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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후소설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 머리말 전후소설을 연구하기로 결정하고 작품과 비평, 사상계 를 읽기 시작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년이 흘렀다. 비록 손창섭과 장용학에 제한된 연구 이지만 여기 그 결과를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내놓는다. 너는 왜 전후소설을 연구하냐 고 한 선배 연구자가 물었을 때, 그냥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일상 을 그리는 것이 근대 소설일 텐데, 전후소설에 그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 확한 일이 아니냐, 연구할 의욕이 생기냐고 질문했기 때문이고, 나로서는 그러 나 상황이 그리 단순치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말로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연구로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지금도 전후소설은 리얼리즘이 없다, 외래사조에 무비판 적으로 편승하였다 등등 절름발이 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 나 이 책은 오히려 전후소설이 우리들에게 소설을 바라보는 그 동안의 패러다 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러니까 실 패한 혹은 일어나지 않은 시민혁명을 문학에서 이루어내려는 쉴러의 시민문학 론 이래, 우리의 경우 1960년대 이래 모든 것은 근대적 시민문학의 관점에서 평가되어 왔던 것이고 이로부터 벗어날 때만 전후소설은 온전히 평가될 수 있 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후소설의 고유성을 온전히 밝혀내 는 일이었고, 그것이 문학상의 패러다임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만큼 미학 적 차원에서 꼼꼼히 분석해 내는 일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의 연구결과는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구를 진행한 과정 자체는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 머리말 그 결과물인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1부에서는 손창 섭과 장용학의 허무주의와 미의식을 규명하고 있다. 최소한 개인에게 한국전쟁 은 이념적 규정과는 무관한 대재앙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 이를 가장 철저하게 내면화한 작가가 손창섭과 장용학이고 이들은 전후 2세대 작가들과는 질을 달 리한다는 점, 그들의 허무주의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에서 비롯되었던 만큼 일 상의 감각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 무엇보다도 그 허무주의가 우리 문학사 에서는 유례가 없는 고유의 미의식을 산출하게 만들었다는 점, 결과적으로 그 들의 문학은 반시민문학이라는 점 등등. 결국 기타 등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간의 평가와는 달리 손창섭이 니체, 특히 루소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미학적으로 키에르케고르와 밀접히 연관이 있다는 것, 장용학이 사르트르보다 오히려 니체에 크게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장용학이 요한 시집 을 쓸 때 보았다는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수기를 이곳저곳의 도서관을 뒤 져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 다. 연구 과정은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라는 깨달음의 연속이었는데, 이러한 깨달음의 기쁨은 연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한 손창섭과 장용학이 영향 받은 사상가들의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루소, 니체,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독서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사상의 힘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학문과 사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2부는 손창섭의 작품과 아이러니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근대소설의 핵심에 아이러 니가 놓여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손창섭을 통해 아이러니 일반론을 넘 어서 절대희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4 머리말 이 책이 나로서는 두 번째 책이다. 또 한권의 책을 내면서 그 동안 나를 지도 해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수년 동안 참 미련하게도 굴었는데, 항상 따듯하게 보살펴 주셨던 조남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배, 동학, 후배들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이 책은 물론이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현재 의 나 역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던 아내, 오히려 나보다 어른스러운 아들 재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항상 믿 고 격려해주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감사드린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 그 리고 막내아들 걱정에 항상 노심초사 하시는 어머님께 이 책을 바친다. 2005년 봄에 조현일

5 차례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 11 1) 세대론, 세계관, 미학적 특성 11 2)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그 내면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역사철학, 허무주의 23 1)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문학 23 2) 부정적 역사철학과 신화적 폭력, 운명 28 3) 허무주의의 두 가지 계보 32 4) 허무주의적 미의식 4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두 가지 인물 유형 : 동물적 인간과 우울자 49 1) 동물적 인간과 도덕적 무구성 49 2) 우울자와 심미적 슬픔 신화적 운명과 죄의식 80 1) 운명의식과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80 2) 죄의식과 역설적 상황 93

6 차례 3. 우울자의 악마적 저항과 희극성 106 1) 악마적 저항으로서의 나태와 침묵 106 2) 자연적 삶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희극성 12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超 人 에 대한 추구와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 134 1) 非 人 과 초인사상 134 2)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과 부정적 역사철학 근대의 신화적 폭력과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 164 1) 근대적 세계의 두 가지 원리와 신화적 폭력 164 2) 고통의 강화와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 알레고리와 비극적 구조의 원용 196 1) 상형문자로서의 알레고리와 신화 파괴적 성격 196 2) 알레고리의 이율배반과 비극적 구조의 원용 209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근대의 신화적 폭력 허무주의적 인간상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37 제5장 결론 254

7 차례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미해결의 장 과 아이러니 아메리카 드림, 성실성 윤리의 거부와 주체의 분열 경험적 자아의 전복과 아이러니의 심층구조 자아의 이중화와 공간적 거리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서술적 자아 미해결의 장 의 전체적인 구조 282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허무주의와 소설창작 행위의 무의미성과 견딤의 미학 허무주의와 자기-아이러니 의미의 추구와 추상적 휴머니즘 허무주의의 원형적 모습들 309 참고문헌 311 찾아보기 321

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9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1.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 1) 세대론, 세계관, 미학적 특성 본 연구는 손창섭과 장용학의 1960년대 초반까지의 소설을 대상으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산출한 허무주의와 이로부터 발생한 미의식 을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손창섭과 장용학에 초점을 맞춘 것은, 첫째 이들이 전후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점, 둘째 각각 고유의 작품 세계 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공통점을 보인다는 점, 셋째 무엇보다도 허무주의 적 미의식의 극단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점 때문이다. 전후소설은 시기상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전후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가 리키는데,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절망의식과 이를 넘어서려는 휴머 니즘에 핵심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후 2세대 작 가들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나 가능한 평가이고 정작 전후소설의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는 전후 1세대 작가, 즉 손창섭과 장용학의 경우에는 핵 심을 벗어난 평가이다. 1) 대표적인 전후 2세대 작가인 이호철, 서기원, 오 1) 전후 소설가들 내부에서의 세대 구분은 출생연도와 등단연도를 기준으로 해서 이루

10 1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상원 등의 문학이 근본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상황에서 근대 적 인간상, 시민적 인간성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손창섭 과 장용학의 문학은 시민적 인간성에 대한 거부, 탈근대적 인간상의 탐 구라는 전혀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때, 기존의 연구는 매우 다양하게 진 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에게서 발견되는, 작품 세계의 공통된 모습 을 발견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손창섭과 장용학 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첫째, 다른 전후 작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후소 설 전체의 특성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연구들과 둘째, 각각의 개별 작가론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전자의 경우 당대 비 평에서 세대론 2) 의 형태로 제기되었으며 최초의 종합적인 연구인 김상선 의 신세대작가론 이후 다양한 관점 속에서 진행되었다. 3) 세대론의 관 어질 수 있는데, 양자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전후 1세대란 1920년대 생이면서 한국전쟁 이전 혹은 전쟁 중에 등단한 작가들을 가리킨다면, 전후 2세대 작가란 1930년대 생으로서 휴전 이후, 1955년을 전후하여 등단한 작가들을 가리킨 다. 전자에는 손창섭(1922년 출생, 1953년 등단), 장용학(1921년 출생, 1950년 등단), 곽학송(1927년 출생, 1950년 등단), 김성한(1919년 출생, 1950년 등단) 등이 포함되며, 후자에는 이호철(1932년 출생, 1955년 등단), 서기원(1930년 출생, 1956년 등단), 오 상원(1930년 출생, 1955년 등단), 선우휘(1922년 출생, 1955년 등단) 등이 대표적이라 고 할 수 있다. 2) 세대론과 관련된 대표적인 글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이봉래, 신세대론, 문학예술, 장용학, 감상적 발언, 문학예술, 이어령, 화전민지역, 경향신문, 김상선, 신세대 작가론, 일신사, 김윤식, 앓는 세대의 문학, 현대문학, ) 대표적인 연구로 다음을 들 수 있다. 천이두, 50년대 문학의 재조명, 현대문학, 신경득, 한국전후소설연구, 일지사, 김동환, 한국전후소설에 나타난 현실의 추상화 방법 연구, 한국의 전후문학, 한 국현대문학연구회, 태학사, 김윤식, 6 25 전쟁문학 : 세대론의 시각, 1950년대 문학연구, 문학사와 비평연

11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13 점에 설 때, 특히 주목되는 것이 68문학 을 중심으로 한 신세대들과 전 후 세대 작가들 간의 논쟁이다. 이 논쟁은 이후 세대론의 관점에서 진행 된 연구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세대의 문학을 언어 이 전의 체험의 문학으로 규정하고 단절론을 내세웠던 김현과 김주연의 주 장은 궁극적으로 시민문학의 관점에서 전후세대의 문학을 비판한 것으 로서 양자 간의 대립에 시민문학 대 反 시민문학의 대립이 숨겨져 있었 음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다양한 관점에서 전후소설의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정희모, 김동환, 유철상, 한수영, 최강민 등의 논문이 주목할 만하다. 정 희모의 논문은 전후소설이 전후의 불안상태를 서구적 개념을 통해 거짓 보편화시키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부정적 평가 속에서도 장용 학의 현대성 주장에 주목하여 전후작가들의 내면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 구회 편, 예하, 이재선, 전쟁과 분단의 인식 : 6 25 한국전쟁의 소설적 의미망, 현대 한국소설 사, 민음사, 정호웅, 1950년대 소설연구, 1950년대 문학 연구, 문학사와 비평연구회 편, 예 하, 한수영, 1950년대 한국소설 연구 1950년대 남북한 문학연구, 평민사, 1991., 1950년대 문학의 재인식, 작가연구 1호,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 민음사, 엄해영, 한국전후세대소설연구, 국학자료원, 김 철, 냉전체제의 고착과 50년대의 문학, 민족문학사 강좌(하), 창작과비평사, 구인환, 전후 한국문학의 지형도 : 소설의 서사문법을 중심으로서, 한국전후문학 연구, 삼지원, 박동규, 전후 한국소설의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전후문학의 연구를 위한 몇 가지 전제, 한국전후문학의 분석적 연구, 월인, 정희모, 1950년대 한국장편소설 연구, 1950년대 한국문학의 서사성, 깊은샘, 유철상, 한국전후소설의 관념 지향성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최강민, 한국 전후 소설의 폭력성 연구, 중앙대 박사학위논문, 2000.

12 1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를 현대성의 추구로 규정하고 있다. 김동환과 유철상의 논문은 각각 추 상화 방법, 관념 지향성이라는 차원에서 전후소설 전체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유철상의 경우 전후소설의 본질을 밝히려는 포괄적인 시 도였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전후소 설의 관념 지향성 이 사실상 시민문학의 이념 지향성과 그로 인한 비판 적 성격을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수영의 논 문은 민족문학론의 입장에서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전후소설의 리얼리 즘적 측면을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문학론과 그에 입각한 리얼리즘 론으로는 손창섭, 장용학 등으로 대표되는 전후소설의 본질적인 면모를 밝히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연구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주 목할 만한 연구는 최강민의 논문이다. 최강민은 전후소설의 핵심으로 폭 력성을 설정하고 전후소설에 나타난 폭력의 양상을 정신분석학적 관점 에서 분석하고 있다. 손창섭 소설에 대해서는 폭력의 가해자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함으로써 폭력이 전근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하며 장 용학의 소설에 대해서는 폭력의 원인은 개인적이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작가의 태도는 사회적이기에 필연적으로 논리적 결함을 갖게 된다고 비 판한다. 개별 작가론의 경우, 손창섭의 소설은 등장인물의 특이성으로 인해 인물 유형 분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정신분석학적 연구 4), 문체론 및 수사학적 연구 5) 등이 이루어졌다. 이 글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주목할 4) 주요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송기숙, 창작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 현대문학, 정창범, 손창섭론 : 자기모멸의 신화, 문학춘추, 배개화, 손창섭 소설의 욕망 구조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김지영, 손창섭 소설에 나타난 주체형성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 주요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유선희, 손창섭 소설의 문체론적 연구, 전북대 석사학위논문, 1985.

13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15 만한 연구는 손창섭의 인물 유형을 분석함과 더불어 그의 작품의 미학 적, 세계관적 특성을 밝히는 연구들이다. 6) 손창섭의 등장인물들은, 자조 의식 속에서 인간 동물론의 괴뢰 7) 를 묘사하고 있다는 유종호의 지적 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계보를 잇는 비정상적 치인들, 절망적 인간들 8) 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조연현의 지적 이후 다양한 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손창섭의 인물은 권태형 인간 과 백치형 인간 으로 규정되는가 하면 9), 실존주의의 자율적 주체 개념에 입각해 몰주체적 인간 과 수동 화된 개인 으로 유형 분류되기도 한다. 10) 한상규,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아이러니의 미적 기능 외국문학, 1993 가을. 조현일,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에 관한 고찰, 현대소설연구, 배개화,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아이러니 구조, 한국전후문학의 분석적 연 구, 월인, ) 대표적인 연구로 다음을 들 수 있다. 조연현, 병자의 노래, 현대문학, 윤병로, 혈서의 노래, 현대문학, 유종호, 모멸과 연민( 上 ),( 下 ), 현대문학, 이광훈, 패배한 지하실적 인간상, 문학춘추, 이선영, 아웃사이더의 반항, 현대문학, 김 현, 허무주의와 그 극복, 사상계, 김영화, 손창섭론 : 권태형 인간상과 그 소설사적 의미, 월간문학, 최종민, 손창섭소설에 나타난 인간형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조남현, 손창섭의 소설세계, 한국현대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한상규,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등장인물의 유형화, 관악어문 연구, 서준섭, 정지된 세계의 소설, 한국전후문학의 형성과 전개, 태학사, 조현일, 허무주의의 심연과 극복의 노력, 한국전후문학연구, 삼지원, 하정일, 전쟁세대의 자화상, 작가연구 1호, 임경순, 혈서의 세계와 욕망의 좌절, 1950년대 문학의 이해, 조건상 편저, 성균 관대학교출판부, 김진기, 손창섭 소설에 나타난 무의미의 미학, 박이정, ) 유종호, 모멸과 연민( 上 ), 현대문학, , p.77. 8) 조연현, 앞의 글, p.78, p.79. 9) 김영화, 손창섭 소설론 : 권태형 인간상과 그 소설사적 의미, 월간문학 ) 한상규,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등장인물의 유형화, 관악어문연구,

14 1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인물 유형 분석은 결국 작가의 미학적, 세계관적 특성을 밝히는 것으 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인물 분석에 기초하여 손창 섭 소설의 세계관적 차원에 대해 통속적인 씨니시즘 11) 혹은 비개성 적 허무주의 12) 라고 규정하여 비교적 일관된 평가를 내렸지만, 미학적 차원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비극성 13) 을 지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희화적 묘사, 상식에서 벗어난 일장 희화 14) 라고 하여 희극성을 지적 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당대 비평가들에 의해 직관적으로 포착된 주장들을 논리적으로 구 체화하고 좀더 발전시킨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준섭은 손창섭 작품세계의 본질이 등장인물의 허무주의와 그로 인한 정지된 세계의 탐 색에 있다고 보며, 하정일은 손창섭의 허무주의가 환경의 문제라기보다 는 인간성의 문제라고 하면서 항상 성격이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하정일의 경우 손창섭 소설에 대해 비개성적 허무주의라고 평가하였던 김현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또한 미학 적 차원에서 희화적 묘사 가 나타난다는 당대 비평가의 지적은 최근 들 어 아이러니에 대한 연구로 구체화되고 있다. 장용학 소설은 실존주의 논리가 직접적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특성으 로 인해, 그의 소설의 실존주의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다가 90년대 이 후 장용학 소설의 관념 소설적 측면 15), 알레고리, 환상성 16) 등을 중심으 11) 유종호, 모멸과 연민( 下 ), 현대문학, , p ) 김 현, 앞의 글, p ) 조연현, 앞의 글, p ) 윤병로, 앞의 글, p.238. p ) 이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장수익, 한국관념소설의 계보, 1960년대 문학연구, 예하, 황순재, 한국관념소설의 세계, 태학사, 유철상, 한국전후소설의 관념지향성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이정숙,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관념의 소설화 : 장용학론, 한국현대소설연구,

15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17 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장용학 소설의 실존주의는 주로 사르트르의 실존 주의와의 비교 속에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한국적 풍토에 맞지 않는 서 구 사상의 단순한 모방이라는 비판적 평가로 귀결된다. 17) 이 글의 문제 의식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연구로는 장용학 소설의 미적 모더니티에 대 한 연구 18) 와 알레고리에 대한 연구 19) 를 들 수 있다. 박창원은 장용학 소 설의 핵심을 사회사적 모더니티나 철학적 모더니티와는 구별되는 미적 모더니티의 추구에 있다고 보며, 특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수용에 대해 장용학 자신이 일정한 질곡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에 대한 연구들은 단순한 우화성으로 간주되던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를 상징 미학과 대립되는 현대적 알레고리 미학 깊은샘, ) 박정수, 현대 소설의 환상적 상상력 연구, 서강대 박사학위논문, ) 장용학 소설의 실존주의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서수생, 사르트르와 장용학의 비교 고찰, 현대소설연구, 정음사, 김송현, 장용학론 : 태양의 아들 까지, 현대문학, 염무웅, 실존과 자유, 현대한국문학전집4, 신구문화사, 김 훈, 존재의 자각과 탐구, 국어국문학, 김양수, 전후실존주의소설연구, 단국대 박사학위논문, ) 박창원, 장용학 소설연구, 세종대 박사학위논문, 1995., 비인탄생 에 나타난 모더니티 연구, 현대소설연구, ) 이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김윤식, 우화성과 이데올로기 비판, 속 한국현대작가론, 일지사, 1980., 90년대 연구진과 알레고리론, 문예중앙, 1996 겨울. 방민호, 전후소설에 나타난 알레고리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서영채, 알레고리의 내적 형식과 그 의미, 민족문학사연구 제3호, 김건우, 장용학 소설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5.,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 론, 한국전후문학의 분석적 연구, 월인, 이현석, 전후소설의 서사구조와 수사적 성격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 박창원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자유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기대어 있음에 반해 장 용학은 이원론을 초월한 존재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보며, 그 결과 이원론의 질곡에 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존재구원의 문제가 사상되었다는 점을 장용학 스스로 깨 닫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박창원, 장용학 소설연구, 세종대 박사학위논문, 1995, pp

16 1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의 표현으로 규정하고 언어의 환유적 성격과의 관련 속에서 그 특성을 규명하고 있다. 2)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그 내면화 본 연구는 이상의 연구에 기초하여 다음 두 가지 문제의식 속에서 손 창섭과 장용학 소설을 연구하고자 한다. 우선 이 글은 장용학과 손창섭 소설의 핵심에 이념과 무관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자리 잡고 있 으며 이것과의 관련성 속에서만 그들의 작품세계가 밝혀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전후소설가 서기원, 선우휘와 68문학 을 중심으로 한 신세대들, 즉 김현, 김치수, 김주연, 김병익, 박 태순 사이에 있었던 1969년의 논쟁 21) 은 어느 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전 후소설의 이와 같은 본질적 모습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선우휘와 박태순의 논쟁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논쟁의 핵심은 특 21) 68문학 동인들과 전후세대 작가들의 논쟁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김주연, 새시대문학의 성립 : 인식의 출발로서의 60년대, 아세아, 김치수, 한국소설의 과제, 68문학, 김 현, 세대교체의 진정한 의미, 세대 , 분화 않된 사고의 흔적, 서울신문, , 오히려 그의 문학작품을, 서울신문, 서기원, 전후문학의 옹호, 아세아, , 대변인들이 준 약간의 실망, 서울신문, , 맛이나 알고 술 권해라, 서울신문, 선우휘, 현실과 지식인, 아세아, 박태순, 젊은이는 무엇인가 : 선우휘씨의 현실과 지식인 에 대한 반론, 우리문 학의 논쟁사, 홍신선 편, 어문각, 김병익, 60년대 문학의 위치, 사상계, 문학 동인들과 전후세대 작가들의 논쟁은 전상기, 년대 한국문학 비 평연구,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 홍성식, 1960년대 한국문학 논쟁 연구, 명지대 박사학위논문, 1997에서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17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19 히 서기원과 김주연, 김현의 대결 속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김주연은 전후세대가 생애의 충격 (=체험)만을 중시할 뿐 문학이 언어로 된 하나 의 질서라는 점을 잊고 있었으며 결국 현실에 기초하지 않는 외래 사조, 뿌리 없는 각종 언어들이 마치 구호처럼 거리를 뒹굴었다 고 비판한다. 반면 자신들의 문학, 즉 60년대 문학의 중요성으로 문학에 대한 인식의 비로소 싹틈 을 주장하면서 그 특성을 자기만의 의식으로의 개별화, 소시민의식 이라고 규정한다. 22) 전후문학에 대한 완전한 부정에 대항하 여 서기원은 신세대 문학의 소시민의식에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전후문학의 문학사적 위치는 김동리, 황순원 류의 순수 문학의 언어가 전쟁체험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바로 기존 언어질서에 대한 도전이고, 파괴작용 23) 을 수행했다는 점에 있으며 한마디로 새 세 대의 문학은 전후문학의 안티테제나 부정이 아니라 그것의 발전적 전 개 24) 라고 주장한다. 서기원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의는 도구적 언어관에 입각해 있었던 만큼, 김현에 의해 언어에 대한 미분화된 사 고 25) 의 소유자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68문학 동인들은 전후 문학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 대 언어, 비현실성 대 현실성, 심지어는 문학 이전 대 문학이라는 근본적 단 절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고 26) 이러한 근본적 단절의 핵심에 대재앙으 로서의 전쟁체험이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2) 김주연, 새 시대문학의 성립 : 인식의 출발로서의 60년대, 아세아, ) 서기원, 앞의 글, p ) 위의 글, p ) 김 현, 분화 않된 사고의 흔적, 서울신문, ) 이와 같은 평가는, 김병익의 경우 단절이 아닌 계승을 주장하는 등 일정한 차이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김치수, 한국소설의 과제, 68문학, 1969 ; 김병 익, 60년대 문학의 위치, 사상계, 에서도 공통된다고 볼 수 있다.

18 2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역사적인 대 사건이 문예 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정한 다면 소위 전후파로 규정되는 50년대와 제3세대로 명명된 60년대 작가의 변모는 6 25와 4 19의 성격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새벽의 기습이 일으켰던 한국전쟁은 그 자체로서 대재난(Catastrophy) 이었고 적어도 개인이 예감할 수 없었던 외부의 타박( 打 撲 )인 데 대해 2 28, 3 15, 4 19 등 잇따른 데모로 터진 학생 운동은 이미 예기된 바였고 적어도 개인이 그렇게 되어지기를 소망한 내부의 진통이었다. 10년을 간극 한 이 두 개의 사건에 보이는 인간의 느낌과 반응은 따라서 상이할 수밖에 없었다. 불의의 타격이 일으키는 효과는 경악과 비명이며 현실에의 저주와 패배주의며 관념으로의 도피와 안이한 허무주의와의 결속이었다. 여기서 언어의 무력함과 체험의 비굴함과 인간의 어리석음이 유발된다. 27) 신세대들의 문학은 근본적으로 근대적 시민사회를 지향하게 만든 4 19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체홉식의 리얼리즘을 주장하 는 유종호에 대하여 얼마 전에 네이팜탄이라는 것이 떨어지던 푼수로 보아서는 그렇게 태평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28) 라고 비판하는 장용학 이나, 1969년까지도 6 25전쟁은 과거에 지나쳐 버린 기억과 체험이 아 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 있는 현실이라고 29) 생각하는 서기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전후소설가와 그들 문학의 본질은 김주현에 의해 비 판되었던 생애의 충격, 즉 전쟁체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용문에 서 김병익이 지적하고 있는 대재변(catastrophy) 으로서의 전쟁체험, 즉 인간의 의지나 이성과는 무관하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무차별적인 폭 력의 체험이라는 데 핵심이 있다.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이 대표적인 27) 김병익, 위의 글, p ) 장용학, 편리한 비평정신, 문학춘추, , p ) 서기원, 앞의 글, p.231.

19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21 전후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대재앙의 체험을 철저하게 내면화함으로 써 가능했다. 상이한 내적 체험은 상이한 문학적 패러다임으로 귀결된다 고 볼 수 있는데, 신세대의 문학적 패러다임이 이념상 근대적 시민문학 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때 30), 전후세대의 문학적 패러다임은 이상과 같 은 전쟁체험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매우 이질적인 성격의 것으로서 근 본적으로 反 시민문학의 패러다임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에서 대재앙의 체험이 소재적 차원을 넘어서 좀더 본질적 차원, 즉 세계관적, 미학적 차원에서 표현되 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규명을 시도하고자 한다. 대재앙으로서의 전 쟁체험은 실존적 기호학적 차원 모두에서 의미와 가치의 붕괴를 산출 함으로써 진리, 신, 도덕 등 최고 가치들의 가치저하, 즉 허무주의를 도 래케 하였다.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은 이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세대의 문 학적 패러다임에 전쟁체험이 놓여 있다고 할 때, 그것의 핵심은 허무주 의 라 할 수 있으며, 손창섭과 장용학으로 대표되는 전후세대의 문학적 패러다임은 시민적 이상을 거부하는 허무주의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0) 당시 68문학 동인들은 한편으로는 전후 세대와 논쟁을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시민 문학을 주장하면서 창작과 비평 의 시민문학론 (백낙청)에 비판을 가하고 있었다. 본고는 시민문학을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에서 유래하는 문학이념, 즉 시민혁명이 좌절된 상황에서 문학에서, 혹은 문학을 통하여 시민적 인 간상을 완성하려 했던 문학이념으로 규정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설 때, 창작과 비 평 의 시민문학론이나, 68문학 에서 문학과 지성 으로 이어지는 소시민문학론 모두 시민문학의 이념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백낙청, 시민문학론, 창 작과 비평, ; 김주연, 계승의 문학적 인식 : 소시민의식 파악이 갖는 방법 론적 의미, 월간문학, ; 김치수, 백낙청의 시민문학론 과 문학의 사회참 여-자유의 나무는 시민의 손으로 심어지는가, 세대, ; F. Schiller(안인희 역),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청하, 1995 참조.

20 2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손창섭 장용학 소설에 나타나는 허무주의의 특수한 모습, 구체적 양 상이 문제가 될 것인데, 이때 중요시해야 할 것이 바로 폭력의 문제, 좀 더 구체적으로 신화적 폭력과 운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건이었고 그들의 작품은 근 대의 대재앙적 성격이 인간 개체들에게 가하는 가공할 폭력을 형상화하 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이는 소재상의 차원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형 상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으로 폭발한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문학적 내면화를 거치며, 그들은 그 결과 자 연의 마성적 힘, 즉 신화적 폭력 과 운명 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될 수 있는 고유의 작품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신화적 폭력과 운명이 지배하 게 될 때, 모든 인간적 가치, 시민적 이상에 입각한 가치들은 무의미해지 며, 이러한 폭력의 근원이 근대적 세계를 지탱하는 최고의 가치들이라고 할 때,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저항이 시도될 수밖에 없다. 신화적 폭력과 운명 개념으로 요약되는 그들의 작품세계는 곧 허무주의의 내면화와 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상과 같은 허무주의와 근대 적 세계의 신화성은 작품 내용상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허무주의에 기초한 고유의 미의식 의 표현으로까지 나아간다. 신화적 폭력 과 운 명 개념은, 고대 그리스 비극 이후 주요한 미학적 범주로 자리 잡고 있 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체로 특정한 미의식을 표현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표현되는 손창섭, 장용학의 미의식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이상의 문제의식 하에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허무주 의, 신화적 폭력과 운명, 미의식 이라는 네 가지 사항을 중심축으로 손 창섭과 장용학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와 그에 기초한 미의식을 분석하고 자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론적 검토는 다음 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1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역사철학, 허무주의 1)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문학 클라우비츠는 전쟁이란 오직 다른 제반 수단에 의하여 수행되는 국 가 정책의 계속에 지나지 않는다 31) 라고 주장하는 반면, 존 키건은 전 쟁은 언제나 문화의 표현이며, 종종 문화의 형태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는 문화 그 자체 32) 라고 주장한다. 전쟁은 이처럼 논리적 차원에서 정치의 연장 혹은 문화의 표현 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피해당사자에게는 전쟁이란 극한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중지되지 않는 폭력행위 33), 개체의 이성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갑작스 럽게 가해지는 엄청난 폭력, 대재앙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20세 기에 들어 전쟁의 대재앙적 성격은 1, 2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 과 더불어 극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라빈바흐(A. Rabinbach)에 따를 때,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세계대전이 었다고는 하나 1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민족국가간의 전쟁이었고 전투원 들만이 희생되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선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서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별 없는 대량 학살이라는 가공 할 만한 현상을 낳았다. 아우슈비츠의 학살로 상징되는 2차 세계대전은 그 결과 최소한의 휴머니티의 관념이나 시민성 개념의 붕괴, 궁극적으로 문명의 붕괴를 의미하였으며, 역사 내재적인 모든 구원적 전망을 상실하 게 하여 영원한 재앙으로서의 역사라는 감각을 낳게 만들었다. 34) 31) C. Clausewitz(김홍철 역), 전쟁론. 삼성출판사, 1998, p ) J. Keegan, 세계전쟁사, 까치, 1998, p ) C. Clausewitz, 앞의 책, p.51 34) A. Rabinbach, In the Shadow of Catastrophe : German Intellectuals Between Apocalpse and

22 2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한국전쟁 역시 논리적 차원에서 민족해방전쟁, 자유주의 수호 전쟁 등의 상이한 규정 35) 을 낳을 수 있지만, 한 개체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의 지와는 무관하게 가해지는 엄청난 폭력, 대재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손창섭과 장용학은 각각 1922, 1921년 생으로 1920년대로부터 현재의 1956년에 이르기까지 신세대(전후 1세대 소설가들 : 인용자)는 전쟁의 초 연 속에서 그네들의 육체를 성장시켜 왔고 그네들의 청춘을 영위하여 왔다 36) 라는 이봉래의 지적처럼 전쟁 속에서 청 소년기를 보냈다. 식 민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10대 때 중일전쟁(1937)을 겪었고, 20대 때 태평 양전쟁(1941)을 겪었으며 30대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들에 게 한국전쟁이란 1930년 만주사변 이후의 연속적 사건의 하나였다고 평 가할 수 있다. 홉스바움의 지적처럼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전반의 인류사를 대재앙의 시대(Age of Catastrophe)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할 때 37), 한국전쟁 역시 민간인과 군인의 구별 없는 대량학살, 민족 내부의 전쟁을 넘어서는 세계 대전적 면모 38) 등으로 인 해 1, 2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이며 2 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휴머니티 관념에 대한 철저한 회의를 낳는 대재앙의 발발을 의미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nlightenment, Un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pp.9-15, pp 참조. 35) 와다 하루끼는 한국전쟁을 중미전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와다 하루끼(서동만 역), 한국전쟁, 창작과비평사, 1999 참조. 36) 이봉래, 신세대론, 문학예술, , p ) E. Hobsbawm(이용우 역),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상), (하), 까치, 1999 참조. 38) 와다 하루끼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고 있다. 여러 통계를 종합할 때, 대략 한국 군인 23만명, 민간인 37만명(학 살 13만명, 사망 24만명), 미군과 유엔군 3만 6천 명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공의 경우 공식 발표의 정확성이 떨어져 정확한 인명 피해를 밝히기가 더 힘들다. 브루 스 커밍스는 피해상황을 가장 크게 본 경우인데, 그에 따르면 북한 측의 사망자는 민간인 200만명, 군인 50만명, 중국군 100만명으로 추정된다. 와다 하루끼, 앞의 책, pp 참조.

23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25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 문 학에 어떤 결과를 낳는가? 소로킨(P. A. Sorokin)에 따르면, 모든 사회에서 삶의 역사는 상대적 안녕의 시대와 재난 시대의 부단한 교체로 이루어 져 왔으며, 다양한 재난들 중 가장 빈번하고 파괴적인 것은 기근, 역 병, 특히 전쟁 혁명 이다. 이러한 재난은 인간의 감정과 정서, 인식 적 과정 들에 대해 영향을 미침으로써 당대의 문학에 대해서 중요한 변 화를 낳는다. 첫째, 재난은 갑작스럽고 격렬한 정서적 삶의 변화를 가져 온다. 기근, 역병, 전쟁 혁명 등의 재난은 각각의 경우에 있어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정서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고감도의 정서적 강렬 성을 산출한다는 점, 즐겁고 쾌활한 감정 대신에 고통스러운 울증적 감 정들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둘째, 재난은 전체적인 인식과정 즉, 감각 지각 등 비교적 단순한 인 식들로부터 기억 상상 창조적 사고 등의 복잡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차원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재난은 인간의 모든 인 식적 과정이 직 간접적으로 재난 및 재난과 관련된 현상들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와 무관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든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의 폭력성이 극단적일 때, 우리 인간의 자아의 통 일성이 붕괴되고, 정신적 기능이 붕괴된다는 점이다. 재난과 무관한 대 상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인간의 사고는 점차 외적 영향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며, 외적 자극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통제 하는 자율성이 감소하면서 급기야는 점차적으로 정신적 무질서와 분열 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39) 재난의 이러한 영향이 재난의 희생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개체들의 생리학적, 사회 심리학적 차이에 따라 재난들은 39) P. A. Sorokin, Man and Society in Calamity, Greenwood Press, 1973, pp 참조.

24 2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생리학적으로 질병에 강한 자는 역병에 의한 영향을 적게 받으며, 사회적으로 부유한 자들은 대기근의 시기에도 피로, 허약, 공허, 무관심의 감정에 덜 지배될 수밖에 없다. 전쟁의 경우 일반적으로 일반 주민과, 부상 죽음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 는 전투원간의 구별이 필요하다. 전투는 모든 군사적 행위들이 물 속의 공기 혹은 공기 속의 새들처럼 진행되는 위험의 분위기를 야기한다. 이것의 직접적인 결과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것이 불가능할 때 공포와 두려움이 발생한다 는 클라우제비츠의 지적처럼 전 쟁이라는 재난의 시기에 가장 지배적인 정서는 공포이며 이외에도 걱정, 연민, 울증, 성공의 찬양과 분노, 증오 등의 다양한 격렬한 감정을 야기 한다. 일반 주민 역시 (1) 공격과 부상의 위험, (2) 경제적 변화들, (3) 가 족들과의 분리의 위협, (4) 사치와 쾌락의 박탈과 음식 부족의 위협 등에 서 유사한 정서적, 감정적 변화를 겪게 되지만 전투원에 비할 때 상대적 으로 약하다고 할 것이다. 40) 그러나 앞서 지적한 한국전쟁의 성격은 이 러한 구별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학살과 후방에 대한 폭격, 두 차례나 반복되었던 북의 점령 등으로 인해 전투원과 일반 주민의 경계를 유례없이 약화시킨 전쟁이었고 그만큼 일반 주민들이 겪 게 되는 정서적 감정적 변화의 강도를 매우 강렬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50년대, 무엇보다도 그것은 두 가지의 근원으로 만들어졌다. 처절 하고 무모한 듯한 죽음과 삶이 그것이다. 죽음은 동작동 묘지, 삶은 손창 섭과 장용학의 세계가 대변한다. 41) 라는 고은의 지적은 대재앙으로서의 한국전쟁에 고통 받았던 50년대 인간의 내면상태에 대한 진솔한 지적이 라고 볼 수 있다. 40) 위의 책, pp ) 고은, 1950년대, 청하, 1989, p.19.

25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27 소로킨에 따를 때,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은 크 게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일시적인 효과들이다. (1) 재난은 일 시적으로 예술현상뿐만 아니라 심미적 창조성에 대한 흥미를 약화시킨 다. 예술가 역시 재난의 직 간접 희생자인 만큼 전쟁시기의 예술적 활 동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2) 재난은 문학의 영역에 침투해 들어와 그것의 중심적 제재가 된다. (3) 전쟁은 상당한 정도로 문학을 선 전의 단순한 도구로 만든다. 주제, 외적 형식에 있어서 문학은 전쟁이라 는 비상사태의 목적에 종사하게 된다. (4) 재난은 예술에 비장함, 공포의 분위기와 멜랑꼴리, 페시미즘 그리고 절망의 정조를 주입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초의 단계가 지나면서 문학은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서게 되는 데, 대재앙의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하 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심미적 가치들을 표현하며 때로는 천재적인 대작 의 생산을 낳기도 하는 것이다. 42) 첫 번째 단계의 (2)와 (3)은 우리 전후 소설의 경우 전쟁문학, 전시문학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들의 일정한 의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43) 전쟁체험의 내면화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만큼 본 연구에서는 제외하고자 한다.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 는 것은 첫 번째 단계의 (4)와 두 번째 단계에서의 결과들이다. (4)와 관 련하여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은 각각 멜랑꼴리와 절망(손창섭), 고통(장 용학)의 정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단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손창섭의 경우 심미적 슬픔과 희극성, 장용학의 경우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과 알레고리 및 비극성이라는 우리 문 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심미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이다. 42) P. A. Sorokin, 앞의 책, pp ) 조남현, 한국전시소설 연구, 한국현대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1993 참조.

26 2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부정적 역사철학과 신화적 폭력, 운명 한국전쟁은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이 극단적으로 발휘된 사건으로서, 전쟁이 인간의 개체들에게 가하는 가공할 폭력으로 인해 당대의 인간들 을 역사에 대한 절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전술한 바 있듯이 대재앙으로 서의 전쟁체험은 최소한의 휴머니티의 관념이나 시민성 개념의 붕괴를 야기하며, 역사 내재적인 모든 구원적 전망을 상실하게 하여 영원한 재 앙으로서의 역사라는 감각을 낳게 만드는데, 손창섭과 장용학의 소설은 각각의 고유의 방식으로 이를 철저하게 내면화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감각은 벤 야민과 아도르노의 부정적 역사철학(die negative Geschichtsphilosophie)을 통해 분명하게 규명될 수 있다.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부정적 역사철학은 대재앙으로서의 근대 체험 의 사상적 표현이라는 데 핵심이 있다.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존재와 이 성이 역사의 높은 수준에서 결국 통합된다는 헤겔의 동일성 이론을 비 판하고 양자의 비동일성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은 20세기 전반의 인류사 에서 전면화된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Der Katastrophische Zug der Moderne) 을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총괄적으로 수행되는 필연적 결과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된다. 44) 특히 1, 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 으면서 결국 자살을 택했던 벤야민은 진보라는 개념은 카타스트로페의 이념 속에 자리잡고 있다 45) 라는 진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진보로서 의 역사를 영원한 재난 (the permanent Catastrophe)의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진보, 목적론에 대한 단순한 거부를 넘어서 역사적 과정 내 44) L. Heidbrink, Melancholie und Moderne : Zur Kritik der historischen Verzweiflung, München, 1994, S ) W. Benjamin(차봉희 역), 중앙공원, 현대사회와 예술, 문학과지성사, 1994, p.130.

27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29 에서 긍정적 가치를 설정하려는 모든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대재앙의 시대에 유대교적 메시아주의 에 입각해 있던 벤야민은 역사를 보편적인 몰락사, 고통의 역사로 규정 하는 한편, 구원의 전망을 역사적 내재성(진화, 진보, 개혁, 혁명), 역사적 시간을 충족시키는 것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를 중지시키고, 야만으로서의 문명사를 폭파시키는 것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46)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부정적 역사철학은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 에서 자연 개념을 제거해버린 것과는 달리, 자연 개념을 재도입하여 자 연 을 역사 의 변증법적 대립 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자연과 역사는 상호 교정적 개념으로서 각각의 신화화를 비판하고 결국 이성과 현실의 동일성에 대한 주장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아도 르노는 자연이 신화적 폭력을 의미하는 경우 이성에 의한 자연 통제를 요구하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자연에 대한 합리적 통제가 사물화, 신화 화를 의미할 때 자연 개념에 입각하여 이성의 신화화를 비판한다. 그 결 과 자연 개념은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되는데, 자연 은 한편으로는 인간적 통제 외부에 있는 세계로서 자연의 마성적 폭력, 즉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폭 력성에 고통 받는 감각적, 물리적 세계를 의미한다. 47) 부정적 역사철학 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연 개념은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세계를 해명하 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손창섭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46) 유대교와 기독교의 메시아주의의 결정적인 차이는 역사와 메시아적 사건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있다. 기독교는 역사에 대한 메시아적 개입을 강조하는데 반 해 유대교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메시아적 사건을 역사적 시간의 중지와 동의로 파악한다. M. W. Jennings, The Permanent Catastrophe : Benjamin Philosophy of History, Dialectical Images, Cornell University Press, 1987, pp ; W. Benjamin(반성완 역), 역사철학테제,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pp 참조. 47) S. Buck-Morss, The Origin of Negative Dialectics, The Harvester Press, 1977, pp

28 3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자연적 삶에 대한 긍정은 부정적 역사철학의 긍정적 자연 개념을 통해 서 해명될 수 있는 것이며 장용학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세 계의 신화적 폭력성은 부정적 자연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부정적 역사철학을 체계화한 것은 아도르노이지만, 대부 분의 근본 개념을 창조적 사고 속에 최초로 제기한 것은 오히려 벤야민 이었다. 특히 벤야민은 자연 개념에 기초한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해 근대적 세계의 신화성을 규명하고 있는데, 이때 제기되는 핵심적인 개념 이 신화적 폭력, 마성적 운명이라는 개념이다. 메닝하우스에 따르면 신 화를 기만으로서 간주한 계몽주의와, 신화를 복구하고자 한 낭만주의 이 래 신화 개념은 크게 공포(fear) 와 시(Poesie) 라는 두 가지 상반된 범주 하에서 파악되어 왔다. 이에 대해 벤야민은 신화의 자율적 차원을 인정 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신화의 본질을 폭력성과 기만성에서 찾는 부정 적 신화 개념을 개진한다. 48) 벤야민은 이성과 대립하는 자연의 힘 폭력 을 마성적인 것, 신화적인 것의 본질로 간주하고, 자연의 마성적 폭력을 폭력비판 에서는 신화적 폭력(mythical violence) 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49) 독일비애극의 기원 에서는 마성적 운명(demonic fate)으로 규정하고 있 다. 50) 고귀한 인간들은 일단 그의 삶의 부분이 된 어떤 것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비극은 그러므로 그들의 특권이다 라는 루카치의 발언은 죄가 있다 라는 것은, 위대한 인물에 있어서는 명예이다 라는 헤겔의 문구의 변형이 48) W. Menninghaus, Walter Benjamin s Theory of Myth, On Walter Benjamin, ed. G. Smith,, The MIT Press, 1995, pp ) W. Benjamin,, Critique of Violence, Reflections, ed. P. Demetz, Schocken Books, 1978, pp ) 벤야민에게서 마성적 은 신화적 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W. Benjamin,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trans. J. Osborne, NLB, 1977, p.109.

29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31 다. 여기에서 말하는 죄는 항상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에 의해서 죄 진 자의 죄이다. 반면, 마성적인 운명의 경우에 있어서는 행위가 그 악의적 인 우연에 의해 아무 잘못 없는 자를 일반적인 죄의 나락으로 끌어 들인다. 고대 비극에서 고대의 저주, 즉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저주는 영웅적 인물 스스로의 손에 의해 발견되는 내적인 장소가 되며 저주는 그로 인하 여 소멸된다. 그러나 운명극의 경우 저주가 그 기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비극적인 것이 방황하는 유령처럼 피에 젖은 비극의 인물들의 사이를 왕 래한다 는 점이 흔히 이야기되는데, 이것은 그리스 비극과 근대 비애극의 차이의 하나를 지적하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근대비애극에서 운명의 주체는 결정될 수 없다. 비애극은 어떤 개인적 주인공도 갖지 않으며 오로 지 주인공들의 성좌만을 갖는다. 51) 특징적인 것은 벤야민이 이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과 독일의 근대 비애극의 본질적 차이를 규명한다는 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비극은 신화적 폭력과 마성적 운명에 대한 영웅적 초월을 표현 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죄진 자로서 비록 파멸해가지만 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영웅적 행 위를 통해 자연의 마성적 폭력, 즉 저주를 소멸시킨다. 반면, 독일의 근 대 비애극은 신화적 폭력에 대한 익명적 종속을 표현한다는 점에 결정 적인 차이를 보인다. 운명극 혹은 근대 비애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 지와는 무관하게 죄의 나락으로 빠져든 인물들로서 어떤 초월적 극복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과는 달리 악마적 운명에 의해 익명적으로 고통받는 자들일 뿐이다. 벤야민에게서 신화적 폭력과 운명 개념은 이처럼 심미적 범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 51) 위의 책, p.131.

30 3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는데, 특히 독일 근대 비애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화적 폭력, 운명 개 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러 한 신화적 폭력과 운명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 세계에 대한 규명에서 벤야민의 개념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3) 허무주의의 두 가지 계보 라빈바흐의 지적처럼 대재앙의 체험이 최소한의 휴머니티의 관념이 나 시민성 개념의 붕괴를 낳는다고 할 때, 이는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손창섭과 장용학의 허무주의 는 비개성적 허무주의 52) 와 거점없는 냉소주의 53) 라고 하여 당대 비 평가들에게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지만,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의 세계 관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재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대재앙의 순간 개체에게 갑작스럽게 가해지는 엄청난 폭력은 주체의 정체성 혼란과 개체의 시공간 감각, 의식 내의 인과적 감각의 붕 괴를 낳게 되고, 현상세계에 대한 가치절하, 즉 실존적 차원과 기호학적 차원 모두에서 의미의 상실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54) 장용학과 손창 섭의 허무주의는 대재앙의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이와 같은 실존적 위기감의 표현으로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허무주의를 도래케 했 고 그에 기초한 미의식을 낳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손창섭의 경우 키에르케고르가 심미적 실존에서 개진하는 허무주의가, 장용학의 52) 김 현, 허무주의와 그 극복, 사상계, , p ) 유종호, 씨니씨즘 기타, 문학춘추, , p ) M. Pensky, Melancholy Dialectics: Walter Benjamin and the Play of Mourning,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93, p.118.

31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33 경우 니체가 주장하고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가 각각의 작품 세계를 규 명하는 이론적 문맥을 제공한다. 고드스블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허무주의(nihilism)는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는 정신상태 를 의미하는데, 역사적으 로 허무주의자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에서부터이 다. 당시에 허무주의자는 정치적으로 편견이 없는 자로부터 건달패 이르 기까지의 다양한 인간들을 가리켰다.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녀서, 19세기 전반까지 이성만을 신봉한 채 종교와 전통을 배격하는 계몽사상 의 해로운 산물로 이해되다가 1860년대의 러시아에서 긍정적 의미를 획 득한다. 아버지와 아들 에 이르면 니힐리스트란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비록 그것이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할지라도 액면 그대로는 어 떤 원리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 즉 사회 개혁의 지지자, 불의와 허위에 대한 용감한 투사를 의미하게 된다. 55) 한편 레슬리에(C. K. Leslie)는 이상과 같은 통시적 차원의 분석과는 달 리, 공시적 차원의 고찰을 행하고 있다. 그에 따를 때 허무주의는 부정의 대상에 따라 다음 다섯 가지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인식의 가 능성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인식론적 허무주의. 이는 모든 지식 주장 은 동등하다 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둘째는 진리의 실재성을 거부하는 허무주의. 이는 어떤 진리도 없다 라는 주장으로 표현된다. 셋째, 독립 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거부하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허무주의. 이는 무가 현실적이다 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넷째, 도덕적 윤리적 가치의 실재성에 대해 거부하는 윤리적 혹은 도덕적 허무주의. 이는 어떤 신도 없다 혹은 모든 윤리적 주장들은 동등하게 유효하다 라는 주장으로 표현된다. 다섯째, 실존적 혹은 가치론적 허무주의. 이는 삶은 어떤 의 55) J. Goudsblom(천형균 역), 니힐리즘과 문화, 문학과지성사, 1988, pp

32 3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미도 없다 라는 판단으로부터 유래하는 공허와 무의미함의 감정을 표현 한다. 56) 그러나 니힐리즘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이르러서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니힐리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에서 지적한 통시적, 공시적 고찰을 넘어서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대 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허무주의의 극복이라는 공통된 주제 속에서 각각의 사상을 개진하되, 완전히 상반된 방식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한 사상가들이다. 일반적으로 니체에 이르러 허 무주의에 대한 가장 통찰력 있는 견해가 제시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는 점에서 먼저 니체의 경우를 살펴본다. 니체는 즐거운 지식 에서 최초로 명시적으로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데, 이는 곧 허무주의의 도래를 의미한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계속 중이며 방황 중이다. 그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까 지 도착하지 못했다 57) 라는 주장에서 드러나듯, 신의 죽음은 이미 발생 한 그러나 아직 규범적 통찰에서 가시적이지 않은 유럽 고유의 문화적 사건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허무주의는 근대의 독특 한 산물로 간주되는가 하면 인간의 영원한 속성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니체의 사상은 유럽 문화 고유의 귀결, 즉 기독교에서 표현되는 금욕주 의 필연적인 결과로 간주한다는 데 특색이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권력 에의 의지 에서 니힐리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고의 가치들이 스 스로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것. 목적은 결여되어 있다 : 왜라는 질문은 어 떤 대답도 발견하지 못한다 58) 라고 정의한다. 최고의 가치들이란 우리 56) C. K. Leslie, The banalization of nihilism : twentieth century responses to meaninglessness,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pp ) F. Nietzsche(권영숙 역), 즐거운 지식, 청하, 1998, p ) F. Nietzsche, The Will of Power, trans. W. Kaufmann, Landom Hause, 1967, p.9.

33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35 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핵심적 가치 평가들(진리, 신, 도덕)들을 가리키며 니힐리즘이란 그에 기반한 모든 가치 의미 바람직함의 붕괴, 전면적 재평가를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존재는 어떤 목적도 없는 권력의지에 불과하며 최고의 가치들은 단지 권력의지의 양에 기초하여 삶을 지탱시켜 주게 만드는 해석 에 불과하다. 니체는 권력의지의 양을 기준으로 허무주의를 크게 정신의 상승된 힘의 징후로서의 니힐리즘, 즉 능동적 니힐리즘 과 정신 의 힘의 쇠퇴와 후퇴로서의 니힐리즘, 즉 수동적 니힐리즘 으로 구별한 다. 59) 능동적 허무주의는 하나의 정상적 정신적 상태, 강함의 징후로서 이제까지의 목적들(확신과 신앙)이 자신에게 부적합할 정도로 그 자신이 강하여 목적들을 파괴하는 폭력적 힘으로서 작동하는 경우이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기독교와, 가장 극단적인 형식으로서 불교로 대변된다. 그것 은 약함의 징후로서 정신의 힘이 극도로 쇠약해져 지금까지의 목적들이 자신에게 부적절하게 되었을 때 등장한다. 수동적 허무주의에서는 생을 마비시키고 위로하는 모든 것이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미적 위장을 통 하여 나타난다. 60) 뢰비트에 따를 때, 강함과 약함에 입각한 니체의 구별 은 니체가 허무주의를 근본적으로 이중적인 것으로 파악했음을 보여준 다. 니체에게 허무주의는 몰락의 증상이면서 피로의 증상일 수 있고, 그것은 또한 강함과 상승의 잠정적 표현일 수 있다. 61) 허무주의에 대한 59) 허무주의는 논자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이루어졌다. 틸리히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 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는 순진한 허무주의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 문제 를 추구하는 성찰적 허무주의로 분류하고 있으며 야스퍼스는 가치를 부정하는 입 장(현실적 유물론자)과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불교)으로 분류한다. J. Goudsblom(천 형균 역), 앞의 책, pp ) F. Nietzsche, 앞의 책, pp ) K. Löwith, Kierkegaard und Nietzsche oder philosophische theologische Überwindung des Nihilismus, in: Sämtliche Schriften6, hrsg. von K.Stichweh, Suttgart, 1987, S.65.

34 3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니체의 모순적 평가, 즉 허무주의를 퇴폐의 징후 로 평가하는가 하면, 위대한 사건 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것은 두 가지 상이한 허무주의에 대 한 평가로 볼 수 있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허무주의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 허무주의이다. 니체는 능동적 허무주의 개념을 통해, 유럽 니힐리즘의 도래에 대해 그로부터 도피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 는 것뿐만 아니라, 유럽 니힐리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이성적 노력 도 거부하며, 오히려 가치의 몰락을 의식적으로 촉진함으로써 현존재의 긍정으로 나아가가고자 한다. 62) 그의 초인 개념은 이와 같은 능동적 허 무주의를 구현하는 인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니체가 이 두 가지 허무주의의 사이에 또 하나의 허무주의, 즉 불운한 자(the underprivileged)가 어떠한 위안도 갖지 않는다는 것의 증후로서의 허무주의 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체는 이에 대해 그들은 파괴되기 위해 파괴한다는 것, 강자가 그들의 처형자가 되게 강제하는 권력을 원한다는 것, 모든 존재가 그것의 의미를 상실한 후에 부정적 행위를 한다(doing No)는 것 등으로 규정한다. 63)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는 아직 강자의 허무주의, 능동적 허 무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강자에 의해 스스로가 파괴되기를 원할 정도만 의 권력량을 갖고 있다는 점, 강자의 영원회귀에 대한 믿음을 저주로 경험하고 어떤 행동도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는 점에 서 능동적 허무주의와 구별된다. 그러나 가치의 파괴 즉 부정적 행동 (doing No)을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위안을 추구하면서 긍정적 행동 (doing Yes)과 생의 마비로 귀결되는 수동적 허무주의와도 구별된다. 고 드스블룸은 이에 대해 니체가 만년에 이르러 제시한 또 다른 형태의 허 62) L. Heidbrink, 앞의 책, S ) F. Nietzsche, 앞의 책, pp

35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37 무주의라고 규정하지만,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불행한 자의 허무주의는 이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에서부터 제시되고 있다. 저 슬픔의 능력을 지닌 그런 인간들 - 그들의 수는 얼마나 적은가! -에 게서, 인류가 도덕적 인류에서 현명한 인류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 한 최초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중략) 모든 것은 필연이다 - 라고 새로운 인식은 말한다. 그리고 이 인식 자체도 필연이다. 모든 것은 죄 없으며, 인 식이란 무죄를 향한 통찰에 이르는 길이다. (중략) 수 천 년 후에 아마도 현명하고 죄 없는 (무죄를 인식하는) 인간을 규칙적으로 산출해 낼 힘을 인 류에게 부여할 만큼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지금 인류가 현명하지 못하고 부당하며 죄의식을 가진 인간을-그들은 전자의 필연적인 예비단계이지 반 대는 아니다-산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64)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는 인용문의 지적처럼, 슬픔의 능력을 지닌 인 간의 허무주의로서 수동적 허무주의에서 능동적 허무주의에 이르는 예 비적 단계의 허무주의라는 데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니체의 견해에 따를 때,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 세계는 크게 보아 각각 어떤 위안도 발견하지 못하는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 와 능동적 허무주 의 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니체의 니힐리즘은 장용학 소설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 요소이다. 그 간 장용학의 소설에 대한 연구는 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표피적인 현상에만 주목한 데서 온 결과였다 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장용학은 사르트르 수용 이전에 니체에 의해 이 미 영향 받은 바 크고 사르트르의 수용 역시 니체의 사상에 입각해 이루 64) F. Nietzsche(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책세상, 2001, pp

36 3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개념은 노예도덕과 귀 족의 도덕, 초인,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것 등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 보, 선악을 넘어서 등에서 우열의 구별이 귀족의 도덕이라면 현재의 선악의 구별은 원한 감정에 따라 이를 전복시킨 노예 도덕이라고 보고 노예 도덕을 초극하여 생의 긍정에 도달할 것을 주장한다. 노예도덕은 죄의식을 낳게 되는데 이는 자율적 주체 개념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서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죄의식과 자율적 주체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차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노예도덕을 극복하는 존재로서 초인을 주장 하고, 이에 이르는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삼 단계로 구별하고 있다. 이는 각각 체념의 단계, 신과 대적하는 단계, 어린아이와 같은 무 구성, 망각과 쾌락의 단계를 가리킨다. 65) 이를 고려할 때, 다양한 해석에 도 불구하고 능동적 허무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초인은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서 죄의식과 자율적 주체 개념의 부정에 이른 자이며 어린아이 같은 무구성의 단계에 이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초인개념은 장용학 소설의 주인공들, 즉 비인 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 할을 하게 될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니힐리즘은 심미적 실존, 절망, 우울 그리고 실존적 범주로 재해석된 심미적 범주들을 중심으로 개진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의 삼 단계, 즉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을 구별하고 각각의 단계의 통합에 이르러야 함을 주장하는데, 이중 이것이냐 저것 이냐 의 심미가의 삶, 즉 심미적 실존을 통해 허무주의 개념을 구체적으 로 제시하고 있다. 심미적 실존을 통해 제시되는 허무주의는 진정한 절 65) F. Nietzsche(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pp ; G. Wohlfart(정해창 역), 놀이하는 아이 예술의 신 니체, 담론사, 1997 참조.

37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39 망에 대한 심미적 전 단계를 의미하고, 하나의 잠재적인 절망 66) 을 의미 함에도 불구하고 실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뢰비트에 따를 때, 그것은 첫 째, 인간에게 벌거벗은 현존과 직면하게 하며, 둘째 그로써 인간을 세계 의 무와 대면하게 하며, 셋째 이것이냐 저것이냐, 즉 절망할 것인가 신 앙으로 도약할 것인가에 대한 결의에 직면하게 한다. 67) 결혼하라 그러 면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라 그래도 역시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든 않든 간에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68) 라는 심미가의 연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는 행위의 무의미성에 빠진 자, 삶에 대 한 허무와 권태, 무관심에 사로잡힌 자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슬픔과 우울로서 직접성, 감각성을 대변하지만, 단순한 감각적 본성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신에 대립하는 악마적 원리로서 규정된 감각적 에로틱한 것의 구현자라는 데 특성이 있다. 69) 키에르케고르는 이상에서 지적된 심미가의 절망, 즉 니힐리즘의 상황 에서 비롯되는 절망 을 통해 역설적으로 종교적 실존에 도달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데, 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절망을 크게 네 가 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감성적인 것에 의해서만 지배되어 스스로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 즉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 이며, 둘째는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면적인 것에 절망하는 지상적인 것에 대한 절망 이며 셋째는 자신의 자기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하지 못 하는 영원한 것 에 대한 절망(은폐)이다. 둘째와 셋째 절망은 절망을 자 각하되 자기 자신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되면서도 전자의 경우 66) K. Löwith, 앞의 글, S ) K. Löwith, 위의 글, S ) S. A. Kierkegaard(임춘갑 역), 이것이냐 저것이냐1, 종로서적, 1981, p ) S. Walsh, Living Poetically : Kierkegaard's Existential Aesthetics,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ty Press, 1994, pp

38 4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절망이 외적 수난, 운명으로만 나타나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 완전하지 는 않지만 자발적 행동이라는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다르다. 네 번째 절 망은 자신의 절망을 지각하되,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절망(반항)이다. 이 는 니체가 지적한 바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에 해당하는 단계로서 자신 에 대해 실험적 관계를 가지면서 무한한 자기 창조를 시도한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70)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계와 기독성을 구별하여 세속화된 기독계를 비 판하고 신 앞에 단독자로 대면함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려 하는 반면, 니체는 기독계와 기독성 양자 모두를 부정하고 신에 대한 초극을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71) 니체의 관점에서 볼 때, 결의적 절망(종 교적 실존)과 前 결의적 절망(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의 구별 속에서 신앙으로의 종교적 비약을 주장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허무주의의 가능성 앞에 눈감음을 의미할 뿐이다. 72) 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목 할 점은 양자 모두 시민-기독교적 세계의 붕괴를 기본적인 분석의 주제 로 삼았으며, 그들의 허무주의 극복 노력이 시민적 기독교적 인간성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다는 점이다. 뢰비트에 따를 때, 키에르케고르의 참된 기독교란 시대의 경과와 더불어 생겨난 것, 즉 인간주의(Humanität) 와 교양의 반대물 73) 이다. 또한 니체는 세속화된 기독교의 인간성에 대 한 항의 가운데서 근대적 인간에 대한 그의 비판을 전개하였던바 그의 사상은 기독교적 인간성 자체를 파기하는 인간초극에 대한 요구 74) 를 의미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초인의 대척점 70) S. A. Kierkegaard(임춘갑 역), 죽음에 이르는 병, 평화출판사, 1965 참조. 71) H. Schrey, Die Überwindung des Nihilismus bei Kierkegaard und Nietzsche, in: Sören Kierkegaard, Darmstadt, 1971, S ) K. Löwith, 앞의 글, S ) K. Löwith(강학철 역), 헤겔에서 니체에로, 민음사, 1997, p ) K. Löwith, 위의 책, p.371.

39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41 에 있는 인간으로 최후의 인간 을 설정하고, 이들에 의해 제창되는 시민 적-기독적 인간성 관념을 행복, 이성, 미덕, 정의, 교양, 연민 등으로 규 정하는데, 75)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의 허무주의는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시민적 인간성 관념 전체에 대한 부정 및 극복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 다. 4) 허무주의적 미의식 손창섭과 장용학의 소설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으로 인해 발생 한 허무주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허무주의에 입각한 고유의 미의식을 구현하고 있다. 힐레르브란드에 따르면, 낭만주의로부터 다다이즘, 초현 실주의 등의 모더니즘에 이르는 모든 진보적인 예술은 실존적 공허, 아 무 데도 없음이라는 위치상실 속에서의 형이상학적 권태, 정처없음, 무 등을 의미하는 허무주의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허무주의에 기 초한 예술은 신 없는 세계에 대한 근본적 재해석으로부터 등장하여 원 근법주의, 상대주의, 부정주의의 미학을 특성으로 한다. 76) 키에르케고르 와 니체는 각각의 허무주의에 기반하여 허무주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본고는 그들의 관점에 기초해 손창섭과 장용학의 미의식을 규명하고자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경우 첫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심미적 실존에서 제기 되는 허무주의가 우울이라는 정조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 그것이 심미적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우울로부터 모든 실존적 범주들이 발생한다. 우울은 인간을 가능적 실존 으로 개별화하고 내면화하여 인간을 폐쇄적 75) F. Nietzsche(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다, 책세상, 2000, pp ) B. Hilleberand, Ästhetik des Nihilismus, Stuttgart, 1992, S.3-17.

40 4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를 자기 자신에게 열려짐Sich-offenbar-Werden 으 로 강제하고 그를 이러한 폐쇄적 개별화 속에서 불안, 절망의 무 앞으로 운반한다 77) 라는 지적에서 드러나듯 우울은 심미적 실존을 위시한 윤리 적 실존, 종교적 실존 전체의 핵심적 범주이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우울은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악마적 성 격을 띠며, 그 악마성으로 인해 심미적 가치를 부여받는다. 키에르케고 르는 불안의 개념 에서 악마적인 것 의 본질을 내용상 지루함, 형식 상 폐쇄적 침묵(das Verschlossene), 시간상 갑작스러움(suddenness) 에서 찾고 있는데 78), 이는 보러(Bohrer)에 따르면 심미적 현상의 본질을 규명 하는 기념비적 고찰이다. 79) 키에르케고르에게서 우울의 악마적 성격은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는 부정해야 할 성질의 것이지만, 미학적인 차 원에서는 심미적인 것의 근본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그로 인해 심미가의 우울은 일상적 경험적 우울과는 구별되는, 악마적 성격의 심미적 우울로서 규정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키에르케고르의 우울 개념에 입각하되, 우울에 대 한 좀더 구체적인 천착을 위해 벤야민과 하이드브링크의 이론을 원용하 고자 한다. 우울(Melancholy)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연원하는데, 원래는 검은 체액을 가리키는 말로서 흑담즙(black bile)의 영향으로 차가울 때 완전한 무감각, 우울증을 낳고, 뜨거울 때 조광적 증상, 발광에 이르는 기질을 의미하였다. 철학, 정치학, 시에서 모든 탁월한 인간들은 왜 우 울자로 증명되는가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 이후 우울은 병리학적 장애와 천재적 능력이라는 양의적 의미를 갖게 되고 시대에 따라 병리 77) K. Löwith, Kierkegarrd und Nietzsche, S ) S. Kierkegaard(임규정 역), 불안의 개념, 한길사, 1999, pp ) K. H. Bohrer, The Prehistory of the Sudden : The Generation of the Dangerous moment,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p

41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43 학적 증상으로 배척되는가 하면 천재의 표지로 숭배되기도 한다. 80) 근대 에 이르러 우울이 정신병리학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정신병적 멜랑꼴리와 비정신병적 멜랑꼴리의 확고한 구별이 이루어진다. 이때 문 제가 되는 것은 발병의 원인 내지 시대경험과의 연관이 간과되기 쉽다 는 점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서 발생하는 정상적 감정으로서의 슬 픔(Trauer)과, 포기된 대상과 자아를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우울 (Melancholie)에 대한 프로이드의 구별 81) 역시 이러한 문제를 여전히 남기 고 있다. 우울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의 접근도 중요하지만, 이상의 한 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울(Melancholy)을 근대 이후 보편적 인간 경험 에 기초한 시대적 현상으로서 접근해 들어가면서, 그것의 실존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자(Melancholiker)는 주위 대상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서 실패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감정상 우울(die Schwermut), 슬픔(die Trauer)에 사로 잡혀 있는 자이다. 탈현실화(현실에 대한 무관심), 탈인격화(자아정체성의 해소), 불행의식, 죽을 수 없음에 대한 상상, 죄 의식 등 우울자에게는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82) 손창섭 소설의 동물적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이들을 서술하는 작가의 관점 자체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특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벤야민에 따 를 때, 다양한 증상 가운데 우울자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식과 운 80) M. Pensky, 앞의 책, pp ) 프로이드에 따르면 슬픔은 세계상실을 보이는 반면, 우울증은 자아와 관련된 상실 을 보이며, 나타나는 증상의 차원에서 슬픔은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등의 증상을 보이는 데 반해, 우울증은 이러한 증상 외에도 자기비하감과 그로 인한 자기 징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 를 특징으로 한다. S. Freud, 슬픔과 우울증, 무의식에 관하여, 열린 책들, 1998 참조. 82) L. Heidbrink, 앞의 책, S

42 4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명의식이 특히 중요하다. 이때의 죄의식은 개체의 결정행위로부터 발생 하는 윤리적 죄가 아니라 살아 있음 자체가 죄가 되는 자연적 죄(die natürliche Schuld)에 대한 의식이며, 운명의식은 행복과 무구함이란 존재 하지 않는, 불행과 죄만이 존재하는 신화적 운명에 대한 의식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고대 비극의 주인공들이 신화적 운명에 대한 순간적 초월 에 이르는 것과는 달리 우울자들은 신화적 운명에 대한 익명적 종속에 머문다. 그들의 우울은 신화적 운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의 비 참함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83) 키에르케고르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니힐리즘으로 인 한 우울을 심미적 범주로서 제시함과 더불어, 자신의 실존철학에 입각해 고유의 체계적인 실존적 미학(existential aesthetics)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이다. 그는 심미적 이상을 물질적 형식(예술작품)보다는 인격적 형식(인 간적 자아)에서 완성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 결과 서정, 서사, 희 극, 비극 등의 심미적 범주들을 예술 생산물을 위한 인지적 범주가 아니 라 생산자(작가) 자체를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실존적 범주로 재해석한 다. 84) 손창섭의 소설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희극성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일종의 실수 또는 기형이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이래 웃음, 희극적인 것은 크게 우월성의 이론(the Superiority Theory)과 부조화 이론(Incongruity Theory)으로 설명되 어왔다. 키에르케고르는 부조화 이론을 최초로 개진한 사상가이다. 85) 인 간존재가 유한성과 무한성의 부조화, 모순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키에르케고르는 희극과 비극을 유한한 것(외적인 것, 시간적인 것) 83) W.Benjamin, 앞의 책, pp ) S. Walsh., 앞의 책, p.4. 85) J. Morreall, Comedy, Encyclopedia of Aesthetics1, ed. M. Kelly,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403.

