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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관광 핵심이야기 99선 서울의 숨겨진 99개 이야기 서울시 관광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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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 차 자연/경관 1 1. 한양도성의 경계가 된 선바위 3 2. 싸움은 화합의 씨앗? 싸움의 터에서 사랑의 터로 바뀐 천변 풍경 5 3. 억새인 듯 억새 아닌 억새 같은 갈대! 7 4. 서울의 전망 좋은 곳 큰 결정은 이곳에서 숯에서 나온 검은 물, 탄천 정선의 그림으로 보는 한강의 풍광 세기 한강의 기적, 도심 속 비무장지대 밤섬의 부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희어질수록 흥하는 소나무, 백송 이름 속에 이야기를 품은 서울의 고개들 서울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준 선유도 쓰레기더미에서 피운 장미꽃, 난지도 옷 갈아입는 조각상의 비밀 철길 따라 떠나는 산책길, 구로구 항동 철길 화살이 꽂혀 살꽂이, 그리고 살곶이다리 풍수지리, 서울 곰달래 마을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간직한 아차산 40 거리/마을 조선시대 정육점, 성균관 다림방 응답하라 1990, 홍대 앞 문화 변천사 사랑을 쓰려거든, 효자동으로 부암동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 서울의 브룩클린, 성수동

5 7. 노동자들을 달래주는 벽화, 이화마을 강남의 테헤란로, 이란의 서울로? 낭만 가득한 철길이 있는 연남동 기찻길 서민들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해방촌 서울에도 있다! 문래 예술창작촌 서래마을을 이어주는 누에다리에 소원을 빌어봐 노동자들의 터전, 구로디지털단지 공부 좀 해? 모여! 노량진, 신림 고시촌 노룬산 금닭의 전설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던 정동길 잠시 쉬어가는 서울 가는 길, 떡전교 77 유적/건축물 의연하게, 늠름하게. 서대문형무소의 두 미루나무 국권 피탈에 맞선 여장부, 마지막 황후가 있던 낙선재 천년 만에 기적처럼 깨어난 백제 유적 대통령들에게 둘러싸인 창빈 안씨 묘역 이야기 단비가 기쁜 곳, 희우정( 喜 雨 亭 ) 맥주공장이었던 시민공원 기네스북 in 서울 교황이 다녀간 서울의 성지, 절두산 성지와 서소문 순교지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는 한글누리 서민 옆에 잠든 독립유공자들, 망우리 공원 한양도성과 효녀 도리장 쌀바위 전설이 담긴, 늘 닫혀있던 숙정문 국회의사당에는 태권브이가 있을까? 시간은 흘러도 그 자리에 변함없는 명동극장 낙성대학교? 아니,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 落 星 垈 )! 서울을 향한 불기운을 막아라 만병통치약 시구문 돌가루

6 18. 공사 실명제로 쌓은 한양 도성 프랭크 게리도 극찬한 DDP 해방의 날, 정월 대보름 수표교 다리밟기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종묘와 종묘제례악 빌딩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음기가 강한 숙정문을 가뭄에 열었던 사연은? 혜화문의 봉황을 찾아서 낭만을 간직한 한국 최초의 상설극장, 우미관 우리가 모르던 서울의 군사시설들 한국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팔다, 웨스틴 조선호텔 강남 이색 건축물, 무엇을 닮았을까요? 얼음을 지켜라! 조선시대 냉동고 서빙고 동룡이네 집 어디니?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남영동 대공분실 행복한 마음의 궁전, 딜쿠샤 144 인물 서촌에서 무엇을 했을까? 모던보이 천재시인, 이상 안경점이 자리 잡은, 세종대왕 나신 곳 명동에 성룡이? 명동 거리를 수놓던 배우들의 흔적 정릉에 남겨진 사랑이야기 시인 백석 의,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 자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의서 동의보감 조선의 예언가, 흙집 지어 살던 마포나루 일제로부터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금을 던진 투금탄 나루, 공암나루 아차산에 전해오는 아기장수 전설 이순신 장군의 터전이 영화인의 메카로 충무로

7 쇼핑/먹거리 국내 최대 패션시장, 시작은 군대로부터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혼상제는 광장시장 김 첨지의 그 음식, 설렁탕 접수할 수 있겠어? 마장동 축산물시장 실수의 미( 味 )학, 무교동 낙지 알몸으로 시작, 완전군장 실시 이상 무! 남대문시장 세계가 매료된 이태원 양복 사랑을 타고 오는 재래시장, 방산시장 노량진 수산시장의 변신은 계속된다 전문적이야, 서울 시장 서민의 삶을 달래준 시장 먹거리 멋쟁이 DJ오빠가 있던 맛있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 197 엔터테인먼트 주체할 수 없는 끼, 버스킹 홍대 너와 나의 사랑의 연결고리, 남산의 자물쇠 아기 공룡이 사는 쌍문동 불멸의 명작, 아리랑 촬영지 아리랑 고개 남산에 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다! 서울의 다양한 영화관, 이제는 각자의 길로 유령역에 유령보다 더 자주 출몰한다는 것은? 악기시장계의 기네스북, 낙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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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자연/경관 1. 한양도성의 경계가 된 선바위 2. 싸움은 화합의 씨앗? 싸움의 터에서 사랑의 터로 바뀐 천변풍경 3. 억새인 듯 억새 아닌 억새 같은 갈대! 4. 서울의 전망 좋은 곳 5. 큰 결정은 이곳에서 6. 숯에서 나온 검은 물, 탄천 7. 정선의 그림으로 보는 한강의 풍광 8. 21세기 한강의 기적, 도심 속 비무장지대 밤섬의 부활 9. 서울의 가장 오래된 나무 10. 희어질수록 흥하는 소나무, 백송 11. 이름 속에 이야기를 품은 서울의 고개들 12. 서울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준 선유도 13. 쓰레기더미에서 피운 장미꽃, 난지도 14. 옷 갈아입는 조각상의 비밀 15. 철길 따라 떠나는 산책길, 구로구 항동 철길 16. 화살이 꽂혀 살꽂이, 그리고 살곶이다리. 17. 풍수지리, 서울 18. 곰달래 마을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 19.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간직한 아차산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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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한양도성의 경계가 된 선바위 조선의 도읍을 세우기 위해 지금의 서울인 한양 땅을 살펴보던 정도전과 무학대사. 두 사람은 인왕산 자락에 있는 바위 하나를 앞에 두고 싸움을 벌이게 된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싸움이 서울의 경계는 물론이고 훗날 서울이라는 이름까지 좌우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문제의 바위인 선바위( 禪 岩 )는 마치 장삼을 입은 스님이 참선하 는 모습이라 해서 선바위 로 불리는 바위인데, 무학대사는 이 선 바위를 승려 의 상징으로 판단하여 조선왕조에서 불교가 배척당 하지 않도록 성 안쪽에 두려고 했다. 반면 정도전은 선바위가 도 성 밖에 있어야 불교가 쇠하고 유교가 성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 를 반대한 것. 두 사람은 조금도 서로의 입장을 양보하지 않고 싸움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정작 이 싸움에서 곤란한 입장에 놓인 것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였다. 두 사람 모두 조선건국을 도와준 일등공신들이기 때 문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 다. 하지만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 태조의 근심은 깊 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계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모두들 그의 갑작 스런 결정에 깜짝 놀라지만, 사실 그 계기는 의외로 한 번의 꿈 으로 결정이 난다. 그 꿈의 내용은 이렇다. 서울에 큰 눈이 내렸 는데, 선바위가 있는 바깥쪽까지는 눈이 녹지 않고 그 안쪽으로 만 눈이 녹았던 것이다. 이성계는 이를 하늘이 내린 징조라 보고 - 3 -

12 결국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는 즉시 선바위 안쪽으로 성을 짓도록 명했고, 결국 선바위는 도성 밖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길고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게 된 다. 오늘날 서울 이라는 명칭이 눈을 뜻하는 한자어 설( 雪 ) 에 울타리를 뜻하는 울 이란 우리말이 합쳐진 설울 에서 왔다는 설 은 이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후 불교는 실제로 배척당하게 되고, 조선은 유교국가로 발전하 게 된다. 오늘날 선바위는 종로구 무악동의 인왕산에 있는 한양 도성 구간을 오르는 도중에 볼 수 있다. 그 주변에 모여 있는 많 은 절들을 보면 무학대사의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당시 태조의 결정에 무학대사는 이제 중들은 선비 책 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고 탄식했다고 하는데, 오늘 날의 이 같은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선바위, 인왕산, 한양도성 위치 : 종로구 무악동 석불각 이야기 태그 : 정도전, 무학대사, 한양도성, 조선 천도 - 4 -

13 2. 싸움은 화합의 씨앗? 싸움의 터에서 사랑의 터로 바뀐 천변 풍경 1930년대 발표된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청계천변을 배경 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근대화 변화의 바람 속에 여전히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던 당시 청계천변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 군상과 외면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카메라로 영사하듯 묘사해나가 는 새로운 방식을 구사했던 문학작품이다. 그 안에, 흥미로운 광 경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의 피해는 깊숙한 다리 안에 자리 잡은 깍정이들의 몸 위에 더 커서 갑자기 불은 개천 물에 집이며, 아끼던 물 건 넣어 놓은 궤짝이며 다 잠기고 말았다. 날이 개자 사람들이 천변가에 몰려 나와 불어난 개천물에 떠내려 오는 물건들을 건져내려고 한판 시 합을 벌인다.> - 천변풍경 본문 中 아이들의 팽이치기, 달밤의 태껸놀이, 연말부터 정월보름까지 연 날리기, 정월 대보름날 다리 밟기, 개천 바닥에서 돌팔매 싸움 등 장안 사람들의 뜨락으로 사랑을 받았던 청계천. 한여름이면, 그곳 은 전쟁터가 되곤 했던 것이다. 홍수에 청계천변까지 떠내려 온 귀중품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몹시 가난했던 당시 한국의 어려 운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꾸 싸우다보면 정든다고 했던가. 그런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 터를 꾸려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촌락을 꾸리게 된 것이다. 처음엔 떠내려 오는 물건들 위주로 생계를 꾸리던 그들 은, 점점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게 됐다. 근처에 벼룩시장이 형성 되고, 철물점 등이 운영되며, 그렇게 과거 청계천은 사람들이 모 여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4 지금은 현대적으로 개발돼, 많은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편하게 오 갈 수 있게끔 조성되어있다. 그 옛날 귀중품을 차지하기 위해 몸 싸움을 벌이던 이곳은 이제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사랑을 속삭이 는 장소가 됐다. 과거 싸움의 터인 청계천변이, 지금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마치 인간사 전체를 대변하는 것만 같은 청계천의 모습. 싸움으 로 시작됐을지라도, 세월이 흐를수록 나타나는 인간의 본래 모습 은 결국 역시 화해와 사랑인 것이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청계천, 주변상가, 광화문광장 위치 : 종로구(서린동, 종로5가) 이야기 태그 : 청계천, 천변풍경 - 6 -

15 3. 억새인 듯 억새 아닌 억새 같은 갈대!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기는 썸 인지 아닌지 구별 하는 것만큼 헷 갈리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설프게 아는 하수들이나 하는 말이다. 진정한 고수는 주변만 둘러보고도 갈대인지 억새인 지 알아 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서식지의 차이를 보고 알아내는 방법이다. 억새와 갈대는 사는 곳부터 확연히 차이가 있다. 억새가 사는 곳에 갈대 는 살 수 없고, 갈대가 사는 곳에 억새는 살지 않는다. 억새는 보통 산이나 들판 같은 곳에서 산다. 이유는 바로 억새의 뿌리에 있다. 억새의 뿌리는 땅에 얽혀있어서 다른 식물들과 함께 자라 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반대로 갈대는 강가, 습지, 호수, 그리고 바닷가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갈대는 물을 좋아하는 식물로 물이 많은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서식지를 봐도 갈대와 억새의 차이를 모르겠다면 두 번째 방법은 키 차이로 알 수 있다. 갈대나 억새가 모두 길게 쭉쭉 높이 뻗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억새는 갈대보다 작은 것이 특 징이다. 갈대는 평균 2-3미터까지 자라난다. 일반 사람들의 키 를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억새는 조금 작은 키를 자랑한다. 1.2미터 정도로 자라는 것이 평균이라고 한다. 억새인 지 갈대인지 헷갈리면 근처에 가서 내 키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 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보고도 알 수 있다. 억새꽃은 보통 9월부터 10월까지 핀다고 한다. 그래서 억새 축제는 9월부 터 시작된다. 하얀 꽃이 핀 시기가 9월에서 10월사이라면 더 고 - 7 -

16 민할 것도 없이 눈앞에 있는 것은 억새일 것이다. 그리고 갈대의 경우는 11월에 꽃이 만개한다고 한다. 억새보다 약 한달 정도 늦 게 꽃이 핀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 내 하늘공원에서는 매년 10월 억새꽃이 만개할 시기에 억새 축제를 연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매워 공원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하늘 공원은 생태공원으로 낮에는 시민들을 위해, 밤에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 다. 밤에는 시민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억새 축제의 기간 동 안에는 야간 개장하여 시민들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억새 축제를 찾아, 억새풀 사이를 거닐며 가족, 연인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하늘공원, 메타세콰이어길, 하늘계단 위치 : 마포구 상암동 이야기 태그 : 상암동 월드컵공원, 하늘공원, 억새 축제 - 8 -

17 4. 서울의 전망 좋은 곳. 서울시내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숨겨진 장소가 있다. 바 로 서울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된 북악산 곡장이다. 북악산의 곡장은 조선시대 방어기지였다고 한다. 이곳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시설이다. 성의 일부를 자연의 지세에 맞춰 돌출시켜 적의 진입을 막는 형태이다. 곡장, 혹은 치성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생김에 따라 구분되어 진다. 꿩의 머리처럼 돌출되어 치 라는 이름을 붙였고, 각이 진 곳은 치성으로 둥글게 반원형으로 굽은 곳을 곡장이라고 불렀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하는 중요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만큼 일 반 시민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다. 그런데 유일하게 북악산 의 곡장은 군사작전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여 시민들의 출 입이 자유롭다. 북악산의 곡장에 가기 위해서는 한양도성을 따라 올라가면 되는 데, 한양도성을 따라 오르다 보며 또 다른 아름다운 전망지를 발 견할 수 있다. 바로 한양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백악마루 이다. 이곳은 한양도성 전체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된 구간이 라고도 한다. 백악마루에 서면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보이는데, 한 양도성 전 구간에서도 손에 꼽히게 전망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가파른 경사 아래로 펼쳐진 서울 도심이 성곽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산에 있는 잠두봉도 빼 놓으면 섭섭한 전망이 아름답기로 유명 한 장소이다. 남산의 잠두봉은 남산 N타워에 남쪽으로 오르는 길 에 발견할 수 있는데, 현재는 많은 관광객과 남산에 출사를 나온 - 9 -

18 카메라 동호회 회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는 나무 데크로 포토아일랜드라는 장소를 지정해 두었는데,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가장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 한다. 특히 포토 아일랜드에는 남산에서 서울 시내의 야 경을 담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잠두봉은 근처에는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위급한 소 식을 전하기 위해 설치한 봉수대는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도록 높 고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는 산봉우리에 설치하였다. 이렇듯 잠 두봉에 올라서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와 야경과 경치를 즐 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북악산의 곡장과 남산의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 들려서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고 추억에 남을 사진을 남겨보자.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북악산 스카이웨이, 잠두봉 포토아일랜드 위치 : 종로구 부암동 / 용산구 후암동 이야기 태그 : 서울 조망장소, 북악산, 잠두봉, 북악스카이웨이, 잠두봉포토아일랜드

19 5. 큰 결정은 이곳에서. 인생에 있어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 다. 큰 결정을 앞두고 혼자만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당연 한 일이다.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던 무학 대사도 마찬가 지였다. 무학 대사가 한양을 내려다보며 천도를 결심했다는 장소 가 바로 국망봉이다. 국망봉은 삼각산 봉우리 중 하나로 만경대 라고 불리기도 한다. 만경대에 올라서 한양을 내려다보면 만 가 지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 학 대사는 이 봉우리에 올라서 한양의 풍수를 살폈다고 전해진 다. 무학 대사가 풍수지리에 능하고 남다른 식견이 지녔고, 이성 계가 훗날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도 무학 대 사라 알려져 있다. 이성계는 무학 대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데 요즘은 큰 결정을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그곳은 남산의 팔각정이다. 남산의 팔각정에는 특히 새해 첫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일출을 보고, 새해의 결심을 다 진다고 한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그동안 내리지 못했 던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에 빠 지기도 한다고 한다. 남산의 팔각정은 서울에서 가장 일출을 보 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 새해를 맞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팔각정을 찾아 일출을 감상한다고 한다. 팔각정에서는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시민들을 위해 재미난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대북공연이나, 해오름

20 함성, 행복기원 만세 삼창, 풍물패 공연 등의 볼거리와 떡국 나누 기 행사와 같은 따듯한 먹거리를 행사도 기획되어 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남산의 팔각정에 올라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중요 한 결정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남산공원, N서울타워, 남산팔각정 위치 : 중구 예장동 이야기 태그 : 한양천도, 이성계, 남산 팔각정, 서울 일출명소

21 6. 숯에서 나온 검은 물, 탄천 성남시의 중앙부를 남에서 북으로 관류하는 한강의 지류 탄천( 炭 川 ). 이 탄천이라는 이름은 숯내 라는 순수한 우리말에서 비롯되 었다고 한다. 이것을 풀이하면 숯에서 나온 검은 물이 흐르는 냇 물 이라는 뜻이 되는데, 도대체 탄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이 기묘한 이야기의 시작은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인물에서 에서 비롯된다. 아주 옛날 옛적에 삼천갑자 동방삭( 三 千 甲 子 東 方 朔 )이라는 사람 이 있었는데 글자 그대로 갑자년을 삼천 번 산 것이니 햇수로 따 져보면 약 18만여년을 산 사람이다.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 에게 허락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가 천상, 천하를 막론하고 큰 골칫거리가 되었기에 모두가 그를 잡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워낙 오래 살다보니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겸비하고 있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천상의 옥황상제는 동방삭을 잡기로 결 심하고, 사자( 使 者 )를 지금의 탄천 부근으로 보낸다. 이미 그 주 변에 동방삭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략을 짜낸 것 이다. 옥황상제는 사자에게 이르러 모습을 평범한 사람처럼 바꾸 고 탄천에서 숯(목탄)을 씻고 있도록 명령을 내린다. 사자는 옥황상제의 지시대로 탄천에서 열심히 숯을 씻기 시작한 다. 냇물에다 숯을 씻으니 물은 자연적으로 검은색으로 탁해졌다. 이윽고 근처를 지나던 동방삭은 검은 물이 흐르고 있는 탄천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긴다. 얼마 안 되어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 는 건장한 남자를 만나게 된 동방삭은 숯을 씻고 있는 남자에게

22 다가가 왜 숯을 물에 씻고 있느냐 고 물어보았다. 인간의 모습 을 한 사자의 대답은 숯이 희어지도록 씻고 있는 중 이라는 것 이었다. 동방삭은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 숯이 희어진다는 건 불가능했기 에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나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씻어 서 희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남자를 비웃으며 떠나 려는 순간, 사자는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동방삭이 틀림없음을 확신하고 재빨리 동방삭을 붙들어 잡는다. 모든 것은 동방삭이 스스로 자기 정체를 밝혀 붙잡히게 하기 위한 계략이었던 것이 다. 옥황상제 앞에 끌려간 동방삭은 그렇게 자신의 길고 긴 인생 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과 신흥동 일대의 옛 지명은 탄리, 탄동인데, 모두 숯을 생산해내고 보관하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다. 숯 생산으로 인해 탄천에는 실제로 검은 물이 흐르기 도 했을 것이다. 동방삭 전설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성남시 수정 구에서는 지금도 매년 숯골축제가 벌어진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한강 탄천길, 서울특별시탄천물재생센터 위치 : 송파구 일원 이야기 태그 : 탄천, 옥황상제, 동방삭, 한강, 자전거길

23 7. 정선의 그림으로 보는 한강의 풍광 한국 미술사에 손꼽히는 화가 겸재( 謙 齋 ) 정선. 그가 양천 현감으 로 부임 한지 얼마 안 돼 먼 곳에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 편 지에는 한시( 漢 詩 ) 한 편이 적혀 있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 던 정선은 붓을 들어 그가 다스리는 양천 관아 풍경을 그리기 시 작했다. 그 그림은 한시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정선에게 한시로 편지를 보낸 사람은 평생의 친구였던 사천 이병 연이었다. 정선의 현감 부임으로 두 사람은 한양에서 헤어지며 ' 시화환상간( 詩 畵 換 相 看 )'을 약속했다. 사천이 시를 써 보내면 겸 재는 그림을 그려 서로 교류를 멈추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와 그림을 엮은 시화첩이 조선 회화사에 빛나는 '경 교( 京 郊 )명승첩'이다. 화첩에는 만년의 정선이 한강의 명승지들을 그린 서른세 점의 그림과 사천의 시가 실려 있다. 그중 20편의 그림이 한강을 소재로 그린 것이다. 양천현감으로 부임해 가던 때는 65세 무렵, 당시 완숙의 경지에 오른 정선이 한강의 풍광을 담아낸 것이다. 영조가 정선을 양천 현령에 임명한 것을 두고 한 강변 경치를 마음껏 그려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교명승첩의 우천( 牛 川 )은 정선이 그린 한강변 풍경 중에 가장 상류지역에 속한다. 우천은 용인에서 광주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드는 경안천의 하류지역을 일컫는데, 팔당댐이 지어진 뒤에는 거 대한 호수가 되었다. 송파진( 松 坡 津 )이란 그림에는 송파나루터가 그려져 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온 사람들과 사람들이 쉴 천막 등이 오밀조밀 그려져 있고, 멀리로는 남한산성이 보인다. 현재는 송파나루터의 흔적만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고 근방의 석촌호수

24 가 옛 풍광의 증거로 남아있다. 옛 광나루의 모습을 그린 광진 ( 廣 津 )을 보면, 현재의 아차산이 그림 한 가운데 우뚝 서 있고, 산 중턱에 조선시대 세도가들의 별장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오늘 날에는 같은 자리에 호텔이 들어서 있다. 남산을 소재로 그 린 목면조돈( 木 覓 朝 暾 )이라는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목면은 남 산의 옛 이름으로,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아침 해가 남산 봉우 리 언저리에 걸려 있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강서구 가양동, 과거 양천이라 불리던 그 곳의 궁산 정상에 오르 면, 겸재가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 라는 누각이 남아 있다. 당시의 풍광들은 그곳에서 겸재의 손에 의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다. 경교명승첩에는 곳곳에 백문방인( 白 文 方 人 ) 천금물전( 千 金 勿 傳 ) 이라는 문구가 남겨져 있다. 천금이나 되는 큰돈을 준다 해도 남 의 손에 넘기지 말라. 는 뜻이다. 과연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서 울의 풍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겸재정선미술관, 궁산근린공원 위치 : 강서구 가양동 이야기 태그 :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한강 풍경

25 8. 21세기 한강의 기적, 도심 속 비무장지대 밤섬의 부활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서강대교를 건너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에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하나 있다. 마치 비무장지대처럼 보 이는 그곳, 밤섬. 두 개로 나뉜 이 섬은 사실 한 때, 사람들이 옹 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다. 고려 때, 죄인을 귀양 보내던 섬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밤섬. 밤섬 이란 이름은 섬이 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길이가 7 리(약 2.75km)로 작지 않은 섬이었다. 밤섬은 해방 전까지 율도 ( 栗 島 )정으로 서강 서부동회에 속했었으나, 1968년 2월10일 한강 개발사업에 따라 폭파됨으로써 창전동에 속하게 되었다. 명종실록 의 기록에, 밤섬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자유분방하고,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며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또 한 동성동본이나 반상을 따지지 않고 의논에 맞춰 살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마 馬 씨, 판 判 씨, 석 石 씨, 선 宣 씨등 희귀성의 소유자들로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며 거의 원시공동사회체제 속에서 생활을 영위했다. 외부로의 왕래 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 활을 영위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밤섬에 특이하게도, 대대로 전승되어온 마을굿이 있다. 밤섬부군당도당굿 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굿의 하나이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로 약 6 백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오랜 기간 이어져온 것 이다. 실제로 섬 어귀 바위언덕에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이 있었

26 다고 한다. 1968년 여의도 개발사업으로 밤섬은 폭파된다. 그렇게 여의도가 생겨나고 밤섬은 사라지고 만다. 밤섬에 살던 약 60여세대가 마 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한 뒤에도,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부군당 짓기였다. 실향민의 아픔을 간직한 굿을 이어가며,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해온 것이다. 그런데, 자연이란 정말 놀랍고 신비롭다. 파괴되었던 이 섬이 해 가 갈수록 원래의 섬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살 이 돋듯 모래톱과 갯벌이 늘어가며, 폭파로 두 동강 났던 섬도 점점 하나로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강제로 삶의 터전을 폭 파당한 이주실향민들의 염원이 닿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남녀가 평등하고 모두가 의논에 맞춰 사는, 현대적 민주주의가 살아있던 과거의 밤섬. 허생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가상의 유토피 아 율도국( 栗 島 國 )과도 한자가 같은 이곳은, 만인이 평등하고 모 두가 잘 사는 것을 꿈꾸던 홍길동의 마음과도 닮아있었던 곳이었 다. 오늘날 밤섬의 자연적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한강의 기적은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밤섬 생태경관 위치 :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야기 태그 : 밤섬, 부군당도당굿, 한강 조망

27 9.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전국에는 약 800그루의 많은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 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도 상당히 많은 은행나무가 특별한 보 호를 받고 있다. 모두가 400~500년 정도 오래된 나무들이다. 300년 정도 된 나무는 어린 축에 속할 정도. 방학동 연산군묘 앞 에는 도봉구 10대 명소의 하나이자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나이가 무려 830살을 헤아린다고 한다. 높이 는 25m에 둘레는 10.7m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이렇게 오래된 은행나무의 공통점은 그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영등포 당산동에 위치한 530년 된 은행나무는 1925년 대홍수로 일대가 침수되었을 때에 동네 사람들의 피신처가 되어 주었기에 이후부터 부근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처음에 언급한 830년 된 방학동 은 행나무는 예로부터 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긴 다고 해 애국나무 로 불린다. 실례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1년 전인 1978년에 큰 불이 나서 소방차를 동원해 간신히 불을 껐다고 한다. 강서구 외발산동의 은행나무는 예부터 경사가 있을 때마다 떡이 며 과일 등을 먼저 진상했다고 하고, 용산 미군부대 근처에 있는 315년 된 은행나무는 나무에 신령이 있다 하여 정월대보름날에는 고사를 지내 주민 화합을 유도하였다. 나무할아버지 라는 이름으 로도 불릴 정도. 이처럼 은행나무가 마을의 일원이자 정신적 지주로 여겨지는 이 유는, 은행나무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오래 사는 나무이기 때문

28 일 것이다. 은행나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면서 대를 이어 온 생명체 가운데 하나다. 대략 3억 년 전 화석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은행나무를 흔히 화석나무 라고도 부를 정도다. 그래서인 지 오랜 생명을 이어가는 은행나무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서울 시민의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의 순간 모두를 함께 해온 것이 다. 계동 중앙고등학교 정문 안쪽에 있는 500살이 넘는 은행나무 는 학교 안에서 벌어진 3 1운동을 비롯한 6 10 만세 운동 등 항 일운동들을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은행나무는 서울 시민 옆에서 역사를 함께하며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의 보호수 위치 : 종로구/중구/은평구/강서구 이야기 태그 : 오래된 나무, 은행나무, 애국나무, 나무할아버지, 서울의 나무

29 10. 희어질수록 흥하는 소나무, 백송 돌풍이 불던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은 1990년 7월 17일. 청와대 는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남서쪽 통의동에 서 있던 백송 한 그 루가 쓰러진 것이다. 이 통의동 백송이 쓰러진 것을 뉴스에서 본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백송을 살려내라고 엄명을 내린다. 영양제 주사 등 갖가지 노력이 쏟아지지만 백송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도대체 이 나무가 뭐길래 대통령까지 나서게 된 것일까? 백송의 흰 색깔이 개인과 집안, 나아가서 국가의 영화( 榮 華 )에 따 라 더욱 희어진다는 속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통의동 백송이 쓰러지고 나서 가장 오래된 백송 이라는 영예를 이어받은 것은 재동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 이 백송은 3호선 안국역에 인 접한 재판소 본관 뒤쪽에 서 있는데, 키가 14미터이고 줄기 둘레 가 4미터에 이르며, 위로 올라갈수록 V자 모양으로 벌어지고 있 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자리는 영조 때 유명한 재상이었던 조상경의 집이었다. 조상 경은 7번이나 판서를 하면서 조선조 후기 풍양 조씨들의 세도정 치를 이곳에서 펼쳤다. 1819년에는 조민영의 어린 딸이 세자빈으 로 간택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가는데, 나중에 고종이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시 대원군 이하응은 이곳을 자주 드나 들며 조씨들과 함께 안동 김씨의 세도를 종식시키는 작업을 추진 했다. 이 무렵 백송은 그 껍질이 더욱 희어져, 대원군은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 후 집의 주인이 개화파의 거두 박규수로 바뀐다. 물론 백송은 박규수 대감의 중사랑 뜰을 지키고 있었다. 이 사랑방에는 유대

30 치나 오경석 등 개화를 열망하던 중인들을 비롯해 김옥균, 박영 효 등이 드나들며 자주적인 개항의 방법론을 고민했던 곳으로 유 명하다. 개화파의 산실이었던 이 일대는 그 후 1880년대에 외교통상업무 를 맡아보던 외아문이 설치됐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문을 열었으며, 3 1운동의 주역인 최린의 집과 월남 이 상재 선생의 집도 헌법재판소 구내 지하주차장 입구 자리에 있었 다고 한다. 그런 역사를 재동의 백송은 하얀 자태를 지키며 바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송의 줄기가 양쪽으로 갈라져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근대사가 참으로 파란만장하게 느껴진다. 1990년 쓰러진 통의동 백송의 나이테를 조사해 본 결과 1690년 때 심은 것으로 확인돼 나이가 300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 지만 공교롭게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36년 동안에는 나이 테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백송을 아끼는 마음속에서 나라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백송, 헌법재판소 위치 : 종로구 통의동 이야기 태그 : 백송, 통의동 백송, 근대사

