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관논총_21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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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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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麗學式에 대한 再檢討 -儒學部를 中心으로- 朴 賛 洙* Ⅰ. 緖言 Ⅱ. 學式의 內容과 成立時期 1. 內容 2. 成立時期 Ⅲ. 學式의 檢討와 學制의 運用 1. 國子監의 構成 2. 睿宗의 國子監 改革 3. 入學資格과 學生定員 4. 敎科課程과 修業年限 Ⅳ. 結語 Ⅰ. 緖言 高麗 仁宗 때 式目都監에서 詳定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學式 은 國子監學生의 入學資 格으로부터 敎職員內譯 敎科課程 등을 다루고 있어 고려시대의 교육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런데 고려시대 교육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이 學式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줄곧 이것을 기준으로 고려 5백년간의 교육사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역사학계는 물론, 교육 학계 에서도 수십 년 동안의 정설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 學式은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여 검토해 보면 우선 國子監學生의 입학자격에 서부터 의문이 제기되는 등 석연치 못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연 學式에 명시된 대로 國子監에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 律學 書學 算學의 六學이 분화되었으며, 그 입학자격도 國子學은 3品 이상 자의 子孫, 太學은 5品 이상 자의 子孫, 四門學은 7品 이상 자의 子孫 등등, 엄격한 父祖의 官爵에 따라 身分이 구분되었을까. 그렇다면 한 형제 간에도 입학 당 시 아버지의 職位에 따라 각각 입학하는 곳이 달랐단 말인가. 출생시부터 血統에 따라 職級이 제한되었던 新羅와 같은 骨品制社會라면 또 모르되, 貴 族社會라고는 하지만 鄕吏의 子孫도 일단 仕宦하면 宰相의 班列에까지도 오를 수 있었던 上下 身分移動이 어느 정도 개방되었던 고려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 民族文化推進會 企劃硏究室長.
2 國史館論叢 第21輯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고려시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을 적지 않게 당혹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學式의 규정을 맹목적으로 확신하던 관점에서 탈피, 學 式의 실제 운용과 실시 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1) 즉 그 운용 자체에 대 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辛虎雄이고, 이 學式은 그것이 성립된 仁宗 11년 경부터 실제로 운용되었다고 주장한 이는 申千湜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은 종래설은 물론, 申氏의 설과도 달리, 결론부터 말한다면 學式 중 상당 부분이 실제로 운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高麗學式의 典型이라고 할 수 있는 唐과 宋의 교육제도나 墓誌 등 개인 기록을 통해 그 운용실태를 類推한 바로는 儒學部의 構成 入學資格 學生定員 등 상당 부분이 學式規定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이 學式을 재검토함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고려시대의 교육사를 재 조명해 보려 하였다. 다만 넓은 의미의 學式이라면 各 王代에서 개편한 國子監 조직의 편 성 등 교육제도에 관한 것은 모두 포괄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仁宗때 式目都監에서 상정 했다는 學式 에 국한했음을 밝혀 둔다. 본고에서는 고려시대의 최고학부였던 國子監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선 學式의 모 태라고 할 수 있는 唐書 選擧志가 高麗學式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2) 또 실제 운용 실 태를 알아보기 위해 金石文과 文集類 등을 통해 개개인의 이력을 파악, 學式의 각 규정들 이 얼마만큼 실제와 가깝게 운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 하였다. 물론 여기에 당시 긴밀한 외교관계에 있던 宋 교육제도의 영향도 충분히 고려될 것이다. 필자는 이 學式의 운용 실태가 제대로 구명되어야만 고려시대의 교육제도를 체계적으로 풀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교육제도의 올바른 구명은 科擧制 연구의 1) 이 學式의 내용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검토한 것은 閔丙河氏의 高麗學式考 ( 成大論文集 11, 1966)이다. 氏는 睿宗代의 교육제를 참작하여 學式을 설명하고 있는데, 唐宋制를 지나치게 모방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실제 운용 면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에 와서 종래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이가 있으니 辛虎雄氏와 申千湜氏이다. 辛氏는 高麗中期 國學에 관한 小考 ( 韓國學論叢 2, 漢陽大 韓國學硏究所, 1982)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學 式規定의 운용에 대한 포괄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申氏는 高麗敎育制度史硏究 (蜜雪 出版社, 1984)의 Ⅳ장 高麗中期 敎育理念과 國子監 運營 (Ⅱ)에서 이 學式은 通說과 같이 고 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운용된 것이 아니고, 仁宗代 이후 귀족화성격의 가속화와 더불어 시행되 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즉, 전자는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나 구체적인 논증 없이 기존의 설을 취합, 기존 학설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고, 후자는 學式이 제정된 이후에는 同學式이 귀족 우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준용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토대로 고려 仁宗代의 교육제도를 설명하 고 있다. 따라서 申氏는 고려 전 시기는 아니더라도 중기 이후 즉 仁宗代부터는 이 學式이 실제 로 운용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2) 唐의 모든 제도가 역대 중국제도의 전형이듯이 고려의 관제 형성에도 그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고 려는 건국 초기부터 五代의 몇몇 나라들과 국교가 있기는 했으나 불과 50여 년 사이에 다섯 王朝 가 明滅하는 혼란기라 그 문물제도를 받아들일 겨를이 없었고, 宋은 고려보다 40여 년이나 늦게 건국되었기 때문에 자연 唐制度를 주로 받아들였다. 특히 惠宗 2년(945)에 완성된 舊唐書 는 고려초기의 제도 정비에 많은 참고가 된 듯하다.
3 선결요건이고, 科擧 합격자들이야말로 고려사회를 이끌어 온 주역임을 부인하지 못할진대, 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論者들은 누구나 자기의 주 장을 강하게 표현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사료를 해석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의 결여라는 愚를 범하기 쉽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도 그릇된 판단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잘못은 보다 精緻한 연구에 의해 바로 잡아지기를 기대한다. Ⅱ. 學式의 內容과 成立時期 1. 學式의 內容 다른 志의 내용도 상당 부분 그러하지만, 특히 이 學式은 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唐과 高麗는 국토의 크기, 인구의 多寡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현격한 차이 가 있어 唐書 選擧志 내용의 극히 일부만 高麗史 에 수록되었지만 高麗學式과 대칭 되는 것들을 뽑아 비교해 보기로 하자. 표 1 高麗學式 唐書 選擧志 入學者 身分(儒學) <표> </표> ① 國子學生:以文武官三品以上子孫 及勳官二品帶 縣公以上 并京官四品帶三品以上勳封者 之子爲之 ② 大學生: 以文武官五品以上子孫 若正從三品 曾 孫 及勳官三品以上有封者之子爲之 ③ 四門學生: 以勳官三品以上無封 四品有封 及 文 武官七品以上之子爲之 若從二品以上 ① 國子學: 以文武官三品以上子孫 曾孫 及勳官二品 縣公 京官四品帶三品 勳封者 爲 之 職事官五品期親 若三品 ② 大學: 以五品以上子孫 曾孫及勳官三品以上有封之子爲之 四品有封 ③ 四門學: 其五百人以勳官三品以上無封 及文武七品以上子爲之 八百人以庶人之俊異者爲之 學生數 三學生各三百人 (在學以齒序) ① 國子學:生三百人 ② 太學:生五百人 ③ 四門學:生千三百人 入學不許者 凡係雜路及工商樂名等賤事者 大小功親犯嫁者 家道不正者 犯惡逆歸鄕者 賤鄕部曲人等 子孫及身 犯私罪者不許入學 律 書 算(技術學) 及州縣學生 ① 其律學書學算學皆肄國學 ① 國子監生 尙書省補 祭酒統焉 州縣學生 州縣長
4 國史館論叢 第21輯 ② 律書算及州縣學生 並以八品以上子及庶人爲之 官補 長史主焉 以八品以上子及庶人 之通其學者爲之 七品以上子情願者聽 ② 律書算學生 (行政單位의 大小에 따라 學生數가 80人에서 20 人에 이르기까지 多樣하다) 敎授及 敎育方法 分經授諸生 未終經者無易業 ① 國子 大學 四門 皆置博士助敎 必擇經學 優長 凡博士助敎 景行修謹 堪爲師範者 分經敎授諸生 毎授一經 必令 終講 未終講者 不得改業 年終計 講授多少 以爲博 士助敎考課等第 ② 律 書 算學 只置博士 律學博士掌敎律令 書學 拿敎八書 算學掌敎算術 敎科課程 及 受業年限 爲大經詩 周禮 儀禮爲 中經 ① 凡經周易 尙書 周禮 禮記 毛詩 春秋左氏傳 公羊 ① 凡禮記 春秋左氏傳 傳 穀梁傳 各爲一經 孝經 論語 必令兼通 易 尙書 春秋公羊傳 穀梁傳爲小經. 通二經者 大經 ② 諸學生課業 孝經 論語共限一年 尙書 公羊 穀梁 小經各一 若中經二 通三經者大經 中經 小經各一.. 傳 各限二 年半 周易 毛詩 周禮 儀禮各二年 禮記 左 通五經者 大經皆通 餘經 各一 孝經 論語皆兼通之 傳各限三年 皆先讀孝經論語 次讀諸經并算 習時務 ② 凡治孝經 論語共限一年尙書 公羊傳 穀梁傳各一 各三歲. 策 有暇兼須習書日一紙 并讀國語 說文 字林 三倉 歲半 易 詩 周禮 儀禮各二歲 禮記 左氏傳 爾雅 學書日紙一幅 間習時務策讀國 語 說文 字林 三蒼 爾雅 * 傍點은 高麗學式과 일치하는 부분임. 대비의 편의를 위하여 高麗史 의 學式을 순서에 따라 성격별로 분류하고, 오른편에 唐 書 選擧志의 해당 사항을 간추려 併記하였다. 學式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國子監 내에는 學生들의 祖나 父의 爵秩에 따라 입학이 제한되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 이 있었다. 학생수는 3學 각각 3백인 씩으로 도합 9백인이다(이것을 앞으로 便宜上 儒學部 로 부르기로 한다). ② 賤役에 종사하거나 近親間에 혼인한 자, 賤人인 鄕 所 部曲人-이에 대해서는 良人說도 있다-의 자손 및 私罪를 범한 당사자는 입학을 불허하였다. ③ 國子監에는 기술을 가르치는 律學 書學 算學도 병설되었으며 (이것을 편의상 技術學部로 부르기로 한다), 지방의 州縣에는 學이 있었다. 律 書 算學 및 州縣學(鄕校) 入學者의 신분은 모 두 八品 이하3)의 子 및 庶人으로 하고, 志願者인 경우는 七品 이상의 子도 입학을 허용한다. 3) 學式에는 八品以上 으로 된 것을 八品以下 로 정정하였다. 이는 閔丙河氏가 앞의 논문에서 이미 지적 했는데, 申千湜氏는 앞의 책 p. 104에서 9品職은 科擧合格者의 정상적인 宦路가 아니며, 唐書 百官志 國子監조에 四門學 입학자격으로 文武七品 이상의 子로 하면서, 또 庶人之俊異者를 포함시킨 점을 들어 여기서도 八品 이상과 庶人을 連繁, 해석상의 무리가 없으니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반론 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唐書 選擧志와의 관계나 文理上으로 볼 때 八品以上 은 八品以下 의 誤記 로 보는 것이 순리이다. 즉, 舊唐書 百官志에는 원래 八品以上 으로 되어 있던 것을 新唐書 권 48, 百官志 및 唐六典 권21에 의거, 八品以下 로 정정하였다. 고려 學式은 舊唐書 百官志를
