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도 / 고려대학교 본 논문은 샤를리 엡도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충돌의 의미 를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풍자화 (caricature) 는 물리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는 아닐지라도, 특정 문화적 정치적 조건들 속에서는 엄청 난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상징폭력의 무기임에 틀림없다. 풍자화는 그 본성상, 사유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극적인 요소를 제거하여 심각한 것 을 피하기 위해서, 특히 잘못된 사회적 관습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에는 웃기 위해서, 조롱을 통해 미묘한 인지적, 사회적, 정치적 놀이 를 수행한다. 하지만 권력과 풍자화의 관계는 늘 복잡했으며 비극적이었 다. 각 국가마다 언론의 자유를 천명하면서도, 풍자가 어느 일정 선을 넘 었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검열의 가위 칼을 휘두른다. 이것은 도상의 의미가 정치적 문화적 판단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검열의 문제는 정치화되어가는 이미지의 양상이고 성상파괴의 문제는 종교적 이 미지에 대한 양상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문제와 성상파괴의 문제는 시대 별로 복잡한 양상을 견지한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본고에서는 샤르리 에브도 사건에서 발견되는 도상충돌의 양상을 문화인류학적, 종교 적 측면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주제어 : 도상충돌, 성상파괴, 풍자화, 샤를리 에브도, 이미지 검열 년 월 일 파리 한 복판에서 발생한 샤를리 엡도 테 러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석은 결코 몇 개의 요인으로 단순하게 환원 본 논문은 년도 정부 교육부 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일반공동연구 사업임
영상문화 호 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 비극적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마호메트를 조롱하고 풍자한 초상화 이미지로 발단이 되었다는 점을 무시하 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라는 주제와 결부시켜 법리적 윤리적 정치적 해석을 시도하는 작업과 별개로 그 같은 캐리커처가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대한 치명적인 상징적 폭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샤를리 엡도가 출간한 마호메트를 조롱 하는 일련의 풍자화 이미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격렬한 폭력 시위를 불 러일으키면서 무슬림 세계에서 엄청난 공분을 촉발시켰다 파산 직전에 놓여 있던 일개 영세한 프랑스 풍자만화 주간지가 무슬림 수 백 만 명의 분노를 일으킨 상황은 결코 자명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 인류학적 문제라 할 것이 다 그런데 제 자의 입장에서 이 사안을 주목할 경우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그토록 격렬한 무슬림의 반발에 대한 심층적 차원의 문화적 역사적 이유를 성실하게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세기에 진입한 오늘날에도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벙어리들의 대 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서방 언론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보도와 달리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은 서구의 이슬람 혐오에 맞서 시위하기 위해 길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이 신봉했던 성상파괴 주의의 교리를 위반하는 서구 언론의 상징적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이슬람은 그 문명의 태고 시절부터 예언자의 재현을 금기했으며 살아 있 는 존재들을 재현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비록 코란은 이 주제에 대 해서 명시적 언급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이 같은 반 성상 숭배적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참조 표현의 자유 문명의 절망 해소 불가능한 차이 고 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콜로키움 기조발제 년 월 일 발표내용에 대한 두 건의 언론보도를 참조할 것 동아일보 월 일자 기사 뉴스한국 인터넷 판 월 일 필자와의 인터뷰와 발표 논문 요약 게재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시론 참조
도상충돌의 고고학 전통은 이슬람 문명권에서 항시 현존했다 이슬람 문명사에서 도상을 금기하 는 최초의 형식화는 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슬림의 문화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간중심주의에 나름대로의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 사조들에 대해 어느 정도 신축적으로 적응해 나갔던 것이 사 실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이슬람 문화는 예언자에 대한 일체의 재현에 맞서 단호하게 적대적 태도를 유지했다 이 같은 적대성이 공고하게 형성된 결정 적 이유는 이슬람 신도들은 이미지를 비롯해 다른 인공적 작품을 통해 예언 자의 종교적 가르침을 살아 있는 방식으로 체화하는 방식을 부정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인해 우상을 만들어낼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계했기 때문 이다 요컨대 이슬람은 신도들이 예언자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가장 중 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일체의 우상을 통해서 맹목적으로 그를 찬양하는 데 몰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예언자의 재현을 원천적으로 부정했던 것이 다 이점에서 우리는 다시 역사의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유다이즘 기독교 이 슬람 등에서 이미지와 성상을 대하는 상이한 해석과 태도의 종교문화사와 관 련된 해묵은 주제가 무신론주의와 반 교권주의를 주창하는 일개 프랑스의 풍 자 주간지에 의해서 다시 점화된 것이다 이번 테러 사건의 일화는 문명 사와 시각 문화사의 차원에서 주목할 가치가 매우 높다 무엇보다도 샤를리 엡도에 대한 무슬림의 격렬한 폭력적 반응에서 지극히 이슬람의 과격한 표현 방식의 일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상충돌의 한 단면이 며 또한 문명 충돌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사실상 샤를리엡도는 유일 신주의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선언했으며 샤를리엡도가 이 전쟁을 이끌기 위해 성상파괴주의자들이 가장 위험한 무기라고 판단한 무기 즉 자극적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즉 그것은 이슬람문명 권에서 오래 전부터 엄격하게 금지해 온 신의 재현이라는 상징적 폭력의 무 기이다 이를테면 성상파괴주의의 전통에서 서구미술사의 주요 시각 매체인 데생은 금기시된 유일신의 노출이라는 엄청나고 절대적인 위험을 감행한 것 이다 그 대가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참혹한 테러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것은 통치자 아브드 알 말릭 의 화폐 개혁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는데 그는 동전에 사람 얼굴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지시킨 최초의 칼리프였다
