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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 이상협 ** 1) 차례 1. 들어가는말 2. 독립전쟁좌절과민족문화정체성 2-1. 민족과민족문화의상징 2-2. 오스트리아 - 헝가리왕국 시기의헝가리 헝가리민족 (Magyar nemzet) 의 모순과환상 Trianon" 과 " 헝가리민족 (Magyar nemzet) 3. 20c 헝가리의민족문화정체성과자기이해 3-1. 이중왕국붕괴부터민주화까지 3-2. 오스트리아 와헝가리 의상호이해 4. 맺는말 < 국문개요 > 헝가리의민족역사와민족문화정체성에대한자기이해를합스부르크제국과연관하여조사한본연구논문은기발표논문인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민족문화정체성형성 을바탕으로하여계속연구된것이다. 민족과문화정체성형성에있어서는 natio Hungarica 와 magyar nemzet 의두용어로집약하여연구를진행되었으며, 헝가리민족문화 (magyar nemzet) 의자기이해연구에있어서는 magyar nemzet 가내포하고있는범주와범위그리고특징을합스부르크제국과의상호관계사를통하여살펴보았다. 우선적으로 1848/49년의독립전쟁좌절에따른민족정체성과민족문화의핵과상징의변화에관해조사되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의틀 * 이논문은 2007 년정부 ( 교육인적자원부 ) 의재원으로한국학술진흥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KRF A00030) ** 한국외국어대학교헝가리어과교수

2 66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속에서그것이어떻게해석되고이해되는지를연구하였고, 제1차세계대전의결과맺어진 트리아농조약 " 에따른정체성의혼돈과축소변화에대한조사를진행하였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의시기별역사속에서민족정체성과민족적상징의변화가 20세기중반이후즉현재에는어떻게이해되고평가되고있는지를, 본인의발표논문 현재헝가리인들의민족적자의식분석연구 과함께합스부르크제국과현재의오스트리아와연관지어연구하였다. 주제어 : 헝가리, 민족-문화-상징, 1848/49 시민혁명과독립전쟁,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오스트리아, 꼬슈뜨, 성이슈뜨반, 뻬뙤피 1. 들어가는말 헝가리민족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에관한본논문은합스부르크제국과관계되어형성된헝가리민족문화의민족적요소와역사적성격에기초한헝가리인의민족, 국가, 민족적상징, 민족영웅의연속성과불연속성의화합과갈등을연구한다. 1848년시민혁명그리고연이은독립전쟁의좌절과실패이후민족의대다수 -귀족과시민층을비롯하여농민그리고농노출신계층에이루는사회전계층을망라하는-에깊게파고든좌절과실패는민족적요소와역사적성격즉역사주의적특성을한층더깊게각인시키는계기가된한편, 민족의존립과자주성을위협하는범독일주의 (Pangermanism) 와범슬라브주의 (Panslavism) 의물결속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모순으로가득한이중왕국을선택하는중요한역사적전기를만들어내게된다. 1) 이이중왕국은결국헝가리인들과비헝가리계제민족들과의회복하기어려운새로운양상을유도하여, 20세 1) Panslavism 과 Pangermanism 의사이에서헝가리보수민족주의일부계층은고대신화적요소를역사와결합하여범터키주의적성향즉 Turanism 을추종하게되며, 이는많은헝가리대중들에게도 20 세기전반부의고난과질곡으로점철된역사현실속에서확산되었다. 이 Turanism 은 20 세기전기간을통해그리고오늘까지도헝가리사회의국수주의, 네오나치즘등의기반이되고있다. : Weaver, 참조.

3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67 기헝가리현대사의질곡을태동하게되며동시에 19세기중반에형성된헝가리민족과민족문화정체성의본질에새로운시각과이해를요구하게된다. 이러한과정을통하여본연구의주목적인헝가리인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의변천과정과핵을찾아보게된다. 그밖에현재도헝가리인들이일반적으로갖고있는민족, 국가, 민족적상징그리고민족영웅에대한상들중에서합스부르크제국과관련되어민족의식과민족국가형성시기에구축된상들에대한당시와현재사이의인식상의간극과해석상의차이유무를조사연구하는내용도포함하게된다. 이러한인식상의간극과해석상의차이조사는민족각성과민족의식형성그리고민족정체성의문제가핵심적인화두의역할을하였던시기와비교해현재헝가리사회에서이상들이미치는영향력의유무와크기를조사하고동시에이상들이갖는사회적의미의변화정도를살펴보아이들의순기능과역기능을조명해보는데또다른목적도갖게된다. 역사, 문화적자기이해를보다더현실적으로그리고구체적으로나타내보이는민족적상 ( 象 ) 으로서는무엇보다도다음과같은것들이포함되어살펴보게된다. - 합스부르크, 비인 (Wien) 왕실, 오스트리아 : 이세개념은서로따로분리하여독자적인개념으로파악하기는어렵지만, 수백년간에걸친헝가리와합스부르크제국간의상호관계를감안해볼때반드시포함되어야할사항이다. 특히현재에있어서의합스부르크, 비인왕실, 오스트리아에대한헝가리인들의인식유형은헝가리인들의역사적, 문화적자기이해에대한관점을분명하게시사해줄것이다. 2) 이와함께 19세기합스부르크제국의지배계층들사이에팽배하였던반항적인헝가리상에대한변화도 20c 말과 21c 초즉현재의오스트리아인들과헝가리인들사이에서감지되는지여부도살펴본다. 2) 1848 년 3 월에합스부르크제국의비인 (Wien) 과헝가리왕국의부다페스트 (Budapest) 에서모두혁명 - 시민혁명 - 이발발하였지만, 현재의오스트리아와그주민들은이혁명에대한기억이나영향이별로나타나지않는반면에, 헝가리에서는 - 심지어사회주의국가시절에도 - 이혁명의영향과파급력은계속존속해올뿐아니라오히려더욱더강조되는현상도쉽게찾아볼수있다. 또현재의오스트리아일상어에서주변여러민족들에대한경멸적어감의호칭이존재하는데반하여헝가리인들에대한이런호칭은찾아보기어려운현상이헝가리일상어에서도동일하게오스트리아인에대한경멸적호칭이존재하지않는점도많은것을시사하는것으로간주할수있겠다. : Rásky, 참조.

4 68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 헝가리민족적영웅과인물 : 민족지도자로서, 민족영웅으로서또는민족의순교자로서간주되어온인물들에대한현재의평가는어떠한지그리고그영향력의정도와범주를조사하여봄으로서현재헝가리정치, 경제, 사회및문화계에서의민족적가치관과정체성이갖는의미와위상을도출해낼수있을것이다. 조사대상이될인물로는세체니이쉬트반, 꼬슈뜨러요쉬등을비롯하여 1848년헝가리시민혁명의주도적인물이자동시에신화적존재인헝가리최고의민족시인인뻬뙤피샨도르등이포함된다. - 헝가리의문화적민족상징물 : 현재헝가리인들이대표적인헝가리민족의상징물로간주하고있는것들중에서그기원과상징물로서의가치를갖게되는계기가합스부르크제국과관련이있는것을조사하여봄으로서헝가리의민족문화정체성과민족문화의성격을합스부르크제국과의조화와갈등의관점에서살펴보는목적을갖게되며, 헝가리와합스부르크의대표적상징인부다페스트와비인의문화적상호비교를통해서도자기이해를위한연구가진행된다. 3) 3) 오스트리아 - 헝가리왕국 시기에 부더 (Buda) 와 오부더 (Óbuda) 그리고 뻬쉬뜨 (Pest) 라는별개의세도시가통합되여 부다페스트 로바뀌어헝가리의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중심이자핵으로서의역할을갖게된역사적사실또한헝가리인들의자주독립국가로서의위상과함께 비인 으로대변되는합스부르크와경쟁하며자신들의민족과민족문화의정체성을분명하게내보이려는의도에따른것이라간주할수있겠다. : Hanák, 참조.

