취한 노 선과 정책들을 합리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 으로부터 고도로 권력을 집중해 가면서 사회 전체를 재편해 가는 과정에 대 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것이다. 김일성으로서는 우선 적으로 갑산파들이 천리마운동을 방해하고 수정주의적 경제이론을 유포하여 료층의 집행 규율에 대한 무시의 노골화와 불만 고조, 정책 효율성에 대한 회의 증대와 속도 완화 주장, 지도부의 정책에 대한 지식인 관료들의 이론 제기 및 민주주의와 자유 의 확대 주장, 일반주민들의 피로도 증대와 더 많은 빵 의 요구 등의 상황적 조건을 들 수 있다. 넷째, 전쟁과 사회주의적 개조를 토대로 한 신분적 계층구조의 제도화와 그에 따른 핵심지지세력과 사회적 소외세력의 고착화, 강행적 성장 모델과 계획체제에 의한 권위주의적 구조의 강화와 김일성의 카리스마적 존재 및 사회적 우상숭배 분위기의 고조 등 사회적 조건을 들 수 있다. 다섯째, 공업화 노선의 등장에 따른 테크노크라트들의 약 진과 안보적 요인의 변화 및 경제 국방 건설 병진 노선에 따른 군부세력의 부상에 따른 대립전선 형성, 후계문제의 등장과 김정일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등의 권력구조적 조건 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일성의 항일 전쟁의 경험, 대중에 대한 신뢰, 가부 장적 의식구조와 김정일에 대한 애정 등 김일성의 퍼스낼러티와 관련한 개인적 조건을 들 수 있다. 12) 수재론 에 대한 김일성의 언급은 김일성, 당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 결정을 관철할 데 대하여(도, 시, 군 및 공장당책임비서협의회에서 한 연설, 1967년 3월 17~24일), 김 일성저작집 21, 231쪽; 김일성, 학생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참된 후비대로 교 육교양하자(교육부문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68년 3월 14일), 김일성저작집 2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59쪽. 13) 이 회의에서 허석선의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김일성과 리효순의 언쟁에 대해서 는 申 敬 完, 곁에서 본 金 正 日 ( 上 ), 397~398쪽. 14) 이명례는 이러한 노선 갈등이 1967년 3월 3~8일 열린 개최된 조선인민군 정치일군회의 에서 일단 수습 정리되었다고 본다. 李 明 禮, 1960 年 代 南 北 韓 關 係 의 變 化 와 性 格 ( 淑 明 女 子 大 學 敎 史 學 科 博 士 學 位 論 文, 2000), 137쪽; 이 회의 개최 사실에 대해서는 로동신 문, 1967년 3월 9일자와 조선중앙년감 1968 (평양: 조선중앙통신사, 1968, 128쪽 참조. 그러나 이 정치일군회의의 개최는 인민군 각급 부대와 연합부대의 다수 정치일군이 참가 한 성격으로 보아 갑산파 숙청에 대한 군대내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 다.

273 282 높은 속도로 전진하는 경제발전을 막아보려고 하였다는 죄목에 대해서 이 론적 잣대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5 25 교시에 따라 이전 시기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정책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주로 수령 의 의지와 지시를 전 사회 구성원으 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시도하는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대책들이 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계속혁명 과 계급투쟁 의 강화의 방향으 로 수령의 절대화를 시도하는 좌경적 노선이 추진되었다. 15) 교시 의 배경 황장엽의 논문 발표 이전에 이미 사회주의 건설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쟁, 특히 경제운용에 관한 논쟁이 상당히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6) 이는 당 연히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당시 일부 사람들은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사로잡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사 업에 지장을 주고 있던 조건에서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요구로 나섰 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위업이 지장을 주고 있던 조건 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 이라고 평가하였다. 17) 김일성의 지적에 의하면, 일부 사람 들은 1967년 당시 과도기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논문을 쓴 거의 대부분의 학자 관료들이었다. 김일성은 많은 학자들의 의견서를 보아도 그렇고 일부 동무들의 론문을 읽어보아도 그렇고 모든 동무들이 거의 다 고전의 명제들을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대주의적 편향에 빠져 우리 당이 생각하는 것과는 판판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나 간다고 비판하였다. 18) 15)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이상적 목 표를 설정하고 내 외부의 적대세력에 맞서 체제안보와 경제발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발현되는 원리와 원칙은 이상사회의 건설을 추구함에 있 어 준수되어야 할 원리와 원칙과 많은 경우 모순관계에 놓였다. 현실적 목표와 이상사회 건설의 문제를 두고 1967년 전후의 변화를 소련형의 물질적 유인의 강화 우선도, 모택동 의 사상적 요새 의 절대화도 거부하는 중도적 노선의 선택이라고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본 논문은 북한의 선택이 중국 소련의 중간적 입장에서 중도 가 아니라 좌경적 선택이 었다고 보며, 이러한 선택을 당시 북한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서 필연적 이었다는 지나친 역사상황론적 접근 을 경계한다. 16) 김정일은 황장엽의 논문이 나오기 이전인 1966년 6월에 오늘 프로레타리아독재와 과도 기 문제가 리론실천적으로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으나 적지 않은 일군들이 고전의 명제에 매달리다보니 그것을 주체적으로 옳게 풀지 못하고 있 다고 지적하였다. 김정일, 교육사 업을 개선하여 유능한 민족간부를 키워내자(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원들과 한 담화, 1966년 6월 17), 김정일선집 1, 156쪽. 17)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조선전사 31, 39쪽. 18) 김일성,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 260 쪽; 아울러 5 25 교시의 배경이 되는 논문에 대한 비판은 김일성, 우리의 인테리들은

274 283 김일성은 당의 의지를 통일시키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지식인들에 대한 혁명화 를 생각하고 있었고, 19) 이는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라는 당 대표자회의 방침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과도기의 문 제가 유일사상체계 의 확립에 있어 중대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일성은 당 의 유일사상체계 의 확립에 대해 모두가 우리 당의 정책으로 튼튼히 무장 하고 당의 유일사상 밖에는 그 어떤 다른 사상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20)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집권층이 유일사상 이 외의 다른 사상의 수용 때문에 지도부의 지시와 명령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 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는 당시 김일성의 이론적인 권위 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한 연구소(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경제전문지( 경제연구 )에는 19 61~1966년 기간 동안 김일성의 노작 에 대한 해설이 단 한 편도 실려있지 않다 교시 직후인 1967년 제2호에 가서 처음으로 김일성동지의 로작 모든 것은 전후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 에 대하여 라는 해설이 나왔 고, 4호에 가서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 회의에서 발표한 김일성의 연설이 처음으로 실렸다. 이전에는 고전해제와 강좌라는 형식으로 주로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이 해설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주제, 즉 사회주의 사 회에서의 상품생산과 가치법칙 문제, 속도와 균형 문제, 물질적 자극의 활용 문제 등의 범위와 한계와 관련한 5 25 교시에 관한 해설이 당시 공식문헌 에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67년 이후의 다른 교시와는 다 르게 이 교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당 공식잡지( 근로자 )에서조차 찾 아볼 수가 없다. 여기에는 1970년도 5호에 가서야 처음으로 이 교시가 소개 되었다. 이는 당시 중 소의 이념적 논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황장엽은 김일성이 과도기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이론적 권 위를 높여갔다고 주장한다. 즉 당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김정 일이 김영주와 황장엽의 대립을 김일성의 이론적 권위 제고와 김일성 측근 당과 로동계급과 인민에게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함흥시 대학교원들앞에서 한 연 설, 1967년 6월 19일), 김일성저작집 21, 288쪽 참조. 김일성은 이 논문을 쓴 사람을 조립식 박사라고 비판하였다; 김일성이 황장엽을 조립식 박사 라고 비판하였다는 증언은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156쪽. 19) 고등교육성, 보통교육성, 과학원, 대학을 비롯한 인테리집단 속에 소부르죠아사상이 많습 니다. 이번 회의를 통하여 나는 우리의 인테리집단을 혁명화하여야 하겠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김일성, 고등교육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고등교육성당총회에서 한 연설, 1965년 2월 23일), 김일성저작집 19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192쪽. 20) 김일성, 혁명가유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뜻을 이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 (창립 스무돐을 맞는 만경대혁명학원 교직원, 학생 및 졸업생들 앞에서 한 연설, 1967년 10월 11일), 김일성저작집 21, 424쪽.

275 284 들에 대한 견제에 이용하였고, 김일성은 모임 때마다 황장엽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이 대립된 두 이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음을 과시하였다고 설 명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관료들이 당의 지시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집행하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관료들의 지시를 떠받드는 가 족주의, 지방주의, 종파주의가 생겨났다는 김일성의 지적이다. 자신의 지시와 명령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권력 집 중과 통제체제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이는 김일성이 직면 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구조적 상황적 조건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교시 의 내용 과도기 과도기 및 이것과 표리관계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관한 이론은 실천상의 제 문제와 더불어 사회주의의 여러 분파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21)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문제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와 발전단계 규정, 사회주의로의 이행 형태 및 방법에 대한 규정,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노선과 정책 설정 등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과도기의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던 북한 현실을 두고 벌 어졌던 여러 논의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고, 갑산파에 대한 숙청을 계기로 김 일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노선을 합리화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주었 다. 특히 과도기에 관한 입장 정립은 당시 논쟁되고 있었던 물질적 인센티브 의 활용 문제,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 문제 등을 종식시키는 데 기준으로 작용함으로써 중공업 우선 노선을 둘러싼 당내 논쟁 22) 을 해결하고 당의 유 21) 19세기 이래로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 독일사회민주당 내의 좌파와 우파와 중앙파, 러시 아의 볼세비키와 멘세비키, 스탈린과 트로츠키, 소련 공산주의와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 서구 공산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의 사이를 각각 갈라놓은 중 요한 이데올로기적 요인의 하나였다. 梁 好 民,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론, 양호민 외, 북한사회의 재인식 1 (서울: 한울, 1987), 89쪽 22) 김정일은 지금 국제적으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문제와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 문제,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주 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문제들을 놓고 많은 론쟁이 벌어지고 있으 며 여기에서 이러저러한 편향이 나타나고 있 고 북한의 사회과학자들 속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론의되고 있 다고 지적하였다. 김정일,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 일군들과

276 285 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데 작용하였다. 당시 논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이미 남로당 숙청이나 8월 종파사건 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모든 당사자들의 운명 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된 것이었다. 김일성은 과도기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을 밝힘으로써 당시 시장적 요소의 도입을 통해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고자 하는 소련식의 개혁 논의에 대한 일 단의 주장을 제압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3) 즉 새로운 계획화 방법론 의 도입을 통해 계획의 세부화 체계 24) 를 확고히 하고 가치법칙의 형태적 이 용론을 내세워 사회주의 사회 하에서의 상품생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함으로 써 이후 유사한 수정주의적 요소 의 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였던 보인다. 북한의 공식 입장은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의하여 기본적인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제가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인민적 소유 와 협동 적(집단적) 소유 의 차이와 도시와 농촌, 농민과 노동자, 육체노동과 정신노 동 사이의 차이가 남아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노동의 차이가 존재하고 노동자의 물질적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두 가지 소유를 전제로 한 가치 범주의 활용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소련의 수정주의 이론은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는 적대계급이 존재 하고 계급투쟁이 행해지지만, 사회주의가 승리하여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가 확립되고 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을 낳는 원인이 일소되면 사정이 바뀌 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완전하게 최종 승리를 거둔 소련 한 담화, 1967년 6월 13일), 김정일선집 1, 219쪽. 23) 당 안에 잠입한 반당 수정주의 분자들은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리벨만리 론 을 넘겨다보면서 그것을 끌어들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이 자들은 경제가 발 전하고 그 규모가 커지는 데 따라 증산예비가 점점 적어진다 느니, 생산은 사회주의 적으로 하고 관리는 자본주의적으로 하여야 한다 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류포시 키면서 생산장성속도를 늦추려 하였으며 심지어 가치법칙적용연구그루빠 를 조직하여 가지고 공장, 기업소들에 나가 물질적 자극을 위주로 하는 기업관리방법을 받아들이려고 까지 시도하였다. 이 시기 당 안에 나타난 반당 수정주의 분자들은 현대 수정주의자들 의 책동에 추종하면서 우리 당의 사회주의 경제관리체계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해 나섰다. 그 자들의 반혁명적 책동은 생산장성의 속도를 늦추려고 하는 데 서 표현되었다. 이 시기 반당 수정주의 분자들은 생산장성 속도를 늦추려고 책동하였을 뿐 아니라 가치법칙을 무원칙하게 리용하여 기업관리에 자본주의적 방법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하였다. 당시 황해제철소와 그밖의 몇 개 공장들에서는 수정주의에 물젖은 어느 한 일군의 지시 밑에 가화페 제도가 도입되고 있었다. 조선로동당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15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9), 177~183쪽. 24) 북한은 1차 7개년계획을 짜면서 애초에 전반기 3년은 경공업과 농촌경리를 강화를 통한 인민생활 향상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고, 하반기 4년은 이를 토대로 중공업 육성에 힘쓰 기로 하였다.(김일성, 조선인민의 민족적명절 8.15해방 15돐경축대회에서 한 보고, 1960 년 8월 14일), 김일성저작집 1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 224쪽) 그러나 전반기 3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경제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김일성은 무엇보다도 계획이 제대 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러한 혼란이 발생하였다고 인식하였다.