영상문화 호 이 같은 도상충돌의 역사가 종료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첨예한 양상을 띠며 악화될 소지가 높다는 사실이다 풍자화 는 설사 물리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는 아닐지라도 특정 문화적 정치적 조건들 속에서 그것은 분명 엄청난 부수적 손상을 야기 할 수 있는 상징폭력의 무기임에 틀림없다 풍자화의 정확한 의미 장을 갖는 포착할 수 있는 조건은 그것을 이미 수 세기 동안 하나의 문화적 전통으로 안착시킨 유럽의 배경과 구체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어떤 이미지 나 오브제가 조롱과 해학을 전달하는 캐리커처 인가의 여부를 판별하는 작업 은 그 자체로는 어렵지 않다 종교적 문화적 규약과 예술적 취향의 정전 에 따라서 어느 정도 그 가치 판단이 규범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 판화사의 거장이며 프랑스의 시각 문화사를 개척한 믈로 선생에 의하 면 풍자화의 이해는 무엇보다 초상화에 대해서 일체의 종교적 문화적 심리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문화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아마도 서구근대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갈라놓는 분명한 분기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서구근대에서 초상화는 다름 아닌 신격화됨과 동시에 속화된 개인의 승리를 의미한다 온 갖 종류의 초상화가 모두 그런 것이 아니며 이 같은 사실주의적 초상화의 경우로 국한되며 서양미술사에서 이 같은 사실주의적 초상화는 중세 말 이 전에는 실천되지 않았다 믈로 선생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최초의 자신의 모습을 닮은 초상화를 그린 왕은 장 세 으로서 년경이다 이 시기 이전에 아울러 기 독교 세계에서 파윰 이집트의 화가들과 로마의 조각가들이 생산했 성상파괴주의의 문화사에 대해서는 다음 두 권의 연구서 참조
도상충돌의 고고학 던 초상화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를테면 초상화의 전통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던 것이다 개인화된 초상화가 서구 문명에서 널리 퍼진 것은 세기에 와서야 이루어졌으며 그것도 죽은자들의 장례 가면 속에서였다 유일신의 종교 문화권에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신에 대해서 그와 닮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더구 나 어떤 장르의 것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신을 초상화로서 재현하는 것은 불 가능했다 절대자 신은 비물질적이며 창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재현될 수 없다 이 주제에 대해서 성서는 코란에 비해서 더욱더 명료하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신의 이미지를 금지하는 것 이상의 금지가 선언된다 즉 신 뿐 만 아 니라 어떤 현실에 대한 일체의 이미지를 금기시하고 있다 야훼가 모세에게 전달한 제 십계명을 상기해보자 너는 우상을 만들지 마라 구약성서 출애굽기 에서 신은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 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을 재현하는 것은 곧 신을 그가 창조한 피조물들의 반열로 격하시키는 행위이다 그런데 성서의 메시지에서 주목할 점은 신이 일체의 이미지를 부 정하는 이유가 신의 자존심 강한 성격이나 과민 반응 때문이 아니라 신의 질투와 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유다이즘은 신의 재현을 결코 실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은 질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들이 그에 게 행할 수 있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은 이렇듯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은 곧 다른 신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신은 일체의 우상숭배를 거부한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는 이 같은
영상문화 호 계명을 지키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상숭배의 위험이 제거되었다는 이유 에서였다 개념적 정의의 문제와 상관없이 어떤 종교도 재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류의 모든 종교에서 특정 순간 신성의 이미지 또는 종교 설립자 의 이미지는 다양한 물음들의 한 복판에 놓여 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 은 신들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종교의 중심에 갖다놓기로 선택했다 반면 유 일신의 종교들은 이점에 대해서 전혀 상반된 태도를 취했으며 그 결과 이슬 람과 유대교는 기독교가 간직하기로 했던 이미지를 가차 없이 버렸다 이미지와 도상의 선택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했다 불교의 경우 인류 문 명에서 가장 많은 이미지들을 생산한 종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나 초기에는 이미지와 조각상 없이 시작했다 인도에서 소승 불교의 최초의 사 원들은 기하학적 장식만을 갖고 있었다 그와 달리 유대교는 반 성상숭배적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시종일관 그 같은 태도를 취해온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 결과 세기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 었던 두라 유로포스 의 유대인 사원의 벽에서 성서의 장면으 로 채워져 있는 프레스코가 나타났다 또한 세기 까지 로마 제국에서는 유 대교의 풍부한 성상 전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그 입장은 시대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면서 다양하게 변화했다 기독교는 두 개의 중요한 성상파괴주의의 사건을 경험했다 하나는 세기에서 세기에 걸쳐 발생한 비잔틴의 성상 논쟁이며 다른 하나는 세 기의 종교개혁으로서 여기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의 왕국들과 독일의 자치주들에서 발생한 성상파괴주의의 행위들이 동반되었다 그리고 신교는 결국 반 성상숭배적 종교를 낳았다 이 두 개의 사건은 서로에게 반향을 불 러일으킨다 비잔틴 성상 파괴 논쟁의 텍스트들은 종교 개혁의 계기에서 다 시 유포되고 편집되었으며 비잔틴의 성상파괴주의는 사람들이 말했던 것 이 상으로 진정한 종교개혁이었다 유일신교의 신에서는 그 점이 사실이나 그 신의 예언자들의 경우는 어떨 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과도할 정도로 보다 강력하게 재현했다 늘 신의
