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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책연구 학교혁신 사례 발굴과 확산을 위한 네트웍 구축 방안 연구 연구책임자: 서근원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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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교혁신 사례 발굴과 확산을 위한 네트웍 구축 방안 연구 2005 년 12 월 20 일 연구진 연구책임자 : 서근원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강사 ) 공동연구자 : 서길원 (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 안순억 (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 연구보조원 : 김진경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 김영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 홍지은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 이재덕 (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 이 연구는 수행되었습니다. 2005년도 교육혁신위원회의 정책연구 개발비에 의해 이 연구에 제시된 의견이나 정책 대안은 교육 혁신위원회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 본 연구진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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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머리말 오늘날 우리에게 학교는 계륵( 鷄 肋 ) 과 같은 존재다. 먹을 것은 별로 없고 버리기 에도 아까운 것이 오늘날의 학교다. 현재의 학교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적합한 인 재도, 교양을 풍부하게 갖춘 지식인도, 훌륭한 인성의 소유자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한 인재나 지식인이나 인격자는 오히려 학원 등과 같 은 학교 밖의 여러 기관에서 더 잘 길러내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학교를 없애거나 학교를 학원 등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는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 고 있고, 학교를 전면적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기관도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전개해왔다. 그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 었다. 하나는 계륵을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륵을 버리고 다 른 것을 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 등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학교개 혁 정책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일부 교육운동가와 연구자들에 의해서 전개되어 온 대안학교 운동이나 탈학교론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최근 들어서 정부에 의해서 추 진되고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학교, 자립형사립학교, 혁신학교, 방과후학교 등의 설립과 운영 등도 후자에 해당한다. 나는 양자가 모두 현재 학교의 문제를 해 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 노력이 교육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면 말이다.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야 하고, 그들 사 이에 교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 교섭에 의해서 적어도 어느 한쪽의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에 의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두 사람의 주변에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학 교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학교에서 교육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함으 로써 교사와 학생이 서로 교육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재도 지식인 도 인격자도 길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 i -

6 만일 위의 두 가지 노력이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학교에 자꾸 새로운 과제를 부과하고, 학교가 그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리는 방 식으로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둥산 아래 저수지의 둑 이 새고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해서 둑을 더 높고 튼튼하게 쌓거나 둑 아래쪽에 웅덩이를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유보하거나 회피해가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학교 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학교 교육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가 학교 문제의 핵심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정공법으로 해결하려 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학교의 문제는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부터 온 국민이 정성을 들여서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도 족히 한 세대는 지나야 해 결되는 문제다. 그렇다고 저수지의 둑이 터지도록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둑을 더 높고 튼튼하게 쌓는 것도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그 둑 역시 언젠가는 새고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삽과 묘목을 들고 민둥산에 올라가는 일이다. 단 한 그루의 묘목이라도 정성을 다 해서 심는 것이다. 정성을 다 해서 단 한 개의 학교 라도 교육적 만남이 살아있는 진정으로 건강한 학교로 만드는 일이다. 나와 네가 정성을 다 해서 묘목을 심음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가 정성을 다 해서 묘목을 심도 록 하는 것이다. 영화 말아톤 에서 초원이가 운동장을 백 바퀴 달려서 코치의 마 음을 움직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민둥산을 살아 숨쉬는 저수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학교를 진정한 대안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묘한 병법으로 수많은 적을 일시에 무찌르는 한 명의 제갈량( 諸 葛 亮 ) 이 아니다. 제 손으로 흙을 퍼 옮겨서 마침내 산을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우공( 愚 公 ) 들이다. 나는 이 보고서에서 제갈량이 되는 법 대신 우공이 되는 법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우리가 왜 우공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했 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협의회에 - ii -

7 참석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성심껏 면담에 응 하고 관찰을 허락해준 여러 선생님과 학생과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바쁜 중에 학교혁신 사례를 쓰고 거듭된 수정 요구를 받아들여주신 선생님 들께도 감사드린다. 많은 면담 자료와 관찰 자료를 전사해준 중앙대학교 대학원의 김진경, 김영미, 홍지은 선생에게도 감사드린다. 이 보고서를 쓸 수 있는 기회와 여 건을 마련해주신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의 설동근 위원장님, 이종각 선임위원 님, 그리고 이종태 상임위원님께도 감사드린다. 이종태 상임위원님의 추천이 없었 다면 이 보고서는 시작되지 못했다. 인내를 가지고 이 보고서를 기다려준 교육혁신 위원회 사무국의 이주호 사무관님께도 감사드린다. 교육부의 정경호 연구관님께도 감사드린다. 그 분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이 보고서 초고를 누구보다도 꼼꼼 하게 읽고 여러 가지 조언을 성심껏 해주셨다. 이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근 넉 달 동안 밖으로만 돌아다니거나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나를 용서해준 가족들도 고맙 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보고서는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끝으로, 나를 교육인류학의 세계로 입문하게 해주신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의 조용 환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글을 한 편씩 쓸 때마다 매번 선생님 얼굴과 목소리 가 떠오른다. 그리고 교육인류학이 무엇인지 하나씩 깨달아간다. 선생님의 가르침 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는 다면, 지금도 높은 연구실에 외롭게 앉아 계실 선생님께 이 보고서를 올리고 싶다. 부디 내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못 따르고, 이 보고서가 교육인류학을 오도하지 않 았기를 빈다. 2006년 2월 17일 서근원 - i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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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차 례 ㆍ 머리말 Ⅰ. 학교혁신의 필요성 1 1. 연구의 목적 1 2. 연구 방법 4 3. 연구 절차 8 4. 연구 문제 연구의 범위와 한계 16 Ⅱ. 선행연구 검토 학교개혁 정책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들 18 1) 교사들의 저항 18 2) 개혁 추진 방식 23 3) 학교 행정 체제 27 4) 사회의 변화 34 5) 학교 이해 부족 선행연구로부터의 시사점 41 1) 연구자의 자각 41 2) 교사의 중요성 학교개혁 정책의 실패 원인 45 1) 교사 자발성 유도의 한계 45 2) 관념적인 처방 48 - v -

10 3)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 학교개혁을 위한 대안적 접근 57 1)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 57 2) 미완의 시도들 65 3) 희망을 다시 한 번 69 Ⅲ. 학교혁신 사례 검토 학교혁신 사례 분류 71 1) 학교혁신 사례들 71 2) 학교혁신 사례 유형 74 3) 학교혁신 사례 분류의 난점 학교혁신 사례의 재검토 84 1) 현지조사 대상 학교 선정 84 2) 내부자의 눈으로 보는 학교혁신 사례 91 (1) 강정초등학교 93 (2) 명성초등학교 104 (3) 어삼초등학교 108 (4) 단강중학교 112 (5) 운경중학교 116 (6) 정성중학교 119 (7) 해송중학교 125 (8) 흥국중학교 130 (9) 강산고등학교 136 (10) 모란여자고등학교 146 (11) 형설고등학교 학교혁신 사례의 재분류 vi -

11 Ⅳ. 학교혁신의 의미 학교혁신 혁신학교: 민들레학교 165 Ⅴ. 학교혁신을 위한 일반적 방안 학교혁신의 장애들 169 1) 공부에 대한 오해 170 2) 경직된 교육과정 172 3) 행정체제의 한계 174 4) 승진 구조 180 5) 정치의 지배 학교혁신의 한 과정 187 1) 민들레교사들의 희망 찾기 187 2) 민들레학교 만들기 189 3) 민들레홀씨 퍼트리기 192 4) 민들레학교 연대하기 학교혁신의 일반적인 원칙 194 1) 진정성 197 2) 교육성 197 3) 과정성 198 4) 선택성 199 5) 자발성 200 6) 현장성 201 7) 체험성 202 8) 연대성 203 9) 장기성 vii -

12 10) 탈정치성 205 Ⅵ. 학교혁신의 한 방안: 사례 발굴과 네트웍 구축 학교혁신 사례 발굴과 홍보 학교혁신 사례 육성 210 1) 학교의 선정 210 2) 교육과정 유연화 213 3) 주변적 지원 214 4) 기존 제도의 활용 학교혁신 네트웍 구축 216 1) 민들레교사의 소양 217 2) 민들레학교를 위한 연대 219 3) 민들레학교들의 연대 220 4) 민들레학교 연대를 위한 기구 학교혁신 네트웍 운용 226 1) 조사 226 2) 안내 지원 조정 226 3) 기록 연구 227 4) 홍보 후속 작업을 위한 제언 228 1) 실험적 연대 구성 운영 228 2) 기초 조사와 연구와 홍보 229 3) 인력 양성 229 Ⅶ. 민들레 세상을 꿈꾸며 민들레학교 운동 viii -

13 2. 누구나 가슴에 민들레 홀씨를 하나씩 민들레와 사자이빨 237 < 참고문헌 목록> 241 < 부록: 학교혁신 사례집> ix -

14 표 차례 < 표 1> 초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72 < 표 2> 중학교 학교혁신 사례 73 < 표 3> 고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74 < 표 4> 활동의 성격에 따른 학교혁신 사례 유형별 분류표 76 < 표 5> 초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78 < 표 6> 중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79 < 표 7> 고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80 < 표 8>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분류 81 < 표 9> 현지조사 일정과 주요 조사 내용 90 < 표 10> 학교혁신 사례 유형 재 분류 162 그림 차례 < 그림 1> 민들레학교 연대 구성도 x -

15 부록 차례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이여! 251 김대봉( 강원 평창 면온초등학교 교사) 세상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희망을 만들고 269 서길원( 경기도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고단해도 행복한 주인으로 살아 온 사 년 289 최은희(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교사) 농촌학교의 희망, 그 대안을 찾아서 301 송수갑(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교사) 계수초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삶 만들기 331 신성호( 경기도 시흥 계수초등학교 교사) 지난한 행복한 학교로의 꿈 351 오일창(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교사)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 371 김복희( 부산 덕천중학교 사회복지사) 내가 작은 곰내미학교에서 배운 것 389 이민재 ( 경남 거창 웅양중학교 교사)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교육 411 김병건( 충남 논산 대건중학교 교감) 늘 푸른 나무 학교 427 김미숙( 전북 남원 용북중학교 교장) 학교교육의 현실과 청년교사들의 이상 443 이정로( 충남 천안 복자여자고등학교 교사) - x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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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Ⅰ. 학교혁신의 필요성 1. 연구의 목적 1995년 5월 31 일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 는 新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을 발표했다. 그 뒤로 우리는 지난 10 여 년 동안 그 방안에 따라서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해왔다. 우리 가 그동안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까닭은, 그것이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세계의 중심 국가로서의 신한국을 창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그 날 교육개혁위원회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新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는 변화는 20세기로부터 21세기로 넘어가는 단순 한 세기적 변화가 아니다. 이 변화는 문명사적 변화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 온 문명은 산업문명이었다. 농경문명에 뒤이어 나타난 이 산업문명의 도전에 우리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역사의 실패자가 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 는 새로운 문명은 정보화사회, 지식사회 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부터 허리띠를 동여매고 대처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형태의 문명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서로 앞을 다투어 새로운 교육혁명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대담한 교육개혁, 아니 교육혁명이 없이는 우리가 새로 운 문명의 중심권에 설 수 없다. 세계의 중심국가를 지향하는 신한국의 창 조는 바로 교육혁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개혁위원회, 1995: 3-4, 강조는 원문)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교육개혁위원회는 120 개의 개혁 과제를, 그 뒤를 이 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와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67 개의 개혁 과제를, 교육혁 - 1 -

18 신위원회는 이전 위원회에 버금가는 과제를 제시했다.( 이일용, 2005: 52-58) 초중 등학교와 관련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운영, 방과후 특기적성교육활동 활성화, 초등학교 영어 교육 실시, 열린교육 실시, 종합생활기록부 도입, 대입 선발방식 다 양화,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 평가와 행 재정 지원 연계, 컴퓨터 교육, 학교 정보관 리 종합시스템(NEIS) 구축, 기초학력 미달 학생 지도, 수행평가, 학교 종합평가, 학 급당 정원 축소, 교원 정년 단축, 내신에 의한 대입 전형, 방과후 학교 운영, 교원 평가 등의 정책들이 제시되었다.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각급 학교에서는 그 각 각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이런 정책들을 입안하고 이행을 추진하는 동안 그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은 물론 이고 이를 이행하는 사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그 정책들이 예정 대로 잘 이행되기를 바랬다. 교육개혁위원회는 교육개혁의 효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개혁위원회, 1995: 에서 부분 발췌) ㆍ초중등학교 학생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 ㆍ초중등교육이 정상화되고 과열과외가 없어진다. ㆍ농어촌 지역에서도 좋은 교육여건 속에서 공부할 수 있다. ㆍ교원의 권한이 확대되고 전문적 자율성이 신장된다. ㆍ교사는 연구하고 잘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다. ㆍ지역사회와 교직원이 합심하여 재미있고 좋은 ㆍ( 정부는) 규제중심으로부터 지원중심 조직으로 변한다. ㆍ학벌중심 사회가 능력중심 사회로 변한다. ㆍ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한국사회가 된다. 우리 학교 를 만든다. 교육개혁 방안이 공포되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교육개혁 정책이 예정대로 진 행되기만 한다면 교육개혁위원회가 제시한 위의 장밋빛 청사진이 청사진으로만 머 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기대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그 빛바랜 청사진이 실현되었다거 나 실현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학교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거나, - 2 -

19 때로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과열 과외는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고, 교사는 업무에 시달리느라고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른바 학교붕괴 의 문제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를 연구한 한 연구자는 그동안의 교육개혁 정책이 학교에 남겨놓은 상 흔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지난 50여 년 간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양질의 인적 자원을 공급함으 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으며, 이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교육개혁을 추 진하여 교육계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 국적인 차원에서의 획일적인 교육개혁 추진으로 말미암아 교사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을 교육개혁에 자발적으로 동참시키지 못하여 교육정책이 현장 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장 적합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간과된 몇 가지 정책이 정책추진 조건 이 고려되지 못한 채, 급하게 현장에 접목되는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 간의 크고 작은 갈등도 야기된 상황이다. 이렇게 하향식 교육정책 추진에 길들 여진 우리의 학교 현장은 내려받은 개혁 방안을 숨가쁘게 집행하는 과정에 서 자생력과 위기 관리 능력을 키우지 못해왔다. 따라서 학교교육 현장에 서 야기되는 크고 작은 문제가 그 내부에서 논의를 통하여 해결의 실마리 를 풀어내지 못하고 곧바로 학교 밖으로 불거져 나와 애초의 문제보다 부 풀려지거나 비틀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개혁의 구호는 거창했고 학 교교육이 21세기가 바라는 창조적이고 자주적이며 도덕적이고 건강한 인 간을 길러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현재 우리 학교교육은 여전히 고 질적인 시험위주 교육의 틀을 탈피하지 못한 채,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양승실 외, 2001: 1) 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즉,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개혁을 위해서 줄기차게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학교는 왜 더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 려 악화되어 가는가? 우리나라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노력이 필 - 3 -

20 요한가? 이 연구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2. 연구 방법 사람들은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 百 年 大 計 ) 라고 말한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 석될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은 백년 후를 대비하는 일 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의 결과는 백년 후에나 나타난다 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말을 할 때 는 대체로 후자보다는 전자를 염두에 둔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개선의 방향을 제시할 때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상하고, 그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 학교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만일 위의 두 질문에 대답하는 일 역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 연 구 역시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또는 둘 가운 데 어느 한 질문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답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또 하나의 그 럴듯한 종이 위의 이야기로 마무리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 이다. 이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교육정책이나 교육행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교육학계나 교육계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원로도 아니다. 미래 사회를 정확히 예측 할 수 있는 미래학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 점은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연구 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가 미래 사회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 전국의 모든 학교와 교사와 학생과 교육청과 교육부 등이 어떻게 유기적으 로 재조직되어야 하는지를 세밀하게 다 제시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갓 태어난 병아리가 하늘을 날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기에다가, 이 연구는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의 중요성이나 복잡성에 비하면 열 악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는 공식적으로는 2005년 9월 30일부 터 12월 20 일 사이에 이루어지도록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연구가 그렇듯이 이 연 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0 월 중순경부터다. 연구비 또한 연구진의 제한된 연구 역량이나 제한된 연구 기간을 극복할 수 있을만큼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21 따라서 나는 그 동안 많은 뛰어난 연구자들이 해 내지 못한 일을 불과 두 달 동안 에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제한된 여건과 부족한 능력의 범위 내에서나마 최선을 다 해서 위의 두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대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비록 이 연구를 통해 서 우리나라 학교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책을 제시하지 는 못하더라도, 산적한 많은 문제 가운데 단 한 가지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 리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법을 불완전하게나마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이런 희망을 가지는 것은 다음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문제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행된 대부분의 교 육개혁 정책들은 미래 사회를 염두에 두고 정당화되고 시행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 펴본 것처럼 그런 정책들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 정책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래의 사회와 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학교가 도달해야할 목표에 만 주목하느라고 현재 학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소홀히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 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현재 학교가 앓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하 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학교 개혁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런 문제를 하나씩 둘씩 해결해나감으로써 백년 후의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나가는 방 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교육은 백년대계( 百 年 大 計 ) 라는 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는 현재의 학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학교 개혁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데에 본 연구진이 비교적 적합하다고 보기 때 문이다. 본 연구진은 모두 학교현장에서 교사로서 근무하는 가운데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현재도 그 일을 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진은 현재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 학교 현실에 좀 더 적합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2 셋째는 이 연구에서 취하게 될 관점과 연구방법이 현재의 우리나라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구에서 교육인류학 의 관점과 방법을 적용하려고 한다. 교육인류학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진 사람들 내에서도 참여관찰법 과 심층면담법, 즉 질적인 연구방법을 주로 적용해서 학교를 연구하는 교육학의 한 분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참여관찰법이나 심층면담법이 질적인 연구방법의 전부는 아니며, 질적인 연구방법 역시 교육인류학의 전부는 아니다. 교육인류학이 질적인 연구방법, 그 가운데 참여관찰법과 심층면담법을 주로 사용하는 까닭은 연 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그 대상의 눈으로, 즉 내부자의 관점 에서 바라보기 위해서 다. 연구 대상을 연구자 자신의 기존의 관점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현상을 개선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현상을 내부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연구자 가 내부자와 거리를 둔 가운데 내부자들이 하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상을 내부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연구자 자신이 내부자가 처해있는 상황에 놓인 가운데 내부자 고유의 관점으로 상황과 그들의 언행의 의미를 이해함 으로써 연구자 자신의 안목을 새롭게 형성하고 그 안목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학교붕괴 등의 이름으로 지칭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행위를 학생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을 학생이기 전에 발달단계상 홀로서기라는 실존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으로 바라보고, 그런 과제에 비추어서 그들의 언 행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학교붕괴 등으로 지칭되는 그 행위는 소외되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실존적 몸부림 또는 외침 으로 이해되고, 우리는 학생을 바라보 는 안목을 새롭게 형성하며, 그 안목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새롭게 모색하게 된다.( 조용환, 2001b: ) 이처럼 현상을 내부적인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는 내부자들이 일상적으로 어떤 언행을 보이는지, 그 언행은 어떤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내부자들은 그 상황 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그런 해석의 이면에 전제되어 있는 사고가 무엇인지, 그 상황과 사고에 비추어 볼 때 내부자들의 언행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사례에 - 6 -

23 비추어 볼 때 이와 유사한 다른 장면에서 발생하는 행위들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연구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연구자 는 장기간 내부자들의 언행과 상황을 관찰하고, 내부자들이 상황과 자신의 언행을 어떤 사고에 의해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심층면담하고, 내부자들이 놓여있는 상황과 그들의 해석을 연구자 자신이 체험하기 위해서 참여관찰하고, 언 행과 상황과 사고 사이의 관련과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서 분석하고 추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구자는 내부자의 관점을 이해하고,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형성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내부자들에게 의미있고 현장에 적합한 새로운 대안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교육인류학은 이러한 관점과 방법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다양한 장면 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찾아내서 기술함으로써 교육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떤 곳이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새롭게 이해하고 자 한다. 그리고 거기에 비추어서 교육이 나아갈 길을 새롭게 모색한다. 이것이 교 육인류학이 양적인 연구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질적인 연구방법 이상 인 이유다. 나는 이 연구에서 이상과 같은 교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을 적용해서 앞의 두 질 문, 우리나라 학교는 그 동안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왜 더 나아지지 않는지, 우리나 라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대답하고자 한다. 특히, 이하에서 나는 우리나라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교사의 관점을 주요하게 고려하고자 한다. 교사의 관점에서 학교 현장의 문 제를 바라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보고자 한다. 물론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학생과 교장과 행정실 직원 등이 있다. 그들 역시 학교를 구성하는 내 부자이고, 오늘날 학교의 문제를 바라보는 주요한 관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하의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핵심 이 되는 것은 교사의 전문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이고,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방향과 방안이 교사들에게 의미있는 것이어야 하며, 교사들에게 무엇이 의미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연구자 자신이 교사 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교사의 관점을 주요하게 고 - 7 -

24 려하고, 교사의 관점에서 학교 현장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바라보고 찾고자 한다. 그동안 정부가 수많은 개혁정책을 제시하고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교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이 필요할 때다. 3. 연구 절차 학교 현장의 문제와 해결 방향과 방안을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찾기 위해서 는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교사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 떤 교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앞의 조용환(2001b) 의 지적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시기의 청소년은 발달단계상 홀 로서기라는 실존적 과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과제에 비추어서 그 들의 삶과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교사의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 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분업화된 사회에서 교사 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이 고유하게 가지는 존재론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비추어서 교사들의 삶과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사 회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교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는 2005년 현재 약 38만 명의 교 사들이 있고, 이 연구에서 현지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뿐이다. 따라서, 이 모든 교사들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38 만 명의 교사들 중에 몇 명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선택의 근거는 타당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현실적인 필요에 근거해서 해결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서 그 동안의 학교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방 안을 제시해야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혁신 사례들을 발굴해서 소개 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학교혁신 또는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현재 여러 기관이나 사람들에 의해서 학교혁신 사례라 고 일컬어지는 학교들을 일차적인 연구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그런 학교들을 대상 - 8 -

25 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교사의 관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학교혁신의 개념도 정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적으로 혁신학교 라고 불리는 학교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 구할 경우에 그들이 전국의 모든 교사를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가 전국의 모든 학교 와 교사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즉 일반화가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 히 여기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학교들은 어떤 의미로건 혁신학교 라고 일컬 어지는 학교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교와는 거리가 먼 예외적인 학교이고, 이런 학 교를 대상으로 수집한 자료 역시 예외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연구 에서 일반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각 사례들의 맥락의 차이를 충분 히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표집과 전집 사이의 표면적인 동일성에만 근거해서 서둘 러서 이루어지는 일반화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런 종류의 일 반화에 근거한 연구 결과를 정책으로 삼아서 실행함으로써 학교의 문제가 더 커졌 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일반화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교사가 고유하게 가지는 관점이 무 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관점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혁신학교에 근무하 는 교사들이 더 적합할 수 있다. 그들은 교사 고유의 관점을 학교현장에서 실현하 기 위해서 노력했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이런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런 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학교개혁 과 관련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여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와 같은 혁신 사례를 이루어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서 우리는 나머지 다른 학교의 교사들도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고 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놓여있는 상황이 나머지 다 른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이 놓여있는 상황과 동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외국의 학교와 국내의 자립형사립학교나 대안학교 등 과 같은 예외적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현재 우리나라 의 일반적인 사회적인 상황과 교육행정체제의 관리 하에 놓여있는 학교의 교사들 - 9 -

26 을 대상으로 선택했다. 여기서 제안하고 있는 학교의 문제 해결 방안 역시 그런 교 사와 학교들을 대상으로 한다. 학교 현장의 문제와 해결 방향과 방안을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찾기 위해서 둘째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어떻게 한정된 기간 내에 교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 을 적용해서 연구를 수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연구가 교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에 따라서 충실하게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일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하여 연구의 초점을 설정하고, 단 한 개의 학교라도 심층적이면서 동시에 거시적으로 조사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 료를 분석해서 대안을 찾아내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정리하는 데까지는 일 년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자료를 충실하게 모으는 데만도 일 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렇지만 내게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두 달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교 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을 적용하되 제한된 시간 내에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 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연구에 필요한 시간을 최대한 확보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 연구 과정을 개괄적이고 압축적으로 설계했다. 그것은 크게 다음 네 가지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현지조사 대상 학교를 선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현지조사를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셋째는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넷째는 오늘날 학교의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각각의 작업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첫째 작업은 2005년 10월 1일부터 11월 22 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물 40여 편을 수집해서 1차적으로 읽고 분석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연구들이 각각 어떤 관점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서 어떤 연구방법으로 연구하고 어떤 개혁 방안을 모색했는지, 거기에 어떤 한계가 있 는지, 그 한계는 왜 발생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적 접근이 필 요한지 등을 확인했다. 이와 동시에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 한국 교육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국내 언론사, 주변 인물 등이 학교 혁신 사례로서 소개한 학교를 29 개 수집하여 정리하고, 그 가운데 9개 학교를 선정하여 두 차례

27 의 협의회를 통해서 각 학교들이 어떤 문제를 어떤 과정에 의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상에서 수집한 자료에 근거해 서 현지조사할 학교를 11 개 선정했다. 둘째 작업은 11월 23일부터 12월 23 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앞의 작업에 의해서 선정한 11개 학교를 각각 1일 또는 1박2일씩 방문하여 교사 및 교장 등과의 심층 적인 면담을 통해서 현장의 교사들이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문제로서 인식하고 어 떤 해결책을 모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주로 확인하고자 했 다. 그리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학생들의 생활모습을 학생의 관점에서 관 찰하거나 참여관찰하려고 했다. 이 면담 내용과 관찰 내용은 모두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서 약 80 시간 분량의 비디오테잎에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제보자에 의해서 해석되고, 과장되고, 축소되고, 미화되고, 왜곡된 자료를 수집했을 수도 있 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부분적이나마 관찰을 통해서 제보자의 말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것으로 부족하거나 미심쩍은 것 이 있을 경우에는 제3 자의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다른 사례 학교 교 사들의 진술, 나의 과거 교사로서의 경험,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경험했던 것 등 과도 대비해서 최대한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다. 또한 면담 내용이 비록 진 실하지 않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대담자의 사고나 관점 또는 상황 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하고자 했다. 셋째 작업은 협의회와 현지조사를 통해서 수집한 자료를 전사하고, 전사한 내용 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2005년 11월 1일부터 2006년 1월 20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전사 작업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과정에 재학하는 김영 미, 홍지은, 김진경 세 사람이 내가 촬영한 비디오테잎 복사본을 보면서 수행했다. 전사자료는 전체 1,542 페이지이다. 이 세 사람은 내가 진행한 질적연구방법론 강 의를 통하여 관찰과 면담, 그리고 전사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두 차례의 협의회에 모두 참석하고, 2 개의 학교를 함께 방문하여 현지조사했다. 넷째 작업은 2005년 12월 30일부터 2006년 2월 17 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그동안 현지조사 등을 통하여 확인한 사실에 근거해서 앞서 1 차적으로 검토한 학교개혁 관련 연구물들을 다시 분석하여 검토하고, 이 연

28 구를 통해서 대답해야 할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한 후, 그동안 수집한 자료 에 근거해서 앞의 두 가지 핵심적인 질문에 대답해나가는 과정으로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교사의 관점에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셋째로 고려할 점은 무엇이 학교혁신 또는 혁신학교이고,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하 는 점이다. 학교혁신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기 위해서는 학교혁신과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 여러 연구자들이 학교혁신 또는 혁신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 연구에서도 교육행정기관 등에 의해서 학 교혁신 사례라고 일컬어지는 학교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연구 자들이나 교육행정기관 등이 말하는 학교혁신 을 학교혁신 의 개념으로 받아들이 는 데는 제한점이 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학교혁신이라는 용어 자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혁신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혁신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준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교육인적자원부(2005a) 는 혁 신을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지방교육혁신 경진대회를 통해서 각급학교의 우수 혁신 사례를 선정했다( 교육부, 2005b; 2005c). 그 가운데에는 대학생 교사제를 활용한 방과 후 학교 운영, 수준별 이동수 업, 선택형보충수업, 인터넷을 이용한 수업장학, 학교에서의 기업 운영 등의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혁신의 의미에 대한 교육부의 정의와 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된 학교 를 함께 고려하면, 학교혁신이란 학교에서 새로운 교육활동이나 방안을 적용하여 운영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을 지원하는 것 이 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학교혁신이란 학교에서 학생의 학업성취를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교혁신 을 이런 의미로 정의하는 것은 다른 연구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 음과 같다. 학교혁신이란 무엇보다도 좋은 학교를 만들어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높 여주는 것이 그 임무일 것이다.( 이근택, 2005: 42)

29 학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를 향상시키기 위해 학교 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김성열, 2005a) 학교혁신이란 모든 학교구성원( 학생, 학부모, 교사) 들이 학교교육의 주체 로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학교구성원 스스로의 의 식과 구성원들 간의 관계( 즉 학교구조), 교수학습활동, 학교문화를 올바르 게 변화시킴으로써 학생의 인성을 발달시키고 학업성취를 향상시키는 것. ( 안선회, 2005: 63) 학교혁신이란 학교가 학생들에게 참된 교수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 기반 사회에 적합한 참된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학교가 학교교육의 중점을 교수와 학습 활동에 두고 전문적 공동 체를 형성하며 학교의 구조와 문화적 조건을 이에 적합하게 갖추는 것이 다. ( 김흥주 외, 2005: 내용 재구성) 학교혁신에 관한 이상의 정의는 그 표현상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그 내용 에 있어서는 학생의 학업성취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학교의 운영을 변화시키는 것 으로서 정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목적을 중심으로 학 교혁신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정의하는 경우는 두 가지 난점이 발생한다. 하나는 목적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학교혁신의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교육희망 21 학교혁신기획팀(2005) 은 학교혁신 과 새로운 학 교 만들기, 그리고 새로운 교육 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교육 운 동 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운동은, 효율성과 경쟁력의 논리를 내세워 공동체를 파괴하 는 시장논리를 뛰어넘어, 학교가 나눔과 공존을 배우고 실천하는 진정한

30 교육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한 운동임.( 교육희망 21 학교혁신기획팀, 2005: 5)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학교혁신이란 학교가 진정한 교육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 해서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에 지배된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 다. 그리고 이런 정의에 비추어 보면 맹목적인 학업성취의 향상을 위해서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학교혁신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학교혁신은 학업 성취의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정의에서 보면 학업성취를 소홀히 하는 방향 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학교혁신이 아니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난점은, 설령 학업성취를 학교혁신의 목적으로서 동의한다고 해도 무엇 을 학업성취로서 볼 것인가에 따라서 학교혁신의 내용과 방향이 서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김흥주 등(2005) 은 학업성취를 지식기반 사회에 적합한 참된 학업성취 라고 규정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아 니라 실제생활에 적용되는 지식으로서의 성취 ( 김흥주 등, 2005: 14) 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왜 참된 학업성취라고 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근거는 제시 하지 않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다른 종류의 지식의 성취를 참된 학업성취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럴 때 학교혁신의 내용과 방향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할 수 있으므로, 경우 에 따라서는 부조리한 수단이 목적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요컨대,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정의할 경우에는 사람이나 집단에 따라서 목적을 서로 다르게 설정할 수 있고, 설령 동일한 목적을 설정한다고 해도 그 의미 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서 학교혁신의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고, 때로는 부 조리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 즉,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정의할 경우에 는 그 목적을 아무리 상세히 정의한다고 해도 그 의미는 명료하지 않을 수밖에 없 다. 무엇을 목적으로 삼는가에 따라서 어떤 학교가 혁신학교인지를 두고 서로 다르 게 판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는 자의적인 선택에 맡 길 수밖에 없다. 즉, 목적을 중심으로 정의되는 학교혁신은 자의적이라고 볼 수밖 에 없다

31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학교혁신을 도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학교혁신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추구해야 할 목적을 사전에 규정한 후에 학교혁신을 연역적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목적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전에 정당 화되는 일이 불가능하다. 특히 절대적인 가치나 의미가 인정되지 않는 후기현대사 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연구에서 다른 연구자들이나 교육행정기관 등이 말하는 학교혁신 을 학교혁 신 의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둘째 이유는, 이 연구의 관점과 방법에 일관되 게 따르자면 학교혁신 또는 혁신학교가 무엇인지는 교사들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교사의 관점에 의해서 정의한다면, 학교혁신이란 교사가 학교에서 교사의 고유한 존재론적 과제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교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 이다. 마찬가지로, 한 학교가 혁신학교라 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학교가 수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의 내용과 방향이 교사 들의 존재론적 과제에 비추어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로 인해서 교사 들이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교사의 관점, 특히 교사의 고유한 존재론적 과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앞으로 이 연구를 통해서 밝혀야 할 내용이다. 따라서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작업은 다름 아 닌 교사의 고유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교사 의 고유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작업은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작 업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교사의 관점을 이해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학교를 개 혁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찾는 일이면서 동시에 학교혁신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4. 연구 문제 나는 이하에서 이상에서 살펴본 교육인류학의 관점과 방법을 적용하여 일반적으 로 학교혁신 사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함으로써, 교사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학교혁신이 무엇인지, 학교를 실질적으로 개

32 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 야 할 내용을 질문의 형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해 ㆍ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은 이전의 학교개혁 정책이 실패 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았으며, 어떤 대안적 방안을 제시했는가? ㆍ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은 어떤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 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ㆍ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적 접근이 필요한가? ㆍ지금까지 어떤 학교들이 학교혁신 사례로서 언급되었으며, 그 사례들 은 무엇을 준거로 어떻게 분류될 수 있는가? ㆍ 학교혁신 사례들은 실지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각 학교의 활동은 내부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ㆍ학교혁신이란 무엇인가? ㆍ어떻게 하면 학교혁신 사례를 확산시킬 수 있는가? ㆍ학교혁신 사례를 확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서 네트웍을 어떻게 구성하 고 운영하는 것이 적절한가? 5. 연구의 범위와 한계 이하에서 나는 이상의 질문들에 대답해가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상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 역시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 연구를 위해서 수집된 자료에 제한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자료를 충실하 게 수집하려고 했어도 한 달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한계를 근본 적으로 극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제한된 자료에 근거해서 제시된 결론 역시 제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연구의 이런 제한점은 다른 후속 연구들, 그리고

33 이 보고서를 읽게 될 현장의 교사들에 의해서 보완되기 바란다. 둘째는, 이 연구는 교사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학교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 을 모색함으로써 학생의 관점이나, 학부모의 관점, 그리고 교장 등과 같은 학교의 관리자나 교육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의 관점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제한점이 있다. 이것은 이 연구의 장점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교사 외의 다른 학교 구성원 과 관련자들의 관점은 다른 연구를 통해서 이해되고, 그런 관점에 근거해서 제시된 방안들이 이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방안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는 이 연구의 결과는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고 한 연구자의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라는 점이다. 학교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 가운데에서 나는 교사의 관점, 그 중에서 교사의 전문적인 자발성을 선택하고 있 다. 물론 그것이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관점은 결과적 으로는 학교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관점에 의해서 제시 되는 처방 역시 부분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른 연구자 들의 연구결과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지 나는 다른 연구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이 연구가 보여주고, 다른 연구를 통해서는 찾을 수 없는 좀 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이하에서는 먼저 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이 이전의 학교개혁 정 책이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았으며,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했는지 살펴보 기로 한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들이 문제의 원인을 찾는 데 있어서 어떤 변화의 흐 름을 보이는지,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그 한계는 왜 발생하는지 등을 파악 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이 연구가 취해야 하는 대안적 접근 방법을 모색하기로 한 다

34 Ⅱ. 선행연구 검토 1. 학교개혁 정책의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들 1) 교사들의 저항 1995년 5월 31일 이후로 교육개혁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즈음에 교사와 국 민들 사이에는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 세기 학생을 가르친다 는 말이 회자되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학교에 있으며, 학교를 개 혁하면 교육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교육개혁 정책도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학교에는 교사라는 사람 이 살고 있었으며, 교육개혁 호는 출항한지 얼마 안 되어서 교사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말았다. 학교가 너무너무 지겨워요. 달이 갈수록 느끼는 압력과 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잠시 틈도 없으니 만사가 귀찮아요. 정신없이 수업하고, 자습 감독, 방송수업 감독, 특활시간, 학급회의 다 들어가고, 잡무 처리하다 보 면 정신이 없어요. 교육개혁한답시고 교사들만 더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 요. 교육개혁은 뭔 얼어죽을 놈의 개혁인지. ( 김병주, 1998: 176) 학교의 교사들이 교육개혁호를 떠받치는 바닷물에서 암초로 변하게 된 것은 나 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교육개혁 정책이 하나둘씩 착착 학교 현장에 하달되고 시 행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교육개혁 정책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것은 교육개혁 정책이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키고, 그로 인해서 수업을 충실하게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 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 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공문이 두 배는 더 많아졌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35 심지어 공문을 적게 보내기 위해서 일상문 형식의 통지문으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실제로는 공문과 같은 형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공 문을 쉽게 보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문이 더 많아진 셈이지요.( 김병주, 1998: 168) 제발 평가라는 것이 없어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평가했으면 좋겠어요. 한 번 평가를 받으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더구나 학 교규모가 큰 학교들은 그래도 교사들이 많아서 준비할 인력이라도 있지만, 저희와 같은 소규모 학교들은 평가 한번 받으려면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 합니다. 도대체 교육을 잘 하자고 평가를 할텐데, 정작 그놈의 평가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김병주, 1998: 177) 이런 와중에서도 교사들은 교육청 등에서 지시하고 추진하는 개혁 사업을 이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것들은 요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 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교육개혁이 서류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 을 이용하기까지 했다. 이런 점들을 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실제로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서류상으로만 개혁 되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걸핏하면 교육청에서 실적 을 보고하라고 하니 실제 해 놓은 것은 없어도 서류는 항상 만들어 놓고 있어 야지요. 우리 학교는 월별 훈화계획을 일종의 교육개혁 실적으로 자랑하고 있는데, 일정한 양식에 맞추어 매일의 훈화 제목을 적어내도록 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화를 하지는 않습니다. 쓸 때마다 거짓말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아까운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 짜증나기도 하고 그 렇습니다.( 김병주, 1998: 168).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은 평가에 대한 열성이 대단하십니다. 아마도 그 동안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한 자료만 해도 큰 트럭분으로 한 대 분량이

36 넘치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자료 중에서 수업에 써먹을 수 있 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한 전시용인 셈이지요.( 김병주, 1998: 177) 교사들은 위와 같은 사례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교육개혁 정책에 대해서 부 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혐오하게 되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한 교사가 얼어죽을 놈 의 개혁 이라는 말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부 교사들은 부조리하다는 것 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교직에 회의를 느끼 기도 했다. 아래 교사의 말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아직도 교직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 답답한 일입니다. 교 사는 아무것도 아니며 실제로 별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음을 고백하고 괜히 섣불리 개혁이니 하는 말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 교사들 은 한 명의 봉급쟁이 이상은 안 된다는 현실을 직시합시다. 괜히 어줍잖은 무슨 대단한 사명이나 띤 것인양 가슴 가득 뿌듯한 자기 최면에 사로잡힌 얼빵한 생각들일랑 접읍시다. 그냥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 목 안 잘리고 감봉된 월급이나마 무사히 받아감을 감사히 여 겨야 할 말단 공무원일 따름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참 행복한 분입니다.(Hitel, go PEDAGOGY, 교육일기 1998년 7월 15 일, ID menifess) ( 이인규, 1998: 29-30)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이러한 불만과 비판은 교육개혁의 칼자루를 쥐 거나 칼자루 가까이에 선 일부 사람들에게는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 되었다. 교사가 교육개혁의 걸림돌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19세 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 세기 학생을 가르친다 는 말이 21세기 학생을 20 세기 학교에서 19 세기 교사가 가르친다 는 말로 바뀌어서 회자되기도 했다. 즉 19 세기적 낡은 사고를 지닌 교사들의 저항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문명에 대비하는 교 육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37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거기에는 교사들의 정년을 단 축함으로써 교육개혁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는 교사들을 학교로부터 퇴출시 키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교사를 퇴출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 면 남은 길은 남아있는 교사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교사의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고는 아래의 인 용문에서도 알 수 있다. 교사들이 변화에 저항하는 이유로서 근본적인 것은 개인들이 지닌 가치 관을 들 수 있다. 교육에서의 변화란 교사들의 태도나 기능, 가치관에 변화 를 가져오는 것인데, 새로운 기능이나 기술적 도구를 사용하는 일은 상대 적으로 쉬운 변화지만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는 시간도 더욱 걸리고 변화되 기도 힘들다. 대부분의 교육과 관련된 변화는 바로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 를 가져오려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에 저항하는 가치관의 요인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오은경, 1996: 149)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오은경(1996) 은 교사들은 교육개혁 정책이 추구 하는 변화에 저항하고 있으며, 그런 변화에 저항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사들의 가 치관과 태도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가치 관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다음의 말에서 더욱 구 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교직은 다른 사회 조직에 비하여 폐쇄성이 높고 타율적이며, 총체적인 질 관리가 결여된 개인주의 문화의 특성이 강하다고 한다. 변화로 인하여 현재 누리고 있는 이익에 위협이나 불이익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변화에 무관심하거나 변화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 없이 실 험정신이 부족한 특성이 있고, 구성원들은 전문적 성향이 있으면서도 승진 과 전보에 얽매이는 관료적 성향이 강하며, 변화보다는 전통과 안정을 선 호하는 특성을 보인다.( 김희규, 2003: ; 박영숙, 전제상, 2003:

38 20 에서 재인용) 교직문화의 변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저해요인들이 제거될 때만 변화의 가능성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폐쇄성이다. 둘째, 안정성이다. 셋 째, 비가시성이다. 넷째, 이중성이다. 다섯째, 개인 이기주의다. 여섯째, 집 단 이기주의다. 일곱째, 무관심이다. 여덟째, 갈등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나라 학교 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지고 모두 획일화, 는 것이다.( 박영숙, 전제상, 2003: 88-90) 관료화되어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교사들이 폐쇄적이고, 타율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교 사들이 교육개혁 정책을 포함한 학교의 변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교육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이러한 가 치관이나 특성, 즉 교직문화 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교직문화 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여 제시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다. 교직문화 변화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위학교로부터 시작하 는 것으로 한다. 변화의 동기는 외부에서 주어진다 하더라도 변화의 내용 은 학교현장에서부터 제안되고 반영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정책 및 의사 결정 과정에 교사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과 교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 검토되어야 한다.( 박영숙, 전제상, 2003: 133) 요컨대, 박영숙과 전제상(2003) 은 현재의 교직문화가 비록 교육개혁을 비롯한 변 화에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은 단위학교에서 교사들이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 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교직문화를 변화시키는 방안으로서 각종 연수를 통한 교장 과 교사의 지도성과 전문성 개발, 교육과정 운영 중심의 단위학교 자율 경영을 위 한 권한의 이양 및 지원, 정보 인프라 구축, 구성원들이 변화에의 비전을 공유하고

39 역할 의식을 명료화하는 등의 일반적인 과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추진 방 법으로서 내용으로서 교장 전문 양성 과정 설치, 교과교육연구회 활성화, 학부모 교육 실시, 행정규제 완화, 학교경영 및 의사결정 과정에 교사 참여 확대, 수업 장 학 활동 활성화, 교원 정원 확보 및 보조 인력 충원, 교원의 직무 수행 기준 설정, 교원 존중 풍토 조성, 학교 개선 토론회 정기 개회 등의 32가지 하위 지원 과제를 제시했다.( 박영숙, 전제상, 2003: 140, ) 2) 개혁 추진 방식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개혁이 기대한 것처럼 추진되지 않고 교사들의 저항에 부딪힌 것은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 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대두되었다. 교육개혁 정책 자체 또는 교육개 혁을 추진하는 방식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개혁의 과정에 교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교사를 문제 삼 는 것이 아니라 개혁정책을 문제 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현석(2005) 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의 정부 에서 정치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교육개혁정책이 손쉽게 교 육현장에서 제도화되었지만 그것이 교육계 전반의 정서로 체화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현상이나, 교원들의 냉소적 불만과 체념을 야기시키는 모 습이 자주 나타났다. 이처럼 정부가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가면 서 교육개혁 정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견된 실패의 길 로 치닫고 있는 현상은 바로 하루아침에 시장의 물건이 되어버리고, 봉사 정신이 강요되는 교육공급자의 천박한 신세로 전락한 교원들의 ( 인간) 교 육에 대한 2005: 29) 심정적 동감 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현석, 이러한 지적은 교육개혁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나서 2, 3년이 흐른 뒤에

40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교육 개혁이 성공적으로 수행되 기 위해서는 교사가 자발적으로 개혁에 앞장서야 하며, 그렇지 않은 가운데서 개혁 을 추진하는 것은 고장난 자동차를 억지로 밀고 가려는 것 과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일제 등(1998) 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간의 교육 개혁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성공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공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 주된 이유는 현 장에서 그 변화에 앞장서야 할 핵심적인 주체인 교사 집단의 인식이 개혁 에 소극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이기조차 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서 개혁의 추진이란 고장난 자동차를 억지로 밀고 가려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성일제 외, 1998: 3) 그들은 기존의 교육개혁 정책이 마치 고장난 자동차를 억지로 밀고가는 것 과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는 까닭은 교육개혁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과정이 정치 경제 적인 요청에 의해서 위에서 아래로(top-down)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교사의 주체성이 상실되고, 학교 현장이 피동화, 관료화, 왜곡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장의 주 체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조영달(1998) 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 다. 수차례에 걸친 교육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학교의 뒤틀린 상황은 교육개 혁이 교육적 요청이 아닌 정치 경제적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고, 위로부터 의 개혁 방식이 계속됨으로써 학교 현장이 피동화, 관료화, 왜곡화( 학교의 일상사가 잘못 인신됨)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학교현장 에서 교육의 주체가 죽어가고 주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학교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학교가 현장교육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학교가 현장교육의 주체성을 회복 한다는 것은 학교의 교육주체들이 자신들의 일상사에 터하여 교육적 필요

41 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며,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영달, 1998: 39). 이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마침내 교육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개혁위원회도 이러한 문 제의식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교육개혁은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아래 로부터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최상근 등(1998) 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추진 성과를 개관하면서 향후 추진 계획 으로서 모두가 함께 하는 아래로부터의 교육개혁 추진 을 제안하였다. 지 금까지 정부가 교육개혁 추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주력해 오는 과정에서 위로부터의 개혁, 정부주도의 개혁 이라는 비판을 감안하여 이제부터 는 모두가 함께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현장 중심의 개혁 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개혁위원회도 교육 개혁위원회의 활동을 종합평가하면서 교육개혁 과정에 교원들의 동조와 협 조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자평하면서 향후의 교육개혁 추진은 교사 들의 참여를 강화하고 현장의 문제 해결에 더욱 강조를 둔 개혁 노력이 강 화되어야 한다고 전망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개혁평가연구회도 지금까 지의 교육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으며, 실제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 장에 대한 고려가 크게 부족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교육실행의 힘은 교육현 장에 있어야 한다면서 무엇이 개혁되어야 하고, 무엇을 그대로 두어야 하 는지, 무엇이 우선적인 투자의 대상인지, 무엇이 피상적인 것이고 무엇이 더욱 근원적인 것인지 등의 판단이 교육현장에서 나와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전자와 대동소이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 교육부, 1998: pp ; 교육개혁위원회, 1998: 264; 교육부 교육개혁평가연구회, 1997: 412; 최상근 외, 1998: 4 에서 재인용)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이후로 많은 연구자들은 구체적인 아래로부터의 개 혁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했다. 최상근 등(1998) 은 모든 개혁은 학교 현장을 중심

42 으로 하는 가운데 교사의 자율적인 참여에 기초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교육논리에 근거해서 내적보상을 중시하는 가운데 행재 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가시적 성과보다는 내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가상 교육개혁 포럼 운영, 현장중 심 교육개혁 방안 공모전 개최, 교원 중심 교육개혁 추진 기구 운영, 학교운영위원 회 활성화, 단위학교 운영 책임자 연수 강화, 교사들의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시간 확보, 참여적 의사결정 체제 구축, 교내 자율연구 체제 구축, 학부모 참여 유도 등 을 제안했다. 성일제 등(1998) 은 학교 혁신의 가장 핵심적인 성공 요인은 학교 구성원에게 있 으며, 그 밖의 요인들은 구성원의 혁신을 지원하고 고무하는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뿐 그 자체로서 혁신을 주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에 따라서 그들은 현장의 교사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혁신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했다. 그들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한편으로는 교육개혁 관련 교사 연수 를 활성화하고,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자생적 협의체를 지원하고, 개혁 우수 사례 를 홍보하는 것을 제안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 제안 및 공모 방식에 의한 개혁 추진, 혁신을 주도하는 교사에게 인사상의 혜택 부여, 사회교육과 학교교육의 협력 과 교류 활성화, 교육청의 행정 기능 축소와 현장 지원 기능 강화, 교원 승진 전보 제도 개선 등과 같은 방안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에 문제 가 있다고 해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절대적인 대안이 될 수 없으므로 다양한 수 준의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또한 임연기 등(1999) 은 모든 학교가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현장의 아이디어 와 노력만으로 동일한 수준으로 교육개혁을 타당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학교현장 중심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한 방안으로서 개 혁 우수사례를 적극 발굴하여 나머지 학교의 개혁을 촉진시키기 위한 산교육장으 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들은 그 구체적인 방안을 미국의 푸른기장학교 프 로그램을 모델로 삼아서 제시했다. 그것은, 국가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우수학교를 선정하는 기준을 공포함으로써 각 학교가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그 기준에 따라서 우수학교를 발굴하고 홍보함으로써 나머지 학교가 그 학교를 모

43 델로 해서 스스로 학교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연구자들이 학교개혁은 단위학교를 중심으로 교사들이 자발적으 로 참여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지적했다. 윤종혁 등(2002) 은 교육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 일변도의 방식이 아니라 단위학교를 중심으로 교육 현장에서 시작하는 개혁 운동으로 바뀌 어야 하며, 이런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논리를 배제하고 전문가 집단과 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고, 교사들이 능동 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체제와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김흥주 등(2002) 은 교육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원집단의 참여의지를 키우고 자발적으로 교육계획의 실현에 동참하도록 해야 하며, 교육계획이 교육현장의 변화 를 초래하고 혁신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학교 현장의 독특한 성격과 교사들의 요구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함을 지적했다. 3) 학교 행정 체제 이상에서 제안된 학교현장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개혁 방안들은 부분적으로 시행 되기도 했다. 일부 학교들이 교육개혁 우수학교로 알려지고, 많은 교사들이 그 학 교를 방문하여 학교개혁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또한 정부가 일부 학교를 자율학교 로 지정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 자율학교는 예체능학교, 특성화학교, 통합형학교 등의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1999년 첫해에 14개교가 지정되어 운영 된 이래 2005년 현재 99 개 학교가 자율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정수현, 2005) 아래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율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위학 교가 자율적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질 필 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의 출발은 유례없는 교육개혁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령체 계가 과도하게 규제위주로 되어있는 탓에 단위학교가 교육수요자인 학습자 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44 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부 중심의 개혁유도(top-down) 방식을 현장 중심 의 개혁실천(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이종태, 강영혜, 정광희, 2000: 8)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육개혁 우수학교는 교사들의 인식 속에서 일반 학 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교로 되돌아갔고, 자율학교를 운영한 결과 역시 기대 를 충분히 충족시키기 못했다. 자율학교의 운영 결과에 대해서 정수현(2005) 은 다 음과 같이 보고했다. 많은 학교들이 교육과정 평성 및 운영의 자율권이 자율학교 운영의 핵심 이며, 그로 인해 학교와 교사들이 기존의 교육과정을 답습하지 않고 더 좋 은 교육을 위해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교육과정 편성 등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나 전반적으로 학교운영의 자율성 신장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 났다. 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교육청 관계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여전히 간섭과 통제가 심하다는 점이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교사 수급이나 재정 지원 또는 획일적인 국가교육과정의 적용 등에서 변화가 없는 한 교육과정 편성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정수현, 2005: 333) 즉, 정수현(2005) 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율학교는 자율성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자율학교 역시 교육청의 간섭과 통제를 받고, 교사 수급과 재정 지원에 제한이 있으며,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이 획일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 다. 이종태 외(2000b) 와 이종태와 정수현(2001) 역시 자율학교 운영 결과에 대해서 대동소이한 결론을 내렸다. 이종태와 정수현(2001) 은 자율학교가 충분히 자율적으 로 운영되지 못하는 원인으로서 앞서 언급한 것 외에 다수 교사들의 소극적 참여 의식, 학부모의 무관심과 대학입시 준비 교육에 대한 요구 등을 들었다. 특히 이종 태 외(2000) 는 자율학교가 자율성을 발휘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주요한 원

45 인으로서 행정체제의 관료적 특성을 지적했다. 국가교육과정의 존재 못지 않게 오히려 학교 현장을 더욱 경직되게 만드 는 것은 학교교육과정을 직접 관장하는 시도교육청의 관료주의적 행정이 다. 효율성과 신속성, 그리고 무사성( 無 私 性 ) 을 추구하는 관료주의적 행정 은 개별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 공문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더구나 사소한 것조차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최고 권력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권위주의적 행정은 현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나 여유가 없다. 단지 필요한 것은 지시한 내용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 는가를 독촉하고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종태, 강영혜, 정광희, 2000b: 71) 자율학교의 운영 결과에 대한 이상의 보고에 따르면, 학교가 개혁되지 않는 것 은, 부분적으로는 교사가 저항하거나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정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단위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자율학 교마저 행정체제의 관료적 특성으로 인해서 그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학교에 대한 행정체제의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영향력의 정 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학교가 학교단위에서 자 율적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여 러 가지 사례를 통해서 실지로 확인할 수 있다. 열린교육 의 확산과 소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학교에서의 열린교육은 예산의 차등 지원을 전제로 한 시도교육청 평가를 준비하는 불과 몇 달만에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확산되었다. 하지만 현장을 관찰 하여 보면 이러한 급속한 확산은 열린교육의 잠재력이 폭발된 것이라기보 다 관료적 체제의 일사불란한, 따라서 여전히 닫혀있는 교육행정의 위력이 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처럼 구태의 메카니즘 속에서 개혁의 내용 이 뒤틀리고 변질되는 현상은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일제 외,

46 1998: 8) 위의 인용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열린교육은 각 시도교육청을 평가하는 주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였다. 정부가 그렇게 한 것은 열린교육이 학교교육을 개혁 하는 주요한 방안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열린교육을 전국의 모 든 학교에 확산시키기 위해서 시도교육청을 평가하는 항목 가운데 하나로서 열린 교육을 포함시켰으며, 시도교육청은 지역교육청을, 지역교육청은 각 학교를 평가하 는 항목의 하나로서 열린교육을 포함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각 학교는 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열린교육을 하도록 지시했고, 교사들은 열린교육이 무엇인지도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한 가운데 열악한 교실 상황을 무릅쓰고 마지못해서 열린교육의 외 양만 흉내냈다. 그리고 각 학교는 지역교육청에, 지역교육청은 시도교육청에, 시도 교육청은 교육부에 열린교육을 추진한 성과를 문서로 보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 과의 보고는 다음과 같은 것일 수밖에 없었다. 거의 한 60-70% 가 정확한 조사에 의해서 올라가는 부분이 아니고 거의 그냥 대충해서 보내는 공문들이 많으니까. 또 그걸 원하고. 왜냐하면 시간 안에 보내는 것을 원하지 그것이 정확히 와야된다는 것을 원하는 경우는 제가 지금까지 못 봤어요. 저 같은 경우는 거의 도사급이지요. 탁 보면 알고. 그리고 나쁜 거지만 예를 든다면 요식 행위로 당장 한 개도 하지 않 았는데 내일까지 보고서 내라고 하면 기차게 하죠.( 양승실 외, 2001: ) 이러한 열린교육의 억지스럽고 전시적인 확산은 교육개혁 정책을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현장에도 많은 혼란을 남겼다. 그 혼란 가운데는 학교와 교육의 전통적 의미 부정에 따른 교실의 무질서 현상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열린교육은 마침내 이 런 혼란을 뒤로 한채 그것이 확산될 때보다 더 극적인 방식으로 학교에서 소멸되 었다. 양승실 등(2001) 은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47 최근 몇 년간 수업 중에도 수업에 집중하기는 커녕 교실을 돌아다니고 주의력 결핍 증세를 보이는 아동들이 초등학교 교실까지도 위기로 몰아가 고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열린교육이 이러한 현상을 야기한 주 요인으로 주목되어 그 공과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마침내 교육청에서는 열린 교육 본래의 취지는 살려나가되 열린교육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각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문의 여 파로 일선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열린교육 시작 당시 타원형 탁자로 개비 하면서 창고에 쌓아두었던 과거 아동 체위 기준으로 제작된 낡은 나무 책 걸상을 다시 꺼내 사용하고, 새 타원형 탁자는 창고에 쌓아두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그 결과 책걸상이 학생들의 체위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심화 되었다. 실제로 아동들의 건강( 척추만곡증) 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상당한 교육 재정을 낭비한 셈이다.( 양승실, 2001: 130) 열린교육이 사라져가는 이런 과정은 교육 행정체제의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특 성과 행정기관과 일반 학교 사이의 관계를 더 잘 보여준다. 행정기관은 열린교육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마저도 통제하고 있으며, 일선 학교는 그 지시를 과도하게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와 같은 행정체제 하에서 일선학교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마저 상실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학교를 비롯한 하급기관은 교육활동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눈치의 최종적인 결과는 상급기관의 감사나 지적을 받지 않 는 것, 즉 과거의 관행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다. 7 차 교육과정에서 특별활동 때문에 ( 학교) 교육과정 세우면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 해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 모르겠어요). 오신 강사조 차도 이해를 못하거든요. 우리는 또 뭐가 문제냐면 시수를 잘못 계산하면 감사에 걸리잖아요. 일단 감사에 걸리나 걸리지 않나 그것을 따져보고 해 야 하니까. 제가 파악한 바로는 ( 교육과정이) 굉장히 우리를 도와주시는 의도더라구요. ( 제가 선생님들한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48 다른 기존의 특별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해하시는 거야. 그럴리가 없 다, 만일 그랬다가 감사에 걸리면 연구부장이 책임질 거냐 그런 식으로 나 오니까 그럼 맘대로 하세요. 옛날처럼 하세요. 저는 몰라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걸 만드신 분하고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 에. 그리고 그걸 전달해주시는 선생님한테 문의를 해봐도 나도 뭔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왔다 고 이렇게 하시니까 그분도 몰라요. 전달이 우리에게 걸러걸러 오다보니까 그런 과정에서 계속 빠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잘 모르지요. ( 양승실 외, 2001: 77) 거기에다가, 위의 인용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교육과정을 비롯해서 각종 교육개혁 정책은 교육부의 담당자에 의해서 시도교육청의 담당자에게, 시도교 육청의 담당자는 다시 지역교육청의 담당자에게, 지역교육청의 담당자는 각 학교의 담당 교사에게, 각 학교의 담당교사는 나머지 교사에게 전달연수 의 방법으로 전 달 된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개혁정책이 추구하는 방향과 의미는 점점 증발되어 희미해진 채 문서와 문자만 남게 되고, 현장의 교사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심지어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게 된다. 이처럼 행정체제의 문제로 인해서 교육개혁 정책이 왜곡되고 교사가 교육개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다. 예 를 들면 이혜영과 한만길(1996) 은 교육개혁을 저해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교사와 학부모가 교육개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가 소 극적인 것은 교육개혁 방안이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정책의 결정 구조와 교육행정풍토에 있다고 지적했다. 교 육행정풍토와 관련해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사들의 교직풍토를 보수적이고 현실 안주적으로 만든 주요한 원인은 교육행정풍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교육행정은 학교의 핵 심적인 활동인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도와 지원 봉사 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일정한 기준에 준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 관

49 리하고, 법규와 규정에 비추어 학교의 활동을 감독 통제하는 관리 행정에 치우쳐왔다. 규정 준수만을 강조하는 관리 위주의 교육행정은 가시적인 실 적 위주의 확인 행정 또는 법규정에 의한 감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학교 는 교육 활동의 내실을 기하기보다 형식적이며 계량적인 업무 처리 보고로 대처하게 된다. 이와 같은 관리 위주의 행정은 학교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교육활동을 시도해 봄으로써 교육을 개선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꺽 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교육행정풍토의 또 하나의 특성인 권위적 상의하달 역시 교직풍토를 침 체시킨 결정적인 원인이다. 권위적 상의하달식 행정은 기관 간, 직급 간의 위계적 질서를 중시하며, 상급 기관의 하급 기관에 대한 지시와 명령 하달 을 위주로 한다. 이것은 각 지역과 단위 학교의 특수성, 자주성, 창의성을 신장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행정 전체의 통일성과 능률 성을 중시한다. 이와 같은 행정풍토로 인해 단위학교는 자율성을 제약받고 있다. 따라서 제반 교육활동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기보다 상부의 지시와 명 령에 따라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나 상부 교육행정기관의 지시와 감독에 의해 단위 학교의 자 율적 운영이 크게 제약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학교장은 일반 교사들에 비 해 상대적으로 매우 큰 권한을 행사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학교행 정가들이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적 행태에 의존하여 교사들의 창의적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지 않으며, 제반 교육활동에서 전문적인 권위를 내세우기보 다는 인사권을 포함한 각종 행정적 권한을 앞세워 학교장 위주의 학교 운 영을 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행정풍토는 교사들의 전 문적 자율성을 손상시키고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 이혜영, 한만길, 1996: 98-99) 요컨대, 가시적인 실적위주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상의하달식 행정으로 말미암 아 단위 학교, 특히 교사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활동이 제약을 받고 교사들은 현실 안주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행정체제 하에서는 교육개혁 정책과

50 그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정책은 매번 헌 부대에 담겨지는 새롭지 않은 새 술 이 거나, 잔뜩 녹이 슬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수도관을 통해서 배급되는 신선하지 않은 생수 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학교가 자율성을 발휘해서 학 교를 스스로 개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밭에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그 콩마저 쭉정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지적에 따르면 그동안 교육개혁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정체제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 고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해서 몇몇 연구자들은 현재의 교육행정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김성열(2005b) 은 단위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 해서는 한편으로는 단위학교가 교육행정 기관의 규제와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율적 인 결정영역을 가져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위학교가 자율적인 결정영역을 제 대로 향유할 수 있는 내부 체제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열, 2005b: 21-22) 김흥주 외(2005) 는 학교 운영체제를 혁신하기 위해서 단위학교의 자율 권한 확 대, 학교평가체제 혁신, 학교운영의 투명성 제고, 참된 교수를 위한 학교의 구조적 조건 개선, 혁신학교 시범 운영 및 학교혁신 네트워크 운영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그들은 학교가 새로운 실험을 통해서 더 효과적인 학교 운영 방안과 교수 방 안을 찾아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원하는 네트웍을 학교와 교육행정기관과 연구 기관이 함께 개발하여 운영함으로써, 학교혁신 사례를 확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즉, 기존의 관리와 통제 위주의 행정체제를 지원 위주로 개편하고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4) 사회의 변화 한편, 일부 연구자들은 기존의 교육개혁이 실패하게 된 원인을 다른 방향에서 찾 았다. 예를 들면 이종태 외(2000a) 는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에 이른바 학교붕괴 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은 교사의 무능이나 개혁정책의 결

51 함 또는 행정체제의 관료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의 경향 때 문이라고 보았다. 최근 우리의 학교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위기적 증상들이 단순한 정책의 실패 또는 학생이나 교사 개인들의 나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경향적인 사회 변화 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것이라는 점이 다.( 이종태 외, 2000: 141) 그들은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중에 지켜야 할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거 나, 교사의 지시나 지도를 따르지 않는다거나, 학교에 무단으로 결석하거나 이탈하 는 현상 등은 기존의 학교질서로 복구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학교붕괴 현상이라 기보다는 새로운 학교질서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학교의 위기 징표로 보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또한 오늘날 학교의 위기는 그러한 징표들로만 충분히 설명될 수 없 다고 지적한다. 그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학생은 개별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교사와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내용이 있으면서 교사와 함께 호 흡할 수 있는 수업을 기대한다. 그에 반해서 현재의 학교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 어서 학생들의 그러한 바램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 즉, 오늘날 학교와 학생은 서로 괴리되어 있다. 이른바 학교붕괴 로 지칭되는 현상은 양자 사이의 이러한 괴리가 심화되어서 나타나는 양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학교 문제의 핵심 은 학교와 학생 사이의 괴리이고, 이 괴리는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체제 자체가 위 기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이종태 외, 2000: 62) 그들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 했다. 이상의 관찰들은 최근에 들어 학교교육이 중대한 전환점에 와 있으며 이 는 곧 학교교육의 위기적 상황 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이 연구의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변화하기 어려운 종래의 학교교육과 이미 질 적으로 변한 사회와 학생세대, 이 양자 간의 괴리야말로 학교교육의 위기 의 원인이자 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특히 학교교육은 본질상 사회

52 적 기능의 하나이며, 따라서 언제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것이 요청된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사회의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곧 스스로의 사회적 효용성 또는 존재 이유가 상실됨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오늘날 학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의 기본 성격은 효용성 의 위기라 할 수 있다. ( 이종태 외, 2000: ) 즉, 그들에 따르면 오늘날 학교는 질적으로 변한 학생과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기에 놓여있다. 그들은 오늘날 학교가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을 학교 내적 요인, 청소년 세대의 등장, 문명사적인 변화의 세 가 지로 구분해서 제시했다. 학교 내적으로는 학교가 관료체제로 운영됨으로써 학교교 육이 경직되고, 종전까지 학교가 독점적으로 수행해오던 기능을 학교 밖의 다양한 기관들이 부분적으로 나누어 수행함으로써 학교의 객관적 위상이 약화되었다. 또한 학교의 여건이 부실하고, 교육정책이 권위주의적으로 집행되며, 대학입시를 중심으 로 교육체제가 운영되는 것도 학교를 위기에 처하도록 한 내적 원인 가운데 하나 다. 학교 외적으로는 문자보다는 영상과 이미지에 익숙하고, 소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사이버 세계에 거주하기도 하며, 개성이 강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새로운 세대가 학교에 등장한 것도 학교를 위기에 놓이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학 교의 위기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 정보와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기반사회 전개, 전통적인 가치와 신념의 절대성을 비판적으로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심화 등과 같은 거시적인 사회 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 이기도 하다.( 이종태 외, 2000: ). 요컨대, 그들은 오늘날 학교가 위기에 놓이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교사나 개혁정 책 또는 행정체제의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서 그들은 현재 학교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기존의 교육개 혁 정책을 보완함으로써 현재의 학교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학교체제를 모색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53 위기를 말한다고 해서 학교 자체가 필요 없게 된다거나 조만간 학교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지니는 학교가 요구 된다는 것이다. 이 때에도 여전히 학교 라는 명칭이 사용될지는 미지수이 다.( 이종태 외, 2000: 140)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학교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장단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먼저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지금의 학교를 구성하는 형식과 내용이 항구불변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학교에 의한 교육 독점체제를 제도적으로 해소하며,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현재의 학교교육 체 제를 점진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 교육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학교 체제의 다양화와 자율화는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 가운데 하나라 고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학교교육의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교사에게 자 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교사들의 무력감을 해소하고 교육활동에 의욕을 갖도록 한다. 또한 교육과정을 구조적으로 개편함으로써 학생들의 마음이 학교를 떠나는 것을 완화해야 한다.( 이종태 외, 2000: ) 5) 학교 이해 부족 지금까지 살펴본 연구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그동안의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교육개혁 정책이 이상의 다양한 장애요인과 사회적 배경 등을 충분히 고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기존의 학교체제를 무용지물로 만 들어가고 있고, 그런 와중에서도 교육행정체제는 여전히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위력 을 발휘하여 새로운 교육개혁 정책마저도 헌 술로 만들어 버리며, 교육개혁 정책은 그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입안되고 추진되었다. 그러자 현장의 교사들 은 교육개혁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즉, 교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학교 현장의 모든 교사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나태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교육개혁 정책 자체에 추진 방식 이상의 결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육개혁 정책에 이러한 결함이 있는 까닭은, 그것이 스스로

54 그런 결함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교육개혁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위와 같 은 상황을 충실히 파악하고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개혁 정책이 최종 적으로 집행되는 학교의 현장을 충실히 이해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양승실 등(2001)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몇 년 간 추진된 교육개혁 방안들이 그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 하고 왜곡된 것은 학교 현장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이었다. 종래의 많은 교육개혁 방안들이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장을 겉돌 거나 혹은 현장의 반감을 샀었다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학교 현장의 논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섣불리 방안 을 제시하는 것은 종래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오랜 관행 속에 배어 있는, 그리고 좀체로 변화하지 않는 현장의 논리가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양승실 외, 2001: i, 13) 그렇다면 기존의 정책 입안자들은 왜 학교 현장을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까? 지금까지 정책 입안자들은 미래의 사회상을 세계화와 정보화로 규정하고, 세 계 중심국가를 지향하는 신한국 창조 라는 목표를 사전에 설정한 뒤, 그 목표를 달 성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신교육체제의 수립 이라는 교육개혁 정책을 제시했다. 그 리고 그 정책에 따라서 전국의 모든 학교를 일사분란하게 개혁하려고 했다. 그들에 게 학교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일 뿐이었다. 교사들은 학교체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거나 주인이 조작하는대로 움직이는 자동인형과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개혁 정책에 따르지 않는 교사들은 폐기되거나 교체되거나 수리 되어야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방안으로 말이다. 급변하는 교직환경을 전망해 볼 때 교직 전반에 깔려있는 문화적 특성을 긍정적이고 교직 발전을 촉진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변화 를 유도해야 한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개방화와 통합화 등의 변화 추세에

55 부응하여 교직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직사회를 보다 효과 적인 조직으로 변화시킴과 동시에 구성원으로 하여금 협동적이고 참여적으 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필요한 경우 적절히 학습시키는 전 략이 필요하다.( 박영숙, 전제상, 2003: 20) 위의 방안에서 급변하는 교직환경을 전망하는 사람, 교직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규정하는 사람, 교직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람, 교사를 학습시키는 사람은 모두 정책 입안자다. 교사는 그들이 전망하고 규정한대로 변화되고 학습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이와 같이 정책 입안자가 개혁의 방향과 목표와 방법을 제시하고, 교사들 로 하여금 그 방안에 따르도록 변화시켜야 하며, 교사들은 그 방안에 따라야 한다 는 사고 속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또 다른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첫째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 사회가 어떤 것인지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으며, 자신이 내세 운 목표가 옳다는 확신이다. 둘째는,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향하여 자신이 세운 계 획대로 교사는 물론이고 전국민을 이끌고 변화시켜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셋째는, 대다수 국민들, 특히 교사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르거 나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고는 그가 의식하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그 동안의 교육개혁 정책에 논리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며, 그런 사고를 전제로 하지 않 고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이런 사고를 대 하면서 교사들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어 느 교사가 한 말을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도 교직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 답답한 일입니다. 교 사는 아무것도 아니며 실제로 별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음을 고백하고 괜히 섣불리 개혁이니 하는 말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 교사들 은 한 명의 봉급쟁이 이상은 안 된다는 현실을 직시합시다. 괜히 어줍잖은 무슨 대단한 사명이나 띤 것인양 가슴 가득 뿌듯한 자기 최면에 사로잡힌 얼빵한 생각들일랑 접읍시다. 그냥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 목 안 잘리고 감봉된 월급이나마 무사히 받아감을 감사히 여

56 겨야 할 말단 공무원일 따름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참 행복한 분입니다.(Hitel, go PEDAGOGY, 교육일기 1998년 7월 15 일, ID menifess) ( 이인규, 1998: 29-30) 요컨대, 그동안 추진해온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 른 것이 아닌 바로 정책 입안자들 자신에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사고 때문인지 도 모른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할 수 있으며, 교사들은 그것을 모르고 할 수 없다는 그 사고가 학교와 그 주변의 현실을 넓고 깊고 면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부적절한 개혁정책을 양산하도록 해왔는지 모른다. 앞서 인용한 양승실 등(2001) 이 기존의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비난을 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판적으로 성찰 할 필요가 있다고 한 말 양승실 등(2001) 은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섣불리 제시하기보다는 학교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이해를 토 대로 학교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공립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각 1 개씩 선정하여 교육행정 전공 교수, 교과 교육 전공 교수와 연구자, 교사, 행정실장 등과 함께 각각 1주일 동안 각 학교의 수업, 일상 활동, 각종 회의 등을 관찰하고 관련자와 면담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이 와 함께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질문지 조사를 실시해 서 사례 학교에서 발견되는 사실이 일반적인지 여부를 확인했다. 그들은 이 연구를 통해서 학교 현장에서 오래 동안 변화하지 않는 채 지속되어오고 있는 관행과, 그 관행 속에 배어 있는 학교 현장의 논리와, 학교 현장의 논리가 유지되는 매커니즘 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현장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 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의 논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조건을 탐색했 다. 즉, 그들은 학교 현장의 논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학교 현장의 논리를 이해하 고자 했다.( 양승실 외, 2001: 11-17) 그들은 앞서 이종태 등(2000) 이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학교는 위기에 놓여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위기는 일차적으로는 학교문화와 청소년문화의 갈등 에서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명사적 사회변동으로 인하여 기존의 학교 질서를

57 유지해오던 가치가 의문시됨으로써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학교가 위기에 처해있는 양상을 학교 질서의 이완,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의미있는 학습의 곤란과 학교 이탈에 대한 선망으로 구분하여 구체적인 사례와 함 께 제시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서 학교 학습과 교육과정 운영의 괴리, 학교문화 의 민주성 미흡, 교사의 권위 약화,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지원체제 미흡, 학 교행정의 형식주의, 미흡한 교육여건, 교육정책의 현실적합성 결여, 학력주의와 학 벌주의 풍토 등의 여덟 가지를 지적했다. 또 이러한 학교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한 총제적인 방안으로서 의미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과정 운영, 내실있는 생 활지도 운영, 교원의 교육역량 결집을 위한 전문성과 책무성 확립, 교수학습 활동 지원을 위한 교육행정체제 구축, 교육프로그램 경쟁이 가능한 유연한 학교체제 구 축, 학교교육의 기능 재정립과 사회 각 부문 간 교육 역할 분담, 학교교육 내실화 를 지원하는 사회 문화 풍토 조성 등의 일곱 가지 큰 방안과 그에 따르는 하위 세 부적인 방안들을 나누어 제시했다. 2. 선행연구로부터의 시사점 1) 연구자의 자각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기존의 교육개혁 정책이 실 패한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교육개혁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대안적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검 토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검토하는가에 따라서 기존의 연구로부터 서로 다른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기존의 연구들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연구자들이 교육개 혁 정책이 실패한 원인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연구 자들은 대체로 초기에는 실패의 원인이 교사에게 있다고 보다가, 점차 교육개혁 추 진 방식, 교육행정체제, 사회변화, 그리고 연구자 자신의 학교 현장에 대한 이해 부

58 족 등으로 바꾸어 간다. 즉 실패의 원인을 연구자 밖에서 찾다가 연구자 안에서 찾 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 개혁 정책과 관련해서 기존의 연구들이 이러한 경향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보기 에는 무리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변화에 따라서 개혁의 방식도 하향에서 상향으로, 획일에서 다양으로, 통제에서 자율로, 관리에서 지원으로 변화해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 께 학교 현장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이해의 필요성도 더 커지고, 학교 현장을 이해 하기 위한 노력도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앞서 살펴본 지난 10여 년 동 안의 연구들이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그가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수행한 연구는 교육개혁이 실패한 원인이 연구자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교사의 중요성 기존의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한 원인과 대안적 방안에 관한 기존의 연구를 통해 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각각의 연구자들이 실패의 원인을 서로 다르게 지적하면서도, 그러한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서 또는 가장 핵 심적인 방안으로서 교사의 전문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박영숙과 전제상(2003) 은 교사들이 폐쇄적이고, 타율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적 이고,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교육개혁 정책을 포함한 학교의 변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하면서도, 이런 교 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 개발, 단위학교의 자율권 보장, 학교 경영에 교사의 참여 확대, 교사의 업무 경감 등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교육개혁 정책의 추진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최상근 등(1998), 성일제 등(1998), 임연기 등(1999), 윤종혁 등(2002), 김흥주 등(2002) 도 단위학교에서 현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실 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점은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한 주요 원인이 교육 행정체제에 있다고 본 이혜영과 한만길(1996) 이나 김성열(2005b), 김흥주 등

59 (2005) 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종태 등(2002) 은 오늘날 학교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은, 그 방향에 있어서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에 따르는 학교와 학생 간의 괴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는 여러 면에서 중첩된다. 특히 그들이 제시한 단기적인 개혁 방안은 다른 연구자 들이 제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 역시 교사의 자발적이고 전문적인 교 육활동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점은 양승실 등(2001) 이 제시한 방안도 역 시 마찬가지다. 그 방안들은 궁극적으로는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성을 가지고 자발 적으로 학교의 교육을 개혁하는 데 참여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교육개혁이 어떤 의도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법에 의해서 이 루어지건 관계없이 그 과정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교육개혁의 성패 여부는 결국 교사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으며, 교사의 전 문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교육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 라서 지금까지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바로 교사의 전문적이고 자발 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초기 에 교사들이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된 것이나, 최근 들어서 정부가 교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사평가를 강행하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사실들 은 결국 교육개혁의 과정에서 교사가 가장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아래의 말은 그 점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현 상황에서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은 교사밖에 없다!! 원론적 인 이야기라고 탓하더라도 할 수 없다. 교육은 본래 그런 것이다. 교사가 없는 학생은 있을 수 없고, 그들의 교육적 만남 없이는 교육도 있을 수 없 다. 이 글에서 여실히 보았겠지만, 학생들이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일차적 이고 직접적인 지점에는 항상 교사가 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희망을 걸고 교육의 본질에 다시 충실하고자 할 때 바로 그 현장에도 교사가 있 다. 만약에, 우리 교사들이 바깥에서 원인과 이유를 찾고 계속 허무와 방임

60 의 자세로 교직에 임한다면 정말 우리 공교육은 더 이상 비전이 없다. 지 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교실의 위기, 학교의 위기, 공교육의 위기는 절대 로 하루이틀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위기를 푸는 일도 결코 하루이틀에 다 할 수 없다. 차근차근 뿌리부터 새로 손질해 나가야 하고, 그 뿌리가 바로 교실에 있고 교사와 학생의 일상적 만남 속에 있기에 우리 는 교사밖에 더 기대를 걸 곳이 없다. 문자 그대로 교사가 마지막 보루 이 다.( 조용환, 2001b: 111) 요컨대,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교사는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걸림 돌이기도 하고 견인차이기도 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교사를 교육개혁 정책에 저항 하는 걸림돌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모두가 교사에게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 위의 인 용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부조리한 행정체제를 하나둘씩 바로잡고, 우리 사회에 만연된 왜곡된 교육관을 시나브로 바로세워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다. 학교 밖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 하고 그런 것들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교육을 이용할 때,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많은 공무원들이 상관과 정부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또 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교육을 왜곡할 때, 교 사는 교육이 본래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교사에게 그런 역 할이 사회적으로 부여되었고, 교사들은 교직에 들어서는 순간 그 역할을 스스로 자 임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권모술수를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시장에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악을 쓰는 사람들에게, 자식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기 위 해서 고액과외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에게, 상관의 눈치를 보면서 불안에 떠는 공무 원들에게 교육이 본래 무엇인지 고민하고, 본래의 교육을 따르는 의연한 삶을 살아 가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교사에게 교활한 정치인처럼, 얄팍한 장사치 처럼, 천박한 속물처럼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 것과 마찬가지다. 교사가

61 교육에 충실하려고 하듯이, 그들은 정치에 충실하고, 경제에 충실하고, 사회적 지위 와 평판, 그리고 생존에 충실할 따름이다. 사회나 행정체제는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스스로 교사보다 먼저 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몸이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병원균이 스스로 사라지고 환 경이 스스로 청결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치료되 고 청소되어야 하는 것들이며, 그 누군가가 바로 교사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이 교사를 학교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하면서도 결 국 교사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교사가 변해야 한다거나, 교사가 개혁의 주체라거나 하는 등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3. 학교개혁 정책의 실패 원인 1) 교사 자발성 유도의 한계 이처럼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교사가 견인차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개혁정책의 성패는 교사들로 하여금 교사로서의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연 구자들이 제시한 방안들이 타당한지 여부는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가 여부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 방안들은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하나같이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 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방안들이 아무 리 광범위하고 체계적이어도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러 연구자들이 제시한 교육개혁 방안들은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

62 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방안을 모두 철저하게 시행해보지도 않은 가운데 단정지어서 대답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는 하지만 양승실 등(2001) 의 말 에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학교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총체적으로 모색하여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학 교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지적했다. 그 들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총체적 학교교육 내실화 방안을 제안하였으며, 이들 중 몇 가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의 학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명쾌한 해법을 발견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여기서 제안된 내실화 방안들의 정책 집행 조건, 즉 우리 사회 시 스템과 풍토와 가치를 고려하면 더욱 막막하다. 그리고 교육 위기 극복에 는 묘약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여기서 제안된 처방들이 학교와 사회 맥락 속 에서 어떻게 자리잡아 가는가 여부에 따라 처방의 진가와 약효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양승실 외, 2001: 203) 그들이 이처럼 말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그들이 제시한 방안들 자체 가 학교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충분히 적합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 교가 처한 여건이 다르고, 그 방안들이 학교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뿌리를 내릴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들은 각각의 방안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 현되는지 그 과정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승실 외, 2001: ) 둘째는 그들이 제시한 방안들이 집행되는 배경이 되는 우리 사회의 시 스템과 풍토와 가치가 그 방안들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시행된 내신위주의 대입전형이 성적부풀리기로 귀결된 것도 그 한 가지 예다. 이런 사실은 다음 두 가지를 함의한다. 첫째는 어떤 교육개혁 방안도 그 자체로 서는 완전하지 않고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이 재봉사의 바느질 이 마무리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입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고 의미가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옷이 특정한 신체와 인품을 가진 사람에게

63 어울릴 때 비로소 옷으로서 완성되듯이, 교육개혁 방안 역시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적 배경에 위치한 구체적인 학교에 적절히 적용되고 사용되어서 그 효과를 발휘할 때 비로소 교육개혁 방안으로서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연구자가 제시한 개혁 방안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자리잡아가게 될지 모르는 이상 연구자는 전지 전능한 신이 아니라 무지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 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양승실 등(2001) 은 학교를 개혁하는 데 적합한 방안은 연구자 가 학교가 당면한 문제에 하나하나에 대해서 대답을 제시하고, 현장의 교사들은 그 것을 매뉴얼 삼아서 따라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교사들이 스스로 개 혁의 방안을 보완하고 수정하고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명쾌한 해법 대신 발견한 것이 있다면 정책을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 책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태어난 피조물이라도 기르는 과정이 없거나, 아무리 유전인자가 빼어나게 그 과정이 부실하면 제대로 자라 좋은 유전인자의 꽃을 피우기 어렵다. 그리고 구체적인 양육 계획은 현장 교원의 참여와 의지가 결합되어야 하고, 양육과정에서 환경에 따라 다소 수정 보완될 수 있는 자율의 여지와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현장 의 자율과 창의가 스며들 수 있는 방안, 학교 현장에서의 집행과정에서 좀 더 정련화되고 구체화된 방안, 그리고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육활 동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아이디어가 교육정책 결정 당국과 교육행정청으로 올라가, 즉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 수렴되어 보다 실천 가능하고, 보다 현 장 맥락 요구적이며, 우리 학교 토양에서 효과성을 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승실 외, 2001: 203) 요컨대, 위의 지적에 따르면, 좋은 학교교육 개혁 방안은 즉 현장의 교사들을 자동인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 지만, 양승실 등(2001) 은 자신들이 제안한 총체적인 학교교육 내실화 방안 이 학

64 교 현장의 교사들로 하여금 사람 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 다고 말했다. 그 말은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교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고, 여러 방안들을 통해서 교사들을 물가에까지 데려갈 수는 있지만 교사들로 하여 금 스스로 물을 마시도록 하지는 못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그들이 제 안한 방안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이 제안한 방안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 다. 양승실 등(2001) 이 제시한 방안은 다른 어떤 연구자가 제시한 방안보다 포괄 적이고 구체적이며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2) 관념적인 처방 그렇다면 왜 기존의 연구자들이 제시한 방안들이 교사들을 물가에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교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물을 마시도록 하지는 못하는가? 왜 교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전문적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하지 못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서 양승실 등(2001) 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풍토와 가치 등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들이 스스로 먼저 변화하기를 기대할 수 없고, 개혁의 방안들이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의 변화까 지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날씨 가 추워져서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감기에 걸린 원인 에 대한 하나의 설명은 될 수 있지만, 처방의 단서는 제시해주지 못한다. 날씨를 감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삼고, 그것을 처방의 단서로 삼게 되면 감기를 낫게 하기 위해서는 날씨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연구자들이 제시한 학교교육의 개혁방안은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일차적으로는 교사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서는 그 방안들 자체가 왜 교사의 전문적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는지를 살펴보 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가 감기에 걸린 원인을 환자의 신체 내부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앞서 살펴본 연구자들이 제시한 방안들을 검토함으로써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연구자들이 제시한 학교교육 개혁 방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 가운

65 데 하나는, 그것들이 비록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자율적으로 점 진적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에 있 어서는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 개혁방안들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연구자나 집행자의 사고와 관점에 근거해서 연구자나 집행자를 중심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교육개혁 정책을 획일적인 방식으 로 일시에 추진하지 않고 각 학교의 특성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추진한다고 하지만, 단위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 역시 획일적이고 일시적이다. 한 연구는 지나치게 획일화된 우리나라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자율학교의 대상을 점진적으 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일정한 여건을 갖춘 실업계 고 등학교와 일부 사립고등학교, 그리고 모든 국립사대부속고등학교를 자율학교로 지 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종태 외, 2000). 물론 이것은 연구자나 집행자의 관점에서 보면 전국의 많은 학교 가운데 일부 학교만을 대상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지만, 그 학교 중에는 자율학교를 운영할 형편이 전혀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 다. 그 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방안 역시 일시적이고 획일적인 것으로 비칠 수밖 에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최근에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연차적으 로 확대해서 실시하고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육부 의 관점에서 보면 연차적이라는 점에서 점진적이지만, 수준별 학급을 편성하는 것 이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적은 학교에서는 그것 역시 일시적이고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김인희(2003)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는 정책결정가나 행정가들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과제의 관점에서만 부분적으로 교사의 일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스케줄에 맞추어 교사들이 일해줄 것을 바란다는 점이다.( 김인희, 2003: 70) 둘째는 각종 제도나 기구 또는 행사에 의존해서 학교를 개혁하려고 한다는 점이 다. 예를 들면 많은 연구자들이 단위학교의 조직을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개편 하고, 교무회의에서의 교사의 의결권을 확대하고, 교사의 연수를 강화하고, 업무를

66 감소하는 등의 방안에 의해서 교사의 전문적인 자발성을 유도하려고 한다. 이런 방 안들은 교사들이 전문적 자발성을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전 문적인 자발성이 원활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들이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조건임에 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그런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교사들이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발휘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장학제도는 번거로운 요식행위로 전락한지 오래고, 학교평가 역시 감사와 장학에 이은 또 하나 의 일덩어리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제도나 기구 또는 행사는 교사들을 물 가에 데려가도록 하는 데는 유용할 수 있지만, 물을 먹도록 하지는 못한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거나, 우수한 교사나 학교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도 이러한 자발성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다. 예를 들면, 교육부나 교육청이 현장 공모나 제안을 통해서 각종 시범학교를 선정하여 운영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학교의 교사들에게 가산점과 같은 인사상의 혜 택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이런 방안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로 하여금 문서상의 일 회적인 전시성 성과를 양산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교육개혁 정책 자체가 대다 수 교사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단지 일부 교사들의 승진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될 뿐이다. 이 점을 심성보(1998) 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최근 교과교육연구논문 모집을 연구팀별로 하게 한 것은 교육개혁의 주 체 형성에 다소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나, 많은 경우 실제 연구팀과 상관없 이 승진을 위해 거짓명단을 짜거나 돈 욕심 때문에 신청한 경우도 비일비 재하다. 교육개혁의 학교별 평가점수에 따라 재정지원을 차별화하는 풍조 는 교육구청이나 일선학교로 하여금 있지도 않은, 보이기 위한 전시형 교 육개혁으로 몰아갈 뿐이다. 이들 대부분은 교육개혁에 대한 관심이나 노력 은 보이지 않고, 승진이나 돈 욕심 때문에 없는 실적을 작문하듯 써내는 문서형 교육개혁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연구는 교육실천을 하지 않고 잿 밥에만 관심을 갖게 하는 동인을 제공할 뿐이다.( 심성보, 1998: 72)

67 셋째는 많은 연구자들이 제시한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방안이나 전략들이 실제 적용과정에서는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작은 목표이거나 결과 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교사들이 학교의 개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 해서 여러 연구자들이 학교의 의사 결정 과정을 민주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직원회의를 협의기구 또는 의결기구로 정착시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직원회의를 어떻게 협의기구 또는 의결기구로 정착시 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여기에는 입법 과정 등을 거쳐 제도상으로 교직원 회의를 협의기구나 의결기구로 정착시키는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현장에서 교직원 회의가 실질적인 민주적 의견 수렴 기구로 작동하게 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그리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어렵고 중요한 문제다. 결국 교직원회의를 협의기구 또는 의결기구로 정착시키는 것은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방안이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이고, 교직원회의가 협의기구나 의결기구로 정착되었다는 것은 이미 단 위학교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개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교개혁의 결과 를 조건으로서 제시함으로써 정작 핵심적으로 필요한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 는 셈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 제시하고 있는 다른 여러 방안이나 전략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넷째는 학교개혁의 성패는 교사들이 전문적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가 여부에 달려있음을 인식하면서도 학교를 단위로 교육개혁 방안을 적용하고 관리자 를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할 경우에 교사들은 관리자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관리자는 교육청의 감독하에 놓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아서 녹슬고 구멍난 수도관을 통해서 내려보내는 셈이다. 또한 한 학교 내에는 서로 다른 지향을 가진 다양한 교사들이 함께 존재하므로 그 방안 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하고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또 하나의 전시행정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많다. 요컨대, 지금까지 살펴본 학교 개혁 방안들이 궁극적으로는 교사들로 하여금 자 발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안들이 연 구자나 집행자의 사고와 관점에 근거해서 제도나 기구 또는 행사에 의존하고 있으

68 며, 개혁의 목표나 결과가 개혁의 방안으로서 제시되고, 학교를 단위로 해서 교장 을 중심으로 그 방안을 적용함으로써 학교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그 처방들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관념성으로 인해서 그 처방들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3) 정치-공학적 패러다임 그렇다면 이제까지 검토한 많은 연구들이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적인 자발성이 핵심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면서 왜 그 구체 적인 방안에 있어서는 관념적인 처방에 머물렀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일부 연 구자들은 교육개혁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의존하고 있는 사고의 틀 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서 그런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김인희 (2003) 는 기존의 교육개혁 정책이 합리적-구조적 패러다임에 의존해서 입안되고 추진됨으로써 교사들의 동기부여에 실패하고, 결과적으로는 교육개혁 정책도 성공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변화는 교사들의 행동과 신념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변 화가 교사들에 대하여 가지는 유의미성(meaningfulness) 은 그들의 동기부 여를 가능케 하며 교육개혁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우리의 교육개혁은 관료제적 행정체제와 합리적-구조적 접근법에 의존하여 왔으며 이러한 메 카니즘은 인간에 대한 도구적 관점과 외발적(external) 통제, 외생적인 (exogenous) 개혁 아이디어, 사물과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 가정, 학습시간 의 부족, 일관성의 결여, 형식주의, 정서적 측면에 대한 무관심 등의 문제 를 수반하면서 변화과제가 교사들에 대하여 가지는 유의미성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결국 피상적, 형식적인 변화만을 가 져 왔으며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김인희, 2003: 55)

69 위에서 합리적-구조적 접근법 또는 합리적-구조적 패러다임이란 다음 두 가지 사고를 포함한다. 하나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사고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으며, 보상과 제재를 통해서 통제하고 조작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은 질서 정연하며, 명료하고 선형 적(linear) 인 인과관계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고다. 따라서 이 세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변인들을 조작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다.( 김인 희, 2003: 58-59) 이런 구조적-합리적 패러다임 하에서 교사들은 질서정연하게 구조화된 학교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하나의 도구이고, 그러한 학교를 유지하기 위 해서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그 통제는 외부의 기준에 의한 평가와 보 상과 제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김인희, 2003: 61-62)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정책은 이러한 합리적-구조적 패러다임에 의 존해서 입안되고 추진됨으로써 학교 외부의 인사들에 의해서 개혁 아이디어가 제 안되고, 평가와 상벌체제에 의해서 교사를 통제하고, 과정보다는 투입과 산출을 더 중시하고, 교사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학교의 현실과 교사들의 정서적 측면을 무 시한다. 그로 인해서 교육개혁 정책이 추구하는 변화가 교사들에게는 무의미한 것 으로 인식되고,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발휘하기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하는 척(safe simulation) 한다. 그리고 행정가들은 학 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새로운 일을 부가함으로써 학교의 문제 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실패와 지속되는 학교의 보수성은 학교의 속성에 맞지 않 는 개혁 메커니즘이 초래한 결과다. 정치가와 행정가들은 변하지 않는 학 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개혁 메커니즘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지금 까지 해온 방식을 더 강화(intensify) 하는 경향이 있다. 더 많은 유사한 프 로그램들이 제안되고 교사들에게 더 많은 과제가 주어진다. 교사의 일은 증가되며 더 많은 강화된 지시들이 학교에 시달된다. 새로운 과제에 대한 교사의 연수가 실시되고 실천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강 화(intensification) 란 점점 바빠지고 구속되고 종속되며 자율성이 줄어드는

70 반면 일의 종류와 양은 늘어나나 일의 질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Hargreaves, 1994). 교사들에게는 보다 더 많고 다양한 과업이 요구되나 스스로의 연구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보다는 외부전 문가의 처방을 따르고 의존하게 된다. 결국 교사들은 점점 더 수동적인 존 재가 되어가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완성도는 점점 낮아지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한 현상은 결국 형식주의와 안전을 위 한 가장(safe simulation) 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김인희, 2003: 66) 한편, 김인회 등(1997) 은 구한말부터 당시까지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교육개혁 정 책을 검토한 뒤, 그동안의 교육개혁 정책이 공통적으로 연역적인 사고에 의해서 추 진되었다고 보았다. 즉, 개혁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방향을 미리 상정하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방식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는 것이다. 이러한 연역적 사고로 말미암아 교육개혁 정책이 권위적이고 경직되게 하향식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전문적인 자율성과 다 양성을 기대하는 것은 허구이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혁논리의 연역적 성격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 권위주의적 체제 옹호적 성향을 지닌다. 보편적 법칙의 권위로써 설득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따라 서 연역적 논리로 설득하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은 아무리 개혁을 표방하는 내용일지라도 외피만 내세운 새로운 권위, 새로운 종속 대상으로서의 이념 이나 가치로 바뀐 것이지 절대주의적 경직성과 하향식 권위주의적 성격에 서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자율성 다양성일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설사 개혁이 표방하는 구호가 민주적 가치나 논리적 연역성이야말로 교육개 혁의 역사를 일관해 온 허구의 정체라 할 수 있다.( 김인회 외, 1997: 33) 요컨대, 이상의 지적에 따르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데

71 있어서 교사의 전문적인 자발성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함에도 불구하 고 구체적인 개혁 방안들이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하지 못하고 관념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실지로 의식의 차원에 서 인식하고 있었는가 여부와 관계 없이, 가끔은 명시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암 묵적인 차원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합리적이고 구조적인 가정을 전제로 하는 가 운데 연역적인 사고에 의해서 학교개혁 정책과 방안을 도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리적-구조적 패러다임과 연역적 사고에 의해서 수립되고 추진되는 교 육개혁 정책에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사고를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교육에 대 한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사고다. 앞에서 김인회 등(1997) 이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 지의 교육개혁 정책은 사전에 정해진 모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모 색되었다. 그 점은 1995년 5월 31일에 발표된 교육개혁 방안에서 전형적으로 나 타난다. 그 방안에서 교육개혁위원회는 미래 사회를 세계화 정보화 사회로 규정하 고, 미래 사회의 중심이 될 신한국을 창조하기 위해서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 조했다. 즉 교육은 신한국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이고, 교육은 그러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의미가 있다. 이런 사고는 그 교육개혁 방안을 보완하기 위해서 등장한 다수의 교육개혁 방안과,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 시켜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행 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육은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할 때 좋 은 교육이 되는 것이다. 단지 수준에 있어서만 서로 다를 뿐이다. 둘째는 양적인 사고다. 합리적-구조적 패러다임 하에서 모든 개인들은 항상 자신 의 이익을 위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이므로 각 개인의 개별적 특성이라든 가 각 개인이 놓인 상황이나 맥락의 특수성을 고려되지 못한다. 즉 개인에 따라서 또는 동일한 개인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 개인과 개인이 취하는 행동들은 동질적인 특성을 가진 동 일한 수량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교육개혁 정책과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들이 양적인 연구방법에 의해서 연구가 진행되어 입안되고, 교육개혁 정책이 추진되는 정도나 결과도 수량으로 측정해서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위와

72 같은 다양한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구체적인 정책의 방안들은 교사들로 하여 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는 정치적인 사고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존의 개혁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 향과 내용은 연구자에 의해서 사전에 결정되고, 행정가는 그것을 기준으로 교사와 학생과 국민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에 저항하거나 저해가 되는 존재는 모두 개혁의 대상이 된다. 이런 과정에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기준이며,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권력에 의해서 변화를 강요할 수 있다 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이 점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육개혁 정책이 예외 없이 정치적 권력에 의해서 시도되고 추진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교육부 가 교육청을, 교육청이 각급학교를, 각 학교의 교장이 교사들을 대할 때도 동일한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 요컨대,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기존의 정책과 방안들이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적인 자발성이 핵심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 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에 있어서는 관념적인 처방에 머무른 이유, 즉 교사들로 하 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개혁정책 과 방안들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합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를, 교육에 관한 도구적 인 사고를, 교사와 학교를 파악하고 처방하는 데 있어서 연역적이고 양적인 사고 를,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권력에 의존한 정치적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 문이다. 교육개혁 정책이 입안하고 추진하는 이러한 사고의 틀은, 과장과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엔지니어가 자동차를 제작하거나 수리할 때 적용되는 사고의 틀과 근본적 으로 다르지 않다. 엔지니어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여러 개의 부품들이 질서정연하 게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운반기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엔지니어는 어떤 것이 정상적인 자동차인지, 각각의 부품이 외부의 힘에 대해서 어 떻게 반응(?) 하고 움직이는지, 자동차가 운반기기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 느 부품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또는 정상적이지 않은 자동차를 정상적인 자 동차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부품을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부품들은 이런 것들을 다 알지 못한다. 단지 동일한 부품은 동일한 자극에 동일하