43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45 과 무한한 것(내적인 것, 영원한 것)간의 모순과 불일치라는 인간 존재상 황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이중 전자를 전경화할 때 희극성(웃음)이, 후자 를 전경화할 때 비극성(슬픔)이 발생한다고 본다. 86) 키에르케고르가 시적으로 살기, 즉 자신이 파악한 허무주의를 심미 적 범주로 제시하는 것처럼 니체 역시 능동적 허무주의를 구현하는 초 인의 삶을 심미적 현상과 결부시키고 있다. 비극의 탄생 에서 제시된 가장 근본적인 명제는 삶과 세계는 단지 미적 현상으로서만 긍정된다 라는 주장이다. 삶을 부정하는 도덕 신에 대항하여 니체는 창조에의 의 지로서의 예술만이 삶을 긍정하고 신성하게 할 수 있으며 예술이 진리 보다 더 가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87) 이는 비극적인 것을 디 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 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통해 구체화된다. 니체 는 비극의 탄생 에서 고대 비극을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의 관계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디오니 소스적인 것이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 에서 묘사하고 있는 디오니소스 적인 황홀, 즉 고통이 쾌락을 불러일으키고 환희가 가슴으로부터 고통 에 가득찬 소리를 자아내는 현상 88) 은 일차적으로 능동적 허무주의자, 니체 자신이 경험한 경지, 즉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무수한 순수한 전율의 명료한 의식을 갖고 있는 무아의 경지 89) 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무조건적인 자유의 감정, 힘과 신성의 감정 90) 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것은 보러에 따를 때, 심미적 현상의 세 가지 표지, 즉 갑작스러움(die 86) J. E. Hare, The Unhappiness One and the Structure of Kierkegaard s Either/Or,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 Either/OrⅠ, ed. R.L. Perkins, Mercer, 1995, pp ) B. Hillebrand, 앞의 책, S ) F. Nietzsche(김대경 역), 비극의 탄생/바그너의 경우/니체 대 바그너, 청하, 1998, p ) F. Nietzsche(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이사람을 보라, 청하, 1997, p ) B. Hillebrand, 앞의 책, S.74.

44 4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Plötzlichkeit)이라는 시간적 양식, 전율(der Schrecken), 개체화 원리의 상실 을 의미하는 이성적 주체 부재 상태의 황홀(die Verzückung qua absentia des Vernunftsubjukts) 중 마지막 표지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니체가 주 장한 디오니소스적인 것 이란 이 세 가지 표지를 특성으로 하는 심미적 현상을 의미한다. 91) 장용학은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주인공들이 고통스러운 자기 초극을 통해 도달한 비인의 영역을 한편으로는 관념적 진술을 통해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이성적 주체가 붕괴 하고 전율에 싸이는 심미적 현상을 형상화함으로써 제시하고 있다. 이상 의 니체의 개념은 장용학의 미의식을 해명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갖 는다. 끝으로 본고는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에 대해 벤야민의 알레고리론 을 원용함으로써 그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장용학 소설은 주로 폴 드 만의 알레고리론에 입각해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장용학 소설에 등장하는 알레고리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그리고 그로 인 한 사물들의 가치 상실, 즉 허무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 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이다. 벤야민에 따를 때, 단순한 우화 개념을 넘어서는 근대적 알레고리는 독일의 30년 전쟁 ( ) 직후의 시대 경험, 즉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이라는 시대 경 험에 기초해 있다. 대재앙 체험의 핵심은 세계의 무상성에 대한 깨달음 이며, 근대적 알레고리는 바로 이 자연의 무상성을 표현한다는 데 본질 이 있다. 근대적 알레고리는 상형문자를 기호와 지시물 간의 어떤 자의 성도 배제한 보편적 언어로 간주하고 상형문자의 해독과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의 창출을 시도하였던 르네상스 시대의 노력에서 기원한다. 그 91) K. H. Bohrer, Der Abschied, Theorie der Trauer : Baudelair, Goethe, Nietzsche, Benjamin, Frankfurt a.m. 1997, S.425 ; K. H. Bohrer, Asthetics and Historicism : Nietzsche s Idea of Appearence,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참조.

45 제1장 손창섭, 장용학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근거들 47 러나 근대적 알레고리는 파편화된 조각들에 의미를 할당함으로써 새로 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창출하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의 자의성 으로 인해 자의적 의미 생산에 머문다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그 결 과 신성한 의미를 산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 고 새롭게 산출된 상형문자 역시 자연의 무상성을 표현하는 파편들을 의미하게 된다. 92) 벤야민은 이상과 같은 입장에 입각하여 상징과 알레고리를 대립시키 고 있는데, 이는 벤야민의 고유의 신학적 언어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 서 있던 벤야민은 인간의 언어를 에덴에서의 추방 이전의 기원적 언어와 추방 이후의 타락한 언어로 구별한다. 그는 기원 적 언어의 경우를 사물과 이름의 신성한 통일, 존재와 의미의 통일로 규 정하고 이름name 이라 칭하는 반면, 타락한 언어의 경우 기표와 기의 간의 순수한 도구적 관계, 자의성에 빠져 있는 언어로 규정한다. 이와 같 은 관점에 따를 때, 상징과 알레고리는 도구적 관계에 빠져 있는 단순한 기호보다는 우월하지만 이름 에 비해서는 기호와 지시물 간의 상호 연 관의 부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시의 불완전한 양식을 의미하게 된 다. 9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징보다 알레고리를 중요시하는 것은 양 자가 신화와 정반대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상 징과 미적 가상을 신화의 계승으로 간주하는 반면, 알레고리 속에서는 신화의 해독제가 있어야 한다 94) 라는 주장에서 드러나듯 알레고리의 경 우 신화를 폭파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 결과 알레고리를 反 신화적 표현양식으로 규정한다. 미적 가상의 화해적 형식 이나 상징의 유기적 총체성이 의미와 감각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신화의 92) W. Benjamin, 앞의 책, p.184, pp ) M. Pensky, 앞의 책, pp ) W. Benjamin(차봉희 역), 중앙공원, 현대 사회와 예술, 문학과지성사, 1994, p.122.

46 4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형식적 특성을 계승하여 허위적 총체성을 산출하는 반면, 알레고리는 기 표와 기의간의 심연에 집중하고 파편으로서의 상형문자를 지향하여, 이 러한 허위적 총체성을 파괴하는 데 본질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95) 폴 드 만 역시 알레고리가 비자아와의 환상적 동일시로부터 자아를 방어한 다 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벤야민이 지적한 알레고리의 신화 파괴적 성 격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96) 95) W. Menninghaus, 앞의 글, pp ) Paul de Man, The Rhetoric of Temporality, Blindness and Insigh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3, p.207.

4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 두 가지 인물 유형 : 동물적 인간과 우울자 1) 동물적 인간과 도덕적 무구성 손창섭은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 지에 公 休 日 (1952.6), 死 線 記 (1953.6) 1) 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70년 말( 棒 術 娘 (1978))까지 창작을 계속하였다. 본고는 신문연재 소설인 夫 婦 ( 동아일보, ) 이전, 즉 肉 體 醜 ( 사상계, )까지 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연구 대상을 60년대 초반까지로 한정한 것은, 비록 부부 이후의 작품들에 대하여도 일정한 의의를 인정하더라 도, 이후의 통속적인 신문연재소설이나 역사소설은 생계의 확보가 일차 적인 창작 동기였다는 점 2), 특히 고유한 전후소설적 면모, 즉 역사에 대 한 절망과 그에 기초한 특유의 작품세계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 1) 문예 에 발표될 당시에는 死 線 記 로 되어 있으나, 비오는 날 (일신사, 1959)과 특 히 김동리의 소설추천기 ( 문예, , p.77)에 死 緣 記 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 아, 線 은 緣 의 오자인 것으로 판단된다. 2) 손창섭은 부부 와 같은 신문연재 소설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첫째, 생활을 위해서이고, 둘째, 일반 대중에게 더 친근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왜 신문 연재소설을 쓰는가, 세대, , p.208.

48 5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다. 손창섭 소설의 작품세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일차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작중인물의 특이성이다. 의미 있는 것으로 장식된 가면을 벗기고 맨얼굴 3) 을 드러내려 했다는 평가에서 드러나듯 그의 작품 속에 묘사되 고 있는 인물은 기존의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고 있는데, 손창섭 고유의 작품세계는 이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人 間 動 物 園 抄 라는 작품명이나 나는 염소이고 싶다. 노루이고 싶다, 두더지이고 싶다 4) 라 는 당선소감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적 인간에 대한 탐구는 손창섭이 뚜 렷하게 내세운 고유의 과제이다. 창녀 옥화(강영실)의 방에 대해 동물적 인 표정, 동물적인 대화, 동물적인 행동만이 반복되어 온 동굴 5) 이라고 묘사하는 泡 沫 의 意 志 ( 현대문학, )를 고려하면 동물적 인간은 50년대 작품 전체에 걸쳐 제시된다고 할 수 있다. 손창섭 소설에서 제시 되는 동물적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는 면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동물과 인간의 완전한 분리란 불가능하며 동물성이라는 개념 자체 가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을 규정하기 위해 설정된 측면이 강하다고 할 때, 6) 손창섭의 동물적 인간 역시 일종의 해석된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 이 합당하며 그의 고유의 관점, 해석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적 인간에 대한 손창섭의 해석에서 주목할 점은 동물적 인간의 본성을 자기 보존 self-preservation 으로 간주하는 관점과 권력에의 의지 the will to power 로 간주하는 관점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루소와 니체는 모두 문명화된 사회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위해 도덕적 가치 3) 김윤식, 6 25전쟁문학, 1950년대 문학 연구, 문학사와 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 p.29. 4) 손창섭, 당선소감, 현대문학, , p.76. 5) 손창섭, 포말의 의지, 현대문학, , p.50. 6) D. Lestel(김승철 역), 동물성 : 인간의 위상에 관하여, 동문선, 2001, pp

4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51 와는 무관한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한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 루소의 핵 심개념이 자기보존 이라고 할 때 이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권력에의 의지 로서의 삶이라는 니체의 개념이다. 루소와 니체의 대립 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지배욕을 자연 상태의 인간의 본성 으로 포함시킬 것이냐(니체) 배제할 것이냐(루소)이다. 루소는 자연 상태 의 인간에서 지배욕이 배제된 도덕의 잠재성을 발견하고 이를 추구해 나가는 반면, 니체는 도덕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으로 나아간다. 7) 그 무렵 루소와 니이체에 도취되어 나는 열병환자처럼 된 적이 있었다. 특히 루소에게는 더 경도되었다 8) 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손창섭은 작가수업 시절부터 자연적 상태의 인간에 대해 전혀 상반된 관점을 제 시했던 니체와 루소에 심취해 있었으며 특히 루소적 관점에 더 경사되 고 있었다. 성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生 活 的 의 춘자와 봉수, 먹고 자고 배 설하는 것 외에는 먹는 이야기와 여자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인간동물 원초 의 인물들, 수염이 석자라도 사람은 먹어야 사는 거야. 점잖은 사 람이 어딨어. 남자구 여자구 나이를 들면 다아 저 볼 재미를 채우구 싶 은거야! 9) 라고 주장하는 流 失 夢 의 누이, 그리고 少 年 의 母, 저녁놀 의 父 와 술집여자 등 대표적인 동물적 인간을 중심으로 고려할 때, 손창 섭 소설에서 등장하는 동물적 인간이란 일차적으로 성욕과 식욕 등의 감각적, 육체적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1) 조끼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하나하나 기장해 나가던 장인 영감은 오늘두 또 쳐먹었어? 하고 하나밖에 없는 눈을 부릅떠 보이는 것이 7) K. Ansell-Person, Nietzsche Contra Rousseau,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p 참조. 8) 손창섭, 나의 문학수업, 현대문학, , p ) 손창섭, 유실몽, 사상계, , p.270.

50 5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다. 그리고는, 자기는 육십이 다 된 오늘날까지 하루 세 때의 끼니 외에는 군것질이라고는 해 본 예가 없노라고 하며 잔소리를 퍼붓는 것이다. 그러 며 順 實 은 멋적게 씩 웃어 보이고, 먹구 싶은 것도 못 먹구 뭣하러 살아, 세상 재미란 먹는 재미지 뭐유, 난 아버지처럼 살래문 당장 자살해 버리구 말겠소, 하고 말대답을 하는 것이다.(밑줄-인용자) 10) (2) 만주와 북지로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을 녹여내던 이야기에서부터, 나 체 땐스며, 미루미루캉캉 이야기에까지 번져나가는 결국 남자란 여자 없 이 살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성현군자로부터, 곤충 과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그 문제에서만은 벗어날 수 없지 않았 느냐는 것이다. 두고 보매 春 子 와 동거하면서도 東 周 는 지나치게 점잖다는 것이다. 남자가 성욕을 잃게 되면 그건 폐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꼭꼭 빼놓지 않고 한다는 소리가 또한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이야기인 것이다.(밑줄-인용자) 11) (1)에서 단순히 군것질을 마음대로 하고 싶고 과부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결혼한 被 害 者 의 순실은 먹는 것에서 유일한 즐거움을 느끼고, (2)에서 호시탐탐 춘자를 노리고 있는 생활적 의 봉수는 남자란 여자 없이 살 수 없는 동물 이며 성자도 곤충도 성욕으로부터만은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봉수의 주장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 이때의 성욕과 식욕은 도덕이라는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문명화된 인간의 욕망이 아니 라 단순한 감각적 육체적 욕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물적 이라고 규 정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란 수하를 막론하고, 종국적인 목적은 돈 모 으는 데 있다 ( 생활적 의 봉수), 남녀관계와 돈만이 인생의 전부 ( 유 실몽 의 누이) 12)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인물들은 식욕과 성 10) 손창섭, 피해자, 신태양, , p ) 손창섭, 생활적, 비오는 날, 일신사, 1959, p.81( 현대공론, ).

5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53 욕 외에도 발전된 인간사회의 산물인 돈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으로 제시되지만, 이때의 돈에 대한 욕구 역시 근본적으로는 감각적, 육 체적 욕구의 만족을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물론 손창섭 의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적 인간들이 실제적인 동물일 수는 없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극도로 거친 촉각과 미각을 소유하는 반면, 시각, 청각, 후각은 매우 예민하다. 따라서 촉각과 미각의 발달은 이미 문명화된 상 태를 의미한다 는 13) 루소의 견해에 따를 때, 등장인물들의 식욕과 성욕 에 대한 과도한 추구 자체가 이미 문명화된 사회의 촉각과 미각의 발달 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육체적 재생산만을 위해 먹고 교미하는 동물들 의 그것과는 구별되기 때문이다. 세상 재미란 먹는 재미지 뭐유 ( 피해 자 의 순실)와 다아 저 볼 재미를 채우구 싶은 거야 ( 유실몽 의 누이) 의 재미 라는 표현은 그들의 욕구가 이미 인간화된 욕구로서 동물적 생 존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자연은 인간화된 자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인간을 형상화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측면이 다. 14) 중요한 것은 비록 인간화된 욕구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연적 상태 의 인간의 본성으로 의식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독특한 유형의 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적 인간을 성욕과 식욕 등 감각적, 육체적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인물로 형상화하는 것과 병행하여 손창섭은 다른 한편으로 동물적 인간 에서 권력에의 의지 로서의 삶을 도출하고자 시도한다. 이는 동물적 인 12) 손창섭, 생활적, p.81 ; 유실몽, 사상계, , p ) J. J. Rousseau(박은수 역),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관한 논문, 사회계약론 외, 인폴리오, 1998, p )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할 때, 현재의 자연적 현상은 역사적 으로 이미 생산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불변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자 연에 대한 신화화를 의미한다는 점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S. Buck-Morss, The Origin of Negative Dialectics, The Harvester Press, 1977, p.49.

52 5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간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간동물원초 에서 뚜렷이 드 러난다. (1) 그런 가운데서 아무래도 통역관만은 다른 것이다. 깔보는 것 같은 웃 음을 담은 눈으로, 방장과 주사장의 부어 오른 태도를 암만이구 오래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결론이라도 나리 듯이 그는 또 엉뚱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란 늘 싸워야 하는 거요. 싸울 줄 모르는 인간은 송장이요. 그러나 반드시 저보다 강대한 적과 싸우는 싸 움만이 신성합니다. 약자끼리의 싸움이란 언제나 강자를 위한 자멸입니 다. (밑줄-인용자) 15) (2) 모두들 푸른 하늘이 저 드높은 하늘이 그리운게지! 저 하늘을 차지 하고 싶거든 용감해져야 합니다. 강해져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도 통역관 은 그런 영문 모를 소리를 지꺼린 것이다. 양담배는 도무지 통역관의 속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통역관의 언동에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약자 는 언제나 이렇게 하늘만 사모하다 죽는답니다. 통역관은 그런 말도 했 다.(밑줄-인용자) 16) 감옥에 갖혀 있는 인간동물원초 의 인물들은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 외에 여자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중심적 사건은 핑핑 이, 양담배, 쓰리군 등 계간의 대상을 놓고 벌어지는 주사장과 방장의 대 결이라 할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주사장과 방장이 감각적, 육체적 욕구 의 만족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제일의 권력자가 되기 위해 서로 싸운다 는 점, 즉 생존에 대한 추구와 권력에 대한 추구가 동시에 제시된다는 15) 손창섭, 인간동물원초, 문학예술, , p ) 손창섭, 인간동물원초, p.17.

5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55 점이다. 타인에 대한 지배욕이 권력의지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손창섭이 자연상태의 인간의 본성에서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삶 을 발견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인용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통역관 의 주장은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삶을 지향하고자 했던 작가의 관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용문 (1)의 살아 있는 사람은 늘 싸워야 하며 반드시 강대한 적과 싸워야 한다 는 주장은 동물적 인간들이 모든 생명 있는 것에서 가장 명료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보존하 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한 것이 되기 위하여 모든 일을 한다 17) 라는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삶을 추구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역관이 주장하는 삶에 이를 때, 감옥 안의 동물적 삶은 삶의 비참함이 아니라 생에 대한 긍정으로 전환되고, 도덕은 미래를 위하여 개체의 삶 을 희생하도록 동기화하는 환상 18) 을 의미하게 됨으로써 도덕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 (2)의 약자는 언제나 하늘을 사모하다 죽는답니다 라는 통역관의 비판은 이러한 관점에 입각 해 있다. 하늘을 사모하는 약자 란 통역관이 주장하는 삶에 이르지 못한 자, 결국 도덕적 가치와 형이상학에 대한 갈망을 떨쳐 버리지 못한 존재 를 의미하는 만큼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삶을 주장하는 통역관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등지고 앉아 있는 통역관, 그의 요구와는 달리 인간동 물원초 의 도입부와 결말 부분은 통역관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창밖 의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주사장과 방장의 치열 한 대결 후에도 여전히 하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감옥으 로 상징되는 삶의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뿐, 동물적 삶을 생에 17) F. Nietzsche, The Will To Power, trans. Walter Kaufmann, New York : Random House, 1968, p ) 위의 책, p.218.

54 5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대한 긍정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하늘로 상징되는 도덕적 가치 와 형이상학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1) 한편 그만했으면 분풀이도 한 셈이다. 그렇건만 왜 그런지 眞 秀 는 석 연치 못한 심정이다. 眞 秀 나 洪 先 生 따위로 어림도 없는 사건을 夏 敎 의 주 먹으로 우스울 만치 통괘하게 수습해 버리었다. 그 힘, 夏 敎 의 힘만은 인정 하고, 감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眞 秀 는 조금도 통쾌하고 유쾌 하지는 않았다. 웬일인지 좀더 우울해질 뿐이었다. (밑줄-인용자) 19) (2) 학교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매장 당해 버린다 해도 재호에겐 심상한 일이다. 그는 이 사회의 맨밑바닥에서 인간이 된 관록을 가졌다. 그 밑바닥 에서 생의 강한 의욕과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햇빛이 미치는 물 위를 다소나마 그가 솟아오른 것은 단지 인간의 형제가 하늘을 향하고 서 있게 마련이라는 이유밖에는 되지 않는다.(밑줄-인용자) 20) 인생은 그대로 만사가 싸움 이라 주장하면서도 언제든 자기에게 대 항해 오거나, 저보다 센 놈만을 노리는 師 弟 恨 의 하교 나 도덕적 가 치가 배제된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의 강한 의욕과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라는 미스테이크 의 재호 등은 통역관의 논리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들로서 통역관의 관점이 손창섭 소설의 전체에 걸쳐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러나 인용문 (1)에서 사제한 의 주인공 진수는 하교의 폭력 대상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창녀 박순례였다는 사실로 인해 우울에 사 로잡힌다. 또한 인용문 (2)에서 재호는 허구적인 사회적 규범을 부정하면 19) 손창섭, 사제한, 현대문학, , p ) 손창섭, 미스테이크, 서울신문,

5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57 서도 인간이란 형제는 하늘을 향하고 서 있게 마련 이라는 생각을 견지 하고 있다. 진수의 우울, 재호의 생각은 손창섭의 작품이 통역관의 관점 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관점의 전적인 긍정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정은 가장 뚜렷이 권 력에의 의지를 도출하고자 했던 인간동물원초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 다. 동물적 인간에 대한 통역관의 깔보는 듯한 태도, 동물적 인간들에 대 한 약자라는 비판 자체가, 작가가 지향하고자 했던 통역관의 관점이 작 품 속에 형상화되는 동물적 인간의 본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는 점을 반증한다. 또한 비록 주사장과 방장의 싸움에 지배욕이 등장하 지만 싸움의 핵심적 동기는 지배욕 자체보다는 감각적 육체적 욕구의 만족에 있다. 주사장은 자기 몫까지 쓰리군의 밥그릇에 쏟아 주었다. 처음엔 서먹서 먹해도 정드리고 보면 예도 괜찮다고 하며 주사장은 쓰리군을 위로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취침 호령이 나리자, 방장은 핑핑이를 다른 자리 로 쫓아 보내고 쓰리군을 자기 옆에다 눕힌 것이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 세 혹은 괜히 지나치게 고집 세우면 피차 손해야. 누군 목숨이 아까워 징 역살이하는 줄 아나! 하고, 주사장은 몇 번 교섭을 시도해 보았지만, 방장 은 좀체 응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주사장은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궁 금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잠잠해 지고 말았다. 밤중이었다. 역시 한 구 석으로 밀려 나가 자고 있던 양담배가 무슨 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본 즉, 서 로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방장과 주사장 사이를, 좌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21) 21) 손창섭, 인간동물원초, p.26.

56 5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인간동물원초 에서 주사장과 방장의 갈등은 여자와 같은 용모의 쓰 리군이 들어옴으로써 폭발한다. 주사장은 성적 욕구의 충족 대상을 공평 하게 분배하자고 타협을 시도하지만 방장은 계간의 대상인 쓰리군을 독 점하려 하고 마침내 살기 어린 격투가 벌어진다. 주목할 점은 주사장과 방장이 병리학적 증상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쓰리군은 성욕의 충 족을 위한 대체물을 의미하고 방장과 주사장은 단지 감옥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감각적, 육체적 욕구 충족 대상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 다. 손창섭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동물적 인간들은 권력에의 의지 를 주장하는 통역관의 논리와는 달리 생존을 위한 감각적, 육체적 욕구 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지배욕이 나타날 경우도 그 자체에 대한 탐닉의 차원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인간화된 욕구로서 생존의 차원에서 제시된다. 피해자 의 순실과 장인이 결혼을 핑계로 병준을 철 저하게 지배, 착취하는 것이나 條 件 附 의 현옥과 현옥 母 가 현옥과의 결혼을 전제로 5년간 갑주를 지배하고 생활비를 대게 하는 것은 모두 병 준과 갑주에 대한 지배욕 자체보다는 그들의 생존욕에 주된 동기가 있 다. 결국 손창섭의 동물적 인간은 근본적으로 루소가 주장하는 자연적 상태의 자기 보존의 욕구, 즉 자신의 복지와 안녕에 대한 자발적인 관 심을 가지고 있을 뿐,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한 타자를 공격하거 나 지배하지 않으려는 22) 본성의 소유자들이라는 데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손창섭이 동물적 인간의 본성을 자기 보존에서 찾은 것은 전 후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22) J. J. Rousseau, 앞의 책, p.45, p.83.

5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59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 무슨 일에 부닥칠 때마나 나는 자주 그때의 치 열한 전투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꼭 전 장터와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적과 부닥치게 마련이다. 그들은 나의 진로를 막고, 나의 행복을 빼앗고, 심지어는 나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 이미 현대는 생존경쟁의 단계를 지나 약육강식의 시대라는 느낌이 든다. 경쟁에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거꾸러 뜨려야만 살 수 있는 시대란 말이다.(밑줄-인용자) 23) 동물적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인용문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전쟁터 와 같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전쟁 터나 전후의 사회가 모두 동일하게 상대방을 꺼꾸러뜨려야만 살 수 있 는 약육강식의 시대 일 수밖에 없다는 시대인식에 기초해 있다. 인간동 물원초 의 감옥 안의 상황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상황, 즉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재화마저 부족하여 개체들을 동물적 상태로 전락하게 만들고 저마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손창섭 소설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되 고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란 결국 시민사회 이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로서의 자연 상태 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물적 인간은 그와 같 은 전쟁 상태에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자기보존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4) 손창섭이 이처럼 동물적 인간의 본성을 시민사회 이전 전쟁상태에서 23) 손창섭, 침입자, 사상계, , p ) K. Ansell-Person에 따르면 홉스에 대한 루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연상태 의 인간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의 욕구와 정념들이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정의와 불의는 시민적 사회 안에서만 발생한다고 본다. 홉스, 리바이어던, 세계의 대사상3, 휘문출판사, 1972, pp ; K Ansell-Person, 앞의 책, pp 참조.

58 6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의 자기 보존 욕구에서 찾고 긍정적 관점을 취하였다는 것은 다음 두 가 지 사실을 의미하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첫째는 손창섭이 동 물적 인간들을 통해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간이 처한 비참함 을 표현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근대적 역사의 폭 력성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손창섭은 성욕과 식욕에 의해 지배되는 동물적 인간에 대한 지속적 묘사를 통해 인간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신 진대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 즉 인간은 물리적 자연적 존재로서 자연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은 항상 전 후라는 시대적 상황,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여러 차원의 물질들이 부재하는 상황을 원경으로 하여 제시된다. 인간은 자연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한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과정,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표 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자연적 삶이란 아직 역사와 이성으로 통합 되지 않은 인간의 필연의 영역, 즉 인간의 이성적 통제 외부에 있는 영 역을 가리키며 아도르노에 따를 때 그것은 인간적 육체를 포함하는 감 각적 세계, 필멸하는 개별적인 인간의 구체적인 실존의 영역을 의미한 다. 결국 동물적 인간을 통해 손창섭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적 존 재로서의 인간이 한국전쟁을 전후한 근대적 역사적 과정에서 처하게 되 는 비참함이며 인간의 자연적 삶에 대한 근대적 역사적 과정의 엄청난 폭력성이라 할 수 있다. 동물적 인간은, 필연의 영역을 넘어서 자유의 영 역을 추구하는 데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과정에서 발생한 절대적 상황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인간의 존 재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25) 25) 본고에서 자연 개념은 아도르노의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해 이성에 대한 변증법 적 대립 항으로 사용된다. 이성, 역사가 신화화되어 인간개체에게 폭력을 가할 때, 자연 은 이를 비판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며, 자연이 신화적 폭력을 의미할 때, 자

5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61 둘째는 동물적 인간이 선악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 자기 보존을 추구 하는 존재이기에 도덕적으로 무구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할 때, 손창섭이 이러한 동물적 인간에 대한 계속적인 묘사를 통해 동물적 인간의 생존 을 억압하는 모든 기존의 도덕에 대한 전면적 회의를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를 정의하고자 했던 홉스나 루소 모두 정의 혹은 불의 라는 관념은 시민 사회 안에서만 발생하며 그 이전 자연 상태의 인간의 욕구와 정념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다. 동물적 인간들은 통역관의 주장처럼 선악을 초월하고자 하는 존재라 기보다는 단지 자기 보존의 욕구를 추구하는, 선악 이전의 존재라는 점 에서 도덕적으로 무구하다. 당대 비평가들은 손창섭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인간 모멸 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는데 26), 그 주된 이유는 손창섭이 동물적 인간에 대한 묘사에 주력한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이처럼 그들의 도덕적 무구성을 주장하였다는 점에 있다. 당대 비평가들이 주장하였던 휴머니즘은 시민적 인간성, 도덕을 전제하고 있었던 반면, 동물적 인간 이 도덕적으로 무구하다는 손창섭의 주장은 시민적 인간성, 기존 도덕에 대한 부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다. 그러나 손창섭의 주장은 시민적 가치의 허구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평되어야 할 부분이라 할 것이다. 손창섭의 시민적 도덕에 대한 회의가 도덕에 대한 초월로까지 나아갔 다고 볼 수는 없다. 동물적 인간이 선악 이전의 존재라는 점에서 무구하 다고 할지라도, 손창섭에게 도덕적 가치에 대한 추구는 여전히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속성을 의미하였다. 인간동물원초 의 인물들은 이 두 가지 속성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존재들로서 한편으로는 자기 보 연 은 이성에 의해 합리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할 대상을 의미하게 된다. S. Buck-Morss, The Origin of Negative Dialectics, The Harvester Press, 1977, pp ) 유종호, 모멸과 연민(상), (하), 현대문학, 참조.

60 6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존을 추구하는 선악 이전의 무구한 존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 에게 부재한 인간적 도덕적 가치를 갈망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전쟁을 전후한 당대 인간의 존재 상황에 대한 손창섭 고유의 규정 으로서 그의 작품에서 전자의 속성이 주로 동물적 인간을 중심으로 표 현된다면, 후자는 도덕적 가치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또 다른 인물들 을 통해서 표현된다. 유실몽 은 술집작부로서 남녀관계와 돈만이 인생의 전부 인 누이, 공장일과 교원 자격 검정고시를 병행하면서 극도의 피로를 견디어내는 옆방의 춘자, 그리고 누이의 집에서 조카 재순을 돌보며 기생하는 제대 군인 철수 등을 통해, 이 두 가지 차원의 인물과 그들에 대한 작가의 관 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1) 어서 시집갈 생각이나 해요! 한사쿠 공분 해 뭘해. 선생이 되문 그 래 만년 처녀루 늙을 셈이요? 언젠가 누이가 한 말에, 春 子 는 대뜸 눈섭을 곤두 세웠다. 개 돼지처럼 먹구 자구 아이만 낳문 젤인가요. 자기의 취미 와 재능을 살려 가치 있는 생활을 해야 사람이죠. 여자가 취미나 재능은 해서 뭘해요. 그저 알뜰한 살림 재미를 봐야지. 春 子 는 경멸하는 눈으로 누이를 보았다. 在 順 엄마는 그래서 알뜰한 재미에 취하셨군요. 내 걱정일 랑 말구 在 順 엄마나 어서 그 알뜰한 재미를 실컨 즐기세요. 春 子 는 얼굴 에 조소에 찬 미소까지 어리었다.(밑줄-인용자) 27) (2) 이 이가 在 順 이의 본 아버지야. 부산서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기 날 팽개치고 달아난 줄 알았더니, 그 동안 피신하구 있었대는구나 글쎄. 어 떤 사정이 있어서 숨어 지냈대. 그런데 인제 그 사건두 무사히 다 해결이 나구 해서, 혹시 서울이나 오문 내 소식을 알까 싶어 왔다가, 용케 만났지 27) 손창섭, 유실몽, 사상계, , pp

6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63 뭐니! 누이의 말이 내게는 곧이 믿어지지 않았다. 거짓말만 같았다. 그러 나 그 문제에 대해서 나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이의 말이 사실이 면 어쩌구, 거짓이면 어쩌냐. 그 진부가 누이의 행복과 과연 어떤 관계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산행 열차의 개찰이 시작되었다. 누이는 더없이 만 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이 삼일 뒤에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밑줄- 인용자) 28) (3) 나중에 생각해 보면 모두가 야비한 수작인데, 즉석에서는 그렇게 느 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웃었다. 화를 낸다는 것 이 엉뚱하게 그만 웃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자기 저녁은 하지 말라고 일르 고 누이가 나가 버린 뒤에도, 한참 동안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한 나의 머리 속에 春 子 의 영상이 환히 떠올랐다. 마주 앉았을 때 스카트 밑 으로 내민 무릎이 눈에 뜨이면 나는 가슴이 아팠다. 형벌처럼 불행과 고독 을 질머진 春 子 는, 터무니 없는 자존심으로 간신히 자기를 버티고 있는 것 이었다. 나는 머리를 내 저었다. 모두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밑줄-인용 자) 29)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춘자가 자기의 취미와 재능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 을 지향하고 있다면, 누이는 개 돼지 처럼 먹구 아이만 낳문 젤 인 동물적 삶을 추구한다. 춘자는 인간동물원초 의 하늘을 그리워하는 약자의 모습, 인간은 하늘을 향하고 서 있게 마련 이라는 미스테이크 의 재호의 생각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로서 유실몽 은 인간동물원초 에서 제시되었던 당대 인간의 모순적 면모를 구체적인 두 인물, 춘자와 누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양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철수는 작가의 관 점을 표현하고 있는 인물로서 두 가지 인물 유형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28) 손창섭, 유실몽, p ) 손창섭, 유실몽, p.279.

62 6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단적으로 보여준다. 철수는 우선 누이의 동물적 삶에 대해 강한 인간의 냄새 30) 를 맡을 뿐 아니라, 그녀의 명랑성을 부러워한다. 인용문 (2)는 누이에 대한 그의 긍정이 동물적 인간의 도덕적 무구성에 대한 인정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이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진짜 매 형이라 소개하고 부산으로 야반도주하면서 더없이 행복한 표정 을 지 을 때, 누이의 언행은 동물적 차원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뻔한 거짓 말, 현재의 매형에 대한 배신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는 그 녀의 행복이 중요할 뿐 정조, 진실과 거짓 등의 도덕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누이의 삶이 선악 이전의 삶으로서 도덕 적으로 무구하기에 도덕적 가치를 평가의 기준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는 판단을 전제로 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적 인간의 도덕적 무구성에 대한 주장이 동물적 인간에 대한 전면적 긍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활적 의 동주가 남자가 성 욕을 잃게 되면 그건 폐물 이라는 봉수의 말에 대해 견딜 수 없이 우울 한 이야기 라고 느끼는 것처럼 철수 역시, 성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누이 의 언행이 야비한 수작 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누이의 부산과 춘자의 방 모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한다. 동물적 인간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은 전술한 바 있듯이 인간의 또 다른 속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수는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춘자에 대해 인용문 (3)에서 드러나듯 가슴 아픔, 즉 연민에서 비롯되는 강한 고통 을 느끼고 있다. 연민 자체가 도덕적 감정이라는 점에서 철수는 이미 도 덕 이전의 상태에 있는 동물적 인간과 구별된다. 루소에 따르면 연민 (pity)은 자신의 종족 구성원의 고통에 대한 자연적인 혐오의 감정으로서 인간이 자연적 상태에서 갖고 있는 최초의 도덕적 감정이다. 또한 연민 30) 손창섭, 유실몽, p.269.

6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65 은 자연적 상태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자아와 타자간의 상상적 동일시를 전제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미 문명화된 인간의 감정이기도 하다. 31) 철수가 춘자에 대해 연민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춘자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추구를 자신 또한 예외일 수 없는, 인간의 또 하나의 본질적 속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 그가 이미 동물적 인간과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인물유형을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주목할 점은 철수가 춘자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터무니 없는 자존심으로 형벌처럼 불행과 고독을 짊어지고 있다 고 본다는 점 이다. 철수는 인간적 가치의 추구를 인간의 속성으로 인정하면서도 그로 부터 필연적으로 불행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존재 인 것이다. 손창섭은 동물적 인간과 구별되는 도덕적 감정을 갖고 있는 불행의식의 소유자들, 즉 춘자, 철수로 대변되는 또 하나의 인물 유형을 창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다음 절에서 다루고자 한 다. 2) 우울자와 심미적 슬픔 손창섭은 한편으로는 감각적, 육체적 욕구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동물 적 인간을 창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도덕적 가 치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인물 유형을 창조하고 있다. 이는 당대 인간의 존재 상황에 대한 손창섭 고유의 파악, 즉 당대 인간은 약 31) 루소는 연민(pity)을 자연 상태의 감정이라고 간주하지만, K. Ansell-Person은 연민이 필수적으로 인간 존재간의 동일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화된 상태의 도 덕적 감정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연민은 자연 상태와 문명 상태 모두에 걸쳐 있는 모순적 개념으로서 자연 상태의 자기애와 문명 상태의 이기심을 동시에 포함하는 잠재적인 도덕적 감정으로 규정된다. K. Ansell-Person, 앞의 책, pp

64 6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육강식의 전쟁상태에서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 자기보존을 추구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추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역설적 존재 상황에 처해 있다는 파악이 두 가지 인물 유형으로 구체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분석한 바 있는 유실몽 의 철수, 즉 작가의 관점을 대변하는 인물 역시 결국 후자의 인물 유형에 해당한다 고 볼 수 있는데, 터무니 없는 자존심으로 형벌처럼 불행과 고독을 짊 어지고 있다 는 철수의 관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손창섭은 후자의 인물 유형을 통해 당대 인간의 불행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들 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미국 유학의 꿈을 추구하는 미해결의 장 의 지숙으로부터 철저한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생활적 의 동주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도덕의 초월 과 도덕 에 대한 회의 의 경계선 상에 존재하면서, 그로부터 발생하는 불행의식과 우울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다. 니체의 관점을 따를 때, 그들은 아직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예비적인 인간 이지만, 모든 것이 죄없다는 통찰 에 이르는 과정상의 인물로서 슬픔의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데 본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32) 본고는 이들 인물을 우울자(Melancholiker) 33) 로, 그들을 통해 표현되는 작가의 관점을 우울자의 시선(the gaze of the melancholy man) 34) 으로 규정하고 그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32) F. Nietzsche(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책세상, 2001, pp )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영향 이래, the melancholic은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벤야민이나 키에르케고르의 이론에서 der Melancholiker는 환 자라는 의미보다는 실존적으로 우울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고는 후자의 이론적 틀을 원용하고 있기에 der Melancholiker를 우울자 로 번역하였다. 34) 우울자의 시선이라는 개념은 벤야민의 규정을 따른 것이다. 벤야민은 우울자가 세 계 대해서 갖고 있는 고유의 관점(the melancholy vision of the world)을 우울자의 시선 (the gaze of the melancholy man)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울자의 시선은 병 적인 비애상태(Traurigsein)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데 핵심 있다. 병적인 비애 상태는 감정, 생명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탈인격화 증상에서 비롯되며, 무감정 의 감정이라는 역설적 심정성(die paradoxe Befindlichkeit des Gefühls der Gefühllosigkeit)

6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67 우선 손창섭 자신이 철저한 불행의식 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나의 작가 수업 이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도스토이예프스키이, 필립프, 체에홉의 작품을 통해서 나보다 더 괴롭고 불행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자신이 가장 괴롭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적지 아니한 경이였다. 나는 좀더 여 러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동시에 차츰 냉정한 눈으로 주위를 관찰하기 시작 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와 같이 혹은 나 이상으로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꽉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반감과 적의를 가 지고 대해 오던 내 태도가 차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 여유만 있으면 나는 빈민굴이나 유곽의 밤거리를 혼자 헤매이면서, 그 세계의 주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는 인생은 괴로운 것입니다. 당신의 괴로 움을 나는 잘 압니다. 나도 괴로운 사람이니까요 또는 당신을 나는 누이 로 불러도 좋습니다. 매음생활을 당신은 결코 욕되게만 생각지는 마십시 요 하는 식으로 미친놈처럼 함부로 수작을 걸었던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 또는 작품 속에서 나와 같이 혹은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 불행한 사람들 을 찾아내려고 애썼고 한편 그들과 친하기를 원했다.(밑줄-인용자) 35) 인용문에서 손창섭은 자신이 가장 괴롭고 불행한 사람이 라는 자의 식에서 출발하여, 체홉, 필립, 도스토예프스키 등을 통해 나 이상으로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꽉 차 있다 는 인식으로, 그리고 결국은 인생은 괴로운 것 이라는 해석에 도달하고 있다. 스스로를 가장 불행한 자라고 일컫고 삶의 특정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고통과 불행으로 보고 있다 을 특성으로 갖는다. W. Benjamin,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pp ; M. Pensky, Melancholy Dialectics: Walter Benjamin and the Play of Mourning, p.115 참조. 35) 손창섭, 나의 작가수업, 현대문학, , p.137.

66 6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는 점에서 손창섭은, 불행 의식das unglückliche Bewußtsein 에 사로잡힌 가장 불행한 자 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6)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가장 불행한 자 는 삶에 대한 고통으로 인해 죽음이 오히려 구 원인 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좋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다. 가장 불행한 자 의 불행의식, 절망 은 근본적으로 유한성과 무한성, 현실적 조건과 이상의 영원한 불일치에서 발생하며, 절망하고 있는 사 람은 그 무엇에 구체적인 어떤 사물에 절망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유한성에 절망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37) 손창섭의 불행의식 또 한 어떤 대상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절망하며 결국은 자신 속에서 어떤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하는 데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적 의미의 불 행의식을 넘어서 가장 불행한 자의 불행의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삶 곧 고통 이라는 불행 의식은 청년기의 단순한 심정토로가 아니라 그의 의식의 핵심을 이루며, 소설이란 결국 작자 자신의 이야기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38) 문학관을 통해 그의 작품 전체에 근본적 의식으 로 관통하고 있다. 36) S. A. Kierkegaard(임춘갑 역), 가장 불행한 사람, 이것이냐/저것이냐(1), 종로서적, 1981, p.325. 키에르케고르는 불행 의식unhappy consciousness 에 대한 헤겔의 정의, 즉 불행한 사람이란 자신의 이상과 본질을 자기 바깥에 갖고 있는 사람, 자기 자신 에 대하여 부재한 사람으로서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는 사람 이라는 정의에 대해 희 망이나 회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비판하면서, 가장 불 행한 사람은 오히려 희망도 회상도 불가능하고 죽을 수조차 없는 사람 이라고 정 의한다. 가장 불행한 사람 에서 서술되고 있는 키에르케고르의 불행의식 이라는 개념은 이후 죽음에 이르는 병 에서 절망 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37) S. A. Kierkegaard(임춘갑 역), 죽음에 이르는 병, 평화출판사, 1965, pp ) 손창섭, 아마츄어 작가의 변, 사상계, , p.300.

6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69 (1) 聖 奎 는 東 植 의 앉는 자리에까지도 몹시 신경을 썼다. 자기 곁으로 다 가 앉지 않고 웃묵으로 떨어져 자리를 잡기라도 할 말이면, 聖 奎 는 그 야 윈 얼굴을 찡그리며, 병독 있는 자기의 호흡을 꺼리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 럴 거라고, 나는 머지 않아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라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지만 자네야 이제부터 생( 生 )을 향락해 보려는 야심가니까, 응당 나 같은 병독체가 무섭고 싫기만 할 것이라고, 고개를 노적스레 주억거리는 것이었 다. 생을 향락하다니? 생의 어느 구석에 조금이라도 향락할 수 있는 대견 한 요소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참는 東 植 은 별반 병균을 꺼 리거나 겁내서 일부러 자리에 간격을 둔 것은 물론 아니었다.(밑줄-인용 자) 39) (2) 그렇게 어둡고 무겁기만 귀로에서 최선을 다한 나의 노력은 오늘도 수포로 돌아갔다 는 생각이 어쩔 수 없는 결론이나처럼 선명하게 의식되는 것이었다. 수포라는 통속적인 한자어는, 어둠 속에서 무수히 떴다 사라지 는 물거품을 그에게 거푸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편 그러한 그의 헛수고는 비단 오늘에 한한 일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기준 으로 출생 이전의 무한한 공간에서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또 죽은 뒤에까 지도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만 같았다. 대문 없는 대문 안에 들어서며, 어쩔 수 없이 인제 나는 파멸인가 부다, 라고 신음소리 같이 중얼거려 보 는 것이다.(밑줄-인용자) 40) 인용문 (1)은 사연기 의 동식이 폐병으로 죽어가는 성규를 바라보며 갖게 되는 의식을 서술하고 있으며, 인용문 (2)는 血 書 의 달수가 하루 종일 취직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포로 돌아갔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동식과 달수의 의식은 그의 소설에서 표현되는 불행의식 39) 손창섭, 사연기, 문예, , p ) 손창섭, 혈서, 현대문학, , p.175.

68 7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 매우 극단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죽어가는 성규가 삶의 향락에 대해서 언급하자 동식은 생을 향락하다니? 생의 어느 구석에 조금이라 도 향락할 수 있는 대견한 요소가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 이는 삶 곧 고통 이라는 불행 의식의 또 다른 표현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불행의식이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식의 불행의식은 죽어 가는 자 앞에서도 삶의 고통을 언급할 정도로, 즉 죽음과 삶의 차 이가 무화될 정도로 강렬한 의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극단 적인 불행의식은 혈서 의 달수에 이르면 출생 이전의 무한 공간으로 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또 죽은 뒤에까지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만 같 았다 라는 의식, 즉 삶과 죽음 모두에서 고통만을 보는 영원한 불행의식 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불행의식을 기준으로 할 때, 동물적 인간까지를 포함하여 손창섭의 작중인물들은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한 네 가지 절망, 즉 자신 이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 지상적인 것에 대한 절망,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절망 41) 중 세 가지 유형의 절 망을 보여준다. 첫째, 손창섭은 동물적 인간들의 도덕적 무구성을 주장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앞서 제시한 바 있듯이 생활적 의 동주의 경우 그들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우울 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자연 적 물리적 존재로서 살아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인간적 비참함 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동물적 인간 역시 불행의식 의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휴일 의 도숙과 금순, 생활적 의 춘자와 봉수, 피해자 의 아내와 장인, 인간동물원초 의 방 장과 주사장, 유실몽 의 누이, 소년 의 어머니, 저녁놀 의 아버지 등 의 동물적 인간들은 동물적 삶에 머물러 있으며 자신들의 비참을 깨닫 41) S. A. Kierkegaard, 앞의 책, pp.72-74, pp , pp

6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71 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이들은 성욕, 식욕, 돈에 대한 욕망, 즉 감성적인 것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어 있다. 그들은 쾌와 불쾌라는 차원에서만 살면서, 불행을 의식할 수 있는 정신적인 차원을 결여하고 있는 인물들로서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절망 을 보여주 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도덕적 가치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인물 유형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과 그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의 불일 치 속에서 불행을 의식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물 유형은 완전히 분 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의 정도에 따라 다시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질 수 있다. 하나가 취직, 출세, 결혼 등 세속적인 가치의 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행의식의 소유자라면 다른 하나는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를 넘어서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행의식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혈서 의 달수, 피 해자 의 병준, 미해결의 장 의 지숙, 유실몽 의 춘자 등을 들 수 있으 며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공휴일 의 도일, 생활적 의 동주, 미해 결의 장 의 지상, 인간동물원초 의 통역관, 유실몽 의 철수 등을 들 수 있다. (1) 炳 俊 은 벌써 자기가 죽어서 딴 세상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얼핏 병준은 죽을 때 아내가 장인이나 그밖에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 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밀린 월급을 받아다 주지 못하고 온 것 은 벗을 수 없는 대죄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 길로 炳 俊 은 자기 집에 옮겨져 왔다. 죽기 전에 꼭 한번 炳 俊 은 정신을 돌이켰다. 그때, 炳 俊 은 아내를 보며 자꾸만 용서해달라고 했다.(밑줄-인용자) 42) (2) 방에 있으면서도 전신이 비에 젖은 것처럼 눅눅해 견딜 수 없는 것 42) 손창섭, 피해자, 신태양, , pp

70 7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다. 그것은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이나 영혼까지도 꿀쩍하니 젖어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주제로 그래도 나는 무슨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필칭 대장은 날더러 죽으라고만 한다. 죽기만 하면 만사는 해결난다는 듯이. (중략) 그러나 이렇게 살아 있는 나 자신이 죽을 수 있을 까? 나는 사실 죽음보다 더 절실히 기다리는 것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영 원히 없을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해결에 관해서 나는 병신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밑줄-인용자) 43) 이들은 각각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한 지상적인 것에 대한 절망 과 영 원한 것에 대한 절망 을 보여준다.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 져 죽기를 희망하는 (1)의 병준, 취직을 하지 못하는 혈서 의 달수, 미 국유학의 꿈을 잃게 되는 미해결의 장 의 지숙, 교원 자격 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유실몽 의 춘자 등 전자의 인물 유형은 외적인 것, 세속적인 것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불행해 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상적인 것 에 절망 한 인간들이다. 반면 후자의 인물 유형에 속하는 미해결의 장 의 지상, 생활적 의 동주, 유실몽 의 철수 등은 절망의 직접적인 대상을 갖고 있지 않다. 키 에르케고르가 말한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이란 결국 외적인 것이 아니 라,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없는 자기 내부적인 것에 대한 절망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2)의 지상처럼 삶에 있어서 막연한 해결 을 추구하 면서 해결을 볼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 서 영원한 것, 자기 내부적인 것에 대한 절망 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지상적인 것에 대한 절망 과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 을 표현하는 인물들의 불행의식, 즉 동물적 인간들을 제외한 인물들을 통해 43) 손창섭, 미해결의 장, 현대문학, , p.185.

7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73 서 표현되는 불행의식이 죄의식과 운명의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1)의 병준은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벗을 수 없는 대죄 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은 자신의 위장병 과 창녀로 전락한 누이 광순에 대해 운명 을 의식한다. 불행의식, 죄의 식, 운명의식은 모두 임상학적 우울증의 중심적 증상으로서 이 인물 유 형들에서 불행의식 외에도 죄의식과 운명의식 등이 표현된다는 사실은 그의 소설 속에서 제시되는 불행의식이 결국 우울자 의식의 여러 특성 들 중 하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불 행의식, 지상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인물 유 형들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절망 속에서 우울과 슬픔의 감정을 표현 하는 우울자로 규정할 수 있다. 손창섭의 모든 인물들이 극단적인 우울 자der Melancholiker 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적 인간을 제 외한 다양한 인물들의 경우 우울자로서의 일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 며, 동물적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역시 우울자의 그것이라는 점, 작가의 관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생활적 의 동주, 미해결의 장 의 지상 등이 극단적인 우울자의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울자 의 시선이 손창섭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관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이다. 우울자는 주위 대상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서 실패함으로써 삶의 의 미를 상실하고 감정상 우울(die Schwermut), 슬픔(die Trauer)에 사로 잡혀 있는 자로서 탈현실화(현실에 대한 무관심), 탈인격화(자아정체성의 해 소), 죽을 수 없음에 대한 상상(die Einbildung des Nichtstrebenkönnen), 죄의 식, 운명의식 등 매우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44) 44) L. Heidbrink, Melancholie und Moderne : Zur Kritik der historischen Verzweiflung, München, 1994, S

72 7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손창섭 소설에서 제시되고 있는 불행의식은 죽을 수조차 없다는 상 상 에까지 나아가는데, 이는 우울자의 전형적인 증상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불행한 자,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 을 앓고 있는 자는 죽음 이 소원이면서도 죽을 수 없는 사람, 즉 죽을 수조차 없다는 상상에 이 르는 자이다. 45) 가장 불행한 자가 죽을 수조차 없는 이유는 그가 절망에 빠져서 결코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으로 죽을 수 없다는 상상 은 그가 죽어도 결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달수의 죽 음 뒤에까지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만 같았다 라는 의식은 죽음에서 삶의 완성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만을 의식하는 것으로서 죽을 수조차 없다는 상상 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 자기와 順 實 이가 따라가, 사장인가 한 자를 만나 가지고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월급을 받아내고야 말겠노라는 것이었다. 炳 俊 에게는 그와 같은 조처가 결코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호송 당하는 범인처럼 장인과 여편네 에게 끌려 출근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炳 俊 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인 앞에 음독 자살을 자원해 나선 것이다. 장인은 수면제를 도로 싸서 간직하고 완강히 炳 俊 의 청을 거부하였다. 인제는 죽 을 수도 살 수도 없게 되었다고 그는 비탄하는 것이다.(밑줄-인용자) 46) (2) 은주가 방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머리며 옷매무새가 형편없이 헝클 어져 있어서 나는 직감적으로 일의 전말을 깨닫고, 은주의 손을 쥐어 보았 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흰 종이를 깔고, 내 몫으로 동글동글한 약을 열다섯 개나 소복이 놓아두었다. 그 약을 바라보고, 잠잠한 은주의 시체를 굽어보며, 죽음에 있어서까지 마 45) S. A. Kierkegaard, 죽음에 이르는 병, p.30, 이것이냐 저것이냐1, p ) 손창섭, 피해자, p.215.

7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75 침내 빚을 지고 밀려나야 하는, 초라한 나의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 죽을 기회마저 상실해 버리고 만 자신의 허황한 몰골을 나는 실체 없는 존재로 서 막연히 의식해 보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47) 혈서 의 달수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우울자의 극단적인 불행의식 은 피해자 의 병준, 인간계루 의 나 에서 좀더 분명한 형태로 제시된 다. 인용문 (1)의 이제는 죽을 수도 살 수 없게 되었다 라는 피해자 의 병준은 혼자만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공 원묘지에서 홀로 죽어 가려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희망마저 이루지 못 한 채,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가족 앞에 죽어간다. 그리고 인용문 (2)의 인간계루 의 나는 동반자살을 약속한 은실이 먼저 죽음으로써 죽을 수 조차 없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되며, 죽을 기회마저 상실해 버리고 만 자 신의 허황한 몰골을 나는 실체 없는 존재로서 막연히 의식해 보는 것이 었다 라는 표현에 드러나듯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실체 없는 존재 라고 의식한다. 이 두 인물 모두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을 기회를 상실하 고 있으며 그 결과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존재, 죽을 기회를 상실한 실체 없는 존재 로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다. 병준과 나 는 삶의 완성으 로서의 죽을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죽을 수조차 없다는 상상에 이른 극 단적인 불행의식을 보여 준다 볼 수 있다. 죽을 수조차 없다는 극단적인 불행의식은 독특한 시간의식으로 표현 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앞서 제시한 달수의 의식은 우울자의 시간장 애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우울자의 시간장애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선 적 흐름이 붕괴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선적 흐름은 유지하되, 과 거, 현재, 미래가 각각 동질적 시간 요소로 붕괴되어 공허하고 동질적 연 47) 손창섭, 인간계루, 희망, , p.221.

74 7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속체로 전락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우울자의 시간 체험은 과거성이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는 반면, 현재는 순수한 공허로 체험되어 중지되고, 미래는 존재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의식 되어 개방성을 상실한다는 특성을 갖게 된다. 비록 선적 시간이 유지된 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회적, 자연적 내용이 박탈되어 시작도 끝도 없는 동일자의 영원회귀라는 경향이 획득되고 그 회귀 속에서 삶은 지속과 정지로 동시에 경험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48) 손창섭 소설에서 나타나는 불행의식 역시 우울자의 시간장애를 의미 하는 독특한 시간의식으로 표현된다. 혈서 의 달수의 그것은 오늘이 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출생 이전의 무한한 공간에서부터 이랬고, 앞으로 도 또 죽은 뒤에까지도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만 같았다. 라는 의식은 죽을 수 없음에 대한 상상을 표현함과 동시에 우울자 특유의 시간 체험, 즉 시작도 끝도 없는 동일자의 영원회귀 로서의 시간체험을 표현한다. 포말의 의지 에서 자신이 어느 역사적 지점에서 우연히 태어나, 예측 할 수 없는 운명에 밀리어 어느 지점까지 휩쓸려 흐르다가 흔적 없이 꺼 져 버릴 한 방울의 거품 이라는 종배의 생각 속에서 제시되는 시간 의식 역시 동일자의 영원회귀라는 시간체험의 약화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우울자는 실존적 공허감에 기인하는 탈현실화, 탈인격화의 증상을 보 이면서 병적인 비애상태에 빠져 있는 존재 49) 로서 우울자의 시선 하에 궁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슬픔이다. 사연기 의 동식, 비 오는 날 의 원구는 우울자의 비애 상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 여보! 당신도 보았지? 아까 저것들이 내 손을 만져 주구하는 걸 하 48) L. Heidbrink, 앞의 책, S ) W. Benjamin, 앞의 책, pp

7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77 고 아내에게 묻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貞 淑 은 말없이 일손을 멈추고 고개 를 들어 남편을 보았다. 그렇게 맑고 총명하기만 하던 貞 淑 의 눈에는 피로 와 슬픔이 안개처럼 덮여 있었다. (중략) 지나치게 흥분한 탓도 아니겠지만 聖 奎 는 갑자기 뒤가 마렵다고 했다. 貞 淑 이가 얼른 나가드니 사기 요강을 들고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貞 淑 은 피로와 슬픔이 안개처럼 낀 눈으로 東 植 을 보았다. 잠깐 나갔다 오겠느냐, 그대로 앉아 있겠느냐를 묻는 눈치임 에 틀림없었다.(밑줄-인용자) 50) (2) 불구인 그 신체와 같이 불구적인 성격으로 대해주는 東 玉 의 태도가 결코 대견할 리 없으면서도, 어느 얄구진 힘에 조종 당하듯이, 元 求 는 또 다시 찾아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침침한 방안에 빗물 떨어진 소리 가 듣고 싶어서일까? 東 玉 의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가 지니고 있는 슬픔에 중독된 탓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찾아갈 적마다 차츰 정상적인 데로 돌 아오는 東 玉 의 태도에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탓일까? 정말 東 玉 의 태도는 元 求 가 찾아가는 회수에 따라 현저히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 찾 아갔을 때는 東 玉 은 元 求 를 보자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개 를 숙였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元 求 를 보자 東 玉 은 해죽이 웃어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울한 미소였다.(밑줄-인용자) 51)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은 모두 피난지 부산에서의 비참한 삶을 그리 고 있는데, 주인공인 동식과 원구는 그 비참한 삶에 대한 슬픔과 우울에 사로잡혀 있다. 사연기 의 동식은 한때 사랑하였지만 지금은 친구의 아 내가 되어버린 정숙, 폐병으로 죽어가는 그녀의 남편 성규와 동굴 같은 집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다. 인용문 (1)의 정숙의 눈에는 피로와 슬픔이 안개처럼 덮여 있었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정숙의 비참함, 동굴 같 50) 손창섭, 사연기, 문예, , pp ) 손창섭, 비오는 날, 문예, , p.165.

76 7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은 거처, 성규의 발악 등 피난지의 모든 세계가 우울자 특유의 슬픔의 정조 속에서 그려진다. 비오는 날 의 원구는 피난민으로서 고향 친구인 동욱,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쓰는 그의 여동생 동옥과 우연히 재회 하고부터, 비가 와 장사를 할 수 없게 될 때마다 그들 남매의 집을 찾아 가는데, 인용문 (2)의 동옥의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가 지니고 있는 슬 픔에 중독된 탓일가? 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 역시 슬픔에 중독, 사로잡혀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정숙과 동옥의 경우 그 자체로 슬픔을 구현하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 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숙과 동옥은 모두 말을 잊은 존 재이다. 정숙은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동식에게 피로와 슬픔이 안개 처럼 낀 눈으로 만 말하며 동옥은 원구와의 첫 대면에서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元 求 는 제 소리에 깜짝 놀랐다. 목에 엉켰던 가래가 풀리며 탁 터져 나 오는 음성이 예상외로 컷던 탓인지, 그것은 마치 무슨 비명처럼 들렸기 때 문이다. 그러자 문안에 친 거적 귀퉁이가 들썩 하며, 백지에 먹으로 그린 초상화 같은 여인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살결이 유달리 희고, 눈썹이 남 보다 검은 그 여인은 元 求 를 내다 보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저게 東 玉 인가 부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여기가 金 東 旭 군의 집이냐는 元 求 의 물 음에, 여인은 말 없이 약간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이다. 눈섭 하나 가딱 하지 않는 그 태도는 거만해 보이는 것이었다. 東 旭 군 어디 나갔습니까? 하고 재차 묻는 말에도 여인은 먼저처럼 고개만 끄덕했다. 그리고 나서 元 求 를 노려보듯 하는 그 눈에는 까닭 모를 모멸과 일종의 반항적인 태도까 지 서리어 있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52) 52) 손창섭, 비오는 날, p.162.

7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79 동옥은 어렸을 때 강아지 새끼처럼 쫒아다니던 원구를 보고도 고개 만 끄덕일 뿐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돌부처 (정숙), 백지에 먹으로 그린 초상화 (동옥) 등 무생물에 비유되는 존재로서 삶의 과정에서 말과 인간적 활기를 상실하고 사물로 전락한 인물, 즉 화석화된 인물이다. 정 숙에 대해 슬픈 운명을 지닌 처자 53) 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소아마비인 동옥에 대해 동욱이 할 수 있나 모두가 운명인 걸 54) 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들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격변, 소 아마비 등 한 개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비참함 속에서 사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이 그 자체로 슬픔을 간직하 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는 것은 그들의 슬픔이 개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비참함에서 비롯되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다. 손창섭 소설에서 우울자의 시선 하에 그려지는 슬픔은 일상생활에서 의 경험적 슬픔(die erfahrene Trauer)과는 구별되는 심미적 슬픔(die ästhetische Trauer)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중요성이 있다. 멜랑꼴리한 주체는 자기 서술 행위 속에서 언어 이전적인 현실적 박탈 경험을 자기 성찰과 결합시킴과 동시에 심미적 담론으로 변형시키는데, 이로부터 발생한 심 미적 슬픔은 현실에서 체험된 비애의 보상형식으로서 상실 극복의 형식 을 의미하게 되며 실존적 예외적 상황에서 일상적인 것의 통상성이 파 괴되는 심미적 경험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55) 앞서 살펴 본 바 있듯이 53) 손창섭, 사연기, p ) 손창섭, 비오는 날, p ) Heidbrink에 따르면 심미적 슬픔은 후기 낭만주의 이후의 핵심적인 심미적 경험이 다. 심미적 슬픔은 세계를 해석하는 독창적인 매체로서 세계관적 염세주의나 생활 세계에서의 흔히 나타나는 체념과도 구별되는 심미적 현상이며 일종의 심리적 치 료제의 역할을 한다. 슬픔이란, 감정이 공허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서 수수께끼 같은 만족을 얻기 위해, 공허한 세계에 표정 없는 새 생명을 부여하는 마음의 상태

78 8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손창섭은 고아나 다름없는 생활 속에서 극단적인 불행의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격변기에 겪었던 상실체 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그에게 일종의 치료적 기능을 발휘했 을 것이며 그 결과 산출된 작품은 심미적 슬픔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 의 소설에 제시되는 슬픔은 전후 인간의 존재 상황, 즉 도덕적, 실존적 가치의 상실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되는 세계에 대한 심정적 파악을 의 미함과 동시에, 도덕적, 이성적 영역을 넘어서는 심미적 경험을 의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규명은 3절 우울자의 악마적 저항과 희극성 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손창섭 소설에서 표현되는 슬픔은 사연기 의 슬픈 운명을 지닌 처 자, 비오는 날 의 할 수 있나 모두가 운명인 걸 등에서 드러나듯 운 명의식을 동반하며, 나아가서는 살아있음 자체를 죄로 의식하는 자연적 죄에 대한 의식을 수반한다. 우울자의 시선의 본질적 특성은 지금까지 분석한 불행의식과 더불어 죄의식, 운명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운명의 식과 죄의식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다루고자 한다. 2. 신화적 운명과 죄의식 1) 운명의식과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운명의식은 임상학적 울증의 중심적 증상으로서 특히 실존적 차원에 서 바라볼 때 우울자의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키에르케 다 라는 서술에서 드러나듯 벤야민 역시 심미적 슬픔의 심리적 치료제로서의 기능 을 주장하고 있다. L. Heidbrink, 앞의 책, S.79, pp ; W. Benjamin, 앞의 책, p.139.

7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81 고르에 따르면, 지상적인 것에 절망하는 인간의 경우 그들의 불행을 외 부로부터 오는 수난, 운명으로 인식하게 되며, 영원한 것에 대해 절망하 는 인간의 경우 비록 운명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절망이 단순한 수난, 운명을 의미하는 것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자발적 행동이 라는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56) 손창섭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운명의식 역 시,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없는 절망의 경험으로 인해 초주체적 운명에 대한 의식에 이른 것으로서 이 두 가지 차원을 모두 보여준다. 문제는 일반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손창섭 특유의 우울자의 의식에서 나 타나는 운명에 대한 의식을 밝히는 것인데,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을 중심으로 이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바 있듯이 사연기 의 동식과 비오는 날 은 원구는 동 식에게는 왜 그런지 정숙의 전신이 쓸쓸한 그림자처럼만 느껴졌다. 피로 와 슬픔이 안개 낀 듯했다 57),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 가는 목조건 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58) 등에서 드러나 듯 피난지 부산의 비참한 삶에 대한 슬픔과 우울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 혀 있는 존재들이다. 피난지의 모든 세계가 우울자의 시선, 우울자 특유 의 슬픔의 정조 속에서 그려지는데, 이때 슬픔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의식과 결부되어 있다는 데 특색이 있다. 쉴 사이 없는 입으로 聖 奎 가 발산하고 있을 폐결핵균이 무서워서가 아 니다. 그렇다고 가끔 가다 돌발하는 聖 奎 의 그 어처구니없는 발작을 감당 하기가 끔찍해서도 아니다. 슬픈 운명을 지닌 처자를 바라보며 죽음을 기 다리고 앉았는 젊은 남편과, 그처럼 죽기싫다고 발악하면서도 어쩔 수 없 56) S. A. Kierkegaard, 죽음에 이르는 병, 평화출판사, 1965, pp ) 손창섭, 사연기, p ) 손창섭, 비오는 날, p159.

