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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pp.159-195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 공공성의 사회적 구성과 정치과정의 동학 - 2) 홍성태 요 약 (Jürgen Habermas).,.. 주제어: 공공성, 정치 과정,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Ⅰ. 머리말 공공성에 대한 위기진단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 주의 프로그램의 정치경제적 결과가 공공성의 파괴를 불러왔다. 국가역할의 축소와 시장영역의 확대가 저돌적으로 추진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 제적 양극화의 심각성이 한국사회의 최대 현안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국가가 그 고유의 역할로서 공공성을 지키지 못할망정 훼손하거나 시장에 팔아넘긴 다는, 즉 능력 없는 국가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사회적 공감대를 크게 형성했 이 논문은 2011 년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1-330-B00128).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socesti@gmail.com)

160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다. 공공부문의 민영화 논란뿐만 아니라 노동, 교육, 주거, 환경, 언론 등에 이 르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공공성의 위기 라는 논제 아래 논쟁적으로 다루어 지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사회적 현안들이 공공성의 위기를 확증하거나 그것 의 징후로 파악될 정도로 공공성은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 는 데 불가결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공공성의 위기진단이 이념과 권력의 사회적 관계를 넘어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지만, 사실상 그 해 법은 다시 이념과 권력의 사회적 관계로 회귀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쩌면 단지 공공성의 위기라는 전사회적 공감대만 형성되어 있을 뿐, 정작 공공성이 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를 놓고 벌이는 관념의 대화조차 부재했던 건 아닌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최갑수, 2001; 이승훈, 2008; 조한상, 2009; 박영도, 2011; 사이토 준이치, 2009). 공공성을 바라보는 가장 일반적인 시각 은 규범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규범적 관점에서 공공성 을 언급할 때, 그것은 보통 목적어로 사용되며, 실현, 확보, 강화해야할 공공의 가치로 인 식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국가와 시장의 횡 포로부터 보호해야할 공공의 영역 혹은 가치로서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대부 분의 논의들이 공공성에 내장된 규범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가령, 공공성 의 규범적 가치로서 책임성과 민주적 통제성, 연대와 정의, 공동체의식과 참 여, 개방과 공개성, 세대간 연대와 책임을 강조하거나( 신진욱, 2007), 공공성 을 강화하거나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공공성 투쟁을 시민 사회와 사회운동의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설정한다( 신정환, 2007; 조희연, 2007; 오건호, 2008; 홍성태, 2008). 이처럼 규범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설계는 권력의 사유화에 맞서 공공성이라는 가치지향적 원천을 실천적 대항담론으로 전략화 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하기 위한 접 근방법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규범적으로 구성된 공공성의 다양한 관념들을 어떻게 분석의 지평 위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61 로 내려놓을 것인가? 공공성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한 규범적 의미를 갖는 다차원적인 개념이다. 이 때문에 공공성을 둘러싼 내적 갈등과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의 질문 앞에 주체 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반응들이 표출된다. 그러나 규범적 관점에서 논의되는 공공성은 국가와 시민사회 혹은 시장과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정함 으로써 국가, 시장, 시민사회 내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여러 규범적 가 치들의 충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규범적 가치의 충돌은 다 양한 공공성 혹은 공공성의 부분집합을 인정해야 하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 다. 따라서 규범적으로 구성된 공공성의 다양한 관념들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성을 둘러싼 다양한 힘들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규범적 시각에서 공공성은 대체로 국가 대( 對 ) 시민사회, 혹은 시장 대( 對 ) 시 민사회의 대결구도 안에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권력은 국가나 시 장에 집중돼 있으며 시민사회는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한 대항권력을 행사할 뿐이다. 그러나 공공성을 둘러싼 사회적 역학관계는 단순한 대결구도가 아닌 거시와 미시를 아우르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수준에서 발견된다. 가령 공공성 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을 두고서 갈등의 복잡계가 발생하는 경우를 우리 는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미FTA 의 사례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성의 이론화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힘들의 복잡한 역학관 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셋째, 공공성의 목적합리성을 어떻게 경계할 것인가? 규범적 시각에서 공 공성은 목적합리성의 정치적 결과로 구조화될 수 있다. 그래서 공공성을 이루 는 절차의 합리성과 정당성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차단되기 쉬운 정치구조를 만들어내기 쉽다. 공공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으로서 추구되 는 이념형적 가치지향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가치지향에 이 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정치과정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개인은 전체 속 에서만이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에서 권력의 규

162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칙과 명령의 체계에 미리 규정된 공공성은 개인의 자율성, 타자와의 공존과 연대성을 강조하며 합리적으로 규정된 정당한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는 민주 주의의 공공성과 대척점을 이룬다. 이처럼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제 기되는 문제는 바로 어떻게 구성된 공공성인가에 있다. 요컨대 규범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공공성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하기 위해 서는 공공성의 다양한 관념적 구성에 따른 규범적 가치의 충돌, 정치사회적 힘들의 역학관계, 목적합리성에 대한 경계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는 공공성이 정치체계에 의해 미리 규정되거나 주어진 것 또는 자연발생적으 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지하듯, 사회에는 개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공존한다. 그 공존의 조건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적 개인들의 이해관계와 자기결정을 규범적 틀 ( 혹은 공공영역) 속에서 인정하는 가운데 성립된다. 여기서 공존을 위한 사적 자율성의 규범적 틀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원칙적으로 규범이나 제도는 사 적 개인들이 공공의 규범 틀 속에서의 지속적인 정치적 상호작용을 통해 필 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규범적 관점으로부터 공공성의 올바른 사 회적 형상을 빌려올 수는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공공성의 사회적 실재를 확 인하기 위해서는 공론장을 매개로 펼쳐지는 정치과정의 동학에 논의를 집중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공공성은 공론장에서의 정치과정에 착근되어 하 나의 사회적 실재성을 갖는다. 공공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본연의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해, 이 논문은 다음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이론 적 탐색을 시도한다. 첫째, 공공성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가? 둘째, 공 론장은 공공성의 정치과정과 어떻게 결합되는가? 셋째, 공공성의 정치과정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글은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공공성의 사회구 성적 논리를 정치과정이라는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공성 을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에 착근된 정치적 상호작용의 메커니즘 으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63 로 이해한다. 공공성은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정치과정 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성의 사회적 구성을 정치과 정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거시와 미시의 복합적 관점에서 공공성의 구조와 동 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공론장 논의는 공공성의 사회적 구성과 정치과정의 동학을 분석 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공공성과 공론장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이 글에서는, 하버마스의 이론적 궤적에 따라 공론장 개념 안에서 다루는 의사소통 과 토의정치 를 공공성의 정치과정을 이루는 주제어로 옮겨 논의한다. 1) 이는 공공성을 정치 과정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문제, 즉 공론장을 중심으로 다룰 때 가장 적 절히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공공성은 그 자체가 결과 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역동적인 정치과정을 읽어 내 해석하는 문제이다. Ⅱ. 공공성의 여러 관념들 공공성의 다양한 용례를 하나로 묶어낼 방법은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 변이 공공성의 개념을 명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 다도 파편화된 공공성의 여러 이미지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화용론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공공성들과 마주한다. 공공성의 담론구조를 이루는 주제어들이 대부분 공적인 것 (the public) 의 특 1) 공공성과 관련한 개념적 혼선은 주로 독일어의 Ӧffentlichkeit와 영어의 public sphere 사이에서 이것들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 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public sphere 를 공공성 의 논변적 조건(discoursive condition) 을 나타내는 의사소통 영역이라는 강한 관념에 따라 공론장 으로 번역 해 사용한다. 이 글은 공공성을 핵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공론장을 수반하는 정치 과정 이라는 맥락에서 두 주제어의 개념적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 을 채택한 것이다.

