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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동구의

2 대구 동구의 김기현 지음 대구 동구의 발행일 2013년 1월 21일 지은이 김기현 발행인 김성수 발행처 대구동구팔공문화원 주소 대구시 동구 백안동 전화 팩스 전자우편 홈페이지 편집디자인 제작 도서출판 디자인플랜 c 김기현 2012 ISBN 이 책은 대구광역시 동구청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은 e-cip 홈페이지(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CIP제어번호: CIP )

3 발간사 광야에 건설된 지구촌의 많은 도시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히 역사와 문화가 다양하며 를 열며 많은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로 숨 쉬고 있는 긍지의 고장인 것입니다. 고려의 고승이요 국사였던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팔공산에는 기 러기떼 같이 많은 탑과 절이 있다 고 하셨습니다. 팔공산 동구에는 이러 한 불적위에 장중한 전설과 설화 및 영험담이 천지에 내린 봄꽃 같이 다 양한 문화와 스토리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2012년 총림( 叢 林 )격을 전승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는 말로 된 문학입니다. 우리의 전통사회 가 해체되고 삶의 방식이 급격히 변하면서 구비문학의 중요한 전승과 창 조기반도 약해지는 가운데 지역의 많은 이야기들도 점차 잊혀지며 사라 부여받은 대본찰 동화사의 신비한 창건설화나 사찰문화, 파계사와 왕실 과의 이야기, 세계 최고였던 불타버린 부인사 대장경 등, 그야말로 이야 기의 보고입니다. 져 가고 있습니다. 동구에서 927년에 있었던 견훤과 왕건의 동수전투는 전란의 처절한 현대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량성과 소리와 영상의 직접성을 내세운 전파문학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전설이나 설화, 민담 등의 전래된 이야기나 일상적 삶속에서 겪은 일과 각자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흔적이 우리지역에 지명으로 남아있는 독보적인 큰 이야기입니다. 근자 에 스토리텔링화되고, 동구 왕건길 걷기여행코스로 개발이 되어 워킹매 니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전하는 형식인 이야기들은 기록문학과 함께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 살아있 습니다. 15C 조선 세종 때의 석학인 서거정이 칠언절구로 된 10수의 시로 대 구를 예찬 했습니다. 서거정이 예찬한 대구 10경( 十 景 )중에 4경이 동구 우리지역 동구는 팔공산과 금호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로 에 있음은 빼 놓을 수 없는 동구의 자랑스런 이야기입니다. -공산팔경은 004 발간사 005

4 두말 할 나위 없음이구요- 금호강에 놀이배 타고 밝은 달에 취해 돌아오 면 중국의 오호 부럽지 않다고 한 제1경 금호범주(금호강의 뱃놀이), 제 6경 북벽향림(도동 절벽산의 측백수림 -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 제 7경 동화심승(동화사에서 스님을 찾음), 제9경 공영적설(팔공산에 쌓인 그동안 문화원에서 지역의 문화유산과 사람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몇 권의 책을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구의 역사 문화들 을 집적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팔공산 사랑운동"과 함께 좀 더 본격적으 로 이 사업을 전개해 볼까 합니다. 눈)이 그것입니다. 금번에 집성을 해본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 동구의 중요한 스토리텔링으로 첫째, 팔공산과 동화사 등의 불교문 화, 둘째, 부인사와 최고의 지혜 대장경, 셋째, 불로고분과 고려왕조의 기운을 틔운 공산전투, 넷째, 아양루가 있는 금호강을 꼽고 싶습니다. 된 것입니다. 구비문학부문이다 보니 탐방과 채록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으나 대대로 지역을 지켜 오신 향사( 鄕 士 )들의 뜻있고 흔쾌한 동참의 감사가 있었고 담고 꾸려내는 분들의 정성과 노고가 각별 했었습니다.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는 팔공산과 금호강을 중심으로 한 동구민들의 역사와 문화이며 지역민들의 생각과 가치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동구 지역에 있는 신화나 전설, 효행담, 민담 등을 채록한 이 이야기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며 훌륭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끝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여운을 새로운 사 업의 동력으로 옮겨 다음의 알찬 준비를 기하고져 합니다. 이야기 전체 를 이끄신 김기현 교수님과 이재만 구청장님을 비롯한 구의회 강대식 의 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소중한 말씀들을 옮기고 나눠주신 많 동구의 이야기는 지금도 어디선가 전승되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를 드리며 정려히 손모웁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팔공산에서 금호강에서 혁신도 시에서 동대구역에서 미래의 어느 날 신화나 전설이 될 찬연하고 감동 적이며 행복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1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장 김 성 수 006 발간사 007

5 축사 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며 보람을 나누는 힘찬 출발점이 되어 동 구를 재발견하고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후손들에게 동 2012 향토사자료집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구 구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며, 우리 고장의 참모습을 자랑스럽게 후손에게 전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세월의 저편에 흩어져 있던 전설과 민담을 일일이 찾아서 책으 로 엮어 주신 경북대학교 김기현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원 여러분에게 감 사드리며, 전 구민과 함께 향토사자료집 발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 지역문화를 개발 보존하고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구민의 문화수준 드립니다. 향상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에서 우리지 역의 전설과 민담을 찾아서 집대성한 2012 향토사자료집 동구의 오래 동구팔공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된 이야기 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잊혀져가는 동구의 오랜 역사가 만든 이야기 를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향토사자료집 발간에 정성을 다해 오신 김성수 2013년 1월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이 재 만 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향토사자료집 발간으로 구전으로 전승 되어온 우리지역만이 갖고 있 는 재미있는 동구의 이야기 를 하나로 묶어 잘 정리해서 고장의 구비문 학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하며, 또한 동구의 발전과 영광 008 축사 009

6 책을 펴내면서 ~ 라거나, 옛날 고려 개국 시기에 ~ 라는 과거의 시간이 이야기의 앞 머리에 나온다.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이야기는 말로 표현하고 말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이다. 말로 존재하 고 말로 전해지기에 쉽게 잊어지거나 변한다. 글자처럼 오래 고정된 모 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이야기를 변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는 방식이 이야기를 변하게 한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재미있게 꾸 며낸 말이다. 꾸며낸 것이란 사실( 事 實 )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허 구적인 것을, 거짓된 것을 만들어 낸 것이란 뜻이 아니고 본디에는 없었 기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서 재미있고 그럴듯 하게 꾸미고 다듬어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실이 아닌 사실이며, 사실여 부 보다 재미와 의미 있는 교훈이 더 주목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일정한 몸짓이나 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냥 긴 말의 엮 음이기에 특별한 구성과 짜임에 의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 한 부분만 기억 했다가 다시 짜 맞추어 전해준다. 따라 이야기꾼의 말하 는 역량과 기법이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야기는 쉬 변 한다. 문헌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이야기는 한번 기록되면 변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기억했다가 말로 전하는 이야기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다. 시대가 가지는 의미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야기는 크게는 민족 전체를 위해 만들어진 신화나 마을의 어떤 존 재물, 사람, 사건 등등을 꾸며낸 전설이나 민담 등등이 있다. 그래서 이 야기의 역사는 매우 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람이 모여 살면서 만든 것이니, 그리고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엮어 만든 것이니 그 종류와 양도 매우 많다. 그래서 이야기는 늘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오래된 것이라서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가? 이야기도 새 로워야 재미있고 가치 있는가? 이야기를 만들어 이를 다른 이에게 옮겨 말해줄 때,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만이 가진 소통의 공통분 모가 존재한다. 만일 이 공통의 요소가 필요 없고 무의미하다면 그 이야 010 책을 펴내면서 011

7 기는 사라진다. 가장 오래되고 큰 이야기인 신화는 민족끼리, 전설은 지 역에서, 민담은 어느 곳에서나 이 공통분모가 있기에 아직까지 전해지고 그것이 필요하고 진실 된 이야기라 믿었기에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 이다. 남아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야기가 사라지고 없어진다면 이미 그 이 야기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요, 그 이야기가 가진 교훈과 가치가 퇴색하 여 소통의 공통분모를 잃어버린 때문이다. 여기 대구의 주산 팔공산 자락과 금호강을 사이 한 이 대구광역시 동구 에서 전해지던 오래된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는 신성성이 사라져 이야기가 진실하며 사실이라는 믿음이 없어 져 변한다. 전설은 실제로 있었다고 믿었던 그 믿음의 증거물이 사라져 변한다. 그리고 민담은 신성하거나 진실하다기보다는 재미있고 교훈적 인 이야기인데 재미가 사라지거나, 교훈적인 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맞지 않을 때 변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는 신화가 전설이 되고, 전설은 민담으로 바뀌어 입에 오르내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그 사이 급격하게 진행된 산업화로 인해 전통사회와는 세상사는 방 법이 변하고 바뀌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마저 바뀌어져 이제는 그 소통의 공간마저 사라지고 있기에, 이곳의 옛이야기를 모아 선조들의 지혜와 의식을 지키고 보듬어 보고자 함이다. 이 지역에서 만 들어져 그 진실성과 재미로 인해 전승되어 온 이곳의 전설과 민담은 곧 이 동구의 역사요 이곳 사람들의 의식태이다. 역사의 현장이, 진실성을 입증할 증거물의 현장이 이곳 동구이기에 동구의 이야기 는 이곳에서 오늘날 많은 이야기는 만들어진 시대나 장소, 그리고 이야기하고 이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다른 세상이 되어간다. 그러나 옛날 에는 있었고 지금은 사라지는 이야기라면 옛날, 이 땅, 그곳에서 어느 때 우리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해서 만들어진 그 가치 있었던 이야기는 오 늘날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전설은 지역민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 고장에서 실재하고 있었던 이야기,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꾸몄기에 동구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곳이며, 신라 와 고려문화의 중핵적인 역사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사시대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긴 역사의 흔적을 전하는 이야기에서 만나고자 한다. 여기 모은 이야기는 이곳 동구에서 이곳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시절 부터 만들어, 가치 있다고 전해 내려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012 책을 펴내면서 013

8 승되어 오늘의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격하게 도시화를 이룬 여타 지역에 토박이 거주자가 드물거나 이야기가 남아 전하지 않음으로 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동구의 오랜 역사가 만든 긴 삶의 터전에는 매우 많은 이야기가 전한 다. 많은 문헌에 전하는 이야기[문헌설화]가 있고 입으로 전하는 [구비전 승설화] 이야기도 있다. 문헌설화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를 비롯한 역사서와 개인 문집, 사찰의 기록물 등이 있어 여러 관심 있는 분들의 노 작이 많이 남아 있다.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이번 책에서는 불노동 지역에서 부터 팔공 산록까지의 지역에서 조사 채록한 이야기와 관련 문헌설화 들 을 주로 모았다. 이중 동화사, 파계사나 신숭겸에 관한 기존의 여러 이야 기를 모아 두는 것은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남게 되는가를 함 께 살펴보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민담도 모아 사라지는 이야기 를 모아 그 말맛을 살려두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 조사하지 못한 나 또 구비전승된 설화이던 것도 앞선 여러 저술물에 의해 이미 문헌설 머지 지역은 다음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 화로 바뀌어져 영원히 기록한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전하게 되었다. 이 책 에서 모은 것들에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렇게 정착 기록된 구비물이 많다. 그 이유는 동구지역에서 이제 옛 이야기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음 이요, 이야기를 제대로 구연하고 전승하는 소통의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 이다. 지난 한해 학생들과 함께 팔공산 지역을 다니면서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은 곧 모래 벌에서 금을 찾는 일 보다 더 힘들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이 살펴보는 것은 흩어진 자료 지금 많은 학자들은 구비문학의 위기 라고 말한다. 그래서 구비문학 자료를 하루라도 빨리 모으고 갈무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령층이 살 아 계실 때만 가능하다. 지금도 살아 있는 구비문학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다. 특히 이야기 문학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동구의 이야기가 사라진 다면 이 땅에서 살아온 동구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까지 사라지는 것이 되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마저 사라지는 것이 된다. 들을 하나로 묶어 재정리하여 이를 갈무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 동구 지역, 특히 팔공산 유역은 대구의 정신이 되는 문화적 요 그리고 동구의 관할 전 지역을 모두 다 모아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는 출판 사업이 가진 절대시간의 부족과 예산 때문이기도 하다. 소가 많은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신숭겸의 이야기, 동화사와 부인사, 파계사 등의 사찰 이야기, 그리고 선사시대 유물이 있는 봉무, 불노동의 014 책을 펴내면서 015

9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구를 대표하는 이야기 문학이다.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시고 방향을 걱정해주신 대구동구팔공문 화원 김성수( 金 成 洙 )원장과 이응재( 李 鷹 載 ) 이사님, 팔공산지킴이 용수 동의 김태락( 金 泰 洛 ) 님, 공산향우회 최희현( 崔 熙 鉉 ) 회장님, 이정웅( 李 貞 雄 ) 달구벌 얼 찾는 모임 회장님, 영신고 구본욱( 具 本 旭 ) 선생님의 많 은 지도와 편달에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같이 조사와 정 리 작업을 해 온 경북대학교 대학원 유명옥( 柳 明 玉 ) 양에게 고마움을 전 합니다. 부족한 작업이지만 이 지역민과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동구민으로 서의 자긍심이 자리하기를 빌어 본다. 2012년 12월 저자 김 기 현 016

10 차례 발간사 /004 축사 /008 책을 펴내면서 /010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1 장_ 동구의 이야기 전설 / 비롯된 이야기 연기 설화 / 사람 이야기 인물 설화 / 땅이름 이야기 지명 설화 / 효자 이야기 효행 설화 / 기타 이야기 기타 설화 /120 2장_ 재미난 이야기 민담 /151

11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1 장_ 동구의 이야기 전설 1. 비롯된 이야기 연기 설화 2. 사람 이야기 인물 설화 3. 땅이름 이야기 지명 설화 4. 효자 이야기 효행 설화 5. 기타 이야기 기타 설화

12 1 story 비롯된 이야기 심지대사 나무 안내판 심지대사 나무 심지( 心 地 )대사가 세운 동화사 동화사는 493년 극달( 極 達 )이 창건하여 유가사( 瑜 伽 寺 )라 하다가, 832년 심지( 心 地 )에 의해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 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 한다. 그러나 극달의 동화사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 기이므로 법상종( 法 相 宗 )의 성격을 띤 유가사 라는 절 이름이 붙여질 수 없다는 이유로 심지가 창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을 검증받는 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법회에 불골간자( 佛 骨 簡 子 )가 전해지게 되는데 심지는 여기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찾아갔으나 이미 날짜가 지나가버려 참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심지는 거기에 개 의치 않고 땅에 엎드려 참례를 하게 되었다. 법회 7일 째 되던 날에는 마 침 진눈깨비가 심하게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10자에는 눈이 내리지 않 았다. 이것을 신기하게 여긴 스님들은 심지를 당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심지는 굳이 사양하고 당을 향해 조용히 예배할 뿐이었다.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 心 地 繼 祖 ) 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심지는 신 라 41대 헌덕대왕( 憲 德 大 王 )의 셋째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효성과 우애 가 있었고 천성이 맑고 지혜가 있었다 한다. 그는 15세 되던 해 머리를 깎고 중악( 中 岳 ), 즉 팔공산에서 부지런히 수도를 하였다. 정진 중 속리 산 길상사의 영심( 永 心 )이 그의 스승 진표율사( 眞 表 律 師 )로부터 깨달음 법회가 끝나고 팔공산으로 돌아가는 도중 그의 옷깃에 간자 두 개가 끼여 있었으므로 다시 길상사로 돌아가 영심에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영 심은 간자가 함 속에 있는 것이어서 그럴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함을 조사 해보니 과연 간자가 둘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영심이 간자를 겹겹이 022 1장. 동구의 이야기 023

13 싸서 간직해 두었다. 심지가 속리산을 떠나 다시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이 번에도 지난번처럼 간자가 자신의 옷깃에 들어 있었다. 다시 돌아와 영 심에게 말하자 영심은 부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다 고 하면서 그 간자 를 심지가 봉안하도록 하였다. 계 최대의 석조대불인 통일약사대불 이 우뚝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동화사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해내고 있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영심으로 부터 간자를 전해 받은 심지는 그것을 머리에 이고 팔공산 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팔공산 꼭대기에 올라가 부처의 간자를 모시기 위한 길지를 정하기 위하여 산신의 입회하에 서쪽을 향하여 간자를 던 졌다. 간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 지금의 동화사 북쪽 첨당( 籤 堂 )의 우물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심지는 그곳에 집을 짓고 불골간자를 모셨는데 이것 이 동화사가 창건하게 된 연유라는 것이다. 삼국유사 의 저자 일연( 一 然 )은 다음과 같은 시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다. 동화사 불간자의 봉안 이야기 부악( 父 岳 )이 팔공산( 八 公 山 )으로 불리우게 된 내력에는 대여섯 가지 의 전설이 있다. 그 중 한가지가 팔간자 봉안설이다. 간자( 簡 子 )는 선악을 통해 인과응보와 미래를 예지해 보는, 점을 치는 도 구이다. 그런데 이 간자를 미륵불로부터 바로 건네받은 사람이 진표( 眞 表 ) 다. 그런데 기이한 사실은, 이 진표 스님의 출생지가 이 곳 모악산 기슭이라 는 것이다. 生 長 金 閨 旱 脫 籠 儉 懃 聰 惠 自 天 種 滿 庭 積 雪 愉 神 簡 來 放 桐 華 最 上 峰 그 후 동화사는 1190년 보조국사 지눌, 1298년 홍진국사, 1606년(선 조39) 유정, 1732년(영조8) 관허 운구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전한다. 동화사 경내에는 1990년 10월에 착공하여 1992년 11월 27일 준공된 세 동화사 024 1장. 동구의 이야기 025

14 희한한 일은 전주 모악산( 母 岳 山 ) 진표의 팔간자는 많은 사람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쳐두고, 이 곳 부악 동화사에 봉안되고 그로 인해 부악에서 공산( 公 山 )으로 바뀐 산명( 山 名 )이 다시 팔 간자의 머리글 팔( 八 )자를 더하여 팔공산으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표 스님은 김제 만경에서 태어났다. 12살에 금산사 숭제법사( 崇 濟 法 師 ) 밑에 들어가 머리깎기를 간청하니 스승 숭제가 이르되, 나는 일찍이 당에 들어가 선도( 善 道 )에게 배운 후 오대산 문수보살 로부터 5계( 五 戒 )를 받았다. 진표가 스승 숭제에게, 부지런히 수행하면 얼마나 되어 계를 얻게 됩니까? 물으니 정성만 지극하다면 1년을 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진표는 명산을 섭렵하고, 다다른 곳이 변산에 있는 내소사( 來 자인데, 이 제8간자는 신훈성불종자( 新 熏 成 佛 種 子 ) 라 하여 누구나 부처 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후 금산사로 돌아와 법상종( 法 相 宗 )을 설법하니 신라 오교( 五 敎 ) 의 하나로 그가 개조( 開 祖 )가 된다. 또 다시 전국을 주유( 周 遊 )하다가 마 침내 금강산 발연사( 鉢 淵 寺 )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수제자는 영심( 永 心 )이다. 이상은 삼국유사 의 기록을 대체로 인용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심이 속리산 길상사(법주사 전신)에서 법회를 여는 가운데 동화사 중 심 지( 心 地 )가 참석하게 되고 그 간자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이 곳 팔공산 동 화사에 봉안된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蘇 寺 ), 처음 7일은 전신을 돌에 부딪치면서 피가 나도록 정진하였다. 그 래도 부처님의 감응이 없었다. 7일을 더 열심히 수행하여, 14일이 되자 드디어 지장보살로부터 계를 받으니 효성왕 4년(740) 진표의 나이 22세 였다. 그러나 진표가 바라는 것은 미륵보살을 만나는 일이었으므로, 기도 처를 다시 영산사로 옮겨 뼈를 깎는 고행을 하였더니 미륵보살이 나타났 다. 점찰경과 189개의 간자를 얻었다. 이 중에서 제8간자와 제9간자는 미륵보살의 손가락뼈라고 한다.(나중에 동화사로 전래되는 것은 제 8간 염불암 이야기 염불암은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팔공산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 하고 있다. 이 절은 928년(신라 경순왕2) 영조선사( 靈 照 禪 師 )가 창건하 였고,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창하였다. 그 후 세종 20년(1438), 광해 군 13년(1621), 숙종 44년(1718), 순조 3년(1803), 헌종 7년(1841)에 중 창 혹은 중수하였으며 이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극락전 옆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이 있는데 유형문화 026 1장. 동구의 이야기 027

15 부인사 이름 이야기 우리 강토 자체가 수많은 외침으로 유린되었듯이 이 절 또한 숱한 전 란의 와중에 온전할 리 없었다. 혹은 불타고 뭉개지면서 오늘날의 초라 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이다. 염불암 바위 최근 지표조사( 地 表 調 査 )에 참여했던 학자들마저 사명의 표기를 달 리하고 있는 현실이 위의 사실을 잘 증명해 준다. 예를 들면 1986년 지표조사에 참여했던 윤용진( 尹 容 鎭, 경북대학교) 재 제 14호이며, 이 마애불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 암자 에서 수도하고 있던 한 스님이 이 바위에 불상을 새길 것을 발원( 發 源 )하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자 주변에 신비한 안개가 끼이기 시작하더니 7 일 동안이나 걷히지 않았다. 스님은 더욱 신심을 내어 발원하였고 7일째 교수는 부인사( 夫 人 寺 )로 쓰고, 1989년 사지발굴( 寺 地 發 掘 )에 참여했던 이명식( 李 明 植, 대구대학교) 교수는 부인사( 符 仁 寺 )로 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삼국사 기 나 삼국유사 에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되는 날에 드디어 안개가 걷혔는데 스님이 법당문을 열고 나서 보니 바 위에 자신이 발원했던 불상 둘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스님은 이 일을 문수보살( 文 殊 菩 薩 )이 했다고 믿었다. 이렇게 하여 새겨진 불상에서 그 후로 염불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암자의 이름도 지금처럼 염불암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부인사 028 1장. 동구의 이야기 029

16 상고해 보면 고려시대에는 符 人 으로 썼고, 조선조에는 夫 人 으로 불 리운 것 같다. 다만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부적부( 符 ) 자와 어질인 ( 仁 ) 자를 써서 부인사로 불렀던 이유는, 대장경을 보관한 데 연유하고, 지아비 夫 자와 사람 人 을 써 부인사로 부른 이유는 신라시대 여왕을 夫 人 이라 칭한 데서 선덕여왕의 묘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과, 이 절이 퇴락하 여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허상득( 許 相 得 )이라 는 비구니가 현재의 사우를 건축할 때 쉬운 한자말인 夫 人 을 써서 그렇 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필자의 견해로는 대장경을 봉안한 데서 이름한 符 仁 과 선덕여왕의 원찰이기에 夫 人 이라 했다는 설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모신 부인사의 내력 부인사( 夫 人 寺 )는 선덕여왕대인 7세기에 처음 세워졌다. 이렇게 세 워진 절이 고려조까지 이어져 몽고의 침입으로 전소되고, 그 자리에 다 시 세운 절이 1928년 또 소실되었다. 소실된 다음 3~4년간은 그냥 방치 되어 있었고, 우리가 지금 보는 절은 그 후 다시 세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절이 모두 소실 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팔공산 일대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놓으 면 모두 썩어 버리고 가뭄과 장마로 흉년이 4년 동안이나 거듭되었다. 팔공산민들이 대단한 고난을 겪고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선덕여왕을 모시고 제를 올려라., 선덕여왕을 모시고 제를 올 려라. 이 소리를 분명히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불타 없어진 선덕여왕의 사 여하튼 고려사, 고려사절요 의 기록은 符 仁 이며 신증동국여지승 당인 숭모전( 崇 慕 殿 ) 을 다시 짓고 제를 올렸다. 이로부터 흉년이 그치 람, 대구부읍지 는 夫 人 이고, 동사열전 의 기록은 조금 이채롭게 夫 仁 이다. 현재 절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符 仁 이고, 정사인 고려사 기록 또한 符 仁 이니 사명을 符 仁 으로 통일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선덕여왕 영정 사진 030 1장. 동구의 이야기 031

17 고 곡식이 썩어 가는 기이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음 력 3월이 되면 선덕여왕을 기리는 선덕여왕 숭모대제 가 대구 지역 부인 들의 모임인 선덕여왕 숭모회 주관으로 열린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선덕묘-부인사 재건에 얽힌 이야기 선덕여왕릉 여기가 옛날에 선덕묘라는 작은 전각이 있었어요. 선덕묘는 이 절 을 창간하신 신라 67대 선덕여왕을 모신 전각인데. 여기다가 진영을 보 관되어 있었어요. 진영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도난 되어 없어지고 지금 새로 짓고, 선덕묘가 이름이 바꿨어요. 이 안에 진영을 새로 보관했 는데, 1991년도에 새로 보관했는데 그게 누구냐면 지금 경북대학교 미 술학과 교수님이 새로 진영을 보관했어요. 그래서 지금 학생들이 카는 동네에 전해지는 설화는 이것과 관련된 게 하나 나오거든요. 옛날에 이 절을 창간한 건 선덕여왕인데, 이전에 선덕묘에다가 진영을 보시고 마 을에서 제를 지냈어요. 해마다 지냈는데, 이 절이 다 폐허가 되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제를 못 지냈어요. 그 후로 동네에는 크고 작은 재앙들이 일어나요. 여러 차례. 어느 동네 이장이나 동네 사람들 주민들 꿈에 이 선덕여왕이 나와서 나를 모셔라 고 말해서 제를 다시 지내기로 했어요. 거기에 새로 부임한 비구니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건물을 크게 짓고는 선덕여왕을 모시고 추모제를 다시 지내기로 했어요. 그 주민들 이 새로 옮긴 거지. 선덕묘라고 있었다잖아. 그 이후로는 마을에 크고 작 은 재앙들이 없어졌다는 거죠. 그러고 절에도 새로 크게 번창하고. 예전 에 30년전에 학생들은 여기 온 적이 없겠지만 부모님들은 30년전에 여 기 오신 분들은 여기 쪼매난 대웅전 하나만 있고 허름한 절이었어요. 그 지금 절이 이래 커져버린거라. 그래서 그런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거 지. 그 후로부터 마을에 재앙도 없어지고 절도 커지고 마을도 번창했다. 그리고 또 여기 어원이 여자와 관련되잖아. 부인 이라는. 그래서 옛날에 는 남자 스님들이 여기 살림을 살 때는 이 밑에 땅도 팔아먹었거든. 지금 이런 포도밭 같은게 원래 부인사 땅이었는데 지금 개인 소유로 넘어가 버렸잖아. 그때 남자 스님들이 있을 때 좀 팔아먹었던 말이야. 근데 여자 스님들이 오고는 절이 이래 커졌으니까. 어원하고도 관련되고 우스갯소 032 1장. 동구의 이야기 033

