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해설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By The Rev. William Bruce 윌리암브루스지음 / 배제형옮김 도서출판벽옥
성경해설 요한계시록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By The Rev. William Bruce 윌리암브루스지음배제형옮김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BY THE REV.WILLIAM BRUCE JAMES SPEIRS 36 BLOOMSBURY STREET, LONDON 1877
보아라내가만물을새롭게만든다. 요한계시록 21: 5
차례 서문 ------11 제1 장-----13 제2 장-----52 제3 장-----88 제4 장-----123 제5 장-----137 제6 장-----149 제7 장-----163 제8 장-----178 제9 장-----190 제10 장-----203 제11 장-----210 제12 장------237 제13 장------258 제14 장------272 제15 장------283 제16 장------289 제17 장------297 제18 장-------315 제19 장------331 제20 장------353 제21 장------363 제22 장------421
서문 (Introduction) 거룩한성경의책들중에서계시의이책은염려스러워하면서탐구할수밖에없게하는깊은주제를지니고있다. 그래서이책의해석을세세하게담은저술도흔치는않은것같다. 이런연유는이책자체의속성때문이다. 예언적이고수수께끼같은이책의글들은인간의호기심을강하게자극시키고재간을잘부리는인간의능력에폭넓은기회 (scope) 도제공하고있다. 이책의설명이불확실한채다양해진것은한가지이런원인으로부터발생하고있다. 모세가유대인에게베일로가린예언자였듯요한은기독인에게그러했다. 고린도후서 3장 13-15 절을읽어보자. 우리는모세처럼자기얼굴에서광채가완전히사라지는것을이스라엘백성들에게보이지않으려고너울로얼굴을가리는것같은일은하지않습니다. 과연이스라엘백성들의마음은오늘날에이르기까지도너울에가리워져서우둔해지고말았습니다. 그들은옛계약의글을읽으면서도그뜻을깨닫지못합니다. 그너울은사람이그리스도를믿을때에비로소벗겨지게되는것입니다. 그러나오늘날까지도모세의율법을읽을때마다그들의마음은여전히너울로가리워져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끝까지볼수없으면서폐지되고만것은이스라엘교회라는하늘의처방이었다. 기독교인들이끝까지볼수없으면서폐지되는것은기독교회라는하늘의처방이다. 지금말한기독교처방 (Christian dispensation) 은기독교신앙 (christianity) 을뜻하는것은물론아니다. 기독교신앙은끝이결코없고대대로더욱힘과영예가증가해갈것이다. 그러나이교회의첫처방은사라지고또다르고더나은처방을수단으로계승되어진다. 이스라엘교회의처방이그리스도의첫번째오심으로폐지되었듯이, 기독교처방은그분의두번째오심으로폐지되어진다. 이대목에기독교인내지기독교해설자의큰착오가놓여있다. 그들은주님의오심이세상의파멸에대한신호로서그것을기다리고있다. 우리주님의제자들이문의했고, 그분께서그들로하여금예상하도록격려하신시대의끝 (the end of the age, alwv) 이라는용어는그들의후계자들로인해서세상의끝 (the end of the world) 으로바뀌고말았다. 참으로, 시대또는처방의끝그리고그분의두번째오심에관한주님의서술은글자대로에서그분을이해하려는 요한계시록해설 11
직역주의자들로하여금이런물질계의종말을예견하도록인도했을는지모른다. 즉해가어두워지고달이그빛을주지않고별들이하늘로부터떨어지고하늘과땅자체가사라지는종말이다. 그러나성경의비유적언어를잘알고있다고자부하는사람들, 그리고이와비슷한예견이예비적으로성취되었었다는것을아는사람들이이런것을글자대로이해했고계속그런식으로이해하려는것은어째서일까? 그들의마음이소경이었기때문이다. 과연오늘에이르기까지도신약성서를읽는데있어서이베일은벗겨지지않은채남아있다. 이베일은그리스도안에서 -그분의두번째오심에서벗겨졌다. 이사건이계시록의해석을주었다. 이런사항이은폐되어있었던것은주님의허용하심의법칙때문이었다. 어떤예언도그분의두번째오심이성취되기전명백하게이해될수없었다. 어떤교회도그교회의끝을확고부동하게쳐다볼수없다. 그렇다고이것이질책의원인인것은아니다. 이것은당연하리만큼필수적사항이다. 주님께서는그분에게만알려진방법으로그분의슬기와복주시는목적을작업해내신다. 이작업을우리는지식을수단으로훼방하려들뿐이다. 이책의참된해석이지금알려져있다. 그이유가주님의두번째오심이이미거행되었기때문이다. 이오심이예언을설명했다. 그리하여그신비를밝히알렸다. 이책의설명에서보여주겠지만주님의두번째오심은대기의구름 (the clouds of atmosphere) 안에개인적으로나타나는오심이아니고주님께서그분자신의신성한인성 (His own Divine Humanity) 의큰영광과권능안에서인간의마음에그분자신을보일수있게하는영적인사건, 즉말씀의영적의미를밝히알게함으로결과된다. 그분은지상에그분의왕국을새로이건설하시러오신다. 첫기독교회라는처방은옥좌에앉으신그분의얼굴로부터사라져버린땅과하늘로의미되고, 두번째기독교회라는처방은그뒤에요한이바라본새하늘과새땅으로의미되고있다. 요한이본것, 즉신랑을맞을신부가단장한것처럼차리고하느님께서계시는하늘로부터내려오는새예루살렘은진리와사랑의처방같이새교회 (the New Church) 에관한특유한성경적상징이다. 주석자들은예언을이끌어가는사건에관해오류속에있어왔다. 그들은각사건에종속되는세부사항들의본성에관해실수할수밖에다른도리가없었다. 그이유가계시록은책의시작으로부터교회의연속적인역사를말하고있다고일반적으로상상해왔었기때문이다. 어쨌든이것은잘못된것이다. 계시록은끝시대에있는교회의상태를기술하고있다. 더구나계시록은자연계에서가아닌영계에서나타났던교회의상태를기술하고있다. 교회상태의표현 (manifestation) 이거행되었던영적세계는중간영역또는영들의세계 (world of spirits), 즉모든영혼 (soul) 들이들어가는세계, 조금짧던, 조금더오래끌던영들이천국또는지옥에로건너가기전에머무는곳이다. 12 서문
거기서모든심판은거행된다. 자연계에서가아닌거기에크고흰옥좌가놓여있다. 거기에서죽은자들은인물의대소를막론하고모두그옥좌앞에서있고자기들의행적을따라심판을받는다. 참으로일반적심판은각처방에그종말을가져온다. 그리고그처방이폐지될때새처방이개시된다. 심판이전에관련되어지는계시록의모든것은심판을위한준비를묘사하고있다. 심판이후에관련된모든것은이런것들이사라졌을때계승되는것들의새질서를묘사하고있다. 이럴진대, 사도요한의환상에관한설명은계시록이취급하는신성하고영적인주제를이해하도록정신적으로계발된자, 뿐만아니라또다른삶안에존재하는것들을바라보도록영적시야가열리워진한사람에의해가능했다. 사도요한의환상이포함하는비밀을밝히알리도록자격이주어진오직한사람만이이묵시록을열리게했다. 그열림이주의종, 이매누엘스웨덴보리의저술 (the Writings of the Lord's servant, Emanuel Swedenborg) 안에있다. 1 1. 이책은 예수그리스도의계시 라고공표하고있다. 번역된계시 (Revelation) 라는단어는명사나동사형태로신약성서에서많이사용되고있고, 그외다양하게표현되고있는데몇가지만살펴보자. 즉판단, 심판 (revelation) ( 로마서 2:5), 나타나심 (appearing) ( 베드로전1:7), 나타나심 (coming) ( 고린도전1:7), 밝힘 ( 계발, enlightening) ( 누가2:32) 등등이다. 이단어를글자대로보면감추어놓은것을들추어냄 ( 폭로함 ), 비밀인것을발견하는것을뜻한다. 감추인것은드러나게마련이고비밀은알려지게마련이다 ( 누가12:2). 그러므로이단어는마지막날에불법을까벌리는것을표현하는데사용되고있다. 이에대한예로데살로니가후서 2장 3,7,8 절을보면, 그날이오기전에먼저사람들이하느님을배반하게될것이며, 또멸망할운명을지닌악한자가나타날것입니다... 그러나그악한자를붙들고있는자가없어지면그때에는그악한자가완연히나타날것입니다. 그리고 1장 7,8 절을보면, 괴로움을당하는여러분에게는우리와함께안식을누리게해주실것입니다. 이일은주예수께서당신의능력있는천사들과함께하늘로부터나타나실때에이루어질것입니다. 주께서는불꽃가운데나타나셔서하느님을거부한자들과 요한계시록해설 13
우리주예수의복음을받아들이지않은자들을처벌하실것입니다. 그분은사악한자에게는태워없애버리는불로오시지만, 의로운자에게는세련되게하는불로서오신다. 이렇게말해지고있다. 그것은여러분의믿음을순수하게만들기위한것입니다. 결국없어지고말황금도불로단련을받습니다. 그러므로황금보다훨씬더귀한여러분의믿음은많은단련을받아순수한것이되어예수그리스도께서나타나시는날에칭찬과영광과영예를차지하게될것입니다... 그러므로여러분은마음을가다듬고정신을차려예수그리스도가나타나실때에여러분에게내려주실은총을끝까지기다리십시오 ( 베드로전1:7,13). 이문단들은말씀의적용과의미둘다를보여주고있다. 계시란교회의상태또는종교의상태를들추어내거나 (disclose) 밝히알게함 (reveal) 이다. 이는교회가잘못된행위로어두워지고악에의해썩어지면서주님의오심으로교회나종교가회복되는때즉마지막날들에서있어진다. 요한계시록역시밝히알게함이요구되고있다. 그러나모든예언은해석이필요하다. 미래의사건들은하느님에게만알려진사항이다. 그분은미래의사건을미리말하시어그분의섭리에의존하고그분의약속에신실함을생생하게견지하도록해주신다. 그분의섭리가성취되어야그분의예언들은밝혀지게된다. 계시자인그분이정녕그계시의해석자이시다. 주님은그분의계시들을그분의종들을통해주신다. 계시가선택된매개체를통하여오듯, 해석역시그러하다. 하느님스스로해석하신다. 예수그리스도의계시는무엇보다먼저그분자신을밝히신다. 드러나게만드는것은빛이다. 그러나모든것을명백하게하는것자체가스스로를명백하게한다. 이책은계시된하느님의말씀을마무리지어완성하고있는바, 거룩한성새예루살렘, 지상의교회에대한마지막처방이요가장나은처방인열두기초를가진성을지으시는분이요만드시는분, 인간의구세주하느님으로서예수그리스도의책이라는것은두번말할여지도없다. 복음서는육 (flesh) 으로드러내보이시는측면에서의주님, 그리고그분의첫강림속의교회에대해중점적으로기술해놓고있다. 묵시록 (Apocalypse) 은영으로드러내보이시는측면에서의주님, 그분의두번째강림속의교회에대해중점적으로기술하고있다. 더욱이이책은 하느님께서그리스도에게주신 예수그리스도의책으로서공표되고있다. 비록이책의첫절에서특별하게사용한위의표현은비단묵시록에서만독특하게있는형태는아니고말씀 (The Word) 을구성하는모든책들에공통되고있는표현이기도하다. 말씀모두는예수그리스도의계시요, 모든것은하느님에의해그분에게주어져있다. 이표현에는하느님과예수가두인격이다라는것을함축하고있지는않다. 모든점에서그분자신과동일한또다른신성한인격에계시를 14 제 1 장
주고있다는식의생각을우리는품어볼수도없다. 그러나하느님과예수는신위 (Deity) 속의각기다른두가지본질에관한이름들이다라고이해할때, 하느님이그에게주신 이라는서술은아주명확한것을주고, 그것이표현하는진리는중요하면서도아름다운가르침이라고보여지게된다. 영원한하느님또는신성한지혜로서의예수는창조나구속함에존재하시는분, 계시록의직접적인저자이시다. 그러나신성한지혜외에도신위속에는또다른본질이있다. 그본질안에는계시나창조의근원이있다. 그본질은신성한사랑이다. 전능한힘으로운행되는모든것안에서그분의사랑은움직이게하는원인이고그분의지혜는결과를발생하게하는원인이다. 만물의존재는하느님의사랑으로부터이고하느님의지혜를수단으로만물은존재한다. 우리에게는아버지가되시는하느님한분이계실뿐이다. 그분은만물을창조하신분이시다. 한분주님예수그리스도, 그분으로말미암아만물이존재한다 ( 고린도전8:6). 그분은만물보다앞서존재하고, 만물은그분으로말미암아존속한다 ( 골로사이1:17). 이와같이신성한행동의법칙에대해주님스스로요한의복음서에서이렇게가르치신다. 나는무슨일이나내마음대로할수없고그저하느님께서하라고하시는대로심판할따름이다. 내가이루고자하는것은내뜻이아니라나를보내신분의뜻이기때문에내심판은올바르다... 너는내가아버지안에있고아버지께서내안에계시다는것을믿지않느냐? 내가너희에게하는말도나스스로하는말이아니라아버지께서내안에계시면서몸소하시는일이다 (5:30,14:10). 진실로주님께서는그분속에거하는신성에의거하시는바, 그분의인성에관해위와같이직접적인언급을해주셨던것이다. 그러나이사항들이실제의차이점을만들지는않는다. 왜냐하면주님의인성은 말씀이육이되신것 이기때문이다. 그리고육으로드러내셨던지, 그렇지않았던지말씀은아무것도할수없고그자체로는아무것도말하지않으나, 오로지말씀속에영원히거하시는신성한사랑으로부터이루어지고있다. 사랑이지혜안에있으면서지혜를수단으로사랑자체가밝혀지고드러내보여지듯, 아버지는아들안에서, 하느님은그리스도안에서마찬가지로이루어지는것이다. 그러므로예수께서그분스스로하느님으로부터받았다는계시록을요한에게주신다는첫절의선포에는가장숭고하고귀감되는진리가표현되고있는바이다. 그진리는이러하다. 즉주예수께서그분이선택한종에게건네시려하는예언은그분의영원한신성으로부터그분의신성한인성을통하여, 또는그분의무한한사랑으로부터그분의무한한지혜를통하여와지는예언, 그러므로이예언은주님의신성과인성, 그분의사랑과지혜를그분의교회에게, 그교회를통해전인류에게그분을밝히시는예언인것이다. 하느님이예수에게주신계시는 곧일어날일들을당신의종들에게보이시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요한계시록해설 15