164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성이 발현되는 조건과 상황, 장소/ 영역, 이슈/ 의제, 주체와 객체, 절차적 방법 에 대한 문제들과 비교적 느슨한 수준에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 성의 담론구조에서는 정작 명료하게 합의된 개념으로서의 공공성을 발견하기 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공공성을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적 학술적 영역에서 사용하는 공공성에 각인된 이미지들을 우선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다소 산만하게 흐트러진 여러 공공성들을 관통하는, 즉 공공 성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할 수 있다. 공공성이라는 용어는 크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이미지를 내비추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가공공성이다. 좁은 의미에서 국가적 이라는 말 은 곧 공공적 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표 현되는 형태가 바로 국가가 표방하는 공공정책 의 가치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성은 국가의 공공정책이 공식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의미한다. 이를테 면, 보건, 의료, 주거, 노동, 교육, 환경, 가족 등 공공복리와 관련된 광범한 공 적 이슈들은 국가마다 공공정책 혹은 사회정책에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인 정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최소한의 명목적인 수준에서 공공성의 지향을 표방 한다. 여기서 공공성의 이미지는 공중보건, 공공근로, 공공주택, 공교육 등에 서처럼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책임과 역할로 나타난다. 이런 측 면에서 공공복리에 관한 사회체계의 기능적 토대가 어떻게 구조화되었는가에 따라 사회구성원들이 공공성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둘째, 공공재(public goods) 또한 공공성을 상기시키는 대표적인 이미지들 중 하나이다. 공공재는 군대나 경찰 또는 소방과 같은 보편적 사회보호 서비 스에서부터 공원, 공중화장실, 도로교통, 에너지 발전소 등 사회편의를 위한 기본시설 그리고 물, 공기, 산, 바다와 같은 자연재화나 공유자원을 지칭한다. 공공재는 원칙적으로 시장가격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 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그러나 공적 기능을 갖는 시설과 서비스 그리고 자연환경조차 시장권력과 국가관료들의 사적 이해관계 에 의해 빠른 속도로 공공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공공재는 시 장의 무차별적인 상품화 전략과 독점과 담합의 횡포 그리고 국가의 취약한 관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65 리능력에 맞서 보호되어야할 공공적 특성을 갖는다. 셋째, 시장의 영역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을 중심으로 공공성의 이미지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지속가능한 기업의 조건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은 사적 이윤추구라는 시장 고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업윤리의 신장과 사회로부터의 신뢰가 더욱더 절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가를 넘어선 국제사회로부터의 법적 도적 압력과 윤리경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주창활동도 증대했다. 이제 기업은 단지 소비자를 상대로 영리를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에서, 사회 속에서 공존하고 성장하는 생태학적 존재로서의 기업시민 (corporate citizen) 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Carrol, 1991: 40-43). 이런 맥락에서 강조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공공성의 지평을 국가 와 시민사회에서 시장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 평가할 수 있다( 조대엽, 2007). 그러나 근본적으로 시장은 공공복리와 모순 적인 공간이기에 이러한 시장 공공성의 이미지화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넷째, 사회운동이 국가와 시장의 개혁을 주장하며 내거는 사회정의와 공 익 은 운동의 표상을 공공성과 연관시키게 만든다. 국가의 공공성 혹은 관제 적 공공성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사회운동에서 표출되는 운동의 이슈들은 대 중들에게 공공성을 정의와 공익의 차원에서 수용하게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국가나 시장에 대항적 성격을 갖는 운동의 이슈들은 시장권력과 국가관 료의 독점적 횡포에 취약한 국가공공성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이 때 운동공공 성은 대항적 공공성으로서, 권력엘리트들에 의해 침식된 공공성의 정상화, 즉 사회정의와 공익의 복원이라는 대의( 大 義 ) 적 과제로 설정된 연대의 프레임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민영화 반대, 공교육 정상화, 주거환경 개선,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민주화, 보편적 인권을 위한 각종 차별반대 운동 등은 사회 운동이 추구해야할 정의와 공익의 가치를 공공성이라는 프레임으로 표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같은 운동공공성은 마땅히 추구되어야할 사회정의와 공익의 이슈 및 범위, 즉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는 공공성의 규범적 정당성을 제