도상충돌의 고고학 재림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문제는 제기조차 될 수 없다 그렇 다면 왜 무슬림들의 예언자는 재현될 수 없는 것이며 또 재현 되서는 안 되 는 것인가 어쨌건 마호메트는 신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었다 더구나 그 같은 마호메트 재현의 금기는 이슬람의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흐름들 속에서 적지 않은 예외적 상황을 겪었다 절대적 권위를 재현하는 데 따르는 위험 성을 설명한 것은 세기 내내 진행되었던 그 끔찍한 성상파괴주의운동이었 다 성상파괴주의 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 은 이미지 그리스어 를 부순다 인칭 직설법 부서진 파편을 의미하는 는 사실 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각상을 파괴하거나 그림을 찢는 개인의 고립된 활동 에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신성의 재현에 성스러운 인물들과 기호들의 재현에 적대적이며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그들의 이미 지들을 파괴하는 종교 또는 종교적 사조를 지칭한다 이 같은 파괴는 성상파 괴라는 이름을 모든 것들을 부수어 버리는 사람의 의미와 같이 경멸적인 함 축 의미를 설명해준다 성상파괴주의는 반 성상숭배 와 구별되어야 한다 성상파괴주의는 반 성상숭배 와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이것은 이미지를 거부한다는 사실 또는 보다 간단하게 말 해서 이미지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를테면 이슬 람의 기하학 또는 식물 장식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조각 등에 대해서 반 성상숭배의 장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성상파괴주의와 반 성상숭배는 무관하지 않으나 폭력은 성상파괴주의의 고유한 양상이다 그 결과 이슬람은 반 성상숭배의 종교 즉 신의 재현도 생명체의 재현도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 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최근의 야만적 약탈과 파괴 행위를 거듭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의 문화유산 파괴 세계 최대의 석불 불상을 파괴한 아프가니스 탄의 탈리반들은 매우 저열한 성상파괴주의자들이다 성상논쟁은 기독교 내부에서 종교 도상들의 옹호론자들과 숭배론자들 그 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들의 적대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이었다 정확
영상문화 호 히 년에서 년 사이에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문제였다 비잔 틴의 역사에서 성상파괴주의는 두 개의 상이한 현실을 지칭하며 양자는 서로 결합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종교적 이데올로기 다른 한편으로는 황제들에 의 해 이 같은 이데올로기가 부과되고 관철된 시기를 지칭한다 비잔틴 성상파 괴주의의 가장 큰 특수성은 그것이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끌었던 수많은 군중 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세기의 종교 개 혁자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국가 전체에 대해서 종교적 정치 와 정책으로서 그것을 선택한 당대의 권력 쟁취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비잔 틴에서는 근대유럽에서의 종교 개혁과 달리 성상파괴주의는 당시의 교회 권 력과 통치자들의 권력을 공격하는 민중으로부터 발생한 소요 사태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황제 권력에 의해서 위에서 아래로 부과된 형태였 으며 교회는 그 정책을 중계했다 승리한 예수의 형상이 금으로 주조된 동전 에 새겨졌으며 그들의 군기와 깃발은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노출하며 기독 교의 이미지를 과시했다 년 레오 세가 아랍의 군대에 맞서 콘스탄티노 플루스의 성곽 아래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를 대동한 성직자는 그 같은 대승을 기적의 이미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같은 승리 후 에 황제 자신이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시샘하게 되었다 결국 교회 는 양분되었다 예수와 황제를 각각 그린 형상들은 주조 화폐의 앞면과 뒷면 을 차지하려는 이미지 쟁탈전을 벌렸다 그것은 바로 우선권 또는 상속권의 문제였다 격노한 레오 세는 자신의 황궁의 문에 걸려 있던 예수의 대형 도 상을 철거하도록 명했고 일체의 종교적 이미지를 금지시켰다 중세의 채색본 위에 그려져 있던 성인들의 얼굴들을 긁어서 지워냈다 콘스탄티노플루스에 서 성상파괴 전쟁이 선포되었으며 그것은 협정을 통해 년 니케아 공회에 서 비로소 종료되었다 당시 지역을 완전히 정복했던 무슬림들은 이 같은 논쟁들을 미연에 방지하 기 위해서 아울러 분리주의와 그 부정적 효과의 반향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 서 자신들의 주조 동전과 엠블럼에 지도자의 어떤 형상도 그려 넣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같은 조치는 이슬람 교리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그들의 고도의 정치적 전술의 결과였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믈로 선생은 처음에
도상충돌의 고고학 는 신학적 차원에서 시작했으나 그것은 곧 정치적인 차원으로 변질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런데 이 같은 황제의 성상파괴주의는 그 내용의 상 당수가 왜곡되었거나 아예 망각되었다 그 이유는 종교적 정치적 투쟁의 승 자가 된 정통교회가 바로 그것의 패배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성상파괴주의가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이미지들이 다시 수립되었을 때 실 제로 동방의 기독교는 년 정교회의 새로운 형식을 취했다 교리 또는 올 바른 견해 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정교회의 고유한 의미이다 년 정통 교리와 성상 사이에 수립된 관계는 바로 상식적 의미로 남아 있 다 오늘날 과거의 비잔틴 국가들인 그리스 발칸반도 중동 등에서 정교회는 바로 성상 이콘 과 성상에 대한 헌신을 중시한다 요컨대 년 이후에 동방 의 기독교는 이콘의 승리에 기초하여 건립되었으며 성상파괴주의적 적대자 들을 모두 축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런데 바로 이점은 성상파괴주의의 역 사를 미묘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정교회의 나라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상파괴 주의의 역겹고 이단적인 성격이 신앙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 회는 패배한 성상파괴주의자들에 대한 총체적 역사 지우기 를 작동시켰다 이 같은 비난은 하나의 저주였으며 성상파괴주의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역사에서 지우는 작업이었다 성상파괴주의를 주도한 황제들의 경우 그들의 저술들을 모두 파괴시키거나 아니면 복사본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다른 한편 성상파괴주의와 관련된 황제들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사료들은 성상애호가들의 시각에서 작성되었다 그것들은 하나 같 이 적대적이었다 코란의 몇몇 구절들이 비록 우상들을 비난하고 있고 수나 마호메트의 언 행록 은 구상화된 일체의 재현 십자가 조각물 악기 등등 을 금기하고 있으나 예언자의 얼굴은 오리엔트에서 빈번하게 그려졌다 이들 성상을 그린 이슬람 화가들은 최소한의 이슬람법 의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몇몇 페르시아 세밀화가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 얼굴들의 몇몇은 특별한 손 상을 입지 않은 채 수 십 세기를 거쳐 왔다