이예언은교회속의사람들, 오히려교회에서빠져나간사람들이마음의단순함으로주님을섬기고견지해갈수있는믿음을발견할수있도록의도되어있다는것이다. 주님의종이라는용어를영적으로볼때이는진실한자또는믿음속에서그분을섬기고자하는이들이다. 그러나사랑없이믿음은존재할수없고일이없는믿음과사랑역시존재할수없다. 사랑에의해일하는믿음이인간으로하여금주님의진실된종들을만드는것이다. 이종들을향해계시록은직접말하고있다. 이들만이이책이취급하는주제에흥미가있고그들의마음만이이책을이해하게하는빛을받을수있다. 주님의신실된종들만이이계시록의 곧일어날일들 을볼수있다. 계시된 일들 이야말로앞으로우리가이해해보려하는이책에함유된것들이다. 이일들은교회또는인류의종교적상태에관련된일들이라는것, 주님은이일들을미리보셨다는것, 그보신것을이책이밝히고있다. 묵시록이란미래당시에있었던사건을표현하는말이다. 종교의하강과교회의끝장, 이로인해주님의재림이필요하게되고재림의결과로종교가회복되며새교회가건설되고... 등등이계시록의일반주제이다. 계시록은첫강림으로부터두번째강림까지에있어지는교회의계속적인역사를주고있지는않다. 계시가처음있게된주님의종에게표현된환상은그중조금만이희미하게나마그의시야에열리어졌었다. 전체적측면에서이책은교회의상태를기술하고있다. 교회처방의마감이주님이오시기전즉각이루어지고죽어지고말교회를이어갈새예루살렘이내려오는모습으로교회의상태를기술한다. 묵시록은 곧 일어날일들을보여주고자주어졌다고말해지고있다. 이예언이곧성취된다고말해진이후 20 여세기가흐르고있다. 많은주석가들이입을모으는것은아마어떤것이아직은완성되지않았을것이라는점이다. 그렇다고예언의어떤부분이성취되었다고확신있게말할수있는사람은아무도없다. 또다시강조하는바, 곧 이란어떤사건이오게되는어떤시간과관련이없다. 거룩한예언에서의시대나기간, 때, 등등은시간에대한측정치가아니라상태와관련되는말이다. 많은성경연구가들이성경의어떤예언을시간적으로어림잡아역사시대에꿰어맞추어보려노력했지만, 그성과는아주미미했을뿐이다. 그럴듯하게일치하는듯한사항이다니엘의예언중하나에서발견되는데그것은하루를한해로간주하는것이다. 그러나이법칙을넓게적용할경우일관된해석의결과를가져오지않는다. 사건들은시간안에서발생하지만사건자체는상태들의결과요, 그결과로부터사건은의미를획득하고있다. 그러므로시간은상태를상징하고자연계에서의인간삶이라는사건은그의영적삶속에있는어떤시간을상징한다. 교회상태에관한역사는그교회와공존한이들의종교적상태에관한역사이다. 이와같이성경예언에있는시간들은상태를묘사하기위해사용되고있다. 예언의숫자들은시간의측정을표현하는게아니라상태의품성을 16 제 1 장
표현하기위해사용되고있다. 그러므로본문 1절의예언에서일찍성취하게된다고약속하고있을때, 그약속은시간과아무관련이없다. 본문의 곧 (shortly) 이란확실하게 (certainly) 를뜻한다. 이책속에서술된상태들은확실히발생한다. 그이유는전능하신분이그일들이도래한다고선포하셨기때문이다. 이책의서두에서 곧일어날일들 이라고, 이책의끝에서 내가곧가겠다 라고예고하고있는바, 이는교회가그것의순수함으로부터멀어져가므로그것을부동적인기반위에새로이건설하시기위해주님이오신다는것은확실하다고책의앞뒤모두에서선포하고있는것이다. 이사건들은다른부분의신약성서에서도예보되고있다. 비록이예보들에대해이해가분분하지만이것이기독교의공통된신조중하나임은틀림없다. 모든사람들은교회가순수함에서점점멀어져가고있다고믿는다. 그리고주님의재림이있을거라고믿는다. 이두사항에대한각교파의차이는그에대한이해가엇갈리는것뿐이다. 이책의계시는예수그리스도로부터직접사도에게전달되는것은아니라고말하고있다. 그리스도께서는당신의천사를당신의종요한에게보내어알려주셨다. 구약성서의예언에대한천국의특사는여호와의천사라불렸다. 그러나신약성서의예언에대한특사는예수의천사라불리고있다. 예수와여호와는똑같은분이나차이점이있다면, 예수는신성한인간성에있는여호와인것뿐이다. 그래서예수의천사와여호와의천사는똑같은천사이나다른것은, 천국에있는유일한교회 (the Church in heaven being), 육을입으신이래주님의영화로우신몸의형상, 다시말해그분의신성한인간성은주님이육으로드러내보이시기이전보다더위대한권능이있다는것이다. 그이유는... 하늘과땅에있는모든것이그리스도를머리로하나가될것 이기때문이다 ( 에페소1:10). 요한에게온천사는천국에있는교회를표현하는바 1절의요한은지상의교회를표현하고있다. 그러므로이신성한메시지는주님으로부터천국의교회를통해지상의교회에오고있다. 이를근원적으로종합해서말해본다면, 메시지는하강의각등차를통하여, 즉계시록은하느님으로부터예수에게, 예수로부터천사에게, 천사로부터요한에게, 요한으로부터주님의종들에게내려온것이다. 주님의측면에서이를다시말해본다면, 계시록은주님의신성으로부터그분의인성을통하여, 그분의신성한사랑으로부터그분의신성한지혜를통하여, 그로부터천국과교회를통하여내려왔다. 이렇게해서무한한사랑의무한한지혜가인간과천사양쪽에납득되도록내려오고있다. 요한이지상의교회를표현하는바, 이를추상적측면에서보면그는교회를구성하는내용을표현하고있다. 교회를구성하는원리는세가지가있다. 즉사랑, 믿음, 일이다. 이세가지는예수님께가장가까웠던세제자, 다른제자들과달리중요한때, 즉변모하심을 요한계시록해설 17
보여준세제자로표현되어져있다. 세사람중베드로는믿음의형태를, 야고보는사랑을, 요한은일에관한형태인바, 특히요한이표현한선한일은행동하고있는사랑과믿음이어서세가지원리가하나로뭉쳐져있는셈이다. 다시말해서요한은사랑과믿음이생활안에서충만되고완전을이루어존재하는종교를표현한다. 실제에놓인종교만이살아있는종교이다. 사랑은율법을충만되게 ( 완성 ) 한다. 율법의완성이사랑이다. 그이유는모든진정한사랑은행동안에서종결되어실제적인사랑이되기때문이다. 그래서요한복음 14 장 21 절에서 내계명을받아들이고지키는사람이바로나를사랑하는사람이다 라고선을그어두셨던것이다. 실제속의사랑은인간을만드신분과인간을구원가능하게하는고리중의마지막고리에해당된다. 2. 이계시를받고있는요한은스스로, 하느님의말씀과예수그리스도께서증언하신것, 곧내가본모든것을증언합니다 라고말했다. 이구절은요한이그의복음서에서말한것에서더잘이해될는지모른다. 첫장에서그는말씀에관해증언하기를, 말씀은한처음부터하느님과함께계셨고, 하느님이셨으며이말씀이육안에서드러나보이게되었다고말하고있다. 영원한말씀, 예수그리스도안에서육을만드신이말씀을창조와구속에관련시켜보면영원한지혜또는신성한진리이다. 요한은사랑과믿음의내적삶이거룩함의외적삶에서드러나게된모든것을표현하는바, 그의말들은거룩한삶을증거로해서진리를증언하는이들로이해되어진다. 스스로증거하는이들은하느님은진정존재하신다는것에봉인을찍게되는셈이다. 이런사람들은역시예수그리스도에관한증거도가진다. 왜냐하면주님의말씀속의진리를인정하는이들은설사그들이계시의전체이든, 부분적이든예수그리스도의증거를가지기때문이다. 예수의증거는예언의영이요, 이속에사실상모든예언이함유되었는바진정한교회가가지는증거는예수만이유일하게살아계신참하느님이시오, 그분만이믿음과예배의유일한대상이다는원리에기초를두고있다. 따라서요한은자기가본모든것에관한기록도증언하게된다. 이환상의본성이무엇이냐에대해서는이부분에서살필필요는없으리라본다. 그것들모두는상징적인것으로인간마음의상태와교회의상태를묘사해놓고있다. 이것을요한은보았다. 요한이 보았다 는말은그것들을 이해한다 는말이다. 그이유가보는것은이해한다는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그것들은이해되도록씌어졌다는말이기도하다. 그러나모든이, 모든시대가그사항들을충분히이해해야한다고까지언급되고있는것은아니다. 다른예언적표시들같이계시록역시그내용이충만해지는때까지, 상징적인책속의사건들은해석이라는수단이주어질때까지이해되어질수는없다. 요한이나타낸것들은그가환상속에서영적으로보고있는것또는 18 제 1 장
요한이내향적으로본것은그가영계에서바깥쪽으로본것들이다. 3. 계시를받는자로서의자신을말한후요한은이계시가보내질사람들, 이계시를사용할것으로예상되는이들에관해말하고있다. 이예언의말씀을읽고듣고이책에기록되어있는그대로실천하는사람들은행복합니다. 이예언은예언을읽고듣고그것에포함된것을행한결과인혜택 (benefit) 의위대함이얼마나중요한지암시하고있다. 행복함이란영적인행복, 천국적인행복이다. 이는영적품위들 (graces) 로부터결과되고그결과란마음과삶이천국적인상태에놓이는것이다. 이책의내용을읽고듣는것보다더중요한뭔가가하나더있다. 영적으로읽고들어야한다는것이다. 영적으로읽고듣는다는것은이해성과의지안으로이책의진리를받는것이다. 우리는눈을통하여읽어, 귀를통하여들어받아들인다. 신체의이두기관은각기섬기는우리영혼의두능력에대한상징물이다. 눈은이해성을, 귀는의지를더직접적으로섬긴다. 읽는것과듣는것은들은것과읽은것을이해하고뜻하는것이다. 그리고이예언에씌어진것들을실천함이수반될때읽고듣고실천함이라는세가지자연적차원의행위들은이해하고뜻하고행동하는세가지영적차원의행동을표현하고있는것이다. 이세가지는인간을완성시켜온전한인간이되게하여그로영원히복있는상태로만든다. 그러나우리가이책을읽고들어도이해하고실천하는것은아주조금밖에할수없는바, 이런우리에게안전한장치는어디에놓여있을까? 두가지중요한것들이포함되어명백히가르치고있는것이있다. 그것은주님에관한교리와생활에관한교리이다. 이두교리는예수그리스도만이신성하시다는것, 그리고그분의계명을절대적으로실천해가야하는것을가르치고있다. 이외에도이책안에는수많은진리가함유되어있다. 그러나그것들모두는영적으로이해되도록베일이쳐져있어영적이해를위한언어나형상에의해서만알게되어있다. 천국을밝히알게하는예언에는천국적인교리가포함되어있을것이틀림없다. 그리고여타모든계시가포함하듯이책의교리도진리와선함에관한교리, 즉마음의향방을가늠하게하는진리에관한교리와삶을안내하는선함에관한교리를포함하고있다. 예언이포함하는것을이해할필요성과밝히알아야하는이유란, 시각이가까웠기 때문이다. 시각 ( 때 ) 이란상태를의미하고 곧 이란확실함을의미한다는것은위에서이미말한바있다. 전능하신분의하루는수천년의세월일수도있고, 수천년이하루밖에안될수도있다. 다시말해가장짧은것과가장긴것이그분에게는똑같은것이다. 그분으로부터진행되는모든것, 그분에게관련되는모든것은등차면에서도마찬가지이다. 천국과교회는상태의변화를겪어간다. 요한계시록해설 19
그래서교회나천국이자연적현상에의해표현될때, 상태는시간에의해표현되어진다. 그이유는자연계에서의시간은영계에서의상태와유사하기때문이다. 교회와관련시켜 시각이가까웠다 라고말하면이는교회의 상태가위급함 을뜻하게된다. 이에대해더이해해둘것은, 묵시록에서기술된교회의상태라해도그상태는이예언이씌어진때에있는위함이아니라그상태가적용되는때에있는위급함이다는것이다. 그이유는, 많은사람들이이책에관해생각하기를이책의예언은교회의시작때부터이어지는교회의상태를묘사하고있지는않다고입을모으는것을보았기때문이며, 오히려이책의예언은교회끝에서그끝과동시에일어나는상태를묘사하고있다. 마치이책은사건이터지기직전에씌어진듯되어있다. 그이유가이책의저자이신그분은그분앞에모든미래를가지고계시기때문이다. 그리고환상을본요한은그환상이시간적으로볼때비록먼미래에있을지언정현재있는듯사건을목격하기때문이다. 순수한영적의미에서볼때가까움 (near) 은내면 (interior) 을뜻한다. 그이유는내면에있는것은어떤측면에서외면에있는것보다신성한존재에더가깝기때문이다. 교회속내면의상태가이예언안에공개되고있다. 모든교회는제각기가장최고라고, 가장순수하다고생각하고있다. 그러나하느님은인간이보듯보시지않는다. 인간은바깥쪽에나타난것만을보고가늠하지만, 하느님은심정속을헤아리신다. 내면을보시는분, 교회의본질되는상태를보시는분만이교회의상태를밝히실수있다. 4,5. 이예언서의원저작자와목적에관한서술이위촉받은요한에의해있은후, 이선견자는자기가가르쳐왔던이들에게로방향을돌리고있다. 나요한은아시아에있는일곱교회에이편지를씁니다. 우리는요한을메시지를받는자로, 교회를표현하는특사로서이미말했었다. 이제그는메시지의전달자, 주님을표현하는특사자격으로간주되고있다. 지금그는자기가가장엄숙하고중요한선교에고용되는것으로간주하고있다. 그러나여타사도들처럼요한도표현적특성에서독특한어떤것을가졌다. 그가교회를표현했듯주님도표현한다. 그러나그가선견자또는선생으로우리앞에오게될때, 그는목적이선함인사랑을원리로하는진리에관한교리를가르치는사람을의미하게된다. 요한의메시지는 아시아에있는일곱교회 를향하고있다. 소아시아에있는일곱그룹만을위해이예언이의도되었다고상상하는사람은거의없다. 어떤이의경우이메시지는일곱그룹의상태를묘사했거나, 그들에대한권고, 약속등에관한어떤것이라고이해하고있을는지모른다. 그러나이그룹들은그존재가중단된지벌써오래된다. 따라서그들도이해할수없었고 20 제 1 장
