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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08권 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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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도 나름대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시점이 된 거 같네요. 마흔 여덟번이나 계속된 회사 소식지를 가까이 하면서 소통의 좋은 점을 배우기도 했고 해상직원들의 소탈하고 소박한 목소리에 세속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씻기도 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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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RC5 TG_03,0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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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북아역사논총 50호 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 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1년 8월 헌 법재판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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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eritage Essay Contest Winners Group 3 Korean, Grades 5-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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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3, 1 st Place 나는 할 수 있다 Sohyoun Choi I.S. 125Q, 7 th grade Teacher: Jungsook Chung Principal: Judy Mittler Superintendent: Joseph Quinn Author s Statement: Taeyon Kim, the president of TYK, Geo, and Stargazer Company, had a difficult childhood. Despite her father's cold attitude towards her and her grandfather's discrimination against her as a girl, she grew up to become a determined and honest person. She is a grandmaster in Taekwondo, she used her martial skills to discipline her own troublesome adopted children. Her six sons became very successful due to her education. She received "Susan Anthony B, Award, as she helped a lot of women who were less advantaged. I will remember her motto, "I can do it." whenever I feel frustrated. She is my role model. I will try to learn how to work hard as she did.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다. 라는 삶의 자세를 가진 김태연씨는 현재 동종 업계 세계 1위인 반도체 장비회사 라이트하우스, 웹사이트 전문 회사인 모닝 플라넷, 데이터스토어 X, 엔젤 힐링 등 세계가 주목하는 유명산업인 TYK그룹의 총수로 세계 최고 경영자 반열 에 당당히 올라와 있다. 지금의 화려한 자리까지 올라올 때까지는 정말 힘든 역경과 고 난이 그녀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겪은 남녀차별서부터 미국에 이민 와서 겪었던 인종차별까지. 이제 나는 힘들었던, 그러나 행복했었던 그녀의 과거로 돌아가보려 한다. 1946년 경북 김천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정월 초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여든 일가 친척들은 산통을 겪는 산모를 보며 제사를 좀 미루자, 조상님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라며 태어날 아이는 분명 세상을 뒤흔들 아들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나온 아이는 딸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조상님들,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 41

까. 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조상님의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방정맞게 딸년이 나왔다며 산모의 미역국을 마당에 뿌려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교육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후로 술로 날을 보냈고 김태연씨에게는 늘 미움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갖은 모멸과 천대 속에 천덕꾸러기로 보내야 했던 김태연씨의 어린 시절, 그녀는 심지어 설날 떡국을 먹을 때도 계집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밥술에 올려진 고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 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사랑을 받았어야 마땅했을 그녀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싸 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으며 아버지의 냉대는 김태연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러기 7년이 흐른 후, 기합소리가 나는 마당을 빼꼼히 내다본 그녀는 외삼촌들이 태권 도를 수련하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 매료된 김태연씨는 조르고 졸라 외삼촌들 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됐다고 하였다. 지금, 김태연씨는 어릴 적 때의 과거를 돌아보면 태권도를 하던 시간들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1968년 김태연씨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됐다고 한다. 어릴 적 때 겪 었던 남녀차별은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이어졌다. 버몬트의 한 고등학교 교장에게 태권도를 가르 치게 해달라고 설득한 날이 한달, 그녀는 체육교 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만나 양아들로 맞 은 Scott과 Michael, 그리고 Thomas가 그녀를 도왔다. 힘들 때는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 고 꺽꺽 울음을 터뜨렸다는 김태연씨는 무슨 일 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포 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라. 라는 말을 내뱉 었을 정도. 끝없는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늘 할 수 있다라는 정신으로 무장한 김태연씨는 사업의 성공으로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노벨상 이상의 가치를 가진 Susan Anthony 상을 수 상했다. 미국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국이 낳은 여자 삼손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태연 씨는 한국보다도 미국에서 더 유명인사로 평가받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겉은 미국인 일지 몰라도 속은 한국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김태연씨는 조상이 물려준 이름을 쉽게 던 져버리고 뿌리도 없는 외국 이름을 지어 쓰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더 유명해진 그녀를 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나 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큰 땅에서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누가 알아 줄까 하고 말이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무장한 그녀를 보며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단지 미국사람들이 발음하기 어 렵다는 이유로 외국이름으로 바꾼다 라며 말해놓고는 나 자신을 위해 바꾼 이름을 다시 한국이름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나라이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사람이 바로 나이니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 해도,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힘들지라도 나는 할 수 있다! 그녀도 해내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못하겠어! 라고 생각할 것이다. I Can Do It! 42

