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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20 th Russia Korea International Conference Challenges and Tasks of the New Administrations of Russia and South Korea DATE October 6 7, 2008 VENUE Video Conference Room 7 th Fl. Graduate School Bldg. Hanyang University, Seoul Coorganized by Asia Pacific Research Center (Hanyang University) The Institute of Far Eastern Studies (Russian Academy of Sciences) Sponsored by Hanyang University & Korea Research Foundation

3 <프로그램>

4 <목 차> 제1회의 : 한러 신정부의 외교ㆍ안보 정책 1. 메드베제프 정부의 동북아 정책 M. L. 티타렌코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2. 이명박 정부의 동북아 정책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3. 6자회담과 동북아에서의 신안보 메커니즘의 모색 A. Z. 제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 4. 쿠릴 4도 분쟁과 독도 분쟁의 비교 분석 홍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제2회의 : 한러 경제협력 현안 및 과제 5. 한러 신정부 에너지 협력의 현안 및 전망 S. S. 수슬리나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 교수) 6. 한러 신정부 철도 협력의 현안 및 전망 R. V. 사벨례프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7. 한러 우주 및 첨단 기술 협력의 현황과 과제 이 국 (인하대학교) 8. 연해주 농업 협력의 현황 및 과제 강명구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5 제3회의 : 한러 사회ㆍ문화 교류 협력 현황 및 증진 방안 5. 한러 상호 국가이미지 현황 및 제고 방안 김영웅(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6. 러시아의 한류 현황 및 문제점 아스몰로프, K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7. 한러 양국의 역사 인식 민경현 (고려대학교 교수) 8. 현대 러시아극단의 내한공연 연구 안숙현 (단국대학교 교수) 러시아 논문 (노어) 1. ПОЛИТИКА РФ В СВА ПОСЛЕ ПРЕЗИДЕНТСКИХ ВЫБОРОВ В РОССИИ М. Л. Титаренко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И ПОИСКИ НОВОГО МЕХАНИЗМА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А. З. Жебин Проблемы и перспективы российско-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энергетическо 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ри новых администрациях С. С. Суслина Состояние и перспективы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бласти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транспорта при новых правительствах РФ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Р. В. Савельев Соврем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и планы содействия взаимному улучшени ю национального имиджа Росси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нея Ким Ен Ун Образ Кореи и корейцев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россиян К. В. Асмолов

6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M. L. 티타렌코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본 발표의 주제는 동북아의 현 정세와 D. A. 메드베데프의 신임 러시아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의 정책이다. 이것은 대단히 폭넓은 주제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향들로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 2000년의 문서와 비교하여 확대되고 보강된 러시아연방의 대외정책의 새로운 구상은 무 엇인가. 최근의 러시아의 대외정치적 행위들을, 특히 남오세티아에 대한 그루지야의 침략과 관련 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비추어 동북아 국가들과 러시아의 관계의 미래는 어떠한가. 새로운 구상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발전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2000년 문서 의 아시아 항목은 발전하는 아태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적인 소속성을 단지 시베리아와 극 동의 경제적 성장의 필요성과 관련 지웠다. 게다가 «아태지역의 주요한 통합 기구들 <아시 아태평양경제협력> 포럼, 안보를 위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지역포럼, 러시아의 주 도적인 역할 하에 창설된 <상하이 5개국 회담>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 지키스탄) 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여가 강조되었다. 1) 또한 강조되는 것은 아태지역의 다방향성의 맥락과 의미와 역할의 증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2008년 새로운 문서에서는 과거의 기본적인 이념들이 유지되고 있지만, 상하이협력기구 (SCO)의 지속적인 강화, 아태지역의 모든 통합체들 사이의 협력 관계망의 구축에서 러시아의 주도권 증진에 특별한 지위가 부여되었다. 2) 새로운 계기들은 a) 아태지역과 러시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협력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b) 안보라는 주제가 발전되며 c) 상하이협력기구에서 러시아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언급은 사라지고, 동시에 이 기구의 역할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드러났다. 늘 겉치레적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닌 유사한 변화들이 아태지역의 이러저러한 국가들을 직접적으로 다룬 다른 항목 1) 2)

7 들에서도 나타났다. 미국과의 관계의 측면에서는 «미국과의 굳건한 경제적 토대 관계의 확립의 필요성과, 실용 주의와 이해 균형의 유지에 기초하여 이견들을 조절하는 문화의 공동 창출의 보장이 강조되었 는데, 그것은 러시아-미국 관계의 커다란 안정성과 예측성을 보장하게 한다». 양국의 상호작용은 이미 상황의 개선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며, 더구나 국제법 규범 에 대한 미국의 불충분한 준수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실용주의, 경제 협력 그리고 이해 균형이라는 주제들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자의적으로 자기 의무를 위반하고, 빈번하게 국제법 규범들을 무시하고 있 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일본과 관련해서 러시아 연방은 과거와 마찬가지로«양국의 국민들을 위해 일본과의 선린과 건설적 동반자 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전해내려 온 문제들은, 공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그것들의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지속될 것인 바, 이러한 행로에서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평화협정과 국경 문제(«북방 영토»를 보라)가 문제 일반으로 변했고, 국가적인 이해들이 민 족의 이해들로 대체되었으며, 그것은 요컨대 오랜 기간의 난점들에 대한 은밀한 검증이다. 중국과 인도와 러시아의 우호적 관계의 발전이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되었다.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대외 정책의 가장 중요한 방향 중의 하나는 주도적인 아시아 국가들, 무엇보다도 중 국과 인도와의 우호적 관계의 발전이다»라는 과거의 문구 대신에 이들 강대국들과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방향»으로서 규정된다고 기록되었다: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대외 정책의 가장 중 요한 방향은 중국과 인도와의 우호적 관계의 발전이다. 러시아는 세계 정치의 중요한 문제들 에 대한 원칙적 입장의 일치에 기초하여 모든 영역에서 러시아-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지역과 세계의 안정성을 구성하는 토대의 하나로서 강화할 것이다. 양측의 관계에서 주요한 과제는 경제적 상호작용의 양과 질을 정치적 관계의 높은 수준에 조응시키는 것이다. 4) 필시,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의 발전이라는 주제는 주요한 과제로서 자리잡았고, 바로 러시아 -중국의 협력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특징지어졌다. 한반도의 두 나라와의 관계와 그 자체로서 한국적 요소는 아시아의 지역적 문제들의 해결과 연관 지어졌고, 그와 함께 다음 사항이 특별히 언급되었다. 러시아에 원칙적으로 중요한 것은 긴장과 갈등의 요인들이 상존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상황의 전반적인 호전이다. 한반도 핵 문제의 정치적 해 결의 모색에 러시아의 활발한 참여, 북한과 남한의 건설적 관계 유지, 평양과 서울의 대화 장려, 동북아에서 안보 강화에 노력이 집중될 것이다. 5) 2008년 문서에서는 다극적 세계질서의 형성과 지지에 대한 분명하게 표명된 러시아의 방침 도 주목을 끈다. 이번에는 서구의 «어린 동반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권 민주주의»의 확신어린 목소리가 3) 4) 5)

8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고, «G8»과 일련의 다른 유력한 국제적, 지역적 기구들 과 국가간 대화와 협력 메커니즘에 참가국이면서, 모든 활동 영역에서 상당한 잠재력과 자원 을 간직하고, 세계의 모든 지역의 주도적 국가들과 통합체들과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발전시키 며, 세계 경제와 정치에 일관되게 결합하고 있는, 러시아는 국제 관계의 새로운 구조의 형성 에 본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6) 세계화 과정에 대한 자기 독점권을 역사적 서구에 상실하리라는 전망에 대한 반응은, 특히 러시아의 «견제»로의 정치적-심리적 지향의 타성 속에서 표현되며, 이를 위한 역사에 대한, 무엇보다도 2차 세계 대전과 전후 시기의 역사에 대한 선택적 입장을 취하려는 시도를 포함 한다. 7) 나아가 일방적 행위의 전략은 국제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긴장과 무기경쟁을 야기하 며, 국가간의 모순들을 심화시키고,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불화를 촉발하며, 타 국가들의 안전 을 위협하고, 국제관계에서 긴장을 고조시킨다.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의 헌장을 벗어나는 무 력을 사용한 강제적 조치의 실행은 심각한 사회-경제적, 민족 간의, 그리고 갈등의 바탕인 다 른 모순들을 제거할 수 없으며, 국제법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직접적인 지정학적 주변지역까지 포함하여 갈등 공간의 확대로 귀결된다. 8) 지역의 열거 순서로부터 분명해지는 것은, 비록 동북아와 동남아 지역이 독립국가연합과 유 럽연합 국가들 다음으로 언급될지라도,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의 외교적 시각에서는 «가장 중 요한 방향»의 위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러시아의 주권 민주주의에 있어서 동양의 역 할과 극동의 우리 이웃국가들과의 관련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당분 간은 러시아 정치의 유라시아적 성격과 그것의 지정학의 유럽-대서양적, 아시아-태평양적 방 향성의 동등한 의미에 대한 V.V. 푸틴의 이전의 선언이 «다방향성»의 개념 속에 녹아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들로써 설명될 수 있다. 첫째, 러시아는, 세계 질서의 변화 속에서 새로 운 경향들을 고려하면서, 동등한 지향성을 지닌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조건들 속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위상 정립은 동반자들의 일정한 «다양화»를 요구하며, 그 범 위 안에서 러시아는 서구적 가치에 대한 지향과 옐친-코즤료프 시대에 자신을 강제했던 서구 여론에의 의존이라는, 이미 표트르 1세 시대부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콤플렉스로부터 벗 어나려고 애쓰는 듯 하다. 셋째, 문제는 또한 «동방으로 파이프를 뻗으려는» 염원과 관련된 경제적 이해들이다. 6) 7) 8)

9 새로운 방침에 대한 검증과 해당 구상에 대한 충실성의 확증은 러시아에서 «5일 전쟁»이라 는 비공식적 명칭을 얻은 최근의 사건이다. 2008년 9월 9일 대통령, D. 메드베데프가 표명 했듯이, «우리를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게 만들려 한다. 우리는 길들여질 수 없고, 아무것도 그 들은 할 수 없을 것이다. 8월8일 이후 세계는 달라졌고(강조는 필자), 우리를 수억의 사람들이 지지하였다. 9) 하루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대통령 N. 사르코지와의 협상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 서 러시아 정부의 수반은 «안보에 대한 과거의 입장들은 허약함을 드러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단극성과 임의의 국가의 지배는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였 다. «심지어 미국과 같은 최강국도 전세계를 위한 경기 규칙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제도들 - 유엔, 지역기구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라고 D. 메드베데프는 강조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제적 안보 시스템의 실효 성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것은 단면성과 단극성에 관련되며, 다름아닌 발생한 위기들을 강제 적 해결책과 하나의 국가에서 제시된 해결책을 통해서 극복하려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10) 이처럼, 일찍이 러시아의 대외 정책 구상이 오히려 다극성을 표명했지만, 실상은 전적으로 유럽을 지향했다면, 오늘날 문제는 다극성의 현실성이다. 11) 구체적으로, «5일 전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성립된 세계질서를 깨뜨리려는 러시아의 시 도가 아니라, 때때로 스스로를 정당화하였던 그것의 측면들을 유지하려는 바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소보와의 상황의 차이는 최소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그루지야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한 바로 그 과정의 흐름 속에서 그루지야로부터 적시에 독립하였다는 점에 있다. 사카쉬 빌리는 예컨대 이승만과 똑같은 명백한 민주주의자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의 경제 정책, 인권에 대한 태도, 반대자들을 다루는 방식, 스스로에 대한 메시아적 자각과 관련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사건에 대한 극동의 실제적으로 모든 국가들의 반응이 상당히 절제되었다 는 점에 주목할 수 있는데, 예컨대 라디오 코리아 인터내셔널(KBS World Radio)는 «5일 전 쟁»에 관해 대한민국 국민은 이 충돌에서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어로 기껏해야 1회 방송을 내보냈다. 우리는 다른 점에도 주목한다. 그것은 카프카즈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기능하는 발화점의 창 출에 대한 나토의 특정집단들의 방침인데, 러시아는 그것의 «냉각화»를 위해 일정한 힘과 자 원을 낭비해야만 한다. 한때 그와 같은 문제 지역이 체첸이었지만, 지금 그곳의 상황은 충분 히 안정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제지하며, 변두리 국가 «핵로켓 무기의 찌꺼 9) 10) 11)

10 기를 지닌 오트볼타(부르키나파소)» 로 만들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러시아가 그러한 중대 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자신의 힘을 소진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의 지도부는 자신이 새로운 규칙들에 따라 충분히 경기를 할 수 있다 는 점을 또한 보여주었다. 그 규칙들은 아무리 개탄스러울지라도 성공을 보장하는데, 왜냐하면 문제는 이중의 표준이 아니라 세계질서의 위기의 배경에 이전에는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으 로 간주되었지만, 폭넓게 적용되게 된 몇몇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제 기구 들이 본질적으로 심판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비양심적 플레이»라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미리 패배자 쥬피터에게 허용된 것을 허용 받지 못한 황소 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과거처럼 똑같이 반응하였고, 자신이 누가 경작하는지, 누구의 땅 인지도 모르는 역축( 役 畜 )이 아니라 태양계의 행성 중의 하나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표명했다. 물론, 그러한 반응에는 러시아의 제국적 야망에 관한 과장되어 퍼져있는 주제가 관련된다. 이러한 어휘결합을 서구의 언론인들은 대단히 좋아한다. 러시아의 대외 정책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중요한 것은 제국의 재건이 아니라 위대한 주권 국가의 대외 정책의 독자적 구상 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러시아는 수세기 동안 다른 국가들과 민족들 못 지않게 세계 문명의 발전에, 또한 새로운 시대에는 지구상에서 안정과 평화의 유지에 공헌했 고 하고 있다. 근거명백하게 가까운 외국은 러시아의 주요한 대외정책의 우선적 영역이다. 이 지역들은 세기이래로 단일한 국가 러시아 제국의 초기부터 그 후 소비에트 연방 에 이르는 의 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곳에는 대략 3천만 명의 러시아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미국을 찾을 수 없다. 단지 미국, 중국 그리고 다른 주권 국가들 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자신의 국경을 따라 자신에게 호의적인 «주위 환경»을 만들고 있으 며, 그것은 한편으로 다극성으로 변하고 있는 세계 질서의 틀 내에서 러시아의 책임 영역을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 독특한 완충 역할을 수행하며, 나아가 러시아가 발전하고 자신의 내 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며 자국민들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국제적 역할을 재건하고, 자신의 책임 영역의 경계를 획정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은 지배 정책이 아니다. 반대로, 서구가 소비에트 연방에 했던 약속들(특히, 나토의 동쪽으로의 비( 非 )확대와 관련된)은 카프카즈 상황의 간접적 원인들 중의 하나가 된 후 심각하게 훼손되 었다. 사카쉬빌리는 그에 대한 서구의 충실성 때문에 만사 형통이고,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이 그의 신념 상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일이라는 데에 확신이 없었다면, 그가 행한 것을 하지 않았 을 것이다. 신임 러시아 대통령의 행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외였다는 점은 다른 일이다. 메드베데프 는 훨씬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바로 그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러시아의 국가적 이해와 국민들의 보호에서 확고함을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했다. 말뿐만 아니라 행위도 역시 확고했다. 더구나 이에 관해서는 독일 수상과의 대화에서 V.V. 푸틴도 서구에 제 때 경고했었다

11 이제 동남아와 아태지역 국가들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미국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지금은 몇몇 «분석가들»이 즐겨 얘기하는 «신냉전»보다 훨씬 흥 미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행정부의 반응의 몇 가지 특성은 다가오는 대선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도전들에 차기 대통령은 대응해 야 한다. 게다가 권력을 공화당이 잡느냐 아니면 민주당이 잡느냐에 상관없이 러시아-미국 관 계에서 «긴장완화»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예견되지 않는 듯 하다. 맥케인은 자신의 반( 反 )공산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반( 反 )러시아적인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 다. 그가 집권할 경우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그의 선거전 연설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물론 7년을 베트남 포로로 지낸 인물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개인적인 계 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척도들이 노련한 정치가들에게서 항상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수용소에서 여러 해를 보낸 수많은 독일과 일본의 전 쟁포로들이 그 후 고국으로 귀환한 후에 러시아에 대한 우호와 협력의 아주 일관된 지지자 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선거 후 정책은 다른 모습을 띨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발걸음을 기대하지는 않 았다. 첫째,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는 «로마 교황보다 위대한 카톨릭 신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둘째, 국내 문제들의 해결을 강조하면서, 오바마는 대외정책 분야를 보수주의자들에게 «맡겨버 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그는 자신에게 보다 중요한 것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으려 할 것이다. 셋째, 그의 주도적인 대외정책 보좌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Z. 브제진스 키와 리차드 홀브르크이다. 청중들에게 R. 홀브르크는, 추측하건대, 유고슬라비아의 갈등 «해 결»에서 그가 행한 역할로 유명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그의 정치적 전기에서 더 오래되고 적지 않게 징후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부통령에 대해서도 두어 마디만 말하자. 새라 페일린은 프로테스탄트 지대인 미국에 대단히 특징적인 인물이다. 알래스카 주지사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실제적인 행정 경력은 대 단치 않다. 대신에 우리 앞에는 확고한 낙태반대론자, 창조설논자 그리고 미국양궁협회 명예 회원이 있다. 맥케인에게는 훌륭한 짝인데, 특히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조 바이덴은 숙련된 정치가의 명성을 지니고 있지만, 대외 정책에서 그는 브제진스키의 제 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그의 그루지야 로비 관련설 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어떠한 미국 행정부도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선입견에 사로잡히고 적대적인 경향을 지닐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타당하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불가피한 성격을 띠는데, 러시아의 로켓들과 러시아의 에너지자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행동은 우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했기에, 워싱턴은, 모스크바의 미국에

12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자신의 대외 정책을 심각하게 재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이것은 직선적인 과정이 아니라 변동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계추 는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지만, 그것의 운동의 진폭은 정해져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러시아가 미국의 주적이고, 세계질서의 변화를 지향하 는 경향들의 주된 원천이며, 전세계적 헤게모니의 지위로부터 미국을 끌어내리려 한다고 받아 들일지라도, 러시아는 이러한 과정을 거의 주도하지 않는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이다. 러-일 관계에 관한한 원칙적인 변화는 아직 목격되지 않는다. 사실, 이번의 경우 움직임의 부재는 일본의 지리한 정치적 위기와 연관된다. 이를테면 1년 반 만에 한번씩 수상이 교체되 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러-중 관계는 과거처럼 고양되며, 양국은 새로운 다극적 세계질서의 확립과 «범인류»의 확 장으로부터 전통적인 민족적 가치들의 보호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면서 효과적 으로 협력하고 있다. 특히 러-중 협력 덕분에 우리는 핵 위기의 발전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 만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물론, 중국은 우리의 좋은 이웃으로, 전략적 동반자로 남아있을 것이며, 그것과의 협력은 상하이협력기구의 노선만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역에서 우리의 정책은 무엇보다도 동 등한 권리의 동반자 관계의 유지와 상호이해의 심화를 또한 목표로 하는 경제적 문화적 관계 의 발전을 지향할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 엘리트의 전통적인 서구 지향은 서구를 좋아하거 나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하지만 서양을 알지만, 중국을 알지 못하는, 그것의 점증하는 힘이 우리 서구주의자들을 놀라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으로부터도 변화를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그것은 동등하게 실용 주의 원칙들을 지향하면서 그것들에 기초할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2자 혹은 3자 협 력과 연관된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러한 협력을 실현하려 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바람이 한국측으로부터 상응하는 실제적인 관 심을 맞이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다른 강력한 역동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보다 미국에 대한 충실성과 헌 신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실용주의와 국가적 이익들을 증진하려는 바람이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명박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양국 대통령들이 짧은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협력 방향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양국의 상호 관계의 역사 속에는 과시적이고 널리 선전된 프로젝트들 이 실현되지 못했던 상황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원칙적으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핵 분야에서 그들의 행위는 유감 스럽지만, 그것의 근저에 놓인 원인들은 또한 분명하고 모두에게 이해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평양의 예측불가능성에 관한 모든 얘기들이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평정과 인내 를 보여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D.A.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첫 몇 달 동안 러시아는 변화하는 세계 구조의 틀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고양시키려는 일련의 의사 표명을 했고, 지역 강대국들의 협력에 기 초한 다극적 세계질서를 지지하는 자신의 의도를 확고히 했을 지라도, 러시아의 동북아 정

13 책에서 급진적인 변화는 예견되지 않는다. 그것과 함께, 서구와의 긴장 관계가 지속될 경우 이러한 방향에 대한, 특히 그것의 경제적 요소에 대한 주의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번역: 오원교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14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고 재 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명박 정부는 한국을 세계 평화와 안정, 공동발전에 기여하는 성숙한 세계국가 (Global Korea)로 발전시킨다는 대외정책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위해 과거 북핵 중심, 한반도 중심에 매몰된 소극적 축소지향적 외교관성에서 벗어나 경제, 문화, 환경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해 전 세계국가들과 교류 협력하는 적극적, 개방적 외교를 적극 추 진해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을 성숙한 세계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3가지 외교정책의 목표와 이를 위한 이행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즉 첫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 을 위 하여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경제공동체 토대 마련, 21세기 한 미 전략동맹 실현, 지역 협력안보체제 구축 등과 같은 이행과제를 제시하였으며; 둘째, 통합의 동아시아시대 개막 을 위하여 동아시아공동체 구현,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 에너지 협력벨트 구축 등과 같은 이행과 제를 제시하였으며; 셋째, 함께하는 글로벌질서에 기여 하기 위해 보다 안전한 세상, 세계화를 통한 공동번영, 친환경적 발전 등과 같은 이행과제를 제시하였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이들 목표 달성을 위한 외교전략 기조로 창조적 실용주의 (Creative Pragmatism)를 제시하면서 중점 외교과제로 글로벌 네트워크 외교 강화, 지속가능 경제성 장 외교 활성화, Soft Power Diplomacy 강화, 국제사회 기여외교 확대 등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였다. 즉 글로벌 네트워크 외교 강화를 위하여 21세기 한 미 전략동맹의 구축, 4강 외교의 전략 적 확대 발전, 범아시아 협력외교 강화, 교류협력관계의 글로벌화 등과 같은 과제를 달성하며; 둘째, 지속가능 경제성장 외교 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통상외교 주력(FTA, 세일즈외교, 투자유 치외교), 미래 경쟁력 분야의 교류협력 활성화, 국제 공동연구 및 개발협력 적극 참여, 에너지 외교 등 경제성장 안전망 확보 등과 같은 과제를 달성하며; 셋째, Soft Power Diplomacy 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문화외교 활성화, 인적교류외교 활성화, 지식외교 확대, 가치외교 강화, 코 리아브랜드 관리 강화 등과 같은 과제를 달성하며; 넷째, 국제사회 기여외교 확대를 위하여 대외개발원조(ODA)의 효율적 확대,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참여 확대, 국제이슈 발굴 및 협력 주도(Global Issue Initiative) 등과 같은 과제를 달성해 간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질적 기반 확충을 위하여 북한이 핵포기 결단을

15 내리면 국제사회와 더불어 북한경제가 10년내 3,000불 수준으로 도약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비핵 개방 3000 구상 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제시하였다. (1) 정책 목표: 동북아 신협력체제의 구축 이명박 정부는 지역협력 강화를 통해 국가적 발전을 도모하는 국제사회의 일반적 추세와 동 북아 지역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상호 이해-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협력체제의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 결과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의 공존공영을 위해서 동북아 신협력체제 의 구축이 꼭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역내 국가들과 양자-다자적 FTA 체결을 추진하고, 환경 -에너지-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미-일 및 한-중- 일 3국간 협력을 균형있게 추진하여 역내 평화-번영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표 를 갖고 있다. (2) 동북아 신협력체제 추진 계획 및 경과 1 한-일 신협력체제 구축 이명박 정부는 한-일간에는 우선 셔틀외교를 복원해 정상간 교류를 포함한 최고위 협력기 반을 강화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며, 북한 핵문제 해결 과 일-북 관계 진전을 위해 필요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의 대한 투자 촉진을 위한 환경을 정비할 계획이며, 한-일 FTA 협상 재개도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이 밖에도 한- 일간 보편타당한 역사인식 공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이 금년들어 대통령 당선인 특사의 방일, 지난 2월 후쿠다 수상의 대 통령 취임식 참석과 한-일 정상회담, 그리고 4월중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과 G8 의장국 일본 의 초청에 따른 도야코 정상회담의 참석이 이루어졌다.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 4강에 대한 순방외교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방일을 통해 양국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신시대 건설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일본의 역사적 사실 왜곡 교과서 검증문제와 독도 표기문제로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과거 정부에서와 같이 일본 요인에 의하여 한-일 신협력체제 구축 정 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2 한-중 신협력체제 구축 12) 본 항목은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백서를 챀고하여 작성하였음

16 이명박 정부는 한-중간 신협력체제 구축을 위해서 우선 한-중 정상간 교류와 고위급 정책 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한-중 FTA 추진을 검토하고 에너지, 환경보호, 첨단기술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중국내 우리 기업 보호 및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통해 2012년 양국간 교역액을 2천억불로 늘리기 위해 호혜적인 투자협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중국과 북한 핵문제 해결 및 북 한의 개혖-개방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구상 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전 당선인 특사를 중국에 보내 양국간 향후 협력확대 의사를 전달하였으 며, 주변 4강에 대한 순방외교의 일환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후 미국, 일본에 이어 금년 5 월말 중국을 공식 방문, 양국간 전략적 협력의 동반자 관계 를 수립하였다. 이어 후진타오 주 석의 방한이 베이징 올림픽 직후인 9월말에 이루어졌다. 3한-러 신협렵체제의 구축 이명박 정부는 적절한 시기에 정상방문을 추진해 에너지 분야와 극동-시베리아 개발협력 등을 중점적으로 협력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2008년으 한-러 우주협력 의 해 로 선포하고, 2010년 한-러 수교 20주년을 계기로 양국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념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인프라 구축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는 한-러간 호혜적인 경협추진을 통해 첨단기술 및 안정적인 에너지-자원 수급확보 등과 같 은 경제적 실익을 얻을 수 있게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의 해결 등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확보하는 외교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남북러 3각 협력사업 및 극동-시베리아 개발협력을 통해 남북 경제교 류 증진 및 우리 기업들의 신흥시장 진출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후인 지난 5월 외교부 차관이 방러 양국간 전략대화를 췬해 나가기로 합 의하였고, 이어 도야코 G8 정상회담에서의 양국 정상회담, 그리고 9월말에 이명박 대통령의 방러가 이루어졌다. 양국은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통하여 양국관계를 상호 신뢰의 포괄적 동반 자 관계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격상시키는 등 제반 분야에서 실질협력을 확대, 강화시키기 로 합의하였다. 4한-미-일 3자 협력 추진 이명박 정부는 한-미-일 3국간 폭 넓고 긴밀한 협력체제를 활성화해 동북아 지역내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평화-번영을 이룩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정부는 이들 3자 협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금년부터 개최되는 각종 다자회의, 예를 들 어 APEC, G8 등을 이용할 계획이다. 이 정부는 과거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자회의와 같은 협력 메커니즘을 활용해 3국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동북아는 물론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정보교류 및 공동의 이해증진에 기여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한-미-일간 3자 협력은 한-일간 역사 교과서 문제 및 독도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17 대립, 그리고 미국의 정권교체기에 기인한 국내외 사정으로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5 한-중-일 3자 협력 추진 이명박 정부는 한-중-일 3국은 동북아 지역의 중심국가로서 동북아 차원은 물론 동아시아, 범세계적 차원에서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평화-번영을 이룩하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3국간 정상회담과 외무장관회담의 순환 개최를 추진 할 계획이다. 또한 3국간 FTA 체결 추진을 위한 3국 공동연구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이명 박 정부는 지리적 인접성, 역사-문화 공유 등을 고려해 환경, 항공-물류, 투자, 환경 개선, 청 소년 교류 등 분야별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아직까지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으나 역사문제, 영토문제 등에 있어서 일본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협력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그 동안 대러 정책에서 첫째, 한반도 안정과 평화 구축, 더 나아가 평화통일을 달성 하기 위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 확보; 둘째,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 첨단 과학기술,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 잠재력 등의 활용을 위한 호혜적인 협력기반 확대; 셋째, 역내문제 및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협력 등을 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추구해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과 상기한 대러 정책 목표들을 고려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러 외교 안보 협력 과제를 제시해 볼 수 있다. (1) 한 러 상호 신뢰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의 격상 이명박 정부는 공고한 한 미 동맹을 토대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과 양자 다자적 협력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 번영은 물론 한국외교의 영향력과 범위를 확대해 나간 다는 과제를 설정하였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도 노무현 정부에서 발전시킨 한 러 포괄적 동반 자 관계를 더욱 발전, 격상시킬 예정이다. 한 러 관계에서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성과는 2004년 9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정상회담 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를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 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면서 과거와는 달리 제반 분야에서 실질협력을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특 히 노무현 정부는 한 러간 실질협력이 잠재력과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감안해 경제 통상, 에너 지 자원, 과학기술 및 산업분야, 우주 정보통신 기술, TSR-TKR 연결, 중소기업, 어업 해운 등 의 분야에서 실질협력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행동계획 (Action Plan)을 2005년 11월 부산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채택하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양국간 경제 통상 협력의 장애물로 작용하였던 경협차관 문제를 연체이자를 탕감하면서 장기상환 방식으로 재조정하는 의정서를

18 2003년 9월 채택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주변 4국에 대한 실용주의적 균형외교 가 필요함 을 인식하였고, 이는 대러 정책을 과거보다 중시하는 정책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노무현 정부 의 대러 외교 중시정책은 러시아의 대북 관계 정상화와 영향력 증대, 풍부한 에너지 지하자원 의 보유, 정국안정과 성장경제의 지속에 따른 강대국으로의 재부상 등과 같은 러시아 요인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접경국가인 러시아와 협력없이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호혜적 인 경제 통상 과학기술 협력이 불가능함을 잘 인식하고 있다. 단지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권에 서 크게 훼손된 한 미 관계를 복원하여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기 반을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동아시아를 넘어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전략동맹 을 구축한다는 대 미정책을 강조함에 따라서 러시아 등 일부 주변국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한 미 동맹, 남북분단 등과 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양자관계를 전략적 동반 자 (strategic partnership) 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음을 감안, 행동계획 과 6자 회담, 정상회 담 고위급 인사교류 등을 상호 접목시키면서 상호 신뢰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 격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긴밀한 협조 한 러 양국은 6자회담의 당사국들로써 재2차 북핵사태를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 조를 지속해 오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의 BDA 북한자금의 대북 인도 중계는 2.13 합의 이행 및 후속조치를 재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러시아는 제1차 북핵사태시 1994년 6자 회담 참여국과 UN, IAEA가 추가로 참여하는 8자 회담 그리고 이에 UN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가 참여 하는 10자 회담 을 각각 제안하면 서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하려 하였으나 미 북 주도로 회담이 진행됨으로써 대북 핵외교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2차 북핵사태 발생후 미국의 배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원을 받아 6자 회 담의 일원으로 참여한 러시아는 일괄타결 방안의 관철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편으 로는 북한의 국제적 고립해소, 미국, 일본의 대북 수교, 미 북간 직접 대화, 대북 에너지 지원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대러 채무 탕감(약 90억불)을 통한 러 북 경제 통상 협력의 확대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러시아는 9.19 공동성명 과 이의 초기 조치들을 담은 2.13 합의 에 적극 찬성하면 서 6개국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및 후속 조치들의 논의를 위한 5개 실무그 룹 의 구성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 러시아는 동북아 평화 안보 체제 창설을 위한 실무그룹의 의장국의 역할을 담당해 오면서 중유지원 등 대북 에너지 지원에 적극 참여 하고 있다. 5월초 현재 북핵문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대상을 둘러싼 이견으로 6자회담이 중단

19 된 상태에서 미 북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이견해소가 이루어져 6자회담이 재개되 고 북한핵 폐기를 위한 3단계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비핵 개방 3000 구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북한핵 폐 기의 진전, 대규모 국제협력자금 조성 및 대북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는 바, 한국은 한편으 로는 러 북간 경협 투자 확대를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협력 자금 조성을 위한 대러 외교를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 제의 구축, 더 나아가 동북아 안보공동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 여가 필요함을 인식, 대러 외교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3) 정상회담의 정례화 등 고위급 인사교류 확대 노무현 정부는 5차례 APEC 정상회담을 포함 7차례의 한 러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그 결과 정무 경제 과학기술 문화 영사 등 제반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확대, 발전시켰다. 또한 양국은 외무장관, 국방장관, 총리, 의회 지도자 등 고위 인사들의 활발한 방문 교류를 통하여 양국관 계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프라드코프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반기문 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2007년에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3월과 8월 러시 아를 방문하였고,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서울 방문이 6월에 이루어지면서 북핵 문제를 6자회담 을 통하여 해결하기 위한 긴밀한 협력을 진행하였다. 정상회담 등 고위급 인사교류는 양자관계의 긴밀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이용할 수 있다. 러 시아는 지정학적으로 통일이전은 물론 통일이후 외교 안보 및 경제 통상 분야에서 긴밀한 협 력이 필요한 국가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한 러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등 고위급 인사교 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러시아 정치-외교가 최고 지도자 또는 고위 정치 엘리트 들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아 발전되고 있는 체제임을 감안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4) 인적인 네트워크의 확장 구축 적극 추진 러시아는 작년 12월과 금년 3월 총선과 대선을 각각 실시하였으며,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과 푸틴이 지명한 메드베데프가 각각 승리하였다. 따라서 지난 8년간 푸틴 정부하에서 구축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분야에서의 지배 엘리트는 메드베데프 정부에서도 큰 변화없이 중책을 수 행하고 있다. 한 러 관계의 발전에서 주요 인사들간 인적인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해왔 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현존하는 한 러간 인적인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총선, 대선후 변화된 러시아 국내환경을 고려하면서 추가적으로 인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물밑 작업을 적극 추 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적인 네트워크도 중앙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지방차원(특히 극 동), 그리고 정치권만이 아닌 경제계, 언론계, 군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차원, 민간차원에서 지한, 친한 인사들을 늘리기 위한

20 방한 초청사업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5) 동북아 안정 및 문제 해결과정에서 건설적 역할 유도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포럼 또는 대화체의 출범과정에서 러시아가 소외 의식을 갖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러시아가 1997년부터 시작된 한반도 4자회담 의 배제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증명해 주듯이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극동지역의 그 것과 밀접히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사자라는 입장이며, 이러한 당사자 인식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재부상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한편으로는 4자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정전협정의 당사자주의를 강조하는 대 러 설득을 진행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의장국으로 있는 6개국 차원의 동북아 평 화 안보 체제와 남북한 또는 4개국 차원의 한반도 평화체제를 상호 보완적으로 연계시키는 방 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미 북/일 북 관계에서 중재자적 역할 인정, 남 북 러 3각 경협의 구체화 등을 통한 러시아의 대북 경협확대 정책 지원 등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보장,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러시아가 통일한국이 분단된 한국보다 정치 경제 안보적 이 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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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A. Z. 제빈 (극동문제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 6년 전 2002년 10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둘러싼 순차적이고 긴박한 상황이 시작되었다. 그 위기가 미국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음이 매우 명백해진 이후로, 미국은 군사적 의미를 지닌 제2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북한에 있다는 증거를 전세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에게도 제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틀이 있는 사전 협정에 대한 최종적 거부를 위해 그 리고 평양에서 공개적인 체제 교체 과정으로의 전환을 위해 자신이 고안한 동기 그 자체를 이 용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의 네오콘들의 선동적인 방법이 시험된 후에 다시 이라크 에서 이용되었다 독립적인 국가들이 고의로 존재하지도 않는 죄가 있다고 비난받았으며, 그들에 대한 보복 을 구실로 미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체제를 전복시켰고, 풍요로운 자연자원 을 지닌 나라들을 강탈했다.. 5년이 지났지만 중단된 회담의 프로세스 문제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한반도의 외교사에서 가장 길게 지속되고 있다. 한국전쟁의 결말을 짓는 휴전협정에 관한 회담이 전부 2년밖에(1951년 여름부터 1953년 7월 27일) 걸리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6자회담에는 현대의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들 - 미국, 러 시아, 중국, 일본 -과 또한 남북한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 핵문제를 담당하는 많은 수의 고 위급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이 5년의 시간을 써야만 했던 것은 6개 국가의 정상들과 대외정책기구관청들, 그리고 일련의 다른 국가들이며, 한반도의 핵문제는 유엔, МАГАТЭ, G8, АТЭС, АРФ, 그리고 여타의 대규모 국제포럼들의 의사일정 안에서 승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노력들과, 북한의 풀루토늄 프로그램이라는 기본 대상으로부터 얻어낸 결론에 따른 일의 원칙과 문제해결에 대한 타협조치로서 동의를 얻어 확정한 일련의 공동 문서에 서명한지 5년이 지난 후에, 회담은 그것들(핵물질)의 장기간 중지의 가장 심각한 위협과 충돌했으며 비핵화 프로세스는 뒤로 밀렸다. 이 논문에서는 일어난 상황의 원인을 연구하며, 6자회담 프로세스의 추진에 따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동북아 평화와 안전시스템 건설의 전망을 검토하는 시도가 이루어질 것 이다. 필자는 그러한 시스템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작은 행보 정치, 그리고 단순한데

23 서 복잡한 행보로의 전환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열쇠가 되는 기본적인 문제의 해결 이 없이는 성공할 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즉, 이웃의 강대국 과 남북한이 함께 작 업하는 것이 동북아의 새로운 안정구조 안에서 미래의 한국통일을 위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 를 것이다. 공식적으로 4강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반도의 핵무기 배제가 회담의 주요 목적이 라는 데에서 일치한다. 그러한 일치, 곁들여 말하자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상당 히 격심한 경쟁이 있었던 1세기 반 만에 처음으로 도달한 그러한 일치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 유 때문에 때때로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정지하면서 애써 회담을 하고 있는가? 년 동안 북한인들에 의해 나타났던 능력으로 보건데, 그 파트너들에게는 어려웠 지만, 전반적으로 타협 전체에서는 타당했던 평양 체제의 완고함에 대한 인용들은 훨씬 덜 믿 을만하다. 문제는 주요한 과제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이외에 미국과 다른 참가국들은 제2의 프 로세스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러한 제2의, 신고되지 않은 목표의 달성은 제1의 공식적으로 신고된 과제 이행-한반도 비핵화의 달성-에 종속되었다. 이 러한 제2의 의사일정에 대해, 최근에 공개적으로 북한 김정일의 병에 대한 해외 신문보도와 관련해, 흡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의 상황의 불안정과 심지어 붕괴에 이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 오간다.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평양의 체제붕괴를 조직 하고,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이야기가 여 기에 포함되고 있다. 형식적으로 통일은 서울의 비호 하에서 수행될 것이 계획되고 있다. 미 국의 어떤 집단은 최근 남한에서 권력을 잡은 통치집단 가운데 일부를 친미적 노선에 입각해, 한반도 전체에 미국의 군사 정치적 통제를 보장할 수 있게 하는 진영을 만들고 있다. 미국측 에서 북한체제 위기의 순간에 공동의 행동플랜을 즉시 만들도록 다시 남한에 호소를 하고 있 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5년 이상에 걸친 회담 프로세스 동안에, 미국쪽은 반복해서 회담의 전술을 바꾸었다. 오직 하나의 전략 - 되도록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려의 청산 및 북한과 다른 국가간 관계 의 정상화에 대한 실제행보의 시기를 늦추기-만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미국은 북한 위 협 의 완전한 소멸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의 결과 이러한 위협의 완전한 청산은 불가피하게도 남한에서 미 군 주둔의 유지동기의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석은 보여준다. 여기에서 미군의 결론은 일본에서도 그러한 상황의 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모든 전 략의 토대에 있는 기본 사상 - 즉, 한일과의 군사동맹과 이들 국가들에서 미군의 전면적 기지 화, 북한견제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정치적 지배의 보장 및 중국견제가 예정된-이 흔들릴 것이

24 다. 둘째로, 결과적으로 규제의 소멸, 즉 북한의 미사일 위협 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대미사일 체제의 강화 -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핵 견제수단을 무력화하기- 라는 진정한 목적을 드러 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긴장을 완전히 없애고 화해에 도달하지 않았다. 워싱톤에는 최소-프로그램이 유리할 것이다. 즉, 그것은 한반도에서 일정한 긴장의 유지, 군주둔의 지속과 대미사일체제의 강화, 또는 낙관적인 경우로서, 평화적 침투의 방법도 포함되는 이러 저런 방식에 의해 기존의 북한체제의 교체를 허용해줄 수 있다. 이 경우에 미국은 한반도에 의해 러시아, 중국, 일본이 국경을 접하는 아시아지역에서 군사 전략적 의미에 따라 독특하게 통제권을 얻을 것이다. 이 지역에 대한 통제의 의미는 미국의 중국포위전략으로 보건대 재평가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핵문제의 해결이 고통이 아니라 결국에는 북한위협 을 해결해야하는 것 임을 시사하는데, 미국의 다른 대표들은 러시아대표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위협 하에 유럽과 동북아에서 대미사일방어체제의 건설계획에 대한 자신의 동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한 모순 은 북한과의 어떠한 정상화관계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위 협이 심화되기를 계획하지 않으면서 미국에게는 원기를 찾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목 적으로 나쁜 친구 가 필요한 것이다. 핵프로그램에 대한 평양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는 국제테러리즘 지원국가의 명단 에서 북한을 삭제하는 계획에 대해 의회에 보고하면서, 신고서에 나타난 검사에 대해 북한의 동의를 얻어내고자 하는 행보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핵증명 에 대한 미국 요구의 정확한 매 개변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 에 대한 분석가들의 글에 미 국의 요구에 대한 완전히 정해진 진술서가 나온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북한체제는 곧 3개 의 메카니즘을 지니는 검사에 들어가야 한다(전략적 무기감축, 중거리미사일 폐기, 일반적 무 장력). 검사관들은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지역에서 검사할 필요가 있는 다른 곳에도 통과할 권 한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그러한 검사는 미국-북한관계의 정상화 전에 착수된다고 예상된다. 전반적인 검사에 북한이 불응하는 경우에, 순차적인 외교상실 의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라크에서의 미증유의 심층적 조사가 일어난 이후에,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적 그리고 다른 중요한 물질에 대해 얻은 자료를 이용해, 이 나라를 공격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그러한 심 사 가능성을 거부했으며, 심사에 관한 과도한 요구가 한국에서 최초의 핵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상기시켰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라크에 대한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가 한 역할에 대해 깊은 환멸을 숨기지 않 았다. 평양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전횡에 아무런 반대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 에 주목하였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이 기구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위해, 결과적으로는 미국 의 공격 정당화 를 위해 이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평양의 대답은 채택된 약속(2005년 9월 19일, 2007년 10월 3일 문서)에 대해 자신의 충실 성을 나타내면서 실제로는 더 엄격하게 자신의 조치를 계산하게 되었다. 2008년 가을, 미국과 북한에 의해 취해진 시도는 다른 회담 프로세스 참가국의 이해관계를 적게 고려한 담판이었

25 다. 모든 프로세스에도 불구하고 회담의 궁극적인 결과는 훨씬 더 어려워진 것으로 예견된다.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소생시키려는 북한의 최근 행보는 아직은 훨씬 과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와 함께 평양은 비핵화의 길로 가려는 아무런 동기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대선주자 들의 TV토론이 보여주듯이, 그들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기왕에 이 른 어떠한 동의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집단적 압박의 제도인 6자구도를 바꾸지 않았음을 지적해야 한다. 이를 허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러시아는 (북한제외) 6자회담 참여국 만남을 5자형태로 바꿔 실행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반대로 미국은 자주 회담에서 사실상 격리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러시아, 한국, 중국 은 예상보다도 더욱 자주 서로 하나의 진영에 있었다. 이러한 계획에서 6자 구도는 많은 점에 서 정당화되었다. 6자구도는 핵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안정문제에서도 남북한의 참여를 보장해주었다. 6자구도는 핵문제의 해결이 북미관계를 규정하는 맥락에서,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이라는 더 큰 공동의 문제의 맥락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해줄 것이다. 동북아에는 알려져 있듯이 다각적인 안정 보장의 제도가 없다. 6자회담의 메커니즘은 안정 과 협력의 구조인 동아시아모델 건설의 미래적 기초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노 정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구조 건설에 대한 이해관계가 가장 다양한 수준에서 더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2005년 11월 17일 노무현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공동성명서, 2007년 10월 4일 노무 현대통령과 김정일주석의 공동성명서에서 그러한 관심이 표명되었다. 2008년 7월 23일 싱가 포르에서 이루어진 한반도핵문제규제에 대한 비공식 외무장관회의는 6자회담의 범위 안에서 작업의 실현에 대한 러시아의 제안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과정은 중 단되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책임은 아니었다. 미국의 6자 회담 참여는 어쩔 수 없는 거의 강제적인 현상이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이후 거 의 2년간 북한과도 양자 회담을 거부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영향이 남아있다. 미국은 한반도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 회담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 환경에 처해있다. 이는 미국의 대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미국의 대외정책 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 러한 군사 작전을 극동에서 재차 시도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국제 사회에서의 이러한 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 북한과 그 이웃 국가에 유리한 대외적 위치 설정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 국가의 대외정책의 역할은 이제 그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 의회는 1994년 미국과 북한의 핵실험 동결 협정에 의해 당연히 지불하기로 약속되었던 경 수로 지원금 지불에 반대하였고, 그 대신에 미국은 동맹국들이 이 지원금을 지불하도록 부분

