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건의 철학적ㆍ사회적 분석 송상용(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사상 많은 사기 사건이 있었지만 황우석 사건은 그 규모나 파장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하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이 사건은 과학계에 한정되지 않고 국기를 흔든 결과를 가져왔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사 법적 판결을 남겨 놓고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나 많은 복합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1980년대에 비롯한 한국의 생명공학 개발정책은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을 계기로 가속화되었다. 때를 같이해 생명윤리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 황우석 등의 민감한 연구가 정부와 학계의 주목을 끄는 가운데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 이 오래 계속되었다. 2003년말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 어 황우석 등의 인간베아복제 줄기세포주 확립 논문의 발표로 한국은 황우석 광풍 에 휘말리게 되었다. 2005년 줄기세포 허브의 발족에서 절정에 이른 광풍은 섀튼 의 결별선언과 MBC PD수첩으로 불거진 난자 문제에서 시작해 황우석 등의 2004, 2005 논문이 다 날조였음이 밝혀지면서 황우석의 몰락으로 끝났다. 우선 초기 철학계의 복제에 관한 논의부터 살펴 본다. 황우석을 세계적인 영웅으 로 띄운 정치권, 기업, 언론, 과학계의 동맹의 구조와 비판세력 종교계, 시민단체, 생명윤리학계의 연대의 실패가 분석될 것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과학주의와 민족주의(애국주의)가 분석될 것이다. I I한국에서는 1983년 과학기술처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유전공학육성법(뒤에 생명 공학육성법으로 바꿈)을 만들어 생명공학 개발에 의욕을 보였다. 당시 정부는 대학 에 유전공학과를 설치하고 육성책을 추진했으나 너무나 기초가 약해 오랫동안 진전 이 없었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한국의 생명공학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유전공학이 아니라 생식공학이었다. 시험관 아기 이후 산부인과학과 수의학에서 상당한 기술 축적을 해 온 한국의 생식공학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동물복제에 성공함으로써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돌리의 탄생은 한국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왔다. 그 해만 해도 이 문제를 논 의한 모임이 10여 차례 열렸다. 이듬해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창립된 것도 그 영향
이 컸다고 볼 수 있다. 1986년 한국철학회가 의학과 철학의 대화 라는 주제로 모 임을 가진 이래 침묵을 지켜 왔던 철학계도 연달아 생명윤리를 다루는 모임을 열었 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1999 선언을 채택했고 한국철학회 도 몇 달 뒤 비슷한 내용의 선언을 발표했다. 동물복제의 성공이 민감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킴에 따라 생명윤리법 제정의 필요 가 강력히 제기되었다. 시민단체들은 1998년 생명공학안전ㆍ윤리연대모임을 만들 었고 2001년에는 생명윤리법 공동 캠페인단을 발족시켜 맹렬하게 생명윤리법 제정 운동을 벌였다. 학계에서도 여론이 빗발치자 과학기술부는 2000년 한시적으로 생 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자문위는 생명윤리기본법(안)을 만들어냈고 보건복 지부는 별도로 생명과학 관련 보건안전ㆍ윤리법(안)을 내놓았다. 과학기술부는 자 문위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회에 네가지 안이 제출되어 3년을 끌다가 2003년 12월 29일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통과된 지 한달 반 만인 2004년 2월 12일 황우석, 문신용 등의 인간배아 복제 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이 사이언스 (Science)에 발표되었다. 시험관아기, 양 복제에 이은 세 번째 충격이라 할 만하다. 온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이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룬 것은 이 연구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이 연구는 미묘한 시기에 발 표되었다. 생명윤리법이 2005년 1월 발효하니까 한국에는 인간 개체복제를 하더 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이 연구의 성공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외국에서는 신랄한 비판의 소리가 쏟아졌다. 국 내에서도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 항의성명을 냈으나 정부와 언론의 일방적인 찬양 에 가려 빛을 못 보았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생명윤리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 명을 준비했다가 일을 당해 발표를 보류했다. 