73 게 반응하고, 엔지니어가 조작하는대로 따라야 할 뿐이다. 엔지니어는 부품에 대해 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력(?) 을 가지고 있고, 부품들은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달리 말하면, 그동안의 교육개혁 정책과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제시된 여러 방 안들은 공학적이면서 정치적인 사고의 틀, 좀더 간단히 말하면 정치-공학적인 패 러다임에 기초해서 입안되고 추진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교육개혁의 가장 핵심이라 고 할 수 있는 교사들의 전문적인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 다. 4. 학교개혁을 위한 대안적 접근 1) 교육-해석적 패러다임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까지 많은 학교교육 개혁 방안들이 정치-공학적인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수립되고 추진됨으로써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학교개혁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면, 우리는 이제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학교의 문제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안도 새롭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필요성은 몇 몇 연구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일부 연구자들은 부분적으로 그런 대안적 패러다 임에 의해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김인 희(2003) 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은 교육개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며 이는 본질적으 로 교사들의 동기유발에 초점을 맞춘 개혁 메카니즘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들의 주관적 현실과 변화를 위한 학습 중시, 현장중심의 귀 납적 개혁과제 도출, 재창조(reinvention) 로서의 변화과정 인식, 업무체제 내 일관성 확보,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 교직의 전문직 문화 형성 등에

74 대한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교육개혁에의 교사참여는 이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며 단순한 양적 확대는 효과를 거 두기 어렵다.( 김인희, 2003: 55) 위에서 김인희는 교육개혁은 교사의 자발적인 동기를 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 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교사들의 주관적 현실을 중시하 고, 개혁의 과제를 외부로부터 제시하는 대신 현장에서 교사들이 느끼는 문제로부 터 도출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즉 학교 현장의 문제를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 보고 대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가운데 제시 된 학교개혁 방안들은 현장의 교사들에게 무의미하며, 그로 인해서 교사들이 개혁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때로는 저항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 개혁 메커니즘의 문제는 결국 현장에서 개혁을 실천해야 할 교사들 을 동기부여하는 데 있어 결함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개혁 노력이 있어왔고 많은 자원과 시간이 투자되었음에도 학교교육이 그다지 바뀌지 않는 것은 개혁의 내용보다도 개혁이 추진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 그것은 개혁을 설계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가정과 그에 기 초한 접근법이 개혁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현장의 교사들이 형성하는 주 관적인 현실과 불일치하는 데서 비롯되며, 기존의 방식에 의하여 부과되는 개혁 과제와 그를 둘러싼 업무체제 속에서 교사들이 갖는 경험이 그들에게 유의미(meaningful) 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기 때문에 동기유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김인희, 2003: 67) 이런 지적에 따르면 학교를 개혁하는 데 있어서 교사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참 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학교를 개혁하는 방향과 방안은 교사들로 하여금 그 의미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 는 것이어야 한다. 김인희는 그것이 교사와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라고 보았다

75 교사들은 특히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가장 중시한다. 교사가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 때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도움을 주어 학생의 성장이 이루 어지고 그러한 노력이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았을 때이며, 자신의 권위의 원 천은 학생의 인정에 있다. 교사의 실패도 역시 학생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착은 따라서 교직이 갖는 본질적인 정서이며 교사들 의 주관적 현실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김인희, 2003: 57) 그의 지적에 따르면,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서 학생들이 성 장하고 자신이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이것은 교사의 개인 적인 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교사들에게는 어느 무엇보다도 강력한 보상이 된다. 교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학생과 관련된 것이다. 그들의 진정 한 행복과 쓰라린 실패는 모두 학생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학생의 성공은 그들의 성공이요 학생의 실패는 그들의 실패이다. 이것은 교사라는 직업에 내재되어 있는(intrinsic) 가치이다. 아무리 많은 외재적(extrinsic) 보상이 주어져도 그것이 내재적 가치가 실현되는 데서 오는 만족을 대체할 수 없 다. 외재적 조건에 의해 유발된 행동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더 이상 생명 력을 가지지 못하며 내재적 동기에 바탕을 둔 행동이야말로 인간의 열망 (desire) 을 충족시키며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김인희, 2003: 62) 물론 학생들과의 인간관계가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거나 교사들에게 유일하 게 의미있다고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사들이 교직에서 고 유하게 경험하고 경험하기를 기대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와 같은 교직 고유의 보람에 의해서 보상받고, 그 보람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게 될 것도 분명하다. 그 점은 어느 교사의 다음 말에서도 알 수 있다

76 인센티브는 자부심이에요. 자부심. 예를 들면 일반 사회를 하시는 이 선 생님은 연간지도계획서를 작성하여 아이들에게 나눠줍니다. 그 전에는 선 생님들만 가지고 있었잖아요. 몇 주엔 뭐를 가르쳐준다는 것을 미리 밝힙 니다. 그 다음엔 고공표라고 해서 일반사회 전체 구성을 한눈에 보여줍 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이렇듯 가르치는 것에 대해 가 지는 자부심입니다.( 성일제 외, 1998: 29) 그렇지만 위 교사의 말이 모든 교사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교사는 학 교에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학생을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교사의 그런 노력은 학교에 의해서 보장되고 지원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사는 자부심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라고 말할 수 있다. 승진과 경제적 수입에 연연하는 교사는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이나 금전적인 보상이 더 중 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런 교사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설령 그런 교사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자부심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교사들이 말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 진정으로 교사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김인희는 그 방안으로서 질적인 접근법을 제안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질적인 접근법을 통한 정책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 며, 선입견을 버리고 현장의 내부자적 관점(insiders' viewpoint) 을 이해하 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장의 교사들을 이해하여 정책의 타당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진지한 대화 를 통해서 신뢰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인희, 2003: 68) 여기서 그는 질적인 접근법을 취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선입견을 버릴 것과 내 부자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교사

77 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선입견을 버리고 교 사의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질적인 접근이 무엇 인지 다 알 수는 없다. 더구나 이 글의 제1장 제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질적인 접 근은 종류와 범위가 다양하고 넓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연구자가 기 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의해서 학교의 현장이나 교사의 언행을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연구자가 현장의 교사의 언행을 보고 듣고 생각함으로써 연구자 자신이 새 롭게 깨달아나간다는 점이다. 즉,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연구자가 현장의 교 사에게서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한 첫째 과정이 선입견을 버리는 것 이다. 그리고 둘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사들이 자신이 놓여있는 학교 라는 상황을 어떤 관점에 의해서 바라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방법 을 동원한다. 그 구체적인 과정과 절차 가운데 하나가 이 글의 서론에서 소개한 참 여관찰과 심층면담이다. 참여관찰과 심층면담을 통해서 교사의 언행뿐만 아니라, 그런 언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그 이면의 사고 등을 확인해나간다. 그렇지만, 연구자가 선입견을 버리지 않고,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연구자가 교사의 관점을 이 해하고 그 관점에 근거해서 교사에게 의미있는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후자의 연구방법만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존의 개혁 패러다임을 고수하면서 다만 교사의 목소리를 좀 더 듣기 위한 이런저런 기회를 확대하는 수준의 대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 다. 참여 그 자체보다도 왜 교사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대답이 선행되어야 하며,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김인희, 2003: 67-68)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이런 경우는 최근 들어서 양적연구의 제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질적연구 방법 을 부분적으로 적용한 연구물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 한 양승실 등(2001) 은 다른 연구들에 비해서 질적인 연구기법을 비교적 충실하게 적용해서 학교현장을 이해 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학교 현장의 논리에 따라서 개 혁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의 논리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78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바꾸어 놓기 위한 것이었다.( 양승실 외, 2001: 13) 즉, 그들 은 학교 현장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해 (com-prehend) 하려고 했으며, 그것은 학교 현장을 이해(under-stand) 하지 못했 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은 세 학교를 질적인 방법으로 조사하여 학교의 위기 양상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시사받았지만, 그것을 일반화하기 위해서 설문조사 를 실시했다. 즉 질적연구를 통해서 발견한 사실들을 양적연구를 통해서 일반성 정 도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전국의 모든 학교에 일반화해서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질적연구를 통해서 맥락과 함께 발견한 사실과, 양 적연구를 통해서 맥락과 무관하게 조사한 사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들이 동일하다고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이 연구 역시 양적인 사고를 전제로 해서, 기존의 정치-공학적인 패 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제안하는 정책은 그들 스스 로 고백하는 바와 같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에서 김인희는 교사들로 하여금 학교 개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그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질적인 기법만을 적용해서는 안되며, 기존의 합리- 구조적 ( 또는 정치- 공학적) 교육개혁의 패러다임 을 질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희, 2003: 73) 그렇지만 그는 기존의 합리- 구조적 ( 또는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을 대신하는 질 적으로 전환된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그 대안 적 패러다임이 전제로 하는 주요한 사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을 외부의 자극에 대 해서 직접 반응하는 수동적 반응체로 보지 않고 외계에 대한 각자의 해석에 근거 해서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 보며, 각각의 개인은 서로 다른 주관적 현실에서 살고 있으므로 동일한 객관적인 상황에서 서로 다르게 행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지적 학습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외부적 자극에 직접 반응하기보다는 자극에 대한 그 자신의 인식과 해석에 반응한다. 인간 행동에 있어 주관적

79 현실은 객관적 현실보다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에도 서로 다른 주관적 현실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어떤 집 단은 다른 집단의 것과는 매우 다른 주관적 현실을 공유하고 있을 수 있 다.( 김인희, 2003: 56) 이런 인간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다른 눈으로 보게 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과관계에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구조화된 채 객관적으로 존 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존재하며, 각자의 해석에 기초한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구 성되어간다. 따라서 이 세계는 엄밀한 인과적 법칙에 따라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엔지니어가 자동차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듯이 신적인 존재의 인위적인 조작 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각 개인들의 행위 여하에 따라서 변화되어가며, 연구자가 할 일은 바로 그런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과 세계를 연구자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질적인 사 고가 필요하다. 각각의 개인은 동일한 상황에서도 서로 다르게 행동하며, 동일한 개인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의 의미 또한 다를 수 있으 므로, 표면상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행동이라고 해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이런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언행뿐만 아니라 그 언행 이면의 상황과 행위자의 사고 등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그 맥락에 비추 어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연구자가 추론할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연구자는 각 개인의 언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연구를 마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연구자는 그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그 행위가 어떤 의 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며, 연구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부 분적으로 알게 된다. 따라서 연구자가 그들의 언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연구자 자신의 교육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연구자는 기 존의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서처럼 연구자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아래에 있다. 즉, 연구자와 행위자는 권력을 매개로 하는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이

80 해를 매개로 하는 교육적 관계를 맺는다. 즉 대안적 패러다임에는 교육적 사고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교육은 앞의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에서처럼, 정치가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국가적인 수준의 것이건 학부모들이 추구하는 개인적인 수준의 것이건 모 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타인을 비 롯한 외계의 모든 것들을 대하고 그것들과 관계맺는 방식의 하나로서의 교육이다. 그런 관계맺음으로 인해서 우리 인간과 세상은 변증법적으로 성장해나간다. 조용환 (2001a) 은 그것을 삶의 형식으로서의 교육 이라고 불렀다. 즉 대안적 패러다임에 서 교육은 인간의 존재 양상인 것이다. 한편 대안적 패러다임은 귀납적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이 세 계를 이해하건 또는 이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건 연구자가 사전에 옳다고 생각하 는 이론에 근거해서 세계를 바라보거나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연구자는 개개 의 행위자나 사건 등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그런 이해에 기초해서 이 세계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를 얻고 부분적인 개선을 추구한다. 비록 그것은 이 세 계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와 개혁은 아니지만 적어도 연구자 자신이 이해한 세계의 범위 내에서는 설명이나 처방에 있어서 적합성을 갖는다. 김인회 등(1997) 은 그것을 각각 근거이론(grounded theory) 과 근거처방(grounded reform methods) 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모방과 이식을 새로운 개혁으로 아는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총론이 근사하면 좋은 개혁으로 생각하는 그런 교육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개혁주도자들의 비현실적 인 외래지향성과 엘리트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이런 교육개혁은 국내외 교 육계의 기존 논의를 총집합하여 거창하고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성과 현실적합성이 결여되었다. 우리의 삶과 교육의 현장에 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 자주적 발상을 토대로 하는 교육개혁이 되어야 한 다. 따라서 종래까지 교육정책이나 전략 구상에서 자주 사용했던 연역적 접근뿐만 아니라 귀납적 논리와 발상을 충분히 활용하는 교육개혁이 되어

81 야 한다. 근거이론(grounded theory) 에 기초한 근거방안(grounded reform methods) 을 제시해야 한다.( 김인회 외, 1997: 220) 요컨대, 대안적 패러다임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해석적이고 구성적인 사고를, 교 육에 관한 존재론적인 사고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귀납적이고 질적 인 사고와 교육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다. 이런 사고들을 전제로 할 경우 이 세상에 서 살아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연구자 역시 연구자 고유의 해석에 근거해서 살 아가는 존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는 사회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이 사회 안에 타인들과 함께 존재하며, 연구자의 연구 결과는 객관적인 것이 아 니라 타인과 세상에 대한 연구자의 하나의 주관적인 해석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관적인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연구자와 타인 사이에 교육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함께 성장해가며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점진적으로 변화해간다. 즉, 대안적 패러다 임에서는 연구의 과정이 교육의 과정이고 실천의 과정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안 적 패러다임은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학교를 개혁하고 싶다면,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로 하여금 자발 적으로 개혁의 길에 동참하게 하고 싶다면, 하나의 묘방에 의해서 전국의 모든 교 사를 한꺼번에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 대신 자신이 직접 시간 을 들이고 땀을 흘려가며 현장의 교사를 하나하나 만나서 그들의 관점을 (under-stand) 하고, 이해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의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즉 행정가 자신이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에 의한 연구자가 되어야 하고, 연 구행위가 행정의 과정이 되게 해야 하고, 행정행위가 연구 과정이 되게 해야 한다. 2) 미완의 시도들 지금까지 일부 연구자들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나마 기존의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또는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근거해서 학교교육 의 문제를 바라보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강태중 등(1996) 기 존의 개혁정책 방안과는 다른 시각에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제시

82 하고 있다. 그들은 학교가 일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은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학교의 개혁은 교사의 내면적 욕구를 자극하여 자발적으로 교 육에 열의를 쏟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하나의 공동체와 같아야 함을 주장했다. 한경수 등(1996) 은 오늘날 학교의 문제는 미래사회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고 있지 못한다는 데서가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공동체적인 관계가 약화되거나 상실되어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함을 주장했다. 그들은 교육개혁의 핵심은 학교에서의 공동체 를 구축하는 데 있어야 하며, 모든 개혁조치는 공동체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율성 논리를 강조하는 관료적 조직으로 학교를 파악하기보다는 교육의 본질적, 전문적 특성에 비추어 학교를 하나의 공동체로 개념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새로운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Sergiovanni, 1993). 구성원들 간의 돌봄, 신뢰, 협동, 헌신 등을 통한 결속과 연대를 특징으로 하는 공동 체 구축이 교육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하고, 모든 교육개혁 조치는 공동체 구축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공동체의 구축은 교육개혁의 성 공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면서 동시에 교육개혁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한 경수 외, 1996: 63) 그들은 학교의 문제를 효율성의 문제 또는 기능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존재상 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으며, 그 문제의 해결 방안 역시 학교의 존재론적인 관점에 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윤정일 등(2002) 역시 학교의 문제를 교사와 학생 간의 교육적 관계의 붕괴 로서 해석했다. 이런 사실은 학교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 다르게 설정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서 해결의 방향 역시 다르게 모색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 점은 앞서 살펴본 이종 태 등(2000a) 의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른바 학교붕괴 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은 붕괴가 아니라 위기로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논의들은 기존의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라도 교

83 육- 해석적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조용환(2001b) 은 오늘날의 학교의 문제는 학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 상적인 체험과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찾아야 하고, 그 해결 방안 역시 그 속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의해서 학교의 문제를 학교에서 일상적 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학생을 학생 으로만 보지 말고 한 명의 인간 으로 볼 것을, 홀로서기라는 실존적 과제에 당면하고 있는 청소년으로서 볼 것을 강조했다.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학생은 학생이 아니다. 따라서 학생을 학생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 학생에 대한 온전한 이 해의 출발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중등학생은 10 대 청소년이다. 청소 년은 사춘기의 발달과업인 홀로서기 에 직면해 있다. 홀로서기는 모든 인 간이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영위하고 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년은 용모, 의상, 음악, 운동, 음식, 생활 공간 등과 관련 된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다양한 실험과 선택을 통해 개발하고자 하며,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갖는 당연한 욕망이며 권리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 지금 우리 학생들이 교실과 학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위기를 초래한 그 근저에는 소외되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실존적 몸부림 혹은 외침이 있음 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조용환, 2001: ) 즉, 그에 따르면 학생의 행위를 학생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홀로서기라는 실존적 과제와 관련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등을 원인으로 들어서 학생들의 행위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근본적 인 차이를 보인다. 그의 이런 접근은 비록 교사의 관점에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본 것은 아니지만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윤정일 등(2002) 은 학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을 단순히 행정가나 교사들에게 제시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84 현장의 교사들과 함께 모색하고 실천하였다. 이 점은 김정원 등(2002) 역시 마찬 가지다. 그들은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연구실에 앉아서 학교 의 문제를 지적하고, 행정가와 교사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 머무르지 말고 현장의 교사와 함께 문제를 찾고 해결해나갈 것을 주장했다. ( 연구자가) 이제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으로 해결해 나가는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교육의 가치와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발견하여 가치를 부각시키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 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학교컨설팅 사업은 이러한 필요에 의한 것이 다. 이는 학교교육 개선을 위한 밑으로부터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수준에서 어떠한 정책을 결정해 놓고 그것을 모든 학교에 일괄적으로 적용 함으로써 문제를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위학교에서부터 문 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단위학교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찾 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가 학교컨설팅 사업이다.( 김정원 외, 2002: 4) 그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서 교과 전문가 그리고 현장의 교사들과 함께 학 교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 여 실천했다. 특히 이들의 노력은 이제는 더 이상 연구자는 연구실 안락의자에 앉 아서 근사한 제도적인 방안 등을 제시하고 현장의 교사들은 그 방안에 따라서 행 동하는 방식으로는 교사들이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해서 학교가 개혁되기를 기대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장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교탁 앞 에 서서 입으로만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사제동행( 師 弟 同 行 ) 해야 하는 것처럼, 연구자와 행정가 역시 현장의 교사들과 함께 땀을 흘려가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다. 이런 연구 역시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들을 통해서 일부 연구자들이 기존의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근거 해서 모색된 학교개혁 방안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대안적인 패러다임에 근거해서 새로운 개혁의 방안을 모색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학교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대안적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85 는 그런 대안적 패러다임의 하나로서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의 연구들은 아직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을 충실히 따라서 교사의 관점을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있기도 하다. 한경수 등(1996) 은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학교의 문제를 인식하고 개혁의 방안을 모색할 것을 주장하지만, 실지로 그 패러다임에 합당한 연구방법을 충실하게 적용해서 학교 현 장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윤정일 등(2002) 역시 학교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하고,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 하고는 있지만 교사의 관점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김정원 등(2002) 은 개혁 방안 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지만, 학교 현장을 교 사의 관점에서 이해하지는 못했다. 조용환(2001b) 은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을 충실 히 따라서 학교 현장을 이해하고 해결 방안도 제시하지만, 그것이 학생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교사의 관점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교를 개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3) 희망을 다시 한 번 지금까지의 검토와 논의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기존의 연구 또는 정책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것 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 금까지 대부분의 학교개혁 정책은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입안되고 추 진되었다.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책은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입안되어 제시된 것이 없으며, 단지 그 필요성만이 주변적이고 산발적으로 제기되었을 뿐이 다. 이런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개혁과 관련하여 새로운 희망 을 가지게 한다. 만일,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지금까지 주류로서 제기되어온 학 교교육 개혁 정책이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이루어짐으로써 교사의 관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결과 학교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의 자발적

86 이고 전문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의거 해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교사의 관점을 이해하고, 교사에게 의미있는 전 문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의거해서 학교의 문제를 바 라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고 해서 반드시 학교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된다고 확 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존의 정치-공학적 패러다임 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접근으로서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해볼 수 없는 현재, 이것이 고착 상태 에 놓여있는 우리 학교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87 Ⅲ. 학교혁신 사례 검토 1. 학교혁신 사례 분류1) 1) 학교혁신 사례들 지금까지 확인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들 로 하여금 전문적인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 자가 교사의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연구기법만의 변화가 아니라 패 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일이다. 교육-해석적 패러다임에 의거해서 학교의 문제 를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교사의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교사를 먼저 선정해야 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학교혁신 사례라고 언급되는 학교의 교사들을 주요 대상 으로 삼았다. 앞의 제1장 제2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그들이 교사의 고유한 관점을 상대적으로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연구가 수행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 가 학교혁신 사례를 발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혁신 사례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학교혁신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고, 동시에 교사의 관점도 이해할 수 있 게 되기를 바랬다. 나는 학교혁신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서 교육부, 각 시 도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에서 발간하는 자료를 인 터넷을 이용하여 조사하거나 전화를 통해서 확인했다. 그리고 연구기간 중에 언론 사에서 혁신사례로서 기사화한 학교들을 수집했다. 이와 함께 공동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서 학교혁신 사례를 수집했다. 이 중에서 한국교원 1) 나는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학교명, 지명, 인명 등은 모두 가명으로 바꿨다. 이 연구를 위해서 면담과 관찰에 응해준 일부 교사나 학생 또는 학부모가 혹시 있을지 모를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 로 인해서 보고서의 내용의 사실성이 약화되고 독자가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 서라도 연구 참여자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88 단체총연합에서는 인터넷으로도 담당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도 이와 관련된 자 료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10 개, 중학교 11 개, 고등학교 8 개, 총 29 개 학교를 수집했다. 각급 학교별로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 표 1> 초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명성초등학교 교과분담을 통한 복식학급 복식수업 해소 산들초등학교 강주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선경초등학교 원어민 외국어 교육, 천체 체험학습관 운영 나무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고선초등학교 교사들의 연구 모임을 통한 학교 개혁 시도 선공초등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의 공동 노력에 의한 학교 개선 어삼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강정초등학교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운영 경사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89 < 표 2> 중학교 학교혁신 사례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운경중학교 환경중학교 교사들의 민주적 협의에 의해 지역사회와 학교 여건에 적합한 교육과정 운영 지역사회 자원이 참여한 수준별 방과후 교육활동 운영 상국중학교 원어민 강사에 의한 소그룹 수준별 수업 정성중학교 공대중학교 학교의 시설을 지역사회에 개방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대학생 교사를 활용한 수준별 학력보충 프로그램 운영 안상중학교 교과실 운영 숭도중학교 교과실 운영 해송중학교 수업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한 수업방법 개선 장봉중학교 교과실 운영 흥국중학교 재단의 재정 지원에 의한 영어와 특기적성 교육 활성화 단강중학교 학부모와 함께 운영하는 체계적인 인성교육

90 < 표 3> 고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문형고등학교 학생들의 선택에 의한 수준별 보충수업 운영 강산고등학교 학생 선택에 의한 맞춤식 수준별 이동 수업 가마고등학교 푸른, 멋진, 깨끗한 학교 가꾸기 운동 전개 장암고등학교 교과실 운영, 교사 학습 모임 운영 운기공업고등학교 교내에 학생들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 창업 성포고등학교 인터넷을 이용한 수업 공개와 수업 장학 형설고등학교 모란여자고등학교 무학년제 선택형 수준영역별 보충수업 등을 통한 학력 증진 교사들의 협의에 의해 균형잡힌 교육과정을 일상적으로 운영 2) 학교혁신 사례 유형 나는 이상의 학교혁신 사례들을 주로 문서를 통해서 검토하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는 이 학교들은 어떤 근거에 의해서 학교혁신 사례로서 선정되 었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혁신 사례로서 선정된 학교들은 그 성격이 다양해서 하나 의 일관된 기준을 찾기 어려웠다. 2006년 11월 16일에 교육부가 지방교육혁신경 진대회를 통해서 선정한 학교혁신 사례들 역시 학교에서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해 야 하는 활동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각 학교들을 학교혁신사례로서 판단하는 명

91 확한 기준을 찾기 어려웠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학교혁 신의 개념이 명료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점은 서로 다른 기관에 의 해서 선정된 학교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둘째는, 첫째 의문과 관련된 것으로서,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 가운데 어떤 학교 를 선정해서 좀 더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위의 학교들을 모두 조사할 수 없으므로, 이 가운데 일부만을 선택해야 했 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학교들을 분류해야하고, 그것을 분류할 수 있는 범주를 찾 아야했다. 나는 위의 학교들이 학교혁신 사례라고 불릴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각 학교 가 수행하고 있는 활동이 일회적이거나, 일부의 교사나 학생들만 참여하는 것이거 나, 일상적인 교육과정 특히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과는 무관하거나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 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그들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며 지속적인 것이 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시범학교나 우수학교 등으로 선정된 여러 학교들 이 일부 교사나 학생들만 참여하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또는 일상적인 수업과는 별 개로 이루어지는 특색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됨으로써 학교의 기본적인 일상이 소홀 해지고, 그로 인해서 학교를 더욱 황폐화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해서 위의 학교들이 무엇을 혁신했는가보다 그것이 학교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에 의해서 학교혁신을 추진해 왔는지, 그리고 그 활동이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범주로서 혁신의 범위 와 심도를 선정 했다. 범위 는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과 그 활 동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범위를 뜻한다. 이 범위는 다시 네 수준으로 구분했다. 1수준은 소수의 학생과 소수의 교사만 참여하는 경우다. 2수준은 다수의 학생과 그 활동을 담당하는 소수의 교사, 그리고 그와 관련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소수 학 부모와 지역사회 인사가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다. 3수준은 대다수의 학생과 그 활동과 관련된 다수의 교사, 소수의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 등이 적극적으로

92 참여하는 경우다. 4수준은 모든 학생과 대다수의 교사, 다수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다. 심도 는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하는 활동이 지속적이고, 여타 활동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있는 가운데 전체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뜻한다. 범위와 마찬가지로 이 심도는 다시 네 수준으로 구분된다. 1수준은 그 활동이 나머지 다른 활동과는 무관하게 부수적인 위치에 있으며 일회 적이거나 산발적으로 수행되는 경우다. 2수준은 그 활동이 다른 활동과 무관하게 부수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주기적으로 수행되는 경우다. 3수준은 그 활동이 학교 에서 수행하는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활동과 함께 병렬적으로 자리잡 고 있으면서 일상적으로 수행되기는 하지만 구성원들의 일상에 의미있게 관련되지 못하는 경우다. 4수준은 그 활동이 나머지 다른 활동과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 을 맺고 있으면서 구성원들의 일상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다. 나는 이 두 가지 범주와 각각에 대한 네 수준을 적용하여 각 학교혁신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학교혁신 사례를 크게 학예회형, 운동회형, 특별반형, 보 통반형 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유형은 다시 심도와 범위의 수준에 따라서 다시 a, b, c, d 형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학교혁신 사례를 16 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 각각의 유형을 표로 구분하면 다음 < 선경> 와 같다. < 표 4> 활동의 성격에 따른 학교혁신 사례 유형별 분류표 범위 좁음 넓음 심도 얕음 2 3 깊음 4 a b a b 학예회형 학예회형 운동회형 운동회형----- c d c d a b a b -----특별반형 특별반형 보통반형 보통반형 c d c d * 범위: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과 활동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 심도: 활동의 지속성, 유기적 관련 정도, 전체 구성원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93 이 가운데 학예회형은 소수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만 참여하는 가운데 일회적 으로 또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를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추구하는 경우다. 그것은 마치 대규모 학교에서 학예회를 진행할 때 학원 등에서 특기를 익힌 소수 의 학생만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객석에 앉아서 구경만 하는 것과 유사하다. 운동회형은 다수의 학생과 교사와 일부 학부모 등이 그 활동에 참여하고, 그 활 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일부 교사들이 업무를 맡아서 하지만, 그 활동은 학교가 수 행하는 여러 활동 가운데 하나로서 부수적인 위치에 있으며,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 적인 활동의 수준으로까지는 자리잡지 못하는 경우다. 그것은 마치 학교의 운동회 에 전교생과 전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하기는 하지만, 일회적인 행사에 머무르는 것과 유사하다. 특별반형은 소수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만 참여하는 가운데 일상적이고 지속적 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추구하는 경우다. 이것은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명문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별도로 선발하여 특별 반을 편성하고, 상당수의 교사들이 매일 같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보통반형은 대다수의 학생과 교사, 그리고 상당수의 학부모와 지역인사가 일상적 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중심으로 학교혁 신을 추구하는 경우다. 이것은 학교에 재학하는 모든 보통의 학생들이 매일 같이 수업을 듣고, 그 과정에서 교사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고 교사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이 네 유형 가운데 학예회형과 운동회형은 비일상적이고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특별반형과 보통반형은 일상적이고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학예회형과 특별반형은 일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만 참여한다는 점에 서 공통적이며, 운동회형과 보통반형은 대다수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참여한다 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유형 구분에 따라서 앞의 29개 학교를 잠정적으로 다음 과 같이 분류했다

94 < 표 5> 초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예상 혁신 유형 명성초등학교 산들초등학교 강주초등학교 선경초등학교 나무초등학교 고선초등학교 교과분담을 통한 복식학급 복식수업 해소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원어민 외국어 교육, 천체 체험학습관 운영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교사들의 연구 모임을 통한 학교 개혁 시도 보통반-a 보통반-b 보통반-a 운동회-c 보통반-a 특별반-b 선공초등학교 어삼초등학교 강정초등학교 경사초등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의 공동 노력에 의한 학교 개선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운영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 노력에 의해 지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교육과정 운영 운동회-c 보통반-b 운동회-c 보통반-b

95 < 표 6> 중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예상 혁신 유형 운경중학교 환경중학교 상국중학교 정성중학교 공대중학교 민주적 협의에 의해 지역사회와 학교 여건에 적합한 교육과정 운영 지역사회 자원이 참여한 수준별 방과후 교육활동 운영 원어민 강사에 의한 소그룹 수준별 수업 학교의 자원을 지역사회에 개방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대학생 교사를 활용한 수준별 학력보충 프로그램 운영 운동회-c 운동회-c 특별반-b 운동회-c 학예회-d 안상중학교 교과실 운영? 숭도중학교 교과실 운영? 해송중학교 수업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한 수업방법 개선 보통반-a 장봉중학교 교과실 운영? 흥국중학교 단강중학교 재단의 재정 지원에 의한 영어와 특기적성 교육 활성화 학부모와 함께 운영하는 체계적인 인성교육 특별반-b 운동회-c

96 < 표 7> 고등학교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학교 이름 주요 혁신( 소개) 내용 예상 혁신 유형 문형고등학교 학생들의 선택에 의한 보충수업 운영 수준별 보통반-a 강산고등학교 가마고등학교 학생 선택에 의한 맞춤식 수준별 이동 수업 푸른, 멋진, 깨끗한 학교 가꾸기 운동 전개 보통반-c 운동회-a 장암고등학교 교과실 운영 교사 학습 모임 운영 특별반-b 운기공업고등학교 성포고등학교 형설고등학교 모란여고등학교 교내에 학생들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 창업 인터넷을 이용한 수업 공개와 수업 장학 무학년제 선택형 수준영역별 보충수업 등을 통한 학력 증진 교사들의 협의에 의해 균형잡힌 교육과정을 일상적으로 운영 특별반-c 운동회-a(c) 보통반-a 보통반-d 물론 이 분류는 문서 자료, 그것도 제한된 문서 자료에만 근거해서 판단한 것이 고, 범위와 심도를 나타내는 수준 역시 엄밀한 척도에 의해서 판단된 것이 아니므 로 이 분류 자체가 사실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각 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상한 유형일 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작업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다양한 학교혁신 사례를 분류해보는 가운데 여기서 적용한 준거가 타당한지 여부

97 를 확인하고, 이와 함께 이 연구에 필요한 현지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으므로 사실 여부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분류는 잠정적인 것이고, 현지조사를 통해 서 자료가 좀 더 풍부하게 수집되면 수정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좀 더 간단하 게 하나의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표 8> 학교혁신 사례 예상 유형 분류 학교혁신 유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a 학예회형 b c d 공대 a 가마, 성포 운동회형 b c 선경, 선공, 강정 운경, 환경, 정성, 단강 ( 성포) d a 특별반형 b 고선 상국, 흥국 장암 c 운기공 d a 명성, 강주, 나무 해송 문형, 형설 보통반형 b 산들, 어삼, 경사 c d 강산 모란여고

98 이상의 분류에 따르면 공대중학교는 학예회형에 속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선경 초등학교, 선공초등학교, 강정초등학교, 운경중학교, 환경중학교, 정성중학교, 단강 중학교, 가마고등학교, 성포고등학교는 운동회형에 속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고선 초등학교, 상국중학교, 흥국중학교, 장암고등학교, 운기공업고등학교는 특별반형에 속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명성초등학교, 강주초등학교, 나무초등학교, 산들초등학 교, 어삼초등학교, 경사초등학교, 해송중학교, 문형고등학교, 형설고등학교, 강산고 등학교, 모란여자고등학교는 보통반형에 속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3) 학교혁신 사례 분류의 난점 그런데, 나는 이러한 분류 결과를 보면서 이 분류표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위의 표에서 운경중학교, 환경중학교, 정성중학교, 단강중학 교는 모두 운동회-c 형 으로 분류되지만, 적어도 내가 수집한 자료의 범위 내에서 볼 때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운경중학교 는 특기적성 활동과 체험학습 등을 주로 하지만 교사들이 다수의 가정형편이 어려 운 학생들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 협의해서 모색하 고, 교사들이 매달 자비를 모아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에 반해서 환경중학교는 학교장을 중심으로 지역자원 인사를 초빙해서 방과후특별활동을 운 영하고 있다. 정성중학교 역시 학교장을 중심으로 학교의 시설을 지역사회 주민들 에게 개방하여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단강중학교는 한두 교사가 주축이 되어서 매 주 토요일에 전교생에게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네 학교는 모두 운동회-c 형으로 분류되지만 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사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위의 분류 준거가 적절하지 않거나, 각 학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먼저 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각 유형을 추진방식에 따라서 다시 관료형, 카리스마형, 민주 형으로 구분해보기도 했다. 관료형은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라서 교장의 권위와 명

99 령에 의해서 추진되는 경우고, 카리스마형은 학교 구성원 가운데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추진되는 경우고, 민주형은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민주적 인 의견 수렴 절차에 의해서 결정되고 추진되는 경우다. 또 각 학교의 활동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시설형, 제도형, 사람형으 로 구분해보기도 했다. 시설형은 재정에 의존하여 학교의 시설을 개선함으로써 학 교혁신을 추구하는 것이고, 제도형은 학교의 크고작은 제도와 관행을 변화함으로써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것이고, 사람형은 구성원들의 사고를 변화시킴으로써 학교혁 신을 추진하는 경우다. 이밖에도 학교혁신의 내용에 따라서 행사형, 비정규교육과정형, 정규교육과정형 으로 구분해보기도 했다. 행사형은 학교의 정규교육과정 외에 이른바 특색사업 등 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활동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경우다. 비정규교육과 정형은 특기적성교육이나 방과후특별활동 등과 같이 정규교육과정은 아니지만 그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활동을 중심으로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경우다. 그런데, 만일 각 학교의 혁신사례를 엄밀하게 분류하고 특징을 파악하려고 한다 면 이상의 준거를 모두 적용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경우에는 학교혁신 사례가 432 가지로 나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혁신 사례를 432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 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그것이 손쉽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구분은 큰 의미를 가 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구분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학교혁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명확한 준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학교혁신 사례를 구분하는 준거가 많을수록 다양한 사례를 세밀하게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서 오히려 학교혁신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 우려가 있어보였다. 그리고 나는, 심 도와 범위에 의한 분류가 모든 사례를 엄밀하게 분류해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각 학교혁신 사례가 어느 정도로 깊이 구성원들의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으며, 어느 범 위까지 그것이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앞의 학교혁신 사례들을 범위와 심도와 수준만을 적용해서 최대 16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 범주에 의해서 구분되지 않는 학교혁신 사례 들은 자료를 더 수집한 후에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100 2. 학교혁신 사례의 재검토 1) 현지조사 대상 학교 선정 나는 학교혁신 사례를 좀 더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자 료를 추가적으로 수집했다. 첫째는 학교혁신 사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과의 협 의회를 통해서 좀 더 상세하게 각 학교의 활동 내용과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고, 둘 째는 교육부가 주최한 지방교육혁신경진대회에 참석해서 발표 내용을 듣는 것이고, 셋째는 협의회와 경진대회를 통해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현지조사할 학교를 선 정하여 연구진이 학교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협의회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각 나누어서 하고자 했지만, 연구진과 각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사정에 의해서 초등학교와 중등학 교로 나누어서 협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이한 단체에 속한 교사들이 함께 모여서 협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동일한 단체에 속한 교사들을 중심으로 협의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 첫 회는 2005년 10월 16일에 충청남도 유성 에서 산들초등학교, 경사초등학교, 어삼초등학교, 강주초등학교, 나무초등학교, 고 선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중심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이 협의회에 관심을 가진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두 명 이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둘째 회는 2005년 11월 27일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모란여고, 단강중학교, 운경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중심으로 역시 오 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여기에도 이 협의회에 관심을 가진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한 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나는 협의회를 하기 전에 참석하는 교사들에게 아래의 질문 내용에 대해서 사전 에 생각을 정리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협의회 역시 아래의 내용을 중심으로 진 행되었다

101 ㆍ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과거에 또는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으며, 를 안고 있는가? ㆍ그 문제를 어떤 활동과 어떤 과정에 의해서 해결해왔는가? ㆍ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ㆍ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왔으며, 해결되지 않은 점은 무엇인가? ㆍ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외부의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어떤 문제 나는 협의회를 통해서 각 학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보다는, 그 일을 왜 하는지 에 더 주목하고자 했다. 즉 교사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교사들이 의미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다. 그 점을 알기 위해서 그들이 현재 학교 의 무엇을 문제삼고 있으며, 어떤 활동에 의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확 인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문제삼거나 무슨 활동인가를 할 때는 거기에 모종의 가 치 기준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문제삼는 내용이나 추진하는 활동을 논리적 으로 분석하면 거기에 전제되어 있는 그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그 활동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들어봄으로써 그것이 그들의 일상에 얼마나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는지 좀 더 상세히 확인해보 고자 했다. 이와 함께 나는 그들이 어떤 과정에 의해서 학교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외부 사람들에 의해서 학교혁신 사례로서 일컬어지는 수준에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확인하고자 했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유사한 문 제를 가진 다른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시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용은 모두 문서 자료와 교사의 진술에만 근거해서 판단한 것 이므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라도 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협의회에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나는 어삼초등학교와 운경중학교와 모 란여자고등학교를 현지조사할 학교로 잠정적으로 선정했다. 이들 세 학교는 각각 처한 여건과 활동 내용은 크게 다르지만 교사들이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서 자발적 으로 노력하며, 문제를 현재 수준에서부터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결해간다는 점

102 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 학교를 봄으로써 학교혁신이 무엇이고, 학교혁신 사례를 판단하는 좀 더 분명한 준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산들초 등학교는 어삼초등학교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지만, 내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학교여서 제외했다. 어삼초등학교는 통폐합 예정인 소규모학교였지만, 이 학교에 근무하기를 자청한 일부 교사들이 학교 내의 부조리를 일소하고, 학교가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삶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장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 함으로써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 자신들까지도 학교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 학교는 학교의 건물 설계로부터 교육과정 운영, 교사와 학생의 일상 생활, 그리고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 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현지조사를 통해서 이 들 각 요소가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운경중학교는 전교생이 기주장이 강한 43명밖에 되지 않는 농촌의 소규모 학교에서 개성과 자 9명의 교사들이 각자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학교가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그것을 조금씩 실천해나가는 모습이 인상 적이었다. 나는 현지조사를 통해서 이 학교 지역사회의 여건과 교사들이 협의를 통 해서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가는 모습, 그리고 학생들의 생활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 인해보고 싶었다. 모란여자고등학교는 오로지 입시준비만을 위해서 살아가느라고 피폐해진 학생들 의 일상의 삶과, 그로 인해서 왜곡되어가는 지식 학습의 의미, 학생과 교사의 관계, 그리고 교사들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서 8년여 동안 교사들이 뜻을 모아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또 새로운 문제를 찾아가나는 과정이 인상적이 었다. 특히 모란여고는 흔히 지적되는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의 유리 문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입시준비 간의 갈등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 다. 나는 모란여고가 추진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 학교의 일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 로 나타나고, 학생들은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

103 가 학생의 입장이 되어서 한 학생의 일과를 하루 종일 관찰해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나는 나머지 학교들 가운데 명성초등학교, 해송중학교, 강산고등학교 를 현지조사를 통해서 자세히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들 학교는 공통적으로 공립학 교로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해서 학교의 일상적인 교육 활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즉, 이런 학교들은 학교혁신의 범위와 심도가 다른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명성초등학교는 소규모 학교 학생들의 학습 결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복식 학급의 주지교과 수업은 단식학급의 교사들이 나누어서 하고, 단식학급의 예체능교 과 수업은 다른 학년과 통합해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학급 담임 편성도 재조직했다. 명성초등학교 사례는 현재의 여건 내에서도 교육과정을 적절히 운영함으로써 얼마든지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 운영 방식을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송중학교는 교사들의 일상적인 수업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수업을 동영상 촬영해서 교사들이 스스로 보고 평가하고, 학생들에게도 수업 내용을 평가받았다. 이 외에도 전교 교사들이 함께 수업기술 발표대회를 열었다. 이런 모습은 교사들의 일상적인 삶을 수업을 중심으로 수렴되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 학교에서 교사들의 일상적인 삶이 수업을 중심으로 어떻게 수렴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강산고등학교는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던 낙후된 지역의 신설 공립고등학교를 명문학교로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수준별 교 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했다. 그 결과 졸업 예정생들의 대학 입학율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높고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나는 이 학교 가 정규교육과정 외의 특색사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수업 활동을 통해서 우리나라 학교 교육과정 운영체계의 경직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중 요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지조사를 통해서 강산고등학교가 교육과정 경직성 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에 의해서 교사들을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 활동에 참여시켰는지를 좀 더 상세하게 확인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학교의

104 이런 노력이 학생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하고자 했다. 이 외에도 나는 흥국중학교, 단강중학교, 형설고등학교, 정성중학교, 강정초등학 교를 함께 현지조사하기로 했다. 이 학교들은 위의 여섯 학교처럼 학교혁신의 심도 와 범위가 깊고 넓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주목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흥국중학교는 소규모 사립중학교로서 폐교 위기에 놓여있는 학교의 면모를 일신 하기 위해서 재단이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고 교사들의 자발적인 학교 개선 노 력을 후원하고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평교사를 교장으로 임 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나는 재단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 재정적 인 지원을 강화하고 학교를 변모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단강중학교는 비록 인성교육이라는 한 가지 분야에 한정되어 있고 다른 교과활 동과 무관하게 부수적인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그 활동이 매주 토요일에 일과로서 고정적으로 편성되어있음으로써 비교적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 기는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한두 명의 교사가 인성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학교장이 바뀜으로써 인성교육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모습을 주목할 필요를 느꼈다. 형설고등학교는 학생들이 학년과 관계없이 각자의 수준과 관심에 따라서 보충수 업 과목을 선택해서 운영하도록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무학년제 선택형 보충 수업은 최근 들어서 여러 학교에 의해서 채택되어 확산되고 있다. 나는 이 제도가 정규교육과정이 학생들의 관심이나 수준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 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지 방문을 통해서 그 제도가 어 떻게 운영되는지, 그 제도가 실지로 운영될 때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교사들 사이의 관계를 비롯해서 교사들의 일상적인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등 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런 무학년제 선택형 보충수업은 문형고등학교가 먼저 시작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사들 사이의 갈등과 어려움도 더 잘 보여주고 있 었지만 나의 일정과 거리상의 문제로 형설고등학교를 대신 선택했다. 또한 형설고 등학교는 지방의 여느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지도 활동을 따로 하고 있으므로, 그런 학생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살펴보고자 싶었다. 정성중학교와 강정초등학교는 공통적으로 학교가 본래 수행해야 하는 학생들의 일상적인 교육활동보다는 그 외의 활동, 즉 지역사회의 주민을 위한 활동에 더 주

105 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학교가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학교가 그 활동에 주력할 경우에 학교의 제한된 인적 물적 자원이 분산되지 않을 수 없고, 그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학생을 위한 교육활동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내가 보기에 이 점은 그동안 학 교가 범해온 여러 가지 전형적인 오류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나는 처음에 이 두 학교는 현지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렇지만, 정성중학교는 강산고등학교와 이웃 해 있고, 강정초등학교는 어삼초등학교와 이웃해 있어서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이 두 학교도 현지조사 대상 학교에 포함시켰다. 그 외의 학교는 연구기간의 제한으로 인해서 현지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명성초등학교, 어삼초등학교, 강정초등학교, 운경중학교, 해송 중학교, 흥국중학교, 단강중학교, 정성중학교, 강산고등학교, 형설고등학교, 모란여 자고등학교를 현지조사 대상학교로 선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각 학교의 사정과 나 의 일정을 고려하여 < 표9> 와 같은 일정과 내용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이 연구 에 참여하는 두 명의 공동연구자는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까닭에 현지조사에 참여 하지 못했다

106 < 표 9> 현지조사 일정과 주요 조사 내용 일정(2005 년) 조사 대상 학교 주요 조사 내용 11월 23일 명성초등학교 11월 24일 해송중학교 11월 29일 - 30일 흥국중학교 11월 30일-12월 1일 강정초등학교 12월 1일 - 2일 어삼초등학교 12월 6일 - 7일 운경중학교 12월 7일 - 8일 정성중학교 12월 8일 - 9일 강산고등학교 12월 13일 - 14일 단강중학교 12월 14일 - 15일 형설고등학교 12월 22일 - 23일 모란여자고등학교 지역사회 관찰, 지역주민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분담 수업 장면 관찰 학생 가정 방문, 학부모 면담 교장, 교사 면담 수학 보충 수업 관찰 학생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일상 수업 장면 관찰 지역사회 관찰, 지역주민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일상 수업 장면 관찰 지역사회 관찰, 주민 면담 학생 가정 방문, 학부모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수업 장면 관찰 학생 가정 방문, 학부모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일상 수업 장면 관찰 지역사회 관찰, 지역주민 면담 학생 가정 방문, 학부모 면담 지역사회 관찰, 학생 면담 교장, 교사, 사회복지사 면담 학교 시설, 개별 지도 장면 관찰 지역사회 관찰 교장, 교사 면담 시범수업 공개 장면 관찰 학생 일상생활 관찰, 면담 교장, 교사 면담 수준별 수업 장면 관찰 학생, 학부모 면담 교장, 교사, 학생 면담 수업 공개 장면 관찰 교장 교사 학생 면담,, 학생 하루 일과 참여관찰

107 2) 내부자의 눈으로 보는 학교혁신 사례 나는 위의 일정에 따라서 를 내용을 중심에 두고 확인하고자 했다. 11개의 학교혁신 사례를 현지조사하면서 다음 세 가지 첫째는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한 그 활동이 실지로 어떻게 이루어지 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 서 제시하는 활동과 학교와 지역사회의 여건 등을 관찰하고, 관찰할 수 없는 것들 은 교장과 교사와의 면담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했다. 둘째는,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하는 그 활동을 왜 하고, 어떤 과정에 의해서 해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협의회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주 로 교장 또는 교사와의 면담을 통해서 확인했다. 나는 그 학교가 놓여있는 상황,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학교의 문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일과 그 과정,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과 필요한 지원 사항 등을 질문했다. 나는 이상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근거로 그들의 문제의식이나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활동 이면에 전제되어 있는 가치나 사고가 무 엇인지 추론하고자 했다. 즉 그들의 관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나는 그들이 어려움을 해결해온 과정을 확인하고 정리함으로써 이후로 학교혁신 사례를 확산하는 데 적합한 방안들을 시사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셋째는 각 학교가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한 그 활동을 학교의 구성원들이 어떻 게 경험하고 있으며,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역시 제 한된 범위 내에서 수업 장면 등을 관찰하거나 참여관찰함으로써 교사와 학생이 학 교에서 일상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확인하고, 관찰할 수 없는 내용들은 면담 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했다. 특히 면담을 통해서는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을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등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이 면담은 별도의 시간과 장소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관찰과 정에서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는 관찰한 사실과 면담 내용을 근거로 학교혁신 사례로서 제시하고 있는 그 활동이 구성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추론하고자 했다

108 그렇지만 나는 실지 현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매 학교에서 이상의 세 가지 내 용을 고루 균형있게 조사하지는 못했다. 제한된 일정으로 인해서 각 학교의 특성이 나 형편에 따라서 위 세 가지 주요 조사 내용의 비중을 조금씩 달리했다. 예를 들 면, 강정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활동을 어 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비중있게 조사했다. 모란여자고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추 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학생들이 어떻게 경험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조사했다. 해송중학교에서는 학생이나 교사의 일상생 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주로 면담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현지조사 내용에 있어서 각 학교별로 조금씩 비중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상의 세 가지 주요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그 활동들이 학교 구성원들, 특히 교사와 학생들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를 핵심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다. 결국 그것은 각 학교의 혁신 사례를 내부자의 관 점에서 보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각 학교혁신 사례의 심도와 범위가 어 느 정도인지를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지조사 결과 나 는 각 학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이하에서 각 학교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될 내용은 현재의 학교 모습 그 자체는 아니다. 각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 학교 구성원들에 게 가지는 의미 또한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의미 자체는 아니다. 앞의 제1장 제2절 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내 나름의 주관을 가진 존재이며, 이 현지조사는 제한된 시 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한 주관적인 연구자로서의 내가 특정 한 시기에 제한적으로 그 학교에 관해서 경험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여기서 밝히는 각 학교의 모습들은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건 부정적인 방향으로건 변할 수 있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한편, 각 학교의 학교혁신 사례에 관한 또 다른 관점의 이야기, 특히 각 학교의 교사들의 이야기가 이 보고서의 말미에 첨부된 사례집에 소개되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여러 기관에서 발간한 자료들에서도 아래의 학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들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이하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109 내용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도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내 이야기가 어떤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와 다른지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하의 내용은 각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 그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보고 내용과 차이 를 가진다. (1) 강정초등학교 강정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내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전날 흥국중학교에서의 조사가 예정보다 훨씬 늦게까지 이루어져서 강정면과 이웃하고 있는 산야면 중심 지의 허름한 여관에서 잠을 잤다. 강정면에는 여관이 없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 나 차가운 겨울 바람을 쐬며 차를 달렸다. 지방도를 벗어나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멀리 넓은 들판이 보였다. 시야가 가물거리는 들판의 끝을 따라서 사방으로 산이 둘러있고, 그 산자락을 따라서 군데군데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의 집 굴뚝에서 하 얀 연기가 올라왔다. 벼를 베어 낸 논은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파란 보리와 마늘 이 자라고 있었다. 삼포도 보였다.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차에서 내려 지역의 풍경을 비디로 카메라로 담고 있자니 아이들 대여섯 명이 날씨가 추운데도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걸어온다. 강정초등학교에 다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몇 가지를 묻는다. 나 : 왜 다 하얀 바지를 입고 있니? 아이: 학교에서 태권도 배워요. 나 : 아침에? 아이: 네. 나 : 너희들 학교 좋니? 아이: 네. 나 : 어떤 점이 좋은지 한 가지만 얘기해줄래? 아이: 특기적성활동을 많이 해서 좋아요

110 나 : 특기적성활동을 뭐 하는데? 아이: 바이올린, 사물놀이, 태권도, 국악, 생활체조도 해요. 컴퓨터도요. 나 : 공부시간은? 아이: 공부시간에도 재미있게 해서 좋아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내가 강정초등학교에 대해서 지나친 편견을 가진 것 은 아닌지 염려하며 아이들을 차에 타게 했다. 들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마을이 나오고, 마을 한쪽 높다란 곳에 학교가 보였다. 학교 정문에 평생교 육 시범학교 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아이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학교의 전경을 비디 오 카메라에 담았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서있는 벚나무가 세월을 품고 있다. 내가 미리 찾아본 어느 자료에 따르면 강정초등학교에는 전교생이 49명 재학하 고 있다. 1학년 7 명, 2학년 2 명, 3학년 6 명, 4학년 11 명, 5학년 13 명, 6학년 10명 이다. 이 학교의 학생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통폐합되지 않는 까닭은 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거점학교이기 때문이다. 강정면 전체 인구는 2005년 현재 1,110명 이다. 2001년에는 1,290 명이었다. 4년 새에 180 명, 약 14% 가 감소했다. 이 가운 데 65세 이상 노인이 256 명, 23% 다. 주민들은 벼 외에 인삼, 고추, 대추, 담배 등 의 농사를 짓는다. 가을이 되면 곶감을 만들어서 팔기도 한다. 강정초등학교가 평생교육 시범학교 로 지정된 것은 2004년 3 월이다. 도교육청 에서 평생교육업무를 담당하던 김봉선 장학사가 2003년 9월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오고 난 뒤의 일이다. 그는 학교가 평생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받으면서 면 내 의 모든 기관장이 참여하는 강정평생학습마을 추진위원회 를 구성했다. 학교의 시 설비와 관리비를 줄여서 평생교육활동에 투여했다. 평생학습관을 개관하여 주민들 이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다.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교사와 함께 지역사회를 찾아다 니며 노인교실, 컴퓨터교실, 문해교실, 보건교실 등을 운영했다. 주민들과 함께 산 악회를 구성하여 등반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주민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활동 프로그 램도 운영했다. 학생들은 단소, 국악, 태권도, 생활체조, 배드민턴, 난타, 한국무용, 리코더, 바이올린, 컴퓨터, 영어, 미술, 독서 등 13개 프로그램에 따라서 아침 시간

111 과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서 매일 오후 4 시까지 활동했다. 그리고 방학 때도 영어, 환경체험, 향토문화체험 등과 같은 활동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필요한 강사는 교사, 외부 강사, 자원봉사자 등이 담당했다. 나는 강정초등학교가 수행하는 이런 활동들을 보면서 교장과 교감을 포함해서 전체 8명 밖에 되지 않는 인력으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활동들을 해왔는지 의구심 이 들었다. 그 활동들로 인해서 일상적인 수업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염 려되었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기적성을 많이 하고, 공부시간 에도 재미있게 해서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 동과 아이들의 생활모습을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했다. 교장 선생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학생들이 아침에 단소 연습하는 모습을 살 펴보았다. 아이들은 뒤 이어서 강당에 가서 태권도를 했다. 한 남자 아이가 8시 50 분쯤 강당에 도착했다. 집에서 7시 50분에 나왔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과 함께 걸어오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태권도를 마친 다음에는 1 교시 수업을 했다. 나는 교장실에 내려와서 학교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강정초등학 교에서 활동들을 상세하고 길게 설명해주었다. 나를 전시실로 데리고 가서 그동안 의 활동 실적도 보여주었다. 거리가 100미터쯤 되어보이는 1층 복도에는 한쪽 끝 에서 다른 쪽 끝까지 이젤들이 기차처럼 늘어서 있었다. 이젤 위에는 강정초등학교 가 그동안 한 활동들을 각각 정리한 2 절지 크기의 판지가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아이들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 지 학교에서 생활했다. 수업은 2시간씩 한 묶음으로 해서 크게 네 블럭으로 이루어 졌다. 거기에는 특기적성교육활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나는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복도에서 들여다보았다. 1학년 교실에 는 교실 앞에 놓여있는 프로젝션 티브이가 켜져있고, 아이들 7명 가운데 3명만이 자리에 앉아서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사는 교실 앞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책상에 다리를 걸치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때가 쉬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했다. 옆반인 3학년 교실에서는 3학년과 4학년이 함께 교실 바닥에 앉아서 단 소를 불고 있었다.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체육시간인데 비가 와서 교실에서 단소를 분다고 했다. 영어, 체육, 음악은 3학년과 4 학년을 통합해서 수업한다고 했다. 나는

112 강당은 다른 학년이 쓰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2학년 교실에서는 남자 아이 두 명 이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께 단 두 명만 가르 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음악 시간에 한 아이가 음을 잡지 못해서 힘들다 고 했다. 아이들이 평생교육으로 특기적성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하는데 학부모들이 좋은 것으로 느끼지 못해서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도 했 다. 5학년 교실과 6 학년 교실은 비어 있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1학년 교실에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나누어주고 문제를 풀게 했 다. 문제를 다 푼 아이들은 선생님께 들고 나와서 채점을 받고, 틀린 문제는 설명 을 들었다. 1학년 선생님 역시 음악이나 게임 활동을 할 때 숫자가 적어서 애로가 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려고 운동장에 갔다. 저학년 아이들만 몇 명 보이고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형들은 어디 있냐고 물으니 교실에 있다고 했 다. 화요일과 금요일을 빼고 나머지 요일에는 교실에서 단소를 불거나 공부를 한다 고 했다. 3학년 교실에 가 보니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 앉아 서 단소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침에 들었던 헌천수 라는 곡이었다. 어떤 아이들 은 자신이 연습한 횟수만큼 칠판에 표시했다. 8번 또는 10 번씩 표시되어있다. 5, 6 교시에 특기적성교육활동으로 단소가 들어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단소를 연습한다 고 했다. 내가 한 아이한테 물었다. 나 : 공부시간이 더 재미있니, 특기적성 시간이 더 재미있니? 아이: 특기적성 시간도 좋긴 좋지만요, 공부시간이 더 좋아요. 나 : 특기적성 시간 중에 제일 재미있는 시간은 언제야? 아이: 태권도요. 나 : 그러면 제일 재미없는 시간은? 아이: 단소요. 나 : 단소 말고 또. 아이: 국악이요

113 아이들은 잠시 후에 강당으로 갔다. 강당에서 아이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서 아 침부터 들었던 그 곡을 각자 반복해서 연습했다. 아이들은 단소가 폐활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 좋다고 하면서도 단소시간이 싫다고 했다. 단소를 오래 불면 머리 가 어지럽다고 했다. 여름에는 더 심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눈 치를 살폈다. 아이들이 연습하고 있는 사이에 단소 지도교사가 들어왔다. 한 남자 아이가 선생님한테 멱살을 잡힌 채 손으로 머리를 얻어 맞았다. 아이들 말로는 연 습 안 하고 장난쳤다고 했다. 아침에 태권도 시간에 늦었던 아이였다. 나는 6학년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6 학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6학년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컴퓨터실에서 타자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실에 가보았다. 1, 2학년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연습하고 있는 사이에 6학년 아이들 네 명이 앉아서 1학년 아이들이 원고지에 너댓 줄씩 갈팡질 팡 손으로 쓴 글을 10 배쯤 늘리고 근사하게 다듬어서 컴퓨터로 옮겨쓰고 있었다. 선생님이 하라고 했다고 했다. 컴퓨터 특기적성을 지도하는 외부 강사는 자신의 자 리에 앉아서 아이들이 타자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당황하는 눈 치였다. 1시 10분부터 2시 30분까지 2 명의 교사, 엄격하게 말하면 1명의 정규교사가 전 교생을 관리하고 있었다. 나머지 선생님들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4학년 담임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은 출장갔다고 했다. 6학년 교실에 몇 차례 갔지만 아이 들도 선생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는 동안 천진하게 생긴 한 남자 아이는 맨발에 내복차림으로 콧물을 흘리면서 동화책 을 한 권 들고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복도에 서서 자기가 소리내어 읽어볼테니 들 어보라고 했다. 그 아이는 떠듬 떠듬 읽었다. 3 학년이라고 했다. 나는 들었다. 강당 에서 선생님한테 야단맞은 그 아이도 어느새 따라와서 덩달아 읽었다.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자신은 약속이 있어서 2시에 나가야 한다고 했 다. 나는 한두 가지만 묻겠다고 했다. 교사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학교의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지 물었다.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이 있는 부장 자리를 준다 고 했다. 부장을 하게 되면 7만원에서 10만원 정도 수당도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114 선호한다고 했다. 교사들의 승진에 필요한 연구 점수나 수상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고 했다. 수업을 2학급 또는 3학급으로 편성해서 교사들이 바쁘고 힘들 때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출장을 갈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 대신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활동에 적극 나서서 일해 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부장 자리 주는 것 자체가 인센티브거든요. 승진에 가산점을 주고 국 가에서 돈을 더 주니까. 그런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제가 돌보아 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겠다. 당신이 연구를 해서 지원한다든가, 상을 받는다든 가, 개인의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 학교 일, 평생교 육, 학생 프로그램, 주민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밤새워서 일을 하 고 일이 있다고 하면 공과 사에서 가정을 버리고 와서라도 전적으로 할 수 있는 열의를 갖고 하자. 힘들고 바쁘면 언제든지 가라. 출장이고 무슨 일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2 학급, 3학급으로 수업을 편성해서 학생에게는 손해가 안 가도록 하고, 본인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내가 크게 배려를 해주거든 요.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오늘만 점심시간에도 쉴 틈이 없이 바쁜지 물었 다. 수요일은 오전만 하고 끝난다고 대답했다. 내가 5학년 교실에서 확인한 시간표 에 따르면 수요일 오후에도 국악 특기적성활동이 2 시간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아 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아이들의 눈으로 학교 전체 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 남아있는 선생님들이 라도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들과 함께 일 주일에 두 번 정도 협의를 한다고 했다. 2시 10분이 되자 교장 선생님은 약속 이 있다면서 서둘러 이야기를 마쳤다. 학교에 나만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학교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6 학년 교실에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중 년을 넘어선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는 빈 교실에서 젊은 남자와 함께 무슨 일인가 를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자 꺼리는 눈치였다. 선생님은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 부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아이들에 대해서 잘 알거라고 기대했다. 그 선생님은 아

115 이들이 단소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어느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었 다. 그는 아이들이 특별히 싫어하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모든 시간을 즐겨 참여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 : 정규 교육과정 시간도 있고, 방과후 특기적성교육활동도 있고, 여 러 가지 활동들이 있잖아요. 이 중에서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가 장 좋아합니까? 선생님: 보편적으로 어느 시간을 싫어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즐겨 참 여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교실을 나왔다. 맨발에 내복을 입고 있는 천진한 그 아이 가 팔에 책을 끼고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서 계단을 내려왔 다. 특기적성활동을 왜 안하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아직 안 시켜줘서 안 한다고 했 다. 그는 그렇게 하루 종일 학교를 배회하고 다녔다. 어떤 선생님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여자가 좋다고 대답했다. 남자 선생님은 누가 좋으냐고 물었다. 교장 선생 님이 제일 좋다고 대답했다.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 아이를 뒤로 하고 학교를 나왔다.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날 본 모습이 그날 하루만의 모습일지도 몰라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학교에 대해서, 학교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 기로 했다. 학교를 끼고 있는 마을 어귀에 쉰이 넘어 보이는 남자들 네 사람이 보였다. 내가 학교 일로 조사를 나왔다고 하자 모두들 피하기 바빴다. 그 가운데 겨우 이장을 찾 아서 물었다. 마을에 사람이 적고, 젊은 사람도 없고, 모두 일하느라고 바빠서 학교 에서 추진하고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변명 같기도 했고 항변 같기도 했다.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폐가가 보였다. 텅빈 마 당 한쪽에 서서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빨간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하교하는 아이와 함께 다른 마을로 찾아갔다. 학부모라고 밝힌 부부와 또 다른

116 남자 두 사람이 말린 곶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들 급식을 위 해서 만 6 년째 학교에 나간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불만이 많았다. 학교에서 특별 활동만 열심히 하느라고 아이들 공부는 제대로 안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지금 특별 활동, 거시기 운동 같은 거, 단소나 국악 같은 것을 하더라고 요. 그러니까 나는 학부모로서 그렇더라고요. 시내에 사는 엄마들이 시골을 참 부러워하더라구요. 애들이 적으니까 가정적으로 애들을 가르치지 않냐. 천만의 말씀이라고 했어요. 그런 것이 없어. 여기 애들 한 반에 많아봤자 열둘, 열셋 그래요. 그러면 이건 진짜 과외잖아요. 그런데 그 애기들도 다 못 가르치더라 이거요. 옛날 우리 때는 서른 몇 명, 마흔 몇 명까지 했는데 도, 지금은 열 명 좀 거시기 했는데도 그 애기들을 못 가르치더라고. 자기 네들 교육이 선생이 아니여. 내가 가르치라고 해도 가르치겄어. 학부모들은 교장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으므로 아이들을 학원에라도 보내겠다고 하자 교장 선생님이 무척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 면서 학교에서 그것을 채워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 역시 학교에서 아이들 에게 타자치는 일을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빠서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확보된 시간에 학교가 할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처음에 와서 엄마들 몇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애 들 학원을 가르치냐고. 우리가 모자라니까, 우리가 가르칠 수가 없으니까 당연히 학원을 보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랬어요. 학교에서도 그만큼 안 해 주니까. 그런데 그것을 굉장히 반대를 하시더라고. 그러면 반대를 한만큼 당신이 학교에서 그것을 채워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하고 있는 평생교육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주

117 민들을 위해서 평생교육을 했다고 하지만 방학 때 잠깐 하고 사진 찍어서 전시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활동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모두 전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했간디요? 평생교육해서 우 리 주민들 뭐 했간디요? 겨울방학 때 며칠 삘끔삘끔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 어서 그거 전시해 놓은 거요? 참 내! 애들 무엇을 했다? 프로그램을 짜서 애들 몇 명만 데려다가 그거 하는 시늉을 해서 사진 찍어가지고 전시해놓 고. 그게 뭔 짓인지 모르겄대요. 나는 매일 보는 입장에서 참 불만이 많어. 다른 엄마들은 모르지만, 진짜에요. 그런데 진짜 거시기 할 때가 한둘이 아니에요. 학부모들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썩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처 럼 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교사들 역시 학교가 여러 가지 활동에 치중하느라고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런 데 내가 학교에서 만나본 교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 전에는) 지금보다는 낫다는 거죠. 특별한 것이 아니고 좀 낫다. 그래도 애들한테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써주셨던 것 같아요. 평생교육이라고 해 놓고 당신 나름대로 굉장히 바쁘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러니까 애들 한테 관심을 별로 안 쏟아요. 나한테 선생이 하는 소리가 위에서 잘 해야 당신들도 마음이 우러나서 애들을 가르친다 그거여. 그런데 위에서 자꾸 스트레스를 주니까 애들 교육을 못 헌다 그거여. 솔직한 말로 나더러 선생 이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여. 나는 산을 따라 올라가서 다른 마을의 또 다른 학부모를 만났다. 그는 학교운영

118 위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다니고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힘들게 학교에서 생활하고 온 아이를 학부모들이 다시 학원에 보내서 혹사시킨다고 했다. 그래도 학부모들이 대체로 학교에 대해서 흡족해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을에서 내려오는 길에 어스름 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조그만 개울 에 놓인 다리 아래서 고구마를 구워먹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내게 소원이 있다고 말 했다. 단소를 하면 폐활량이 늘어서 좋다고 했던 아이였다. 아이: 단소 시간 조금만 줄여주세요. 그리고 특기적성 조금만 더 줄여주고. 나 : 너희 교실에서 공부하는 건 어때? 아이: 만족스러워요. 그런데 저희는 수업하는 거 재미있어요. 나 : 언제가 제일 재미있어? 아이: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요. 나 : 무슨 공부할 때? 아이: 국어요. 나 : 국어 어떻게 공부하는데? 아이: 그냥 발표하고 토의해요. 나 : 너희 선생님 바쁘시지? 아이: 네. 무지 바빠요. 공부도 제대로 못해요. 나 : 왜? 아이: 선생님이 일이 많아서요. ( 우리) 선생님이 ( 일을) 다 맡아서요. 그래 서 공부를 못해요. 저 이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아이는 급하게 대답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그 아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공부 시간이 좋다는 것인지 안 좋다는 것인지. 분명한 것 은 선생님이 무지 바빠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바쁘지 않아서 공부하게 될 때는 발표하고 토의해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기적성

119 활동 시간보다 공부 시간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질 문에 대답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아이는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결코 영원히 아이인 채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어른이 되고, 지금의 아이 시절을 기억한다는 것을.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의 이름과 일거수일투족까지도. 날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조명이 없이는 비디오를 촬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인근의 또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과 약속한 장소로 차를 향했다. 아침에 보았던 풍 경은 모두 어둠에 잠기고 안 보였다. 이 마을에 머물러 살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져 갔다. 이상의 내용은 내가 강정초등학교를 2005년 12월 1일 단 하루 아침 7시 30분부 터 저녁 5시 30분까지 10 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것이다. 내가 본 것은 강정초등학교 의 전부가 아니고, 내가 만난 사람들도 강정초등학교의 모든 사람이 아니고, 여기 에 기록한 것도 내가 보고 들은 전부가 아니다. 이것은 그 학교의 일부를 내 주관 에 의해서 보고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편파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강정초등학교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여 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더 보고 더 들을수록 과연 이 학교 를 혁신학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더 깊어갔다. 무엇을 준거로 무엇을 근 거로 혁신학교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이 학교가 추진 하고 있는 평생교육시범활동이나, 특기적성교육활동이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느끼 는 것 같지 않았다. 학교가, 선생님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느 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점은 학부모들도 비슷한 것 같았다. 이 학교의 교장과 선 생님들은 무엇을 위해서 평생교육 시범활동을 하는지, 왜 살아가는지 알 수 없었 다. 일상을 소홀히 하고, 아이들을 소홀히 하면서 과연 학교혁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 까? 현실을 무시하고 명분만을 쫒는 것이 학교혁신일까? 그동안 학교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시도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이런 학교와 교사들을 양산한 것은 아닐까?

120 (2) 명성초등학교 명성초등학교는 오늘날 우리나라 산간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 는 소규모 공립학교 가운데 하나다. 명성초등학교가 위치한 산촌면에는 2005년 현 재 4,800 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난 5년 동안 430여 명의 인구가 증가 했다. 다른 산간지역에 비해서 인구의 유입이 많은 편이다. 명성초등학교가 위치한 명성리에 비교적 규모가 큰 스키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산촌면에 산촌초 등학교와 함께 명성초등학교가 있다. 산촌초등학교에는 12학급 3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명성초등학교에는 5학급 44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명성초등학교는 2003년에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서 전교생 24명이 2 학년, 3-4 학년, 5-6학년 각 1학급씩 3 학급으로 편성되었다. 즉 두 개의 학급이 복식수업을 운영했다. 복식수업은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심각하게 초래한다. 교사는 매 시간 한 교실에서 두 학년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므로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각 학년의 아이들에게 들이는 노력은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제한된 시간 동안 두 개 학년의 수업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므로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교사로부터 배우 는 내용의 질은 역시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하나의 교실 안 에서 서로 다른 학년이 서로 다른 내용을 동시에 학습함으로써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만큼 서로 방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 전체에 교사의 수가 적고 각 교사가 맡아야 할 업무가 많아짐으로써 교사들이 수업 자체에 전념 할 수 없다. 따라서 학생들이 복식수업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사들 역시 근무여건도 생활여건도 좋지 않은 소규모 학교에, 특히 복식학급 담임으로 근무하 는 것을 꺼려한다. 교육청에서는 이 문제를 가산점에 의해서 해결해왔다. 생활여건이 좋지 않은 벽 지학교에 근무하거나 복식수업을 담당하는 교사에게 가산점을 주어서 승진이나 이 동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벽지학교는 승진을 목표로 삼고있는 교사 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교사들은 그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이 아 니라 자신의 근무 평정권을 쥐고 있는 관리자와 교육청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요 구와 지시를 최우선으로 따르면서 지내다가 자신에게 필요한 점수를 따면 이내 더

121 나은 학교로 옮기곤 했다.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이미 확보했거나 승진에 관심이 없는 교사들은 소규모 학교에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고, 마지못해 근무하게 될 경우 에는 교육청의 감독이 소홀한 점을 악용해서 방만하게 생활하다가 기한만 채우고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임 교사들로 채워졌다. 교직 경험이 전무한 그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배 교사들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고 자신도 점점 그들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그들도 잠시 머물다 떠났다. 그들 모두에게 소규모 학교는 자신의 승진을 위한 발판이자 잠시 머무는 경유지일 뿐이었다. 지역주민들은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뜨내기 교사들의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 켜보아 왔다. 학교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선생이 저럴 수가! 라고 지탄하는 것조차도 포기했다. 단지 자신의 자녀의 학력이 갈수록 저하되는 것이 염 려될 뿐이었다. 그래서 여력이 되는 부모들은 자녀를 도시의 학교로 보내거나 지역 사회를 떠나게 된다. 그에 따라서 소규모 학교는 더 작아지고, 마침내 문을 닫게 된다. 복식수업과 가산점, 이것이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의 문제를 해결해 온 기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 다. 그것은 해결책이라기보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장본인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학생을 희생시켜서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아는 희 생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떠날 수 없는 학생들은 더 큰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소규모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복식수업과 가 산점 제도를 유지해 온 데는 두 가지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첫째는 양적사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복식수업의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의 절반도 채 배우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단식학급의 학생과 마찬가지 로 그들도 학습이 이루어졌다고 간주한다. 만일 복식학급 학생들의 학습 결손의 문 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한 학년에 학생이 한 명밖 에 없어도 교사를 배치했어야 한다.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 것은 수 업 시수와 학습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이 수업 시수를 이

122 수하기만 하면 학습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바로 양적인 사고가 전제되 어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근시안적인 관리자 중심의 사고다. 당국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소규 모 학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교사들의 희생과 그에 대한 댓가로서 가산점이라는 당근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 들은 당근만 먹고 희생은 충분히 발휘하지 않았다. 희생이 발휘되었다고 해도 업무 등과 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발휘되었다. 그 대신 학생들을 희생시켰다. 희생되지 않으려는 학생들은 지역을 떠남으로써 도시 편중 현상을 낳았고, 장기적으로는 지 역간 집단간 위화감을 심화시킴으로써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가 산점이라는 제도를 교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학생들의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면서도 당국은 수십 년 동안 지속해왔다. 그것이 관리자 자 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관리자들 자신이 그것을 이용해 서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도가 단기적으로는 아이들의 삶에, 장기적으 로는 우리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바로 관리자 중심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명성초등학교는 그동안 우리나라 학교를 지배해온 이와 같은 관행 과 사고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있다. 명성초등학교는 2004년부터 소규모 복식학 급의 문제를 부분적인 교과전담제와 통합학습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즉 복식학 급의 수업 가운데 국어, 수학, 영어 등과 같은 주요 과목의 수업은 단식학급의 교 사들이 나누어서 맡아서 수업함으로써 학습 결손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체육 과 목의 게임 영역의 수업은 여러 학년의 학생들을 통합해서 수업함으로써 소규모 학 급의 문제를 해결했다. 이 외에도 음악, 미술, 실과 등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 결했다. 이러한 방안은 소규모 학교의 복식학급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 은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해결책의 밑바탕에는 아이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학생 중심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성초등학교가 교과전담제와 통합학습의 방법으로 소규모 복식학급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학교장의 교육과정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교사들에 대한 지원이 뒷 받침 되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오랫동안 소규모 학교와 복식학급의 교사로서 근무

123 하면서 소규모 학교의 복식수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해 왔다. 그 결과 그는 위와 같은 방안을 찾아내서 부분적으로 시행하다가, 2004년에 처음으로 명성초등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그것을 전체 교사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교사들과 함께 전 학년의 교육과정 내용을 분석하여 통합 가능한 영 역을 찾아내고, 전교 시간표 등도 만들어서 교사들에게 제공했다. 또한 교사들 각 자의 특기를 살려서 교과분담수업과 통합수업을 하도록 했다. 교사들은 서로 복식 학급을 맡기 꺼려하던 차에 교장의 제안과 지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 명성초등학교 학생들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더 만족스럽게 생 활하고, 지역주민들 역시 과거에 비해서 훨씬 더 학교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점은 2003년에 24명이었던 학생수가 2005년에는 44 명으로, 2006년 에는 52 명으로 증가할 예정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2000년에 4,400여 명이었던 산촌면의 인구가 2001년에 4,700여 명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성 초등학교 재학생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더 잘 알 수 있다. 명 성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한 것은 단순히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거기에는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습을 위한 명성초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의 노 력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런 노력의 이면에는 학생을 중심에 둔 사고와 학생들의 학습을 양적인 관점이 아닌 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사고가 전제되지 않고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 명성초등학 교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아침 7시 30분부터 밤 9 시까지 학생들의 등교하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수 업하는 모습과 하교 후 가정의 모습까지 관찰하고 면담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교장 선생님과 교사와 면담했다. 나는 이 관찰과 면담을 통해서 명성초등학교의 구 성원들이 교과분담제와 통합수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지 확 인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단 하루 동안의 관찰과 면담이라서 그런 점들을 충분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확인한 범위 내에서만 말하면 명성초등학교에서 교과분담제와 통합수업이 실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학교 의 구성원들이나 지역주민들이 그러한 활동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124 물론 명성초등학교의 교과전담제와 통합수업이 바로 일상적인 교실 수업 활동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규모 학교가 일반적 으로 안고 있는 선결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 이후의 문제, 즉 일상적인 교실 수업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규모 학교의 복식수업 문제를 해결할 때 요구되 는 사고나 일상적인 교실 수업의 질을 높이고자 할 때 요구되는 사고는 모두 동일 하다. 즉 아이 중심의 질적인 사고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 결할 수 없다. 그 점에서 본다면 명성초등학교는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가 안고 있 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국이 취해야 하는 사고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초등학교의 교장은 교장으로서의 임기를 이제 2년 남겨 두고 있다. 다른 동료 교사들이 일찍부터 승진을 위해서 해바라기처럼 살아갈 때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민들레처럼 살아오느라고 뒤늦게 교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로부터 그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 라의 학교 제도가 출세와 보신에 눈이 밝은 해바라기들은 양산하고 아이들을 위해 서 살고자 하는 민들레들은 점점 더 살아가기 어렵게 해온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 심이 들었다. (3) 어삼초등학교 어삼초등학교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농촌지역에 위치한 공립초등학 교다. 이 학교에는 2005년 현재 79 명의 아이들, 7 명의 교사, 각 1명의 교장 교감 선생님, 4 명의 행정실 직원이 함께 살고 있다. 어삼초등학교의 전신인 야산서초등 학교는 야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야산초등학교로 통폐합될 예정이었으나, 학부모와 동문과 지역주민 그리고 교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서 2003년 인근 지역의 또 다른 통폐합 예정 소규모 학교인 삼정초등학교와 통합해서 어삼초등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어삼초등학교는 현재 농촌지역과 아이들의 생활에 적합한 방식으로 학교와 교육

125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학교 시설을 지역주민과 함께 자유롭게 이용하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교를 설 계하여 신축하고 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체험학습, 계절학교, 특기적성교육, 각종 학교행사 등의 내용을 농촌지역에서 고유하게 경험하는 것들로 선정하고, 그 각각 의 활동에 농촌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부모와 지역인사들을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어삼초등학교가 다시 태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어삼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근무하면서 부조리한 학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노력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작은 학교에서 한 데 모여 학교를 건강하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산들초등학교가 자신들이 하고자 한 일을 먼 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산들초등학교를 모델로 삼아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 근무하던 그들이 어삼초등학교에 한 데 모이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낡은 학교 건물을 아이들의 정서와 생활에 적합하게 신축 하는 데도 많은 난관이 있었다. 농촌지역의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활동을 제공하 는 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양한 경로와 방법에 의해서 이러한 어려움을 헤치고 현재와 같은 교육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것의 질과 수준을 점 차 높여가기 위해서 또 다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나는 아침 일찍 어삼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부터 살펴보았 다. 아이들은 걸어서 또는 학교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등교한 아이들은 여느 학교 에서와 다름없이 교실에 삼삼오오 모여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 나 교실에 놓인 오르간을 연주했다.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시자 선생님과 함께 학교 텃밭에 가서 눈을 감고 각 자의 배추와 대화를 나누었다. 다시 교실에 들어와서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선생 님과 함께 각자의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면서 명상에 잠겼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 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발표할 시간을 주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 아이를 격려했다. 여느 학교의 교실에서 흔히 볼 수

126 있는 것처럼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를 무시하고 건너뛰거나 서로 발표하려고 기를 쓰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다른 학년은 이날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평가를 치뤄야했기 때문에 수업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자녀를 삼정초등학교에 보내다가 어삼초등학교로 보내 게 된 학부모 네 명을 찾아가 면담했다. 그들은 모두 어삼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자 신의 자녀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 점은 이전 선생님들의 방만하고 나태한 모습과 대비되어서 더욱 부각되었다. 그들 은 이렇게 말했다. 어림잡아 봤을 때 한 60% 이상은 잠시 와서 승진하는 점수를 따고 간다든가 뭐 그렇게 잠시 왔다 가는 것이라는 거지 농촌에 와서 내가 정말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이상을 펼쳐 보겠다 이런 사람들은 극히 적다는 얘 기죠. 저희들이 선입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겪은 선생님들은 솔직히 실 망을 많이 하게 한 선생님들 이었어요. 교실에서 뭐 맨 날 전화하고. 내 가 도대체 집에서 뭐하시냐고 그랬어. 지금 저희 선생님들이 얼마나 노력 하고 계신가를 그 때를 비교를 해보면 저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 어삼초등학교 학부모들) 비록 이 학부모들이 어삼초등학교의 모든 학부모들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 부모들이 느끼는 선생님에 대한 인식은 다른 학부모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 자신의 자녀들도 여러 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둘 다 더 활달해지고 애교도 많아지고 밝아졌어요. 애들이 집에서는 대 장 노릇을 하는데 밖에 나가면 자기 의사 표현을 안 하고 소심하게 뒤로 숨고 그랬어요. 요즘은 밖에서도 자기 의사 표현도 잘 하고, 생각이 많이 깊어진 걸 느껴요. 동시도 간혹 잘 쓰거든요. 3 행시도 일기장에 쓰고. 보면

127 생각도 깊어지고 표현력도 그래요. 우리 딸은 성격이 고집이 있는 편인데 요즘은 많이 온순해지고 화도 덜 내요.( 어삼초등학교 학부모) 나는 어삼초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아 이들 역시 어삼초등학교가 이전의 학교에 비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달라지고, 그로 인해서 자신들의 생활도 긍정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그들은 여러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교사와 아이들의 관 계가 변화하고, 그런 관계를 토대로 일상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짐으로써 아이들이 교사를 더 잘 따르고 쉽게 학습한다고 믿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갖는 인간관계 그런 것이 아이를 좀 더 폭이 넓게 만 들고 크게 만들고 하는 것 같아요. 4학년 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런 것 을 너무 잘 해주세요. 우리 딸은 너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해요. 3학년 때 글씨가 완전히 날라다녔는데 4학년 들어서서 선생님이 일기장 몇 번 하면서 잡으니까 그게 잡히더라고요. 엄마는 몇 번 해도 안 되는데. 선생님 하고 인간관계 측면에서 뭐가 쌓이니까 이게 잘 먹히더라구요.( 어삼초등학 교 학부모) 수업을 마친 후 교사들은 교무실 한쪽에 난로를 가운데 두고 디귿( ㄷ) 모양으로 놓인 소파에 편안하게 둘러앉아 회의를 했다. 이 학교에는 교무회의가 따로 없다고 했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교사와 교감, 교장이 함께 마주 앉아서 대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고, 그 곳에서 결정된 사안을 실천한다고 했다. 나는 어삼초등학교가 시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어삼초등학교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다 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 활동들이 실지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각 구성원들이 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활동들의 그들 각각의 삶에 어 떤 의미가 있는지 등은 단정지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삼초등학교 교사들은 학교가 명실상부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장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정

128 해진 이상의 노력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런 노력의 결과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과 학생들의 학교생활 모습이 달라지고, 학부모들은 학교의 활동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4) 단강중학교 단강중학교는 전체 인구가 14 만 명 가량 되는 농촌의 소도시에 위치해있다. 이 학교는 카톨릭 재단에 의해서 단강고등학교와 함께 운영되고 있으며, 중학교 재학 생은 12학급 약 400 명이다. 단강중학교에서는 10년 전부터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 진하고 있다. 당시 단강중고등학교에 새로 취임한 교장은 학교가 학력을 향상시킨 다는 명분 하에 학생들을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을 보 고, 그것은 카톨릭 학교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는 일 못지 않게 인성이 바르게 자라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성이 왜곡됨으로써 학력 또한 제대로 향상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영어과와 수학과를 중심으로 단계형 수업 을 고안해서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성교육을 통해서 학 생들의 인성이 바르게 자라도록 하고자 했다. 교장은 3년 동안 방학마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동안 전 교사가 참여하는 연 수를 실시했다. 연수의 내용은 주로 상담과 관련된 것이었다. 강사를 초빙하여 학 생을 대하는 법, 학생과 대화하는 방법 등을 익히게 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재단으로부터 마련하거나 자비를 들여서 보충했다. 처음에는 교사들이 연수에 대해 서 부정적이었으나, 연수가 반복되면서 학생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차 츰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연수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집단 상담 프로그 램을 마련했다. 희망하는 교사에게 집단상담에 관한 연수를 주마다 2시간씩 6개월 동안 받게 했다. 교사만으로는 상담요원이 부족하자 학부모 가운데 희망자 30여 명을 선정해서 함께 연수를 받게 했다. 그리고 그 상담요원이 주축이 되어서 학생

129 들을 집단상담했다. 교장은 이와 함께 최형인 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교사를 중심으로 인성교육부를 만들었다. 인성교육실도 따로 마련했다. 최형인 교사는 그 이전부터 자신의 학급에 서 다양한 인성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성교육부에서는 매주 토요일을 책 가방 없는 날로 만들어 전교생을 대상으로 90가지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 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나를 소중히 알고, 너와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만 들어가요 라는 주제 하에 1 학년에는 나를 알아가는 활동을 중심으로, 2학년에는 이 웃을 이해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3학년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편 성했다. 각 학년의 내용은 심성계발( 집단상담), 생명과 성, 예절, 문화예술, 영상 등 의 다섯 영역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활동의 내용에 따라서 참여하는 학생의 규모를 다르게 했다. 심성계발( 집단상담) 은 12 명을 단위로, 예절교육과 체험활동은 학급을 단위로, 문화예술 가운데 우리 춤 배우기는 학년을 단위로, 영상교육은 전학년을 단위로, 공연활동은 중고등학교의 모든 학생이 참여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 은 매주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는 인성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에는 각각 계발활동과 자치활동에 참여했다. 이런 활동을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이 높 아지고, 졸업 후에도 단강중학교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단강중학교에서 인성교육 활동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최형인 교사는 인성교육에 대한 학생 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했다. 어떤 아이들은 토요일은 새털 같다고 표현하더라구요. 중학교 아이들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꽉 짜여진 수업을 했다가 토요일은 수업을 안 한 다는 것, 숙제를 안 한다는 것,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토요일 은 정말 새털 같다고 해요. 일주일에 네 번 결석하는 아이들도 토요일은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왜 나오냐니까 토요일은 부담이 없잖아요 라고 해요. 그렇게 아이들이 인성교육을 받아들이는 것 같구요. 인성교육이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것들이 지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 렇지만 단강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다른 아이들은 그걸 알거든요. 일

130 년에 영화 한편 안 보거든요. 그러니까 중학교 때 인성교육이 너무 감동적 이었고 좋았다는 것을 아주 느끼더라구요. 단강중학교의 이러한 인성교육 활동은 몇 년 전부터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러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인성교육 활동을 살펴보기도 하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듣기도 했다. 단강중학교에서는 인성교육 활동 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책자를 제작해서 배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단강중학교의 인성교육활동은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교장 선생님이 바뀌고, 학력 향상에 더 관 심을 두기 때문이다. 단강중고등학교는 2002년에 재단의 규정에 따라서 임기가 만 료된 전임 교장 대신 새 인물을 교장에 임명했다. 새 교장은 전임 교장과 달리 학 생의 학력에 좀 더 관심을 두었다. 그와 함께 교육청에서도 학생의 학력 증진을 최 우선 시책으로 삼았다. 고등학교의 경우 신입생 가운데 30명을 따로 선발해서 특 수반을 만들기도 하고,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밤 1시가 넘도록 야간 자율학 습에 매달리도록 하기도 했다. 그에 따라서 인성교육 활동에 대한 학교의 관심과 지원이 점차 약화되어 가고, 교사들 역시 종전과 달리 인성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한두 명이 그 일을 맡아서 힘겹게 이끌어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강중학교가 지난 4년 동안 인성교 육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연간 인성교육활동 프로그램이 사전에 만들어지 고 그에 따라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토요휴무일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매달 한 번씩 토요일마다 쉬었지만, 내년에는 두 번씩 쉬게 되고, 나중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쉬게 된다. 따라 서 매주 토요일에 편성된 강단중학교의 인성교육 활동은 영역이 점점 더 축소되거 나,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사라질 수도 있다. 단강중학교의 인성교육 활동 을 담당하는 교사도 이 점을 염려했다. 단강중학교의 이런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앞의 제2장 제1절에서 언 급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여러 학교들이 학교 개혁 우수 사례로 선정되고, 나머지 학교들은 그 학교를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 학교들은 일시

131 적으로 외부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학교의 개혁 활동 이 퇴색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주요한 원 인 가운데 하나가 학교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를 개선하는 활동이 학교장이나 특정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단강중학교에서도 학교 장이 바뀌자 교사들은 인성교육 활동을 귀찮아하고 점점 종전으로 돌아가게 되었 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즉 어떤 하나의 개혁적인 활동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서는 먼저 단강중학교의 교사들은 왜 인성교육활동을 귀찮아하고 점점 더 종전으 로 돌아가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점이 확인되지 않는다 면, 우리나라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단강중학교에서의 인성교육 활동 과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이후의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단지 나는 몇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첫째는 단강중학교가 인성 교육 활동을 지나치게 제도나 프로그램 또는 기법에 의존해서 실시함으로써 교사 들이 그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 점에서 단강중학교 교감 선생님의 다음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교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생을 이해하고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드 라고 말했다. 마인 학교마다 여건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서 십수 년의 노력과 경험을 지닌 본교를 벤치마킹한다는 것이 학교마다 같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교사들이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마인드 를 얻어 가라 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학생들은 아직 어리고 여리 며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는 마음을 기른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만 큼 그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132 이 지적에 따르면 단강중학교에서 학교장이 바뀜으로써 인성교육 활동이 교사들 에게 외면받고 위축된 것은 교사들 사이에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마인드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우리나라 학교의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경직되게 짜여져 있는 데다가 수 어 외에도 처리해 할 업무가 많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해한다거나 학생들 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학 입시 문제 등도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학 입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중학교에서도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주요한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 셋째는, 그것이 인성교육 활동이건 또는 또 다른 활동이건 관계없이 교사들 스스 로의 필요나 자각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지시나 권력에 의해서 추진되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단강중학교에서 최형인 교 사는 자신이 교사로서 근무하는 동안에 자각한 바가 있어서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활동에 전념해왔지만, 나머지 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여러 해에 걸쳐 서 인성교육과 관련된 교사 연수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것 역시 관리자라는 권력을 기반으로 해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달리 말하 면 인성교육 활동의 가치나 의미가 교사 개개인에게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은 것이 다. 그러므로 외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그들의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원인에 의해서 단강중학교 교사들이 인성교육 활동을 꺼려하 고 귀찮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추후의 조사를 통해서 확인해야 할 사항 이다. 그리고 이런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단 한 가지라도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활 동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5) 운경중학교 운경중학교는 지방의 농산촌 면 지역에 위치한 공립중학교다. 이 면의 전체 인구 는 2,500 명 정도다. 주민들은 대부분 벼농사나 과수농사를 짓는다. 운경중학교에는

133 43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 학생들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약 30 명 가까이가 가진 것이라고는 몸 밖에 없다는 것이다. 1학년을 예 로 들면, 13명 중에 3 명만 부모가 계시고, 나머지 10 명은 장애부모와 살거나, 편부 모와 살거나, 조부모와 함께 산다. 부모가 계신 3명의 아이 집안도 1,000평도 채 안 되는 땅에서 수입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간다. 나는 이 학교 아이들이 살 고 있는 가정의 모습이 궁금해서 세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나를 안내한 선생님은 대부분 학생들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했다. 첫째 집은 부모가 모두 계신 집이었다. 그 집엔 중학교 3학년과 2 학년, 초등학교 6 학년 형제가 있었다. 부모 외에도 연로하신 할머니가 계셨다. 그 집은 사과와 벼 농사를 조금 짓고 있고, 연간 총 수입은 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 중 매달 30만 원 정도가 아이들 교육비로 쓰인다고 했다. 총 수입의 3분의 1 정도가 교육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집마다 빚이 몇 천만 원씩 된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두 집 살림할 일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둘째 집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었다. 할머니는 82 살이었다. 그 집엔 중학교 1학년 남자 아이와 초등학교 6 학년 여자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외에 정신지체로 보이는 젊은 장애인 부부와, 그 부부의 두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은 면에서 보조해주는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다. 내가 그 집에 간다고 하자 할머니 는 평소에 안 쓰던 기름보일러를 틀어서 방을 덥혔다고 했다. 남자 아이는 운동선 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셋째 집은 박물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은 집이었다. 이 집을 보는 순 간 앞의 두 집이 낡고 초라했다는 느낌이 어느새 사라졌다. 70년대에 새마을운동 의 일환으로 지붕 개량 사업을 할 때 초가를 슬레이트로 바꾼 이후로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듯했다. 높다란 마루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방 한 칸의 세 벽 을 돌아가면서 낡은 장롱과 녹슨 철재 책상, 냉장고, 텔레비전 등의 가재도구가 자 리를 잡고 있다.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도 가로 방향으로는 누울 엄두가 나지 않았 다. 헤진 벽은 달력이 메우고 있고, 그것마저 헤져있다. 그 집에 올해 68세인 할머 니와 중학교 1 학년 여자 아이, 초등학교 5 학년 남자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11 년 전부터 할머니가 혼자서 아이 둘을 키워왔다고 했다. 농사철엔 할머니가 동네

134 일을 거들면서 먹고 살지만, 농한기에는 놀고 있다고 했다. 여자 아이는 커서 요리 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집을 새로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운경중학교에 9명의 선생님과 1명의 교장 선생님, 그리고 4 명의 행정실 직원과 교무보조원이 근무하고 있다. 선생님들 은 모두 40 대 중반 이상이고,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생님도 계셨다. 내가 보 기에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모두 자기주장이 강했다. 일부 선생님은 이 지역 아이 들이 도시 아이들에게 비해서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가 다양한 문 화 체험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일부 선생님은 이 아이 들은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교과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진영 사이의 긴장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이 지역 아이들을 위해서 고민하고 함 께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이들의 무상 급식을 확대하고, 학교에서 실시하 는 각종 학습활동, 행사, 현장학습 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학교 운영비를 통해서 해결했다. 매달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서 한 학생씩 선정해서 장학금을 지급했다. 각 선생님이 4~5 명의 학생과 결연을 맺고 아이들의 학교 밖 생활을 돌보았다. 여 러 가지 특기적성 활동과 체험학습 활동을 준비해서 모든 학생이 참여하도록 했다. 교장 선생님은 선생님들의 그런 활동을 지원했다. 이런 내용들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의 교직원회의에서 협의되고 결정됐다. 담임 배정과 부장 선출, 업무 분담 등도 이 회의를 통해서 결정되었다. 선생님들은 정기 적인 회의 외에도 수시로 학교의 문제를 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디귿 ( ㄷ) 자로 배치된 교무실 교사용 책상 가운데 공간에 너댓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둥근 탁자가 바로 그런 이야기가 오고가는 자리였다. 나도 그 자리에서 선생님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밖에도 연말에 학부모와 학 생과 교사가 모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 운영의 방향을 함께 논의했다. 이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창의적 재량활동, 특기적성 활동, 체험학습 등은 도 시의 대규모 학교에 비교하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그리고 아직은 선생님들이 하고 있는 활동이 일상적인 수업의 장면에까지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내가 모든 수업을 충분히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35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선생님들의 마음은 어느 학교 못지않게 아름답고 혁신 적이다. 선생들이 각자 지향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것은 모두 아이들을 향해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거창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실천하고,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또 다른 일을 찾아나간다. 마치 옥상에까지 가기 위해서 제일 낮 은 계단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올라가듯이. 그렇게 해서 멀리 있던 선생님과 선생 님, 선생님과 아이들, 학교와 지역 주민들 사이의 마음을 점차 한 데 모아나간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은 땅에 밀착시킨 채 노란 꽃을 환하게 피우는 키 작은 민들레들을 떠올렸다. (6) 정성중학교 내가 정성중학교에 방문한 것은 2005년 12월 7 일 수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나 는 이날 오후 2시쯤까지 운경중학교에서 조사를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정성중학교 가 있는 대한시 강산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에게 정성중학교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환락가와 영세 아파트 단지를 지나 정성중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의 교문은 닫혀있고, 어스름 속에 5층짜리 건물 두 개가 기역자로 붙은 채 운 동장 건너편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한쪽 건물 2 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교무실쯤 되어 보였다. 나는 교문을 열고 들어가 교무실에 찾아갈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내 몸이 힘들기도 했고, 선생님들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 만 그것보다는 더 큰 이유는 내가 정성중학교를 상세히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내가 사전에 조사한 어느 자료에는 정성중학교는 학교의 자원을 지역사회에 개 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지역교육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심점이 되 고 있다 고 소개되어 있었다. 영상학습관, 도서관, 정보화실, 체육관, 가사실, 재봉 실 등을 모두 건물의 1층으로 옮겨 설치하거나 개조해서 지역주민들이 손쉽게 이 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설들을 이용해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 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2003년에 정성중학교가 교육