5 ④ 國子學 太學 四門學에는 모두 博士와 助敎를 두는데, 반드시 經學에 밝고 행실이 훌륭하 여 師範이 될만한 자를 뽑아 經을 분담하여 敎授한다. 한 경을 끝마쳐야 다른 경을 공부할 수 있는데, 연말에 그 講授한 多少에 따라 博士와 助敎가 考課하여 등급을 매긴다. 律學 書學 算 學에는 博士만 두며, 律學博士는 律令을, 書學博士는 八書를 算學博士는 算術을 가르친다. ⑤ 敎科는 共通必須科目인 孝經과 論語가 있고 전공과목으로 周易 尙書 周禮 禮記 毛詩 春秋左氏傳 公羊傳 穀梁傳이 있다.4) 諸經의 課業年限은 孝經과 論語가 共限 1년, 尙書 公 羊 穀梁傳 각각 1년 반,5) 周易 周禮 毛詩 儀禮 각 2년, 禮記 左氏傳 각 3년이다. 講學 순서 를 보면 먼저 孝經과 論語를 읽고 다음에 여러 경전을 읽는데 아울러 算術과 時務策도 익 힌다. 또한 틈틈이 글씨를 쓰고 國語 說文 字林 三倉 爾雅를 읽는다. 唐書 選擧志와 대비해 보면, 高麗學式은 入學不許者의 제한규정이 추가된 것 외에 唐 書의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간혹, 내용을 축약하느라 표현상의 차이는 있 으나 本旨는 같은 것이며, 字句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려의 學式이 적어도 외형에 있어서는 唐代 교육제도의 영향이 절대적 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成立時期 高麗史 에 의하면, 仁宗때 式目都監에서 學式을 詳定했다6)고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제정연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각종 情況을 인용, 仁宗 11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7) 그러나 정확히 언제 상정했느냐는 그 시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閔丙河도 이미 지적했듯이8) 이 學式은 어느 한 시기를 획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 근거했던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學式의 八品以上 은 八品以下 로 정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4) 교과목 중 대표적 儒經인 九經(三經 三禮 三傳) 중 儀禮가 빠져 있는데, 이는 기재의 누락인 듯하 다. 왜냐하면 바로 아래의 課業年限에는 儀禮가 나오고 있으며, 또 唐書 選擧志에도 儀禮가 들 어 있는 것으로 보아 누락임이 틀림없다. 5) 課業年限은 經傳 내용의 難易度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卷帙의 大小에 따라 나눈 것이다. 唐書 選擧志의 그 課業年限을 보면, 小經인 尙書 公羊傳 穀梁傳은 각 1년 반, 中經인 周易 毛詩 周禮 儀 禮는 각 2년, 大經인 禮記 左氏傳은 3년으로 되어 있다. 또 學式의 원문에 2년 반을 먼저 쓰고 2 년을 나중 기록한 것만 보아도 2년 반 은 1년 반 의 오기임이 틀림없다. 淸代 顧炎武가 金石文 字記 에서 唐 國子學石經을 근거로 9經의 글자수를 밝힌 것을 보면, 禮記 98,994字, 春秋左傳 198,945字, 毛詩 40,848字, 周禮 49,516字, 儀禮 57,111 字, 周易 24,427字, 尙書 27,984字, 公羊傳 44,748字, 穀梁傳 42,089字로 되어 있는 바, 大 中 小經의 구분이 卷帙의 大小에 따라 나 누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春秋左傳은 내용이 비교적 쉬운 記事文임을 감안한 듯하다. 그런데 唐書 에서는 小經에 들어 있던 周易이 高麗學式에는 中經으로 편입된 까닭은 내용의 難解性 때문인지 錯簡인지 잘 알 수가 없다. 6) 高麗史 권77, 志31 百官2. 7) 申千湜, 앞의 책 pp
6 國史館論叢 第21輯 라 고려시대 國子監 교육의 절정기라고 할 仁宗代에 종래 唐制를 채택하여 만들었던 교육 체계를 참작, 당시 지향하던 교육목표에 따라 재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로 첫째, 成宗 때부터 이미 儒學部의 編成과 博士 助 敎 등의 명칭이 보인다는 것이며, 다음으로 이 學式이 당시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활발 한 문물교류가 이루어지던 宋의 學制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唐制를 모방했다는 점이 다. 먼저 高麗史 의 記錄을 통해 그 근거를 찾아보자. 宋承演 南海道羅州牧經學博士 全輔仁 誨人不倦 宜加獎擢 承演可超九等 授國子 A-① 太學助敎 博士仍賜緋公服一襲 輔仁賜公服一襲( 高麗史 世家 卷三 成宗 8年 4月 壬戌, 敎令) 太學博士助敎 四門博士助敎 ( 高麗史 志30 百官 1 A-② 成宗置國子監 有國子司業博士助敎 成均館)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이 고려 초기부터 學式의 내용에 나오는 官職들을 다수 접할 수 있 다. 사료 A-①에서 보이는 太學助敎 國子博士 經學博士에서 太學이니 國子니 하는 것들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助敎 博士 등 호칭은 敎職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太學助 敎 宋承演은 人材의 敎誨에 공로가 많아 九等의 太學助敎에서 國子博士를 超授하고 있음을 볼 때 職官에 따른 官等이 이미 성립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國子監이 창건되었 다고 보는 成宗 11년보다 3년이나 앞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음 사료 A-②는 成宗이 國子監을 설치하고 國子司業과 國子學 太學 四門學의 博士 助 敎를 각각 두었다는 것으로 學式 -①과 완전히 일치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成宗代에 제 정되었음이 틀림없는 穆宗 원년 12월의 改定田柴科에 보이는 敎職이 제8科에서 제18科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표 2 <표> </표> 田柴科 第8科 第9科 第11科 第13科 第15科 第16科 第18科 國子助敎 四門博士 四門助敎 書算學博士 敎 職 國子司業 國子博士 太學博士 太學助敎 律學博士 律學助敎 國子典學 이 표에서 볼 수 있듯이 國子助敎와 太學博士, 四門博士와 太學助敎, 四門助敎와 律學博士, 書 算學博士와 律學助敎가 同一科에 편성되는 이중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도 唐 國 子監 체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9) 이 田柴科 체제대로라면 成宗 때에 이미 國子學 太學 四門 學 律學 書學 算學의 이른바 六學의 존재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따라서 실제운용은 별도로 8) 閔丙河, 앞의 논문 p ) 新唐書 권48, 百官 2 國子監에 의하면 國子博士와 國子助敎 사이에 太學博士가 위치하고, 國子助 敎와 太學助敎 사이에 四門博士가 위치하고, 四門博士와 四門助敎 사이에 太學助敎가 위치하고 있다.
7 하고 기록만을 그대로 믿는다면 學式의 주요 골격은 이미 成宗 때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學式이 전적으로 唐制를 채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金이 宋의 首都 汴京을 함 락, 北宋이 멸망한 것이 高麗 仁宗 4년(1126)인데, 이 당시는 宋商의 내왕여 빈번하고 使 臣과 유학생의 왕래도 잦은, 고려가 의욕적으로 宋의 문물을 섭취하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교육제도에 있어서도 宋 國子監의 三舍制10)를 채택할 정도였으니 이 때 學式이 처음으로 詳定되었다면 唐制보다는 宋制의 양향을 더 받았을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처럼 高麗學式이 宋制보다 唐制를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은 그 성립 시기의 추정에는 물론 그것 의 실제 운용과의 관련성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상의 이유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本 學式은 仁宗代의 敎育雰圍氣를 결집한 제도적 장 치가 아니라 기왕에 있던 學式을 이 때에 와서 지향하는 교육목표에 따라 재정리한 것 이 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Ⅲ. 學式의 檢討와 學制의 運用 1. 國子監의 構成 1) 三學-國子學 太學 四門學-의 檢討 앞의 學式 내용에서 살펴보았듯이 儒學部에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이 있는데 입학자의 신 분에 따라 文武官 三品 이상의 子孫, 五品 이상의 子孫, 七品 이상의 子孫으로 차이가 있을 뿐 교과과정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三學은 단지 父祖의 官爵에 따른 구분일 뿐 다른 차이는 없다는 것인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學式이 그대로 시행되었을 경우 한 아버지의 자식들 간에 學을 달리하여 입학해야 하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 고 고려사회가 國子學 太學 四門學이라고 하는 고도로 분화된 교육체계를 필요로 하는 사회 였던가? 이러한 의문들이야말로 學式의 실제 운용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면 개개인의 인물 검토를 통해 사실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선 三學生의 身分을 검토하기 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학생이 입학할 당시의 父祖의 관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득이 父祖의 최종관직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 음을 밝혀 둔다. 우선 國子學(生)이 나오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10) 三舍制에 대해서는 許興植, 高麗科擧制度史硏究 (一潮閣) p.213과 申千湜, 앞의 책 pp.61 65에서 공히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나 三舍의 내용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Ⅲ-2 4)에 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8 國史館論叢 第21輯 玉菓縣人也 父舜次試閤門祗侯 祖瑨監察御史 曾祖行昌殿中內給事 外組鞫具膽尙乘 B-① 尹知 直長同 正 以尙食奉御同正行大盈令 至丙寅年(仁宗 24, 1146) 七月初九曰死 有子二人 理 儒術 ( 韓國金石文追補 尹知墓誌 p.118 이하 追補로 略稱한다. 속 國子 生文節 의 글자는 監 또는 學 字의 두 가지로 推斷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學 字로 보았다.) ) 祖從迪檢校神虎衛上將軍 父仁頴試軍器小監 至爲試閤門祗侯(正7品) 於 B-② 君(胡晉卿 愼修 次男國子學生愼 皆年踰弱 庚辰歲 (毅宗 14, 1160)夏卒 生三男二女 長男國子學生 冠 始學而未仕 ( 追補 胡晋卿墓誌 p.152) ( ) 考檢校太師守司徒門下侍郞平章事幹 以太府少卿授西京分司監 B-③ 公譯景軾 軍使 以今辛巳七月二十一日因病卒 後娶守司徒門下侍郎平章事判吏部事崔子英之女 而生二男 朝鮮金石總覽 上, 林景試墓誌p.382. 이하 朝金'으로 略稱한다.) 