166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준거로 제시될 수 있다. 다섯째, 언론매체에 투영된 공적 성격과 공개성 그리고 의사소통의 중추적 기능은 공공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특히 언론매체는 정치적 공론장의 인 프라를 형성한다. 또한 권력의 원천이라 할 공론의 형성에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저널리스트들은 어젠더 설정과 이슈 프레이밍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데, 이는 언론매체가 정치적 공론장에서 보 다 큰 영향력 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활동가들 사이에 공공의 영향력을 배분하 는 일에 개입하기 때문이다(Callaghan and Schnell, 2005; Habermas, 2006: 419). 그러나 하버마스(Habermas, 2001: 32) 가 강조했듯이, 언론권력이 여론 을 조작하는 데 행사될 때, 공개성의 원리가 갖는 순수함은 강탈당하게 된다. 따라서 언론은 국가나 시장으로부터의 예속적 권력화를 견제하는 가운데, 공 개성의 확장을 통해 의사소통의 질서를 활성화시켜 공론장의 선순환적 기능 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형성된 행위양식의 규범적 질서는 공공성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예를 들어 교통질서는 법적 적 측면에서 구현된 제도 도로를 공유하고, 차선과 신호를 지키며, 음주운전과 과 속을 금지하고,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등 대표적인 문화적 공공성 의 한 사례이다. 교통질서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공중도덕은 사회의 질서 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지켜야할 최소 수준의 사회문화적 규범으 로서 공공성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생활세계에서 강 조되는 공공성의 문화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들이 사회 를 이루고 유지하며, 그 안에서 자율성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범 적 가치이다. 마지막으로, 대표성을 갖는 행위자의 공적인 책임성이 공인(public man) 의 덕목으로서 공공성의 의미를 구성한다. 이를 테면, 우리는 정치인이나 국가관 료는 물론 경찰, 군대, 심지어 관공서와 같은 공공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까지도 공공의 가치가 투영된 이미지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 대표성과 책임성을 갖는 행위자에게 기대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모습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67 으로서 공공성의 이미지, 그것은 사적인 이해관계가 완전히 배제된 공공을 위 한 기본적인 사회적 덕목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에게 광범한 영 향을 미치는 대표성을 갖는 행위자들이 공적인 영향력을 독점하거나 남용하 지 않도록 결과에 대한 법적 제도적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역할과 지위의 공공성을 공정과 정의의 리더십으로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 적인 조건이다. < 표 1> 공공성의 일곱 가지 이미지 공공성의 주요 이미지들 의미구성 구성적 차원 공공정책 국가공공성 거시 공공재 반독점ㆍ비시장적 공공성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사회정의와 공익성 정보의 공개성 사회문화적 규범 공적 행위자로서의 지위와 역할 시장공공성 운동공공성 언론공공성 문화공공성 공인의 공공성 공공성 미시 이상에서 살펴본 공공성의 일곱 가지 이미지들은 개념의 다의성을 시사한 다. 공공성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다양한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공공성의 의 미구성은 공공정책과 같은 거시적 차원에서 공적 행위자의 지위와 역할이라 는 미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사회체계 전반에 편재되어 있다. 공공성의 고유 한 공간적 귀속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공공성의 작동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게다가 공공성은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리고 사회체계와 권력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 들로 공공성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암묵적으로 정의된 다양한 의미들을 일 정하게 합의된 맥락 위에서 정렬할 수 없었으며, 결국 다차원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에 대한 특정한 관념들을 채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68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공공성의 본질에 (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성의 사회적 결과물에 대한 현상인식의 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공 공성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공공성의 여러 사회적 결과 혹은 특정한 형상 들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과정과 본질에 대한 탐구를 진척시키지 못한 아쉬 움이 남는다. 이제 우리에게 부여된 새로운 과제는 공공성의 본질에 다가서는 방법에 관한 본격적인 탐구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공공성의 관념들을 관통하는 일반화된 개념정의 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공공성의 관념을 이루는 여러 조각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유형화하거나 범주화시켜 정렬하기보다 새로운 해석적 프레임을 도출해 공공성의 이론적 일반화에 다가설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공공성을 주 어진 것 이나 자연발생적인 것 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 는 공공성의 정치적 맥락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탐색지점은 공공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공공성을 이루는 정치과정의 내용과 성격에 따른 규정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 을 정치과정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때, 앞서 서술한 일곱 가지의 이미지들은 공공성의 역동적인 정치과정이 만들어낸 정치적 될 수 있다. 사회적 산물이라고 재해석 Ⅲ. 공공성의 사회구성적 논리 공공성은 어딘가에서 혹은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적으로 구성되는 본연의 속성을 갖는다.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그 구성을 가능케 하는 힘은 ( 공론장 안에서) 사회통합의 여러 ( 잠재적) 기능적 자원들이 ( 의사소통을 통해) 정치적 상호작용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 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회통합의 기능적 자원들은 정당, 기업, 노조, 종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69 교단체, 교육기관, 시민결사체 등과 같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제도화된 기능 적 조직을 넘어 제도화되지 않은 조직 및 공동체들과 생활세계의 탈조직화된 미시적 행위자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상호작용은 넓 은 의미에서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자, 정치적 이슈들 그리고 정치과정의 지배구조를 이루는 절차적 정당성과 행위양식의 문제로부터 정의된다. 결국 공공성의 사회구성적 힘은 어떠한 정치적 상호작용의 구조적 맥락에서, 얼마 나 다양한 행위자들이, 공론으로서의 정치적 이슈를, 어떠한 행위양식을 통해, 얼마나 합리적으로 모아내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성의 사회적 구성이라는 테제는 비판이론의 궤적에서 볼 때, 탐구의 초점을 언어학적 선 회(linguistic turn) 를 통해 도구적 이성에서 의사소통적 이성으로 집중시킨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의사소통에 관한 논의에 기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 공성은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정치과정을 통해 사회적 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공론장의 구조변동 [1962] 을 통해 17세 기말부터 19 세기 초까지 유럽( 영국, 프랑스, 독일) 에서 출현한 부르주아 공론 장의 자유주의적 모델과 그 구조변동을 다루었다. 여기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의 영역으로 정의된다. 그들은 18세기 초반까지 커피하우스와 살롱, 만찬회 등지에서 궁정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는 문예적 공 론장을 제도화했다. 이후 그 공론장은 중산층을 넘어 수공업자와 소상인까지 포괄함은 물론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한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공론장 에서 이루어졌던 예술과 문학에 대한 비평 혹은 지적 경연이 이제 경제논쟁과 정치논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버마스(2001: 107-109) 는 이러한 공론장의 확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 는 제도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지위에 따른 사회적 위계질서 와 경제적 예속관계를 초월한 동등성의 원칙. 둘째, 작품을 상품으로 접근하 게 된 사적 개인들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한 해석의 탈독점화. 셋째, 원칙적 으로 비폐쇄성 혹은 개방성을 전제한 토론하는 공중의 출현. 요컨대 문예적 공론장에서 정치적 공론장으로의 확장 내지 발전은 사적 개인들이 인간의

170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자격으로 그들의 주체성에 대해 의사소통할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자격으로 그들의 공동이익에 따라 공권력을 규정 ( 하버마스, 2001: 133) 함으로써 가능 했다. 즉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이 소유자와 인간이라는 두 가지 역할 을 갖게 된 것이다. 공론장 내에서 작동하는 자율적 인격들 간의 합리적 판적 논쟁에 기반한 의사소통적 합의는 끌었다. 비 18세기의 유럽을 이성의 시대로 이 그러나 제도화된 부르주아 공론장은 계몽의 문화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공론장으로 확장 침투하면서 구조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가 분 리된 곳에서는 경제에 대한 규제, 조직된 압력집단에 의한 공적 관할권의 사 적 이양 등과 같은 국가의 점진적인 사회화와 동시에 사회의 국가화라는 변 증법 ( 하버마스, 2001: 246) 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상호침투가 발생했다. 이 에 따라 사법의 공법화와 공법의 사법화가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의 경계를 흩 뜨려 놓고, 가족제도는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재생산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비판적 공중의 토대를 이루었던 신문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대중적 으로 상업화되면서 공중은 파괴되고 문화는 비판적 추론을 상실한 이데올로 기적 소비의 장이 되었다. 의회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공적 토론의 집회 에서 특수한 이해관계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을 반영하는 전시적 조작적 기 능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특유의 사회학적 언어로 공론 장의 구조변동, 즉 시민사회에서 의사소통적 이성이 파괴되는 구조적 경로를 역사적으로 추적했다. 년 한편, 공론장의 구조변동 이 독일에서 처음 출간된 지 27년이 지나 1989 영어로 번역되어 널리 소개되면서 공론장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이 일기 시작했다(Calhoun, 1992; Eder, 2006). 그 논쟁의 한 가운데에는 하버마스가 채택한 역사적 모델의 이상화(idealization) 에 대한 비판적 논거들이 중심을 이 루었다. 많은 비판가들은 공론장이 단일한 역사적 모델이 아닌 여러 가지의 모델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권력에 맞선 공론장의 순수영역이라는 관 념은 역사적 실재에 대한 낭만주의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 이 같은 공론장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은 보다 최근의 논쟁들을 통해 비서구사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71 회에서 출현한 공론장과 전지구적 공론장의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 다(Hoexer et al. 2002; Kӧgler, 2005; Castells, 2008). 그럼에도 반세기 전 하버마스가 공론화한 정치적 공론장의 핵심은 그가 1990 년 신판 서문에서 강하게 제기했듯이( 하버마스, 2001: 50) 시민사회의 재발견 3) 이라는 표제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Habermas, 1992: 452-455). 부르주아 공론장의 정치적 과제가 시민사회의 규정이었듯이, 이제 의사소통적 이성이 파괴된 근대성의 황량한 지평 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취해 야 할 정치적 입장은 바로 시민사회의 재발견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과정의 기 획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의 자유와 이성의 복원을 위한 시대 진단적 관점을 의사소통행위이론 [1981] 에서 제시했다.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에서 가장 강력한 이론적 프레임은 단연 의사소통행 위이론 에서 제안한 체계(system) 와 생활세계(lifeworld) 의 구조이다. 그는 현 대사회의 발전과 위기의 역동성에 대한 전망을 체계-생활세계의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화폐와 권력이라는 매체에 의해 조절되는 행정체계로 이루어진 경제체계와 체계의 도구적 이성이 생활세계에 기초한 공론장의 의 사소통적 이성의 망으로부터 견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종국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화에서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위험을 방어하는 것 이다. 2) 이와 관련해 대표적으로 네그트와 클루게(Negt and Kluge, 1993) 는 하버마스의 공 론장 모델에서 담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공론장 을 강조했다. 프롤레타리아 공론 장은 권력의 한 수단으로서 공론장을 전유했던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해 형성되었 다. 이런 의미에서 하버마스의 초기 저작에서 묘사한 공론장은 부르주아의 독재 로 간주된다. 그래서 혁명적 부르주아가 재현하는 사회라는 이상은 대중들을 탈정 치화시키는 효과를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는 신기루라고 비난받게 된다 (Eder, 2006: 336). 3)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 의 초판에서 시민사회를 상품교환과 사회적 노동 의 영역으로 묘사했지만, 그로부터 사실성과 타당성 이 출간된 해인 1992년 30 년이 지난 후엔 시민사회의 제도적 핵심은 국가와 경제의 영역 밖에 위치한 자 발적 결사로 구성된다 고 강조했다(Habermas, 1992: 453).

