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용복 간단히 알아본다. 이어 고조선 강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적과 발굴된 당시의 청동 기 유물을 통하여 천문학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청동기 유물에 나타난 문양을 통하여 천문학적 요소나 흔적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고조선의 역사 고려( 高 麗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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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지 제시문 2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관측된 다른 정보를 분석하여 역으로 미 관측 영역 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주어진 영역에 장애물이 있는 경우 한 끝 점에서 출발하여 다른 끝 점에 도달하는 최단 경로의 개수를 분석하여 장애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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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13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이 용 복 서울교육대학교 / 소남천문학사연구소 I. 서론 고조선에 대한 것은 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하 여 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이라도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 조선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 간 많은 이견이 있고 학문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고조 선( 古 朝 鮮 )이라는 명칭은 고대 조선이라는 의미로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 하기 위기 사용된다. 조선이라는 명칭은 태조에 의한 조선이 창건되기 이전부터 단 편적이지만 중국의 여러 고서에 나타난다. 고조선이 역사서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기원전 7세기 초이다. 이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알고 있는 관자( 管 子 ) 에 발조선( 發 朝 鮮 ) 이 제( 齊 )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산해경( 山 海 經 ) 에는 조선이 발해만( 渤 海 灣 ) 북쪽에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기록에 나타난 조선은 대체로 요하( 遼 河 ) 유역 에서 한반도 서북지방에 걸쳐 성장한 여러 지역집단을 통칭한 것이다. 이외에도 전국책( 戰 國 策 ), 염철론( 鹽 鐵 論 ) 등과 같은 고서적에 나타나고, 특히 중국 정사( 正 史 )인 사기( 史 記 ), 한서( 漢 書 ) 등에도 보인다. 그러나 고조선에 대한 기록으로 현재에 남아 있는 고대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 三 國 遺 事 ) 나 제왕운기( 帝 王 韻 紀 ) 와 같이 극히 제한된 부분에만 있다. 물론 더 많은 기록이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전승되어 현재에 남아있는 것이 극히 적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고조선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고조선의 역사와 그 강역에 대하여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14 이용복 간단히 알아본다. 이어 고조선 강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적과 발굴된 당시의 청동 기 유물을 통하여 천문학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청동기 유물에 나타난 문양을 통하여 천문학적 요소나 흔적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고조선의 역사 고려( 高 麗 ) 시대에 일연( 一 然 )이 지은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나 이승휴( 李 承 休 ) 가 지은 제왕운기( 帝 王 韻 紀 ) 에는 신화의 형태로 단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단 군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기록은 고려시기에 들어와 처음 보인다. 그러나 이때 들 어서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가 처음이 아니다. 삼국유사 와 제왕운기 에는 각각 '고기운( 古 記 云 )', '본기왈( 本 紀 曰 )'이라면서 신화 형태의 단군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이로보아 그 이전에 이미 단군신화를 기록한 사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단군의 조선 건국 사실은 일찍이 중국에도 알려져 위( 魏 )나라의 역사 책인 위서( 魏 書 ) 에 기록되기까지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환인( 桓 因 )의 아들인 환웅( 桓 雄 )이 홍익인간( 弘 益 人 間 )의 큰 뜻 을 품고 권위의 상징인 천부인( 天 符 印 ) 세 개를 지니고 태백산( 太 伯 山 ) 마루의 신단 수( 神 檀 樹 ) 밑에 내려왔다. 이곳에 신시( 神 市 )라는 사회를 건설하여 풍백( 風 伯 )과 우 사( 雨 師 ) 및 운사( 雲 師 )를 거느리고 이곳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 아들 단군왕검( 檀 君 王 儉 )은 다시 아사달( 阿 斯 達 )에 도읍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는데 때는 중국의 요 ( 堯 ) 임금 시절이라 하였다. 