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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은 한반도 주변정세와 통일문제 및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매년 통일문제 이해 와 북한 이해 를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책자가 각 급 교육기관 및 통일교육 현장에서 통일문제와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KINU 연구총서 Ⅰ 중국의 G2 부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추진전략 제1부 황병덕ㆍ김규륜ㆍ박형중ㆍ임강택ㆍ조한범ㆍ김종욱 신상진ㆍ이동률ㆍ이창형ㆍ이홍규ㆍ주재우ㆍ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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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북한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확보를 위한 외교정책 모색 홍 현 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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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북한 4차 핵실험과 6자회담의 갈림길에 놓인 2014년 한반도 질서 김성렬 사회주의노동자신문 지난해 상반기 한반도의 긴장지수는 최고조에 달했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불가침합의 폐기 등의 강 경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남북관계를 순식간에 전시상황으로 규정지었 다. 한국과 미국도 이제 질세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며 맞불 을 놓았다. 특히 미국이 전략 핵폭격기 B-52, 스텔스 폭격기 B-2의 한반도에서의 훈련모습을 공개하고 그 위력을 과시한 것은 전례가 없 는 일이었다. 강 대 강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펼쳐지면서 한반도 정세 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작년 4월에는 개성공단 마저 잠정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의 징후는 시야 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작년 8월14일 남북간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 이후 지금까지 극단적인 군사적 대결양상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최 98 붉은글씨 2호

근 북한이 단거리 로켓과 노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새로운 형태의 핵 실험 을 공언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작년과 같은 수준의 군사적 위협 국면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오히려 제3차 북핵위기 라 할 만한 작년 의 위기상황이 이렇다 할 협상 테이블 하나 없이 봉합되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 제1, 2차 북핵위기(1993년, 2003년)가 극한 대 립으로 치달은 끝에 결국은 북미협상을 필두로 조정국면에 접어들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양상이다. 현재 한반도는 북한의 도발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갈 림길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의 평화 는 어디까지나 불확실 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배권력 이 북핵을 놓고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벌일 때마다 한반도는 매번 전 쟁위기에 직면해 왔으며 이 같은 위기는 언제든 또 반복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 질서는 남북관계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 동아시아 의 역내 질서는 물론 전지구적인 거대한 체스판 속에 놓여 이로부터 강한 규정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란 핵협상 잠정 타결과 북한의 이란 핵 비즈니스 실패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올해를 평화협정의 원년으로 삼겠다. 지 난해 북한의 의도는 분명했다. 정전협정 체제 하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북한의 움직임은 예년과다른 절박함이 묻어 났다. 북한이 재선에 성공한 미국 오바마의 2기 행정부 대북정책을 지 켜보지도 않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나 이후 한반도 정세를 긴장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99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시키며 북미 평화담판이냐, 전쟁이냐 의 양자택 일만을 강요한 것은 처음부터 출구전략을 배제한 새로운 차원의 공세 였다. 이는 과거 김정일 시대 북한의 도발이 대개 외교적 수단이자 제 한된 목적으로 활용된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위기는 새로 출범한 김정은 체제에 시 작부터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 2012년을 김일성 출생 100년을 맞아 강성대국의 원년 으로 선포한 북한은 향후 안정적인 체제존립을 위해서라도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과실을 제공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선군( 先 軍 )정치에서 선당( 先 黨 )정치로 정치적 무게중심을 옮기며 경제회생에 적극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현재 북한은 시장 자본주의적 요소가 이미 만연한 가운데 이를 국가가 포섭하는 방식의 새 세기 산업혁명 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구노력만으로 당장 경 제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적이며, 또한 언제까지나 자국경제를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을 향해 더더욱 강경하게 자기입장을 고 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북한이 자신만만하게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이란과의 핵 비즈니스였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 2013년 4월 5일 자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반복되는 한반도 전쟁위기>참고) 이는 미국 이 중동으로의 핵 확산을 가장 우려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계산된 노림 수였다. 사실 오바마 정권은 핵무기 없는 세상 을 표방하며 핵에 대해 선 특유의 강경자세를 고집했지만 북핵 자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이미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미국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북핵의 비확산 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3차 핵실험으로 보다 향상된 핵능력을 대내외 100 붉은글씨 2호