18 리로 어떤 게 나오냐면은 여자가 살림 살면 잘산다. 그때부터 그런 동 네 사람들이 입소문이 전해지는거지. 제보자 : 권오진, 남, 55세, 문화해설사, 다. 영조의 탄생이 영원선사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한 숙종은 영원에게 현응( 玄 應 )이라는 호를 내리고 파계사를 숙빈 최씨의 원찰( 願 刹 )로 삼아 원자( 元 子 )의 수복( 壽 福 )을 빌게 했다.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신무동 부인사에서 숙종은 현응선사의 공을 높이 샀기 때문에 파계사 주변 40리의 세금 을 파계사에서 거두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현응은 이를 사양하고, 그 파계사가 낳은 왕 영조 파계사( 把 溪 寺 )의 파계 는 시내를 잡는다 는 의미의 파계( 把 溪 ) 를 쓴다. 이 절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흐르는 아홉의 물줄기가 흩어지지 않 고 한 곳에 모인다는 뜻에서 사찰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원래 신라 애장왕(800~809) 때 심지대사가 세운 것인데, 특히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대왕( 英 祖 大 王, 1694~1776)과 인연이 깊다. 영조는 숙종의 넷째 아들로 이름이 금( 昑 ), 자는 광숙( 光 叔 ), 호는 양성재 대신 왕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게 해 달라고 청원하여 1696년(숙종 22) 기영각( 祈 永 閣 )을 지었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심으로 지방 유생 들의 행패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왕실 원찰로서의 지위를 한층 확고 히 하고자 함이었다. 그리하여 기영각은 1696년 성전암( 聖 殿 庵 )과 함께 건립되고, 1704년에는 여기에 영조가 11세에 쓴 자응전( 慈 應 殿 )이라는 편액을 붙이게 되었다. 이 현판은 현재 성철( 性 撤 ) 스님이 9년간 수도한 바 있는 성전암 법당에 걸려 전해지고 있다. ( 養 性 齋 )였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제위 19년 째가 되던 해인 1693년 10월 5일 밤에 산승( 山 僧 )이 대전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상하게 여긴 숙종은 남대문 밖에 혹시 승려가 있는지 알아보게 하였다. 때마침 팔공산 파계사의 영원( 靈 源 )선사가 묘향산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 문 밖에서 쉬고 있었다. 이에 숙종은 그에게 왕자의 탄생을 위한 백일기 도를 드리게 한다. 이 같은 일이 있는 뒤 숙빈 최씨는 태기가 있었고 드 디어 이듬해인 1694년 9월 13일에 왕자가 탄생하였다. 이가 곧 영조였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인 정성왕후( 貞 聖 王 后 )는 이 같은 내력을 알고 이 절을 자신의 원찰로 삼은 다음 1732년에는 영조가 입던 도포를 하사 하였다. 이 도포는 1797년 파계사 원통전 내의 관세음보살상을 개금( 改 金 )하다가 발견되었다. 도포와 함께 한지 두루마리에 적인 발원문이 발 견되어 이 도포가 파계사에 보관된 경위를 소상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1740년(영조16) 12월에 대법당을 개금하고 불상과 나 034 1장. 동구의 이야기 035

19 한을 중수하였으며, 영조가 탱불 1,000불을 희사하여 불공원당( 佛 供 願 堂 )의 장소로 삼았고, 이와 함께 만세토록 길이 전해질 것을 빌면서 왕의 청사( 靑 紗 ) 도포를 복장( 服 藏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도포의 뒷목에는 발원문의 내용과 같은 묵서가 한지에 적혀 꿰매져 있다. 파계사의 이 도 포는 현품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것으로, 형태와 색이 거의 완전하여 의복사적 가치가 크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님을 궁궐로 불러들인 거예요. 그 스님이 누구냐 하면, 파계사 주지스님 이셨어요.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이셨는데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은 서울, 파계사는 대구고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잖아요. 옛날로 치면 길이 엄청 멀잖아요. 그리고 조선 시대에 불교가 탄압을 받아요. 억불숭유정책 불교는 억 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런 정책이죠. 그런 정책이 되니까 유교를 막 떠받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불교를 억압했어요. 불교를 억압하니까 이 절이 되는 거예요. 유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유생이라 그러는데 유생들이 요즘으로 치면 데모를 막 한 거죠. 스님들, 타락한 스님 때문에 파계사와 영조대왕 이야기 그 장희빈 드라마에 등장하는 숙종이 이 숙종인데, 이 숙종에게는 왕자가 굉장히 귀했어요. 인현왕후가 원래 정빈데 소생이 없어요. 그리 절을 다 없애야 된다고 절을 철폐시키라고 많이 그걸 해요. 그러니까 많 은 절이 없어졌어요. 조선 시대 때. 그래서 우리 파계사도 없어질 것 같 으니까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이셨던 분이 염원선사인데 그 분이 이제 서 고 장희빈에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분이 경종이에요, 경종. 숙경영 종 이렇게 가잖아요. 그래서 경종인데 일찍 죽어요. 여덟 살인가 아홉 살 에 일찍 죽습니다. 그 죽고, 왕자가 없으니까, 왕실에 왕자가 없다는 건 굉장히 큰 근심거리잖아요. 그래서 숙종대왕이 늘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니까 꿈속에 스님이, 이렇게 광채를 띄는 스 님이 나타나셔가지고 그 스님에게 빌면 그 기도를 드리면 꼭 왕자가 탄 생할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아서 잠에서 확 깨어났는데 깨어나서 궁궐 밖을 보니까 진짜 스님이 딱 한 분 앉아계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스 기영각 036 1장. 동구의 이야기 037

20 울에 가서 탄원을 드리려고 서울을 가신 거예요. 가셔서 기록에는 아, 이 건 기록이 아니고 전부 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깁니다. 전해 내려오는 얘 기로는 이 분이 삼년이나 서울에 머물렀다고 해요. 그래도 궁궐 안에 들 어가 보지도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 날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파계사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래서 마지막 날 궁궐 앞에 이렇게 앉아있었는데 그날 밤 숙종이 꿈에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숙종 임금이 딱 불러들여서 그 이제 스님이 정말 꿈속에서 봤던 스님이 딱 계 시니까 우리 궁궐에, 왕실에 왕자를 탄생하는 기도를 드려달라고 이렇게 부탁을 드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백일기도를 드렸어요. 백일기도를 드 렸는데 백일기도를 턱 드리고 나니까 정말로 이제 당시 장희빈 말고 그 장희빈 드라마에 보면 무수리 최씨가 있습니다. 그 무수리 최씨가 그 때 후궁이 되어 가꼬 숙이 최씨로 있었거든요. 탁 임신을 한 거예요. 잉태가 된거죠. 그러니까 이 숙종임금이 너무 기뻐서 이 염원선사에게 내가 큰 상을 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상이라 하면 뭐 전답이라던가 이렇 제사를 지내게 해 준거예요. 그래서 이곳이 왕실의 원찰이 됩니다. 그래 서 숙종임금님, 영조임금님, 이런 임금님들의 그 위패를 모셨어요. 그기 어디서 모셨는가 하면 좀 조금 있다 올라가시면 바로 보입니다. 바로 앞 에 요기에서는 기영각이라고 있습니다. 기영각이라는 쪼끄만한 암자예 요. 원통전 바로 옆에 있어요. 고 보면 기영각이라고 작은 암자가 하나있 습니다. 이 기역각에서 영조대왕을 위해서 기도도 드리고 제사도 드렸던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위패가 없어요. 그 지금 왜 또 위패가 없냐하면 일제강점기 때 그 서울의 종묘로 옮겨놨어요. 서울의 종묘는 이제 여러 임금님들의 위패가 있고 제사를 모시잖아요. 그 쪽으로 가고 지금은 그림만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 이곳은 영조임금님과 관계가 있구나. 그렇지만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건 다 그냥 전해 내 려오는 이야기예요. 제보자 : 이명신, 여, 55세, 대구시 문화 관광 해설사,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서 게 돈을 많이 주겠다 하니까 염원선사가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 그런 건 다 필요가 없고, 이 절을 이 파계사라는 절을 왕실의 원찰로 해달라. 왕 실의 원찰이라고 하면 왕실을 위해서 기도드리는 절입니다. 그걸로 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드렸어요. 그러면 유생, 이 절이 없어지지 않을 거잖 아요. 그래서 숙종임금이 허락을 하셨어요. 허락을 하시면서 여기에 왕 실 그 임금님들의 위패, 그 제사지낼 때 모시는 이 위패를 절에서 모시고 파계사 진동루와 영통전 파계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2층 다락으로 된 진동루( 鎭 洞 樓 )가 있 고, 그곳을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 圓 通 殿 )이 있다. 원통전은 유형문화 재 제7호로 자비의 화신인 보물 제 992호인 목조 관세음보살( 觀 世 音 菩 038 1장. 동구의 이야기 039

21 아가 보라고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한 겨울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 가르쳐주는 대로 깊은 산 속을 찾아갔다. 스승의 말대로 거기에 어떤 나 무꾼이 딸 한 명과 살고 있었다. 스님은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고 그 나 무꾼에게 자신의 제자로 받아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나무꾼은 스님 을 밖으로 쫓아내었다. 스님은 여기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의 몸에 눈이 진동루 덮이는 것도 모르고 밖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 다. 7일 동안이나 이렇게 하자 나무꾼은 그의 신심을 인정하고 또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게 하였다. 薩 )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원통은 절대적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 해 있다 는 뜻으로, 주원융통( 周 圓 融 通 )의 준말이다. 능엄경( 楞 嚴 經 ) 에는 귀로 듣는 성품은 사람마다 본래 원통한 것이어서 모든 곳에서 북 을 치면 일시에 똑같이 들리니 원( 圓 )이라 하고, 담장이 막혔어도 소리가 그러나 나무꾼은 3년이 지나도록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곳으로 인도 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숯 굽고 밭 가는 일 등 고된 일만 시켰다. 이 에 스님은 자신이 수도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도망쳐 나왔 다. 산 아래에 한참을 내려와 물을 건너가려고 할 때 물에 비치는 아름다 들리며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모두 듣는 것을 통( 通 )이라 한다 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원통 은 귀로 듣는 뛰어난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 觀 )한다는 관세음보살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온갖 두려움을 없애는 무외심( 無 畏 心 )을 베푼 다는 뜻에서 시무외자( 施 無 畏 者 )라고도 한다. 여기와 관련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신심( 信 心 )이 돈독한 스님 한 분이 스승을 찾아 열심히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그러기를 십 수년, 그의 스승 은 이제 자신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서 한 나무꾼을 일러주며 찾 원통전 관세음보살 부처님과 영산화상도 040 1장. 동구의 이야기 041

22 운 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아내로 맞아 살았던 그 여인이 관세음 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때 그 스님은 깨달았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지내던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떠나 온 곳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조금 전까지 걸 어온 곳엔 나무들만 무성하게 서 있을 뿐 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통곡하 면서 힘껏 관세음보살을 외쳐 보았으나 외로운 메아리가 공허한 소리로 돌아올 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용암산성으로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1천명을 넘었다. 나라를 구하고 비 명에 죽어가는 동족을 보다 못해 뜨거운 마음으로 모인 의병이었으나 불 타는 마음만 있었을 뿐 의병들은 전투에 있어 도저히 왜병의 상대가 되 지 못했다. 왜병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오랫동안 군사훈련을 받 은 데다 조총( 鳥 銃 )이라는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거기 비해 의 병들은 군사훈련이라고는 받은 적 없이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 그들이 가 진 무기는 쇠스랑과 낫 같은 농기구뿐이었고 짐승을 막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창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최상의 장비였다. 훈련과 무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니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의병들이 도동의 용암산성과 옥천( 玉 泉 ) 이야기 동구 도동에 있는 용암산성은 그 일대에서 삼국시대 초기 신라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돼 학자들이 이 성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이 성은 임진왜란 때도 또 한 차례 국방의 요충지가 됐으니 임란으로 대구 지방이 초토화됐을 때 인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활동했다. 그리고 지금 산성 동북쪽에 남아 있는 옥천( 玉 泉 )은 그 때 판 것이라고 하는데 이 샘에는 다음과 같은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구지방까지 밀려온 왜병이 집을 불사르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자 참다 못한 백성들이 누가 주동할 것도 없이 각지에서 마음만 믿고 왜병과 맞섰다가는 희생자만 늘고 전쟁에 질 수밖에 없었 다. 생각 다 못한 의병들은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왜병의 진지를 습격하 는 게릴라식 전술을 썼다. 처음 몇 번은 이 전술이 성공했으나 왜병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왜병들은 피해가 늘어나자 게릴라 습격에 대비한 야간 수비 태세를 갖췄고 전과 같이만 생각하고 습격했던 의병은 왜병 의 반격에 부딪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패군은 쫓기는 의병을 추격하 여 용암산을 에워싸고 올라왔다. 그러나 천연의 요새인 용암산을 함락시 킬 수는 없었다. 용암산은 가파른 경사에 곳곳에 절벽이 있고 또 성벽까 지 둘려 쳐져 있어 용암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것이다. 왜군은 성 을 점령하려다가 사상자가 늘어나자 지구전을 펴기 시작했다. 왜군들 중 042 1장. 동구의 이야기 043

23 에 지형을 잘 살피는 자가 있었는데 용암산성과 주변 지세를 살피니 용 암산성 안에는 샘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성을 에워싼 채 포위망을 풀지 않으면 물을 먹지 못한 의병들이 제풀에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것이 라고 판단했다. 닥 희망을 안고 조를 나눠 밤낮으로 샘 파는 작업을 계속했다. 수 십일을 계속 파헤쳤는데 땅 위에서 우물 바닥을 보면 가물가물할 지경이 됐는데 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나올 리가 없지 라고 실 망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샘 파기는 끊이지 않고 며칠이 더 계속 됐 다. 이제 우물 깊이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 왜병의 예상은 적중했다. 용암산성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해 요새 의 깊이가 됐다. 때마침 기적이 일어났다. 로 안성맞춤이었으나 물이 없는 게 흠이었다. 왜병들이 추격은 포기했 으나 포위망을 풀지 않고 지구전을 펴자 당황한 것은 의병들이었다. 처음엔 그릇에 받아둔 물을 먹고 여기저기 고인 물을 사용했으나 며칠 이 지나자 밥 지어 먹을 물이 떨어진 것은 물론 마른 목을 축일 물조차 없었다. 의병들의 열의에 감동을 안 것인지 드디어 깊은 바닥에서 물이 솟아 나기 시작했다. 의병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깊은 땅 속 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그런지 샘물은 차고 맛이 좋았다. 의병들은 그 물 로 밥을 지어먹고 용암산성을 지킬 수 있었다. 수 십일을 포위해도 의병들이 문을 열고 항복해 나오지 않고 밤으로 견디다 못한 의병들은 특공대를 조직하고 밤중에 산을 내려가 물을 길러오게 하였으나 특공대는 성공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았다. 왜군이 의병의 작전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물 길러 나오던 특공작전조차 벌이지 않자 왜군은 의병이 성 안에 우물 을 판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끈질긴 집념에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다. 특공대는 내려갔다 하면 사로잡히거나 조총과 칼에 희생되었다. 목숨을 건 특공작전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도 동료들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밤에 산을 내려가 물을 길어오겠다는 사람은 줄을 이어 나섰으나 무모히 인명을 버릴 수 없다 해서 죽을 각오로 샘을 파기로 결심했다. 비 록 높은 산 꼭대기이긴 하지만 깊이 파면 물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한 가 의병들의 목숨을 구한 이 샘은 의병의 한( 恨 )과 열성이 맺힌 탓인지 날 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옥천( 玉 泉 )이 란 이름은 항상 옥( 玉 )같이 맑고 찬물이 솟아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044 1장. 동구의 이야기 045

24 2 story 사람 이야기 신숭겸 동상 신숭겸이 평산( 平 山 )으로 관향( 貫 鄕 )을 받은 이야기 일찍이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평산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세 마리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왕건이 여러 장수들에게 이를 쏘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신숭겸은 어떤 기러기를 쏠 것인가에 대하여 묻자 왕건은 가운데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라고 하였고, 신숭겸은 분부대로 쏘아 맞혔다. 왕건은 신숭겸의 신기한 능력에 대하여 감탄하고 기러기가 날아가던 땅 을 하사하였는데, 이로 평산은 그의 관향이 되었다고 한다. 수( 桐 藪 )에서 견훤과 커다란 싸움을 벌인다. 이른바 동수대전( 桐 藪 大 戰 ) 이다. 그러자 후백제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몹시 위급하였는 데, 당시 신숭겸은 왕건과 외모가 흡사하였으므로 왕건을 부인사 근처 로 숨게 한 뒤, 자신은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락과 함께 힘을 다하여 싸 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표충사 앞의 순절단이 있는 자리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고려 태조 10년 9월에 후백제의 견훤이 영천을 습격한 뒤 신라의 수 도 경주에 침입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던 경애왕과 비빈 및 종친과 왕실의 외척들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왕건은 크게 격분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는 한편 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대구의 팔공산 동 지묘동 일대의 신숭겸 유적과 이야기 지금의 대구시 동구 지묘동 자리는 표충단, 충렬비, 표충재를 합쳐 대구시 지방 문화재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전에는 달성군으 046 1장. 동구의 이야기 047

25 로서 경상북도 문화재 14호였는데 대구시로 승격되고 난 뒤 1호가 된 것 이다. 이 자리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표충단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천여 년 전 서기 917년 태봉에서는 폭군 궁예를 내몰고 왕 건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 때 신숭겸, 김낙, 배현경, 복지겸 네 분이 왕 건을 고려 태조로 모시게 되었다. 그 뒤 10년 후 신라 경애왕 3년, 포석 정에서 견훤의 기습을 받아 신라는 사면초가( 四 面 楚 歌 )가 되어 고려에 원군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고려는 기병 5천을 신라에 보내 왔다. 최초 의 접전은 잘 알 수 없으나, 견훤의 군사는 연전연승( 連 戰 連 勝 ), 기세등 등, 승승장구하고 고려군은 연전연패( 連 戰 連 敗 )하다가 최후로 포위된 곳 이 지금의 지묘 1구, 이 자리라 한다. 이리하여 왕을 구하기 위해 지묘에서 구출 작전이 벌어졌다. 전 군사 가 전몰하는 일이 있어도 왕을 살려야 했는데 그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용케도 왕건과 신장군의 얼굴이 흡사하여 거기서 신장군은 태조 왕건의 옷으로 바꿔 입고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낙 장군과 더불어 진두지 휘하였다. 왕을 평복으로 갈아 입혀 숲에 숨기고 동으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적의 시선을 끌어 왕을 그 사이에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신장군 이 그 곳에서 전사하자 견훤의 군사는 나팔을 불고 기뻐했다. 그들은 신 장군을 왕으로 생각하고 신장군의 머리를 잘라 갔으며 지금도 그 머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고려에서 시신을 거두려고 와 보니 머리는 없고 옷도 벗겨져 분별하기가 힘이 들었다. 장절공 유적 책자에 보면 신장군을 잘 아는 유금필 장군이 좌족하( 左 足 下 )에 칠성( 七 星 )이 있 으니 그것을 보면 찾을 것이다 하여 그 말을 믿고 지금 봉분자리에서 시 신을 찾아 지금의 강원도 춘천 춘선군 서면 방독리에 묘를 세우고 장례 를 치루었다. 왕건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묘사( 智 妙 寺 ), 미 리사, 대비사( 大 悲 寺 )를 근처에 지었다. 대비사는 동구 평광동(이것은 행정명이며 실제 마을의 이름은 질왕 ( 迭 王 ): 또는 일명 대비동( 大 悲 洞 )이라고도 한다.)에 영정을 모시고 명 복을 빌었다. 대비사는 탄 기록이 있으나 미리사와 지묘사는 불탄 기 록이 없다. 아마 몽고란 때 부인사가 탈 때 근처 절이 불탔다는 기록이 신숭겸 사당 있어 같이 탔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대비사는 김천득이라는 자 048 1장. 동구의 이야기 049

26 가 선고( 先 考 )의 묘를 쓰기 위해 중과 짜고 불을 질러서 영정이 없어졌 다고 한다. 여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 無 怠 警 戒 )고 군사들에 명령한데서 무태( 無 怠 )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150년 전 무자년( 戊 子 年 )에 송축 기록이 있는데 그 후 자손이 다시 찾아와 비각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묘사가 타고 지묘( 智 妙 ) 는 황폐해졌는데 300년 전 유영순이라는 분이 이 자리에 와 보니 너무나 흔적도 없이 변해 버려 사람들의 힘을 모아 표충사라는 사당을 짓고 충 렬비를 세웠다고 한다. 표충사( 表 忠 寺 )는 김낙, 신숭겸 두 분을 모시는데 그 뒤 신길원 장군 그리고 나팔고개라는 것은 전쟁 때 나팔을 불었다는데서 연유한 말 로, 지묘를 중심으로 포위한 견훤의 군사들이 포위망을 압축시키기 위해 나팔을 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역시 견훤의 군사들이 나팔을 분 것이 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건의 군사가 무태로부터 6km를 긴장하면서 행군하다가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팔을 불었기 때 문에 나팔고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을 모셔 내려오다 서원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대원군 때 서원 철폐의 국 가령에 따라 지묘의 표충사가 헐리게 되었다. 지금의 표충재는 서원을 없애고 다시 재실을 짓고 후손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독좌암( 獨 坐 巖 )은 독지바우 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봉무동 노인회관 북쪽 5km 지점의 개천가에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이 지묘에서 참패를 당 하고 왕산( 王 山 )으로 달아나서 팔공산( 八 空 山 )의 염불암 옆 일인석( 一 人 파군재는 견훤의 군사가 신숭겸, 김낙 등 고려 군사를 깨뜨렸다는 뜻 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견훤의 군사가 여기서 진을 거두었다는 데서 파군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러니 고려 군사가 전멸당 한 뒤 후백제군이 작전을 그만두고 군을 거두었다는 것을 말한데서 나왔 다고도 한다. 그러나 당시 고려군은 전멸했으므로 파군한데서 나온 말이 옳은 듯하다. 이에 앞서 왕건의 군사가 지금의 무태 잠수교가 있는 금호 강을 건너 팔공산 기슭까지 왔으므로 견훤의 군사가 나타날 것을 염려하 石 )에 앉았다가 다시 파군재를 넘어 봉무동 지금의 독좌암이란 바위에 앉았다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 너머 불로동 마을 앞을 해안( 解 顔 )이라 하는데 이를 동촌면이라 하기 전에 해안면이라 했다. 태조가 패잔병을 끌고 들판을 지나면서 몹 시 걱정했는데 마침내 위급한 이 곳을 무사히 통과하여 얼굴의 수심이 가셔서 얼굴을 펼 수 있었다는 뜻에서 해안( 解 顔 )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장. 동구의 이야기 051

27 지묘 1구 뒷산인 왕산( 王 山 )은 왕건이 죽을 것을 이 산 때문에 살았 다 하여 왕산( 王 山 )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로 간 곳이 염불암인데, 왕건 이 그 옆 바위에 앉아 있었더니 수도하던 도승이 첫 눈에 왕건인 줄 알고 그의 자백을 받기 위해 넌지시 묻기를 이 자리는 이 어지러운 난세를 구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인데 그대는 누구인가, 내려오라. 고 했더니, 내가 바로 왕건이다. 라고 자백했다. 그러자 도승은 절을 하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 후 염불암 옆의 그 할 때 그 곳을 파니 부엌의 재와 검정이며 기와 조각이 나왔고 요즘도 가 끔 나오고 있다. 그리고 왕건은 지묘 1구 뒷산인 왕산( 王 山 )으로 달아나 동화사 뒤의 염불암의 일인석을 거쳐 다시 지금의 봉무동 노인회관 북편에 있는 큰 바위에 혼자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해안 지방을 거쳐 지금의 반야월( 半 夜 月 )에 오니 밤은 반야( 半 夜 )이고 달( 月 )이 떠 있다고 해서 반야월이라 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고 그리고 안심면( 安 心 面 ) 은 견훤 군사가 돌아가 서 안심이 되었다한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바위를 왕건이 혼자 앉았다 하여 일인석( 一 人 石 )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이렇듯 전쟁에서 있었던 일이 전해 내려와 지금의 지명이 된 것이 많 지금의 지묘 1구 앞들을 탑들이라 하는데 이는 옛날 지묘사의 탑이 있던 곳이라는데서 연유한 것이다(지금은 탑이 없어졌다). 경지 정리를 다. 대구 근교 주위가 거의 이런 연유로 이름이 지어졌는데 주위 이름이 산이나 강의 생김새를 보아 이름지은 것에 비해 이곳은 역사적 일이 있 어 이를 토대로 이름이 지어졌다. 지묘사( 智 妙 寺 )라는 것도 지( 智 ), 묘( 妙 ) 즉, 작전을 펼 때 지혜와 묘 책을 써서 왕건을 도망시키는데 성공했다 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 다. 그리고 지금의 지묘동은 옛날 지묘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동명( 洞 名 )이라 전한다. 신숭겸의 왼쪽 발바닥에 7개의 점이 있는데 이는 왕건과 같게 하기 신숭겸 초상화 위해 바늘땀을 떠서 먹물을 넣어 새겼다고 전해 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052 1장. 동구의 이야기 053

28 태조의 좌족하( 左 足 下 )에 흑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장절공의 시신을 거둘 때 머리도 없고 왕복도 거두어 가서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마침 유 람이다. 군졸로서 서남해에 근무하다가 그 공으로 비장( 裨 將 )이 된 뒤, 혼란기인 진성여왕 6년(892) 신라에 대해 반심을 품고 거병한 인물이다. 금필 장군이 신 장군을 잘 알아 신 장군의 좌족하의 흑성을 찾아낸 것이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표충사를 혈단 이라 부르는 것은 신 장군의 흘린 피를 모아 단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시체가 묻힌 곳과는 다르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 사회 현상은 정치 기강이 무너진데다가 기근 마저 겹쳐 혼란이 극심하였다. 견훤은 이때를 틈타 지방의 군사력과, 신 라에 적개심을 품고 있던 백제 유민을 규합, 전주를 근거지로 거병, 왕이 되었다. 그는 반( 反 ) 신라 세력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의자왕의 숙분( 宿 憤 )을 어찌 씻지 아니하리오. 하면서 도읍을 전주 팔공산과 견훤 이야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백제는 660년 수도 사비성이 나 당 연합군에 함락되어, 678년간 존속되어 왔던 나라가 망한다. 백제가 멸망하자 당의 소정방( 蘇 定 方 )은 의자왕을 비롯한 장사, 대신 등 무녀 12,807명을 포로로 잡아 본국으로 보내고, 백제 지역을 통치하 기 위하여 5도독부를 두고 그 밑에 자사( 刺 史 ) 현령을 현지 백제인으로 에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라 칭하니 이때가 효공왕 4년(900)이다. 당시는 송도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과 늘 대립 관계에 있었는데 적어 도 초창기는 그가 늘 우세했다. 특히 927년에 팔공산에서 전개되었던 이 른바 동수회전( 桐 藪 會 戰 )에서는 왕건 자신이 이끌고 온 5,000명의 군사 가 견훤에 의해 몰살당하고, 자신만 신숭겸 김락 등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임명하는 한편, 유인원( 劉 仁 願 )이 지휘하는 당병 1만과 김인태( 金 仁 泰 ) 가 거느린 신라 병사 7천여 명으로 그를 돕게 했다. 그러나 백제인들의 부흥 운동은 집요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백제 출신들의 저항은 나말( 羅 末 )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잘 이 용한 사람이 견훤( 甄 萱 )이다. 그는 본래 신라의 땅인 상주 가은( 加 恩 ) 사 신라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지고, 왕을 잃은 고려는 깊 은 혼란에 빠질 것이며 그렇다면 후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후백제도 견훤의 잦은 군사 동원에 시달렸고, 견훤 자신도 장. 동구의 이야기 055

29 명의 아들 가운데 하필이면 넷째 아들인 금강( 金 剛 )에게 왕위를 물려주 려고 하니 이에 그의 형들이 불만을 품어 그를 금산사에 유폐시킨 뒤 금 따라서 대구지방 일대에는 이 전투에 얽힌 역사적인 유적과 또 사실 이 확인되지 않는 전설이 많이 전해온다. 강을 죽이고 신검( 神 劍 )이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불행인지 다행인 지 막내 아들과 딸과 첩 등을 데리고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에 귀부한 다. 이에, 앉아서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딴 형편이 된 왕건으로서는 기뻐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그를 최고의 예우인 상부( 尙 父 )로 맞는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유적으로는 지묘동에 있는 표충단과 평광동 에 있는 신숭겸 유허비각을 들 수 있고 왕건에 얽힌 이 일대의 지명( 地 名 ), 동명( 洞 名 )은 사실( 史 實 )과 상상의 합작으로 볼 수 있으며 사실여부 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전설 또한 적지 않게 전해온다. 마침내 고려는 총 8만 7천 5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선산 일리천( 一 利 川 )을 사이에 두고 후백제의 신검과 대진을 벌이자 후백제의 군대는 고려군의 위세에 질려 좌장군 효봉( 孝 奉 )과 덕순 등이 항복하고, 이미 전 의를 상실한 후백제군 3천 2백 명이 생포되고 5천 7백여 명이 희생되는 참패를 당했다. 결국 신검도 황산군(논산) 마성(연산읍)에 진주한 왕건 진영에 항복하니 후백제는 건국 36년 만에 막을 내린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공산싸움은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서울 경주를 침범해 왕을 죽 이고 왕비를 겁간한 후 많은 재물을 뺏아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신라를 도우기 위해 출전한 왕건의 군사가 지묘동 일대에서 맞닥뜨리면 서 일어났다. 견훤이 신라를 기습한 것은 삼국이 정립해 있는데 신라가 북쪽의 왕 건과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에 두 나라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 자기에 게 불리하겠다고 생각, 경애왕이 비빈 시한들과 포석정에서 놀이에 빠져 있을 때 급습한 것이다. 왕건( 王 建 )과 동구에 얽힌 이야기 역사상 대구지방을 무대로 벌어졌던 큰 싸움을 든다면 신라 말 왕건 과 견훤이 동구 지묘동 일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공산( 公 山 ) 싸움 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서울을 도륙낸 후 회군하던 견훤군과 왕건군사가 만난 것이 동 수( 桐 數 ) 오늘의 지묘동이다. 이 때 견훤군은 신라 서울 깊숙이 들어가 그 곳을 여지없이 유린하는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때라 사기가 충천한 반면 왕건군은 먼 길을 056 1장. 동구의 이야기 057