한편 정부기관 국가인권위원회가 신 속히 인간배아복제 특별연구팀을 만들어 활동했으나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 과학계는 복제 연구로 몇 차례 문제를 일으켰다. 1998년 경희대 이보연 팀 은 시험관아기 시술 때 폐기된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이식한 뒤 4세포기 배아까 지 배양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인간배아 복제는 국제적 물의를 몰아 왔고 대한의학회의 조사를 거쳐 이듬해 대한의사협회의 생명복제 연구지침이 발표 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 황우석은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실험을 통해 배반포 단계 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 15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세필이 인 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과학기술부가 만 든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반년 이상 격론 끝에 잉여냉동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허용 하는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냈었다. 그러나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은 과학기술부 의 뜻대로 심의위원회를 거쳐 체세포 복제배아를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개체든 배아든 복제 논쟁은 뜨거웠다. 우선 과학자들 가운데도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돌리는 277번 시도 끝에 겨우 성공했다고 한다. 성공할 확률이 그렇게 낮다면 엄청난 희생도 그렇고 문제가 간단치 않다. 돌리는 보통 양보다 빨리 늙어 6살에 안락사 시켰다고 하는데 영롱이나 진이는 어떠냐는 의문이 나왔다. 광우병 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도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되어 환경변화에 취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황우석의 2004년 논문만 해도 242개의 난자를 써서 복제된 30개 의 배아 가운데 하나만이 줄기세포로 유도되었다고 하는데 그 많은 환자를 위해 엄 청난 수의 난자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요컨대 복제는 매우 비효율적 이라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난치병을 고치는 만능세포라는 믿음이 위험하다는 주 장도 있었다. 희망사항을 사실로 단정하도록 장밋빛 환상을 부추기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식공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 요하기 때문이었다. II 한국 철학계에서는 개체복제, 배아복제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철학자들 은 압도적으로 복제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다소 허용적인 견해가 가끔 눈에 띄었 다. 대다수의 논문이 외국에서의 논의를 기초로 하고 있었으나 독창적인 논문도 꽤 있었다. 진교훈은 가장 보수적인 입장인데 인간학의 관점에서 인간복제가 금지 되어야 할 이유로서 생명체 파괴, 인간의 상호의존성 파괴, 유일회성 파괴, 인간의 정체성 상실, 결혼제도, 가정제도의 파괴, 인간의 기본적 관계 파괴 등을 들었다. 김상득은 미국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인간복제와 관련해 제기한 문제점, 곧 개 성과 자율성, 가족정체성, 자녀의 대상화를 중심으로 고찰하면서 가족정체성이 해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인간복제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종식은 인간복제 에 대한 여러 가지 반대ㆍ찬성 이유를 검토한 다음 프라이버시를 보호 받을 권리가 침해되므로 인간복제는 도덕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황필홍은 개인의 다양성의 정신은 복제행위가 관련되는 동일성, 통일성, 동질성과 정면 충돌 하므로 복제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황경식은 인간복제에 관한 윤리적 찬반논변을 소개하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결정적인 논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무승부라고 말했다. 구인회도 인간복 제에 반대하는 논거와 찬성하는 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다음 윤리적 토론은 기 초가 튼튼한 새로운 견해들로 보충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과학철학자 정광수 는 인간복제에 대한 윤리적 반론들을 검토해 그 논리적 허점을 밝힌 다음 복제가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간 개체복제는 기술적ㆍ과학적 문제가 극복
되어 복제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제거되면 인간을 상업적 목적에서 복제하 거나 오로지 수단으로서 대우하는 것이 아닌 한 근본적으로 도덕적 문제를 갖는 것 이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논리학자 손병홍도 인간복제에 대한 진단과 우려는 과장이며 복제 전의 인간과 복제 후의 인간은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복제에 대한 비판을 완화시켰다. 1998년 톰슨(J. Thomson)과 기어하트(J. Gearhart)가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발견 하면서 복제논쟁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배아복제 연구가 난치병을 치료하고 이 식용 장기를 대량생산해 극심한 수급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 두했다. 과학자들은 세포의 분화가 일어나기 이전 단계인 수정 후 2주 이내의 인 간배아에 대해서는 연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종교 쪽에서는 인간의 생 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2주까지의 배아를 세포덩어리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해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었다. 