에 과시한 다음 미국을 향해 이란과의 핵 비즈니스 카드를 본격화했던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3월 중순과 5월 말 미국과 각각 비밀접촉을 갖고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때, 그 마감시한은 정전협정 60주년인 작 년 7월27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4월에 잠정폐쇄된 개 성공단이 기계설비 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녹이 슬어 3개월 후에는 자동 폐쇄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다시 말해, 북한은 지난해 총공세의 결산시점을 7월 말로 상정하고 정전협정 60 주년 이후에도 미국의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이란에 핵기술을 넘기 는 동시에 개성공단도 완전히 폐쇄하여 자기 길을 가겠다고 엄포를 놓 았던 셈이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인력 5만3천여 명을 중국으로 송출 할 수도 있고, 작년 5월 일본 이지마 내각관방참여의 갑작스런 방북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일본과 남포공단을 조성해 개성공단을 대체할 수 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작년 상반기 동안 북한의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발휘한 듯 보였다. 지난해 3~4월 군사적 대결국면에 이어 5~6월 한미정상회담과 미중정 상회담, 한중정상회담이 차례로 진행된 긴장 조절국면에서도 북한은 이 란과의 핵 비즈니스 카드를 움켜쥔 채 정세를 주도하고자 했다. 그 백 미는 작년 5월 군복차림을 한 최룡해의 전격적인 방중이었다. 이는 미 국 뿐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전에서도 북한의 자신감을 한 눈 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북중관계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최악의 상태였다. 때문에 중국은 그해 6월 미중정상회담을 코앞에 두 고도 북한의 진짜 의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은 중국의 특사 파견은 한사코 거부한 채 일본의 이지마 특사를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01

평양으로 불러들이는 파격을 보였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을 더욱 더 초초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최룡해의 방중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이상한 건 미국의 태도였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작년 3~4월 대규모 무력시위를 한바탕 벌인 뒤에는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 추고 말았다. 이후 한미정상회담과 미중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북핵 불 용의 원론적 입장만 밝혔을 뿐 공식적인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 다. 다만 배후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갖거나 일본의 이지마 특사 파 견을 지켜보며 한반도 정세가 통제 불능으로 빠지지 않도록 관리할 뿐 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이 작심하고 내놓은 이란과의 핵 비즈니스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북한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일체의 공식협상 자리에 끝내 나서지 않았고 당황하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 았다. 북한이 협상 마감시한이라고 알린 작년 7월 말을 넘기고서는 8 월에 한미연합훈련 중 하나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보란 듯 이 진행하기도 했다. 이제 남은 건 북한의 선택뿐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의 호언 장담과 달리 작년 여름 이후 더 이상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을 시도하 지 않았다. 그리고 하반기에 들어서는 적극적인 대외행보를 접고 내치 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레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급상승 된 한반도의 긴장지수도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국면전환은 많은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2013년 한반도를 둘러싸고 고집스럽 게 침묵한 미국과 돌연히 태도가 달라진 북한에 대한 의문은 쉽게 해 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1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 실마리가 풀 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의 핵협상이 잠정 타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102 붉은글씨 2호

세계전략의 일시적 재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미국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외교는 실패를 거듭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 국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였다. 특히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은 거의 자유낙하 하는 처지가 되었다. 시리아 사태에서 미국은 존재감을 상실 한 지 오래이며, 심지어 미국이 점령했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조차 미국의 정책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드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이 지역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 아는 미국이 중동문제를 놓고 강경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3월20일자 보도에서 동아시아에선 중국, 유럽에 선 러시아의 완력 과시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불안에 떨면서 미국 오바 마의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내 보수진영은 오바마의 전략적 무능을 탓하고 있 다. 즉, 오바마 정권이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외교와 어떻게 연관 지을 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모습은 설령 공 화당이 지난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내 진영논리를 떠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향후 국방비를 최대 1조 달러까지 삭감해야 하는 처지에서 자신의 국력을 전세계적으로 과잉 전개할 여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 도 전쟁 피로증 에 걸린 미국 사회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가 대선 공약으로 제대로 먹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식을 주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03