5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독립전쟁 4) 좌절과민족문화정체성 2-1. 민족과민족문화의상징 1848년 3월 15일의헝가리시민혁명과연이은헝가리독립전쟁 ( ) 은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왕국과의밀접한상호관계에기인한것이며, 농노해방을제외하고는결과적으로는좌절된시민혁명과독립전쟁은헝가리의민족정체성과민족문화그리고 19c 후반이후의헝가리의민족적정치문화의만개에큰역할을하게된다. 비록실패로끝났지만이시민혁명과독립전쟁의이상즉민족독립과자주, 급진적사회개혁그리고자유주의적개혁의이상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라는이중왕국시기를통하여그리고현재까지의모든헝가리정치권력과집권정권은 1848/49 년혁명의이상을계승할것을선언하며정통성을인정받으려고노력해왔다. 5) 1848/49 년이전까지는헝가리개혁시대와민족정체성형성을주도해온귀족계층은낭만주의적이상에젖어농민과민중의문화를민족적일체감의주요요소로간주하여민족정체성과민족문화에이러한 농민적 / 민중적 (: népies) 취향을적극반영하여왔으나, 이제독립전쟁의좌절을기점으로하여이 농민적 / 민중적경향 (: népiesség) 은애국심의표현단계에서시작하여민족문화의보고로서그리고최종적으로는헝가리민족문화의상징으로승화하게되었다. 합스부르크군대와러시아짜르군대의연합에의한독립전쟁의좌절은지금 4) 1848 년 3 월 15 일시민혁명의성과를무효화하기위해여름에합스부르크는헝가리로군대를파견하였다. 이에헝가리는합스부르크왕가출신의인물을헝가리왕국의국왕으로선출하여오던관례를파기하고합스부르출신왕을폐위시키며 꼬슈뜨 를국가원수로선출해합스부르크와의전쟁에돌입하게되었다. 이러한사실에기인하여헝가리역사에서는이를독립전쟁이라는용어를사용하고있다. 5) 1848/49 시민혁명과독립전쟁의좌절로인하여합스부르크점령군은헝가리에절대주의적강압통치를펼쳐, 헝가리의민족적상징과그대상들의사용을금지시켜나갔다. 그러나농노해방, 헝가리인들의입헌의회및정부, 유태인의평등권, 제민족의모국어사용권리등은보장해주어헝가리왕국내에서시민적자유는점차로고착되어나갈수있었다. : Nemes, 참조.

6 70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까지헝가리인들의가슴속에내재해있던 민족의소멸 (nemzethalál) 에대한악몽이한층더직접적으로직면하게되는계기가되었다. 게르만과슬라브의거대한물결속에서헝가리민족의생존을도모하여야하는중대한기로에서게되어민족이념과문화의측면에서도커다란전기가마련된것이다. 이념적으로는귀족적사고를가지고당시사회를주도하고있던헝가리도시중산층은헝가리민족에게생존과극복의희망을불어넣고, 민족공동체로서의도덕적표상으로서활동하는소명의식을가지게되었다. 민족적일체감과정체성을형성하며이어져온헝가리민족문화의낭만주의적역사주의는이독립전쟁좌절이후한층더체계화되고본격화하게되었다. 헝가리의 영웅적과거역사 와 19c 중반민족의존립을심각하게위협받고있는 현재의미미함 속에서보상적대안으로서헝가리인들의기원이 고대튀르크-몽골 기마유목민족으로확신하는경향이팽배해지며민족문화와예술계전반을휩쓸게되었다...., 19세기헝가리의현실과역사상황속에서는이핀-우그릭기원은위안과자부심의대상이되지못하였으며, 친독일주의자 - 즉친합스부르크주의자 - 들의생각으로나간주되었다. 6) 민족의기원이학술적인근거에바탕을둔 핀-우그릭 이아니라 훈 족의역사적행동에의거한 낭만적아시아기원설 (romantisierende Orientalismus) 의확산은특히 1849년독립전쟁좌절이후한층더견고해져, 문화, 예술뿐만아니라정치계에서도영향력을발휘하여헝가리인들의민족문화와문화적자기이해그리고민족자의식에각인되는결과를낳게된다. 범게르만주의와범슬라브주의사이에서헝가리인들은자신들의민족적존립과긍지를찾기위해친터어키 (Turkophilie) 적경향을띄게되며, 이는한층더나아가 20c 초제 1차세계대전직전에는 투라니즘 (Turanism) 으로발전하여제1/2차대전전간기에는극우민족주의자들의이념으로까지확대되어인종주의와나치즘의토양이되기까지하였다. 7) 6) 이상협, ) 당시헝가리학계에서는 우그릭 (Ugric) 대 터어키 "(Turkic) 간의대논쟁이격렬하게벌어졌으며, 일반여론과분위기는 친터어키 조류가압도적으로우세하였다. 독립전쟁실패이후여러헝가리민족지도자들이합스부르크나러시아영향력이미치지못하는타유럽