개체복제의 경우와 달리 공리주의적인 윤리학자들은 배아복제 연구를 지지해 배아의 지위를 둘러싸고 만만치 않은 싸움의 양상을 보였다. 구영모ㆍ황상익은 배아복제 연구의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논의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배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목적의 실험도 자제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더 나은 선 택이라는 신중론이었다. 그들은 또한 장기복제가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리라는 이유로 배아복제 연구를 반대했다. 한편 한국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분석철학자 먹 과이어(John Michael McGuire)는 시험관수정이 합법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낙태 율을 보이는 한국이 배아복제 연구를 금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하면서 배아복제 연구를 규제하는 미국보다 허용하는 영국을 따르라고 권고했다. 일관성에서만 본 다면 반박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III 문제2004 년 논문은 과학적으로는 획기적인 연구였으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았 다. 무엇보다도 이 연구는 우리를 인간 개체복제 바로 문턱에 가져갔다. 복제배아 를 자궁에 넣으면 복제인간이 태어나게 되어 있다. 황우석은 회원은 아니었지만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한국생명윤리학회 1999선언에 서명했고 한국분자생물학회 윤 리위원장이었으며 문신용은 세포 응용연구사업단의 단장이자 그 윤리위원이기도 했 다. 그러나 누군가 맘만 먹으면 일을 저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전 해에 국회를 통과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그 연구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법이 발효하기 전 유예기간에 기습적으로 한 연구였다. 절차상의 문제점도 많았다. 기관 윤리위원회의 심의, 연구비의 출처. 난자를 얻 은 경위 등이 투명하지 않았다. 이 연구가 242개의 난자를 채취한 데 대해 세계가 놀랐다. 그것이 여성에게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게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 은 자발적인 동의를 받았고 관련연구기관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했다. 그 러나 심의절차에 관한 투명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중요한 문제가 한 윤리 위원회의 동의로는 충분치 않은데 그들이 기술적 지원 을 받았다는 또 다른 연구 기관의 윤리위원회의 심의는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비판이 나온 다음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치료용 인간배아복 제 연구윤리 특별위원회 를 만들어 윤리문제 점검에 나섰다. 학회는 3 월에 사 이언스 편집인에게 유감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냈고 5 월 총회에서 난자 취득, 기관 윤리위원회, 저자 등 제기된 운리적 문제점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황우석은 이를 무시하고 생명윤리학자들이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는 근 거 없는 비난만 되풀이 했다. 1 년 뒤 그는 서울대 강연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문 제점을 시인했지만 공개토론을 끝내 거부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 중요한 문제제기 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정부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모든 것이 사태가 파국에 이르게 된 단초였다. 정부는 황우석의 연구를 노골적으로 격려하면서 그를 띄우기 시작했다. 황우석 은 큰 훈장을 받았고 서울대 최초의 석좌교수가 되었으며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받 았다. 파격적인 연구비 지원을 주도한 것은 정부였으나 삼성, 포스코 등 기업들도 크게 거들었다. 노벨상을 목표로 황우석 후원회가 거창하게 출범했는가 하면 특별 경호원까지 붙여 주었다. 정부는 이공계 기 살리기에 황우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상을 주었다. 영국이 배아복제를 허용했고 이스라엘, 싱가포어, 중국, 일본도 생 명공학 육성에 적극적이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밀고 나간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해괴한 것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야당도 황 교수 지원만은 정부와 발을 맞추었 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온 정치권이 똘똘 뭉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의 편향이 심각했다. 노무현 정부에게 그토록 가혹한 보수언론이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는 정부보다 한술 더 떴다. 진보 언론도 황 교수 비판에는 소극적이었다. 언론은 윤리 쪽의 움직임은 거의 무시하고 외국 언론의 비판을 반박하는 데 급급했 다. 국민은 완전히 오도된 것이다. 생명공학의 개발을 원하는 과학자들도 황우석 띄우기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으나 공개적인 발언은 삼갔다. 9.11 직후 부시의 무 리한 반테러 작전을 반대하기 어려웠던 미국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기막힌 상황이 었다.