목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정권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끝 내 크림반도를 합병했지만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강력 대응에는 일절 나서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를 두고 접경국가에만 위협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강국 이라 폄하하는 것에 그치며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 기 위한 외교적 해법 찾기에 몰두했다. 동시에 유럽연합 측에는 러시 아를 겨냥한 군비지출 확대를 재차 주문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묵인함으로써 옛소련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해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우크라이 나 사태가 이후 내전 양상으로 치닫자 미국은 푸틴을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고립화정책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미국이 고수해왔던 세계전략 차원의 접근보다는 결국 공수표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현재 러시아를 향한 마땅한 지렛대가 없음을 실토하는 측면이 더 크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국과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는 국가에 대해 노 골적인 봉쇄 및 포위 전략을 추구해왔다. 미소 냉전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란에 대한 봉쇄정책과 러시아와 중국을 향한 포위정 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 국가는 중동, 유럽, 동아시아에서 각각 지역을 대표하는 강국인 까닭에 미국은 해당 지역에서 기존 동맹국들 과의 협력 강화는 물론 새로운 국가들을 동맹질서로 적극 포섭하는 정 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새로운 무기시장을 창출하며 각 지역에서 정 치군사적인 영향력을 지속하고자 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에 대한 견제가 한층 더 강화되면서 미국 과 중국 간의 동아시아 신냉전 질서 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기존의 세계전략을 고집하기보 104 붉은글씨 2호

다는 당분간 이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입장에 변화를 준 것 같다. 즉,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른바 지역 강국 에 대해 그 영 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해줌으로써 봉쇄 및 포위의 공세 수준을 예전 에 비해 완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미국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지난해 6월 미중정상회 담으로 보인다. <시사인>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이 그토록 원하 던 중국 함대의 서태평양 진출을 인정해주는 대신에 달러와 위안화를 1대6 수준에서 연동하는 통화동맹을 요구했다고 한다. 앞으로 미국이 취할 양적완화 축소정책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지 않도록 중국이 경 제적 희생을 감수해준다면 태평양을 미국과 중국이 동서로 분점하자는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 11월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상을 잠정 타결했다. 주요 골자는 이란이 핵 활동을 평화적 목적에 한정한다면 경제제재 해 제를 시작으로 미국과 관계정상화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강력 반발하고 있고 또한 최종 타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미국의 태도는 변화가 없을 듯하다. 시아파 이슬 람의 중심국가인 이란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이고 깊은 수렁에 빠진 시리아 사태에도 큰 힘을 행사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 내 미국의 입지를 고려한다면 이란에 대해 봉쇄 정책을 유지하는 것보다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가 되리 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란과의 핵협상은 북한과 이란의 핵 비즈니스를 원천 차단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위해 처음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05