30 급히 온데다 견훤군을 얕보았기 때문에 왕건 군사가 견훤군에 포위 당해 왕건의 생명이 위태롭게 됐다. 이 때 신숭겸( 申 崇 謙 ) 등 왕건의 심복장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포위 망을 뚫을 수 없게 되자 왕건이나마 살리려고 모습이 왕건과 비슷한 신 고 피곤해 숲 속에 숨어 있을 때 나무꾼이 주먹밥을 나눠준 뒤 나무하고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왕이더라 그래서 왕을 잃은 곳이란 실왕, 처음 실왕으로 부르던 이곳은 차츰 발음이 어렵 다 해서 지금은 시량 이라 불리고 있다. 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으로 위장하고 일단의 장수들과 함께 한 쪽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는 시늉을 했다. 견훤군이 왕건을 놓치지 않기 위 해 모두 그리로 몰리는 사이에 군졸로 위장한 왕건은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심숭겸 등 심복은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심복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왕건은 나중에 신숭겸을 위해 그가 전 사한 장소에 지묘사를 짓고 그의 혼백을 위로토록 했다. 그 후 오랜 세월 왕건이 반야월에서 방향을 바꿔 대명동 안지랑 계곡으로 왔을 때 마 른 목을 추겼다는 장군수, 그가 잠시 숨어 정세를 살폈다는 은적함 등 그 에 얽힌 지명, 산이름, 강이름은 대구 일대에 수없이 많다. 그리고 평광동에 있는 신숭겸 유허비각에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이 흐르는 동안 지묘사는 폐사되고 신숭겸이 전사한지 7백 여 년이 지난 뒤 경상도에 살던 그의 후손들이 지묘사 절터에 표충단을 쌓아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고려 말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개국공신을 모셨던 지묘사에 대한 관 심도 줄어져 폐사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정은 지묘사에 있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태조가 주먹밥으로 배고픔을 면했다는 실왕 표충단 외에도 이 일대와 대구 근교에는 왕건에 얽힌 지명이 많이 있 동네 뒷산에 대비사( 大 悲 寺 )와 영각을 짓고 논밭을 내려 돌보게 했다. 으니 왕건군사가 패군했다는 파군터, 왕건이 머물고 갔다는 왕산, 왕건 이 혼자 앉았다는 독좌암, 왕건이 겨우 위험을 벗어나 노한 얼굴을 풀었 다는 해안, 그의 탈출로를 비춰주던 새벽달이 외로웠던 반야월, 이곳에 서야 안심했다고 안심읍, 왕건 견훤 두 군사가 강 양쪽에서 서로 대치해 싸울 때 화살이 강을 이루었다는 살내, 포위망을 벗어난 왕건이 시장하 이후 대비사는 조선 중기까지 내려오며 신숭겸 영정을 봉안했는데 그 때 대구 도호부에 김철득( 金 喆 得 )이란 아전이 있었다. 그는 일개 아전 에 불과했지만 권세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수탈, 큰 재물을 모았고 논밭 도 수백 마지기나 갖게 되었다. 김철득은 이제 돈은 엔간히 모았으니 좋 058 1장. 동구의 이야기 059

31 은 묘터를 구해 자손 대에 발복해야겠다고 생각,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서 국풍( 國 風 )을 초빙했다.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후 김철득은 자기 소원대로 조상 산소를 불타버린 대비사 빈 터로 옮겼다. 그러나 비행은 언젠가는 탄로나기 마련, 어느 해 김철득이 자기 논을 그는 국풍을 데리고 명산으로 이름난 팔공산을 샅샅히 뒤졌으나 좋 은 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묘터 찾기를 포기하고 내려오던 그들은 대비사에 들렸다. 그런데 승방주위를 둘러보던 국풍은 갑자기 손 뼉을 치면서 지금 대비사가 앉아 있는 절 터가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했 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절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모신 절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김철득도 동감이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그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소작하던 농부가 추수 때 곡수를 적게 준다고 소작 주었던 논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당황한 농부는 애걸복걸 사정했으나 철득은 막무 가내였다. 사정사정해도 철득이 들어주지 않자 악이 받친 농부는 돈 서 푼만 있으면 이 억울함을 풀겠다 고 덤벼들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농사 꾼이 천하의 김철득에게 덤벼드는 게 가소로와 돈 서푼을 던져주며 어 디 이 놈 돈 서 푼 여기 있으니 억울한 것 한 번 풀어봐라 고 비웃었다. 돈 서 푼을 챙겨 넣은 농부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 그 돈을 노자 삼아 경상감영으로 갔다. 대대로 재상이 나올 명당자리라는 국풍의 말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 끝에 그는 대비사 주지를 찾아가 절에 불을 질러 버리기만 하면 돈을 듬뿍 줄 터이니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편안히 사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유혹했다. 처음에는 주지가 펄쩍 뛰었으나 철득이 주겠다는 돈이 워낙 거금이 고 거푸거푸 꾀이는 바람에 돈을 받곤 그러마고 약속했다. 감영에 도착한 농부는 김철득이 절 터를 조상 묘자리를 쓰기 위해 주 지에게 돈을 주어 절을 불사르게 했다는 내용의 솟장을 관찰사 앞에 올 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경상관찰사는 신숭겸의 후예인 신기( 申 耆 )란 사람이었다. 신관찰사는 솟장을 읽고 그것을 낸 농부를 불러 사실 여부를 따진 후 어느 정도 심증이 가자 군사를 보내 현지를 조사케 했다. 현지에 간 군사가 여러 농군들의 말을 들으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날 밤 주지는 절에 불을 질러버리고 멀리 도망가 버렸다. 큰 절이 불 탔으나 대비사는 워낙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감영에서는 불이 난 관찰사는 김철득을 초달, 자백을 받은 후 목 베 죽이고 그의 일족을 060 1장. 동구의 이야기 061

32 모두 멸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신숭겸 영각은 사라졌는데 그 뒤 대비사 자리에 김철득 선조묘를 파내고 영각유허비를 세워 그것이 오늘까지 전 해오는 것이다. 대구직할시, 대구의 향기, 경북인쇄소, 1982.에서 발췌 영조를 낳게 한 파계사의 스님 현응 현응대사나무 조선 숙종( 肅 宗, 1674 ~1720) 때 파계사의 성전암( 聖 殿 庵 )에서 한 스 님이 불도를 닦고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에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 崇 儒 抑 佛 ) 정책을 폈기 때문에, 절에서도 창호지 노 끈 미투리 등을 만드는 부역을 하였다. 이러한 부역의 부당함을 호소하 기 위해 파계사에서는 성전암의 그 스님을 한양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좀처럼 왕을 만날 수가 없었다. 스님은 주막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3년이나 기회를 엿보았으나 끝내 왕을 는 이름을 가진 용피( 龍 披 )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파 계사에서 올라간 스님이었다. 그리하여 용피 스님은 숙종에게 불려가 이 때까지의 모든 일을 고하였고 왕은 스님의 모든 청을 들어주었다. 그 대 신 왕은 후궁 숙빈( 淑 嬪 ) 최씨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스님은 한양에 있는 수락산( 水 落 山 ) 내원암에서 300일 동안 불공을 드렸다. 만날 수가 없었다. 이에 스님은 할 수 없이 숭례문( 崇 禮 門 -남대문) 근처 의 주막집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고 파계사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 후 숙종은 숙빈 최씨에게서 아들을 얻었는데 이 왕자가 후에 영조 ( 英 祖, 1724~76)가 되었다. 숙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 공을 칭찬하고 그런데 그날 밤 숙종은 숭례문 근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기이하게 생각한 왕은 이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려고 숭 례문 근처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주막의 한 방에서 용과 관계되 용피 스님에게 현응조사( 玄 應 祖 師 ) 라는 법명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파 계사를 중심으로 사방 40리 안에서 국가에 내는 조세를 파계사에서 거 두어 들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현응조사는 이를 사양하고, 대신 숙종의 062 1장. 동구의 이야기 063

33 조상의 어패( 御 牌 )를 파계사에 모시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어패 를 모시도록 하고, 절 입구에 하마비( 下 馬 碑 )를 세우도록 하였다. ( 眞 表 律 師 )와 불골간자( 佛 骨 簡 子 )를 전해 받아서 과증법회를 연다는 말 을 듣고 뜻을 결정하여 찾아갔으나, 이미 날짜가 지났기 때문에 참례를 허락받지 않았다. 이에 땅에 앉아서 신도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했다. 파계사 기영각( 祈 永 閣 )에는 현재 네 임금(성종 숙종 덕종(성종의 생부) 영조)의 어패가 모셔져 있고, 입구에는 하마비가 그대로 남아 있 다. 또 영조가 11세 때 써 보냈다는 자응전( 慈 應 殿 ) 이라는 글씨가 지금 도 성전암 마루 위에 걸려 있다. 그리고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 상 개금 공사 때에는 파계사가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영조의 도 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필일이 지나자 큰 눈이 내렸으나, 심지가 서 있는 사방 열 자 가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 신기하고 이상함을 보고 당에 들어 오기를 허락했으나 심지는 거짓으로 병을 칭탁하여 들어가지 않고 예배 를 했다. 마침내 그의 팔꿈치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니 이는 마치 진 표율사가 선계산( 仙 溪 山, 변산반도에 있는 산)에서 수도하던 중 피를 흘 리던 일과 같았는데 지장보살이 매일 와서 위문했다. 향토사교육연구회,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 영한, 2002.에서 발췌 법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중에 옷깃 사이에 간자 두 개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가지고 돌아와서 심공에게 아뢰니, 영심( 永 心 )이 말 하기를 간자( 簡 子 )는 함 속에 들어 있는데 그럴 리가 있는가 하고 조사 동화사 심지 스님의 신통력 삼국유사 심지계조( 心 地 繼 祖 )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중 심지는 신라 제41대 헌덕왕(809~825) 김씨의 아들이다. 나면서 부터 효성과 우애가 있고 천성이 맑고 지혜가 있었다. 해 보니 함은 봉해 둔대로 있는데 열고 보니 간자가 없었다. 심공이 매우 이상히 여겨 다시 간자를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다. 심지가 또 길을 가 는데 간자가 먼저와 같았다. 다시 돌아와서 아뢰니 심공이 말하기를 부 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받들어 행하도록 하라. 하고 간자 를 주었다. 심지가 머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니 중악의 신이 선자( 仙 15세에 머리를 깎고 스승을 따라 불도에 부지런했다. 중악( 中 岳, 지 금의 팔공산)에 가서 살고 있는데 마침 속리산의 심공( 深 公 )이 진표율사 子 ) 둘을 데리고 산꼭대기에서 심지를 맞아 그를 인도하여 바위 위에 앉 히고는 엎드려 공손히 정계( 正 戒 )를 받았다. 심지가 말했다. 이제 땅을 064 1장. 동구의 이야기 065

34 가려서 불타( 佛 陀 )의 간자를 모시려 하는데 이것은 우리들만이 정할 일 이 못되니 그대들 셋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던져 점치도록 하자. 이에 신들과 함께 산마루로 올라가서 서쪽을 향하여 간자를 던지니 간자 1544~1610)은 사명당 이야기로 유명하다. 사명당의 이야기는 민중의 입으로 전승되기도 하고, 그것을 소설로 꾸민 <사명당전>, 혹은 임진왜 란을 소재로 한 <임진록>에 다양하게 제시된다. 는 바람에 날아간다. 이때 신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먼저 사명당의 출가와 관련된 설화를 살펴보면, 이 설화는 전주 밀 양 안동 등 여러 지역에 전해지는 것으로 <사명당전>에 집약되어 있다. 경상도 밀양 땅에 임유정( 任 惟 政 )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어릴 때 신동 으로 알려질 만큼 뛰어난 점이 많았는데 17세에는 그 고을 이참판의 딸 과 결혼하여 옥동자를 낳았다. 그 후 갑자기 이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유정은 다시 김씨 부인을 맞아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전처 몸에서 난 아들이 장가 간 첫날밤에 자객에 의해 목이 잘린다. 신부는 자신이 죽 였다는 누명을 벗기 위하여 남장을 하고 집을 떠나 범인 색출에 전념한 노래를 다 부르고, 간자를 숲 속 샘에서 찾았다. 곧 그 자리에 당( 堂 ) 을 짓고 간자를 모셨으니 지금 동화사 첨당( 籤 堂 )이라고 일연( 一 然 )이 기 록하고 있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기이한 능력으로 왜왕을 굴복시킨 사명대사 동화사 조사전( 祖 師 殿 )에 모셔져 있는 사명대사( 四 溟 大 師 )유정( 惟 政, 사명당 영정 066 1장. 동구의 이야기 067

35 다. 이 과정에서 신부는 남편의 계모인 김씨 부인의 사주를 받은 하인이 범인임을 알고 시아버지인 유정에게 알렸다. 이에 유정은 벽장 속에서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전처 소생 아들의 머리를 찾아내고 후처와 그 아 들을 자신이 살던 집과 함께 태워 버리고 세상살이에 회의를 느낀다. 이 에 유정은 남은 재산을 모두 노복에게 흩어 주고 출가를 단행하였다는 것이다. 오게 하여 말을 식혔다. 사명당은 여기서 나아가 폭우가 쏟아지게 하여 왜국을 물에 잠기게 하고 급기야 왜왕의 항복을 받아 냈다고 한다. 그리 고 매년 사람의 껍질 삼백 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선에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다음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설화를 보면, 이 설화는 사명대사가 임 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신으로 건너가 활약한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 는데 <임진록>에 집결되어 있으며 구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선조의 명 을 받고 사명대사가 사신의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가니 왜왕은 왜국의 시 를 병풍에 적어 사명대사가 지나가는 길마다 진열해 놓고 자국의 문물 이 번성하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이에 사명당이 그 시들을 모두 암송하 부인사 동진대사 이야기 명산 명찰치고 고승들의 수도처가 아닌 곳이 있으랴만, 사지( 寺 誌 )를 잃어버린 부인사로서는 이렇다 할 스님이 머물었다는 물증을 확보하기 가 어려운데 기이하게도 범해선사( 梵 海 禪 師. 1820~1896)가 쓴 동사열 전 과 정도전(?~1398)이 지은 삼봉집 에 각각 동진대사( 洞 眞 大 師 )와 주 지 우운( 友 雲 ) 스님의 기록이 있다. 여 모작( 模 作 )이라고 질타하여 왜왕의 기를 꺾었다는 것이다. 또한 왜왕 이 사명대사를 죽이기 위하여 그를 무쇠로 된 방에 감금하고 숯불을 피 워 무쇠 방을 벌겋게 달구게 했다. 이제는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왜 왕이 방문을 열었더니 사명당은 천장에 얼음 빙( 氷 ) 자를 하나 써서 붙 여 두었는데, 수염과 눈썹에는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서는 너무 춥다고 불을 더 지펴 줄 것을 요구했다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왜왕은 다시 무쇠 말을 벌겋게 달구어 놓고 사명당에게 타라고 하자 사명당은 도술로 비가 삼봉집에 관한 기록은 당시 거찰이었던 부인사에 우운을 주지로 임 명한다는 내용이나 우운이 어떤 스님인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은 반면, 동사열전의 동진대사조에는 스님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어 잠시 옮겨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비조( 鼻 祖 )인 도선( 道 詵 )의 수제자가 경보 스 님인데 이 경보 스님의 출가지가 부인사라는 사실이다. 경보( 慶 甫 )는 공 068 1장. 동구의 이야기 069

36 교롭게도 스승인 도선과 같은 전라도 영암 구림( 鳩 林 )에서 경문왕 8년 (868) 그의 어머니가 흰 쥐가 푸른 유리구슬 한 개를 몰고와, 이것은 매우 드문 기이한 보물이며 불가의 최고 보배입니다. 품안에 있으면 부처님 호념( 護 念 )이 따를 것이고 나오면 틀림없이 광채를 발할 것입니다. 라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잉태하여 태어났다. 그가 불도에 입문 하기를 간청하니 마침내 부모들이 울면서 스님되기를 허락하여 이곳 부 국사의 수제자로 일반인들에게는 풍수( 風 水 )로 알려진 비보사탑설의 이 론을 편 선종( 禪 宗 )계의 스님이다. 따라서 필자가 발견한 참으로 신비한 사실은 불맥이 혜철(은해사)- 도선(옥룡사)-경부(부인사)로 이어졌다는 일이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인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24세 되던 해, 당에 가 불경을 공부하고 후백제 견훤 30년(921) 귀국하여 견훤으로부터, 스님을 만난 것은 비록 늦었지만 제자되는 것이야 왜 꾸물대겠는가 라며 완산주에 있는 남복선원에서 주석해 달라는 청을 받았으나 새도 머물 나무를 가릴 줄 아는데 내 어찌 박이나 오이처럼 한 곳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단 말이요? 하면서 박계산 옥룡사( 玉 龍 寺 )로 들어가 고려조 태 북지장사의 지장보살 이야기 동화사나 파계사 등 큰 절에 가리워져 소개도 안 될 만큼 작은 절이 있는데 바로 북지장사이다. 팔공산 남록에서 유일하게 지장보살을 모시 고 있는 지장도량이며, 원래 이름은 그냥 지장사 로 불렀을 것이나 최정 산에 있는 남지장사와 혼동을 막기 위해 북자장서로 불렀을 것이다. 조, 혜종, 정종 세 임금이 스승이 되어 불법을 펴다가 어느 날 목욕재계 한 뒤 사내( 寺 內 ) 대중을 모두 뜰 앞에 모이게 한 후 내 이제 떠날 것이 니 여러분들은 부디 여기 머물며 잘 정진하라 는 유훈을 하고 돌아가니 부모로부터 몸을 보전받은 지 80년 법렵 62년 정종 3년(948)이다. 이 소 식을 전해들은 왕이 친히 조사를 써 주고 시호를 동진( 洞 眞 ), 탑호를 보 운( 寶 雲 )이라 했다는 스님이다. 동진대사의 스승인 선각구사( 先 覺 國 師 ) 도선은 은해사 창건주 혜철 북지장사의 지장보살 070 1장. 동구의 이야기 071

37 백안 삼거리에서 동화사로 접어들면 1.5km 정도에서 안내표석이 보 이고 여기서 2.5km 정도 더 들어가면 고시촌으로 이름난 도장마을이 있 고 이곳을 지나 이르는 곳이 바로 북지장사이다. 확실히 기록은 없으나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신라 1대 소지왕 7년(485)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화사를 창건하기 8년 전에 이미 이 북지장사를 창건한 것이 된다. 북지장사에는 지장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전해온다. 자라 입고 있던 옷마저 벗어주고 자기는 흙구덩이 속에 들어가 향을 사 르며 부디 어머니를 극락으로 천도하소서! 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 순 간 부처님이 소녀의 앞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착하다 성녀여 처녀의 몸으로 옷을 벗어 걸인에게 주고 벗은 몸을 흙구덩이에 감추었으니, 누가 너를 보살이라 하지 않겠느냐 너의 소원은 성취시켜 주리라. 아주 오랜 옛날 꽃다운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 깊은 신앙심 으로 이웃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아버지 역시 부처님 말씀을 잘 따르고 계율을 잘 지켰다. 반면 소녀의 어머니는 달랐다. 방탕한 것은 물론 부처님을 비방까지 가난하고 우매하며 병든 중생들을 먼저 깨우치게 한 후에야 비로소 성불하겠다는 염원을 세운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이정웅,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 북랜드, 2000.에서 발췌 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술에 취한 채 죽어버렸다. 소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 에 이르렀다. 마침내 물려준 모든 재산을 팔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한 제를 올 리기 위해 꽃과 향, 의복과 음식, 탕약을 준비해 절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날따라 소녀가 가는 길에는 많은 걸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 다. 소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옷을,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며 위로하고, 그것도 모 북지장사 072 1장. 동구의 이야기 073

38 3 story 땅이름 이야기 독좌암 독좌암의 유래-왕건이 앉은 바위 불로동에서 동화사 방향을 따라 약 1km정도 가면 좌측의 예전 봉무 동 사무소 맞은 편에 큰 돌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라의 원병 요청으로 온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팔공산에서 전투를 하다가 왕건이 패하여 달아 나게 되었다. 그 때 왕건이 포위되어 도피가 불가능하자 왕건의 부하인 신숭겸이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포로가 되고 왕건을 도피시켜 왕건이 도망치면서 이끌고 간 몇몇 부하가 이곳에서 왕을 잃어서 실왕동( 失 王 洞 )이라 불리게 되었고, 왕건이 이 바위에 홀로 와서 앉았다 하여 이 바 위를 독좌암( 獨 坐 岩 )이라 일컬어진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지묘동의 유래 고려 태조 10년 9월에 후백제의 견훤이 영천을 습격한 뒤 신라의 수도 경주에 침입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던 경애왕과 비빈 및 종친과 왕실의 외척들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왕건은 크게 격분 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는 한편 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대구의 팔 공산 동수( 桐 藪 )에서 견훤과 커다란 싸움을 벌인다. 이른바 동수대전 ( 桐 藪 大 戰 )이다. 그러자 후백제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몹시 위급하였는데, 당시 신숭겸은 왕건과 외모가 흡사하였으므로 왕건을 부인사 근처로 숨게 한 뒤, 자신은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락과 함께 힘 을 다하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표충사 앞 의 순절단이 있는 자리다. 견훤의 군사들은 신숭겸이 왕건인 줄 알고 머리를 잘라 창에 꿰어 돌 074 1장. 동구의 이야기 075

39 나팔고개, 왕산, 파군재 유래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해 있 을 때 신라의 원병 요청으로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의 일전을 벌이 게 되었다.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대구시 북구 서변동을 지나 연 경동, 지묘 3동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서변동 일대를 지날 때 왕건 신숭겸 표충사 전경 이 군사들에게 게을리 하지 말라( 無 怠 )고 당부했다 해서 지금도 이 지방 을 속칭 무태( 無 怠 ) 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연경동 부근에 이르렀 을 때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와 왕건이 감탄한 마을이 아갔다. 그 후 왕건은 본진으로 돌아와 신숭겸의 시신을 찾았으나 머리 라 해서 연경( 硏 經 ) 이라 불려진다고 한다. 가 없었으므로 찾아내지 못하다가 왼쪽 발 아래에 북두칠성 같은 점이 있다는 유검필의 말에 의거하여 신숭겸을 찾아냈다. 왕건은 몹시 애통하 여 목공에게 생전의 모습과 같이 나무로 얼굴을 다듬게 하고 후하게 장 사를 지내주었다. 그리고 왕건은 신숭겸의 동생인 능길과 아들 보장에게 원윤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신숭겸이 전사했던 장소에 지묘사( 智 妙 寺 ) 를, 그리고 그 주변에 미리사( 美 理 寺 )라는 절을 세워 그의 명목을 빌었 진군을 계속하면서 지금의 지묘 3동에서 지묘 1등으로 가는 고개에 서 적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 이로 인해 이 고개를 나팔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일설에 의하면 견훤의 군사가 왕건의 군사를 둘 러싸고 쳐들어가며 나팔을 불었다 해서 나팔고개라고도 하고 왕건의 군 사를 깨뜨린 견훤의 군사가 이 고개를 넘으며 나팔을 불었다고도 한다.) 다. 이것은 모두 신숭겸의 공훈에 특별히 보답하고자 함이었다. 현재의 지묘동은 바로 지묘사라는 절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이 나팔 고개를 넘어간 고려군은 드디어 후백제 견훤 군사와 일전을 치 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고려군은 견훤의 군사에게 무참히 짓밟혀 풍 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고려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살리기 위해 곤룡포를 입고 왕건의 모습과 비슷하게 꾸며 적군의 눈을 속였다. 이 틈 076 1장. 동구의 이야기 077

40 을 타서 왕건은 지묘 1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무사히 피신해 화를 면했 다. 이런 연유로, 이 산이 왕건을 살렸다는 뜻에서 왕산 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옻골의 유래 동구 방촌시장 맞은편으로 들어가는 둔산동에는 경주 최씨 성을 지 닌 20여 집이 모여 사는 옻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남쪽을 제 외한 동 서 북쪽의 모든 산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왕을 보낸 고려군은 신숭겸을 중심으로 끝까지 항거를 계속했다. 지 묘 2동에서 파계사로 넘어가는 뒷산을 뚫고 위장전술을 폈으나 사기충 천한 견훤 군사에게는 역부족이었으며 많은 군사가 쓰러지고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다. 고려군은 간신힌 남은 몇몇의 군사를 수습하여 오른쪽 동화사 고갯길로 활로를 개척했으나 숨어 있던 적의 군사에게 비참한 희 생을 겪고 지묘 앞 냇물을 간신히 건넜다. 왕산을 배후에 두고 최후의 싸 움을 벌였으나 중과부적( 衆 寡 不 敵 )이라 진퇴유곡( 進 退 維 谷 )의 위기에 빠 지게 되었다. 이 때 견훤의 군사들은 발바닥에 사마귀가 있는 왕건을 잡 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신숭겸은 팔공산 자락에 숨어 있을 왕건이 고 한다. 옻골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옛날 동네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는데, 지나가던 노인이 정자에 올라 주위를 살핀 후 동네 사람들에게 이 마을의 정자에서 금호강 물이 보이 면 지기( 地 氣 )가 기괴하여 마을이 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 후 금호 강 물이 보이자 주위의 산에 울창했던 나무들이 말라죽고 차차 다른 곳 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말 을 기억하여 동네 주변에 옻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향토사교육연구회,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 영한, 2002.에서 발췌 잡힐까 두려워 자기 발바닥에 상처를 내어 먹물로 검은 점을 만들었다. 장군과 더불어 마지막 남은 고려 군사는 견훤의 칼날 아래 쓰러져 팔공 산 누리를 붉게 물들여 그 당시의 처참한 광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 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신숭겸의 군사가 제1차로 파해서 흩어진 곳을 아래 파군재라 하고 제2차로 파한 것을 윗파군재라 불려지고 있어 지금 도 이 곳을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옻골 보본당 078 1장. 동구의 이야기 079

