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부하는가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이것이 공부의 힘! 그러니 교사도 공부 좀 하게 해 달라 임한철 충북 청주 만산초 parpanca@cbe.go.kr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던데 난 정말 그런가? 이 젠 좀 제대로(생물학적으로, 성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 로) 먹고 싸고 자자. 그리고 피 좀 그만 흘리고, 땀과 눈 물 쏟아 내며 개운하게 씻자. 직장에선(학교에선) 수영 장은 아니더라도 목욕탕 속에서 여유 있게 충전 좀 해 보자. 이젠 좀 놀듯이 일도 하자. 인생 도와 모만 있는 건 아니니 빽도 라도 즐기며 살자, 이놈아.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31
공부 좀 하게 해 주지 뭐하러 공부해요. 살기도 바빠요. 놀기도 바쁜데 공부하던 시절이 가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공부냐고들 한다. 공부하는 게 무슨 유별난 놈의 고급 취미로 치부되 는 때 왜 시대착오적으로 공부를 하는 걸까? 공부는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누리는 바탕이자 가교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 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워드 진)지만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다. 너에게 이런 권 리가 있다고 말해 주지 않는데, 권리 사용 자체도 두려워하는데, 권리를 지켜 줄 책임을 가진 국가와 사회가 오히려 이를 부정하고 억압하는데, 내게 좋은 것, 내 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찾아 간단 말인가.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어떻게 탈출 할 수 있을까. 공부를 부정하는 사회 속에서, 왜 나는 공부라는 사치를 즐기며 사는 걸까? 아마 누군가 물으면 잘난 척도 하고, 앎의 과잉과 과소의 덫을 벗어날 힘도 얻 고, 적 그리고 친구와 지낼 법을 배우고, 소중한 것을 지킬 역량을 키우고 싶다 고 답하려나. 아니 공부를 통해 적과 친구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자연과 벗하며, 멋진 연애와 자유와 정의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 라고 답해야 하나. 왜 나는 실속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핀잔을 들으며 쓸모도 없는 공부를 즐기는 걸까? 나는 평가당하지 않는 공부가 좋다 우리 사회에는 제일 똑똑할 때는 열아홉 살이요, 제일 무식할 때는 스무 살 이란 말이 있다. 단군 이래 최고의 학습 노동과 스펙으로 무장한 이들이 진짜 세상과 부딪치면 제가 얼마나 무식한지 느끼게 된다. 그토록 학습 노동에 시달렸는데 정 작 자신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감수성과 통찰, 안목이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 132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을 때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을 자기도 모르게 감춰 나간다. 나는 이 은폐와 합리 화의 나락에 다행히 빠져들지 않았다(아니 못했다). 나는 세상의 위선과 거짓을 거꾸로 볼 반전의 기회를 가졌고, 누군가의 평가 를 받지 않아도 되는 공부가 있다는 걸 경험했다. 평가에 시달리던 노예의 시험공 부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시험에 들지 않아도 되는 순간 부터 공부는 꽤 재미있어졌다. 시험 성적으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있 고, 그게 꽤 쏠쏠히 재미있단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대단한 이타성, 궁극의 가치 등을 쫓아 공부하지는 않았다. 미쳐야 미친다고 했지만 미친 적도, 미치고 싶은 목적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미치도록 공 부만 하는 수능족, 고시족, 행시족, 취집족 등과 나란히 서지도 않았다. 삶을 등 지고 권력만 쫓는 사람들이 되지도, 문자 중독에 빠져 훈고의 권위에 매달리지도 못했다. 돈독이 오른 이들, 권력욕에 미친 이들, 문자 중독에 시달리는 이들과 달 리 가볍게 공부를 즐겼을 뿐이다. 이런 유희의 길도 있구나 싶었다. 아니, 가볍게 가도록 놓아 둔 것인지도 모른다. 난 늘 적당히 어려웠고, 스스 로 곤궁하다고 여겼다. 적빈이 아닌 청빈 속에 있었지만 대단하신 분들과 달리 밥 먹듯 공부한 적도, 불타는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집에는 변변한 책도 없었고, 어 릴 적 읽은 책이라곤 만화책과 하이틴 로맨스가 전부였다. 물론 학교별 필독 도서 는 읽으라니 읽었지만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할 순 없었다. 입시 공부는 마지못해 설렁 대충했지만 신통치도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공부라는 것의 힘을 조금 씩 느끼게 되었다. 대단한 계기가 있지도 않았지만, 시나브로 주인이 되는 공부의 재미를 알아 갔다. 공부가 준 이로움 한두 가지 거짓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공부는 나에게 내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알려 주고, 그 현실 속에서 A.T.필드 1) 랄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33