성취된것을볼수도없는예언의많은부분들이그들을위해집중적으로의도되었다고하는것은상상조차하기어렵다. 이책의여타부분과마찬가지로일곱교회역시상징적이다. 지상의일곱교회와천국에있는일곱영은서로대응된다. 일곱교회는지상의교회전체를, 옥좌주위에있는일곱영은천국에있는모든교회뿐만아니라그교회를채우고유지되게하시는주님의영을표현한다. 일곱이란숫자는신비적인거룩한숫자라고널리인식되어있다. 이숫자가지닌의미는성경에서맨처음언급되는곳으로부터배울수있다. 이렇게하느님께서는모든것을새로지으시고이렛날에는쉬시고이날을거룩한날로정하시어복을주셨다 ( 창세기2:3). 엿새동안힘써일하고이렛날은... 쉬어라 ( 출애굽기 20:9-11). 하느님의백성에게는안식이남아있다 ( 히브리 4:9). 창세기에있는창조의사건은순수한비유이고, 유대교회에있는땀흘리는육일과쉼의제칠일은표현적인것이다. 위둘다진정한교회에서있어지는영적노동의계속되는상태와그결과오게되는영적쉼의상태를기술하는것이다. 기독교인이재창조하는상태를성공적으로통과해가서하느님의형상과모습으로새로이형성될때, 그는거룩한상태라는쉼안으로들어가게된다. 이는주님의안식도되는것이다. 왜냐하면위의일은주님이우리안에서우리를위해일하시어정복해가시기때문이며, 우리가그분안에서쉼을즐기는것은우리안에계신그분의쉼도되기때문이다. 그러므로성경에서의숫자일곱은거룩함과완성이라는생각을포함한다. 이의미를교회에관련시켜본다면, 교회의제일가는특성은거룩함이고주님의신비한몸으로서교회가완성된다. 골로새서를보면그들에게이렇게말하고있다. 여러분도그리스도와하나가됨으로서완전에이르게됩니다. 그리스도는하늘의어떤권세와세력보다더높은분이십니다 (2:10). 그러므로일곱교회란신실한자의온몸을포함하는데, 즉주님의진정한교회로선별되게하는것인사랑과진리, 그리고이것들의하나됨을어느정도나마가지고있는모든사람을포함한다. 일곱교회는아시아에위치하고있다. 아시아는지구의한쪽방위에불과하다. 본문을글자대로이해하려들면이예언의적용에한계를드러내고말것이다. 사실교회는아시아로부터유럽으로건너가유럽인들에게널리보급되었다. 따라서아시아라는단어는상징적차원에서소개되는말이다. 아시아는인류의요람이요, 세상에존재한모든교회의흙에해당된다. 기독교회자체가비록그아시아에서는멸절되고말았다해도어찌됐든그곳이출생지에해당된다. 또한아시아는문명의빛이일어난동양이고그지역으로부터서구세계는과학의일부나종교의시작을얻어온셈이다. 그러므로아시아는말씀으로부터온진리의빛을의미한다. 이렇게이해해볼때아시아에 요한계시록해설 21
있는일곱교회란그리스도의모든교회인데, 그렇다고지상의어느특정한장소에존재하는교회를말하는게아니라특별한상태로특징지워주는차원에서의교회를말한다. 교회라는말은종교를구성하는원리들때문에교회라는이름으로부르는것뿐이다. 종교가있는곳에는교회도거기에존재하고있다. 교회가바깥쪽눈에보일수있게존재할는지도모르고, 아마교회속에있어야할진정한것, 생명있는종교원리가이탈된뒤라도눈으로볼때화려하고권세있게나타나존재할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진정으로생명있는종교가존재하지않으면거기에는진정으로살아있는교회도존재하지않는다. 제아무리장대한형체나이름이아직남아있다해도그것은생명있는교회라고할수없다. 대부분의일곱교회는결함과잘못이있는것으로표현되고있다. 그러나일곱교회모두제각기자기들속에교회의본질중어떤것을가지고있고, 회개로회복될수있다고말해지고있다. 대체로이교회들은마지막때에있는교회로이해되고있다. 교리속의잘못들, 삶속의악들로넓고깊게얼룩져진마지막때의교회상태를본문의일곱교회가어떻게묘사할수있을까? 더욱이한교회를빼놓고는제각기심각하고어떤것은무시무시할정도인데도그들을상대로어떤임무가제기되고있다. 그들의상태가어떠하든교회는신성한보호와염려의대상이다. 그러므로요한은주님의특사로서천국의말인 여러분에게은총과평화가있으라 고말하고있다. 이아름다운하례 (salutation, 인사 ), 두가지가하나를이루는이인사는주님의교회를향한그분의사랑, 은총과평화를주님의교회가받기를바래시어챙기시는그분의준비를표현하고있다. 이두단어는기독교적축복에두드러지게존재한다. 이에대해두군데만찾아읽어보자. 우리가구원받는것도주예수의은총으로된다 ( 사도행전15:11). 나는너희에게평화를주고간다. 내평화를너희에게주는것이다 ( 요한복음 14:27). 신성한은총은인간의공적에정반대되고, 신성한평화는인간의자만과는정반대이다. 여느다른영적축복과마찬가지로은총과평화는우리의것이된다. 그러나그것은우리들에게단순히나누어주심으로우리의것이되는게아니라우리안에서일하심으로우리의것이되게해주신다. 주님은영원한은총자체시요, 평화의왕이시다. 그분의은총을우리는믿음안에서받고, 그분의평화를우리는사랑속에서받게된다. 믿는다고고백함속에서, 또는사랑한다고말했다고받는게아니라, 믿는행동가운데서, 사랑하는행동안에서그분의은총과평화를실지로받는것이다. 교회에대한은총과평화는 지금계시고전에도계셨고또장차오실그분으로부터, 그분의옥좌앞에있는일곱영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오고있다. 이구절을글자대로보면마치영원한분과예수는두가지다른존재인듯, 일곱영은영원한분과예수와다른 22 제 1 장
어떤사람들인듯보여질것이다. 그러나이사항은이책 5장에서어린양이옥좌가운데있다는구절로부터이해될수있으리라본다. 이는표현적외관일뿐으로이해해야한다. 이와같이각기다르게나타남은똑같은진리가각기다른국면에서있게될때보여지는양상이다. 마치천국과지상의교회가제각기다른상태속에서나타나는것과같다. 그럼에도각기다른것사이에는관계성과상응이존재한다. 따라서글자적의미에서분리된상태 (separation) 로보여지는것은영적의미에서는특성 (distinction, 구별 ) 있는상태로보여진다. 영원한분과예수, 하느님과어린양, 아버지와아들은분리된독립개체가아니라그각각은우리가구별해알수있게한그분의특성이다. 예를들어살아있는인간이영과몸이라는두개체로존재하지만하나인것과같다. 영과몸은두개로구분할수있는본질 (essentials) 들이나한개의인격 ( 개인,person) 이다. 따라서 지금계시고전에도계셨고장차오실그분 이란주님의특성중영원한신성 (eternal divinity) 을, 예수그리스도 란주님의특성중신성한인간성 (Divine Humanity) 을, 일곱영 ( 신 ) 이란주님의특성중거룩한영 (Holy Spirit, 성령 ) 인데이영이일곱으로표현된것은일곱교회에관련되어표현되었기때문이다. 따라서 은총의선물은여러가지이지만그것을주시는분은같은영일뿐이다 ( 고린도전12:4). 그런데왜은총과평화는영원한분, 일곱영들, 그리고예수그리스도라는셋으로부터오고있을까? 그이유는은총과평화는하느님의본성전체, 즉그분의사랑, 지혜, 힘, 다시말해서그분의신성, 인성, 거룩한영 ( 성령 ) 으로부터온다는것을우리에게가르쳐주고자하는것때문이다. 은총과평화가주님의세특성이하나가된상태인삼위일체로부터오고있기때문에교회속의사람도그와똑같은방식으로주님의인사를받아야한다. 다시말해우리의세특성인의지, 이해성, 삶이하나가된상태에서받아야한다는말이다. 인간의지안에있는하느님의사랑이하느님을사랑함이고이해성안에있는하느님의지혜가하느님을믿는것이요삶속에있는하느님의능력이하느님께순종하는것이다. 영원하신분과예수그리스도의구별은신성한사랑과신성한지혜의구별, 본질적신성과신성한인간성인예수의구별인데, 이것이본문에서 진실한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제일먼저살아나신분이시며, 땅위모든왕들의지배자 로불리고있다. 예수는지혜또는진리자체로서진실된증인이시다. 그분은사랑또는선함자체로서볼때죽음으로부터제일먼저살아나신분이시다. 그리고교회를통치하며모든진리의권위자로서볼때그분은땅위의모든왕들의지배자이신것이다. 위주님의세특성들은서로서로아주밀접한관련을맺고있다. 주님께서그분의인간성을신성한진리로만드셨을때그분은진실한증인이되셨고, 그분의인간성을신성한선으로만드셨을때그분은죽음에서제일먼저살아나신 요한계시록해설 23
분이되셨다. 그래서그분이그분의인간성을진리자체와선함자체로만드셨을때그분은말씀속의진리로통치하는교회의머리 ( 지배자 ) 가되셨던것이다. 5,6. 은총과평화의인사가있은후요한은교회를대표하여교회를축복하시는그분께찬양을드리고있다. 우리를사랑하신나머지당신의피로써우리를죄에서해방시켜주시고우리로하여금한왕국을이루게하시고또당신의하느님아버지를섬기는사제가되게하신그분께서영광과권세를영원무궁토록누리시기를빕니다. 주님의사랑이우리를구속하는근원이다라는진리는참으로위대하고복된진리로서성경전체를망라하여선포되는진리중하나이다. 하느님이세상을이처럼사랑하셔서... 라는구절은주님의오심과구속에관한정해져있는원인에해당된다. 그분의사랑은너무나위대하셔서우리를위해그분은자기생명을내놓으셨다. 성경몇군데를더찾아읽어보자. 벗을위하여제목숨을바치는것보다더큰사랑은없다 ( 요한복음 15:13). 하느님께서는우리죄많은인간을위해서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하느님께서는우리에게당신의사랑을확실히보여주셨습니다 ( 로마서5:8). 그리고그분은그분의피로우리죄를씻기위하여죽으셨다. 예수의피에는위대한효험이있다. 우리는그분의피를통해구속된다 ( 에베소서 1:7), 우리가그피를인하여의롭다하심을얻었은즉 ( 로마서 5:9). 그분의피를통하여정결해진다 ( 히브리서 9:13), 그리스도의피는죽은행실로부터온양심을깨끗하게한다 ( 히브리서 9:14), 그리고십자가에서흘리신예수의피를통해화해와평화를가진다 ( 골로새서 1:20). 이상의언어속에든의미는무엇일까? 요한복음 6장 63 절에서주님께서이렇게말하셨다. 육적인것 (the flesh, 고기덩어리 ) 은아무쓸모없지만영적인것 (the spirit) 은생명을준다. 육적인것에는고깃덩어리도있지만피도포함되어있는바, 우리는이렇게도말해볼수있을는지모른다. 고기와피는아무쓸모없지만영적인것은생명을준다. 최대한단순하게위의구절을수긍해본다면, 그분의피는십자가에서의고난, 그분의고통과시험중의마지막에해당되는것, 이를수단으로그분이어둠의권세를누르시고그분의인성을신성으로만드셨음을뜻한다고이해할수있다. 그러나이보다조금더높은차원에서보면, 그분의피는그분의신성한진리를뜻한다. 왜냐하면극복하게한힘이신성한진리였기때문이고, 구원하는효험이주재하는곳이신성한진리이기때문이다. 따라서이능력이우리의죄를제거하여우리를갱신시켜의로워지도록우리속에서반드시작동되고있어야만한다. 죄는신성한은총이라는행동을수단으로해서오점이없는듯되어지거나마법을걸듯하여절멸되어질수없고오로지신성한진리의깨끗하게하는힘에의해서만씻어낼수있다. 죄는주님의진리, 즉그분의신성한인간성에있는진리외에는 24 제 1 장
어느것가지고도제거될수없다. 죄로부터우리가순수해지고새로워져의로워짐을수단으로해서주님은우리를하느님과그분의아버지를섬기는왕 ( 왕국 ) 과사제가되게하신다. 이런억지이론도존재한다. 그리스도가자기를위해죽으셨다는것을믿으면하느님께서는정의를우리에게귀속시켜 (impute) 준다는것이다. 정의가귀속된다는말은신성한말씀의어느곳에도있지않은이론이다. 따라서그이론은신성한권위가없다고결말지을수있다. 이런생각들은, 그리스도의죽음을대신해서 (vicarious) 있어진것, 그분은우리죄에대한댓가또는벌로서고통받고죽으셨다는것, 우리는그분이고통받은것때문에구원되고있다는것등등에기초를두고있다. 만일그분이죽지않으셨다면우리모두는죽어야했을것이라는의미에서주님의죽음이우리대신이루어진것이라고인정하고있을는지모른다. 따라서그분이인간구속이라는일을성취하지않았던들어느육체도구원될수없었을것이다. 그러나구속 (redemption) 은우리가하느님에게서자유를구입하는데있지않고어둠의권세로부터우리를해방되게하는데있다. 이것은순수하게신성한일이다. 그래서이일은무한한지혜를통해작동되는무한한사랑에의해, 다시말해주님의영원한신성이그분이입으셨던인간성을통해활동함으로결과되어지고있다. 우리가구원되는것은그분이행한것이나고통받으신것때문이아니라그분이행하신것이나고통받으신것을수단으로해서있어진다. 그분은고통당하셨다. 그것은고통에서우리를건지시기위해서가아니라죄로부터우리가건져지도록하기위해서였다. 그분이행하신것이나고통받으셨던것은우리가당해야할것과대체 (substitute) 되도록하기위해서가아니라우리에게모형이되고우리의지도자가되도록하시려는데있었다. 우리구원의대장 (captain) 으로서그분은고통을통해완전해지셨다 ( 히브리서2:10). 우리가의로운삶을살게하기위해정의의삶을사셨고, 우리가죄에대해서는죽어지도록그분은죽으셨고우리가죽음을정복해서새피조물이되게하시기위해그분은다시사셨다. 예수가우리의대체물이되신것이라는잘못을우리는피해야하는한편, 그분이우리의본보기가되셨을뿐이라는실수역시피해야하는조심스러움도발휘해야한다. 육을가지시고있어진주님의일들은그분의구원하시는작업들의참기초가되어있다. 그분은우리가어떻게살고죽는가를보여주시기위해사시고죽으셨고, 우리가어떻게정의롭게살아야하며죄에대해서는어떠한지를살아보여주셨을뿐아니라, 우리가그와같이행하는데필요한힘과자유를공급해주시고있다. 그분의인간성안에서결과되었던것들은그분께서우리안에서결과되게하시는것들에대한모형이요근원이기도하다. 그분의삶과죽음의모든효력은영화되신그분의인성안에서생명을주는영원한힘으로지금존재하고있다. 주님의 요한계시록해설 25
영화하심은인간거듭남의힘과모형양쪽에해당된다. 영화되심으로그분은인간성을신성한진리와선으로만드셔서우리의왕이되시고사제가되어있으시다. 이제우리를그분의형상이되게하심으로하느님과그분의아버지에게우리를왕과사제로만들어주실수있게되었다. 이 6절에서많은이들이상상해버릴수있는것은, 예수께서그분의백성을예수외에또다른분, 하느님과아버지또는예수의아버지나하느님에게왕과사제가되게만드신다고생각하는것이다. 우리는이부분을놓고주님의신성에관한질문까지진입하는것은아니다. 복음서에서주님자신에의해처음고용되고, 계시록에서요한에의해고용된이구절의표현형체, 주예수그리스도의하느님과아버지에대해우리가납득할수있는의심을넘는것이그분의영원성과무한성에관한교리라고받아들인다면 6절을우리는어떻게이해해야할까? 예수자신은하느님과주님양쪽에서, 또는아버지와아들양쪽에서계셔왔고계시고있다. 이러한성경의언어는주님의진리와사랑에대한표현이다. 하느님이라는이름은신성한진리또는지혜에관한표현이고아버지라는이름은신성한사랑또는선에관한표현이다. 그러므로요한이 우리로하여금한왕국을이루게하시고또당신의하느님아버지를섬기는사제가되게하신그분께서영광과권세를영원무궁토록누리십시오 라고말할때요한이빌고있는것은주님께서우리를그분의진리와사랑을받는그릇으로만들어달라는표현인것이다. 주님의진리와사랑이그분안에있는생명의두본질이기때문에우리는거듭남을수단으로우리안에서영적생명의두본질을받게되는것이다. 주님께서는이두본질을우리의내적삶에받아들여지게해서우리를하느님과아버지에게왕과사제가되게해주신다. 주님의왕국은두겹으로존재한다. 그분은하늘에왕국을가지시고있고지상에도왕국을가지시고있다. 또는하늘에교회를, 지상에교회를가지신다. 인간마음안에있는그분의왕국역시두겹으로존재한다. 우리심정에그분의제단을, 우리이해성에그분의보좌를가지고있으신다. 심정속에서그분은사랑으로통치하시고이해성속에서그분은진리로통치하신다. 이통치는하늘에서, 그리고교회에서도마찬가지로존재한다. 천상천하의모든사람들중어떤이는사랑의통치를더받기도하고어떤이는진리의통치를더받기도한다. 주님은왕과사제로서거듭나는마음에서, 교회에서, 천국에서두개의구별된왕국으로군림하신다. 그분의사제적측면이사랑이통치하는정부형태이고, 그분의왕권적인측면은진리로통치되는정부형태이다. 사랑으로그분을섬기는이들은그분의사제적왕국에소속되고, 믿음으로그분을섬기는이들은그분의왕권적인왕국에소속하고있다. 그러나모든이는자신을통치하도록요구되고있으면서도자신으로부터가 26 제 1 장