작년 3월부터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미국은 극도로 보안을 유지했는데, 이란과의 핵협상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북한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 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만 해도 이란과의 핵협상이 불확실했던 탓에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각각 따로 만나면서 상황관리에 주력해야 했다. 그런데 작년 6월 이란 대선에서 서방에 우호적인 하산 로하니가 당선 되자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이란 핵협상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북한과 이란의 핵 비즈니스까지 일거에 무너뜨리는 연쇄작용을 일으켰 다. 이것이 바로 지난해 하반기 북한이 공세카드를 일제히 접고 숨고 르기에 들어간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예상치 못한 이란 정권교체 라는 돌발변수를 맞으면서 더 이상의 군사적 도발은 그 부담이 너무나 컸던 까닭이다. 미국으로선 의외의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힘겨루기와 동아시아 질서의 지형 변화 작년 하반기 북한변수가 가라앉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과 일본의 대결구도가 본격화되었다. 동아시아 정세를 좌우할 제 2막 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대의 영 유권 문제와 과거사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중국과 일본은 마침내 작년 11월23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 았다. 당시에는 일본의 도발에 중국이 맞대응했다는 식의 관측이 주류 를 이루었다. 작년 10월 일본이 미일 외교 국방장관회담(2+2)에서 집단 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받은 이후 중국을 겨냥하여 전 시상태를 상정할 수 있는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창설하고 특정비 밀보호법까지 밀어붙이자 이에 반발한 중국이 센카쿠 일대를 포함한 106 붉은글씨 2호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일침을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도발을 먼저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양국 지배 권력의 공통된 이해관계였다. 중국과 일본 모 두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적인 무력충돌은 해볼만하다는 위험 천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당시 집권 1 년차를 맞이한 중국의 시진핑은 과거 센카쿠 문제에 대한 강경자세로 내부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던 만큼 다시 한 번 친정체제 강화를 위해 영토분쟁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게 다가 그해 6월 미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국 함대의 서태평양 진출을 약속한 만큼 이를 실제로 확인받는 동시에 방공식별구역 안에 포함된 대만을 앞으로 중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장기 포석의 출발점으로 삼 았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아베 정권도 속내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근저에는 일본의 장기불황이 놓여 있었다. 2012년 12월 아베는 6년 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르며 지난 20년간의 디플레이션과 부진한 성장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지상과제인 물가인상을 위해 지속적 통화팽 창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주식시장의 버블을 양산하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질임금 인상 없는 물가인상은 소비 활성화와 거 리가 멀었고, 물가인상의 실체도 아베노믹스보다는 원전 사고 이후 에 너지 수입비용의 급상승에 따른 착시효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 에서 중국과의 무력충돌은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탈출구 로 보였을 것이다. 이는 또한 아베가 말하는 보통국가 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07

2012년 재집권하면서 아베는 강한 일본 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면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은 기억에서 지워져야 했고, 과거사 문제로 인한 주변국과의 마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귀결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가 되 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의 무력충돌은 평화헌법과 무기수출 금 지 등 전후체제의 족쇄를 일거에 풀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전 시상황을 내세워 보통국가로서의 일본을 재건하고 현재 미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군수산업을 전면화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빼앗긴 역내 주도권을 되찾을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었다. 이 같은 대외 강경 드라이브 속에서 최근 일본은 무기수출 금지 제한을 은근슬쩍 해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막상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자 미국은 일본의 기대 와 다르게 행동했다. 중국에 자제를 요청하면서도 끝까지 방공식별구역 철회를 요구하지는 않은 것이다. 더구나 작년 12월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자 주일 미국 대사관은 이례적으로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동안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중국과의 강경대치 속에서 미국 의 지지와 군사적 지원을 당연하게 기대해왔지만 뭔가 이상기류가 감 지된 것이다. 이는 아베 정권이 센카쿠 문제와 과거사 문제로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도 대립하며 역내 갈등을 고집하자 전후체제 탈피와 보 통국가 실현이라는 일본 우익의 본심에 대해 미국이 의구심을 품기 시 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에 맞선 아베 정권의 적극적 행보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위험수위까지 왔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아베가 강한 일본 의 전제로 삼는 전후체제 탈피 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곧 미국 주도의 전후 질 108 붉은글씨 2호