까, 나를 지키는 힘이 되어 주었다. 공부를 통해 나는 더 이상 어설픈 얼치기 전문 가들과 지배자들의 사기에 속지 않게 되었다. 공부는 내가 지배계급이 주입한 판 타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주입받은 판타지를 지키려 고 믿고 있던 대로 보고, 속이는 대로 속고 있었다. 공부는 이렇게 자기를 배반하 는 사람들이 어떤 망상에 붙들려 사는지 가르쳐 주었다. 공부는 판타지에 시달리는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면하게 해 준다. 공부 는 영구 전쟁이 영구 평화를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 그것이 나의 삶의 근거를 파 괴하겠지만 그래도 저 돈 많고 권력 있는 어른들께서 부동산을 지켜 줄 것이고, 또한 미국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정치적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현실 을 비추어 주었다. 부자가 잘 되어야 나라가 산다고,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 다고, 부동산은 안 망하며, 경제 발전은 권력자의 덕이며, 발전은 영원하며, 사람 보다 집이 중요하다는 경제적 환영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공부는 조세포탈과 배임으로 관대하게도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받고도 불 과 한 달 만에 단독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든 국민이 정직 했으면 좋겠다 는 진실한 말씀 과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등 권력기관을 장악하 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는 청와대의 입장의 행간과 사회적 의미를 알려 주었다. 공부는 내게 지배자, 아니 주인들이 주인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노예를 바라 며, 지배자의 입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자, 순응하는 국민이 얼마나 예쁘고 필요한지 알려 주었다. 또한 공부는 현 교육 환경 속에서는 (학)부모들의 꿈이 실현될 수 없는 현실을 보여 주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풍요로운 소비가 입시 전쟁에 내몰린 학습 전사들의 마취약이라는 것, 학벌 사다리에 올라도 안정적 미래는 거의 없다 는 것. 집값 은 높고 사람값 은 낮은 사회에서 우리는 쓸모없는 잉여가 될 것이고, 무기력증과 우울함, 냉소와 좌절에 시달리며 힐링을 찾아 헤매도, 까닭 모를 분노 1) Absolute Terror Field의 약자.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에서 에반게리온과 사도만이 발생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물리 방벽 이다. A.T.필드 앞에선 어떤 통상병기(전차, 전투기, 잠수함 등)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134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와 풀기 어려운 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게임이든 어디든 도피 처를 찾아 중독에 빠지고 싶겠지만 그런 안락과 위안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도. 그리고 공부는 현실에서 증명된 거짓말을 지겹게 반복해서 쏟아 내는 지배 담론을 비웃게 해 주었다. 더 이상 지배 담론의 고상한 말투에 속지 않고 누굴 호 구로 알아? 라고 코웃음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부를 하니 맘대로 부릴 친구가 생겼다 공부는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과 사는 방법뿐만 아니라 새로운 친구도 소개해 주 었다. 자기 발등을 찍지 않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 말이다. 공부 속에는 개 미지옥에 사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하고, 그들에게 손길을 내밀고, 개미지옥을 바 꾸기 위해 공동의 지혜를 모으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공부를 통해 이런 잘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다. 엉뚱한 친구, 유쾌하고 진중한 상담자, 유익한 동료, 따뜻한 위안을 선물하고, 따 끔한 가르침을 주는 친구를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다. 과학에 기초해 사회과 학을 통섭하는 사회생물학 친구, 만화와 웹툰 친구, 영화 친구, 소설 친구, 자연 친구, 팟캐스트 친구 등을 만나며 넓고 크게 세상을 보는 안목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외롭고, 그립고, 괴로움에 빠져 고독을 느낄 때,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감정 적으로 소진되고, 그럴수록 열정은 휘발되어 갈 때, 위로와 격려를 나눌 친구를 공부를 통해 만났다. 복수의 비극을 다룬 박찬욱의 슬픔도, 선명한 김규항의 B급 좌파도, 절박한 우석훈의 C급 경제학도, 잘난 유시민의 지식 소매도, 애틋한 강풀 의 연애학도, 말 없이 말하는 이수진의 놀이도, 기적 같은 최숙희의 아이도, 종횡 무진 김용옥의 좌충우돌도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었다. 더구나 그 대단 한 분들은 나 같은 무지렁이에게 유쾌한 지적 유희를 나눠 주면서도 아무것도 바 라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내가 오해하고, 나 잘난 맛에 그들의 이야기를 잘근잘 근 씹어도 투정 한번 하지 않았다.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35