7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71 헝가리인들의 민족적역사주의 (nemzeti historizmus) 는민족주체성과민족문화의근간을역사속에서찾기위한노력이었으며이시도는특히독립전쟁의좌절과이후이어진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시기에활발히진행되어현재까지도유효한본격적인틀을갖추어문화적자기이해를형성하게된다. 8) 개혁시대를통하여민족적자아와동질감을상징하게되는대상물, 인물, 사건들이본격적으로형성된연후에독립전쟁의좌절과이에따른합스부르크주둔군의절대주의적압제에기인하여이상징물들은민족저항의식의표현으로서정치적인애국심의상징으로서자리잡게되며그리고한층더나아가서는민족자주와독립의상징으로승화되어 헝가리정체성 (magyarság) 의표상으로서사회모든계층과분야에작용하여헝가리인들의민족정체성, 민족문화의핵심가치로서위상을정립하게되었다. 헝가리문장 ( 紋章 : címer), 국기 ( 國旗 ) - 이적백녹의삼색기는국기로서뿐만아니라헝가리를상징하는색깔로도 : nemzeti szín -, 헝가리왕관 (Sz. Korona) 그리고역사적인물로는기독교를국교로하여처음으로헝가리왕국을건립한이쉬뜨반왕 (Sz. István), 시민혁명과독립전쟁에직접참여하고산화한시인 뻬뙤피 (Petőfi, Sándor), 개혁시대와 1848/49년시기의주요인물인 꼬슈뜨 (Kossuth, Lajos) 와 쎄체니 (Széchenyi, István), 그리고 18세기대합스부르크왕국에저항하여헝가리왕국의독립을쟁취하기위한투쟁을전개하였던 라꼬치 (Rákoczi) 등이이시기를통하여헝가리민족의정체성과민족문화의분명한상징으로서위상을굳히게되고, 이후현재까지도사회모든분야와계층에서도이론의여지없이헝가리인들의문화적자기이해에있어중추로서작용하고있다. 9) 지역보다는터어키로망명을한사례나, 현재도헝가리초등학교의최초독본교재에 훈 족의왕 어띨러 (Attila) 에대한이야기가실려있는것도이와연관된것으로볼수있을것이다. 전간기에는 Turan 이라는극우청년단체가조직되어활동하여현재도명맥을유지하고있으며, 몽골과만주를확대연계시켜나가일본의극우파와손잡고 헝가리 - 일본 간의친족관계까지로도확대해석하기도하였다. : Heiszler, 참조. 8) 민족적역사주의 는헝가리문화의표현대상과테마가 낭만적아시아기원설 (romantisierende Orientalismus) 과연계된성격과특징을지닌것으로간주할수있겠다 : 19c 중반이후헝가리문화예술의조류는범유럽의조류와큰틀에서는맥을함께하였으나, 중동이나인도예술의모티브에서영감을얻어 헝가리적 - 민족적스타일 을구현해왔다고간주되고있다. : Heiszler, 참조. 9) 왕관 (Sz. korona) 과이쉬뜨반왕 (Sz. István) 은 1848/49 이전에는귀족계층을중심으로한헝가리왕국의국가와국왕의상징으로간주되었으나, 1848/49 이후에는농민과민중을

8 72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2-2. 오스트리아 - 헝가리왕국 시기의헝가리 헝가리민족 (Magyar nemzet) 의 모순과환상 1848/49 년시민혁명과독립전쟁의좌절이후합스부르크의강력한압제에수동적저항을지속하던헝가리로서는민족의존립과주권을보전하기위해새로운시도를모색할수밖에없었다. 보수적자유주의이상에경도되어있던사회지배계층을구성하고있던귀족계층은 데악 (Deák, Ferenc) 의주도로거대한슬라브와게르만세력권사이에서헝가리왕국이취할수있는보호막으로서는 합스부르크왕국 이적합하다고간주하여합스부르크왕국과군합국 (personalunion) 의형태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의한부분으로서존재할때에만헝가리의미래를보장받을수있고, 발칸지역에대한헝가리의영향력도유지및확대할수있다고판단하여합스부르크와대타협 (Ausgleich) 을행하여마침내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 (Dual Monarchy) 체재를를구축하여중부유럽의거대제국이실재하게되었다. 이에반해독립 포함한헝가리사회모든계층과계급을아우르는민족독립과주권의상징으로승화되었다 : 제이차세계대전의와중에분실되어미국으로건너가보관되어있던헝가리왕관이 1968 년헝가리로반환될때, 당시사회주의정권의모든권력자들이공항에도열하여반환되는왕관을맞이하였으며, 사회주의정권하에서도국가의최고보물로지정되어유지보관되었다. 이쉬뜨반왕축일인 8 월 20 일은 1891 년부터국경일로지정되었으며, 헝가리사회주의정권역시그의미와비중을인식하여의도적으로사회주의헌법을이날공포하여 제헌절 로서공식적인국경일로만들어이쉬뜨반왕의상징적의미를사회주의정권의의도에결부시켜이용하기도하였다 ; 1989 년민주화이후에는사회주의적색채의 제헌절 은제거되고이쉬뜨반축일로서 3 대국경일의하나로지정되어있다. 뻬뙤피 (Petőfi, Sándor), 꼬슈뜨 (Kossuth, Lajos), 쎄체니 (Széchenyi, István), 라꼬치 (Rákoczi) 인명은사회주의시절에도그리고현재에도헝가리도시와마을을망라한도로명과광장이름에서쉽사리찾아볼수있을정도로보편화되어있으며, 국립도서관격인 쎄체니도서관, 최근까지도데브레첸의대학이름역시 꼬슈뜨러요시 대학일정도로헝가리사회에서의민족적상징의의미가매우크다. 특히 꼬슈뜨 는헝가리농민과민중들사이에서는거의신적존재 (: félisten) 로간주되어수호성자 (védő szent) 로그들의민속양식에반영되어오고있을정도이다. 헝가리국기의적백녹삼색은 19 세기중반이후현재까지공식, 비공식행사와행동에있어국가적성격과헝가리적그리고민족적성격의상징으로서다양한형태로반영되어오고있다. : 이상협, ; Limbacher, 2002, 19-20, ; Szemelczi, 참조.

9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73 전쟁의영웅으로서이미민족의독립과자주정신의상징으로서헝가리민중에깊이자리잡고있던 꼬슈뜨 (Kossuth, Lajos) 는해외망명중에도합스부르크와의대타협의위험성을지적하며반대하였다. 그는 데악 과동일하게슬라브및게르만거대세력권에의한위협을인식하였으나, 합스부르크와의타협은부적합하다고간주할뿐아니라오히려이타협으로인하여헝가리왕국내의모든제민족으로부터헝가리가공동의적이될수있는위험성을경고하며이보다는제민족들과의연합과연대를추구하여합스부르크로부터완전히벗어나 다뉴브연방 체재를실현하여야한다는당시로서는거의실현가능성이희박한이상론을펼쳤다. 10)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체제하에서헝가리는오스트리아즉합스부르크황제에게만종속되며, 오스트리아왕국과헝가리왕국은상호대등한관계의완전한주권국가의자격을지닌자주독립의민족국가를형성하게된것이다. 이는 데악 의정치적외교적승리일뿐아니라크게는헝가리의승리라고일반적으로는간주되고있으나수많은비판도상존하고있다. 헝가리왕국의존립, 독립, 주권보장을헝가리단독의힘으로서는성취할수없음을인식하고이중왕국형태의연합체를통해이룰수있다는목적과, 합스부르크에지속적으로대항하는민족국가로서의헝가리왕국의투쟁강조는곧헝가리내타소수민족의민족주의운동을크게촉발시킬수있는위험성을인지하여이를잠재우려는목적과함께, 헝가리의대부분의토지를소유하고있던대지주들인귀족계층으로서는합스부르크와의타협을통해자신들의농산물을안정적으로판매할수있는시장확보라는경제적목적도이룰수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내에서헝가리는형식적으로는법적동등권을보장받았으나실제로는두나라사이의힘의차이는엄존하여 -인구면으로는오스트리아 57: 헝가리 43, 경제력의면에서는오스트리아 68: 헝가리 31, 그리고헝가리왕국은독자의군대를갖지않기로함. - 서로대등한독립국가의연합체라기보다는이전에이미존재해왔던상호주도적-종속적관계의두나라가연합하여쌍방에도움과이익이되도록한인위적타협의결과물로이이중왕국이실현된것이다. 중부유럽의거대제국으로재편된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은태생적으로심각한내적 10) 이시기의자세한역사내용과 데악 그리고 꼬슈뜨 의견해등에관해서는헝가리역사의해당시기문헌참조.