영상문화 호 그 결과 이슬람이 자신의 반 성상숭배의 교리를 형식화한 순간에 비잔틴 제국은 그것의 최초의 성상파괴의 위기를 겪는다 그것은 교회에서 신의 재 현들을 금지하고 동시에 그것들을 파괴하는 데 이른다 이 같은 이미지들의 거부가 동일한 순간에 유럽의 동방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로마의 황제가 자기 방식으로 이슬람의 금기들을 다시 취하도록 만든 이유들에 대해서는 상론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실체에 있어 서는 동일한 원인과 동일한 결과가 작동했다 인간적 형상의 재현은 미신의 위험으로 체험되었다 즉 그 미신에서 인간은 스스로가 신의 위치로 초월하 려는 소명을 받는다 동일한 반응이 우리와 가까운 도상파괴의 위기를 촉발 시키게 된다 프로테스탄트의 반응은 특히 사원들 속에서의 신들의 재현을 축출하였는데 이와 상반되게 그곳에서 가톨릭교회는 각종 부조물 스테인 글 라스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하나의 우상을 떠받드는 수많은 성인들을 재현하 는 재단화들로 가득 차 있다 흥미롭게도 유럽의 프로테스탄트의 세계 특히 앵글로 색슨의 세계는 이슬람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유럽 의 일부 만화가들이 그린 모하메드의 풍자화들 또한 내켜하지 않았다 는 라틴어 단어 에서 온 단어이다 이것은 무엇을 적재하 다 장착하다 의 의미를 지닌다 짐을 실어 무겁게 만들다 강조하다 과장 하다 의 의미를 비롯해 무기를 장착하고 만질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고 죽일 수 있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풍자화에 어떤 자리 매김을 해야 하는 것인가 풍자화는 그 본성상 사유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극적인 요소를 제 거하여 심각한 것을 피하기 위해서 특히 잘못된 사회적 관습을 비난하기 위 해서 하지만 결국에는 웃기 위해서 조롱을 통해 미묘한 인지적 사회적 정 치적 놀이를 수행한다 라블레와 볼테르를 낳은 나라이며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삼는 프랑스 에서 아이러니 풍자 해학 조롱은 수 세기 전부터 발화 행위 에 첨가
도상충돌의 고고학 되는 단골메뉴였다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당신의 견해 를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표현하도록 하고 그 견해 를 자유롭게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나의 삶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멋진 아이러니를 말한 바 있다 세상의 제일 높은 권좌에서도 우리는 고작 우리의 엉덩이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반 계몽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창되는 아나스타지 부인 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큰 한 쌍의 가위의 끔찍한 무기에 의해서 상징화된 검 열은 루이 세의 통치 아래서 아나스타시오 라는 이름을 취했는 데 이것은 아나스타시오 교황 세 와 결부될 수 있다 교황은 이어 서 성인이 되었다 그는 정통 교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된 우주론을 제시 한 오리젠느 의 책들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유럽의 지성인들은 종교 통합주의자들의 압박에 맞서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낼 것을 주창하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잠시의 사소한 안전을 위해 본질적 자유를 포기할 준비가 되 어있는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도 안전의 가치도 가질 자격이 없다 프랑스에서 권력과 풍자인쇄매체 사이의 관계는 늘 복잡했으며 비극적이었 다 프랑스 국가 원수들은 비록 언론의 자유를 천명하면서도 풍자가 어느 일 정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검열의 가위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년 드골 장군의 풍자만화사건 이후에 더 이상 어떤 정치인도 프랑스인 들이 보는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빌렘 이 나 시네 가 풍자만화 주간지 앙라제 의 일면 기사에 실은 데생 들을 역겹고 퇴행적인 것으로 판단했으며 기뇰 드 렝포 에 실린 스케치 이미지들도 유사한 취급을 받았다 요컨대 프랑스 풍자화는 프랑스 혁명에서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치적 무기 이다 프랑스의 풍자 인쇄매체는 그것이 권력이나 종교를 희화화시키거나 조 프랑스에서 풍자화의 검열의 문화사에 대해서는 다음 책 참조
영상문화 호 롱할 때 그 어떤 타부도 성역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 가운데 샤를리엡도 는 전례 없이 잔혹하게 테러 공격을 받았으며 모두 르 카나르 앙쉐뇌 또는 이미 사라진 하라 키리 와 동일한 반열 에 올라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프랑스적인 특수성이며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벽 에 맞서 봉기하고 고발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적으로 데생을 사용했다 미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에서 조차 샤를리엡도와 유사한 풍자 매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 주간지의 특이성은 바로 정치 풍자뿐만 아니 라 사회적 비판의 역할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풍자 주간지는 생태학 경제학 금융 분야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풍자의 펜을 들었다 요컨대 프랑스 이외의 국가에서도 유머 신문들이 적지 않게 존재했으나 정치는 늘 주변적이었던 반면 프랑스 풍자 언론매체에서 정치는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독자의 취향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러니와 씁쓸한 유머를 사용 하면서 샤를리엡도와 르 카나르 앙쉐네 는 프랑스 풍자 인쇄매체의 아이콘이었으며 이것은 세기에 최고 절정에 도달한 자유주의 적 전통과 종교권위에 맞서는 전통을 이어받았다 세기에 이 같은 풍자정 기간행물은 수 백편에 이른다 이 같은 풍자매체는 어떤 타부도 인정치 않았 다 물론 매체의 성격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두 개의 풍자 인쇄매체 에서 근무했던 카뷔 는 르 카나르 앙쉐네에서는 죽음과 섹스에 대해서 는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었으나 샤를리 엡도에서는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그릴 수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샤를리 엡도의 진정한 계보는 아시 에트 오 뵈르 라는 세기 초반기의 무정부주의적 풍자 주간지였다 그것은 반식민주의 반종교적 반군사주의적 반순응주의적 입장 을 표방했다 하나의 풍자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의 형태를 왜곡시키는 것만으로 충 분하지 않다 재현의 이 같은 탈 규칙화된 형태는 오직 인체의 규범화된 제 현의 교리에 맞설 때 비로소 신랄하며 지독한 힘을 가질 수 있다 풍자화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몇몇 고대 시대에서 존재하며 서양에서는 르 네상스와 인문주의 이후로 인체의 해부학적 재현을 권장하는 아카데미즘과 역행할 때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취했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풍자와