二女 長子國子學生球 學式에 규정된 國子學生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文武官 3品 이상의 자손 및 勳官 2品 으로 縣公 이상이거나 京官 4品 이상으로 3品 이상의 勳封者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세 사람 중 B-①의 尹文節의 경우, 父 尹知가 正6品의 尙食奉御이고, 祖 舜次는 7品인 試 閤門祗侯이며, 曾祖 瑨은 正6品인 監察御史이니 國子學生이 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굳 이 學式規定을 고집한다면 四門學生의 자격을 가진 자라 하겠다. B-②의 胡愼修 愼 형제 도 마찬가지이다. 父 晋卿은 7品인 試閤門祗侯, 祖 仁頴 역시 7品인 試軍器少監知茶房事여 서 입학 자격에서 제외된다. 다만 曾祖從迪이 3品인 上將軍이나 曾祖는 入學資格과는 무관 하여 역시 學式의 규정과 어긋난다. 마지막 B-③의 林球만이 祖 幹이 2品인 門下侍郎平章 事를 역임했으니 國子學生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國子學生이라고 기록에 나타난 尹文節 胡愼修 胡愼 林球 네 사람 중 林球 1 인만이 學式規定에 따른 國子學生임을 알겠다. 위의 예문은 國子學生 이란 용어를 일단 國 子學의 學生 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애당초 國子監의 學生 이란 의 미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하튼 國子學의 경우 父祖의 관작과 國子學 入 學資格에 관한 學式은 일치하지 않음이 확인된 셈이다. 다음으로 太學의 경우를 보자. C-① 夫人姓沈氏( ) 年十七適廉氏(太府少卿 從 4 品) 生四男二女 長曰 次行 俱先夫人亡( 朝金 廉氏配沈氏墓誌 p.390) 若補太學生 C-② 公( ) 祖思濟中書侍郞平章事 考諱湧金紫光祿大夫守司空左僕射(正2品) 因從政出學 ( 朝金 崔允儀墓誌 p.388) 少以才學 知名 擧 補入太學 C-③ 公( ) 祖寶春檢校少府少監(從4品) 考寵檢校少府少監 公貞元三年(毅宗 季考月書 毎等優等 庚辰(毅宗 14, 1160) 乙科登第 9, 1155)中成均試 明年入太學 ( 朝金 柳公權墓誌 p. 40) C-④ 公譯邦儀( 故三和縣令) 父 閤門祗侯 公幼好學 擢進好第 生子男一 ( 追補 劉邦儀墓誌銘 p.117) 人 女三人 男曰頴 今爲太學生 C-⑤ 公請存中( ) 龍宮郡人 考正英太子少保 祖契曾祖郞鼎皆太子少師 外祖景章太子詹
9 - 241 屢中優等 上在潛邸求文學士( 追補 金存中墓誌 p.142) 事 公少志儒學 早升南省試 入太學 C-⑥ 公諱彦頣( 中書侍郞平章事) 王父守大傅門下侍中講瓘 公娶金公若溫女(守太保 ( 追補 尹彥頣墓誌 p.120) 門 下侍中)生七男 長試京市令鱗瞻 六軍器主簿同正惇義爲太學生 C-⑦ 公諸文鐸( ) 字仁聲 皇考純爲擧者早逝 祖周佐曾祖漢佐 俱仕爲縣長 李氏 贈悅城郡夫人 先皇考而卒 繼母李氏本京師衣冠之子 公早失母 落魄不覊 年十七入京師始就 六館諸生 皆服公 學 鞠繼母李氏之手 及尹相彥頣掌成均試 公亦 選 至己未(1139)入太學 之雅望 凡 議不敢右異 以明左氏春秋屢魁多士 至丙寅歲(1146) 以上舍 第二人 擢 第 出 補寧州掌書記 北學于京 大學八年( 追補 李文鐸墓誌銘 p. 170) (年代未詳) 其父殺中內給事 其母檢校太子詹事王脩之女也 公其第二子也 篤 C-⑧ 公講 實 涉二歲爲直赴第三場 ( 追補 吳 實墓誌 p.245) 學敏修 年十九登司馬 二十一入太學 C-⑨ 祖仲宣皇 太子太保 皇考 宮錄事檢校軍器少監 原 君崔氏檢校尙書右僕射 月 行戶部郎 中時允 女 公諱光仁( ) 篤學二擧成均有獲 連失估恃 入太學 ( 追補 晋光仁墓誌 p.176)11) C-⑩ 公諱冲 (? 1211) 咸昌郡人 福密院堂後官金滋齡之子也 少好學工文辭 十六歲登司馬試 至戊戌年(1178)擢丙第 不經外寄 直就祿仕( 追補 金冲墓誌 p.192) 俄選入太學 C-⑪ 公諱儀 ( ) 曾祖諱某神虎衛散員 祖諱某檢校太子少保 考諱某昌安宅衙典 母徐 連赴擧未第 出理淸道郡( 朝 氏檢校軍 器監諱淑之女也 公少力學工屬文 乙未(1175)入太學 金 琴儀墓誌 p.580) ( ) 字湛若 侍中永二( )之子 以蔭補官 入太學 登上舍 明宗 C-⑫ 趙冲 時登第 籍內 侍 照宗朝拜國子大司成( 高麗史) 列傳 권 16, 趙冲傳) 謝海州人也 版籍世州吏 考某爲州副司戶 外祖某亦其州人也爲權司戶 君早博學工 C-⑬ 君闡猷 又於甲寅(1194)擧春場中之( 朝 文詞 越 己酉(明宗 19, 1189) 擧司馬試中之 遂入太學 金 吳闡猷墓誌 p.584) C-⑭ 國師諱惠諶( ) 自號無衣子俗姓 崔 氏名寔 羅州和順縣人也 考諱琬鄕貢進 士 父早薨 從母乞出家 母不許勉今業儒 承安辛酉(神宗 4, 1201) 擧司馬試中之 是年入 聞母病遂還鄕( 李相國集 권35, 眞覺國師碑銘) 太學 ( ) 漢陽人 年十五入太學 隸業 卓然自樹立有聲 未及冠擧進士 擢第 C-⑮ 公諱宗愈 丙科 延祐 初由權知校勘 曾祖諱元謂檢校太子詹事 祖諱彥東面都官判官 考諱英密直副使 上護軍致死( 朝金 韓宗愈墓誌 p.670) 이상의 인용 史料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太學 또는 太學生으로 기록된 인물은 모두 15 명이다. 그런데 이들이 學式의 규정에 따른 太學生이 되기 위해서는 文武官 5 品 이상의 子孫이거나 3品 이상의 曾孫 및 勳官 3品 이상 有封者의 子여야 한다. 이 중에서 太學生의 신분에 부합되는 자는 父가 從4品인 太府少卿을 역임한 C-①의 廉 若行과 祖와 父가 從4品인 檢校少府少監을 역임한 C-③의 柳公權 두 사람뿐이고, C-④의 劉邦儀는 父가 7品인 閤門祗侯를 역임했고, C-⑧의 吳 實은 父가 從6品의 殿中內 給事이 며, C-⑩의 金冲은 父가 正7品의 樞密院堂後官이며, C-⑦의 李文鐸과 C-⑬의 吳闡猷는 鄕 吏子弟, C-⑭의 崔寔(眞覺國師)도 鄕吏의 子孫일 가능성이 많다. 결국 이들 6명은 자격이 11) 晋光仁의 父는 軍器少監(從7品), 祖는 太子太保(從1品), 外祖는 戶部郞中(正5品)으로 보인다.
10 國史館論叢 第21輯 未及일 뿐만 아니라, 특히 李文鐸과 吳闡猷 그리고 崔寔은 學式의 규정대로라면 太學입학 은커녕 四門學 입학자격도 없게 된다. 그리고 C-②의 崔允儀, C-⑤의 金存中, C-⑥의 尹 惇義, C-⑨의 晋光仁, C-⑪의 琴儀, C-⑫의 趙冲, C-⑮의 韓宗愈 등 7명은 父 祖가 모두 從3品 이상을 역임하여 國子學 입학신분들이다. 이 중 尹惇義는 1 品職인 門下侍中을 지낸 尹瓘의 손자이고, 그가 太學生이었을 때 父 彦頣는 正2品인 中書侍郞平章事를 역임하고 있 다. 趙冲도 侍中 永仁의 子로서 趙冲이 太學에 들어갈 나이를 대략 20여 세로 본다면 明宗 21년(1191)경이 되는데, 이 해에 父 永仁이 從2品인 參知政事에 오르고 있으니 學式規定 에 의하면 國子學 입학자격이 있는데도 太學에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에 인용한 자료의 대부분이 墓誌銘이라는 특수한 문체임을 고려한다면 國學을 의미하 는 雅稱으로 太學을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身分未及者 들에게 관계된 문제이지 3品 이상의 자손으로 國子學 입학자격자에게는 도리어 貶稱이 되 는 것이며, 碑나 銘에서 貶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에 國子學 太學 四門學이 엄존 했다면 이는 당시의 신분 질서가 철저했음을 반영하는 것이 되며, 이런 철저한 신분사회에 서, 그것도 稱譽가 문장의 생명인 墓誌銘에서 무엇 때문에一아무리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 용했다고 하더라도-太學이란 칭호를 사용하여 죽은 이를 깎아내리고 후인들로 하여금 혼란 을 일으키게 했겠는가. 그럴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史料는 學式의 三學 문제에 대한 우리의 회의를 더욱 증폭시켜 주고 있다. 즉 睿宗 4년 7월에 崔敏庸等七十人 武學韓自純等八人 分處之( 高麗 C-⑯ 國學置七齋 周易曰麗澤 試取太學 史 권28, 選擧 2 學校 및 高麗史節要 畜宗 4년 7월) 라 하였는데, 國學에 七齋를 설치했다는 기사와 함께 太學에 崔敏庸 등 70인, 武學에 韓自 純 등 8인을 시험으로 선발, 나누어 거처하게 했다12)는 내용으로, 여기에서 太學이란 武學 을 제외한 儒學六齋를 지칭함이 분명하다. 睿宗이 뭇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置學 養賢 이 致治之本이다 라고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설립한13) 이 七齋가 學生들의 身分으로 나 학문적 수준으로 최고학부였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學式規定과 같은 太學 의 상위개념으로서의 國子學이란 실존하지도 않았고, 太學 으로 불리던 六齋가 바로 최고학부였음은 仁宗이 同王 7년(1129) 4월에 國學에 行幸했을 때, 金富轍의 書經 無逸篇 講이 끝나고 待聘齋生 李聖予 鄭子野와 求仁齋生 河永深 등에 게 명하여 서로 詰問하게 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14) 12) 이 史料의 해석에 있어서 申千湜은 앞의 책 p.86에서 太學生 崔敏庸 武學生韓自純 등 으로 해 석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석할 경우는 國子監의 일반적 호칭이 太學이었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13) 高麗史 志28 選擧 2 學校 및 高麗史節要 睿宗 2년 正월.
11 이상에서 검토한 바로는 父祖의 신분에 따라 입학을 달리하는 國子學 太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國子學生은 國子監學生의 약칭이고, 太學은 小學(鄕校)의 對稱으로 중앙 의 최고학부, 곧 國學을 뜻하며, 太學生은 이 太學의 學生이란 의미이지 學式規定에 의한 5品 이상 子孫인 학생들로 구성된 太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史料 C-⑯에서 살 펴본 바와 같이 儒學 전공의 최고학부인 六齋를 太學으로 지칭하기도 하였고, 仁宗 때 武 學이 폐지된 뒤로는 太學이 國學과 같은 의미로 불려졌다. 다음 四門學의 경우를 보자. 그런데 특이한 것은 四門進士 四門博士 四門助敎 四門太學博 士 등은 보이지만 四門學 四門學生 등의 용어는 學式을 제외한 다른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 는다는 점이다. 四門이란 용어가 나타난 用例를 보면, 太學助敎 第十五科 秘書校書郞 四門助敎 諸尉校尉( 高 D-① 第十三科 寺監 注簿 四門博士 麗史 志32, 食貨 1 田柴科 穆宗 元년 12월) 盲僧法宗之子 不合應擧 王曰 科目將以求賢 齊老苟有才學 豈可以父故 D-② 四門進士李齊老 廢之可令赴擧( 高麗史節要 권6, 肅宗 7년 3월) 權知四門博士 金 D-③ 公諱文緯姓張氏洪川人也 擢進士第 遂調明福宮錄事 三遷爲四門助敎 吾衛 錄事恭軍事芮樂全述 ( 追補 張文緯墓誌銘, p.96) D-④ 公(崔祐甫)生而聰悟 仁廟十三年甲寅(1134) 登進士第 初調晋州牧司錄兼掌書記 歷直 翰林院四門太學博士( 追補 崔祐甫墓誌銘, p.160) 史料 D-①은 敎職이 法制上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穆宗 원년 12월에 제정 반포된 文 武 兩班及軍人田柴科로서 총 18科 중 四門博士는 13科, 四門助敎는 15科에 배열되어 있 다. 이 敎職官制는 唐制를 채택한 흔적이 뚜렷한 데,15) 成宗때 唐의 學制를 채택하면서 수 용한 것임이 틀림없다. 職制를 갖추기 위해 四門博士 四門助敎의 관직을 두었으나 國子學 太學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를 四門學의 實存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成宗 5년, 왕의 강력한 중앙집권화정책 의지에 따라 지방에서 뽑아 올렸던 260명의 학생 중 80%인 207명 이 중앙교육제도에 대한 매력을 못 느껴 귀향하는 상황에서 學式規定과 같은 學制의 분화 는 고려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職制가 나타난다고 해서 교육이 이 職制에 따 라 운용되고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사료 D-②는 四門進士 李齊老는 盲僧의 아들이라 원칙적으로 응거자격이 없는데 肅宗의 특 이라는 명칭이 실제적으로 신분과 어떤 관계가 있지 명으로 赴擧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四門 않나 하는 시사를 주고 있다. 그런데 이 四門進士란 호칭은 고려 말까지 禮部試 응거자격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 다음 科擧及第 전의 호칭에 대한 검토를 할 때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D-③은 張公緯가 科擧에 及第한 뒤 明福宮錄事를 거쳐 세 번 옮겨 四門助敎가 되었다는 14) 東文選 권64, 金守雌 幸學記. 15) 舊唐書 志24 職官 3 및 新唐書 志38 百官 2 國子監조 참조.