31 11. 이름 속에 이야기를 품은 서울의 고개들 현재 중구 충무로2가에 있던 '진고개'는 옛 중국대사관 뒤쪽에서 세종호텔 뒤쪽까지 이르는 곳이었다. 남산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오면서 형성된 이 고개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개였지만, 흙이 몹시 질어 비만 오면 길바닥이 진흙이 돼 완전히 길이 끊길 정도였다 고 한다. 한자로 '진흙 이( 泥 )'자를 써서 이현( 泥 峴 )이라고도 불렀 다. 크고 작은 8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산줄기에서 뻗어 나온 230여개의 고개들이 있는 도시다.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흔하게 고개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진행된 도로확장 계 획에 따라 길이 새로 닦이며 수많은 고개가 깎여나가고 콘크리트 로 덮여버렸다. 하지만 더불어 고개에 얽힌 이야기들마저 사라지 고 덮이는 현상은 안타깝다. 고개들의 이름은 진고개의 경우처럼 지형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 많다. 용산구 후암동 두텁바위고개는 모양이 둥글고 큰 바위가 고개 중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신내동 새우고개는 신내동의 새고개마을에서 경기도 구리시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새우등같이 꺾여 있는 모양 덕분에 명칭을 얻었다. 좀 더 구체적인 사연을 가진 고개들도 있다. 중구 무학동 중부소 방서 뒤쪽에는 '무당고개'라는 고개가 있었다. 조선시대 빈민을 구제하고 전염병을 치료하던 동활인서( 東 活 人 署 )라는 기구가 중 구 신당동에 자리 잡고 있던 턱에 자연스럽게 굿으로 잡귀를 쫓 아 병을 고치는 무당들도 인근에 많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무당 고개라는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

32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된 고개들도 많다. 무학대사의 이름 에서 유래된 서대문구 현저동과 홍제동을 잇는 '무악재'가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지어진 이름이라면,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묘( 死 六 臣 墓 ) 부근에 있는 '아차고개'에는 역사적 사건이 녹아있다. 단종 의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이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한 선비가 처형을 멈추도록 임금에게 간청하기 위해 급히 도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선비는 이 고개를 오르던 도중 이미 사 육신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차! 늦었구나!"라는 탄식 을 했다고 한다. 이후 이곳은 '아차고개'로 불렸다. 진고개가 있던 충무로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이름인 본정 ( 本 町 : 혼마치)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가, 광복 후 1946년 우 리 식으로 동명을 개정할 때 충무로( 忠 武 路 )로 고쳐졌다. 세종로 을지로 등의 명명도 같은 시기에 정해졌다. 흔하디흔한 고개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후대에게 전해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일화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의 고개들 위치 : 중구 충무로2가/용산구/중구, 이야기 태그 : 서울의 고개, 진고개, 두텁바위고개, 새우고개, 무당고개, 아차고개

33 12. 서울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준 선유도 영등포에 인접해 양화대교 옆에 떠 있는 선유도가 본래 섬이 아 니라 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선유봉이라는 산 이 선유도라는 섬 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속에는 서울시 의 개발을 위한 선유도의 고마운 희생이 숨어 있다. 마치 아낌없 이 주는 나무처럼 말이다.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 仙 遊 峰 ) 라는 이름처럼 원래 선유도는 빼 어난 절경과 풍류를 자랑하던 봉우리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이 즐겨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 만 지나치게 눈에 띄는 봉우리여서였을까, 혹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바위의 쓰임새가 좋아서였을까, 이렇게 아름다웠던 선유봉 은 서울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게 된다. 그 시작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며 시작한다. 홍수에 취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제방이 축조되었는데, 거기에 사용될 암석을 선유봉에서 채취하게 된 것이다.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 해 봉우리가 제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봉우리 의 흔적은 남아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40년대에 이르러 여의도 경비행장 건설을 위해 다시 선유봉에서 모래와 자갈이 채취되면서, 아름다움 봉우리가 완전 히 자취를 감추고 평지에 가까운 땅으로 변모하게 된다. 다시금 선유봉은 여의도의 비행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게 봉우리를 잃은 뒤에는 1960년대 제2한강교 건설과 한강 개발사업 을 통해 선유봉은 육지와 완전히 분리가 되어 섬인 선

34 유도가 되고 만다. 서울시민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육지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선 유도의 희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선유도는 서울 서남부 지역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그 용도가 바뀌어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러다 2000년 12월 정수장 이 폐쇄된 이후에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휴 식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 마지막으로 밑 둥밖에 안 남은 자기 위에 앉아 쉬 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홍수를 막는 제방으로, 그리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로, 그리고 강 개발을 위해 섬이 되어 수돗물 정수장으로, 그리고 다 시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그 모습을 바꿔온 선유도의 역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 더 이상 봉우리를 볼 수 없는 지금 모습은 마치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를 떠올리지만, 선 유도의 희생으로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게 바뀌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선유도공원 위치 : 영등포구 당산동 이야기 태그 : 선유도, 아낌없이 주는 선유도, 선유도공원, 한 강, 정선

35 13. 쓰레기더미에서 피운 장미꽃, 난지도 95m 높이의 윗부분이 편편한 쓰레기산( 山 ) 2개. 매립된 쓰레기의 양 1억 2천만 톤. 8.5톤 트럭으로 1,300만대 분. 지금은 시민공 원으로 탈바꿈한 마포구 난지도의 옛 모습이다. 상암동 인근의 난지도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매립하여 왔는데, 그 기간 동안 쌓인 쓰레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 한다. 처음에는 국제적인 매립장의 일반 높이인 45m까지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새 수도권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세계에 유래가 없는 95m 높이까지 쓰레기가 쌓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흔 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난지도가 서울시민을 위한 생태공원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이나 같다. 던 과 거 한 영국 기자의 조롱을 빗대어 말해보자면, 대한민국에서 민 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는 있을지언정, 난지도가 시민을 위한 생 태공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암 새서울 타운의 건설과 더불어 난지도는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새 천년의 화두인 환경재생 의 공간으로, 녹지공간과 여가 휴식공간을 갖출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의 최우선 과제는 생태 환경으로의 회복. 먼저 침술수, 매립가스 등 매립지의 환경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해 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많은 노력 끝에 이것을 해결하고 나자, 옛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과 이

36 들을 연결하는 연결다리와 복합연결통로가 완공되며 하나의 생태 환경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95m의 거대한 쓰레기 산 대신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공원 연결다리 앞에 설치된 거울분수는 난지한강공원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요소로 물을 뿜을 때마다, 아 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즐 길 거리를 선보인다. 또한 생태 습지원의 보행연결다리는 자연 상태의 초지 및 식물 군락 등 수변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주변에 조성된 난지캠핑장은 바비큐를 즐 기며 야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포구 시민들에게 뿐만 아니 라 서울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한번 망가진 자연환경은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서서 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난지생태공원은 어쩌면 가장 아름다 운 방식으로 그것을 증명해낸 경우이다. 다시 말해, 쓰레기통에서 꽃피운 장미인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난지한강공원 위치 : 마포구 상암동 이야기 태그 : 난지도, 난지한강공원, 생태공원, 상암동

37 14. 옷 갈아입는 조각상의 비밀 어린 시절 학교 괴담에는 밤마다 움직이는 동상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 한 밤이면 운동장에 있던 동 상들이 움직인다는 이야기 인데, 성동구의 한 조각 공원에는 실 제로 이런 동상이 있다고 한다. 바로 성동구 살곶이 조각공원에 있는 남매의 조각상의 이야기이다. 살곶이 조각공원에 있는 여러 조각상 중에 단연 화제는 자그마한 남매의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아무도 모르게 매주 옷을 갈아 입는다고 한다. 조각상이 진짜 스스로 움직여서 옷을 입을 리도 없는데,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더욱 신기한 일 은 옷을 갈아입는 조각상은 있는데, 옷을 갈아입히는 사람은 없 다는 것이다. 아직도 누가, 왜, 언제, 조각상들의 옷을 입히고 있 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매서운 추위에 옷을 입지 않고 서있는 남매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의 자발적 인 행동이었다는 것만 알려졌다. 주민 한 명이 아닌 여러 주민들 이 조각상의 부모를 자처하였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낸 행복한 해프닝이었다. 주민들의 훈훈한 마음 때문인지, 살곶이 조각공원에 옷 갈아입는 남매의 조각상을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온다 고 한다. 따뜻한 옷을 입은 남매의 모습만큼이나 따뜻한 주민들 의 마음이 살곶이 조각공원을 찾아오는 시민들의 마음에도 전해 지고 있다. 남매의 조각상은 동네에서 제일가는 멋쟁이로 알려져 있다. 맞춤 옷을 입듯 몸에 딱 맞는 옷과 멋을 더 해줄 패션 소품들을 두르

38 고 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일 때는 목도리와 모자, 귀마개 등으 로 따뜻함을 강조한다고 한다. 또한 패션을 아는 조각상답게 T.P.O(Time, Place, Occasion)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월드컵 시즌에는 붉은 악마의 의상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복으 로 여름에는 시원한 푸른 컬러를 매치한 옷을 입는다. 요즘은 남매 옷을 책임져 주는 디자이너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한양여대 패션 디자인과 동아리 학생들이 그 디자이너라고 한다. 학생들의 참신하고 통통튀는 디자인이 남매의 패션철학과 잘 맞 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패션에 대해서 한 수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성동구 조각공원의 옷 갈아입는 남매 조각상을 보러 가보면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살곶이 조각공원 위치 : 성동구 이야기 태그 : 살곶이, 살곶이 조각공원, 남매조각상

39 15. 철길 따라 떠나는 산책길, 구로구 항동 철길 기차보다 사람이 다니기 좋은 철길이 있다. 서울 구로구의 항동 철 길 이 바로 그곳이다. 항동 철길은 철길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주택가에서 시작된다. 마법과도 같이 나타난 이 철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의 세계로 들 어가는 것 같다. 복잡한 도심은 점점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분위기만 가득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곳을 아는 사 람은 그리 많지 않다. 환상의 세계는 언제나 그렇게 비밀스럽게 숨 어있기 마련이다. 항동 철길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경기 부천시 옥길동까지 4.5km에 걸쳐 이어진다. 1959년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원료와 생 산물 등을 운반하기 위해 화물용으로 만든 이 철길의 정확한 명칭은 오류화학선. 최전성기 때는 하루 10회 이상 화물차가 수시로 다녔지 만, 지금은 매주 목요일에만 군용 물자를 나르는 열차가 1~2회 정도 오갈 뿐으로 한적하다. 철길을 따라 주택가를 빠져나오면 이곳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의 고즈넉한 길이 나타난다. 양쪽 언덕 사이에 긴 철길이 이어지는데, 풀과 자갈이 덮인 레일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옛 시골길을 걷는 느 낌이다. 텃밭 풍경이 나타나면 철길 밑으로 하천이 흐르기도 해서 그런 느낌은 더해진다. 봄과 가을에는 철길을 따라 유채꽃과 코스모 스가, 여름에는 아카시아 꽃이 만개해 환상의 세계를 안내한다. 철길의 곳곳에 설치된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 다. 선로에는 마치 철길 자체가 여행자에게 건네는 듯한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길은 열려있다, 힘들 땐 쉬어가세요, 혼자라고 생각

40 말기 등의 글귀들은 긴 산책길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길고 긴 철길 여행을 끝마쳤을 때는 아마도 도심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철길 인근에 위치한 항동저수지와 푸른수목원 은 그 치유를 돕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구로문화재단은 2015년 항동철길이 주는 사색의 감성을 돕기 위해 간이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현판, 열차시간표, 간이역에 걸리는 그림 등 항동철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꾸 며져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주민들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항동철 길에는 아직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항동철길 위치 : 구로구 오류동 이야기 태그 : 항동철길, 사진 찍기 좋은 곳

41 16. 화살이 꽂혀 살꽂이, 그리고 살곶이다리.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엔, 살곶이다리[ 箭 串 橋 ]라 부르는 투박한 돌다리가 있다. 지금의 한양대학교 부근 과 성수동 방면을 이어주는 이 돌다리는, 난간이 없는 단순한 구 조이다. 왠지 모르게 우직한 느낌과 더불어, 따뜻한 정감이 느껴 지는 이 다리, 그 이름 살곶이 에는 특별한 설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거쳐 다른 아들을 모두 죽이고 태종으로 등극한다. 이에 태조는 분개 하여 옥새를 가지고 함흥으로 내려가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음으 로써 이방원의 등극을 부정하였다. 태종 이방원은 차사(특별임무 를 받은 왕의 사신)를 보내는데, 가는 족족 태조에게 죽임을 당하 거나 붙잡히게 된다. 이에 함흥차사라는 말이 탄생한다. 이성계의 옛 친구 박순의 간곡한 청으로 태조는 함흥에서 한양으 로 돌아오기로 마음먹는다. 반가운 이방원은 이곳 중랑천 하류 한강 가에서 천막을 치고 아버지를, 엄밀히는 옥새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의 다른 아들을 모두 죽이고 왕자의 난을 일으킨 서 자 이방원을, 태조가 달가워할 리 없는 법. 태조는 이방원을 보자 마자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명사수 태조는 이방원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고, 이를 예상한 신하가 미리 세워둔 기둥 뒤로 이방원은 몸을 숨긴다. 이 바람에 태조의 화살은 기둥에 꽂히게 된다. 이에 태조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 여겨, 옥새를 내주고 왕위를 넘긴다. 그렇게 이곳은 화살이 꽂힌 곳 이라 하여 살꽂이, 그것이 변해 살곶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42 이후 태종과 정종이 이곳 살곶이와 광나루 근처의 전각으로 자주 행차하니, 개천을 건너야 하는 수행 중신들의 고충이 심해지자 태종은 다리 공사를 명하였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 중 지됐다가, 50여년 후 이곳을 오가는 백성들을 위해 성종의 명령 으로 살곶이다리 가 만들어졌다. 결국 살곶이다리는 선정릉(성종과 중종의 능)과 헌인릉(태종과 순 조의 능)으로 가는 왕의 배릉(국왕이 선대 국왕의 능에 참배하는 의식)길이 되었으니, 왕위를 놓고 다툰 두 부자의 지역이 결국 이 후 자손들의 참배길이며 백성들의 일상길이 된 아이러니한 역사 를 간직한 다리가 되고 말았다. 600여 년 동안을, 옛 교각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으로 조선시대 수많은 왕과 백성들이 밟았을 이 다리. 이곳에 고스란히 녹아있 을 조선 전체의 역사가 신비롭기만 하다. 첨단 스마트 시대의 우 리네 사람들도, 아직 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살곶이다리 위치 : 성동구 이야기 태그 : 살곶이다리

43 17. 풍수지리, 서울 서울은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조선 건국 이후로 600년이 넘 는 세월 동안 숱한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도 한국의 경제 정치 적 중심지로서 위상을 굳건히 지켰다. 이제는 1000만여 명의 시 민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인 서울. 이런 곳에서 터 란 것은 당연 히, 삶을 영위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이다. 간략한 풍수지리로, 자 기가 살고 있는 서울 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 물 위에 뜬 연꽃, 강동 강동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과 남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북 쪽은 아차산의 맥(땅속으로 흐르는 기맥이 뻗은 워커힐 호텔 일 대가 모두 명당이다. 특히 광진구 일대는 용마봉의 좋은 기운이 강해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수도를 정했을 정도다. 남쪽으론 탄천, 동쪽으로 법화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천마 산과 검단산 등으로 이어진다. 물 위에 뜬 연꽃과 같은 형세를 이뤄, 귀인, 현인군자, 학자, 사업가 등 다방면으로 출중한 인물 을 배출한다. - 백성들의 동네, 강서 강서는 수영산을 중심으로 우장산 개화산 봉제산 인근 화곡동과 발산동이 명당으로 꼽히며 강서구청 일대에는 서울 내에서도 비 교적 큰 규모의 재물 기운이 형성됐다. 이 지역을 전체적으로 살 펴보면 잠룡입수형( 潛 龍 入 首 形 )으로 산의 기운이 광활한 들판으 로 떨어져 부드럽게 서로 이끌고 서로 이어지는 형세다. 큰 격변 이 일지 않아도, 백성들이 살아가기에 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여 겨진다

44 - 재물 운이 모이는 강남 현재 강남은 수원 광교 백운산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가 좌측으로 관악산을 타고 우면산에서 멈추고 우측으로는 구룡산과 대모산에 서 멈추는 중간 위치에 있다. 우면산은 소가 누워있는 형세로 부 자가 많이 나오고 수도산은 호랑이가 숲 속에서 내려오는 모습으 로, 호랑이, 즉 인물이 나올 지역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좋 은 기운을 받은 서초동과 대치동을 명당으로 꼽을 수 있다. 한강의 W 형태와 땅의 모양으로 닭이 알을 품는 모양이 형성되 는데, 그곳에 바로 압구정동이 있다. 재운의 기운이 많고 소비가 활발한 곳이다. 재미있게도 압구정동은 옛날 부자 자제들인 소위 오렌지족 의 주 무대이기도 했다. 청담동과 삼성동 일대는 황금 거북이 숨어 기를 모으는 모양이 다. 재물이 모이는 모양인 것이다. - 서울 최고 명당들이 모인 강북 강북은 백두대간에서 남쪽으로 한강과 임진강에 일러, 도봉산 북 한산 인왕산으로 흐르고 인왕산에서 우로는 와우산, 좌로는 남산 에서 멈춰 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형국이다. 조선시대 왕궁이 전부 모여 있는 강북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 건 유명하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 도 생기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것이 인간사이자 전 우주 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 풍수지리만은 일등이다. 재미로 보는 풍수지리지만, 서울의 어느 한 군데 빠지 는 곳 없이 전부 좋은 해석이 나왔다. 어려운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긍정적인 기운이 언제나 서울을 감싸고 있음 을 기억하자

45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의 생활공간 위치 : 전 지역 이야기 태그 : 서울의 풍수지리

46 18. 곰달래 마을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 양천구에는 곰달래라는 예쁜 마을이름이 있다. 양천구 신월3동 신원 초등학교가 있는 뒷산에서 동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달빛이 맑게 비 치는 마을 이라는 데서 고운 달 동네 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곰달래가 되었다고 한다. 한자명으로 고음월( 古 音 月 )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곰달래 사랑 이라는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시대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한강유역 이 백제 땅이었을 때 이곳에 서로 사랑하는 음소( 音 召 )와 음월( 音 月 ) 이라는 젊은 남녀가 살고 있었다. 신라가 세력을 점차 키워 끊임없 이 백제를 위협해오자 백제에서는 군대 징집 명령이 각 고을로 내려 진다. 물론 음소에게도 이 같은 부름이 전해지고, 두 사람은 작별하 게 되었다. 작별인사를 나누는 슬픔으로 가득 찬 순간. 차마 연인을 전쟁터로 보낼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여자를 보며 음소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파온다. 그는 끝내 자신을 놓지 못하는 음월을 위해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만약 전쟁에 이겨서 살아 돌아오게 되면 동산 위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니 자신을 기다리고, 반대로 달을 칠흑 같은 어둠이 덮쳐 모습을 가리면 싸움에 져 목숨을 잃은 것이 니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음소는 당연히 보 름달이 떠오를 것이니 안심하고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전장으로 떠 난다. 남자가 떠나고 난 뒤, 음월은 매일같이 밤만 되면 언덕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연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나날이 이어지던 신라

47 와 백제의 전쟁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동산에는 손톱만큼 작은 조 각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다가 이내 커다란 보름달이 되었다. 음월은 뛸 듯이 기뻐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달을 가려 주변은 순식간에 캄캄한 밤으로 바뀌게 된다. 음소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음월 에게 이 같은 현상은 비극을 알리는 신호였다. 절망에 가득 찬 음월 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산위로 올라가 몸을 날려 스 스로 목숨을 끊는다. 얼마 안 되어 구름은 걷히고 다시 달이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얼마 후, 음소는 밤새 먼 길을 달려 왔지만, 이미 여자는 이 세상 사 람이 아니었다. 그는 가슴을 치며 자신이 한 말을 뒤늦게 후회했다. 언덕 꼭대기 달이 떠오르는 곳에 자신의 손으로 음월을 묻고 돌아서 는 음소는 '이제 끝이다. 거친 세상 끝이구나'라고 말했다. 고( 古 )는 이두음으로 사용할 때 거칠다, 끝났다 는 뜻으로 쓰이는데 바로 음 월이의 목숨이 끝났다는 뜻으로 고음월이란 말의 어원이 된다. 그리 고 두 사람의 사랑에 감복한 마을 주민들은 그 말을 따서 마을의 이 름을 지었다. 앞으로도 마을의 이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기려 질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곰달래 마을 위치 : 양천구 신월동 이야기 태그 : 곰달래, 곰달래 전설, 사랑이야기

48 19.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간직한 아차산 아차산성은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한강을 차지하 기 위해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격전지다. 이곳의 전쟁에 뛰어 든 수많은 이들 중에는 평강공주의 도움으로 장군의 자리까지 올 랐다는 바보온달도 있다.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이곳, 아차산에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잣거리의 유명한 바보였던 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 그리고 그 녀가 온달을 최고의 장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 다. 이후 고구려 영양왕 때 장군의 자리까지 올라간 온달은 옛 광개토대왕이 점령하였으나 지금은 신라에게 빼앗긴 남쪽의 한강 유역을 다시 찾아오겠다며 출정 허락을 받는다. 한강을 향해 출 정하는 온달은 한강이북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 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온달장군이 이끄는 고구려 군대는 한강 하류의 아차산성에 이르 러 신라군과 맞닥뜨린다. 신라군의 저항에 맞서 선두에서 공격을 퍼붓는 온달 장군. 결국 세찬 공격에 못 이겨 아차산이 고구려군 에게 함락될 즈음이었다. 신라의 진평왕이 직접 남한강의 물줄기 를 따라 1만 여 명의 구원군을 이끌고 아차산성에 당도한다. 한 창 지쳐있던 고구려군에게 백제의 구원군은 큰 타격이었다. 황망 하게 흐트러지는 고구려군을 향해 소나기 같은 화살이 날아들었 고 그중 하나가 온달장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끝내 꿈을 이루 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온달은 죽어서도 주먹을 굳게 쥔 채였다고 한다. 그 온달의 주먹을 닮은 주먹바위가 아직 아차 산에 남아 온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49 고구려 군은 온달장군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꿈 을 이루지 못한 그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그의 관이 꿈쩍도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평강공주는 죽음을 무릅쓰 고 전쟁터인 아차산성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온달 장군의 관을 어루만지며 온달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제야 온달장 군의 관은 움직였고, 온달장군의 관은 평양으로 옮겨져 양지바른 곳에 묻히게 된다. 이렇게 신분을 뛰어넘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아 차산 기슭에서 안타까운 끝을 맞이하게 만다. 온달의 주먹을 닮 은 주먹 바위 맞은편에는 평강공주가 온달장군을 끌어안고 통곡 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 통곡의 바위가 남아 두 사람의 죽음을 넘 어선 사랑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아차산생태공원, 용마폭포공원, 영화사, 고구려정, 아차산성, 워커힐, 한강호텔 위치 : 광진구 일원 이야기 태그 : 아차산 전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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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거리/마을 1. 조선시대 정육점, 성균관 다림방 2. 응답하라 1990, 홍대 앞 문화 변천사 3. 사랑을 쓰려거든, 효자동으로 4. 부암동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5.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 6. 서울의 브룩클린, 성수동 7. 노동자들을 달래주는 벽화, 이화마을 8. 강남의 테헤란로, 이란의 서울로? 9. 낭만 가득한 철길이 있는 연남동 기찻길. 10. 서민들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해방촌 11. 서울에도 있다! 문래 예술창작촌 12. 서래마을을 이어주는 누에다리에 소원을 빌어봐 13. 노동자들의 터전, 구로디지털단지 14. 공부 좀 해? 모여! 노량진, 신림 고시촌 15. 노룬산 금닭의 전설 16.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던 정동길 17. 잠시 쉬어가는 서울 가는 길, 떡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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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1. 조선시대 정육점, 성균관 다림방 정육점이 없던 시절에는 가축고기를 어떻게 구해먹었을 지 상상 해 보자. 고기가 필요할 때마다 소나 돼지를 잡는다고 생각하기 는 쉽지만, 한 끼 식사에 필요한 양을 얻기 위해 끼니때마다 한 마리씩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왕이나 상류층 귀족들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식문화일 수밖에 없는 것 이다. 서민들이 고기를 쉽게 구해 먹게 된 것은 짐승을 도축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해주는 중간 상인들의 등장과 함께 가능해 졌다. 조선시대 또한 이 같은 중간 상인이 필요했다. 때문에 한양에서 쇠고기를 독점 판매하는 다림방의 출연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성균관이 문묘 제사에 바칠 희생( 犧 牲 )용 고기 마련을 위 해 설치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균관의 재정이 부족해지 자, 성균관의 노복들이 쇠고기를 독점적으로 확보하여 상인과 일 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의 육류 판매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처음에 다림방은 성균관 노복들이 사는 반촌( 泮 村 ) 근처인 동소 문 성균관 관동( 館 洞 ), 현재의 성균관대학교 인근에 위치하였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육류소비가 급격한 변화를 맞 이하면서 다림방의 수요는 크게 늘어난다. 양반층을 비롯해 중인 층을 중심으로 육류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소도살 엄금 정책이 완화되면서 양반과 중인들이 사는 북부, 중부 지역뿐 아니라, 동 부의 이교(현재의 동대문 근처), 광례교(현재의 명륜동 근처), 남 부의 광통교(현재의 종각 근처), 저동, 호현동(현재의 회현동 인 근), 의금부 근처, 서부의 육조거리 등지에까지 다림방이 설치된

54 것이다. 이는 조선의 생활수준 전체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일부 소수의 귀족들만이 향유했던 육류소비 를 일반 시민들까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도성 밖 왕십리, 소의문 밖, 마포 등지에도 다림방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서도 육류 식문화가 일반 백성 사이에 폭넓게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지역은 이후에도 종각의 피맛골, 왕십리의 곱창, 마포의 갈비 등 다양한 고깃집과 음식점으로 이어지면서 서민들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공급하는 중심지가 되어 오늘에 이 르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성균관, 마포 먹자거리 위치 : 종로구 명륜동 이야기 태그 : 성균관, 다림방, 조선시대의 정육점

55 2. 응답하라 1990, 홍대 앞 문화 변천사 서울에서 놀 곳, 먹을 곳, 신나는 곳, 재미있는 곳을 찾는다면? 단연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바로 홍대 앞일 것이다. 한 대학교 의 앞인 이곳이,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다른 대학가들과는 차별 화된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을까? 1946년 처음 설립된 홍익대학교. 1961년 대학정비령 때, 일시적 이지만 홍익미술대학으로 개편됐을 정도로 미술로 유명한 것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반적인 상식. 그러다보니 홍대 주변은 미대 교수들, 미대생들의 그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1990년 전후 홍대 모습은 지금과는 약간 달랐다. 전체 건물의 대 부분이 단독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주택에 딸린 주차장 상당수를 미대생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작업실로 개조해서 말이다. 홍대입구 주변 일대가 미술학도들의 거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부터 미술가를 꿈꾸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찾게 되 는 곳이 되었다. 미술학도를 꿈꾸는 수험생들도 많이 몰리게 되 고, 자연스럽게, 미술학원도 많아지게 됐다. 이곳 미술학원에서 수험생활을 끝낸 학생들은, 이후에도 자꾸 찾 게 된다. 이곳에서 보낸 추억이 그립고, 어느새 이곳 지역문화에 녹아든 것이다. 그들이 성장해, 먹고, 마시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예술 활동을 즐기던 그곳 홍대입구는 자연스럽게 20대 초반의 젊 은 기운으로 채워지게 되고, 그들 나름의 문화가 전반을 지배하 게 된다. 또한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56 모여들어, 그들이 운영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홍대 특유의 지역 문화적 성격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한다. 그렇게 청춘남녀 사교 의 장인 댄스클럽, 가난할지언정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는 라이브클럽, 젊음의 패기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 로 창업하는 각종 식당, 그리고 패션, 악세사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미술학도를 꿈꾸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그 추억을 되새기며 새로 운 청춘을 맞이하는 이곳 홍대. 거리미술전이 시작되고, 외국인 시낭송이 정기적으로 펼쳐지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홍대 거리 에 섞여갔다. 젊은이들 특유의 개방적인 마음가짐과, 변화에 민감 한 의식이 어우러져 최신유행을 선도하는 또 한 곳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인가 이곳은 피 끓는 남녀들이 예술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곳으로 점점 진화하게 된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위치 : 마포구 홍대 앞 일원 이야기 태그 : 홍대, 홍대앞, 홍대문화, 홍대 앞 역사

57 3. 사랑을 쓰려거든, 효자동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의 경성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데이트 를 했을까? 요즘처럼 자유로운 연애가 힘들었던 만큼 데이트라는 것도 없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여기 그런 생각을 싹 없애줄 놀라운 사실이 있다. 애인을 데리고 갈만한 사랑의 하이 킹 코스 이것은 바로 1936년에 경성시대에 발행된 잡지의 기사 제목이다. 현재에나 통할 것 같은 제목의 잡지 기사의 내용은 더욱 더 흥미 진진하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좋은 하이킹 코스를 소개하고 있 다. 동대문에서 뚝섬, 삼각산을 지나 봉은사까지 가는 길, 창경원 에서 우이동 가는 길, 북악산에서 남산 코스, 남산 봉수에서 창덕 궁과 서대문 등의 데이트 코스를 설명하며 효자동 코스도 알려주 고 있다. 기사 안에서는 가는 방법과 당시 전차의 요금까지도 상 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당시에 시내 전차 승차 요금은 8전으 로 저자는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들에게는 왕복 15리 의 길을 걸 어야 한다며 비장한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빨갛게 핀 진달 래나 철쭉을 한 줌씩 꺾어오라며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는 팁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현재의 효자동 길도 1936년대 못지않게 여전히 젊은이들의 데이 트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효자동 길에는 작고 예쁜 카페들이 있 고, 다양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등이 모여 있다. 특히 효자동의 서촌은 요즘 한창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데이트 장소 로 각광받고 있다. 서촌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아날로그적인 느낌 을 느끼려는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서촌은 청와대 와 가까운 위치 때문에 높은 건물 없고,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58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이지 서촌은 연인들이 걸 으며 데이트하기 좋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 을 꼭 붙잡고 서촌을 골목을 누비며 데이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1936년을 살았던 사람들 에게도 효자동은 데이트 코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효자동, 서촌, 갤러리 위치 : 종로구 효자동 이야기 태그 : 서촌, 효자동, 데이트 코스

59 4. 부암동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부암동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크기 2미터의 커다란 바위가 있 다. 이 바위에 소원을 빌려면 특별한 행동을 꼭 따라야 한다. 일 단 첫 번째로 평평하고 작은 돌멩이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바위에 돌멩이를 자신의 나이만큼 문지르며 소원을 빈다. 그 후 에 작은 돌멩이가 이 바위에 붙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 바위는 붙임바위라고 불렸다. 고려시대에 한 새댁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결혼 첫 날밤을 치룬 부부에게 청천벽력의 사건이 일어난다. 남편이 몽골군에 끌려가 버린 것이다. 아내는 첫 날밤을 치르자마자 병 든 시어머니를 모시는 생과부 처지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에게 매일 부암동 붙임바위에 가서 정성을 다해 남편의 무사 귀 환을 위해 기도를 드리라고 했다. 여자는 새벽마다 소복을 갈아 입고 부암동의 붙임바위에 올랐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고 돌을 붙여보았지만, 번번이 돌은 바닥으로 맥없이 미끄러졌다. 오 늘은 바위의 산신이 소원을 들어 주었을까하고 기대하던 시아머 니도 힘이 빠져 돌아온 며느리를 보고 실망하곤 했다. 몇 달이 지났을까, 고려 땅 안에 매일 기도를 드리는 새색시를 모르는 사 람이 없어졌다.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드리던 순간이었다. 매번 바닥으로 떨어지던 돌멩이가 무슨 일인지 바위에 철썩 붙었던 것 이다. 새색시는 드디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생각하고 몹시 기뻐하였다. 그날 밤, 정말 기다리던 남편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 왔다. 사정은 이러했다. 매일을 정성으로 기도를 드린다는 새색시의 이 야기는 고려 전체를 돌아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왕은 새색시