Group 3, 2 nd Place 자랑스러운 한국 이민자 Min Woo Yoon Kingsbury P.S. 188Q, 5 th grade Teacher: Nancy Skir Principal: Arlene Berg Superintendent: Claire McIntee 한국인의 미국이민은 지금부터 100년 전에 시작되었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를 떠난 한국인 102명은 일본에서 갤릭호로 옮겨 탔다. 그들은 결국 다음해인 1903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은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훗날 연방하 원이나 주상원의원 등의 영웅들을 키워 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지만 하루 품삯(69 센트)의 3분의 1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떠났지만 나라가 망해 그곳에서 정착하고 말았다. 미국인 윌리엄 데슐 러는 사탕수수 농장 주인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한국인들은 모두 건강하고 사기도 높습니다. 먼 뱃길에 불편하고 낯설겠지만 묵묵히 견뎌내는 이들의 인내심에 저 또한 감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의 이민자는 전 세계적으로 600만 명이며 미국에 200만 명으로 모든 나라 중에서 미국 이민자가 가장 많다. 한국 이민자들은 초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했지 만 1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리콘밸리 신화로 꼽히는 이종문 암벡스벤처 그룹회장, 황규빈 텔레비디오 회장 은 미국에서 존경받는 한국이민자들이다. 하와이 주 대법원장,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새미 리, 미육군 전쟁영웅 김영옥, 언론인 이경원 같은 한국이민자들도 미국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존경받는 한국인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 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오 히려 이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한국인 이민자를 한 분 알고 있 다. 그분은 나와 같은 집에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이다. 그 할머니는 1968년 28세의 나이로 혼자 미국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러 오셨다. 처음에 는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도 달라서 몹시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 그 할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바쁘시다. 특히 병들고 아프지 만 가난하여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나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메디 43

케이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심장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환자가 너무 비싼 병원비를 내기 어렵게 되자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약을 계속 먹을 수 있도록 메디케이드 받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비싼 수술비 때문에 백내장으 로 눈이 멀 수 있는 사람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병원을 통해서 알 아보고 수술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할머니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신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이 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할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 나님을 믿고 마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언제나 바쁘게 일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할머니는 6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아픈 사람들을 열 심히 도와주신다. 할머니는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계시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는 병원 일 을 그만 두셔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느라고 여전히 바쁘실 것 같다. 나는 할머니에게 드 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44

Group 3, 2 nd Place President Andrew Kim Jee Young Kang J.H.S. 189Q, 8 th grade Teacher: Young J. Lee Principal: Emily Tom Superintendent: Michelle Fratti Author s Statement: My essay is about the previous president of the Korean American Association of Greater New York, Andrew Kim. I wrote about his life from his childhood until 2000. So it's almost time-line of his life. I wrote about what he received for prize. When I heard of his life, I had some of my opinion. Lastly, I wrote about where I got the information about him. All of this information is in my essay paper. 제가 선택한 김석주 한인 회장님은 3살 때 소아마비로 신체 장애자가 되셔서 다리가 불편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어 4살 때 외갓집에서 자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김석주 회장님이 초등학교 다니실 때쯤에 이혼하셔서 어머니께서 그때부터 회장님을 키우시게 됩니다. 회장님께서 중학교를 졸업하시고, 헌 책방에서 책을 얻어 검정고시를 준비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선 공부를 잘 하셔서 검정고시를 합격하시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또 전자 기술 이급 자격증을 따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회사에서도 모두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회장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장님께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19살의 나이에 자살을 시도하셨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성당 을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모두들 회장님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회장님에게 희망이 되어, 나중에 조그마한 전파사를 차리셨습니다. 먹는 시간을 쪼개 가 며,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회장님을 또 한번 배신을 하였 습니다. 회장님께서 도둑이 훔쳐 온 물건을 판다고 누명을 쓰게 되어 감옥에 붙잡혀 가 셨습니다. 나중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1976 45