그러나 공부를 통해 만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좋아했을 뿐 제대로 소화하지 는 못했다. 대부분 속물의 허세였을 뿐이다. 다만 속물의 티 내기 전략은 세상이, 남들이 뭐라 해도 나 잘났다 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제 잘난 척 도 할 수 있었고, 때론 세상이 달라 보이고, 간혹 나를 다시 보는 재미도 있었다. 또한 공부를 통해 무시무시한 아해들에게 쪽팔리지 않을 수도 있었고, 고상한 척 하는 인간들의 허위와 위선을 꿰뚫어 보고 면박을 줄 수도 있었다. 이런 소화불량과 시행착오 끝에 내 몸에 맞고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찾아갈 수 있었다. 공부가 독서와 같은 것이 아니며, 공부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제대로 하면 쏠쏠하며, 세상만사 어떤 경험을 통해서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집중적으로 하면 그게 공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공부 좀 하게 해 달라 그러니 사람들이 공부 좀 할 수 있게 해 달라. 창조 경제 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은 평생 공부하며 혁신하는 노동자 아닌가? 나는 교사다. 그래서 내게 공부는 노 동과 향유를 일치시킬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교사들은 자신이 즐기는 것들을 노동 속에 풀어낼 수 있는 묘한 접점이 있다. 내가 다시 본 세상, 내가 느낀 리듬과 물 결 들을 노동 과정에 풀어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교사는 마름이다. 정치적 시민권도 없고, 자유롭게 수업할 권 리도 없다. 교사들이 교육정책을 비판하거나 저항하면 정치하느냐 며 매도당하 고, 수업을 정열적으로 구성하면 시험에 대비할 수 없다, 이러다 잘못되면 학생 들 인생 책임질 거냐 는 위협을 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수업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지만 아직은 미약하고 미미하기만 하다. 그러니 교사들도 원 없이 공부하고 제대로 공부하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 제도가 바뀌면 좋겠다. 교사들이 공부 좀 하게 해 달라. 제대로 수업 좀 하라고 제 도를 바꾸어 달라. 좋은 수업 좀 하게 교사에게 권리를 달라. 수업 결정권과 평가 136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권 좀 달라. 그래 놓고도 제대로 못 하면 혼을 내 달라. 교육평론가인 이범은 교 사에게 채워진 3중 족쇄로 학년별 평가제도, 통제 위주의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사전 심의를 꼽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많은 교사들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교권 침해가 제도화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교사를 공부하지 않도록 하는 두 가지 제도. 첫째, 통제 위주의 국가 교육과 정은 교사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수업 구성권을 가로막는다. 과다한 분량과 학 생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어려운 어휘와 내용들,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 과서는 교사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수업 재구성을 어렵게 만든다. 지나치게 꼼꼼한 교육과정. 그나마 교육과정의 분량이 적으면 교사의 수업에서 개성 이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들여다 보면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도록 규정된 내용이 워낙 많아요. ( )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만들어 놓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요. 진도 나가기 바 빠 죽겠는데, 예를 들어 각자 글을 써 와서 팀별로 토론식 수업 하는 게 가능할까요? 조사하고 발표하는 연구 활동 같은 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어렵죠. 교사는 수업 시간 에 교과 내용을 쭉 한번 선보이는 주마간산식 수업을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요. - 이범, 우리교육 100문100답 둘째, 교사가 공부하지 않도록 하는 또 다른 요인은 교사의 평가권 부재다. 교 사는 자신이 공부하고 가르친 것을 평가할 수 없다. 교사는 시험 문제를 내고, 시험 감독을 하지만 평가권은 없다. 교사별로 선호하는 수업 방식이나 선택과 집중을 하 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건만 그렇다. 학년별로 평가를 해야 하고, 교육과정(교과서) 대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원은 학교 시험 문제에 나올 만한 것만 반 복하며 학교 수업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니 학교에선 잠을 자고 학원에 선 시험공부를 해도 상관없는 일이 벌어진다. 오히려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물론 현행 교육과정에서 교과서의 위상은 절대적이지 않다. 교육과정에 따르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37