41 내동의 유래 내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공산1동이다. 지명은 미대동의 속 골짜 기에 있다는 뜻이다. 도덕골 망칫골 서작골 수무상골 시니밋골 어실 여싯골 오릿골 등의 골짜기와 마당재 열재 등의 고개, 매봉 재 삼마산 영기산 응봉 등의 야산이 있다. 삼마산은 삼밭이 많았다 고 해서, 여싯골은 여우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곡동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새미덕봉 효자천은 우물이면서 내곡동의 자연부락이다. 내곡동 산록 에 초례봉 가는 능선으로 여대익의 선고( 先 考 ) 산소가 있는 곳으로 이 곳 에 조그마한 우물이 있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던 여씨 부친께서 돌아가 자 무덤 근처에 움막을 짓고 잠시도 떠나지 않고 슬피 울며 보살폈다고 한다. 여씨가 이와 같이 시묘살이를 하던 때 날씨가 몹시 가물어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을 만큼 물을 구하기 힘들어 곤경에 당했으나 여씨의 효성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 전 순흥안씨( 順 興 安 氏 ) 씨족이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 곳(지금의 내동)에 이르러 보니 북쪽 뒷산에 올라가 보 니 좌우는 산으로 가로 막혀 있고 안에 있는 자리가 너무나 아늑하고 따 뜻하게 보여 정착을 하고 내동이라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그 후 가 뭄과 장마 때에 먹을 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해 걱정하던 중 맑은 물이 나 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곳은 청석돌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고 가 에 하늘도 감복했음인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바위 틈에서 갑자기 샘 물이 솟아 나와 갈증을 풀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칠 수 있었다고 전해 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은 샘의 덕을 본 봉우이란 뜻에서 새미 덕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뭄이나 장마 때도 물의 양이 줄거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항시 똑같 은 양이며 아주 맑았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이 맑고 신기하여 물의 이름을 옥정( 玉 井 )이라 지어 옥정수라 하고 마을을 옥정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의 이름을 내동이라 부르고 아직까 지 순흥 안씨가 많이 살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초례산( 醋 禮 山 )의 유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 왕과 싸우려고 오동나무 숲에 이르러 부하들과 함께 초례산에 올라가 필승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한다. 이 산을 초례봉이라고 한 것은 약 1500년 전 어씨라는 초부( 樵 夫 )가 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선녀와 만나 가례( 嘉 禮 )를 이루고 이 봉우리에서 초례를 치렀다고 해서 초례봉이란 이름이 080 1장. 동구의 이야기 081

42 대림동 식송계보( 植 松 契 洑 )의 유래 식송계보는 하천이면서 대림동의 자연부락이다. 그리고 대림동 일대 의 하천이다. 현대 동구 사복동 변노우 씨의 6대 조가 이 지역이 금호강 이 있음에도 매년 심한 가뭄을 겪어 생활이 곤란하여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큰 용이 현몽하기를 하양 물띠미 깊은 소에 내가 살고 있는 초례봉 데 이 소( 沼 ) 위에 자갈과 모래가 쌓여 장차 내가 거주할 곳이 없어지니 당신이 이 소( 沼 ) 아래쪽에 보( 洑 )를 설치하여 내가 용신할 터를 마련해 주시면 어떤가? 하였다고 한다. 변 노인이 이 곳이 가뭄이 자주 들고 봇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봉우리에 인골( 人 骨 )을 암매장하면 그 후손이 거부가 되는 동시에 이 고을은 대단한 한발( 旱 魃 )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지금도 날씨가 가물면 이 산 위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냄과 동시에 암매장 흔적을 확인한 다고 한다. 물 시설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봇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가? 물어보자 내일 아침 눈 덯인 들판 위를 내가 꼬리를 끌며 지나간 흔적을 찾아 그 흔적대로 봇도랑을 개설하면 이 넓은 들이 가뭄에서 벗어날 것이다. 라 고 말한 뒤 사라졌다 한다. 과연 아침에 흰 눈이 가득 덮인 넓은 들(모시덤)로부터 용이 꼬리를 끌면서 지나간 자국이 물띠미까지 뚜렷하였다. 변노인은 곧 사람을 동원 초례봉 북쪽에 두루봉이 있는데 어떻게 하여 두루봉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봉우리가 두 개라고 해서 둘이봉 혹은 초례봉을 둘러 있다고 해서 두루봉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짐작된다. 김종대, 우리고장 대구(지명유래), 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하여 봇도랑이 설치될 표적으로 하고 보를 개설하여 이 곳 옥야 십리들 을 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소나무를 심어 수해지에 표적하게 한 후 식송보의 권리를 변씨 문중에서 관리하다가 한일합방 무렵 보상금을 받고 식송계보로 발전하였다고 하는데 몽리면적인 약 20만 평에 달하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082 1장. 동구의 이야기 083

43 덕곡동 상리( 上 里 )의 유래 상리는 덕곡동의 자연부락이다. 팔공산 높은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상리라 불려진듯하나 일설에 의하면 공산면 서촌에서 제일 먼저 집터를 자리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위에 큰 암석이 하나 있는데, 천재지변 때에 마을이 위험했을 때 모든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이 바위를 땅 밑으로 숨겼던 일이 있다. 그래서 이 바위를 숨굼바위 라 하고 지금도 윗부분이 남아 있다. 상리는 가구수가 22호 정도로 달성 서 씨가 주성이다. 데 그거 드니까 학이 날아 댕긴다고 학구마을이라 캤다니께. 학이 날아 다녀서 학구마을이라. 그래가 학구 마을 딱 됀기라. 기생바위는 그 위에 서 놀다가 거 떨어져서 죽은 모양이라. 그래서 인자 옛날에 인자 머라카 노. 무당 카기도 하고 기생.. 기생이라 카고.. 그게 아니라~ 기생들이 바 위에서 춤추고 놀다가 술먹고 놀다가 널 쪄서 죽어가지고 그 이름이 기 생 바우! 저 위에 있다. 뭐... 제보자 : 신원호, 남, 75세, 채록일자 : 2012년 6월 1일, 대구시 동구 도학동 학부마을에서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모단의 유래 행정 구역상 지금의 대구시 동구 둔산 4구 지역은 속칭 빼골 또는 모 도동의 유래 도동은 도리동( 道 理 洞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효자 서시립( 徐 時 立 ) 이 어머니에게 효도하자 나라에서 그의 효성을 기려 전귀당( 全 歸 堂 )이란 단 이라 한다. 빼골이란 속명( 俗 名 )은 원래의 지역명인 빼어날 수( 秀 ), 골 동( 洞 ), 즉 수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단이라는 속명에는 특이한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호와 함께 이 마을 이름을 도리동이라 하사하였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터가 좋은 곳은 왕도가 아니면 역적이 난다고 한다. 지금의 모단 지역은 예전에 그 터는 좋았으나 역적이 나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역적이 난 곳이라 하여 주위에 둑을 쌓아 못으로 학골 학부마을 도학동의 유래 학이 날고... 학구 마을 카면서 캤제.. 저저저저 내려가면 돌이 있는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 오랜 세월 뒤에 둑은 자연 붕괴되었고 물이 빠진 후 다시 그 084 1장. 동구의 이야기 085

44 지역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속명인 모단은 그래서 지어졌다고 한다. 못 안에 산다, 곧 못안 모단 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은 모단이라는 속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에 쌓 았던 못 둑은 아직도 그 흔적을 여러 곳에 남기고 있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갈미 묘실 숲골 아래갈미재 욱갈미 등의 자연마을과 십일골 완정 등의 골짜기가 있다. 묘실마을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수충( 鄭 守 忠 )의 묘가 있다. 마을 형성이 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처음에는 배안 으로 불리어졌는데 점차 마을 호수가 많아져 100호 이상이 거주하게 되 면서 100호 모두가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 백안 이라고 명명하게 되 었으며, 지금도 배를 정박하는 형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방촌 용호동( 龍 湖 洞 ) 유래 용호동은 방촌동의 자연부락이다. 금호강 기슭 현 영남제일관 앞 강 변에 용수암( 龍 水 岩 )이란 바위가 현존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용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용수암을 정면으로 바라다보고 형성된 촌락 이라는 뜻에서 용호동이라 불려진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백안마을의 지명유래 천지가 개벽을 하여 모든 산과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을 때 한 마을만이 물에 잠기지 않았다. 배가 한 척 떠 있을 정도의 지역만 남았기 때문에 배안이란 말이 한자로 쓰여져 백안( 百 安 )이 되었다고 하고, 마을 사람 백여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여 백안( 百 安 ) 이라고 불려지 고 있다고도 한다. 백안동( 百 安 洞 ) 유래 백안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공산동이다. 지명은 백원사우가 와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붙인 것이라고도 하고, 마을 지세가 배와 같아서 처음에는 배안 이라고 했는데 마을이 커지자 모두 편안하라는 뜻에서 백안 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불로동( 不 老 洞 )의 유래 불로동은 후삼국시대에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부대가 신라를 086 1장. 동구의 이야기 087

45 침공 후 승전하여 퇴각하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5,000명의 원군을 이끌 고 내려오다 현 동화사와 파계사 삼거리에서 접전을 하여 왕건 부대가 참패하여 퇴각하게 되었다. 왕건이 후퇴하다 현재의 불로동에 오니 노인 과 부녀자는 모두 피난 가고 어린아이 등 젊은 사람만 살고 있는 동네라 합쳐져서 평탄한 분지가 되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좋은 땅, 복이 있는 땅 이라 하여 복득듬( 福 得 ) 또는 복두듬 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하여 불로동이라 명명된 이름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도덕( 道 德 )마을 수구막의 유래 도덕마을은 달성군 공산면 연경동이었다가, 대구시로 편입되어 지금 은 행정구역상 대구시 동구 연경동이다. 태봉에서 북서쪽으로 1km쯤의 상매 용골( 龍 谷 ) 복득듬( 福 得 ) 복두듬의 유래 용골은 상매동의 자연부락이다. 상매동( 上 梅 洞 ) 뒤 능천산( 綾 泉 山 )에 인접한 이 곳은 높이 80m 정도의 수직 절벽을 이루고 약 200m의 계곡 으로 그 모양이 마치 용( 龍 )의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용골( 龍 谷 ) 이라 불 위치에 있으며 동래 정씨 임하공파(15대째 살고 있음. 종택에는 종손이 현재 살고 있음)를 중심으로 20여 호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 道 德 )이라 는 마을 이름은 예부터 도덕을 숭상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렸다고 한다. 조선조 선조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이 태어나자 명산과 명당을 찾다 일설( 一 說 )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나라 에 온 명( 明 )나라 장수 이여송( 李 如 松 )이 산세( 山 勢 )가 너무나 빼어나고 아름다워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산의 정기( 精 氣 )를 끊으려고 혈 가 연경동 뒷산에 그 태( 胎 )를 안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봉우리 밑의 마을을 태봉이라 하였는데, 왕자의 태실( 胎 室 )이니만큼 석물이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석상이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 血 )을 잘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3일 간 선혈이 낭자하므로 짐승들도 이 산을 향하여 울부 짖었다고 하며 그 후 곧 절개된 산 일부가 상매동( 上 梅 洞 ) 능선과 다시 그런데 연경동 뒷산에 태실이 생기고 난 뒤부터 그 윗마을 도덕에서 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을의 과년한 처녀나 시집 온 새색시 088 1장. 동구의 이야기 089

46 들이 봄만 되면 태봉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는 끝내 미쳐 마을에서 도망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는 보통 둘레 2~3m, 길이는 7~10m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두 그루가 남아 있는데 한 그루는 말라죽고, 한 그루만 남아 삼사백 년 마을 의 비밀을 안고 태봉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일이 해를 거듭하여 계속되자 마을에서는 큰 고민거리가 되었 다. 여자들이 바람이 나서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마을 체면과도 관련이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되고 또 마을 자체 내에서도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해 보니 태봉의 석상한테 반해서 마을 여자들이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왕실의 석물( 石 物 ) 을 없앨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라 궁리 끝에 마을 앞에 소나무를 심기로 했다. 이곳은 도덕마을에서 보면 태봉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위치이다. 용계동( 龍 溪 洞 )의 유래 용계동의 금계리와 구용리는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후에 창리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 구용리는 9정승들이 살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금계리는 개천에서 금이 났다는 전설에 의해 금계라 하였다 하며 대정 8 년 때 행정구역 정비 당시 구용리와 금계리를 합쳐 용( 龍 ) 자와 계( 溪 ) 그리고 나서는 마을 전체가 소나무를 가꾸기 시작했고, 그 숲의 이름 을 수구( 樹 口 )막 또는 수구맥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로는 여자가 성적( 性 的 )으로 미쳐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 숲에서 풍악을 울리고 한 해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고 또 고마움을 전 자를 따서 용계동으로 칭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구용리는 리 성립 시 진주( 晋 州 ) 강씨( 姜 氏 )와 김해( 金 海 ) 김씨 2개 성( 姓 )이 창설하였다는 설이 유력한데 현재는 달성( 達 成 ) 배씨( 裵 氏 )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했다고 한다. 돈지봉의 유래 이러한 풍습은 1960년대 후반까지 있어 왔으며 그때까지 울창했던 소나무 숲이 솔잎혹파리와 태풍으로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고 한다. 나 돈지봉( 豚 知 峰 )은 용계 1동에 위치한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으로 서 대구 영천 간 국도에서 300m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돈지봉에 090 1장. 동구의 이야기 091

47 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돈지봉의 원래 이름은 조리봉 으로서 생성 당시에는 산세도 기묘하 고 수려하였으나 얼마 후 천지개벽이 일어나 산의 모양이 바뀌어 조그맣 게 남은 산봉우리가 쌀을 이는 조리만큼 남게 되어 조리봉 이라고 불려 졌다고 한다. 진인동 인산마을의 유래 우리 동네는 인산인데 어질 인자 뫼 산자 논어 책에 보면 인자 뫼산 어진사람은 인자, 음악 하는 그자가 좋을 로자로 풀이가 되거든. 음악 하 는 악자가 좋을 로 한문 한자를 가지고 두 가지 세 가지로 부른다고.. 뜻 이.. 그래서 인자요산 지사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카는 게 적혀있어 그래가 우리 마을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 가지고 인산. 여는 아 또 하나의 전설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우리나라에 와서 산세를 보 니 이곳에 큰 인물이 날 것 같아 남북의 줄기를 모두 잘라 산의 맥을 끊 었고, 일본 침략기에 일본 경찰은 산봉우리에 쇠말뚝을 박아 산의 정기 를 끊었기 때문에 그 후로부터 부자 마을이었던 이곳은 가난한 마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김종대, 우리고장 大 邱 ( 地 名 由 來 ), 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주 참 인심도 좋고 범죄 없는 마을이다. 우리는 이제 진인동이거든. 참진 자 어질 인자. 그래서 진정카는 데 가 참 진자 하고 정자 정자를 진자를 따서 우리는 인산이제 인자를 따고 그래가 진인동 그래서 저 쪼는 진인1동 여기는 우리는 진인2동 그래서 진인동이 그래서 생겼어요. 진정마을... 글세 그거는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어.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용수동 태정( 胎 亭 )의 유래 태정은 용수동의 자연부락이다. 어느 태자가 태( 胎 )를 이곳에 묻었 는데 그 봉에 정자나무( 亭 子 木 )가 돋았다고 하여 태정 이라 칭하게 되었 다.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태정( 泰 亭 )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김 해 김씨가 주성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인산마을의 유래 2 그래여 도림사 절에 올라가다보면 현재 도림사에 나무 있는데 거 한 대 보면 대나무숲이 있어 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거기보면 인산이라 고 래 딱 돌로 딱 그런데 거는 주황색 칠을 딱 해 놓고 거 올라가면 못봐여 안비 자테가면 인산이다. 그게 장. 동구의 이야기 093

48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은 골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 동래 정씨 12대조( 代 祖 )의 정 려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위치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유달리 선조 거사듬이의 유래 5개 자연부락이 이루고 있어요. 저 밑에 내려가면 담동 또 저 밑에 내려가면 거사동 여 우리는 새터, 새터 새로운 터라 이 말이다. 저 위에 가면 큰 마을 저 골에가면 삼방 근데 저 우에 옛날에는 아카 캤듯이 신라 를 봉양하고 화목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이후 효도하고 화목하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인해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소목골을 한자식으로 효목 ( 孝 睦 )동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효목동은 소목골의 다른 명 칭이다. 시대에 저 골짜기에 고 밑에 내려가면 큰마을 그래 사는데 이임년 수해 에 다 떠내려갔어요. 그면 이임년 수해가 지금부터 몇 년 됐나 하면 사십 년 육십년 넘었어요. 그래가 다 떠내리 가가 저 건너 전부 하천부지야. 하천부지 경록지가 아니란 말이야. 거리란 말이야. 그래서 인자..요 다음 인자.. 새로운 터를 다졌다 그래서 새터라. 수해가 가고난 후에 여에 인자 새터를 다져가지고 마을이 생긴 거야. 그렇지 이백 한 이 삼년 된거지.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이 동에는 갑오경장 이후 487번지에 당시 유일한 기와집을 마련하여 서당을 만들어 자제 훈육에 힘썼고, 그 이후 경로당, 고등공민학교로 이 용되었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다. 또한 지금 효목 교회 자리에는 당목이 있었고 이 당목을 기점으로 하여서 적은 골, 큰 골 로 나뉘었다고 한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만촌동이나 10여 년 전에는 효 목동이었던 효목못 주위에는 판교지라는 숲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못은 지금 메워져 효목공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주위의 느티나무는 아직까지 남아 효목동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은 신천동인 동부정류 효목동의 유래 현재 행정구역상 효목동은 수성구 만촌동과 동구 신천동과 연접되 어 있는데 효목동이라 불리기 이전에는 소목골이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 란을 전후하여 동래 정씨가 난을 피해 당시 수성현 수북면 소목골에 입 향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천동을 한골이라 한데 비해 효목동을 적 장 부근을 그 때는 야시골이라 했는데 유독 언덕이 높아서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또한 지금은 만촌동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군의학교 제일육 군병원 뒤쪽 산은 인재가 많이 날 형상이라서 중국 명나라 이여송 장군 이 산 줄기를 끊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당시 효목동으로 들어오려면 이 산을 넘었어야 했는데, 그 산 주위에 돌무덤이 있어서 쉬어 가곤 했다 094 1장. 동구의 이야기 095

49 는데서 쉬목골 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현재 아양교 부근을 금정나루라 했는데 이는 경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요충지 구실을 했다고 한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안심( 安 心 )의 유래 후삼국 말기 왕건과 견훤의 공산전투( 公 山 戰 鬪 )에서 왕건이 파군재 부근에서 대패하여 쫓기던 중, 이 지역에 도달하여 환성산 줄기의 초례 봉 쪽으로 피신하여 내려오다 날이 새자 마음을 풀고 마음이 안심되었다 는 유래에서 안심동이 되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반야월( 半 夜 月 )의 유래 후삼국시대 왕건이 견훤군사에 패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날은 반야 ( 半 夜 )이고, 중천에 달( 月 )이 떠 있어서 이곳을 반야월 이라 했다고도 한 다. 또한 율하동리가 고적에 숙종 대왕이 야행시 도착할 때 초생달이 있 었다 하여 반야월 이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숙종이 민정 시찰로 경제시 책(대동법)을 확인하기 위해 돈지봉 아래 작은 고을에 사는 촌로( 村 老 )와 신용동 용진( 龍 津 )의 유래 여기가 달성군 공산면이었다가 1981년도에 대구직할시로 편입을 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는 여기가 신용동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행정 지명상 대구시 동구 신용동인데 신용동에 대한 얘기도 지명 유래도 해야 밤늦게까지 세상살이며 나라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대왕께서 돌아갈 때쯤 당신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라고 하니, 이 작은 고을에 사는 촌로가 무슨 큰 소원이 있겠소. 그런데 이공( 李 公 )! 내가 사는 이 고을에 아직 이름이 없소. 이름 하나 지어주시지요. 라고 하였다. 숙종께서 거 참 아직 고을 이름이 없다니. 하면서 밖을 보니 밝은 밤하늘에 반달이 떠 있길래 반야월( 半 夜 月 )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신용지 못 096 1장. 동구의 이야기 097

50 되겠죠? 여기가 들어오다 보면 용진마을이라고 적혀있었어요. 용진마을 이고 저 쪽에 큰 블록 지나서 저 쪽이 신천이라는 동네예요. 그 신천의 신자와 용진마을의 용자를 합쳐서 신용동이 된 겁니다. 신용동이라는 이 뜻하는 송진할 때 그 진, 나아갈 진, 훙미진진하다 할 때도요 그 진자를 쓰거든요. 그 옥편에 보면 의미가 여러 가지 쓰이거든요. 그 중에 어느 하나 의미가 들어가지 않았나 라는 것도 지금 찾고 있고요. 름의 유래는. 그런데 행정명으로는 신용동이지만 용진마을이라고 부르 잖아요. 그 용진마을의 유래는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중이예요. 아직 정 확한 그거는 지명은 잘 모르는데 이 마을의 형상이 용의 형상이랍니다. 용의 형상이고 여기가 용의 머리 짤에 집이 지어졌다 그래요. 근데 용 용 자에 다가 나루 진자, 나루 진자아세요? 한자로. 이렇게 앞에 물수변이 있고 붓율 자를 쓰면 나루 진자가 되죠. 나루 진자를 써갖고 용진이라고 표기를 하거든요. 그러면 이 마을에 보면 나루라는 건물이 있어야 배가 뜨고 날고 하는 그 나루가 되잖아요. 근데 여기 물이 없어요. 분명히. 물 론 여기 저수지는 있어요. 농사짓기 위한 저수지는 신용지라는 것도 있 고 학두지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정도 가지고는 그 진자를 쓴 이유를 잘 몰라가꼬 우리가 지금 자료를 찾고 있어요. 근데 그 중에 찾은 이유 중에 뭐가 있느냐면 풍수적인걸로. 풍수는 보면은 모자라는 거는 이렇게 보태 서 보호해주고 또 넘치는 거는 덜어 내주는 어떤 그런 걸 하는 거잖아요. 비복풍수라고 해가지고 용이 있으면 물이 있어야하는데 물이 없어요. 그 또 다른 설은 옛날에 우리 마을을 나타내는 단위가 지금도 군, 면, 리 이렇게 가잖아요. 현이라는 지금도 일본은 현이라는 그걸 쓰잖아요. 현 이라는 것도 있고, 향소부곡 이런 제도들도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마을의 소단위 몇 집이 됐을 때 고거를 이렇게 말하는 그런 지명이었지 않냐는 그런 말도 있어요. 지금 우리가 찾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지 금 생각하는 거는 가장 비복풍수, 여기가 용이기 때문에 비복풍수에 따 라 물 수자가 들어간 진자를 쓰지 않았느냐 그런 것과 또 이렇게 이 마을 에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 같은 게 있대요. 저 쪽 신용지 같은 데서. 그럼 용이 나오고 이 마을이 넉넉하게 풍요롭게 살라는 뜻이 진자의 뜻이 또 넉.넉하다는 뜻이라 했잖아요. 그런 의미를 가진 그런 한자를 쓰지 않았 겠느냐. 제보자 : 김춘자, 여, 대구시 문화 관광 해설사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마을에서 러니까 그 물수가 들어가는 이름에 진자를 쓰지 않았냐 하는 것도 한 가 지 설이고요. 또 옥편을 찾아보면 나루 진자가 우리가 표면상에 드러나 는 첫째 뜻이 나루라는 뜻을 가진거지, 그 뒤에 가면 넉넉할 진, 진액을 098 1장. 동구의 이야기 099

51 들밀재와 거저산 관련 유래 우리가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이렇게 앞산, 조산이 있고 그런 것들이 쭉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할 때 이 집에 주산 격인 뒤에 거저산이 있습 니다. 한자 명으로 거전데, 들 거자에 밑 저잡니다. 그러면 이거를 우리 말로 풀면 뭐가 될까요? 들밑산입니다. 들밑산인데 여기 파계사에서 부 인사 쪽으로 넘어가는 요쪽 고개가 들밑재예요. 그런데 재는 그냥 들밑 재라고 하고 있는데 산 이름은 거저산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 게 일제시대때 들 거자에 밑 저자로 간 거예요. 밑이 들린 산이라고. 파 중대동 새 못골의 유래 요 밑에 가면 새 못골 하는, 고 동네 쪼그만한 자연부락 우에 가면 못이 하나 있는데 거는 거 옛날에 동네에서 스님들을 동냥 오는 스님들 을 학대를 해가지고 어떤 스님이 여기다 못을 파면은 이 동네가 더 번창 할 것이다 그래가지고 그 못을 하루아침에 팠다 해가지고 조강지라 하는 데 그 못을 파고 나서 이 동네가 망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제보자 : 신성용, 72세, 남, 노인회장,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서 계봉에서 쭈욱 골로 내려오다가 산이 갑자기 불쑥 솟아있거든요. 절 앞 에 가서 보면은. 그래서 들 밑, 밑이 들린 것처럼 산이 이렇게 불쑥 들렸 다해서 들밑산인데 그게 한자 이름으로 가서 거저산이 된 겁니다. 제보자: 김춘자, 여, 대구시 문화 관광 해설사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마을에서 송정동의 유래 옛날에 그 그 우리나라 그 때 그 뭐 전쟁 있을 때 와, 그 때 중국 뭐 원나란가 무신 나란가 모르겠다. 이여송 장군이라고 혹 들어본 일 있는 가 모르겠네. 이여송. 그 장군하고 넘어왔을 때에 그 때 그 어디하고 했 다 카더라 뭐 지금도 이런 거는 적기도 그렇다. 그 때 그래가 그 저 전쟁 이 났는데 아무래도 이 지역을 그 저저 빼았지를 못해가지고 이랬는데 어느, 어느 날 저녁에 보니까 또 안개가 끼이면은 산허리가 있어지고 그 전설 같은 이야기라 전설이라. 이어지고 이래 가지고 그게다가 말뚝을 박고 그 미륵을 칼로 쳐가지고 자르고 나니까 여여 그 그 저 밑에 지묘 쪽으로 내려가는 저 꼴짜기 저기 소위 개착골 하는데 그 개착골에 피가 소나무 숲 뒤로 보이는 거저산 나가꼬 다시 산이 안 이어졌다. 이래가지고 어어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 100 1장. 동구의 이야기 101

52 인데 그 미륵을 보면 미륵이 세 동가리 나가있어. 그래 세동가리 나있어.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그 고런 이야기는 그건 아마 송정 사람들이 더 잘 알끼라. 그건 그렇고. 그라고 나니까 저 개착골에 핏물이 나가면서 그 산허리가 끊어지더라 그 래서 요 송정하는데 끈친배기라고 그 산허리가 잘린 데가 있어.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불로 봉무동의 유래 불로라 카는 것은 서인이 앉아가 있는 게 우리 등거리 해가 불로동 이 생깃다 이 말이라. 봉무라카는 동네는 산이, 봉이 춤을 추는 형태라. 봉이 춤을 춘다는 검사동의 유래 검사동은 고려태조 왕건이 백제 신라정벌 당시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원에게 패퇴하여 도주하다가 금호강변 모래가 비단처럼 빛깔이 곱고 크기가 똑같다 하여 금사로 불려지다가 검사로 개칭 불렸으며 동촌유원 말이다. 산이 죽 마을이 그 집에 있다고 그기 나팔 불면 봉이 좋아가 춤 을 춘다 이 말이라, 그래 춤출 무자, 새 봉자라 이 말이라. 제보자 : 서재수, 83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지가 소재하여 시민들의 휴식 공간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봉무 독암( 獨 巖 ) 독지방의 유래 독암은 봉무동의 자연부락이다. 독암은 독좌암( 獨 坐 岩 )에서 따온 명 칭인 바 독좌암은 봉무동 노인회관 북쪽 5km지점의 개천가에 위치하고 석동( 立 石 洞 )의 유래 입석동은 신라말엽(후삼국시대)에 왕건과 견훤의 전쟁이 치열할 때 왕건의 부하 장수들이 말총으로 큰 돌을 굴려서 입석동까지 왔었다고 하 며, 전쟁중에 부하 장수들이 바위를 그대로 두고 떠나버려 그때 이후부 터 선돌, 즉 입석( 立 石 )이라 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있는데 이는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현재 지묘3동)에서 대패하여 왕산으 로 후퇴한 후 팔공산의 염불암 옆 일인석( 一 人 石 )에 앉았다가 다시 파군 재를 넘어 지금의 마을 입구 큰 바위가 있고 옆에 옹달샘이 있어 왕건이 물을 마시고 그 바위에 혼자 잠시 앉았다가 해안방향으로 탈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태조 왕건이 앉았다는 독좌암의 명칭을 따서 독 102 1장. 동구의 이야기 103

