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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중재 언론중재위원회 학술지 미디어와 인격권 일반논문 공모 언론중재위원회는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학술적 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학술지 미디어와 인격권 을 창간합니다. 미디어와 인격권 창간호에 게재할 일반논문을 공모하오니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2 0 1 5 년 여 름 호 통 권 1 3 5 호 사건 속 법률 연구주제 : 표현의 자유, 인격권, 언론윤리, 미디어법제 등 미디어와 인격권 의 발행 목적에 부합하는 주제 응모자격 : 언론학 및 법학 관련 학회 회원, 관련 분야의 전문자격증 소지자 및 종사자, 기타 해당 분야 전문성이 인정되는 자 원고마감 : 2015년 8월 20일(목) 원고분량 : 200자 원고지 150매 내외(최대 180매) 논문접수 : 이메일 접수(journal@pac.or.kr) 미디어와 인격권 에 게재가 최종 확정된 논문은 원고료(200만 원)를 지급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www.pac.or.kr)를 참조하시거나 언론중재위원회 연구팀((02)397-3042)으로 문의 바랍니다. Vol.135 ISSN : 2005-2952 Summer 2015

인쇄 2015년 6월 26일 발행 2015년 6월 30일 등록 1981년 10월 14일 등록번호 서울중.바00002 발행인 박용상 편집인 권우동 발행 언론중재위원회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프레스센터빌딩 15층) 전화 02-397-3114 FAX 02-397-3049 www.pac.or.kr 디자인 인쇄 비주얼트랜드 02-517-5450 편집위원 심석태 지성우 최진순 황용석 SBS 뉴미디어부장 /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본지는 잡지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 이 책에 게재된 원고의 내용은 우리 위원회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이 책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발전기금 을 지원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 저작권법에 따라 본지에 수록된 글의 무단 복제와 전재 및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Summer 2015 Vol. 135

언론 중재 Summer 2015 CONTENTS Focus on Media 06 열린 공간, 닫힌 댓글 저널리즘 관점에서 본 댓글의 효과와 사회적 함의 _이은주 인터넷상의 야누스, 악플의 사회심리학 _나은영 판결로 본 기사댓글의 법적 책임 _윤성옥 칼럼 40 세월호 언론 참사, 1막 과 2막 에서 끝나야 한다 _심석태 사건 속 법률 44 누구를 위해 언론은 보도하는가 - 언론 윤리와 JTBC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 방송 논란 _양재규 판례토크 56 사실의 과장과 왜곡 - 언론보도의 분장 과 변장 _조원철

Movie with Legal Mind 60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_김주연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이야기 66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 페이스북과 EU의 공방 _성선제 해외통신원 기고 78 영국의 수사권한규제법(RIPA)과 언론인에 대한 감청 논란 _김지현 주목할 만한 해외언론법제 86 영국 명예훼손법 및 해설 (Defamation Act 2013 and Explanatory Notes) _박용상 경기토론회 발제문 요약 100 언론중재제도의 성과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과제 _홍문기

Focus on Media 1 이은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저널리즘 관점에서 본 댓글의 효과와 사회적 함의 2002년 2월 오마이뉴스가 인터넷 뉴스 사이트로서는 처음으로 댓글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같은 해 디지털조선(조선일보), 조인스닷컴(중앙일보) 등 주요 신문사들이 댓글 기능을 도입했다. 2004년에는 국내 최대 뉴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댓글 기능을 선 보이면서 댓글은 온라인 저널리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댓글 도입 초기에는 뉴스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전통적 매스 미디어와 달리 댓글을 통해 뉴스 이용자들이 기사를 읽고 공공의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상호 의견을 교환 하는 일종의 공론장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견해는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반복하며 개인 감정을 무분별하게 발산하 는 댓글이 주류를 이루면서 1) 이러한 낙관적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판명되었 다. 이후 악성 댓글, 광고성 스팸 댓글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후에 위헌 결정을 받 기는 했으나) 제한적 본인 확인제와 같은 법적 조치가 만들어지는 한편, 작성자가 자신 의 SNS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댓글을 달 수 있는 소셜 댓글 서비스도 출시됐다. 소셜 댓 글은 2010년 블로터닷넷을 시작으로 국내에 도입되어 2015년 현재 네이버를 비롯한 대 부분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서 채택하고 있다. 별도의 회원가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기존 소셜 계정을 통해 댓글을 작성할 수 있는데, 본인의 선택에 따라 기사의 URL과 댓글 내용이 자신의 SNS 계정에 게시된다는 점에서 일반 댓글과는 차이를 보 1) 이광수 김병석, 2009, 인터넷 토론공간에서의 의사소통행위양식에 대한 연구: 쌍용자동차 와 쥐머리 새우깡 관련 댓글을 중 심으로,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2권 제2호, 25-50쪽. 6 _ Focus on Media 1

인다. 국내 최대 소셜 댓글 서비스 제공자인 라이브리에 따르면, 2013년 51만 2천 개였 던 주요 언론사 사이트의 소셜 댓글은 2014년에는 80만 4천 개로 증가했으며, 2014년 의 경우,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작성한 경우가 가장 많고(36%), 그 뒤를 네이버(33%), 페 이스북(22%) 등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 댓글 서비스 제공자 라이 브리의 소셜로그인 화면 캡처 (출처 : 라이브리) 주요 언론사 사이트의 소셜 댓글 증감량 (출처 : 라이브리) 2014년 전체 소셜 댓글에 대한 매체별 비율 (출처 : 라이브리) 익명성의 그늘 아래 정치인, 연예인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에 대한 허위 사실 유 포 및 인신공격성 발언이 난무하고, 특정 지역이나 성별, 종교 집단에 대한 차별적 표현 이 댓글 공간을 어지럽히면서 표현의 자유 라는 이름으로 기사댓글을 어느 선까지 보호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제기돼 왔다. 나아가 소위 알바 를 동원하여 댓글을 조작하 려는 시도는 법률적 판단과는 별개로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Summer _ 7

Focus on Media 1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는 사람들이 댓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 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보다는 댓글의 영향력에 대한 막연한 가정을 바탕으 로 이루어진 경향이 없지 않다. 구체적으로, 2009년 15세부터 45세 사이의 포털 뉴스 이용자 1,036여 명을 대상으로 댓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2) 를 보면, 많은 사람들 이 전반적으로 댓글의 수준이 낮다 (48.7%), 홍보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등 의도적으 로 작성되는 댓글이 많다 (60.8%)는 데에 동의함으로써 댓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면서 도, 동시에 뉴스 댓글이 이슈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파악하는 데 유용 (51.1%) 하고 여론을 한쪽으로 쏠리게 한다 (48.4%)고 응답했다. 20대에서 50대 사이 서울 시 민 506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에서도 응답자들은 온라인 뉴스 댓글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보통이하(7점 만점에 평균 3.69)의 점수를 주었으나, 정보적 유용성( 기사만 으로 알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댓글을 통해 기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 추이를 파악할 수 있다 )은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하는(7점 만점에 평균 4.57) 이중적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3) 이렇듯 댓글은 믿을 수 없고 질이 낮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론을 좌우하는 힘을 지녔다 는 세간의 인식이야말로 그동안 댓글 관련 논 의의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댓글이 뉴스 이용자의 여론 인식, 보도된 사안에 대한 태도, 뉴스 기사에 대한 평가 및 이해, 현실에 대한 인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실증적 연구 결과들을 심층적으로 살펴봄 으로써 언론 의 일부로서 기사댓글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댓글을 읽으면 여론이 보인다? 각종 조사결과를 보면 기사댓글을 읽는 사람들에 비해 댓글을 실제로 작성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고, 뉴스 이용자들 역시 댓글 작성자들을 소수의 극단적인 의 견을 가지고 있거나 딱히 할 일이 없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댓글에 드러난 의견을 마치 한국 사회 전체의 여론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기사에 대한 사람들 의 찬 반 투표수와 댓글을 비교했을 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수백 명의 찬성이나 반 대가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남긴 댓글보다는 여론 대표성이 더 높다고 생각할 수 있는 2) 이창호 이호영, 2009, 포털 이용자들의 포털 뉴스이용패턴 및 포털의 언론역할에 관한 인식, 한국언론정보학보 제46권, 177-211쪽. 3) 김동윤 홍하은, 2015, 정치참여 수단으로서 댓글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한계: 비선거 시기 온라인 및 SNS 뉴스 댓글에 대한 인 식과 활동의 비교를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제32권 제1호, 51 86쪽. 8 _ Focus on Media 1

데도, 사람들이 여론을 추측함에 있어 기사에 대한 찬성, 반대 수보다 소수 댓글에 나타 난 개인적 견해에 의존한다는 점 4) 은 댓글이 여론을 추정하는 단서로서 강력한 영향력 이 있음을 시사한다. 소수의, 심지어 조작되었을지도 모르는 댓글을 바탕으로 한국 사 회 전체의 여론을 짐작하는 비합리적 경향은 평소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즐기는 사람 들에게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5) 본인이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뉴스 이용자가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으 면서 해당 사안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여론을 추정한다는 사실은, 뉴스 이용자가 여 론에 대해 (잠재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보다도 인식 이외에 다른 부수적 효과가 파생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즉, 댓글을 통해 여 론을 조작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람들이 댓글을 읽고 여론을 추정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세라고 판단되는 여론의 흐름에 본인도 동조하게 된다는 가정에서 비롯 된 것이다. 이처럼 다수 의견, 혹은 이기는 쪽에 편승하려는 경향은 소위 밴드왜건 효과 (Bandwagon Effect)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댓글을 읽은 뒤 사람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 댓글과 같은 방향으로 자신의 태도를 실 제로 바꾸게 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예컨대 기사의 논조와 댓글의 견해가 이슈에 대한 개인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했을 때, 댓글이 기사보다 독자의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효과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격한 감정을 분출하는 소위 질 낮은 댓글에서도 발견되었다. 6) 또한 온라 인 뉴스 기사와 기사에 달린 긍정적 또는 부정적 베스트 댓글을 읽고 본인의 의견을 댓 글 형식으로 작성하도록 한 경우, 긍정적 베스트 댓글을 읽은 집단은 부정적 베스트 댓 글을 읽은 집단이나 중립적 댓글을 읽은 집단에 비해 긍정적인 댓글을 더 많이 작성하 는 것으로 나타나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댓글(베스트 댓글)은 독자의 의견 (보다 정확히는 의견 표명)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인 바 있다. 7) 이러한 결과들은 사 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댓글에 의해 여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 4) Lee, E. J. and Y. J. Jang, 2010, What Do Others Reactions to News on Internet Portal Sites Tell Us? Effects of Presentation Format and Readers Need for Cognition on Reality Perception, Communication Research, vol. 37, no. 6, pp. 825-846. 5) 이은주 장윤재, 2009, 인터넷 뉴스 댓글이 여론 및 기사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각과 수용자의 의견에 미치는 효과, 한국 언론학보 제53권 제4호, 50-71쪽. 6) 양혜승, 2008, 인터넷 뉴스 댓글의 견해와 품질이 독자들의 이슈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언론학보 제52권 제2호, 254-281쪽. 7) 문광수 김슬 오세진, 2013, 베스트 댓글의 방향성이 일반댓글의 동조효과에 미치는 영향,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3권 제12호, 201-211쪽. Summer _ 9