26 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였다.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유리한 다자간 협의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고, 많은 부분 경수로 지원금 등 북한을 둘러싼 이해 당 사국들이 대신 무거운 짐을 지도록 강요하였고, 이는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의 원 칙은 각 참여국들이 배분된 할당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양자간 회담 테이 블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 비용을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한국에서는 확실하고 견고한 정치적, 경제적 발전이 전개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다양한 옵 션을 준비하고 있다. 유능한 정치 분석가들과 퇴직한 고위직 전문가들이 확신하듯이, 부시 행 정부는 이해 당사자 국가의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명백하게 위험한 대외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국제 단체와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세계 공동체의 조정자 입장에서 현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횡적 행동에 대한 합법화를 강요하거나 슬쩍 이러한 부분을 덮어버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만약에 미국이 이라크와 코소보 등에서 행했던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조 정자적 위치에 서는 것에 실패한다면, 미국은 유엔의 안보리와 같은 국제기구를 무시하는 오 류를 범하고, 일방적 질서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6자 회담이 동북아의 안보 문제에 대한 항구적이고 실제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당사자는 어떤 이유로든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가 시도하고 있는 대외 정책의 핵심 전략의 하나가 미국은 국제기구에서의 통합보다는 지속적인 분화를 시도하며, 모든 세계 에 군사력을 무제한적으로 적용하며, 미국 위주의 일방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다양한 국 제적 관점에 의해 각 당사국에게 부과된 제한된 정책에서 탈피하여 미국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유로운 정책을 펼쳐나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의 세계 지배를 보장하고 합리 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유와 민주의 개념을 국제사회에 퍼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상황도 매우 운명적이었다. 즉 년에 국제원자력기구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 기구는 실제적인 자신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지만, 그 대신에 에너지 경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실제로 유대 관계를 다양화 하였고, 한반도에서의 군 사-정치 분야(대량살상무기의 억제와 안보라는)의 문제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2005년 말에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민의 반대, 이 문제에 관한한 EU로부터, 심지어는 미국에 고분고 분한 일본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한 상태로, IAEA의 활동 중단을 추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은 미국 전문가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으면서, 신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와는 다르게 미국의 입장을 따르게 될 것을 희 망하였다. 2007년에 6자회담 협정이 현실화되지 않고 계속 지체된 것은 결국에는 평양에 자 신의 의지를 강요하고, 상호간에 동의된 사항을 자신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압박을 가하면서, 하나의 <<단일한 전선>>을 창출하기 위해 일부 국가가 그 역할을 하였고, 이는 6 자회담의 희망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충분한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국제적 접근을 전방위적으로 불허하면서, 미국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 대한민국, 북한, 그리 고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경제 협력 분야의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는 것을 방해하였

27 다. 사실상 그러한 계획은 현실적으로 남북한의 경제 유대가 확장되고 일반적인 협력 관계가 성취될 때에만 가능하다. 러시아가 다른 국가들과 극동 지역에서 일정한 협력을 가시화하고자 할 때에 미국은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방해하는 행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분석가들은 한반도 통일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러시아를 포함하였다. 마치 지정학적 파트너로 한반도를 마치 무용지물처럼 간주하는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살짝 감추고 있다. 안보의 관점에서, 그리고 경제적 협력 관계에 있어서 남북한의 화해와 광범위한 유대 관계는 러시아에게는 국가 이익으로 창출된다. 결국, 6자회담의 메커니즘의 형식적인 창출 (혹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은 그러한 회담이 실제적으로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보를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의 안보를 의미하는 세력 간의 상호 관계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군사 프로그램(일본의 자위권 개념의 확대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사방위전략 개념, 그리고 미 국과의 동맹적 차원에서의 한국의 군사력 확장, 그리고 일본, 대한민국, 대만에 최신 미국산 신무기의 장착, 그리고 중국군의 현대화 등)은 민족의 자주적 입장 혹은 양자간 연대의 방식 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미국과 일부 국가들은 6자회담과 같은 다자간 포럼에서도 상기의 군사적 프로그램을 회담 의 의제로 상정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국제사회에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 안보의 복잡한 상황 하에서 어떠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미국 국방성에서 흘러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 약에 평양에서 어떠한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면, 핵에 관련된 미국의 결정 사항은 언제라도 재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미국의 분석가들은 지금, 공개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군의 주둔 문제는 이 지 역에서 자유롭게 창설될 수 있는 다자 회담의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들은 동북아에서 어떤 평화적인 제도나 메커니즘도 미국, 일본, 한국의 군사-정치적 동맹에 위험 요소로 출현해서는 아니 된다고 간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강력한 세력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미국의 지배 그룹과 다수의 정치 분석가들은 미래에 동북아에서의 안보와 평화의 메커니즘을 어떤 경우에도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2개의 군사-정 치적 연합체로 양립하였던 <냉전> 시기부터 존재한 국제사회 시스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지역에서 냉전이 더 심각하게 발전하였다는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 즘으로 미국의 기본적인 국가 목적은 2개로 압축될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 사-정치적 지배의 합법화와 거대 미국이라는 국력 강화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이때까지도 미 국의 정치적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국가들의 정책을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포럼 혹은 회담이 원탁회의 라는 명목으로 준비되고 있는데, 이는 의견 교환을 위한 것이며, 이 지역의 안보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직을 위한 행위는 아니다. 실행수준으 로서는 유사한 조직이 거의 20년간이나 존재해 왔으며,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 며, 6자회담의 참여자인 국가들의 통치적 측면에서도 이익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28 동북아의 연대를 위해서 이미 1991년에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회담이 열렸다. 각 국 대표자들은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을 회담에 참여 시켰다. 또한 대외정책과 안보 전문가들과 연구소의 학자들도 이 회담에 참여하였다. 지난 20년간, 한반도에서의 핵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닥쳤던 난제들을 포함하여 가장 주요하 고 일반적인 현안에 대한 해결 없이 우리는 아주 작은 것, 사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 지 못하고, 그것들에 걸려 넘어져서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동북아에서의 미래의 평화적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에게 해결하도록 등장하고 있 는 주요하고 결정적인 현안은 새로운 요구와 위협으로 특징 지워진 21세기의 현실에 응답하 는 동북아 안전의 새로운 건축이라는 공통적인 비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역안보시스템의 실행 방안에 있어서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관한 비전과 현안이 무엇보 다도 언급될 수 있다. 워싱턴, 동경, 서울의 많은 정치가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일본-대한민국 의 삼각동맹의 틀 속에서 남북한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이 삼각동맹에 호주의 참여도 거론되 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은 모스크바와 북경이 자신들의 정책을 수립하는 동력으로 작용 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연합을 러시아와 중국을 억제하는 메 커니즘으로 간주한다. 이는 소련 해체 이후 미국 시스템에 의해 NATO의 정책이 이루어지는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 동북아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이미 미국에 의해 일본에서도 전략방위체제가 수립되어졌다) 한반도의 분열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악덕에 의해 자행되었고, 이 지역에서 그동안 진 행되었던 대부분의 논의는 바로 이 냉전으로부터 거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 로 모든 서구 분석가들과 정치가들은 이러한 유산의 제거에 나서고 있으며, 북한의 내부정책 과 대외정책의 변화를 미국과 동맹국들이 획득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에서 미국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미국의 국익이 창출될 수 있는 체제의 변화가 일어나기 를 미국은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일본, 대한민국의 군사동맹이 <<냉전>>의 유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인 가? 서유럽에서 냉전의 종식에 대해 언급된 이래로 벌써 2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동맹국들은 이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냉전을 어떤 식으로든지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이 지역의 국가들과 오래전에 이미 군사-정치적 협정의 당사자에서 제외되 어 있었다. 극동에서 러시아 육군과 해군력은 상당할 정도로 약화되었다. 현재, 해묵은 러시 아 혐오 라는 관점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어떠한 러시아의 위협이 강화되고 있 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은 현재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냉전의 두 그룹이 현실적으 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방향성과 그 성격으로 인해 피할 길 없는 현실적 상황에 봉착 하고 있다. 특별히 미국이 동맹국들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평화 적 이미지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공조 체제를 확대하는 그러 한 방식은 근본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행하는 미국의 행 위가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이 러시아 국경 근처의 유럽 국가들을 통해 러시아를 봉쇄하여, 과거의 <<냉전>>과 유사한 전략적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정당성을 상실

29 한 행위일 따름이다. 북경도 동일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5월에 북경을 공식 방문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의 식기를 믿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붕괴될 경우에 한반도의 북쪽에서 군사력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공언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지 난 세기, 80년대 말에 당시 동유럽에 급격한 상황 변화가 발생하였을 때에도 미국은 소연방에 유사한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을 중국은 상기하고, 이를 현실적 상황과 결부하여 대비하고 있 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그 대 신에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이 지역이 어떠한 다른 세력, 즉 우리들에게 비우호적인 강대국이 나 러시아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그러한 세력이 한반도에서 독점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특별히 경계하며 주시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러시아는 한반도로부터 바다나 혹은 대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국가들과 비교하여 지리적으로 결코 뒤지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 으며, 지리적 권리만큼 일정한 접근을 지속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의 중립화, 비종속화, 비블록화를 창출하기 위한 북한의 정책은 러 시아의 안보적 관점에서는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 체제의 유지를 통하여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군 주둔을 지속하고자 하는 미국과 일부 한국의 세력들이 펼치는 정책보다도 러시 아의 관점에서는 더 바람직한 정책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를 미국과 일본 등, 소위 해양 국가들의 전위 지대( 地 帶 )로 변환하고자 하는 그러한 공개적 행동들은 대륙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지난 15년간 이 국가들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년간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왔다. 앞으로도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사회의 환경 조성을 포함하여 한반도 의제는 다양한 연대 및 방해 세력 등이 펼쳐질 것으 로 전망된다. 하나의 한반도에 관한 미래의 동맹 체제를 둘러싼 대외정책의 기원과 전개는 이해당사국들 에게 지속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러시아나 중국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북한 국 민들에게도 동일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국제사회의 보장에 의한 미래의 한반도 통일의 중립화는 이 지 역의 이해 당사자 국가들에게도 가장 합리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방식이 될 것이다. 한반도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은 한반도의 중립적 위치를 보 장하고, 어떠한 군사 조약의 체결을 억제하며, 통일 이후에 한반도에 어떠한 군대 주둔이나 파견(UN 헌장에 따라 UN 안보리의 일치된 결정을 제외하고)에 대해서도 상호 합의 등 의무 적인 사항으로 결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남북한은 중립국가임을 천명하고, 다른 국가들(북한과 중국, 미국과 대한민국 간에 상호 체

30 결된 협정은 무효화 된다)과 군사조약을 임의대로 체결하지 않으며, 영토 안에 어떠한 외국 군대의 주둔도 용인해서는 아니 되며, 외국에는 UN 안보리의 결정에 따른 평화유지군 정도의 군대만 파견하도록 합의되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는 비군사적 형태로 국제사회나 지역 기구 (APEC, ASEM, ASEAN 등)와 같은 형태로 참여해야 하며, 평화적 방식으로 통일에 관련된 국제사회의 인준 서류에 관해서는 법률적 효력을 취득하며, 이는 주변 4강에 의하여 보장되어 져야 한다. 이러한 보장과 이에 관련된 제반 조건은 서울과 평양에 의해 수용되어져야 한다. 이는 남북한 당사자가 한반도에서 군비 감축을 이루고 동시에 한반도에서 외국 군대의 철수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된다. 그 결과로 북한은 경제의 현대화를 위한 상당할 정도의 수단을 얻게 되며, 대한민국은 북한에 이러한 일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수립될 단일 정부의 주권이 제한되는 것에 대하여 동의를 할 것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 사실상 우리 자신들도 제한된 주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실제적으로 현대 세계의 모든 국가는 강대국을 포함하여 수백 개의 국제 조약, 협정과 다양한 조직의 참 여자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는 자국의 사적, 공적인 이익을 위해 주권이 일부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EU 회원국들은 EU 공동체가 완성된 형태로 출범하면서, 유럽 공동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주권이 제한되는 것에 대해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던 것인 가?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위치와 오스트리아 국민의 생활이 1955년에 조약에 의해서 중립국 의 환경 하에서 지금까지 50년간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은 아니었는가? 이제는 자신들의 핵 원료가 쓸모없게 된 상황 에서도, 북한은 우호적인 러시아와 중국보다 도, 미국에 이를 공급하고 있는데, 핵과 관련된 엄청난 분량의 서류들, 즉 과거에는 극비 문서 로 취급된 그 서류들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북한의 주권이 일부 국제사회에 의해 제한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마도 이러한 대답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최 근까지 지속적으로 주한 미군 사령관에 종속되어 강력한 신무기로 지속적인 군사 무장을 이루 어 왔으며, 미국은 지금까지 한반도에 군사적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에 한국에서의 정당한 권 리를 누려오지 않았던 것인가? 역사적 경험은 남북한 주민들에게 하나의 강대국에 반대하고 또 다른 강대국에 우호적 관계 를 유지하는 경우에는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며, 물론 국가 재통합의 날도 도래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와 한반도의 실제적 상황에 입각해 본다면, 한반도의 중립화와 이 지역에 대한 이해 당사국들이 자국의 정책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국민들의 주권이 제한되거나, 혹은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들이 정책을 펼치면서 <<행위의 자유>>가 남북한에 주권침해 로서 출현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부 주권 침해 현상은 개인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국가와 사회의 음모를 누르는 과정을 통해, 남북한 국민들의 실제적인 이익과 결부된 공통적인 것, 이는 한반도의 모든 거주민들을 위한 평등한 안보와 견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국가이익이라는 큰 그림을 현실화 시키는 그러한 결실이나 노력보다도 결코 더 강력한 요소는 아닐 것이다. 한반도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의 모델은 충분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은 너무나 이상적 이고, 또 너무 먼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6자 회담을 둘러싼 이러한 환경은 전체적으

31 로 새롭고, 명확한, 일치된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 4대 강국의 일치된 합의 사항이 결여되어 있어, 동북아에서의 미래의 건축 설계에 있어 단일한 통일 국가의 건설이 매우 중요하고, 결 정적인 국가 요소이지만, 남북한을 둘러싼 현안 해결 없이 우리는 매 행보를 걸어갈 때마다, 더욱 더 사소한 문제로 인해 서로 상처를 내고,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 는 상황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2008년 여름, 메드베데프 대통령에 의해 확정된 러시아 대외 정책의 개념은 러시아 대외전 략에 있어 동북아 정책은 이 지역에서의 견고한 대외 상황의 분위기 조성에 있다. 동북아에서 는 긴장감과 갈등의 원천이 존재하고 있으며, 대량 살상무기의 확대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핵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러시아의 노력과 행동반경은 증대 되어야 하며, 러시아 대외 정책에 있어 북한과 대한민국에 현상 유지 정책을 추진하며, 평양 과 서울 상호간의 대화의 시도, 동북아에서의 안보의 강화 등이 러시아의 동북아에서의 대외 정책의 핵심이다. 미국은 과거와 같이, 먼저 이 지역 일부 국가들과의 군사-정치적 동맹 혹은 공조 체제에 의 존하는 정책 추진에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 유지의 다양한 메커니즘의 적용이 될 수 없다. 외형적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조망으로는 동북아에서의 유대와 안보, 평화의 효과 적인 메커니즘을 창출하는 경로에서 미국의 행위는 근본적인 훼방꾼이 될 것으로 간주된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의 미래의 평화 건설은 정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으 며, 즉 다시 말해서 모든 국가가 가장 강력한 단계로 견고한 사회 경제 발전과 상호 안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국가 대외 정책의 건전한 외부적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매우 필요하다 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6자회담의 경험은 동북아에서의 안보와 유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메커니즘이 상호 국가 간에 수락할 수 있는 화해의 현실화와 그 창출을 보장해 주고, 6자회담이 하나의 국가나 그룹이 다른 참여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그러한 도구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때에 6자회담은 자격 있고 권위가 있는 포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러시아가 바로 그러한 메커니즘을 창출하는 데 참여하고 있는 국가인 것이다. 번역: 기계형(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32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 南 ) 홍 완 석* 13) (한국외대) 최근, 특히 2005년을 기점으로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영토침탈 야욕이 갈수록 노골화되 고 있다. 그런 현상은 2005년 3월 시마네현( 縣 ) 의회가 중앙정부와의 유기적인 정치적 교감 하에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 로 지정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확인된 다. 이밖에 동해의 일본해 단일 표기 시도, 일본 순시선 및 대잠초계기(P3C)의 잦은 독도수역 출몰, 우익단체들의 독도 상륙시도, 2006년 4월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독도 근해에 서 일본 해양 탐사선의 수로 측량, 2008년 7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사회교과서 새 학 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처음으로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 기술, 2005년 이후 4년 연속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령으로 명기한 사실 등도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인들의 민 족주의를 자극해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치밀한 기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독도문제 제 기 방식에서 과거와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한국 내 반일 감정의 격화와 한 일관계의 경색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독도 영유권 주장이 점차 강경해지고 도발적 성 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 제기 시 우회적이고, 신중하며,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접근태도를 보여 왔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되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가급적 갈등의 확산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외교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전략 하에 물리적 방식을 동원해 독도 영유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령 독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러시아령 영토에 대해서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남( 南 )쿠릴 열도 상의 네 개 섬(four southern Kuril Islands), 즉 하보마이( 齒 舞 ), 시코탄( 色 丹 ), 쿠나시리( 國 後 ), 에토로후( 擇 捉 )를 반환받아 야할 북방영토 로 규정하고 줄곧 영유권 문제를 제기해왔다. 1) 러시아가 1945년 태평양전쟁

33 종료 이후부터 자국 영토인 북방영토(남쿠릴 4도)를 불법 점거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토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북방영토 반환 없이는 러시아가 요구하는 평 화조약 체결도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집요하게 공세적 영토반환 요구 운동을 전개하 고 있다. 문제는 독도와 남쿠릴 4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억지 주장이 전후 동아시아 영토질 서를 전면 부정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일본정부가 한국과 러시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 문 제는 표면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양 영토문제의 역사적 연원과 본 질을 주의 깊게 분석해보면 적지 않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억지 요구에 대한 불법성을 지적하고 효율적인 대응논리 개발 및 그 전략의 강구를 위해서는 많은 점에서 닮은꼴인 독도와 남쿠릴 4도 분쟁을 입체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연구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술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이 글의 목적은 러시아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토공세가 현저히 강화되는 시점에서 러 일간 남쿠릴 4도 분쟁과 한 일간 독도 분쟁의 연원과 성격을 역사적 맥 락에서 살펴보는 가운데 양 영토분쟁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통시적, 공시적 접근방법을 통해 비교 분석한 후, 이를 토대로 일본의 영토야욕을 차단하는 대응전략을 제시하는데 있다. 본 연구는 한 일 및 러 일간 영토논쟁에 대한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인 분석을 지양한다. 이를 테면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 일 및 러 일간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일면적 현황 파악을 넘어서 연구 범위의 외연확장 즉, 독도문제와 남쿠릴 4도 문제를 동북아 영토분쟁이라 는 큰 그림 속에서 파악하고, 역내 전략환경과 주요 지정학적 행위자들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관찰함으로써 연구대상에 대한 포괄적, 종합적, 심층적 이해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제Ⅱ장에 서 동북아 영토분쟁의 현황과 특징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음 제Ⅲ장 에서는 남쿠릴 4도와 독도분쟁의 시공간적 응축과정을 압축적으로 정리해볼 것이다. 이어서 제Ⅳ장에서는 양 영토분쟁의 유사성과 대비성을 비교 분석한 후, 결론 제Ⅴ장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영토사수 전략을 제시할 것이다. 본 연구는 한 일간 독도문제와 러 일간 북방영토문제의 원인 및 발단을 처음으로 비교 분석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도분쟁과 남쿠릴 4도 분쟁의 성격을 규명함에 있어 한 일 또는 러 일 양자적 틀에서만 조망하는 미시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동북아라는 좀 더 큰 틀의 지정학적 환 경 속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도와 남쿠릴 4도를 둘러싼 영유권 논쟁은 외견상 한 일 또는 러 일 양국간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동북아 역내 국가 간에 얽히고 설킨 다수의 영토분쟁들 가운데 일부이고,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34 와 전략적 고려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다자적 게임의 속성을 지닌다. 또 주변국들에 대한 일 본의 집요한 영토문제 제기는 요즘 동북아를 배회하고 있는 역사왜곡, 민족주의, 패권경쟁 등 과도 분리해서 설명하기 힘들다. 이렇게 볼 때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 문제는 단순히 한 일 또는 러 일 양자만의 사안이 아닌 동북아 영토분쟁과 전략환경이라는 보다 큰 틀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하고, 일본의 영토 공세에 대한 대처도 그런 맥락 속에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1. 동북아 영토분쟁 현황과 배경 현하 동북아는 전 세계에서 국가 간 크고 작은 영토분쟁이 가장 밀도 높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동북아의 주요 국제관계 행위자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네 나라 모두 가 예외 없이 서로 교차하여 공식 비공식적으로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 일 러 동북아 4국이 상호 중층적으로 연루된 영토문제 현황을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면 다 음과 같다. [표 1] 동북아 영토문제 현황 동북아 영토분쟁은 역내 국가 간 복잡다단한 근현대사가 깊게 얽혀 있다. 청나라가 쇠락할 때 제정러시아가 강압에 의해 연해주를 할양받았던 1860년의 러 중 북경조약, 그리고 일본이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청 일전쟁과 러 일전쟁이 밀접히 관련되 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소 냉전의 고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체결된 1951년 샌프란 시스코 조약의 영토 조항들이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과거 냉전체계는 약소국의 민족, 종교, 인종, 문화, 역사와 무관하게 미 소의 지정학적 고려 와 세계전략에 의해 구조화되었다. 2) 그래서 냉전시기에는 미 소 양극적 대립구조가 개별국가 간 영토 분쟁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냉전구조가 허물어지고 동북아 국가들의 국익추구

35 와 정체성 찾기가 본격화되면서 영유권 분쟁이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미 소 양극구도의 종식이 전후 국제질서를 지배했던 가지런한 이열종대를 해체시키면서 민족단위 국 가이기주의를 촉발시킨 것이다. 국가이기주의의 출현은 진영간의 대립을 개별국가들간의 대립 으로 전이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는데, 이는 동북아에서 동시다발적인 영토분쟁으로 나타났 다.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이것을 제국주의와 냉전대립에 의해 규정된 국민국가 경계에 대 한 불만 을 해소하고 국민국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 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로 분석한다. 3) 이밖에 동북아에서 복잡다기한 영토분쟁이 분출한 배경으로 역내 국가간 상호 역사불신, 어 족 및 지하자원의 확보,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확대, 민족주의 열풍, 패권경쟁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탈냉전시대 동북아 영토분쟁은 역사논쟁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으며 특히 민족주의라 는 자양분 속에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영토문제와 역 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데, 한 중 일 3국간 역사논쟁과 영토분쟁이 폭발력을 갖 는 것은 그 밑바탕에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영토분쟁, 역사논쟁 형식으로 노정된 동북아 민족주의는 그 이면에 패권주의적 야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 경쟁은 이런 민족주의적 대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아시아의 중심으로 재등장한 중국과 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확대하려는 일 본의 전략적 경쟁은 역사논쟁과 영토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찾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 동북아 영토분쟁의 성격과 동학 탈냉전이후 동북아 지역에 노정된 일련의 영토마찰이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까지는 비화되지 않고 있으나, 긴장의 주기적 고저( 高 低 )를 반복하면서 잠복성 분쟁의 뇌관을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북아 영토마찰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다음 네 가지 특징적인 성격이 발견된다. 첫째, 동북아가 러 중, 러 일, 일 중 등 강대국간 영토분쟁이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적 공간이 라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세계적 권력보유자들이 연루된 동북아 영토분쟁은 현재 경제적 번 영과 협력 추세에 의해 은폐되어 있으나, 제어력을 상실한 국가적 야망이나 민족주의적 감정 에 의해 점화될 경우 높은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닐 수 있다. 둘째, 동북아 영토분규의 대상이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주로 하천 또는 해상의 도서 ( 島 嶼 )라는 점이다. 영토분쟁 지역이 직접적인 국경선을 마주하지 않은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이 역내 국가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우발성과 민감성을 일정수준 완충시켜주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 영토분쟁 핵심 연루국가가 암묵리에 세력권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과 일본이 라는 점이다. 이는 중 일의 영토 집착력을 반영하는 한편, 향후 양국의 팽창주의적 권력욕이 발동될 경우 그 첫 총성은 영유권 사수를 명분으로 한 영토분쟁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음을 암 시한다. 넷째, 동북아에서 영토분쟁은 과도한 군비경쟁과 밀접한 친화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특히

36 영유권 분쟁과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력 증강 추세가 현저하다. 강력한 대양해군화를 모색하기 위한 한국의 지속적인 전력증강 사업;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힘의 외부투 사 능력 (power projection capability)과 연장능력 (power extension capability)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중국의 무력 흡수통일 가능성 차단을 위한 대만의 자위력 강화; 경제 대국 정치 난쟁이 4) 라는 조소( 嘲 笑 )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 군사적 대국화를 희구하는 일본의 재무장 등은 모두 동북아 군비경쟁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영토마찰 이 이를 중요하게 추동하고 있다. 위의 분석으로부터 동북아가 민족단위의 국가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역내 국 가들간에 상호 역사적 반목과 안보적 불신이 팽배해 있으며, 그래서 국익과 힘에 기초한 현실 주의적 국제관계 기제가 강하게 지배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또 동북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지리 영토적 이해관계가 역내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중요한 상수( 常 數 )로 작용한다는 점이 특징 적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영토를 그 어떤 가치에 우선하는, 지켜야할 핵심적인 국가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널드 자고리아(Donald S. Zagoria)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동북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리 영토적 이해관계가 이데올로기보다 더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요 소 (permanent and constant element)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5) 그는 과거 냉전시절 동북아지역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을 수반한 영토분쟁, 즉 중 소간, 베트남 중국간, 캄보디아 베트남간의 국경충돌을 그 실증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상호 인접한 공산국가들간의 영토분쟁의 역사는 수세기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깊은 역사적인 연원을 갖는 것으로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 소 국경분쟁의 경우, 양국이 지고한 가치로 간주했던 이데올로기적 유대가 영토적 국익 앞에서는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1969년 우수리강 상 진보도( 珍 寶 島 )에서의 국경 무력충돌은 급기야 철의 단결을 과시했던 동맹적 양국관계를 해체하면서 숙 적관계로까지 돌변시켰고, 그런 앙숙관계를 근 30 년 동안 지속시켰다. 남쿠릴 4도서를 둘러싼 러 일 영토분쟁의 지속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냉 전시절 남쿠릴 4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러 일관계는 국제적 환경변화로부 터 격리되어 마치 화석처럼 오랫동안 정체되었다. 6) 그런 현상은 냉전구조 해체 이후에도 마찬 가지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사라졌고, 양국간 상호 군사적 위협인식 이 현저히 해소되었으며, 더욱이 러시아가 일본과 동일한 서구적 가치체계의 시장민주국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문제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로 인해 양국관계는 여전히 파행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7) 伊 藤 憲 一

37 한 일관계를 한순간에 경색시키는 독도 신경전도 같은 범주에 속하는데, 이런 일련의 사례는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지리 영토적 팩터(factor)가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반영하고, 오늘날까 지도 영토문제가 동북아 국제관계의 동학 ( 動 學 )을 일정하게 규정하고 있다. 1. 남쿠릴 4도 영유권 논쟁의 역사적 연원과 경과 남쿠릴 4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러 일 양국의 제국주의적 세력팽창에 따른 치열한 권력투 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1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9년 동쪽 끝 태평양 연안 오호츠크 에 도달한 제정러시아는 극동 남동부로 팽창의 방향을 틀어 끊임없이 영토확장 을 계속해 나갔다. 19세기 초 러시아 탐험대는 이미 사할린과 쿠릴열도까지 진출해 있었는데, 이들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과의 크고 작은 충돌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명확한 국경 선의 부재에서 비롯된 양 국민간 마찰의 빈발은 자연스럽게 양국 정부를 국경협상 테이블로 인도하였다. 그 결과 1855년 러 일간 국경선 획정에 관한 최초의 조약인 시모다 조약 ( 下 田 條 約 ; Симодский трактат)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러 일은 양국간 국경을 사할린 섬 우 측을 화살형으로 감싸고 있는 쿠릴 열도상의 에토로후 섬과 우루프( 得 撫 ; Urup)섬 사이로 정 함과 동시에, 사할린에 대해서는 잠정적으로 섬 전체를 양 국민이 혼거( 混 居 )하는 공유지 로 확정하였다. 8) 요컨대 우루프 섬 이남의 도서, 즉 현재 러 일간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에토로후, 쿠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4개 도서는 일본령으로 하고, 우루프 섬 이북의 쿠릴열 도는 러시아 영토로, 그리고 사할린은 양국의 공유지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사할린에 대한 불분명한 영유권 공유는 러 일 양 국민간 끊임없는 갈등의 원천이 되 었다. 따라서 양국 정부는 재차 사할린의 국경선 획정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였다. 러시아는 북위 48도선 분할을 고집했고 일본은 50도선을 주장함으로써 양국간 담판은 결렬되었다. 이 러한 상황에서 제정러시아는 사할린 섬 전체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데, 그 수단은 일 본보다 근대화된 군사력의 시위였다. 9) 사할린을 포기하라는 러시아의 군사 외교적 압력에 힘의 열세를 느낀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는 타협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타협의 결과는 1875년 사할린과 쿠릴( 千 島 ) 열도를 맞바꾸기로 하는 이른바 쿠릴 사할린 교환조약 ( 千 島 樺 太 交 換 條 約 ; Петербургский трактат)으로 나타났다. 10) 이 조약의 핵심 골자는 러 일 양국의 공유지였던 사할린 전체를 제 8) Э. Д. Гримм, Сборник договоров и других документов по истории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тношений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 -М.: СПБ С ) 伊 藤 憲 一 12) Сборник пограничных договоров, заключенных Россией с соседним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38 정러시아에 넘겨주고, 그 대신 제정러시아령( 領 )이었던 우루프 섬 이북의 쿠릴열도상의 18개 도서는 일본령으로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 결과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둘러싼 양국간 국경 문제는 재조정되었고 법적으로 일단락되었다. 영토의 규모와 지정학적인 가치 면에서 사할린이 쿠릴열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 고 있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1875년의 사할린 천도 교환조약 은 일본의 입장에서 결코 평화 적이고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 아닌, 러시아의 힘의 우위에 압도된 일종의 불평등 조약이었다. 그렇기에 러 일간 힘의 균형이 역전될 경우 국경선은 언제든지 다시 조정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1905년 노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곧 양국간 국경선의 재 획정을 의미했다. 노일전쟁은 20세기 벽두 양 제국주의 세력간 동북아에서의 패권 장악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러 일 국경선은 힘에 법칙에 따라 변경되었다. 즉, 승전국 일본은 러시아와 1905년 9월 포오츠머드 강화조약 을 체결하고, 그 전리품으로 과거에 주장 했던 북위 50도 이남의 남부 사할린을 러시아로부터 강제 할양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북방영토는 기존의 쿠릴열도 이외에 사할린 남부까지 확대되었다. 1905년 포오츠머드 조약이 결과한 국경선의 재조정은 일본에게는 영광스러운 고토회복 ( 故 土 回 復 )이었고, 러시아에게는 수모적인 약취 ( 略 取 )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은 재차 소 일간 국경문제의 반전을 가져다준 전환점이 었다. 제2차 대전 말기 미국과 영국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군국주의 일본의 끝없는 세력팽 창을 종식시키기 위해 대일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소련의 참전을 간절히 희망했다. 그러나 서 부 유럽전선에서 독일과의 어려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던 스탈린은 동부전선의 확대에 미온 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 영은 소련의 대일 전 참전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의 하 나로 소 일간 존재하는 역사적 앙금, 즉 영토카드를 이용하였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독일이 항복한 후 3개월 이내에 소련이 대일 전에 참전한다면 1905년 포오츠머드 조약의 결과로 약취 당한 북위 50도 이남 의 남 사할린 및 쿠릴열도에 대한 소련의 영토권을 인정하겠다 라고 약속하였고 11), 동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도 이를 재차 확인하였다. 대일 전쟁이 장기화 될 것으로 판단한 미 영이 크 레믈린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마련한 이 제안은 소련에 있어 1905년 일본에 의해 탈취된 영 토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재 귀속시킬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제공해 주 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1941년 체결된 소 일 중립조약 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일 전 참전 을 결정한다. 소련은 1945년 8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와 함께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남부 사할린 및 쿠릴열도 전체를 점령하였고, 태평양전쟁을 공식적으로 결산하는 강화조약을 체결 하기도 전에 곧바로 이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М.: СПВ С ) В. К. Зиланов, Русские курилы - история и современность. -М.: Сампо С

39 <그림 1> 러 일 북방영토 관할의 시대적 변천도 (출처) 블라디미르 예레민, 북방영토 양도할 것인가 말것인가? 소련연구 제 15호(한소문제연구소, 1991), p. 44. 북방영토 분쟁의 발단은 외연적으로 러 일간 역사적 앙금과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따른 쿠 릴열도 점령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분쟁의 성격을 유심히 분석해보면 2차 대전후 새롭게 전개 된 미 소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한 바 크다. 연합국에 의해 1945년 얄타협정 에서 약속되고 포츠담회담 에서 확인된 밀약에 따라 소련은 승전국으로서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를 합법적으로 할양 받을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를 위해 1951년 태평양전쟁의 전후 문 제를 처리하는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회담 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이 회담은 동 서 냉전을 전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산시킨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개최되었다. 2차 대전의 연합국이었던 미 소 가 전후 양극적 냉전의 첨예한 대립으로 적대국으로 돌변하면서 태평양전쟁 종식 후 6년 만 에 열린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내포하고 있었다. 미국이 교전 상대국이 었던 일본을 전후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봉쇄 거점으로 삼고 일본의 후견세력으로 자임함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이미 그 파행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미 소는 샌프란시스코조약 안( 案 )의 북방영토문제 처리와 관련하여 날카로운 견해 차를 드러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이 마련한 북방영토문제 처리 안(2조 c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국은 쿠릴열도 및 일본국이 1905년 포오츠머드 조약의 결과로서 주권을 획득한 사할

40 린 남부 및 이에 근접하는 제도( 諸 島 )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權 原 )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12) 소련 측에서 볼 때 이 조항의 내용은 북방영토의 주권소재가 불명료한 것으로서 매우 불만 족스런 것이었다. 즉, 북방영토에 대한 일본의 주권 포기만 적시되었을 뿐 구체적으로 소련의 주권을 명확히 인정하는 문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레믈린 지도부는 이를 최초의 얄타협정 내용을 변질시킨 서방진영의 음모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소련은 2조 c항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일본국은 남부 사할린과 이에 근접한 제도( 諸 島 ) 및 쿠릴열도에 대한 소련의 완전한 주권 을 인정하고, 이들 지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13) 그러나 미국이 크레믈린의 요구를 묵살하고 2조 c항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려 하자 소련은 자국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고, 일본과의 교전당사국인 중국, 인도 등 일련의 아시아 국가들 이 회의에 초청되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샌프란시스코조약 안( 案 )에 대한 서명을 거부하 였다. 14) 따라서 전후 소련과 일본은 평화조약 미 체결국으로 남게 되는데, 이는 양국간 남쿠 릴 4도 영유권 분쟁의 단초를 제공해 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후 소 일간 북방영토분쟁은 쿠릴열도의 개념과 범위,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 그리 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포함한 과거의 여러 조약의 유효성에 대한 양국간 상이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첫째, 에토로후, 쿠나시리, 시 코탄, 하보마이 등 북방 4도서는 최초의 러 일 국경조약인 1855년 시모다 조약 이래 한번도 타국에 귀속 된 적이 없는 일본 고유의 영토였다. 따라서 북방 4도는 일본 북해도의 일부이지 샌프란시스코 조약 2조 c항에서 포기했던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동 조약 2조 c 항은 일본이 쿠릴열도의 권리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에 인도할 것인가에 관한 귀속선 ( 歸 屬 先 )이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이 북방 4도를 영유( 領 有 )할 이유가 없다. 15) 더욱이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도 않았다. 셋째, 쿠릴열도의 합법적 영토화 논거로 소련 측이 제시하는 얄타협정은 당사국 일본이 참여하지 않은 비밀협정이었기 에 법적으로 무효다 16). 전기( 前 記 )한 일본의 주장에 대해 소련은 다음과 같은 반박논리를 제시하였다. 첫째, 쿠릴열 도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제정러시아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보아 명백한 소련의 영토이다. 둘째, 얄타협정, 포츠담선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 일련의 국제협정에 의해 쿠릴열도는 합법적으로 소련이 취득한 영토가 되었고, 북방 4도서도 쿠릴열도의 일부임으로 소련의 영토 12) 13) 伊 藤 憲 一 14) А. В. Иванов, Внешняя политика и дипломатия Японии. Внешняя политика и ди пломатия стран Ази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го реиона. -М.: Научная книга С ) 16)

41 이다. 따라서 일본과의 미 해결된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북방 4도를 둘러싼 소 일 양측의 주장은 역사적인 대립만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극 과 극으로 치달아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양국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각인된 상호 부 정적인 사고의 타력( 惰 力 ), 변할 줄 모르는 확고부동한 역사적 불신의 항상성( 恒 常 性 )이 영토 문제에 대한 자폐적 국수주의를 강화시켜주었다. 그런 연유로 전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순환 기적 주기성을 띠고 교착과 재개를 반복한 영토반환 교섭과정에서 양국은 각기 자국의 국가이 익과 내쇼널리즘에 근거를 두고 상호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주관적 논리를 갖고 상대방의 양보만을 요구하였다. 여기에 냉전 이라는 국제 정치적 요인이 오버랩(overlap) 되면서 전후 영토협상은 팽팽한 평행선을 그었고, 양국관계는 상호 지리하고 소모적인 갈등관계로 일관하 였다. 그런 현상은 냉전구조 해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1991년 소연방 붕괴 이후 러 일 관계는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갈등적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전략적, 지정학적 이익에 합치하는 창조적 동반자관계 17) 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는 외교적 수사 차원에 불과할 뿐 내포적으로는 북방영토문제라는 밀폐된 폐쇄회로 속에 갇혀 여전히 탈냉전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실제로 냉전종식이후 수십 차례의 러 일 정상간 공식 비공식 회동에도 18)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영토협 상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독도 영유권 논쟁의 역사적 연원과 경과 한 일간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누가 먼저 독도를 지배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영토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는가라는 독도에 대한 역사적 선점 논 쟁이고, 다른 하나는 1951년 태평양전쟁을 결산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토조항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먼저 독도를 역사적으로 선점 취득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각기 자국의 역사적 문헌과 사료 제시를 통해 그 정당성의 논거를 찾는다. 일본 정부는 도쿠가와 막부( 德 川 幕 府 )가 어업가 오오다니( 大 谷 甚 吉 )와 무라가와( 村 川 市 兵 衛 ) 두 가문에게 각각 1618년과 1661년에 내준 '죽도도해면허( 竹 島 渡 海 免 許 )'와 '송도도해면허( 松 島 渡 海 免 許 )'를 역사적으로 독 도가 자국의 고유 영토임을 입증하는 주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도해면허 ( 渡 海 免 許 )를 근거로 일본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 점유했다고 주장한다. 19) 일본 측 견해에 의하면 한국이 6세기의 신라시대부터 울릉도를 지배했으나 1438년부터는 도민을 조선본토로 철수시켰고, 1696년 이후부터 1884년까지 약 300년간 섬을 비우는 공도 17) Московская декларация об установлении созидательного партнерства между Рос 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Японией. Дипломат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No. 12(декабрь), ) Хронология встреч на высшем уровне между премиер-министрами Японии и руководителями России(СССР)

42 ( 空 島 )정책을 펴는 가운데 3년마다 순찰사만을 파견했다는 것이다. 20) 반면 일본은 이미 17세 기부터 울릉도를 경영하면서 독도를 중계지로 활용해왔고 계속 내왕 영유했다는 점을 강조한 다. 또 일본정부가 독도를 국제법상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1905년 2월 22일자 시마 네현의 고시( 告 示 )다. 당시 일본정부는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 입하는 각의결정( 閣 議 決 定 )을 내렸고, 시마네현( 島 根 縣 )은 1905년 2월 22일 현 고시 제40호 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했으며, 1906년 4월 대한제국 정부에 이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21) 일본 정부는 독도 취득의 국제법적 정당성을 1905년 독도 편입 고시와 상대국에 대한 통지에 서 찾는다. 한편 한국 정부도 독도를 국제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이래 자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그 증거로 삼국사기 (1145), 세종실록 지리지 (1454), 신증 동국여지승 람 (1530), 동국문헌비고 (1770), 증보문헌비고 (1908) 등 많은 관찬문헌과 지도를 제 시한다. 22) 이런 일련의 고문헌에 의하면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한 이래 고려 및 조선 시대를 거쳐 한국의 영토에 속해왔고, 시대적 변천에 따라 우산도 또는 삼봉도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한국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통제 관리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독도 선점취득과 국제법적 정당성 주장에 대해 한국정부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일본이 17세기부터 어민들에게 도항 면허를 내주는 등 울릉도와 독도를 자신의 어로수역으로 관리하면서 계속 영유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 시기는 조선정부가 점증하는 왜구의 노 략질 자행으로부터 울릉도 섬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의 섬 거주를 금하고 거주민을 육지 로 나오게 하는 소위 쇄출( 刷 出 )정책 23), 즉 공도( 空 島 )정책을 실시한 기간이기 때문에 일본인 의 독도 및 울릉도 영유는 불법이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일본은 한국이 울릉도, 독도에 대한 공도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사실상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포기했다고 주장하는데, 조선의 공도정책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포기가 아나라 섬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 방법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24) 또 17세기 울릉도와 독도에서 어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1) 22)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

43 도해면허를 발급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정부가 발행한 도해면허란 국내용이 아닌 해외용이기 에, 이는 사실상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독도를 국제법상의 합당한 절차에 따라 일본 영토 로 편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국정부는 그 논리적 허구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25) 첫째, 편입 이라는 것은 스스로 독도가 이전에 일본영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일본의 결정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독도가 무주지( 無 主 地 )였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 만,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라 이미 신라시대 이래 울릉도와 같이 한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 한국의 많은 관찬 문헌에 의해 밝혀져 있으며, 더욱이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 보다 앞서 1900년 10월 칙령 제41호 를 통해 근대국가차원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재확인한바 있다. 26) 셋째, 국제법상 독도 영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토편입에 관한 충분한 절 차를 밟아야 하지만, 일본은 일개 지방자치단체의 고시로 독도 편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으 며, 이해당사국인 한국에게는 그로부터 1년 후인 1906년 3월에서야 공식 문서가 아닌 서한형 식으로 당시 울릉군수에게 통고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선점 의사는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밝혀야 하나 일본정부는 이를 대외적으로 표시한 바가 없다. 넷째, 1905년의 독도 편입조치는 1904년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 체결로 일본이 한국의 실질적인 외교권을 박탈하고 있 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원천 무효다. 한 일간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또 다른 핵심 쟁점은 1951년 '대일강화조약( 對 日 講 和 條 約 )'이 라고도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토조항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다.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되고 1952년 4월 28일 발효한 이 평화조약은 전문( 前 文 )과 본문 7장으 로 구성되며 영토조항은 제2장에 적시되어 있다. 한국 영토 관련 조항인 제2조 (a)항은 이렇 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 원 청구권을 포기한다. 27) 독도에 대한 명료한 귀속선을 명시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a)항이 한 일간 독도 영유권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다. 일본은 이 조항에서 한국에 대하여 권리 권원을 포기하 는 도서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으로 연합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정한 것이고, 따라 서 독도는 여전히 일본영토라고 주장한다. 28) 이와 정반대로 이 조항이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정부의 반박 논거로도 사용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직전인 1952년 1월 18일 한국은 6 25전쟁의 와중에 일본과의 해 양 평화선을 그은 이승만 라인, 즉 인접 해양 주권에 관한 선언 을 발표하고 그 범위 안에

44 독도와 주변 영해를 포함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그러자 일본은 열흘 뒤인 1월 28일 평화선 선포에 항의함과 동시에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외교문서(구술서)를 발송하 면서 한국과 일본 간 독도 영유권 논쟁이 공식 시작된다. 이후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 배해 왔고, 일본의 독도 문제 제기는 주기적으로 한 일 양국관계를 경색시키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영토문제의 본질을 거슬러 추적해볼 때, 작금의 한 일간 독도 영유권 마찰은 러 일간 남쿠릴 4도 분쟁과 마찬가지로 전후 국제적 상황에 따른 미국의 입장 수정에서 비롯된바 크다. 요컨 대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부터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일 평화조약까지 미국의 변화 무쌍하고 모호한 태도가 독도분쟁 분출의 토대를 제공했다. 29) 이점은 미국이 주도한 한국관련 영토조항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평화조약의 1차 초안 (1947년 3월)에서 5차 초안(49년 11월)까지는 독도를 다음과 같이 한국영토로 분명하게 표시 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독도(리앙쿠르 록, 다케시마)를 포함하여 한국 연안 의 모든 섬들에 대한 권리 및 권원을 포기한다. 30) 5차 초안에는 동경 132도 40, 북위 37도 30분을 기점으로 독도가 한국영토에 포함된 쪽에 한 일 경계선을 그은 지도까지 첨부했다. 그러나 1949년 12월 29일 작성된 6차 초안부터 미 국무부는 갑자기 독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켰다. 독도가 일본 영토로 둔갑한 것이다. 일본영토 를 표시한 6차 초안 2장 제3조엔 이렇게 적시되어 있다. 일본 영토는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 등 4개 주요 섬에 쓰시마, 다케시마(리앙쿠르 록-독도를 뜻함), 오키리토, 사도 등을 포괄해 이뤄진다. 그러나 연합국의 대일강화조약은 미국만이 담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연합국의 동의가 필요 한 것이었으며, 연합국 48개국의 동의 서명을 받아야 성립 될 수 있었다. 31) 미국의 수정안을 받아 본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연합국들은 독도의 일본 영토를 규정한 미국의 6차 초 안에 동의하지 않았고, 영국의 경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시키는 독자 초안을 세 차례나 만들어 제시하였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제7차 초안(1950년 8월 9일)부터는 독도 명칭을 아 예 초안에서 삭제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이 작성한 제7차 초안, 제8차 초안(1950년 9월 14일) 및 제9차 초안 (1951년 3월 23일)에서 독도(죽도)는 영토조항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결국 미 국과 영국은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독도를 명시하지 않은 합동 초안(1951년 5월 3일)을 만들 어 합의 서명한다. 이것이 뒷날 한 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1 5차 초안까지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했던 미국이 왜 29)