도상충돌의 고고학 해학의 재현들은 동물의 퇴행을 선호했으며 아직 특정한 개인적 인간들을 묘사하지 않았다 이교도도 적들 뿐만 아니라 노예와 화류계 여인들 가난한 사람들과 불구자 등이 풍자만화의 소재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추하며 특히 그들은 고유명사를 갖지 않는다 웃음의 대상으로서 특정 개인화된 풍자화는 오직 세기에 로마의 매너리스트 화가들의 작업실이라는 속세에서 퍼져나갔 다 그들에게 허락된 원근법의 고전적 가르침을 거꾸로 취하는 사람들을 위 한 연습이었다 당시 풍자 화가는 자신의 작가로서의 권력을 취하면서 자신 을 제약시킨 법칙을 전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델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굴종시켰다 그는 자신의 모델을 자신의 꼭두각시 먹이거리 희생양으 로 삼았다 자신의 공간의 주인이 되면서 그는 일종의 그래픽의 고문 즉 비 틀기를 감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학적 퇴행과 도착으로서 풍자화는 비로 소 하나의 폭력이 되었다 풍자화는 그것에 속지 않는 사람들만을 웃게 만 들었다 그런데 풍자화에 속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한 것보다 그 수가 훨씬 적다 세기의 오랜 기간 동안 풍자화는 그의 풍자화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풍자된 사람의 허락을 획득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명예훼손에 걸렸다 프랑스의 풍자 화가들은 자신들의 경솔함과 무례함에 대해서 값을 치러야 했다 풍자 주간지들의 범람과 정신 나간 왕 탐욕스러운 왕 광인 재현된 샤 를르 세의 풍자화들의 범람은 년의 혁명을 가속화시켰으며 모든 유럽 에서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다 언론의 자유는 루피 필립이 만족시킬 것을 허 락했던 최초의 요구 조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지켰다 하 지만 그의 얼굴이 과일 배로 변형되기 전에 여러 장면들에서 노출되기 전제 기다렸던 언론의 자유를 선포한 후 년이 지나서 그는 자신의 약속을 취소했 고 데생 화가들에게 소송을 제기 했다 도미에와 그의 편집자는 그 유명한 배 그림 사건으로 몇 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제작된 이미지들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이미지의 독서가 독자에게서 웃음을 촉발시키는 표면에 존재 하는 흔적들 형상들을 상기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픽 유머는 놀라운 기술 로서 단지 미학적 명상이나 기능적 전달만을 위해서가 아닌 사람들을 흥미 롭게 만들고 하나의 정보에 대해서 재미나게 만들기 위해서 고유한 선과 획 위의 논문 참조
영상문화 호 그리고 언어를 사용한다 그 메시지는 그것의 표현 스타일과 존재 이유들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방식으로 진술한다 그것이 캐리커처건 유머 데생이건 삽화된 이야기이건 만화이건 그래픽 유머 개념은 문화적 공간들과 그것이 발현된 시기들에 따라서 매우 큰 형태적 다양성을 제시한다 예컨대 프랑스 의 창작품들과 영미권 특히 미국에서 생산된 작품들 사이의 차이점을 판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캐리캐처와 유머 데생 등 유머 의도와 더불어 이미지의 공통적 사용을 제 외한다면 이 같은 표현들의 상이한 기준들은 그 어떤 구조화된 개념화로 귀 결되지 않는다 각각의 개념은 어느 정도 하나의 양식 시대 더 나가 발생을 특징짓는 그래픽 스타일을 밝혀준다 과도함과 선들의 왜곡에 토대를 두는 캐리커처는 조롱을 발생시킨다면 삽화에 가까운 유머 데생은 놀라운 유추를 통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유머 이미지는 결코 즉각적으로 만화와 결합될 수 없다 프랑스의 시각 문 화사와 그 생산과 소비의 장에서 유머 이미지의 그래픽 세계와 관련하여 제 시된 개념화에서 아직도 명료하게 일치된 이론적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엘 리트 식자층과 대중적 소비층으로 철저하게 위계화되어 있던 프랑스 사회에 서 이미지로 그려진 만화 생산의 대부분은 대중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년대부터 하라 키리 의 탄생과 일간지 플로트 의 변형들 과 더불어 만화는 그것의 오락적 교육적 기능에서 해방되었다 어쨌건 유럽 에서 그래픽 유머의 착상은 캐리커처에 의해서 지배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이 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캐리커처의 시각 매체를 정치적 사안들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만화들 역시 존재했으나 그것들은 캐리커처에 비해서 동일한 확산과 인지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 픽 유머는 동일한 이름 아래 매우 이질적인 장르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머리 스트에게 있어 핵심은 코믹한 재현을 형상화하는 것이며 동시적인 이중적 독서에서 나온 의미의 분쟁과 폭발 을 생산하는 일이다 따라서 유머 이미지의 해석 차원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원리를 적용하여 그래픽 유머의 생산물을 사유하는 것은 순전히 스타일적 분석에 국한될 수 없으며 한 시대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쟁점들을 포착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도상충돌의 고고학 구체적 사례로서 반 유태인적 캐리커처는 드레퓌스 사건 때 널리 확산되어 나갔음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풍자적 레지스터는 획과 선의 환상적 순수성과 공통점을 갖지 않는다 유 머적 창조에 의해서 촉발된 독자의 감정적 투자는 그 것의 엄밀한 스타일적 요소들과 고립될 수 없다 웃음은 표현된 것 자체에서 오는 것만큼이나 그렇 게 하는 방식에서 도래한다 이점에서 사실주의적 이야기들과 유머적 이야기 들을 대립시키는 것은 만화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래픽 유머 의 복잡성을 모두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래픽 유머에서 현실은 늘 유머적 상 상력에 의해서 문제시 된다 모든 이야기는 정신적 구성으로서 그 구성에서 상상력은 실재계의 개연성의 코드를 사용한다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이야기 들은 이 두 개의 차원의 등가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나 다른 그래픽의 사조는 양자를 구별한다 그것이 사실주의이건 허구적이건 이미지는 수용되고 사회 적 수렴을 염두에 둔 문화적 표상에 속한다 독자들의 웃음이 발생하는 효과 는 실재계와 상상계 사이의 특이한 엉뚱하고 색다른 관계에서 탄생한다 그 때부터 만약 그래픽 유머의 형상들이 주제들과 더불어 그것을 다루는 방식 들과 연관성을 갖는다면 스타일의 차원과 주제적 차원의 대질은 그것들의 역사적 복잡성 속에서 그것의 그래픽 변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 하다 월 일 시사풍자 주간지 샤를리엡도의 편집진을 살해한 비극적 테러 행위 다음 논문 참조 이 부분은 필자의 다음 원고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한 것임 표현의 자유 문명의 절망 해소 불가능한 차이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콜로키움 발표 자료집 표 현의 자유와 다문화주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의 유럽과 한국 년 월 일