60 의 정성에 감동하여 남편을 풀어줄 것을 몽골에 청했다고 한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자 시어머니의 병환도 씻은 듯이 나았고, 이후에는 떡 두꺼비 같은 손자를 바라며 부암동의 붙임바위에 올 랐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는 붙임 바위에는 유난히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찾아오는 여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붙임 바위의 산신이 아들을 잘 점지해 준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미신이 오래도록 있 었다고 한다. 부암동의 부침 바위는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사람 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붙임바위, 인왕산, 북악산, 백사실계곡 위치 : 종로구 부암동 이야기 태그 : 부암동, 기자바위, 붙임바위

61 5.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에서 아름답기로 손 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연인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곧 헤어진다는 재미난 속설이 존재한다. 이 속설이 시작된 이야기를 찾아가자면 조선 세조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래는 덕수 궁은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를 위 해 마련해 준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선조가 이 곳으로 대피하여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경운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후 순종 때에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황궁이 되었다. 덕수 궁이 경운궁이었던 시절, 경운궁 안에 왕의 승은을 입지 못 한 후궁들을 위한 거처가 있었다고 한다.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한 후 궁들이 경운궁에 모여 살았고, 이후 그들의 한 맺힌 원혼이 덕수 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을 시기한다고 한다.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 후궁들의 질투가 연인들을 갈라놓는다고 생각했다. 후궁들 의 한은 몇 백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속설은 예전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전 해진다. 가정법원으로 향하는 커플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가 야 했고, 이 때문에 돌담길을 걷는 커플이 헤어진다는 속설이 생 겼다고 한다. 현재는 가정법원 대신 서울 시립 미술관으로 들어 서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커플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찾아온다. 덕수궁 돌담길은 가을에 특히 아름다 운데, 노랗게 물들은 은행나무 잎이 돌담길을 수놓고 있기 때문 이다. 노란 은행나무들은 고궁을 따라 이어져 있다. 또한 덕수궁 돌담길 주변으로는 서울 시립 미술관과 정동극장 등이 위치해 있

62 어 문화생활을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천천히 걸어도 20분 남짓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이 짧은 거리의 산책로 안을 살펴보면 재미난 곳들이 많이 있다. 과거 가정법원이었던 서울 시립 미술관은 재미난 전시들로 연중 문전성시를 이룬다. 또한 조선시대 개항에 맞춰 들어온 선 교사들이 지은 정동교회와 그 옆으로는 정동극장이 자리하고 있 다. 정동길 위로는 조선시대 고종황제와 왕세자가 궁을 떠나 1년 간 기거했다는 아관파천의 러시아 공사관도 찾을 수 있다. 그 옆 으로는 이화학당과 대한민국 최초의 호텔이었던 손탁 호텔의 터 가 자리하고 있다. 사계절 어느 때에 가더라도 아름답다는 정동 길을 걸으면 고즈넉 한 궁궐과 근현대식 건물의 색다른 조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 4번 출구에 서 나와 대한문 옆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방통행 차로를 따라 들어가면 서울시청별관,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이 차례로 나온 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덕수궁, 정동극장, 돌담길 위치 : 중구 정동 이야기 태그 :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63 6. 서울의 브룩클린, 성수동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성수 역 부근, 성수동이 요즘 젊 은 아티스트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의 공장지 대 중 하나인 성수동이 변하고 있다. 회색의 칙칙하고 우울한 이 미지를 벗고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붉은 벽돌 의 낡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이곳이 젊은 예술가들의 감성을 자 극시켰다. 낡고 투박한 공장들과 젊은 예술가들의 만남은 공간의 변화부터 가지고 왔다. 개성이 넘치는 공방이 생겨나고, 작은 공 간을 활용한 카페와 음식점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공장의 겉면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꾸며서 작업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젊은 예술가들의 신선한 상상은 실제가 되어 성수동을 변화시켰 다.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은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플리마켓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패션 행사가 끊이지 않 고 열리며 트렌디 한 패션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성수동을 뉴욕의 브루클린과 비교하기도 한 다. 성수동이 한때 가죽공장과 구두공장으로 가득 한 공장지대였 던 것과 마찬가지로, 뉴욕의 브루클린도 주요 공업지대였다. 그러 던 브루클린에 1970년대 후반 예술가들이 이주해 오면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현재 브루클린은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열정 을 불태우는 장소로 유명하다. 브루클린과 성수동은 공장지대에 서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었다는 비슷함이 있다. 물론 주변 지역 에 비해 값싼 임대료도 이곳에 이주해 오게 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옛 공장의 거칠고 투박함이 예술가들의 어떤 영

64 감을 일으키고, 공장들의 정제되지 않은 콘크리트 벽면과 붉은 벽돌들의 매력에 젊은 예술가들의 감성이 사로잡혀 버린 것이 아 닐까? 현재 패션디자이너들과 아티스트들이 속속 모여 변화하는 성수동 은 예술적인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차를 두고 좁은 골목 사이 사이를 걸어 다니며 성수 동 구경에 나서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성수동, 플리마켓, 수제화거리 위치 : 성동구 성수동 이야기 태그 : 성수동, 성수동 수제화 거리

65 7. 노동자들을 달래주는 벽화, 이화마을 서울 최초의 벽화 마을인 이화마을의 변신은 극적이었다. 낡은 계단과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고, 이렇게 총 천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달동네는 점차 예술마을로 입소문을 타게 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계기가 2010년 KBS 예능프 로그램 1박2일. 방송 중 이른바 이승기 벽화 로 불리는 천사날 개가 유명세를 타면서 이화마을의 전성기는 시작되었다. 밑으로는 대학로의 번화가, 위로는 낙산공원을 품고 있는 이화마 을은 그 독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은 아니었다. 이 커다란 변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걸 까? 사실 이화마을은 가난한 서민들의 삶과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남겨진 적산가옥들을 중심으로 1950년대 후반 판 자촌이 형성된 마을은 60~70년대 판잣집을 철거하며 지금의 주 택들이 지어졌다. 이후 2006년 소외지역 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 진된 낙산프로젝트 에 의해 그림이 그려지고 조형물이 설치하면 서, 마을은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됐다. 덕분에 이곳은 한양 도성과 적산가옥, 달동네 주택과 벽화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공간 이 될 수 있었다. 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묘사한 벽화와 기 념품이 전시된 잘살기기념관 은 그런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천사 날개 벽화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작업복을 입은 여성 이 미싱으로 박음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대형 벽화가 있다. 이화 동은 인접한 충신동, 창신동과 함께 반세기 전부터 동대문시장의

66 생산 기지였다. 동대문시장에서 판매되는 의류, 침구류, 신발, 수 예, 커튼, 액세서리 등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부부 또는 직원 서너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봉제업체가 이화동 곳곳에 산재 해 있다. 2006년 이화동 일대에서 진행된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 트 도 봉제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화마을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변신은 가난의 초라함을 예쁜 그 림으로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변신은 마을 사람들의 고 단했던 삶과 노동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거기에 바치는 존경과 헌사에 더 가까웠다. 그런 예쁜 마음이 전해져 사람들은 더욱 이 곳을 사랑하고 자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이화마을, 벽화, 낙산공원 위치 : 종로구 이화동 이화마을 이야기 태그 : 이화마을, 벽화마을, 낙산공원

67 8. 강남의 테헤란로, 이란의 서울로? 강남에는 테헤란로가 있다, 그렇다면 이란에는 서울로가 있을까? 강남 한 복판 세련된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곳에 테헤란로가 있 다. 언뜻 들어도 낯선 이 이름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온 이 름이다. 서울 시내에 왜 이란의 수도 이름으로 도로 명을 붙이게 되었을까. 바로 1977년 이란의 테헤란 시장이 서울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서울시장과 테헤란시장은 우호의 의미로 각 국의 도시 의 이름을 붙인 커다란 도로를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서울 시장은 우리 서울이 이란의 테헤란만큼 큰 발전을 이루었으면 좋 겠다는 바램을 가졌다고 한다. 1977년의 서울의 경제상황은 이란 보다 좋지 못했고, 이란은 당시 큰 발전을 이룩한 나라였다고 한 다. 테헤란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외국어로 된 도로 명이라고 한다. 테헤란을 부러워하며 만들어진 테헤란로는 30여년이 흐른 현재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있다. 테헤란로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거리로, 높은 고층 빌 딩 숲을 가로지르며 한국 it의 중심지로 발전해 있다. 테헤란로는 약 1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 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테헤란에도 똑같이 서울로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로 역시 서울의 테헤란로와 마찬가지로 넓고 시원하게 뚫려있다. 서울로가 생길 당시만 해도 테헤란을 부러워하던 서울이었지만 지금은 이란보다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지금은 이란이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부러워하는 상황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서울의 테헤란로는 한때 테헤란벨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적도

68 있었다. 미국의 실리콘벨리에서 따와서 테헤란벨리라고 불렸는데, 실리콘벨리에서처럼 벤처기업들이 생기고, IT, 소프트웨어 등의 붐이 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테헤란에는 안철수 연구소, 두 루넷, 네띠앙등이 입주해있었다고 한다. 테헤란로의 또 다른 모습의 밤에 찾아와보는 것도 좋다. 밤늦도 록 환히 불을 밝힌 테헤란로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야경, LG아트센터, 포스코센터, 코엑스 위치 : 강남구 이야기 태그 : 강남, 테헤란로, 강남거리

69 9. 낭만 가득한 철길이 있는 연남동 기찻길. 이번 주말에 연트럴파크에 가볼까? 바로 아! 하고 알아차렸다면 어디 가서 유행에 뒤처진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트렌드세터들이 홍대를 찾는 이유,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연남동에는 연트럴파크가 있다. 연트럴파크는 연남동에 조성된 경의선 숲길을 부르는 말이다. 사실 연남동에 있던 기찻길은 원래부터 유명한 곳이었다. 다만, 모두에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을 뿐이다. 인디밴드들의 아지트 역 할을 하기도 하고, 저렴하고 양 많은 음식점이 많았던 공간이었 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두컴컴하고 버려진 느낌의 공간이었다. 그런 기찻길이 연트럴파크라 불리며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공 간으로 변했다고 한다.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서 실개천이 흐르고, 편하게 앉았다 갈 수 있는 벤치도 곳곳에 설치되었다. 게다가 푸 른 잔디와 나무들이 감싸고 있어 예전의 컴컴한 비밀아지트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대신 따뜻하고 밝아서 온 가족과 함께 놀러오 고 싶은 곳이 되었다. 경의선 숲길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철거하지 않은 오래된 철 길이 등장한다. 산책로에 무심하게 툭 튀어나오는 철길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예전에 선로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 든다. 바닥에 깔려있는 철길은 경의선 숲길, 공원만의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이 철길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선로를 따라 걸어보기도 한다. 또한 산책로 양 옆으로 들어서 있는 작고 예쁜 가게들과 카페를 구경하는 재미도 빼 놓을 수 없다. 연남동에도 젊은 예술가들의

70 작업실이 많이 있다. 공방 겸, 작업실 겸, 가게로 사용하는 곳들 이 많다. 산책을 하다가 신기하다 보면 신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 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서 구경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경의선 숲길은 공항철도 및 경의선이 지하에 조성되면서 상부에 만들어진 공원이라고 한다. 홍대 입구 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 로 경의선 숲길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산책도 하고, 연인과 손잡고 선로 위를 걸으며 색다른 추억을 쌓 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덤으로 주변에 있는 예쁜 카페들을 찾 아가보는 재미도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동진시장, 게스트하우스, 세계각국의 맛집 위치 : 마포구 연남동 이야기 태그 : 연남동, 연남동 기찻길, 연트럴파크,, 경의선 숲 길

71 10. 서민들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해방촌 이국적인 공간,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해방구, 해방촌 가파른 비탈길과 좁은 골목들,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 는 해방촌이 젊음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도 낙 후된 곳으로 유명했던 해방촌 골목 이곳저곳에 개성 넘치는 카페 들이 들어섰다. 또한 싼 임대료에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공 방도 생겨났다. 특히 옛 건물의 개성과 청년들의 감성을 살린 빈 티지한 느낌의 건물과 가게들은 트렌드세터들의 발길을 붙잡았 다. 이들의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특색 있는 가게들은 해 방촌으로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며 활기를 띄게 만들었다. 해방촌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높고 가파른 언덕들을 보면서 한숨 을 쉬기 마련이다. 골목골목을 헤매다 보면 대체 내가 어디를 지 나가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해방촌의 매력임을 곧 깨닫게 된다. 골목마다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가게 들을 찾는 재미와 과거와 현대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주택의 풍경 을 보는 재미도 있다. 투박한 느낌의 건물들은 자유로운 모습 그 대로의 젊은이들과 매우 닮아있다. 젊은이들은 해방촌이라는 공 간을 훼손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해방촌을 매우고 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작은 공간에 맞게 지어진 주택과 빌라들이다. 어느 한 집도 똑같은 생김이 없을 정도로 다 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진 아파트에 자라고 살아왔던 젊은이들에게 개성과 자유로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해방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개성이나 자유로움과 는 거리가 먼 곳이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72 곳은 해방이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특히 6.25 전쟁이 끝난 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터를 잡으면서 마을로 굳어지게 되었 다. 해방촌을 보며 사람들은 판자촌, 달동네 등으로 부르기도 했 다. 해방촌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애환이 담긴 동네이다. 이태원과 가까이 있지만, 이태원처럼 시끄럽지 않은 곳, 경리단길 옆에 붙어있지만 아직은 상업적인 냄새보다 사람냄새가 나는 곳 이 바로 해방촌이다. 해방촌으로 놀러 올 때에는 편안한 운동화 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이면 충분하다. 차는 두고 오는 것 을 추천한다. 운동화를 신고 해방촌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녀 보 면서 나와 감성이 딱 맞는 가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해방촌 마을 위치 : 용산구 용산2가 해방촌 이야기 태그 : 이태원, 해방촌, 경리단길

73 11. 서울에도 있다! 문래 예술창작촌 서울의 한 귀퉁이에는 각종 금속 자재로 만들어낸 예술품들과 벽 화가 가득한 곳이 있다. 예고 없는 예술품에, 그곳을 거닐다보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게 된다. 한 쪽 구석에서는 작업 복을 입고 철강을 재단하는 기술자들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또 다른 작업복을 입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이 있는 문래 예 술창작촌. 이곳은 그 삶의 터전 자체가 예술품이다. 과거, 철강제품과 관련된 모든 것은 문래동에 모여 있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근 양평동과 대림동 일대까지 철공소였지 만, 경기 침체와 중국산 저가제품의 유입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 는다. 또한 최악의 공기오염을 자랑하던 문래동이었기에, 이 때 맞물려 서울시는 그 동네에 조성됐던 철강판매 상가를 외곽으로 이전시키려 했다. 그렇게 문래동 철강 산업은 쇠락했고, 텅 빈 건물들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 때, 예술가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공업지대에 공장들이 떠나가고 나면, 건물은 남고 땅값은 떨어진다. 그런 곳 에 예술가들이 자리 잡는 것은 전 세계 공통된 현상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몇 철강소와 예술인들이 공존하는 이곳.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가 합쳐지니 말로 표현 못할 상충효과가 느 껴진다. 낮은 건물이 즐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골목길이 늘어진 가운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예술작품들이 오히려 드문드문 보이는 철강 기술자들의 쇠 다듬는 풍경과 어울린다. 생업 종사 자들과 예술가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자들이 미세하게 조절해 철강을 다듬는 모습 또한 예술이며, 예술가들이 열정을

74 불태우는 모습 또한 생업인 것이다. 베를린이나 파리, 브루클린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예술촌 의 풍경이기에, 문득 이국적인 느낌까지 들게 한다. 서울 한복판 에서 느낄 수 있는 문래 예술창작촌은, 한국인이기에 더 친근하 게, 더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곳이다. 공짜로 이렇게까지 감상해도 되는 것인가, 미안한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위치도 편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길 따라 조금만 걸어오면 문 래예술창작촌 INFO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업에 따른 도시의 변화를 거치며, 일상과 예술이 만날 수 있음 을 느낄 수 있는 이곳 문래예술촌. 이 공간이 형성된 그 역사와 과정을 볼 때, 타국의 예술촌과는 완전 다른 서울만의 개성을 느 낄 수 있다. 머지않아 재개발이 올 것이라는 소식은 다소 슬픈 일이지만, 전 세계 공통된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들은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문래 예술창작촌, 어벤져스2 촬영지, 철강거리 위치 : 영등포구 문래동 이야기 태그 : 문래술촌, 문래 술창작촌, 철강거리, 어벤져스2 촬영지

75 12. 서래마을을 이어주는 누에다리에 소원을 빌어봐. 소원을 들어주는 누에가 서초구에 있다. 누에를 떠올리기만 해도 징그럽다면 이제 생각을 달리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누에는 사실 예로부터 매우 신성시 여겨진 곤충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곤충 이라고 해서 천충이라고 불렸다. 게다가 누에는 매우 깨끗한 것 을 좋아하는 깔끔쟁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뽕잎이라도 조금만 더 러우면 입에도 데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워낙 예민해서 오염된 지역에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한다. 누에의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은 비단으로 만들고, 남은 물체는 당뇨병과 간질환, 치매 등에 매우 좋다고 한다. 누에의 똥은 가축의 사료로 쓰거나 염료로 사용하며, 번데기는 식용이나, 사료, 비누의 원료 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깨끗하고 하나버릴 것 없는 누에가 소원까지 들어준다니 더 없이 반가운 일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누에는 누에다리 앞 에 위치하고 있다. 누에다리 앞에는 두 마리의 누에가 붙어서 둥 글게 몸을 말고 있는 모양의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맨 위에 누에의 입 부분이 있는데, 입에 손을 데고 소 원을 간절히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벌써 수많은 시민들이 누 에의 입에 손을 데고 소원을 빌어서 누에의 입부분이 반질반질 금색으로 빛난다는 사실. 누에다리는 서초 경찰서와 국립 중앙 도서관 사이에 있다. 워낙 커다랗게 존재감을 뽐내는 탓에 못 보고 지나칠 레야 그럴 수가 없다. 누에 다리는 누에를 상징하는 다리답게 희고 둥근 모형을 하고 있다. 누에의 둥근 몸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76 한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서 고치를 만들 듯 다리에도 사선으로 얼기설기 구조물이 엮어져 있다. 다리 위에 올라서면, 구조물들 사이로 국립중앙 도서관과 고속버스 터미널의 모습이 한 눈에 보 인다. 누에 다리 아래로는 10차선의 넓은 도로가 뚫려 있다. 이 누에다리는 도로로 단절되었던 서래마을과 우면산 산책로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누에다리의 진면목은 야간에 드러난다. 누에다리를 감싸 고 있던 구조물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을 낸 다. 환하게 빛나는 누에다리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탄성이 질러 진다. 누에다리가 있는 서래마을을 찾아서 우면산을 산책하고, 몽마르 뜨 언덕에서 피크닉을 즐겨보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 누에의 입 에 대고 소원을 빌어보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래마을, 우면산 산책로, 누에다리 위치 :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이야기 태그 : 서래마을, 누에다리, 우면산 산책, 몽마르뜨 언 덕

77 13. 노동자들의 터전, 구로디지털단지 1965년 공업단지 조성 이후, 한국 산업화의 중심지이자 노동민주 화의 출발지였던 구로공단. 수출산업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해 70 년대 후반에는 약 11만 명이 이곳에 종사하게 되었다. 80년대부 터는 재벌들이 주도하는 중공업 산업단지로 변경되었고, 1985년 에는 당시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인해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나기 도 하였다. 주로 젊은 여성이었던 당시 노동자들. 그 당시의 근무 환경은 어땠을까? 70년대 중후반 구로공단 여공들은 대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 지 일하곤 했다. 일부 악덕 업주들은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이기 도 했다. 임금체계는 열악해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여공이 퇴근하려면 꼭 센타 라는 몸수색을 받아야만 공장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여성으로서는 매우 굴욕적인 일일 수밖에 없 었다. 관리자가 상의에서 하의까지 손으로 전부 더듬어 숨긴 물 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센타 깐다 는 비속 어는 여기서 나왔다고도 한다. 산업구조가 변화하자 입주해 있던 기업들이 하나 둘씩 줄어갔다. 2000년대 들어 정부 주도로 IT 첨단 산업 단지로 육성하기 시작 하면서 이름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경되었다. 이때 구로동맹 파업의 시발점인 대우어패럴 자리에는 오렌지 아울렛 등 패션 타 운이 조성되었고, 서울시 등이 지원하는 각종 혜택으로 인해 제 조업, 정보기술업, 물류업 등 중소기업의 아파트형 공장들도 세워 졌다. 여전히 비정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78 많다. 최첨단 디지털시대의 개막에 맞춰 구로디지털단지 로 이름 도 바뀐 지금, 서울시 차원의 지원으로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노 동조건이기에, 이곳은 앞으로 더 나은 일터가 될 것이라 믿어 의 심치 않는다. 구로 끝자락인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는 구로공단 노동자 생 활체험관 이 있다. 그곳엔 지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고단했던 삶 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 다. 좁은 집에서 여럿이 모여 살며, 공동 세면장에서 씻고,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며, 그들이 살던 방을 희망의 방 이라고 불렀던 소녀들 산업화를 위해 젊음을 바쳤던, 반 이상이 20세 미만이 었던 그녀들을 엿볼 수 있는 체험관은, 수많은 여공들의 꽃다운 청춘이 담겨있기에 더욱 가치 있는 곳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쇼핑몰 위치 : 구로구 구로동 구로디지털단지 이야기 태그 : 구로동, 구로공단, 구로디지털단지

79 14. 공부 좀 해? 모여! 노량진, 신림 고시촌 대한민국의 현대판 과거시험, 고시. 그리고 각종 국가고시를 통해 입신양명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고시촌. 그런데, 사 람들은 왜 소문난 맛집을 찾으러 그런 고시촌을 찾아 가는 것이 며, 왜 놀 곳을 찾아 고시촌으로 모여드는 것일까? 1970년대 말, 정부의 강북지역 인구밀집 해소책에 따라 종로에 있는 입시학원들을 4대문 밖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 로의 유명 입시학원들이 1979년 노량진으로 이주하였다. 수험생 과 관련 유동인구가 점차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학원가와 고시촌 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이 노량진 고시촌의 생성 배경이다. 서울대는 '신림동 고시촌'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1975년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가 신림동으로 이전했고, 서울대의 이전으로 신림동은 '빈민촌'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학동네'로 바뀌어 갔다. 서울대가 옮겨 오기 전 신림동은 해방 후 몰려든 도시빈민과 1960년대 중후반 철거 정책과 개발에 떠밀려온 철거민들로 빈민 촌 을 형성했다. 열악했던 환경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교통과 문화 가 새롭게 정비되며 바뀌어 갔고, 본격적인 고시촌 이 형성됐다. 물론 서울대가 옮겨오기 전에도 신림동에는 고시 수험생들이 있 었다. 벼슬산 이라 불리던 관악산의 절 방 한 칸을 얻어 공부하 던 이들이다. 고시촌에 사는 사람들은 돈이 넉넉하지도, 시간이 많지도 않다

80 때문에 공부와 잠, 두 가지만 충족돼도 살 수 있는 고시원 이 198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당연히 집값과 음식 값이 주변 지역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값싼 음식을 공급하는 식당이 생기고, 저렴한 여가거리가 많이 늘어나게 된다. 다만 장래 큰 인물이 될 사람들이 모인 지역답게, 저렴하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 특유의 고급 지향 문화는, 싸지만 싸 보이지 않는, 저렴하지만 저질이 아닌 지 금의 고시촌 풍경을 갖춰가게 만들었다. 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사람을 버린다. 는 외국 속담이 있다. 사 람이 살다 보면, 휴식도 필요하고, 간단한 놀이도,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고시촌에서 멀지않은 곳에 놀 곳 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공부하러 모인 사람들에 의해 먹 을거리와 놀 거리가 발달하게 됐고, 이제 놀 거리와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고시촌으로 오게 된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흥 미로운 인간군상이 녹아있는 서울 고시촌 풍경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신림동 먹거리 위치 : 관악구 신림동 이야기 태그 : 노량진, 신림동, 고시촌, 신림동 먹거리

81 15. 노룬산 금닭의 전설 장도방은 뚝섬나루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큰 부자였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글을 읽지 못 해 셈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겼었다. 게 다가 사람을 믿지 못해 일을 부리지 않고 혼자 항아리에 검정콩 을 넣는 것으로 셈을 했다. 장도방과 거래를 하는 아전이 그에게 젊은 노비 한명을 소개해준다. 나라에 빚을 지고 노비로 전락한 젊은이는 명석하고 혜안이 넓어 장도방의 장사에 큰 도움을 주었 다. 젊은이는 고향에 있는 아내를 데려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장도방에게 부탁했다.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살게 된다면 그를 오래도록 자신 옆에 둘 수 있겠다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하였다. 장도방은 젊은이의 부인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장도방은 젊은이를 불러 큰돈과 자유의 신분을 약속하며 부인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젊은이는 크게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 고, 장도방은 젊은이를 강원도 영월로 보내 돌아오지 못하도록 흉계를 꾸몄다. 영월로 떠나는 날, 부인은 남편이 돌아오는 그날 까지 매일 노룬산에 올라 한강을 보며 기다리겠노라 말했다. 부 인은 매서운 한파에도 매일 노룬산에 올라 남편을 기다렸고, 몇 개월이 지나는 무렵이었다. 장도방은 사람을 시켜 새댁을 조용히 불러냈다. 그는 황금으로 가득 찬 궤짝을 보여주며, 떠난 남편은 잊으라 했다. 젊은이의 아내는 자신과 남편의 마음속에도 이미 금으로 가득하여 어떤 황금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며 다시 노룬산 으로 향했다. 밤이 늦도록 새댁이 돌아오지 않았고, 새댁은 노룬 산에서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봄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꼭 돌 아오겠다며 영월로 떠났던 젊은이가 뗏배에 실려 돌아왔다. 사람 들은 아내의 곁으로 돌아온 젊은이를 안타까워하며 그를 노룬산 에 함께 묻어 주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무덤을 만들어 두 사람이

82 꼭 붙어 있길 빌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금닭의 전설이 된 것은 그 이후에 일이 었다. 장도방과 가족들이 큰 빚을 지고 도망쳐버리고, 일제 강점 기를 거치면서 뚝섬나루는 예전의 활기를 잃어버렸다. 해방 후 사람들이 아차산에 산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앞에 샛노란 노룬산이 선명하게 드러나 기 시작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들 눈에 길게 꼬리를 늘어 뜨린 황금 닭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우아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보던 황금 닭은 해가 떠오르며 사라져 버렸 다. 사람들은 두 마리의 황금 닭이 노룬산에 함께 묻혔던 젊은 부부라는 것을 알아 차렸고, 그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주었다. 현재 노룬산은 노룬산 시장으로 변모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 는 곳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유난히 정이 많 고 부부금술이 좋다고 한다. 아마도 죽어서도 함께 하고자 했던 젊은 부부의 사랑이 전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노룬산 골목시장 위치 : 광진구 뚝섬 이야기 태그 : 노룬산 금닭전설, 노룬산 부부금슬

83 16.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던 정동길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고종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자주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점은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고종이 덕수궁을 중건한 이후 정동길에 세운 손탁호텔에는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정동길에 카페가 들어선 연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정동은 서울 안에서도 고풍스런 서양건축물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곳이다. 서구 열강들의 공사관이 설치되면서 철도와 전화, 신문 등 서양의 문물과 문화가 처음 들어온 흔적들 때문이다. 1883년 미국 공사관이 처음 정동에 들어서면서, 정동은 서양세력 의 근거지가 된다. 미국의 뒤를 이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의 공관이 정동에 차례로 들어선 것이다. 뒤이어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은 정동은 선교와 교육, 의료활동의 중심지 가 된다. 이로 인해 한국 최초 라는 수식어를 단 서양식 교육기 관과 종교시설, 의료시설 등도 잇달아 들어섰다. 현재 정동길은 서대문 경향신문사에서 시작돼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는 손탁호텔은 1902년에 세워진 서양식 호텔로, 당시 한양에 체류 중이던 독일인 한국어 통역가 안토니 트 존탁(Antoniette Sontag)에게 운영을 맡겼기 때문에, 그녀의 한국식 이름을 따서 손탁( 孫 凙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종은 덕수궁 옆에 황실 소유의 토지를 하사했고, 25개의 객실을 갖춘 2층짜리 호텔을 짓게 했다. 이곳의 1층에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 었는데 손탁호텔이 아직까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84 고종황제는 손탁호텔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커피를 즐겨마셨는데, 커피에 독을 타 고종과 황태자를 독살하려 했던 독살미수 사건이 있었을 정도였다. 손탁호텔을 통해 대한제국이 외래문물을 적극 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개방성을 널리 알리고, 그 개방성을 힘으로 삼아 자주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될 수 있겠다. 현재의 정동은 유서 깊은 근대 유산을 소개하고 전해주는 박물 관, 전시관, 미술관이 들어서서 근대문화유입 당시의 활발한 교류 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동길에는 지금도 많 은 카페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외 국의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가 들어서지 않았다는 점은 반갑게 느 껴진다. 고즈넉한 주말 오후, 고종이 맛보았을 커피를 정동길의 카페에서 맛보며 세계 도시로 변모한 서울의 오늘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정동길, 덕수궁 위치 : 중구 정동 이야기 태그 : 정동길, 덕수궁, 근대문화유산, 손탁호텔

85 17. 잠시 쉬어가는 서울 가는 길, 떡전교 이번 정류장은 서울 시립대 입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떡전교 앞입니다.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서울 시립대학교 앞에는 독특한 이름 을 가진 다리가 있다. 이 떡전교 라는 이름을 버스 안내방송으로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추측해 보게 된 다. 과연 이 특이한 이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지금은 짧은 고가차도만 존재하지만 원래 이곳에는 떡전고가차도 가 함께 있었다. 이 떡전고가차도가 원래의 떡전교를 가리키는데, 주변 상권과 교통문제로 2004년에 철거 되어 현재의 고가차도만 이 남아 떡전교라는 이름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 다리의 정식명 칭은 청량제2고가차도 이다. 폭 24m, 길이 21m의 작은 크기로 독특한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떡전교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 라가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충청, 강원, 경기 등지에서 서울로 올 라온 사람들이 성문인 동대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휴식을 취했다. 여기서 동대문까지 꽤 많은 거리를 더 가 야 했기 때문에 한 차례의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지만, 이 곳 주변에 숲과 샘물이 흐르는 곳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위치한 청량사와 더불어 청량리 라는 지 명은 이런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먼 지방에서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하 룻밤 묵어가기도 했는데, 긴 여행길에 배고픔을 느끼는 경우가