서를 부정한다는 뜻이자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런 의혹은 최근 일본이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 공장을 결국 준공한 다는 점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미 작년 4월에 미국이 강한 우려 를 표시했지만 일본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를 강행했다. 지금도 일 본은 핵무기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44.2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 는데, 롯카쇼무라 공장이 가동되면 향후20년간 160t의 플루토늄을 추 가로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아베가 염원하는 보통국가 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일본 이 아니라 미국에 자주적인 그것도 핵 무장력을 갖춘 국가로서의 일본 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에서 먼저 도발하는 쪽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 양상이 바뀌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 인식은 여전하지만 중국의 공세적인 태도가 더욱 도드라지고 있 다. 지난 4월 유럽순방 중에 시진핑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 에서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과거의 범죄행위를 일일이 열거하며 작심 한 듯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의 군 내부적으로는 이미 국지전 개 전시의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상태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기 시작한 아베 정권은 기존 우익의 방침대로 대( 對 )중국 강경책을 밀어붙이기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어떻 게 보면 일본이야말로 현재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한 국의 박근혜 정권은 외교안보에 있어 미국에 대한 독자노선 카드를 제 대로 꺼내보기도 전에 제압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09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실체와 중심 잃은 박근혜의 대북정책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는 각종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 로 내걸며 집권했다. 대북정책에서도 박근혜는 이명박과의 차별화를 강 조하며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인도적 대북지원과 대화 창구는 유지 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다. 남한의 전통적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박근혜가 중도확장 노선으로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거머쥐자 한동안 박근혜의 실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기도 했다. 특히 대북정책의 유연한 접근을 놓고서는 박근혜의 롤모델로 미국 의 닉슨 대통령이 부각되기도 했다. 닉슨은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지만 한때 매카시즘의 선봉에 설 정도로 워낙 보수 강경이었던 탓에 색깔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박근혜 역시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박근혜는 김정일과 직접 만났던 정치적 자산도 갖고 있었다. 문제는 박근혜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공약 이행의지를 밝 힐수록 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강 화가 필수적이지만 이는 미국이 원치 않는 그림이었다. 그래도 집권 직후에는 대외기조에 있어서 자기만의 색깔을 내려는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독자적인 대북정책 추진의지를 내비친 점이나 이명박 정권 시 절 내내 냉랭했던 중국과의 협력강화를 적극 모색한 점에서 이전과 같 은 친미일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은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친 미정권의 수장을 바랐지만 박근혜는 그런 기대에서 벗어나려 했다. 작년 초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국면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110 붉은글씨 2호

논란이 불거진 것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보 수세력들이 북핵에 맞서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가운데 박근혜 역 시 당선인 시절부터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권한을 미국으로부터 얻 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은 안 그래도 마뜩찮은 박근혜가 실 제로 한국의 핵무장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의혹을 품은 것 같다. 여기 서 북한의 3차 핵실험 국면은 미국이 보기에 박근혜 길들이기 를 위한 기회로도 보였을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과정에서 미국이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전략 폭격기를 굳이 한반도 상공에 띄운 것도 실은 박근혜를 향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서 다른 생각 품지 말고 미국의 통제 에나 잘 따르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국내적으로도 박근혜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휩싸이며 손발이 묶이기 시작했다. 사태가 정권의 정당성 문제로 확산되자 박근혜가 급 하게 꺼내든 것은 공안 강경 드라이브였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죄 적용을 시작으로 한 소위 종북공세와 전교조 전공노 철도노조 등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숨 돌릴 틈 없이 계속되었다. 여 론의 국면전환을 위해 정권 말기에나 등장할 법한 충격요법이 집권 1 년차에 서둘러 사용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중도확산 노선은 증발되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보수강경 노선이었다. 그리고 집권 전에는 2선에 머물렀던 올드보이 들이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최근 국정원의 연이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남재준 원장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을 볼 때, 박근혜는 현재의 친정체제가 무너질 경우 곧 바로 레임덕이라는 우려를 하는 것 같다. 이 같은 박근혜식 공안 통치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건 이른바 북 한의 귀환 이다. 한동안 북풍은 정치권에서 사장되는 분위기였다. 보수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11

층의 결집은 가능해도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가지고 중도층을 잡기에 는 역부족이었던 까닭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천안함 사태로 이명 박이 기획한 대규모 북풍공세가 되레 여론의 역풍을 맞아 당시 한나라 당이 참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일련의 국정원 개입 속에서 북 한이슈는 종편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다시금 부활했다. 이때 보수세력이 이용한 건 종북논란 이었다. 친북 도 아닌 종북 이란 호칭은 과거 민 주노동당 분당사태 때 당내 통일운동 세력을 비판하기 위해 처음 사용 된 이후 북한의 3대 세습과 맞물려 북한에 대한 냉소와 경멸의 뉘앙스 로 변주되었는데, 보수 세력은 그 점을 파고든 것이었다. 그 결과 종북 논란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색깔론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박근혜가 느닷없이 꺼내든 통일대박론도 실은 작년의 종 북몰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양자가 상반된 것 같지만 통일대박론의 실체도 결국은 흡수통일론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장기적으로는 통일대박론을 앞세워 북한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을 추 진하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도권에 도전하는 세력은 그때그때 종북 몰이로 제압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는 지난 3월28일 독일 드레 스덴에서 대북 3대 제안을 발표하며 통일대박론의 행보를 이어갔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정책적 접근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그 대신 북 한의 내부 불안을 직접 거론하는 등 북한붕괴론에 기댄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애초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실종되고 경직된 대북정책만 지속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강한 견제 속에서 박근혜가 대북정책에서 취할 수 있 는 운신의 폭이 대단히 협소함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권도 초기에는 대북 실용노선을 견지했지만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전략 112 붉은글씨 2호