53 암마을, 혹은 독지방 이라하는데, 약 50여 호가 거주하고 있는데 주성 은 김해 김씨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않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양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고개가 있었고 거기서부터 500미터쯤 오면 조금 높은 길이 있는데 이 길을 큰 고개라 불렀다. 옛날에는 이 큰 고개가 꽤나 높고 꼬불꼬불 했던 길로서 지겟군은 몇 미대동 구암( 龜 岩 九 岩 )의 유래 구암은 미대동 자연부락이다. 미대 2동 속칭 구암동( 龜 巖 洞 )은 동화 사로 가는 도중 공산 저수지를 지나 약 1km지점, 동화천 오른쪽 산기슭 에 자리잡은 아담한 마을이다. 구암( 龜 巖 )이라는 마을 명칭을 쓰게 된 것 은 구암마을 회관 바로 뒷산(속칭 당등이라는 작은 산)에 거북이처럼 생 긴 바위가 있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원래 명칭은 귀암( 龜 巖 )이라 불렸는데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 좋게 구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약 200년전 현동수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한 자로 쓰기 쉽게 구암( 九 岩 )이라고도 한다. 번을 쉬어 넘었고, 소달구지도 뒤에서 밀고 밀어 겨우 넘었으며 일제 중 기에 나온 목탄차도 헐떡이며 넘다가 엔진이 꺼지면 다시 시동을 걸어 넘을 정도였으니 짐작할만 하다. 또 공산면 일대 주민들이 땔감을 팔러 다니던 고갯길이었다 한다. 이 고갯길은 일제시에 대구-하양-영천을 있 는 국도가 개설되면서 차차 길이 넓어지기 시작하여 1950년에서 1977 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친 국도 확장 공사로 높았던 고갯길이 계속 낮아 져 지금은 35m의 넓고 완만한 고개로 변하여 옛날 큰 고개의 모습을 찾 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중대 2동 숟가락 바위의 유래 큰고개의 유래 아양초등학교에서 현 파티마 병원쪽으로 오는 오르막길을 큰 고개라 부르는데, 큰 고개란 지명이 언제부터 불리어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옛날 도사 한 분이 파계사 쪽으로 길을 걷다가 큰 바위 하나를 보고 파계사가 번창하지 못함은 이 바위 때문이라 하면서 이 바위를 눕혀 놓 으면 파계사가 번창하고 동네도 평안하게 된다고 말하여 동민들이 그 바 104 1장. 동구의 이야기 105

54 위를 눕혀 놓았더니 그 후 마을은 평안하고 파계사는 날로 번창하여 신 도들이 많이 늘고 많은 사람이 와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1920년엔 이 바위가 있는 부근에, 지금의 서촌초등학교 모태인 서촌 간이 학교 가 설립되었고, 그 당시 박래태( 朴 來 泰 )라는 분이 지역 주민들과 간이 학교 학생들에게 근면 성실과 학문 정진에 힘쓰라는 격려의 뜻에서 청 경우독( 晴 耕 雨 讀 )이라는 글을 쓰고 석공들에게 글씨를 바위에 새기게 다. 그래서 그 부인이 노인의 얘기대로 그 날부터 이 골짜기에 찾아가서 백일 기도를 드렸더니 수태를 하게 되었다고 하여 수태골이라고 불렀다 고 한다. 지금도 이 곳에는 많은 부인이 수태를 하기 위해 찾아 와서 기 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했다고 한다. 신천1동 배일촌( 背 日 村 )의 유래 이 바위 이름을 숟가락 바위라고 부르는 것은 바위를 눕혀 놓은 모양 이 마치 숟가락 모양 같다고 하여서인데, 이 숟가락 바위 앞에는 상( 床 ) 을 놓은 듯한 넓적한 고인돌이 있어 그 둘레를 돌과 시멘트로 단을 쌓아 보호하고 있는데 지금도 바위의 형상이 마치 괴상한 사람이 파계사를 바 지금의 대구 MBC문화방송국 서편 언덕(한골 못둑)을 넘어 동구아파 트 서쪽 부근과 동구 신천1동의 남쪽 일부가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기 때문에, 아침에 해가 뜨면 해를 등지고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그 이 름을 배일촌( 背 日 材 (배일재)이라고 했다고 한다. 라보고 있는 듯하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1920년 경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배일촌( 背 日 村 )에 와서 마을 이름의 뜻이 일본을 등진 마을, 일본을 배격하는 마을이란 항일 사상이 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을 압박하였고, 마을을 백일촌으로 바꾸어 부 용수동 수태골( 受 胎 谷 )의 유래 옛날 어떤 부인이 수태를 하지 못해 매일 걱정하면서 살아 왔는데 어 느 날 수염이 희고 긴 노인이 찾아와서 부인사( 符 仁 寺 ) 근처에 있는 이 골짜기에 찾아가서 백일 기도를 드리면 아기를 수태할 수 있다고 말하였 르게 했다. 그 당시 시장 부근의 상백일과 신천1동 부근 하백일과 신천 아파트가 있는 곳의 지형이 돛을 단 배의 모양이라고 하여 개인 우물을 파면 배에 물이 새어서 침몰하기 때문에 파지 않고 공동 우물만 3개 파 서 사용했다 장. 동구의 이야기 107

55 1900년대에는 금호강을 따라 범어천까지 소금 배가 와서 상백일촌 ( 上 白 日 村 ) 부근에서 물물교환을 하였다고 한다. 우려가 있어 해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인근의 주민들이 모여 큰 말 뚝을 박아 모래의 유입을 막았다고 하여 말방샘 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방 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6.25이후 1953년 경에는 100 여 호가 넘었고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어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점차 커지면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게 되었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이 샘물은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어 인 근 주민들의 농업 용수로 이용되어 왔으며, 여름에는 물이 너무 차가와 일본강점기때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땀띠를 씻었 고, 주민들의 목욕터가 되었다. 또한 겨울에 혹한이 닥쳐도 가장자리만 조금 얼뿐 전체가 얼어붙은 적은 없다고 한다. 1986년 안심지구 택지 개발 공사로 주변의 땅이 모두 택지로 조성되 율하1동 말방샘과 반계천( 磻 溪 川 )의 유래 율하1동 대구안일초등학교 남쪽 300m 쯤에 직경 10m 가랑의 큰 웅 덩이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말방샘 이라 불리어 오고 있다. 었으나 이 샘만은 주민의 애향심 때문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율하천( 栗 下 川 )은 율하동 서쪽에서 남북으로 걸쳐 흐르는데 일본 침 략기에 물길을 현재의 상태로 들려 놓기 전에는 율하동의 한가운데를 흘 러 금호강( 琴 湖 江 )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당시의 하천 이름은 반계천( 磻 溪 川 ) 이었고 그 이름을 따라 반계천 ( 磻 溪 川 ) 으로 불리던 마을에는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으니 바로 말방샘 이다. 팔공산에서 흘러내리는 반계수는 여름 홍수가 있으면 모래를 하류로 싣고와 논밭을 뒤덮기 일쑤였는데, 이때 말방샘도 모래에 묻혀 메워질 사북동 마당마리의 유래 사복동에 위치한 오지봉의 줄기가 뻗어 내려오는 마지막 부분이 마 당마리 자리이며 이 곳은 풍수지리학상 명당으로 이 곳을 많이 밟을수록 발복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지금은 이 마당마리 앞 뒤로 철길, 국도, 고속도로, 인도가 생겨서 사 람의 내왕이 빈번하게 되었다. 제보자 : 서봉수, 79세, 남,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입석동에서 108 1장. 동구의 이야기 109

56 4 story 효자 이야기 전귀당 현판 송정동의 시어머니 둘인 효부 이야기 효심이 뛰어난 사람도 식구가 많이 되이 옛날에는 여 뭐 효부상도 받고 다 받았지만 인제는 없어. 이 골짜기에서 뭐 열 한개 동에서 해가지 고 돌아가메 한 동네 하나씩 받아주고 했지. 효부상 받은 사람은 연진선 이지. 그 시어마시가 둘이 되가지고 애를 먹고, 낳아 준 엄마 있고 못 낳 은 엄마 있으이 둘이 있었다. 나이는 한 오십되간다. 돌아가신 지가 좀 되었다고.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堂 )이라 하였다. 전귀 란 온전히 돌아간다는 뜻으로 효도의 완성을 의미 한다. 증자가 병이 위독해지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놓고 상처가 조금도 없는 자신의 발과 손을 살펴보게 한 후 부모님이 주신 몸을 조금도 훼손 시키지 않아야 온전히 돌아갈 수 있다 라고 한 논어 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정승이었던 이호민( 李 好 閔, 1553~1634)이 대구지역에 머 물면서 서시립의 효행에 감탄하여 그의 집 이름을 전귀당 으로 붙여준 것이 그의 호가 되었다. 효행의 본보기를 보여준 서시립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6살의 어린 나이로 사당의 신주, 그리 서시립의 지순한 효행 이야기 서시립( 徐 時 立, 1578~1665)은 서거정의 방손으로 호를 전귀당( 全 歸 고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팔공산 꼭대기의 삼성암( 三 省 菴 )으로 피신하 였다. 산 속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산을 오르내리며 위험을 무릅 110 1장. 동구의 이야기 111

57 쓰고 식량을 구하여 봉양하기도 하고, 산에서 나는 인삼이나 골뱅이 등 을 구하여 드리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을 그의 어머니 강씨( 康 氏 )와 함께 했다고 하는데, 어버이의 병세를 파악하기 위하여 똥의 달고 씀을 맛보 며 섬기는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다 한다. 얼음이 갈라져 고기 가 뛰어 오르고 나는 꿩이 발 앞에 떨어지는 이적( 異 蹟 )이 있었다는 것이 다. 중국 고사를 들어 과장한 것이기는 하나 서시립의 효행이 강하게 전 해진다. 첨백당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命 植 )을 추모하기 위하여 1896년 집을 지었다. 첨백당( 瞻 栢 堂 ) 이 그것 용암동 우효중의 효행 이야기 우효중은 우익신( 禹 翊 臣 )의 12세손이다. 우익신은 원래 여주에서 살 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아들과 손자 각 한 명씩을 거느 리고 팔공산 남쪽 용암산( 龍 岩 山 ) 계곡으로 남하하여 그들의 세거지로 이다. 이는 대구시 문화재 자료 13호로 우명식의 묘소가 있는 백전골( 栢 田 谷 )을 우러러 보는 집 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한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삼았다. 우효중은 그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드리워 결국 회생시켰다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시묘살이 3년을 하루같이 하였는데 조정에서는 그의 효행을 높 이 사서 조봉대부중몽교관동지중추부사( 朝 奉 大 夫 重 蒙 敎 官 同 知 中 樞 府 事 )로 증직시켰다. 그 후손들은 우효중의 효행을 기리는 한편 한말 벼슬 을 버리고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안타까워하며 향리에 묻혀 산 우명식( 禹 평광동 강순항의 효행비 이야기 강순항 또한 이 지역에서 효자로 유명하다. 강순항은 아버지의 봉양 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한겨울에 참외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를 위해 방촌동을 집집마다 탐문하였는가 하면, 물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어귀의 개울에서 112 1장. 동구의 이야기 113

58 죽은 해인 1830년에 정려를 내리고 숭정대부행동지중추부사( 崇 政 大 夫 行 同 知 中 樞 府 事 )로 증직시켰다. 그 후 헌종대에 지역 유림이 주동이 되 어 정려각을 건립하였는데, 본래의 비는 없어지고 1991년 당시 경북대 학교 대학원장이었던 서수생 박사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써서 그의 효행 을 기렸다. 이 비는 현재 동구 평광동 1183번지에 아담하게 단장되어 전 강순항 정려비 한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물고기를 잡았다. 이러한 그의 효심에 하늘이 감복하여 그는 방촌동에서 한겨울인데도 싱싱한 참외를 구할 수 있었고, 두껍게 언 얼음을 깨자마 자 한 자가 넘는 잉어가 저절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평광동 강효자 비각 이야기 평광동에 강효자 비각이 있다. 강효자 개회( 啓 會 )는 진주 사람으로 빈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촌 골짝이에서 자라났다. 학문은 배우지 못했으 또한 어느 바쁜 농사철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쇠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농번기라 쇠고기 구하기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강순항 은 20리가 넘는 먼 길을 가서 겨우 쇠고기를 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독수리가 그가 사들고 오는 쇠고기를 물고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낙담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쇠고깃국을 끊이고 있었다. 독수리 가 그의 효행을 알아 쇠고기를 물어다 미리 그의 집에 떨어뜨리고 간 것 이었다. 이리하여 하늘도 감동하는 효심이 조정에 알려져 조정에서는 그가 효자강순항 나무 안내판 강순항 나무 114 1장. 동구의 이야기 115

59 나 어릴 때부터 마음이 어질어서 노성( 老 成 )한 것 같았다. 장성함에 효도 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더욱 돈독해서 품을 팔아가며 어버이를 섬기되 힘 을 다 하야 입에 맞는 찬과 몸에 편한 옷을 갖추어 드렸다. 장날이 되면 나무를 지고 가서 팔아서 어육과 과실을 얼마큼 사서 때때로 드리고 나 머지는 두었다가 아침저녁으로 드렸다. 날마다 나무 하러 갈 때는 지개 에 병을 걸고 가서 회로에 두 서너 잔의 술을 받아서 반주를 그치지 않았 다. 혹 그의 아버지가 출타하였다가 저물게 돌아오게 되면 비록 집 일이 바쁘더라도 반드시 등촉을 가지고 중로까지 맞이하여 배행하였다. 또 혹 불안한 빛이 낯에 나타나면 곧 의사에게 보이거나 약을 따려 드려서 병 이 낫은 후에야 평상시와 같이 하였다. 비록 뜨거운 여름에 밭에서 김을 매고 몸이 찌긋찌긋할 때나 가을 추수 때에 피곤해서 사지에 힘이 풀릴 때라도 반드시 친당에 가서 시측하였다가 취침 후에 물러나왔다 한다. 또 조용할 때가 있더라도 동무들과 같이 쫓아다니며 장난하고 놀지 않았 다. 말은 순하고 얼굴은 다정하야 조금도 교만한 태가 없었다. 봉무동 효자 이야기 이 동네에 배산규 효자집 아이가 고조부가 효자 아이가 지금은 죽고 없어서 말이야. 자기 아버지는 있고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가 풍병이 왔 어. 풍이 와 가지고 풍을 나술라카니 천지 탄약을 해도 안되고 못 나수는 기라. 그래가지고 영감이 듣기로는 인간의 간을 묵으면 낫는다 하니까 그 영감님이 소원이 그기라 며느리랑 아들한테 야야야 인보래 내가 인 간을 묵으면 낫는다. 근데 이 사람이 인간이 천지 어딧는고? 희한하지 그래가지고 이 아들이 아내를 불러가지고 아버지가 인간이 평생의 소원 이신데 3살 먹은 아이의 간을 주고 우리는 새로 놓으면 안되나? 그러나 그 여자가 된다고 하나? 택도없지... 그래도 아부지 병이 낫는 다면 무슨 효자짓 못하겠냐며 그래가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러나 이 아를 잡을라카 이 자기가 우예잡노 그래도 참말 잡을 라고 아를 데리고 골짜기를 가서 아이를 앉혀 놓고 칼로 찌를라 카니 아는 울고 자기아를 찌르지는 못하 고 아가 과음을 지르니께네 이웃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아 소리를 들은기 라. 이상하다싶어서 보니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 가니 사람이 아이를 앉 경신( 庚 申 ) 정월에 그의 아버지가 우연히 병에 걸려서 의사에게 물었 더니 꿩고기를 쓰면 유효하겠다함에 개회 이 말을 듣고 기뻐하야 곧 쫓 아 나가서 보았더니 마참 꿩 한 마리가 있어 놀래지도 않고 날지도 않았 다. 그래서 무난히 이를 붙잡어서 장만해 드렸더니 병이 끝났었다 한다. 문보근, 우리고장, 조선문화사, 1950.에서 발췌 혀놓고 칼로 겨누다가 뺏다가 하니 그 나무꾼이 하는 말이 보소 와그래 요 이 사람은 깜짝 놀래서 사실은 우리 부모가 풍병이 들어서 인간이 소 원이랍니다, 부모 나술라면 내 아이라도 잡아야 하겠는디 그러면 그 아이는 당신이 못 잡는다. 내가 잡아서 당신 집에 갔다 줄 테니 카니께 이 사람이 아이를 줬지. 잡아오라 카고 줬는데 집에 가서 뭐 116 1장. 동구의 이야기 117

60 아이는 없고 인간도 없고 하나도 없었다. 그 사람이 혼자 자꾸 인간을 가 져오는거만 기다리는다가 한 횟수가 몇 년 지나니 아이가 이제는 걸어 다닐때가 된 아이를 데리고 왔는기라, 인간을 갔다 줘야 하는데 아이를 갔다 줬는그라 인간이 없잖아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집의 개를 한 마리 잡았다. 근데 영감은 반가워 죽을끼 아니가 인간 가왔으니 묵으면 사니 께 근데 한 쪽으로는 그 아의 간일낀데 카면서 근데 그걸 묵고 나니 기분 이 좋아가지고 한 번에 병이 나았다. 그래서 효자 효부의 정성이 지극하 면 인간 묵는게 아니라 개간 묵으면 낫는다는그라. 원캉 효자짓을 하니 께 하늘이 봐 준기라 그래서 낫았다 하는기라. 저기 서원연경에 효자문 이 있다. 북구인데 돌래 저 밑에 있다. 제보자 : 서재수, 남, 83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까 인제 무조건 시아바지 시어머니 말을 들어야지 우얄끼라. 그래서 시 아바지가 하는 말이 너는 인자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선줏단지한테 매일 아침에 절을 해야 된다. 시아바지가 캐놨으이 며느리가 안 하면 안 되잖 아. 그러니 이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절하는 것도 하루 이틀 아니고 날 만 새면 절하고, 한 달하면 서른 번 아이가 일 년이면 몇 번이고 선주단 지 때문에 내가 고통을 겪는다 해서 저게 없으면 되는데 날만 새면 절을 해야 되니까.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일평생 해야하니까 선주단지를 뿌사 뿟는기라. 뿌사뿟는데 잠을 자려는데 꿈에, 니가 그럴 수가 있노? 날로 이리 욕비이는데 니가 되겠나 그러나 딴건 없다. 니 자식 놓으면 내가 잡 아간다.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자식을 안 놓을 수가 없잖아 그래가 아들 을 낳았는데 놓고 나서 사흘 만에 죽어삐는기라. 죽고 난 뒤에 꿈에 나와 서 니 왜 내 말 안 듣고 봐라 놓으면 다 잡아갔지 또 낳아봐라 내 잡아간 다. 그래도 또 낳았는데, 자식 안 놓고 우얄끼라 그래가 두나 낳았는데, 봉무동 열녀 이야기 신라 말년인데 손씨라는 양반이 왜 이날까지 손씨라 하냐면, 손병 사 그 양반이 그 때만 하더라도 손병사라는게 요새 말하면 과거했던 모 양이라 손병사라. 요새 말하면 육군 대위나 뭐 뭐 소령이나 되는 모양이 지. 그래 그 양반이 어마씨가 하회 유씨라. 버들 유자에 유씨. 유씨가 그 래 인자 시집을 갔는기라 박씨 집에. 시집을 가니까 박씨 집에서 하는 말 이 옛날에 집에 가면 선줏단지[신주단지]라 카는 게 있어요. 시집 오니 두나 낳아도 죽었다. 그래가 선줏단지가 와 가지고 야 니 참 고집도 세 지만도 자식을 두나 씩이나 보내놓고 왜 내말을 안 듣노 또 낳으면 들고 가라. 안 낳으라 카면 안 낳을끼고 낳아준다. 낳아줄테니까 들고 가라는 심정으로 또 아이를 낳았다. 낳았는데 신줏단지가 와가지고 참 이 아는 내가 못 잡아간다. 먼저 둘은 내가 안 잡아가도 저절로 죽는데 이 아이는 내가 못 잡아간다고 했던 아이가 손병사가 됐다. 제보자 : 서재수, 남, 83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118 1장. 동구의 이야기 119

61 동인데 그 마을을 배회하던 학이 매일 저녁 이 바위 위에서 잠을 잔다 5 story 기타 이야기 하여, 즉 학이 잠자는 바위라는 뜻으로 학수암( 鶴 睡 岩 )이라고도 한다 고 한다. 바위 모양새로 보아 기생이 춤출 장소로나, 학이 깃들 장소로는 부적 합하여 필시 무슨 깊은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위나 더 이상 비 밀을 캘 수가 없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내곡동 장군바위 이야기 장군바위는 내곡동의 자연부락 부근에 있는 바위이다. 산 중턱 연담 폭포에서 1km 지점에 웅대한 암석이 있는데 왕건이 지휘 장대로 사용하 였다고 하여 장군바위라고 불리었다. 암면( 岩 面 )에 황성( 黃 線 ) 등 장군을 상징하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도학1동의 범바우 이야기 지금은 도학1동이라고 불려지는 팔공산 문턱의 작은 마을은 일명 학 부마을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위쪽 산에는 장성사 라는 작은 절이 있 다. 이 절 아래쪽의 밭 터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바위를 속칭 범 바우 라고 한다. 옛날 이 마을에는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산을 누비며 다녔다. 이 짐승 의 성질이 워낙 난폭하여 그 마을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밤마 비운의 기생바위 이야기 팔공산 초입 좌측편 산록에 있다. 옛날 어떤 기생이 이 바위에서 춤 을 추다가 떨어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아랫마을 이름이 학이 떠다니는 마을 이라 하여 학부( 鶴 浮 ) 다 나타나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결국 마을 주민들은 아래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바위가 서 있는 아래쪽에는 예전의 집 터가 나타난다고 한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120 1장. 동구의 이야기 121

62 동내동 벼락바위 이야기 벼락바위는 동내동( 東 內 洞 )의 바위이름이다. 송정초등학교에서 정북 굴이 각각 있어서 굴 앞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굴은 오누이가 양쪽 에서 뚫어 왔기 때문에 오누이 굴이라 불리어지기도 한다. 쪽 약 2km 지점에 신서 2동 자연부락이 있고, 마들 뒤 부락이 있고 산세 가 험하고 잔솔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용당산을 약 2km 등산해서 이 산 중턱 능선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바위는 옛날 두 개가 같이 서 있을 때는 선돌 바위라 불렀으나 그 후 벼락을 맞아 한 바위는 부서지고 다른 바위를 벼락바위라고 불렀다. 바위의 크기는 폭 1.5m, 너비가 2.5m, 높 이 10m 정도이고 이 바위 아래쪽에 지름이 1m 정도의 크고 깊은 굴이 있는데 굴 속에 양쪽으로 머리가 달린 큰 용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 누이가 판 굴은 치마에 흙을 담아서 날랐기 때문에 넓으며 남동생은 윗옷의 앞자락에 흙을 싸서 날랐기 때문에 더 좁다고 한다. 누이 굴의 넓 이는 수십명이 들어가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며 난리 때는 피난 장 소로 이용하려고 입구를 흙으로 막은 흔적이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라 이 용을 보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말이 전해졌으며 사람들 은 바위 주변에 가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옛날 벼락이 떨어져 바위가 붕 괴될 때 용의 두 머리 중 한 개가 이 바위에 깔려 죽고, 나머지 한 개가 승천한 것 같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큰 바위와 깊은 굴은 없고 돌부리와 자갈만이 남아 있으며, 봄이면 이 곳에 고사리와 산나물이 많이 나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둔산동 생구암( 生 龜 岩 ) 이야기 생구암( 生 龜 岩 )은 둔산동의 바위이름이다. 둔산동 뒷산 용암산 중턱 해발 250m 위치에 거대한 단일바위로 형성된 것이 생구암이다. 이 바위 는 보는 방향에 따라서 그 형상이 다른 형태로 보인다. 옛날 유명한 장군 이 바위 속에서 나왔다는 전설과 함께 바위 위에 발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다. 또 이 바위는 용머리를 닮았으며 다른 면에서 보면 살아있는 거북과 둔산 굴 앞산 오누이 굴 이야기 굴 앞산은 둔산동의 자연부락이다. 둔산동 상동 마을 뒷산의 양쪽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생귀암( 生 龜 岩 )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해오는 말 에 의하면 이 바위가 최씨 종가 정후면에 위치하고 있고 옷골 동네를 바 122 1장. 동구의 이야기 123

63 로 굽어 보고 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경주 최씨 후손이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연경동 태봉 이야기 태봉은 지금 행정구역상 대구직할시 동구 연경동 1통을 가리키는 마 을 이름이다. 태봉으로 불리고 있는 마을 이름을 고려 태조 왕건에 의 해 붙여졌다는 연경( 硏 經 ) 이라는 이름과 함께 현재까지는 병용( 倂 用 ) 되고 있다. 태봉 은 태봉( 胎 封, 胎 峰 ) 이라고도 쓴다. 그러나 사적( 史 的 ) 미대동 문암산( 門 巖 山 ) 이야기 미대동 남쪽에 있는 해발 424.7m의 이산은 약 5 정보로써 산 전체가 암석으로 되어 있으나 어느 산보다도 산림이 우거진데 대하여는 진기한 으로 태실( 胎 室 ) 과 태봉( 胎 封 ) 은 같이 사용하므로 현지 주민들이 태봉 ( 胎 峰 ) 이라고 하는 것은 태실의 위치가 묘하게도 산봉우리기 때문에 봉 ( 封 ) 과 봉( 峰 ) 을 혼돈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전설이 있다. 이 산이 옛날에는 암석 때문에 나무 한 그루 없었던 돌산이었다. 공 산에 모여 사는 인천 채씨( 仁 川 蔡 氏 )의 종산인데 소년참사( 少 年 慘 死 )가 자주 나자 동화사의 스님이 나무를 심으면 소년참사를 면하리라 하였다. 이때가 지금부터 약 400년 전의 일로서 스님의 가르침을 들은 채씨 태봉은 광해군의 태( 胎 )를 묻는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태봉이라고 했다 하는데 지금도 탯덩이 라고 부르는 봉우리에는 왕자의 태실임을 밝히는 왕자경룡하지씨태실( 王 子 慶 龍 何 只 氏 胎 室 ) 이라 쓰여진 비석 조각이 남아 있다. ( 蔡 氏 ) 40여 세대는 가마니와 보따리 그리고 지대( 紙 袋 ) 등으로 흙을 담 아 암산( 巖 山 )에 깔고 그 위에다 나무를 심게 되었다 한다. 태봉이 파괴된 시기는 한 일 합방 직후인 금세기 초라고 추측된다. 무태에서 연경동 일대에는 오래 전부터 인천 이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서 일명 기산( 箕 山 )이라고도 하는 이 산에는 그 뒤 이상하게 나무가 잘 자 라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산림이 울창해졌다는 것이다. 문암산은 점차적 으로 유명하여서 해방 후부터는 경상북도 보호림으로 지정된 바 있다. 김종대, 우리고장 大 邱 ( 地 名 由 來 ), 대구직할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변동( 西 邊 洞 ) 일대에는 무태파, 연경동 일대는 태봉파라고 하여 서로 갈 라져 있었다고 한다. 합방이 되자 무태파에서 폐주( 廢 主 )의 태실이라 하 여 파괴하려 했을 때, 태봉파와 알력이 있었으나 무태파가 세력이 커, 결 국 파괴되었다고 한다 장. 동구의 이야기 125