86 많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행객을 대상으로 떡을 파는 가게들 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렇게 떡집들이 모여들며 자리를 잡자 사람들은 이곳을 떡전거리 혹은 떡점거리, 한자로는 병점리( 餠 店 里 )라 부르게 된다. 이 떡전거리에 훗날 도로가 확장되면서 전농 동에서 홍릉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생겨 사람들이 이 다리를 떡 전교 라 부른 것이 오늘까지 떡전교라는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 다. 오늘 날 떡전교 아래로는 선로가 빼곡이 놓여 청량리 역사로 들 어서는 많은 열차들이 지나다닌다. 청량리역은 지하철부터 KTX, 경춘선까지 수많은 열차들이 드나드는 큰 역이다. 지방과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 곳곳으로 향하는 열차들을 바라보면 예전 떡전거 리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과 지방으로 바 쁘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떡전교라는 이름은 잠시 쉬어가는 미덕 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 같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떡전교 위치 : 동대문구 전농동 이야기 태그 : 떡전교, 떡전고가차도

87 유적/건축물 1. 의연하게, 늠름하게. 서대문형무소의 두 미루나무 2. 국권 피탈에 맞선 여장부, 마지막 황후가 있던 낙선재 3. 천년 만에 기적처럼 깨어난 백제 유적 4. 대통령들에게 둘러싸인 창빈 안씨 묘역 이야기 5. 단비가 기쁜 곳, 희우정( 喜 雨 亭 ) 6. 맥주공장이었던 시민공원 7. 기네스북 in 서울 8. 교황이 다녀간 서울의 성지, 절두산 성지와 서소문 순교지 9.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는 한글누리. 10. 서민 옆에 잠든 독립유공자들, 망우리 공원 11. 한양도성과 효녀 도리장 12. 쌀바위 전설이 담긴, 늘 닫혀있던 숙정문 13. 국회의사당에는 태권브이가 있을까? 14. 시간은 흘러도 그 자리에 변함없는 명동극장. 15. 낙성대학교? 아니,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 落 星 垈 )! 16. 서울을 향한 불기운을 막아라

88 17. 만병통치약 시구문 돌가루 18. 공사 실명제로 쌓은 한양도성 19. 프랭크 게리도 극찬한 DDP 20. 해방의 날, 정월 대보름 수표교 다리밟기 21.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종묘와 종묘제례악 빌딩 어디까지 알고 있니? 23. 음기가 강한 숙정문을 가뭄에 열었던 사연은? 24. 혜화문의 봉황을 찾아서 25. 낭만을 간직한 한국 최초의 상설극장, 우미관 26. 우리가 모르던 서울의 군사시설들 27. 한국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팔다, 웨스틴 조선호텔 28. 강남 이색 건축물, 무엇을 닮았을까요? 29. 얼음을 지켜라! 조선시대 냉동고 서빙고 30. 동룡이네 집 어디니? 31.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남영동 대공분실 32. 행복한 마음의 궁전, 딜쿠샤

89 1. 의연하게, 늠름하게. 서대문형무소의 두 미루나무 근대적인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 1908년에 문을 열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 이곳에는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의 상태가 뭔가 심상 치 않다. 1920년대 같은 날 심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두 나무는 나이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다르다. 사형장 담벼락을 기준 으로 통곡의 나무 라고 불리는 바깥쪽 나무에 비해, 담장 안의 나무가 훨씬 작다. 두 나무의 크기가 다른 이유, 무엇일까? 당시 많은 독립투사들이 사형선고를 받고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 하며 눈물짓곤 했던 이 통곡의 나무. 어쩌면, 눈물짓는 독립투사 들을 다독거리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의 지가 서려, 늠름하게 자라서 이 나라의 해방을 지켜보겠다는 간 곡한 마음이 통곡의 나무를 키운 것은 아닐까. 또한 담장 안의 나무가 덜 자란 건, 그 많은 독립투사들의 한 과 염원을 나누며,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그들 의 저승길을 인도하기 위해 정기를 나누어 주다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담벼락 안쪽 나무엔 억울하 게 돌아가신 분들의 한이 서려서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도 생명체일진데, 우리네 독립투사들의 간곡함을 느끼며 세월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것이, 어찌하여 목숨을 잃어야 하 는 일이 되는 것인지. 근현대사의 진실한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 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이곳을, 서울시는 민족의 수난과 독 립운동의 역사교육현장으로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그렇게 구한말

90 의 독립관을 복원하고 공원을 조성하여 1992년 서대문독립공원 으로 개원했다. 1998년에는 역사관을 개원하여 옥사와 사형장, 망루와 시구문 등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그 동안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위상을 갖고 있던 서대문형무소 역 사관. 2010년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재개관하면서, 지 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독립운동의 개념에서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이라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함께 공유하는 가치를 지 향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된 이곳에서, 두 미루나 무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길.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위치 : 서대문구 독립문공원 이야기 태그 :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독립운동, 미루나무

91 2. 국권 피탈에 맞선 여장부, 마지막 황후가 있던 낙선재. 대한제국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 황후 윤씨. 1910년 친일매국노들 이 순종으로 하여금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는 현장에서, 그녀는 병풍 뒤에 숨어 어전회의를 가장한 협박을 엿듣고 있었 다. 총명한 순정효 황후는 이 때, 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옥새( 玉 璽 )가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 챈다. 내시가 옥새 상자를 들고 방으로 향할 때, 황비는 나라를 지켜야 겠다는 일념하나로 그 옥새를 빼앗아 치마 속에 감추어 버린다. 아무리 친일매국노 무뢰배들이지만, 감히 함부로 황비의 치마를 들춰낼 수 없는 법. 하지만 이미 권력욕에 영혼을 빼앗긴 황비의 숙부 윤덕영은 손쉽게 황비의 치마를 들춰내고 옥새를 빼앗아버 린다. 이후, 국권은 피탈되어 대한제국은 몰락하고 만다. 나라를 빼앗기고, 순종의 지위가 이왕( 李 王 )으로 격하되고, 그러 다 1926년 그녀가 가장 믿고 따르던 순종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믿고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결국,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일제강점기동안 조용히 지내기로 한다. 오랜 고난 끝에 조국의 해방이 찾아오고, 다시 그녀는 자유를 찾 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5년 만에 민족상잔의 비극 이 터진다. 하지만 그녀는 1950년 한국전쟁에도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궁궐에 북한군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 려도 크게 호통을 쳐서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고, 한 농민가족에 얹혀살며 궁핍한 생활을 전전하게 된다

92 1953년 남북은 휴전을 맞이하고, 황후는 드디어 환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존경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던 이승 만의 방해로, 그녀는 정릉의 수인제( 修 仁 齊 )로 거처를 옮겨야 했 다. 1960년이 되어서야 당시 구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의 노력으 로 드디어 환궁에 성공하였고,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 및 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낸다.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았던 순정효 황후 윤씨. 그녀는 당당함과 냉철함 으로 황실을 이끌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을 기리고 즐기는 곳이라는 뜻의 낙선 재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정신이 아닐까. 노령에도 외국어와 국문학, 종교와 문화 등에 대해 학문하며 불 교에 귀의하여 대지월( 大 地 月 )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1966년 2월 3일, 심장마비로 72살의 나이에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평생 나라를 지키려 애썼던 그녀의 참 된 애국심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낙선재, 창덕궁 위치 : 종로구 창덕궁 이야기 태그 : 창덕궁, 낙선재, 순정효황후, 근현대사

93 3. 천년 만에 기적처럼 깨어난 백제 유적 1997년 1월 4일, 서울 한복판에서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를 연 상시키는 대규모 백제 유적이 발견되며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다. 그것도 평범한 아파트 공사장 바닥에서 말이다. 하마터면 아 파트가 들어서서 영원히 발견되지 못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기적과도 같았던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유적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주인공은 선문대학교 이형구 교수. 당시 풍납토성에서 실측조사 작업을 벌이던 이 교수의 시선은 토 성 안쪽 아파트 공사장까지 이어지게 된다. 공사장을 살펴보던 이 교수는 지하 5미터 아래에 이르러 독특한 광경을 목격한다. 특이하게도 표면을 덮은 흙과는 구별되는 검은 토층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이 교수는 더 가까이 서 확인하기 위해 지하 바닥으로 직접 내려간다. 바닥에 다다른 이 교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란다. 공사를 위해 파놓 은 바닥에 목탄과 토기 파편들이 수없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 게 된 것이다. 천년 넘게 숨겨져 온 백제의 흔적이 세상에 드러 나는 순간이었다. 토기와 유물들이 잇따라 드러나는 것에 전율한 이 교수는 유적의 규모가 생각보다 굉장히 클 뿐 아니라 유물의 매장량도 상당하다 는 것을 직감한다. 이 교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급 한 대로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소량의 유물을 주머니에 조심스럽 게 챙긴다. 첫 발견의 현장 증거로 삼을 이 유물들은 위치를 구 분할 수 있도록 아래층 유물은 아래 주머니에, 위층의 유물은 윗 주머니에 나눠서 담기게 된다. 교수는 유물을 챙겨 현장을 빠져 나온 이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신고를

94 한다. 다행히도 이후 절차가 진행되어 아파트 공사는 중단되고 유적 발굴이 이뤄지게 되었다. 당시 발굴로 발견된 한성백제 유물은 집터와 제사 관련 건물터를 비롯해 전돌, 와당, 초대형 항아리, 중국제 도자기 등 500상자 분량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현장에서 수습한 몇 점의 토기 편들은 과연 백제시대에 사용된 토기 편들이 분명했고 당시 사회 상을 연구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탐구열이 강했던 한 학자의 우연한 발견과 침착한 대응이 천년의 시간을 넘어 감추어진 비밀을 우리 앞에 풀어놓게 된 것이다. 특 히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관심이 없었다면 절대로 유적은 발 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형구 교수의 열정이 헛되지 않게 현재 이 유적은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소중 히 보존되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한성백제박물관, 올림픽공원 위치 : 송파구 방이동 이야기 태그 : 한성백제, 한성백제박물관,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95 4. 대통령들에게 둘러싸인 창빈 안씨 묘역 이야기 조선시대의 한 후궁의 묘역이 전직 대통령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후궁의 묘역을 가운데로 두고 전직 대통령의 묘역이 둥근 모양으로 마치 호위를 하듯 모 여 있다고 한다. 뒤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고, 양 옆으로는 김대중, 이승만, 김영삼 대통령의 묘역이 호위 무사 의 양 날개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묘역은 당연히 서울 국립 현충원에 있다. 그런 데 현충원 자리의 원래 주인 역시 그 후궁이었다. 그녀는 바로 조선 제 11대 왕인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 되는 창빈 안 씨이다. 중종은 여러 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도 창빈 안 씨는 성품이 착하고, 마음이 넉넉하기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후궁의 묘에는 신도비가 세워지지 않는 것이 보통인지만, 창빈 안 씨의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그녀의 넋을 기리고 있다. 본래 주인이 창빈 안 씨의 자리에 현충원이 들어오고, 전직 대통 령들의 묘역이 들어서 것이다. 후궁이었던 창빈 안 씨가 묻힌 터 가 워낙 좋아서 손자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현충원을 조성할 당시 창빈 안 씨의 묘역이 낙 점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재미난 점은 창빈 안 씨의 묘역이 풍수지리상 명당 중의 명당이 라는 것이 진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공작 포란 형 지형으 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공작 포란 형 지형은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러한 이름

96 에 걸맞게도 넉넉하고 성품이 착했던 창빈 안 씨가 자리를 내어 주고 전직 대통령들을 품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충원은 서울 동작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철 동작역에서 바 로 가 볼 수 있다. 현충원에 들러서 나라를 위해 애쓰신 호국선 열들의 넋을 기리고, 손자를 왕으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명당자리 에 묻혀 있는 창빈 안 씨의 묘역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전시관, 동작대교구름카페 위치 :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이야기 태그 : 서울국립현충원, 창빈안씨, 대통령 묘역

97 5. 단비가 기쁜 곳, 희우정( 喜 雨 亭 ) 비가 오는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것이라지만, 오랜 가뭄은 농 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힘없이 메말라가는 농작물들을 바라보 는 농민들은 애가 탔고, 굶주린 백성들의 아우성이 궁 까지 들려 왔다. 백성을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세종대왕 역시 근심 이 쌓여만 갔다. 무심한 하늘을 달래려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학자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연구 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았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걱정하며 몰래 궁을 빠져 나와 암행에 나선 다. 그의 눈에 비친 가뭄의 고통은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했고,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 고 조심스레 백성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위로하며 고통을 함께 나 누었다. 세종대왕이 암행 정찰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말의 고삐를 당겨 천천히 백성들의 농경지를 살펴보았다. 파종을 시작 할 때지만, 부족한 강수량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농민들이 보 였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파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세종대왕의 걱정은 커져 갔다. 그때, 세종대 왕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정자하나가 보였다. 그 정자는 바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정자였다. 백성들의 고통에 근심하 던 세종대왕은 형인 효령대군을 만나 해후를 나누었다. 세종대왕이 정자에 오르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쨍쨍하던 하늘 에 먹구름이 몰려왔고, 기다리던 단비가 쏟아져 내렸다. 기적처럼 쏟아진 비에 백성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세종대왕 역시

98 백성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더없이 행복했다. 세종대왕은 이 정자의 이름을 희우 라 정하였다. 희우 는 단비가 기쁜 곳이라는 뜻으로 백성들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보다 더 크게 여겼던 세종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백성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사랑이 하늘을 탄복하게 하여 단비를 내려줬던 것이 아닐까. 세종대왕의 사랑이 담긴 희우정 은 현재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서쪽 강변도로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 다. 비록 지금은 1898년에 복원된 모습이지만, 백성을 향한 세종 대왕의 마음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망원정지, 망원시장, 망원한강공원 위치 : 마포구 합정동 이야기 태그 : 희우정, 망원정지, 세종대왕

99 6. 맥주공장이었던 시민공원 맥주냄새가 진동하는 근린공원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영등포역 근방에 위치한 영등포공원 이야기다. 시민들의 건강한 여가시간 을 제공해주는 이곳은 한 때 술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맥주 공장이 들어서 있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공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60여 년 동안 OB맥주 공장이 있던 자리로, 1997년에 OB맥주 공장이 경기도 이천시로 공장을 옮기면서 서울시에서 이 부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게 된 것 이다. 공원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영등포동 대림동 도림동 신 길동 등의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휴식 및 여가활동 공간으로 문을 열게 되었다. 이후 영등포 공원은 20여 년간 영등포 주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처음 맥주공장이 들어서던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1933년 우리나라 최초로 맥주회사가 생긴다.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가 설립한 조선맥주 주식회사 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기 린맥주 주식회사가 같은 해에 설립한 소화기린 맥주 가 그것이 다. 두 맥주회사 모두 우리나라 굴지의 맥주 회사의 전신이 되는 회사로, 지금의 영등포 공원 자리에 공장을 세우게 된다. 말은 공장이었지만, 맥아즙에 효모가 담긴 양동이를 들이붓는 원

100 시적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맥주 답게 가격은 비쌌다. 맥주 3상자 반의 가격이 쌀 144kg 가격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실 공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맥주는 일본 에서 수입해서 먹는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 도 맥주는 흔히 마실 수 없는 고급술이었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 서 국민소득이 증대되어 서민적인 술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맥 주는 오늘날 소주와 더불어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가장 대중 적인 술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 맥주 역사와 함께한 영등포의 맥주공장은 60년 간 맥주를 생산한 덕분에 공장의 근처에만 가도 술 냄새가 진동 했다고 전해진다. 술 냄새가 진동하던 그 곳에 오늘의 영등포 공 원이 들어선 것이다. 현재 공원의 중심 공간인 원형광장 한 가운 데에는 1930년대 맥주 제조 과정에서 맥아를 끓이는데 실제로 사용하던 순동제 담금솥 이 공원의 상징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그 흔적은 우리에게 높아진 서울 시민 의 생활수준의 변화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영등포공원 위치 : 영등포구 영등포공원 이야기 태그 : 영등포, 맥주공장

101 7. 기네스북 in 서울 기네스북에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하고 신기한 것들이 소개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도 기네스북에 오른 특별한 장소가 있다. 대중교통으로 얼마든지 가 볼 수 있는 우리 서울에 있는 기네스북 명소들이 있다. 세계 최대의 수직정원이 서울의 중심에 있다. 입이 떡 벌어질 만 큼 거대한 크기의 수직정원이 바로 서울시청 신청사 내부에 조성 되어 있다. 청사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푸르고 싱그러운 식물들 이 시민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청사의 한 쪽 벽을 꽉 채운 벽을 보고 있으면 삭막한 도시가 아닌 푸르고 청량한 서울이라는 느낌 을 받는다. 이 거대한 벽이 바로 세계 최대의 수직정원이다. 이 수직정원에는 아이비, 스킨답서스, 아글라오네마, 산호수 등 14 종 약 6만 5천 본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수직정원은 청사 내 부 1층부터 7층까지 1516미터의 면적을 매우고 있다. 축구장의 약 삼분의 일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수직정원은 시각적인 아름 다움을 전해 줌과 함께 산소와 음이온을 배출하여 공기 정화의 기능도 하고 있다. 또한 온도 와 습도를 알아서 조절해 주는 자 연 가습기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강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교향 분수 달빛 무지개 분수가 있다. 무지개 분수는 반포대교 1140미터 구간에 설치되어 있다. 잔잔하 게 흐르는 한강 위에 역동적으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 쇼가 인상적이다. 무지개 분수는 낮과 밤에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을 즐겁게 해준다. 낮에는 물줄기의 모양을 변화시켜서 100여 가지 의 다른 느낌을 준다. 낮에도 물로 아름답지만, 무지개 분수의 하

102 이라이트는 바로 밤에 펼쳐진다. 한강의 야경과 함께 색색의 조 명을 받으며 물줄기를 뿜어내는 무지개 분수의 모습은 탄성을 자 아내기 충분하다. 또한,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듯 우아 하게 움직이는 분수 쇼도 볼 수 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한 강 시민공원으로 나온 시민들에게 시원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 다. 무지개 분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출사를 나오는 카메라 동호회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모르면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지만, 기네스북에 오른 특별한 장 소를 한 번쯤 관심을 갖고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수직정원, 교량분수 위치 : 서초구/중구 이야기 태그 : 서울의 기네스북, 서울시청 신청사, 수직정원, 교량분수, 달빛무지개분수, 반포대교

103 8. 교황이 다녀간 서울의 성지, 절두산 성지와 서소문 순교지 1984년 요한바오로 2세가 방한 당시 들렀던 절두산 성지. 절두산 성지는 1866년 병인양요 사건 직후 대원군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며 천주교를 박해해, 1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관련된 많 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기념비 위에 금속으로 된 십자가를 높이 세웠는데, 1965년 여름에 낙뢰로 십자가가 훼손된 후 십자가 없는 기념탑 이 되었다. 훼손된 순교 기념탑은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야외 제 대와 함께 철거되었다. 그 뒤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 는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한 다수의 순교자 신앙을 현양하며, 병 인박해를 되새기기 위해 이곳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누에 잠에 가을 두를 써서 잠두봉이라 불리던 그곳. 아픈 기억과 함께 가을 두 자는 머리 두 로 바뀌게 된다. 2014년 방한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서소문 순교지를 방문했다. 1801년 조상 제사 문제를 빌미로 시작된 박해의 칼날은 기해박 해, 병인박해로 이어졌고, 결국 수많은 순교자들을 냈다. 그런 서 소문 밖 형장이 지금의 서소문 순교지이다. 특히 이곳은 한국교 회 첫 영세자 이승훈을 비롯해 최필공, 정약종, 강완숙 등 교회 지도자로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순교 한 곳이라, 그 의미가 깊다. 또한 서소문 밖 형장은 조선조 500년 역사의 처형지이자 18세기 후반 조선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인간 은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교리적 가르침을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104 보여준 곳이다. 인간의 믿음과 신념에 대해, 힘의 논리로 자행된 강제된 탄압은 오히려 힘을 잃게 된다는 것. 이것은 민주주의와 도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순교지들은 조선사회가 근 대화로, 나아가 현대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정신적 토대를 제 공했던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 유 한도 내에서 인간은 각자의 신을 믿을 권리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특정 종교가 타인을 비방해서도 안 되며, 특 정 종교가 박해를 받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조선시대에 타 종교 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 던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절두산과 서소문 순교지. 목숨을 바 쳐 종교적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졌다는 것만으로 도 충분히 역사적 의미를 갖는 곳이다. 각 순교지에 서서, 앞으로 도 계속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고, 사상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땅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양화진성지공원, 절두산 순교성지박물관 위치 : 마포구 이야기 태그 : 절두산 성지, 잠두봉,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05 9.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는 한글누리. 한번이라도 한글이 없는 삶을 상상해 봤다면, 얼마나 끔찍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을 것이 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기사도 읽을 수 없고,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 맹률은 1% 이내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은 수치라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한글이 배우고 이해하기 매우 쉽다는 것이다. 이런 한글을 만들고 배포해 주신 분이 바로 조선 4대 왕 세종대 왕이다. 세종대왕은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 지폐에서나, 광화문 광장에서 언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위인이다. 한국인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인에 언제나 상위권 랭킹을 놓치 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 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매우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백성 들이 글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고, 백성 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세종대 왕은 여러 학자들을 불러 모아 연구를 시작했고, 세종 14년 1446년 10월 9일 훈민정음을 완성하였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는 한문을 빌려와 사 용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한문과 우리말은 매우 달라서 한문의 소리 나는 대로만 빌려와 사용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문을 읽 고 쓰는 것은 양반과 선비들, 특히 남자들만의 것이었고 일반 백 성들은 제 이름 석자도 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106 훈민정음이 완성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통일 된 언어를 사 용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훈민정음이 완성 되었을 당시는 28 글자로 만들어 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4개의 글자는 자연스럽 게 탈락되어 현재는 24글자만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인 24개의 글자로 모든 말소리를 표현 하는 언어가 되었 다. 한글날은 우리 한글이 만들어지고, 배포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 는 날이다. 언어가 만들어진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서 기념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만큼 자 랑스러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광화문 광 장 지하, 해치광장에 한글누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 특별한 공간 은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는 다양한 전시와 세미나를 여는 곳으로 이용 된다. 또한 한글의 무한 확장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글 관련 상품을 발굴해 판매하기도 한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한글누리 위치 : 종로구 세종대로 이야기 태그 : 한글, 세종대왕, 한글 기념관, 해치광장, 한글누 리

107 10. 서민 옆에 잠든 독립유공자들, 망우리 공원 한용운, 조봉암, 방정환, 이중섭 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묘소는 어디일까? 국립묘지? 효창공원? 놀랍게도 망우리 공원이 다. 망우리 공원은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 로 불렸던 묘지로 서울 의 대표적인 공동묘지였다.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혐오 공간이었던 이곳에 애국열사들과 유명인의 묘역이 존재한다는 사 실은 놀라울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 어지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자. 망우리 묘지는 서울 중랑구와 구리시의 경계인 망우산 일대에 조성돼 있다. 1933년 경성부립묘지로 조성한 이곳은 약 40여 년 동안 공동묘지로 기능했다. 1973년 분묘가 가득 차 포화상태로 폐장될 때까지 무덤은 2만8500여기에 달했지만 이후 이장과 납 골을 장려하면서 현재는 8415기만 남아 있고, 현재도 계속 줄어 들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도시 숲을 위한 조경이 시작되었고, 1997~1998년 공원화 사업을 통해 망우리 공원 이란 새로운 이 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더불어 공원에는 애국지사와 유명인사 15인의 묘역을 중심으로 5km 남짓한 사색의 길 순환로가 조성되고, 그 넋을 기리는 연보 비( 年 譜 碑 )가 각자의 묘지 근처에 세워졌다. 망우리 공원에는 시 인 박인환과 한용운, 화가 이중섭, 소설가 최서해, 독립운동가 조 봉암, 아동문학가 방정환 등 많은 애국지사와 유명인이 잠들어있 다. 그 중에는 안창호 선생도 있다. 안창호의 묘는 1972년 도산공원 이 조성되면서 그곳으로 이장됐지만 1938년 그가 남긴 유언이 발견되면서 선생의 석비가 다시 망우리 공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108 망우리 공원에는 안창호 선생의 비서였던 유상규의 묘지가 남아 있는데, 도산 안창호가 자신의 애제자 유상규가 있는 망우리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소박하게 동지 곁에 묻히고 싶었던 선생의 뜻을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김구 주석의 최측근이었던 박찬익의 묘는 1993년 국립묘지로 이장됐지만, 망우리 묘터에 시인 조지훈이 글을 쓴 비석이 남아 있다. 임시정부에서 법무부장과 국무위원을 지낸 박찬익은 조용 히 흙으로 돌아가겠다 며 효창묘원에 모시겠다는 동지들의 청을 거절하고 이곳에 묻혔다. 끝내 서민의 묘원에 묻히기를 원한 독 립유공자의 뜻이었다. 망우리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왕릉 터를 정하고 돌 아오는 길에, 망우리 고개에 올라 이제야 근심( 憂 )을 잊겠노라 ( 忘 ) 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며 서민들 옆에 잠들었던 유공자들이 이제는 근심을 거두 고 편히 잠들기를 바라본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망우리 공원, 사색의 길 위치 : 중랑구 망우동 이야기 태그 : 망우리, 망우리 공동묘지, 망우리 공원, 애국지 사 묘역, 사색의 길

109 11. 한양도성과 효녀 도리장 효녀 도리장이 효자 도리장이 되어 한양을 찾은 놀라운 사연. 때는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축성을 위해 전국 각지의 남자들이 노역을 떠나게 된다. 농번기를 피해 추운 겨울날 한양으로 떠나 게 되는데, 전남 곡성에 살고 있던 도리장의 아버지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젊고 건강한 장정들도 축성을 위한 부역을 다녀오 면 몸이 상하고, 혹은 크게 다쳐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젊은 사 람도 고된 일인데, 늙고 병약한 도리장의 아버지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리장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려왔 다. 한양으로 떠나려는 도리장을 동네 사람들이 간곡히 만류하였 다. 지금이야 도리장이 살았던 전남 곡성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지만, 그때는 한 달 이상을 꼬박 걸어 야 겨우 한양 땅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의 몸으로 매서운 겨울 추위를 뚫고 산을 넘어 한양에 간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리장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가만히 집 에 있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도리장은 한 가지 수를 내었는데, 바로 치마와 저고리 를 벗고 상투를 올려 남장을 하는 것이었다. 도리장은 바로 아버 지의 옷을 입고, 커다란 삿갓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등에 작은 봇짐을 멘 도리장이 한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한양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다. 곱던 손과 발 은 어느새 거칠게 변해 있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여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110 도리장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동안 고된 노역으로 쓰러진 사람들 을 만나게 된다. 혹시나 그들 중에 아버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리장은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리장은 아 픈 사람들을 아버지라 생각하며 돌보고 챙겼다. 천신만고 끝에 도리장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고된 노역에 기력을 잃고 쓰러져 판교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 버지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고, 거의 죽음을 앞둔 상태였다. 그 날부터 도리장은 판교원에서 지내면서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였 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도리장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아버지는 기적처럼 기력을 되 찾았다. 도리장은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동네 사람들은 도 리장의 효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태조의 귀에 도 들어갔고, 태조는 도리장에게 옷감을 하사하며 칭찬하였다. 도리장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19만 9260명의 남자들 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한양도성은 현재까지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서울 도심의 풍경과 멋진 야경까 지 감상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한양도성길, 한양도성박물관 위치 : 종로구/중구 이야기 태그 : 한양도성 전설, 도리장, 한양도성 축조, 한양도 성길

111 12. 쌀바위 전설이 담긴, 늘 닫혀있던 숙정문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조선시대 성 문인 숙정문. 숙정문 밖에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전설 하나 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때는 15세기 중반. 숙정문 밖 산골 마을에 효심 깊은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논밭 한 뙈기 가진 것 없는 집안 형편에 장가도 들 지 못한 젊은 나무꾼은, 숙정문 밖에 있는 산에서 나무를 하여 내다 파는 것으로 노부모를 부양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할 뿐이었 다. 어느 봄날, 여느 때처럼 젊은이는 하루의 결실인 나무덩이를 짊 어지고 숙정문으로 향했다. 아침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기에, 젊 은이는 현기증까지 느껴가며 오르막을 올랐다. 그런데 겨우 숙정 문에 이르자, 문이 또 닫혀 있던 것이다. 망연자실한 나무꾼은 다 리가 풀려, 길가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잠시 몸을 쉬었다. 그 러다 어느새,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에 젊은이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자신이 기대어 잠이 들었던 바위에서 하얀 쌀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나무꾼은 재빨리 자신의 머리에 둘렀던 땀수건을 펴들고 흘러내리는 쌀을 받았다. 한 됫박쯤 되는 쌀을 보자, 젊은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만 큼의 쌀이면 노부모님께 맛있는 쌀밥을 지어드릴 수 있을 것 같 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게를 짊어진 줄도 모른 채, 한달음에 집에

112 도착했다. 그리고 쌀밥을 지어 부모님 앞에 올렸다. 굶주렸던 노 부모는 역시 맛있게 먹었고, 젊은이는 무척 흡족했다. 다시 저녁때가 다가오고, 젊은이는 또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바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위에서 다시 쌀이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나무꾼은 날마다 흘러내리는 한 됫 박씩의 쌀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 았다. 그토록 성실했던 젊은이는, 이제 쌀바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석 달여의 세월이 흐르자, 그마저도 귀찮아지기 시 작했다. 젊은이는 커다란 쌀자루에 쌀을 가득 채울 계획을 세웠다. 집안 사람들 모두가 오래도록 넉넉히 먹을 만큼 채워서 오려는 것이었 다. 게다가, 어느 정도는 팔아볼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 는 바위 밑에 커다란 쌀자루를 두고 기다렸다. 하지만 쌀은 여전 히 아침, 점심, 저녁때에 맞춰 한 됫박씩밖에 흘러내리지 않았다. 탐욕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법. 그렇게 며칠을 기다려 커다란 자루 하나가 겨우 찼을 때, 흘러내리던 쌀 이 별안간 그쳐버렸다. 그때서야 젊은이는 번쩍, 정신이 들고 만 다. 욕심에 눈이 멀어, 집에 계신 노부모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보지만, 굶주림으로 탈진한 부모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효심 깊었던 젊은이의 욕심이 결 국 부모님을 굶주려 죽게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이 쌀바위에서, 다시는 쌀이 흘러내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현재 종로구 삼청동의 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숙청문( 肅 淸 門 )은 어느 때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종실록 이후