또한 훗날의 고구려, 백제, 신라와 남북 옥저( 沃 沮 ), 동 북 부여( 夫 餘 ), 예( 濊 )와 맥( 貊 ) 등이 모두 이 단군의 자손이라 하였다. 특히 천부인 ( 天 符 印 )은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 桓 雄 )이 천제( 天 帝 )인 환인( 桓 因 )으로부터 받아 가 지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에 의거하면 청동검, 청동거울, 및 청동방울의 3가지로 추측된다. 중국의 산동성 가상현( 嘉 祥 縣 ) 자운산( 紫 雲 山 ) 아래에서 발견된 무씨사당( 武 氏 祠 堂 ) 석실( 石 室 )의 화상석( 畵 像 石 )에 그려진 그림도 삼부인( 三 符 印 )이 나타난다. 그리 고 풍백, 운사, 우사가 보이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단군신화의 내용을 그대 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화상석에는 구름을 타고 있으면서 어깨에 날개를 단 천 상의 인물과 말들, 그렇지 않은 지상의 인물과 말들이 보인다. 오른쪽 상단에 앞으 로 앉은 천상 인물이 들고 있는 세 개의 구슬은 삼부인( 三 符 印 )을 그린 것으로 보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15 인다. 두 번째 층 그림에는 무슨 나팔 같은 것을 입에 대고 부는 풍백과, 두 손에 망치를 쥐고 양 쪽에 있는 북을 치는 운사, 물병을 쥐고 있는 우사가 보인다. 세 번 째 층 오른편에는 곰과 호랑이가 보인다. 이 무씨사당은 서기 147년에 만들어진 것 으로 알려져 있어, 아무리 늦어도 이 무렵까지는 단군 신화의 골격을 이루는 이야 기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이것은 이러한 신화를 가진 민족이 아시아 동북지역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음 알 수 있는 유적이다. 고조선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단군조선( 檀 君 朝 鮮 ), 기자조선( 箕 子 朝 鮮 ), 위만조선 ( 衛 滿 朝 鮮 ) 등의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삼국유사( 三 國 遺 事 ) 에서는 고조선을 왕검조선과 위만조선으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리고 제왕운기( 帝 王 韻 紀 ) 에서는 전조선기, 후조선기 및 위만조선기로 나누고 있다(이형구 1999). 전기조선의 시작은 단군이고 후기조선의 시작은 기자( 箕 子 )로 정하고 있다. 고조선에 관한 연구는 조선 후기에 실학자들이 고조선의 강역에 대하여 문헌 고증 을 바탕으로 연구했다(박광용 1980). 당시 실학자들은 역사 인식의 기본으로 화이 사상( 華 夷 思 想 )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고증학적 입장에서 사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강역의 고증을 통하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세웠다(김영호 1984). 이러 한 입장을 가진 실학자의 대표적 인물이 정약용( 丁 若 鏞 1762-1836)과 한치윤( 韓 致 奫 1765 ~ 1814) 등이었다. 이러한 실학자들의 연구는 고조선 역사에 대하여 새 로운 인식을 갖고 연구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제 침략기 시대에는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시도를 한 시기이 다. 고조선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대사 전반을 왜곡시키 는 연구를 하였다. 예를 들어 단군사적( 檀 君 史 蹟 )은 불교 설화에 근거를 둔 가공스 런 이야기라고 폄하시키고, 고조선의 역사 전체에 대하여 철저하게 그 역사성을 부 정하였다.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된 이후 남과 북은 고조선 역사에 대한 연구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였다. 남한의 학자들은 고조선의 존재를 역사가 아닌 신화라는 입 장에서 접근했다. 특히 고조선의 국가 특징을 연구하면서 이와 관련한 사회와 경제 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전반적인 연구는 수행하지 않았다. 다만 단군조선은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관념적이고 신화적 측면에서 연구를 하였다. 이 때 민족적

16 이용복 문제 때문에 기자조선( 箕 子 朝 鮮 )은 부정되었다. 반면에 북한의 경우는 해방 이후 고조선 역사에 대하여 집중적 연구를 진행했 다. 기자조선에 대한 부정은 남한과 같다. 남한의 경우는 일본학자들이 연구한 부정 적인 입장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았으나, 북한은 민족주의적인 역사 인식이 강해 다 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김정배 1991). 북한에서 본격적인 고조선 역사의 전 환점이 된 것은 1960년대 초에 출간된 이지린( 李 址 麟 )의 고조선연구 였다. 이지 린은 고고학적 발굴과 자료들을 이용하여 내용을 보완하여 국가적 체계로서 사회적 경제적 입장에서 고조선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1980년대에 이르러 북한의 고조선 역사 연구와 역사 인식이 남한에 소개되었다. 이 후로 고조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고조선 역사를 어떻게 볼 것 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논쟁의 실마리를 준 것이 발해 연안에 서 발굴된 발해연안식( 渤 海 沿 岸 式 ) 청동단검( 靑 銅 短 劍 ) 등과 같은 다양한 청동기 유 물이다. III. 고조선의 강역과 청동기 유물 우리는 고조선의 강역에서 발굴된 대표적 유물이라면 흔히 비파형동검을 든다. 