12 國史館論叢 第21輯 芮樂全이 撰述하고 있다. 이것이 내용이고, 이 墓誌銘을 仁宗 12년(1134) 權知 四門博士 고려전기에 四門助敎 四門博士 등의 敎職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앞서 四門進士 李齊老의 경우에서 四門이란 용어가 그의 신분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 라는 추리를 하였다. 이 추리를 보충 설명할 근거를 제공하는 기록이 사료 D-④이다. 이것 은 仁宗 중기에 崔祐甫가 科擧에 及第하여 관례에 따라 외직인 晋州牧掌書記를 역임한 후 翰林院을 거쳐 四門太學博士에 補任된다는 내용인데, 四門太學博士란 百官志에도 전혀 찾 아볼 수 없는 독특한 관직이다. 이 호칭은 崔祐甫 외에 李勝章도 武臣亂 직후인 明宗 初에 大官丞兼同文院錄事로 있다가 四門太學博士로 옮기고 있으며,16) 尹莘傑도 13세기 末에 國 學 學諭에서 四門太學博士로 陞進하고 있다.17) 특히 고려시대 國子監 교육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睿宗 仁宗代에 四門太學博士란 칭호가 등장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 이 四門太學博士란 어떤 관직일까? 첫째, 四門太學博士라는 官職이 관제상으로 실존했느냐는 문제이다. 百官志에 四門助敎 四門博士 太學助敎 太學博士가 엄연히 존재하고, 同時代 다른 사람의 墓誌에도 이러한 관직 이 엄존하느니만큼 두 관직을 하나로 합쳐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며, 무엇보다 品階가 다른 正8品의 四門博士와 從7品의 太學博士를 합쳐서 한 관직을 만든다는 것은 관제상의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四門太學博士란 정식 관직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이 四門太學博士라는 칭호를 四門博士와 太學博士의 合稱일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칭 대상이 四門博士와 太學博士를 合稱한 複數集團을 가리킨 것이라면 四門太學博士라는 호칭은 모순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나타나는 곳은 한 개인의 경력을 기록한 墓誌銘이고, 이 런 개인을 상대로 한 墓誌銘에서 博士 집단을 의미하는 四門太學博士란 호칭을 쓸 수는 없 는 것이다. 따라서 四門太學博士가 博士 집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여진 것은 아니었다. 셋째, 四門博士를 거쳐 太學博士에 승진했다가 他職으로 옮긴 것을 四門太學博士로 合稱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중요 관직도 생략하는 상황에서 四門과 太學 이 분리해도 되는 것이라면 太學博士 하나만 가지고도 學官經歷표시가 충분한 데 굳이 四 門太學博士로 기록한 점이다. 끝으로, 學官 중 가장 직급이 낮았던 四門博士에 제수된 것을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 까. 물론 그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현재도 大學에서 專任敎員을 모두 교수로 통칭하 고 전임강사를 교수로 지칭하니, 당시 四門博士에 제수된 사람에게 四門太學博士라고 부른 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에 四門太學博士는 널리 통용 되고 있었던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상 몇 가지 추론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國子博士 太學博士 四門博士의 통칭 16) 朝金, 李勝章墓誌 p.418에 以功轉大官丞 兼同文院錄事 俄遷四門太學博士 라 보인다. 17) 朝金, 尹莘傑墓誌 p.616에 任南京留守司錄 罷秩 國學學諭 轉四門太學博士 라 보인다.
13 으로서 四門太學博士란 칭호가 있었으며, 이것은 國子監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널리 인정되던 호칭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博士 를 떼어 버 린 四門太學 은 國子監의 異稱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왜 國子監을 四門 太學 이라고 지칭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당시의 國子監이 형식상으로는 唐의 학제에서 말하 는 四門學과 太學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앞에서 國子學과 太學의 실존여부를 검토한 결과 적어도 學式에 명시된 바와 같이 父祖 관직의 고하에 따라 國子學이니 太學이니 하는 차이는 없이 공통적으로 國學(國子監)에 입학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은 신분이 완전히 평등했던 것은 아니었다. 四門進士 李齊老의 경우에서 推斷할 수 있는 것처럼 한미한 가문이나 庶人 출신들은 四門學 生으로 불리어지고 四門學生으로서 國子監試에 합격한 자들을 四門進士로 불렀을 것이다. 2) 及第前 資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麗朝榜目 에 실린 예비시와 及第前 자격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표 3 番號 姓 名 及第前 資格 豫備試 及第 頻度 備 考 300 安稷崇 進士 內侍給使 南宮選 肅宗9년2월 進士 門蔭 208 張文緯 進士 成均試 肅宗代 95(명) 298 李文鐸 進士 齋生 成均試 仁宗24년(38세) 金存中 進士 南省試 仁宗代 427 吳闡猷 鄕貢進士 司馬試(明宗19,22세) 明宗24년 584 金守剛 齋生 升補試 高宗代 6 全齋生포함 698 朴 贇 求仁齋生 忠烈16년5월 699 禹 倬 太學進士 忠烈7(29세) 719 金承印 國學進士 國子試(忠烈15) 忠烈16년5월 安 碩 鄕吏 進士 國子試(忠烈8) 忠烈王대 944 鄭夢周 國子進士 監試(恭愍6,21세) 恭愍9년10월 949 金 質 太學進士 951 朴啓陽 新進士 前散員 國子試(恭愍9,19세) 956 李子庸 四門進士 (31세) 962 徐鈞(均)衡 新進士 (21세) 黃元哲 明經進士 978 李崇仁 成均進士 成均試(恭愍9,14세) 恭愍11년10월(16세) 許 時 進士 別將 國子試(恭愍11年9月) 997 朴元彬 諄諭進士 閔中理 成均學生 恭愍17년4월 2 * ① 本資料는 朴龍雲, 高麗時代蔭叙制, 및 科擧硏究 (一志社, 1991) 附錄 資料에서 及第前 자격이 밝 혀진 262명 중 칭호가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는 것은 모두 拔萃한 것이다. ② 頻度란 及第前 資格과 豫備試의 호칭이 동일한 경우의 頻度를 말한다. 但 六齋의 齋名이 따로 표시 된 것은 齋生에 포함시켰다.
14 國史館論叢 第21輯 이 표는 高麗 肅宗 9년부터 麗末까지 及第前 資格이나 豫備試18) 종류가 밝혀진 260여 명 중 내용이 중복되지 않은 것들을 뽑은 것이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及第前 資格은 官員 進士 齋生 學生 生員 幼學 등으로 구별되는데, 官員은 일단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가지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자. 가장 많이 나타나는 進士는 製述科 본시험 (禮部試) 及第者를 지칭하기도 하고 예비시험 합격자를 가리키기도 해서 그 概念이 불명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及第前 자격을 나타 내는 進士라는, 進士 앞에 접두어를 붙인 것은 그 進士의 성격을 규정하는 동시에 이 것이 고려 교육제도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즉, 鄕貢進士는 글자 그대로 지방에서 교육을 받고 界首官試의 銓衡을 거쳐 京師에 擧子 로 추천되어 온 자 貢擧 를 지칭하며, 國子進士는 國子監試 합격자를 말한다. 國子進士를 國子學 출신의 進士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19) 國子學이란 學式上에만 존재했던 하나의 허 구였음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國學進士 成均進士 역시 國學 출신의 進士, 成均館 출신의 進士를 지칭할 것이라는 우리 의 선입관과는 달리 모두 國子監試 합격자의 異稱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國子監의 명칭이 國學 혹은 成均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忠烈王 16년 5월 鄭可 臣의 榜에 전 급제자의 자격과 四祖의 신분이 자세히 기록되었는데 齋生 및 太學進士와 더 불어 8명의 國學進士가 나타나는 바 이 시기는 國子監이 國學으로 불리던 기간(忠烈 원년 24년)이다. 그리고 忠烈 24년부터 成均監 成均館 國子監(恭愍 5년 11년) 成均館으 로 바뀌는데, 恭愍 5년 11년 사이에는 國子進士가 그 외의 기간에는 成均進士로 나타나고 있다.20) 이와 같이 國子監試 합격자를 國子監의 명칭 변경과 결부시켜 부른 이유는 國子監 18) 이 예비시험의 명칭은 南宮選(試) 成均(館)試 南省試 國子(監)試 司馬試 監試 進士試 擧子科(試) 등 실로 다양한 데, 일반적으로 國子監試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호칭의 語源을 추구해 보면, 南宮은 諸侯의 學 즉 泮宮을 의미하고, 南省은 唐代 禮部의 별칭이며, 國子試와 監試는 國子監試의 약칭, 成均은 周代의 학교명이다. 다만 司馬試만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小科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는데, 周禮에서 司馬는 夏官 즉 禮部의 長이고, 太學 이 司馬에게 뽑아올리는 것을 進士라 한다 고 한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에서 進士를 司馬라고 한 것이다(雅言覺非)라고 한데서 연원하였다. 그 시험의 명칭이 왜 學校에서 연유한 것인지 잘 모 르겠으나 이 시험의 主管處가 國子監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國子監의 명칭이 國子監 (成宗 忠烈 원년) 國學(忠烈 원년 24년) 成均監(忠烈 24년 34년) 成均館(恭愍 11년 麗 末)으로 바뀌었는데 예비시험의 명칭도 대체로 그에 따라 변하고 있다. 이런 이유와 國子監試 합격자가 國子監에 입학하고 있는 사실 등으로 國子監試를 國子監 입학시험으로 보는 견해도 있 으나 원칙적으로 禮部試 예비시험이었다. 이에 대한 시비는 여기서는 생략한다. 19) 申千湜氏는 앞의 책 pp 에서 國子進士 李幹方을 國子學生 출신의 進士 李幹方으로 풀 이하여 學試規定의 國子學生三品以上子 의 실례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李幹方이 國子 監試에 합격한 進士라는 뜻이다. 國子監試 합격자를 國子進士로 부른 예는 恭愍王 9년 10월의 榜 등에서 무수히 확인된다. 20) 恭愍 5년에서 11년 이전까지에는 동6 년 4월과 9년 10월, 두 차례의 과거실시 기록이 나타나는바, 6 년 科擧에는 及第前 기록이 간혹 進士로 나타난 것 외에는 알 수 없고, 9년 科擧는 곧 金得培의 榜으
15 試의 主管處가 이곳이었거나 아니면 전통적인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國學進士 成均進士 등이 國學 혹은 成均館의 學生 출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新進士란 禮部試 바로 직전의 國子監試에서 새로 합격한 進士란 뜻으로서 國子監 試에 합격하면 及第할 때까지 禮部試 응거자격을 갖게 되는데 오래 전에 합격한 舊進士에 대칭되는 말이다. 이는 951번의 新進士 朴啓陽이 恭愍王 9년 8월에 國子監에 합격하고 그 해 10월에 及第하고 있는 데서 증명되며 이외에도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國子監學生(國學生) 출신의 進士는 무엇이라 불렀을까. 이들이 바로 太學進士 四 門進士 諄進士로 불린 이들이다. 699번의 禹倬이나 949번의 金質은 太學生으로서 國子監試 에 합격한 자들이며, 956번의 李子庸, 997번의 朴元彬은 같은 國學生이기는 하지만 父祖의 신분이 한미하여 四門 혹은 諄諭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이며, 앞서 史料 D-②에 예시된 四門 進士 李齊老 역시 같은 경우일 것이다. 諄諭進士를 四門進士의 개칭으로 推斷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근거이다. 즉 그 하나는 恭愍왕 11년에 國子監을 成均館으로 바꾸면서 나타난 職制改編에서 司業은 司藝로, 國子博士를 成均博士로, 四門博士를 從7 品으로 승격하여 諄 諭博士로 개칭하고 있는 것이며,21) 다음으로 職制가 개편된 恭愍王 11년 이후에는 四門進 士의 칭호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그 대칭으로 諄諭進士가 등장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 다. 다만 明經進士는 기록자의 誤記인지 혹은 이것이 실존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齋生은 말할 것도 없이 睿宗이 설립한 國學七齋 중 武學을 제외한 六齋 출신 학생을 의 미하는 것이며, 恭愍王 11년 10월까지의 及第前 자격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 睿宗의 國子監改革 1) 改革 이전의 國學敎育 實態 당시의 國學敎育 실태를 이해하는 데는 肅宗 7년 閏 6월, 재상 邵台輔 등이 상주한 다음 내용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E. 宰相邵台輔等奏 國學養士 糜費不貲 實爲民弊 且中朝之法 難以行於我國 請罷之 不報( 高 麗史 志28 選擧 2 學校 및 高麗史節要 肅宗 7년 閏 6월) 이 내용은 國學에 선비를 양성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민폐가 되며, 또 중국의 법을 우리나 라에서 시행하기는 어려우니 혁파하라는 것이었다. 다 알다시피 邵台輔는 숙종을 옹립하는 로 鄭夢周 이하 30명의 명단과 四祖 및 及第前 자격이 자세히 기재된 몇 안 되는 완전한 榜目이다. 國子進士를 비롯 齋生 太學進士 鄕貢 新進士는 보이나 이 기간 전후에서 주류를 이루는 成均進士는 하나도 볼 수 없다. 朴龍雲 高麗時代 蔭叙制와 科擧制硏究 (一志社, 1990) pp 참조. 21) 高麗史 志30 百官 1 成均館.