년에 끝내 조국인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시고, 26살 때 600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 민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회장님은 김치를 일부러 안 드셨다고 합니다. 김치를 먹게 되면 한국으 로 가고 싶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회장님은 미국 온지 2년 만에 유태인이 경영하는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 다. 회사에 취직한 후로는 엄청나게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만약 회장님이 이 회사에서 나 오면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사 한지 2년 만에 책임자로 되셨 고, 그 다음 해에 총 책임자로 승진하셨습니다. 사장은 회장님의 다리는 무시하시고, 오 직 실력만 보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아는 사람의 소개로 김송자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장 님이 외로우셔서 김송자라는 분과 아주 좋은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79년에 그 분과 결혼하였습니다. 김석주 회장님은 미국에 이민 오신지 7년 만에 Lisa Beeper의 사장이 되셨습니다. 그 래서 점점 미국 주류 사회 고객들을 확보하여 Metro Call이라는 동부 최대의 통신 회사 와 기술 제휴하여 사업을 확장시켜 나아갔고, 그 후 한국 이민자로서는 처음으로 인공위 성 Line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최대의 통신 사업권을 획득하게 되어 현 Lisa Page로 큰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뉴욕에서만 18만 명, 연간 200여 억 원을 매 출하였습니다. 그 후 매일 밤에 한국에 대한 꿈을 꾸신다고 합니다. 옛 친구들에게 자랑 하거나 하는 그런 꿈을 꾸신다고 합니다. 제가 이 한국 이민자의 공헌에서 이 분을 선택한 이유는 이 분이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한인들 중에서 최초로 미 연방 통신국(FCC)으로부터 전파 사용권이 허가가 되 었고,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가 커서, 미국에 한국 사람들이나 스폐인계 사람들, 또는 흑 인들 등 힘들고,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위로 해주고 계십니다. 또한 이 분은 우리 한인 청소년들 중 불량 학생들을 돌보아 주고, 보호하는 청소년 지도 사무소 를 차렸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석주 회장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Lisa Beeper 본사가 있는 Corona에서는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매년 회장님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주어서 고 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김석주 회장님은 97년에 성공한 이민자 상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상을 받으셨으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셨 습니다. 그리고 99년에는 제1회 소수 민족 대회를 개최 하셨습니다. 또 매년 5월 중 다 민족 block party를 열고, 유권자 등록 운동을 펼치십니다. 김석주 회장님이 그러셨습니다. 신체 장애는 꿈을 이루는데 절대 장애가 아니라고, 또 곧고 빛나는 길이 길만은 아니라고,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이라고, 그 길을 향하여 서두르지 말고, 최선을 향해 가는 것이 라고, 그것은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어려 운 상황에서도, 설사 희망조차 없다 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희망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나는 이분의 성공담을 듣고 결심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렵 고 힘든 일이 닥쳐도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며, 불평하지 않고, 남 에게 의지하지도 않으며, 최선을 다 한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생각됩니다. 46

내가 평소에 바라보던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이 참 무겁게 느껴졌으나, 김석주 회장님 의 일생을 듣고 나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은 그 횃불이 참 가벼워 보였습니다. - 이 내용은 KBS 영상 사업단, 이것이 人 生 이다 에서 찾고,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참고로 썼습니다. 47

Group 3, 3 rd Place Paul Shin Federal Senator of Washington State John Yang P.S. 94Q, 5 th grade Teacher: Joyce Riederman Principal: JoAnn Barbeosch Superintendent: Claire McIntee Author s Statement: Paul Shin is a person who helps both Americans and Koreans. When he was a boy, an American soldier admired him. The soldier took Paul Shin to America so he can get education. After many years, he became the Washington Federal Senator. He is one of the most honored Korean-Americans. 1998년 워싱턴주 상원 의원으로 당선된 신호범(Paul Shin : 67살) 의원은 한국사람들 뿐 아니라 미국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존경 받는 사 람이다. 신호범 의원은 1936년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인 6.25가 터졌을 당시 거지 소년이었다. 그러 다 우연히 서울 영등포의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의 군화 를 닦고 물을 길어다 주는 하우스보이가 됐다. 워낙 성 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되어 군의관인 레이폴 대위는 신씨를 아들로 입양해서 미국으로 데려 갔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신씨는 하루에 두 시간 씩 잠을 자며 공부한 결과 1년도 안돼 검정고시(GED) 를 통과했고, 미국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심각했 다. 그가 대학을 다니다 미 육군에 들어가서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던 때였다. 미국인 전 48