172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화폐나 권력과 같은 조정메커니즘을 생활세계에 닻을 내리게 하는 제도 들이, 생활세계의 영향력이 형식적으로 조직된 행위영역 쪽으로 흐르도 록 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체계의 영향력이 의사소통적으로 구조화된 행위연관 쪽으로 흐르게 하거나 ( 중략) 전자의 경우 체계보존을 생 활세계의 규범적 제약에 굴복시키는 제도적 틀로 기능하는 것이고, 후 자의 경우에는 생활세계를 물질적 재생산이라는 체계의 압박에 종식시 키며, 그리하여 체계의 부속물로 만드는 토대로 기능하는 것이라 하겠 다( 하버마스, 2006b: 290). 현대사회의 암울한 전망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 이후 전개되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하버마스는 생한 체계와 생활세계가 분리 혹은 분화되면서 발 체계의 복잡성 증가와 생활세계의 합리화 사이에 성립하는 연관성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사회가 마주하는 총체적인 사회적 병리(social pathology) 를 설명하려 했다. 즉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체계복잡성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고, 체계복잡성이 과도하게 증가하면서 고삐 풀린 체계명령은 생활세계를 도구화 하고 생활세계의 수용능력을 폭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전망이 그 것이다( 하버마스, 2006b: 247). 이는 합리화된 생활세계는 하부체계들의 발생 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지만, 하부체계들의 자립화된 명령이 반대로 생활세계 자체에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이다( 하버마스, 2006b: 292). 결국 현대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의 잠재력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구조적 접점 에서 확인된다. 그래서 공공성의 정치과정은 현대사회의 갈등과 모순의 잠재 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또한 공공성의 사회적 재구성을 위해서 체계와 생활세 계를 매개하는 정치적 공론장의 민주주의적 기획을 필요로 한다. 이제 우리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에 기대어 공공성의 사회구성적 논리 를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자율적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자기결정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의 존재이다. 둘째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다루어 지는 의사소통적 공론이다. 셋째는 공론장을 통한 정치적 ( 의사소통적) 상호 작용이 만들어내는 정치과정의 지배구조이다. 이러한 공공성의 사회구성적 논 리를 바탕으로 우리는 공공성을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에 착근된 정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73 치적 상호작용의 메커니즘 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개념정의를 따르지 않더라도, 공공성 논의에서는 언제나 사회적 공존의 원칙 이라는 대전제를 고려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공공성의 여러 이미지들조차도 사실상 사회적 공존의 원칙 위에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사회적 공존의 원칙은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에 착 근된 정치적 상호작용의 메커니즘, 즉 공공성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공존 의 원칙이 어느 사회에서나 동일한 제도적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사회적 공존 은 어떻게 가능한가? 어쩌면 이것이 공공성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의 귀 착점일 수도 있다. Ⅳ. 공론장의 증폭과 체계-생활세계의 공공성 1. 공론장과 공공성의 기회구조 하버마스에게 사회적 공존의 원칙은 단연 민주주의라는 이상형(ideal type) 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과 형식은 바로 정치적 공론장에서 이루어 지는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 의사소통 과정, 즉 공공성의 정치과정으로 채워진 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적 공공성은 필연적으로 공론장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정치과정의 민주화를 정치적 공론장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결과로 이해할 때, 논의의 초점은 어떤 공론장인가로 모아진다. 즉 공론장의 구성적 성격을 탐색함으로써 공공성의 정치과정이 이루어지는 기회구조를 보다 효과 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성과 타당성 [1992] 에서 밝힌 공론장에 관한 하버마스의 진술은 이러한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 을 준다.

174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공론장을 기술하는 최선의 길은 내용과 태도표명의 소통을 위한, 따라 서 의견들의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로 기술하는 것이다. ( 중략) 그 공간은 이미 함께 있거나 앞으로 함께 있게 될 잠재적인 대화 상대자 모두에게 원칙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 중략) 권력에 의해 통제된 공론장의 구조는 결실있는 명료한 토론을 배제한다( 하버마스, 2007: 478-481). 공공성의 ( 정치과정적) 기회구조는 일차적으로 공론장에 대한 접근의 개방 성과 폐쇄성으로 정의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공론장이 개방적일수록 공공성 의 기회구조는 자유주의 모델이나 공화주의 모델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반 대로 공론장이 폐쇄적일수록 공공성의 기회구조는 조합주의 모델이나 전체주 의 모델에 규범적 친화성을 보이게 된다. 전자의 경우 의사소통적 헤게모니는 시민사회를 지향하며 후자는 국가권력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성 의 기회구조는 공론장의 개방과 폐쇄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넘어 훨씬 복잡한 수준의 구성적 성격을 갖는다. 공공성의 기회구조는 공론장에서 의사소통의 구조와 채널에 따른 이차적 기준을 통해 구체화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는 사회문제의 압력에 반응하고 영 향력 있는 의견을 자극하는, 광범위하게 엮여 있는 센서들의 네트워크 ( 하버 마스, 2007: 402) 로서 집합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리는 행정체계와 대비 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의사소통 채널은 사적인 삶의 영역과 공 론장을 매개함으로써 한쪽에는 친밀성을 다른 쪽에는 공공성을 보장하는 가 운데 이슈들이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수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버마스, 2007: 485).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적 의사소통 구조는 공론장 이 개방적일수록 확장되는 경향을 보이며, 의사소통 채널은 다양성과 유연성 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아래의 < 그림 1> 과 < 표 2> 에서와 같이, 공공성의 기회구조는 공론장의 구 성적 성격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의 정체모델과 규범적 친화성을 갖는다. 우선, 공론장에 대한 접근이 개방적인 상태에서 의사소통의 구조적 면적과 채 널의 다양성 및 유연성이 동시에 확보되는 경우이다(B). 이는 공공성의 기회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75 < 그림 1> 공론장과 공공성의 정치과정적 기회구조 < 표 2> 정체모델의 규범적 친화성과 의사소통 구조의 면적 구분 규범적 친화성 의사소통 구조의 면적 A 조합주의 모델 B 공화주의 모델 C 전체주의 모델 D 자유주의 모델 구조가 확장된 정체모델로서 시민사회에서 공론의 참여가 강조되는 공화주 의 모델 과 규범적 친화성을 갖는다. 둘째, 공론장에 대한 접근이 개방적일지 라도 의사소통의 구조가 채널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제한적인 경우이다