136 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시범학교에 선정되면서 배정된 예산으로 충당했다. 나는 이런 활동들이 지역사회 여건이 열악한 주민들에게는 나름대로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성중학교가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을 위 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내용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인근 지역의 특수학급 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을 위한 활동에 관한 언급이 전 부였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정성중학교가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거나 관심을 별로 두지 않은 채 일회적이고 전시적인 활동에만 치 중한다고 생각했다. 즉, 운동회형 학교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운경중 학교에 좀 더 오래 머물렀고, 정성중학교는 다음날 오전 중으로 조사를 끝내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다음날로 예정된 강산고등학교를 자세히 조사하고 싶었다. 나는 교문 너머로 교무실 불빛만 바라보고, 몸을 돌려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 들에게 정성중학교에 대해서 물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했 다.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인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빗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걸어가는 아주머니에게도 물었다. 정성중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 지역주민들 사이에 얼마나 알려지고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성중학교에서 동네 사람들한테 영화를 보여준다는 데 혹시 보셨어요? 아니요. 못 봤는데요. 네. 난 봤어요. 아주머니 대신 함께 걸어가던 일곱 살쯤 되어보이는 꼬마가 대답했다.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주머니가 모르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느라고 바쁜 주부가 자신의 자녀가 다니지도 않은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꼬마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좀 더 많 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지만, 정성중학교에 뭔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정성중학교를 다시 방문했다. 운동장에서 쓰레 기를 줍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어제 밤에 들었던 것과 비슷한 대답이었 다. 교장실에 찾아갔다. 교장선생님은 막 교직원회의에 참석하려던 참이었다. 급하

137 게 인사를 나누고 교직원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지 여쭈었다. 교사들 사이의 분위기 와 관계를 느끼고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고 주저없이 허락했다. 교실 네 칸 정도를 터서 만든 길다란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각 부서별로 자리를 나 누어 앉아서 업무 사항을 안내했다. 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 여서 의논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교사들 사이의 분위기도 화 기가 있어보였다. 교직원회의를 마치고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행정실장이 함께 앉아서 면담 을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은 준비한 자료를 펼쳐놓고 학교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 했다.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사전에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꼼꼼 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또 하나의 강정초등학교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닌지 염려되었다. 정성중학교에는 30학급 982 명의 재학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1명 1학급이 장 애학생이다. 교사는 59 명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주변의 11 평, 13평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학생의 17% 인 163 명이 중식을 지원받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 상 학생이 102 명이고, 차상위계층이 64 명, 기타가 1 명이다. 그 비율은 점점 늘어 가고 있다. 또 한부모 가정이 11.5% 다. 이런 지역사회 여건으로 인해서 2003년에 정성중학교가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시범학교로 지정되고, 이 사업을 시 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4억 7 천만 원 배정되었다. 이 예산으로 2003년부터 2005 년까지 앞서 살펴본 사업들을 추진해왔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다. 80% 이상이 긍정적이라고 대답했 여기까지 나는 몇 가지 질문만 하면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빨리 마치고 강산고 등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나는 문득 그 만족도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해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 자료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사회복지사가 준비하고, 조사 도 사회복지사가 했다고 했다. 나는 정성중학교에 사회복지사가 있다는 사실을 이 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30대 초반 쯤 되어보이는 여자였다. 평생교육프로그램 참가자 및 이용자 72명을 대상으로 조 사한 결과라고 했다. 나는 그 외에도 다른 학교에서 면담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

138 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 이 있었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 과정에서 교사나 학생들이 어떤 변 화를 경험했는지 등을 질문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통해서 전날 밤에 느꼈던 뭔지 모를 이상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성중학교가 2003년 4월에 교육청에 의해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시범학교로 지정될 당시에는 아무도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 무엇인지 몰랐다. 심지어는 교육청의 담당자도 그것이 어떤 일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 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실 사회복지사가 교육청과의 계약에 의해서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정성중학교에 배치되었다. 김 복지사는 사업계획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30개의 사업과 80여 가지 세 부프로그램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4억 7 천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사업을 시 행하려고 하자 교사들의 외면과 저항에 부딪혔다. 한 마디로 아이들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귀찮게 왜 하느냐 였다. 교사들이 이렇게 나온 것은 사업이 기존의 교사업무와 중복되고 일회적인 행사 위주로 짜여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교장 선생 님이 바뀌면서 사업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중복된 사업을 조정했다. 이와 함께 김 복지사는 교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교사들이 최대한 간편 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나머지 일은 자신이 밤늦도록 처리했다. 교사들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게 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방 안들을 안내했다.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학생의 집을 담임선생님과 함께 매일 아침 에 교대로 방문해서 등교하게 하기도 했다. 담임선생님, 학교의 상담부장 교사, 지 역의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가 함께 학교 안팎에서 아이를 돌보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5년에 이르러서는 교사들이 오히려 김 복지사에게 아이들 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고,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을 하나라도 더 복지혜택 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애썼다. 교사들은 더 이상 교육복지 사업을 아이들에게 도움 이 되지 않는 귀찮은 일 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 담임교사인 내가 해야 할 일 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복지사업이 학생 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39 정말로 학교에 있어야 할 보조교사로서 복지사가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 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 학교는 특히 아침에 학교를 못 오는 아이들이 한 명씩 있거든예. 부모가 깨워주지 못하고 가버리니까. 일어나는 시간을 놓쳐서 학교를 못 오는 아이들이 몇 명씩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있었을 때 담임이 여기 있는 아이들을 놓고, 수업을 놓고 갈 수 가 없거든요. 근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2, 3년 지켜보니까 복지사 님이 뛰어가 주더라고예. 그래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그 다음 날 어 떻게 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주더라고예. 그런 것을 보면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그런 복지학교가 계속 늘어나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고예, 지가 있다면, 정말 출발점이 다른 아이들이 그 출발점을 같게 하자는데 취 그걸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계속 꾸준히 지원이 내려왔 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성중학교 연구부장) 이와 함께 교사들은 복지사업을 함으로써 학생들을 더 주의깊게 관찰하고 더 이 해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가정을 방문함으로써 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되 고,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석식을 제공하는 아이들의 집, 가정방문을 다 갔습니다. 가보니까 정말 한 칸 방, 또는 두 칸 방에서 가족들이 다섯 명, 작게는 세 명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집은 계속 넣어 줘야 되겠구나를 알게 되면서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를 하게 됩디다. 그래서 왜 그 아이가 학교 나오는 것을 힘들 어 하는가, 왜 저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수업을 많이 빠지고 거의 학교를 안 나오게 됐는가를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아이들 에게 좀 더 정서적으로 다가서게 되더라고예.( 정성중학교 상담부장) 그리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동료교사들과 더 자주 이야기

140 를 나눔으로써 교사들 자신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의 관계도 변하게 되었다. 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교 급식비를 지원하든, 체험학습에 대한 경비를 지원하든 어떤 대상을 찾아 야 하니까 선생님들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아이들을 관찰하는 데 많은 변화가 생기죠. 전혀 그런 목적이 없이 아이들을 깊이 파고들어 알기 가 힘들거든예. 힘들고, 복지 사업을 하다보니까 어느 반에는 어느 아이가 좀 더 좀 더 혜택을 받아야 되니까 반에서 일률적으로 세 명씩 이러지 말고 더 어려운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고 하면 좀 양보해 달라. 혹은 어떤 유대관계, 그런 것들이나 아이들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더 많이 되죠. ( 정 성중학교 연구부장) 그리고 교사들의 이와 같은 변화는 학교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교 전체의 변화는 다른 아닌 아이들을 향한 변화다. 그 학 학교분위기가 달라졌다면 아이들한테 좀 더 침투하는, 개개인에게 접근 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이 그렇다, 우리 반도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통해서 공감대를 많이 형성하고 아까 말했던 연수를 함으로써 개개인이 좀 더 ( 아이들에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중학교 상담부장) 나는 정성중학교의 일상적인 수업 모습 등은 다 살펴보지 못했지만, 제한적이나 마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 그리고 김성실 복지사와의 면담을 통해서 전날 밤에 느 꼈던 뭔지 모를 이상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성실 복지사를 비롯해서 정성중학교의 여러 교사들과 교장 선생님의 정성 스러운 노력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라는 제도 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제도 역시 김성실 복지사와 여러 교사들의 노력이 있지 않고 서는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정성중학교의 이 사례는 학교혁신과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를 제공

141 한다. 즉, 학교혁신은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사람 의 정성스러운 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학교에는 지 금 이러한 정성스러운 땀이 부족하며, 학교를 진정으로 혁신하고자 한다면 교사들 로 하여금 기꺼이 이러한 정성스러운 땀을 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 다는 것이다. 교사들로 하여금 기꺼이 정성스러운 땀을 흘릴 수 없도록 만들어 놓 은 상태에서 획기적인 제도나 방법에 의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지금까 지 보아온 것처럼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성중학교가 지난 3년 동안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을 추진해온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성중학교의 시설과 일부 활동 모습을 살펴보느라고 예정했던 것보다 다섯 시간이나 더 정성중학교에 머물렀다. (7) 해송중학교 해송중학교는 대도시에 위치한 20 학급 규모의 공립학교다. 이 학교에는 620명의 학생과 36 명의 교직원이 있다. 이 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가운데 약15% 정도는 무 료급식을 지원받고 있다. 그 만큼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내가 해송중학교를 현지조사 대상학교로 선정한 이유는 이 학교가 교사들의 일 상적인 수업 기술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혁신의 궁극적인 귀결점은 교사들의 일상적인 수업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늘 먹는 밥과 마찬가지로 수업은 모든 교사와 학생이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우리가 늘 밥을 규칙적이고 고루 먹으면 건강을 해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듯이, 학교의 일상적인 수업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면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거나 학교가 붕괴되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는 각종 시범사업이나 특색사업 등과 같은 일회적이고 전시적인 활동에 치중함으로써 오히려 일상적인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마치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잔치 때 잘 먹으려고 평 소에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 해서 위신은 세울 수

142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을 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의 대외적인 위상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의 학습을 더욱 저해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개혁이 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당국이 그동안 추진해온 많은 일들이 학교를 더 수업하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어놓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해송중학교는 일회적인 전시성 행사가 아닌 교사들의 일상적인 수 업기술을 개선함으로써 우리나라 학교가 안고 있는 이와 같은 고질적인 병폐를 근 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해송중학교는 희망하는 교사들 에 한해서 수업장면을 촬영하고, 교사가 그 테잎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수업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역시 희망하는 교사에 한해서 자신의 수업에 대한 학 생들의 반응을 평가받도록 했다. 그 결과 75% 의 교사가 수업 촬영과 평가에 참여 했고, 참여한 교사의 대부분이 이러한 촬영과 평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며 이후에 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이와 함께 해송중학교 교사들은 수 업 기술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87% 의 교사들이 참여해서 자신만 이 알고 있는 수업 기술들을 다른 교사들에게 공개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나는 이러한 모습이 장차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에서 복원되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지조사를 통해서 이런 활동이 실지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 며,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 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비록 현재는 아주 우수한 방법으로 수업을 하지 못해도, 그와 같은 긍정적인 경험을 해봄으로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런 노력을 지속하 고 그 과정에서 점차 교사로서 성장하고 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것은 마치 평지에 있던 아이가 첫째 계단을 오 르는 방식을 익히면, 둘째 셋째 계단도 오르고 마침내 열째 계단도 오를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지에서 첫째 계단을 오르는 방식이나 아홉째 계단에서 열 째 계단에 오르는 방식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열째 계단에 오르는 것은 단지 시간 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해송중학교 교사들이 수업기술을 개선하기 위해서 기꺼이 노력하게 된 과 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방식을 살펴보고 싶었다. 교사들의 일상생활이나 문화가 어떻게 수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지

143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그와 함께 이런 노력으로 인해서 교사와 학생의 일상 생활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만일 그것을 확 인할 수만 있다면, 학교혁신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타 학교에도 중요한 시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해송중학교에서 이런 모습들을 전혀 살펴볼 수 없었다. 해송중학교 의 교장 선생님은 수업장면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업기술 개선 활동에 참여한 교사들과의 면담도 허락하지 않았다. 뒤늦게 나의 거듭된 요청에 의해서 교무부장 선생님과 수업기술 개선 활동 을 추진한 연구부장 선생님과 교실이 아닌 교장실에서 면담할 수 있었다. 결국 나 는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과 일부 선생님과만 면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면담하 는 과정 중간에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복도를 오가는 소리와 시끄럽게 떠든다고 얻어맞는 듯한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면담 중간에 점심시간이 되어서 교내 교직 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데도 교사들은 교장을 비롯해서 나에게까지 싸늘한 눈초 리를 보낼 뿐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었다. 나는 무엇인 가 미심쩍은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면담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 면담 자료와 해송중학교 관련 기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것 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해송중학교가 수업기술 개선을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5년 3 월부터였다. 태산시교육청은 각 교육청별로 수업개선팀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고, 해송중학교가 소속되어 있는 해송교육청에서는 오랫동안 교육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해송중 학교의 교장에게 수학과 수준별 자료 개발을 부탁했다. 해송중학교의 교장이 교육 청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해송중학교 의 교장은 흔쾌히 허락하고, 그 일을 연구부장에게 맡겼다. 연구부장은 수학과 수준별 자료는 이미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개 발하는 것은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개선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교내 교사들을 중심으로 수업개선팀을 꾸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참여하는 교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별수 없이 4명의 부장교사와 1명의 평교사로 먼저 연구팀을

144 꾸렸다. 연구부장은 외부의 강사를 초빙해서 2회에 걸쳐서 교내 자율장학 등과 관 련된 연수를 실시하기도 하고, 수업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수업 기술 아이디어를 발 표하는 교사들에게 소정의 답례를 제공해서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이와 함께 연구부장이 각 교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대부분의 교사들로 하여금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9월 한 달 동안 체육과를 제외한 29명의 교과 담당 교사 가운데 24 명이 수업 동영상 촬영과 평가에 참여하고, 28명이 수업 기술 아이 디어 경진대회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반성적 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고 느꼈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교사들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수업 기술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는 마치 교사들이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았다고 했 다. 이것은 그만큼 교사들이 수업을 잘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고 난 뒤 10월 30일을 전후로 정부와 여러 언론에서 해송중학교 교사들이 교사평가를 자청한 것으로 연일 기사화하고, 다른 학교의 교사들에게도 교사평가를 수용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는 교사평가 실시를 두고 정부와 교사가 첨예하게 대립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해송중학교 교사들은 스스로 수업 기술을 개선하기 위한 일 환으로 자기 평가와 학생 평가를 했는데, 당국과 언론은 전후 맥락은 제거한 채 해 송중학교 교사들이 교사평가를 자청한 것으로 호도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해송 중학교 교사들의 수업 기술 개선을 위한 노력이 교사평가로 왜곡되어서 알려지자 해송중학교 교장은 외부로부터 격려의 전화를 받느라고 바빠졌지만, 해송중학교 교 사들은 외부의 교사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어서 11월 8일에 교육부 장관이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사평가를 시범 실시하기 위해서 11월 17일까지 희망하는 학교에 한해서 시범학교 신청을 받겠다 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서 해송중학교 교사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한 것이 아닌지 더 욱 의심하게 되고, 교사들 간에도 갈등도 더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해송중학교 교장은 11월 12일 토요일에 임시 교무회의를 소집해서 교사평가 시범실시에 참여 할 지 여부를 교사들에게 물었다. 교사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그러자 교장은 그 자 리에서 자신이 교사와 학부모들로부터 평가를 받겠다고 선언하고 준비한 설문지를 교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응답을 요구했다. 14일 월요일에는 학부모에게도 설문지를

145 나누어줬다. 그러자 11월 19일자 모 일간지에 해송중학교 교장이 스스로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학교경영 능력을 평가받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로 인해서 교장은 외부로부터 격려의 전화를 받느라고 다시 바빠졌다. 같은 날 교육부는 교사 평가를 시범 실시할 학교를 48 개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 기사가 실리고 난 지 4일 후인 11월 23 일에 내가 그 해송중학교를 방문했다. 교장은 신선한 충격 이라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교무실 한쪽에 쌓아두고, 면담 중 에 그 중 한 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나에게 차가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장과 가까이 붙어있는 나를 당국 이나 언론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개선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순수한 의지와 활동을 더럽히고 왜곡하는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나는 해송중학교 교사들이 식당에서 내게 보낸 차가운 눈초리를 다시 떠올리면 서 씁쓰레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당국과 언론이 해송중학교 교사들 의 노력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해송중학교 교사들만 이라도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 리하여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배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송중학교의 사례가 사람들의 눈과 입과 귀를 건 너서 이웃 학교의 교사들에게도 알려지고, 그들도 그 사실에 고무되어 자신의 수업 을 개선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학교가 하나둘씩 시나브로 개선되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정부 가 추진하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실있게 학교가 개선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해송중학교 교사들의 선의를 왜 곡하고 이용했을 뿐이다. 이제 갓 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려는 민들레들을 짓밟아서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나는 해송중학교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10여 년 전의 우리나라 학교의 모습을 되 풀이해서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교사들은 판에 박힌 교실 수 업을 개선하기 위해서 열린교육에 주목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자비를 들여서 연수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당국이 열린교육 실시 여부를

146 교육청평가와 학교평가의 한 항목으로 삽입함으로써 교사들의 순수한 열의가 왜곡 되고, 오늘날에는 열린교육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20여 년 전의 탐구수업과 30 여 년 전의 완전학습 역시 이렇게 해서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학교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은 그 배후에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이건 집단이건, 그들은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단기간에 관철시키기 위해서 교사들을 이용하고, 거대한 힘으로 학 교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거나 과장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고, 학생들은 또 다시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 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학교의 문 제를 해결하려는 자신의 행위 자체가 오히려 학교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 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학교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 해왔기 때문이다. 그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학교의 개혁이건 혁신이건 모 두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해송중학교 교사들의 다치고 닫힌 가슴을 어떻게 다시 열 것인가? 짓밟힌 민들 레들의 싹을 어떻게 다시 틔울 것인가? 그들이 가슴을 열고 희망의 싹을 다시 틔 우지 않는 한 학교 혁신은 요원해 보인다. (8) 흥국중학교 흥국중학교는 우리나라 농촌지역에 몇 남지 않은 소규모 사립중학교다. 이 학교 는 1949 년에 흥국재단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현재 5개 학급 115명의 학생 재학하 고 있고, 13명의 교사와 3 명의 강사가 근무하고 있다. 지역주민은 거의 모두가 논 농사 또는 밭농사를 짓고 있으며, 대부분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씩 빚을 지고 살 아간다. 1980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는 700 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으나, 농촌 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서 2003년에는 전체 학생수가 61 명까지 줄었다. 그러다가

147 2004 년부터 학생수가 다시 증가했다. 현재 이 학교에는 이 학교의 학구인 인근 3 개 면의 초등학교 졸업생뿐만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원성시의 초등학교 졸업생도 재학하고 있다. 전체 재학생 115명 가운데 69 명이 타 학구 출신이다. 이 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자신이 속한 중학교에 배정을 받은 다음, 다시 흥국중학교로 재 배정받는 방법으로 입학했다. 흥국중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거리로 통학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2003년부터 재단이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여 학교의 시설과 교육활동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정규 수업은 일반 학교와 다름이 없이 진행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 수가 적고, 교사들이 오랫동안 이 학교에 근무해서 학생들을 속속들이 알고, 그에 따라서 적절하게 개별지도한다는 점이다. 이 학교가 외부의 학생들을 이끌어들이는 것은 방과후 교육활동이다. 이 학교는 방과후에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10 명 미만의 소규모 그룹을 편성해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보충학습을 실시한다. 영어과의 경우에는 외국인 강사를 채 용해서 지도하게 한다. 그 외에도 기악, 미술, 체육, 논술 등의 강좌도 개설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논술 심화반을 제외하고 모두 재단이 부담한다. 학생들은 무료로 공부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모든 학생들은 매주 기악 시간을 통해서 악기 연주를 지도받는다. 모든 학생이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전교생 현악합주가 가능하다. 악기 구입과 학생 지도에 필요한 비용 역시 재단이 부담한다. 타 학구의 학생들이 흥국중학교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영어 교육에도 있다. 2002년에는 1학년 전체 학생이 2 주간 캐나다에 영어 연수를 다녀왔다. 2003년에 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3 주간 뉴질랜드에 영어 연수를 다녀왔다. 2004년부터는 방학 동안 원어민을 초빙하여 모든 학생과 인근 초등학교 학생이 참 가하는 영어캠프를 마련했다. 영어과 외에도 국어, 수학, 과학, 음악 등의 캠프를 열어서 학생들이 수준에 따라서 흥미있게 공부하게 했다. 여기에 필요한 모든 비용 을 재단이 지원했다. 적은 강사비에도 불구하고 교사들도 참여했다. 또한 방학에는 교사와 학생이 팀을 구성해서 주제에 따라서 여행을 떠나도록 하고, 여기에 필요한

148 경비의 절반을 재단에서 지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현저히 상승하고, 그에 따라서 흥국중학 교에 지원하는 학생의 수가 점점 늘어갔다. 나는 흥국중학교가 이처럼 노력하고 변 화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으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 첫째는 재단 에서 왜 뒤늦게 그와 같은 재정지원을 하고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 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 전에는 왜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 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둘째는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방식 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나는 이틀에 걸쳐서 흥국중학교를 방문했다. 첫째 날 오후에는 주로 교장과의 면 담을 통해서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심각했다. 1995년에 재단의 친인척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재단의 수익용 재산을 잘못 운용하는 바람에 재단이 타인에게 매각되었다가, 7년 후인 2002년에 처음 재 단의 친인척 중 한 사람이 다시 재단을 매입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답을 듣고 다시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하나는, 그 사람은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고 그로 인 해서 별로 수익이 날 가능성도 없는 재단을 왜 다시 매입했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골의 조그만 학교에 그 많은 재정을 투자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재단에서 학교 에 7억 5 천만 원을 투자했다. 2005년 투자분까지 합하면 9 억 원이 다 된다. 나는 그 이유를 흥국중학교가 설립된 배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흥국중학교는 수 익을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농촌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지역의 인재를 양 성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인물로 자라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 설립 정신에 따라서 초기에는 학생들을 무료로 공부하게 했고, 불가피하게 학생들 로부터 수업료를 받아야 할 때는 최소한의 비용만 부담하게 했다. 그 나머지 비용 은 재단의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재단의 이사장과 학교장 등은 사 비를 들여서 가난한 학생들을 돕고, 자신의 집을 학생들을 위한 거처로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학생들은 밤 늦도록 공부하게 하고, 교사들도 학생들과 함께 늦게까지 남아서 근무 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 에 등장하는 야학과 같은 학교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

149 서 재단이 타인에게 매각될 때도 이런 정신을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으며, 폐 교 지경에 놓인 시골 학교를 다시 사들이고 많은 재정을 투자하는 것도 이런 정신 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전 재단 이사장은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흥국중학교를 세계적인 학교로 만들고 싶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튿날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지역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이와 같 은 사실의 편린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편에 주민들에게 쇠고기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노인들을 학교로 초대해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게 하기도 했 다고 한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나 정치적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제한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랬다. 둘째 의문 역시 재단이 학교를 새롭게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과정을 확인하 는 작업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흥국학원에서는 재단을 되찾 은 이후로 크게 두 가지 작업을 진행해왔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교육활동 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활동들은 학생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참여가 필요하다. 교사가 참여한다는 것은 재단 이 프로그램을 정해주고 교사들은 그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까 지를 포함한다. 이처럼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둘째 작업이다. 이 일을 위해서 재단에서는 모든 교사들에게 100만 원씩 해외 연수 경비를 지원해 서 견문을 넓히고 도전의욕을 고취시켰다. 또한 모든 교사들에게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10 가지씩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그 가운데 탁월한 방안을 제출한 평교사를 선발하여 교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교사 조직을 교무실 팀 과 기획실 팀 으로 재편성하여, 교무실 팀 은 학생 지도를 전담하도록 하고, 기획실 팀 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전담하도록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부장, 교감, 교장을 이사장이 임명하는 대신 후보자를 교사, 교장, 이사 장, 학부모, 학생 등이 함께 평가해서 임명하도록 하는 방안을 준비 중에 있다

150 그렇지만, 이런 변화를 위한 노력의 과정에는 어려움도 자리잡고 있다. 교사 조 직과 승진체계의 변화로 인해서 기존의 원로 교사들이 반발하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존의 관행에 따르면 연공서열에 따라서 교감이나 평교사 가운데 연장자가 교장으로 승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사체제가 만들어짐으로써 그들의 승 진 가능성이 사실상 차단되었다. 그들의 박탈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또한 재단에서 학생들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충학습 등을 하느라고 고생하는 교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을 지출한다. 최근에 는 학생 수가 늘고 거듭되는 지출로 재단의 재정이 여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시간 당 15,000원씩 지불하던 강사료를 정규 교사에 한해서 8,000 으로 삭감했다. 그 결 과 일부 교사들의 불만이 커졌다. 그에 반해서 재단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는 교사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다. 10여 년 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불살랐 던 그 열정을 다시 되살리기를 기대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 임명된 교장을 비 롯해서 기획실 팀 교사들은 신명을 다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교사들의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교 사의 이동이 거의 없는 사립학교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별도로 교사를 채용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재정이 충분히 여유 롭지 않다. 차선은 원로 교사들이 퇴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데, 그 기간을 참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재단에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빠르게 학교가 변화하기 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로 교사들을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 다. 그들은 과거에 재단의 설립자와 함께 땀을 흘리고 열정을 쏟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흥국중학교의 이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학교가 전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축소해놓은 것 같았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흥국중학교 학생들은 만족스럽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공부에 열중하고 있 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생활하느라고 지쳐보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그것을 선배들의 전통으로 여기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 았다. 그것은 아마도 열악한 농촌 환경에서 그 학생들이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유일 한 길은 학교에 의존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흥국

151 중학교에 대해서 묻자 한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 : 이 학교 마음에 드니? 학생: 마음에 들어요. 나 :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학생: 학생수가 많지 않으니까요. 선생님과 제자들 간에 화목이 잘 이루어 지구요. 선후배 간에 우애가 이루어지니까요. 애들 이름도 다 알고 친하게 지내고, 형제, 자매처럼 지내는 면이 좋구요. 다른 학교에 가 보면 현악 같은 거 배우는 학교도 거의 없구요. 화장실 시설도 저희 학교가 제일 좋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다 저희 학교가 좋 다고 생각해요. 나는 흥국중학교의 교장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주위 학교의 사 람들은 흥국중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은 돈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바에 따르면 그 말은 흥국중학교의 표피만 보 았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돈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돈이 훨씬 더 많 은 다른 사립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 학교들은 흥 국중학교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두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는 학생들을 위 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성 이다. 만일 다른 학교들도 진정으로 학생을 위 해서 학교를 경영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학생을 위해서 투자했을 것이다. 만일 그럴 재정적 여유가 없다면 흥국중학교의 재 단 관계자들처럼 자신의 몸으로라도 보여주었을 것이다. 학교를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일부 사학들도 학교 운영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정으로 학교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마음이 진정으로 어 디로 향해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의 사욕을 위해서인지, 학생과 사 회 전체를 위해서인지. 흥국중학교는 이런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학교 혁신에 대해 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가 흥국중학교를 잘못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152 (9) 강산고등학교 강산고등학교는 남여공학 일반계 공립 학교로서 2003년 3 월에 개교했다. 이 학 교에는 30학급 1,200 명 가량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강산고등학교가 위치한 대 한시 강산구 강산동은 대한시민들 사이에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른바 지도층 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강산동에 거주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강산 동 일대가 재개발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일부 중산층이 이사하고 있다. 그 렇기는 하지만, 민간 건축업자들이 강산동에 지은 아파트 단지는 강산 아파트 단 지 라고 부르지 않고 이웃 동의 이름을 따서 금강 아파트 단지 라고 부른다. 금강 동은 폭이 50 미터 쯤 되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강산동과 이웃하고 있다. 금강동에는 대규모 중대형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으며, 여기에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강산동에는 주택공사가 지은 중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더 많다. 강산고등학교에는 이런 두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학생들 가 운데 금강동에 사는 학생은 53% 정도이고, 강산동에 사는 학생은 42% 정도다. 학 생들의 부모 가운데 사업가, 공무원 등과 같이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안 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26%, 일반 회사원이 38% 이고, 나머지 36% 가 상업이 나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다. 전체 학생의 약 6% 에 해당하는 69명의 학생이 편부 모거나 생활보호 대상자다. 또한 전체 학생 가운데 부모가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학생은 37% 이고, 부모가 고졸 이하의 학력을 지닌 학생은 63% 다. 부모의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자녀의 학력도 함께 높아지는 우 리나라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을 고려하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강산고등학 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구분될 수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한 집단은 금강동 또는 금강 아파트 단지 에 거주하는 학업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고, 다른 한 집단은 강산동의 주공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들이다. 이러한 학생 구성은 강 건너 금강동에 위치한 금강고등학교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강산고등학교는 학교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제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이동식 수업

153 운영을 염두에 두었다. 강산고등학교의 교장은 10여 년 전에 대한시 교육연구원의 교육연구사로 근무하는 동안 국가교육과정의 지역화를 위한 지침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교육과정 운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대한시의 해산고등학교 교 장으로 재직하면서 제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이동식 수업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렇지만 시설의 제약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강산고등학교가 신설된다는 말을 듣고 모두가 꺼려하는 신설학교로의 근무를 자청했다. 그는 강산고등학교가 지어지기 전에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각 교과별로 교 과실을 만들고 교과실 좌우로 교실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학생들이 이동 하기 편리하게 복도를 넓히고, 복도에 학생들의 사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만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그는 2005년에 교육청으로부터 학교교육과정 연 구학교와 학교교육과정 모델학교로 각각 지정받았다. 그는 모델학교의 운영을 통해 서 효과적인 수준별 이동수업 방법을 개발하고, 그것의 효과성을 검증한 후에, 이 후로 강산고등학교가 외부의 교사들을 위한 상설 워크샵 장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랬다. 이런 계획 하에 그는 교사들과 함께 수학 영어 교과의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모형 과 한 발 두 발 워크북을 개발해서 적용했다. 이것은 모든 학생이 기본과정 을 3시간씩 공통적으로 이수한 후에 수준에 따라서 심화반과 보충반으로 나뉘어서 2 시간씩 이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화반에서 우수한 학생 중에서 희망하는 학생은 심화학습 동아리를 만들어서 주 1회 정도 대학 교수나 우수 교사의 특강을 유료로 들을 수 있게 했다. 보충반에서 부족한 학생은 과목별로 20명 정도를 선정해서 매 주 2 시간씩 특별보충과정을 듣게 했다. 여기에는 과목의 담당교사와 대학생 교사가 참여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교육청의 지원금과 학교의 예산으로 충당했다. 또한 국어, 사회, 과학 교과의 경우에는 토론 중심의 심화 보충형 수준별 수업 모형 을 적용했다.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의 희망을 고려하여 심화학생과 보충학생을 구분하고, 심화학생들은 교실의 뒤편에서 심화학습지를 이용해서 스스 로 학습하고, 보충학생들은 교실 앞쪽에서 보충학습지를 이용해서 교사와 함께 개 별 학습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방과 후에는 1, 2학년 학생이 학년에 구애받지 않

154 고 각자의 선택에 따라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보충학습 을 운영했다. 무학년제 학생 선택 수준별 강산고등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토론 중심의 심화 보 충형 수준별 수업, 무학년제 학생 선택 수준별 보충학습, 심화학습 동아리와 특별보충과정 은 주어진 학교의 여건 내에서 학생의 학습 수준의 차이를 최대한 고려하는 가운데 수업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학생이 크 게 두 집단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짐작되는 강산고등학교의 지역 실정에 적합하도 록 정규수업, 보충수업, 특별수업을 모두 수준별로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 마 디로 말하면 강산고등학교는 전체 학교 교육활동을 수준별로 운영한다고 볼 수 있 다. 그에 따라서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일상생활도 수준별로 이루어진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우수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고등학교의 교육활동 관 행을 크게 바꾸어 놓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는 강산고등학교의 방문을 통해서 이와 같은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 활동이 실 지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교사와 학생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 하고자 했다. 나는 특히 학력이 낮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 보고자 했다. 또한 신설학교, 그것도 지역 여건이 열악한 학교에 근무하기를 꺼려 하는 여러 교사들을 어떻게 그와 같은 교육과정 운영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는지, 그 활동으로 인해서 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의 과정을 상세히 듣고 싶었다. 내가 강산고등학교의 교장과 교감, 그리고 교사들과의 면담과 관찰을 통해서 확 인한 바에 따르면 강산고등학교가 학교교육과정 모델학교를 지정받고 운영하는 과 정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교장은 2005학년도에 교육부로부터 교육과 정 연구학교로 지정받고 싶었지만 교사들의 반대로 인해서 좌절되었다.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시범학교가 전시성 행사로 운영됨으로써 학생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 지 않고 일부 교사들의 승진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만 교장은 교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시교육청에 학교교육과정 모델학교 지 정을 신청했다. 그는 학교 관리자가 가장 핵심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은 교육과정 을 운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강산고등학교에서 제7차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

155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교 시설과 교직원 조직을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개편하고, 교사들의 업무와 장부를 간소하게 했다. 이와 함께 공립학교의 특성상 교사들이 자주 이동해도 안정적으로 교육과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수준별 수업 자료를 책자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강산고등학교의 교사들 가운데는 모델학교 운영 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교사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들은 현재의 고등 학교는 시설이나 교사진의 제약으로 인해서 제7차 교육과정에서 표방하는 수준별 선택형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현재 강산고등학교의 맞춤식 수준 별 이동수업 에는 수학과 영어 교사들만 주로 참여하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 모델학교 운영과 관련해서 교사들이 전반적으로 참여하거나, 그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수학과 교 사들 사이에도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학과 교사들은 학생들이 기본과정 후에 수준에 따라서 반을 나누고 교재를 이용해서 학생을 지도하는 점이 좋다고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나눠서 하니까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얘들도 문제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잖아요. 일단 교재가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게 좋고. 그리고 그전에 교재가 없었을 때는 파일을 분실할 수도 있고, 저희가 또 나눠주는 번거로움도 참 많았거든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책을 만들어진 것은 수업하는 입장에서는 참 좋아요. ( 강산고등학교 교사) 그렇지만, 그 교사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 기본과정과 심화반 또는 보충반의 수행 평가를 이중으로 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준별로 학생을 나누 었어도 문제를 전혀 풀지 않는 학생은 별도로 지도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근데 이렇게 수준별 수업하는 저는 수행평가가 두 가지 정리하게 되니까 조금 힘든 부분은 있어요. 그러니까 본래 수업하는 내용을 가지고도 제가

156 얘들 태도 점수랑 수행평가 점수를 내야 되고 이것( 워크북) 도 다 검사를 해야 되니까 그건 좀 힘든 부분은 있어요. ( 강산고등학교 교사) 심화반 친구들은 참 잘 하고, 보통반 친구들은 잘 안 하는 친구들이 많 거든요. 한 시간 내내 논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의 백지 상태의 책 을 주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제일 많이 필요 한데 지금은 그냥 잘 없습니다. 그냥 저희가 말 한 마디 더 해주는 것 밖 에는. 수업 안 들은 친구는 수행평가 점수는 일단 못 받게 되는 거죠.( 강산 고등학교 교사) 학생들 역시 강산고등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델학교 운영에 대해서 호의적기 만 한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만나본 학생들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부 학 생들은 수준별 이동 수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일부 학생 들은 수준에 따른 이동 수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 점은 앞의 교사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과 함께 실시하 는 무학년제 학생 선택 수준별 보충학습 에 대해서는 더욱 긍정적이지 않았다. 얘들이 나눠서 하니까 반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남자 여자 섞이고 하니 까 선생님이 맡는 얘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책임지는 얘들이 많으니까 그에 따른 결석도 많고 얘들도 좀 그렇고. 그리고 수준도 자 기가 하고 싶은 것 안하고 좀 많이 차이 나고, 자기가 수준 맞는 것 안 하 고 그냥 과목만 하니까 1, 2 학년 수준 차이도 좀 나고. 그냥 과목만 보 고 선택하거든요.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고 안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만약에 과목만 보고 선택을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선생님 이 걸리면 수업이 아무리 좋아도 안 들어가는 얘들이 많거든요. 그런 것 좀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강산고등학교 학생들)

157 요컨대,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강산고등학교에 운영하고 있는 일련의 수준별 교 육활동, 즉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토론 중심의 심화 보충형 수준별 수업, 무학년제 학생 선택 수준별 보충학습, 심화학습 동아리와 특별보충과정 은 열심 히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는 큰 도움으로 인식되는 것 같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아서,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녀가 섞여서 공부하기 때문에, 저학년과 함께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인해서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수업에 들어 가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다. 실지로 나도 그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강산고등학교를 방문한 날은 강산고등학교가 1 년 동안 맞춤식 수준별 이 동수업 을 중심으로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한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 날 대한시의 여러 학교 선생님들과 인근 시도의 선생님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공개 내용을 관찰했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도 그 내용을 촬영을 하러 왔다. 교실 에 따라서는 학생들이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했지만, 어느 교실에서는 외부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이 지켜보고 방송국의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책상에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교실 에서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엎드려 있던 친구를 서둘러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또 한 교실에는 이삼십 명의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 는 채 학생들끼리 모여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좀 모자라는 애들 로서, 방송 촬영을 위해서 교실에 따로 남아있다고 했다. 2)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고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에 대해서 긍정적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방송에서 강산고등학교가 좋은 학교 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강산고등학교에 부족한 점이 많은 데 방송 에서 겉모습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가는 내 등에다 대고 2) 내가 추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부 학생을 교실에 남아있게 했다고 했다. 수학과는 외부의 교사들이 참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영어과는 교사 세 명 가 운데 두 명만 공개했기 때문에 보충반 학생들을 교실에 남아있게 했다고 했다. 영어 과 수업을 공개한 교사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기간제 교사였다

158 이런 말들을 수시로 했다. 일부 학업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교실에 남겨놓고 수업 을 외부의 교사들에게 공개함에도 일부 학생이 수업 중에 엎드려 있거나 몸을 비 스듬히 기울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평소에는 적어도 그보다는 낫지 않다는 것만 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그 런 수업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그 수준별 이동 수업이 적어도 그 학생들에게는 무 의미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는 학생이 적지 않다 는 것을 뜻한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애써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들의 행위는 자신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촬영하러 온 많은 어른들을 비웃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활동들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거나, 소외되지 않으려는 실존적 몸부림 또는 외침 ( 조용환, 2001b) 일 수도 있었다. 한 학생은 내게 자기 학교의 모습을 있는 그 대로 보고, 거기서 배울 점을 찾아서 배워가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의 너무 좋은 점만 보려고 하지 말고, 확실히 속도 보고, 좋은 것은 좋게 배우고 가고, 나쁜 것은 그에 따라서 괜찮은 방법을 배워 가고 ( 그랬 으면 좋겠어요).( 강산고등학교 학생) 나는 불과 하루 동안이지만 강산고등학교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강산고등학교의 모습은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내 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과거에 다른 시범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 하 나둘 씩 드러났다. 거기에다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모습, 즉 학생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이 그들에게는 무의 미함을 지적하고 저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강산고등학교는 분명히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좋은 의도란 다름 아닌 학생들의 학 습을 돕는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교과 내용과 수업 방법을 다르게 적용 함으로써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도 그 점에 주목 하고, 그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활동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159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 활동으로 인해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일부 교사와 상당수의 학생들은 좋은 의도 아래 이루어진 그 활동들을 부정적인 시각으 로 바라보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내가 불과 하루 동안 보고 들은 것만 염두에 두고 짐작해보면, 그 일차적인 원인 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학생들을 위하는 것 과 학생들이 기대하는 학생 들을 위하는 것 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은 수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학습 수준뿐만 아니라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과 선생 님에 대한 선호 등도 함께 고려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중요시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학생의 학습 수준 하나만을 준거로 반을 나누고 수업을 한다. 그것도 심화반과 보충반 단 둘로만 나눔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업에 빠지거나, 앞에서 수학 선생님이 말하는 것처럼 수업하는 동안 한 시간 내내 논 다. 그들은 기본과정에서 도 역시 놀 가능성이 많다. 이런 사태는 과거에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들에게 현대식 개량주택을 지어준 것과 유사하다. 집을 나누어 받은 유목 민들은 가축을 집안에서 재우고 자신들은 집 밖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고 한다. 강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준별 이동수업 시간 또는 선택형 보충학습 시간에 수업 에 참석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중동의 유목민들이 집 밖에서 텐트 를 치고 생활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런 불일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학교가 학생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학생들이 무 엇을 원하는지 등을 깊이 살펴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 족하기 때문이다. 설령 학생을 이해한다고 해도 학교가 학생들의 요구와 기대를 받 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가 목표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학교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학교교육과정 운영 모델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미리 설정하고, 그 것을 제한된 기간 내에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방안을 고안하여 적용하고,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 애썼다. 그 목표가 학생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의미 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적절한 지 등은 살펴보지 못했다. 그 결과 학생과 학교 사이에 불일치, 학생들의 이탈과

160 저항이 발생했다. 그것은 목표를 미리 설정하고 그 목표를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 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기도 하 다. 이런 불일치가 발생하는 또 다른 원인은 강산고등학교가 학생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의 문제를 제도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에도 있다. 강산고등학교는 학 생들의 사이의 다양한 차이를 교과별 학업성적의 차이로 규정하고, 그 차이를 고려 해서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모형 과 한 발 두 발 학습자료 등을 고안했다. 그 모형과 학습자료에 따라서 수업이 이루어지면 어떤 학생이든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테면 표준화되고 효과적인 수준별 수업 모 형과 자료를 개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교사가 아니라 수업 모형 과 자료가 수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는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서 수업 을 진행하고 자료를 제공하고 평가할 뿐이다. 앞에서 수학 교사가 말한 것처럼 그 렇게 하면 편리한 점은 있지만, 그 수준과 절차에 부합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말 한마디 더 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 줄 수 없다. 그 결과 학생들과 교사 사이 의 관계는 더 가까워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학생들, 특히 학업 성적이 저조한 학 생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제도는 기존의 경직된 교육과정 운영방식과 크게 다르 지 않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강산고등학교가 학교교육과정 운영 모델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앞세우고 학 생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의 문제를 위와 같은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모형 등 에 의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그 방식의 이면에는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강산고등학교는 여러 가지 양적 증거에 의해서 맞춤식 수준별 이동 수업 의 효과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즉, 학생들을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에 투 입함으로써 학생들의 만족도를 비롯해서 학력이 상승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사실 은, 그것이 실지로 효과적인가 여부와 관계없이,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을 하나 의 프로세스로 보고, 학생과 교사는 그 프로세스에 대한 투입 변인으로 본다는 것 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공학적 패러다임인 것이다. 이와 함께 강산고등학교는 교사 들의 의견이나 학생들의 요구들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가운데 맞춤식 수준별 이동수업 등을 실시했다. 비록 선의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그것은 타인의 의지에

161 반해서 나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며, 자기중 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그 점에서 정치적인 행위다. 요컨대, 강산고등학교가 학생들 사이의 차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안하고 적용하는 방식에는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이 전제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패러다임이 결과적으로 일부 교사들의 무관심과 일부 학생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 인다. 그런데, 내가 강산고등학교에서 확인한 사실과, 그 사실에 기초한 이상의 내 나 름의 추론은 강산고등학교의 현실 전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상위권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강산고등학교에서 수행하는 여러 활동들은 달리 해 석될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강산고등학교가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위권 학생들도 학교에서 의미있는 학습을 하 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즉 기존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이 해결하지 못한 하위권 학생들의 문제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부 학생들 특히 하위권 학생 들이 강산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활동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강산고등학교가 선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시도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얻지 못하는 현실은, 그 수준이나 범위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교육 당국이 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실을 개혁하 지 못하고 오히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신만 증폭시켜온 것과 닮아있다. 양자는 목표와 방향을 미리 설정하고, 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제도를 만든 다음,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을 거기에 부합 하도록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닮아있다. 즉, 둘 다 모두 정치-공학적 패러다임 에 의해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했다. 어쩌면 강산고등학교는 당국이 학교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 취해온 그동안의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모 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한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지배하 고 있는 전반적인 사고의 한계다. 과연 학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혁신학 교란 무엇인가? 우리는 학교혁신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162 (10) 모란여자고등학교 모란여자고등학교는 50만 명 규모의 도시에 위치한 사립 일반계 여자고등학교로 서 26개 학급에 1,000 여 명의 여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학 생들이 입시준비 만을 위해서 살아가느라고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 10여 년 전부터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보충수업을 폐지하고 영어 과목 등에서 단계별 이동식 토의학습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면서 교사들은 1996년에 신입생 선발 방식이 연합고사에서 학교별 시험으로 전환되 1박2일 간의 협의를 통해서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을 특성화함으로 써 학교를 차별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연과 사물과 인간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체험을 통하여 교과 지식을 통합적으로 구 조화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 바램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영어과의 단계 별 이동식 소집단 토의식 수업 외에도, 각 교과별로 독서와 토론 지도, 다양한 매 체를 활용한 수업, 토의식 수업, 자율학습 자료 제작, 각종 인성교육 활동, 체험학 습 활동, 학생 동아리 활동 등을 시행했다. 이와 함께 교사들 자신의 전문성을 높 이기 위해서 수업을 공개하고, 주기적으로 연수를 실시했다. 또한 이러한 학교의 교육활동에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주로 1, 2학년에 실시하 고, 3 학년은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모란여자고등학교는 현재 시내뿐만 아니라 도내 전 지역에서 학생들이 입학 하기를 선호하는 학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나는 모란여자고등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이 그 학교에 재 학하는 학생들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으며, 학생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이 학교를 방문한 시기는 방학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있어서 위의 여러 활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다. 모란여고를 방문한 첫날 나는 일부 학생들의 동아리 활 동 모습, 방과 후에 이루어지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이튿 날에는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5시 경까지 2학년의 한 학급에서 학생들과 함께

163 지내면서 학생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관찰했다. 내가 관찰한 범위 내에서만 말하면, 모란여자고등학교 역시 대학입시라는 커다란 그늘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관찰한 수업들 속에 서는 앞서 언급한 단계별 이동식 수업, 토의식 수업 등은 찾을 수 없었다. 보충수 업과 자율학습 등이 다른 학교와 다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 다. 이곳 학생들 역시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 지 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은 대체로 오전 11시 전후와 오후 2시 전 후에 한두 번씩 졸거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잠을 청했다. 그렇지만 모란여고 학생들은 비록 이런 대학입시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친구들이나 교사와 우호적이고 협조적으로 지내는 것 같았다. 적어도 학생들의 얼 굴에서는 입시의 어두운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각 자의 마니또 선생님과 마니또 친구에게 몰래 선물을 갖다 주느라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는 서로 문제를 바꾸어서 채점하고 왜 틀렸는지를 시험지에 적어주기도 했다. 청소를 마친 다음에는 담당 학생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재활용품을 분리하여 정리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모란여고 학생들이 대학입시라는 굴레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건강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까닭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이루어지는 여러 활 동들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찾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축체와 주 제별 수학여행, 매주 토요일마다 이루어지는 현장체험학습활동, 각종 동아리 활동, 쉬는 시간이 되면 찾아주는 친구들과의 교류, 수업 중에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능동 적인 참여, 교사들과의 친밀한 관계 등이 긴장된 일과 속에서 이완을 제공하고, 그 로 인해서 학생들은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은 밀폐된 교실의 창문이 간간히 열릴 때마다 불어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같았다. 내 가 하루 종일 관찰한 학생은 교사들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서 교사들을 믿고 따 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학생의 마당극 동아리 친구 역시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함으로써 학교생활을 편안하게 한다고 말했다

164 중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엄하셔가지고 교무실도 못 들어가고 그랬어요. 근데 여기 오니까 저절로 교무실을 찾아가게 돼요. 선생님들하고 친한 것도 있고 질문을 하면 다 받아 주시고. 친하다고 해서 존경심이 없는 게 아니라 존경심도 있고, 선생님도 저희를 존경해 주시고 이런 거에서 자연 스러운 데서 뭔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끌려들어 가는 것 같아 요. 선생님들한테.(2 학년 난초반 이영주) 제가 다른 학교 애들이랑 예산에서 왔거든요. 근데 OO여고 애랑 얘기하 다보면 걔는 항상 얘기 하는 게 조금 학교가 싫다고 말을 해요. 친구들도 좀 경쟁 심리가 많다고. 근데 저는 전혀 그런 게 없거든요. 그래도 저는 공 부는 못해도 친구가 되게 좋아서 전혀 스트레스는 안 받는 것 같아요. 학 교생활하면서.(2 학년 국화반 김경복) 요컨대, 모란여자고등학교는 대학입시라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교사들이 학 생들을 존중하고, 제한적으로나마 다양한 체험학습 활동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주 도적으로 학습에 임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도록 함 으로써 학생들은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완 을 경험하고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교생 활에 대한 만족감을 낳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학교혁신을 통해서 추구해 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건강한 관계의 회복인 것 같다. (11) 형설고등학교 형설고등학교는 1971 년에 설립된 사립학교다. 이 학교에는 2005년 현재 30학급 910 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형설고등학교가 위치한 대선읍은 전체 인구가 약 31,000 명이다. 대선읍을 포함하고 있는 대선군 전체 인구는 약 117,000 명이다. 대선군은 두 면이 바다에 이웃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농업이나 어업

165 에 종사하고 있다. 대선군 전체에는 8개의 고등학교가 있으며 그 가운데 4개가 사 립학교다. 대선읍에는 형설고등학교 외에 한 개의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와 공립 실 업계 고등학교가 있다. 형설고등학교에는 대선군 내에 거주하는 중학생들 가운데 비교적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한다. 중학생 가운데 학업 성적이 아주 뛰어나고 가정 형편이 여유있는 학생들은 좀 더 큰 도시의 유명한 학교에 진학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국 내 대학에서 읍면 지역에 소재한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은 농어촌 특별전형에 의해 서 별도로 선발함에 따라서 이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 다. 지난 몇 년 동안 해마다 이 학교 졸업생의 96% 이상이 대학에 진학했다. 지난 2005학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학교에 4 명 합격했다 학년도, 2003 학년도, 2006학년도에는 각각 2 명, 4 명, 2 명이 합격했다. 이에 따라서 형설고등학교는 대 선군 내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가 되었다. 형설고등학교 재학 생은 대부분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형설고등학교의 이러한 위상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 3 년 전에 이 지역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공단이 들어서면서 유입인구가 늘자 대선군에서는 2008년 1 월에 대선시로의 승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지역 에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대선군이 대선시로 승격된다 는 것은 형설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 입학시 농어촌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전형 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될 경우에 졸업생의 대학진학율, 특 히 서울대학교 진학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대선군에 특수목적고등학 교가 설립되면 형설고등학교에 진학해왔던 대선군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그 학 교로 진학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로 인해서 형설고등학교의 입학생이 줄거나, 종전보다는 학력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입학하게 되고, 대선군 내에서 형설고등학 교의 명망도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로 인해서 형설고등학교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2004년 1 학기에 그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규 수업 후에 특 기적성교육활동 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던 보충수업 외에, 저녁 식사 후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166 과목을 중심으로 강좌를 편성하고 학년별로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 수강하게 했 다. 그러나 학생들은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서 수강하느라고 특별 보충수업을 선호 하지 않았다. 보충수업 역시 불만족스러워했다. 거기에다가 학생들의 교육방송 시 청율도 저하되었다. 형설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침 7시부터 교육방송을 시청하 고, 3 학년은 저녁 식사 후 특별 보충수업 시간에도 교육방송을 시청했다. 초기에는 학생들이 교재를 모두 구입하는 등 호응이 좋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이 어렵거나, 시간이 안 맞거나, 문제의 일부만 풀어준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로 호응 이 낮아지게 되었다. 그 대신 학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형설고등학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04년 9월부터 정규 수업을 마 치고 난 후에 3시 20분부터 6시 10 분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중심으로 강좌 를 개설하여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자세히 안내하고, 학년에 관계없이 선택하여 수 강하게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호응이 좋자 2005년 3월부터는 전과목에 걸쳐서 강좌를 개설하고,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선택해서 수강하게 했다. 그 대신 종전에 이루어지던 보충수업과 저녁 식사 후 이루어지던 특별 보충수업을 폐 지했다. 이와 함께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지도와, 나머 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준별 자율학습을 10 시까지 실시했다. 보충수업을 이처 럼 운영한 결과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학습 태도가 개선되고, 학력증진에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나는 형설고등학교가 선택형 보충수업을 실시하게 된 과정과 그 결과를 살펴보 면서, 형설고등학교는 어떻게 해서 모든 교사들로 하여금 선택형 보충학습에 참여 하도록 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그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을 좀 더 세부적으로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형설고등학교보다 먼저 선택형 보충수업을 실시한 문형고등학교의 경우 교사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 었다고 보고했다. 나는 형설고등학교에도 그와 유사한 갈등이 있었으리라고 예상하 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형설고등학교가 그 갈등을 해결한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서 정리하면, 다른 학교의 교사들도 학교를 개선하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시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167 나는 형설고등학교 교장이나 교사들과의 면담을 통해서는 그와 관련된 사실을 두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선택형 보충수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2004년 9월에 처음 선택형 보충수업을 실시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국어과의 경우 절반 정도의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끼리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대 하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이것은 교내 선생님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사교육과의 경쟁이며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시도해보기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교사 들 간의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동일한 과목을 담당한 교사들은 서로 다른 영 역이나 주제의 강좌를 개설하도록 하고,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 먼저 선호하는 강 좌 영역을 선택하도록 했다. 또한 과목당 정원을 35 명 이하로 제한하고, 모든 1, 2 학년 학생은 3강좌 3학년 학생은 4강좌를 의무적으로 선택하여 수강하도록 함으로 써 수강생이 적어지는 문제를 사전에 해결했다. 그렇게 해서 학생 1인당 수강료도 최소화하고, 교사들이 우려하는 교사들 간의 비교나 경쟁 없이 선택형 보충수업이 유지될 수 있었다. 둘째는 현재 형설고등학교가 놓여있는 상황이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대선군은 앞으로 시로 승격될 예정이고, 같은 지역 내에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특수목 적고등학교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런 사실은 학교 관리자뿐만 아니라 교사들 모두 에게 심각한 위기로 인식되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재단에 의해서 고용되었기 때 문에 입학생 수가 적어지고 재단의 수입이 적어지면, 그것은 곧 자신의 신분의 문 제로 연결될 수 있다. 설령 학생수가 적어지지 않더라도 입학생의 학력이 낮아지면 교사 자신이 그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공립학교 교사 들은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 동안만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떠 나면 되지만, 사립학교 교사들은 학교가 평생직장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교사들 은 지역사회 여건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무슨 일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 다. 거기에다가 교육부에서 조만간 교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교사들 은 장차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형 보충수업은 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안 으로 교사들에게 인식되고 수용된 것 같다. 그런데, 형설고등학교가 이처럼 교사들 사이에 큰 갈등을 겪지 않고 선택형 보충

168 수업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다른 학교에서도 쉽게 그 방안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형설고등학교보다 먼저 선택형 보충수업을 실시한 문형고등학교는 사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교사들 사이에 심각한 갈 등을 겪었으며, 또 이 제도를 먼저 실시한 다른 몇몇 학교들은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형설고등학교 역시 몇 가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는 동일한 강좌가 반복됨으로 인해서 학생들이 강좌 내용을 식상해할 우려가 있다 는 점이다. 형설고등학교는 교사들 사이의 비교와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교사 들이 서로 다른 영역의 강좌를 개설하도록 하고,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영역의 강좌 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동일한 강좌를 1년에 7 차례 개설하고 있다. 3 년 동안이면 21 차례 개설되게 된다. 그렇게 동일한 강좌가 한두 해 반복되는 동안 학생들은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특히 정규수업 시간에도 비슷한 내용의 수 업을 듣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강좌 영역이나 내용을 바꾸어야 하지만, 그 경우에 교사들은 정규수업 준비와 업무 처리 외에 보충수업을 위한 수업준비를 따로 해야 하고, 학생들은 강 좌 영역이나 내용이 자주 바뀜으로써 체계적인 학습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형설고등학교가 조사한 선택형 보충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학생들이 만족한다 또는 불만족한다 는 말이 정확 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2005년 첫 회 실시 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택형 보충수업에 만족하는 학생의 비율은 20% 이고, 불만족하는 비율은 16% 였다. 단지 이전 보충수업에 대한 만족 비율 8% 와 불만족 비율 36% 에 비해서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학생들의 학원 수강율 역시 80% 에서 53% 로 줄기는 했지 만, 여전히 반 수 이상이 학원에서 수강하고 있다. 교사들 역시 이 선택형 보충수 업에 만족하는 비율은 51% 에 그치고 있다. 만일 보충수업을 의무적으로 수강하도 록 하지 않는다면 위의 조사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요컨대, 형설고등학교가 선택형 보충수업을 교사들로 하여금 수용하도록 한 과정 과 방식은 일반적인 학교의 교사들로 하여금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발적으 로 참여하도록 하는 적절한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차적으로 형설고등학교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으므로, 이와 다른 상황에 놓인 교사들에게 동일하게 행동하

169 도록 기대하기는 무리다. 또한 형설고등학교는 교사 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학 원과의 경쟁을 설정하고,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강좌를 수강하도록 했 다. 엄격하게 말하면 학생들의 강제된 희생을 토대로 교사들 사이의 경쟁을 피해간 것이다. 학교나 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선택형 보충수업은 상황이 변화에 따라서 학 교와 교사가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선택형 보충수업 자체도 우리나라 학교가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해 결하는 적절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형설고등학교는 2004 년 8 월까지 영교시 ( 교육방송시청), 정규수업, 보충수업( 특기적성교육활동), 특별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의 형태로 운영해왔다. 그 가운데 보충수업 이 선택형 보 충수업 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학 교에서의 방과후 시간 운영과 관련된 정부와 교육청의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1996 년을 전후로 고등학교에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금지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일환으로 특기적성교육활동을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그렇 지만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특기적성교육활동 이라는 이름 하에 종전의 국어, 영어, 수학 과목 중심의 보충수업을 계속 실시해왔다. 거기에 덧붙여서 예체능 계 열의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충수업 반을 별도로 편성 해서 운영하고, 그것을 특기적성교육활동의 실적으로 보고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정부는 각 학교에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보충과정을 운영하 도록 지시했다. 또한 학교의 방과후 교육활동을 활성화하고 사교육비를 경함하는 방안으로서 수준별 보충학습을 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각 학교의 처지에서 보면 방 과 후에 보충수업, 특기적성교육활동, 특별보충과정, 수준별 보충학습의 네 가지 교 육과정을 추가로 운영하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형설고등학교가 속해있는 교육 청에서는 학력증진을 최우선시책으로 삼고, 각 학교에 학력증진을 독려했다. 학력 증진 실적이 우수한 학교에는 1 천만원씩 포상하기로 했다. 여기서 학력 증진이라 다름 아닌 대학 입학 시험 성적, 특히 유명 대학의 입학 실적을 의미한다. 이런 지시들에 힘입어 형설고등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고, 학생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새로운 방과후 교육활동을 찾아냈다. 그것이 선택형 보충수업이다. 이 선 택형 보충수업은 결국 종전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던 보충수업과 특기적성교육

170 활동과 특별보충과정과 수준별 보충학습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학교의 교육활동이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으로 다시 이원화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충수업이 정규수업은 아니지만 위의 지시들에 근거해서 공식적인 교육활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는 같은 근거에 의거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 로 참여하도록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사들은 정규수업에 비해서 교육과정 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보충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교사들로 하여금 정규수업을 소홀히 하도록 하는 결 과를 초래할 우려를 안고 있기도 하다. 형설고등학교에서 국어과를 담당하고 있는 한 교사는 매주 정규수업은 18 시간, 보충수업은 12 시간을 담당하고 있다. 즉, 주당 30 시간, 토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6 시간씩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학교 에서 맡은 업무 처리와 야간 자율학습 지도 등의 업무까지 하게 되면, 정규수업을 위한 준비시간과 노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은 건물의 본 채가 부실하다고 자꾸 옥상옥을 높임으로써 본 채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본 채 자체를 유연하고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한편 형설고등학교 사례는 오늘날 학교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원인이 대학입시 제도나 학부모들의 요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대학이 입시제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자신 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고등학교가 불가피하게 대 학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설고등학교나 교육청은 그런 입시 제도와 학부모들의 인식에 편승하여 이용하고 있다. 형설고등학교의 교장은 선택 형 보충수업을 하는 목적이 학력 증진을 해서 대학을 많이 보내는 것 이라고 밝히 고 있다. 교육청 역시 졸업생을 서울의 명문 대학교, 특히 서울대학교에 많이 입학 시킨 학교를 학력증진 우수학교로 판단하고 그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형설고등학교는 학년 당 20명씩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서 별도로 집중적으로 지도 하고 관리하여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 진학시킨다. 그렇게 해서 학교는 지역사회 내 에서 자신의 명망을 유지하고, 교육감 역시 자신의 지명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렇게 함으로써 기존의 입시제도와 학부모들의 인식이 정당화되고 강화되는 일이

171 반복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들은 소홀해지거나 희생되고 있는 것이 다. 요컨대 대학입시 제도나 학부모들의 요구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문제를 발생 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은 대학 입학 성적 등과 같은 단순한 수량화된 결과에 의존해서 학교 교육활동의 성과를 판단하고 있다. 그 리고 그 판단에 근거해서 학교의 교육활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아직 학교교육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것 외에 없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교육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부재한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동안 내가 조사하고 방 문한 여러 학교들도 졸업생들의 서울의 명문대학 입학율, 대학 입학율 등을 들어서 자신들이 수행한 교육활동을 정당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학교의 교육활동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기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무엇을 학교혁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 직 접적으로 관련이 된다. 그 관점과 기준 여하에 따라서 동일한 학교가 학교혁신 사 례로 보일 수도 있고 그렇기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그 관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형설고등학교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한 학교의 교육활 동이 적절한지 여부는 그것이 단기적으로 가져오는 효과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 는지 여부만을 염두에 두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그 일을 하고, 장기적으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 다. 그것이 결국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면, 눈앞에서 아무리 현란한 모습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활동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교혁신 여부를 판단할 때 한 두 가지 획기적인 제도나 방법의 변화에 현혹되기보다는 그것이 지향하는 것이 무 엇이고, 장차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방향이나 파장에 대한 검토 없이 이루어지는 근시안적이고 대증적인 제도나 방법만의 개선은 삼가 야겠다. 3. 학교혁신 사례의 재분류

172 나는 이상으로 비록 제한된 기간 동안이기는 하지만 11개의 학교를 방문해서 각 학교에서 수행하고 있는 활동의 내용과 그것의 성격과 의미 등을 내부자의 관점, 특히 학생들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았다. 그 결과 11개 학교 가운데 몇몇 학교들 은 내가 다른 자료를 통해서 확인한 것과는 전혀 다른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동일 한 활동이라고 해도 그것의 성격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 서 나는 내가 다시 확인한 자료에 근거해서 < 표 8> 에서 분류했던 각 학교들의 학 교혁신 사례 유형을 다시 분류해야 했다. 각 학교들의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 다. 강정초등학교는 예상했건 것과 같이 운동회-c 형 으로 확인됐다. 강정초등학교는 학교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서 특기적성교육활동을 하고, 지역주민을 위해서 평생교 육활동을 수행했다. 그 점에서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한 특기적성활동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가운데 무리하게 진행됨으로 써 아이들에게 특기적성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수업을 소홀히 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주민들은 위한 평생교육활동의 대부분은 일회적이고 전시적인 활동이었다. 심도가 깊지 못했다. 이런 결과가 발생된 이면에는 강정초등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이 자신 들의 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런 활동과 학교와 아이들을 이용 하고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강정초등학교는 혁신학교라고 볼 수는 명성초등학교는 예상했던 것과 같이 보통반-a 형 으로 확인됐다. 명성초등학교는 강정초등학교와 같은 소규모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과분담제와 학년 통합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이 일상적인 교과 학습을 충실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 과정에 지역주민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학생과 모든 교사의 모든 일상이 이 활동으로 인해서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특히 이 학교는 복식수업으로 인해서 발 생하는 학생들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어려움도 해결했다. 그렇지만 이 교 과분담제와 학년 통합수업은 일상적인 수업을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한 조건일 뿐 이다. 나는 그런 조건 하에서 실지로 일상적인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충분 히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보통반-a 형 으로 분류했다

173 어삼초등학교는 보통반-c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처음에 나는 보통반-b 형 으 로 분류했다. 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활동에 모든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적극적으 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행사에 치중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지로도 학교에서 수행하 는 모든 활동을 교사들이 협의에 의해서 결정하고, 학부모의 참여도 활발한 것으로 보였다. 학교에 대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신뢰도 깊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학교에 서 즐겁게 생활하면서 공부하는 것으로 보였다. 즉 범위가 넓어보였다. 그와 함께 이 학교는 일상적으로 명상을 하고, 그런 명상의 태도는 수업을 할 때도 일상적으 로 적용되고 발휘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점에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도가 더 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을 한두 학급의 일부 시간에서만 확인했기 때문에 그것이 학교 전체의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보 통반-c 형 으로 분류했다. 단강중학교는 처음에는 운동회-c 형 으로 분류했으나 현지 조사 결과 학예회-d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단강중학교는 학교가 지나치게 학력만을 강조하고 학생 들을 억압적으로 대함으로써 학생들의 인성이 메말라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난 10 년 동안 다양한 인성교육 활동을 개발하여 실시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학 생들이 인성교육 활동과 학교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되 었다. 그 점에서 심도가 깊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학교장이 바 뀌고, 학력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주 5일제 수업이 확대되면서 인성교육 이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것은 그 인성교육 활동의 가치나 의미가 다른 교사 들 개개인에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범위는 넓지 않다고 보았다. 운경중학교는 운동회-c 형 에서 보통반-b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운경중학교는 농촌의 열악한 여건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들이 현재 학교의 여건 속 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찾아서 조금씩 천천히 실 천해나가고 있었다. 지역주민도 이에 조금씩 참여하고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 도 달라져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점에서 범위가 넓어보였다. 또한 그로 인해서 아 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 자신도 함께 조금씩 변화하고 관계가 개선되어갔다. 그렇 기는 하지만 일상적인 교실 수업이 깊이있게 이루어지는 모습은 찾아보지 못했다

174 그 점에서 보통반-b 형 으로 판단했다. 정성중학교도 운동회-c 형 에서 보통반-b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정성중학교는 학교의 시설을 주민에게 개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성중학교에서 더 중요한 모습은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학교에 배정된 사회복지사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그로 인해서 교사들도 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아이들, 교사 자신, 그리고 교사들 사 이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학교혁신이 추구해야 하는 것 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서 지역사회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그 점에서 정성중학교의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심도도 깊다고 보았다. 교사들의 일상적인 수업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통반-d 형 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해송중학교는 보통반-a 형 에서 운동회-a 형 으로 가장 극적으로 다시 분류되었 다. 이 학교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활동인 교사들의 일상적인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 서 연구 모임을 만들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업을 촬영해서 자신이 스스로 평가하 고,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 학생들의 평가를 받고, 교사들이 알고 있는 수업 기술 아이디어를 서로 발표해서 공유함으로써 교사들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만족스 러워하고 관계도 개선되어갔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은 일회적인 행사에 그쳤고, 그 나마 그것을 학교 내 외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학교의 문제를 오히려 더욱 악화시켰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해송중학교를 운동회-a 형 으로 다시 분류했다. 흥국중학교는 특별반-b 형에서 보통반-a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나는 처음에 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영어교육 등의 활동은 일부 교사와 강사들만 참여하는 가운 데 일부 학생들 또는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짐작 했다. 그렇지만 직접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 흥국중학교는 모든 학생들에 대한 영어 교육을 강화하고, 각종 특기적성교육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정규 수업 외에도 보충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등을 통해서 학생들의 학력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리고 교사 조직, 승진 체제 등의 변화 등을 통하여 대부분의 교사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최근 변화를 시도하는 다른 학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175 흥국중학교는 여기에 필요한 재정을 모두 재단에서 부담했으며, 그렇게 한 까닭은 흥국중학교가 농촌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재단 관계자들이 그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흥국중학교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과 지역사회 주민들과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인 식도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범위는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학교의 활동에 적 극적으로 참여할만큼 넓지는 않지만 비교적 넓은 것으로 보였다. 일상의 수업 장면 까지는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심도 또한 깊은 것으로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흥국중학교를 보통반-a 형 으로 다시 분류했다. 강산고등학교도 보통반-c 형 에서 학예회-d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다른 자료 에 의하면 강산고등학교는 학교의 건물을 재설계하고 교재를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충실하게 함으로써 일상적인 정규 수업을 통한 학생들의 학습 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활동에 모든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그 점에서 나는 강산고등학교를 보통반-c 형 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내 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강산고등학교는 제7차 교육과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모 델학교를 만들어서 외부의 교사들이 수시로 와서 학습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하 겠다는 목적을 지나치게 앞세움으로써 지역사회의 여건이나 학생들의 특성과 요구 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 교사들과 학생들의 부정적 인식과 부분적인 저항을 낳고 있다. 즉 범위와 심도 모두 넓지 않고 깊지 않았다. 이것은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근거해서 추진해온 기존의 학교 개혁 정책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모란여고는 보통반-d 형 에서 보통반-c 형 으로 수정됐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 우는 교과 지식을 각자 통합적으로 재구조화하고, 이웃이나 자연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지난 8년 동안 다양한 체험학습 활동과 교 과 수업활동을 전개해왔다. 특히 인성교육과 교과교육을 분리하지 않았으며, 지역 사회의 인사들을 학교의 교육활동에 참여시키고, 동시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들 을 학생들의 학습활동에 활용하였다. 그 점에서 나는 모란여고의 범위와 심도가 모 두 넓고 깊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나는 현장 방문을 통해서는 그런 모습들을 다 볼

176 수는 없었다. 일부 교과나 일부 학급, 또는 일부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 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란여고 학생들은 입시제도의 그늘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동료들뿐만 아니라 교사들과도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 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학교혁신을 통해서 추구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관계의 회복이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에서 보통반-c 형 으로 분류했다. 형설고등학교는 보통반-a 형 에서 학예회-d 형 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형설고등학 교는 학생 선택형 무학년제 수준별 보충수업을 이용해서 모든 교사와 학생이 참여 하게 함으로써 비록 정규 수업활동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 활동을 긍 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점에서 나는 형설고등학교의 학교혁신 사례는 범위와 심도 모두 비교적 넓고 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더 깊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형설고등학교가 선택형 보충수업을 실시한 것은 지역 사회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서 명문고등학교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최근 들어서 정부가 각 학교에 방과후 수준별 보충수업을 실시하도록 지시하고 교육청에서 학생의 학력 향상을 독려하는 것이 그런 선택을 가능하게 했 다. 그렇지만 이런 선택형 보충수업에 대해서 학생과 교사 모두 충분히 만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희생이 따르고, 교사들은 정규 수업활동 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하며, 대학 입시제도를 둘러싼 부조리한 관행들을 강화 할 우려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형설고등학교의 사례는 범위와 심도 모두 넓 거나 깊지 않다고 보았다. 특히 나는 이런 사실로부터 학교에서 수행하고 있는 활 동이 혁신적인지를 판단할 때는 그것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며, 전체에 어떤 파장 을 미치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받았다. 이상과 같이 내가 현지 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11개의 학교들을 다시 간단하게 분류하면 강산고등학교와 형설고등학교는 학예회형 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해송 중학교와 강정초등학교는 운동회형 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단강중학교는 특별반 형 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명성초등학교, 흥국중학교, 운경중학교, 정성중 학교, 어삼초등학교, 모란여고는 모두 보통반형 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3) 3) 이 분류는 내가 제한적으로 확인한 자료에 근거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학교들에 관한 또 다른 자료가 추가된다면 이 분류는 달라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 역시 잠 정적이다. 또한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18개 학교에 대한 앞의 분류 역시

177 이 가운데 특별반형과 보통반형에 속하는 학교들이 수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은 각 학교가 처한 여건과 당면한 문제 등을 고려한 가운데 학생들의 일상적인 삶 과 학습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특별 반형과 보통반형은 학생을 지향하고, 현실을 고려하는 가운데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보람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민들레가 잎 을 땅바닥에 낮게 드리운 채 땅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는 것과 닮아있다. 그 점에 서 특별반형과 보통반형은 민들레형 으로 다시 유형화할 수 있다. 양자는 단지 범 위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와 달리 학예회형과 운동회형에 속하는 학교들이 수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은 각 학교가 처한 여건과 당면한 문제를 도외시한 가운데 권력을 가진 사람의 사 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관철시키거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급기관의 지시와 목표를 더 중시하고, 학생들의 일 상적인 삶과 학습은 소홀히 한다. 그로 인해서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되고 기존의 문 제는 더욱 심화된다. 즉 학예회형과 운동회형은 권력을 가진 사람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지향하고, 상급 기관의 지시나 명분을 우선시하는 가운데 무리한 방식으로 활동을 추진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들은 도구로서 전락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좇아 위로만 자라느라고 땅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발 밑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식물들은 살펴보지 못하는 것과 닮아있다. 그 점에서 학예회형과 운동회형은 해바라기형 으로 다시 유형화할 수 있다. 양자 역시 범위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범위가 넓고 심도가 깊을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그 폐해가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깊게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재 분류의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 < 표 10> 과 같다. 예상일 뿐이다. 그 학교들도 내가 실지로 조사하게 되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하에서는 나머지 18 개 학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했다

178 < 표 10> 학교혁신 사례 유형 재 분류 심도 범위 1 좁음 2 3 넓음 4 학교의 지향 얕음 1 2 a b 학예회형 c 강산, 형설 해송 b 운동회형----- 강정 d 해바라기형 깊음 3 4 a b -----특별반형----- c 단강 명성, 흥국 운경, 정성 보통반형 모란, 어삼 민들레형 * 범위: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과 활동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 심도: 활동의 지속성, 유기적 관련 정도, 전체 구성원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179 Ⅳ. 학교혁신의 의미 1. 학교혁신 지금까지 11 개의 학교혁신 사례를 현지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학교들은 크게 민들레형 학교 와 해바라기형 학교 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것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준거는 학교가 수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이 무엇을 지향 하고 있는가이다. 즉, 그 활동들이 진정으로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학교에서 건강하 게 생활하는 가운데 학습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또는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 여부에 의해서 그 학교가 민들레형 학교인지 해바라기형 학교인지 판단할 수 있다. 민들레형 학교에서 수행하고 있는 활동들은, 운경중학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초라하지만 그 구성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다. 그 활동으로 인해서 구성원들이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며, 이후로도 지속적으 로 발전하고 성장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정성중학교의 경우에 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제도나 획기적인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이 몸소 땀을 흘려 노력함으로써 서로의 감동을 이끌어내고 보람과 행복감을 느낀다. 이와 달리 해바라기형 학교에서 수행하고 있는 활동들은, 강정초등학교의 경우에 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화려하지만 그 구성원들에게는 중요 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그 활동으로 인해서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왜곡 되거나 단절되며, 기존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새로운 문제를 파생시키기도 한 다. 그리고 강산고등학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성원들이 몸소 땀을 흘 리기보다는 제도나 방법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사실은 한 학교가 수행하고 있는 활동이 혁신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그 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함으로 의미한다. 학교가 어떤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가, 또는 그것의 심도와 범위가 어디까지 미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 은 그것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일상적인 삶과 학습을 지향하고 있으며, 학생과 학교

180 와 지역사회가 처한 여건을 고려하는 가운데 학교가 처한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 해가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 채 이루어지는 학교혁신은 학 생과 교사와 학부모와 지역사회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 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학교를 혁신한다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 다. 앞의 제1장 제2 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학교혁신은 학생의 학업성 취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학교의 운영을 변화시키는 것 이라는 의미 로 규정되어 왔다. 즉, 학교혁신을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바라 보고 도구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이 경우에 사람이나 집단마다 목적을 서로 다 르게 설정하거나, 목적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갈등이 발생하고, 부조 리한 행위도 정당화될 우려가 있다. 강산고등학교나 형설고등학교가 그 예다. 또한 강정초등학교와 해송중학교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사와 학생이 정치적으 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11 가지 학교혁신 사례를 조사하고 분류하고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들 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학교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학교와 학부모, 학교와 지역사회와의 관계 도 건강하게 형성하고 유지하는 길이 된다. 또한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을 이해하 고, 학생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학생들의 학습이 충실하 게 이루어지게 하는 과정에서 보람과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특히 운경중학교와 정 성중학교에서 그 점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학교혁신이란 학교에서 교사가 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교사의 고유한 존재론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며, 교 사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학교 혁신이란 밑 빠진 독에 새 물을 계속 퍼붓는 일이 아니라, 밑을 채 워서 물이 스스로 차오르고 넘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학교에서 학 교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왜곡되거나 단절된 상황에서 새로운 목표나 과업을 부

181 과하고 독려함으로써 그 왜곡된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로 하 여금 교사 고유의 과제를 일상적으로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왜곡되고 단절된 관계 를 개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의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 혁신이란 학교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복구하는 일이다. 얼 마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염려를 불러일으켰던 학교붕괴 현상은 바로 학교 구성 원들 사이의 건강한 교육적 관계라는 토대가 무너짐으로써 발생한 것이며, 각종 교 육개혁 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저항과 냉소는 이 무너진 토대를 방치한 가운데 학 교에 또 다른 짐을 자꾸 부과함으로써 토대를 더욱 무너뜨리는 정책에 대한 항변 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혁신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규정하는 것은 앞의 제2장 제3절에서 살펴본 바 와 같이 다른 연구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경수 등(1996) 은 오늘날 우리 나라 학교의 문제는 학교가 미래사회에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공동체적인 관계가 약화되거나 상실되어 있다는 데에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교육개혁의 핵심적인 과제로 삼 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윤정일 등(2002) 역시 오늘날 학교의 문제는 교사 와 학생 사이의 교육적 관계가 붕괴되어 있다는 데 있다고 보았다. 특히 한경수 등 은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공동체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학교를 개혁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면서 동시에 목표라고 보았다. 2. 혁신학교: 민들레학교 이처럼 학교혁신을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 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학교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해 가 는 것 또는 교사들로 하여금 교사 고유의 과제를 일상적으로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학교 구성원들 사 이의 왜곡되고 단절된 관계를 개선하고 학생의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하

182 는 일 로서 규정하게 되면 혁신학교의 의미도 종전과는 다르게 규정되어야 한다. 앞의 제1장 제2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혁신학교는 일반적인 의미의 학교혁신 에 비추어서 판단되고 선정되어 왔다. 명확히 용어로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혁신학교란 학생의 학업성취를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학교 라는 의미로 통용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규정에 의거해서 앞서 살펴본 학교혁신 사례 가운데 몇몇 학교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김흥주 등(2005) 은 이와 같은 의미의 혁신학교를 아래와 같이 좀 더 상세히 규정하기도 했다. 혁신학교란 초중등, 국공립 및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학교장과 학교운영 위원회가 공동체가 되어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실험해보기를 원하는 새로 운 학교 운영 방식, 새로운 수업 방법 및 학생지도 방식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학교를 의미함.( 김흥주 외, 2005: 375) 김흥주 등에 따르면, 혁신학교란 학교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 는 학교이고, 여기서 말하는 학교교육을 혁신한다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생 활에 적용되는 참된 학업성취 를 이루도록 학교를 바꾸는 것이다. 즉, 혁신학교란 학생들이 참된 학업성취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학교 다. 그런데, 혁신학교를 이와 같은 의미로 규정할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강산고등학 교나 형설고등학교 또는 강정초등학교와 해송중학교 등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학교들 역시 나름대로 학생들의 참된 학업성취 를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학교들이 추구하는 것이 참된 학업성취 가 아 니라면, 다른 어떤 학교에서는 참된 학업성취 를 추구하기 위해서 강산고등학교나 강정초등학교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무슨 활동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앞의 학교혁신의 의미를 규정할 때와 마찬가지 로 목적이나 결과만을 중심으로 혁신학교의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학교에 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 을 지향하는지, 그런 활동들이 어떤 과정을 걸쳐서 이루어지는지 등은 고려하지 않 기 때문이다

183 따라서 어떤 학교가 혁신학교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학교의 구성원 들이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교사들이 학생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그런 관계를 토대로 일상적인 수업 활동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는지를 살 펴보아야 한다. 앞서 살펴본 몇몇 학교들처럼 학생을 충실히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가운데 수업이 이루어지거나, 일상적인 수업은 도외시하고 그 외의 활동에 치 중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혁신학교란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 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그런 관계를 토대로 일상적인 수업 활동 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는 학교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학교의 교사들은, 정성중학 교와 운경중학교 그리고 단강중학교 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역사회의 여건과 각 학생이 처한 상황, 학생이 현재 겪는 어려움 등을 충분히 살피고, 그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한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그런 이해와 지원을 토 대로 교사와 학생이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그런 관계를 토대로 학습 활동이 이루어 진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교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학생을 강제로 이끌고 가거나 억압하거나 도구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 즉, 교사 자신의 개인적인 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을 희생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요구와 기대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학생들로 하여금 건강한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즉 학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학생 들에게 교과를 가르친다. 비유해서 말하면, 혁신학교의 교사들은, 민들레가 잎을 땅 바닥에 대고 땅의 소리를 들으며 햇빛을 받고 살아가듯이 살아간다. 교사들이 민들 레처럼 살아감으로써 교사와 학생,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서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의 학교에서 부족한 것이 바로 땅의 소리를 듣는 것, 즉 아이들을 이해하고 지역의 여건과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 대신 일그러진 햇 빛, 즉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과 명분과 당위와 사적인 이익을 좇는 데 익숙해왔다

184 그 과정에서 억압과 허위와 과장 등의 부조리가 발생하고, 학교는 점점 더 황폐화 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에 필요한 것은 이처럼 그동안 지나친 것을 줄이고, 모자란 것을 채우는 일이다. 학교의 교사들로 하여금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목적과 명분과 당위와 사욕에 눈을 덜 돌리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현실의 여건을 고려하는 가운데 학생들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교사들로 하여금 민들레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교사들이 그처럼 살아갈 수 있을 때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고, 일상적인 수업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며,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된다. 그런 관계의 개선 없이는 학생의 학업 성취를 기대할 수 없으며, 설령 학업성취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많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혁신학교를 민들레학교 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혁신학교란 교사들이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학교 라고 보기를 제안한다. 교사들로 하여금 새로 운 개혁의 과제를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학교가 아니라, 그것을 잘 했다고 거짓으로 내세우는 학교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을 소박하고 충실하게 잘 해내는 학교 를 혁신학교라고 보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했을 때 더 많은 교사들 이 학교를 혁신하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학교에 만연한 부조리를 줄 이고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학교란 민들레선생님들이 사는 학교다!

185 Ⅴ. 학교혁신을 위한 일반적 방안 1. 학교혁신의 장애들 교대에 왜 지원했습니까? 문맹으로 고생하시는 홀어머님의 안타까움을 눈으로 보며 살았기에, 이 제 제가 선생님이 되어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 그들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 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 김도엽 교사) 교대에 진학한 한 신입생이 면접시험장에서 면접을 담당한 교수의 질문에 대해 서 대답한 말이다. 아마도, 교대나 사대에 지원한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동기를 가지고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이 안정적어서, 방학이 있어서 등 다양한 동 기에 의해서 교대나 사대에 지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장차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일 을 잘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은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에도 전공과목을 듣는 외에도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교육과 관련해서 동료나 선후배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마치고, 임용시험을 거쳐서 학교에 첫 발령 소식을 듣게 된 다. 그 소식을 듣고 그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만족감도 느끼게 되지만, 이제부터 교사로서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 날부터 그는 무수한 꿈 을 꾸게 된다. 어떤 선생님이 될지,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할지, 무엇을 어떻게 가 르칠지. 첫 부임지에 가기 전날 밤에는 잠을 제대로 못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부 푼 가슴을 안고 학교에 첫 출근을 한다. 나는 교대에 재학하는 동안 나의 애인은 학생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내가 진정한 스승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다 꿈과 행복을 심어주겠노라 고 수없이 다짐했다.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나의 사랑, 나의 애인들을

186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은 기뻤 다. ( 김도엽 교사) 그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민들레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처럼 자신도 그렇게 학교 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지, 말썽부리는 아 이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은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 는지 등을 묻고 찾는다. 민들레로서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민들레로서 살고자 하는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퇴색되어 가고, 꿈이 있던 자리는 점점 실망과 체념과 좌절과 안주와 또 다른 욕구가 차지해간다. 아래의 선생님처럼 말이다. 교사라면 처음 발령받았을 때 누구나 좋은 선생님을 꿈꾼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꿈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교사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교육환경을 탓하고, 아 이들을 탓하면서 나 자신을 합리화시켜며 지내다보니 좋은 선생님이 되려 는 생각을 접어버리고, 그냥 나쁜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 그저 그런 선생님들에게 묻혀 그저 그렇게 사는 것 이 마음도 편하고 모나지 않으니 남들에게 눈치 받을 일도 없지 않은가? ( 정은성 교사) 1) 공부에 대한 오해 교사들이 교사로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가졌던 꿈을 포기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직접적으로는 교실에서 수업의 장면에서 학생들이 학습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붕괴 라는 말이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무런 동요도 불러일 으키지 않듯이, 교실에서 수업 중에 학생들이 잡지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 리거나, 잠을 자거나, 수업을 빼먹거나 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학생들 이 자신이 수업 시간에 공부를 전념하지 않는 사실 자체를 문제로서 인식하지 못

187 하고 있는 것이다. 2 학년 한 아이에게 너네 반에 00 는 왜 공부를 안 하니? 하고 물었다. 걔네 집에 돈이 좀 많아요. 아빠가 사업하는데 돈이 상당히 많아요. 그래 서 걘 공부 안 해요. 엄마, 아빠가 돈 버느라고 어릴 때 아이를 방치해 둬 서 얘가 그렇게 됐어요. 초등학교 땐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어 요. 얘네 집이 좀 상당히 돈이 많대요. 나는 기가 막혔다. 돈이 많으면 공부 안 해도 되는 거야? 공부하는 목적이 오로지 돈 밖에 없어? 인생이 돈만 있으면 되는 거야? 라고 물었다 그러게요. 근데 공부 안 하는 애들 보면 거의 다 그래요. 그냥 나중에 체인점 같은 거 하나 내서 먹고 산대 요. 참 할 말이 없다. 돈이 아니면 배울 필요가 없다! 내가 돈 벌으라고 수업을 했던가. ( 방연주 교사)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는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부가 먹고 살기 위 한 수단으로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정부가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홍 보하면서 이런 일은 더 잦아졌다.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상위권 학생들은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 학생들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는 다. 대학에 가는 것은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 그들은, 그 말을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잘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돈만 잘 벌면 잘 살 수 있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서 방연주 교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공부가 과연 돈을 벌기 위해 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나 혼자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 우리가 공부를 해 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타인과 더불어서 조화롭게 사는 데 있다. 공부는 나를 위해서도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도 한다.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타인에 게 피해를 준다. 익명의 낯선 타인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 회에서는 이런 공부가 더욱 필요하다. 낯선 타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다. 공부의 근본은 나 아닌 타자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188 우리는 흔히 그것을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공부, 타인을 위한 공부는 사라지고 나 만을 위한 공부만 남았다. 그래서 내가 잘 살고 싶지 않으면, 내가 잘 사는 데 도 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사는 데 필요한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공부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 기도 하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공부를 권리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은 무엇이 든지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 는 신화 덕분이기도 하다. 그 신화 속 에는 공부는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한 것, 내가 잘 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 되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전제도 함께 내면화한다. 그 결과 학생과 학부모 들은 교육을 권리로서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의무로서의 공부를 망각한다. 그러 한 신화가 생산된 것은 입시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과 지식을 왜곡된 방식으로 가 르치는 학교 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입시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과 학교의 왜곡된 지식 교육의 문제는 신화를 유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 려 학교에서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지식을 배운 사람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2) 경직된 교육과정 이런 현실에서도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나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공부를 하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장벽이 가로막혀있다. 그것은 경직된 교육과정이다.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사들이 가르 치는 내용을 그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재미가 없기 때문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을 억지로 가르 친다. 가르친다기보다는 벽에다 대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교사들 자신도 그것을 안 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한다.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농촌의 일반계 고등학교) 이곳 아이들은 등굣길이 매우 가볍다. 가방이

189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 하게 말해서 공부에 관심이 있어도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자신의 수준에 비 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곳 아이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이 90% 이하로 대부분의 아이들의 학업 능력은 수학의 경우 중 1 학년 수준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기초학습능력이 부진하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학교 공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까닭에 전반적으로 기초학습능력이 부진한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교과교육과정은 벅찰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와 같이 똑같은 교재와 입시중심의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 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학을 목표로 할 것은 다 한 다. 보충수업도 한다. 자율학습도 한다. 배우는 시간이 많으면, 학습량이 많아지고, 아이들의 학력도 향상된다는 주장이 가장 지배적이다. ( 박영준 교사) 현재의 경직된 교육과정 하에서는 고등학교 1 학년 학생 에게는 고등학교 1학 년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그 아이의 실제 실력이 중학교 1학년 수준이어도 고등 학교 1 학년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수준별 보충수 업을 따로 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정규수업 시간에는 자고, 방과후 시간에는 그나 마 조금 공부하는 셈이다. 교사들은 정규수업 시간에 벽에다 대고 중얼거리느라고 지친 몸을 이끌고 보충수업 시간에 또 소진해야 한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반복되 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실력이 중학교 1학년 수준도 되지 않는 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제 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교사가 학교에서 수 업 외에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전자문서란 것이 생기면서 수도 없이 공문이 쏟아진다. 정말 지칠 정도

190 다. 교육청 행사는 왜 이리 많은가? 줄넘기 대회, 육상대회, 독서 대회, 그 리기 대회, 특기적성 발표회, 음악 경연대회 따위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혀 의미 없는 대회를 한다. 그 행사 때문에 학교는 정말 일 년도 가기 전에 아이들도 교사도 모두 지치고 만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무얼 해보고 싶어도 교장, 교감은 교육청 눈치를 봐야하니 참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유영우 교사) 교사들은 회람, 인터폰, 전화, 인터넷 메시지 등으로 인해서 수시로 수업을 방해 받는다. 부장 등의 업무를 맡은 교사들은 각종 공문을 처리하느라고 더 자주 수업 을 방해받는다. 각종 대회와 출장으로 인해서 수업을 아예 빼먹기도 한다. 정부가 개혁의 고삐를 쥐면서, 전자문서가 생기면서 그 정도와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진다. 소규모학교일수록 이런 일은 더 심각하다. 3) 행정체제의 한계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은 학교가 교육청의 통제에 강하게 얽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통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수 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갓 교대를 졸업한 신임 교사를 복식수업 담임교사가 될 수밖에 없는 분교에 발령을 내는 것이 교육청이다. 기존의 교사들이 가기 싫어하니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신임 교사를 벽지 학교로 보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학급의 담임교사 역할을 하는 것도 버거운 신임 교사에게 말이다. 그 뿐만 아니다. 교육청에서는 교육청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일을 교사에게 하도 록 강요한다. 그 일을 할 경우에 학교의 다른 일, 특히 교사의 수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 일이 책상 위에서 문서 한 장 만들어내는 정도의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소에게 있어서 돌맹이 하나가 개구리에게는 집채 만한 바위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191 체육의 주요 업무는 체육교과 지도와 거의 무관한 주로 육상 과 수영 선수의 육성훈련이었다. 지금도 그 때 키가 큰 최은미 학생의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날, 은미의 어머니께서 은미에게 날씨도 춥 고 수영장 물도 따뜻하지 않으니 수영장에 가지 말라고 하자 은미가 이렇 게 대답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불쌍해서 내가 수영장에 가는 거야. 내 가 안 가면 우리 담임선생님이 혼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또다시 고민 속 으로 빠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진정한 스승인가? 내가 학생들의 교과지 도와 생활지도를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에 왜 학부모도 싫어하고 학생도 원하지 않고 교사는 더더욱 싫어하는 육성종목을 평상시에는 물론 방학 동 안에도 학교에 나와서 지도해야 하는가? 학교장도 나도 내 자녀가 방학 때 학교에 나와서 운동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고 속내를 드려내셨건 만, 누구를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교사는 무엇 때문에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 김도엽 교사) 최근 들어서 정부와 여러 연구자들이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그 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학교혁신 이 추구하는 학생들의 학 업 성취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도 들어있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향상시키기 위 해서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게 하고,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 교사 들의 업무를 감소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교사의 업무를 감소하고, 각 학교에 교무보조와 전산보조를 배치하는 방안이 언론에 발표되기도 했다. 교사들의 반대 속에서 강행하고 있는 교사 시범 평가 역시 교사들의 책무성을 강화함으로써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이와 함께 여러 연구자들이 시도교육청의 기능 을 지시와 감독 중심에서 지원과 보조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그 구체적 인 방안까지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방안들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 수다.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보다, 그 방안들이 제대로 시행 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현지조사를 하면서 만난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은 내게, 이번에 교육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사 시범평가에 응모한 학교들

192 이 어떤 학교인지 살펴보라고 했다. 그 학교는 대부분 승진을 앞두고 있는 교사들 이 모여서 근무하고 있는 학교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느 교사는 각 학교에 교무 보조와 전산보조를 배치하려면 정부의 안과 달리 소규모 학교에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소규모 학교와 대규모 학교의 절대적인 업무량은 비슷하지 만 교사 일인당 업무량은 소규모 학교가 대규모 학교의 몇 배가 되기 때문이다. 또 어느 교육청에서는 교육부가 장차 교사평가를 실시하고, 교사평가 항목 가운데 수 업평가가 있으므로 그에 대비하기 위해서 플랜더스 행동분석법에 의해서 수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교사들에게 연수하게 했다고 했다. 체크리스트를 비롯해 서 사전에 짜여진 분석도구에 의해서 수업을 평가하는 것은 교사들이 가장 혐오하 는 방식이다. 그렇게 할 경우에 교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이 무 엇을 학습했는지, 그 학습은 어떤 상호작용의 과정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 그 과 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수업을 두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재단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 심을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기존의 행정체제가 학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구조적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다. 그 점은 최근에 학교혁신 사업을 두고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 그리고 지역 교육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교육부에 전화를 걸어서 그동안 시범학교 운영 이나 그밖에 사안과 관련해서 교육부에 의해서 우수한 학교로서 선정된 학교들의 명단을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은 이 업무를 맡 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 했다. 그런데 이 일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아래의 신문 기사를 쓴 어 느 기자도 나와 동일한 경험을 했다. 교실 붕괴 란 말이 떠돌며 학교교육 불신이 팽배하자 2002년 3월 교육 인적자원부는 매우 포괄적인 내용의 공교육 내실화 대책 을 내놓으며 7 차 교육과정 운영에 적합한 교과교실, 다목적실 등을 2004년까지 3만

193 1316 실로 확충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용도의 교과교실이 현재 얼마나 확보됐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교육부 학교정책실 관계자 는 교과교실 확보 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맡은 부서가 바뀌고 담당자들도 교체돼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 2005년 11월 6 일) 한 가지 정책이 각 학교에 확산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아무리 짧게 어림잡아 도 10 년은 소요된다. 그런데 그 일을 맡은 담당 부서의 담당자는 1년도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는 것이다. 아래 교육부의 어느 관료의 말은 그런 현실을 더욱 잘 보여 준다. 교육부에 근무할 때 총 4개 과에서 과장으로 재임했는데 각 과에서의 재 임기간이 각각 3 개월, 3 개월, 6 개월, 9 개월이었어요. 실정이 이렇다보니 어 떤 부서에서 3 개월만 지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책임 못 질일 하지 말아야겠다는 심리라고나 할까.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새 자리로 옮긴 날부터 떠날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요. ( 양승실 외, 2001: 123)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책이건 실효를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새로운 담 당자들은 그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정책이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인지 알 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이고 손쉬우면서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무난한 방 법을 택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교사평가는 객관적이라는 미명하에 표준화된 체크리 스트에 체크하는 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학교의 혁신을 추진하는 데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교육부에서는 새정부의 주요 의제인 변화와 혁신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2004년 9월 에는 각시도교육청에 혁신복지담당관실을 설치하고, 2005년 10월에는 각 지역교육 청에 혁신지원팀을 설치했다. 이 조직은 2007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조

194 직으로서, 지역교육청의 경우 기존의 총무팀에서 혁신업무를 담당하던 직원과 타부 서에서 전보한 팀장으로 구성되었다. 교육청 내의 다른 팀과 동일한 지위의 부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지원팀은 교육청 내의 다른 직원과 각 학교에 혁신 과제를 발굴해서 제출하고, 추진하고, 학습하라고 요구한다. 그에 반해서 교육청의 다른 팀이나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다른 일로 바쁜데 자꾸 새로운 일을 더 하 라고 요구하니 혁신지원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꺼리게 된다. 서류만 번듯하게 꾸며놓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혁신지원팀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육청 직원들은 이 자리에 서로 근 무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역교육청에 근무하는 한 혁신지원팀 담당자는 이렇게 말 했다. 교육청 혁신지원팀에는 서로 근무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회만 되면 다른 기관으로 전보내신을 하거나 청내의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혁신지원팀장을 맡은 지 채 2개월 남짓 되는 기간임에도 금번 1월 1 일자 인사이동시 청내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라서 현재 각 지역교육청 혁신지원팀의 팀장 인적구성을 보면, 이제 6급 으로 갓 승진한 자이거나 여자 팀장이 많다. 힘없는 사람들만 혁신지원팀 에 밀려 떠맡기 식으로 업무를 맡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교육부가 진정으로 학교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혁신지원팀을 담당한 사람에게 그 에 상응하는 권한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혁신적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어 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선발했어야 한다. 그 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임 교사를 복식수업을 하는 소규모 학교로 보내듯이 했다.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직 물정을 모르거나 힘이 없는 사람이 그 일을 맡았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혁신지원팀으로 가게 되는 줄도 모르고 발령받았다 고 한다. 혁신적일 수 없는 사람이 혁신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혁신 업무 를 맡는 사람은 새로 충원하지 않고 기존의 인력을 인사이동해서 배치했다. 그 결 과 그 사람이 맡았던 기존의 업무는 다른 누군가가 맡아야 했다. 타 부서의 입장에