면 교과서는 절대적인 하나의 표준이 아니며, 교사에게 다양한 교재와 활동을 엮 어서 단원을 재구성하라고 요구한다. 그래 놓고 교과서는 어마어마한 양과 난이 도 높은 어휘와 수준을 자랑한다. 교사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평가를 해야 하다 보 니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모두 다루어야 하고, 교과서 바깥의 내용은 가르치고 평 가할 수 없다. 이러니 교사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수업하는 데 아무런 지장을 느 끼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성과 주체들은 승진하는 데만 진력하게 된다. 이렇듯 가르침에 대한 사회적 천시(선생질, 꼰대)와 엉터리 가르침에 대한 학 교의 성과 체계(잘 가르칠수록 가르치지 않도록 해 주겠다) 속에서 가르침에 대한 기대(학원이 해 줄 것)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교사는 공부(연구)하며 가르쳐야 한 다고 배웠지만, 학교와 교육제도는 그걸 도와주지 않는다. 교사들이 연구하고 공 부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연구하는 여건과 조건은 마련해 주지 않는다. 연구 하는 교사를 인정하고 격려하지 않는다. 가르침과 배움으로 관계(교사 전문가)를 맺으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작 행정 관료(승진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사들은 교과서나 지도서라는 신발 없이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체 계적으로 거세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숭이 골에 오소리가 찾아와 꽃신을 준다. 고마운 마음에 원숭이는 신기한 꽃신을 신고 다닌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몇 달 후에는 아주 편해졌다. 신발이 닳을 무렵 오소리는 새 신발을 또 준다. 원숭이는 잣 10개로 고마움을 대신하려 했지만 오소리는 받지 않았다. 이제 원숭이 발은 아주 보드라워져서 신발 없이는 걷기 불편하게 되었다. 그제야 오 소리는 새 신발을 사려면 원숭이에게 잣 20개를 내라고 한다. 겨울에는 잣 100개를 내라고 한다. 이미 신발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원숭이는 난감하다. 잣이 없다고 하자 오소리는 1년 동안 신을 신을 줄 테니 잣 500개를 나중에 갚으라고 한다. 게다가 청 소하기, 업고 강 건너기 같은 일도 해 주란다. 원숭이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 우화 원숭이 신발 138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많은 초등 교사들이 재미없고, 의미 없고, 그런데 내용은 어렵고 많은 수업 속에서 허우적댄다. 교사인 내가 배우며 의미 있었고 즐거웠던 것, 내가 좋았던 것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탐구하게 하는 수업을 할 수 없으니 배움이 즐겁고 매 력적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경험하게 해 줄 수가 없다. 수업은 기술이 아니라 교 사와 학생의 관계이며, 교사는 배우면서 가르쳐야 하며, 학습자의 성장(변화에 대 한 경이)을 도와주어야 한다는데 현실은 자꾸 거꾸로만 간다. 제발, 교사들이 공 부 좀 하게 해 달라. 공부를 통해 배운 것 : 착한 놈,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처음에는 공부를 안 해도 시키는 대로 착실히 살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 게 위에서 명령하시는 대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착하다는 게 무엇을 의 미하는지도 몰랐지만 착하게 살려 노력했다. 보는 눈도 있으니, 남들 인정도 받아 야 하니.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에서 동진(송강호)은 류(신하균)가 착한 놈인 걸 안다. 그래서 자신이 그를 죽이는 것마저 이해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 나오 는 주인공들은 정말 착하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 무 험하다. 착한 사람은 착함으로 인해 비극을 만들고 죽는다. 착한 인간들의 비 극, 착하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의 비극이 이어진다. 사실 착한 놈은 지배에 길들여진 겁에 질린 사람들이다. 공포와 불안에 시달 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착하기를 바란다. 나만 착한 게 아니라 남 들도 착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로울 테니. 하지만 지배자들 은 야수들이다. 결코 착함에 길들여져 있지 않다. 드라마 황금의 제국 에서 최동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39
성(박근형)은 최서윤(이요원)에게 착해지면 결코 지배자가 될 수 없다고 일갈한 바 있지 않은가. 착한 사람이 되지 마라. 남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돼라. 착한 놈이 아니라 좋은 놈, 멋진 놈이 되고 싶어야 할 텐데, 우리 사회에는 착 한 놈들뿐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성실히 일하는 착실한 놈만 넘친다. 교직에 서도 마찬가지다. 관리자의 지시를 잘 따르고, 예의 바르고, 행정 업무를 잘하며, 교과서대로 잘 가르쳐 주는 교사가 유능하고 바람직한 교사의 전형이 된다. 지배 권력은 행정적 절차와 문서를 통해 무책임해지고, 권력 해바라기가 되어 성공(승 진)을 도모하는 모범적이고 착한 전문가 를 원한다. 착한 놈은 사실 바로 우리가 학교에서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모범생이다. 