80 8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 하루하루 그 생명이 진해가는 남편을 지키고 있는 젊은 아내 - 이렇게 암담한 부부와 대해 앉을 때, 무엇으로든 그들을 위로할 턱이 없을 뿐 아 니라, 東 植 이 자신 그러한 절망의 고랑창이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 었기 때문이다.(밑줄-인용자) 59) 사연기 의 동식에게 처자를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리고 앉았는 젊은 남편과, 그처럼 죽기 싫다고 발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그 생 명이 진해가는 남편을 지키고 있는 젊은 아내 의 비참함은 절망, 누구의 잘못도 아닌 슬픈 운명 으로 다가온다. 성규의 비참함이 인간 존재 자 체의 유한성으로 인한 운명의식과 관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되는 것은 성규의 비참함보다는 오히려 정숙의 비참함이다. 정숙의 비참함의 직접적인 원인은 동식을 살려주는 대가로 정숙을 원했던 성규에게 있다. 그러나 동식은, 폐병으로 죽어가는 성규의 비참함이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에서 오는 것처럼 그녀의 비참함에서도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초주체적인 운명적 힘을 의식할 뿐이다. 전시 상황 속의 임시생 활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피난지 부산의 동굴 같은 거처, 8 15 해방 이후 한결 같이 계속되는 초조, 불안, 울분, 공포, 그리고 권태 속에서 물 심 어느 편으로나 잠시도 안정감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동식 60) 등 사 연기 의 인물들과 사건 배후에는 역사적 격변이 원경으로서 놓여져 있 다. 무엇보다도 정숙의 현재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원치 않은 결혼이 좌 우익 대립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숙의 비참함은 정숙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기보다는 8 15 해방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역사적 격변의 결과, 한 개인으로서 59) 손창섭, 사연기, pp ) 손창섭, 사연기, p.189.

8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83 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힘의 결과로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점에 서 동식이 의식하는 운명적 힘이란 역사의 강대함, 즉 인간의 행위의 결 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율성을 띠고 진행되는 듯한 소외된 역사를 의미한다. 하이드브링크에 따르면 심미적 슬픔은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역사의 갱신화된 자연화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서 불행의식과 운명의식 속에서 제시되는 사연기 의 슬픔 역시 한국전쟁을 전후한 소외된 역사 에서 기원하는 심미적 슬픔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61) 피난지 부산에서 월남민인 원구와 동욱, 동옥(소아마비) 남매가 우연 히 재회, 서로 의지하다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비오는 날 역시 슬픔과 우울은 운명의식을 동반하고 있다. (1) 지금 몇 살인데 미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元 求 는 혼기가 지난 東 旭 이나 자기 자신도 아직 독신인 걸 생각하고, 여자도 그럴 수가 있을 거라 고 속으로 주억거리며 그는 입을 다물었다. 東 玉 의 나이가 지금 이십 오, 육 세가 아닐까 하고 元 求 는 지나간 세월과 자기 나이에 비추어 속어림으 로 따져보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동욱은 다자꾸 어깨를 한 손으로 투덕거 리며, 東 玉 이 년이 정말 가엾어 암만 생각해도 그 총기며 인물이 아까워, 61) Koselleck에 따르면 18세기에 이르러 역사에 의한 자연사 극복의 여러 표지들, 즉 역 사의 대표단수화, 생산가능성, 강대함, 시간화가 발생한다. 이때 역사는 자연사를 벗어나고 별들의 운행, 왕조의 혈연승계에 의해 계산되는 자연적 시간범주에서 벗 어나 역사 고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역사적 시간을 규정하는 제일 범주는 진보 로 서 역사적 발전의 진행은 무한한 개량의 과정 이라는 성격을 갖게 된다. P. Koselleck,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1998, pp 참조. Heidbrink에 따르면 근대에 들어 이루어진, 이와 같은 역사에 의한 자연사 극복은 프랑스 혁명의 실패를 기점 으로 해서 인간 통제를 벗어난 소외된 역사로 경험되기에 이른다. 이는 역사의 갱 신된 자연화, 즉 역사가 주체와 이성 없이 발생하는 듯한 역사적 과정 으로 전락하 였음을 의미하는데, 심미적 슬픔은 근본적으로 갱신된 자연화에서 결과하는 역사적 시간의 강대함(die Übermacht der historishen Zeit), 역사의 인간에 대한 지배로부터 발 생한다. L. Heidbrink, 앞의 책, S 참조.

82 8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그런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잔을 비우고 나서 할 수 있나 모두 운명인 걸하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62) (2) 이년아 아주 꺼버리지 못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東 玉 은 손을 내밀어 심지를 조금 더 낮추었다. 그리고 나서, 누가 데려 오랬나 차라리 엄마하고 거기 있을 걸 괜히 왔지, 하고 쫑알대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욱은 벌떡 일 어나며, 이년 다시 한번 그 주둥일 놀려 봐라, 나두 너 같은 년 끌구 오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하두 애원하듯, 다 버리구 가드래도 네년만은 데리 구 가라구 해서 끌구와 이꼴이다, 하고 골을 내는 것이었다. 東 玉 은 말없이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중략) 후두둑 후두둑 유리 없는 창문으로 들이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십 주야를 비가 퍼부어서 산꼭대기에다 배를 매어 둔 노아네 가족만이 남고 세상이 전멸을 해 버렸다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대 홍수를 元 求 는 생각하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63) 원구는 동욱에게서 그리고 동욱은 동옥에게서 운명을 본다. 원구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술을 사랑하는 동욱의 조롱과 자조, 친애감을 자아내는 능글능글한 웃음에서 운명적인 중압 64) 을 느끼며, 동욱은 인 용문 (1)에서 드러나듯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고 과년하도록 결 혼도 하지 못한 동옥에 대해 할 수 있나 모두가 운명인 걸 하고 되뇌인 다. 어느 얄궂은 힘에 조종당하듯 65) 동옥을 찾아가는 원구를 포함하면 등장인물 모두가 운명의 힘에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중 역사의 가장 직접적인 희생자는 동욱이다. 목사가 되겠노라고 하면서도 술을 사 랑하는 동욱의 모습, 특히 군대에 끌려갔을 것으로 암시되는 동욱의 갑 62) 손창섭, 비오는 날, pp ) 손창섭, 비오는 날, p ) 손창섭, 비오는 날, p ) 손창섭, 비오는 날, p.165.

8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85 작스러운 사라짐은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횡포를 드러낸다. 동옥은 동욱보다 간접적이지만 그녀 역시 역사의 희생자이다. 동옥의 비 참은 육체적 불구성에서 시작되지만, (2)에서 드러나듯 한국전쟁으로 인 하여 피난민으로 전락하게 됨으로써 그 비참함이 더욱 심화되었으며 동 옥이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게 되는 데에는 역사의 횡포에 노출된 오빠 의 갑작스런 행방불명, 옆집 노파의 사기 등 전후 상황의 폭력성에 원인 이 있기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면 동옥의 육체적 불구성은 단순히 인 간존재의 유한성에 비롯되는 운명의 상징을 넘어서서, 역사의 횡포에서 기원하는 운명적 힘에 대한 알레고리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그들 모자를 어디로 떠나버리라고 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聖 奎 의 말대로 부부가 된다면 모르거니와 독신인 자기가 남편 없는 貞 淑 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보니 聖 奎 의 말이 무시 못 할 새 로운 운명의 예언인거나처럼 구체적인 실감으로 東 植 을 압박해 오는 것이 었다. (중략) 그러나 요즘 와서는 차차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독신의 불편 을 느끼게도 되고 가끔 결혼을 권하는 이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것의 번거 로움과 짐스러움이 앞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 지만 앞으로 聖 奎 가 죽은 뒤 당분간이라도 貞 淑 이와 한 집에서 어름어름 지내게 되노라면, 東 植 은 오랫동안 貞 淑 에게 대해서 지녀온 어떤 의무감 (책임감이래도 좋다)에서라도, 새로이 덮어 씌어지는 운명의 그물을 벗어 보려고 끝까지 버둥대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밑줄-인용자) 66) 한편 정숙과 동옥이 운명에 의한 일방적 희생자라면 주인공인 동식과 원구는 자신들 앞에 서서히 다가오는 운명을 의식해 나간다는 점에서, 66) 손창섭, 사연기, p.189.

84 8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역사의 횡포로 인해 발생하는 운명을 발견해 나가는 존재들이다. 이에 대한 각각의 태도는 서로 다른데,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동식은 성규의 죽음으로 인해 정숙의 슬픈 운명을 떠맡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사 연기 의 동식은 정숙이 자신의 입에 검붉은 피를 퍼 넣는 꿈까지 꾸며 정숙의 자살을 방조한다. 반면 비오는 날 의 원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얄궂은 힘에 조종당하듯 슬픈 운명을 간직하고 있는 동 옥 남매의 집을 방문한다. 동식은 새로이 덮어 씌워지는 운명의 그물을 벗어 보려고 하는 반면 원구는 운명으로 접근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 이를 보지만 결국 양자 모두 운명의 힘 앞에는 무력한 존재로 남는다. 동식의 경우 정순의 자살을 방조한 끝에 어린것의 슬픈 운명을 책임질 것을 결심하는데 이는 결국 운명을 감수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동옥 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운명의 폭력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구 자신에 게 또 하나의 운명을 의미하는데, 원구는 이에 대해 무력하게 남겨진 채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 먹었구나 67) 라는 죄책감을 느낄 뿐인 것이다. 東 植 은 공연히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의식하며 일어나 벽 한 귀퉁이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아랫방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東 植 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하마드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랫방에는 괴상한 여인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상자 위에 잉크 병과 종이 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貞 淑 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다 말고 북받쳐 오르는 가지가지의 설움을 터뜨린 것 같았다. 貞 淑 은 울다 말 고 상반신을 일으켜 옆에서 자고 있는 어린 것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러다가는 도로 상자 위에 엎더져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것이었다. 東 植 은 갑자기 전신이 와들와들 떨려 오는 것을 깨달았다. 이가 덜덜 마주치고 손 67) 손창섭, 비오는 날, p.171.

8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87 발이 이상할 정도로 떨리었다. 도로 자기 자리에 와 누워서도 東 植 은 얼마 동안 떨리는 것이 멎지 않았다.(밑줄-인용자) 68) 인용문은 이들이 운명을 발견하는 순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규를 화장하고 돌아온 동식은 자살을 결심하고 흐느끼는 정숙의 모습 을 우연히 엿보게 된다. 흐느끼는 정숙의 모습은 운명적 비참함으로 고 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의미함과 동시에 동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떠 맡아야 할 괴상한 여인, 또 하나의 운명을 의미하는데, 이를 바라보는 순간 동식은 갑자기 전신이 와들와들 떨려오는 것 을 느낀다. 가공할 운명적 힘 앞에서 이제까지의 슬픔이라는 정조를 넘어서 갑작스러운 전 신의 떨림, 즉 전율(Trembling)을 느끼는 것이다. 전율은 숭고미와 관련된 현상으로서 초월적인 것과의 갑작스러운 대면 속에서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이제까지의 인과성과 개체성이 붕괴할 때 발생한다. 69) 그것의 시간 적 특징은 갑작스러움으로서 동식의 모습은 전율의 이와 같은 특성을 잘 보여준다. 비오는 날 의 원구 역시 운명을 상징하는 동옥과 처음으 로 대면할 때나, 그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할 때, 전신에 오한 70) 을 느끼 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연기, 비오는 날 은 결국 인간 개체의 힘으로 는 어찌할 수 없는 가공할 폭력, 운명과 대면하여 전율하면서 그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전후의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가공할 폭력, 운명에 대한 의식은 손창섭 소설 도처에서 발견된다. 犧 牲 의 재성은 자신의 옛 제자인 인민군을 68) 손창섭, 사연기, p ) K. H. Bohrer, The Prehistory of the Sudden : The Generation of the Dangerous moment,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p ) 손창섭, 비오는 날, p.164.

86 8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감추어 주었다가 미군에 잡혀 가면서 모든 것을 단념했다. 그리고 닥쳐 올 운명을 감수하는 수밖에 71) 없다고 생각하며, 사제한 의 진수는 매 음굴의 여자들의 비극적 운명이 진수의 연한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주 어 자연히 터져 나오는 비감한 탄식 72) 을 내뿜고, 人 間 繫 累 의 은주는 자신의 남편이 자살한 것에 대해 그이는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이 운명 지워진 인간 73) 이라고 말한다. 그 위에 거품처럼 떠서 흐르는 불안한 자신을 종배는 의식하는 것이었 다. 끊임없이 흐르는 인간의 이 거대한 흐름의, 어느 역사적 지점에서 우연 히 태어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밀리어 어느 지점까지 휩쓸려 흐르다가 흔적 없이 꺼져 버릴 한 방울의 거품. 종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불안한 자신을 극복해 보려는 무력한 표정인지도 모른다. 예정된 인간의 운명을 조정하는 우주적인 어떤 거대한 힘에 대한 아첨일지도 모 른다. 74) 포말의 의지 의 주인공 종배의 의식은 우울자의 이러한 운명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매음녀의 아들로서 자신의 이모에 양육되면서 스스로를 악의 피를 받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그러 한 자신의 존재를 예측 할 수 없는 운명에 밀리어 꺼져 버릴 한 방울의 거품에 비유한다. 손창섭의 작품에서 제시되는 운명 은 어떤 거대한 흐 름의 이미지를 띠고 있으며, 인간을 떠밀려 다니는 포말처럼 무력하게 만들고, 불행 속으로 빠뜨리는 마성적인 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대 71) 손창섭, 희생, 해군, , pp ) 손창섭, 사제한, 현대문학, , p ) 손창섭, 인간계루, 희망, , p ) 손창섭, 포말의 의지, 현대문학, , pp

8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89 그리스 비극에서 표현되고 있는 신화적 운명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를 때 신화적 운명이란 인간의 자유, 도덕과 대 립되는 자연의 마성적인 힘, 그것의 신화적 주문을 의미한다. 신화적 주 문에 사로잡힌 자에게 행복과 무구함이란 존재치 않으며 그들은 영원한 불행, 죄진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의 자연적 삶을 사로잡 고 있는 신화적, 마성적 주문은 주인공의 윤리적 행위, 즉 초자연적 삶 (자유와 도덕)이 자연적 삶에 개입함으로써 붕괴한다. 고대비극의 주인 공은 이러한 영웅적 행위를 통해 신화적 운명을 초월하지만 근대 비극 (독일 비애극 das Deutsches Trauerspiel)의 주인공들은 신화적 운명으로 인 해 불행하고 죄진 삶으로 떨어질 뿐 어떤 위대한 윤리적 행위도 실천하 지 못함으로써 신화적 운명의 종속에 머문다. 75) 손창섭의 소설에 등장하 는 우울자들은 이와 같은 신화적 운명의 영역에 거주하는 인물들로서 영웅적 희생 속에서 신화적 운명을 초월하는 비극적 주인공들과는 달리 신화적 운명의 단순한 희생자, 신화적 운명에 의해 불행한 삶을 영위할 뿐인 익명의 존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은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 신화적 운명을 전쟁 과 역사라는 좀더 구체적인 가공할 폭력의 결과로 제시하고 있다. 사연 기 와 비오는 날 에서 나타나고 있는 역사의 횡포와 그로 인한 운명의 75) 본고의 신화적 운명 개념은 벤야민의 이론에 입각해 있다. 벤야민은 자유, 도덕과 대립되는 신화적 자연을 설정하고 자연의 폭력적 힘을 마성적인 것, 신화적인 것의 본질로 간주한다. 고대 비극에서 흔히 언급되는 신화적 운명이란 자연의 마성적 폭 력적 힘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적 삶은 운명 법칙의 신화적 주문에 사로잡 혀 있는데, 운명의 신화적 주문은 초자연적 삶(자유와 모랄)이 자연적 삶에 개입함 으로써 붕괴된다. W. Menninghaus, Walter Benjamin s Theory of Myth, pp 참 조. 고대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희생 속에서 도덕적 유아로 재탄생함으로써 이상 과 같은 신화적 운명에 대한 초극에 이르는데 반해 근대비극(독일 비애극)의 주인 공들은 단순히 신화적 운명에 대한 익명적 종속에 머문다. W. Benjamin, 앞의 책, pp

88 9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식은 해방에서 한국전쟁을 거치는 역사적 과정에서 표출된 근대의 재난 성(Der katastrophische Zug der Moderne) 76) 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사연기 의 동식은 8 15 해방 이후 한결 같이 계속되는 초조, 불안, 울 분, 공포, 그리고 권태 속에서 물심 어느 편으로나 잠시도 안정감을 경험 해 본적이 없는 것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해방 이후 한국 전쟁으로 이 어지는 역사적 격변이 한 인간의 안정감을 붕괴시킨 주요 원인이었음을 암시한다. 사연기 에서 8 15 해방 이후의 좌우익 투쟁은 진보를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동식의 아버지를 죽이고 애인을 빼앗아 가는 폭력을 의미할 뿐이며, 비오는 날 에서 전쟁과 전시 상황은 민족해방전쟁도, 자유주의의 수호 전쟁도 아닌, 단지 동옥, 동욱의 비참함을 더해주고 개 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만드는 폭력을 의미할 뿐 이다. 동옥, 동욱 남매의 다툼을 들으며 원구는 사십주야 비가 퍼부어 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매어 둔 노아네 가족만이 남고 세상이 전멸을 해 버렸다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 홍수 77) 를 생각하는데, 이는 결국 한 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격변이 신이나 내릴 법한, 인류를 전멸시키는 대재난으로 파악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의 등장 인물들에게 역사는 진보, 즉 이성을 통한 세계의 무한한 개량의 과정으 로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의 삶을 갑작스럽게 파괴하는 폭력, 즉 재난과 파국(Katastrohe)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연기 와 비오 는 날 은 비록 역사를 영원한 재난의 과정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할지 라도,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과정에서 어떤 긍정적인 가치도 부 정하고 고통과 재난만을 본다는 점에서 역사를 자연사, 즉 보편적인 몰 락사 혹은 고통의 역사로 간주하는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해 있다고 76) L. Heidbrink, 앞의 책, S ) 손창섭, 비오는 날, p.167.

8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91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손창섭의 소설이 역사의식을 결여하고 있으 며 그로 인해 정지된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 78) 은 역사 를 진보로 바라보는 역사철학에 입각했을 때만 가능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죽음에 대한 표상 역시 역사를 몰락사, 자연 사로 보는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1) 이 길은 필경 제가 가야할 길인 줄 알 고 가옵니다. 겹치는 죽음을 물심양면으로 선생님께 부담이 될 줄 아오나, 제 시체가 선생님의 손으로 거두어져야 저승간 남편의 한이 풀릴까 하와 한 번 더 괴롬을 끼치기로 했 습니다. 두고 가는 두 어린것들이 가슴에 어리오나, 역시 그것들에게도 약 속된 운명이 있어 결국은 저 갈 길들을 가게 될 줄 믿사옵니다. (중략) 쏟 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東 植 은 한동안 죽은 貞 淑 의 얼굴을 지켜보며 앉 아 있었다. 그러한 東 植 의 머리 속에, 줄기가 마르거나 열매가 물으면 결국 은 떨어지고야 말듯이, 貞 淑 은 그렇게 죽을 수 있었으리라는 동감과 함께, 고인이 남기고 간 두 어린 것의 슬픈 운명을 자기는 책임져야겠다고 속으 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79) (2) 자기의 입술을 順 伊 의 얼굴로 가져갔다. 인제는 順 伊 가 아니다. 주검 이었다. 東 周 는 주검에 키스를 보내는 것이었다. 주검 위에 무엇이 떨어졌 다. 눈물이었다. 설지도 않은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자기는 분명히 지금도 살아 있다고 東 周 는 의식했다. 살아 있으니까 죽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그것만 자기가 확신할 수 있는 단하나의 장래 라고 생각하며, 東 周 는 주검의 얼굴 위에 또한 입술을 가져가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80) 78) 정호웅, 1950년대 소설론, 1950년대 문학 연구, 문학사외 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 pp ) 손창섭, 사연기, p.195.

90 9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3) 우선 그 자신이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부터 達 壽 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은 거리에서 바로 자기 앞을 걸어가던 사람이 미군 트럭에 깔려 즉사했다. 그때 達 壽 자신도 하마트며 트럭 앞대 가리에 이마빼기를 들이받을 뻔했다. 그날 이후, 達 壽 는 자기가 살아 있다 는 데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대량 살육이 자행되었던 6 25 때가 아니라 그러한 불안은 실로 그날부터였다. 따라서 자기가 왜 죽지 않 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까가 문제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납덩이처 럼 무겁게 잠시도 쉬지 않고 그를 짓누르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81) 정숙과 동식에게 죽음은 어떤 저항 없이 감수해야 할 운명을 의미한 다. 정숙은 죽음을 필경 제가 가야할 길, 즉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동 식은 정숙이 운명을 감수했듯이 자신도 어린 것의 슬픈 운명을 감수하 기로 하고 정숙의 죽음에 공감한다. 그리고 운명으로서의 죽음은 줄기 가 마르거나 열매가 물으면 결국은 떨어지고야 말듯이 정숙은 그렇게 죽을 수 있었으리라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자연물의 쇠락에 비유된다. 이때 자연 은 갱생이나 순환을 전제하지 않으며 단순한 생명의 소멸, 모 든 살아 있는 것의 죽음의 보편성을 의미하고, 죽음은 이 보편적 무상성 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종속을 의미한다. 82) (2)에서 나타나는 동주의 죽 음에 대한 표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주는 생명력을 상실한 인간으로서 폐병으로 죽어가는 순이의 신음 소리에만 관심을 가지며, 순이의 죽음과 80) 손창섭, 생활적, p ) 손창섭, 혈서, p )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역사에 대한 비판을 위해 자연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때 자연 개념의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가 무상성 이다. 벤야민은 무상성으로서의 자연 개 념에 입각하여 죽음을 피조물의 만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종속 으로 규정하고 죽음을 현존재의 최고 가능성으로 보는 하이데거의 관념론에 반대한다. M.Pensky, 앞의 책, p.117.

9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93 대면하여 죽음만이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래 라고 생각한 다. 단 하나의 장래로서의 죽음은 어떤 실존적 가능성을 뜻하지 않는다. 순이의 죽음이 질병으로 인한 생명의 중단에 불과할 뿐 아무런 가치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 하나의 장래로서의 죽음은 어떤 인간적 가치와도 무관한 죽음, 단순히 자연물의 보편적 무상성을 의미한 다. 결국 동주나 동식에게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 실존적 기획과는 전 혀 무관하며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의 무상성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 한 죽음은 (3)에서 나타나듯 한 개체에게는 길을 가다가 트럭에 부딪혀 갑작스럽게 삶이 중도반단으로 끝나버리는 재난을 의미하게 된다. 달수 로 대표되는 우울자의 죽을 수 없다는 상상은 이와 같은 무상한 재난적 죽음에 대한 표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손창섭 소설에서 표현되고 있는 죽음에 대한 표상, 즉 물리적, 자연적 존재의 무상성으로서의 죽음 혹은 재난으로서의 죽음이라는 표상은 역 사적 재난과 그로 인한 미증유의 물리적 폭력, 황폐화 그리고 사회적, 정 치적 혼란의 간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고통과 재난만을 의 미할 때, 역사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개인의 삶은 역사적 재난에 의해 언제 소멸해 버릴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며, 죽음은 완성이 아 니라 중단, 자연물의 속성인 무상성만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2) 죄의식과 역설적 상황 손창섭의 초기 작품들에서 동물적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인물 유형들 은 우울자로 포괄될 수 있으며, 우울자의 의식은 역사적 재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신화적 운명의식, 그리고 그와 결부된 강렬한 슬픔의 정조 를 특징으로 한다. 우울자의 형상을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92 9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미해결의 장 의 지상과 생활적 의 동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에 대 한 고찰에 앞서, 우울자의 의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본질적 요소로서 죄의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해결의 장 의 지상, 생활적 의 동주 의 의식 속에 비록 죄의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들의 형 상에는 죄의식에 대한 거부라는 저항적 측면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우울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손창섭의 다양한 인물 유형에서 죄의식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다는 의식은 우울자가 일반적으로 갖는 의식 중의 하나로서 비오는 날 의 마지막 장면에서 동옥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에 대해 원구 가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 먹었구나 83) 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에서 그 단초가 발견되고 비오는 날 바로 직후에 발표된 혈서 에서부터 본격 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의 병준은 밀린 월급을 받아다 주지 못하고 온 것은 벗을 수 없는 대죄라고 생각 84) 하며,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은 몸을 파는 여동생 덕택에 생존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나처럼 불행한 죄 인은 없을거야! 85) 라고 생각한다. 문학도 규홍, 간질병 환자 창애, 가짜 상이군인 준석 등과 함께 생활하는 혈서 의 달수는 성공을 위해 대학 을 가려하고 열심히 취직운동을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며 취직을 못했다 는 사실에 대해 누구에게나 죄스러움을 느낀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죄의 식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 하는 인물은 우울자 중 주로 지상적인 것에 절망하는 인물들에서 나타나는데,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제시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83) 손창섭, 비오는 날, p ) 손창섭, 피해자,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188.

9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95 (1) 오늘 저녁도 방금 들어와 앉는 達 壽 를 향해 어이 무턱, 오늘두 점심 저녁 다 굶었지? 하고 俊 錫 은 노상 아른 체를 했다. 남보다 턱이 짧아 있는 둥 마는 둥 하다고 해서 그는 達 壽 를 늘 무턱이라고 불렀다. 오늘두 취직 을 못해서 이것이 達 壽 의 대답인 것이다. 자기가 취직을 하지 못했다 는 것이, 達 壽 에게는 누구 앞에서나 죄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達 壽 의 뚱 딴지같은 대답에 俊 錫 은 실없이 화가 동하는 것이었다. 밥을 굶었느냐고 묻는데 취직을 못했다는 건 무슨 얼빠진 수작이냐는 것이다. 그야 뻔한 일 아니냐, 네까짓 게 일년을 두고 싸다녀 본들, 누가 똥 싸 놓고 간 자리 하 나 얻어 걸릴 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밑줄-인용자) 86) (2) 그는 날마다 닥치는 대로-회사고 음식점이고 서점이고 시계방이고 그러한 구별 없이 십여 군데 내지는 이십여 군데나 찾아 들어가 보는 것이 었다. 물론 요즘 와서는 손톱만한 희망도 거는 일 없이, 그냥 그렇게 찾아 다니며 중얼거리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나는 법과 대학생인데, 고학생입니다. 학비와 식비만 당해 준다면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고 충성 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두루 쳐다보는 것이었 다. 達 壽 는 취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어떠한 수단도 방법도 발견하지 못 하는 것이었다.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한 취직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밑줄-인용자) 87) (3) 어이 무턱. 너하구 나하구 무슨 원수를 졌니? 대천지원수냐? 俊 錫 은 또 한참이나 독기오른 눈초리로 達 壽 를 쏘아보고 나서, 이 자식아. 昌 愛 의 배가 불렀건 꺼졌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昌 愛 의 배는, 어디까지나 昌 愛 의 배지, 내 배는 아니다. 昌 愛 배가 부른 게 어째서 내 죄란 말이야 하고, 악을 쓰듯이 들이대는 것이었다. 나두 잘 몰라 나는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達 壽 는 울음과 웃음이 반반씩 섞인 86) 손창섭, 혈서, 현대문학, , p ) 손창섭, 혈서, p.186.

94 9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그 비극적인 표정으로, 영문도 모를 소리를 간신히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 이었다.(밑줄-인용자) 88) 인용문 (1)에서 점심 저녁을 다 굶었냐는 준석의 질문에 달수는 오늘 도 취직을 못해서 라고 대답한다. 준석에게는 뚱딴지 같은 대답일 수밖 에 없지만, 자기가 취직을 못하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나 죄의식을 느끼 고 있던 달수로서는 당연한 대답이다. 취직을 못하는 한, 죄를 짓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밥을 굶는 비참함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 것이고 그로 인 해 점심 저녁 다 굶었지 라는 질문에 오늘도 취직을 못해서 라고 대답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록 달수가 죄의식에 빠져 있지만 인용문 (2)를 고려하면 취 직을 못한 것이 달수의 탓만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닥치는 대로 찾아들 어가 취직을 부탁하고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한 취직 운동이라고 생각 하는 달수의 모습은 달수가 대상세계와 도구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기 질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그는 구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무지한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를 때, 어떤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자기 자신의 능력 안에 있는 것으로서 알고 행하는 유의적 (voluntary) 행위일 때 가능하며 무지 나 강제 에 의한 무의적(involuntary)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 힘들다. 89) 아무 가게나 닥치는 대로 들어 가 나는 법과 대학생인데, 고학생입니다. 학비와 식비만 당해 준다면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달수의 취 직운동은 그가 취직 못하는 것이 취직자리를 구하기 힘든 전시상황과, 취직을 부탁할 때의 구체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무지에 기인 88) 손창섭, 혈서, p ) Aristotels(최명관 역), 니코마스의 윤리학, 서광사, pp pp

9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97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달수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달수의 행위는 도덕적 판단의 대상 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달수는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인용문(3)에서 준석은 달수와는 반대로 자신이 행한 일의 분명한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 하고 이불이 부족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준석과 달수는 다른 방의 창 애와 이불을 같이 덮을 사람으로 규홍이가 적당한가, 준석이 적당한가를 놓고 운명적인 대립 까지 벌이는데, 결국은 준석이 창애와 같이 자게 된다. 이점을 고려하면 창애에게 애를 갖게 한 것은 분명 준석이고 그 행위는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석 은 분명히 자신의 탓인 것에 대해서 昌 愛 배가 부른 게 어째서 내 죄란 말이야 라고 하면서 죄를 부정하고 있다. 준석의 주장은 윤리적 입장에 서 바라봤을 때,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강제에 의한 행위는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욕망이라는 강제는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 문이다. 9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탓인 것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준석의 반응은 단순히 그의 무책임한 성격을 보여주는 억지라 고 볼 수 없다. 준석의 주장은 객관적으로는 명백하게 유의적인 행위이 지만 개체 자신에게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행동으로 다가오는 상황 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속으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리를 잘린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듯, 준석으로서는 석상 같은 창애를 범한 것은 전 시상황 속에서 이불을 같이 덮어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상황, 성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에 책임이 있지 자신의 탓은 결코 아닌 것 90)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강제 로서 폭풍우 혹은 가족을 볼모 로 한 폭군의 강요 등을 들고 있는 반면, 욕망이라는 강제에 의한 행위는 비난의 대 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욕망이라는 강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강제이기 때 문이다. 위의 책, pp

96 9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다. 준석은 자신이 행한 잘못을 자신의 탓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역 설적 상황에 처한 존재로서 그가 내 죄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한 개 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힘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된다. 준석의 주장은 단순한 억지를 넘어서 전후의 인간들이 처해 있던 역설적 상황 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서 운명에 의해 허물이 있게 된 모순 91) 적 상 황에서 인간이 내세우는 주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을 전 후하여 근대의 재난성이 폭발적으로 발현되고 인간에 대한 무수한 폭력 들이 발생했을 때, 폭력의 근원은 역사였지만 폭력의 대행자는 분명 인 간 개체들이었다. 폭력의 직접적인 대행자인 인간 개체들은 억울할 수밖 에 없는 것이다. 달수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준석은 죄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양자 모두 개체가 책임져야 할 결정행위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죄, 즉 윤리적 죄(ethical guilt)를 넘어서서 한 개체로서는 어찌 할 수 없었던 행위의 결과에 대해 강요되고 있는 죄를 문제시하고 있다 는 점에서 공통된다. 피해자 의 병준,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의 죄의 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병준은 애초부터 가장으로서 생활책임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인물이며 문선생은 위장병으로 인해 가족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 順 實 의 대답은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는 과부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서고, 둘째는 용돈을 좀 맘놓고 풍청풍청 써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이 말 을 듣고 난 炳 俊 은 공연히 제 쪽에서 낮을 붉히었다. 정말 자기는 아무 것 91) 키에르케고르는 이와 같은 역설을 변증법적으로 운명으로 규정된 불안 에서 다루 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운명은 한 순간에는 필연적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우연적 인 역설적 상황, 운명에 의해서 허물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 모순 을 표현한다. S. Kierkegaard(임규정 역), 불안의 개념, 한길사, 1999, pp

9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99 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커다란 과 오 같이만 해석되었다. 그처럼 인간행세에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는 그는, 누구 앞에서나 실없이 비굴할 수밖에 없었다.(밑줄-인용자) 92) (2) 이거 봐 志 尙 이. 나는 그 문제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구 고민 했네. 여동생이 인육시장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두 낮을 들 수 없는 일인데, 진실하고 성실하게만 살려 는 동지들이 알구 있다면 대체 날 뭘루 보겠나? 세상에 나처럼 불행한 죄 인은 없을 거야! 그의 야윈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나리는 것이었다. (밑줄-인용자) 93) 인용문 (1)의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커다란 과오 같이만 해석되는 병준에게는 인간으로 태어남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 며, 인용문 (2)의 인육시장에서 벌어오는 돈으루 나와 네 가족이 살아가 고 있다는 사실 에 괴로워하는 문선생에게는 생존 자체가 죄를 짓는 행 위이다. 준석이 자신의 탓인 것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한 부분에 있어서는 성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남 자체에서 죄의 기원을 찾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서 손창섭 소설의 근원에는 인간 존 재 자체가 죄지은 존재라는 의식이 놓여져 있다. 이를 고려하면 손창섭 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죄는 윤리적 죄를 넘어서 개체의 인격적 결정에 선행하는 상태로서의 죄 (sin) 94), 즉 종교적 차원의 죄에 접근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죄는 종교적 차 원의 원죄 개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손창섭 소설의 주인 92) 손창섭, 피해자,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현대문학, , p ) L. Barrett, Kierkegaard s Anxiety and the Augustinian Doctrine of Qriginal Sin,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 The Concept of Anxiety, ed. R.L. Perkins, Mercer, 1985, pp

98 10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공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죄의식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윤리적 죄를 넘어서 인간 존 재 자체가 죄진 존재라는 강한 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는 이처럼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행위에 강요되는 죄에 대하 여 끊임없이 저항하고자 한다. 준석은 昌 愛 배가 부른 게 어째서 내 죄 란 말이야 라고 항의하며, 유실몽 의 철수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 들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통 채로 나는 안아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금도 불순한 욕망은 아닌 것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정당한 욕망을 누르기 위해서 나는 그지 없이 피로해질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 나는 누이의 소견을 春 子 앞에 종시 털어놓고 말았다. 누이는 날더러 자꾸만 春 子 씰 건드려 보라고 권한답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구 말았습니 다. (중략) 나는 눈을 감고 열병환자처럼 엉뚱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하나 두 나의 죄는 아닙니다. 그렇다구 물론 春 子 씨의 죄두 아닙니다. 정말입니 다. 누구의 탓두 아닙니다. 春 子 씨의 부친이나 우리 누이의 잘못도 아닙니 다. 그저 명확한 사실은, 우선 나에게는 한벌의 신사복이 필요하다는 것 뿐 입니다.(밑줄-인용자) 95) 제대 군인인 유실몽 의 철수는 사위가 되어 달라는 춘자 아버지와, 춘자를 건드려 보라는 누이의 부추김 속에서, 교원 자격시험 공부를 도 와 달라는 옆방의 춘자에게 성욕을 느끼고 춘자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 다. 그러면서 그는 저마다의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 의 탓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위 덕을 보려는 춘자의 부친이나 남녀관계 95) 손창섭, 유실몽, 사상계, , p.275.

9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01 만을 전부로 아는 누이, 생존도 어려운 상황에서 철수의 도움으로 헛되 이 취미와 재능을 살려 가치 있는 생활 을 하고자 하는 춘자, 그리고 춘 자에 성욕을 느끼는 자신, 누구에게도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죄는 윤리적 죄와는 무관하며, 종교적 죄에 가깝지만 그것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죄이다. 그것의 핵심은 인 간의 힘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부당하게 강요되는 죄라는 데 있다. 이는 윤리적 죄도, 종교적 죄도 아닌, 운명적 불행에 처한 인간 이 갖게 되는 죄 개념이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우울자의 운명의식은 인 간존재의 유한성과 더불어 근대의 재난적 성격에서 유래하는 역사의 폭 력성에서 비롯된다. 신에 의한 구원을 상정하지 않는 한, 죽음, 불구 등 인간 존재의 유한성 역시 한 개체로서는 삶에 가해진 폭력성을 의미한다 고 할 때, 어떤 경우든 운명은 부당한 폭력을 의미하며 운명을 의식한다 는 것은 곧 초주체적인 힘의 폭력을 의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운명의식은 필연적으로 독특한 죄 의식을 함축하게 된다. 이유 없는 고 통에 직면하여 초주체적인 운명적 힘을 의식하게 된 인간은 삶의 고통이 자신도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한 신의 응보라는 관념을 갖게 되고 자신 의 탓도 아닌 일에 대한 죄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운명에 의해 강요되는 이와 같은 죄 의식은, 결국 인간 내의 자연적 삶 자체가 죄로 의식되는 자연적 죄natural guilt 의식이다. 인간이 자연적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적 죄 는 살아감 자체 가 죄로 의식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자연의 마 성적 힘, 운명적 힘에 의해 가상적으로 선고된 죄라고 할 수 있다. 96) 96) 벤야민은 운명 개념의 핵심으로 죄 개념을 들면서, 비극을 대상으로 하는 운명과 성격 에서는 자연적 죄(die natürliche Schuld), 근원적 죄(die Urschuld)라고 표현하는 데 반해 독일비애극을 대상으로 하는 독일비애극의 기원 에서는 자연적 죄, 피조 물의 죄(die kreatürliche Schuld)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양자 모두 자연적 죄라는 점에

100 10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그러나 이러한 죄 개념은 종교적 인간에게 원죄로서 의식될 수도 있 지만, 아직 종교적 죄를 인정할 수 없는 손창섭의 우울자들에게는 운명, 불행과 더불어 부당한 폭력으로서 의식되고 따라서 이에 대한 저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혈서 는 그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혈서 의 달수는 출생 이전의 무한한 공간에서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또 죽은 뒤 에까지도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 같았다 라는 극단적인 불행의식에 빠져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아닌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달수가 창애의 불러 오른 배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결국 죄 의식을 강요하는 운명의 폭력에 대하여 항의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達 壽 는 잠간 무엇을 망설이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최후의 기력을 짜 내듯이, 한 손으로 昌 愛 의 배를 가리키었다. 그리고는 신에게라도 항의하 듯이 필사적인 어투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저 배를 봐. 昌 愛 의 배가 저렇 게 불렀는데. 저 배를 좀 봐아. 간신히 그러고 나서는 어린애처럼 입을 비죽거리다가 마침내 달수는 눈물을 솨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그는 연신 두 주먹으로 눈을 문질러 가며 흑흑 느껴 우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신, 자 기는 왜 그다지 섧게 울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제 힘으 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부닥뜨리게 되면, 결국 으아 하고 울어버리 는 길 밖에 없었듯이, 達 壽 는 지금 그와 흡사하게 절박한 감정에서 울고야 마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해서, 항거할래야 항거할 수 없는 무의미한 항거는, 마침내 그에게 있어서 울음으로 밖에 터져 나올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97) 서는 일치하는데, 우울은 피조물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비참함 즉 운명과 자연적 죄에 의해 지배되는 피조물의 비참함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본다. W. Benjamin, Fate and Character, Reflection, ed. Peter Demetz, Schocken Book, 1978, p.308. p.311 ;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p.129, pp 참조.

10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03 (2) 血 書 쓰듯 血 書 라도 쓰듯 瞬 間 을 살고 싶다. (1연 생략) 모가지를 이 모가지를 뎅겅 잘라 內 容 없는 血 書 를 쓸까! 98)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달수의 눈물은 준석에 대한 항의를 넘어서 제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에 대한 눈물, 항의이며, 제 힘으로 어 떻게 할 수 없는 일 이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 즉 운명 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운명에 대한 항의의 눈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강요되는 죄의식에 대한 항의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 다. 창애의 배가 불러오는 것은 준석의 탓이 분명하지만, 준석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의한 결과이다. 달수는 준석의 상황에서 자신의 상 황과 전후 인간 일반의 상황, 즉 인간이 무력하게 운명에 의해 지배되고 죄 의식을 강요받는 상황을 발견하고 이것의 부당성에 대해 신에게 항 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혈서 의 달수, 손창섭 소설의 우울자들이 한편으로는 죄의식을 느끼 97) 손창섭, 혈서, p ) 손창섭, 혈서, pp

102 10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에 대한 항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규홍 의 시 혈서 의 의미내용을 고려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모가지를/이 모가지를/뎅겅 잘라// 內 容 없는/ 血 書 를 쓸까! 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 러나듯 혈서 는 역설 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는 군에 가기 싫어하는 달수가 준석의 강요에 못 이겨 손가락을 잘라 자 원입대라는 혈서 를 쓰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표현한다.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지만 그것은 강요에 의한 것인 만큼 자원입대가 아니라 강요 에 의한 입대, 내용 없는 혈서에 불과하다. 그러나 혈서 의 역설 은 군 입대를 종용하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 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근원적으로, 자신의 탓과는 무관하게 운명적 불 행과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준석, 달수의 역설적 존재 상황을 표현한 다. 운명의 영역에는 종교적 차원의 구원 개념이나 윤리적 차원의 무죄 개념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 운명은 개체에게 영원한 불운과 죄만을 강 요할 뿐이며 개체의 행복은 운명의 연쇄에서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달리 달성될 수 없다. 99) 개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운명적 상황은 개 체가 책임질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죄가 있는 것으로 되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모가지를 뎅겅 자를 만큼 강렬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 행동, 모든 인간행동을 결국에는 내용 없는 혈서, 즉 무 의미한 행동으로 만드는 상황이다. 운명은 불행과 죄만을 강요할 뿐 인 간으로 하여금 어떤 유의미한 행동, 해결도 추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다. 규홍의 혈서 라는 시에 표현되는 인간의 역설적 존재 상황은 역사의 재난성에 고통 받았던 전후의 인간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서 달수와 준석으로 대변되는 전후의 인간들의 역설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9) W. Benjamin, Fate and Character, p.307.

10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05 (1) 혜순은 저쪽으로 돌아누운 채 어둠 속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리었다. 저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두 불행해지게 되었어요. 당신이나 어린 것들이 나, 영이나, 다 저 때문에 불행해지게 되었어요. 그러나 제 죄만은 아니예 요! 100) (2) 종배는 공연히 감탄하고 놀란 눈으로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수 줍게 웃었다. 그것은 벌거벗은 죄인의 미소였다. 그 웃음 속에는 적어도 인 간적인 약점의 매력이 있었다. 종배는 그만, 여인의 손님이 되기를 거부할 용기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101) (3) 누군가가 별안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 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의 대부분이 엉이엉이 소리를 높 여 따라 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원통하고 슬프기만 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고 남달리 그들에게만 끝까지 가해지는 억울 한 형벌 같았다. 102) 이상에서 고찰한 죄의식은 죄없는 형벌, 포말의 의지, 육체추 까 지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 전체에 놓여 있는 의식이라 할 수 있 다. 나병에 걸려 다 저 때문에 불행해지게 되었어요. 그러나 제 죄만은 아니예요! 라고 주장하는 인용문 (1)의 남숙( 죄없는 형벌 )이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녀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죄인의 미소 를 지으면서 구원을 위해 교회를 다니는 것이 희망인 인용문 (2)의 옥화 ( 포말의 의지), 그리고 원장을 응징하려다 어머니 같은 마리아와 그의 딸을 죽게 만들고 원통하고 슬프기만 해서 견딜 수 없었던 인용문 (3) 의 불구자들( 육체추 ) 모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역설적 상황, 100) 손창섭, 죄없는 형벌, 여원, , p ) 손창섭, 포말의 의지, 현대문학, , p ) 손창섭, 육체추, 사상계, p.230.

104 10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끝없이 죄를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탓이 아닌 죄에 대해 항의하는 손창 섭 고유의 죄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3. 우울자의 악마적 저항과 희극성 1) 악마적 저항으로서의 나태와 침묵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초주체적인 운명에 의하여 불행과 죄를 강요당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일견 비극적 인물과 유사하다. 그 러나 그들은 죄에 대한 자부심이나, 비극에 필수적인 비극적 행위 가 103) 부재하다는 점에서 고전적 의미의 비극적 주인공과 구별된다. 소포클레 스의 안티고네 에서 안티고네는 아버지 외디푸스의 죄를 물려받은 인 물로서 자진해서 신화적 운명의 희생양이 된다. 비극적 영웅은 죄에 대 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자의식 속에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신 화적 운명에서 벗어난다. 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손창섭 소설의 주 인공들에게 죽음은 삶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채, 중도반단으로 소멸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바, 그들은 신화적 운명의 일방적인 희생자에 불과 하다. 벤야민에 따를 때, 고대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자부심 을 갖고 있는 자, 즉 내적인 자기 발견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의해 죄진 사람들로서 죄에 대한 자부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고대비극의 주인 공의 죽음은 신화적 운명을 초월하는 예외적 죽음 으로서의 성격을 띠 103) 야스퍼스는 비극적 의식이 단순히 고뇌와 죽음에 대한 의식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필수적인 요소로 비극적 행동, 즉 인간으로 하여금 분규를 일으키고 불가피한 필 연성에 의해 파멸로 떨어지게 만드는 행동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K. Jaspers(신일철 역), 비극론, 신조문화사, 1969, pp

10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07 는 데 반해, 근대비극(독일 비애극)의 주인공의 죽음은 단순한 자연의 무 상성의 표현으로서 운명에 대한 종속만을 의미하는 익명적 죽음 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104) 손창섭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러한 근대 비극의 성격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비극적 주인공은 주관적 목적과 의지를 실행하는 비극적 행위를 통해 분규를 야기하고 몰락하는 데 105) 반해 우울자들은 비극적 행위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행위 자체의 불가능성에 빠져 있다. 우울자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공휴일 의 도일, 생활 적 의 동주와 미해결의 장 의 지상, 유실몽 의 지상은 그 대표적인 예 이다. 앞서 제시한 바 있듯이 손창섭 소설의 우울자들은 절망의 대상에 따라 지상적인 것에 절망하는 자와 영원한 것에 절망하는 자로 구별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인물들로서, 불행의식, 운명의식, 죄의식 외에도 삶에 대한 공허감(권태)과 그로 인한 행동 능력의 상실이 라는 우울자 특유의 면모를 보여준다. (1) 젊은 남녀간의 애정이라면 대뜸 육체적인 관계만을 의미하리만큼 되 어 있는 요지음에 있어서 자기처럼 그 문제에 냉담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도 역시 생리적인 결함에는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이 러한 권태증은 이성문제나 결혼 문제에 한해서 뿐은 아니었다. 자기를 둘 러 싸고 있는 왼갖 인물들에게 도일은 흥미도 애정도 느껴보지 못하는 것 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의무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들로서, 친구로서, 은행 원으로서, 국민으로서의 의무만을 감당해 나갈 뿐이었다.(밑줄-인용자) 106) 104) W. Benjamin,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pp ; M. Pensky, Melancholy Dialectics: Walter Benjamin and the Play of Mourning, pp ) G. W. F, Hegel(두행숙 역), 헤겔미학Ⅲ, 나남출판, 1996, pp ) 손창섭, 공휴일, 문예, , p.198.

106 10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성적 흥분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한 東 周 는 당장도 저녁 준비를 하노 라고 눈앞에 서서 돌아가는 春 子 의 정력적인 육체를 바라보다가 부지중 아아 절망을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누가 발길로 지르기라도 하듯 맥 없이 모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사지를 오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덤 속에 들 어가면 이렇게 흙으로 덮어 주리라 느껴지듯, 산다는 것의 무의미와 우울 이 꽝꽝 소리를 내어 다지는 것처럼 전신을 내려 누르는 것이었다. 東 主 는 사뭇 안간힘을 하다시피 무엇을 참고 견디어내는 것이었다.(밑줄-인용 자) 107) (3) 그 해결 이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내 맘에 꼭 드는 것이다. 그 말 은 충분히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나는 언제나 되면 노 상 집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하루에 몇 번씩 혹은 몇 십번씩 해결 을 생 각하고 거기에 도취하면서도 종시 나는 해결을 짓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 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주위와 나를 어떠한 필연성 밑에 연결시키 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이 방에 있어서 내 위치와 식구들과의 관계부터가 그러하다.(밑줄-인용자) 108) (1)에서 나타나듯 공휴일 의 도일은 권태증에 사로잡혀 이성,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 대해 애정도 흥미도 갖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금 순의 결합을 미꾸라지와 붕어의 결혼, 즉 틀림없는 일종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 109) 하면서 파혼을 결심한다. 우울자는 실존적 공허 속에 서 주위 세계와의 관계 상실과 감정 상실에 이르는데, 자기를 둘러 싸 고 있는 왼갖 인물들에게 흥미도 애정도 느껴지 못하는 도일의 상태는 우울자 특유의 정서적 감정의 빈곤화 를 보여준다. 생활적 의 동주에 107) 손창섭, 생활적, 비오는 날, 일신사, 1959, pp.84-85( 현대공론, ). 108) 손창섭, 미해결의 장, p ) 손창섭, 공휴일, p.203.

10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09 이르면 우울자의 감정 결핍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진다. (2)에서 나타 나듯 동주는 무의미와 우울이 전신을 내리 누른다 는 심정 속에서 어떤 의미있는 행위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하고 삶을 그저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다. 동주는 죽어가는 순이를 제외하고는 주위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나 애정을 상실하고 있으며, 걸레조각, 목석, 잊혀진 물건 등 110) 에 비유되면서 무생물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간다. 그는 우울, 불안의 감정 속에서 주위세계에 대한 관심과 감정을 상실하는, 무감정의 감정이라는 역설적 심정성 (die paradoxe Befindlichkeit des Gefühls der Gefühllosigkeit)에 처해 있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행위 자체의 마비, 불가능에 도달하고 있다. 111) 동주는 춘자와 봉수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우 물물에 똥을 넣었다는 누명에 대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폐병환 자인 순이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삶을 참고 견디어 낼 뿐이다. 미해결의 장 지상 역시 나는 도무지 주위와 나를 어떠한 필연성 밑에 연결시키 지 못 한다 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진성회, 가족 등으로 대변되는 주위세 계와의 유의미한 관계를 상실하고 있으며 비 로 상징되는 우울에 몸뿐 만이 아니라, 마음이나 영혼까지도 꿀쩍하니 젖어 112) 있다. 지상은 인 생의 해결 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생활적 의 동주와 다르지만, 그 역시 창녀 광순의 미소에 매료되어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있는 행동, 어떤 해결책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주와 동일하다. 그러나 동주와 지상의 행동 능력 상실은 울증의 단순한 병리학적 증 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 입각해, 근대 이후 인간이 처하게 된 실존적 110) 손창섭, 생활적, p.64, p.75, p ) L. Heidbrink, 앞의 책, S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185.

108 11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상황에 대한 통찰, 즉 인간적 행위의 모든 가치가 박탈되었고 세계는 공 허해졌다는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을 겪으면서 인 간적 행위에서 모든 가치가 박탈되고 그 결과 공허한 세계가 등장했을 때, 근본을 사고하는 자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삶이라는 모랄은 삶의 공 허를 구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중도반단 의, 진정성 없는 행위의 축적을 의미하게 된다. 113) 손창섭 소설에서 우 울자는 한편으로는 병들어 있는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병적 상태가 오히려 정신적 지각 능력의 강화를 낳아 정서적, 인식적 차원에 서 세계의 본성에 대한 통찰에 이른 자이다. 114) 그 통찰은 우울이라는 심정성 속에서만, 즉 우울자의 시선 속에서만 발견되는데, 그 통찰의 내 용으로 제시되는 것이 공허한 세계 이고 우울자는 그러한 세계에서 어 떤 의미 있는 행위도 발견할 수 없기에 행동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1)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죽어야만 할 것 같어. 내 병이나 光 順 의 운명 은 도저히 동정이나 위로만 가지구는 해결날 수 없지 않는가? 해결? 나 는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文 先 生 에게 해결이라 는 말을 들으리라고는 예견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도로 누워 버리고 말았다. 이 방안의 공기도 역시 우리 집이나 매 일반으로 무거운 것이었다. 文 先 生! 당신은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까? 물론이지. 죽기만 하면 만사는 마지막이니까! 물론이라구요? 그래 당신 이 죽는다구 해서 이 세상이 달라진단 말입니까? 당신만 없어지면 그래 지 구덩이의 피부병이 완치된단 말입니까. 115) 113) 벤야민은 이러한 근대의 공허가, 한편으로는 도덕적 시민생활을 설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을 신의 은총에 위임함으로써 선업을 부정하는 루터파 신교의 이 율배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W. Benjamin, 앞의 책, pp ) M. Pensky, 앞의 책.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현대문학, , p.193.

10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11 (2) 억센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들은 우물에 똥을 퍼다 넣은 사람이 틀 림없이 東 周 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東 周 가 아니라고 변 명을 한 대야 곧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 아니냐. 아무 대답이 없이 東 周 는 벽을 향해 도로 얼굴을 돌려 버리고 말았다. (중략) 東 周 는 그저 무거웠다. 왼 몸뚱이가, 그리고 이 구린내 나는 공기가 무거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 다. 그러나 견디어 내는 수밖에 달리 어쩔 수 없지 않느냐? 順 伊 의 신음 소 리에 간신히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東 周 는 그대로 하루가 또 저물어야 하는 것이다. 116) 미해결의 장 에서 가족들은 미국 유학(사회적 출세)을 지향하면서 극 도의 궁핍을 견디어 나가며 진성회 회원들은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들끼 리 모여, 국가 민족과 인류 사회를 위해서 진실하고 성실한 일을 하다가 죽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족, 진성회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그에 입각 한 행위들은 우울자인 지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삶의 진실을 위장하 는 허구에 불과하다. 문선생은 진성회 회원들에게 광순의 윤락생활을 고 백하고, 죽음으로써 속죄해야 한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문선생의 일련의 행위와 의식은 도덕적 가치의 추구에 핵심이 있다. 그러나 인용문 (1)에 서 드러나듯 우울자인 지상에게 진실과 성실이라는 도덕적 가치의 추구 에서 비롯되는 문선생의 결심은 내 병이나 광순의 운명, 즉 위장병으 로 생활능력을 상실한 채, 누이동생에게 생존을 의존해야 하는 문선생의 운명이나 가족의 생존을 위해 윤락 생활을 해야 하는 광순의 운명을 해 결해 주지 못한다. 지상의 가족들은 재봉틀을 빼앗김으로써 더욱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고 진성회 회원인 문선생은 누이동생의 타락한 윤락 생활로 생존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지상에게 삶의 진실은 비참 116) 손창섭, 생활적, pp

110 11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함이며, 이 운명적 비참함 앞에 가족과 진성회의 노력은 무의미하다. 지 구덩이의 피부병 과 박테리아 로 표상되는 인간의 운명적 불행은 해결 되지 않으며 출세를 지향하는 가족들의 행위가 무가치하듯이, 도덕적 가 치를 추구하는 문선생의 행위 역시 무가치한 것이다. 생활적 의 동주는 더욱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용문 (2)에서 동주는 우물물에 똥을 넣었다는 누명을 썼을 때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다. 동주는 무덤 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흙으로 덮어 주리라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살아 있 으면서도 죽어 있는 목석 과 같은 존재,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존재로 서 아예 행위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간다. 지상과 동주는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에서 무의미함만을 발견하 기 때문에 행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의 가치 추구 행위 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 선업( 善 業 )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마비, 행위 능력 상실은 곧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 위, 선업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우울자인 미해결의 장 의 지상과 생활적 의 동주는 물론, 사연기 의 동식이나 유실몽 의 철수의 경우도 비록 행동 능력의 상실에까지는 이르지 않지 만 선업을 거부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사연기 의 동식은 정숙이 자 살을 결심할 때,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방 관하며, 유실몽 의 철수는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만이 자기의 운명 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는 춘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부하고 그녀의 곁을 떠나는 등 그들은 일체의 도덕적으로 가치 있 는 일, 선업( 善 業 )을 거부한다. 요컨대, 우울자에서 나타나는 행동 마비 나 행동 능력의 상실은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나 善 業 을 거부하고 삶을 낭비하는 우울자 고유의 나태 (acedia)를 의미한다는 데 핵심이 있 다. 벤야민에 따르면 우울은 신에 대한 불충, 마음의 태만 이라는 치명

11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13 적인 죄, 즉 나태acedia 에서 비롯되며, 그로 인해 우울의 정신은 곧 악마 적인 정신을 의미하게 된다. 117) 우울자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 는 생활적 의 동주, 미해결의 장 의 지상은 물론이고 사연기 의 동 식, 유실몽 의 철수 등은 모두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 바라봤을 때, 나태라는 치명적인 죄에 빠져 선을 거부하는 악마적 성격의 인물, 악마 적인 것으로서의 우울의 정신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생활적 의 동주와 공휴일 의 도일 의 침묵이다. 동주는 인용문 (2)에서 나타나듯 자신의 우울자로서의 면모 가 병신 같은 삶으로 여겨질 뿐 이해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마을사람들 에 대해 침묵하며, 공휴일 의 도일 역시 일상적 삶에 대한 자신의 권태 감이 이해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침묵한다. 도일은 옛 약혼자의 청첩장 에 낙서를 하여 부고인 것처럼 만든다. 이를 본 누이가 옛 약혼자를 원 망하는 것이냐 라고 질문했을 때, 성가시러워 또한 아무리 애써 설명한 댔자 자기의 심경이 고대로 저쪽에 수긍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 문에 그는 잠자코 소처럼 멋없이 씩 웃어 118) 보일 뿐 말을 하지 않는다. 언어적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 속에 칩거하는 그들의 모습은 악마적 인 물의 폐쇄적 침묵(das Verschlossene) 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악마적 인물은 죄 속에 있으면서 선을 거부하는 데 본질이 있으며 선에 대하여 스스로를 감추려는 성격을 갖는다. 선은 드러냄을 의미하며 이는 언어적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선을 거부하는 그들은 스스로를 은폐시키는 폐쇄적 침묵에 이를 수밖에 없다. 119) 동주와 도일의 침묵은 나태라는 치 117)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군주와 廷 臣 을 이와 같은 나태에 의해 지배되는 인물로 간주하고 그들의 우울을 악마적 정신의 소산이라고 본다. W. Benjamin, 앞의 책, pp , p ) 손창섭, 공휴일, p ) 키에르게고르는 악마적인 것을 선에 대한 불안 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항상 의사소통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은폐시키려는 악마적인 것은

112 11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명적인 죄 속에 있으면서 선을 의미하는 언어소통을 거부하고 악마적 성격의 폐쇄적 침묵에 빠져든 경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폐쇄적 침묵은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신화적 운명의 직접적인 희생 자들인 여자 주인공들에서 더욱 명확한 형태로 나타난다. 앞서 지적한 바 있듯이 사연기 의 정숙은 피로와 슬픔이 안개처럼 낀 눈빛으로만 말하며, 비오는 날 의 동옥은 원구와의 대면에서 고개만 끄덕 일 뿐 말을 하지 않는다. 정숙과 동옥의 침묵은 심미적 슬픔의 표현이면서 동 시에 악마적인 인물의 폐쇄적 침묵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숙과 동옥의 형상은 미해결의 장 의 지숙과 유실몽 의 춘자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백지에 먹으로 그린 초상화 같은 여인 (동옥), 언제나 양초처럼 희기만 한 얼굴 (지숙), 종이처럼 흰 얼굴 (춘자) 등의 비유에서 드러나듯 인간 적 활기를 상실하고 화석된 인물로서 좀처럼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간질병 환자인 창애( 혈서 )의 지랄 버릇 과 폐병환 자인 순이( 생활적 )의 신음소리 역시 이와 같은 성격의 폐쇄적 침묵을 의미한다. (1) 돌부처 이상으로 무표정한 소녀였다. 표정뿐만 아니라 언어와 거동 도 그랬다. 누가 묻든 말에나, 그것두 두 번에 한번 정도 마지못해 대답할 뿐, 그밖에 스스로 의사표시를 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또한 몸도 움직이 기를 싫어했다. 끼 때에 밥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외에는 돌멩이처럼 늘 꼭 같은 자세로 방 한구석에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 었다. (중략) 숨을 죽이고 떨리는 손을 昌 愛 의 얼굴로 가져간다. 잡히지 않 으려니 하고 昌 愛 의 코를 쥐어본다. 그러나 뜻밖에도 잡힌다. 達 壽 는 그만 질겁을 해서 팔을 움츠린다. 그래도 어쩌자고 昌 愛 는 동일한 자세를 헝클 언어를 멀리하게 된다. S. Kierkegaard, 불안의 개념, 한길사, 1999, pp

11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15 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다. 달수는 전신에 식음 땀이 죽 내번지는 것이었 다. 도리어 達 壽 에게는, 昌 愛 가 거품을 물고 지랄 버릇을 할 때에 훨씬 더 인간이 느껴지는 것이다.(밑줄-인용자) 120) (2) 뒷간 출입도 온전히 못하는 順 伊 는 진종일 누운 채 그 무겁고 단조 로운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일이었다. 으응, 으응, 으응 그것은 마치 무덤 속에서 송장이 운다면 저러려니 싶은 듣는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생각게 하는 암담한 소리였다. 처음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소름을 돋힐 것 이다. (중략) 東 周 는 종내 어느 날 順 伊 에게 물어보았다. 너 어째서 그렇게 밤낮 신음소리를 지르니? 그렇게 죽어오게 아프냐 順 伊 는 얼굴을 찡그렸 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심심해서 못 견디겠는 걸. 그때부터 東 周 는 무겁고 암담한 順 伊 의 신음소리를 아껴주기로 한 것이다. 그 신음소리는 머지 않아 죽을지도 모르는 順 伊 의 최선을 다한 생활이었기 때문이다.(밑 줄-인용자) 121) 혈서 의 창애는 누가 묻는 말에나 마지못해 대답할 뿐 스스로 의사 를 표시하지 않으며 마치 돌부처와 돌멩이처럼 무생물로 존재하며 생 활적 의 순이는 무덤 속의 송장처럼 으응, 으응, 으응 하는 신음소리를 낼 뿐이다. 폐쇄적 은폐는 침묵만이 아니라 언어를 거부하는 모든 제스 추어, 독백, 눈빛, 표정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122), 순이의 신 음 소리, 창애의 지랄 버릇, 미해결의 장 의 창녀 광순의 미소 역시 일 120) 손창섭, 혈서, p ) 손창섭, 생활적, pp ) 폐쇄적 침묵의 핵심은 내면적 상태와 외적 표현이 통합되어 있는 실존적 언어를 거부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내적 상태와 어긋나는 기만적 외적 표현, 즉 무의 미한 말을 의미하는 잡담(chatter)까지도 침묵에 해당한다. R. Hall, Language and Freedom: Kierkegaard s Analysis of the Demonic,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The concept of Anxiety, ed. R. L. Perkins, Mercer, 1985, p.165.

114 11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종의 침묵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창애와 순이, 광순은 모두 인간의 언어 를 거부하고 침묵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창애와 순이의 침묵이 각각 간질병과 폐병이라는 육체적 질병에서 비롯된다면, 정숙과 동옥의 침묵 은 전술한 바 있듯이 주로 역사의 폭력으로 인한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간질병과 폐병 역시 이유 없는 삶의 비참 함을 의미한다고 할 때, 그들 모두는 삶의 비참함과 고통으로 인해 침묵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스츄어(창애)와 동물적 소리(순이)는 또 하나 의 침묵으로서 죄와 운명을 거부하는 인간적 저항을 의미하며, 창녀 광 순의 미소는 운명적 비참함 앞에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인간의 악마적인 미소라고 할 수 있다. 동주, 지상, 철수, 도일 등은 앞서 서술했듯이 영원한 것에 절망하는 자들로서 우울자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근본적으 로 악마적 성격을 띠는 나태와 침묵에 이른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점에 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불행의식과 운명의식, 그리고 죄의 식을 특징으로 하는 우울자의 의식은 나태와 침묵에서 그 악마적 성격 을 분명히 드러내며 이때의 악마성은 그들의 우울이 경험적 슬픔을 넘 어서서 심미적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 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를 때, 악마적인 것은 크게 다음 세 가지를 특성 으로 한다. 악마적인 것은 시간적 차원에서는 갑작스러움(suddenness)을, 내용적 차원에서는 지루함(권태)을, 형식적 차원에서는 폐쇄적 침묵(das Verschlossene)을 특성으로 한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123) 보러에 따를 때, 불안의 개념 에서 규명되고 있는 악마적인 것의 이러한 특성은 곧 심 미적 현상의 본질을 의미한다. 124) 전술한 바 있듯이 손창섭 소설을 지배 123) S. Kierkegaard(임규정 역), 불안의 개념, 한길사, 1999, pp ) K. H. Bohrer, The Prehistory of the Sudden : The Generation of the Dangerous moment, pp

11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17 하고 있는 우울은 악마적 정신의 소산으로서 이 세 가지 특성 중 특히 뒤의 두 가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타인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 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방조하는, 모든 선업을 거부하는 우울자의 나태는 악마적인 것의 내용상 특성인 삶에 대한 지루함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 며, 그들이 보여주는 침묵, 제스츄어, 미소는 선, 언어적 소통을 거부하 는 악마적 성격의 폐쇄적 침묵을 의미하는 것이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 하는 우울은 초주체적인 거대한 힘, 운명의 주문에 사로잡혀 영원한 불 행과, 자신의 탓도 아닌 일에 대한 죄의식에 빠져 있는 존재들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이때의 슬픔은 도덕적 이성적 영역을 넘어서는 심미적 경 험의 표현, 곧 심미적 슬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손창섭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우울, 우울자들의 악마적 성격은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한 긍정에서 비 롯되며, 전후의 인간이 처한 존재론적 상황에 대한 저항 으로서의 의미 를 띤다는 점이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침묵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은 아 예 사물로 전락하여 말을 잊고 있는 여주인공들에서 나타난다. 동옥( 사 연기 ), 지숙( 미해결의 장 ), 춘자( 유실몽 ) 등이 백지, 양초, 종이에 비 유되는 것이 사물로 전락한 인간의 운명적 비참함과 그에 대한 고통을 표현한다면, 그들의 침묵은 선을 의미하는 언어소통에 대한 거부, 따라 서 강요되는 죄의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운명적 비참함과 고통에 대한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 와는 무관한 운명의 결과로서 비참함에 빠진 인간은 죄를 떠올릴 수밖 에 없고 죄의식을 강요받게 되는데, 침묵이란 아예 선, 즉 언어소통 자체 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이 신화적 운명과 자연적 죄에 대해 무언의 항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손창 섭 소설의 우울자들은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116 11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서도 부당하게 강요되는 죄의식에 대해 항의의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단지 죄의식에만 국한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로흐리츠에 따르 면 우울은 피조물의 삶을 죄진 삶으로 규정하고 삶의 가치를 절하시키 는 금욕적 삶에 대해 나태라는 치명적인 죄를 범함으로써 저항하는 삶 자체의 반역(a revolt of life ) 이다. 125) 요컨대, 악마적 성격의 우울에 빠져 있음 자체가 신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존재론적 상황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인간의 자연적 삶을 억압하고 선업을 강요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악마적인 것, 악마적 성격의 심미적 슬픔 은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는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하지만 심미적 차원 에서는 하나의 저항, 즉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해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운명적 비참함에 대한 삶 자체의 반역을 의미한다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이처럼 선업과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고 심미적 슬픔 속에서 악마적 저항을 시도하는 우울자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물리적,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살아 있음 자체이다. (1) 그러면 당신도 아침저녁 가게에 내려와서 구미에 당기는 걸로 식사 를 하라는 것이다. 운동도 되고, 영양도 보충될 터이니 차라리 건강이 회복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말들을 東 周 는 흥미 없이 그냥 듣고만 있 었다. 그것은 順 伊 의 신음소리 만큼도 東 周 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다 만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보겠다 는 한마디만이 東 周 의 귀에 귀 지처럼 걸렸을 뿐이다. 그는 한숨 쉬듯 입속으로 그 한마디를 중얼거려 보 고,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실없이 놀라운 부피 앞에 위압을 느끼는 125) R. Rochlitz, The Disenchantment of Art : The Philosophy of Walter Benjamin, trans. J. M. Todd, The Guilford Press, 1996, p.98.