16 國史館論叢 第21輯 데 주동적 역할을 한 당대의 실력자이다. 邵台輔等 이라고 했으니 당시 조정 중신들의 의견 을 邵台輔가 대표해서 상주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이 주장은 朝廷公論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睿宗 8년 5월, 參知政事 柳仁著가 卒하자 그 인물평에 그는 外戚으로 가문이 貴賢했는 데도 及第前 國學 의 諸生들과 어울려 讀書한 것을 칭찬했으니22) 당시 대부분의 貴顯子弟들은 國學을 기피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의 교육실태를 추 측할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가 있다. 첫째, 당시의 國學은 유명무실하여 그 본래의 설립 목적인 국가에 有爲한 인재양성에 별다 른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國學 이외에 이를 대신한 별도의 교육기관이 併存하고 있었다. 둘 째, 國學 재학생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勳戚 등 당시 지배 계층의 자손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지배층의 자손이 재학하고 있었다면 어느 부모들이 공공연히 國學의 폐지를 들고 나왔겠 는가. 셋째, 이렇게 지배 계층으로부터 외면당하는 國學이었지만 민폐가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으니, 당시 國學에는 상당수의 諸生이 居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國學은 국가재정만 축내면서 국립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 하고 있었으니 크게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시 국왕인 肅宗도 학문 을 좋아하고 유학진흥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북쪽으로부터의 女眞의 압박으 로 국방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었으므로 미처 學事를 염 두에 둘 겨를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다음 왕인 睿宗의 책임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2) 睿宗의 國子監改革 睿宗은 史賛에서 말했듯이23) 고려 역대 제왕 중 英明한 君主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儒敎를 정치지도이념으로 채용하는 데 앞장선 임금이었다. 그리하여 빈번한 宋과의 접촉을 통 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이었고, 자신은 수시로 淸謙閣 寶文閣 에 나아가 經筵을 열어 유학적 교양을 쌓기에 열심인 전형적인 好學의 君主였다.24)이러한 睿宗인지라 그는 즉위 초부터 교육의 지방확산을 정책지침으로 삼아 三京八牧의 通判 이상 및 知州事와 縣令으로서 文科 출신자는 學事를 겸하게 하여,25) 지방교육의 獎勸을 의무화시켰으며, 科擧 制에 의해 跛行을 이룬 중앙교육제도인 대학교육의 정상화는 睿宗으로서 焦眉의 급선무였다. 학교를 세우고 어진 이를 기름은 三代이래 정치를 이룩하는 근본이다 26)라는 신념 하에 女眞 征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國學改革政策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國學改革에 대한 분 22) 高麗史節要 睿宗 8년 5월. 23) 위의 책 睿宗 17년 4월 乙未. 24) 睿宗은 총 15회의 經筵을 실시한 것으로 기록에 나타나 있는데, 儒經 아닌 것은 老子를 講한 1 회뿐이고 書經 禮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7년 동안 15회의 經筵이 결코 많은 횟수는 아니지 만 이것만으로도 고려 임금으로서는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25) 高麗史 志28 選擧 2 學校 睿宗即位年. 26) 위의 책 志28 選擧2 學校 睿宗 2년 制.
17 분한 논란을 중지하고 조속한 결론을 내리도록 睿宗이 직접 지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당시 지배 계층과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었던 國學의 개혁에 대해 국왕의 뜻 을 받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27) 그리하여 이 國學改革 문제는 女眞問題 해결 뒤로 늦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春宗 4년 7월 七齋의 설립이 그것이다. F. 四年七月 國學置七齋 周易曰麗擇(澤) 尙書曰待聘 毛詩曰經德 周禮曰求仁 戴禮曰服膺 春秋曰 養正 武學曰講藝 試取大學崔敏庸等七十一 武學韓自純等八人 分處之( 高麗史 志28 選擧 2 學校) 睿宗은 國學에 일곱 개의 전문강좌를 설치했으니 周易을 전공하는 麗擇(澤)齋, 尙書를 전공하는 待聘齋, 毛詩를 전공하는 經德齋, 周禮를 전공하는 求仁齋, 禮記(戴禮)를 전공하 는 服膺齋, 春秋를 전공하는 養正齋, 武學을 전공하는 講藝齋이다.28) 그리고 太學에 崔敏 庸 등 70인을, 武學29)에 韓自純 등 8 인을 시험으로 뽑아 나누어 거처하게 하였다. 그러면, 이 七齋의 性格은 어떠했으며, 七齋와 기존 國學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 종래 까지 七齋는 國學이 개편, 조직화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30) 그러다가 許興植은 七齋는 일 반 國學生보다 優位에 있던 學制로서 이것이 바로 上舍라고 추정했으며31) 그 뒤 申千湜은 이상 두 說을 부정하고, 七齋는 睿宗의 교육이념에 따라 기존의 國子監 외에 增置된 새로운 성격의 교육체제로 보았다.32) 관련 史料들을 토대로 이상의 諸說을 검증해 보기로 하자. 睿宗이 七齋를 설치하기 전에도, 肅宗 7년 閏 6월 宰相 邵台輔 등이 그 혁파를 주장하 던, 당시 지배 계층으로부터 외면당하던 國學生이 있었다. 이들 國學生 중 일부는 七齋生으 로 선발되었겠지만 얼마는 탈락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탈락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왕 七齋라는 엘리트과정을 설치한 이상 이들의 교육에 주력하기 위하여 나머지 학생들을 黜學시켰을까? 아니면 비록 七齋의 입학시험에 떨어지기는 했어도 기득권을 인정해서 다시 더 정진하여 科擧나 七齋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예비과정으로 남겨 두었을까. 이 두 가지 문 제에 대해 대답을 주는 직접적인 史料는 없다. 그러나 당시 官學敎育의 중흥을 꾀하려던 睿宗의 교육에 대한 신념으로 보나, 혁명이 아닌 이상 기득권은 언제나 존중되어 왔다는 27) 위의 책 志28 選擧2 學校. 28) 七齋의 이름 중 麗澤 待聘 經德 求仁 服膺 養正 등 용어는 모두 周易 書經 論語 등 儒敎 經典에서 따온 것들로 모두 人格涵養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가 모두 해당 경 전에서 따온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전공한다는 말은 이것만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아 니라 다른 경전도 공부하되 어느 한 경전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는 말이다. 29) 이 武學의 설치는 女眞의 수상한 동태 등 현실적인 국방상의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國學에 과장 까지 설치한 것은 宋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宋에서 仁宗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武學을 설치했 는데, 한때 폐지되었다가 北宋末에는 지방까지 확대되었다 ( 宋史 志 110 選擧 3 學校試). 30) 尹南漢, 儒學의 性格 (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p ) 許興植, 高麗科擧制度史硏究 (一潮閣, 1981) p ) 申千湜, 앞의 책 p. 78.
18 國史館論叢 第21輯 관례로 볼 때 후자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七齋보다 한 단계 낮은 어떤 교육기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시 國學은 七齋와 그 예비과정의 이중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에 대한 실증은 齋生 昇格 試驗을 거쳐 齋生이 된 경우나 앞으로 언급할 三舍制度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睿 宗은 王 14년 7월 養賢庫를 설치, 國學의 財源확보를 위한 財團을 설립하였다. 이 養賀庫 의 내용이나 규모에 대해 알 길은 없으나 이로써 國學諸生들의 居接 비용 등 國學운영에 관한 기본적 재정은 확립되었을 것이다. 3) 科舉制의 改善 睿宗의 교육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따라 七齋가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과 당시 대다수 선비들의 최종 목표였던 宦路와의 연결이 선결과제였다. 즉 國學在學이 科擧及第에 어떤 유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에 이 교육개혁의 사활이 걸려 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睿宗 5년 9월의 判文이다. G. 製述明經諸業新擧者 屬國子監三年 仕滿三百日者 各業監試許赴 西京則留守官選上鄕 貢則東南京八牧三都護等界首官 依前式選申省( 高麗史 志 27 選擧 1 科目 1 睿宗 5년 9월). 이상은 國學生과 지방 학생의 國子監應試 요건을 밝힌 것인데, 부분의 내용은 製述業 과 明經業 등 諸業에 새로 응시하려는 사람으로서 國子監試를 치루고자 하면 國子監에 3년 동안 소속하여 300일 이상 출석해야 한다 는 것이다.33) 이는 靖宗 2 년(1036) 7월 判文의 生徒入學滿三年 方許赴監試( 高麗史 志27 選擧志 1 科目 1) 國學在學 三年이면 監試 應擧를 허락한다는 규정보다 한결 융통성이 있는 규정이다. 그렇 다면 이것은 학교 교육이 한층 더 해이해진 결과가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 나 그 반대이다. 國子監試 設始 시기와 거의 동시에 마련된 靖宗 2년 7월 判文은 國子監試 應擧資格이 國學生徒들에게만 있는 특권도 아니면서 滿三年在學이라는 실행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義務 規定은 國學敎育을 강화한다는 규정이 아니라 불편한 居齋生活을 꺼리는 중앙의 귀족자제 들에게는 거의 외면당하는, 이것이 도리어 國學敎育의 침체를 가져온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睿宗은 製述 明經 등 業에 새로 응시하려는 자들에게는 國學에 3年 재학 33) 이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즉 許興植氏는 앞의 책 p.28에서 擧 를 國子監試 합격 의 뜻으로 보아 製述 明經의 國子監試에 새로 합격한 자는 國子監에 3년을 소속시킨다. 고 하였 고, 申千湜氏는 앞의 책 p.56에서 國子監諸生들의 製述 明經業(禮部試)에 대한 응시 요건으로 보았으며, 仕滿 300日에 대한 해석은 공히 入仕者에 대한 규정으로 보았다. 柳浩錫氏는 國子 監에 在學하고서 300일을 출석해야 各業監試에 응시를 허락한다 고 하였는데 필자도 이와 동감 이다( 高麗時代 國子監試에 대한 再檢討 ) 歷史學報 103, p.14).