이 비파형동검( 琵 琶 形 銅 劍 ) 중에서 중국 요령( 遼 寧 )에서 발굴된 전형적인 모습을 한 것이 요령식동검( 遼 寧 式 銅 劍 )이다. 이는 요동( 遼 東 ) 지역의 고고학적 성과에서 얻어 진 결과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조선 문화가 북한 학계에서는 요동을 중심으로 발전 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우리 학계도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등 고고학적 유물의 분포와 문헌 사료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는 요동에 있었으나 기원전 4~3세기경에 대동강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이른 바 이동설도 제시하였다. 그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대동강 중심설을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는 이병도이다. 그의 연구로 삼국유사는 단군이 평양에 도읍 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평양은 서경이라는 주를 달고 있다. 정 약용과 한치윤 등 실학자들도 패수를 압록강으로 보고 고조선의 중심을 한반도로 고증하였다.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17 다음은 요동 중심설이다. 조선시대 권람( 權 擥 1416 ~ 1465)은 그의 저서 응 제시주( 應 制 詩 註 ) 에서 낙랑을 압록강 북쪽으로 보고, 기자 조선을 요동과 요서 지 방으로 비정하였다. 17-18세기의 남인 학자들이 계승한 이 설은 신채호 정인보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이고 윤내현이 가세하였다. 고조선은 북경 근처 난하( 灤 河 ) 유역과 갈석산( 碣 石 山 ) 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은 이동설로서 고조선 초기 중심지는 요동이었으나 후기에 대동강 유역으로 옮겨왔다 는 절충설이다. 종래에 부정하던 기자 조선을 동이족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재해 석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설이 주장되고 있으나 남한 학계의 정리된 견해는 다음과 같다. 고 조선은 초기에는 요하 동쪽 해평 개성현에 중심을 두었으나, 후에 와서 왕검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고 보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에 는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고 본다. 왕의 밑에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도 두었다. 또 요하를 경계선으로 하여 중국의 연나라와 서 로 대립할 만큼 강성하였다고 본다. 북한 학계는 단군릉 조성을 계기로 그동안 요 동 중심설을 포기하고 대동강 중심설로 견해를 바꾸고 있다. 당시 이 일대에는 비파형동검( 琵 琶 形 銅 劍 )과 관련된 문명을 공유하고 있던 여러 집단이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다가 성장하면서 큰 세력으로 통합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단군 신화는 고조선을 세운 중심 집단의 시조설화( 始 祖 說 話 ) 형식으로 만들 어졌다가, 뒤에 공통의 문화를 가진 고조선 국가 전체의 건국 설화로 확대된 것으 로 여겨진다.

18 이용복 그림 1. 요령식 동검의 모습. 이 요령식동검은 청동기 유물 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우 리나라에 발견된 것만 54점이나 된다. 이 동검은 검심( 劍 身 )과 검파( 劍 把 )를 조합하 도록 주조한 것이다(이건무 1992). 그림 1은 우리나라 중서부와 남부지방에서 발굴 된 동검들의 모습이다(국립중앙박물관 1992). 모든 동검들의 공통적 특징은 아래쪽 으로 갈수록 폭이 넓고 둥글게 되어 있어 마치 비파( 琵 琶 )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 앙 부분보다 약간 위에 위치한 곳 좌우에 뾰죽하게 튀어나온 돌기( 突 起 )를 가진 특 이한 형태이다. 돌기에서 위로 갈수록 동검의 폭이 서서히 좁아지고 끝은 뾰죽한 형태를 보인다. 이 동검의 중앙에는 길게 둥근 형태로 튀어나온 경부( 莖 部 )가 상하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경부에 가는 홈이 길게 파져있는데 이 형태는 요령지 방의 동검에는 나타나지 않고 우리나라의 중서부와 남부지역에서 발굴된 것만 나타 난다.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19 그림 2. 충청남도 아산 남성리( 南 城 里 )에서 출토된 조문경( 粗 文 鏡 ). 고조선 시대의 유물 중에서 많이 출토된 청동기 유물은 청동거울이다. 이 청동 거울은 표면에는 다양한 무늬를 새겨 넣고 있다. 대부분 가는 선을 그어서 만든 기 하학적 무늬가 대부분이다. 선을 그린 방법 중에서 굵은 선으로 거칠게 그린 거울 은 조문경( 粗 文 鏡 )이라 하고, 가늘고 정교하고 세밀한 선으로 그린 것을 정문경( 精 文 鏡 )이라 하여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림 2는 충청남도 아산 남성리( 南 城 里 ) 에서 발굴한 조문경의 모습이다(국립중앙박물관 1992). 충청남도 논산 훈련소 부근 야산에서 청동거울과 팔주령( 八 珠 鈴 ), 쌍두령( 雙 頭 鈴 ), 간두령( 竿 頭 鈴 ), 청동거울 등이 한꺼번에 발굴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 1992). 이 중에서 그림 3에 있는 구리거울은 대단히 정교한 문양을 새겨 넣어 놓았다. 수없이 많은 가는 선들을 연결하여 삼각형이나 동심원 무늬를 새겨 넣었다. 특이하게도 동 심원은 네 방향에 2개씩 짝을 지어 총 8개를 배치했는데 대단히 정교하게 동심원 을 그린 무늬는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 구리거울은 우리나 라에서 발굴된 구리거울 중에서 정문경( 精 文 鏡 )으로 가장 뛰어난 유물 중 하나이다.