10 74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모순과문제를안고있었으며, 1867년실체화한후제1차세계대전의종식과함께소멸된사실은오스트리아와헝가리간의부조화에의한것이라기보다는이지역즉중부유럽과오스트리아, 헝가리개별국가내의심각한고유민족문제를해결하지못한데기인한다고볼수있을것이다. 11)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은최소 11개의상이한민족들이, 이슬람교를비롯한 7개의상이한종교, 그리고그보다훨씬더많은상이한모국어가존재하는다민족및다문화국가로서중부유럽에존재하게되었다. 비인과부다페스트는이중왕국의두중심축으로서이러한다문화와다민족의용광로로서 다양성속에서통일성 (Einheit in Vielfalt) 이펼쳐지는장이되었다. 중부유럽으로서는기적과같은평화로운시기인이이중왕국시기 ( 년 ) 를통해긍정적인측면에서는중부유럽이단기간에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다방면에걸친시민화가이루어진시기이기도하였다. 전국민을대상으로한보통교육제도, 병원시설, 상하수도시설, 언론자유, 여성교육, 공연예술과현대예술등이이지역에뿌리내리게되어그수준이유럽의일반적기준에접근하게되며, 시민적생활양식의형성과정착하고여가문화를즐기는수준까지의시민사회로변모하였다. 12) 특히이중왕국을유지시키고결합시키는동력이된합스부르크왕 11) 서유럽과중부유럽의민족국가형성과발전과정에는근본적차이가있는것으로보여진다. : Kozári, 2005, 55. 참조. 서유럽의경우에는민족각성의시기가도달하기전에이미중세에무력으로상당부분민족에따른국가가형성되고이후근대에들어서거대제국으로재편되는과정을보이고있으나, 중부유럽의경우에는 오스트리아 - 헝가리왕국 과같은거대제국이형성된상태에서제민족들이개별민족국가로재편하려는경향을나타내고있어, 이는필연적으로상호마찰과충돌로이어지게된것이라볼수있을것이다. 오스트리아 - 헝가리이중왕국 에관한수많은문헌중에서본논문작성에는다음의것들을주로참고하였다. : 이상협, ; Cieger, ; Galántai, ; Gáspár, ; Hoensch, ; Kiss, ; Kozári, ; Pesendorfer, ; Sára, ; Tóth, 2001, ) 급격한산업화와도시화로인하여도시와농촌간의격차는물론매우컸다. 그러나제도적인측면에서사회간접시설의정비와확충이가져온영향은매우지대하여중부유럽지역의오늘날의모습에서도이이중왕국시기의유산을쉽사리찾아볼수있다 : 이중왕국의동북부변경지역인갈리치아한마을에서끼릴문자로주소를적은서한이제국의서남쪽끝 트리에스터 소재수신인에게 2 일내에전달될정도이었으며, 국가적인사업으로서철도망의대규모확충을통해제국내많은지역의역사건물모습은비슷한유형의양식을보이며현재까지도기능을다하고있다. 이밖에연극및오페라공연장, 카페, 공공건물등등에서지역별다양성과함께이이중왕국시기의통일성을만나볼수있다. 빈의본격적인확대건설은 1857 년부터활발히진행되었고, 현재의부다페스트도 1873 년부더, 페

11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75 가의존재와이중왕국시기를통틀어재위한 프란츠요제프 (Franz Joseph: 총 68년간재위 ) 에의한근면, 성실의생활방식을바탕으로한가부장적통치의지속성을통해다민족, 다문화를결합시키는힘이나오고또소시민과모든관료의표상으로서시민사회의모범으로작용하는긍정적인결과를낳기도하였다. 13) 부정적인면에서는중부유럽은서유럽과는달리 1848년을중심으로한시민혁명의초기성과후에곧봉건적왕권세력과의조화를시도하고타협하여이중왕국을구성해, 전통적귀족계층의특권을보존하고보수적가부장적가치관을유지하려는시도를지속하여, 사회전반에걸친본격적인시민화와변혁은이루어내지못한점과함께, 무엇보다도이중왕국내의수많은제민족들의민족의식각성과이에따른민족주의와민족감정의폭발력을제대로인식하지못하고안이하게대응하여결국에는민족갈등과불신을초래하여이중왕국의소멸을재촉한점을들수있을것이다. 14)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은오스트리아-독일인 (osztrák-német) 과헝가리 (magyar) 의두특권민족이국가를구성하는것으로타협한결과이며, 그하부에광범위한자치권을보유한 정치적민족 으로서는크로아티아인과폴란드인을인정하고있었다. 15) 1687년부터헝가리가 합스부르크제국 의한지역으로연결되어복속되어있던상황에서주권을되찾는헝가리인들의민족적노력이결실을맺어이중왕국의틀안에서주권독립국가 쉬트, 오부더의세도시가통합되어도시발전이비약적으로이루어져인구가 4 배로늘어난것도이중왕국의평화로운시기에해당된다. : Miklós, ; Gáspár, 참조. 13) 19 세기중반부터 60 여년을통치해온합스부르크제국의황제이자헝가리왕국의왕인 프란츠요제프 와친헝가리적인그의부인 엘리자베트 (Elisabeth; 별칭 : Sisi) 의헝가리에대한영향력과족적은매우지대하였으며, 이두사람에대한헝가리인들의인식은최근들어서는 national cult 로까지여겨질정도인현상도본연구의 3 장부분기술내용과상당한관련이있다. : Freifeld, ; Gáspár, 2008, 참조. 14) 이상협, 2001 a, b. 참조. 15) 헝가리는크로아티아와는 1868 년에타협을실현하여, 크로아티아의자치권을인정및보장하였다. 이는양민족간의오랜역사적전통에따른것이었으며, 이중왕국시기헝가리왕국내에서의민족문제는따라서크로아티아와의문제는해당되지않는것으로볼수있을것이다. 물론크로아티아민족주의자들은이에만족하지않고, 이중왕국내에서헝가리와의동등한위상을가진주권국가를수립하기위한노력을펼쳐나갔다. 헝가리왕국지역이아닌합스부르크지역에속하고있던체코인들은처음부터오스트리아와헝가리간의타협이아니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의삼자타협을통해삼중왕국 (?) 형태를원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합스부르크에의해받아들여지지않았다.