Focus on Media 1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댓글에 의한 태도 변화가 논리적 사고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서 만 제한적으로 발견되거나 8) 댓글이 뉴스 이용자의 의견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 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 9) 도 있음을 고려할 때, 댓글이 어떤 조건하에서 사람들의 의견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댓글이 뉴스 이용자들의 의견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실증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막연하게 댓글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좌우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제3자 효과 (The Third-Person Effect)로 설명할 수 있는데, 제3자 효과는 미디어가 본인보다 다른 사람들(제3자)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로,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장해서 인식하는 일반적 경향을 설명하는 개념이었으나 댓글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나는 댓글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있고, 그래서 댓글을 읽었다고 해서 생각이나 태도 를 바꾼다거나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문제 있는 댓글을 읽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 거나 그릇된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악성 댓글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신보다는 일반 성인이, 일반 성인보다는 어린이 청소년이 악성 댓글의 부정적 영향 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고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 사실 댓글의 영향력에 대한 지 각은 댓글에 대한 법적 규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필 요가 있는데, 댓글의 영향력이 크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악성 댓글 작성자에 대한 법 적 규제를 찬성한다는 점 11) 에서 댓글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뚜렷한 근거 없이 과대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선거 시기에 누군 가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올렸을 때 (본인은 그렇지 않지만) 해당 댓글을 읽은 많은 네티즌들이 그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투표의사를 바꿀 것이라고 생 각한다면 이 같은 댓글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 기 때문이다. 8) Lee, E. J. and Y. J. Jang(2010), pp. 825-846. 9) 김은미 선유화, 2006, 댓글에 대한 노출이 뉴스 수용에 미치는 효과, 한국언론학보 제50권 제4호, 33-64쪽. 10) 유홍식, 2010, 악성 댓글에 대한 제3자 효과 연구, 한국방송학보 제24권 제5호, 238-278쪽. 11) 정일권 김영석, 2006, 온라인 미디어에서의 댓글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여론동향 지각과 제3자 효과를 중심으 로, 한국언론학보 제50권 제4호, 302-327쪽. 10 _ Focus on Media 1

맞춤법도 틀리면서 네가 기자냐? 여론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이자 향후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원으로서 댓글을 이해하는 시각과 더불어, 뉴스 기사와 나란히 제시되어 기사에 대한 평가 및 기사 내용 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주는 독립적 텍스트로서 댓글을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영 국 가디언지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기자들은 댓글로 인해 기사의 정확성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고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응답하면서 동 시에 악성 댓글 때문에 기자 개인 혹은 언론사의 신뢰도가 낮아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12) 사실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는 기자양반, XX는 그게 아니라오 같은 점잖은 훈수부터 맞춤법도 틀리면서 네가 기자냐?, 요즘 기자되기 쉽네 같은 날선 지적에 이 르기까지 기사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보충적인 정보를 제공 하거나 기사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는 댓글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정치인,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일수록 인터넷 뉴스 댓글을 더 많이 읽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13) 기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담고 있는 댓글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개인뿐 아니라 전체 언 론 종사자 및 뉴스 조직에 대한 불신을 한층 강화시킬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의 내용과 댓글의 내용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이다. 천박한 표현과 속어가 섞여 있는 질 낮은 댓글과 그렇지 않은 댓글을 보여 준 경 우, 동일한 기사를 읽었음에도 질 낮은 댓글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 기사의 질을 더 낮 게 평가하는, 기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고 14) 딱히 악성 댓 글이 아니더라도 댓글에서 제시된 입장이 기사의 논조와 반대되는 경우, 독자들은 기 사가 전문성이 부족하고, 부정확하며, 신뢰하기 어렵고, 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 다. 15) 나아가 댓글의 방향성에 따라 기사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기사의 논조 자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본인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 댓글 들을 읽은 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중립적이라고 판단한) 기사의 논조가 본인의 의견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16) 적대적 미디어 지각(Hostile 12) Singer, J. B. and I. Ashman, 2009, 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 : User-Generated Content and Ethical Constructs at the Guardian, Journal of Mass Media Ethics, vol. 24, pp. 3-21. 13) 나은경 이강형 김현석, 2009, 댓글 읽기/쓰기를 통한 온라인 소통이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의미: 인터넷 뉴스 댓글 이 용과 사회신뢰, 정치신뢰, 언론신뢰, 그리고 정치지식, 한국언론학보 제53권 제1호, 109-132쪽. 14) 김은미 선유화(2006), 33-64쪽. 15) 이은주 장윤재(2009), 50-71쪽. 16) Lee, E. J., 2012, That s Not the Way It Is: How User-Generated Comments on the News Affect Perceived Media Bias,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vol. 18, pp. 32-45. Summer _ 11

Focus on Media 1 Media Perception)은 댓글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관찰된 현상으로, 해당 이슈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이해관계가 높은 사람들이 중립적인 뉴스 보도에 대 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에 적대적이라고(달리 말하면 자신들과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 에게 호의적이라고) 믿는 지각의 편향성을 가리킨다. 댓글의 내용에 따라 적대적 미디 어 지각이 더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댓글의 질에 따라 기사의 질을 달리 평가할 수 있고, 더불어 뉴스 기사와 댓글의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종 의 동화 효과(Assimilation Effect)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들이 기 사의 내용과 댓글의 내용이 별개의 정보원에 의한 것임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 나는 현상일 수 있다. 예컨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 관련 기사에 달린 댓 글 중에서 해당 정치인을 두둔하는 내용이 있었을 경우, 기사와 댓글을 함께 읽은 독자 가 기사에서 그 내용을 읽은 것으로 착각하고 기사가 해당 정치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흔히 의제설정기능(Agenda-Setting Function)을 꼽는다. 매일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 이슈들 중에서 공중이 알아야 하는 것,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서 보도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뉴스 미디 어는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역할을 한다고 이해되어 왔다. 또한 독자들은 보도가 얼마나 크게, 어느 지면에 났는가에 따라 해당 의제의 상대적 중요도를 판단하곤 했다. 이처럼 독자적인 취재, 편집 활동을 통해 언론이 사회적 의제를 설정했던 과거와는 달 리, 포털 뉴스 사이트에는 댓글 많은 기사들이 별도로 순위가 매겨진 채 잘 보이는 곳에 게시된다. 이들 기사는 유명인의 연애, 결혼, 이혼 소식처럼 전통적 의미로는 뉴스 가치 가 높지 않은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무수히 생산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찾아 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 기준으로 손쉽게 활용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집단적 의제형성(Collective Agenda-Building)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12 _ Focus on Media 1

포털 뉴스 사이트 내 댓글 많은 기사들 (출처 : 네이버 뉴스, 미디어다음) 댓글은 어떤 기사를 읽을 것인가뿐 아니라 보도된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 가에 대해서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도 과정에서 사건의 일 부 국면만을 선택, 강조하고 다른 측면은 무시함으로써 해당 사건을 특정한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것을 틀짓기(프레이밍 Framing) 효과라고 하는데, 기사에 달린 댓글이 바로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을 어떤 틀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결정해주기도 Summer _ 13

Focus on Media 1 한다. 예컨대 통상적인 범죄 기사에 범죄 발생지역을 거론하며 공공연하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댓글(예: 또 XX도냐?! 역쉬. 무서운 종자들이네~ 인간 말종 동네~, XX 도 사람들은 제발 서울에 좀 기어올라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 그냥 니네끼 리 줄치고 살아라, 민폐 끼치지 말고... )이 달린 경우와 지역감정과 무관한 댓글이 달 린 경우를 비교했을 때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범죄 발생률을 다른 지역보다 더 높게 추 정하였다. 17) 이러한 결과는 독자들이 비록 댓글에 나타난 특정 지역에 대한 악의적 편 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러한 댓글에 노출되었을 때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부지불식간에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기사에서 보도된 것과 다른 종류의 범죄에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 는데, 특히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특정 지역에 대 해 부정적인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댓글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 다. 하지만 보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댓글을 다른 작성자가 정면으로 반박하는 경우(예: 지역감정 부추기는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않되는 넘들... 이때다 싶어 서 얼릉 달려드는데... 전라도라서, 아니면 경상도라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거등? 좁아터진 나라에서 가지가지한다, 에효. )에는 악성 댓글이 해당 지역의 범 죄율 인식에 미치는 효과가 사라졌다는 점으로, 악성 댓글에 대한 합리적이고 분별 있 는 비판 댓글이 일종의 교정 작용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지역을 언급한 댓글에 노출된 경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댓글만 읽었든 이를 반박하는 댓글까지 함께 읽었든, 다른 범죄 관련 기사를 읽고 난 뒤 기사 내용에 포함 된 범죄 발생지역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통해 댓글의 내용에 따라 사람들이 보도된 사건의 어떤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주의와 관련된 댓글을 읽은 사람들은 지역감정이 지속되는 원인 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다른 요인에 비해 뉴스 매체의 책임을 꼽는 경 향이 더 높았다. 사실 그들이 읽은 기사는 범죄 관련 스트레이트 기사로, 6하 원칙에 따 라 관련 사실만 객관적으로 보도했는데도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비방이 포함된 댓글 을 읽고 난 뒤 지역감정을 뉴스 매체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사람 들이 기사와 댓글을 분리해서 처리하지 못함을 시사하는 또 다른 증거로 볼 수 있다. 17) Lee, E. J., H. S. Kim and J. Cho, 2015, How User-Generated Comments Prime News Processing: Activation and Refutation of Regional Stereotypes, Association for Education in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연례 학술대 회 발표 논문집. 14 _ Focus on Media 1