20 이용복 그림 3. 논산에서 출토된 국보 제141호의 청동거울. 이와 유사한 구리거울이 충청남도 당진( 唐 津 ) 소소리( 素 素 里 )에서 출토된 정문경 파편은 논산에서 출토되어 국보로 지정된 정문경과 대단히 유사한 형태와 무늬를 보이고 있다. 그림 4에서 보듯이 기하학적 문양의 배치와 세밀하고 가는 선으로 그린 동심원의 모습은 너무도 정교하다. 이 그림은 파편에 나타난 문양을 모사해 놓은 것이다. 그림 4. 당진 소소리에서 출토된 정문경의 파편.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21 다음으로 많이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은 청동기로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방울이 다. 그림 5는 충청남도 논산( 論 山 )에서 일괄 유물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이다. 출토 된 유물의 명칭은 모서리에 방울이 8개 부착된 팔주령( 八 珠 鈴 ),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루에 두 개의 방울이 부착된 쌍두령( 雙 頭 鈴 ), 손목에 낄 수 있도록 고안된 조합식쌍두령( 組 合 式 雙 頭 鈴 ), 나무 막대 끝에 꽂아서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는 간 두령( 竿 頭 鈴 ) 등이다. 그림 5. 논산에서 일괄 유물로 출토된 팔주령, 쌍두령, 조합식 쌍두령 및 간두령.

22 이용복 위의 팔주령( 八 珠 鈴 )은 모서리를 길게 연장한 팔각으로 된 청동판 끝에 각각 1 개씩 방울을 단 의기( 儀 器 )의 일종이다. 이 표면에는 움푹한 부분에 짧은 선을 조밀 하게 음각하여 십자( 十 字 ) 문양을 새겨 놓거나, 또는 방사선 형태의 일광( 日 光 ) 무 늬를 가운데에 위치시키고 짧은 방사선 모양의 선을 음각( 陰 刻 )하였다. 뒷면에는 아 예 문양이 없거나 표면과 같은 모양이 새겨져 있고 중심에는 고리가 붙어 있다. 방 울은 약간 이글어진 구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청동기 유물이 우리나라 전국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 물은 전시 또는 생활에 직접 활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특별한 제례 의식을 거 행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청동기 유물의 공통적 특징은 표면에 섬세 한 문양을 새겼다는 점이다. IV. 청동기 유물에 나타난 천문학 우리 조상은 예부터 다양한 형태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별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 이전 부여( 夫 餘 )는 영고( 迎 鼓 )라 하 여 12월 추수를 끝낸 뒤 섣달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추수를 감사하면서 노래와 춤 을 즐기던 제의( 祭 儀 )를 거행했다. 동예( 東 濊 )는 무천( 舞 天 )이라 하여 10월에 농사 를 마치고 10월에 택일하여 높은 산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던 행사를 했다. 이 러한 행사는 일종의 추수감사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고구려의 경우 중국의 문헌인 삼국지 의 위지편 동이전( 東 夷 傳 )에 따르면 고 구려 모든 마을의 남녀노소가 밤에 모여 서로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10월에 제사 를 지내면서 대회를 여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한다 고 하였다. 후한서 의 동이 전에도 10월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에 남녀가 모여 춤과 노래를 즐기고 귀신, 영 성, 사직에 제사하기를 즐겼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하더라. 라는 기록이 보인다. 신라시대에도 영성제( 靈 星 祭 )라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영성제 이외도 일월제 와 오성제를 지내면서 하늘에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이렇게 제천의식은 주로 별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삼국시대 전후에 행해졌다고 보기보다는 이미 그 전 상고시대부터 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발견 된 청동기 유물을 사용하던 고조선 시대에도 당연히 이와 유사한 제천의식이 있었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23 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천의식 중 중요한 대상은 북두칠성이었다고 보인다. 북두칠성은 천구 의 북극을 일주운동 하면서 밤 동안 시각을 알려준다. 이뿐만 아니라 초저녁이나 새벽에 북두칠성이 놓인 모습을 보고 계절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역법에 적용한 내용이 전한( 前 漢 ) 시대 회남왕( 淮 南 王 )이었던 유안( 劉 安 )이 저술한 회남자 ( 淮 南 子 ) 의 시칙훈( 時 則 訓 )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孟 春 之 月 招 搖 指 寅 昏 參 中 旦 尾 中 仲 春 之 月 招 搖 指 卯 昏 弧 中 旦 建 星 中 季 春 之 月 招 搖 指 辰 昏 七 星 旦 牽 牛 中 孟 夏 之 月 招 搖 指 巳 昏 翼 中 旦 婺 女 中 仲 夏 之 月 招 搖 指 午 昏 亢 中 旦 危 中 季 夏 之 月 招 搖 指 未 昏 心 中 旦 奎 中... 