언론인 장성익은 황우석 사건에서 과학기술동맹 에 주목한다. 과학기술을 매개로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결합, 유착되어 강고한 기득권체제 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동맹의 핵심 주체는 과학기술자, 정부, 기업, 언론 이며 이들의 역할분담 체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했다. 이에 맞선 세력은 일부 종교계, 시민단체, 생명윤리학자들로 이루어진 윤리연대 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러나 윤리연대는 과학기술동맹과는 대조적으로 이질적인 느슨한 조직이었다. 그래 도 초기에는 윤리연대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2004년 이후는 정부 와 언론의 철저한 외면으로 거의 질식 당하다시피 무력한 존재였다. 이 두 세력의 대결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불공정 게임이었다. PD 수첩이 방영된 뒤 황우석은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과오가 있었음을 자백했다. 그의 논문과 관련된 연구윤리의 의혹은 모두 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과학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황우석은 거기서 끝났어 야 했다. 연구가 사기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의 첫 반응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고 즉각적인 조치는 전혀 없었다. 문제가 수습의 길로 들어갈 수 있 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해를 넘기고 여러 달을 끌 일이 아니었다. MBC의 끈질긴 추적과 젊은 과학자들의 검증이 밝혀낸 결과는 충격이었다. 이 엄청난 사 기가 정부의 비호 아래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세계가 놀랐다. IV 배아복제를 둘러싼 한국의 특이한 상황의 밑에는 성장지상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주의의 결과이다. 과학주의는 과학방법을 믿는다는 좋은 뜻에서 시작했으나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믿는 나쁜 말이 되었다. 서양은 과학기술 의 힘으로 오늘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나치의 인체실험, 원자폭탄, 환경오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과학주의를 청산해 왔다. 과학 비판이 과학의 폭 주를 견제하는 한 유럽과 미국은 희망이 있다. 1999 년 부타페스트에서 열린 세 계과학회의는 과학의 오용을 경고하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강조했다. 이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그러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장제 일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윤리가 반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한국에는 뿌리깊은 과학주의의 전통이 있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제국주의의 도전을 받았을 때 서양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사회 다윈주의의 열풍이 불었고 서양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부
국강병을 이루는 것은 세 나라의 공통 목표였다. 일제식민치하 1920년대를 뜨겁 게 달군 과학운동도 과학기술을 일으켜 독립을 되찾자는 몸부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어난 거국적인 과학 대중화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해방 후에도 과학기술입 국은 역대 정권의 한결 같은 구호였다. 한국이 한 세대 만에 세계 12위의 경제대 국이 되는 데 과학기술이 결정적인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 야 한다. 세계화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길은 생명공학 개발이라고 믿는 정 부에게 규제는 안중에 없고 윤리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성장의 신화를 깨뜨리고 과학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다. 황우석 사건의 밑에 깔린 심각한 문제는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이다. 황우석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는 파스퇴르의 말을 되뇌이곤 했다. 그가 미국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돌아왔을 때 미국의 한복판에 태극기를 꽂았 다고 자랑한 것은 유치한 민족주의의 극치였지만 어리석은 국민들을 열광하게 하는 데 특효약이었다. 이런 애국주의를 부추긴 것이 언론이었고 정부도 노골적으로 민족의 영웅 을 만드는 작전을 수행했다. 열강에 끼여 수모를 받은 한국의 역사가 과거에는 어느 정도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듯하다.그러나 OECD 회원국이 된 지 한참되는 나라가 국익이 진실보다 앞선다고 한대서야 세계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황우석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에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막중 한 책임이 있는 정부는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다. 과학계도 심각한 반성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정부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제정 을 서두르고 있으나 더 급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의 철저한 점검이다. 과거 청산을 강조하는 정부가 최근 과거를 적당히 넘긴다면 이만저만 모순이 아니다. 황우석 사 건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과학의 본질이 무엇이 고 과학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신익, 황우석 사태를 통한 한국의 과학문화 진단, 역사비평,제74호, 2006 봄, 115-143. 강양구, 과학기술 이데올로기의 종말, 녹색평론, 제83호, 2005 7-8, 149-167. 강양구, 황우석 사태 는 끝났는가, 녹색평론, 제89호, 2006ㆍ7-8, 60-69. 강양구ㆍ김병수ㆍ한재각, 침묵과 열광, 황우석사태 7년의 기록, 후마니타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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