맺음말 댓글 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댓글 때문에 기사를 읽는다 는 말이 어색하 지 않을 정도로 댓글은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핵심 콘텐츠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그 간의 논의가 댓글의 효과에 대한 막연한 가정에 근거하여 주로 규범적인 차원에서 이루 어졌다면, 본고에서는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댓글의 효과에 대한 그간의 실증적 연구결 과를 검토함으로써 댓글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고 1인 미디어의 주인이 되는 시대, 인터넷 뉴스 사 이트의 댓글은 예전 구색 갖추기 용으로 담당자에 의해 선별되어 신문 한 귀퉁이를 차 지했던 독자의 소리 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독립적 콘텐츠이다. 뉴스 이용자들은 댓 글을 통해 기자의 지배적 해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현실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제 시할 뿐 아니라 이에 동의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기 자나 언론사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들의 통제 밖에 있는 댓글로 인해 자신들의 공신력 이 의심받고 보도 내용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잘못된 해석이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댓글 공간을 건전하고 합리적인 의견 개진의 장으로 만드는 데 언론 스스로가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모쪼록 이 글이 이미 언론보도의 일부로 자리 잡은 댓 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문제 있는 댓글들로 인한 부작용을 어떻게 예방하고 줄 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산적 논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Summer _ 15

Focus on Media 2 나은영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인터넷상의 야누스, 악플의 사회심리학 1. 악플, 그 정체는? 악플 이란 악성 리플(Reply) 또는 악성 댓글 의 줄임말로, 인터넷상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글 또는 콘텐츠에 대해 악의적인 댓글을 달거나 험담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 인터 넷이나 모바일 미디어를 활용한 소통이 상당 부분 글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에 대한 대 응도 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글이 아닌 사진이나 동영상 등과 같은 콘텐츠에 대 해서도 댓글을 달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상, 인터넷 콘텐츠 전반에 대한 악의적 반응을 명시적으로 표현했을 때 이를 통틀어 악플로 간주할 수 있다. 일반적인 댓글에 비해 악성 댓글은 일종의 무기가 되어, 악플의 대상이 된 사람의 마 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심지어 악플의 대상을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한 악성 댓글 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대상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그 대상은 마녀사냥 형 태의 댓글 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악플은 언어폭력의 범주에 속하 며, 심할 경우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중대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악플의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악 플이 칼이 아닌 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악플은 대체로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만 부 정적 영향을 강하게 끼친다. 그것을 읽지 않는 사람은 그 심각성을 알기가 어렵다. 악 플을 읽는다 해도 그것이 본인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니면 기분은 나빠지겠지만 비수처럼 꽂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악플은 일반적인 대중의 삶에서는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 악플의 대상이 되어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읽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은 16 _ Focus on Media 2

황폐화될 수 있다.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주는 것이 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 이 칼 과 같은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 감하지 못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글은 말에 비해 간접적이다. 글을 쓴 사람의 시점과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시점이 다른 경우가 많고, 더 나아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을 사람이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하고 말 로 주고받는 면대면 상황의 험담이나 욕설에 비해 그 영 향력이 약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악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그 한 사람이 받게 되는 충격의 강도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높아진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이전에 자기 공책에 휘갈기던 낙서는 그것이 아무리 거친 표현이 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끝날 뿐 널리 유통되지 않았다. 따라서 타인에게 주는 부정적 인 영향도 제한적이었다. 누구에겐가 불만이 쌓여 그 대상에 대한 험담을 종이 한 장에 가득 써 놓았다 해도, 본인의 마음이 후련해지는 데 비해 다른 사람에게 가는 피해는 거 의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풀어놓는 한풀이식 낙서는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수많 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며,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어쩌면 악플을 다는 행위는 불만을 표출하는 형태의 낙서 행위와 유사할 지도 모른 다. 그런데 이러한 낙서가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면 그 부정적인 여파가 엄청나게 커진 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한 대상에게 인터넷 낙서 의 쏟아놓기식 포화를 집중시키면, 그 대상은 심리적 상처를 피해 갈 곳이 없다. 악플러가 순간적으로 배출한 부정적인 감정이 누군가에게 견딜 수 없는 폭력이 된다면, 피해자의 인격권에 큰 침해 가 발생하고, 심리적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악성 댓글을 표현의 자유 범주 내에서 관대히 보아 넘기기는 어렵다. 흔히 인터넷을 열린 공간 이라고 이야기한다. 열린 공간에서 왜 이처럼 사람들은 극 도로 닫힌 마음의 상태를 표출하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소통 가능성을 더 욱 닫아버리게 되는 데는 어떤 원인이 자리하고 있을까. 열린 공간에서 더욱 닫혀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악플, 그 악플의 심리 근간을 하나하나 살펴보 자. 먼저 악플의 일반적 원인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한 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문화에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양상을 생각해 보려 한다. 2. 악플의 일반적 원인 (1) 익명성으로 인한 탈억제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 때 표현이 과격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익명성 때문이다. 누가 댓 Summer _ 17

Focus on Media 2 글을 달았는지 쉽게 밝혀내기 어렵다. 자기가 누구인지 실명을 밝히고, 이에 더해 사진 까지 공개되는 상황이라면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터넷상의 익명성은 순기능 과 역기능이 공존한다. (출처 : LA중앙일보, 날 알아보는 게 싫어요 익명 폐쇄성 새 트렌드, 2015년 3월 27일자) 익명성의 가장 큰 효과는 충동적인 본능을 탈억제(Disinhibition)하게 만드는 데 있다. 즉, 보통 때는 사회의 규범과 집단의 압력, 본인의 체면 등을 생각하여 억제하고 있던 본능이 탈출구를 찾는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데, 익명성이 탈억제 과정을 촉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익명성뿐만 아니라 음주도 탈억제 기능을 한다. 평소에는 조직의 규범 때문에 상사에 대한 불만 등을 억누르고 있다가, 술을 마시면 그렇게 억누르고 있던 충동이 마침내 탈 억제되어 더욱 과감한 언행이 나오게 된다. 폭력적인 행동이나 과격한 언어 등이 탈억 제를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알코올에 의한 것이든, 익명성에 의한 것이든, 억제되어 있던 분노나 욕구가 분출되 어 나올 때, 이는 근시안적 이라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닌다. 즉,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의 다른 상황이나 장기적인 관점이 보이지 않게 된다. 역으로, 시야 를 조금 넓히거나 장기적인 안목을 찾으려 노력하면 분노나 근시안적 행위가 조금은 줄 어들 수 있다. 또한 익명성의 효과와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하는 특성이 바로 인정 욕구 이다. 타인 의 시선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나타난 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때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현상도 역 18 _ Focus on Media 2

시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를 다른 사람들이 알 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를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두 가지 모두 다른 사람들 의 시선에 우리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음을 시사한 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소위 갑질 (권력을 가진 갑 의 입장에서 권력이 없는 을 을 하대하는 행위를 통칭하여 사용하는 속어)이라는 부정적 행위로 나타날 수 있지만, 후 자는 악플 이라는 부정적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2) 순간적인 감정의 배설과 자존감 유지 일반적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행동은 많은 생각을 거친 후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었을 때, 혹은 글 전체를 읽지 않고 제목만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정 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순간적인 감정의 표현은 거의 배설에 가깝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제목만 보거나 눈에 띄는 단어만 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생각 없이 쏟아놓는 사람, 평소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 의 글을 보고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 사람 을 공격하기 위해 악플을 다는 사람,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소속감에 기대어 그 집단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동조하여 각종 악 플을 달거나 퍼나르는 사람 등 그 유형은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악플러이든 대 개는 깊은 생각 없이 순간적인 감정을 마치 배설하듯 쏟아놓는다. 악플이라는 행위 자체가 감정에 기반을 둔 행위일 때가 많기 때문에, 본인이나 소속 집단의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때 악플 행위는 더욱 심해진다. 자신과 소속 집 단의 정체성을 방어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 지이다. 하나는 자신의 성취를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성취를 깎아내 리는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에 드는 노력이 더 적기에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일반적으로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악성 댓글도 순간적인 반응으로서 자신의 자존 감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행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의 우월함을 입증함으로써 자존감을 유지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정의할 때 자기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성취를 높이거나 상대 집단의 성취를 깎아내림 으로써 집단 자존감을 통해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존감도 유지하려 한다. 이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도 지키려 하기 때문에, Summer _ 19

Focus on Media 2 악플을 다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예 를 들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순위에서 밀리면 그를 밀어낸 라이벌 가수에 대한 악플 달기가 성행할 수 있고, 이런 행위는 개인 대 개인의 차원이 아닌 팬클럽 대 팬클럽, 즉 집단 대 집단의 차원에서 퍼져 나갈 수 있다. 일종의 힘 겨루기, 세력 겨루 기가 인터넷상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악플 달기는 주로 순간 적인 감정의 배설에서 시작되지만, 집단적인 차원의 악플 달기는 집단의 정체성을 고양 시키기 위한 동조 행위와 함께 조직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3) 스트레스의 배출구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주로 악성 댓글을 많이 다는 경향을 보일까. 악플을 다는 행위 는 일종의 공격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 근원을 살펴보면 공격 행위는 대개 좌절 을 느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좌절은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을 때 생긴다. 즉,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을 느끼면 공격 욕구가 생길 확률이 높아 진다. 비교적 쉽게 공격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 글로라도 과격한 표현으로 쏘아붙이고 나면 왠지 잠시나마 후련해짐을 느낄 수도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 악성 댓글로 그 스트레스를 풀고자 할 가능성이 큰 것 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트레스나 좌절로 인한 분노를 발산할 희생양이 필요한 순간에 인터넷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버리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당장 자신의 감정 을 표출시킬 수 있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더욱이 요즘은 모바일 인터넷의 발달로 이동 중에도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 나 이러한 장점이 아주 날카로운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4) 쾌감을 주는 놀이, 주목을 끄는 수단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것은 거리낌 없이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하버드대 신경생리학자인 타미르(Tamir)와 미첼(Mitchell) 박 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돈이나 음식과 같은 보상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같다고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느 끼는 쾌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20 _ Focus on Media 2