11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19 것이었다.(밑줄-인용자) 126) (2) 나는 光 順 에게 善 玉 을 소개했다. 善 玉 에겐 무엇보다도 직업이 필요 합니다. 그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해 날마다 울며 지냈습니다. 직업이란 청 운의 뜻보다도 소중한 모양입니다. 나는 그런 말을 덧붙인 것이다. 누구 앞에서고 제 사정 얘기나 남의 내막 얘기에 언급하는 일이 없는 光 順 은, 역시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 낮으로 善 玉 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안에 들어와서부터 善 玉 은 차츰 풀이 꺾이었 다. 그는 기운이 없는 눈으로 光 順 의 시선을 피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부러 외면하고 善 玉 이나 나는, 점심 저녁 두 끼를 굶고 있다고 光 順 에게 말했다. 그러자 光 順 은 두 끼 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놓고 光 順 은 골목 밖에 있는 음식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이다.(밑줄-인용자) 127) 동주의 아내 춘자는 봉수와 우동가게를 하겠다면서 이러저러한 이유 를 늘어놓지만 동주는 그 말들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성 과 돈만을 추구하는 춘자와 봉수의 삶을 고려할 때, 춘자의 말은 봉수와 성적관계를 암시하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동주는 춘자의 좀더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보겠다 라는 말에 대해서만큼은 실없이 놀라운 부피 를 느낀다. 우울자 동주는 성과 돈만을 아는 춘자와 봉수의 동물적 삶에 대해서 우울을 느끼면서도 다 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동물적 생존의 욕구를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느 끼는 것이다. 우울자의 이러한 면모는 미해결의 장 의 지상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 난다. 지상은 미국 유학의 꿈을 포기하여 우유죽 대신 밥을 먹을 수 있 126) 손창섭, 생활적,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194.

118 12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기를 바라고, 청운의 뜻보다 직업이 중요하다면서 사촌 여동생 선옥을 매음녀 광순에게 소개한다. 선옥에게는 무엇보다도 직업 이 필요합니 다 라는 말, 매음녀 생활을 직업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직업 이란 구체적으로 윤락 생활을 가리는 것으로 서 윤리적으로 가치 있는 일과 전혀 무관한 단지 생존을 위해 인간이 수 행할 수밖에 없는 노동이라는 의미만을 갖는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은 크게 세 가지,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로 나뉜다. 이 각각의 활동은 각각의 인간 조건, 즉 삶, 세계성, 다원성이 라는 인간조건에 상응하는 활동들이다. 작업이 인공적 사물세계를 만들 어내는 활동을, 행위가 인간 사이에 행해지는 정치적 윤리적 활동을 의 미한다면, 노동은 생명 필수재를 획득하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128) 윤 락생활을 직업이라고 표현한 것은 전후 사회가 생존이 최우선시되는 사 회였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존 재 자체가 살기 위해서, 생물학적 신진대사에 사용해야 할 생명 필수재 를 필요로 하며 이를 얻기 위한 활동으로서의 노동 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인간 조건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동 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한편으로는 윤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육체적 영역, 감각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점에 있 다. 결국 춘자의 말에 대해 위압을 느끼는 동주나,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으로서의 노동만이 중요하다고 보는 지상은 모두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긍정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는 무관한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고 있다. 삶을 그저 견디 어내야 할 것으로만 간주하면서 가치 있는 행동을 거부하는 우울자의 128) H. Arendt(이진우, 태정호 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참조.

11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21 나태, 폐쇄적 침묵, 궁극적으로 악마적 성격의 우울은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해 죄의식과 불행만을 강요하는 운명적 비참함에 맞서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긍정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의 살아 있음 자체를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으로 주장함으로써 악마적 저항을 시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 자연적 삶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희극성 손창섭의 소설은 假 父 女 ( 자유문학, ) 孤 獨 한 英 雄 ( 현대문 학, ) 雜 草 의 意 志 ( 신태양, )를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부 정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가치지향적인 인간 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 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29) 그러나 인간에 대한 긍정은 50년대 후반, 건강한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초기 소설부터 나타나는, 그리고 손창섭 소설 전체를 지배 하고 있는 심미적 슬픔 자체가 인간의 자연적 삶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 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적 삶에 대해 긍정함으로써 동물적 인 간의 경우 그들의 도덕적 무구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우울자의 경우 불행과 죄의식만을 강요하는 운명적 비참함에 대항하는 나태와 침 묵, 즉 악마적 저항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그의 소설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미의식인 희극성이다.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는 악마적 성격의 심미적 슬픔이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살아 있음 자체를 긍정함으로써만 가능하였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 등장 하는 희극성 역시 자연적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손창섭 소설의 특성 중 하나는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신화적 운명 129) 조남현, 손창섭의 소설세계, 한국 현대 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1993, p.119.

120 12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과 그로 인한 우울, 슬픔의 감정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와 더불어 희 극성, 웃음의 감정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손창섭 소설의 이중적 모 습은 당대 비평가들로부터 이미 지적되었다. 등장인물의 특이성으로 인 해 당대 비평은 인물 분석이 주를 이루었는데, 육체적 정신적 불구 라는 객관적 사실은 일반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망적 인간들, 비극성 130) 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상식에서 벗어난 일 장 희화, 희화적 묘사 131) 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중성은 추 천작인 공휴일 과 사연기 두 작품에서부터 뚜렷이 나타난다. 공휴 일 의 도일 은 권태에 사로잡혀 있으며 희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반면, 사연기 의 동식은 주위세계에 대해 슬픔과 우울만을 느끼며 절망적으 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동일한 대상, 즉 죄의식과 불행만을 강요하는 운 명적 비참함에 대한 상이한 접근 방식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는 데, 특히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웃음과 희극성은 신화적 운명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저항의 의미를 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동물원초 의 등장인물들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손창섭은 당대 인간의 존재상황을 한편으로는 자기 보존, 동물적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존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 하늘을 사모하는 존재, 즉 도덕 적, 인간적 가치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데서 찾았다. 이는 손창섭이 근본 적으로 인간존재를 자신들의 현실적 상황(유한자)과 추구하는 것(무한성) 간의 모순에 처해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르 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인간존재의 부조화, 모순(incongruity, contradiction)에 서 인간적 삶의 현실적 유한성(유한자)에 집중하고 인간적 삶이 추구하 는 것(무한자)이 대조적 기준으로 후경화될 때 웃음과 희극성이 발생하 130) 조연현, 병자의 노래 : 손창섭의 작품세계, 현대문학, , p ) 윤병로, 혈서의 내용, 현대문학, , p.239.

12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23 며 그 반대의 경우, 즉 인간적 삶이 추구하는 것(무한자)이 전경화되고 인간적 삶의 유한성(유한자)이 후경화될 때 절망과 울음이 발생한다. 132) 유실몽 의 춘자와 혈서 의 달수는 손창섭 소설의 양가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 그래도 春 子 는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원 자격을 얻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났다는 것이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만이 자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 에 영양부족도 겹쳐서 자연 春 子 는 여위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묘한 것은 그처럼 축진 얼굴이나 몸집이 조금도 매력을 잃지 않는 일이었 다. 어느 날 밤, 나는 春 子 의 가느다란 몸을 힘껏 끌어 안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春 子 를 껴 안은 채 자꾸만 울었다. 인제는 하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나는 공연히 서러워 울었던 것이다.(밑줄-인용자) 133) (2) 그래서 그는 한 군데서는 이삼일 뒤에 한번 들려보라고 그랬는데, 하 고 항변해 보는 것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俊 錫 은 대뜸 이마에 핏줄을 세우드니, 이 자식이 미쳤어? 하고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이다. 그리 고는 계속해서, 이 민충아 그래 그 말을 곧이 믿구 있어? 곧장 이삼일 뒤에 는 취직이 될 줄 알어? 어디 배째기 내기라두 할까? 이 멍터구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 거야, 그렇게 만만히 취직이 될 줄 알어? 하고 몰아세우는 것 이었다. 이런 때 達 壽 의 얼굴은 그지없이 난처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울음 과 웃음이 반반씩 섞인 운명적인 표정인 것이다.(밑줄-인용자) 134) 132) 키에르케고르는 동일한 상황에서 희극성이 나타나기도 비극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모순으로 보지 않고 유한자와 무한자 중 어느 것을 전경화 하느냐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J.E. Hare, The Unhapiness One and the Structure of Kierkegaard s Either/Or,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 Either/OrⅠ, ed. R.L. Perkins, Mercer, 1995, pp ) 손창섭, 유실몽, 사상계, , p ) 손창섭, 혈서, 현대문학, , p.176.

122 12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유실몽 의 춘자는 생존에도 급급한 현실에서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만이 자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 이라 믿고 극도의 정신 적, 육체적 피로를 감내한다. 춘자의 경우 현실적 유한성과 취미와 재 능을 살리는 가치 있는 생활 에 대한 추구의 모순 가운데 후자가 주로 전경화된다. 이를 통해 그녀의 삶은 철수의 꿈 속에서 나는 춘자를 껴 안은 채 자꾸만 울었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절 망과 슬픔을 자아내게 만든다. 손창섭 소설에서 여주인공들은 이처럼 주 로 절망과 울음을 자아내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사연기 의 정숙, 비오 는 날 의 동옥 그리고 그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해결의 장 의 지숙, 유실몽 의 춘자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숙과 동옥이 전쟁 역사, 육 체적 불구성이라는 좀더 특수한 운명적 힘에 고통 받는 인간 존재의 슬 픔을 표현한다면 지숙과 춘자는 생존에도 급급한 현실적 상황에서 인간 다운 삶(미국 유학의 꿈과 교원자격에 대한 꿈)을 추구하는 모순적 삶, 인간 존재의 보다 일반적인 차원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한다. 동일한 모순, 부조화도 현실적 유한성이 전경화될 때 희극성과 웃음 을 자아내게 한다. 비오는 날 의 동욱, 혈서 의 달수,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 그리고 낙서족 의 도현 등은 대표적인 예인데, 특히 혈서 의 달수는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달수는 성공에 대한 꿈을 안 고 고학으로 학교를 다니려 하며 이를 위해 취직을 시도하지만 매번 헛 수고에 그친다. 인용문 (2)에서 한 군데서는 이삼일 뒤에 한번 들려보라 고 그랬 다는 달수의 항변은 달수의 현실적 무능력을 나타낼 뿐이다. 달 수의 상황은 이 자식아 네가 고학생이야? 거지지 무슨 고학생이야. 그 래 거지가 대학엘 가? 135) 라는 준석의 비판, 즉 고학자가 아니라 거지, 기피자에 불과하다는 준석의 비판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데, 고학생과 135) 손창섭, 혈서, p.177.

123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25 거지 간의 부조화, 구체적으로 고학 취직에 대한 희망 과 아무 가게나 들어가 취직을 부탁하는 현실적 무모성 간의 부조화 중 후자가 전경화 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창녀인 여동생의 수입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 어나고자 하면서도 위장병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며 자살을 생각할 뿐인 문선생( 미해결의 장 )이나, 목사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술을 사랑 하는 동욱( 비오는 날 ) 역시 그들의 무능력이 전경화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특이한 점은 그 부조화가 인용문 (2)의 그것은 울음과 웃음이 반반씩 섞인 운명적인 표정 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웃음과 동시에 고통(울 음)을 수반하는 인간존재의 운명적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키에르 케고르에 따를 때, 희극적인 것이란 베르그송 등의 주장과는 달리 웃음 의 대상에 대한 (바라보는 주체의) 주관성의 우월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도 우세하지 않은 인간 존재의 부조화, 모순(incongruity, contradiction)에서 비롯되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웃음은 고통(suffering)을 동반한 웃음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136)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은 모 두 실존적 모순에서 비롯된 심미적 범주이다. 희극적인 것은 그 모순을 외적인 조건 탓으로 이해하는 경우와 내적 조건 탓으로 이해하는 경우 에 따라 서열화되며 궁극적으로 종교적 내면성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137) 손창섭 소설에서 제시되는 희극적인 것은 비록 종교적 내면성 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지만, 달수의 예에서 드러나듯 인간존재의 부조화 에서 비롯되며, 고통을 동반한 웃음을 자아낸다는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 에서 실존적 모순에서 비롯된 심미적 범주로서의 희극성을 보여준다. 그 136) A. J. Burgess, A Word-Experiment on the Comic,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 The Corsair Affair, ed. R. L. Perkins, Mercer, 1990, pp ) S. Walsh, Living Poetically : Kierkegaard's Existential Aesthetics,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ty Press, 1994, pp

124 12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의 희극성은 종교적 내면성을 지향하고 있지 않으며, 외적 조건의 탓으 로 돌리는 경우와 내적 조건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의 중간에 위치해 있 다고 볼 수 있다.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이 타인에 대한 자신의 우월감을 표현하는 통상 적인 의미의 희극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일인칭 시점을 택하 고 있는 미해결의 장 에서 잘 드러난다. 미해결의 장 에서 진성회 회 원인 아버지, 문선생, 장선생 등은 희극적 존재, 즉 국가, 민족과 인류 사회를 위해서 진실하고 성실한 일을 하다가 죽자 라고 주장하지만 사 실은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 식구들에게 기생하여 살아가는 희극적 인 존재들로 묘사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존재가 지상이라는 점에서 지상 이 이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상 자신 역시 스스로에 의해 희극적인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1) 그제서야 나는 큰일 난 듯이 光 順 의 소매를 붙잡는 것이다. 난 돈이 필요한데요. 돈이 말입니다. 꼭 돈이 좀 있어야겠단 말이예요. 光 順 은 서 슴지 않고 또 삼 백 환을 꺼내 주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光 順 이는 날 오 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큰 돈이 좀 필요합니다. 光 順 은 잠시 내 얼굴을 쳐다 보다가 얼마요? 하고 물었다. 光 順 은 나를 잘 몰라줍니다. 나는 큰 돈이 있어야 합니다. 재봉틀두 찾아야 하구, 동생들의 미국 갈 비 용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光 順 에게 할 말이 아니라구 깨달았다. 138) (2) 우리를 무얼루 아는 거야? 연거푸 다른 놈이 왜 버릇없이 구는 거 야. 나는 어찌 된 판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건방진 자식. 光 138) 손창섭, 미해결의 장, p.195.

125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27 順 일 함부로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순간 나의 오른편 귀청이 왕하고 울 렸다. 눈에서는 불이 튀었다. 그것은 고무장갑 같은 손이 아니었다. 내가 왼쪽으로 비틀거리자 이 번엔 왼쪽 따귀에서 짝 소리가 났다. 연달아 주먹 과 발길이 무수히 내 몸뚱이에 떨어졌다. 어디를 어떻게 얻어맞았는지 나 는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그러 나 나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턱과 손에 끈적거리는 선혈을 의식하면서 무의식중에 나는 光 順 이! 光 順 이! 하고 신음소리를 불러보는 것이었 다. 139) 인용문 (1)과 (2)는 지상이 재봉틀을 빼앗겨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광순에게 찾아가 돈을 요구하고 급기야는 괴 청년들의 구타 속에서 쓰 러지는 결말 부분이다. 지상은 인생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도 창녀 광순의 이부자리만 찾아가는 부조화, 모순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재봉틀을 빼앗겼을 때 광순에게 큰 돈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행동과 괴 청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그의 부조화 즉 희극성을 단적 으로 보여준다. 이는 보들레르가 주장한 바 있는 절대 희극의 차원을 보 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들레르는 상호 주관적 관계 속에서 다른 주체에 대한 한 주체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통상적으 로 희극적인 것(the significative comic)과 이를 넘어서는 절대적으로 희극 적인 것(the absolute comic)을 구별하는데, 후자의 핵심은 그것이 주체 간 관계가 아니라 한 주체 내에서 존재하는 열등함과 우월성을 표현한다는 데 있다. 140) 이때의 주체의 우월성이란 시간적 거리, 반성적 거리에 의 139) 손창섭, 미해결의 장, p ) 보들레르는 전자가 사회적 풍습에 유리한다면, 후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을 표현하는 보다 원초적인 관계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C. Baudelaire, Of the Essence of Laughter, and generally of the Comic, Baudelaire : Selected Writings on Art and Artists, trans. P.E. Charv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2, pp

126 12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해 획득된 주체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체 내의 경험적 자아와 아이러니 자아간의 공간적 거리에서 발생하는 우월성을 의미할 뿐이다. 141) 절대희극의 주체는 자신 내부의 열등함을 그저 바라볼 뿐인 것이다. 미해결의 장 에서 서술자의 경험적 자아에 대한 희극적 묘사는 타인 이 아니라 바로 서술자 자신의 열등함을 바라봄에서 비롯된다. 괴 청년 들에게 맞아 쓰러지는 자신에 대한 담담한 묘사에서 드러나듯 그의 소 설의 희극성과 웃음은 근본적으로 타자의 넘어짐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열등함, 자신의 넘어짐을 바라볼 때의 웃음을 표현한다.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이 이처럼 근본적으로 주체 자신의 전복과 열등함을 표현하고 있 다는 사실은 일인칭 소설인 미해결의 장 만의 특성이 아니라 그의 소 설에서 나타나는 희극성 전체의 본질적 특성이다. 비록 일인칭의 형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일인칭 소설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의 작중인물들의 희극성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존재 자체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즉 미련하게 취직운동을 하는 혈서 의 달수, 헛 되이 민족과 인류를 위해 살다가 죽자고 주장하는 미해결의 장 의 아 버지와 문선생, 무모한 용감성으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낙서족 의 도현 등은 객관적으로 볼 때 수정 가능한 무능력들 때문에 희극적인 것 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무능력은 그들 당사자들에게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표현하는 무능력이라는 의미를 지니 며, 그렇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은 구체적으로 도 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적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의미한다는 점에 141) 폴 드 만은 이를 아이러니라고 칭하는데, 이때의 우월성과 열등함은 한 주체에 내 재하는 차원들의 복수성을 지시한다. Paul de Man, The Rhetoric of Temporality, Blindness and Insight, p.213.

127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29 서,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은 궁극적으로 시민적 인간성에 핵심이 있는 근대적 주체성 자체의 전복, 열등함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이 타자가 아니라 주체 자신의 열등함을 표현하 고 자신의 전복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표현한다고 할 때, 그 웃음을 통해 비판받는 것은 궁극적으로 계몽주의 이후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리 고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근대적 인간의 허구적 자만심이다. 낙서족 의 도현은 이를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 도현은 골목어구에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처참한 인간의 그림자였 다. 전신을 적시고 드는 울분과 절망감. 도현은 한 방울 비어진 눈물을 섬 뻑 하고 짜 버리고 돌아섰다. 몇 발짝 옮기는데 눈앞에 다가서는 전봇대가 있었다. 수상한 사내가 몸을 기대고 섰던 바로 그 전봇대다. 순간 도현은 구원을 느끼었다. 그의 눈이 투우의 눈으로 변했다. 에이 썅! 소리와 함 께 발이 땅을 차고, 도현의 이마는 어느새 딱 하고 전봇대를 들이 받았 다. 142) (2) 인간의 가치란 경찰이 중요시 하느냐 않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이라는 미묘한 해석을 갖게 되었다. 도현은 우선 자기가 유가치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이 빈 껍데기에 알맹이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알 맹이는 말할 것도 없이 눈부신 행동 이다. 대사회적인 행동. 대국가적인 행동. 도현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상희도 나에게 친밀감과 호의를 베푸는 것은 구국 투사의 아들로서다. 나 자신의의 가치를 인정하고서가 아닐 게 다. 나 자신의 가치를 갖자 빈껍데기 속에 알맹이를 채우자. 행동인이 되 자. 도현은 벌떡 일어났다. 자기 자신이 금시 위대한 투사나 영웅이 된 것 같은 벅찬 감동을 깨달았다. 143) 142) 손창섭, 낙서족, 사상계, , p ) 손창섭, 낙서족, p.378.

128 13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낙서족 의 도현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와 숙부 때문에 일제의 끊임 없는 감시 속에 있게 되는데, 인용문 (1)에서 파나마모자 (일본경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울분과 절망감을 파나마모 자가 기대고 섰던 전봇대를 들이받는 데서 푼다. 도현은 천성적으로 미 련하고 무모한 용감성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는 인용문 (2)에서 드러나듯 숙부와 아버지를 본받아 독립운동에 헌신하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그의 희극성은 이와 같은 천성적인 미련함과 용감성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부조화에서 발생한다.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도현이 벌이는 다양한 사건 들, 즉 파출소 순경을 머리로 받아 버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라며 하루꼬 를 겁탈하거나 비밀 아지트라며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는 행위 등은 자신의 천성적 기질을 무시하고 숭고한 가치, 즉 독립운동이라는 이성적 이며 계몽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움, 이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전복을 보여준다. 도현의 행동들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지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성적 욕구나 무모한 용감성 의 발현에 불과한 것으로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자신의 천부적 기 질을 벗어나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헛됨을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폴 드 만이 주장한 바 있는 자연에 대한 인 간 지배의 허구성이다. 절대적으로 희극적인 것에서 궁극적으로 폭로되 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허구적 자만심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지배하 는 것처럼 자신의 자연에 대해서 지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자연의 가장 작은 부분조차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무력하다. 144) 낙서족 은 미 련하고 무모한 천부적인 기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도현의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즉 자신의 천부적 기질을 넘어서서 독립 144) Paul de Man, 앞의 글, pp

129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31 운동으로 대표되는,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의 허구성을 비 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바 있듯이 손창섭은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운명적 비 참함에 대항하여 우울자를 통해, 그리고 신화적 운명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여주인공들의 형상을 통해 나태와 침묵이라는 악마적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상에서 드러난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 역시 이에 대 한 저항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운명의 영역이 인간의 살아 있음 자 체를 죄진 삶으로 규정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할 때, 손창섭 소설의 희극 적 인물들은 이를 거부하고 인간의 자연적 삶 즉, 낙서족 의 도현의 천 부적 기질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작가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1) 남편의 주먹이 떨어질 적마다 움칠움칠 놀라면서도 그냥 몸을 더 웅 크릴 뿐이다. 간혹 아야! 아야! 하고 유창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 고작이었 다. 그것은 참말 비명으로 듣기에는 너무나 느리고 부드러운 발음이었다. 하기는 누이도 어쩌다가 아픔을 참지 못하는 듯, 한군데만 자꾸 때리지 말아요! 여기저기 좀 골라 가면서 때리라구요 하고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에게 구원을 청한 일조차 있었다. 哲 秀 야, 좀 말려 주렴아, 얼 른 좀 말려 줘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실없이 웃어 버리고 말았 던 것이다. 나는 그러한 내 웃음이 잘못이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런 경우 에 웃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나는 웃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지극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밑줄-인용자) 145) (2) 누이는 여적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바람벽에 기대앉아서 누 이를 바라보았다. 누이에게서는 강한 인간의 냄새가 풍기었다. 나는 그 냄 새를 즐기는 것이었다. 참말 세상에는 인간 냄새를 풍기지 못하는 인간이 145) 손창섭, 유실몽, p.266.

130 13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내 시선이 자기에게 부어지는 걸 의식한 누이는 얼굴을 돌리었다. 애교 있게 웃었다. 확실히 명랑하고 만족한 표정이었다. 누이는 본시 고민이나 오뇌라는 것을 전연 모르는 기질이었다. 도대체가 숙명적으로 심각해질 수 없는 인간이었다.(밑줄-인용자) 146) 유실몽 에서 주인공 철수는 돈을 요구하는 매형과 이를 거부하는 누 이간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 누이와 매형의 싸움을 말리기보다는 그저 웃어버린다. 이런 경우에 웃어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나 는 웃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지극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라 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그에게 웃음은 누이와 매부의 부부싸움으로 대변 되는 인간들의 운명적 비참함에 대한 유일한 대응방식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웃음이 누이의 삶에 대한 긍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적 인 것에 의해 지배되는 누이는 대표적인 동물적 인간인데, 인용문 (2)의 누이는 본시 고민이나 오뇌라는 것을 전연 모르는 기질이었다 는 표현 에서 드러나듯 철수는 그녀를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기질, 운명 적으로 심각해질 수 없는 기질의 소유자로 간주하고 그 자체로 긍정한 다. 벤야민에 따를 때, 희극은 흔히 도덕적 것과 관계있는 것으로 생각되 는 것 147) 과는 달리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한 인간의 성격, 기질이 표현되 는 영역이다. 운명의 영역이 자연적 삶을 죄진 삶으로 규정함으로써 발 생한다고 할 때, 희극적 인물은 인간의 자연적 삶이 그 자체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는 관점에 입각해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하게 그 인물 146) 손창섭, 유실몽, pp ) 그 대표적인 예로 희극적인 것에 대한 베르그송의 견해를 들 수 있다. 베르그송은 희극적인 것이 근본적으로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있어 생명적인 것이 기계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전환될 때 발생한다고 보고 그 궁극적 효과는 사회적 차원에서 이 러한 기계적이고 경직된 것을 교정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H. Bergsong(김진성 역), 웃음 : 희극의 의미에 관한 시론, 종로서적, 1993 참조.

131 제2장 신화적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우울자와 희극성 133 의 기질을 표현하는 데서 창조된다. 148) 낙서족 의 도현의 무모한 용감 성이나, 유실몽 의 누이의 동물적 본능이 그 자체로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한 기질로서 간주되는 데서 드러나듯 손창섭 소설에서 희극성은 도 덕적 올바름과 상관없이 인간존재의 기질을 드러내는 영역으로서, 죄를 강요하는 운명에 대항하여 인간존재의 무구성을 표현하고 있다. 키에르 케고르는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삶을 종교적 삶으로 지양하려 하고 침묵 과 권태를 악마적인 것이라 하여 부정하지만, 운명의 가공할 힘을 발견 하면서도 자신의 죄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손창섭은 역으로 악마적 인 것, 악마적인 성격의 심미적 슬픔을 통해, 그리고 자연적 삶에 대한 긍정에 기초한 희극성의 창조를 통해 신화적 운명에 저항하고 있는 것 이다. 148) W. Benjamin, Fate and Character, pp

132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 超 人 에 대한 추구와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 1) 非 人 과 초인사상 손창섭의 소설이 동물적 인간의 묘사에서 시작된다면 장용학의 소설 은 非 人 에 대한 묘사가 핵심이다. 장용학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미치거나 1) 할 뿐 정상적인 인물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다. 작가 자신은 이러한 인물들을 비인 이라고 칭하고 세계 와 비인 사이의 극단적 대립과 파국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본 연구는 장용 학 소설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관념적 진술과 알레고리가 비인 에 대한 장용학의 지향에 기초한 결과라고 본다. 비인 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일 차적 과제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주목해야 할 것이 장용학 소설의 특성으로 지적되어 온 관념성, 즉 작중인물이나 화자에 의해서 제시되는 관념적 진술이다. 장용학은 작중인물과 화자를 통해서 다양한 관념적 진술을 개진하는 데, 크게 성서, 니체, 사르트르의 담론이 차용되고 있다. 2) 문제는 어느 1) 김현, 에피메이드의 역설, 현대한국문학전집4, 신구문화사, 1968, p.414.

13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35 것이 주도적 담론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존의 연구는 사 르트르의 구토 에 의해 영향받았다는 작가의 증언에 입각하여 주로 사 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중 인물의 관념적 진술들 자 체가 구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특히 사르트르의 주저인 존재 와 무 를 중심으로 한 초기 사상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기에 장 용학의 소설이 최소한 표피적인 이해를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용학은 사르트르 이전에 니체의 사상 특히, 선악을 넘어서, 도덕의 계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서 개진된 사상에 더욱 깊 게 영향받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 장용학은 요한詩集 은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고 쓴 첫 작품이 된다 4)라고 진술하고 있지 만, 요한詩集 ( 현대문학, )은 물론이고 그것이 발표되기 전의 그 의 초기작들, 人間의 終焉 ( 문화세계, ), 復活未遂 ( 신천지, ), 肉囚 ( 사상계, ) 등에서 이미 니체의 사상이 직접적으 로 제시되고 있다. 善惡의 대립은 生 以前의 假定이다. 人類는 自虐이 아니다! 生과 惡이 양립할 수 있는 地域이 어디에 있어야 한다!( 인간의 종언 ) 人間은 결코 神의 거룩함을 증명하기 위한 손잡이가 아니었다. 正義를 위하여 모랄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외다.( 부활미수 ) 밀희, 나는 내려간다. 이렇게 해서 나의 不降은 시작되었다. 해는 중천에 걸렸고,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더 험했다.( 육수 )5) 2) 김송현, 장용학론 : 태양의 아들까지, 현대문학, ) 니체의 영향을 지적한 글로 김송현의 장용학론: 태양의 아들까지 ( 현대문학 )와 김윤식의 90년대 연구진과 알레고리론 ( 문예중앙, 1996 겨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단편적인 언급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실증과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 다. 4) 장용학, 실존과 요한시집, 한국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0, p.400.

134 13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인간의 종언 에서 갑작스런 나병 선고로 절망에 사로잡힌 尙 和 는 살기 위해 어린아이의 간이라도 먹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데, 이때 선악 의 대립을 부정하고 생과 악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선악을 넘어서 에서 개진된 내용, 즉 선과 악이라는 상반되는 가치의 대립에 대한 믿 음 이 형이상학자의 신앙이라고 비판하면서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려면 우리의 악을 우리가 가진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용 기를 가져야 한다 라는 주장의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6) 부활 미수 의 성직자 許 準 이 스스로를 시련에 의하여 신을 볼 수 있다고 믿 는 한 금욕주의자 로 칭하는 것이나, 극한 상황에서 먹을 것을 미끼로 간음을 자행하는 뱃사공을 신의 이름으로 살해하고 결국은 신을 부정하 면서 모랄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성직자의 이상을 금욕주 의에서 찾고 금욕주의 도덕 신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장하는 도덕 의 계보 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육수 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시되는 나의 不 降 은 시작되었다 의 不 降 은 下 降 의 오자 로서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의 직접적 차용이라고 할 수 있다. 7) 이 외에도 비록 니체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는 않지만,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노예근성을 반 어적으로 비판하는 羅 馬 의 달 ( 중앙일보, 1954)이나, 전란의 와중에 술집여인으로 전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찢어진 옷은 입지 않으려는 芝 蘭 에서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서술하는 그늘지는 斜 塔 ( 신천지, ) 등은 노예와 귀족의 대립을 상정하고 민주주의를 노예도덕의 표 5) 인간의 종언, 문화세계, ( 한국문학대전집13, 태극출판사, 1976, p.425) ; 부활미수, 신천지, , p.179 ; 육수, 사상계, , p ) F. Nietzsche(김훈 역),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82, p.26, p.96. 7) F. Nietzsche(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p.18. 몰락 의 원어는 der Untergang으로서 하강 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자기 초극을 의미한 다는 점에서 (이전 자기의) 몰락 이라는 번역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13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37 현으로 보는 니체의 사상을 참조하지 않는다면 그 생경함을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장용학의 초기작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니체의 사상은 이후의 死 火 山 (1954), 요한 詩 集 (1955), 非 人 誕 生 (1955), 易 姓 序 說 (1958), 現 代 의 野 (1960), 圓 形 의 傳 說 (1962) 등에서 중심적 사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 은 장용학의 비인 의 근간을 이루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등에서 우 열 의 구별이 귀족의 도덕이라면 현재의 선 악 구별은 원한 감정에 따라 이를 전복시킨 노예의 도덕이라 보고, 생의 회복을 위해서는 철저한 가 치전환을 통한 초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기 초극을 통해 선악의 구별을 넘어선 자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가르치고자 하 는 능동적 허무주의자, 즉 초인(der Übermensch)이다. 장용학은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인물상을 非 人 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초인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손금이 손이 아닌 것처럼 人 間 性 이 人 間 이 아니었다! 人 間 性 이란 人 間 의 一 面. 그 一 面 을 가지고 人 間 을 덮을 때 人 間 은 病 들고 倭 小 해지고, 欺 瞞 과 懶 怠. 反 人 間 이 된 것이다! 反 人 間 으로 봤을 때 非 人 이 人 間 이다! 人 間 은 人 間 이 되기 위해 非 人 이 되어야 한다! 人 間 性 을 破 棄 하고 人 間 으로 돌아가야 한다!(밑줄-인용자) 8) 니체는 노예도덕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최후의 인간(last man)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초인이 非 人 (der Unmensch)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면 8) 장용학, 역성서설, 현대한국문학전집4, 신구문화사, 1968, p.299.

136 13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서 9) 초인의 또 다른 이름으로 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장용학 역시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왜소하고 병든 반인간, 즉 노예도덕에 머물 러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정한 의미의 인간, 즉 초인은 비인이라는 논리 속에서 비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장용학의 작중인물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역성서설 의 비인 역시 니체의 초인 에서 유래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용학 자신은 요한시집 이 사르트르를 수용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진술하고 있지만 작품 내용을 검토해볼 때, 사르트르를 수용한 흔적이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육수 부터이다. 보통학교 四 학년 때의 일이다. 곡간에 몰래 거울을 들고 들어가서 반창 고( 絆 瘡 膏 )를 입술 거기에 붙이고 에노구로 살색처럼 칠한 다음 거울을 들 여다보면 알고 보면 알 수 있는 정도이고, 8메타쯤 떨어진 데서는 전연 분 간할 수가 없었다. 8m. 어떻게 이 팔메-타를 메꾸어 버릴 수 없을까? 박쥐 처럼 사람도 밤에 사는 것이면 된다. 사람도 개미처럼 조그만 동물이 되면 된다. 10) 육수 의 주인공은 헤청이 로 태어나 자신의 불구성에 대해 부끄러 움을 느끼고 8m의 거리 를 어떻게 메꾸어 버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 8m 의 거리란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인공은 한 차례의 자살 시도 후 이러한 의식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깨달음, 9) 니체는 도덕의 계보 에서 나폴레옹을 찬양하며 그를 나폴레옹, 이 비인Unmensch 과 초인Übermensch의 종합인 존재 (F. Nietzsche, 도덕의 계보/이사람을 보라, 청하, 1997, p.62)라고 규정하며 즐거운 지식 에서는 노예 도덕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인간적-초인적 이상이 종종 비인간적으로(unmenschlich) 보인다. (F. Nietzsche, 즐거 운 지식, 청하, 1998, p.362)라고 서술하고 있다. 10) 장용학, 육수, 사상계, , p.162.

13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39 즉 입술이 내가 아니다. 내가 내다! 보이는 내가 내 아니고 보는 내가 내여야 한다 11) 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에서 대타 존재로서의 인간이 타자에 의해 즉자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 을 시선 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술하면서, 6m의 거리 라는 비유를 사용 한다. 12) 이때의 -m의 거리 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가능성이 고 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육수 의 8m의 거리 는 사르트르의 비유와 의미 내용에 있어서 정확히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실증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장용학은 니체를 먼저 수용 하였으며, 그 이후 사르트르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니체에서 비롯되는 초인, 즉 비인에 대한 지향이 이처럼 육수 에서부터 나타나는 사르트르의 수용에 어떻게 작용하였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하여 야 할 것이 죄의식 에 대한 비판이다. 絶 無 에의 滅 亡. 古 代 가 그것이었다. 古 代 는 大 海 였고 峻 嶺 이었다. 古 代 人 은 神 에게 항거할 줄 알았고, 神 은 人 間 에게 그 自 由 를 주고 있었다. 그 의 권한은 罰 에 그쳤다. 近 代 의 神 처럼 罪 를 빌려 주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왜 나는 이런 罰 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懷 疑 란 것이 없었다. 그들은 완전한 犯 罪 人 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神 은 巨 人 의 沒 落 이었고 和 解 의 女 神 이었던 것이다.(밑줄-인용자) 13) 사화산 에서 전우의 오발로 맹인이 된 주인공은 사랑하는 제자 梨 11) 장용학, 육수, p ) 사르트르에 따르면. 타자의 출현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가능성이 고착되는 것, 즉 자신의 거리없는 현전이 타자의 거리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 면서 -m의 거리 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J. P. 사르트르(손우성 역), 존재와 무 Ⅰ, 삼성출판사, 1993, p ) 장용학, 사화산, 문학예술, , p.49.

138 14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那 마저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梨 那 가 있던 이북으로 향한다. 그 여정에서 환상과 다양한 사변이 제시되는데, 인용문은 그 중 하나로 서 장용학 소설이 죄의식 비판 을 주장할 때 그것의 구체적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고대의 신)의 권한은 벌에 그쳤다. 근대의 신처럼 죄 를 빌려주는 것은 하지 않았다 라는 진술은 장용학이 니체의 도덕 비판 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니체는 벌과 죄의 구별을 통해 선 악의 노예 도덕이 형성되는 과정을 규명한다. 벌 (punishment)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타자에 대한 단순한 보상 행위를 의미한다면, 죄(guilt)는 죄의식의 내면화를 수반한다는 특징이 있 기에, 이를 통해 선 악의 노예도덕이 형성된다 14) 장용학이 사화산 은 물론 부활미수, 인간의 종언 등에서 노예도덕을 비판할 때, 핵심은 죄의식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이는 이상과 같은 니체의 노예도덕 비판에 입각할 때만 설명 가능해진다. 장용학의 죄의식 비판은 사르트르의 존 재와 무 에서의 염세주의적 죄 개념, 즉 죄의식은 극복되어야 하지만 결 코 극복될 수 없다는 관점만으로는 결코 해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르 트르의 영향 하에 있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요한시집 역시 예외는 아니다. (1) 싸로메 알지? 요한의 모가지를 탐낸 그 여자 말이야. 그 계집 이었어! 하고 내 몸을 툭 떠밀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할거리는 것 이었다. 나의 열매는 익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열매를 감당할 만큼 익지 못했다. 영원히 익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날개가 없다. 내 육체 는 강간을 당한 것처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흐므러지는 것이었다. 그 반 역자의 시체에는 즉시 복수가 가해졌다. 그가 그렇게까지 잔인한 복수를 14) F. Nietzsche(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청하, 1997, pp

13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41 받아야 할 까닭은, 그가 인민의 영웅이었다는 것과 그가 죽기 전에는 감히 그에게 더는 손을 대지 못했다는 것 이외 찾아볼 수가 없었다.(밑줄-인용 자) 15) (2) 있을 수 있는 일은 무수이다. 그 무수의 可 能 性 이 하나의 偶 然 에 의 하여 말살된 자리가 存 在 이다. 따라서 存 在 는 죄지은 存 在 이다. 生 속에서 는 죄지었다는 것은 죄지을 것을 의미한다. 存 在 는 犯 罪 이다. 그 總 目 錄 이 世 界 이다. 世 界 는 犯 罪 의 所 産 이고 人 生 은 그 犯 罪 者 였다. 산다는 것은 죄 짓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여기에 앉아 있 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을 떠밀어 버리고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그들에게 밀려나갈지 모른다. 순간, 순간, 무수의 가능성이 자 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存 在 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可 能 性 앞에 떨고 있는 戰 慄 인 것이다. 이 戰 慄 을 잠자고 있는 世 界 에서는 自 由 라고 한다. 그대로 잠자코 있을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 어둠 속에서 고양이는 상기도 나를 노리고 있다. 나는 그의 주인을 죽인 것이다. 노파는 내가 죽 인 것이다. 저 눈이 저기서 저렇게 나란히 빛나고 있는 한 나는 殺 人 者 인 것이다.(밑줄-인용자) 16) 요한시집 은 차라투스트라의 언급들과 이미지들을 여기저기서 빌려 오는데,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누혜가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마지막 말이 나의 열매는 익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열매를 감당할 만큼 익지 못했다 라는 점은 특히 중요하다. 이 구절은 누혜의 정체를 밝히는 데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구절로서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의 열매들은 익 었다. 그런데도 너 자신은 아직 이들 열매를 거둬들일 만큼 익지 않았으 니! 17) 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이때 열매란 초인사상이며 익지 못했음 15) 장용학, 요한시집, 현대문학, , p ) 장용학, 요한시집, p.81.

140 14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은 초인사상을 가졌으되 최종단계인 어린아이의 무구함에 아직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차라투스트라가 낙타(체념), 사자 (신과의 대적), 어린아이(망각, 쾌락) 중 신과 대적하면서 죄의식 없는 무 구함의 상태, 즉 어린아이의 단계로 초극해야하는 사자의 단계에 있음을 지시한다. 18) 누혜는 이 단계에서의 차라투스트라, 즉 초인의 변호자이면 교사인 차라투스트라 19) 를 의미하며, 동호는 그의 죽음에서 초인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다. 누혜가 전신을 꾀하던, 포로 수용소가 있는 섬 은 물론 동호가 도착한 육지 모두 초극해야 할 장소로 제시된다는 점에 서 동호와 누혜는 모두 궁극적으로 초인을 지향하는 같은 종류의 인간 이라 할 수 있다. 인용문 (2)는 요한시집의 결말 부분으로서 누혜, 동호가 초극해야 할 대상이 궁극적으로 죄의식임을 표현하고 있다. 동호는 의용군으로서 전 쟁에 참전하여 폭탄을 맞고 여기저기 살이 찢어져 피를 줄줄 흘리면서 닭다리를 손에 꼭 쥔 채로 일요일의 포로 가 20) 되며, 잔혹한 포로수용 소 생활을 거쳐 본토로 돌아오지만 본토, 즉 전후 현실 속에서도 누혜 어머니의 참혹한 생활과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에서 돌아왔음에도 불구 하고 전쟁의 잔혹한 폭력은 전후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 도 동호는 전쟁의 잔혹한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는 그 자신의 잘못된 행위의 결과에 대한 죄의식이 아니라 살아남음 자체에 대한 죄 의식을 갖게 된다. 장용학은 이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사르트르의 죄 개념, 즉 타자의 가능성을 말살한 것이 존재이기에 존재는 죄악이다 라 17) F. Nietzsche(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 G. Wohlfart(정해창 역), 놀이하는 아이 예술의 신 니체, 담론사, 1997 참조. 19) M. Heidegger, Who is Nietzsche s Zarathustra?, Nietzsche Critical AssessmentsⅠ, ed. D.W. Conway, Routledge, 1998, p ) 장용학, 요한시집, p.60.

14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43 는 사상에 입각해 서술하고 있다. 인용문(2)의 전반부의 관념적 진술은 사르트르의 이와 같은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이때의 사 르트르의 사상이 근본적으로 염세주의적 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는 점이다. 존재와 무 에서 죄의식은 자신이나 타자를 객체나 도구, 즉 즉자적 존재로 전락시킬 때 발생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를 지니며 극복되어야 할 의식으로 규정된다. 그럼에도 사르트르는 존재 자체가 죄 지은 존재로 간주하고 이러한 극복의 노력을 매번 실패하는 것으로 간 주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염세주의적 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 반면 장용학은 인용문의 후반부에서 이 죄의식 속에서 잠자코 있을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를 질문한다. 사르트르가 죄를 대타존재라는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염세주의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반면, 장용학은 이러한 죄의식, 존재는 죄악이다 라 는 사르트르의 명제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는 죄의식의 초극을 주장하는 니체 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시집 에서 제시되는 자유의 개념의 경우 다소 불명료한 면이 없 지 않지만, 크게 보아 사정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요한시집 이 사르 트르의 자유 개념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바탕 에는 보다 근본적인, 자율적 주체 개념에 대한 니체의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 누혜는 아침 조회 때 천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똑같은 단추를 달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 앞에 현기증 을 느끼고 자율을 추구하며, 공산당이 21) 사르트르의 염세주의적 죄 개념은 원죄는 타인이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 속에 나의 출현이다 는 규정에서 드러나듯 대타존재가 원죄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 나는 타자에 대해서 나의 존재 자체 속에서 죄지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나의 존 재의 출현은 타자에 대해서 그의 뜻과는 반대되게 하나의 새로운 존재 차원을 부여 하기 때문이다 (J. P. Sartre, 존재와 무Ⅱ, 삼성출판사, 1993, p.158, p.159)라는 진술 에서 잘 드러난다. R. Frondizi, Sartre s Early Ethics, The Philosophy of Jean-Paul Sartre, ed. P. A. Schilpp,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1981 참조.

142 14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인민의 적을 죽임으로써 인민을 만들어 내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다른 데를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22) 라는 회의 속에서 전쟁에 참여한다. 그 는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데, 이때의 자유란 인간의 실존 내지 주체 성을 억압하는 근대의 메카니즘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며, 이를 표현 하기 위해 사르트르의 논리가 차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혜 의 유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죄 개념에서 마찬가지로 자유 자체에 대 한 초극을 주장한다. (1) 自 由 가 있는 한 人 間 은 奴 隸 여야 했다! 自 由 도 하나의 數 字, 拘 束 이 었고 强 制 였다.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뒤 의 것이었다. 神, 永 遠, 自 由 에서 빚어져 생긴 이러한 뒤에서 온 說 明 을 가지고 앞으로 올 生 을 잰다는 것은 하나의 屠 殺 이요 冒 瀆 이다. 生 은 說 明 이 아니라 權 利 였다! 迷 信 이 아니라 意 欲 이었다! 生 을 살리는 오직 하나의 길은 神, 永 遠 自 由 가 죽는 것이다! 自 由 그것은 진실로 뒤에 올 그 무슨 眞 者 를 위하여 길을 외치는 豫 言 者, 그 신발끈을 메어주고 칼에 맞아 길가에 쓰러질 요한 에 지나지 않았다. 23) 인용문은 누혜의 유서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자유 에 대한 누혜의 최 종적인 의식을 보여준다. 신, 영원 자유에서 빚어져서 생긴 이러한 뒤에서 온 설명 이라는 구절을 고려할 때, 이때의 자유는 신이나 영원 등의 본질을 미리 상정하는 자유 개념을 의미하는바, 사르트르의 관점에 입각해 당연히 비판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대자존재이 며, 이 대자존재가 즉자 존재를 끊임없이 무화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는 22) 장용학, 요한시집, p ) 장용학, 요한시집, p.79.

14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45 사실에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자유라고 주장한다. 이에 입각할 때, 본 질을 미리 상정하는 자유 개념은 인간 외부에서 자유의 기원을 찾는 것 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24)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 유가 있는 한 인간은 노예여야 했다! 라는 주장, 즉 자유를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초극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자유를 지향하는 한 노예로 남 을 수밖에 없다는 의식은 자율적 주체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을 시사한 다고 볼 수 있다. 사르트르와 니체는 모두 객관적 가치 덕목을 부정하는 情 意 主 義, 즉 모든 가치 평가적 판단 또는 모든 도덕적 판단은 선호의 표현들, 태도 및 감정의 표현들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입각해 있지만 25) 사르트르가 선택과 책임의 자유를 주장하는데 반해 니체는 그것의 기초 가 되는 책임, 자율적 주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근본적 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 자체의 초극을 주장한다는 것은 장용학이 사르 트르의 견해를 넘어서 주체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음 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니체의 견해에 따를 때, 죄의식과 자율적 주체 개념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죄의식은 원래 하나인 행위와 주체를 둘로 분리시키고 목적과 수단, 원인과 결과를 계량하는 자율적 주체 개념을 만들어 내어 주체에 게 행위의 책임을 지움으로써 발생한다는 점 26) 에서 자율적 주체 개념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죄의식에 대한 초극은 곧 자율적 주체 개 념에 대한 초극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요한시집 이 죄의식 및 자유 자 24) 존재와 무 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자유 개념은 주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자 유 개념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대자존재로서 존재론적으로 자유라고 주장하면서, 자유에 대한 결정론적 관점에 대해서는 인간 실재를 즉자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에 서 비판하고, 자유의지론에 대해서는 근원적인 존재론적 자유에 의해 지탱되는 심 적 사건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J. P. Sartre(손우성 역), 앞의 책, pp ) A. Maclntyre, 덕의 상실, 문예출판사, 1997, p ) F. Nietzsche(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p.66.

144 14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체를 초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니체의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서 사르트르의 논리를 니체의 논리에 입각해 수용, 극복하고 있음 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 입각할 때, 자유 자체에 대한 초극을 주장하는 앞의 인용문 바로 뒤에 제시되는 다음 인용문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여기는 땅의 끝. 온 시간 과 올 시간 이 이어진 매듭. 발톱으로 설만한 자리도 없다. 여기는 境 界 였다. 그러나 얼마나 넓은 세계이냐. 이 沃 土, 生 産 의 안뜰. 時 間 과 空 間 이 여기서 흘러나가는 混 沌 이 세계에는 二 律 背 反 이 없다. 무수의 律 이 마치 穹 의 星 座 처럼 서로 범함 없이, 고요한 詩 의 밤을 밝히고 있다. 王 者 도 없고 奴 婢 도 여기에는 없다. 憂 慮 가 없다. 그러니 妥 協 이 없다. 風 習 이 없으니까 頹 廢 가 없다. 萬 物 은 스스로가 자기 의 原 因 이고, 스스로가 자기의 자( 尺 )이다. 太 陽 이 반드시 동쪽에서만 솟아 야 할 이유가 여기에는 없다. 늘 새롭고 늘 아침이고 늘 봄이다. 아아 젊은 大 陸.(밑줄-인용자) 27) 인용문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초극하는 순간에 대한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장용학은 스스로가 자기의 자이다. 해가 꼭 동쪽에서 솟 을 필요가 없다 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순간을 인과율에서 벗어 나서 생에 대한 긍정에 도달한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올 시간과 온 시간의 매듭 이란 생에 대한 긍정에 도달했을 때의 영원회귀의 순간을 의미하는데, 원인과 결과를 계량하는 데서 자율적 주체 개념이 발생한다 고 할 때 이는 곧 자율적 주체의 붕괴의 순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7) 장용학, 요한시집, pp

14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47 고대 그리스 신들과 영웅들을 모델로 한 니체의 초인 은 단일한 규범 에 대한 어떠한 순응도 거부하는 인물이다. 초인은 다양한 해석에도 불 구하고 자기 초극에의 의지, 고통 속에서도 생에 대한 긍정에 도달하는 영웅적 비극성 등의 28) 특성을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장용학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죄의식과 자 유 개념에 대한 초극의 노력은 그들이 끊임없이 자기 초극에 이르려는 초인 사상, 즉 능동적 허무주의에 기반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초인은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는 조절적 개념, 즉 끊임없는 자기 초극에 의 의지로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는데 29), 죄의식과 자유 개념에 대한 장용학의 변용, 즉 니체의 사상에 입각한 사르트르의 수용은 조절 적 개념으로서의 초인 사상에 입각해 자기 나름의 인간상을 모색해 나 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과 부정적 역사철학 장용학 소설이 추구하는 비인 이 자기 초극을 핵심으로 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 즉 능동적 허무주의에 입각해 있으며, 사르트르의 수용 역시 28) 카우프만에 따르면 초인(Übermensch)이라는 개념은 기원후 2세기에 최초로 등장하 였으며, 괴테가 파우스트를 가리킬 때 사용한 바 있다. 니체는 일신교의 단일 규범 이 범용한 인간(Normalmensch)을 산출할 뿐이라는 인식 하에 다신교의 전통과 결부 시켜 자신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했다. 초인 개념은 영원회귀, 권력의지 등과 더불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표현이 이루어진다. W. Kaufmann, Overman and Eternal Recurrence, Nietzsche: Philosopher, Psychologist, Antichri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참조. 29) 하이데거는 니체의 초인이 권력의 무조건적 강화를 추구하는 자로서 모든 내용적 인 목표정립을 잠정적이고도 비본질적인 것으로 허용할 뿐,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 신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무규정성이야말로 초인의 최고의 본질이라고 주장 한다. M. Heidegger, 니체와 니힐리즘, 지성의 샘, 1996, p.187 ; J. Golomb, In search of Authenticity : From Kierkegaard to Camus, Routledge, 1995, p.83.

146 14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할 때, 여전히 문제로 남는 것은 그 러한 사상과 인물 형상이 궁극적으로 한국전쟁을 전후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떠한 생산적 결과를 산출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한국 전쟁을 전후한 역사 속에서 겪게 된 대재앙(Catastrophe)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장용학에게 한국전쟁이란 근대의 재난성이 폭발한 대파국을 의미하였다. 이에 입각한 부정적 역사철학과 대파국의 체험이 초인을 지향하는 비인의 형상을 가능케 한 근본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 다. 손창섭이 재난으로서의 근대성 체험에서 발생하는 심미적 슬픔을 표 현하고 있다면, 장용학은 근대의 재난성과 그로 인한 충격체험을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작품 속에 서 직접적으로 형상화되는 방식을 살펴 본 후, 둘째, 그 바탕에 놓여 있 는 장용학 특유의 역사철학과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의 관계를 규명 하고, 마지막으로 앞서 서술한 니체의 사상이 장용학 소설에서 핵심적인 사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의 관계 속에 서 규명하고자 한다. 우선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그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형상 화되는 방식부터 살펴본다. 유종호가 체홉의 예를 들면서 19세기적 리얼 리즘을 요구할 때 30), 장용학이 얼마 전에 네이팜탄이라는 것이 떨어지 던 푼수로 보아서는 그렇게 태평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31) 라고 대답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장용학은 196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를 궁극적으로 언제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 로 파악하고 있었 다. 그의 작품은 한국전쟁과 전후현실에서 비롯된 이러한 시대의식의 직 접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인에 대한 추구가 직접적으로 제 30) 유종호, 무소유, 문학춘추, , p ) 장용학, 편리한 비평정신, 문학춘추, , p.237.

14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49 시되는 작품들의 경우 한결같이, 주인공이 자신의 행위나 죄와는 무관하 게 일상적 상황을 넘어선 재난의 희생자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주인공들은 나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선고받거나( 인간의 종언 ), 폭풍우 로 바다에 표류한다( 부활미수 ). 또한 전쟁 중에 전우의 오발로 장님이 되거나( 사화산 ), 전쟁과 포로수용소의 잔혹성을 체험하며( 요한시집 ) 겁탈로 인해 사생아( 원형의 전설, 日附變更線近處 )로 태어난다. 원 형의 전설 의 李章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현만우를 찾아갔 을 때, 현만우는 이장의 어머니 오기미가 누군가에 의해 겁탈 당한 사건 에 대해 재난이다. 길 가다가 자동차에 치어 다리를 하나 떼인 것 같은 재난 32)이라고 표현하며, 세계사의 하루 의 如惠가 오빠인 在明을 살 리기 위해 인민군 장교에게 몸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약 혼자 商大 역시 여혜에게 닥친 사건을 재난 33)이라고 주장한다. 폭풍우 로 인해 바다에 표류하였을 때, 그 화난을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시 련 34)이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신의 부정에 이르는 부활미수 로부 터 원형의 전설, 세계사의 하루 에 이르는 장용학의 거의 모든 작품 들은 재난에 대한 의식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초인을 지향하는 비인들 은 일차적으로 모두 죄 없이 재난에 희생된 자들로서, 그들에게 세계 즉 근대 는 일상적 세계라기보다는 언제 네이팜탄 이 떨어질지 모르는 대 재앙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 무슨 김에 이리로 돌린 반장의 그 약한 강자만이 가지고 있는 번들 번들하면서 찌그러진 表情. 그 찰나였다. 斷絶이었다. 꽝! 時間과 空間을 破片처럼 날리고 행하니 몸둥아리가 방바닥에 딩굴었다. 요란스러히 그릇 32)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 ) 장용학, 세계사의 하루, 한국문학, , p ) 장용학, 부활미수, 신천지, , p.171.

148 15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 깨어지는 소리 양푼이 구르는 소리 기둥의 사개가 빠지는 소리, 또 무 슨 소리, 도깨비의 칼춤이 주위를 지배했다. (중략) 孤 島 의 생활이고 땅바 닥을 의지하는 穴 居 生 活 이었다. 地 上 의 主 人 公 이 바뀌어진 것이다. 人 道 가 없어지고 彈 道 가 그물을 쳤다. 自 由 를 위하여 正 義 를 위하여 恒 久 的 인 平 和 를 위하여 그러나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孤 島 나 洞 窟 속에서 사 람들은 시시각각으로 動 物 로 動 物 로 돌아가고 있었다.(밑줄-인용자) 35) (2) 最 後 의 날. 하늘을 밀고 덮어드는 B-29의 편대. 기러기처럼 줄지어 떨어지는 폭탄 꽝! 꾸르륵, 꽝! 하늘을 솟아오르는 시꺼먼 불기둥의 亂 立. 땅을 뜯어내고 공기를 녹여낸다. 地 上 은 斷 末 魔 의 悲 鳴 과 世 界 의 終 末 을 고하는 幻 影 이 차지했다. 그 속으로 이리 뛰어 보고 저리 뛰어보고 하 다가 꺼구러지고 쓰러지고 타고 하는 市 民 의 絶 望. 등뒤에서는 이리 같은 共 産 主 義 가 총칼을 대었고 머리 위로는 사치스러운 自 由 主 義 가 폭탄의 비 를 쏟는다. 샛불에 떨어진 누에 같은 生 靈 들이었다. 간신히 餘 白 을 찾아 전 봇대를 기어오르는 할아버지의 흰 머리카락! (중략) 범벅이었다. 뭐가 뭔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인간과 기왓장의 차이점은 파편에 맞았을 때 한 쪽은 빨간 물을 흘리고 한쪽은 부스러지는 屬 性 을 나타낸다는 것뿐이다. 거기에 는 善 惡 의 구별도 없었다. 善 惡 의 江 이쪽이었다. 살에는 금이 서고 마음은 脫 臼 되어 버린 것이다.(밑줄-인용자) 36) 인용문 (1)(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과 인용문 (2)( 사화산 )는 초 기작에서 묘사된 폭격장면으로서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대재 앙에 대한 의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 제 는 전쟁으로 인한 갑작스런 윤리의 붕괴를 주제로 삼고 있다. 尙 株 는 인민군 간호부로 근무하다 피신해 온 여제자 英 愛 와 함께 다다미방 아 35) 장용학,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문예, , pp ) 장용학, 사화산, 문학예술, , pp

14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51 래에 숨어 지내게 되면서 스승과 제자의 윤리를 저버리고 남녀칠세부동 석, 어머니의 고생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영애를 내쫓으려 하며, 인민군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반장 아주머니는 유복스러운 귀부인 으로서의 자태를 잃고 상주의 집을 끊임없이 감시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상주는 서울 수복 후 반장 아주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귀부인으로 돌아온 것과는 달리, 영애에게 이제부터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자고 하 면서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라는 책을 몇 번이고 뒤적인다. 마지막 부분의 상주의 모습은 비록 수복이 되어 일상적 삶이 되돌아 와도 전쟁 으로 인해 발생한 스승과 제자, 이웃간의 윤리의 붕괴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는 작가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인용문 (1)은 반장 아주머니에게 영애가 발각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폭탄이 떨어지고 모든 사태가 무화되는 장면으로서 전쟁으로 인한 윤 리의 단절 이라는 주제의식이 폭격 시에 인간이 겪는 공포와 충격 체험 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애를 고발하려는 반장이나 용서를 비는 영애, 이를 목격하고 뛰쳐나오는 상주 등 모든 인간들간의 관계는 폭격의 순간에 무화되고 만다. 그들은 그 순간 다같이 전쟁이라는 대재 앙, 즉 인간의 이성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무차별적인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장용학은 폭격의 순간을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묘사한 다. 폭격의 순간은 첫째, 인용문 (1)의 그 찰나였다. 단절이었다. 꽝! 시 간과 공간을 파편처럼 날리고 행하니 몸둥아리가 방바닥에 딩굴었다 에 서 제시되듯 개체의 시공간 감각을 붕괴시키는 단절의 순간으로 묘사되 며, 둘째, 인용문 (1)의 동굴 속에서 사람들은 시시각각으로 동물로 동 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용문 (2)의 인간과 기왓장의 차이점은 파편에 맞았을 때 한 쪽은 빨간 물을 흘리고 한쪽은 부스러지는 속성을 나타낸 다는 것뿐이다 등에서 표현되듯 동물과 기왓장과 같은 존재로의 인간

150 15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의 전락, 즉 인간의 모든 가치와 의미가 붕괴되는 순간으로 묘사된다. 폭 격 장면의 핵심은 개체성과 모든 의미의 붕괴에 있고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에서 서술되고 있는 인간적 윤리의 붕괴 라는 주제는 이러한 붕괴와 단절을 윤리의 차원에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화산,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의 폭격장면은 한국전쟁의 체 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한국전쟁에 대한 장용학 고 유의 판단, 더 나아가 특유의 역사철학을 드러낸다. 인용문 (1)의 자유 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위하여 그러나 이런 소 리가 들리지 않는 고도나 동굴 속에서 사람들은 시시각각으로 동물로 동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용문 (2)의 등 뒤에서는 이리 같은 공산주 의가 총칼을 대었고 머리 위로는 사치스러운 자유주의가 폭탄의 비를 쏟는다 등은 재난의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한국전쟁을 합리화하는 모든 이성적 주장들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장용학은 한국전쟁에 대한 모든 이념적 규정을 부정하고 대재앙으로서의 체험만을 강조하고 있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라는 이와 같은 관점을 장용학은 매우 중시하여, 그것으로 인해 우리도 비로소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 게 되었다고 본다. 장용학이 백철과 김동리의 문학을 시대의 흐름에 뒤 쳐진 자연주의 문학, 향토문학이라 비판하는 데에는 세계사의 2대 사조 가 부딪친 한국전쟁을 계기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37) 는 강한 시대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세계사의 2대사조 가 아니라 세계 사의 흐름 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때의 세계사의 흐름이란 대파국 의 시대(Age of Catastrophe)로 규정될 수 있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전반의 인류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핵심 37) 장용학은 감상적 발언 에서 백철과 김동리의 자연주의, 향토문학을 벗어나 반자연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바탕에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동참이라는 시대 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감상적 발언, 문학예술, , p.172.

15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53 에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놓여져 있다. 전술한 바 있듯이 2차 세 계대전은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선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서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별 없는 대량 학살이라는 가공할 만한 현상, 영원한 재앙으 로서의 역사 라는 감각을 낳았다. 38) 장용학은 한국전쟁 역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세계사의 2대 사조 가 격돌한 세계적 규모의 전쟁 그리고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별 없는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인해 학살이 만연한 전쟁, 즉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이념적 규정을 비판하면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을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계기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대재앙으로서 파악하는 이와 같은 장용학의 관점은 한 걸 음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 자체에 대한 고유의 관점, 즉 부정적 역사철 학의 확립으로 이어진다. 인용문 (2)에서 주인공은 폭격의 순간에 최후 의 날, 세계의 종말을 고하는 환영 을 본다. 장용학은 한국전쟁을 인류 의 역사와 문명이 종말을 고하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 자체를 영원한 파국에 본질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대재 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생경하게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넘어서 일 정한 형식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요한시집 부터인데 39), 요한시집 의 환상적 장면은 부정적 역사철학, 즉 역사 자체에 의미를 두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비판하고 역사 자체를 영원한 파국으로 간주하는 역사철 학 40) 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8) A. Rabinbach, In the Shadow of Catastrophe : German Intellectuals Between Apocalpse and Enligtenment, pp.10-13, pp ) 장용학은 요한시집 에 대해 내가 예술이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은 여기에서였다 라고 진술한다. 그는 사상적 탐구 만 중요했던 초기작을 벗 어나 요한시집 에서부터 형식적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 장용학, 작가의 변, 새 벽, , p ) M. W. Jennings, The Permanent Catastrophe : Benjamin Philosophy of History, Dialectical

152 15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꿀꿀 꿀꿀 거리로 덮어든다. 뒤진다. 썩은 것을 훑는다. 기둥 뿌리를 훑 어낸다. 건물이 쓰러진다. 썩은 것을 훑으니 모든 것이 다 넘어진다. 백만 인구를 자랑하던 公 民 社 會 는 삽시간에 허어 벌판이 되었다. 꺼멓던 文 明 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여기저기에 딩군다. 서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 다. 죽었다. 都 市 는 죽었다. 無 意 味 를 意 味 로 돌려보내고 돼지의 대집단은 썰물처럼 지평선을 넘어 다음 類 廢 를 향해 꿀꿀 꿀꿀 울고 간다. (중략) 싫 건 울고 난 오후, 지상에는 맴이 우는 소리 이외 아무 움직이는 것도 없던 대낮의 아카시아 나무 그늘이 이러하였겠다. 고요하다. 깊다. 故 鄕 은 깊다. 더 깊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요한 대로 언제까지 있을 수 없다. 한편으 로는 벌써 소란해지고 있었다. 낙원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푸드득 푸 드득 하늘로 날아오르는 부엉새의 떼무리. 눈먼 새의 뒤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다. (중략) 저 망측스런 것들이 이제 좀 있으면 뷔너 스 를 찾고 그 앞에 祭 壇 을 세운다. 주문을 몇 번 뇌까리면 땅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自 我 가 눈을 뜬다. 그 눈가에 工 場 이 서고, 그 연기 속에서 二 층 건물이 탄생한다. 그 共 和 國 은 만세를 부르는 市 民 들에게 自 由 를 보장하는 鑑 札 을 나누어준다. 바깥세계에서는 눈이 시름없이 내리고 있는데, 이런 歷 史 는 그만하고 그쳤으면 좋겠다. 41) 인용문은 동호가 누혜 어머니의 손에 붙잡혀서 촉각을 통해 그녀의 죽어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지각할 때, 공포 속에서 환상을 보는 장면 이다. 인류사는 돼지 에 의해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한차례의 고요 이후 또다시 이성과 자유에 의하여 문명 건설이 이루어 지는 반복적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용학은 인류사를 이성과 자유에 의한 문명 건설과 문명 파괴의 영원한 반복적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는 Images, Cornell University Press, 1987, pp ) 장용학, 요한시집, p.68.

15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55 데, 그 묘사에는 공장을 세우고 자유를 주장하는 문명건설과정에 대해 어떤 긍정적 시선도 존재하지 않으며, 새롭게 건설될 인간의 문명이 돼 지로 표상되는 인간 문명 자체의 파괴성에 의해 또다시 폐허로 전락하 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전제되어 있다. 문명 건설과 문명 파괴의 영원한 반복에서 강조되는 것은 문명의 건설이 아니라 문명의 파괴로서 장용학 은 역사 자체에서 어떤 긍정적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대재앙이 되풀이 되는 영원한 파국의 반복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역사는 그만하고 그쳤으면 좋겠다 라는 동호의 생각은 역사에서 어떤 긍정적인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고 영원한 파국만을 볼 때, 역사 자체의 중지에서 구원을 찾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부정적 역사철학 이 궁극적으로 역사 자체의 파괴를 지향한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대 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서 비롯되는 이상의 부정적 역사철학은 그의 작품 전체에서 표현되는 역사관이다. 인간의 문명에서 야만을 발견하는 최초의 작품 戱 畵 는 이미 부정적 역사철학의 단초를 표현하고 있으며, 원형의 전설 의 역사 이후라는 상황 설정, 즉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전사가 종지부를 찍었다는 상황 설정은 역사의 중지를 지향하는 부정적 역사철학의 단적인 표현이다. 장용학의 이러한 부정적 역사철학이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그의 대표작인 요한시집 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장용학은 요한시집 을 창작하게 된 두 가지 계기로 실존주의 에서 배운 눈과 거제도의 전율 42) 을 들고 있다. 사르트르로 대변되는 실 존주의가 앞서 서술한 바 있듯이 더욱 근본적으로는 니체의 사상에 의 해 굴절되고 있다고 할 때, 요한시집 은 니체의 초인사상과 거제도의 전율 의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이 보았다 42) 장용학, 실존과 요한시집, 한국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2, p.401.