위의 내용은 계절에 따라 해가 진 후 초저녁인 혼각( 昏 刻 )에 북두칠성의 자루 끝에 위치한 초요성( 招 搖 星 )이 향한 방향에 따라 달의 명칭을 정한 것이다. 예를 들 어 혼각에 초요성이 인방( 寅 方 )을 향하는 달이 인월( 寅 月 )이라 하여 정월로 정한 것 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월( 子 月 )부터 해월( 亥 月 )까지 1년 12달의 계절과 관련된 시기를 북두칠성의 손잡이 끝에 위치한 초요성이 향한 방위를 이용하여 정했다. 따 라서 선사시대 이전부터 북두칠성은 달력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시계의 역할을 동시 에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두칠성은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별일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能 田 忠 亮 (1989)은 중국 고대 서적인 예기( 禮 記 ) 의 월령( 月 令 ) 편에 나오는 내용을 분석하여 예기 의 기록이 언제 완성되었 는지에 대한 연구도 수행했다.

24 이용복 그림 5. 태을구궁점반의 평면과 측면의 모습. 이는 일년의 길이를 8등분한 것으로 24기 중에서 팔정( 八 正 )에 해당한다. 팔정 이란 이분이지( 二 分 二 至 )인 춘분, 추분, 하지 및 동지이고, 사립( 四 立 )인 입춘, 입하, 입추 및 입동을 뜻한다. 이렇게 1년의 기간을 8등분 하는 방법은 이미 회남자( 淮 南 子 ) 에 나타난다. 1997년 7월 중국 안휘성( 安 徽 省 ) 부양현( 阜 陽 縣 )에서 한나라시 대 조성된 묘 속에서 발견된 태을구궁점반( 太 乙 九 宮 占 盤 )은 이를 잘 말해준다(그림 6). 이외에도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는 다양한 유물과 서적이 존재한다. 특히 평양 낙랑 고분에서 발견된 육임식반( 六 壬 式 盤 )은 그림 6에서 보듯이 중심 원 안에 북두칠성을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28수를 그려 넣고, 그 안쪽에 12 방위와 8방위를 표시하고 있다. 8방위에는 8괘를 표시하여 이분이지와 사립인 팔정( 八 正 ) 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확실하게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방위와 계절을 밝히고 있 다.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25 그림 6. 낙랑시대 왕 간( 盰 )의 묘에서 발굴한 육임식반( 馮 時 2005). 고조선 시대의 청동기 유물의 형태와 무늬를 분석해 보면 천문과 관련된 내용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청동기 유물이 제천의식에 사용되었다면 당연히 천상의 운행 현상을 유물 제작할 때 반영이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천문 현상과 관련된 몇 가지 특징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7. 청동거울과 팔방위( 八 方 位 )에 따른 북두칠성의 위치 변화. 청동검의 경우는 특별한 문양이 없지만, 청동거울의 경우 선으로 연결해서 만든 무늬는 별이나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앞의 그림 2에 나타난 무늬를 보면 중심에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원에서 방사선 형태의 삼각형 무늬를 배열하고 있다. 이것으

26 이용복 로 보아 중심에 태양이 위치하고 태양의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 다. 이는 강렬한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는 있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인다. 그림 3 과 그림 4의 청동거울을 보면 중심에 태양인 듯한 원형의 천체가 있고 그 주위 사 방위에 2개씩 동심원으로 8개의 원을 그려 놓았다. 이는 8방위를 뜻하기도 하지만 태양이 황도( 黃 道 ) 위에 있는 별자리 사이를 운행할 때 지나는 8개 지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는 별의 모습을 강조해서 그려 넣었을 수도 있다. 그림 7의 왼쪽의 유물은 대구 지산동에서 출토된 유물들(국립중앙박물관 1992) 중 구리거울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동환( 銅 環 )과 북두칠성을 배열해서 그린 것이다. 이는 혼각에 북두칠성의 배치 모양이 계절과 관계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특 별히 이 동환의 가장자리에는 용도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적 기호도 보인다. 그 림 7의 오른편에 청동 거울은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정문경( 精 文 鏡 )의 모습을 묘사 한 그림이다. 