195 서 보면 사람은 줄고 일은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혁신 업무가 낡은 것을 바꾸어 새롭게 함 이상의 혁 신적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청원들을 대상으로 변화와 혁신 마인드 형성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먼 저 인사하기, 먼저 미소짓기, 먼저 전화받기 등의 친절 3 선 운동 실시했다. 매일 11시 30 분에 혁신방송과 청직원을 대상으로 국민체조를 실시하고, 아침 출근시간대를 이용해서 클래식 음악방송을 내보내 자연스럽게 혁신 분위기를 유도하는데 주력하였다. 제출된 과제를 분석해보면 41건이 제 출되었으나 효과성이나 현실성, 추진 가능성에서 뒤떨어진 내용이 대부분 이며, 기존에 시행하였거나 계획하였던 일상적인 내용이다. 매일같이 하 던 당직을 재택당직으로 전환해서 당직수당을 절감하고, 주 1회 등청을 월 1 회로 감축하고, 일선학교에서 공무원가계자금 융자추천서를 발급받기 위 하여 교육청까지 나와야 했던 절차를 금융기관과 상의하여 학교장이 직접 추천, 발급받을 수 있도록 개선한 점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일들은 각각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낡은 것을 바꾸어 새롭게 한 것 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일들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로 하여금 민들레처 럼 살아가도록 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즉, 혁신만 있고 방향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지, 그것을 왜 혁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좋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 등을 통해서 수집한 학교혁신 사례들에서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 동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청에서 내년에는 혁신의 범위를 단위학교까지 확산시킬 예정 이라고 한다. 그래서 11 월에는 각 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을 대상으로 변화와 혁 신 을 주제로 웍샵을 실시했고, 점차 연수의 범위를 교사들에게까지 확대할 예정이 라고 한다. 그리고 각 학교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혁신과제를 발굴해서 제 출하고 추진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회적이고 하향식이 아닌, 점진적이 고 단계적이며 상향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196 그러나 교육부와 교육청이 이와 같은 구조적인 제약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 체제를 통한 개혁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교 육청의 기능을 지시와 감독 중심에서 지원과 보조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해 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교육 관련 기관이기도 하지만 정치 관련 기관이기도 하 다. 따라서 교육부가 하는 일에는 불가피하게 정치의 문제가 따라 다닌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실적을 필요로 한다. 하급 기관에게 실적을 요 구한다. 교육청에서는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따른다. 그들 은 학생들을 존중해야 하는 교사와 달리 상급자를 존중하고 복종해야 하는 공무원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바라기들이 그 틈을 이용해서 득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를테면, 현재의 행정체제 하에서 진행되는 교육개혁 정책은 아이들을 숙주 삼아 저 희들끼리 공생하고 있는 해바라기들을 위한 자양분인 셈이다. 4) 승진 구조 교사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간혹 학교장 등을 상대로 저항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교사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 하고 지쳐가게 된다.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을 때 가졌던 민들레로서의 꿈을 접 어가는 것이다. 선생을 한 지 십 여 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가 힘들고 버거웠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종종 걸음을 치다 퇴근 무렵엔 맥이 쏙 빠져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몇 줄씩 짧게 쓰는 일기장엔 온통 힘들다. 바닥을 드러낸 느낌 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쉬고 싶다. 그런 문장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동동거렸지만 오늘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면 마땅히 손에 잡히거나 의 미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숨 한 번 편하게 쉴 짬도 없 이 바쁘기만 했다는 생각은 나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

197 라는 존재가 학교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데 하나의 나사나 부속 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위 에서 결정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학교, 선생들 간의 교육철학이 서로 달 라 아이를 가르치면서도 연계지도에 대해 회의가 드는 학교, 주어진 일만 맡아서 하며 창의적인 생각은 배제된 채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학교. 그런 것들이 나를 지치게 하고, 선생으로서 회의를 갖게 하였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에 오는 일이,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나 굳게 닫힌 학교 조직, 서른이 넘었으니 승진이나 준비하라는 선배들의 충고, 더 이상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교사들의 분위기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 러다보니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선생으로서 한계가 느껴졌다. 무언가 한없이 퍼내기만 할뿐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일상이 즐거움을 앗아갔다. ( 조윤미 교사) 이런 상황 속에서 이처럼 자포자기하고 살아가는 교사들에게 열악한 여건을 극 복하고 신명을 다해서 아이들을 지도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면서 초등학 교 학력을 지니지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했으면서도 중학교 학력을 지니지 못한 채 나이와 함께 진급이 이루어진다. 그런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도 진 학한다. 그런 그들이 무엇이건 아무 것이나 하나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 고, 뒤늦게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들의 인식과 경험의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에서 교사의 꿈만 접 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도 접히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바꿔야 될 건 꿈을 심어줘야 돼요. 꿈. 초등학교 때 그거 있잖아요. 꿈을 갖고 살아라. 그런데 학교에서 그걸 가르쳐 놓고 그건 지켜지지 않 죠? 꿈을 가지면서 커라 그러면서 꿈을 지켜주진 못하잖아요. 학교가 무

198 너뜨리고 있죠, 오히려. 가장 고쳐야 할 건 그거 아니예요? 그럼 꿈을 지켜 줘야지요. 가장 먼저 가르쳐놓고 끝까지 책임을 못 지니까.( 한진영, 경기도 정송종고 3 학년 여학생) ( 조용환, 2001: 72) 학교의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교사들은 자신만의 살 길을 찾는다. 교사들은 현재와 같은 학교의 여건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 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려고 하면 업무, 관리자의 지시, 경직된 교육과 정을 비롯한 각종 규정에 의해서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서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다가 나이가 들어서까지 교단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수업을 잘 하는 교사들은 학 교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때로는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에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교사를 폭행한 적 이 있다. 수업중인 교사에게 도서실 개관식 행사에 사용할 마이크를 가져오라고 지 시했으나 그 지시를 따르지 않자 수업 중인 교사를 복도로 불러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과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2005년 11월 28 일) 이런 일을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가운데 교사들은 남들 앞에 자 신을 그럴듯하게 내보일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갖고 싶어한다. 남들처럼 지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 것이 승진이다. 교사들은 승진을 염두에 두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승 진은 점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교사들은 경력 점수를 제외하면 점수를 세 가지 방법으로 딴다. 첫째는 높은 근무 성적을 받는 것이고, 둘째는 연구를 해서 점수를 받는 것이고, 셋째는 시범학교나 벽지학교 등과 같이 가산점이 있는 학교에 근무하 는 것이다. 이 점수는 교장, 장학사, 교육장, 연구자 등이 준다. 따라서 이 점수를 받기 위해서 교사는 아이들의 눈에 드는 대신 인사권과 평가권을 쥔 사람의 눈에 들어야 한다. 교장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학교의 업무를 빠르고 잘 처리해야 한다. 시범학교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한다. 장학사와 잘 사귀고 장학사가 하는 일을 수시로 도와야 한다. 연구보고서를 잘 쓰고, 높은 연구 성적을 받기 위

199 해서 평가자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업은 점점 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수업 시간은 빼먹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지만, 나머지 시간에 소진하느라고 수업에 신명을 다 할 수 없다. 교직에 근무하는 교사 라면 그런 사실을 다 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서 매 진한다. 발령받아서부터 교사 셋 이상만 모이면 오로지 승진 이야기이다. 특히 40 을 넘긴 교사라면 오로지 승진 이야기이다. 내가 만난 많은 교사들 중에 승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교사는 손으로 꼽는다. 교장, 교감을 만나도 승진 이야기,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을 만나도 승진 이야기 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젊은 교사들도 승진의 굴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목적과 수단이 바뀌다보니 아이들은 안중에 없고 승진을 위해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학교도 아이들을 위한 연구학교가 아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 영어고, 독서고, 여러 가 지 활동을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유영우 교사) 그리고 이런 교사들이 학교를 장악한다. 이런 교사들이 다른 교사들보다 먼저 장 학사가 되고 교장이 된다. 교장이 되고 난 다음에는 교육청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더 좋은 학교의 교장이 되기 위해서, 더 높은 지위로 상승하기 위해 서 자신을 닮은 교사를 재생산해낸다. 자신이 더 높은 지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실적을 만들어야 하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교 장은 자신에게 실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교사에게 일을 맡기고, 부장을 맡기고, 높은 근무점수를 준다. 연구점수 따는 법을 전수해준다. 가산점이 있는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소개해준다. 교사들은 자신의 지위 상승을 위한 길을 보 장받는 댓가로 아이들을 위해서 투여해야 할 시간과 노력을 교장에게 제공한다. 아 이들을 숙주 삼아 그들끼리 공생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를 해바라기밭 으로 만든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안중에 없다. 아이들은 자신의 승진을 위한 도구 일 뿐이다. 아이들을 철저히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강정초등학교

200 다. 5) 정치의 지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교육청에서는 이런 학교를 제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학교를 우대한다. 지역교육청의 장학사들 역시 대부분 이런 길을 걸어왔고, 이런 학교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교육청은 시도교육청의 관리와 감독을 받 는다. 시도교육청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지역교육청 사람들은 시도교육청으로부 터 우수한 교육청으로 인정받고, 좋은 평가 점수를 받고, 이후에 더 나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도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실적을 위와 같은 해바라기학교가 만들어준다. 이런 학교는 교육청이 요구하는 성과를 문 서로서 근사하게 정리해서 제출할 줄 안다. 학교가 그 문서대로 충실하게 운영되는 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위에 보고할 수 있는 그럴듯한 문서만 있으면 된다. 그 로 인해서 지역교육청은 업무를 잘 처리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더 나아가 우수한 지역교육청으로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시도교육청 역시 이런 학교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교육청을 선호한다. 시도교육청 은 교육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는다. 교육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시도교육청 사람 들은 교육부로부터 우수한 교육청으로 인정받고, 좋은 평가 점수를 받고, 이후에 더 나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또 한 시도교육청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지역 의 주민들에게 내보여야 한다. 그래야 교육감이 다시 당선되거나, 그 성과를 토대 로 더 나은 지위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런 실적을 위와 같은 우수한 해바라기학교를 보유한 지역교육청이 만들어준다. 시도교육청을 관리하고 감독하고 평가하는 교육부는 교육관련 기관이기도 하지 만 정치관련 기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육부는 기존의 교육활동이 잘 이루어지도 록 하기도 해야하지만, 새로운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정권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받아 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교육개혁 정책의 시

201 행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그런 성과를 근사하게 많이 제시한 시도교육 청은 우대하고, 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 담당자에게는 인사상의 혜택도 부여 한다. 시도교육청은 지역교육청을, 지역교육청은 학교를 동일한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런 길을 따라서 전국 각지의 해바라기학교들이 위로위로 올라간다. 역설적이게도 교육개혁 정책이 오히려 해바라기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 부의 거듭되는 교육개혁 정책은 이런 해바라기교사들을 더 많이 요구한다. 개혁은 늘 기존의 것보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선이 개 혁으로, 개혁이 혁신으로 바뀌는 것이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해바라기로 살기 시작한 이상 그들은 계속 해바라기 로 살아야 하고, 계속 해바라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부의 점증하는 요구에 부응 하는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실적을 만들 수 있 는 유능한 교사들을 휘하에 더 많이 거느려야 한다. 그래서 앞의 강정초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수와 점수와 시간 등을 미끼로 은밀하게 교사들을 끌어들인 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자신처럼 살아가라고 드러내기도 한다. 그 것이 후배 교사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 가면 강사들은 하나같이 승진점수 따는 법을 언급하고, 선배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어김없이 쉽게 승진점수를 딸 수 있는지 세세한 정보를 이야기하곤 한다.( 정은성 교사)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공연하게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해바라기 교사들은 교육청과 교육부의 인정과 시상 과 승진에 힘을 입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로 인해서 젊은 교사들은 점점 더 어린 나이부터 승진에 관심을 가지고 선배 해 바라기 교사의 휘하에 들어가서 점수 따는 법을 배운다. 수업에 소홀히 하는 법을 익힌다. 늦게 시작할수록 승진의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학생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입시를 위해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서 승진 을 위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진다

202 이런 해바라기들이 학교를 황폐화시키고,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나라를 황폐화시 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현재의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까지 도 좀먹는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다. 아이들은 현재의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사람들 이라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의 안위와 이익에만 관심이 있 다. 그들에게 공교육은 없다. 사교육만 남아 있다. 그래도 일부 교사들은 이러한 학교 사회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민들레처 럼 살아가고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점점 더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러 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기로에 놓여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선택하게 된다. 해 바라기로서의 줄을 탈지,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 민들레로서 살아가야 할지. 나는 승진의 기로에 서있다. 25년의 경력이 승진점수에 가산되므로 승진 여부를 지금 결정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내 자신이 한심 스럽다. 당연히 학생들을 위하여 더욱 훌륭한 교단교사가 되려고 노력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승진이란 단어에 늘 망설이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승진을 위한 것이 학생들을 위한 길인가. 나는 나의 마음 속 깊은 속에 숨어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내가 승진을 하려고 하 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과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의 애인( 愛 人 ) 들을 선하게든 악하게든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늘 나의 가슴 속에 남는다. 나는 교사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은 업무도 승진도 아닌, 오늘도 선생님을 만나러 온 학생이다.( 김도엽 교사) 위의 선생님은 아직까지는 민들레로서의 삶을 위태롭게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대부분 이런 기로에서의 방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자신의 동료들이 벌써 몇 발작 앞서 승진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을 보면서 초연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학교에 는 해바라기가 또 하나 더 자라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열 명, 백 명, 천 명의 아 이들이 학교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도 함께 시들어가는 것이다

203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아니, 보면서도 알지 못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수 치, 언론에서 피상적으로 때로는 왜곡해서 보여주는 학교의 모습만을 보고서 오늘 날의 학교를 판단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 사람의 빌게이츠 같은 전재가 만 사람 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천재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만 말 한다. 한 사람의 빌게이츠가 만 사람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십만 사람의 건강한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십만 사람의 평범하면서 건강한 시 민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십만 사람의 건강한 시민 속에서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진정한 천재가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장차 평범하 면서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어떻게 살아가 는지, 일상 속에서 어떻게 희생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씩 먹는 잔 치상만 보여주고서, 한두 사람이 일년 내내 먹는 잔치상만 보여주고서 모든 학생이 일 년 내내 그런 음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국민을 호도하고 위기를 모면하며 정권을 연장해간다. 해바라기학교들 역시 이런 정부를 닮아서 대학 입학율과 소수의 명문대학 입학생을 앞에 내세워서 자기 학교의 모든 것을 덮으려고 한다. 그 틈을 이용해서 해바라기들이 번성한다. 학교가 황폐해져간 다. 2. 학교혁신의 한 과정 1) 민들레교사들의 희망 찾기 오늘날 학교의 교사들은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교사들이 아니다. 교직은 이제 더 이상 다른 할 일이 없을 때 잠시 머무르는 직장이 아니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문하는 곳이 교직이다. 그런 그들은 과거의 교사들 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순종적이지도 않다. 정부가 하는 일, 정부가 제 시하는 정책의 허실을 낱낱이 꿰뚫고 있다. 일부 해바라기교사들은 그 맹점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킨 댓가로 자신의

204 승진을 추구한다. 일부 교사들은 해바라기교사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안위와 편리를 도모한다. 그런 교사들을 학교 현장에서는 교포교사, 즉 교감 교장이 되 기를 포기한 교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때로는 교사가 되는 것마저 포기하고 살아간다. 이런 교사들 또한 해바라기교사와 함께 학교를 황폐화시킨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일부 교사들은 해바라기교사와 교포교사 틈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민들레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들은 학교 현장에서 여러 해 근무하는 동안 학교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서 안다. 정부에서 이제 또 새로운 개혁 정책을 제시하고, 혁신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렸지 만,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결말을 맺을지도 알고 있다. 지방의 초등학교에 근무하 는 어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제도 내부에서도 혁신 을 얘기합니다. 물론 획일성, 표준화된 업 무, 성과위주, 권위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관주도 개혁에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관료가 주도하는 개혁이 항상 실패해 왔다는 사실을 모르 지 않으니까요. 다만 현장 교사들이 또 다른 책임과 의무를 떠안거나 교원 평가처럼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일이 우려될 뿐입니다. ( 이경남 교사) 그들은 이런 우려 속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간다. 위의 이경남 교사 역시 그런 교사 가운데 하나다. 그는 현재 인근 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교사들의 힘으로 학교를 변화시켜 가기 위한 모임을 3 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 들은 이런 모임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지 뿐만 아니라, 교육 이란 무엇인지, 현 시대에서 학교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교사란 어떤 존재인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런 모임을 통해서 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한 교사로서의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안강글쓰기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매주 한 번 씩 만나 글쓰기지도에 대한 공부도 하고 학교에서 쌓인 일을 털어 놓으며 조금씩 숨통이 트였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어

205 도 그 모임에선 승진 점수를 따지거나 연구보고서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언제나 아이들이 이야기의 가운데에 놓였고, 선생으 로서 보람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 조윤미 교사) 위에서 조윤미 교사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자신의 승진이 아니라 아이들에 관하 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것이 교사로서 보람되고 즐겁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들은 어느 학교엔가 고립된 채 혼자서 살아가기도 하고, 위의 이경남 교사나 조윤미 교사처럼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그들끼리의 아픔을 나누고 민들레교사로서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기도 한다. 그들이 전국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2) 민들레학교 만들기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학교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에 돌아가서는 더 큰 좌절 감을 맛보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하늘을 날아본 새는 새장 속에 갇혀있을 때 이전 보다 더 답답함을 느끼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교사로서의 보람을 되찾고자하는 사람들이 같은 학교에 함께 근무하면서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각자 서로 다른 학교에서 자신과 삶의 지향이 다른 교사들과 부딪히면서 어렵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이뤄내기 보다는 같은 뜻을 가진 교사들이 한 학 교에 모여서 아이들을 향한 삶을 실현하는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런 학교 가운 데 하나가 앞의 제3장 제2 절에서 언급한 어삼초등학교다. 그 외에도 산들초등학교, 경사초등학교, 나무초등학교, 강주초등학교 등도 그런 예다. 특히 산들초등학교는 그런 학교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현해보인 학교다. 산들초 등학교는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해바라기교사와 교포교사들의 방만하고 나태한

206 생활로 인해서 아이들이 방치되고, 학교가 지역주민들로부터 외면받아 폐교될 지경 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2001년을 전후로 인근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학부모들 이 자신의 자녀를 산들초등학교에 전학시키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자 하는 교사들이 전입해옴으로써 학교가 다시 살아났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 들을 중심으로 학교의 시설과 제도를 재조직하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그 로 인해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즐거워하고, 외부로부터의 전입을 희망하 는 학생도 늘어났다.( 서근원, 2004) 산들초등학교가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가운데 첫째 어 려움은 민들레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들이 산들초등학교에 전입해오는 문제였 다. 현재의 인사제도 하에서 교사들은 한 학교에 일정기간 이상 근무해야 다른 학 교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교육청 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며, 지역교육 청 내에서 이동한다고 해도 교사가 원하는 학교로 발령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같은 뜻을 가진 교사들이 한 학교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거 기에다가 가산점이 주어져 있는 농어촌의 벽지학교 등에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 지고 있다고 해도 교사들이 그 곳에 가는 것이 더욱 쉽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산들초등학교에 4 명의 교사가 어렵게 발령을 받게 되었다. 둘째 어려움은 교사들이 수시로 이동한다는 점이었다. 산들초등학교에는 교사가 7 명 근무하고 있으며, 4명을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4 명의 교사들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근무연한만 채우고 학교를 떠났 다. 그 자리에 새로운 교사가 왔지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 는 이런 문제가 사라졌지만, 이제는 먼저 근무했던 4명의 교사들이 학교를 떠날 차 례가 되었다. 즉, 교사들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서 학교가 시도하는 새로운 활동들 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어려움은 학구의 제한으로 인해서 학생들의 입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이었다. 산들초등학교에는 2000년에 26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지만, 위의 교사 들이 다양한 교육활동을 새롭게 전개하면서 2005년 현재 재학생 수가 140여 명으 로 증가했다. 지금은 학교의 물리적 규모에 비해서 학생 수가 너무 많음을 걱정해

207 야 할 처지다. 그렇지만, 현재의 재학생 가운데 칠 할 이상은 인근 도시에 거주하 면서 산들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음으로써 학구를 위반하고 있거나, 폐가와 다름없 는 곳에 이사해서 살고 있다. 학구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 그들은 대부분 학구에 위치한 학교로 전학해야 하고, 산들초등학교는 재학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 워진다. 넷째 어려움은 교육과정 운영상의 제약이었다. 기존에 산들초등학교에 재학하던 학생들은 복식수업과 기존 교사들의 불성실 등에 의해서 학력이 뒤떨어져 있었다. 산들초등학교에 전입해온 학생들도 상당수가 비슷했다. 그 가운데 이 할 이상의 아 이들은 학교 부적응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산들초등학교는 매주 토요일에 이루 어지는 체험학습이나 방학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계절학교 등을 통해서 학생들의 흥미나 수준에 따라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일상적인 수업은 다른 학교와 다름없이 진행해야 했다. 그로 인해서 학생들은 자신의 현재 수준이나 상태 로부터 동떨어진 내용을 억지로 학습해야 했다. 다섯째 어려움은 교사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점이었다. 산들초등학교 교사들은 다른 학교들이 수행하는 활동들을 동일하게 하면서, 산들초등학교만의 고유한 활동 들을 수행했다. 물론 그 활동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 가는 가운데 실질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들이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은 이중의 업무를 부담해야 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자 원인사나 학부모들의 도움에 의해서 해소되었지만,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들에게 누적된 피로를 안겨 주었다. 여섯째 어려움은 지역교육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보기 에 산들초등학교와 지역교육청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으로 지역교육청은 산들초등학교를 여러 가지로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의 전입, 교사들의 이동, 예산 등에서 통상적인 것 이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산들초등학교는 각종 우수사례를 지역교육청에 제공함으로써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보답하고 있는 것 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교육청은 산들초등학교를 경계하고 지원이 필요할 때 지원해주지 않기도 했다. 다른 지역교육청에 근무하던 교사가 산

208 들초등학교에 근무하기 위해서 전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교육청 내의 다른 학 교로 발령을 내기도 했다. 그것은 산들초등학교가 지역교육청의 통제와 무관하게 다양한 교육활동을 새롭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역교육청에게 있어서 산들초등학교는 뜨거운 감자 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3) 민들레홀씨 퍼트리기 산들초등학교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 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들초등학교의 이 사례는 전국에 산발적으로 흩 어져서 민들레교사로서의 길을 모색하는 교사들에게는 암흑을 뚫고 나타난 한 줄 기 빛과 같았다. 한 교사는 산들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듣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그만큼 민들레교사로서의 삶을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제 발로 제 돈과 제 시간을 들여서 산들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자 돌아가서 산들초등학교와 유사한 학교들을 만들어냈 거나,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교사로서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학교에서 살아가는 교사들은 다른 학교에서 살아가는 교사들에 비해서 육 체적으로는 훨씬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수시로 회의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을 위해서 준비물을 만드느라고 퇴근 시간을 훨씬 넘겨서 퇴근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행복해 하고, 보람을 느낀다. 물론 몸은 고되다.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툭하면 감기 몸살에 걸리기 일쑤고, 피곤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경사초등학교에 와서 그 동안 선생하면서 느끼지 못한 보람을 이 제야 느껴본다. 며 경사초등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다. 경사초등학교는 더 이상 직장이 아니라 내가 가꾸는 삶의 공간이며 나 와 한 몸을 이루는 내 집이 되었다.( 조윤미 교사)

209 이 교사들이 이처럼 몸이 힘들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것은, 그 곳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 하는 교사로서의 삶이란 자신의 승진이나 편리를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삶 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더 나은 배움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삶이다. 아이들을 향한 삶이다.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좀먹는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현재를 내놓는 삶이다. 그 것은 교사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이며, 교사로서의 고유한 존재 의미를 실현하는 삶이다.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음으로써 그들은 육체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교사들은 이런 보람을 찾기 위해서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초등학교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믿고 변화해가는 경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운경중학교가 그 예다.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교사들이 농 촌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여 기저기에서 산들초등학교의 교사들을 초청해서 산들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듣기를 청하고 있다. 4) 민들레학교 연대하기 2001년 산들초등학교를 필두로 해서 해마다 민들레학교가 전국 각지에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각 민들레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해왔고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서로 나눌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학교들은 모두 공립학 교이므로 우리나라의 학교제도와 행정체제의 영향 하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 라서 민들레학교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들은 그 어려움을 먼저 겪은 학교들의 사례를 보면서 자신이 현재 겪고 있 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고, 개별학교의 힘만으로는 해결

210 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각 학교가 수행하고 있는 교육활동을 공개함으로써 서로 에게 참고가 되게 했다. 이 학교들은 산들초등학교가 계기가 되어서 산들초등학교 를 모델로 삼아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이 서로 다름으로 인 해서 그 구체적인 형성 과정이나 문제 해결 방식, 그리고 수행하고 있는 교육활동 등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그들은 각각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각 학교의 교육활동 등을 소개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게 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학교가 좀 더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선정해 서 그 일을 각 학교에서 실천한 후에 그 결과를 두고 좀 더 진전된 논의를 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의 내실을 기하는 문 제 등이 그것이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2005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위와 같은 모임을 가졌다. 물론 이 모임 역시 교사들이 자비를 들여서 스스로 마련했다. 그들은 이후 로도 이런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지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위의 학교 교사들뿐만 아니라 일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 가운데 민들레학교의 교사로서 살고 싶어 하 는 교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그들은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이 함께 모인다는 소문을 듣고 그 자리에 스스로 참석했다. 3. 학교혁신의 일반적인 원칙 나는 위와 같은 학교들, 엄밀하게 말하면 위와 같은 학교를 만들어가는 교사들과 그런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에게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우리나라 학 교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그들은 적어도 앞서 살펴본 해바라기교사나 교포교사들처럼 자신의 사익 을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 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아이들의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려고 애쓴다. 무리 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고, 현재의 조건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211 일 먼저 해냄으로써 차근차근 변화를 모색해간다. 우리나라에 이런 교사와 학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학교를 절망적인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한다. 또한 이런 학교와 교사가 있음으로써 우리는 학교와 교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들을 통해서 학교는 더 이상 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장소만은 아니며, 교직 역시 개인의 경제적인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직 업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이러한 학교와 교사들이 기존 학교의 부조리한 관행 속에서 실의와 절망 에 빠져있는 교사들, 승진과 아이들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교사들, 그리고 이제 막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교사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사들에게는 교장 등과 같은 관리자가 되는 것이 교사로서 가장 성공적 인 삶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 는 것은 어딘지 모자라는 일이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길로 인식되어 왔 다. 그러나 위의 교사들은 그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가장 보람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교사들은 그들의 삶을 보면서 그 동 안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길이 자신의 앞에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서 교사로서의 자신의 삶의 길을 다시 모색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진정으 로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들에게는 위의 교사들이 보여주는 삶이 구원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셋째는, 또 다른 교사들이 위의 교사들이 했던 것처럼 새로운 건강한 학교를 만 들 수 있고,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산들초등학교 등에 고무받 은 여러 교사들이 산들초등학교를 닮은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고, 만들어가고 있고,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교들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 이다. 그 결과 더 많은 교사들이 이런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할 것이고, 그에 따라서 더 많은 민들레학교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희망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학교에는 이런 희망 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이란 다름 아닌 아 이들을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신명나게 살아보고 싶어 하는 교사들의 욕구다. 단지 그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

212 했다. 나 : 만약에 다른 걱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들만 가르칠 수 있는 학 교가 만들어진다면 그 학교에 근무하겠습니까? 교사 : 자원하겠습니다. 정말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이들도 사실은 그것 을 원하거든요. 제 자녀도 6 학년인데 참 불쌍할 때가 많아요. 제대 로 배웠으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인데 선생님이 바쁘다 보니깐 다음 에 하자 그랬는데 다음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어요. 기회와 능력이 되는 한 학생들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방법 대로 교육을 하고 싶어요. 정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데 글쎄요. 지 금 상황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이죠. ( 김도엽 교사) 위 교사는 설령 승진은 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면 그 학교에 근무하기를 자원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현지조사 를 하는 동안, 그리고 현지조사를 하기 전후에도 이런 꿈이 실현되기를 고대하는 교사들을 여럿 만났다. 나는 그런 교사가 우리나라에 단 한 명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사로 하여금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만족과 보 람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그와 같은 교사가 학교의 현장에서 중심에 설 수 있게 하 고, 그와 같은 교사의 고민과 논의가 학교문화의 주류를 차지하게 해야 한다고 생 각한다. 그렇게 할 때 나머지 교사들이 그의 삶을 보고, 자신도 함께 그런 삶을 살 아가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학교를 혁신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 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서로 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 지도록 학교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것 이다. 그리고 그 학교혁신은 지금까지 선행연구와 학교혁신 사례를 검토하면서 시사받 은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원칙들을 충실하게 따르는 가운데 아주 조심스럽고 치밀

213 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1) 진정성 학교혁신을 추진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원칙은 진정성이다. 우리의 학교 현장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이후로 지난 60여 년 동안 정권의 필요에 따라 서 개혁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교사들은 새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용수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어떤 장단도 교사들의 몸에 깊이 배이도록 지속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개혁은 폐기되고 새로운 개혁이 새 명분을 내걸고 등 장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새 정권에게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개혁정책도 교 사들에게는 잠시 머물다가 사라질 또 하나의 변주로 들릴 뿐이었다. 교사들은 이제 더 이상 그것을 변주로조차 듣지 않는다. 마치 양치기 소년이 아무리 크고 다급한 소리로 늑대야~! 라고 외쳐도 미동도 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처럼 말이다. 양치기 소년에게 여러 차례 속은 마을사람들을 늑대 퇴치에 앞장서도록 하기 위 해서는 이제 늑대야~! 라고 외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노력은 학교를 반드시 건강한 삶의 장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진정한 마음이 다. 그 마음은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적 노력으로 드러난다. 정부나 당국이 현재 학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교사들이 어려워하는 점이 무엇인지 등을 몸으로 직 접 확인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하나를 성심을 다 해서 실질적으로 변 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이 구체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도록 해야 한 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적어도 이하에서 제시하는 나머지 아홉 가지 원칙들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교사들은 정부나 당국의 진정성을 믿고, 학교 혁신의 길에 동참할 수 있다. 2) 교육성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둘째로 고려해야할 점은 그 과정이 교육적이어야

214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학교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범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모든 교사를 완성된 존재로 상정해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연구자나 행정가들은 학 교개혁 정책을 입안해서 학교현장에 적용하면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그 정책을 실현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교사들로 하여금 그 기대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채찍과 당근을 이용했다. 교사들이 그 기대에 따르지 못할 경우에는 비난하거나 퇴출시키기도 했다. 만일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연구자나 행정가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의 소양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사 개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한계다. 그런 교사를 길러낸 것도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사들은 정부나 당국이 지정하고 지시하는 대로만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길러지고, 그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로 하여금 사지선다형 시험에서 문제를 많이 맞추도록 하고, 명문대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입학시키면 좋 은 선생님이 되는 줄 알아왔다. 그것이 교사가 할 일의 전부가 아니고, 그렇게 하 는 것만이 좋은 선생님이 되는 길이 아니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불 과 몇 년 되지 않는다. 현재의 교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과거 시대의 불완전한 산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과거에 길러진 교사들에게 새 시대의 역할을 당장 해내라고 요구 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의 교사들이 교사로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자신이 교 사로서 해야 할 일을 다시 찾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시간이 필 요하다. 단순히 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위의 지원과 격려와 도움도 필요하 다. 교사를 교사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제 갓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아기를 대하듯이 교사를 대할 필요가 있다. 그가 장차 현재보다 더 나은 교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3) 과정성 학교혁신을 추진할 때 셋째로 고려할 점은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의 혁신성

215 이다. 지금까지 학교개혁 정책은 그것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나 결과를 중심으로 입안되고 추진되었다. 그 목표나 결과에 의해서 학교개혁을 추진하는 방법과 절차 등이 정당화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앞의 제3장에서 살펴본 해바라기형 학 교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태를 반복하거나 또 다른 부조리를 생산하 고 강화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개혁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나 결 과 대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과 방식 자체를 학교혁신으로 상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본 보고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학교혁신의 의미에도 부합한다. 본 보고서에 서는 여러 학교혁신 사례를 검토한 결과에 근거해서 학교혁신을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서로의 관 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학교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것 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교사가 학생 을 이해하는 일,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학교의 구성원들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 등은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 에 대비하면 과정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또한 그 런 과정들조차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이 충실하 게 지켜질 때 학교혁신의 최종적인 결과도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4) 선택성 학교혁신을 추진할 때 넷째로 고려할 점은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지금까 지 학교개혁 정책은 대체로 하나의 청사진에 따라서 획일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었 다. 설령 점진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획 일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7 차 교육과정의 적용 과정이었다. 제7차 교육과정 은 수준별 선택형으로 편성되었다.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학생의 수준에 따라서 다 른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제9학년부터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적용해서

216 2002년에 고등학교 3 학년까지 연차적으로 확대해서 적용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연차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적용과정은 개정된 교육과정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동시에 적용하던 이전의 방식과는 크 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 근무하는 교사의 눈으로 보 면 이런 적용 방식 역시 기존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책 입안자가 사 전에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서 새 교육과정이 기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이나 특수성은 고려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자발성을 발휘 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자발적으로 학교혁신 을 추진하고자 하는 교사와 학교들로 하여금 우선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 원할 필요가 있다. 그런 교사와 학교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기존에 해왔던 것처 럼 서류에 의한 응모나 지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지조사 등을 통해서 진정성과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들이 순수한 목적을 지향하는지, 그 일을 추진하는 데 적절한 소양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만일 그런 것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갖출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지원하고 기다려야 한다. 5) 자발성 학교혁신을 추진할 때 다섯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교사의 자발성을 믿는 것이다. 앞의 제2장 제3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학교개혁정책은 정치-공학적 패 러다임에 기초해서 이루어졌다. 일부 연구자와 행정가가 개혁 정책을 입안하여 추 진하고, 교사들은 그들이 마련한 방안과 일정에 따라서 개혁 정책을 이행하기만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교사들로 하여금 그 정책에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서 당근과 채 찍을 병행해서 사용했다. 교사들은 개혁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과정에서 각 학 교가 처한 여건과 각 학생들이 당면한 문제를 고려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들이 가 지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학교를 개혁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서 일부

217 해바라기교사들이 득세하고 학교를 황폐화시켰다. 이처럼 교사들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는 어떤 학교개 혁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학교개혁의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는 여러 연 구자들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학교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교사들이 스스로 학교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노력하도 록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더 이상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의존해서 학교개 혁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연구자나 행정가가 일시적으로건 점진적 으로건 전국의 모든 학교를 하나의 청사진에 따라서 바꾸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연구자나 행정가가 대부( 大 父 ) 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데서 출발한 다. 각 학교의 교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학교와 학생이 처한 여건을 고려하는 가운 데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서 보람을 찾도록 해야 한다. 그런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제공하고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각각의 교사들이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교사들은 자발성을 발휘한 다. 통제받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한다. 6) 현장성 학교를 혁신하는 데 있어서 여섯째로 고려할 점은 각각의 학교 현장에 근거해서 문제가 설정되고 해결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간 추진해 온 학교 개혁정책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 가운데 하나는 이제는 학교개혁 정책 이 하향식(top-down) 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 들이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상향식(bottom-up) 개혁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했다. 현장중심의 교육개혁 방안을 공모한다거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협의체를 지원한 다거나 교육개혁 우수 사례를 홍보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이제는 이 점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학교혁신에 참여할 의 지를 가지고 있는 교사들로 하여금 지역의 특수성이나 여건을 고려하는 가운데 단 위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로 하

218 여금 각 학교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학교혁신의 구체적인 과정이나 결과는 학교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지 않을 수 없다.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이 학교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학교의 학교혁신의 과정이나 결과를 무리하게 여타의 학교에 일반화해서 적용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그 동안의 시범학교 운영 사례 등이 범해온 오류이기 도 하다. 오히려 각 학교 현장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장 성은 다양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7) 체험성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곱째로 고려해야 할 원칙은 교사들로 하여금 체험을 통해서 학교혁신의 구체적인 의미와 방향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 는 소양과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개혁을 추진하면서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연수는 어떤 형태로건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그 것은 앞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바와 같이 학교개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교사 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학교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급당 정원을 줄이 고, 각종 시설을 개선하고,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를 첨단 기기로 바꾸고, 교육과정 을 개정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이와 함께 교사들로 하여금 그러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각종 연수와 교육을 실시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사들 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사들의 변화, 즉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교사들의 소양과 능 력은 사전에 연수나 교육에 의해서 길러지기도 하지만,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학 교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길러지기도 한다. 오히려 교사들이 스스로 설정한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사가 갖추기를 기 대하는 소양과 능력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 또한 그런

219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 연수나 교육이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교사들 로 하여금 학교혁신의 과정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교사로서의 소양과 능력을 기 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층 더 발전된 학교혁신을 모색하도록 할 수 있다. 8) 연대성 학교혁신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여덟째 원칙은 교사와 교사, 학교와 학교, 학 교와 전문 연구가, 그리고 지역사회 등이 횡적으로 연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까지 학교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청과 학교 사이의 일로만 여겨져 왔다. 이웃 학교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이웃 학교의 교사가 학생 지도와 관련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지 등은 공 개적으로 알기 어려웠다. 사적인 경로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야기가 오고갈 뿐이 었다. 간혹 시범학교 발표회나 우수사례 경진대회 등을 통해서 이웃 학교가 공개되 기도 하지만, 그것은 손님맞이용이거나 선발을 위한 전시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 다. 그 점은 전문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폐쇄적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우리나라 학교현장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외국의 이론을 무리하게 적용하게 되고, 그 이론들은 대부분 학교 현장의 교사들로부터 외면당하 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학교 현장과 연구자 사이의 괴리를 더 깊게 만들었다. 학 교가 지역사회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깊은 관계를 맺 지 못했다. 지역사회의 주민들 역시 학교의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 한되어 있었다. 학교는 지역사회에 떠 있는 섬과 같은 곳이었다. 이제는 교사와 교사, 학교와 학교, 학교와 연구자,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대할 필 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교사들, 특히 민들레교사들은 다른 교사들도 자신과 마찬 가지로 진정한 교사로서의 삶을 목말라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됨으로 써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된다. 또 다른 민들레학교의 사례들을 보면서 서로 가르 치게 배우게 된다. 전문 연구자들과 함께 학교혁신을 추진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 이고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연구자는 우리나라 학교현장을 이해

220 하고, 우리나라의 교육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생성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인사 와 각종 자원을 학교의 교육활동에 참여시키고 활용함으로써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며, 학교와 지역 사회 사이의 유대를 깊게 할 수 있다. 이처럼 교사와 교사, 학교와 학교, 학교와 연구자, 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횡적인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그동안 학교행정체제가 종적인 관계에 지배됨으로써 파생되 었던 여러 문제들, 소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해바라기교사들에 의한 학교의 황폐화 문제 등을 해 9) 장기성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아홉째로 고려할 점은 장기적인 전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를 혁신하는 일은 학교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과는 다 른 종류의 일이다. 학교교육과 관련된 법률이나 제도를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것과 도 다른 종류의 일이다. 학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지역주민, 그리고 전 국민의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인식과 삶의 방식까지도 변화하는 일이다. 그 변화는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국민과 지역주민과 학부모와 학 생과 교사들이 학교와 교육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과 삶의 방식이 형성되고 공유되고 재생산되어 오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변화시 키는 데 역시 적어도 그 만큼의 시간이 소요된다. 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전반적으로 지역사회의 여건과 학생의 특성 등을 고려하 고 지원하는 가운데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기까지 는 학교의 규모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5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학교의 그런 활동이 학부모와 지역사회 등으로부터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기 까지는 또 다시 5 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 동안에 이런 학교가 주변에서 하나둘씩 늘어나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점차 알려짐으로써 학교와 교육에 대한 전 국민의 인식과 삶의 방식이 시나브로 바뀌어가기까지는 그로부터 다시 10년 이상의 시간 이 소요된다. 그것은 결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선거판에서 바람몰이 하듯이

221 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10) 탈정치성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마지막 원칙은 탈정치성이다. 이 탈 정치성은 첫째로 제시한 진정성의 원칙을 소극적으로 규정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제시한 진정성을 제외한 여덟 가지 원칙은 진정성의 구체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학 교혁신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교육성, 자발성, 선택성, 현장성, 과정성, 체험성, 연 대성, 장기성 등의 원칙을 고수할 때 거기서 진정성이 배어나온다. 또 이 각각에 진정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 여덟 가지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의도 나 목적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여기서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은 국가 정권 수준의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독일 의 사회학자 베버(Max Weber) 에 따르면 정치란 권력을 추구하는 일이며, 권력이 란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내 의지를 상대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정 치란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추 구하거나,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정치란 권력에 의존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타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은 국가 최고 권력자뿐만 아니라 장관, 교육감, 교육장, 교장, 그리고 교사도 가질 수 있다. 그가 누가 되었건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학교혁신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진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긍정적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앞의 학교혁신 사례 가운데 해바라기형 학교를 통해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또 누가 이 순간 학교혁신을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용한다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학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우리 국민 모두의 미래 를 고사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비록 내용이나 방법

222 등에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교사들은 한 때 열린교육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이용되고 짓밟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교사들은 다시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학교는 황폐해졌다. 만일 이제 또 다시 교사들의 희망이 또 다른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용된다면, 이후로 10년 동안 학교는 지금보다 더 황폐해지고 그 로 인해서 교사들은 또 다른 희망을 가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지 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천우신조로 여겨야 할 것이다. 가뭄을 이기고 어렵 게 싹을 틔운 민들레로 여기고 애써 소중히 가꾸어야 할 것이다. 그 첫째 걸음이 바로 학교혁신의 과정에서 정치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일정과 무관하게

223 Ⅵ. 학교혁신의 한 방안: 사례 발굴과 네트웍 구축 만일 누군가가 이 보고서에서 의미하는 바로서의 학교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서 위의 열 가지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면,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 법과 무관하게 그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다. 이하에서 나는 학교혁신을 추진하는 한 가지 방안으로서 전국의 학교 가운데서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 혁신 사례를 발굴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런 학교와 교사와 연구자들이 서 로 연대하도록 함으로써 학교혁신 사례를 점차 확산해가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다. 이 방안은 내가 고안한 것이라기보다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학교현장의 교사 들이 필요에 의해서 진행해온 것이기도 하다. 나는 단지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 고 보완할 뿐이다. 이 연구에서 학교혁신의 한 방안으로서 학교혁신 사례를 발굴하고 연대하도록 하는 작업을 선택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현장의 교사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방안을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적용 할 경우에 학교 현장 교사의 호응은 다른 어떤 방안보다도 뜨거울 것이다. 둘째는 이 방안이 위의 열 가지 원칙을 고루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원칙 들 가운데 진정성, 교육성, 과정성, 장기성, 탈정치성 등은 다른 방안도 실현할 수 있지만, 자발성, 선택성, 현장성, 체험성, 연대성 등은 이 방안에 의해서 비교적 용 이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이와 유사한 방안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제시되고 부분적으로 시 도되었기 때문이다. 앞의 제2장 제1 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성일제 등(1998) 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개혁에 참여하게 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서 학교개혁 우수 사례를 발굴하여 홍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임연기 등(1999) 역시 학교현장 중심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개혁 우수사례를 적 극 발굴하여 나머지 학교의 개혁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흥주 등(2005) 은 학교 운영, 수업 방법, 학생 지도 등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를 원하는 학

224 교를 공모에 의해서 혁신학교로 선정하여 운영하고, 이들 학교와 행정체제와 연구 기관이 네트웍을 구성하여 상호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김정원 외 (2002) 와 윤정일 외(2002) 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네트웍을 구성하여 학교현장의 문 제를 해결하는 데 지원하는 작업을 실험적으로 하기도 했다. 이하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서 필요성이 제기되고 부분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시도되기는 했지만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그 방안을 앞의 열 가지 원칙을 고려하는 가운데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색해보기로 한다. 1. 학교혁신 사례 발굴과 홍보 나는 지금까지 학교혁신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들과 더불어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교사와 그들이 만들어가는 민들레학교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그 외에도 많은 교사들이 민들레처럼 살아 가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나머지 모든 교사 가 저절로 민들레처럼 살아가고, 이 나라 안의 모든 학교가 민들레형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학교에 아이들과 함께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아이 들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각종 교육활동을 모색하는 학교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우 선 교사들이 스스로 그런 학교에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그런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 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진에 목을 매지 않아도 학교에서 교사로서 보 람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길이 책 속에 이 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이 땅의 학교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 여주어야 한다. 그런 학교는 교사들이 조금만 마음을 돌리고 노력하면 실현 가능하 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많은 민들레형 학교들을 찾아내서 교사들에게 소개해 주어야 한다. 이 보고서에 부록으로 첨부된 여러 학교들의 사례도 그 가운데 하나 다. 그리고 그 소개는 책자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영상을 통해서도 이루 어질 수 있다. 그 소개는 교육부와 교육청 등의 공적인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225 도 있지만, 언론이나 출판사 등의 사적인 경로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지면이나 영상 등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발표회나 토론회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가능한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서 그런 학 교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그 소개 활동이 학교 행정 체제 등의 관 주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열린교육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할 경우에 교사들의 거부감과 반발을 불러일 으킬 수 있다. 이런 학교들을 찾아내어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일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 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학부모들은 우리의 학교 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학교가 진정으로 좋은 학교이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눈으로 현재 자신의 자녀가 재학하는 학교를 바라보고, 그 학 교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대를 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이런 학교들을 찾아내서 소개하는 일은 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자 긍심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민들레형 학교에 근무 하는 학교들은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학교들을 공개적으로 소개하는 일 자체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가치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 인하고, 그로 인해서 민들레교사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일은 나머지 다른 교사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민들레형 학 교, 즉 혁신학교 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학 교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의 심도와 범위, 그리고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것 이 무엇인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행위가 학교 전체, 또는 나라 전 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생되는 문제는 없는지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 학교가 진정으로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을 고려하며, 학교

226 가 처한 여건 등을 고려하는 가운데 학교가 당면한 문제를 교사들이 함께 힘을 모 아 점진적으로 해결해나가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학교가 몇 번째 계단에 올라와 있는지가 아니라, 그 계단을 건전한 방식으로 오르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런 것을 보기 위해서는 연구자 또는 조사자가 반드시 학교 현장을 방문해서 충분한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학생의 처지에서 학교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충실하게 하지 않으면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해바라기를 낳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번 보고서를 쓰는 동안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그 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서 일부 학교는 내가 잘못 보았을 수 있다. 이후의 조사를 통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오류가 수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학교혁신 사례 육성 1) 학교의 선정 우리가 학교에 가지는 희망을 실현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교사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 이 원할 때 그런 장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국에는 많은 교사들이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학교 저 학교에 흩어져 있다. 그들은 각자 근무하는 학교에서 나 름대로 아이들을 위해서 무슨 일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갖은 제약과 질시와 통제로 인해서 그 뜻을 펴보지 못하고 좌절하고 도중에 포기하고 만다. 그와 함께 교사로서의 성장의 길도 막히게 된다. 이런 좌절은 교사만이 아니라 교장도 겪기도 한다. 학교에는 앞서 살펴본 명성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애 쓰는 분이 계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그 뜻을 함께 할 교사들을 만나지 못해서 교사들과 소모적인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런 교사와 교장들이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는 가운데, 갈등을 해결하느라고

227 허비하는 시간과 노력까지도 아이들을 위해서 내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즉 한 학교에서 그들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적인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와 교장 이 한 학교에 함께 근무하는 가운데 기존의 부조리한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학 교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그와 같은 건전한 의식을 가진 교사와 교장을 어떻게 모으고 선별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이고, 둘째는 그 교사들이 어느 학교에 함께 근무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 자와 관련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겉으로는 누구나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사적 인 목적을 마음 속에 감춘 사람이나 집단이 또 있을 수 있다. 심사를 아무리 엄격 하게 하고,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도 이런 사람들을 완벽하게 걸러내는 것은 불가 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둘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첫째 문제도 해결 하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학교에서 그 교사들이 함께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학교에 근무할 경우에 따르는 어떠한 외 적인 보상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교사로서의 보람만을 스스로 보상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과연 교사들이 그런 학교에 근무하 기를 자청할 것인지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교사들이 진정으로 무 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 다. 혁신학교에서 희생과 봉사를 각오한 교사들은 전보의 특례 이외에 그 어 떤 인센티브도 바라지 않는다. 실제 학교혁신을 가져오고 있는 작은 학교 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은 자신이 바라는 교육을 안정적으로 실천하고 그 보람을 아이들에게서 찾고자 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승진가산점이라든 지, 전출시 인사특혜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육활동으로 인한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228 ( 정은성 교사)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민들레형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보 람을 자신의 보상으로 삼으면서 살아갔다. 나는 이런 교사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해도 문제가 되 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좋은 선례를 단 하나 라도 더 만드는 일이지, 포장만 번듯하거나 어느 한 부분만 잘 해내는 천 개의 해 바라기를 길러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학교 행정체제에서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학교는 대부분 소규모 학교거나 벽지학교로서 승진이나 이동에 도움이 되는 가산점수나 부가점수 가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그런 학교들은 승진을 목적으로 하는 교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앞의 강정초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 럼 그들이 학교를 황폐화시키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하나는, 그런 학 교들 가운데 일부 학교의 가산점을 폐지하고 그 학교에 근무할 교사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또는 그런 조건에서 근무할 교사들을 모집하고, 거기에 적합한 학교를 선 정하여 가산점을 폐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농어촌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교육 혜택을 적게 받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부수적인 장점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도시로만 집중되는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또한 학교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대규 모 학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새로운 학교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렇 지만 이렇게 할 경우에 기존의 승진제도를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하고, 그로 인해서 기득권을 가진 교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난점이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가산점도 없고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선호하지도 않는 학교를 선정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에는 기존의 가산점 제도를 수정하지 않고서도 학교 혁신의 의지를 가진 교사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할 수 있다. 이런 학교들은 농어촌뿐 만 아니라 대도시에도 많이 있으므로, 전국 각지에서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장 점도 있다. 그에 따라서 더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게 할 수 있다. 그 대신 이 경우

229 에는 소규모 학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학교의 규모가 커지고, 교사의 수도 많아짐 으로써 소규모 학교에 비해서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자리잡게 하는 데 더 많은 시 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학교들을 지원하기 위한 외부의 연구자나 자원 인사, 행정체제의 인력도 갑자기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제한된 외부 인력의 지원에 대한 수요가 많아짐으로써 지원 자체가 부실해지고, 외부 인력이 고유하게 수행해오던 역할도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 그것은 학교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철저 히 지켜져야 할 진정성의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서 학교혁신 활동 자체가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우려도 있다. 또한 사적인 목적이나 이익을 앞세운 교사 집단이 이런 학교를 이용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 비해서 출퇴근 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적절히 대 비할 수 있다면 이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2) 교육과정 유연화 이와 함께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교육과정 운영 문제 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실제 학력에 관계 없이 동일한 학년은 동 일한 내용을 학습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초등학생 수준의 학력을 가진 고등학생 도 고등학교 내용을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교사들은 정규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고, 수업을 마친 후에 별도의 보충수업을 다시 해야 한다. 이것은 이중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학교가 학생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토 대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한다면 교육과정상의 목표가 아니라 학생의 현재 수준을 근거로 교육 내용과 수준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 생들의 교육과정 이수 여부 역시 출석이나 수업 시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교과 내용을 실지로 학습했는지 여부에 의해서, 또는 그 기간 동안 어떤 내용에서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는지에 의해서 판정되어야 한다. 즉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학교에는 이와 같이 학생의 특성과 수준이나 지역사회의 여건 등에 따라서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 처럼 학교가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면 학교는 학

230 생의 특성과 수준, 그리고 지역사회의 여건 등을 고려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거나 재구성해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정착 되어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3) 주변적 지원 혁신학교가 지역사회나 학교 그리고 학생들의 특성과 수준에 적합하게 교육과정 을 재편성하여 운영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변적인 지원이 필요하 다. 그 지원은 명시적인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운영상의 고려에 의해 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 중 몇 가지 핵심적인 것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들에게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가 혁신학교로 자리잡기 위 해서 교사들은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도 일상적으로 정규수업을 하고, 여러 가지 업 무를 수행하고, 거기에 덧붙여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하는 작 업을 해야 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 은 한두 달, 한두 해 동안 단기적으로 하고 마치는 일이 아니다. 근 10년 동안 지 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라톤 선수가 되어야 한다. 차근차근 천천히 무리하지 않은 가운데 일을 추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이완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 여유의 시간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도 하고, 앞서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는, 교사들이 한 학교에 일정 기간 이상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가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려면 적어도 10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을 수밖 에 없다. 그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줄여가는 가운데 점차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바꾸어서 운영할 수 도 없다.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전문적인 연구자가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교사들 역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

231 하고, 그 교육과정이 학교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될 때까지 한 학교에 지속적으로 근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했을 때 교사들이 충분히 명실상부한 전문가로서의 교 사로 성장하고, 그 학교가 다른 교사들을 위한 현장 연수 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 다. 그러므로 이 학교의 교사들에게는 예외적인 인사이동 규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별도의 재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해 서 운영할 경우에는 그에 따르는 재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 그 가 운데 공립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은 거의 대부분 교육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 서 교육청에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 운영에 준해서 학교에 예산을 지급한다. 그러 나 학교가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해서 운영할 경우에는 일반적인 학교에서 수 행하지 않는 활동을 함으로써 그에 따르는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행정체제 내에서는 그런 활동에 따른 별도의 예산을 집행할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설령 그런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교육청에서는 형평 성 때문에 선뜻 예산을 집행할 수 없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 른 방법은 시범학교 등의 운영을 통해서 별도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할 경우에 기존의 시범학교가 안고 낳았던 폐해를 반복할 수 있다. 이런 부가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재정적인 지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 안은 지역사회의 개인과 집단 또는 기업 등으로부터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받는 것 이다. 최근에 모 기업에서 국가에 헌납한 기금의 일부를 이런 학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넷째는, 학구를 융통성있게 운영하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육성하는 데 있어서 농 어촌의 소규모 학교를 중심으로 먼저 시작하거나, 농어촌 소규모 학교를 포함할 경 우에 이들 학교의 재학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농어촌 소규모 학 교는 적어도 현재로는 거주하고 있는 지역주민의 수가 적어서, 지역주민의 자녀만 으로는 학생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학하고 있는 학생 수가 학교가 수용 가능한 적정 정원보다 적은 경우에 한해서 타 학구, 특히 도시 학교의 학구에 거주하는 학생이 입학하거나 전입학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잠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32 4) 기존 제도의 활용 이와 같이 아이들을 향하여 살아가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싶어하는 교사들이 한 학교에 모여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특성과 수준과 지역사회의 여건 등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하는 학교, 즉 민들레학교 를 만들 수 있는 여 건을 마련하는 것은 새로운 제도나 법률을 만들지 않더라도 이미 기존에 만들어 놓은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실시되고 있는 자율학교와 교사 교장 초빙제와 등을 이용할 경우에 뜻있는 교사들이 한 학교에 모이게 하고, 교육 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와 교장이 한 학교에 모이도록 하는 것은 현재 교육감과 교육장 등에 주어진 재량권만으로도 가능할 것 이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공영형 혁신학교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나는 그 학교를 자율학교라고 부르느냐, 혁신학교라고 부르느냐는 크게 중요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학교의 교사들이 진정으로 민들레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지, 민들레로서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다. 어떤 제도를 이용하건 관계없이 단 한 개의 학교만이라도 이 방안을 시범적으 로 적용해볼 것을 제안한다. 3. 학교혁신 네크웍 구축 앞서 살펴본 민들레형 학교가 현재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으며, 그 난관을 헤쳐오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학교들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이며, 우리에게 잠시 빛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초신성이 될 수도 있 다. 이 학교들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 다른 혁 신학교를 육성하고 그 학교들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현재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그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외부 에서 지원해주어야 한다. 그 지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교사

233 자신에 대한 지원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의 주변에 대한 지원이다. 교사 자신에 대 한 지원은 교사의 전문적인 소양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고, 교사 주 변에 대한 지원은 앞서 언급한 학교의 물리적 제도적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1) 민들레교사의 소양 이 가운데 학교를 혁신하는 데 있어서 핵심에 해당하는 것은 교사 자신에 대한 지원이다. 학교혁신의 핵심은 교사가 지역사회와 학생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학생이 현재 처한 어려움을 지원하는 가운데 학생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재편성하 여 운영하는 것이다. 교사의 주변을 지원하는 이유는 교사들로 하여금 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사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이들과 학교에 투여하고, 그 노력은 교사로서의 수준 높은 전문성을 바탕 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전문성은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 민들레학교의 교사는 교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교과를 문자화 된 정보 형태로 기억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교과를 체화해서 그 자신이 교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교과적인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학자 아무개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학자 아무개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수행했던 탐구의 과정을 자신도 경험해야 한다. 탐구의 대상은 다를지라도 동일한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 선생님, 미술 선생님이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하듯이 국어 선생님 사회 선생님 과학 선생님도 문학을 하고, 사회학을 하고, 과학 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 자신이 학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교과적인 삶을 살아보 이고, 아이들과 함께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학생들의 진정한 학력이 길러질 수 있다. 둘째, 민들레학교의 교사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민들레학교의 교사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뿐만 아니라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어떠한지, 아이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규범과 당위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주의 깊게 보

234 고, 아이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또 아이들에 관해서 잘 아는 또 다른 사 람들의 말을 듣고, 책을 보고 공부해야 한다. 셋째,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서 교사의 교육권 또는 학생의 학습권 등이 강조되고, 그러면서 점점 더 교육 은 사적인 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육은 개인을 위한 일이기 전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기 전에 타인을 위한 일이다. 그 점에서 교육은 권리이기 전에 의무다. 점점 더 복잡하고 대규모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타인과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가야 하는 과정이다. 비록 부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교육과정은 그런 삶 을 압축적으로 집약한 것이다. 교사들은 그런 교육과정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 으로 아이들의 현재를 고려해야 한다. 아이들의 욕구나 흥미를 맹목적으로 따를 수 는 없는 일이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해함으로써 학생들과 지역의 특 수성을 반영하면서도 국가의 전체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 한 비중으로 교육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넷째,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은 교육의 의미, 자연과 사회와 인간, 그리고 삶의 의 미 등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지, 교육을 왜 하는지, 교육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와, 그리고 인간의 삶의 토대가 되는 자연 등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 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학교의 교육활동을 모색해야 한 다.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을 때 학교의 교육활동은 또 다시 또 다른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다섯째,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 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에 의하면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은 다른 학교의 교사들에 비해서 강한 교육적 열의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실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데 그 신념이 해바라기교사들 사이에 있을 때는 정의가

235 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민들레교사들 사이에 있을 때는 하나의 견 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신념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는 그들 사 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그 갈등을 권력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는 서로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기게 된다. 나는 이런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 왔다. 그리고 어느 학교에 서는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민들레학교의 교사들은 더욱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 지혜란 다음 아닌 나아닌 다른 교사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이해할 때처럼 말이다. 2) 민들레학교를 위한 연대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교사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그동안 정부가 교사들로 하여금 이런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도 록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항상 정해진 내용을 하나의 주어진 절차와 방법대로 가르치도록 길러져왔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이 달라지면서 교 사들은 아이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도록 요구받지만 그것이 어떻게 하 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다. 교원평가라는 칼을 들이대고 억지로 하라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날개도 펼 수 없는 좁은 새장에 오랫동안 갇 혀있어서 나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굶주린 새를 막대기로 쿡쿡 찌르면서 이제 새 장이 사라졌으니 당장 날으라고 재촉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새가 퍼덕거리면서 잠시 나는 흉내를 내다가 지쳐 쓰러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새에게 먹이를 주고 날 수 있는 법을 가르치고 힘차게 날개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현 재 교사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교사로서 성장해가기를 희망하는 교사들을 먼저 지원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대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교사들을 이해하고 대해야 한다. 학생을 학생이기 전 에 아이로 보듯이, 교사를 교사이기 전에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 지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건 그 지 원에는 위의 다섯 가지 내용이 반드시 포함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 다

236 섯 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 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공 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사들은 교육과정과 학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 해를 바탕으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적용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작 업은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일을 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교사들이 근무하는 학교에 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함께 공부하고, 현장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 함 께 해결방법을 찾고, 함께 적용하고, 함께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교사들은 전문가들로부터 살아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 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을 알고, 우리나라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 적 합한 이론을 생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 국가의 교육과정을 균형있게 고려 하는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할 수 있다. 이런 지원 과정에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학중인 학생, 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자원봉사자들도 참여하게 할 수 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민들레학교에서 수행하게 될 많은 일들을 나누어 맡음으로써 교사들의 업무 부담 을 줄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을 통해서 체계적인 현장 연구와 연수를 하 게 될 수 있다. 3) 민들레학교들의 연대 이런 외부의 지원은 전문가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민들레학교 교사들끼리도 이 루어질 수 있다. 민들레학교 교사들은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하 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지원, 교육 과정 재편성, 수업 운영, 시간 운영, 시설과 공간 배치, 지역사회 자원의 활용, 학 부모들과의 관계, 교사들끼리의 관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 문제들은 각 학교의 여건과 지역사회와 학생의 특성 등에 따라서 학교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각 학교는 전문 연구자 등과 연대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한 과정과 결과를 다양 한 경로와 방법으로 서로에게 알게 함으로써 서로를 지원할 수 있다. 그 일은 인터

237 넷을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학교 간의 상호 방문을 통해서 이루 어질 수도 있고, 여러 학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각 학교가 수행하고 있는 활동이나 겪고 있는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보고서 등 의 책자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은 필요에 따라서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일정한 시기에 주기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공개 작업을 통해서 민들레학교들이 서로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민들레학 교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도 있다. 나중에 시 도하는 학교들은 먼저 시도한 학교들의 전례를 참고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일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도 민들레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들을 보면서 자신들도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아이들을 위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민들레교사와 민들레학교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많은 교사들이 민들레학교에 참여하게 하고, 더 많 은 국민들이 학교와 교육의 의미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사적인 방향으로만 쏠려있는 교육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을 공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적어도 양자 사이에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 다. 민들레학교들 사이의 연대는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가까운 시도에 소재하는 학교들이 서로 연대해서 하나의 중간 연대를 구성하고, 이 중간 연대를 하나로 묶는 전국 단위의 연대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처럼 민들레학교와 민들레 학교를 지원하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개의 민들레학교들 사이의 연대를 그림 으로 나타나면 < 그림 1> 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238 전문연구자 대학( 원) 생 외부 교사 거간 자원봉사자 후 원 자 교 육 청 민들레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민들레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거간 전문연구자 대학( 원) 생 외부 교사 자원봉사자 후 원 자 교 육 청 거간 전문연구자 대학( 원) 생 외부 교사 거간 자원봉사자 후 원 자 교 육 청 민들레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민들레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거간 전문연구자 대학( 원) 생 외부 교사 자원봉사자 후 원 자 교 육 청 < 그림 1> 민들레학교 연대 구성도 4) 민들레학교 연대를 위한 기구 이러한 민들레학교를 위한 연대, 민들레학교들의 연대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확 산되도록 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전국의 모든 학교가 민들레학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민들레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지원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한 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연대를 구성해서 지속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 일은 자연적이고 우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에는 비체계성으로 인해서 시행착오가 많아 지고 소모적일 우려가 있다. 그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들레처럼 살고 싶어하 는 교사와 교장, 민들레들이 근무할 수 있는 학교, 그런 교사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 연구자, 그들로부터 배우고 도울 수 있는 봉사자, 그들의 활

239 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후원자들을 찾아내서 서로 소개하고 안내하고, 학 교의 진행과정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이후의 방향을 안내할 수 있는 거간( 居 間 ) 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연대 이건, 전국 단위로 형성되는 연대이건 그런 연대를 매개하는 거간의 역할을 누가 수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적합한 기관은 교육청이나 교 육부와 같은 학교행정기관이다. 그러나 학교행정기관은 그 일을 수행하는 데 몇 가 지 제약이 있다. 첫째는 학교행정기관에는 인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육청 에는 현재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느라고, 교육청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장학을 소홀 히 하고 있다. 장학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장학사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양승실 등(2001: ) 은 각 학교의 교내 장학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교과 장학 지원 연계망 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고, 그것을 실 현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최소 2,140명에서 4,120명의 장학사를 추가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처럼 전국적으로 장학사를 대폭 충원한다고 해도 현재의 행정체제에 의해서 선발되는 장학사들 가운데 대다수는 해바라기교사일 가 능성이 많다. 현재의 행정체제 하에서는 새로운 장학사를 선발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또한 앞의 제1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학교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리 를 자주 이동함으로써 이 일의 의미와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업 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로 인해서 민들레학교를 지속적으로 살펴보지 못하 고, 각 학교에 대한 지원을 적절히 추진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거기에다가 교육청 은 상급기관의 지시와 감독을 받고, 상급기관은 정치적 요구에 따라서 실적을 필요 로 하므로, 실적을 위해서 성급하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우려가 있다. 그로 인해 서 또 다른 해바라기학교와 해바라기교사를 양산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민들레 학교 연대의 거간으로서 학교행정기관은 적합하지 않다. 학교행정기관에 새로운 업 무를 부과해서 기존의 일상적인 업무까지도 소홀히 하게 하는 것보다는 일상적인 행정업무만이라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낫다. 학교행정기관은 민들레학교를 지 원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관으로서 남아있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240 이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은 한국교육개발원이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과 같은 전문적인 연구기관을 모색해볼 수 있다. 나는 이 두 기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므 로 그 기관이 거간으로서 적절한지 여부는 단정지어서 판단하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두 기관 역시 인력이 제한되어 있고 고유의 업무가 있다는 점이다. 현 재의 인력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민들레학교들의 연대를 조직하고 운영 하는 업무를 맡게 할 경우에는 기존에 수행해오던 고유의 연구 기능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두 기관의 직원들은 교육부나 교육청의 경우보다는 안정적이 지만, 민들레학교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지원할 수 있을만큼 안정적이지는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두 기관 역시 민들레학교의 연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두 기관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함으로써 기 존의 고유한 기능을 소홀히 하게 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기능을 충실히 수행함으 로써 민들레학교를 지원하는 기관 가운데 하나로서 남아있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민들레학교를 지원하고 연대를 담당하는 별 도의 기구를 만들기를 제안한다. 나는 이 기구가 민들레학교와 민들레학교 연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 기구는 정권의 변동과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나는 하나의 민들레학교가 정착되는 데는 적어도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민들레학교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교육과 학교에 대한 국민들 의 인식이 전환되는 데 또 다시 그로부터 10 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면 이 민들레학교연대를 담당하는 기구 역시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있어 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이 기구는 정치적 변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즉 정권과 무관하게 기능을 수행하고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학교교육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 기관들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학교에는 여러 기관들이 관련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 적이면서 강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은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이 외에도 교육과정평 가원, 한국교육개발원 등이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방식으로는 아니지만 관련을 맺고 있다. 그 밖에도 각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그리고 지역사회 역시 간접적으로 각

241 학교와 관련을 맺고 있다. 물론 교육부나 교육청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관들은 평상 시에는 학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민들레학교 등을 지원하고자 할 때는 이런 기관들이 중요한 기관으로 떠오르게 된 다. 그렇다면 민들레학교를 지원하는 데 이런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는 누군가가 한 학교를 중심으로 이들 기관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역할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들레학교 연대의 거간은 이러한 기관들로부터 독립된 가운데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 기관들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구는 새롭게 신설해서 운영할 수도 있고, 기존의 관련 기관들을 활용하 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설해서 운영할 경우에는 그 체계가 비교적 선명하고 민들레학교를 지원하는 일을 좀 더 조직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그 기 구를 신설하는 동안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잠정적으로 이런 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비교적 적합한 유사한 기관을 활 용하기를 제안한다. 이 일차적인 고려 대상은 교육혁신위원회이다. 교육혁신위원회는 현재도 이와 유 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교육혁신위원회의 일부 부서를 재편함으로써 이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교육혁신위원회에 이런 기구를 설치할 경우 다른 기관을 활용할 때에 비해서 여러 관련 기관들을 중재하는 데는 상대적 으로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교육혁신위원회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고, 대통령 은 임기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학교혁신을 위한 중 요한 일반원칙 가운데 하나가 않다. 탈정치성 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방안은 적절하지 그 다음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상은 민간 연구기관이다. 예를 들면 한국교육연구 소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교육연구소는 민간 연구기관임에도 비교적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으며, 부산교육연구소, 충남교육연구소 등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민들레학교들을 연대하는 데 비교적 용이할 수 있다. 그렇 지만 한국교육연구소는 교육혁신위원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러 기관들을 중재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셋째로 고려할 수 있는 대상은 전국 각 대학의 교육연구소다. 현재 서울대학교

242 사범대학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 대학의 사범대학과 교육대학교에는 교육연구소 또 는 그와 유사한 연구소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 연구소들을 연계하고, 이 대학의 교 수와 학생들이 각 지방의 한두 개의 학교와 연대해서 민들레학교를 육성하도록 하 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에 연구자와 현장 교사가 밀접하게 연결되 고, 대학원생이나 대학생들이 학교의 현장을 익히고 실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각 대학의 교수를 비롯한 연구 인력의 한계로 인해 서 대학 고유의 교수 기능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기도 하다. 4. 학교혁신 네트웍 운용 이와 같은 민들레학교 연대가 구축되고, 그 연대를 주관할 수 있는 기구가 마련 되면, 그 연대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1) 조사 연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조사 작업이다. 그 조사의 내용에는 크게 다음 세 가지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민들레학교에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교사들과, 민들레학교를 지원하고자 하는 연구자와 후원자가 전국에 얼마나 있으며, 그들은 어떤 요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둘째는 전국의 여러 학교들 가운데 민들레학교를 시도하기에 적당한 학교로서 어떤 학교들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셋째는 현재 전국의 각지에서 교사들이 스스로 민들레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례를 지속적으로 조사해서 수집하는 것이다. 2) 안내 지원 조정

243 연대가 수행해야 할 둘째 역할은 위에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교와 지원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들레교사와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민들레학교 내, 또는 민들레학교와 지원자 사이, 지 원자들 사이에 갈등이나 불일치가 발생할 때 조정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조정의 역할은 하나의 민들레 학교를 지원하는 여러 기관이나 집단 또는 개인들의 견해나 이해관계가 달라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이나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꼭 요구된다. 3) 기록 연구 연대가 수행해야 할 셋째 역할은 민들레학교와 민들레연대가 형성되고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혁신학교를 만들어가는 모델을 개발하는 일이다. 민들레학교와 민들레연대가 형성되고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을 근거로 하여, 민들레학교가 형성되고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분석하고, 각 단계에 따라서 주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등을 확인함으로써 민들레학교를 육성 하는 좀 더 효과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여러 민들레학교들을 비교하고 분 류함으로써 지역이나 학교급에 따른 다양한 민들레학교들을 유형화하고, 그에 적합 한 민들레학교 육성과 확산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4) 홍보 연대가 수행해야 할 넷째 역할은 전국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또는 민들레연대의 지원 하에 만들어져가고 있는 민들레학교 사례들을 다양한 매체와 경로와 장소를 이용하여 여타의 교사와 연구자와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 민들이 학교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민들레학교와 민들레연대를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5. 후속 작업을 위한 제언

244 1) 실험적 연대 구성 운영 이상의 내용은 내가 지금까지 기존의 학교개혁 관련 연구물들과 학교혁신 사례 학교들을 부분적으로나마 현지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제시한 학교혁신 방안의 하나 다. 이 학교혁신 방안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기존의 학교개혁 방안과 차이가 있 다. 첫째는 교사의 자발성을 기초로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방안은 교사 에게 별도의 유인가를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는 전국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방안은 현실적으로 학교혁신의 의지가 있는 교사와 현재의 학 교행정체제 하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혁신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적으로 선 정해서 적용한다. 셋째는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교혁 신 방안들은 제도를 통해서 학교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와 달리 이 방안은 제도 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학교혁신의 의지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땀흘려 노 력하는 방식으로 학교혁신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점이 이 방안의 가장 중요 한 특징이다. 따라서 이 방안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실지로 이 방안을 전국의 많은 학교 가운데 단 한 개의 학교에 대해서 만이라도 적용해서 운용해야 한다. 나는 그 구체적인 적용의 방안으로서 앞서 민들레학교 연대를 담당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검토한 세 기관 가운데 뒤의 두 기관, 즉 한국교육연구소와 일부 대학 의 교육연구소로 하여금 실험적으로 이 방안을 적용해서 운용해보도록 할 것을 제 안한다. 이 실험적 시도는 다음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는 아직 민들레학교 연 대를 주관할 수 있는 기구가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 학교 들의 자발적인 학교혁신 활동과 그들의 연대를 잠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둘째는 이 실험적 시도를 통해서 민들레학교 연대를 실험적으로 구성하여 운용하고, 민들 레학교 육성과 연대를 위한 기초적인 조사 및 기록 작업을 할 수 있다. 셋째는 이 실험적 운용을 통해서 어느 기관이 민들레학교 연대를 주관하는 기관으로서 좀 더 적절한지 확인할 수 있다

245 2) 기초 조사와 연구와 홍보 현재 상황에서 학교혁신과 관련해서 수행해야 할 또 하나의 작업은 전국에 자발 적으로 학교혁신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 등의 인력이 어느 정도가 갖추어져 있는지, 이들을 후원할 수 있거나 후원하고자 하는 자원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현재 연구자가 조사한 학교들 외에도 자발적으로 학교혁신을 위해서 노력하는 학교들을 추가적으로 조사해서 발굴하여 홍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 결과에 기 초해서 학교혁신의 과정과 유형을 분석해서 학교혁신의 모형을 정교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 역시 민들레학교 연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수행해야 할 일 이다. 3) 인력 양성 민들레학교 연대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져서 운용되기 전에 또 하나 해야 할 일은 그 연대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연구자들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연구 전체 를 통해서 확인한 바와 같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혁신은 정치-공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양적연구 방법을 적용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연구자 자신이 학교현장에 거주하거나 자주 방문하여 관찰함으로써 학교의 전반적인 상황과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 등을 넓고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문제를 확인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교사와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질적연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질적연 구에 익숙해지는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민들레학교 연대를 본격 적으로 만들어져서 운영하기 전에 이 연대에 참여할 사람들을 질적연구에 충분히 입문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그 준비는 별도의 연수를 통하지 않더라 도 민들레학교 연대를 실험적으로 운용하거나 학교혁신 사례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두 작업은 민들레학교를 육성하고 확산하기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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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Ⅶ. 민들레 세상을 꿈꾸며 1. 민들레학교 운동 이상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학교를 혁신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보았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그 동안 우리나라 정부가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기존의 연구자들은 기존의 학교개혁 정책 이 왜 실패했다고 보고 있는지,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기존의 학교개혁 정책이 실패한 원인으로서 교사들의 저항, 개혁 추진 방식의 문제, 관료적 행정체제, 사회의 변화, 학교 현장에 대한 연구자의 이해 부족 등을 제시하고, 각각의 원인에 대한 진단을 근거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 했다. 최근에는 하나하나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방안들이 개별적으로 또 는 종합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이 2005년 5 31 교육개혁 조치가 시행된 이후 지난 10 여 년 동안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각각의 대안은 실효를 거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늘 새로운 대안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로운 대안 자체가 기존 대안의 무용성을 입증한 다. 새로운 대안이 번번히 실패한 이유는, 그 방안들이 우리나라 학교 제도의 심층 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최 근에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 여러 개혁방안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많아보인다. 기존의 학교개혁 정책과 최근에 발표되는 개혁방안들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는 학교의 문제를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고, 해결책 역시 정치- 공학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모색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에 의해서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고, 새로운 학교개혁 정책이 학교 구성원 들에 의해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교육- 해석적 패러다임을 모색했다. 그 것은 학교의 구성원들, 특히 교사들을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248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상황을 나름의 관점에 의해서 해석하고, 그 해석에 기초해 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사들이 어떤 관점에 의해서 상황 을 해석하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에 기초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리고 그 대안을 적용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교육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패러다임에 근거해서, 최근에 각 기관에서 학교혁신 사례로서 선정된 학교 29개를 조사하여 1 차 분석하고, 교육인류학의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11개 학 교를 현지조사하여 좀 더 상세하게 파악했다. 그 결과 각 학교는, 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활동들의 심도와 범위가 어느 정도 깊고 넓은가에 따라서 학예회형, 운동회 형, 특별반형, 보통반형으로 분류될 수 있었고, 이 학교들은 다시 그 활동들이 궁극 적으로 학생을 지향하는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각각 민들레 형과 해바라기형으로 구분되었다. 민들레형에는 특별반형과 보통반형이 포함되었 고, 해바라기형에는 학예회형과 운동회형이 포함되었다. 나는 이 가운데 민들레형 의 학교가 혁신학교라고 보았다. 학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 고,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학교 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두 가지 학교 유형 가운데 해바라기형 학교에서는 관리자와 일부 교사가 결 합해서 전시성 행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학생들이 희생되고, 학교가 지역주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교는 교육청 등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 것은 교육청 등과 같은 학교행정기관은 인력이 제한되어 있는데 다가 담당자의 이동이 잦고, 정치적 영향을 받음으로써 항상 실적을 요구받는 등의 제약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한 삶과 승진을 위한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많은 교사가 승진의 길을 택한다. 최근에는 교사들이 일찍부터 승진의 길을 택함으 로써 그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진다. 그것은 선배 교사들이 공개적으로 경쟁을 부 추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교육정책이 나올 때마다 그에 따른 실적이 필요하 고, 그 실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나머지 일부 교사들은 교사이기를 포기한 교포교사로서 살

249 아가기도 하고, 그 나머지 중에서 일부 교사들은 그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보람 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 교사들은 작 은 학교를 찾아서 함께 그 꿈을 실현시키기도 한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대부분 해바라기교사들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승진 체계에서는 해바라기교사로서 살아가지 않고는 승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학교를 민들레교사로 가득차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아이들 희생시키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해바라기교사를 없앰으로써도 가능하지만, 그것은 당분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교사가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 또 설 령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교사가 있다고 해도, 그 해바라기교사들 역시 우리 나라 사람이다. 그들도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현재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교사, 민들레형의 학교를 부각하고, 민 들레 형의 학교를 조금씩 더 만들고 알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머지 다 수의 교사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삶 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학부모들도 학교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면 서 살아가고 싶어하는 교사들을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 또는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근무하기 꺼려하는 학교에 함께 근무하도록 하는 길을 제안했다. 그들로 하여금 아 이들을 이해하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그런 학교를 하나둘씩 늘려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학교가 충실하게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서 교육청을 비롯한 전문 연구자, 학생, 자원봉사자, 후원가들이 연대를 이루어 학 교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나는 이 일은 기존의 교육행정기관이나 연구기관이 주도해서는 제대로 수행해낼 수 없다고 보았다. 그 기관들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인력의 제한 등과 같은 구조적 인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불필요한 거부감이나 저항을 불러일으킬

250 수도 있다. 나는 이 일은 특정한 기관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하는 사업이나 업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교육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대학입시 제도, 학부모의 그 릇된 교육열, 교사들의 무능과 나태, 지나친 지식 위주의 학교 교육 등을 원인으로 서 지적하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보기에는 단 한번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격적인 노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원인으로 돌리면서 자신 의 현재를 정당화하거나, 때로는 그 원인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한 경 우도 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획기적인 제도나 정책 또는 전략에 의해서 간단하고 값싸게 해결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간단하고 값싸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 제의 뿌리가 깊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그 해결 과정도 복잡하고, 그것이 오래 된 것인 만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또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그 비용이란 다음 아닌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고,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정성 과 노력이다. 그런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 런 정성과 노력이 쌓이고 또 쌓일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거기에 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성을 들이는 일은 교사나 연구자나 학교행정 담당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학부모와 시민들이 함께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운동 이 필요하다. 이름하여 민들레학교 운동 이다. 나는 이 방안이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거나 최상의 방안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와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 말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안은 기존의 학교개혁 정책이나 방안과 한 가지 점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 방안은 해법이 아니라 실천에 대한 제안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학교개혁 정책과 관련된 국내 연구물들을 40여 편 검토해보았다. 그 연구물들을 보면서 나는 뭔지 모를 아쉬운 점을 느꼈다. 그 연구들이 제시하는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면 다양한 방안들이 모여서 해결하고자 하 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거의 대부분의

251 연구물들이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교사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사가 학교를 개혁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교사 연수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줄곧 해 왔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교사들이 연수를 통해서 진정으로 변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연수의 내용과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교사들이 그 연수를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야기해야 한다. 즉 말을 억지로 물가에 데려가기보다는 말이 스스로 목이 말라서 찾아 마시 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즉 당위와 목표만 있고 구체적인 실천의 방안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인 실천의 방안으로서 민들레학교 운동을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이 민들레학교 운동이 유일하거나 최상의 실천 방안은 아니다. 또 다른 방안이 있 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최상의 방안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다. 우리에게는 늘 차상의 방안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최상의 방안이 되게 하는 것은 최선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의 실천 은 하지 않으면서 최상의 방안만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 다. 이제는 최선의 실천을 할 차례다. 2. 누구나 가슴에 민들레 홀씨를 하나씩 나는 여기서 실천의 한 방안으로서, 교사들을 민들레교사 와 해바라기교사 또 는 교포교사 로 나누고, 민들레교사 들을 중심으로 민들레학교 운동을 전개해 나 갈 것을 제안하고는 있지만, 그 나머지 교사들은 여기서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는 않는다. 민들레교사들을 중심으로 민들레학교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현재의 상 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나는 모든 교사는 적어도 교직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만큼은 민들레교사였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교직 사회에 머무르는 동안 점점 민들레로서의

252 자신을 잃고 해바라기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김도엽 교사는 현재 민들레교사와 해바라기교사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민들레교 사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지나면 해바라기교사로서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현재 해바라기교사로서 살아가는 교사들 역시 한때는 민들레교사로서 살았고, 민들레교사와 해바라기교사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을 것이 다. 아마 나도 계속 교직에 남아있었더라면,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해바 라기교사로서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지금쯤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해바라기교사로 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현재 아이들에게 짓고 있는 죄는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한꺼번에 갚으리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단지 그 죄를 갚을 기회가 오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해바라기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교사들도 상황이 바뀌고, 민들레교사로서의 삶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면, 민들레교사로서의 삶이 훨씬 더 보람있고 가치있다는 것을 알면, 학교에서 민들레교사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교사들을 칭송하고 존경하면 그들도 역시 민들레교사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구분하고, 민들레교사를 먼저 운동의 중심에 놓는 이 유는 누군가는 먼저 시작하고, 그 시작은 준비가 되었거나 시작하기가 용이한 사람 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이기 때 문이다. 달리 말하면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기존의 정책이 범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이 먼저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희망을 넓혀 갈 때 그 나머지 교사들도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동안 가슴에 품어두기만 했던 민들레 홀씨를 꺼내서 남몰래 화분에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가꿔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날이 꼭 오기를 기대하고 믿는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이 운동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 다. 민들레학교가 전국에 몇 개 만들어졌는가, 그 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가, 그 학교에서 서울대학교에 몇 명 들어갔는가는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53 3. 민들레와 사자이빨 민들레를 영어로는 댄더라이언(Dandelion, 사자이빨) 이라고 부른다. 민들레의 잎이 사자이빨처럼 생겼다고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나는 민들레교사들을 보면 서 가끔 사자이빨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그들은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적이 다. 그들은 매사를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배우면, 그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궁리를 한다. 새로운 사물을 접하면 그것을 어떻게 수업 시간에 교재로 사용할지 생각한다.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 다음날 아이들에 게 들려준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기서 무 한한 보람을 느낀다. 내가 부러울 정도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보람이 위기에 처할 때가 있다. 다른 교사와 무엇인가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서로 아이 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이다. 그럴 때 그들은 서로 자신의 가치를 상대 에게 관철시키려고 한다. 민들레에서 사자이빨로 변한다. 그러다가 파국을 맞기도 한다. 학부모들과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민들레운동을 전개하다가 보면 이처럼 민들레교사들이 서로 사자이빨이 되어서 으르렁대는 일이 안 생길 수 없다. 해바라기교사에 대해서 그런 모습을 보 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 현재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 과 연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혹시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것 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것 이 아닌지를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가르치는 일은 근본적으로 아이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화분이라고 생각해보자. 그 화분에는 무엇인 가 하나를 심으면 다시는 아무것도 심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화분이 내게 주어졌다고 생각해보자. 그 화분에 선뜻 무엇인가를 심을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심는 그 순간 그 화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심을 수 없게 된다. 화분에 무엇인가를 심는 일은 다른 것을 심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그 순 간 아이들은 다른 더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를 만

254 남으로써 더 좋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죄를 짓는 일이 아닌가? 민들레는 잎을 땅에 바싹 대고 땅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잎으로 땅을 할퀴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교사와 마찬가지로 민들레교사 도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교사의 숙명이 다. 그 점을 자각한다면, 서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 서로 제 이빨로 땅을 할퀴려고 하지 말고 할퀴지 않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길 이 서로가 낮아지는(under-stand)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배우고, 아이 들에게 배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들레학교 교사로서의 길을 먼저 간 조윤미 교사의 다음 말이 그 길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사초등학교에 와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가운데 선생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선생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선생도 배우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느 그림책을 보여줄 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아 이들, 삽질이 서툰 나를 보고 삽을 빼앗아 묵묵히 푹푹 땅을 파는 아이들,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은행잎 이불을 만들어 덮자는 아이들. 그 들에게 숨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며 미안해, 그건 내가 잘못했어. 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날 발견했다. 아이들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 른이라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권위에 둘러싸여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둔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들.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고 배우 는 법을 가르쳐준 순수한 스승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나는 마음이 편안 해졌다. 모르는 것에 대해 대담해졌고, 아이들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 서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 행동과 말 하나 하나가 나를 가르치는 것임을 알게 되자 나는 학 교 오는 게 즐거워졌다. 오늘은 또 무얼 새롭게 배우게 될까? 기대하며 학교에 오게 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나를 가

255 르치는 사람이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들 하나하나가 귀하게 여겨 졌고, 또 소중하게 느껴졌다. 말 하나에도 마음을 담았다. 그런 귀한 아이 들에게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눠줄 때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 이 났으며, 알뜰 장터가 열리거나 체험학습을 갈 때는 어렸을 때 소풍 가 지 전 날 밤처럼 잠을 설쳤다. 어느 새 나는 아이가 되었다. 근엄하고 권위 적인 선생의 자리에서는 맛보지 못하던 기쁨이며 환희였다. ( 조윤미 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잘 배우는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입 으로는 가르치지만 몸으로는 배우는 일을 잘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사는 지식을 공부한 사람이며, 지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 하고 세상과 대화함으로써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해가는 일이라는 것을. 지식을 공 부하는 것은 내 부와 지위를 쌓고 권력을 높여서 세상을 내 뜻대로 바꾸기 위해서 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바꿈으로써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라 는 것을. 내가 보기에 이것이 오늘날의 학교교육, 그리고 지식교육이 빠트리고 있 는 것이다. 민들레학교와 민들레교사가 우리의 학교와 교육에서 회복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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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학교혁신 사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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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학교혁신 사례 차례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이여! 251 김대봉( 강원 평창 면온초등학교 교사) 세상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희망을 만들고 269 서길원( 경기도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고단해도 행복한 주인으로 살아 온 사 년 289 최은희(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교사) 농촌학교의 희망, 그 대안을 찾아서 301 송수갑(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교사) 계수초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삶 만들기 331 신성호( 경기도 시흥 계수초등학교 교사) 지난한 행복한 학교로의 꿈 351 오일창(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교사)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 371 김복희( 부산 덕천중학교 사회복지사) 내가 작은 곰내미학교에서 배운 것 389 이민재 ( 경남 거창 웅양중학교 교사)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교육 411 김병건( 충남 논산 대건중학교 교감) 늘 푸른 나무 학교 427 김미숙( 전북 남원 용북중학교 교장) 학교교육의 현실과 청년교사들의 이상 443 이정로( 충남 천안 복자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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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이여! 김대봉( 강원도 평창 면온초등학교 교사) 천직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애인( 愛 人 ) 들을 보기 위하여 학교에 간다. 이렇게 집과 학교를 갔 다왔다 한지도 벌써 15 여년이 되어 간다. 지난 15여년의 교직생활은 험난한 길의 연 속이었고,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채 학교에 나가고 있다. 교대는 왜 지원했습니까? 내가 춘천교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면접시험을 치를 때 한 교수님께서 이렇게 질문 했다. 문맹으로 고생하시는 홀어머님의 안타까움을 눈으로 보며 살았기에, 이제 제가 선 생님이 되어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 그들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어서 지원했습니 다. 이렇게 나는 1987 년에 춘천교대에 입학했다. 다른 사람들을 잘 가르치겠다며 자신 있게 교대를 지원하여 학교에 다니게 된 나였지만 정작 내 자신의 삶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였다. 대학생 시절에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며 생의 의미와 목적 도 마음 속에 새기어 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승은 없는가 란 책을 읽고 흥분 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 업 했다. 첫 애인들과의 만남과 장애물 나는 내 성적에 힘입어 1991년 3월 1 일자로 발령이 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나는 한 달 전부터 나를 기다릴 아이들을 얼마나 고대하며 만나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268 그러나 3월 1 일이 되어서도 발령이 나지 않았다. 나는 무척 실망하였다. 무시험 졸업 제도가 사라지고 공채시험이 시작된 1991년도에 딱 걸려서 대학성적으로만이 아닌 논술과 면접시험이 추가되면서 내 등수가 뒤로 많이 밀려난 것이었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던 차에 교육청으로부터 3월 10 일에 전화가 왔다. 김대봉 학생, 3월 15 일자 발령났어요.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첫 발령지는 내게 생소한 철원이었다. 철원교육청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춘천에서 화천을 지나 철원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나는 버 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보았다. 철원의 하늘이 너무나 환하고 아름다워 내가 그 속 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축하한다는 환호 소리 를 내주는 나무들도 보였다. 나는 교대에 재학하는 동안 나의 애인( 愛 人 ) 은 학생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내가 진정한 스승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다 꿈과 행복을 심어 주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했 다.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라고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은 기뻤다. 선생님은 복받았어요. 아직 발령날 때가 아닌데 선생님 앞에 대기자가 모두 여성 이라서 선생님이 뽑힌 거예요. 첫 부임지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가르쳐 주세 요. 이렇게 교육장님의 간단한 말씀을 들었다. 이유인즉 내가 가야할 곳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서 여자가 아닌 남자가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갔다. 한참을 가다가 비포장도로 진입하 여 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차밖에는 2명의 군인이 M16소총으로 우리 쪽을 겨누고 있었고, 1 명은 우리들의 신원을 조회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민간 인 통제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 학교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과 함께 내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 15 분 정도 더 가니 허술한 학교가 보였다. 김화초등학교 운장분교장. 바로 여기에 첫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이 있었다. 나의 애인( 愛 人 ) 들은 남자 3 명, 여 자 1명의 1학년 학생들과 2학년 여자 1 명. 모두 5 명뿐. 나는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것이 나의 교직 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애인( 愛 人 ) 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269 운장분교는 그 해 1991 년에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 5, 6학년 학생들은 본교로 가 고 1, 2 학년은 내가, 3, 4 학년은 분교장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한 달도 안 된 나는 복식학급 담임교사가 된 것이었다. 대학교 교육과정에서 말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복식학급과 복식수업, 그것을 내가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 체험하 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꿈꾸어 오던 30여명의 학급 운영에 대한 꿈이 순식간에 무너 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겨우 5 명뿐이며 복식수업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내가 이 아이들에게 40분 동안 2개 학년의 교과를 동시에 제대로 지도할 수 있단 말인가? 왜 대학교에서는 이런 일선교육 현장의 모습을 위한 예비 교육은 커녕 얘기조차 해주지 않았는가? 이러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교대 교수님 께서 1 년에 한두 번 추수지도를 나오시는데, 그 때 나는 교수님에게 대학교에서 복식 수업이나 복식학급 운영에 대한 예비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추수지도로 나 오신 분은 그렇게 노력해 보겠노라고 말씀하시고 가셨지만, 이후에 별로 달라진 것도 없었다. 나는 복식학급 담임과 함께 경리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초보적인 복식학급 교육 과정 운영과 경리업무 처리의 미숙함으로 나는 이 일들로 인해 몹시 고통스러워 했 다. 평상시에는 그래도 나는 애인( 愛 人 ) 들과 나름대로 신나고 즐겁게 지냈다. 운장분교 는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있었고, 나는 학교 관사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아이들 은 분교장과 학교기사가 퇴근한 후 5 시가 되면 어김없이 관사로 놀러왔다. 주위가 거 의 모두 지뢰밭이어서 아이들은 마땅히 놀데가 없었다. 학교 운동장과 길 그리고 관 사 건물 밖으로는 온통 지뢰 조심 이라는 주의 표시가 있었다. 나는 기타를 치면서 애인( 愛 人 ) 들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집에서 일어난 일들로 얘기하고 꿈도 나누면서 서로들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시간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정규 수업시간만 되면 나는 그들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교단에 설 수가 없 었다. 그 때 나는 내 모습의 초라함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좋 을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수업시수도 제대로 못 지키고, 가르쳐야 할 내용도 올바 르게 지도하지 못했다. 그 답답함을 어찌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거기에다가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시간에 학교 업무인 경리를 미숙하게 처리

270 해야만 하는 현실이 더더욱 싫었다. 교직생활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대 학시절은 그래도 꽤 잘 나갔는데. 나에게 맡겨진 이 5 명의 소중한 애인( 愛 人 ) 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지도 못한 채 나는 그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이장님을 비롯한 몇몇의 마을 주민들이 학교의 통폐합을 추진하였는데 그 주장이 이루어져 학교가 폐교되기 때문 이었다. 이렇게 나의 첫 학교의 1 년 생활은 복식수업 과 미안함 이라는 두 낱말로 정리되었다. 미안하다.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아. 애인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이듬해인 1992년 3월에 나는 6학급 규모의 벽지학교인 토성초등학교를 나의 두 번째 학교로 맞이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4 학년 단식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들은 15 명이나 되었다. 2 년 동안 애인( 愛 人 ) 들과의 생활 은 대체로 순조롭고 즐거웠다. 그리고 동학년 연수나 장학지도를 받을 때에는 수업공 개도 하게 되었다. 수업공개 후 교실에서 협의회를 할 때, 내가 장학사님께 궁금한 것을 직접 질문했 다. 그랬더니 장학사는 선생님은 분교에서 근무해 위아래도 제대로 모른다. 교무, 교 감, 교장순으로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잘 모른다. 윗사람이 얘기를 할 때에는 잘 들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화가 났다. 내가 분교를 첫 발령지로 선택했 단 말인가? 나는 사실 원주시를 1 희망지로 냈었다. 만약, 신규교사를 6학급 이상의 학교로 발령을 냈다면 결재순서도 제대로 모른다는 말과 제대로 된 단계를 거쳐서 질 문하라 등의 무시하는 발언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복식수업과 경리 업무로 힘들어하지 않고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직의 첫 단추도 제대로 끼우게 되었을 것이다. 초임지의 운장분교에서는 복식학급의 복식수업이 가장 큰 문제거리가 되었지만, 6학급 규모의 학교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군교육청의 체육실적을 위해 체육업 무를 맡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체육의 주요 업무는 체육교과 지도와 거의 무관한

271 주로 육상 과 수영 선수의 육성훈련이었다. 지금도 그 때 키가 큰 최은미 학생의 어 머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날, 은미의 어머니께서 은미에게 날씨도 춥 고 수영장 물도 따뜻하지 않으니 수영장에 가지 말라고 하자 은미가 이렇게 대답했다 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불쌍해서 내가 수영장에 가는 거야. 내가 안 가면 우리 담임선생님 이 혼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또다시 고민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진정한 스승인 가? 내가 학생들의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를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에 왜 학부모도 싫 어하고, 학생도 원하지 않고, 교사는 더더욱 싫어하는 육성종목을 평상시에는 물론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나와서 지도해야 하는가? 학교장도 나도 내 자녀가 방학 때 학교에 나와서 운동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고 속내를 드려내셨건만, 누구를 위 해서 훈련을 해야한단 말인가. 도대체 교사는 무엇 때문에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이 후에도 나는 강포초에서 2 년, 서면초에서 3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주로 체 육, 경리, 교무 업무를 맡았다. 전근을 갈 때마다 업무나 학급담임에 뭔가 좀 달라지 겠지 하면서 기대하였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진리만 깨닫게 되었다. 강포 초등학교에서의 2 년은 더욱 혹독하였다. 첫해에는 담임없는 체육 전담교사와 체육업 무, 경리업무가 나에게 주어졌다. 둘째 해에 새로운 업무 분장을 할 때 3학년 담임에 경리와 체육 업무가 주어지기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가 교사는 교장 의 명을 받아서 학생을 지도한다 는 교육법 제 15 조의 말들도 오가게 되었다. 이 때, 어느 누구도 위로나 격려의 말을 나에게 해준 교원은 없었다. 발령을 받아 5년도 채 되지 않아 학생들의 교과지도나 생활지도가 아닌 업무분장 이라는 거대한 짐과 체육 실적을 위한 언쟁으로 사표라는 말까지 듣게 되니 담임에 대한 매력과 나의 애인( 愛 人 ) 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되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나에게는 짐스럽고 귀찮기만 하였다. 어디에 가서 누구랑 이런 일들을 의논하고 해결해야 하는가? 그렇게도 내게 꿈과 생명을 주었던 대학 시절의 애인애찬론은 여 기서 끝을 맺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결국, 강포초에서 2년의 세월을 끝마치고 대학원에 가서 좀더 공부를 해야 되겠다 는 마음으로 20 학급 이상의 큰 학교로 내신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암초는

272 있었다. 체육 특기교사로 그 학교에 가겠는가 물어 보는 장학사님의 말씀에 나는 공 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체육을 맡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대학원 공부 때문에 큰 학 교로 가고자 합니다. 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서면초 등학교로 가야만 했다. 서면초등학교는 6학급 규모의 꽤 큰 학교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승진점수가 전혀 없었던 학교일뿐만 아니라 이동이 많은 군인의 자녀가 많아 감당하기가 그리 수월치 않는 학교였다. 원하지도 않는 학교에 가게 되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항의하였더 니, 그래도 장학사님의 말씀은 좋았다. 선생님의 일정 점수가 좋으니 그 학교에 가 서 농어촌 거점 육성 학교에 주역자로서 능력을 발휘해 보세요. 그나마 이 말에 위 로를 얻고 그 학교에 실제로 가보니 5 학년 담임에 군 지정 특별활동 운영, 경리, 3일 에 한 번씩의 숙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업무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 으로 생각해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숙직과 경리 업무로 인해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만 했다. 숙직을 하는 날에도 학교 교무실에서 경리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정리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원자격증을 받아 학교에 나와서 아이들을 열심 히 가르쳐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경리업무나 보아야 하고 숙직도 해야 하다니 한심하 기만 하구나. 이것이 과연 교육자로서 교육을 위한 삶일까? 그래서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바쁜 가운데에도 열린교육이 한창 인기를 끄는 때라 나는 열린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중앙단위의 연수에도 참여하여서 배운 내용들 을 학교에서 적용도 해보았다. 그러나 늘 바빴기에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경리를 본다는 이유로 감사까지 받을 때, 나는 서무계장에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 르치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감사를 받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경리 업무로 인해 아이들을 등한시하고 수업을 위한 연구 시간은 커녕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할 정규교육과정 시간에도 교실에 제대로 있지 못함에 몹시 아쉬워했다. 그래서 군교육청 장학사의 방문시 건의 사항을 얘기하라고 할 때, 정말로 저는 어린 이들과 함께 진지하게 수업하고 싶어요. 숙직과 경리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그 다음날 에 피로가 누적되어 학생들과 제대로 지낼 수도 없답니다. 라고 건의했더니, 많은 공감을 가지시면서 교육청에 가서 학교가 일반지 학교이기 때문에 숙직을 없애주기