113 숙정문( 肅 靖 門 )으로 기록되어 있다. 풍수설과 음양오행설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줄곧 닫아두었던 숙정문. 다만 가뭄이 심할 때에는 북문, 즉 숙청문을 열고 남문, 즉 숭례문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이것은 북은 음( 陰 )이요, 남은 양( 陽 )인 까닭에 가물 때 양을 억 누르고 음을 부추겨야 비가 온다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이 다. 이러한 숙정문에 이르는 이 전설은, 마음이 가물기 전까지는 음 을 다스려, 욕망을 잘 열지 말고 줄곧 닫아두라는 교훈을 은 유한 것은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북악산, 숙정문 위치 : 종로구 삼청동 이야기 태그 : 숙정문, 숙정문 쌀바위 전설

114 13. 국회의사당에는 태권브이가 있을까? 1976년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며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소문이 하나있다. 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태권브이를 숨기고 있는 비밀 기지이며, 의사당의 둥근 돔 지붕이 열리며 태권브이가 출동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 소문이 현재에 와서 실재로 국회의사당에서 재현되고 있 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은 총 공사비 135억원을 들여 1975년 완공되었다. 2만 4636평의 건물면적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규모로 길이는 122미터, 폭은 81미터에 달하는데 이 것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것이다. 과연 태 권브이가 숨겨져 있을 법한 크기임에 분명하다. 지금까지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뜻을 전달하는 곳이면서도 정작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들어선지 40년이 넘었 지만 아직까지 정치현장과 국민과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 았다. 권위적인 이미지와 폐쇄성 때문이다. 태권브이가 숨겨져 있 다는 소문은 그런 폐쇄성이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그런 국회를 이제 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 현장일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만한 장소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국회의사당 견학은 국회의사당과 헌정기념관 관람으로 나뉜다. 국회의사당에서는 국회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제로 법안 처리가 이루어지는 본회의장을 관람할 수 있고, 헌 정기념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과 초대 제헌의회에 관련된 자료를 볼 수도 있다

115 우리의 태권브이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헌정기념관이다. 이곳의 홍보영상관에서 국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홍보 동영상이 상영 되는데, 태권브이가 나와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이제 우리 앞에 활짝 개방된 국회의사당에서 태권브이는 친절한 해설사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한껏 변화된 국회의 모 습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국회의사당 입구에는 두 마리의 해태 상( 像 )이 있다. 원래 해태란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는 전설의 동물로, 이런 상징성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을 감찰하는 기관인 사헌부의 상징이었다. 아마도 국회가 국민들을 대신해 정부를 감시하고 잘못을 바로잡 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에서 해태 상을 국회의사당 앞에 세운 것 이다. 오늘 날 국회의사당에 숨겨진 태권브이란 바로 해태와도 같은 정의의 의지일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국회의사당 위치 :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야기 태그 : 여의도, 국회의사당, 태권브이

116 14. 시간은 흘러도 그 자리에 변함없는 명동극장. 세월이 많이 흘러도 명동은 명동이다. 명동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현재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 다. 관광객들이 서울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명동일 정도로 명동은 관광 명소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현재의 명동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 러 올라가봐야 한다. 주택가였던 명동에 일본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변화하게 된다. 백화점, 극장, 금융기관들이 명동에 속속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명동은 점점 번 화가가 된다. 1930년대 명동은 그야 말로 다방의 전성기였다. 지 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예술가들이 명동의 극장으로 속속 모 여들어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이상이 만들었다는 무기 라는 다방이 생겼다. 당시 전혜린, 이중섭, 이 상, 등 30년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이 친분을 나누는 곳이었다. 1934년 일본의 다마다 건축사무소에서 명동 한 복판에 명치좌라 는 이름의 일본인 전용 극장을 세운다. 명치좌는 한국에 들어선 최초의 현대식 극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명치좌는 일본인들의 유 희를 위해 만들어졌고, 영화 상영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명치좌가 바로 지금도 명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는 명동 예술극장의 전신이라고 한다. 해방이후, 이 공간은 서울시의 시 공관으로 각종 공연과 정치 집회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명동 예술극장은 중앙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근대의 문 화 예술과 언제나 함께했다. 한국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이 주연

117 한 베르디 오페라 춘희의 초연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이해랑이 연출하고 최무룡 주연의 햄릿이 최초로 선보인 곳도 바로 이 곳 이었다. 이렇게 다시 명동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명동 주변의 다방과 주점에는 토론을 벌이는 예술가들의 열정적인 목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명동 다방에는 시인과 연극계 인사 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연극하는 사람들은 동방쌀롱으로 시인 들은 천동다방으로 모였다고 한다. 국립극장은 현재 장충동으로 옮겨갔고, 명동 예술극장이라는 이 름으로 극장이 남아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명동 예술극장에, 질 높은 연극 공연이 항상 올라와 관객들 을 맞이한다. 세월의 흐름 따라 변화하는 명동에 좋은 연극 공연 한 편 보러 가보는 것이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명동, 명동예술극장 위치 : 중구 명동 명동예술극장 이야기 태그 : 명동, 명동예술극장, 근대문화유산

118 15. 낙성대학교? 아니,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 落 星 垈 )! 낙성대학교.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서울대학교를 부를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지리적으로 서울대와 인접해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낙성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고 그러는 것일 까? 별이 떨어졌다는 뜻의 낙성대( 落 星 垈 ). 이곳은 을지문덕의 살수대 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외적을 물리친 3대 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구주대첩의 영웅, 고려의 명장 강감찬 ( 姜 邯 贊, 948~1031)의 탄생지이다. 그는 특유의 배포와 기상으로 일찍 입신양명했으며, 송나라 사신이 그의 관상을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강감찬 장군의 배포를 알 수 있는 구전설화. 그가 소년의 나이로 한 고을의 원님이 되어 부임했을 때, 어린 그를 본 관속들은 공 연히 얕잡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강감찬은 관속들을 불러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집어넣어보라고 명한다. 관속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 때 강감찬은 불같은 호통을 쳤 다. 겨우 1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 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 이렇게 해서 관속들의 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강감찬이 태어난 옛터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의 생가가 있던 곳에 낙성대 라는 글자를 새긴 기념비와 삼층 탑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정기를 없애기 위하여 탑의 위층을 빼어갔 으며, 탑 안에 있던 보물도 모두 훔쳐갔다고 한다. 또 탑의 동쪽

119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고,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 돌바위까지도 부수어 놓았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1964년 탑을 보수하고, 1972년 서울특별시유형문 화재 제4호로 지정하였다 년에 장군의 나라를 위한 슬기와 용맹을 안보( 安 保 )의 의표로 삼게 하고자 출생 유적지를 정화하여 낙성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새로 사당과 부속건물 을 신축하고, 원래 이곳에 있던 석탑을 옮겼다. 그리고 그 옛터인 여기에는 유허비( 遺 墟 碑 )를 세워 이곳이 강감찬이 탄생한 사적지 임을 표시하였다. 현재 낙성대공원은 강감찬장군의 기마 청동상으로부터 명장의 기 상을 느낄 수 있고, 시민들은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하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 있으며, 울창한 숲과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으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공원 인근의 도로는 벚나 무가 늘어져있어, 벚꽃 피는 계절엔 그야말로 절경이다.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이곳 낙성대공원은, 오랑 캐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강감찬 장군의 배포가 고스란히 담겨있 는 것만 같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낙성대, 낙성대공원 위치 : 관악구 봉천동 이야기 태그 : 낙성대, 낙성대학교, 강감찬, 낙성대공원

120 16. 서울을 향한 불기운을 막아라 중구 세종로에 위치한 서울시 신청사의 외관은 흡사 굽이치는 파 도를 떠올리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것을 관악산에서 오는 불기운을 막는 물의 기운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관악산에서 불기운이 오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그런 믿음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만은 분명 해 보인다. 관악산은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 火 山 )으 로 분류 되어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 王 都 南 方 之 火 山 ) 으로 불린 다. 문제는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산의 영향으로 서울에 화 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복궁은 서울 도성 안에서 이 불 기운으로부터 지켜야할 가장 핵심적 공간이다. 때문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양쪽에 불을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의 석상을 만들어 놓았다. 뿐만 아 니라 경복궁은 경회루, 향정원이라는 커다란 연못이 두 개나 있 는 유일한 한양궁궐이다. 조선시대에는 화기가 강한 집터나 고을 에만 연못이 조성되었고 풍수적으로 해롭다 여겨 함부로 연못 만 들기를 꺼렸다. 그런 연못을 왕이 생활하는 궐 안에 그것도 두 개나 만들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화재를 두려워했는 지를 알 수 있다. 흔히 남대문이라 부르는 서울의 숭례문( 崇 禮 門 )은 경복궁의 정문 인 광화문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해서 불기운을 막기 위한 기능을 한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숭례문 바로 앞 에 남지( 南 池 )라는 연못을 판 것이나, 서울의 모든 성문의 현판이

121 가로로 쓰인데 반하여 숭례문은 세로로 쓰인 것도 불의 기운이 산에서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당시 건물들은 모두 불이 잘 붙는 목조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고, 소방 시설이 지금처럼 갖춰지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화재는 치 명적인 재앙이었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조치들이 어리석은 미신 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를 통해 경계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은 것까지 폄하하기는 어렵다. 실질적으로 궐 안의 큰 연못은 화재 시에 방화수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미신의 영역으로만 볼 수 없 는 것은 이런 속뜻에 있어서다. 2008년 남대문 화재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시 신청사, 광화문, 남대문 위치 : 중구 세종로 광화문 이야기 태그 : 관악산의 불기운, 경회루, 향정원, 해태석상, 숭 례문

122 17. 만병통치약 시구문 돌가루 조선시대 도성 안에는 무덤을 세울 수 없었다. 때문에 시체들은 광희문과 소의문을 통해서 도성 밖으로 내 보내곤 하였다. 광희 문은 도성의 사소문 중에 남쪽에 위치한 문으로 광명의 문 이라 는 뜻이지만 시신을 내 보내며 가족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이렇게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하여 광희 문은 시구문, 저승문, 황천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시구문 밖은 자연스럽게 공동묘지가 형성 되었고,주변으로는 무 당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무당들은 망자들의 한을 달래는 굿을 많이 열었고 시구문 밖은 무당들의 굿판과 가족들의 곡소리가 가 득했다. 이렇듯 시구문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문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시구문에 영험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 기 시작했다. 시구문의 돌가루를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 다는 소 문이었는데, 이 소문은 어느새 조선팔도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시구문의 돌가루를 긁어 가려고 너도 나도 모여들었다. 특히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시 구문의 돌가루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대신 하는 말일 정도였다고 한다. 시구문의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얻게 된 것 은 세상의 어떤 병도 시구문이 겪은 고통보다는 못하다는 믿음에 서 나왔다. 시구문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 이서 지켜보며 묵묵히 지켜 왔다. 그런 시구문이 견딘 고통은 어 느 병의 고통에 비할 수가 있을까

123 시구문의 본래 이름인 광희문은 태조 5년에 축성된 한양도성의 사소문중 하나이다. 현재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 고, 현재 시민들이 보는 광희문의 모습은 73년에 새로이 복원된 상태이다. 광희문은 처음 축성되었던 장소보다 약 15미터 남쪽으 로 옮겨져 복원되었다고 한다. 한양 도성의 사소문에 관한 재미 난 이야기와 함께 광희문을 본다면 조금 더 새롭게 다가오지 않 을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광희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위치 : 중구 광희동 이야기 태그 : 광희문, 시구문, 시구문 돌가루, 시구문 만병통 치약

124 18. 공사 실명제로 쌓은 한양 도성 흔히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쌓아올려진 건축물에 비유된 다. 한 명의 사람이 벽돌 한 장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서 울도성은 말 그대로 성을 쌓은 각 사람의 이름이 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도성을 견고하게 축성하고 제대로 보수하기 위해 공사구간의 성돌에 책임자 이름, 축성 구간 등을 새겨 놓은 것인 데, 이것을 '각자 성석( 刻 字 城 石 )'라 부른다. 관직 이름이나 사람 이름을 비롯해 성곽을 보수한 시기를 알려주는 글씨들도 눈에 띈 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곧 성곽을 쌓는 대공사를 정도전에게 맡긴다. 기록에 따르면 한양도성 전체를 600척(약 180m)씩 97개 구간으로 나눈 뒤 각 구간마다 천자문 순서대로 이름을 붙였다. 백악산의 동쪽 첫 구간부터 시계 방향으로 천 ( 天 ), 지( 地 ), 현( 玄 ), 황( 黃 ) 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구간 각각의 공사는 5도 백성에게 할당됐다. 서울도성에는 크게 사대문이 있고, 그 사이에 네 개의 작은 사소문이 있는데, 이 문 들을 기준으로 함길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에 각각 구역을 나누어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렇게 구간별 책임제하에 진행하고 성벽이 무너질 경우 이를 책임지게 한 일종의 공사 실 명제인 것이다. 천자문 순서와 지역별로 나뉜 공사구간은 체계적으로 그 책임자 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일꾼들은 18번째 래( 來 ) 자부터 58번째 진( 珍 )자까지의 구간을 쌓았다. 현재 장충동쪽 구 간에서 볼 수 있는 울산( 蔚 山 ), 흥해( 興 海 ), 하양( 河 陽 ) 등의

125 글자는 이 지역의 인부들이 이곳을 공사했음을 알려 준다. 검자육백척( 劍 字 六 百 尺 ) 같은 문구는 천자문 49번째 글자인 검 ( 劍 ) 자 구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칭자종야자( 稱 字 終 夜 字 ) 는 칭 자 구간이 끝나고 야 자 구간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칭 과 야 는 천자문 의 주칭야광( 珠 稱 夜 光 )에 나오는 한자들로 각각 54번째, 55번째 글자에 해당한다. 이런 구분 밑으로 실제로 공사 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만약 아이들과 한양도성길을 걷게 된다면, 성벽을 따라 걸으며 천자문 공부를 해보거나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을 익히는 놀이 를 해봐도 좋겠다. 혹은 익숙한 이름 찾기 같은 놀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혹 모르는 일이다.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조상이 공사에 참여했을지 말이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위에 서울이란 도시가 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 게 될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한양도성, 한양도성길, 박물관 위치 : 종로구/중구 이야기 태그 : 한양도성, 한양도성 축조, 한양도성 축조 실명제, 한양도성길

126 19. 프랭크 게리도 극찬한 DDP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던 자리에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 섰다. 유려하고 매끈한 곡선을 자랑하는 DDP가 바로 그 주인공 이다. 세계 건축의 거장이라는 프랭크 게리의 극찬을 받은 비정 형 방식의 건축물이다. 대게의 건축물들이 사선이나 곡선의 형태 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DDP는 아름답고 부드 러운 곡선의 미학을 자유롭게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DDP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공간의 풍부함이다. DDP 내부의 공간은 흐르는 물처럼 단절됨 없이 연결되어 있다. 내부 층의 구분을 열 어 두어 표현한 것도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공 간을 겹쳐서 표현해 냈고, 가운데에는 공간 전체를 휘감아 도는 모양으로 미술,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DDP의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건물들과 달리 기둥이 보 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기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실내를 구현하기 위해 메가트러스와 스페이스 프레임이라는 새로 운 신기술을 적용하였다. 이것은 지붕의 한쪽만 기둥으로 받치고 다른 한쪽을 허공에 띄우는 캔틸레버 구조로 설계하였다고 설명 한다. 또한, 외부를 연결하는 외부 브릿지와, 계단, 외부의 표면 을 모두 노출 콘크리토로 마감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DDP 내부에는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력이 총 집합 하여 들어가 있다. DDP의 설계자인 자하하디드는 처음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에 의문 을 갖고 성공가능성을 낮게 바라봤다고 한다. 아무도 성공할 것 이라고 믿지 않았던 건축물을 우리의 기술로 완성해 낸 것이다. 현재는 자하하디드의 자랑스러운 건축 설계물이자, 그녀가 직접

127 동료들을 견학 보내 올 정도라고 한다. DDP는 비정형 건축물의 대표 격인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견주어도 부족 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고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상상력과 기술이 결합된 공간이 바로 DDP 인 것이다. 동대문 역 사 문화 공원역과 연결되어있는 DDP에 한번 구경 가 보자. DDP 에는 다양한 문화 체험 행사가 매일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을 갖 고 둘러보는 것도 좋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한양도성, 한양도성길, 박물관 위치 : 종로구/중구 이야기 태그 : 한양도성, 한양도성 축조, 한양도성 축조 실명제, 한양도성길

128 20. 해방의 날, 정월 대보름 수표교 다리밟기 여기 첫날밤에 신부를 잘못 찾아간 신랑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 려 잔뜩 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뒤바뀐 신부를 그대로 부인 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시대의 엄격한 법도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선조 때 시인이자 예조판서를 역임한 동악 이 안눌의 실제 이야기다. 그렇게도 엄격한 법도 속에서 그렇게 무 질서하게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게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 고 이 첫날밤에 신부를 두고 놀러 나간 또 다른 신랑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날이 수표교 다리밟기 를 하던 정월대보 름 날임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런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내에만 70여개가 넘는 다리가 있었다. 그중 청계천에 걸쳐있는 다리들이 으뜸이었고, 그중에서도 수표교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옛 사람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다 리였다. 일상적으로 청계천의 다리들은 개천의 남과 북을 이어주 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월대보름이 돌아오면 다 리밟기 놀이를 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상원( 上 元 )이라 하여 가장 큰 명절이었던 정월대보름은 해방의 날이었다. 이 날은 한양 사람들의 밤 10시 통금도 없었고, 도성 안의 양반과 일반 백성이 다리 위에서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렇 게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며 참여했기 때문에, 다리마다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게다가 다리에 모인 사람들의 요란한 악기 소 리 때문에 매우 소란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다

129 여성들의 해방도 빼놓을 수 없다. 해는 남성, 달은 여성에 해당되 는 전통적 사상에서, 정월대보름은 1년 중 첫 번째 대보름으로서 여성성이 가장 충만한 날이다. 여성과 생산은 일치하는 것이니 여성의 날에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월 대 보름만큼은 엄격히 규제되었던 여성들의 외출이 허락되었고 서울 의 여성들도 청계천의 다리를 밟으면서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 다. 그 때문에 수표교 다리밝기는 자유로운 연애의 장으로 기능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녀상열지사( 男 女 相 悅 之 詞 ) 라는 엄격한 잣대가 있고, 더구나 통금 제도가 있는 조선시대에 다리밟기는 남녀의 만남과 교재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 기회였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 다리밟기를 통해 해방감을 맞보았을 남녀들의 모습은 지금도 청계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현재 서울시는 정월대보름 청계천 수표교 다리밟기를 되살려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수표교, 청계천 위치 : 종로구/중구 이야기 태그 : 청계천, 청계천 수표교, 다리밟기

130 21.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종묘와 종묘제례악. 임진왜란이 조선을 휩쓸고 지나간 후, 종묘역시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 종묘는 유교사상을 숭배하던 조선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 소였다. 그런 종묘가 불타고 훼손 되었으니 왕이었던 광해는 얼 굴을 들지 못 할 정도로 괴로웠다. 광해는 종묘를 증축하고 손보 기로 한다. 당시에는 왕과 왕비를 모시는 신실이 여섯 신실로 되 어있었으나 광해의 명으로 열아홉 신실로 증축된다. 아이러니하 게도 종묘의 증축을 명한 광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종묘에 들어 갈 없었다. 반정이 일어나 더 이상 광해는 왕으로 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묘에는 왕과 왕비, 정해진 충신만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다. 선조들은 죽음 이후에도 혼이 남아있다고 믿었고, 그랬기에 제사 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혼이 노하 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종묘 에 모셔진 왕과 왕비, 충신들은 그 곳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쉬 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종묘는 일종의 그들을 위한 정원이고 쉼 터라고 할 수 있다. 종묘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 마흔 아홉 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는 1955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제되어 보호 받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묘 제례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겼다. 종 묘제례에는 철저한 법도와 순서가 있었고, 매우 중요시했다. 일 년에 5회 종묘제례를 왕이 행하였는데,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 에 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종묘제례악의 경우, 엄숙하고 장엄한 제 례음악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제례음악이 바로크 시대에 나왔던

131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양의 제례음악보다 200년이나 앞서 나왔 다. 그 이후에 제례음악을 조금씩 다듬으며 완벽에 가깝게 완성 시켰다. 종묘제례악은 엄숙함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음악의 정점 이라고 평가 받는다. 모든 행사에 맞춰서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 루는 음악이다. 종묘제례악은 국가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전승 되고 있다. 또한 2001년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으로 등제되었다. 종묘는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언제든지 입장이 가능하다. 종묘제 례의 경우는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진행된다고 한다. 유네 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자랑스러운 종묘와 종묘제례악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종묘, 종묘광장공원 위치 : 종로구 종로 이야기 태그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 종묘제례악

132 22. 63빌딩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서울의 랜드마크 63빌딩에는 숫자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 이 있다. 63빌딩은 알고, 우리는 몰랐던 이야기를 낱낱이 파헤쳐 보려고 한다. 1 63빌딩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족관이 있다. 63빌딩에 있는 63스퀘어 씨월드는 1985년 63빌딩의 개장과 함께 오픈한 최초의 수족관이라고 한다. 현재 수족관 안에는 물고기 18,000마리가 생 활하고 있다고 한다. 30주년 2015년에 63빌딩이 3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30년간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40초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6층까지 올라가면 40초가 소 요된다고 한다. 56층 이후에는 임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올라 가 볼 수 없다고 한다. 63층 63빌딩의 옥상에는 공군의 초소와 병력이 63빌딩을 지키 고 있다고 한다. 63빌딩은 지상 60층 지하 3층을 합쳐 63층이라 는 의견과 공군이 지키고 있는 옥상의 벙커까지 합쳐보면 지상 63층 지하 3층의 건물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2012년 드라마 추적자에서도 63빌딩을 층수를 가 지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249m' 63빌딩의 총 높이는 249m 라고 한다. 안테나와 첨탑의 높이까지 합치면 274m가 된다고 한다. 249m에 만큼 10원짜리 동전을 쌓으면 총 169,388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133 1251 계단 63빌딩의 총 계단 수는 1251개이다. 1251개의 계단 을 가장 빠르게 올라간 사람의 기록은 7분 15초라고 한다. 그러 나 평균 남성의 걸음으로는 약 17분이 걸린다고 한다 개 63빌딩의 금빛 반짝이는 총 창문의 개수라고 한다. 무한 도전에서 박명수가 도전했던 외관 창문 닦이는 1년 4회 총 23명의 인원 일주일동안 청소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63시티 위치 :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야기 태그 : 63빌딩, 63빌딩의 숫자

134 23. 음기가 강한 숙정문을 가뭄에 열었던 사연은?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한 양의 사대문 중 하나인 숙정문을 여는 일이었다. 가뭄이 드는 것 과 한양 도성의 문을 여는 일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 까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상들은 가뭄 해결을 위해 기우제를 지내 고, 숙정문을 활짝 여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다. 숙정문은 도성의 북쪽 대문으로 북대문, 북문 등으로 불렸다. 다 른 사대문과 달리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들의 출 입이 쉬운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리학적으로 경복궁의 양팔과 다리 같은 곳에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상소 문이 있었고, 사람과 말 모두 출입을 금지하고 문을 항상 닫아 두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통행을 막기 위해 문 앞에 소나무를 심 기도 하였다. 숙정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음에 해당하는 물을 뜻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가뭄이 들면 음 에 해당하는 숙정문을 열고, 양에 해당하는 숭례문을 닫았다. 반 대로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숭례문을 열었다고 한다. 숙정문을 닫았던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음에 기운이 강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음의 기운은 여성을 뜻한다고도 한다. 숙정 문을 열어두면 음의 기운이 강해져서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미 신이 있었고, 여성들의 정숙함을 위해 문을 닫아 두었다고도 한 다. 그러나 여자들 사이에서는 정월 대보름 전에 숙정문을 세 차 례 가서 놀다오면 액운이 없어진다는 액막이 풍속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여성들의 나들이가 잦아져, 풍기문란을 우려하여 숙정문 을 항상 닫아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135 현재 숙정문은 종로구 삼청동, 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968년 청와대 경비 강화를 위해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금 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6년부터 서쪽의 성곽과 북쪽의 진입 로 구간을 다시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누구나 둘러볼 수 있 게 하였다. 가뭄이 들면 문을 열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던 조상들의 재미 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 숙정문으로 나들이 가 보면 어떨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숙정문, 삼청동, 북악산 위치 : 종로구/성북구 이야기 태그 : 숙정문, 닫혀있는 숙정문, 가뭄에 열리는 문

136 24. 혜화문의 봉황을 찾아서 원래 서울도성의 관문에 들어서면 문루 쪽 천장에 용 그림이 그 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북대문(숙정문)과 동대문(흥인 지문) 사이에 위치한 혜화문에는 용이 아닌 봉황이 그려져 있다. 외부의 공격이나 좋지 않은 세력의 출입을 경계하고자 그려 넣었 던 용 그림을 대신해 봉황을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의 사대문 사이에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소문이 존재했다. 이 사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 東 小 門 )으로도 불렸던 혜화문은 지 금 혜화동 로터리에서 삼선교로 넘어오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혜화문이 겪게 되는 시련은 곧 백성들의 시련이기도 했다. 임진 왜란 때 한 차례 소실되면서 그 시련은 시작된다. 영조 때 재건 되었지만, 끝내 1928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에 의해 철거되 는 비운을 맞게 된다. 1994년 다시 복원되긴 했지만 원래 문루에 그려졌던 원본 봉황 그림이 소실된 것은 특히나 애석하다. 봉황은 상상의 새로, 기린 거북 용과 함께 네 가지 영험한 존재 ( 四 靈 )으로 여겨졌다. 수컷을 봉( 鳳 ), 암컷을 황( 凰 )이라고 하며 지절( 志 節 )이 굳고 품위를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봉은 굶주 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 혜화문의 시련 에 봉황이 함께 했다는 것은 마치 시련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고 했던 우리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사실 혜화문에 봉황이 그려진 이유는 이러하다. 삼선교에서 돈암 동 일대는 울창한 산림지대인지라 온갖 새들이 살고 있었다. 산 선( 三 仙 )이라는 이름 그대로 숲, 냇물이 얼마나 청정했으면 하늘 나라에서 세 신선이 내려와서 노닐었겠는가. 문제는 너무 많은

137 새들이 모여 있어서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러웠고, 가끔 도성 안 으로 떼 지어 날아와 피해도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새들이 성안 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조류의 왕격인 봉황을 그려 새들을 경계하 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혜화문을 바라보며 살았던 서민들에게 봉황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혜화문 밖 일대는 일제강점기 빈 민들의 힘겨운 삶의 공간이 되어준 곳으로,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꾼으로 등장하는 김첨지가 일하는 지 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실향민 들이 이곳에 정착해서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역할을 해 왔다. 잘 다스려지는 곳에서만 등장한다는 봉황의 전설은 하루라 도 평안한 시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것들을 혜화문의 봉황처럼 막아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혜화문, 혜화동 대학로 위치 : 종로구 혜화동 이야기 태그 : 혜화문, 봉황이 있는 혜화문

138 25. 낭만을 간직한 한국 최초의 상설극장, 우미관 1930년대의 종로. 구름 같은 구경꾼들을 거느리고 한 바탕 싸움 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싸움의 승세는 한쪽으 로 기울고, 상대의 마지막 일격에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당 황한 빛이 역력한 이 남자는 당시 종로 뒷골목을 주름 잡았던 전 설의 싸움꾼 구마적. 그리고 그를 쓰러뜨린 장본인은 이제 막 아 이 티를 벗어난 17세의 앳된 청년 김두한이었다. 당대 최대 상권 을 자랑하던 종로의 질서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 고 그 질서의 한복판에는 우미관이라는 극장이 존재한다. 우미관( 優 美 館 )은 한국 최초의 상설극장이다. 1910년 종각 부근 서 울 종로구 관철동에 "고등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져 1915 년 우미관 으로 그 이름을 바꾼다. 극장은 2층 벽돌 건물에 1,000 명 가량이 관람할 수 있는 긴 나무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항상 2000명이 넘는 관람객으로 들어차 극장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 었다. 우미관 구경 안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 이라는 말 이 생길 정도로 우미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다. 그러나 1959년의 화재로 화신백화점 옆으로 자리를 옮긴 1960년 대부터 우미관은 기울기 시작해 나중에는 2류 재개봉극장으로 명 맥을 유지한다. 결국 적자운영에 시달리다 1982년 11월 30일에 폐업이 되면서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우미관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제일의 주먹이었던 김두한의 사무 실이 있던 곳이다. 때문에 우미관의 치솟는 명성은 김두한의 명 성과도 일치했다. 김두한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우미관을 근거지 로 삼았던 구마적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뒀고, 19세 때는 종로 뒷골목의 또 다른 강자인 신마적과 대결을 펼쳐서 중상을 입히고

139 완전히 제압하고 만다. 이로써 십대의 나이에 종로 뒷골목의 양 대 산맥이었던 구마적과 신마적을 모두 다 쓰러뜨린 김두한은 19 세의 나이로 종로의 새로운 지배자로 화려하게 등극하게 된다. 물론 그 같은 일은 지금은 절대로 재현될 수도 없고 용납되지도 않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영화와 드라마를 통 해 그 시절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김두한과 함께 당시의 낭만을 상징했던 우미관 역시 이제는 볼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인사동 초입 건너편에 위치한 우미호텔 위치에서 당시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종로, 인사동 위치 : 종로구 종로 이야기 태그 : 종로, 우미관, 장군의 아들, 김두한

140 26. 우리가 모르던 서울의 군사시설들 장충동 족발집에 방공호가 있다? 얼핏 생뚱맞은 이 이야기는 사 실이다. 일제강점기 장충동엔 일본 장교들이 많이 살았는데,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폭격에 대비하는 방공 호를 만든 것이다. 그 방공호가 현재는 한 족발집의 새우젓 저장 고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에 는 의외로 이렇게 군사용도로 만들어진 시설들이 다수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소이탄 폭격이었다. 당 시 일본과 조선에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불 이 번지는 소이탄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서울은 동서축을 기본으 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화재가 걷잡을 수 없 이 번지는 상황. 일본의 대응은 동서 방향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중간 중간에 집을 허물어 공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 인 장소가 현재의 세운상가 터다.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사이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 공호가 있다. 조선총독부 직원들의 피난용 방공호로 추정되는 이 곳은 110여 미터 길이에 20개 정도의 방으로 이루어졌다 년대까지만 해도 민방공 훈련 때 한국통신이 이곳으로 이전 훈련 을 했다. 앞으로 문화재를 보관하는 수장고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서대문구 홍은동 사거리에 있는 유진상가도 군사시설이다. 만약 북한군이 구파발 쪽으로 남침해올 경우 이곳은 서울의 진입로가 된다. 유진상가는 1층 기둥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서 탱크 진 지 공간을 마련하고, 후퇴 시에 한쪽 기둥만 폭파하면 건물이 주