45 6차 초안부터는 갑자기 일본 영토로 수정하였 는가라는 점이다. 독도 영유권 표기에 대한 미 국의 태도 변화에는 일본의 적극적 대미 로비 와 월리암 시볼드(William J. Sebald)로 대표되 는 친일적 미국 관리의 보고서가 중요하게 영 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도 냉전기 일본을 대소 반공망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초안이 성안된 1947년 3월부터 최종적 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된 1951년 9월 까지의 기간은, 2차대전 당시까지 연합국이었 던 미국과 소련이 전후 적대관계로 돌변하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냉전의 대립이 점차 격화되 어가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동북아에 서는 소련이 지원한 모택동이 중국 본토를 공 산화하는데 성공하였고, 한반도에서는 소련이 미국 텍사스 주립대 도서관 홈페이지에 실린 동북아시아 지역 사진. 독도를 '리앙쿠르 북한을 사주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으며, 베트 록스'라고 표기해 놓았다. 텍사스 주립대는 이 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서도 친 공산계열의 지도의 자료를 미 CIA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민족해방 전쟁이 크게 번지고 있었다. c민중의소리 이렇게 볼 때, 소련 세력권의 급속한 확산에 당황한 미국이 소련 함대의 태평양 진출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독도의 전략적 가치에 새롭게 주목하였고, 바로 이점을 강조하면서 줄기차게 로비를 전개한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여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켰을 것이라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러시아 및 한국 등과 관련 된 영토조항에서 일본의 이익을 적지 않게 배려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1951년 9 월 8일은 미 일방위조약 체결일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많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장에서 남쿠릴 영유권 논쟁과 독도 영유권 논쟁의 발단 및 역사적 전개과정을 압축적으로 살펴보았다. 일본이 제기하고 있는 양 영유권 문제가 서로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영토마찰의 연혁과 성격을 비교해 보면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독도와 남쿠릴 4도를 각기 한국과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 하지만 일본은 두 해상 영토에 대한 한국과 러시아의 실효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양국이 불법 점거한 일본 고유영토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 일본이 치밀한 계획 하에 양 도서에 대한 영유권 문제

46 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분쟁지역화하려 한다는 점, 지역분쟁화 기도를 통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 궁극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려 한다는 점 등에서 유사성을 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공식적으로 한 일 및 러 일간 영토분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대일전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에 초대받지 못했다. 반면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회담에 당당히 참여하였다. 그러나 소 련은 애초 대일전의 참전 조건으로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들이 얄타에서 제시한 합의사항이 샌 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일본과의 영토조항 성안( 成 案 )과정에서 왜곡되어 자국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점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소련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대일강화조 약에 서명을 거부했다. 이처럼 한국과 소련(러시아)이 제외된 상태에서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영토조항은 초기단계의 성안과정과는 다르게 결국 일본에게 유리하게 명시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 일간 및 러 일간 영토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셋째는 일본이 남쿠릴 4도와 독도를 반드시 반환받아야 할 영토로 간주하고 이를 관철시키 기 위해 범국가적 차원의 국민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은 1981년 일본 내각 회의가 러 일간 최초의 국경선 획정 조약인 1855년 시모다( 下 田 )조약 체결일인 2월 7일을 북 방영토의 날 로 지정하였고, 이어서 2005년 시마네현 의회가 정확히 100년 전인 1905년 독 도를 자국 영토로 강제 편입한 2월 22일을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로 제정한 사실에서 잘 확 인된다. 이렇듯 일본은 전 국민적 관심과 이해를 제고시키기 위해 특정일을 고토( 故 土 )회복의 비원 담은 영토일로 지정해 내쇼날리즘을 자극하고 있고, 이런 방식을 동원해 영토반환 요구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네 번째 유사점은 일본정부가 북방영토의 날, 다케시마의 날 을 제정해 거국적 차원의 영 토반환 요구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일본의 영토 공세가 역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 정당성 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주변국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주권 침탈과 함 께 스스로 체결한 각종 조약들을 훼손하거나 무효화시키면서 힘으로 영토 병합을 자행해왔다. 실제로 일본은 러 일전쟁으로 조선이 일본 군대의 점령 하에 있었던 시기에 독도를 편입하였 고, 이후 한국을 강제로 합방하여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하였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에는 한국이 6.25전쟁으로 경황이 없는 틈을 타서 해방으로 회복한 독도 를 다시 자국 영토로 되돌리려고 치열한 대미 로비를 전개하였다. 32) 러시아에 대해서도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북위 50도 이남의 남부 사 할린을 강제 할양받았으며, 또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반혁명세력의 준동과 내전의 소용 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생 소비에트 정권의 취약성을 틈타 러시아 동부 영토까지 유린하 였다. 일본은 1918년 동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군사적 진출을 감행하여 4년여 동안 자바이칼 지역 및 연해주를 점령 통치하였고, 년 사이에는 사할린 섬 전체를 불법으로 강점 한바 있다. 32)

47 다섯째는 양 영토마찰에는 러 일 및 한 일간 역사적 앙금에 따른 강한 민족감정과 내쇼널리 즘이 짙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1905년 노일전쟁의 패배와 1920년대 일본 군 국주의세력의 동시베리아 및 사할린 강점을 잊지 않는다면, 일본은 1895년 러시아의 삼국간 섭, 1945년 소련의 일 소 중립조약 의 일방적 파기와 대일전( 對 日 戰 ) 참전 그리고 전후 약 60만 일본 포로의 시베리아 유배를 기억한다. 33)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한 한국의 강경한 입 장에는 역사적으로 한국 국민들 의식의 심연 속에 깊게 내재된 일본에 대한 민족적 불신의 침 전이 크게 작동한다. 과거 수세기에 걸쳐 한국은 잦은 왜구의 출몰과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일본의 침탈에 시달렸고, 특히 일본 제국주의 36년의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 치욕을 경험했 다. 이렇듯 러 일 및 한 일간 상호 상대방에 대한 역사적 반감과 불신의 축적이 국제법적 법리 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각기 영유권 주장의 애국주의적 행위를 견인하는 강한 추동력으로 작 용하고 있다. 여섯 번째 공통점은 영토문제가 러 일간 및 한 일간 안정적인 우호관계발전의 최대 장애물이 라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은 각기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을 그 어떤 가치 에 우선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활적 국익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영토문제가 양자관계 발 전을 가로막는 급소 로 작용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수호는 한 일관계보다 훨씬 상위개념이자 중요가치" 34) 라고 강하게 천명한 반기문 전 외무부 장관의 발언은 한 일 양국관계에서 영토문 제가 갖는 파괴력을 잘 반영한다. 그런 점은 러 일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늘날 러시아와 일본은 양국 간 적대관계가 공식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모호한 평화공존 상태에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해 국제법상 러 일 관계는 현재까지 전쟁의 지속 상태에 놓여있 다. 이는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교전 당사국인 소련과 일본이 전쟁의 종식을 공식 적으로 결산하는 강화(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음에 원인한다. 여기서 양국간 평화조약 체결 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다름 아닌 남쿠릴 4도 영유권 분쟁이다. 정체상태의 현 러 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타개하는데 있어 영토문제 와 평화조약 체결 은 동 전의 앞뒷면을 형성한다. 러 일 양국은 평화조약 체결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일찍부터 동 의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평화조약 체결에 대한 양국의 접근법이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은 영토문제와 평화조약 체결을 철저히 연계시킨다. 즉, 북방 4도의 일괄 반환 을 평화조약 체결의 양보할 수 없는 선결조건으로 내세운다. 반면, 러시아는 남쿠릴 4도를 모스 코바주( 州 )나 뜨베리주처럼 러시아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 35) 로 간주하는 가운데 일본의 영토 반환 요구를 근거 없는 억지논리라고 주장하고, 영토문제가 양국간 최우선적 현안으로 간주되 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먼저 조건 없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 상호 신뢰와 우호적인 분위 기 속에서 양국의 이익이 존재하는 방향으로 영토 문제의 점진적인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렇듯 영토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러 일 양국관계를 오늘날까지 파행의 연속으로 내몰고 있다. 35) И. Латышев, Кто и как продает Россию. -М.:Палея, 1994, стр

48 마지막 공통점으로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 분쟁이 촉발되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데 에는 배후에서 미국의 힘이 짙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성안과 체결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해볼 때, 미국이 독도분쟁과 북방영토분쟁의 원인제공자라해 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후 양 영토분쟁의 분출과 그 전개과정을 지켜볼 때도, 영토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미국이라는 보이지 않은 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영토분쟁의 지 속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수익을 크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 일간 및 러 일간 영토분쟁은 미국이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동원할 수 있는 중요한 지렛대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미국은 1946년 연합군 사령관 포고령으로 독도를 일본이 한국으로 반 환할 것을 명시했으나, 1951년 미 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를 반환목록에서 누락시 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36) 이후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하면서 노정된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미국은 독도를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 고 않고 묵인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일본을 의식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한 일 양국이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외교적으로는 불개입과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 리고 미국은 한 미 일 남방삼각협력체제의 유기적 작동을 위해서는 한일관계의 악화가 전혀 도 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하에 가급적 양국에서 영토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자제시켜왔다. 미국의 독도문제에 대한 불개입과 중립 표명은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 어느 한편을 지지할 수 없는 외교적 딜레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독도문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 로나 민족적으로 화해가 쉽지 않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충성심을 이끌어 내기 위 한, 동시에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의도대로 순치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적 고려도 강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의 강경한 독도 영유권 공세 추세와 이와 밀접한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독도 지명 표기를 둘러싼 미국정부의 해 프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독도문제를 강경하게 제기하는 데에는 미국의 암 묵적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2008년 7월 25일 미연방 지명위원회(Board on Geographic Names)는 독도의 귀속 국가에 대해 종래 괄호를 사용하여 한국 및 공해로 표기해 오던 것을 주권 미지정 (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으로 기록함으로써 이른바 분쟁지역으로 명기했다. 이에 한국이 강력 이의를 제기하자 미국정부는 일주일 만에 부시대통 령의 지시로 다시 원상복구 시켰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에 이은 미국의 지명표기 변경 및 정정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워싱턴이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지만, 미국 지명위 원회의 표기 변경이 우발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한국에 쌓인 불편한 심기,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위계적인 한 미동맹구조에서 벗어나 독자성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다분히 의도성 경고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대중 정부이후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동안 한국에서 주한 미군 철수 압력이 높아지고 미국 광우병 소 수입에 대한 촛불시위가 확산되는 등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 36)

49 어 왔던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국가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거부했고, 미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러시아, 중국 등 북방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과거와 달리 남북한 관계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으며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서서히 독자 적인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모습 - 동북아 균형자론 - 을 보였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명기 시정 사건은 일련의 탈미적 움직임을 보인 한국에 대한 워싱턴 의 우회적 불만 표출로 보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과거처럼 미국에 순응하지 않으면 언 제든지 독도문제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시그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보수인사와 우익들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고성 시그널에 편승한 측면이 있다. 독도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런 접근방식은 일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에게 독도문제 는 일본의 대외적 운신을 제약하는 가운데 주일 미군의 철수 압력을 약화시키는 훌륭한 외교 적 자원이 된다. 친미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중립에서 한국의 손을 공식적으로 들어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에서도 미국의 그런 정책은 동일하게 관찰된다. 미 국은 일본이 워싱턴의 세력권에서 이탈하여 전략적 경쟁자인 러시아와 중국에 다가갈 경우, 언제든지 역풍을 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곤 했다. 이점은 일본과 러시아가 전후 영토협상 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분석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37) 냉전시절 미국은 일본을 미 일 동맹체제 내에 묶어두기 위해 소 일 영토협상의 진전을 배후 에서 교묘히 저지하였던, 러시아 학자 발레리 키스타노프(Valery Kistanov)의 표현을 빌리면 막후 연출자 (a director behind the curtain)였다. 38)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세계정치 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미 소 평화공존 이라는 국제적 화해조류에 밴드웨곤닝 (bandwegoning)하여 소련과의 영토문제를 타결하고자 하였다. 1955년 일본은 실리적 차원에 서 소련이 제의한 2도(하보마이, 시코탄) 반환을 우선적으로 실현하고, 차후 나머지 2도(쿠나 시리, 에토로후)를 반환 받는다는 전략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39)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2도 반환이라는 영토 지렛대 를 통해 일본 을 미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크레믈린의 의도를 간파한 미국은 소련의 영토카드에 역( 逆 ) 영토카드 로 맞섰다.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하여 자국이 관할하고 있었던 오키나와( 沖 繩 ) 섬의 반환 문제와 연계하여 일본의 대소 접근을 제한하였다. 40) 즉, 미국은 일 본이 시코탄 및 하보마이 2도 반환으로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에토로후와 쿠나 시리를 포기한다는 것과 연관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미국으로서도 오키나와 В. О. Кистанов, Япония в АТР. -М.: Восто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5, С

50 의 병합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라며 강경한 반대론을 폈다. 41) 그 결과 대소 영토교섭 개시 당 시 외교적 자주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개입으로 2도 반환의 실리론 에서 4도 일괄 반환이라는 강경론 으로 방향 선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영토협상 타결과 평화조약 체결은 더 이상 진전을 볼 수 없었다. 미국은 러 일 갈등관계가 지속되면 될수록 그것에 비례해 동북아에서 지정학적 운신의 폭을 확대할 수 있고, 항구적인 전략적 이익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전략적 사고 하에 러 일 접근을 예의주시하면서 일본이 자국의 품안에서 이탈하는 것을 치밀하게 경계하였고, 견고한 미 일 관계에 러시아가 틈입할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차단해 왔다. 1960년 미 일 신 안보조 약 체결, 1970년대 후반 미 중 일 반소 전략적 삼각체제 의 형성, 1996년 4월 미 일 신안보 공동선언 - 21세기를 향한 동맹, 1997년 9월의 미 일 방위협력지침 (미 일 신 가이드라인), 미국주도 MD체제에 일본의 편입 등은 - 논리의 비약측면이 없지 않으나 - 러시아의 반작용 을 계산하여 영토반환에 대한 경직성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일본을 미국의 세력권 내에 묶어두려는 정치( 精 緻 )한 노력을 반영한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러 일 영토분쟁을 당사자문제로 간주하고 그 조속한 해결을 지지하고 있으나, 내포적으로는 미 일 안보체제의 강화를 통해 러시아를 자극하면서 영토협상을 방해하 고 있다. 42) 러 일이 영토문제를 극복하고 양국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내지는 밀월관계로 전환 될 경우, 이는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하는 지정학적 세력균형 파괴를 의미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좌시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그래서 미국 은 쿠릴열도가 러시아 영토인 줄 알면서도 오키나와 미군주둔을 위해 일본의 배후에서 러시아 와의 영토분쟁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고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 예브게니 바자노프 (Evgeny Vazhanov) 교수는 강조한다. 43)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독도와 남쿠릴 4도 영유권 문제는 한 일 또는 러 일 양자만의 사안이 아니고, 좁게는 한 미 일 또는 미 일 러 삼국간의 세력방정식 속에서 넓게는 동북아 전략환경이 라는 보다 큰 틀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는 영토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 않고 주기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장기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독도 영유권 논쟁은 한 일간의 문제이지만 러시아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어찌보면 러시 아는 한 일간 독도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또 다른 원인제공자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한국과 일본 사이 동해 한가운데에 위치한 독도가 20세기 초에는 러시아와 일본 제국주의 세력 간의 권력투쟁에서, 20세기 중반에는 미소 냉전의 대립 과정에서 각기 일본과 미 일동맹체제에 의 42) С. Л. ТихвинскийТихвински, Россия - Япония: обречены на добрососедство. -М.: Памятни ки исторической мысли, 1996, C

51 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를 향한 러시아의 세력팽창으로 말미암아 20세기 초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 침탈을 기도했고 44), 냉전 시기에는 일본을 동북아에서 소련 사회주의 세력권 확산 저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코자 했던 미국이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독도의 소유권을 일본에게 넘기려 했다는 점에서 러시아도 독도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냉전시기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배경 에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한 축인 미일동맹체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도 군사동맹체제를 구축하는 가운데 독도 문제에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전략적으 로 통제하고 양국으로부터 충성심 경쟁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최근 일본이 의기양양하게 독 도 영유권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배경은 미국의 암묵적 묵인에서 기인하바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남하 봉쇄 이외에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할 자기 의 대리인으로 일본을 상정하고, 일본의 재무장과 함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등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본이 과거와 달리 독도 영유권 공세를 강화하고 이에 대해 미 국이 침묵하고 있는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개입된 최근의 독도문제 는 거대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부활 그리고 한 미 일 3국 관계의 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 이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분석이 성립된다. 45)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방안의 하나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 을 한때 한국의 대 외전략으로 채택했지만, 국내외의 커다란 반발로 인해 곧 용도 폐기되었다. 그렇다면 미 일 밀 월관계에 따라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공세가 현저히 강화되는 시점에서 한국은 과연 어 떤 대응전략을 강구해야할 것인가가 시급한 외교적 과제로 제기된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논쟁은 외연적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논쟁의 발단과 지속에 대한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해보면 독도 문제는 단지 한 일 양자만의 사안이 아니라, 미국 심지어 러시아 및 중국의 이해도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는 점을 알 수 있다. 독도문제의 복잡성과 그 해결 전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한일 양국에서 의 극단적 민족주의 이외에 독도문제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 중 러가 포함된 다자게임이라는 데 있다. 세계사를 관통해 볼 때 지구상에 고정된 영토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공간적 규모를 구성하는 영토는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해당 국가의 흥망성쇠의 부산물이었 45)

52 다. 요컨대 세계사는 전쟁을 통한 지속적인 국경 변동의 역사였고, 전쟁을 결산하는 강화조약 ( 講 和 條 約 )은 승자의 논리를 패자에게 강요하여 승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외교적 안 전장치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영토는 할양 (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승자 의 전리품이 되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영토 지리적 범위는 힘의 법칙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시대적 흐름에 따라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였다. 그렇기에 국가간 영토분쟁은 법리적인 측면으 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직 힘의 법칙만이 정의였고, 강자만이 자국에 유리 한 영토보전의 원칙 (principle of territorial integrity)을 내세울 수 있었다. 이런 영토보전의 속성을 명료하게 인식한다면, 한국은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사수할 수 있 는 국력의 신장과 국가안보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강화해 나가야한다. 독도 사수를 위한 다양 한 세부적인 대응전략은 이것이 전제되었을 때 그 효과를 발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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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S. S. 수슬리나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 교수) 오늘날 세계 경제는 난국의 시기에 직면해 있고, 세계 금융 체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국제기구의 역할이 재평가되는 실정에 있다. 세계 금융체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사건의 배경에는 에너지 기획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 발의의 부적당한 협의가 몇 가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신호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고 있다. 즉 미래에 있을 협력과 확실한 발 전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 분야와 이에 관련된 투자 우선순위를 지금 재고해야 만 한다 러시아 경제 러시아 연방의 경제개발부 장관인 나비울리나(Э.С. Набиуллина)가 2008년 9월 19일, 제 7차 국제 투자 포럼 소치-2008 총회 연설에서 언급했듯이, 금년 8월의 러시아 국내총생산(В ВП)의 성장은 7.0%이며, 1-8월에는 -7.7% 이다. 이 같은 지표는 지난해 국민총생산의 성장 속도와 일치한다. 2006년 같은 해와 비교하여 2007년 8월 국내총생산(ВВП)의 성장 역시 7.0%를 이루었고, 8개월 후 성장은 7.8%보다 조금 높았다. 러시아 사회에서는 현재 혁신적 형태의 경제 구축이 중요한 목적이 될 15년 후의 국가 발 전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투자정책을 확정하였다. 해당 개발 기관들이 이미 창 설되었으며, 자금 역시 확보되어 있다. 전례 없는 거대 자금이 기반시설에 투자될 전망이다. 예산 자금의 교통 기반시설에서만 6년 동안 200백만 달러 이상이 투자될 것이다. 기반 시설에 대한 국가와 사업부문 공동투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형태 중의 하나는 민간-공 공의 동반자관계 (파트너쉽)이다. 전체적으로 투자정책에서 민간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장기투자를 위한 우수 기관들의 조건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모든 방책들이 동원되었다. 방책들 이 동원되었다. 경제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 작업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 외에, 노동 생산 성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체계적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국가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한 방안이 마무리되고 있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현재 벌어

55 지고 있는 사태를 고려한 것으로서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투자성장의 완만한 속 도에도 불구하고, 이 속도는 양호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높은 상태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2008년의 결과에 따르면 전제적으로 투자가 20%이상 증가되었던 작년에 비해 다소 낮으나 13-15% 수준의 투자성장이 기대된다. 2009년 경제 성장의 유지에 따른 과제를 언급하면서, 나비울리나는 투자금융의 메카니즘이 공급되어야 함을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은행대출을 보장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국내총생산 의 성장 속도는 석유가에 의존된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경제개발부는 아직 예측을 바꾸지 않 고 있는데, 이 전망에 의하면 소비자 가격의 상승은 11.8%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9월 15 일 러시아 연방에서 인플레이션의 상태는 10%에 달한다 한국 경제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사항은 현재 미국의 모기지 및 금융위기가 국가의 펀드 시장을 거의 무너뜨렸으며, 국가 환율을 심각하게 동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 발전의 결과에도 현실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석유가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의 증가가 지속되었으며, 8월에만도 지수가 6%를 넘었다. 한국의 세계 경제 진입은 한편으로 한국의 발전을 가속화하면서 동시에 한국으로 하여금 세 계 무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예민하게 영향받도록 하고 있다. 금융 요인을 제외하고, 현저한 영향은 한국 경제에서 원자재와 연료의 세계 가격의 상승과 수출입 균형 적자의 두드러진 증 가를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4.2%에서 4.1%까지 경제성장의 예측을 낮 추는 동시에 정부는 한국에서 경제성장의 본질적 성질에 확고한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의 증권 거래소 순위를 <선도개발도상국> 상태에서 <선진국>까지 올렸던 파이넨셜 타임즈 신 용등급 (Financial Times Invest Rating) 역시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양국의 에너지 협력 방향은 외교관계 확립 이후 러시아와 한국의 모든 무역-경제 협력이 발달한 기간만큼 실질적으로 산정된다. 양국 간 상호 관계 하에서 오늘 러시아와 한국 의 권 위 있는 과학 센터가 도모하는 학술 기념 행사는 우리의 모든 경제 협력처럼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 분야는 아직 그 한계적 의미에 도달해 있지 않을뿐더러 두 국가 전문가들은 현재 상호적 견해에 비추어 중요한 발전적 향상을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발전 현황은 잠재적 전망에서 비추어 볼 때, 다소 완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적 어도 한국의 입장은 수익성 프로젝트에의 참여와 협정 체결의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적극적 이지 않음을 인정하였다. 협정단계에서 이런 방향에 대해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러시 아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올해 초 새정부의 수립과 관련하여 어떤 전망들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가?

56 주지하다시피, 양국 대통령은 경제상으로 훌륭한 경험을 하였다. 러시아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제프는 시장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실용주의를 따른다. 한국의 행정부는 시베리아와 러 시아 극동에서의 천연자원 공동 연구를 염두에 두면서, 자국 에너지 전략화 성공에 대해 기대 하는 러시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세계에서 중요한 정치적 비중을 가지면서 러시아는 북한 분제 해결에 기여하였 는데, 여기에는 3자간 경제 협력의 발전 틀에서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의 중재도 포함되어 있 다. 이번엔 거꾸로 러시아가 북동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되는 통합 과정들을 시베리 아와 극동의 에너지 잠재력의 이용과 포함에 따르는 자신의 경제 전략을 망치고 있다. 선행하는 전 기간을 통해 양국에서는 이같은 협력의 법적, 조직적 수행을 위한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지적해야 겠다. 일례로, 2000년 10월에 <연료-에너지 복합 부분 협력에 대한 러시 아 연방과 한국 정부사이의 협약>이 서명되었다. 2005년 7월 13일 한국(제주도)에서는 양국이 서명한 의정서의 결과로, 에너지와 천연자원 부분의 협력에 따른 러시아-한국 위원회의 6차 회의가 개최된 바 있다. 2007년 10말-11월초 서울에서는 러시아의 외무부와 경제개발부의 사절단이 한국의 외교 통상부와 경제적 파트너쉽에 대한 협약의 준비 문제로 러시아-한국의 공동 연구자 그룹(СИГ) 의 설립에 따른 협상이 진행되었다. 정부간 위원회의 8차 회의 과정에서 연료-에너지 협력의 확고함과 장기적 추진에 따른 추가 내용을 확정하였다. 2008년 9월 22-23일 서울에서 경제와 과학-기술의 협력에 대한 한국-러시아 합동 위원회 의 9차 회의가 열렸다. 이 포럼에는 경제, 에너지, 건설을 담당할 40명의 양국 관리가 참가하 였다. 회의 결과문에 따르면 기본적인 문제들로 에너지 자원의 공동 개발, 기술발전에 대한 협력, 또한 어업, 건설과 수송부분에서 관계와 같은 문제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경제와 과학- 기술의 협력에 대한 한국-러시아 공동 위원회의 정기 회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을 부분적으로 준비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양자 관계 및 <신뢰와 다각도에 걸친 파트너쉽>의 진보적인 발전은 2005년 11 월 19일에 부산에서 서명된 무역-경제적 협력 부분에서의 공동 활동 계획의 입장에 분명하게 나타나있다. 이런 원칙의 충실성은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 기구(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두 나라 정상의 최장기 교류의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러시아 연방정부의 위원장인 줍코프 (В.А.Зубков)의 2008년 2월 서울 방문 기간 동안 러시아 입장 에 대한 유사한 태도를 보여준다. 국가들은 양국 간 관계부처와 관청의 지도자, 정부 수준의 대표자, 정부 인사들의 만남을 포함하면서 공식적 수준에서 정기적 교류를 유지한다. 대외 경제 부문에서 러시아와 한국의 상호관계는 상호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협력의 확대를 위해 양 측의 객관적 이해관계에서 결정된다. 앞으로 한국은 무엇보다 현대기술과 테크놀로지 부문에서, 시베리아 극동 지역에서는 러시아 경제에 대규모 투자의 원천으로 러시아 시장의 공급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번에 막대한 양의 원료, 연료, 반가공품을 러시아로부터 받을 필요가 있다

57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의 성격과 동력에 영향을 주는 한국 경제 정책의 핵심 분야를 평가하 면서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분류해보고자 한다. -국가 전략적 축적량의 증대를 위해 외국으로부터의 석유와 가스의 수매 축적 -자유무역협약의 체결에 따른 한국 정부의 광범위한 정책 -입법 기반의 개선 방법으로, 특히 외국인 투자를 위한 추가 감면 혜택의 도입을 예상하면서, 한국에서 외국인 직접투자(прямые иностранные инвестиции - ПИИ)의 동기유발 경제 분야에서 한국 정부가 내린 대부분의 결정은 다음을 목표로 한다: -국가의 에너지 안전성 최대보장 -한국 상품의 판매시장 조사 -자유무역에 대한 새로운 협약의 서명으로 인한 한국 수출의 다변화 -아웃소싱을 적용한 외국에서 투자 계획의 실현 호혜 요인들 -정치권에서 양자 간 관계의 심각한 문제들의 부재 -러시아 천연자원의 향후 개발과 러시아 영토에서 공동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의 이해관계 -한국의 탄화수소 수입 원천을 다각화시키려는 노력 -남북 간 경제협력의 발전을 위한 러시아와 공조의 필요성 위축 요인들 -한반도에서 핵문제의 미완결성 -중국 경제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 증가 -한국시장에서 러시아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존재 -세계 경제의 경제성장 둔화 -높은 세계 원자제 가격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러시아 한국 간 무역-경제 협력은 현재의 실태 보다도 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58 러시아 연방 관세처 (Федеральной таможенной службы России) 전기 에너지 부분에서 러시아 입장과 한국과의 전기 상호협력의 발전에 대한 기본적인 선 결 과제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 천연가스의 한국으로의 공급을 위한 장기 프로그램의 실현에 따르는 대책 수립과 개발. 그 첫 번째로 2006년 10월 17일부터 시행된 가스 공업에서 협력에 관한 러-한 정부 간 조약의 수행 방법 -20년 동안 1년에 1,500,000,000 씩 러시아의 액화 천연가스(LNG)를 한국으로 공급 -러시아에서 한국으로의 가스 공급에 따른 전권 부여 기관인 개방형 주식회사 <가스프롬>과 한국가스공사<KOGAS>의 협력 활성화 -가스관 매립의 대안에 대한 심의와제조 (CNG, 압출 천연가스)와 LNG (액화 천 연 가스) 공급의 수단, 북한 영토를 지나는 육로 가스관의 건설 등등). -러시아의 동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 석유가스 자원의 발전 부분에 대한 협력의 확대. -러시아, 북한, 한국 사이의 국가 간 송전선 건설 5.1. 연료-에너지 복합 부분에 협력 가스부분에서 협력 석유부분에서 협력 하바로스크 정유공장Хабаровском НПЗ 개방형 주식회사 <로스네프티> 석유회사 와 한국 석유공사 간의 양해각서 Меморандума о взаимопонимании (МОВ) между ОАО «НК «Роснефть»(НЕФТЯНАЯ КОМПАНИЯ "Р ОСНЕФТЬ) и Корейской Национальной Нефтяной Корпорацией(KNOC) 전기에너지 부분에서 협력 РАО «ЕЭС России»: Российское открытое акционерное общество энергетики и эл ектрификации "ЕЭС России"에너지와 전력의 러시아 개방형 주식회사 EES 러시아

59 ( программе «NEAREST» (проект соединения национальных электрических сетей стран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한국 전력 공사와 <인터 라오 에스> 폐쇄형 주식회사간의 상호 관계 한국화력 발전소 / 한국 전력공사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UNESCAP) 한국전력 기술인 협회 년 5월 28일부터 국가 간 협약을 기반으로 한 핵 부분에서 협력 원자력 발전소 국제 원자력 기구 동력 기계제조 부분에서 협력 석탄 공업 부분에서의 협력 6. 에너지 부분에서 협력적 대화 한국지질자원 연구원 KIGAM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 광산 연구소 SPMI 7. 국제 협약의 발전

60 <부록> 년 러시아 연방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기본 지표 1. 매크로경제 지표 월-3월 2007 년 월-3 년 월 (가격) 2009 (예상) 국내총생산(ВВП) 106,4 107,4 107,4 108,1 108,0 107,6 106,6 지난해 12월 즈음, 기간의 마지막 소비자 가격 지수 110,9 109,0 104,0 (1월-4월) 111,9 106,3 (1월-4월) , ,5 공업생산 지수 1) 105,1 106,3 107,2 106,3 106,2 105,7 105,5 가공화된 생산물 107,6 108,3 112,8 109,5 108,7 107,3 106,9 농업 생산물의 생산지수 102,3 103,6 103,4 103,3 104,5 103,8 103,9 기본 자본에 투자 <건설> 사업의 종류에 따른 노동량 주택 건설 인구의 실질 소유의 화폐 소득 실질 임금 소매상품의 거래량 인구의 유료 서비스양 상품의 수출 상품의 수입 우랄산맥 석유의 평균가격, 배럴당 미국 달러 110,9 116,7 122,8 121,1 120,2 117,8 115,0 113,2 118,1 117,2 118,2 128,9 121,5 116,0 106,1 116,1 151,1 119,4 107,8 116,4 115,0 112,4 113,5 110,0 110,7 110,0 110,6 109,6 112,6 113,3 118,2 116,2 114,0 2) 113,9 111,5 112,8 114,1 114,6 115,9 116,7 114,4 111,6 106,3 107,6 108,7 107,1 106,8 107,0 106,7 133,1 124,5 106,5 117,1 152,8 129,1 95,5 128,8 131,0 138,6 136,0 139,8 133,5 119,4 50,6 61,1 54,2 69,3 96,6 92,0 78,0-59 -

61 2. 금융 시장 2008년 주일간의 월 까지의 변화 변화 16일 (2,77) Индекс РТС 2478,87 + 8,53 + 8,22 Объем вкладов населения, 백만 루블 Объем капитала На , 5 На , 까지의 변동 +1,70% кредит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백만 2804, , 4 +4,99% Ставка межбан-ковско го кредитования (하루) 3,93 % +0,31 п.п. +1,16 п.п. 루블 Объем кредитования кредитными организациями реального сектора, 백만 루블 10228, , 9 +17,15% 번역: 김상현(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62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R. V. 사벨리예프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공식 통계에 따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정부는 운송 인프라 발전을 위해 13조 루블을 지출 할 예정이다. 이러한 액수는 년 러시아 운송 체계 발전을 기술한 연방 특별 프로 그램에 명시되어 있다. 이 액수는 연방 특별 프로그램이 존재한 이래 가장 대규모로 간주된다. 2008년 소치에서 열린 국제 운송 포럼 연설에서 현재 행정부의 수반인 푸틴은, 현대 러시 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운송 인프라의 발전은 정부의 당면한 의무라고 말했다. 이에 입각하 여 연방 예산중에서 4조 6510억 루블, 혹은 전체 재정의 3.4%가 할당될 것이다. 그러나 자금 의 60% 이상이 예산 외의 출처나 지역 예산을 도입하도록 계획되었다. 거의 1조 루블이 화물 수송에 투자 세율로 충당될 것이다. 3천 킬로미터의 철도, 몇몇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속도로 나 100군데 이상의 이착륙 지대가 이 돈으로 재건되거나 건축되어야 한다. 또 다른 전망이 있다. 러시아에서 운송 인프라에 지출하는 양은 2020년까지 1조 달러를 초 과할 것이다. 러시아에서 인프라 건설의 원동력은 정부 예산과 이베스트펀드이다. 이제 이베스 트펀드를 이용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운송과 관련된 11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실현되어야 한 다. 이러한 투자 계획 비용의 반 이상이 사업으로 충당될 것이다. 벌써 철도 건설이 시작되었 다. 이권에 대한 일반적인 법률을 추천한다. 이권에 대한 연방법률 수정안이 채택되었다. 사업 은 지출을 감소시키고 정부 인프라의 통제로부터 자신의 수입을 추가적으로 보호한다. 교통부 의 예상에 따르면, 수정안의 수용과 함께 기업가들은 운송 이권, 특히 철도 운송 이권에 보다 적극적일 수 있다 년까지 철도 프로젝트의 전체 액수는 1조 7천억 루블 이상이 된다. 이때 인베스 펀드와 다양한 수준의 세금 지출은 3천 7백 억 루블이다. 나머지는 화물 운송에 대한 세율을 이용하여 ОАО 러시아 철도 가 융자할 것이다. 그 밖에 РЖД는 세율에서 새로운 투자를 할당 할 것이다. 사전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은 앞으로 5년 동안 거의 1조 2천억 루블의 추가 소득을 기업에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자금의 기본적인 부분이 철도 인프라 발전에 투자될 것이다. 통제와 조절의 자동화 시스템과 정보 기술의 철도망에 대한 대중적인 정착은, 케이블-광학 라인의 사용에 근거한 자

63 료 전달의 숫자 체계 정착의 양적 확장을 초래했다. 이를 위해 발전 계획에 상응하는 새로운 기술을 사들이게 될 것이다. 러시아 산업부와 통상부는 벌써 이 문제에 동의했다. 운송 ФЦП는 운송 대상의 설계와 건설의 현대적 기술 정착과 해당 기술의 구매를 고려했 다. 만약 올해 말까지 러시아 제조업자가 제한된 생산시설이 실현될 것이라고 확인하지 않으 면, 필요한 기술은 해외에서 구매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에 위치한 러시아와 해외의 나루터지기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지상의 ГЛОНАСС/GPS 시스템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만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통일 한국의 철도가 연결된다고 가정한다면, 앞서 열거한 러시 아 운송 정책의 특성은 체결된 조약의 경계 내에서 운송 경로를 적용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한반도부터 시작하여 러시아와 동유럽 서유럽에 걸쳐 뻗어가면서, 이러한 계획과 해당 정책의 실현으로 인해 가능해진 모든 우선권을 확보할 것이다. 러시아 관청은, СВА의 테두리 내에서, 특히 러시아-대한민국-조선인민공화국의 삼각형 내 에서 효과적인 경제 관계 확대를 위한 좋은 환경을 창출한다는 확고한 사실들을 공고히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실례로 알 수 있듯이, 장기적 성격을 갖고 있고, 다른 것은 중간 기간의 전 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철도 운송을 포함하여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자원을 이용하는 경제 협력은 세계에서 통용되 는 기준에 상응하고, СВА에서 전체 지역 상황의 안정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상황을 개정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사실들은 공동 프로젝트의 준비와 활동에 긍정적으로 작 용한다. - 한국과 러시아에 공통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 인접한 경제 지대들과 대륙붕, 탄화수소 원료 탐험 참가자들과 풍부한 생물자원의 경계선이다. 양면적이고 다면적인 협력과 특별한 프 로그램을 위한 양심적인 포획, 채굴, 이용 가능성. - 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한반도와의 지리적 인접성은, 관심있는 국가의 이해를 고려하 여 그들 사이에 일치된 협정에 있어 단일한 운송 체계의 완성과 현대화를 위한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 이미 가동 중인 혹은 계획 중인 철도 지선과 수송 도로를 따라 코크스용 석탄, 탄화수소, 석유 제품 등 용량이 큰 원자재들의 보다 먼 거리 운송에 있어 경제적 수송 가능성. - 경제적 통상적 성격의 기존의 외적 관계. 여기에는 지역의 경계 너머 러시아의 시베리아 와 극동 지역의 내부 시장의 크기가 포함된다. 열거된 사실들은 때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제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 것 은 때로 과거의 것일 수도 있다. 미래에도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특히 각각의 측면이 주로 주창자, 해외의 카운터 파트너의 물질적 재정적 보장을 지향할 때 그러하다. 과거에는 정치적 상황, 자신의 관심뿐 아니라 파트너의 위치, 즉 파트너가 주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64 획득하려는 분명한 갈망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배경으로 다른 실제적인 프로그램의 목적과 전망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 프로그램은 그것이 실현될 경우 동북아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이다. 오늘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정부 혹은 부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모든 양면적인 혹은 삼면적인 한국-러시아 프로그램 중에서 현재 참석자들에게 서로 가장 이 익이 되고, 제 3 국가의 가능한 외국 투자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언급한 АТР(한반도)에서부 터 러시아를 지나 동유럽과 서유럽 국가들로 향하는 트랜스 컨트리의 도로를 창조하는 것에 대해 이미 언급한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전문가적 높은 수준에서 전체적인 협약이 있다. 기본적인 가설이 수없이 많 이 이야기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우리가 이전에 학문적으로 만난 것도 있다. 마치 그것은, TV 화면에서 그러하듯이 갑자기 관객 앞에 나타나거나, 전문가의 주의나 시야, 사회에서 사 라지는 것 같다. 일본의 오키나와 섬에서 열린 G8정상 회담에서 만난 메드베제프와 이명박 대통령은 러시아 의 제안에 따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러시아 행정부의 수반 푸틴은 이 계획에 대해 끊임없 이 주의를 기울였다. 대통령 시절, 그는 알려진 대로 남북한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있어 이 테 마를 언급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남북한 지도자들로부터 한국의 선도적인 경제 단체들과 개인 사업 단체들은 프로젝트에 능동적인 참여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를 취하겠 다는 확약을 받았다. 한국 대통령 이명박은 청와대로 돌아와서 다른 경제 프로그램으로 소위 에너지 외교 정책 을 발표했다. 남한의 연료 회사가 해외 산지에서 독립적인 채굴을 목적으로 외국의 석유와 가 스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데, 여기에는 특히 러시아의 시베리아, 극동, 사할 린과 캄차트카 근처의 대륙붕이 속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지역에서 협동 작업을 시작한다 는 적절한 양측의 의도에 대한 동의 가 있다. 한국 정부 대표들이 공표한 바에 따르면, 그들 나라는 위에서 열거한 지역들의 발전 계획은 물론 다른 러시아 지역과의 사업 관계 확장에도 현저한 관심을 보인다. 에너지 뿐 아니라 광물 자원의 채굴, 송유관 건설에 있어서 한국 기업 들의 참가 방향이 논의되었다. 남한의 사업 단체들은 2012년 АТЭС 의 실행 초기에 블라디보 스토크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 확보에 협력할 것을 제의했다. 만일 이 광범위한 계획들이 기술 적으로 완성된 철도 네트워크를 포함하여 양측에서 운송 인프라의 발전에 의해 보강된다면, 실패 없이 진행되어 실제 기간 내에 실현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것을 덧붙여서 지적해야겠다.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 본 역시 국제 연합 운송 시스템의 창립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의 영 토를 연결하는 육로-수로 정기 운송로를 개통하는데 동의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금년 10월 실험대에서 개통 예정인 새로운 라인의 전체 길이는 거의 800해리이다. 그것은 훈천시(중국 동북의 지린 지방)에서 시작되어 육로를 따라 러시아 항구 자루비노(프리모리에), 그 다음에는 한국의 속초항-일본의 니기타시까지 이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의 관심 있는 기업들 은 훈천에서 진행되는 제 4회 상업-투자 시장에서 대한민국에서 회사 설립을 규정하는 협정

65 에 서명하는데, 이는 이 라인을 따른 운송 개발에 대답할 것이다. 기업의 규정 자본은 3백만 달러이다. 그 안에서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은 각각 16, 17, 51, 16 퍼센트를 차지한다. 중국의 북동쪽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화물 배달을 위한 새로운 운송로를 따라가면 이전보 다 소요 기간이 훨씬 적고 화물 수송비의 원가도 훨씬 절감된다. 이것은 우리가 시베리아 횡 단 열차와 한국의 철도 연결을 이야기할 때 매순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본질적인 상황이다. 새로운 라인은 러시아에서 한국, 일본,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으로 유용광물, 목재, 석유, 곡물 등을 운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인접 영역에 더 많은 상호 투자를 유인할 수 있을 것이 다. 중국의 교통부와 에너지부는 동아시아의 통합 철도 기능화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들 의 주장으로 2007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지선을 따라 120만 톤의 석유 가 수송되었다( 러시아 철도 주식회사 지부인 동부 시베리아 철도국의 통계). 놀라운 양의 액체 탄화수소 - 921만 1천 톤 - 가 바이칼호 동쪽에서 국경을 지나 만주로 보내졌다. 이렇게 커다란 양과 다른 화물들이 중국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이동한다. 이제 그것은 실제로 자신의 가능성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금년에 북한으로 탄화수소 원료를 1.5-2배 확대하여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해당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규모 역과 접선하는 역에서 역의 길이를 연장했으며, 차고와 통신 신호 설비를 개선하고, 보다 강력한 기관차를 도입했다. 모든 것이 러시아 석유 회사들 사이의 계 약에 달려 있고, 그 중국 파트너들은 도로를 통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중 국은 문산(한국)에서 시작하여 사리본에 있는 개성 산업 지대와 풍동, 평양, 신의주, 중국의 단동역과 선양을 지나 운행하는 합동 철도의 서쪽 방향으로 발전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 는 더 나아가 중국의 중앙 지방 혹은 북동 지방에서 만주와 바이칼 동부(러시아)의 역으로 향 할 수 있다. 이러한 계획은 남한과 북한 철도청, 그리고 당연히 당사자인 중국 철도청의 적극 적인 협력으로써, 두만강(북한)과 하산(러시아)의 국경 역을 통과하여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구를 상정하는 한국-러시아 프로젝트의 동쪽 방위를 추월하고 있다. 중국에 있어서도 육로 운송 인프라의 발전은 유용하다. 그 중에는 두만강 유역의 철도도 있 는데, 그것은 중국의 북동 지방(지린, 헤이룽, 랴오닝, 하베이)을 위해 러시아의 극동과 북쪽을 지나 북한은 АТР로 향하는 짧은 육로와 해로를 개방한다. 최근 2년 동안 정치적 상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운송회사는 СВА에 따른 다른 이웃 나라들의 적극성을 고려하여,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사용과 러시아 영토를 지나는 운송 화물의 통과 가능성에 대해 ОАО РЖД와 집약적인 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심은 러 시아의 유럽 지역에 확산되었다. 여러 주의 행정기관과 РЖД는 서부와 북서부 철도 지선의 현대화에 참여에 대해 일본 기업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방향은 러시아의 극동 지역과 시베리아를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 국가들로 이끌었다. 작년 10월 도쿄에서 개최된 러시아-일본 철도 협력 컨퍼런스에서 양국의 파트너 관계의 발 전에 대한 합동 문서가 채택되었다. 올해 초 동일한 테마에 대해 행정부와 사업 단체의 대표 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 번째 컨퍼런스가 행해졌다. 참석자들은 두 개의 합동 노동 단체 설립

66 에 협의하였다. 그 하나는 새로운 차량과 콘테이너의 사용, 철도 인프라의 현대화 등과 관련 된 문제들을 정부적 차원에서 담당하기로 하였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작동할 것 으로, 니쥬니 노브고로트-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속 철도 지선 건설 프로젝트에 따라 양측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 연구 에 종사하는 것이다. 모든 시베리아 철도 발전 계획에 참여 를 계획하는 일본 기업들과의 교섭이 진행될 것이다. 올해 7월 모스크바와 니쥬니 노브고로트에서는 러시아와 일본 대표들이 회동하여 철도 교 통 분야의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이에 대해 특별 성명을 발표한 일본 외무성의 공식 보도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의 접촉은 이후에도 지속될 대화를 위한 기반을 창출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외무부에 따르면, 모스크바와 니쥬니 노브고로트의 회동에는 일본의 경제부, 통상부, 산 업부, 개인 기업 대표들이 참가했다. 주목할 것은, 그들은 러시아 철도 발전 프로젝트 참여에 특정한 관심을 나타냈고, 러시아 공화국 영토에서 운송의 발전과 시베리아 철도와 다른 지선 들의 사용에 동의했다. 니쥬니 노브고로트 회동에서 러시아 철도 회사의 구 부사장은 언급하 기를, 일본에서 유럽으로 화물 운송을 위한 시베리아 철도 사용 프로젝트는 양국 전문가들에 의해 건설적으로 합의되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유럽으로 가는 화물은 바다를 통 해 약 40일이 걸리는데, 러시아측은 철도를 통하면 18일 만에 가능할 뿐 아니라 보다 싸고 유리한 것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ОАО가 시베리아 철도 발전 프로젝트에 참 여를 계획하는 일본 기업들과 교섭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양국은 첫 번째 조약이 체결되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프로젝트의 실현과 관련된 상황에 자신의 견해를 갖고 있다. 원칙적인 문제와 상황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다. 이에 덧붙여 다른 문제들을 상기시 킬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자신의 전사( 前 史 )를 갖고 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의 변화와 관련된 다른 것들은 때로 몇몇 기존의 계획을 바꾸게 한다. 한편, 현재 전망이 있 고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모스크바의 북한 대사관에서 열린 조선민주인민공화국 창립 60주년 기념(2008년 10월 9 일) 리셉션에서 러시아 외무부 차관 야코벤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지선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실현에 있어 최근에 달성한 성과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러시아 부 처는, 하산-라진 지역에 연결하는 적극적인 작업의 시작으로 올해 10월 3일로 계획된 예식과 라진 항에 주어진 프로젝트와 관계된 한국-러시아 합작기업 가동에 대한 의미있는 이동에 대 한 소식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평가 이전에 벌써 ОАО РЖД의 대표 야쿠닌은, 러시아와 북한의 철도청은 실제로 하산-라진 지역에 40킬로미터의 국제 운송을 회복하는 프로젝트 실현에 착수했다고 언급했다. 야쿠닌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철도 장관 김용삼과 프로토콜에 서명했는데, 이에 따르 면, 북한의 라진항에서 러시아의 국경 역 하산에 이르는 지역은 기본적으로 재건설 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건설은 시베리아 철도 지선의 재건 프로젝트 전체에 있어 중요한 부분