273 위해 기능직을 한 명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 보겠다고 하였으나 그 이후에 아무 소식 도 없었다. 그후 지금의 교육과장인 학무과장님께서 학교에 방문하셨을 때에도 교장 실에서 나의 소원은 경리업무나 숙직이 아닌 정말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 드렸더니, 크게 감동하셔서 개선해 보겠다고 하셨지만, 여전히 학교에는 더 이상 기능직 배치가 없었다. 그렇게 건의해도 학교 여건이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6학급 규모교에서 최 연소 교무도 2 년 동안 해보았지만, 이젠 일 자체가 싫었다. 몸도 많이 나빠져서 신경 성 위염이 생기고 어깨도 많이 아팠다. 아무리 입으로 많이 얘기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가 이곳을 떠나면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의 고향 인 평창으로 내신을 냈다. 애인은 떠나고 1999년에 해피 700 의 고장 평창으로 전근을 왔다. 나는 처음으로 6학급 이하의 규모가 아닌 11 학급( 지금은 13 학급) 의 봉평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 학교 에서는 2 학년의 담임과 정보, 시청각, 방송 등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 치다가도 다른 학급 담임의 선생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으로 부터 키폰으로 연락이 오 면 즉시로 그 교실로 가서 컴퓨터나 정보기자재 등을 살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소규 모학교 보다는 시간의 여유가 많았다. 이곳에서 5년 동안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끈기를 가지고 한 학교에 오래있어 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의 약간의 여유로운 생활로 위염도 낫게 되었고 견갑절의 근육통도 많이 없 어지게 되었다. 또한, 나는 장학지도 및 지역별 자율장학을 할 때 토론 수업에 대한 연구와 수업 공개도 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학급 이라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모델학급도 운영해 보았다. 그러나 늘 이렇게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가슴에 깊이 못을 박는 큰 사건이 하나 생겼다. 3 학년 담임을 하고 있을 때, 여름 방학 중 개학이 1주일도 남지 않은 날에 학교 앞에 있는 개울에서 우리 반 학생이 익사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어둑 어둑한 저녁 7시경에 반 아이의 전화를 받고 남대천에 나가보니 마을의 많은 사람들

274 이 개울가 옆의 길에 주욱 서 있었다. 아이의 엄마, 아빠의 시선은 아이의 시신을 찾 고 있는 119 구조대원의 물밑의 수색 작업에 맞추어져 있었다. 내가 도착한지 30여 분만에 구조대원이 아이의 시신을 물 속에서 건져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나 무섭고 슬펐다.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의 죽은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아무 말 도 못하였다. 학생을 앰블런스에 부지런히 실어 평창의료원의 응급실로 옮겼으나 생 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날 나는 그 아이의 아빠와 함께 염을 하러 갔다. 영안실의 한 직원이 꽁꽁 얼은 아이의 시신을 냉동창고에서 꺼내 침대 위에 뉘 였다. 그것을 본 그 아이의 아버지는 울음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전까지만 해 도 아내를 위로하고자 그렇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분이 소리내어 우셨 다. 옆에 있던 나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나는 선생으로서 아이를 살려내는 일을 해 야하건만, 오히려 아이에게 죽음만을 가져다주는 존재인가? 나는 개학 후에도 애인의 사라짐으로 인해 거의 1주일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 다. 사랑하는 자가 떠나간 그 빈자리가 그렇게도 큰 줄은 몰랐다. 선생인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이렇게 시간은 흘러서 봉평초등학교에 근무한지 을 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옮겨가야만 하였다. 5년 만기가 되어 나는 이런 아픔 새로운 만남과 혁신의 2년 내가 다시 옮겨 온 학교는 봉평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면온초등학교이다. 벽지 다 급지인 학교이어서 경합지였으나 5년 만기자인 내가 한 명밖에 없는 빈자리에 쉽게 들어 갈 수 있었다. 면온초등학교는 2004년도 3월 1일자에는 3학급이었으나 1학년 학생의 수 증가로 3월 15일자로 4 학급이 되었다. 전체 학생수는 3월 2일자 기준으로 총 33 명이었다. 학년별 학생수는 1학년이 10 명, 2학년 3 명, 3학년 6 명, 4학년 7 명, 5학년 3 명, 6학년 4 명이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답해한다. 부모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6학급도 되지 않는 소규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답 어떻게 한 교실에서 두 개 학년이 함께 한 선생님한테서 제대로 공부를 배울 수

275 있겠어? 복식수업이 아이에게 혼란만 주고 말거야. 얘들도 적어서 축구도 제대로 못한대. 그래서 좀 멀지만 모가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6 학급이상의 학교에 전 입학시키는 것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부 복식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학부모 불만족과 복식학급 담임의 비효율적인 교수학 습활동, 그리고 공교육의 혜택을 맘껏 누려야 하는 학생들의 학력저하 및 낮은 사 회성이 소규모학교라는 틀 아래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 에 어느 누구도 소규모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현재 강원도내에는 급속한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이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증가로 이 어져 분교장 83개를 제외한 초등학교가 366개교 중 94 개교(26%) 가 있으며, 그 중 4~5 학급 규모의 단 복식 혼합교가 47 개교(13%) 에 이르고 있다. ( 강원도교육청 통계, 2005 기준) 이와 같이 많은 학교가 복식 학급의 복식수업을 운영하면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이 교육과정 운영이었다. 면온초등학교에서도 2003년도에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서 학부모들 사이에는 인 근학교와 통합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폐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갈등 이 심하였다. 또한 학교에 대해서도 불신임하며 비협조적이어서 소규모학교의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혁신이 급선무였다. 학교장도 바뀌어 지금의 정광남 교장선생님께서 강릉 교동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 로 계시다가 교장으로 승진하셔서 오시게 되었다. 나도 그분과 같은 날짜에 면온초에 들어 왔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장실에서 첫인사로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합시다. 그 래야만 학교생활이 즐겁습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모든 선생님들이 참으로 좋아하였 다. 또한 이전 교감 시절에도 많은 교사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으셨던 분이라고 좋 은 소문이 자자하였다. 나는 이 분을 만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 복식학 급이 있는 소규모학교 운영에 대해 경험도 많으실 뿐만 아니라 석사학위 논문도 소규 모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것이었기에 작은 학교에 대한 남다른 패러다임과 관 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다. 교과 분담제 에 대한 혁신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복식수

276 업에 대한 제 이론과 실천적인 사례들로는, 복식 학급의 교육과정운영에서 근본적으 로 수업결손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학교에서는 소규모 학교에서의 복식학급 수업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혁신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존의 전통적인 소규모학교 복식학급 복식수업의 방법 개선을 위 한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교장 선생님의 큰 바램은 3월 15일자에 1학급이 증가됨으로 인해 교사 한 명이 더 오시게 되는데 남자선생님 보다는 여선생님 한 분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현 재 모든 선생님이 다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지금의 이은영 여자 선생님이 오시게 되어 교장 선생님과 나를 비롯한 4 분의 선생님이 남녀 비율을 맞추어 교과 분담제 의 발을 내딛게 되었다. 나는 운장분교의 첫발령지에서 복식수업에 대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힘들어했 던 경험이 있었다. 또다시 이 학교에서도 복식학급운영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뻤다. 교과분담제의 모든 기획은 주로 교장선생님께서 계획하시고 추진하셨다. 교장선생 님과 우리 교사들은 먼저 4학급의 소규모학교에서 학급 편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1학년과 4 학년을 단식학급으로 하고, 2 3학년과 5 6 학년을 복식학급으로 편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론을 펴셨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1 2학년과 3 4 학년을 복식학급으로 편성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것은 복식 학급의 주지교과에 대한 모든 시수를 완전하게 단식수업으로 전개할 수는 없지만, 일 부 지도시수만이라도 단식으로 수업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 하기 위해서는 저학년에 단식 1개반과 복식 1 개반, 고학년에 단식 1 개반, 복식 1개반 으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학년별 수업시수와 저고학년을 고려한 학급편성이었다. 결국 단식학급의 교사들이 복식학급의 교과들을 분담할 수 있게 되어서 복식학급의 복식수업을 최소화를 할 뿐만아니라 단식수업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었다. 모 두가 기쁘게 찬성을 하였다. 교과분담제 는 복식학급담임이 가르치는 일부 교과들을 단식학급담임이 분담하 여 주는 것이었다. 단 복식이 혼합된 4~5학급 규모의 학교에서 복식학급과 단식학 급의 교과분담 및 시간표를 조절하여 단식학급에서 단식학급의 1개 교과와 복식학

277 급의 주지교과 이외 1개의 교과를 통합하여 단식화 수업을 하거나 복수교과를 병 행하는 복식수업을, 아니면 단식학급교사가 다른 복식학급의 1개 교과를 가르치게 되면 복식학급에서는 계열성이 강한 교과를 가급적 단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교과분담제 를 적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식학급 담임의 협조였다. 그 래서 학년 초에 교장 이하 전교원이 모인 업무분장 협의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업 무 분장과 담임배정시에 소규모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를 위한 교과분담제 운영 을 설명한 후 교사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복식학급 운영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 었던 모든 교사들은 복식학급 담임배정을 기피하였으므로 교과분담제 운영에 대 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었다. 그러나 복식학급의 어려움을 겪어 보 지 않은 사람은 왜 교과분담제를 운영해야 하는 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참 힘들 것 이다. 굳이 혼란스럽게 분담하여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 문이다. 교과분담제에 대한 충분한 협의 하에 복식학급 담임배정을 한 후 교사들의 취미 와 특기를 고려하여 교과를 분담하기 시작하였다. 교과 분담은 복식학급의 국어 수 학 영어를 최우선으로 단식 수업 또는 부분단식수업으로 편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계열성 있는 주지교과의 단식수업으로 기초 기본교육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었다. 효율적인 교과 분담제 운영을 위해 단 복식학급 담임들의 상호 협의에 따라 교과 분담제 운영 시간표를 전학년 공동으로 작성하였다. 공동 시간표에 따라 각 교육과정 운영시간에 학생들은 교과 담당 교사의 교실로 이동하여 학습활동을 하였고, 토요일 4교시는 매월 넷째 주에 실시하는 주 5일 수업제 실시에 따른 시 수를 보충하는 시간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소규모학교 복식학급의 복식수업을 최소화하기 위한 단식학급 담당교사가 복식 학급 교과를 분담한 내용을 정리하여 보면 모든 교사가 교과를 분담하였다는 특징 을 가지고 있었다

278 2005학년도 5 학급에서의 특기 적성을 고려한 교과분담 내용 학 급 담 임 분 담 교 과 1학년 이 3~6학년 영어 2학년 정 1학년 즐거운 생활 4학년 김 3 학년 도덕, 체육, 음악, 미술 5학년 김 6 학년 도덕, 체육, 미술, 실과 3 6학년 김 복식지도(3 6 학년 복수교과 병행학습) 영어를 잘 하는 1학년 단식학급의 담임교사는 3~6학년의 영어교과를 담당하여 주었고, 2학년의 단식학급의 담임교사는 인접학년인 1 학년의 즐거운 생활을, 2학년 의 즐거운 생활시간과 통합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분담하였다. 또한 4, 5학년의 담임은 3 6학년 복식학급의 4개 과목을 각각 단식 또는 통합하여 지도해 복식학급 의 교과목을 분담하여 주었다. 같다. 시간 운영을 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시간 운영 방법 (5 학급 시) 학년 시간 1교시 단식 단식 3 6복식 단식 단식 3 6복식 1 2학년 즐거운생활 영어(1 학년) 4담임 5담임 국어 ( 단식) 2교시 복식수업(2 학년담임) 수학( 단식) 4담임 5담임 영어(1 학년) 3교시 1담임 2담임 3 4학년 통합미술(4 담임) 5담임 수학( 단식) 4교시 1담임 2담임 국어( 단식) 4담임 5 6 학년 통합체육(5 담임) 1교시에 2학년 담임교사가 1-2 학년 즐거운 생활을 통합 수업할 때, 1학년 담임 교사는 3 학년 영어를 지도한다. 이때, 3 6학년 복식학급 담임은 6학년 국어를 단식 수업으로 하게 된다

279 2교시에는 1학년 담임교사가 6학년 영어 수업을 지도할 때 3학년은 수학을 단식 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또 3교시에는 4학년 담임교사가 3-4학년 예능교과인 미술 을 통합 단식화하여 지도하면 6 학년은 수학을 단식으로 수업하며, 4교시에는 5학 년 담임교사가 5-6학년 체육교과를 통합하여 지도할 시 3학년은 주지교과인 국어 를 단식지도 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복식학급에서도 주지교과를 단식수업으로 지도하게 된다. 이러한 여러 교사들의 교과 분담을 통해 복식학급인 3 6 담임에게 단식수업시간 이 주당 19 시간이나 배정되게 되었다. 이는 단식수업을 전혀 할 수 없었던 전통적 인 기존의 복식학급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식수업의 최소화 길로 걸어가고 있 다는 것의 확증이었다. 단식학급 담임들이 도덕, 체육, 미술의 인접학년과 교과통합 을 하여 지도함으로써 복식학급의 단식수업을 가능하게 주었던 것이다. 또한 교사 들의 주당 수업시수도 법정시수보다 부담도 줄어들게 되었다. 1~2시간을 경감시키어 주어서 교사들의 수업 5 학급에서의 교사별 단 복식 수업 시수 운영 현황 구분 학급담임 단식 부분적 단식 및 복식( 교과병행) 단식 복식 단식화 ( 복식 : 교과통합) 담 당 시 수 법 정 시 수 1( 단) 이 국 수 바 슬 영 22 재(1) 1 특(1) ( 단) 정 국 수 바 슬 즐 재 16 재(1) ( 단) 김 국 사 수 과 재 18 음 특 도 체 미 음 특 ( 단) 김 국 사 수 과 음 재 실 도 체 미 24 특(1) 과목 음 국 사 수 과 국 사 수 과 합체 재 36( 복) 김 3학년 학년 법정시수는 최고학년의 수업 시수임. 교장선생님께서는 단식학급의 담임교사나 복식학급의 담임교사나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교과 지도업무량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도 그랬다. 교장선생 님께서 작성하신 전학년 공동시간표를 보았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280 서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학교 운영을 하시는 걸까? 차라리 두 학급이라도 단식으 로 운영하면 좋지 않을까 란 생각도 가진 게 사실이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런 우리 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한 밤을 자고 나오면 이것저것을 설명하여 주시고 이렇게 하면 모든 선생님들도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가니까 시간표에 대한 이해도 생기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도덕 및 음악 등을 학년별 교육과정의 흐름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집중적으로 지도하니 교과 분담제 의 운영은 학생들의 학습력 및 특기와 자신감을 많이 함양시 켜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였다. 또한, 장학지도시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여러 학부모 들을 초청해 3 4학년의 도덕과 토론 수업을 공개하여 학부모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서, 나는 평창교육청에서 수여하는 제 2기의 평창 수업상도 받게 되었다. 평창수업상은 학부모, 학생, 동료 교사 등의 다면적인 평가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귀한 상이었다. 또한, 얘들도 적어서 축구도 제대로 못한대. 라는 소규모 학교에 대한 학부모 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도 교장선생님은 남다른 체육교육과정을 운영하셨다. 학급당 인원이 5~10명 미만의 소규모 학교에서 10명 이상이 필요로 하는 체육과 교육과 정의 게임 활동 영역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성하여 통합 지도를 하게 하신 것이다. 3~6 학년 체육과 교육과정을 분석 재구 3~6학년 체육과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개별 또는 소인수 집단지도를 필요로 하는 활동은 2개 인접학년을 통합하여 3~4학년과 5~6학년의 체육시간 주당 3시간 중 2 시간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게임활동영역과 같이 최소 1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 로 하는 활동은 학급별이나 인접학년으로 운영하게 되면 시간과 지도교사의 어려 움이 생겨 3~6학년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합동체육으로 주 1회 1시간으로 통합 운영하였다

281 합동체육( 게임활동영역) 단원 선정 및 시수 조정 학년 활동주제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조정 시수 지도 시기 담당 교사 농구형 농구형4 농구형4 농구형7+1-4차시 5월 김 네트형 네트형4 네트형4 - 네트형8 4차시 6월 김 야구형 과녁 맞추기4 목표물 맞추기4 - 야구형8 4차시 10월 김 축구형 축구형4 축구형4 축구형7+1-4차시 11월 김 계절활동 물익히기 5시간 물놀이 5시간 첨범첨범 자유형 5 간이수구 평영 5 5차시 7월 정 표현활동 ( 민속춤 ) 재미있는 소고춤 4 덩덕덩덕 4시간 우리나라 민속춤 4 풍물놀이 4시간 4차시 9월 이 총지도시수 25차시 25차시 25차시 25차시 25차시 이러한 체육교과 게임 활동의 지도는 3~6학년별 체육교과를 분석하여 학년별 지 도시수를 토대로 하여 지도평균시수를 조정시수로 바꾸었다. 교사의 특기와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여 담당교사를 농구형 네트형 야구형 등의 6개 활동 주제로 분담하여 주당 1 차시( 월4 차시) 총 25 차시를 합동체육으로 지도하였다. 합동체육의 수준별 지도가 필요할 때는 다른 학급의 교사들도 함께 팀티칭으로 지도를 해야했다. 그리 고 계절운동의 수영은 학교에서 지도하기가 어려워 학구내 국립평창 수련원과 휘 닉스파크 수영장과 코치의 지원을 받아 전교생이 참여하여 학생들의 수영 기능 향 상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혁신의 열매 단식 복식학급 혼합교에서의 교과분담제 를 함으로써 복식수업을 4학급시 40.7% 로, 5학급시 9.3% 로 줄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복식학급의 단식 및 단식화수업을 4학급시 59.3%, 5학급시 90.7% 로 확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서 계열성이 강한 교과 단원을 단식으로 운영함으로써 기초 기본교육을 충실히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복식학급에서의 순수한 단식수업이 4학급에서 28.5%, 5학급에서 62.8% 가

282 이루어져 복식학급에서도 단식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 또한, 체육교과를 분석하여 개별 및 소집단 인원으로 할 수 있는 단원은 인접학 년과의 복식수업으로 단원을 통합 운영하고, 게임활동과 같이 많은 인원이 필요한 활동 단원을 추출하여 주제별 통합학습 운영안으로 재구성하여 을 운영함으로써 체육과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3~6학년 합동체육 2004 강원도교육척의 초등학교 국어, 사회, 수학, 과학의 학업성취도 결과 분석 에 따르면 본교 학력이 도 전체 평균보다 4 학년 +9 점, 5 학년 +2.9 점, 6학년 +6.4점 우위에 있고 5 학년 수학을 제외한 전과목의 평균이 앞서고 있다. 학생 학부모들의 설문결과에 의하면, 교과분담제 운영에 대해 모든 학생이 좋았 다 라고 응답하고 있으며 학습 흥미면과 효율적인 면에서도 92.3% 이상의 긍정적 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학생들의 성취욕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학부모의 교과분담제 운영의 평가는 90% 이상의 긍정적인 응답을 하였고 지속적인 운영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2004년도는 62.2% 에서 2005년도에는 81.1% 로 늘어나 면서 지속적인 운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분담제 처방전은 지역사회 인사,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에게 긍정 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전학을 오게되 어 폐교위기의 학교가 점점 더 바람직하게 정상화되어 가고 있다. 년도 ( 예상) 학급수 재 적 운 영 복식학급 교과분담제운영 소규모 학교의 특성을 살려 복식학급 복식수업의 최소화를 위한 교과분담제 의 처방은 교육공동체의 협동적인 노력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력 향상을 위한 방안의 일환인 효율적인 교육과정 운영이었다. 그리고 교사별 특기와

283 적성을 고려한 교과분담의 지도는 주지교과의 복식수업 시수 경감과 교수 능력의 극대화로 밀도 있는 학습활동을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 교사는 무엇으로 분담제 운영으로 혁신우수라는 말과 강원도 및 교육인전자원부의 귀한 상을 받았 지만, 왜 이렇게도 마음이 여전히 괴로울까. 과연 교사들은 무엇 때문에 교단에 서는 것일까? 교사라면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업의 달인은 못되더라도 수업의 베테랑은 되 어져 가야 할텐데. 수업의 베테랑에 대해 관심조차 갖기 힘드니 그 이유가 무얼까? 교직생활의 15 년 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기뻐했고, 또 무엇 때문에 슬퍼하였는가? 그 리고 무엇에 많은 시간들을 투자하였는가? 자문해 보면 나의 애인( 愛 人 ) 들을 위해 살 았다고 답변하기가 힘들다. 혁신을 했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학 생들에게 교과지도, 생활지도, 특기지도를 훌륭하게 잘 전달하는 교사가 가장 훌륭 한 교사가 아닐까. 한정된 학교의 시간을 가지고 교과지도를 충실히 해야 할 공교육 의 본질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교육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면 결국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은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전적으로 한 곳에 집중하 여 지도하건만, 애인( 愛 人 ) 들을 위한 국가의 막대한 자본과 인력 투입의 공교육 결과 는 극히 미미한 긍정적인 반응만 있을 뿐이다. 나는 공교육 부실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교육의 본질인 교과 지도, 생활지도, 특기지도 이외의 교사가 처리해야 할 업무과다, 둘째로는 잘 가르치 는 교단교사가 우대받지 못하고 있는 교직풍토 만연 때문이라고 본다. 교사가 학교에서 처리하는 업무 중에서 실제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업무는 얼마나 될까. 교과지도 시간까지 빼먹어 가면서 공문서 처리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교사라면 누구나 체험하는 일이다. 장학사들이 무엇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교육 청에 가보라. 그들을 보면 공교육의 앞날이 밝아지리라고 기대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공교육의 초점을 아이들에게 맞추 어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이 애인( 愛 人 ) 이 되어야 한다. 행정이 아닌 한 아이 한 아이 가 있기에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을 하려면 그들에게 꼭 필

284 요한 것인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 후에 행정적인 일들을 실행해야 한다. 실적위주로 가는 길은 누구를 위한 일일까? 아이들을 담보로 하는 나 를 위한 일은 아닐까. 지금 나는 승진의 기로에 서있다. 25년의 경력이 승진점수에 가산되므로 승진여 부를 지금 결정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당 연히 학생들을 위하여 더욱 훌륭한 교단교사가 되려고 노력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승진이란 단어에 늘 망설이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승진을 위한 것 이 학생들을 위한 길인가. 나는 나의 마음 속 깊은 속에 숨어있는 한 가지를 발견 하였다. 그것은 내가 승진을 하려고 하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과 그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나의 애인( 愛 人 ) 들을 선하게든 악하게든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늘 나의 가슴 속에 남는다. 나는 교사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 나의 애인( 愛 人 ) 은 업무도 승진도 아닌, 오늘도 선생님을 만나러 온 학생이다

285 세상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희망을 만들고 서길원( 경기도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역사의 그림자 오늘 아침 8 시, 나는 두 아들과 함께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의지해 집을 나 서 학교로 향했다. 45년 세월을 살며 아직도 2종 운전 면허증이 없는 구식 교사이 기에 많은 것을 교사인 아내에 의지하며 산다. 내가 근무하는 남한산초등 학교는 해발 400 미터 정도의 남한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성남이나 서울 방향에서는 승용차를 타고 추락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꼬불꼬불하 고 가파른 산길을 15 분 정도 올라야 한다. 남한산 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산성 안에 들어서면 20만평이 넘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조선왕조의 건물과 산성 그리고 식당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한산성의 중심부인 침괘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른쪽에는 구한말 이전까지 광주 관아가 있던 행궁이 새롭게 복원되어 단아한 모 습을 보여주고, 왼쪽으로는 소나무 숲 아래 청록색 기와로 가지런히 덮힌 단층 건 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거기가 남한산초등학교다. 나는 지난 여섯 해를 남한산 산길을 오르내리며 봄볕에 산에 쌓인 눈이 녹고, 나 무에 새싹이 돋고, 우거졌던 신록이 낙엽 되어 길가에 뒹구는 모습을 보며 지냈다. 그 사이 다섯 살 때부터 이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며 나를 따라다니던 큰 아들 이 벌써 초등학교 3 학년이 되었고, 작은 아들은 올해 이 학교 병설유치원을 졸업하 고 1 학년에 입학했다. 남한산초등학교가 있는 남한산성에는 병자호란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 경기도 하남, 광주, 성남이 이곳의 행정 관할이었다. 인근 지역의 군사, 행정, 경제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그래 서 성안에는 1,000 호 이상이 살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남한산초등학교는 일

286 제의 교육칙령이 내려진 이듬해인 1912 년에 공식적으로 개교했다. 그러나 1918년 일제는 항일 무장투쟁의 근거지가 산재해 있는 남한산성에서 모든 관청과 주민의 대부분을 광주시 경안 일대로 강제 이주시키고, 산업화과정을 겪으며 나머지 주민 일부가 떠나 현재는 100 여 가구만이 이곳에 남았다. 거기에다 남한산성이 도립공 원으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건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할 수 없어 외부의 인구 유입 이 불가능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공원지역을 찾는 행락객을 대상으로 요 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학구에 거주하는 주민 감소는 곧 학생 수 감소로 이어졌다. 남한산초등학교는 1996 년부터는 삼복식 학급으로 운영되었고, 2000년에는 26명까지 줄어 교육부의 영세초등학교 통폐합 운영 계획에 따라 이듬해에 통폐합 대상 학교로 지정될 예 정이었다. 세상이 사람을 바꾸고 교사로서 살아오면서 아름다웠던 한 장면을 그려보라면 보랏빛 옥잠화 꽃이 교 사 처마 밑을 가득 메우던 1996년 여름에 내가 맡은 아이들과 함께 남한산으로 소 풍을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교조 합법화와 관련된 일로 징계를 받고 남한산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초등학교로 행정 전출되어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일요 일,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세 번 번갈아 타고 남한산에 소 풍 왔다가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연히 들렀던 곳이 지금의 청록 기와지 붕의 남한산초등학교이다. 그 때 처음 보았던 이 학교는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사 각상자와 같은 학교가 아니었다. 숲속의 공원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학교였다. 그 때 나는 이런 학교에서 원 없이 선생 노릇해 보았으면 하고 소망했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한산과 인연이 되어 선생으로 이곳에서 생활한지 벌써 접어들고 있다. 6년째 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선생이 되겠다고 전주교육대학 에 입학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2년 동안 YH 사건, 사태, 5.18 민주화 운동 등의 사건이 연이어 터져서 학교는 문이 열려있을 때보다 닫혀있을 때가 더 많았

287 다. 그 와중에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고 대학을 졸업(?) 했다. 그리고 어렵게 전라남도 고흥에 발령을 받아 초임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 정 권 시기여서 학교에서는 국민정신 교육을 열심히 해야 했다. 젊은 교사들 몇몇은 숙직실에서 광주항쟁 불법(?) 비디오를 은밀하게 보았다. 총각인 나는 학교 관사에 혼자 살면서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아이들과 열심히 사는 데만 시간을 보냈다. 그 래서인지 3 년차 되던 해부터는 과학주임 자리를 맡게 되었다. 당시는 과학 영재 교 육의 중요성을 부르짖던 시기였다. 나는 6학년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과학 영재반을 맡아서 정규 수업 전에 매일 한 시간씩 더 가르쳤다. 당시는 교과 전담도 없던 때 라 정규 수업 32시간에 6시간을 합해서 매주 38 시간 수업을 한 셈이었다. 지금으 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인데 그 때는 열정 하나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시험지는 교사가 직접 만들었다. 기름먹인 종이를 철필로 긁어 서 원지를 만든 다음, 원지 아래에 갱지를 놓고 끈적끈적한 등사 잉크를 바른 로울 러를 원지 위에 굴리면 철필 자국을 따라서 잉크가 갱지에 스며들었다. 손으로 로 울러를 한 번 굴리면 시험지가 한 장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손에 잉크를 묻혀 가면서 시험지를 만들어서 매달 시험을 쳤다. 시험을 치고 나면 각 학급에서는 평 균 점수를 교장에게 보고하고, 그 결과는 교장실 벽에 있는 막대그래프에 학급별로 표시되어 비교되었다. 마치 보험회사의 영업 실적표처럼. 그러던 중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일손을 던다는 핑계로 학습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시험지를 무상으로 받아서 시험을 치르고, 그와 함께 문제집 을 팔아주면서 사례비를 챙겼다.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한다는 명분 하에 학교장과 일부 선배교사들이 은밀하게 거래한 것이다. 교사는 시험지를 밀지 않아도 되고 상 전들은 뒷돈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문제집을 학생들 에게 강매하지 않은 몇몇 교사들은 한편으로는 월말고사에서의 학급평균 하락이라 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과서보다는 문제집을 열심히 푸는 동 료교사를 보면서 교사로서의 양심이 무엇인지 자문해야했다. 이 때도 30대 후반의 선배교사들은 승진을 위한 점수를 관리하기 위해서 학교장 앞에서는 무기력해 있 었다. 초임인 나는 이 문제를 교무실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288 이 문제에 깊숙히 개입되었던 교사가 내게 유리 재떨이를 내던지고, 나를 위협했 다. 나 또한 퇴직을 각오하고 비리와의 전쟁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태의 심각 성을 파악한 교장은 시험지를 등사해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였 다. 그렇지만 이듬해에 다시 문제집이 들어오고, 사례비는 학년 친목 활동비로 전 환됨으로써 모든 교사를 공범으로 만들어 갔다. 이렇게 초임 학교에서 이 년 더 근무하면서 나는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립하 는가?, 성실한 교사는 모두 훌륭한 교사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도로 전출을 희망해 강원도와 충청북도와 경기도가 만나는 여주의 6학급 벽지 학교에 발령을 받게 되었다. 여주읍에서 하루 네 번 버스가 운행되고 승용차로 1 시간 쯤 거리가 되는 학교였다. 여주에서의 교직생활은 나에게는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한편으로는 시골의 순박 한 아이들과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시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교조 파 동으로 좌절을 겪었던 혼돈의 시기였다. 이오덕 선생님이 이끌던 글쓰기교사 모임 에 참가하면서 교육 현실에 대해 눈을 떴고, 선배 교사로부터 참 교사상을 보고 배 웠다. 젊은 내 눈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페스탈로찌 교사는 그 곳에 다 모여 있고, 의식화 교사도 다 모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 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렸다. 붕어빵과 호떡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교실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교사로서 살아가 는 길인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립고등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비민주적이 고, 비교육적인 학교운영과 재단의 전횡을 들으며 가슴을 아파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교조의 전신인 교사협의회에 참가하고, 이후 전교조 활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교조 결성과 관련된 파동을 겪으며 나는 도망치다시피 여주를 떠나 성남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렇지만 나는 성남에서의 생활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 했다. 나는 여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겠노라 다짐하며 1 년 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이때 내가 근무했던 대신초등학교 학부모 중에는 농민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 았다. 대신면은 여주에서도 농민운동이 힘찼던 곳이었다. 이때 해체 가정이 학급에 서 30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농촌지역의 가정 해체 문제는 심각했다. 엄마가 집

289 을 나가 아빠나, 할머니 품에 자라는 아이의 대부분은 빈곤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 느 누구도 농촌교육에 대한 대안을 갖지 못하고 농촌이 교육의 가막소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나는 농민운동하는 분들과 많은 교류를 가졌다. 한편으로는 당시에 막 태동하던 열린교육 운동에도 관심이 있어 각종 세미나에도 열심히 참여 하곤 했다. 여주에 뿌리를 내리고 농촌교육 운동을 하겠노라고 소박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은 이런 소박한 소망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나는 1994 년 전교조 합법 및 해직교사 원상복직 관련 서명 관련으로 징계를 받고, 경기도 광주로 행정 전출을 당해 농촌교육 운동의 꿈은 깊은 동면에 빠져야 했다. 내가 새로 근무하게 된 만선초등학교에는 농촌 같지 않은 7 학급 시골학교였다. 학교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의 허리는 골프장 공사로 잘리어 나가고, 거리 곳곳에 는 골프장 공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경치 좋은 계곡 주변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곳곳에 들어서고, 도로가에 중소 공장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또한 그 즈음에 정보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는 일터에서 늦게 들어오는 부모 를 대신해 비디오와 컴퓨터와 게임이 자리를 지켰다.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조 차 음란물이 무방비로 열려 있었다. 내가 이런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과 들로 다니며 공부도 하고, 학교 꽃밭에 꽃도 가꾸고, 텃밭에 채소도 심고, 개울에서 고기도 잡으면서 놀아주는 일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2년 간 근무한 뒤, 총각 자취 생활을 접고 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살며 출퇴근할 생 각으로 성남으로 내신을 냈다. 성남으로 발령받은지 6개월 만에 인근 학구에 신설되는 학교에 근무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학교는 성남지역에서도 주거조건이 열악한 상대원동에 위치해 있 었다. 고등학교가 이전한 뒤 급히 초등학교로 리모델링한 학교였다. 초임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선배교사인 교무부장과 교감 선생님이 연구부장으로 함께 일해 보 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왔다. 나는 신설학교에서 새로운 꿈을 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합류를 결정했다. 9월 1일자로 개교한 신설학교다 보니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36 학급의 교사 가운데 삼분의 이가 신규였다. 많은 게 어설펐다. 하지만 학교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고, 선생님들은 즐겁게 생활했다. 그 당시 일반적인 권

290 위적인 학교의 모습과는 달랐다. 햇병아리 교사들이 열심히 회의에 참가하고 의견 을 내고 그것들이 받아들여졌다. 모두가 주인공처럼 일하도록 배려해주었다.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 없이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에도 학교에 나와 일하곤 했다. 교사들은 서로 따뜻했고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께서도 자상하게 교사들을 이 끌어 주었다. 이런 화목한 교직원 분위기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 나 늦장가를 드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그렇지만 학교는 여전히 공문서에 의존해서 운영되고, 공문서는 해가 갈수록 폭 증했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한 조건보다 교육청의 행사나 시책이 우선일 수밖에 없 었다. 연구부장인 나는 당시 한창 열풍처럼 유행하던 열린교육 연구 시범학교를 찾 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마다 한결 같이 판에 박힌 수업 행사를 보면서 이 런 수업을 왜 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좋은 정책과 운동도 교육 관료들 손에 들어가면 오렌지도 탱자가 된다 는 속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더욱 회의가 들었다. 이 즈음 참교육실천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학급운영에 관심을 기울이고, 학급행사 를 중심으로 학급운영의 방향을 모색했다. 나는 전교조에서 초등학교와 관련된 일 을 하면서 학년 교육과정 만들기 운동을 통해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교과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함께 소모임을 통해서 구체화하 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교육부에서 교과교육 연구 모임을 공모했다. 이 때 학년 교육과정 만들기 소모임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팀들이 응모해서 입상하고 전국 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 남한산초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도 이때 소모임 활동과 교과교육연구 공모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만나게 되 었다. 이런 활동 덕에 나는 전교조 합법화와 함께 경기지부 정책실장 자리를 제안 받 아 잠시 외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참교육 실천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요청하는 지라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교육청과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 간에 새로운 파 트너십을 형성하고 학교개혁의 기틀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단체 교섭이나 협의 등의 과정을 통해 내가 만난 다수의 장학 관료들의 모 습은 커다란 산과 같았다. 일반 교육 행정직은 그래도 대화가 수월했다. 대체로 법

291 규와 규정 그리고 예산과 교육적 근거가 합당하면 접점을 쉽게 모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장학 관료는 달랐다. 교육적 근거나 규정이 합당해도 학교장들의 정서가 아 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한치 앞도 나갈 수 없었다. 어떤 제도도, 어떠한 개혁 적 조처도, 어떠한 합리적 이성도 이들의 관행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이러한 과정 을 겪으면서 교육이 바뀐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희망을 만들고 2000년 10 월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교조 경기지부 사무실에 뜻밖의 전화 한통이 찾아들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정채진 씨였다. 나는 이 분을 성남시 은 행동 빈민가에서 공부방을 운동을 할 때부터 알게 되어, 학교에서 동화읽는어른모 임 만들기, 학교 도서관 만들기, 민주적 학교 운영위원회 만들기 활동 등의 일로 친분이 있었다. 전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남한산초등학교가 폐교 직전인데, 남한산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성남에서 학생들이 전학을 신청하면 받아 줄 수 있다고 하니 아이들을 성남에서 남한산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학교보다 가족 같은 규모에 자연환경까지 갖추 었으니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선택했지만, 좋은 자연환경도 하루 이 틀이고 결국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좋은 선생님이므로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 주시고 함께 와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남한산초등학교 인근에서 근무하던 안순억 선생님을 소개했다. 안 선생님 은 전국 교과교육 공모 사업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조직 활동도 한 경험이 있 었기에 이런 일에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정채진씨는 남한산과 이웃하고 있는 성남시 은행동에서 동화읽는어른모임 이라 는 단체를 이끌고 있었고, 이 단체에서는 2000년 7 월에 남한산초등학교에서 남한 산 역사이야기 캠프 를 이틀 동안 열었다. 이들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남한산초등 학교의 자연환경에 감탄하면서, 2001년 3월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폐교된다 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현재의 정연탁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이 만남이

292 오늘의 남한산초등학교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었다. 정연탁 교장 선생님은 2000년 3월에 남한산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서 첫발을 내 딛었다. 당시 남한산초등학교에는 학생 26 명, 교사 3 명, 교장 1 명, 기사 1명의 폐 교 직전의 학교였다. 교장 선생님은 부임하자마자 학교의 낡은 시설을 교체하고, 학생들의 수업 결손을 방지하기 위해 교사들을 대신해서 잡다한 잡무를 도맡아서 처리하는 등의 노력을 해서 지역 주민의 호의를 얻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당신 이 근무하는 동안 만큼은 학교가 폐교되지 않도록 하겠노라고 지역주민에게 선언 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은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정채진 씨 등은 성남 지역 학생의 전학을 받아주겠다는 약속도 쉽게 받아낼 수 있었다. 이들은 야영을 마치고 돌아가서 작은 학교 살리기 및 새 학교 만들기 라는 취 지 아래 전입학 추진위원회 를 결성했다. 이들은 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 및 이웃 사람들에게 학교의 여건과 형편을 설명하고 전학 또는 입학 희망자를 모집했다. 당 시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은행초등학교에 가서 남한산초등학교 전학 홍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학교에는 과거에 남한산초등학교에 교감으로 근무하던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어서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들은 대부분 대규모 도시학 교의 폐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터라 예상보다 많은 부모들이, 예상보다 넓은 지역에서 전학을 신청해왔다. 추진위원회는 신청자 가운데 남한산초등학교와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전입생을 선정했다. 2000년 12월과 2001 년 2월 두 번에 걸쳐서 50 여명의 학생을 전학하게 하고, 3월에는 20명의 신입생을 입학하게 했다. 이 아이들 중에는 기존학교에서 부적응을 겪은 아이가 20%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2000년 8월부터 2001년 3월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전학생 선정 기준과 방법, 새로운 학교의 프로그램, 새 학교에서 학부모의 역할과 위상, 적임 교사 초빙, 통학버스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이 밖에도 이들은 이 학교 에 새로 부임하게 될 교사들과 함께 새로운 학교 만들기 공동 연수를 진행하고, 교 육활동 우수학교를 견학하기도 하였으며, 2001년 2월에는 교사들과 함께 그 동안 방치되어있었던 학교 시설과 환경을 다시 정비하였다. 당시 학교 준비과정에 주도 적으로 참여했던 안순억 선생님은 그 때의 한 장면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293 나는 아직도 선명히 회상한다. 200년 11월 19일 스산한 늦가을의 일요 일, 그날은 입학 예정 학부모 전원에게 우리 학교의 향후 교육방향에 대해 내가 발제를 하던 날이었다. 학습관을 꽉 메운 학부모들은 숨을 죽이며 내 어설픈 그림을 경청했고, 이어진 토론에서는 학교교육 전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새 학교에 대한 기대가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통 해 막연히 머릿속에만 있던 교육주체들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갈망이 무엇 인지 느낄 수 있었다. 서둘러 함께 할 교사들을 찾아 나섰다. 동화를 쓰는 김영주 선생님이 흔쾌히 동참해주었고, 최지혜 선생님이 합류해주었으며, 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으로 근무 중이던 서길원 선생님이 2001년 1월 1 일자로 근무가 만료되어 우리학교에 먼저 부임하게 되었다. 남한산초등학 교에 근무하던 선생님 세 분 중 한 분은 전근을 가셨지만, 나머지 두 분은 우리보다 더 깊은 교육적 열정과 힘을 지닌 분들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 지 않았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그 동안의 준비 과정, 추구하는 학 교상, 학교 운영 방안, 인사 및 시설 개선 요구 사항을 담은 새로운 학교, 남한산 초등학교를 만들기 위한 기초계획서 를 광주시 교육청에 공문으로 발송하고, 여러 교육계 인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교육청으로부터 유치원 교사를 포함하여 남한산 에 지원했던 교사 네 명이 순조롭게 발령을 받고 교감, 행정실장과 교사 한 명을 추가로 배정받았다. 이렇게 해서 남한산초등학교는 2001년 3월에 6개 학년 6학급 학생 103 명, 교사 7 명, 교장과 교감 각 1 명, 유치원 교사 1 명, 행정실장 1 명, 기사 1 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폐교되기만을 기다고 있던 남한산초등학교에 2000년 9월부터 2001년 2월까지 6 개월 사이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 것은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필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나치게 구조 화되어 있고 관료화된 학교 틀 속에서 탈주를 꿈꿔 왔던 사람들의 만남이 그러했 고, 학부모와 교사, 학교장과 지역 교육청 그리고 지역사회의 만남이 너무도 조화

294 로웠고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일 이 때 어느 한 곳에라도 문제가 있었 다면 오늘날의 남한산 교육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현재의 남한산초등학 교 교장이신 정연탁 선생님과 처음 교장실에서 만났을 때의 일이다. 이번에 들어오는 교사들 대부분이 전교조 교사들인데 괜찮겠습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고양이가 쥐를 잘 잡으면 되지 검은 고양이냐, 흰 고양이냐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선생이 애들만 잘 가르치면 되고, 교장이 이것을 잘 도우면 되지 않겠어 요 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민주적으로 경영하 고, 한 줄 세우지 않는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곁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정적으로 교장 선생님의 이런 생각과 학교 경영관이 새로운 꿈을 꾸는 교사들 의 생각과 합치했기 때문에 남한산초등학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교 장 선생님은 이런 열린 학교 경영으로 인해 지역 교육청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 을 받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전교조 교장이라느니, 교사들에게 쥐어 사는 교장 이라느니 등의 억측과 소문도 들어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남한산초등학교는 거듭났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거듭났다는 것은 단순히 폐교되지 않고 학생 수가 들어났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만일 거기에 머물렀다면 그것은 폐교를 한 번 미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거 듭남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처한 조건 속에서 우리가 놓여있는 한계 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폐교 직전의 농촌 소 규모학교였기 때문에 전면적인 개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우리는 학교를 친환경적이고 아이들 생활 중심의 교육 환경으로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도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으므로 주변의 자연환 경이 뛰어났다. 또한 남한산초등학교는 복식수업을 하는 영세학교이다 보니 교육청 의 관여와 행사 동원, 공문서의 부담이 적어 상대적으로 학교 안의 자율적 활동의 폭이 넓었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이용해서 친환경적이고 아이들 생활 중심의 교육 환경을 만들었다. 둘째, 남한산초등학교만의 고유한 교육과정 활동을 만들었다. 남

295 한산의 숲, 병자호란의 유적 등과 같은 지역의 자연, 문화, 역사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삶과 함께 하는 체험중심의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전교생 130여명의 6학급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교사 수가 적을 수밖에 없고, 그런 속에서 아이들에게 다양 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나 외부 전문가와 연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계해서 계절학교, 숲속학교 남한산 순례, 모두가 함께 하는 다모임, 학생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되는 입학식과 졸업식과 같은 독특한 교 육과정 활동을 만들었다. 셋째, 공동체학교를 지향하게 되었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 께 나서서 작은 학교 살리기 및 새 학교 만들기 운동에 나섰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학교를 모색했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작은 학교다 보니 개방적인 학교 풍토와 사람 간의 소통과 결합이 소중할 수밖에 없었 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학교를 지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실천해 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먼저 가능한 일부터, 잘못된 것을 고 치는 일부터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작은 학교 교육의 특성을 살려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학교, 아이들의 삶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일이 관료주의적 관행에 찌든 학교를 과감하게 뜯어 고치는 일이었다. 통제와 지시 그리고 경쟁이 지배하는 회색 공동 시설물과 같은 학교를 자발적인 즐거움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학교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권위주적인 시설물을 철거하고,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유지되어 온 관리 위주의 학교 체제를 어린이의 정서와 생활을 고려한 체제로 바꾸어 갔다. 주번, 운동장 애국조회, 경쟁 과 선발 위주의 시상 제도 등의 낡은 틀과 관행을 바꾸었다. 교사들의 회의도 민주 적인 협의가 살아있도록 했다. 아이들을 위한 학교 남한산초등학교는 참 삶을 가꾸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 라는 슬로건이 내보이는 것과 같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고 자 했다. 학교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과 환경, 그리고 학교 운영 관행 등 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을 여기에 적합하게 바꾸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연스럽

296 게 생활하는 가운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학교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각종 체험학습 활동을 자주 하게 하고,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 가 다함께 참여하고 협력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남한산초등학교를 새롭게 혁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이들이다. 그동안 국가 또는 학교장이나 교사들에게 있었던 학교의 주인 자리를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현재 우리 학교에 재학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이전의 학교에서 부적응을 경험했다. 어떤 아이는 이전 학교에서 몇 달씩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어떤 아이는 아예 한 학년을 건너뛰었고, 어떤 아이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이 학교에 전학하였다. 지금 이 아이들은 남한산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방학을 원망할 정도로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즐 겁게 생활한다. 아이들의 표정도 밝게 살아났고 전학 초기에 아이들 사이에 만연했 던 욕설과 폭력이 사라졌다. 교사와 학부모의 노력도 이런 결과가 나타나도록 한 요인이지만, 그 노력의 핵심에는 아이들의 생활 리듬에 맞춘 학교 시스템 만들기 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학교 환경 만들기 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우리는 권위주의적인 관행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났다. 권위주의적인 통제 가 아닌 자율과 합의를, 경쟁이 아닌 자기 주도성과 협력을 지향하는 교육을 하고 자 했다. 애국조회, 반성조회 등 전체 운동장 조회를 없애고 조회대를 치웠다. 교사 주번제도 없애고 아이들 주번도 없앴다. 경쟁에 의한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대 회와 시상제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아이들을 한 줄 세우지 않는 교육 을 표방했다. 지역 교육청 등에서 실시하는 각종대회에는 거의 참가 하지 않았고 졸업식에서도 외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상을 폐지함으로써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을 막았다. 아이들의 하루 생활 일정도 새롭게 바꾸었다. 어린이의 신체적 특성, 학습 리듬, 놀이 욕구를 고려하여 각 학년이 80 분 단위의 블록수업을 실시한다. 오전 1블럭과 2블럭 사이에는 30 분의 중간놀이 시간이 주어진다. 2블럭을 마친 다음에는 점심시 간이 있다. 아이들은 블록 사이의 중간놀이 시간을 이용하여 운동장이나 놀이터, 학교 뒷산 등에서 마음껏 논다. 놀이 시간만이 아니라 놀이 장소와 시설도 함께 제 공했다. 울창한 학교 뒷산에는 오솔길을 만들어 산책로를 만들어주고, 뒷산 느티나

297 무에는 밧줄과 그네를 매달아주고, 운동장의 흉물스런 시멘트 스탠드를 철거하고 잔디언덕을 만들었다. 밤나무 숲에 있던 철제 체육기구와 차가운 시멘트 의자를 모 두 치우고 복합 놀이터를 설치했다. 나무벤치와 정자, 작은 연못도 만들어 공원처 럼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어 갔다. 교실 바닥은 맨발로 생활할 수 있도록 온돌화하고,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가정처 럼 편안한 교실,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는 교실을 만들었다. 또한 아이들이 사용하 는 학용품과 각종 비품도 아이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제공했다. 학교가 제공하는 학용품과 준비물은 품질이 좋은 것으로 선정하여 가능한 한 6년간 쓸 수 있게 하 고, 개인 사물함과 책꽂이를 제공하여 물품을 알뜰하게 관리하게 했다. 바쁜 아침 에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가정에서 겪는 부담을 덜어주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만들어놓은 관리 위주의 행정편의적인 학교를 어린이의 정서나, 생활공간, 동선,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한 아이들 생활 중심의 학교로 바꾸는 것은 예산의 문제에 앞서 교육적 안목이 중요했다. 아이들이 즐겁고 배우고 자유롭 게 생활하기에 적합한 학교 환경을 고민하고, 우선 순위를 정하고, 그리고 나서야 학교 리모델링에 필요한 절차와 경비를 고민했다. 이런 과정을 걸치며 5년간의 작 업을 통해 곳곳에 모든 교직원의 땀이 배인 오늘의 남한산 학교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5년의 세월이 지난 결과 지금은 학교 곳곳에서 남한산 나름의 색깔이 배 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 전학해 오는 아이들은 일 주일이 지나면 생기가 살아난다. 하지만 전근해 오시는 교사들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반 년 가까 이 힘들어 한다. 남한산초등학교가 행정적인 지시와 통제가 아닌 교사의 자발성에 의해서 움직이고, 교육청의 공문서나 대회 행사가 중시되지 않고 모든 활동이 아이 들의 교육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이들과 밀착해서 생활하지 않으면 곧잘 남한산 교사 같지 않다는 질책을 받기도 한다. 삶을 배우는 체험 학습 남한산초등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니다. 일반 학교와 별로 다름없이 국가에서 정한

298 교과목을 국정 교과서를 이용하여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학교 다 니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것은 마음껏 놀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한산초등학 교의 교육과정은 독창적이고 다양하다. 학습의 내용이 아이들의 삶으로부터 유리되 지 않는 체험학습을 중시하고 이를 교육과정화했기 때문이다. 그간의 학교교육이 근대 국가주의 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과학, 이성, 지력을 지나치게 중시했다면,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예술, 감성, 노작, 인성이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또한 교과서와 교실 중심 수업을 벗어나 현장 체험 중 심의 학습을 일상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체험활동을 자아체험, 생활체험, 자연체험, 예술체험, 역사체험 영역으로 나누고, 토요체험학습, 숲속학교, 여름계절학교, 가을 계절학교, 남한산 순례 등의 형태로 체계화했다. 연중 전일제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토요일에는 학교가 새롭게 살아난다. 기존의 정규 교육과정을 다양화하여 다양한 학습의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 육과정을 분석하고 각 학년에 적합한 체험학습 요소를 추출하고 영역에 따라 크게 분류하고 주제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이 때 문화재 학습, 학예, 자연생태, 향토, 농사짓기, 공연이나 박물관 견학 관람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루어진다. 계절학교는 연간 두 차례에 걸쳐 열린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교과 이수 시간 에 포함되지 않는 재량시간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운영상 의 어려움 때문에 재량시간을 교과 시간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운영함으로써 그 의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 이 한 주제 활동을 선택하고 일 주일 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연속하여 배치하는 계절학교를 개발한 것이다. 아이들은 계절학교에 참여할 때 대부분 다음 해 활동까지 예측하고 계획해서 활동을 선택하기 때문에 학습 의욕이 강하고, 놀라 운 집중력과 학습 효과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계절학교를 흠뻑 빠져 배우는 공 부, 몰입을 배우는 교육과정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끝 배우는 여름계절학교 는 여름방학 직전에 일 주일 동안 생활공예 활동을 중심으로 일 주일 간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목공, 도예, 지공예, 끈공예, 퀼트, 인형 만들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각 반별로 초빙된 외부 전문 강사가 아이들을 지 도한다

299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가을계절학교 는 가을 남한산문화제 기간에 일 주일 간 공연 예술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이 때 합창, 연극, 춤, 무용, 기 악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교생이 학 교예술제와 연극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개최되기 때문에 전교생이 지역축제 무대에 올라 특히 학교예술제는 지역축제와 결합되어 자신감 을 키우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남한산 아이들은 무대 체질 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정규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기적성 활동은 전교 생의 방과 후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저학년은 사물과 소리를 배우고 고학년은 국 악 관현악, 그리고 불가의 전통무예인 선관무( 禪 觀 武 ) 을 배운다. 저학년과 고학년 이 한데 어울려 밥을 해먹고 한 텐트에서 잠도 자며 공동체성과 리더쉽을 배우 는 숲속학교, 학부모와 함께 가을 남한산을 일주하는 남한산순례, 6학년 중국 수 학여행 등도 모든 아이들에게 또 다른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밖에도 아이 들은 학년별로 배분된 학교 실습지에서 직접 땅을 일구고 야채나 곡식, 화초를 가꾸고 수확의 기쁨을 맛본다. 이런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교사는 정해진 학급의 학생에게, 정해진 교과를, 정 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만 가르치지 않는다. 담임형, 순환형, 초빙형, 전 체형 등으로 교수인력을 다양화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와 학습의 경 험을 제공한다. 다함께 만드는 공동체 학교 남한산 초등학교는 다함께 만드는 새로운 학교 공동체 라고 내세울 정도로 교 사와 학부모의 참여를 중시한다. 남한산 초등학교가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로 새 롭게 탄생한 점도 그렇고, 기존의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의 관행을 극복 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모색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기존의 학교가 지나치게 경직된 관료주의적인 방 식으로 운영됨으로써 교사가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교사들은 교과서와 공문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300 되고 말았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적으로 만들고, 모 두에게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자발성과 열정을 살리는 데 있 다고 보았다. 그것은 결국 학교의 교육력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 식에 근거해서 우리는 학부모총회,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대표자회의, 학급 학부 모회의, 교사- 학부모 연석회의 등 다양한 의사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그것이 자리 잡도록 힘을 쏟았다. 또한 학교 홈페이지를 통한 커뮤니티 형성에도 힘을 기울였 다. 학교 홈페이지를 기획할 때부터 구성원 간의 커뮤니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지금은 거의 모든 정보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된다. 교사들은 방학 때마다 1박2 일 간의 연수를 갖는다. 연수기간 동안에는 지난 학 기의 교육활동을 평가하고, 새 학기 교육계획을 마련한다. 이 외에도 학부모와 합 동 연수를 통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새 해 교육계획을 수립한다. 이렇게 해 서 수립된 교육활동 계획은 학기 중 매주 월요일 오후에 열리는 교사회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실천된다. 교장, 교감, 교사가 참여하여 학교 교육 활동의 중 요한 업무와 안건을 협의하고 결정한다. 이런 회의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교 장, 교감 선생님의 모습이다. 이 분들은 결코 직함의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 교사들 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켜봄으로서 신뢰의 관계를 만들고 열정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믿음이 교무실에는 매일 같이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게 했고, 교사들 이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힘든지 모르고 달려올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그리고 각계의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학부모의 자원봉사 활동은 매우 활발하고 주체적이다. 운동회, 계절학교, 문 화체험학교 등에 학부모가 역할을 분담하고 자원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가정에 서 돌볼 여유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품앗이 학습을 하기도 한다. 대학의 건축과 교 수와 설계사가 아름다운 남한산 학교를 만들기 를 구체화하기 위해 6개월에 걸친 워크샵에 참여해 주기도 했다. 교육행정가와 정치가는 물론 예술가, 영상전문가, 교 육학자 등 여러분들께서 새로운 학교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관심과 지지를 보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종 활동을 하다보면 다함께 참여하고 협력하기도 하지만, 서로 외 면하고 갈등하는 일도 흔히 있다. 돌이켜보면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이루어진 것

301 이 없었던 것 같다. 잘못된 관행을 돌려놓는 일이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 보면 현실적인 조건이나 요구와 이상 사이의 차이, 구성원들 사이의 이상의 차이로 인해 서 갈등하고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학교 체제의 조기 정착과 천천히 여유 있게, 교실 중심과 학교 중심, 사적인 관계와 공공의 책무 등이 그런 갈등의 중심 에 있었다. 학교가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운영됨으로 인해서 그런 갈등이 더 쉽게 외부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모든 구성원이 다 함께 살아있 는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과 고민이 담겨있었다. 결국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이 남한산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차이와 갈등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남한산 교육을 진화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하겠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뒤돌아보며 나는 우리가 특정한 철학이나 이념을 바탕으로 출발하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 늘의 남한산초등학교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가 처하 고 있는 교육적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 뿐이다. 우리 학교 교육과정은 아 직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산만한 점도 눈에 띠지만, 우리는 이런 미숙함을 하나씩 바꾸기 위해 토론하고 실천하고 정리해가면서 성장하고 진화해 왔던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 간의 교단생활의 경험과 상식과 교육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엇 이 교육적 본질에 가까운 것인가를 되물었고, 이런 생각을 함께 하는 남한산 식구 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쳐야 할 것, 우선 가능한 것과 나중해야 할 것을 찾아 내고, 우리 힘으로 고쳐나가려고 애썼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고통과 변 화와 성장을 경험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사는 교직 경력 5년이면 석고화가 진행되어 변화와 성장이 정지한다 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러나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예외이다. 우리 학교 는 늘 무엇인가를 묻고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남한산초등학교는 교사에게

302 도 참 좋은 학교 라고 말한다. 나는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 20년 만에 남한산초등학 교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새로워지고, 내 행 동이 초등학교 선생다워짐을 느낀다. 또한 학교교육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눈에 들 어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 교직 생활을 다시 시작한지 6년 째 되었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지고 몸에 배인 자신의 습관( 習 慣 ) 을 벗어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동안 많은 일 속에서 겪은 갈등과 고통의 과정은 내 모습을 되 돌아보고 성장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마음공부하는 명상센터도 찾아다 니며 마음공부도 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힘도 길러진 것 같다. 좋 은 선생이 되는 길은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이 남한산 교육의 힘이기도 하다.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를 향해 지난 겨울 방학에 안성 수덕원에서 제2 회 작은 학교 교육연대 워크샵 이 있었 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기와 여기에 참여한 다른 여러 학교 선생님 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좀 더 객관적으로 뒤돌아보고 제2의 도약을 꿈 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우리 자신의 현실을 좀 더 솔직하게 바라보고 비 판하고, 대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 나온 가장 큰 화두는 배움과 나눔의 학 습공동체, 조화와 협력을 배우는 교육과정, 자율주의 생활공동체 였다. 봄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바로 남한산초등학교 교직원 연수가 있었다. 2005학년 도 교육활동 평가와 함께 2006 학년도 중점사업을 계획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작은 학교 교육연대 모임에서 나온 중심과제에 대한 실천 전략을 논의하고, 남한산 교육 의 한계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확인하고 모색했다. 우리의 제 2 의 도약을 꿈꾸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때 제기된 남한산 교육이 극복해야 할 과 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 교육 목표인 더불어 사는 인간 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이 일상적

303 교육활동 속에 녹아있지 못하고, 각 교실의 교육 활동의 개별성이 강해 남 한산 교육이 지향하는 색깔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면이 있다. 체험교육이 특별활동이나 재량활동 또는 일회적인 활동 중심에서 벗어 나 교과 활동 안에서 좀 더 통합적이고 일상적인 교육활동으로 실천되어서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학교 내에서 사적인 관계, 개별적 소통이 강화됨으로써 일상적인 수업 활동에 대한 긴장감과 공식적인 연수 활동이 약화되고, 남한산 교육의 지 향과 철학을 만드는 일과 상호 성장하고 변화하는 힘이 약화되고 있다. 이번 교사 연수에서는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결정 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첫째, 교사는 수업과 교육과정을 중심에 두고 교사 간의 소통을 이루고 서로 성 장하는 학교를 만든다. 이를 위해 모든 교사는 연 2회 이상 수업을 공개하고 토론 하며, 교실을 수시로 개방하여 열린 교실을 만든다. 그리고 남한산 교육 목표를 살 리는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예술과 자연, 교과와 체험, 감성과 이성의 조화와 통 합을 위한 프로젝트 학습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수업으로 공개한다. 또한 교수 - 학습에 있어서는 학생들 간에 소통과 관계가 살아 있는 수업, 협동, 협력, 토론 학습을 강화하기로 한다. 둘째, 학생은 자율을 배우고 스스로 실천하는 생활 공동체를 만든다. 이를 위해 기초 기본 생활교육을 충실히 한다. 교사의 통제와 검열을 통한 지도가 아니라 자 기관리력, 자기주도성을 통해 자율과 협동을 기르도록 한다. 사물에 대해 정성스럽 게 대하는 마음과 경청하는 태도를 기르기 위해 교실에서는 고요하게 여는 아침 활동 등 자신, 사람, 자연과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고,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을 강화한다. 나는 그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와 홍역의 과정을 겪고 이제 다시 교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그 동안 타율과 억압으로 일그러진 일상으로부터 탈출함으로써 희 망을 찾고자 애쓰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투명한 교실 안의 작은 일상 속에서 동료

304 교사들과 함께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떠난 뒤 아이들의 어수선한 사물함 과 책꽂이를 확인하고 책과 공책을 바르게 정리해 놓는다. 서랍을 열어서 아이들이 혹시 알림장을 놓고 갔는지 확인한다. 뒤이어 긴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의 어설픈 비질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쓸며 하루 수업을 정리한다. 오늘도 아이들의 작은 비 질 하나에 하나에 행복이 있었기를 기원하면서

305 고단해도 행복한 주인으로 살아 온 사 년 최은희(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선생으로서, 에미로서 선택한 길 선생을 한 지 십 여 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가 힘들고 버거웠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종종 걸음을 치다 퇴근 무렵엔 맥이 쏙 빠져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몇 줄 씩 짧게 쓰는 일기장엔 온통 힘들다. 바닥을 드러낸 느낌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 가? 쉬고 싶다. 그런 문장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동동거렸지만 오늘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면 마땅히 손에 잡히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숨 한 번 편하게 쉴 짬도 없이 바쁘기만 했다는 생각은 나를 점점 무기력하 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가 학교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데 하 나의 나사나 부속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위에서 결정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학교, 선생들 간의 교육철학이 서로 달라 아이를 가르치면서도 연계지도에 대해 회의가 드는 학교, 주어진 일만 맡아서 하며 창의적인 생각은 배제된 채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학교. 그런 것들이 나 를 지치게 하고, 선생으로서 회의를 갖게 하였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에 오는 일이,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나 굳게 닫힌 학교 조직, 서른 이 넘었으니 승진이나 준비하라는 선배들의 충고, 더 이상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교사들의 분위기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보니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 졌고, 선생으로서 한계가 느껴졌다. 무언가 한없이 퍼내기만 할뿐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일상이 즐거움을 앗아갔다. 한 솥밥을 십 년 먹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라는 선배의 말이 귓 가를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십 년이 되었음에도 나는 오히려 점점 더 무능력해지 고, 내가 숨쉬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을 수 없어 괴로웠다. 그 괴

306 로움의 근원은 내가 주인되지 못함 에서 온 것이었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타성 에 젖은 생활을 거부하지 못하면서도 내 가슴 속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꿈 틀거렸고, 그것은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았다. 학급 운영을 잘 해 보려고 하면 은근 히 제지를 하는 학년 부장이나 그래, 너무 튀거나 잘 하려고 하지 마. 중간만 가. 라며 충고를 해주는 선배 선생들 때문에도 갑갑했다. 무엇보다 그런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제자리에 주저앉는 내가 견딜 수 없이 미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산글쓰기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매주 한 번씩 만나 글쓰기지도에 대한 공부도 하고 학교에서 쌓인 일을 털어 놓으며 조금씩 숨통이 트였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모임에선 승진 점 수를 따지거나 연구보고서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언제나 아이들이 이야기의 가운데에 놓였고, 선생으로서 보람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꿈 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 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가끔 책을 덮고 앉아 우리끼리 한 학교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면 얼마나 좋을까? 김 선 생님은 몇 학년 맡고 누구는 몇 학년 맡고,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학년에 맞는 글쓰 기나 책 읽기 공부를 철저히 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면서 에이, 그런 꿈같은 날이 오겠어? 하며 씁쓸하게 웃곤 하였다. 머리로 가르치고 머 리로 배우는 공부가 아닌 자연과 더불어 몸으로 배워 실천하는 삶을 가르치는 선 생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꿈은 그렇게 넋두리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일상에 지친 우리들 얼굴엔 빛이 돌았고, 생기가 넘쳤다. 그렇게 꿈만 꾸며 지냈던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라는 곳에서 우리 와 비슷한 꿈을 가진 선생들이 이미 꿈의 학교 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월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 팔뚝에 굵은 소름이 돋았다. 몇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던 학부모가 남한산초등학교를 다녀오고, 우리도 해 보자며 무모한 도 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한산초등학교에 다녀오고 나서 우리는 아산지역에도 우리가 꿈꾸는 학교를 만 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막막하게 생각했던 가르치는 보람 을 느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남한산초등학교 교육계획서를 차

307 근차근 검토하였다. 며칠에 걸쳐 남한산교육계획서를 살펴본 뒤 우리와 생각이 같 은 부분은 보완을 하고 또 우리 여건이나 능력이 닿지 못하는 부분은 삭제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대한 틀을 만들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모여 검토를 하며 우리 는 이미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나 한 듯 신나고 들떠 있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글쓰기와 독서, 그리고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체험학습을 학년별 위계를 살려 지도하는 방안을 깊게 고민하고 내용을 만들었다. 물론 이후에 우리 학교의 가장 기본 토대를 이루는 환경생태교육에 대한 설계는 그 때 고민하지 못했다. 그저 학 교 둘레를 이용한 체험학습이 주된 틀을 이루었다. 왜냐하면 학교 예산이 전혀 마 련될 수 없다는 걸 염두에 두다보니 예산이 필요한 체험학습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학부모 두 명은 천안 아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이북랜드 회원과 동 화읽는어른모임 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학부모를 조직했다. 구체적으로 교사의 이 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들을 중심에 둔 교육을 펼치길 희망하는 선생들이 있 다. 이들이 한 학교에 모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아이를 전학시켜 보자. 며 홍보를 한 것이다. 또 학부모들은 남한산초등학교를 새롭게 만드는 데 초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남한산초등학교의 학부모를 만나 학부모가 어떤 일을 준비해 야 하는지 조언을 얻기도 하였다. 선생에겐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이 있는 학교, 아 이들에겐 오고 싶은 학교, 학부모는 보내고 싶은 학교 를 그리며 우리는 2001년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설렘과 두려움으로 보냈다. 남편은 너무나 힘든 길을 찾아간다며 말렸다. 그렇지만 나는 에미로서 내 아이가 자연과 더불어 살고,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선생이 가르치길 원하면서 선생인 내 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아이가 그런 공부를 할 수 있겠냐며 설득하 였다. 실은 그 설득은 남편에게보다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는 내게 던지는 다짐이었다. 또 고백하자면 내가 몸담고 있는 공교육에 대해 나조차도 불신이 많았던 점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있는 선생 가운데 내 아이 담임을 맡을까 두려운 사람이 있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만나 가르치기에는 인성이 턱없이 부족한 그런 성생, 그

308 래서 피해가고만 싶은 선생이 있다. 차마 내 아이의 장래를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 지 않은데, 운이 좋으면 피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찌하나? 에미로써 두 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운 학교 로 선택한 학교는 송악면에 위치한 거산분교였다. 거산분교를 선택 하게 된 까닭은 준비하는 교사 가운데 두 명이 본교인 송남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내신을 내는데 조건이 유리하고 나머지 네 명만 거산분교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유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전보 내신 내규를 살 펴보면 일반적으로 한 학교에 반이 전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최소한의 인원 이 전입해서 들어가기에는 본교 교사가 있는 거산분교가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 마치 거산분교의 교사 네 명 가운데 두 명이 전출을 가야 되는 상황이었고, 두 명 이 남아있더라도 준비한 교사 두 명이 들어가면 학교를 운영하는데 큰 힘이 될 거 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산분교에서 전출을 하지 않을 두 명의 교사를 본 교에 계신 이 선생님이 만나보기로 했다. 우리의 교육활동과 새로운 학교에 대한 그림을 이야기하며 함께 일해보자고 설득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산분교의 선생들은 이미 우리가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원형 작은 학교 살리기 추진위원인 지역민이 우리가 회의한 내용이 담긴 책자 를 거산분교에 놓고 오는 바람에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거산분교선생님들은 우리 가 자기들을 쫓아내려 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고, 여러 번 만나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지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결국 필요한 선생 한 명을 부랴부랴 섭외하기에 이르렀고, 교사 인사 발령에 관 한 문제는 추진위원 가운데 작은 학교 살리기 대표를 맡고 있는 장호순 교수가 발 벗고 나섰다. 장호순 교수가 충남도교육감에게 교육감 후보 시절 농어촌의 작은 학 교를 살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아 논 것이 있어서 그 문 서를 가지고 작은 학교를 살리려는 교사를 한 곳으로 발령 내달라고 계속 요구하 였다. 충남도교육감은 장호순교수와 서면 약속을 했던 지라 발뺌을 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아산교육장에게 거산분교에 전입을 희망하는 교사를 발령내주라고 지시하 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와 함께 유월부터 준비했던 교사가 예산에 있는데 지역 간 이동을 하지 못해 함께 발령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같은 지역 내 내신은 지역

309 교육장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지역 간 내신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 장 때문이었다. 그 때 우리는 땅이 꺼지는 것처럼 암담했다. 당장 한 명의 선생을 어떻게 섭외해야 하는지 암담했다. 또 설령 누군가를 데려 온다 해도 새로운 학교 에 대한 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이 었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일은 그렇듯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는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고, 희망과 절망의 끝을 오르내렸다. 학부모들은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스스로 작은 학교에 대한 배우고 학부모로써의 구실에 대해 공부하였다. 새로운 학교 에 대한 학부모의 기대와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는 실로 대단하였다. 한 편 준비하는 선생과 지역 주민( 거산분교 폐교 반대에 힘썼던), 작은 학교 살리기 모임이 결합한 전원형 작은 학교 추진위원회 회의 역 시 매주 열렸으며, 기자회견과 교사 발령, 학생 모집에 대한 구제척인 계획을 만들 어 나갔다. 모두 대단한 열정이었다. 그리하여 아련했던 꿈은 점차 실체를 드러내며 구체적인 학교 상을 만들어 나가 기 시작하였다. 선생들은 모두 전교조 소속이었으며 공교육 내에서 대안을 모색해 보자 라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단지 농촌의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뜻보다는 교육운동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과 학부모의 마음에 담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그 때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학교를 운영하면서 우리 에게 힘든 걸림돌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어쨌건 그 때 우리는 모두 설 렘 속에서 거산학교에 닻을 내렸다. 그 때가 2002년 3월 1 일이었다. 내가 폐교 직전의 거산분교에 둥지를 틀고 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실은 선생이 라는 직업적 선택보다는 에미라는 강한 힘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내 아이가 받기 원하는 교육이 있다면 선생인 에미가 먼저 해야지 나조차 안하면 누가 할 것인가 라는 모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교육 내에서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 험난한 길에 무모하고 용감하게 뛰어 들었다. 우리가 뛰어든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이었기에 두려움도 컸지만 희망 또한 컸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여럿이 꾼 꿈은 현실이 되었다

310 처음 거산분교에 오던 날의 그 스산함은 잊을 수 없다. 다 쓰러져 가는 유치원 건물과 서향으로 지어져 햇빛도 없고 을씨년스런 공기, 학교를 진동하는 변소 냄 새, 그리고 습기 때문에 썩는 나무의 퀴퀴한 냄새, 황량한 교실. 이른 봄이라 앙상 한 나무만 서 있는 거산분교를 보며 가슴이 무거웠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막상 한 학교에 여섯 명의 선생이 발령을 받았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처음부터 새로운 학교 를 준비했던 네 명과 겨울 방학에 급하게 섭외한 선생 한 명, 그리고 본교에 내신을 냈던 전교조 선생 한 명으로 꾸려진 거산의 삼 월. 겨울 방학 동안 교육계획서를 검토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였던 일이었지만 막상 부딪 히고 나니 산 넘어 산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선생들 사이에 학교에 대한 상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점이었다. 두 분 선생이 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막연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학교의 행사를 진행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는 지 리한 토론과 감정의 격함이 이어졌으며, 하나의 일을 처리하면서 무척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막연했던 학교의 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물론 아동관이나 교사관 따위가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학교를 운영하는 면이 비슷했기 때문에 힘들지만 순간 순간 의 과정을 극복해 나갔다. 거산분교에 오고 첫 해는 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회의와 토론.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선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 기하고 설득하고 양보하며 행사 하나 하나를 준비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일을 해 나갔다. 합의의 과정은 무척 힘들지만 일단 어떤 일에 합의가 되면 모두가 내 일이 라는 생각으로 달려들다 보니 일의 성과 또한 컸다. 어떤 안을 합의해 나가는 과정 에서 모두 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못해 감정이 격해지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 우 리는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양보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문화와는 동떨어지게 살아왔는지 절감하였다. 지루하고 힘든 토론의 과정 역시 우 리에게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디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 없이 말하고 또 남의 생각을 들어서 합리적으로 의사를 조율하는 과정을 배웠는 가? 아니 그런 모습을 본적이라도 있었던가? 그렇게 우리는 고통을 통해 배워 나 갔다

311 이렇게 선생들 사이에서 합의된 일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명실공히 교사회의의 의결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선생 하나 하나의 의견을 듣고 모두가 합의에 이르도록 설득하고 타협하며 조금씩 올바른 토의문화를 익히고, 또 주인으로써 구실을 찾아 나가게 되었다. 거산분교로 삼 년을 지내면서 이런 원칙은 지켜졌으며, 본교가 된 올해도 교사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여기에는 선생들을 신뢰하 며 어떤 일이라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교장선생님의 구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교장선생님 역시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과 구성원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 치관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혁신된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선생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지만 관리자가 어떤 세계관과 교육관은 갖고 있느냐 하는 점 또한 무 척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학교에 대한 교육 주체 간의 꿈이 동상이몽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은 그 해 가을이었다. 학부모 조직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다 보니 학부모가 교사가 판단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에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 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교육과정 운영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구실을 해야 한다는 생 각뿐만 아니라 특정 사람들의 생각을 학교가 받아 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학부모의 전체적인 입장은 아니었지만 어떤 조직에서 건 목소리 큰 사람들이 꼭 자신들의 생각으로 전체의 흐름을 끌어 나가려 하지 않 는가? 지금 돌아보면 학부모 조직이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서툴렀으며 학교의 주인으로써 해야 하는 자세와 구실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 배를 탄 운명이라고 학부모를 믿었던 선생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 다. 결국 선생과 학부모가 거산분교를 선택한 배경이 달랐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 다. 선생은 교육운동의 관점으로 접근했지만 학부모는 그것보다는 내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다 는 지극히 가족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이 더 컸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 선생들은 무척 힘들었다. 학부모를 지나치게 가족적 으로 생각했던 탓도 컸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부모 역시 학교에서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지 합리적으로 판단하였고, 행동하였다. 아울러 학년 대표자 모임을 구성하고 대표 자들로 구성된 학부모회의를 통해 학교 운영에 발언하고 참여하였으며, 학교 운영

312 에 대한 의견은 공적인 논의 구조를 통해 토의되고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 켰다. 그래서 불필요한( 개인의 감정이 개입된) 의견은 공적인 논의의 틀에서 걸러 지게 되었다. 학부모대표자회의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학교의 일을 논의하고 공유하며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한다. 또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 면서 교사 학부모 연석회의를 열어 과정과 절차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 학교교 육과정 운영에 대한 평가에서도 교사의 평가와 학부모 평가, 학생의 평가를 거치며 평가 결과를 토대로 교사 학부모 연석회의를 통해 다음 해 학교교육과정을 같이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의 주인으로써 서로가 해야 할 일과 역할을 찾아 나가는 데 이렇게 삼 년여의 시간이 필요했고 본교가 된 올해에는 더욱 정착이 되어 선생 과 학부모의 신뢰가 점차 회복되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꾼 꿈은 정말 현실이 되 었다. 끝없이 퍼내도 차고 넘치는 우물, 가르치는 기쁨과 보람 선생은 무언가를 끝없이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 에게 더 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였다. 세상과 아이들을 빠른 속도로 변화하 는데 나만 늘 뒤쳐진 듯하여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힘들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 기보다는 제자리에서 맴돈다는 생각은 하루 하루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딱 히 무엇을 배워도 굳어진 학교 틀 안에서 써 먹기란 여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거산에서의 삶은 달랐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 찬 선생님들과 함께 있다보니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배우려 애쓰게 되었다. 학년 사이에 연계성을 중요 하게 여기는 학교교육과정 운영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지난 사 년 동안 늘 함 께 배웠다. 상담 연수를 배우고, 어린이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일기 쓰기나 글쓰기 에 대해 공부하고, 학부모와 함께 숲 해설가 과정을 이수하며 새로운 세계와 만나 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게 되었다. 교과에 대한 안목도 스스로 놀랄 만큼 높아졌다. 서로 가르치는 방식을 고민하고 또 실천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 니 서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배움은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가지만 나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행복 또한 무척 크다

313 생각이 비슷한 선생이 모여 있다 보니 어디서건 아이들 일기나 글, 그림을 가지 고 흥분하고 즐거워한다. 그림책을 보여주고 서로 다른 반응을 나누며 신기해하고 틈만 나면 아이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또 앞으로 학교가 가져가야 할 모습에 대해 거리낌 없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눈다. 그럴 때 우리 학교 선생들 얼굴에는 빛이 난다. 즐거워서 어쩌지 못하겠다는 비명이 들린다. 또한 이런 즐거운 배움은 전문가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환경생태 교육의 전문가가 수업을 할 때 선생인 우리들이 더 감동을 하고, 화가와 함께 그림 을 그리며 우리가 더 심취했으며,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설치미술을 하느라 끙끙댔 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전문가들은 선생들에게 감동을 받는다면서 언제든지 학교교 육과정에 결합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보수 없이 학교를 드나든다. 선생의 즐거운 배움은 머리에 담겨져 있지 않고 아이들에게 배가 되어 돌아간다. 교육연극 연수를 받던 지난 여름 우리는 개학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선생 가운데 방학이 얼른 끝나길 바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배운 것을 아 이들과 함께 실천해 보고 싶어서 우리는 몸이 근질거렸다. 그리고 개학이 되자마자 선생님들은 방학 동안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풀어 놓는다. 그리고 그 반응을 교무 실에서 함께 나누며 흥분한다. 어머 어머 그랬어? 눈을 둥그랗게 뜨며 박수를 친 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을 하고 그 감동이 너무 벅차다며 옆 교실에 가서 이야 기를 하느라 경황이 없다. 듣는이도 말하는이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우리끼리 속된 말로 우리 정말 푼수야! 하면서 크게 웃어댄다. 물론 몸은 고되다.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툭하면 감기 몸살에 걸리기 일 쑤고, 피곤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거산에 와서 그 동안 선생하면서 느끼지 못한 보람을 이제야 느껴본다. 며 거산에서 정년 퇴직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거산은 더 이상 직장이 아니라 내가 가꾸는 삶 의 공간이며 나와 한 몸을 이루는 내 집이 되었다. 나는 거산에 와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가운데 선생이 무엇을 하는 사람 인가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 는 사람이 선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선생도 배우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314 그림책을 보여줄 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아이들, 삽 질이 서툰 나를 보고 삽을 빼앗아 묵묵히 푹푹 땅을 파는 지역 아이들, 노랗게 떨 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은행잎 이불을 만들어 덮자는 따뜻하고 예쁜 감성을 가진 아이들. 그들에게 숨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며 미안해, 그건 내가 잘못했어. 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날 발견했다. 아이들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권위에 둘러싸여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둔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들.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고 배우는 법을 가르쳐준 순수한 스승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르는 것에 대해 대담해 졌고, 아이들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 행동과 말 하나 하나가 나를 가르침을 알게 되자 나는 학교 오는 게 즐 거워졌다. 오늘은 또 무얼 새롭게 배우게 될까? 기대하며 학교에 오게 된다. 그러 다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들이라는 생 각이 들자 아이들 하나하나가 귀하게 여겨졌고, 또 소중하게 느껴졌다. 말 하나에 도 마음을 담았다. 그런 귀한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눠줄 때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아이들 보다 내가 더 신이 났으며, 알뜰 장터가 열리거나 체험학습을 갈 때는 어렸을 때 소풍 가지 전 날 밤처럼 잠을 설쳤다. 어느 새 나는 아이가 되었다. 근엄하고 권위 적인 선생의 자리에서는 맛보지 못하던 기쁨이며 환희였다. 퍼내도 퍼내도 차고 넘치는 우물 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선생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무척 행복할 것이라고 우리는 지레짐작한다. 이것은 짐작 뿐만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자긍심과 만족도가 무척 뛰어나며 아이들 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낸다. 는 말이다. 이 말은 아이들이 나 학부모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협박(?) 이다. 몸은 고단해도 주인으로 살기 때문에 행복한 날들 거산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학교가 그냥 근무하는 일터가 아닌 내 학교 라는 생각이 든 점이다. 운동장에 떨어진 휴지를 보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315 못하고 주워 들고 간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나중에 청소 시간에 아이들한 테 주우라고 하면 돼. 또는 누군가 치우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또 봄이 되면 올해는 텃밭에 무얼 심고, 현관 앞에 수세미를 심을까 조롱박을 심을까 고민한다. 텅 빈 꽃밭을 보며 들꽃은 무얼 더 사 다 심을까, 어떤 게 좋을까 둘레 선생님한테 물어본다. 한 학교에 오 년이나 있으 면서도 학교 화단에 무엇이 심겨져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던 때와는 너무나 다르 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조롱박 씨앗을 사다 아이 들과 포토에 심으면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일요일에 텃밭에 나와 밀씨를 뿌리면서도 콧노래가 나온다. 파랗게 돋아날 밀 싹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 내년 가 을엔 밀 빵을 구어먹자며 서로 흥겨워한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 손이 서 툴지만 지역에 사는 유기농 하는 사람에게 방법을 배워가며 일을 한다. 다른 사람 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 밭을 내가 일구는 주인으로 사니 기쁘다. 흥이 난다. 몸이 고단하다며 다음엔 절대로 몸을 혹사시키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또 무슨 새로운 일이 없나, 학교를 가꾸는 데 도움 되는 일이 없나, 아이들이 좋아 할 무슨 그런 일이 없나 눈을 반짝거리며 두리번거린다. 퇴근 시간을 넘기고 온통 산뿐인 깜깜한 학교에서 불을 밝히고 일하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는 참 많이 웃는다. 아이들 일기장을 보며 웃고, 창의적인 생 각 앞에 감동 받고 그러면서 고된 몸을 추스르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종으로 살 때가 몸은 참 편했는데 주인으로 살려니 여간 힘들지 않다 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누가 옆에서 그럼 내신 내. 라고 말하면 손 사레를 친다. 그래서 재작년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던 선생님이 거산에서의 기 쁨과 즐거움, 행복을 잊지 못해 올해 다시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전입해 오셨다. 아이들이나 선생, 학부모에게 모두 다 거산학교는 절대로 떠나기 싫은 공간이 되었 다. 영원히 살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행복한 선생을 계속 하려면 학교제도에 대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 다. 교사 인사의 다양성과 여러 가지 형태의 학교상이 제시되고 이루어져야 한다. 위로부터의 혁신이 아닌 지금까지 이루어진 거산이나 남한산, 삼우의 학교 형태를 바탕으로 하여 지역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316 관계기관의 모색과 과감한 실천이 요구된다. 학교 밖의 세상은 급물살로 흐르는 데 여전히 꿈쩍도 않고 버티면 학교는 그 물살에 휩쓸려 버린다. 그러다보면 자체 내 의 모색이나 탐구 없이 외부의 요구나 조건에 맞춰 학교 모습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주체의 요구에 제도가 뒷받침되는 학교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교육의 미래는 어둡다. 공교육에서 숨쉬고 있는 모두의 삶이 불행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과감한 선택과 실천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이것 은 마찬가지다.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그것은 장애가 된다. 또한 선택에서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시기와 시스템.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버릴 것 은 버리고 새로운 혁신을 모색하여 실천할 때다. 더 늦으면 우리 모두는 불행해진 다. 작은 학교가 또 다른 노아의 방주가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며 거산에서 보낸 사 년에 대한 이야기를 맺는다

317 농촌학교의 희망, 그 대안을 찾아서 송수갑(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교사) 1. 공교육,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은 학교의 존재 가치인 교육, 즉 바람직한 학생지 도를 겨누어야 함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교육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서 교원과 그 직급이 필요하며, 장학지도, 학교운영위원회, 각종 공문서가 있을 것이다. 학교 사회에서의 리더쉽을 비롯한 각종 회의나 학교풍토, 인간관계는 교육 본질을 실현 하기 위한 순기능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학교 현장은 그러하지 못하다. 일 년이면 두 번씩 꼬박꼬박 지역교육청의 장학지도가 이루어진다. 손님맞이 청 소, 지정수업이나 일반수업 준비, 장학리스트의 실적기재와 실적물 정리 등으로 큰 행사가 치러진다. 장학지도의 본질인 수업의 질 향상을 꾀하는 활동이나 학교 교육과 교육행정에 대한 의견수렴 내지 실질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학 지도가 수업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나는 20 여 년 동안 장학지도가 있게 되면, 좀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부 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교사들이 꺼리는 지정 수업공개도 마다않고 임했고, 낡은 교육행정의 문제들에 대하여 주저 하지 않고 그 개선을 요구했다. 장학 담당자에 대하여 교육청의 겉치레를 위한 무 분별한 우수사례의 제출을 요구하지 말라, 공문서의 법적인 파급범위를 엄격하게 준수하여 학교의 잡무를 줄여라, 6학급의 작은학교 입장을 생각하여 수업결손을 초래하는 교육청의 회의소집을 신중히 하라, 7차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려 업무중 심, 실적중심의 장학에서 교과중심의 장학지도로 개선하라, 지역사회적 특성과 교 과별 특성( 지역화된 목표) 에 걸맞은 수업 분석 기준이나 척도를 제시하라, 지난 번의 장학지도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에 대하여 책임있게 답변하라 등 지극히 정당

318 하고 상식적인 요구를 해 왔다. 그러나 그런 요구가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장학지도 장면의 모습 이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할 때면 관리층과 부장교사들이 합세하여 나로 하여 금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아우성거렸다. 내가 교무부장의 입장에 있던 10여 년 동 안은 교장 혹은 교감으로부터 자제를 촉구하는 강한 언질을 받아야 했다. 이런 문제는 학교 내부에도 있다. 학교 관리자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 모두가 단 위학교 교육활동을 통하여 추구하는 어린이상이 무엇이고, 이를 위하여 어떤 노력 을 경주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협력적 실천이 뒤따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이러한 절차와 노력에 따른 결과는 자연스 레 단위학교의 문화 로 자리잡게 될 것이며, 나아가 학교의 차별화된 특색이나 전 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즉, 공유된 학교조직의 목표와 이를 추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자의 역할이 이른바 리더쉽 이라 할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교장의 리더쉽 유형을 과업중심형 이니 인간관계형 이니 등으 로 규정한다. 특기적성업체를 선정함에 있어 학운위 또는 선정위원회가 정당한 기 준에 따라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결정하지만, 관리자는 학교장의 최종 결정권 운 운하며 거부한다. 학교의 미래지향적 변화를 거부하고 오히려 학운위 파행을 조장 한다. 교사들의 건강한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비난을 일삼는다. 일상적 관심이 교육 본질과 동떨어져 있고, 학교 조직의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 관심조차 없으며, 교사의 수업보다 수업 외적인 활동에 무게 중심을 둔다. 이런 관리자를 리더쉽의 유형에 포함 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런 관리자야말로 엄밀한 의미에서 어떠한 리더쉽의 유형에도 포함시킬 수 없다. 리더 쉽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 현실인 것이다. 비교적 큰 규모의 단위 학교에서 특기적성교실 운영비나 학교급식비는 학교교육 비에 버금가는 예산 규모를 가진다. 특기적성업체의 선정이나 재계약 또는 급식납 품업체 선정에서 의사결정권자와 학운위간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가 종종 벌어진다. 그것도 학운위 구성과 활동이 비교적 민주적인 학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자세히 들 여다보면 학생 복지의 질적 향상이나 학부모의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업체선정에서

319 의 이권과 관련된 문제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학교 운영이나 학생 교육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려는 비교적 건강한 의식을 소유 한 학운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한 학교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학운위가 오히려 파행 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교운영에 투명성을 담보하고 민주적인 학교행정을 강화하여 학교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학운위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권위 주의적인 관리층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교원들이 학운위의 구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학운위의 정당한 제안과 토론을 제약하고 왜곡하며 반교육적 행태를 일삼는다. 그러한 잘못된 행태에 대하여 학교안의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 는다. 예컨대, 특기적성업체의 강사에 대한 처우는 어찌보면 업체와 강사 간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지만, 강사의 봉급 수준은 당연히 강사 소양 수준을 좌우하게 만들며, 나아가 특기적성교실 수업의 질과 강의의 열의( 강도) 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 다. 때문에 학교 관리층이나 행정실이 당연히 업체를 상대로 강사의 처우에 대한 관련 자료를 요구해야 마땅하나, 이를 요구하는 교사의 문제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태도 때문에 업체 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학운위원들의 강사에 대한 집요한 설득으로, 업체 대표측의 부당한 축재가 밝혀지 는 과정에서 학운위 운영이 파행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학운위 활동을 주체적으로 수행한 운영위원은 어느 정도의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 게도 되지만, 교사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수업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학교행정의 문 제로 피곤함을 느껴야 한다. 생명력 넘치는 팀웍이 존재하고 지극히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의 많은 교사들이 학교내 반교육적인 행태, 비민주적인 분위기, 권위주의적인 풍토, 의사소통의 제약 등으로 깊은 피로감에 빠져있다. 2. 삼우초, 어떤 학교인가? 1) 새로운 시작과 그 과정

320 2000 년을 전후하여 각 시도교육청의 지원하에 교과연구모임 이 활성화되었다. 그간 교육운동과 관련된 여러 모임을 통하여 이러저런 공감대가 형성된 교사들이 지역이나 관심 분야에 따라 교과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런 교과연구 모임에서 는 교과연구의 본질적 활동 이외에도 개별 교사들이 속한 단위학교의 고충이나 활 동사례에 대한 의견교환이 활발하였다. 당시 나는 현재 작은학교교육연구회의 전 신인 문화부림수업연구회 의 회원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교육과정 용어 중 한 자말의 순화에 관심을 가진 교사들이 우리 말글로 고쳐 나가는 활동을 하였다. 즉, 지나치게 어렵거나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한자어나 일본식 한자어 등에 대하여 순화할 수 있는 우리 말글을 찾아 적용하는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도, 모임이 있는 날이면, 우리 사이에는 이런 넋두리가 수없 이 오고갔다. 학교교육비의 학생교육활동 지원에 인색한 학교관리층의 문제에 대하여 학교내 동조 교사가 거의 없어서 고민이며, 하나하나 따지자니 힘들다.( 교 사 나영성) 도시학교의 근무를 접고 내가 자란 고향의 학교로 이동하여 봉사하고 싶 었는데, 도무지 의사소통에서 관리층의 벽이 너무 두터워 혼란스럽다.( 교사 이현근) 학운위가 제 역할로 기능하도록 하는 노력이 중심교사의 전근으로 무기 력화 돼 버렸다.( 교사 송수갑)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우리 말글이 미미한데, 이를 개선하자는 뜻에 호 응하는 교사가 적어 학교 내 파급이 더디다.( 교사 염시열) 개별적인 활동가에 의한 단위학교의 건강한 교육 운동이 산발적이며 일시적인

321 변화에 그치고 있었다. 즉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 단위학교 문화 로 자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 즈음 교육활동가들에 의해 농촌학교살리기 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조직 차원의 행사나 사회적 연대 활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느 한 교과연구모임 의 자리에서, 나는 농촌의 작은 학교에 결합하여 농촌학교의 희망을 만들어 보자 고 조심스런 제안을 하였다. 이 제안은 여러 차례에 걸쳐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그 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참여 의지를 표 방한 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주도 교사들의 권유나 제안에 대하여 입장을 유보하거나 개별 교사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 또는 확신의 부족으로 난색 을 표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대부분의 교사들로부터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가 존중되는 학교에 근무하고 싶은 소박한 욕구는 두루 확인할 수 있었다. 농촌학교의 희망을 일구기 위한 실현가능한 검토와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 남한산초등학교 가 화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때마침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 중 인 나영성 교사가 연구 대상을 경기 남한산초등학교 와 전북 삼우초등학교 및 봉성초등학교 로 삼으면서 남한산초등학교 사례가 많은 동료교사들에게 확산되어 갔다. 여름방학을 맞아 나영성 교사를 포함한 몇 교사들이 남한산초등학교를 방문 하였고, 아름답고 작은 학교의 희망 사례 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 는 삼우초의 시작과 관련하여 자신감과 확신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 기로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의 윤곽을 잡아가게 된 것이다. 농촌의 작은 학교 희망을 만들어 갈 경 결합 학교 를 정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삼우초등학교로 쉽게 합의하였다. 삼우초등학교가 면소재지 학교로 의 통폐합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 동료교사들의 권유로 내가 전입하게 되었고, 농촌의 작은 학교끼리의 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 의 교육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삼우초가 처한 상황과 지역사회의 노력, 교원인사의 실현성 및 농촌학교 모델에 대한 가능성 등이 두루 고려되어 삼우초에서의 결합이 합의된 것이다. 교과연구모임 차원의 결합 원칙에 합의가 이루어진 뒤, 이의 실현을 위한 여러 대책이 강구되었다. 그 첫째가 학교운영위원회와의 공감대 형성이었다. 농촌의 작

322 은학교 희망을 일구기 위한 방향과 전략 및 자신감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일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학운위원과 희망교원 간에 만남의 자리를 가졌고, 뒤이어 학운 위원과 희망교원이 함께 남한산초등학교와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를 방문하 게 되었다. 굳이 이우학교를 탐방한 까닭은 삼우초의 전면 개축을 통한 농촌형 모 델학교 건축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학운위원들은 남한산초등학교의 사례 탐방을 통하여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지역사회 여건의 너무 큰 차이 로 인해 무거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둘째는 희망교원들의 전입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전제 조건의 하나가 삼우초에 근무하고 있는 기존 교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일과 전출에 동의해 주는 일이었다. 먼저 교장선생님께 우리의 뜻을 소상히 밝히고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서의 모든 일이 학교장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실행되는 학교사회 관행 속에서 40 여 년 간 교직생활을 수행하신 교장선생님이었다. 전혀 생소하고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제안인 까닭에, 교장선생님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 야 하는 자리를 솔직히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있는 그대로 의 도와 과정을 솔직하게 전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원칙임을 되뇌이며 교장실에 앉 았다. 교장선생님의 반응은 의외로 고무적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기존 근무 교원들 을 설득시키는 일에 손수 나서서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는 반응이었다. 기존 선생님 들은 시큰둥한 입장에서부터 삼우초와 같은 열악한 여건에서 농촌학교의 희망을 일구는 작업을 하려느냐, 가능한 일이겠느냐, 좀 더 여건이 성숙된 후 시도하는 것이 어떠냐 는 등 여러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나는 지역교육청에 자초지종을 설 명하고 기존 교원을 삼우초보다 근무조건이 좋은 학교로 이동( 전근) 할 수 있도록 설득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당장 세 분의 기존교원이 전출에 동의해 주는 일이 시 급하였다. 본교 경력이 2년 된 교직경력 33년의 김모 교사는 통근거리가 가까운 학교로의 전출에 비교적 흔쾌하게 동의를 해 주었고, 본교경력 4년된 교육경력 23 년의 이모 교사는 관내 연구학교로의 전근을 조건으로 전출에 동의하였다. 나머지 한 분인 박모 교사가 문제가 되었다. 이 분은 교육경력이 30 년이고, 본교 경력이 1 년이었다. 이 분은 승진 문제 때문에 근무평정의 관리 차원에서 삼우초에

323 1 년 전 전입했던 교사인 것이다. 사실 1년 전에 우리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삼우 초에 전입하기로 하여 전입 내신 을 하였지만, 근무평정 점수를 노린 박모 교사가 전격적으로 전입하는 바람에 그 전입 시도가 좌절되었던 바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내 마음 한 구석엔 박모 교사에 대한 원망의 한 자락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사 실이다. 그는 근무평정을 1 년만 잘 받으면 승진대상자로 차출될 것이니 1년만 근 무하다가 반드시 떠나겠다 며 이해를 여러 번 구한 바 있었다. 박모 교사는 의도대 로 근무평정을 잘 받았는지 승진대상자로 차출되었다. 그런데 서서히 입장이 바뀌 어 갔다. 승진되어 좋은 조건의 발령을 받기 위해 1년만 더 근무했으면 어떻겠느 냐 는 입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 진 것이다. 나는 엄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차 후 1 년을 더 근무하면서 우수한 근무평정을 받게 놔두기는커녕, 학교관리자를 교육 청의 고충심사위에 제소하여 금학년도에 잘 받았다는 근무평정조차도 재평가토록 하겠다 는 입장을 확고하게 밝혔다. 박모 교사는 당초의 생각대로 전출 내신을 하 게 되었다. 전입을 희망하는 교원 3 명의 자리는 마련된 셈이었다. 셋째, 교원의 인사발령 권한을 가진 교육청의 인사담당 실무자와 최종결정권자의 조치가 다음의 관건이 아닐 수 없었다. 삼우초에 결합하기로 한 교원 3 명 중, 두 분은 완주군 관내의 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이고, 나머지 한 분은 타 시군에 근무하 는 교사였다. 즉 관내 근무하는 교사의 인사 발령은 지역교육청의 권한 사항이고, 나머지 한 분은 지역교육청에 앞서 도교육청 인사권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였다. 예년의 관례로 보아 타 시군에서의 근무경력이 2년 된 교사가 완주군에 전입하기 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도교육청 교육감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경우인 것이다. 학교운영위장이 도교육청의 교육감을 면담 요청하여 삼우초의 구상을 설명하였 다. 도교육청의 반응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지역교육청의 교육장 면담을 통하 여 농촌의 작은학교 희망 만들기 구상을 소상히 설명하였다. 남한산초의 사례를 곁들여 이해를 구하고 교육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임을 재차 강조하였으나, 고 민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검토해 보겠다는 약속만 받아왔다. 교육장으로서도 처음 접하는 정황상 쉽게 결단하기 어려웠으리라 이해는 갔다. 수 주일이 지나, 도교육