아닌주님으로부터인바, 주님은왕이요사제이시면서도우리가주님의사랑으로심정을통치할수있게, 그분의진리로이해성을통치할수있도록우리를왕이나사제로만들어주신다. 모든통치자중최고의통치자라는측면에서그분은사제중의사제인대사제, 왕중의왕인위대한왕으로불리시고있다. 그분께서영광과권세를영원무궁토록누리시기를빕니다. 아멘. 이가장보편적인외침은천국에서완전을이룬영들의외침이지만왕이나사제로만들어지는신실한이들역시그외침에동참할수있다. 주예수에대한위의송영에서우리는영화하심의다른부분들과말씀전체에퍼져있는두겹의성격을보게된다. 그이유는영광 (glorification, 영화 ) 은주님의지혜나진리와관계가있고권세 (dominion, might) 는그분의사랑과선에관계가있기때문이다. 세상적인영광은지위나위대하다고하는행위를추켜올린위엄이고, 세상의권세는높은지위에서나오는세력일뿐이다. 그러나우리는진리에도달하기위해진정한영광과권세의본질을찾고있을뿐이다. 어떤위엄이나행위도진리와정의에기초를두지않으면진실된예증이못된다. 어떤권세나권력도그힘아래에있는이들에게유익함을주지못한다면어떤존경도있을수없다. 주님은그분자신을위해어떤영광이나권세를가지시지않는다. 그분께서그분의백성에게바래시는예배나찬양, 그들위에군림하시게되는모든그분의권세는오로지당사자들을위해서일뿐이다. 그분의목적은우리삶에서그분이영광되시는것, 그분의선함이라는정부형태에우리가기꺼이복종하는것, 그리하여그분을섬김과그분의권세가우리삶의모든단계에서, 모든상태에서영원히지속되게하시려는데있다. 이에대해서 아멘 이라고말해야마땅할것이다. 아멘이란단어는진리를뜻한다. 이단어는확증과확언에대한표현형체로서말씀에서널리사용되는말이다. 특별히전에계셨고지금도계신그분이진리자체이시다는표현이기도하다. 복음서에자주언급된단어 참으로, verily 역시같은의미인데 진실로 라는뜻이다. 이는진리자체를수단으로진리에대한신성한확증이지만이와같은사항이우리에게까지내려와있는것이다. 7. 영광과권세를예수그리스도에게돌린후요한은이렇게말을잇고있다. 그분은구름을타고오십니다. 모든눈이그를볼것이며그분을찌른자도볼것입니다. 땅위에서는모든민족이그분때문에가슴을칠것입니다. 꼭그렇게될것입니다. 아멘. 이예언이첫장에서시작되는것은당연한일이다. 이에대한한가지장대한주제, 주님의재림이발표되고있다. 보라, 그분은오신다! 이것이계시록의주된취지이다. 그외다른사건들은재림에앞서있는사건이거나그결과일뿐이다. 주님의오심은타락됨 (falling away) 을수단으로진행되어왔으나회복됨 요한계시록해설 27
(restitution) 이뒤를잇고있다. 그분의오심은죄의권세가끝장을보고정의의통치가건설되는것이다. 어떤예언도주님의다시오심이주는약속만큼인류를위한충만된희망은없었을것이다. 재림이라는웅대한주제에눈을뜨고싶은이들이라면, 그래서글자에온통자신의생각을매달리게하지않을작정이라면, 재림에대한올바른납득과이예언의사용은그들을더위대해지게해줄것이다. 널리세상에퍼져있는재림에대한신조는이러하다. 그분은구름가운데서나타나실것이라는것, 모든이는심판받기위해그분앞에집합한다는것, 심판후에하늘과땅은없어지고새하늘과새땅이창조될것이라는등등이다. 위의신조는주님의두번째강림에대한속성과목적, 양측면에서완전히빗나간견해이다. 그럼에도이와같은견해에서빠져나갈수없기도하다. 그이유는어떤예언이라해도그예언이현실에나타날때까지명백해질수없기때문이다. 따라서명백히이해될수없는것은잘못이해하는쪽으로그누군가들때문에쉽게빠져들수있게된다. 과거역사중주님의첫강림에대한유대인의태도는이에대한확실한샘플이라생각된다. 두번째오심에관한주제에서위의유대인같은착오가없도록성경의역사는기독교인에게유대인의역사를통해경고하고있는것이다. 주님의강림과그주변의여건은순수하게상징적언어로성경에서묘사되어있다. 그러나교회들은이언어를글자그대로납득하여왔다. 따라서영적으로이해되어야할자연적인줄거리들이자연적견해로한정지워지고말았다. 말씀에대한영적의미, 지금은알려져서이제우리에게주님의오심에대한진정한본성과목적을가르쳐주고있다. 주님은우리같은물질적사람으로오시는게아니라영으로오신다. 그분의오심은세상의종말과더불어있는게아니라교회의종말과더불어있게된다. 우리는정의로운사람이거하는새하늘과새땅 ( 베드로후3:13) 에대한약속을가지고있는바, 새교회는타락되어썩어진것으로입혀진옛교회를계승하게된다. 다시말해뭔가를파괴하는게아니라진정한상태로회복시켜주심이그오심의목적이라는말이다. 그분의오심은교회로하여금인간거듭남과구원이라는위대한작업을수행하는데더완전한도구가되게만들어주신다. 이에대한견해는이예언서를해석해감에따라더풍부하게예증될기회를얻게될것이다. 위에서거론된주제들은이책의끝부분인새하늘과새땅을취급할때당연히더자세히생각해볼기회가있다. 이구절에서는주님이오시는방법과본성만에국한시켜생각해볼것이다. 많은이들의생각도주님의재림이비인격적으로있을거라고설정하고있기도하다. 그분의첫강림이인격차원에서였던것은필수적이었다. 하느님이육을입으시어그분을보여주시는방법외에더달리세상을구속하시는역사는결과되었을리만무하다. 주님은인간본성을입으셔서 28 제 1 장
인간이타락해버린곳을정복하신결과, 덮치려드는시험에방파제가되셨다. 그분은인간의삶을사시고인간의죽음을통과하시어그삶을거룩하게만드시고죽음을쾌거의승리가되게하셨다. 이위대한일을성취하셨던바, 이제그분은지상에인격적인나타냄이더이상필요없게되셨다. 육을입으신목적이성취된이상, 이제그분은영을수단으로말씀안에서함께하신다. 영을수단으로말씀안에서그분은자신을더명백하게더나타내보이실수있다. 영을수단으로말씀안에서그분의두번째강림은결과되어지고있다. 그러므로재림은보여지되육의눈이아닌마음의눈으로보여지게된다. 우리가공간과장소를중시하면주님은우리가바깥쪽감각들을가지고보고들었던만큼함께하시지만우리에게빛과사랑, 기쁨과평화를주는그분의현존 (presence) 은우리의눈앞이아닌심정과지성에서의현존이다. 이것이성경에서예견하는주님의오심인것이다. 이는우리에게오는것이아니라우리안으로오는것이다 (not a coming to us, but coming into us). 다시말해그분의진리가내적시야로밝혀알려지는것 ( 계시 ), 그분을바깥쪽으로관찰함이아닌안쪽지각의대상으로삼는것이다. 하느님의나라가언제오겠느냐고바리사이파인이물었을때, 예수께서이렇게답하셨다. 하느님나라가오는것을눈으로볼수없다. 또 ' 보아라, 여기있다 ' 혹은 ' 저기있다 ' 고말할수도없다. 하느님나라는바로너희가운데있다 ( 누가17:20-21). 이구절은그분의왕국에관해그왕국의왕이말한진실이라고생각되지않을까? 참으로주님께서는그분자신에관해많은사항을말해두셨다. 마지막때에관해서도이렇게말하셨다. 이것은내가미리말해두는것이다. 그러므로사람들이 ' 그리스도가광야에나타났다 ' 해도나가지말고 ' 그리스도가골방에있다 ' 해도믿지말아라. 동쪽에서번개가치면서쪽까지번쩍이듯이사람의아들도그렇게나타날것이다 ( 마태24:26-27). 주님은번개와도같은빠름과힘으로오신다. 이와일치해서주님은구름타고오신다. 구름으로부터번개는진행된다. 주님이타고오시는구름은바깥세계의구름이아닌안쪽세계의구름이다, 그분이타고오신다는구름은분명히교회에관련된어떤것을상징해놓은말이다. 땅이교회에대한모양새이듯, 열과빛을땅에보내주는태양은정의의태양으로서의주님에관한모양새이다. 태양에의해땅에서증발되어져만들어진구름, 그래서대기중에떠있는구름, 열매있게하고새롭게하는소나기를내려보내는비를간직한구름, 번개와천둥을저장하고있는구름, 태양광선을부드럽게해서피부를태우지않으면서따뜻하게하는구름, 우리주위를서늘해지게해서기운을돋구어주는구름이란무엇일까? 우리와신성사이에있는것, 그사이에서수많은복된것을품고날라다주는것, 우리로위로받게하고, 요한계시록해설 29
새롭게해주며정의속에우리의영적성장이있게해주는그것은무엇일까? 그것은하느님의말씀외에더다른게있을수없다. 말씀의글자적의미가구름으로의미되고있다. 그이유는성경의글자, 자연적의미는영적의미를덮고있으면서영적의미의드높은영광을가리워그늘지게하여우리에게전달함으로영적의미의강한광선을부드럽게해서인간의상태나능력속에안주할수있게해준다. 그분의진리, 약속은구름까지도달하고그분의강하심도구름안에존재한다. 그분은구름으로그분의병거를삼으시어이로부터정의의비를내리신다. 약속된땅으로이스라엘후손을인도하는과정의사막에서배회하는그들을구름기둥으로가리워주셨다. 구름을수단으로이렇게도상징화되고있다. 즉주님께서시나이산에내려오시어모세에게말하실때, 그분이성막에거하시면서속죄판위에서나타나셨을때, 솔로몬이성전을지어바칠때사제들이성소에당도하자구름은성전을가득채워구름때문에사제들이집전할수없던때등등이다. 그이유는주님의영광이주님의집을채웠기때문이다. 변모하신산에서제자들을덮어씌운빛나는구름도있다. 이구름에서소리가있기를 이는내사랑하는아들.. 너희는그의말을들으라. 하늘로오르시는주님을제자들이뵈올때, 그들의시야에서구름속으로그분의모습이사라지자, 천사들이그들에게이렇게말했다. 갈릴래아사람들아, 왜너희는여기에서서하늘만쳐다보고있느냐? 너희곁을떠나승천하신저예수께서는너희가보는앞에서하늘로올라가시던그모양으로다시오실것이다 ( 사도행전1:11). 그분은구름안으로사라지셨다. 이와같은모양으로그분은구름안에서나타나셨다. 위구절이나, 또는부활후제자들이예수를뵈온것도그들의육신의눈으로가아닌영의눈으로뵈온것이다. 실로이모든광경은영적인것이다. 이는자연계에소속된사항이아닌영적사항에속한사건들이다. 주님이실지로올라가신장소는자연계와직접연결되는영적세계의어떤부분이었다. 이는천국과지옥의중간에존재한다. 이곳은영들의세계 (world of spirits) 라불린다. 그곳은모든영적현상이진열되는평면이다. 주님이부활하신후감금된상태로있는영들에게설교하신곳도바로그곳이다, 그분이부활하시고승천하시는사십일동안구속이라는신성한작업이수행된장소도그곳이다. 주님이승천하신장소도바로그곳이다. 대기에떠있는영적구름이제자들의시야로부터그분을받던때제자들의영이보고있던곳도바로그곳이었다. 주님이재림하시던때볼수있도록인격적으로내려오신곳도영계의영역에서였다. 구름안으로승천하셨을때와같이내려오셔서바로그곳에서모든눈, 그분을찔렀던자들까지그분을뵈었다. 그이유는공간이결과요상태의나타남인영계에서의모든영혼은그분이스스로나타나신다면볼수있기때문이다. 주님의오심이거행될때영들의 30 제 1 장
세계또는중간상태에있는무수한군중에심판이수행되는데, 이심판을수단으로하느님의처방은마무리를짓고새처방이건설된다. 이심판은앞으로 20 장에서우리가살피게되는주제이기도하다. 여기서의경우우리가살피고자하는것은, 어떻게재림에서주님이모든눈, 그분을찔렀던자의눈까지포함해서모든눈에가시적으로, 실지로보게되는가에대해서이다. 그이유가사악한자나의로운자공히거기서그분을보았기때문이다. 자연계에서도주님은영들의세계에서만큼이나진실로그분의재림을이루신다. 그러나여기서그분은바깥쪽으로오시거나인간육체의감각적인눈에보일수있게오시는게아니라마음의자질들에지각으로, 내향으로오신다. 그러면어떻게그분은오실까? 그분만이하실수있는방법, 성경에서진리로그분자신을밝히보여주심으로그분은오신다. 그러나혹자는이렇게말할는지모른다. 성경은누구나가지고있지만성경안에서, 성경으로그분은어떤새로운오심을만들수있단말인가? 누구나성경을가지고있는것은사실이다. 그러나성경을이해하는정도만큼에서주님께서는성경안에서성경에의해우리와함께하신다. 만일교회가성경의진정한이해를잃고있다면, 그교회는진정구원하시는주님의현존을잃는다. 육으로주님이오실때유대교회가위와같았으므로그교회는끝을내어야했고그교회대신기독교회가건설된것이다. 영으로주님의오심이불가피해졌을때기독교라는첫처방은마무리를지을수밖에없고, 그대신새예루살렘이라는이름과모양새로계시록에서예언하는둘째처방이건설되어진다. 그러나주님은세상에계시는동안성경의진정한이해를회복시켜주셨을뿐아니라유대교회에알려졌던성경의의미보다더깊은의미까지보여주셨다. 이와같이재림에서주님은예언자나사도들이라는원래기초위에, 또는그들이가르친진리위에교회를재건설하시되사도들시대때에밝히알려지거나이해되지못했던말씀안에감추어놓인영광을진열해주셨다. 새예루살렘의기초는여러가지보석으로, 그벽은벽옥으로, 그문은진주로, 그거리는금으로, 그리고주님스스로성전과빛이되어있으시다. 계시록뒤편에있는위의구절을살필때위의사항들이교회의영광스러운상태임을알게될것이고, 이영광스러운교회의상태는성경을새롭게펼쳐놓은것을함축하는말임을알게된다. 그이유는어떤교회도하느님의말씀에대해그교회가알게된진리의척도이상을결코초월못하기때문이다. 말씀은교회가가장높게도달할수있는완전에대한근원이요표준이다. 교회는그교회에처방된상태를들어올림으로더높은상태로진입할수있다. 그이유는과학처럼신학도한계가없기때문인데, 하느님의말씀은그분의역사하심과같이신성한저자의무한성에함께하고있기때문이다. 주님의재림을구성한다고말할수도있는더큰 요한계시록해설 31