64 일설에 의하면, 일제 초에 인천 이씨의 한 집에서 태실 자리가 정승 이 날 명당 자리라 해서 그 바로 밑에 부친 묘를 쓰다가 맏상주가 죽고 그날 밤에 둘째 상주도 죽었다. 그래서 점을 치니 태실을 깨뜨리라고 해 서 인부들을 동원하여 석물을 깨뜨려 봉우리 밑 태봉못에 버렸는데 그 광해군은 조선 15대 왕으로 선조와 후궁 공빈김씨( 恭 嬪 金 氏 )와의 사 이에 1575년 출생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선조 25년 행궁( 行 宮 )에서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34세에 등극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주( 廢 主 )가 되었다. 날 밤에 손자가 또 죽었다. 다시 굿을 해보니 석물을 원상태로 해 놓으라 고 해서 며칠을 걸려 원상태로 맞추어 놓았다고 한다. 이 태실이 광해군 것인지 광해군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태실인지는 왕 자 경룡( 慶 龍 )이 누구인지만 알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지방 사람들 그 뒤로 그 집안은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현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60~80세 노인들이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해방 이후에 인천 이씨들이 그 산을 소유했고, 1960년대 후반에 한 집안(인천 이씨)에서 태실 바로 밑에 묘를 썼다가 망했으며 그 은 모두가 광해군의 태실이라 믿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충분한 보존 가 치가 있는 유물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이후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일제 초에 묘 자리 때 문에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는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60년대 후반 묘자리를 파다가 발견된 비석은 대( 大 ) 소( 小 ) 두 점이 었으며 당시의 형태는 완전했으나 큰 비석은 균열이 심했다고 한다. 현지에는 비( 碑 )들이 깨어진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으며 작은 비 는 글씨가 아주 뚜렷했으나( 王 子 慶 龍 何 只 氏 胎 室 ) 큰 비는 일부가 소실되 용수동 당산( 堂 山 ) 이야기 옛 신라지역인 경상도 일대는 골맥이 동제신 이라는 것이 있다. 골 맥이 란 고을을 뜻하는 골( 洞 ) 과 방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막 과 명사 형 어미 이 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골맥이 란 고을 막이라는 뜻이니, 외부에서 들어오는 부정한 기운을 막고 마을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고 없었다.( 萬 曆 三 一 月 日 建 ) 만력( 萬 曆 )은 명 신종의 치세연호로 재위( 在 位 ) 기간은 서기 1573~1619 년이다. 따라서 비( 碑 )의 건립 시기는 1573~1619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용수마을의 당산 역시 골맥이동제신 성격이 강하다. 구전( 口 傳 )에 의 하면 이 마을을 개척한 배씨와 구씨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었다고 전 126 1장. 동구의 이야기 127

65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음)을 하고 금호강을 건너가려고 요동치는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자라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고 그 자라 목 가 까이에 무덤을 쓰면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은 나이 많은 분들은 이 일대를 가리켜 알섬과 자라 바위라고 부르 고 있다. 용수마을 당산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해지기 때문인데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배씨할배와 구씨할배가 나무 속 에 있으면서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진인동 강씨( 姜 氏 ) 굿당 이야기 강씨 굿당은 진인동의 자연부락이다. 강씨( 姜 氏 ) 굿당은 진인동에 자 리잡고 있으며 주위는 큰 나무들로 둘러 싸여있다. 굿당에 모래가 많아 서 모래정 굿당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굿당은 1978년에 생겼으며 300평 에 땅이 16간 정도로, 삼신방( 三 身 房 )을 지을 때 아주 맑은 물이 나왔다 신암동 알섬의 자라바위 이야기 아양교( 峨 洋 橋 ) 다리 입구에서 철교 쪽으로 뚝 길을 따라 100여 미터 가다 보면 소년 감별소( 少 年 鑑 別 所 ) 뒷담 밑에 큰 바위가 그 위업을 자랑 하고 있다. 지금은 이 일대가 제방( 堤 防 )으로 쌓여져 금호강 물이 닿지 않으나 옛날에는 이 강물이 감돌아서 나가는 섬이 있었고 섬 아래쪽에는 깊은 강물이 파랗게 소( 沼 )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 섬 모양이 새알 처럼 생겼다고 알섬이라 불렀고, 그 섬 앞 쪽에 있었던 바위가 자라모양 고 한다. 이 땅 밑에는 모래정 샘이 있는데 처음에는 물이 적게 나왔는데 지나가는 어떤 나그네가 오동나무 잎을 넣었더니 그 후부터는 물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굿당에는 성황당이 있는데 태풍이 불 때마다 성황당이 무 너져서 성황당 꼭대기에 큰 나무를 심어서 성황당이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128 1장. 동구의 이야기 129

66 진인동 마을에 있었던 큰 나무 와 있었지. 여여여 현대 별장 게가 지어가지고 옛날 우리 당산, 당신 아주 큰 나무는 드물었고 거 진정동네 같은 경우는 (작은 나무였다.) 우 리 동에는 참 나무가 (귀한 것이었다.) 제 모시는 자리에 지었다. 그래 내 애기 들어봐라. 그 나무가 아름드리 한 아름이 넘었는데 세 가지로 되 있었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그래 가 음력 정월 초사흘 되만은 인자 그 신정날 머 굿도 하고 마 저 빌고 묘 를 하마 제일 깨끗한 집에 가십시오. 그라마 우리가 모시겠습니다. 이라 마 물을 떠가 하면 인자 간단 말이지. 가만 이 집에서는 참 초사흘 날 그 랬으니 그때부터 목욕재개하고 그랬단 말이지. 그래 그 집에는 저 때까 지 갈 때 샘물에도 전부 빨간 흙을 놔요. 표시를 하는 거지. 그럼 다른 외 인은 그 샘물을 못 먹어. 딱 이인만이야. 그래가 그 만침 정성을 들여 가 지고 정월 여나흘 저녁에 제사를 모시는 거지. 모시만 그 마을 우리 젊음 이들 가 가지고 밤새도록 굿을 치는 거지. 그래갔다가 그 나무가 마 고사 글쎄..그거는 뭐.. 이게 아마 나무가 자연적으로 뭐 할려고 싶은 게 아니라 니려오다 보니께네 그 인자 머 있다 보니께네 이 나무가 좋겠다 그래서 하는 거지. 근데 머 동신제 하자 그래서 심은 건 아니고 크다 보 니께네 이 나무로 우리 동신제 삼자 카니 하는 거제. 엄청 컸지. 할배나 무는 더 컸고, 할미나무는 좀 덜 컸고, 그래 고 앞에는 인자 상 맨키로 넓 적한 돌이 굉장히 큰 돌이 있었지 그래서 제사음식을 다 거기다 두고 했 지. 돌이 엄청 컸어.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되뿟시다. 말라가. 머 우리 동이 정성이 부족했는지 그래가 이걸 기양 있 을 수는 없고 나무를 팔았다 카니까네. 팔았는데 그 목재사에서 가지고 나무를 거둘 때 스님이 모셔가지고 그 나무를 벨 때 인자 큰 나무는 가스 가 채 있거든요. 그 나무 사가 이래 가루고 그래..요새같이 전기톱이 아 이고 그 때는 이캤다고.. 몇 년 안됐어요. 한 이십년.. 한 삼십년.. 됐겠 네..(나무는) 백년도 넘었지. 확실히는 몰라요. 그래가 그 머 동네에서 팔 아뿌니까 시내에서 하나 사 가지고 심어 놨어. 근데 요새 저 정월보름달 동지 모시고자 할 때 그때 동네마다 했는데 요샌 없어. 근데 우리나무는 진인동 찬샘(참샘) 이야기 나도 신기해가지고 참 내가 어릴 때 그게 초등학교 졸업하고 열여섯 일곱 살 되었을 때. 어 일하러 가가지고 보만은 그 위로 보면 찬샘이 있 는데 찬샘이 뭐냐하면 물이 솟아오르는데 아주 차가워, 그래가 그래가지 고 나무를 해오고 베오고 하다 거서 앉아가 이 거 뭐고 도시락 옛날에 도 시락은 요새 맨크로 그기 아니고 대나무로 만든 그거거든 푹 담가놓고, 숟가락으로 떠무마 물에 말은 밥인데 우리가 그래 갖다가 먹으만은 쉬어 130 1장. 동구의 이야기 131

67 지지가 않아 이거는 머 새로운 물인게네 늘 시원하이 고추에다가 들잎에 먹으면 참 좋은데 거 바로 뒤에가마 돌이 한 이만한 돌이 하나 있는데 스 님이 월령했다 재를 넘었다 월남 카는 월자, 넘을 월자에다 하고 고래 령 자 그게 주시 그 주가 빨간 가루로 했는 글자 있제 자라 카나 주사, 옛날 에 그 각자로 파가 돌멩이 파 가지고 요새 까만거 많이 한다 그게 주사 가, 근데 요새 아무리 볼라캐도 못 찾겠어. 그 어데 있는데, 그 어느 스님 이 월령을 하고 고개를 넘었다고 날짜까지도 내 그 몇 월까지 봤는 기억 이 났는데 그 한번 가 본다 하는 게 50년 지났다 아입니까... 60년이 지 이가 이 정도 되고 거 왜 그렇게 팠는지 앉으면 마 근데 그거 머 장군이 돌에 손을 짚었는지 스님이 손을 짚었는지... 영감님 바우, 영감바우, 좀 더 내리 가면 할매바우, 할마이 바우. 아 니 거는 돌이 납작하고, 납작하이 있고 영감 바우는 촛대인데. (만들어진 거는) 거는 지구가 생성할 때 누가 맨든 기 아이고 장군 손 짚은 그 바위 는 인공적으로 된 기고... 그저 장군이 손 짚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다.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나도 못 가봤어. 쓰여 있지..(누가 썼는지는)모르고, 어떤 스님이 월령했 다 고개를 넘었다. 돌에 정을 파 가지고 옻 낫는다. 마실이 물이 좋아가 지고, 대구, 진정, 도담 사람은 옻 낫는다 안 카나.. 근데 이 마실은 무도 소용없고, 저 대구, 진정 사람. 약물. 그래가 참샘 안 카나..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진인동 배바위(배바우 배방우) 이야기 골짝, 골짜기는 많지 도독골, 큰삼골, 큰삼방골 근데 배바위 고걸로 한 적이 있는데 배바위 그것 참 이상한 전설이다. 천지가 물바다 일 때 배를 붙들어 매는 바위가 있었다. 저 위에 있었는데 그래가 요새도 세찬 바람이 불어가 그 바우이 돌에 받치가 딩딩 소리가 난다는 전설이 있지. 배바위 골인데... 진인동, 장군이 손 짚은 바위 이야기 그래 인제 또 거서 우로 올라와가지고 보면 한 삼백미터 더 올라가 면 장군 손 짚은 돌이라 카는 돌 하나가 있어. 누가 했는지 우리가 딱 앉 으면 손을 이래 짚으면 거를 다 전부 정을 팠어. 엉덩이가 톡 들어 가가 꼬 아주 앉으면 편안해. 그래 장군이 손 짚었다 카는 돌인데 돌도 마 높 또 똑같은 전설이 있는데 요 요기서 보인다. 솥발산 전설, 솥. 발. 솥 발산 고개 그 때 물에 잠긴 그거하고 할 때 똑 솥골만침만 물에 안 잠깄 드라. 솥에 발이 있는디 요새 솥에 발이 없디만은 옛날엔 솥에 발이 셋이 있겄거든. 고 솥발만침만 물에 안 잠깄드라 고래가 고 솥발산이 됐다. 고래 아 고개 동시대에 전설이다. 솥발산하고 배바우 하고, 건머 아 132 1장. 동구의 이야기 133

68 이야기주 상팔년도 태고적 이야기지 싶은데... 또 배바우하고 저 거 뭐 야.. 솥발산하고 이거는 참 신기해. 아무리 거짓말도 유래 없는 거짓말도 그 없지. 물이 전신에 물이니께네 물이 차가 다 물바다 됐으니까네 배를 이래가 붙들어 맸고 솥발산은 솥하나 걸 만큼 물이 찼다. 그래서 솥발산 이 됐고..(물이찬거) 글쎄.. 그건 몰라. 그 기독교에 보면 노아의 방주카 름이 도독골이라 했다. 도독이 살아서 도독골 아이가.. 사는 기 어려워가 골짝 깊이 와사 살 았다고 도독골, 도독골. 큰 도독골 작은 도독골. 우에는 큰 도독골.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는 그 식인거 같애.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진인동 문디 골짜기(문둥이골) 이야기 그라고 또 골짜기 이짜가면 문둥이 산골이라는 게 있어요. 그 나환 자 한 사람이 그 인자 옛날에 한 동네 못 살았으니까네 그 피해서 살다가 진인동 용암골 이야기 용암골은 저 용바우골카데.. 저 한문으로 하면 용암이었고, 속된 말 로 하면 속칭으로 용바우골 바위암자. 용담골 카는 곳이 있는데 고것도 깊은 골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는 우에 가지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는 몰라. 용이 마이 났겠지... 몰라.. 연못이 있어가 용담골이라 캤든고..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그 절 우에 올라가면 아주 약수가 유명한 약수가 있어요. 거 시시한 사람 은 가만은 거 먹고 나만은 부정이 탄다카는 긴데 그래 그래가지고 이 환 자가 먹고 내려오다가 벼락덤 카는데서 벼락을 맞고 죽었어요. 빙시가.. 나사가... 문디골짜기다. 옛날에는 나병환자라고 거 문디 골짜기 물 묵고 병 나삿다고 문디산 골이라 칸다. 문디가 사는 골.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진인동 도독골(도둑골) 이야기 도독골 칼 때는 지금도 절이 안에 있는데 거는 옛날에 조그만한 절 이 있었는데 도둑들이 들어와 가 절을 털어가 가지고 그래가 골짜기 이 진인동 벼락 덤 이야기 벼락 덤. 그래가 인자 길이 그냥 내려오다가 빙시 니가 그 그 물을 134 1장. 동구의 이야기 135

69 먹었으니끼네 벌을 준거라. 벼락 덤.. 덤.. 길이 아니고 덤이라카면 암 벽.. 덤이 암벽이야.. 그 인쟈 거 내려오다가 벼락이 쳐 가지고.. 옛날에 구전 되오던 거 들은 거지. 이거는 머 책으로도 된 거도 없고.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불렀으며 그 곳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할아 버지는 충성심도 남달라 숙종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능천산에 망곡단( 望 哭 檀 )을 쌓아놓고 목 놓아 슬피 울면서 세월을 보내던 중 새로 임금 자리 에 오르신 경종께서 또 승하하셨다는 비보를 듣고는 영원히 산을 내려오 지 않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그 곳에 집을 지어 드렸으나 끝내 집에 들어 가지 않으시고 세상을 떠나심에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할아버지 묘 옆 능천산 망곡봉( 綾 泉 山 望 哭 峰 ) 이야기 동구 부동 동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5km쯤 가면 능천산 망곡봉( 綾 泉 山 望 哭 峰 )이 우뚝 솟아있다. 원래는 벌바위라 불리었는데 지금으로부 터 300여년 전 조선 후기 경종 임금 대에 이르러 효성이 지극하고 충성 심이 강직하신 한 할아버지가 있었으니 성은 성산 여씨요 자( 字 )는 자고 ( 子 高 ), 諱 자( 回 字 )는 대익( 大 翊 ), 당호는 영모제( 永 慕 齊 )이다. 에 빈 집이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서 있으니 그 이름을 할아버지의 호를 따서 영모제라 했다고 한다. 그 후 영조대왕께서는 이 할아버지에게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曾 通 政 大 夫 承 政 院 左 承 旨 )란 벼슬을 내리셨다 고 하며 이 능천산에 망곡단을 쌓았던 봉우리를 능천산 망곡봉이라 불리 어진다. 김종대, 우리고장 大 邱 ( 地 名 由 來 ), 대구직할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이 할아버지는 부친께서 병으로 눕게되자 의복을 벗지 아니하고 숙 식을 같이 하면서 병을 간호하였고 병환이 정도를 알기 위해 부친의 대 변 맛도 보았다고 하며 또한 지혈로서 생명을 구하고자 했으나 타계하 시어 능천산 양지바른 곳에 묘소를 정하고 그 옆에서 묘소를 보살폈다고 한다. 그토록 정성이 지극한 할아버지가 가뭄이 들어 물을 길어오기가 힘들었을 때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 샘물자리를 찾아주므로, 그 곳에서 흙을 두자( 二 尺 )도 파기 전에 물이 솟아나 후세 사람들이 효천( 孝 泉 )이라 노태우 대통령과 생가 이야기 대구시 동구 신용동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생가가 원형 그대로 잘 보 존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옛날 노태우 대통령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생가에 서가래를 두 개 바꾸었는데, 서가 래 두 개가 바뀐 이유는 노태우 대통령이 친구들과 콩을 볶아 먹다가 불 을 내서 서가래를 바꾸었다고 한다 장. 동구의 이야기 137

70 지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동네였다. 그러다가 삼촌이 칠성시장 근처 동 인동 쪽에 문방구를 하면서 조카를 공부시키겠다고 하면서 중학교를 진 학하게 되었다. 아마 삼촌은 형이 자기를 공부시키려다가 사고를 당해서 조카에 대한 애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은 공산초등 생가의 노대통령 동상 학교를 2등으로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태어난 방 이렇게 공산초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하고 경북 중학교에 입학하려 고 원서를 냈는데 그때는 지금과 달리 중, 고등학교를 합쳐서 5년제였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옛날에 소등을 잘 탔는데 흰 옷을 입고 소등 을 타다가 옷이 누렇게 되면 할아버지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29살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아버지가 막내 삼 촌 등록금을 내 주러 대구 시내를 나갔었다. 옛날에는 대구역에서 동천 역까지 목탄을 실어 나르던 기차가 있었는데, 칠성시장 쪽에 건널목이 있는데 그 건널목에 버스가 지나가는데 기차가 와서 버스와 충돌해 아버 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을 다 키우셨는데, 어머니가 서른에 혼자가 되셔서 아들 형제를 키우면서 다. 그때만 해도 경북중학교는 두 번째로 가는 막강한 학교였다. 경북 고 등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최고의 학벌이라고 여기던 시대였는 데 거기에 원서를 냈는데 떨어졌다. 워낙 학교가 경쟁률이 높아서 떨어 지고 차선책으로 대구 공고 전기과에 입학해서 삼학년까지 다니고 사학 년에 경북 고등학교로 편입한다. 그래서 경북고등학교 32회 졸업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졸업하는 그 때 6 25가 터지자 헌병으 로 지원하고 뒤에 학사졸업인증이 되는 육사 4년제에 진학하게 되고, 그때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입사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봉양해서 달성군으로부터 효부상을 받으셨다. 처음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학교에 다닐때는 서로가 몰랐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잘사는 집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수입이 없고 이 마을에는 돌이 많아서 농사를 육사에 가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래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함께 대구로 내려와서 가재를 잡 138 1장. 동구의 이야기 139

71 으면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태우 대통령 삼촌집이 동인동에 있었기 때문에 삼덕동에 살고 있었던 부인인 김옥순 여사를 만나게 되었 다. 노태우 대통령이 김옥순 여사 집에 놀러를 자주 갔는데 김옥순 여사 아버지께서 아들 김복동의 친구 중에 노태우 대통령이 가장 마음에 들었 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 생가에는 지금도 노태우 대통령의 삶의 추억 많이 있어서 열 명이 모여서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열재이다. 그런데 한 자 표기로 열 십자에다가 고개 령 자를 써서 십령이라고 표기하는데 한 자식 표기는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이름이다. 제보자 : 김춘자, 여, 대구시 문화 관광 해설사,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신용동 노태우 대통령 생가에서 들이 스며있는 소중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제보자 : 김달상, 여,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신용동 마을회관에서 파계사 성전암 이야기 노태우 대통령 어머니와 할머니는 신심이 있는 불자로 알려져 있고, 갓바위와 동화사에 가서 불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태우 대 열재고개 이야기 열재는 옛날에 노태우 대통령이 공산초등학교를 다닐 때 넘었던 고 개로 유명하다. 열재라는 고개의 유래는 짐승도 많이 나타나고 도둑도 통령 어머니와 할머니가 진짜 공을 들였던 곳은 바로 성전암이다. 성전 암은 파계사 소속의 절로 파계사에서 파계봉 쪽으로 1km 올라가면 있 고, 성철 스님 등이 수행했던 곳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어머니는 15살에 열재고개 안내문 성전암 140 1장. 동구의 이야기 141

72 결혼해서 23살에 노태우 대통령을 낳았으니 8년 만에 태어났다는 점에 서 공덕의 힘으로 태어났다고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다. 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황당 제사를 올리지 않게 되자 마을의 젊은이 5명이 비명횡사한 불행이 생기게 되어 일부 마을 주민들은 당제사를 올 리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하여 다시 당제사를 올리자고 주장하였다. 그 러나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여 지금은 성황당 자리만 옛 그대 송정 성황당 이야기 동구 송정리 성황당에 소나무가 유일하게 노거수( 老 巨 樹 )로 오랫동 안 조성, 보호되어 오다가 조선조 중기에 들어와 모두 말라죽고 그 후에 로 존치해 두고 제사는 올리지 않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다시 심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성황당에는 조선시대의 소나무 그루터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이름도 소나무의 이름을 따 송정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의 성황당은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기 전까지 마을 주민들의 토속신앙의 근거지가 되어 매년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어려운 일들을 이 곳에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새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송정동과 중대1동을 지나는 팔공산 순환도로 중간도로에 자리 잡고 있으며, 관광농장이 산자락에 약간씩 붙어있는 전형적 산촌 농경의 모 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한창 진행될 때 중국의 원군 대장이 이곳을 지나다가 팔공산의 지세가 너무나 빼어나고 아름다워서 잠시 풍 수지리설에 따른 관찰을 하였더니 이곳에서 굉장한 인물이 태어나 멀지 않아 우리 중국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의 정기를 흐리게 하고 풍수설에 따른 산의 혈을 끊어 후환을 없애기로 마 음을 먹고 작업을 시작하자 천둥벼락이 치고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졌고, 땅은 무쇠처럼 단단하여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변 이 생기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중국의 장군이 송정 성황당 자리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그 곳에서 북쪽으로 약 600m 142 1장. 동구의 이야기 143

73 의 위치에 한 돌부처가 몹시 상기된 얼굴로 이곳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 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중국 장군은 이 돌부처를 파괴하라고 명령하였고 이 돌부처가 파괴된 후 이변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산허리가 잘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이 산허리는 끈치매기 란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1980년 팔공산 개발 때 순환도로가 끊치매기 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돌부처는 주민들이 복원해 보시하고, 불교도들이 초하루 보 조강지 못 름이면 꼭 찾아와 기도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니까 그래서 어느 날 스님이 또 역시 이, 이거는 전설같은 이야기라. 또 스님이 동냥하러 오니까 두드려패고 묶으고 뭐 이럴라 하길래 그 스님이 이 동네가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는데 그런 그 이야기를 하니까 동네 조강지 못 이야기 파계사 올라가다가 선작교 지나가지고 이 쪽 우측편에 중상골이라고 있어요. 중상골. 그게 이제 스님들 화장하는 그 골짜기다. 그 저 고 화장 하는 자리 지금 말하자면 다비시. 그 땅도 이제 옛날에는 우리 동네에 산 이었는데 그 하도 그래가지고 그 때 떡한바튀하고 바꿔먹었다는 뭐 그런 그거는 전설같은 이야긴데 일단 그 스님들 화장하는 다비시 하는 그 자 리 지금은 그 잘 안하고 있지. 그래서 중상골이라고. 그리고 택리 동네가 상당히 컸어요. 상당히 큰 동네였는데 스님들이 시주하러 오면은 시주를 안 하고 스님들 학대를 한기라. 동네가 워낙 크 사람들이 잘 산다카이 그라면 우야면 되느냐. 앞에 여기다가 못을 파라. 못을 파면은 이 동네가 더 번창할 것이다 하고 그 스님은 갔는기라. 그러 니 그 스님이 말이 스님이지 사실은 도인이었다고 이래 보면 되겠지 전 설이니까. 그래가지고 동네 사람들이 좋다고 그 못을 하루아침에 팠다캐 가지고 조강지라 했는데 하루아침에 팠다카면 이 동네가 얼마나 크고 사 람이 들셌다는 거는 짐작이 가잖아 그지? 그걸 파고 나서 이 동네가 쫄 딱 망했다. 응응 쫄딱 망했다. 못 때문에 망했다. 제보자 :신성용, 72세, 남, 노인회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서 144 1장. 동구의 이야기 145

74 염불암의 청석탑( 靑 石 塔 )과 칡 이야기 약 1000년 전(고려 때) 보조국사( 普 照 國 師 )라는 스님이 염불암을 다 시 고쳐 세웠다. 이 스님은 나무로 만든 목마를 타고 다니는 신비로운 재 주를 가졌다. 이 목마에 많은 짐을 싣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 스님은 염 불암에 탑을 쌓기 위하여 서해 바닷가에 있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검은 돌(청석)을 목마에 싣고 염불암까지 날랐다. 하면서, 당장 산신령을 불러서 암자 부근의 칡덩굴을 모조리 걷어치 우도록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자 산신령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칡덩굴을 뿌리째 뽑아 버렸다. 그 뒤부터 양진암이 있는 곳에서부터 꼭대기에 이 르는 곳까지 칡덩굴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대구시, 대구의 향기, 1982.에서 발췌 그러던 어느 날, 돌을 싣고 산을 올라오던 목마가 칡덩굴에 걸려 넘 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 스님은 노발대발하면서 칡덩굴을 보고, 비록 생명이 없는 목마지만 부처님을 위한 일을 하는데 하찮은 칡덩 굴이 훼방을 놓다니! 송전동 학계비 이야기 동구 송정동에 있는 학계비가 있는데, 학계비라고 한학 했다고 옛날 에 한문선생 재실이 있는데 원감재라고. 원감재는 기록에 의하면, 의정 부 참찬을 지낸 이산명( 李 山 明 )을 모신 경주 이씨의 재실로 1915년에 건 립하였다고 한다. 재실에 들다놓고 우리 경주 이가들 돈 줘가며 한문을 배웠다꼬. 내가 막내라. 저 비석도 저 내가 세웠고 내가 저 축문 읽고. 우 리 마을에 아 공부 가르칠라고 지었다.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염불암의 청석탑 146 1장. 동구의 이야기 147

75 봉무동 우물 이야기 지금은 우물이 없어졌다 카이 우물이 없어 졌는 것이 서쪽으로 평광 가는 길에서 이리 올라가는 길이 있어. 경로당 말고 여기 복판에서, 장터 올라가는 길이 있어. 올라가는 길 옆에 보면 옛날 그 우물이 하나 있어. 그 우물이 천에 없이 날씨가 가물어도, 아무리 가물어도 물은 그냥 있는 원감재 거야. 안 마른 이유는 안 마른 이유는, 내 생각에는 아마, 그때는 그 물이 동민을 살리는 그런 물이 아니겠나. 제보자 : 배두환, 남, 85세,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평광동 노인석 이야기 원감재 안내문 평광동 백발산 허리에 노인석이 있는데 서로 전하기를 주민이 장수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산 밑에 폭포가 있고 그 곁에 石 泉 이 있 어 용출함에 먼 곳 사람이 많이 와서 머리를 감는다. 제보자 : 송문창, 남, 80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평광동에서 낙정학계유적비 148 1장. 동구의 이야기 149

76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2장_ 재미난 이야기 민담

77 며느리는 남편이 돌아왔더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는기라. 다만 그 story 재미난 이야기 런 일은 절대 없었구마 하고 하니 시어마이는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무 슨 소리고 카면서 불호령을 내리는 기라. 당장 이실직고하라고 며느리를 다그치는 기라. 그랑께 마 며느리는 머리에서 옥잠을 빼들고 하늘을 향해 빌었다카이. 하늘님요, 내가 죄가 있으마 이 옥잠이 땅에 떨어지고, 죄가 없으마 맷돌에 이 옥잠이 꽂히게 해 주시오. 하면서 하늘 높이 옥잠을 휙 던지 정절을 입증한 돌에 꽂힌 옥잠 옛날에 말이라 어떤 부부가 알콩달콩 살고 있었는기라, 신랑이 과거 를 보러 떠나기 됐걸랑 그런데 마 그놈의 신랑이 각시가 그리버서 마 그 날 밤으로 집에 돌아와 버리고 말았는기라. 각시는 남편이 어른들한테 꾸지람을 들을까시퍼서 그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마 그래서 속을 니, 옥잠이가 맷돌에 가서 척 꽂힌 기라. 그것을 본 시어마이는 그제 서야 혹시 아들이 돌아왔능가 하고 생각을 하여 며느리를 용서해 주 었다고 카는 이바구라. 제보자 : 김재찬, 남, 채록일자 : ,동구 내곡동 173번지에서 태우고 있었는기라. 그래가 각시가 신랑한테 오늘 밤만 자고 내일은 떠 나시어요. 하고 말해도 다음날이 되면 또 다시 돌아오는 기라. 날마다 그 랑께 탈이 안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마 시어마이가 며느리 방에서 남자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기라. 그 다음날 밤에도 역시 남자 소리를 들은 시아마이는 며늘 아가 아들이 없는 새 다른 남자를 끌어들 인 것으로 생각한 기라. 그래 가꼬 마 다음날 아침, 시어마이는 며느리를 불러내어 호통을 쳤다 아이가. 시어마이는 바른대로 말하라고 카는데, 함부로 손톱 버리며 안 되는 이야기 옛날에 어느 마실에 어떤 부부가 살고 있었다카이. 어느 날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웬 남자가 집에 들어와 자기 대신 주인 행세 를 하고 있었는기라. 그 남자는 생김새도 목소리도 똑 같아서 어느 사람 도 두 사람을 가려낼 수 없는기라. 그랑데 결국 먼저 집에 돌아와 있던 가짜를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한 동네 사람들은 진짜를 집에서 쫓아내 삐 152 2장. 재미난 이야기 153