324 청의 교원인사가 발표되었다. 전입 발령이 났다. 반신반의 했던 타시군의 이현근 교사가 완주군으로 나는 다시 완주교육청 교육장을 찾아 갔다. 타시군의 이현근 교사가 완주군에 전 입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삼우초에서 작은학교 희망을 일구는 일의 시작 은 교육장의 손에 달려있음을 재차 강조하였다. 이후 교육청의 인사담당자에게 유 선 연락 등 여러 경로를 통하여 세 분의 희망교사 전입에 대한 학교와 지역사회 의 입장을 누차 전달하였다. 어려워 보였던 교사 결합이 실현되었다. 모두에게 환 희가 아닐 수 없었다. 소박한 꿈을 향한 첫 발이 내디뎌진 순간이었다. 학운위원들 과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누었다. 인사 발령이 난 다음날 바로 찻집에 모여 새 학교 의 설계에 착수했고,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는 작은학교 에 대한 교육적 철학과 구 상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2) 새로운 학교의 모습 우리는 경륜있는 교원의 지혜 못지않게 젊은 교사의 참신한 아이디어도 존중받 으며, 안정성이나 책무성에 비중을 두는 학교관리층의 생각과 더불어 적응성과 자 주성을 주장하는 평교사의 입장도 함께 고려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학교를 지향하 고자 했다. 예와 새로움, 전통과 창의가 조화를 이룬 작지만 행복한 학교를 꿈꾸었 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삼우초등학교는 사람의 배움 활동이 만남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 만남 에 이해와 사랑이 깃들 때 행복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며, 학교에서의 배움 은 그러한 행복한 만남을 안내하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믿는 교육가족들이 모여 작은 학교가 갖는 아름다움 을 조용하게 시작하고 있는 학교이다. 하나.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이 공유된 학교이다. 교육 활동을 펼치는 방법과 내용을 기본적으로 우리의 것( 우리 문화) 에

325 서 찾고, 그 활동에서 학생이 늘 중심에 서 있으며, 교사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토론의 문화( 합의와 팀웍) 를 중시하는 학교이다. 둘. 참다운 즐거움을 좇는 학교이다. 배움의 과정이 짐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작용하게 하며 여유 속에서 참 나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품성을 가꾸어 나아간다. 우리 문화에 터한 자기주도적인 학습, 체험학습( 수요/ 문화/ 들녘), 농사일 의 이해와 탐구, 인간사랑을 위한 행복의 시간 등을 구체화하여 만들어가 는 교육과정을 지향한다. 셋. 지극히 한국적이며 상식적인 학교이다. 교육의 제반 활동이 한국적 문화와 교육 주체들의 민주성을 중요시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학교를 만들어 가되, 교육주체들의 자주적 노력으로 이미 교육적 성과가 검증된 남한산초등학교( 경기 광주 소재) 와 거산분교( 충남 아산 소재) 의 교육프로그램을 탐색하여 새롭게 적용한다. 우리 삼우초등학교는 행복한 만남 을 자연과의 만남 인간과의 만남 문화와의 만남으로 나누어, 그러한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활동을 학교교육의 목표 내 지는 인간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는 삼우초가 거듭나고 있는 과정에서 이루 어진 활동 사례 중 농촌형 학교건축 이야기, 농촌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들녘체험 프로그램, 자원봉사자의 사랑으로 운영되는 계절학교, 특기적성교실 이야기, 고장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학교 행사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농촌형 학교 건축 이야기 농촌인구의 감소 추세에 따라 고산서초등학교와 삼기초등학교는 여느 농촌 초등

326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수가 감소하여 소규모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 라 두 학교는 전라북도교육청의 통폐합 방침에 따라 1999년도 중 전북 완주군 고 산면의 소재지 학교인 고산초등학교로의 통폐합 대상 학교로 지정되었다. 두 학교 는 폐교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에 지역사회 인사와 일부 교원은 2000학년 도부터 2002 학년도까지 농촌학교의 유지, 즉 통폐합 반대를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저는 당시 고산서초 교장선생님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목 적을 분명하고 확고하게 밝혔습니다. 고산서초의 폐교 문제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학교통폐합에 대하여 그 동안 어떤 생각을 가지 셨는지 모르지만, 통폐합 문제는 저희들의 의견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라고 했 습니다. 이후 폐교를 막을 방법을 다각도로 생각해 봤습니다.( 여태권 씨, 당시 고산서초등학교 운영위원장).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삼기초를 폐교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학교 지역사회는 물론이려니와 객지에 나가 있는 동문회까지 발끈했었죠. 그러나 통폐합 소문이 지역사회에 전해지고, 1년여가 지나는 가운데 일부 학생들의 전학 등으로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어 통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죠. 고산면 관내의 3개교 가 동시에 폐교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무척 안타까웠죠. 한 개의 학교라도 존치 시켜야 한다는데 삼기초 지역사회 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고산서초에 전하고, 고산서초의 운영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입장에 대해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구윤회 씨, 당시 삼기초등학교 운영위원 장) 결국 2003년 3월 1 일에 전라북도교육청의 통폐합 방침을 거부하고, 두 학교는 현재의 삼우초등학교인 고산서초등학교로의 통합을 이뤄냈다. 전국 최초로 작은 학 교끼리의 통합을 관철시킨 것이다. 이러한 통합과정을 겪으면서 교육주체들은 농촌 학교의 유지 발전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되어 갔다

327 통합된 삼우초는 30여년 된 낡은 학교건물에 그 흔한 다목적실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서실을 비롯한 특별실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더욱이 재래식 야외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2002년 3월에 삼우초에 부임하여 1개월여가 지난 즈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삼우초의 교육환경에 대하여 강력 항의하는 문건의 자료를 지역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통폐합 대상학교라는 이유로 비위생적이기 그지없는 재래식 야외화장실이나 제 반 교육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교육의 포기라 보는데, 교육청의 입장은 무엇인가? 장학진이 삼우초를 방문하면,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에 직접 들어가 보 도록 할 것이다. 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삼우초의 지역사회는 이렇다할 문 화시설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며, 작은 학교끼리의 통합으로 존치 학교가 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노후화된 학교 건물의 개축은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더 욱이 폐교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수년간 학교 시설의 개선이나 확충을 위한 예산 배려가 중지되었던 점을 지적하며, 삼우초 개축이 여러 학교들에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한편 나는 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도 2003년에 지역사회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농촌의 작은학교 모델 건축에 대 한 의욕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학부모들의 의지를 강화시킬 방안의 하나 로 학교시설 우수학교를 방문하는 행사를 제안하였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학교 통폐합의 결과로 전면 개축한 전북 임실군과 남원군 소재 학교 2곳을 찾아 탐방 행사를 가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개축에 대한 욕구가 상승되어 가면서, 추진 대책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그 구체적인 추진 방법의 하나로 2003년 6월 8 일에 삼우초발전협의회 가 발족되었고, 통합 이전의 두 학교 운영위원장이 공동대 표를 맡았으며 실무 간사에 내가 위촉되었다. 학운위와 나는 삼우초의 전면 개축이 삼우초에서 농촌학교의 희망을 일구는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교장을 비롯한 학운위 위원장이 수 차례에 걸쳐 교육청의 교육장을 비롯한 실 무담당자에게 학교의 전면 개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예산의 편성을 요구하였으나, 반응은 난색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우리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학교 개축의 가능 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정치권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다. 때

328 마침 이웃하는 면의 고장 행사에 지역구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전갈을 받고, 학교 장과 운영위원장은 국회의원을 면담하기 위해 이웃 면으로 향했다. 지역사회의 숙 원 사업인 학교 개축을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던 것이다. 허나 국회의 원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학교장은 면박에 가까운 반응을 받아야 했다. 참으로 학 교 건축의 문제가 난감하게 되었다. 나는 보다 명확하게 농촌형 학교로의 삼우초 개축의 당위성과 시급성 및 삼우초 의 미래상을 문건화할 필요를 느꼈다. 삼우초발전협의회를 개최하여 이에 대한 합 의가 이루어졌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삼우초발전협의회 공동대표 명의로 10여 쪽에 이르는 삼우초등학교의 유지 발전을 위한 작고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라는 제목의 문건을 그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나타났다. 국회의원의 반응은 의외로 며칠 안에 교육인적자원부를 찾아가 삼우초 전면 개축을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2주 여가 지난 즈음 교육인적자원부의 삼우초 전면 개축을 위한 특별교부금의 지원 방침이 전달되었다. 총 공사비 30억원을 예 상하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 16억원을 특별 교부한다는 것이 지역교육청의 교육장 을 통해 관내 학교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완주군 관내 교장단을 중심으로 뜻밖의 여론이 나타났다. 하필이면 그 작은 삼우 초등학교에 16 억원의 특별 예산을 지원하느냐 는 여론이 관내 몇 학교장을 중심으 로 형성되어 간 것이다. 당연히 정치권에도 그러한 여론이 접수된 듯 싶었다. 16억 원의 특별교부금 지원 방침이 8 억원으로 삭감돼 버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사돈이 논 사면 배아프다 했던가? 교장선생님들의 반응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교육부의 특별교부금 배정으로 총 공사비 29억의 삼우초의 농 촌형 학교 건축 방안은 도교육청에서 확정되었다. 2004년에 새 학교를 착공하여 정상적인 건축 절차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농촌형 학교건축의 추진과정 개요는 다음과 같다 년. 삼우초등학교발전협의회( 공동대표 여태권, 구윤회 / 간사 송수갑) 발족 ㆍ삼우초 전면 개축 방안 논의( 교육청, 국회의원 방문)

329 ㆍ발제 : 삼우초 유지발전을 위한 작고 아름다운 학교만들기 ( 국회의원 학교 신축 특별교부금 요구자료 제시 ) ㆍ교육부 특별교부금(16억 8 억) 배정으로 삼우초 전면 개축 방안 확정( 공 사 예산 29억원 책정 약속 년 중 시공 약속) 년 2-3월 한국교육환경연구원 연구팀과 우리학교 교원간 논의 ㆍ학교모형 논의 3 회, 공청회 2 회, 모형구상 기간 중 수시 연락체계 확보 년 9 월. 삼우초개축공사설계안 설계변경 요구 ㆍ일반학급 교실의 작은 현관 및 테라스 설치 년 1 월. 새학교 건축공사 예산확보 및 조기착공 요구를 위한 교육장 면담 ㆍ교육장, 관리과장, 시설계장, 학운위원2, 교사 년 2 월. 삼우초 건축공사( 예상 공기 9 개월) 시작 ㆍ특별교부금, 통합자금, 폐교매각대금, 수련원매각대금 등 총 약 15억원 년 9 월. 전북교육청 교육감 면담 요구( 학운위) ㆍ기획관리국장 면담( 개축공사 제3 차 예산 확보 및 공사기간 준수 촉구) 년 10 월. 개축공사 제2차 예산 지급 완료 ㆍ 공사 중단 예상( 예산 부족 및 동절기) 년 10 월 년 전북도교육청예산안 반영( 삼우초 잔여공사비 약 14 억원) 새로운 농촌형 학교건축 과정에 있어 우리는 그간의 관행을 타파하고 삼우초 구 성원의 철학에 기초한 학교모형이 설계에 반영되어야 함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공급자는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해야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준수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어 지역교육청에서는 학교모형 용역을 한국 교육환경연구원 에 맡겼고, 한국교육환경연구원의 활동은 삼우초가 구상하는 친환 경적이며 생태지향적인 학교건축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들은 교원들의 단편적인 요구들에 대하여 가닥을 잡아 주었고, 학교건물과 관련하여 친환경성과 생태지향성 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 주었다. 한국교육환경연구원의 연구진 역시 학교건

330 물에 대한 교사들의 주체적인 요구와 참여에 대하여, 보기 드문 경우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교육수요자의 교육적 필요에 의한 공간의 확보와 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농촌형 모델학교를 지향하는 새로운 학교 건물 공간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1 지역사회 여건을 고려하여 도농체험( 해외교류) 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숙시설 (100 명 동시 수용) 2 마음닦기( 명상, 선법) 와 품성 도야의 방인 온돌식 문화체험 공간 3 학생중심의 학교답게 대규모 다목적공간의 중앙 배치( 학생휴게실, 정보자료 4 실, 작품전시실, 도서실 겸용) 다양한 놀이( 체육) 활동이 가능한 체육실 5 지역사회 문화적 공간 차원의 극장형 시청각실( 영화상영, 동극발표 공간) 지역사회와 학생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유기농교육실( 식당 겸용) 기타 특별실( 미술실, 목공도예실, 과학실, 세미나실, 제 관리실) 학급교실을 1 층에 배치하고, 각 교실마다 뜰과 통하는 작은 현관문 설치( 테 라스, 급수시설) 지역사회 개방을 염두에 둔 유기농교육실 동선 확보( 필요에 따라 타시설과 차단) 10 친환경성을 고려하여 보통교실과 체육실은 원목 바닥재 시공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교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참여는 다양하게 수용 되었다. 우리는 시공 중에도 외부 벽돌의 품질과 색깔의 결정, 건물 내외의 페인트 색조, 실내 채광을 확보키 위한 벽체 재시공( 창문 설치), 자료실 출입문 변경, 문화 체험공간의 황토칠 등과 관련하여 수 차례의 협의 절차를 거쳤으며, 그 결과가 대 부분 건축에 반영되었다. (2) 농촌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들녘체험 프로그램

331 우리는 도회지의 학교와 견주어 농촌학교가 갖는 환경적 정서적 우수성을 교육 과정에 녹여 내자는 취지에서 체험중심의 농촌교육과정을 구상하게 되었다. 식물의 자람이나 성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도 내용이 초등학교 6개년의 각 학년 교육 과정에 편성되어 있어, 그와 관련한 각 학년의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지역화할 프로 그램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학교 주변에 유휴지로 남아있던 빈터를 찾을 수 있었다. 텃밭을 일구기에 안성맞춤인 땅을 찾은 것이다. 식물 가꾸기와 관련하여 시기별로 활동내용을 조직한 들녘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식물을 튼실하게 가 꾸는 일에 그치지 않고, 식물을 가꾸고 성장하는 매 과정에서 식물과 사랑나누기 명상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살아있는 글쓰기를 지도하여 책으로 묶어냈다. 아이들은 종묘 포트에 흙과 모래를 넣은 다음, 나누어 준 오이, 호박, 조롱박, 수 세미, 콩의 씨앗을 받아들고 씨앗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다. 널 정말 사랑한다 흙 속에 들어가면 답답하겠지만 잘 참아야 돼 반들거리는 네 몸처럼 예쁜 싹을 기다릴 거야 네가 싹이 틀 때까지 내가 매일 물을 주며, 살펴 볼 거야 네가 열심히 싹을 틔우는 동안 나도 열심히 공부할 거야 씨앗을 고사리 손에 쥐고서 눈을 감고 마음의 대화( 사랑 나누기) 를 하는 동안에 는 학급마다 고요함이 흐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씨앗을 심고 교실에 들어가서 모래 를 만지고 씨앗을 살핀 사실과 느낌 그대로를 글로 나타내거나 만화 몇 컷으로 표 현했다. 옮겨심기할 시기가 되면 텃밭이 부산해졌다. 어린이용 삽과 괭이, 호미를 쥔 어 린이들, 추리닝 차림으로 오이 섶을 세우는 선생님들, 얼굴에 기미 생긴다며 밀짚 모자를 둘러 쓴 여선생님, 땀방울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연신 웃어대는 교감선생 님, 학급운영비로 샀다며 귀여운 노란 장화를 신고 뽐내는 1학년들이 장관을 이뤘 다. 단위면적 안에 가장 많은 농부들이 일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이 뻗어나간 덩굴식물들의 자람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 또한 깊어질

332 것으로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3) 자원봉사자의 사랑으로 운영되는 계절학교 우리는 주당 1시간 꼴로 시수가 배정된 창의적 재량활동을 한 데 모아서 집중 운영하는 방안으로서 계절학교를 준비했다. 작은 학교가 갖는 환경적 우월성을 살 려 재량활동의 대안을 마련한 남한산초등학교의 사례가 삼우초의 계절학교를 있게 한 본보기였다. 계절학교의 내용면에서 남한산초와 같이 적은 규모의 다양한 반 편 성을 하고, 즐겁고 신나는 가운데 학생들의 희망을 좇아 운영되는 재량활동을 꿈꾸 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희망과 다르게 여러 분야의 강좌를 개설하여 운 영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강사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강사에게 적정한 강 사비를 지급할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계절학교를 수익자 부담으로 운영할 경우, 대다수의 가정이 수강료를 부담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우초의 현 실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우선 필요하였다. 나영성 교사는 한국화를 전공한 여고 친구분을 찾아가 학교 형편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고, 친분있는 시립합창단 단원을 만나 노래지도를 부탁하였다. 이현근 교사는 자원 봉사하는 입장으로 시골 아이들에게 목공을 실습할 업체를 찾아 설득 하였다. 또한 나는 학교 인근에서 도자기를 하시는 분과 전통다도를 하시는 분을 직접 찾아가 안타까운 학교형편을 건넨 결과, 모든 비용을 무료로 자원 봉사하겠다 는 흔쾌한 대답을 듣고 왔다. 삼우초 동문이자 학부모인 검도관 관장이 한 꼭지를 맡았으며, 목공예 전문가인 학부모 한 분도 솟대만들기를 지도해 주셨고, 운영위원 장도 자신의 특기를 살려 축구지도를 맡았다. 트럼펫 연주 기능이 있는 교장선생님 은 음악 감상을, 그림에 소질이 있는 교감선생님은 담그림을 지도하였다. 학부모가 아닌 강사분들께 왕복 교통비를 지급하는 선에서 강사비의 문제는 해결하였다. 학 교교직원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위촉장으로 드려야 할 강사비를 대신했던 것이다. (4) 특기적성교육 이야기

333 특기적성교육은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특기적성에 대한 양질의 교육서비 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농촌의 학교에서 운영되는 특 기적성교실의 성격은 학부모의 사교육비 절감 취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학교에서의 특기적성교실의 개설 유무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을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 농촌학교의 특기적성교실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차원이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설 분야에 대한 수강료를 수익자 부담이 아닌 학교회계로 처리하였다. 농촌의 소규모 학교인 까닭에 강사 초빙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여 학운위의 논의 절차를 거쳐 2004 학년도에는 영어, 풍 물, 연극, 도자기 교실을 개설했다. 영어교실은 공개 모집에 의해 다행히 열의있는 강사가 초빙되었고, 풍물은 학구내 기능보유자가 자원하여 지도를 맡았으며, 도자 기는 재료비만을 학생이 부담하면서 지역의 전문가가 지도를 해 주었다. 어린이들 에게 연극수강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강사를 구해 보았으나 여 의치 못했다. 여러 방안을 협의한 끝에 학교로부터 약 5km 거리에 있는 백제예술전 문대학의 교수를 찾아가 아르바이트 차원에서 학생들의 협조를 구해 보기로 했다. 교수의 반응은 흔쾌했으나, 실제 지도 강사가 오기까지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서너 번의 교수와의 면담에 의한 집요한 요청으로 학생을 소개받게 되었다. 삼우초 에서의 어린이 지도시간을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전제가 있어, 학생 신분의 연극 강사 2 명을 확보하게 되었다. 연극 지도를 위해 오가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연극지 도가 끝날 때마다 본교의 교사가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어린이 지도 경험이 전무한 학생들인 까닭에 지도 능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연극지도가 이 루어지는 시간이 되면, 학교 교사 한 분은 늘 연극지도 도우미 역할을 맡아야 했 다. 그러나 연극지도를 받는 어린이들만큼은 마냥 즐거워하였다. 2005학년도에 접어들면서 도교육청이 특기적성교육의 아침시간 운영을 제약하는 방침 즉, 정규 수업전 실시하는 특기적성교실은 이른 바 0 교시 로 규정하여, 이를 시행치 못하게 하는 바람에 부득이 개설 분야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풍물, 영어, 그림그리기 분야로 축소하여 운영하였다

334 (5) 고장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학교 행사 우리는 고장의 유기농 공동체와 농촌의 작은 학교가 하나 되는 신바람 나는 지 역사회학교를 꿈꾸었다. 학교교육과정의 하나로 지역의 문화를 되살리는 체험마당 을 펼쳐 보기로 했던 것이다. 고장을 지키며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땅기운쌀 작목반 과 농촌의 작은학교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삼우초가 공동으로 개최한 2005 풍년기원 단오맞이 한마당 이 그것이다. 완주군 고산은 만경강 상류지역으로서 친환경적인 영농에 관심을 가진 농민들이 수년 전부터 오리농법에 의한 유기농 쌀을 생산하여 왔다. 이런 지역사회와 함께 작은 학교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농촌교육의 희망을 찾아가기 위 한 하나의 작은 시도로 풍년기원 단오맞이 행사를 준비하였다. 이는 작목반 주관으 로 2004 년에 처음 운영된 바 있으나, 우리 교사들은 고장의 전통 문화를 지키고 새로운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작목반과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작목반과 학교가 단오 무렵의 고장 행사를 함께 추진해 보자는 합의를 한 뒤, 행 사추진 실무자들이 두 차례의 회합을 통하여 행사의 규모, 초대 범위, 운영 장소, 대체적인 역할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뤘다. 세 번째의 만남은 두 단체 이외에도 후 원하는 기관의 관계자가 참여하는 확대 모임으로 점심 식사를 겸하여 이루어졌다. 행사의 전반적인 기획을 맡은 학교의 행사 추진안 에 대한 설명과 논의를 통한 공 유가 큰 이견없이 진행되었다. 체험학습과 관계된 식전행사, 길굿, 페이스페인팅, 솟대만들기, 도자기, 판화, 다도, 단오부채, 압화, 강강술래 등의 대부분의 프로그램 은 학교가 책임있게 운영하며, 소달구지 타기, 모내기, 오리넣기, 인절미 만들기, 국수체험, 유기농식사준비, 유기농산물판매 등을 비롯한 농촌놀이 체험은 작목반과 학부모회가 맡기로 하였다. 또한 행사 진행을 위한 천막치기, 앰프설치 등 행사장 준비는 작목반에서 맡고, 야외화장실과 음료수 준비 및 내빈 안내는 고산면사무소 로 역할이 분담되었다. 그리고 이 행사의 기획과정에서 전북도청으로부터 300만원 의 후원비를 받았다. 행사 추진에 관한 논의에서 겉치레 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에 무게를 둔다는 원칙 에 따라 유관기관이나 단체의 내빈에 대하여 주최측에서 따로 접대하지 않기로 했

335 으며, 화려한 초대장의 인쇄도 생략되었다. 다양한 체험코너의 안내와 지도는 삼우 초의 교원과 계절학교 명예교사, 학운위 운영위원 등에게 주어졌다. 며칠 전부터 압화에 사용할 자운영 꽃을 따다 말리고, 솟대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자르며, 단 오부채 만들기에 사용될 재료를 구하느라 퇴근 후 시장을 돌아다녔다. 이 외에도 체험코너 운영에 도움을 줄 사람들도 모았다. 강한나 교사는 교회 후배 다섯 분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참가자들의 얼굴그림에 힘써 주었고, 행사장의 대형 앰프 이동 과 설치는 관내 농민회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삼우초 학부모회의 농심이 가득한 헌신성이 큰 역할을 하였다. 유기농쌀밥, 한우소고기국, 알뜰한 반찬 등으로 갖추어 진 300 여명의 점심 식사마련과 배식을 비롯하여, 직접 지피는 장작불의 연기에 연 신 눈물을 닦아대며 국수를 삶아 내는 학부모님들의 모습은 우리네 옛 농촌의 순 수한 마음 그대로를 보여 주었다. 이 날 행사에는 아주 귀한 손님들이 초대되었다. 내용있는 도농교류의 차원에서 경기 남한산초등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70 여 명, 충남 거산초등학교 학생 30여 명 이 단오맞이 한마당을 같이 한 것이다. 남한산초와 거산초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 이 바지 가랑이를 접어 올리고 직접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였다. 손과 발은 말할 것도 없이 얼굴과 옷에 범벅인 흙탕물을 보노라니, 쳐다보는 이들이나 자신들이나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흥겨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오리를 처음으로 가슴에 품어 따뜻한 생명의 숨소리를 느껴보고, 오리에게 논에서 건강하게 자랄 것을 빌어주는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야말로 천사와 다름없었다. 농촌의 건강한 의식과 함께 자생력 있는 문화가 되살아날 때, 지역사회의 학교가 유지 발전되고, 또한 지속가능한 농촌 발전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에서 마련된 이날 행사는 해를 거듭하여 계속될 것이다. 3) 교육주체들의 변화 (1) 교사들의 주체성 회복 기존에 근무했던 학교에 비하여, 우리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일거리가 훨씬 많을

336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적인 일을 찾아보고 손수 준비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원들은 논의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이러한 논의 구조에서 어느 누구도 적당하게 빠져 있을 수 없는 분 위기다. 아니, 학교 시스템이나 학생 지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기 위하여 새로운 학교에 모였기에 더욱 그렇다. 철저한 논의 구조나 절차에 따라 장시간의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성이 향상 되며, 생명력있는 팀웍이 살아나 실행력을 높인다. 삼우초를 이끌어가는 힘이 구성 원들의 팀웍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구조와 학교 분위기가 교사로 하여금 성취와 만족감을 갖게 하였다. 예컨대, 가을운동회인 가을뜰놀이 에서 행사의 명칭과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 지에서부터, 운동회의 유래에 바탕하여 오늘의 운동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며, 우리가 지향할 운동회의 실체를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한 일 이 아니었다. 운동회 란 명칭이 일제군국주의적인 색채가 묻어 있으니 새로운 이름 을 만들자는 원칙에는 비교적 쉬 합의했으나, 새로운 이름을 두고는 의견이나 주장 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행사는 한지제기만들기, 새끼줄꼬기, 수수떡만들기, 연필목걸이만들기, 칠교 판놀이, 솟대만들기 등의 작은 6 개 꼭지를 두어 학급별로 이동하면서 체험을 하고, 오후엔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자치기와 신발차기 및 마을 계주를,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길굿으로 시작하여 강강술래로 마무리를 하기로 결정 하기까지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쳤다. 이러한 논의의 절차와 과정은 결코 시간 낭 비가 아니었다. 가을 뜰놀이에서 교원 모두가 체육부장의 입장이 되어 주체적으로 움직였으며, 여느 학교처럼 따로 역할을 나누어 정하지 않아도 행사가 유기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렇듯 행사의 준비에서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주체적인 참여가 있는 까닭에, 각기 교사 자신의 긍지와 공동체적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2) 행복해 하는 어린이들

337 새로운 학교를 시작한 지 두 해를 지나는 마당에 학생들의 변화를 쉽게 말하기 란 망설임이 있다. 그러나 교사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학교의 변화 내지는 성과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는 작은 학교 가 말해주는 것처럼 학생들이 학교생활 에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입니다. 주변 학교와 비교해 보라고 하면 우리 학교가 천국 이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한 학생은 체 험활동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합니다. 전학가고 싶니? 라도 물어보면 다 들 싫다고 합니다.( 교사 조형운) 계절학교를 통하여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배운다는 것이 또 하나 의 성과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인력풀을 활용하여 학부모님과 지역 인 사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합니다. 큽니다.( 교사 이현근) 내가 속한 지금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재미가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긍정적인 결과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학 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학교행사에 대한 참여와 협조도가 예전 과 달리 크게 높아졌다고 봅니다. 학부모들이 자녀가 변화하고 있음 을 느끼는 반증 아닐까요?( 교사 나영성) (3) 학부모들의 신뢰 학부모들의 지나간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의 삼우초를 둘러싼 구겨진 모습들 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학교운동회나 소풍 등 학부모가 참여하는 행사가 열리면 어 김없이 학부모들과 교원들 간의 정도를 넘는 회식의 문화가 자리하게 되며, 이러한 회식이 본연의 행사 자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되곤 했다 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현 운영위원장은 이러저러한 학교 행사에 아이의 엄마를 참여치 못하게 했다고 한다

338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근 교회의 목사인 여태권씨는 학부모가 아닌 입 장인데도 의도적으로 학운위에 참여했고,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강성 의 학부모들이 전면에 나타나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삼우초의 당시 학생수 규모가 폐교 대상이 될 정도로 작아지기는 했지만,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중지와 상관없이 교육청과 학교 관리자는 폐교의 절차를 밟아 가고 있음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입장이나 고장의 학교에 대 한 학부모들의 정서 따윈 그리 중히 여기지 않는 교육 당국에 대하여 불신과 원망 이 싹트는 계기였던 것 같다. 이러한 학교를 포함한 교육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학운위를 통하여 학교측 에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학교관리층과 학부모위원과의 잦은 갈등이 벌어졌으 며, 대화의 상대로 인정키보다는 우격다짐에 의한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여기저기 나타났다. 학교 관리상 필요한 화단 앞 진입로 포장 에 대한 학부모위원 들의 거친 항의, 교실 복도에서 실내화에 묻어나는 황토칠 에 대한 격한 항의, 학 교신문에서 발견된 오탈자에 대한 학교의 자존심 건드리기, 학교통합을 비롯한 학 교운영상의 절차적 문제에 대한 관리층을 향한 면박주기, 교육청에의 잦은 독자적 항의 방문 등이 그것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여에 걸친 새로운 학교를 향한 교육주체들의 노력 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학교교육 본질 문제에 대하여 교원의 입장이 충분히 존 중되며, 학운위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학교측과의 생산적인 대화에 의하여 해결되 고 있는 지금, 학교 운영과 관련된 낯붉힘은 고마움과 협조로 바뀌었다. 학부모들 은 계절학교 프로그램 중 야영행사 때 운동장의 임시 무대가 어두울 것을 염려하 여 딸기밭의 전기 설비를 가져와 손수 설치하고, 학교행사에선 의례 천막치기와 책 걸상 나르기 및 뒷정리를 늦게까지 함께 하는가 하면, 첫 생산이라며 유기농 딸기 와 수박을 가져와 아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며칠 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심었던 학 교 텃밭의 배추가 영양 부족일 것을 염려하여 손수 만든 유기농 영양제를 가져와 그 사용법을 자상하게 일러주는 등 학교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3.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339 1) 추진 과정의 어려움 (1) 인사행정 과정의 문제 새로운 학교의 시작을 위한 구상에서 처음 부딪히는 벽이 교육청의 인사제도였 다. 교원의 인사제도가 갖는 한계 즉, 일반성이나 공정성 및 객관성이라는 천편일 률적인 경직된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큰 원칙으로 굳어져 있기에, 유연한 사고에 의한 융통성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따지고 보 면, 큰 틀에서 인사행정도 학교교육이나 교육활동에 기여하기 위한 장치임에도 특 정 사례에 대한 적응성이 거의 확보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십수 년 전에는 인사 권자의 인사재량권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배려되어 있었다. 과거 인사권자에게 부 여된 재량권의 남용이 지금의 경직된 인사원칙을 부른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사제도상의 문제로 사례학교에 희망하는 교원이 결합하는 데 너무 많은 고민과 함께,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교사에게 교육본질 외적 인 문제를 가지고 허덕이게 한 것이다. 곁가지이긴 하지만, 삼우초의 학운위를 비 롯한 지역사회의 의지가 모아져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관건이 지 역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원의 전입이라 볼 때, 기존 교원들이 타 학교로 옮기 도록 전근을 권유하고 독려하는 문제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대단 히 송구스런 일이었다. (2) 지역사회 실태의 문제 새로운 학교의 운영을 시작하며 지역사회와 가정의 열악한 경제적 여건이나 가 정환경으로 인한 학부모교육의 문제, 수익자부담 교육활동의 어려움, 학교사회복지 의 문제 등에 맞닿게 되었다. 그 첫째가 교육의 한 주체로서 학부모의 학교교육에의 참여의식 부족과 함께 늘 바쁜 농사일에 따른 참여기회 부족이었다. 새로운 학교의 시작에 발맞추어 학교교

340 육에 대한 학부모 의식의 일대 전환을 위한 학부모의 전향적인 역할 교육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였다. 학교운영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이웃하는 마을별로 일정 시간을 내어 작은 마을모임 을 구상하고 시도했으나, 그 실현이 어려웠다. 좀 늦더라도 마 을모임이라는 자발성의 단계를 거쳐 학교교육에의 주체적 참여와 관심 내지는 학 부모의 교육관과 학력관의 변화를 꾀해 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 의 공부는 학교가 알아서 해 주는 것 이라는 전통적인 학교관이 너무 넓게 자리잡 고 있으며, 더욱이 농촌의 농한기가 따로 없는 바쁜 농사일로 좀처럼 한 자리에 모 일 수 있는 여가가 쉽지 않았다. 둘째로 학생활동 중심의 다양한 체험학습이나 계절학교와 문화행사에의 전문가 초빙, 교육적 필요에 의한 특기적성교실 개설 등을 위한 수익자부담 경비를 가정이 부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점이다. 박물관 학습, 문화행사 참여, 고장의 문화유적 탐방학습, 생태환경 체험, 수학여행 등의 현장학습 소요 경비를 50% 에 가까운 가 정이 부담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인 삶의 바탕을 이루는 의식주와 관련된 기초 활동과 예체능에 대한 심화 과정을 지향하는 계절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 조건 으로 적은 규모의 다양한 반 편성과 전문가 초빙이라고 보았는데, 이에 소요되는 강사료를 확보할 수 없었다. 셋째로 전체 학생의 40% 가 한부모가정 이나 조부모가정 혹은 소년소녀가장가 정 을 차지하고 있어, 학교사회복지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으나 사회적 지원체계가 이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이 자녀들의 가정 생활에 도움을 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하교하여 가정에 돌아가면 저녁 시간까지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 안정한 상태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3) 교사역할 수행의 문제 새로운 학교문화를 일구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교사의 진취적이며 헌신 적인 역할 수행이다. 이러한 교사의 역할 수행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가 있다. 학 교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구체화하는 세부 교육활동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

341 고 좁히며 합의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의 확보 문제와 업무 과중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예컨대, 새로운 학교의 시도 1 년을 마무리하면서 학부모교육 차원의 2004삼우 교육이야기마당 을 가졌다. 그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분출된 것이다. 행사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가?, 1년간의 교육 실적 발표에 둘 것인지, 학부모들의 토론에 비중을 둘 것인지?, 주제에 따른 캐 치프레이즈를 무엇으로 내걸 것인가?, 행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어떻게 할 것이며, 시간의 안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구실의 분담은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 행사 당일의 참석규모와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토론의 내용이나 방향 및 방법 이 중요하지 않은가?. 참으로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 쳐 행사를 준비하는 일 역시 전 교사들에게 과중한 업무가 아닐 수 없었다. 예산을 절감하기 위하여 자료집의 제작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학교교육활 동에 대한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프리젠테이션 작업을 밤 늦게까지 마쳐야 했다. 학교 내 마땅한 공간이 없는 까닭에 면소재지 공공기관의 사용허가를 받고, 빔 프 로젝터를 빌리기 위해 찾아다녀야 하며, 학부모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전 교 사가 사전에 행사장으로 이동하여 식장을 꾸미고 펼침막을 거는 위치도 직접 일러 주고 점검해야 했다. 토론의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하여 새 학년도의 교육활 동에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교원워크샵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했다. 새로운 사례 학교를 만들어가는 소문이 이웃하는 관내 학교는 물론이려니와 타 시 군까지 알려지고, 각 교사들의 주변에도 널리 인식되면서, 의외의 반응이 들려왔 다. 몸소 시도하는 노력들에 대한 이웃학교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렇고, 삼우초가 전교조 차원의 접근이나 시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조합원 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 이라도 벌이고 있는 냥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아 직 젊은 교사이니 연구학교를 찾아가 근무해야 승진의 길이 열린다 며 친절 을 베 풀기도 하였다. 승진이 교사의 목표로 인식되며, 성공한 교육자라는 사회적 풍토가 교육계 전반을 휘감고 있는 것이다. 2) 문제의 해결 방안

342 우리는 가정의 어려운 살림살이와 참여의식의 부족으로 자생력 있는 학부모들의 마을모임 이 꾸려지지 않아 학부모 모임의 방향을 선회하였다. 학교 주도의 학급 모임 을 운영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학교교육에 대한 주체적 참여의 중요성과 자 녀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가정- 학교의 연계 필요성,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교육관 내지는 학력관을 비롯한 학교와 학급 담임교사의 철학과 교육활동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가 주도적으로 이끌 필요를 느꼈다. 학부모 역할 에 대한 교육의 일대 전환을 위한 초기 단계에서 어쩔 수 없는 접근 방법으로 간 주하였다. 허나, 이러한 시도 역시 만족스런 결과를 아직은 점치기 어렵다. 학급모 임 자체의 참여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학급은 재적 학생수의 반절 정 도가 참여하는가 하면, 어떤 학급은 20% 에 머무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와 함께 어려운 농촌의 경제 사정으로 수익자부담 교육활동의 제약을 해결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매월 실시되는 문화탐방 현장학습은 계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하 게 한나절에 가능한 장소를 물색하며, 반드시 학교버스를 활용하였다.( 통폐합학교 인 까닭에 35 인승 등하교 버스가 배치되어있다.) 또한 학운위의 심의 과정을 거쳐 특기적성교실의 풍물교실과 그림교실은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운영하되 전 액 학교회계에서 강사비를 충당하고, 영어교실은 수강료 부담이 가능한 세대만 일 부 경비를 부담하며 나머지 학생들은 역시 학교회계로 처리하기로 했다. 다양한 전 문가의 초빙이 요구되는 계절학교의 운영은 우선 학교교사의 인맥이나 인간관계를 이용하였다. 삼우초의 실정과 노력을 설명하고 사회봉사 차원의 참여를 호소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 왔다. 한국화, 노래교실, 검도, 국선도, 한국무용, 다도, 도자 기교실의 강사가 그렇다. 이와 함께 전 교원이 본인의 특기를 살려 한 꼭지씩을 맡 아 운영함으로서 경비 문제를 해결하였다. 교육활동 중 교과 외적인 활동 즉 인성교육 생활지도 특별활동 등 일상적 활동에 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비중있게 지도해야 할 분야나 관점에 대한 인식이 교사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새로운 학교를 지향하는 구성원의 팀웍에 큰 영향을 미 칠 수 있는데, 잦은 토론으로 이러한 인식차를 좁히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정의 토론 결과에 따라서는 전 교사가 동일한 연수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전교생 중

343 40%에 이르는 결손 가정의 어린이가 갖는 불안정한 정서적 심리적 상태를 해소시 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합의된 결론에 따라, 2004학년도 여름방학 중 교 사 3 명이 동시에 심신수련지도자과정 을 60 시간 이수하기도 하였다. 교사들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업무와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 나로 학교에 전달되는 각종 공문서를 박동규 교감 선생님과 이진희 도우미 선생님 이 모두 처리하고 있다. 공문서 접수, 보고문서 작성 및 발송, 부서별 공문서 관리 등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련 이 있는 공문이나 부서별 담당교사만이 처리할 수 있는 극히 특정한 경우에 한하 여 그 처리를 담당하였다. 타 학교와 견주어 볼 때, 교감과 교무보조의 헌신적 노 력이 돋보이는 학교인 것이다. 삼우초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들에 대한 주변의 왜곡된 시각을 해소하기 위하여 완주군 관내의 교장단 연찬회 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삼우초가 구상하는 농촌 의 작은학교 희망 만들기 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설명함과 아울러 경기 남한산초 등학교의 정연탁 교장 선생님과 안순억 연구부장 선생님을 초청하여 남한산초의 성공 사례를 청취하게 하였다. 연찬회가 마무리 되자, 참석한 어떤 교장선생님은 손을 꼭 잡으며 교장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며 격려하였고, 이 자리에 참 석한 당시 지역교육청의 김나미 교육장 역시 삼우초의 교원인사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의 고충을 토로하며, 참으로 어려운 일을 시작하고 있다 고 그 노고를 평가하 였다. 이후 관내의 몇 학교에서는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위한 안내와 자문을 구하는 일도 있었다. 실질적인 교장 연찬의 자리가 됨과 아울러 삼우초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느 정도 바로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위학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 놓여있다. 첫째, 공교육내 대안을 찾아가는 사례학교의 외부 지원시스템 이 갖추어지질 않았다. 둘째, 농촌의 생태지향적인 명실상부한 모델학교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기자재와 설비를 갖출 수 있는 예산의 확보가 절실한 실정이 다. 셋째, 신념과 의지를 공유한 교사들이 계속 근무할 수 없는 여건이 아쉽다. 넷 째, 현재의 법적 학구를 벗어난 지역에서 전입을 강하게 희망하는 학부모들의 욕구 수용이 어렵다

344 3) 지속가능한 대안을 위한 바람 단위학교의 내적 교육활동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세 주체가 유기적 관계에 놓여야 하듯이, 확장된 교육행정의 차원에서 보면, 학교 교육당국 사회단체 간 지원과 협조체제가 원활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사례학 교를 만들기 위해 다음의 사항이 요구된다. 하나, 아름다운 작은 학교를 꿈꾸며 그 희망을 찾아가고 있는 사례학교 간 소통 체계가 아직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 2005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충남 갑사유스호 스텔에서 1박2 일 간 사례학교로 드러난 남한산초, 거산초, 삼우초가 자생적으로 작은 학교간 교원 워크숍 을 가졌다. 세 학교의 관리층을 포함한 교원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지속가능한 작은 학교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처음 시작한 것이다. 공교육 내에서 작은 학교의 대안을 찾아가는 교사들과 행 재정적 지원을 가능케 하는 교육당국의 책임관 및 학문적 차원의 검증과 지도 조언을 담 당할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례학교 지원시스템이 시급히 요구된다 하겠다. 둘, 농촌의 모델학교를 지향하는 새 학교건물의 외관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제반 공간의 배치와 확보가 교육적 필요에 의해 설계된 것인 바, 삼우초가 추구하 는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교육기자재와 설비를 위한 교육청의 예산 지 원 계획이 현재로선 서 있지 않다. 건물만 덩그렇게 서 있을 뿐 각 공간의 활용에 필요한 내부 설비의 마련이 막막한 것이다. 예산의 지원이 필요하다. 셋, 교원 인사제도상 단위학교에 근무할 수 있는 정해진 근무 만기가 도래한 것 이다. 농촌교육과정을 다져나가는 일, 지역사회와의 공감대 속에 새로운 학교가 추 구하는 목표의 지속적이며 일관된 추진, 교육활동에서의 팀웍 유지 등을 위하여 신 념과 의지를 공유한 교사들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인사상의 특례 조치가 요구된 다. 넷, 현재의 법적 학구를 벗어난 지역에서의 전입 문의가 종종 있다. 학부모의 학 교선택권 차원에서 사례학교 학구에 대한 유연성이 확보되길 바란다. 다섯, 학교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재량권 확대, 도시지역으로부터의 역유입을 가

345 능케 한 개방형 학구, 교원 인사의 자율권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자율학교제 도입 이 요청된다. 4. 확산을 위한 접근 방법은? 학교 현실을 들여다보면, 교직종사자들에게 일정 부분 현상 유지적 성향이 내재 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교직관과 관행에 익숙한 학교 풍토가 자리하 고 있다. 개선 의지가 있는 일부 교사의 시도가 높은 교장 교감의 권위벽에 일차적으로 부 딪히거나 민주적인 의사소통구조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교사들이 승진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거나 현실에의 안주 경향이 있는 일반적인 학교 풍토로 볼 때, 학교 내에서 동료간 합의나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작은 학교 의 대안적 사례가 일반적인 보통의 학교에 파급되거나 확산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 고 있는 것이다. 관주도의 일반화 방식은 더더욱 그렇다. 교육당국이 주도한 열린 교육 정책의 실패에서 보듯이, 형식주의에 얽매이거나 외형적 실적주의로 흐를 가 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확산을 위한 접근 방식이 선도적인 사례학교나 역량있는 교사 중심 의 교육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여겨진다. 이를 위하여 앞서 기술 한 사례학교 교원, 학계 전문가, 당국의 책임관으로 구성된 지원과 확산을 위한 시 스템으로서의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보는 것이다. 한편으론 주체적인 교사역할에 대하여 인식의 전환을 꾀하기 위한 활동가 교육 도 생각해 봄직하다. 이와 더불어 교원들이 관리층으로의 진급보다 교사의 교육활 동 즉, 교직수행에서의 이력이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큰 만족감을 주게 하는 기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운위의 심의에 의한 교사초빙제 를 확대하여, 초빙대 상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차별화된 교육실적이나 선도적 교육활동 사례를 거양한 교과연구회나 단위학교 연구팀의 명 예나 이력을 조장할 가칭 학교문화실명제 같은 제도를 마련하여, 학교 현장에 만 연한 승진 제일주의 풍토를 상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46 교육운동으로의 사례 확산이 탄력을 받게 하기 위하여, 선도적인 사례 학교간 자 생적 모임을 발굴하고 권장하며, 이를 지원하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혁신적인 사례를 창출한 학교에 대하여 인사상의 우대와 같은 행정적 보상이나 심 층 연수기회 등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교원들에 게 동기를 강화하리라 본다

347 계수초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삶 만들기 신성호( 경기도 시흥 계수초등학교 교사) 작은 학교의 모임에 참석하며 앞서서 희망을 가꾸어 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 면 살아 있는 교육의 대안을 접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뒤따라가기도 허겁지겁하 며 힘겨워하고 있는 계수 초등학교의 현실에 민망하기도 하다. 더욱이 학교 실천사 례 원고를 내어 달라고 하니 며칠을 끙끙대며 정리를 한 것이다. 사실은 정리하기 보다 내 자신과의 대화며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정리하는 기회였다. 부족하지만 희 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원고의 주문에 충실하게 쓰려고 노력한 글이지만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 편한 마음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학교의 현장은 겉옷만 갈아입고 있다. 더운 여름이면 선풍기가 부러웠던 시절에 비해 요즈음은 에어컨이 교실마다 설 치되고, 학교의 건물이 들어서면 당연히 교사의 휴게실도 들어선다. 뿐만 아니라 교단의 선진화 작업이 진행되어 멀티비젼을 이용해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학교의 시설을 할 때도 도서실과 다목적실을 확보하여 가고 있다. 교실에서 스피커로만 듣던 실내방송은 TV화면을 통해 교장선생님의 시상 모습 을 생생히 보고 있다. 학교 방송실은 인터넷 방송을 하도록 설비를 갖추어 놓았으 며 대기환경의 상황을 수시로 알려 주는 디지털 기상대가 설치되어 있다. 컴퓨터실에서 컴퓨터 수업을 하고 있으며 학교에 따라서는 유행하는 전자 오락 기기까지 시설을 해 놓기도 한다. 급식소가 있어 아동들의 점심을 해결해 주고 운 동장에도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 외형상 시대의 변화와 호흡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변화는 거대과밀학교의 형태와 행정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는 몸짓에 불과하다. 속 알맹이의 변화를 뒷전 으로 한 채 외피의 변화만으로는 미래를 열어 갈 희망을 키워 갈 수가 없다는 게

348 나의 생각이다 년도에 내가 근무했던 안양의 o 학교는 거대 과밀학급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나는 마흔 한 살의 나이로 교육경력이 16 년 째 되는 해였으며 어촌, 농촌, 읍 소재지의 학교에 근무를 하다 1990년도에 도회지의 과밀학교에 근무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1974년에 목포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경제위기와 같은 중동의 오일 파동으로 인해 2 년 동안 발령을 못 받아 태광산업에 근무한 후, 1976년 11 월에 여수시와 연육교로 이어진 섬 돌산의 율림초등학교에서 첫 발령을 시작으로 아이들과의 생활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학교대항 축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운 동장에서 아이들과 지냈던 일, 휴일에 고향 가려고 비틀거리는 버스로 비포장 도로 를 2 시간 가까이 탔던 일, 남해로 이어지며 푸르게 넘실거리는 파도와 어부들이 숨 겨 온 삼치에 잔 부딪치며 흥겨워했던 일 외에 당시 직원들의 연수 시간에 내가 꾸짖지 않은 교육 이라는 주제로 연수를 하겠다고 했더니 분노하며 나무랬던 교 장생님의 표정까지도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경력을 쌓아 갈수록 교육력 제고에 대한 담론들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승진에 대한 관심이 대화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지시적인 행정업무 수행에 숙달되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사의 입지보다는 교장 의 철학과 경영관에 의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면들이 다르게 강조되고 연구나 시 범학교들의 경우도 보여주기 위해 좋은 결과들로 일관되는 형태들에서 아이들은 수단시 되고 있음을 깊이 깨달았다. 그러던 차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가꾸는 아이 들 이라는 책을 읽으며 교사로서 거듭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생 각과 판단력과 해결력을 길러 준다는 것이 교과서의 문제 해결력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노동이나 삶보다는 입신출세의 가치로 교육되어지는 못마땅 한 교육현실이 안타까웠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가르치는 일이 정치에 종 속되어 있음을 알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교육은 뒷전에 두고 경쟁의 우위에서 선발되도록 길러내는 교육에 문제의식이 싹텄다. 다인수 학급에서 교사가 모두를 함께 끌어안고 감당한다는 것은 교사의 문제 이전에 정책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 생각하였다. 특히 과밀학급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이란 거의 찾기 힘든 주입식 교육으

349 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근무했던 안양의 OO초등학교는 여타학교의 학급수보다 많은 100 학급이었다. 운동회도 전교생이 하루로는 할 수 없어 이틀로 나누어 했었다. 한 학년이 19학급이니 농촌학교의 3 개쯤은 모여 있는 규모다.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비민주성에 대해 한 개인이 발언을 하기도 쉽지 않고 설사 발언 을 한다 해도 해당 학년 부장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교장, 교감, 부장의 3중층의 두께는 매우 두터웠다. 6학년을 하면서 학급편성에 문제가 있어 교장에게 문제의 원만할 해결은 물론 당사자인 학년 부장에게 시정을 요구하여도 개선되지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학 년 부장이 밴드부를 운영하기 위하여 밴드부원들을 모두 한 반으로 편성한 것이었 다. 교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방과 후 시간에 해야 할 밴드부 활동을 교과 시간 에 담임의 편의대로 운영하기 위한 변칙임에도 자신의 어려움만을 내세우며 물러 서지 않았다. 밴드부는 활동의 성과로 안양시 시민의 날 행사에 길놀이를 하는데 참여하는 것이고 매주 월요일에 실시하는 애국조회로 명칭 되어진 운동장 조회 시 애국가 연주를 한 것이었다. 동 학년 교사들의 의견은 전혀 무시되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선택되어진 아이들이라는 우월의식을 심어 주기도 하여 학부 모들의 경쟁적 참여의욕을 자극하였다. 그러한 연출을 하여 학교장으로부터 근무 평정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아 승진하 고자 하는 것이었다. 교감 승진 근무평정 점수를 따기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고 학 부모들에게는 경쟁 우위의 병폐를 키우며 동 학년의 질서와 교사들의 의견들이 외 면되는 예라 하겠다. 이러한 고리를 끊기 위해 몇 개월간을 때로는 얼굴을 붉혀야 했고 개인의 의견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생각을 모아야 했던 날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 외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학생들에게 거출한 수학여행 경비를 정산하여 100원 단위의 돈이 남았으면 당연히 학생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도 동학년들을 공 범자로 만들면서 동학년 회비로 넣어야 한다는 데서 부장교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도 동학년이라는 틀 속에서 동학년 부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는 동료교사와의 관계가 얽혀 있어서 참으로 쉽지가 않았다. 부당한 일도 동학년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고 문제의식보다는 동 학년이라는 묶음으로 넘어 가야 하는 경우가 더 허다했다

350 교장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번씩 동학년 회식에 참여하여 대접을 받아야 하 는 관행으로 교장의 권위를 붙들고 있었다. 그 당시의 교장과 동 학년 교사들과의 회식자리 문화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시로는 교장을 모시기 위한 자리라는 것은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학년 부장들은 교장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며 문제를 풀어 가 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학년의 의견들이 모아져서 교무회의나 부장회의로 연결되어 학교 운영에 반영되지 않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학교 내의 작은 일들이야 의논을 거치기는 하지만 교장의 입장이 그렇다고 하면 그 범위를 벗어 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 시설이나 예산이 집행되는 사업에서는 교 사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교실 증축이나 업자 선정과정에는 거의 무 시되고 있다. 장학지도를 받는 날이면 동 학년들이 모여서 워크샵이라고 하는데 장학사가 입 회한 관계로 많은 교사들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심도 있게 의견을 개진하려 하지 않는다. 이야기 해 봐야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잘못하여 장학사의 눈 밖에 나면 근 무하고 있는 학교장에게 누가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흔히들 장학사들이 학 교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으면 미리서 교장 교감들은 교사들을 교육 을 시키기를 예의를 잘 지켜달라고 한다. 비록 장학사이지만 교육장의 명령을 받고 교육장의 이름으로 온 사람이니 깍듯이 예우해야 한다는 논리며 협박이었다. 지금 도 교무회의 시 교감회의를 전달한다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 속에는 그러한 내용들 이 그대로 들어있다. 19개 반에서 어느 한 반 만이 따로 시간을 내어 체험활동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치루면 그만 이었다. 오히려 교실에서 학 생들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 교과서나 문제지를 열심히 풀게 하는 게 편하다는 생 각들을 하였다. 다인수 학급이다 보니 교사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집체식 교육과 군대식의 학생지도 방법이라야 생활지도를 잘하는 교사로 칭송을 받았다. 생활지도는 학생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의견을 묵살하고 복 종의 문화를 유전시키는 것으로 통용되었다. 지금도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통제와 주입식의 방법에 대한 향수는 많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변하고 시대적 상황이 너무 많이 변해 있는데도 학교현장에는 유물처럼 남아 있는 게 지시와 복종을 요구하는

351 생활지도라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인격을 먼저 생각여야 하고 학생들의 선택의 폭 을 넓혀 주어야 함에도 교육과 생활이 겉도는 교육의 실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길 들여진 학생들이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교육근무 기간의 경력이 많다는 것은 승진의 목표지점이 가까이 있다는 거리 표 시로, 연구를 많이 하여 수상실적이 많다는 것은 길을 잘 찾아 가고 있다는 이정표 의 의미로, 교장의 인정을 받고 이쁨을 받는 것은 상대적 평가의 우위에 있음을 증 명하는 확인서를 손에 쥐는 것으로 삶의 중심을 두고 살아 간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힘이 존재하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거꾸로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존재하는 힘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의 제자가 지금은 4 학년의 학부모가 되어있다. 이 제자가 4학년이었 을 때 조그마한 시골학교에서 지내던 순진한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어느덧 학부모가 되어 자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자의 성장과정뿐 아니라 첫 아이를 2 대에 걸친 학교 현장의 모습이 나에게는 담겨져 있다. 1 학년에 입학시키면서 학교에 쏟은 열정과 학부모들의 자녀교육방법,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동정, 학원을 보내며 주고받는 교육정보 등을 이 제자를 통 해 듣게 된다. 청소를 하다 발견된 상품권이나 선물 포장지, 급식 당번으로 참여하 여 봉사활동을 하다 들려오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된다는 것, 어떤 학부모가 교사에게 정성을 쏟다 타 학부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 등. 이럴 때 나는 교사가 아닌 제 3자가 되거나 제자의 입 장이나 학부모의 처지에서 들으며 웃기도 하고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었다. 2003년 시범학교를 운영하는 학교의 학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숙제라는 게 어머니들과 함께 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복지관이나 양로원, 고아원등을 찾아 스스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크며 아이들의 봉사활동을 주 1회는 해야 한다면서 강요를 하는 것은 실적위주로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서 비교육적이라는 거였다. 같은 해에 어머니회 회장을 1 년간 한 경험으로 들려 준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체육대회, 스승의 날 행사 접대, 정년 퇴임식 등과 같은 학교의 행사를 위해 존재 하는 단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회장으로서 자발적이기 보다는 회장의 체면이 있어

352 후원금을 많이 내놓아야 하는 부담이 컸고 교육의 파트너로서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회비로 교사들의 접대비나 정년 퇴임식에 주로 지출되었고 적 은 수의 임원들이 부담해야 해서 회장으로서 백만 원은 내놓았다고 한다. 많은 수 의 회원들에게서 회비를 거출하지 못하는 것은 그럴 경우 인터넷에 띄우고 교육청 에 고발하고 하니 말썽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담당 교사는 임원들만 부담했으면 한 다는 의견이 있어 10 명 이내의 임원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회 에서 주최하는 바자회 수익금으로는 학교에 후원하는데 에어컨을 산다거나 하여 학교 비품 구입을 하더라는 거였다. 또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서 교장에게 잘 보이려 너무 아부 떠는 어 느 부장교사의 모습이 실망스러워 교사로서의 당당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 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의 내부를 몰랐으면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내부를 알고 나니 존경하는 마음이 다 사라져 다시는 어머니회 회장 직을 맡지 않아야겠 다는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서울의 상계동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도회지 학부모들이 갖는 학교와의 관계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승진에 연연하지 말고 평교사로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으로 사는 평교사가 더 존경스럽다고 한다. 멀리 상계동에서 여기 시흥의 계수까지 꽃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에게 부끄럽 지 않은 교사가 되려는 마음이 앞서니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농촌 정서가 살아있는 작은 학교가 그리웠다 행정 업무량이 많고 교통편이 불편하더라도 작고 농촌의 정서가 살아있는 학교 가 그리웠다. 아이들의 숨결을 맞대며 사근거리는 동심의 세상을 지켜 가고 사람 냄새나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거대과밀 학교로 연상되는 도회지의 학교, 외 래의 쓰레기 문화가 걸러지지 않고 아이들 속으로 파고들어 왜곡된 정서에 떠밀리 는 그런 곳에서 근무할수록 평교사는 대상화되고 소모품화 되어 가는 듯한 생각 이 크게 다가오고 있던 2002년 3월에 편도 50km의 출근길을 멀다 않고 안산시 의 대부도로 갔다. 이 곳 대부도는 수업실기대회에서 수상한 실적이 있거나 교육청

353 의 과학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하여 소위 인정받는 교사들이 가는 경합지였 다. 여기에 근무하면 도서벽지근무 점수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점수들이 쌓여서 승 진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인정받을 만한 능력의 교사가 아니었는데도 희망대로 되었다. 수단으로 선택하여 인생 아이들이 있는 대부도를 찾아 갔었다. 점수보다는 우선은 탈도시의 50고개를 넘도록 나름대로의 속 앓이를 한 끝에 순박한 출근길에 복잡한 도회지의 길을 벗어나 시화호의 방조제에 이르면 푸른색의 출 렁이는 물결이 시야를 터주며 반겨 주었고 주변의 염습지에서 나부끼는 갈대와 포 도밭은 그것 만으로도 풍요로웠으며 삶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어 주는 듯 했다. 한가로운 주변 환경임에도 농어촌의 인적환경은 힘겹고 상처 난 결손 가정의 아이 들이 있었고 절에서 운영하는 둥지라는 곳에서 부모를 잃고 밀려들어 온 아이들이 지내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에게는 많은 애정을 쏟아 주어야 했고 도회지의 문화체험의 기회 를 주어야 했고 열등감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방과 후에 학습지도를 하며 정을 만 들어 가야 했다. 편견과 벽이 두텁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마음을 열고 금방 서로를 껴안아 가는 모습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 숨쉬는 동심이었다. 그러는 동안 기초 학 습력이 생기며 친구들과의 대등한 능력을 확인받자 울음 많고 짜증이 심하던 학 교생활에서 점점 웃음과 여유로운 모습을 찾은 정애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부모 없는 아이일수록 학교에서 더 쓰다듬어 주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피며 따뜻이 보듬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일요일에 아이들을 차에 태워 문화체험의 기회를 가끔 가졌으나 자주 간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도회지로부터 먼 곳이어서 태워다 주고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일에 한계를 느끼지만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의 세계 속에 산다는 게 나름대로 행 복한 삶이었다. 배움의 사각지대에서 세월을 보내버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은 힘이었다

354 학교 근무를 하면서 야간에는 안양에 있는 시민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10여 년이 되어 가도록 봉사활동을 했다. 일제와 봉건사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어 학교를 다 니지 못한 분들 특히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한자와 영어와 컴 퓨터를 가르치는 곳으로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오직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고 운영되고 있는 문해 교육기관이다. 요즘은 노동부나 정보통신부나 경기도 의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한시적으로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도 열악한 환 경 속에서 웃음꽃 피우며 삶의 주인 되는 자신을 찾아 가도록 배움과 사랑을 만들 어 가는 곳이다.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가리라 믿는다. 여기 오는 학생들은 의외로 40대는 물론 30대의 학생들도 있으며 이 성인 학생들에게는 생존 과도 같은 배움으로 선택이 아닌 평생 배우며 가야할 학습기관이다. 이 곳에 일주 일에 두 번씩 야간에 나가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한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토요 일에는 결식 노인들을 위해 점심 제공하는 일을 둘러보기고 하고 주 1회는 실무 자들과의 회의를 하며 운영의 지혜를 모으는 일에 참여하여 운영위원으로서도 봉 사활동을 하였으며 2004년도에는 무보수 시민대학 교장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 다. 대부도에 근무한 관계로 시민대학에서 봄 소풍을 갈 때 공기 좋고 한적한 대부 초등학교를 추천하여 소풍을 오기도 하였다. 아담하고 작은 학교를 보면서 이런 초 등학교를 어려서 다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들은 하지 않았을까. 시민대학에도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방과 후 교실을 열어 가는 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함께 참여했었다. 해오름 이라는 시민대학의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계수초등학교와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함께 세상을 열어 간다는 맥락에서 이어질 수 있으며 교육이라는 성격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부분이다. 시민대학에서 성인학습자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교육방법을 떠 올리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인 학습자들을 떠 올리며 교수법을 생각하게 되고 배우며 따라오는 사람들의 심정을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깨우치고 셈을 할 줄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삶이 라 는 틀과 내용을 키워주어야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성년자나 성인이나 서로 보듬 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가치 그 자체라 생각하기

355 때문이며 이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를 지향하는 이유로도 충분하다. 탈바꿈하려는 계수초등학교에서 그러나 여기 대부초등학교도 관의 무풍지대는 아니기에 교사의 자율적 교육활동 을 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사들도 승진에 중심을 두고 근무하는 사람들 이어서 알게 모르게 전교조 활동을 한 사람에게는 경계의 시선이 있고 교장조차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 할 까봐 미리 다른 사람을 추천 하는 등 긴장감은 살아 있었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3년간의 근무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함께 온 교사 들 보다 1년 먼저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생각하고 다른 부임지 선정을 위해 이강 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이강두 선생님은 전교조 안산지회에서 부지회 장과 대의원을 지냈으며 안산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이사장을 맡기도 했었다. 또한 시흥지회 창립을 위해 준비위원으로 활동을 하여 시흥지회를 탄생시키는데 힘을 보태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계수초등학교에서 새학교 만들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강두 선생님의 교육자로서의 목마름은 28 년의 교육경력이 있음에도 여전했다. 한 줄기 빛으로 다가 서 있는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지금껏 교육의 대안을 제시하 고 있음에도 말단 현장에 와 닿는 교육현실은 아직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이강두 선생님과의 대화로 시흥의 계수초등학교에 남한산 초등학교 모습의 학교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전해 듣고 쾌히 동의를 하였다. 남한산 초등학교에 대해서는 안양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안순억 선생님을 만나 듣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운영의 실제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며 함께 동참할 기회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강두 선생님은 내게 계수초등학교에 함께 근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달 라고 했다. 그런데 계수초등학교에 근무한 교사들은 농어촌 학교 근무 경력이 인정 되어 가산점의 인센티브를 부여 받는 학교라서 승진 점수를 받으려고 경합이 되는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여기를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간다는 게 쉽지가 않기 때문 이다. 그러나 작은 학교를 추진하는 학부모의 역량이 크게 발휘되어 2004년 3월

356 일에 뜻대로 근무할 수 있었다. 2004년 1월 겨울 방학에 작은 학교 만들기에 핵심적으로 추진활동을 하고 있는 김윤식씨를 만나 상견례를 하고 추진 방법들을 상의하기도 하고 서로의 구상을 주고받았다. 처음의 자리라 심도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남한산초등학교의 사례 가 있기에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학교의 기저나 방향은 이심전심으로 공유되 고 있었다. 그 후 두 학부모 가정( 김윤식 부부, 용준이의 가족) 과 이강두 선생님과 나와 함께 넷이 모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계수초등학교를 남한초등학교처럼 공교육의 대안학교로 만들어 가기 위해 김윤 식씨가 교육장 면담을 통해 교사 전근에 대한 답변을 얻어 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강두 선생님의 주선으로 3명의 교사를 확보하고 3명이 함께 들어가기로 했으나 한 명은 부부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 결국 나를 포함한 이강두 선생님의 두 교사가 합류하기로 하여 들어갔다 년 봄방학 때 김윤식, 최숭임씨 부부와 내가 함께 남한산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서길원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하고 학교의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학교 시설과는 다른 마인드가 살 려지고 있었으며 공교육 내에서 어떻게 이렇게 운영되어 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 움이 앞섰다. 또한 실천에 대한 자신감이 쉽게 생기지 않았고 선뜻 그림이 그려지 지 않고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김윤식씨는 봄 방학 때 계수초등학교장을 찾아 면담을 하며 교장의 성향이나 교 육관등을 탐색하고 작은 학교 만들기에 함께 동참할 교사 2명이 온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교장은 계수초등학교에 전근 올 교사가 전교조 활동을 한 교사라는 것을 알고 3명의 교사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야 하는데도 1명의 교사를 근무하도록 설득을 하였다. 교사 2명이 나가고 들어 올 교사도 2 명이 되게 되었다. 3명의 자리 가 비었다 해도 1명의 교사가 포기했기에 우리와 함께 뜻을 맞출 교사는 2명이었 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남아 있는 교사는 평소에 교장과의 감정이 좋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전입해 올 교사의 자리를 줄이기 위해 남도록 했던 것이 다. 남게 된 교사도 혹시 근무평정을 잘 받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잠시 계수초등학교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계수초등학교는 경기도 시

357 흥시 계수동 번지에 위치해있다. 한 독지가의 헌납으로 현 위치에 학교 부지 를 마련하여( 학교에 그의 동상이 있음) 1949년 계수초등학교로 개교하여 2005년 2월에 55 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계수초등학교는 시흥시, 광명시, 부천시의 경계지점에 놓여 있어 서울( 오류동), 광명 - 신천동 간의 도로가 교문 앞으로 통과하는 관계로 통행하는 차량의 수가 많은 편이어서 학생들의 교통안전에 대한 주의가 요구되며 주변은 낮은 구릉지대 로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으며 과림동 저수지가 가까이에 있어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지역 주민들은 논농사 보다는 밭농사를 많이 하며 땅을 가진 토착민들은 땅이 나 건물을 소규모상의 공인들에게 임대하여 주어 임대료로 수입을 올리고 있어서 작은 하청 공장들이 많이 모여 있다. 도시 속의 농촌학교로 시흥시에 이런 소규모 의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서 뜻이 모아지면 작은 학교의 가능 성을 충분히 살려 낼 수 있는 곳이다. 계수초등학교는 도시 속의 작은 농촌학교로 토착민의 이주로 학생수가 감소하여 2005년에는 분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나 2004년부터 새 학교를 만들려는 분위 기가 형성되면서 현행 거대학교와 과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교육의 문제점 을 인식하고 작은 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 생활협동조합의 회원들) 의 뜻이 모아 져 2005년 3월에 30 명의 학생을 전입시킴으로 분교의 위기를 넘어섰다. 계수초등학교 학생 수 변동 상황 년도 학생수 남 여 계 비고 2001년도 년도 년도 년도 분교로 전환 위기( 새 학교 만들기 분위기 조성) 2005년도 타 학군 학생 전입(30) ( 학부모 부담 및 동창회 지원으로 통학 버스 운행)

358 나는 적은 수의 학교에 익숙해 있었지만 2004년도에 처음 학교에 부임을 하여 적은 수의 학생들을 대하니 참 가족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비 오는 날에는 전교생 이 한 교실에 모여서 조회를 하였으며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교육을 받을 때도 한 교실에 다 모여 앉을 수 있었다. 적은 학생들과 교실에서 지내는 게 우선은 교사의 숨결이 가쁘지 않아서 좋았다. 이곳이 농어촌 학교의 부가점을 받기 시작한 때가 불과 2 년 전이었으니 그 전에는 초임교사들이 주로 찾아 온 곳이었다. 농어촌 학교 의 부가점이 생기면서 3명의 교사가 근무평정을 노리고 와서 그로 인한 교장과 교 사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왔을 때 강숙자( 가명) 교사가 들려주 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교장과 가까이 하는 교사는 타 교사들이 이상한 교사로 본 다 는 것이었다. 그만큼 교장은 교사들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교육관료 출신으로 모든 면에서 채근하고 혼자서 해결하는 운영 방식이었다. 그러니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차제에 교장 의 마인드를 전환하게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사 둘이서 학교 싸움으로 이뤄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은 듣던 소문과는 다르게 부 드러운 언행이었고 학교 기사님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교장은 2004년부터는 예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라고 기존의 교사나 2003년 당시 학생수의 감소로 자칫 분교로 격하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전근을 가야 할 처지이기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학생수를 확보하는 게 발등의 불 이었다. 그래서 교장 나름대로 학교를 살리기 위해 동문회장을 만나고, 본교 출신 의 이경영 도의원을 만나고 학부모회 회장의 도움을 받아 가며 학생수 유치와 전 출생의 보류 쪽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한 방법으로 동문회원들과 상의하여 골프 연습장을 세우면 성인들이 오후에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강사비의 충당도 해결하고 골프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유치하여 학생수 를 늘려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 도교육청에는 골프 유망주를 길러 낸다는 명분으로 골프 특성화 학교로 지정을 받아 내었다. 따라서 계수초로 전학을 희망하 는 학부모들과의 면담을 하면 학교 자랑을 장황하게 하며 골프연습장 유치에 대한 홍보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작은 학교에 뜻이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359 교장과의 면담을 하고 난 후에는 골프 연습장 홍보로 오히려 흥미를 잃어 갔다. 작은 학교를 만들어 가는 출발선에서 운영 전반을 담당해야 할 교사가 부족하여 힘차게 출발할 수가 없었지만 학부모의 외곽 지원에 크게 의지하며 학교의 분위기 는 많이 잡아 나갈 수 있었다. 기존의 학부모와 새로 전입하여 온 학부모와의 사이 에 벽이 있거나 갈등으로 서로가 나누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포용하 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우선을 두고 이일을 김윤식씨가 담당하며 이끌어 나갔다. 야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기존의 학부모 회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 의 교육과 장래를 위해 학교와 학부모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눈 결과 같은 생각들을 묵어 내고 힘을 합하여 나갔다. 이렇게 자주 모여 의견을 나눈 가구 수는 15가구 안팍으로 학부모들이 학교장에게 직접 대면하며 이야기하지 못 한 부분을 김윤식씨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의 자격으로 운영위과 함께 참여하여 건의하고 시정하도록 요구하며 학부모들의 중지를 모아 나갔다. 학교장을 압박하여 오는 학부모들의 힘을 느끼는 교장은 많은 갈등의 모습이 보 였다. 학교 운영위원회의 교사 위원으로 내가 들어가기로 하여 운영위원회에 합류 하였고 교무회의에서도 교장의 권위와 입지를 세워주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가능한 한 교장과의 정면대결이나 충돌보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학교장의 마인드를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며 새 학교 만들기를 해 나갔다. 학교의 동태나 내 부 상황을 운영위 부위원장과 밀접히 교류하며 사안이 발생하면 교무회의보다는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다루어 나가도록 하였다. 한편 학부모들의 생각들을 모아 가기 위해 남한산초등학교의 교사인 서길원 선 생님을 초청하여 남한산 학교의 운영 사례에 대하여 학부모 간담회겸 연수를 2004 년 4 월에 실시하였다. 학부모들의 생각들이 다양하고 작은 학교에 대한 의식이 일 천한 학부모의 현실에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간담회였다. 한 번의 연수로 의식이 고 양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일을 쉽게 풀어 가려는 생각일 것이다. 간담회도 자 주 하였고 전체 학부모회의도 자주하였다. 간담회를 비롯하여 학교 운영과의 관계 에서 전체 의견이 필요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학부모 전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학교장에게 직접 학부모들이 요구하고 진척상황의 설명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사안별로 학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는 전체의 방향과 맞지 않

360 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상이 몽의 만남이 되는 것도 같았다. 학교의 운영에 있어서 학교장의 운영 행사권이나 결정권이 결코 학부모들의 요구대로 만들어 가기는 쉽지 않았다. 공룡처럼 버티고 있는 공권력이라는 힘을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는 데 이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학부모나 교사들의 요구에 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도 가까이도 아 니게 슬쩍슬쩍 비껴 나가며 화살을 피하듯 학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이 숨 어 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004년 5월 어린이 날 기념 체육대회를 예전과는 좀 다르게 운영하기로 제안하 였다. 전시적이고 행사적인 운동회를 지양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운동회 연습을 위해 수업 결손이 없도록 놀이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 날 전인 4일에 치르던 날을 바꾸어 직장인들인 학부모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5월 1일인 노동자의 날에 실시하여 토요일이라도 교사들이 시간을 내어 시행하자는 결정을 하고 진행을 하였다. 이날 운동회가 끝나고 학부모 특히 아버지 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아버지들의 관심과 참여를 한 단계 높여 나가는 기회로 만들었다. 부위원장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시흥지역 국회의원인 백원우 의원을 학교에 방문케 하여 학교 증축 예산 지원을 받아 낸 것이었다. 작은 학교라 서 교실 증축을 위한 예산지원이 도교육청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목적 실, 도서실 증축예산 지원을 약속받는 다는 것은 파격적인 지원이었다. 이 시점을 분수령으로 하여 교장도 학부모들의 요구와 남한산 초등학교와 같은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바램들에 대해 긴장감이 완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요구와 노력들을 보 면서 학생들을 위해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질 높은 생 활교육을 추구하여 학교가 살아나고 교육의 미래를 열어 가려는 열망들이 어떤 것 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청에서도 국회의원이 움직이는 상황이 되자 수수방관만 하고 있지 않았다. 도서실, 다목적실의 증축을 하는데 관리계장이 학교를 방문하여 학부모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현황을 조사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여 갔다. 우리가 원하는 바의 시설을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주어진 예산으로 학교 시설을 모두 다 헐고 다시 짓지 않는

361 한 현행 학교의 건축물을 이용하여 효율적인 공간 배치를 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 에 없었다. 될 것이다. 아직까지 시공이 되고 있지 않지만 설계 단계는 넘었으니 곧 집행이 그러는 가운데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 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의 언행과 교육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서 다음해에는 타 학교로의 전출까지 교장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학부모들이 전체 학부모와 교사들의 간담회를 요구였고 간담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 학부모 는 자녀의 일기장을 읽어 가며 비교육적인 처사에 대해 질타를 하였고 장애우 학 생들이 있음에도 특수반을 설치해 주지 않아 장애우 학생들과 비장애우 학생들을 통합적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 교사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장애우 학생들의 특성을 알고 눈높이에 맞추어 껴안아 주기 보다는 엄격한 방법으로 장애우 학생들을 대했 기 때문이다. 12월 18 일에 계수 장기 발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사안별로 교장과 상대하다 보니 다소 왜곡되고 치고 빠지는 작전에 휘말려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큰 흐름이 있어 했다. 남한산 초등학교의 안순억 선생님의 학교 사례 내용을 청취하며 교장, 교사, 학부모, 동문, 교육청과 시청 공무원, 교육 위원, 지역 시민단체 및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회의를 개최하였다. 함께 열어 갈 목표로는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 가정처럼 편안한 교실, 공원처럼 아름다운 학교를 위한 공간 확충 및 리모델링, 학교 개혁 방안 마련으로 남한산 초등학교와의 벤치 마킹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찾아 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낼 수도 없었고 목표점도 낮게 잡았지만 2004년도는 기존의 벽을 허물어 가는데 담금질을 하는 해였다. 농어촌학교의 근무 부가점 때문에 승진 지향으로 근무하는 교사들에게는 도전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 학부모들의 불만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 학교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큰 장애로 생 각되었다. 이처럼 새 학교 만들기의 장애는 교장뿐만 아니라 교사의 문제가 겹쳐져 있었다. 물론 학부모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교 사로서의 책무성을 생각할 때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교사( 관리자 포함) 의 문제였

362 다. 20년 가까이 아니 20년이 넘도록 경력의 힘을 과시하며 살아 온 교사는 타성 적인 방법에 고착되어 있었고 그렇게 지내다 교감, 교장이 되면 기득권의 가세에 힘입어 나름대로의 성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하겠지. 세월의 흐름은 열린사회와 합류 하며 새 판짜는 소리로 시끌벅적한데. 나와 이강두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호응은 받아 가고 있었지만 학교 운영과 프로 그램을 담당해야 할 교사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헤쳐 나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교사의 문제에 있어서도 생각이 다른 교사들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전출시킬 묘안도 없었다. 새 학교에 대한 생각을 가진 교사들을 모으는 일이 시급 한 과제로 다가왔다. 계수초등학교에서 작고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할 교사를 찾기 위 해 시흥이나 인접의 안양, 부천, 수원, 광명지역의 전교조 지회에 수소문을 했으나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전교조 활동을 하지 않아도 여기에 뜻이 있는 교사는 없 었다. 남한산 초등학교처럼 대안적 교육의 제시나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여기에 참 여하려면 특별한 교육철학이나 뛰어난 교육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 거나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교장 선출제로 가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 며 학부모들의 교육 참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서로의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겐 함께 할 교사들이 구세주로 여겨진다. 그렇게 저물어 가는 2004년이지만 2005년을 위해 그동안 교사의 확보를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부모의 항의를 많이 받은 교사 두 명과 건강이 좋지 않은 교사 한 명 그리고 신규로 와서 명이 타 학교로 전출을 하면 2년이 된 교사로 모두 네 4명의 뜻있는 교사와 함께 할 것을 생각하며 함께 할 교사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2005년 1월에 학부모들의 뜻을 받아들여 교장이 문제 의 교사 두 명에게 타 학교로의 전출을 권유함에도 불고하고 학부모의 항의를 많 이 받은 교사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 두 교사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으면서도 근무 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나 보다. 학부모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얼굴 보다 몇 년 후 의 장학사와 교감, 교장의 모습이 더 그리웠을까? 결국 두 자리가 비어 두 명의 교사를 섭외하였다. 김윤식 부위원장의 활동력을 발휘하여 두 명의 교사가 올 수 있도록 시 교육청과 의견을 나누었으나 현행 인사

363 규정을 어기며 전근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그 인사규정에 의해서 도 관내 시흥시의 인근 학교에서 이종희 선생님이 올 수 있었다. 이종희 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늦게 교직에 몸담은 관계로 이제 경력 5년이 막 넘었으며 특채로 보 수교육을 받고 아이들 앞에 섰으며 성실하여 학부모들의 호응이 많다. 새 학교로 가는 길은 멀리 있어 보이고 걸음은 무거운 듯 했다. 그래도 가야하고 늦더라도 우 리의 방법을 모색하며 갈 길이다. 6 학급의 학교는 여기뿐만 아니라 특성상 행정업무가 많다. 교감이나 교장은 그저 지시와 전달과 결과만 보고 받을 뿐이다. 학교의 운영상황과 행정의 흐름을 그만큼 의 경력으로 다 알고 처리할 수 있음에도 교사들에게 부과하고 있다. 오히려 선별 하여 일을 지시하기 보다는 전달 받은 공문을 꼼꼼히 실행케 한다. 전시 지향적 학 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교사들은 힘들기 마련이다. 신명나는 교육활동은 자율이 전제되어야 한다 2005 년도에는 전시 지향적 공문 수행은 가능한 한 피해가기로 했다. 주 2회 하 는 운동장 조회도 없애기로 했다. 주번제도 대신에 맡은 청소 구역을 철저히 관리 해 나가자고 했다. 정기적인 교직원 회의를 지양하고 필요시에 모이기로 했다. 매 주 토요일은 체험 학습일로 정하여 실시하기로 했다. 월 1회는 전교생이 함께 하는 체험활동을 전개하고 1 회는 학년 체험일을 운영하기로 했다. 학부모 회의를 학년 학부모회의 중심으로 만들어 가기로 했으며 아침 자습은 한자쓰기를 원하는 교사 들이 있어 합의를 보았으나 담임들이 재량껏 운영하고 있다. 2학년은 주로 독서를 하고 기초학습 부진아 지도 및 주 1회 학부모들이 순번대 로 동화를 읽어 주며 매일 아침 친구들과 선생님과 서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면 서 덕담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6 학년은 요일마다 다르지만 독서, 요가, 친구 의 장점 나누기 등을 하며 나머지 학년은 거의 한자를 쓰거나 독서나 문제 풀이를 한다. 토요일 전체 체험 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시흥 YMCA와 연계하여 환경 생태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학년 별 체험 학습일에는 교통수단이나 체험 학습지 선정 등

364 학부모와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상의하여 운영하고 있다. 농사 체험을 위해 농장을 확보했으나 학교와의 거리가 있고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아 학교의 한 귀퉁이를 마 련하여 아쉬운 대로 채소를 가꾸었고 학교 숲 가꾸기로 친환경적 환경에 노력하고 있다. 계절 학교를 방학을 이용해서 실시하는데 집중형은 아니다. 2004년도에 이 어 2005 년도에도 계수가족 여름 캠프를 실시하였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과 가족과 함께 하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대상은 전 학년으로 하고 있지만 자율적인 참여를 하였다. 한울반( 특수반) 의 설치 운영으로 장애우 학 생들이 편안한 공간에서 지내며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방과 후 동아리 활동(4 개 부서) 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의 자원활동이나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특기 적성 교육활동(3 개 부서) 과 함께 모두 7 개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도에는 한 단계 위상을 높여 나가기 위해 교장 초빙제를 실시하려 하고 있으며 뜻을 함께 할 교장뿐 아니라 교사를 찾고 있는 중이다. 농어촌 학교의 부가 점수를 폐지하여 점수 따기 위해 오는 교사들보다 신명나게 교육활동을 하려는 교 사들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오는 12월에 학부모 총회를 앞두고 학부모들의 선진학교 견학, 학부모들의 의견 모으기를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도의 교육과정과 교장, 교사 유치 방법에 대해 폭넓게 의논해 나갈 것이다. 작은 학교 간 네트웤으로 희망의 씨가 널리 뿌려지기를 거대학교 과밀학급에서는 학생들과 구체적으로 만나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만나 야 학생들과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소통으로 교육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 엄격히 구분을 한다고 해 서 배우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 틀 속에만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수업 이라는 틀 속에서 배우고 알아 가는 것 이상으로 정서적 교감도 있어야 하고 생활 의 나눔도 필요하다. 이러한 만남은 작은 학교 적은 수의 학급인원이어야 가능하 다. 새로운 학교를 하려는 곳에는 생각을 같이 하는 교사들이 있어야 하고 민주적인 마인드를 가진 교장의 지도력과 또한 함께 꾸려 갈 학부모들의 결합이 필수 조건

365 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학교 운영계획을 교육주체들이 만들어 내고 학교장과 교사들의 의지와 가능성이 있는 학교에 대하여는 교육청의 인적 물적 지원이 뒷받 침되어야 한다. 현행의 행정력의 처리 방법처럼 빨리 성과를 내려 해서도 안 되고 교육청에서도 불필요한 관여를 피해야 한다. 교육부에서도 이러한 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는 해당 학교 근무연한의 제한을 없앨 뿐 아니라 이런 학교에 희 망을 하는 교사들에게는 우선권을 주어야 하며 불필요한 보고 공문을 줄여 주었으 면 한다. 흔히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고들 한다. 아이들이 커서 많은 관계를 맺으 며 살아가는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의 아 이들도 가족관계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지도 않을 것이고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만 의미를 두도록 해서는 안 된다면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도 자녀들에 대한 소 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공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지키고 농촌의 정서와 우리전래의 문화가 살아 있는 학교 를 만드는 일은 시대적 요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교육운동의 희망이 작은 학 교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작은 학교간의 넷트웤의 활성화로 제2, 제3의 남한산 초 등학교의 사례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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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지난한 행복한 학교로의 꿈 오일창(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교사) 1.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를 시작한 내력 1) 내뱉은 말들 나는 1971 년에 초등 교사로 출발하여 어쩌다 보니 중등 교사를 거치고, 대학에 서도 시간 강사로 몇 년 가르쳐보고, 야간학교에서 교장을 맡아서 학교를 운영해보 기도 하였다. 이렇게 15년여 외도를 하다가 1990 년 초등학교로 돌아왔다. 그 때 한 말 초등학교 교사가 참 선생님이야. 중등학교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 좋아하지 도 않는 영어과 공부로, 그것도 점수에나 연연하며, 아이들과 만나면서 교육이라는 말을 쓰기가 찜찜하였다. 나는 교육이 사람됨의 과정 을 주도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대학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 강의하는 일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고, 다른 일을 하면서 봉사활동으로 야간학교에 나가는 일이야 워낙 제한된 접촉에 그쳐서 교육을 들먹일 형편이 못된다. 참말로 교사가 되고싶으면 초등학교가 제격이다. 이제 사람됨의 과정이 한창 진 행중인 어린아이이니 교육의 약발을 잘 받는 터에 학교생활 내내 아이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만나게 되지 않는가. 학교 현장에 돌아와 보니 뜻과 같지는 못하였다. 안팎의 장애가 이만 저만이 아 니었다. 내 쪽의 문제는 초등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능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 의 말, 아이들의 느낌, 아이들의 행동 양식에 나를 맞추질 못하겠다. 학교의 문제는 학교교육과정이 철저히 교사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점이었다. 교사들은 교실 안에서 교과서를 가르치는 기술자로 변하고 있었다. 왜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교사의 몫이 아니었다. 그리고 90년대 말 뒤늦게 전교조에 가입하였는데 어쩌다가 두어해 만에 지부 지

368 도부 경선에 끌려들게 되었다. 낙선했지만, 선거 유세를 다니며 또 말들을 내뱉고 말았다. 참교육 실천 운동이 소모임 중심으로 끼리끼리 활동에 그치고 있다. 교육 현장 일상의 교육활동에서 구현되도록 해야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교육현장에 벌어지고 있는 교육활동들이 교육적이지 못한 면이 너무 많았다. 그냥 교육으로는 안되어 참교육을 해야 한단다. 그런데 참 교육을 특별한 교사들이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수행하고 있다. 예사 학교에서 예사 교사들과 함께 예사로운 교육활동을 통하여 수행할 수는 없단 말인가? 그리고 50 대 후반에 안동에서 상주로 옮겨왔다. 교직을 마무리할 곳, 내 뼈를 묻 을 곳이 상주라고 생각하였다. 퇴직이 몇 년 남지도 않았는데. 자꾸 조급한 마 음이 들었다. 이제는 곳곳에서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아야 할 때다. 상주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뜻을 모아갔다. 참교육실천운동을 예 사 학교에 통합한다는 방향으로 잡은 참실학교 세우기 란 이름의 모임이 꾸려졌다. 2) 상주에서 선생님들을 만나다 2002 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안동에서 남한산초등의 한 선생님을 만났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으로, 빈말로 오락가락하던 이야기가 실현되고 있는 현장이 있 었다니. 여름이 되어 내 눈으로 확인하러 남한산을 찾아갔다. 교사가 주체적으로 힘을 모아 교육을 하는 학교를 보니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학교의 교육활동 뿐 만 아니라 학교의 시설, 건축까지도 교사가 나서 바꾸어가고 있다니 믿겨지지 않았 다. 그런데 내려오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게을러터진 사람이 그 어려운 일을 어 찌하려는고. 일단 상주에서 뜻을 같이할 교사들이 모였다. 이미 갈망해오던 차였으므로 말만 꺼내니까 어렵잖게 일, 여덟이 모여들었다. 몇 달 후에는 지회 참실대회 자리에 나 가 참실학교 세우기 를 주창하게 되었다. 참교육실천운동의 성과를 일반학교에 통 합하자. 학급이나 교과 같은 부문이 아니라 단위학교문화를 바꾸어내자. 이것이 참 교육실천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참교육실천성과 보고가 아니고 아직 계획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도 영글지 못한 꿈을 떠벌리고 있었다. 이 발표를 통하여 우리들 스

369 스로를 담보하기로 하였다 년 목표 학교로 겨냥한 상주남부초등학교로 옮겨왔다. 물론 처음부터 속내 를 드러낸 것은 아니고 사택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왔을 따름이다. 상주 도심에는 1,000여명 전후의 5 개의 큰 초등학교가 있고, 시가지 주변에는 북부, 동부, 남부 초등학교가 있는데 이미 북부는 분교로 바뀌고 남부가 4 학급, 5학급을 오르내리면 서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상주시의 면 지역에는 24개의 초등학교가 있지만 100명을 넘기는 학교는 두어 개에 지나지 않고 대개가 50명 전후의 소규 모 학교이다. 상주남부초등학교는 상주의 명산으로 꼽히는 갑장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들 판, 마을, 울창한 소나무 숲, 개울이 어울려 풍광이 아름다운 전원 학교이다. 시내 물과 철길, 들판을 사이에 두고 상주대학교와 마주하고 있으며 도심에서 10분 정 도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8개의 자연부락이 학구를 이루고 있는데 학령아들이 줄어들고 있는 터에 그중 일부 아동은 도심의 큰 학교를 찾아 가서 통폐합 대상교로 지목되고 있었다. 지역의 교사들에게는 시내 학교의 이점도 없고, 농어촌 부가 점수 마저 없어서 한 두해 거쳐가는 학교로 평판이 나 있다. 이 점이 뜻을 함께 하는 교사들이 쉽게 옮겨올 수 있는 좋은 여건이기도 하다. 3) 더딘 걸음으로 두들겨 보다 참실학교 세우기 를 선언하고는 곧장 준비에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여의치 않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의견을 나누어 볼수록 점점 차 이를 더 느끼게 된다. 남한산을 모델로 하여 지역 여건에 맞추어 조정하는 구체적 인 노력에 들어가자는 안과 먼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아이들, 교사, 학교, 학급, 교재, 교수-학습 등에 대한 공감대를 다진 다음에 학교를 시작하자는 안이 맞섰고, 후자로 기울었다. 첫 사업으로 여름 숲속학교를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남부초등학교에서 남부의 아이들을 기본으로 하고 시내 아이들이 결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남부 교장의 반대로 무산되고 희망하는 아이들로 조직하였다. 폐교를 빌어서 3박4일 과

370 정의 숲속학교를 열어보면서 학교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실감하였다. 숲속학교를 마치고 희망과 공감대가 높아지기를 바랐지만 모두들 잔득 수고하고 지치기만 하였고 우리가 바라는 학교는 이런 것이다 는 감은 오질 않았다. 가을 들어 우리 중 몇이 쳐지고 새 얼굴이 합류하였다. 우리는 새롭게 공부하기 로 하고 발도로프 학교, 슈타이너, 대안교육, 덴마크의 프리스꼴레 등을 뒤지게 되 었다. 이 무렵 1기 교육 혁신위가 바람넣고 있던 농어촌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과 교류하게 되고, 분교에서 실제로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그램을 실천하던 한 교사가 결합하면서 공부하는 책들도 좀더 실제적인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년 들어오며 동력이 떨어졌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한 교사가 가정 사정 으로 떠났다. 참실학교 세우기는 진행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더구나 거산초등 학교를 찾아가 보니 뜻을 같이 한 교사들이 똘똘 뭉쳤다는 것 외에는 어느 한 조 건도 유리한 조건이 없건만 당당하게 학교를 일구어 내는 것을 보면서 점점 압박 감이 엄습해왔다. 우리끼리 일단 내년에는 참실학교를 세운다는 선언을 하였다. 다 행히 남부초등학교에는 좋은 여건이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 이 선생님들의 제안을 편견 없이 잘 수용해 주셨다. 이 분을 모시고 새 학교를 열 어가 보자. 그리고 학운위가 어머니들로만 구성되었는데 학교를 살리겠다는 열의 가 대단했다. 남한산 이야기를 슬쩍슬쩍 흘려보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태세였다. 4) 잰걸음으로 나서다 여름방학에 우리는 남부초등의 학모도 두엇 동반하여 남한산 초등을 방문하였다. 3년 간 탄탄하게 다져진 참삶을 가꾸는 아름다운 학교를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 다. 우리의 모델은 남한산 초등학교이다. 이제는 우리가 하려는 일을 공개하고 2 학기 동안 준비하여 새 학년도에는 새 학교를 출발한다.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 표명에 이어, 교장 선생님의 내락도 받아내었다. 마침 2 학기 들어 경북교육청에서 ' 학교 자율 특색 사업' 이라는 저소득층 자녀를 지원하 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공모하였더니 좋게 평가되어 지원을 받게되었다. 40명에 못 미치는 학생들에게 1,000만원이 넘는 예산 지원을 받게되어 아침 0교시에 태권도

371 를 익히고, 방과후에는 매일 간식을 주면서 온종일 학교를 운영하고 오후 5시에 태 권도 학원 차가 마을까지 태워다 주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리고 운동회 날을 기하여 동창회, 지역인사, 학부모들을 아우르는 학교발전위원회를 조직하고 남부초 등 좋은 학교 만들기 프로그램을 내어 걸고 시내에서 전학을 유치하여 남부초등학 교를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준비 교사 팀의 남부초등 좋은 학교 프로그램 의 진전이 더뎠다. 우리는 아직도 교육에 대한 철학을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11월이 되어서 야 실제적인 학교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어갔다. 지난 9월 학교발전위 측 에 제안했던 ' 남부초등 좋은학교 만들기 계획' 에 대하여 11월 한달 동안의 토론을 거쳐 12 월에 가서야 남부초등의 학교상을 ' 참 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로 구 체화하였다. 그리고 또 몇 쪽 짜리 학교상을 합의하고 다듬는데 20 여 일이 걸렸다. 결과를 놓고 보니 남한산의 학교상에서 이름은 낱말 하나를 바꾼 것이었고, 내용 면에서도 몇 가지 용어를 수정하고 몇 군데 내용을 가감한 것이 모두였다. 그런데 도 숱한 밤들을 그렇게들 치열하게 토론해야했는지. 12월 20일 전교조 상주지회 학부모 선생님들을 초대하여 1 차 설명회를 열었다. 초등 자녀를 둔 조합원이 100여명은 될 것 같은데 설명회장에 나온 사람은 십여 명이었다. 겨울 방학은 다가오고 시간은 조급하여 시내 학교 어린이들에게 손닿는 대로 안내장을 뿌리고 27일 2 차 설명회를 열었다. 1차 설명회 참석자들에 십여 명 을 더 보탤 수 있었다. 1월5일까지 전학 절차를 밟아야 새 학년도 학급 편성을 받 아낼 수 있다. 2004년 말까지의 남부초등 학생 숫자는 4학급으로 편성될 수밖에 없었다. 복식학급으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년말까지 연결되는 대로 아 파트 단지 등을 찾아다니며 설명회를 잇고, 한편으로는 집단 전학을 조직하여 1월 5일 17명이 집단 전입하여 전교생 58명으로 간신히 6 학급을 편성하게 되었다. 이 후 몇 차례 전입이 늘어나서 3월에는 69 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겨울방학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모였다. 우리가 내어 건 학교상을 실현 할 학교교육과정을 짜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부문은 남한산을 따라 쉽게 짜여지 는가 하면 어느 날 어떤 부문은 한 두 마디 말에 막혀 꼼짝을 못한다. 몇 년 동안 공부할 교육과정 공부를 며칠만에 해치우고 있었다

372 한편으로는 인사철을 맞아서 함께 할 교사팀을 조직하느라 분주했다. 준비해오던 교사 중에서 2 명이 같이할 수 없단다. 1명은 결혼을 하여 신랑 찾아 충청도로 가 겠다니 막을 길이 없고, 또 한사람은 가을에 출산 계획이 있어서 합류할 수가 없단 다. 이 사람이라면 저 사람이라면 하고 접촉해 보지만 대개 지레 겁을 먹고 같이 하러 하질 않고, 간신히 같이하겠다던 사람도 며칠 후에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함 께 할 수 없단다. 결국은 타 시 군에서 전입해 들어오는 교사 중에서 두 사람에게 부탁하여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지만 그나마 뜻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은 의외의 사 람 2 명이 합류하게 되었다. 교육청에서 인사를 맡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 는 상식과는 매우 다르게 일을 한다. 또 남부초등에 있는 교사 중에서 옮겨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안 떠나겠다니 딱 하다. 승진을 앞두고 근평점을 따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이 버텼다. 개인의 이해가 관련된 문제이니 학교장도 조정할 수가 없고, 동료 교사를 교육관이 다르다고 밀어 낸다는 것은 교직의 관행 상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결국 나는 독선적, 비정 한, 악질적, 무법적 등등의 최상급 수식어가 붙은 교사가 되고, 둘 다 서로 깊은 상 처를 입은 채 갈라서야 했다. 2. 학교 문화의 질적 변화를 노리다 1) 4인방 휘젓다 준비를 해오던 교사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결합한 교사는 올챙이, 핫도그, 빽빽이, 용용이 4 명이다. 올챙이 ( 나) 는 새 학교 운동의 제안자이고, 연장자이 고, 남부초등의 터주대감이므로 이의 없이 얼굴 마담을 맡게 된다. 초등교사 중에 서 전교조 상주 지회장을 처음으로 맡았던 핫도그 는 지역의 토호이면서 한정 없 이 성실하니 절로 지역 초등의 중심이다. 이미 분교에서 삶을 가꾸는 교육의 노하 우를 쌓아온 애성 바른 빽빽이 는 어김없는 시어머니이다. 그 중 젊고 성질 급하 고 원칙에 충실한 용용이 는 힘든 일을 도맡아 쳐내는 상 일군이다. 이 4인방이