154 15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수기는 거제도 일기 : 석방 포로들의 피의 기 록 으로서 인육의 똥간 이라는 항목에서 서술된 내용은 누혜의 손을 변소 안에서 발견하는 장면과 정확히 일치하며, 특히 한인선이라는 우익 청년의 죽음과 유서는 누혜의 죽음과 유서를 서술하는 데서 발상의 단 초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1) 너무 아프면 울지도 못하는 것이 내가 눈으로 보아 온 사실이었으나 오늘의 H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비빨치듯 흘려나렸다. 그들도 H의 묵묵한 울음을 이상히 생각했는지 곤봉을 멈추고 이유를 물었다. 허나 H 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아무리 협박을 해도 별 위협을 다 해도 H는 눈 을 조용히 감은 채 때가 오기만 기다렸다. 죽음을 기다리는 H의 침착한 모 습은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인격 이었다. 43) (2) 나는 나의 갈 길을 정하였다.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너 희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사상도 주의도 모른다. 다만 같은 동포로서 동족으로서 이처럼 무자비한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인 간적인 비애와 인간적인 고민에 울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청산되었다. 수용소 내의 모든 동포들이여 잘 있거라. 다시는 또 이 땅에 동족의 비극이 없기를 1951년 9월 27일 한인선 44) 인용문 (1)은 한인선이 죽음에 이르는 장면으로서 적색포로들이 누혜 로 하여금 어느 한편에 서기를 요구하면서 몽둥이질을 하는 장면을 연 상시킨다. 적색포로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도 묵묵한 울음을 흘릴 뿐 끝 내 눈물의 이유를 말하지 않는 한인선처럼, 누혜 역시 그들의 요구에 어 43) 이한 편, 거제도 일기 : 석방포로들의 피의 기록, 국제신보사, 단기 , p ) 위의 책, p.39.

15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57 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소같이 몽둥이 세례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또한 인용문 (2)의 한인선의 유서의 날짜는 누혜의 일기의 서력 1951년 9월 일기 45) 와 연도, 달까지 일치하고 있다. 비록 추상적인 휴머니즘에 호소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나는 사상도 주의도 모른다. 다만 같은 동 포로서 동족으로서 이처럼 무자비한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라는 주장 에서 드러나듯 모든 사상과 주의를 부정하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인 간적 비애를 표현하는 유서 내용은 앞서 서술한 장용학의 한국전쟁에 대한 근본 규정, 즉 한국전쟁에 대한 어떤 이념적 규정도 부정하고 한국 전쟁에서 인간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만을 발견하는 관점과 일치한다 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이 거제도의 전율 이라고 할 때, 그 핵심 내용은 무고한 폭력의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파악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으 로서 요한시집 의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이와 같은 거제도의 전율 로 상징되는 대재앙의 전쟁 체험은 장용학 의 작품세계에서 작중인물을 재난의 무고한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을 넘 어서, 역사의 폭파라는 부정적 역사철학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했 으며 무엇보다도 비인 이라는 탈근대적 인간, 즉 시민적 인간성을 넘어 서는 인간을 추구하는 근본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다. 장용학의 작중인물 은 능동적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니체의 초인사상, 그에 입각한 사르트르 수용의 결과물인데, 작중인물을 통해서 제시되는 다양한 관념적 서술은 근본적으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그에서 비롯되는 근대의 재난성 에 대한 사상적 표현으로서 사르트르가 아닌 니체의 사상에 입각할 수 밖에 없었다. 대재앙의 체험은 앞서 제시한 폭격장면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 45) 장용학, 요한시집, p.80.

156 15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듯이 개체의 시공간 감각을 붕괴시키는 단절과 모든 의미의 붕괴에 핵 심이 있는데, 니체의 사상에 입각한 작중인물들의 자기 초극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개체성의 붕괴와 의미의 붕괴에 기초해 있다. 사 화산 의 폭격 장면에서 장용학은 폭격의 순간을 거기에는 죄악의 구별 도 없었다. 선악의 강 이쪽이었다 46) 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선악을 넘어서야 한다는 자기초극의 논리가 선악의 구별이 무너진 폭격 순간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기 초극의 사상은 대재앙의 순간 의 개체성 과 의미 붕괴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되며 그 체험에 입각하 여 그 구체적인 논리가 개진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고자 하는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가 치의 몰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비판하고 오히려 가치의 몰락을 촉진하여 현존재의 신성화, 즉 영원회귀의 구원에 도달하고자 한 다는 점에 47)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용학에게서 대재앙의 순간의 의미 의 붕괴 는 바로 니체가 유럽 니힐리즘에서 발견한 가치의 몰락이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을 의미하고, 그로 인해 자기 초극 의 직접적 계기가 된다. 또한 대재앙의 순간의 개체성의 붕괴 는 가치의 몰락을 의식적으로 촉진시키려는 시도의 궁극적 도달점, 즉 선악을 초월 한 상태의 원형으로 제시된다. 장용학은 대재앙의 체험으로 야기되는 개 체성과 의미의 붕괴에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의 결과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 46) 장용학, 사화산, p ) 하이드브링크에 따르면 니체의 초인 사상은 유럽의 니힐리즘에 대해 이성을 통하 여 교정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오히려 가치의 붕괴를 의식적으로 촉진하고 자 시도이다. 그 결과 니힐리즘은 어느 순간 현존재의 신성화 즉 영원회귀의 구원 으로 급변하는데, 장용학의 자기초극의 논리 역시 이와 동일한 사상적 기초에 입각 해 있다고 할 것이다. L. Heidbrink, Melancholie und Mderne, München, 1994, S 앞의 책, S

15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59 로운 인간 유형의 특성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폭격으로 상징되는 전쟁체험으로 인해 동호의 정체성이 붕괴했을 때, 한편으로는 그것을 통 해 전쟁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의 그런 상태가 정 상적인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사람을 치어 죽이는 자동차를 쳐 부수는 것이 왜 이상한 것이야 하는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어린애였 다. 턱 받기를 한 어린애였다 48) 라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폭격으로 인해 정체성이 붕괴된 동호에서 인간의 정상적인 모습, 나아가서는 무구한 존 재로서의 비인의 원초적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초극의 논리 가 죄의식 비판에서 자율적 주체 개념의 비판으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그 도달점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 에서 서술한 바 있는 개별화 원리의 상실이라 할 수 있는데, 대재앙의 순간의 개체성 붕괴는 이와 같은 개별화 원리 상실의 모델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니체의 사상에 입각한 자기초극의 논리가 이상과 같이 대재앙의 체험 을 표현하는 데 유용하였던 데 반해, 사르트르의 논리는 일정한 변용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1) 近 代 的 意 識 이라고는 사벨 과 지까다비 밖에 모르던 이 땅이 民 主 保 疊 니 두 개의 世 界 니 萬 國 平 和 아필 運 動 이니 하는 따위의 레알리즘이 네이팜 彈 의 세계와 함께 쏟아져 들어왔을 때, 농부의 옷을 채 벗지 못했던 그 시골내기들은 살이 찢어지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언 제 都 會 人 으로 출세한 것 같기도 하고 꼭두각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무 슨 최면술에 걸린 것 같았다. 그저 멋도 모르고 나팔 소리에 죽어라 하고 뛰었다. (중략) 내 살이 뜯겨져 나가고 내 피가 흘러내린 이 전쟁은 과연 내 전쟁이었던가? 한편에서 世 界 의 孤 兒 가 된 포로병들의 가슴 속을 이렇 48) 장용학, 요한시집, p.61.

158 16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게 거래하던 회의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다가 마침내 生 에 대한 애 착에 부딪혔다. 한 개의 나사못으로밖에 취급을 받지 못했던 자기의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밑줄-인용자) 49) 표면상으로만 본다면, 나는 한 살 때에 났다, 학생들의 단추가 모두 똑같다는 무서운 사실에서 느끼는 현기증 등 누혜의 유서에서 제시되 는 다양한 부자유의 모습들은 누혜의 깨달음, 즉 우리는 다른 데를 열 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다른 데를 사는 것이다 50) 라는 명 제의 구체적인 예들로서 자신의 가능성과 고유의 세계, 즉 자유를 상실 한 누구이던 상관없는 사람 으로서의 현대인에 대한 사르트르의 비판 51) 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도구, 국적 인종, 타 자 등에 의해 대자존재로서의 자유를 상실하고, 누구이건 상관없는 기술 과 목적에 인간실재가 소속될 때를 가리키기 위해 누구이던 상관없는 사람anybody 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인간이 누구이던 상관없는 사람 으 로 존재할 때, 자유는 빠져나가고 자발적 선택에 따른 의미로운 세계는 붕괴하게 되는데, 사르트르는 구체적인 예로 정거장의 표시판, 철도의 시간표 등 도구에 의한 지시를 준수함으로써 지탱되는 일상의 삶을 들 고 있다. 그러나 장용학의 경우 사르트르의 논리를 차용해서 진술되는 현대인의 부자유의 모습들이 근본적으로 전쟁 체험에 기원을 두고 있다 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용문 (1)에서 화자는 전쟁포로들을 자신 의 자유를 상실한 사물과 같은 즉자 존재, 즉 꼭두각시, 한 개의 나사 못 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전쟁에 참가한 자들에서 누구이던 상관없는 사람 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물론 전쟁이 인간의 자유를 철 49) 장용학, 요한시집, p ) 장용학, 요한시집, p ) J. P. Sartre(손우성 역), 앞의 책, pp

15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61 저하게 빼앗아 가는 극단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는 사르트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현대인의 부자유를 비판하는 상징 적 대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우리는 다른 데를 열심히 살고 있다 라는 누혜의 논리나 인용문에서 제시되는 부자유에 대한 관념이, 충격체험으로 인해 정체성 붕괴의 상태에 이른 동호의 진 술에서도 약간의 변용을 거쳐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2) 삼백년 묵었으리라 싶은 돌배나무가 육중하게 서 있는 야트막한 능 선을 막 뛰어 내리려 한 순간이었다 퍽! 벌써 시꺼먼 화염이 훵, 돌배나무 를 뒤덮는 것과 함께 꽝! 천지가 육시를 당했다. 개미 수염만한 내 숨은 그 폭풍에 눈썹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들이 쉰대로 메꾸어졌다. 오장이 훑여 나가는 것 같은 내 몸은 언제 저 위에 폭격기가 시침을 떼고 나르고 있는 하늘에 있었다. (중략) 이 나와 저 나를 같은 나로 느낄 확고한 근거는 없 었다. 나는 나를 나라고 서슴지 않고 부를 수가 없었다. 발도 손도 기쁨도 슬픔도 나의 것 같지 않았다. 나의 몸에 붙어 있으니까 마지못해 나의 것 으로 해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집에서 나는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옷을 입었으면서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누가 내 대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52)(밑줄-인용자) 동호는 폭탄을 맞고 포로가 되며 그 충격으로 인해 인용문 (2)의 이 나와 저 나를 같은 나로 느낄 확고한 근거는 없었다. 나는 나를 나라고 서슴지 않고 부를 수가 없었다 라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이후 극심한 정 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어느 생성이 여물어가는 열매인가? 쌀이 밥이 되는 변화와 밥이 쌀이 되는 변화와 에서 나타나는 시간 감각의 혼란 52) 장용학, 요한시집, pp

160 16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나, 그 동무의 얼굴에는 왜 여드름이 그렇게도 많았던가. 온통 얼굴 이 여드름 투성이었다. 그래서 남으로 남으로 슈류탄을 차고 이동하던 밤길. 개구리가 살아 있었다 에서 제시되는 의식 내의 인과관계의 붕괴 는 모두 폭격으로 상징되는 전쟁체험의 충격에서 비롯된다. 나의 옷을 입었으면서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누가 내 대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는 동호의 진술은 자신의 고유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타자의 삶을 살 고 있음에 대한 진술로서 근본에 있어 앞서 제시한 누혜의 논리와 동일 하다. 이 경우 장용학이 비록 사르트르의 논리를 빌려 오고 있기는 하지 만, 그것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누구이던 상관없는 사람 의 원래적 의미 를 넘어서 폭격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다. 작중인물들이 우리는 다른 데를 열심히 살고 있다 혹은 나는 내가 아 니었다 라고 진술할 때, 그 의미는 현대의 일상적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 대인의 부자유를 넘어서, 전쟁체험으로 인해 개체의 시공간 감각과 모든 인간적 의미가 붕괴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용되고 있는 것이다. 유서에서 제시되는 누혜의 논리나, 앞선 인용문 (1)에서 제시되는 부자유 에 대한 관념 역시 전쟁체험을 중심으로 서술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와 같은 사정은 인용문 (2)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요한시집 전체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소설 전체에서 동호와 누혜의 입을 통 해 서술되는 다양한 관념적 서술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충격체험 에 기초해 있으며, 그로 인해 사르트르의 논리는 원래의 문맥적 의미를 벗어나 대재앙의 체험을 가리키는 논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보다 니체의 초인사상이 중심이 되는 것이나 사르트르의 사 상이 이처럼 변용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니체의 사상이 사르트르의 그것 보다 더욱 극단적이어서 대재앙의 체험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희생자에게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은 자신의 옳고 그름과는

16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63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의미하고 개체성과 의미의 붕 괴라는 극단적인 체험을 겪게 한다. 부르조아 사회의 일상적 삶에 대한 비판에 주력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논리는 대재앙의 폭력성이나 그로 인 한 의미의 철저한 붕괴를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니 체는 유럽 니힐리즘의 도래, 즉 신의 죽음을 양의적으로 파악하고 있었 다. 그는 신의 죽음을 한편으로는 임박한 붕괴, 파괴, 몰락, 전복의 과 정 등 인류에 닥친 대재앙으로 묘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의 전환 을 가능케 하는 가장 위대한 사건 으로 간주한다. 53) 니체가 주장하는 능동적 허무주의는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으로서의 가치의 몰락을 의식 적으로 촉진시키려는 시도, 즉 신의 죽음이라는 대재앙, 대파국을 의식 적으로 도래케 하려는 시도로서 그 과정에서 표현되는 은유나 사상적 내용은 일종의 묵시론적 의미구조를 갖고 있었다. 54) 대재앙의 체험의 표 현과 극복에 장용학 소설의 궁극적 의도가 있다고 할 때, 파국을 지향했 던 장용학은 근본에 있어 사르트르보다는 니체의 사상에 입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죄의식 비판에서 시작되는 니체의 논리 는 궁극적으로 자율적 주체 개념의 부정이라는 논리로 나아가는데, 장용 학은 이를 대재앙으로 인한 개체성과 의미의 붕괴라는 극단적 상황을 지시하는 논리로 사용한다. 또한 가치의 몰락을 촉진하려는 니체의 시 도, 즉 능동적 허무주의에 대한 지향은 모든 의미와 가치가 파괴된 상황 에서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고자 할 때 채택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장 용학에 의해 대재앙의 체험의 희생자에서 오히려 비인의 원형을 발견하 고자 노력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53)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 대한 장용학의 양의적 태도는 이러한 니체 사상의 구 현이라고 볼 수 있다. F. Nietzsche(권영숙 역), 즐거운 학문, 청하, 1998, p ) K. H. Bohrer, The Prehistory of the Sudden, Suddenness : On the Moment of Aesthetics Appeara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42.

162 16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근대의 신화적 폭력과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 1) 근대적 세계의 두 가지 원리와 신화적 폭력 장용학이 작중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자기초극의 논리들은 능 동적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에 기초해 있으며, 궁극적으 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을 사상의 차원에서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 고자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장용학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대재앙의 체 험을 역사와 근대적 세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 규정으로 확장시킨다. 역 사와 근대성 자체가 영원한 파국, 대재앙의 과정으로 간주되고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Der Katastrophische Zug der Moderne) 55) 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의 필연적이고 총체적인 결과를 의미하게 된다. 앞서 서술한 바 있듯이 장용학은 대재앙의 전쟁체험에 대해 이중적 태도, 즉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재앙의 체험에서 작중인물이 지향하는 도달점의 단서를 발견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러 한 태도는 그의 작품 속에서 한편으로는 근대의 신화적 폭력에 대한 비 판으로 구체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신화적 폭력을 폭파시키는 데 근본적 의도가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의 추구로 나타난다. 이때의 신화적 폭력은 구체적으로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에 의해 야기되는 폭력성으로서 능동적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비인이 필수 적으로 초극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되고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 상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신화적 폭력에 대해 살펴본다. 장용학 소설은 대재앙의 무고한 희생자인 작중인물들이 세계 와 극 55) L. Heidbrink, Melancholie und Moderne, München, 1994, S.15.

16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65 단적으로 대립, 초극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본 서사구조로 삼고 있다. 그 들이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 가 근본적으로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관념적 진술들을 종합해 볼 때, 초극의 대상이 되는 세계 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하나는 죄의식을 강요하는 도덕, 신이고 다른 하나 는 인과관계와 그에 의해 산출된 근대적 이성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1) 비인과 초인 사상 에서 이미 고찰하였기에 여기서는 후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人 間 은 하나의 反 語. 모든 人 間 的 은 人 間 에서의 退 去 證 明 書 에 지 나지 않았다. 暗 號 가 人 間 이 아니라 生 이 人 間 이었다. 生 밖에 人 間 이 있은 것은 아니다! 人 間 은 그 自 體 가 原 因 이요, 그 自 體 가 目 的 이었다. 因 果 의 고리가 人 間 이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人 間 은 廢 棄 되었다! 一 連 番 號 가 내가 아니다. 이웃사람이 내가 아니다 아들이 내가 아니다! 내가 내다! 人 間 은 非 人 으로서 人 間 이었다! 孝 子 가 人 間 이 아니라 蕩 兒 가 人 間 이었다(밑 줄-인용자). 56) (2) 회고컨대 生 과 意 識 과 自 我 의 三 位 一 體, 이 不 動 을 무너뜨리고 地 動 說 이 빻아낸 것이 무엇이었던가 因 果 의 고리. 맷돌에서 와르르 흘러내 린 고리 고리 고리의 범람. 그만 自 己 의 番 號 를 잊어버렸다. 行 方 不 明 이 된 것이다. 그 범람 속에서 行 方 不 明 이 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쪽이 行 方 不 明 이 되어야 할 適 者 生 存 의 市 場! 그 잡답( 雜 踏 ) 속에서 그들은 自 我 의 行 方 不 明 을 發 見! 自 我 의 發 見 이라고 소리지르는 것이 理 性 的 이라는 것을 發 明 해 냈다. 이것이 理 性 誕 生 의 경위( 經 緯 )이니 的 이 먼저 있었고 그 다 음에 그것 이 있었다.(밑줄-인용자) 57) 56)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38.

164 16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3) 그들의 그 一元論은 物質의 世界에서 따 온 것입니다. 거기서는 答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둘에 셋을 더하면 답은 다섯이라는 하나뿐입니다. 넘어 져 있는 것은 넘어져 있고, 서 있는 것은 서 있는 것이지 양쪽을 겸하는 일 은 物質世界에는 없습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대로 흐를 뿐입니다. 그들 의 사전에는 擬物 이라는 말이 없지만 그들의 意識은 擬物化의 所産인 것 입니다. 擬物이라는 下層構造 위에 意識이라는 上層構造가 세워진 것입니 다. 따라서 人間은 肉體로서는 萬有引力에 얽매여 있지만 精神으로서는 이 擬物化라는 引力에 매어서 비로소 人間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밑줄-인용 자).58) 인용문 (1)은 도둑의 누명을 벗고 집으로 돌아온 非人誕生 의 地瑚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할 때 서술되는 내용이고 인용문 (2)는 易姓序說 의 森守가 떠나간 綠豆大師를 기다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환상을 볼 때 서술되는 내용이다. 지호는 인간적 과 생 을 대립시키면서 인과 의 고리가 인간이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라고 주장하는 데서 드러 나듯 부정해야 할 인간적 의 근본 특성을 인과의 고리 에서 찾고 그것 의 극복으로부터 비인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삼수는 생과 의식과 자아의 삼위일체가 붕괴되어 발생한 것이 인과의 고리 라고 보 고 있으며, 그 인과의 고리 로부터 근대적 의미의 자아와 이성이 발명되 었다고 주장한다. 장용학은 인간적 의 근본 특성으로 인과의 고리 를 들뿐만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자아와 이성이 인과의 고리 에 의해 지배 되는 데 본질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원형의 전설 에서 의물화(擬物化) 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원형의 전설 은 작품명에서부터 암시되듯, 58)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414.

16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67 일원론, 가치의 대립 에서 벗어나 다원론, 원형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 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인용문 (3)의 그들의 그 일원론은 물질의 세 계에서 따 온 것입니다. 거기서는 답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둘에 셋을 더 하면 답은 다섯이라는 하나뿐입니다 에서 둘에 셋을 더하면 답은 다섯 이라는 표현은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인과법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 술자가 일원론을 비판해야 하는 근본 이유를 인과법칙에의 종속에서 찾 고 있으며 원형의 전설 에서도 인과법칙에 대한 비판이 중심적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용학의 인과법칙 비판은 사르트르의 논리에 힘입은 바 큰데, 의물화라는 개념 역시 그 중의 하나다. 사르트르 는 인과법칙 하에 이루어지는 행동을 즉자존재의 행동으로 간주하고 즉 자존재를 지배하는 인과법칙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특히 존재와 무 에서 대자존재의 자유를 의미하는 불안 을 설명하면서 불안을 회피 하는 전형적인 예인 근직한 정신의 근본 성격으로서 가치들의 의물론 적 실체화 materialistic substantiation of values 를 든다. 59) 가치의 의물론적 실체화란 가치나 의미가 나의 자유에 의해 창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계,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파악함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 인간은 인과법칙이라는 결정론에 사로잡혀 나의 다른 모든 가능성들을 선험적으로 물리치게 된다. 60) 장용학이 지적하는 의물화 라는 개념 역 시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은 육체로서는 만유인력에 얽매 여 있지만 정신으로서는 이 의물화라는 인력에 매어서 비로소 인간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를 고려할 때, 의물화 란 만유인력 즉, 근대적 자 연과학이 추구하는 인과법칙이 물질세계의 자연법칙으로서의 한계를 넘 어서서 인간의 의식까지 지배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의물화, 즉 인과의 59) J. P. 사르트르(손우성 역), 존재와 무1, 삼성출판사, 1993, p ) 신오현, 자유와 비극 : 사르트르의 인간존재론, 문학과지성사, 1987, p.198.

166 16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고리에 의한 인간 지배, 그로부터 발생하는 근대적 이성과 자아는 자유 로워야할 인간의 행동이나 의식을 마치 물질세계의 존재인 것처럼 인과 법칙 하의 심리적, 물리적 결정에 지배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장용학은 초극의 대상이 되는 세계 가 두 가지 원리, 즉 한편으로는 죄의식을 강요하는 도덕 신, 다른 한편으로는 인과관계와 그에 의해 산 출된 근대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장용학은 양자 모 두를 인간적 이라고 칭하고 마치 슬로건처럼 반복해서 전자는 신, 죄 의식 으로, 후자는 인과의 고리 혹은 거기에 1+1=2의 세계가 있는 것 처럼 여기에 1+1=3의 세계가 있어도 좋다 61) 의 1+1=2 로 표현한다. 일견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이는 것들이 근대라는 동일한 세계의 양면으로 설정되는데, 이는 오히려 장용학이 니체의 논리에 입각해 도덕 의 형성과, 인과관계에 입각한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동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앞서 지적한 바 있듯이 니체에 따를 때, 죄의 식은 원래 하나인 행위와 주체 를 둘로 분리시키고 목적과 수단, 원인과 결과를 계량하는 자율적 주체 개념을 만들어 내어 주체에게 행위의 책 임을 떠맡김으로써 발생한다. 62) 결국 선 악 구별로서의 노예도덕 죄 의식과 근대적 이성 인과성은 동일한 사물의 양면으로 간주되기에, 장 용학은 윤리 는 벗겨놓고 보면 합리 63) 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 의 작품 속에서 세계 비판을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 이다. 그 결과 장용학의 소설에서 비인은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의 폭력성을 초극함으로써만 긍정적 허무주의에 도달하게 되는 것 으로 그려진다. 61) 장용학, 요한시집, p ) F. Nitzsche(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청하, p ) 장용학, 원형의 전설 그후, 소설사상, , p.330.

16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69 장용학 소설의 극단성, 즉 작중인물들이 세계 를 이상과 같이 끊임없 이 비판하는 것이나, 어떤 화해의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은 채 그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근대적 세계 를 바라보는 장용학 의 관점에, 대파국 내지 대재앙으로서의 역사 감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 문이다.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의 필연적인 결과로 간주되는 만큼, 근대적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 역시 그 가공할 폭력성을 무고한 개체들에게 자행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주목할 것은 장용학이 근대적 세계의 이 와 같은 특성을 신화적인 어떤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신화인 것은 현실쪽이다 64)라는 주장에서 드러나듯 장용학은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에서 신화적 성격을 발견하며 근대적 세계의 폭력 성 역시 신화적인 폭력이라는 차원에서 형상화한다. (1) 문제는 1+1=2 라는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기증은 1+1=2 위에 이루어지는 세계에서는 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런데서 우리는 1+1=3 의 세계를 갈망해 보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 현 기증을 구토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겠지만 구토라는 표현보다는 속된 말이 지만 눈물겨웁다 든지 오열 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현기증 을 느끼게 하는 이 현실의 신화를 과거의 눈으로 보아 병이라고 표현한다 면 그 병의 균을 찾아내려는 것이 신인들의 의욕이다.(밑줄-인용자)65) (2) 우습지 않다. 슬프지도 않다. 그저 그렇다. 더 우습고 더 슬픈 일이 저 도시에는 전봇대의 수효만큼 있으니까 말이다. 저 쓰레기 더미를 그래 서 아름답게 표현하면 神話의 숲이다. 거기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공 공연하게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양담배 서너 갑과 목숨이 흥정되는 세상 64) 장용학, 감상적 발언, 문학예술, , p ) 장용학, 위의 글, pp

168 17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이다.(밑줄-인용자) 66) 인용문 (1)에서 장용학은 1+1=2 라는 공식 위에 이루어진 근대적 세 계를 가리켜 현실의 신화 라고 규정하면서 신인의 의욕이 바로 이 현 실의 신화 의 원인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며 인용문 (2)에서 비 인탄생 의 지호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즉 사람의 목숨이 양담배 몇 갑으로 흥정되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전후의 도시를 신화의 숲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용학의 신화 개념은 때때로 긍정과 부정 의 양의적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원 리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의 부정성을 가리키며 인용문 (2)만을 고려할 때, 도시로 상징되는 근대적 세계 내부의 비합리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이 신화 라는 표현을 쓸 때, 강조점은 인류사 초기에 등장한 서사물의 서사적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신화 개념, 즉 신화 속에 여전히 구현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마성적인 자연의 폭 력, 신화적 폭력(the mythical violence) 67) 에 있다.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성은 초기작인 未 練 素 描 에서 이미 그 단초가 표현되고 있 다. 미련소묘 의 주인공 尙 柱 는 모더니스트 작가로서 월남하여 어머니 와 단둘이 빈궁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가 무당을 찾아가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죽은 형의 신탁 을 받아온 날, 사람 말을 알 아듣는 듯한 복두꺼비가 출현하고 상주는 비논리적인 어떤 것의 존재를 66)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벤야민은 이성과 대립하는 자연의 힘 폭력을 마성적인 것, 신화적인 것의 본질로 간주하는데, 폭력비판 에서 이와 같은 자연의 마성적 힘을 신화적 폭력 이라고 칭한다. 그에 따르면 신화적 폭력은 노동자 대파업과 같은 신성한 폭력the divine violence 에 의해서만 중지될 수 있다. W. Benjamin,, Critique of Violence, Reflections, ed. P. Demetz, Schocken Books, 1978, pp

16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71 놓고 고민한다. 두꺼비는 참자해도 참을 수 없는 흉물이었다, 공기만 먹구 산다는 두꺼비가 성스럽게도 느껴졌다 등에서 표현되듯 인간화되 지 않은 이질감과 공포, 성스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존재, 궁극적으로 이 성에 포섭되지 않는 자연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불쑥 상주는 막 회전하는 기곗 소리가 생각났다. 흥남(興南) 질소공장(窒素工場)의 거대한 기계장치다. 공기를 끌어들여서 웬만한 철 따위는 휘어질 만한 압력으로 꾹꾹 눌렀다간 탁 놓고 주었다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부뜰어다 꾹꾹 눌러서 온도를 낮추어 마침내 액체가 된 것 을 원소(元素)로 분해시켜가지곤 비료를 만든다. 비누를 만든다. 다이나마 이트 를 만든다. 또 뭘 또 뭘. 저 질펀한 권태 같은 부대 속에 그와 비 슷한 장치가 들어있단 말인가. 그럼 그 좋은 입을 가지고 두꺼비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먹는단 말인가. 그는 요지음 迷信과 科學 사이에 일맥 통하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러하게 비논리적(非論理的)으로 비쳐진 瞑想 속에서 하품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하여간 무엇이 있다 하다 그 하품에서 깨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보자면 또 무엇 이 있어야 할 것 같고.68) 중요한 점은 모더니스트인 상주가 비록 두꺼비에 대한 믿음을 미신이 라 하여 부정하려하면서도 미신과 과학 사이에 일맥 통하는 무엇 을 직 관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미신과 과학 사이의 일맥 통하는 무엇 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흥남 질소공장의 기계장치에 대한 묘사를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흥남 질소공장의 기계장치는 거대한, 웬만한 철 따위는 휘어질 만한 압력 등 인간을 위압하는 막강한 힘을 간직하고 있 68) 장용학, 미련소묘, 문예, , pp

170 17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꾹꾹 눌렀다간 탁 놓고 주었다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부뜰어다 꾹꾹 눌러서 비료를 만든다. 비누를 만든다. 다이나마이트 를 만든다. 또 뭘 또 뭘. 등 강제적으로 반복적 행 위를 되풀이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신화 속에 구현되고 있는 마성적인 자연의 힘은 인간을 위압하는 막강함, 불가해성, 반복강제, 새로움에 대 한 항상적 동일화, 의미의 애매성(Übermächtigkeit, Undurchschaubarkeit, Wiederholungszwang, das Immerwiedergleiche am Neuen und Zweideutungkeit) 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데, 69) 질소비료공장의 기계장치는 이중 막강 함, 강제반복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상주가 두꺼비 의 부대 속에 그와 비슷한 장치가 들어있다고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 두꺼비와 흥남 질소공장 모두에서 자연의 마성적인 힘, 즉 인간을 위 협하는 막강함과, 강제적 반복을 발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남 질소 공장이 과학을 대변하고 두꺼비가 자연을 대변한다고 볼 때, 상주는 궁 극적으로 과학과 미신 모두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막강함이라는 자연의 마성적 힘을 발견하고 이를 미신과 과학 사이의 일맥 통하는 무엇 이라 고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미신과 과학 사이의 일맥 통하는 무 엇 은 비논리적인 명상 속에서나 간파될 수 있는 것, 하여간 무엇이 있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데, 이 역시 신화의 불가해성 이라는 특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련소묘 에서 흥남 질소공장, 두꺼비를 통해 표현된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성격, 즉 자연의 마성적 힘은 이후 전후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비 인탄생, 현대의 야 등에서 법 의 폭력성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좀 69) Rolf-Peter Janz, Mythos und Moderne bei Walter Benjamin, in: Mythos und Moderne, hrsg. von. K. H. Bohrer, Frankfurt a.m. 1983, S.369.

17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73 더 명확한 형태로 제시된다. 비인탄생 의 지호는 두 번에 걸친 법 의 횡포를 겪은 후 비인으로의 전신을 시도한다. 그는 부조리한 법규를 무 시하고 공문서(출석부)를 위조하였다가 권고사직을 당함으로써 곤궁한 삶에 빠지게 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도둑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 찰서에 끌려감으로써 병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지호가 공문서 를 위조한 것은 한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등록제로 인해 한 학생이 우등 졸업의 자격을 잃게 되자, 지호는 교장 선생에게 내규를 고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교장 선생은 지호의 의견을 거절하고, 지호 는 부득이 출석부를 위조해 학생을 구제했다가 권고사직을 당하고 만다. 내규를 고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고치다니. 좀 생각해 보슈. 법이란 그렇게 함부로 고칠 수 있 는 것이 아닙니다. 함부로 아니고 사리에 따라 고치자는 것입니다. 참 답답도 합니다. 그래 사리가 생길 때마다 고치군 법의 위신은 어떻 게 됩니까? 저는 모순이 위신이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리를 따라서도 위신을 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옛날과 달라. 뭐랍니까. 그래 내가 옛날이란 말이오! 선생은 사리 사리하지만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사리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사립니다. 이 문제를 가지 고 더 말할 것은 없습니다. (중략) 제도라는 것을 선생님처럼 생각하신다면 차라리 그런 법은 없애 버리 는 것이 사리가 될 것입니다. 말 좀 삼가시오! 가만히 보니 선생의 사상은 철저히 파괴주의입니다. 이 사회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밑줄-인용자) 70)

172 17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인용문은 잘못된 법규를 사리에 맞게 고쳐야 할 것인가, 법의 권위를 위해 준수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교장과 지호가 대립하는 장면으로서 법의 근저에 놓여져 있는 신화적 폭력성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 법이 정의의 구현물이라면 지호의 주장처럼 사리에 맞추어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를 때 법은 정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비극과 신화의 운명 에서 표현되는 자연의 마성적 힘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지 인간의 데몬적 실존 단계의 잔 재일 뿐 이다. 법은 입법적 폭력에 의해 제정되고 제정된 이후에는 끊임 없이 법 유지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폭력에 그 본질이 있다. 위신 을 내세우는 교장의 논리에서 표현되듯, 법은 존재하는 한 법의 유지 자 체를 위해 끊임없이 법유지적 폭력(the law-preserving violence)을 행사한 다. 법 자체가 신화적 폭력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은 스스 로는 폭력에 의존하면서도 법 외부의 폭력, 예컨대 또 다른 입법적 폭력 은 용납하지 않는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다. 71) 교장선생과 지호의 대립은 이와 같은 법의 딜레마, 즉 이미 확립된 법이 또 다른 입법적 노력에 대 해 법유지적 폭력을 행사하는 대립을 표현하고 있다. 교장의 논리에 따라 새로운 등록제를 그대로 실행할 때, 우등 졸업의 자격을 갖고 있는 학생은 새로운 등록제라는 법규의 부당한 폭력, 즉 법 자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법유지적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법은 인 간 개체를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보다 높은 의지(법)가 작용해야 할 단순한 객체로 취급한다. 따라서 정의의 실현이라고 흔히 오해되는 법은 신화와 비극에서 자연의 마성적인 힘을 표현하는 운명 과 마찬가지로, 판결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근본에 있어 운명 과 동일 70)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p ) W. Benjamin, 앞의 글, pp

17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75 한 경험, 신화적 폭력성을 경험하게 한다. 지호가 내규를 바꾸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은 학생을 이와 같은 법의 신화적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는 시도이다. 학생이 구제됨으로써 그 시도는 성공하지만 지호 자신 은 결국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죄를 판결 받고 권고사직을 당하게 된다. 학생을 대신해서 그가 법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용문의 마지막 부분의 교장과 지호의 대화는 법에 대한 저항이 궁 극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런 법은 없애 버리는 것이 사리가 될 것입니다 에서 드러나듯 지호는 법 자체에 대한 부정, 법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이에 대한 선생의 사상은 철저히 파괴주의입니다. 이 사회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라 는 교장의 비난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넘어서 지호의 법에 대한 저항이 역사의 파국을 지향하는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해 궁극적 으로 무정부주의적이고 파국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화적 운명의 세계에서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운명의 굴 레 자체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듯이 법에 대한 저항 역시 법 자체로부 터 벗어나는 길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권고사직을 당한 지호는 가난으로 인해 집을 산의 반공호로 옮기고 취직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데, 다음 인용문에서 지호는 그 이유를 쥐 에서 찾는다. 산사람이 되어서는 쥐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에서 저주로 변했다. 일자 리는 영 차려지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기어코 펭글어지고야 마는 것이 었다. 요지음처럼 일자리가 흔하면서 그러면서 그것을 얻기 힘드는 때는 일찍이 없으리라 싶었다. 그 많은 일자리는 다 어디로 굴러 가고 나에게는 하나도 차려지지 않는단 말인가? 왜 나는 이렇게 재수가 없는가! 어

174 17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머니는, 요지음 세상에 돈을 쓰지 않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라는 것이지만 그는 쥐 때문이라고 했다. 쥐란 놈이 훼방을 놓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꼭 믿는 것이었다. 어머니보다 더 미신적이 된 그였다. 그가 모를 것은 쥐가 왜 자기를 그렇게 원수로 삼는가 하는 그 이유 뿐이였다. 사실 우연한 일 치인지는 몰라도 그에게 있어서는 쥐의 시체를 보게 되는 것과 일이 팽글 아지는 것이 꼭꼭 因과 果가 되었던 것이다.(밑줄-인용자)72) 지호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 날 쥐를 본 이후로 쥐를 보는 날이면 번번 이 일자리를 얻으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고 느낀다. 그의 가 슴에 鼠=法 의 그림자가 비쳐들었을 때 그 魔는 거의 詛呪가 되었다. 73)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쥐는 법을 의미하며, 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곧 법의 신화적 폭력에 대한 지호의 공포와 두려움이다. 쥐는 아 무 이유 없이 지호의 삶에 끼어들어 훼방만 놓는 존재로서 마치 인과관 계처럼 지호 삶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기에 비인탄생 에서 등장하는 쥐 는 미련소묘 의 두꺼비 와 마찬가지로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 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의 항존하는 자연의 마성적 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비인탄생 과 그 연작인 역성서설 은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 핵심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인탄생 의 서두에서 제시되고 있는 아홉시 병의 우화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이는 학교가 가 기 싫어서 꾀병을 앓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어느덧 병이 스스로 주체 가 되어 원래의 주인, 즉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기 싫은 일만 있 72)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비인탄생, 현대한국문학전집4, 신구문화사, 1968, p.230.

17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77 으면 발병한다. 이는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 내부에 여전히 통 제될 수 없는 자연의 마성적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그러는 사이에 그는 배탈의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의 생리는 배탈에 아주 물들어 버린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말하 자면 그런 健康人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무슨 아홉시 병 에 걸려 있는 것인가? 74)라는 우화의 마지막 부분은 근대적 세계에 살아 가고 있는 인간 모두가 그러한 마성적 힘에 의해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미한다. 또한 역성서설 에서 녹두 대사는 일식을 계기로 삼수에게 어제와 똑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삼수는 똑같은 대화, 똑같은 몸짓을 보면서 마치 스크린에 필림이 돌아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汚辱. 나는 復寫工. 여기에는 아무런 意味도 없다 75) 고 외치는데, 이는 신화적 시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영원한 반복, 즉 신화적 반복강제를 표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76) 장용학 소설에서 법은 죄의식과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 의 신화적 폭력을 대변하는 영역으로서 현대의 야, 대관령 등에서도 비판의 중심적 대상이 된다. 특히 현대의 야 는 법의 폭력성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朴萬同을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1) 당신의 손에 들고 있는 그 六法全書에는 世界가 다 들어 있지요? 그 러나 그 六法全書밖에 나가 있는 世界가 더 너르지요. 그래서 당신은 거기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지요. 이게 모두 世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무덤에서 나온 이래 世界 안에서 살지 않았 습니다. 나에게 有罪判決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世界 안에서 당 74)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W. Menninghaus, 앞의 글, pp

176 17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신에게 有罪判決을 내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77) (2) 이 조서에 씌어 있는 것을 반박할 만한 증거 말이오. 그건 말입니다. 式은 다 맞는데 答이 틀립니다. 式에 틀림이 없으면 答도 맞는 다는 것이 이 세상의 약속이오. 그 이콜(=)이라는 것은 사실 이콜일까요. 여기에 무슨 중대한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78) 인용문(1)은 간첩죄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게 된 박만동의 최후 진술로서 박만동은 자신이 죄인이 되는 이유가 육법전서, 즉 법의 세계 밖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적 세계는 육법전서, 즉 법 의 신화적 폭력이 행해지는 세계로 직접적으로 규정되는데, 인용문(2)를 고려하면 육법전서의 세계는 곧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현우는 한 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시체를 옮기는 부역을 하다가 시체더미에 떨어지 게 되지만 북한동무의 개인을 위해 조국의 시간을 늦출 수 없다 라는 이유 때문에 생매장 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현우는 이름을 박만 동으로 바꾸고 이유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가 간첩의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이 이유 없는 삶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고, 아무도 접촉하지 않고, 포로수용소에 가는 등 아무 이유 없는 삶은 육법전서의 세계 밖에 있는 삶으로서 육법전서에 의해 결코 이해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육법전서의 세계는 그 삶을 해석하려 하고, 자신을 지배 하고 있는 인과관계, 즉 인용문(2)에서 제시되는 式 에 입각하여 간첩이 라는 답 에 도달한다. 그 결과 박만동은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가 77) 장용학, 현대의 야, 사상계, , p ) 장용학, 현대의 야, p.348.

17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79 죽음에 이른다. 현대의 야 에서 제시되는 법의 신화적 폭력이란 곧 앞 서 제시한 근대적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 특히 물질세계의 자연 법칙을 의미하는 인과법칙의 폭력을 의미하며 이는 현대의 야 뿐만 아 니라 장용학 소설 전체의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고통의 강화와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 장용학은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사화산, 요한시집 등 전쟁 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주로 한국전쟁의 대재앙적 성격을 표현하는 데에 주력하였으며, 비인탄생, 역성서설, 현대의 야, 유피, 대 관령 등 전후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이를 넘어서서 근대적 세계 자체의 신화적 폭력성의 표현에 주력한다. 후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법의 신화적 폭력성이었는데, 이는 근대적 세계의 대재앙적 성격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니체의 논리에 입각하여 세계를 초극하려는 작중인물들의 노력은 근대적 세계 의 신화적 폭력성, 즉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의 신화적 폭력 성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며 법 자체의 중지, 즉 근대적 세계 자체의 중 지가 궁극적 도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세계를 초극하려는 작중 인물들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장용학 특유의 심미적 의식이 표현된다. 주목할 점은 작중인물들의 근대적 세계를 중지시키려는 노력이 파국의 순간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이 파국의 순간이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이 발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장용학은 근대의 대재앙적 성격에 대한 인식, 즉 부정적 역사철학과 능동적 허무주의에 대한 지향을 갖게 되었 을 뿐만 아니라, 능동적 허무주의에 입각한 특유의 심미적 의식을 형성

178 18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하게 된다. 장용학 고유의 심미적 의식은 절망의 강화 속에서 해결책을 찾는 임박한 대파국의 심미적 의식das ästhetische Bewustsein einer drohenden Katastrophe 79) 으로서 갑작스러움, 전율, 이성적 주체의 붕괴를 특성으로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을 지향한다는 데 본질이 있 다. 80) 작중인물이 도달하고자 하는 비인의 영역 은 이와 같은 순간적 심미적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작중인물들의 자기 초 극의 시도는 이에 도달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전신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용학 소설에서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을 고찰하기 에 앞서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주인공들의 고통스러운 전신의 노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초극하고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 하려는 주인공들의 고통스러운 노력들은 근대적 세계의 최종적 파국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으로 설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주인공의 결정적인 전신 이전의 모든 다양한 시도들이 궁극적으로 기만 적인 시도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장용학 소설의 서사구조가, 근대의 대 재앙적 성격의 무고한 희생자인 주인공들이 죄의식과 인과율에 의해 지 배되는 근대적 세계와의 극단적 대결 끝에 그것을 초극하는 형식을 취 하고 있다고 할 때, 주인공의 다양한 초극의 노력은 기만적 시도와 결정 적인 시도라는 두 가지 단계 설정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 비인탄생 의 경찰 누명을 쓰기 직전의 결심 장면과 역성서설 의 화강암에 거인을 새기는 장면은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만 79) Heidbrink는 벤야민, 에른쉬트 융 등의 미학에서 강조되는 예외상황, 순간, 쇼크 같 은 범주가 대재앙의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며 그것의 주요한 특성을 카타스트로피가 절망의 강화 속에서만 극복되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찾 고 있다. H. L. Heidbrink, 앞의 책, S ) K. H. Bohrer, Der Abschied, Theorie der Trauer : Baudelair, Goethe, Nietzsche, Benjamin, Frankfurt a. M. 1997, S.425.

17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81 적 시도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 난 이때까지 코밋숀으로만 살아왔다. 그림자 뒤만 따라 다녔다. 툭, 툭, 앞질러 나아가면서 살아야 한다. 다시 한번 살아보자.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자. 침대 밑에서 쥐가 냄새 맡으면서 기어 나오다가 지호의 시선에 도로 숨어버린다. 너두 이제는 제 位 置 로 돌아가거라. 쥐를 제 위치로 돌려 보내고 보니, 이때까지 그래가지고 용히 굶어 죽지 않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저 示 의 벽을 무너뜨리면 한간 집을 지을 성한 벽 돌과 재목은 나올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는 아이라는 말 을 들었으니까 연장이 문제이지만 주인 집에 가서 사정하면 빌려 주겠지 원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81) (2) 나의 믿음이 너의 앎이 되었으리니 이제는 行 함이 있어라. 무엇이 行 을 막고 있는가를 아는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고하노니 倭 小 함이 다. 人 間 이 倭 小 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適 合 하게 倭 小 하다는 것이다. 人 間 이 당하는 人 間 的 인 모든 아픔, 苦 憫 은 거기서 온 것이요 내 진실로, 진실 로 너에게만 고하노니 根 源 的 인 人 間 條 件 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너무나 人 間 에게 適 合 한 그 倭 小 함에 있는 것이다. 어디 메뚜기에게 人 間 이 당하 는 아픔이 있으며 코끼리에게 人 間 的 인 苦 憫 이 있는가. 작으려면 차라리 벌레여라. 人 間 이려면 차라리 폭포가의 저 花 崗 巖 이어라! 人 間 에서 脫 皮 하 여 巨 人 이어라! 千 里 밖에서의 내 이 답답한 심사 네 알고도 모르려느 냐. (중략) 주위를 살펴보니 거기는 파란 낮이 아니라 폭포가의 허연 밤이었다. 뒤로 물러서며 쳐다보니 푸로메디우쓰의 머리 위로 흰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이튿날부터 삼수는 정과 마치를 들고 그 花 崗 의 奇 岩 에 매어달려 巨 人 을 새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82) 81)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48.

180 18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비인탄생 에서 지호는 학교에서 쫓겨난 후 쥐 를 통해 표현되는 근 대적 세계의 마성적 힘에 사로잡히고, 어머니가 병들어 눕게 되는가 하 면, 연인 종희가 지호의 곁을 떠나는 등 점점 더 곤경에 빠져든다. 고민 에 빠져 있던 지호는 정체불명의 녹두노인과 대화를 나눈 후에 지금까 지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코밋숀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툭 툭 앞질러 나가는 삶 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나, 쥐 를 제 위치로 돌 려보냈다는 표현 등을 고려할 때, 지호의 결심은 이제까지 자신을 지배 해온 근대적 세계의 마성적 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 즉 초인의 삶을 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 결심은 근대적 세계와 이에 침윤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적 극복을 의미할 뿐이다. 우선 여 전히 결심의 밑바탕에 세계와의 결별을 방해하는 존재, 즉 병든 어머니 에 대한 배려가 놓여 있기에, 논리적인 차원에서 그의 결심은 세계와 타 협하는 기만적 인 시도를 의미하게 된다. 또한 작품 구조상 지호가 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가는 바로 다음 장면은 지호의 결심을 무화시켜 버리 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호의 결심은 법의 폭력성 앞에 무의미한 시도를 의미하게 되며, 그 이후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전신 과정과의 대조해 볼 때, 결국 기만적인 시도를 의미하게 된다. 그의 작품 중 관념적 진술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역성서 설 에 이르면 아예 논리적인 차원이나 작품 구조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한 장면에서의 주인공의 노력이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부정된다. 역성 서설 에서 삼수와 녹두대사는 각각에게 美 와 관세음보살을 의미하는 然 姬 를 찾고자 노력한다. 녹두대사는 굴을 파서 연못 속의 관세음보살에 도달하려 시도하는 한편, 연못에서 연희가 나타나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삼수에게 한글간소화론, 구미호론, 역성서설론 등을 설파한다. 수개월이

18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83 흘러 폐광을 뚫고 연못 속에 이르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녹두대사는 길 을 떠나면서 삼수에게 암호로 된 편지를 보낸다. 삼수가 유적된 자아를 찾아 로봇제조공장에 도달하고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과정은 이 암호 로 된 편지를 해독하는 과정 83) 과 동시에 제시되는데, 인용문 (2)는 마지 막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다. 삼수는 녹두대사의 편지를 화강암에 거인 을 새기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대로 행한다. 삼수가 화강의 기암에 거 인(프로메데우스)을 새기고 그 거인의 시선을 가리는 건너편 봉우리를 캐어내는 행위는 무엇이 행을 막고 있는가를 아는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고하노니 왜소함이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범용함 을 넘 어서야 한다는 초인 사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행위로서 그 자체로 근대적 세계와 이에 침윤된 자기를 초극하는 행위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봉우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는 다음 장면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무지개가 걸리지 않는 것이다. 죽은 것이다. 죽었다! 84) 라고 하여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없이 그 행위 자체 가 무의미한 것으로 제시된다. 그 행위가 부정적인 존재, 즉 로봇으로 판 명되는 녹두대사의 편지를 해독하여 이루어진 행위였다고 해도 해독의 내용 자체는 논리적으로 작가의 주제의식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 에서 부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기만적 시도 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장용학 소설에는 이처럼 바로 전 장면의 주인공의 진술, 행위 등이 바 로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무의미한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무수히 등 장하는데, 이는 장용학 자신이 진술한 바 있는 그의 특이한 창작방법과 83) 현대한국문학전집 (신구문화사, 1965)의 장용학 편에 실린 역성서설 에는 삼수가 환상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만을 그리고 있을 뿐, 원본에서 그와 동 시적으로 제시되는 암호를 푸는 과정은 생략하고 있다. 84) 장용학, 역성서설, , pp

182 18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비록 작가 자신에 의해 직접 언급은 되지 않지만, 주인공의 결정적인 전 신 이외의 다양한 노력을 그 속에서 제시되는 구체적인 논리나 행위와 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기만적인 시도로 설정하는 장용학 고유의 창작태 도에서부터 비롯된다. 장용학은 작품의 주제와 마지막 장면을 설정한 후, 그 주제에 맞추어 주인공을 행동하게 하고 각 장면마다 밑천을 다 털어 주인공의 독백을 꾸며내면서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는 식으로 작 품을 창작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85) 이때 주제와 일치하는 마지막 장면 이란 결정적인 전신의 시도를 보여주는 장면을 의미하며, 각 장면마다 밑천을 다 털어 독백을 꾸며낸다는 것은 서사적 구조와는 무관하게 각 장면마다 장황하게 초인 사상을 표현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창작 방법은 각 장면이 전체 구조상 기만적 시도로 설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장면의 주인공의 구체적인 행위와 독백에서는 초인 사상이 밑천을 다 털어 서술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작 품은 각 장면과 작품의 전체 구조가 모순에 빠지는 것은 물론 각 장면의 행위간의 서사적 계기가 부재하게 된다.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해 비판하기에 앞서, 본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장 용학의 소설이 결정적인 시도와 기만적인 시도라는 이분법 속에서 창작 되고 있다는 점, 특히 그 과정에서 고통 의 범주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시도와 기만적인 시도 양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 속에서 제시되는 논리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의 강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분한 눈물만 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몸이 이렇게까지 가벼워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늦 85) 장용학 작가의 시각 : 나는 작품을 어떻게 쓰나?, 사상계, , pp

18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85 가을 날의 한아름 수숫대 같았다. 아니다! 지호야 빈다. 빌자! 같이 빈 다. 사람의 속을 몰라주는 아들의 무릎을 꼬집으면서 눈물이 가득 고 인 눈으로 두 손을 부비는 것이었다. 나아리님 차라리 귀신에게 빌 어요! 다음 순간이었다. 쾩! 의식을 박살 당했다. 숫구멍에 말뚝이 박혔던 것인가 했다. 푸석 주저 앉았다. 총자루가 마치 절구공이처럼 그리로 떨어 진 것이다. 意識이 부서져 나가는 轟音! 머릿속이 왈칵 뒤집혀졌다. 時間과 空間이 맺어졌던 사개가 삐어지면서 그리로 人生이 쏟아져 나간 것이다. 細胞膜을 물어뜯어 버리고 核들이 叛亂을 일으킨 것이고, 世界를 꿰매고 있었던 暗號가 휴지가 된 것이다. 밤과 낮이 뒤범벅이 되어서 洪水를 이루 었고, 아픔은 그 洪水에 깔려서 이마도 내밀지 못했다.(밑줄-인용자)86) (2) 지침으로 몸이 떠질 것만 같다. 이제 어쩌지 않으면 정말 그리 되고 야 만다. 다음 순간에라도 마치 다이나마이트가 뱃속에서 터진 것처럼 다 리는 채소밭에 가 떨어지고 팔은 사과나무의 두 번째 가지 어느 것이 두 번째 가지인지 그땐 알 길이 없지만- 그리고 머리대가리는 떨어져 구르다 가 수채구녁에 가 멎고 눈알은 용마루에 떨어져 망을 보고 그런데 한쪽 발 은 어찌 된 셈인지 이웃집 대학생의 설합 속에 들어가고 이렇게 산산 이 육시가 되는 것과 꼭 알맞을 만큼 그는 치친 것이다. 목이 타고 배안은 메스꺼움으로 축축했다. 意識을 잠시 동안 죽게 할 수 있다면 칼을 가지고 그 틈새를 쿡쿡 쑤셔서 아주 넓혀서 한 아름씩 물이 쏟아져 나가게 했으면 싶었다. 목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內臟을 움켜 잡아 끄집어내어 획 내 동댕이쳐 버리고 싶었다.(밑줄-인용자)87) 비인탄생 의 지호는 마지막 부분에서 도둑 누명을 쓰고 경찰서로 끌 려가게 되어 또 한번 법적 폭력의 희생자로 되면서 세계 및 자기 자신에 86)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80.

184 18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대한 이별, 즉 결정적인 전신을 이루게 된다. 인용문 (1)은 누명을 쓴 지 호가 경찰의 부당한 행위에 반항하다가 총자루로 얻어맞는 장면으로서 초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적인 고통 의 성격과 강도를 잘 보여 준다. 지호는 경찰에게 빌어대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다가 경찰 의 총자루에 얻어맞는 순간 의식의 붕괴를 경험한다. 그의 고통은 어머 니의 비는 모습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과 경찰의 폭력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즉 정신적 차원과 육체적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또한 인간은 가 장 극단적인 고통의 순간에 의식을 잃고 그 후에 고통을 느끼는 게 일반 적인데, 88) 그의 고통 역시 의식이 붕괴되고 아픔은 그 홍수에 깔려서 이마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의 극한적인 고통으로 묘사되고 있다. 경찰 서로 끌려가는 도중 또다시 참을 수 없는 추위와 뜨거움 속에서 마침내 그는 그만 증발했다. 그는 꺼진 것이다 89) 라고 묘사되는 등, 이후 경찰 서에 끌려가고 경찰서에서 나와 어머니의 죽음에 오열하며 화장하는 일 련의 장면, 즉 세계 및 자기 자신을 초극하는 마지막 장면들은 모두 이 와 같은 극한적 고통과 병행하여 서술되고 있다. 역성서설 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인용문 (2)는 삼수의 몸으로부터 나온 거인과 인과 율이라는 괴물의 싸움 장면 속에 삽입된 부분으로서 거인과 괴물의 싸 움의 과정이 곧바로 삼수가 자신의 내부에서 극한적 고통을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괴물과 거인의 싸움은 죄의식과 인과율에 의 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와 이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초인적 의지의 싸 움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과 삼수 내부의 고통이 병치되는 것은 장용학 소설에서 근대적 세계를 초극하려는 노력이, 곧 자기 자신 에 대한 초극의 노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삼수 88) K. H. Boher, Nietzsche s Madness in a Cultural System, Suddenness : On the Moment of Aesthetic Appeare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3.

18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87 는 산산이 육시가 되는 것과 꼭 알맞은 만큼 그는 지친 상태에 이르는 데, 이는 극한적 고통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용학 소설에서 고통은 세계에 대한 초 극, 초인으로의 최후의 결정적인 전신의 시도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해주 는 결정적인 기준이다. 그 결과 그의 소설에서 극한적인 고통이 수반되 지 않는 모든 행위들은 기만적인 시도를 의미하게 된다. 장용학 소설에 서 고통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작중인물들이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의 정지, 파국을 지향한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장용학이 부정적 역사철학과 니체의 초인사상에 입 각해 궁극적으로 근대적 세계의 파국을 지향한다고 할 때, 그것은 곧 근 대적 세계에 침윤된 인간 자신의 해체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하고, 필연 적으로 개체의 극한적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인탄생 의 지호가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거나, 역성서설 의 삼수가 화강암 에 거인을 새기어도, 그것이 자기 자신의 해체에 이르는 극한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한 죄의식과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를 정 지시킬 수 없다. 비인탄생 의 지호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하면서 어 머니! 저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슬픔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나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90) 라고 외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장용학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시하고 이용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파국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로서 그것을 통해서만 낡 은 것이 분쇄되고 비인의 영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기대할 수 있게 된 다. 고통에 대한 이와 같은 강조는 고통을 삶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삶 에 대한 자극제로 간주하고 고통의 강화 속에서 근대적 세계의 멜랑꼴 90) 장용학, 비인탄생, 현대한국문학전집, 신구문화사, 1968, p.251.

186 18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리를 극복하고자 했던 니체의 초인사상, 즉 능동적 허무주의를 한국적 상황에서 구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니체는 얼마나 깊이 고통 받 을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인간의 등급, 즉 범인과 초인이 결정된다고 보 면서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는 고통을 짊어지고 감내하고 해석하고 이 용하는 정신의 독창성과 용기 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91) 그 고통의 정점에서 염세주의, 즉 근대적 세계의 멜랑꼴리가 자발적으로 지양되어 현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으로 전환된다고 보기에 고통은 니체에게 있어 고양된 실존의 시금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92) 이와 같은 니체의 사상을 장용학이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원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때의 한국적 상황이란 물론 한국전쟁을 전후한 대재앙으로서의 근대 체험에 핵심이 있다. 썩 전부터 그는 목을 이리 저리 돌리고 하려고 하고 있는 자기를 깨달 았다. 아픈 것이다. 목덜미가 아픈 것이다. 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벌써 아 프기 시작한 것이 오래 전부터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아파하고 있을 때 가 아니라 해서 아파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젠 더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아파질 줄 몰랐다. 바위도 뚫는다는 빗방울. 아픈 것이 아니 라 간지럽고 성가시고 귀찮다. 아니 역시 아픈 것이다. 견딜 수 없다. 송곳 으로 쏙쏙 찌르는 것 같고 모가지에 질금질금하던 감촉은 쇠줄로 거기를 졸라매는 것 같은 아픔을 새겨낸다. 한번만 만져 보고 싶다. 한번만. 그의 모든 신경은 거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숭숭 구멍이 뚫려 나가는 것만 같다. 다른 것은 다 좋아. 이것만 멈추게 해줘-. 정말 이것만은 견딜 수 없어! 그는 미칠 것 같았다. 죽는 것두 좋다. 한번만 거기를 만져 보고 싶었다. 한번 만져 보고 죽으면 죽어두 한이 없겠다. 그는 의식이 아득해져 91) F. Nietzsche(김훈 역),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92, p.160, p ) H. L. Heidbrink, 앞의 책, S

18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89 갔다. 93) 인용문은 현대의 야 의 현우가 한국전쟁 당시 시체더미에 파묻혀 겪 을 수밖에 없었던 극한적 고통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한편으 로 현대의 야 에서도 현우가 박만동이라는 이유 없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고통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다 른 한편으로는 장용학 소설에 등장하는 고통의 원형이 전쟁체험에 있었 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체더미에 파묻힌 현우는 전쟁이라는 가공할 폭 력의 희생자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상실해 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앞서 인용한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의 고통 장면과 근본에 있어 동일하다. 장용학의 소설에서 고통에 적극적이고 긍정적 의 미가 부여되는 것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우리 민족이 겪을 수밖에 없 었던 극도의 고통체험을, 니체의 사상에 입각해 비인의 영역에 이르는 필연적 계기로 전환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용학 소설에서 고통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때, 근대적 세계를 초월하려는 주인공들의 시도가 극한적인 고통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이전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다른 모습을 띠 게 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의 마지 막 장면들, 즉 지호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어머니를 화장하는 장면이나 거인 과 불가살이 의 싸움 장면들은 근대적 세계를 중지시 키는 결정적인 시도가 행해지는 장면으로서 극한적 고통을 거쳐 주인공 들이 도달한 지점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인탄생 의 지호는 어 머니를 화장하면서 비인의 영역, 즉 비인의 왕국! 시간이 죽고 공간이 범람하는 유역, 옷이 없이 살 수 있는 숫자 의 밭고랑에 끼어들지 않 93) 장용학, 현대의 야, p.341.

188 19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아도 숨쉴 수 있는 나라 94) 에 대한 예감을 설파하고 역성서설 의 삼수 는 거인이 괴물을 무찔렀을 때, 인과율이라는 괴물은 죽었다! 一 이 多 를 죽이던 합리적 인 주먹구구의 야만시대는 끝났다 95), 세계는 끝 났다! 96) 등 세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앞서 서술한 바 있듯이 장용학은 근대적 세계를 신 죄의식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 등의 두 가지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로 간주하고 있다. 지호의 예언과 삼수의 선언은 두 가지 원리가 지양된 세계에 대한 예언, 선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 다. 이와 같은 논리적 차원의 진술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비인의 영 역에 대한 예언과 세계의 종말에 대한 선언이 극한적 고통의 순간 속에 서 이루어진다는 점, 극한적 고통의 순간에 주인공들이 겪은 경험들이 이러한 예언과 선언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극한적 고통의 순간과 그 순간 주인공들이 겪는 경험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 는데, 장용학 소설에서 제시되는 극한적 고통의 순간들은 궁극적으로 심 미적 현상으로서의 디오니소스적 황홀을 의미한다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이는 극한적 고통의 순간이 다음 세 가지 즉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개체화 원리의 상실)의 황홀, 갑작스러움, 전율을 본질적 특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비인탄생 의 지호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의식이 부서 져 나가는 체험을 하는 것에서 드러나듯 극한적 고통의 순간의 일차적 특징은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역 성서설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94)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84.

18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91 아- 肉에 갖힌 囚人 囚人에겐 破屋 이외 세상으로 나갈 길이 없는 것이다. 이 肉身을 砂棄하지 않는 한 나는 然姬에게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내가 나를 어떻게 破獄한단 말인가. 아 치사하다. 나는 끝끝내 거짓이란 말인가. 나에게도 정말이 있자면 있을 수 있다! 자기에게서 빠져 나 가려고 이를 악물고 버둥거리는 몸부림! 빨갛게 홍조를 띠는 얼굴 내 이빨이 내 이빨을 깨물어서 부러뜨릴 때! 그것은 極限에 接近하려는 企圖. 極限이란 現在 를 밀고 가서 現瞬間 에 一致시킨 순간이요, 自我를 끌어 당겨서 生에 合致시킨 狀態! 五官의 모든 門을 닫아 버리고, 내가 이 세상 에 내던져졌을 순간부터 지니게 된 모든 것을 吐瀉하고, 그 순간의 무게가 내 半生의 전 무게와 같아졌을 瞬間의 狀態! 그 極限에 접근하려고 악문 그의 입에서는 빠드득 빠드득 소리가 나고 더욱 빨개지는 紅潮 툭! 무엇이 어디에서 삐어나가는 감촉. 내가 나를 脫臼한 것이다! 虛脫 내 가 푹 꺼진 자리에서 무엇이 일어서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나의 그림자였 다!(밑줄-인용자)97) 인용문은 괴물과 싸우게 되는 거인이 삼수의 몸속에서 빠져나오는 과 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비인탄생 의 지호가 외부에서 오는 고통으로 인 해 의식이 부서져 나가는 체험을 한다면, 역성서설 의 삼수는 연희를 얻기 위해 극한에 접근하려는 기도 를 펼치고, 자발적인 고통, 즉 자기 에게서 빠져 나가려고 이를 악물고 버둥거리는 극한적 고통을 거쳐 자 기 자신을 파옥 하기에 이른다. 괴물과 싸우는 거인은 삼수가 이처럼 자기 자신을 탈구시켰을 때 등장한 그림자이다. 비인탄생 의 의식이 부서져 나가는 轟音!, 역성서설 의 내가 나를 脫臼한 것이다! 에서 의식, 나 는 죄의식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의식, 이성적 주체를 의미 97)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78.

190 19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하는 만큼, 이것이 부서져 나가거나 이를 탈구한 상태란 삼수와 지호가 극한적 고통을 거쳐 도달한,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때의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는 인과원리가 지양된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갑작스럽게 시간흐름이 중지된 상태를 의미한다. 인용문에서 극한이란 현재를 밀고 가서 현순 간 에 일치시킨 순간이요, 내가 이 세상에 내던져졌을 순간부터 지니 게 된 모든 것을 吐 瀉 해 버리고, 그 순간의 무게가 내 반생의 전 무게와 같아졌을 순간의 상태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순간 을 강조하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의 경험이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순간적 체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호의 의식 붕괴, 즉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에 대한 묘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호의 이성적 주체의 부 재 상태는 차라리 귀신에게 빌어요! 다음 순간이었다. 쾩! 의식을 박살 당했다 98)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갑작스럽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며, 시간과 공간이 맺어졌던 사개가 삐어지면서 밤과 낮이 뒤범벅이 되어서 홍수를 이루었 99) 다는 묘사에서 드러나듯 일상적 시간 흐름이 혼란에 빠져 중지되는 상태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 태를 갑작스럽게 시간적 흐름이 중지한 상태로 묘사하는 것은 대파국의 시간적 특성인 갑작스러움 (suddenness) 100) 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가 우리 의식의 필연적인 차원, 즉 시간적 연속성에서 벗어나는 순간적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삼수와 지호가 극한적 고통 을 거쳐 도달하는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는 인과 원리의 지양, 시간흐 98)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K. H. Bohrer, Asthetics and Historicism : Nietzsche s Idea of Appearence,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1994, p.120.