176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D). 이 때 공공성의 기회구조는 이익집단의 정치가 강조되는 자유주의 모델 과 규범적 친화성을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의사소통 구조의 면적과 채널의 다양성은 언제나 비례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왜냐 하면, 채널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조직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의사소 통의 네트워크가 확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론장에 대한 접근이 대단히 폐쇄적이어서 의사소통에 원천적인 구 조적 제약이 따르는 경우를 전체주의 모델 에서 발견할 수 있다(C). 넷째, 공 론장에 대한 접근은 비교적 폐쇄적이며 의사소통의 구조가 채널의 경직성에 따라 제한적일 경우이다(A). 이는 공공성의 기회구조가 국가에 의해 제한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조합주의 모델 과 규범적 친화성을 갖는다. 특히 의 사소통의 채널이 다양하게 제도화될지라도 네트워크가 자동적으로 확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령 의사소통의 네트워크가 정치인이나 전문 가들에 의해서만 조밀한 구조를 이룬다면, 고도로 제도화된 채널이 다양성을 보일지라도 일반 공중들과의 구조적 공백이 크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 다. 4) 이런 측면에서 국가코포라티즘적 공론장의 궁극적인 한계는 수동적으로 제도화된 시민사회의 탈정치화 경향일 것이다. 요컨대 공공성과 공론장의 관계설정에서 보았을 때, 공공성은 공론장의 구 성적 성격과 정치과정의 기회구조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공공성을 위한 전략은 언제나 현실진단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체계와 생활 세계에서의 공공성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공 존의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략, 즉 공공성의 정치과정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이 하버마스의 통찰에 기대어 공공성의 복잡한 얼개를 읽어내는 유 용한 접근방법일 것이다. 4)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는 공중에게 결정의 부담을 면제시 켜준다. 그리고 그 결정은 의결을 담당하는 제도에 일임된다. 공론장에서 발언은 주제에 따라 그리고 긍정적 태도 및 부정적 태도에 따라 분류된다. 정보와 근거들 은 가공되어 초점이 명료한 의견을 형성한다( 하버마스, 2007: 480-481).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77 2. 체계-생활세계의 공공성 구조 아래의 < 그림 2> 는 체계-생활세계의 개념틀을 공공성의 구조라는 맥락에 서 도식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계와 생활세계에서 공공성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체계- 생활세계 의 공공성 구조는 다음과 같은 구성적 특징을 보여준다. < 그림 2> 체계-생활세계의 공공성 구조 첫째, 체계- 생활세계의 공공성은 구조적 편재성 을 갖는다. 여기서 편재성 (ubiquity)이란 정치적 공론장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결과로서 공공성의 중심 위치가 체계와 생활세계의 전역에 걸쳐 구조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성을 의미 한다. 단적인 예로,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구조변동 에서 논의한 과시적 공공 성에서 문예적 공론장으로, 문예적 공론장에서 정치적 공론장으로의 구조변동 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사적 분리로부터 발생한 구조적 긴장으로 인한 공 론장 자체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공공성의 정치과정적 기회구조의 팽창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확장된 공론장은 생활세계의 미시적 차원에서 체 계의 거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사회체계 전역에 공공성을 착근시키는 결과 를 가져왔다. 이는 체계와 생활세계가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구조적으로 분리

178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되면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매개영역으로서 공론장의 공공성 확장에 따 른 사회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공공성, 시장공공성 그리 고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사적 영역의 공공성에 관한 일련의 해석들이 암묵적 으로 가정하는 공공성 일반의 특징은 바로 공론장의 정치적 기능과 압력에 있 다. 공론장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의 일부이지만, 국가와 시장뿐만 아니라 사 회체계 전체의 사안을 다루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구조적 편재 성을 가능케 한다. 둘째, 체계- 생활세계의 공공성은 사회통합 의 여러 기능적 자원들이 정치 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질서의 구조를 보여준다. 물론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사 회통합은 체계의 작동 메커니즘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실천에 의 해 보장된다( 하버마스, 2006b: 241-247). 반면, 체계통합은 주관적으로 조정되 지 않은 개별 결정들에 대한 비규범적 조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버 마스에게 사회통합의 기능적 자원들은 규범과 의사소통에 의한 합의가 이루 어지는 생활세계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버마스가 제안한 사회 통합(social integration) 과 체계통합(systemic integration) 의 구별이 궁극적으 로는 민주적 의사소통의 질서에 의해 조건지어진 사회의 통합(integration of society) 을 향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5) 사회의 통합이라는 문제는 분 화된 체계와 생활세계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즉 체계와 생활세계 의 정치적 상호작용을 전제한다. 따라서 체계-생활세계의 공공성은 사회통합 의 주요 기능적 자원들, 즉 국가기관, 기업, 자발적 결사체, 언론매체 등이 중 심축으로 구성된 정치적 상호작용의 질서를 탐색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공 공성의 다층적인 구조적 맥락은 사회통합의 기능적 자원들이 귀속된 공간으 로부터 독해가 시작된다. 5) 하버마스는 사실성과 타당성 이후의 저작인 이질성의 포용 [1996] 에서 통합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으로 복합적 사회의 존속을 보장하는 동시에 통합을 가능하 게 하는 전제조건으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보편주의 를 강조한다. 이러한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갈등조정과 상호이해의 의사소통적 절차는 복합사회의 결속 을 위한 연결고리가 된다. 여기서 강조하는 타인의 이질성에 대한 포용 은 공공성 에 대한 하버마스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79 셋째, 체계- 생활세계는 공공성을 둘러싼 권력 의 산출과 균형의 구조를 반 영한다. 이는 체계-생활세계에서 공공성이 일정한 권력구조를 기반으로 구성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권력의 균형은 공공성의 구조적 성격을 읽어내 는 데 유용한 척도로 제시된다. 공공성을 지탱하는 힘의 균형이 파괴되어 한 쪽으로 비대화된 권력은 권력체계의 분화 수준을 후퇴시키는 메커니즘 으로 작용한다( 하버마스, 2006b: 422). 이 때 균형을 잃은 권력체계에서 대항권력 의 산출이 공공성의 복원이라는 맥락에서 구조적으로 유인된다. 권력의 작동 은 언제나 정당성을 필요로 하며, 권력의 정당화는 집합적 목표를 둘러싼 공 공성의 정치과정을 통해 창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하버마스의 논의에서 민주주의는 근대사회의 통합 및 조절의 필요성 을 충족시키는 화폐와 행정권력 그리고 연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균형변화에 대한 요구가 갖는 규범적 함의에서 도출된다. 그래서 그는 연대 의 사회통합적 힘은 폭넓게 분화된 자율적 공론장과 법치국가적으로 제도화 된 민주적 의견 및 의사형성의 절차를 매개로 발전되어야 하며, 다른 두 가지 힘, 즉 화폐와 행정권력에 대항해서 관철될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 하버 마스, 2000: 290; 2007: 401-2). 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의사소통적 권 력으로 가공된 공적 의견은 스스로 지배할 수 없고 단지 행정권력의 사용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을 뿐이다. 의사소통권력은 국가와 경제에 대해 똑같이 거리를 두는 시민사회의 결사체라는 기초 위에서 문화적으로 동원되 는 공론장과 법치국가의 원리에 따라 제도화된 의지형성 사이의 상호작용으 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이다(Habermas, 2007: 403-404). 이런 점에서 체계-생활 세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집중과 분산은 공공성의 정치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위와 같이 체계-생활세계의 개념틀에 내장된 공공성의 세 가지 구조적 층위 는 사회체계의 전역으로 확장된 공론장의 구조, 사회통합의 기능적 자원들에 의한 정치적 상호작용의 구조 그리고 권력의 산출과 균형의 구조를 나타낸다. 우리가 여태껏 정태적 차원에서 체계-생활세계에 착근된 공공성의 사회구성 적 특징에 논의를 집중했다면, 이제는 좀 더 역동적 차원에서 공공성의 정치