373 학교를 휘젓고 있다. 교장 선생님이 또 한정 없이 좋으신 분이다. 우리는 이분이 상주에서 우리의 뜻 을 수용해줄 교장선생님으로는 맨 앞이라는 걸 잘 안다. 참 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안을 내어놓았을 때 일반학교에서 빈말로 한다는 것을 참말로 하겠다니 힘닿는 대로 지원하겠다고 하신다. 교감 선생님은 우리 학교 소문 듣고 모두들 기 피하는데 부러 찾아온 분이다. 교대 부속초등을 거쳐 승진하신 분으로 일을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 신다. 다른 교사는 1년 차와 신임인 여교사인 데 우리를 무조건 따라준다. 연세든 교과 담임 선생님도 말없이 잘 협조해준다. 학교의 교육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일은 4 인방이 도맡을 수밖에 없다. 퇴근 시 간이 지나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숱한 일들이 처음으로 시행해보는 일들이니 이 점 저 점 일일이 의논하고 속속들이 점검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이리하나 저리하나 별 차이가 없을 내용을 몇 시간씩 붙잡고 늘어질 때도 있다. 교장 교감이 소외되지 나 않을까 싶어서 조심하지만 워낙 무심한 사람이라 제때에 제대로 의논을 못 드 리기 일쑤이다.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아침에 교장실에 가면 두 마디하고 나면 할말 이 없다. 2) 오로지 학교교육과정 학교교육과정을 공들여 짰다. 학교는 학교교육과정을 수행하는 곳이다. 학교가 학교교육과정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해야할 일도, 더 할 수 있는 일도, 덜 해도 되는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공문이 1년에 수천 건이나 와야 하는 지. 학교교육과정과 관련성을 찾기가 어려운 일들이 왜 그리 많은지. 우리는 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짜도록 노력하고, 그 수행에 온 힘을 기울이자. 학교 안팎에서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또 이런 저런 외풍의 방어를 위해서도 학교교 육과정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교육부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을 부지런히 뒤지면서 지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실제 작업은 대부분의 내용을 남한산초등학교 교육계획에서 옮겨놓고 우리 의 상황과 바람에 맞추어 조정해 갔다. 학교 특색활동으로는 거산의 생각을 키우

374 는 독서교육 을 가져왔는데 계획에서부터 짜깁기 덧붙이기라서 찜찜하였는데 결국 빈말로 그친 부분이 많았다. 또 남한산을 따라 학년교육과정을 한 권씩 짰다. 그러 나 그렇게 힘들여 짰지만 학년 교육과정의 활용은 편차가 컸다. 용용이 나 핫도 그 는 수시로 학년교육과정을 뒤지면서 맞추어가고 있었지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 은 학년교육과정은 지속적으로 뒤지면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선 학교의 인적 조직을 학교교육과정위원회 조직으로 일원화하였다. 관행적으 로 통용되면서 관료조직의 냄새가 풀풀 나는 교무부, 연구부, 생활부 같은 업무분 장을 없애고 학교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데 필요한 부서로 바꾸었다. 기획조정 부, 교과교육부, 재량특별교육부, 자치교육부, 교육자료부, 정보교육부, 학교일반업 무부, 교육과정 지원부로 나누었다. 호칭도 교무부장, 연구부장이란 말을 없애고 기 조부장, 교과부장으로 고쳤는데, 행정실장은 교육과정지원부장으로 바꾸지 못하였 다. 교과전담 교사가 학교일반업무부를 맡아서 잡무에 속하는 학교일반업무 추진을 도맡기로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공문의 80% 는 교감, 일반업무 및 교무 보조의 선 에서 해결하여 담임 교사의 손에 닿지 않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행을 따라 예전과 비슷해진다. 내년에는 칼 같이 시행해야지 라고 벼르고 있다. 3) 신나는 아이들, 허리 휘는 교사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불럭제로 바꾸면서 제대로 노는 시간이 생겼다. 시간 단위 로 생활할 때라고 불럭제보다 노는 시간이 작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쉬는 시간에 지금처럼 축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전입생들이 하나 둘 이어지 고, 학구에서 떠나갔던 아이들도 돌아오고 있다. 지난 해보다 숫자가 2배로 늘어났 고, 그것도 시내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이니 활기가 더 생긴다. 더구나 시내의 과대, 과밀 학교에서 전학 온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우리는 자율학교, 자치학교를 이상으로 삼고 있으니 외부통제는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고, 아이들은 그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놀 수 있어서 좋기만 하다. 교사들은 쩔쩔매고 있다. 새롭게 기획된 교육활동들을 수행하려니 훨씬 더 신경 이 쓰이고 손가는 점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원래 있던 아이들과 전입 온

375 아이들을 다독여 한데 어우르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더구나 반마다 전학 온 몇 몇은 유별난 녀석들이다. 그런데 소문은 자꾸 들려온다. 남부초등학교는 대안교육 을 한다며, 전교조 골수분자들이 학교를 접수했다며 등등 좋은 쪽으로든, 경계 하는 눈치든 이런 저런 들려오는 소문들은 우리에게는 실패할 수 없다는 중압감으 로다가 올 수밖에 없다. 교장 교감은 불안한 눈치다. 교사들이 사심 없이 열심히 해보겠다고 허구 헌 날 늦도록 일하는 것을 보면서 불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럭제로 바뀌고 나서 아이 들이 노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고, 자율, 자치 등이 모두 바람직한 가치이니 아니 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풀어놓는 것 같다. 새로운 교육활동 프로그램들을 추진 하느라 애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 역력히 보이지만 저러다가 기본적인 교육활동에 소홀하면 어쩌나 조바심하는 것 같다. 일반 교과교육에 대하여 교내 장학을 하고 싶으나 차마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는 눈치다. 3. 삶을 가꾸는 교육활동을 위하여 1) 일, 놀이, 배움이 어우러진 온종일 학교 우리학교는 모든 아이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5시가 되어야 집으 로 간다. 핵가족에 맞벌이 부부가 많고, 대부분의 가정이 사회 풍조에 따라 방과후 에는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으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방 치되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지난해에 이어 계속적으로 온종일학교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도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를 절감시켜주고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온종일학교를 통하여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를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졌다. 다만 교사에게 과중한 부하가 걸릴 것은 진작부 터 염려되었지만 학부모들의 기대를 져버릴 수가 없다. 온종일 학교는 학부모가 경비를 부담하는 특기적성 교육과 자치학교 이상을 실 현할 동아리 활동으로 하였다. 특기 적성 교육은 학부모들의 희망을 반영하여 영어,

376 미술, 글쓰기를 학년별로 이틀 간 2 불럭 배치하였다. 시간이 많은 1, 2학년은 조 금 더 배치했다. 동아리 활동은 다시 노작, 취미, 운동으로 나뉘어 진다. 노작은 재 배, 사육, 목공, 실뜨개 동아리로 나누어 일주일에 하루 1 블럭을 활동한다. 취미는 애니메이션, 풍물, 무용, 밴드, 연극, 관악 6개 동아리로 나누고 이틀 간 2 불럭을 활동한다. 운동하는 날은 하고 싶은 운동에 따라 동아리를 만들고 1 불럭 배치하였 지만 실제로는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시간이다. 재배 밭은 학교 주변의 공터 70 여 평을 일구어 감자, 고구마, 콩 그리고 몇 가지 채소들을 심었다. 농사일 솜씨가 없어서 제대로 가꾸지도 수확하지도 못하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잔치판도 부실하였다. 사육은 토끼, 닭, 강아지, 비둘기 등을 길렀는데 질병 예방, 새끼치기의 실패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더 안타까운 문제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네 것, 내 것을 따지고 있는 점이다. 제일 활기차게 활 동하는 부서가 목공 동아리이다. 교실 교과 학습에서 헤매는 6학년 덩치들이 목공 시간만 되면 신명이 난다. 뜨개질은 역시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다. 앞으로는 바느 질로 확대될 것 같다. 취미 동아리는 민족미술인협회 상주지부가 벌이는 학교문화예술시범사업 이기도 하다. 이 사업은 문화관광부와 상주시의 지원을 받아 전문 강사의 지도가 이루어지 고 막대한 운영경비도 들일 수 있었다. 동아리는 학생들의 흥미를 반영하여 에니메 이션, 풍물, 무용, 밴드, 연극, 관악 6개 동아리로 나누었는데 2학기 들어 운영이 어려운 연극과 관악을 족구와 리코더로 바꾸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무학년제 동아 리를 만들어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끌고 가는 자치학교의 꿈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초기 몇 년 동안 기본적인 기능을 익혀야 할 동안은 강사의 지도가 따라야겠지만 3년 정도 후부터는 지역의 대학 동아리나 성인 클럽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생력 을 가지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미 밴드 동아리는 상주대학 밴드 동아리와 족 구는 성인 생활체육 클럽과 연결되어 상당한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다. 2) 토요체험학습일 운영과 현장체험 학습 확대 남한산 초등을 본받아 토요일은 체험학습일로 운영하였다. 각 교과에서 추출한

377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증배한 재량시간 혹은 교과지도 시간 이동의 방법으로 시행 하였다. 통합교과를 지향하고 있는 저학년은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었고 고학년 은 시수 맞추기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견학, 답사, 공연관람, 계절운동, 탐구 대회 등의 전체활동이 7 회, 각 교사가 특정 주제를 맡아서 학년별로 순회 지도한 주제 중심이 6 주 그리고 나머지는 담임이 설계하고 지도하는 주로 하였다. 순환 주제는 체험을 통한 시 쓰기 활동, 집단 상담 활동, 연극놀이와 대본 만들 어 공연해보기, 한국화 체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건사기, 역사적 내용을 상상적으로 표현하기, 여러 가지 민속놀이 체험하기가 채택되었다. 담임이 아닌 선 생님과 색다른 주제에 푹 젖어보는 체험은 색달랐다. 지방 소도시의 여건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문화 예술 체험이 빈약하다. 어쩌다가 지방 순회공연을 나서려는 서울의 극단과 연결이 되어 여름에는 뮤지컬 공연을 상 주로 유치하여 관람하였고, 가을에는 서울의 대학로를 찾아가 또 한차례 뮤지컬 공 연을 관람하였다. 지역의 문화재도 건성으로 지나치거나 외지고 높은 산 위에 있어 소문만 듣고 못 가보던 곳을 날잡아 찾아가기도 하였다. 쑥 뜯어 쑥떡 해먹기, 콩 사리 하기, 고구마 구워먹기, 김치 담그기 등의 삶이 녹아 있는 생활 체험들을 시 도해 보지만 아이들이 깊이 있게 받아드리는지는 의심스럽다. 현장 체험 학습 중에서 압권은 갯벌체험이었다. 하루 밤을 자면서 해수욕과 갯벌 을 체험해 보았는데, 바다 구경이 처음인 아이들이 상당수였고 갯벌은 소문만 듣던 곳이었다. 1학기 2 학기 현장체험 학습( 소풍) 은 모두 서울로 갔다. 6학년끼리 2 회, 4학년끼리 1회를 합치면 서울 나들이가 5 회나 된다. 볼거리, 체험할 거리도 모두 서울로 모이고 있구나. 3) 문화 예술 체험을 조직화한 계절학교 재량 1시간을 모아서 4일간의 여름 계절학교와 5일간의 가을 계절학교를 열었 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막상 여름계절학교를 열려고 하니 서로들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학교상이 다르다. 몇 차례 난상 토론 끝에 첫날은 전교생이 물놀이를 가고, 이어지는 3일 동안은 6개 강좌를 개설하고 한 불럭 씩 학년 단위로 순환하기로 하

378 였다. 개설 강좌는 목공, 도예, 탈춤, 짚공예, 염색, 벽화였다. 목공은 자연 목재를 이용하여 곤충, 동물, 사람 등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목재소 품 만들기였다. 강사는 중등의 미술교사인 학부모가 맡고, 학부모 도우미가 붙어서 정교한 톱질, 글루건으로 접착시키기 등을 도와주었다. 나뭇가지, 솔방울 등이 어우 러져 기발한 형상들이 창조되고 있었다. 도예는 해마다 한 번씩은 흉내내어보던 활 동이라 식상할까 염려되었는데 학년성을 배려하여 저학년의 흙놀이에서 고학년의 전통 물레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흙을 주무르는 맛을 느껴보았다. 탈춤은 안동에서 강사를 불러와서 하회탈춤의 한 부분을 익혀 보았다. 한 불럭 동안이라는 워낙 제 한된 시간이나 할미춤의 시늉을 곧잘 내고 있다. 짚공예도 강사를 못 구하여 대구 의 짚풀문화연구소 사람을 불러왔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고, 논농사를 짓 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벼농사를 지었을 전통 깊은 논농사지만 상주에서 짚공예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대도시 대구에서 강사를 불러오다니. 염색은 엄마들의 도움 을 받으며 자신의 티셔츠를 염색해 보았다. 학교를 상징하는 셔츠가 되었다. 벽화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학교의 뒤편 교실 4칸 반 정도의 벽에 벽화를 그린 것이다. 벽화의 3/4 정도는 창틀 아랫부분의 파도가 출렁이는 긴 띠 그림 이였고, 마지막은 돌출 되어 있는 화장실 벽에 손잡고 둘러선 아이들의 환호 속에서 잉어 가 비상하는 민화를 그렸다. 미술교사인 학부모가 밑그림을 그리고 전교생이 달려 들어 색칠을 하였다. 몇 사람의 도우미가 함께 하였지만 아이들 손으로 사흘만에 이와 같은 대작이 완성될 줄이야. 이 후 이 벽화는 우리학교를 상징하는 그림이 되 었다. 가을계절학교는 11월 8일부터 5 일간 열었다. 외부 강사를 들여다가 특별한 체험 과 작품활동을 하기로 계획하다가 예산 부족으로 포기하고 교사들이 나누어 맡았 다. 학년별 운영계획서에 따라 오전 동안은 전시작품을 만들고, 오후 한 불럭은 학 년 공연연습, 한 불럭은 동아리 공연연습 시간을 배정하였다. 시수로는 하루 4시간 책정되었지만 실제로는 하루 8 시간 교육활동이 이어졌으며, 교사들은 1주일 내내 친근한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밤늦도록 야간 작업을 하였다. 계절학교의 마무리는 공연과 전시회였다. 전시작품은 평소 학습활동 중에 제작하 여 보관하고 있던 작품, 여름계절학교에서 제작한 작품( 목공 소품, 도자기, 짚공예,

379 염색 등), 가을계절학교에서 제작한 작품( 시화, 공예, 공동작 그림 꾸미기 등), 특기 적성 시간에 생산한 글과 그림, 동아리 활동 작품( 만화 평면작품, 에니메이션 동영 상), 학교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 관련 작품 등이었다. 전시장은 운동장에서 시작하 여 1, 2층 복도를 빼곡이 메우도록 마련되어 1 주일간 열렸다. 작품의 수와 다양성, 체험과정이 묻어나는 현장감에 모두들 감탄하였다. 공연과 전시를 묶어 제 1 회 갑장산 예술제로 이름지었다. 공연장은 운동장에 가 설 무대를 설치하고 아이들은 깔판을 깔고 운동장에 앉고, 어른들은 전교생의 걸상 을 동원하여 운동장에 줄지어 앉았다. 유치원부터 6 학년까지 노래, 율동, 연극 등 으로 한 차례씩은 무대에 올랐고, 공연의 중심은 그 동안 활동해온 동아리 발표회 로 잡았다. 모둠북, 발레, 리코더 중주, 풍물, 댄스, 밴드가 이어지면서 정말 지역의 축제로 큰 박수를 받았다. 4) 자율과 자치의 장: 한자리 모임 그리고 교사 모임, 학부모 모임 한자리 모임은 남한산초등의 다모임 이 우리학교에 와서 바뀐 이름이다. 상주남 부 가족 모두가 일주일에 한번 한자리에 모여서 모두가 공유해야할 학교생활을 의 논하고, 확인하고, 축하하고, 때로는 반성도 한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옛날이야기 를 참 잘 하신다. 대개의 시작은 교장선생님의 얘기 한 도막을 듣고, 주일마다 계 획에 따라 안건토의, 내 생각 발표회, 생일잔치 등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무리는 좋은 소리함 을 열어 칭찬의 글들을 공개한다. 한데 모일 자리가 따로 없어서 도서실에 모이고 있는데 교실 한 칸에 80명이 넘 는 남부가족이 모두 함께 하려니 너무 비좁다. 철없는 아이들은 눈치 없이 떠들어 대는데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 토론 문화의 형성, 자율의 힘, 자치의 건강성은 좀처 럼 보이질 않는다. 그 중 활기찬 자리는 생일잔치 날이다. 그 달에 생일을 맞은 친 구들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제법 작은 발표회로 발전하고 있다. 2학기 들어 교장선 생님의 걱정에 대답이 궁하여 한 달에 한 주일은 학급활동으로 돌렸다. 우리 학교의 교사회의는 대중이 없다. 매주 화요일에 협의회, 목요일에 연수회를 잡고 있지만 수시로 열리니 지정된 날자가 별 의미가 없다. 교장, 교감이나 담임편

380 의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대개 회의는 5시 퇴근 후에 담임교사들만 모여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어진다. 늘상 4인방이 떠들고 있는데 불평 없이 끝까지 함께 해주는 신 출내기 두 여교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지치도록 이야기하고 이튿날 교장 선생님께 보고하려면 할 말이 몇 마디 안 되지만 그래도 역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덕분에 프로그램들이 별 탈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끼리 불만이 거의 없 다. 학부모들의 회의나 학교교육에의 참여는 매우 활발하다. 지역의 학부모들은 시작 에서부터 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앞장서왔던 터이고, 전학 온 학부모들은 어려운 결 단으로 새로운 교육을 찾아 온 이들이니 적극성을 띠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 데 양측이 학교교육에 대한 바람에 차이가 있어서 패 갈림이 생기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면서 우리가 벌이는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가 축적되어야 해소될 것 같다. 학부모들이 벌인 일 중 특이한 사업은 작은 학교 살리기 작은 그림 전 이 있었 다. 학부모 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여럿 있고, 이들이 민미협 상주지부의 중 심을 이루고 있어서 민미협 전시회를 아예 우리 학교 돕기 전시회로 바꾼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학부모들은 전시장에서 차를 판매하여 마련하여 학교에 기탁하였다. 200여 만원의 지원금을 5) 아이들이 행복한 삶의 터: 아직은 별로 하루 학교생활 시정을 불럭제로 바꾸고 불럭 사이에 충분한 쉬는 시간을 배치하 는 것이 아이들의 생활리듬에 맞추는 것일까? 아이들의 생활리듬이 물리적인 시간 배치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리듬이 살아나려면 많은 배려들이 함께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물리적인 배치에 머물고 있다. 만들어 가는 학교 환경에서 학습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학교에서 마련하겠다 는 계획은 힘주어 밀고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습 준비물 구입에 너무나 많은 예산이 소요되어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학교의 환경을 아이들의 삶이 나타나도록 바꾸려는 노력은 가을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져 가는 것 같다. 지역의 다양한 삶의

381 문화 현장을 교수-학습의 장으로 삼아 가는 노력은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시도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학교 근처의 숲, 계곡, 들과 산 그리고 학교의 재배 밭과 사육 장이 아직 제대로 학습의 장이 되고 있지 못한 점이다. 전시적이고 권위적인 행사모습이나 생활태도, 경쟁적이거나 등급 메기기의 대회 같은 것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데 우리 교장 선 생님께는 진작부터 차려, 경례는 없어졌다.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앞으로 나오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고 말씀이 끝나면 아이들은 박수를 친다. 전시적이고 규격화된 학교 행사를 공동체 성장의 장으로 바꾸어 가는 노력을 몇 가지 벌였다. 운동회도 주 5일제 휴무 토요일에 열고 프로그램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하 도록 하였다. 발표회도 토요일 오후에 열고, 학부모 회의는 대개 저녁에 모인다. 시설 보완도 적잖이 이루어졌다. 통폐합 대상 학교라고 상당기간 시설 투자는 없 었던 형편이었다. 울긋불긋한 놀이터가 새로 들어오고, 컴퓨터실도 옮겨서 번듯하 게 단장되었고, 수도 배관을 전면 교체하면서 현관 옆에 상수도 대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학교문화예술시범사업을 통하여 동아리 활동실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3동의 컨테이너 박스를 상수도 대를 설치하면서 우리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상수도 대가 여름계절학 교에서 제작한 벽화를 가리도록 배치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 는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설계나 시공을 어떻게 변경시킬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교육청이나 학교 경영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기도 하여 어물어물하는 동안 벽 화를 가리며 반투명이기는 하지만 구조물이 들어서고 말았다. 민미협의 항의를 받 고 보니 크게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숱한 논의를 거쳐서 급수대 지붕을 2m 정도 들어올려 고쳤다. 균형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높이 달린 지붕을 바라보면서 시설물 보다 아이들의 작품인 벽화가 더 소중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상한 지붕을 보면서 교육적인 배려가 우선임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수정한 것은 전화위복이 라 하였다. 4. 흔들리는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382 1) 학교 흔들기의 서막 집단 전입으로 인하여 4학급으로 줄어들 학교가 6학급으로 늘어난 것에 대하여 교육청 담당자가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새해 들면서 공적으로는 교장선생님이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새 학교상을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교육청 에서도 좋게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관리과 쪽의 의구심이야 상황을 제대로 몰라서 생긴 오해이려니 싶었는데 아니다. 교장 선생님이 수차 설명을 해도 해소되지를 않 는다. 만일 이렇게 집단으로 전학 온 학생들이 집단으로 전출하여 6학급 편성이 잘못된 결정일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발생하지도 않은 일이며 앞으로도 발생하 지 않도록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다는 내용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이다. 만일에 발 생하면 어떻게 할 테냐? 그렇구나. 이것이 관료들의 몸조심이구나. 설명으로 이해할 문제가 아니고 만일 의 경우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백히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학교장이 각서를 썼다. 집단 전학의 경위와 앞으로 추진될 학교교육 계획 을 밝히고 만일의 경우 학교장이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야 불이 꺼 졌다.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계획을 좋은 시도라고 환영하던 학무과 쪽 도 마찬가지다. 인사 이동에서 우리가 청한 2명이 우리 학교로 못 들어오고 엉뚱한 사람이 오게 된 경위도 똑 같은 이유였다. 우리 학교의 상황을 충분히 전달하였고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 막상 인사를 시행할 때는 달라졌다. 만일 누 가 이렇게 항의하면, 저렇게 항의를 하면 하고 별의별 가능성을 다 짚어보고 어느 경우에도 책임이 안 돌아올 방안을 찾아내다가 생긴 일이었다. 2) 교사 대 학부모, 학부모 대 학부모의 동상이몽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계획은 학교발전위원회에서 남부초등학교의 발전프로그램으로 제안되어 채택되는 절차를 거쳤다.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동창회, 지역사회 인사들까지 함께 수용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학부모 대표들은 전학생 유 치를 위한 설명회 자리마다 함께 나가서 차 대접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383 있었고, 동창회에서는 지역의 노인회 회장단까지 초청하여 설명회 자리를 마련하기 도 하였다. 우리는 모든 학부모들이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 계획을 환영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되어 프로그램이 투입되면서부터 학부모 쪽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 작한다. 내심에 품고 있는 학교발전의 상이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와 다 른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불만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통학 문제와 특기적성 과목 선정은 학부모들이 조정하거나 의견을 수렴해야할 부문이어 서 의견을 모으는데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의견을 빙자하여 무리하게 고집 을 부리는 이들을 조정할 방도가 없다. 참삶 이란 이미 가치를 선택하고 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학교문화의 질적 변화 는 방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방향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는 자율, 더불어 사는 삶, 아름다운 감성, 과정 중시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싶은 데 경쟁성, 수월성, 가시적 성과 등을 바라고 있다. 또 삶을 가꾸는 교육 에 대하 여 의심하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는 소홀히 하고 쓸데없는 활동들에 골몰하고 있다 고 의심한다. 이를테면 농촌학교에서 노작체험이 왜 필요하냐 같은 것이다. 학교 의 발전이란 시내 학교의 아이들보다 앞서는 학력을 갖도록 해주는 쪽이기를 바란 다. 행복한 도 의심이 간다. 아이들이 언제 공부를 좋아했고, 언제 어른들 말을 고 분고분 들었는가. 공부도 바른 생활도 길들이며 끌고 가는 것이고 싫고 힘들지만 장래를 위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행복한 학교를 위하여 아이들이 멋대로 놀 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눈치다. 시내에서 전학 온 학부모들은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를 선택하여 찾아 온 이들이니 학교의 편을 들면서 약속대로 학교교육과정을 이행해주기를 요구한다. 어느 덧 양측 학부모의 편가르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교사들이 기존 학구 학부 모를 무시한다고 여긴다. 3) 투사가 된 학부모들 지난해 2학기 작은학교살리기 바람이 일고부터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교육청을

384 방문하여 작은학교살리기를 위한 지원책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특기적성 과목으로 원어민 영어와 태권도 지도를 위한 특별지도비를 지원 받았었다. 새 학년이 되며 6 학급 편성이라는 성과도 올렸고 구체적인 학교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었으니 획기 적인 지원을 요구하게되었다. 마침 상주는 교육장과 학무과장이 바뀌어 지난해에 이어지는 상황도 잘 모르고 또 지역 교육청으로야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스쿨버스 지급, 실내 체육관 신축 같은 사안들은 해결해줄 수도 없는 사정이었다. 학부모들 은 인터넷을 통하여 접한 경기도 어느 학교에서 요청한 수십 억 규모의 지원 요청 문건을 들이대며 우리도 해내라고 요구한다. 연속해서 교육청을 방문하고 교육장의 답변이 부실하다고 교육장실을 차지하고 자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버틴다. 교육장은 지난해처럼 특기적성 지도비의 특별지원을 약속하였다. 그 후 교육감이 상주를 방 문오자 또 교육감을 가로막고 따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초기에는 전교조 교사들이 모이더니 학부모들을 사주하여 벌어지는 일이라는 오 해도 있었다. 난감하기만 하다. 특기적성 특별 지원비는 결국 학부모들이 부담할 경비를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만 특별 지원하여 특혜를 받는 것이었고, 학부모들의 투쟁 덕분에 다른 학교들을 젖히고 컴퓨터실 개선, 놀이터 설치 등이 우선 배정된 일도 떳떳치 못하였다. 우리는 새롭게 벌이는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특별지원 을 요청하려고 하였지만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학부모들의 요구 는 언제나 학교의 특별한 교육계획을 끌어들이게 마련이었으므로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작은 학교의 이미지는 점점 일그러져 갔다. 교육청 압박에 이력이 난 학부모들은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해서도 집단행동으로 나온다. 태권도를 특기적성 과목으로 채택하여 학원차량으로 통학문제를 해결하라. 특기적성 과목에 원어민 영어를 우선 배정하라. 는 요구였다. 태권도는 학생들이 6 학급 70 여명으로 늘어나서 운동장 외에는 지도할 장소가 없고, 학원차량이 도보통 학생 일부를 제외한 전교생의 통학을 맡는 일이 무리라고 설명하지만 받아드리질 않는다. 원어민 영어는 방과후 특기적성 시간에 지도해줄 강사를 구할 수 없었다. 한달 동안 실랑이 끝에 태권도는 학부모가 양보하고 원어민 영어는 학교가 양보하 여 오전 교과 수업 시간에 학원 강사 수업을 넣고 교과 수업은 특기적성 시간으로 옮겼다. 또 이번에는 작은학교살리기 작은그림전시회 에서 시내 학부모가 주인공이

385 되고 학구 학부모들이 들러리가 되어 기분이 나빴다. 학부모 총회를 소집하여 양측 학부모 사이에 고함소리가 오가며 판이 험해지더니, 한 학부모가 느닷없이 체벌 문 제를 들고 나왔다. 다시 불똥은 체벌 문제로 번졌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되는데 일 년 전 에는 누구를 발로 찼고, 이 년 전에는 누구를 멍이 들도록 때렸단다. 아이를 꽃으 로도 때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있은 부적절한 체벌, 그 때의 상황 과 맥락을 생략한 채 문제삼고 나오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한 달 가까이 옥신 각신하던 끝에 기어이 그 학부모는 아이를 시내 학교로 전학시키고 말았다. 2학기 들어 또 체벌문제가 불거졌다. 운동장에서 아이를 발길로 툭 한번 찬 일이 또 발 생하였다. 교사의 과실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문제를 확대시킨다. 당사자를 부추겨 지역 교육청, 도교육청 그리고 경찰에까지 고발하게 하고 피해보상을 시키고, 전체 학부모에게 사과문을 돌리게 하고 그래도 부족하여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하여 인 터넷으로 인신공격에 들어간다. 항복하고 말았다. 교육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이 나름대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학 부모들은 모두 다 자녀 교육에 대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일정 부분 학교에 위임된 부분에 대해서는 맡겨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학부모들이 있다. 그것도 자기의 관점을 집요하게 관철시키려는 성격을 가진 이와는 제발 만나지 않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다. 또 이 일련의 교사의 체벌 비리 문제는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 흔들기 내지 영향권 장악을 위하여 특정 교사를 목표로 삼고 흠집내기 작전을 펼치는 면 이 있지만 맞붙어 싸울 수도 없어서 난감하기만 하다. 5. 웃으며 지난 얘기할 날이 올까? 교육계로부터, 학부모들로부터, 지역사회로부터 요구가 있고 그 요구에 대한 응 답으로 교육혁신 운동이 일어나야겠는데 요구와 응답을 모두 우리가 만들어야 하 는 것 같다. 그러면서 시작에서부터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설명회 안내 전단도 우리 손으로 돌리고, 설명회장도 우리 손으로 마련하고, 설명도 우리가 하고, 전학 을 오겠다면 동사무소로 나가 우리 집으로 전입시키고, 어느 새 학부모들의 몫인

386 통학차량 문제까지 우리가 도맡아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기획조정을 잘 못하여 임무들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해서 생긴 상황들이 적잖이 있겠지만 자 생적 학교혁신운동이 안아야할 짐인 점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학력에 대하여 계속 긴장이 된다. 이 사회, 우리 학부모가 삶을 가꾸는 교육의 성취로서 학력을 받아들여 줄까? 삶을 가꾸는 교육에서 성취가 고득점으로 표기되 는 학력으로 이어질까? 도대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적 환경이 여느 아이 들과 다르지 않은데 학교의 몇 가지 프로그램으로 삶을 가꾸는 교육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우리는 체험 위주의 교육활동으로 삶을 가꾼다고 하면서 새로운 전시 위주, 행사 위주의 교육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학력에서 시작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예산 문제가 또 참으로 난감한 과제이다. 올해는 다행히 학교문화예술시범사업을 끌어 들여 의도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었지만 다음 해에도 행운이 따라준다 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학교의 일반 예산은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얼마 없지만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기술적으로도 퍽 어렵다. 내년 예산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누가 좀 노하우를 주면 좋겠다. 학부모들과의 갈등은 학부모 개인의 품성 내지 성격의 문제인가 아니면 현명하 게 대처하지 못한 학교나 교사의 잘못인가? 교육주체로서 학부모는 학교 교육에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참여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학부모 교육을 시 킬 수 있을까? 학부모와의 관계 문제는 우리 학교만 가진 특수한 문제인지, 아니면 학교 혁신의 과정에는 따를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문제인지가 궁금하다. 새 학교를 시작하고 열 달이 되어 가고 있다. 체험중심 교육활동은 결국 연속되 는 행사를 양산하고, 행사는 앞뒤에 숱한 손길이 따르게 마련이다. 늘상 대중없이 바쁜 터에 거의 한달 간격으로 학부모와의 전쟁(?) 을 치러야 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우리들이 모두 사심 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몰이해야 시간이 지나면 풀 려질 것이다. 하고 서로 자위해 보지만 너무 여러 번, 너무 진하게 부딪치니 견디 기 어렵다. 이제는 모두들 지쳐서 판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실의에 빠졌다. 그런데 가을계절 학교를 거치면서 갑장산 예술제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다시 생기를 찾아간다

387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 김복희( 부산 덕천중학교 사회복지사)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라는 안도현 님의 글만 보면 내 가슴은 울렁거린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연어보다 더 아름다운 삶, 닮고 싶은 삶이 또 있을까? 나는 이 글에서 연어를 닮은 사람들, 그리고 연어를 거슬러 오르 게 하는 초록강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10 년 전,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하며 운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화려하고 멋진 건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으나 그 화려한 조건은 나를 채우지 못했다. 이 때부터 고민은 시작되었 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금 내 꿈은, 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 다. 이런 고민은 1 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드디어 사회복지사의 길을 선택 하고,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사회 복지 현장에서 일하다가 학교로 오게 되었다. 2003년 4 월, 덕천중학교에 첫 출근을 하였다. 학교가 소재한 덕천동으로 가려면 부산에서 상습 정체구간으로 소문난 만덕터널을 넘어야 했고, 8년 넘게 계속되는 지하철 공사로 인해서 비포장도로를 방불케 하는 좁은 차도를 지나야 했다. 한번 밀리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곳, 70 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리의 상가들, 도무지 정이라곤 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가는 길 주변에는 재건축만을 기다리고 있는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로 가득해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안 열악한 동네를 많이 다녀 봤지만 덕천동 일대는 또 다른 썰렁함으로 다가왔다. 특히 놀란 건 당시 덕천중학교에 재직중인 59명의 교사 중에 부산 북구에 거주 하는 사람은 단 1 명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만덕터널을 경계로 동래구와 북구는 서

388 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었을까? 평소에 청소년복지에 관심이 많았 던 나였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감은 무너지고 있었다. 학교에 사회복지사가, 뭣하는 사람인고? 2003년 4월 16 일, 나는 부산 북부교육청과 계약을 맺고 덕천중학교에 교육복지 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4) ( 이하에서는 교육복지사업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을 담당하 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 5) 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를 놓고 처음에 교육청 담당자와 같은 일을 하게 된 사회복지사끼리는 반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학교에 서 교육복지사업과 같은 엄청난 일은 교육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라는 용어 또한 대한민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니 어쨌든 우리는 별종으 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학교에 오니 교육복지 담당교사만 있을 뿐, 담당부서나 담당부장도 없었다. 교육 복지사업에 대해 들어 봤거나 알고 있는 사람도 담당교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연초에 교육청으로부터 덕천중학교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시행하는 교 육복지사업 시범학교로 2 년간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사업에 대한 아무런 이 해 없이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겨울방학 때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계획 서 내용이 모두 학교 시설에 투자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어 2003년 4 월 초, 교육 청으로부터 계획서를 재수립하도록 통보를 받은 상황에 있었다. 당초 교육청 추진 일정에 의하면 학교에 복지사가 들어가는 시점은 4월 30 일이었다. 하지만 각 학교 마다 새로 수립해야 하는 사업계획서를 놓고 하루라도 빨리 복지사들이 들어와서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우리는 계획보다 2주 빨리 학교로 파견이 4)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란 2003 년도부터 도시 내 저소득지역 아동청소년의 교육복지문화 수 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2003년도에는 서울과 부산을 시 작으로 초중학교 45 개교에서 실시되었으며, 현재는 서울과 5개 광역시 15 개 지역, 82개 초중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5) 지역사회교육전문가란 교육복지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각 학교에 한 명씩 배치되어 있는 민간전 문가를 말한다. 이들은 교육복지사업의 계획, 추진, 평가까지 전반을 총괄하며, 학생의 심리 정서적 문 제 예방, 학교부적응학생 및 기타 돌볼학생 상담 및 지원, 학생복지 및 사회복지서비스 지원, 학생가정 학교지역사회의 관계증진 및 연계, 타 학교 및 지역기관과의 공동사업기획 등의 역할을 한다. 지역사회 교육전문가의 대부분이 사회복지사인 관계로 학교 내에서는 복지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389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2003년도 교육복지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학교현장에 대한 경험과 학교에서 연간 이루어지는 교 육활동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사업비가 수 억 원에 이르는 교육복지사업 의 계획을 만들어 내야만 한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선행 학교가 없으니 전화해 서 물어볼 곳도 없고, 교육청은 우리보다 더 모르고 더 깜깜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었다. 무식이 용감 이라고 했던가 기댈 곳은 담당교사 밖에 없었다. 먼저 담당교사와 상의하여 전체 교사를 대상으 로 교육복지사업에 대해 연수를 실시하고 교사들로부터 의견과 아이디어를 수집하 기로 하였다. 그 날 연수 시간에 담당교사가 전 교사들에게 했던 말은 아직도 귀에 맴돈다. 선생님들 기뻐하십시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교육활동이 있으면 이제 모두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산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지 원하겠습니다. 희망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의견서를 제출해 주십시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집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었다. 의견 수렴 결과 체험학 습에 대한 요구, 문화활동에 대한 요구, 계발활동 지원에 대한 요구, 학교 특별실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 등이 나왔으나 대부분이 막연하고 추상적이었으며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이 날부터 담당교사와 함께 학교에서의 밤샘 작업이 시작되었다. 교사들과 관리 자들이 원하는 내용들을 실현 가능하도록 구체화시키고, 사회복지사로서 필요하다 고 판단되는 학생복지사업과 상담프로그램을 추가하고, 모든 사업 내용을 학습, 문 화, 정서, 복지영역으로 구조화시키는 등 모두 6억원에 이르는 사업계획서를 수립 하였다. 그 후 지역교육청, 시교육청, 시의회의 심의를 거쳐 30 개의 단위사업, 80 여 가지의 세부프로그램에 대하여 최종 4억7 천여만 원으로 예산이 확정되었다. 그

390 때가 6월 중순이니 계획수립에서 심의 통과까지 무려 2 달이 걸렸다. 2003년 교육복지사업비 4억7 천만원, 예산은 많이 받아 왔지만 이것을 다 어찌 해야 하나? 매일 매일 숨이 조여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새로운 도전이라는 흥분감도 일어났다. 본격적인 사업은 7 월부터 시작되었다. 7월3 일, 사업내용과 예산이 확정된 이후 다시 전체 교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연수를 하였다. 단위사업별로 사업 성격과 가장 관련이 많은 부서를 담당부서로 지정하고, 부서를 정하기가 모호하거나 전혀 새로 운 사업들은 내가 직접 담당하기로 했다. 업무추진 과정과 방법, 지원대상 및 선정 방법, 예산집행 및 결재방법, 프로그램 추진과 평가 등의 연수가 장시간에 걸쳐 이 루어졌다. 이 날 연수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교육복지 추진위원회6) ) 를 통해 협의된 사항이었고, 여기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당시 교육복지 추진 위원회라는 것은 형식적 것이었으며, 구성원 중에서도 교육복지에 대해 알고 있거 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전무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도 엄청난 분량의 사업계획 서를 제출하여 최종 확정이 되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담당교사가 말하는 대로 사인만 하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장선생님은 2달 후에 퇴임을 앞두고 있었고, 교감선생님은 교장 승진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때 이른 걱정은 안 하겠다! 아직 이룬 것은 하나 없다. 그러나 문제도 아직 없다.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때 이른 걱정은 안 하겠다 문제는 해결방법과 함께 다가오는 법이니까 - 영화 싱글즈 의 대사 중에서- 6) 교육복지 추진위원회란 단위학교 내에서 교육복지사업에 대한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며 조정하 는 기구이다. 교육복지사업이 2003년 학기 중간에 시작되면서 전담부서 없이 중요한 사안은 이 기구에 서 협의하였다. 주로 교장, 교감, 행정과장, 교무기획부장, 연구부장, 교육복지 담당부장 (2003 년도에는 없었음 ), 담당교사, 지역사회교육전문가, ( 필요한 경우에는 단위사업 담당부장 혹은 담당교사도 참석) 로 구성된다

391 공식적인(?) 발표는 끝났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추진은 합법적인(?) 것이 다 라고 주문을 외니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평소에 그다지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 이지만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하나씩 열심히 추진해 가기로 했다. 먼저 단위 사업 혹은 프로그램 담당부서와 담당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개별적으로 좀 더 상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덕천중학교는 교무실이 통합되어 있지 않고 부 서별로 층층이 구석구석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수 때와는 달리 교사들의 저항 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물론 교육복지사업의 매력을 느끼고 반갑게 받아들이는 교사도 있었다. 그렇지만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느냐?, 왜 내가 왜 이런 것들을 과외 업무로 해야 하느냐?, 이런 일들이 학생들한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라., 내가 하겠다고 올린 것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한다고 올렸느냐? 등등 하루도 상처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첫째, 이 사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둘째, 왜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 처음부터 없었던 과외 의 업무라는 것이다. 넷째, 본인이 하겠다고 계획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업무가 너무 과중된다는 것이다. 일 곱째,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여덟째, 모든 게 귀찮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연구학교와는 달리 업무만 많고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교육복지사업으로 인해서 기존의 특기적성교육이 몇 배로 규모를 크게 하여 운영해야 하였고, 기존의 기초학력부진아에 대한 보충과정 과는 별개로 또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했고, 기존의 전일제 클럽활동에 덧붙여 서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해야 했다. 그 일들을 하기 위해서 몇 단계의 행정적인 절 차를 추가로 받아야 했고, 방학 기간 동안 학생들을 체험학습과 문화활동에 참가시 키기 위해 반별로 학년별로 대상자를 뽑고 또 뽑아야 했으며, 때로는 교사가 직접 인솔자로 따라 나가기도 해야 했다. 급식비, 학교운영지원비, 건강검진, 상담프로그 램, 정서지원, 가족기능강화사업 등등 각 사업에 맞는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학 생과 부모 상담은 계속 되어야만 했다. 특히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결재과정과 행정서류가 복잡했고, 결과처리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

392 다. 특히 교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산과 관련된 행정력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나는 교사들의 미숙한 업무처리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아직까 지 기안문도 한번 작성해 보지 않았다는 교사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작성해 본 적 은 있으나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교사들도 많았다. 이쯤에서 조금씩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지 금부터라도 교사들을 최대한 지원하자, 우선 교사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자, 그리고 작은 정성과 감동으로 승부하자고 결심하였다. 첫째, 행정실과 협의하여 행정서류를 최대한 간소화시키기로 했다. 둘째, 사업추 진에 필요한 서류를 간단한 양식으로 만들어 교사들에게 제공했다. 셋째, 단위 세 부사업별로 사전 기안 결재부터 추진, 평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윤곽을 잡아서 담당교사에게 제공하면 담당교사가 참고하여 완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넷째, 무조건 발로 뛰고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얘기했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나 인터폰 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한 삼가 했다. 다섯째, 작은 것이라도 친절한 안내문을 만 들어 끊임없이 제공하고, 맨투맨으로 호소했다. 여섯째, 교육복지로 인해 들려오는 긍정적인 소식이나 일화들이 있으면 가능한 많이 이야기하고 알렸다. 특히 학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예쁜 메모지에 정성껏 적어서 담임교사에게 전하는 것을 원칙으 로 삼았다. 34 학급에 똑같이 들어가는 안내문이라도 각 반별로 첫 표지에는 학 년 반, 선생님께! 라고 모든 선생님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 만들었으며, 늘 감사의 인사와 희망의 메시지를 잃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과중한 업무와 밤늦은 퇴근, 정해진 기간 내에 수 억 원의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사들이 느끼는 업무의 부담감과 불평은 그대로 나의 부담감으로 이어졌고, 나의 한계는 생각보다 빨리 찾 아 왔다. 첫 번째 매가 가장 매운 법! 단위사업 중에 기초학력부진아지도라는 것이 있었다. 학년별도 기초학력이 낮은 학생들에게 방과 전 혹은 방과 후에 별도로 반을 개설하여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393 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목별 외부 강사를 채용하여 실시하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여름방학 동안에 학습동기유발을 위한 자아 성장 체험활동을 수련관을 통해 1박 2 일 갖기로 하였다. 하지만 연구부 담당교사 의 저항은 대단했다. 왜 자기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 기 시작했다. 기일이 촉박한데도 불구하고 일에 전혀 손도 대지 않는 것으로 본인 의 심경과 의사를 드러냈다. 참 막막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내가 전적으로 차 고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듯 했다. 혼자 조바심을 치고 고민을 하다가 연 구부장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상자만 선정하고 내부결재만 담당계에서 받으면 나머지 모든 추진은 내가 한다고 타협을 유도했지만 담당교사 의 화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쨌든 담당교사는 기초학력부진학생 80명을 선 정하였고, 나는 기장군청소년수련관을 연계하기 위해 기관을 방문하여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계약을 추진하고, 기타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출발 이틀 전부터 참가학생 명단을 가지고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날짜와 시간, 준비물 등을 한번 더 설명하고 꼭 참가할 것을 다짐 받았다. 7월 26 일, 드디어 방학동안에 학교 외부로 나가는 공식적인 첫 프로그램을 떠나 는 날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출발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학생은 절반밖에 모 이지 않았다. 출석을 체크하면서 안 온 학생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 작업을 한 것이 30 여분. 우여곡절 끝에 최종 56 명의 학생을 데리고 수련을 떠났다. 수련 관으로 가는 시간 내내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자아성장 수련회를 다녀온 이후에도 여름방학 동안에 여러 가지 체험학습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참여율은 여전히 낮았으며, 프로그램 참가 중에도 그 다지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힘들 고 보람이 없었다. 참가하는 학생은 학생대로 흥미가 없고 소극적이었다. 뭔가 내 내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낙인( 烙 印 ) 의 문제였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만 한 곳에 모아 두면 그 자체만으로도 자존감은 떨어진다. 못사는 집 아이들만 한 곳에 모아 두면 그 자체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한다. 이것은

394 그들은 두 번 죽이는 것이었다.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시다 2003년 2 학기가 되면서 추진해야 할 사업량은 더욱 많았다. 2003년 9월 현재 예산 집행률 겨우 10% 밖에 안 되었다. 갈 길은 너무나 멀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교장선생님이 퇴임하시고 전영옥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여 오셨다. 오시자마자 교장 선생님의 고뇌는 시작되었다. 이게 도대체 다 뭔가? 연간 학교운 영비는 2 억원도 채 안 되는데, 5 억원에 이르는 교육복지비라니,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지난 몇 달간 해 놓은 걸 보니 도대체 체계도 없고, 기준도 없고, 중구난 방이니 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어지더라 하신다. 10 월부터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은 매일 매일 교육복지사업에 대해 공부를 하고,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잡아 나갔으며, 우 리 학교에 필요한 사업에 대해 향후 2-3 년간의 계획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 그 림에 대해 기회가 될 때마다 나에게, 그리고 교감, 행정과장, 부장교사들에게 설명 하고 이해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먼저 2003 년도 사업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첫째,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기존 교육과정과 중복되고 차별화되지 않은 단위사업들이 많다. 둘째, 체험학 습, 문화활동, 학교축제, 방학문화아카데미 등과 같은 체험활동지원비의 비율이 크 며 중복투자가 많다. 셋째, 6 명을 위한 장애학급운영 활성화비가 과다하다. 넷째, 일회성 사업과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본 사업의 취지에 맞지 않다. 다섯째, 낙인의 소지가 있는 사업은 대폭 축소하던지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여섯 째, 단위사업 하나하나의 계획, 내용, 과정, 결과, 예산지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 용이 체계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일곱째, 현재 계획되어 있는 단위사업 중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거나 추진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집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예산을 내년으로 이월시켜 장기 적인 안목으로 사업계획을 새로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향후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 저소득층 자녀 및 소외계층

395 의 교육결손 및 정서 문화적 결손의 치유 및 예방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의 기능을 강화하여 학교가 지역의 교육 복지 문화의 지원센터 및 거점학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육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아울러 이미 특수학급에 투자된 하 드웨어를 활용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인근의 특수학급 학생들에게도 치료 교육의 기회를 확대시켜 본교가 교육복지사업을 통해 지역 특수학급의 중심 역할 을 해야 한다. 넷째, 곧 시행될 주 5일제 수업과 병행하여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교육복지사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교사 주도로 표현감상활동, 자연체험활 동, 관찰탐구활동, 체육문화활동, 실습활동, 과제학습활동 등을 전개해야 한다. 여 섯째, 교육복지사업이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역과의 연계, 특히 교육복지 를 같이 실시하고 있는 인근의 교육복지 학교들과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이루어 져야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장선생님의 뜻이 단 기간 내에 교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는 어려운 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이러한 방향이 부장교사 외 일반교사들에게 구 체적으로 전달되는 기회도 없었으며, 또 교사들은 지난 4-5개월 사이에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2003 년은 많은 풍파 속에서 여러 곳에 상채기를 내며 지나갔다. 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 은빛연어가 물었다. 거슬러오른다는 건 뭐죠? 초록강이 말했다. 거슬러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 같은 거 말이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 안도현님의 연어 중에서- 돌이켜 보면 2003년 9개월은 저녁 8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며칠인지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하루도 상처받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혼자 숨어서 운 날이 얼

396 마인지도 모르게 지나왔다. 그렇지만 과거는 아름답다고 했듯이, 돌이켜 생각해 보 면 나에게 2003 년도 아름다운 과거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2004년을 더욱 아름 답게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 믿는다 년. 이젠 첫 해와는 분명 달라야져 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더욱 바쁘 게 움직였다. 첫 해 경험상,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스스로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자 하는 의지라는 것을 혹독하게 배우지 않았는가. 그래서 2004년 사업계획은 교 사들이 직접 만들도록 독려하였으며, 강제성은 전혀 두지 않았다. 기존 교육과정과 중복되는 사업은 폐지 혹은 차별화시켜 운영하기로 하고, 유사한 사업들은 통폐합 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든 내용은 연간 학교교육계획과 통합 연계하여 추진하 도록 하고, 교사 개인별 교과별 부서별, 혹은 어떠한 구성원으로든 추진해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을 받기로 했다. 이러한 전체적인 방향과 내용은 교육복지 추진위 원회에서 결정하고, 부장회의를 통해 협의한 후, 전교직원 회의를 통해 전달하였다. 그리고 전교직원 연수를 통해 2003년도의 문제점과 2004 년도의 방향, 그리고 2004 년도 계획서 제출과 관련하여 제출 양식에 이르기까지 설명하였다. 무엇보다 강제성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으며, 특히 어렵고 힘든 학생들을 위해 교 사의 가슴에 대고 인간적으로 호소하고자 하였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 년 간 교사 스스로가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이 있으니 이제는 교사들에게 설명하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또 그동안 몇몇 교사들 중에는 적 극적으로 교육복지사업을 활용하여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들을 보람차게 추진해 온 경우도 있으니 그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교무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띄 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교사들이 사적 공적으로 하던 얘기들 속에서 복지사 업을 통해 같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얘기해 주고, 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막연한 바램과 욕구들을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만들어 낼 수 있 도록 돕고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프로그램 계획은 교사가 한 장의 일관된 양식에 중요한 포인트만 최대한 요약하여 제시하면 살을 붙이고 다듬는 작업은 전체적으로 내가 하기로 하였다. 물 론 제출자 및 제출부서, 추진희망자는 분명히 하도록 하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영어과에서 원어민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과

397 학과에서 과학캠프 프로그램, 환경과에서 저소득층 가족들을 위한 활동프로그램, 사회과에서 저소득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 위한 체험학습, 국어과에서 시문학 아카데미, 교사 개인들은 학생동아리를 특활반으로 연계하여 운영하기로 하고, 학 교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상담활동과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비 지원을 요청하고, 장애아들을 위한 다양한 치료프로그램과 관내 특수학급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들이 올라왔다. 이 외에도 교사들이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학교에서 교육복지사업을 언 제까지 하는지, 올해는 이렇게 하고 내년에는 저렇게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는 지, 복지학교가 어디 어디인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지, 이것만은 꼭 할 수 있 게 좀 해 달라, 이런 거 한번 해 보면 어떻겠는지 등등. 2004년 교육복지사업은 이렇게 돛을 올렸다. 조금씩 희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를 만나면서 전에 같았으면 무심코 넘겨버릴 일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소중한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작은 돌맹이 하나, 연약한 물풀 한 가닥, 순간순간을 적시고 지나가는 시간들, 전에는 하찮아 보이던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보물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 안도현님의 연어 중에서- 학기초가 되면 담임교사들은 반 학생들을 파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한다. 가족관계, 가정형편, 친구관계, 부적응문제, 심리정서적인 문제 등. 하지만 그것은 거의 형식에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 야 행정구청과 학교 행정과에서 다 알아서 체크해 주고, 교육청에서 기본적인 사항 은 다 지원을 해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위 법 적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 여 있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이다. 정부로부터 자치단체로부터 복지기관으로부터

398 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니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옛날처럼 가가호호 가정방문을 다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학생이 입 다물 고 말 안하면 교사들도 어떻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실 질적으로 한부모이거나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함께 살지 않는 경우, 신용불량, 경 제파탄 가정, 가정 폭력, 부모의 알콜 중독, 부모의 정신질환 등 아이들이 처해 있 는 환경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하여 교육복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물론이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 는 학생, 잠재되어 있는 학생들이 복지사업을 통해 소외되지 않고 학교생활에 충실 할 수 있도록 최우선으로 지원하였다. 우선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없는 저소 득 학생들의 급식비와 학교운영지원비, 그리고 결식학생들의 석식문제를 해결해 주 고, 심리정서적인 문제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특히 담임교사의 관심과 노력이 무엇보다 절대적이었다. 아침 회의시간에 또 다시 전 교사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 고 담임교사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호소하였다. 힘들게 살아가는 가정과 우리 학 생들을 위해, 급식비 독촉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하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번 더 부탁드린다고, 그리고 증빙 서류는 최대한 간소화하고 대신 교사추천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홍보하였다. 이 렇게 홍보한 후에 학년부 회의에 들어가 다시 한번 설명하고 직접 추천서를 나눠 주며 담임교사들의 질문도 받았다. 또한 학년부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학년부 장에게 설명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법들에 대해 사전에 논의를 하였다. 대상자 선정 과 프로그램 참가학생 추천 및 선정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갔다. 효과는 예상 외로 좋았다. 작년에 한달 가까이 걸린 추천이 일 주일 만에 완료되 었으며, 복지비로 지원 가능한 인원 수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꼼꼼하게 추천되어 내려왔다. 지난해에는 두세 줄에 불과하던 추천사유가 이번에는 추천 사유란이 빽 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어떤 담임교사는 행여 지원대상자에서 탈락될까봐 학생 한 명 한명의 이름 앞에 지원 우선순위를 적어서 제출하기도 하였다.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마음과 노력의 흔적들이 묻어나고 있었다. 작은 것에서도 감동 잘 받기로 유명한 나는 교사들의 눈빛 하나, 말씨 하나, 행

399 동 하나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경험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았다. 우리 선 생님들이 정말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무엇보다 교사들 속에서 함께 일하는 나 자신부터가 지난해에 비해 훨씬 편안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연어를 만나다! 4 월말쯤, 교감선생님이 불러서 갔더니 1학년 10반 담임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 을 좀 다녀오라고 했다. 학기초부터 장기결석을 하는 학생인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오지 않고 하루 이틀 나오면 또 감감 무소식이란다. 부모님까지 학교에 다녀갔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단다. 담임선생님이 혼자 집에 찾아가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날은 봄비가 유난히 많이 내렸다. 방과 후에 약도를 들고 담 임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는 집. 한참 후에 불이 꺼진 부엌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들어가 보니 학생이 자다 일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변변한 직장도 없고 밖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으며, 집에 들어오면 폭력도 행사했 다. 어머니는 경도의 정신지체 증상이 있으며 의용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학 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는 거의 다니지 않고 혼자 방에서 하루 종일 TV 를 보거나 컴퓨터를 했다. 키는 보통이었으나 핏기 없는 얼굴에 체력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묻는 말에 예, 아니오 말고는 답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만나지 못하고, 학생에게 내일은 꼭 학교에 나올 것을 다짐받고 집으로 돌아 왔다. 김선 우 7) 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음날 9시 20 분, 1 교시가 시작되어도 선우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기다렸다가 퇴근길에 다시 집에 들렀다. 선우는 별 말이 없었다. 뽀족한 방법이 없었다. 내일부 터는 내가 직접 아침에 데리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일 주일, 한 달이 흘렀다. 선우 는 한 번씩 스스로 나오기로 약속하여 지키기도 하고, 2-3일 나왔다가 2-3일 결 석하기도 했다. 나는 담임선생님과 교대로 계속 등교지도를 했다. 일 주일에 3일만 나오고, 그 중 하루라도 스스로 등교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1 차적 목표를 두었다. 7) 가명이다

400 상담부장교사, 담임교사, 특수학급 교사, 사회복지사, 금정구 정신보건센터 임상심 리사가 팀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담임교사는 선우가 교실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분 위기를 만들고, 상담실에서는 지속적인 상담을 실시하고, 수업시간을 재구성하여 특수학급 프로그램과 컴퓨터 교실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정신보건센터에서 는 필요한 각종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매주 1회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과 어머니를 상담하였다. 힘겹게 1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동안에 도 가끔씩 전화를 하여 대화를 하고, 한번씩 퇴근길에 찾아가 밥을 먹고, 정신보건 센터에서도 지속적으로 사례관리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개학하여 9 월이 되었다. 선우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부모님은 결국 유예원을 제출했다. 선우의 부모님이 유예원을 제출하자 담임선생님은 처음엔 무척 화가 났다고 했 다. 무슨 죄가 많아 이런 학생을 만났는가? 학급에 있는 33명에게 쏟는 정성보다 선우 한 명에게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예라니. 선우 담임선생님은 한편으로는 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배신감과 허탈감에 한동안 마음 고생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한 학생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특히 지역사회 기관에서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더라 고 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이 일을 계기로 상담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초록강을 닮은 사람들, 사과나무를 심다! 강물이 왜 하류로 흐르는지 너는 아니? 은빛연어가 말했다. 그건 거슬러오를 줄 모르기 때문인가요? 강이 하류로 흐르는 건 연어들을 거슬러오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초록강은 계속 말했다. 강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자신의 물살과 체온을 연어들에게 가르친단다. 그리고 길을 가르쳐주지. 연어들이 반드시 강을 거슬러올라야 한다는 것을, 또한 거슬러올라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 안도현님의 연어 중에서

401 2005 년, 이제 교육복지사업도 벌써 3 년 차에 접어들었다. 2003년에 비해 교사들 도 절반 정도나 교체되었다. 나는 여전히 학기 초에 교육복지 연수를 실시하고, 담 당부서와 교사에게 업무를 설명하고,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교사와 학생을 돕고 지 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홍보하였다. 3 월이 채 가기도 전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지난해와 달리 각 반마다 이런 저런 학생들을 파악해 달라고 공지를 하기도 전에 교사들이 먼저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나를 만나거나 눈만 마주쳐도 선생님이 나를 먼 저 부른다. 올해는 언제부터, 몇 명 정도 지원해 줄 수 있느냐, 올해는 뭐뭐 하느 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느냐, 아무개도 하느냐 는 것이다. 이런 선생님의 적극성 에 또 감동 받아서 나는 또 이렇게 말하고 만다. 선생님이 진짜로 필요하다 하시 면 제가 다 해 드릴께요. 복지비로는 다 안되니까 제가 로또 복권이라도 살게요 라 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선생님도 안다. 신규 교사들은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 분위기에 그냥 동조되어 갔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어떤 거부나 저항도 없이 덕천중학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이라 이런 사업도 하고, 사회복 지사도 있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체 분위기에 이끌려서 아! 진짜 좋 네요. 꼭 필요한 거 맞아요. 다른 학교도 다 있으면 좋겠네요. 좀 특이해요 라고 얘 기한다. 4 월이 되고, 5 월이 되고. 학생 명단을 적어서 나를 찾아오는 선생님들이 날로 증 가하였다. 반 학생의 동생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는데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 고 싶어서 찾 오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의 상담을 의뢰하며 다양한 프로 그램 연계를 요청하고, 정신지체나 알콜중독, 가정폭력의 문제가 보이는 학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하고, 선생님이 보기에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우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 학생 가정이 있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 오고,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학생이 수업이 시작되어도 등교하지 않으면 수업을 하고 있는 담임선생님을 대신해서 가정방문을 의뢰하고, 장기결석 비행 부적응 교우관계 심리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으면 이제 더 이상 모

402 르는 척 하거나 혼자 고민만 하지 않았다. 서로 방법과 대안을 찾고자 정성을 쏟았 다. 한국복지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복지관, 자치단체, 기타 비영리재단을 최대한 활용하여 장학금, 생계비, 의료비, 급식비, 후원금, 멘토링 등을 연계하고 지원하는 일이 많아졌다. 교사가 먼저 요청한 경우도 있고, 외부 자원을 결연시키고자 교사 들에게 학생들을 먼저 추천 받기도 하였다. 이제는 단 한 명의 학생만을 추천할 때 도 가장 필요한 학생에게 도움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년부끼리 모여 회의를 거친 후 명단을 가져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정성 을 다할 수 있는지, 또 다시 감회가 새로워진다. 교사들은 말한다. 교육복지로 인해 학생 개개인과 얘기하고 상담할 기회가 많아 지니까 저절로 학생에 대해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고, 또 부모나 집안 사정에 대해 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니 학생지도에도 더 도움을 받게 된다고, 그들을 마음으 로 걱정하고 배려하는 맘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될 것 같다는 감이 온다고 얘기한다. 교사들은 이제는 학생의 문제를 학생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것 같다. 개인과 가족,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해답을 혼자가 아닌, 주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또 지역사회와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을 얻은 것 같다. 앞으로도 선생님들의 사랑이 우리 학생들의 가슴 가슴에 한 그루 사과나무로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입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은 없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곧 길이 되는 것입니다 - 노신( 魯 迅 ) 의 < 고향> 중에서

403 2005학년도 2 학기에 김선우가 복학을 했다. 유예기간 동안에 집에 가끔씩 전화 를 해 보았다. 여전히 TV 에 컴퓨터게임이 전부였다. 변화라고는 집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 것과 아버지가 매일 집에 들어오신다는 것이었다. 2학기 복학에 대해 강 한 의지를 보이는 것 또한 하나의 변화였다. 드디어 복학. 어느 반으로 배정할 것 인가가 중요했다. 교감, 학년부장, 진로상담부장, 전년도 담임, 복지사가 모여 고민 한 결과, 특별히 배정 원칙을 무시하고 경륜과 경험이 가장 많은 1학년 부장선생님 반에 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시 작년의 그 팀이 모여 사례회의에 들어갔다. 우선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적극 지지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급식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자원과 연계 하고, 뒤떨어져 있는 학력을 보충할 수 있도록 사범대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연결하 여 학습을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교실에 들어가는 모든 교과담당선 생님에게 선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업시간에 주의와 관심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10 월 첫날, 1학년 6 반에 파티가 열렸다. 9월 한 달간 출석률 100% 의 쾌 거를 이룬 것이다. 월 출석률 100% 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우가 속한 반이 그것을 해 낸 것이다. 담임선생님도 김선우도, 반 친구들도 환호 성을 질렀다. 담임선생님은 반 모두에게 피자를 선물했다. 담임선생님은 지금도 선 우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떨린다. 결석도 없이, 숙제도 꼬박꼬박 잘 해오고, 준 비물도 잘 챙겨오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표정 자체가 밝아졌다고 너무나 좋 아한다. 상담실에는 작년에 선우와 처음 인연을 맺으면서 심은 넝쿨 화분이 2 개 있다. 하 나는 선우가 심고, 하나는 내가 심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선우가 와서 물을 주기로 한 것이다. 유예한 1년 동안 내가 물을 주면서 키웠지만 자라는 속도가 참 더디게 느껴졌다. 선우가 복학하고 처음 나를 찾아 온 날 화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부터는 선우가 물을 주기로 했다. 복학한지 벌써 4 개월, 한 번도 그르지 않고 물을 주고 있다. 이제는 넝쿨이 제법 무성하게 자라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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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내가 작은 곰내미학교에서 배운 것 이민재( 경남 거창 웅양중학교 교사) 시골의 버스를 타면 차창 밖 사물들의 움직임이나 모양이 지나가지 않고 눈에 잘 들어옵니다. 오리 길마다 나타나는 마을을 따라 2키로 정도를 달리면서도 길가 에서 두런거리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어떨 때는 멀리 마을 어귀에서 바쁘 게 뛰어 오는 할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아침 시간과 낮이나 저녁 무렵, 장날이나 농사철, 명절을 포 함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떤 이가 버스를 타게 될 것인지 얼추 알고 있지만 혹시 새롭게 누구인가 더 오지는 않을까 바라고 있으니 버스에 타고 있는 손님도 덩달아 무엇인가 기다립니다. 시골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 다니면, 낯익은 사람을 기다리고 새로운 사람에게 인사를 보내며, 또박 또박 돌아 오는 계절을 맞이하면서, 저마다 틀림없이 빛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놀라 움과 즐거움을 저절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학교 가는 길 덕유산과 지리산 그리고 가야산을 세모꼴로 이으면 그 가운데가 거창군이 됩니 다. 웅양중학교는 거창군에서 군내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3번 국도를 따라 16 킬로미터를 계속 오르면 소머리 뿔처럼 생긴 양각산 아래의 웅양면에 있습니다. 웅양은 곰이 살았던 볕이 드는 따뜻한 곳이라는 곰네미라는 옛 이름을 가진, 2,000명 정도의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농촌의 모습을 가지 고 있습니다. 산 아래로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등성이가 끝나는 곳마다 서른 집 정도의 동네를 이루어 그 마을들이 다 한 눈에 들어오는 들판을 이루면, 그 한 복 판에 면사무소와 보건소 그리고 학교와 조그마한 가게가 모여 있는 면소재지가 나 옵니다

406 들은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논들이 도랑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얕은 구릉들에 가까운 논이나 밭에는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웅양의 과일나무는 사과로 유 명한 거창답게 대부분이 사과나무입니다. 하루의 기온 차이가 큰고 높이 솟아오른 산 가운데 푹 꺼진 들판을 가진 분지에서는 사과가 맛있다고 하여 얼추 10년 전부 터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농사일을 가져 왔습니다. 물론 아직도 들판 논에 는, 예부터 내려오던 쌀농사 대신에 농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특별한 농사를 지으 라는 나라의 가르침으로, 가까운 김천시에서 배워 온 포도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 키 높이의 허연 시멘트 기둥과 그 기둥의 지붕을 이룬 비닐들이 군데군데 보입니 다. 그러니까 웅양 사람들은 사과와 포도 농사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사과와 포도 농사는 아이들도 일손을 도울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한 나무에 수 천 송이 활짝 핀 꽃들이 다 과일이 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사과 꽃을 솎아내야 합니다. 포도의 넝쿨손도 끊임없이 뻗어 나가면 열매를 맺을 힘을 빼앗기기 때문 에, 어느 만큼 자라나면 새 순을 꺾어 줍니다. 이런 일들은 아이들도 할 수 있으니, 봄부터 웅양의 아이들은 농사일을 거들어 주는 것입니다. 농사일을 거드는 것은 젊 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진 아이들이 더 잘 하고 많이 합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나 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자기 땅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거들 농사가 없 습니다. 웅양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은 모두 다릅니다. 한 동네에 두세 명씩 모두 열 여섯 마을 마흔 세 명의 아이들이 웅양중학교에 다니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까이 있는 면소재지 원촌 마을에 사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걸어서 올 뿐 다른 아이들은 자전거나 트럭을 타고, 나머지 반 정도의 아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닙 니다. 버스를 타는 아이들은 대부분 많이 걷습니다. 면 지역에서 다시 떨어진 산기슭의 동네에 살기 때문에 버스가 다니는 길까지 나오기 위해서 보통 오리 길인 2킬로미 터를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버스를 타는 한기마을과 장지 마을, 신촌의 아 이들은 7 년 전 폐교된 옛 하성초등학교 학구의 학생이고, 용전과 송산 마을 아이들 은 그 보다 훨씬 전에 폐교된 군암초등학교 학구의 학생들입니다. 웅양에서 김천 쪽을 따라 올라 8킬로미터를 더 가면 해발 550미터의 고갯길이

407 나오고, 이 고갯길에 옛 성터가 있어 하성이라고 불리는 이 곳의 마을들은 모두 서 쪽 산 아래에 있습니다. 군내 버스는 하성까지 다니고, 마을은 트럭이 다니는 논길 을 따라 다시 해발 600 미터까지 올라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성의 아이들은 겨 울이면 아직 어둑할 즈음에 일어나, 해가 뜨는 7시 20분쯤에 집을 나서야 7시 50 분에 학교 오는 차를 탈 수 있습니다. 학교에 일이 있어 늦게 있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는 하성에서 멀리 산 아래 보이는 불빛을 찾아 깜깜한 다락 논길을 내내 따라 오르는 영락없는 산골의 아이들입니다. 동네마다 두세 명씩 있는 또래의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함께 학교 를 다녔기에 공을 찰 수 있을 만큼의 많은 동무들이 있는 학교가 가장 좋은 놀이 터입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제법 뛰어 다닐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학교로 내려 와 다른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와 자매로 살아 온 아이들은 이렇게 함께 사는 법을 스스로 배웁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아이들이 학교에 나들듯이 교사들의 얼굴도 새롭게 바뀝니다. 3년을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3분의 1 의 아이들이 새로운 얼굴이고, 5년을 다니는 선생님들은 열명 중에 두 명이 옮겨 오는 편입니다. 2003년 웅양중학교에는 모두 다섯 명의 선생님이 옮겨 왔으니 어느 때보다 많은 분들로 바뀌었습니다. 새로 오 신 분들은 모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젊은 선생님들과는 잘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15년을 넘긴 터라 그 전에 계셨던 2002년 처음 학교 선생님이 되신 세 분의 초임 교사 중에서 두 명이 도시로 가 고, 2 년째인 국어 선생님 한 분이 남아 계시면서 선배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어 좋다 고 했지만, 가르치는 열정이 식지는 않았을까 내심 걱정이 된 새로 오신 선생 님들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잘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마음을 다지지 않 아도, 조그만 시골 학교에 새로 오신 선생님들은 누구라도 착한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야지하고 마음먹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도시나 읍내에 비하여 학교의 모 든 아이들이 다 한 눈에 들어오고, 12 칸 교실이나 운동장 너머 교문이 보이는, 학 교의 크기도 모두가 눈 닿는 곳에 정겹게 놓여 있는 살아 있는 학교가 눈앞에 펼 쳐지기 때문입니다. 전교생이 100명이 되지 않고 한 학년에 1학급 씩 모두 세 학급에서 다섯 학급

408 아래인, 아름드리 푸른 나무와 온갖 꽃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 중학교는 누구에 게나 어릴 때 학교 선생님 되는 꿈이 절로 떠오르는 이상적인 겉모습을 갖추고 있 습니다. 누구와 함께 가르쳐야 할까 2005년 4 월 봄 날 저녁, 웅양중학교에서는 올 한해 어떻게 학교가 돌아가는지 말씀을 올리고, 학부형들은 무엇을 바라는지 서로 이야기하기 위하여 전체 모임을 열었습니다. 농사에 바쁜 때인지라 저녁을 먹고 어두워 진 7시 30분에 학부모를 모셨는데, 모두 37 가구의 학부형 중에서 열여섯 분이 오셨습니다. 학교 행정실에서는 이 모임을 위하여 오전에 읍내로 나가 떡과 과일을 준비하고, 농협에서 과자도 사 놓았습니다. 선생님들도 퇴근 시간을 지나 일찍 저녁을 먹고 자기가 맡은 이야기를 미리 되새기며 학부모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선생 님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까지 차를 타고 가서 학부모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드디어 모임이 시작되자 처음에 교무선생님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지 모 릅니다. 작년 12 월부터 학교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을 모으고, 2월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할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생각해 내면서, 3월 한 달 을 꼬박 세워 학교교육계획서를 두툼하게 만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너무 적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반이나 넘는 사람들이 그저 바라만 보면서 좋은 웃음 을 보내주고 있는 여든 다섯 살 넘은 할머니들이니 영 딱하고 안쓰럽게 보였습니 다. 아이들의 생활 습관에 대한 도움말을 주는 선생님도 다 알거나 전혀 모르는 이 야기가 되지 않도록 듣는 사람의 기준을 잘 세워보려 했지만 이야기의 높낮이가 자주 흔들려 힘들어했습니다. 이렇게 모두 낯이 익지 않아 서먹서먹한 느낌을 새로 오신 음악 선생님께서 한 번에 깨뜨렸습니다. 예순이시고 교육대학교와 음악대학을 나온 선생님은 여러 누님뻘 되는 학부형이 이렇게 많이 나와 손주들을 걱정하시니 정말 우리 학교가 보기 좋다며 뱃노래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신나게 노래를 불렀더니 가만 선생님 얼굴만 쳐다보던 할머니들이 박수와 추임새

409 까지 넣으면서 모두 나서 두런거리며 말을 꺼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떡이나 과일을 들어 선생님께 드리며 어찌되었던 학교에서 선생님들 이 우리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사람 되도록 만들어 달라 며 다 알아서 잘 하 라고 하였습니다. 음악 선생님은 신이 나서 포도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웅양 사람 들을 위하여 었습니다. 청포도 사랑 까지 불러 주셨으니 교육계획 설명회는 그냥 잔치가 되 웅양중학교 43명 학생의 37가구 학부형 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한부모와 조부모 가족은 모두 열일곱 가족입니다.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거창 군에서 도와 준 가족끼리 함께 한 역사 기행 에도 제일 많이 오신 분들은 할머니 들로 자그마치 열 분이 아이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나 이 드신 할머니들이 키워 왔고, 지금도 농사일에 바쁘거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부모님들이기에 집에서 죽치고 앉아서 외우거나 파고드는 공부를 한 적이 없습니 다. 초등학교 들기 전에 한글을 익히고 영어 노래를 듣고 구구셈을 외우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읽고 쓰거나 셈 할 일이 없는 시골의 할머니들과 한 방에 서 자라 온 것입니다. 이렇게 놓아 키워 온 손주들이 학교에 가서 셈하는 것을 배우고, 할머니들이 읽 을 수 없는 우리나라 말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말까지도 스스럼없이 뱉고 있으 니 꼭 잘 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할머니들에게 학교와 선생 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하나 밖에 없는 믿음이 되어 그저 고마울 뿐이 고 따로 바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젊은 학부모들도, 농사를 짓는 자신들보다 아는 것이 많아 높은 자리에 있고 돈 도 많이 버는 교사들이, 학교에서 마땅히 모든 것을 알아서 다 잘 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부모 총회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부끄럽고 어울리지 않아 학교에 올 생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지역에 함께 살면서 심부름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돌려가면서 뽑기 때문에 학교 일도 마을 이장 이나 동네 계발위원처럼 학교운영위원들에게 맡기고 그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에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웅양중학교에서 일반 학부모 들이 굳이 학교 일에 나서는 것은 중뿔난 일이었습니다

410 나이 드신 음악 선생님은 이러한 농촌 학교의 분위기를 잘 알아채셨습니다. 그래 서 함께 어울리고 할머니들이 편안하게 선생님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래를 불렀 고, 농촌의 학부모 총회에 맞춰 몸을 낮추어 주었습니다. 교사가 당당하게 올바른 길을 가리키고 마땅하게 고쳐야 할 잘못을 이야기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처 지와 형편에 놓인 사람들로서는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농 촌의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길 어려워하는 까닭은 평생을 힘들게 살면서도 일하는 보람을 잃지 않았는데 선생님들만 만나면 학교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어려운 때를 꺼내 부끄러워해야 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학부모 모임을 끝내고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모여 무엇이 잘 되었고 모자라는 것 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학부모 모임에 나오신 분들은 할머니들을 빼고 나면 모두 학부모 운영위원이나 학부모회의 심부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어 서 3 월의 입학식이나 작년부터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며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오지 않은 사람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우 리 선생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자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아쉬운 것이 있으니 작년처럼 담임선생님들과 시간이 나는 선생 님들이 짝을 맞춰 가정 방문 가는 것을 올해도 그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바쁠 뿐 만이 아니라 몸이나 마음이 기운차게 나서지 않는 분들에게, 교사가 다가가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은 모두들 가지고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아야 알게 됩니다 글씨체가 예쁘고 2004년에 거창군 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에서 열어 준 통일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2학년 은비의 집에 다녀 온 국어 선생님이 눈물을 글 썽거리며 가정 방문 다녀 온 느낌을 교무실에서 여러 선생님들께 이야기해 주었습 니다. 은비네 집은 학교에서 2 킬로미터 떨어진 산포 마을 어귀에 있습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중학생도 탈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천삼백 원을 아끼게 된 은 비는 요즘 신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5학년 동생이 있는 은비네에 기쁘게

411 들렀던 것입니다. 버스길이 끝나고 다리를 건너 다랑이 논과 사과밭이 늘어 선 500 미터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산포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 앞에 있는 공터를 휘돌아 남쪽 산으로 붙어있는 검정 큰 돌담을 따라 세 번째 집이 은비가 사는 곳 입니다. 바로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옛날 높은 기와집은 창고로 쓰이고, 은비는 그 맞은 편에 낮게 놓여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납작한 집에서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은비 아버지는 서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고향에 내려 왔습니다. 그 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동생과 함께 웅양면 산포 마을에서 살고 있 지만 은비의 주소는 아직까지 서산으로 되어있습니다. 나지막하니 작은 집 한 칸 방을 쓰고 있는 은비는,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이렇게 집에 까지 같이 온 선생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옷가지들을 옆으로 밀치며 주섬주섬 방바 닥을 훔쳤습니다. 선생님이 잠깐 밖에 계시는 동안 은비는 급하게 방을 치웠으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가 쉽게 가려지는 것은 아니어서, 모습은 금방 선생님의 눈에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은비가 살아가는 요즘은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의 농사일도 돕고 경운기를 몰고 다니면서 하루 끼 니를 걱정하지는 않지만, 은비가 시골로 내려오기 바로 전에, 미국의 큰 돈이 우리 나라에 들어 와 한꺼번에 나랏돈을 쓸어 담아 가버린 일이 생겨 은비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사업에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그 뒤부터 은비의 아버지는 실패한 사업 때문에 억울하기 그지없는지라 아직까지 일하는 데 신이 나지 않아 제대로 된 살 림살이가 없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야무지게 색색으로 칠을 하여 모듬 일기를 꾸미고 글도 또박하니 잘 쓰는 똑똑한 은비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살림을 맡으면서 이렇게 집안이 어지러운 것을 보니 가난이 은비의 깔끔함마저 앗아 갔다는 생각에 선생님마저 억울한 마음 이 덩달아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가정 방문은 사회 선생님에게 배웠습니다. 1989년 전교조 결성사건 으로 5년이나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사회 선생님께서는 마흔이 넘어 학교로 돌아와, 거창군 고제면에 있는 고제중학교에서 담임교사도 아닌데, 모 든 학생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거창에서 소문난 분입니다

412 2003년 웅양중학교에 와서도 학교와 멀리 떨어진 하성까지 가는 아이들을 태우 고 집에까지 바래다주면서 웅양면 지역의 땅과 길, 사람과 사는 모습을 익히고, 성 북 마을 가는 길의 예쁜 사과 꽃 이야기나 우두령 높은 재에서 내려다 본 넓은 웅 양 저수지 아래 부서진 다리 이야기를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것입 니다. 농촌의 학교에 다니면서 아름다운 바람과 빛이 있고, 아프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꾸 듣고서 선생님들은 자연히 시골 사람이 될 수 있 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생각이 그대로 농사일을 하는 학부모의 마음이 되었기에, 2003 년 초가을 태풍이 불어 온 바로 그 다음 날, 웅양중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망 설이지 않고 모두들 사과밭에 나갔습니다. 막 익기 시작한 사과가 태풍으로 땅에 떨어져, 다들 일손이 모자라 그대로 두면 썩어 버리기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마 음으로 학교 옆 사과 밭으로 나가 사과 줍기 공부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나 느낌으로 농촌 사람이 되어 학부모들과 통하게 될 때는 아이들 의 집을 찾는 가정 방문이란 아무런 어려움 없는 보통 일이 됩니다. 웅양의 선생님 들은 아이들의 살림살이를 자기 집처럼 잘 알고 있습니다. 웅양중학교의 많은 아이들이 은비처럼 한 방에서 생활하고, 심지어 어떤 아이들 은 움직임이 어려워 누워 계시는 할머니와 내내 같은 방을 써야 하니 자연히 텔레 비전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의 살림살이는, 글이나 말로 물어 본 것이나 주민등록과는 다르게, 대부분 한 가지 이상의 까닭을 가지고 생각보다 힘들게 살아 가는 편입니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돈 벌러 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채 할머니 와 살아가는 아이가 있으며, 어머니나 아버지가 내내 약을 달고 병치레를 하거나, 요양 차 집을 떠나 오히려 생활이 어려운 아이도 있습니다. 아파트가 하나도 없는 웅양에서 아이들은 다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 고 있는 집은 다 다르지만 보통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부모 가정이거나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인 경우, 주택이라기보다 70 년대 식 그대로 세 칸짜리 기와집인 집 으로 불러야 합니다. 이 세 칸 기와집은 새마을 운동의 결과 지붕만이 바꿔졌을 뿐, 사실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열 평 아래의 아주 조그마한 보잘것없 는 초가삼간을 말합니다

413 이 집들에서는 다들 기름을 아끼려고 나무를 때서 방을 데웁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은 중학생이 생기면 콘센트 막사나 조립식으로 따로 공부방을 마련하는데, 겨울 에는 쓸 수 없는 방이라도 자기만의 공간이 생긴 아이들은 끝없이 기뻐 선생님들 께 그 빼곡하고 작은 방을 자랑합니다. 이 작은 기와집 중에는 방 벽에 못을 쳐 옷 장과 옷걸이를 대신하는, 방 안마저 70 년대식인 집도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트럭과 경운기 트랙터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 만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그 집의 모양은커녕 아이나 부모, 그 보호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 꽤 가난하게 살아 온 선생님이라도 21 세기인 지금 이라는 생각에 도무지 상상만으로 농촌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힘 듭니다. 1997년 구제 금융 사태 이후 말하기 힘들 정도로 농촌은 무너지고 있으나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기에 때문입니다. 웅양 선생님들은 아이들 집으로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우리 누나 이야기 근수와 네 명의 아이들이 도서관 큰 탁자에 둘러 앉아 3월에 함께 읽은 책 이야 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1학년인 근수는 중학교에 올라 와 곧바로 국어 선생님으 로부터 재미있게 책을 읽고, 생각을 엮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근수는 올해 1학년 몫으로, 사회 과학 문학 예술로 나누어 뽑힌 8권의 책을 네 분의 지도 교사와 함께 읽고 토론 할 것입니다. 토론이 끝나면, 다섯 명씩 모두 8개로 나누어진 전교생이 함께 모여 한 사람씩 나가 이야기도 한다니까, 어찌될까 궁금하고 가슴을 두근대며 도서관에 모인 것입니다. 근수네 모둠에 이번 달 선생님이 정해 준 읽을거리는 우 리 누나 라는 소설책입니다. 우리 누나 는 다운 증후군을 가진, 17살의 누나를 둔 주인공이 늘 아기 같이 떼 를 쓰는 장애인 누나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다가 잘못을 뉘우치는 이야기입니 다. 장애를 가진 누나는 어렵고 힘들게 일을 한 다음 가족들에게 밥을 사주며 자신 도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뻐하였습니다. 주인공은 누나의 기쁨을 보면 서 이제부터 우리 누나는 장애인입니다 라고 쓸 수 있는 당당한 용기를 보여 주

414 었습니다. 근수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먼저 줄거리를 정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 기와 책을 읽으면서 바뀐 생각을 독서 기록장에 적어 두었고, 그 다음 쪽에는 물어 보고 싶은 말과 동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토론 주제로 적었습니다. 다 섯 명의 동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독서 토론의 지도 선생님은 이제 만난 지 한 달이 되는 담임선생님입니다. 동무들이 앞서 이야기를 하면서 재작년에 웅양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경남 의령군에 있는 은혜학교에 다니는 다운증후군의 동네 누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근수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는지와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근수는 힘껏 용기를 내서 아직 담임선생님이 모르고 계실 아 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동무들 앞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근수의 아버지는 일곱 살 때 얼음을 지치다가 뽀족한 송곳에 눈과 귀 사이의 옆 머리가 찍혔습니다. 그 후로 근수 아버지는 오른쪽 손과 다리까지, 몸 반쪽을 모두 쓰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어렸을 때 열을 앓아 뇌성 마 비가 왔으며, 왼쪽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며 한숨에 말하고 말았습니다. 근수는 이렇게 슬픈 일이 자신에게만 있는 줄 알았답니다. 그리고 모든 동무들이 알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꺼내지 못했는데 신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누나 를 읽고 자 초등학교에서 올라 온 근수의 짧은 진학 서류를 보고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던 담임선생님은 바로 그 다음 주에 근수네 집을 찾아 몸이 불편해도 한 손으로 농사 를 짓고 있는 근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근수의 아버지는 농사를 짓기 전에 소를 키워 팔러 다니던 이야기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열심히 살아 온 당신의 자랑을 담임선생님에게 한 시간이나 풀어 놓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가져 온 과일 음료는 바로 옆으로 치워버리고 근수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은 시원한 맥주를 네 병이나 함 께 마셨습니다. 마흔세 명이 있는 웅양중학교에는 장애 학생이 모두 세 명입니다. 세 학생은 모 두 읍에서 웅양면으로 학교를 다닙니다. 농촌이지만 읍 소재지 학교에는 학생들이 많고, 어느 사이에 도시 학교처럼 왕따와 괴롭힘이 있어 자폐나 성장이 늦은 장애

415 아들이 학교에 다니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으니 착한 사람들이 모인 시골 학교로 온다고 했습니다. 시골 학교인 웅양중학교에는 분명히 착한 아이들만 있으나 처음 온 아이들이 6 년을 넘게 함께 살아 온 한 동네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올 때부터 선생님들은 모임을 갖고 과연 우리 학교에서 부모님들이 바라 는 만큼 그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이 들이 오게 된 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웅양중학교의 선생님들 중에서는 특수 교육 공부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부모는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으니 학교에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라 선생님들은 어떤 학생이라도 가리지 않아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05년에 입학 한 정섭이는 밥을 먹을 때 일등으로 급식소까지 달려가는 모습이 꼭 말아톤 의 초원이 같습니다. 초원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정섭이도 하루 종일 농구 슛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섭이는 받침 발음이 잘 되지 않고, 뜻을 다시 새기기를 어려워 하지만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글을 술술 읽습니다. 더하기와 빼기 구구단도 할 수 있고, 이름을 적고 책을 따라 글을 베껴 쓰는 것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은 아기처럼 하기에 처음 만난 동무들이 답답해했습니다. 군 대회에 나가 글쓰기 상을 받아 올 정도로, 여학생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야무진 미진이는 정섭이 때문에 정말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남학생들과 장난을 치던 정섭이가 갑자 기 화가 나 의자를 던졌고, 엉뚱하게 그 의자가 미진이 얼굴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점점 키가 자라 1 학년 중에서 제일 큰 정섭이와 싸움을 하면 큰 일이 납니다. 싸움 을 하다가도 잠깐씩 한 눈을 파는 정섭이는, 화를 내도 오래 가지 않고 아파도 잘 참을 수 있기에, 곧잘 싸웠다는 것을 모른 채 무방비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렇게 되면 오히려 정섭이가 크게 다칩니다. 아이들은 아무도 배우지 않았지만 오히려 어떻게 정섭이와 놀 수 있는지를 선생 님들께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섭이는 손을 맞잡고 흔들어 주는 것을 좋아하고, 광 고에 나온 노래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따라 하는 것은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앞소 리를 먼저 매겨 주면 노래를 부르는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매길 때는 너무 어려

416 워 짜증을 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500미터 떨어진 웅양초등학교로 밥 먹으러 갈 때 아이들은 정섭이를 가장 먼저 앞장 세워 줍니다. 스스럼없이 정섭이와 어울려 모두들 정섭이의 누나와 형이 되어 버린 웅양중학 교 아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은 통합교육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 다. 선생님들이 정섭이를 돌보는 일은 잠시 쉬는 시간에 같이 탁구를 치고, 가끔씩 동화책을 함께 읽는 정도일 뿐이지, 교실이나 운동장, 급식소나 화장실, 어느 곳에 서든지 정섭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웅양중학교 또래의 아이들입니다. 일 주일에 서너 번씩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들께 정섭이는 생각이나 몸가짐이 예닐 곱 살 정도여서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바라지 않아야 하지요? 하고 자주 되물어 오는 것이 바로 교사들에게 되새긴 아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정섭이를 돌보는 아이들이 기특한 선생님은 장애인의 날에 전교생에게 우리 사 이 짱이야 라는 비디오를 자신 있게 보여주어 아이들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였고, 2 학기에도 말아톤 을 보며 마냥 즐겁게 웃기만 했습니다. 함께 사는 삶이 안팎으로 금방 드러나는, 소통과 공감의 공동체는 이렇게 작은 학교에서 저절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웅양의 선생님들은 모두 자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 갖추어 조직하는 것 과 먼저 해보는 것 중에 무엇이 좋 을까 2004년 2 월 말 선생님들은 밤늦도록 학교에서 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학교 예산을 세우다가 웅양중학교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진지 하게 이야기하자며 처음으로 1박 2 일의 교사 연수를 가졌습니다. 이 교사 연수에 는 대학원 공부를 위하여 김해로 떠나는 젊은 국어 선생님까지 참여하였습니다. 학 교 일이란 어디에서라도 마찬가지이니 김해로 떠나시는 선생님도 공부하는 마음으 로 끝까지 연수를 함께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 오실 선생님이 정해지는 2월에 다시 모여 두세 번 더 학교 일을 다듬어 보기로 한 것인데 이제 선생님들의 역할 을 나누는 마지막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417 그래서 새로 오시는 도덕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먼저 알아냈고, 그 분이 경북 김 천에서 학교 일을 잘 처리한다는 소문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교무 일은 영어 선생님이 맡기로 얼추 정해졌기에 작년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정보 일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며 모두들 반갑게 도덕 선생님을 모시기로 이야기 했습니다. 저녁 늦게 생전 처음인 학교에서 아직 얼굴이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집으로 전화를 해 지금 학교 일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웅양까지 올라 오랬더 니 도덕 선생님은 놀랐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보 일을 맡기지 못한 채 새 학 기가 시작되었고 성격이 활달한 도덕 선생님은 금방 웅양중학교의 분위기를 알아 챘습니다. 모두 자기주장이 강하여 보통의 교사들이 숨겨 두는 교육관을 오히려 큰 소리로 설득하고 있으니, 조용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부치겠지만 나쁜 뜻은 없으니 서로 믿 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각 선생님들의 개성을 반영하듯이 특기적성 교육이나 체험 학습, 학생 자치나 방과 후 학습 지도, 독서 교육이나 생활 지도에 이르기까 지 모두 한 가지 이상씩 전문가를 자처하듯 자신의 영역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활 달한 성격과도 맞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 오신 지 세 달이 지나는 6월이 되자마자 도덕 선생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계획서를 만들어 선생님께 의견을 구하고, 평화통일 염원 달 행사를 통과시켰습니 다. 북측의 생활을 보여 주는 사진을 구하고,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퍼즐을 만들 고, 사행시를 짓고, 말하기와 글쓰기, 그림그리기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온갖 활 동을 펼쳐 놓고는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한꺼번에 높여 놓았습니다. 계획서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기에 통일 행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할까 다른 선생님들이 고민을 하였더니, 작은 학교여서 자신이 어느 정도 해 두었으니 나누어 진 장소에 가면 얼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6월 통일 행사는 학교가 시 끄러울 정도로 진행되었고 선생님들은 그저 아이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습니다. 도덕 선생님이 오시면서 갑자기 이루어진 웅양중학교의 통일 행사는 2005년 70 만원의 예산을 확보하면서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지만 일의 구성에서는 아 직도 실험 중에 있습니다 년보다 늘어난 통일 행사의 영역은 초청 강연, 노 래와 춤 배우기, 통일노트 쓰기와 페이스 페인팅, 학급 신문 제작, 골든 벨 대회였

418 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한 것은 확보된 예산으로 행사별 기념품을 마련한 것입 니다. 그러니까 웅양중학교의 6월은 2주 내내 통일 행사를 치루며 시끄러웠던 것 입니다. 이 통일 행사에 대한 중간 평가로 아직 합의하진 않았지만, 행사가 백화점 식이 어서 산만하고 집중점이 없었다는 지적과 통일 행사는 잔치 분위기로 일주일 정도 를 시끌벅적하니 펼쳐 놓는 것이 아이들 정서에 더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는 조금 은 엇갈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행사가 산만하다는 것은 사람의 의식화 과정이 얼개를 갖추어 아이들 자신의 것 으로 받아들여져 잘 스며들어야 한다 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늘어 놓는 것은 잠시의 겉치레일 뿐이어서, 오히려 나중에 70년대의 동원된 반공 교육 처럼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으니, 스스로 통일의 기운이 우러나와 아이들이 주체적 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라는 원칙은 공부를 가르치는 일에서 타당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부라도 아 이들이 쉽게 내면화를 이룰 수 있도록 치밀하게 수업 설계를 해야겠지만, 2004년 과 2005년 두 해 동안 시도한 통일 교육에 대한 도덕 선생님의 새로운 시도는 다 르게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대적인 반공 교육의 혐오스러운 기억은 선생님들에게 전체주의를 경계하게 만 들었습니다. 1,000명이 넘어 병영식으로 운영되는 큰 학교에서는 끝없는 물신주의 와 경쟁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제대로 저항할 수 없습니다. 이럴 경우 선생님들은 작년과 비슷하게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제일 무난합니다. 그렇지만 웅양중학교는 작 은 학교로서 오히려 소란스러워야 활발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도덕 선생 님은 2004 년 웅양중학교에 들어오신 분입니다. 2004년 2월까지 있었던 학교 운영 에 대한 큰 틀을 세울 때 도덕 선생님은 참여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 새로운 일을 찾아내서 자신 있게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럴 경우 전체적인 평가보다 담당자 가 세운 사업 계획의 목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교육은 오랫동안 옛 모습 그대로에 또 새로운 문제가 덧붙여지는 악순환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보다 시작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변화를 기본으로 하는 교육이기에,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419 통일 행사와 같이 학교에서 일어 난 일들을 부지런히 따라 다니면서 디지털 카 메라로 찍고 있는 아이들은 신문반 학생입니다. 학년 별로 2명씩 짝을 지어 사진을 찍고 사진기를 통째로 교무보조 선생님께 드리면 모든 사진이 컴퓨터에 저장 됩니 다. 이렇게 모인 사진이 중심이 되어 과학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은 신문을 만듭니 다. 영상반 지도 교사인 과학 선생님은 학교 신문을 만들어 내는 일도 가르치고 있 습니다. 아직까지 자신을 여러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운 선생님들은 제 대로 글을 적어 내지 못하고, 행사를 맡은 선생님마저 그 일을 정리하거나 평가하 여 글로 적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학교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신문이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여기에 이렇게 잘 나왔고, 스스로 열심히 잘 한다는 선생님들의 보람을 서로 나누고 나면, 오히려 부족한 마음에서 다음 번에는 더 잘해야 결심할 정도로 과학 선생님에게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나오는 학교 신문인 기운찬 농촌공동체에 의한 곰볕 소식 을 들고 준호 는 집으로 갑니다. 곰볕 소식은 A4 20 쪽 안팎의 신문으로, 학부모형들이 보기 편 안하게 군데군데 사진을 많이 넣었습니다. 학교의 흰 종이에 신문을 복사하여 사진 이 흐릿하니 잘 나오지 않으나 다 그만그만한 마흔 일곱 명의 사진인지라 준호는 자신의 얼굴을 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곰볕 소식에 사진이 많은 것은, 준호 할머 니같이 글을 알지 못하거나 눈이 어두워 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선생님이 말했지만 준호에게도 지난 일을 생각해 내기에 사진이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준호는 곰볕 소식을 할머니께 꼭 읽어 드립니다. 소식지의 많은 면이 사 진이어서 준호의 할머니도 손주의 모습을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소식지 속에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꼭 한 꼭지 이상 나오니까 준호도 반드시 할머니께 소 식지를 보여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소식지를 본 할머니께서는 한두 마디라도 준호 의 학교 일을 물어 볼 터이니, 그 대답을 꼬박꼬박하는 것만으로도 효도를 하는 일 이라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말해 주었듯이 준호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할머니에게 곧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식지는 크게 우리 학교에서 피는 꽃 사진을 시작으로 학교 소식, 다음 달 안 내, 아이들의 모둠일기, 선생님 글, 학부모 글, 스냅사진기사인 우리들의 왁자지껄,

420 선배님을 찾아서, 웅양 지역 소식, 학부모님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학 선생님께 서는 학생 기자를 13명이나 두어 전체의 3분의 1의 학생들이 소식지 제작에 참여 하고 있습니다. 6월 직원 협의회에서 꼭지 지원 교사를 더 두기로 하였으나 잘 지 켜지지 않았던 것이 2 학기에 과부하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학기에 곰볕 소식은 두 번 밖에 나오질 못했습니다. 졸업식 때 한 번 더 나올 수 있으니 시작한 첫 해에 모두 일곱 번을 발행한 것입니다. 학교 소식지를 만드는 일은 2004년 2학기에 하성 송산 마을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농민회 분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그 분은 웅양면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식지로 만들어 나눠 읽고 싶은데, 자신들은 농사일에 바쁘고 실력이 없으니 선생 님들이 이 일을 맡아 줄 수 없겠냐며 아이디어 내신 것입니다. 학부모들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고 했더니, 마을의 이장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니까 그곳에 가서 지역 소식은 자신이 얻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기운찬 농촌공동 체에 의한 웅양중학교 곰볕 소식 이라고 정했으니 학교 소식지는 앞으로 나아갈 방 향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이 강한 선생님들이 모여 있다는 웅양중학교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전체 선생님이 참여하여 수많은 논란을 거듭합니다. 교무 회의의 결정 방식이 만장 일치는 아니더라도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이해를 구하는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그 런데 통일 행사와 소식지 제작은 일단 담당 선생님께서 자신이 맡아 책임진다는 결의를 밝힌 일이라 쉽게 결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들이 스스로 역할을 맡았을 경우에는, 대안이 아니면 바로 평가하 기보다 북돋아 주는 것이 서로 좋은 일인데도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지식인이자 걱정이 많은 선생님은, 문제가 보일 경우 지나치기가 힘이든가 봅니다. 교사의 자존심을 같이 나누어 키우지 않고서 혼자 쌓으려 할 때, 옆에 있는 동료 가 천박하거나 믿음직하지 못해 보이고 자신은 스스로 고독해 집니다. 학부모나 아 이들이 공공연하게 제일 훌륭하다고 하는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료들 과의 차별성을 조장한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최대 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늘 동무들을 인정하고 서로 도우라 고 가르치는 것