영광이말씀의영적의미를구성하는데이제새로운처방을사용함으로열려지게된다. 예수를찌른이들이란그분을두번째십자가에달리게한이들, 좀더노골적으로말해본다면그분의진리를왜곡시킨이들이다. 자연적의미로만생각한다면주님을찌른자들은구름가운데오시는주님을보게될넓은측면에서의민족들을망라하는것이다. 그러나영적의미에서아주명백히구별된다. 모든눈이란그분을보고인정하는이들과관계가있다. 그분을찌른자들이란그분을보았으되인정치않는이들이다. 찌른자들이지적으로그분을본다고말하는것을상상하는것은뭔가모순이있는듯여겨질지모른다. 그럼에도분명한것은, 그들도예수를본이들속에끼어있어야한다는것, 그렇지않고는그들이그분을찌를수도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 진리를왜곡시키는이들, 아예진리를부정하는이들까지포함해서그들모두는어떤방식을취했던진리를알고있었어야만할것이다. 말씀을어떻게연구했는지, 어떤측면에서말씀에관해어떻게총명했느냐를주목해둘필요가있다. 이런사람중일부는말씀의권위밑을파고드느라애를쓴자들도있고, 말씀에는어떤신뢰도줄만한것이없다는것을증명하느라진땀을빼는자들도있고, 말씀의진정한의미와권능을박탈해보기위해말씀을설명한자들도있다. 파울어스 (paulus) 나스튜라우스 (strauss) 는여타저명한정통해석가보다성경을더세밀하게연구했었다. 그럼에도그들의목적은말씀이인격이나근원측면에서어떤신성함도요구해선안된다는것을보여주려는것이었다. 이들그리고그외지적품질을지녔다는다른이들모두예수를보고있으나그분의진정한속성에는관심이없다, 그들은그속성을부정하고있다. 그들은그분을찌르고있다. 그들이공들여만든노력모두는진리의파괴에방향을맞추고단순하게부정하지않고말씀의진정한의미나가르침, 특히예수와관련된사항들을교묘하게뒤집는방식을사용한다. 이들은예수를빤히쳐다보고도보지못하는자들이요어떤이해도못하는부류들이다. 위두가지외에도주님의오심으로영향을받는또다른계층이있다. 땅위에서는모든민족 ( 지파들 ) 이그분때문에가슴을칠것입니다. 위문단에서말한이들은지적측면에서더뾰족한이들인데그이유는그들이주님을보았다고말해지기때문이다. 이구절에서언급되는이들은주님을도덕적측면에서더간주하려는이들이다. 이들은자기들앞에지나간사건들을느끼기도하고보기도했다는이들이다. 이부류에포함된모든이들은 땅위에서 가의미하는교회의자칭멤버들로이해될수있다. 이스라엘후손들은지파별로나뉘어있었다. 이지파모두는선으로부터파생되는진리에거하는모든것, 또는이타애로부터믿음안에있는모든이들을표현한다. 그러므로열두지파가의미하는모든자질들이교회를구성하는요소이다. 32 제 1 장
이문단에서의모든민족 ( 지파 ) 이란황폐해진교회에속한지파들을넓은측면에서말하고있고, 특별하게말하면도덕적황폐함에있는이들이기도하다. 그런고로그들은그분때문에통곡한다. 사람의아들이출현함은그들에게위로를주는게아니라오히려탄식만을더채워주게된다. 불성실한자, 악한자는주님의현존으로인해괴로워하고통곡하는것으로말씀에서자주묘사되어지고있다. 그들이괴로워하고통곡하기를주님이바래시는것은아니나, 그들과주님사이에있어지는불일치가그들을그렇게되게만든다. 그분의순수하심과빛과사랑에반대함이번민을느끼도록그들마음을가져다놓기때문이다. 이에대해보다더내면으로들어가살펴보자. 추상적측면에서땅위의민족 ( 지파 ) 은교회를구성하는원리자체즉선함과진리, 사랑과믿음을의미한다. 그리고선과진리의통곡함, 이는마치라헬이자식잃고우는모습같다. 이두원리가통곡하는것은더이상그들이거주할장소가없어통곡하는것, 교회에사랑과진리가결여되었음에통곡한다는말이다. 이와같은상태가교회의마지막상태인데이를신성한진리가주님이오실때보았다는말이다. 이사항은꼭오고야마는사건임을이렇게엄숙하게서술하고있다. 꼭그렇데될것입니다. 아멘. 이말은확실함 (certainty) 을표현한다. 이일은정녕와져야만한다. 전지전능의확실성으로진리는위사항을선포하고있다. 8. 교회의마지막에관한묘사가있은뒤새시작에대한발표, 또는그분자신이선하고참된것들의시작이요끝이심을발표하시고있다. 지금계시고전에도계셨고장차오실전능하신주하느님께서 ' 나는알파요오메가, 시작과끝이다 ' 하고말씀하셨읍니다. 우리는예수그분자신이공포하는표현의경우앞뒤문단이나그절을연관시켜생각할필요없이그자체를보다더세밀히살펴보고넘어감이마땅하리라본다. 이구절도주님안에신성이있다고하는많은구절중의하나에해당된다. 그분은스스로존재하시는분이요무한하신분이심을, 전에도그렇게계셔왔고여타모든존재위에군림하시는분이심을보여주고있다. 그분과동등한것은어떤것도없다. 그분은생명되시고진정한하느님이신것외에그어떤것으로도계실수없다. 8절같은주님의선포는위와같이독립적인의미를가지고있는바예언의직접적인주제와연결해서도중요한의미를가질수밖에없다. 지금취급된주제는교회의마지막에관한것, 주님의첫강림의때에개시된종교처방의마무리와주님의두번째강림으로건설된새처방에관한것이다. 이구절에서주님이자신에관해선포하신것은육을입으셨던때에관해동일한요한이복음서에서외친것과도매우유사하다. 그분은자신이우주의창조자요그우주를유지시켜주는분이심을선포하시고있다. 그러나이는넓은측면에서이고세부측면에서는교회에관한것이다. 우주만물이 요한계시록해설 33
교회를위해존재한다던가, 일시적인것은영원한것을위해존재한다라는것을잘새겨보면, 주님이세상에대해하시는일과주님이교회에대해하시는일은같은관계를산출한다는것, 단지높고낮은수준만다를뿐임을금방알게된다. 인간의영적상태와교회에대해주님은알파와오메가가되신다, 무한하고영원한사랑은영적사랑의모든상태들에들어가처음부터마지막까지통치하신다. 무한하고영원한지혜는천사와인간안에서지혜의근원이되신다. 알파와오메가는그리스어알파벳의처음과마지막철자들이다. 인간의언어는두개의발성요소로구성되는데, 그이유가모든언어는두개의정신적요소들을표현하고있기때문이다. 인간마음이언어로표현하고싶은두가지가있는데그것은애정과생각이다. 애정은모음을수단으로표현되고생각은자음을수단으로표현된다. 소리라는언어는보편적이고본능적이어서동물과인간양쪽에공통되고있는바, 자연적애정들은동물과인간모두비슷하게존재한다. 그러나인간존재는동물이가지지않는것, 즉애정뿐아니라생각을가지고있다. 그래서글자라는언어가이를표현해주는데주로자음을수단으로표현된다. 주님께서자신을일컬으시는데사용된두철자는모두모음이다. 그러므로두철자는애정을표현한다, 그래서무한하신분안에서두철자는사랑을표현하고, 이사랑이무한한애정이다. 이두철자가알파벳을형성하는전항목의처음과마지막에해당되는바, 주님은모든유일한애정또는사랑의저자라는측면에서알파와오메가이신것, 다시말해심정가장깊은속에서처음꿈틀되어가장바깥삶의행동마지막까지되신다는말이다. 그리고시작과마지막이신그분은인간의모든생각의처음과마지막이시기도하다. 모든선한애정과모든진정한생각은선자체시요진리자체또는사랑자체시요지혜자체이신그분으로부터존재를갖는다. 주님이알파와오메가, 시작과끝이시다는측면이표현하는한가지것이더있다. 처음과마지막것들을수단으로주님은그사이에존재하는무수한것들을통치하시고정돈배열하신다. 주님이사랑자체지혜자체이시듯그분은생명자체이시다. 그래서 지금계시고전에도계셨고장차도오실분 이시다. 그분이생명자체이시어생명의창조자이신바, 우리가존재라부르는것들, 모든창조물에공통된것들, 뿐만아니라하느님의형상과모양으로창조된존재에특유한것인영적이고영원한것까지창조하신분이시다. 주님이생명자체이시듯그분은권능자체이신바, 그분의전지전능하심을수단으로우주가관제되고또한천국과교회가유지되어간다. 그러므로그분은모든힘의근원이되시고, 이근원으로해서인간은선하고진정한어떤것을생각하고사랑하여행할수있다. 힘은생명의속성이라단정할수있는바, 이힘으로우리는사랑의애정과지혜의생각을마지막결과에, 자기와비슷한창조물을유익하게해주는대화나 34 제 1 장
행동으로가져다놓을수있다. 이리하여하느님에게영광을, 자신에게영원히유익해질것을생산하게된다. 이런모든것의속성이주예수그리스도에근원이있음을우리는주목해야할것이다. 그이유는그것들모두가주님께속해있고그분의인성안에서그분에의해실시되는것들이기때문이다. 이는또한기독교의영광을구성하고있다. 그리고그리스도안에계신하느님을인식하고예배하는것이기독교의중심인바, 그이유는영화하신예수의인격안에신성의모든충만이육체적으로거하기때문이다. 9. 이예견자는자신에관해이렇게말하고있다. 여러분의형제이며함께예수를믿는사람으로서환난을같이겪고한나라의백성으로서같이견디어온나요한은하느님의말씀을전파하고증언한탓으로파트모스라는섬에갇혀있었습니다. 교회의멤버들에게말하고있는요한은자신을그들의형제요동반자라고일컫고있다. 종교적측면에서볼때형제란사랑으로하나된사람들, 동반자란믿음으로연결을이루고있는사람들을말한다. 이를조금바꾸어말하면형제는선으로, 동반자는진리로하나된상태와같다. 더불어그는예수그리스도의왕국의백성으로서환난을같이겪은사람이라고말하고있다. 요한이자신에관해서말하는이구절의영적취지를이해하기위해서그당시의역사적환경을살펴보면도움이된다. 사랑받은사도가예수그리스도를증언하고하느님의말씀을전파한탓으로파트모스섬에유배되어졌다고위구절은이해되고있다. 그러므로그는박해받고고통당하는교회의멤버들에게자기도환난을같이겪는동반자요예수그리스도의한백성으로그들의형제로서정감있게호소하고있다. 그는사랑했던사람들로부터헤어져본의아닌휴식상태에진입한탓에계시가그에게있어졌기도하다. 아마그의마음은대단히엄숙하고중요한메시지를받을준비를적절히갖추고있었으리라상상된다. 그래서먼훗날믿음이땅에떨어지고사랑이차가워지는때정의와진리의상황에대한모형이되어주는데에그의마음상태는적합했을것이다. 따라서역사적측면에서자신의경험을말하고있지만예언적으로지금그는사랑과믿음의하강으로인해발생되는환난에관해, 그리고악과잘못에반대되는것들이일어나활동하는것에관해언급하고있다. 비록곤경을겪는사람들과함께환난을겪을지라도그는진리안에있는이들과더불어서도함께한다. 그이유는주님의왕국은그분의진리로통치되는사람들과더불어존재하기때문이다. 그리고주님께서제자들에게그분의재림에관해말하시면서훈계하시는구절, 참고견디면생명을얻으리라 ( 누가21:19) 와같이주님의오심을끈기있게기대하는사람들과더불어서도요한은함께하고있는것이다. 주님의오심을끈기를가지고기다리는사람들은그분을뵙게되고위로받게되리라. 이렇게히브리서 9장 28절은 요한계시록해설 35
기록되어있다.... 구원에이르게하기위하여죄와상관없이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두번째나타나시리라. 예수그리스도의인내속에서요한은예수를증언하고하느님의말씀을전파했다고해서파트모스섬에있게되었다. 신성한허용에의해요한은에게해의섬중하나에보내졌다. 이섬은팔레스틴근처인바교회가있었던곳이고, 아시아와유럽사이에위치한다고볼수있는데, 유럽은이제교회가있게될곳인바, 지상의모든세대와국가가하나로되는것을성취시키는예언을밝히는것이기도하다. 그럼에도이계시는세상에알려진곳과는떨어진어느지점에서주어지고있다. 즉주님의교회는앞서있었던교회가지닌특출한것과는병합되고있다해도직접적으로는그교회로부터솟아나지않는다는말이다. 또는주님의교회는거룩한성이하늘로부터하느님에게서내려오되이미단장한신부같은것, 그남편은신성한인성안에계신주님이셨던것과같다. 성경에서섬들은교회나신성한인성과멀리떨어진국가, 그럼에도장차교회가있게될국가들을의미한다. 4절을살필때언급한바있지만아시아는진리의빛의근원을뜻하고, 이아시아쪽의섬이란마음이영적으로계발되어질수있는상태를의미한다. 그러므로파트모스섬은장차오는처방의주체가될미래의이방인세계, 그들이계발되어즐기게되는상태를상징하고있다. 그런고로하느님의말씀을위해, 예수그리스도를증거하기위해이섬에요한이놓여진것인데이는이미 2절에서언급된바있다. 하느님은주님의신성을, 예수그리스도는주님의인성을뜻한다. 이두의미는서로구분되는데, 마치한인간안에든영혼과육체가구분되는것과같다. 이는서로구분되어둘이면서도하나를이룬다. 주님의인성안에는신성이존재한다. 그이유는인성이영화되어신성과하나를이루어한분신성한인격을형성하시고있기때문이다. 주님의인간성속의신성에관한위교리, 영원으로부터존재하시는완전한하나이심에관한교리는타교회의교리와구별되는새교회의교리이다. 요한은이교리를미리말해주기위해새하늘과새땅, 거룩한성새예루살렘으로묘사하도록고용된것이다. 인성안의하느님이신예수그리스도는새교회에서예배하는유일한대상이요목적이기도하다. 이에대한중심되는진리가주님에관한교리요, 여타모든진리들은중심되는발광체에서나오는광선으로하모니를이룬다. 주님에관한말씀에는두가지요점이있다. 하나는주님이하느님이시다는것, 다른하나는그분의인성은신성이시다는것이다. 본문에서 하느님의말씀 으로, 예수그리스도를증언함 이라는말로서위두가지요점이기록되고있다. 이두글귀는주예수그리스도의신성을하나로묶어가르치고있다. 10,11. 요한은파트모스섬에서받은예수에대한증언을진행하고있다. 그래서우리는주님에 36 제 1 장
관한교리가얼마나명백하고도완전하게확증되는지알게된다. 이서술이전성경에걸쳐있듯이이신비스런책에서도밝혀지고있다. 나는주님의날에성령의감동을받고내뒤에서울려오는나팔소리같은큰음성을들었습니다. 그음성은 ' 나는알파요오메가, 처음과마지막이다. 네가보는것을책으로기록하여아시아에있는일곱교회에보내어라 ' 하고말씀하셨습니다. 그의환상을볼때그가처한상태는우리에게큰흥미를가지게한다. 특히그환상에관한지식이우리에게알려져서그본성을알게될때는더욱그러하다. 영가운데있다는것은영적눈으로영적대상을보는상태요, 이상태는천사나영들이보는것과같은상태이다. 요한과고대선견자들은어떤무아경에빠져들게되어서마치꿈속에서와같이어떤이상적인형태하에있으므로해서뭔가를그려내었다. 선견자들의진정한생각이무엇인지실감해보려면우리역시그런상태여야겠지만우리가할수있는유일한길은육체의간섭을받지않고영혼이보는상태를생각해보는것뿐이다. 영혼과영계는그림자가아닌실체라고진정인정한다면위의조건들을우리도품어볼수있다. 참으로영계는자연계보다더실체적이고더진짜이다. 최고로진짜이시요완전한존재이신창조자에게더욱가까워지는곳이영계이기도하다. 영계가자연계보다더가깝다고말한이유는영계가자연계의영혼이기때문이다. 마치하느님이자연계와영계양계에서생명이시듯, 인간의생명이영혼을통해육체에오는것과같다. 그러므로요한에의해보여진환상들은실재이다. 그러나그환상들은영계의법칙에따른것이다. 우리눈에보여지는모든대상물은눈에보일수없는상태나생각들의형상이거나밖으로돌출된형상들이요, 이형상들은상응의법칙으로만설명될수있다. 환상은계시중가장깊은차원이다. 이차원이란지각에속한차원을말한다. 이는환상의본성으로부터내면이닫혀져있는이들과내면이열린상태의사람들이같은환상을접하게될경우두계층간의차이는아주크다. 예를들면시나이산에서전회중에나타난환상과아론에게그리고모세에게보여진환상은각기다르다. 환상에도몇종류가있다. 환상을보는자의상태가더내면에속할수록더완전한환상을보게된다. 환상도두개의반대적인환상이있다. 그것은신성한것과악마에속한것이다. 신성한환상은천국에있는표현물을수단으로있어지고악마의환상은지옥에있는마술에의해결과된다. 신성한환상들은천국의표현물로되는바, 과거예언자들이환상을볼때육체안에서가아닌영안에서가졌던것과같다. 요한이계시록에기술한사항들모두역시그가그것들을똑바로바라볼수있게준비된마음의거룩함과주체의신성함을표현한다. 요한은주님의날에영가운데있었다. 주님의날이란그분이부활하신날이었다. 이날은죽음과무덤을넘어서는그분의마지막쾌거의날이다. 이날은구속의역사, 요한계시록해설 37