19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93 름의 중지를 특성으로 하는 탈중심화된 세계경험으로서 결국 역사적 연 속성을 중지시키는 갑작스러운 순간적 체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극한적 고통의 순간에 주체가 겪는 체험은, 이성적 주체 부재 상태의 체험, 갑작스러운 순간적 체험임과 동시에 전율 의 체험으로서 궁극적으로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디오니소스적 황홀을 의미한다. 그의 몸은 흥분 때문에 이제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아! 脈搏이 졸고 싶 은 正午! 얼음이 녹고 皮膚가 간지러운 이 안타까움. 豫感이여 이 내 살을 찢어라! 그러면 붉은 피는 내 육신에 잠을 불어 넣을지니 그렇 게 흥분되었으면서도 그는 졸고 싶은 것이었다. 흥분과 졸음은 그의 두 눈 망울이었다. 이대로 무슨 품에 안기고만 싶다. 어머니의 젖을 물고 어린애 처럼 잠에 묻혀 버리고 싶었다. 잠이 되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아아, 저 발자국 소리 그의 흥분은 졸음 속에서 팽창할 대로 팽창하는 것이 었다. 驚愕과 歡喜와 무슨 豫感에 온 몸은 떨리는 것이다. 분명히 그의 귀 에는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무겁게 가볍게 옮겨지는 발소 리 발소리는 그의 살결에 닿았다. 어머니- 앞으로 쓰러지는 絶望的 歡喜!(밑줄-인용자)101)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에서 지호는, 그렇게 흥분되었으면서도 그 는 졸고 싶은 것 이었다, 어머니- 앞으로 쓰러지는 절망적 환희 등 의 표현에서 드러나듯 강렬한 흥분 속에서 오히려 졸음을 느끼는가 하 면 극한적 고통 속에서 환희, 즉 절망적 환희 를 경험하는 것으로 묘사 된다. 또한 경악과 환희와 무슨 예감에 온 몸은 떨리는 것이다 라는 표 현에서 드러나듯 지호의 환희는 온 몸이 떨리는 전율의 체험을 동반한 101)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72.

192 19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다. 지호가 이성적 주체의 부재 상태에서 경험하는 절망(고통)에 찬 환 희 는 니체가 비극의 탄생 에서 심미적 현상의 본질로서 규정하였던 디오니소스적 황홀(Dionysian rapture), 즉 개체화 원리를 파기하는 고통 이 쾌락을 불러일으키고, 환희가 가슴으로부터 고통에 가득 찬 소리를 자아내는 102) 심미적 경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호가 환 희 속에서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느끼는 것은 디오니소스적 황홀의 또 하나의 본질적 특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 황 홀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 새로운 것의 경험으로서 친숙하지 않은 위 협적인 것이 갑작스럽게 다가올 때, 인간이 빠지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 상태, 즉 전율(Schrecken)의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103) 장용학의 소설 에서 자주 등장하는 절단된 시체에 대한 잔혹한 묘사들, 즉 요한시집 의 누런 배설물 속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사람의 손 104), 역성서설 의 머리대가리는 떨어져 구르다가 수채 구녁에 가 멎고 눈알은 용마루에 떨어져 망을 보고 105) 등이나 비인탄생 의 어머니의 시신에 대한 배 가 터져서 흘러나온 창자의 진득진득한 重 量 感 구천에 사무치는 원 한을 품었을 눈알은 뽑혀나가서 거기에 없고 106) 라는 묘사는 모두 전 율 의 효과를 자아내고자 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지호나 삼수는 극한적 고통의 순간에 자신이 예감하는 비인의 영역을 장황하게 설파한다. 비인의 왕국! 시간이 죽고 공간이 범람하는 유역, 옷이 없이 살 수 있는 숫자 의 밭고랑에 끼어들지 않아도 숨쉴 수 있는 나라 등에서 드러나듯, 비인의 영역이 한마디로 시간적 흐름이 중지되 102) F. Nietzsche(김대경 역), 비극의 탄생/바그너의 경우/니체 대 바그너, 청하, 1998, pp ) K. H. Bohrer, The Prehistory of the Suddenness,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1994, pp ) 장용학, 요한시집,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4.

19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95 고 인과원리가 지양된 영역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는 궁극적으로 극한 적 고통의 순간에 도달하게 되는 비인의 영역을 논리적 차원에서 서술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호의 예감이나 삼수의 선언에서 제시되 는 논리적 차원의 진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대적 세계를 중지시키고 자 하는 노력이 극한적 고통 속에서 작중인물이 겪게 되는 갑작스러운 순간적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극한적 고통의 순간 에 겪게 되는 체험은 앞서 제시한 것처럼 이성적 부재 상태의 체험이면 서 인과원리를 지양하고 시간흐름을 중지시키는 갑작스러운 순간적인 체험이며 동시에 전율 을 동반하는 디오니소스적 황홀 의 체험이라는 데 본질이 있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황홀의 순간이 숭고한 예외적 상 태의 체험이면서 동시에 도래할 사건에 대한 간접증거 를 의미하기 에 107), 지호나 삼수로 하여금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비인의 영역에 대한 예감을 설파하고 세계의 중지를 선언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용 학의 인물들이 극한적 고통의 순간에 보여주는 세 가지 특성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 에서 디오니소스적 심미적 현상을 규정하면서 제시한 세 가지 본질적 특성, 즉 개체화 원리의 상실, 갑작스러움, 전율 등에 해당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용학이, 극한적 고통을 거쳐 삼 수와 지호가 도달하게 된 비인의 영역에서 제시하고자 한 것은 궁극적 으로 그 극한적 고통의 순간에 제시되는 디오니소스적 황홀, 즉 디오니 소스적 심미적 현상의 영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7) H. L. Heidbrink, 앞의 책, S.131.

194 19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3. 알레고리와 비극적 구조의 원용 1) 상형문자로서의 알레고리와 신화 파괴적 성격 부정적 역사철학과 능동적 허무주의에 입각한 장용학의 심미적 의식 은 근대적 세계를 중지시키는 파국의 순간을 디오니소스적 심미적 현상 으로 묘사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며 그의 소설을 지배하는 알레고리 에 대한 지향 속에서 전체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적 표현방식에 대해서는 담론과 서사구조, 언어관 등 다양한 차 원에서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것이 대재앙으로서의 근대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종의 암호로서의 상형문자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서 죄의식과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주로 벤야민이 독일 비애 극의 기원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에서 독일비애극(das deutschen Trauerspiel)을 분석하면서 제시한 알레고리론에 입각하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는 주로 폴 드 만의 시간성의 수사학The Rhetoric of Temporality 에 입각해 알레고리에 대한 상징의 우월성을 비판하고 알레고리의 反 상징 미학적 의미를 밝혀내고 있지만, 기호학적 차원에 치중함으로써 시대적 연관성, 알레고리와 부정적 역사철학의 연관성 등을 소홀히 한 면이 있 다.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은 알레고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카타스트로 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30년 전쟁 직후에서 찾고 있으며, 상 징과 알레고리의 대립을 신화 대 反 신화의 대립 속에서 서술하기에 장 용학 작품의 알레고리를 해명하는 데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108) 108) W. Benjamin,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tr. J. Osborne, NLB, 1977 참조.

19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97 장용학 소설에서 나타나는 알레고리는 비유(trope) 중의 하나이거나 수 사학적 시학적 개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마치 아이러니가 그러한 것 처럼 특정 종류의 예술의 형식적 원리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일관된 관점(view of world)을 함축하는 심미적 개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다. 109) 벤야민에 따를 때, 근대적 의미의 알레고리는 대재앙의 역사체험 에서 비롯된 세계 인식의 산물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미학적 장치로서 자의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세계, 즉 알레 고리적인 특정한 경험과 특정한 시대가 주체에 대해 강요함으로써 이루 어진다. 110) 이때의 특정한 경험이란 독일의 30년 전쟁( ) 직후 의 시대 경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 세계, 도처 에 산재한 주검 등과 대면하면서 얻어진 세계의 무상함, 즉 사물의 무상 함(das Vergängliche der Dinge)에 대한 깨달음에 핵심이 있다. 사물의 무 상함에 대한 인식, 및 그들 사물을 영원 속으로 구제해 내려는 노력이야 말로, 알레고리적인 것에 있어서의 가장 커다란 동기 111) 라 할 수 있는 데, 장용학의 알레고리 역시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체험에서 모든 가치와 의미의 붕괴를 경험하고 이러한 파편화된 세계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알 레고리적으로 구성해 내려는 노력, 궁극적으로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 109) 이는 곧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알레고리의 본질을 예증 적 이미지와 그것의 추상적 의미 사이의 관습적 관계 에서 찾는 고전주의적 낭만 주의적 관점을 비판한다. 그는 알레고리는 유희적, 예증적 기술이 아니라 문자와 언어와 같은 표현의 형식 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사물을 바라보는 근대적인 알 레고리적 방식the modern allegorical way of looking at things 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알레고리를 세계관적 의미를 갖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의 하나로 규정한다.(W. Benjamin, 위의 책, p.162) 이에 대해 Rochlitz는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을, 시학적 개 념을 넘어서 일관된 세계관적 의미를 갖는 심미적 개념으로 규정한다. R. Rochlitz, 앞의 책, 1996, p ) Susan Buck-Morss, The Dialetics of Seeing : Walter Benjamin and the Arcades Project, The MIT Press, pp ) W. Benjamin, 앞의 책, p.224.

196 19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레고리적 의미 산출은 세 가지 계기, 즉 세계에서 무상함만을 발견 하는, 현상세계에 대한 가치절하의 계기, 그리고 이와 같은 화석화된 세 계를 이질적 파편더미로 분할하는 파편화의 계기, 마지막으로 주체가 파 편들에 의미를 할당하여 재조합하는 생산적 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두 번째 계기는 첫 번째 계기에 자동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라고 할 때, 현상 세계에 대한 가치절하의 계기와 생산적 계기가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112) 장용학의 경우 첫 번째 계기는 동굴 속에서 사람들은 시시각 각으로 동물로 동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간과 기왓장의 차이점은 파편에 맞았을 때 한 쪽은 빨간 물을 흘리고 한쪽은 부스러지는 속성을 나타낸다는 것뿐이다. 등의 폭격 장면에 대한 묘사에서 드러나듯 근본 적으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근대체험에서 비롯된다. 그의 소설 곳 곳에서 발견되는 폐허 와 주검 에 대한 묘사는 세계의 무상성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 한 구석을 높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동산은 斜面이 푹 패어 나갔고 그 흙에 덮여 그 아래 半島 모양의 못은 흔적도 없이 되었다. 高麗時代의 유물이라고 하는 한 쌍 石燈은 각脚이 나서 꽃밭 속에 뿔뿔이 딩굴고 있었 고 花草들은 꽃 봉우리를 맺은 채 벽돌 무더기에 깔려 그슬리다가 꺼무스 름하게 숨을 거두고 있었다. 꺼무스름하게는 玄宇의 마음 한 구석도 그렇 게 비어갔고. 허전하게 비어가는 설음이 고이는 아픔을 느꼈다. 그 설음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程道는 달라도 빚깔은 같은 것 같았다.113) (2) 굴속은 피와 누르스름한 고름의 바다였다. 중단된 까마귀들의 饗宴, 112) M. Pensky, 앞의 책, pp ) 장용학, 현대의 야, p.329.

19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199 생물실의 해부대였다. 시체가 아니라 어머니는 내포로 변했다. 배가 터져 서 흘러나온 창자의 진득진득한 重量感. 구천(九天)에 사무치는 원한 을 품었을 눈알은 뽑혀나가서 거기에 없고, 嗚咽을 악문 이빨의 한가로운 鬼氣. 비린내 나는 악취로 마비된 아들의 눈에는 더 비쳐들 자리가 없 었다. (중략) 죽음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中止였다. 중도에서 모든 것이 그쳐 버리는 것이었다. 중지된 채로 영원히 그러고 있어야 하는 無聊. 이것 이 죽음의 姿態였고 그 意味였다. 그것은 모든 것에서 버림을 받고 있는 無聊였다.114) 인용문 (1)은 어머니의 부음을 전하려다가 시체를 나르는 부역을 하게 된 현대의 야 의 현우가 우연히 자신의 옛집을 방문하는 장면이며, 인 용문 (2)는 경찰서에 풀려난 비인탄생 의 지호가 어머니의 시체를 발견 하는 장면이다. 폭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해버린 옛집의 모습은 고려 시 대의 유물 로 상징되는 문명세계의 무상함을 드러내며, 절단된 시체의 잔혹한 모습은 인간존재의 무상함을 표현하고 있다. 어머니의 주검을 바 라보며 지호가 갖는 생각, 즉 죽음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지였다. 중도에서 모든 것이 그쳐 버리는 것이었다 라는 생각은 한국전쟁을 전 후한 현실 속에서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이란 불가능하며 인간은 단지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 생명의 갑작스러운 중단으로서의 죽음만을 맞 이할 뿐이라는 깨달음, 즉 실존적 차원의 의미 상실을 표현하고 있다. 폐 허와 죽음에 대한 묘사 속에서 드러나는 문명세계와 인간 존재의 무상 함에 대한 인식은 대재앙으로서의 근대 체험에서 비롯되는 현상세계의 가치절하, 즉 기호학적 차원과 실존적 차원 모두에서 의미의 상실을 표 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115) 114)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4.

198 20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자연의 본질을 보편적 무상성에서 찾고 역사를 자연의 무상함만을 노 정하는 과정, 즉 자연사로 규정하는 벤야민은 알레고리를 이러한 자연 사의 표현 으로 간주한다. 그에게서 알레고리는 폐허, 죽음에서 드러나 는 무상성이라는 한 극과 실존적 차원, 기호학적 차원의 의미라는 또 하 나의 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산출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16) 근대적 알레고리의 효시로 간주되는 독일 비애극의 알레고리가 자연사 의 무상성을 표현하는 데 그쳤음에 반해 장용학의 알레고리는 비록 죽 음, 폐허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는 세계의 무상성, 그리고 그로 인한 의 미의 붕괴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사의 무상성을 넘어서는 의미를 창출하고자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장용학의 알레고리적 의미 산출, 즉 생산적 계기는 앞서 살펴본 바 있듯이 니체와 사르트르의 사상 에 의해 힘입은 바 크며, 비인이라는 새로운 인물형의 알레고리적 창조 에서 궁극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고찰에 앞서 그의 언 어관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소설에서 알레고리적 의미 생산이 갖는 구체적인 의미는 그의 언어관을 전제로 했을 때 좀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근대적 알레고리는 상형문자에서 발견되는 자연적 이미지어 를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는데, 117) 장용학의 언어관은 이러한 근대적 알레고리의 언어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장용학의 언어관을 고 찰할 때, 비로소 비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알레고리적 의미 생산이 115) M. Pensky, 앞의 책, p ) 벤야민은 알레고리에서는 역사의 死 相 이 응고된 원풍경으로서 보는 자의 눈앞에 서 벌어지고 있다 라고 본다. 이러한 지적은 알레고리의 시작과 끝 모두에 해당한 다. 그에 따르면 근대 비애극의 알레고리는 무상성에서 의미를 산출하려는 노력 으로 시작되지만 의미가 클수록 죽음에 대한 종속도 커진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 나듯 궁극적으로 죽음과 폐허의 알레고리만을 산출하게 된다. W. Benjamin, 앞의 책, p ) Susan Buck-Morss, 앞의 책, p.172.

19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01 일종의 암호로서의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 창조를 의미한다는 점이 밝 혀질 것이다. 그의 언어관은 일상적 문장만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한글 전용론을 비 판하고 한자 사용을 주장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에서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한자 표기를 배척해온 소설 전통을 정면 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토착어의 세계를 옹호하던 유종호와 격렬한 논 쟁을 불러 일으켰다. 118) 장용학의 주된 논지는 기존 소설의 경우 이야기 중심의 문학, 향토주의 문학으로서 한글전용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지 만, 이야기 중심에서 인간 탐구의 문학으로 이동한 상황에서는 인간 탐 구를 위해서 한자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119) 인간탐구란 소설에 서 사상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한자어의 경우 발음 부 호에 지나지 않는 한글 표기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표의문자 특유 의 함축성과 시각성을 갖고 있는 한자 표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 리이다. 이에 대해 유종호는 한글 전용은 전면적인 근대화의 일환의 문 제 120) 라고 보고, 한자의 표의성을 인정하면서도 관념어의 토착화 를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장용학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관념어가 일상적 언어였던 것이 추상 언어로 승격하는 과정을 거쳐 형 118) 장용학과 유종호의 논쟁은 유종호가 문학월평 소설 : 내셔널리즘 기타 ( 사상계, )에서 장용학 소설에서 한자 표기의 효과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고, 씨니시 즘 기타 ( 문학춘추, )에서 장용학의 상립신화 가 거점없는 시니시즘 의 표현이라고 비판하면서 시작되어 장용학의 한자 표기와 작품세계 양 차원에서 전 개된다. 이 논쟁은 장용학만의 문제를 넘어서 전후소설의 형식(문장)과 내용(작품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에 대한 연구로는 이현석, 전후소설의 서사구조와 수사적 성격 연구, 서울대 석사 학위논문, 1997과 방민호, 이어령의 구세대 비판 및 장용학의 한자사용론의 의미, 한국전후문학의 분석적 연구 : 학천 박동규 교수 회갑 기념 논문집, 월인, 1997 이 있다. 119) 장용학, 나는 왜 소설에 한자를 쓰는가, 세대, , pp ) 유종호, 버릇이라는 굴레, 세대, , p.132.

200 20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반대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나 역어적 성 격이 강한 경우는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삭감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 문 121) 에 반대한다. 유종호에게 장용학의 문장은 일상적 리얼리티를 삭 감하는 대표적인 예로서 일본소설의 서투른 직역체 122) 에 불과할 뿐 한자 표기의 효과가 거의 부재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기존의 연구는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한자 표기가 필수적이라는 장용 학의 주장에 대해, 주제에서는 실존주의라는 서구 보편주의에 기울었으 면서도 표기체계에서는 한자 사용이라는 시대 역행적 표기론으로 나아 간 것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한자의 시각성에 대한 장용학의 강조를 상 징의 논리로 평가하기도 한다. 123)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근대적 알레고 리가 근본적으로 상형문자에 대한 탐구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평가라 할 수 있다. 한자에 대한 장용학의 주장은 세대론적 자기모순이나 상징에 대한 추구의 한 예라기보다는 오히려 알 레고리를 지향할 때 나타나는 언어관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이 한자 표기를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표의문자 특유의 함축성과 시각성에 있는데, 특히 시각성에 대한 강조는 문자의 형상 자체를 중시 하는 근대적 알레고리의 언어관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121) 유종호, 문학월평 소설 : 내셔널리즘 기타, 사상계, , p ) 유종호, 한국작가를 위한 노우트 : 새로운 우상, 세대, , p ) 방민호는 장용학의 한글발음부호설을 동양적보편주의의 산물로 간주하고 장용학 의 소설이 소설적 주제와 표기체계에서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보며 이 모순을 궁 극적으로 민족적 주체성의 문제를 감당할 수 없었던 세대의 한계로 파악한다. 또 한 이현석은 장용학의 문자의 시각성에 대한 강조를 본질적 의미의 직접적 현현 을 중시하는 상징의 논리라고 간주하면서 이를 장용학 소설 전체가 상징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는 주장의 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방민호, 앞의 글, pp ; 이현석, 앞의 글, p.24.

20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03 다음, 시각의 결여에서 오는 두뇌의 둔화인데 그 까닭은 한글에서는 속 도가 없고 이미지가 깃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일이 그 까닭을 거론하지 않 더라도 한자로 째여진 눈으로 한글 전용의 글을 읽을 때, 隔 靴 搔 痒 의 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경험적 사실이고 이 사실은 한자를 아편시함으로써 넘겨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간단한 사실이 아니다. 망막에 더듬더듬 희미하 게 비쳐든다는 것은 두뇌에 희미하게 비쳐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뇌에 희미하게 비쳐든다는 것은 생각이 희미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같은 뜻이라도 이메지가 따르고 아니 따르고는 이해와 기억에 큰 영향을 준다 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 과 金, 정의와 正 義 를 비교해 볼 때 금과 정의에는 이메지가 없다. 이메지는 자형과 뜻의 결합에서 새겨지 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은 자형에 시각성이 없고 뜻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정의 의 정 은 기 와도 결합되어 정기( 定 期 )도 된다. 한글에도 꽃과 같은 몇 개의 낱말에는 이메지가 있지만 두 글자 이상으로 된 낱말에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이메지도 없고 속도도 없고 인상이 희미한 한글의 전용에서 다듬어진 머리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져 있어야 한다.(밑줄-인 용자) 124) 한글에는 이미지가 없다는 장용학의 주장에 대해 유종호는 총각, 백 합 등이 한자표기와 분리되어 한글로서 고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125) 반면 장용학은 이미지 일반이 아니라 인용문의 한글은 자 형에 시각성이 없고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상형문자의 자형과 결합 된 이미지 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알레고 리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시작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는 노력 그 리고 이를 확장하여 새로운 문자(사물형상das Dingbild)를 만들어내려는 124) 장용학, 한글전용론이 의미하는 것 : 지성과 애향주의, 자유문학, , p ) 유종호, 버릇이라는 굴레, pp

202 20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노력에 기원을 두고 있다. 상형문자 속의 자연적 이미지 는 신이 인간에 게 보내는 창조의 의미를 전달한다고 믿었으며 상형문자는 궁극적으로 이미지어, 즉 기호와 지시물 간의 어떤 자의성도 존재하지 않는 보편적 언어로 간주되었다. 126) 그 결과 한편으로는 상형문자를 그 자체로 풀어 야 할 암호 로 간주하여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 수한 새로운 상형문자를 생산하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 알레고리적 의미 의 산출은 새로운 상형문자의 생산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필연적 으로 문자 자체, 나아가서는 활자 자체에 대한 집착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7) 한자의 자형에 대한 장용학의 집착, 즉 장용학이 문자 자체 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은 음성언어보다는 문자언어 특히 상형문자를 중시하며, 그것의 새로운 확장에서 근원을 두고 있는 근대적 알레고리의 이미지어에 대한 추구와 맥을 같이 한다. 그의 한자 표기에 대한 주장은 궁극적으로 근대적 알레고리의 언어관, 즉 중국의 문자처럼 문자형상 이 단순히 인식되어야 할 대상을 표현하는 기호가 아니고 그것 자체가 인식할 만한 대상 128) 이라고 보는 언어관, 결과적으로 상형문자에 대한 집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언어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1) 그저 글자도 아니고 그저 그림도 아니고 쥐섯자( 鼠 )같기도 하고 쥐모 양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라고 하자면 쥐섯자에서 쥐모양을 그 순서가 거 꾸로 된 것인 것 같다. 이 투로 하면 平 和 같은 것은 半 圓 에다 자루를 하 고 그 좌우에 각각 동구래미와 네모꼴을 그려 넣으면 그럴 듯 싶어지겠다. 일종의 暗 號 다. 그가 지나온 뒤에는 군데군데 남의 집의 벽이라든지 전봇 대 같은 데에 그런 암호가 남아 있는 것이다.(밑줄-인용자) 129) 126) Susan Buck-Morss, 앞의 책, pp ) W. Benjamin, 앞의 책, pp ) W. Benjamin, 앞의 책, p.184.

20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05 (2) 여기까지 읽다가 삼수는 그 편지가 글자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暗號 로 적힌 것임을 깨닫는다. 눈은 아까부터 뜨고 있었지만 비로소 잠이 깨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글자라고 하는 것이 暗號이고 실은 이것이 정말 글자인지도 모른다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 편지는 밤중에 여 우가 물어다 놓은 것이 아니고 천리 밖에서 암호로 부쳐온 것인지도 모른 다. 배암의 배거죽 같은 너의 嫉妬는 어찌 되었느냐. (중략) 나의 모든 象 徵的 寓話는 一字 半劃도 고칠 수 없는 것이니 때때옷을 벗어 버리고 베옷 을 입어라! 이 黃昏이 새벽이 되는 베옷을 입어라! 이렇게 해독하여 읽는 것이 옳게 풀이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나 삼수에게 이렇게 해석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現實이고 그 자체로서 文法上의 모순이 없다면 그것은 그것 으로 存在理由가 있다 할 것이니 또 存在하는 것이다.(밑줄-인용자)130) 삼수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는 인용문 (1)과 녹두대사의 편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인용문(2)는 그의 작품이 이상의 언어관에 입각해 창조되 었음을 보여준다. 인용문 (1)에서는 삼수의 행적을 쥐섯자(鼠)같기도 하 고 쥐 모양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라고 하자면 쥐섯자에서 쥐 모양을 그 순서가 거꾸로 된 것 즉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일종의 暗號 라고 기술 한다. 또한 인용문 (2)에서는 녹두대사의 편지가 글자로 씌어진 것이 아 니라 암호 라고 서술한다. 우리가 글자라고 하는 것이 암호이고 실은 이것이 정말 글자인지도 모른다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라는 서술에 서 드러나듯 그의 소설에서 글자, 즉 상형문자는 그 자체로 탐구의 대상 이 되는 암호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삼수나 녹두대사는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것, 즉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군데군데 남기는 129)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p

204 20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존재, 상징적 우화 를 풀어야 할 일종의 암호의 형태로 제시하는 존재 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에서 제시되는 알레고리적 작중인물들은 그 자체 로 일종의 암호,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이 알레고리적 인물을 해독해야 할 암호, 상형문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알 레고리의 창출과정을 새로운 형태의 상형문자를 생산하는 과정, 즉 이질 적 대상과 현상들을 상형문자의 실체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간주하고 마 치 퍼즐 조각처럼 그것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131) 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크의 근대적 알레고리가 상형 문자를 통해 신성한 의미를 생산하고자 한 것처럼 장용학 역시 알레고 리를 통해 일종의 비의적 의미를 산출하고자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후 자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고찰하기로 하고 전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장용학 소설에서 알레고리의 창조가 앞서 제시한 바 있듯이 현상세계의 가치 절하의 계기와 파괴적 계기에 이어 파편들, 즉 이질적 대상과 현상들에 원래의 문맥과는 무관하게 작가가 자의적으로 의미를 할당하여 재조합하는 생산적 계기를 거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 적할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답게 그렸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그것은 물귀신보 다 못했던 것이다. 미이라도 이보다는 고운 편일 것이다. 백살 먹은 토인 노파였다. 제일 숭한 것이 배였다. 비틀었다. 펴놓은 것처럼 쭈굴쭈굴했다. 이런 배가 어디있어요! 사실 그런 걸 어떻게 해. 엄마-. 中 世 는 그랬 어 中 世 의 배야. 지호는 그리로 가까이 갔다. 이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유 역을 봐. 이래야 조화가 서거던. 두 다리를 가리키면서 하는 소리다. 131) M. Pensky, 앞의 책, p.126.

20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07 그리고 여기가 이를테면 로오마구 듣기 싫어요! 이 가슴은 文藝 復興과 産業革命이라구 해도 좋을께구 佛蘭西革命과 十月革命이라구 해도 좋을께구. 이런 걸 출품하나요. 왜. 외도야요. 예술은 설명이 아 니었을 꺼야요. 작품을 설명한 거 아니지. 이것을 이렇게 척 봤을 때 마 음에 비쳐드는 뭐가 있지 않겠오. 그것을 분석해 보면 世界史가 된단 말이 오. 칠 천 년 묵고 묵은 인류 역사를 조감(鳥瞰)했을 때, 느껴지는 바로 그 것이란 말이오. (밑줄-인용자)132) 인용문은 비인탄생 에서 마녀의 탄생 이라는 그림을 놓고 지호와 종희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으로서 장용학 소설에서 알레고리의 생산과 정은 물론 알레고리가 결국 미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단 적으로 보여준다. 지호는 산 속에서 종희의 나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다. 종희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지만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지호의 그 림은 물귀신보다 못한 것이었다. 배, 다리, 가슴은 각각 원래의 문맥에서 벗어나 중세, 메소포타미아의 나일강, 문예부흥이라는 의미를 할당받고 그 결과 종희의 아름다운 나체는 세계사의 알레고리, 물귀신의 모습으로 재조합된다. 장용학 소설에서 제시되는 알레고리적 형상들은 이처럼 이 질적인 대상들과 현상들에 작가가 의미를 재할당하여 조합함으로써 창 조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주목할 점은 그 결과 형성된 우의적 형상이 지호에 의해 세계사의 알레고리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세계 사가 백살 먹은 토인 노파, 미이라 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으로 묘사 된다는 점이다. 이는 첫째, 일차적으로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가 특수 자 속에서 보편자를 표현하고 기표와 기의간의 유기적 통일성을 구현하 는 상징에 대한 거부, 미적 가상의 화해적 형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132)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0.

206 20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는 점을 보여준다. 알레고리의 생산이 작가에 의한 이질적인 대상들과 현상들의 짜맞추기를 의미한다고 할 때, 알레고리적 형상은 궁극적으로 총체성의 허구적 외양이나 미적 가상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파편으로 서의 의미를 가지며 133) 인용문의 물귀신 과 같은 부조화와 추의 형상 을 띠게 된다. 둘째, 그것은 미적 가상과 상징에 잔존하는 신화적 기원에 대한 거부 의 의미를 지닌다. 폐허의 시대인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미적 가상의 화해적 형식과 상징의 유기적 통일성은 자연의 무상성만을 노정하는 자 연사로서의 역사, 즉 당대의 역사에 대한 기만적 초월을 의미한다. 134) 특히 상징과 알레고리의 근본적 차이가 시간 범주에 있다고 할 때, 상징 의 시간 형식, 즉 유기적 총체성의 신비적 순간은 주체로부터 개체성, 윤 리적 통찰의 힘을 제거하고 그를 비밀스러운 자연의 상응들, 자연의 힘 들에 종속시킴으로써 얻어진다는 점에서 신화적 종속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알레고리는 미의 화해적 형식, 상징의 기만적인 신비적 순간을 거 부하고 자연의 무상성 즉, 자연사로서의 역사의 원 모습을 그대로 표현 한다는 점에서 신화 폭파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다. 135) 종희의 美 를 거부 133) 벤야민은 알레고리적 문자 상의 무정형의 파편만큼 유기적인 총체성을 특성으로 하는 상징, 즉 조소적 상징, 예술적 상징과 예리하게 대립하는 것은 없다 라고 본 다. W. Benjamin, 앞의 책, p ) 벤야민은 상징과 미는 신화적 기원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데 반해 알 레고리는 신화를 폭파시킬 수 있는 반신화적 표현양식으로 규정한다. 미적 가상 의 화해적 형식이나 상징의 유기적 총체성은 의미와 감각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신화의 형식적 특성을 계승하여 허위적 총체성을 산출하는 반면 파편으로서의 상 형문자를 지향하는 알레고리는 이러한 허위적 총체성을 파괴시킨다고 본다. W. Menninghaus, Walter Benjamin s Theory of Myth, pp 참조. 135) 벤야민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차이를 시간 범주에서 찾는 크로이쩌의 견해를 쫒아 상징의 시간적 형식은 순간적인 총체성이고 알레고리의 시간적 형식은 순차적인 순간들의 진전, 다른 말로 하면 역사 (W. Menninghaus, 앞의 글, p.313)라고 본다. 벤 야민은 알레고리와 상징이 차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기호학의 영역으 로 끌어들여진 결정적인 시간범주 아래서 상징과 알레고리의 관계가 명확히 정식

20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09 한 지호가 그녀의 나체를 세계사의 알레고리, 백살 먹은 노파, 미이 라 등 몰락과 죽음의 모습을 띠고 있는 세계사의 알레고리로 만드는 것 은 그가 알레고리를 통해 미와 상징의 신화적 성격을 거부하고 몰락과 죽음만을 산출하는 자연사로서의 역사의 원 모습, 모든 것을 부식하는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2) 알레고리의 이율배반과 비극적 구조의 원용 장용학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알레고리적 형상들, 즉 요한시집 의 토끼, 비인탄생 의 아홉시병, 역성서설 의 마지막 장면의 거인과 불가 사리, 원형의 전설 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결하는 인간적 과 인간, 그 리고 삼수, 지호, 녹두대사와 같은 알레고리적 인물들은 이질적 대상과 현상들에 대하여 작가가 의미를 재할당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장용학 소 설의 이러한 알레고리들은 앞서 살펴본 작중인물의 관념적 진술이나, 디 오니소스적인 심미적 의식이 죄의식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속성에 대한 거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 지로, 상징과 미에 내재한 신화적 속성에 대한 거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렇다면 알레고리를 일종의 암호, 상형문자로 간주하 화된다. 상징에서는 몰락이 이상화되고, 변용된 자연의 얼굴이 구제의 빛 아래서 일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반면 알레고리에서는 역사의 死 相 이 응고된 원풍경으 로서 보는 자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역사에 처음부터 따라 다니고 있는, 모 든 시의를 얻지 못한 것, 고통스러운 것, 실패한 것은 하나의 용모 아니 하나의 죽 음의 얼굴의 형태를 취하여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벤야민은 기표와 기의간의 유기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상징의 신비적 순간이 시간, 역사에 대한 기만적 초월 을 의미하는 반면, 알레고리는 자연의 무상성만을 드러내는 역사의 원풍경(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시간의 힘의 표현)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상징의 신비적 순간 의 신화적 속성을 파괴하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W. Benjamin, 앞의 책, p.166.

208 21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고 있던 장용학이 알레고리를 통해 산출하고자 했던 비의적 의미는 무 엇인가? 그것은 비인 이라는 알레고리적 인물을 중심으로 제시되는데, 장용학 소설에서 등장하는 알레고리적 인물들은 근대적 알레고리 고유 의 철학적 이율배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에 대한 염세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근대적 알레고리는 기호와 지시물 간의 자의성을 배제한 이미지어에 대한 추구에서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레고리적 의미 산출의 몫이 전적으로 작가에게 맡겨짐으로써 결국 자의적 의미 생산에 머물게 된다 는 철학적 이율배반을 안고 있다.136) 알레고리적 의미 생산이 주로 니체 와 사르트르의 논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장용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 니다.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의 녹두대사의 형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 여준다. (1) 易姓序說이라는 論文의 序章쯤 되는 부분이야. 易姓革命. 王의 姓을 갈아보잔 말이다. 合理다 自由다 因果律이다 善이다 眞理다, 또 뭐다뭐다 하는 封建諸侯들의 싸움에 우리 百姓들은 이젠 더 시달리기 싫단 말이다. 이들은 人知가 깨지 못했던 野蠻時代에 어찌해서 王位에 오른 것들이다. 神이 죽은 지 이미 언제인데 상기 王權神授說이냐 말이다. 남 보기가 창피 하단 말이다. 意識界에도 産業革命이 일어나서 民主主義時代가 올 때쯤 되 었단 말이다. 오지 않았다면 억지로라도 오게 해서 좋을 때가 됐단 말이다. 그러니 올 것이다! 어이없다 말라. 이 보다 더 어이없던 일이 현재 너희들 은 눈앞에서 실지로 벌어지고 있지 않느냐. 오고야 만다! 너는 그 苗木이고 136) 장용학 소설에서 우의가 자의성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김윤식( 장용학 론 : 우화성과 이데올로기 비판, (속) 한국근대작론고, 일지사, 1981)에 의해 지 적된 바 있는데, 본고에서는 그것을 근대적 알레고리 자체에 내재한 고유의 이율 배반으로 본다. 근대적 알레고리의 철학적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Susan Buck-Morse, 앞의 책, pp 참조.

20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11 이를테면 나는 그 園丁이랄까137) (2) 다시 가슴에 귀를 가져 가 보았다. 희미하게 잘각 잘각, 들려오는 소 리.!?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가슴에서 제쳤다. 숨을 죽이면서 옷섶을 두 손으로 헤치고 얼굴을 그리로 가져가려다가 그만 소스라치며 자기 입을 손으로 꽉 막았다. 이 무슨 일인가!? 가슴 복판이 뚜껑이 잘 덮 이지 않은 것처럼 네모로 드러났고, 그 속에는 시계의 내부처럼 자지레한 기계가 꽉 차 있는 것이었다. 로보트였다! 대사는 로보트였다! 아- 人造 人間!! 世界는 벌써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다음 순간 정을 꺼구로 세워 진 손이 희미한 등불 빛에 번득 올라갔다. 그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 와르르 흘러 떨어졌다.138) 비인탄생 에서 녹두노인의 형상은 옷만이 아니라면 중(僧)이요, 중 이라면 破戒僧일 것이다. 아까 소내기가 좀 내리기하였지만 일본군 卒兵 들이 입던 그런 우비를 질끈 허리를 동여 입고 단꼬바지인지 승마복(乘 馬服)인지 분간할 수 없는 바지에다 요강만한 등산화를 신었다 139)라는 묘사에서 드러나듯 발란스가 취해져 있지 않은 다양한 파편들, 즉 일 본군 병졸의 우비, 승마복, 등산화, 보랏빛 보석 등의 재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이질적인 대상과 현상들의 재조합을 통해서 이루어 진 녹두대사의 형상은 비인탄생 에서 지호에게 거꾸로 살라고 하면서 도 돈으로 그를 매수하는 이중적 모습으로 그려진다. 특히 역성서설 에 서 녹두대사는 정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인물로 제시된다.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그는 역성서설을 설파하는 삼수의 스승인가 하 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용문 (2)의 로보트였다! 대사는 로보트였다! 에서 137)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27.

210 21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드러나듯 삼수가 대결해야 할 기계인간이기도 하다. 이는 작가의 미숙함 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넘어서 근대적 알레고 리 고유의 철학적 이율배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니체 와 사르트르의 철학적 지식에 입각해 새로운 알레고리적 의미를 산출하 려 하지만 작가의 지식에 입각한 자의적 의미 생산에 머물게 되는데, 그 결과 비의적 의미를 산출하려는 알레고리의 생산은 동일한 대상이 정반 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독일 비애 극의 알레고리에서 왕관이 피 묻은 삼베옷으로, 하프가 암살의 도끼로 급변하는 것처럼 장용학 소설의 알레고리 역시 정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견된다. 벤야민은 동일한 대상이 정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되는 등 근 대적 알레고리의 의미 생산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의 미를 할당하는 주체의 지식, 즉 인간의 지식의 근본적 한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신성한 의미를 산출하려는 인간 주체의 노력이 결국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 근대적 알레고리가 자연의 무상 성에서 시작되어 재차 자연의 무상성의 표현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 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역사의 재앙으로 인해 발생한 비 상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통치권을 부여받은 독일 비애극의 알레고리 적 인물, 군주의 파멸은 그 단적인 표현이다. 독일 비애극의 알레고리적 인물은 비상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인간적 행위를 벗 어난 맹목적 과정으로서의 역사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데, 벤야민은 이를 신화적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간주한다. 140) 반면 장용학의 소설은 녹두대사 140) 벤야민에 따르면 독일 비애극에서 알레고리는 철학적 이율배반으로 인해 인간적 실존의 무상함만을 산출할 수밖에 없다. 독일 비애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레고 리를 산출하는 인간적 지식은 무의미해지고 모든 알레고리는 폐기되고 마는데,

21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13 를 포함한 여러 형상들에서 근대적 알레고리의 철학적 이율배반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독일 비애극의 알레고리적 인물들과는 달리 누혜, 지호, 삼수 등 비인을 지향하는 인물을 통해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에서 벗어나는 고유의 차원을 보여준다는 점에 그 특이성이 있다. 비인을 추 구하는 삼수, 지호, 누혜 등의 알레고리적 인물은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의 희생자이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을뿐더러 신학적 관점에 의존하 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적 세계의 종말과 초인을 지향한다. 폭포가의 그 花崗의 巨人!? 이때 법당 안으로 시꺼먼 덩어리가 튀어 나 왔다. 돌층대 위에 두 팔을 쳐든 것을 보니 동물성은 동물성인데 動物이라 기 보다는 流動體였다. 삼 사 개월 된 무슨 짐승의 태아(胎兒)가 그 모양대 로 햇빛을 받아 자라난 것 같은 怪物. 부피는 巨人의 배(倍)가 되어 보이는 그 흐들흐들한 怪物이 저 機械의 낫가리를 지키고 있던 불가살이가 아니 겠는가!? 그 괴물의 몸이 반쯤으로 줄어든다. 다음 순간 거인을 향하여 펄 떡 덮쳐들었던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면서 그 엄습을 받아 내는 巨人의 반격! (중략) 그 혈투를 고요히 굽어보는 觀世音. 줄줄 흘러내리는 금멕 기. 그 밑으로 나타나는 부드러운 곡선. 그것은 生이 동하고 있는 살결 이었다. 그 아래에서 서로 서로를 죽이려고 딩구는 世界와 人間의 決鬪는 그칠 줄을 몰랐다. 괴물이 우세해 보이지만 강한 것은 거인이었다.141) 장용학은 누혜, 지호, 삼수 등을 중심으로 인간적 행위를 벗어난 맹목 이 순간 무상성의 알레고리가 역설적으로 부활의 알레고리로 급변하는 신학적 역 전, 즉 삶의 무상성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야말로 구원을 의미하게 되는 신학적 역전(이 지점에서 벤야민은 키에르케고르의 역설 에 입각해 있다)이 이루어진다 고 본다. 유대적 메시아주의에 입각해 있던 벤야민은 이 신학적 역전의 순간을 메 시아 도래의 순간으로 이해한다. 인해 W. Benjamin, 앞의 책, pp pp ) 손창섭, 역성서설, 사상계, , p.379.

212 21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적 과정으로서의 역사, 즉 자연사로서의 역사를 초월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노력은 극한적 고통을 거치면 서 근대적 세계의 파국을 낳게 되는데, 인용문의 불가살이와 거인의 싸 움, 원형의 전설 의 인간적 과 인간 의 싸움 등은 이에 대한 알레고리 라 할 수 있다. 세계와 인간의 결투는 그칠 줄 몰랐다. 괴물이 우세해 보이지만 강한 것은 거인이었다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근대적 세계 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이 지향하는 파국이, 무상한 노 력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세계와의 결정적인 결별을 의미하 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비인을 지향하는 인물들이 도달한 지점을 인과의 고리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난 비인의 영역 으로 서술하고 있 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인의 의미는 결국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의 의미와 일치한다. 비인은 턱받기를 한 어린애 142), 어머니의 젖을 물 고 어린애처럼 잠에 묻혀 버리고 143) 싶어 하는, 죄의식 인과율을 벗어 난 무구한 존재이면서 근대의 신화적 폭력을 파괴하는 화강의 거인 과 같은 존재, 즉 능동적 허무주의자인 초인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앞서 고찰하였듯이 장용학은 비인 탄생의 순간을 디오니소스적인 심 미적 현상의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초인의 알레고리, 비인이 거주하는 영역이 갑작스럽게 이성적 주체가 붕괴하고 전율에 휩싸이는 심미적 현상, 즉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의 영역임을 의미한다. 장 용학은 근대의 신화성에 굴복하지 않고, 신화성을 초극하는 구체적 영역 으로서 심미적 현상의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장용학의 소설은 비인을 지향하는 작중인물들을 통해 자연의 무상성 의 알레고리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근대적 세계의 초월에 142) 장용학, 요한시집, 현대문학,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72.

21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15 이르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소설이 신화적 운명에 대한 초월을 표현하고 있는 고대 비극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장용학 소설이 대체로 주인공의 죽음이나 발광으로 끝이 난다고 할 때, 죽음과 발광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주체의 소멸은 근대적 비극의 주인공의 죽음, 즉 신화적 운명에 대한 단순한 종속을 의미하는 익명적 죽음보다는 고대 비극의 주인공의 죽음, 즉 신화적 운명에 대한 역설적 초월로서의 예외적 죽음이라는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144) 결국 장용 학의 소설은 한편으로는 자연의 무상성을 표현하는 근대적 알레고리를 지향하면서도(물론 앞서 설명하였듯이 그의 알레고리는 자연의 무상성 만을 표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화적 운명에 대한 초월을 표현하는 고대 비극을 지향하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고대 비극의 단순한 반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적 의미의 비극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 는 일차적으로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 상의 표출로 나타나며 희곡 日 附 變 更 線 近 處 ( )와 圓 形 의 傳 說 ( )에 이르면 비극적 모티브와 서사구조의 직접적인 원용이라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희곡 일부변경선근처 는 산지기로 살던 사생아 한지가 자신의 출생 144) 벤야민은 고대 비극의 주인공의 죽음을 역설을 통한 신화적 운명의 극복이라고 본다. 비극이 데몬적인 것에 대해 맺는 관계는 역설이 애매성에 대해 맺는 관계 와 같다. 비극의 역설 속에서 -고대의 율법에 따르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희 생 속에서, 죄에 대한 응보이지만 자아만을 사라지게 만드는 죽음 속에서, 그리고 인간만이 아니라 신에게도 승리를 안겨주는 비극적 결말 속에서- 데몬적인 것의 흠, 즉 애매성은 몰락한다. 그 결과 고대 비극의 주인공은 신화적 운명의 희생자 로서 신에게 승리를 안겨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덕적 유아, 개인으로서의 영웅 의 재탄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신화적 운명을 초월하는 예외적 죽음에 이른다. 반면 근대비극(독일비애극)의 주인공의 죽음은 단순히 신화적 운명에 대한 종속만 을 의미하는 익명적 죽음에 머문다. W. Benjamin, 앞의 책, pp

214 21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의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 이치우의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머슴의 아들 李 致 宇 는 주인집 딸을 겁탈하고 아내로 삼았다가 한지라는 아들을 낳는다. 그는 韓 之 의 어머니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 였으면서도 그들 모자의 일을 완강히 부정할 뿐만 아니라 한지를 살해 하려 한다. 한지는 산지기로 있었을 때 알게 된 이복동생 蘭 伊 와의 사랑 을 재차 확인하고 근친상간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죄의식 때문에 고 민한다. 그러나 한지는 이치우가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침내 죄의식을 떨치고 난이와의 육체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치우에 게 복수하는데 그 과정에서 난이, 이치우, 한지 등은 모두 죽음에 이른 다. 원형의 전설 은 일부변경선근처 의 인물과 상황 설정 그리고 주제 의식을 장편 분량으로 확장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두 작품은 근친상간 의 모티브를 채용하고 있다는 점, 오레스테스의 비극적 서사 구조를 취 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이전 작품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 비극 에서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 父 )를 살해한 클리타이메스트( 母 )에게 원수 를 갚기 위해 귀향하여 누이인 엘렉트라의 도움으로 어머니에게 복수한 다. 145) 日 附 變 更 線 近 處 의 한지와 원형의 전설 에서 이장은 모두 자 신의 어머니를 겁탈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 李 致 宇 와 吳 澤 富 에게 복수해야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인물로서 누이의 도움, 즉 자신의 이 복동생인 蘭 伊, 安 芝 夜 와의 근친상간을 통해 아버지에게 복수한다는 점, 복수의 대상이 부모라는 점에서 오레스테스 비극과 구조상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일부변경선근처 와 원형의 전설 은 어머니(한지와 145) 오레스테스의 비극은 아이스킬로스의 제주를 받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등에서 다루어졌 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엘렉트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으 며,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 은 오레스테스가 클리타이메스트라를 살해한 후의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중 제주를 받치는 여인들 이 장용학 소설의 구조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15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17 이장의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이치우와 오택부)의 겁탈의 경우는 인간 에 대한 신, 죄의식의 지배라는 의미로, 아버지에 대한 아들(한지와 이 장)의 복수의 경우는 신, 죄의식의 지배에 대한 초극이라는 의미로 재해 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비극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韓之 : 이 罪意識 (발을 떼 놓으며 앞으로 나온다.) 죄의식이란 엄살이 다! 人間은 엄살 부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患者다! 그래서 (枯木쪽 으로 몸을 돌리며) 神을 만들어 냈다. 엄살은 天性이 되고 하나님은 새끼줄이 되었다! (感情은 激하지만 音聲은 如前히 고요하다.) 그러나 한 오리 良心이 아직 남아 있어서 神의 이름을 부를 때는 부끄러 움을 느끼는 것이다. (八姓이 사라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가) 罪意識 이 人間인가 그렇다면 이 땅의 意味는 무엇인가! 흙으로 된 人間의 意味는 무엇인가! (뒤로 뒤로 亭子 그늘로 물러선다.) 周圍가 더욱 어두워진다.146) 인용문은 아버지 이치우가 한지를 자신의 아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한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지가 이복동생인 난이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의 고민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다. 난이와의 사랑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보다 근 본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을 억압하는 죄의식에 대한 초월을 의미하는 것 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는 사르트르가 파리 떼 에서 오레스테스의 복수 과정을 제우스라는 신에 의해 종용되는 죄의식과의 대결 과정으로 재창 조한 것과 일치하는 부분으로서 사르트르의 파리 떼 와의 영향관계를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한다. 일부변경선근처 은 물론이고 원형의 전설 146) 장용학, 일부변경선근처, 현대문학, , p.153.

216 21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모두 사르트르의 파리 떼 의 영향 관계를 추측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러나 카우프만의 평가에 따르면 사르트르의 희곡 작품 중 이런 식의 죄 의식과의 대결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은 파리 떼 한 작품이다. 그리고 죄의식과의 대결 과정을 형상화하기 위해 파리 떼 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 의 하강 이미지나 그 책 제1부 파리 떼에 관하여 에서의 파리 떼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는 등 사르트르의 고유의 사상 을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니체에게 강하게 영향 받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147) 결국 장용학에 대한 사르트르의 영향이란 니체의 영향에 다 름 아닌 것이며, 일부변경선근처 와 원형의 전설 은 근본적으로, 근대 적 세계를 죄의식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초월을 주장해 왔던 장용학의 사상, 즉 니체에게 영향 받은 기존의 초인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용학은 일부변경선근처 와 원형의 전설 에서 오레스테스의 비극 적 구조를 차용하고 이를 현대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비극으로 재창조하 고자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근친상간의 모티브를 도입함으로써 구체화 된다. (1)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적 인물은 공포심과 그런 상황에 놓여 진 운명에 동정이 가는 인물이라고 했는데, 近親相姦의 상황에 빠진 인물 이 그 정의에 부합한다고 봐요. (중략) 그의 悲劇은 倫理의 壁에 부딪친 데 서 온 것이고 그 윤리는 벗겨 놓으면 合理입니다.148) (2) 필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3)의 사전에 남매라는 것 을 알았는가 하는 것이다. 남매간이라는 것을 알면서 상간했을 경우에라야 현대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서로 모르고 그랬을 땐 그것은 고전적인 인 147) W. Kaufmann, Tragedy and Philosoph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pp ) 장용학, 원형의 전설 그후, 소설문학, , p.330.

217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19 간 비극은 되어도 현대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은 못될 것이다. 몰랐기 때 문 이라는 핑계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는 핑계가 용납되 지 않는 계절이다. 현대가 이제까지와 그 성격이 다른 하나의 면은 핑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핑계의 역사였다. 인간의 불행은 운명(희랍비극), 신의(중세교회), 유전(자연과학), 환경(사회과학) 등 에 그 책임을 전가했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핑계를 차례 차례로 죽여 버려온 과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핑 계를 내세울 것이 없다. 현대인이 자유인인 까닭이다. 149) (밑줄-인용자)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장용학은 근친상간에 빠진 인물을 가장 전형 적인 비극적 인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인용문 (2)에서 드러나듯 고대비극 과는 달리 현대의 상황에서 그것은 알고 행하는 근친상간이어야만 한다 고 주장한다. 알고 행하는 근친상간이어야 한다는 지적은 고대 비극과는 구별되는 현대적 비극의 주요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고대비극과 현대 적 비극의 차이를 죄의 성격의 차이에서 찾고 있는 키에르케고르는 소 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를 예로 들면서 고대 비극의 죄가 윤리적 죄가 아니라 비극적 죄라고 주장한다. 윤리적인 죄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으 로 인해 발생하였기 때문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죄라면, 비극적 죄는 윤리적 죄 이전의 물려받은 죄라는 점에서 양가적인 심미적인 죄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고대 비극에서 개인은 민족과 혈족(안티고네가, 죄지은 외디프스의 딸이라는 점)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자신의 죄가 아닌 물려받은 죄 때문에 불행해지며, 그의 불행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 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부여된 하나의 수난을 의미한다. 반면 현대적 비 149) 장용학, 소재노우트 : 원형의 전설 의 근친상간, 계간 한국문학, 1966 봄, p.145.

218 22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극의 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개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윤리적 죄라 고 규정하고 그로 인해 근대적 비극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 장한다. 150) 비극적 효과가 떨어질지언정 현대 비극은 윤리적 죄로부터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인용문 (2)는 크게 두 가지 사실 을, 즉 그것은 한편으로는 장용학이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비극의 죄를 고대 비극의 물려받은 죄가 아니라 개체 자신에 책임 있는 윤리적 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알고서 행하는 근친상간을 자유인, 즉 죄의식을 초월한 非 人 이 되기 위한 결정 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현대적 비극을 가능케 하는, 비극적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로 설정되어 있는 근친상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현 대적 상황에서 장용학에게 근친상간은 다음의 두 가지 의미, 근대적 세 계를 지배하는 노예도덕, 즉 합리 와 윤리 에 의한 인간의 겁탈이라는 의미와 이에 대한 초월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원형의 전설 의 오기미와 오택부의 근친상간, 털보영감과 윤희의 근친상간과 일부변경 선근처 의 이치우의 한지 어머니에 대한 겁탈이 전자의 의미를 갖는다 면 일부변경선근처 의 한지와 난이의 근친상간과 원형의 전설 의 이 장와 안지야의 근친상간은 후자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50) S. Kierkegaard(임춘복 역),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 이 것이냐 저것이냐1, 종로서적, 1981, pp 참조. C. Holler에 따르면 키에르케고 르의 견해는 헤겔이 현대의 비극개념을 가지고 고대 비극을 해석하였다는 비판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비극론은 현대적 비극의 윤리적인 죄 와 고대 비극의 비극적인 죄 를 확연히 구분하고, 서사시의 몫으로만 간주되었던 외적 우연과 사 건, 운명 을 비극의 핵심 개념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키에르케고르가 윤리적 죄에 입각한 현대비극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것은 현대적 비극 창조의 어려움을 시사한다고 할 것이다. C. Holler, Tragedy in The Context of Kierkegaard's Either/Or,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 Either/OrⅠ, ed. R.L. Perkins, Mercer, 1995, p.129.

219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21 代代로 백정을 생업으로 살아온 집에 태어난 기미의 祖父는 日 靈戰爭 때 일본군에 소, 돼지를 잡아 바치는 일을 독점해 가지고 한 밑천 단단히 잡은 것입니다. 그의 아들은 그 돈을 가지고 고무신을 만들어내는 공장을 세워서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중략) 요지음도 툭하면 이렇게 先見之明 있었음을 자랑하는 그 백정의 아들은, 그 돈의 힘을 가지고 보통사람이었 다면 염도 못낼 어마어마한 야심을 품어 종내 목적을 달성했던 것입니다. 즉 낙백해 있었지만 몇 代 조상은 平安監司를 지냈다는 집안의 딸을 온갖 비열한 수단을 다 써서, 그가 스스로 자랑삼아 하는 말을 빌면 점잖게 약 탈 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택부와 기미였는 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딸은 어머니를 닮았다고들 했습니다.151) 일부변경선근처 에서 이치우는 머슴의 자식으로, 한지의 어머니는 주인의 딸로 설정되어 있고 원형의 전설 에서 오택부와 오기미는 각각 백정의 피와 양반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로서 이들의 근친상간은 양반(귀 족)에 대한 천민(노예)의 겁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부변경선근처 와 원형의 전설 의 최초의 근친상간은 노예도덕과 천민 자본주의에 지 배되는 당대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 화합할 수 없는 사생아 한지와 이장을 출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원형의 전설 에서 이장은 다양한 편력, 즉 한국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인 민군의 포로가 되고 북에 남아 철저한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다시 남파되어 간첩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안지야와 사랑에 빠지는 다 양한 편력을 보여주는데, 이는 최초의 근친상간을 통해 제시된 당대 현 실의 상황, 즉 노예도덕과 천민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을 서사적 으로 펼쳐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남한과 북한은 151)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419.

220 22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각각 천민자본주의와 금욕주의(노예도덕)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규정 된다. 제 2의 근친상간, 즉 안자야와 이장, 한지와 난이의 근친상간이야말로 원형의 전설 과 일부변경선근처 를 현대적 의미의 비극으로 만들어주 는, 비극적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최초의 근친 상간에서 제시된 현대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비인으로 재탄생하는 행 위를 의미하는데, 알고서 행하는 근친상간이 비극적 주인공의 영웅적 행 위가 되는 이유는 악의 실천을 선악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계기로 간주 하는 원형의 전설 의 서술자 의 논리, 즉 앞선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던 죄의식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좀더 구체 화된 논리에 주목할 때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원형의 전설 에서 가장 높은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는 역사의 종말 이후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서술자로서 이장의 의식은 이 서 술자의 관점에 의해 끊임없이 동조 혹은 비판된다. 역사의 종말 이후에 위치한 서술자는 현대적 상황의 비극이 이분법, 즉 대립적 가치 중 양 자택일의 강요 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이로부터 벗어나 圓 形 의 논리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데, 서술자에 의해 비판받던 이장 역시 오택부에 의해 동굴에 갖힌 다음부터는 동일한 관점을 갖게 된다. (1) 모두 二 分 法 이란 것 때문이오. 세상에는 分 法 이 여러 가지 있지만 이 二 分 法 이란 것이 압도적으로 많고 따라서 가장 人 間 的 인 分 法 인데 그래서 가장 주먹 九 九 로 돼있는 거요. 二 分 이란 바꾸어 말하면 對 立 인데 소위 科 學 的 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세상에 對 立 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오. 한 줄로 나라비를 시켜 놓으면 서로 이웃이 되어서 모두 親 戚 이란 말이오. 靑 은 남 색과 藍 은 紫 朱 와 자주는 赤 色 과 적색은 朱 黃 과, 주황은 綠 色 과 녹색은 靑 色 과 이렇게 한바퀴 휙 돌게 되거던. 道 德 도 마찬가지지. 봐요 善 은 忠 과

221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23 충은 愛 國 과, 애국은, 暗 殺 과, 암살은 惡 과. 그리고 이번에 거꾸로 말이오, 惡 은 도둑질과, 도둑질은 굶주림과 굶주림은 奉 養 과 봉양은 孝 와, 孝 는 善 이거던. 152) (2) 그 歷 史 的 使 命 을 다한 오늘날의 공산주의는 資 本 主 義 의 모순 부패 를 牽 制 하는 의미에 있어서, 善 을 일깨우고 善 을 강요하는 否 定 的 인 惡 的 存 在 로서만 그 存 在 理 由 가 있다. 李 章 이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은 이 것이었습니다. 이 惡 的 存 在 가 되는 것에 生 의 意 義 를 느끼는 者 라면 共 産 主 義 者 가 되어라. 이 나처럼.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이러한 견해는 남한에 와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자가 될 때의 出 發 點 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悲 願 現 實 逃 避 였고 禁 慾 主 義 였습니다. 금욕주의란 한마디로 말하면 感 覺 의 門 을 닫고 感 情 을 枯 渴 시 키는 일이었습니다. 捕 虜 收 容 所 에서 共 産 世 界 로 轉 屬 을 할 때 그의 感 覺 의 門 에는 그물이 쳐진 것이고, 그것이 吳 娘 之 墓 를 거치는 사이에 그 그물 코가 배어져서, 間 諜 이 되어 월남할 땐 帳 幕 이 된 것이었습니다. 153) 인용문 (1)에서 이장은 역사 이후에 위치한 서술자의 관점과 동일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장은 색깔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듯이 가치들도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원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입각할 때,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는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에 대한 비판이 가능해지며, 최고의 악인 이장(한지)의 근친상간은 최고 의 선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비극적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가 되는 것이 다. 원형의 전설 에서 이장은 공산주의자로의 변신과 안지야와의 근친 상간이라는 두 번에 걸친 결정적인 변신을 시도하는데, 이는 모두 선과 악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는 논리, 결국은 악을 통해 오히려 선을 실행할 152)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 )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396.

222 22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수 있다는 논리에 입각해 결정적인 전신을 이루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공산주의의 비인간성을 낱낱이 체험하였음에도 불 구하고 이장이 공산주의로 전향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고 할 때, 인용문 (2)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이를 설명하는 유일한 논리적 근거라 할 수 있다. 그는 포로 생활 속에서 감각의 문을 닫게 되 었고 어머니가 자신을 잉태한 것이 화간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욕주의를 의미하는 공산주의를 선택한다. 그는 선을 일깨우고 선을 강요하는 부정적인 악 적 존재 가 되기 위해 공산 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록 악이 선이 되는 상황을 형식 논 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 즉 선악의 초월이라는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장이 주장 하는 것처럼 공산주의가 금욕주의를 본질로 한다고 할 때, 그것이 기존 의 가치체계인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기는커녕 오히려 철저히 그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로의 변신은 전술한 바 있는 자기 초극의 기만적 시도, 즉 비인탄생 에서 경찰에 의해 누명을 쓰기 직전의 결심이나 역성서설 에서 화강암에 거인을 새기는 행위 등과 유 사한 기만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악의 실행이라는 논리를 구현하 는 것은 오직 이장의 근친상간일 뿐이며, 이장은 이를 통해 결정적인 자 기 초극을 시도하게 된다. 악의 실행이라는 논리는 인간의 종언, 부활미수 의 살인에서 이미 전제되어 있었던 논리로서, 근본적으로 노예도덕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 에서 초인은 범죄인의 형태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니체의 사상에 입 각해 있다. 원형의 전설 의 안지야와 이장, 일부변경선근처 의 한지와 난이의 근친상간은 이러한 니체의 사상을, 가장 극단적인 범죄로 간주되 는, 알고서 해하는 근친상간 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로

223 제3장 신화적 폭력에 대한 초극으로서의 비인과 알레고리 225 인해 악의 실행으로서의 근친상간은 비극적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라는 의미를 갖게 되며, 가치간의 대립을 부정하는 서술자의 관점에 대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제공한다. (1) 韓 之 : 여기에는 하나님이 없다! 있을 자리가 없다! 神 이란 懶 怠 하고 비겁한 者 들의 悲 鳴 을 번역한 誤 植 이다! 그것이 오식이란 것 은 이미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새로운 무엇이 아직 보이지 않으니까 그것을 그대로 걸치고 있는 것 뿐이다. (중략) 란이, 우리는 무덥고 긴 잠에서 깨어 일어 날 位 置 에 와 있는 것이다! 勇 氣 가 있는 것이 罪 인가 誠 實 한 것이 惡 인 가? 罪 惡 이라도 좋다! 地 獄 이라도 좋다! 나는 네가 곁에 있어 만 주면 그것이 眞 理 고 네 사랑 속에서만 나는 내가 人 間 답 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하겠느냐!(밑줄-인용자) 154) (2) 지난 일년 동안 어떻게 하면 그 백정을 보기 좋게 골려줄 수 있을 까, 나는 그것만 연구했다. 그랬는데 더 한층 效 果 的 이게도 지야는 情 婦 가 아니라 딸이었다. 알겠어? 더 효과적이게도 말이야. 그러니 反 抗 해봐! 반항 해두 소용없단 말이야! (중략) 험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미워도 해 봤지 만 演 劇 을 할만두 했겠다구 理 解 가 가요. 저는 사랑을 위해서였지만. 사 랑하기 위한 연극이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연극은 있을 수 없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늦었는 걸요. 이슬이 맺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地 獄 에 떨어질 女 子 죠? 地 獄 이 아니다! 에덴 저쪽이다! 아담 이브를 넘어 에덴 저쪽에 가서 우리는 사는 것이다!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말 은 그리하여 그 洞 窟 에서는 등불이 꺼졌습니다.(밑줄-인용자) 155) 154) 장용학, 일부변경선근처, 현대문학, , p )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p

224 22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악 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선악 판단을 초극하여 생을 긍정하는 자의 행위가 노예도덕의 견지에서 볼 때 악으로 다가올 수밖 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한지의 네 사랑 속에서만 나는 내가 인간답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이장의 사랑하기 위한 연극이었다 라는 언급에서 드러나듯 한지와 난이, 이장과 안지야의 근친상간은 사랑에 기 초한 행위로서 이치우와 오택부의 근친상간과는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그들의 행위는 선악을 넘어서 생을 긍정하는 행위로서 기존의 가치 체 계로 볼 때, 악을 의미하지만 이때의 악은 공포에 의해 지배되는 편협 한 도덕적 속박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 156) 를 의미하게 된다. 지옥이라 도 좋다! 나는 네가 곁에 있어만 주면 그것이 진리 라는 한지의 주장과 지옥에 떨어질 여자죠? 라는 안지야의 생각에서 드러나듯 그들은 지옥 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노예도덕의 견지에서 악이라 불려지는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진리 와 에덴의 저 쪽 에 이르는 현대 비극의 영웅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옥의 공포 는 비인으로의 전신을 위한 필수적이었던 극한적 고통의 또 다른 표현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근친상간은 이전의 작품에서 되풀이되던 주장, 선 악의 구별을 넘어서야 한다는 논리가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지점, 즉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한다 157) 라는 초인의 논리를 실천하는 현 대비극의 영웅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56) F. Nietzsche, The Will of Power, trans. W. Kaufmann, Landom Hause, 1967, p ) 니체는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려면 우리의 악을 우리가 가진 최선의 것으로 생각할 만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F. Nietzsche, 선악을 넘어서, 청하, p.96) 라고 보고 선과 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가 되어 가치들을 부셔버려야 한다. 이렇게 하여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하게 된다 (F. Nietzsche, 차 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p.191)라고 주장한다.

225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1.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근대의 신화적 폭력 손창섭, 장용학의 전후소설이 등장했을 때, 주요한 비평의 화제 중 하 나는 새로움 이었다. 김동리를 위시한 구세대들은 그것이 일본의 모방 내지 李 箱 의 아류라고 비판하였고, 장용학은 이에 대해 첫째, 일본 전후 문학과 우리의 전후문학은 동시대적인 것이기에 모방일 수 없으며, 둘 째, 李 箱 의 새로움이 기질적인 것이라면 자신들의 새로움은 현대사회의 부조리에서 유래하는 것이기에 아류일 수 없다고 반박한다. 1) 이에 대해 서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평가가 있었는데, 이봉래와 유종호가 그 대 표적 예이다. 이봉래는 신세대의 새로움이 역사적 필연성의 소산으로서 어떤 현상의 변화나, 또는 의미의 변질에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차원의 진화에서 성립되는 것 2) 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유종호는 독창성의 길이 멀다하여 샛길로 접어든 다다이즘의 쇼맨쉽 3) 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봉래가 손창섭과 장용학의 소설에서 질적인 차 원의 새로움을 보고 있다면, 유종호의 평가는 결국 단순한 기법상의 새 1) 장용학, 감상적 발언, 문학예술, , p ) 이봉래, 신세대론, 문학예술, , p ) 유종호, 새로운 우상, 세대, , p.196.