141 저앉도록 설계해서 적의 진격로를 막으려고 했다. 남북 대치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강남 개발일 것이 다. 1968년 북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한 1.21사태 와 미군 정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에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울 진과 삼척에서는 북한 무장군인들이 침범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 생한다. 서울의 동부나 서부 지역을 확장하려는 계획 대신 한강 아래에 있는 강남을 개발한 것은 이런 정부의 군사적 의도를 반 영한 것이다. 서울은 이렇게 군사적인 목적을 고려한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진 도시이다. 전쟁을 빼놓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서울에 이런 군사시설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런 시설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군사분계선을 두고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숨겨진 군사시설 위치 : 종로구/강남구/은평구 이야기 태그 : 서울에 숨겨진 군사시설

142 27. 한국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팔다, 웨스틴 조선호텔 현재 서울광장과 인접해 있는 웨스틴 조선호텔은, 1914년 10월 10일 개관한 백년 역사를 간직한 호텔이다. 오래된 호텔이라고는 해서 열악한 환경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곳은 초창기에 몇 가 지 서양 문화를 우리나라 최초로 선보인 곳으로 유명하다. 당대 의 근대문화를 선도한 조선호텔의 옛 모습을 살펴보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서울에 귀빈객을 맞을 수 있는 숙박시 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한제국에서 하늘에 제례를 행하던 환구 단을 修 고 조선호텔을 짓는다. 이는 인천의 대불호텔, 정동의 손 탁호텔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지어진 세 번째 서양식 호텔에 해당 된다. 당시 조선호텔은 독일 건축회사가 설계한 4층짜리 북유럽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로, 세계최초로 엘리베이터를 미국 브랜드 의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도입한 것으로, 그 존재만으로 대단한 화제 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준공 당시 이미 루이 16세기식의 웅장한 응접실과 다이닝룸, 귀빈 접대실, 콘서트홀까지 갖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샹들리에나, 은식기 등을 세계 적인 수준의 제품으로 구비하고 있었다. 1915년에는 미국의 허버 트 후버 대통령이 묵기도 했고, 이후에도 1974년 포드 대통령이 나 레이건 대통령 방한 때도 이곳을 이용하게 된다. 광복이후 미 군이 군정청 사령부를 두기도 했고, 귀국한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서재필의 집무실도 이곳에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도 꾸준히 국빈 영접과 국제회의 장소로 기능했다

143 이렇듯 서구와의 접촉이 가장 빈번하던 곳답게 서구 신문물을 선 보이는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위에서 언급한 엘리베이터 말고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 랑스 레스토랑도 이곳에서 처음 선보인다. 1970에는 뷔페식당이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열기도 했고 1980년에는 야외수영장이 조성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 하늘 아래 작은 서구 선진국이 들어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1970년 호텔은 일제강점기 때의 옛 건물을 修 고 20층 규모의 건 물을 새로 세우게 되는데, 개업식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여 했을 정도로 경제부흥기에 우리나라가 조선호텔에 거는 기대는 컸다. 현재 조선호텔 안에 있는 정원에는 환구단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황궁우( 皇 穹 宇 )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육중한 서구 호텔의 모습 과 황궁우의 묘한 조화를 보면, 이 땅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이후, 더 이상 남의 문화가 아니라 우리 문화로 정착하게 된 과정들을 새삼 흥미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환구단, 조선호텔 위치 : 중구 소공동 이야기 태그 : 웨스틴조선호텔, 환구단, 근대문화유산

144 28. 강남 이색 건축물, 무엇을 닮았을까요?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된 강남권은, 그 덕에 옛 한양의 모습을 찾 아보기는 힘들다. 대신 새로 지은 첨단 건물이나, 젊은 감각으로 지은 특이한 건축물이 종종 눈에 띈다. 그들 중, 사물을 모티브로 삼은 건물들 몇 개는 특히 재미있다. 강남역에서 나오자마자 반기는 물결모양의 <GT타워>. 고려청자 를 본 따, 부드러운 곡선미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특이한 디자인 은 단지 곡선미뿐만 아니라 내구도도 강해, 태풍을 비롯한 진도6 의 지진에도 끄떡없다는 내진 설계 1등급을 부여 받았다. 상상으 로만 가능할 것 같은 외관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해당 시공사는 1.5m짜리 알루미늄 멀리언(mullion) 바를 다양한 경사각으로 이 어 붙여 원하는 각도를 만드는 방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2만여 개의 알루미늄 바와, 2300장의 모양이 다른 유리 1만 2500여장 을 사용해 물결모양을 구현해낸 것이다. 일리노이 공대생들이 현 장을 방문하는 등 연 400명가량의 사람이 건설 현장을 찾아오면 서 GT타워는 강남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GT타워의 옆 멀지 않은 곳엔, <부티크 모나코>가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공간과 공간을 포개고 이어 만든 모양의 건물로, 49 개의 서로 다른 평면과 22개의 공중 정원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사각형을 부정하고, 공간 자체를 재창조하려 노력한 건물로, 공 간 자체가 건물의 컨셉이 된다는 철학을 담은 건축물이다. 동그란 구멍이 송송 뚫려있어, 일명 벌집 빌딩으로 불리는 <어반 하이브>. 단지 모양만 특이한 건물이 아니라, 굉장히 실용적인 건물이다. 낮에는 햇빛이 들어오고, 밤에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

145 을 막아 난방과 냉방에 용이하다. 세계최초 핸드백 박물관인 가로수길 <시몬느 백스테이지>는, 최 종 결과물인 핸드백뿐만 아니라, 제작과정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그래서 건물 이름도 무대의 뒤를 의미하는 백스테이지backstage 이다. (또한 발음상의 말장난으로 bag-stage 이기도 한 것 같 다.) 뉴욕타임즈에서 서울에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핸드백 DIY 수업도 진행한다. 이곳에서 열심히 교육 받고 나면, 부모님의, 아내의, 남편의 가방을 직접 만들어 선물해 볼 수도 있다. 사회가 진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물 또한 같이 발달하고 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서울의 이색 건축물들.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탄성을 자아내 게 만드는, 서울의 자랑거리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강남역 벌집 빌딩, 가로수 길 시몬느 백스테이지, 이태원 여행가방 관광안내소 위치 : 강남구 이야기 태그 : 강남 건축물, 서울의 특이한 건축물

146 29. 얼음을 지켜라! 조선시대 냉동고 서빙고. 서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였다. 조선시대에는 얼 음이 매우 귀했고, 아무나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특히 여름철에 얼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기도 했 다. 또한 조선시대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신성시되기도 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고 얼음을 떠내는 것 은 음양이 고르지 못한 섭리를 조화롭게 하는 일이라며 얼음 저 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겨 울철에 한강의 얼음이 얼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기도 했 다. 여름철에 사용할 얼음은 겨울에 강물이 얼면 캐내었는데, 강에서 캐낸 얼음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얼음 창고로 보내졌다. 동빙고 터 옆에는 빙고에서 얼음을 저장하고 꺼낼 때 제사를 지내던 사 한단 터가 남아있다. 사한단 터는 조선시대에 빙고가 얼마나 중 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알 수 있다. 조상들은 빙고에서 얼음이 잘 보관되기를 기원하고, 얼음이 얼 수 있을 정도로 추워지기를 기 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입춘에 빙고의 문을 열면서 북방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겨울에 강가에서 얼음을 캐내는 것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고, 부 역을 나온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백성들이 매우 고 통이 극심해져 상소가 끊이지 않자, 세종대왕은 필요한 양의 얼 음만 채빙하도록 노역을 중단 시켰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에 도 나라에서는 질 좋은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백성들을 20리 나

147 떨어진 곳에서 얼음을 캐오도록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얼음이 귀하다보니 얼음을 도적질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전해진 다. 이렇게 캐낸 얼음은 사용처에 맞게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 각 창 고 별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달랐다. 서빙고의 경우에는 가장 큰 얼음 보관창고로 궁중이나 백관들이 사용하는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 동빙고는 나라에서 재사용하는 얼음을 모아두는 창고였 고, 내빙고는 궁중 전용 얼음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현재의 서빙고동은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다. 빙고들이 있던 자리 에 터만 남아있는데, 서빙고가 그 중 가장 크고 많은 양의 얼음 저장하는 장소였다고 알려졌다. 빙고가 위치한 곳은 한양에서도 가장 시원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서빙고동 의 여름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빙고터 위치 : 용산구 서빙고동 이야기 태그 : 서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148 30. 동룡이네 집 어디니? 근의 공식은 몰라도 인생은 아는 사랑스러운 친구 도롱뇽. 바로 80년대 서민들의 삶을 따뜻하고 정감 있게 그려낸 드라마 응답하 라 1988의 주인공이다. 응답하라 1988은 매회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종영 이후에도 드라마 속 명장면, 소품, 촬영 장소 등이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 던 도롱뇽의 집이 전직 대통령의 가옥이었다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속 도롱뇽의 집으로 나온 곳은 바로 대한민국 제 10대 대 통령.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전 30년을 거주하셨던 가 옥이라고 알려졌다. 드라마에 나온 도롱뇽의 집안 모든 집기들과 가구들 역시 대통령과 그 가족이 실제 사용했던 것들이라고 한 다. 놀라운 점은 전 대통령의 가옥이라고 해서 특별하거나 화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검소하고 평범한 가정집이었다는 것이다. 드라 마 속에서 도롱뇽의 가족 역시 평범한 중산층으로 표현되어 나오 는데,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이 주는 느낌과 많이 닮아 있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에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예전보다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특히 드라마 속 촬영장소를 구경하고, 자신들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서 가족단위 방문객의 수가 늘었다고 한다. 마포구에 위치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은 현재 시민들에게 개 방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 볼 수 있다. 2009년 서울시에서 영 구 보존을 위해 가옥을 매입하였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직접 사 용하시던 물품들 약 500여 점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70년대

149 지어진 2층짜리 주택에는 작은 마당이 딸려 있는데, 당시의 건축 과 주택의 형태를 알아보기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기증품 500여 점은 70년대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 다. 특히 50년이 넘은 선풍기와 30년이 넘은 쇼파와 탁자, 가구 들을 볼 수 있다. 검소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최규하 전 대통 령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하에는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다고 한다. 고가구와 집기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에게는 추억과 향 수를 선사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생생한 역사 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촬영장소이자, 오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장소인 만큼 한 번쯤 구경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근현대 가옥 위치 : 마포구 서교동 이야기 태그 : 마포구 서교동,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 근대문 화유산

150 31.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남영동 대공분실 해양연구소 건물로 위장한 채, 제 3~5공화국 시절 동안 민주화운 동 인사를 탄압하던 공간, 1976년 설립된 남영동 대공분실 청사.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절, 경찰은 국민을 뒤로한 채 정치 권력을 보호하는데 앞장섰고 고문과 납치를 자행했다. 그러나 6 월 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면서 대공분실은 그 실체가 밝혀 졌고, 경찰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하는 현장이 되었다. 2005년 창설 60주년을 맞은 경찰은 진정한 국민보호 실현 의 일 환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 로 탈바꿈했 다. 경찰의 지울 수 없는 잘못과, 그에 대한 반성이 공존하는 역 설의 공간인 이곳.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고 김수근씨의 작품 으로 인간과 공간은 상호 소통한다 는 그의 철학이 반영돼 있다. 말 그대로, 고문하기에 최적화된 건물이라는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5층만 유독 창문이 좁다. 고문이 자행되던 그곳에 서 피해자가 투신하려는 것을 막고, 좁은 공간으로 말미암은 공 포감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또한 내부에 설치된 철제 나선형 계 단은 조사실이 있는 5층 복도와 곧바로 연결 돼 있다. 계단을 따 라 오르는 동안 위치감각을 상실하고,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민주투사 박종철씨가 1987년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지점, 대 공분실 509호. 고문에 의한 그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고, 제 5공 화국의 실질적인 종말을 가져오는 6월 항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 렇기에 4층에 박종철 기념전시실 을 마련해, 민중탄압의 거점이 었던 이곳이 이제는 인권 수호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 다. 이러한 사실은 방문객들의 감회를 더욱 새롭게 한다. 이외에

151 도 경찰청 인권센터는 인권교육관, 성희롱 신고센터, 아동 여성 장애인 지원센터를 운영한다. 다방면으로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인간은 모두 죄를 짓는다. 그리고 기억으로 남고, 역사로 기록된다. 다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잘못된 과거는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용서를 구해야 하고, 같은 죄를 반 복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겸손한 태도로 죄 와 대면해야 하 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답게 죄짓고 사는 법이다. 또한 그 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죄에 합당한 반성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충분할 경우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군사정권에 의해 인권을 탄압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제는 경 찰청 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경찰당국의 반성이 담긴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들의 관심 어린 용서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남영동 인권센터 위치 : 용산구 남영동 이야기 태그 : 남영동, 남영동 대공분실, 인권센터, 박종철, 근 대문화유산

152 32. 행복한 마음의 궁전, 딜쿠샤 1920년 전후 어느 날, 한 외국인 부부가 서울 성곽을 돌아다닐 때였다. 북악산에서 인왕산 쪽으로 내려오던 두 사람은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은행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 그들은, 은행나무 있는 땅을 구입해 집을 지어 살기로 결 심한다. 조선시대 권율 도원수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그 은행나무와, 그 일대의 땅. 때문에 주민들은 감히 외국인이 와서 신령한 땅에 못 된 짓을 한다며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국인 부부는 꿋꿋이 집을 완공해내고, 그것이 바로 테일러 부부의 집인 딜쿠 샤 이다. 힌두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상향 이라는 뜻의 그곳 은, 결혼 전 연극배우로 활약했던 아내 메리가 세계 순회공연을 할 당시 방문했던 인도 러크나우 지역에 있는 궁전의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의 증언자들인 딜쿠샤의 건축주 테일러 부부. 그들은 외국통신사의 서울특파원으로 임명돼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소식 을 세계에 알렸던 사람들이다. 먼 옛날 한국에서 살다간 외국인 의 집은, 다양한 역사적 맥락을 품은 집이며 또한 당시 최대 벽 돌집으로 근대 건축사적 의미가 깊다. 우리나라의 다른 근 현대 건물과 양식이 판이하게 다른, 미국인이 지은 철저한 미국식 주 택이며, 예사롭지 않은 회전형 내부 구조는 당시로서는 유일무이 한 양식이라고 한다. 일제의 방해와 기록의 부재로 무단 점유돼 이용되고 있었지만, 2006년 테일러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하면서 실체 를 알렸다. 이에 서울시는 담당 자치구인 종로구와 대책을 마련

153 하고, 점유자들에 대한 해결책을 검토하고, 기재부와 양도 방안에 대해 협의 중이다. 지금 이 상태로 두면, 지금도 진행 중인 훼손 이 거주민들에 의해 더 빨라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 의문 뉴타운 지구로 지정돼 재개발이 한창인 서대문 일대이어서, 자칫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1919년 3 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 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미국식 건물인 딜쿠샤. 당시 조선에서 제일 큰 개인저택이었던 이 양옥은 현재 종로구 사직로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계속되는 훼손을 막아내고 나아가 문화재 지정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근현대건축물 위치 : 종로구 행촌동 이야기 태그 : 근현대건축물,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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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인물 1. 서촌에서 무엇을 했을까? 모던보이 천재시인, 이상 2. 안경점이 자리 잡은, 세종대왕 나신 곳 3. 명동에 성룡이? 명동거리를 수놓던 배우들의 흔적 4. 정릉에 남겨진 사랑이야기 5. 시인 백석 의,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 자야. 6.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의서 동의보감 7. 조선의 예언가, 흙집 지어 살던 마포나루 8. 일제로부터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9. 금을 던진 투금탄 나루, 공암나루 10. 아차산에 전해오는 아기장수 전설 11. 이순신 장군의 터전이 영화인의 메카로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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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1. 서촌에서 무엇을 했을까? 모던보이 천재시인, 이상 1934년 7월 24일, 기이한 시 한 편이 조선중앙일보에 소개된다. 그건 바로, 이상의 시 <오감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고, 급기야 연재중단에 이를 만큼 독자들의 반발도 거세게 일었던 큰 사건이다. 근대를 살면서도 탈근대를 지향했던 이상. 시대를 앞 서간 문제적 작가 라는 그의 동력은, 현대에 와서야 포스트모던의 한 갈래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죽기 직전, 멜론이 먹고 싶다 고 말할 정도의 여유와 위트를 지 닌 이상. 시와 소설을 쓰며, 기생 금홍과 동거하며, 커피숍의 주 인이기도 했다. 모던보이로서 멋쟁이이기까지 했던 천재시인, 이 런 그의 주 활동무대가 바로 지금의 서촌이다. 이상과 함께 기거했던 친구 문종혁의 1969년 발표된 수필을 통 해, 당시 이상의 집을 추론해볼 수 있다. 1927년부터 5년간 당시 통동이었던 통인동 154번지에 기거했다는 증언이다. 지금은 안타 깝게도 修 리고 없는 집이다. 또한 소설 <날개>의 모티브가 됐던, 기생 금홍과 동거하던 집 또한 서촌에 있다. 지척으로 오가며 교 류했던 화가 구본웅의 증언으로, 당시 다동 33-1번지의 집은 소 설 <날개> 속에서 묘사된 33번지 가옥과 무척 비슷했다고 한다. 역시, 지금은 없는 집이다. 부수는 것은 순간이고 유지하는 것은 어렵기에 가는 세월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일이 됐지만, 아직도 여전한 톨스토이의 시골 마을 역장처럼 잘 보존됐다면 수많은 관광객의 발자취가 이어졌을 것 만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그는 소설 <날개>의 첫 문장마 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가 되긴 싫었던 것일까

158 하지만 그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현재 이상의 집 이 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비다방 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곳으로, 실제 시인 이상이 그 이름으로 운영하 던 다방이다. 당시 구인회 문인들을 비롯해 화가, 성악가 등 수많 은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일종의 집결지였던 제비다방. 각종 예술 에 대해 담론을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며, 동시에 작금의 사태와 시대상-일제시대-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공부방이고 작업실이며 유희장이었다. 하지만 2년 만에 경영난으로 폐업을 선언하게 된 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커피 하나 시켜두고 하루 종일 앉아있으 니,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도 현재는 한 재단법인이 맡아 운영하고 있어,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6시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종로구 통인동 번지에 가면 찾을 수 있는 이상의 집. 그 옛날 그곳에서, 모던보이 이상 은 다른 예술가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촌, 이상의 집, 통인시장 위치 : 종로구 통인동 서촌마을 이야기 태그 : 서촌, 통인동, 이상, 이상의 집, 소설 날개, 모던 보이

159 2. 안경점이 자리 잡은, 세종대왕 나신 곳 매년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의 스승을 찾아 안부를 하고, 꽃을 주거나, 십시일반 모아 선물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중, 5월 15일이 세종대왕 나신 날이라 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겨레의 성군인 그 가 나신 곳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종마을로 불리고 있는, 경복궁 왼편의 서촌. 현재 종로구 통인 동에는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이 있다.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라고 새겨진, 바로 그 표지석. 세종은 비만한 체구에 육식을 즐겨하지만 운동은 싫어했다. 게다 가 학문을 좋아해 주로 앉아있었기 때문에 혈류순환 장애 및 혈 탁(피가 탁해지는 한방적 용어)이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 다. 30세 전후로 소갈(당뇨)을 얻은 세종은, 말년까지 그를 고통 스럽게 한 안질(눈병)의 원인으로도 추측된다. 학문에 빠져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책을 보며 정사를 다루니 눈이 남아날 리가 있나. 그렇게 안질 때문에 끙끙 앓으면서도 세종은, 책을 손에 놓지 않 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한민족의 글자인 한글도 홀로 창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천 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업적이 두드러 진 100인 중 1위를 차지한 세종대왕. 그의 업적과 정신은 우리 자긍심이고 보물이다. 그런 그의 표지석을 보고 있자면, 씁쓸함이 배어나오는 것도 사

160 실이다. 나라 안의 많은 학교와 곳곳에 세종대왕 동상은 세우고 입으로는 세종대왕을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가 언제 어디 서 태어났는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겨레의 성군이 태어난 날을 경축하거나 기리는 행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 이다. 비록 길가에 신문지만한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 지만, 그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을 만들어준 그의 넋을 기리기라도 하듯, 그의 평생을 괴롭힌 안질을 달래기라도 하듯, 현재 세종대왕 나 신 곳 바로 앞엔 안경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이제는 저세상에 서 편안하게, 눈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길 바라며, 한 번쯤 그 표지석을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본다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촌 위치 : 종로구 통인동 서촌마을 이야기 태그 : 서촌, 통인동, 세종대왕, 세종대왕 나신 날, 세종 대왕 나신 곳, 세종마을

161 3. 명동에 성룡이? 명동 거리를 수놓던 배우들의 흔적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오가던 명동거리. 그 한 귀퉁이에는 배우들 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핸드프린팅이 남아 있다. 또 한 극장 로비 에서는 전지현, 김선아, 김희선, 차승원 등 유명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을 볼 수 있다. 그 중 특히, 성룡의 핸드 프린팅에 눈이 간다. 2013년 명동을 방 문해 핸드프린트를 남겼던 성룡은, 명동에서 배우의 꿈을 키웠던 유일한 외국배우이다.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을 표현했던 그는, 알고 보니 젊은 시절 명동에서 2년 간 머물면 서 한국, 홍콩 합작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곤 했던 경력이 있었 다. 성룡의 한국생활 추억거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증명된다. 벌이 가 적던 그로서는 식비를 아껴야만 했는데, 당시 동네 사람들은 외국인이 고생한다고 친절하게 인심을 베풀어 줬다고 한다. 그 덕에 적은 생활비로도 명동생활을 버틸 수 있었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정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 대한민국은 일반 시민에 대한 규제가 심했다. 그 중엔 장발단속도 있었는데, 외국인인 성룡은 단속 해당 사항이 없으니 당연히 거리낌 없이 길거리를 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경찰에 의해 연행당하는 성룡 은 홍콩사람이라고 항변해 봤지만, 홍콩사람이 왜 이렇게 한국 말을 잘해? 라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한국말을 못하는 척 했지만, 단호한 경찰 때문에 진땀깨나 뺐다는 웃지 못 할 해 프닝도 있었다

162 그렇게 명동에서 지내며 힘겨운 무명 배우 경력을 쌓은 성룡은, 중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명동이란, 당시 수많은 배우들의 꿈의 장소였던 것이다. 한국영화의 고향 충무로와 인접해있는 지역인 덕에, 배우를 꿈꾸 는 많은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명동. 일부러 충무로와 명동 사이 를 서성거리며, 혹여 길거리캐스팅이라도 되진 않을까 기대감을 품었다고들 한다. 괜히 눈을 부라리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부러 눈을 마주쳤다던 남자배우의 일화나, 추운 날에도 일부러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던 여자배우의 일화를 들어 보면, 그들이 명동에 수놓았을 수많은 꿈들이 느껴지는 것만 같 다. 배우로서의 꿈을 꾸던 젊은이들의 염원이 담긴 명동. 이제는 성 공한 배우들의 흔적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배우가 되고 싶다면, 어디 한 번 명동에서 눈을 번뜩여보는 것도 추억이 될 수 있다. 그러다 혹여 누군가처럼, 명함을 건네받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 겠는가.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명동거리, 명동대성당, 명동극장 위치 : 중구 명동거리 이야기 태그 : 명동, 명동거리, 성룡

163 4. 정릉에 남겨진 사랑이야기 첫사랑 이라는 키워드로 많은 이의 공감대를 산 영화 건축학개 론. 이 영화는 정릉을 배경으로 시작된 서연과 승민의 첫사랑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정릉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비유하는 상징적 배경으로도 사용된다. 태조 이 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이곳에서 전해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에 대한 관심 이 건축학의 시작이라는 수업내용이 나온다. 그 수업을 듣고 정 릉행 버스에 올랐던 두 남녀 주인공처럼, 정릉 속 이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물을 청한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버들잎 설화의 장본 인이기도 한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 두 사람은 이 버들잎 을 계기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두 사람의 진짜 사랑 이야기 는 강씨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방번, 방석, 경순공주 세 아이 를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강씨의 갑작스런 죽음은 태조 이 성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실의에 빠진 이성계는 직접 능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행차하는 것은 물론, 1년여의 공 사 끝에 170여간 규모의 흥천사를 무덤 옆에 세웠을 정도였다. 그만큼 태조의 강씨 사랑은 극진한 것이었다. 그렇게 죽어서도 이어지던 두 사람의 사랑은 태종 이방원의 방해 를 받게 된다. 태조가 방원을 두고 강씨의 둘째 아들 방석을 세 자로 책봉한 것이 화근의 원인. 이방원은 방석의 어머니인 강씨 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태조 사망 후에 정릉을 파괴하고 급기야는 지금의 정동 지역에서 도성 밖 양주, 현재의 성북구로 능을 옮겨버린다. 정자각을 修 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

164 적을 없애도록 명했으며,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 게 하여 온 백성이 이를 밟고 지나다니도록 했다. 철저하게 존재 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성계와 강씨의 사랑 은 그렇게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왕후의 능이라기보다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했던 정릉은 1669년 현종 10년 극적으로 되살아난다. 송시열의 청으로 비로소 정릉은 종묘에 올려지고 능묘로 격상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기에 이른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던 첫사랑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영화 속 장면처럼, 강씨와 이성계의 사랑이 다시금 세상 밖 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건축학개론> 속에서 정릉의 홍살문 앞 갈림길에서 정릉의 풍경 을 찍던 남녀 주인공. 그들이 머물렀던 성북구 정릉동의 여러 공 간은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 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정릉 위치 : 성북구 정릉동 이야기 태그 : 정릉, 건축학개론, 홍살문, 신덕왕후

165 5. 시인 백석 의,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 자야. 때는 일제강점기,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당시 모든 여 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인 백석. 함흥 영생여고에서 영어교 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1936년 회식자리에서 기생 김영한을 보 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특유의 로맨티스트 기질을 발휘하는 꽃미남 시인 백석. 오늘부 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 리에게 이별은 없어. 라는 유명한 말로, 김영한의 마음을 얻어낸 다. 이백의 싯귀에 나오는 자야 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지어주 고,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 지내게 된다. 하지만 백석은 유학파 지성인이자 당대 최고 직장인 함흥 영생여 고 영어선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그런 그의 부모는 한낱 기생의 신분인 여자와 함께하겠다는 두 사람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강제 결혼으로 둘을 갈라놓으려던 부모님을 피해, 백 석은 사랑의 도피를 결심한다. 원치 않는 결혼 첫날밤, 백석은 그의 연인 자야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바로 떠날 수 없는 자야의 사정에, 백석은 자야 역시 만주로 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떠난다. 이 때 만주에서 홀로 된 백석이 자야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바로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잠시라고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해방 후, 백석 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가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버린 후. 이들의 엇갈리는 운명은 결국 민족상잔의 비극

166 6.25가 터지면서 3.8선이 그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이후 백석은 평생 자야를 그리워하며 북에서 1996년 사망하게 된다. 남한에 홀로 남겨진 자야는 대한민국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 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한다. 훗날 시가 1천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그것이 지금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 이다. 자야의 법명 길상화 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난다. 떠나기 전, 기부한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 는 이렇게 답한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그녀의 유언대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뒤뜰에 유골이 뿌려진다. 첫눈이 수채화처럼 채색되는 그 날, 눈은 푹푹 내리던 <나와 나 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구가 떠오르게 하는 그녀. 길상사 곳곳에 서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길상사, 성북동 거리 위치 :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이야기 태그 : 성북동, 길상사, 백성, 자야, 사랑이야기

167 6.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의서 동의보감 옛날과 달리, 요즘 세상은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의술 역시, 즉효적이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서구 의학이 상대 적으로 효과가 느린 한의학에 비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한의학에 대한 불신조차 생겨나는 형국이다. 하지만 현대 한의학의 기틀이자 집대성인 동의보감, 그리고 그 저자, 양천 허씨인 구암 허준. 그의 삶의 여정과 함께 동의보감을 살펴 보면, 조금이나마 그 불신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동의보감 제목의 뜻부터 살펴보자. 동의( 東 醫 ) 란 글자 그대로 동쪽의 의학 을 뜻한다. 그렇지만 서양 의학 과 대비되는 동양 의학 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허준이 동의보감 을 편찬할 당시에 는 서양 의학이 아직 조선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동 의는 중국의 동쪽, 즉, 조선의 의학을 가리킨다. 중국에 수출하게 될 것을 배려한 제목이다. 다음의 보감( 寶 鑑 ) 은 보배로운 거울 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을 책에 붙이면 다른 사람이나 후세 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일을 적은 책 이라는 뜻이 된다. 그 러니 동의보감 은 조선 의학의 정수를 담은 귀중한 책 이라는 의미가 된다. 임진왜란 직후,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백성들은 고통 받고 있었 다. 선조는 최고의 명의 허준에게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했다. 허준은 선조로부터 수백 권의 의학서를 하사받아, 철저히 분석하 고 자신의 임상 경험을 더해낸다. 하지만 새 의서를 미처 완성하 지 못한 채 선조가 승하했고, 당시 어의였던 허준은 책임을 지고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당시에는 왕이 불치병으로 죽어도 어의 책임이었기 때문이었다

168 하지만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세자 시절, 허준의 도움으로 두창 (천연두)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광해군은 허준을 유배에서 풀어 주고, 연구를 계속한 허준은 선조가 명령한 새로운 의서를 1년 만에 완성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 인 것이다. 특히 이 의서가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건, 기존의 책들과 다르게 중국의 의학이 아닌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의학서를 편찬해냈다는 것 이다. 오랜 역사와 실질적인 임상 경험을 통해 집약된 걸작이 탄 생한 것이다. 사실 모든 의학은 같은 뿌리에 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을 치료한 다. 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중국 일본 등에서 여러 차례 간행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의서인 동의보감 은 학문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기에도 잘 짜 여있어 범국가적인 발전에 이바지해왔던 것이다. 전 세계 의학이 공유되며 발달하고 있는 지금, 실제로 서양 역시 동양 의학에 대 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중이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동서양 의학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면, 엄청 난 시너지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양천 허씨인 구암 허준은 지금의 양천 강서구의 구암공원 일대에 서 태어나고, 자라고, 그곳에서 동의보감 을 집필하고, 세상을 떠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2013년 탄생 400주년을 맞는 동 의보감 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이 현재 서울 강서구 의 허준 박물관 에 잘 정리되어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 은, 그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에 세워진 것이다

169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허준박물관, 구암근린공원, 양천향교 위치 : 강서구 가양동 이야기 태그 : 허준, 허준박물관, 동의보감, 한의학