우들과 텍사스 템플 시내의 고급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백인전용 식당이었다. 신 의원은 흑인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곳 매니저가 나타나더니 강제로 문 밖으로 내 보냈던 것이다. 신씨는 인종차별 받는 것 이 화가 나고 분했지만 "언젠가는 내가 오히 려 너희들을 도우며 살 것" 이라고 다짐하면 서 더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동양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 생활을 하다 가 부동산 사업도 하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 그는 자신이 입양아였었음을 잊지 않고 스스 로 두 아이를 입양했으며 한국 입양아들의 모 99년 한국방문 시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는 신호범 의원. 임인 키즈(KIDS)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10명 이었는데 이 모임의 회원은 현재 5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신씨는 1986년 주 하원의원이 되었다. "동양사람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는 동양인 출신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는 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씨는 하원에서 상원 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뽑힌 후 상원 부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워싱턴 주에서 아시아 사람에 대한 나쁜 말인 '오리엔탈(Oriental)'이라는 단어를 없애는데 힘쓰고 한국사람은 물론 아시아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신호범 의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사람은 코리안 어메리칸으로써 어린 시절에는 고아였지만 미국에 이민 와서 성공한 크리스챤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잠도 두 시간 밖에 자지 않고 공부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또 한 아시아 사람들과 한국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고 한국 입양아를 위해서도 일하는 멋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지금 미국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는 훌륭한 사람 이기 때문이다 49

Group 3, 3rd Place 아버지의 이민 생활 Chohee Lee I.S. 125Q, 6 th grade Teacher: Jungsook Chung Principal: Judy Mittler Superintendent: Joseph Quinn Author s Statement: My father is a cook. He has to put his hands in boiling water and oil. He has many wounds. When I see those wounds, I feel sad because I didn t do anything for him but he works for us. He goes to work at 6:00 a.m. and he gets home at 4:00 p.m. but he never says the word tired. He creates a new kind of food from Korean and American food that is called Fusion Food. It has delicious sides of both Korean and American food. I would like to grow into a beautiful Asian American woman as my father combined the best of both worlds. 안녕하세요? 저는 I.S. 125 6학년에 재학중인 이초희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 이민자라 는 말을 들었을 때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셨습니다. 졸업을 못하신 이유는 할머니와 할 아버지의 잦은 말다툼으로 가출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뒤 마음을 고치시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시고 무사히 졸업하셨지만 작은 아버지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의 소개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습니다. 아 버지는 대우 자동차에서 자동차를 열심히 파셔서 전국에서 Salesman 1위의 영광을 얻으 셨을 때도 있으셨지만 가정불화로 회사를 그만 두시고 공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 후 로는 매일 술을 드시고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아, 아버지가 일이 힘드신가 보구나. 나라 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드려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 지만 아버지는 계속 술을 드셨고 가정불화도 점점 더 심해져 어머니 입에서 이혼 이야기 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친구 댁에 가셨다가 좋은 소식을 들으 셨습니다. 어머니 친구 분 남편께서 뉴욕에 가시는데 아버지와 함께 가시면 어떨까 하고 50

어머니께 말씀 드린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상의를 하자 아버지는 오빠와 저의 장래를 위해 우선 혼자 가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001년 3월 뉴욕 땅에 첫발을 디디신 아버지는 주방장이 되기 위해 학원에서 수업을 받으셨습니다. 원래 노력을 많이 하는 아버지는 6개월 정도 받아야 하는 수업을 3개월에 마치고 일자리를 구하셨습니다. 남의 집 작은 방에서 몇 달 동안 기거하시던 아버지는 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으로 셋집을 구하셨습니다. 절약 정신이 강하신 아버지라 금방 돈을 모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2002년 1월 1일 뉴욕에 온 어머니와 오빠, 나를 만나 지금은 단란하게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저와 오빠에게 늘 공부하라고 말씀하셔서 하루는 제가 아버지께 짜증을 냈습니 다. 원래 무뚝뚝하신 아버지가 제게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공부하라고 강 요하시는 것은 커서 아빠처럼 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 자식들 앞에서 부끄 럽지 않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울컥하는 느낌이 들 었습니다. 아버지께 죄송하기도 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께 효도하겠다는 다짐도 했 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시지만 저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새벽 6시에 나가셔서 저녁에 들어오셔서도 힘든 내색을 전혀 하시지 않는 아버지. 자동차 Sales에서 제 일인자가 되셨던 아버지는 지금은 미국 음식과 한국 음식의 좋은 점을 골라 아버지가 스스로 만들어내신 Fusion요리를 종업원들을 두고 파십니다. 집에 오셔서도 Internet에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시며 연구하십니다. 저도 항상 노력하시는 아버지가 만드는 음식 같이 미국과 한국의 좋은 점을 살려가며 열심히 살아 미국에 뿌리내린 한국의 훌륭한 이 민자가 되고 싶습니다. 51