돈이나 음식과 같은 보상을 받을 때 활 성화되는 뇌 부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일치하는 모습 (출처 :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 ) 인터넷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놓는 것,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머리와 가슴 속 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행위는 그 행위자에게 일종의 놀이 로 간주될 수 있다. 자기 이야기와 느낌을 쏟아놓음으로써 보상을 느끼고, 또 자기 글의 영향력을 느끼면 쾌감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어 따분하다고 느낄 때는 즐거우면서도 흥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자극을 찾게 된다. 순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표현을 하는 것보 다 자극적인 언어로 표현을 할 때 흥분 수준이 더욱 높아진다. 일단 자극적인 언어나 거친 언어는 사람들의 주의집중 수준을 높인다. 본인이 그런 언어를 내뱉으면서 느끼게 되는 속시원함과 쾌감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통 이상의 자극 수준을 유발하여 주목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언론도 최 대한 강력한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하고, 광고 카피를 만들 때도 압축적이면서도 강렬하 게 와 닿는 언어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정치인들도 기왕이면 인상에 남는 말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으려 한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며 여러 곳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유사하다. 가능 하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은 것이다. 기왕이면 자기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클릭수가 증가하면 기뻐하고, 반응이 많고 빠르면 더 욱 신이 나서 댓글 달기나 논쟁을 이어 나간다. 문제는 이러한 인터넷 논쟁이나 댓글의 표현이 이성적으로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설 때 발생한다. 신나게 자기표현을 하며 쾌감을 추구하고 뇌의 보상을 느끼는 가 운데, 자신의 송곳 같은 표현이 누군가의 심중을 파고들기를 원한 나머지 악성 댓글의 범주에 속하는 글을 쏟아놓게 될 수 있다. Summer _ 21

Focus on Media 2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을 초토화 시키거나 소탕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한 말을 해 주고 나면 일시적으로 자기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런 느낌이 악플 행위로 나타나, 상대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용어를 찾아 표현하 고는 통쾌해하기도 한다. 자신이 통쾌해 하는 만큼 상대방이 입는 마음의 상처가 커져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쾌감을 주는 일종의 놀이로서 악플 달기를 즐기기보다, 악성 댓글을 읽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악플을 읽은 상대방의 반응 을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악플 달기는 지극히 일방적이다. 오프라인상의 커뮤니케이 션이라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단계 없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쏟아놓는 상황과 유사하다. 댓글도 일종의 소통 수단이므로,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고 댓 글을 달 필요가 있다. (5) 피해자의 고통을 대면하지 않는 구조 대체로 피해자의 상처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가해 정도가 더 심해진다. 사회심리 학자 밀그램(Milgram)에게서 시작된 복종 실험들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상황에서 상대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가 더 클수록 그런 행동의 강도가 더 세지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유태인들이 모여 있는 방에 가스가 들어가도록 스위치를 작동시킨 독일인 의 경우에도 가스실 안에서 고통 받는 유태인들의 모습이 직접 보이지 않는 경우에 마 음의 부담을 덜 느껴 더 쉽게 복종 행동을 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E는 실험자(Experimenter), T는 교사(Teacher), L은 학생(Learner)이다. 교사가 피실험자에 해당하며 교사는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방에 있는 학생을 보지 못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22 _ Focus on Media 2

악성 댓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쓴 악플을 읽고 상처받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 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더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이 카따 ( 카카오톡 왕따 의 줄임말)와 같은 형태의 SNS 폭력으로 변질 되어 가면서, 가해자의 심적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피해자가 입는 마음의 상처는 더 크 게 나타날 수 있다는 시사점도 필자의 연구 결과 1) 에서 얻어졌다. 악플로 인한 피해는 가해자의 눈앞에서 직접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악플이 더욱 기승 을 부릴 수 있다. 아무리 험한 독설을 날리는 악플러라 하더라도 자신의 악플로 인해 상 대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직접 본다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악플 행위의 강도는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자기가 하는 행동의 부정적 효과가 직접 눈앞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으면 그 행동을 더욱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 사람이다. 3. 악플의 문화적 원인 악성 댓글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악플은 인터넷 시대에 어느 정도 보편적으 로 나타나는 문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댓글 심리에는 다 소 독특한 특성이 있다. (1) 평소 규범의 영향력이 큰 문화 한국은 평소 규범의 영향력이 큰 문화이다. 전통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 이기에, 크고 작은 집단 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 많다. 명시적인 규범은 물론이려니와 암묵적인 규범까지 작용해 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상황이 많다. 한 마디로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환경과 주변 사람들, 소속 집단 등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평소 규범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탈억제 상황에서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앞 서 언급했듯이, 상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하고 마음 속으로 쌓아 두었다가, 술을 마 신 후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나 험담을 쏟아놓는 행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익명성 이 보장될 때 나타나는 악플의 탈억제 효과도 한국처럼 강한 규범을 지닌 문화에서 더 욱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1) 나은영 김은미 박소라, 2013, 청소년의 사회자본과 공감능력 : 면대면, 음성 및 문자매체 따돌림 가해와 피해에 미치는 영향, 한국언론학보 제57권 제6호, 606-635쪽. Summer _ 23

Focus on Media 2 평소의 억눌림 수준을 낮출 수 있다면, 탈억제되어도 쏟아져 나올 찌꺼기들이 적어 지므로 악플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누를수록 터져 나오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악 플이다. (2) 남이 볼 때와 보지 않을 때의 행동 차이가 큰 문화 한국인은 유난히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남이 볼 때와 보지 않을 때의 행동 차이가 큰 문화이다. 사회적 시선을 중요시하는 것은 예의를 숭상하는 유교문화의 전통을 중요 시해왔음을 뜻하지만, 이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 아가는 삶이 오히려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데 왜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악플을 남발하게 될 까? 그것은 바로 자기가 악플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즉,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악플러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심한 악플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난폭운전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번호판에 운전자의 이름을 크게 써 붙이는 것 이 좋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를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는 행동을 가려서 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난폭운전이나 악성 댓글과 같은 반사회적 공격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 남이 자신의 악행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 그 런 악행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환경 자체가 익명성을 전제로 많은 사람들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각양각색의 콘텐츠들을 자유자재로 유통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올리 고 어떤 댓글을 다는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익명성의 탈 뒤에서는 남 이 보지 않는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저지르기 쉬운 일들이 더욱 증폭되어 나타나게 된다. (3)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한 문화 한국 문화는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한 문화이다. 그래서 어 떤 상황에서든 우리 와 그들 로 나눈 다음, 우리 에게는 좋은 것을 배분하고 그들 에게 는 덜 좋은 것을 배분하는 경향이 있다. 동일한 행위에 대한 반응도 그 행위자가 내 편 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악플의 특성 중 하나는 그것이 개인에게 집 중된다는 것이다. 악플의 내용에도 개인적 특성이 많이 나타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악 플은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악플의 내용에도 집단적 특성을 많이 보이 24 _ Focus on Media 2

는 것이다. 대체로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의 글에 대해서는 가혹한 평가를 하지 않지만, 친분이 없거나 저쪽 편 에 속한다고 생각하 는 사람의 글에 대해서는 가혹한 평가를 하 는 경향도 이와 관련이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악플의 영향을 받는 정 도도 자신과의 관계가 멀수록 더 클 것이라 고 생각하는 제3자 효과가 나타난다. 중앙 대 유홍식 교수의 2010년 한국방송학보 게 재 논문 2) 을 보면, 응답자들은 악플의 영향 이 응답자들 본인에게 가장 적고, 일반 성 인에게 약간 있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본인과의 사 회적 거리에 따른 지각의 편향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즉,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악 플의 부정적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제3자 효과는 결국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측면에서 나보다 남이 더 못하다 고 생각하 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 더 비슷한 사람일수록 이런 측면에서 더 낫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넓혀 생각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악플은 나와 무관하다 고 생각 하는 경향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악플의 영향이 나에게도 크게 미친다고 생각하면 악플 퇴치, 선플 달기에 더욱 앞장서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플의 심각성을 실제보다 더 약하게 생각하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더 적극적인 악플 퇴치 활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나의 문제 가 되 어야 비로소 노력을 들여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4)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큰 문화 한국의 문화 특성 중 하나는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크다는 점이다. 즉, 의견이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와 다른 것 을 참아내는 정도, 또는 애매한 상태를 인내하는 정 도가 약하다. 불확실성 수용 성향이 큰 문화에서는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낯선 것을 위험하게 바라보기보다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다름 에 대한 인내력이 약한 불확실성 회피 문화에서는 불확실성 수용 문화에 비해 2) 유홍식, 2010, 악성 댓글에 대한 제3자 효과 연구, 한국방송학보 제24집 제5호, 238-278쪽. Summer _ 25

Focus on Media 2 상대적으로 악성 댓글이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내 의견을 공격하는 것은 곧 나를 공격하는 것 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기 힘들다. 그 래서 의견이 다르면 더욱 필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인터넷의 속성상, 더 나 아가 인간의 속성상,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관대하게 받아들 일 필요가 있다. 4. 악플을 줄이려면?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전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공유를 촉진한다. 연결과 공유가 촉진 될수록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더욱 행복해져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디어를 통한 사람들 간의 연결이 많아질수록 자신에 대해, 혹은 자신의 글이나 행동에 대해 다 른 사람이 생각 없이, 또는 악의적으로 쏟아놓는 악성 댓글을 더욱 많이 접하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어떤 글이든지 금방 올릴 수 있고, 그에 대한 댓글도 바로바로 달 수 있고, 순식간에 대규모로 공유되는 현재의 모바일 인터넷 상황은 그야말로 양 날 의 칼이다.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외과의사의 칼이 되겠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너무나 쉽게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인터넷 댓글들이 날카로운 악성 댓글로 변하여 사람을 해 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인터넷이나 모바일 미디어는 이미 너무나 보편화되어 이를 완전히 차단하거나 사용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또한 익명성 이 이러한 미디어의 핵심 특성 중 하나이기에 무조건 실명화를 촉구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늘 옆에 두고 더 불어 살아가야 하는 미디어 라는 시각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옆에 인터넷 미디어를 두고 그 미디어와 함께 성장해 가는 세대 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미디어가 바로 인간 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미디어를 친절히 대 하는 미디어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즉,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주변 사람들을 어 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처럼, 미디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모든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교육한다 해도 일부가 범죄자가 되는 것을 인류는 아직 막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미디어교육만으로는 악의적으로 댓글을 다 는 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 그래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 과 유사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누가 악성 댓글을 다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한 익명을 보장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개개인이 미디어를 이용하는 모습에 스스로의 인격이 투영된 26 _ Focus on Media 2