277 286 사회에는 더 이상 계급투쟁의 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를 필요로 하는 조건이 소멸되어 전 인민의 국가로 성장 전화한다고 주장하 였다. 이러한 이론은 북한내 경제관료들과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견해는 과도기를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 및 사회주의 제도 의 수립까지의 기간으로 단정하고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면 과도기가 끝난 다고 보는 소련의 견해나 과도기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사 회주의의 전 단계를 포괄하는 기간으로서 파악하는 중국의 견해와 달랐다. 25) 김일성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때로부터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가 실 현될 때까지를 과도기로 설정하였다. 26) 따라서 김일성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면 자본주의로부터 사 회주의에로의 과도기가 끝난다는 견해는 단호히 수정주의적 이론일 수밖에 없었다. 과도기가 끝났다고 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 계급투쟁이 필요 없게 됨으로써 민주화와 자유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노동의 차이나 소 유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과도기적 특성이 무시됨으로써 기업관리의 자유 화와 경제관리의 분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 다.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계속혁명론을 부정하는 것이며 인민정권의 독재기 능을 약화시키고 인민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27)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5 25 교시를 통해 제시된 김일성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견해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수정주의자 들의 민주주의 확대 희망에 대해 쐐기 를 박고자 하는 것이었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당시 북한이 직면한 문제 해 결을 위한 체제의 경직성을 유연화하고자 하는 요구가 있었으며, 이는 소 련 동구권의 변화로부터도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 갑산파를 중심으로 일단의 세력들이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인 민경제 우선 정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장 기업소의 관리에 있어서 지배인 25) 김일성은 북한에서의 이러한 견해를 좌 우경 기회주의로 비판하였다. 김일성, 자본주의 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 263~266쪽. 26)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첫째, 적대계급의 준동과 낡은 사상 의 부식 작용 제거와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완수, 둘째, 전인민적 소유로의 단일한 공유 제의 완성과 노동자계급의 차이 제거, 셋째,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술적 토대 마련을 통 한 발달한 자본주의 수준으로의 생산력 향상과 중간계급 수준 이상으로의 노동자의 물질 적 문화적 생활수준 제고 여부였다.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 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 국창건 스무돐기념 경축대회에서 한 보고, 1968년 9월 7일), 김일성저작집 22, 445쪽. 27) 김정일,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 235쪽.

278 287 의 역할을 높이고 당 기구의 역할 축소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대안의 사업 체계 와 청산리 방법 을 부인하는 주장이었고, 민주주의 나 자유화 의 요구 는 당 독재의 약화와 김일성의 개인권력 축소를 의미하였다. 김일성의 답변 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강화와 그에 따른 계급투쟁의 강화였다. 이에 따 라 5 25 교시의 영향이 지방 말단에까지 파급되어 1968년도 중순 경에는 중견 지방간부직의 약 2/3가 공석일 정도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되었다. 28) 김일성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관한 입장의 특징은 과도기와 분리하 여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과도기의 전 기 간뿐만 아니라 세계혁명이 완수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남아 있 는 조건에서는 한 나라 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였다고 하더 라도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29) 이러한 북 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관한 견해는 사회주의 제도의 수립 및 과도 기의 종료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전 인민의 국가로 바뀐다는 소련의 견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이르는 전 기간에 걸쳐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중국의 견해와 차이가 있었다. 또한 김일성은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위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프롤레타 리아트의 독재를 강화하여 한편으로는 계급투쟁을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 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적대분자 들에 대한 독재를 강화하고 사상혁명을 강화하여 전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 급화하는 한편, 경제사업을 동시에 잘해 나가야만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에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점령하여야 할 두 요새 인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30) 이는 지식인들이 인텔리들의 역할 강화 를 주장하면서 자유화 나 민주주 의적 발전 에 대해 요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김일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유화 와 민주주의 의 요구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31) 김일 28) 김현식 손광주, 다큐멘터리 金 正 日 (서울: 천지미디어, 1997), 60쪽. 29) 김일성,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 27 1~272쪽 30)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주의, 공산 주의 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 445~446쪽.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측면만을 일면적으로 중시하여 계급투쟁, 그 중에서도 사상혁명에 의한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우익적 편향이고, 계급투쟁 사상혁명만을 강조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경시하는 것은 좌익적 편향이라고 비판하였다. 31) 김일성, 학생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참된 후비대로 교육교양하자, 47쪽; 김일 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스무돐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하여(상 및 당중앙위원회 지도원 이상 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68년 4월 16일), 김일성저작집 22, 189쪽; 김일 성, 사회주의경제의 몇가지 리론문제에 대하여(과학교육부문일군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 한 대답, 1969년 3월 1일), 김일성저작집 23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451쪽; 김 일성, 국가재산을 애호절약하며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

279 288 성은 적대적 요소가 있고 낡은 사상 잔재가 남아 있으며 계급투쟁이 계속 된다는 것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른바 민주주의 를 실시하고 자유 를 준다면 그것은 엄중한 우경적 오유를 범하는 것으로 될 것 32) 이 라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는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기능이 점차 없어진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확대할 것을 갈망하는 지식인들의 희망 33) 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2.3 과도기와 경제이론 과도기와 상품생산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면 과도기가 끝나고 계급투쟁이 없어지며 프롤레 타리아트의 독재의 기능이 점차 없어진다는 소련식의 인식은 상품 화폐 관 계에 관한 이론의 취급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즉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하에서는 생산수단이 사회주의적 소유로 되어 있으므로 시장적 요소가 도입 되어도 계획성이 무너질 염려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이론 하에 소련에서는 계획성의 원칙과 시장성의 원칙의 양립이라는 주장조차 제 창되었고 그 영향하에서 경제정책 변화가 유도되었다. 그 결과, 중앙집권적, 현물계획적, 행정명령적인 방법 이 비판되고 계획과 시장의 결합, 하부 단 위에서의 창조적인 주도 를 중시하는 소위 지방분권적, 가격계획적, 물질자극 적인 시장형 사회주의 의 정식화가 모색되었다. 현실 사회주의는 발전한 자본주의의 단일한 공유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는 이유로 사회주의 생산의 상품성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특히 1940년 대 이후 사회주의 사회에 생산물의 상품형태가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논쟁이 발생하였다. 스탈린은 1952년에 자신의 유작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에 서 상품생산이 두 가지 소유 형태에서 연유하고 국유 부문 내에서 거래되는 생산수단은 상품의 외피를 쓴 것에 지나지 않으며, 상품형태로 잔존하는 것 은 소비재에 국한된다는 전제하에 제한된 가치법칙 의 활용을 주장하였다. 회 제4기 제19차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69년 6월 30일), 김일성저작집 24 (평양: 조 선로동당출판사, 1983), 10쪽;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윈회 사업총 화보고(1970년 11월 2일), 김일성저작집 24, 263~264쪽; 김정일, 혁명가유자녀들은 수 령님을 정치사상적으로 옹호보위하는 친위 전사가 되여야 한다(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한 혁명가유자녀들과 한 담화, 1967년 10월 12일), 김정일선집 1, 320쪽. 32)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주의, 공산 주의 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 448쪽. 33)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148쪽.

280 289 그리고 두 개의 소유제 사이의 상품 유통을 생산물 교환으로 바꾸어 가고 고도의 공산주의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상품 화폐관계는 폐지된다고 설명하 였다. 스탈린 사후에는 논의가 더욱 적극화되어 사회주의에서의 상품생산이 소 비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에까지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 다. 즉 소유의 두 가지 형태론 이 아니라 물질적 관심과 그를 자극하는 분배 체계의 측면에서 상품 화폐의 관계를 재인식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 을 수용하면 전 인민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 사이의 교환에서 상품적 형태를 취하는 것이 사회주의 경제발전에 부합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하에서는 생산수단이 사회주의적 소유이므로 시장적 요소를 도 입하여도 계획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는 계획 성의 원칙과 시장성의 원칙이 양립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과도기에 관한 입장 차이는 근원적으로 사회주의 사회 하에 서의 상품생산과 그와 관련한 가치법칙의 취급 방식에서 직접적으로 연유하 는 것이었다. 과도기가 어디서 종결되는가에 대한 이론에 따라 사회주의 사 회에서의 상품생산에 대한 입장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 경제적 문제에 대한 처방과 직결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에 대한 입장을 1969년에 한 논문 34) 에서 정리하였다. 우선 그 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생산은 자본가가 없는 상품생산이며 따라서 가치법칙도 제한된 범위에서 작용하며 국가가 경제관리를 잘하기 위한 경 제적 공간으로서 계획적으로 리용 한다고 설명하였다. 35) 이는 사회주의 사회 에서의 생산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며, 가치법칙도 국가가 의식적으로 이 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6) 이러한 입장은 스탈린의 특수상 품생산설 이나 제한된 가치법칙론 에 가까웠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상품생산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하여는 소유의 두 가지 형태론에 기초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상품 화폐관계가 있게 되는 것도 사회적 분업이 있고 생산물에 대한 서로 다른 소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분업과 소유의 분화가 상품생산의 조건이므로 협동적 소유의 전 인민적 소유로의 전환은 상품생산 소멸의 결 정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이었다. 34) 김일성, 사회주의경제의 몇가지 리론문제에 대하여. 이 논문에서는 첫째, 사회주의 사회 에 있어서 경제의 규모와 생산 발전 속도의 상관 관계, 둘째, 생산수단의 상품적 형태 및 가치법칙의 이용, 셋째, 농민시장과 그에 없애는 방법에 관한 문제 등 세 가지 주제를 다 루었다. 35) 김일성, 사회주의경제의 몇가지 리론문제에 대하여(과학교육부문일군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1969년 3월 1일), 454~455쪽. 36) 사회주의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생산의 조절자로 되지 못하며 국가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리용된다. 근로자 ( ), 37쪽.

281 290 그러나 김일성은 사회주의 사회의 상품생산 작용 범위를 소비물자에 한정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하였다. 그는 생산수단의 상 품성 여부를 소유권에 따라 설명하였다. 즉 국가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간, 협동적 소유 상호간, 국가적 소유간 교환되는 생산수단은 상품이지만 국가적 소유간 교환은 기본적으로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국영부문의 생산수단 은 계획에 따라 교환되는 상품적 형태를 가지고 여기에서는 가치법칙도 상 품생산에서처럼 내용적으로가 아니라 형태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하였다. 국 가적 소유간 교환이 상품적 형태를 띠는 것은 국영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수단을 이용 관리 경영하는 데 있어서 서로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생산수단을 등가보상의 원칙에서 사회적 필요노동의 지출에 기 초하여 국가가 정한 값에 따라 교환하여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등가 계산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직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국가재산을 자 기의 소유처럼 책임적으로 애호관리하는 높은 집단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기관 지방 본위주의 가 심하여 다른 국가기관이나 기업소의 일을 자기 일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법칙은 계획경제체제 하에서는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 였다. 김일성은 고유한 의미에서의 가치법칙의 작용을 리용하는 것이 아니 라 가치법칙을 형태적으로 리용하며 생산수단의 생산 및 교환에서는 가치가 아니라 가치형태를 다만 경제계산의 도구로 리용하는 것 이라는 점을 분명 히 하였다. 37) 이러한 맥락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가치법칙을 이용하는 것보다도 세부 계획화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김일성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부진 원인을 세부 계획화를 잘 하지 못 하는 데서 찾았다. 즉 수익성만 따지면서 리윤 본위로 생산을 하던 나머지 확대재생산을 위한 공장건설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경제적 효과성이 빨리 나 타나 투자한 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고 보다 많은 리윤을 얻을 수 있는 공장건설만 하려 하기 때문 38) 이라는 언급하였다. 37) 생산수단이 가격공간을 활용하고 형태적으로 가치법칙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내용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설명은 이정철, 경제발전론 재론: 1960년대 경제조정기제의 변화를 중심으로, 현대북한연구, 5권 1호 (2002), 76~77쪽의 각주 53) 참조. 38)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당중앙위원회 부장, 도당책임비 서들 앞에서 한 연설, 1969년 3월 3일), 김일성저작집 23, 482쪽.

282 속도와 균형 북한은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료한 이후 스탈린식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개 발계획을 채택함으로써 짧은 기간에 자립적 경제의 기반을 건설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공업화를 이룩하기 위해 중공업에 투자를 강화하였으며, 경 제 국방의 병진 건설의 기치 하에 거대한 군산복합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속도를 달성하기 위한 원자재 공급의 균형 을 보장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게 평가된 농업과 경공업이 희생되었으며, 실물 생산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사회간접자본 분야의 균형 성장이 저해 되었다. 39) 그러나 계획체제라는 특성상 균형적 발전이라는 대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은 항상 균형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계획기간 사이에 조정 기, 완충기를 반복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균형을 강조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40) 그러나 경제의 균형은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를 보장하는 수단 으 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균형은 인민 대중의 지속적인 동원과 계획의 완벽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미 1969년 이전에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가 과도기인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민들의 정치사상적 각성에 의한 예비 창출 때문에 합법칙적이며, 이는 인민경제의 계획적 균형적 발전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하였다. 김일성 은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만일 경제발전에서 계획성과 균형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많은 자재와 자금, 로력의 랑비를 가져오게 되며 일시적으로 개별 적 부문에서 높은 발전속도를 이룩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전반적인 경제발전 이 늦어지지 않을 수 없 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계획성과 균형성은 그 자 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발전속도를 이룩하기 위한 수단 이며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대중의 창조력에 의 거하여 인민경제에 숨어 있는 예비와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모든 부문을 다같이 높은 속도로 발전시키는 것 이라고 설명하였다. 41)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을 접어들면서 경제발전의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이 경제관료들로부터 제기되었다. 42)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자원 배분상의 불균형 39) 오승렬, 북한경제의 변화: 이론과 정책, 7~8쪽; 1950년대 중반 논쟁 속에서 정리된 강 제저축에 의한 급격한 자본 축적, 집중적인 중공업 투자, 농 공업에 대한 국가소유 부문 과 통제의 확대, 시장의 대체와 계획종속, 대외관계의 자급자족화(autarky), 소비에 대한 극단적 통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소비에트식 강행성장(forced growth) 모델에 대한 목적 론적(teleological) 지향은 고스란히 북한 체제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이정철, 북한의 경 제발전론 재론, 47~48쪽 참조. 40) 위의 글, 58~59쪽. 41)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1961년 9월 11일), 김일 성저작집 15, 200~201쪽.