영상문화 호 가 제기한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 국내외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표현의 자유와 한계라는 문제를 핵심적 사안으로 다루었다 지금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 서는 크게 두 개의 진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편에서는 프랑스 공화국의 주춧돌 가운데 하나인 정교분리원칙 에 근거해 예언자 마호메트의 풍 자화를 비롯해 모든 종교와 관련된 풍자화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들의 주장에서는 일체의 신성모독 과 종교적 불경 이 법에서 허락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된다 표현 의 자유를 어떤 양보적 조건 없이 절대화시키려는 시각은 년 소설 악마 의 시 를 발표해 이란의 지도자로부터 암살 대상으로 지 목된 루시디가 자유에 대해서 진술한 다음과 같은 명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다 자유는 분할될 수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테러리스트의 잔혹성과 야만성에 기겁하고 대경실 색한 일반 시민들을 비롯해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이슬람을 비롯해 특정 신 앙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신성모독과 불경한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정신적 상처를 입히거나 고통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 고 있다 전대미문의 언론매체에 대한 이 같은 폭력을 목격하면서 일부 인문 학자들은 언론매체에서 발언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서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양진영의 견해 대립을 떠나 표현의 자유 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자세는 확고부동하다 프랑스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견해를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아 울러 그것의 비판적 수위의 문제를 떠나 어떤 특권도 없이 특히 어떤 거리 낌과 계산 없이 주저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지식인들 의 고유한 기능이자 동시에 의무로 파악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자유로운 의 사 표현은 특히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특별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공 동체에서 말이 자유롭게 순환하기 위한 중요한 기능이며 의무로 보고 있다 즉 자유로운 언로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 의 신조로 삼고 있다 하지 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일반 프랑스 국민들의 상당수는 이 같은 이념과는 상 반된 시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 로 인해 프랑스인의 는 마호메트 만평의 출간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 종교의 분리가 프랑스 사회의 유일한 가치일
도상충돌의 고고학 수는 없으며 타문화에 대한 존중 예의와 절제 공통의 선 역시 그에 못지않 은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월 중순부터 이슬람 국가들에서 벌어진 반 샤를리 의 맹렬한 시위는 이슬람권 국가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 결과 두 진영의 몰이해 와 갈등이 증폭되었다 한 쪽은 종교를 풍자하거나 조롱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며 다른 진영은 신성모독에 대해서 분개하고 절규하는 진 영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나 중 요한 준칙은 이 같은 차이를 평화적으로 비폭력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 실이다 어쨌거나 샤를리 주간지 테러 사건은 표현의 자유가 결코 절대적일 수 없 다는 냉혹한 현실을 입증했다 특히 종교영역에서 상호 존중의 정신이 필요 하다 특히 상호 존중은 다문화 사회의 성공을 위한 열쇠이다 전체적인 역사 적 흐름을 보더라도 서구는 점차적으로 자유 언론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지 지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불거진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의 문제는 크게 법 적 차원과 윤리적 차원으로 나뉘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먼저 표현의 자유의 법적 토대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 유를 형성하는 매개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 같은 개념적 요인에 대한 공적 논의 특히 인문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협동적 논의가 일천한 상황이다 풍자는 기본적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며 약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보편적인 자유 아울러 자신의 역할과 의 무를 의식하는 자유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언론 의 자유는 이슬람 혐오의 감정들과 결합되어 있는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여준 다 이민자의 권리와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참혹한 전쟁은 무시한다 다시 말 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이미 많은 방식을 통해서 제약되어 있다 표현의 자유 개념은 세기 말 프랑스에서 싹을 튼 개념으로서 프랑스 혁 명 당시 채택된 인권선언문 조에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와 유럽에서 표현
영상문화 호 의 자유는 결코 한낱 추상적 관념이 아니며 몇몇 역사적 문헌에서 인정된 절 대적 원칙이다 사상과 의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 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가만 법에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이 표현의 권리는 년 보편인권선언 제 조에 의해서 지지되며 년 유럽 인권협약문에서 재차 명시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총체적이며 무한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자유처럼 표현의 자유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원칙을 존중한다 즉 타인의 자유가 시작 되는 곳에서 나의 자유는 멈춘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일부 법 문헌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틀과 제약을 예 측하였다 년 월 일 최초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한계를 긋 는 조항으로서 욕설 명예훼손 비난 차별조장 인종차별 반유대교주의 동성 애혐오 등 증오와 폭력 조장 담론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어서 년 월 일 가이쏘 법에 의해서 전체적 체계를 정비하였다 아울러 유럽 인권 협약문에서도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명시화되어 있다 명예훼손과 욕설 증오심 조장 담론 인륜에 반하는 인종차별 담론
