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처럼 이렇게 살지 마세요! 제 1부 사무엘상 15:20-30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로 고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억지로 막으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무엘상 8장에서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가기로 고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억지로 막으시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8장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을 갖기 원했습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무엘에게 와서, 왜 우리에게는 왕이 없습니까?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합니다! 라고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졸라대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스라엘에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권력은 사람을 타락하게 한다는 이치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권력에 만취되어서 하나님의 통치하심도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도 두려움 없이 거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우리자신들을 망치게 된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법칙을 증명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어떤 실수를 범한 것입니까? 사울의 실수를 살펴보면, 우리가 사울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음에 3가지를 행해야함을 볼 수 있습니다. I. 우리는 외적 변화보다 내적 믿음을 더 가져야 합니다. (21, 30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음을 말씀해 주셨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울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의 죄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분명한 명령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의 모든 것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멜렉 사람들의 가축들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자신을 위해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그의 죄를 지적하자 사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 죄를 자신의 1
군사들의 죄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가축들은 죽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들 드리기 위해 자신의 군사들이 살려놓은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죄를 지적하자, 사울은 15절, 21절, 30절에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왜 하나님을 1인칭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 않고, 2인칭 당신의 하나님 이라고 불렀습니까?그는 왜 하나님을 세 번씩이나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 이라고 불렀습니까? 그래서 저는 생각해 봅니다. 사울은 정말로 하나님을 믿던 사람인가? 그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의 안에는 참신앙이 있었는지 의심해 봅니다. 사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별로 멋있게 생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5 feet 밖에 안 되는 작은 키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생애에 40,000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250,000 mile 이상을 말을 타고 다니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15 나라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53세가 되었을 때, 의사가 일주일에 14번 이상 설교하지 말라고 하자 화를 내었습니다. 그가 86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게으름이 내 삶 속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새벽 5시 30분이 지나서야 일어나려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삶을 산 그는 18세기에 영국을 바꾼 놀라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미국 Georgia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서 왔습니다. 그때 한 선교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그러자 웨슬리는 나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온 것을 믿습니다. 그 선교사가 다시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물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예수님을 당신 개인의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그러자 웨슬리는 다시 나는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원자인 것을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선교사는 웨슬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존,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구원자로 믿습니까? 그러자 웨슬리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2
다음 해 존 웨슬리는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고 참신앙을 갖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존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저에게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세요.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고 죄만 미워하는 사람들을 주세요. 아무것도 알기 원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주세요. 그러면 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존 웨슬레가 예수님을 내적으로 믿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외적으로만 변화되어진 사람인가, 아니면 내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물론 내적 믿음을 가지면 외적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적 믿음이 없이 외적 변화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 변화보다 내적 믿음을 더 가져야 합니다. II. 우리는 죄의 결과보다 죄 자체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24-25, 30절) 사울은 죄를 계속해서 범하고 죄를 범한 것이 발각될 때마다 내가 죄를 범했다! 라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이 왜 자신을 죽이려하는지 묻자, 내가 죄를 범했다! 라고 또 24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죄를 범했음을 지적하자, 그는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그러므로 저는 사울에 대해 질문해 봅니다. 그는 정말 죄를 범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는 죄가 발각되어 죄의 결과를 받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인가? 사울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보다 사람들이 그의 죄에 대해 아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가 탈로날것 같지 않으면 죄를 계속해서 범하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요셉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요셉의 주인의 처는 요셉을 계속해서 유혹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창세기 39:9에 다음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사울과 정반대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을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될 것보다 더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계속해서 죄를 범해서 미안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라고 그리고 돌아서서 또 죄를 범했습니다. 3
그러므로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무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사무엘이 보지 않으면, 그는 죄를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사무엘이 있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어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가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죄에서 벋어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 자신에게, 가정에, 대인관계에, 교회에, 사회에 부정적 영향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사울과 같이 죄의 결과를 죄보다 더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사울은 죄가 발각되는 것을 죄를 범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의 결과보다 죄 자체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해 전에 (1985년 6월 21일) USA Today에 AIDS에 대한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의사들은 AIDS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권장한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기사는 AIDS를 방지하기 위해 의학기술이 더 발달되어서 AIDS에 대한 치료를 발견하기까지 한 사람이 한 상대하고만 성관계를 갖아야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AIDS에 대한 치료를 발견하면 성적 죄를 마음 놓고 범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를 죄 자체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죄의 결과를 죄 자체보다 더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결코 죄에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결과보다 죄 자체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III.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하나님께 더 인정받고자 해야 합니다. (24, 30절) 이 말씀을 보면, 사울은 왜 죄 자체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을 죄를 결과를 더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자신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할까 두려워서 그들의 말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또 30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사울은 사무엘에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달라고 청했습니다. 4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은 하나님께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더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신가 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더 신경을 썼습니다. 우리가 사울의 삶을 살펴보면, 매우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그의 삶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나타나자 그는 시기심을 가지고 잘못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18:7을 보면, 이스라엘 여인들이 노래를 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노래를 들으니까 사울은 분노했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이 노래 부른 것 때문에 자신을 다윗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울과 세례요한과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자 사람들은 요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때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요한복음 3:30에 그는 이렇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사울은 자신이 제일인자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도 어겼습니다. 우리들도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인정받길 원합니다. 제일인자가 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원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자아관은 자신이 이룬 일들 때문에, 아니면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아관은 어떤 이룬 일들이나, 아니면 가지고 있는 직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지, 그것이 반대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들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아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는가, 또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안관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대해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통해서 갖고자해서는 안 됩니다. 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는가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만드셨는가에 만족하질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유행하는 옷을 사 입어 봅니다. 성형수술을 받아봅니다. 그런데도 자아관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건강한 자아관을 갖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잘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잘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그 모습 그대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수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건강한 자아관을 가지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사울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하나님께 더 인정받고자 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의 삶을 잘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을 어떻게 끝내는가는 더 중요합니다. 사울은 삶을 잘 시작했지만 비참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비행기가 잘 이륙할 것은 보증하지만 잘 착륙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비행기를 타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시작하고 또 잘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사울의 실수를 거듭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외적 변화보다 내적 믿음을 더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결과보다 죄 자체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하나님께 더 인정받고자 해야 합니다. 사울의 실수를 반복하는 삶을 살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