170 7. 조선의 예언가, 흙집 지어 살던 마포나루 사람은 모두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매 해 말이나 초가 되 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운세와 미래를 점치느라 바쁘다. 심지 어 비싼 돈을 들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미래 에 대해 미리 알기를 원하고, 그에 대비하고자 한다. 그 때,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토정비결 이다. 그런 토정 이란 사람이 지어낸 비결 은 무엇이었을지, 토정 이지 함 선생이 살았던 마포나루에서 슬쩍 엿볼 수 있다. 16세기 마포나루는 서해 뱃길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전 국 각지의 상업과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사농공상의 유교 사회 에서, 상업을 가장 천시하던 사대부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곳이 었다. 그런데 토정 이지함은 이곳 마포나루에 거처할 집을 흙으 로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어 토정( 土 亭 )이라고 이름 짓고, 이로 말 미암아 스스로를 토정 이라고 불렀다. 이런 이지함의 행동은 그 런 사대부들과 반대로 가겠다는 신념을 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상업과 해상교역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어야 한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 적이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사대부 출신이 장사치나 다름없는 행동을 할 경우, 그 사람은 사 회적 매장을 피할 수 없던 것이 당시 사회 분위기이다. 하지만 토정은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뛰어난 학식에 알아 주는 양반집이었지만, 기인( 奇 人 )으로 더 유명했던 그는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생활을 영위했다

171 그가 갖춘 특유의 통찰력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역모에 휘말린 장인 때문에 덩달아 토정까지 벼슬길이 막히고 말았을 때, 그는 처가에 닥칠 불행을 예고해 가족들을 미리 피신시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 서민들의 신수도 봐주곤 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점술이라 고 추켜세웠다. 토정이 나막신을 신고 솥을 쓴 후에 일부러 관인들의 앞길을 가 로 막고 누워 맞기를 자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관리의 횡 포를 몸소 체험하려는 기행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민들의 애환 을 듣고, 그들을 달래주며 다독여주던 이지함. 무엇이든 상대방, 특히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했던 토정이었다. 서울 마포에 가면 토정 이지함이 흙집을 짓고 살던 토정로가 있 다. 당시에는 지대가 낮아 물이 자주 차는, 못 쓰는 땅이었다. 일 부러 그런 땅에 집을 지어 고난을 선택한 자유인 이지함, 어쩌면 먼 훗날 이곳의 가치가 높게 평가될 것도 통찰했던 것은 아닐까? 환갑이 넘어서야 아산현감이 된 그가 세운 걸인청. 지금으로 말 하면, 노숙자를 교육하고 각성시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다. 마지막 남은 사람 하나조차 아낄 줄 알았던 그이기에,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마포음식문화거리 위치 : 마포구 토정동 이야기 태그 : 마포구 토정동

172 8. 일제로부터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하던 일본인 도굴꾼이 고려시 대 고분 하나를 파헤쳐 여덟 점의 도자기를 꺼낸다. 그 중에서 학이 구름 속을 나는 무늬의 도자기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도굴 꾼의 손에서 천원이라는 가격에 넘겨진 도자기는 여러 사람을 거 치며 1만원까지 가격이 오른다. 당시의 물가로 천원은 기와집 한 채의 가격과 맞먹는 것으로, 1만원은 아무나 엄두 내지 못하는 액수였다. 그런데 1만원에도 팔지 않는다던 도자기를 한번 본 어 떤 조선인 수장가( 收 藏 家 )는 선뜻 2만원에 그것을 사들인다. 이 도자기가 훗날 국보 제68호로 지정되는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 고, 다행스럽게도 이 도자기가 일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거금 을 들여 사들인 장본인이 바로 간송 전형필이었다. 간송( 澗 松 ) 전형필( 全 鎣 弼 )은 1907년 서울에서 대대로 벼슬을 지 낸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 서울 관훈동의 고서점인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우리 문화재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비를 들여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미술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던 그는 1938년에 드디어 자신의 소장품 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 葆 華 閣 )을 세워 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를 시도한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의 힘으로 해내고 만 것이다. 그의 문화재 구입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훈민정음 해 례본을 빼놓을 수는 없다. 판매자는 천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하였 으나 전형필은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치르기 위해 금액이 너무 적다며 만원으로 값을 치렀다. 그 거래를 성사시켜준 사람의 사 례비로 천원이 주어진 것 또한 그가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가 어

173 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한글 창제 원리가 정확히 밝혀질 수 있었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 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 사람의 노력이 한 민족의 유산을 지 켜낸 것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문화재를 지켰던 그의 노력은 사망 후 문화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으 로 기려졌다. 1966년 보화각은 수장품을 연구하는 한국민족미술 연구소로 바뀌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현 재 전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자리를 옮겨 매년 열리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간송미술관, 성북동 거리 위치 : 성북구 성북동 이야기 태그 : 간송 전형필, 간송미술관, 일제강점기, 문화재 발굴

174 9. 금을 던진 투금탄 나루, 공암나루 때는 고려 말 경, 성실하고 착해 동네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이조 년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년은 형인 억년과 길을 가다 금덩이 두 개를 줍게 되었다. 가난한 형제는 기뻐하며 두 금덩이를 하나씩 나누어가졌다. 기쁨 에 들뜬 채 배를 타고 양천나루를 건너던 조년은, 문득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갑자기 금덩이를 꺼내 강물 에 던졌다. 놀라 이유를 묻는 형 억년에게 조년은, 자꾸 욕심이 생겨 형 것까지 빼앗고 싶어지니, 마음이 어지러워 어쩔 도리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조년은 고작 금덩이 때문에 형제 간의 우애에 금이 갈 것을 염려했고, 형제가 자칫 원수가 되기 전에 이 원흉을 없애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억년 역시 금덩이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며 고백한 형 억년과 아우 조년. 그렇 게 금덩이를 던진 두 형제는 억 년 동안, 조 년 동안 우애를 지 키며 살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 양천나루를 투금탄(금을 던진 나 루)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곳이 현재의 공암나루이다.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력 때문에,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소 송을 통한 법적 공방을 이룬다거나 언론플레이를 통한 상호 비방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라던가, 혹은 갑작스레 얻게 된 보험료, 보상금, 혹은 당첨된 복 권에 의해 심지어 서로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경우까지 생기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어릴 적 단 한 번이라도 공암나루에 와봤더라 면, 그리고 이조년과 이억년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조금은 달라

175 질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재의 강서구 개화동 한강 남쪽 지역의 공암나루는, 한강변의 나루터 중 서울시계 내에서는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나루이다. 옛 양천읍(강서구 가양동)의 진산인 궁산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동쪽으로는 공암산이 있고, 그 산 아래 물가 모래밭에는 공암( 孔 岩 )이라는 바위굴이 있다. 강화도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던 이곳은, 강 건너 로 고양시가 보이고 광주암( 廣 州 岩 )이라고 부르는 바위섬이 물 가운데 있어 기이한 광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과거 배가 드나들 던 이곳이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런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광주바위를 중심으로 조성된 구암공원 덕분에 시민 들의 쉼터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공암나루근린공원 위치 : 강서구 가양동 이야기 태그 : 투금탄, 형제투금설화, 공암나루 설화, 금을 던 진 나루

176 10. 아차산에 전해오는 아기장수 전설 현재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아차산. 그 한 귀퉁이에 기대어 살아 가고 있는 어느 초가집. 힘은 장사이고 한쌍의 날개까지 가진 아 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그럴수록 부모들의 시 름은 깊어만 갔다. 무엇이 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을까? 옛날 옛적 아차산 기슭에 젊은 부부가 살았다. 가난하지만 성실 하게 살았던 부부는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 한 가지 걱정이었 다. 부부는 아차산 신령님께 아이 낳기를 빌기 시작했다. 매일같 이 이어진 부부의 정성에 감복한 것일까 부부가 기도를 하던 중 에 갑작스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부부는 이 것을 신령님의 징조로 여겼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잉태를 하 게 된다. 태어난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젊은 부부가 들일을 나 갔다 돌아와 보니 누워 있어야 할 아이가 없어진 것이다. 혼비백 산해서 주변을 찾아보니 아이는 높은 다락에서 잠을 자고 있었 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 아기가 있는지 이상한 일이라 여기는 부부. 며칠 동안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자 부부는 심상치 않은 일 이라 여겨 어느 날 일을 나가는 척하며 아기를 살핀다. 얼마 되 지 않아 아기는 겨드랑이에서 부채 같은 날개를 펼치더니 날갯짓 을 하여 다락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부부는 근심에 휩싸인다. 보통 아이와 너무 다르면 분 명 해를 당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는커 녕 남들 눈에 띌까봐 조용히 아기를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 어

177 느새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부부는 아무 곳에나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아기를 마루 기둥에 묶어두고 일을 나간다. 하지만 돌 아와 보니 기둥이 뽑혀 있고 아기는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 다. 날개를 가진 것만 아니라 힘 또한 장사였던 것이다. 결국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마을사람들을 근심에 빠진다. 마을 어른들은 아기장수의 존재가 알려지면 온 동네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 아기장수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장차 역 적이 될 수 있다며 관군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고, 그 마을 사 람들까지 책임을 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기도 전에 어른들은 겁에 질려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젊은 부부는 아이의 죽는 날, 슬프게 눈물을 흘린 다. 그날 밤, 아차산에 날개 달린 용마( 龍 馬 )가 나타나 밤새 울었는 데, 아차산을 박차고 날다가 현재 한강호텔 자리인 용당산 앞 깊 은 한강물에 떨어져 죽었다. 그 후로 아차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 리를 용마봉(지금의 용마산)이라고 하였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아차산생태공원, 용마폭포공원, 영화사, 고구려정, 아차산성, 워커힐, 한강호텔 위치 : 광진구 이야기 태그 : 아차산, 아차산 아기장수, 아기장수 설화

178 11. 이순신 장군의 터전이 영화인의 메카로 충무로. 진짜 명당이 있다고 하면 바로 충무로가 있는 건천동을 두고 하 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무로에는 예로부터 유난히 큰 인 물이 많이 나왔다. 이순신, 유성룡, 원균, 허난설헌, 허균 등 이름 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위인전을 모아 둔 곳 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건천동에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순 신과 유성룡은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원균 역 시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나이로 따져보자면 원균이 4살 많은 형이었다고 하는데, 세 사람이 친분이 있었는지는 알려 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 동네에서 같은 시기에 큰 인물이 셋 이나 나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시기는 다르지만, 김종서나, 정인지등도 건천동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의 생가가 위치한 충무로는 마른내라는 이름으로 불 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강에서 흘러들어온 물줄기가 충무로 부근 에서 말라 붙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의 걸출한 위인들을 배출한 지역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핵심 본 거지로 이용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이 지역에는 일제의 잔 재가 많이 남아있었고, 침략의 상처들을 가려줄 위인이 필요했다 고 한다.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본정통이라는 이름대신 자긍심을 줄 만한 새로운 이름을 골몰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라는 도로 명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충무로는 한국 영화 하면 충무로를 떠올릴 만큼 영화의 메 카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지금이야 어딜 가나 영화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60년대에는 영화를 보려면 충무로에 와야 했

179 다고 한다. 충무로에는 서울을 대표하는 4개의 영화관이 모여 있 는 지역이었다. 좌 수도, 우 국도, 북 단성, 남 대한이라고 말 할 정도로, 4개의 극장이 모여 있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 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충무로 부근에는 영화사들도 많이 모여 있어서 주변의 술집에 가면 영화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큰 인물을 많이 배출 한 건천동은 영화인의 메카로 변신한 이후 로도 여전히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다. 건천동의 이순신 장군의 생가가 있었던 장소는 을지로3가 명보극장 앞 작은 비석 으로 표시되어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이순신 생가터, 충무로 위치 : 중구 건천동 충무로 이야기 태그 : 충무로, 명당 충무로, 이순신 생가터, 마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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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쇼핑/먹거리 1. 국내 최대 패션시장, 시작은 군대로부터 2.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혼상제는 광장시장 3. 김 첨지의 그 음식, 설렁탕 4. 접수할 수 있겠어? 마장동 축산물시장 5. 실수의미( 味 )학, 무교동낙지 6. 알몸으로 시작, 완전군장 실시 이상 무! 남대문시장 7. 세계가 인정한 이태원 양복 8. 사랑을 타고 오는 재래시장, 방산시장. 9. 노량진 수산시장의 변신은 계속된다 10. 전문적이야, 서울 시장 11. 서민의 삶을 달래준 시장 먹거리 12. 멋쟁이 DJ오빠가 있던 맛있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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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1. 국내 최대 패션시장, 시작은 군대로부터 오히려 밤이 되면 더 활발해지는 패션시장, 옷 깨나 입는다는 사람 들이 들락거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곳이 패션의 시작이 된 데는 사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한다. 임진왜란 참패 이후, 조선은 군사조직의 재편을 위해 훈련도감이 라는 군사시설을 창설한다. 그리고 훈련도감의 군사 주둔지는 하 도감과 한양도성, 즉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 일대. 훈련도감 군사들의 무예훈련 터였던 것이다. 상비군이자 정예병이었던 훈련도감 병사들은 최상급의 보포( 保 布 병역을 면제해준 장정에게서 거둬들이던 베나 무명)를 지급받았 다. 하지만, 그렇다고 훈련도감병들의 생활이 풍족하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 물가는 오르지만 봉급은 그대로였으며, 더군다나 군 비를 중간에서 빼돌린 관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월급만으로 살기 어려워 생활고에 빠진 도감병들은, 그간 지급받 은 보포를 장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식솔들을 시켜 보포를 가 공해 팔거나, 방한구 등을 만들어 장사판에 직접 뛰어들었다. 지 금으로 치면 직업군인이 옷 장사를 하는 셈이다. 엄밀히는 금지 된 행동이었지만, 그런 군병의 장사는 나라에서도, 군문에서도 눈 감아주었다. 그렇기에 도감병들은 본격적으로 장사를 펼치기 시 작했고, 적당한 위치에 조금씩 시장을 꾸리게 된다. 종로 끄트머 리 배오개 일대(현재 종로4가와 원남동 만나는 곳)를 중심으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확대되면서 포목시장이 형성됐다. 이것이 바로 지금 동대문시장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도감병들은 다들 비슷한 포목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물건도 비슷

184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물건 자체뿐만 아니라, 그 이 상의 특별한 판매 기술이 필요했다. 이것이 현 동대문 패션타운 분위기로 남게 된 것이다. 동대문하면 떠오르는 그곳 고유의 웅 변 장사와 홍보 기술, 특유의 호객 노하우는, 어쩌면 약 300여 년 전부터 쌓여온 전통이자 그들만의 생존방법일 지도 모르는 것 이다. 이제는 옷의 디자인부터 봉제, 판매까지, 새로운 옷 한 벌이 3일 이면 유통된다는 의류 전문 시장, 동대문 패션타운. 속칭 <3일의 기적>이 일어나는 이곳의 역사엔,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생업에 뛰어들었던 옛 도감병들의 목소리가 남아있는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DDP, 주변 시장, 먹을거리 위치 : 동대문구 이야기 태그 : 동대문시장,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디자인 플라자

185 2.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혼상제는 광장시장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서울촌놈 N 씨. 새로 얻은 직장 까지 서울인 그는, 새로 입을 신사복을 맞추러 광장시장을 찾았 다. 빈대떡과 육회가 맛있고 마약김밥과 순대가 부르는 먹거리의 보고 라는 광장시장. 그런데 신사복을 맞추러 광장시장에 간다? 웬걸, 이 서울토박이는 말한다. 광장시장의 진면목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의복을 책임지는 데 있다고. 지금의 광장시장은 사실, 1905년 한성부로부터 동대문시장 으로 정식 허가를 받아 개설된 시장이다. 그곳에 광장주식회사가 설립 이 되면서, 그 이후로 광장시장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즉, 광장시장은 구 동대문시장인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면서, 근처의 동대문시장 영 향을 받아 직물과 의류 전문시장으로 탈바꿈한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직물 도소매상 특성상 야간 및 새벽에 무거운 봇짐을 들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허기를 달랠 음식들이 필요했고, 지금처럼 먹거리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후 반에 와서 먹자골목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광장시장의 진짜 원조 는 의복이라는 것. 그래서 광장시장은 어린아이들 베넷저고리부터 각종 의복, 원단 을 취급하며 관혼상제( 冠 갓 관, 婚 혼인할 혼, 喪 죽을 상, 祭 제사 제, 성인이 되고 혼인하고 세상을 떠나고 제사를 지내는 우 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중요하게 여긴 가정 행사)의 전반에 걸친 모든 의복을 다룬다. 아이의 첫 옷 배냇저고리, 설빔부터 시집보

186 내는 딸과 함께 보낼 비단이불, 어머니 한복과 노리개, 꽃신, 첫 직장에 입고 갈 신사복에서, 어르신 먼 길 함께할 수의까지. 한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이 광장시장 에 있다. 단지 한복을, 수의를, 원단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닌, 인생의 대소 사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맞이하는 이곳. 저렴하게 질 좋은 결 혼 한복을 몸에 딱 맞게 맞추고 싶다면, 첫 직장에 입고 갈 멋진 정장을 내 몸에 딱 맞게 맞춰 입고 싶다면! 오랜 기간 다져진 실 력의 장인들이 고급 원단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그곳, 광장시장 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DDP, 주변 시장, 먹을거리 위치 : 동대문구 이야기 태그 :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관혼상제

187 3. 김 첨지의 그 음식, 설렁탕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음식 설렁탕. 현진 건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인물 김 첨지가 아픈 아내를 위해 사 온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설렁탕의 유래를 명 확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 이 너무 오랜 기간을 즐겨온 소울 푸드 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설렁탕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 중에, 가장 유력한 설은 선농제 와 선농단 으로 시작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 입춘 뒤 선 농제를, 입하 후 중농제를, 입추 후 후농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후 고려 성종 때 신농씨와 후직씨를 제향(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한 기록이 있고, 이 신농씨 가 바로 선농신 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그 선농신을 모시는 제사, 선농제와, 그것을 지내던 선농 단이 바로 설렁탕의 시작이라는 설이다. 이름까지 비슷해, 어딘가 모르게 믿음을 주기도 하는 설이다. 선농단은,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으로, 농사에 관한 전반을 다루는 곳이 됐다. 조선에 와서는 경칩(개구리가 겨울잠에 서 깨어나는 때, 양력으로 3월 5일 또는 6일 경) 뒤 길한 날을 골라 제를 올렸는데, 이 때 제물로는 쌀과 기장, 고기는 소와 돼 지를 날것으로 올렸고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나라에서 정한 제사이다 보니 많은 인력이 동원될 수밖에. 이 때 수고한 조정대신과 일반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는데, 그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 이라 칭했다고 한다. 선농탕이 인기가 올라가자, 여느 장사 풍경과 같이 모방가게가

188 늘어난다. 하지만 똑같은 이름을 쓸 수는 없는 법. 가게들이 조금 씩 바꾸어 쓰기 시작해 지금의 설렁탕 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 음식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 주도로, 전쟁물자 보급을 위한 육우 대 량생산이 시작됐다. 식용 소고기 생산 정책으로 경성 내 정육점 이 크게 늘어났고, 이것은 설렁탕이란 음식과 맞물리게 됐다. 이 들 정육점에서는 소고기를 팔고 남은 소뼈와 그 부산물까지 팔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을 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 려, 대 설렁탕 유행의 시대가 찾아왔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성의 설렁탕 집은 100여개를 넘어섰고, 어느새 설렁탕은 체면 때문에 먹길 꺼렸던 양반이나 모던보이, 모던 걸들의 단골음식이 되어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사가 잘 되는 품목을 따라하는 건 매한가지였 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들의 공통점은, 단지 모방에서 끝나지 않고 고민과 개발을 통해 발전시켰던 것들이다. 우리네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설렁탕은, 세월의 격변과 함께 진화를 거듭해온 혼이 담긴 음식이다. 선농탕이 현재의 설 렁탕이 되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설렁 탕 한 그릇과 함께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을 구경해보는 것도 좋은 서울구경코스일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근현대유적과 연계) 위치 : 동대문구/종로구/성북구 이야기 태그 : 설렁탕, 설렁탕의 역사, 근대문화유산

189 4. 접수할 수 있겠어? 마장동 축산물시장 반세기 전, 마장동에 우시장이 들어서고, 차례차례 도축장과 축산 물시장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 금은 축산물시장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옛날의 활 력은 여전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피다방 을 알까? 1950년대 마장동 축산물시장 은 즉석에서 도축 가능한 도살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새벽에 막 잡은 소가 쏟아내는 뜨끈뜨끈한 피를, 그릇 당 얼마씩 받고 팔던 곳이었다. 몸이 허약한 사람은 튼튼해지기 위해, 몸만들기 가 중 요한 운동선수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렇듯 마 장동은 예부터 힘의 상징이었다. 무거운 고기를 옮기고 빠르게 도축해야하는 칼 기술 덕분에 힘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소 위 마초 적인 분위기의 이곳엔, 당연히 힘자랑이 따라오게 마련. 한국 프로레슬링 전성시대의 시작인 1960년대, 프로레슬러들은 양동이에 담겨 거품이 바글바글 나는 소피를 즉석에서 몇 사발씩 퍼마시곤 했다. 그리곤 바로 옆의 우시장으로 뛰어가 수도( 手 刀 ) 로 소머리를 내리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있는 소를 기절시키 곤 즉석에서 쇠뿔을 뽑는, 대단히 기이하고도 위험한 힘자랑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로레슬러들이 마장동을 찾는 날에는, 또 다른 구경거리가 하나 생기는 셈이었다. 조직폭력배가 득세하던 1980년대, 조폭들은 서울시내 이곳저곳의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보호 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이 일상이던 그들은, 역시나 마장동

190 도 접수 하기 위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장동 상인들 이 누구인가. 매일 옮기는 무거운 고깃덩어리에 단련되고, 재빠르 고 정확하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 직업인 마장동 상인들. 감히 그 들을 당해내지 못했던 조폭들은, 매번 피해만 입고 도망치기 일 쑤였다. 여전히 마장동은 조폭들의 영향권 밖이다. 고기가 덩어리 단위로 보관되다보니,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도둑 들도 많았다. 여러 명의 도둑이 조를 이루어 가게를 털다가, 새벽 부터 일하러 나온 상인에게 고기 다지는 망치에 뚜드려 맞아 다 쳤던 일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도둑이 되레 상점 주인을 폭행 으로 고소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피다방도, 쇠뿔을 맨손으로 뽑는 프로레슬러도 없다. 하지 만 언젠가 한 번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가본다면, 축산물시장 특유의 공기와 내음, 그리고 그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근육질 의 아저씨가 화려한 칼솜씨와 함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척 척 다듬고 있다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미소로 당신을 맞이할 것 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마장동먹자골목 위치 : 성동구 마장동 이야기 태그 : 마장동, 마장동 축산물시장

191 5. 실수의 미( 味 )학, 무교동 낙지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음식의 판도가 바뀌었다. 탕 반가에서 장국밥을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무교동의 무교 탕반이 크게 유명했는데, 장시가 크게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교탕반 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헌종(1834~1849년)도 사복 을 입고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서울 내 최고급 대중음식점이었 기 때문에, 조정의 양반들은 종에게 사방등( 四 方 燈 )을 쥐어준 채 드나들 정도로 이 탕반집이 인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몰려들다보면, 음식이 발전하고 시장이 번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점점 대중화 되고,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며, 일반 서민이나 보따리장수들까지 찾아 와 먹게 된 것이다. 많은 보따리장수들도 이 무교동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엔 물론 소금장수도 있었다. 가격이 싼 낙지 역시 음식에 사용됐다. 1900년대 초 당시엔 낙지 를 데치거나 국 끓여 먹는 게 전부였는데, 무교동낙지의 원조 격 으로 불리는 박 할머니가 술안주로 시험 삼아 내놨던 매콤한 낙 지볶음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이를 본 딴 낙지볶 음집이 여럿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때, 무교동 장터를 드나들던 한 소금장수가 실수로 가게에 사 카린을 두고 자리를 뜬다. 하지만 당시, 사카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소금장수가 놓아두고 간, 소금 과 비슷하게 생긴 사카린을 아무 의심 없이 음식에 사용했다. 특유의 매콤함에 단맛이 더해지자, 손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

192 다. 그렇게 무교동낙지의 맛은 발전했고, 다양한 시도와 함께 첨 가하는 재료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실수는 세상의 많은 일을 만들어낸다. 하드 로 불리는 아이스크 림, 나일론섬유, 포스트잇, 페니실린 등도 그렇다. 낙지볶음 특유 의 매운 맛에 단맛을 추가했을 때, 그 실수가 대중의 환영을 받 게 된 것은 어쩌면 세상의 이치일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욱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무교동 낙지. 이제는 많은 가게들이 무교동 사거리 근처로 이전했지만, 그 맛의 명맥만은 유지하고 있다. 언제 생각해도 군침 돌게 하는 음식, 한 번쯤 직접 무교동 사거리를 돌아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옛날, 실수로 사카린을 넣었 던 집을.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무교동 낙지골목 위치 : 중구 무교동 이야기 태그 : 무교동, 무교동 낙지

193 6. 알몸으로 시작, 완전군장 실시 이상 무! 남대문시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밀리터리 룩 이 어느새 패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위장색의 멋있음을 알게 된 것일까. 그 때, 많은 젊은이들은 개성 있는 밀리터리 룩을 원했고, 그런 그들 이 하는 소리는 늘 같았다. 남대문 PX를 가봐. 군대에만 있는 PX가, 일개 시장에? 그런데, 남대문엔 정말로 PX 가 존재했다. 수많은 군용품과 밀리터리룩이 즐비한 곳. 군용 보 급품을 용도별로, 국가별로, 패션별로 골라서 살 수 있었다. 덕분 에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밀리터리룩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도대체 남대문시장은 무엇 하는 곳이기에, 없는 게 없는 것일까? 각종 유명브랜드 의류, 식품, 주류 등, 모든 종류의 물품을 취급 하는 이곳 남대문시장. 역사를 되짚어보면, 1400년 초로 거슬러 오르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각종 대화재까지 겪으면서도 꿋 꿋하게 살아남은 이곳은, 현재 대지면적 2만 467m2, 건물연면적 6만 4613m2에 종사자수가 9,900명으로 서울 최대의 서민시장이 다. 노점상에서부터 현대식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추고 있 으며, 점포수만 5,400개이고 시장노점상 또한 빽빽이 들어서 있 다. 게다가 모든 품목이 전국적이어서, 우리가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품의 상당수는 다 남대문시장을 거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칵테일이 대중화되기 직전. 소수만 즐기는 주류 다보니 칵테일의 원료가 되는 술 종류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 때 는 남대문을 찾으면 됐다. 시장골목 굽이굽이 들어가면, 이름만 댔다 하면 척, 들이밀곤 했다. 모르는 종류가 없던 그 상인들은,

194 칵테일을 구하는 바텐더보다 더 전문가다워 보였다. 거래되지 않는 상품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남대문시장. 전국을 지배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합시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설이 현대화되고 도 소매가 체계화되면 서, 앞으로의 발전 잠재력이 더욱 주목되는 곳이다. 고양이 뿔 빼놓고서는 남대문시장에서 찾으면 다 나온다. 는 말 이 있으며, 남대문에 오면 일개 사단병력이 알몸으로 들어갔다가 완전군장하고 나온다. 는 말이 있을 만큼 다양한 물품과 함께 유 구한 역사가 녹아있는 이곳, 남대문시장. 자신이 뭐가 필요한지 모를 땐, 무작정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많은 물건들을 다 보다 보면, 문득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남대문시장 위치 : 중구 남창동 이야기 태그 : 남대문, 남대문시장, 밀리터리룩

195 7. 세계가 매료된 이태원 양복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영화배우 스티븐 시걸, 육 상선수 칼 루이스,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해 UN군 총사령관 등 의 장성들이 정장을 맞춰 입고 만족한 곳이 바로 서울에 있다?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양복점들이 바로 그곳이다. 미군부대에 인접한 덕에 이태원은 일찍이 외국 문화에 익숙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었고, 97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한국문화와 외국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태원은 섬유와 패션산업의 발달로 인해 전성기를 맞 이했다. 주둔중인 미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인의 체형에 맞춘 양장점, 큰 옷, 보세 제품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 특히 미군들은 본국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맞춤 양복에 매력을 느꼈다. 또한 미 군들은 기성복에서 치수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맞춤 양복은 더 욱 인기가 많았다. 두세 벌은 기본이고 열 벌씩 맞춰 가는 사람 들도 많아서 이태원 양복점들은 1인 수출기업과도 같은 외화벌이 를 했다. 당시 영어가 통하는 지역은 이태원이 유일했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에게는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안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을 높였다. 이렇게 가격 경쟁력과 외국어 구사의 능력을 갖추며 시작된 이태 원 양복점의 신화는 높은 품질을 갖추면서 정점을 이루게 된다. 당시에는 이태원에만 100개 정도의 양복점이 있었을 정도. 초창 기에는 양복점 하나당 직영공장 하나를 가지는 것이 당연했을 정 도로 매출은 고공 행진을 벌였다

196 무엇보다 외국인에게 자국에서의 맞춤양복은 흔하게 접할 수 없 는 고급문화이기 때문에 치수와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고, 20~3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인 이태원의 맞춤 양복은 오늘 날에 도 인기가 많다. 주 고객층은 각국 대사관이나 외국계 금융기관 직원들부터 시작해 일반 관광객들까지 다양하다. 외국인들 사이 에 입소문이 퍼지다 보니 관광을 위해 잠깐 한국에 들러도 꼭 방 문해야할 명소가 되었다. 매력적인 가격 경쟁력, 뛰어난 품질을 보장하는 장인들의 실력으로 이제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 라 사람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다. 이태원역 4번출구에서 녹사평 역 3번 출구에 이르는 이태원로는 외국어 간판이 붙은 양복점들 이 늘어서 있어 여전히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 앞으로도 이태원은 외국과 한국의 접점으로 이색적인 모습을 더 욱 발전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접점 속에서 발전한 양복점 들처럼, 한국인의 재능과 솜씨가 외국에 소개되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이태원 패션거리 위치 : 용산구 이태원 이야기 태그 : 이태원, 이태원 맞춤양복, 이태원 패션

197 8. 사랑을 타고 오는 재래시장, 방산시장. 작은 아이디어가 큰 변화를 일으키곤 한다. 바로 여기 방산시장 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은 아이디어가 있다. 손수 초콜릿 을 만들어 보았거나, 방향제를 만들어 본 사람들은 방산시장이라 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방산시장이 DIY 초콜릿과 방향제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방산시장이 처음부 터 초콜릿을 파는 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베이킹 용품을 파는 곳 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었다. 방산시장은 도매시장으로 대부분의 제품을 대량으로 가게에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곳이었고, 대게는 도배와 벽지를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방산시장을 변화시킨 아이디어는 어느 중학생 꼬마의 머리 에서 나왔다. 발렌타인데이가 가까워져오는 어느 날이었다. 가게 를 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아들이 찾아왔다. 직접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생 초콜릿을 친구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 소분하고 있 던 아들은 문득, 이렇게 소분해서 판매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아버지는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도매 가격으로 사온 생 초콜릿을 조금씩 소분해서 저렴하게 판매한다 는 것을 인터넷에 올렸다.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특별한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던 젊 은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초콜릿을 소분해서 대박이 났다는 소문 은 삽시간에 퍼졌고, 다음해에는 주변의 다른 상점들도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 초콜릿을 팔기 시작했다. 그 이후, 방산시장에는 초 콜릿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갖춰서 파는 상점이 늘어났 다. 초콜릿과 장식, 포장용기까지 방산시장 안에서 모든 것을 저 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작은 아이디어가 방산시장에 젊은 여