도상충돌의 고고학 독일과 그리스 미국의 몇몇 주들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신성모독 의 위반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 프랑스의 법 체제아래 서 표현의 자유는 종교를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허락된다 이미 년 인권선언문 제 조에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도 법에 의해 확립된 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종교적 견해를 포함 한 자신의 의견이나 발표로 인해 신변에 불안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년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천명한 프랑스 공화국의 헌법 제 조는 프랑 스 공화국은 양심과 의식의 자유를 긍정하고 종교 숭배의 모든 실천들을 허 락한다고 명시해왔으며 단 공적 이해관계에 저촉이 되는 경우에는 제약받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신성모독의 여부와 위법 여부는 법원의 판결에 달려 있다 년 샤를리엡도가 마호메드의 만화를 출간했을 때 법원은 다음과 같이 무죄를 판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과 다원주의의 원칙에 따라 모든 신앙의 존중은 이와 동시에 종교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와 한 짝을 이룬다 따라서 현 프랑스 법 체제에서는 종교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신성모독이 처벌 되지 않는다 반면 프랑스 법에서 특정 신앙인들을 모욕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아울 러 표현의 자유는 분명히 한계가 그어져 있다 욕설 명예훼손 차별조장 폭 력 조장 증오심 조장의 언어 표현을 금기한다 따라서 유대인 또는 무슬림에 대해서 욕설을 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법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반면 마호메트의 풍자만화를 출판하는 것은 종교에 대한 욕설과 명예훼손으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영상문화 호 풍자만화는 유머와 관련되며 유머역시 한계를 갖는다 현 프랑스 법 체제 에서는 실제로 일정수준의 모욕이나 패러디에 대해서는 표현의 권리를 인정 한다 하지만 과도한 유머의 경우 만화가의 표현과 풍자의 자유에 속하는 것 인지의 여부는 결국 판사가 결정한다 년 마호메트 풍자만화 출판의 위 법성 여부에 대해서 프랑스 법원이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다 만화라는 문학적 장르는 의도적으로 호전적일지라도 사상과 견해의 표현 과 소통의 자유에 참여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가 허락하는 한계선을 넘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 법원은 샤를리 엡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 법원은 인명 살상을 조장하는 테러리즘을 찬양하고나 고무시키는 표 현을 한 사람들에게는 가치 없이 처벌을 했다 샤를리엡도는 년부터 년 동안 무려 차례의 소송전을 치룬 바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풍자 주간지는 그 전신인 하라 키리 가 프랑스 내무장관에 의해서 배포가 금지된 것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논쟁의 역 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미지들은 인간사회에서 그처럼 엄청난 정념 증오 폭력을 유발하는 것인가 이 물음이 본 발표의 문제의식이었다 도상과 이미지가 문명에서 촉 발한 증오와 광기의 고고학에 대한 완결된 연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바 있 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인간은 다양한 이미지의 형태들과 매개물 없이는 지식 의 습득 과학의 발전 예술과 종교의 발전을 성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도상충돌의 고고학 미지는 신 자연 진리와 과학에 대한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라는 개념은 일체의 기호 미술작품 각인 다양한 종류의 그 림을 비롯해 부재하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 개화로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를 그 같은 정념과 감정의 원인으로 만 드는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를 한 사람의 종교적 신념 과학적 인식과 비판적 인식의 초석으로 만들고 예술 적 창의성의 궁극적 초석으로 삼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미지의 속성은 무 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왜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단군의 비 석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고 이슬람 국가의 병사들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지 의 유적들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의 이미지를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유포하는 것일까 여기서 라투르는 도상충돌 과 관련된 일련의 물음을 던진 바 있다 왜 이미지는 그 많은 증오를 불러오는가 왜 이미지는 그것을 다시 제거해도 다시 돌아오는가 이미지의 문명사를 검토하면 십계명 중 제 계명은 더 이 상 준수되지 않았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 도상숭배 또는 철저한 성상파괴를 옹호하는 종교문명의 사회와 더불어 이미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 같은 요구를 화해시킬 것인가라는 물음과 더불어 총체적으로 반 도상숭배적인 사회 종교 과학의 문명권과 더불어 세기 이미지의 핵 증식 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이미지들이 그처럼 위험하다면 왜 우리는 그 많 은 이미지들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것들이 순진하다면 그것들은 왜 그처럼 많은 지속적 정념들을 유발하는가 라투르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수수께끼이 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는 차후의 과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도상충돌을 다음과 같이 다소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다 매개자의 생산에서 작동하는 손의 정확한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 에서 발생하는 그 무엇이다