Group 3, 3 rd Place 김영우 선생님에 대해서 Anna Park P.S. 32Q, 5 th grade Teacher: Keum Ju Shin Principal: Betsey Malesardi Superintendent: Michelle Fratti 내 이름은 Anna Park이고, 자랑스런 한국인인 김영우님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분은 맹인이고, 지금 현재 직업은 부시 대통령의 장애인 보조관이시다. 현재 나이는 61세이시 다. 그 분은 중2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을 다쳐서 맹인이 되셨고, 어머니는 그 분이 맹인이 됐다는 말에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던 아버지마저 돌아가 시고, 연이어 누나도 사고를 당해 죽자 남겨진 어린 삼남매는 함께 살아갈 수가 없었다 고 한다. 남동생은 철물점집 점원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그리고 그 분은 맹아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대신 학비를 내주던 여학생중 1명이 현재의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만난지 7년 만에 그 분의 약혼자가 되었다고 한다. 김영우님은 아들 1명이 있는데, 그 아들이 어렸을 때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들의 기도 내용은 우리 아버지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아버지는 나 랑 야구도 못하고, 아버지는 나한테 자전거 타는 것도 못 가르쳐줘요. 그래서 김영우님 은 이렇게 설명하셨다고 한다. 아빠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책을 읽을수 있지만, 엄마 는 어두운데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단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곤 점자책으로 매일밤 책을 읽어 주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 아들은 자기 아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분의 아 들은 대학생이 되서, 글짓기에서 자기 아버지의 그런 용기와 노력에 대해 존경한다는 글 도 쓰게 되었다. 나는 이분을 존경한다... 김영우님은 미국내 한국인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분임이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분이 높은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끈기와 노력 을 보태어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사람이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내 주위에서 장 애인을 많이 볼 수가 있지만, 내 생각에 그 분들은 김영우님처럼 노력과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분들도 있다. 나는 자존심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좋다. 자기가 장애인이라고 부끄러워하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52

나의 장래 희망은 화가이기도 하지만 남을 도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 다. 내가 이 분에 대해 쓴 이유는 이 분이 장애인이라고 성공할 수 없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꼭 성공한다는 교훈 때문이다. 나도 용기와 노력이 부족 하다. 이 분을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나는 그 분을 존경한다. 53

Group 3, Honorable Mention Pain and Happiness of Immigration Se Rea Lee M.S. 67, 8 th grade Teacher: Claire M. Svendsen Principal: Mae Q. Fong Superintendent: Claire McIntee Author s Statement: There are so many difficult problems that immigrants face in the U.S. First of all, there s the trouble between husband and wife. Lots of immigrants divorce because of the hard life in the U.S. Secondly, racism is a big problem. There are so many other problems such as losing your own culture, language and etiquette. Of course, there are many people who succeed in their dreams and the U.S. is best place to succeed with your hopes and dream, but there are problems in life. We d better try to make the U.S. a better place for new immigrants. 모든 사람들은 각자 희망을 갖고 이 땅으로 이민을 왔을 것이다. 학력, 아이들의 미래, 또는 좀 더 나은 삶이 대부분의 이유일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 많은 날들을 기다 리고 또 와서는 밝은 나날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낯선 땅은 이민자들에게 참담하고 힘 든 나날만 주기 십상이다. 이민자들에게 이 미국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와 더불어 그만큼 많은 아픔을 준다. 그 중 한가지는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 힘든 시기에 부부간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틈이 생겨서 많은 한국인들이 이혼을 한다. 뉴욕에 이민을 오신지 조금되는 여 약사 한 분은 미국에 오셔서 잘 살아보시려 노력 하셨지만 계속되는 남편 분의 사업 실패와 기울어져 가는 집안 살림에 이혼을 결심하셨었다. 이혼 후 혼자서 자식들과 함께 정말 있는 힘을 다 해보셨지만 갈수록 빈털터리가 되가는 현실이 너무 힘드셨다. 나중에는 옛 남편과 다 시 합쳐서 지금도 힘든 나날을 자식만 바라보시며 지내신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 민자들이 많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인종차별이다. 이곳에 와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언어를 배 우자니 대부분이 힘든 건 당연지사이다. 또 미국 사람들도 흑인 보다는 동양인을 더욱 54