67 으로 간주된다. 또한 OAO와 라진 항은 화물 터미널 건설에 합의하였고, 야코벤코가 언급한 합작기업 РЖД 통상의 집 설립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SP는 매년 40만 TEU의 잠재적 수 송 가능성이 있는 이 항구의 화물 터미널 건설에 종사할 것이다. 두만강-라진의 철도 재건과 터미널 건설에 대한 투자는 1억 4000만 유로가 된다.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것은 합작 기업 라손콘트랜스 인데, 이때 할당된 자본은 러시아 70%, 북한 30%이다. SP는 북한의 경제 특구 라손 에 등록되어 있다. 도로 재건과 터미널 건설에 지출되는 총액은 2억 1천만 달러로 예상 된다. ОАО РЖД의 전문가들은, АТР 와 유럽 국가들 사이의 통과 운송의 발전은 이 권위 있는 주식회사 활동의 우선적인 방향의 하나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들의 예상에 따르면, 시베리아 철도와 한국 지선을 연결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일된 철도를 만드는데 결정 적인 요소가 된다. 앞서 언급한 구체적인 경우에서처럼 세 나라는 자연스러운 통과 가능성과 지리적 상황을 이용하여 적지 않은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에 대해 야쿠닌을 수반으로 하는 대표단은 한국의 공식 부서와 교섭했 다. 한국이 통일된 한국 철도 재건 프로그램의 재무에 참여하는 문제를 고찰하는 것에 동의를 표했다는 것이 ОАО РЖД 대표단이 한국에서 이룬 작업의 주요 결과였다. 그 밖에도 서울은 삼자가(ОАО РЖД, 남한과 북한의 철도) 모두 프로젝트에 동의할 경우, 한국 영토를 지나는 화물 통과를 보장할 준비가 되었다고 공표했다. 우리는, 한국 철도 지선의 재건과 시베리아 철도 지선의 적재 프로젝트가 철도뿐 아니라 관련된 세 나라의 경제에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 야쿠닌은 강조했다. 러시아 기업 은 그 개념을 형성하고 재무 형식을 규정할 것을 위임 받았는데, 우리는 교섭과 구체적인 협 력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이를 착수했다. ОАО РЖД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러시아 회사 트랜스텔레콤 은 한국 지선의 재건축 지역 에 방송 케이블-광학 라인의 합동 개발과 건설에 있어 협력하는 것에 대해 북한과 동의했다. 현재 이 라인은 조직되고 있고,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첫 번째 직통 지상 라인이 되었고, 북 한 영토의 철도 시스템을 따라 작동하는 이후의 시작이 되었다. 북한 영토의 철도 시스템을 따라 작동하는 이후의 시작과 그 라인의 기능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데, 무엇보다도, 시작을 고려할 때, 물론, 하산-라진 지역의 재건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을 때이다. 러시아 철도의 OAO 통계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만 매년 10만개 이상의 콘테이너가 러시아 를 통과한다고 한다. 비교해보자. 2006년 8만 개의 화물이 처음에는 중국 철도 다음에는 시베 리아 철도를 지나 유럽을 향해 수송되었다. 그 중에서 한국의 콘테이너가 4만 7천 3백개인데, 통과 속도는 시베리아 열차보다 27% 적다. 오늘날 한국 간의 무역량, 특히 남한의 무역량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려진대로, 바로 얼마 전에 481개 이상의 남한 기업이 참여했고, 양쪽의 교류가 10억 8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2007년 개성 산업 지대에서 체결된 계약이 나타났다. 한국 기업 에이스침대 는 사리본에 가구 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북한 회사와의 계약에 서명했다. 그 생산품은 북한에 판매하고 해외에 수출하기로 결정되었는데, 그 중에는 러시아 극동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는 양측의

68 적극적인 사업 확대의 다른 예들과 장소가 있다. 멀지 않아 남한과 북한의 실질적인 관계가 재개된다면, 그 다음에는 남한과 북한의 운송량이 확대되고 증가할 것은 명백한 일이다. 한편, 장차 남한과 북한의 교역 템포의 순차적인 확대, 이들 국가와 러시아의 경제적 관계, 그리고 그들 간에 현재와 같은 해양 수송은 보장할 수 없다. 북한에 존재하는 엄격하게 제한 적인 레짐의 조건하에서 남한의 자동차 운송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북한으로 물품 수송을 하 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 연방 세관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러시아-남한 교역액은 1498만 5천 9백 달러에 이른다. 교역과 투자 협력 기관의 한국 대표 홍기화는 2008년 양측 교역은 200억에 달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2008년 3월 18일 인터뷰). 교역의 확대는 남한 재무부와 경제부는 물론 외 무부와 해외 통상부에서 예측했다(2007년 12월 7일과 2007년 12월 14일 인터뷰). 더 나아가, 실제적인 예상에 있어, 경제, 투자, 군사-기술 협력, 우주의 영역에서 협력 확대 와 관계된 화물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화물 적재에 있어 철도에 대해 러시아 공화국과의 관계 발전이 무시되어 왔는데, 특히 앞서 말한대로 해양 수송과 공중 운송은 거의 없다. 또한 ATR와 유럽 사이에 수송 다리를 건설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한때 논의되었는데, 이는 삼자 간의 형태로뿐 아니라, 서울에서 아시아 대륙 철도 지도자들의 회합, 유럽과 아시아 20 개국의 교통부 장관들이 참여한 빌뉴스(라트비아)에서 열린 제 15차 시베리아 철도 운송 조정 위원회(КСТП)에서도 논의되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2020년까지 시베리아 철도 노선에 따 른 화물 수송 발전 전략이 고찰되었는데, 또한 한 반도의 운송 동맥의 이러한 과정이 포함되 었다. 최근 10년의 중간에 극동과 동시베리아의 항구와 국경선을 통과하는 콘테이너에 실린 수송 화물의 전체 양은 38만 8천 3백 개에 달하였다. ОАО РЖД의 대표 야쿠닌은 러시아와 북한에서 각각의 철도 관련 지도자들은 물론 이들 나라의 사업-구조의 대표자들과 교섭을 했 다. 회합의 결과는 시베리아 철도 지선 재건 프로젝트의 재무에 참여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 는 남한 측의 동의였다. 그 밖에도 서울은 삼자(ОАО РЖД, 남한과 북한의 철도) 모두 궁극적 으로 프로젝트에 동의할 경우 단일 노선에 따라 통과 화물 수송을 보장하기로 하였다. 교섭 결과 야쿠닌은 말했다: 우리는, 한국의 철도 지선 재건과 시베리아 철도 화물 적재 프로젝트 가 철도 뿐 아니라 관련된 3개국 경제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회사는 다른 파트너들에게 우리가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접근했던 개념을 형성하고 재무 형태를 규 정할 것을 위임받았다. 경제적으로 활동적인 많은 국가들은 신속한 거래 가 우선인 전자 무역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 간주했다. 따라서 러시아 관청은 유럽과 АТР 국가들 사이에 통일된 수송 다리로 두 개의 지선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의 실현하는 것을 연기하지 않도록 제안했는데, 그것의 경제적 목적 성과 장래 금전적 이익은 명확하다. 시베리아 철도의 도로를 따라 러시아 주와 지방의 행정부 와 관청에서는 프로젝트의 실현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러시아 교통부는 융 자를 받는 조건에서 시베리아 철도와 한반도의 지역에서 러시아 철도의 현대화에 5억 루블을 이미 예약했다. 남한과 북한 철도의 도킹이 서쪽 방향(DMZ에서 신의주까지)에서 조화로운 형 태로 행해졌다. 북한 지선의 추가 재건 프로젝트는 러시아 부처에서 전문가의 평가를 받았는 데, 그것은 북동 지역의 작업에 있어 상당 부분을 융자했다

69 ОАО РЖД의 평가에 다르면 북한의 철도 현대화에 요구되는 돈은 20-70억 달러이다. 그 작업은 강도에 따라 5-7년이 소요된다. 러시아 측은 길의 상부 건설에 대한 재료를 준비했고, 특별한 도로 기술을 갖추었다. 하산 역에서부터 프리모르스카야를 지나 지방의 철도 네트워크 완성 직업은 지속된다. 현재 한반도에서뿐 아니라 프리모르와 하바로프스크 지역의 항구로부 터 벌써 대량의 물품이 시베리아 철도를 향해 출발했다고 추정된다. 그 다음 작업은, 재건 뿐 아니라 이후 통일된 철도의 사용을 위한 국제 차관단의 설립을 위 한 삼자의 정책이다. 이러한 활동의 원칙에 대한 논의는 여러 번 행해졌다. 남한은 해외에서 탄화수소 원료 수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그 중에는 러시아의 석유와 액화가스가 있다. 이와 함께 이제 러시아의 탄화수소 원료는 한반도의 남쪽으로 지상 수송되 지 않는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철도를 따라 석유를 공급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기 때 문이다. 알려진대로, 남한은 한때 자신의 사정에 따라 탄수차에 적극 참여하지 못했다. 그 중 에는 사할린 광구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그것이 충분히 전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 이 보여주듯이, 그러한 평가는 맞지 않았다. 이제 한국은 다르게 평가하고 있으며 상황이 변 화였다. 한국의 사업 단체들과 철도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그 자문 기관들의 실제적인 행동 역 시 변화하고 보다 능동적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관망하는 전술에서 능동적 참여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술적, 재정적 참여, 동쪽에 위치한 작업장으로 고도의 기술 장비 공급 등을 말한다. ОАО РЖД의 전문가들은, АТР 와 유럽 국가들 사이의 통과 운송의 발전은 이 권위 있는 주식회사 활동의 우선적인 활동 방향의 하나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들의 예상에 따르면, 시베 리아 철도와 한국 지선을 연결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일된 철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앞서 언급한 구체적인 경우에서처럼 세 나라는 자연스러운 통과 가능 성과 지리적 상황을 이용하여 적지 않은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번역: 이현숙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70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이 국 (인하대학교) 대한민국과 러시아공화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접국 46) 으로써 21세기 현재 평화롭게 공 존하고 있으며 통상무역과 기술협력 및 인적교류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서로의 국민적 이 익을 극대화하며 발전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세기 현대사에 두 나라 사이에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후 미수교 상태에서 1950년 6.25 전쟁 비밀참전이나 1980년 항로를 이탈한 민간항공기 피격 47) 같은 유감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입장에서 노 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샌프란시스코 합의 48) 에 따라 1990년 9월 공식수교 이후 현재 상호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대우 49) 하고 선량한 이웃나라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우주공학부문에 있어서 러시아 공화국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의 선도적 위치를 우주경쟁 시대 이후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전통있는 우주공학 선진국이며 관련 연구와 생산시설 및 운용시설과 함께 인력과 관련사회간접자본과 국민의 성원이 잘 갖추어진 상태이다. 이에 비하여 대한민국은 우주공학 부문을 본격적으로 진흥하기 시작한지 2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국가와 국민의 관심아래 순수연구개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운용을 위한 시설화 단계에 의욕적으로 도전하는 우주공학 신흥개발국가이다. 우주개발 선진국인 미합중국 과 러시아 공화국의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고 독점을 위한 경제적 비용을 감당해야 할 이 유가 사라진 현시점에서 국가 및 연합들과 교류와 협력관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 한민국과 러시아 공화국 사이의 교류와 협력은 필연적 현상이 된다. 본 논문에서는 양국간의 우주공학 기술협력 부문에 있어서의 상호이익을 충족하는 전략적 협력을 위한 미래 방안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양국사이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통한 시사점을 분석하고 현재까지의 우주공학 현황과 단기적 협력결과를 약술하여 이를 고찰하여 미래의 대 한민국과 러시아 공화국의 우주공학 협력방안을 민간차원에서 제시하여 본다. 46) 대한민국 헌법에 의한 영토경계에 의거 47)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격추 경위(1983년 9월 1일) 뉴욕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747 여객 기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방공군 전투기 미사일공격으로 피격되어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사망 48) 1990년 6월 5일 샌프란시스코 합의 ; 1990년 9월 수교 49)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과 러시아공화국 메드베제프 대통령이 모스크바 끄레믈에서 공표

71 대한민국과 러시아 공화국의 우주항공공학에 대한 현재의 기술교류 이전에 인상적 역사를 분석하여 보자. 애석하게도 아래에서 예로 든 두 역사적 사실은 모두 전쟁과 관련이 있어 우 주항공공학의 민군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경을 인접하면서 벌어지는 국경분쟁을 통하여 한민족과 루스끼가 서로가 가지고 있던 기술수준을 상호간에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과 루스끼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국경이 인접하기 시작한 1640년대 이후의 조선중기로 추정된다. 1664~1665년간에 당시 청의 황제인 강희제의 파병요청에 따라 조선의 효종은 흑룡강(아무르) 북쪽 송화강(숭가리) 유역에 함길도 병마우후 변급(1차), 신류(2차)를 지휘관으로 하여 수백 명의 조총수와 화병으로 구성된 군대를 파병하여 조선군은 청군과 2차 에 걸친 공동군사작전을 벌였다. 러시아의 짜르 미하일 로마노프 말기에 진출하기 시작한 흑 룡강 북쪽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짜르 알렉시스 로마노프가 파견한 스테파노프의 500명 까 자크 부대와 전투를 벌여 격퇴하였고 이 작전을 러시아의 한자표기에서 나선 50) 정벌이라 이 름 붙였다. 그림) 자포로쥐에의 까자크(레핀)와 쿠마르스크 요새 전쟁수행과정에서 나타난 화병이란 생소한 단어에 주목하는데 그 동안 사학계에서는 단순히 불화살을 운용하는 궁병으로 보고 있으나 본인은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송화강 건너편 강둑 과 함선에서 머스킷 식의 화승총과 포환을 발사하는 소형 화포로 저항하던 러시아군 51) 을 순 식간에 제압하고 함선을 소각시켰다는 기록에 따라 추정하면 장비한 무기는 단순히 불화살이 아닌 강력한 신무기를 가진 화력지원병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화력이 강하나 무게가 무겁고 이동이 불편한 대형 화포인 총통대신 개개화력이 약하나 단시 간에 화력집중투사가 가능하고, 이동이 용이하고 사정거리가 길며 소이효과가 탁월한 다연장 로켓포인 신기전기 화차가 다수 배치된 함길도에서 원정을 출발한 조선군은 송화강 유역에서 러시아군과 전투에 임하였다. 본인은 공인된 최초의 로켓무기를 실전에 사용한 조선의 우주항 공 공학기술이 러시아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로켓기술은 더 이 50) 러시아를 한자로 표기해 한글로 읽을 경우 나선이라 하나 중국어 원 발음은 이와 다르다. 51) 짜르의 칙명으로 모집되어 파견되었으므로 정규군에 준한다고 판단했다

72 상 발전 없이 사장되고 설계도와 역사속의 편린으로만 남고 잊히게 되었다. 그림) 국조오례의 병기도설(1474)의 화차설계도와 복원한 신기전의 설계도 1950년 6월 25일 불법정부였던 북조선인민공화국의 남침으로 유엔의 승인아래 1948년 8 월 15일 합법적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은 고된 나라사정을 정비할 틈도 없이 전쟁에 돌입하였 다. 수백만의 인명피해를 내고 한반도 전체는 초토화되었다. 전쟁당사자인 대한민국과 북조선 인민공화국 외에도 유엔결의에 따른 유엔연합군으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안전보장이사 회 상임이사국을 포함하여 16개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하였고, 1950년 9월 이후 북조선인 민공화국이 수세에 몰리자 1950년 10월19일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참전하 였으며 11월 1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참전에 대한 공표 없이 비밀리에 참전하였 다. 52) 벨로프 상장이 지휘하는 원동지역의 소련 64 항공군단은 2차대전 참전경험이 많은 잘 훈련 된 조종사를 대거 포함하고 있었으며 당시 최신예 기종인 MIG-15를 전쟁에 투입하여 소비에 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공군의 공식표식을 달지 않은 위장국적의 공군으로 참전하였다. 스탈 린은 소련군을 비밀 참전시키면서 전선에 투입될 소련 공군 항공기들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과 북조선인민공화국 국적기로 위장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미국을 자극해 전쟁이 확전되는 것 을 방지하기 위한 스탈린의 조치에서 나왔다. 최초 작전시 소련 공군은 한반도 전체의 공세적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연합공군에 대항하여 중국지역의 주요 시설과 압록강 교량 및 수력발전 소 등의 제공방어임무를 수행했고 평양~원산 선까지 범위를 차츰 확대해 나갔다. 폭격과 지상 지원으로 전략을 수정한 유엔군에 대하여 한결 유리한 국지적 제공방어임무에 치중하여 미국 이 최신예기인 F-86을 한국으로 급히 파견할 때까지 유엔연합공군이 고전하였고 미그 전투기 가 출몰하는 한반도 북쪽지역을 미그 회랑이라 이름 붙이며 3년간 쉽지 않은 공중전을 치러 야 했다. 52) 소련공군 대령 발렌틴 골루베프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비밀임무에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전쟁에 투입되 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20여명의 조종사들과 함께 소련공군 제복을 벗고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으며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실려갔다. 그리고 열차로 갈아탔는데 이 열차에는 엄중한 경호를 받는 커다란 컨테이너가 여러 개 실려있었다. 열차에서 내려보니 그곳은 중국이었다. 그리고 컨테이너가 개봉되 기 시작했다. 속에는 우리가 훈련받았던 최신 전투기 미그-15가 동체와 날개가 분리된 상태로 들어있었으 며 이 미그 전투기들의 동체와 주익에는 모든 국적마크와 표식이 지워져 있었다

73 그림) MIG-15와 국적표시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에게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미합중국 이외에도 우주항공공 학 선진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깊이 인상지었다. 300년 전에는 조선의 로켓무기 기술은 러시 아가 상상하지 못하는 수준 이였지만 1950년에 와서는 조선의 후신 대한민국이 상상하지 못 할 수준으로 러시아의 기술이 발전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우주공학을 진흥하기 시작하고 연구개발에 본격적 으로 참여하였다. 1990년대 중반 소형고체로켓을 개발하였고 2000년대에 액체추진식 로켓의 원형개발을 완료한 상태이다 53).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2호를 극궤도에 진입시켜 성공적으 로 운용하고 있으며 소형 실험위성을 설계하고 우주에서 운용하였다. 2009년까지 기술협력 을 통하여 소형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우주발사체의 이륙을 위하여 나로우주센터를 2009년까 지 건설하고 있다. 그림) 대한민국의 우주공학 러시아 공화국은 19세기말의 콘스탄틴 에두와르도 치올코프스키를 효시로 하여 2차대전 직 53)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현대, 삼성, 대우, 한화 등 사기업이 미국/러시아와 프로젝트 공동연구개발

74 후부터 우주공학을 급격히 진흥시켰다. 1960년대 초반 미국과 우주개발경쟁에서 최초 인공위 성 스푸트니크를 지구궤도에 진입시켰으며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알렉세이비치 가가린이 소유 즈-보스톡에 탑승하여 유인우주비행을 시작하였다. 이후 우주정거장 미르 콤플랙스와 자유로 운 우주항행이 가능한 우주왕복선 부란과 지상최대추력을 가진 에네르기야 우주발사체를 개발 하였으며 통신위성 및 정찰위성을 지구궤도에서 운용했고 달 및 행성에 탐사선을 보내어 태양 계를 연구하였다. 현재 국제협력우주정거장의 당사국으로 운용을 주도하고 있으며 찌클론, 소유즈, 프로톤의 다양한 운송능력을 가지는 우주발사체를 운용하고 있으며 키푸신야르, 플리세츠크, 바이까누르 우주기지를 운용중이고 새로운 우주 발사체인 앙가라를 개발 완료하였으며 새 우주기지인 스 바보드늬를 건설 중에 있다. 그림) 러시아의 우주공학 21세기 현재 우주공학의 시장적 전망은 매우 불투명한 상태이다. 과거 냉전 시절과 비교하 여 우주발사체의 이륙 회수가 격감한 상태이고 우주응용시장은 예상보다 활성화되지 않은 상 태이다 54). 뿐만 아니라 비약적인 전기, 전자, 컴퓨터산업의 발달은 인공위성의 성능향상과 수 명연장을 통하여 역으로 가격대비로는 성장하는 것으로 보이나 프로젝트 규모차원에서는 거꾸 로 우주산업시장을 축소하고 있다. 탑재장비 성능향상으로 인한 우주산업의 시장축소 영향은 매우 심각하여 본인은 비유적으로 무어가 찌올코프스키의 목을 매년 1/3씩 더 조르고 있다 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매 18~24개월마다 반도체의 성능이 2배로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에 찌 올코프스키로 대변되는 우주산업시장의 실질적 축소폭을 경험적으로 산정한 수치이다 년부터 2006년까지의 우주산업 매출의 범위는 642억 달러에서 1061억 달러로 증가하였으나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실질적인 증가범위는 매우 좁다고 판단할 수 있다. 54) 이리듐, 오딧세이등 위성통신회사가 도산했다

75 우주산업 500 매출액 억달러 연도 그림) 무어의 법칙과 우주산업의 연도별 규모 세계적 우주개발의 주된 방향은 독자수행과 협력개발의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주공 학 선진국인 러시아공화국과 미합중국의 경우 독자수행을 위주로 우주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 다. 그에 비하여 유럽연합은 독자수행에서 협력개발로 방향을 전환하여 훌륭한 성과를 얻고 있다. 우주공학 선진국에 포함되는 중국과 일본은 독자수행을 지속하고 있는 점이 유럽에 비 하여 비교할만한 사항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우주공학부문 신흥개발국 55) 의 경우 독자개발로 약진하고 있으나 발전속도가 선진국에 비하여 현저히 느리며 이에 따라 기술협력이 절실히 요 구되고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인적자원 부분의 총량을 상호비교하면 이 현상에 대한 이해가 쉽다. 그림) 우주 경쟁력 지수 55) 선진국과 신흥개발국의 구분은 자체 기술에 의한 우주공학 연구개발능력 보유여부이다. 미국과 러시아 및 유럽연합, 중국, 일본이 선진국에 속한다

76 대한민국이 러시아공화국과 우주공학에 있어서 기술협력을 모색한 시기는 정식수교 이후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권 국가동맹이 붕괴되기 이전 시기 대한민국은 이들 국가들과 거의 교류 하지 않았다. 휴전선을 맞대고 대치하고 있던 북조선인민공화국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에 접어들면서 동-서 독일의 평화적 통일이후 이념대립의 자세에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대 한민국은 적극적으로 구 공산권 국가들과 교류협력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구 소련과 1990년 9월 국교체결 직후부터 한국 정부는 구 소련 (1991년 이후는 러시아)과 과학기술협력 사업을 정부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1990년 12월 한-소 과학기술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1년 뒤부터 구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공화국과 한-러 과학기술협력으로 협 정발효되었다. 구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은 대한민국에 비하여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에서 상당 히 높았으므로 러시아와의 교류협력 사업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이전받고 고도로 훈련된 과학기술자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에 유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과학기술 교류협력 사업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공동연구센터를 설치하였다. 한-러 공동연구센터는 러시아 과학기술자들과 공동연구, 위탁연구를 수행하고, 러시아 현지 연구팀을 국내에 알선하며, 러시아 보유 우수기술 국내 판매도 알선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 과학기술정보의 수집 및 제공, 러시아 과학기술자 국내유치 및 방문 알선도 담당하였다. 러시아 국내법에 의한 현지 합작법인 형태로 한국은 자본금, 운영비 등 주로 현 금을 부담하고, 러시아는 연구시설, 인력 등 현물을 부담하였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모 두 6개의 공동연구센터가 세워졌다. 설립 초기의 러시아 경제상황과 현재 고물가 시대의 러시 아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저예산 책정으로 인해 현재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고 한다. 공동연구보다는 인력교류, 학술회의 개최 등만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개설된 센터들은 한-러 항공우주 공동연구센터( 모스크바), 한-러 에너지 공동연구센터( 모스크 바), 한-러 항공재료 공동연구센터( 모스크바), 한-러 분말재료 공동연구센터 ( 상뜨페쩨르부르크), 한-러 자원 공동연구센터( 하바로프스크, 모스크바), 한-러 광학 공동연구센터( 상뜨페쩨르부르크) 이다. 우주공학 부분의 한-러 기술협력은 위의 항공우주 공동연구센터 이외에도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국가기관과 연구소 및 사기업이 전체적으로 조율되지 못한 체 각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공개리 또는 비공개적으로 기술협력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연구협력이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 중하게 되어버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즉, 한-러 기술협력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우 주공학 부분 잠재력과 연구개발능력이 장기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닌 체 기술개발 자체보다 기술에 의한 결과물을 상품화하여 이를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턴키베이스 양상이 지속되고 있 다. 이는 우주개발에 필요한 인적자원과 시설 및 운용능력이 모두 모자라는 대한민국의 향후 운신폭을 매우 좁힌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주공학 부문은 민군겸용기술로 국제적 기술협력이나 이전이 용이하지 않은 분야이다. 이

77 를 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은 두 개의 관련 협정서를 러시아 공화국과 교환하여 체결하였다. 따라서 1990년도부터 2006년 까지는 법적규정없이 우주공학부문 기술협력을 기 관, 연구소, 사기업의 개별 프로젝트에서 당사자간의 양해각서 만으로 모든 사항을 규정하고 기술협력을 시도하는 탈법적인 형태 56) 로 진행되어 일부 문제점이 발생하여 반드시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국제협력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2003년부터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 협상에 착수하 여 2006년 9월 러시아 의회 비준을 거쳐 발효된 한-러 우주협력협정은 정식 명칭이 `대한민 국 정부와 러시아 연방정부간의 우주의 탐사 및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명기돼 있듯이 우주 탐사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협정내용에서 협력 분야를 외기권 57) 탐색, 지구 원격탐사, 우주물체 연구, 위성항법, 우주선 및 우주발사체, 우주 관련 지상 기반 시설 등으로 규정했다. 구체적인 협력방법으로는 공동프로젝트 추진, 정보교 환, 우주관련 물체의 생산, 개발, 공급, 상호 인적교류 및 교육의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한 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은 2006년 10월 체결된 이래, 양국 국회 비준 동의와 대한민국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협정 비준서 서명 발표 등의 과정을 거쳐 2007년 7월 발효됐다. 한 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은 양국의 우주발사체와 관련한 주요기술과 품목의 이전시 보호를 목적으 로 하며, 전략적으로 매우 민감한 물품의 이전 시, 동 물품의 보호 및 취급 절차를 규정하는 협정과 소형위성 우주발사체 개발사업에 관한 기술보호 사안을 규정하는 의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2009년 2/4분기중 이륙예정인 한국형 우주발사체 KSLV는 지난 2002년 4월부터 5천98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7년(최초 계획대비 3년 순연)에 걸쳐 한-러 우주공학 기술협력의 형태로 대한민국의 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공화국의 흐루니체프 기념 국립우주공학 연구생산센터가 공동 개발 중인 소형 우주발사체로써 대한민국이 우주개발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숙원사업이 다. 100kg급 저궤도 과학기술위성 2호를 탑재해 우주공간에 쏘아 올릴 예정인데 KSLV가 성 공을 거둘 경우 한국의 우주발사체 연구개발 능력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과 함께 국산 인공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가 지속적으로 이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56) 모 회사는 인공위성 하나를 구입하려 하면서 관련 기술문서 전체 및 부품 일체와 필수 과학기술자 전원의 양도를 요구하였었다. 57) 외기권(외권) : 지표에서 약 500km 이상의 고도에 있는 대기의 최상층

78 그림) 한국형 우주발사체 나로우주센터는 소형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우주발사체 발사장이다. 대한 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외나로도) 예내리 하반마을 인근 야산에 건설중에 있으며 2009 년 완공된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우주센터 보유국이 될 예정이다. 러시아 공화국의 수송기계생산국 및 흐루니체프 기념 국립우주공학 연구생산센터와의 기술협력으로 건설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이 인공위성 발사대 공사를 일괄수주해서 시공중에 있다. 면적은 150만평(시설부지 약 8.7만평)이며 우주체험관을 포함하여 총 2,650억원이 투자되었다. 발사 대는 초속 60 m의 태풍에도 견디며, 총 200회의 우주발사체 이륙을 수행 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2009년 2/4분기중 KSLV-I 58) 로켓으로 과학기술위성 2호를 궤도에 진입시키고 다시 재공사에 들어가 2015년까지 대형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우주발사체에 적합 하게 추가시공 공사를 하여 KSLV-III를 운용할 예정이다. 그림) 나로우주센터 한국인 우주인 후보로 확정된 2명은 고산과 이소연이다. 이들은 총 3만6,206명의 지원자 중에 9개월 동안 기초체력과 과학능력, 언어능력, 사회성, 우주 적합성을 평가한 4단계의 선발 과정을 거쳐 1만8,103대 1의 바늘구멍을 뚫고 선발된 것이다. 이들은 2007년 4월 8일부터 러시아의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즈뵤드늬고라독의 유리 알렉세이비치 가가린 기념 우주비행 58) 소형 우주발사체 100kgf 인공위성 장착, 중형 우주발사체 1500kgf 인공위성 장착

79 사 훈련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비행 시뮬레이션, 오지 착륙을 대비한 생존훈련, 중력이 없는 곳 에서 생활 등 우주인 적응 훈련을 받았다. 우주선 탑승자인 이소연은 카자흐스탄 바이까누르 우주기지에서 러시아 우주왕복선 소유즈를 타고 이틀간의 비행을 거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 8일간 머f물고 18가지의 과학실험을 한 후 바이까누르 우주기지 근처 초원의 예상 착륙 장에서 크게 벗어난 곳에 비상착륙하였다. 10일 동안의 우주여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260억원(정부 예산 210억원, 주관 방송사 50억원)으로 우주선 탑승자는 하루 26억원을 지불 하였고 이륙 2주일전 불분명한 이유 59) 로 후보자를 긴급 교체하여 국민의 비판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림) 고산과 이소연 59) 교체사유에 관한 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우주국의 공식해명은 기술문서 절취, 품위손상으로 발표되었다

80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강 명 구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구소연방의 체제 변화로 인하여 그 지위를 이어받은 러시아는 재정악화로 인해 농업부문에 대한 재정적 지원 및 농업 보조금이 급감으로 콜호즈 및 삽호즈들의 재정상태가 악화, 이농의 가속화, 사유화로 러시아의 농업은 점차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러시아는 농업의 활성화 를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WTO 체제하에서 농산물에 대한 관세인하 조치와 더불어 미국, 동남아 비롯한 국가들의 농산물 수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26% 이며 쌀 이외 곡물의 대외의존도도 1999년 95%에서 2004년 97.4%로 상승하였다. 따라서 2007년 우리나라의 전체 곡물 수입량은 1,500만 톤을 수입하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지면 적 중 매년 13천~14천ha가 다른 용도로 전환되고 있어, 경지면적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1). 또한 농촌 노동력의 평균 연령이 만 60세에 가까워 농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따 라서 우리나라의 농업생산량은 점점 감소할 것이다. 북한지역 역시 자연재해와 비료ㆍ농약 등 농자재 부족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엄청난 식량난 을 겪고 있다. 북한은 부족한 식량을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국제기구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남 북한의 식량사정을 고려할 때 통일 후를 대비한 안정적인 식량 확보 계획 이 필요하다. 2008년 들어 국제곡물가의 급등과 생산량 감소로 곡물수출국들은 수출제한조치 등의 식량 자원화로 곡물 수입국들은 식량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해외개발을 시작하였다. 나아가, 다가오는 2010년경에는 전 세계적인 식량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곡물시장이 카길 등 거대한 곡물메이저에 의한 독과점 구조로 되어 무역거래를 통한 식량 확보 방안은 불 안정성 및 과다비용 등의 문제가 예상되어 해외식량기지 확보를 통한 쌀, 밀 등을 포함한 곡 물의 안정적 확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안정된 식량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공급기지로서 연해주, 동남아, 중국, 남미 등 도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 후 안정된 식량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공급기지로서 연 해주의 넓은 농지는 더 없이 적합하다. 연해주는 북한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어서 통일 후 이 1)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쌀 재배면적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5년 979,717ha, 2006 년 955,299ha, 2007년 950,250ha로 감소

81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을 북한지역과 북한을 통해 남한으로 수송할 때 드는 물류비용 절감 등 의 이점이 있다. 또한 농약, 유전자 조작 등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지역이라는 점이 우리나라 해외식량공급기지로서 적합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뉴라운드 체제하 식량무기화에 대한 대비와 통일 이후의 식량자원 공급 기지 중의 하나인 연해주의 농업현황, 우리의 진출현황과 중요성, 그리고 문제점을 살펴보았 다. 이러한 결과를 중심으로 연해주 진출의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1. 연해주의 경제적 잠재력 러시아 국가차원에서 볼 때, 연해주는 러시아의 아 태평양지역으로 진출의 교두보임과 동시 에 블라디보스톡항은 부동항으로 전진기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태평양 연안국가의 구성원임과 동시에 러시아연방 중에서 천연자원이 경제적으로 미개발 되어 있는 지역이다. 연해주는 동북아지역에 대한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발전적인 영향을 제 공해줄 수 있는 배후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더불어 연해주를 포함한 극 동지역은 광활한 산림지대와 막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외국자본의 유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연해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광공업, 임업, 어업, 비철금속업, 그리고 광활한 농지를 이용한 러시아연방의 제2의 논농사 지대이다. 따라서 이들 산업이 연해주 발전의 견인 차 역할을 해왔으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연해주는 러시아의 중심지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질감이 높다. 둘째, 기후가 매우 혹독 하다. 겨울이 길고 추워서 경제활동이 매우 어렵다. 셋째, 연해주는 아직까지 미개발된 지역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넷째,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산업기반이 미약하고, 낙후된 인 프라, 개발여건 악화 등으로 인해 경제적 개발이 매우 부진한 상태이다. 따라서 연해주를 중 심으로 극동지역 경제개발에 필수적인 대규모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동북아경제권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성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특히, 2012년 연해주 블라디보 트톡에서 개최될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회 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러시아연방 정부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어 연해주는 급속히 발전될 것이다. 연해주는 극동지역 진출의 교두보로서, 아 태평양지역의 경제중심지로서의 변화될 높은 가능 성과 러시아연방 속에서 고려인 최대 거주지로서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다

82 2. 연해주의 농업 현황 1) 연해주 농업 여건 연해주의 총면적은 16만 5,900km2로 남한의 1.7배이다. 농지 면적은 전체의 25%인 약 250 만ha이며, 이중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농지는 20%인 50만ha 정도이다. 벼농사를 지을 수 있 는 35만ha, 밭이 75만ha, 경지전환이 가능한 초지가 170만ha 등으로 한국 전체 농지 180만ha 보다 넓다. 연해주는 벼, 밀, 콩, 보리, 귀리 등의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2007년 연해주 전체 농지면적 은 167만ha이며, 파종 면적은 33만 5천ha로 경작 비율은 20.1%로 매우 낮은 편이다. 연해주 는 구소연방시절 흑해 연안 크라스나다르와 더불어 주요 쌀 생산지였다. 연해주는 쌀농사를 위해 항카호 주변의 토지를 개발해 대규모의 관개시설을 확충하여 전략적으로 논농사를 시작 하였다. 경작방법은 농지의 규모가 커 건답 직파형식의 벼농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잦은 자연재해 등으로 농작물 생산량이 낮아 원활한 벼농사를 위해서는 농지의 전면 재정비 또는 부분 정비가 필요하다 2). 연해주의 작물재배 면적은 구소연방 붕괴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한국의 자본과 영 농기술, 러시아의 토지,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한 농업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 다 3). 따라서 식량자급도가 26%이며, 연간 약 1,500만 톤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 는 지리적ㆍ역사적으로 매우 가깝고 영농조건이 매우 좋아 연해주를 미래의 해외식량공급지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연해주는 중국산 농산물이 물밀듯이 수입되고 있는 현재 친환경농산물 생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또한 향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로 물류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역이다. 2) 연해주의 농산물 생산 현황 연해주의 농업은 구소연방 이후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그리다 2000년 이후 회복단계에 들어 서고 있다. 연해주의 농산물 생산량 감소 원인은 콜호즈 및 삽호즈의 사유화, 그리고 이농현 상 등이다. 콜호즈 및 삽호즈의 사유화는 연해주 농업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농장의 사유화는 독자적인 영농 준비가 되지 않은 농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영농을 포기하게 하였다. 농장의 붕괴는 농민들의 이농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도농간 임금격차 확 대는 농민들의 이농을 가속화시켜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표 1>과 같이 구소연방 붕괴 후 농촌 인구는 감소하였다. 그러나 2000 들어 정부의 농업활성화 정책과 한국 및 중국 등의 농업투자 등으로 농촌인구는 과거 수준에 이르고 있다. 2)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83 <표 1> 연해주 농업 인구 추이(매년 1월 1일 기준) (단위: 만 명) 구 분 전 체 도 시 농 촌 자료: 러연방 통계청 2007년 연해주의 총 파종면적은 33만 5천ha로 1995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러 시아 전체에서 차지하는 파종면적은 0.44%로 매우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콩의 파종면적은 2000년 91.5ha로 러시아연방 대비 12.7%로 최저를 기록한 이후 증가하여 2007 년에는 12만 1천ha로 15.6%로 증가하였다. <표 2> 농산물 파종 면적 추이 (단위: 천ha) 구 분 연해주(A) 총 파종면적 러연방 전체(B) 102,540 77,478 77,104 76,363 A/B(%) 연해주(A) 곡물(미맥류) 러연방 전체(B) 54,705 43,785 43,357 44,430 A/B(%) 연해주(A) 밀 러연방 전체(B) 23,909 25,399 23,640 24,403 A/B(%) Технические культуры 연해주(A) 콩 러연방 전체(B) A/B(%) 감 자 채소류 사료(건초) 자료: 러연방 통계청, 연해주 통계청

84 연해주의 곡물 생산량은 2000년 11만 8910톤을 생산을 기점으로 증가하여 2007년 13만 5040톤을 생산하였다. 특히, 쌀 생산량은 2005년 5천 240톤을 생산한 이후 2007년에는 8천 720톤 생산하였다. 쌀 생산이 증가한 것은 연해주 정부의 논농사 장려 정책과 중국의 계절 농업 확대, 그리고 우리나라의 농업부분 투자 증대 때문이다. 중국의 계절 농업은 소규모 영 농에 매우 적합한 체제이다. 이는 피라미드식 조직체계를 갖추고 투자 지분에 의해 수익을 취 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절농업은 연해주 영농 시작 전 농장과 경작에 필요한 농경 지를 임대 계약을 하고, 수확 후 현지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진출 방법에 비해 훨씬 소규모 영농으로 단위당 생산량을 최대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연해주에 대해 대규모 농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어 우리와 경쟁이 불가피하다. <표 3> 농산물 생산 추이 (단위: 천 톤) 총 생산량 1ha당 생산량 자료: 연해주 통계청 구 분 곡물 모밀 쌀 콩 감자 채소류 곡물 모밀 쌀 콩 감자 채소류 연해주 농업부문 진출 현황 1) 농업부문 직접투자 현황 연해주의 광활한 농지는 좁은 국토 면적을 가진 우리에게는 신천지와 같은 감정을 주었다. 이에 농기업 및 각종 단체들은 연해주지역의 농업부문에 직접투자를 함으로써 농업투자진출을 하였다

85 연해주 농업 진출은 주)고합을 필두로 사)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주)남양 유니베라 등이 진 출하였다. 연해주 농업투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으며, 이에 진출기업 및 단체들 중에 서 2007년 현재 연해주에서 영농을 하고 있는 기업은 주)남양유니베라, 사)동북아평화연대, 대순진리회의 아그로 상생 등 소수만 성공하고 나머지 기업 및 단체는 실패하였다. 특히, 사)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은 농업 진출 뿐 만 아니라, 고려인을 위한 주택건설사업인 우정마을 건설을 병행함으로써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였으나, 영농에 있어서는 실패를 하였다. 그러나 사)동북아평화연대는 고려인 정착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출하였으며, 주)크라운제과는 중국 상하이 조리퐁 공장에 경질맥(Durum Wheat) 공급을 위한 농장진출을 고려한 바 있다. <표 4> 러시아 연해주 주요 농업투자 진출 업체 및 단체 현황 4) 진출업체 및 단체 현지법인 영농지역 진출시기 영농활동 비고 (주)고합상사 (주)프림코 미하일로프카 군 크레모보, 순얀센 1991 콩, 메밀, 채소 (주)대아산업 (주)대아산업 빠쁘로프카 1991 콩, 메밀, 옥수수 철수 (주)대경 (주)대경 스체프노예 1995 콩, 옥수수 철수 (사)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주)대한주택건설 사업협회 (주)새마을운동 연해주개발 지사 (주)드루쥐바 (우정마을) (주)남양 유니베라 (주)유니베라 러시아 경기도 농업 경영인 연합회 대순진리회 상생복지회 (사)동북아평화연대 (농업법인) 항카&코리아 호롤군 빼뜨로이치, 시비코프카 미하일로프카 군 아브라모프카 호롤군 루가보에 노보제비차, 하산 콩, 메밀, 옥수수, 벼 콩, 메밀, 옥수수 철수 철수 철수 1998 벼, 한약재 영농중 스파스크 군 2000 콩, 벼 미진 아그로 상생 젬추지느 등 2002 (사)동북아평화연대 미하일로프카 군 아브라모프카 2003 콩, 가공 등 영농중 채소, 화훼 콩, 가공품 영농중 자료: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 북방국가에 대한 해외농업 진출방안 연구, 농촌진흥청. 2001, 사)동북아평화연대, 참조 2) 농업투자 진출의 계약형태 우리나라의 연해주 농업투자 진출 업체 및 단체의 계약서는 영농형태에 따라 차이가 나며, 같은 영농형태에 대해서도 계약조건에 따라 농장의 임대료가 각각 차이가 난다. 연해주 진출 한국 업체의 계약 형태를 보면 직접영농, 위탁영농, 합작영농, 혼합영농(직영+위탁)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4) 현지법인을 설립하지 못하였거나 자료가 명확하지 않은 단체들은 삭제

86 1 직영영농 사)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대경, 대아산업, 한농복구회 등이 이러한 계약 형태에 속하고 있 다. 이는 한국기업이 100%로 투자를 하여, 이익과 손실에 대해서 100% 투자기업이 책임을 갖는 형태로써, 영농과정에서 오는 현지인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이 경우 현지 농업 및 제도적 환경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며, 아울러 고용인 선택까지 할 수 있으므로 현지 고려인, 북한 노동력의 활용과 같은 부수적 효과도 나 타난다. 그러나 영농기반 조성을 위한 초기 투자와 농기계 등 고정자본 준비에 많은 비용이 요구되 며, 모든 영농에 대한 의사결정이 자신의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므로 현지 제도, 영농조건, 영 농기술 등에 대한 완벽한 준비가 필요한 형태이다. <표 5> 주요 계약서 내용 비교 분석 진출기업 혹은 단체 (사)새마을운동 중앙 협의회 (사)대한주택건 설사업회 경기도 농업 경영인연합회 (주)남양 알로에 (주)고합 영농형태 위탁영농 직접영농 혼합영농 (위탁 및 직영) 위탁영농 합작 -1995년 부터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대하여 99년에 전체농지를 경 작 하는데 전체 계약농지 면적은 계약기간 2000년부터 1998년부터 연해주가 43,000ha, 아무르주가 1998년부터 50년 1999년부터 50년 50년 50,000ha임 (연장가능) 49년(연장가능) (연장가능) (연장가능) -양지역 모두 고합은 현금만 투 자하고 현지농장은 자신들이 국가 로부터 부여받은 농지사용권, 농 기계, 창고 등 현물투자를 함 계약농장 -연해주: 순야센, 크레몹스키 뻬뜨르챤스키 미하일롭스크 노보셸스코예 보제비챤스크 또는 군정부 -아무르주: 쁘리볼노예 -현지농장과 50:50의 지분으로 -순수영농비: -매년 출자(현지농장의 기존 투자부분인 160만루블 러시아정부의 영농비 루블 농기자재 등을 현시가로 추정하여 -집단가축사육사업 곡물수매가를 4만불 및 -초기투자 및 추정금액 만큼 투자함) 비: 5만루블 기초로함 (톤당200달러) 임대비 영농비 자기부 -연해주 합작회사: 2339천달러 -가축신용사업비: (40,000$) 담 -아무르주 합작 회사 : 1300천 3만루블 달러 현지농장우선 노동 고용 경영권을 현지 농장이 가짐으로 현지농장 우선 진출기업 책임 후 북한 노동 현지농장우선 조건 고합은 아무런 영향력 없음 자 고용가능 자료: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 북방국가에 대한 해외농업 진출방안 연구, 농촌진흥청, 합작영농