180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과정에 관해 탐색할 필요가 있다. Ⅴ. 공공성의 정치과정과 민주주의의 조건 1.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와 토의정치 앞서 살펴보았듯이, 공공성의 정치과정은 시민사회로부터 발원된 공론장 의 정치적 증폭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시민사회를 이루는 제도적 핵 심은 자유의지에 기초하는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연결망과 자생적으로 출현한 단체, 조직, 운동들로 구성된 자발적 결사들이다. 이들 자발적 결사체 는 시민들로 구성된 일반 공중의 기층조직을 이루어 사회적 문제상황을 정의 하고 증폭시켜 정치적 공론장으로 확대함으로써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가 생활세계의 시민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한다( 하버마스, 2007: 486). 따라서 공 공성의 정치과정은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가 보장되는 조건에서 일차적 의 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하버마스 의 문제의식에서 의사소통 구조가 보장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발 견된다. 하나는 소극적 차원으로서 시민사회를 제도적으로 구성하는 결사체들 의 자유권리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다. 즉 결사체들에게 집회, 결사, 표현 및 출판의 자유의지에 권리를 부여해줌으로써 운동공간을 자발적 자율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제도적 실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6) 그러나 이 같은 6) 이런 맥락에서 코헨과 아라토는 국가영역 및 경제영역과 다른 사회적 영역으로서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Cohen and Arato, 1992: 346). 다 원성(plurality): 생활형태의 다양성을 허용하는 다원성과 자율성을 갖는 가족, 비공 식집단, 자발적 결사체들, 공개성(publicity): 문화와 의사소통의 제도들, 사적 자유(privacy): 개인의 자아계발과 도덕적 선택의 영역, 합법성(legality): 국가와 경제로부터 다원성, 사적자유, 공개성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법률과 기본 권의 구조.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81 결사체가 사적 영역으로부터 출현한 공중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자유의 권리는 자신의 사회적 관심과 경험에 대한 공적 해석을 추구하고 제도 화된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민이라는 미시적 단위에까지 적용되어야 한다( 하버마스, 2007: 487-488).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가 보장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보다 적극적인 차원 으로서 사회운동을 통한 공론장의 재생산이다. 이는 코헨과 아라토(Cohen and Arato, 1992: 531-532)가 주장하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할이라는 측면에 서 새로운 사회운동이 취하는 이중적 논리(dual logic) 에서 잘 나타난다. 그 이 중적 논리란 집합적 행위의 방어적(defensive) 측면과 공격적(offensive) 측면 을 의미한다. 운동의 방어적 측면은 현존하는 결사체 및 공론의 구조를 유지 하고, 하위문화적 대항공론과 대항제도를 산출하며, 새로운 집합적 정체성을 다지고, 확장된 권리와 개혁된 제도의 형태로 새로운 활동공간을 획득하려 시 도함으로써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하부구조를 보존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수반한다. 그리고 운동의 공격적 측면에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 하며,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내 제도화된 정치적 의지형성의 파라미터를 변 형시킴으로써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운동의 목표를 설정한다. 7) 이러한 집합적 행위의 이중 정치 속에서 나타나는 공론장의 ( 자기 준거적) 재생산 양식은 현존하는 권리의 역동적 확장과 급진화를 위한 공간마 련을 가능케 한다( 하버마스, 2007: 491). 그러나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가 보장되는 소극적 적극적 차원만으로는 공공성의 정치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사소통 구조가 보 장된다 하더라도, 시민사회가 공론장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고 공적 담론의 영향력이 정치권력을 산출하는 의사소통적 권력의 메커니즘은 토의정치 (deliberative politics)라는 특정한 조건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다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 여기서 정치사회 와 경제사회 는 시민사회와 국가 및 경제로 이루어진 하부체계 사이의 매개영역을 의미한다.