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흔히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습에 운전자의 인격이 나타난 다고 말하기도 하듯이, 인터넷이나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사용하는 양태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미디어를 쓰레기 처리장 쯤으로 생각하고 감정의 배설 도구로 활용할 것이 아니 라, 미디어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고마운 도구라는 점을 습관적으 로 인지할 수 있도록 일상의 삶 속에서 미디어의 올바른 사용법이 몸에 배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과 타인의 말 하나, 글 하나의 소중함을 깨달을 기회가 필요하다. 생각 없이 말과 글을 쏟아놓기보다, 잠시 멈추고 생각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을 거쳐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악플의 수위도 낮아지고 악플의 비율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연결이 더욱 잘 될수록 미디어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 다.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기에, 미디어에 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어떤 이 는 그것을 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글을 작성할 때, 눈앞에 서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하듯이 좋은 언어를 골라 표현할 필요가 있다. 순간적 으로 끓어오르는 부정적 감정을 한낱 기계에 내질러버리듯 표출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사람에게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Summer _ 27

Focus on Media 3 윤성옥 경기대학교 언론미디어학과 교수 판결로 본 기사댓글의 법적 책임 1. 인터넷과 악성 댓글 (1) 인터넷의 이중성: 댓글과 악성 댓글 댓글은 인터넷에 오른 원문에 대하여 짤막하게 답하여 올리는 글 을 의미한다. 댓글은 다양한 정보 공급원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1) 활발한 상호작용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공토론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2) 또한 댓글은 쟁점에 대한 타인들의 의견을 살 피고 여론을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 3) 그러나 댓글이 악성 댓글로 변하는 순간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욕 설이나 비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고 4) 논점이 어긋난 비판이나 인신공격으로 사 안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5)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할 인터넷은 오히려 의견 대립과 갈등, 반목으로 채워지기 쉽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댓글 을 통해 여론 왜곡 현상까지 발생한다. 1) 임정수, 2007, 초기UCC 생산과 소비의 탈집중 현상, 한국방송학보 제21권 제1호, 211~242쪽. 2) 김은미 선유화, 2006, 댓글에 대한 노출이 뉴스 수용에 미치는 효과, 한국언론학보 제50권 제4호, 33~64쪽. 3) 정일권 김영석, 2006, 온라인 미디어에서의 댓글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여론 동향 지각과 제3자 효과를 중심으 로, 한국언론학회 봄철정기학술대회 발표논문집 631~650쪽, 한혜경, 2003, 인터넷 이용자의 여론 지각과 의견표현: 현실공 간과 사이버공간의 비교, 한국언론정보학보 제23권, 189~222쪽. 4) 최영, 2006, 저널리즘 관점에서 본 시민 저널리즘, 언론중재 제26권 제2호, 4~15쪽. 5) 성동규, 2007, 네티즌 댓글의 무분별한 인용보도와 인격권, 언론중재 제27권 제1호, 98~105쪽. 28 _ Focus on Media 3

지난 2월 현직 부장판사가 네이버, 다음 등에서 기사에 악성 댓글 1만여 건을 단 사실이 드러났다. (출처 : JTBC, 상습적 악성 댓글 알고 보니 현직 부장 판사가, 2015년 2월 11일자)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 이자 표현촉진적인 매체 라고 했다. 6) 개 방성, 쌍방향성, 동시성 등 인터넷의 기술적 특징에 따른 정의이다. 장점을 살려 인터 넷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는 그 안을 채워나가는 우리의 몫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의 장으로 인터넷 댓글을 건전하게 활용하기 위한 교육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 다. 댓글 한 줄이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 하다. 인터넷 기사댓글에 대한 법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논의가 중요한 이유이다. (2) 악성 댓글의 대상자 악성 댓글에 따른 피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로 여성 연예인들이 대상이 되면서 심 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2007년 가수 유니의 자살이 악플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같은 해 정다빈(탤런트), 김형은(개그우먼)의 죽음을 두고도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악성 댓글이 달려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이후 고소영, 이영애, 송 혜교, 이다해, 수지, 아이유, 백지영 등 유명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에 대해 적극 대응하 면서 형사 고소사건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우 수십 명의 네티즌을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고소 고발하는 사례가 많다. 연예인과 관련된 악성 댓글은 결혼설, 임신설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 인격모욕적인 발언, 가족을 비방하는 내용까지 그 내용 이 다양하고 이로 인한 당사자들의 고통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그러나 악성 댓글이 단지 연예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2005년 개똥녀 사건 의 경 우,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당사자 얼굴이 공개됐고 당사 6) 헌법재판소(2002. 6. 27.) 99헌마480 결정 7) 윤성옥, 2008, 연예인의 악성 댓글 사례와 개선방안, KBI Focus 08-18호(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Summer _ 29

Focus on Media 3 자는 마녀사냥을 당했다. 8) 2007년에는 한 여고생이 다이어트 성공사례로 방송에 출연 한 이후 인기그룹 멤버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악성 댓글에 시달리 다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일반인도 손쉽게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도 공인인 만큼 악성 댓글의 대상이 되기 쉽다. 회피 연아 사건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제의 동영상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네티즌을 고 소한 사건이다. 문제의 동영상은 KBS의 뉴스 영상 일부를 편집한 것으로, 유 전 장관 이 귀국한 김연아 선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포옹하려 하자 김 선수가 이를 피하려 는 듯한 모습을 담고 있다. 9) 또한 기업이나 제품, 상점도 악성 댓글의 대상이 된다.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 한 경제적 주체들은 인터넷 악성 댓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미 경 험한 소비자의 평가가 중요한 만큼 업계에서는 악성 댓글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잦다. 하나금융과 론스타의 지분 인수계약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 사건, 10) 현대자동차의 자동 차 결함에 대한 악성 댓글 사건 등에서 기업들이 각각 네티즌을 고소했다. 11) 악성 댓글의 대상은 과거 일부 연예인에서 최근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일반인들까 지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해지고 있다. 그런데 공인과 사인을 구분하지 않고 획일적으 로 악성 댓글 피해자로 판단할 것인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공인이라고 무조 건 인신공격성 악성 댓글에 대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사댓글이 공적 사안 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관한 내용이거나 허위사실에 기반한 내용일 경우 공인도 보호되 어야 한다. 그러나 공인에게도 일반 사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인터넷에서 공 적 사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정보유통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악성 댓글 문제에 있어서도 일반 명예훼손이나 모욕에서와 같이 공인인 지 사인인지 그리고 공적 사안인지 사적 영역인지 구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3)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 논의 세월호 사건 당시 민간 잠수사들이 배 안의 생존자와 교신했다 는 내용의 인터뷰로 논 8) 개똥녀 사건은 2005년 한 여성이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에 탔다가 애완견이 설사를 했는데 지하철 바닥에 떨어진 배설물을 치 우지 않았다며 이슈가 된 사건이다. 9) 일부 네티즌이 이 영상을 인터넷에 띄우며 유인촌의 굴욕, 성추행 등의 설명을 함께 붙였다. 유 장관이 김연아를 껴안으려고 했 다가 거부당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10) 연합뉴스, 2011. 6. 30.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 악플 누리꾼 고소,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1/06/30/ 0301000000AKR20110630200200004.HTML(검색일: 2015. 5. 14.) 11) 이데일리, 2014. 12. 11. 현대차, 허위사실 유표 악플 강경 대응 나섰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 CD=JC11&newsid=03243926606317536&DCD=A00301&OutLnkChk=Y(검색일: 2015. 5. 14.) 30 _ Focus on Media 3

란의 중심에 섰던 홍 씨가 3월 경 자신을 비방한 악플러 1,500여 명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 들어 악성 댓글에 대한 대량 고소 사건이 증가하고 있어 대검찰청은 지 난 4월 인터넷 악성 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 을 공표했다. 방안에 따르면 처벌가치가 미약한 경우 조사 없이 각하, 일회성 댓글이고 반성하며 댓글을 삭제한 경우 교육조건 부 기소유예를 적용한다. 반대로 합의금을 목적으로 다수인을 고소한 측에서 피고소인 을 협박하거나 부당하게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고소남용의 경우 공갈죄, 부당이득 죄 등의 적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다. 모욕죄 고소 사건은 2004년 2,225건에서 2014년 27,945건 으로 12.5배 증가하였고, 정보 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 망법)상 명예훼손 사건도 같은 기간 1,257건에서 7,086건으 로 증가했다. 12) 대검찰청의 고 소남용 처리방침은 악성 댓글 에 대한 처벌 기준을 다소 완 화해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일각에선 악성 댓글의 증가 추 이와 폐해의 심각성을 고려하 면 처리방침이 악성 댓글에 면 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비판 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검찰청의 인터넷 악성 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 보도자료 (출처 : 대검찰청 홈페이지) 그동안 인터넷 모욕 및 명예훼손에 대한 규제 입장은 크게 대립되어 왔다. 사이버모 욕죄, 인터넷실명제 찬성 등 보다 더 엄중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형법상 모욕 죄 명예훼손죄 폐지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보통신망법에는 명예훼손과 달리 모욕에 대한 규정이 없고 인터넷 속성상 형법의 모욕죄 처벌은 미약하므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자는 게 규제옹호론이다. 그 러나 사이버모욕죄 도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여론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소 지가 있으며, 형법의 모욕죄로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필요없고, 모욕죄 폐지 12) 인터넷 악성 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 시행 보도자료, 대검찰청 공식블로그 http://spogood.tistory.com/263(검색일: 2015. 5. 10.) Summer _ 31