12 76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로서의 헝가리왕국 을확립하게된것이다. 이중왕국체재를이루어낸헝가리정치엘리트들의개념으로는 헝가리왕국 은영토적통일성을갖춘, 헝가리적성격의정치적민족국가이었다. 즉그들은헝가리왕국내에서정치적의미의민족또는국가 (nation : 헝 nemzet) 는헝가리와크로아티아이며, 왕국내의여러비헝가리계인들은정치적의미를갖지않는제민족 (nationality; 헝 nemzetiség) 16) 으로간주하였다. 이중왕국체재하에서 헝가리왕국 은국가의영토적통일성과헝가리적성격을유지하기위해하나의정치적민족이존재하며이는곧헝가리었고, 제민족들에게는집단적권리로서자율성과자치권을가진정치적권리는부여할생각이없었으며, 민족귀속성의여부에상관없이모든국민은동등한사적권리를보유한평등권만을인정하였다. 문화정책적측면에서도국가의통일성과헝가리적성격을최우선으로하여헝가리어가강조되어, 헝가리민족정체성과문화형성과정에언어민족주의적성격이부각되어정치적민족과언어적민족의합일화과정이이이중왕국시기에적극적으로진행되었다. 17) 이중왕국시기에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복잡한사회를통일화는 헝가리민족국가 의실현이표면적으로는결실을맺게되었다. 헝가리왕국의지배세력은왕국내모든국민은모국어가무엇이든동등한권리를지닌자유로운개체로간주하지만, 정치적의미에서완전한동등권은헝가리어구사능력에따른다는내용의 민족법 18) 을시행하여, 비헝가리계제민족에대한유화적인동화압력을펼쳐나갔다. 이결과왕국내거주독일인, 유태인그리고도시지역에거주하던슬로바키아인일부에있어서는헝가리로의동화가헝가리사회로의완전한귀속을통해시민계층으로서신분상승을이룰수있는매력적인측면으로작용하여상당한성과도거두었다. 이중왕국의말기제 1차세계대전직전에는이렇게새로이동화된헝가리인들이전체주민의 1/3-1/4 정도에이르게 16) 여기서는 nationality ( 헝 : nemzetiség) 를우리말로는 소수민족 이아닌 제민족 의용어를사용한다 : 헝가리왕국내존재하던민족들중에는그규모가 소수민족 의용어로표현하기에는부적절한측면이있기도할뿐아니라, 지역적으로는상당히커다란지역에거주민의다수로서존재하기도하였기때문이다. 17) 헝가리어는입법과중앙행정의등의국가공식언어로서자격을갖는대신비헝가리계제민족들의언어는지역별초 / 중등교육에서그리고지방행정단위에서권리를보장하였으며, 제민족의종교와문화역시하위차원에서는인정되었다. 18) Tóth, 2001, 해당부분참조.

13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77 되었다. 19) 이중왕국시기에이르러헝가리민족의외연은전통적인헝가리인들 - 고 대, 중세이래헝가리역사에동화되어온비헝가리계헝가리들도포함하여 - 뿐아니라새로이동화된독일인, 유태인, 일부슬로바키아인들을포괄하게되어헝가리인의정체성확립을위한민족의식에도움이되었다. 이에따라현재도유효하다고볼수있는혈연적귀속성에의거하지않고헝가리어구사능력이있고, 헝가리왕국의역사와전통에공감하는문화적연대감과귀속성이헝가리민족과민족문화정체성의근간을이루게되었다. 동시에이중왕국의외양상의사회적안정과평화에힘입어경제발전과문화, 예술의획기적인중흥이이루어져 이중왕국 과 합스부르크 에대한충성의식 ( 意識 ) 도형성되어, 헝가리역사와문화에대한자기이해를형성하게되었다. 20) 헝가리인들은민족과민족문화의정체성을형성하는과정에서 - 18세기말이후부터 19세기초반의개혁시기 - 그핵을민중즉농민들에서찾아와농민들의언어, 전통구비문학, 농민들의복색과민속품에대한관심이매우높았으며, 이는 19세기초반에는 헝가리패션 (magyar mód) 으로칭해지며유행하기시작하여, 1848/49 년이후에는귀족출신고위정치가들도헝가리목동 (: 양치기 ) 의토속적이고전통적인외투를공식석상에서도착용할정도로 민족적양식 (nemzeti stíl) 으로격상되고, 애국적견지에서그리고민속과민속예술의민 19) 헝가리왕국의중심에서벗어나사회저변계층으로서주로농촌지역에서거주하며정교를신봉하던루마니아인, 세르브인, 우크라이나인그리고농촌지역의루터교신봉다수슬로바키아인들은종교적차이뿐아니라언어적차이에따른이질감이더컸으며, 그들사회의민족주의에심취한지식인들의영향에크게자극받아헝가리로의동화에매우소극적이었다. 비헝가리계제민족의민족주의지도자들은자신들의모국어를축으로하는문화적영역의민족운동에서한층더발전하여헝가리왕국내의제민족 (nationality: 헝 nemzetiség) 으로서의권리가아닌, 헝가리인이나크로아티아인과같은수준의정치적권리를지닌완전한민족 (nation: nemzet) 으로서권리를요구하며자율권과자치권나아가서는독립까지요구하게되어, 오스트리아 - 헝가리 라는이중왕국의종말을재촉하는커다란민족문제의요인으로작용하게되었다. 20) 1867 년이후부터헝가리인들사이에 헝가리문장 ( 紋章 ) 뿐아니라합스부르크의문장 ( 紋章 ) 도호의적으로받아들여져유행하였으며, 합스부르크황제이자헝가리왕인 프란츠요제프 와그의부인 엘리자베트 에대한호감도크게높아졌으며, 특히 엘리자베트 왕비는헝가리인들사이에서범국민적인숭배대상으로서 헝가리의여왕 으로까지불려지며오늘날까지도많은헝가리인들사이에서이중왕국에대한향수의대상으로서숭배되어오고있는사실도합스부르크제국과관계된헝가리인들의역사와문화에대한자기이해의한부분이다.

14 78 동유럽연구 제25권 특집 기획호 족주의적 가치를 부여하여 이중왕국 시기에는 도시 가정도 농민들의 물품과 장 식품들로 장식하는 것이 대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1867년 파리 세계박람회, 1873년 빈 세계박람회에 헝가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헝가리적 가치와 민족 문화의 상징으로서 농민 계층의 민속 예술품들의 생산과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 어졌다. 비록 이중왕국 시기를 통해 헝가리는 산업화로 인하여 급격하고 광범위 하게 도시화가 진행되어 전통적인 농민계층과 농촌 문화의 퇴조가 20세기 초에 는 뚜렷이 나타났지만, 19세기 전체를 아우르며 이어져 온 민족 정체성 형성과 자기 이해 과정에서 '토속적이고 민중 및 농민적인 것 (:népiesség)들의 역사적 그리고 민족적 가치를 인정받아, 민속과 민속 예술의 차원을 넘어, 문학, 음악, 건축 등의 다양한 예술장르에 헝가리적인 것의 상징으로 구현되어 나갔다. 그림 1 코슈뜨 상 : 껄라츠빵에 그림 2 헝가리 문장(: 성 이쉬트반 왕관 문장 ): 장식용 접시에 다양하게 문양을 찍는 나무판; 1800년대 후반 제작 새겨짐; 1800년대 후반 제작 19세기 후반의 이중왕국 시기를 통해 헝가리는 빈, 뮌헨, 파리 등의 유럽 대 도시들과 문화정보 교환이 활발히 행해지며 국제화를 갖춘 유럽화의 토대가 이 루어지는 한편 동시에 그 속에서 민족적 특성과 독창성을 찾아 표현해내는 시도 도 적극적으로 행해졌다.21) 이 시기 헝가리 문화 예술에 있어서도 범유럽적인 21) 당시의 중부 유럽은 공존하는 제민족들 사이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바꾸는 경우도 - 다수 의 독일인이 헝가리로 동화, 다수 체코 인의 오스트리아-독일인화 - 있었지만 대부분의