226 22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로움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새로움the new 은 현대성Moderne의 핵심 범주로서 단순한 기법상의 새로움을 넘어서며 어떤 앞 시대의 예술적 실천을 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자체를 부정하는 것 4) 을 의미한다. 이에 따를 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기법상의 새로움 보다는 그 속에서 표현되는 강렬한 반전통의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는데, 전후 소설 이 강렬한 반전통의식에 기반한 새로움 을 주장했다는 점은 전후소설가 들이 자신들의 문학적 기획을 밝히는 글에서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 다. (1) 신진층의 일반적 특색을 들면 그 고립성에 있다. 그들은 한국 문학사 와 단절된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한국 문학사의 유산은 거의 물려받은 것이 없다. 따라서 한국문단사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이치 일 것이다. (중략) 물론 패기와 의도만으로 문학이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진들이 기성을 불신하는 것은 능력을 가지고서가 아니라 그 의욕에서이 다. 한 걸음 나아가 말한다면 아량의 좁음에서이다.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그 사고방식에 대해서이다.(밑줄-인용자) 5) (2) 김동리씨는 해파리만이 참된 작품이고 백철씨는 게만이 참된 작품이 라고 한다. 이 두분은 이렇게 남북으로 그 위치는 다르지만 자연주의라는 밭에서 자라났다는 피빛은 같다. 그런데 신세대들의 출발점은 반자연주의 이다. 그래서 그들이 신세대를 비난하는 재료는 비본질적인 것 뿐이다.(밑 줄-인용자) 6) 4) T. W. Adorno, Aesthetic Theory, trans. Robert Hullot-Kentor, Minnesota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p.21. 5) 장용학, 감상적 발언, 문학예술, , p ) 위의 글, p.172.

227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29 장용학은 자신을 포함한 신세대가 한국 문학사와 단절 속에서 기성 에 대한 철저한 불신, 즉 철저한 전통 거부의 충동으로부터 문학을 시작 하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문학적 능력 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더욱 중 요한 것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패기와 의도, 즉 반전통의식이 다. 장용학은 김동리와 백철로 대변되는 기존의 문학을 자연주의 로 칭 하고 자신들의 문학을 반자연주의 문학, 현대문학 7)이라고 칭한다. 이 처럼 근대문학 대 현대문학이라는 대립 쌍 속에서 전후 문학을 현대문 학으로 내세우려는 시도는 특히 최일수의 비평에서 뚜렷이 드러나는데, 장용학의 주장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것을 부정 하려는 강렬한 충동이 그들의 작품세계를 지배하였고 이것이 자신들의 문학이 이전의 문학(근대문학)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현대문학이라는 규 정을 낳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현대문학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고찰 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 태평양전쟁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전쟁체험 이다. 전후세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이봉래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분명히 드러나듯 그들 모두는 전쟁 체험에 사로잡혀 있었다. 신세대라고 불리우고 있는 20대, 30대의 세대는 그 정신의 발육기를 전 쟁이라는 악몽의 계절 속에서 보내왔다. 그네들이 국민학교의 교문에 발을 디뎠을 때 또는 그네들이 모태로부터 인간의 세계에 고고지성을 질렀을 때,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정책은 이미 만주사변을 일으키고야 말았던 것이 다. 1920년으로부터 현재의 1956년에 이르기까지 신세대는 전쟁의 초연 속 에서 그네들의 육체를 성장시켜 왔고 그네들의 청춘을 영위하여 왔다. 과 거도 없고 또한 미래마저도 아득한 농무속에서 잠겨버린 허탈적인 풍토속 7) 장용학, 작가의 시각, 사상계, 1962, 특별증간호, p.280.

228 23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에서 그네들은 자멸의 예감에 허덕이면서 상처받은 자아를 고독한 현실세 계의 폐허 위에 확인하였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교육은 그네들의 머리 에서 민족 국가 자유 역사 등의 일체의 관념을 약탈하였고 심지어는 한 글 마저도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밑줄-인용자) 8) 우선 전후세대는 발육기에 한글을 빼앗겨 민족어에 대한 감각을 연마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들은 68문학 동인들에게 미분화된 언어의 의식의 소유라자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 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평양전쟁까지 포함하는 전 쟁체험으로 인해 그들의 내면은 과거도 없고 또한 미래마저 아득한 농 무 에 잠겨 있었다. 이를 기준으로 삼을 때, 장용학, 손창섭 등 전후 1세 대 작가들은 이호철, 오상원, 서기원 등의 전후 2세대 작가들보다 전쟁 체험으로 인한 영향이 더욱 심했다고 볼 수 있다. 전후 2세대 작가들은 최소한 해방공간 동안이나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행운을 가지고 있 었기에 언어 감각에서 전후 1세대 작가들보다 앞설 수 있었지만 절망의 정도에 있어서는 전후 1세대 작가들에 이르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이호철의 소설이 피난민의 삶을 그리고 있는 초기 소설부터 고향 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생활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현실화해적인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 서기원, 오상원 등의 문학이 항상 회복되어야 할 정상적인 삶에 대한 지향 속에 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에 도달하기 위한 포즈의 차원을 크게 벗어나 지 못한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이를 고려할 때 전후 문학의 중심은 손창 섭과 장용학이라 할 수 있는데, 주체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외부로 부터 가해진 대재앙의 충격이야말로 그들의 체험 및 문학의 본질이다. 8) 이봉래, 신세대, 문학예술, , p.132.

229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31 태평양전쟁은 물론 한국전쟁 역시 개별적 주체에게는 외부로부터 닥쳐 온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이 전쟁으로 발 전한 것이라고 파악할 수도 있지만, 전쟁 자체가 갖는 재앙적 성격으로 인해서 그리고 한 민족을 넘어선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점으로 인해서 한국전쟁은 해방이나 자유 수호라는 정치적 이념을 사실상 무색하게 만 드는 대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을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 만 놓고 볼 때,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사화산, 요한시집, 현 대의 야 등에서 전투장면이나 전쟁터에서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묘사하 고 있는 장용학과는 달리 손창섭의 경우 전후 혹은 피난지에서의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차이를 드러낸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전투 장면이나 전쟁터에서의 경험은, 서울 수복 당시 인민군과 국방군의 전투 속에서 약혼자를 잃게 되고, 인민군이 된 옛 제자를 숨겨주었다가 미군에게 끌 려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희생 에서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표현 되고 있으며 생활적 의 동주, 침입자 의 박치롱, 잉여인간 의 천봉우 등에서 드러나듯 대체로 등장인물의 회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1) 불시에 퓽 퓽 퓽 하는 소리가 나다가는 빵하고 터지는 것이었다. 소 총이나 기관총은 여기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 디려 있던 在聖은, 차츰 오금이 떨려서 견딜 수 없었다. 일어서서 창 너머 로 밖을 보았다. 허리를 꼬부리고 콩밭 사이로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양이 보이었다. 하수도 속으로 피신을 가는 동네 사람들이었다.9) (2) 東周의 눈에는 포로수용소 내에서 적색포로에게 맞아 죽은 몇몇 동 9) 손창섭, 희생, 해군, , p.254.

230 23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지의 얼굴이 환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올가미에 목을 걸린 개처 럼 버둥거리며 인민재판장으로 끌려가던 자기의 환상을 본다.10) (3) 피난 갈 기회를 놓치고 적치 삼개월을 꼬박 서울에 숨어 지낸 봉우 는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잠시도 마음 놓고 깊이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밤이나 낮이나 이십사시간 조금도 긴장을 완전히 풀어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11) 희생 의 전투장면, 동주와 봉우의 회상에서 드러나듯 이를 통해 표 현되는 지배적인 정서는 대재난으로서의 전쟁이 인간에게 야기시키는 공포와 불안으로서 손창섭의 작품은 장용학이 폭격장면들을 통해 모든 가치와 의미의 붕괴를 묘사하는 것과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투 장면, 전쟁터에서의 경험 등의 표현에서 장용학과 손창섭이 보이는 차이 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의 표현 방식의 차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손창섭 역시 장용학과 마찬가지로 대재앙 으로서의 전쟁체험에 입각해 고유의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 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의 직접적 표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손창 섭, 장용학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이 소재의 차 원을 넘어서 허무주의로 나타나는 점, 그리고 역사와 근대성 자체에 대 한 전면적 회의, 즉 역사와 근대성의 본질 자체를 대재앙으로서 간주하 는 관점의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진보적 역사철학은 복수적인 역사 대신에, 직선적이며 불가역적인 단 수화된 세계사를 상정하고 그 과정을 행위 주체들(인류, 계급 혹은 민족) 이 역사의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12)는 데 본질이 있다. 하 10) 손창섭, 생활적, 비오는 날, 일신사, 1959, p ) 손창섭, 잉여인간, 사상계, , p ) 최문규, 역사철학적 현대성과 그 이념적 맥락, 탈현대성과 문학의 이해, 민음사,

231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33 이드브링크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이래 역사적 이성에 대한 불신이 발 생하고 이러한 불신은 이상과 같은 역사철학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 해 석, 즉 역사를 파괴적 과정으로 해석하는 부정적 역사철학(die Negative Geschichtsphilosophie), 역동적 과정으로 해석하는 탈역사(die Posthistorie), 우연적 과정으로 해석하는 탈근대(die Postmoderne)라는 관점을 낳게 만든 다. 13) 손창섭과 장용학은 그 중 부정적 역사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부정 적 역사철학의 핵심은 역사적 과정을 보편적 몰락사로 간주하고 근대성 의 카타스트로피적 성격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총체 적으로 수행되는 필연적 결과로 상정한다는 데 있다. (1) 人 間 이 파괴를 즐기고 鬪 爭 的 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인간이 人 間 이기 위한 條 件 이었고 人 類 前 史 에 終 止 符 를 찍게 한 核 戰 爭 은 그들이 스스로 자기의 條 件 을 淸 算 하기 위한 전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4) (2) 東 植 의 머리 속에, 줄기가 마르거나 열매가 물으면 결국은 떨어지고 야 말 듯이, 貞 淑 은 그렇게 죽을 수 있으리라는 동감과 함께, 고인이 남기 고 간 두 어린 것의 슬픈 운명을 자기는 책임져야겠다고 중얼거리는 것이 었다. 15)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원형의 전설 의 서술자는 인간의 파괴성이 인류의 역사를 끝장낸 이후, 즉 역사 이후의 존재로서 설정되고 있는데, 이는 역사를 파괴적 과정으로 간주하고 역사의 종말을 지향하는 장용학 의 작가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손창섭의 경우 사연기, 비오는 1996, p ) L. Heidbrink, Melancholie und Moderne, München, 1994, S )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p ) 손창섭, 사연기, 문예, , p.195.

232 23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날 등에서 한국전쟁은 사십주야를 비가 퍼부어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매어 둔 노아네 가족만이 남고 세상이 전멸을 해 버렸다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대홍수 16) 에 비유되며, 원경으로 제시되는 역사적 격변은 등장 인물들에게 철저하게 폭력만을 가하는 초주체적 존재로 제시된다. 부정 적 역사철학이 역사를 무상성만을 노정하는 자연사로 보는 관점을 의미 한다고 할 때, 특히 손창섭 소설 전체에서 제시되는 죽음에 대한 고유의 의식은 이러한 관점을 삶 자체에 대한 규정으로 내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용문 (2)에서 드러나듯 손창섭 소설에서 죽음은 자연의 무상성의 단순한 표현이며 따라서 삶 자체는 중도반단의 무의미한 과정을 의미한 다. 죽음과 삶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죽음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 지였다. 중도에 모든 것이 그쳐 버리는 것이었다 17) 라는 표현에서 드러 나듯, 물론 장용학의 관점이기도 한데, 이처럼 삶에서 자연적 무상성만 을 발견한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접적 규정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역 사를 자연사로 규정하는 관점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장용 학이 역사, 근대성 자체를 철저한 파괴의 과정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으로 역사의 종말을 추구하고 있다면, 손창섭은 역사, 근대성 자체에 대한 직 접적 규정은 등장하지 않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한 일련의 역사적 격동에 서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성만 볼 뿐, 어떤 긍정적 의의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내면화된 부정적 역사철학을 표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역사를 파괴의 과정, 자연사로 간주할 때, 역사는 인간이 산출하였음 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마성적 성격을 띠게 되 고 그로 인해 그것은 인간에게 언제 갑작스럽게 폭력성을 발휘할지 모 16) 손창섭, 비오는 날, 문예,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4.

233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35 르는 존재로서 다가오게 된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한 물리력을 가리키는데, 18)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에서 나타나는 폭 력성은 근대, 역사 자체의 대재앙적 성격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으로서 특정한 목적을 상정할 수 없는 신화적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는 데 특성 이 있다. 19) 이때의 신화성이란 근본적으로 신화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 으로 간주되는 자연의 마성적인 폭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2의 자연 (관습의 세계)이 사물화될 때 발생하는 폭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장용학 의 작품의 경우 근대와 역사의 신화적 폭력성이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데 반해, 손창섭의 작품의 경우 신화적 운명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차 이를 갖지만 동일하게 근대와 역사의 대재앙적 성격, 폭력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자기는 이북에서 탈출해온 사람이라는 것과 奉 均 이와의 관계를 두서 없이 줏어 섬기었다. 그런 말을 통역은 변변히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在 聖 은 모든 것을 단념했다 그리고 닥쳐올 운명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즉시 在 聖 과 奉 均 은 역시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건너편 산기슭으로 끌리어 갔다. 20) 18) 폭력에는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폭력,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 제도의 구조 적 폭력, 그리고 죽음이라는 근원적 의미의 폭력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김희봉, 인간폭력의 근원과 의미, 현상과 인식, 1998 겨울호 참조. 19) 한나 아렌트는 폭력(violence)이 도구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고 보고, 제휴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하는 권력(power)과 대립시킨다. 그녀 에 따르면 폭력에 대한 찬양은 폭력의 도구적 성격을 간과한 결과이다. 반면 벤야 민은 신화적 폭력을 자연의 마성적 힘으로 간주함으로써 근대성에 대한 비판 개념 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야만으로서의 역사를 폭파시키는 신성한 폭력을 구별함으로써 후자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H. Arendt(김정한 역), 폭력의 세기, 이후, 1999 ; W. Benjamin,, Critique of Violence, Reflections, ed, P. Demetz, Schocken Books, 1978 참조. 20) 손창섭, 희생, pp

234 23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商 大 : 나두 처음에는 흥분했소. 그렇지만 동생의 경우는 罪 가 아니 고 災 難 이었소. 더구나 자기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소. 在 明 : 그것으로 변명되는 일이 아니지만 그때 내 눈만 성했더라도 내가 죽는 것을 보면 봤지 그런 일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요. 21) 신화적 운명이란 고대 비극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자연의 마성적 힘 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손창섭의 경우, 대재앙으로서의 전쟁 이 개체에게 가하는 폭력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인용문 (1)의 희생 과 주인공 혜순이 동난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고야 말 게 되었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죄없는 형벌 정도에 불과하다. 손창섭 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오히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을 원경으로 처 리하고 삶 자체를 불행과 죄의식만을 강요하는 운명의 영역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반면 장용학의 경우 대부분의 주인공이 인용문 (2)에서처럼 대재앙의 희생자로 설정된다. 사화산,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요한시집 등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대재앙으 로서의 전쟁이 모든 가치와 의미를 붕괴시키는 폭력성으로 표현되며, 비인탄생, 역성서설, 현대의 야, 유피, 대관령 등 전후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이를 더욱 확장하여 죄의식 신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세계 자체의 신화적 폭력의 표현 에 주력한다. 이때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법으로서, 그의 작품에 서 법이란 근대의 신화적 폭력성, 구체적으로 법유지적 폭력을 의미한 다. 21) 장용학, 세계사의 하루, 계간 한국문학, 1966 추동, p.274.

235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허무주의적 인간상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전쟁은 대기근, 역병과 더불어 인류사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빈번한 재난으로서 그 희생자들에게 감정과 정서, 인식적 과정, 생명현상에 결 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서상에서 우울의 정조가 지배적이게 만들며 인 식 과정상에서 자아의 통일성의 붕괴 그리고 생명현상의 퇴조를 낳는 다. 22) 한국전쟁은 그 강도에 있어 기존의 어떤 전쟁보다 강렬하였기에, 니체가 지적한 바 있는 행복, 이성, 덕, 정의, 교양 등 시민적 기독적 인 간상에 대한 철저한 부정, 궁극적으로는 진리, 신, 도덕 등 최고의 가치 의 평가 절하, 즉 허무주의를 도래케 하였다.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에서 제시되는 독특한 인간들은 실존적, 기호론적 의미 양 차원에서의 의미와 가치의 붕괴를 가져오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 기초해 있는 인물 들로서 결국 시민적 인간성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인간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손창섭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생활적 의 춘자와 봉수, 피 해자 의 순실, 인간동물원초 의 주사장과 방장, 유실몽 의 누이, 소 년 의 母, 저녁놀 의 父 와 술집여자 등 동물적 인간과 사연기 의 동 식, 비오는 날 의 원구, 생활적 의 동주, 미해결의 장 의 지상, 인간 계루 의 나와 은주 등 우울자로 대별된다. (1) 먹고, 배설하고, 자는 일 이외에는 고작 잡담(먹는 얘기와 여자 얘기 : 인용자)만이 공식처럼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이 감방 안에, 마침내는 하나 의 사건이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오랫 동안을 두고 쌓여온 방장과 주사장 사이의 악화된 감정은 드디어 터지고 만 것이다. 23) 22) P.A. Sorokin, Man and Society in Calamity, Greenwood Press, 1973 참조.

236 23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훈기에 섞어 배여드는 지린내와 구린내를 어쩔 수 없듯이, 젖은 옷처 럼 전신에 무겁게 감겨드는 우울을 東 周 는 참고 견디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삼십여년간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만 오지 않았느냐! 죽음까지도 참고 살아오지 않았느냐 말이다. 24)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동물적 인간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자연적, 감각적 삶에 대한 만족만을 추구한다면 인용문 (2)에서 드러나듯 우울자 는 삶 자체를 비참, 불행으로 간주하고 견딜 수 없는 우울과 슬픔에 사 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서로 구별되지만, 양자 모두 기존의 도덕적 가치 관에 대한 회의를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손창섭은 동물적 인간 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루소적 의미의 자기보존self-preservation과 니체 적 의미의 권력의지 the will to power라는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표현하 는데, 결국 전자의 관점이 우세하다. 동물적 인간은 시민 사회 이전의 만인 대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로서 의 자연상태에서 자기 보존을 추구 하는 존재로서 선악을 초월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선악 이전의 인간이라 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무구하며 결과적으로 시민사회가 상정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부정을 표현하고 있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회의는 우울자를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 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우울자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무한성)과 그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유한성)의 불일치 속에서 불행을 의식하는 인 물들인데, 죽을 수조차 없다는 극단적인 불행의식 외에도 운명의식, 죄 의식 등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들이다. 우울자들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 (탈현실화)과 자아 정체성의 해소(탈인격화)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데, 특 23) 손창섭, 인간동물원초, 문학예술, 1956,4, p ) 손창섭, 생활적, p.69.

237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39 히 미해결의 장 의 지상과 생활적 의 동주, 유실몽 의 철수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주위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감정을 상 실하는 무감정의 감정이라는 역설적 심정성 (die paradoxe Befindlichkeit des Gefühls der Gefühllosigkeit) 25) 에 처해 있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행위 자체의 마비, 불가능에 도달한다. 동주와 지상의 행동능력의 부재는 단순한 울증의 병리학적 증상을 넘어서 인간적 행위의 모든 가 치가 박탈되었다는 통찰의 결과라는 점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삶이라는 모랄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부정을 의미한다. 장용학 소설에서 추구되는 비인 의 경우 이제까지의 연구는 주로 사 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입각해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장용학 소설이 대재앙의 전쟁체험에 입각해 그보다 앞서,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 로 니체의 초인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장용학이 지향하는 비인 은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 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초인 을 지향하는 비인 이라는 인간상은 손창섭의 인물들보다 더욱 직접적으 로, 시민적 인간상에 함축되어 있는 정의, 덕, 이성 등에 대한 거부를 표 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재난의 희생자들로서 대재앙으로 서의 전쟁체험이 야기한 가치와 의미의 붕괴에 고통 받으면서도 그로부 터 오히려 기존의 가치와 의미를 적극적으로 붕괴시키고자 한다. (1) 神 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짓을 해도 좋다 가 아니라 神 은 없 다. 그러므로 나는 罪 人 이 아니다 적어도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리 되면 나는 罪 人 이 아니다. 그러므로 神 은 없다 이런 解 說 은 눈을 한번 딱 감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26) 25) L. Heidbrink, 앞의 책, S )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사상계, , p.336.

238 24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2) 因 果 律 이라는 怪 物 은 죽었다. 一 이 多 를 죽이던 合 理 的 인 주먹 구구의 野 蠻 時 代 는 끝났다. 生 을 못박던( 刑 ) 메카니즘의 十 字 架 는 타서 재가 되었다. (중략) 人 間 最 大 의 誤 算 은 끝끝내 自 己 를 속여낼 수 있다고 본 怠 慢 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그 免 罪 符 로 그는 휴매니즘 이라는 勳 章 을 制 定 하여 자기의 가슴에다 달아 주었던 것이다. 오늘의 휴매니스트 는 휴매니즘의 敵 이어야 한다! 27) 허무주의가 최고 가치의 가치절하 를 의미한다고 할 때, 장용학 소설 에서 최고의 가치 는 구체적으로 죄의식(도덕) 신과 인과율 이성적 주체를 의미한다.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신에 대한 거부는 곧 도덕의 핵심인 죄의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며, 이는 인용문 (2)에서 드러나듯 이성적 주체의 본질을 의미하는 인과율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가 오늘 날의 휴매니스트는 휴매니즘의 적이어야 한다 고 할 때, 이는 곧 죄의식 신과 인과율 이성으로 규정된 시민적 인간성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울자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가 죄의식인 데 반해, 비인은 죄의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양자가 표현하는 허무주 의의 상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자의 죄의 식은 개체가 책임져야 할 결정 행위의 결과로서의 윤리적 죄(ethical guilt) 나, 개체의 인격적 결정에 선행하는 상태로서의 죄(sin), 즉 종교적 죄 개 념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자연적 삶 자체가 죄로 인식되는 자연적 죄 (natural guilt)에 대한 의식으로서, 근대성의 대재앙적 성격, 폭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화적 운명, 즉 무구함과 행복이 부재하고 오로지 불행 과 죄만을 강요하는 신화적 운명의 영역에 존재하는 자의 독특한 죄의 27)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383.

239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41 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창섭의 우울자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 으면서도 이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최고 가치의 몰락 에 고통 받고 슬픔에 사로잡힌다는 점에서 능동적 허무주의와 구별되며, 그럼에도불구하고 가치 파괴적 행위, 즉 부정적 행동(doing No)을 추구한 는 점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와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허무주의, 즉 니체 가 지적한 바 있는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 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반면 장용학의 비인은 최고의 가치의 몰락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오 히려 의식적으로 그 몰락을 촉구하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니체는 초인에 대한 대립자로서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e 을 설 정하고 있는데, 이는 시민적 인간성을 구현하고 있는 자로서 약함의 징 후로서의 수동적 허무주의(금욕주의)를 표현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손창섭의 우울자는 이와 구별되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죄의식 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하나두 나의 죄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물론 춘자씨의 죄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28) 라 는 유실몽 의 철수의 주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끊임없이 죄의식에 대항하는 과도적 단계의 인물이다. 니체에 따를 때, 능동적 허무주의는 모든 것이 죄없다 는 통찰에 도달한 것을 의미하는데, 손창섭의 우울자 들은 아직 그 지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러한 통찰에 이르는 도 상에 있는 예비적 단계 의 인물로서 그들에게서 표현되는 심미적 슬픔 은 최후의 인간과는 구별되는 긍정적 능력을 의미한다. 29) 28) 손창섭, 유실몽, 사상계, , p ) 저 슬픔의 능력을 지닌 인간들-그들의 수는 얼마나 적은가!-에게서, 인류가 도덕 적 인류에서 현명한 인류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최초의 시도가 이루어진 다 라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는 예비적 단계의 인간의 고유한 슬픔을 최후 의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능력 으로 평가한다. F. Nietzsch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세상, 2001, p.120.

240 24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불운한 자(the underprivileged)의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손창섭의 우울자 와 능동적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장용학의 비인은 각각 슬픔과 고통의 정조를 특색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손창섭 소설의 지배적 정조인 슬픔은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죄 없다 는 통찰에 이르는 과 도적 단계의 정조로서 궁극적으로 최고 가치의 몰락에 대한 슬픔이다. 반면 장용학 소설에서 등장하는 고통은 손창섭 소설에서 등장하는 슬픔, 즉 근대적 세계의 멜랑꼴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다. 장용학의 등장인물들은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 체험으로 인해 가치와 의미의 붕 괴라는 상황에 부딪치는데, 이때 발생하는 고통을 회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시하고 이용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고통을 극한적 으로 강화함으로써 파국이라는 예외적 상황에 이르고 그 결과 죄의식과 이성적 주체를 넘어선 비인의 영역에 도달한다. 이때의 고통은 고양된 실존의 시금석으로서 고통의 정점에서 염세주의가 자발적으로 지양되고 현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이 발생한다. 손창섭의 우울자나 장용학의 비인에서 표현되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은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악에 대한 추구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정숙의 자살을 방조하는 사연기 의 동식, 교원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춘자의 도움요청을 거절하는 유실몽 의 철수,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에서 무의미함을 발견하고 행동의 불가능성에 도달하는 미해결의 장 의 지상과 생활적 의 동주 등 손창 섭의 우울자들은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나 선업을 거부한다는 점에 서 우울자 특유의 나태 를 보여준다. 이는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 바 라봤을 때, 죄에 빠져 선을 거부하는 악마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한 악마적인 것의 본성, 즉 내용상 지루함과 공허 함, 형식상 폐쇄적 침묵, 시간적 특성상 갑작스러움이라는 본성 중 첫 번

241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43 째 속성에 해당한다. 또한 이들은 누명을 쓰고도 아무런 의사소통도 시 도하지 않는 생활적 의 동주, 피로와 슬픔이 안개처럼 낀 눈빛 으로만 말하는 사연기 의 정숙, 원구와의 대면에서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을 하 지 않는 비오는 날 의 동옥, 그리고 혈서 의 창애(제스추어), 생활적 의 순이(동물적 신음소리), 미해결의 장 의 광순(미소) 등 언어적 소통 을 거부하고 자신 속에 칩거하는 악마적 인물 특유의 폐쇄적 침묵을 보 여주고 있다. 선을 거부하는 우울자들 특유의 나태, 침묵의 악마성은 살 아 있음 자체에 대해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운명적 비참함에 대한 저 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장용학의 경우 비인 은 선악의 대립은 생 이전의 가정이다. 인류는 자학이 아니다! 생과 악이 양립할 수 있는 지역이 어디에 존재해야 한 다 30) 는 선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선악의 구별을 초월하려는 존재, 능동적 허무주의를 실천하려는 존재이다. 비인이 주장하는 선악의 초월 은 선과 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파괴자 되어 가치들을 부셔버 려야 한다. 이렇게 하여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하게 된다 31) 라는 니체의 사상, 즉 최상의 선으로서의 최상의 악에 대한 추구로 나아간다. 비록 악의 실행이라는 논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작 품 전체에서 제시되고 있는 관념적 진술들, 즉 근대적 세계를 지탱하는 두 가지 원리로 죄의식 신과 인과율 이성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초극 을 주장하는 관념적 진술들은 이미 그러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상의 선으로서의 악에 대한 추구는 일부변경선근처, 원형 의 전설 에서 제시되는 근친상간을 통해 명료한 형태로 제시된다. 장용 학은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하는 초인이 범죄인의 형태로 등장할 수밖 30) 장용학, 인간의 종언, 한국문학대전집13, 태극출판사, 1976, p.425( 문화세계, ). 31) F. Nietzshe(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p.191.

242 244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에 없다는 논리에 입각해, 일부변경선근처 의 한지와 원형의 전설 의 이장을 통해 가치간의 대립, 즉 선악의 구별을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악으로서 근친상간을 설정하고 근친상간을 범하는 한지와 이장 을 죄악이라도 좋다! 지옥이라도 좋다! 나는 네가 옆에 있어만 주면 그 것이 진리 32) 라고 주장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형상화한다. 손창섭의 우울자와 장용학의 비인이 보여주는 악에 대한 추구는 작중 인물에 대한 내용상의 규정을 넘어서 각각의 고유의 심미적 의식을 형 성하는 데 기여한다. 보러에 따르면 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에 서 최초로 축출된 이래, 철학적 이상주의적 전통으로부터 특정 문학 학 파의 대상만으로 혹은 내용적 차원의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니체 와 키에르케고르에 이르러 악은 예술이라는 현상 자체의 본질, 즉 전율 로 테마화되고 심미적 범주로 파악된다. 심미적 범주로서의 악의 가장 철저한 형태는 구조적, 테마적 차원 모두에서 의미를 거부하고 전율이라 는 미적 현상만을 구현하게 될 때 등장한다. 33) (1) 이제나 저제나 하고 집을 지켜보고 섰던 元 求 는 흠짓, 놀라듯이 몸을 떨었다. 창문 안에 드리운 거적을 캄파스 삼아 그림처럼 선명히 떠올라 있 는 흰 얼굴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東 玉 의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어쩌자고 東 玉 은 비 뿌리는 창문에 붙어 서서 저렇게 짓궂게 나를 바라보 고 있는 것일가? 어려서 들은,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이야기가 연상되어 자신에 오한을 느끼며 발길을 돌이키는 元 求 의 눈앞에 찢어진 지우산을 받고 다가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34) 32) 장용학, 일부변경선근처, 현대문학, , p ) K. H. Bohrer, Das Böse : eine ästhetische Kategorie?, in: Nach der Natur, München 1988, S ) 손창섭, 비오는 날, p.164.

243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45 (2) 굴뚝아래에 女子의 시체가 굴러 있었다. 뒷걸음치다가 그는 눈을 크 게 떠 가지고 한 두 걸음 다가들었다. 갈비뼈 아래 되는 데가 손바닥만큼 벌려 있다기보다 뭉쳐진 구더기로 꽉 막혔다. 뚫고 나온 것인가. 퉁퉁 부운 그 뱃속은 그런 구더기로 꽉 찼는지도 모른다. 數十 마리가 곰실곰실 순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운동이라기보다는 舞踊, 구더기들은 거기서 대낮 의 舞踊에 흥겨운 것이다.35)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에서 나타나는 악, 즉 우울자의 폐쇄적 침묵과 나태, 그리고 비인의 최상의 선으로서의 악의 추구는 그들의 소설이 제 시하고 있는 악마성이 그들의 작품에서 구현되고 있는 심미적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의 여자 주인공 정숙과 동옥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화석화된 인물로서 폐쇄적 침묵이라 는 악마적 성격을 구현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용문 (1)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한, 즉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로 묘사 된다. 또한 장용학에서는 인용문 (2)를 위시하여 요한시집 의 누런 배 설물 속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사람의 손 36), 비인탄생 의 어머니의 시 신에 대한 배가 터져서 흘러나온 밸의 진득진득한 重量感 37) 등 절단 된 시체에 대한 잔혹한(악마적 취향의) 묘사가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러 한 장면들은 모두 잔악한 행위의 결과를 통해 전율의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제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은 일정 단계가 지나면 새로운 심미적 가치 들을 산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38) 손창섭과 장용학의 허무주의 35) 36) 37) 38) 장용학, 현대의 야, 사상계, , p.329. 장용학, 요한시집, 현대문학, , p.65.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364. P. A. Sorokin, 앞의 책, pp

244 24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적 의식 역시 작품 내용상의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고유의 심미적 의식, 즉 손창섭의 경우 심미적 슬픔과 희극성을, 장용학의 경우 디오니소스적 심미적 현상, 알레고리, 비극성 등으로 표출된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 의 폭력성은 손창섭과 장용학에게 각각 근대적 세계 자체를 신화적 운 명의 세계, 신화적 폭력의 세계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근대적 세 계는 등장인물들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손창섭과 장용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근대적 세계에 대 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는 허무주의적 미의식을 획득하는 데까지 나아간 다. 손창섭의 우울자들은 삶에 대한 허무와 권태에 사로잡혀있는 허무주 의자이면서 선업에 대한 거부로서의 나태,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폐쇄적 침묵 등 악마적 성격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키에르케고 르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에서 지적한 바 있는 심미가에 해당한다. 즉 직접성, 감각성을 대변하지만 단순한 감각적 본성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 신에 대립하는 악마적 원리로서 규정된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것의 실행 자, 심미적 실존을 구현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39) 흔히 윤리적 실 존, 종교적 실존으로의 지양만을 중요시하는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심미 적 실존 역시 고유한 실존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고 손창섭의 우울자는 바로 이러한 악마적 심미가로서 심미적 실존에서 발생하는 악마적 성격 의 우울을 표현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이때의 우울은 실존적 예외상황에서 일상적인 것의 통상성이 파괴되는 심미적 경험을 의미한 다는 점에서 경험적 슬픔과는 구별되는 심미적 슬픔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악마적인 것은 내용상의 공허와 권태, 형식상의 폐쇄적 침묵, 시 간상의 갑작스러움을 특성으로 하는 심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39) S. Walsh., Living Poetically, The Pennsyli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4, pp

245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47 손창섭 소설의 우울, 슬픔은 우울자들의 나태와 폐쇄적 침묵이 악마적인 것의 내용상의 표지와 형식상의 표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악마적인 심 미적 현상, 즉 심미적 슬픔이라는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심미적 슬픔과 더불어 손창섭의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미의식 이 희극성이다. 우울자 동주는 동물적 생존의 욕구를 결코 부정할 수 없 다고 느끼며 미해결의 장 의 지상은 윤락생활을 직업이라고 칭하면서 생존을 위한 노동에 대해 유일하게 긍정적 입장을 취한다. 동물적 인간 에 대한 지속적인 묘사나 우울자들의 이러한 의식은 손창섭의 작품 세 계에서 유일하게 긍정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 삶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울자들의 심미적 슬픔은 바로 이러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긍정, 도덕적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되며, 그 악마성으로 인해, 대재앙으로서의 근대성이 인간 개체에게 가하는 폭력, 신화적 운 명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의 소설 에서 등장하는 희극성은 심미적 슬픔에 비해 좀더 적극적인 저항의 의 미를 갖는다. 손창섭의 우울자들이 인간존재의 부조화, 즉 인간적 삶의 유한적 상황과 인간적 삶이 추구하는 것 간의 모순에 처해 있다고 할 때, 그 모순은 어느 항목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절망의 정조를 발생시키 기도 하고 웃음의 정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사연기 의 정숙, 비오는 날 의 동옥, 미해결의 장 의 지숙, 유실몽 의 춘자 등의 경우 그들이 추구하는 것, 즉 무한성을 전경화시킴으로써 절망의 정조를 야기한다면, 비오는 날 의 동욱, 혈서 의 달수,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 낙서족 의 도현 등의 경우 그들이 처한 현실적 유한성을 전경화시킴으로써 희 극성을 야기한다. 이 가운데 특히 희극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적 삶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긍정에서 비롯되며 그로 인해 더욱 적극적인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 때문이다.

246 24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유실몽 과 낙서족 은 손창섭 소설의 희극성이 자연적 삶에 대한 긍 정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실몽 의 누이는 감 각적 욕구만을 추구하는 동물적 인간, 즉 자연적 삶을 대변하는데, 그에 대한 긍정은 누이는 본시 고민이나 오뇌라는 것을 전연 모르는 기질이 었다 40)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기질, 즉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한 인간 개체의 생래적인 기질에 대한 인정으로 나아가고 그로부터 누이에 대한 웃음이 발생한다. 낙서족 의 도현은 솔직하긴 하지만 그 대신 분별없 이 흥분하길 잘하고 좀 둔한 편 이라는 모친의 평가처럼 무모한 용감성 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조국해방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매번 희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벤야민에 따를 때, 영리하다, 우둔하 다 등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용감하다, 시샘이 많다 등의 기질 역시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41) 도현의 우둔한 용감성은 도덕적 가치 평가와는 무관한 기 질을 의미하며, 낙서족 은 기질을 무시한 채 인위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도현의 전복, 즉 희극성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삶, 기질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고 있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희극적 인물들은 기존의 성격 개념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 평 가로부터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무성격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들로서 신화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조적 인격 성, 다층적 성격 등과는 달리 단일하고 불변적인 성격 특성을 구현하고 있다. 42) 그들에 의해 야기되는 희극성은 인간적 삶을 자연적 죄로 규정 40) 손창섭, 유실몽, p ) W. Benjamin, Fate and Character, Reflections, ed. P. Demetz, Schocken Books, 1978, p ) I. Wohlfarth, No-Man s Land : On Walter Benjamin s Distructive Character, Walter Benjamin s Philosophy : Destruction and Experience, ed. A.Benjamin, Routledge, 1994, pp

247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49 하는 신화적 운명에 대항해 인간의 자연적 무죄성이라는 전망 43) 을 보 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장용학은 대재앙으로의 전쟁체험에 기초해, 역사와 근대 자체를 영원 한 파국, 대재앙의 과정으로 간주하는 철저한 부정적 역사철학, 그리고 최고 가치들의 평가절하를 의식적으로 촉진하는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 달한다. 이에 입각하여 장용학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의미와 가치의 붕괴에 절망하는 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절망의 강화 속에서 해결책을 찾음으로써 예외적 상황, 순간, 쇼크와 같은 범주가 중요시되는 대파국 의 심미적 의식das ästhetische Bewustsein einer drohenden Katastrophe 44) 을 획득한다. 그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근대적 세계는 죄의식 신과 인과 율 근대적 이성이 지배하는 신화적 폭력의 세계로서 그의 소설에서 등 장하는 심미적 의식은 능동적 허무주의가 가치의 몰락을 의식적으로 촉 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폭력을 붕괴시키는 데 본질이 있다. 우선 이와 같은 심미적 의식은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디오니 소스적 심미적 현상의 제시로 나타난다. 비인탄생 의 지호는 비인의 왕국! 시간이 죽고 공간이 범람하는 유역, 옷이 없이 살 수 있는 숫자 의 밭고랑에 끼어 들지 않아도 숨쉴 수 있는 나라 에 대한 예감을 설파 하고 역성서설 의 삼수는 인과율이라는 괴물은 죽었다!, 세계는 끝 났다! 라고 선언하는데 이때 제시되는 비인의 영역은 근대적 세계를 지 탱하고 있는 두 가지 원리, 즉 죄의식 신과 인과율 이성 등이 제거된 영역을 의미한다.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은 비인의 영역을 논리적인 차원에서 제시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극한적 강화를 통해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한다. 43) W. Benjamin, 앞의 글, p ) L. Heidbrink, 앞의 책, S

248 250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제시되는 파국의 순간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파국의 순간은 우선 意 識 이 부서져나가는 轟 音! 45), 내가 나를 脫 臼 한 것이다 46)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성적 주체가 제 거된 상태이다. 또한 그것은 차라리 귀신에게나 빌어요! 다음 순간이었 다. 쾩! 의식을 박살당했다 47), 極 限 이란 現 在 를 밀고 가서 現 瞬 間 에 一 致 시킨 순간이요 48)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갑작스럽게 일상적 시간 흐름을 중지시키는 순간적 시간 체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驚 愕 과 歡 喜 와 무슨 豫 感 에 온 몸이 떨리는 49) 전율, 즉 갑작스럽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 다가왔을 때의 전율의 체험을 동반하는 디오니소스적 황홀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보러에 따를 때 디오니소스적 심미적 현상은 갑작 스러움(die Plötzlichkeit)이라는 시간적 양식, 전율(der Schrecken), 개체화 원 리의 상실을 의미하는 이성적 주체의 부재의 상태의 황홀(die Verzückung qua absentia des Vernunftsubjukts) 등을 근본 표지로 하는데 50),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제시되는 파국의 순간은 이와같은 디오니소스적 심 미적 현상이 발발하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 심 미적 현상은 비인의 논리적 주장과는 달리, 근대적 세계의 신화성을 초 극하였을 때 비인이 도달하는 영역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 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장용학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알레고리 역시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 험과 그로 인한 허무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장용학의 알레고리는 45)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장용학, 역성서설, 사상계, , p ) 장용학, 비인탄생, 사상계, , p ) K. H. Bohrer, Der Abschied, Theorie der Trauer : Baudelair, Goethe, Nietzsche, Benjamin, Frankfurt a.m. 1997, S.425.

249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51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으로 인한 가치와 의미의 붕괴에서 기원하며 이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독특한 언어관을 표현하는 장용학의 한자표기 주장은 그의 알레고리가 기호와 지시물간의 어떤 자의성도 존재하지 않는 보편적 언어로서의 상 형문자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의 녹두대사가 일본군 병졸의 우비, 승마복, 등산화, 보랏빛 보석 등 다양한 파편들의 조합으로 묘사되는 것에서 드러나듯 그의 소설에서 알레고리 는 파편들의 조합을 통해 이루어내는 상형문자, 그 자체로 탐구의 대상 이 되는 암호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파편들의 재조합으로 이루어진 상형 문자로서의 알레고리는 추와 부조화를 표현하는 무정형의 파편을 의미 하며, 그 결과 미와 상징의 신화적 속성을 파괴하는 힘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비인탄생 의 마녀의 탄생 에서 종희의 아름다운 나체가 세계사의 알레고리로 전환되면서 백살먹은 노파, 미이라 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미적 가상의 화해적 형식이나 상징의 유기적 총 체성은 의미와 감각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신화의 형식적 특성을 계승하 여 허위적 총체성을 산출하는 반면 파편으로서의 상형문자를 지향하는 장용학의 알레고리는 이러한 상징, 미의 허위적 총체성을 파괴하고 죽음, 폐허만을 산출하는 자연사로서의 역사의 원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장용학의 알레고리는 자연의 무상성, 인간 실존의 무상성만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벤야민에 따를 때, 근대적 의미의 알레고 리는 기호와 기의간의 자의성을 배제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 의 미생산에 머물게 되는 철학적 이율배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 로 우의적 인물들이 맹목적 과정으로서의 역사의 희생자가 됨으로써 신 화적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만 다. 반면 장용학의 알레고리는 무상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지만 그것

250 252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에 머물지 않고 무상성을 산출하는 근대적 세계의 종말을 지향하고 있 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우울자는 비록 신화적 운명에 저항하지 만 궁극적으로 그것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반면 장용학 소설의 초인을 지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신화적 운명과 폭력을 파국에 이르게 하고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인물들로서 신화적 운명에 대한 역설적 초 월로서의 예외적 죽음에 이르는 고대비극의 주인공과 유사한 면모를 보 이고 있다. 장용학이 비인탄생 과 역성서설 에서 제시한 디오니소스 적 심미적 현상이 고대비극에 대한 재해석, 즉 고대비극에서 디오니소스 적 심미적 현상을 도출해내는 니체적 재해석에 힘입은 바 크다면 51), 일 부변경선근처, 원형의 전설 은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스의 서사구조와 근친상간의 모티프를 채용함으로써 윤리적 죄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비극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장용학이 이처럼 디오니소 스적인 심미적 현상과 현대적 의미의 비극을 창조하고자한 점은 그가 비극의 재탄생을 기대했던 니체의 사상 52) 에 입각해 초인의 지향점을 비 극적 것, 즉 심미적 영역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를 때 고대비극과 현대적 비극의 결정적인 차이는 현대적 비극의 죄가 고대비극의 물려받은 죄(심미적 죄)가 아니라 개체 자신에 책임이 있는 윤리적 죄라는 점이다. 장용학은 근친상간에 빠진 51) K. H. Bohrer, Asthetics and Historicism : Nietzsche s Idea of Appearence, Suddenness, Columbia University, 1994, pp ) 니체는 비극의 탄생 에서 우리는 지금 비극의 재탄생을 체험하고 있고 이것이 어 디에서 오는지도 모르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F. Nietzsche, 비극의 탄생/바그너의 경우/니체 대 바그너, 청하, 1998, p. 125)라고 주장하면서 비극의 재탄생을 기대한다. 니체에게서 비극은 허무주의의 해독제이면서 동시에 활 기를 부여하는 허무주의, 즉 능동적 허무주의를 초래하는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K. M. May, Tragedy and the Spirit of Tragedy, St Martin Press, 1990, p.163.

251 제4장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253 인물이 가장 전형적인 비극적 인물이며 사전에 남매라는 것을 알면서 상간했을 경우래야 현대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53) 라고 주장한다. 그리 고 그러한 관점 하에서 근친상간의 모티프를,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한다 는 니체의 논리에 입각해 의식적으로 악을 실행하여 죄의식으로 부터 해방되는 행위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장과 한지는 결국 근친상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법을 생산하는 존재, 즉 자기 자신에게 선과 악을 부여하고 자신에 대한 판관, 자신의 법의 복수자가 될 수 있는 사람 54) 으로서의 초인을 지향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비극의 심미적 죄를 윤 리적 죄로 전환시키려는 의식적인 시도는 손창섭의 우울자가 갖고 있는 죄의식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뚜렷이 드러난다. 우울자에게서 문제가 되는 죄는 전술한 바 있듯이 윤리적 죄도, 종교적 차원의 죄도 아닌, 자 연적 삶 자체가 죄로 의식되는 자연적 죄로서 인간개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성, 인간을 위압하는 막강함, 의미의 애매성 등의 신화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55) 이에 비할 때 장용학은 죄의식을 명확한 윤 리적인 죄로 전환시킴으로써 비극적 죄 속에 구현되어 있는 신화적 속 성을 파괴하고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53) 장용학, 소재노트 : 원형의 전설 의 근친상간, 계간 한국문학, 1966 봄, p ) K. M. May, 앞의 책, p ) Rolf-Peter Janz, Mythos und Moderne bei Walter Benjamin, in: Mythos und Moderne, hrsg. von. K. H. Bohrer, Frankfurt a.m. 1983, S.369.

252 제5장 결론 한국전쟁은 그 희생자에게 전쟁에 대한 모든 이념적 규정을 무의미하 게 만든 대재앙의 체험으로서 역사에 대한 절망과 기존 가치에 대한 철 저한 부정을 낳았다. 손창섭과 장용학은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을 가 장 철저하게 내면화한 작가들이다.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의 내면화 로 인해 두 작가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 들은 진리, 신, 도덕 등 최고 가치들의 가치저하 즉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있으며, 근대적 세계의 본질을, 자연의 마성적 힘을 의미하는 신화적 폭 력이 지배하는 세계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제까지 본 연구 는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 신화적 폭력과 운명, 허무주의 그리고 미 의식이라는 네 가지 사항을 중심축으로 삼아 손창섭과 장용학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와 그에 기초한 미의식을 분석하였다. 우선 제2장 1절에서는 손창섭 소설의 허무주의적 인간상을 보여주는 동물적 인간과 우울자에 대해 분석하였다. 손창섭은 동물적 인간에 대해 니체의 권력의지 와 루소의 자기보존 이라는 관점에서 형상화하고 있 지만 주로 후자의 관점을 택하고 있다. 손창섭은 그들을 통해 궁극적으 로 먹고 자고 배설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 습을 강조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자연적 삶에 대한 근대적 역사의 폭력을 표현한다. 동물적 인간을 통해 표현된 도덕적 가치에 대한 회의 는 또 하나의 인물유형인 우울자를 통해서 더욱 구체화된다. 동물적 인

253 제5장 결론 255 간이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 에 빠져 있는 인물이라면 우 울자는 지상적인 것에 대한 절망,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 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들이다. 우울자의 불행의식은 매우 극단적이어서 죽을 수조차 없다는 상상, 시작도 끝도 없는 동일자의 영원회귀 라는 시간장애 그 리고 운명의식, 죄의식 등 임상학적 우울증의 중심적 증상을 보여준다. 우울자의 시선 하에 궁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슬픔인데, 이는 실존적 예외상황에서 일상적인 것의 통상성이 파괴되는 심미적 경 험이라는 점에서 경험적 슬픔과 구별되는 심미적 슬픔이다. 제2장 2절에서는 우울자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운명의식과 죄의식 에 대해 분석하였다. 사연기 와 비오는 날 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가공할 폭력, 즉 신화적 운명에 의해 지배 되는데, 이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역사적 과정에서 표출된 근대의 재난성의 내면화된 표현이다. 또한 혈서 의 달수는 자신의 죄가 아닌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준석은 자신의 죄에 대해 죄짓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한 개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결과에 대 해 강요되는 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미해결의 장 의 문선생, 피해자 의 병준, 혈서 의 달수 등 그의 소설 도처에서 발견되 는 우울자의 죄 의식은 살아 있음 자체가 죄로 강요되는 자연적 죄이다. 결과적으로 우울자에게 근대적 세계는 무구함이나 행복이 존재할 수 없 는 세계, 불행과 죄만을 강요하는 신화적 운명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신 화적 운명은 자연적 삶의 가치를 절하시키며, 모든 인간적 행위의 가치 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제3장 3절에서는 우울자의 악마적 저항과 희극적 미의식에 대해 분석 하였다. 공휴일 의 도일, 미해결의 장 의 지상, 생활적 의 동주 등 가 장 극단적인 형태의 우울자들은 선을 거부하는 우울자 특유의 나태, 폐

254 256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쇄적 침묵을 통해 신화적 운명에 대해 악마적 저항을 시도한다. 신화적 운명은 자연적 삶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를 도래케 하는 데, 우울자는 자연적 죄를 거부하고 자연적 삶의 무구성을 긍정함으로써 신화적 운명과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심미적 슬픔과 더불어 손창섭 소설의 허무주의는 또 하나의 고유의 미의식, 희극성을 산출한 다. 손창섭 소설에서 제시되는 희극성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전 복, 열등함을 바라볼 때의 웃음, 즉 보들레르가 말한 절대적 희극에 가까 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를 통해서 비판되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 고 있다는 인간의 자만심이다. 유실몽 의 누이와 낙서족 의 도현은 도 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생래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그들이 야 기하는 희극성은 인간의 자연적 삶을 자연적 죄로 규정하는 신화적 운 명에 대항해 인간의 자연적 무죄성이라는 전망을 보여준다. 제3장의 1절에서는 장용학의 허무주의적 인간상인 비인을 대재앙으로 서의 전쟁체험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하였다. 장용학의 소설은 흔히 인정 되는 것과는 달리 사르트르보다는 니체의 초인 개념에 크게 영향을 받 았다. 요한시집 의 경우 누혜와 동호는 모두 非 人 을 지향하는 인물로서 죄의식과 이성적 주체 개념의 거부에 핵심이 있는데, 이는 누혜와 동호 가 염세주의적 죄 개념과 주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르트르의 관점을 넘어서 니체의 초인 개념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준다. 장용학은 니체의 초인 사상과 더불어 대재앙으로서의 전쟁체험에 기초하여 비인의 형상 을 창조하였다. 장용학 소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재난의 희생자로 묘 사되고 있다. 또한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나 사화산 등의 폭격장 면은 대재앙의 순간을 개체성과 가치의 붕괴의 순간으로 묘사하는데, 이 는 한편으로는 최고 가치의 평가절하의 계기로 작용한다면 다른 한편으 로는 선악을 초월한 초인의 원형적 모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비인은

255 제5장 결론 257 대재앙으로 인해 발생한 가치의 몰락을 의식적으로 촉진시킴으로써 삶 의 긍정에 도달하려는 존재임과 동시에 근대적 세계를 영원한 파국의 과정으로 간주하는 부정적 역사철학에 입각하여 역사의 종말을 지향하 는 존재이다. 제3장 2절에서는 장용학 소설에 나타나는 근대적 세계의 신화적 폭력 과 이를 극복하였을 때 발생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을 분석하 였다. 장용학은 근대적 세계를 신 죄의식과 인과율 근대적 이성이라 는 두 가지 원리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보고 이에 대한 초극을 주장한다. 작중인물들이 근대적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그 두 가지 원 리가 신화적 폭력으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의 마성적 힘, 폭력성을 의미하는 근대의 신화적 폭력성은 그의 초기작인 미련소 묘 에서 단초를 보이며 비인탄생 과 현대의 야 에서는 법의 폭력성을 통해 제시된다. 장용학 소설에서 신화적 폭력이 지배하는 근대적 세계에 대한 초극의 노력들은 기만적 시도와 결정적 시도라는 두 가지 단계 설 정 속에서 묘사된다. 양자를 가르는 기준은 육체적, 정신적 양 측면 모두 에서의 극한적 고통이다. 그의 소설에서 고통은 고양된 실존의 시금석으 로서 고통의 정점에서 염세주의는 자발적으로 지양되고 현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이 발생한다. 장용학은 극한적 고통을 통해 도달하는 비인의 영역을 인과의 고리와 시간이 붕괴된 영역으로 서술하는 한편 극한적 고통의 순간을 갑작스럽게 이성적 주체가 붕괴하고 전율에 휩싸이는 순 간으로 묘사한다. 후자는 디오니소스적인 심미적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 로서 작중인물들이 도달한 비인의 영역이 심미적 영역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제3장 3절에서는 장용학 소설에 나타나는 알레고리와 현대적 의미의 비극성에 대해 분석하였다. 장용학 소설에서 알레고리는 대재앙으로 인

256 258 제1부 손창섭, 장용학 소설의 허무주의적 미의식 해 가치와 의미가 붕괴했을 때,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자 하는 시도의 소산이다. 장용학 소설에서 알레고리는 상형문자의 창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자형과 결합된 이미지 를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 그의 한자 표기 주장은 상형문자를 추구하는 근대적 알레고리의 언어관의 표현이 다. 상형문자로서의 알레고리는 결국 무정형의 파편을 의미하는바, 미와 상징에 잔존하는 허구적 총체성, 즉 신화적 기원을 파괴한다. 근대적 알 레고리는 자의적 의미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이율배반, 인간 실존의 무상성을 표현하는 데 머무는 반면, 장용학은 자연의 무상성만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신화적 폭력에서 벗어난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부변경선근처 와 원형의 전설 에 이르면 오레스테스의 서사 구조와 근친상간의 모티브를 채용하여 현대적 의미의 비극을 창조하고 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장용학은 현대 비극의 죄를 고대비극의 심 미적 죄와 구별되는 윤리적 죄라고 규정하고 근친상간을,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한다 는 니체의 논리에 입각해 의식적으로 악을 실행하 여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행위로 재해석하고 있다. 장용학은 심미적 죄를 윤리적인 죄로 전환시킴으로써 비극적 죄 속에 구현되어 있는 신 화적 속성을 파괴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제4장에서는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 세계를 비교 고찰하였다. 손창섭의 우울자들은 가치의 몰락에 고통 받고 슬픔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나태와 침묵이라는 악마적 저항, 즉 가치 파괴적 행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있 다. 우울자의 허무주의는 니체가 지적한 바 있는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 로 규정할 수 있다. 반면 장용학의 비인은 초인 사상에 입각해 창조된 인물로서 비인을 통해 제시되는 허무주의는 최고 가치의 몰락을 의식적 으로 촉진하여 생의 긍정에 도달하려는 능동적 허무주의로 규정할 수

257 제5장 결론 259 있다. 손창섭의 우울자는 폐쇄적 침묵과 나태라는 악마적 저항을 추구하 는 과정에서, 장용학의 비인은 최상의 선으로서의 악을 추구하는 과정에 서 고유의 허무주의적 미의식을 산출하고 있다. 능동적 허무주의를 표현 하고 있는 장용학의 소설 미의식은 신화적 속성을 파괴하는 대파국의 심미적 의식과 알레고리, 비극성으로 규정된다면, 불운한 자의 허무주의 를 표현하고 있는 손창섭의 소설의 미의식은 심미적 슬픔과 좀더 직접 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희극적 미의식으로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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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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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 미해결의 장 을 중심으로 - 1. 미해결의 장 과 아이러니 손창섭은 얄궂은 비 ( 연합신문, 1949)로 문단에 등장한 후, 문예 지를 통해 公 休 日 (1952), 死 緣 記 (1953)가 추천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전후세대 작가이다. 그는 흔히 김성한, 곽학 송, 장용학 등과 더불어 전후1세대 작가로 분류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특이한 작가의식의 소유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가 모멸의 인간상 1), 병신스런 인물 2) 이며 그의 작품은 병자의 노래 3) 로 일컬어지는 등 센세이셔널한 문제작가 4) 였다. 이러한 손창섭의 작품세계는, 당대 비평가들에게서 끊임없이 요구되 던 인간에 대한 긍정이 나타나고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반항을 추구하 고 있는 假 父 女 (1958.1), 孤 獨 한 英 雄 (1958.1) 등을 기점으로 양분된 다. 60년대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대개 통속소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지 못하고 있으며 5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던 剩 餘 人 間 까지도 대부분 상식적 차원에서의 인간 긍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학사에서 중시되는 것은 그의 초기 작품들이다. 5) 1) 유종호, 모멸과 번민, 현대문학, , p.73. 2) 김우종, 긍정에의 의욕, 현대한국문학전집3, 신구문화사, 1968, p ) 조연현, 병자의 노래, 현대문학, , p.74. 4) 윤병로, 혈서의 내용, 현대문학, , p.236.

262 264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그의 초기작은 극도의 궁핍과 전망 부재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인간이 대면하게 되는 삶의 무의미와 존재의 무의미라는 절대명제를 집요하게 반복 6) 하고 있으며 전후의 의식을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화하려는 경 향 7) 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 본고는 하구 많은 사물 가운데서 어쩌자고 하필 인간으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일즉이 나는 인간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자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8) 라는 작가의 인간 모멸의 의식, 철저한 허무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되 는가, 즉 초기작의 미적 형식적 특성의 일단을 밝혀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未 解 決 의 章 -군소리의 意 味 (1955)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능한 남자라는 인물유형을 가장 다양하게 보여주며 9),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라는 평가 10) 에서 알 수 있듯이 일차적으로 초기 인물의 특성과 주제의식, 즉 존재의 무의미라는 절대명제 를 매우 명료 하게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미해결의 장 이 그의 창작활동 전체를 놓고 볼 때, 한편으로는 극도의 허무주의를 내세우면서 도 결국 다른 한편으로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인식내지 예술적 성과를 얻은, 손창섭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작 품이라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11) 5)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논의로서, 손창섭 초기 소설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지적하 고 있는 김윤식의 6.25 전쟁문학-세대론의 시각 ( 1950년대 문학, 예하, 1991)과 추상적 무시간성을 그 특성으로 규정하는 정호웅의 50년대 소설론 ( 1950년대 문 학, 예하, 1991), 그리고 손창섭 소설을 사소설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 는 김동환의 한국전후소설에 나타난 현실의 추상화방법연구 ( 한국의 전후문학,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태학사, 1991) 등을 들 수 있다. 6) 정호웅, 50년대 소설, p.51. 7) 구인환, 한국근대소설연구, 삼영사, 1977, p ) 손창섭, 당선 소감 : 인간에의 배신, 문예, , p.76. 9) 조남현, 손창섭의 소설세계, 한국현대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1993, p ) 엄해영, 한국전후세대소설연구, 국학자료원, 1994, p ) 조현일, 허무주의의 심연과 극복의 노력, 한국전후문학연구, 구인환 외, 삼지원,

263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65 미해결의 장 과 관련하여 여러 평가가 있었는데 주목할 만한 연구로 우선 조남현의 손창섭의 소설세계 를 들 수 있다. 이 연구는 손창섭 초 기소설의 특성이 사회적 배경과 단절된 무능형 인간, 몸파는 여인, 육체 적 불구자 등을 포함하는 병자의 소설이라는 데 있다고 보고 미해결의 장 의 경우 무능형 인간(지상)이 과대망상증환자(진성회)로까지 확장됨 으로써 초기 소설 중 가장 다양한 인간유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다. 12) 김상선은 미해결의 장 이 비록 초기 소설중 자아와 비자아간의 연대감의 상실로 인해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지만 동경을 암시하고 있 다고 평가하며 13) 김상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엄해영은 김상선과 동일하 게 지상을 자아와 비자아간의 연대감을 상실한 인물로 보면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에릭 프롬의 이론을 원용하여 광순을 생산지향적 인물로, 지 상과 부조화 관계에 있는 가족들을 속물근성의 인간들로, 그리고 지숙을 저축적 정향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14) 한편 서준섭은 진성회 에 대한 평가에서 앞의 연구들과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서준섭은 진성회를 인 간의 이성에 바탕을 둔 이상 의 추구에 본질이 있는 것으로 보고, 그 긍 정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해결의 장 이 혈서 의 허무주의를 넘어서 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15) 손창섭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연구는 작중 인물 및 작중인물의 분석을 통한 작가의 주제의식에 대한 연구인데 이 처럼 미해결의 장 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고 상반된 평가가 나타나기까 지 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 연구는 보다 형식적인 차원, 그러면서도 작 1995, pp ) 조남현, 손창섭의 소설세계, 한국현대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 김상선, 신세대 작가론, 일신사, 1964, p ) 엄해영, 앞의 책, pp ) 서준섭, 정지된 세계의 소설, 한국전후문학의 형성과 전개, 태학사, 1993, p.184.

264 266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가 정신의 본질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자아의 분열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 전략 내지 수사학으로서의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손창섭 자신도 인정하였던 작품 속의 냉소와 자조, 실의와 체념 16) 그리고 당대 비평가들이 발견하였던 희극적 감정을 동반한 자 조의식 17) 은 그 극단적인 비정상성으로 인해 정신분석학적 연구의 대상 이 되어왔다. 본고는 손창섭 소설의 이러한 특성이 번쉬타인과 폴 드 만 의 아이러니 이론을 원용할 때 보다 잘 설명된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폴 드 만은 아이러니를 근대적 주체의 분열된 자아에 의해서 체험되는 고 립된 순간 18), 즉 과거나 미래와 분리된 현재성을 드러내는 수사학으로 파악하고 있다. 19) 그에 따르면 이것을 말하면서 저것을 의미하는 것, 칭찬을 통한 비난 등의 기술수사학적 정의는 기호와 의미의 관계의 불 연속성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비유적 언어 일반에 대한 기술에 불과하 다. 20) 아이러니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은, 첫째 아이러니가 자아의 분열 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한 주체 내에서의 자아의 이중화를 통해서 이루 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의 대상은 또 다른 주체가 아니라 동일한 주 체의 경험적 자아이다. 아이러니를 수행할 때 주체가 대상에 대해서 갖 16) 손창섭, 아마튜어 作 家 의 辯, 현대한국문학전집3, 신구문화사, 1968, p ) 유종호, 앞의 글, p ) Paul de Man, Blindness and Insight : Essays in the Rhetoric of Contemporary Criticism,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3, p ) 폴 드 만은 아이러니와 알레고리가 주체의 동일한 시간체험을 드러내는 수사학이 라고 규정하면서도 아이러니에 대한 알레고리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장경렬 에 따르면 우월성의 예로 제시되고 있는 워즈워드의 엷은 잠이 나의 얼굴을 닫아 놓았지 에 대한 분석은 설득력 있는 것이 못된다. 이를 고려하여 본고는 폴 드 만 의 아이러니 이론의 장점은 인정하나 그것이 알레고리보다 저열하다는 주장은 받 아들이지 않는다. 장경렬, 언어, 시간 그리고 비평의 문제 : 폴 드 만의 경우, 외 국문학 16, 1988 가을, pp ) 손창섭 소설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를 기술수사학적 차원에서 상세하게 고찰하고 있는 논문으로 한상규의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아이러니의 미적 기능 ( 외국 문학, 1993 가을)이 있다.

265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67 는 우월성이란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다 성숙한 상태에서 갖게 되 는 우월성이라기 보다는 순간적인 현재에 대상에 대해서 일종의 공간적 거리를 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우월성이다. 둘째는 경험적 자아의 전복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고 자신에 대한 그릇된 가정을 비웃음으로써 자신 에 대한 고차원의 지혜를 얻는다는 점이다. 21) 첫 번째 규정이 루카치가 사용한 아이러니 개념과 유사한 것이라면 두 번째 규정은 그것을 좀더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2) 이러한 아이러니가 텍스트 전체, 즉 서 사적 차원과 서술의 차원(narrative and narrational leve)을 구조화하는 규범 으로 작용할 때 아이러니적 구조화가 수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3) 본 고는 이상의 이론에 기대어 미해결의 장 이 과연 아이러니 구조화를 수행하고 있는지의 여부,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의 효과는 어떠한 것인지 를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는 미해결의 장 의 스토리 차원의 인물(2장), 플롯(3장)과 담화 차원의 서술상황(4장)과 서술자(5장)의 특성을 분석하 는 것에 의해서 밝혀질 것이다. 21) Paul de Man, 앞의 책, pp ) 번쉬타인에 따를 때 해체주의자 폴 드 만의 아이러니 개념은 결정적인 한계를 내포 하고 있다. 폴 드 만이 내세우는 아이러니 자아란 언어 행위시 발생하기 마련인 극 히 일반적인 심리적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이러니 자아가 가질 수밖에 없는 경험적 속성을 부정한다. 폴 드 만은 표면상으로 인정할지는 몰라도 결국 전통적인 아이러니 개념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나선형의 자기인식과정 역시 부정하는 결과 를 낳고 마는데, 본고는 번쉬타인의 견해를 따라 아이러니에 대한 폴 드 만의 뛰어 난 통찰들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러니 자아의 경험적 속성, 아이러니를 통한 나선형 의 인식과정을 아이러니 수사학의 본질적 측면으로 간주하는 노선을 따르고자 한 다. J. M. Bernstein, The Philosophy of Novel, The Harvester Press, 1984, pp , p ) 위의 책, p.190.

266 268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2. 아메리카 드림, 성실성 윤리의 거부와 주체의 분열 미해결의 장 의 주인공인 나 ( 志 尙 )는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일 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집과 매음녀 광순의 이부자리 속을 왕래하는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가) 나는 도무지 주위와 나를 어떠한 필연성 밑에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이 방안에 있어서의 내 위치와 식구들과의 관계부터가 그렇 다.(밑줄-인용자) 24) 나) 그러나 나보다도 나는 주위와 자신의 중압감을 감당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대가리가 동체가 팔다리가 그리고 먼지와 함께 방안에 배꼭 차 있는 무의미가 나는 무거워 견딜 수 없는 것이다.(p.172)(밑줄-인용자)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지상이 그러한 상태에 빠진 것은, 심지어는 가 족까지 포함한 주위 세계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고 무의미만 느낀다는 데 원인이 있다. 지상이 느끼고 있는 허무의 경험은 논리적인 설명 이전에 놓여 있는, 세계와 삶의 의미에 대한 허무의 경험, 즉 부조 리 감정에 25)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손창섭의 특이한 점은 나 가 느끼는 무의미를 극도로 궁핍한 현실과 그것을 은폐하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관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이 느끼는 허무의 경험은 구체적으로는 대장( 父 ), 여동생 지숙 등의 가족 그리고 진성회 회원들과 의 대면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24) 손창섭, 미해결의 장 - 군소리의 의미, 현대문학, , p.169. 앞으로 미해결 의 장 의 인용 부분은 페이지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각주를 대신하겠다. 25) F. Zimmermann(이기상 역), 실존철학, 서광사, 1987, p.162.