Focus on Media 3 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규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나아가 근본적 으로 형법상 모욕죄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3년 형법상 모욕죄가 위헌이 아님을 확인한 바 있다. 13) 인터넷 규제는 일방적으로 규제를 강화하자거나 무조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 다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적인 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형 성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양자 간의 조화와 균형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하에서는 우리 법원이 인터넷 기사댓글에 대해 어떻게 법리를 적용하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2. 명예훼손 및 모욕 등 악성 댓글의 법적 책임 (1) 악성 댓글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 관련 법률 악성 댓글로 인한 명예훼손 및 모욕은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 307조는 일반 명예훼손, 제308조는 사자( 死 者 )의 명예훼손, 제309조는 출판물 등에 의 한 명예훼손을 다루고 있다. 제311조는 모욕에 대한 규정이다. 또한 정보통신망법 제70 조(벌칙) 조항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인터넷 기사댓글 관련 법제의 특징으로는 형법에 비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가중처벌 된다는 점, 정보 통신망법상 모욕죄 관련 조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구체적인 내용 은 다음의 표 참조). <표 1> 형법상 명예훼손 및 모욕 처벌 조항 분류 허위사실 여부 사실의 적시 허위사실 조항 요건 성격 일반 명예훼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제307조 반의사 불벌죄 사자의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비방 목적) 모욕 규정 없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 제308조 친고죄 제309조 제311조 공연성 반의사 불벌죄 친고죄 13)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 다. 대법원이 모욕의 의미에 대하여 객관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후략) [헌법재판소(2013. 6. 27.) 2012헌바37 결정] 32 _ Focus on Media 3

분류 처벌 <표 2>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관련 조항 자유형/자격형 벌금형 조항 성격 사실의 적시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제70조 제1항 허위사실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제70조 제2항 반의사 불벌죄 (2) 악성 댓글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과 법원의 판단 이하에서는 명예훼손죄,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중심으로 법원의 판단 기준을 검토하였다. 1 악성 댓글의 공연성 명예훼손이나 모욕에서 말하는 공연성은 불특정 다수인이 인지할 수 있는 상태 로 정의 된다. 법원은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 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며 전파가능성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14) 따라서 개방적이고 전파성이 높은 인터넷 공간은 공연성이 충족되는 것으로 본다. 15) 홈 페이지, 블로그, 카페, 미니홈피, SNS, 1대 다수의 채팅방,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경우까 지 공연성이 인정된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댓글은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이 쉽게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공연성이 인정된다. 16) 2 악성 댓글에서의 피해자 특정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한다. 우선 기사댓글 에서 특정인 적시 문제는 기사에 나타난 인물이 댓글에서도 명예훼손의 직접 대상자이 냐, 아니면 기사와 관련되어 주장을 달리하는 댓글작성자 간의 명예훼손 문제이냐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기사에 나타난 인물이 댓글에서 명예훼손의 직접 대상자인 경우이다. 원 기사 에 피해자가 특정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기사와 그에 달린 댓글 등 전후 맥락을 살펴보 았을 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기사댓글에 의한 명예훼손에서 피해자가 특정되었 14) 대법원(2006. 5. 25.) 2005도2049 판결 15) 주승희, 2009, 현행 사이버 명예훼손죄 법리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관련 최근 논의 검토, 형사정책연구 제20권 제1호, 593쪽. 16) 대법원(2008. 7. 10.) 2008도2422 판결 Summer _ 33

Focus on Media 3 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법원은 그동안 피해자 특정에 대해 반드시 사람의 성명을 명시해 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는 않더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사정과 종합 판단하여 그것이 어느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 피해자 가 특정된 것으로 판단해왔기 때문이다. 17) 예를 들어 앞의 댓글에서 피해자가 특정되어 좋은 평가가 있었고 뒤이어 추가 게시된 댓글에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표현이 있었다면 해당 댓글에서 직접적으로 특정인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전후 댓글을 통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 둘째, 기사와 관련되어 댓글작성자 간 발생한 명예훼손 사건이다. 인터넷에서는 주 로 실명보다는 아이디나 닉네임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이디나 닉네임만으로 피해자 가 특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현실적으로 인터넷에서는 아이디가 자신 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호로 활용되며, 아이디를 통해 실존인물을 추론할 수 있는 점,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대상이 된 후 동일 아이디로 활동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 다는 점 등을 들어 명예의 주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19)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댓글에 의한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에 있어 명예의 주체 인 피해자가 인터넷 아이디만으로 특정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사 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이 네이버 기사에 자신의 아이디를 이용하여 개인적 으로는 무죄찬성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피고소인들이 청구인의 아이디를 지칭하며 내가 당신 부모를 강간한 다음 주 인 척하면 무죄 판 결 받아야 한다는 뜻 같습니다. 는 등의 모욕적인 감정 표현을 담은 댓글을 달았다. 청 구인은 이들을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로 고소했다. 20) 위 사건의 불기소처분 취소 청구에 있어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댓글에 의하여 모욕을 당한 피해자의 인터넷 아이디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밖의 주위 사정을 종합해보더라도 그와 같은 인터넷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청구인이라고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에는 외부 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명예훼손죄 또는 모욕죄의 피해자가 특정된 경우로 볼 수 없다 고 결정하였다. 21) 17) 대법원(1982. 11. 9.) 82도1256 판결, 대법원(2002. 5. 10.) 2000다50213 판결 등 18) 서울중앙지법(2008. 9. 11.) 2008노1719 판결, 대법원(2008. 7. 10.) 2008도2422 판결 등 19) 강동범, 2007, 사이버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형법적 대책, 형사정책 제19권 제1호, 47쪽. 20)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2006형제47728호)에서 수사한 후 불특정다수인에 의하여 고소인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없어 혐의 없음이 명백하다는 이유로 각하의 불기소처분을 하였는데 청구인이 불기소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 원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21) 헌법재판소(2008. 6. 26.) 2007헌마461 결정 34 _ Focus on Media 3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아직까지는 인터넷 아이디만으로는 피해자가 특정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아이디와 함께 다른 신상정보가 공개됨 으로써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라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 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악성 댓글에서 사실의 적시와 주관적 의견 평가 형법상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 의 적시가 있어야 한다. 사실의 적시란 반드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에 한정 할 것은 아니고, 의견 또는 논평이라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에 의하더라도 그 표 현의 전체 취지에 비추어 어떤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 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22) 비리, 부정 등 의혹제기 방식으로 작성된 기사 원문에 댓글을 작성하는 경우 그러한 의혹을 사실인양 전제하고 작성했다면 명예훼손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는 기사와 무관하게 기사댓글이 연속적으로 게시되면서 어떠한 사실을 전제로 댓글을 달았다면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 기사에는 특정 연예인이 재벌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낳아준 대가로 수 십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없었는데 그러한 사실이 있는 것처럼 댓글이 달린 상황에 서 추가로 지고지순의 뜻이 뭔지나 아니? 모 재벌님하고의 관계는 끝났나? 라는 내용 의 댓글을 게시한 사례가 있었다. 이 경우에도 법원은 댓글이 이루어지는 장소, 시기 와 상황, 그 표현의 취지 등을 보았을 때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통하여 허위 사실 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방법으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해당한다 고 보았다. 23) 나아가 주관적 평가가 주된 내용이더라도 특정 사실을 전제한 댓글의 경우 사실의 적 시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특정 성형외과를 가리켜 가슴전 문이라... 눈이랑 턱은 그렇게 망쳐놨구나..., 눈, 턱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후 결과 가 좋지 못하다, 눈 수술을 받았으나 지방제거를 잘못하여 모양이 이상해졌고, 다른 병원에서도 모두 이를 인정한다 는 내용의 댓글을 단 경우에도 법원은 사실의 적시가 이루어진 것으로 폭넓게 적용했다. 24) 모욕죄는 사실의 적시가 없다는 점에서 명예훼손과 구별된다. 모욕죄의 보호법익에 대하여 일부 견해는 명예감정이라고 하나 지배적인 견해는 명예훼손의 보호법익과 같 22) 대법원(2004. 2. 27.) 2001다53387 판결, 대법원(2002. 1. 2.) 2000다37524 판결, 대법원(2000. 7. 28.) 99다6203 판결 등 23) 대법원(2008. 7. 10.) 2008도2422 판결 24) 대법원(2009. 5. 28.) 2008도8812 판결 Summer _ 35

Focus on Media 3 이 외부적 명예로 보고 있다. 25) 따라서 모욕죄에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으나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 한다. 26) 통일의 꽃 씨 9살 아들 필리핀서 익사 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인과 응보, 사필귀정, 잘 죽었다. 등의 댓글을 단 경우 법원은 경멸의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27) 4 악성 댓글에서 비방할 목적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비방할 목적 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28) 비방할 목적 이란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을 요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 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또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 공공의 이익이 란 널리 국가나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 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하는 것이고, 행위자의 주요한 동 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9)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성형시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담은 한 줄의 댓글을 게시한 사건에서, 법원은 비방할 목적을 부인하였다. 즉 그 표현물이 전체적으로 보아 성형시술을 고려하고 있는 다수의 인터넷 사용자들의 의사결정에 도 움되는 정보 및 의견의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 고 보기 어렵다. 는 것이다. 30) 물론 이 사건에서는 댓글이 한 줄에 불과하고 내용 수위도 수술 결과가 좋지 못하다. 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되었다. 성형시술을 받은 모든 이 들이 그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으므로 피해자의 명예훼손의 정도가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정보 및 의견 교환으로 인한 이익에 비해 더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5) 김현철, 2009, 사이버 모욕죄의 헌법적 쟁점, 공법학연구 제10권 제3호, 207쪽. 26) 대법원(2008. 7. 10.) 2008도1433 판결 27) 서울중앙지법(2006. 3. 10.) 2006고정885 판결 28)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9) 대법원(2003. 12. 26.) 2003도6036 판결, 대법원(2006. 8. 25.) 2006도648 판결 등 30) 대법원(2009. 5. 28.) 2008도8812 판결 36 _ Focus on Media 3