283 292 을 시정하고 시장적 요소의 도입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 이었다. 따라서 이는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 여부를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방침의 실현 여부로 보는 김일성의 입장 43) 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 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업이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예비가 적어지며 따라서 공업생산의 높은 발전속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그릇된 리론 44) 을 수 정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이론이라고 못박으면서 생산자 대중에게서 예 비 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45) 이에 따라 제1차 7개년계획이 3년 연장 된 상황에서 인민대중의 더 많은 동원을 통해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 를 일 으켜보려는 김일성에게 있어 생산계획숫자까지 줄여가며 46) 속도를 늦추려 하였던 갑산파와 같은 수정주의자들의 제거는 불가피하였다. 요컨대 김일성은 대중의 힘을 의거하여 동원을 극대화하여 계획화를 완벽 하게 이루어낸다면 경제는 빨리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부문간 균형이 나 소비와 축적간의 거시 균형뿐만 아니라 부문 내부의 세부 균형을 이루고 자 1964~65년에 구체화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 에 따라 형식논리상 경제를 높은 속도로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장적 요소의 도 입을 통해 부문 내부의 세부 균형을 시도하고자 하는 여타 사회주의 조치는 당연히 수정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물질적 인센티브 김일성은 물질적 자극 문제를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다음 새롭게 제기 되는 문제로서 사회주의의 과도기적 성격과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즉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낡은 사상 잔재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힘든 일과 쉬운 일의 차이도 남아 있기 때문 42) 몇 해 전에 우리의 일부 경제지도일군들은 경제의 규모가 커진 조건에서 지난날처럼 공 업의 높은 장성속도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획을 좀 낮추자고 하였습니다. 김일 성, 청년들은 우리 혁명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선봉대가 되자(전국청년총동원대회에서 한 연설, 1968년 4월 13일), 김일성저작집 22, 161쪽. 43)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479쪽. 44) 김일성,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전쟁 준비를 잘할데 대하여(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이상 일군들과 도당책임비서들 앞에서 한 연설, 1968년 3월 21일), 김일성저작집 22, 99쪽. 45) 김정일은 이에 대해서 사회주의 사회에는 생산력을 빨리 발전시킬 수 있는 인민대중의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혁명적 열의라는 커다란 정치사상적 요인이 있다고 지 적하면서 속도보다 균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경제발전의 주되는 요인을 원료와 자재, 생산도구와 같은 물질적 조건에서 찾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사회주 의사회에서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 적 요인입니다 라고 주장하였다. 김정일,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 227~228쪽. 46) 조선로동당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15, 180쪽.

284 293 에 보수의 차이를 두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며 놀고먹으 려고 하기 때문에 생산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보수의 차별을 두는 사회주의 분배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 다. 47) 김일성은 사람들의 사상의식이 공산주의적으로 개조되고 중노동과 경노동 의 차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가 없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자각적으로 일하게 되고, 그때에 가서는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생산수준이 사람들의 물질문화적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공산주의적 분배원칙이 실현 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김일성은 이러한 물질적 자극 문제를 속도의 문제와 연결하여 인식하였다. 김일성은 로동에 대한 물질적 자극을 높이는 방법으로, 다시 말하여 로임이 나 상금을 더 주는 방법으로 생산의 높은 발전속도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 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48) 이라고 주장하였다. 물질적 자극만 강조하다 보면 근로자들의 정치적 각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나라와 인민의 이익보다 개인 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주의 사상에 확산되어 사회주의 전취물까지도 잃어 버리고 자본주의의 길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따라서 물질적 관심을 강조하는 견해는 수정주의 이론으로서 철저히 비판 되었다. 즉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정주의자들이 근로자들의 생산의욕을 높이 고 경제를 빨리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물질적 자극 체계를 경제관리 전반에 수용하자고 요구하였고, 심지어는 사회주의 사회에 서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윤, 상금, 가격과 같은 경제적 공간들을 경 제관리의 기본수단으로 삼아야 하며 기업소들이 가격을 자유롭게 정하고 이 윤이 많이 나는 제품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49) 이러한 물질적 자극 문제는 김일성의 가치법칙 활용 주장과 맞물리면서 혼란을 보였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평균주의적 분배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사회주의 분배 법칙에 의해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나, 1960 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가치법칙과 물질적 자극의 지나친 강조에 대해서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갑산파 숙청을 전후하여 가치법칙에 대한 강 한 비판이 가해지면서 오히려 관료들이 가치법칙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나아 가면서 노동에 대한 물질적 자극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50) 47) 김일성, 평안남도 당단체들의 과업에 대하여(평안남도당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60년 1월 7일), 김일성저작집 1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 36쪽. 48) 김일성, 로동행정사업에 대한 몇가지 문제(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8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 결론, 1968년 11월 16일), 김일성저작집 23 49) 김정일,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올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 221쪽.

285 294 김일성은 제5차 당대회 당시 정치도덕적 자극을 홀시하고 물질적 관심 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제지도에서 지방분권화와 기업의 자유화 방향으로 나가려는 우경적 견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되었 51) 고 언급하였다. 요컨대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다고 인식되는 물질적 자극 문제는 북한의 경제정책이 온건적일 때 기업 관리에서 독립채산제 원칙 적용, 기업경영의 상대적 독자성 강조, 상품 화폐 범주 이용 등과 함께 나타나고, 반대로 경 제정책이 혁명적이고 동원적으로 흘러갈 때에는 정치도덕적 자극에 대한 강조와 아울러 대안의 사업체계 관철, 중앙집권적 원칙 강조, 인민경제 계획 화 원칙 고수 등에 대해 상대적 방점이 두어진다. 2.4 계속혁명과 계급투쟁 계속혁명 김일성의 과도기와 관련한 특징 중의 하나는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다 음에도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공산주의에로 이행하기 위해 혁명은 계속되어 야 한다는 계속혁명 에 대한 주장이다. 간단히 말하면 공산주의의 위업이 달 성될 때까지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완전 승리와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결정한 노선과 그에 따른 정책을 합리화하는 이 론적 의의를 가졌다. 북한의 계속혁명의 이론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에 관한 이론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즉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이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를 위한 물질적 기술적 토대가 창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원이 공산주의적으로 개조되고 그들이 전면적으로 발전된 새로운 유형의 공산주 의적 인간으로 육성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를 위한 투쟁은 사회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낡은 사회의 유물을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투쟁이며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 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회를 로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하는 투쟁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실현하기 위하여 로동계급의 당과 국가는 공산주의건설의 두 요새인 물질적 요새와 사상적 요새를 점령하 기 위한 투쟁을 다같이 힘있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술혁명, 문 50) 조선로동당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15, 245쪽. 51)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윈회사업총화보고, 김일성저작집 25 (평 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264~264쪽.

286 295 화혁명, 사상혁명을 계속 힘있게 다그쳐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 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야 할 것입니다. 52) 김일성은 계속혁명의 필연성이 사회주의의 과도기적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였다. 과도기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상정하였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행태로 구 사회의 모반이 남아 있고, 사회주의적 소유 형태 가 단일한 공유제에 기반하고 있지 못함으로써 계급적 차이와 노동의 차이 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적대분자의 잔존세력과 낡은 사상의 잔재가 남아 있 고 생산력이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도기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강화를 바탕으로 한 계급투쟁의 강화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수행이 제기되었다. 즉 적대계급에 대한 독재 강화와 사상혁명의 철저한 수행을 통해 전 사회를 혁 명화 노동자계급화하는 한편,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촉진하여 두 가지 소유 의 차이와 노동의 차이를 없애고 생산력의 수준을 적어도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술적 토대를 구축 한다는 임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임무를 해결하기 위하여 3대혁명이 추진 되었다. 공산주의를 건설하려면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회를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하여 공산주의의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 를 점령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혁명화, 로동 계급화하여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만들며 생산수단에 대한 단일한 공산주 의적 소유를 확립하고 수요에 의한 분배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 력을 높이 발전시켜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하기 위하여서는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힘있게 벌려야 합 니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은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 로동계급의 당이 수행하여야 할 혁명의 기본내용이며 공산주의를 건설할 때까지 수 행하여야 할 계속혁명의 과업입니다. 53) 김일성은 계속혁명론에 대한 이론적 정립을 계기로 자신이 선택한 노선을 합리화하는 한편, 그에 따른 정책을 보다 구체화하고 세련화하여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전 구성원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하기 위한 계급 투쟁이 전개되었고, 당 국가기관의 관료가 교체하는 한편 학습과 조직생활 52) 김일성,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강화하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한 연설, 1972년 12월 25일), 김일성저작집 27 (평양: 조선로동당 출판사, 1984), 612쪽. 53) 김일성, 조선로동당창건 30돐에 즈음하여(조선로동창건 30돐기념대회에서 한 보고, 1975 년 10월 9일), 김일성저작집 30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537쪽.

287 296 을 강화하였다. 특히 지식인들에 대한 계급투쟁이 반당 수정주의의 여독 청 산과 인텔리 혁명화라는 이름하에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사회 전체 구성원들을 신분제적으로 구분하는 계층 분류가 이루어졌고, 보다 효율적인 동원을 위해 각종 조직의 재조직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계급투쟁 김일성의 과도기론에서 다른 주목되는 점은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후에 도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위해서 계급투쟁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제도를 세운 다음 계급투쟁을 부인하면 수정주의이고, 계 급투쟁의 미명 밑에 사람들을 함부로 혁명대오에서 내쫓는 것은 좌경기회주 의라고 주장한다. 54)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과도기의 임무가 완전하게 해 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사회주의 건설이 진척될수록 프로레타리아트의 독재를 더욱 강화하여야 하며 계급투 쟁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은 그전 사회에서의 계급투쟁과는 형식과 방법이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두 가지 형태를 제시한다. 그 설명에 따 르면, 계급투쟁의 하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부르주아 사상, 봉 건사상을 반대하는 사상투쟁이고, 이러한 사상투쟁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으 로 교화하여 개조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고 자 본주의 제도를 복구하려는 자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독재를 말한다. 전자에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의 주되는 형식은 전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 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자들에게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상교화를 통하여 혁명화 노동계급화함으로써 혁명의 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55) 요컨대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의 기본형식은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 으로부터 정권을 빼앗기 위하여 투쟁하던 형식이 아니라 설복과 교양, 사상 투쟁의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을 교화 개조하여 혁명화 노동계급화하는 것 이다. 이러한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를 통해 공산주의의 사상적 요새 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전 사회의 혁명화와 노동계급화의 방침이 정해지고 5 25 교시를 통해 과도기 동안 계급투쟁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결정 54)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스무돐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하여, 178쪽. 55) 김일성, 7개년계획의 중요고지들을 점령하기 위하여 천리마의 기세로 총돌격하자(조선로 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7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 결론, 1968년 4월 25일), 김일 성저작집 22, 248쪽.

288 297 되면서 혁명화와 노동계급화의 방법으로서 계급 교육을 기본으로 하면서 공 산주의 교육과 당정책 교육, 혁명전통 교육을 혁명적 실천과 결합시켜 강화 할 것,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생활을 강화할 것, 사회주의 생활양식 을 전면적으로 확립할 것, 사회생활의 기간 조직을 혁명화할 것 등이 제시되 었다. 이러한 방침에 의해 5 25 교시 이후 계급투쟁의 광풍이 몰아친다. 김 일성은 현행범 만 대상으로 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러한 지침이 하달되면서 출신성분 불량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지고, 특히 중국의 문화대혁 명의 영향 아래 구 지식인( 오랜 인테리 )과 문화인 교육인들에 대한 대대적 인 탄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첫째, 정권 수립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전쟁 이후 사회주의 개조가 완료되고 그 과정에서 반대파와 성분불 량자들이 정리된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사상투쟁이라는 이름 하에 지속되었 다. 둘째, 이러한 계급투쟁의 지속에 따라 사회정치생활 경위가 복잡한 계 층, 또는 노동자 농민 이외의 소위 각계각층 에 대한 사업의 중요성이 주 기적으로 강조된다는 점이다. 계급투쟁의 강화와 계급정책의 완화 및 시정이 반복됨으로써 체제 내부의 긴장도가 파장을 보이게 되었다. 셋째, 계급투쟁 이 개인의 국가에 대한 종속을 극대화하였다는 점이다. 계급투쟁의 결과가 각 개인들의 생애에 관련한 모든 문제, 즉 의식주, 직장 배치, 승진, 결혼뿐 만 아니라 후세들의 생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교시 전후 경제적 변화 3.1 계획체제의 혼란 계획의 문제 계획경제체제의 혼란은 우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실제적인 가치를 평가 한 가격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 경쟁적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생산물 가격은 자원의 분배 및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합리적 경제계산을 위한 핵심적 기초가 된다. 반면 생 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하에서는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상태에서 생산물의 수요와 공급이 오로지 국가에 의해서 결정됨으로써 생산 물의 화폐가격이 객관적으로 형성될 수 없고, 생산수단의 희귀성을 반영하는 화폐가격이 없이는 국가가 경제적인 계획을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수립할