78 릿어. 마누래까지도 외면항께 쫓겨난 진짜 주인은 기가 막힌기라. 이 일 을 우째야 하나 하면서 정처 없이 길을 가다가 문득 한 사람을 만나게 된 는 기라. 진짜 주인은 자신의 신세를 모두 이야기하고 한탄을 한께, 그랬 더이, 그 사람은 품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꺼내어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 놔 두라카는기라. 주인은 시키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그 고양이를 가짜 의 옆에다 놓아둔께, 그랬더니, 그 고양이는 갑자기 가짜 주인에게 달려 들어 목살을 물고 늘어지는기라. 고양이가 주인을 물어 죽여 놓고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큰 쥐라. 집에 묵어 가게 되었는기라. 그란데 꿈에 허연 백발 노인이 말을 타고 와 서 내리더니 과객한테 저 너머 동네에 가면 큰 기와집이 많은데 제일 큰 기와집이 우리 집이요, 오늘이 내 제삿날이요. 내가 제삿밥을 얻어먹으 러 갔더니 그놈들이 괘씸하게 뫼밥에다 구렁이(머리카락)를 한 마리 얹 어놨지요. 그라서 화가 난 나머지 손자를 떼밀었더니 국솥에 빠져 데어 버려 집안에 난리가 안 났소. 그러니 당신이 가가 약을 좀 가르쳐 주소. 돌아가다가 내가 생각하이 하도 안 된 나머지 돌아왔으니 부탁하오. 덴 상처에 참기름도 바르고 머리카락을 살라서 발라주면 나을 거라고 일러 주시오. 하였단다. 주인이 손톱을 깍아 함부로 내버린 손톱을 쥐가 묵고 주인의 모습으 로 둔갑하여 진짜의 행세를 했던 것이라.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손 톱을 깎을 때는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기라. 손톱을 깎고 나서도 마구 버 려서는 안 되고 잘 싸서 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쥐가 주서 먹고는 사람 으로 변해서 애를 먹일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라. 하여튼, 가짜를 물리친 부부는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는 이바구라고. 제보자 : 손태좌, 남, 채록일자 : , 동구 도동 95-3번지에서 이튿날 과객이 아침 일찍 노인이 일러준 동네로 가서 큰 기와집을 찾 았다. 그 집 앞에 당도하여 아무개 집인지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가니 아 이가 제사지낸 뒤 국솥에 데어 난리 법석이었다. 과객이 들어가서 말하 기를 간밤이 제사였지요? 라고 하니 맞다고 하는기라. 그래가 과객이, 자신이 아무 데 주막거리에서 잤는데 밤중에 백발 노인이 말을 타고 내 려와서 여차여차 말해주었다고 말하고는 일러준 약을 가르쳐 주어 바르 니 아이는 씻은 듯이 상처가 나았다. 정성 없는 제사 옛날에 마 어떤 과객이 산골 시골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가 마 주막 과객은 다음부터는 뫼밥을 짓는 데 정성들여서 머리카락 하나, 돌 하 나라도 가려내어 깨끗하고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고 한 기라. 과객이 이 154 2장. 재미난 이야기 155

79 튿날 가려고 하자 주인이 며칠 쉬어 가라며 한사코 만류했다. 그 동안 과 객은 좋은 옷과 음식으로 대접받고 떠날 때는 노자까지 두둑하게 받았 다. 그 후 과객과 주인은 형제보다 더 친하고 사이좋게 살았다는 이야기 인기라. 제보자 : 손태좌, 남, 채록일자 : , 동구 도동 95-3번지에서 오너라 하는 것이다. 나중에 거 가보면은 고 비석이 고거는 있어요. 청룡 등은 산 주령이니까. 산주령이라 청룡등이 특별히 뭐 만들어 놓은게 아 니고 절 그 좌측에 파계사가 이래 앉았으니 파계사가 이래 보고 있으면 은 이게 청룡등이라. 그 청룡등이 길게 저 우에서부터 이래 저기 밑에까 지 내려온다. 풍수지리상으로 좌청룡 우백호하는 그기 아까 그 청룡등이 다. 그라고 그 저 여 파계사 올라가다가 보면은 다리가 있잖아. 그 조그 만 다리가 있지. 그 다리가 이름이 선작교라. 선작교. 선작교, 그 인쟈 그 파계사의 영조 연등 파계사 여게는 지금은 또 옛날에 뭐 유실되가 없었는데 옛날에도 숙 종 대왕이 내린 연등도 있어요. 연등이 있었는데 연등하면 모르제. 그 당 시에 그 숙종대왕 연등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 가면 기에 부채 선자라 선자가 부채 선자에 까치 작잔데 선작교라고 다리 이 름이 고 따로 있고, 글자로 봤을 때는 부채 선자에 까치 작잔데 제보자 : 신성용, 72세, 남, 노인회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서 청룡등이 있어요 청룡등이. 바로 절 앞에. 학생들 저저 풍수지리상으로 보면은 좌청룡 우백호 하는 이야기 들었지? 인제 이 절에도 파계사가 이 래 앉아있는데 이 청룡등이라고 있어. 응 청룡등. 고 바로 절 앞에 있는 그 등인데 인제 고 어 청룡등이 있고, 그 청룡등 앞에 보면은 대소인개하 마비 하는게 있어 그 고기 뭐 비석이 크지는 안해요. 비석이 대소인개하 마비 하는게 고기 뭔가 하면은 숙종대왕 연등하고 어패가 있기 때문에 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청룡등에 요게 올라서서는 말에서 내려가지 고 걸어오지 말타고 댕기지는 못한다. 그 인쟈 그 그기 대소인 하는게 큰 대자 작을 소자 사람 인자 개하마비 여기서 부터는 말에서 내려가지고 용수동 신라 미륵사 돌부처 신라 때 미륵불인데. 그 우에 살적에 신이 와가지고 일주일로 잠을 안 오더라고. 그래서 가이 미칠라 하는 기라 그래가 내가 일주일로 댕기 다가 8일 만에 이 골시락(골짜기)에 왔어. 그에 들어와 이자, 할아버지 과수원 뒤로 요게서 요 대불하나 있다카이. 고래가 그 미륵불, (석공한 테) 한 사만원 일당 주고 같이 돌라코(들려고) 그래 올라 갔거든요. 하도 그리가. 뻗대갔고 누워있잖아. 위에 물이 내려오는데 그중에 입술을 (물 에) 요리 대고 눕고 있더라고. 그래 나는 이 부처를 누가 세워야 한다카 156 2장. 재미난 이야기 157

80 든. 우리 저 그 지저동(지묘동)에. 그래 이튿날 아침에 와보이 (부처가) 어서 오라 카더라꼬. 진심으로 말을 했는데, 말을 부처님이 들었다 말 이다. 그니 그 밤에 (기울어진 부처가) 바로 섰삤는기라. 바로 딱 정면으 로 서 삤는기라. 그래가 인자 마실사람들이 부처님이 정실로(정말로) 있 다는 걸 그거. (그거를 알았는거라.) 그래가 이때까지 지금도 싸우고 있 용수동 마애불상 어. 인자. 개놈들이 와가지고 마을 지 자랑 쓰이니까 남에 꺼 꼬라지를 못봐. 그래서 내가 부처 내 댓고 올란다. 시에 그 동구청에 가도 (부처를 가지는 게) 안된다 캐서. 그래 저 원래는 저 일가치 가지고 할매 일가치 는 계시 땜에 인자 그 구청가서 신청하이까, 할매 유밭(과수원)이라 할 매가 하소 우리는 필요 없는기라. 그래 그 소리를 듣고 내가 그때 61살 인가, 62살인가 그래 내가 거 집 팔아 넣고 차 팔아 넣고 그 유밭이라 그 래가 마실에 이자 (내) 유밭이라 카니까 논두렁을 좀 요리 엎을라 아니까 그래 내가, 저기 저게 팔일로 들어앉아가 좀 뇌물을 줄라케도 (마을 사람 들이 논두렁을 엎는 게) 안되더라카이. 안 되기꼬 그래가 팔일 만에 관 두고, 일주일만에, 십일만인가 손을 가 일기신기라. 그 큰 부처를, 그 손 을가, 제압기라 카는 그 큰 걸로 팔 일만에 일가치가(미륵불을 일으켜 세 워). 그래 일가치도, 부처님이 바리 똑바로 서지를 안 해. 빼딱하이 이래 갔고. 그래 일카가 이장한테 이대로 부처님 모시만은 안 된다. 가만 놔 두라케서 부처도 속 있고 나도 속 있는데 마실 사람과 그렇게 싸웠는 데 그래. 부처도 마음이 아플 끼라고 내가 그카니, 내가 내려 가삤거 가 할매가 하소. 우리는 돈 없어 몬한다 했는데, 지금도 (동구청에서 거 절했다고) 안했다 소리는 안 해. 그칼 수도 있다 이기라. 그 칼 수도 있으 니 그래 부처님을 내가 보살피야 되는 거라. 그래가 내가 지금 갈 때 다 되 가거든. 내가 83이거든. 근데 나는 가도 되는데 부처님은 저래가 어 이 할 끼라고 갈라 케도 참 자슥들 놓고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지. 조사자 : 할머니께서 그럼 처음 발견하신 건가요? 그럼. (미륵불이) 엎어 져가지고, 아들 소맥이러 가는데 반동강나가 이래 데있더라고. 그래가 내가 인자 일가칬지. 일가치가지고 그래 23년째가 지금 내가 60이 돌아 서 83년이니까 23년 됐지. 거가 하천이거든. 하천이다 보니 물이 자꾸 내려가니까 부처님 입술에 물이 잘박잘박잘박 하더라고. 그래 일가칬 지. 여가 신라미륵사거든. 그 인자 그래가 문화재청에 모셨잖아. 이명수 교수님이라고 와시가(오셔서) 그래가 신라 때 미륵불이라고 신라 때 만 158 2장. 재미난 이야기 159

81 들어진거라 카데. 그래서 (절 이름을) 신라미륵불이라 지었지. 제보자 : 김대순, 여, 83세,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용수동에서 무가 오래 됐다 캐서 문화재에 되다 놓니 시에서 이제 (관리를) 한다 카 이. 그래가 가서, 앞길로 돌아가면 쳐놨잖아. 돌로 가 만들어놓고, 뭐 마 해놨지. 30년 됐는데, 설 쉬고 정월달에, 북을 쳐가 큰 대를 거머쥐고, 대 잘 이는 사람이 있어. 그 대를 이자 가면은 앞에 가고, 뒤에서 풍물로 용수동 가루뱅이의 당산과 동제, 그에 얽힌 소가 죽은 이야기 여기도 동제를 안 지낸지가 오래됐어요. 여기는 안 지낸지가 지금 한 30년 됐을까? 제사 안 지내더, 거기 어데서 와 점쟁이, 그런 분들이 와서 와갔고 불로 서갔고 공을 들이고 가고, 와 전에는 와갔고 북도 치고 징 도 치고 막 신도 올리고 그래가, 동네에서 못하게 했어. 못하게끔 해 놔 놓으니, 인자 그런 건 안하고, 절마 하고 한다카이. 항상 막걸리, 과자 막 이런 거 갔다 놓고 절하고 막 어느 날 저녁이고 안하는 날이 없어. 그래 가 왔다가, 그 시에서 관리를 하거든. 문화재에 인제, 그게 됐다카이. 나 치면서 따라가거든. 그 대가 이자 할아버지라. 당제 할아버지라. 그 당 제 할아버지가 대를 갖고 아주 그 한집에만 들어가지 아무데나 안 들어 가. 그래가 가면은 (대를) 거 묶어놓고 절하고. 옛날에 여 우에 누구집에 그 당제를 모시는데 당제가 들어왔어. 그런데 안지낼라고, (당제 할아버 지를) 나가라 했는거라. 억지로 웃쳐 내니까 안나가고 자꾸 마당을 돌데. 대나무가. 억지로 웃쳐 내니까, 그 집에 소가, 큰 소가 있었어. 대나무로 가 소를 팍 때리고 나가니까 소가 구부러지더라. 그만큼 미신이 있는거 야. 그래가 그 큰 소가 죽어버렸는 거라. 옛날에 그 집에 살고 있다가, 이 동네에. 막아서, 우리는 못한다. 딴 집에 가라 카니까, 그 집에 영감님이 막 그래가, 나중에 나가면서 대나무로 소를 때렸다. 소 외양간이 거기 있 는데 소 대가리를 막 때리고 나가니 소가 구불어진 거라. 고만큼 영험이 있어. 그래가, 그걸 지내면 굉장히 좀, 그날 초 사흘 날인가, 삼일날인가 하면, 그 뒤에 (대가) 들어오는 날부터 줄 쳐좋고, 아무도 그 집에 못들어 가. 줄 쳐 좋고 저 산에 가 빨간 꽃을 따다 와가지고 대문가에서 이래 이래 나놓고 아무도 못 드가게 표시해놓고, 애 낳으면 금줄 치듯이, 줄로 용수동 당산 쳐 놔놓으면 아무도 그 집에 방에 못 들어 가는거라. 그래가 일주일 있 160 2장. 재미난 이야기 161

82 월이 흘러가 연세 많은 사람 다 돌아가시고, 동네마다 그래 할 사람이 없 어. 젊은 사람은 돈 아까워서 안 할라카이. 그래가 그 제사를 저기 지내 고 나면 제사 음복하러 가도, 상중, 죽었던 사람이나 아 놓던 사람이나 그런 사람은 음식을 못 얻어먹어. 깨끗한 사람만 그 음식을 얻어먹지 나 많은 사람은 제사 지냈다꼬 옛날에는 그 두루매기 입고 갓 쓰고 제사 지 용수동당산 안내문 내러 가지, 깨끗한 사람만 가지 아무나 못 갔어. 그래 일 년마다 그래 하 니까 그게 귀찮잖아. 이제는 대 거머쥐고 그래 할 사람도 없고, 그래 하 다가 안하니까 마을에서 무신 덜 좋아 동네가. 젊은 사람도 죽고, 덜 다가, 일주일 넘지. 14일날 지내면 한 삼일 날까지 열덟 날까지 공을 지 내지. 그래가 다른 사람이랑 말도 안하고, 동네도 안 나가고, 가만- 방에 서 술도 안묵고, 담배도 안하고, 그래가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 먹고 싶 좋아. 인자 햇수가 오래되었지. 제보자 : 송숙미, 여, 70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용수동에서 으면 콩을 볶아가 먹고, 옛날에 우리 시어른이 그랬다 카더라. 시어른 집 에 들어와 가지고 그 이웃집 놀러 가고 싶어도 놀러도 못가. 들어앉아 가지고 깨끗하게 매일 목욕하고, 찬물에다 목욕하고. 겨울에 춥잖아. 옛 날에는 그렇다 카네. 그리고 장보러 갈 적에는, 열사흘 날 장보러 가잖 아. 옛날엔. 요즘은 전부 물건 사가 하재. 장보러 가면 마스크 딱 하고, 장보러 가면 깎으면 안 돼. 돌라 카면 다 줘야되. 제사 장보러 가가 만원 달라 카면 만원 주고, 십 만원 달라 카면 십 만원 주고 돌라 카면. 장을 다 봐 와가 떡도 집에서 하고 쪄가 하고. 그래가 밤에, 제 밤에. 밤중 되 면 거서 제사를 모신다하네. 그만큼 영험한 힘이 있었다 카는데, 고마 세 꿈이 살린 목숨 옛날에 한 정승이 살았는기라.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 하듯이 훌륭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안카나. 이 아가 장가를 갔는데 내일이 초행 가는 날 인데 전날 밤에 신랑 아버지 꿈에 이상한 어떤 것이 나타나서 아버지 목 을 치고 상자에 넣는기라. 다음날 이상하게 여겨서 아들에게 꿈 이야기 를 해주니 아들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카는기라. 그러자 아버지는 초 행 갈 때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신방에 들어가면 절대 신부에서 손도 대지 말라고 하고는 아들은 초행길을 떠났느기라 장. 재미난 이야기 163

83 초행에 가서 혼례가 끝나자 이제 마 신랑이 들어가 있으니까 신부가 들어왔는데 신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른 척하고 잠자는 척 하고 있었 는 기라. 한참 있으니까 신부가 신랑을 흔들면서 장방문을 열었다. 거기 서 시커먼 것이 쑥 나오는기라. 그 때 신랑은 벌떡 일어나서 비수로 시커 먼 놈의 모가지를 때려서 죽였뿌렸어. 지 저장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저장법이 없어서 간단하게 저장해 가지 고는 다 썩어버리 않나? 좀체 오뉴월까지 홍시가 있을 리가 만무하거든. 그런데, 아무리 효자지만 없는 것을 어떻게 구해 주냐 말이지. 그래도 이 사람은 어떻게라도 구해 드릴라고 홍시 구하러 쓸데없는 나무 밑에 돌아 다니는거야. 종일 돌아 다녀도 있을 리 만무한데, 어떻게든지 홍시 하나 만 구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지. 그라고는 사랑에 아버지한테 신랑은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고는 부자 가 말을 타고 집으로 왔느기라. 뒤에 들어보니 그 신부가 후원에서 몰래 통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신부가 신랑을 죽일라꼬 해서 사통하던 남자에 게 신랑을 죽여 달라고 했던 기라. 그래서 꿈이 신랑을 살렸다는 이야기 이다. 제보자 : 송문창, 남, 80세, 제보일시 : , 대구시 동구 평광동에서 그날 저녁 종일토록 돌아 다니고 해가 지도록 어두워져도 집에 돌아 올 줄 모르고 감나무 밑으로 돌아 댕기는 거야. 그러니 밤이 돼 가지고 호랑이가 한 마리 오는 기라. 뭐 사람을 잡아 먹을라고 온 줄 알았던 것 이, 물지도 않고, 엉덩이를 자꾸 둘러대는 시늉을 하거든. 업히라는 시늉 을 하는 거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이고, 날 해치지 않고 날 업을 라고 하는 구나! 하고 업혔단 말이야. 등때기에 업히니, 마구 달려 어디로 가는데 호 홍 효자 옛날에 성은 홍가요, 홍효자란 사람이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병환으 랑이란 것은 하루 천 리를 가는 짐승이라, 사람을 업고 어디까지 가는지 자정이 지나도록 갔었단 말이다. 로 누워 계셔서 뭐든지 요구를 하면, 뭐가 먹고 싶다든지, 입고 싶다든지 하면 안 해 주는 법이 없고, 처지는 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예 해서라 도 꼭 자기 아버지 비위를 맞춰 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루는 오뉴월 염 천에 홍시를 먹고 싶다고 한단 말이라. 요새는 저장법이 있어서 여름까 어느 동네에 와 가지고 잘 사는 집인 모양인데, 큰 대문 앞에 거기 내 려 놓는기라. 원 영문을 모르고 그 집에 좀 들어가야 할텐데 문이 닫혔는 가 싶어서 문을 열어보니까 문이 열려 있어 이상스러워서 자기가 들어가 164 2장. 재미난 이야기 165

84 보니까, 사랑방에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기침 을 하고 나는 일모로 해서 가다 늦어 이리 들어 왔으니 하룻밤 유하고 갈 수 것이 5, 6개 밖에 남지 않던 것이 올해는 우예 됐는지 수십 개가 남아 있어. 아마, 당신의 효행에 따라서 하느님이 당신을 줄라고 이래 남기 는가 싶으다. 없느냐? 하고 주인을 찾아 물으니, 주인이 들어오라고 하거든. 거기 들 어가보니까 사람이 8명 있었는데 아마 제사를 지냈던 모양이라. 제사를 지내고 모두 나와 앉았는데, 제사 음복 음식이 나오는데 홍시가 하나 벌 건 것이 있어 사람마다 하나씩 모두 놓여 있었어. 그래서 홍효자가 다른 음식은 다 먹고 홍시는 안 먹고 놔두니까 주인이 당신은 홍시를 왜 안 먹느냐? 홍시를 먹을 줄 모르느냐? 라고 물으니까 홍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내 늙은 아버지가 지금 병환으로 계시는데 홍시를 구해 달라 해서 그걸 무단히 구할라 해도 못 얻었는데, 오늘 홍시를 보니 다만 몇 개라도 갖다가 아프신 아버지를 드리겠다고 해서 안 먹는다. 라고 하니까 주인이, 아 그렇소! 그러면 당신이 그걸 드시고 내가 갈 때에 홍시를 여남은 그러니 말하자면 그 집 주인도 효자요, 호랑이 등에 업혀간 이 사람 도 효자요, 서로 효자가 효자집을 찾아 간 기라. 그러니 하늘이 감동해서 호랑이 등더리에 없혀서 그 사람 집에 가게 된 기라. 그래 인제 음복을 다 하고 갈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호랑이는 어데 갔다 왔는지 문을 발로 후비는 거야. 가자는 거지. 그래서 거기 있던 사람이 이거 뭐가 이래 문을 후벼 뜯노? 하니까 그 집에 홍효자가 호랑이 등떼기에 업혀 왔기 때문에 놀래지 마시오. 내가 산 강아지 등떼기에 업혀 가지고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 안에 들어가더니 조그만 광주리를 찾아가지고 거 기다 홍시 10개를 담아 주니 홍시 10개를 가지고 문 밖에 나오니까 호랑 이가 등떼기를 둘러대는 기라. 개 싸서 드릴 테니까 가지고 가시오. 그러고 주인이 이야기를 하는데, 하, 참! 해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홍시를 좋아 해서 돌아가신 뒤에도 제사에 홍시를 쓰기 위해서 수백 개를 가을에 구해가지고 땅속에다 묻어 놓으면, 제사 때가 되면은 불과 남아 있는 그러니 호랑이한테 업혀서 집에 돌아왔는데, 그것이 시간으로 말하 면 여남은 시간이 될까 말까 한 그 새를 홍효자가 있는 곳에서 집까지 간 거리가 300리라. 호랑이가 그렇게 빠른 모양이라. 그래서 홍시를 가지고 와 가지고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지. 효자와 충신과 열녀는 하 166 2장. 재미난 이야기 167

85 늘이 감동한다는 거야, 다른 일에는 그런 일이 없어도 과학적으로 추측 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친기라. 도 못 할 일이 생기는 거야.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에서 하지만 이러기를 자꾸자꾸 하니까 고픈 배는 채울 수 있으니, 이러기 를 거듭해서 그럭저럭 지내니 영문을 모르는 시어머니가 말 있으면 종 부리고 싶어진다 는 격으로 고기가 먹고 싶다는 기라. 며느리가 궁리 끝 효성스런 며느리 옛날에 지독시리 못 사는 집이 있었는데 말이다. 식구라케야 눈 먼 시어머니하고, 앉은뱅이 시동생하고 세 식구 뿐 인기라. 먹을 것이 없어 서 삼시 세 때 굶기를 딴 사람 밥 먹듯이 하니, 한심한 노릇이 아니가. 하 에 며칠 뒤에 비가 온 후 마당 장독 옆에 지렁이가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게 눈에 띄어 그놈을 잡아 잡다한 거 넣고 푹 꼬아서 시어머니께 갖다 드 리니까 까닭 모르는 시어머니는, 아가야 오늘 아침 국맛이 천하일미로 구나! 그러는 기라. 지만 양반 집안사람은 치마 꽁지를 쫄쫄 끌고 대문 밖 출입을 할 줄도 모 르고 남의 남정네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용한 세월이었으니, 처 음에야 어쩔 수 없었지만은 시동생은 앉은뱅이지, 시어머니는 나이가 많 은데 병까지 들었으니 꼼짝없이 앉아서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기라. 이제 며느리는 이러기를 여러 번 하니까 모르는게 약 이라고 시어머 니는 차차 기력을 찾고 멀었던 눈까지도 나날이 밝아오는 기라.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이러니 이걸 마을 사람이 알게 되고 소문이 고을 원 님에게까지 퍼지게 되었으니, 며느리가 관가에 불려 간거라. 그래서 며느리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기라. 대뜸 눈에 띄는 게 길 가에 있는 개똥인데, 보리쌀이 섞인 거라서 남이 볼세라 얼른 치마폭에 훔쳐 싸서 들어와 우물에 깨끗이 씻었는데 그래도 차마 밥을 지을 수야 없었지만은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딴 수가 없어 밥을 지어 올린기라. 눈 먼 시어머니나 앉은뱅이 시동생이나 안 보이니까 알 수가 있나. 그들이 배를 채울 만치 먹고 만족해 하지만은, 죄 지은 것 같아서 며느리는 미안 며느리는 안절부절해서 원님 앞에 가서 잘못 했으니 무조건 죽여 달 라. 고 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처벌을 기다린 기라. 뜻밖에 원님은 그 며 느리를 가련히 여기고 많은 상금을 내리니, 고마운 은혜를 입은 그 며느 리는 더욱 효성이 지극하게 되었는 기라.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에서 168 2장. 재미난 이야기 169

86 영남의 양반집 열녀 옛날 양반인 현풍 모씨 집에 열녀가 대대로 많이 난다해서 서울 어사 좋은 열녀자부라고 만천하에 알려져 하 원통하여 불 질렀다고 하며 이 하소연을 누구에게 할까? 카지 않는가베. 박문수가 이 현풍 모씨 집이 어떠한 집이라서 열녀가 많이 나는지 수소 문 할라고 며칠을 묵으며 수소문을 해 보니까 며칠 후에 그 집에 회갑 잔 치를 한다 카지 않는가베. 그래서 그 집에 당도하여 부주를 하고 잔치 집 에 들어가려 시도하니 사랑에 모시지 않는가베. 그 말을 들은 박 문수 어사는 자세히 기록해서 나라에 상소했단다. 본래, 영남의 현풍 모씨 집안에 열녀가 많은 이유는 열녀는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집안 어른들이 조작함으로써 열녀가 된다는 것이다. 제보자 : 신성용, 72세, 남, 노인회장,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서 객실이 있으니 술, 밥, 점심을 묵고 놀다가 보니 해가 빠진 기 아닌가 베. 잠 잘 처소가 있어야 될 기 아닌가베. 처소가 없어 마침 그 집 열녀의 집 근처 헛간에서 잠자게 되었는데, 밤중이 되어 좀 이상한 사람 소리가 자꾸 나서 어사가 무슨 소린고 하고 들어보니 열녀각에다가 나무짚을 갖 다 놓고 불을 질러 놓고는 불이야! 카지 않는가베. 호랑이도 잡은 지극한 효 옛날 옛적 어느 두메 산골에 효성이 지극하고 착한 부부가 위로는 시 아버지, 아래로는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 그런데 그 집은 외딴 집이 어서 읍내나 다른 마실로 갈려면 양 옆에는 몇 발이나 되는 아름드리 나 그래도 어사가 잠깐 내다보고는 잠 잘라고 하니, 집 주인이 들어오며 하는 말이, 제가 무슨 열녀고? 내가 만든 열녀지? 부친 회갑일에 모두 모이는 손님이 모두 열녀 자부라고 칭찬하니까 하도 억울하여 내가 지른 불이다. 카지 않는가베. 무들이 꽉 우거져 있고 좁은 외길이 나 있는 잿마루를 넘나들어야 했지. 하루는 이웃 마실에 큰 환갑잔치가 있어서 시아버지가 나들이를 하 게 됐는데, 효성이 극진한 며느리와 아들이 고갯마루까지 배웅을 하고는 돌아와서 밭에 나가 일을 했지. 어사 그 말을 듣고 모두 이상한 소리라. 자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근방을 수소문 하니, 남편 죽은 지 석 달 만에 머슴의 간부가 되어 하도 통분하여 자살케 하고 열녀가 되었으니, 갑일 잔치에 손님들에게서 연신 저녁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에 집에 오니 와 계셔야 할 시아버지가 없었다. 조금만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던 것이 벌써 날이 어두워 왔지 170 2장. 재미난 이야기 171