3. 악성 댓글에 대한 인터넷서비스제공자(포털사업자)의 법적 책임 31) (1) 악성 댓글에 대한 인터넷서비스제공자 관련 법률 정보통신망법에서는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의무를 부 과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사생활이 침해되었거나 또는 명예가 훼손된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정보의 삭제나 반박내용 게재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때 정 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삭제, 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책임이 경감될 수 있다. 32) <표 3> 정보통신망법상 포털사이트 관련 조항 구 분 내 용 조 항 일반적인 의무사항 명예훼손 내용 삭제 및 반박 요청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노력 의무. 정보통신망에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가 침해된 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 내용 게재 요청할 수 있음. 제44조 제2항 제44조의2 제1항 삭제, 임시조치 의무 제44조의2 제1항에 따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지체없이 삭제, 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신청인과 정보게재자에게 통지해야 함. 또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 등에 이용자들이 알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함. 제44조의2 제2항 임시차단 (30일 제한) 약관 명시 책임 경감 정보의 삭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 정보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 이러한 임시조치 기간은 30일을 넘을 수 없음. 필요한 조치에 관하여 내용 절차 등을 포함 약관에 명시하도록 의무. 제44조의2 제2항에 따른 필요 조치를 한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음. 제44조의2 제4항 제44조의2 제5항 제44조의2 제6항 31) 포털사이트와 같은 사업자를 해외에서는 주로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라고 지칭하고, 정보통신망법 에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인터넷 정보제공 사업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정보통신망법의 규정 내용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인터넷서비스제공자라는 용어로 통일한다. 서비스가 단지 기술적 서비스 뿐 아니라 정보 서비스도 포함한다는 중립적인 개념이라는 판단에서이다. 32) 정보통신망법 제44조, 제44조의2 Summer _ 37

Focus on Media 3 (2) 인터넷서비스제공자에 대한 법원의 판단 2000년대 이후 법원은 포털사이트의 법적 책임에 대해 피해자의 삭제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판단했다. 예를 들어 가수 박지윤의 팬이었던 원고가 하이텔 공개게시 판에 비방 글의 삭제를 요청하였으나 하이텔은 이를 삭제하지 않고 글의 게시자에게 경 고메일을 발송하였을 뿐 5~6개월 동안 방치한 데 대해 법원은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인정했다. 33) 그러나 2008년에는 게시물 삭제 요청이 없더라도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 포털사이트 는 삭제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원고가 교제 중인 여성을 두 번이나 임신을 시킨 후 일방적으로 헤어질 것을 강요하였고, 그 충격으로 애인이 자살하였다는 내용 등의 기사가 포털사이트 뉴스란에 게시된 후 댓글 등으로 원고에 대한 신상정보가 밝혀지고 비난이 확산되면서 발생하였다. 이에 원고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야후 등 포털사이트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책 임이 성립된다고 판결했다. 즉 포털사이트는 삭제 및 차단 요구를 받은 경우는 물론 피해자로부터 직접적인 요구 를 받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적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 에는 게시물 의 삭제 및 차단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명예훼손적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한 경 우 란 1 피해자가 사적 존재이고 2 게시물의 내용이 명예를 저하시키는 구체적인 사실 에 관한 것이며 3 사적인 생활영역을 폭로하는 것에 불과하여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 에 기여하지 않는 경우(전혀 공공성, 사회성 없이) 4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그 표현방법이 무례한 정도를 넘어 심한 모멸적 표현에 의한 인신공격인 경우 등이다. 34) 삭제 요청이 없더라도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 포털사이트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법 원의 이러한 입장이 인터넷서비스제공자에게 사적 검열을 허용함으로써 인터넷상의 표 현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법원의 입장이 삭제요 청이 없는 경우에도 무조건 포털사이트의 책임 이라는 단순 접근이 아니라 명백히 불법 적인 내용인지, 인지하였는지, 대응태도, 사이트의 성격, 삭제에 대한 기술적 경제 적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인터넷에서 타인의 권리가 손쉽게 침해되지 않도 록 포털사업자의 관리감독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3) 서울지법(1998. 8. 18.) 99가소83281 판결, 서울지법(2001. 4. 27.) 99나74113 판결, 대법원(2001. 9. 7.) 2001다36801 판결 등 34) 대법원(2009. 4. 16.) 2008다53812 판결 38 _ Focus on Media 3

4. 나가면서 커뮤니티, 메일, 게시판 등 다양한 인터넷 공간 중에서도 기사댓글은 우리 사회에서 매 우 중요한 공론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건강해야 할 공론장이 정작 비방, 욕설, 인신공격, 갈등, 반목으로 얼룩진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그 공간을 시민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관리 감독하고 대신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켜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인터넷 기사댓글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이 기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법리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공연성, 피해자 특정, 사실의 적시와 주관적 의견 평가, 비방할 목적 등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의 조화를 어떻 게 달성하느냐에 대한 원칙과 기준은 동일하다. 다만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기사댓글에 대한 법적 책임 쟁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사업자에게 관리감독의 의무를 무겁게 부여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선한 사마리아인의 원칙 을 적용하여 사업자가 비교적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 러나 아직 많은 판례가 축적되어 있지 않고 향후 법리가 축적되어 간다는 측면에서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인터넷실명제, 사이버모욕죄부터 최근의 악성 댓글과 관련된 고소남용 처리방안까지 규제강화론자와 규제완화 폐지론자의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그런데 논 의가 다소 개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냄비여론처럼 접근되는 경향도 있다. 인터넷 명 예훼손 법제를 두고 세계 각국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보편적 기준을 마련해 공 조해나가려는 국외의 노력이나 움직임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비방이나 욕설, 인신공격 등 기사댓글로 인한 인격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피해 를 보다 효율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모색도 필요해 보인다. 기사댓글이 기 사에 달린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기사에 대한 언론조정 시 함께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기사댓글의 법적 책임과 함께 위법한 댓글에 대한 구제방법에 관해서 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Summer _ 39

칼럼 세월호 언론 참사, 1막 과 2막 에서 끝나야 한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 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지, 언론 인은 어떤 기준에 따라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모든 이의 관심사가 되었다. 문제적 언론인을 통칭해 기레기 라고 부른 일은 언 론인에게 특히 큰 충격을 주었다. 일각에서 는 세월호 참사를 가리켜 세월호 언론 참사 라고 부르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기자를 쓰레기에 비유 해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 적이 있다. 필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을 개선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기자들이 이런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기자일수록 이런 지적을 더 실감나게 받아들이는 것 같 다. 미디어오늘 이 지난 5월 전국 언론사 평 기자 122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일부 언론인들 을 기레기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 각하느냐 는 질문에 10.7%가 지나친 표현 이라고 답한 반면 무려 86.9%가 일부 언론 인들의 경우 그런 표현을 들을 만하다. 고 답 했다. 1) 보도를 적지 않게 접했지만 기자 집단 전체 를 가리켜 기레기라고 비하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집단 전체를 싸잡 아 비난하는 것이 통쾌할지는 모르지만 상 1) 미디어오늘, 2015. 5. 19. 장슬기, 기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뉴스는 SBS JTBC YTN 순, http://www.mediatoday.co.kr/ news/articleview.html?idxno=123192(검색일: 2015. 5. 20.) 40 _ 칼럼

미디어오늘 사회동향연구소 공동 조사 결과 (출처 :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뉴스는 SBS JTBC YTN 순, 2015년 5월 19일자) 실제로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적지 않 은 현장 기자들이 반성문을 썼다. 개인적으 로 반성문을 SNS에 올린 기자들도 있었고, 기수별 반성문을 낸 KBS 기자들처럼 집단적 인 반성문을 공개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방 송기자연합회는 자체 연구 조직인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산하에 재난보도 분과위원회 를 설치해 세월호 관련 방송뉴스를 연구하고 개 선 방향을 제시했다. 방송기자들 전체의 반 성문인 셈이다. 2) 세월호 언론 참사의 원인으 로 여러 측면을 지적했으나 가장 본질적인 부 분은 역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부 족과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접근 태도의 부재였 다. 언론보도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 가치와 함께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적 원칙에 근거 한 분석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언론 참사는 이렇게 1막으 로 끝난 게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가 점차 정 치 공방의 영역으로 빠져들 즈음 구원파 쪽에 서 무더기로 언론조정을 신청하고 나섰다. 세 월호 참사 초기에 기자들을 통째로 기레기 라 고 부르며 불만을 제기한 사람들은 주로 희생 자 유족이나 이들에 대한 구조 작업을 애타게 지켜봤던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언론을 상대 로 법절차를 동원해 대규모 공세를 벌인 것은 구원파 쪽이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에만 구 원파 측에서 수백 개의 매체를 대상으로 1만 6천여 건의 조정신청을 냈다. 3) 최근 수년 동 안 연간 조정신청 건수가 2천 2백~2천 4백여 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짐작이 간 다. 2015년 들어 추가로 제기된 것도 적지 않 다. 조정신청 폭탄에 대응하느라 언론도 힘들 었지만 이를 처리한 언론중재위원회도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쨌든 구 원파 측에서는 아무런 비용 부담도 없이 정정 보도와 손해배상을 신청해 언론을 압박했다. 언론 참사 2막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 초기 보도와 관련해 다양한 반성문을 내놓았던 언 론이 이후 수사 과정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 은 행태를 보인 점이었다. 언론은 세월호 참 사 초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바 2)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위 재난보도 연구분과, 2014, 세월 호 보도 저널리즘의 침몰: 재난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3) 김동규, 2015, 언론조정을 통해 본 세월호 보도, 언론중재 제35권 제1호, 6-17쪽. Summer _ 41

칼럼 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내 이 사건을 그렇고 그런 우리 사회의 갈등 적 사건 중 하나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사안 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는 표면적인 대립 구 도로 사건을 다루는 것이 몸에 익어 있기 때 문이다. 언론의 모든 관심이 유병언 일가 추 적에 집중됐고,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각 종 미확인 정보들이 여과없이 보도됐다. 이 과정에서 냉정함을 유지한 언론을 찾기는 쉽 지 않았고, 이것이 무더기 조정신청의 발단 이 됐다. 구원파 측의 조정신청에 대응하는 언론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개별적으 로 사건 처리를 맡았던 사람들은 다들 나름 성실하게 임했고, 상당한 분량의 조정신청은 적절하게 처리됐다. 하지만 언론조정 사건을 대하는 언론계 전반의 기본적 태도에는 아무 런 발전과 반성이 없었다. 조정신청이 들어오면 쟁점이 된 보도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정확하게 평가하 고 잘못이 있다면 해당 사안에 정정 등의 조 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향후 같은 방식의 보 도를 하지 않도록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잘 못을 저질러 놓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도 문제지만 무엇이 잘못인지를 정확하게 따 져보지도 않고 해당 사건을 처리 하는 데에 만 급급한 것도 문제이다. 그래서는 앞으로 의 언론 보도가 개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정당한 보도 행위까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조정 사례가 쌓이면 앞으로의 다른 보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번처럼 여러 언론이 한꺼번에 조정신청의 대상이 된 사건에서 일부 언론의 태도는 유사한 다른 사 건 처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책 임 있는 언론이라면, 단순히 눈앞의 한 사건 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언론이 보도 과정에 서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보 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할 필 요가 있다. 물론 조정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언론이 해 당 사건의 의미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 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도가 항상 원칙 과 기준들을 고려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과 마찬가지로 그 처리도 비슷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언론사들 대부분 이런 일을 전 담하는 인력을 두지 못하고 있고, 조정사건의 당사자가 된 언론인들은 혹시 소송으로 이어 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손해배상 요구만 없다 면 적당히 종결짓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유사한 사건들을 놓고 무 더기로 조정신청이 접수된 상황은 좀 달랐어 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기레기라는 비난까 지 들어가며 뭔가 새로운 모습을 약속한 상황 이었다면, 적어도 이번에는 각자의 보도 관 행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확실히 고치고, 반대로 앞으로 도 그런 보도가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신청인 과 언론중재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 42 _ 칼럼