15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79 다양한문화예술의조류가유입되어만개해나갔다. 이러한범유럽적인문화예술의경향은헝가리내에서는시대와역사의흐름에맞게개별조류와경향의문제보다는그조류와경향의틀속에서헝가리인들의역사성과민족적성격그리고역사화 (:historizáló) 하려는노력이헝가리적특징으로부각되었다. 이중왕국시기는 헝가리예술사의위대한시기 로서특히 1896년헝가리민족의칼파치아분지정착 1000년을기념하는대규모의천년축제를정점으로하여, 오늘날의헝가리와부다페스트의문화예술의기념비적업적이화려하게펼쳐졌다. 22) 칼파치아분지정착천년기념축제는당시헝가리인들로서는 이중왕국 체재하에서헝가리왕국의평화와안녕그리고지속적인발전이보장되어있다는환상에서비롯하여헝가리민족의고대사영웅을비롯하여 -AD 896년정착시기의 아르파드 (Árpád) 을위시한 7부족장-, 중세와근대의역사영웅들을기리는민족의성지로서의 영웅광장 건설도시작하였다. 이에헝가리가톨릭은천년축제의이교도적의미에대항하고, 헝가리역사에있어서의칼뱅교와유태교의영향을상쇄시키며헝가리역사와민족에있어서의가톨릭적상징의의미를분명히보이기위해 이쉬뜨반바실리카 (István Baszilica) 를페쉬트지역에건설하기시작해 1905년에완성하였다. 이처럼헝가리민족과문화의정체성속에내재하는역사성과민족적성격은종교에있어서도뚜렷하게감지해볼수있을것이다. 23) 이중왕국시기의문화예술은 고급 예술문화와오락적성격이강한대중문 경우는상호간에선입견을가지고, 불신하고멸시하고증오하는경우가많았으며, 자신들의정체성을타민족과의차이와구별을통해서실현하는경향이존재하였다. 이는현재의중부유럽의정신문화에도아직까지잠재하고있는것으로볼수있을것이다. : Gáspár, 의 Gerő, Das Erbe des Reichs, 참조. 22) Pesendorfer, 참조. : 특히천년축제에즈음한건축활동에있어서는 옛고전주의조류와양식등을현대에맞게재현하는절충주의경향이두드러지게나타나여러기념비적인건축물이생겨났다. 이쉬뜨반바실리카 와 국립민속박물관 은르네쌍스양식으로, 오페라하우스 와 학술원 건물은네오르네쌍스양식으로, 부더왕궁 (Vár) 은네오바로크양식으로, 의사당 (Országház) 은네오고딕양식으로건설되었다. 이시기문학에있어서도범유럽적다양한조류와경향이반영되었으며, 많은주요작가들에있어서는헝가리의당시시대적문제와아픔인 1848/49 실패쇼크, 신절대주의압제, 이중왕국시기의반 ( 半 ) 봉건적민주주의등의테마가중점적으로다루어져, 헝가리의민족문화와정체성에대한자기이해의역사적그리고민족적특징을반영하고있다. 23) 앞의각주 8) 번참조

16 80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화의양분화와각각의향유계층의분화도수반되었으나, 두문화모두유럽문화예술로서의수준을지니며동시에헝가리적전통과성격을종합하고합성하려는노력을뚜렷하게찾아볼수있다 : 음악에있어서 리스트 (Liszt, Franz/Ferenc), 버르똑 (Bartok, Béla). 꼬다이 (Kodály, Zoltán) 등의예를들수있겠다. 헝가리인들의이러한민족문화의정체성과자기이해의특성이분명해진과정에반하여, 헝가리왕국내비헝가리계제민족들의문화는이시기를거치며헝가리문화의틀과범주에서완전히벗어나, 헝가리왕국의국경밖자신들민족본류의문화에합류되어나갔다. 24) 1867년이중왕국형성이후수십년동안헝가리인들로서는역사성에근거한자신들의문화적, 민족적정체성을확립하고, 경제와사회적인측면에서도비약적인발전을이룩하였으나, 이와함께비헝가리계제민족들의시민화과정이강화확대되어, 그들의요구는점점더과격해지고행동도급진화되었다. 적절한대응책을제시하지못한헝가리정치지도계층은비헝가리계제민족들의요구에점점더인내와참을성을갖지못하고공포감에사로잡히게되었다. 결국은세르비아민족주의청년에의한오스트리아황태자부부의암살사건을계기로하여, 합스부르크제국의내적모순과함께유럽열강의이해관계가얽혀 1914 년에제 1차세계대전으로비화하고 1918년패전과함께이중왕국의종말을맞이하게되었다 Trianon 과 헝가리민족 (Magyar nemzet) 헝가리는제 1차세계대전의패전국으로서책임을지게되어영국과프랑스의주도로맺어진 1920년 트리아농 (Trianon) 강화조약으로인하여, 옛헝가리왕국의 2/3를빼앗기고, 주민의 1/3이이웃국가의국민으로재편되는엄청난 민족적비극 을맛보게된다. 이 트리아농 조약의내용은영국, 프랑스, 미국등의경제적, 군사전략적이해와함께반 ( 反 ) 헝가리적성향의중부유럽및발칸지역의제민족들의민족주의적목표가일치하여헝가리로서는국가의존립과 민족의소멸 (national death) 위험을걱정해야할정도의민족역사의최대비극을감내하게된것이다. 무엇보다도헝가리민족의역사적전통과정신이 24) Tóth, 2005, 참조.

17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81 가장잘남아있고 역사적헝가리 의핵심적부분이되고있는 트랜실바니아 (Transylvania; 헝 Erdély) 지역은, 헝가리성과정신을약화시키기위한목적으로합스부르크제국에의해오랜기간동안직할통치지역으로있다가 1867년대타협을통해이중왕국체재의 헝가리왕국 의영토가됨으로서역사적정의가실현되고헝가리왕국의내적통합이완성된것으로간주되어왔다. 그러나전승국주도의 트리아농 조약을통해 트랜실바니아 대부분의지역이루마니아의영토로편입됨으로서헝가리로서는내적통합이와해되고 역사적헝가리 가해체되는 몸통뿐인헝가리 로전락하게된것으로헝가리인들은여기게되었다. 25) 트리아농 의비극을헝가리사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의붕괴로서만이아니라천여년을이어온 역사적헝가리 를해체시켜사지가절단된 몸통 만남겨놓은것으로받아들이게되었다. 몸통만남은헝가리 는필연적으로 위대한역사적헝가리민족과국가 (nagynemzeti magyarság) 를되찾으려는노력을다시할수밖에없으며, 이는곧사회전반에걸쳐배타적이고국수적인민족주의가횡행하는결과를낳게된다 c 헝가리의민족문화정체성과자기이해 3-1. 이중왕국붕괴부터민주화까지 제1차세계대전의패전결과에따른 1918년이중왕국붕괴와 1920년의 트리아농 조약의쇼크에따라헝가리사회는다시자신들의민족역사가민족자의식을일깨우고민족적자긍심을불러일깨우는토대가되었다. 역사적회화, 기념물, 건축등의역사성과민족적의미가사회전반에부각되고정치권력역시역사적영웅과역사성을재이상화하는작업을전개해나갔다. 이는제 2차 25) 헝가리왕국의영토를넘겨받아신생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의국가가형성되었으며, 우크라이나지역의헝가리영토도러시아에넘겨주게되었다. : 이상협, 1996, 2001a, 2001b. ; Tóth, 2001, 등참조.