87 주)고합이 여기에 속하며, 이는 한국기업과 현지농장의 지분이 50:50인 경우. 진출기업은 자금을 투자하는데, 이 때 현지농장의 기존 투자부분인 농기자재 등을 현시가로 추정하여 추 정금액 만큼 투자를 원칙으로 한다. 이 경우 현지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가 극심한데 예를 들 면 이익금의 1/2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현지농장이 고의적으로 이익 산출을 하지 않는 등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현지 경영권자가 고용인 선택까지 할 수 있으므로 현지 고려인, 북한 노동력의 활용 과 같은 부수적 효과를 달성에 대한 한계와 현지 농장의 출자 대상인 현물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려이 있다. 3 위탁영농 남양 유니베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등의 계약형태이다. 이 형태는 투자기업이 일정액에 해당하는 영농비를 투자하며, 수확 후 투자액만큼의 수확량을 현물로 받는 경우이다. 이는 수 확량의 일정분을 배분 받으므로 불확실성이 비교적 적은 반면, 합작영농과 마찬가지로 경영권 자가 고용인 선택까지 할 수 있으므로 현지 고려인, 북한 노동력의 활용이 어렵다. 4 혼합영농 사)동북아평화연대가 이와 같은 계약 형태이다. 위탁 및 직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형태 로, 이 경우 주로 위탁 영농형태를 취하되 진출기업이 경영권의 일부를 가지는 경우이다. 2. 연해주 농업 진출의 중요성 1) 안정적 해외식량공급기지 확보 현재 우리나라는 대중국 농산물 수입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어 안전 농산물 자급 기반이 필요 한 실정이다. 중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 농민이 국가가 사용 및 판매 금지하고 있는 농약의 종류를 잘 모르고 있어 일정한 기준 없이 대충 한 가지 농약만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일부 농민은 농약을 친 야채를 휴약기를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시장에 판매하고 야채의 68.9% 가 출시 전에 원산지 검사를 받지 않으며 재배지역 및 곡물 생산지역 주변 환경의 10% 이상 이 오염되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산업화로 심각한 대기오염 상태에 처했으며, 수질 또한 심각한 상태라고 중국 환경보호부 장관이 밝힌 바 있다 5). 이러한 환경에서 재배된 농산물이 우리 국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청정지역이며 Non-GMO 농산물 생산지역인 연해주에 우리나라가 진출하여 고품질 의 안전 농산물을 생산하여 국내에 공급할 수 있다면 중국산 농산물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산 농산물의 품질 경쟁을 촉발시켜 자 연스럽게 국민 건강에 대한 위해 요소를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지역은 한반도와 접하고 있어 물류비를 감안할 때 향후 통일 후의 한반도 가장 적합 5)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88 한 식량공급지로서 적합하다. 이에 우리는 연해주 농업개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불안한 국 민 식생활을 안정화시켜야 겠다. 2) 국가의 미래 전략 기지 선점 6) 러시아 연해주는 동북아시아의 인접국간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역으 로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현재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임은 재론 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연해주 지역은 풍부한 토지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충 분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에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여 전략적 공간으 로서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각도에서 현지와의 협력을 꾀하여 나간다면 장 래에 우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해주가 필요로 하는 농업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연해주의 자원개발과 물류 와 에너지 협력을 공동으로 시행해 나간다면 상호간의 이익이 보장되는 협력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3) 남ㆍ북ㆍ러 농업협력 추진의 최적지 러시아 연해주는 국영농장 체제가 붕괴되면서 농촌경제의 기반이 피폐하게 되어 큰 어려움 을 겪고 있다. 국영농장 시절의 보유하고 건설되었던 대부분의 농기계와 농업기반시설들이 퇴 락하여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농업개발을 활성화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동력의 부족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연해주의 경제 개발에 정책적 배려를 더하여 가고 있으며, 아울러 풍부한 토지자원을 활용한 농업개발도 관심사의 하나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그 동안 계속 논의되어 왔던 것이 남ㆍ북ㆍ러 간 의 농업협력사업의 공동 추진이다. 한국은 자본과 시장경제에 입각한 경영 분야를, 북한은 노 동력을, 러시아는 토지자원을 제공하여 공동의 이익을 실현해 나간다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다. <표 6> 남ㆍ북ㆍ러 농업협력의 조합 구 분 남한 러시아 북한 노 동 력 자 본 기술력 및 경영능력 토 지 시 장 주 : 약간 보유, 보통 보유, 많이 보유, 약간 결핍, 보통 결핍, 많이 결핍 자료: 중앙아시아 및 극동러시아 경제, )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89 이러한 협력을 통하여 연해주는 농촌경제의 복구가 선행된 경제개발의 추진력을 얻게 되며, 북한은 일정한 지분의 식량 확보와 노동력 수출의 대가를 받게 된다. 서로에게 필요한 협력관 계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이러한 협력관계를 통하여 서로를 보다 많 이 경험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다. 4) 재이주 고려인 자립 기반 조성 구한말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인들은 1864년부터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고려인 들은 1937년에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사막에 내버려진 고려인들은 한민족 특유의 끈기와 인내, 노력으로 폐허의 땅을 옥토 로 만들어 농업을 중심으로 건실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 구소연방의 붕괴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에 따른 민족주의로 다시 한번 이주하게 되었다. 이때 고려인들은 또 다시 이주를 하게 되었고 찾아 나선 곳 중 하나가 조상들의 살던 마음의 고향 연해주였다.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국적을 회복하는 데 많은 어 려움이 존재하여 외국인 혹은 무국적자의 신분으로 취업도, 사회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 황에 놓여 있으며 생활기반 역시 매우 취약하여 현재까지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현재 스스로 경제적 자립기반을 구축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7). 우리의 연해주 농업투자는 이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관련 분야에서의 경제 활동 기회를 제공하여 줌으로써 자립기반을 확보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이를 위해, 사)동북아평화연대는 연해주에 정착 또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재이주하는 고려인 들에게 자연농과 같은 현지에 적합한 농업기술과 농업 관련 산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켜 농업정 착을 지원하고 자활을 돕고 있다. 사)동북아평화연대는 고려인들의 정착과 자활 자립을 지원 하기 위하여 우정마을에 문화마당 솔빈(마을회관/2004년), 비닐하우스 보급(2005년 30개 동), 유기농 자연농법 보급(2006년)하고 있으며 우정마을 고려인들에게 청국장(2005년 생산 한국 판매 중), 메주(2006년), 고춧가루(2006년) 등 농산물 가공업을 소개하여 경제력을 향상시키 기 위한 노력을 지속 중이다. 특히, 비닐하우스 1동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 1,500달러를 연대 측에서 고려인들에게 대출해 비닐하우스를 건설하게 하여 고려인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여 농업에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1. 연해주 농업 진출 문제점 7)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90 한국의 기업 및 단체들이 연해주 농업 투자에 따른 문제점으로는 투자 진출시, 파종 및 수 확시, 한국 반입시, 북한으로의 식량지원시로 구분된다. 투자 진출시 문제점으로는 연해주 개발사업을 개별적 추진으로 정보와 경험의 부족으로 수 많은 오류와 금전적 손실, 농장 임대시, 또는 합작투자시 러연방 토지법에 대한 숙지 미숙에 다른 손실,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고려인의 통역을 통함으로서 오는 통역상의 오류를 등을 수 있다. 파종 및 수확시는 짧은 수확 기간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 비싼 농기계 및 고가의 대여비, 농기계의 노후화와 부품 교환에 따르는 고비용 등을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으로 반입시는 국내 기업 및 단체의 해외직접투자에 의해 개발된 곡물 수입에 대한 관 세가 높은 것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수입법에 의하면 국영무역은 관세가 1~3% 로 저율관세인 반면 기업 및 단체가 단독 수입하면 524.8%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는 해외농 산물개발 수입의 연속적 운영을 위한 최소 운영비 확보가 어려우므로 정부가 국내 기업이나 단체가 개발 생산한 곡물을 저율관세로 국내 반입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으로 식량 수출시의 문제점은 연해주 농업에 진출한 국내 기업 및 단체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곡물을 개별적으로 수출함으로서 남양 유니베라처럼 수출대금을 받 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2. 효율적인 농업 진출 방안 1) 다자간 협력을 통한 방안 8) 최근 몇 년간 WTO 가입이 러시아의 국가적 목표 가운데 하나로 되어왔다. 국제경제에 통 합되고, 차별적인 여건으로 인한 국내 수출업자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고, 보다 유리한 조 건으로 세계시장에 참여하고, 기술경험이전을 장려하고,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서는 WTO 가입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1993년 6월에 정식으로 WTO 가입을 신청하고 1995년부터 가입 을 실질적으로 추진해 왔다. 현재 WTO 내부에 러시아의 가입을 위한 작업단(working group) 이 구성되어 WTO 주요 회원국가와 수년간에 걸쳐 러시아 가입에 관해 협상을 진행하여 왔지 만 러시아 국내법의 국제적 기준과의 괴리, 그리고 상품 및 서비스 양허안 내용이 아직 주요 국 입장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가입협상 타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 시아의 WTO 가입과 관련하여 겪게 될 주요 산업부문간 이해득실 중 농업부문을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농업 부문은 전반적으로 교역자유화의 확대에 의해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문으로 간주됨으로서 러시아는 매우 방어적 입장에 있다. 따라서 WTO 가입과 관련된 러시아 국내 의견 조정에서도 농업분야가 가장 쟁점이 되는 분야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WTO가입이 우리나라 농업 진출에 대해 지니는 의미는 우선적으로 국제적 8)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 북방국가에 대한 해외농업 진출방안 연구, 농업진흥청, pp. 175~

91 투명성 제고라는 점에 있다. 이는 WTO 회원국으로서 러시아 국내법이 국제적 기준과 어느 정도 합치되어야 할 것이고 아울러 국제간 투자에 대한 WTO협정 을 준수하여야 할 것이므로 이는 상당한 정도 투자의 안전성 확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투자진출이 증가할 것이다. 2.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의 활용 국가간 자유무역 협정은 상품 및 재화의 무역과 관련된 협정이므로 양국간 직접투자의 안전 성 확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해주 농업 투자 진출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 요인 가운데 하나가 현물로 지급 받은 투자과실의 처리가 어렵다 는 것이다. 이 경우 상품 및 재화에 관한 자유무역 협정은 상당한 정도 이 문제 해결에 도움 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FTA는 협정 체결국의 시장확대 효과에 의한 외국인 투자유인 효과를 간접적으로 유발시킴으로 투자의 안전성 보장 장치가 강화되는 효과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어떤 국가와 FTA를 체결한다면 그를 통해 국내시장이 확대되는 효과 를 가져와 우리나라를 거점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신규투자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국내시장규모와 투자제도의 완비 가 중요하므로 우리나라는 제도적 완비에 노력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국가에 수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은 무관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우리나라에 투자할 유인을 가지 게 된다. 이러한 예는 러시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FTA체결을 통해 러시아 의 투자시장이 확대되고 투자보장이 강화됨으로써 우리 기업의 투자활동에 안정성이 제고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은 해당국을 거점지역으로 삼아 주변 국가들의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며, 해당국이 다수국과 FTA를 체결한 경우 무관세 특혜를 받는 범위가 넓어진다. FTA의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상호 경제구조가 보완적일 때임. 이 경우 무역 창 출효과(trade creation effects)와 무역전환효과(trade diversion effects)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고 그를 통한 상호 시장확대 효과를 최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9) 3. 양자간 특별 협정을 통한 방안 농업의 경우 토지, 농기계 등 초기고정자본 투자가 매우 중요하고 아울러 생육기간 등을 생 각할 때 중장기적 투자여건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의 안전성을 보장 받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투자의 잠재 수익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간 협정이 하 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때 정부간 협정은 일반적 투자에 관한 포괄적 성격을 가지는 것 보다는 보다 세분화된 투자건에 관한 정부간 협정이 유용할 수 있음. 아울러 러시아 국내법에 우선해서 적용될 수 있는 정부간 협정이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9)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 북방국가에 대한 해외농업 진출방안 연구, 농업진흥청, p

92 한국과 러시아간에 현재 진행 중인 경제협력협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호트까 한 러 공단 조성사업을 위한 협정 과 이르쿠츠크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타당성조사협정 임. 이러한 협정을 농업분야에 원용함으로서 양국간 농업개발협정의 체결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양국간 제한적 영역에 대해 특별 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러 시아 경협차관 회수 문제와 연계함으로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현재 러시아 경협차관 회수 문제가 양국간 현안인데 이를 러시아 농업 개발과 연계함으로서 양국간 상호이익을 증진 할 수 있다. 4. 수확 후 농산물 처리의 불확실성 최소화 연해주 농업 투자기업들은 대부분 경영성과 배분을 현물(생산물) 분배 방식을 채택하고 있 는데 분배받은 현물처리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더불어 현물의 채산성이 지극히 낮은데 이 는 종자, 비료, 농약, 연료 등 영농비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급격히 상승한 반면에 수확물 판매가는 정부고시로 인해 거의 제자리에 머문 것이 가장 큰 이유임. 그리고 배분된 현물을 처리하는 대표적 방법으로는 현지판매 혹은 국외 반출이다. 현지판매의 경우 현지 유통체계의 미비와 그에 따른 과다한 물류비, 정부의 가격통제 등으 로 어려움이 수반되며, 아울러 현지에서의 판매는 저가의 중국 농산물과 경쟁하여야 하는데 이 경우 충분한 이윤실현이 어렵다. 국외 반출은 한국내 반입과 제3국으로의 수출이 대표적 경우이다. 이 경우 수시로 변하는 러시아의 수출제한 정책이 자유로운 국외 반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가 미 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국가들로부터 식량 원조를 받고 있는데 해당 농산물이 원조대상 품목인 경우 원조 공여국이 대상 농산물의 국외 반출에 개입함으로서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있 다. 이러한 문제는 러시아내의 경제회복과 식량문제 해결, 그리고 전반적인 투명성 제고와 관 련된 것이므로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작목 선 정이 중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 식량안보와 연계된 식량공급 기지화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이 우선된 투자는 단기적 수익성과 연결되지 않을 때 그 사업의 지속성은 유지될 수 없다. 따라 서 투자 진출시 단기적 수익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투자 작목과 규모 선정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 경험 축적과 더불어 러시아의 경제회복 및 투명성제고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 는 중장기적 시점에서 정부의 농업정책과 연계된 식량공급 기지 혹은 한반도 식량안보와 연계 된 식량공급 기지화라는 자연스러운 전환체계를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5. 삼국협력(남, 북한, 러시아간)을 통한 간접효과 극대화 삼국협력의 구체적 형태는 남한의 자본, 러시아의 자원,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한 러시아 극 동지역의 농업투자 진출이다. 남한의 자본과 러시아의 자원 활용은 투자여건의 성숙과 더불어

93 한국과 러시아간에 진행되고 있는 투자현황을 보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삼국협력의 가장 큰 관건은 북한 노동력을 개입시키는 방안인데 탈북자를 활용하는 방안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세 나라간의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세 나라간의 협력적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접근방법으로는 남한의 자본, 기술력 및 경영능력, 북한의 노동력, 러시아의 토지가 결합된 삼국 협력이 가장 바람직하다.(표 6 참 조) 6. 진출지역 및 경작 품목의 다양화 우리나라의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농업 투자진출은 연해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곡류위 주의 농업투자 진출을 선호하는 한국 기업 및 단체들의 성향에 부합되는 토지자원이 이 지역 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농대상 품목도 곡류위주로 편향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 특히 북한 식량지원과 관련되어 품목이 선정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반도 식량기지를 위한 농업투자 진출의 경우는 장기적 목표의 설정과 동시에 중단 기적으로는 현지에서의 수익성을 고려하여 수익성 위주로 작목을 선정해야하며, 이러한 수익 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영농기반을 마련하고 아울러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곡류를 구매하 여 중단기적인 한반도 식량수급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연해주에서 생산되는 쌀이 우리 국민의 기호에 맞지 않는 저품질의 품종이나 향후 우 리의 식량부족사태에 대비하여, 우리 국민의 기호에 맞는 품종개발과 시험사업을 정부차원에 서 실시해 주어야하며, 정부에서 연해주지역에 농무관을 파견하여 품종개발 육성과 시험사업 을 적극 실시한다면 21세기의 안정된 식량기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하에서 국가간에 적극적인 협력관계의 모색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들 간에 경제통합과 대화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러시아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경제통합 추이에 대해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의 극동정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상호보완적인 원칙에 입각한 한 러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에 내제한 상호보완성과 수입수요와 수출 능력 측면 에서 양국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양국의 경제관계가 경쟁적 관계에 입각해 있 지 않고 파트너쉽에 입각해 있다. 한편, 한 러시아간 교역 및 투자관계가 부단히 발전하고 있고, 과학 기술 분야의 협력 또한 큰 성과를 거두고 있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쌍무적인 상호협력은 시작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쌍무적 협력관계를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유익한 공동

94 의 활동영역을 추구하고, 상호협력을 위한 여건을 적극 조성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과의 농업분야 협력은 안정적인 농산물 수입원의 확보라는 측면에 중점을 두 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농업자원이 풍부하고 농업생산기술 또한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경영기술과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협력을 필 요로 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에 대한 농업부문 투자 및 교역 활성화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볼 때 긍정적으 로 평가된다. 이러한 결과는 아래의 3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및 제3국의 투자가 변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러시아의 현재 저생산성은 구소련방의 해체, 경제위기 등에 의한 외생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오늘날 저생산성은 어느 수준까지는 회복 가능한 잠재성을 지닌 곳이다. 둘째, 높은 잠재성을 지닌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극동러시아는 우리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잠재적인 소비시장이다. 셋째,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높은 수준의 물류비도 개선 가 능성이 있다. 경의선 철로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을 상정하고 이의 물류비 절감효 과를 분석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보고에 의하면 해상운송보다 약 30% 이상의 물류비 절감효과가 있음을 전망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사항이 최종적으로 개선될 시점은 장기적이다. 따라서 극동지역 농업부문 투자 진출은 장기적 계획하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며, 사업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는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경제회복과 법제도의 정비 등을 통한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역 및 투 자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제도적 인프라의 구축이 또한 중요하다. <참고문헌> 1. 강명구ㆍ임채완 외 4인(2006). 고려인 기업 및 자영업 실태. 북코리아 2. 강명구(2004), 동북아경제 활성화를 위한 극동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효율적 투자 방안, 한몽경제연구 13집 3. 강명구(2002). 동북아 지역의 효율적인 투자협력에 관한 연구(연해주를 중심으로), 한몽 경제연구 제9집 4. 강명구ㆍ윤재희(2003). 극동러시아의 경제, 선학사 5. 강명구ㆍ윤재희(2005). 중앙아시아 및 극동러시아의 경제, 선학사 6.김민철(2008).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과 한국의 선택: 극동지역 농업진출 현황과 가 능성, KIEP 7. 남혜경ㆍ강명구 외 4인(2005). 고려인 인구이동과 경제 환경, 집문당 8. 신범식 외 12인(2006). 21세기 유라시아의 도전과 국제관계, 도서출판 한울 9.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2001). 북방국가에 대한 해외농업 진출방안 연구, 농업진흥청 10. 이세웅(1999). 러시아 투자환경론, 두남 11. 한종만(2002). 한 러 경제협력과 시베리아 극동러시아, 한시베리아학보 4집

95 12. Blasi, J. R., Maya Krunova and Douglas Kruse, Kremlin Capitalism Privatizing The Economy, Cornell University Press, D. Yergin and T. Gustafson, Russia 2010 and what it mean for the world, Nicholas Brealey Pub, London, V. A. Ubarov, 극동 농업의 개혁 방향,

96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김 영 웅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한국의 해외무역진흥공사가 21개 국에서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국에 서 두 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점 만점의 평가에서 러시아는 4.06 점을 받아 4.11점을 받은 인도 다음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42%의 영 국인들이 한국의 위치를 전혀 모르며, 한국이 위치한 장소를 동북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지칭 하였다. 43%의 카나다인들은 한국어가 중국어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인 들의 98%가 한국의 위치를 알며, 한국어가 독자적인 언어임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 시민들은 전체적으로 러시아를 합당하게 대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를 자신을 위협할 어떤 위험의 원천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수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47.1%가 러시아를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다(자신의 군사-정치적 동맹인 미국에 대해서는 51.1%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특히 무용(발레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무용 예술에서), 음악, 문학, 회화, 연극예 술 등의 영역에서 러시아 교육과 문화의 높은 수준이 인정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의 영화는 한국에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한국인들은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와 소련의 노래들( 까튜샤, 오치 쵸르늬예(О чи черные), 모스크바 교외의 저녁 무력 등)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차이코프스 프키와 도스토예프스키, 조금 덜하게 뿌슈킨과 톨스토이를 알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오드리 헵번이 나타샤 로스토바야 역으로 출연했던 미국 영화 전쟁과 평화 를 통해 톨스토이 를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레프 톨스토이를 토스토예프스끼와 비교하 여 이등급의 작가인 양 간주하고 있다. 소련 문학 및 현대 러시아문학은 실제로 한국에 알려 져 있지 않다. 한러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 한국의 여론은 음악가들과 가수 등 상당수의 러시아 공연자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저명한 발레단과 오페라단의 공연 그리고 연극 공연들 을 보게 되었다. 연극 상연은 모두 러시아어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러시아 발레 예술의 선전에는 한국의 유니버설발레단 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에는 1990년대 초부터 키예프 발레단의 거장 비노그라도프(Виноградов)가 예술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모스크바콘세르바토리야, ВГИК, 연극 및 발레 학원 및 학교 등에 많은 수의 한국 학생들 이 공부하러 온다는 사실은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 문화의 높은 수준을 인정한다는 것을 방증

97 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강요된 부정적인 러시아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중들의 의식 속에는 소련 시대의 삶에 대한 많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 남아 있다. 그 당시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소련에서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교육, 의료 서비스, 아파트 뿐만 아니라 음식까지 제공하였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니 이미 1960~70년대에 연금, 통상적인 육체노동자들을 위한 2주 이상 기간 의 유급 휴가 등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들은 그러한 휴 가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에 러시아에서는 주민들의 대다수가 한국에 대해 참으로 혼란스러 운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한국을 낙후된 탈식민지 국가로 간주하였다. 한국의 열성 팬들이 러시아의 운동선수들을 적극 지원하고 후원한 것이 러시아 시민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더구나 1988년 올림픽 전과 올림픽 기간에 소련의 언론과 텔레비젼은 한국에 대한 엄청남 정보들을 보여주었다. 이 대량의 정보들은 소련 사람 들에게 한국의 보통 사람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공업, 건설, 기술, 학문, 문화 및 스포츠 등에 서 한국이 성취해 온 바를 가감 없이 전달하였던 것이다. 지금 이 학술회의 자리에 그 당시 소련 언론단의 일원으로 한국이 달성한 성취와 한국인들 의 소련 선수들에 대한 태도를 객관적이고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데 종사한 당사자가 참석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줴빈(А. З. Жебин)이 바로 그 사람으로서 지금 러시아연방 과학아카데 미 극동연구소 한국학 센터의 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이 달성한 성취와 한국인들의 소 련에 대한 태도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주인공은 소련에서 온 최초의 학술 연구소 대표단입니다. 이 최초의 대표단을 이끌고 오신 분은 현재 러시아연방 학술원회원, 아 카데믹 미하일 티타렌코 원장님이십니다. 그렇게 하여 소련과 러시아의 지도자들과 보통 시민 들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신 분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꼭 마찬가지로 나는 러시아의 학자들과 최초로 학술 접촉을 이룬 한양 대학교의 지도자와 학자들의 역할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특히 러시아학술원 극동연구소의 명 예박사인시며 한양대학교 설립자이자 전 총장이셨던, 고 김연준 이사장님, 그 뜻의 계승자이신 한양대학교 김종량 총장님, 유세희 교수님, 그리고 한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 형 성에 기여한 많은 다른 학자들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태도는 한국인들의 러시아인들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다. 과거에 러시아인들에 대한 정보는 주로 서방 국가들의 책과 언론들로부터 획득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 정보 획득의 원천으로부터 기원한 모든 부정적인 결과들을 수반하였다. 한러 양국간의 외 교관계의 수립 후에 러시아인들의 성격적 특징을 밝히는 한국 저자들의 작업이 등장하게 되었 고, 역시 서방 작가들의 작업 역시 많이 출판되었다. 서방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역시 어느 정 도 러시아인들의 성격과 심리적 특징들을 개관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작업들 가운데 나는 2005년 서울에서 한국어로 출판된, 박명룡과 박범이골의 책 보드카, 체홉 그리고 백조의 호수 를 주목하고자 한다. 박명룡은 현재 모스크바에 살고 있 으며, 러시아 여성(Нина Каишаури)과 결혼하였는데 1990년대 모스크바에서 보낸 자기 가족 의 경험을 윤색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박명룡은 자신의 책에 제사( 題 詞 )로서 튜트체

98 프(Ф. Тютчев)의 유명한 시, 머리론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는 러시아 시민들의 많은 긍정적인 특성들을 주목하고 있다. 러시 아에서 가정교육은 개인의 정신적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간주하면서, 특히 러시아 부모 들의 높은 수준의 책임의식, 자녀들에 대한 관심에 주의를 집중한다. 가정 교육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시와 동화를 읽어 주기, 유치원에서 시 읽어 주기 등의 자세한 사항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한 읽기와 들려주기는 아이들의 기억을 개발하고, 단어의 리듬을 잡아주며, 기억 력을 강화하고, 책과 독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명룡은 러시아 문화와 문 학의 높은 발전 수준이 가능했던 이유를 상당 부분 이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중간수준의 작업은 러시아의 2등급 작가의 작업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러시아인들의 호의적인 성격, 한국인을 존중하는 태도 등을 지적한다. 그런 러 시아인들의 태도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과의 사귄 경험에서 느낀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자연히, 모든 작가들이 러시아에서 음용되는 엄청난 술의 량에 대해 경계의 지적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러시아 시민의 한국인들에 대한 태도는 호의적이다. 대부분, 이것은 고려인(러시아화한 한국 인)에 대해 형성된 긍정적인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인들은 자동적으로 고려 인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 할을 수행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대단한 경제성장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종류의 대재앙에 대 한 것이 아니라면, 러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자료들을 찾기는 어렵다. 필자는 한국의 대내 정책이나 대외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성격의 자료들을 언론에서나 인 터넷 대중매체들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성격의 자료들을 접하고 한다.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자료들은 주로 소위 자유주의적 언론사들의 필진들이 작성한 것들이다. 때마침, 이러한 자유주의 언론에서 한국인들을 부정적인 분위기로 재현하려는 명백하면서도 은밀한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시도는 주로 해당 언론인들의 교양이 부족한데서 기인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의 개고기를 식용을 언급하는 것 등이다. 러시아의 보통 시민 들은 한국의 문학, 민속, 음악, 저명한 작가, 운동선수, 음악가들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와의 작업, 자신의 역사적 조국의 시민들과의 작업도 그리고 마 찬가지로 거주국가의 시민들과의 작업도 한 국가 이미지의 구성 부분이 된다. 국가이익의 옹 호, 곤경에 처한 자국 시민의 구호 등은 아무리 시간과 자원이 소요된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맡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일례로 푸틴 대통령이 오만에서 재판을 받은 러시아 시민들이 러 시아에서 형기를 마칠 수 있도록 데려 올 목적으로 오만의 통치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 다는 것을 지목할 수 있다. 더 최근의 예를 들자면, 중국의 서부 지방에서 실종된 러시아인 관광객들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의 비상대책부와 군대의 강력한 무력이 가동되었던 일을 상기 할 수 있다. 다시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미국은 아직까지도 한국전쟁 동안에 북한에서 사망 한 미군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유해 수색을 촉진하면서 발견된 유 해들은 미국으로 가져가 군인의 예를 갖추어 국립묘지에 매장한다

99 2007년 여름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힌 자국 전도사들을 구출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의 각별히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자국의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한국 의 첩보기관이 자신의 귀중한 요원 한사람과 지역에 거주하는 현지 거주민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국 문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특수작전기관 종사자들이 정당하게 평가하였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런 정도의 전문 요원을 훈육하고 실전에 배치하는 데는 장기간의 다단계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 국가가 그런 조 치를 취할 만큼 인간의 생명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다. 이 사례는 참으로 자국 시민을 보호하 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경우이다. 물론 필자는 한국이 어디에서나 그렇데 일관되게 그렇게 하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와 관련하여 소말리아 연안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자국 선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반 년 동안 한국 정부가 보인 이상할 정도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납치된 한국 선원들은 미국의 해군함대의 도움을 받아 2007년 11월에야 풀려났다. 여러 나라들에서 다른 나라에 대해 대중 매체에서, 교과서에서 그리고 공식적인 국영 출판 사들과 언설 등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 혹은 관념을 조명하는 관점에서 모두 정상적이라 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러시아의 교육부가 중등학교의 교과서로서 추천한 민속학 교과서에서 한국 항목의 핵심적인 기술( 記 述 )은 70년 전의 한국의 발전 수준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 의 농업 부문에서 아직도 사람들의 근력 이용률이 매우 높다. 제일 먼저 들판에 물을 공급하 는 데 인력에 의존한다. 사람의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이다. 동력은 제한적으로 이용되 고 있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언급은 해당 교과서의 집필 시점에 전 세계적으로 11번째의 공 업 강국의 위상을 가진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 을 이용하고 있었으며(지금은 95%), 아마도 취학 이전의 아동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주민 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처럼 사실과 동떨어진 무지하고 심지어 모욕적인 묘사를 초중등 교과서에 싣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예를 들면, 한국관광공사(이것은 국가기관이다)가 외국인들을 위해 매년 발간하는 한국 핸드북(Handbook of Korea) 란 책에 왜 러시아의 섬 사할린이 일본의 영토로 묘사 되어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사할린 섬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 러시아는 다른 색으로 표시됨). 언론에서, 학술적인 문헌들에서,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으로, 초중등학교의 교과서에서 러시 아의 역사 그리고 한-러 양국 관계의 많은 중요한 순간들을 해석하고 해명하는 작업은 한국 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그 문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까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해석, 일본의 압제로부터 한반도가 해방되는 과정에서, 년 한국전쟁에서 소련의 역할 에 대한 해석, 그리고 역시 21세기에 러시아의 발전 경향에 대한 해석 등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저명한 소련연구 학자인 김학준의 작업 러시아혁명사 (2005년 간)을 보면, 100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서 많은 부분이 레인의 추억에 할애되고(100쪽 이상) 있는데

100 레닌 본인의 작업에 대해서는 단지 한 번의 인용이 있을 뿐이다. 이 작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트로쯔끼는 그의 세 가지 저작이 인용되는 경의를 받고 있다. 여담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유 감스럽게도 저자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러시아 혁명의 문제에 대한 소련 및 러시아 저자들의 작업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알고 있지 못하다. 특정한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해당 나라의 학 술적ㆍ사회적 문헌 및 학자들의 평가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그 나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러시아와 북한의 교육 문제 관련 저명한 연구자인 신효숙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러시아에서 개혁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교과서 구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 의 기술에 대해 중대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한국사 기술이 훨씬 더 객관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에서는 교과서들에서 러시아에 대한 시각이나 지식에서 거의 어떤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효숙 박사는 한국에서 고착된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러시아사와 현대 러시아의 상황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교과서와 대중 매체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한국의 교과서 저자들은 모든 시대의 러시아 대외정책을 예외 없이 공격적이고, 팽창적이 며, 식민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의 교과서들은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 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나라들이 현재의 국경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잊고 있다. 그루지야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를 제외하고는 2008년 8월 8일의 국경 형태 로 역사에서 단일한 정치적ㆍ문화적 완결체, 즉 국가로서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그루지야는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영토적-정치적 공동체이다: 카헤찌네쯔, 민그렐, 헤브수르, 스반, 아드 자레쯔, 아브하즈, 오세틴, 아르먄, 그리스, 유대인, 러시아인 및 다른 민족들 등. 그루지야의 영토적 완전성과 동일성은 제정러시아와 소련에 대한 복속을 통해 그리고 하나의 단일한 지방 으로서 그 속에 편입됨으로써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루지야라는 단일한 지방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대한 정치적 복종을 겸비한 것이었다. 이 민족들 중에서 몇 몇은 러시아 국가의 한 구성 부분으로 편입되기 위한 독자적인 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하였다. 개별 민족의 짜르, 공후 그리고 예를 들어 아브하지야와 밍그렐 공후의 경우에는 포로로 잡힌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협정 체결의 주체로 나섰다. 18세기에 그루지야는 정확히 말해 카르틸리야 짜르 가문(짜르 카르틸리이스키와 카헨틴스키 이라클리이)은 당시 페 르시아에 예속된 분봉국의 지위에 있었는데 세 차례나 러시아에 복속해 줄 것을 요청하였던 바 있다. 예카테리나2세는 두 차례나 이를 거절하였는데, 동 영토를 복속함으로써 러시아가 과잉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2세를 설득하기 위해 합병을 주장하 는 이들은, 그 곳에는 러시아인들과 동일한 종교, 즉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루 지야가 러시아로 편입되지 않은면 얼마 못가 페르시아나 투르크에 복속될 것이고, 그루지야 민족은 종족적 단위로서 사라져 벌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바, 이 이야기를 듣고 여제는 마침 내 그루지야의 러시아 편입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그루지야 측의 요청에 따라 그루지야의 러 시아 병합을 규정한 게오그리예프조약(1783년 8월 4일)에서는 러시아의 의무가 포함되어 있

101 다. 러시아의 의무는 페르시아와 투르크로부터 그루지야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4문의 대포 를 장비한 2개 보병 대대를 보내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군대가 주둔함으로써 그루지야는 남쪽 으로부터의 공격적 도발로부터 영원히 벗어났다. 게오그리예프조약에 따라, 그루지야인들은 러 시아 영토 내에서 교역ㆍ이동ㆍ정주하는 권리들에 있어서 러시아인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 다. 그건 그렇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짜르 이라클리이11세는 동 지역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짜르 이메레티야 솔로몬과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할 의무가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동쪽 지방은 투르크에게 2세기 동안 압제를 받았는데, 러시아가 압력을 가하 여 투르크가 이 지방의 자치권을 복원하는 데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나중에 아르메니아 동부 지방은 스스로 러시아에 편입될 것을 요청하였다. 투르크의 구성 부분으로 그대로 남아 있던 아르메니아 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1915년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 시 투르크에서 150만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학살당했다. 유럽연합, 그리고 지금은 미국 의회 가 이 사건을 투르크가 저지른 대량 학살의 만행으로 규정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날의 영토 경계에서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와 소련의 도움 덕분에 생겨났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을 상기하고 싶다. 키예프 루시(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루 시임을 주목할 것) 이후에 오늘날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소공국들이 난립하였다. 소공국들은 수세기 동안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투르크에 예속된 크림한국 등의 일부분이었다. 1654년 러시아와의 합병 조약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년에 오늘날의 도네츠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하리코프 지방들 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지방들은 1917년 혁명 이전에는 제정러시아 영토의 일 부분이었으며, 러시아인들이 여기에 거주하였다. 1939년이 되어서야 갈리찌야(이바-프란코프 지방)가, 1946년에 카르파토루시공화국(오늘날 의 자카르파트 지방)이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동 공화국의 주민과 지배층이 러시 아와의 합병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1954년에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쵸 프가 자의적으로 크림을 우크라이나공화국에 편입하였다. 1991년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 의공화국의 영토는 1654년 러시아에 복속되던 당시 소러시아 영토의 4배가 넘을만큼 확장되 었다. 어원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크라이나란 명칭은 폴란드어 우크라이나, 즉 변경 이란 말로부터 유래하였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의 동쪽 변경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과서들에서는 한반도의 해방과정에서 소련군의 역할에 대해 상기하고 있 지 않다. 다만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언급 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제2판이 나온 500쪽 분량에 달하는, 한국 저자 김경묵의 러시아 사 이야기 에는 소련은 대일전에 참여해 달라는 미국의 부탁을 거절했으며, 미국이 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다음에야 비로소 극동지역에서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하여 소련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채 만주와 한반도 북쪽을 장악했다 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의 저자들에게는 1945년 일본 정부가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지 않는

102 대신에 소련에 쿠릴열도뿐만 아니라 홋카이도를 양도하겠으며, 그 대신에 한반도를 일본의 몫 으로 그대로 남겨 달라고 제안했다는 알고 있는가? 혹은 얄타회담 전에 카이로에서 장개석이 루즈벨트와 만나 한반도가 중국의 통제 하에 들어오도록 협의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또 다른 고통스러운 문제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년 동안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 스탈린은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설득에 넘어가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 다. 동시에 러시아의 저자들은 한국전쟁은 대내외적 성격을 띤 복합적 원인들로 발발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측 저자들은 전쟁 발발의 모든 책임을 외부 세력, 특히 소련에 전가함으로써 국내적 원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 전시관에는 손으로 쓴 러시아어 육필문서( 手 稿 ) 하나가 전시되 어 있다. 이 문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으며,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러시아어로 된 보 안기관의 명령 이라고 되어 있다. 추측건대, 이 전시를 조직한 사람들은, 이 문서는 해당 명령 이 소련군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며, 소련군이 직접적으로 한반도 군사작전에 참여하 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 양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당 명령은 서울 지역의 적 들의 군사력 상황에 대해 정보 수집을 하라는 것으로 군 참모장 그리고 군보안기관의 대장이 내린 명령(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대인지가 불분명함)이라는 데, 명령권자의 성도 군부대 내 의 직위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한 문서이다. 실제로 이것은 첩보활동을 나간 2사단의 본 부에 대해 (어떤 군인지 불명확한) 군 참모장과 군보안기관 대장이 내린 명령의 번역이다. 이 문서의 하단에는 육필로 중국어로부터 번역(!) 최 일리야 라고 쓰여 있다. 정말, 이상하지 않 은가? 언제부터 중국어로부터 러시아어로 번역된 문서를 소련군에 속하는 문서로 사칭( 詐 稱 ) 할 수 있는가. 번역가가 쓴 육필로 번역된 문서를 어떻게 러시아어로 쓰여진 명령이라고 사칭 할 수 있는가? 민족에 상관없이 러시아의 시민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의 대 중 매체들이 미국의 입장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들이 미국의 동료 언론인들이 쓴 것을 모두 진실이라고 단순히 수용하고 이것을 한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러시아의 대외정책, 국내정 치적 상황에 대한 평가와 관련되는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 국내 문제 평가와 관련하여 일례를 들면,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한국의 대중 매체들은 단순 히 미국 혹은 영국 언론인들의 말을 빌어 평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 언론인들 이 내린 반러시아적 결론 역시 함께 부가한다. 또 다른 예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 수 있 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자신문으로서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Korea Herald>는 러시 아연방 국가두마 선거의 결론을 상당히 성급하고 반러시아적 기고문을 실어 평가하였다. 이 기고문들의 저자는 미국 저자 윌리엄 파파(2007년 12월 4일)와 엔더스 에슬룬드(2007년 12 월 6일, 15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남오세티아에 대한 그루지야의 침략과 러시아의 대응 조치들을 둘러싼 상황 을 한국의 언론들이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가를 예로 들어보자. 8월 8일 하루 종일 한국의 대

103 중매체들은 그루지야 군대의 남오세티야 침공에 대해 단 하나의 정보도 전달하지 않았다. 8월 9일 미국 방송 CNN의 자료들을 중계하기 시작하였다. 통신사 <연합뉴스>는 8월 12일 다음 과 같은 해설이 달린 사진을 배포하였다: 12일 오전 그루지야 고리시와 트빌리시를 잇는 도 로에서 러시아군 헬기의 공격을 받아 전파된 그루지야 민간인 자동차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길가에 서 있는 것은 궤멸된 보병 전투차량이라는 사 실이다. 아직도 그러한 정보왜곡을 고안할 필요가 있는가! 군복부를 하지 않은 여성들은 군사 장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런 방식으로 속일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한 국 성인 남성들은 군 복무를 마쳤으며, 그들은 언제나 군사차량과 민간 차량을 구분한 수 있 다. <연합통신>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이용자들로서 누구를 상정하고 있는가? 그런 정 보에 대해 어떤 신뢰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 사진 자료는 <조선일보>의 웹사이트에 다시 등장하였다. 한국에서 러시아의 사건들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가의 예를 들어 보자. 필자는 <조선일보> 와 <Korea Herald>의 기사들을 주의 깊게 추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대부분 의 출판 내용들이 부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전 검찰관 예블로에프를 살해한 수수께끼 같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예블로에프는 갑자기 인권운동 가가 되었으며, 미국에 등록된 웹 사이트를 통해 인구셰티야의 현 대통령 무라트 쟈지코프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저명한 언론인 살해 사건에 대해 보도하였다 %의 러시아 시민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그토록 파렴치한 방법으로 죽였 기 때문에 이 저명한 언론인 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고 예블로에프는 처음에는 인구셰 티야의 초대 대통령 루슬란 아우쉐프를 적극적으로 지지였으나, 그 다음에는 그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후 그는 선거에서 쟈지코프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였으나 얼마 후에는 다시 그에 반 대하여 나섰던 것이다. 미국 대중매체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침묵하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하 는 경향성은 모두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 세계가 미국 국가이익 의 무대가 된 상황에서, 미국 외교의 메시아주의적 증후군은 이런 저런 사건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중적 기준의 적용과 결합되는 것 같다. 미국에 사는 12세 오세티야 소녀가 폭스 뉴 스에 출연하여 벌어진 이야기는 충분히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소녀는, 때마침 8월 7-8일에 인 구쉐티야의 수도 쯔힌발에 있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그루지아 군 대가 공격을 하자 러시아 군인들은 양민들을 구했다고 말했을 때, 진행자는 인터뷰를 중단해 버렸다. 미국 대중매체들의 뒤를 좇아 서유럽의 많은 대중매체들 역시 유사한 정책을 실행하 였다. 예를 들면, 유럽방송연맹의 관할 하에 모든 TV 회사들이 접근 가능한 비데오테이프가 있었는데 그 내용 속에는 그루지야 병사들이 2008년 8월 8일 쯔힌발의 거주지구를 향해 총 격을 가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테이프는 누가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군사적 목표물이 아니라 남오세티아의 양민들을 살상했는지를 논박할 수 없게 증명하고 있다. 서유럽 과 동유럽의 어떤 TV 방송사도, 한 방송사를 예외로 하고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지 않 았다. 왜냐하면 그 전쟁에 대한 진실한 정보는 그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104 비디오를 보여준 한 방송사는 스페인 방송사 RTVE인데 다음과 같이 코멘트를 하였다: 여기 서 보여주는 장면은 러시아 군대가 남오세티야의 수도 쯔힌발에 진입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 다. 결과적으로 이 방송사는 마치 러시아 병사들이 쯔힌발의 주택들에 총기를 난사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어허, 냉소주의의 극치! 꼼짝 할 수 없게 된 그 방송사는 어쩔 수 없이 사죄하 였다. 미국의 메시아니즘에 대해서라면, 전형이 여기 있다. 2007년에 작성된 미국국가보안회의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미국 정부는 제일 먼저 몽골의 알콜 중독이 워싱톤 의 국가이익을 위협하는 주된 요소들 중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몽골은 어디 있으 며, 미국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흥미롭게도, 한국의 섹스 산업의 매출이 14조원에 달한다 는 것 역시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가? 여러 나라들의 언론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를 제공하고, 미국발 정보 원천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도록 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군사-정치 동맹은 군사-정치 동맹으로서 족한 것이 지 모든 일에서 자신의 동맹자의 입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단지 한 국가 만을 지향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및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행보라고 간주한다. 한국에게 중국은 많은 점들에서 다각적인 전략적 동반자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현재까지 한국에게 러시아는, 보건대, 그냥 다각적인 동반자인 것 같다. 러시아는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로서 밀접한 관계를 수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남오세티아 를 그루지야가 침공한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이 가진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 을 견지하고 러시아에 대해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즈베키스탄 의 안디잔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유혈 시위 진압 사건: 역자)에서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주 도하에 서방 국가들이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합창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국 제문제들에 대한 이러한 독자적인 입장의 견지는 한국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오고 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양국 외교부간 협의의 정례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카리모프 대통 령이 참석하였다는 사실, 2008년 봄 한승수 국무총리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그리고 다가오는 2009년에 에너지외교의 일환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예정 등은 바로 그 점 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러 양국의 상호 이미지 증진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제안될 수 있다: -러시아와 한국의 교육부가 상응하는 역사 및 국가정보 교과서들에서 해당 국가의 항목 집 필을 폭넓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뿐만이 아니라 특정 국가에 대한 전문가 혹은 전문 연구자 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양국에서 상호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동 전문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105 -러시아의 역사, 철학, 종교, 학술 및 예술 문학에 대한 번역 작업의 량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러시아어로의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으로 러시아의 다큐 필름과 러시아의 문화 등을 보여 줄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국가 기관과 조직의 참여를 포함하여, 대등한 조건에서 양국에서 다양한 전시회, 예술 회 화 순회 전시회, 주제에 따른 영화 및 연극 축제,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연예인들의 공연과 방문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예를 따라 국제교류를 위한 러시아펀드의 창설을 전제하고 양국 간에 학술 교류를 증진하는 것이다. 러시아펀드는 러시아 문제와 역사를 탐구하는 외국의 연구작업을 지원할 수 있다. 또 러시아펀드는 한국을 포함하여 해외 전문가들을 러시아로 연구 목적의 초청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한러관계사의 핵심 문제들에 관하여 학자, 교과서 저자, 언론인 등이 공동의 단일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공동 연구와 국제학술회의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잠정적으로 5년의 기간을 정하여 이 동안에 러시아와 한국의 교과서에서 양국관계사의 기 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석을 통일하기 위하여 양자위원회를 조직하고, 정례적으로 이러한 문 제들에 대해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러시아의 한인 디아스포라 문제에 대하여 필수적인 연구진을 구성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한인 디아스포라의 객관적인 역사를 모든 정보 채널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10년에 한 번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해 를 러시아에서는 한국의 해 를 정하여 이를 기념하 는 것이다. 이 행사의 수행을 위해 조직위원회의 의장으로 총리를 임명하면 될 것이다. 최초 의 한러 양국의 해 는 러시아연방과 대한민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20주년 기념 해를 지정하 면 될 것이다. 즉 첫 번째는 2010년과 2011년이 차례로 지정되며, 두 번째는 10년 후인 2020년과 2021년에 양국의 해를 기념하면 될 것이다. 번역: 강봉구(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교수)