영상문화 호 는 심화 연구를 위한 토대로서 라투르가 제시한 도상파괴 유형론의 소묘를 제시하면서 논의를 매듭짓고자 한다 첫 번째 유형은 모든 이미지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범주에 속한 다 그들은 이미지를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종류와 온갖 형태들의 우상들 에 대한 그릇된 애착과 허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 들이다 우상들은 더 높은 덕에 이르는 여정에서 오직 방해물 이외 다름 아 니다 그것들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 같은 우상과 이미지들은 너무나 많은 분 개와 증오를 용기 있는 이미지 파괴자들의 마음속에 불러 일으킨다 그 같은 불경스러운 이미지들과 더불어 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중간 매개물 없이도 진리 객관성 성스러움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같은 방해물들 없이도 그들은 최소한 실재하는 것에 대해서 삶 더 신속 하고 직접적인 접근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실재하는 것 그것은 존경과 숭배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이 첫 번째 유형은 고전적 도상파괴 주의의 순수한 형식이다 이미지화 드로잉 모델의 형식적 거부에서 뿐만 아 니라 무조건적으로 우상을 파괴했던 비잔틴의 성상파괴주의자들 루터 혁명 의 사조들에서 인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물론 중국 문화혁명의 끔찍했던 과잉 행동 역시 포함될 것이다 순수한 정화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세계는 오직 매개물들을 제거할 때 아울러 본래의 것 근원적인 것 순수한 관념들 진정한 것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 더 깨끗한 세상 더 밝은 세상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역시 우상 파괴주의자들이다 그들 역시 이미지를 부수고 관습과 타성을 산산 조각내며 숭배자들을 추문과 동일시한다 첫 번째 유형과 두 번 째 유형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두 번째 유형에서는 이미지들을 제거하는 것 이 가능하다고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있다 그들이 쟁취하고자 하 는 목표는 이미지를 그것의 흐름 속에서 추출하여 운동이 정지한 것처럼 결 빙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미지가 제거된 자유로운 세계 모 든 방해물들이 제거된 세계 모든 매개자들이 제거된 세계가 아니라 정반대 로 능동적 이미지들 움직이는 매개자들로 가득 찬 세계이다 첫 번째 유형의
도상충돌의 고고학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이미지 생산이 영원히 정지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 은 이미지 생산을 가능한 한 신속하고 신선한 것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도상애호는 이미지에 대한 배타적이며 강박관념적인 주의를 의미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지 이미지들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 상애호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에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 은 진리는 이미지이지만 진리의 이미지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진리 객관성 성스러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 른 이미지로 움직이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본래의 것으로 도약하려는 불 가능한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을 실천하는 사람들 역시 우상파괴주의자들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흔적에서 약탈 끔찍한 절규 수치심 온갖 종류의 불경과 신성모독 의 행위를 남겨 놓는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 유형들과 달리 그들은 이미지 일반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적대자들의 이미지에 반대할 뿐이다 누군가를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의 행위 공식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깃발을 불태우고 회화를 손상시키고 인질을 잡는 행위 등이다 특정인이 가 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아내서 그것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면 가장 신속하 게 그를 파괴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이 세기 말 명성황후를 시해한 야만적 행위는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투르는 이 세 번째 유형을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특징짓는 최소한의 수고로 최대의 효과 를 얻는 전략으로 파악했다 파괴와 증오를 유발하기 위해 적당한 대상을 위한 추구는 상호적이다 당 신이 나의 국기를 공격하기 이전에 나는 내가 그것을 그처럼 애지중지한다 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도발자와 도발 을 받는 사람은 고양이와 쥐의 놀이를 한다 하나는 보다 신속하게 분개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며 다른 이는 자신들의 분개를 보다 맹렬 하게 유발시킬 것을 열심히 찾아 나서는 형국이다 네 번째 유형은 단순 무지에서 무조건적으로 도상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다
영상문화 호 이윤을 위한 탐욕과 단순한 정념과 광기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 같 은 꼬리표는 유형을 기술하기 위해 적용될 수 있다 이들 순진무구 한 반달리즘의 주인공들은 정상적인 반달리스트와는 상이하다 이들은 그들 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 정반대 로 이들은 이미지들을 애지중지하고 파괴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한다 하지 만 이들은 나중에 가서 이미지들을 세속화시키고 파괴시켰다는 비난을 받는 다 전형적인 예는 복원주의자들의 예이다 건축의 장은 이들 순진무구한 사 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예술 작품을 복원함으로써 도시들을 미화시킴으로써 고고학 거점들 을 다시 세움으로써 그들은 그것들을 파괴했으며 그들의 반대자들은 그들이 가장 비열한 도상파괴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다섯 번째 유형은 도상파괴주의자들과 도상애호가들을 모두 비웃는 사람들 이다 그들은 모든 매개자들에 맞서서 파괴적 아이러니를 행사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나 그것의 취약성을 의식한다 그들은 불경과 비 존 중을 실천하며 비웃음을 추구한다 그들의 태도는 맹렬하며 라블레의 방식으 로 신성 모독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경거망동 을 고의적으로 과시하고 시민의 자유의 건강한 감각을 위해서 해학과 조롱의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무엇인가를 믿지 않을 권리가 존 재하며 심지어 단지 무엇인가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을 권리 가 존재한다 무엇을 믿건 믿는 자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서 그들은 그 어 떤 인정을 하지 않는다
도상충돌의 고고학
영상문화 호 [Abstract] Archaeology on the clash of Iconography: from iconoclasm to caricature Kim sung do / Korea University 투고일자 : 2015년 5월 15일 심사일자 : 2015년 6월 13일 게재확정일자 : 2015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