요가 있지 않았을까. 이번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언론보도에 필요한 사실 확 인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사생활이나 초상 권 보호의 범위나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지 같 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러지 못했고, 결 국 우리 사회와 언론은 세월호 언론 참사 2막 에서도 별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소 송의 불편을 피할 수 있다면 언론조정 과정에 서 수백만 원 대의 손해배상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언론들도 있었다. 언론조정과 소 송을 겪더라도 제대로 된 판단을 받아보겠다 는 자세가 없이는 언론보도의 기준을 사회적 으로 확립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언론에 이 렇게 성숙하고 책임 있는 접근을 기대하는 것 은 아직은 무리였을까. 어떤 이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구제가 핵심인 언론조정 과정에서는 이런 원 칙적인 접근 대신 신속하게 합의와 조정이 이 뤄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언론 피해자들의 인격권 보호를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각종 권력을 감시하 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 의 기본적인 기능은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과 유지에 핵심적이다. 언론보도의 대상이 된 개 인이나 기관 등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 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기능이 정 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 은 다른 인격권의 보장을 위한 전제 조건 가 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속한 피해구제도 중요한 일이지만 언론 으로서는 무엇보다 보도를 제대로 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가장 잘 수행하는 길이다. 평 소 보도는 원칙 없이 하고, 누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때는 신속한 피해구제를 앞세워 역시 무원칙하게 분쟁을 마무리하는 데만 앞장서 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이번에 언 론조정 폭탄을 불러온 것도 확인되지 않은 내 용을 마구 보도하고 심지어 다른 언론보도를 확인 없이 베껴 쓰는 언론의 잘못된 행태였 다. 4) 이렇게 언론이 무차별적 보도를 하다 막 상 언론조정 공세가 몰려올 때 사건 처리에 급급하다면 무엇으로 포장하든 사회적 책임 을 다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언론 활동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활동은 그 자체로 대단히 공익적이고 사 회적 책임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언론을 둘러 싼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조금이라도 더 여력이 있는 곳부터 이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언론 대신 이런 일을 해줄 수 있 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다. 4) 한겨레, 2014. 12. 15. 황용석, 구원파와 언론중재신청 폭탄, http://multihani.hani.co.kr/arti/society/media/669186. html(검색일: 2015. 5. 20.) Summer _ 43

사건 속 법률 누구를 위해 언론은 보도하는가 언론 윤리와 JTBC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 방송 논란 JTBC에 쏟아진 비판 생각했던 것보다 관련 기사가 많지 않았다. 다름 아니라, 지난 4월 15일 방송된 JTBC의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인터뷰 녹음파일 보도 논란, 줄 양재규 변호사, 언론중재위원회 교육콘텐츠팀장 여서 JTBC 녹음파일 방송 을 두고 하는 말이다. JTBC의 고 성완종 회장 인터뷰 녹음파일 보도화면 (출처 : JTBC, <뉴스룸>, 2015년 4월 15일자) 44 _ 사건 속 법률

일부 매체에서 비중 있게 다루긴 했다. 우리나라 기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한국기자협회에서 발간하는 기자협회보가 관련 기사 8건을 냈고, 미디어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오늘 역시 같은 수의 기사로 이번 사 건을 다뤘다. 물론, 가장 많은 수의 기사를 낸 것은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경향신문이다. 경향신문은 아래의 기사를 포함한 총 10건의 기사 에서 JTBC와 손석희 사장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취재윤리? 어겼다. 남의 것을 훔치고 가로채면 안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논 하기 위해 언론학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보도의 공익성, 다시 말해 JTBC 의 7시간 전 육성 보도로 새롭게 얻게 되는 진실은? 아무리 봐도, 없다. (4월 24일자 경향신문 내가 알던 손석희 맞나?) 비단 경향신문 기사가 아니더라도 관련 기사들의 논조는 대체로 JTBC 보 도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비판적이었다. 이런 면에서 4월 23일자 미디어오 늘에 실린 박중언 한겨레신문 디지털에디터의 손석희를 위한 변명 욕 먹더라도 공개하는 게 맞았다 제하의 기고는 이례적으로 JTBC 보도에 긍 정적이었다. 언론 본연의 책무가 국민들이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돕는 것이라는 데 동의 한다면, 손석희에 대해 일방적으로 돌을 던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내 생각 이다. 언론사 간 도의를 훼손한 부도덕한 행위이지만, 공익 측면에선 음성 파일 을 공개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욕심을 줄이고 경향신문의 전문 공개 이후에 음성 파일을 공개했더라면 하는 것이 사후에 얻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4월 23일자 미디어오늘 손석희를 위한 변명 욕먹더라도 공개하는 게 맞았다) 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 경향신문 이들 세 개 매체 외에도 관련 기사를 낸 언론사들은 더 있다. 독특한 관점의 기사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논란 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경향신문과 JTBC의 입장을 중개하는 수준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언론들에게 이 문제는 처음부터 특별한 관심 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Summer _ 45

사건 속 법률 한편, 다소 의외라고 여겨지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녹음파일 방송 이후 JTBC와는 척을 지고 법적 대응에까지 나설 것 같았던 성 회장 측 유족은 JTBC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 인터뷰는 5월 19일 JTBC 뉴스 시간에 방송되었다. 1) JTBC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JTBC를 상대로 예고 되었던 소송이나 고소 또한 아직 제기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4월 15일자 방송 직후에는 온통 JTBC와 손석희 사장을 성토하 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는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일까. 시 간이 약이라고 그 사이 상처가 아물 듯 자연적인 치유가 이뤄진 것인지, 언론에서 다뤄야 할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에 파묻힌 것인지, 아니 면 원래부터 별문제가 아니었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비판했나? JTBC 녹음파일 방송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 다. 바로 법적 관점과 윤리적 관점이다. 법적 관점부터 살펴보자. 이번 사안은 명예훼손, 음성권 침해와 같은 전형적인 언론분쟁 이슈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사견임을 전제로 JTBC가 이번 녹음파일 방송으로 법적인 책임을 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첫째, 성 회장은 공인으로서 인격권 분쟁에 있어서는 사인과 다르게 취 급된다. 보통 육성 공개에 있어서는 인격권의 일종인 음성권 침해가 문제 된다. 또, 유족 입장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감정 또는 명예감정 침해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권리 침해 주장 모두 설득력이 크지 않 다. 성 회장이 공인 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국회의원이 었고, 검찰의 수사 대상인 기업의 대표로서 이 사건 보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다수 언론보도에서 성 회장을 단순히 건설사 대표로서만 표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다행히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성 회장을 전 국회의원 이라고 표시하기도 했다. 성 회장의 공인성을 보다 명백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보도 행태라고 생각한다. 1) 성 회장의 장남 성승훈 씨가 JTBC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경남기업의 랜드마크72 매각 관련 의혹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 JTBC, 2015. 5. 19. 박영우, [인터뷰] 성완종 장남 반기상 부자, 의혹 제기하면 반 총장 언급,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891976(검색일: 2015. 5. 20.)]. 46 _ 사건 속 법률

공인은 일반인과 달리 인격권이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육성 그대로 공 개되었다고 해서 음성권 침해가 성립될 여지는 희박하다. 이것은 현재 다 수의 언론에서 성 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도에 자주 사용하는 것과도 통한다. 고인의 초상 사용이 이처럼 폭넓게 가능한 것은 당사자가 일반인이 아닌, 공인이기 때문이다. 성 회장의 공인성은 인격권 침해 판단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라 할 것이다. 둘째, 당사자의 공인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번 사안에서는 당사자의 공 개 의사도 고려되어야 한다. 성 회장은 자신의 주장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물론, 이 공개 동의 의사에 육성 그대로 공개하는 것까지 포함되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또, 경향신문이 아닌 다른 언론사에 의한 공개까지도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전후 맥락을 놓고 판단 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당사자는 자신의 주장이 공개되기를 원했고 이것은 공인성 여부와 더불어 공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 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족의 공개 반대는 이 사안에서 핵심적인 사항이 될 수 없다. 관련 규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2) )에 따르 면, 고인의 인격적 처분과 관련한 동의는 유족 전원이 하도록 되어 있다. 그 러나 이번 사안에서는 생전에 당사자의 공개에 관한 확고한 의지 내지는 의 사가 있었다. 유족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나 인격권 주체인 고인의 확고한 의사가 있는 경우, 그에 어긋나는 유족의 의사나 결정은 부차적인 사항이 된다. 고인의 육성 공개에 따른 유족의 고인에 대한 추모감정, 명예감정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초상마저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 서 육성 공개에 따른 추모감정, 명예감정 침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이번 사안은 그 자체로 매우 공공성이 큰, 공적 관심사다. 수사가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나 이전 정부의 도덕 2)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사망자의 인격권 보호) 1 제5조제1항의 타인에는 사망한 사람을 포함한다. 2 사망한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 구제절차를 유족이 수행 한다. 3 제2항의 유족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으로 한정하되, 배 우자와 직계비속이 모두 없는 경우에는 직계존속이, 직계존속도 없는 경우에는 형제자매가 그 유족이 되 며, 같은 순위의 유족이 2명 이상 있는 경우에는 각자가 단독으로 청구권을 행사한다. 4 사망한 사람에 대한 인격권 침해에 대한 동의는 제3항에 따른 같은 순위의 유족 전원이 하여야 한다. Summer _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