289 298 수 없다. 이러한 합리적인 경제계산에 의한 가격 형성의 불가능은 자원 분배의 왜 곡과 그로 인한 수많은 낭비를 가져왔다. 김일성은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 고 1960년대 초반 가치법칙의 활용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물질적 자극에 치 우치는 가치법칙의 지나친 강조에 대해서는 경계하면서도 56) 자원 분배의 왜 곡을 차단하고자 자재상사의 역할 제고를 강조하면서 가치법칙 이용의 적극 화를 지시하였다. 57) 그는 가치법칙의 문제를 고도로 발전된 공산주의로 진입 하는 과도기 사회에서 야기되는 잠정적인 문제로 보았다. 즉 공산주의 사회 에 가면 상품이 없어지고 가치법칙도 작용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돈도 필 요 없게 될 것 58) 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1969년 가치법칙의 형태적 이용의 정론화에도 불구하고 계획체제 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혼란의 근원적 요인이 생산물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가치법칙의 형태적 작용을 무시한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 노동량의 지출에 기초하여 생산물 가격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었다는 데 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계획체제의 혼란은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불완전하다 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경제활동에 대한 투입과 산출의 방정식에 필요한 변 수들과 그의 조합들은 엄청나게 방대할 뿐만 아니라 유동적이고 미완성의 지식 형태로 존재한다. 이것은 계획 당국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경제계획 수 립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설령 계획 당국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어 결정을 내렸다고 가정하더라도 앞서 언급 하였듯이 시장가격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경제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윤 추구를 목적하는 생산 주체의 생산가격 계산과 이의 활용은 경쟁적 시장체제 하에서는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높이는 방향으로 생산활동을 유도 한다. 반면 모든 경제활동을 계산하고 조정하는 계획체제는 필요한 정보 수 집의 불가능으로 인해 인간에 의한 지식의 동태적 이용을 원천적으로 차단 하기 때문에 생산 주체들을 계획 당국의 지시와 명령을 집행하여야 하는 기 계적이고 피동적인 주체로 전락시킨다. 56) 김일성, 중심군당위원회의 과업에 대하여(중심군당위원장들앞에서 한 연설, 1963년 4월 27일), 김일성저작집 17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268쪽 57)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며 나라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꾸릴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 위원회 제4기 제12차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65년 11월 15~17일), 김일성저작집 20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108~109쪽. 58) 김일성, 농촌에 여러가지 상품을 더 많이 보내주기 위하여(방직공업부문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1967년 1월 11일), 김일성저작집 21, 30쪽.

290 계획 작성과 집행 과정의 혼란 합리적인 경제계산과 지식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계획은 계획 주 체들의 행위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우선 각급 계획 단위에서의 계 획 담당자들에 의한 정보의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계획체제에서 계획목 표의 수행 여부가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각급 단위의 생 산 주체들은 극소극대(minimax) 전략, 즉 계획목표의 수치는 최소(전년보다 많지만)로, 자원공급은 최대로 보고하게 된다. 59) 여기에서 정보는 흥정의 중 요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조작되고 왜곡되며, 이러한 정보의 불확실성 증대 는 계획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60) 김일성은 오래 전부터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생산자들은 계 획숫자를 될수록 낮추려고 하며 동원할 수 있는 예비를 동원하지 않고 더 생산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리하여 생산 자들이 세운 계획은 대체로 소극적이며 일부 성들에서는 계획숫자를 낮게 해서 국가계획위원회에 올려보내고 반대로 국가계획기관들은 계획을 세우는 데서 항상 높은 요구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61) 이러 한 사정은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가 도입된 후에도 계속되어 인민경 제계획이 아래에 내려가면 거기에 도에서 덧붙이고 군에서 덧붙이고 하여 계획이 자꾸 늘어 62) 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더욱이 정보의 왜곡 은 통계사업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김일성은 일부 지방 당조직들과 정 권기관들에서 통계기관들의 사업에 함부로 간섭하며 생산과 소비에 대한 통 계를 제멋대로 고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63) 고 비판하였다. 또한 계획 지표의 왜곡도 지속되었다. 각 생산 단위들은 계획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서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들기 어려운 제품보다 만들기 쉬운 생산품 을 우선 선택하였다. 김일성은 계획을 돈몫으로만 계산하여 세워서 아래에 내려보내면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많이 필요되지 않는 것이지만 기술공정이 간단하고 생산하기 쉬운 것을 많이 생산하고 복잡한 것은 필요해도 조금씩 밖에 생산하지 않을 것 64) 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계획을 현물중심적으로 품종별 규격별 용도별로 세부화하여 내려보낼 것을 지시하였다. 59) 김연철,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서울: 역사비평사, 2001), 279쪽 60) 차문석, 반노동의 유토피아 (서울: 박종철출판사, 2002), 280쪽. 61) 김일성, 지도일군들의 당성, 계급성, 인민성을 높이며 인민경제의 관리운영사업을 개선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0차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64년 12월 19 일), 김일성저작집 18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509쪽. 62) 김일성,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전쟁 준비를 잘할데 대하여, 100쪽. 63) 김일성, 국가재산을 애호절약하며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 22쪽. 64)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481쪽.

291 300 계획은 집행과정에서 각급 단위에서 생산조건에 맞게 무수히 수정되고 변 경되었다. 이는 비단 공장 기업소 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군 단위를 넘어서 도당 단위에서도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도당위원회가 지구계획 위원회에서 세운 계획을 제 마음대로 고치게 되면 지방본위주의와 기관본위 주의를 없앨 수 없으며 따라서 계획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 65) 다고 비판 하였다. 이는 성 국 등 경제기관 관료들이 당 결정과 내각 결정, 국가계획 집행에서 철저한 규율이 서있지 않아 내각 결정과 국가계획을 집행해도 되 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경제부서에서 생산계획을 조절하거나 생산지표를 바꿀 때에는 내각의 승인을 받고 처리하 도록 하였으며, 1969년에 가서는 새로운 계획화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계획 지표 준수에 대한 법적 통제 강화를 단행하기 시작하였다. 계획의 수정과 변경은 각 생산 단위의 비축과 낭비, 분업 생산 붕괴로 인 해 다시 한 번 영향을 받게 되었다. 김일성은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 도입 이후에도 공장, 기업소들에서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자재들을 잔뜩 쌓아두어 국가 자금을 사장시키고 있는 현상들이 적지 않 66) 다고 지적하였 다. 이러한 현상은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를 수용하기 이전 현상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 김일성은 한쪽에서는 자재가 없어서 건설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자재를 무더기로 쌓아두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렇게 생산파동의 상황을 고려하여 자재나 원료를 비축하는 이기주의 현상은 근절 되지 않았다. 낭비현상도 계획의 차질을 가져온 요인이다. 이러한 낭비는 생산기준보다 과소비, 불량품 생산, 품질 저하로 인한 체화, 보관 불철저, 유용과 착복 등 의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없애기 위하여 북한 당국은 반 낭비전시관까지 설치하였지만 1960년대 후반까지 거의 근절되지 않은 채 지 속되었다. 김일성은 1960년대 후반 낭비 현상 근절을 계획 달성의 관건적 요 소로 보고 국가재산관리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법적 통제에 들어가기 시작 하였다. 3.2 계획화 및 생산관리 체계의 정비 계획화 체계의 정비 북한은 계획실패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시장적 요소의 도입을 통해 65) 김일성, 경제지도사업에서 혁명적 규률과 질서를 세울데 대하여(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 회, 내각공동회의에서 한 연설, 1968년 10월 21일), 김일성저작집 23, 117쪽. 66) 김일성, 국가재산을 애호절약하며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 20쪽.

292 301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관료적 조정 기제의 강화, 즉 계획화 체계의 완 벽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일명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를 마련하였다. 우선 계획의 일원화 체계는 생산기관 계획부서들과 지방기관 계획부서들 을 그대로 둔 채 새로 지구별로 계획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가계획위원회에 직속시켜 계획화 사업을 맡게 한 것이다. 67) 이는 이중의 계획명령 계선을 통 하여 계획의 축소 왜곡을 차단하여 자원의 낭비를 막고 생산의 예비 를 최 대한 찾고자 취해진 조치였다. 김일성은 이 체계가 경제계획을 둘러싸고 국 가계획기관과 생산자에게서 나타나는 주관주의 와 기관 지방본위주의 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지구계획위원회로 하여금 공장 기업 소들의 생산능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공장, 기업소 일군들이 더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적게 생산하겠다고 하는가, 또 더 생산하지 못할 것을 많이 생 산하겠다고 하는가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 68) 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부문별 생산기관 계획 부서들과 지방기관 계획 부서들 을 그대로 둔 채, 국가계획위원회에 직속하는 지구계획위원회와 시 군 계획 위원회가 별도로 설치되었다. 성, 관리국, 도 인민위원회, 도 농촌경리위원회 등 각급 기관과 기업소의 계획 부서들이 기존의 부문별 해당 소속 기관과 아울러 신설된 지구계획위원회에 이중으로 종속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경제계산의 불가능과 자원 배분의 혼란은 기관 기업의 이기주의를 막을 수가 없었다. 개별 공장 기업소의 계획 차질은 연쇄 반응 을 일으켜 사회적 분업체계의 혼란과 자재 수급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여기 에서 북한은 소련이나 동구가 사회주의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다양하게 경제개혁을 모색 추진하는 것과는 반대로 중앙집권적이고, 행정명령적이며, 현물계획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것은 1965년 도입한 계획의 세부화 조치였다. 계획의 세부화 체계는 모든 생산활동의 지표들을 품종별, 규격별, 용도별 로 나누어 서로 맞물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지 못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큰 지표만 있고 비폰드물자 와 같은 세부적인 계획이 부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자재의 품종별 규격별 과잉과 부 족, 그로 인한 낭비 및 품질의 저하, 분업체계의 마비, 도의적 계획 에 대한 관료들의 책임의식 부재와 편의주의 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김일성 은 그간의 계획이 통제숫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세부 계 67) 일원화체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1964년 3월 내각결정 제21호인 인민경제계획화체계를 개 편할 데 대하여 를 채택하였다. 조선로동당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 명업적, 157쪽. 68)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480쪽.

293 302 획화의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원 조달과 작성된 계획에 대한 법적 지원을 지시하였다. 69) 그러나 이러한 세부 계획화에 대해 외국 사례의 부재와 실현불가능성을 이유로 계획기관 내부에서부터 곧바로 이견과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에 대응하여 김일성은 세부 계획화라는 당 정책을 철저히 관철할 수 있는 당성이 강하고 당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들로 계획기관들과 계획부서들을 꾸리도록 지시하였다. 70) 그러나 계획부문 관료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세부 계획화는 제대로 되지 않았고, 김일성은 계획부문 관료들의 전문성 부족 탓 에 새로운 계획화 방법에 대한 주관주의적 형식주의적 태도와 세부 계획화 는 불가능하다는 사대주의적 사고를 가져왔다고 비판하였다. 71) 김일성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계획의 일원화와 세부화 방침을 실현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를 이룩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관건적인 문제 72) 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김일 성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지구계획위원회는 유명무실화되었다. 오히려 지구계 획위원회 관료들이 지방본위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에 맞지 않는 계획안을 제 출함으로써 국가계획위원회가 지구계획위원회를 무시하고 일하게 되었다. 73)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재공급위원회를 활용하는 계획 수립도 모 색하였는데, 이 역시 원활치 않았다. 자재공급계획을 세부화하기 위해 자재 공급위원회에 수천명의 계획일군들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사실이 지 적되었다. 74) 따라서 계획 단위의 기관본위주의와 지방본위주의적 현상들과 국가계획위 원회의 주관주의적 오류를 축소하기 위해 지구계획위원회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구계획위원회의 공장 기업소내 하 부 단위가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지구계획위원회의 세포로서 각 공장 기업 소에 국가계획부가 신설되었다. 각 공장 기업소에는 기존의 계획부와 국가 계획부, 두 개의 계획부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 부서들은 각 생산 단위에서 계획에 대한 이중통제체계였다. 국가계획부 일군들은 공장 기업소 당위원회 통제 밑에 당생활을 하면서 행정적으로 지구계획위원회에 소속되었다. 국가 69) 김일성, 인민경제계획의 일원화, 세부화의 위대한 생활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위하여 (국가계획위원회당총회에서 한 연설, 1965년 9월 23일), 사회주의경제관리문제에 대하 여 3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0), 205~211쪽. 70)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며 나라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꾸릴데 대하여, 195~196쪽. 71) 김일성, 공화국정부의 10대정강을 집행하기 위한 내각의 과업에 대하여(내각 제1차전원 회의에서 한 연설, 1967년 12월 18일), 김일성저작집 21, 573쪽. 72)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479쪽. 73) 김일성, 일원화계획화체계를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하여(계획부문일군협의회에서 한 연 설, 1969년 7월 2일), 김일성저작집 24, 136쪽. 74)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484쪽.