무의미한 사실을 축척해 갈수록 무지도 늘어 간다는 사실만큼 교육에서 놀라운 일은 없다 (헨리 애덤스)지만 아무리 축적해도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문제 해결도 할 수 없는 바보들만 늘어 간다. 이런 착한 모범생들은 출세 와 관련된 것 외에는 자기 권리를 표현하는 데 소극적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금언을 새기며 권력의 표적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거나 납작 엎드려 있다. 나만 살면 된다는 착한 생존 전략이 결국 나 또한 살리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범생들은 통상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편안해한다. 비판과 부정을 불필요한 소란과 투정이라 치부한다. 이때 문제아들은 모범생의 반대편 거울이다. 모범생과 문제아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모범생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 하는 착한 아이라면, 이를 할 수 없다는 불만에 자포자기한 아이는 문제아다. 꽃 들에게 희망을 에서는 모범생인 애벌레들도, 문제아인 애벌레들도 모두 성공을 향해 가열차게 기둥을 오른다. 의미도 살피지 않은 채, 온몸을 내던져. 140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 ) 이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 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서로 위협과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 ) 어떤 날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도 힘겨웠습니다. 그럴 때면 특히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 가 호랑 애벌레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림자는 이렇게 속삭이곤 했습니다. 꼭대 기에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 )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 아. 조용히 해, 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착한 놈 아니면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불온하게 살아 보는 건 어 떨까? 난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며 새로운 길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착한 놈 이 아니라 멋진 놈으로 세상을 즐겁게 사는 법을 찾는 건 어떨까. 일단 하지 말라 는 것만 골라서 해 보면 멋진 놈이 될 가능성이 열린다. 하라는 대로 하다간 한 방 에 훅 간다. 하지 말라는 걸 찾아 하며 나에게 좋은 걸 찾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선 지금 여기에서 신 나게 놀아야 한다. 바람을 즐기며, 돌아보지 말고, 해가 저 물도록 놀아야 한다. 공부해도 멋진 놈 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은 똥이 더럽다면서 세상을 똥으로 가득한 난지도로 만들었다. 그래 놓고 똥이 더럽다고 혐오한다. 세상을 똥통으로 만들어 놓고, 아해들에겐 장미를 피우 라고 한다. 그런다고 장미가 향기로울까. 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똥통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며, 똥 을 밟지 않고 똥을 치울 책임이 있다. 세상을 똥통으로 만들지 않도록 비판하는 것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한 내 책임, 똥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방관한 내 책임 을 조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로서 이를 책임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41
질 이중적 섬세함이 필요하다. 똥에 처박히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파괴한다. 아우슈비츠의 지배 전 략은 이를 간명하게 보여 준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수용자들은 배설물 위에서 뒹굴어야 한다. 이때 사람은 고문과 굶주림, 죽음의 공포보다 더 큰 타격을 받는 다. 신체에 미치는 통증은 대단치 않으나 정신에 미치는 모욕과 굴욕감은 상상을 넘어선다. 똥으로 범벅이 된 육체는 정신적 자존을 상실하고 살아 있지만 죽어 있 게 된다. 수용자들은 한결 통제하기 쉬워진다. 숙소와 하수구, 진흙, 블록 뒤에 있는 똥 무더기들, 처음에 그 모든 것들의 참을 수 없는 불결함은 나를 얼떨떨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혼 란이나 무질서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수용소 생활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철저 히 계산된 고의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똥오줌 속에 빠져 죽게 하고, 진흙탕과 배설물 속에서 죽어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기를 원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파괴해서 우리를 짐 승 수준으로 타락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 테렌스 데 프레, 생존자 우리는 수용소의 참상과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욕과 수치심, 모욕감을 극복 해야 한다. 