18 82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세계대전발발시기까지그리고제 2차세계대전이후의사회주의정권하에서도그밀도에있어서만차이날뿐흐름은계속이어졌다. 즉 20세기에있어서도헝가리사회의모든분야에서는과거가결코시의성을잃지않고지속되었다. 1920년대와 30년대헝가리사회에있어서경제적및문화분야에있어중심적역할을행하게된중산층 (: christian middle class) 은 보수-민족적기독교적가치관 에심취하여, 극우민족주의적이고반유태주의적성향을띄게되었다. 특히 30년대에이르러서는작가와사회학자들을중심으로하여헝가리사회의중심을이루고본질을구성하는계층으로서토착농민층에대하여관심을돌리며, 진정한헝가리중산층의기반을농민층으로간주하였다. 그에따르면부다페스트등의도시는국제화되어사악하고오염된비헝가리적인도시로전락하였으며, 대부분외국계열의동화된헝가리인들의수중에떨어져있다고본것이다. 26) 특히극우정권인 홀띠 (Horthy) 의선동적정책하에서이러한경향이한층더크게조장되었다고볼수있겠다. 새로이루마니아의영토로귀속하게된 트랜실바니아 의 만에달하는헝가리인들, 헝가리전통과문화의소멸위험에대한민족주의자들의공포심도매우컸다. 소수의극우민족주의자들사이에서는 Turanism" 도횡행하기도했다 ; 2-1 참조. 제1/2 차세계대전의전간기에는 보수-민족적기독교적가치관 이역사적현실상황에힘입어크게성행하며, 헝가리민족과민족문화의정체성과주류를누가형성하는가에대한논란이벌어지게되었다. 아직까지도엄존하는봉건적 (: 귀족적 ) 사회상류층, 부다페스트를중심으로한도시중산층 (: 이경우몰락한중하위헝가리귀족계층포함 ), 농민층으로대별할수있는토착전통헝가리인, 희석된또는신 ( 新 ) 헝가리인 (: 동화된헝가리인 ), 그리고 트리아농 을전후하여이주해온 이주헝가리인 등의주어진환경과여건에따라갈등이야기되고, 정치적이념과계파로까지분화하게되었다. 민족정체성과민족문화의자기이해의기반및주류에대한이와같은정치적이념과계파간의분파상은사회주의이념에따라 1950년부터 1980년대후반까지의공산정권하에서도잠재해 26) 트리어농 직전 벨러쿤 (Béla Kun) 을정점으로하여 133 일간정권을잡은유태인출신헝가리계급진적자생공산주의정권에대한반감이크게작용하기도하였으며, 1918 년헝가리주변국에서이주해온약 30 만에달하는이주헝가리인들은원래지역에서는관료계층이나중산층이었는데, 헝가리에서새로이정착하는데있어 진정한헝가리인이아닌 유태인들이자신들이차지해야할자리를독점해하고있다고보기도하였다.

19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83 존재해왔으며 1989년사회주의체재의자유민주주의전환이후에는본격적인정치현상으로또는사회적이슈로표면화하기도한다. 27) 3-2. 오스트리아 와 헝가리 의상호이해 AD 9세기에헝가리인들이본격적으로유럽의무대에등장한이래헝가리인들은기마유목민족특유의전술과전략에바탕을둔약탈활동으로인하여유럽인들에게는 -특히인접한독일인들에게- 공포의대상으로치부되어왔다. 헝가리의유럽적인것보다는특유의헝가리적인것을더욱강조하여유럽권이아닌동쪽의아시아에서유래한야만적이고이교도 ( 異敎徒 ) 적이라는헝가리인들에대한스테레오타입은중세와근대에도이어져 17세기이래합스부르크의헝가리왕국에대한침공근거로도활용되었다. 즉게르만정신을통해문명화의필요가있으며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식민화의정당성을부여하는목적에도이용되기도하였다. 28) 그러나 18세기후반과이후 19세기를통틀어헝가리인들이자신들의민족과민족문화정체성을확립해나아가는시기에이르러서는합스부르크제국의고위층에게는 반항 / 저항적인헝가리 의모습으로서, 그리고일반적인합스부르크인들에게는헝가리계이주노동자농민등이거의없는상황에서헝가리왕국의사회엘리트출신과만 - 고위관료, 장교, 귀족등 - 접촉하였으므로, 반헝가리적인냉소나경멸적헝가리상은존재하지않고, 비록서로완전한호감을갖고있지는않지만상대방에대한존경을가지고타협과대화의상대로여기게되었다. 특히 1867년이중왕국체재의성립이후에는상호간의위상을인정하여비방과멸시의감정없이선의의경쟁관계를펼쳐나가는우호적관계로발전하였다. 29) 27) 이상협, 2009, 35. 에서언급된바와같이 누가헝가리인인가 (Ki a magyar?), " 무엇이헝가리인가 / 헝가리다운것인가? (Mi a magyar?) 그리고 good Hunagarian" 등에대한해석과정의가논란의대상이되고있는것이다 : 자세한내용은 Gyurgyák, ; Szegedy-Maszák, 참조. 28) Hima, 참조 29) 현재에도많은농가의벽에당시반합스부르크저항의상징이자헝가리민족의독립과자주의상징인 꼬슈뜨 의초상화와나란히거의동시대를살아온합스부르크제국의황제이자이중왕국의황제였던 프란츠요제프 의초상화도걸려있는모습을통해서상호간의역사적대치와대립상은퇴색하였음을알수있겠다. 헝가리내에존재하고있는모국어가독일어인사람들도자신들을 오스트리아계또는독일계소수민족 이아니라, 독일계헝

20 84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사회주의체재하에서 1956년헝가리민중혁명이일어나고이에따른쏘련군의무력진압에수많은헝가리인들이국경을넘어탈출하자오스트리아는이들을진정으로도움이필요한정치적난민으로인정하여많은도움을제공한역사적사실과함께, 1970년대부터양국정치엘리트간의상호이해가돈독해지고긴장이해소되어경제협력관계가활발해진사실, 최근중부유럽국가특히헝가리공화국의 EU 통합에있어서도타서유럽국가들보다오스트리아가더욱적극적인도움을제공한것역시, 오스트리아와헝가리간의우호적유대감이반영된것으로간주할수있을것이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헝가리의사회저소득계층에는오스트리아가질투심이나는오색찬란한부국의이미지로알려져있기도하지만, 전반적인사회여론주도층에게는오스트리아가갖고있는보수관료적사회현실의모순상이잘알려져있으며, 헝가리에대한오스트리아의정치적경제적지원과도움에헝가리를아직도미성년취급하는것은아닌지, 거만함의과시는아닌지, 또는헝가리의대오스트리아종속화시도는아닌지에대한우려섞인시각도나타나고있다. 점차로헝가리인들의오스트리아에대한역사적호감과친근감의정도가미세하게나마감소하고있으며, 근대역사에있어형성된공동의귀족적연대의식도퇴색하고있다. 30) 그러나아직도 오스트리아-헝가리왕국 이라는이중왕국체재가현헝가리인들의민족과민족문화에대한자기이해에긍정적으로반영되고있음은분명하다고볼수있겠다. 4. 맺는말 지금까지살펴본바와같이헝가리인들은자신들의민족정체성과근간을칼파치아분지에서의역사흐름속에서형성된문화적산물로서이해하고있음을알수있다. 자신들의민족과문화의정체성그리고자기이해를특정종족적 가리인 (Ungarndeutsche) 로여기고있으며, 현재의헝가리내극우급진민족주의자들도오스트리아불겐란드 (Burgenland) 의소수의헝가리인들에대한관심과요구는포기한상태이기도하다. 30) Rásky, 참조.