294 303 계획부 일군들은 공장 기업소의 계획의 상달뿐만 아니라 월별 분기별 지 표별 계획 수행을 감독하였다. 이러한 국가계획부가 3급기업소까지 설치되었 고, 그 이하는 군 단위에 종합하여 군인민위원회 하에 설치되었다. 또한 지구계획위원회가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내각전원회의에서 토 의결정된 통제숫자 까지 수정하여 계획초안을 만들고 도당위원회가 이를 신 중한 검토 없이 그대로 통과시키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새로운 계획방 법론이 모색되었다. 그것은 예비숫자 의 도입이었다. 이의 도입으로 계획 과 정은 예비숫자 작성, 통제숫자 작성, 계획숫자 작성의 3단계로 나뉘게 되었 다. 75) 이상과 같이 북한은 각급 생산 단위들의 기관본위주의와 지방본위주의, 그 리고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제거하여 적극적이며 동원적인 계획을 세우고, 국 가계획기관의 주관주의와 관료주의를 극복하여 계획의 현실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를 마련하였다 생산관리 체계의 정비 북한과 같이 시장기구를 대신하여 경제활동을 계획 조정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하에서는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 명령적 감시 감독계선 의 다중화를 통한 관료적 통제가 불가피하다. 우선 생산 단위를 지도 통제하는 관리 체계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초반 도당위원회 경제부서들로 하여금 해당 도에 소재한 대 규모 공장 기업소들을 직접 책임지고 지도하게 하였다. 도당위원회가 공장 당위원회의 사업을 지도 감시하는 한편, 매 공장에 대한 담당 지도원제를 도입하여 모든 공장의 움직임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성, 관리 국에서는 자재보장, 기술지도, 노동행정 및 후방공급사업만을 맡게 되었고, 도당위원회가 공장당위원회의 생산과제 집행 실적을 직접 감독하였다. 이렇 게 도당위원회가 대규모의 중앙공업기업소, 특히 중공업부문을 직접 담당하 면서 지방공업은 도경제위원회, 농촌경리는 도 인민위원회가 관리하였다. 76) 동시에 공장당위원회의 집체적 관리를 내세운 일명 대안의 사업체계 가 도입되면서 공장 기업소의 관리체계가 변경되었다. 초기에는 공장당위원회 의 집체적 관리를 주장하면서도 올바른 생산지도를 위해 구 지식인 출신의 기술자 수용이 독려되었다. 2급 이상 공장이 소재한 군당위원장에는 도당부 75) 자세한 계획작성과정에 대해서는 김일성, 일원화계획화체계를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하 여, 123쪽 참조. 76) 김일성, 모든 힘을 여섯 개 고지의 점령을 위하여(발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2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 결론, ), 사회주의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0), 37~41쪽.

295 304 위원장급이 배치되었다. 공장당위원장은 군당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직하였고, 필요에 따라 지배인도 부위원장 겸직을 겸직하였다. 군당집행위원회는 확대 되어 공장 관료들이 항시 참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도당위원회가 2급 이상 공장당위원회 간부 입당 책벌문제를 비준하도록 하였다. 77) 그러나 도당위원회가 대규모 공장 기업소를 관할하는 관계로 공장당위원 회와 군당위원회의 관계는 겉돌게 되었다. 공장당위원장과 도당위원장이 누 가 높은가, 누가 월급이 많은가 로 다투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도당위원장 의 역할 제고가 강조되면서 특급~2급 공장당위원장이 반드시 군당위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78) 이러한 공장 기업소 관리 체계는 중심군당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보완되었 다. 이는 도당위원회가 지리적 여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공장당위원회를 제 대로 관할하지 못하면서 상과 부상들이 공장당사업을 무력화시킨다고 보았 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군당위원회의 역할 제고를 위해 중앙공업기업소가 3개 이상 소재한 중요한 군들에 중심군당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중심군당위원 장으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과장, 성당위원장들과 상, 부상들 가운데 일부 를 선발하여 파견하였다. 그러나 초기 중앙에서 파견할 만큼 군당사업에 유 능한 관료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모든 군에 위원장을 파견할 수 없었다. 위원 장은 공업을 직접 담당하면서 공장당사업을 지도하였다. 기존 군당위원장은 제1부위원장으로서 농촌사업과 리당사업을 지도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79)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오면 김일성은 다시 일반 군당위원회와 중심군당 위원회가 대형 공장 기업소들의 사업과 생산계획 수행 여부를 파악하지 못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80) 군당위원회는 해당 군 안에 대규모 공장 기업소 들이 있었지만 도당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다고 하여 당적 통제를 하 지 않았다. 따라서 군당위원회들이 특급기업소나 1급기업소 할 것 없이 군 안에 있는 모든 공장 기업소들의 사업을 실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업 체계의 수립이 추진되었다. 공장당위원회가 입당 문제로부터 간부비준 문제에 이르기까지 당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체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군당위원회가 대규모 공장당위원회의 사업에 대하여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77) 김일성, 새 환경에 맞게 공업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개선할데 대하여(대안전기공장당위 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결론, 1961년 12월 16일), 사회주의 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2, 131~133쪽. 78) 김일성, 채취공업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광산, 탄광 당위원장들과 지배인들 앞에서 한 연설, ), 사회주의 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2, 420~422쪽. 79) 김일성, 중심군당위원회의 과업에 대하여 참조. 80) 김일성, 당사업과 경제사업에서 풀어야 할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협의회에서 한 연설, 1969년 2월 11일), 김일성저작집 23, 338쪽.

296 305 따라서 대규모 공장당위원회들의 군당위원회적 기능은 그대로 두고 공장내 간부문제와 당원들의 입당 및 책벌에 대한 결정 권한은 군당위원회로 이양 하였다. 이를 위해 공장당위원회 조직부 일부를 빼내 군당위원회 조직부를 강화하였다 교시 전후 사회적 변화 4.1 관료 체계와 지식인의 정비 관료들의 교체와 충원 사회주의 혁명을 뒤늦게 이룬 국가 앞에는 선진국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 기 위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제가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국유화, 집단화 등 사회주의적 개조를 통해 경제뿐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을 통일적으로 관 리 장악하여 사회주의적 근대화와 산업화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성패 여부는 최고 집권층의 계획명령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는 관료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각 생산 단위에 필요한 관료들이 급속하게 양성되었다. 81) 북한 정권 수립 당시 일제하에서 교육받거나 복무하였던 구 지식인을 제 외하면, 경제적 기술적 수준을 갖춘 인적 자원은 거의 부재하였다. 사회주 의적 개조와 건설, 즉 체제 안정과 생산 증대에 복무할 사회주의형 관료의 급속한 양성과 주조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 지식 인들을 개조, 즉 검열과 재교육을 통해 등용하는 한편, 교육기관의 증설과 교육대상의 확대 등 교육체계의 정비를 통해 노동자 농민 출신의 신진 관 료들을 대거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82) 급속한 관료들의 양성은 관료층의 구성을 변화시켰다. 3차 당대회 당시에 는 성분 구성이 노동자 22.6%, 빈농 56.8%, 중농 3.7%, 사무원 13%, 기타가 3.9%로 되어 전체 당원의 79.4%에 이르게 되었으며, 83) 4차 당대회 당시에는 81) 김일성은 간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 간부들을 옳게 선발배치하며 간부대렬을 튼튼히 꾸리는 것은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 라고 강 조하였다. 김일성, 당원들에 대한 당생활지도를 강화하며 우리 당 간부 정책을 옳게 관 철할데 대하여(도당 조직부장, 간부부장들 앞에서 한 연설, 1968년 5월 27일), 김일성저 작집 22, 303쪽. 82)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255~256쪽 참조. 83)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1956년 4월 23일), 김일 성저작집 10,

297 306 노동자 당원 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3차 당대회 당시 17.3%로부터 30%로 높 아졌고, 당 정권 기관들에서 노동자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3차 당대회 당 시 24%로부터 31%로 높아짐으로써 혁명간부들과 노동자 출신 관료들이 당 과 국가의 중요한 위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84) 그러나 4차 당대회를 넘어서면서 관료들의 등용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 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야심찬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목표 로 한 7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관료들의 부족이었다. 계획체제 하의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고 생산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당의 목표를 집행할 수 있는 관료들을 각급 단위에서 교체 충원하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특히 소위 대안의 사업체계 를 수용하여 생산 현장을 당위원회가 집체적으로 지 도하며 목표 수행 과정을 이중 계선 이상으로 감시 감독하는 데 있어서 당 시 타성에 젖어 있던 기존 간부들만 가지고는 당의 명령을 완전하게 관철시 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내내 북한 당국은 당 정의 관료들을 노동자 출신의 청년들로 점차 교체하였다. 85) 정권의 중추적 기반으로 등장하는 혁명 애국 열사유가족, 후방가족, 전사자 피살자가족 등 특수계층의 등용을 확대하 는 한편, 구 지식인들을 비롯한 기존 간부들을 혁명화 노동 계급화하기 위 한 조치들도 단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 출신 신진 관료들의 전문 성과 실무능력이 문제가 되었지만, 충원과 등용의 원칙으로서 출신성분과 당 성, 즉 당에 대한 충실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실무능력은 당 정책 에 대한 이해와 집행으로 평가하였다. 김일성이 196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권에서 계획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시장적 요소의 도입한 것과는 정반대로 극단적인 현물계획적 조정 기제의 완벽화를 통해 대응하고자 하였을 때, 전문적인 기술관료보다는 당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관료가 필요하였다. 사회주의권의 수정주의 적 입장을 수용하고 계획의 세부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관료들을 제 압하고 이들을 계급투쟁, 즉 사상혁명을 통해 재교육시키는 가운데 정권 안 정과 경제적 문제점의 해결을 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중간관료층의 진출이 필수적이었다. 이와 같은 세부 계획화 체계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에 내재하고 있는 권력 집중의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수령제 를 형성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시장기구를 배제하고 있는 북한 체제에서는 경제운영 84)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264쪽. 85) 간부양성에서 중요한 원칙은 이미 있는 간부들을 교양하여 그들의 수준을 끊임없이 높 이는 동시에 새로운 청년간부들을 대담하게 등용하는 것입니다. 김일성, 석탄공업을 빨 리 발전시키기 위하여(안주탄광 당핵심들과의 담화석상에서 한 결론, 1961년 12월 23일), 김일성저작집 15, 590쪽.

298 307 상 모든 거래과정을 불가피하게 관료적 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치나 경제의 영역이 미분화된 관료체제에서 목표 설정과 자원배분 결정과정에는 여러 차원의 생산주체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 당사자들의 이기주의 및 무사안일주의와 합리적 규칙 규율 부재 및 조정 기제의 부족은 각급 단위에서 수없이 많은 혼란을 가져온다. 이러한 혼란은 관료적 조정을 더욱 확대시키고, 이러한 상황에서 각급 단위의 경제주체들은 생산목표의 작성과 집행 과정에서 상하간 연계를 구축하면서 모든 결정이 서로에게 유리하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계획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 목표 를 설정하고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개인적 요소와 도당적 이 익 86) 이 게재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상층으로의 권력 집중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계획의 무정부성 으로 인한 혼란은 각급 단위에서 목표 달성의 차 질을 가져오게 되고, 각급 단위는 이러한 차질을 해소하기 위한 상급 관료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계획의 세부화 체계에 의해 작성되는 국가계획은 애초부터 허구적일 수밖 에 없다. 구조적으로 여러 형태의 불균형 만연이 예견되어 있다. 이러한 상 황에서 생산 단위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규칙을 어기고 불법을 자행할 수밖 에 없고, 감독기관은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즉응적 조 치를 통해서 간섭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여 인적 연줄, 뇌물 등을 통해 부족 물자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도구적 인간관계가 만연하고, 상하간에 광범위 한 후견 추종관계가 형성된다. 급격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룬 관료일수록 자신을 등용하거나 발탁한 상급자에게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체제에 서 국가와 상급자에 대한 일반주민과 하급자의 구조화된 종속 87) 은 공식제 도의 특성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 88) 세부 계획화 체계는 바로 이러한 각 기업 기관의 이기주의와 단위별 계 선별 담합을 막아보고자 한 것이었으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권력 집중이 라는 구조적 특성을 오히려 강화시켰다. 즉 세부 계획화 체계가 경제계산의 불가능성이나 자원 배분의 혼란을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중앙 권력의 의해 등용된 관료들을 더욱 의존적 종속적이게 만듦으로써 권력 집중의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86) 도당적 이익에 대해서는 박형중, 정치와 권력, 제3부 참조 87) Walder, Andrew G. Walder, Communist Neo-Traditionalism: Work and Authority in Chinese Industry (University of California, 1986), p ) 박형중, 정치와 권력, 192쪽

299 핵심지지 계층의 전진 배치 앞서 언급한 대로 1960년대 들어 7개년계획을 세우고 공업화에 역점을 두 면서 각급 단위의 관료 등용에 있어서 노동자 출신 관료들의 비율이 문제가 되었다. 김일성은 간부들을 등용하는 것을 보아도 공장에서 올려오는 간부 는 거의나 없고 리당이나 군당에서 많이 뽑아올 리고 군당간부들을 꾸리는 경우에도 거의 다 리에서 뽑아오기 때문에 농민성분간부들만 많고 로동자성 분의 간부들은 적 다고 지적하였다. 89) 이러한 경향은 7개년계획의 차질이 확실해지는 1960년대 중반이 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김일성은 간부 진영을 노동계급 출신 간부가 우 세하도록 구성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노동계급 성분의 비중을 결정적 으로 높이기 위해서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잘 싸운 사람, 조국 해방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사람, 생산현장에서 단련된 로동자들 을 많이 선발할 것을 지시하였다. 특히 김일성은 용해공이나 기대공, 탄부나 광부들 가운데서 오래동안 생산로동을 하고 나이도 먹은 당원들을 등용하여 훈련시 킨다면 훌륭한 성일군으로 될 수 있 다고 주장하였다. 90) 갑산파의 문제로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가 본격화되는 1967년에 들어서는 노동자 출신들을 등용할 데 대한 일명 간부표징 을 확실하게 제시 하였다. 김일성은 간부표징으로 보는 노동자 성분을 가진 사람이 큰 제강소 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조직성과 단결력과 혁명성을 키운 그러한 로동계급출 신을 말하는 것이지 그저 몇 해 막로동을 했거나 해방 전에 몇 해 동안 달 구지나 몰고 처서판에 돌아다니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강조 하였다. 91) 여기서 주목할 것은 농민이나 지식인 출신의 관료들이 교체의 대상이 되 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노동자 출신 우대 지침이 지속되 고 1966년 당대표자회에서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획화가 강조된 상황하 에서 하급 단위의 당 정 책임자들은 문건, 즉 출신성분만을 주로 고려하여 간부사업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김일성은 기존 간부들에 대한 사업에 유의할 것을 5 25 교시 이후 지속적으로 언급하였다. 김일성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신규 간부들을 등용할 때에는 주위환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지만 이미 간부 로 등용되어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과거의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하다 는 이유로 철직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89) 김일성,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내올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 회의에서 한 연설, 1961년 12월 15일), 김일성저작집 15, 452~453쪽. 90) 김일성, 국가경제기관들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일군들의 당성, 계급성, 인민성을 더욱 높 이자(금속화학공업성당총회에서 한 연설, 1965년 1월 3일), 김일성저작집 19, 24쪽. 91) 김일성, 당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 결정을 관철할데 대하여, 151쪽.