182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사회운동, 시민발의와 시민포럼, 정치단체와 여타 결사체 등은, 요컨대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은 실제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감지 하긴 하지만, 그들이 보내는 신호와 그들이 던지는 충격은 일반적으로 볼 때 정치체계 안에서 단기적으로 학습과정을 자극하거나 의사결정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너무 약하다( 하버마스, 2007: 495). 이제 논의의 초점은 의사소통적 권력의 형성과 운동을 가능케 하는 토의정 치 에 모아진다.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의 경쟁적인 두 모델인 자유주의와 공화 주의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통해 그가 토의정치라고 명명한 민주주의의 절차 주의적 구상을 발전시켰다( 하버마스, 2007: 387-439, 2000: 279-293). 하버마 스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은 는 시민들의 사적 자율성, 동등하게 포용하는 민주적 공민권, 로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상호 결합시켜주는 독립적인 자주적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갖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을 정치적 공동체 안에 자유로운 의견 및 의사형성의 영역으 정치적 공론장 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 즉 동등한 자유권, 민주적 참여, 공론을 통한 통치는 상이한 전통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행되었다. 자유주의 모델은 사회적 시민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반면, 공화주의 모델과 토의정치 모델은 각각 적극적인 공민의 민주적 의사형성에 대한 참여 와 가장 합리적인 공론의 형성을 강조한다. 물론 공화주의 모델과 토의정치 모델은 서로 규범적 친화성 을 보인다. 8) 그러나 하버마스는 공화주의 모델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바탕으로 토의정치 모델을 새롭게 기획한다. 여기서 공화주의 모델은 의사소통적으로 단합된 시 민들에 의한 사회의 자율조직이라는 급진민주주의적 의의를 고수하고 집단적 목표를 단지 대립하는 사적 이해관계들 간의 거래로만 축소하지 않는다는 점 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하버마스는 공화주의 모델이 너무 이상주의적 8)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세 가지 모델을 규범성이라는 기준에 놓고 볼 때, 토의정치 모델은 국가를 경제사회의 수호자로 파악하는 자유주의보다 강하지만 국 가를 인륜적 공동체로 파악하는 공화주의보다는 약한 민주적 과정의 차별성이 도 출된다.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83 이며 민주적 과정을 공공복지 지향적인 공민들의 덕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 드는 데서 결정적 단점을 포착한다. 즉 공화주의 모델의 오류는 정치적 논의 의 윤리적 협소화 혹은 윤리의 과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토의정치 모델은 정치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토론의 형식을 통 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성적 결과를 산출할 것이라고 추정하게 만드는 의사 소통의 조건에 의지한다. 다시 말해 토의정치 모델은 공동의 의사가 윤리적 자기이해의 과정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 목적합리적 수단의 선 택과 도덕적 근거제시 및 합법성의 검토를 통해 형성되는 다양한 의사소통의 절차적 정당성의 형식들에 의지한다( 하버마스, 2000: 285-287). 이런 측면에 서 도출되는 토의 패러다임 (deliberative paradigm) 은 토의과정에 대한 공개성과 투명성, 참여에 대한 포용성과 평등한 기회, 합리적 결과에 대 한 정당화의 추정을 허용하는 의견 및 의사 형성의 절차를 통해 정당성이 형 성된다고 가정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의 주요 경험적 평가기준을 제공한다 (Bohman, 1996; Bohman and Rehg, 1997; Habermas, 2006: 413에서 재인 용). 요컨대 토의정치 모델에 내재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힘은 민주적 정치 과정의 정당성을 이루는 원천으로 간주된다. 토의정치의 이 같은 특성은 공공성의 정치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위치와 역 할이 제도화된 정치영역 이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토의정 치는 공공성의 구조적 편재성에 조응하여 정치체계에 국한되지 않고 체계와 생활세계의 전역에서 이루어진다. 정규정치(normal politics) 의 영역에서 정당 과 의회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협의가 진행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시 민사회를 중심으로 공론장의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통해 광범하고 다양한 사 회적 이슈들에 관한 합리적 의견 및 의사가 형성 증폭된다. 이 때 합리적인 의견과 의지의 형성은 비공식적 여론의 공급에 의존하는데, 이는 비공식적 여 론이 이상적으로 권력에 장악되지 않은 정치적 공론의 구조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 2007: 414). 여기서 시민사회는 정치체계의 주변부에 흐트러진 메시지의 흐름들을 걸러 내고 모아내는 자율적 공론장의 사회적 토대로서 의사소통 네트워크에서 창

184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출된 공론의 흐름을 권력화한다. 시민사회 안에서 사적 개인들은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정부에게 공론을 발전시키는 토의라는 학습과정을 통해 공적 시 민으로 전환된다(Dahlberg, 2005: 128). 이런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토의정치 의 결과들은 의사소통적으로 산출된 권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의사소통권력은 한편으로는 확실한 위협을 지닌 행위자들의 사회권력과 경 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직자들의 행정권력과 경쟁한다. ( 하버마스, 2007: 457) 2. 공론장의 권력구조와 토의민주주의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상적인 혹은 긍정적인 관점에서 공공성의 정치과정 은 토의정치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토의정치 역시도 현실적인 수준에서 권 력의 각축을 피해갈 수는 없다. 정치과정의 본래적 속성에는 권력이라는 보편 적 언어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토의정치 속에서 공론장의 권력구조를 다시 한 번 되짚어야하는 주된 이유이다. < 표 3> 하버마스의 권력에 대한 범주화 구분 권력의 원천 기능적 성격 표출 방법 정치권력 정당성 집합적 목표의 실현 법의 국가적 제도화 공권력과 행정권력의 사용 사회권력 사회적 지위 사회적 이슈의 발의 공론장의 내생적 동원 조직된 여론의 압력 경제권력 경제적 지위 경제적 이슈의 발의 공론장의 외생적 동원 자본과 매체를 통한 영향력 매체권력 매스 커뮤니케이션 정치적 공론의 인프라 공론의 영향력 배분 어젠더 설정 및 이슈 프레이밍 의사소통권력 의사소통적 이성 집합적 목표의 설정 정치권력의 정당화 합리적 의견형성 및 의사형성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85 위의 < 표 3> 에서 정리했듯이, 우리는 공론장과 토의정치에 관한 하버마 스의 논의에서 권력을 크게 다섯 가지의 범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버마스, 2007; Habermas, 2006).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치권력 은 정당화 (legitimation) 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토의모델에 따르면, 정당성 창출의 과정은 숙고된 공론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론장을 거쳐야만 한다. 공론장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한 정치권력은 공권력 혹은 행정권력의 사용을 통해 집합적 목표의 실현이라는 고유한 기능과 법의 국가적 제도화라는 상대 적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권력 은 계층화된 사회 내부에서 점유한 신분(status) 으로부터 근거한 다. 이러한 신분은 기능체계 내의 사회적 지위로부터 도출된다. 이런 점에서 경제권력 은 사회권력의 특수한 형태이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회권력의 지배적인 형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회권력은 조직된 여론의 압력을 행사함 으로써 정치권력을 향해 사회적 이슈의 발의와 공론장의 내생적 동원이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권력은 자본과 매체를 통한 영향력으 로 공론장의 외생적 동원을 가능케 하여 경제적 이슈를 발의한다. 그러나 사 회권력과 경제권력은 그 자체로 정당성 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9) 따라서 사회권력이 사회경제적 이슈의 발의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 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론장의 채널을 거침으로써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돈의 힘이나 조직권력의 은밀한 사용으로 유포된 공적 의견은 그 원 천인 사회권력이 공개되면 즉시 신뢰성을 상실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버마 스, 2007: 483). 한편, 대중매체는 권력의 또 다른 원천을 구성한다. 매체권력 은 매스 커뮤 니케이션의 기술에 기반을 둔다. 기자, 칼럼리스트, 편집장, 감독, 발행인 등 매체권력을 산출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 처리한다. 9) 이런 점에서 일반적 의미의 이익집단 그리고 종교적 공동체 혹은 사회운동처럼 시 민사회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은 영향력의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 버마스는 이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권력을 갖지는 않지만, 사회자본 또는 문화자본 으로부터 공공의 영향력을 획득한다고 강조한다(Habermas, 2006: 418-419).