421 처럼, 학교에서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람에 대한 가 능성을 인정하는 일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도록 하기 위하여 웅양중학교의 서무과장은 참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처음 학교에 오셨을 때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교무실에 왔습니다. 서무과장은 12월 방학 전에 학교의 돈 쓰는 일에 대하여 선생님들에게 설명을 하고 예산서를 만들도록 합니다. 교무실의 예산을 세우는 일은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얼마를 쓸까 돈의 규모를 가늠하는 일입니다. 먼저 전화비와 전기료, 출장비나 비품 구입 등 학교에 꼭 쓰이 는 돈을 서무실에서 잡아보고, 나머지 돈으로 교수학습 활동비를 나누도록 합니다. 올해부터는 냉난방기를 사용하고, 인터넷 통신비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니까 작년 보다 교무실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적어졌는데 어떻게 할까를 물어봅니다. 서무실에서 경직성 경비라고 하는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면,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줄이기에 힘든, 학교에 꼭 필요한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서무실의 사정 을 알게 되면 부족한 학교 돈을 꼼꼼하게 계산하여 사용할 마음이 생깁니다. 컴퓨 터를 사는 일부터, 학급 행사에 쓸 돈까지 교무실 몫의 돈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서 로 따져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돈 이야기를 다 풀어 놓으면 우리 학교가 어떻게 굴 러 가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12월에 다음 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학교예산 을 짜보면 한 해의 학교 평가가 얼추 될 수 있습니다. 웅양중학교에서는 2005학년도부터 급식비를 제외한 학부모 부담 경비를 모두 학 교 예산으로 집행하였습니다. 과학의 날 행사에 날리는 글라이더나 고무 동력기, 미술 시간의 찰흙이나 한지는 학교에서 준비해야 할 교육 자재입니다. 학기 중의 필요한 아이들의 체험 학습도 학교 교육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이 체험 학습이 나흘이나 여드레가 되더라도 필요한 돈을 다 마련해 주 어야 합니다. 필요한 돈이란 버스를 빌리거나 잠을 자는 것, 밥을 먹고 볼거리를 찾는 돈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특기적성 교육을 위하여 외부 강사를 쓰는 일이나, 테니스 라켓과 탁구용 물품,

422 기타, 요가 매트에 이르기까지 교육 기자재는 학교에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 외 에도 계기가 생겨 읍으로 체험 학습을 갈 때나, 학교의 체육복이 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단체복을 구입할 때에도 학교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문화 학교에 참여할 때도 자연스러운 교육 활동에서 쓰이는 학교에 필요 한 교육경비인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돈을 짜임새 있게 쓸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원칙을 정했습니다. 웅양중학교에서는 교육 활동에 필요한 돈을 12 월부터 고민하고 있습니다. 네 계절마다 1박 2일씩 하는 웅양중학교 체험 학습 경비를 어느 만큼까지 잡을 까 선생님들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버스비 지원에서 시작하여, 간식비를 포함해서 어떤 돈도 학교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교직원들이 돈을 모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을 두고 2년의 논의를 거친 것도 기준이 다 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하는 사람만 할 것인지, 지급대상과 방법은 어떻게 할 것 인지 모두들 기준이 달라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의 한계 나 학교의 역할에 대한 상도 달랐습니다. 무상급식 조례 제정을 위한 청원 서명을 하면서 이제야 의무교육을 보는 기준이 비슷하게 모아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견을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조정해 냅니다. 웅양중학교 교무실의 자리는 모든 교사가 서로 마주 보는 네모꼴로 되어 있습니다. 이 네모꼴의 공간 안에 대여 섯 명이 앉을 수 있는 둥근 탁자가 있고, 선생님들은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눕니 다. 교감이 없기에 모두가 좋은 의견을 내와야 하고, 다 함께 일을 나누어 비슷한 책 임을 지고 있으니 항상 의논이 이루어지도록 이렇게 자리를 배치한 것입니다. 개인 적인 일이라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니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웅양 선생님들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도 서로 공감을 이루고자 노력하 는 편이며, 관심이 달라도 들어주는 자세를 보이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을 교무실 제일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남한산초등학교 서길원 선생님으로부터 농촌형 복지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웅양중학교에서는 소외된 아이들이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였 습니다. 2003년에 선생님들이 자가용을 편성하여 멀리 소풍을 다녀오면서 무상교

423 육에 대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학교 돈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 예산을 새롭게 짜다 가 체험 학습을 학교비로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의 경비 부담만 아 니라면 농촌 학교에서는 교육 계획으로 체험 학습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 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사를 위주로 하는 체험 학습만이 아니라, 특기적성교육을 통하여 학교 내에서 일상적인 체험 학습도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교육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웅양의 선생님들은 획일적인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보완책도 세우게 되었습 니다. 창의적 재량 시간과 교과 재량 시간을 활용하여 독서 교육과 영상 교육을 실 시하면서 농촌 학교에서 알맞은 교육 과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웅양중학교의 새로운 시도는 모두 선생님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느 분이 나 다른 학교나 책에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할 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문제 제기는 교무실의 원탁과 출퇴근길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집니 다. 선생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 번 타당성이 검토되고, 역할에 대한 구분이 생 기면 한 달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2시간 30 분의 교직원협의회의에 올리게 됩니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교의 실정이 제대로 반영되어, 우리 식으 로 재창조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교사 사이의 교육 방법에 대한 공유는 연수와 교육을 통해 공 식적인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볼 때는 교무실의 경 우, 학문적인 이론보다 하루 종일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의 사귐에서 교육관에 대 한 공감이 더 많이 형성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신의 교육 철학은 비교적 명 료하게 정립되어 있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법에 대한 공유는 상호 침투하기 어 려운 것입니다. 교무실에서 동료 교사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보면 문제는 다 쉽게 풀립니다. 교사 들은 관계를 형성할 때 사람에 대한 호감을 중시하는 편이어서 좋은 선생, 좋은 학 교에 대한 상을 그릴 때도 논리보다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424 웅양중학교는 공립 중학교입니다. 교사들은 거창군을 생활 근거지로 하고, 한 학 교에 5 년까지 근무를 한 다음 이동을 해야 하는 교육 공무원입니다. 학생들도 읍에 서 다니는 3명의 장애학생과 올해 인근 면에서 진학한 1명을 빼고 나면 모두가 웅 양면에 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농촌 중학교인 것입니다. 웅양중학교에서의 새로운 학교에 대한 모형은 실제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지역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주인이 되어 우리 힘으로 우리 학교를 정상화 시키는 것입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따로 모으거나, 교육 목표를 새롭게 세우기 보다 현재의 학교에서 현실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만큼 우리 식으로 학교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지속 가능하게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방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고 현실적인 실천은, 획기적으로 학교를 바꿀 수 없으나, 작은 성과라도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학교 혁신에 대한 공감과 적용을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현 실에 근거하여 학교 구성원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변화만이, 현재 뚜렷하지 못한, 학교 재구조화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할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 무슨 교육철학이 옳 은지 논쟁할 필요 없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 을 직업으로 하는 교사들에게, 보람과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것은 다. 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방금 합의한 우리 학교의 교육 활동이 모두 참교육이 농촌의 면 지역이라 웅양중학교에서는 방학 때 보충 수업을 했습니다. 여름에는 특기적성 교육과 보충수업을 엮어서 하였고, 겨울 방학에는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 로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5년 겨울 방학에는 하루 4시간 씩 3 주 동안 수업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어 선생님은 코피를 쏟았지만, 오후까지 남아 몇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교무실 북쪽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영어 선생님의 고향 마을이 보입니다. 그 곳에 는 지금도 영어 선생님의 아버님이 살고 계십니다. 영어 선생님은 그 곳에서 학교 를 다녔고, 모교에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개인사를 들어 보면 어떤 교사도 선생님이 될 운명적인 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은 결국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교직에 임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교사는 자신이 가장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고 믿고 있

425 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며, 학생들은 자신을 잘 따르고 있 다고 믿습니다. 자신은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며, 사람을 가르치고 있기에 변화와 발전에 대한 신념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교육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믿음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해 볼 때, 교사 들은 자신의 신념을 숨기고 맙니다. 선생으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은 충분하지만, 바로 옆에 앉은 같은 과목 또래 선생님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온갖 도덕적인 덕목과 민주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지만, 진작 자신은 이러한 공부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공부가 스스로 실천하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이 더 강조되어 왔던 까닭입니다. 아이들이 칭찬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인 교사들은 동료들 도 자신이 가진 자부심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먼저 인정하고,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같이 마음을 맞추기 어렵다고, 동료를 멀리하 고 교실에서 고립되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은 교사 개인의 일입니다. 동료들과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낮은 단계에서 가능한 일부터, 끝임 없이 합의와 공유를 시도하는 과정, 그러한 사람의 노력이 학교를 바꿀 수 있 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만큼 교무실에서 동료들을 대할 수 있다면, 함 께 하는 교육, 새로운 학교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작은 곰내미학교 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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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교육 김병건( 충남 논산 대건중학교 교감 )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1981년 논산대건고등학교에 부임하여 10년 동안 3학년 부장으로 근무하면 서 인문고교 졸업반 학생들의 대학입시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대학진 학을 위한 성적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생활했었다. 그 당 시 논산대건고등학교는 오랜 동안의 침체를 벗어나 논산 지역에서 입시 명문고로 발돋움하려 학교 전체가 분발하던 분위기였다. 대학입시 업무를 선도해야할 필자로 서는 성적 우수자들을 위한 특강이라든지 야간 자율학습 등 다른 학교보다 조금이 라도 더 많이 공부를 시키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19년 동안 나는 제자들을 명문대학에 진학시켜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이 나의 소명이란 생각으로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 당시 5공화국 때 보충수업의 전면금지가 시행되던 시절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교사와 협의하여 영 수 특별보충수업을 연중 무료로 실시하기도 하 였으며, 방학 중에도 희망자들을 모아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실시하였다. 필자가 맡 고 있었던 영어 과목에서 영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논산지역에 고 등학생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믿을만한 학원이 없었기에 수업시수를 늘여서 수업해 야겠다는 생각에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학급당 7시간씩 정규수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는 정규교육과정보다 주당 2시간 정도 더 많은 시간을 수업하는 셈으로 필 자의 주당 정규수업시수는 평균 28시간 내지 30 시간 정도가 되었었다. 그 결과 많 은 제자들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의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주입식 교육의 틀 속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의 모습이 간간이 드러나면서 이것이 교육의 참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 다. 자율적이며 학생들 스스로 공부하도록 이끄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428 그러다가 10년 동안 맡아보던 진학 업무에서 벗어나 2년 동안 상담 업무를 맡게 되면서 다른 시각에서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성적향상을 통한 명문대학 진학이 학생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 생각해왔었는데, 학생들과의 상 담을 통해서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미래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명문대학 진학이 상당수 학생들의 목표이지만 이는 부모님의 희망에 기인한 것도 많았으며, 그들의 소질과 희망이 부모의 희망과 다른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필자가 학년부장으로 재직 시 담임을 맡고 있었던 한 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성 적이 우수하여 명문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자신의 적성을 찾아서 보 건전문대학으로 진학했다. 그 당시는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으나 대학 졸업 후 행복 한 모습으로 모교를 방문하여 본인의 선택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또 한 학생은 유 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격도 좋고 학업성적도 우수한 편인데 진학 상담 시 부모 님의 가업을 이어야 한다며 가업과 관련이 있는 전문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의 부모와 면담을 한 결과, 부모도 자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동의하여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하여 내가 보기에는 고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매일 미소 띤 얼굴로 밝게 생활했다.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원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 르지 않자 그 학생이 부모님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이야기하여 부모의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학생들을 접하면서 성적이 학생들을 행복 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왜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그러나 인문고등학교의 여건상 대다수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제1관심사는 성적이 었으며 성적향상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 는 방법을 찾는 일도 중요한 업무였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방법을 찾던 중, 지능 지수와 성적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서 공부할만한 여건임에도 성적이 오르지 않 는 학생들에 대한 원인을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많은 면담과 상담을 통해 2년여 동

429 안 조사한 결과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는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부모에게 항거하는 수단의 하나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학교에서 교사와 관계가 좋 지 않은 학생들도 그 교사의 과목을 공부하려하지 않으며 특히 담임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서 소극적이며 수동적으로 생활하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요즘 표현으로 따 돌림을 당하는 학생들도 공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들은 매사에 소극적이며 남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려 하지 않는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그 원인이 그 학생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 로 학생들이 이유 없이 다른 학생을 미워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둘째 원인으로는, 영어와 수학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이 상위권으로 올라오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영어와 수학은 단계적으로 학습하면서 차츰 어려 워지는 과목이기 때문에 한 번 뒤처진 학생들이 이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을 할 엄 두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셋째 원인으로는 건강이 나쁜 학생들은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어도 지속적 으로 공부할 수 있는 지구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성적 향상을 위한 면에서도 건 강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성ㆍ수준ㆍ건강 이상과 같은 원인들을 밝혀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해 보았으나, 첫째 문제에서부 터 그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문제가 드러나는 부모들과 한두 차례 면담을 통해 학생인 자녀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을 이해시켜 부모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 려 한 적은 있었지만,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의 모든 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교육을 실시 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또한 교사들 모

430 두에게 모든 학생들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하게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을 따돌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반적인 지도는 가능하겠지 만, 근본적으로는 따돌림 당하는 그 학생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어 보편타당 한 태도로 생활하도록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모든 인 간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지도 하는 일은 전인교육의 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과정으로 생각되었으며, 이를 위한 다 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당시 처음으로 집단상담을 학급 단위로 실시하고 있던 대전 성모여자고등 학교의 김평곤 선생으로부터 집단상담에 대한 안내를 받으며 집단상담을 통한 심 성계발 프로그램이 제도권 교육에서 시행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도 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게 되 었다. 그러나 집단상담을 시행함에 있어 가장 큰 제약은 상담 지도자의 문제였다. 교사들이 훈련을 받고 지도에 임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으나 한 학급을 프로그램 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최소한 세 집단으로 나누어 시행하려 할 때 교사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으며, 또한 교사들이 긍정적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그 당시 본교의 교목신부로 부임하여 근무하시던 강석준 신부께서 인성교육과 실력향상의 조화를 통해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는 학교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 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많은 생각과 논의 끝에 우선 긍정적으로 참 여를 원하는 교사들에게 집단상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그 당시 가정에서 가 사 일에만 매달려있던 많은 고학력의 학부모( 어머니) 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올바 르게 지도하기 위한 참여를 권유하여 교육시키기로 했다. 희망하는 학부모 30여명 을 선정하여 6개월 동안 매주 2시간씩 대학의 전문 상담교수들을 초빙하여 교육을 실시했으며, 과정이 끝났을 때 수료증과 상담자원봉사자 위촉장을 수여하여 교사들 과 함께 집단상담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 상담자원봉사자들은 교육을 받긴 했지만 막상 학생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자 했을 때 매우 어 색한 듯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하루 전에 그 프로그램을 교사들과 상담자원봉사자들 사이에 먼저 실시해보는 워크숍을

431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 하였다. 이는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학부모 상담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람과 자신감을 높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해를 거듭해가면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보충해갔다. 집단상담 을 통한 심성계발 프로그램 이외에도 가치관 교육, 영상교육, 문화 예술 교육, 생명 과 성 교육, 예절교육, 현장체험학습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되었 다. 일반적으로 인성교육을 강조하면 학습지도가 소홀해져서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 지지 않나 염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인성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공 부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길러,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필요에 의해 공부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학생들의 실력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는 신념을 가지고 추진해왔으며 이는 본교의 교육성과로 증명된 바 있다. 둘째, 영어와 수학 과목의 성적이 뒤지는 학생들은 개인지도를 통하여 성적향상 을 하도록 지도할 수는 있으나 많은 학생들과 함께 더불어 공부해야 하는 정규수 업 시간에는 열심히 하는 척,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들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는 수준별 이동 수업 의 실시가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교사 수의 부족과 더불어 교사들의 반 대가 심해 쉽게 실시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교목신부님으로부터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학생들을 위하여 우리가 희생하는 각오 로 실시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영어과 수학과 교사들과 함께 협의하기 시작했다. 교 사의 부족, 평가의 문제 등 교사들이 열거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의 교과별 협의회를 통해 1년여의 토론을 거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 히기 시작했다. 이는 우선 교사들이 실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합의를 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이는 재단 측에서 영어과와 수학과의 교사를 정원 외로 더 임용하겠다는 지원 약속까지 있음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어려움으로 대두된 평가의 문제는, 배운 부분을 평가하는 것은 암기력 테스 트의 성격이 강하므로 어려운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하기보다 보편적인 문제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해결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문제은행식

432 출제를 목표로 노력하자는 합의를 이루었으며, 수준별 수업교재를 재구성하는 문제 도 겨울방학 중에 교과별로 책임지도록 하는 합의가 이루어져 다음해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한 학년이 8학급인 관계로 8단계로 수준을 나누어 단 계별 수업을 실시키로 목표를 세웠으나 수학과는 단원이 장르별로 나누어지기 때 문에 단계를 나누기가 어려워 장르별로 수준별 수업을 하도록 추진하였고, 영어과 는 1 단계( 중3 수준) 부터 8 단계( 대학 교양영어 수준) 까지 단계를 높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실시하기로 하였다. 단계형 수업은 무학년제까지도 검토해 보았으나 학년별 단위가 정해져있는 관계로 학년별로 1학년을 1~4 단계, 2학년은 3~6 단계, 3학년 은 5~8단계로 운영하였는데 별 무리 없이 진행되어오고 있으며 현재는 수준별 이 동수업의 명칭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10여년의 시행 중 수준별 교재는 세 번의 수정과 개편을 거쳐 오늘날까지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준별 수업을 통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반 대하던 교사들도, 힘은 들지만 노력한 것에 대한 만족할만한 성과에 자부심을 가지 며 참여하고 있다. 나는 1994년에 논산대건고등학교에서 병설 중학교인 논산대건중학교로 전근하여 중학교에서도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도록 시도했으나 학년 당 4학급의 소규모 학교 인 때문에 영어과와 수학과의 교사가 세 명씩뿐인 관계로, 두 학급을 통합하여 상 하로 수준을 나누어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년여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2단계로 수준을 나누는 이동수업은 나누어진 학급에서의 수준의 편차가 너무 커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고 아랫반의 경우 공부를 할만한 학생들조차도 공부를 등한시하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4학년도에 수준별 수업을 시도해보라는 교육청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다시 수준별 수업을 하기로 방침을 정하였으나, 2단계로 나누는 수준별 수업은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에, 최소한 3단계 내지 4단계로 나누어야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 었다. 중학교는 완전히 국가의 지원에 의해서 운영되기 때문에 예산상 교원의 확충 은 생각할 수 없었고, 궁리 끝에 4단계로 학급을 편성하면서 마지막 4반을 영어와 수학, 두 과목 성적이 모두 저조한 학생들로 편성하여 1,2,3반 영어과 수준별 수업 을 할 때 4 반은 수학을 하도록 하고, 1,2,3반 수학과 수준별 수업을 할 때 4반은

433 영어를 하도록 실시하였다. 중학교 교사들도 평가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하였으나 우선은 수업진도를 4학급 모두 같이 맞추어나가면서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보충자료를 더 투입하여 학습의 양을 늘려 실력을 쌓도록 하고,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에게는 단원의 필수학습 요소 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여 수업참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시 행토록 뜻을 모았다. 2004년 2학기부터 실시하여 시행 초기에는 학급이동 시 소란 함과 수업이 안정될 때까지 분위기의 산만함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정착 단계에 들어서면서 학생들도 제도를 완전히 숙지하여 큰 어려움은 없는 듯이 보였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교마다의 특성이 있고 구성원들 사이의 환경도 다르기 때 문에 실시의 어려움이 있겠으나 우선 교사들의 시행하고자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 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려움을 모두 해결한 후 시행하려 한다면 아마도 마지막까지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행한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선행된다면 시행하는 교사들의 합의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학교 나름대로의 특성 에 맞추어 시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건강이 나쁜 학생들을 위하여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서 학생들에 게 교육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체격은 전보다 더 커져서 건 강한 듯 보이지만 체력은 오히려 예전보다 못한 형편임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 만, 요즈음은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공해로 인한 질병으 로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비염, 축농증, 인후염 등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감기와 두통을 호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다. 건강은 체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면보다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체득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던 중, 당시 DY교육을 창시해 보급하던 한국과학기술원의 원동연 박사로부터 DY건강법 상의 건강의 5원칙이 우리 학생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란 것 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건강의 5 원칙이란,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척추가 바른 것, 관절이 부드럽고 유연한 것, 내장이 튼튼하여 배설을 잘하는 것, 눈, 코, 귀, 목 등의 5 관이 건강한 것, 그리고 잠을 잘 자는 것 등이었는데, 이를 지속적인

434 지도를 통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었다.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수업 중에 틈틈이 바른 자세를 가지도록 허리 곧 게 펴기, 허리 뒤로 젖히기, 허리 돌리기, 허리 숙여 뻗기 등을 생각 날 때마다 실 시하도록 지도하였으며, 관절운동을 위해 발뒤꿈치를 땅에 대고 발끝으로 말 마 ( 馬 ) 자 쓰기, 무릎 돌리기, 허리 돌리기, 손목 X 자로 비틀기, 목으로 새 봉( 鳳 ) 자 쓰 기 등을 지도하였다. 또한 튼튼한 내장운동을 위하여 배 주무르기, 허리 주무르기, 손가락 발가락 주무르기, 아침에 깨어나서 잠자리에서 온몸 가볍게 두드리기 등을 지도하였으며, 오관운동을 위하여 눈 운동, 코 운동, 귀 운동, 혀와 편도 운동 등을 지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수면법을 지도하였는데, 이는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발끝 에서부터 시작하여 온몸의 힘을 빼기, 머리는 차게 발을 따뜻하게( 頭 寒 足 熱 ), 발바 닥 두드리기 등을 지도하였다. 이 이외에도 호흡법( 가늘고 길게 코로만 호흡하기, 복식호흡하기, 항문수축 호흡법) 이라든지 체력단련을 위한 아침 줄넘기 등을 마련 하여 전교생에게 실시해 왔다. 이 모든 과정은 학교에서 방법을 교육하고 유인물로 만들어 학생들의 가정과 연 계하여 지도가 되도록 추진하였는데, 아침에 깨서 온몸 두드리기, 세수하면서 오관 운동,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바른 자세 갖기 운동과 관절 운동, 저녁에 체력단련, 자기 전에 내장 운동과 호흡법, 수면법 실시하기 등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아무리 좋아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지속적으로 실천토록 하는 습관을 지니 도록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가정과 연계하여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가 정에서 실천토록 지도하기를 부탁하였으나 실천치 못하는 가정이 더욱 많아, 학교 에서 할 수 있는 사항만이라도 지도하기로 하고, 학교에서 아침, 점심시간에 3분 체조, 매일 아침 전교생 줄넘기 등을 실시하며 건강의 5원칙을 몸에 익히도록 지도 해 보았다. 그러나 아침 줄넘기와 같이 전교적으로 일제히 실시하는 부분은 참여도가 높고 성과도 눈에 보이지만, 학급별로 교실에서 담임교사나 담당교사의 지도로 이루어지 는 과정은 교사의 열성과 인식에 따른 차이가 너무 커서 학생들에 대한 전체적인 교육효과가 미흡한 편이라 생각된다. 다른 모든 교육활동과 마찬가지로 이도 교사 들의 긍정적인 마음과 참여도가 성패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

435 내가 1994 년 중학교로 부임한 이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때보다 시간적인 여 유가 많아져서 운동 시간도 늘이고 신앙생활도 전보다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다. 그 러던 중 교양인이라면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음악선생님의 권 유로 악기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좋아지게 되 어 국악기를 배우려고 단소부터 시작하였다. 2, 3년 동안 하루에 1시간 이상씩 열 심히 노력하여 제법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늦게 시작한 기능은 어느 수준에 올라선 후에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기능은 어려서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단소와 거문고를 가르쳐주시던 명인은 나이가 나보다 3, 4 년 위인 분이었는데, 내가 대학 다닐 때에 그 대학 근처에서 사시던 분 이라는 것을 알고 일찍 알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오래 전에 경남 거창고등학교를 방문하면서 그곳의 학생들이 매일 오후에 특기 적성 교육을 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면서, 우리 학생들에 게도 음악이든지 미술, 공작 등 자신의 소질에 맞는 기능을 익히도록 하고 싶은 욕 심이 일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기능을 익히기 시작한다면 필자처럼 늦게 시작하 여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혼자서 무어라도 할 기능이 있는 학 생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요즈음 가끔 발생하는 자살사건과 같은 충동을 절대로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입시와 성적 향상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많은 학부모들에게 있어 자녀들에게 특기적성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 환영 받지 못했고, 실시하기 위 한 교사들의 여건도 미흡하여 실시할 수 없었으며, 다만 학부모들에게 소개와 안내 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예체능에 대한 기능 한 가지라도 일생의 취미활 동으로 중 고등학교 시절에 시작할 수 있다면 그 학생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란 생각 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꼭 실시해보고 싶은 분야이다. 교사 자신의 변화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제도권 교육의 틀 속에서 인간 다운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는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는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

436 했으나, 이는 어느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도자의 지도력 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일치된 합의가 따르지 않는다면 성공은 보장될 수 없는 법이다. 본교의 교사들 중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도 다수 있 는 반면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들도 있어서, 어떤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자 했을 때 반대를 위한 반대를 습관적으로 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사람을 쓰기는 쉬워도 버리기는 어려운 법인데, 이들 몇몇 교사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잘 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이들 몇몇 교사들을 따로 만나 학생들 을 사랑하는 길이니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나 협조하겠다는 약속만 할 뿐 별다른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도 한 솥밥을 먹는 저버릴 수 없는 대건의 한 식구로 함께 가야할 동료였다. 이들이 이렇게 부정적인 것은 평소에 함께 생활하는 우리들에게도 책임 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도 우리 와 같은 식견을 지니도록 인식의 영역의 넓힌다면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매년 교직원 연수를 통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매년 방학 때마다 2박3일 정도의 상담 및 대인관계 훈련 프 로그램을 통해 긍정적 사고를 넓히는 연수를 시작으로 점차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대 실시하였다. 처음에는 비아냥대는 듯한 태도로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던 사람 들도 몇 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상담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상담의 용어에서부터 프로그램 방식, 분과별 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식 을 쌓아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대하는 말투부 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보이면서 학생들을 구체적으로 사 랑하고자 하는 모습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본인의 확고한 결심이 있을 때조차도 자 신의 본성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려운 법이지만, 상당부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하 면서 교직원 전체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학생들에 대한 학습지도 뿐 아니라 생활지도에 있어서도 훌륭한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는데, 이는 전 교직원 들이 같은 목표를 향하여 일치하고자 노력한 결과라 생각된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문제는 끝임 없는 연찬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으며,

437 지금도 본교에서는 방학 때마다 교직원 연수를 계속 실시하고 있다. 다른 학교들도 처해 있는 환경은 다르겠지만 그 학교의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분야의 교직원 연수를 실시하기를 권하고 싶으며, 교원 연수기관에서도 이론적, 학 문적 연수과목도 필요하겠지만 교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연수를 확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도자의 중요성 요즈음 교육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교육의 분야에 있어서 는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근본을 뒤흔드 는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의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 된다. 1990년대 초에 본교의 교장선생님께서 갑자기 병석에 누워 퇴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학교를 한 단계 도약시키고자 외부에서 교장선생님을 초빙 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서울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분이었다. 그분도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개혁을 앞세우셨는데 우리 지역과는 다른 문화에 젖어 있던 분이어서였는지 우리들 교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요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교장선생님과 교사들 사이에 갈등의 폭이 넓어지고 학교 교육이 발전보다는 침체기에 들어선 듯한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교장선생님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셨지만 그 당시에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만약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그 당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교장선생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환경과 교사들의 의사를 전 달하고 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학생들에게 그 당시보다는 더욱 좋은 교육 을 실시하여 좋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교육이 발전하기 위하여 개선은 필수적이지만 교사 하나가 바뀌었을 때에 변화하는 범위는 그 교사의 주변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 학교의 지도자인 교장이 바뀌었을 때는 그 학교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개혁 과 개선을 위해서는 지도자의 변화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무릇 지도자란 높은 이상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필요하지만, 소속

438 된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따라올 수 있도록 조절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본교는, 교목신부로 10년 동안 학교의 제 반 교육활동을 살피며 개선점을 찾고자 노력하다가 지난 1995년부터 교장으로 취 임한 강석준 교장신부로 인하여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재단 측의 재정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끌어들여 학교를 신축, 이전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춘 새로운 모 습을 지니도록 하였고, 또한 외국의 우수한 제도를 우리 현실에 접목시켜 제도권 학교에서의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여 심기일전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 록 인도했었던 강석준 교장신부의 헌신적 노력과 지도력이 전체 교사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꽃을 피운 결과였다. 학생을 이해하기 몇 해 전부터 전국 각처에서 본교의 교육활동에 대한 견학을 위해 많은 학교의 교사들이 본교를 방문하고 있다. 그들은 십수 년 전 본교의 교사들이 선진지를 방 문하면서 느꼈던 같은 감정을 지니고 돌아가리라 생각된다. 우리들도 견학 당시 선 진학교의 교육활동을 보면서, 잘하고 있는 그 학교의 여건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건이 그들과 달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더불어 부 러운 생각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요즈음 본교를 찾아오는 많은 학교들도 본교의 교육시설, 다년간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 프로그램에 대한 노하우 등을 부러워하면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분들에게 필자가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것이 있다. 학교마다 여건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서 십수 년의 노력과 경험을 지닌 본교를 벤치마킹한다는 것이 학교마다 같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교사들이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 는 마인드 를 얻어 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학생들은 아 직 어리고 여리며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 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는 마음을 기른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만큼 그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439 본교는 인성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마음 속 이야기 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집단상담에 가장 많은 비중 을 두고 실천하고 있는데, 상담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여 실시하기 때문에 교사들 부담도 줄이며 학년 전체가 같은 시간대에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 이는 본교가 상담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적, 재정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의지를 통해서 가능했으며 다른 학교들이 본교와 같은 여건일 수 없기 때문 에 본교와 같은 방식으로 실시하고자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의지 만 있다면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으로부터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기 학급의 학생들을 방과 후에 10여 명씩만 남게 하여 별칭 짓기 등의 프로그 램부터 시작해 보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 학생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그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중에 우리는 그들에 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한 만큼 그들을 상처주지 않고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면 이는 모든 교사들이 시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도 있지만,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생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필자는 1975년 처음 교편을 잡아 교직이 천직이란 확신을 가지면서 매 순간 학 생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며 생활해왔다. 돌이켜 보면 젊었을 때의 치기 어린 생각에 사소한 일에 지나친 감정적 대응을 하며 후회할 일을 자신도 모 르게 저지른 적이 많이 있으며, 그 당시 필자를 거쳐 간 제자들에게 미안하고 죄송 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름대로 제자들을 위한 최선책이란 믿음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시행착 오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그 시절도 소중한 추억으로 여기고 있다. 더구나 예전에는 교육 받은 사람들은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440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우리 교육자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따뜻한 시선 과 존경을 보내주던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운 시절이었다. 요즈음의 사회 환경에서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불법행위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법을 아는 사람들이 법을 모르는 사람들보다 법을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하 게 이용하고 있다는 국민적 허무주의까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 교 육자들이 예전과 달라진 현실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어 보람된 삶을 살도록 이 끌어야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암담해 보이는 현실 이지만 우리에게 보다 나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 고, 우리가 처한 모든 분야에서 변화할 수 있는 가능한 것부터 변화시키기 위한 노 력을 하도록 이끌어야할 것이다. 개혁과 개선의 관건은 제도보다는 사람의 문제이 기 때문이다. 최근에 핵가족의 영향으로 집안에 자녀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과보호가 늘어 나면서 자신만 아는 자기 본위의 학생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요즈음 가 장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다. 이 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 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본교에서는 인성교육의 주제를 1 학년은 나, 2학 년은 너, 3 학년은 우리 로 정해 시행해 오고 있다.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남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나 앎으로써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하 며, 이웃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관한 관심을 넓혀서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 나라도 이유가 있음을 알고 그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 대 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커 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육 받는 학생들의 환경과 성장과정에 따라 받아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람직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다른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는 것을 우리 학생들이 알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면에서 교육의 목 표는 교육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행복한 삶은

441 인간관계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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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늘 푸른 나무 학교 김미숙( 전북 남원 용북중학교 교장) 우리 용북중학교는 전북 남원시 사매면 오신리 387번지 신촌 마을에 위치해 있 다. 신촌 마을은 지리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솟은 계룡산 자락 양지바른 곳 에 50 여 호가 모여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의 앞에는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도 령이 한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춘향이와 이별했다는 오리정( 五 里 亭 ) 이 있어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또한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 의 기념관 이 2005 년 사매면에 개장되었고, 지금도 생존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생가도 들러 볼 수 있다. 사매면에는 800여 가구의 2 천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가가 94.4%, 비농가가 5.6% 이며, 1 ha미만의 소농이 65% 다. 영농의 규모로 볼 때 빈 농이 대부분이다. 축산과 과수를 겸하는 농가가 몇 있지만 대부분 농협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씩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 학교는 인근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로서 남원시 사매면과 덕과면 전 체, 임실군 오수면의 일부 구역이 학군으로 배정되어 있다. 80년대에는 학군 내에 초등학교가 5 개였지만, 지금은 3개교가 폐교되고 사매초등학교와 덕과초등학교만 남았다. 내년에 그 두 학교 졸업생으로서 우리 학교에 입학할 신입생은 13명에 불 과하다. 우리 용북중학교에는 2005년 현재 1학년 54 명, 2학년 45 명, 3학년 16 명, 전체 115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학급 수는 1학년 2 학급, 2학년 2 학급, 3학년 1학 급으로 전체 5 학급으로 편성되어 있다. 1, 2학년의 학생수가 3학년에 비해서 현저 히 많은 까닭은 지난 2 년 동안 입학생이 증가했기 때문이고, 입학생이 급격히 증가 한 까닭은 지난 3 년 동안 우리 학교가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교직원은 교장과 정규 교사 9명과 기간제 교사 3명으로 총 13명의 교원과 3명 의 원어민, 바이올린, 논술강사가 근무하고 있다. 정규 교사 가운데 우리학교에서만

444 25년 이상 근무한 교사가 2 명, 20년 이상이 3 명, 10년 이상이 2명으로 이분들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신상에 대한 모든 것을 잘 알고 지도 한다. 신입생들의 얼굴만 보아도 이름표 없이 누구의 동생 또는 조카인지, 어디 사 는지, 부모가 누구인지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아이들을 이해하고 지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작은 학교와 사립학교의 장점을 모두 살려 선생님과 학생들 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내고, 학생들은 졸업을 해도 끈끈한 정을 잊지 못해 학교 방문이 잦고 애교심이 남다르다. 교직원 조직은 교무실 중심의 체제를 2004년부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행을 기획하고 보완하는 담임이 근무하는 교무실 팀 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기획실 팀 과 학생지도 중심인 늘푸른나무들의 숲 우리 학교 학생들은 비교적 이른 시간인 8 시에 등교한다. 15 명이 도보로, 나머지 학생들은 4 대의 학교버스를 이용한다. 학생들이 도착하면 고요했던 전원속의 시골 학교가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8시 10 분이 되면 자율학습이 시작된다. 이 시간에 각 담임 선생님별로 학생들의 기본생활 습관지도와 상담, 예습 및 부진아 지도, 팀별 협동학습, 경건시간 등이 특 성 있게 운영 된다. 다른 교사들은 아침 경건기도회 후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아 침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전 9시부터 4 시간, 오후 1시부터 3시간 동안 정규 수업 을 한다. 정규수업 시간에는 각 교과 담당교사별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급당 학 생 수가 많지 않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개별지도가 잘 이 루어진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수준별 보충학습 및 특성화 교육이 이루어진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개인차를 고려한 교육을 해야 하고,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면서 동시에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정규 교과 시간에서 부족한 학습을 수준별 보충학 습에 의해서 보충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2004년부터 방과 후 수 준별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수준별 보충학습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을

445 중심으로 학생들을 2~3등급으로 나누어 10명 미만의 소그룹 맞춤식 수업이 이루 어진다. 그리고 학생들은 각자의 특기적성과 체력을 신장하기 위해서 기악, 미술, 체육( 축구) 중 하나를 선택해서 수강한다. 이 외에도 2, 3학년 학생들은 서울에서 초빙된 저명한 논술 강사의 강의를 듣는다. 학년별 과목 편성은 아래와 같다. ㆍ 1 학년 :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독서, 미술, 축구, 기악 ㆍ 2 학년 :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독서, 미술, 축구, 기악, 논술 ㆍ 3 학년 :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기악, 논술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논술 심화 과정을 제외하고 표준 학교비와 재단의 지원 으로 전액 충당된다. 논술 심화 과정의 비용은 월 3 만원이다. 이 방과 후 수준별 보충학습과 특성화 교육에는 학원을 수강하는 학생 한다. 2명을 제외하고 전교생이 수강 정규수업과 방과 후 보충학습을 마치고 나면 6시 30 분이다. 그로부터 9시까지 다시 2 시간 동안 독서지도, 영어 수학 공부방, 자율학습 등이 이루어진다. 독서지 도는 본교 국어선생님이, 님, 자율학습은 본교의 또 다른 선생님이 맡는다. 공부방은 재단에서 강사비를 지원해서 채용한 강사선생 이 외에도 모든 학생들은 1인 1 악기 연주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 재단의 지원으 로 디지털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우트 등의 악기를 구입하고, 실기지 도는 음악교사가 무료로 지도한다. 학생들은 3년 간 자신이 원하는 악기를 선택하 여 개인 지도와 그룹 지도를 받는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1교시 예배시간을 기악 시간으로 할애하여 전교생 현악합주가 이루어진다. 그 결과 이제는 전교생이 오케 스트라 악단으로 연주회를 개최할 정도가 되어 조회나 예배 시간 등 학교 행사 때 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남원시 학생 예능 경연대회에서 금상, 전북 학생 예능 경연 대회 현악합주부 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교생이 연주하는 예술제를 3회 째 개최하고 있다. 또 매주 1 시간씩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 1학 년은 워드 자격반, 2학년은 1 학기에 워드, 2 학기에 파워포인트, 3학년은 1학기 포

446 토샵, 2 학기 인터넷 검색 지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은 컴퓨터반과 인 터넷 신문반e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서 자신의 특기를 신장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반은 학교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이나 자 신의 관심 분야를 취재 정리하고 나모 웹에디터의 프로그램에 의해 편집하여 학교 홈페이지를 통하여 인터넷 신문에 게재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의 소 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인터넷 신문반은 편집부장 1명과 취재 기자 16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재 기자는 취재 담당, 편집 담당, 카메라 담당, 홈페이지 담당의 4 개 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기자들은 학교 주변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매일 취재하고 편집하여 매월 한번씩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은 남원 교육청 홈페이지의 학교 신문이라는 메뉴에 아이 소리(I Sori) 로 실리고 있다. 2003년 3월에 창간호가 발간 되었으며, 이후 계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특히 우리학교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어 교육을 집중적으 로 실시하고 있다. 영어 교육의 주안점은 학생들의 영어 회화 능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2002년에는 10월 2주간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캐나다 해외 연수를 실시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지냈던 학생들은 그 때를 잊지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크리스챤 학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나도 해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2003년에 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3 주간 뉴질랜드 어학 연수를 실시하였다. 그 뒤 단기간의 해외 어학연수가 들이는 비용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 하여 2004년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각각 2 주간 영어 계절학교를 열었다. 여기에 원어민 4 명과 영어권 유학생 도우미들을 초빙하고, 본교 중학생과 본교 입 학예정인 인근 초등학교 6학년생을 참가하게 하여 수준별 영어 회화교육을 실시했 다. 해외나 국내 영어연수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리 학생들에게 국내에서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다. 2004년부터는 원어민 교사 2 명을 초빙하여 연중 전교생을 대상으로 정규 수업과 방과 후 시간에 영어 회화 교 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어 수업은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고려하여 수준별 소집단 교 육을 실시하였다. 파파야반, 오렌지반 등 우열을 표시하지 않는 단어를 명명함으로

447 써 학생들 간의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많은 외화를 들이지 않고 국내에서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은 전액 재단이 지원했다. 또한 2004학년도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영어캠프 외에도 2주 간 음악캠프을 열 어 작은 음악회로 실력을 다져보고, 4일간 수학캠프를 열어 집중적인 수업과 다양 한 놀이구성으로 수학이 재미있는 과목이라는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는 희망교사와 희망학생 위주로 운영된다. 2005학년도에는 방학을 집중적인 학력신장의 기회로 삼아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의 학과를 심화와 보충과정으로 나누고 과학 실험, 기악 연주 실기 과목도 개설 하여 운영했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과목만 선택하여 수강하도록 하고 학기 중 부족 했던 시간들을 집중적으로 지도하여 학습효과와 능률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처음 수준별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열등감과 위화감이 많았는데 이번 겨울학교에서는 성 적위주가 아닌 선택 책임제로 운영한 결과, 참여율과 능률면에서 효과가 높았다. 이 외에도 우리학교는 2005학년도에 학생들에게 국제문화에 대한 이해와 도전의 식을 심어주기 위해 해외체험학습을 실시했다. 3학년은 5월에 3박 4일 간 중국문 화체험학습을, 2학년은 10 월에 일본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학생들은 일본의 질 서 있고 청결한 선진문화를 보고 곧바로 학급주변 정리정돈을 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협동의 중요성도 체험했다. 생 또한, 교사와 떠나는 소규모 현장학습을 여름방학 중에 실시했다. 교사 1명에 학 5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서 체험 주제와 장소 방법들을 논의하며 계획과 반성 까지 학생들과 직접의견을 나누며 사제동행하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어떤 팀은 서 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미래의 내가 진학할 학교들을 견학하고, 다른 팀은 역사 신문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을 탐방하고, 또 다른 팀은 남도의 멋진 섬이나, 강릉 일대의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또 지역사회의 기업들을 방문하여 우리고장의 발전산 업을 둘러보는 체험 등 모든 팀들에게 의미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창의성을 발휘 하여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재단에서 여행경비의 50% 를 지원해 주어 더욱 잊지 못할 체험학습이 되었다. 우리학교에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지원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448 의식의 변화와 도전 의욕을 고취하기 재단에서는 모든 교사들에게 각 일백만 원씩 해외연수비로 지원했다. 재단에서는 2003년 여름 계절학교부터 원어민을 활용한 영어캠프에도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음악캠프, 수학캠프 등에 몇 몇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우리학교는 지난 2 년 동안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남원 과 임실 지역에서 재배정을 받아 전입해온 학생이 2004년 30 여명, 2005년 37명 으로 2005년 현재 학생 수가 115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표 1 참조) 115명의 학 생 중 70 명이 해당 학군이 아닌 남원시 거주자다. 우리학교는 원거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통학버스를 별도로 운영하여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을 돕고 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학 습부진학생들부터 영재학생들까지 2~3등급으로 나누어 실시하는 수준별 학습 등 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학업실력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2005년 9월 15일 실시 한 전라북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본교에서 1년 반의 학습기간을 거친 2학년의 경 우 180점을 기준으로 전주시의 평균보다 9.1점 전라북도 평균보다 17.6 점, 남원시 평균보다 27.8 점이 높은 경이로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2004년에는 전주 평균보다 0.5 점, 전북 평균보다 8.8 점, 남원 평균보다 18.5 점을 능가하였고, 올해는 거의 평 균 10 점 정도의 향상을 보였다. 또한 2004학년도 고입시험에서 남원지역 고등학교 입시생 가운데 1 위를 차지하는 등 고득점자가 속출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원어민과 잦은 접촉을 통한 영어교육으로 외국인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 많이 해소되었으며,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생활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방과 후, 방학까지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이 자꾸만 줄어들어가는 속에서도 재단이 전폭적 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들지 않는 늘푸른나무 우리 용북중학교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현재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고, 부분적 이나마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우리학교를 설립하신 류광현( 柳 光 鉉,

449 1927~2001) 선생님과 그분의 선친이신 류시동( 春 江 公 柳 時 東, 1880~1938) 선생 님과 모친 이현( 李 鉉, 1889~1979) 여사님의 정신이 50년 넘게 면면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류시동 선생님은 일제 치하에서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인재양성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나라를 되찾는 길은 인재를 기르는 데 있다고 생 각하고 1937년 봄에 마을 앞 하천 부지 4,000여 평을 개간하여 학교의 부지를 마 련했다. 그밖에도 그는 사매보통학교를 육성하는 데도 정성을 기울이고, 현 남원농 업고등학교를 창설하는 데도 거액을 희사했다. 그러던 중 류시동 선생님이 1938 년에 돌아가시고, 그분의 뜻을 부인이신 이현 여사님과 아드님이신 류광현 선생님께서 이어받았다. 류광현 선생님은 전주 남중학 교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수학하면서 일본인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로부터도 차별을 당하면서 망국의 아픔을 몸소 겪었다. 그러면서 그는 선친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이 다시 일어서는 길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교육의 길을 익 히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러던 중 22세가 되던 1949년 10월 4일에 어머님의 요청에 따라 그리고 아버 님의 유지에 따라 사재 40 여만 평을 들여서 춘강학원을 설립하고, 아버님이 마련 해 놓은 부지 위에 용북중학교를 개교하여 농촌 청소년들이 무료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했다. 당시에는 남원 읍내의 농업중학교와 남원중학교를 제외하고 면소재 지에서는 유일한 중학교였다. 그러자 남원, 임실, 장수, 순창 등지에서 250여명이 입학을 지원했고, 그 가운데 71 명을 선발하여 신입생으로 맞이했다. 당시 입학생들 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부터 26 세의 청년까지 다양했다. 류광현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다른 선생님과 함께 열성적으로 지도했다. 당시에 웃학교( 상급학교) 는 도시에만 있어야 되는 줄로 인식하고 있을 시절이었다. 감히 웃학교가 이 시골 에 설립되리라는 것은 춘강학원 의 설립을 고장의 일대 경사로 여겼다. 엄두도 못 냈던 때였기에 초창기 졸업생들과 지역인들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6 25 전쟁이 발발하고, 종전 후 토지개혁이 실시되면서 재단의 재원이 되어왔던 토지를 상실했다. 이에 이현 여사님께서 당시에 경영하던 동광공업사를 매각하여 재단에 기부하고, 모자공장을 운영하면서 그로부터 나온 수

450 익금을 학생들의 학비로 삼게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그마저 매각하여 운영난을 겪고 있는 재단에 기부했다. 거기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대 교장이셨던 김태규 선생님마저 갑자기 돌 아가셨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류광현 선생님께서 교장으로서 학교를 책임지게 되 었다. 선생님께서는 노모와 더불어 온 가족이 손발이 트도록 삽을 잡고 흙을 나르 는 등 심혈을 다 바쳐 학교를 재건하기에 이르렀으나 1956년 7월 또다시 천재가 발생했다. 뜻밖의 수마로 교정과 교실 일부, 축사, 창고 등이 유실되고, 1952년에 농촌 후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여 축산교육을 해 오던 용북고등기술학교가 폐교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그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여재를 정 리하여 재단에 투입하고 학교를 유지해왔다. 그 고비를 넘긴 후 용북중학교는 한때 번성 일로를 걸었다. 수해 이후 시멘트 블 럭 교실이 완공되고, 강당, 특별교실, 도서실 등을 신축하거나 개축했다. 그리고 학 생 수가 점차 증가하여 1960년에는 300 여명, 1970년에는 600 여명, 중학 평준화 이후 700 여 명까지 증가하였다. 류광현 선생님께서는 사랑과 신념의 교육을 강조하시면서, 학생들을 친자제처럼 아꼈다. 친히 교실을 드나드시면서 도시락 없는 학생이 있는 가 두루 살피시고 1시 간 이상씩 걸어서 등하교하는 우수학생들의 공부시간을 늘려주기 위해 당신의 사 랑방을 내 놓으셨다. 류광현 선생님의 모친이신 이현 여사 역시 학생들을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여사께서는 예순이 다 된 할머니인데도 교실을 재건하기 위해서 며느리인 류광현선생의 부인과 함께 벽돌을 머리에 이어 나르며 손수 감독했다. 이 때부터 이곳 주민들은 이현 여사를 가리켜 교모( 校 母 ) 라 부르고, 한솔 이효상 국회의장은 여사의 공적을 일월 같이 라는 시를 써서 기렸다. 여사께 서는 학생들이 전액 무료로 공부하게 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액면이지만 사친회비 라는 것을 받아서 학교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라고 못내 서 운해 했다고 한다. 그 여사께서는 7형제 가운데 넷째 아들을 용북중학교에 재학하 게 했다. 그 넷째 아들인 류정수( 柳 丁 洙 ) 박사가 재단의 전 이사장이자, 현재 이사 이다. 류광현 선생님과 이현 여사의 사랑 덕에 우리학교를 졸업한 많은 동문들이 곳곳

451 에서 명문 출신임을 자부하며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우리학교 1회 졸 업생인 전 전북대학교 물리학박사 이기방 교수는 6.25 때문에 앙상하게 남은 창고 에 벽을 두르고 비좁고 컴컴한 교단에서 열심히 교수해 주던 선생님들을 따라 공 부하던 일, 그리고 틈을 내어 현재의 교사를 세우는 일에 선생님과 학생 모두 함께 개미떼처럼 터를 고르고 목재를 나르고 기와를 나르고 손이 부족하면 십여리의 통 학길을 지게를 지고 등교하여 교사를 지어 그 당시 값지고 훌륭한 교실을 갖게 된 용북인들만이 가지는 기쁨의 그 때를 잊을 수 없다고 기억한다. 졸업과 상급학교 진학 후 십 년 간의 미국유학시절에도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책상 앞에 쭈구리고 앉아 책장을 넘기며 공부하는 이 외에도 많은 졸업생들이 10 대의 학생일 뿐이라고 회상한다. 잘 사는 내 고장의 등불이 되라 는 교모님의 뜻을 이어 받아 향토의 역군으로 지역사회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여 사와 설립자의 높은 덕망을 기리기 위해 69 년 공적탑, 74 년 기념비, 84년 건학훈 탑 등을 건립하여 용북중학교의 건승을 축하하고 있다. 이 탑들은 5년마다 열리는 개교기념축제에 온 지역사회 인사와 재학생, 학부모, 졸업생, 초등학생까지 하나 되 는 축제에 개막된 탑이다 그렇지만, 순조롭게 발전을 거듭하던 본교는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이농 현상과 우수 인력의 도시 집중으로 시련기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수 감 소, 도시에 비해 뒤떨어진 교육 환경, 가정 학습의 부재 등으로 인해 학생들은 나 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선배들이 이룩했던 실력에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83년 제4대 교장으로 취임한 류광현 선생님은 용북 중흥의 기치를 내걸고 실 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하였다. 더욱 치열해져가는 경쟁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그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길은 곧 실력을 쌓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기라 성 같은 선배들이 쌓아올린 모교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류광현 선 생님이 교장으로 다시 취임한 후 학교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획기적으로 발전하 게 되었다. 구교사를 헐고 교사를 개축했으며, 선생님께서는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빵을 마련해두었다가 나누어주면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 곤 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서 학생들의 학력도 급신장 하였다. 1992년에 류광현 선생님이 65 세로 교장직을 정년퇴임을 하시고, 본교 1회 졸업

452 생이자 교사이신 이정태 선생님을 교장으로 임명하셨다. 당시 선생님의 장남이 서 울에서 중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장의 친인척이 아닌 분을 교장으로 임명하신 것이다. 이정태 교장선생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신 후 부임하신 이래 이 학교와 역사를 같이 하셨다. 1992년 제5대 교장으 로 취임한 이정태 교장선생님은 전 교장의 뜻을 이어 받아 학생들이 기본 실력을 갖추어야만 자율학습 능력이나 창의력도 신장 될 수 있다. 기본 학습 능력을 정착 시켜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한다. 라며 더욱 실력향상에 매 진하였다. 이때 매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 하는 긴 자전거행렬의 야광 판 빛을 신기하게 여긴 전주-부산 간 버스 기사가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일 때는 도 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용북중학교 학생들을 버스가 갈 수 있는 곳까지 태워 다줘서 고마운 아저씨 로 알려졌다. 그 고마운 아저씨 는 승객들의 항의에 손님 들은 자식도 안 키우십니까? 라고 설득해 가며 그 일을 계속해 왔다. 또한 그는 이 소식을 부산진구 모범기사회 동료들에게 전해, 매년 자전거와 배구 축구공을 선 물해주는 영 호남 자매결연식을 갖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재단의 수익용 재산을 잘못 관리하는 일이 발생해서 학교가 문을 닫 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학교의 이념을 존속한다는 조건으로 법인이 매각되었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사명감과 보람에 땀을 쏟았던 교사들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 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상실감이 커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거부 했다. 일반 공립학교의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9시에 출근해서 5 시에 퇴근했다. 따라 서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굳이 우리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창회와 지역사회의 설립자에 대한 존경심과 모교에 대한 남다른 사랑도 희미해져만 갔다. 재단이 바뀌고, 이정태 교장선생님 퇴임 후 약 7 년 동안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 시기에 학생수도 더욱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학생 수가 700여 명이었으나, 이후 지속되는 이농 현상에 따른 농촌 인구 감소, 그리고 재단의 내부 사정으로 2003년도에는 재학생이 61 명까지 줄었다. < 표 1>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80년에서 1990년까지 10 년 간 학생 수와 학급 수는 반으로 줄었으며,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학생 수는 4분의 1 이하로, 학급 수는 약 3분의

453 1 로 줄어들었다. < 표 1> 용북중학교의 학생 수와 학급 수 변화 예상 1학년 (15) 54(16) 50(13) 2학년 학년 계 학급수 * 괄호 안은 당초 입학 예정 학생 수. 괄호 밖은 실제 입학 학생 수 교육부에서는 소규모 사립학교 폐지 시행 지침에 따라서 100명 미만의 사학부터 폐지하겠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80여명으로 줄어든 2000년부터 폐교 대 상에 해당됐다. 그러자 젊은 교사들은 폐교가 되면 공립학교로 옮겨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든 교사들은 폐교되지 않기 만을 바 랄뿐 예전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 2002년에는 2학급 입학예정이었던 입학생 들이 16 명만 입학하였다. 학부모들이 침체에 빠져있는 용북중학교보다 좀 더 큰 도시로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6 학년 때 아이들을 전학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 설립자 류광현 선생님의 4 남이자, 본교에서 중학교를 마친 류정수 박사가 학교법인을 되찾고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사장은 학교의 위기를 극복하자 는 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의 폐교를 막기 위해서 힘썼다. 소규모 사 립학교 폐지 시행 계획이 3년을 기한으로 연장되어 왔으나 용북중의 학생수가 여 전히 100명 미만에 머물게 되어 2003년에 사립학교 폐지 시행 계획에 따라 2004 년 6월 19 일자로 폐교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학교 측이 사립학교 폐지 시행 계획 해산 및 폐지 불이행에 따른 향후 계획 을 제출함으로써 학생 수 100명 미만의 사 립학교 해산 특례 규정을 2006년까지 3 년간 재연장받게 되었다. 사립학교 폐지 시행 계획 해산 및 폐지 불이행에 따른 향후 계획 속에는 1 인건비, 학교운영비 와 학생 안전 등 불요불급한 특별예산을 제외한 보조금 미지원 2 교원 자격 연수 경비 자체 부담 3 신규 교원 임용 제한( 계약제 교원 채용) 4 중학구 조정 검토

454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재단은 재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학교의 시설부터 개선했다. 정부의 재정 지 원이 급감하면서 낙후된 화장실과 복도 바닥을 현대식으로 개선하였고, 학생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학교 숲과 조류원을 조성하였다. 도서관을 만들고 각종 도서와 전자 자료, 최신식 컴퓨터를 새로 들여 놓았으며, 창고로 방치되어 있던 공간에는 학생들의 동아리방을 만들었다. 학교 시설 개선과 함께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 을 했다. 우리 용북중학교는 학교교육 개혁의 목표를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사교육 이 필요 없는 학교를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두었다. 특히 교육적, 문 화적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농촌지역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서 그들 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자 했다. 이런 목표에 따라서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또한 학교를 투명하게 경영하기 위해서 개방형 이사제를 실시하고 있다. 설립자 의 아들이 7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이사 1명을 제외하고는 재단 친인 척의 구성원이 없다. 법인 이사 중 2명은 본교의 졸업생으로서 공립학교를 퇴임한 교감과 퇴임 행정실장이다. 그 외에 현 학부모와, 대학의 교수인 지역사회 인사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는 현 학교운영위원장이 맡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노력과 성과에 의해 승진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현 교장인 나도 공채를 통해서 평교사로 근무하다 교장으로 승진했다. 나는 20여 년 동안 이 학교 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였다. 연공서열에 의해 교장이 되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 다면 내가 교장이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평교사로서 근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혁신 노력을 이끌 수 있는 교장을 찾고 있던 재단의 의도에 따라서 나는 2004년 3 월에 평교사로서 직무 대리 라는 꼬리표를 달고 교장에 취임하였고, 취임 직후 바로 교장 연수를 받고 2004년 8 월에 정식으로 교장에 취임하였다. 재 단에서는 혁신을 이끌 교장 후보를 찾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에게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도록 2003 년 교사연수과제로 부과하였다. 나도 10가지 새로 운 방안을 제안하라는 과제를 받아 그 과제를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교장으로 발탁

455 된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지금 이 10가지 방안을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 며, 그 중 몇 가지는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1인 1 악기 연주 특기 교육, 정보화 교육, 독서인증제 등이 그것이다. 1인 1 악기 연주 특기 교육은 이미 본인이 음악 교사 시절에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학년도부터는 이사장의 추천이 아닌 동료교사, 학교장, 이사장, 학부모, 학 생에 의한 다면평가 결과에 기초해서 부장, 교감, 교장 승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그 평가 안을 준비 중에 있다. 또한 본교는 정규교사 임용 뿐 아니라 기간제 교사 임용시에도 투명한 공개채용절차를 통해서 본교의 이념을 구현할 자격과 봉사 정 신과 헌신의 자세를 갖추었는가를 기준표에 의해 평가하여 선발하고 있다. 교사임 용위원회의 조직도 이사장, 법인이사, 학교장, 교사대표, 학교운영위원장, 행정실장 의 이상 6 인으로 구성하여 선발하고 있다. 우리 학교의 혁신은 이러한 재단 경영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런 재단 경영의 밑바닥에는 류광현 선생님과 이현 여사님의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이 깔려있다. 두 분의 며느리이자 손주 며느리이신 현 재단 이사장 이지원 여사님 은 남원에서 4,000 만 원짜리 전세집에 사시면서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신다. 여사 님은 한 집에 승용차가 두 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어 한 대를 처분하고 버스를 이용하신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문화적 혜택을 제 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좋은 인성으 로 활짝 피어나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능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 을 하고 있다. 부모가 정신지체장애인이라 할머니가 모든 살림을 맡아하는 어려운 학생에게 자전거를 선물하시고, 결손학생에게는 생일날 케익을 사가지고 가 축하해 주고, 가출한 어머니 대신 밑반찬을 가져다주시고, 낡은 운동화를 새 운동화로 바 꿔주신다. 이사장님의 사랑의 실천은 일일이 다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재단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최근 들어서는 동창회와 지역사회가 우리 모교 지키 기 위한 홍보요원이 되어 나 먼저 모교에 자녀보내기 운동을 실천하였고, 이에 사 매면의 명문사학을 살리기 위한 면장을 비롯한 면 기관장의 협조가 이어졌다. 학부 모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도 높아져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손을 잡고 학교방문이 잦아지고 그 결과 용북중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남원과 임

456 실 지역에서 재배정을 받아 전입해온 학생이 70 여명이다. 이 학생들은 해당 학군 이 아닌 남원시, 임실군지역 거주자로서 본교에서는 이들을 위한 통학버스를 운영 하고 있다. 처음에 2대의 중형 버스로 시작한 통학 배려가 이젠 대형버스 2대와 중형버스 2 대로 늘여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다시 대형버스 1대가 추 가 될 예정이다. 더 늘푸른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 우리 용북중학교가 이처럼 다시 푸른 싹을 펼쳐보이고는 있지만 현재 몇 가지 어려움에 처해있기도 하다. 첫째는 계획성 있는 교육과정 편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한 데, 지난 1학기에는 12명의 교사 중 무려 5명이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에 계획성 있는 교육과정 편성의 어려움이 컸다. 학군제로 묶인 의무교육 지역 입학예정학생 만으로 정규교사를 배치하여 나머지는 기간제 교사들을 채용하며, 교사 12명 중 3 학급 기준의 정원 8명 외 올 해는 한 학급이 더 늘어도 6학급 기준의 교사를 기간 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어 교과면이나 업무의 연계성 있는 운영에 어려움이 크다. 둘째는 학생 수급 문제다. 우리 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많은 학생들이 학군제의 규정에 막혀서, 자신이 속한 학군의 학교로 일단 배정을 받은 후 다시 용북중학교 를 희망하여 재배정 받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런 어려움 해소를 위해 우리 학교 는 자율학교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자율학교로 신입생 전국 선발과 신학기전 학급의 확정으로 교사수급이 되어 신학기 준비에 차질이 없어 더욱 알찬 내실 있 는 학교 운영을 하고자 한다. 셋째는 학교 시설의 노후화다. 우리 학교는 54회 졸업생을 배출한 오랜 역사의 사학인 만큼 그 시설들이 노후 되었다. 그럼에도 본교에는 30년 이상 된 붕괴위험 의 건물만을 철거하는 철거비가 배정이 되어 강당을 비롯한 4동의 노후 된 부속건 물을 철거했다. 그러나 신축비용은 공립학교에 우선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막대한 건물 신축비를 재단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6학급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

457 황에서 질 높은 수업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 급식시설이 없어 인근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가져와 복도에서 배식하여 학급교실에서 식사하는 불편함과 위생의 문제로 건강상 위험이 우려된다. 또한 가정실습실, 어학실, 미술실 등 특별실과 교사 휴게 실, 보건실과 강당 유도실 등 체육시설이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넷째는 재정의 부족이다. 본교는 그동안 방과후 보충학습, 특성화 교육, 방학중 계절학교, 해외체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재단이 전액 또는 부분 지원해서 해결해왔 다. 그리고 일부는 교사들의 봉사와 헌신에 의존해왔다.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에게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교육의 양극화 현상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농어촌 특성화 학교에 우선적인 지원을 하는 배려가 절실하다. 교육을 위해 농촌을 떠나는 현실에서 도시에서 농촌학교로 찾아오는 용 북중학교와 같은 학교가 질적으로 성공하도록 재정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내가 이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중 본교 15 회, 26회 졸업생 자매가 교장실을 방 문했다. 197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28년 만에 학교가 그리워 찾아 왔다고 했다. 중학시절의 스승님과 친구들의 얘기를 꺼내며 추억을 상기시킬 쯤 누렇게 바 랜 졸업 앨범을 꺼내 보여드리니 이야기꽃이 무르익어 갔다. 중학시절 3학년 때 담 임이셨던 설립자의 장남 류갑수 선생님을 잊지 못하여 몇 일 전에도 통화를 했다 고 한다. 류 선생님 집 사랑방에서 7명이 자취를 했을 때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했던 시절을 떠 올리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우리 학교가 소중함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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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학교교육의 현실과 청년교사들의 이상 이정로( 충남 천안 복자여자고등학교 교사) 1. 학교교육의 현실 나는 1976년 4 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강원도 강릉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1년 3 개월, 이어 경북 상주 시골 중학교에 서 1년 9 개월, 그리고 천안의 상업고등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고 지금 근무하는 복 자여고에 오게 되었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일반계 고 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를 두루 경험한 셈이다. 당시에는 가정의 경제적 사정으로 중등교육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나라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한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어 가는지 궁금하여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를 더하였다. 덕분에 학생들의 진로지도를 할 때 에는 요긴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이때까지는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교과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 록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수업 시간 중에는 영어 노래 부르기, 방과 후에는 운동 장에서 축구, 배구 경기를 하고, 토요일 오후에는 등산, 연말이면 학급문집 만들기 등. 허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런 활동들이 그 당시에는 별난짓(?) 이었고 요 주의 교사이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긴급조치로 정권을 이어가던 시절이었고 학교 운동장은 교련교육을 위한 연병장이었으니, 수업시간 이외에 학생 들과 교사가 만나는 것조차도 의식화 교육으로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자여자고등학교는 1963년에 한국복자수도회에서 설립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인데, 역사가 깊은 공립여자고등학교에 밀려서 학력이 좀 낮은 학생들이나 특별한 뜻이 있는 학생들이 지원하였다. 그러나 종립( 宗 立 ) 학교의 설립 목적에 충실하여 인성교육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년, 이 지역도 연합고사에 의 한 공동 배정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변화가 기회라 생각하고 전 교사가 학력향상

460 에 힘을 모았다. 이때 영어과와 수학과 교사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담당교 과가 영어라서 실업계 학교보다는 일반계 학교가 더 적합할 것 같았고, 70년대 민 주화운동의 주류였던 천주교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 1983년 3월부터 복자여자고등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학력 콤플렉스에 마음고생을 해온 학교이다 보니 대학진학에 전력을 쏟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아침 7시 30 분까지 등교, 8 시까지 자율학습, 8시 20 분까지 아침 조회,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20 분까지 정규수업, 이후 2시간 의 보충수업, 저녁 식사 후 6시20분부터 9 시까지 야간자율학습. 한 교실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조용히 앉아서 공부만 하라 는 건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 면 예외가 없었다. 그것뿐인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입시 주요과목( 국어, 영어, 수학) 의 주별 고사를 실시했다. 억지로 참여하는 야간 자율학습과 주별 고사 때문 에 학생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교사들은 주당 24시간의 교과수업에 2학급씩 묶어서 보충수업을 8 시간을 하고, 2 주마다 주별 고사 문제 출제와 성적처리를 해야 했다. 연간 모의고사를 6-8회 치 루고 나면 학급평균 점수와 교과별 평균점수를 비교하여 학급경영과 교과지도 평 가를 받았다. 죽을 맛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학교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판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성과보다 비용이 너무 큰 셈이었다. 학력고사가 그러하였듯이 지식은 단순 암기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저장용에 불과하였고, 교과서 밖에서 교사와 학생들 과의 인격적인 만남, 즉 소통은 매우 어려웠다. 2. 청년교사들의 이상 1) 주별고사와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개선 이때가 내 나이 30 대 초반이었으니 겁 없는 청년교사였다. 선배교사( 당시에는 과 장 보직이었음) 들께 문제점과 개선책을 요구하였으나 연합고사 이전 학생들의 학력

461 콤플렉스에 시달려 왔고, 암기하고 문제 많이 풀고 시험만 자주 치루면 성적이 향 상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윗분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 비슷한 고민을 해오던 후배 교사들과 의기투합하여 작당모의(?) 를 하였다. 48명 의 교사 중에서 10 여명이 모여 문제점들에 대하여 난상토론을 하였다. 대략 5-6가 지로 모아졌으나 이중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과제별로 2-3명씩 연구팀을 구성하였다. 우선은 주별고사 폐지와 대안, 강제로 시행하는 야간자율학습의 방법 개선안을 만들었다. 수차례 토론을 통하여 각 과제마다 개선안을 3개씩 마련하였 다. 대안별로 효과와 예상되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학교의 교육활동과 행사를 협의 하고 결정하는 주임교사들 모임인 학교기획위원회에 검토하여 줄 것을 건의하였으 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전체 평교사들의 서명을 받아 청년교사 대표들이 교장 수녀님 을 직접 만나서 협의하는 것뿐이었다. 전체 평교사들이 모두 개선안에 동의하였다. 교장수녀님은 학교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이라며 호감을 가지고 맞아 주었다. 그러 나 다음날 우리는 주임교사들의 반발로 집단 경고를 받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별고사는 정기고사로 전환되고,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은 약간 완화되어 계속 시 행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이상으로 남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는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었다. 2) 학급문집 만들기 대학시절 영자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던 경험으로 학생들에게 좀더 열려있는 세상 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학급문집을 만들며 학생들의 이야기와 세상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접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체험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 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던 아이들이 함께 토론하며 일을 나누어 맡아 만들어 낸 문집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생동감을 보았다. 3) 학급문고 운영

462 책을 읽히고 싶었다. 저자가 50대에 쓴 책 한권은 그가 50년 동안 고뇌하며 살 아온 삶의 궤적이다. 2-3 일이면 읽을 수 있는 책 한권의 의미는 이러하다. 가장 짧 은 시간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삶의 궤적을 만나 풍요로운 삶을 가꿀 수 있는 독서야말로 교과서와 문제집 이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의 보충수업용 참고서를 선택하면 리베이트를 주었는데 학부 모들의 주머니에서 꺼내온 것 같아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서적상에게 할인해 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다른 학교와 교사들을 고려하면 곤란하단 다. 그러나 원하는 책으로 줄 수는 있단다. 철모르던 청년시절이었으니 그런 무모 한 생각을 했지 지금 같으면 주위의 눈치가 따가워서 쉽게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 이다. 주위에 뜻을 함께하는 후배교사들과 학급문고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학부모 몇 분이 동참해주셨고 나도 20여권을 보태서 100 여권의 학급도서를 마련하였다. 조 회 종례 시간에 가끔씩 책 이야기와 저자 이야기를 해주면 학급에서 쓰고 있는 독 서 일기장에 흔적이 곧바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받아들였다. 4) 아이들과 소통하기: 학급체육대회, 야영, 자전거 하이킹 아이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또래들과 생활 하기 때문이다. 공부도 혼자서 읽고, 쓰고, 암기하고 문제를 푼다. 거의 모든 문제 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모른다. 이런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는 학급체육대회, 야영, 자전거 하이킹 등이 제격이다. 그러나 윗분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우선 안전사고의 위험을 걱정하지만 속내는 좀 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학년주임이 알고 있는 한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단 다. 사건이 벌어지면 책임질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선배교사들이 더 윗분들의 심려 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하여 미리 검열을 하는 것이다. 청년교사 시절에는 대부분이

463 이런 답답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분고분할 나도 아니다. 선배 주 임교사들 중에서 비교적 대화가 통하는 선배들을 만나서 털어 놓고 이해를 구했다. 동료교사들 몇몇도 행사에 동참하게 하였다. 토요일 오후 야영준비를 해가지고 시 외곽에 위치한 체육공원 야영장에서 모이 기로 하였다. 몇 녀석들은 집에서 양말도 빨아보지 않았는데 밥하고 설거지까지 해 야 하는 야영이 마음 내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8년간 문학을 공부 한 D대학의 K교수와 독일에서 9년간 신학을 공부한 H대학의 C 교수를 불렀다. 고 교, 대학시절의 생활과 공부했던 이야기 그리고 외국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공부 이 야기를 들려주고 질의 응답 좀 받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2 시간의 발제 후, 질의 응답을 진행하는데 3 시간이 지나도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질문을 하지 않던 녀석들이 말문을 연 것이다. 계획할 때의 의도대로 동기부여와 학습방법은 참고할 것을 많이 건졌다. 덕분에 그날은 밤 8시에야 저녁 식사를 하였다. 취사와 취침준비를 서로 나누어 맡아서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다음 날 오전에 산을 내려오는 녀석들의 표정에서 새로운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5) 학교와 교육에 눈을 뜨다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은 교육현실에 대하여 나와 같은 고뇌를 하는 동지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년 전국교사협의회 충남지부 창립에 참여하였다. 그해 겨울 경남 거창고등학교에서 2박3 일간의 전국 지회장 연수가 있었는데, 당시 거창고등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 상황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로지 시험 점수에 매달리며 인간교육은 교육학 교과서에서만 잠자고 있던 대부분의 학교들과는 다르 게 자치적인 특별활동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교육을 하면서도 성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런 학교에 근무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잠시 후 강당에 걸려있는 < 직업선택의 10 계> 를 본 순간 또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남이 만들 어 놓은 길보다는 힘들더라도 스스로 만들어 가라는 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되면서 초대 지회장을 맡게 되었다. 말이 지 회장이지 구호를 외치는데 손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였다. 동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464 실은 노동운동보다는 살아있는 참교육이 더 마음에 다가와 있었다. 연수와 집회에 참가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겼다. 그들의 경험이 모두 가 나의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무실의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이때 만났던 사 람들이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교무실은 주임교사들과 몇몇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48명 중 34 명이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에 뜻을 함께하여 힘을 보태주었다. 교장 수녀님은 교육부의 이 념 공세에 시달렸지만, 우리 재단인 수녀회를 설립하신 마텔 수녀님과 성당의 K 신부님은 든든한 후원자이셨다. 이분들은 내가 평생 동안 기억해야할 분들이다. 6) 획일적인 보충수업을 폐지하다 1991 년 그동안 획일적으로 실시하던 보충수업을 폐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학교에서 아침부터 밤중까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으로 붙잡 아 주기를 원했다. 초중학생 때처럼 부모가 학습을 지도할 수도 없고 사교육에 맡 기기에는 비용이 적지 않고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교사는 수업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보충수업비가 생활비에 큰 보탬이었으니 은근히 초과 수업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학교장이 보충 수업비 총액의 25% 는 임의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반강제로 실시할 수밖에 없 었다 년, 제2 차 청년교사들의 반란(?) 이 모의되었다. 보충수업의 문제점은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문제 풀이 연습만 하는 방식은 효과적 이지 못하다는 것과 수업 시수를 충분히 확보한 교과의 수업밀도가 느슨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개선안으로 교과별로 복수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모든 교과가 참여하고 교과 진도처럼 진행하는 획일적인 보충수업은 폐지하자는 안이었다. 대신에 자율학습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율학습 교재를 재구성, 제작하기로 하였다. 공부하라 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하는 것은 교육전문가 인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학급담임과 교과담임의 면담을 통하여 학생들 스스

465 로가 공부할 내용과 방법을 의론하고, 각자의 목표에 따라 스스로 학습하는 습관을 기르자는 의도였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강제로 주입시켜서 될 일이 아니 다. 교무회의에서 정식으로 제안하고 토론하면 심정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아도 속내 를 드러내놓고 억지논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선배 선생님들에게는 미안했지만 판 정승을 하였다. 다음문제는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는 교장 수녀님이 직접 맡는 수밖에 없었다. 교장 수녀님과의 면담에서 우리의 개선안대로 6 개월을 시행한 후, 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면 보충 수업비를 받지 않고 야간까지도 보충수업 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또한, 그 판단은 교장 수녀님이 하도록 하였다. 교장 수녀님도 동의하시고 하루에 1 개 학급씩 학부모를 초청하여 간담회를 하였다. 1-2 학년 16개 학급의 학부모 간담회를 하는데 1 개월 이상이 걸렸다. 교장수녀님 엄청 나게 고생하셨다. 이렇게 하여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보충수업은 폐지되고,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선 택하는 보충학습이 시행되었다. 학생들은 보충수업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필 요한 내용의 보충학습과 능동적인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학력평가 때마다 이전에 비하여 성적이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자리를 잡으면서 탄력을 받아 성적이 향상되고 있었다. 보충수업이 학생들 의 학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고에 실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셈이 었다. 소통을 위한 통로가 있어야 했다. 이미 관행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의 벽은 상상보 다 훨씬 견고하였다. 기득권을 가진 선배교사들에 대한 후배교사들의 무력감은 청 년교사들을 방황하게 한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임교사들 중에서 청년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선배교사들을 찾아, 합리적인 요구를 전달해주기만 한다 면 청년교사들도 협력하기로 하였다. 실제로 학생주임교사를 선출할 때, 이 선배교 사를 당선시켜 학생회장 직선제, 복장, 두발 등의 학생규정들을 개선하였다. 7) 영어과 단계별 이동식 토의학습 도입

466 1993 년, 영어과 교과협의회에서 단계별 이동수업 모델을 제안하였다. 학생들의 학력에 차이가 있고 좀더 활발한 수업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교사들의 동의가 필요하였다. 필요성, 운영방식과 기대효과를 설명하니 대 체로 동의하였으나 준비할 일들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강의식 수업방식에 익숙한 교사들 중에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었다. 한 교정에 중 고등학교가 병설이었 으므로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단계별 이동식 토의학습을 하는 고등학교에 참여하든 지, 기존의 강의식 수업을 하는 중학교에 참여하든지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 에서 중학교로 이동하고 중학교에서 한분이 고등학교로 오게 되었다. 8명의 영어과 교사들 중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교사가 3 명, 효과를 기대하지만 무엇을 어떻 게 해야 할 것인지 엄두가 나지 않는 교사가 3 명, 그리고 새로운 방식이 업무를 과 중하게 할 거라고 걱정은 하지만 참여는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교사가 2명 정도 이었다. 이정도로 동의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이 과정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 다. 우선 대상은 1-2 학년만 단계별 이동식 토의학습을 시행하기로 하고, 3학년은 제 외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데는 문제유형에 따른 연습문제 풀이가 효과적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입시준비에 타격이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격차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굳이 수준별로 분류하기 보다 는 단계별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출발점에서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학생들의 경우, 내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학습 속도상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시수운영은 1-2학년 학기별 4 단위 중, 2단위는 기존의 방식대로 교과서를 활용 하되 교수학습 방법은 지도교사의 재량에 맡기고, 다른 2단위는 단계별 토의학습으 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단계별( 또는 수준별) 학습의 성패는 학생들의 능력에 맞는 단계 설정과 교재의 재구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학년부터 2학년까지 4학기를 4 단계로 나누고, 학습속도가 좀더 빠른 학생들을 위하여 1단계를 추가하여 5단계로

467 설정했다. 단계의 수준을 협의하여 단계별 교재를 재구성하였다. 교재 1권의 작업 을 마무리하는데 방학을 모두 헌납하였다. 권당 5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하기 로 하였으나 학교재정이 여의치 않아서 회식으로 대신하였다. 4개 학급을 묶어서 단계를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영어교사 4명을 단위로 시간표를 만들려니 다른 교과 교사들에게 약간의 불편을 주게 되었다. 강의식 수업 은 1시간의 학습준비만 하면 8 개 학급에서 활용할 수가 있었는데, 이건 같은 교실 에서도 소집단별로 진도가 다르니 초기에는 교사들의 수업준비가 많이 힘들었다. 어디 수업준비 뿐이랴. 학년 말이면 평가회의를 통하여 방법을 개선하고 계속하여 교재를 재구성해 나간다. 교사들의 헌신성에만 의존하면 이런 방식이 계속하여 유 지 발전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율학습 시간에는 읽기자료로 예습을 해야만 수업 중 토의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토의학습 시간에는 발표하고 질문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학생들이 주도하게 되어 수업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교실붕괴, 학교붕괴라는 말이 등장하던 시절이었으나 우리 교실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았다. 수업시간 한 시간 동안에 한 학생이 2회씩만 질문한다 해도 2회 이상의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140회 이 상의 질문과 설명이 오가는 활력이 넘치는 교실이 되었다. 교사는 소집단별로 해결 할 수 없는 경우에만 간여한다. 기존의 수업장면에 익숙하던 윗분들은 마땅하지 못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 학력진단평가를 치룰 때마다 성적이 향상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다른 교과까지도 확대 실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사들의 의식변화이고 그 다음은 교사와 학교가 창의적 교 육기획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 체계의 확립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나서서 지시와 간섭을 많이 하면 할수록 시대적 현실적 요구로부터 멀어 질 것이다. 8) 참여의 영역을 확대하다 자율적인 교사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 등장하자 교육당국과 학교현장에서는 이념공세로 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었지만 교사들은 더욱 활발하게 영역을 확대하

468 고 있었다. 이 지역의 책임을 맡고 있던 나에게 힘을 보태겠다며 48명의 교사들 중에서 후배교사 두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32 명이 후원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학교의 민주화화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하기 위하여 각종 연수에 참여하고 학급운영에 변화를 시도하였다. 나는 동료교사들의 이런 활동을 돕기 위하여 연수 회를 마련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일을 맡으며 학급운영에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였다. 학생지도부문은 그동안 학력지상주의에 의하여 오직 경쟁의 상대로만 여기던 살 벌한 급훈 바꾸기, 지시 전달 위주의 조 종례시간에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만남을 위 한 훈화자료를 제공하고 활용하도록 하였다. 공동체 복원을 위한 학급모둠일기 쓰 기, 학급문집 만들기와 학급문고를 운영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학생이나 학부모님 께 편지 쓰고,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상호간에 이해와 소통을 돕게 하였다. 그리고 자율적인 학생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학생회장 입후보 자격을 완화하고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할 수 있도록 직선제로 전환하였다. 교사들에게는 학생 상담 요령, 학생 상벌 요령, 학생생활기록부 항목별 기록 모 형, 학급경영 요령, 효과적인 교수 학습 모형 등의 자료를 나누어 주고 각자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변화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학교장과 주임교사들의 제지를 받았지만 교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전 교사들의 투표로 돌파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원칙을 찾게 되었다. 제기하는 문제는 정당해야하고 공익적이어야 한다. 문제해결방식은 가능한 모든 구성원( 또는 당사자) 이 참가하되 책임은 피하지 않는 다. 패배가 예측되는 싸움이라도 사람을 얻을 수 있으면 시작하고,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라도 사람을 잃는 싸움이라면 뒤로 미룬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얻는 것이 일의 성과보다 더 중요하였다. 3. 다시 청년교사로서 1996년에 그동안 연합고사로 신입생을 선발하던 천안지역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학교별 선발방식으로 바뀌었다. 학교별 신입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육과정

469 운영을 특성화하여 학교차별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1997학년도 겨울방학 교사연수 회에서 1박 2일 동안의 난상토론을 통하여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보았 다. 학교교육이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vision) 을 제시하지 못하고 상급학교 진학 시험을 준비하는 데 급급해 왔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사물의 현상적 관 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암기하는 지식 정도이어서 학생들이 상황을 판단하 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혼자서 수행하는 일은 감당하지만 남 을 배려하고 동료와 함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학교에서 역동적으로 생활하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안을 다음 과 같이 정리하였다. 1 학생들은 체험을 통하여 성장한다: 교과서 속의 용어나 원리는 체험을 통하여 개념화 되고, 그 관계를 파악하여 지식을 구조화한다.< 체험활동> 2 인간의 삶은 자연/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다: 인성교육은 개인의 품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한다. 문제 해결은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인성교육> 3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벗어나야 한다: 가장 짧은 시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독서와 토론 그리고 만 남이다.< 독서, 초청강연> 4 사회생활은 이해력뿐만 아니라 표현력을 요구한다: 교과의 시험은 듣기 와 읽기 중심의 이해력을 평가하지만, 사회생활은 여기에 말하기와 글쓰 기 등의 표현력을 추가로 요구한다. 체험활동 후에는 보고서를 제출하거 나 발표하여 체험을 공유하게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 5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한다: 지역사회도 교실 밖의 학교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 사회단체는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력Pool 을 학교교육에 활용하고, 활동 인력이 부족한 시민/ 사회 단체활동에 학생들의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을 연계하면 상호보완적인 프 로그램이 될 수 있다

470 제1 학년은 체험활동과 독서를, 제2 학년은 독서와 토론을 강화하고, 그리고 제3학 년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입시준비체제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1998학년도부 터 2005 학년도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 신나는 토요일> 로 정하 여 운영해오고 있다. 1) 주제별 수학여행( 현재)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 고 했다. 학년협의회에서 보고, 듣 고, 느끼고, 배우는 체험학습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하여 첫 번째 사업으로 주제별 수학여행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4개의 주제별 코- 스를 도상( 圖 上 ) 으로 선정하 여 안( 案 ) 을 작성하고, 학생들에게 개인별 신청을 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 할 수 있도록 하고 학습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여 학습에 도움을 주고 보고서를 그룹별로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후 설문 조사를 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회의를 통하여 나타난 문제점들을 계속하여 개선해오고 있다. 교사들이 준비하는 데는 4배나 힘들었지만 학생들의 만족도는 그만큼 더 크게 나타났다. 담임교사들도 만족스러운 결과에 무척 고무되었다. 교사들에게는 물질적 인 보상보다 정신적인 성취감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2) 책가방 없는 날( 현재)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학과공부에 몰두하고 매주 토요일은 체험활동으로 교 육과정운영을 계획하였다. 우선 CA와 HR을 토요일에 배치하고 2시간의 학과는 월 요일에서 금요일사이에 분산 배치하였다. 획일적인 보충수업이 폐지되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주요 내용은 인성교육, 초청강연, 동아리활동, 체험활동으로 결정하였 다. 프로그램 교재를 제작하고 교사연수를 수시로 하였다. 보고서를 읽고 평가회의 를 매주 해야 하지만 그래도 교사들은 신나는 편이었다. 학생들은 토요일의 프로그 램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471 3) 우리들의 축제( 현재) 미루던 결정을 하기로 하였다. 계획은 치밀하게 하되 부족한 것은 평가회의를 통 하여 개선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동안 시행해오던 체육대회, 성모( 聖 母 ) 의 밤과 함 께 무대와 전시행사를 묶어서 3 일간의 축제가 이어졌다. 첫날은 체육대회, 둘째 날 은 성모의밤, 셋째 날은 전시와 무대프로그램이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학생회와 동 아리에서 준비하고 진행한다. 조언하는 정도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절차와 방법만 4) 모의 법정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조정하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었다. 전 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은 내가 맡고, 주제를 정하 고 내용을 준비하는 것은 학생들이 역할을 분담했다. 담임교사는 일정과 진도를 확 인하며 도와주었다. 현직 법조인( 판사, 검사, 변호사) 들이 직접 참여하여 지도 조언 을 해주고 있다. 상대의 주장과 근거를 이해하고 반론을 준비하며 민주주의와 인간 관계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학급별 1 회씩 실시하고 있다. 5) 장애 체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지키게 하는 끈이다. 이성적으로 인정하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 이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매년 학급별 1 회씩 실시하고 있다. 올해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한 윤혜란씨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지역사회의 시민단체 활 동가들 중에 우리학교 출신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472 6) 기타 이밖에 환경체험, 문화체험, 직업체험, 오리엔티어링, 학교숲 가꾸기 활동들도 살 아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이다. 학급별 합창대회로 제1 학기를, 동아리활동 발표회로 제2 학기를 마무리한다. < 참고> 책가방없는날 1) 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과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 1 명상의 시간: 매일 아침 방송(08:00-08:05) 2 3 세상 읽기, 생각 키우기: 월 2회 인성교육: 월 2회 프로그램운영 4 봉사활동: NGO 활동 참여, 개인 소집단별 노인, 장애인 지원 활동 5 이웃돕기: 개인별로 민간시설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매월 회비를 모금 6 자매제도 운영: 각 학년 같은 반, 번호 학생들의 자매제도 2) 교수 학습방법 개선 3) 1 국어과: 독서토론지도, 토의식 수업, 애송시집 제작 2 영어과: 단계별 이동 소집단 토의식 수업 운영 3 사회과: 다양한 매체활용 교육 4 과학과: 실험 실습 중심수업과 매체활용 교육 5 보충수업 폐지 6 자율학습: 자료제작 체험학습 1 2 주제별 수학 여행: 주제별 4개 코- 스, 개인별 선택, 과제 부여 오리엔티어링: 주제( 문화, 생활, 지역사회) + 내고장 알기 3 체험활동: ᄀ역사 문화 탐방, ᄂ직업체험, ᄃ장애체험 등 4 조사활동: ᄀ물가, ᄂ간판, ᄃ교통, ᄅ 생태 환경탐사 등

473 4) 5 방문활동: ᄀ관공서, ᄂ민간단체, ᄃ복지시설 등 6 기타활동: ᄀ타임캡슐, ᄂ모의재판, ᄃ모의국회, ᄅ민속놀이 학교 토론문화 학급회의( 매주 토요일 08:00-08:30) 학생회 간부 수련회( 연4 회) 학년담임 협의회( 주1 회) 4 교과협의회( 연 6 회) 5 학부모협의회( 학년별 연2-4 회) 6 직원회의( 주 2 회: 월, 목 08:00-08:20) 5) 교원의 전문성 책무성 제고 6) 7) 직무연수 ( 월2 회) 직원 연수 ( 연1회-2 일간) : 외부 강사 초청 강연과 토론 공개수업 자기연수 학생 중심 활동 1 학교축제(3 일간) ( 교과별 연2 회) ( 자기수업녹화 분석) 2 합창대회( 연1 회, 학급별) 3 동아리 발표회( 연1 회, 동아리별) 4 합창반 정기 공연( 연 1 회, 11 월) 5 학생회 조회 기타 외부지원 협력 사업 외부인사 초청강연( 연4 회) 초청공연( 난타, 국악 관현악, 경찰오케스트라, 안데스민속공연단 등) 체험환경교육-환경부지원 학교 숲 가꾸기 운동-시민단체지원 4. 학교혁신을 어렵게 하는 것들

474 1) 교육철학의 부재 변화와 혼돈의 시기에는 문제 상황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지금 서있는 위치 조차도 파악하기 어렵다.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철학이 그 기초가 된다. 우리 교사들은 관행적으로 누적되어온 교육문제에 의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 다. 그러니 교육원론과 교육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면서 목적과 수 단이 전도된 교육현장을 헤매고 있다. 철학이 없으면 견고한 현실의 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연구모임은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정해진 주제에 대한 자료를 읽고 토론을 통하여 자신들의 철학으로 만들어갔다. 혼자서 공부할 때에는 도그마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토의와 토론은 이런 위험성을 소거하고 서로에게 힘 이 되어 줄 수 있었다. 2) 교사의 의사결정권 부재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 대한민국 초중등교육법이었다. 무 엇을 어떻게 가르치라는 명령이 없으면 교사는 할 일이 없었다. 영어시간에 수없이 등장하는 외국의 자유, 평등, 평화, 민주주의, 인권 등에 관한 글은 번역하고 문제 만 풀어주어야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윗분들에게 경고가 내려왔다. 동료 교사 한 분이 민족분단을 다루던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 고 쓴 글을 학급게시판에 붙였다고 그 윗분이 관계기관에 조사를 의뢰한 적도 있 었단다. 교과운영이나 학급운영을 새롭게 시도하려해도 윗분들 허락을 받아야 된다. 혼자 라도 그냥 돌파하기로 하였다. 혼내면 혼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고. 교장선생님들 이런 것은 모르셨을 거다. 교장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교사가 시 행하지 않으면 평생 이룰 수 없고, 교사가 하려고 하면 교장이 떠나든지 마음이 바 뀔 때까지 내공만 쌓으면서 기다리면 된다. 학교장은 관리자이고 교사는 교육활동 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475 학교장이 교육 활동의 모든 영역에 전문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활동단위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활동단위에서 지기로 하였다. 그래야 창의력 을 발휘하고 책무성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프로그램 기획에서 시행, 평 가까지 각종 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매년 반복되는 프로그램도 방식이 새롭게 개선 되어 이제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안정되었다. 3) 관료적 간섭 교육부-시도교육청-학교의 수직적인 관료체계가 단위 학교에서의 창의적인 교육 활동에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각종 지침, 지시, 전달, 보고, 평가항목들이 여건이 다른 학교들에게 획일적으로 전달된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계획하면 결과도 학교 에서 평가해야 할 텐데 교육청에서 학교를 평가한다. 교육청에서 학교를 평가하면 관료적 속성상 지침의 이행정도를 획일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단위 학교의 교육 기획력이 제대로 평가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장애체험, 성격유형검사, 가치관경매, 인간관계 맺기, 생활관 교육 등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교육 청의 평가항목은 효 실천을 통한 인성교육 만 평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승진과 밀 접한 관련이 없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교육청보다는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로부 터 평가받는 쪽을 선택했지 공립학교 같으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교사의 동력 은 성취감이지 물질적 보상이나 승진이 아니다. 물질적 보상이나 승진은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 4) 교사의 전문성 부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다루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교사들은 미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역사회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관계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어 서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였다. 초청강연, 모의 법정, 환경체험, 장애 체험, 봉사활동 등은 교육활동과 시민운동을 결합한 좋은 사례였다. 이후 지역사회

476 인력풀(Human Resources Pool) 의 인맥관리를 해오고 있다. 5) 교육적 목표와 학부모들의 현실적 요구의 차이 학교교육의 목표가 지 덕 체의 조화로운 인간 육성 이지만 학부모들의 현실적 요 구는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성적향상에 있었다. 인성교육이 아무리 중요하 더라도 성적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학부모와 학생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래서 처음부터 교과수업 방식과 자율학습 강화 방안을 실천과제로 선정하였다. 인성교육과 학력향상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자신의 정체성 찾기, 인간관계, 자신의 미래 설계가 동기유발 과정이고 이런 과정 에서 획득한 수용적인 태도가 학습효과를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 논리였다. 토의 학 습, 독서와 체험활동을 통하여 사고력과 표현력이 향상되고 그 결과가 학력평가시 험에서 입증되고 있다. 획일적인 보충수업이 없이도 인성교육의 바탕에서 자율적으 로 실시하는 공부가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 고 있다. 5. 학교혁신을 위하여 해외에서 공부한 많은 교육학자들이 한국의 교육 문제를 진단하여 처방을 제시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일까? 외국의 이론은 외국의 역사와 문화적인 배 경에서 생산된 이론이다. 성된 현상들이다. 우리의 교육문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에서 생 1) 교육개혁의 시대적 요구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전통적인 근대학교의 역할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근대 교 육은 산업사회의 발달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

477 능을 습득한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대형화되었다. 과거에는 학교 교육이 평생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제공하여 주었으나, 이미 지식 정보화 사회로 접어든 현재에는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게 되 었다 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일생 동안 평균 7.4회의 직업을 전 환하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직업의 전환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산업 사회에서는 지도자가 사회를 이끌어 왔으나 주변 환경이 급변하는 지식 정보화 사 회에서는 개인이 가치를 판단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기존의 지식에 의존하기 보다는 정보를 습득하고 가공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가는 도적 학습 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자기 주 현재와 같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방식으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내는 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2) 성적이 곧 학력일까? 학교에서 공부한 후에 치루는 시험문제는 거의가 답이 하나밖에 없다. 학생들의 공부는 사람의 특성과 사물의 특성,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사물과 사물의 관계 그 리고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배운다. 특성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데도 시험문제에 는 해답이 하나밖에 없다.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다양한 해답이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해답만을 강요한다. 이 결과를 학력이라고 믿고 있다. 교과서 에서 벗어난 현상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 시험 성적에 너무 집착하는 입학 제도상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한다. 3) 왜, 학교에서 배운 것이 현실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 나? 교과목이 세분화되면서 교과서 속의 지식은 편린화( 片 鱗 化 ) 된다. 세포가 모여서 부분이 되고, 부분들이 모여서 유기체가 되는 것인데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식의

478 생명을 앗아간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으로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하다.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목적 중 하나가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 하여 문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전문성을 해치지 않는 한, 통합교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4)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지 식의 습득도 이 관계 맺기에 필요한 도구나 수단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사 람이 일생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운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일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성교육이 교육목표의 장식이 아닌 실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5) 학생들은 어떻게 학습하나?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지적인 호기심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가득차있다. 하지 말 라 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하라 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라 는 말이 고작 이다. 수업 시간 내내 필기하면서 교사의 설명에 집중하기는 힘들 것이다. 수업시 간에 활기차게 수업하는 방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또한, 행사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성장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활동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6) 교육은 학교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만으로 감당하기가 어렵다. 지역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자체도 교육의 장( 場 ) 이다. 시민 사회단체에는 분야별로 상당한 전문성이 있다. 인력풀(Human Resources

479 Pool) 을 학교교육에 활용하고, 활동 인력이 필요한 시민 사회단체 활동에 학생들의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을 연계하면 상호보완적 프로그램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7) 연구 시범학교의 효과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여하여 시행하는 연구 시범학교 제도를 평가한 결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운영 결과 보고서에는 효과가 있다는데 일반화되기는커 녕 당사자나 당해 학교도 지속적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1-2년 동안 한 가지 과제에만 예산과 인력이 집중되면 보고서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밖 에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종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반화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승진을 위한 연구 점수는 매력적일 것이다. 8) 순환근무, 조직의 활력인가 능력의 분산인가?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조직의 활력을 위하여 시행되는 순환근무제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의견을 통합하고 지속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 움이 있다. 앞서 나가는 학교들의 조직 특성을 보면 의견 통합이 용이한 소규모 학 교이거나 구성원의 이동이 거의 없는 사립학교가 대부분이다. 공립학교들도 학교별 로 교육과정을 특화하고 교사와 학교장까지도 공개모집하면 교육개혁이 가능할 것 같다. 9) 승진제도, 독인가 약인가? 의사결정권이 수직적인 조직이라면 승진구조가 필요하겠지만, 처음부터 교직은 교사 자체가 학생을 지도하는 성숙한 인격체이다. 학교도 조직체인지라 관리자와 중간 관리자를 두고 있지만, 승진이 목적이라면 교사의 교육활동은 수단으로 전락 할 수밖에 없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역사적 경

480 험으로 배운 우리에게는 심히 염려스럽다. 10) 학교 평가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학교평가는 교육기획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보다는 학교를 획일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지휘 감독기관이 평가하는 경우에는 시책사업이나 지시 전달 사항을 얼마나 수행하였는가를 평가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 문이다. 평가가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제3 의 기관에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현행과 같은 평가를 계속하는 것은 다양한 단위학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평 가가 되든지 단위학교의 교육기획력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단위학교의 교육기획력 제고에 노력해야한다. 지시 전달하는 내용이 많을수록 교육현장에서의 창의적인 교육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활동 평가도 제3 의 기관이 시행해야 본래의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6. 영원한 청년교사들 다른 학교에 비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다른 학교 와 같이 진학준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 회, 시민/ 사회단체 사이의 신뢰감이 높고, 교사들은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대하여 고뇌하고 토론하면서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 학교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고 교육개혁의 방향을 협의하고 있다. 공교육은 공급자 중심이어서도, 수요자 중심이어서도 안 된다. 공급자 중심이 되 면 교육제도의 보수적인 특성 때문에 사회의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고, 수요 자 중심이 되면 교육목적이나 목표보다는 현실적 요구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수요자 중심 보다는 수요자- 공급자 중심 교육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학습은 정보의 획득만이 아니라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 들어 가는 지식체계의 재생산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유지

481 하도록 적용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들의 관심 영역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 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함으로써 교육활동에서 학생들을 대상화하지 않 고 주체로 세워 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변화가 발전의 기회이지만 안일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위기가 될 것이다. 여건만 탓하고 있을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 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현재에 안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문제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서 새로운 한 걸 음을 무리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내디뎌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청년교사로서 살아온 길이고,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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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檀 國 大 學 校 第 二 十 八 回 학 술 발 표 第 二 十 九 回 특 별 전 경기도 파주 出 土 성주이씨( 星 州 李 氏 ) 형보( 衡 輔 )의 부인 해평윤씨( 海 平 尹 氏 1660~1701) 服 飾 학술발표:2010. 11. 5(금) 13:00 ~ 17:30 단국대학교 인문관 소극장(210호) 특 별 전:2010. 11. 5(금) ~ 20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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