300 309 한편 상하 관료들의 담합과 개별적인 후견 추종을 바탕으로 한 도당적 관계의 형성을 막기 위해 꾸준히 취해진 조치는 최고 집권자 일인에게 권력 을 집중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우선 김일성은 1960년대 중반 경제가 침 체를 보이는 시점에서 국가기관 관료들을 대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김일성 은 성기관들에서는 당위원회의 집체적 토의에 의하여 간부가 선발되는 것 이 아니라 적지 않은 경우에 상이나 국장에게 잘 보이는 사람들이 비원칙적 으로 등용되 고 있다면서 성기관들에서는 상부에 대한 아첨의 분위기가 조 성되었으며 성일군들은 상, 부상이나 국장이 잘못해도 그것을 반대하여 투쟁 하지 않 는다고 비판하였다. 92) 1967년경에 이르면 김일성의 이러한 지적은 당 관료들에게 거의 노골적으 로 전달되었다. 이는 특히 갑산파 문제와 당 안에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문 제와 관련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우리 일군들가운데는 멋을 피우기 좋아하 는 사람들을 우상화하는 경향도 있 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당을 받드는 척 하고 속으로는 딴 꿈을 꾸며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주위에 사람들을 끌어모 으려고 장난을 한다면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조금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당책임비서들과 공장당책임비서들은 도 당책임비서가 내려가든, 중앙당 부장이 내려가든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사람 이 내려가든 절대로 그들에게 아첨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93) 이에 따라 유일사상체계의 확립 정도가 간부의 선발 기준이 되었다. 중 하부 단위로 갈수록 유일사상체계의 확립 정도는 출신성분을 통해서 주로 판가름되었다. 기본계급 출신 이외의 출신들은 노동계급의 대열을 순수화한 다는 미명하에 공장과 기업소에서도 내쫓겼다 지식인들의 정비 5 25 교시 이후 지식인에 대한 혁명화 작업이 추진되면서 이들에 대한 탄압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수정주의 적 이론과 문 화를 제거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개인우상화를 심화시키면서 프롤레타리아 트의 독재와 계급투쟁을 앞세우려는 지도부에게 지식인들이 가장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개조과정을 거치면서 일반주민들에게는 당 정 책을 따르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으나, 지식인들은 오히려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지켜보며 보다 유연한 정책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계급 92) 김일성, 국가경제기관들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일군들의 당성, 계급성, 인민성을 더욱 높 이자, 19쪽. 93) 김일성, 당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 결정을 관철할데 대하여(도, 시, 군및공장당책임 비서협의회에서 한 연설, 1967년 3월 17~24일), 김일성저작집, 제21권.

301 310 주의자들에게 있어 지식인을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상식 이었고, 이 생각하는 무리 들이 그들에게는 질색 이었다. 94) 가장 먼저 과학 교육 문화계통의 지식인들이 대상이 되었다. 95) 김일성은 과학교육 계통의 지식인들이 사대주의가 심하여 부르주아사상을 가지고 외 국서적을 인용하여 조립식으로 논문을 쓰고 있고, 특히 유학을 다녀온 사람 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비판하였다. 김일성은 동요성 이 심한 지식인들이 혁명화 투쟁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교만성이 나타나고 부르 주아를 위해 일하던 습성이 나타나 사회주의 제도까지도 문제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직업적 특성상 조직생활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의 학습과 조직생활 강화를 지시하였다. 96) 이러한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의 일차적인 대상은 갑산파와 관련이 있는 함북지방의 지식인들이었다. 김일성은 5 25 교시 이후 함북 지방의 지식인 들 앞에서 지식인의 혁명화에 관한 두 번의 중요한 연설을 하게 된다. 우리 의 인테리들은 당과 로동계급과 인민에게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와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정확히 관철할데 대하여 가 그것이다. 김일성은 특히 함북도는 큰 나라들과 국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사대주의가 생길 수 있는 조건이 많 다고 지적하였다. 97) 김일성은 함부로 철직시키거나 처벌할 것이 아니라 자기비판과 호상비판 의 방법 으로 결함을 고치도록 지시하였으나, 김일성의 지시와는 반대로 지 식인들이 대대적으로 철직되거나 처벌되어 도시 밖으로 추방되었다. 98) 이 같 은 선풍에 의해서 문화예술인, 과학자, 특히 유학생이 대대적으로 축출되어 평양에는 촌뜨기 만 남 았고 중국의 문화혁명 을 방불케 하는 반문화 혁명 의 결과로 드디어 북조선은 무지의 왕국,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사회주 의 낙원 이 되었다. 99) 1년 후 김일성은 지식인의 혁명화 정책이 극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김일성은 인테리들이 가지고 있는 소부르죠아적 근성을 옳게 파악하고 그것을 없애기 위한 사상교양을 꾸준히 할 대신에 그들과의 사업 94) 성혜랑, 등나무집, 266쪽. 95) 과학기술과 문학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지식인들속에서는 사대주의가 생길수 있는 조건 이 많습니다. 김일성,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정확히 관철할데 대하여(함경북도 인테 리들앞에서 한 연설, 1968년 6월 14일), 김일성저작집 22, 385쪽. 96) 김일성, 우리의 인테리들은 당과 로동계급과 인민에게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285~312쪽. 97) 김일성,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정확히 관철할데 대하여, 389쪽. 98) 이 일(5 25 교시-편집자 주)을 계기로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가 더욱 강화되고 인텔리 혁명화 의 구호 아래 인텔리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황 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149쪽. 99) 성혜랑, 등나무집, 315쪽.

302 311 을 주로 호령과 욕설로 대치하고 있으며 일하다가 무엇을 좀 잘못하면 되게 치기만 하여 지식인들이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생기면 놀라서 떨기부터 한 다고 지적하였다. 100)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 당시 지식인들에 대한 혁명화 정책은 반수정주의 투쟁이라는 이름 하에 문화대혁명의 축소판 처럼 진행되었다. 지식인들이 제 압되어 체제의 동조 세력이나 체념 세력으로 전환하면서 당 정책에 이론적 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력이나 집단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 다. 왕권적 전체주의 체제 를 교정하기 위한 사회적 기능들을 생성하는 기제 들이 사라져 버렸다. 101) 4.2 신분제적 계층구조의 강화 신분제적 계층구조의 형성 김일성은 계획의 완벽화라는 관료적 조정기제의 강화와 그를 위한 관료들 의 교체 및 재교육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강화를 통한 사상혁명 을 내세우면서 관료들의 개조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는 계획체제의 많은 혼란들이 관료들의 당성 계급성 인민성 의 부족 때문에 발생되었다는 인 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에 따라 기존 관료들을 충성심이 강한 노동자 출신으로 교체하는 문제 가 제기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공장이나 기업에서 생산노동자로 종사하였던 노동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출신의 관료들이 채용되었다. 그러나 새 로운 관료들이 진출하면서 혁명의 대의 상 출신성분이 주요한 기준으로 작 용하였다. 출신성분에 의한 계층 분류는 사회 전 구성원의 관리 통제라는 차원에서 관료들의 일차적인 충원 기준이 되었다. 북한은 해방 이후 수차에 걸쳐 주민들의 출신성분을 조사하였다. 대표적으 로 1958년 5월 30일 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을 전군중운동으로 전개할 데 대 하여 라는 문제를 결정하고 중앙당집중지도사업 을 1958년부터 약 2년간 전 개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체제의 저항세력들이 분리되어 거주지와 직업을 제 한받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을 바탕으로 1966년부터 북한 전 주민을 대상 으로 주민등록그루빠와 사회안전부 요원을 중심으로 주민재등록사업 이 진 100) 김일성,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정확히 관철할데 대하여, 358쪽. 당시 김일성은 지식 인 처리 문제가 남한의 민주화투쟁을 하는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의해 야 한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하였다. 101) 황장엽은 당시 북한의 민주주의 역량은 정말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정치투쟁으로까지 는 번지지 않았 다고 설명하였다.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149쪽.

303 312 행되었다. 이는 1964년 2월에 열린 노동당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취급된 각계각층과의 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 라는 결정을 바탕으로 하였다. 북한 당국은 1967년부터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전 주민을 핵심계층, 기본계층, 복 잡한 계층으로 분류하고 이를 정치적 성분에 따라 다시 51개 부류로 구분하 였다. 이렇게 세분된 주민성분분류표 102) 는 1971년 2월 1일 당시 각급 당 책 임비서에게 하달되었고, 이들은 이 분류표에 따라 특혜조치와 제재조치를 제 도화하였다. 103) 이러한 출신성분 분류작업은 인위적인 계층간의 불평등구조를 형성하였고 기본계급 우선의 계급정책을 뒷받침하였다. 출신성분 분류에 따라 의식주뿐 아니라 소비재는 물론 직업 선택, 진학, 거주지 등에 있어 차등적인 대우가 이루어졌다. 104) 이러한 차별은 사회적 평가와 직업 위신의 기준이 되어 결혼 등의 생애에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봉건제적 신분질서와 유사한 위계적 성 격을 갖는 계층구조를 가져오게 하였다. 계층구조가 교육, 수입, 직업 등 다 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출신성분이라는 귀속주 의적 속성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신분제적 계층구조는 북한 사회의 산업화에서 비롯된 구조와 연결 됨으로써 고착화되었다. 보통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은 다르게 평가되기 때 문에 직업별로 노동분화가 있게 되면 계층구조는 불가피하게 생성되기 마련 이었다. 북한은 과도기 사회에서는 노동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가치적 평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언설과는 다르 게 실제적으로는 직업별 위신 105) 의 서열이 매겨졌고 이것이 계층구조와 연 결되면서 제도화되었다. 이에 따라 성분 분류에 따른 계층구조는 직업별 계 층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대체로 정치성을 띤 직업의 상층과 하층 에는 핵심군중 과 기본군중 출신이, 전문성을 지닌 직업에는 기본군중이, 단순노동직에는 복잡한 계층 이 진출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는 직업별 계층화가 시장기구를 매개로 개인에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과 통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시 장기구를 대신하여 국가가 성분분류표에 따라 개인의 직업을 제한하고 직장 을 지정하였다. 이러한 직업별 계층화에 따라 임금도 차별적으로 지급 106) 하 102) 極 東 問 題 硏 究 所, 北 韓 全 書 ( 中 卷 ) (서울: 極 東 問 題 硏 究 所, 1974), 210~212쪽. 103) 徐 東 翼, 인민이 사는 모습 1 (서울: 자료원, 1995), 214~217쪽. 104) 소련과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직업 선택과 소비재 분배에 한해 시장의 역할을 허용 하였다. 이들 국가에서 주민들은 완전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직업과 소비재 선택의 자 유가 있었다. 국가는 직업과 소비재 시장에서 주민의 선호 표시에 대하여 반응하여야 하 였다. 박형중, 북한적 현상의 연구, 152~153쪽. 105) 소련에서의 직업 위신에 대해서는 David Lane, 李 容 弼 譯, 소련 社 會 의 不 平 等 構 造 (서 울: 敎 育 科 學 社 ), 91~100쪽 참조. 106)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를 도입하는 등 일명 홍( 紅 ) 적