267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69 (1) 얘, 미국이구 뭐구 밥부터 먹어야겠다. 목구멍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미국은 다 뭐니 이러한 어머니를 대장은 점잖게 나무라는 것 이다. 원 저렇게라구야 아이들의 웅지(雄志)를 북돋아 주지는 못할 망정 그 무슨 좀된 소리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은 천생 이런 꼴을 못 면하는 거 지! 그러자 삼남매가 일제히 어머니를 몰아세우는 것이다. 비록 밥을 굶 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유학만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p.171)(밑줄-인용 자) (2) 그렇다 나는 眞誠會에 관하여 여기에서 몇마디 적어 두어야 하겠다. 그것은 정말 견딜 수 없이 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진성회 의 회원은 현재, 나의 대장(父親), 文先生, 張先生 이렇게 세 사람뿐이다. 진 실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 민족과 인류사회를 위해서 진실(眞 實)하고 성실(誠實)한 일을 하다가 죽자는 것이 소위 眞誠會의 취지인 것이 다.(p.177) (밑줄-인용자)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지숙, 대장(父) 등의 가족들은 아메리칸 드림과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극도의 궁핍을 견뎌나가는 인물들이다. 또한 진성 회 회원들은 극도의 궁핍에 직면하여 있으면서도 국가, 민족과 인류사회 의 이익에 진실하고 성실 하게 봉사한다는 이념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다. 이를 고려할 때 지상이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허무의 경험을 느꼈 던 대상은, 첫째로 50년대를 지배했던 아메리칸 드림, 입신양명의 꿈이 며, 둘째로는 국가, 민족, 인류사회에 봉사한다는 대의, 진실과 성실이라 는 윤리라 할 수 있다. 알뛰세에 따르면 주체들이 폭력에 의한 억압 없 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이다.26) 미해결의 장 에서 진성회의 윤리의식과 26) L. Althusser(김동수 역),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 장, 솔, 1993, pp

268 270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아메리칸 드림은 이러한 의미의 이데올로기로서 제시되고 있다. 아메리 칸 드림과 국가 민족, 인류 사회에 봉사한다는 대의, 그리고 진실과 성실 의 윤리는 극도의 궁핍이라는 현실에 직면하여서 어떤 폭력적인 억압 없이도 각각의 주체들로 하여금 희망과 삶의 목적, 즉 삶의 의미를 갖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발적인 활동을 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이다. 지상은 이와 같이 자발적인 활동을 가능케 하는 50년대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함 으로써 삶의 허무에 빠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허무주의, 부조리 감 정에 빠져 있는 지상이, 부정적 인간이라는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오히 려 당대의 그릇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정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며 다 른 하나는 지상이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주 체의 분열을 노정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인간도 유령도 아닌 너무나 막연한 자신의 몰골을. 하여간 나는 한사코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어디든 가야할 게 아니냐! 우리집 식구들 이 미국 가기 위해서만 살듯이 나도 살아 있는 이상 어디든 가야할 게 아 니냐 말이다.(p.189)(밑줄-인용자) 특히 지상이 오히려 정당한 인물이라는 점은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나 (지상)가 삶의 무의미, 부조리 감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으 로 보인다. 결국 나 는 주체의 정체성을 보증하는 5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를 통해 부조리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 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나 (지상)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지숙, 대

269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71 장, 문선생, 장선생 들은 모두 목적과 미래를 갖고 자유로운 듯이 행동하 는 부조리와 마주치기 이전의 일상적 인간 27) 이다. 반면 매음녀 광순 은 작가에게 이 양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있는 이상적인 유형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3. 경험적 자아의 전복과 아이러니의 심층구조 미해결의 장 은 총 5일 분량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나 는 해결 즉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도로 매음녀 광순의 집, 오피스를 방문하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미해결의 장-군소 리의 의미 역시 여타의 초기소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결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 28) 미해결의 장 은 가족, 진성회에 무의미를 느낀다 -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광순에게로 간다 -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다 는 플롯의 구조가 되풀이 되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대장( 父 )(오 월의 어느 날3)과의 갈등, 창녀 광순을 부끄러워하는 문선생(유월의 어느 날4)과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다가 유월의 어느 날(5) 에서 재봉틀을 빼 앗기고 낮선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갈등이 점증하는 구조 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고려할 때 그의 소설에서 사건, 스토리 란 거의 무의미한 것이다 29) 라는 평가는 미해결의 장 의 경우에는 해 당되지 않는다. 다음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나 의 의도적 행위가 등 장하며 소설의 결말이 재봉틀을 빼앗기고 낮선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하 27) A. Camus(민휘식 역),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p ) 김윤식, 6.25 전쟁문학-세대론의 시각, 1950년대 문학, 예하, 1991, p ) 위의 글, p.28.

270 272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다. 낮선 청년들은 사창가를 지키는 깡패들 이거나 광순을 짝사랑하는 인물일 터인데 이들이 광순을 괴롭히지 말라 며 폭행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광순을 찾아가고 아무 런 의식 없이 돈을 받았던 나의 의도 와는 무관한, 그러나 그것에 원인 이 있는 결과 이다. 나 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였다면 최소한 재봉틀을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생 존의 도구인 재봉틀을 빼앗기는 사건 역시 부조리한 감정에 빠져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만 하던 나 의 행동에 원인이 있는, 그러나 기대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미해결의 장 은 가족, 진성회 에 무의미를 느낀다 -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광순에게로 간다 - 아 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라는 플롯이 갈등의 심화 속에 반복되면 서 경험적 자아가 예기치 못했던, 경험적 자아의 기대의 최종적 전복을 낳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미해결의 장 의 서사 구조 는 의도적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the unintended consequence of the intentional action)라는 아이러니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를 구현하고 있 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30) 그들의 입에서는 술내가 풍기었다. 나는 결코 유리할 수 없는 사건을 각 오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우리를 무얼루 아는 거야? 연거푸 다른 놈이 왜 버릇없이 구는 거야? 나는 어찌 된 판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건방진 자식 광순일 함부로 건드리지 말란 말이 야, 순간 나의 오른편 귀청이 왕하고 울렸다. 눈에서는 불이 튀었다. 그것 은 고무장갑 같은 손이 아니었다. 내가 외쪽으로 비틀거리자 이번엔 왼쪽 따귀에서 짝 소리가 났다. (중략) 마침내 나는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만 것 30) J. M. Bernstein, 앞의 책, p.194.

271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73 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턱과 손에 끈적거리는 선혈을 의 식하면서 무의식중에 나는 光 順 이! 光 順 이! 하고 신음소리를 불러보는 것이었다.(p.195) 지숙, 대장(부) 등의 가족과 진성회 회원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 기에서 삶의 무의미를 느끼는 것인 만큼 나 (지상)의 부조리 감정은 건 강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그가 정작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시도하는 행위가 고작 창녀 광순을 찾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먹고사는 문제 를 간과하였다는 것, 그리고 광순과 가족들에게 기생하였다는 것 등은 지상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재봉틀을 빼앗기는 것(먹고사는 문제의 간 과)과 인용문에서 낮선 청년들에 의해 폭력(광순에게의 기생)을 당하는 것은 나 라는 존재에 의해서는 상상되지 못했던 현실의 또다른 경험을 작품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으로서 31) 이를 통해 이전의 나 의 한계가 지 적되고 나 의 자기인식이 증가된다. 인용문에서 쓰러지는 자신을 바라 보는 또다른 나 는 물론이고 독자 역시 작중 인물 나 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폴 드 만에 따르면 아이러니는 경험적 자아의 전복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시키면서 동시에 자기인식을 증가시키는 독특한 수사학이다. 미해 결의 장 역시 이와 동일하게 의도적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는 심 층구조를 통해 나 라는 인물이 전복됨으로써 삶에 대한 인식이 증가되 고 고통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희극적인 감각 32) 을 자아내고 있다. 31) 번쉬타인은 의도적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결론이 아이러니라고 불려질 수 있는 이 유를 두가지로 들고 있다. 하나는 아이러닉한 진술의 공통된 특성인 외양과 실재의 대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상징적 구조나 은유적 구조와는 달리 환원 없이 경험의 이질성과 불연속성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즉 작중인물을 이질적인 경 험의 세계에 접하게 함으로써 소설의 형식의 자의성을 교정해 준다는 것이다. 위의 책, pp

272 274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4. 자아의 이중화와 공간적 거리 담화의 차원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해결의 장 이 삶에 대한 허무감에 빠져 있으면서 해결을 갈망하는 나 (지상)라는 인물이 일기를 쓰는 형식 의 일인칭 소설이라는 점이다. 낡은 노트장의 여백에다 이런 군소리를 끄적거리고 있는 지금도 딱하기만 한 것이다. (p.185)라는 구절과 오월 의 어느날, 유월의 어느날 등의 표시에서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수미일관하게 지켜진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허구적으로 일기를 쓰는 서술상황이 설정되고 그러한 장치를 통해 나 (지상)의 독백이 서술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술과정에서 나 (지상)는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아로의 분리가 이 루어지고 서술자로서의 나 가 주위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 서 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서술자가 작중인물로 등장하는 일인칭 서술상황 의 내적 구조는 서술자로서의 나 와 작중인물로서의 나 의 긴장관계에 의해 규정되는데 33) 이때 중요시해야 할 사항은 시간의 문제이다. 34) 준 자서전적 일인칭 소설의 경우 상당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성숙한 현재 의 나 가 미숙했던 과거의 나 를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작중 인물 나 에 대하여 성숙한 이후의 시점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반면 일기 체의 경우 양자의 시간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근접해 있 기 때문에 준자서전적 일인칭 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미해결 의 장 은 총 11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서술자로 32) D. C. Muecke(문상득 역), 아이러니,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p ) F. Stanzel(안삼환 역), 소설형식의 기본유형, 탐구당, 1990, p ) 초점 매체가 서술자로서의 나 이건 작중인물로서의 나 이건 지각적 시점과 개념적 시점, 이익 시점 등의 내용이 시간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때 시간의 문제 는 특히 중요하다. S. Chatman(김경수 역),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민음사, p.184.

273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75 서의 나 가 처해 있는 시간(담화-현재)과 작중인물로서의 나 가 처해 있는 시간(스토리-현재)이 거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35) 다음은 미해 결의 장 의 장면과 각 장면의 서술자가 위치해 있는 시간을 지시하는 구 절들을 요약한 것이다. <오월의 어느날(1)> 1 오후 방안 : ~ 나는 해결을 짓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러 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 방안에서 있어서의 내 위치 와~, 대장은 지금 막 뜯어 놓은 넝마~, 그러나 지금 도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2 저녁 방안 : 대장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금도 평시 의 태도로~, 갑자기 으시시 춥다고 하며 와들와들 몸을 떨기 시작한다. <오월의 어느날(2)> 3 오후 거리 : 그렇지만 이제 나는 적어도 몇시간 동안은 ~ 4 오후 광순의 방안 5 저녁 광순의 방안 : 아까 잠시 눈을 떳다가 나는 도로 이 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오월의 어느날(3)> 5 오후 방안 : 그러기 때문에 대장은 지금도 그말을 아마 열번은~ 6 저녁 방안 : 내가 이 모양 광순이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 는 동안에 어느새 저녁때가 된 모양이다. 7 밤 광순의 오피스 : 내가 광순의 오피스 앞에 나타났을 때는 아주 어두워 있었다, 낡은 노트장에 이런 군소리를 끄적거리고 있는 지금도 나는 딱하기만 한 것이다. 35) 위의 책, p.74.

274 276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유월의 어느날(4)> 7 오후 방안, 집밖 : 그보다도 지금 내 옆에서 히!히! 거리는 선옥의 울음소리가 ~, 나는 지금도 선옥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8 오후 광순의 오피스 : 광순의 희멀건 피부가 압박해 오기 때문이다. <유월의 어느날(5)> 9 오후 광순의 방 : ~ 귀를 가린 채 이 방안의 광경을 그 려보는 것이다. 10 저녁 집 : 표독스러우리 만큼 야무진 얼굴이 저렇듯 명랑 해질 수가 있을까 11 저녁 광순의 오피스 미해결의 장 에서는 담화 현재와 스토리 현재의 동시성을 나타내는 지금 막 지금도 이제 지금 내 옆에, 이 방안 등의 직시소가 거의 모든 장면에 나타난다. 36) 밴베니스트에 따를 때, 자아란 어떤 실질적 내 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화의 순간에 나 라는 인칭대명사와 지 금, 여기 라는 직시소를 통해서 형성되는 심리적 통일성에 불과하다. 미해결의 장 역시 지금, 여기 라는 직시소와 나 라는 인칭대명사의 사용을 통해 하나의 심리적 통일성, 즉 아이러니 자아를 산출하는 효과 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고려해야 할 것이 것이다/것이었다 의 잦은 사용이다. 미해결의 장 의 경우 문장의 약 55%가 이러한 형태 로 끝이 나고 있는데 것이다 의 경우 전체 문장의 약 38%에 해당한 다. 37) 그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의존 명 36) E. Benveniste(황경자 역), 언어활동에서의 주관성에 대하여,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민음사, 1992, pp 참조. 37) 이광훈, 패배한 지하실적 인간상, 문학춘추, , 유선희, 손창섭 소설의 문

275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77 사인 것 과 서술격 조사 이다 의 결합과정에서 서술내용을 단정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38) 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하였던, ~한 등과 의 결합에서 양자의 시간상의 차이를 없애고 일반적, 무시간적 진술이 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후자인데 이는 서술된 내 용을 무시간적 진술이 되게 함으로써 인물들의 감정, 사고, 행위, 어떤 사건이 불변적으로 계속되는 듯한 느낌을 주며 과거일 수밖에 없는 스 토리 시간을 현재화시킴으로써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도 바로 지금 일어 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엄격한 의미에서 것이다 의 이러한 기능은 실제로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아가 처해 있는 시간이 동시적임을 나 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하나의 효과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해결의 장 에서는 이것이 나 라는 인칭대명사, 지금/내 옆 에 등의 부사의 잦은 사용과 결합됨으로써, 서술적 자아가 있는 시간을 사실상 경험적 자아가 있는 시간과 끊임없이 일치시키고, 그러한 느낌을 발생시킨다. 39) (1) 좀 뒤에 나는 골목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인간 도 유령도 아닌 너무나 막연한 자신의 몰골을. 하여튼 난 한사코 걸어나가 고 있는 것이었다.(p.189) (2) 나는 어느새 도로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p.190) (3) 턱과 손에 끈적거리는 선혈을 의식하면서 무의식중에 나는 광순 이!, 광순이! 하고 신음소리처럼 불러보는 것이었다.(p.195) 체론적 연구, 전북대 석사학위논문, 1985 참조. 38) 임동훈, 현대국어 형식명사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1, p ) 것이다 의 잦은 사용에 대해 김윤식은 아무런 해결점도 없음을 표시하기 위한 기 능적 부호 (김윤식, 앞의 글, p.28)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서준섭은 참을 수 없는 주 체의 체험의 무거움을 기억의 어두운 시간 속에서 더듬거리며 회상하는 어법 (서준 섭, 앞의 글, p.179)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276 278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미해결의 장 전편에서 서술적 자아와 경험 적 자아의 시간상의 거리는 계속해서 무화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양자간에 시간상의 거리가 있다기보다는 공간상의 거리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서술자로서의 나 (지 상)가 작중인물로서의 나 를 시간상의 거리가 없이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구조는 아예 서술자가 존재하지 않음 으로써 양자의 시간을 문제시 할 수 없는 내적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의 수법의 시간구조와는 질을 달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술적 자 아와 경험적 자아간에 시간상의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일기체 형식이나 준자서전적 소설과 대비해 볼 때 구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해결의 장 의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아간의 공간적 거리는 나 라는 한 주체가 자아의 이중화를 통해 형성한 거리이며 미해결의 장 의 서술적 자아는 이를 통해 경험적 자아를 아이러니하고 있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추상적 무시간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 는 50년대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함으로써 분열된 자아가 경험한 고립된 순간, 과거나 미래와 분리된 현재성 이라는 문제적 시간의식을 드러내 는 지점, 손창섭 소설의 본질적 측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5.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서술적 자아 미해결의 장 의 서술자로서의 나 (지상)는 공간적 거리만을 갖고 세 계와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자이다. 그리고 서술자로서의 나 (지상)라는 인물의 성격은 철저하게 아이러니스트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

277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79 니의 속성으로 흔히 순진, 자신에 찬 무지, 현실과 외관의 대조, 희극적 요소, 거리 등이 지적되는데40) 미해결의 장 의 나 는 그러한 면을 모 두 갖추고 있다. 작중인물 나 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광순이 처해 있 는 현실적 조건과 가족의 생계에 대하여서도 순진한 무지 로 일관한다. 또한 서술적 자아로서의 나 는 자기자신에 대해 일정한 거리 를 두고 있으며 외관과 현실을 대조 시킴으로써, 즉 생존이라는 현실과 가족들의 허구적인 삶을 대조시킴으로써, 그리고 부조리한 감정에 빠져 허무감만 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과 극도의 궁핍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대조시 킴으로써 고통스러운 희극적 감정 을 유발키고 있는 것이다. (1) 머리에 꾸겨진 등산모가 얹히어 있다. 얼굴에서는 제법, 자개수염이 특징이다. 비대한 몸집에는 되는 대로 걸치고 있는 미군 작업복 역시 낡은 것이다.(p.170) (2) 원 저렇게라구야. 아이들의 웅지를 북돋아 주지는 못할 망정 그 무 슨 좀된 소리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천생 이런 꼴을 못 면하는거 여! (p.171) (3) 나는 지금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네. 자네 어른과 장선생은, 절대 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네 아무쪼록 건강을 회복해 가지구, 민족과 인류 를 위해, 진실하고 성실한 일을 하다가 죽어야 속죄가 되지 않느냐구 하 며 (p.192) (4)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정신없이 지꺼렸다. 자, 어서 들어 가십시오. 그 리고 光順에게 뭐든 자신있게 요구하십시오. 나두 이렇게 삼백환의 위자료 를 받아 가지구 갑니다. 나는 참말 별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나는 도무지 무슨 해결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인지도 모르는 것이다.(p.190) 40) D. C. Muecke(문상득), 앞의 책, pp

278 280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인용문은 각각 아버지(1), 가족들(2), 진성회(3), 자기 자신(4)을 아이러 니화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특히 중시되는 것은 서술자로서의 나 (지 상)가 자기 자신을 아이러니화한다는 점이다. 폴 드 만에 따르면 아이러 니의 본질은 다른 주체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아이러니화하는 데 있다. 언어행위를 통해 아이러니 자아와 경험적 자아로의 분리됨으로써 획득된 공간적 거리에 의해 아이러니 자아는 자기 자신의 몰락을 바라 보며 웃는 과정에서 자기 인식을 증가시키게 된다. 미해결의 장 역시 일기라는 형식 하에 이루어지는 서술과정에서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 아로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앞서 분석하였듯이 양자간의 시간상의 차이 는 무화되고 단지 공간적 거리만을 갖는 서술자로서의 나 가 자기 자신 을 바라본다. 1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 2 광순에게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매번 실패로 끝나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 면들, 3 특히 결말 부분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낮선 청년들로부터 의 폭행 속에서 넘어지는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것 등은 그 예라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시키고 자기 인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미해결의 장 의 나 는 부조리한 감정에 빠져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앞서 분석한 바 있듯이 그러한 부조리 감정이란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당한 것이기까지 하다는 점, 나 의 삶의 무 의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철저한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일기의 형 식을 통해 자기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기자신과 세계를 아이러니 화하는 것은 부조리한 느낌에 빠져 있는 나에게는 그것에 대한 대처방 식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미해결의 장 의 나 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 기 위해 창녀 광순의 방과 자신의 집을 왕복하는 것은 물론 동시에 주변 의 인간들과 자기 자신을 아이러니화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까 뮈에 따르면 부조리 감정에 직면하였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279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81 철학적 혹은 실재적 자살, 부조리 감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일상적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셋 중의 하나이다. 미해결의 장 의 나 는 이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이러니스트로서의 방식을 택한 것이 아 닐까라는 조심스런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그 결과, 해결은 얻어지지 않 는다. 단지 그 과정을 통해 자기인식이 증가되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할 때 이러한 아이러니 는 텍스트의 의미를 단언할 수 없는 불안정한 아이러니(unstable irony)에 접근해 있다고 볼 수 있다. 41) 안정적 아이러니와 불안정한 아이러니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작가가 한 사회 내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진리를 상정하느냐 않느냐 여부에 있다. 신빙성 없는 화자가 등장하였을 때 독 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독자와 작가 간에 어떤 일치할 수 있는 진리가 가정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작가가 그러한 것이 부재하거나 각자에 의해서 찾아져야하는 것이라고 가정할 때 텍스트 의 미의 재구성은 사실상 매번 무너져 내리게 된다. 42) 손창섭은 후자의 입 장을 취하고 있다. 창녀 광순을 이상형의 인물로 설정하는 것이나, 상식 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나 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 해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결코 인정될 수 없는, 비상 식적인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광순을 이상적 인물로 설정 하고 나 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긍정적 의의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가 상식적 도덕을 부정하는 입장, 한 사회내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될 수 있 는 진리가 부재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아이러 니의 효과는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부재하는 진리를 끊임없이 추구해나 가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미해결의 장 을 읽고 났을 때 독자가 느끼는 41) W. C. Booth, A Rhetoric of Irony, Chicago Press, 1975, pp ) J. M. Bernstein, 앞의 책, pp

280 282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묘한 감정, 창녀 광순과 나 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면서도 긍정성을 부정할 수 없고 다시 나 의 전복에서 나 를 부정하게 되는 순환이 그것 이다. 6. 미해결의 장 의 전체적인 구조 이상에서 본고는 손창섭의 미해결의 장 을 주로 번쉬타인과 폴 드 만의 아이러니 이론에 입각하여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미해결의 장 은 자아의 분열양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 전략, 수사학으로서의 아 이러니의 본질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미해결의 장 의 주인공인 지상의 부조리 감정은 당대 현실을 외면한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50년대를 지배하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과 성실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했을 때 주체가 겪게 되는 자아의 분 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지상의 부조리 감정은 오 히려 정당하기조차 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해결의 장 은 이러한 주체가 겪는 고유의 시간체험을 서술적 차원과 서사적 차원 모두에서 아이러니 적 구조화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미해결의 장 의 서사적 구조는 의도되지 않은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결말이라는 아이러니 고유의 심층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가족, 진성회 에 무의미를 느낀다-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광순에게로 간다-아무 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라는 플롯구조가 되풀이되면서 갈등이 고조 되다가 재봉틀을 빼앗기고 낯선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전혀 의도되 지 않은 결말을 맞는다. 이를 통해 고통 속의 희극적 감정이 유발되는 동시에 나 의 한계가 지적되고 자기인식이 증가된다.

281 제1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283 서술의 차원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해결의 장 의 고유의 시간구조, 그리고 서술자가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성격을 온전히 드러낸다는 점이 다. 미해결의 장 에서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아 간에는 시간적 거리 가 부재하고 단지 공간적 거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폴 드 만이 지 적한 아이러니의 본질, 즉 아이러니는 한 주체가 언어행위를 통해 두개 의 자아로 분리되어 어떤 시간적 거리도 없이 공간적 거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발생한다는 사실에 정확히 일치한다. 손창섭 소설 을 가리켜 무시간적 추상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미해결의 장 의 공간적 거리는, 50년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함 으로써 분열된 자아가 경험한 시간체험, 현재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당 대 현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해결의 장 의 서술자는 통상적으로 아이러니의 특성으로 제시되 는 순진, 자신에 찬 무지, 현실과 외관의 대조, 희극적 요소, 거리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서술자가 자기 아이러니를 수행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자기 아이러니는 부조리한 감정에 빠진 인 물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서 선택한 것이라는 점 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282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1. 허무주의와 소설창작 손창섭은 公 休 日 (1952), 死 緣 記 (1953)가 문예 에 추천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전후세대 작가이다. 손창섭은 당 대 비평가들에게 병자의 노래 1), 모멸의 인간상 2) 등으로 평가되었던 특이한 작가의식, 그리고 병신스런 인물 3) 등으로 평가되었던 작중인 물의 특이성으로 인해 등단 초기부터 센세이셔널한 문제작가 4) 로 인정 되었다. 손창섭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 데, 역시 작중인물과 작가의식의 특이성에 주목하는 연구가 주종을 이룬 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실존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원용하거나 인물 유형을 중심으로 한 통시적 고찰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외에 문체론 내지는 수사학적 차원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90년대 이후 손창섭 소설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가 본격적으로 시도되 고 있다. 정신적, 육체적 병자를 다룸으로써 전후 50년대의 파행적인 인 1) 조연현, 병자의 노래, 현대문학, , p.74. 2) 유종호, 모멸과 번민, 현대문학, , p.73. 3) 김우종, 긍정에의 의욕, 현대한국문학전집3, 신구문화사, 1968, p ) 윤병로, 혈서의 내용, 현대문학, , p.236.

283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85 간 조건을 그려냈다는 긍정적 평가 5) 와 객관적 현실과는 무관한 정지된 시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 6), 전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 한 고유의 형상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 7) 등 다양한 의견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미에의 가치부여 8), 삶의 무의 미함과 존재의 무의미함이라는 절대 명제를 집요하게 반복 9), 허무의 극단과 그 허무와의 치열한 대결의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이미지 10) 등 과 같은 평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의 무의미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 연구의 의도는 전술한 연구 결과에 기초하여 손창섭의 50년대 소 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바로 이러한 삶의 무의미성이라는 극단적 명 제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다 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비록 신의 희작 ( 현대문학, ), 낙서족 ( 사상계, ) 등에서 여전히 삶의 무의미를 주장하고 있다 할지라 도 손창섭이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초기에 그토록 부정하던 인간에 대 해 긍정에의 의욕을 보이고 있는 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문 제이다. 5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손창섭의 긍정에의 의욕은 고독한 영 웅, 잡초의 의지, 잉여인간, 포말의 의지 등의 작품들을 근거로 5) 조남현, 손창섭 소설의 세계, 한국 현대소설의 해부, 문예출판사, ) 정호웅, 50년대 소설론, 1950년대 문학연구, 문학사와 비평연구회 편, 예하, 서준섭, 정지된 세계의 소설-손창섭론, 한국전후문학의 형성과 전개, 태학사, ) 김동환, 한국 전후소설에 나타난 현실의 추상화방법 연구, 한국의 전후문학, 한 국현대문학연구회, ) 김윤식, 6 25 전쟁문학, 1950년대 문학연구, 문학사와 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 p.29. 9) 정호웅, 앞의 글, p ) 서준섭, 앞의 글, p.182.

284 286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는데 문제는 어떠한 내적 논리 속에서 그러한 변화가 일어 났는가이다. 기존의 연구는 이 작품들에 대 하여 대체로 긍정에의 의욕을 인정하면서도 손창섭 고유의 작품세계에 서 벗어난 작품들로, 그리고 인물들의 추상성 등을 근거로 전후세대로서 의 손창섭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작품들로 평가하고 있을 뿐 그 내적 연 관성에 대해서는 아직 주목하지 않고 있다. 11)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가 손창섭 특유의 세계관인 허무주의의 규명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손창섭 소설에 나타나는 삶의 무의미성은 주로 실존철학과의 관련성 속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 나 손창섭이 주장하는 삶의 무의미성은 실존철학에서 주장하는 죽음의 선취나 인간의식의 존재론적 구조에서 오는 실존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 히려 19세기 이후 등장한 문화요소로서의 허무주의와 관련을 갖는 것으 로 판단된다. 고드스블롬에 따르면 삶에 대한 철저한 허무감은 삶에 대 한 결핍감, 근본적 진리 12) 가 상실되었다는 체험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진리에 대한 역설적인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까뮈나 사르 트르의 사상 역시 이와 같은 허무주의와의 관련성 속에서 원용될 수 있 을 것이고, 이에 따를 때 그의 소설의 변화의 내적 동인은 물론 1950년 대 손창섭 소설 전체가 포괄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는 손창섭에게서 소설창작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문제이 다. 손창섭에게 소설창작이 매우 특이한 의미를 갖고 있음은 여러 연구 자들에 의해 이미 지적된 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앞서 서술한 허무주의 11) 김우종, 한국현대소설사, 성문각, 1994, p.331 ; 최종민, 손창섭 소설에 나타난 인 간형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2, pp 참조. 12) 이때 진리란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밝혀주는 본질적인 어떤 것, 존재나 행복의 유일 하고도 순수한 이미지를 의미한다. J. Goudsblom(천형균 역), 니힐리즘과 문화, 문 학과지성사, 1992, p.133.

285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87 와의 관련성 속에서 그 의미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극단적인 허무주의는 어떤 행동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하나의 행동을 의 미하는 소설창작은 손창섭에게 그 허무를 견디어 나가는 시도의 하나로 서 매우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기술수사학의 차원을 넘어선 아이러니적 창작방법을 취하고 있 는데 아이러니의 고유한 속성이 손창섭으로 하여금 극단적 허무주의를 넘어서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문제의식들은 손창섭의 50년대 소설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통 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등단 초기에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허무주의의 성격을 밝히고(2절), 그러한 허무주의와 소설창작의 관계를 미해결의 장, 유실몽, 설중행 등 50년대 중반에 발표된 작 품을 중심으로 규명하며(3절), 끝으로 50년대 말 작품을 통해 그의 허무 주의의 도달점을 밝히는(4절) 형식을 취하고자 한다. 2. 행위의 무의미성과 견딤의 미학 손창섭의 50년대 초반의 소설들, 즉 공휴일 ( 문예, )과 피난 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사연기 ( 문예, ), 비오는 날 ( 문예, ), 생활적 ( 현대공론, ) 등은 모두 신의 희작 ( 현대문 학, )에서 제시되는 문화적인 것 일체 의 거부 13), 삶의 무의미성 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우선 그의 이러한 권태증 14), 무의미한 대좌 15),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의 무의미 16), 13) 손창섭, 신의 희작, 현대한국문학전집3, 신구문화사, 1968, p.443. 이후 현대한 국문학전집3 에 실린 작품들은 출전을 밝히지 않고 작품명과 쪽수만을 기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286 288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무의미한 항거 17) 등 작품 도처에서 등장하는 삶의 무의미에 대한 서 술과 그로 인한 불안, 우울, 권태 등의 정조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러나 허무주의의 가장 명백한 현상 중의 하나가 삶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하 지 못한 채,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형식인 행위 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18) 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첫째 작중인물들의 모든 행위가 극히 무의미한 것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며, 둘째 작가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는 사연기 의 동식이나 생 활적 의 동주 등이 모두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우선 전자부터 살펴보면 손창섭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휴일 에서부터 행위의 무의미성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도일은 삶의 무의미 를 깨닫고 있는 자신과 일상적 삶에 함몰되어 있는 약혼녀 금순의 결합 을 어항 속의 금붕어와 미꾸라지의 결합과도 같은, 어울리지 않는 것으 로 간주하고 파혼을 선언하려 한다. 도일이가 자기 편에서 여자를 찾아 나서는 일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 들이 닫치고 나간 대문 쪽을 바라보는 어머니 얼굴에 환히 주름이 펴지는 것은 그러나 잘못이었다. 그 동안 속으로만 다짐해 오던 것이나 오늘이야 말로 파혼을 선언할 용기가 있다고 제딴에는 자신하고 집을 나선 도일이 었기 때문이다. 19) 주목되는 것은 제딴에는 이라는 표현이다. 파혼 이란 삶의 무의미성 14) 손창섭, 공휴일, p ) 손창섭, 비오는 날, p ) 손창섭, 생활적, p ) 손창섭, 혈서, p ) J. Goudsblom,, 앞의 책, p ) 손창섭, 공휴일, p.126.

287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89 에 대한 반항,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되는데 손창섭은 그 러한 행위조차 우스워하면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연기 에서 주인공 동식이 연인의 자살과정을 목도하면서도 어떠한 행위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나, 생활적 에서 동주가 산다는 것의 무의 미와 우울이 꽝꽝 소리를 내어 다지는 것처럼 전신을 내리누르는 상황 을 벗어나려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 비오는 날 에서 원구가 자신 의 구원만을 바라는 동욱, 동주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또한 어떠한 포즈를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빠져 망설이다가 정 작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동욱, 동주 모두 자신의 길을 떠 나 버림으로써 주어진 상태를 벗어나게 해 줄 행위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 혈서 에서 준석과 달수의 논전이 영원히 일치점에 도달할 수 없는 괴이한 논전,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으로 그려지는 것 등은 모두 손창섭 이 행위의 무의미성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시작도 종말도 없다는 특이한 시간의식 과 아무 것도 끝나지 않으며 무한궤도와 같이 소설 속의 모든 사태는 결말이 없다 20) 라는 특이한 결말구조이다. 손창섭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시간의식은 정지된 시계추의 그 맥빠진 허수함을 느끼는 공 휴일 의 도일, 특히 혈서 의 달수를 통해 단적으로 표명된다. 그렇게 어둡고 무겁기만 한 귀로에서 최선을 다한 나의 노력은 오늘도 수포로 돌아갔다 는 생각이 어쩔 수 없는 결론이나처럼 선명하게 의식되는 것이었다. 수포라는 통속적 한자어는, 어둠 속에서 무수히 떴다 사라지는 물거품을 그에게 거푸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편 그러한 그의 헛수고는 비 단 오늘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출생 이전의 무한한 공간에서부터 이랬고 20) 김윤식, 앞의 글, p.27.

288 290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앞으로는 또 죽은 뒤에까지도 영원히 이렇게 불행할 것만 같았다. 21)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달수는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그러 한 노력이 매번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시작도 결말도 없는 영원한 반복 이라는 시간의식을 갖게 된다. 커머드에 따르면 인간은 시간을 인간화하 고 존재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 중간, 결말이라는 허구를 생산 하며 가변성 속의 영원이라는 순간을 지향한다. 22) 반면 손창섭은 무의미 한 반복이라는 시간의식, 해결 없는 결말구조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기 존 소설이 추구하는 가변성 속의 영원이라는 시간의식과 그에 기초한 결말구조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23) 삶은 허무하며 행위 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그의 특유의 허무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 된다. 손창섭의 허무주의는 사연기 의 동식, 생활적 의 동주 등의 삶의 방식에서 보다 더 잘 드러난다. 작가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인 동식과 동주의 삶의 방식은 삶의 무의미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때 작가가 내세우는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 사연기 는 삶의 무의미성에 직면하였을 때 그에 대처하는 세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규가 일종의 발악하는 삶의 방식이라면 정숙은 자 살을 택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동식은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견디 21) 손창섭, 혈서, p ) F. Kermode(조초희 역), 종말의식과 인간적 시간, 문학과지성사, 1993, p.30, p.57, p.83 참조. 23) 삶의 무의미성에서 오는 이러한 시간의식, 결말구조는 사르트르의 구토 의 그것과 유사성을 보인다. 구토 의 주인공 로깡탱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 고, 모험, 어떤 의미 있는 순간을 기대하는 것이 그릇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 결과 구토 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의식과 해결 없는 결말구조를 보이고 있다. 위의 책, pp

289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91 어낸다. 손창섭이 동조하는 삶의 방식은 정숙과 동식의 방식, 특히 동식 의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피난 생활 속에서 성규와 정숙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동식은 해방 이래 한결같이 계속되는 초조, 불안, 울분, 공포, 그리고 권태 속에서 철저한 허무에 빠져 사랑하는 여인의 자살을 방조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지시하는 진리, 혹은 존재나 행복의 유일 하고도 순수한 이미지라 할 수 있을 법한, 정혜와의 진정한 사랑의 추억, 귓바퀴에 있는 기미로 상징되는 빛남은 그에게 어떤 삶의 의미도 주지 못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생활적 의 동주에서 좀더 명료하게 나타난다. 사연기 의 동식과 마찬가지로 생활적 의 동주는 6 25를 거치면서 산다는 것의 무의미와 우울이 꽝꽝 소리를 내어 다지는 것처럼 전신을 내리누르는 상황에 빠져 있다. 에라 이 자식 똥이나 처먹고 뒈져라. 마지막으로 돌아서는 사람이 그 러면서 발길로 문을 힘껏 차고 가는 것이었다. 동주는 그저 무거웠다. 온 몸뚱이가, 그리고 이 구린내 나는 공기가 무거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견디어 내는 수밖에 달리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순이의 신음소리에 간신히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동주는 그대로 하루가 또 저물 어야 하는 것이다.(밑줄-인용자) 24)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우물터에 누군가 똥을 넣은 사건이 발생하자 마 을 사람들이 그것을 동주의 행위로 오인하고 동주를 탄핵하는데 동주의 유일한 대처 방안은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견디어내는 것 이 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삶의 허무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조리 감정 25) 에 24) 손창섭, 생활적, p.166.

290 292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직면하였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식, 즉 철학적 실제적 자살, 부조리 감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일상적 인간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부조리와 마주치기 이전의 일상적 인간 26) 으로 남는 것 중 까뮈 가 긍정하는 두 번째 유형의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범주 상 사연기 의 정숙이 첫 번째 삶의 방식에 해당한다면 사연기 의 성규, 생활적 의 춘자, 봉수는 세 번째 삶의 방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생활적 의 동주의 삶의 방식이 삶과 의미가 분리되는 근대에서의 보다 근원적 체험, 즉 타락한 세계에서의 자명성 의 상실이라는 체험에 기초한 것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번쉬 타인에 따를 때, 삶과 의미의 분리로 규정되는 근대의 고유의 특성 중에 하나는 행위의 자명성의 상실이다. 삶과 의미가 통일되어 있을 경우 인 간의 행위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 행위 자체가 투명하게 그 의미를 드러 내기 때문이다. 반면 삶과 의미가 분리될 때 모든 행위는 그 자체와 동 기 사이에 불일치의 가능성이 생긴다. 27) 이로 인하여 행위는 항상 해석 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상황에 빠지며 행위는 결코 온전하게 복구될 수 없게 된다. 즉 타인이 나 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억센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들은 우물에 똥을 퍼다 넣은 사람이 틀림 없이 동주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동주가 아니라고 변명 을 한대야 곧이 들어 주지 않을 것이 아니냐 아무 대답이 없이 동주는 벽 을 향해 도로 얼굴을 돌려 버렸다.(밑줄-인용자) 28) 25) 부조리 감정이란 논리적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현사실로서, 삶의 의미와 세계 의 의미를 보장해주는 범주들, 진리, 목적, 인과율 등에 대한 허무의 경험을 가리킨 다는 점에서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자각과 동일한 범주이다. F. Zimmermann(이기상 옮김), 실존철학, 서광사, 1987, p ) A, Camus(민희식 역), 씨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p ) J. M. Bernstein, The Philosophy of Novel, The Harvester Press, 1984, p.58.

291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93 성욕에 사로잡혀 있는 춘자나 돈만을 제일로 아는 봉수, 그리고 그와 별 다를 게 없는 동네 사람들의 삶이란 동주의 눈에 똥 더미 속에서의 삶, 타락한 삶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을 더러워하는 그들의 허위의식, 타락한 세상과 비교할 때, 허무의 늪에 빠져 자신을 이해시키 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동주의 삶이란 비록 생활적으로 무능 력할지라도 정당한 것이고, 그러한 동주의 삶은 그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삶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자 신의 삶이 이해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체험은 공휴일 의 도일이 아무 리 애써 설명한댔자 자기의 심경이 그대로 저쪽에 수긍될 까닭이 없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잠자코 소처럼 멋없이 씩 웃어 보였을 뿐이었 다 와 미해결의 장 에서 나 가 가족에게 이방인처럼 취급당하는 것에 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상의 사실을 고려할 때 사연기 의 동식과 생활적 의 동주의 삶의 방식은 주인공의 못남이라는 차원, 즉 손창섭이 사회적으로 적응할 능력 을 갖고 있지 않는 무능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차원의 평가만으로는 완전한 해명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연기, 생활적 에서 죽음을 단지 우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살을 방조하는 것을 고려 할 때 동주, 동식의 모습이 현존재의 본질에서 기원하는 한계상황에서의 실존을 의미하거나, 無 일 수밖에 없는 의식의 존재론적 구조에서 기원하 는 자유의 의식 29) 을 의미한다고 보기 힘들다. 죽음에 대한 동주, 동식의 태도는 비록 죽음을 최선의 삶의 방식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자살까 지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허무주의자의 그것이다. 결국 동주, 동식 으로 대변되는 손창섭의 작품 세계는 삶은 물론 행위조차 무의미하다는 28) 손창섭, 생활적, p ) A. C. Danto(신오현 역), 사르트르의 철학, 민음사, 1992, p.101 ; O.F. Bollnow(최동 희 역), 실존철학, 이성과 현실, 1989, pp 참조.

292 294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 극단적 허무주의자의 삶을 표현하 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적 소설인 신의 희작 을 고려할 때 손창섭의 이와같은 허무주 의는 격동기라는 시대적 상황 체험과 독특한 개인사적 체험에서부터 비 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시대적 체험이란 해방과 6 25를 통해 이루어진 두 차례의 민족의 재편성 과정을 체험하면서 해방따라지 로서의 난민 의식을 갖게 된 것을 가리키며, 개인사적 체험은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유년기 성 체험과 야뇨증으 로 인해 다양한 콤플렉스30)를 소유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돌, 나무, 염소, 개, 제비, 두더지, 노루, 것들 중의 어느 하나로 나는 태 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구 많은 물건 가운데서 어쩌자고 하필 인 간 으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일찍이 나는 인간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자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은 모두들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나는 한 번도 자신을 잘났다고 오산해 본 일조차 없다. 따라서 누구를 부 러워 해 본 적도 없다.31)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체험 속에서 자기 자신까지 포함하는 인 간에 대한 철저한 모멸감을 형성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삶에는 어 떤 의미도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과 앞서 고찰한 동주, 동식의 삶의 방식을 고려할 때 손창섭의 허무 주의는 이상적 유형의 허무주의, 즉 전적으로 진리에의 욕망에서 추동되 면서 잘못된 가치와 규범을 파괴하고 새로운 존재양식을 개척해 나가는 30) 송기숙, 창작과정을 통해서 본 손창섭, 현대문학, , pp ) 손창섭, 당선소감-인간에의 배신, 문예, , p.76.

293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95 유형의 허무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32) 그렇다고 만성적 환멸에 머물러 기존의 가치를 긍정해 버리는 허무주의 33) 라고 할 수도 없는데, 진리, 참 다운 가치에 대한 의욕이 없다면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그 의 소설이 부정하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면, 즉 공휴일 의 약혼자 금순 과 아미, 생활적 의 춘자와 봉수, 사연기 의 성규 등의 모습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허무주의는 진리에 대한 욕망을 배면에 깔고 있지만 아직 어떤 적극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는 못한 채, 가치나 진리가 부재하는 상태를 긍정하려 하지 않는 특유의 허 무주의라 할 수 있다. 3. 허무주의와 자기-아이러니 가장 순수한 형태의 허무주의는 어떤 형태의 표현과 행위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동주와 동식의 삶, 그로 대변되는 손창섭의 세계관 은 이러한 허무주의에 접근해 있다. 그러나 이를 손창섭 자신에게 적용 시키면, 소설창작 그 자체도 하나의 행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손창섭 자신은 허무주의에 철저하지 못한 모순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라는 의문이 발생한다. 결국 그에게서 소설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의 문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손창섭의 소설창작 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견해이다. 32) J. Goudsblom, 앞의 책, p ) 한상규, 손창섭 소설에 나타난 아이러니의 미적 기능, 외국문학, 1993 가을, p.127.

294 296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1) 즉 그것(신음소리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세계-인용자)은 더 말할 나 위도 없이 작자의 육체적 정신적 기형성에 연유한 것으로서, 여기에 그의 비극적인 유우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유우머는 작품을 통해서보다 도, 실생활면에 노출될 때, 더욱 비극적인 색채를 가미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격에 맞지 않는 문학을 스스로 필생의 업으로 택하게 된 것은 자신의 이러한 비극적인 유우머의 정체를 기어이 밝혀 보자는 절실한 욕 구에서인지 모른다.(밑줄-인용자)34) (2) 말하자면 나의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작자의 정신적 수기요 도 회 취미를 띤 자기고백의 과장된 기록인 것이다. 기형적인 개성의 특이성 을 바탕으로 불우한 역경에서 형성된, 굴곡된 정신 내용의 역설적 고백이것이 내 작품의 정체인 것이다.(밑줄-인용자)35)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손창섭에게서 소설창작이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일종의 자서전적 형식을 띤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들을 고 려할 때 이러한 발언은 모든 소설가에게 발견되는 일반적인 차원의 것 을 넘어선다는 데 문제가 있다.36) 이러한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고 드스블롬의 견해에 따를 때 쉽게 밝혀진다. 고드스블롬에 따르면, 허무 주의자가 허무감과 나태를 벗어나 무언가 생산적 행위를 하는 가장 대 표적인 형식은 자서전적 형태의 글쓰기이다. 허무주의자는 자신의 허무 주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자서전적 형태에서 발견하게 되며 그 속에서 허무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허 34) 손창섭, 신의 희작-자화상, pp ) 손창섭, 아마츄어 작가의 변, 사상계, ( 현대한국문학전집 3, 신구문화사, 1968, p.476). 36) 송기숙, 앞의 글, p.104.

295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97 무감, 나태에 빠지지 않는 행위를 하게된다. 이는 허무주의로 인한 나태 와 허무감을, 입증하고 말하려는 욕망이 압도하는 것으로서 허무주의자 가 허무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책이라 할 수 있다. 37) 인용문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실은 손창섭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소설의 내용상 허무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손창섭의 소설창작, 구체적으로 자 서전적 형태의 소설창작이란 바로 허무감을 극복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창섭의 소설창작이 허무감과 나태를 극복하는 시도라고 할 때 여타 허무주의자의 자서전적 글쓰기와 구별되는 그만의 고유한 특성은 부정 적 인간에 대한 아이러니화, 보다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아이 러니화라고 할 수 있다. 허무주의는 근원적으로는 진리에의 욕망에서 비 롯되지만 사회, 문화, 개인이라는 변수에 따라 현실적으로 다양한 형태 를 띠게 된다. 손창섭의 허무주의는 전술한 바 있듯이 격동기라는 사회 적 요소와 유년기의 체험이라는 개인적 요소로부터 형성된 인간모멸이 라는 독특한 형태를 띤다. 이를 고려할 때 자기 자신까지 포함하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아이러니화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50년대 중반에 발표된 손창 섭의 소설들, 미해결의 장 ( 현대문학, ), 유실몽 ( 사상계, ), 설중행 ( 문학예술, ) 등에서부터이다. 이러한 소설들이 기술수사학적 차원에서의 아이러니의 특성인 자신에 찬 무지, 현실과 외 관의 대조, 희극적 요소 38) 등을 드러냄은 이미 자세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39)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 작품들 속 37) J. Goudsblom, 앞의 책, pp ) D. C. Muecke(문상득 역), 아이러니,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pp ) 한상규, 손창섭 초기 소설에 나타난 아이러니의 미적 기능, 외국문학, 1993 가 을호.

296 298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기술수사학적 차원의 아이러니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폴 드 만에 따르면 아이러니는 한 주체 내의 자아의 이 중화, 즉 아이러니 자아와 경험적 자아로의 분리가 이루어져 아이러니 자아가 시간적 거리가 아닌 공간적 거리 속에서 경험적 자아를 반성하 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이러니는 경험적 자아의 전복을 통해 웃 음을 유발시키고 자신에 대한 그릇된 가정을 비웃음으로써 보다 고차원 의 자기인식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40) 여기서 주의할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이러니 자아가, 언어행위를 할 때 일반적으로 발생 하는 심리적 통일성, 즉 나 라는 인칭대명사와 지금 여기 라는 직시 소를 통해 형성되는 심리적 통일성에 의해 규정되는 자아임은 물론 경 험적 속성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자아로서 양자 사이의 진동 속에서 존 재한다는 점이다. 41) 둘째는 아이러니가 경험적 자아를 한번 아이러니화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서술적(아이러니) 자아를 다시 경 험적 자아로 설정하여 아이러니화하는 식의 나선형의 과정을 통해 현실 에 접근해간다는 점이다. 미해결의 장, 유실몽 등은 폴 드 만과 번쉬타인이 지적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본질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미해결의 장 에서 일차적으로 아이러니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 입신양명의 꿈 속에 파묻 혀 있는 지숙, 지철, 지웅과 성실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40) Paul de Man, Blindness and Insight : Essays in the Rhetoric of Contemporary Criticism,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3, p ) 번쉬타인은 폴 드 만이 아이러니 자아를 언어행위시 일반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심리적 통일성으로만 간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아이러니 자아가 경험적 속성도 가짐을 지적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번쉬타인의 견해에 따를 때 비로소 아이러니를 통한 자기인식 과정과 그것이 나선형의 과정이라는 점이 설명된다. J. M. Bernstein, 앞의 책, pp , p.225 ; E. Benveniste(황경자 역), 언어활동에서의 주관성에 대하여, 일반언어학의 제 문제1, 민음사, 1992, pp 참조.

297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299 진성회 회원, 즉 아버지, 문선생, 장선생이다. (가) 원 저렇게라구야. 아이들의 웅지를 북돋아 주지는 못할 망정 그 무 슨 좀된 소리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천생 이런 꼴을 못 면하는거여! 42) (나) 진성회의 회원은 현재, 나의 대장, 문선생, 장선생 이렇게 세 사람뿐 이다.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국가와 민족과 인류 사회를 위 해서 진실하고 성실한 일을 하다가 죽자는 것이 소위 진성회의 취지인 것 이다. 43) (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정신 없이 지껄였다. 자, 어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光 順 에게 뭐든 자신 있게 요구하십시오. 나두 이렇게 삼 백 환의 위자료를 받아 가지구 갑니다. 나는 참말 별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나는 도무지 무슨 해결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44) (라) 그들의 입에서는 술내가 풍기었다. 나는 결코 유리할 수 없는 사건 을 각오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우리를 무얼루 아는 거 야? 연거푸 다른 놈이 왜 버릇없이 구는 거야. 나는 어찌 된 판인지 영 문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건방진 자식 광순일 함부로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순간 나의 오른편 귀청이 왕하고 울렸다. 눈에서는 불이 튀었다. 그것은 고무장갑 같은 손이 아니었다. (중략) 마침내 나는 그 자리에 고꾸 라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턱과 손에 끈적거리 는 선혈을 의식하면서 무의식중에 나는 光 順 이!, 光 順 이! 하고 신음소리 를 불러보는 것이었다. 45) 42) 손창섭, 미해결의 장,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 ) 손창섭, 미해결의 장, p.195.

298 300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가)는 아메리칸 드림과 입신양명의 이데올로기를 웅지 라고 표현함 으로써 아이러니화하고 있으며, (나)는 과대망상증의 소산에 불과한 진 성회의 취지를 민족과 인류 를 위해 일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라고 서 술함으로써 아이러니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서술적 자 아 나 가 경험적 자아인 나 역시 아이러니화한다는 점, 즉 자기 아이 러니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은 이 대가리가, 동 체가 팔다리가 그리고 먼지와 함께 방안에 배꼭 차 있는 무의미가 나는 무거워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에서 드러나듯, 사연기 의 동식이나 생활 적 의 동주와 동일하게 삶의 무의미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지상은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발견하려 하면서도 창녀 광순의 집을 왕복하는 무 의미한 행위만을 되풀이할 뿐인데 서술적 자아 나 는 이러한 경험적 자 아 지상 을, 인용문 (다)에서 드러나듯 별 수 없는 인간 으로 묘사한다. 즉 경험적 자아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외관과, 그의 현실이 결 국 창녀에게 기생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사이의 대조적인 모습으로 인해 희극성을 자아내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자기 아이러니는 미해결의 장 의 서사적 차원과 서술적 차원을 전체를 지배하는 규범으 로 작용하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인 재봉틀을 빼앗기고, 광순을 찾아갔다가 낮선 사내들에게 구타을 당하는 마지막 장 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재봉틀의 빼앗김, 낮선 사내 들의 구타는 경험적 자아 지상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문제를 해 결하고자 광순의 집을 왕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그러나 지상이 의도하 지 않았던 결과들로서 작품 전체의 서사구조가 의도적 행위의 의도하 지 않은 결과 라는 아이러니의 심층구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앞서 서술하였듯이 아이러니는 공간적 거리 속에서 경험적 자아

299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301 를 성찰하고 자신의 전복을 바라보면서 웃음과 고차원의 자기 인식에 이르는 것에 본질 있는데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넘어지는 마지막 장 면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와 같은 아이러니의 서술 상황을 전 형적으로 보여준다. 인용문 (라)에서 서술적 자아는 경험적 자아에 대해 시간적 거리-이때 서술적 자아는 경험적 자아보다 우월한 입장에 선다- 가 아닌 공간적 거리-이때 서술적 자아는 경험적 자아보다 우월한 입장 에 서 있지 않다-만을 유지한 상태에서 경험적 자아의 전복을 웃음 속 에서 바라본다. 여기서 발생하는 고차원의 자기 인식이란 행위의 무의미 성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 행위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허무주의 자체가 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점, 즉 행위의 무의미성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 앞 에서 무력할 뿐이라는 인식이다. 46) 이는 나선형의 과정으로서의 아이러 니의 본질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고한 이성적 인식에 도달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미해결의 장 의 마지막 장면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어떤 행위도 무의미 하다는 허무주의를 여전히 드러낸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이 행위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허무주의 자체가 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의식이 보다 우월한 인식으로 고정되지는 않는다. 첫째,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서술적 자아는 시간적 거리를 통해 확고한 성찰적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간적 거리 속 에서 경험적 자아를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며, 둘째, 서술적 자아는 언어 행위시 발생하는 심리적 통일성으로서의 자아이면서 동시에 경험적 속 성, 즉 지상 이라는 경험적 자아의 속성을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자아 로서 양자 사이에 진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상은 허무주의와 허 46) 미해결의 장 의 서사적, 서술적 차원 양자에서 나타나는 자기 아이러니에 대해서 는 앞 장 주체의 분열과 아이러니 참조.

300 302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무주의에 대한 부정 사이에서 진자 운동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경험적 자아로서의 지상 에 대한 아이러 니화가 결국 생활적, 사연기 등에서 제시된 허무주의, 그리고 손창 섭 자신의 허무주의에 대한 아이러니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 손창섭의 경험적 자아는 인간에 대한 모멸감으로 인해 어떤 행위도 무 의미하다는 철저한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것 역시 현실의 강 고함과 대조되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의 가능성을 산출하게 된다는 점이 다. 그 결과 삶, 어떤 행동도 무의미하다는 손창섭 특유의 허무주의가 흔 들리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면모는 유실몽 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다. 유실몽 역시 성욕만을 유일한 가치로 아는 누이와 남북석탄 주식회 사라는 유령회사에 얽매여 있는 매형 상근, 고불통대 등의 인물을 아이 러니화하는 것은 물론 삶의 무의미에 빠져 있는 철수 자신까지 아이러 니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해결의 장 과 달리 여타의 인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나타난다. 유실몽 의 누이와 춘자는 이전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한 유형의 인물이다. 누이는 성욕에 사로잡혀 있는 생활적 의 춘자와 동일한 인물이며 유실몽 의 춘자는 그 목표가 교사 자격증의 획득으로 바뀌었을 뿐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미국 유학을 탈출구로 보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 하는 미해결의 장 의 지숙과 동일한 인물 유형이다. (1) 누이에게서는 강한 인간의 냄새가 풍기었다. 나는 그 냄새를 즐기는 것이었다. 참말 세상에는 인간 냄새를 풍기지 못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겠다.(밑줄-인용자) (2) 마주 앉을 때 스커어트 밑으로 내민 무릎이 눈에 뜨이면 나는 가슴

301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303 이 아팠다. 형벌처럼 불행과 고독을 짊어진 춘자는 터무니없는 자존심으로 간신히 자기를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밑줄-인용자) 47) 그러나 인용문에서 나타나듯 서술적 자아 나 의 태도는 비록 누이와 춘자와 같은 삶의 방식, 특히 춘자의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을 인정하지 는 않지만 동일한 유형의 인물에 대해 철저한 부정으로 시종하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그들의 삶에 대해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차라리 나는 누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합실을 나섰다. (중략) 불현듯 창백한 춘자의 얼굴이 눈앞을 얼씬거렸다. 뒤이어 여자의 가느단 울음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숨죽여 우 는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이러한 착각을 나는 끝까지 견디어 내야 한 다고 생각하며 자꾸만 어둠 속을 헤치고 소년을 따라 걸었다. 48) (밑줄-인용 자) 이를 고려할 때 인용문에서 보이는 소설의 결말 부분, 이러한 착각을 끝까지 견디어 내야 한다 라는 표현 역시 사실상 그 의미가 이전의 생 활적 의 동주가 보여주었던 견디어 내는 수밖에 달리 어쩔 수 없지 않 느냐 라는 표현과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이전에는 무조건 부정했던 삶 들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됨으로써 발생한 혼란에 직면하여 예전에 그가 성취했던 인식, 즉 어떤 행위도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를 지켜내야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손창섭이 진리와 가치를 추구하는 적극적 유형 47) 손창섭, 유실몽, p.231, p ) 손창섭, 유실몽, pp

302 304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의 허무주의로 전환하기 직전에 와 있음을 의미한다. 사정은 연이어 발 표된 설중행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선생은 도의적 의식, 인간적 가치나 의미 를 믿는 고지식한 인물로서 미해결의 장 의 진성회 회원 들과 동일한 유형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손창섭은 철저한 부정보다는 그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 요컨대 아이러니란 하나의 주체가 아이러니 자아와 경험적 자아로 분 리되어 경험적 자아를 아이러니화함으로써 자기 인식을 증가시키는 나 선형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는 손창섭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손창섭은 인간에 대한 모멸감 속에서 형성된 허무감과 나태를 극 복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 전체를 아이러니화하는 창작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진리에 대한 적극적 추구를 수반하지 않은 채, 행위 의 무의미성만을 주장하던 손창섭 특유의 허무주의가 아이러니화 되면 서 진리, 가치를 추구하는 적극적 유형의 허무주의를 새롭게 기획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소 ( 신태양, )는 이러한 손창섭의 변모 를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이상 귀양은 나를 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귀양의 그 빛나는 미 소는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ㅎ 발음이며 b와 d를 구별 못하는 내 두뇌의 치매성이나, 가을비 내리는 음산한 풍경이 회색 바 탕으로 끝없이 전개된 내 인생의 정신 풍토 위에는 귀양의 투명한 미소를 충분히 형체화 시킬 수 있는 운명적인 필연성조차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을 불신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최후로 귀양만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서슴지 않고 귀양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49) (밑줄-인용자) 49) 손창섭, 미소, p.281.

303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305 나 가 작자 자신의 분신이라고 가정할 때, 미소 는 인간에게만 의미 있는 어떤 것, 즉 삶의 의미, 진리를 상징하며 두뇌의 치매성과 회색바탕 의 인생이란 유년기 성 체험과 해방 따라지로서의 체험을 의미하는 것 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를 때 결국 인용문은 인간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 지만 어떤 행위도 무의미하다는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넘어서 진리를 찾 아 나서겠다는 다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의미의 추구와 추상적 휴머니즘 극단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손창섭의 변모는 고독한 영웅 에서부터 명확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 시작하여 가부녀, 잡초의 의지, 잉여인간, 포말의 의지 등의 연이은 작품 속에서 줄기차게 시도된다. 이 작품들은 손창섭의 50년대 초기의 소설들 이 삶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는 달리 삶의 의미를 매우 다양한 형태로 탐구한다. 가부녀 에서는 그저 재물만으로 채울 수 없는 가슴 속의 공허를 메 꾸기 위해서 못 견디게 인간의 체온이 그리웠을 뿐이다 라는 강노인의 독백에서 드러나듯, 畜 財 만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던 강노인의 변모과정 을 통해 인간간의 따뜻한 정 이라는 삶의 가치를 제시한다. 고독한 영 웅 은 손창섭 소설에서 유례가 드물게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평교사인 인구 는 특권의식을 만끽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유력자의 아들을 체벌한 이유로 폭력교사로 몰리면서도 교장으 로 대변되는 금력이나 권력, 형으로 대변되는 체면이나 위선에 굴하지 않는다.

304 306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뭐, 뭐라구요. 대체 차선생 따위가 뭘 믿구 그리 큰 소릴 치는 거요. 저는 먼저 저 자신을 믿습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도달한 비장한 각오를 믿는단 말씀입니다. 교장 선생님처럼 금력이나 권력만을 믿는 일에는 그만 지쳐버렸읍니다 50) 인구가 그렇게 저항하는 이유는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기존의 그릇된 가치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윤리의식에 입각해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 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결국 손창섭이 개인의 최소한의 윤리의식에 근거 한 저항을 삶의 긍정적인 의미로 내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잡초의 의 지 에서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유선생의 자식을 혼자 보듬고 나가는 정혜의 모습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풍요로움을, 잉여인간 에서는 서만기를 통해 자기의 분수를 알고 함부로 부딪히지 도 않고 꺾이지도 않고 자기의 능력과 노력과 성의로서 차근차근 자기 의 길을 뚫고 나가는 51) 삶의 태도, 성실성이라는 덕목을 내세운다. 그 리고 포말의 의지 에서는 몸을 파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신에 대 한 믿음을 잃지 않는 여인인 영실을 만나면서 주인공 종배가 느끼는 어 떤 보람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 52) 을 제시한다. 50년대 후반에 발표된 일련의 소설들은 이상과 같이 다양한 삶의 의 미를 탐구하면서, 그것을 수행하는 작중인물들의 행위 를 그려내고 있 다. 가부녀 에서 강노인은 자신의 전부였던 재산을 다 바쳐가면서까지 인간의 체온 을 느끼고자 하며 고독한 영웅 의 인구는 생존의 수단인 직장을 버릴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부조리에 대항한다. 또한 잡초의 의 지 에서 정혜는 허무주의자 유선생의 자식을 혼자만이 책임져나가려 하 50) 손창섭, 고독한 영웅, 현대문학, , p ) 손창섭, 잉여인간, p ) 손창섭, 포말의 의지, 현대문학, , p.56.

305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307 며 포말의 의지 에서 종배는 영실의 최소한의 희망 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잉여인간 의 서만기는 사람이란 행복하기 위 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서 살고 있 는 것이다 라는 인식하에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걸어간다. 이러한 면모 는 일반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사실일 수 있지만, 손창섭의 50년대 초반 의 소설들이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려는 어떤 행위도 시도하지 않는 인 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작중인물들의 어떤 행위도 무의미한 것으 로 간주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손창섭 자신에게는 결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시도는 모두 불발로 그치고 만다. 가부녀 에서 강 노인의 인간의 체온 을 느끼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 고독한 영웅 의 인구가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되는 것, 잡초의 의지 의 유선 생이 정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허무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포말의 의지 에서 돈을 벌어 창녀생활을 청산하고 조그마한 가게를 얻 고 싶다는 영실의 최소한의 소망이 종배의 노력에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점에서 무한궤도와 같이 소설 속의 모든 사태는 결말이 없다 라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을 변형시키는 근원적 형식이 행위 라고 할 때 이는 그 결과와 상 관없이 일종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갖는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부녀, 잡초의 의지, 잉여인간, 포말의 의지 등에서 제시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의미는 휴머니즘으로 포괄될 수 있다. 그리 고 그것들은 모두 단편성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도 생활과 현실에 뿌 리를 둔 것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차원의 휴머니즘,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차원의 휴머니즘적 가치의 제시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만큼 행위 역시 어떤 현실적 근거 속에서 탐구된다기보다는 개인

306 308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적 차원의 윤리적 결단이나 일정한 가치에 대한 맹목적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한계를 갖는다. 가부녀 의 강노인의 행 위는 맹목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고독한 영웅 의 저항은 철저하게 개인의 윤리적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진 행위이다. 또한 포말의 의지 나 잡초의 의지 는 제목 그대로 의지의 드러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잉여인간 의 서만기는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가 5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에서 도 연유한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칼리니코스에 따를 때 역사를 구성하는 근원적 형식으로서의 행위는 기존의 사회관계 틀 속에서 사적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와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 전체적인 사회 변형을 집합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행위 유형 등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될 수 있는데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서, 이 세 가지 유형의 행위 모두가 이루어질 동일한 가능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53) 이중 사회관계나 구조를 변형시킨다는 의미, 즉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 에서의 진 정한 행위는 마지막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50년대는 세 번째 유형의 행 위는커녕 두 번째 유형의 행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사회적 관계, 즉 구조적인 문제에 근원이 닿아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행위가 윤리적인 결단, 맹 목적 의지에 의해서 이루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은 철저한 자기 체험의 고백으로서 창작활동을 수행한 손창섭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상의 고찰을 기반으로 하여 1950년대 후반에 발표된 손창섭의 작품 전체를 평가해 볼 때, 손창섭은 어떤 행위도 무의미하다는 극단적인 허 무주의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여전히 삶은 무의미하다는 인식에서 근본 53) A. Callinicos(김용학 역), 역사와 행위, 교보문고, 1991, pp

307 제2장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과 추상적 휴머니즘 309 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며 비록 사회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나 현실주의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는 평가 54) 가 가능하다. 이는 무의미 한 행위만 되풀이하는 도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낙서족 이라는 장 편을 창작한 점, 앞선 고찰에서 드러나듯 행위의 가능성은 열어 놓았지 만 추상적인 차원의 휴머니즘적 가치를 제시하는 데서 나아가지 못하였 다는 점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할 것이다. 5. 허무주의의 원형적 모습들 손창섭의 50년대의 소설의 중심 축은 허무주의라 할 수 있다. 생활적, 사연기, 비오는 날 등의 50년대 초반의 소설들의 경우 권태, 불안, 우울의 정조가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특히 작가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주인공들이 주어진 조건을 변형시킬 수 있는 근원적 형식인 행위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 주 목하였다. 그들의 삶은 그저 견디어 내는 것 으로 요약될 수 있는 극단 적인 허무주의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면모는 실존철학보다 는 손창섭의 개인사적 체험과, 해방, 6 25로 이어지는 시대적 상황과 보다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더 나아가서는 자명성의 상실이라는 보다 근원적 체험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해결의 장, 유실몽, 설중행 등에 이르면 이러한 극단적 허무 주의는 기술 수사학적 차원을 넘어서는 자기 아이러니와 결합된다. 이때 주목되는 것은 아이러니 자아의 이중적 속성 때문에, 자기 아이러니의 과정에서 어떤 행위도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가 표현됨과 동시에 그러 54) 조남현, 앞의 글, p.128 ; 김우종, 앞의 책, p.331 참조.

308 310 제2부 허무주의와 아이러니 한 허무주의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화가 의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된 다는 점이다. 유실몽 과 설중행 등에서 나타나는 애정 어린 시선은 손창섭 자신의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판단된다. 추상적 휴머니즘으로 요약되는, 50년대 후반의 가부녀, 고독한 영웅, 잡초 의 의지, 잉여인간, 포말의 의지 등의 다양한 의미 추구는 앞선 과 정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상의 사실을 고려할 때 손창섭의 50년대 작품은 전후문학이라는 특 수성을 넘어서 허무주의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50년 대 초반 소설에서 드러나는 허무주의의 극단적 모습, 미해결의 장, 유 실몽 등에서 보여지는 허무주의와 창작의 관계, 그리고 50년대 후반의 일련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극복의 노력 등은 소설에서 허무주의가 차지 할 수 있는 위상을 다양한 차원에서 원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으 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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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조현일( 趙 顯 一 ) 서울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저서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리얼리즘 논문 손창섭 장용학의 허무주의적 미의식에 대한 연구 근대 속의 이야기 : 황순원론, 임화 소설론 연구 년대 노동소설연구 전후소설과 허무주의적 미의식 초판 1쇄 인쇄 2005년 3월 25일 초판 1쇄 발행 2005년 4월 1일 지은이 조현일 펴낸이 박성복 펴낸곳 도서출판 월인 등 록 제6-0364호( ) 주 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2동 전 화 (02) 팩 스 (02) homepage 조현일, 2005 ISBN 값 16,000원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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