적 인내 를 고집한 미국에 의해 대북정책의 자율성이 제약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보수정권들이 미국의 의사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작년 5월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국 이 기존 한반도 비핵화 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 라는 표현에 집착하며 대북 포위망 구축을 위해 북한을 뺀 5자 대화기구 설치를 요구한 것도 그 실현가능성과 무관하게 대북 강경노선을 내세워야 하는 나름의 이 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권 내부적으로도 공안탄압과 종북몰이를 통해 정국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대북강경책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 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말이 한국 에서 먼저 흘러나온 것 역시 박근혜의 독자적 대북정책 구상이라기보 다는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4차 핵실험과 6자회담의 갈림길에 놓인 한반도 지난 3월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 회담이 마침내 성사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안보의 기본틀인 한미일 3각 공조체제가 과거사 문제로 인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미국이 일본의 자제를 요구하며 한일간 중재에 나섰던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 데 이날 회동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사람은 오바마도 아베도 아닌 박근혜였다. 당시 박근혜는 북한을 향해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고 북핵 고도화를 차단하는 보장이 있다면 대화 재개 관련 다양 한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갑작스럽게 한국 역할론이 떠올랐고, 이는 4월에도 재차 확인되었다. 그동안 6자회담 재개에 있어 한미일 3국이 강하게 제기했던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처에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13

대해 이전과는 달리 유연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가 먼저 언론에 흘렸던 것이다. 박근혜의 깜짝 행보가 미국과의 사전교감 없이 나왔다고 보기는 힘 들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 시점에서 굳이 한국을 앞세웠을까. 그것 은 결국 미국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과 관련이 있다. 올 해 4월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에서 원래 목적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방문이었다.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시킬 동아시아 MD를 완성하 기 위해서는 동남아 국가 중 한 곳에 레이더 기지 설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지난 2012년부터 동아시아 MD 구축 계획을 흘릴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고, 이에 따른 중국의 강력 반발 또한 예 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도발을 명 분 삼아 동아시아 MD를 추진해왔고, 중국은 동아시아 MD 저지를 위 해 그 나름대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강력하게 요청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란 핵협상을 잠정 타결하며 작년 북한의 도발은 일 단 저지했지만 북핵 능력의 고도화는 앞으로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해 북핵이 미국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일이 머지않아 발 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중국이 동아시아 MD 문제를 놓고 유럽 MD 추진으로 미국과 마찰하는 러시아와 공동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도 미국으로선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으로 동아시아 MD 추진을 밀어붙이면서도 그 전에 6자회담 재개 와 관련한 입장을 최소한 운이라도 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당장 시 간 부족과 정치적 부담이 문제였다. 결국 미국보다는 다른 누군가가 114 붉은글씨 2호

대신 나서줄 필요가 있었고, 이때 중국과 러시아 모두와 대화할 수 있 는 동아시아 친미국가로는 한국이 제격이었다. 이처럼 6자회담 재개를 놓고 상황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북한은 오히려 잠잠한 모습이다. 실제로 북한은 작년 하반기 이후 군사적 도 발을 자제하며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핵무기와 경제발 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병진노선을 천명한 가운데 작년 5월 경제개발 구법을 제정한 데 이어 그해 11월에는 세부계획을 공식 발표한 것이 다. 눈에 띄는 건 13개 경제개발구와 새로운 경제특구들이 대부분 중 국과의 접경지역이나 북쪽의 해안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 한이 한국과 경제협력에 대해선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 준다. 물론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이 우려되긴 하지만 중국 역 시 동북 3성의 경제발전을 위해선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당장은 중국을 외자도입의 주된 경제파트너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여기에 북일협상의 결과에 따라 가능하다면 일본 자본까지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서도 북한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정은이 신년사에서 직접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히고 한미연합훈련 중 임에도 올해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응한 것은 향후 박근혜 정권과 의 관계설정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려한 행보인 듯하다. 그러나 한미연합군이 21년 만에 최대 규모로 상륙훈련을 강행하고 박근혜 역 시 미국의 견제 속에서 독자적 대북정책 추진의사를 보이지 않자 박근 혜 정권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북 한이 당장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한미연 합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단거리 로켓발사와 노동미사일 발사,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15