이 거울의 중심에는 태양으로 보이는 중심원이 있고 주위에 강한 태 양 광선이 방사선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청동거울은 단순히 사용자의 모습을 비추어 보던 거울의 기능이 아니라 제천의 식을 거행하기 위한 의기( 儀 器 )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청동거울의 이 면에 새긴 무늬는 주로 하늘의 중심적인 천체인 태양을 표시하고, 천체 운행 원리 를 포함하고 담고 있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운행하는 경로와 태양이 계절에 따라 운행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8. 충청남도 논산( 論 山 )과 덕산( 德 山 )에서 발굴된 팔주령( 八 珠 鈴 ).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27 다음 청동기 유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8개의 방울이 달려있는 팔주 령( 八 珠 鈴 )이다. 위의 그림 8에서 보듯이 팔주령의 모습은 마치 원주 위를 운행하는 태양이나 또는 8개의 별들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팔주령의 중심부에는 태양으로 보 이는 원형의 원이 그려져 있고 방사선 모양의 선이 그려져 있다. 또는 태양 모양 대신 십자( 十 字 ) 문양이 그려져 있다. 팔주령의 중심에 십자( 十 字 ) 문양은 지상 또 는 하늘의 방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9. 팔주령 주위에 북두칠성을 배치한 모습. 팔주령은 제천의식 때 사용하던 청동방울이다. 이 방울에는 중심에서 방사선 모 양으로 8방위를 따라 뻗어나가는 모양으로 표현했다. 그림 9에서 왼쪽의 팔주령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발굴된 것으로 중심에 천구북극 또는 태양으로 보이는 작은 원 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선을 연결해 놓고 그 위를 다시 작은 원으로 둘러싸고 있 다. 그 두 번째 원에서는 팔주령의 방울이 있는 방향으로 방사선 지선이 8개가 뻗 어나가고 있다. 이는 마치 하늘의 특정 방위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9의 오른쪽 팔주령은 전라남도 화순 대곡리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것은 중 심부분과 방울 위에 대단히 특이한 문양을 새겨 놓았다. 중심은 한 점에서 방사선 형태로 뻗어나가는 모습은 뚜렷하게 특정 방위를 향하고 있다. 마치 나선형으로 회

28 이용복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8개의 방울에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말려들어가는 아 령 을 서로 마주 붙여 놓은 모습이다. 따라서 8개의 방울 각각에 4개의 와상 문양 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이는 천국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하늘의 특정한 8방위를 명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는 천구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천구의 8방위에 있는 특 정한 별을 지칭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위의 그림 9에서 보면 외형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방울과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천체 운행을 알려주는 방위 또는 천체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팔주령의 팔각 형을 띠고 있는 외형적 모습은 천구북극을 중심으로 8방위와 우주의 모습을 상징화 한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 표면에 새겨 놓은 다양한 문양은 천체들의 운행 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상징화된 우주의 운행 체계는 천구북극을 중심으로 운행하는 북두칠성을 연상하게 된다. 즉, 일몰 후 혼각에 보이는 북두칠성의 위치를 계절에 따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혼각에 보이는 북두칠성의 놓인 위치를 이용하여 계절의 흐름 을 알고 또한 하루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상징물로 보인다. 즉, 이 유물에서 계절 과 시간이 변하는 우주의 운행 원리를 표시한 것이다. 고대 중국의 회남자 시칙훈에 기록된 것 같이 계절에 따라 혼각에 북두칠성 의 자루 부분이 향하는 방위가 계절이고, 하루 동안 이 자루가 향하는 방위가 변하 는 것이 시간의 흐름인 것이다. 역법을 바탕으로 보면 계절에 따라 8개의 방위를 향하는 시기는 팔정( 八 正 )을 의미하고, 하룻동안 8방위를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 은 시간이 3시간씩 경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V. 결론 이미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고조선 시대의 유물로 알려진 다양한 청동기 유물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것이 비파형동검, 청동거울, 팔주령 등이다. 