저항은 자신의 몸을 보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먹을 물도 부족한 상황 이지만 남은 물로 자신의 얼굴과 몸을 씻는 것.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게 저항의 출 발이다. 우리는 사회가 던지는 배설물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배설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존엄과 자존을 보살피는 것에 생명 자체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똥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날카롭고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그 비 판 속에서 내가 감당할 책임을 살펴야 한다. 똥으로 가득한 세상을 비판하되, 똥 을 밟은 건 똥이 문제가 아니라 밟은 내 책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똥인지 된 142 오늘의 교육 2013. 11 + 12
장인지 구분 못 한 내 부실한 안목과 똥이 양산되도록 방치하고 방관한 책임을 인 정해야 한다. 이게 우울한 현실을 보는 밝은 눈이자, 냉소와 절망에서 벗어나 유 쾌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통로다. 나라는 좀비를 이해하고, 좀비화된 인간을 사랑하는 법 뻔뻔한 놈들은 그런 짓을 하고도 발 뻗고 편히 잔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가 해체된 이후 한국 지배층은 잘 먹고 잘 살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 란 이후에도 지배층은 무책임하고 무도하게 잘만 살았다. 오히려 뻔뻔하고 천박 한 지배자들은 나쁜 짓을 하고도 책임을 물으면 깽판을 부린다. 정의가 무너지자, 불감증에 걸린 놈들이 더 유세부리며 잘만 산다. 정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놈이 바보가 되는 세상, 피해자가 피의자 취급을 받는 사회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다 죽는 줄도 모르고 자 기 혼자 살겠다고 저리 힘 있는 놈한테 의지하는구나 비판하고 안타까워하되, 손 을 내밀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몰염치하고 치사하고 야비한 세상. 너희들이 그렇지 뭐 이러고 지나가면 된다. 난 부당한 세상에서 모두를 구원하겠다고 오지 랖 넘게 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체념과 냉소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천박한 권력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치졸하고 저열해지는지 살펴보려 한다. 불구경 못지않게 재미있다. 그런데 나도 너도 사실 그 지옥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 그러니 제발 불 좀 그 만 끄자. 제대로 살아남을 욕심을 내고, 살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 다보고 그 생존의 욕망을 향해 움직이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자. 그리고 분노하 자. 저항하되 크게 말고 작고 사소하게 개겨도 좋지 않을까. 상황과 사람에 따라 거짓말할 줄도 알아야 하고,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할 줄도, 약속을 어긴 것에 대 해 책임을 요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복수할 수 없다면 적어도 용서하지는 마라. 매일 뜨는 해, 뿌리 깊은 나무, 때마다 피는 꽃이 바로 너니. 바로 네가 그 주인공 똥통 같은 세상, 호구로 살지 않는 법 143
이니. 공멸해 가는 사람들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웃으며 해 보자. 내가 웃는 건 파국을 향해 가는 폭주 기관차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살겠 다고 버둥거리는 우리의 행로가 웃음이 난다. 파국의 행로 속에서 보이는 위선과 불일치의 촌극들에 웃음이 난다. 파국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제 살겠다고 보이는 우리 삶의 단편들이 웃기고도 슬픈 것이다.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 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 찰리 채플린 어쩌다 나는 공부가 좋아졌다. 그래서 웃픈 2) 일들 속에서 내 감정을 살필 수 있었다. 공부는 남을 구원하겠다고 어줍지 않게 나서기보다 나 스스로부터 배려 하게 해 주었다.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지 않지만, 겨우내 쌓인 눈이 해가 뜬 다고 한 번에 녹지 않지만 나를 배려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비극 속에서 도 희망은 이미 우리 안에 있으니. 배워 가며 한 걸음씩 천천히, 꾸준히, 부드럽 고, 유쾌하게 해 보자, 공부하면서. 노랑 애벌레는 용기를 얻으려고 늙은 애벌레의 고치 옆에 매달린 채,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나,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이건 내가 제대 로 하고 있다는 증거야. 용기도 생기는걸. 내 속에 고치의 재료가 들어 있다면, 나비 의 재료도 틀림없이 들어 있을 거야. -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2) 웃기다 와 슬프다 를 합친 신조어. 144 오늘의 교육 2013. 11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