차별하는 듯한 인상이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상처를 받는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사시는 윤경자 아주머니는 이곳에 이민을 오셔서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지만 꿋꿋이 살아 가고 계신다. 아주머니 옆집에는 미국인 여자 한 명이 사는데 말은 하나도 통하지 못해 도 서로 인사도 하고 좋은 인상으로 지나치며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께서 집 앞에서 주차를 하시려 할 때 어느 미국인 남자가 지나가다가 부주의로 아주머니의 차 옆을 긁음과 동시 미는 바람에 아주머니의 차는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마저 박게 되었다. 그건 분명히 그 미국인 남자의 잘못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옆집 여자 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와 모든 미국인들이 아주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갑자기 그 미국 남자에게 걱정스런 얼굴로 뛰어갔다. 그 때, 윤경자 아주머니께서는 말은 통하지 않 아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여자가 저렇게 자기 종족을 다른 종족보다는 더 걱정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셨고 또 인종차별이란 것을 실감하시게 되시면서 상처를 받으셨다고 한 다. 이와 같이 인종차별로 남녀노소 상관없이 우리 한국인 뿐만 아닌 다른 모든 이민자 들은 상처를 받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를 받고 있다. 나는 이런 문제들이 단순한 문 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물론 그때보다는 조금 나 아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 두 가지 외에도 더욱 심각하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자라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모든 좋은 면들을 잊어 버리고 잃어 버린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말인 한국어를 말로는 조금은 하지만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2세들 이 대다수다. 이것은 모든 한국인 부모들이 고치려 노력해야 하고 또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뉴욕 리버데일에 사시는 주부님께서는 여기 오셔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남 들보다 영어가 조금 부족하다고 빨리 영어를 가르치고 집에서조차도 한국어 대신 영어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겐 한국어는 제 1 모국어이고, 영어는 제 2의 언어란 것을 우리의 대다수가 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두들 동감하는 말일 것이다. 우린 미국 인도 흑인도 아닌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 이 곳에서 태어난 한국아 이들은 한국의 역사는 물론 한국에 한번도 가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뉴욕 펠리세이드에 사시는 차옥란 아주머니께서는 두 딸이 있으시다. 어느 추석 때, 두 딸은 엄마께 추석맞 이 축제를 가자고 졸랐다. 이유는 당연 그 축제에 초대되어 온 가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차옥란 아주머니는 마지못해 가셨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고사리, 도라지, 장아찌, 죽순 등 몇십 가지 귀한 것들도 있고, 여자, 남자 모델들이 옛날 결혼 예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시며, 아이들이 연애인 보러 가자는 말에 눈 하나 깜짝 하시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다 구경하셨다. 하지만 딸들은 그런 것들은 슈퍼 마켓에서도 있다면서 뾰루퉁 했지만 나중 에 연애인을 보고는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이와 같이 우리 십대들은 우리 한국 고유의 문화보다도 연애인과 컴퓨터 또는 친구들이 더 좋고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 지금의 어른들이 어릴 적 노시던 윷놀이나 여러 종류의 고유의 놀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 다.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다수다. 미국은 모든 이민자들에게는 기회를 주는 곳 이지, 우리의 나라가 아니다. 물론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성공한 이민자들도 많다. 정동규 박사님이 그 중 한 예이 다. 정동규 박사님께서는 미국으로 이민오신 뒤 길고 외로운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도 지 55

금은 최고로 뽑히는 심장의학박사님으로서 California에 위치한 큰 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도와주신다. 그 분께서는 이곳에서 백인에게까지 인정을 받으셨다. 또 이와 같이 이곳이 무조건 안 좋은 곳만은 아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노력한다면 모든 것을 주는 좋은 곳이다. 그저 이곳에 와서 많은 힘든 일들과 장애가 있다는 점을 빼고는 이곳처럼 아이들이 꿈을 펼치기에 좋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지금보다 두 배 아 니 열 배는 많은 한국인들이 조금 더 낳은 삶을 위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와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100주 년을 맞아 우리는 앞으로 이 낯선 땅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딸들과 아들들이 자 랄 미래를 위해서 힘을 모아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56