304 313 고 대우도 차등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러한 신분제적 계층구조는 후세에 승계되었다. 즉 성분의 대물림 이 이 루어졌다.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 이후 하부 노동자와 농민으로 전락한 계층 은 성분이 나쁜 관계로 후세에도 노동자와 농민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 세대에 복잡한 군중 이 상향적인 사회적 이동을 이루는 것은 최고 집권 자의 특별지시 등 특별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거의 불가능하였다. 핵심계층은 정치적 가치를 전승하는 계층이었기 때문에 각종 혜택과 차등적인 교육의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누리던 신분제적 지위를 최대한 후세에 승계하고 자 하였다. 이에 반해 하위 계층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차별에 절망 하거나 체념하기도 하였지만, 지배자가 제도적으로 열어 놓은 상향 이동의 가능성을 부여잡기 위해 체제에 대한 과잉적 동조행위를 보였다. 한편 성분 분류에 의한 계층구조는 직업별 계층화뿐만 아니라 직종내 다 층적 위계구조와도 연결되었다. 사회의 모든 자원의 배분이 계획체계에 따라 조정되는 사회에서 위계상의 위치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의 양과 질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권력의 크기도 결정되었다. 관료제적 계획체제의 특성 상 명령 복종 관계에 따라 권한은 위로 갈수록 커졌고 아래로 갈수록 작아 졌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급 단위의 상부에 대한 의존성도 비례관계를 보였 다. 따라서 동일 직종 내에서의 상하간 구조는 성분 분류에 의한 계층구조와 유사하였다. 이러한 신분제적 계층구조는 계층간 견제 및 대립을 전제로 하였다. 신분 제적 계층구조의 형성으로 인해 특권과 상향 이동의 기회 제한은 사회의 구 성원을 분열시킬 수밖에 없었다. 최고 집권층은 이에 대한 조정을 통해 효율 적인 통치를 행하면서 체제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계층을 분 리하여 자원에 대한 처분 권한을 차등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서로 경쟁하게 하였고, 체제 목표에 달성하는 데 있어 각자 맡은 역할의 수행 여부를 서로 감시 감독케 하였다. 이를 통해서 특정계층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원과 기 술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세력화하는 것을 봉쇄하였다. 최고 집권층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계층간 대립과 갈등을 간섭 중재하고 통제하면서 이들의 의존 노선을 선택하고 정치도덕적 자극 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임금의 차등을 1969년에 와 서 다시 허용하였다는 견해( 玄 勝 一, 北 韓 産 業 經 營 體 系 의 展 開 -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 統 一 論 叢, 5권 1호 (1985), 147쪽)가 있으나 북한에서 임금 격차는 항상 존재하였 다. 다만 수정주의적 이론 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임금 격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방식, 물질적 자극 과 사회주의 분배법칙 에 대한 강조점이 달라질 뿐이다. 1960년대 중 반 임금 격차는 소련이나 동유럽에 비해서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고, 임금의 직종별 구 조는 서구와 별 차이가 없었다. J. Wilczynski, The Economics of Socialism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970), p. 106; 共 産 圈 問 題 硏 究 所, 北 韓 總 鑑 ( 45~68) (서 울: 共 産 圈 問 題 硏 究 所, 1968), 410~413쪽; 박형중, 북한적 현상의 연구: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정치경제학 (서울: 연구사, 1994), 154~155쪽.

305 314 성을 확대시켜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해 나갔다 교시 전후의 시기는 바로 이러한 신분제적 계층구조를 완료해 가는 시점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 정권에 중추적인 지지기반이 제도화되어 가 는 지점이었다. 출신성분에 따른 신분제적 계층구조를 강화하여 권력을 상층 으로 수렴하고 절대화해 나가는 과정은 수령제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정권핵심계층의 공고화 신분제적 계층구조의 강화에서 주목할 점은 이 작업을 통해서 정권의 핵 심적인 지지기반이 확고히 다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져진 핵심계층은 이후 수령제의 수호자이자 정권의 돌격대 로서 기능하였다. 북한에서 핵심계층에 대한 제도화는 1960년대 후반 건국 20주년을 거치면서 1972년 헌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1972년 헌법 61조에서는 혁명투사, 혁명렬사가족, 애국렬사가 족,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들은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리당이나 협동조합에서 후방가족과 피살자 가족을 시끄러운 존재로, 무거운 부담으로 여기 107) 던 것에 비하면 큰 차이 가 있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많은 경우 개별 직장 차원에서 이루어지거나 일시적인 운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경제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관료들의 교체가 요구되고 농촌지역에서의 노 동력 부족이 큰 문제로 대두하면서 이들 특수계층의 역할이 적극 강조되었 고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전반 노동력이 고착되지 않은 관계로 농촌로력이 계속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에서는 로력이 남아돌아가게 되고 농촌에는 로력이 매우 긴장 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108) 되었다. 주로 청장년층이 임금 격차, 교육, 결혼, 진학 등의 이유로 도시로 진출하게 되면서 농촌에는 이들 계층의 공동 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은 제대군인을 농촌 으로 돌리는 한편, 109) 애국열사 유가족과 피살자 전사자 가족들을 농촌으로 107) 김일성, 당사업에서 주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교양하고 개조하며 단결시키는 것이다(평 양시 승호구역 리현리당총회에서 한 연설, 1961년 1월 23일), 김일성저작집 15, 14쪽. 108) 김일성, 농촌에 대한 로력지원사업을 전인민적운동으로 벌리며 건설에 대한 지도체계를 고칠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결론, 1963년 1월 7 일), 사회주의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2, 468쪽. 109) 로동성에서는 도시와 로동자 출신 제대군인들만 배치하며 농촌출신제대군인들은 군사 동원부에서 책임지고 다 농촌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 사회주의농촌문제해결에 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당중앙위원회 부장전원회의에서 한 연설, 1963년 12월 23일), 김일성저작집 17, 543쪽.

306 315 보내는 작업을 군당위원장과 군당조직부장이 직접 담당할 것을 지시하였 다. 110) 그리고 이들 부류에 대한 하급 간부 등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 다. 김일성은 농촌당단체들은 농촌으로 돌아오는 혁명가유가족들과 피살자 가족들을 잘 교양하여 민청사업도 시키고 당에도 받아들여 핵심으로 키 111) 우고 아들딸들이 없는 피살자, 전사자의 아주머니들은 공부를 시켜서 해당 리에 있는 체신소소장이나 상점책임자, 려관지배인, 지방산업공장관리일군으 로 등용하 112) 는 한편 각급 당단체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와 그후 혁명투쟁 을 하다가 희생된 전사자가족, 피살자가족, 지난날의 로동자, 고농, 빈농의 아들딸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로동과정에서 단련되였거나 착취를 받아본 사 람들, 제대군인들과 영예군인들 가운데서 사상이 견실한 동무들을 체계적으 로 키워서 간부로 등용배치하는 것을 간부사업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야 113) 한다고 지시하였다. 한편, 이들의 보호에 대한 제도화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북한 건국 20주년을 기념하여 김일성은 항일혁명투사의 유자녀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사한 전사자의 유자녀들, 일시적 후퇴시기 혁명적 절개를 지켜 원쑤들과 끝까지 싸우다 피살된 애국자의 유자녀들, 당, 정권기관, 사회단체 간부로 있 으면서 끝까지 잘 싸우다 희생된 애국자의 유자녀들 과 전쟁시기 철도기관 사나 자동차운전수로서 전선수송을 보장하다 적들의 포격과 폭격에 희생된 사람들과 철도를 복구하다 희생된 사람들의 유자녀들 에게 열사증 을 수여 할 것과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적들과 싸우다 부상당한 영예전상자들에게 영 예군인증을 내준 것처럼 전쟁때가 아니라도 적들과 싸우다 부상당한 군인들 과 군인이 아니지만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과 싸우다 부상당한 사람들에게 영예의 휘장을 내주도록 지시하였다. 114) 4.3 계급투쟁과 사회통제의 지속 북한은 5 25 교시를 통해 과도기 동안 계급투쟁의 지속을 내세우며, 특히 계급투쟁의 한 형태로서 사상혁명 의 강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혁명의 110) 1960년대 초중반 농촌지역 거주에 대한 기피가 분명하였다. 농촌지역으로 쫓겨가는 경우 를 수모로까지 여겼다. 김일성, 농촌에 대한 로력지원사업을 전인민적운동으로 벌리며 건설에 대한 지도체계를 고칠데 대하여 참조. 111) 김일성, 사회주의농촌문제해결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542쪽. 112)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며 나라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꾸릴데 대하여, 34쪽. 113) 김일성, 당원들에 대한 당생활지도를 강화하며 우리 당 간부 정책을 옳게 관철할데 대 하여, 305~306쪽. 114)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스무돐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하여, 184~185쪽.

307 316 주요한 방식은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방침으로 제시되었던 전 인민의 혁명 화 노동계급화였다. 일반적으로 북한처럼 장기간에 걸쳐 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 는 가운데 중앙집권적 계획체제를 유지하면서 정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는 심리적 폭력에 의한 강제와 물리적 폭력에 의한 강제의 역할이 커진다. 여기에서 물리적 폭력에 의한 강제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폭력으로 사상혁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북한 당국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화하기 위한 방 도로서 사상교육의 강화를 내세웠다. 사상교육의 내용이 어떤 형식과 방법으 로 진행되든지 그 주요 목적은 당의 혁명적인 주체사상, 유일사상 으로 튼튼 히 무장시키는 데 있었다. 각 개인으로 하여금 사상을 내면화하도록 함으로 써 김일성의 의지를 충실히 따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교육의 방법으 로는 강연회, 당정책 학습과 혁명전통 학습을 비롯한 학습회, 독보회, 당회의 와 근로단체회의, 개별담화와 같은 여러 가지 형식이 있었으나 김일성이 가 장 중요하게 강조한 방법은 자아비판 과 상호비판 이었다. 또한 전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화하기 위하여 당대표자회와 5 25 교시 를 계기로 조직생활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조직생활은 사상투쟁이라는 혁 명적 실천 과 결합시킴으로써 전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조직적 통제들이 강화되었고, 이러한 조치들이 규범화되었다. 간부들의 경우 조직적 절차를 준수하고 개인적으로 전횡하거나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 수령 의 지시나 명령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행위, 인사 문제를 자의적으로 처리하 는 경우, 하급 기관에서 회의를 자의적으로 소집하는 행위 등을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들이 단행되었다. 아울러 2시간학습, 토요학습, 한달강습 등 학습 체계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과 근로단체 등의 모든 조직생활이 엄 격한 규범과 규정에 따라 제도화되었다. 아울러 전당, 전민, 전군이 학습하 자! 라는 구호 하에 학습이 강화되었다. 또한 생활총화 강화 등 전 주민들 의 조직생활이 강화되었다. 아울러 낡은 생활양식을 없애고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전면적으로 확립 하는 조치가 진행되었다.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규정과 규범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규범화의 작업은 개인에 대한 국 가의 법적 통제 강화와 수령제의 제도화를 통한 개인의 수령에 대한 종속의 극대화를 의미하였다. 이러한 개인들의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 활동과 관련 한 규범적 통제는 물리적 강제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각종 당과 국가 조직뿐 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들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처벌과 숙청이 일상화되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낡은 사상을 뿌리뽑는 미명하에 유사( 類 似 ) 분서갱유

308 317 적 도서정리사업이 5 25 교시 이후 전국적으로 거의 1970년대 중반까지 계 속되었다. 김일성이 옛날책들을 모두 검토하여보고 퇴페적이고 나쁜 것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도록 하여야 115) 한다고 지시함에 따라 전국의 모든 가정, 모든 직장의 책 페이지가 일일이 검열되는 방대한 캠페인 116) 이 벌어져 글 자 하나하나가 검열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당에서 문제라고 제기하는 내용과 어투, 인명을 삭제하는 작업이었고, 그 기준은 수령 우상화, 항일무 장투쟁의 절대화, 계급혁명 즉 반수정주의, 반부르주아 문화 였다. 수령 우 상화를 위해 역사를 뜯어고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부드러운 문구 까지 지 117) 워졌다. 이렇게 하여 먹으로 칠하거나 페이지를 뜯어내거나 종이딱지 를 붙여 직장마다 제지공장으로 실려나가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체제와 수령 찬양의 정치서적, 그리고 김일성의 노작과 교시집만 남았다. 북한의 교과서에서 이순신, 을지문덕, 세종대왕 등이 사라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이고, 남아 있다고 해도 김일성보다 뒤떨어지는 인물로 기록되었다. 이 러한 분서갱유적 조치는 비단 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음악 미술 등 문화에 대한 총공격으로 나타났다. 수령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것 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모두 파괴되었고, 거칠고 투박한 것이 혁명적 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것이 인텔리들의 골다공증 을 가져와 북한을 침체시킨 원인이 되었다. 118) 반수정주의의 광풍은 과학 기술 분야에도 불어 닥쳤다. 외국기술 도입은 수정주의가 되고 선진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을 받는 단계에 이르렀 다. 인간이 달성한 기술문명의 토대 위에 쌓이는 기술진보의 합리성이 부정 되는 희한한 풍조가 북한 사회에 만연하였다. 이 같은 풍조는 북한의 경제를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 이후 영화나 소 설, 예술 작품에서는 외국의 기술, 자재 즉 남의 것을 수용하려는 수정주의 자 인 부기사, 부지배인, 부실장과 자력갱생으로 당 정책을 관철하려는 충신 과의 갈등 같은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졌다. 119) 115) 김일성, 학생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참된 후비대로 교육교양하자, 51쪽. 116) 성혜랑, 등나무집, 313쪽. 성혜랑은 이러한 작업에 북한처럼 철저하고 무지막지한 노력 투하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면서 전쟁 때 나는 미국 비행기가 손바닥만한 도시에 하루에 수백 개의 폭탄을 던진 때도 이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껴본 일이 없었다 고 회고하였다. 그녀가 수령의 지시가 아니고 극좌적 이데올로기 병에 걸린 충 신 인 체하는 간신이 한 짓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말에서 김일성의 지시가 집행되는 단 면을 읽을 수 있다. 같은 글, 313~314쪽. 117) 위의 글, 314쪽. 118) 성혜랑, 등나무집, 257~259쪽 참조. 119) 손광주, 김정일 리포트 (서울: 바다출판사, 2003), 66쪽; 성혜랑, 등나무집, 314~315 쪽 참조.