106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K. V. 아스몰로프 (러시아과학원 극동문제연구소) 문화간 소통에 있어 발생하는 문제들은 많은 경우 이미 스테레오 타입이 되어버린 어떤 국 가의 국민 혹은 민족의 이미지와 관련된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 일반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갖는 이러한 이미지는 대중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들이 어떤 한 다른 나라 사람 의 특정 행동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바탕이 된다. 이 때 이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은 자주 의식 의 깊은 곳에 내재하며,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고려해 볼 때 언제나 고정적이라 할 수 도 없다. 한 나라의 국민 뿐 아니라 국가 자체에 대해서도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이 된 이미지가 존재 한다. 이 때 국민의 이미지와 국가의 이미지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 정된 상들은 분명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갖는 표상을 반영하는 소위 «정신적 지 형도»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러시아와 한국 정부의 관계 개선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정치 경제적 측 면에서의 사안들만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에 대한 교육이나 전문 지식이 없는 러시 아인들 개개인들이 한국과 한국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역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러한 이유이다. 따라서 한 국가와 그 국민들이 일률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경우(그것이 실제로 그러하 건 아니건 간에) 바로 그러한 평가가 그들과 관련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많은 영향 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중 매체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더 정확히 말해서 어떤 나라 들의 경우는 대중 매체를 통해 그 나라의 삶을 구성하는 각 영역들이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반 면,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매스미디어에서 한국의 삶이 다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 며, 다루어진다 해도 비상사태이거나 아주 특수한 일부 사안에 국한되어 있다. 가령 요즘 한 국이 언론에 등장하는 경우는 주로 핵무기와 관련된 주제가 다루어질 때이거나, 그렇지 않으

107 면 자연재해에 대한 보도 혹은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국가 수장의 활동 등에 관 한 것이 고작이다. 러시아인들이 접하게 되는 한국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은 «직접 한국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다. 그것은 한국의 영화이거나, 한국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홍보, 혹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에 대한 «바른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측 주관 하에 러시아 내부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들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북한의 경우 또한 러시아 대중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 는 대부분 러시아인이나 외국인들이 쓴 «이차적인» 글들을 통해 축적된다. 직접 북한을 접하 고 쓴 글(가령 직접 북한을 방문한 사람이 쓴 글과 같은 것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직접 북한을 목도한 이들이 쓴 글들조차도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머리 속에 구축된 북한에 대한 상이 존재한다. 그들 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더 많은 경우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이미 그려놓은 지형도에 부합하는 것들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들은 북한을 창을 통해서가 아니라 거울을 통해서 바라본다. 북한을 보러 가면서 그들은 그곳에서 50-60년 전 소연방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 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자신들이 유럽에 속해 있음을 기뻐하면 서 북한의 빈곤과 개인숭배만을 주목한다. 이로써 마침내 대중의 머리 속에는 도저히 그 존재 가 용납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외톨이 국가의 형상이 그려지게 된다. 반면 이데올로기적으로 좌파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과거의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젖어 북한 사회 속에서 사회 주의의 이상적인 섬의 모습이나 여전히 잘 보존된 정신성의 흔적들을 보려 한다. 이러한 경향 외에 세 번째 부류도 있다. 그들이 보는 북한의 형상의 경우는 비록 그것이 «스파이 게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객관성을 지키려 한다. 이 때 이러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르포의 대부분은 오히려 개관적이면서도 우호적이다. 북한의 국가적 문제들에 대한 이들의 묘사에는 이해와 약간의 동정심이 더해지며, 개인숭배 전통이라는 일종의 풍토병 역시 지역 전통의 일부로 그려진다. 특히 대도시에 살아본 적이 없는 러시아인들의 경우 북한을 묘 사하는 데 있어 스노비즘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 때로 훌륭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좋은 사진들 밑에 자신들이 본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해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정보적인 차원에서의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때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북한에 관한 모든 정보들, 그중에서도 특히 적대적인 프로파간다 성격의 정보나 탈북자 들의 증언들이 그 어떤 비평이나 분석의 시도조차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108 다. 그 결과 필자는 수 차례 북한에 관한 전혀 터무니 없는 소문들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을 겪기도 하였다. 이 때 그러한 소문들의 대부분은 스탈린 시기 러시아에 관한 신화화된 표상들 에 의거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스탈린과 베리아에 대한 우리의 «전설»로부터 차용된 행동 방 식이나 행적들의 요소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형상 속에 결합되었다. 그뿐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러시아에는 많은 부수가 발매되어 대중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한국학 분야에 대한 책이 없다. Vs. 오브취니코프가 쓴 일본에 관한 책이 그러 했던 것처럼 대중의 인식 속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강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책이 존재하지 않 는 것이다. A. 란코프의 책이 그러한 책에 가깝지만 아직까지 오브취니코프의 책과 같은 정도 에 이르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모든 상화들을 고려하여 필자는 «우리가 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 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live journal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다름 아닌 live journal 사이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글의 필자 스스로 인 터넷 다이어리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국학을 알리는 일을 해 오 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이유로는 live journal의 평균 이용자들이 충분히 표본으로서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략 25-40세 사이의 대학교육을 받은 이 들로서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매일 몇 시간씩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 며 인터넷을 소통의 장 혹은 뉴스를 접하는 주된 매체로 이용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들이 전반적으로 갖추고 있는 지적 수준을 고려한 것이다. 설문조사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충분히 홍보되었다(이는 필자를 알고 있는 이들만이 설문에 답하는 것과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설문 참여자들은 «연상 게임»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최소한의 생각해 낼 시간을 갖은 후 «한국» 혹은 «한국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대답으로 그들이 연상할 수 있는 5개의 단어 혹은 개념이나 이미지들을 말하는 게임이 다. 설문에는 300명 가량이 참여하였으며 이는 표본으로 충분히 대표성을 지니는 숫자이다(가 령 100명 이하의 사람들이 참여한 설문조사는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설문 참여자들의 반이 좀 넘는 이들만이 5개의 단어를 열거할 수 있었지만(이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대중의 의식 속 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연상해내는 것이 쉽지 않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어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상 당히 흥미로운 일반적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의 거의 대부분은 설문에 등장한 단어들의 종류와 빈도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

109 다. 설문의 답으로 나온 단어들은 필자에 의해 임의적으로 «인물», «특성», «사건» 등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한국> 인물/개인: 김일성이 49회, 김정일 30회, 영화감독 김기덕이 10회, 문학 주인공인 홍길동이7 회 언급되었으며,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과 박정희가 각각 2회 등장하였다. 홍길동이 의외 로 여러 차례 언급된 것은 문학작품의 인기라기보다는 1986년도에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 홍길동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 영화는 러시아에서 상연되었으며, 이는 러시아 관 객들에게 있어서 동양의 무술이 등장하는 최초의 극동지역 영화들 중 하나였다. 한국인이 아닌 이들 중에서는 란코프가 1회 그리고 필자가 13회 언급되었다. 필자의 이름이 많이 언 급된 것은 필자가 유명해서라기 보다 일부 설문참여자들에게 한국이란 곧 «콘슨탄틴 아스몰 로프가 하고 있는 어떤 일»과 동일시될 정도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슬픈 현실을 증명한 다. «한국»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연상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단이나 이로 인한 긴장 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49번이나 나왔으며 이중 20번의 답은 년의 한국 전쟁을 가리키는 것들이었으며(«미국과의 전쟁»이라는 어구 역시 여 기에 포함시켰다) 이 중 2회는 러일 전쟁이나 청일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남-북»이라는 단어쌍이 33회 언급되었다. «분단», «분열» 등의 단어가 18회, «38선»이 14회 «비무장지대»가 1회 언급되었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독자적으로 언급된 것도 22회에 이르렀으며 남한이 14회였다. 그러나 대개의 응답자는 «남과 북»을 한 쌍으로 묶어 응답하거나 국가의 분단 사실을 언급하였다. 남과 북을 각각 개별적으로 언급한 경우도 2번 있었다. 이 때 일반적으로 북한이 더 자주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현상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남한과 관련된 것들이 훨씬 많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남한과 관련된 상징으로는 한국 기업의 이름과 관련된 것들이 지배적이었다. 응답자들은 때로 기업의 이름이 아닌 그들의 구체적인 한 상품명을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대우의 자동차나 삼성의 모니터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응답자가 «삼성(66회)»을 언급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삼성 모 니터에 새겨진 로고가 많은 이용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고 그로 인해 삼성이라는

110 이름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게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재벌 기업들 역시 상당히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현대가 18회였으며 대우 17회, LG 8회, 기아가 3회, 그리고 골드스 타와 롯데가 각각 2회 언급되었다. 재벌이라는 단어도 13번 나왔다. 또한 남한의 자동차(26 회), 전자제품(9회), 생활가전(7회) 등의 언급 역시 눈에 띄었다. 남한과 관련된 또 다른 연상어들 중에는 태권도가 22번 언급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때 태권도라는 단어는 러시아어 표기와 영어식 표기 등 10가지 서로 다른 버전으로 씌어졌 다. 또한 한국 영화(10회), 독특한 디자인의 한국 국기(3회) 등이 언급되었다. 컴퓨터 게임 도 두 종류가 언급되었다. 하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인 리니지(2회)였으며 다른 하나 는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는 스타크래프트였다. 이 두 개임의 이름은 3번 등장했다. 올림 픽이라는 단어 역시 11회 언급되었으며(이는 아마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지칭하는 것으 로 보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역시 3회 언급되었다. 북한과 관련된 연상어로는 «주체»가 43회로 가장 많았다. 이를 제외한 어휘들로는 핵무 기(11), 기아(7), 빈곤(2), 가난(1), 공산주의(6) 등이 있었다. 지리적인 명칭이나 역사와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분석 역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한반도 지도의 형상으로부터 기인하는 «반도»라는 단어가 22회 언급되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러시아어를 직역할 경우는 «아침의 신선함의 나라»)가 17회, «아시아의 호랑이»로서의 한국이 5회 등장하였다. 응답자 중 9명이 «한국»이라는 단어로부터 «동양»을 연상하였고 8 명이 «아시아», 5명이 «일본»을 2명이 «일제 식민지»를 언급하였다. 마지막 연상어의 경우 는 안티테제적 관계로 이해될 수 있거나(이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자주 «평화»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일본의 한국 역사에 대한 개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형 과 관계해서는 13명이 «산»을 3명이 «바다»와 «안개»라는 단어를 연상하였으며 한국의 자 연의 아름다움이나 식생의 특성을 언급한 응답자들도 다수 있었다. 도시들 중에는 서울이 23회로 가장 많았고 평양이 8회로 그 뒤를 이었다. 아름다운 인천 공항을 언급한 경우가 3회였으며, 인천이라 대답한 응답자도 1명 있었다. 3명은 인천의 옛 이름인 제물포를 기억하기도 했다. 이는 응답자들이 러일 전쟁과 당시 전함 «바략»호의 공 로를 기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산이 3회, 일본과의 영토분쟁으로 알려져 있 는 독도가 4회 언급되었다. 광주(1980년의 광주항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와 만경대(김 일성이 태어난 곳)가 또한 각각 2회 언급되었다.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단어들 중에서는 «조선»이 4번 등장하였고 «거북선»이 3번, «점령» 이라는 단어가 5번 등장하였다. «독재»라는 단어를 연상한 응답자도 2명 있었다. 또한 «불

111 교»와 «UN»이라는 단어가 각각 3번씩 언급되었다. 이중에는 현 UN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 는 것을 지적한 응답자도 있었다. 문화적인 특성과 관련된 단어 중에는 «한국식 당근 샐러드»(33회)에 관련된 것들이 압도 적으로 많았다. 이 때 응답자들이 지적한 당근샐러드가 정작 한국 음식이 아니며 러시아식 한국 음식이라는 점은 매우 재미있다. «개»라는 단어로부터 «보신탕»이라는 단어에 이르기 까지 개를 먹는 문화에 대한 것도 30회나 되었다. 김치는 17회, 밥이 11회, 한국식 샐러드 5회, 소주(쌀로 된 보드카라는 표현까지 포함하여) 6회,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4회, 라면 일반에 대한 언급이 4회, 파 3회, 오이 2회, 매운 음식이 3회였다. 이제 «한국»이라는 단어가 아닌 «한국인»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연상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자가 이처럼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따로 분리하여 분석하는 것은 대다수의 응답 자들에게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기보다 우선적으로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설문의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언급한 인물은 다름 아 닌 «빅토르 최(27회)»였다(이름은 빠지고 성만 언급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관련되어 그 외 의 인물로는 김일성이 18회, 김정일이 11회, 김이라는 성만 언급된 것이 11회였다. 또한 율 리 김이 9회, 김기덕이 3회, 박이라는 성이 4회 언급되었다(박이라는 성은 M, N, Park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다수의 동일성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중에는 옛 소비에트 시절 영화인 «얘기 좀 합시다, 형제»의 주인공으로서 극중에서 이후 일본인 스 파이로 밝혀지는 한국인 박 역시 포함된다). 박정희와 전도환도 각각 2회 언급되었고 종교 인 «문»이 2회(이는 문선명을 가리키는 것이겠으나 좌익 사상과 방북으로 인해 여러 차례 한국 정부의 탄압을 받은 문익환 목사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등장하였다. 그 외에 도 응답자들이 알고 있는 한국 국적의 다양한 인물들이 16회 언급되었다. 음식문화와 관련된 부분에서 러시아 대중들이 «한국인»이라는 말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연상하는 것은 개를 먹는 습성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를 먹는 습관과 관련 된 여러 단어들이 65번이나 언급되었다! 한국 음식 전반이 언급된 것은 5회였고, 밥이 12 회, 당근 샐러드가 19회, 김치가 10회, 배추 4회, 상추 6회였다. 한국인의 외모와 관련된 어휘들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가는 눈을 지칭하는 표현이 여러 가지 형태로 24회 언급되었으며 작은 키에 대한 지적이 38회 등장하였다. 이러한 작 은 키에 대한 언급은 한국인이 중국인, 베트남인, 일본인들에 비해 비교적 키가 크다는 점

112 을 생각해 볼 때 흥미로운 부분으로서 이는 러시아 대중들의 의식 속에서 한국인이 다른 아 시아인들과 특별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인»이라는 단어로부터 «아시아 인»을 연상한 경우가 9번,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연상한 경우가 7번이라는 것 역시 이를 증 명한다. 한국인의 외모와 관련된 다른 특성들로는 «검은 머리»(4), 굽은 다리(3), «뚱뚱한»(3), «마 른»(2), «예쁜»(4), «못생긴»(3) 등이 있었다. 한국인의 외모에 대한 미적인 평가는 이처럼 대략 좋은 쪽과 나쁜 쪽이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였다. 삶의 방식이나 성격과 관련된 특징들로는 «부지런함»(54)이 큰 차이로 선두를 지켰다. 물 론 이 중에는 «일중독»과 같은 어휘나 한국인들의 지나치게 엄격함에 대한 지적, 성실함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강조하는 것 등의 다소 부정적인 평가 역시 포함되어 있다. 다른 특성들로는 교활함(8), 강직함(12), 다양한 형태의 집단주의(10), 순진무구함(7), 일본인에 대한 증오(6), 예의 바름(5), 자제력(5), 폐쇄적인 성격(5), 교육이 잘 된(2), 빈곤함(7) 등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과 러시아인을 능가할 정도라는 지적도 5번이나 발 견되었다. 한국인들이 대화하기 힘들고 물러서지 않는다는 지적도 2번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인의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 및 높은 군사력 등에 대한 다양한 언급들이 6번 나타 났다. 여기에는 «잘 싸운다» 같은 표현이나 인터넷에 유포된 비디오를 통해 훈련 모습이 공 개된 바 있는 북한 특수부대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특성들도 눈에 띄었다. «공산주의» 혹은 «공산주의자»라는 단어가 9 번 나왔고, 기독교 일반이 4번, 개신교와 불교가 각각 2번 언급되었다. 한국인들에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12번이나 언급되었다. 북한 사람이 따로 언급된 것은 4번이었고(이 때 «북한사람»이라는 단어에서 러시아인들이 자주 연상하는 것은 훈장을 달고 줄을 서서 행군을 하는 모습이었다) «학생»이라는 단어가 나온 경우도 4번 있었다(이는 아마도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남한 학생들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 경우에도 삼성에 대한 언급은 6번이나 되었다. 또한 대우가 2번, 현대가 1번 등장했 다. 다른 기업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자동차가 6회, 태권도가 7회, 다양한 컴퓨터 게 임(컴퓨터 게임이라는 일반적인 표현부터 구체적인 게임의 이름에 이르기까지)이 8번 언급 되었다. «한국인»이라는 배가 7번, 젓가락이 3번 등장했다. 위의 두 설문 모두에서 한국의 발전된 인터넷에 대한 지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문의 결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로부터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연상된

113 단어들은 제외하였다(예를 들어 한국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코레이카»나 «코레이코» 등의 단어). 또한 지나치게 응답자 개인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이해 불가의 연상어들 역 시 제외하였다. 필자는 또한 러시아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한국인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들(анекдо т)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의 단면을 살펴보고자 했으나 이는 성공 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인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당면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 역시 한국의 국내외적 정치적 사건이 아닌 러시아인들을 자극하 는 한 순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위를 차지한 것이 단순히 축구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주최국이었던 한국에게 유리한 심판의 판정 때문이 었다는 여론으로부터 생겨난 풍자적인 이야기의 경우, 그것이 당연히 한국인들의 국민성과 같은 측면에 맞추어져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만들어진 풍자적이 이야기들은 전부 한국인들이 개를 먹는다는 사실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또한 이 때 이러한 풍자적인 이야 기들 속에 묘사된 한국인들의 특성들이라는 것도 부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기 보다 돼지 기름으로 만든 음식인 살로를 좋아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묘사하는 경우와 같 이 중립적이고 우호적인 것들이었다. «우리의 비행사 이시천(Ли Си Цын)이 너희를 격파하였다»와 같은 스타일의 풍자적인 이야기들 또한 한국인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원조나 미국과 싸우는 소련의 군대에 관한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상 한국전쟁 당시 생겨난 것임에도 불구 하고 이러한 줄거리의 이야기들은 이후 계속 변주되면서 베트남전 등에서도 똑같이 회자되 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결론적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지적할 수 있다. 자국에 대해 알리려는 한국 정부의 계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체적으로 러 시아인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 때 이러한 정보의 부족 은(특히 북한의 경우) 자주 다양한 종류의 터무니 없는 풍문들을 통해 상쇄된다. 한반도 전체에 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과 남한은 쉽게 눈에 띄는 그 국가 브 랜드의 총합으로 인지될 뿐이다. 남한의 경우 그것은 발전된 산업 기술과 관련되며, 북한의 경우는 고유의 개인숭배의 잔재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각국의 현실과 정치 상황 을 이해하고 이에 의거하여 각국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정보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114 남한과 북한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더 많은 경우 이들은 동시에 함께 언급된다. 따라서 한국의 분단과 한국 전쟁에 관한 주제는 평균적인 러시아 독자들인 비교 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과 관련되어 특별히 부정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인들은 일반적으로 북 한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북한을 과 거의 소비에트와 연관 지으며, 북한의 유교적 전통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북한의 현실 을 소연방과 관련된 구조로 치환하면서 그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려 한다. 한국인들은 아시아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분리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러시아인들은 한국 인에 대해 말할 때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기 보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염두에 둔다. 러시아 대중이 한국 혹은 한국인을 통해 연상하는 일상과 음식문화에 관련된 많은 요 소들이 실제로 러시아 및 독립국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바로 이 를 증명한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인들에게서의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우호적이며, 따라서 심한 거부감 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국 문화의 단면들조차도 러시아인들은 중립적으로 수용한다. 이러 한 사실은 얼마 전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난 다. 설문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에게서 서로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는 경우는 한국인들 뿐으로 서,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한편으로 한국과 한국인들은 러시아인들에게 증오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인들이 가진 이러한 한국에 대한 표상이란 것이 지나치게 신화화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북한 뿐 아니라 남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결과 현실 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한 정책적 결정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이다. 러시아의 한국 학자들이 보다 열성적으로 러시아 대중의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한국에 대한 정보의 보 급 및 공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번역: 이지연(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115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민 경 현 (고려대학교) 본 연구는 러시아에서 동아시아와 한국에 관한 역사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역사교과서에 서술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의 역사 교육이 어떻게 변화되 었는지를 우선 밝히고, 교과서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사회-경제 체제에 따라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분류하고 이해했던 소비에트 시대의 원칙은 더 이상 러시아에 적용되지 않는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학교 프로그램은 점차 정치적 색채로부터 벗어났고, 국가는 다양성과 다원성의 존중, 관용 그리고 이웃과 이웃국가들을 긍정 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증진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선언했다. 뻬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의 역사교육체제가 변화하는 과정은 대략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시기( )는 소비에트 시대에 존재했던 이전의 중앙집중적인 역사 교육 체제 가 무너지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시기이다. 역사교육분야는 다른 어떤 교과목보다 혼란과 모순이 극심했던 분야이다. 새로운 교과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학교 수업을 멈출 수 없었던 교 육부는 구교과서를 보충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부록을 발행하기도 하고, 대학이 입학시험에서 역사 시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둘째 단계는 1992년 여름 발표된 러시아연방교육법을 시점으로 1996년까지의 시기이다. 러시아연방 교육부는 역사와 사회교육의 발전전략을 현실화하는 목적으로 일련의 지침서들을 준비하여 각 교육 기관에 발송했다. 역사와 사회교육의 개혁을 위한 방법이 1994년 12월 러 시아연방 교육위원회에서 고찰되었다. 러시아연방 교육위원회의 결정에서 이루어진 역사와 사 회교육 발전전략의 기본적인 결론은 1994년 12월 9일 교육기관에서 러시아연방 헌법 연구 에 관한 지침 등과 같은 교육부의 지시에서 구체화되었다. 교육부 문서에서 제시된 과제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실행에 옮겨졌으며, 위에서 언급한 문서들이 역사와 사회 교육 발전전략 의 현실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새로운 역사 교육의 기준이 마련되고, 러시아 역사 교육의 표준적 모델을 위해 국제적인 공동 협력이 시도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시기 러시아연방교육 법을 통해 역사 교육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집중 구조이다. 셋째 단계는 1996년부터 1999년말까지의 시기로서 역사 교육의 표준적 모델을 설정하는데 합의를 모색하고, 역사 교육 분야에서 국제적 협력으로 교육자 진영을 점차적으로 유도하는

116 시기로 특징지울 수 있다. 국제 공동 협력의 예로서 년 사이 소로스 재단에 의해 조직된 프로그램, 년의 유럽위원회에 의해 실현된 프로그램, 년의 유로 클리오라는 역사 교사들과의 공동협력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단계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로서, 1990년대 추진되었던 교육개혁의 결과들에 대한 비판적 재고와 교육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의 시기이다. 이 시기 러시아 교육연합회는 러시 아 교육의 근대화 전략에 대한 토론에 적극 참여했다. 일반적인 교육체계에서 핵심적인 문제 는 새로운 교육구조와 내용의 쇄신을 모색하는 것이다. 교육구조와 관련하여 12년제 교육모델 로 점차적으로 이행한다는 결정도 이 시기 내려졌다. 러시아의 역사 교육 체계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델, 직선적인 방법과 집중적인 방법이 존 재한다. 중등학교 역사 교육의 직선적인 구조는 러시아사와 세계사 교육과정에서 일회적인 교 육을 전제로 한다. 이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전기간 연대기적인 연속성 하에서 고대부터 현 대까지 가장 중요한 과거의 사건들을 습득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표 1>처럼, 소비에트 시기의 전통적인 역사 교육 방법은 직선적 방법이었다. 그 시기엔 그처럼 역사 교과서도, 역 사 교육의 체제도 단일했다. <표 1> 학 년 역사 교과 과정 시 간 소비에트 이야기 고대 세계사 중세사 근대사 ( ) 러시아사 (19세기) 근대사 ( ) 소비에트사 (20세기 초-1936년까지) 소비에트사 (1936-현대까지) 현대세계사 (1939-현대까지) 소비에트 시기 중등학교 역사 교육에서 장기간 행해졌던 직선적 방법에도 장점이 있었다. 우선, 이러한 방법은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발전의 기본적인 단계들을 연속 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중요한 사건들, 뛰어난 인물들, 다양한 현 상들을 통해 풍부하고 폭넓은 과거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또한 직선적 방법은 학생들에게 인과적 관계와 사회운동의 합법칙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역사의 개별적인 시기들을 비 교하여 역사발전의 흐름을 추적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의 단절되지 않는 상호관 계를 확신하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방법은 러시아사와 세계사의 동시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117 그러나 이러한 직선적 방법이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5-8학년 사이에 진행되는 고대사와 중세사 시기에 대한 교과서 자료를, 이에 해당되는 10-13세 어린이들에게 학습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등학교 교과서의 저자들과 교사들은 고대와 중세사의 내용을 최대한 단순화해야 했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내용들을 제거하고 사회, 경제, 정치적 주 제 중에서 초보적인 내용만으로 제한해야 했다. 동시에 이러한 구조는 역사 교육에서 점차적 인 정보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산만한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선적 구 조는 학생들이 졸업하는 시기, 러시아사와 세계사를 현대 분야까지 교육받았을 때에 비로소 온전한 세계관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 기존의 역사 교육 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선 문제시된 것 은 기존의 역사 교육이 학생들에게 과거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을 형성시켜 주지 못하고, 러시 아사를 항상 유럽사의 일부로서 인식하게 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러시아사와 세계사 교육과정 에서 민중의 역사가 계급투쟁사로 변질되었음이 지적되었다. 셋째는 역사 교육과정의 연대기 적 원칙이 갖고 있는 자의성과 모순성이다. 넷째는 각 지역과 민족에 대한 지역적, 민족적 특 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연방 정부가 교과서 프로그램과 교과서를 독점했다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부 극복하기 위해 1992년에 중등학교 역사 교육에 제시된 것이 집중 구조이다. 이전 시기의 문제점들을 단일화에서 찾은 1992년 러시아연방교육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탈중앙화였다. 이제 러시아의 역사 교육은 교과서도 다양해졌고 러시아연방교육법이 제시한 집중적 시스템도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다. 교과서는 개별 학교의 역사 교사가 선정 하고, 집중적 시스템 중의 한 방법은 개별 학교의 교장이 선택하도록 했다. 집중 구조 통합과정 러시아와 세계 5학년 고대사 6학년 러시아와 세계의 중세사 7학년 러시아와 세계의 근대사 8학년 러시아와 세계의 근대사 9학년 러시아와 세계의 현대사 비전문 학교 5-9학년 분리과정 러시아사와 세계사 5학년 고대사 6학년 중세사(15세기 말까지) 조국사(17세기까지) 7학년 근대사 (15-19세기말과 20세기 초) 8학년 조국사(20세기 초까지) 9학년 현대사(20세기) 조국사(20세기) 10-11학년 인문학교 고대부터 근대까지 러시아와 세계의 역사 러시아문명 세계문명사

118 20세기 러시아와 세계의 역사 변형과정: 세계문화사 종교와 무신론의 역사 세계종교 세계문화사에서 중세 루시 20세기 세계사 러시아와 세계 라는 통합과정은 통일된 맥락에서 러시아와 세계의 과거를 고찰하며, 역 사를 통일된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현재 이러한 통합과정을 중 등학교 교과과정을 중등학교 교과과정에 당장 적용시키기에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이를 위해 점차 새로운 교과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러시아사와 세계사는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을 따르면 분리되어 교육되었다. 특이한 것은 집 중 구조의 분리과정에서 러시아의 조국사 교육이 이전보다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중등학교 역사교육 교과과정에서 조국사와 세계사의 비율이 동일하였다면 수업시간 이 2:1로 러시아사 수업시간이 두 배로 배당되었다. 집중 구조의 10학년과 11학년 학생은 키에프공국에서 현재의 역사까지 다시 공부해야 하 고, 그와 함께 세계사도 학습해야 했다. 수업 시간은 주당 2 시간이 배당되었다. 러시아의 역 사 발전에 관한 선행 지식이 획득되었다는 가정 하에 수업 내용은 이전 학년의 내용보다 훨씬 심화되도록 계획되었다. 우리가 분석을 위해 선택한 교과서는 27종의 역사교과서이다. 모든 교과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 월남과 캄보디아를 언급하고 있지만, 러시아사 교과서는 세계사 교과서와 비교 해 동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대단히 적다. 그리고 동아시아에 관련하여 근현대사에 비해 고중 세사의 언급이 현저히 적다. 러시아 학생들이 아시아 국가들에 관해 교과서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것은 5학년(11세) 때이 다. 이 단계에서 모든 학교는 고대 세계를 학습한다. 이 과정에서 2-3 개의 문장으로 학생들 은 중국 문명의 출현을 공부한다. 교과서 저자들은 사진 자료( 만리장성, 도자기, 공자의 사진 등)를 제시했다. 그와 함께 5학년 학생들은 지도를 통해서 중국과 그 이웃 국가들을 구분할 수 있는 연습을 하도록 했다. 중세 시대를 다루는 6학년 역사 교과서는 중국을 중화제국이라 묘사했다. 학생들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 등 중국의 종교와 도덕 문화를 학습하고, 황제의 권력과 정부의 역할을 공 부한다. 일부 교과서는 중국의 토지제도와 농민의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이 시기에 태양의 나라(страна корня солнца), 일본에 관해 배운다. 교과서는 일 본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을 묘사하고 일본 국가의 탄생과 황제의 권력을 설명했다. 교과서엔

119 일본의 종교(불교와 신도)와 일본의 문화 정치 그리고 종교에 끼친 중국 문명의 영향을 설명 했다. 그와 함께 사무라이와 그들의 도덕률 등 일본 사회의 다양한 면이 소개되었다. 7-8학년 학생들은 아시아 국가들의 근대사를 학습했다. 7학년 때는 15세기 말에서 17세기 말까지, 8학년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초를 다루었다. 교과서는 이 장에서 학생들에게 민중 봉기와 중국의 만주 정복, 중국인과 만주인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특히 유럽인들의 중국 침략 과 개방에 저항하는 중국인들의 노력 그리고 아편전쟁과 서양인들에 의해 중국이 반식민지화 되는 과정, 중국에 끼친 유럽인들의 경제, 문화적 영향, 중국식 근대화 등이 소개되었다. 중국 의 반서구 운동과 년 혁명과 그 결과는 특별히 강조되었다. 일본에 관해서는 사회 구조와 도쿠가와의 지배 양식 그리고 유럽인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과 정 등이 설명되었다. 일본을 설명하는 장에서 일본의 대외관계와 관련되어 처음 한국이 언급 되었다(Я. Юдовской와 Ю.В. Егоров가 저술한 역사교과서). 19세기 일본에 관해서는 일본 의 개항과 내전 그리고 막부의 와해, 메이지 유신, 일본 근대화의 특징 등이 설명되었다. 교과 서는 특히 일본의 근대화와 극동에서 강대국으로 일본이 부상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일본의 영 토 팽창이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근대사를 다루는 장에는 중국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의 사진과 중국의 지도 등이 사용되었다. 한국의 역사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러시아사 교과서에서 러시아의 극동정책과 관련해서 중점적으로 분석한 국가는 중국이다. 교과서는 또한 극동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주요 파트너는 중국과 일본이었다고 언급했다. 1858년 러시아와 중국은 연해주 지역의 국경선을 아이군 조약을 통해 확정했고, 1860년 북경 조약으로 러시아는 우수리 지역을 병합할 수 있었다. 1875년 뻬쩨르부르크 조 약을 통해 러시아는 일본으로부터 남사할린을 할양받았고, 일본에게 북쿠릴 섬을 할양했다. 흥미있는 사실은 역사교과서는 러시아의 극동정책을 식민지 정책으로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닐로프, 꼬술리나의 20세기 러시아사 는 니콜라이 2세의 외교정책 을 가리켜 평화지향적 이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언급은 제정 시기 러시아의 외교정책을 가리 켜 제국주의 침략정책이라고 규정했던 소비에트 시기의 역사서술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또 다른 역사교과서의 저자인 즈랴노프에 따르면 19세기 말 극동지역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외 교정책은 침략적인 성격을 띠지 않았다. 러시아와 인접한 아무르와 우수리 지역은 실제적으로 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술은 제정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 대한 외교 정책 이 설령 평화지향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침략적 성격을 띠지는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 다. 러시아는 침략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서구 열강들의 극동 지역에 대한 팽창 때문에 세 력 균형을 위해 필연적으로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동아시아사 서 술은 사실상 20세기에 편중되었다. 러일전쟁은 모든 러시아사 교과서에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

120 었다. 러일전쟁 관련 서술은 대부분 국제관계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서의 국제관계 및 니콜라이 2세의 통치 시기 이전의 러시아의 대외정책 노선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 무대를 동 아시아로 옮겨오는 특징을 보인다.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이 적극적으로 변화한 계기는 러시 아의 산업화와 맞물린 것으로 파악했다. 즉 동아시아 지역은 과거에 러시아 외교관들의 관심 을 끄는 곳은 아니었으나 자본 수출을 위한 시장 확대 문제가 제기되자 이 지역이 우선 순위 에 오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더욱이 처국은 자원은 풍부하나 정치군사적으로 취약했으며 중국 에 종속된 조선도 유럽국가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러시아와는 접경하고 있었기 때문 에 이 지역으로의 진출이 용이했다는 것이다. 레반도프와 같은 역사교과서 저자들은 소비에트 역사교과서와 비교해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 시키고 한국과 중국을 점령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을 본격화한 계기 라고 인식했다. 다닐로프는 동아시아서 러시아의 패권장악에 최대의 장애물은 일본이었으며 후자는 위대한 일본 을 건설하기 위한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했 음을 지적했다. 러일전쟁의 경과에 대해서는 레반돕스키의 경우,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 쿠로파트킨 장군의 무능, 전쟁 목적을 모르고 있던 장교와 사병, 무모한 제2, 제3의 태평양 함대 파견의 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오스트롭스키는 만주군 총사령관이자 육군상 쿠로파트킨의 퇴각 작전은 1812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르클레야 드 톨리 장군이 체택했던 유인작전을 모방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닐로프는 소비에트 교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1905년의 사할린 전투를 소개했다. 그는 치욕적인 쓰시마 해전에서의 패배 이후 1905년 6월 일본군 2개 연대가 사할 린에 상륙했을 때 사할린에는 정규군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섬의 사수를 위해 유형 수들이 의병대를 구성하여 2개월간이나 전투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육해군 사령관들의 후퇴와 항복과는 대조적으로 유헝수들로 구성된 의병대의 애국적인 활동을 강조했다. 포츠머스 강화회의에 대한 역사교과서의 서술은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협상에서는 승리한 전 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었다. 이 간은 서술은 치욕적인 패배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 려는 동기도 작용했지만, 이 같은 결과를 도출한 대내외적 요인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레반돕스키의 경우, 강화협상은 인본이 대내적으로 자원과 재정고갈에 대한 위 협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나친 세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한 미국의 대 통령 루즈벨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성사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불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된 강화협상에서 러시아는 단지 사힐린 남부만을 양도했을 뿐 한 푼의 배상도 물지 않아 도 될만큼 성공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러일전쟁의 패배 원인에 대해서는 어느 교과서도 자세히 분석하고 있지 않았다. 쉐스타코바 등이 집필한 교과서에는, 러일전쟁의 패배는 혁명의 발발과 관련이 있다고 서술되었다. 그 상 황에서 러시아의 어느 세력도 제국 정부의 위신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고 교과서 는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은 러일전쟁에 관한 애국주의적 보수주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교과서는 각 장의 말미에 관련 사료를 첨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역 사서술의 객관성은 담보하고 역사인식의 다양성을 제시하기 위한 편제일 뿐만 아니라 이론을 중시했던 소비에트의 역사관을 실증주의적으로 대체해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닐

121 로프의 교과서에는 1905년 6월 29일 포츠머스 강화회담의 러시아측 교섭대표로 임명된 비테 의 회고록이 게재되어 있다. 이 회고록에는 포츠머스로 떠나기 전 대공 및 해군장관 그리고 짜르를 만나 대책을 논의한 과정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역사교과서의 매 단원 말미에는 토론을 위한 과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오스트롭스키의 경 우, 러일전쟁과 관련하여 이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를 묻고 있다. 즉 소비에트 역사인식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다닐로프의 경우, 니콜라 이 2세의 통치 초기에 평화애호적인 성향의 대유럽정책이 표출된 원인과 유럽의 평화정책을 위해 니콜라이 2세가 도입한 대외정책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는 제정 러시아의 대외정책 이 결코 침략적이 아니었고 평화적이었다는 역사인식을 심어주려는 집필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교과서 저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이 소련과 미국의 점령지로 분할되어 있었던 세계 제2차 대전 이후로 한정되어 있다. 한국은 1910년부터 이 시기까지 일본의 식민지가 되 었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 교과서에 따르면 국제 협약에 의해서 총선이 열린 이후에 외국 군대가 한국을 떠나 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과 친미 세력 간의 대립으로 인하여 이 협약은 지 켜지지 못했다. 군대 철수 이전에, 소련은 한국의 북쪽에 자신의 추종자인 김일성의 독재정권 을 세웠고, 남쪽에서 미군은 자신들의 추종자인 이승만을 남겨두었다. 1948년, 한국은 북쪽의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DPRK)과 남쪽의 대한민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로 갈라졌다. 두 정권 모두 반대파를 억압했고,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북 한군이 남한을 침입했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이승만 군대의 공격을 물리친 것이었다. 공산군은 남한의 수도인 서울을 탈취했고 더욱 전진했다. 8월, 남한 군대의 손아귀에는 한반도 남쪽의 작은 근거지인 부산만이 남아있었다. 교과서들은 UN 가맹국 중 대다수의 국가들이 북한군의 공격을 침략으로 평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침략자에 대항하여 무력을 사용할 것을 포고했다. 소련 대표 단이 이것에 대한 항의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련은 이 결정에 대한 거부 권을 가지지 못했다. 1950년 9월, 미군이 대다수를 이룬 UN군이 북한군의 후방인 인천(제물 포)에 상륙했다. 공산군은 서둘러 후퇴했다. 그들은 서울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도인 평양 또한 빼앗겼다. 1950년 10월, 진격하는 미군은 한국의 북쪽 국경에 도달하였다. 거의 모든 나라가 그들의 손에 들어왔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공산군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국은 그들이 한국 에 <<자원군>>을 보내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실, 백만 명의 중공군이 한국을 침략했고, 미군

122 을 전쟁이 시작할 당시의 지점인 38도 선까지 밀어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양 국가는 잔인한 참호전을 치렀다. 양쪽 모두 전선을 깰 수 없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미군 전투기가 몇 차례 북한을, 그리고 심지어 중국을 폭격했다.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지만, 미군 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소련 조종사가 참가했다. 크레데르(А.А. Кредер)가 작성한 교과서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전 선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 북동부를 폭 격하고 해안을 봉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전까지 한국에 조종사만을 보 냈던 소련이 이 경우에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전쟁이 지역적인 수준에 머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맥아더의 계획은 거부되었고,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53년 6월에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독일뿐만이 아니라 한국도 계속 분단 상태를 유지했다. 한 교과서(О.С. Сороко-Цюпы)는 전쟁이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끝났지만, 그 피해는 엄청 났다고 기술한다. 남한에서 13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고, 실종되었고, 북한에 서는 150만 명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다. 1948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수립부터,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노동당이 북한을 장악했 다. 그는 <<조선 인민의 1인자>>라 불렸다. 김일성(본명은 김성주)에 관한 설명에 의하면 그 가 1912년에 태어나서 중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국 별 동대 부대에 들어갔고, 그리고 아주 빨리 지도자와 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별동대는 패배했 고 김일성은 소수의 부대원들과 함께 소련 국경을 넘었다. 소련에서 그는 적군에 들어갔고, 대위 계급을 달았다. 1945년 북한 점령 이후에, 소련 정부는 김일성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김일성 대위는 <<지도자>>가 되었다. 수많은 소련과 중국의 전문가들-국적은 한국이었다-이 한국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조선인 민민주주의공화국의 시민이 되었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미국 간첩에 대한 투쟁이라는 명분하에 김일성은 그의 유일한 지배에 대하여 도전 할 수 있었던 다른 모든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숙청했다. 모든 권력은 그와 김일성 스스로 선 택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날 김일성의 주된 목적이 남한 침략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교과서는 없다. 이 이 유로 인해서 북한 사람들은 군대와 공무원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 다. 이러한 정치는 소련에 의해서 비판 받았고 북한은 소련과의 접촉을 줄였고 <<자주(주 체)>> 정치로 돌아섰다. 북한의 경제는 여전히 저개발 상태로 남아있지만, 정권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북한 정부는 북한인들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시민 들이 이것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서, 김일성은 북한을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보통 시민들의 삶은 철저하게 당과 특수 정부 기관의 통제 하에 있다. 자신의 주거지에서 얼 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단기간을 이동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들은 특별 허가증을 소지해야만 한다. 보든 북한 주민들은 정해진 양의 식량을 배급받는다. 동시에 김일성은 평양의 화려한 궁전에서 살았다. 전국 각지에 <<위대한 지도자>>를 위한

123 기념탑이 세워졌다. 그는 정기적으로 전국을 여행했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농부들이, 젖 짜는 여성들이, 그리고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들이 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을 «руководс твом на местах»현장에서 조정한다>>라고 불렀다.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 로 지목되었다. 그는 1994년 그의 아버지 사망 이후 3년 만에 의장의 자리에 올랐고, 그 3년 의 기간 동안 북한은 지도자를 애도하고 있었다. 남한 발전에 관한 서술은 일반적으로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이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진 국가 들 중 하나였다는 설명과 함께 시작한다. 1960년 대중 봉기가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 지만, 그러나 1961년 군사 쿠데타의 결과로 권력은 군사 독재자인 박정희에게로 넘어갔다. 당 초에, 군사 정권은 단지 공산준의 침략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지 10년 이 후에 새로운 정부는 공산주의의 팽창을 단지 나라의 가난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막을 수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한 정부는 일본의 경험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경쟁력을 갖춘 수 출 상품 생산에 집중하는 강력한 기업이 세워졌다.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끈기와 지식에 대한 열정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만들어갔고 현대적 기업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에 한국 기업들은 한국을 값싼 노동력으로 아용했던 초국가 기업들을 위해 일했다. 그 러나 <<대우>>, <<삼성>>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그들 스스로의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3세계>> 국가들에게, 그리고 이후에 서양 국가들에 수출했다. 그리고 자본가들, 노동자들, 그리고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군사 독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거대 기업들에서는 부패가 만 연했고 이들은 민주화를 반대했다. 1987년의 대중 투쟁만이 군사 정부로 하여금 문민 정권에 항복하도록 만들었다. 일본의 위기가 일본 산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던 남한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정부-기업 협력에 기반을 둔 경제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세계에서 선진국으 로서 자신의 지위를 지켜냈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500개의 기업들은 남한 경제의 활력을 대 표한다. 이들 중 두 개의 기업인 삼성과 현대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50개 기업의 목록에 올라가있다. 교과서 저자들은 보통 남한을 아시아 국가들을 앞지른 <<태평양의 용>> 혹은 <<호랑이>> 로 언급한다. <<용>>은 또한 타이완,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을 의미한다. 이 모든 국가들은 선 진국들의 업적과 국가 전통 모두를 사용하여 사회의 근대화에 성공했다. 서양으로부터 <<용 들>>은 사유 재산과 자본에 기반을 둔 시장 경제를 차용했다. 그들은 광범위하게 국가 규제와 선진 기술의 방법을 사용했다. 산업 회복은 지식과 윗사람 그리고 엄격한 규율을 존경하는 유 교적 전통에 의해서 유지되고 도움을 받았다. 지리적 위치와 동남아시아 시장, 그리고 개혁이 시작된 이후의 중국의 접근성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용들은 >> 국제 노동력 시장에서 성 공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앞서서 언급된 소로코 쮸라의 교과서는, 근대화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문제들을 열거하고 있다. 문제점들 중에는 억압, 반대파 탄압, 정부의 강권 정책, 안기부에 의한 감청, 경제호전기 국

124 민들의 삶의 수준 개선(지난 10년 동안 노동자의 임금은 매년 8퍼센트 이상 증가했다.)과 민 주주의 간의 차이에 관한 것이 있다. 대의제 기관들이 허구적이고, 자유로운 정당 활동들이 금지되었고, 학생들의 발언권이 경찰에 의해서 탄압받았다고 언급되어 있다. 교과서는 노태우 정부에 이르러서야 자유주의-부르주아적 분파를 포함한 반대파에 대한 오 래된 탄압 폐지되기 시작했다고 서술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향한 점 진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참고문헌> GaryB.Nash,CharlotteCrabtree,andRossE.Dunn,History on Trial: Culture Wars and the Teaching of the Past. New York: Alfred A. Knopf, 1997 RobertPhillips, History Teaching, Nationhood, and the State: A Study in Educational Politics. London: Cassell, Вальденфелье Б.Своякультураичужаякультура//Логос Образ'другого'вкультуре//Одиссей.1993 Человеквистории.М.,1994 ПавловскаяА.В.Этническиестереотипывсветемежкультурнойкоммуникации//Вестн ик МГУ.Серия19.Лингвистикаимежкультурныекоммуникации Панин Э. А.Традиционализм национализм ксенофобия//этнопанорама КрозМ.,РатиноваН.Социально-пихологическиеиправовыеаспектыксенофобии. М.:Academia,2005. КарповС.П.Историческоеобразование:размышлениеопутяхразвития//Новаяиновейш аяистория СмелянскийН.И.Историческоеобразованиеиисторическаятеория//Новаяиновейшаяис тория VolodinaTatyana.Teaching History in Russia After the Collapse of the USSR // The History Teacher. Vol. 38, No. 2, February Magne Angvik and Bodo von Borries(eds.).Youth and History: A Comparative European Survey on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Political Attitudes among Adolescents. Vols. A and B. Hamburg, Россия и страны Балтии, Центральной и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Южного Кавказа, Ц ентральной Азии: старые и новые образы в современных учебниках истори и. Научные доклады и сообщения. Под ред. ФалькаБомсдорфа, Геннадия Бор дюгова. М.: Фонд Фридриха Науманна, АИРО-ХХ, Viktor Shnirelman, Who gets the past? Competition for Ancestors among