19 하는 사이, 300일을 출석하여 수학하면 監試에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을 두어 國學敎育 을 科擧體系에 連繁하여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史料 G의 새로 응시하는 자(新擧者) 라는 구절이다. 무엇 때문에 새로 라는 말을 넣어 강조하였을까. 아마도 이 말은 이제까지 國子監試에 응시한 자는 차치 하고라도 앞으로는 製述 明經의 兩大業監試에 응시하는 자는 西京을 비롯한 지방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國學에 在學하여야 된다는 조항은 아닐까. 만약 이러한 推斷이 가능하다 면 이것 또한 國學敎育 강화책의 하나이다. 물론, 이상의 규정들은 일반 國學生들에게 해당되는 규정이었고, 齋生으로 선발된 학생 들에게는 國子監試를 거침이 없이 본시험인 禮部試에 直赴할 수 있는 破格的인 특전이 주 어졌다. 이들은 일정한 시험34)을 거쳐 선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학 중에도 考藝試 등을 통해 수시로 실력을 테스트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仁宗 代 전반까지는 齋生들의 禮部試直赴 특전에 관련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仁宗代 중기에 와서야 구체적 사료를 접할 수가 있다. H-① (仁宗 13년判) 國學諸生 四季私試 通考分數 直赴科場 大寒大熱 兩朔免試( 高麗史 권 74, 選擧 2 學校) H-② (仁宗 14년 8월) 中書門下奏 國學諸生 行藝分數 十四分以上 直赴第三場 十三分以下四 分以上赴詩賦場( 高麗史 권73, 選擧 1 科目 1) H-③ (毅宗 8년 5월 又) 國學生 考以六行 積十四分以上者 許直赴終場 不拘其額 仍除三場 連卷 法(위와 같음) 이상의 史料 H群은 모두 禮部試 各場에 直赴할 수 있는 특전들을 열거해 놓은 것이다. 史 料 H-①은 仁宗 13年, 國學諸生(齋生)들에게 四季마다 자체시험(私試)을 실시, 종합한 성적 의 分數에 따라 科場에 直赴케 한다는 判文이다. 그러나 이 判文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종합한 성적의 分數 를 따른다고 했지만 분수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科場의 어느 場에 直赴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仁宗 14년 8 월에 中書門下省은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건의하고 있다(史料 H-②). 즉 國學諸生 중 行藝分數가 14分 이상인 자는 제三場에 直赴하도록 하고, 13分 이하 4分 이상인 자는 詩賦場(中場)에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35) 34) 초기에 이 시험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毅宗 원년(1147)부터는 升補試라 불렀다. 실제로 升補試 합격자는 예비시인 國子監試를 보지 않고 及第하는 사례를 여러 명 볼 수 있다. 高宗代에 及第한 金守剛, 恭愍代의 李玖와 全伯英, 禑王代의 李就 등은 모두 升補試에 합격한 齋生이었다. 먼저 國子監試에 합격하고 다시 升補試를 보아 齋生이 되었다가 及第하는 예는 있 으나(忠烈王代의 崔凝) 齋生으로서 과거 예비시인 國子監試에 응시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35) 이 分數의 기준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申千湜氏는 앞의 책 p.119에서 宋史 -選擧志를 인용,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으나 氏가 인용한 選擧志 3 學校試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즉 성적평가를 上 中 下로 하였는데 上의 경우는 2차의 시험이 모두 上이 되었을 때 의 평가이며, 한번은 上이고 한번은 中인 경우는 둘 다 中인 경우와 같이 취급하여 中으로 평가
20 國史館論叢 第21輯 여기에서 行藝의 行은 규범을 잘 지키는 행실, 藝는 經傳을 익히고 문장을 짓는 기능을 말 하니, 行實과 學識을 병용하여 인물 선발 기준을 삼았다는 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행실에 대한 평가의 운용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國學敎育에서 지식 전달 못지 않게 人格陶冶에도 상당 한 비중을 두었음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시험만 가지고는 평가할 수 없는 학교 교육의 長點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더 강화되어 毅宗 8년 5월에는 國學生의 六行36) 을 詳考하여 14分 이상이 되면 인원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直赴를 허락하였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 학식보다 덕행을 우위에 두는 조치인 등시에 國學生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었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조치가 국학교육진흥에 크게 기여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려후기 武臣亂이나 蒙古侵略같은 격변을 겪으면서도 國學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오면서 과거에서 國學生의 합격 비중을 높여 온 것은37) 앞서 열거한 일련의 정책 덕택이었다. 4) 三舍制 三舍制란 宋 太學에서 운영하던 교육체제이다. 즉 宋 熙寧 4년(高麗 文宗 25년, 1071) 王安石의 건의에 의하여 太學에는 上舍와 內舍 壁雍에는 外舍를 두어, 각 지방의 貢士 중 일정한 시험을 보여 합격자는 外舍에 입학시키고, 행실과 학업 성적을 考績하여 內舍로 올 리고, 內舍에서 다시 上舍로 뽑아 올려 上舍生 중 우수한 자에게 바로 관직을 주는 제도였 다.38) 고려에도 宋의 三舍制度가 그대로 운용되지는 않았지만 三舍制度의 명칭과 형식이 존재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睿宗이 權適 등 留學生을 宋에 파견하면서 보낸 表文에서 學校는 三舍로 구분하고 가르 침은 六經을 기본으로 하였다 39)라 하며 宋의 三舍制度를 크게 칭송하고 있는데 이는 三舍 制에 대해 睿宗의 관심이 지대하였음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고려에서는 언제부 터 三舍制가 시행되었을까. 史料 검토를 통해 먼저 성립시기를 유추해 보기로 하자. I-① 文科新變 第求名世之賢 俗學濫容 甫就育之地 恢崇三舍之規 招來四方之士 敎之以 經術 錫之以土田( 東文選 권36, 諸生謝就養表 張仔 ) I-② 雖在萬機之煩務 先崇三舍之宏規 鼓舞四方 體乾施而坤闢 作成多士( 東文選 권 36, 幸 學命講 經諸生謝許難疑表 成上田 ) 했고, 한번이라도 下가 있으면 나머지는 上이라 하더라도 下로 평가하였다. 이같이 평가를 다시 종합하여 등급을 정하여 분수하는데, 1등은 두지 않고 2등 1명에게 3分을 주고, 2등 2명에게는 2.5分을 주며, 3등의 경우 1 명은 2分, 다음 5명은 1.5分, 그 다음 9명에게는 1.3分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1分씩 주었다. 不通인 자는 黜學시켰다. 36) 六行이란 여섯 가지 선행을 말하는데, 그 내용은 ① 孝 友 睦 婣 任 恤, ② 仁 義 禮 智 信 樂 등 일정하지 않다. 37) 及第前 자격이 전부 밝혀진 몇몇 榜目 중 忠烈王 16년의 高麗朝科擧事蹟 에 의하면 國學生이 었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전체 及第者 33명 중 33%인 11명에 이르고 있다. 38) 宋史 志 110 選選3. 39) 高麗史 世家 권 14, 睿宗 10년 7월.
21 - 253 사료 I-①은 張仔가 諸生을 대표하여 國學에 就學한 것을 謝禮하는 表文인데, 다행히 張仔 가 睿宗 9년 2월에 國學諸生을 대표하여 國學建立을 청하는 기록이 있으니 이 글은 睿宗 9년 2월 이전 어느 때에 지은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면 인용된 문장 중 I-①부터 검토해 보자. 은 文科가 새롭게 변하여 학생을 선발하게 되었는데, 변변찮은 자신이 거기에 들었다 는 내용이며, 은 그와 같은 교육개혁을 수행하기 위하여 三舍의 규모를 넓히고 사방의 선비를 모아 儒學의 經傳을 가르치고, 田土를 하사하여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 렇다면 文科가 새롭게 변했다는 교육개혁과 三舍의 성립은 睿宗 9년 2월 이전 어느 때일 것이다. 그런데 文科가 새로 변했다 는 科擧制의 개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學制와 깊은 관련이 있는 睿宗 5년 9월의 製述과 明經 등 諸業에 새로 응시하려는 자는 國子監에 3년간 소속하여 300日 출석하여야 한다 (사료 G 참조)는 判文일 것이다. 그 리고 이 때 七齋生과 관련된 어떤 科擧制의 변혁도 있었을 것이다. 史料 I-①의 문장 내용으로 보아 張仔는 교육개혁이 있은 제1회 입학생임이 틀림없고 그 입학 시기는 睿宗 4년 7월일 것이다. 인용사료 I-①의 문장 서술은 科擧制가 먼저 변하고 그에 따라 입학시험이 실시된 듯이 되어 있지만 이는 문장 표현이 그렇게 되었을 뿐, 실은 4년 7월에 七齋를 설치하고나니 이에 따른 科擧制의 개편이 없을 수 없어 5년 9월의 개혁 이 나오게 된 것이고, 위의 表文은 이 사실을 기록한 것이었다. 사료 I-②는 睿宗 9년 8월, 王이 國學에 幸行했을 때 講經席上에서 諸生이 질문을 하도 록 허락한 것을 사례한 글로서 여기서도 국사를 다스리는 바쁜 중에 먼저 三舍의 큰 규모 를 높여 사방을 고무했다 하여 三舍制가 일찍이 성립되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다음으로 三舍制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자. 이 三舍制의 실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려의 三舍制는 宋의 그것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려적 특성 에 맞도록 운용되었다. 아래에 上舍의 用例가 나오는 사료를 摘示하면 다음과 같다. J-① 至己未歳(仁宗 17, 1139)入太學 六館諸生皆服公之雅望 屢魁多士 至丙寅歲(仁宗 24 년, 1146) 以上舍第二人擢 第 北學于京 太學八年 追補 李文鐸墓誌銘 p.169) J-② 趙冲字湛若 入太學登上舍明宗時登第( 高麗史 列傳 卷 16, 趙冲傳) J-③ 其孫漢寶遊成均 學業精明居上舍 惕若齋集 卷上 送金漢寶生員歸江陵) J-④ 草溪有隱君子 鄭上舍者 我先人稼亭公同年進士也( 牧隱集 文 卷20, 草溪鄭顯叔傳) 위에 인용한 사료 J群에서 보면 J-①의 李文鐸은 成均試에 합격한 뒤 얼마 있다가 32세로 太學에 들어가니 六館諸生들이 모두 公의 重望에 敬服하여 모든 논의에서 감히 이의를 제기하 는 자가 없었다 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六館諸生이란 七齋에서 폐지된 武學齋를 제외한 儒學 齋를 말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 그는 齋生으로 太學에 입학한 것이다. 그가 일찍이 尹彥頭의 掌試下에 成均試에 합격했으니(사료 C-⑦ 참조) 일단 國學입학자격은 획득한 셈이
22 國史館論叢 第21輯 나 齋生이 되기 위해서 무슨 자격을 획득했는지 자세하지 않다. 아마 升補試(주 34 참조)를 거쳤을 것이다. 그후 그는 8년 동안의 學業을 닦은 뒤 上舍 제2인으로서 及第하고 있다. 그렇다면 齋生과 上舍生은 어떤 관계일까. 李文鐸의 경우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다 생각 할 수 있으니 하나는 齋生으로 입학, 8년 간의 재학 중 行藝에서 성적이 우수하여 上舍에 승격, 제2인의 서열로 科擧에 응시, 及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七齋40) 를 곧 上舍로 보아 齋生 중에서 서열 2위로 科擧에 웅시 급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전자의 입장에 따른다면 齋生 위에 상급의 上舍生이 존재하게 되고, 후자의 입장에 의하면 齋生이 곧 上舍生이 된다. 사료 J-② 趙冲의 경우는 文義로 보면 일단 太學에 입학했다가 上舍에 오르고 있는데, 趙冲이 입학한 太學이란 것이 일반 國學生을 의미하는지 七齋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아 여기서도 上舍의 개념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사료 J-③의 金漢寶는 成均館에 留學하면서 학업이 精明하여 上舍에 居했다 고 했으니 上舍는 太學生 중 학업우수자가 선발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끝으로 J-④는 李穀의 同年進士 鄭某로서, 그는 進士로 上舍에 오른 자인데, 그가 進士 가 되어 國學에 입학한 뒤 行藝의 考績으로 上舍에 올랐는지 어떤 시험을 거쳐 올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상 네 사람의 학업과정을 종합해 보면 ① 一般國學生 齋生 上舍生의 3단계와 ② 一 般國學生 齋生(=上舍生)의 2단계로 교육체계를 가정할 수 있는데, 3단계에서의 최고학부 는 上舍이고, 2단계에서의 최고학부는 七齋이다. 그런데 여기 七齋와 上舍의 관계를 분명 히 밝혀 주는 기록이 있다. K 上命大司成金富轍.就前夕席講無逸篇并口義 命起居郞尹彥頣問義 更敎諸生前進而聽之 又 求仁齋生河永深 互相詰之( 東文選 권64, 金守雌 幸學記) 命待聘齋 生李聖予鄭子野 國王의 國學幸行은 學官이나 諸生들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었고, 이 때 硕學들로 하여금 經傳을 講하게 하고 諸生들로 하여금 聽講한 뒤 問難을 許하는 것이 상례였다. 위의 사료 는 仁宗 7년(1129) 4월의 幸學時 待聘齋生 李聖予와 鄭子野, 求仁齋生 河永深이 講席에 참여하여 問難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齋위에 上舍生이 있었다면 齋生인 위의 3人이 問難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七齋는 國學의 최고학부였고, 太學에는 一般國學生과 齋生의 2 단계가 있었으며 齋生이 곧 上舍生임이 극명하게 드러났다.41) 40) 仁宗 때 武學이 폐지되어 실은 六齋이지만 高麗末까지 七齋 혹은 七館 등이 國學의 異稱으로 불 려졌다. 41) 申千湜은 앞의 책 pp.78 79에서 七齋가 儒敎經傳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特殊學制라고 보고, 일찍이 許興値이 주장한 七齋가 곧 上舍라는 주장( 高麗科擧制度史硏究 p.87)을 다각도 로 부정했으나 역시 許氏의 견해가 옮았음이 확인된 셈이다.