시험이라는땀흘림뒤에이어지는쉼의날이다. 이날은일곱겹어둠의밤을잇는일곱겹빛의날이다. 이성스러운날, 그분께서는묵시록을쓸예언자에게부활영광의찬란함속에서그분자신을밝히알게하신다. 이거룩한날은주님이어떤분이신지를표현해두고, 더불어마음이계발된상태, 그리고교회로하여금환상을이해가능하게하는것이무엇인지를표현해주고있다. 그이유는요한이영가운데서보았던것을교회가영적으로보기위해서는반드시내향의빛과지각을가져야만하기때문이다. 이계시는사도요한에게점진적으로열려지고있다. 먼저그는자기뒤에서울리는나팔소리같은큰소리를들었다. 그는영광가운데계신주님을봄으로단번에얼떨떨해지지는않았다. 그가이렇게위대한장관을보도록잘준비되었어도주님의모습에그는완전히압도되고말았었다. 아마준비조차없었다하면그는절멸되고말았을는지모른다. 그분께서자신을나타내어보여주시는방법은이예견자에게만특유했던것은아니고믿음의눈으로그분을바라보는만민에게공통되는일이기도하다. 따라서보여주시는방법의본성이나의미는우리에게도흥미있을것이라본다. 우리가어떤사람을아는데는통상두가지양식이있다. 그사람을보아서아는것과들어서아는것이다. 주님역시이두양식을통해자신을밝히신다. 듣는것은의지와애정에더직접통하는감각이다. 완전하게뭔가를지각하려면위두양식이모두필요하다. 그러나지각하는순서로볼때듣는것이보는것에앞서있게된다. 따라서마음의첫번째선생은귀이다. 막태어나는아기는그가봄으로사물을알아차리기전소리로영향을받는다. 그리고눈을통하여지식을획득하기전귀를통하여배운다. 다시태어나는인간의경우도위와같은과정을밟는다. 가장이른시기에받은종교적영향들이그의심정을만들고, 그후지성을통해오는지각들이그의틀을만들어준다. 마음이계발되기전영이운행한다 ( 창세기1:2,3 참조 ). 그럼에도위두개의다른지각의원인안에도동일성이있고각원인의결과들도하모니를이룬다. 소리를생산하는운동이빛도생산한다고과학자들은우리에게말한다. 어떤힘이증가될때소리의경우는귀에, 열은촉각에, 빛은눈으로각각오겠지만그강도는같은것이다. 신성한존재가육체의감각에그분의창조적에너지를발휘하시듯정신적자질에영의힘을발휘하신다. 이힘의작용은초기에는부드럽게시작되어점차강도가세어져가면서마음에하느님의영이탄생될수있게하신다. 맨처음의영향은의지에있는애정을움직이면서두번째영향이이해성에있어져생각을계발시킨다. 그래서요한은먼저주님의소리를듣고, 그다음그분을보게되었던것이다. 이소리가처음에요한의뒤쪽에서있었다는것은, 신성한유입은먼저의지안으로진행된다는것을가르쳐주시는말이다. 이의지의주거지는뇌의작은골인데 38 제 1 장
머리의뒷부분을차지하고있고이의지를통해이해성안으로들어간다. 머리의앞과뒤에관한위의의미는머리의뒷부분인작은골이의지기관이고, 머리앞부분에있는큰골은지성기관이라는사실로부터파생되고있다. 요한이듣는것은나팔소리같은큰음성이었다. 큼 (greatness) 이라는단어는선함에관련하여어떤것의품질을표현하는말이다. 나팔소리란애정이움직이는것을표현하는말이다. 그이유가관악기는선에대한애정을, 현악기는진리에대한애정을상징하기때문이다. 요한의뒤쪽에서있어진큰음성은이렇게말하셨다. 나는알파요오메가, 처음과마지막이다. 네가보는것을책으로기록하여에페소,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이아등일곱교회에보내어라. 이구절의앞부분은이미앞에서설명한바있고뒷부분은후에일곱교회를살필때더불어취급하고자한다. 이말씀에대한일반적의미는쉽게느껴지리라본다. 천국과교회에속한모든것, 모든상태에대해알파와오메가가되시는주님께서우리들속에든교회의상태에관해밝혀주신모든것을각자의내적삶이라는책에쓰도록명령하시는것이다. 그이유는이책은넓은측면인세상과교회에만국한되는게아니라, 각자자신내에있는것에대해모든이에게계시되고있기때문이다. 뒤쪽에서전달된음성을들으면서요한은이렇게말한다. 그래서나는누가나에게그런말씀을하시는지알아보려고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보았더니황금등경이일곱개있었고... 요한은자기가들었던것을보기위해돌아서고있다. 이미살핀바있지만, 신성한유입 (Divine influx) 은애정안으로들어가고그다음생각안으로, 또는의지안으로, 그다음이해성안으로들어간다는것이다. 의지안에서소리가들리고, 이해성안에서소리는보여지는것이다. 그런데우리가귀로들은것을눈으로보기위해서는몸체를틀어야한다. 다시말해우리가주님께돌아서야만한다는말이다. 이를좀더엄격하게말하면주님께서우리를그분께로돌아서게해주신다. 그분의소리를뒤쪽에서듣는모든이를주님께서는그분께로돌리신다. 다시말해그분의신성한영향을의지와애정안에받아들인사람은그분을볼수있게방향을틀게해주신다. 보기위해방향을트는것은주님에대한완전한지각, 그분의사랑과진리를완전하게지각하는데필수사항이다. 의지안에이루어진영향 ( 감각 ) 은보편적차원이고, 이해성에이루어진영향 ( 감화 ) 은세부적 ( 구체적 ) 차원에해당된다. 욥은신성한존재를지각함으로북받쳐오르는기쁨에이렇게말했다. 저는당신에대해귀로만들어왔지만, 이제저의눈은당신을보고있습니다 ( 욥기42:5). 요한이돌아섰을때그는일곱황금등경 ( 촛대 ) 을보았다. 이일곱촛대는천국과지상에있는교회를표현한다. 요한계시록해설 39
일곱촛대가표현한교회는지상에존재했던것은아니고지상의교회를계승하게될교회이다. 존재해왔고진행되어가는교회가아시아의일곱교회들로표현되고있다. 이교회들은장, 단점을지닌채존재하는교회들이다. 이일곱황금촛대는교회를표현하되, 각교회는그자체로부터빛을발하는게아니라빛의그릇이라는차원에서의교회일따름이다. 주님만이각교회속의빛이시다. 이촛대들은금으로만들어졌다고말하고있다. 금은사랑또는선함의상징물이다. 주님을사랑하는선가운데있는사람들만이교회를구성할수있고이들만이주님의빛을받아다시열과빛을발할수있다. 교회는세상에서빛이다. 그이유가교회는말씀을소유하고있고, 이말씀의근원인주님으로부터직접진리의빛을받기때문이다. 13. 그일곱등경한가운데에사람같이생긴분이서계셨습니다. 그분은발끝까지내려오는긴옷을입고가슴에는금띠를띠고계셨습니다. 이예언자는천국과교회를유지존속시켜주는창조자로서의주님에관한장대한묘사를우리에게보여주고있다. 유한한마음이사람의아들, 지상에서슬픔의사람이었으나이제그분의머리에그런흔적이없는사람, 이제는더없이높이들려진그분, 모든이름위에씌어있는이름, 만민의무릎이그분앞에꾸부려져야만하는사람임을우리로수용하도록요한은묘사해놓고있다. 예수께서는발광체의중심으로등경한가운데계신것으로보여지고있다. 이로부터교회는빛과생명과영광을가지게된다. 요한이본그분은사람의아들같은분이었다고말하고있다. 그분에게나타난영광에도불구하고요한은과거자기가늘보아왔던분이심을알았다. 그분은자기가사랑했던육을입으셨던주님, 그러나유한한영광모두를넘어영화하신주님이심을알았던것이다. 그런데도그분은사람의아들같았다. 예수는주님께서지상에계셨을때와같이눈에보일수있고다가갈수있는존재이시다. 영화하셨지만그래도사람이시다. 영원한하느님이시나하느님-사람이신분이다. 그러나주님은또다른측면에서의사람의아들이시다. 그렇다고또하나의다른하느님이다는말은아니다. 그분은말씀또는신성한진리라는측면에서의사람의아들이시다. 이런측면모두가그분에게는동일한것이다. 왜냐하면그분안에서말씀이육이되셨듯이, 육이말씀이되셨기때문이고, 이제는최말단형체에서의말씀도되기때문이다. 육을수단으로해서인간본성을이해하는것이우리이다. 영원한말씀으로서주님이입으신인간본성이신성이되셨는바, 그인간본성은이제는영원한말씀과하나가되어있다. 마치육신이영혼과하나이듯하다. 말씀으로서의주님자신에관한묘사는씌어진말씀에도동일하게적용할수있다. 씌어진말씀은씌어진영원한말씀이다. 인간의언어로표현된말씀은인간의본성안에서그본체를명백히드러내신다. 주님은세상에계시면서말씀전체를충만되게 40 제 1 장
하셨다. 즉말씀대로행하심으로말씀이포함하는모든것이주님이심을명백히하시어최말단에서의말씀이되셨다. 육을입은말씀과씌어있는말씀사이의연결, 오히려두말씀에대한정체를알아둘필요가꼭있는데그이유는본문에서일곱황금등경한가운데에서계신분, 사람의아들이나타나신것을이해하기위해서이다. 주님자신은천국과교회의중심되는생명이시오빛의근원이시다. 그럼에도생명과빛은밝히알려진 ( 계시된 ) 말씀을통해온다. 이말씀한가운데에주님이계시고이말씀을수단으로그분께서는모든영적축복들을그분의백성에게전달하신다. 교회는말씀으로부터존재하고, 각교회의품질은말씀을어떻게이해하느냐에따라서좌우되고그교회의생명역시말씀을어떻게가르치느냐에의존된다. 사람의아들은발끝까지내려오는옷을입으셨고가슴에는금띠를띠고계셨다. 그분이육을입으시기전과영화하신후에입고계신옷은그분의인격에관련된신성한어떤것에대한생각을우리마음에전달해주시려는의도가분명히담겨있다. 이미말한바있지만성도들의옷은그들의정의이다. 진리를실제에가져다놓을경우붙일수있는이름은정의 (righteousness) 라는말밖에없다. 우리가말씀에서밝히알게된정의의법칙에따라살게될때우리는성도들의정의인흰모시옷을입게된다. 주님의옷은그분의정의이시다. 만일우리가이를씌어진말씀, 밝히알게된주님에응용해본다면, 옷이란말씀의글자적인의미, 이의미는그속에신성한진리를담는그릇, 천사와인간에게나타날때신성한진리가전달되는매개체를말한다. 특히말씀의글자적인의미는정의의법칙과기독인의생활을형성하는도덕적개념까지포함하고있다. 이것이사람의아들이입고계신옷에해당된다. 요한에게주님을보여주실때도그러했듯말씀이옷을입고있는것도우리가옷입는형태와같이옷이덮은부분과덮지않은부분도있다. 글자적 ( 자연적 ) 의미의말씀은어느부분의경우순수한진리 (genuine truths) 로만, 어느부분의경우가상적진리들 (apparent truths) 로존재한다. 순수한진리들, 이는존재하시는하느님그대로인데, 옷이덮이지않은부분, 즉얼굴, 손, 발이이에해당된다. 가상적진리들, 이는연약하여무르디무른우리의생각들이하느님을묘사할경우의진리들이고본문에서사람의아들을발끝까지덮은옷이다. 큰사람 (Grand Man) 으로서의신성한인간으로나타나실때주님께서는위의두가지이중적인양상으로보여진다. 그이유가신성한진리로된세천국모두에서그분은부분적으로옷입혀진채로, 부분적으로옷이덮이지않은채보여진다. 천적천국에서는얼굴과머리로서, 영적천국에서는몸과손으로, 영적천국과천적- 자연적천국에서는다리와발이옷입고있는양상으로보여진다. 요한계시록해설 41
긴옷을입고계신사람의아들은가슴에금띠를띠고계셨다. 띠는속옷을덮는겉옷을꼭매어걷기편하도록하기위해고대시대때에사용되었다. 사람의아들이겉옷을입고계셨을때그분역시그옷에부착된띠를매셨다. 말씀으로서의주님에관련하여생각하면띠 (girdle) 란둘사이가움직이지못하게하나로매여있도록하는것, 즉말씀속의영적진리와말씀겉의자연적진리가하나로묶여있게하는것을말한다. 우리가이주제를말씀자체에관련해서든지, 그진리를받는그릇이라는측면에서교회에관련해서관조해보면, 주님께서금띠를가슴에띠고계셨다는사항에깊은교훈이있음을알게된다. 금은사랑과선함에대한상징물이다. 주님의측면에서그분의겉옷은그분의진리가진행되는영역이고, 금띠는그분의사랑이진행되는영역이다. 이영역들의작용은다르면서도서로부합되고있다. 진리는구분지어주고사랑은하나가되게한다. 그러나진리가따로따로구별함 (distinction) 은합일 (union) 을목적으로해서존재하는작용이다. 진리는우리로식별을가능하게하는데, 이는서로반대되는경우뿐만아니라, 서로관련되는경우까지포함된다. 즉서로일치않는사항을구별해내고서로일치하는사항의관계까지보도록해준다. 사랑은둘사이를하나로되게해주는데사용된다. 말씀속의모든진리는서로구별되면서서로일치하고있다. 이진리와저진리사이를명확하게구분할수록우리의믿음은더명백하고총명해진다. 더불어구분된두진리가사랑으로하나를이룰수록우리의상태는더완전해진다. 사랑없는진리는하모니즉하나됨이없는다툼과분리만을있게한다. 이는무수히많이산재한종파들에서흔히보여지는양상들이다. 진리들은서로를구별해준다. 그이유는각각은자기나름대로를말해주는교리가있기때문이다. 만일모든이가사랑에의해, 특히금띠라는측면에서의사랑으로영향을받는다면서로다른모든이, 모든종파는주님의영광스러운몸체중의한형상들이되어하나의커다란영광의몸체로통일을이루게될것이다. 그러나사랑에감화되지않을경우, 서로는상대방을이질적인것으로간주하고결국진리에대해서까지적개심을품게된다. 다시말해자신들이내세우는것은진리이고타인의것은무조건진리가아닌듯자기들에게서분리만시키려하는행동들일것이다. 따라서하나로집합된교회를형성하는대신서로분리된가지들로존재하게된다. 이리하여우리는 묶어주는띠대신째진틈 만을보게되는수가허다하다. 사실교회속의개인에게있어서도똑같은법이존재할뿐이다. 진리들은그들을구별하게하고사랑은그들을하나되게한다. 고로각마음안에서진리들이하모니를이루어사랑으로하나되어야할것이다. 사랑은각교인들에게한가지생명과한가지목적만을주는바, 사랑없는그들에게는하나로됨도, 능력도없다. 주님께서금띠를띠신가슴 (paps) 의의미도금띠자체의의미와거의 42 제 1 장