125 Non-Russian Intellectuals in Russia. Washington, 1996 Национальные истории в советском и постсоветских государствах. Сб. научных д окладов, Под ред. и введением КарлаАймермахера, Геннадия Бордюгова. М.: Фонд Фридриха Науманна, АИРО-ХХ, Историки читают учебники истории. Традиционные и новые концепции учебной литературы. Сб. статей. М.: АИРО-ХХ, SharonMacdonald(ed.). Approaches to European Historical Consciousness. Reflections and Provocations. Hamburg, КоровкинФ.П.Историядревнегомира.М.:Просвещение,1992(последнее,5-еиздание) ШабуровН.В.,ЖуковаЛ.Г.,ПименовА.В.Религиимира.М.:Дрофа,1997; БойцовМ.А.,ШукуровР.М.ИсторияСреднихвеков:Европаиостальноймир.Для6-хкласс ов.м.:русскоеслово,2005 ЮдовскаяА.Я.,ЕгоровЮ.В.идр.История.Мирвновоевремя( ).Учебникдля10к ласса.спб.:смио-пресс,2001(последнее,2-еиздание) БуринС.Н.Новаяистория гг.:Учебникдля7-8классаобщеобразовательныхуч ебныхзаведений.м.:дрофа,1998 КредерА.А.Новаяистория.ЧастьII:Учебникдля8классаосновнойшколы.М.:ЦГО(Центрг уманитарногообразования),2000 Новая история зарубежных стран. Конец XVIII начало XX века: учебник для 8 класса общеобразовательных учреждений. Под ред. ВедюшкинаВ.А.М.:Дроф а,2005(последнее,5-еиздание). КацваЛ.А.ИсторияОтечества.Справочникдлястаршеклассников.М.:АСТ-Пресс-Школ а,2004. ШестаковВ.А.,ГориновМ.М.иВяземскийЕ.Е.ИсторияОтечества.XX век. Под ред. Саха роваа.н.м.:просвещение,2005(последнее,5-еиздание). ЖароваЛ.Н.,КредерА.А.иМишинаИ.А.РоссияимирвXX веке. М.: ЦГО,

126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 ,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안 숙 현 (단국대학교) 러시아극단의 첫 내한공연은 1990년 5월 17일부터 5일간 호암아트홀 에서 공연된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의 연극 <벚꽃동산>이었다. 이 연극은 러시아극단의 첫 내한공연이라 는 연극사적 의미와 더불어, 체호프와 스타니슬라프스키를 유별나게 경외하는 한국관객들에게 러시아연극을 향한 특별한 외경심( 畏 敬 心 ) 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 공연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 후 18년의 시간이 흘러 2008년 9월에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이 연극 <세 자매>로 다 시 한 번 우리 무대에 공연하기까지, 그동안 다양한 러시아극단들이 각종 장르의 연극을 우리 무대에 올렸다. 이들 공연은 사실주의 무대뿐만 아니라 대담한 해체와 실험 무대로 우리 관객 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진부한 극형식 속에 갇혀 있던 한국 연극인들을 자극하곤 했다. 더욱 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향한 예술혼을 잃지 않았던 러시아극단들과 사회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 사회에 몰아닥친 빈곤과 혼란 속에서도 인간적인 삶과 예술혼 을 열정적으로 무대에서 찾아나갔던 현대 러시아연극에서, 한국 연극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상상력의 빈곤과 연극예 술을 향한 나태한 태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극단들의 내한공연은 한국연극인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 기도 했다. 내한공연으로 인해 한국연극계는 러시아연출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연극 의 발전을 위해 연극교육 현장과 연극작업 현장에 그들을 연극 교육가로 또는 연출가로 초청 하였던 것이다. 문예연감 의 자료를 살펴보면, 1998년까지는 2-4건에 해당하던 러시아극단의 내한공연 이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연극제에 힘입어 1999년 이후 러시아연극이 매해 13건-14 건 등으로 공연되었을 정도로 한국 무대에서 러시아연극은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연 1) 되는 등 그 위치가 크다. 물론 2005년부터는 약간 주춤하는 경향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제 이들 공연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어떤 러시아 1) 문예연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극단의 내한공연이 1990년 2건, 1991년 1건, 1992, 1건, 1993년 2건, 1995년 2건, 1996년 3건, 1998년 4건, 1999년 13건, 2000년 14건, 2001년 9 건, 2003년 12건으로 집계되었다,

127 연극이 우리 무대에 공연되었고, 이 연극들의 특성은 무엇이며, 우리 연극계에 미친 영향은 과연 어떠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 여, 지금까지 공연되었던 러시아연극을 시기별로 간략히 살펴본 후에, 우리 무대에서 만난 러 시아연극의 특성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고자 한다. 1990년은 오랫동안 닫혀있던 러시아연극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었던 한해 였다. 1990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의 <벚꽃동산>(이골 이 린스키 연출)이 호암아트홀에서 러시아연극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공연되었고, 그 해 7월 4일 부터 8일까지 부산시민회관과 문예회관대극장에서 현대 러시아 실험극단인 유고자파드극단이 연극 <햄릿>(발레리 벨라아코비치 연출)을 공연하였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서로 상반된 색채 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우선, 체호프 탄생 130주년 기념행사로 초대된 러시아 말리극장 의 <벚꽃동산>은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의 진수를 직접 맛보기 원했던 관객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고 우리 연극 계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연극에 대한 시각과 기대의 차원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충격과 감동의 파문을 던지고 갔던 무대 2), 우후죽순처럼 탄생되었다가 사라져 버리기 십상 인 극단의 풍토나, 있어도 아이덴티티가 없는 오늘을 반성해 볼 수 있었던 무대 3), 극예술의 완벽한 경지를 열어 보임으로써 안일과 타성에 절은 우리의 혼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무대 4) 등등 당시 연극을 관람했던 연극비평가들은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체호프의 의도에 따라 <벚꽃동산>을 희극 으로 해석하였던 이린스키의 연출에 많은 연극인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 연극계에서는 오랫동안 체호프의 희곡을 비극으로 인식 해 왔었는데, 그 당시 러시아문학 연구가들에 의해 체호프 드라마와 희극 과의 관계에 관한 논의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때에 연출가 이린스키의 <벚꽃동산> 연출은 한국연극인들 에게 체호프극 공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양혜숙은 유머와 서정이 가득 찬 희망적인 무대를 선보인 이린스키의 연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다행히도 이고리 이리인스키의 연출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최대한으로 수 용하여 <벚꽃동산>을 유모어와 애정으로 가득한 인생희극으로 만들었다. (중략) 이번 연 극의 감동은 체홉의 꼼꼼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그려진 개개의 인간들의 삶이 연출의 면밀하면 서도 포괄적인 시각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담긴 애정과 유모어를 백분 살리므로 해서 폭소를 2) 양혜숙, 뉴앙스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운 연기, 한국연극, p.46. 3) 이강렬, (이강렬 연극 에세이) 문화를 느끼고 싶다, 예론사, 1993, p ) 김승옥, 한국 연극, 미로에서 길 찾기, 연극과 인간, 2000, p

128 자아내는 소극이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풍자극이 아니라 은은한 애정의 시선을 느끼게 하는 유모어에 찬 희극의 용기 속에 담게 하므로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만에 인생의 허무를 절망과 좌절이 아닌, 희망과 바람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 5) 사실 이린스키의 연출은 체호프극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 전환적인 계기를 마련해 놓았다 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벚꽃동산>을 코메디 장르로 범주화시켰던 체호프의 의도가 실제 무대화를 통해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린스키의 연출을 통해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 다. 그리고 이러한 희극 으로서의 공연 가능성은 그 후 한국 연출가들의 체호프극 공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외에도 이린스키의 연출과 더불어 주목을 받았던 것은 무대와의 서정적 조화를 이루어낸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였다. 특히 라넵스까야 부인의 역을 맡은 코르니엔코(Н. И. Корни енко)와 로빠힌 역의 코르슈노프(В. И. Коршунов) 그리고 피르스 역의 노시크(Носик)가 노 련한 연기로써 우리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체홉극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6) 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그 자체가 우 리 일상 삶의 행동이자 아름다운 예술이었던 것이다. 러시아극단의 첫 내한공연은 이 연극을 보며 아마도 한국의 연극인들은 우리 연기교육의 시작을 발성과 화술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다시한번 하게 한 공연 7) 우후죽순처럼 탄생되었다가 사라져버리기 십상인 극단의 풍토나, 있어도 아이덴티티가 없는 오늘을 반성해 볼 수 있는 무대 8) 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했다. 말리극장의 연극 <벚꽃동산>을 통해서 정통 사실주의 연극의 전통을 직접 맛볼 수 있었다 면, 유고자파드 극단의 연극 <햄릿>( , 부산시민회관, 문예회관대극장)은 70년대 이 후 스튜디오 디어터 운동과 관련된 실험적인 무대와 새로운 현대 러시아연극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햄릿>공연을 관람한 비평가들은 기존 해석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상징적인 무대에 인상을 받았다. 모든 연기자들은 제4의 벽을 향해서가 아니라 객석을 향해서 직접 연기를 하여 처음부터 사실주의의 컨벤션을 깨고 있다.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써사이저의 현대음악 속에 진행되며 왕과 왕비와 신하들이 출현할 때의 무대는 전체가 밝아지고 음악은 더욱 경쾌해지면서 모든 사람이 그 음악에 맞추어 무릎을 굽혔다 폈다, 발꿈치를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리드미칼하게 몸을 흔든다. 고전사극에서 볼 수 없는 이 같은 연출은 4백년전의 셰익스피어극을 그대로 하 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현대적인 셰익스피어 공연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목적을 수행 하는 것인데 학자들은 불만스럽게 여기겠지만 젊은 관객들에게는 관극의 즐거움을 상승시켜주 는 것이었다. (중략)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였던 무대였고 그만큼 충격이 컸던 공연이었다. 이런 공연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시( 詩 )와 오묘한 철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고전비극의 정적인 고귀함과 장엄함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런 것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냐고 5) 양혜숙, 앞의 글. 6) 김승옥, 앞의 책, p ) 양혜숙, 앞의 글, p.45. 8) 이강렬, 앞의 책, p

129 항변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항변은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벨리야코비치의 <햄릿>은 오늘의 지성과 감수성으로 받아들인 <햄릿>이고 그것을 위해 새로운 무대언어를 찾은 공연이었기 때 문에 셰익스피어의 심오하고 신비한 <햄릿>보다는 자신의 <햄릿>에 충실하였을 뿐이다. 9) 열린 시각과 상징적인 현대 무대를 보여준 모스크바의 아방가르드 연극에 대해서 연극인들 은 놀이 로서 연극이 갖는 열린 무대에 충격을 받았다. 이외에도 1990년에는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제2회 춘천인형극제에서 레닌그라드인형극장 의 <어린왕자>가 초청되어 공연되었다. 1991년에는 올스타즈 극단의 <꼭두들의 요술세 계>( )와 페테르부르크 볼쇼이 드라마극장의 <발자미노프의 결혼 : 모스크바의 인생풍경>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었지만 무대장치와 조명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주목 을 받았을 뿐 10)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1992년 10월 2일부터 11월 2일까지 모스크바 국립인형극단의 <진기한 콘서트>가 동숭아 트센터 대극장을 비롯해서 전국 5개 도시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 으며 그 후 꾸준히 초청되어( , 의정부 예술의 전당대극장, 한전아츠풀 / , 호암아트홀 등) 가장 인기 있는 초청공연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도 이 작품이 준 충격은 아동들의 놀이 범주에 머물러 있던 인형극을 뛰어난 상상력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일반 성인극과도 같은 수준으로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인형극은 어린이들의 몫이며 그들의 소일거리라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은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우리 연극계에 있어서 인형극은 유치원 단계의 아동들 놀이 범주에 머물러 있 다. (중략) 이런 시점에 구소련 땅의 국립 모스크바 중앙인형극장 내한 전국 순회공연 진기한 콘서트 는 우리의 연극의식에 충격을 주고 연극관념을 확대시킨다. (중략) 모스 크바 인형극장의 진기한 콘서트 는 환상의 꼭두극이었다. 신기한 것은 작은 인형들이 놀게 되는 좁은 무대가 결코 좁은 공간이 아니며 인형들 또한 등신대의 크기로 확대된다는 사실이 다. (중략) 우리는 인형 조작술의 노하우를 더욱 세련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인형의 감정 표현을 통해 감정이입이 가능해질 정도가 되려면 인형 얼굴의 눈과 입이 가장 극적으로 움직 여지고 또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입체감이 가능한 인형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모스크 바 인형극장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인형 제작의 세련미, 움직임의 유연성, 그리고 줄거 리보다 음악과 춤이 주류를 이룬 진행에서 무생물인 인형이 결코 정물( 靜 物 )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영혼을 주입받아 예술로 다듬어진 영물( 靈 物 )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11) 삶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풍자정신과 삶의 애환 등을 해학적인 재치로 풀어낸 이 연극은 인 9) 한상철, 유고자파드극단 <햄릿> - 오늘의 지성과 감수성으로 받아들인 <햄릿>, 한국연극, , pp ) 이태주, 공연총평 - 아시아 태평양연극제, 한국연극, 1991,12, p ) 이상일, 인형들의 노래 춤으로 세태 풍자 - 모스크바 인형극장의 진기한 콘서트, 한국연극의 문화 형성력, 눈빛, 2000, pp.459~

130 형극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한국 인형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인형극은 그 후 다양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초청되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공연된 러시아 인형극은 아래와 같다. 러시아 국립뮤지컬 아동극단의 <카시탕카와 스톤>( , 계몽문화센터/ , 수원문예회관대극장, 엑스포아트홀, 서산 YMCA 등), 러시아 니콜라이 주코부 의 <인형들의 마술세계>( , 국제꼭두놀이축제, 엑스포 중극장), 러시아 국립 뮤 지컬 아동극단의 <백조와 소년>( , 대덕과학문화센터), 모스크바 요술인형극단의 <마 법의 주문>( , 대덕과학문화센터), 러시아 프레모스키 인형극단의 <빨간모자> ( , 송파어린이육성회)와 <해님과 작은 눈사람>( , 강릉 문예회관 대공연 장)과 <황금 닭>( , 제9회 서울인형극제), 러시아국립서커스단의 <백설공주와 일 곱난쟁이>( , 칠곡동 아트홀 / 부산KBS홀), 자하로 스튜디오 극단의 <마법의 빔>( , 마산국제연극제, 올림픽국민생활관대극장), 러시아-프리모스키 인형극 단의 <페트로쉬카 인터내셔널>( , 서울인형극제, 목동청소년회관), 러시아국립예 술단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 동아백화점아트홀), 러시아 국립예술단의 <신데렐라>( ), 러시아 국립예술단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 엑스포 행사장 주변 공연장) 등. 1993년부터 1999년까지 공연된 러시아연극은 다음과 같다. 극단 변화 의 <내게서 세상은 사라지고>( , 1993춘천국제연극제), 유고자파드 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 수원화성국제연극제 / , 시민극장 / , 거창고등학교), 오드막집 극단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 들>( ), 유고자파드극단의 <여관집주인>( , 제10회 거창국제연 극제), 유고자파드극단의 <3개의 원통모자>( , 제11회 거창국제연극제), 몬플라이시 르극단의 <갈매기>( ,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러시아 국립아카데미극장 예르몰로바 극단의 <강인한 의지>( , 마산국제연극제), 모스크바 국립 타강카 극장의 <아프 칸>( ), 마임극단 리체데이 (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등. 이들 연극들 중에서 특히 러시아 마임극단인 리체데이의 내한공연은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 았다. 언어 대신 다양한 판토마임을 이용하여 서커스 극단의 단순한 광대적 몸짓을 마임의 난 이도 높은 테크닉과 결합시킨 리체데이의 공연은 웃음과 페이소스를 보다 예술적 경지로 승화 시켜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치밀하게 표현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극단은 그 후 2001년 1월5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 내한공연된 작품들은 말리극장의 <벚꽃동산>과 유고자파드 극단의 <햄릿>을 제 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진기한 콘서트>의 성공으로 인해서 러시아인형극 위주로 공연이 이루 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러시아연극 전공자들에 의해 러시아연극이 본격적으 로 소개가 되면서 점차 다양한 작품들이 초청되기 시작했다. 특히 LG아트센터가 적극적으로 러시아연극을 소개하는데 앞장을 선 결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러시아연극들이 공연되기 시작

131 했다. 물론 2000년대에도 1990년대보다는 활발하지 않았지만, <진기한 콘서트>를 비롯해서 인형극들이 다수 공연되었다. 우선, 2000년에는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데레보의 <Once...>(안톤 아다 진스키 연출)가 동화와도 같은 상상력이 풍부한 무대와 감성으로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냈 다. 비언어 신체극인 이 작품은 몸짓과 음악, 조명 등 다양한 대체언어로 풀어낸 상상력으로 관객들의 굳어버린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러시아에서 온 극단 DEREVO 의 <ONCE>( )는 대사 한마디 없이 몸짓과 춤, 소리와 빛, 무대 장치와 소품들만으로 모든 의미를 오롯이 전달한다.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마 임극 이라고 해야겠지만 단순히 마임극으로 부르기에는 그 차원이 복잡하고 심오하다. 세트는 마치 아동극에서 보는 동화 세계같다. (중략) <ONCE>는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소재를 한 바탕의 예쁜 꿈으로 승화시킨다. 노인은 결국 사랑을 얻는데 실패했으나 뒤끝이 슬프진 않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표현방법이 동화적이 고 만화적이라고 해서 작품의 깊이가 얕지도 않다. 기계적으로 잘 훈련된 그들의 섬세한 몸짓 과 표정들은 어떤 말 의 홍수보다도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며 메마른 감성을 일깨운다. (중략) 대사의 부재는 결국 관객들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요구한다. 즉 상상적인 연극 속에 서 다시 그 공백과 모호함과 아리송함을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채워가야 한다. 이 연극은 아이 러니칼하게도 침묵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꾀하고 있다. 12) 2001년에는 LG아트센터가 러시아 라는 주제 아래 <가우데아무스>, <스노우쇼> 등 러시아 와 리투아니아의 공연 <가장무도회>를 초청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았던 공연은 러 시아의 세계적인 연출가 레프 도진이 제자들과 함께 만든 <가우데아무스>였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가우데아무스>는 7월 6일부터 10일까지 LG아트센 터에서 공연되었으며, 서커스, 마임, 노래, 춤 등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될 무렵 타락한 군대의 신병들이 겪는 상처와 인간성 파괴를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가우데아무스>는 병사들 의 절망적인 사랑놀이, 폭력과 우정, 배반 등 인간사회에서 발견되는 추악한 주제를 다루지만 하얀 눈밭을 무대로 배우들의 신체언어만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영혼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 <가우데아무스>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앙상블과 더 불어 인간사회의 어둡디 어두운 측면들을 무감각한 희극성 속에서 가슴 아픈 아이러니로 번 역하는 도진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게 느껴진다 13) 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큰 호평을 받았다. 군인들의 절망은 특히 이들의 억압된 욕망인 여성에 대한 갖가지 백일몽으로 표현되는데 특히 얼음구멍을 깨고 머리감는 여인과의 왈츠 장면과, 공중에 로프로 매달린 피아노 뚜껑 위 에서 불발된 섹스 직후 두 남녀가 맨발로 함께 연주하는 모차르트 심포니 40번의 장면이 백미 다. 젊은 혈기에 군대에 갇혀 사는 청년들의 성적 환상을 이처럼 세련되고 사랑스럽게 그리기 는 쉽지 않을 것 같다. 14) 12) 김미도, <ONCE> & <오르페오>, 21세기 한국연극의 길 찾기, 연극과 인간, 2001, pp.198~ ) 김윤철, 혼돈과 혼종의 경계에서, 연극과 인간, 2004, p ) 김방옥, 레프 도진의 <가우데이아무스> - 러시아에서 온 군대이야기, 21세기를 여는 연극, 연극과

132 2001년 7월 18일부터 2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도 관 객들의 특별한 환호를 받았던 작품이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과 실연, 고독에 관한 에 피소드를 마임과 조명, 음악 등의 무대 장치를 통해서 서정적으로 펼쳐낸 이 작품은 어린이 어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동심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특히 작은 이야기로 커다란 무대공간 을 시적으로 꾸밀 수 있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스노우쇼>는 그것이 가지는 여백 때문에 다양한 의미 부여가 가능한, 그래서 서사적이라 기보다는 시적인 공연이다. (중략) 각각의 장면들은 배우들의 동작으로 구성되지만 그 몸 짓들은 특별한 지시어를 가지려하지 않으며, 의미를 담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의미를 비워내면 서 움직임 자체를 지향한다. (중략) 관객들은 천진한 광대의 존재에 아이들처럼 웃음을 짓다가 그 웃음 속에서 다시 광대가 환기하는 인물과 그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다소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극의 전반부가 주로 광대의 몸짓과 웃음에 의한 시청각적 퍼포먼스였 다면 후반부에서 극이 가지는 여백은 관객들의 내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되고 관객은 극이 그들에게 환기시키는 나름대로의 느낌 속에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15) 이 작품은 그 후 2004년과 2006년에도 LG아트센터에 앵콜 공연되었을 정도로 한국관객들 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002년에는 의정부 음악극축제의 초청으로 5월 10일부터 11일까지 러시아 타강카극장의 음악극 <마라와 사드>(유리 류비모프 연출)를 공연되었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광기 가득한 신나는 서커스로 변모시킨 이 작품은 총체극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카니발 적 연극 에너지를 선사했다. 또한 2002년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젊은 관객 극단의 카마 긴카스가 연출한 <검은 수 사>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검은 수사>를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이 공연은 효과적인 무대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1층 객석과 무대를 포기하고 객석 2층 발코니 에 특수 무대를 설치하여 200석의 좌석만을 개방해 신비롭고 환상적인 검은 수사의 환영 이 미지를 살려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연출은 삶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간이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 내는 도구로 비사실적인 표현 방법들을 차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배우의 즉흥적인 순발력과 변신이 돋보이는 연출 가의 풍부한 연극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독특한 공연양식이었다. 16) 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공연은 한마디로 이러한 기대에 미흡했다. 무대공간은 선전만 요란했지 사실 소극장 공연의 효과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중략) 또한 서술체의 나레이션 역시 공연을 따라 인간, 2003, p ) 송민숙 - 눈( 雪 )으로 쓴 광대의 시( 詩 ) -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공연과 이론, 2001, 가을 호, pp ) 최정일 -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 - Moscow Theatre for Young Spetators & LG아트센터 <검은 수사>, 한국연극, , p

133 가는데 방해가 되었다. 17) 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외국공연이 늘 직면하는 언어전 달의 문제점이 이 무대에서도 지적된 것이다. 사실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로 표현한 무 대공간의 의미가 사상을 담고 있는 러시아 언어와 함께 전달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 문에, 일부 관객들에게는 단순한 무대공간에 숨겨진 그 상징적 의미가 읽혀지지 못했다. 이외에도 2002년에는 다음과 같은 연극들이 공연되었다. <눌린 백작>( , 춘천국제연극제), <추-하-하>( ,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 제, 동숭예술센터대극장), Theatre STRELA의 <어부와 조기이야기>( , 어린이회 관), 유고자파드극단의 <결혼>( , 제14회 거창국제연극제), 러시아 국립노보시비르 스크 극단의 <카르멘>( , 부산문화회관대극장), 극단 빅토르 마이오넷의 <줄인 형 써커스>( , 드림원드 인형의 집, 2002 빛고을인형극제) 등. 2003년에는 <Once>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러시아극단 데레보가 <신곡>으로 LG아트센터 에서 2월 5일부터 9일까지 공연하였다. 단테의 <신곡>은 배우들의 놀라운 신체언어로 지옥과 천국, 삶과 죽음, 인간 고뇌와 소망 등을 다양한 아방가르드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신체언어극 이다. 우리의 굳어진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이 연극이 미친 영향은 자못 크다. : 이번 <신곡> 공연은 기능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무대를 사용하면서도 뛰어난 상상력과 신체적 에너지로 텅 빈 무대를 채움으로써 다시 한번 우리 연극의 빈곤한 상상력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18) 데레 보의 <신곡>은 확실히 단테의 <신곡>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원작과의 거리를 논하지 않고 보면, 무엇보다도 연극적 상상력과 배우들의 몸을 가장 큰 도구로 삼아 빈 무대를 역동적 에 너지로 채워나간 점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19) 2003년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 리체이넘 극단이 <Oedipus-Rex(오이디푸스왕)> (안드레이 프리코첸코 연출)을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였다. 고전비극인 오이디프스의 이야기를, 현대음악의 배경 아래 가면을 쓴 세 명의 배우가 신체 언어를 통해 가벼운 광대놀이로 풀어낸 이 연극은 두 가지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연출가 남 육현은 극대화된 초비극적 인간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했음에 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아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깊숙한 내면의 숙연한 깨달음의 경계선을 넘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원초적 초자아적 비극성을 살려내는 진폭 큰 어떤 감동과는 거 리가 먼 여러 한계점들을 노출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아쉬움을 남긴 무대였다. 20) 라며, 고전비극에 나타난 비극성을 진지하게 풀어내지 않은 연극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이 연극이 표현한 유희성과 놀이성 속에 감추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큰 박수를 보냈다. 17) 이미원, 미흡했던 무대 효과, 돋보였던 인문적 깊이, 한국연극, , p ) 김미희, 데레보의 <신곡>, 인간과 삶의 의미를 묻는 구도자의 연극, 한국연극, , p ) 임선옥, 지옥과 천국을 감각으로 교신하라!, 한국연극, , p ) 남육현, 일관성의 부재 - 러시아 리체이넘 극단 <오이디프스 렉스>, 한국연극, , p

134 관객은 극을 극으로 보게 되고, 즉 놀이를 놀이로 즐기는 현실을 의식한다. 카타르시스를 기 대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고전 비극이 요구하는 의미의 성찰, 그리고 무대가 만든 유희성을 통해 얻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리체이넘 극단의 첫 내한공연인 <오이디 프스 렉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의 창의적 무대가 우리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리라 기대된다. 21) 러시아에서 온 젊은 연출가 안드레이 프리코첸코는 연극사에서 가장 오래고도 권위 있는 비 극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감히 광대들의 유희로 풀어 놓는다. (중 략) 극이 진행되면서 익살은 경악으로,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명랑함은 슬픔으로, 천진함은 고통으로 가득 찬 앎으로 변한다. 극 중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깨달아 나가듯, 광대들 스스로는 단순히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 가 아닌 그 의미 를 서서히 깨닫고 느끼 고 체험한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비극은 앎의 비극 에 있다. 그리고 이 앎의 비극 은 오이 디푸스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을 연기하는 광대들의 비극이기도 하다. (중 략) 극이 전개되고 인물들이 자신들의 운명의 비밀을 깨달아 가면서, 광대들은 더 이상 가벼 운 놀이 안에 머무르지 못한다. 광대들은 자신들이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와 인물들의 고통을 스스로의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 지점에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상황과 극 중 삶 안에서 존재하는 인물의 정서 사이의 섬세하고 마술 같은 교차가 발생한다. 22) 사실 우리 연극의 문제점은 이러한 두 평가를 살펴보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관객들 대 부분은 연극이 갖는 유희성 과 놀이성 을 무대에서 직접 경험하길 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 연극인들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문학교육의 틀 안에서 연극을 놀이 가 아니라 드 라마 중심의 문학 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연극의 통일성과 개연성 등 이야기 구조와 심층 의미구조를 중시한다. 그래서 간혹 유희적인 성격까지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이러한 특성은 다음의 내한공연에 대한 평가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즉, 연극성이 강한 러시아 작품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연극성보다는 작품의 의미와 드라마 중심의 내러티브에 주목 하는 한국연극인들에 의해서 러시아 실험극 공연은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 2003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유고자파드 극단의 연극 <갈매기>가 안톤 체호프 서거 100주년을 기념 으로 초청되어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유고자파드 극단 도 역시 전통적인 사실주의 무대에서 벗어나 배우들의 움직임과 음악, 조명을 강조한 표현주 의적 색채로 체호프의 <갈매기>를 표현했다. 하지만 사실주의극의 틀 안에서 체호프를 이해하 고자 하는 일부 관객은 이런 해석과 무대 표현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따라서 작품들 중 특히 이야기 구조가 중심이 된 무대들은 적절한 통일성과 개연성, 치밀하게 계산된 심층 의미 구조, 복선, 압축, 절제 등을 필요로 한다. 벨야코비치(V. Belyakovich) 연출로 올려진 유고자 파드 극단의 <갈매기>는 이러한 극히 기본적인 극적 요소들을 무시하려는 것 같았다 23) 독 21) 장혜순, 고전 비극을 낯설게 보여주다 : <오이디프스 렉스>의 창의적 무대, 한국연극, , p ) 이진아, 광대의 시선으로 본 <오이디푸스 왕>, 연극평론, 복간11호(통권31호), pp.190~ ) 남육현, 해외 초청 연극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갈매기>, 공연과 이론, 2003,겨울호, No.12, pp

135 특한 해석으로 표현주의 작품처럼 각 인물이 자신만의 대사를 외치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관객 과 넓은 공감대를 갖지 못했다 24) 라며 해외 초청 연극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라는 악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상반된 견해로, 러시아 출신의 연출가 벨랴코비치에 의해 빚어진 무대연출은 체호프의 <갈매기>에 씌워져 있는 사실주의 연극에 대한 우리의 신 화적 환상 내지 강박관념을 벗겨낸 점에서 독창성이 돋보인다. (중략) 이번 공연은 사실주 의를 뛰어넘는 극적인 리얼리티 를 보여준 상징주의 연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5) 라며 그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외에도 2003년과 2005년에 공연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슈키드마임극단의 <푸키스타>( , 한전아츠풀센터), 국립모스크바 예르 몰로바 드라마극장의 <못 말리는 귀족아가씨>( , 한전 아츠풀센터), <일본난장이 와 백설공주>( ), , <피노키오> 러시아 국립 하바롭스크 인형극단 의 <피노키오>( ), 러시아 모스크바 시립극장 베르니사쥐의 <결혼>( , 제 16회 마산국제연극제), <갬브리너스>( , 의정부예술의 전당 대극장), 국립모스크 바 중앙인형극장의 <진기한 콘서트>( , 호암아트홀), 뮤지컬 인형극 <호두까기 인 형>( ,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 러시아 코믹트러스트 극단의 <화이트사이드 스토리>( , 2005부산국제연극제), 러시아 마임극단의 <리체데이 마 임>( , 2005 어린이연극제, 의정부 예술의 전당), 제노바치 스튜디오의 <소년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제9회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러시아 포르말리니아 극단의 <광대들의 학교>( , 서강대 메리홀), 러시아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의 <검찰 관>( , 경기도 문화의 전당, 예술의 전당), 러시아 로스토브 극단의 <매직>( , 제18회 거창국제연극제, 축제극장) 등. 이들 공연 중에서 2004년 5월에 공연된 러시아 음악극 <갬브리너스>(연출 마르크 로조브 스키, 니키타의 문 극단)은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이 난무하는 이 땅에 깊이 있는 철학 성과 문학적 전통을 반영한 소박한 미학으로 현대음악극의 격을 높여준 공연이었다는 평가 26) 와 더불어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또한 200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된 러시아 포르 말리니아 극단의 <광대들의 학교>(안드레이 모구치이 연출)도, 유년시절의 기억이라는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아름다운 시적 이미지 를 통해서 끌어들여 환상적인 황홀감을 맛볼 수 있도 록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한국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통역 방식이 오히 려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 외에, 2005년 10월에 경기 도 문화의 전당에서 공연된 러시아 알렉산드린스키극장의 연극 <검찰관>(발레리 포킨 연출)은 메이어홀드의 1926년도 버전을 활용하여 한국관객들에게 연극의 신화가 되어버린 메이어홀드 의 연출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큰 관심을 얻지 못 24) 이미연, 2003년의 연극, 한국연극, , p ) 김형기, 갈매기의 죽음과 부활에 내재한 혁명적 잠재력 : <갈매기>, 연극평론, 복간11호(통권31호), 2003, 2004 겨울호, pp ) 허순자, 사람냄새 물씬한 고품격, 저 예산의 대륙형 뮤지컬 - 러시아 극단 Nokiskie Vorota <갬브리너 스>, 한국연극, , p

136 했다. 다음으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공연된 러시아연극은 다음과 같다. 포르말리니이 극단의 <개와 늑대 사이>( ,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러시아 두 -씨어터의 <불면증 환자 Sleep...less..ness>(제3회 부산국제연극제( ), 러시아 뮤 직 마리오네트극단의 <노래하는 줄인형>( , 2006아산국제거리극축제), 페테르스부 르크 말리극장의 <형제자매들 2부작>( , LG아트센터), 채마단의 <듀 엣>( ,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러시아 로스토브의 <매 직>( , 제18회 거창국제연극제), 국립모스크바중앙인형극장의 <호두까기 인 형>(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데레보의 <케찰>( , 춘천마임축제, 춘 천문화예술회관) 등 우선, 2006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작품으로 초청된 포르말리니이 극단의 <개와 늑대 사이>부터 살펴보면, 이 공연에서 포르말리니이 극단은 관객들이 연극을 좀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연 후 러시아연극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여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 하고자 했다. 이 연극도 역시 시적 분위기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든 시각적 이미지가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주제 표현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 무대와 조명, 거기에 배우들이 합류하여 조탁해 내는 시적 이미지와 인물들의 연기에서 오는 유쾌한 에너지와 유머는 모구치와 포르말리니 극단 의 공연을 타의 추종이 불 가능한 독자적인 영역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그같은 에너지와 활기에 묻혀 플롯이 의도한 러 시아 현사회에 대한 풍자의 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27) 2006년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은 레프 도진이 연출한 말리극장의 <형제자매 들>이다. 2006년 5월 20일부터 2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7시간 반을 공연한 이 작품은 장 시간에 약한 현대 관객들에게 산문연극 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진지한 시간을 선사했다. 즉,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철학적 사유와 예술 정신을 깊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감 동의 무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연극은 월간 한국연극 이 선정한 2006년 공연베스트 7 에 외국공연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을 정도로, 우리 연극계에 큰 감동과 충격을 준 작품 이었다.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와 일상을 재현하는 듯한 서사는 현대인이 연극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삶에 대한 경이와 감동 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관객이 느끼는 삶 은 오 늘 연극계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새로운 연극성이 종종 이야기하는 삶 과 다르다. 도 진의 연극이 보여주는 삶의 고전적 의미에서의 재현된 삶, 우리가 진실이라 믿도록 구성된 삶 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에 모셔진 값진 유물을 조심스레 살펴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 었다는 표현은 이 작품을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게 된 고전적 개념의 연출 에 대한 만가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28) 27) 최영주, 해외공연작 총평 : 동시대적 자의식과 새로운 연극성, 연극평론, 복간23호(통권43호), 2006, 겨울호, p ) 이진아, 2006년 외국연극(수입초청)이 우리에게 남긴 문제, 문예연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7,

137 올해 2008년에는 러시아 노브고로트 말리극단의 인형극 <아빠가 들려주는 연극 교활한 거 인과 용감한 왕자 >이 1월 9일부터 12일까지 문화일보홀에서 공연되었는데, 종이를 이용하여 정교한 인형들을 만들어가는 이 연극은 독특한 창의적 상상력과 놀이성으로 어린 관객들의 특 별한 호응을 받았다. 29) 그리고 2008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 2006년 러시아 황금마스크 최우수 미술상을 수상한 러시아 브로댜차야 사바치카 극단의 <미운오리새끼>가 초청되어 5월 11일과 12일에 의정부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08년 한 러교류축제로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이 연극 <세 자매>(페도로프 연출) 로 18년 만에 다시 한국무대를 찾아왔고, 2005년 러시아 황금마스크 최고 연출상을 받은 타 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민다우가스 카르바우스키스 연출)가 초청되었다. 이들 연극 <세 자매>와 <바냐 아저씨>는 각각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9월 25일 부터 27일까지, 10월 3일부터 5일까지 공연되었으며, 특히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아저씨>는 일주일전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외에도 각 지역마다 지역문화 창달과 주민들의 문화예술 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연 극 관련 축제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러시아 공연이 무대에 올려졌다.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인형극 위주로 초청되었던 1990년대와는 달리 다양한 축제를 통해서 뛰어난 작품들이 우리 무대에 올려졌다. 러시아연극은 2000년부 터 2005년까지 가장 활발하게 초청되었고, 그 이후에는 약간 줄어든 추세였지만, 올 2008년 하반기에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의 <세 자매>와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로 인해서 러시아연극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1) 연출가연극(director's theatre) : 연극성 회복 2000년 이후에 한국 무대에 초청된 서구연극의 대부분이 연출가연극이었으며, 러시아연극 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출가연극은 배우가 텍스트를 충실하게 묘사 재현하는 희곡적 연극(dramatic theatre)에 대한 반발로 20세기에 발전한 연극이며, 연극을 문학으로부터 해방시켜, 연극의 고유한 특성 인 연극성 을 회복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연출가연극에서는 원작에 충실 한 텍스트 재현보다 연출가의 세계관과 예술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문학성보다는 연극성 이, 창의적인 무대표현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가들은 비언어적인 연극 기호와 무대 장치를 사용하여 문학으로부터 독립된 연기의 자율성과 연극성을 드러내기 위해 p ) 장성희, 작은 무대, 친근한 사물, 큰 공감 -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 한국연극, , pp

138 노력한다. 발레리 벨라아코비치 연출의 <햄릿>(유고자파드 극단)과 <갈매기>, 안드레이 프리코첸코 연출의 <Oedipus-Rex(오이디푸스왕)>(리체이넘극단)도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연출가의 시 각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한 연극으로, 이들 공연에서 연출가들은 무엇보다도 무대를 놀이 공간 으로 활용하여 연극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특성은 드라마 중심의 희곡적 연극이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지만, 동시에 기존 연극형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일부 연극인들에 의해 빈축을 사기도 했 다. 특히 러시아 사실주의연극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연극인들은 실험성이 강한 무대를 거부하는 현상까지 보이곤 했다. 사실 소설 텍스트를 각색한 포르말리니이극단의 <개와 늑대 사이>의 경우에는 연출가 안드 레이 모구치가 아예 대본을 만들지 않고 철학성과 다양한 이미지가 가득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한국 연극인들에게 충격이었다. 모구치는 원작에서 플롯의 기본 틀을 이미지로 바꿔서 다양한 퍼포먼스와 음악, 춤, 영상 등을 섞어 총체극을 만들었다. 또한 유리 류비모프도 <마라 와 사드>에서 피터 바이스 원작을 아크로바틱과 서커스를 적극 수용하여 광기가 가득한 카니 발적 음악극 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러시아 민속음악, 소울, 랩, 재즈, 컨추리, 블루스, 재즈- 록, 라틴, 록큰롤 등 다양한 음악과 춤, 노래, 보드빌 등을 섞어 화려한 축제무대와 같은 에너 지 넘치는 총체극을 만들었다. 데레보의 <신곡>은 단테의 <신곡>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무대를 그려냈으며, 레프 도 진의 <가우데아무스>나 <형제자매들>의 경우에도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내러티브만 차용 하되 그것을 단순히 배우의 연기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언어적 무대기호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갈등을 무대에 형상화하였다. : <형제자매들>의 공연이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주는 감동은 이렇게 총체연극(total theatre)을 통해 초시대적 인생의 진 리를 구현하는 데 있다. 각각의 표현수단들은 선과 면, 색상과 빛, 선율, 박자, 질감 등과 같은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독자적으로 관객에게 작품에 관해 말하고 있다. 30) 특히 레프 도진은 한국연극인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심리적 사실주의 연출법과 전통적인 스 토리텔링의 연극 의 요소와 연출가연극의 특성을 결합하여 21세기 다매체시대의 연극이 나아 가야 할 방향을 무대 위에 제시하였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네 개의 그네와 프로시니엄 문 두 개, 후미의 문 하나가 전부인 미니멀 리스틱한 무대장치를 이용해서 너무나 풍요로운 인간풍경을 진실 충만하게 창조해낸 그의 연 출력은 아무리 의식이 앞서간다는 유럽의 연극인들에게도 엄청난 감동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 이다. 도진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배우들을 서로 쳐다보게 하는 대신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서거나 앉게 했다. 그러나 이 반사실적인 블로킹도 인물과 인물 사이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현대적 시각화의 개념을 살리면서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정수를 실현하는 도진의 경이로운 업적이다. 나는 이 첨단의 시대에도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의 연극이 진정한 감동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반갑게 확인했다. 31) 30) 김형기, 이야기연극, 성찰의 연극 - <형제자매들>, 연극평론, 복간22호(통권42호), 가을호, p

139 이렇듯 러시아 연출가들은 이 시대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놀이성과 유희성, 강렬한 원시 적인 에너지와 카니발적인 축제성을 담은 총체극의 특성을 그들만의 연극성 으로 재창조해냈 다. 2) 신체언어 중심의 공연 : 배우 훈련 및 표현의 다양화 제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말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연극이 문학성 보다는 진정한 연극 성 을 찾기 위해 언어를 추방하면서 육체와 감각 기능을 강조하는 넌버벌(nonverbal) 연극이 나타났다. 언어를 배제한 연극은 복잡한 화극( 話 劇 )과는 달리 관객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2000년 이후에 초청된 외국공연들을 보면, 말에 기대지 않는 연극, 넌버벌 (nonverbal) 연극이 우리 무대에서 선호되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러시아극단들의 내한공연도 역시 대부분이 신체언어 를 중심으로 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가시성에만 주목한 사물화된 몸을 보여준 연극이 아니라, 사유와 의미를 양산해내는 독특한 러시아식 신체언어극 을 선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신체를 내세우는 공연무대에서는 발산에만 몰두하는 사물화된 배우들의 몸들이 넘 쳐난다. 사실 삶과 세계를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눌린 욕망과 소리를 표출해내는 몸은 현 대관객들과 거리감만을 조성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연극이 보여준 신체언어극은 사 유를 요구하는 철학성 과 놀이 유희가 살아있는 연극성 으로 신체언어극의 올바른 방향을 보 여주었다. 예를 들면, 데레보의 <Once>와 <신곡>의 경우, 잘 훈련된 배우들은 표정과 몸 동작 만으로 도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를 자유자재로 표현하여, 그 어떤 말로도 전달할 수 없는 깊은 감동 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특히 배우들의 몸짓은 관객들의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하여 사유를 놀이하는 무대 를 보여주었다. 등장하는 배우는 4명으로 이들은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것 없이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분열 화되어 대단히 많은 숫자의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비언어 신체극 을 실험 해 온 데레보 극단의 배우답게 자신들의 신체를 통해 변화무쌍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배우들 은 지옥과 천국의 모습일 수 있는 개념들 즉, 혼돈, 두려움, 공포, 희망, 기쁨, 사랑, 고독, 절 망의 모습들을 대사 없이 신체언어로 전달했다. 데레보는 배우들의 몸과 소리와 빛과 바람을 이용하면서 머리보다는 감각을 일깨워 이성보다 감성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지옥과 천국의 관 념, 개념을 감각적 이미지로 전달했다. 머리로의 추론은 느낌 이후에 온다. 32)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의 경우에는, 즉흥동작, 무용, 체조, 아크로바틱 등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배우들의 종합적인 연기 테크닉이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에 기초한 연기와 만나 내 31) 김윤철, 동시대의 위대한 연출가 레프 도진, 가우데아무스 공연 팜플렛, ) 임선옥, 지옥과 천국을 감각으로 교신하라!, 한국연극, , p

140 적 에너지 가 뿜어져 나오는 앙상블을 이루어냈으며, 마침내 영혼으로 말하는 단계로까지 발 전되었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도진에게는 배우훈련이 단순히 테크믹과 연습, 메소드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은 (중략) 도진의 배우훈련은 배우 개개인이 모두 독창적인 사고와 말하는 방법을 찾아내 마침 내 영혼으로 말하는 단계에 이르도록 인도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중략) 비단 러시아의 무대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단의 작품들이 그토록 강렬한 호응 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 본성과 실존의 문제들에 대한 진 솔한 성찰을 영혼의 언어 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극기호를 통해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33) 따라서 신체언어의 앙상블을 보여준 현대 러시아연극을 통해서 우리 연극인들은 배우들의 신체훈련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결국 한국연극의 발전을 위해 러시아 연출가들 을 초청하여 한국배우들을 훈련시키는 교육프로그램과 공동연극작업에 참여하도록 힘쓰는 등 적극적인 문화교류에 앞장서게 되었다. 34) 3) 시각적 시적 이미지로 그린 무대 공간 : 무대 미학 에 대한 관심 유도 스타니슬라프스키, 메이어홀드, 바흐탄코프, 타이로프 등 위대한 러시아 연출가들의 연극예 술은 시모프, 도부진스키, 수제이킨, 골로빈, 사푸토프, 포포바, 쿠즈네초프, 엑스테르 등 러시 아 미술가들이 함께 이뤄낸 것이다. 사실 러시아연극에서 무대미술은 배경이나 장식의 의미를 넘어서, 새로운 창조적 의미와 가 치를 생성해내는 연극언어이다. 따라서 작품의 공동연출자로서 인식되고 있는 러시아 무대미 술가들의 영향으로 우리 연극계의 가장 큰 변화가 시각적 인 무대미술의 발전이라고까지 평가 되기도 했다. 35) 러시아 무대미술가들은 시각적 이미지와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인상적인 무대공간 을 만들어냈는데, 까마 긴카스 연출의 <검은 수사>에서 무대미술가 바르힌은 1층 객석과 무 대 공간을 포기하고 객석 2층 발코니에 특수 무대를 설치하여 200석의 좌석만을 개방해 신비 33) 김형기, 이야기연극, 성찰의 연극 - <형제자매들>, p ) 사실 한국 배우들은 신체훈련에 대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었기 때문에, <보이체크>(부드소프 연 출, 예술의 전당, 2003)와 <갈매기>(지차트콥스키 연출, 예술의 전당, 2006)공연처럼, 러시아연출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었던 배우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연기교육의 문제점을 심각히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남 명렬, 우리에겐 제3의 언어가 있다., 연극평론, 2005년 가을, 통권38호, pp 참고.) 35) 그간 수입공연이든, 합작형태의 작품이든 여러 경로를 통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우리 무대에 소개되는 가 운데, 우리 연극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시각적 부분의 발전이라고 여겨지거든요. (중략) 학생들이 무대디자인 과제 해오는 걸 보면, 얼마 전에 LG아트센터나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무 대를 금방 모방해오지요. 그만큼 강하게 영감을 주었다는 반증이지요. 학생들이나 저나 좋은 걸 보고 흉내 내고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제가 보기엔 해외공연은 이런 관점에서 우리 연극 인을 교육시키고 영감을 주는 장기적 투자가치를 생각해 지속적으로 해내야합니다. ( 해외수입 및 합작공 연이 우리 연극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연극평론, 복간 18호(통권 38호), 2005, 가을호, p.30.)