23 그러면 三舍制 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三舍라고 했으니 구색에 맞게끔 上舍 외에 內 舍(혹은 下舍) 外舍의 존재가 나타나야 할 터인데, 우리 기록에서 이런 용어들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고려적 상황에서 유추해 보는 도리밖에 없다. 중국문물을 흠모한 睿宗은 여러 면에서 宋制를 모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교육제 도에도 宋의 三舍制를 도입했다. 즉 國學生 중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 이들을 七齋에 居하며 전공별로 經傳을 닦게 한 것이 上舍였다. 그렇다고 고려학제의 전통이나 체제를 전 면 무시하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할 수는 없었다. 宋의 三舍制는 遞減陶汰方式42)에 의거, 上舍에 오르면 그 중 우수한 자는 곧바로 관직에 보임했음에 비하여 고려에서는 비록 上舍 生이 齋生 중 아무리 우수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관직을 제수하는 규정은 없었고 科擧及第나 蔭叙에 의해서만 士宦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이었기 때문에 宋의 內舍에 대 칭되는 一般國學生이나, 外舍生에 대칭되는 鄕貢을 內舍生(혹은 下舍生)이나 外舍生으로 부르지 않았다. 다만 그 체계가 3단계로 구분된 점을 감안, 宋의 三舍制에 假托하여 七齋 의 성립 그것을 三舍의 규모를 높였다 고 칭송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3. 入學資格과 學生定員 1) 入學資格 (1) 學生身分 앞에서 고려의 國子監 체제가 學式規定과 같이 父祖의 官爵에 따라 子孫의 修學處가 다른, 이른바 國子學 太學 四門學의 三學은 존재하지 않았음이 사료의 검토를 통해서 밝혀졌다. 이 렇게 三學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대신 品官의 子孫과 鄕吏 출신은 어떤 구분이 있었던 것 같고, 이들 鄕吏 출신이 四門學生으로 불리어졌으리라는 것을 추정하였다. 그러면 실제로 國 子監 학생들은 어떤 신분층들이었을까. 먼저 成宗朝에 나타나는 학생들의 신분을 살펴보자. L-① (成宗 六年 八月) 以前年許還學生 無師敎授 十二牧各遣一人 敦行敎諭 其諸州郡縣 長 吏百姓 有兒可敎學者 并令訓成( 高麗史 志28 學校) L-② 李周佐慶州人 家世單微 幼聰悟 左僕射李成功 留守東京 一見器之 及還携至京 使隸國學 穆宗朝登第( 高麗史 列傳7 李周佐傳). L-①은 전년에 귀향시킨 지방학생들을 위해 12牧에 교수를 파견하면서 피교육자가 될 만한 다른 長吏와 백성의 자제도 함께 가르치라는 내용인데, 이는 成宗 5년 7월, 일찍이 42) 宋 神宗 31년(1079)에 분포된 학령에 의하면 三舍의 정원이 外舍生 2 千人 內舍生 3 百人 上舍 生 1 百人인데, 매월 私試를, 연말에 公試를 보여 外舍에서 內舍로 올리고, 2년마다 舍試를 보 여 上舍에 올리는데, 上舍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는 곧장 관직에 補任하였다.
24 國史館論叢 第21輯 詣京習業하던 260명의 학생 중 귀향한 207명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조처이다. 그런데 서 울에 잔류했던 53명은 國子監에 취학했음이 틀림없고, 이들의 신분은 鄕吏층이 주류였을 것이다. 그리고 L-②의 李周佐 역시 鄕吏의 자재인지 일반 백성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가세 가 단미하다고 했으니, 이들 신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과거응시자들의 신분을 보자. 國子監 수학의 제1차 목적이 科擧及第를 통한 宦路에 의 진출이었을 터이니 製述 明經 兩大業 응거 예정자들의 신분적 한계를 검토하면 그 대체 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文宗 2년 10월 判에, L-③ 各州縣副戶長以上孫 副戶正以上子 欲赴製述明經業者 所在官試貢京師( 高麗史,志27, 選擧 1 科目 1) 라 하였으니 副戶長 이상의 孫, 副戶正 이상의 子는 製述 明經 兩大業에 응시자격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이들 鄕吏層이 鄕貢의 주류였을 것임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신분층이 國子監諸生 중 차지하는 비율은 어떠했을까. 물론 중앙귀족 자제들 도 상당수 있었겠지만 전통적으로 貴顯家의 자제들은 음식과 거처가 불편한 國子監에 큰 매력 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國子監 재학이 科擧及第를 위한 최선의 과정도 아니었다. 반면 開京 에 마땅한 거처가 없는 科擧 지망 鄕貢들에게는 이 國子監이 더없이 좋은 유숙소였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國子監은 중앙 귀족들에게는 점점 외면당하게 되었고, 文宗 이후 급격히 늘어난 私學의 발달은 그 존재 의의를 차츰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肅宗代에는 邵 台輔 등이 國子監 폐지론까지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睿宗 이전 諸生들의 신분은 鄕 吏層이나 하급 관료의 자제들이 주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柳仁著의 人物評에 家門이 貴 顯했는데도 諸生들과 어울려 독서한 것을 특기할 정도였고,43) 國子監 諸生으로서 장년이 되어도 才器를 이루지 못하는 자는 光軍에 편성하는 조처44) 등에서 당시 國子監諸生들의 신분층을 추측케 한다. 그리고 현존 墓誌銘 중에는 지방 출신의 國學生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國學生의 주류가 지방 출신자들이었음을 말하는 證左라 하겠다. 이러한 國子監의 상황은 睿宗의 교육개혁으로 역전되었다. 국왕의 강력한 國學振興策 결 과 名門巨族의 자제들이 속속 國子監에 입학하였다.45) 이런 현상은 武臣執權期까지 계속되 었다.46) 그러나 學式規定과 같이 國子學 太學 四門學으로 나누어진 것은 아니고 品官의 자 43) 高麗史節要 권 8, 睿宗 8년 5월. 44) 高麗史 志35 兵1 兵制 靖宗 8년 判. 李基白氏는 高麗光軍考 ( 高麗兵制史硏究, 一潮 閣, 1967) pp 에서 光軍은 중앙정부와 지방호족에 의한 農民力役의 공동지 배속에 이 루어진 군사조직인데 뒤에 奇光軍으로 바뀌고, 이 奇光軍은 文武 6 7品의 子 및 壯丁으로 편성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당시 國子監諸生들도 이러한 신분계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45) 특히 仁宗代에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尹彦頣의 아들 惇義, 崔允儀 林球, 胡晋卿의 두 아 들 등이 國學을 거치고 있다. 46) 사료 C-D群의 인물이 대부분 이 시기에 太學에 재학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25 제 및 鄕吏의 자제로 나뉘어진 듯하다. (2) 入學資格 國子監諸生의 입학자격은 어떠했을까. 國子監이 최고학부였으니만큼 그 입학에는 일정한 자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대로 국왕이 지방학생의 詣京學習을 적극 권 장하던 초기에는 아마도 일정 신분 이상의 자제는 자동적으로 입학이 허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顯宗 때 國子監試가 실시된 뒤부터47)는 일반 학생과 더불어 國子監試 합격자들 도 입학이 허용되었다. 그렇다고 중앙의 貴顯家子弟들이 모여든 것은 아니었고 지방에서 올라 온 應擧者들의 詣京學習所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睿宗이 國子監을 개혁하여 七齋를 설치하고 科擧制를 개편한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졌 다. 중앙의 귀족들은 너도나도 國子監에 자손을 입학시키자 國子監은 명실상부하게 최고학부로 서의 명예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國子監은 일반 학생과 새로운 시험 즉 升補試48)를 통해 선발된 七齋生들로 구성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七齋生들이 國子監生의 主流가 되었다. 2) 學生定員 學式에 의하면 고려 國子監 儒學部의 학생정원은 國子學 太學 四門學 각 3 백명씩 도합 9백명으로 되어 있다. 이 숫자는 唐 國子監 정원 2천 1백 명에 비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이며,49) 조선시대 成均館의 정원 2 백인50)에 비하면 무려 4 5배나 되어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이 정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의심을 가지고 각각 다른 의견을 제 시하였다. 閔丙河는 睿宗代의 國學七齋가 고려 國子監의 개편이란 관점에서 七齋의 정원을 國子監 전체 학생수로 파악, 60 70여 명으로 보았으며,51) 朴性鳳은 國學定員 각 3백명은 合 3 백명인 듯하며, 실상은 2 백명 정도를 넘지 못했을 것으로 推定하였고,52) 申千湜은 七齋生을 기존의 國學生徒와는 별개로 보고, 일반 국학생도 2백여 명, 七齋生 70 80여명, 47) 朴龍雲氏는 顯宗初에 성립하여 德宗 即位年(1031)에 완성되었다고 추정하였다( 高麗時代 蔭叙 制와 科擧制硏究 p. 191). 48) 升補試란 용어 자체가 升堂補闕之試 의 약어이니 올려서 보충한다는 뜻으로, 일반 國子監生 중에 서 선발된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選擧志의 升補試即生員試 라는 구절의 해석을 흔히들 升 補試는 바로 進士試에 對稱되는 生員試 라고 풀이하여 조선시대의 生員試라는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데, 이러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는 한 升補試의 개념은 분명해지지 않는다. 이 때의 生員은 學生員額 이란 의미이다. (주 34) 참조. 49) 唐 國子監 정원은 國子學生 3 백인, 太學生 5백인, 四門學生 1천 3백인인데, 특히 四門學 1천 3 백인 중 7品 이상의 子는 5백인뿐이고 나머지 8백인은 人의 子이다. 그러므로 7 品 이상만 따 진다면 도합 1천 3 백인으로 고려 國子監 정원 9 백인에 비해 약 4:3 의 비율인데 인구의 대소 를 비교할 때 고려의 정원이 너무 많다. 50) 조선시대 成均館 정원은 生員 進士 각 1 백명씩 도합 2 백명이었다. 51) 閔丙河, 高麗時代에 있어서 成均館의 成立과 發展 ( 大東文化硏究 6.7) pp ) 朴性鳳, 國子監과 私學 ( 한국사 6, 國史編纂委員會, 1975) p.211.
26 國史館論叢 第21輯 여기에다 技術部學生을 합하여 3 백명은 유지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53) 이상의 주장들은 學式에 규정된 9 백명의 정원이 과다하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으 나, 실제 國學生의 수에 있어서는 國子監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睿宗 仁宗代의 학생수가 최소 70 80명에서 최대 300여 명까지로 그 오차가 200여 명 이상이나 된다. 그러므로 당시 國子監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國子변천의 역사적 추이를 살피면서 唐 宋 및 朝鮮의 그것들과 비교할 필요성이 있다. 고려 건국초기에 어떤 형태로든 국립대학격인 교육기관이 존재했을 것이란 개연성에 대 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나 이를 뒷받침할 실증적 史料의 부족으로 당시의 교육 실태를 알 길은 없고, 成宗 때에 와서야 그 윤곽이 드러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成宗初 중앙집권화정 책의 일환으로 지방 호족의 자제들을 開京에 모아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숫자는 모두 260 명이었다. 그러다가 成宗 5년, 이들 중 歸鄕을 원하는 자 207명을 還鄕시키고 願留者 53 명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체제를 출발시키고 있다. 이들이 아마 國子監 학생의 주류가 되 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開京 거주 학생 및 技術學部生을 포함하더라도 1 백명에서 크게 벗 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이러한 수준이 계속되거나 혹은 더 침체했을지도 모른다는 추 측을 앞에서 인용한 邵台輔 등의 國學廢止論으로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다가 睿宗의 교육개혁에 의한 七齋의 성립으로 三舍制가 확립되고 科擧應試上의 각종 특전이 國學生들에게 주어지자 國子監은 아연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仁宗 8년 7월 國學의 養士 비용이 많이 드니 행실이 닦여지고 학업이 성취된 자 약간인만 재학시키고 나머 지는 모두 黜學시키자 는 御史臺의 상주가 있자 이에 대한 반론으로 國子生들이 詣闕, 반박하 는 上疏에서 國學生徒不過二百 이라 하여 당시 國學生의 숫자가 2 백명 정도였음을 알 수 있 다.54) 眷 仁 毅宗三代가 고려 國子監敎育의 전성기였음을 감안할 때, 이 2 백명 정도가 최고 숫자였을 것이고, 이 숫자도 늘 이런 수준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훨씬 미달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추단할 수 있는 근거는 조선시대의 成均館과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고려시대의 상황은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현재로서는, 비록 시간적인 차이는 있으나 조선시대 成均館의 실태를 통해서 당시를 유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國 學敎育의 내용이 經學 중심이고, 宦路 진출에 있어서 科擧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조선과 불교국가이며 蔭叙가 보편화되었던 고려를 비교할 때, 조선조 成均館의 교육여건이 고려의 그것보다 더 좋았을 것이며, 정부의 관심과 배려도 월등했을 것이란 추측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조선초기 成均館의 실태는 어떠했던가. 조선조에서는 成均館 學生을 모집하기 위하여 生員 進士試를 보여 生員 進士를 선발했고 文科에 응시하려는 자에게는 3백일의 居館修學을 의무규정으로 요구했지만55) 학생 숫자는 53) 申千湜, 高麗敎育制度史硏究 p ) 高麗史 志28 選擧 2 學校.