198 성들이 찾아오도록 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시장은 활기 를 띄었다. 젊은 여성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였고, 방산시 장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시장으로 변모하였다. 요즘은 초콜릿뿐만 아니라, 방향제의 인기를 타고 방향제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재료를 파는 곳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방산시장에 가면 세계의 모든 향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로 많은 향을 직접 맡아 볼 수 있다. 요즘은 시중에 나와 있는 것보다 자 신의 개성을 살리고, 나만의 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고 한다. 방산시장은 종로 5가역 광장시장 뒤편으로 자리해 있다. 워낙 넓 고 볼거리가 많아서 편안한 운동화와 충동구매를 억제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떠나기를 당부한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방산시장 위치 : 중구 을지로 이야기 태그 : 방산시장,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199 9. 노량진 수산시장의 변신은 계속된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하루 3만 명의 소비자가 이용하는 국대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으로 1,200여개의 점포들이 40년 넘게 그 명성 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2,2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시설을 현대화시키면서 재래시장의 불편함과 위생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노량진 시장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시작은 경강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 의 줄기 중에서 한양 근처를 흐르는 강을 조선시대에 경강( 京 江 ) 이라고 불렀는데, 이 경강의 포구에 어선들이 들어와 사대문 안 의 시장으로 수산물을 넘겼다. 이러한 경강 포구의 시장을 경강 시장이라고 불렀고 용산, 마포, 노량진, 동작진, 서빙고 등에 장 이 섰다. 이렇듯 융성하던 경강시장은 구한말,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생기면서 쇠퇴하게 된다. 이후 1905년, 서울역 앞에 경성수산이라는 이름의 수산물 도매시 장이 생기며 원시적 형태의 어물전에서 수산물 전문 시장으로 변 모하게 된다. 이후 여러 시장과의 통합을 거쳐 1927년 경성부 수 산시장이 되는데, 그 경성부 수산시장이 지금의 노량진으로 자리 를 옮긴 것이 1971년의 일이다. 본격적인 노량진 시대의 시작이 다. 1971년 한국냉장이 노량진역 북쪽의 현 위치에 근대화된 도매시 장을 건설하여 1975년까지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수산 업협동조합이 시장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서해 의 수산물 뿐 아니라 새벽 물차를 타고 싱싱한 수산물들이 전국 각지에서 노량진으로 몰려든다

200 최근 시설 현대화를 마치며 새로운 문화관광 도매시장으로 도약 하려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전시장과 테마열차, 옥상 야외무대 등 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수산시장의 변신은 여기에 머물지 않 는다. 수협중앙회는 1조3,000억원을 투입해 지상 52층짜리 복합 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인데, 이곳에는 호텔과 컨벤션, 해양수산테 마파크, 카지노, 쇼핑시설, 워터파크, 공연장, 멀티플렉스 등이 들 어서 단순한 도매시장을 넘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포부 를 키우고 있다. 흔히 이른 새벽 노량진 수산 시장에 가면 재벌가 며느리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산물의 신선함은 서울에서 최고라 고 볼 수 있다. 상전벽해와도 같은 현대화 바람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신선함을 자랑하는 수산물의 품질일 것이다. 수산시장의 본분인 신선한 품질 유지에 더불어 노량진 수산시장 의 끊임없는 변신은, 오래도록 사랑받는 확실한 이유가 되고 있 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시장 먹거리 위치 : 동작구 노량진 이야기 태그 : 노량진, 노량진 수산시장, 경강상인

201 10. 전문적이야, 서울 시장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그 나라의 사람과 경제를 보고 싶으면 제일 먼저 시장에 가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조차 다 가보지 못한, 하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서울에만 있는 시장들. 없는 게 없다는 것이 보통 시장의 모습이라지만, 특이하 게도 서울의 시장들 중 몇 곳은 특유의 전문성을 자랑한다. 건어물 전문 중부시장. 오장동에 위치한 중부시장은 국내에서 가 장 큰 건어물 전문 도매시장이다. 50년대 후반에 동대문과 남대 문에서 밀려난 상인들을 시작으로, 60년대가 돼 건어물 상인들이 대거 모여든 것이 시작이다. 삼면이 바다인 작은 반도 형태의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해산물 을 가까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늘 보관이 문제였고, 절여서 보 관하는 방식의 젓갈과, 또 하나는 말려서 보관하는 건어물이 발 달하게 된 것이다. 마장동 축산시장. 각종 고기 뿐 아니라, 근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들고 상차림비만 내면 맛볼 수 있는 식당까지 즐비하다. 선물 용으로도, 직접 먹으러 가기에도 제격인 마장동 축산시장. 질 좋 은 고기를 이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은, 서울 안 에서 또 찾기 힘들 것이다. 해산물은 단연 노량진 수산시장이 가장 크고, 가장 많고, 가장 유 명하다. 이곳도 마장동처럼 직접 해물을 골라 사다가 상차림비만 내고 바로 맛볼 수 있는 식당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다만 전 세 계 어딜 가더라도, 시장 특유의 바가지는 조심해야 하는 법. 적당

202 한 조사와 공부는 필수! 황학동 벼룩시장은 중고품이 가득해 볼거리가 많다. 청계천에서 떠내려 온 물건들을 판매하던 것으로 시작됐다고 보는 이곳은, 발품만 잘 팔면 정말 좋은 제품을 아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한 번 들어가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들 한다. 중고품 을 관리해놓은 만큼 손 때 타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에, 꼭 물어 보고 만져야 한다. 그리고 서울엔 정말 특이한 시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약재 거대 시장인 서울약령시 이다. 국내 한약재 거래량의 약 70%를 점유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은 정식명칭인 서울약령시보다 경 동시장에 더 익숙한 곳이다. 온갖 종류의 약재와 가게가 즐비한, 하루 만에 다 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한약재 시장이다. 서울의 시장은 마치 장르가 나뉘듯 고유의 성질을 가진 곳이 많 다. 무엇보다 용도와 입맛에 맞게 찾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이다. 연인의 데이트코스로, 아이들의 살아있는 교육으 로, 가족의 의식주 해결로, 사람 냄새 나는 풍경으로, 그 어떤 목 적으로도 찾을 수 있는 서울의 시장들.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인 시장엔, 배울 것도, 먹을 것도, 느낄 것도 많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이 시장들은, 서울의 자랑거리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다양한 전문시장들 위치 : 중구 이야기 태그 : 서울의 시장, 전문시장, 중부시장, 마장동 축산 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황학동 벼룩시장, 서울 약령시

203 11. 서민의 삶을 달래준 시장 먹거리 전통시장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먹거리에 있다. 떡볶이 같은 분식부터 육회나 빈대떡 같은 별미까지. 대형 마트가 즐비한 오 늘 날에도 전통시장이 그 명맥을 이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맛있는 먹거리들 때문일 것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열광하는 시장 먹거리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지하철 1호선 종로 5가역에 인접한 광장시장은 국내인은 물론 외 국인들의 유명 관광코스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 룬다. 광장시장은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인들이 남대문시장 등 서 울의 상권을 장악하자 국내 상인들이 1905년 관련 허가를 받아 세워진 이후,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최초의 사 설 상설시장이다. 오늘날의 광장시장은 구제 의류, 한복, 수입식 품 등 최초의 상설시장답게 다양한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데, 미로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 상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하다. 족발, 비빔밥, 순대국, 떡볶이 등 서민적인 먹거리로 넘치는 광장 시장의 대표 음식은 저렴한 가격의 빈대떡과 육회, 마약김밥이다. 그 중에서도 2012년 세계적 영화감독 팀 버튼도 반했다는 빈대 떡이 인기가 많다. 녹두를 갈아 고소함을 최대한 살려낸 노릇노 릇한 빈대떡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은 이전세대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찰떡궁합. 먹거리로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인근에 위치한 남대문시장도 빼 놓을 수 없다.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 형태로 출발한 남대문시장은 1964년 건물주와 땅주인, 상인들이

204 공동 출자한 주식회사의 형태로 오늘에 이르게 됐다. 1만여 점포 에서는 의류, 주방용품, 식품 등 1,700여종이 거래되고 하루 방 문객만 40만~50만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도 서민적인 음식들이 많은데, 양은냄비에 담겨 나오는 갈치조림, 칼국수, 족발, 곰탕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남대 문시장은 '한류 먹거리 특화거리(K-food street)'가 조성되어 외 국인 관광객들의 입맛마저 사로잡을 예정이다. 이밖에도 종로구 통인시장의 기름 떡볶이, 영등포시장의 순대국, 종로의 생선구이 등 전통시장에는 어김없이 맛있는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음식들이 하나같이 저렴하고 양이 많은 식 사대용 음식인 것들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서민층 이 싼 값에, 좁은 자리에서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몸을 따뜻 하게 하고 피로를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음식들이기 때문일 것 이다. 전통시장의 먹거리는 이렇듯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서민들 의 소울푸드 로 사랑받고 있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시장 먹거리 위치 : 중구 이야기 태그 : 시장 먹거리,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통인시장, 영등포시장

205 12. 멋쟁이 DJ오빠가 있던 맛있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 신당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떡볶 이일 것이다. 매콤하고 달큰한 맛이 일품인 떡볶이. 어딜 가나 손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분식하면 떡볶이라고 할 만큼 누구 나가 다 아는 음식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떡볶이하면 신당동, 신 당동 하면 떡볶이라는 공식은 깨질 줄 모른다. 떡볶이의 시작이 신당동도 아닌데 왜 유독 신당동 떡볶이는 그렇게 유명한 것인 가. 그 이유는 바로 양념장에 있다. 신당동 떡볶이의 양념은 조금 특별하다. 중국집에서 가래떡을 우연히 자장면 그릇에 떨어뜨렸 는데, 춘장이 묻은 떡이 생각보다 맛이 좋았고, 고추장에 춘장을 섞은 양념을 시도했다고 전해진다. 신당동 떡볶이 가게가 인기를 끌면서 어느새 신당동에는 떡볶이 골목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70년대 신당동 떡볶이 집에 DJ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을 알고 있는가? DJ는 Disk Jockey의 줄임말로 흔히 음악으로 청취자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60년대에서 80년대 말까지 음악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선곡하고 틀어주며 인기를 끌었다고 한 다. DJ들의 요건이라면, 화려한 언변과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이 있다. 그런데 신당 동 떡볶이 집 마다 있었던 DJ들의 제 1의 요건은 바로 외모였다. 소녀 팬들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곤 했는데, 방과 후 마다 DJ를 보려고 몰려오는 소녀 팬들이 상당했 다고 한다. 소녀 팬들은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DJ오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는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DJ들은 음악을 직접 선

206 정하기도 하였지만, 신청곡을 틀어주는 일이 많았다. 소녀 팬들은 DJ오빠들에게 음악을 신청하며 몰래 자신의 마음을 신청곡 쪽지 에 써 보내기도 했다.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DJ는 신당 동 떡 볶이 타운 내에서 대접이 달랐다고 하는데, 가게마다 서로 인기 높은 DJ를 모셔 오기위해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이제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서 DJ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지 만, 여전히 DJ로 현역 활동 중인 명물 스타가 있다. 바로 DJ 허 리케인박이다. 그는 DJ.DOC의 노래 허리케인 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전히 DJ박스를 지키며 음악을 틀어주며 손님들의 향수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하며 찾아오는 손님 에게는 추억을, 그 시절을 궁금해 하는 청년들에게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심어주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DJ 오빠를 만나러 가보는 것이 어떨까? 맛있는 떡볶이는 물론 함께 하는 것으로.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DDP, 주변 시장, 먹을거리 위치 : 동대문구 이야기 태그 : 신당동, 신당동 떡볶이, DJ가 있는 신당동 떡볶 이 타운

207 엔터테인먼트 1. 주체할 수 없는 끼, 버스킹 홍대 2. 너와 나의 사랑의 연결고리, 남산의 자물쇠. 3. 아기 공룡이 사는 쌍문동 4. 불멸의 명작, 아리랑 촬영지 아리랑고개. 5. 남산에 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다! 6. 서울의 다양한 영화관, 이제는 각자의 길로 7. 유령역에 유령보다 더 자주 출몰한다는 것은? 8. 악기시장계의 기네스북, 낙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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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1. 주체할 수 없는 끼, 버스킹 홍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신촌으로부터 조금씩 밀려온 라이브카 페들은 홍대에 자리를 폈다. 라이브시설을 갖춘 술집이 늘어나면 서 음악 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그리 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젊은이들은, 즉석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남의 욕망을 따르지 않은 채, 스스로의 만족과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젊은이들.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들을 뜨거운 열정을 식힐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정은 더 이상 갑 갑한 실내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천정이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야외무대로, 놀이터로 점점 퍼져나갔던 이 젊음의 열기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홍대 버스킹 의 시작이 된 것이다. 2014년,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 이승철이 직접 버 스킹에 나섰다. 할아버지 분장을 한 채, 노래실력을 뽐내는 가 수 의 모습이 익살맞으면서도 멋들어진다. 처음엔 고령의 할아버 지인 겉모습에 관객들도 의아해 하지만, 이내 그의 노래실력에 젖어들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손을 모은 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마친 이승철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리를 벗어난다.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홍대 버스킹. 이제 길거리 음악연주는 더 이상 생소한 광경

210 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공감대가 이미 자 리 잡은 것이다. 버스킹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각종 음원차트를 석권한 것은 벌써 오래된 얘기. 이제 단지 딴따라 혹은 광대 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예술인들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홍대에 위치한 많은 술집들은, 버스킹이 잘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명당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제 전국 각지에서 구경 오게 만드는 홍대입구 길. 기타 하나 둘러메고 노래하는 사람부터, 춤추는 사 람들에 마술하는 사람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열정과 에너지 를 온몸 가득 받고 싶다면? 거닐어보자, 버스킹 홍대를.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위치 : 마포구 홍대 앞 일원 이야기 태그 : 홍대, 버스킹, 예비스타, 홍대 앞 길거리

211 2. 너와 나의 사랑의 연결고리, 남산의 자물쇠.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가 있다. 바 로 남산 N 타워이다. 남산에 올라오는 연인들의 모습은 달라도 하나같이 주머니에 준비해 오는 것이 있다. 영원하 사랑을 약속 하는 자물쇠 이다. 남산 N 타워에는 유명한 사랑의 자물쇠 나무 가 있다. 연인들은 사랑을 맹세하며 나무에 자물쇠를 걸고, 아무 도 열지 못하게 열쇠로 잠가버린다. 처음 사랑의 자물쇠는 남산 N타워의 철조망이었다. 연인들이 자물쇠를 매달고 열쇠를 남산 아래로 던져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시작이 되었다. 그 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물쇠를 매달고, 열쇠를 던지는 바람 에 철조망이 휘어지고 환경오염의 우려가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랑의 자물쇠 나무이다. 환경오염과 안전사 고의 위험을 덜면서 좋은 추억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사랑의 자물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자물쇠의 무 게 만 해도 6톤이 넘는 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사랑의 무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남산 N 타워를 찾아오는 연인들이 글로벌해졌다 고 한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바로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의 촬영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남산 N타워 이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훌륭하고 이색적인 장소일 것이 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주머니에 자물쇠를 챙겨와 사랑을 약속하 고 행복한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고 한다. 이렇게 전 세계 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남산 N타워가 사실 은 옛날부터 유명했던 신혼여행지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해외로

212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결혼식을 마친 신 혼부부들이 남산으로 신혼여행을 오기도 했다. 특히 지방에 살던 신혼부부들은 서울로 신혼여행을 와서 남산을 둘러보는 것이 필 수 코스이기도 했다. 남산의 멋진 N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 고, 서울의 야경을 둘러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마무리 했다. 이 런 것을 보며, 남산의 N 타워가 요즘 젊은이들만 사랑을 속삭이 는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남산공원, N서울타워, 케이블카 위치 : 중구 남산공원/용산구 N서울타워 이야기 태그 : 남산, 남산자물쇠. N서울타워, 요우커

213 3. 아기 공룡이 사는 쌍문동 극지방의 빙하가 갑작스런 균열을 일으킨다. 거대한 빙산 한 조 각이 떨어져 나오더니, 바다를 떠나 대한민국의 한강으로 흘러들 어온다. 서울시민들은 거대한 빙산의 등장에 깜짝 놀란다. 시민들 에 의해 뼈대만 남은 얼음조각 중에는 아기 공룡 한 마리가 잠들 어 있다. 이 공룡은 서울 시내의 한 개천까지 떠밀려와 어린 소 녀에게 발견된다. 그것이 애니메이션 속 아기공룡 둘리와 영희의 첫 만남이다. 이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 현재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우이천이다.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만화잡지인 보물섬 4호에 첫 연재를 시작했다. 1억 년 전 빙하기 얼음 속에 갇혔던 둘리가 쌍문동 고 길동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배경이 쌍 문동인 이유는 당시 김수정 작가가 쌍문동 우이천변에서 살았기 때문. 만화 속에는 배경이 쌍문동임을 알리는 여러 단서가 나온 다. 쌍문슈퍼 라는 가게가 등장하고, 고길동이 본인을 쌍문동 하이에나 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쌍문동 스타 라고 자신을 소개하 는 마이콜을 봐도 그렇다. 그동안 쌍문동 주민 고길동씨 집에서 더부살이하던 둘리가 32년 만에 자기 집을 마련했다. 2015년 7월 24일 도봉구가 둘리를 모 티브로 한 둘리뮤지엄을 오픈한 것이다. 도서관과 뮤지엄 두 개 의 건물로 이뤄진 둘리뮤지엄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면적 은 1255평에 이른다. 토종 만화캐릭터로 조성한 기념관 중 국내 최대 규모다. 둘리뮤지엄을 시작으로 쌍문동 일대가 둘리테마파크로 거듭날 예

214 정이다. 도봉구는 쌍문동 둘리근린공원을 중심으로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테마거리, 우이천변전망데크 등을 조성하는 한편, 둘리뮤지엄과 가까운 지하철 4호선 쌍문역을 둘리테마역사 로 만들어 둘리역 이라는 역 이름을 쌍문역과 병행 표기 하는 것 을 추진하고 있다. 둘리마을로의 변신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우이천변 둘리벽화. 도 봉구는 둘리 탄생 배경을 담은 만화 내용을 총 380m 길이 벽면 에 담기로 했다. 단일 주제로 380m까지 이어지는 벽화는 서울시 최장이다. 둘리는 1억 년 전에서 오긴 했지만, 처음 연재됐던 1983년 4월 22일을 생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기도 했다. 그것이 2003년 의 일로, 한국 만화 캐릭터로는 최초이다. 이토록 전 국민적 사랑 을 받게 된 둘리에 대한 쌍문동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2009년 2월까지는 쌍문동의 동사무소에서 둘리와 친구들의 이름 이 올라있는 호적등본까지 받아 볼 수 있었을 정도. 앞으로도 쌍 문동의 둘리 사랑은 계속될 예정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둘리 박물관 위치 : 도봉구 쌍문동 이야기 태그 : 쌍문동, 둘리, 둘리박물관, 한국만화

215 4. 불멸의 명작, 아리랑 촬영지 아리랑 고개. 명작은 어떤 형태로든 후대에 큰 영향을 주면서 길이길이 남기 마련이다. 영화 촬영지에서 한 지명의 이름이 될 정도의 영향력 이 컸던 명작 영화 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촬영지 였던 곳은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고 한다. 이 곳은 정릉고개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영화 아리랑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아리랑 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아리랑 고 개는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곳으로 쓰이는 명칭이다. 이별 과 그리움, 혹은 봇짐을 이고 지고 힘겹게 넘어가던 고개를 말한 다. 우리 민족은 삶 속에서 고난과 고통의 역사와 이를 극복하려 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1926년 9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종로의 단성사에서 개봉하 였다. 많은 시민들이 나운규의 아리랑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무 대 앞까지 난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혼란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들이 극장 앞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 있다고 한 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되 고 있다. 나운규는 이 작품에는 원작, 각색, 주연, 감독 까지 모 두 혼자 맡았다고 한다. 특히 일제에 항거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 민족의식을 잘 나타내었다고 한다. 나운규는 외국의 영화를 보고 기법을 배워서 자신의 영화에 실험을 해 보곤 했다고 전해 진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성영화를 기획 한 것도 나운 규라고 한다. 나운규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식민통치의 억압과 수탈에 대

216 한 저항, 통치권과 결탁한 자본가에 대한 비판에 것을 드러냈다. 아리랑고개를 지나는 도로인 아리랑고개는 돈암사거리를 기점으 로 하고 동소문동 과 돈암동을 지나 아리랑시장 앞까지에 이르는 폭 15m, 길이 1,450m의 도로이다. 지선도로인 아리랑고개는 서 울시내에서 대로나 로 길이 아닌 고개로 불리어지는 유일한 도로 이다. 그만큼 아리랑고개는 유서 깊고 우리에게 친근한 고개로 남아 있다. 한편 성북구에는 1997년 9월에 조성된 영화의 거리가 있다. 역대 영화 포스터들과 비석이 이 곳이 영화에 거리라는 것 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아리랑고개를 영화전문거리인 영화의 거리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영화의 거리는 나운규가 이 고개에서 영화 아리랑을 촬영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아리랑 고개, 영화의 거리 위치 : 성북구 돈암동 이야기 태그 : 아리랑, 나운규, 아리랑고개, 단성사

217 5. 남산에 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다!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만화라면 몰래 숨어서라도 읽었 고,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도 아침에 하는 TV 만화는 놓치지 않 고 봤었다. 이렇게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가 보면 좋은 곳이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남산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이다. 애니메이 션 센터에 가면 입구부터 다양한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들이 방문 객들을 환영한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토종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이 있는데, 역시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는 뽀로로라고 한다. 뽀 로로를 보고 울던 아이도 뚝 그치고 달려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뽀로로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타요, 라바, 딸기,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실 제와 비슷한 크기로 전시되어있다. 특히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는 직접 다양한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4d 체험관이나, 플레이 모빌 전시,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고 한 다. 또한 만화영화 상영관도 갖추고 있으며, 만화 박물관과 도서 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스 톱모션 방식으로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흥미 있는 체험관이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식을 그대 로 볼 수 있으며,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을 간직 할 수 있기 때문 에 추억을 만들려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찰흙을 이용해서 캐릭터를 만든 후, 애니메이션 촬영 세트에서 직접 이야기를 꾸 미고, 촬영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 구경 오는

218 입장객의 대부분은 어린 아이들과 학부모이지만, 어린 시절을 추 억하며 친구들과 놀러오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는 다수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입 주해 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센터의 지원을 받아서 뽀로로와 라바같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의 공간에서 준비를 한다면, 언젠가는 세계를 놀래 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는 명동역과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 사 이에 위치해 있다.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어른들 에게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 방문해 보자.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위치 : 중구 소파로(예장동) 이야기 태그 :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

219 6. 서울의 다양한 영화관, 이제는 각자의 길로 흔히들 말하는 영화의 거리, 충무로.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가 된 이유는, 영화 관객이 몰리는 주요 극장이 이곳에 다 있었기 때문 이다.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 장, 스카라극장 등 당시 굴지의 개봉관들이었던 주요 극장이 충 무로, 종로 일대에 밀집해 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영화 배급시장은 단관개봉(하나의 영화를 하나의 영화관에서만 개봉)이었다. 그 후 반응 좋으면 다 른 극장에서도 개봉하고, 점차 퍼져나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구조 였다. 당시는 극장마다 소유주가 달랐는데, 때문에 극장주마다 고 르는 영화의 취향이 달랐다. 그러다보니, 각 영화관마다 모이는 관객 역시 취향 따라 모이게 된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대한극장 취향이라면, 다른 사람은 피카디리 취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관별로 장르에서 취향까지 구분되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마음에 드는 영화 가 있으면, 단지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 는 경우도 잦았다. 많은 극장은 배급시장의 변화와 멀티플렉스의 출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계보를 이어가며 특유의 분위기를 자 랑하는 곳도 있다. 아트시네마가 있던 기존 허리우드 극장은, 낙 원상가 안에서 실버영화관으로 바뀌어 운영 중이다. 피카디리는 롯데시네마와 합병하여 멀티플렉스로 탈바꿈했다. 이름도 롯데시 네마 피카디리 로 바뀌었다. 근처에 있던 단성사는 109년의 역사 끝에 사라지게 된다

220 충무로의 대한극장 역시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하였지만, 또다시 자신만의 이름을 내걸고 대한극장 으로서 꿋꿋이 역사를 유지하 고 있다. 종로의 서울극장은 이제 예술영화관으로 거듭났다. 낙원 상가에 있던 서울 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 자리로 옮겨와 예술영 화관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독립영화 전용관인 인디스 페이스가 자리해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해내고 있 다. 시간이 흐르며 만물이 변하는 것은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 어 쩌면 아쉬울 수도 있는 이런 변화들이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모습 아닌가. 오랜 기간을 버텨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곳 영화관들. 옛날 영화광들은 기다리 던 영화 하나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는데, 언제라도 꼭 한 번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서울의 오래된 영화관 위치 : 종로, 충무로 이야기 태그 : 서울의 오래된 영화관,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 극장, 서울극장

221 7. 유령역에 유령보다 더 자주 출몰한다는 것은? 천 만 서울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승강장 아래 아무도 사 용하지 않는 또 다른 승강장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된 이 승강장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곳을 우리는 유령 역이라고 부른다. 이름만으로도 오싹하고 비밀스러운 이곳은 바로 서울 지하철 2호 선 신설동역에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 승강장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보라색 철문이 있다. 유령 역으로 가기 위해서 는 굳게 닫힌 보라색 철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이곳이 유령 역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이다. 그 흔한 안내문구나, 표지판도 걸려있지 않은 이 철문을 밀고 들 어가면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좁고 어두운 통 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실 특유의 습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가 훅 하고 올라온다. 이곳은 1974년 완공 되었지만, 노선 변경 등의 문제로 아무도 사 용하지 않았다. 그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자 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 잊혔고, 아무도 모르는 유령 역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낯선 이곳은 사실 영화,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는 이미 너무도 유명한 공간이라고 한다. 70년대 완공 당시의 모 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공포 영화의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도 제격이라고 한다. 특히 어느 지하철역에나 설치 되어있는 스

222 크린 도어가 없는 것도 이곳의 분위기를 색다르게 하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최근 유명 인기 아이 돌 엑소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였고, 드라 마 스파이, 영화 감시자들 역시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현 재는 시민들이 이 유령 역을 직접 들어가서 둘러 볼 수는 없지 만,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가 되고 있는 만큼 한 번 쯤은 이곳을 보았을 것이다. 신설 동 역의 유령 역은 평소에는 군 차량 기지의 통로로 이용되 어 있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이 역을 지하철 박물관이나 개방형 촬영 장소로 만들어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일반 시민들도 유령 역을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신설동역 영화촬영지 위치 : 동대문구 신설동 이야기 태그 : 신설동 유령역, 영화촬영지

223 8. 악기시장계의 기네스북, 낙원상가 윤도현이 영화 주연을? 신해철이 OST를 맡고, 윤도현이 배우로 등장했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영화 <정글스토리>. 이 안에서 주인공 도현은 뮤지션이다. 당시 음악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처럼, 영화 속의 그 역시 일단 상경해 취직한다. 그 주인공이 취직한 영화적 배경이 바로 이곳, 악기의 고향 낙원상가이다. 악기를 다루며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사람들이 모인 이곳. 그런 이유로, 낙원상가의 르네상스 시절, 악기를 사러 온 사람들의 또 다른 재미는 상점 직원들의 화려한 시연이었다. 웬 만한 뮤지션들 뺨치는 실력으로, 음악인을 꿈꾸며, 숱하게 다뤘을 그 악기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낙원상가 2~3층에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업주는 227명, 악기상 은 모두 240개. 세계 어느 곳에도 낙원상가처럼 악기만을 파는 대형공간은 없기에,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기타에서 더욱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낙원상가인데, 부활의 김 태원도 툭하면 이곳을 찾기로 유명하다. 악기 직수입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 깁슨Gibson이라던가 마틴Martin같은 고급 외제 브랜 드의 기타는 낙원상가가 아니면 살 수 없었다. 악기전문상가로 피아노, 바이올린, 통기타, 전자기타, 색소폰 등 국내에서 유통되는 악기는 거의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초창기 낙 원상가에는 극장, 캬바레, 당구장, 볼링장, 다방 등이 몰려있었고 연예협회 산하 단체들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명소로 자 리 잡았다. 종로, 명동, 광화문 일대가 문화의 중심지이던 1970 년대였고, 게다가 상가 2층은 음악인들이 연주자 일자리를 구하

224 러 모이는 곳이었기에 최대의 악기 전문상가 뿐만이 아닌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낙원동 일대의 쇠락과 함께, 볼링장, 당구장, 다방 등은 사라졌 다. 하지만 악기상가만큼은 여전히 독보적인 곳으로 젊음을 자랑 하며 남아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성지이자, 유구 한 역사가 살아있는 낙원상가. 전국의 악기 수요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음악인 이라면 꼭 한 번 찾아와 기를 받아야 하는 곳이 다. 이제는 이곳의 역사만큼이나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많이 높아 져, 전통의 거리 인사동과 연결 지어 노인문화가 주를 이루게 됐 다. 하지만 낙원악기상가를 찾는 젊은 예술인들의 발걸음은 끊이 지 않는다. 악기를 맨 앳된 소년들과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가 공존하는, 특이한 문화적 이합집산을 이루는 이곳, 낙 원상가. 사람이 그래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 각한다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낙원상가가 될 것이다. 관광지 정보 관광대상 : 낙원악기상가 위치 : 종로구 낙원동 이야기 태그 : 낙원상가, 낙원악기상가, 기네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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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사업기간 사업수행기관 (주)메타기획컨설팅 연 구 진 사업총괄 이종혁 사업진행 강희정 이준일 이야기 가공 안연주 원장경 황성식 메타기획컨설팅 크리에이티브본부 본부장 메타기획컨설팅 실장 메타기획컨설팅 객원 연구지원 김은영 송지영 강원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227 2015 서울관광 핵심 이야기 99선 선정 사업 서울의 숨겨진 99개 이야기 발 행 처 발 행 일 자료수집/발굴 온라인플랫폼 서울특별시 관광정책과 2015년 12월 메타기획컨설팅 서울스토리 (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로이 인용할 수 있으나 무단 전재나 복제는 금합니다.

대표이사 K, L 4. 주식회사 동진여객 대표이사 M 피고보조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N 법무법인 O 제 1 심 판 결 부산지방법원 2014. 6. 12. 선고 2014구합20224 판결 변 론 종 결 2015. 5. 8. 판 결 선 고 201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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