비슷하다. 가슴 (breast) 은사랑을상징하는데특히교인들에의해받아진이타애또는이웃에대한사랑을말한다. 그러나가슴이라는단어가이구절에서사용된것은특별한용도가있어서이다. 이를이사야서의구절과비교해보면쉽게이해가된다. 교회는 제왕들의젖을먹고자라리라 라는약속을이사야는전달하고있다 ( 이사야60:16). 이구절이말하는바, 교회의자양분의근원이주님의사랑이다는것은별로당황해할해석은아닐것이다. 본구절의경우다른면모에서주님의사랑을금띠로상징해놓고있다. 이를수단으로주님은그분의교회와자신을한데묶으시고, 그분의가슴으로부터영적생명의양식을그분의교회에공급하신다. 14,15. 사람의아들에관한묘사에서요한은이렇게더진행하고있다. 그분의머리와머리털은양털같이또는눈같이희었으며눈은불꽃같았고발은풀무불에단놋쇠같았으며음성은큰물소리같았습니다. 주님께서그분의종에게나타나보이신장엄한모습은모두상응적인것인바, 그모두는각각구분되는의미를가지고있고, 말씀처럼그분과모두관계되는사항들이며, 천국과교회와도관계되고있다. 머리는말씀안에있는선함과진리에관한원리들의가장높음또는가장깊음이요, 발은가장낮음또는가장바깥이다. 주님의머리는원리들중첫번째에해당되는것, 즉신성한사랑과지혜이다. 그리고그분의머리털은최말단에있는신성한사랑과지혜이다. 그분의눈은용의주도한섭리측면에서의신성한사랑과지혜, 그분의발은자연적수준에있는신성한사랑과지혜이다. 그분의머리는신성한천적원리, 그분의눈은신성한영적원리, 그분의발은신성한자연적원리이다. 주님을말씀으로간주하여보면, 세천국의천사들에게숙박하고있는신성한진리가주님의모습으로묘사되고도있다. 가장깊은천국즉천적천국은그분의머리로서, 중간천국즉영적천국은눈으로서, 가장낮은천국즉가장바깥부분의천국은그분의발과같다. 이와같이지상의교회도존재한다. 그이유는땅은주님의발판이요, 천국은그분의옥좌되기때문이다 ( 마태5:34,35). 우리가사람의아들에관한본문의묘사를주님자신에관련시켜보든, 그분의왕국에관련해생각하든, 또는그분의말씀에적용시켜보든, 어느관련사항에서도공히가르침을받게되고전체가조화를이루는것을발견하게끔되어있다. 주님은말씀을생산하신다. 말씀은천국을생산한다. 천국은교회를생산한다. 이를보다엄격히말하면주님은말씀을생산하시고그말씀을통해천국을, 천국을통해교회를생산하신다. 그러므로위세단계들에도하모니와상응이있어그중하나가묘사한것은전부를묘사하도록되어있다. 사람의아들에관한위의묘사외에도우리가더주목해보아야할세부사항들이있다. 그분의머리와머리털은모두희다고언급하고있다. 순백 (whiteness) 은깨끗함을상징한다. 첫원리와최말단에서, 영적의미와글자적 요한계시록해설 43
의미에서머리와머리털이말씀을표현할경우, 그것의순백은영적, 글자적의미라는양측면에서말씀은순수한진리이다는것, 어떤잘못이나악이없는진리라는것을암시해준다. 더명백히가르쳐주는것은순백은양털과눈같이희다고언급하는데에있다. 글자적인의미에서의말씀은사랑과지혜, 선함과진리에관한교훈을함유해서마음을이타애와믿음에로인도해준다. 두가지중첫번째가양털로의미되고, 두번째사항은눈으로의미되고있다. 그리고두가지모두순수하다는것이희다는말로의미되고있다. 그런데말씀의글자적인의미에서일경우, 완전하게순수한것으로간주하기에는무리가된다고여겨지는것들, 읽는사람의마음을오염시킨다고까지도덕주의자들이이의를제기하는부분들도다수포함되어있다. 그럼에도이들이항의하는대목까지도그자체가불순한것이아니라, 우리가순수하지못해서우리에게불순하다고느껴지게만드는것뿐이다. 사실글자를벗겨놓게되면거기에는불순한게하나도없다. 우리가완전한순진함안에있다면그런대목에서부끄러운상태를느낄리는만무하다. 죄가말씀의글자를부끄러운것이되게했다. 말씀자체가불순하다든가, 불순을만들어내는대목은신성한말씀안에는한군데도없다. 우리가기억해야할것은말씀의글자는그글자가씌어진시대의상태에따라말하고표현했을뿐이라는것, 만일우리가계시의실체와용도를찾는다면도덕적으로양털같이희고, 지성적으로눈같이흰말씀을발견하고야만다. 사람의아들의눈은불꽃같았다. 이모습에서우리는이러한신성한교훈, 즉신성한지혜는신성한사랑으로가득차있다는것, 그결과섭리는확실한지혜로지휘되고있으면서동시에지칠줄모르는사랑을호흡하고있다는것을인식할는지모른다. 사랑의지혜로서의신성한지혜가그분의눈이불꽃같다로표현되어져있다. 사람의아들의발은풀무불에단놋쇠같다고말해지고있다. 주님의인성속에있는신성한자연적원리, 또는말씀속에있는신성한자연적원리들이놋쇠에비교되고있다. 그이유가놋쇠 (brass) 는자연적선함을상징하는금속이기때문이다. 이자연적선함은자연으로부터파생되어나오는선함을뜻하는게아니라신성한선함을말하고, 이선함이인간생명의가장낮은수준을만들어준다. 그분의발은놋쇠였을뿐만아니라정제된놋쇠 (fine brass) 라고말해지고있다. 그래서주님의인성이고통과시험이라는용광로 ( 풀무불 ) 를통하여영화하시는과정, 제련되시는과정까지우리로알게해준다. 그런데순수해지게하는불이란무엇일까? 이는하느님의분노라는불도아니요지옥의불도아니다. 시험이불순물을분리시켜가지고가버린다. 모든시험너머에존재하는신성한사랑은시험을허용하면서도위압하는바, 결과되고있는모든선의근원이요, 성공의보상자이기도하다. 신성한사랑은생명의선에광채와더불어순수함을 44 제 1 장
준다. 이것이풀무불에정제된놋쇠이다. 사람의아들의음성은큰물소리 (the sound of many waters) 같았다. 물은진리에관한상응물이다. 따라서큰물 ( 많은물 ) 이란풍부한진리를말한다. 주님의음성은많은물들의소리와같다고말해지고있다. 그이유는하느님의음성인신성한계시 ( 밝히알게해주심 ) 는많은물들이돌진하는것과같기때문이다. 이물들은그분의교회멤버들또는그분의음성을듣는이들에게끊임없이흘러들어새롭게하여원기를회복시켜주면서동시에깨끗하게되도록해준다. 이구절을엄격하게제한해서생각한다면이모습은물자체가아닌물들의소리로한정된다는것은의심할바없다. 그러나말씀안에있는모든유사한내용들이상응성을지니듯이물소리와유사함역시그소리를발생하게하는원인과비슷하다. 우리가아는바, 주님께서물의흐름처럼그분의영의역사에관해이렇게말하셨다. 나를믿는사람은그의뱃속으로부터생명수가강물같이흘러나오리라 ( 요한7:38). 16. 요한의묘사는사람의아들의영광과위엄에관해이렇게더보여주고있다. 오른손에는일곱별을쥐고계셨으며입에서는날카로운쌍날칼이나왔고얼굴은대낮의태양처럼빛났습니다. 일곱등경, 일곱영, 일곱별, 이모든것은후에설명되는데아마이구절을응용하는때가더많게될것이라본다. 그이유는말씀안에있는모든설명들이그성경글자에대한몫에해당되는바각부분의설명과공히영적의미를함유하기때문이다. 일곱등경은일곱교회를, 일곱별은일곱교회의천사들을, 일곱영은어린양의일곱눈이다. 이들은각기관계되는다른부분에서살피게될것이다. 현구절에서의경우, 별들이신성한진리들을의미한다는것, 이진리들은주님으로부터나와교회로진행한다는것만을말해보는것으로충분할것같다. 일곱별이란교회가가르침과지시를받기위해말씀안에서밝혀알게된 ( 계시된 ) 거룩한모든진리들을말한다. 이별들은사람의아들의오른손에있었다고말해지고있다. 그렇게말해지는이유는교회에서역사되는신성한권능은신성한진리를수단으로있어지기때문이다. 별로의미된진리란지식수준에서교회에있게된진리들이다. 모든지식들중가장높은진리는주님의인성안에계신그분자신에관련된진리이다. 이지식이야말로권능이있다. 그이유는세상의구세주로서의예수에관한지식은믿는자로구원에이르게해주는하느님의권능이기때문이다. 구원이있게해주는믿음도어찌됐든그근원은사랑에있다. 마치구원을있게해주는진리가그근원을선함에두고있는것과같다. 이런고로별들은사람의아들의오른손에있었다. 말씀안에는해, 달, 별을함께언급하는때가가끔있다. 세상창조때그것의창조도있었고마지막때그것의소멸도따로따로서술되고있다. 말씀이교회의시작과끝을세상의창조와파멸의모습으로 요한계시록해설 45
다루고있을때천국의발광체도그와상응되는의미의차이를가지게된다. 해, 달, 별은사랑, 믿음, 지식의상응물이다. 이것들은교회의발광체로교회의생명과빛의근원이되도록파견된것들이다. 이것들이불을밝히는동안교회는계속해서자기들의징조, 계절, 날들, 햇수들을알고있고, 그교회에있어지는뿌리는때와거두는때, 추위와더위, 여름과겨울, 밤과낮의오고가는것을눈치채는바이럴경우그교회는자기들에게혜택을주는불변의행동들로되돌아가는데절대실패하지않을것이리라. 그러나실패할때, 해가어두워질때이요, 달이그빛을잃을때요, 별이하늘로부터떨어지는때인바, 끝이온다. 이구절의경우위와같은종말을취급하는것이아니라, 진리가힘을가지게되는때를취급한다. 이때란주님의생명과빛에연결되어보여져인정하게될때이다. 그분의권능에대한또다른상징물은그분의입에서날카로운쌍날칼이나오는모습이다. 이는그분의음성이큰물소리같았다는것과도유사하다. 물처럼칼 (sword) 도진리에대한상징물이다. 바울은하느님의말씀을영의검으로서말하고있다 ( 에페소6:17). 히브리서기자는이렇게말한다. " 하느님의말씀은살아있고힘이있으며어떤쌍날칼보다더날카롭습니다 "(4:12). 진리는몇개의다른상징물로표현되는데그이유는몇개의다른기능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진리는빛같이광채를발하고, 진리는물같이깨끗하게해주고진리는칼같이냉정하게자른다. 칼은전쟁을표시해주는물건이기도하다. 그러나주님의전쟁은육적인차원이아닌영적차원의전쟁이다. 이전쟁은사람들에관한게아니라원리들에관한것이다. 주님의진리에속한칼은쌍날을지니고있다. 그이유가이칼은잘못과악양쪽에대항하여싸우기때문이다. 이칼은날카롭다. 그이유가칼은영혼과육체를꿰뚫고, 두동강이가되게하고심정이품은의도와생각을판별하게해주기때문이다 ( 히브리 4:12). 주님의진리가적들을공격하는한편, 그분의백성에게는확신을주는데줄곧사랑으로꽉차있어진행된다. 그분의입에서쌍날칼이나오는반면그분의얼굴은대낮의태양같이빛났다. 이미살핀바대로태양은신성한사랑의상응물이다. 보다자세히말한다면사랑과지혜가하나된상태이다. 그이유가태양의열은사랑을, 빛은지혜를말하기때문이다. 주님의사랑에대한강도는기술해낼수없는데그이유는무한하기때문이다. 따라서힘있게빛나는태양이라고만말해볼수있을따름이다. 사람의아들에관한모습을읽는가운데우리가그냥넘어갈수없는대목이있다. 그것은성서여러군데에묘사된여호와의나타남이다. 모세와칠십장로들은이스라엘의하느님을뵈었다. 그가딛고계시는곳은마치사파이어를깔아놓은것같았는데맑기가하늘빛같았다 ( 출애굽기 24:10). 이보다더세세한모습이에제키엘에게보여지고있다. 머리위덮개위에는청옥같은 46 제 1 장
것으로된옥좌같이보이는것이있었다. 높이옥좌같은것위에는사람같은모습이보였다. 그모습은허리위는놋쇠같아안팎이불처럼환했고, 허리아래는사방으로뻗는불빛처럼보였다. 사방으로뻗는그불빛은비오는날구름에나타나는무지개처럼보였다. 마치야훼의영광처럼보였다. 그것을보고땅에엎드리자, 말소리가들려왔다 ( 에제키엘 1:26-28). 본문의모습과가장유사하게나타난대목이태고적부터계신분에관한다니엘서의기록이다. 내가바라보니옥좌가놓이고태고적부터계신이가그위에앉으셨는데, 옷은눈같이희고머리털은양털같이윤이났다. 옥좌에서는불꽃이일었고그바퀴에서는불길이치솟았다 (7:9). 나타나신모습의유사함은여호와와예수의정체를함축하는바, 그탁월한영광이동등하도록배열되고있다는것을우리가가볍게읽어가서는안되리라. 17,18. 그러므로에제키엘이여호와의환상을보자땅에엎드렸고, 요한역시예수의환상앞에쓰러질수밖에없었던것은지당한일이라생각될것이다. 나는그분을뵙자마치죽은사람처럼그분의발앞에쓰러졌습니다. 위두예언자의유일한차이점이라면, 기독교회의예언자가느낀창피함 (humiliation) 이유대교회의예언자의것보다더심오했었다는것이다. 다시말해그들각자에게보도록특별히배려된대상의내려누름은기독교예언자에게더강했음을암시해주기도한다. 그는이런체험을변모하신산에서도가졌었다. 그이유는사람의아들의영화하심은이제는영원토록완전하게계시기때문이다. 요한이지상에서오랫동안보아왔던그분의겸허하심과비교할때현재의영광은참으로비교불가능한차이이다. 존경이라는어떤느낌을가지고이구절을읽는사람이라면예수가무한하시고영원하신분이심을인식하는데실패할자는아무도없을것이다. 교리적인추론을떠나이거룩한관계를관조한다면요한이사람의아들의발앞에죽은자같이쓰러졌다는대목은우리에게위대한진리를가르쳐주게된다. 생명자체이신그분이가까이현존함은당사자로하여금자신에게는생명이하나도없다는느낌을가지게한다. 진정우리의생명은하느님으로부터존재하고그분의현존은우리와늘함께해주신다. 그런데이생명은무한으로부터유한에게로건너오되완층역할을하는매개체를통하여이루어진다. 마치태양의열과빛이그강도를조절해주는대기를통과하는것과도같다. 강도가조절이안된태양광선이그광선을받아활력을얻는대상물에직접비친다면모든대상물을살라버리고말것이다. 이와같이정의의태양에서나오는광선도강도가조절안된상태라면해가힘있게비치듯나타나는그분의얼굴가까이접촉된다면즉각살라지고만다. 그이유는주님이참으로영계의태양되시기때문이다. 그러나주님은선함과진리로구성되는생명의근원이시다. 그리고이 요한계시록해설 47