186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대중매체는 어젠더를 설정하고 이슈 프레이밍을 통해 공론의 형성과 영향력 있는 이해관계의 배분에 개입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체계와 생활 세계를 가로질러 매체권력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너무나도 막강하다. 이 때문 에 정치권력, 사회권력, 경제권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여러 조직들까지도 매체 권력과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증폭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민주 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볼 때, 매체권력은 저널리스트들이 기능적으로 특수하 고 자기 조절적인 매체 시스템 내에서 작동하는 한에서 해롭지 않은 것 (innocent) 으로 남는다(Habermas, 2006: 419). 이런 점에서 정치체계와 경 제체계로부터 대중매체의 상대적 독립은 이른바 미디어 사회 의 성장에 필요 한 선결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론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구조화하기 위한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 롭다. 공론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경연이 항상 올바른 게임 의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매 체화된 의사소통의 채널을 통해 권력을 공공의 영향력으로 전환하려 할 때 기 회의 계층화(stratification of opportunities) 가 권력구조 안에서 나타난다. 따라 서 계층화된 공론장의 권력구조에서 자기 조절적 매체 시스템의 충분한 독립 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시민사회는 시민들이 공적인 담론에 참여하 고 반응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함으로써 의사소통의 식민화 모드 (colonizing mode of communication) 로 퇴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Habermas, 2006: 419-420). 합리화된 생활세계가 강한 시민사회적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자유 로운 공론장의 형성을 지원하는 한, 공적 논쟁이 상승 기류를 타면서 입장을 표명하는 공중의 권위가 강화된다( 하버마스, 2007: 505-506). 마지막으로 공론장의 권력구조에는 의사소통권력(communicative power) 이 들어서 있다. 의사소통권력은 화폐와 행정권력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적인 규 범적 자원으로서, 하버마스의 민주주의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Flynn, 2004). 그런데 이 의사소통권력의 개념은 집합적 행위, 약속, 토의 그리고 연 대성의 정치적 미덕으로부터 도출된 아렌트의 사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Habermas, 1983; Johnson, 2006: 82-83). 하버마스는 아렌트의 권력 개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87 념, 즉 강제 없는 의사소통 속에서 형성된 공동의지의 잠재력을 의사소통권 력 으로 번역한다. 그리하여 의사소통권력은 오직 왜곡되지 않은 공론장 속 에서 형성될 수 있으며, 오직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의 훼손되지 않은 상호 주관성 구조로부터 도출된다( 하버마스, 2007: 209).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의 장소에서 자신의 이성을 모든 점에서 공적으 로 사용하는 모든 시민들의 거침없는 의사소통적 자유를 통해 확장된 정신 의 생산력이 관철될 때 의사소통적 권력이 생겨난다. 이 확장된 정신의 특징은 이를테면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타인의 현실적 판단 보다는 가능한 판단과 비교하고 스스로 다른 모든 타인의 위치를 취해 본다 는 데 있다( 아렌트, 2011; 하버마스, 2007: 209-210). 하버마스(2007: 211-212) 는 의사소통권력 개념을 통해 정치권력의 발생만 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며, 이미 구성된 권력의 행정적 사용, 즉 행정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설명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행정체계는 스스로 자신을 재생산해서는 안 되며, 오직 법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적 권력의 변형으로부터 재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사소통권력은 집합적 목표의 설정과 정치권력의 정당화라는 기능적 성격을 갖는다. 이처럼 공론장의 권력구조는 의사소통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동학을 왜곡 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이는 토의정치를 통해 이루 어지는 공공성의 정치과정이 권력의 일방적인 흐름에 좌절될지도 모른다는 비판적 전망을 암시한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과정은 토의민주주의라는 프레임 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해 정치적 공론장에서 특정권력의 일방적 패권과 독주 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버마스 그리고 그와 문제의식을 함께하는 토의민주주의자들이 의사소통의 이성과 권력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토의민주주의자들은 민주적 생활의 질을 확장하고 민주주의의 결과물들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계한 토의적 요소들을 포함함으로써 민주적 절차와 제도 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한다. 토의정치에 의한 절차적 과정이 지배적인, 민

188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주주의에 대한 이 같은 질적 접근은 최선의 결정, 즉 가장 철저하게 검토되고 정당화된, 따라서 합법적인 결과물들을 산출하는 방식을 보여준다(Held, 2006: 238). 하버마스(1983) 가 진술했듯이, 이상적인 토의의 조건 아래서는 더 나은 주장 이외에는 어떤 강제력도 행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토 의정치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이성의 교환이 정당한 통치의 새로운 원 리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Ⅵ. 맺음말 이 글에서 나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공존을 위한 자율적 행위자들 의 규범적 공간에 착근된 정치적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 공 존은 공공성의 목적으로서 민주주의라는 이상형을,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은 공론장을 그리고 정치적 상호작용은 의사소통을 통한 정치과정을 염 두에 두고서 하버마스의 개념적 맥락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공 성은 공론장에 착근된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메커니즘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의 논의 안에서 공공성과 공론장을 개념적으로 환원하는 기존의 해석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다. 공공성과 공론장을 등치시키지 않고 공론장을 통해 공공성을 이해하는 접근방법, 이것이 공공성이라는 거대 담론을 훨씬 더 선명하게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많은 사회 정치이론가들이 주장했듯이, 강한 민주주의 는 정치체계를 비판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합리적 여론의 형성과 이를 가능케 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시민의 공론장이 필요로 한다(Dahlberg, 2005). 민주주 의는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토론과 자율적 조직을 통해 공적 생활의 어젠 더를 형성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들이 있을 때, 그리

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89 고 그들이 그러한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번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수동적인 응답자가 아니라 진지한 정치적 토론과 어젠더 형성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정치적 사건과 이슈들에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참여하기 를 기대하는 것은 야심찬 일이다. 그것은 절대로 완전히 성취될 수 없는 이상 적인 모델이지만, 모든 불가능한 이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다(Crouch, 2004: 2-3). 그러나 현실적인 수준에서 한국사회의 공공성은 대단히 취약한 구조적 기 반 위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공존의 원칙은 보편주의가 아닌 권력과 이데 올로기에 의해 특수주의로 변질돼 버렸다. 자율적 행위자들의 규범적 공간으 로서 공론장은 소통 없는 저돌적 국정운영에서 나타난 배제의 원칙에 따라 공 론의 흐름을 지하로 스며들게 했다. 이런 가운데 의사소통을 통한 정치적 상 호작용은 힘의 논리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일부는 조작의 혐의마저 받 고 있다. 미국산쇠고기수입, 세종시 수정안, 4 대강사업, 한미FTA, 제주해군기 지 등 끊임없는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면역력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면역력이 시민들의 탈정치 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있다. 반복적으로 축적된 정치적 불신과 실망감이 더 이상 정치에 기대를 갖지 않도록, 그래서 공론장의 기능을 무색 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공론장의 논리가 내 장된 공공성의 정치과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지의 변 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급진민주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무페, 2006; 라클라우 무페, 2012), 과연 합 리적 논쟁이 이루어지는 배타적이지 않은 공론장이란 개념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약한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강한 민주주의 를 새롭게 기획하는 우리에게 하버마스가 불어 넣어준 정치적 상상력이다. 공 공성을 어떻게 정의하든, 오늘날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공성의 현실은 확실히 민주주의의 위기 로 규정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에 대한 좀 더 치밀한 이론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공공성이라는 두 개의 거대담론이 내적 연관성을 갖는 이유는 바로 어떤 공공성이냐에 따라 민

190 한국사회 제13집 1 호(2012 년) 주주의의 구현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공성에 대한 논의 없이 민 주주의를 적절히 이해할 수 없다. 2012년 5월 13일 접수 2012년 6월 20일 수정 완료 2012년 6월 20일 게재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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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의사소통, 토의정치 195 Public Sphere, Communication, and Deliberative Politics: The Social Construction of Publicness and Its Dynamics of Political Process Hong, Sung-Tai Korea University Abstract This article seeks to explore the social construction logic of publicness and the dynamics of political process through the public sphere discussion by Jürgen Habermas. By intentionally separating the concepts publicness and public sphere, communication and deliberative politics once dealt only within the boundaries of public sphere is discussed as the main subjects of the political process of publicness. Here, publicness is the mechanism of political interaction embedded in the normative spaces of autonomous agents. Key words: publicness, political process, public sphere, communication, deliberative poli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