21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85 계통에서의유래와기원보다는역사흐름과사회, 경제, 문화의다방면에걸친공통분모와핵을공유하고공감하는것에서찾고있는것이다. 물론헝가리는종족적기원 ( 起源 ) 과이에수반된언어적상이함을기반으로하여형성되어왔지만, 이와같은상이함의차이가헝가리인들의민족과민족문화정체성의차이로나, 나아가서는자기이해의주된척도는되지못하고, 다만주변제민족들과구별되는헝가리특유의것으로나파악될수있을것이다. 역사흐름속에서의, 문화적산물로서의헝가리이해는곧중세이후헝가리와밀접한상호관계를유지해온합스부르크제국과의상관성에바탕을두어야한가능하다는점역시분명한사실임을알수있겠다. 헝가리인들의민족과민족문화의정체성및자기이해의큰틀은합스부르크제국과연관하여행해진앞에서의기술내용을통해파악하여보았지만, 해석상의유형, 견해차이및이견은현재헝가리에서도존재하고있으며, 이런미묘한것들이표면화하여사회적, 정치적, 문화적현상으로표면화하는경우나보다정밀한내용등은앞으로의심층조사분석의여지를남겨두고있다.

22 86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참고문헌 이상협 (1996) 헝가리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1a) 헝가리민족문제의기원과양상. 동유럽발칸학 여름호 (No. 4). (2001b) 헝가리의민족문제와소수민족정책. 동유럽연구. 제10권 2 호. (2006) 현재헝가리인들의민족적자의식분석연구 : 헝가리상징물 (Magyarságszimbólumok) 조사결과를바탕으로. 동유럽발칸학. 제8 권 1호. (2009)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민족문화정체성형성. 동유럽연구. 제21권특집호. Bucur, Maria & Wingfield, Nancy M. (ed.) (2001) Staging the Past; the politics of commemoration in Habsburg Central Europe, 1848 to the present. Purdue Uni. Press: West Lafayette, Indiana. Cieger, András (szerk.) (2004) A kiegyezés. Osiris kiadó: Bp. Cole, Laurence et al. (ed.) (2007) The Limits of loyalty; Imperial symbolism, popular allegiances, and state patriotism in the late Habsburg Monarchy. Berghahn Books: New York: Oxford. Cornwall, Mark (ed.) (2002a) The last years of Austria-Hungary. University of Exeter Press: Exeter. (2002b) Disintergration and defeat: The Austro-Hungarian Revolution in Cornwall, Mark (ed.) (2002a). Freifeld, Alice (2000) Nationalism and the crowd in liberal Hungary, The Woodraw Wilson center press: Washington D.C. (2001) The cult of march 15: sustaining the Hungarian myth of revolution, in Bucur, Maria & Wingfield, Nancy M. (ed.) (2001) (2007) Empress Elisabeth as Hungarian queen in Cole,

23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87 Laurence et al. (ed.) Galántai, József (1990) Der Österreich-Ungarische Dualismus Corvina/ÖBV: Bp. Gáspár, Zsuzsa (hrsg.) (2008) Österreich-Ungarn; das Habsburgerreich von Officina '96 kiadó: Bp. Gergely, András (2006) Im Mittelpunkt aller Tradition: Ungarn und sein 1848 in Kiss, Endre et al. (hrsg.) Gyurgyák, János (2007) Ezzé lett magyar hazátok; a magyar nemzeteszme és nationalizmus története. Osiris: Bp. Hanák, Péter (1998) The garden and the workshop: essays on the cultural history of Vienna and Budape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ew Jersey. Hanebrink, Paul A. (2006) In defense of christian Hungary. Cornell University Press: Ithaca and London. Heiszler, Vilmós (2006) Romantisierende Abstammungstheorien als Elemente des Nation-buildung in Ungarn, in Kiss, Endre et al. (hrsg.) Hima, Gabriella (2002) Selbst- und Fremdbilder in der ungarischen Literatur in Müller-Funk,Wolfgang etc (hrsg.) Judson, Pieter M. et al. (ed.) (2005) Constructing nationalities in East Central Europe. Berghahn Books: New York: Oxford. Kamusella, Tomasz (2009) The politics of language and nationalism in modern Central Europe. Palgrave macmillan: New York. Kiss, Endre et al. (hrsg.) (2006) Nation und Nationenbildung in Österreich-Ungarn LIT: Salzburg. Kozári, Monika (2005) A dualista rendszer. Pannonica kiadó: Bp. Limbacher, Gábor (2002) Hazaszeretet, magyarságtudat a népéletben. Palóc Múzeum: Balassagyarmat. Miklós, Gábor (szerk.) (2007) K. und K. kalandozások avagy a Habsburg birodalom nyomában a XXI. században. Népszabadság könyv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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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합스부르크제국과헝가리의역사, 문화적자기이해 89 Abstract The Habsburg Empire and the Political and Cultural Self-Consciousness of Hungary Lee, Sang Hyup Department of Hungarian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This paper deals with the hungarian self-consciousness of national history and cultural identity in relation to the Habsburg empire, as a continuous research of the article, The Habsburg empire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Hungarians national, cultural identity, that has been already presented. The research has been processed by the two terms of natio Hungarica and magyar nemzet from the viewpoints of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and cultural identity. In regard to hungarian self-consciousness of national culture, the characteristic involved in the category of magyar nemzet has been examined through the history of mutual connection with the Habsburg empire on the other hand. First of all, the quests for the changes of the core and symbols of national culture and identity after fail of Independence War of 1848/1849 have been committed. The studies of the way in which how those things were interpreted and understood in the frame of Austria-Hungary dual monarchy have come next. Finally, I have researched the identical chaos that arose from the unhappy results of Trianon Treaty. This paper focuses on the standpoints of accepting the identical, symbolic changes at the turn of the century and in the early years of the twentieth century, under the socialist regimes in mid twentieth and the democratic governments after 1989 s Transition (:rendszerváltás), based on the pre-released article, A study on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the current

26 90 동유럽연구 제 25 권특집기획호 Hungarians, in relation to the Habsburg empire and modern Austria. Key Words: Hungary: Nation-Culture-Symbol, 1848/49 Revolution, Austria-Hungary 31) Monarchy, Austria, Kossuth, Sz. István, Petőfiey 이상협, 한국외국어대학교헝가리어과, 헝가리학, 경기도용인시처인구모현면왕산리산 89,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