Group 3, Honorable Mention 신화 백남준에서 인간 백남준으로... Jane Kim P.S. 32, 5 th grade Teacher: Keum Ju Shin Principal: Betsey Malesardi Superintnedent: Michelle Fratti 2002년 12월 6일 부푼 꿈을 안고 뉴욕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오는 여 행도 아니었으며, 다만, 승무원이 나를 돌보아주며 이모가 있는 뉴욕에 첫발을 내딛었습 니다. 아마 이것이 나의 홀로 서기의 시작일 것 같습니다. 어린 나를 홀로 뉴욕까지 보내기까지는 아마 저의 부모님 또한 많은 고민과 마음 고생 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보다 더 크고 넓은 세계로 보낸 부모님 마음을 나는 읽 을 수 있습니다. 나의 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은 제가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의 나의 꿈입니다. 이런 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 하여 저는 뉴욕으로 유학을 왔고, 부모님이 나에게 바라는 기대이고 바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학교를 다닌 지 1달도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뭔지도 모르고, 의사 소통도 잘 되지 않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한국을 빛내는 훌륭한 미술가가 될 것입니 다. 한국 사람이지만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명예를 드높이는 비디오 작가가 있습니다. 백 남준씨에 대해서는 간혹 뉴스나 신문 그리고 잡지 등에서 보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이 사람이 아주 훌륭한 미술가라는 사실만 알 뿐 더 이상의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 기회를 통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책도 읽어 보았습니다. 알면 알아갈수록 백남준씨에 대한 매력과 그의 창의력에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내가 한국 에서 광주 비엔날레 관람을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백남준씨의 비디오 예술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실 뭐가 뭔지 잘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습니 다. 사실 지금도 막연히 이 사람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하지만 앞 으로 많은 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의 예술에는 동양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빼 놓을 수 없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사고는 강하게 표출되는 한국정신 등은 동양적 가치관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본에서의 유학기간 이 있기는 하지만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했고, 한국 사상의 정체성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하지만, 그가 언어를 쓰는 고집 방식이나 호랑이의 웅비를 통해 한국 정신문화의 발전을 종용하는 것은 그가 한국인임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평소 내가 좋아 하는 샤갈의 그림을 보면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내게 다가 왔듯이 백남준 역시 그런 사람 57

이 나에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32년도에 태어나 1956년부터 지금껏 미술활동을 해오는 그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아직은 내가 이 사람의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 만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한국에 모두 있지만 나의 마음은 언제나 가족 옆에 있습니다.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겠지만 견디어 낼 것입니다.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는 이모, 이모부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나의 가족들에게 보여줄 것 입니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미술가 김민경...! 한국을 빚내는 그런 훌륭한 미술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훗날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58

Group 3, Honorable Mention 김메리 여사님의 전기를 일고 Gee Min Nam P.S. 32Q, 6 th grade Teacher: Keum Ju Shin Principal: Betsey Malesardi Superintendent: Michelle Fratti 나는 어제 우연히 학교 종이 땡땡땡 노래를 듣게 되었다. 이 동요는 너무나 잘 알려 져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의 작곡가인 김메리 여사를 아는 사람 은 별로 없어서 이 노래를 지으신 김메리 여사에 관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 제라도 여사님에 관해서 잘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김메리 여사께선 1904년 서울 종로구 동승동에서 태어나셨다. 처음 이름은 김삼식이라 고 지었는데, 어머니께서 기독교인이 되신 다음에는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김메리 라고 바꾸셨다고 한다. 김메리 여사께선 6.25로 한국에 한창 난리가 났을 때 미국에 있 는 부모님을 향해 비행기를 타셨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어린 메리는 한 달 후 디 트로이트의 한 초등학교에 5학년으로 전학하였다. 그녀는 그 학교에 입학한 첫 번째 아 시안이었기 때문에 항상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따돌림을 당하면 당할수록 날 따돌림 시키는 애들보다 더 잘해야 된다! 하는 마음이 생겨서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공 부가 더 하고 싶으셔서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피하여 만주까지 가신 여사께서는 일 요일이면 교회 가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그 곳에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3년간의 만주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귀국하신 후 김메리 여사께선 학교 종을 치며 학당을 다니 셨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시게 된 김 여사께서는 음악으로 전공을 바꾸시고 학 교종이 땡땡땡 을 작곡하셨다. 내 생각에는 김메리 여사님이 힘들고도 성공한 인생을 사신 것 같다. 그 힘든 과정을 읽어 가면서,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인생을 김메리 여사께서 사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이 후회가 된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성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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