309 개인 우상화의 확대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권력의 획득과 행사, 그리고 이양에 대한 제도화된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권력은 불가피하게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권력을 쟁취한 자는 모든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고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이에 대응하고자 한다. 120) 이러한 맥락에서 5 25 교시에 의 한 사회발전 방향의 정립과 갑산파와 군부강경파의 숙청은 김일성 우상화에 있어 하나의 결절점으로 작용하였다. 북한에서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북한정권 탄생 당시 공산주의자에 게 있어 정치습성화되어 있던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숭배와 분리시켜 숙고 될 수 없다. 김일성은 이미 1950년부터 다른 지도자와 구별되어 수령 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김일성에 대한 숭배는 한국전쟁과 사회주의 건설을 거치 면서 활성화되었다. 김일성 개인숭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1950년대와 60년 대 북한 정권이 직면했던 대외적 대내적 도전이며, 이것이 북한에서 스탈린 주의적 특성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탈 스탈린화 문제를 둘러싼 소련과 북한의 갈등이 야기한 북한 국가의 국제정 치적 고립, 경제적 군사적 고립은 저발전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던 스탈린주 의적 잠재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배경 하에 당에 대한 충성은 당 지 도부에 대한 충성으로, 이는 다시 수령에 대한 충성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김일성의 우상숭배에 영향을 주었다. 1967년 초 부터 홍위병들이 김일성을 흐루시초프와 같은 수정주의자로 매도하고 현대 판 황제 로 성토할 즈음, 김일성의 기념비를 기리는 기념비와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는 기념비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은 갑산파의 숙청을 통한 국 내정치적 불안정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당의 통일 단결을 수령으로 집중해 가는 과정을 통해 외부에 맞섰다. 121) 이러한 우상숭배는 사회주의의 내재적 원리에 따른 상층으로의 권력 집중 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스탈린주의적인 사회주의 건설 단 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사회주의적 개조와 공업화였다. 이러한 과업은 엄청난 희생을 동반하여 공업화를 가장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자 하는 작업 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완성을 위해서 사회에 대한 강제의 사용이 극도에 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의 국가목표에 영향을 최대한 제한 120)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개인숭배는 일반적인 지도자 숭배나 영웅숭배와 다르며, 이는 사회 주의 사회의 조직구조, 기능원리, 규범과 가치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는 박형중, 정치와 권력, 제2부 제2장 참조. 121) 서대숙,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 (서울: 을유문화사, 2000), 106~107쪽.

310 319 하고 인민들을 지도부의 의지에 맞춰 최대한 동원하는 과정은 권력 집중과 우상숭배의 배경이 되었다. 개인숭배는 구체적인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경제적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교육받지 못한 대중과 제도화된 행정에 참여한 경험이 부재한 관료들을 대 상으로 한 당의 이데올로기나 추상적 상징보다 훨씬 효과적인 통합의 수단 으로서 기능하였다. 개인숭배는 분명한 권위체의 인물화된 이미지를 통해 당 의 공식적인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인민들로 하여금 지도부의 어려움을 이해 하고 어렵고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집 권자를 추종하도록 하였다. 한편 이러한 배경 하에서 주로 후계자들이 우상숭배에 있어 결정적 역할 을 하였다. 김정일은 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을 맡은 1967년 9월부 터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겸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승진하는 기간 동안 김 일성을 본격적으로 우상화하는 데 몰입하였다. 김정일은 당시 김일성의 후계 자로 여겨졌던 삼촌 김영주와 누가 더 김일성을 우상화하느냐를 두고 경쟁 하였다. 122) 김영주는 1967년 8월에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4기 16차 전원회의 에서 채택된 최초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 을 만들었다. 이 10대 원 칙 은 1974년 김정일이 의해 개작되어 수령 김일성과 후계자 김정일을 절대 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중국에서 임표가 모택동을 우상화하여 자신의 권위를 높여가는 과정과 비슷하였다. 임표는 1959년 7월 팽덕회 해임 이후 국방부장이 되면서 대가는 가장 적고, 수확은 가장 많고, 시간은 가장 빠르게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군대내 사호련( 四 好 連 ) 운동 (네 가지 면에서 뛰어난 중대 운동, ), 사개제일( 四 個 第 一 ) 제창( ), 모주석어록( 毛 主 席 語 錄 ) 학습( ) 등을 지시하여 모택동의 신격화 작업을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려고 하였다. 북한에서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5 25 교시를 계기로 김정일에 의 해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 교육이 당사상 교육에서 가 장 우선되었고, 이를 위한 학습체계가 정비되었다. 이와 함께 김일성의 혁명 역사와 투쟁사적이 깃들여 있다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김일성동지혁 명력사연구실 과 김일성동지혁명사적관 이 꾸려지고 김일성저작선집 등 여러 가지 출판물이 발간되었다. 일반인들은 배지를 가슴에 달고 집집마다 초상화 를 모시면서 수령에 충실하기 위해서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암송하여야 하 였다 교시 이후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상사업은 미증유의 기세로 확대되었다. 정치사상 사업으로 세뇌된 우리들에게서 이와 같은 122) 손광주, 김정일 리포트 (서울: 바다출판사, 2003), 68쪽.

311 320 조짐은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당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이미 체질화되어 있었다. 다만 10대 원칙 암송이라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규율에 암담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 때부터 우리들은 초상휘장을 가슴에 모시고 친위대, 결사대 구호를 부르며 각종 우상화 예식을 가지 게 되었다. 그 때까지 써본 일없는(옛날에는 종교적 표현으로 금기시되었 던) 신앙심이라는 말이 충성심 대신 쓰이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충효, 군신, 의리 같은 낱말이 당적 용어가 되면서 이상한 사회주의 나라가 되 었다. 123) 5. 결론: 5 25 교시 전후 변화의 현재적 함의 1997년 말 김정일은 당 총비서로 취임한 이후 체제를 정비하고 경제부문 에 대한 현지지도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의 공식적인 등장 이후의 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볼 때, 지속과 변화의 성 격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체제 운영 원리를 포기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도출된 것이 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정책목표 없이 표류 하던 경제를 추스르기 시작하였고, 그 목표를 중앙집권 명령경제체제의 복구 와 정상화에 두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점차적으로 보완되는 개선완성 론 124) 에 입각하였다. 사회주의 경제관리 체계를 개선완성 하자는 논리는 중앙집권 명령경제체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 면서도 계획명령의 효율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말한다. 이는 여전히 시장적 요소 를 이질적인 자본주의 요소로서 배격하는 중앙집권경제의 부분 적인 개선 을 뜻한다. 김정일은 자본주의적 관리방법을 끌어들이면 사회주의경제가 변질되고 사 회주의의 경제적 기초가 무너지게 되며 결국은 자본주의 길로 들어서게 되 기 때문에 사회주의 경제는 그 본성에 맞게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사회 주의적 방법으로 관리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25) 이는 기본적으로 김일 123) 성혜랑, 등나무집, 316~317쪽. 124) 개선완성 이란 표현은 1990년대 들어 다음 글에 등장한다. 김정일, 주체의 사회주의경 제관리리론으로 튼튼히 무장하자(창립 45돐을 맞는 인민경제대학 교직원, 학생들에게 보 낸 서한, 1991년 7월 1일), 김정일선집 11 ; 개선완성 론에 대해서는 박형중, 부분 개 혁과 시장도입형 개혁의 구분: 북한과 소련의 비교를 중심으로, 현대북한연구, 5권 2 호 (2002), 11~49쪽 참조. 125) 김정일, 강성대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관리를 개선강화할데 대하여(2001년

312 321 성의 인식과 동일하다. 김일성은 5 25 교시 당시 사회주의 사회에서 경제 관리는 반드시 사회주의 경제법칙의 요구에 따라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하여 야 하며 경제관리에 자본주의적 방법을 받아들이면 사회주의 경제가 파탄될 수 있 다고 경계하였다. 김일성은 다른 나라에서 주장되었던 계획을 지방과 기업에서 자체로 세우고 이윤도 자체로 처리하는 기업의 자유화, 경제관리의 분권화를 자본주의적 경제관리방법 이라고 비판하였다. 126) 그러나 김일성이 비판한 자본주의적 방법, 즉 수정주의적 요소는 1990년 대 중반 이후 밑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생존 차원의 시장적 흐름에 의해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현재 북한 당국이 과도기적 성격 을 강조하며 취하고 있는 정책들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관건적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2002년 에 북한에서 나타난 7월 조치들은 과거 김정일이 자신이 설정해 놓은 중앙 집권적 명령경제의 과도기적 한계성을 뛰어 넘는 반관료적 조정 기제의 성 격을 갖고 있다. 즉 국가의 자재와 자금 공급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 및 기업소에 대한 경영상의 상대적 독립성과 책임성을 증대시켜 국가재정 수입의 확충하려는 시도는 기업소의 자유화, 경제관리의 분권화에 대한 이데 올로기적 경계를 뛰어 넘는 것으로서 장차 시장도입형 개혁의 점진적인 도 래를 점치게 해준다.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한 부분개혁적 요소의 확대와 공산주의적 성격을 갖 는 계획명령적 요소의 점진적인 축소는 5 25 교시를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 어 있는 공산주의로의 경제적 이행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포기를 가져올 것 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세부 계획화와 계획명령의 절대화, 관료적 조정기제 에 대한 극단적 강조 대신, 계획 과 시장 의 공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강 조, 계획명령의 분권화 간소화를 통한 점차적 축소, 시장적 조정기제에 대 한 강조에서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을 찾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면을 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지도부가 공식 적으로 내부 개혁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는 크 게 변모하였다. 변화의 동인은 경제난 식량난이었다. 기존의 지배 틀을 유 지하기에는 과거에 비교하여 지도부의 지배 능력이 상당히 저하되었기 때문 에 개인에 대한 전체주의적 후견과 지배를 포기하여야만 하였다. 이에 따라 개인이 비정치적 분야, 특히 생존적 차원의 경제적 분야에서 독자적인 행위 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공간은 확대되었으며, 이는 시장적 흐름을 형성하 여 기존의 국가와 개인 관계를 변화시켜 나갔다. 10월 03일), nk.chosun.com/original/original.html?act=detail&mode= list&original_id=584&year=(검색일: 2003년 8월 22일). 126) 김일성, 사회주의건설에서 재정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데 대하여(재정부문일군협의회 에서 한 담화, 1968년 10월 31일), 김일성저작집 23, 125~126쪽.

313 322 원래 5 25 교시는 개인의 당 국가로의 구조적인 종속 을 극대화시켜 최 고 통치자 일인에게 집중시키는 계기로 작동하였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 이, 사회적 측면에서 지식인들에 대한 사상적 탄압과 정비, 신분제적 계층구 조의 강화, 모든 개인들에 대한 조직적 사상적 통제 강화, 최고 통치자에 대한 극단적 우상숭배의 강화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차원 의 종속적 메커니즘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큰 무리 없이 유지되었다 교시를 계기로 당 국가체제에 맞선 저항이 소멸되고 모든 사회 구성 단위 가 탈계급화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보호와 지배 능력의 감소는 사회정치적 기강 해이와 통제력 약화를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대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개인들은 배급제 붕괴로 인한 생존 위협 속에서 국가에 대한 보호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 자구 능력 향상에 집착하 게 되었고, 중간관료는 일탈적 관리와 배분, 비공식적 경제행위를 통해 개인 들과 공조 담합하고 갈등하면서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포섭을 중간에서 관리 하는 기능을 유지시켜 나갔다 년대 중반 이후 개인들의 당-국가에 대한 인식 변화와 일탈적 행위의 증가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욕구를 증대시켜 대안적 사고의 파생 가능성을 더욱 넓혀 놓았다. 이로 인해 5 25 교시 이후 완전히 소멸되었던 체제의 발 전 방향에 대한 다원적 고려들도 파편적으로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는 표면적으로는 해외근무 파견자나 자본주의 문물을 접하는 직업군, 자 본주의 경제를 견학 학습한 관료 지식인 계층 등에 대한 사회적 우대 분 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한 인식 변화는 기존 질서에 반하는 비공식적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맹아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 식량난이 북한 체제의 정치적 경제 적 기본 틀을 바꾸어 놓지 못하였고, 당 국가의 폭압적 억압기구가 그대로 상존하지만, 생존을 위한 개인의 자율성 강화는 대안적 사고의 저변 확대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재난 이후 성립한 중국 의 개혁 개방처럼, 북한에서도 고난의 행군 이라는 재난 이후 급격하게 확 대된 변화에 대한 암묵적인 기대와 욕구가 대안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관료 와 지식인 계층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제난은 5 25 교시 전후 제도적으로 강화된 신분 제적 계층구조 또한 변화시켰다. 신분제적 계층구조의 이완은 금전만능주의 적 사고의 유포와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였다. 과거에 크게 핵심계층, 기 본계층, 복잡한 계층으로 단순화되는 신분제적 계층구조는 일상생활 모든 부 문에서의 위계적 질서와 관념, 차등적 배급과 임금으로 뒷받침되었으나, 경

314 323 제난으로 인한 국가의 자원 능력 부족으로 인해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가 고 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개인들의 수입원 증가는 이전 시기에 국가 가 정치적 고려에 기초하여 유지하던 지배 전략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315 324 참고문헌 1. 북한문헌 (1) 사전, 정기간행물 로동신문 경제연구 근로자 조선중앙년감 (2) 김일성, 김정일 저작 김일성저작집 14~25 김정일선집 1, 7 사회주의 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2~3 김정일, 강성대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관리를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2001년 10월 03일), nk.chosun.com/original/original.html?act=detail& mode=list&original_id=584&year= (3) 일반문헌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조선전사 31 (평양: 과학, 백과출판사, 1982) 김민 한봉서, 령도체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5)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 략력 (평 양: 평양출판사, 1996), 조선로동당 략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조선로동당 력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1) 조선로동당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15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9) 편집국, 사회주의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생산의 조절자로 되지 못하며 국가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리용된다. 근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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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Arbitration Commission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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