이것들 의 용도는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것이 아니고 종교적 행사를 할 때 사용되던 의기로 여겨진다. 당시 종교적 행사는 하늘이나 별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의식( 祭 天 儀 式 )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 에 단군 신화와 관련된 내용 중 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왔다는 삼부인( 三 符 印 )이 비파형동검, 구리거울,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29 및 팔주령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늘과 통하는 상징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권위의 상징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청동기 유물은 고조선 시대 전 지역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꼭 필요한 필수적인 의기라고 볼 수 있다. 제정일치 시대였던 당시의 최고 지도자 는 이러한 유물을 가지고 의식에 사용했다. 이러한 의기에는 당연히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우주관과 천체 운행에 대한 사상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고조선 당 시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었다. 당시의 우주관의 핵심은 농사활동과 밀접한 계절변화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북두칠성 관측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북두칠성을 대단히 중요한 별자리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 으로 여겨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중요하게 나타난 다. 이러한 신앙의 하나로 고조선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 중에서 덮 개돌에 북두칠성을 새겨 놓거나 또는 바위를 지면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해 놓 고 칠성방위라 하여 제천의식의 장소로도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고구려 시대 까지도 전해져 고구려 고분 벽화 중 별자리가 그려진 것 중 가장 많이 등장하 는 별자리가 북두칠성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청동기 유물 3가지 중에서 동검은 하늘에 인간의 뜻을 알리고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고, 청동거울은 하늘의 뜻을 보고 읽어내 는 의기였고, 팔주령과 같은 방울은 인간의 염원을 하늘에 외치는 역할을 했을 것 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청동기 유물에는 하늘의 운행과 관련된 우주관을 담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우주관의 핵심은 북두칠성의 운행에 따른 계절과 시간의 흐름이다. 그러 므로 고조선시대 청동기 유물 중에서 동검, 청동거울, 팔주령 등에 북두칠성과 관련 된 우주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물들은 모두 제천의식에 사용한 의기라는 점이다. 제천의식은 당연히 천 체나 별이 대상이고, 그 천체들의 운행 원리에 대한 신비감이다. 둘째, 유물들의 외형적인 모습이 당시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청동거울의 원 형인 점은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모습이다. 또한 팔주령의 8방위는 계절의 구

30 이용복 분, 시간의 구분, 하늘의 영역 등을 나눈 것이다. 특히 계절에 따라 북두칠성의 자 루의 방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유물에 나타난 다양한 문양은 태양이나 별이 강한 빛을 방사선 형태로 방 출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청동 유물의 표면에 새긴 다양한 문양은 대부분 천체의 모습을 표현하고, 천체의 운행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31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2, 한국의 청동기 문화, 범우사 김영호 1984, 정다산의 역사사상, 한국의 역사사상, 한국사상전집 5, 삼성출판사 김정배 1991, 북한의 우리 고대사 인식, 대륙연구소출판사 能 田 忠 亮 1989, 東 洋 天 文 學 史 論 叢, 月 令 の 觀 測 年 代 算 定, 恒 星 史 박광용 1980,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 한국사론, 6, 1980 이건무 1992, 한국의 요령식동검 문화, 한국의 청동기 문화, 범우사 이형구 1999, 고조선( 古 朝 鮮 )에 대한 제인식( 諸 認 識 )- 단군과 고조선, 살림터 馮 時 2005, 中 國 古 代 的 天 文 與 人 文,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