선함과진리들은셀수없는어떤매개체를수단으로연약하기이를데없는각인간의자질들에숙박하게된다. 가장높은천국과주님사이에서도그분은그천국훨씬너머에계시면서영기 (sphere) 를창조해두시고이를통하여신성은가장높은천사들에의해의식으로알아채기전통과하여간다. 이런매개체가없다면신성의영향력은그들을살라버리고말것이다. 이렇게가장높은천국을통해가는것외에도신성의유입은모든천국을통과하여지상의인간에게도내려오고있다. 그러므로어떤사람이정상적인자기상태보다더높여져주님의현존에더가까이들어가도록허용되면들어올려진수준만큼신성한영광에압도되는것이다. 생명자체이신그분의생명과우리것사이에비교되어질수있는어떤것이있을까? 선함과진리자체이신그분의것과우리의선함과진리를비교할수있는무엇이있을까? 한마디로비교될것은아무것도없다. 우리가자신의영기이상으로들어올려진다면우리역시요한처럼죽은듯이사람의아들의발앞에엎드릴수밖에없다. 위와같은비정상적이고갑작스런들림은생명의결핍이라는느낌을생산하는데정상적이고점진적인들림의경우에서도또다른종류의자기희생이생산되게해준다. 모든사람들의생명은각자의사랑이다. 모든이들은자신과세상을당연하게사랑하듯모든이의생명은본시신성한생명에반대되어있다. 신성한생명은최고로순수한사랑이요, 이사랑의본성은타인을사랑하고그들과결합하려는바램, 그들이영원히행복해지기를바랜다. 거듭나는삶의진보에서그영혼이신성한사랑의순수함을느끼고알게되는만큼자연적인간의사랑이얼마나불순한지느끼게되어그는심오한창피스러움에처하게된다. 물론썩어진이기심을절대적으로죽어지게까지할수는없다해도최소한자신고유의것모두는주님의것과비교해볼때죽어있는것들임을깊이눈치채는수준까지는가능하다. 이런모습을잘그려준사람이다니엘인데, 그가어떤분, 몸은감람석같았고얼굴은번갯불처럼빛났으며눈은등불같았고팔다리는놋쇠처럼윤이났으며음성은뭇사람이아우성치는것같았던 사람을보게되었을때, 그는 장엄한모습을보다가사색이되었다. 맥이빠져꼼짝할수없게되었다 (10:6,8). 이런모습은주님께서모든이에게와졌으면하고바래시는모습이요, 요한으로표현된모습역시모든이들이되어야할상태이다. 그이유는하느님을사랑함은자아사랑이자살을시도해야만완전해질수있기때문이다. 이렇게죽어지고마는자들만이살아있을수있다. 오로지사람의아들의발앞에서죽은듯쓰러진이들에게 그분은오른손을얹으시고이렇게말씀하신다. ' 두려워말아라. 나는처음과마지막이고살아있는존재이다. 나는죽었었지만이렇게살아있고영원무궁토록살것이다. 그리고 48 제 1 장
죽음과지옥의열쇠를내손에쥐고있다. 주님의오른손이란그분의권능이다. 그분의권능은생명되는사랑과지혜의전능하심이다. 손을얹으심이란권능이오가는것이다. 그래서자기생명, 미움뿐인생명, 자아사랑뿐인인간의생명을내려놓은이들에게주님께서는사랑인그분의생명을나누어 (impart) 주시는바, 이것이엎드러지고만사도에게오른손을얹으시는것으로표현되어있다. 신성한손을얹으심에는필시위로해주는권고의말씀, 두려워말아라 가동반된다. 사실죄악된상태에신성의완전함이밝혀질경우어느누구라해도두려워떠는마음이없기는불가능할것이다. 두려움 (fear) 에관한예를성서몇군데에서찾아보자. 거룩한분의환상앞에서덜덜떠는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말아라 라는소리가들려왔다. 즈가리야가요한이탄생할것임을알리는천사를보게되어근심에싸여있자천사는그에게 두려워말라 라고위로했다. 주의천사가베들레헴의들판에있는목자에게구세주의탄생을알리게되었을때그들이떨자 두려워하지말라 고말해주었다. 고기가기적적으로많이잡힌것을본베드로가이렇게외쳤다. 주님, 저는죄인입니다. 저에게서떠나주십시오. 그러나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말라너는이제부터사람을낚을것이다. 주님이변모하셨을때세제자들은매우겁을먹고있었는데그분께서는그들을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말라 라고타이르셨다. 무덤에있던여인들이천사에의해, 그리고기쁨과두려움에사로잡힌그녀들을향해서주님께서 두려워말라 라고이르셨다. 이상언급한두려움은모든권능을쥔어떤사람에대한노예같은두려움이아니다. 이것은최고로완전하게선하신분을사랑해서나타나는지극한존경의두려움, 경외함이다. 두려움은사랑의소리에의해가라앉혀질수있는두려움이요, 이두려움만이새생명을받을수있는그릇이다. 그이유는이소리가생명이신그분으로부터있기때문이다. 이두려움은요한에게주신확증, 나는처음과마지막이고살아있는존재이다 라는확증을갖게하는바탕이기도하다. 처음과마지막이다 란예수께서그분이구세주이시라는것, 즉거듭나는일의시작과끝이되신다는것, 우리믿음의권위자이시오마무리지어주시는분이시라는것까지포함되어있다. 그렇게말하는이유는그분은살아계신분, 죽었었지만사시어영원히사시는분이시기때문이다. 예수가구원의권위자되신다는말은크나큰진리이다. 그이유는그분께서십자가에달려죽으시고다시일어나셨기때문이다. 그럼으로해서그분은지옥을정복하셨고그분의인성을완전히영화시키시어우리의구속자와구세주가되셨다. 그러나또하나주목해야할것이있다. 교회에서그분께서는두번째십자가에달리시어죽으신다는것이다. 이렇게죽는사건은그분을부정함으로야기된다. 이런부정이란예수가세상의구세주이심을부정하는것, 그분의이름을실지로부정하는것, 뿐만이아니라 요한계시록해설 49
그분의인성이신성하다는것과그분의일은참으로신성하다는것을부정함으로실질적으로부정해버리는것이다. 그분은신성 (Divinity) 과더불어신성한인물 (Divine person) 로서인정되어야한다. 그분은하느님- 사람 (God-Man) 이아닌하느님과사람 (God and Man) 이시다고인정해야한다. 그분이인류를구속하심은하느님이인간과재회 (reconcile) 해서, 뿐만아니라인간이하느님과재회함으로이루어진다는것을인정해야한다. 주님께서새로이십자가에달리셨을때, 예전과같이새로이일어나셨다. 따라서보라, 그분은영원히살아계신존재이시다. 그분은두번째강림을만드셨다. 그분이두번째강림한교회는그분의진정한품성, 즉영화되신인성안에계신여호와 (Jehovah in His glorified Humanity) 로서그분을인정할것이다. 이를각개인에게응용해보자. 거듭남을수행하는모든이들속에서주님은살아계시기전죽어계신다. 모든자연적인간안에서진리들은생명없이존재한다. 우리영혼이계속신실하다면그사람속에있는진리들은영원히살게되는것이다. 예수는이들에게 예, 아멘 으로존재하신다. ( 영어성경참조 ) 사랑과삶으로확증받는사람은그분의아들이요상속자가된다. 그래서그의상태가고정될때그는정죄됨에서구해질뿐아니라각종시험으로부터서도보존된다. 그이유가예수께서는지옥과죽음의열쇠를가지셨기때문이다. 인간을구속함이라는크나큰일을수단으로주님은지옥과영적죽음위에군림하시는권능을획득하셨다. 그러나이권능은그분이구세주라고받아들이는사람에게만효능이있다. 그리고구세주는우리밖에존재하는지옥의문을닫아거셨을뿐아니라우리안에존재하는지옥문까지닫아거셨다. 이렇게말하는이유는전환되지않는사람, 타락하는사람속의자연적마음은아주작은지옥또는거대한지옥의조그만형상이기때문이다. 주님께서작은지옥위에군림하시는권능을받지않으셨다면더큰지옥위에군림하시는그분의권능은우리에게영원한복지를해주실수도없다. 죽어있고지옥안에있는것과같은전환안된죄인들도가능성이라는바탕은가지고있다. 만일그가전환되기를바랜다면희망은있는바, 그이유는그분께서지옥과죽음의열쇠를가지고계시기때문이다. 어느누구도지옥적조건과당연히죽어있는자신을스스로구원해낼수없다. 주님께서그분스스로권능을가지시기위해세상에오시고그권능은사람으로서가지시는권능이신것, 육을입으심으로이권능을획득하신이유는어느인간도자신을스스로해방할능력을가지지않았기때문이다. 그분은여실수있다. 그러나어느인간도열린것을닫지못한다. 그분이닫으면어느인간도열수없다. 죄가닫아버린마음의문들을그분은잠궈지지않게해주실수있다. 그리하여참회하고 50 제 1 장
싶은바램이갇혀져있지않도록허용해주신다. 그다음그문들이닫혀있게해주시는데, 그이유는그들이죽음과파멸에로다시추락하지않도록해주기위해서이다. 타락하는영혼의조건은다음과같다. 각사람의아주초기시절의삶때에은밀하게심으시고아껴두신선함과진리 (remains) 들이모든사람들의마음안에들어있다. 인간이전환점을맞지않은상태일경우이것 (remains) 들은자아사랑과세상사랑이라는악들에의해갇혀있는바덮힌상태, 즉숨겨진상황속에있다. 주님을신뢰하여회개하는때가차서그분께얼굴을돌릴때그분은문들을여시어지금까지속박되어노예나다름없이짓눌려있던선한애정들과생각들을자유와빛에로가져다놓으신다. 19. 사람의아들의장엄한환상, 그분주위의대상물들을본요한에게이런명령이떨어지고있다. 그러므로너는네가이미본것과지금일어나고있는일들과앞으로일어날일들을기록하여라. 네가보는내오른손의일곱별과일곱황금등경의비밀은다음과같다. 일곱별은일곱교회의천사들이고일곱등경은곧일곱교회이다. 기록하라는명령은그글자자체의미만가지고도충분하다고생각될지모른다. 그러나거기에도더깊은의미를가지고있다. 계시록외에도또다른책과저술도미래를위해보존되고있다. 인간의마음이책이고그의삶은필기자 (scribe) 이다. 이책안에는그의이해성이인정해온선과진리또는악과거짓에관한원리들이지워질수없는품성들로씌어져있고, 이것들로부터형성된상태들은영원히존재한다. 이제요한이본것중두가지사항에관한일반적인설명을시작해보자. 일곱별은일곱교회의천사들이다. 그리고일곱등경은일곱교회이다. 천사들은일곱교회를섬기는사람 ( 성직자 ) 을의미할것으로이해된다. 이렇게이해해본다면일곱교회, 그리고어째됐든자기들도일곱교회중하나라고주장하는여타다른교회들의성직자들도넓은측면에서볼때사람의아들의손에있는별들과같을는지모른다. 이들은그분으로부터빛과능력을받고말씀으로부터진리에관한지식을가지고교회와교통을할것이다. 그들이사랑의진리를가르치는한그들의말에는능력이있을것이다. 교회는등경처럼그자체로는빛이없고단지등경가운데계시는분으로부터오는빛을받는그릇일뿐이다. 좀더높은의미에서별들은천국에있는교회들이고등경은지상에있는교회이다. 일곱별은천사들의천국전체를표현한다. 천국의천사들은교회의천사들이다. 그이유가천국에있는교회는지상에있는교회와연결되어교통하기때문이고천사들은그교회를위해봉사하는영들이라고말하게되기때문이다. 천국에있는교회가지상에있는교회에빛을주고방향을가르쳐준다. 마치창공의별들이지상의거주민에게빛을주고방향을알게해주는것과같다. 그이유가계시는빛이직, 간접적인영향에의해모든나라들에확산되기때문이다. 위사항을 요한계시록해설 51
개인측면에서응용해보자. 사람의아들의오른손에있는별들이란영적인마음안에있는선함과진리에관한원리나지식들이다. 등경은자연적마음안에있는선함과진리들이다. 거듭나고있는기독인은하늘과땅, 또는가장작은형체로천국에있는교회와지상의교회이다. 각교인이자기의내적인간안에주님으로부터진리를받을경우이것이창공에있는별들이요, 삶으로명백히판명한진리들은등경에있는등불이고, 이등불이야말로마음의집안에있는모든생각들을비추어계발시켜준다. 더불어이빛이사람들앞에비추일때, 즉사람들이그의선한행실을보게될때그는하늘에계신아버지를영광되게하리라... ( 마태5:16) 2 본장과다음장은아시아의일곱교회를향해각각연설되고있다. 심정을아시는그분에의해각교회의상태가기술되면서그들을지휘하시고있는것이다. 결점이드러나고미덕이인정되고있다. 그들이재입증을받고명령이내려지는데경고와더불어용기도불어넣어주시고있다. 죄가운데계속있을경우처벌이위협하고올바른쪽으로돌아설경우그에따른보상이약속되고있다. 이교회들을통해주님께서는직바로우리에게말씀하시고있다. 일곱교회란회개하여그분의새교회의진정하고생명있는멤버가될수있도록거룩한말씀의호소를받을수있는거룩한생각과느낌이얼마라도남아있는기독교인, 성령이뿌리를내릴수있는여지가아직남아있는사람들, 주님을믿노라고고백하는기독교인들모든계층을망라한다. 각교회는각각의특수한계층을표현하고있다. 그러므로이몇교회들의상태를기술하고있는거룩한언어를해석할수있다고하는사람이라면누구든지그안에는결코잘못이없는지혜에의해초상화된자신이그중어느교회에소속되어있음을발견하고야말것이다. 그이유는영감되어있는이서술들은마음과삶에관한모든영적상태를포함하기때문이다. 더욱이능력과영광안에계신주님의재림을수단으로사람들은자신들의영적상태를이일곱교회를통해더확실히짚게되리라. 52 제 2 장
1. 에페소교회의천사에게이글을써서보내어라. 오른손에일곱별을쥐시고일곱황금등경사이를거니시는분이말씀하신다. 에페소교회란선함을취득하려는것보다지식을획득하는데더열심을내는부류를묘사하고있다. 에페소교회가표현한이런품성은그들에게발표된언어들, 특히주님자신에관한언어들로부터발견할수있다. 에페소교회에게예수께서는자신이일곱별을오른손에쥐시고일곱황금등경사이를거니시는분이라고그려놓고있다. 이는앞장에서요한에게보이셨던주님의한부분이다. 이미살핀바같이별들은신성과천국적인것에관한지식의상징물로성경에서고용되고있다. 황긍등경도이와유사한의미를가진다. 그러나그둘사이는구분되는점이있다. 일곱별은내적인간에있는신성과천국적인것에관한지식을, 일곱등경은외적인간에있는신성과천국적인것에관한지식이다. 영적지식을위한애정을소유함으로해서특질이구별되는이들에게주님께서는그런모든지식에대해유일한권위자이심을발표하신다. 그분은오른손에별들을쥐고계신다. 내적인간안에있는천국이나천국자체안에든선함과진리에관한지식은그분으로부터진행되고있다는말이다. 그지식을소유하고올바르게사용하는사람들모두는그분의권능에의해떠받쳐진다. 그분은일곱황금등경사이를거니신다. 진리의모든빛, 교회나외적인간에있는이빛은그빛의근원을그분께둔다. 그분은생명의모든법칙, 모든교리의중심이시다. 걷는다는것은산다는것이다. 그분이받쳐주고유지존속시켜주시지않으면별들은천국으로부터떨어지고빛은소멸되고만다. 2,3. 아래두절은에페소교회로표현된이들의실제와관련되는세부사항을열거해놓고있다. 여기에는허가를암시하면서언급되고있다. 나는네가한일과네수고와인내를잘알고있다. 또네가악한자들을용납할수없었으며사도가아니면서사도를사칭하는자들을시험하여그들의허위를가려낸일도잘알고있다. 너는잘참고내이름을위해서견디어냈으며낙심하는일이없었다. 언급되는사항중에서첫번째로언급하는사항은지극히중요한것이다. " 나는네일을알고있다." 이는교회속의각사람에게반복되는주님의선행조건이다. 각사람에게있게되는각기다른세부사항들의차이는주님만이아신다. 이는모든것에서도똑같이적용된다. 이렇게구석구석까지뒤지는엄한경고는각개인의마지막목적지에까지계속이어지는바말씀속에서이에대해반복적으로선포하고있다. 즉모든사람은자기행적대로그것이선하든악하든심판되어진다는것이다. 이말씀이과거시나이산에서있었던천둥번개의소리보다자연적차원에서는더크게울린것은아니라여겨질지모르지만그보다더깊은의미를담고있어천둥같은울림속에있기는마찬가지이다. 게다가복음서속에있는섭리 (economy) 나교리가언급되는 요한계시록해설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