그리고 서해 포사격 훈련까지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긴장수준을 관리하려는 모습이었을 뿐이다. 지난 4월23일에 박근혜를 향해 공개질 문장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일단 4월 한미정상회담까지는 지켜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3월 한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한미정상회 담에서도 뚜렷한 대북 메시지가 나오지 않자 당분간 자기 길을 가기로 결심한 듯하다. 즉, 핵무기를 통해 안전보장을 위한 전쟁 억지력은 갖 췄다고 여기는 만큼 한국과 미국의 현 정권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는 접고 대화공세보다는 향후 몇 년간 내부 경제회복에 집중하려는 것이 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그들 나름대로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가 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식량문제와 경제사정이 일부 호전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자신감을 더하고 있다. 지난 4월 13기 1차 최고인민회의 에서도 장성택 처형 이후 현재의 권력체계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김 정은 체제는 내부권력의 안정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필요에 따 라서는 앞으로 북중정상회담 또는 북일정상회담과 같은 외교카드를 활 용하며 대외행보를 재개할 수도 있다. 현 국면에 대한 북한의 이 같은 판단은 그러나 4차 핵실험에서는 예외를 보일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은 핵실험 등 강경도발을 통해 국면 을 전환하며 대미 관계개선을 요구해왔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예 상된다. 이는 북한이 그토록 원하던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하여 미국이 한국을 통해 신호를 보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에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대미 협상력을 높일 뚜렷한 지렛대가 없기 때문이 다. 따라서 북한은 오바마 정권보다는 차기 정권을 염두에 두고 핵능 력 강화 차원에서 결국 4차 핵실험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116 붉은글씨 2호

탄도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핵무기의 질적 개선, 즉 소형화 경량화에 최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추가 핵실험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 확장공사 를 끝내고 핵물질을 추가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4차 핵실 험이 실제로 감행될 가능성은 높은 편이며 중국과의 마찰도 불사할 것 으로 보인다. 설령 북한이 4차 핵실험이 아닌 전면적인 유화국면으로 돌입하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미일 3국의 요구조건과 절충을 시도한다 해도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여건은 여전히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 에서는 북한문제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간의 변수 또한 역내 불안정 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동아시아 MD 추진과 한미일 3각 동맹의 강화를 노렸지만 동시에 세 계전략 재조정의 일환으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도 않아야 했다.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오바마가 당장은 일본 편들기 에 나섰다 해도, 중국이 강력 반발한 만큼 향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은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오바마의 방일기간 동안 동중국해에 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가졌다. 일종의 무력시위이자 작년에 미국이 보 장한 중국 함대의 서태평양 진출을 재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일본 또한 전후체제 탈피와 보통국가 실현을 포기하지 않는 한 향후 언젠가 동아 시아 역내 질서에서 중국과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하다. 문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평화의 가치가 북한을 비롯한 동아시 아 일대의 부르주아 지배권력 사이의 파워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 받고 있다는 점이다. 유령처럼 배회하는 전쟁의 그림자는 이제 북한문 제 뿐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 질서 속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정세 _ 동아시아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북한의 선택 117

자국의 민족주의까지 동원하며 한층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더군다 나 그 중심에는 핵문제마저 있다. 현재 한반도가 북한 4차 핵실험과 6 회자담의 갈림길 속에 놓여 있다고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평화와 안전, 생명이다.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부르주아 지배권력 사이의 마찰과 갈등 속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이들 사이의 일시적인 약속과 합의가 아니라 전쟁과 모든 핵에 반대하는 우리 스스 로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자발적인 행동뿐이다. 118 붉은글씨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