87 뭐야. 그래서 부부는 외아들을 등에 업고는 무섭기도 했지만 잿마루까 지 마중을 나가게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채만 한 호랑이가 시아버지 를 막 잡아먹으려던 순간이었다. 이때만 해도 호랑이와 사람이 말이 통 하던 때인지라. 호랑이에게 통 사정을 하니, 이놈의 호랑이도 며칠을 굶 고 난지라 말이 잘 안 통했지. 그래 할 수 없이 타협을 보기를 등에 업고 있는 외아들을 바꾸기로 약속을 하게 됐는데, 아버지는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자식이야 이 다음에 다시 나으면 될 거 아니오? 하고서 부부는 가 눌 수 없는 슬픔을 달래면서 아들을 풀어 주고는 사색이 되어 까무라쳐 있는 시아버지를 구해내서는 들쳐 업고서 집으로 왔지. 했단다. 이 녀석 대뜸하는 소리가 나를 따라 오라. 하니, 하도 반가와 그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 가보니, 그 집동만한 호랑이가 푹 퍼져 있었단 다. 그래 셋이서 호랑이를 간신히 집에까지 끌고 오니 모두가 기뻐했다. 그제서야, 어떻게 됐느냐? 하고 물으니 호랑이의 따뜻한 품 속에 안겨 있으니, 물컹한 게 있어 잡아 보니 붕알이었다. 나 그래서 무조건 잡고선 물어 뜯었더니 고통을 못 이긴 호랑이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단다. 이 애 기가 옆 마실로 전해지고, 또한 호랑이 가죽은 나라에 바치니, 나라에서 는 이들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많은 선물과 금은 보화를 내려 그들은 한 평생을 잘 살았다고 하더라. 제보자 : 신성용, 72세, 남, 노인회장, 채록일시 : ,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도 잊고 극진한 간호를 하니, 한밤중에 조금 지나서 야 정신을 차리는가 했더니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단다. 하지만 아들을 주 고 온 슬픔을 가눌 수도 없었던 부부는, 그래도 시아버지를 걱정시킬까 봐 내일 시아버지가 외아들에 대한 소식을 물어오면 될 핑계를 궁리하고 있었지. 이러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며 눈물을 흘리다 보니, 제 힘에 지쳐 살포시 잠이 들었는가 했더니, 엄마야! 하는 소리가 꿈결인지 생시인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제는 저 애의 혼백이 떠나는가보다, 하고 한숨을 입이 찢어진 할머니 옛날에 영감 할머니가 살았더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겐 각기 남 보기 부끄러운 흠이 있었는데, 무언고 하니 영감은 코가 없고 할머니는 입이 째졌어. 젊었을 때 할머니는 너무 잘 지껄이고 너무 방정맞게 잘 웃 어 그만 입이 째졌다 아이가. 쉬고 있는데, 다시 엄마야! 하는 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보니, 작은 검은 그림자가 있긴 있는데 믿기 어렵더라. 그런데 왈칵 엄마 품으로 달려드는 것이 생시였다는 걸 알 수 있게 그래서 할 수 없이 코가 없는 지금의 영감한테 시집을 갔는 기라. 자 식도 없이 살다가 늙어서, 모아 놓은 돈으로 영감은 성냥하고 초를 사고, 172 2장. 재미난 이야기 173

88 할머니는 바늘하고 실을 샀어. 그래서 영감은 초를 녹여서 코를 때워 붙 이고, 할머니는 입을 깁었지. 까 갑자기 잉어가 눈앞에서 펄떡펄떡 뛰더란다. 얼른 그 잉어를 잡아가 지고 끊여 먹였으나 병은 안 나았단다. 그래서 이 할배가 노상 울고 있으니까, 또 사람들이 노루가 좋다 해 그 해 겨울에 영감 할머니가 화롯가에 앉아서 놀고 있는데, 화롯불이 너무 뜨거워서 영감의 코가 쫄쫄 녹아 내리거든. 할머니가 하도 우스워 서 방정맞게 웃다가 그만 또 입이 째져다 아이가. 그래서 여자는 예로부터 모든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카는 기라. 제보자 : 송숙미, 여, 70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용수동에서 서 노루 잡으러 하루를 막 돌아 다녔단다. 해가 져서 힘이 하나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단다. 노루가 보이지도 않아서 말이야. 그런데 집에 오니 까, 노루가 부엌문 앞에 서 있었단다. 그래서 그 노루를 잡아가지고 끊여 먹여도 병은 안 나았단다. 이 세 가지를 다 끊여 먹여 보았으나,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할배는 3년을 고생해가지고 무릎이 다 물러 앉았단다. 비각 할배 이야기 옛날에 할배가 지 본 마누라가 죽어가지고 새로 하나 얻었는데, 얼굴이 반반해서 좋아했는데, 저거 아버지가 병이 들어가지고 누워 있었단다. 그래가지고, 이 사람이 효성이 지극해가지고 사람들이 산에 동삼이 그 병에는 좋다고 해서 산에 동삼을 캐러 갔는데, 눈이 꽉 내려서 아무리 그리하여 동네 소문이 자자하고 나라에까지 이름이 올라가 나라에서 옷가지와 돈이 많이 내려왔다. 또 사람들이 효성이 지극하다고 해서 비 각을 세워 주었는데 그걸 비각 할배라 한다. 제보자 : 송숙미, 여, 70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용수동에서 찾아도 동삼이 안 보였단다. 그런데, 저 쪽에 동삼이 있어 파 가지고 돌 아가서 다려 먹이고 그래도 안 나아서 사람들이 다시 또 잉어가 좋다 해 서 잉어를 찾으러 강에 갔단다. 은혜 갚은 까치 옛날에 한 젊은 선비가 과거 보러 가는데, 가다가 해거름쯤 돼서 산 길을 걷고 있는데, 커다란 고목나무 위에서 까치가 너무 슬프게 깍깍 해 그러나 강물은 얼음이 꽉 얼어 가지고 있더란다. 그래서 울고 있으니 서 고목나무 위를 보니까 까치집이 있는데, 커다란 능구렁이 한 마리가 174 2장. 재미난 이야기 175

89 까치집에 있는 까치 새끼를 잡아 묵을라 하는 기라. 이 젊은 선비가 보기 가 안 되서 활을 가지고 그 능구렁이를 보고 쏴 죽였는 기라. 그때야 그 작은 종이 있다. 내일 해 뜨기 전에 그 종을 세 번 울리면 살려 줄 것이 다. 그리고 나서 뱀은 칭칭 감은 것을 풀어주는 기라. 까치는 고맙다는 듯이 자기 머리 위를 날으며 깍깍 됐지. 그 젊은 선비가 빨리 뒷산 못에 가 보니까 물 깊이는 알 수 없고, 벙 선비는 까치를 구해 주고 길을 재촉해서 가게 되었는데, 해는 저물고 산은 깊어 인가를 찾을 길이 없어서 헤매다가 멀리서 명주 실오라기 같 은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 와서 이 선비는 됐다 싶어서 그기로 찾아가니, 그 깊은 산중에 커다란 대궐 같은 집이 있어서 선비는 똑똑 두드리니, 얼마 후에 어떤 젊은 여자가 나왔는 기라. 선비는, 하룻밤만 묵게 해 돌 라. 고 부탁하니 그 여자는 집에는 여자 하나뿐이라 어떻게 외인을 집 에 들여 놓겠는가? 한다. 그래서 선비는 깊은 산중에 인가는 이 집 뿐이 라. 그러면서 사정을 하니, 그 여자는 마지 못해서 선비를 어느 방에 재 워 주었는데, 선비는 하도 피곤해서 잠을 자다가 숨이 답답해서 눈을 떠 보니까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자기 목을 감고 있는 기라. 질겁을 해서 일 어 날려고 하니까 그 큰 구렁이가 하는 말이 나는 오늘 니가 죽인 능구 벙하게 넓어서 종이 아물거려 잘 보이지가 않았지만 그 젊은이는 죽기가 싫어서 활로 쏘아 보고, 돌도 던져 보았으나 모두 다 도로아미타불이라. 날은 밝아 동녘에 밝아 올 무렵, 세 차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있는 기라. 젊은이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보니 조그만 까치가 부딪 쳐서 피를 흘리면서 떨어진 것을 보니까 무엇인가 느껴지는 게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젊은이가 어제 구해 주었던 까치 애미라. 젊은이는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그 집에 내려오니, 그 큰 집은 간데 없고 큰 바위만 덩그렇게 남아 있고, 그 위에는 개나리 봇짐만 남아 있더 란다.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렁이 각시니까 우리 서방 원수를 갚아야겠다. 그러면서 혀를 날름거리 는 기라. 젊은이는 겁이 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까 이 뱀이 젊은이 에게 니가 활 쏘는 재주가 좋은 모양이니까 내가 너를 시험해 본 후에 그 문제를 해결만 하면 너를 살려주겠다. 한다. 그 문제가 무언고 하니, 집 뒤에 커다란 못이 있는데 그 못 한가운데 계모를 감동시킨 소년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옛날, 어느 고을의 관가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열 살 묵은 마음씨 고운 착한 아들, 이렇게 세 사람 이 정답고 행복하게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었단다 장. 재미난 이야기 177

90 그런데 운수 사납게도 마귀가 붙은 건지 귀신의 장난인지 어머니가 갑자기 이름 모를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더니 약도 제대로 써 보지도 못 하고 돌아가시고 말자,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단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조차 수 십 리 떨어진 다른 관가로 옮아가게 되었단다. 그러나 뼈 대 있는 가문이 돼서 옛 선조들의 유골이 모두 그 곳에 있는지라. 선인들 의 전통을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사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 서, 이 사정을 잘 아는 중매쟁이의 소개로 아홉 살 먹은 아들자식을 데리 고 있는 과부를 그 집의 계모로 들어오게 하는 동시에 아버지는 멀리 혼 자 따로 살게 되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형을 따라 산에 올라 갔다가 그만 호랑이를 만나고 말았는데, 그 날랜 호랑이는 으르렁 거리더니 휙 날아가서 소리 도 못 지르고 달달 떨고 있는 동생을 꽉 물었단다. 마침 형은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동생이 걱정 되어 동생한테로 왔건만 이미 때는 늦은 지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 지 들고 있던 도끼로 호랑이 머리를 향해 힘껏 내던지자, 그만 호랑이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쓰러지고 말았단다. 그 위험한 순간에서 호랑이한 테 물린 상처는 있지만 동생의 목숨을 구해서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오 게 되었는데, 집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계모는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형에게 용서를 빌면서, 다시는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먼저 돌 그런데 그 계모는 자기가 낳은 친자식은 신주 모시듯 귀하게 여기며 잘 먹이고 서당에도 보냈지만, 계모의 아들에게는 형이 되는 전처의 아 들에게는 머슴처럼 일만 시켰단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간사스런 계모는 모든 일을 숨기고 안 그런 것처럼 꾸 아가신 엄마의 못 다 받은 사랑을 다 줄 수 있도록 힘쓰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그 이후로는 아주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더라.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며대다가, 아버지만 가고 나면 또 그런 것이었단다. 그런데 요행히도 계 모의 친자식은 형이 고생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서 맛 좋은 음식을 숨 겼다가 몰래 갖다 주거나, 자기가 서당에 글 배우러 가는 동안 산에 나무 하러 가는 것을 알고는 자기도 서당 가는 것을 그만두고 형을 따라 엄마 몰래 산에 올라가다 들켜서 혼나기도 했으나, 사나흘 지나면 또 형을 따라 산으로 가는 것이었단다. 다시 만난 남편 옛날에 옻골 추씨가 못살아서 밀양 삼량진으로 가서 돈을 벌어 천석 꾼이 됐다. 딸이 하나 있어 시집을 보냈는데, 신랑이 색시가 보고 싶어 공부를 안 하고 나중에는 색시 아버지가 신랑을 절로 보냈는 기라. 그래도 밤만 되면 집에 와서 자고 새벽에 가곤 했는데, 그걸 안 색시 178 2장. 재미난 이야기 179

91 아버지가 색시를 다른 방에 자게하고 대신에 자기가 그 방에서 잤더니, 그날 밤 신랑이 집에 와서 방문을 열어 보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채 15년이 흘렀다. 이젠 기다리다 지쳐서 색시가 동생을 불러 여비로 망건 을 사 넣어 주면서 하나씩 팔면서 다니다가 신랑을 찾아오라고 부탁했 다. 동생은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보니 3년이 지났다. 우연히 신랑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신랑은 아니었다. 그래도 동 생은 누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장인 장모 생년월일 가족관계 등을 상세히 가르쳐 주고는 데리고 왔는 기라. 흥부 놀부 같은 두 형제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은 분가하여 무척 가난하게 살았지 만 천성이 어질며 착했고, 형은 부자면서도 마음씨가 고약하여 동생에게 한 푼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 동생은 나무를 해서 끼니를 이어 나갔는데, 하루는 산에 나무하러 가니까 이상하게 깊은 산중에 감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길래, 감 하나 따서 어머님께 드려야겠다. 고 말하니, 어디서 그 말을 따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상히 여겨 둘레를 살펴보니, 바위 밑에 원숭이가 한 마리가 있었 신랑이 왔다고 큰 잔치를 벌였는데, 그 신랑이 방에 들어갈려니까 색 시가 문 구멍을 통해 신랑을 보니 문을 잠가 놓고 안 열어 주는 기라. 관 가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나쁜 계집이라고 옥에 가뒀는데, 마침 암행어 사가 지나가다가 동네 사람이 애기하는 걸 듣고 옥에 들렀는데, 그 옥문 다. 다시 감 하나 따서 어머님께 드려야겠다. 하니 이 원숭이가 따라 하 는게 아닌가! 신기하게 여겨 이 원숭이를 지게 위에 얹어 집에 돌아왔더 니, 며칠 새에 말하는 원숭이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서 사람들이 자꾸 구 경하러 오는 것이었다. 앞에 서기가 비쳐있어 그 서기를 따라 가니 어느 조용한 절간이 나왔다. 그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몇이 앉아 있길래 암행어사가 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니, 어떤 중이 울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이 진짜 신랑인 것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그 중을 데리고 동네 에 들어가니, 신부는 막 사형을 당하려던 참이었다. 어사 출두를 외쳐 색 시를 구해내니 색시는 신랑을 18년 만에 무사히 만나게 되었다 하더라. 제보자 : 이상기, 62세, 남, 송정2동 통장,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송정동에서 그래서 다음날 동생은 장터에 원숭이를 가지고 가서 원숭이에게 말 을 시켰더니, 또 말을 따라 해서 이제는 얼마의 돈을 받고 했더니 몇 장 돌지 않아서 동생은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다. 그런데 이것을 안 형이 심 술이 나서, 동생을 찾아 와 원숭이 이야기를 물어서 그 원숭이를 빌려 달 라고 해서 얻어 가지고 가는 곳곳마다 미리 선전을 해 놓고, 다음 날 원 숭이한테 말도 시키기 전에 돈을 다 거두었다. 그리고 나서 원숭이한테 180 2장. 재미난 이야기 181

92 말을 시키니, 이 원숭이는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화가 나서 돈도 몽땅 빼앗고 형을 실컷 두들겨 팼다. 화가 난 형은 집에 겨우 돌아와서는 원숭이를 내동댕이쳐서 죽여 버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 갑자기 잠을 깼단다. 그래서 지극한 정성에 산신령님이 감동해서 가르쳐 준대로 생각하고는 험한 길을 빨리 올라가서 그 열매를 따 먹고 후에 이뿐 딸을 하나 낳았단다. 무가 한 그루 나더니만 어느 정도 크니깐 동쪽 하늘이 누렇게 어둑어둑 해지더니 하늘에서 사석토가 형의 집 위에 떨어져 형을 깔려 죽게 했다 하더라. 제보자 : 배두환, 남, 85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그래가꼬 칠팔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운이 없어선지 어째선지, 가족이 자꾸 병이 들어 그 많던 전답을 하나씩 하나씩 다 떨어 먹어버리 고, 후에는 너른 들에 소와 말만 남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덩이 같이 보물로 여기던 하나뿐인 딸이 병이 들었는데, 그 후로는 늘 하루 한 마리씩 소나 말이 죽어 갔단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그때에 갑자기 마음씨 고약한 부모 지금으로부터 오랜 옛날 어느 마실에 마음씨가 고약한 부모와 아들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단다. 그 집은 논도 많고 소나 말을 수 없이 많이 키 여동생의 거동이 이상해져서 오밤중만 되면, 방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가 더란다. 그래서 삼형제는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했지만, 워낙 귀하에 여 기는 딸이라 되려 동생을 의심한다고 형제들을 나무라는 것이었단다. 우는 큰 부잣집이었단다. 그런데 그 집 어머니는 아들만 있고 딸자식은 하나도 없어서 날마다 꼭두 새벽에 마실 뒤 산속 커다란 바위 앞에서 제 발 딸 하나만 낳게 해 달라고 산신령님께 해가 뜰 때까지 빌었단다. 그러자 삼 형제는 어느 날 밤 자지 않고 기다렸더니 밤이 깊어지자 여동생이 또 살짝 일어나서 가만가만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었단다. 이것을 보고 삼형제는 모두 일어나서 그래도 무서워서 전부 쇠스랑이나 어느 날은 빌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얀 백발을 길러 늘어뜨린 산신령님이 나타나 지팡이로 깊은 산골짜기를 겨누며 이리로 곧장 가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과실을 따 먹으면 소원 성취를 할 수 있도다. 하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리자. 괭이를 들고 살금살금 소가 있는 곳으로 가 보니까 그 도깨비 같은 동생 이 소를 한 마리 잡아서는 소 간을 꺼내서 미친개 소리를 내며 먹고 있더 란다. 삼형제는 너무 무서워서 꼼짝달싹도 못 하고 달달 떨고만 있다가 그만 소 간을 다 먹고 돌아오는 짐승같은 여동생한테 들키고 말았단다 장. 재미난 이야기 183

93 그 순간 그만 정신이 없던 형제는 쥐고 있던 쇠스랑이로 여동생을 둘러 치고 말았단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이 여우로 변하면서 죽어가는 것이었 단다. 그제서야 삼형제의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씨가 너무나 고약하고 악 독했기 때문에 산신령님이 딸을 내리준 게 아니고 벌을 준 것을 뒤늦게 고 했다. 그러면 자기가 쌀을 대 줄 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는 걸 딸이 부 엌에서 듣고 아버지한테 주지한테 시집 갈 마음을 묵었다고 했다. 그래 서 자기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딸을 주지한테 시집보내기로 마음먹 었다. 깨우치게 되었단다. 그래서 속죄를 할려고 남아 있던 소를 모두 마실 사 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집 식구들은 짐을 꾸려 정든 고향을 떠나 멀리 가 버렸단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떠나가버린 그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앞길을 빌어 주기 위해서 큰 제를 지내주었단다. 제보자 : 배두환, 남, 85세,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그 다음에 중이 와서 어떻게 마음을 먹었습니까? 하면서 다른 중한 테 들키면 안 되니까 궤짝 속에 넣고 궤짝을 메고 절 앞에 와서 궤짝 사 이소! 하면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혹시 다른 중이 묻거든 많은 돈을 비 싸게 불러라 하고 갔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는 딸을 궤 속에 넣고 나서 어깨에 메고 절로 털털 걸어 갔다. 그때 마침 고을 원이 나발을 불며 지나갔다. 아버지는 놀라서 궤짝을 마음씨 나쁜 중 아주 옛날에 밥도 잘 못 먹고 사는 아버지와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 가 산에서 나무를 패다가 장작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곤 해서 살았 단다. 하루는 어떤 중이 시주를 하러 와서 딸을 보고는 주지한테 어떤 마을 에 예쁘장한 딸을 키우는 나뭇꾼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지가 엉뚱 한 마음을 먹고 그 집에 가서 담 너머로 딸을 보니까 정말 이뻤다. 이 중 이 자기 신세를 모르고 나쁜 마음을 묵었는 기라. 그 중이 그 딸의 아버 지한테 가서 이 집이 밥을 먹고 살려면 딸을 어떤 주지한테 시집보내라 길 가에 버리고 나무 뒤로 달아나서 고을 원이 지나가고 난 후에 궤짝을 메고 절로 갔다. 거기거 궤 사이소! 궤 사이소! 하니 주지가 불러서 가 서 팔고는 딸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왓다. 그날 밤 주지는 호롱을 켜 놓고 궤 짝 뚜껑을 열고 아이고,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 많이 했다. 하면서 등을 어루만지니 북실북실한 기라. 그 래서 우리 집에도 좋은 옷이 많은데 뭐 할라꼬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왔노? 하면서 들어내니, 뭐가 후다닥 하면서 얼굴을 막 차고 호롱도 부 수고 문 밖으로 나가는 기라. 그래서 자기가 나쁜 마음을 묵으니까 부처 님이 벌을 준 기라 생각했다 장. 재미난 이야기 185

94 후다닥 문을 부수고 도망간 것은 아까 낮에 원님이 궤짝을 보고 뚜껑 을 여니까, 이쁜 처녀가 있어서 들고 가고 대신에 노루를 한 마리를 넣었 던 게 난리를 피운 것이다. 딸은 원님과 혼인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 화기애애하게 웃는 김 서방을 보니 도깨비 놈은 울화통이 터져 못 살겠 더란다. 그때부터 저 놈의 김 서방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 그 생각만 하 며 지냈더란다. 았단다.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그런데 하루는 그 날도 김 서방 골탕 먹일 생각을 하며 기회만 노리 고 있는데, 김 서방이 밭에서 돌멩이를 골라내어 멀리 던지는 걸 보았단 다. 이놈의 도깨비는 얼시구나! 저거다 싶어, 밤에 몰래 김 서방네 밭에 도깨비와 김 서방 옛날옛날 먼 옛날,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어느 깊은 두 메산골에 마음씨 곱고 착하기로 이름난 김 서방네가 살고 있었단다. 김 서방네는 선녀 같은 아내와 달덩이 같은 두 아들을 데리고 그야말로 하 루하루를 깨가 쏟아지게 재미나게 살고 있었더란다. 다 산더미 같이 돌멩이를 쌓아 놓았단다. 이튿날 밭에 나와 보고 깜짝 놀 란 김서방은 그 동안 도깨비의 심술을 몇 번 당한 게 생각 나, 또 그놈 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더란다. 그래서 요놈! 누가 이기나 해 보 자. 싶어 큰 소리로 고맙게도 누가 이 귀한 돌멩이를 쌓아 놓았지? 날 골탕 먹일려면 닭똥이나 가득 쌓아 놓을 것이지, 정말 고마운데. 하곤 집 으로 들어가더란다. 이 말을 들은 도깨비는 아차! 싶어 그 다음엔 닭똥 그런데 한 십리 밖 동굴에는 늙고 심술 많은 도깨비가 하나 살고 있 을 한 밭 가득 쌓아 놓았단다. 었단다. 항상 무슨 골탕 먹일 재밌는 일을 찾고 있던 이놈의 도깨비는 그 날도 심통을 못부려 골이 나 있는데, 서쪽에서 재미난 웃음소리가 들려 오더란다. 분통이 터진 도깨비는 그 웃음소리를 따라 부리나케 달려가 본 즉, 웃음소리 들리는 곳이 바로 김 서방네였다는 것을 알았단다. 덕택에 그해 김 서방네는 푸짐한 수확을 거두었고, 이것도 모르는 도 깨비는 해마다 거름 줄 때쯤이면, 김 서방네 밭에 닭똥을 가득 뿌려 두더 란다. 그래서 이 미련스럽고 심술궂은 도깨비 덕분에 그 밭은 보배 밭으 로 불리게 되었고, 김 서방네는 자손 대대로 흉년 한번 안지고 살았단다. 하루는 고된 일을 마치고 예쁜 아내와 달덩이 같은 두 아들을 데리고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186 2장. 재미난 이야기 187

95 꾀 많은 토끼 옛날에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디기 배 고픈 호랑 이 한 마리가 산에서 으스렁으스렁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 때 마침 토끼 한 마리를 만났는 기라. 리를 웅덩이에 푸욱 담그십시오. 그러면 날씨가 추워서 웅덩이 속의 물 고기들이 호랑이 아저씨의 털이 따뜻해서 전부 그 꼬리에 달라붙게 됩니 다. 한참 있다가 꼬리가 무거워졌다 싶을 때 꼬리를 웅덩이 속에서 빼내 시면 됩니다. 하고 말하이끼네 그럴듯 하다 싶은 호랑이는 웅덩이 속에 들어가서 꼬리를 푹 담갔는 기라. 배 고픈 호랑이는 토끼한테 말하기를, 애 토끼야! 아무래도 오늘은 배가 고파 너를 잡아 먹어야겠다. 깜짝 놀란 토끼는 꾀를 짜 낸 끝에, 저 호랑이 아저씨! 저를 잡아 먹어 봤댔자 별로 배가 부르지 않으실 겝 니다. 제가 먹이가 많은 곳으로 호랑이 아저씨를 모셔다 드릴 테니, 대신 저를 살려 주십시오. 했단 말이야.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 호랑이는 그 럼, 어디 나를 안내 하거라. 하고서는 호랑이는 토끼의 뒤를 슬슬 따라가 기 시작했거든. 한참 후에 토끼가 호랑이를 데리고 간 곳은 커다란 웅덩 이었단다. 한참 후에 정말로 호랑이는 꼬리가 무거워지는 듯해서, 애, 토끼야! 내 꼬리에 물고기가 많이 붙었나? 하고 물었거든. 그러니까 토끼가 그 렇지만 조금만 더 계십시오. 지금도 많이 붙긴 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 시마 더 많이 붙을 겁니다. 또 한참 후에는 정말 꼬리가 더 무거워져서 애, 토끼야! 이제는 나가 봐도 되겠느냐? 하고 묻자, 예, 이제는 나와서 잡수십시오. 했는 기라. 꼬리를 빼려고 한 호랑이는 아무리 힘을 써도 웅 덩이에서 잘 빠지지 않았는 기라. 왜냐하면, 그 꼬리가 웅덩이에 꽝꽝 얼 어 붙었는 기라. 이 때 호랑이가 끙끙거릴 때 토끼는 호랑이 아저씨, 안 때는 마침 겨울이어서 세찬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는 앙상하게 옷을 벗고 있었단다. 호랑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웅덩이는 별로 먹을 것 을 가지고 있지 않겠다고 생각되어 토끼가 또 잔꾀를 부렸구나 싶어서, 녕히 계십시오. 하며 여유 만만하게 사라졌단다.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서 애 토끼 이놈! 어디 먹을 것이 있느냐? 자, 어디 너나 잡아먹어야겠다. 이리 오너라. 이 때 토끼는 펄쩍 뛰며 잠깐만 기다리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먹이가 생깁니더. 우선 그 꼬 188 2장. 재미난 이야기 189

96 참고문헌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 사진자료 대구지명유래총람,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의 재발견, 대구 신택리지, 사단법인 거리문화시민연대, 이동민, 우리고을 지킴이 팔공산, 북랜드, 향토사교육연구회, 대구역사기행, 영인,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대구 오천년, 국립박물관, 통천문화사,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 눌인정사 (동구청 홈페이지) 외 조사 중 촬영 이정웅,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 북랜드, 대구읍지, 대구대구향토문화연구소,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팔공산자락, 돌베개, 배형직, 우리 고장 대구, 대일,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八 公 山 續 集, 대구직할시 경북대학교, 우리 고장 大 邱, 대구직할시 교육위원회, 八 公 山, 대구직할시 경북대학교, 대구직할시, 대구의 향기, 경북인쇄소, 대구시, 지명유래조사, 윤용진 외 조사 프로젝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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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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