27 백명 정원에서 항상 미달이었다. 미달일 정도가 아니라 四部學堂의 生徒로 보충하는데도 불구하고 1 백명에도 차지 못하였다.56) 이렇게 生徒들이 차지 않았던 이유는 居齋 生活에 따른 난관이 많았던 때문이다. 다음의 사료는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 주는 것으로 고려시 대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록이다. 先是 京中豪勢子弟 幸中生員試 居館未幾 憚其居處飮食之未適其意 因父兄之蔭 皆欲從仕 其在 外方者或聚或散 間有志學之士 皆鄕曲寒生 恒居於館 往往得風濕之疾 故人多厭之 其居館者常不滿 三四十( 太宗實錄 太宗 17년 閏 5월 己巳)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① 權貴家의 자손들은 生員試에 합격해도 成均館의 열악한 거처와 음식을 기피하여 蔭仕 를 원한다. ② 지방에 있는 자도 科擧 때가 되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과거가 끝나면 흩어진다. ③ 학문에 뜻을 둔 시골의 가난한 선비가 館에 오래 거처하다 보면 得病하는 수가 많다. ④ 이러한 결과 常住者는 30 40명에도 미달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시대라고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더 심했을는지 모른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전성기에는 2 백명에 가까울 때도 있었지만 보통 때에는 1 백명 정도, 아니 그 이하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麗末 여러 차례 兵亂을 거친 뒤에는 國學生徒는 幾十 명에 불과하였다. 4. 敎科課程과 修業年限 1) 敎科課程 교과과정 역시 唐書 選擧志와의 비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唐制를 거의 그대로 채 용한 것이다. 學試에 의하면 論語와 孝經은 공통필수이고, 전공과목으로 周易 倚書 周禮 禮記 毛詩 春秋左氏傳 公羊傳 穀梁傳을 각각 1 經씩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 學式 規定대로라면 위의 9經 중에서57) 어느 한 경전과 공통필수인 論語 孝經만 이수하면 되도록 되어 있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 經傳들이 각각 분량이 다르고, 春秋三傳같은 것은 詳略에는 차이가 있지 만 같은 類의 經傳인데, 내용의 상관관계나 大小經에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1 經씩 전공한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唐書 選擧志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55) 太宗實錄 太宗 17년 閏 5월 甲子. 56) 太宗實錄 太宗 17年 閏 5월 己巳, 成均館 常養生員進士 元額二百而毎不滿額 故選四學儒生升 補 尙未滿百 國學虛陳. 57) 學式에는 儀禮가 빠진 8經만 예시되어 있는데, 다음의 修業年限에서는 儀禮가 포함되어 있는 것 으로 보아 착오에 의한 탈락으로 보아야 한다(주 4 참조).
28 國史館論叢 第21輯 唐書 에서는 9經을 大 中 小經으로 나누었으니 春秋左氏傳 禮記를 大經, 詩 周禮 儀禮 를 中經, 易 尚書 公羊傳 穀梁傳을 小經으로 하였는데, 그 기준은 經傳의 분량에 의한 것이 었다.58) 고려에서 唐制의 그것이 그대로 시행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大 中 小의 구별은 동일했다. 그리고 당시 國學의 수업 상황을 알려 주는 것으로 仁宗 15년 9월에 門下省奏 國學六齋諸生 各持所講大小經升堂 博士學諭執經升講 毎日不過五人 毎人不過二問 容 從論難 悟疑辨惑 이라 하여 國學六齋生들이 각기 자기가 공부하는 大 中 小經을 가지고 강당에 나가면 博士 와 學諭가 경을 가지고 등단하여 강의하는데, 하루에 5人, 1 인에 5問씩 問難하는 것에 불 과할 뿐이니 조용히 問難하여 의혹을 풀도록 하라 고 門下省에서 上奏하고 있다. 門下省의 上奏 목적은 마지막 從容論難 悟疑辨惑 의 여덟 글자에 있지만, 위의 짧은 史料는 당시의 교육실황을 유추하는 데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즉, ① 문맥으로 보아 國學의 피교육자의 중심은 六齋生이었다. ② 각기 전공하는 大小經傳을 가지고 講堂에 모여 合同講義를 하였다. ③ 博士와 學諭가 직접 교육을 담당하는 敎授들이었다. ④ 敎授가 설명하는 설명식 강의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평소 공부에서 품었던 의혹을 변석하는 학생들 자습 중심의 교육형식이었다. ⑤ 國學敎育이 지향하는 교육목표는 피교육자들의 수준이 최고학부였으니만큼 평범한 장 전 내용의 설명이 아니라 微妙한 해석상의 의혹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國學은 최고학부였으니만큼 대부분 9經의 상당 부분을 섭렵한 사람들이고 실력이 그 정도는 되어야 六齋生의 선발에 들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國學이 하나의 교 육체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상 과정에 따른 수업 연한이 없을 수 없었다. 이들은 이러한 儒經을 공부하는 외에 논문작성법으로 時務策을 익혀 科擧에 대비하고, 매일 한 장씩의 習 字를 연습하여 선비의 기본기라고 할 글씨공부를 익혔으며, 아울러 역사서인 國語를 읽고 字書인 說文 字林 三倉 爾雅를 교재로 한자의 기원을 익혔다. 2) 修業年限 國子監 在學年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文宗 17년 8 월 判에, 國子監諸生 近多廢業 責在學官 自今精加勉勵 至年終較臧否定去留 儒生在監九年 律生六年 荒 昧無成者 並令屏黜( 高麗史 志28 選擧 2 科目 2 學校) 58) 大 中 小經의 구분이 내용의 난이도에 따라 구분된 것이 아니라 卷帙의 大小에 따라 나눈 것이 다. 唐에서는 전공 經傳의 숫자에 따라 通 2 經者(大 小經 각 1, 中經이면 2經), 通 3 經者 (大 中 小 각 1), 通 5 經者(大經 전부, 中 小經 각 1) 의 세 과정이 있는데 이들 각 과정에서도 論語 孝經은 필수교양으로 兼修하여야 하였다(주 5 참조).
29 라 하여 일정한 修業年限은 없으나 다만 在學上限을 儒學部生 9년, 律學生 6년으로 제한하 고 있다. 즉 9년이나 6년을 가르쳐도 荒昧無成한 자는 黜學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규 정의 운용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學式에 나타난 각 經傳의 修業年限을 열거해 보자. ① 論語 孝經 共 1년 ② 尙書 公羊 穀梁 각 1 년반59) ③ 周易 毛詩 周禮 儀禮 각 2년 ④ 禮記 左傳 각 3년 이상 11 經을 다 독파한다고 가정하면 17.5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科業이 나누어진 데서 알 수 있듯이 모든 經을 학생들이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經傳에 따른 몇 가지 전공선택이 있었다. 이것과 修業年限 9 년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다시 唐書 選 擧志로 돌아가 검토해 보자. 거기에는 通二經者 通三經者 通五經者의 3 種이 있었다. 그런데 通三經 이상은 특출한 재능을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일반학 생들인 通二經者의 경우를 보면, 大經 小經을 이수하여 4.5년이 소요되는 경우와 中經 둘을 이수하여 4년이 소요되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 論語와 孝經의 이수기간인 1년 을 합하면 각각 5년반과 5년이 된다. 在監 9년의 상한은 5 5.5년에 수료할 일반학생의 과 정을 荒昧無成하여 9 년이 되어도 成効가 없는 경우 黜學시키는 규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年限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現 학제와 같은 학년 졸업제가 아니었던 까닭에, 재능이 뛰 어나거나 미리 배운 사람은 이보다 훨씬 먼저 이수할 수도 있었다. 다만 교육과정을 설정한 이상, 소요 연수와 상한선을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在學 하한선은 없었던가. 통시대적 규정은 아니었지만 물론 있었다. 在學 滿 3 년이면 科擧應試를 허락한다 60)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당시 國學 입학의 최대 목표는 及第 였다. 修業年限을 다 채웠다고 수료증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國學在學 年數가 考課에 반영 되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3 9년의 수학기간이란 것이 있기는 했지만 개인별로 보면 입학 에서 及第까지가 바로 在學年限이었다. 다음 사람들의 이력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보자. 표 4 <표> </표> 姓名 李文鐸 吳 實 柳公權 吳闡猷 資格試驗 成均試 年十九登司馬 成試均 己酉歲(1189) 太學入學 己未(1139) 二十一入太學 明年(1156) 入學 遂入太學 59) 原文에는 2년 반으로 되어 있다. 주 5) 참조. 60) 高麗史 志27 選擧 1 科目 1 睿宗 5년 9월. 及第 丙寅(1146) 擢第 涉二歲及第 庚辰(1160) 甲寅(1194) 8년 2년 6년 5년 在學年數
30 國史館論叢 第21輯 위에서 보듯이 李文鐸은 在學 8년 만에 급제하고, 吳 實은 2년 만에 行藝分數가 14分 인 자는 제3場에 直赴한다는 규정에 따라 應擧及第함으로써 在學 2년으로 수료하고 있다. 다시 修學年限을 요약하면, 재학 義務年數는 3년이고 最長年限은 9년이지만, 修學의 목 적이 科擧에 있었기 때문에 개인별로는 입학에서 科擧及第까지가 재학기간이었다. Ⅳ. 結語 이상에서 논증한 것을 요약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仁宗 때 詳定했다고 하는 고려 學式은 거의 대부분이 唐書 選擧志의 내용을 그 대로 채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제정 시기 또한 仁宗 때에 처음으로 성립한 것 이 아니라 종래 唐制를 채용하여 만들었던 교육체계를 仁宗代에 지향하던 교육목표에 따라 재정리한 것이다. 둘째, 고려 學式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父祖의 爵秩에 따라 입학을 달리했다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의 구분은 고려 전시기를 통해 존재하지도 운용되지도 않았다. 國子博士 助敎, 太學博士 助敎, 四門博士 助敎는 敎職의 등급 구분일 뿐 학제상의 구분에 따른 것은 아니었 다. 따라서 學式에 명시된 것처럼 신분에 따라 학부가 구분되지는 않았고, 國學(生) 혹은 太學(生) 등으로 널리 불리어졌다. 다만 鄕吏 등 신분이 낮은 계층의 자제들이 四門學生으 로 불리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 睿宗의 교육개혁 이후에는 國子監은 一般國學生과 七齋生으로 구분되었고, 이 七 齋生이 바로 三舍制의 上舍生으로서 일정한 기준에 들게 되면 禮部試에 直赴할 수 있는 특 전도 부여받았다. 넷째, 國學生의 신분은 國初부터 肅宗代까지는 鄕吏의 자제가 주류를 이루었고, 입학도 수월했을 것이나 睿宗이 七齋를 설립한 이후에는 일정한 시험을 거쳐야 하였고 이것이 뒤 의 升補試이다 仁宗 毅宗代에는 귀족의 자제들도 다투어 입학함으로써 國子監의 위상도 상승하였다. 다섯째, 학생 수를 보면, 官學의 극성기이던 仁宗代에는 학생수가 한때 2 백여 명 정도 일 때도 있었으나 그 전기나 후기에는 대체로 1 백명 미만이었다. 여섯째, 교과과정에는 論語와 孝經을 필수교양으로 하고 儒敎經傳인 9 經을 학습하는 것 으로 되어 있으나, 大 中 小經 중 2 3種을 선택하여 전공하고 때때로 역사서와 논문작성 법인 時務策, 字書인 說文 字林 등을 익혔다. 일곱째, 修業年限은 儒學 9년, 律學 6년이었으나 修學의 최고 목표는 科擧及第였기 때문
31 에 입학 후 科擧及第까지가 재학기간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고려시대의 學試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高麗一代의 官學體系를 포괄하는 學式이라는 문제를 한 論文에 담으려 한 결과 放漫함을 면할 수 없었다. 앞으로 이를 발판으로 하여 高麗敎育史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同學 諸位의 많은 叱正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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