141 롭고 환상적인 검은 수사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렸다. 데레보의 <신곡>에서는 원형무대와 객석 을 LG아트센터의 무대 위로 이동시켜 서커스 스타일을 접목하여 작품의 윤회적 메시지를 효 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러시아 무대공간은 특히 시적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점이 주목 할 만하다. 삶의 고통과 비극을 다룬 작품일지라도 러시아연출가들은 그 고통과 갈등을 서정 적인 시적 표현으로 결코 무겁지 않게 그린다.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 연극 <Once> 도 어린 소년시절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는 연극 <광대들의 학교>도, 절망과 혼돈을 이야기하 는 연극 <개와 늑대사이>도, 어두운 군대생활의 억압과 부패, 인간성 파괴를 그린 연극 <가우 데아무스>도 웃음과 미소를 가득 얹어놓은 시적인 황홀한 세계를 무대에 아름답게 펼쳐낸다. 폭력과 자학성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현대연극이 잃어버린 시적 미학을 러시아연극은 환상적으로 무대에 펼쳐낸다. 이런 점들이 미적 감동에 목말라하는 한국 현대관객들을 흥분 시켰던 것이다. 4) 성찰 사유의 무대 : 연극의 인문주의 회복 현대연극이 언어를 추방하고 그 대신 육체와 감각 기능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무대는 극 적 행동을 모방하는 정서적인 내러티브 드라마보다 온갖 자극적인 몸짓과 현란한 음악, 시각 적 이미지가 범람하게 된다. 따라서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 공간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경험 을 공유하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관객은 수동적으로 감탄만 할 뿐 이다. 감탄은 있지만 감동이 없는 연극, 그것이 현대연극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36) 이러한 시대에 현대 러시아극단이 보여준 공연은 잃어버린 연극의 감동, 즉, 연극의 인문주 의를 회복시키는 연극이었다. 공연을 관람했던 관객들은 체홉의 철학적 인문적 깊이를 다시 느끼게 했던 공연이었다.(<검은 수사>) 37) 데레보는 단테의 <신곡>을 통해 정신적 황무지에 살며 단비를 기다리는 우리 시대의 정신적 갈망을 신체극으로 옮겨 놓았다. (중략) 데레보 이기에 <신곡>에는 반짝이는 이미지 연극이나 페스티벌용 순회 연극 으로 폄하될 수 없는 철 학적 깊이가 느껴진다(데레보의 <신곡>) 38) 깊이 있는 연극적 장치와 심금을 울리는 소재를 바탕으로 슬라브인들의 깊은 전통성을 발휘한 공연 (<광대들의 학교>) 39) 철학과 인간성에 기초한 대륙의 문학적 전통을 살리는데 역점을 둔 작품 (러시아 극단 노키스키예 보로따의 <갬브리너스> 40) <스노우쇼>는 그것이 가지는 여백 때문에 다양한 의미 부여가 가능한, 그 래서 서사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인 공연이다 (<스노우쇼>) 41) 라고 평가될 정도로, 사실주의연극 36) 김윤철, "동시대의 위대한 연출가 레프 도진", 혼돈과 혼종의 경계에서, 연극과 인간, 2004, pp ) 이미원, 미흡했던 무대 효과, 돋보였던 인문적 깊이, 한국연극, , p ) 김미희, 데레보의 <신곡> : 삶의 의미를 묻는 지옥여행, 연극평론, 복간8호(통권28호), 2003, 봄호, pp ) 이선형, 기억의 창고, <광대들의 학교>, 연극평론, 복간19호(통권39호), pp.124~ ) 허순자, 사람냄새 물씬한 고품격, 저 예산의 대륙형 뮤지컬 - 러시아 극단 Nokiskie Vorota <갬브리너 스>, 한국연극, , p

142 에서부터 신체언어극과 음악극 및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현대 러시아극단이 보여준 공연에서는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들이었다. 러시아연극이 문학성이 강한 소설작품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지 만, 일반 창작무대나 인형극의 경우에도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뿌리가 깊은 러시아 문학예술의 전통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7시간 반이라는 긴 사유의 시간을 제공해준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은 우리 관객들 의 머리에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된 작품이었다. 평소 연극의 중요한 탐구대상이 인간의 영혼이 며, 연극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을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레프 도진은 <형제자매들>에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에 대한 무 거운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 관객들이 인간 자아 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기를 요구했다. 따라서 인간 존재와 영혼을 이야기하는 레프 도진의 무대가 우리 연극계에 던진 메시지는 너무나도 크다. 최근 들어, 한국연극계의 병폐로까지 지적되고 있는 연극의 남루한 일상성 재현 문제가 이러한 사유의 무대로 인해 다시 한번 날카롭게 비판받는 상황에 놓여졌다. 사실 일상성 에 매몰된 한국 무대는 진부할 정도로 획일화되고 가벼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지적 예술적인 충격을 받기 원하는 관객들에게 인간의 신성성과 존엄성을 부각시키는 러시아 연극은 우리 무대에 깊게 잠들어있던 사유의 문을 열고자 하는 자성의 계기가 되었다. 5) 소설의 연극화 : 각색 의 방향 제시 데레보의 <신곡>, 레프 도진 연출의 <가우데아무스>와 <형제자매들>(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까마 긴카스 연출의 <검은 수사>(젊은 관객 극단), 안드레이 모구치 연출의 <개와 늑대 사이>(포르말리니이 극단) 등 내한공연의 상당부분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특 히 <형제자매들>과 같은 작품은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대하소설의 연극화 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이들 각색 연극은 최근에 들어서 장르의 확장과 탈장르 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각색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 <죄와 벌>을 연극 텍스트로 각색하기 원하는 한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고 한다. : 드라마로 각색하기 위하여 소설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보존 하면서,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소설을 변화시키고 각색하십 시오. 아니면 근원적인 이념을 하나 잡아내고는 완전히 줄거리를 바꾸십시오. 42) 이러한 도스 토예프스키의 각색 에 대한 열린 시각은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러시아연출가들의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어, 공연들 대부분이 기존 원작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들만의 색채를 만 들어냈다. 레프 도진의 경우, 소설 각색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레프 도진은 소설 <건 41) 송민숙, 눈( 雪 )으로 쓴 광대의 시( 詩 ) -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pp ) ДостоевскийФ.М. Об Искусстве, М. 1973, с

143 설무대>를 공연 텍스트로 선택했을 때 연극작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처음에는 소설을 읽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 즉 자신이 군에서 겪었던 일들, 아픔, 추억, 인상 등을 바탕으로 습작품을 만들라고 과제를 내주었고, 자신들의 관점이 정립된 후에, 원작 소설을 읽도록 허락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만난 소설은 그들의 경험과 어우러져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텍스트로 재탄생 될 수 있었다. 이렇게 기본 틀이 잡힌 텍스트의 이야 기를 연출가는 극적 갈등이나 인물성격 등에 의해서 전개시키지 않고 정서의 파동과 리듬에 따라 풀어냈다. 그의 각색은 특히, 산문연극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형제자매들> 공연을 위해서 방대한 서사 텍스트를 각색할 때, 레프 도진은 언어와 비언어적 연극기호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시청각적 입체성과 공간성이 살아있는 공연 텍스트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그의 독특 한 각색 작업은 관심을 기울일만하다. 그리고 민중들의 삶의 고난을 장대하게 풀어놓은 대하 소설의 연극화는, 우리 연출가들이 각색의 폭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원작에 충실한 각색 태도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까마 긴카스의 작업도 잠 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까마 긴카스는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원작자의 언어를 해체하고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 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진정한 재해석은 어떻게 그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냐에 있다 는 사실을 강조하며, 체호프의 소설 <검은 수사>를 소설 그대로 무대에 옮겼다. 따라서 극적 방식을 포기하고, 서사적 방법을 활용하여 체호프의 텍스트가 배우들에 의해서 읽혀지는 흥 미로운 방식으로 무대 연출을 하였다. 원작을 해체하지 않고도 충분히 새로운 무대를 관객들 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든 원작을 해체한 각색이든 러시아연출가들이 보여준 각색 태 도는 연극의 고유한 특성인 연극성 놀이성 을 살리는데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연극 본연의 모습과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모스크바 말리극장이 <벚꽃동산>을 러시아극단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올린지 18년 만에 <세 자매>로 다시 한국무대를 찾았다. 3시간동안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무대, 지루하고 난해한 연극의 상징인 체호프극, 전광판에 비친 불완전한 번역 등 여러 장애요소에도 불구하 고 한국관객들은 연극 <세 자매>에게 다시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결코 편하게 관극하지 못하 게 만들었던 사유 의 무대에 감동했다. 급변하는 21세기 다매체시대에 구시대 박물관 분위기를 풍기는 국립극장에서 만난 사실주 의연극이 이렇게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관객들이 성스런 예술에 목말 랐다는 것은 아닐까? 사실 진부한 일상성과 가벼운 볼거리만 난무한 한국무대에 지쳐있던 관객들은 21세기에 연 극이 무엇인가 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러시아연극은 신성한 놀이 무대 를 그 답변으로 선택

144 했다. 즉, 영화, TV드라마, 컴퓨터게임 등 다양한 대중예술과 오락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러 시아연극은 성스러운 예술 로까지 연극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유 의 가치와 유 희 놀이 로서의 가치를 무대에 환상적으로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21세기에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연극성 이라고 보여주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러시아연극은, 현대연극이 드러내는 추함의 미학과는 달리, 사유를 놀이 하는 무대 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추할지라도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방식 은 따뜻함과 웃음이 살아있고, 서정성이 가득한 그림과 같은 표현이다. 억압과 부패가 가득한 괴로운 군대생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묘사하며, 비극의 역사도 희극적 무게로 감싸 안으며, 슬픈 인간 존재와 삶을 하얀 눈이 덮인 동화로 그린다. 따라서 무대가 보여주는 희극적 애상 은 더욱 깊은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잔인한 세상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발견하고 살 아가야 할 아름다운 이유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러시아연극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 바로 아름다움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연극은 미 적 가치 를 회복하는 무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연극만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배우들이 쏟아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다양한 무대 기호들이 앙상블로 만들어내는 러시아연극의 사유를 놀이하는 무대 안에서 우리 한국연극의 나아갈 방향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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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Директор Института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АН академик М.Л.Титаренко (Доклад на ХХ Международ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ИДВ РАН- Центр АТР университета Ханъян. Сеул, 6 октября 2008 года) ПОЛИТИКА РФ В СВА ПОСЛЕ ПРЕЗИДЕНТСКИХ ВЫБОРОВ В РОССИИ Тема моего выступления соврем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и российская политика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СВА) после выборов нового президента России Д.А.Медведева. Это достаточно широкая тема. Поэтому позвольте ограничиться следующими направлениями: Что означает новая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расширенная и дополненная по сравнению с текстом 2000 г. Как надо понимать последние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ие действия России, в частности, в связи с агрессией Грузии против Южной Осетии. Каково будущее отношений России со странами СВА в свете изменений, происходящих в мире. О нынешней концепции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 новой версии Концепции уделяется гораздо большее внимание развитию связей с азиатскими странами. Азиатский раздел документа 2000 года увязывал прямую принадлежность России к развивающемуся региону АТР лишь с необходимостью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подъема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При этом подчеркивалось, что «Упор будет сделан на активизации участия России в основных интеграционных структурах Азиатско- Тихоокеанского региона - форуме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е экономичес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региональном форуме Ассоциации стран Юг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АСЕАН) по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озданной при инициативной роли России «шанхайской пятерке» (Россия, Китай, Казахстан, Киргизия, Таджикистан) 1. При этом подчеркивается: акцент сделан на контекст многовекторности и возрастание значения и роли АТР. В новом документе 2008 года сохранены основные идеи прежнего, но особое место отводится дальнейшему укреплению ШОС, продвижению её инициативы по созданию сети партнерских связей между всеми интеграционными объединениями в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м регионе

147 Новые моменты нашли отражение в том, что а) подчеркнуто значение АТР и механизмов партнерства России с АСЕАН; б) развита тема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убрано упоминание об инициативной роли России в ШОС и одновременно подчеркнута роль этой организации. Похожим, и не всегда носящим косметический характер, изменениям подверглись и иные разделы,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 посвященные тем или иным странам АТР. В отношении связей с США упор сделан на необходимость «подведения под отношения с США солидно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фундамента, обеспечение совместной выработки культуры управления разногласиями на основе прагматизма и соблюдения баланса интересов, что позволит обеспечить большую стабильность и предсказуемость российско-американских отношений».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двух стран уже не является необходимым условием улучшения обстановки, более того, есть прямой намек на недостаточное следование Америкой норм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С другой стороны более развита тема прагматизма,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и баланса интересов. Россия открыто заявляет, что США произвольно нарушают свои обязательства и нередко игнорируют нормы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Что касается Японии, то РФ, как и прежде, выступает «за отношения добрососедства и созидательного партнерства с Японией в интересах народов обеих стран. Унаследованные от прошлого проблемы, над общеприемлемым решением которых работа будет продолжена, не должны становиться препятствием на этом пути 3. Проблема мирного договора и границ (читай «Северные территории») превратилась в проблемы вообще, а национальные интересы заменились на интересы народа, что,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есть завуалированное констатирование долговременных трудностей. Заметно усилен акцент на значении развития дружественных отношений России с Китаем и Индией. Вместо прежней фразы «одним из важнейших направлений российской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в Азии является развитие дружественных отношений с ведущими азиатским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с Китаем и Индией» написано, что связи с этими державами определены как «важнейшее направление»: «Важнейшим направлением российской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в Азии является развитие дружественных отношений с Китаем и Индией. Россия будет наращивать российско-китайское стратегическое партнерство во всех областях на основе совпадения принципиальных подходов к ключевым вопросам мировой политики в качестве одной из базовых составляющих региональной и глобальной стабильности. Главной задачей в области двусторонних связей является приведение объема и

148 качества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в соответствие с высоким уровнем поли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4. Как видно, в отношениях тема развития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Китаем по-прежнему позиционирована в качестве главной задачи, само же российско-китайс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охарактеризовано как стратегическое партнерство. Отношения с двумя странами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и корейский фактор как таковой увязаны с урегулированием региональных проблем Азии, при этом особо отмечено следующее. Принципиальное значение для России имеет общее оздоровление ситуации в Азии, где сохраняются источники напряженности и конфликтов, увеличивается опасность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оружия массового уничтожения. Усилия будут сосредоточиваться на деятельном участии России в поисках политического решения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на поддержании конструктивных отношений с КНДР 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на поощрении диалога между Пхеньяном и Сеулом, на укреплени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5. Отдельное внимание в документе 2008 года уделяется ясно декларированному курсу страны на формирование и поддержку многополярного миропорядка. На сей раз открыто прозвучал голос не «младшего партнера» Запада, а уверенный голос «суверенной демократии». Являясь постоянным членом Совета Безопасности ООН, участницей «Группы восьми» и целого ряда других влиятельных международных и региональ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механизмов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диалога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обладая значительным потенциалом и ресурсами во всех областях жизнедеятельности, интенсивно развивая отношения с ведущим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и объединениями всех регионов мира, последовательно интегрируясь в мировую экономику и политику, Россия оказывает существенное влияние на формирование новой архитектуры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тношений 6. Реакция на перспективу утраты историческим Западом своей монополии на глобализационные процессы находит свое выражение, в частности, в инерции политико-психологической установки на «сдерживание» России, включая попытки использовать в этих целях избирательный подход к истории, прежде всего к истории Втор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и послевоенного периода

149 И далее: Стратегия односторонних действий дестабилизирует международную обстановку, провоцирует напряженность и гонку вооружений, усугубляет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ые противоречия, разжигает национальную и религиозную рознь, создает угрозу безопасности других государств, ведет к росту напряженности в межцивилизационных отношениях. Применение принудительных мер с использованием вооруженной силы в обход Устава ООН и ее Совета Безопасности не способно устранить глубокие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ие, межэтнические и другие противоречия, лежащие в основе конфликтов, подрывает основы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и ведет к расширению конфликтного пространства, в том числе в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м геополитическом окружении России 8. Из порядка перечисления регионов видно, что Китай и Индия приобрели в глазах российской дипломатии статус «важнейших направлений», хотя регион СВА и ЮВА перечисляется после стран СНГ и ЕС. Таким образом, осознание роли Востока и значения связей с нашими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ми соседями для суверенной демократии России растет. Однако надо признать, что пока прежнее заявление В.В.Путина о евразийском характере российской политики и равнозначности евро-атлантического и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го векторов ее геополитики растворяются в понятии «многовекторности». Это можно объяснить несколькими причинами. Во-первых, Россия стремится вести равно ориентированную политику, учитывая новые тенденции в изменении миропорядка. Во-вторых, выработка нового места России в новых условиях требует определенной «диверсификации» союзников, в рамках которой наша страна пытается как бы отвязаться от того комплекса ориентации на западные ценности и зависимость от западного общественного мнения, навязанного ей во времена Ельцина-Козырева и имеющих давнюю историю еще с эпохи Петра I. В-третьих, речь идет и об экономических интересах, связанных с желанием «протянуть трубу на Восток». Кавказский фактор Проверкой нового курса и подтверждением верности данной концепции были недавние события, получившие в России неформальное название «Пятидневной войны». Как заявил 9 сентября 2008 г. Президент 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 «Нас пытаются подвергнуть политическому давлению. Нам не привыкать, но ничего они сделать не смогут. Мир после 8 августа стал другим (подч. мною М.Т.), нас поддержали сотни миллионов человек» 9. Днем раньше в ходе пресс-конференции по итогам переговоров с президентом Франции Николя Саркози в Москве глава Росси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добавил, что «Прежние подходы к обеспечению безопасности

150 показали свою слабость». Он отметил, что принципы однополярности и доминирования любых государств на международной арене неприемлемы. «Даже самые большие государства, такие, как США, не вправе определять правила игры для всего мирового сообщества. Для этого есть специальные институты - ООН, региональные организации. Именно они должны внести свой вклад», - подчеркнул Д.Медведев. По его мнению, «эффективность системы международ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которая дала сбой, связана с однобокостью и однополярностью, именно в силу желания решить возникающие кризисы за счет навязанных решений, за счет тех решений, которые предлагались с подачи одн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10. Таким образом, если ранее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и скорее декларировала многополярность, но на деле она была целиком ориентирована на Европу, сегодня вопрос стоит о многополярности реальной 11. Что же до деталей, то «Пятидневную войну» можно рассматривать как попытку России не нарушать миропорядок, сложившийся после Втор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а как желание сохранить его оправдавшие себя временем аспекты. Отличие ситуации от Косово, как минимум, в том, что Абхазия и Южная Осетия в свое время вышли из состава Грузии на волне того же процесса, в ходе которого Грузия вышла из состава СССР. Стоит напомнить и то, что Саакашвили примерно такой же видный демократ, как Ли Сын Ман: это касается и е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й политики, и отношения к правам человека, и методам работы с оппозицией, и ощущение себя мессией. В этой связи можно обратить внимание на то, что реакция практически всех стран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на эти события была весьма сдержанной, к примеру, Международное Радио Кореи посвятило «Пятидневной войне» всего одно сообщение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подчеркнув, что никто из граждан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не пострадал во время данного конфликта. Отметим и другое. Это курс определенных кругов в НАТО на создание в Кавказском регионе постоянно функционирующей горячей точки, на «охлаждение» которой Россия должна тратить определенные силы и ресурсы. Какое-то время таким проблемным регионом была Чечня, но сейчас обстановка там в достаточной мере стабилизировалась. Однако тем, кто хотел бы ослабить и сдерживать Россию, сделать её маргианальной страной «Верхней Вольтой с остатками ракетно-ядерного оружия» было бы выгодно, чтобы Россия растрачивала свои силы на решение подобных кризисных проблем. С другой стороны, руководство России продемонстрировало и то, что оно вполне может играть по новым правилам, которые, как ни прискорбно, обеспечивают успех, ибо речь идет не о двойных стандартах, а о том, что на

151 фоне кризиса мирового миропорядка некоторые вещи, которые ранее считались ограниченно допустимыми, стали применяться широко. А поскольку международные структуры, по сути, утратили функцию арбитра, то обвинять кого-то в «нечестной игре» означает заранее принять на себя роль проигравшего быка, которому не дозволено то, что дозволено Юпитеру. Поэтому, отреагировав так, как она отреагировала, Россия продемонстрировала, что желает быть одной из планет солнечной системы, а не тягловым скотом, на котором неизвестно кто возделывает неизвестно чье поле. Конечно, с такой реакцией связана широко муссируемая тема об имперских амбициях России. Это словосочетание западные журналисты очень любят. Хотя при более детальном анализе российской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становится понятно, что речь идет не о воссоздании империи, а о попытке претворять в жизнь самостоятельную концепцию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суверенного вели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которое на протяжении многих веков не меньше других стран и народов внесло и вносит вклад в развитие мировой цивилизации, а в новое время в поддержание стабильности и мира на планете. Ближнее зарубежье по понятным причинам является сферой основных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их приоритетов нашей страны. Ведь эти территории, начиная с XVI-XIX-XX веков, были неотъемлемой частью един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сначала Российской империи, затем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Там проживает около 30 млн. русских и российских граждан. И мы здесь не открываем Америки. Всего лишь подобно США, Китаю и другим суверенным государствам, Россия выстраивает вдоль своих границ благоприятную для нее «окружающую среду», которая,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очерчивает ее зону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в рамках меняющегося в сторону многополярности мирового порядка, с другой играет роль своеобразного буфера, с третьей не мешает России развиваться и решать свои внутренние проблемы, защищать права своих граждан и их безопасность. Стремление России восстановить свою международную роль, обозначить границы своей сферы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не является политикой доминирования. Напротив, обещания, данные Западом еще Советскому Союзу (касающиеся, в частности, не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НАТО на Восток), были грубо нарушены, став одной из косвенных причин ситуации на Кавказе.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что Саакашвили не сделал бы то, что сделал, если бы не был уверен в том, что из-за лояльности Запада ему все сойдет с рук, и вступление Грузии в НАТО, по его убеждению, дело лишь ближайшего будущего. Иное дело, что такие действия нового российского президента показались многим неожиданностью. Медведева воспринимали как человека более либерального. Он же, учитывая реальности, счел необходимым продемонстрировать твердость в защите национальных интересов России и её граждан. Твердость не только на словах, но и на деле. Кстати, об этом в свое время предупреждал Запад в беседе с канцлером ФРГ и В.В.Путин

152 Россия и СВА Перейдем теперь к тому, как, по всей вероятности, будут развиваться отношения России с государствами СВА и АТР. Начнем с Соединенных Штатов. Сейчас складывается более интересная ситуация, чем та «новая холодная война», о которой любят говорить некоторые «аналитики». Впрочем, надо отдавать себе отчет в том, что некоторые особенности реакции американской администрации связаны с грядущими президентскими выборами. На новые вызовы отвечать уже придется следующему президенту. При этом вне зависимости от того, придут к власти республиканцы или демократы, «разрядки» в российско-американских отношениях, видимо, в ближайшее время не предвидится. Маккейн известен своими не только анти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ми, но и открыто антироссийскими высказываниями. Что будет представлять собой американская внешняя политика при нем, в целом понятно из его предвыборных выступлений. Конечно, человек, который провел 7 лет во вьетнамском плену, имеет к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му режиму «личные счеты». Но те критерии, которые приложимы к обычному человеку, не всегда проявляются у опытных политиков. Мы знаем, что многие немецкие и японские военнопленные, многие годы пробывшие в лагерях СССР, потом после возвращения на родину были очень последовательными сторонниками дружбы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с нашей страной. Поэтому после выборов политика может приобрести иной лик. Что касается Обамы, то мы также не ожидали позитивных шагов в отношении России. Во-первых, на посту президента ему придется доказать, что он «больший католик, чем Папа Римский». Во-вторых, делая акцент на решении внутренних проблем страны, Обама может как бы «сдать»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ую сферу консерваторам, чтобы таким образом получить карт-бланш на то, что для него важнее. В-третьих, его ведущими советниками по вопросам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являются хорошо известные многим З.Бжезинский и Ричард Холбрук. Аудитории Р.Холбрук известен, полагаю, той ролью, которую он сыграл в «урегулировании» конфликта в Югославии, но корееведы помнят более давний и не менее симптоматичный момент в его политической биографии. Скажем пару слов и о вице-президентах. Сара Пейлин очень характерное лицо для Америки протестантского пояса. Несмотря на пост губернатора Аляски, ее реальная административная карьера невелика. Зато перед нами убежденная противница абортов, креационистка и почетный член Национальной стрелковой ассоциации. Достойная пара Маккейну, особенно с точки зрения компетентности

153 Джо Байден имеет репутацию опытного политика, но следует помнить, что во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е он является одним из учеников Бжезинского. В российской прессе широко обсуждаются его связи с грузинским лобби. Исходя из этого, резонно сделать вывод о том, что любая американская администрация будет настроена предубежденно и враждебно в отношении Росси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с нашей страной будет носить вынужденный характер, ибо нельзя полностью игнорировать российские ракеты и российские энергоресурсы. Но поскольку поведение России дало понять, что не считаться с нами нельзя, Вашингтон не будет серьезно пересматривать свою внешнюю политику на российском направлении, равно как и Москва на американском. Просто придется помнить, что это не прямолинейный процесс, а колебательный. Маятник может двигаться туда - сюда, но амплитуда его движения определена. Иное дело, что хотя американские неоконсерваторы традиционно воспринимают Россию как главного врага Америки и главный источник тенденций, направленных на изменение миропорядка и сбивание Америки с позиции общемирового гегемона, Россия в наименьшей степени инициирует этот процесс. Что касается российско-японских отношений, то и здесь пока не просматриваются принципиальные перемены. Правда, на сей раз отсутствие движения связано с затяжным политическим кризисом в Японии. В ситуации, когда премьер-министры сменяются примерно раз в полтора года, не просто заниматься долгосрочным планированием. Российско-китайские отношения по-прежнему на подъеме, наши страны эффективно сотрудничают, совместно решая многие проблемы, связанные с установлением нового многополярного миропорядка и защитой традиционных национальных ценностей от экспансии «общечеловеков». В частности, именно благодаря российско-китайск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нам удается сдерживать развитие ядерного кризиса. Однако есть и достаточное число вопросов. Безусловно, Китай останется нашим добрым соседом и стратегическим партнером,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с которым будет проходить не только по линии ШОС. Наша политика в этой области будет, скорее всего, направлена на поддержание равноправного партнерства и развитие экономических и культурных связей, направленных, в том числе, и на углубление взаимопонимания. Ибо традиционная ориентация российской элиты на Запад создает ситуацию, при которой Запад можно любить или не любить, но его знают, а Китай не знают, а его растущая мощь пугает наших западников. Не стоит ожидать изменений и от российской политики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которая будет оставаться равно ориентированной и выстроенной на принципах прагматизма. Понятно, что текущая политическая ситуация осложняет ряд проектов, связанных с двухсторонним или трехсторонним сотрудничеством, но желание осуществлять эт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у России было и есть. Если это желание встретит ответную деловую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с

154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 то наши отношения могут приобрести совсем другой мощный динамизм. Несмотря на то, что по своей политической ориентации президент Ли Мён Бак более явно демонстрирует свою лояльность и приверженность США, чем Но Му Хён, мы ожидаем, что прагматизм и желание продвинуть национальные интересы возьмут верх. В этом смысле мы надеемся, что визит Ли Мён Бака в Москву позволит двум президентам выработать те направления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о которым можно будет достичь зримых успехов в короткие сроки, так как в истории взаимоотношений наших стран было достаточно ситуаций, когда помпезные и широко разрекламированные проекты не реализовывались. Не станет принципиально меняться и отношение к Северной Корее. Конечно, ее действия в ядерной области вызывают сожаление, но причины, которые лежат в основе этого, также ясны и понятны всем. Поэтому Россия будет проявлять спокойствие и терпение, помня, что все разговоры о непредсказуемости Пхеньяна не более чем миф. Подводя итоги, можно сказать, что хотя в первые месяцы президентства Д.А.Медведева Россия сделала серию заявок на повышение своего статуса в рамках меняющейся структуры мира и подтвердила свое намерение отстаивать многополярный миропорядок, построенный на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региональных держав, радикальных изменени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и в СВА не предвидится. Вместе с тем, в случае продолжения обострения отношений с Западом можно ожидать повышения внимания к этому направлению и особенно к е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й составляющ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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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И ПОИСКИ НОВОГО МЕХАНИЗМА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Доклад на ХХ конференции ИДВ РАН Центр АТР Ханьян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Сеул, 6-7 октября 2008 г. А.З.Жебин Руководитель Центра коре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нститут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АН 1. Введение Шесть лет тому назад, в октябре 2002 г. началось очередное обострение ситуации вокруг ядерных программ КНДР. Как теперь стало совершенно очевидным, кризис был инициирован США, которые с тех пор так и не смогли представить не только мировой общественности, но и своим ближайшим союзникам доказательств наличия у КНДР второй, имеющей военной значение программы обогащения урана. США воспользовались сфабрикованным ими же самими поводом для окончательного отказа от Рамочных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и перехода к открытому курсу на смену режима в Пхеньяне. Таким образом, именно в Корее были впервые опробованы провокационные приемы американских неоконсерваторов, которые затем использовались для вторжения в Ирак - суверен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преднамеренно обвинялись в несуществующих грехах, под предлогом «наказания» за которые США производили свержение неугодных им режимов и захватывали страны с богатыми природными ресурсами. Совсем недавно, в минувшем августе исполнилось пять лет с начала в Пекине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ю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То и дело прерываемому переговорному процессу пока не видно конца. Он уже стал самым продолжительным в дипломатической истории полуострова. Достаточно напомнить, что переговоры о заключении

157 перемирия в Корее, положившего конец Корейской войне, заняли всего лишь около двух лет (с лета 1951 по 27 июля 1953 г.). В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оказались вовлечены самые могущественные в политическом, экономическом и военном отношении страны современного мира США, Россия, Китай, Япония, а также два корейских государства. Помимо большого числа высокопоставленных дипломатов, корейской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атикой эти годы были вынуждены практически постоянно заниматься главы государств и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их ведомств «шестерки» и ряда других стран, она прочно утвердилась в повестке дня ООН, МАГАТЭ, саммитов «большой восьмерки», АТЭС, АРФ и других крупных международных форумов. Тем не менее, после пяти с лишним лет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усилий и подписания ряда совместных документов, зафиксировавших согласованные, компромиссные подходы к решению проблемы и начала работ по выводу из строя основных объектов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плутониевой программы, переговоры столкнулись с самой серьезной угрозой их длительной приостановки, а то и отката процесса денуклеаризации вспять. 1 В данном докладе делается попытка исследовать причины создавшегося положения, а также рассматриваются перспективы построения системы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которые стали все более активно обсуждаться по мере продвижения шестистороннего переговорного процесса. Автор приходит к выводу, что политика «малых шагов» и перехода от простого к сложному, предлагаемая в качестве пути для создания такой системы пока не работает и, маловероятно, что принесет успех без решения ключевой, основополагающей проблемы - выработки соседними «крупными странами» вместе с корейцами на Юге и на Севере общеприемлимого для всех видения места будущей объединенной Кореи в новой архитектуре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2.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состояние и шансы на успех Публично «большая четверка» (США, Китай, Россия и Япония) едина в том, что главной целью переговоров является избавление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от ядерного оружия. Возникает вопрос, почему же, несмотря на такое согласие, достигнутое, кстати, впервые за полтора века их довольно острого соперничества за влияние в Корее, переговоры идут с большим трудом, «зависая» порой на месяцы и даже годы? 1 Заявлением МИД России

158 Ссылки на несговорчивость режима в Пхеньяне выглядят все менее убедительными в свете продемонстрированной северокорейцами в течение гг. способности к трудным для их партнеров, но, в целом, приемлемым для всех компромиссам. Дело в том, что помимо заявленной главной задачи ликвидации северокорейских ядерных программ США и некоторые другие участники шестистороннего процесса все эти годы не оставляли попыток реализовать вторую, не афишируемую ими повестку дня в корейском вопросе. При этом достижению этой второй, необъявленной цели, как правило, подчинялось выполнение первой, официально заявленной задачи: добиться денуклеаризации полуострова. Об этой, второй повестке дня, вновь открыто заговорили в эти дни в связи с многочисленными сообщениями зарубежных СМИ о болезни нынешнего лидера КНДР Ким Чен Ира, могущей, якобы, привести к дестабилизации обстановки и даже падению нынешнего режима в КНДР. Эта повестка заключается в том, чтобы тем или иным путем «организовать» коллапс режима в Пхеньяне и объединить полуостров. Формально объединение планируется провести под эгидой Сеула. На деле же некоторые круги в США делают ставку на то, чтобы, опираясь на проамериканскую линию той части правящих кругов, которая недавно пришла к власти в Южной Корее, обеспечить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й контроль США над всем Корейским полуостровом. Не случайно, что именно из США вновь зазвучали призывы к Южной Корее срочно разработать совместный план действий на случай столь долго ожидаемого краха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го режима. 2 На протяжении более чем 5-летнего переговорного процесса американская сторона неоднократно меняла тактику на переговорах. Неизменной оставалась лишь одна стратегическая линия - отложить на как можно более поздний срок свои встречные, практические шаги по ликвидации озабоченностей КНДР и нормализации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отношений с этой страной. Такой курс заставляет задаться вопросом - а заинтересованы ли США по геополитическим соображениям в полном исчезновении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угрозы»? Анализ показывает, что полная ликвидация этой угрозы в результате нормализации отношений КНДР с США неизбежно поставила бы под вопрос мотивы сохранения военного присутствия США в Южной Корее. Вывод оттуда американских войск мог вызвать такое же развитие событий и в Японии. В результате оказался бы выбит краеугольный камень из-под всей стратегии 2 Yonhap

159 США в АТР, которая основывается на двусторонних военных альянсах с Японией и РК и передовом базировании американских войск в этих странах, предназначенных не для сдерживания КНДР, а для обеспечения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ого доминирования США в регионе и сдерживания Китая. Во-вторых, исчезни в результате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явно раздутая т.н. "ракетная угроза" КНДР - и обнажились бы истинные цели развертывания Соединенными Штатами системы ПРО в регионе - нейтрализовать ракетноядерные средства сдерживания РФ и КНР. Поэтому США на самом деле, никогда не добивались полной разрядки напряженности и примирения в Корее. Для Вашингтона выгодно либо, в качестве программы-минимум, поддержание определенного уровня напряженности на полуострове, что позволяло ему продолжать держать там войска и развертывать ПРО, либо, в оптимальном варианте, смена существующего в КНДР режима тем или иным путем, в том числе и за счет «мирного» проникновения» в эту страну. В этом случае США обрели бы контроль над уникальным, не имеющим аналогов в мире по военно-стратегическому значению районом Азии, находящимся на стыке границ России, Китая и Японии - Корейским полуостровом. Значение контроля над этим районом невозможно переоценить в свете нынешней американской стратегии окружения Китая. Обращает на себя внимание еще одно обстоятельство. Пока одни американские дипломаты намекали, что решение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е за горами, что, в конечном итоге, казалось бы, должно снять т.н. «северокорейскую угрозу», другие представители США в ходе контактов с российскими представителями упорно продолжают мотивировать свои планы создания ПРО в Европе и в СВА наличием этой угрозы, хотя и не отрицали, что реальной она может стать лишь через несколько лет. Такой «разнобой» может свидетельствовать только об одном - никакой нормализации отношений с КНДР не планируется даже в среднесрочной перспективе, а не то что до конца президентского срока Дж.Буша. Не планируется по гораздо более глубоким и серьезным геополитическим соображениям американцам нужен «плохой парень» в регионе для оправдания блоковых комбинаций и перегруппировки сил с целью сдерживания набирающих силу Китая, да и России тоже. Несмотря на предоставление Пхеньяном декларации о своих ядерных программах администрация Буша, уведомившая Конгресс о намерении удалить

160 КНДР из списка стран-спонсоров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терроризма, отказывается пойти на этот шаг до согласия КНДР на тот вариант проверок представленных в декларации сведений, который устроил бы Вашингтон. Точные параметры американских требований по поводу верификации пока неизвестны. Но просочившиеся в печать выкладки аналитиков консервативной «Херитидж фаундейшн» дают вполне определенное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претензиях США. Согласно этим планам, режим инспекций в КНДР должен сочетать сразу три механизма проверок, применявшихся в договорах о сокращении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вооружений (START-1), о ликвидации ракет средней дальности и об обычных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ах в Европе. Инспектора должны получить право доступа не только на задекларированные Пхеньяном, но и на любые другие объекты, которые они посчитают необходимыми осмотреть на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Предусматриваются также внезапные инспекции, предоставление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ой самых различных данных об объектах, включая их географические координаты,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пециального оборудования и т.п. 3 Причем такие проверки предполагается начать еще до нормализации американо-северокорейских отношений, которое в Вашингтоне отодвигают на неопределенное будущее. В случае же отказа северокорейцев согласиться на повальные обыски, на них можно будет возложить всю вину за очередной «провал дипломатии». Не случайными представляются и «внезапные» сомнения американцев по поводу того есть ли у КНДР программа обогащения урана и где это производство находится. На практике, эти «сомнения, трансформируются в призыв тщательно его поискать. Тем самым США подводят основу под свои требования о буквально, по словам пожелавшего остаться неназванным чиновника администрации Дж.Буша, «проктологическом» обследовании всех интересующих их объектов, прежде всего подземных, на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Ведь карты Пентагона на этот счет удручающе неполны. А именно это обстоятельство, по признанию авторитетного в военных кругах журнала «Атлантик», остается одним из главных препятствий (с военно-технической стороны дела) для силового решения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проблемы». В общем, создается впечатление, что кое-кто в США рассчитывает на короткую память других участников переговоров и,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3 Klingner B. Confronting the North Korean Nuclear threat. Backgrounder. The Heritage Foundation. No April 4, p.5,

161 северокорейцев и не прочь повторить иракский сценарий: когда все цели будут нанесены на карты, можно будет заявить международному сообществу, что «караул устал» и приступить к «разоружению» на свой манер. Вряд ли в Пхеньяне не задаются вопросом - а не произойдет ли в Корее повторение иракской ситуации, когда, после проведения беспрецедентных по глубине проверок в Ираке, США, воспользовавшись полученными данными о местонахождении иракских военных и других важных объектов, напали на эту страну. Поэтому в КНДР решительно отвергли возможность таких «обысков» и напомнили, что именно явно чрезмерные требования, касающиеся проведения инспекций, привели к первому ядерному кризису в Корее. 4 Ожидать гарантий от такого нападения от международных структур, по мнению Пхеньяна, не приходится. В КНДР не скрывали своего глубокого разочарования по поводу той роли, которую сыграли ООН и ее Совет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обытиях вокруг Ирака. В Пхеньяне отметили, что СБ ООН оказался не состоянии чтолибо противопоставить произволу США. Более того, полагают в КНДР, этот орган "был использован" для разоружения Ирака с целью его захвата, а в последующем - и для "оправдания агрессии" США. 5 В ответ Пхеньян, декларируя свою приверженность уже принятым на себя обязательствам (документы 19 сентября 2005 г., 13 февраля и 3 октября 2007 г.) на практике все жестче стал соизмерять свои меры по их реализации со встречными шагами США и других участников переговоров. К осени 2008 г. стало ясно, что предпринятая США и КНДР попытка разрешить такой сложнейший вопрос, как корейский, как говорится, в очном поединке, мало (если вообще) считаясь при этом с интересами других участников переговорного процесса, и с уже достигнутыми при их участии договоренностями иллюзорны. Несмотря на весь достигнутый прогресс, конечный результат переговоров предсказать становится все более затруднительным. Нынешние шаги КНДР по реанимации своей плутониевой программы носят пока больше демонстрационный характер. Вместе с тем ясно, что у Пхеньяна пока нет никаких стимулов двигаться дальше по дороге денуклеаризации. Как показали начавшиеся телевизионные дебаты обоих главных кандидатов в президенты, оба они занимают довольно жесткую позицию по Северной Кореи 4 Foreign Ministry's Spokesman on DPRK's Decision to Suspend Activities to Disable Nuclear Facilities. KCNA. August 26, Klingner B. Ibid

162 и могут пересмотреть любые уже достигнутые соглашения. Достаточно свежий и весьма наглядный пример тому те перемены в корейской политике США, которые произошли после прихода в Белый дом администрации Дж.Бушамладшего. Стоит отметить, что США так и не удалось превратить шестисторонний механизм в инструмент коллективного давления на КНДР. Чтобы не допустить этого, Россия неоднократно отклоняла предложения США о проведении встреч участников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в пятистороннем формате (без КНДР). 6 Напротив, США нередко сами оказывались фактически в изоляции на переговорах. В то же время Россия, РК и КНР гораздо чаще, чем кто-либо ожидал, находили друг друга в одном лагере и совместными усилиями позитивно воздействовали как на поведение США, так и КНДР. В этом плане шестисторонний механизм себя во многом оправдал. Он обеспечил полноценное участие средних держав - РК и КНДР - в обсуждении не только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о и других региональных проблем безопасности. Он помог подвести страны региона к пониманию того, что решение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может быть найдено только в контексте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как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КНДР с США, так и более общих проблем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СВА. Было бы неправильным утверждать, будто Россия занимает пассивную позицию в разрешении ядерных и других проблем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Напротив, это направление стало одним из основных во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их контактах России, в том числе на высшем уровне, с обоими корейским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и другими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ми странами - КНР, США и Японией. В самом начале кризиса вокруг ядерных программ КНДР Россия сумела предложить линию на разрешение конфликта путем поиска разумных компромиссов, которая впоследствии и была принята участниками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Кроме того, именно Россия оказалась их единственным участником, смогшим в 2007 г. вывести переговорный процесс из затянувшегося почти на два года тупика, вызванного замораживанием средств КНДР в одном из банков Макао. 6 Век

163 В Москве выразили «разочарование и озабоченность» по поводу решения КНДР приостановить вывод из строя ядерных объектов в Ненбене. 7 Вместе с тем российская сторона напомнила, что государства-участники переговоров условились, что будут руководствоваться принципом «действие в ответ на действие». Это означает, что мероприятия в области денуклеаризации, осуществлявшиеся КНДР, должны сопровождаться встречными конструктивными политическими и экономическими шагами со стороны пяти других участников переговоров. Похоже, что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этого не происходит. 3. Поиски новой архитектуры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вызовы и возмож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как известно, нет какого-либо многостороннего института обеспечения безопасности. Высказывалось мнение, что механизм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мог бы послужить в будущем фундаментом создания восточно-азиатской модели организации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8 Однако в свете трудностей, с которыми раз за разом сталкиваются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надежды, высказывавшиеся некоторыми экспертами, на превращение данного форума в некий региональный механизм по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последнее время несколько потускнели.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в создании таких структур все чаще стала декларироваться на самых различных уровнях. Интерес к созданию нового механизма мира и созыву соответствующего форума был зафиксирован в совместной декларации президентов РК Но Му Хена и США Дж.Буша от 17 ноября 2005 г., а также в документах второго межкорейского саммита между лидерами РК Но Му Хеном и КНДР Ким Чен Иром 4 октября 2007 г. 9 В совместном заявлении, принятом участниками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19 сентября 2005 г. в Пекине по итогам пятого раунда «шестисторонки» содержится обещание искать пути и способы развития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10 област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Участники «шестисторонки» проявили определенную активность в обсуждении указанных 7 Заявлением МИД России Время новостей и 19 марта. 9 Joint Declaration on the ROK-US Alliance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November 17, Сеульский вестник The Korea Herald

164 проблем на прошедшем августа 2007 г. в Москве первом заседании рабочей группы по созданию механизма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созданной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принятым 13 февраля 2007 г. планом первоначальных действий по реализации Совместного заявления от 19 сентября. 11 На состоявшейся 23 июля 2008 г. в Сингапуре неофициальной встрече министров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государств- участников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ю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было позитивно встречено российское предложение об активизации работы в рамках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 согласованию проекта «руководящих принципов обеспечения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12 Однако дальше процесс застопорился. И не по вине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Специалистам по СВА хорошо известно, что американцы в своей политике в регионе делают главную ставку на свои двусторонние военные альянсы с рядом стран региона и предпочитают двусторонние "треки" для решения возникающих проблем. Такой подход зафиксирован и в ряде официальных документов, касающихся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ой и оборонной политики США в регионе. Как правило, США не только не стремились к созданию многосторонних механизмов в АТР, но и откровенно препятствовали их возникновению, за исключением разве что контролируемых ими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х блоков. Нынешнее участие США в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ах - явление вынужденное: администрация Буша после прихода к власти почти два года отказывалась вести переговоры с КНДР на двусторонней основе, причем по соображениям, которые и поныне остаются в силе. Согласиться на многосторонний формат решения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США вынудил комплекс неблагоприятных для них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их обстоятельств, делавший невозможным после вторжения в Ирак повторение такой же операции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К этим фактором можно отнести прежде всего реакцию в мире на вторжение в Ирак и позицию соседних с КНДР государств. Сыграли свою роль и внутриполитические соображения. Еще при Клинтоне контролируемый республиканцами конгресс препятствовал выделению средств О неофициальной встрече министров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государств- участников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ю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Сообщение для СМИ

165 на финансирование поставок топлива КНДР предусмотренных Рамочными договоренностями 1994 г. Уже тогда американцы были вынуждены буквально заставлять ряд своих союзников частично оплачивать такие поставки. США рассчитывали, и как мы сейчас видим, не без оснований, что при многостороннем урегулировании им удастся уменьшить это бремя или во многом переложить его на других по принципу: каждый участник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платит за себя. При двустороннем диалоге с КНДР все расходы пришлось бы нести самим США. Так что за выбором многостороннего варианта в Корее стояли вполне конкретные политические соображения и экономические расчеты, а не «последовательный курс» администрации Дж.Буша на решение проблемы с учетом интересов других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государств, как пытаются нас сейчас, задним числом, уверять некоторые отставные высокопоставленные сотрудники госдепа и известные аналитики. 13 Напротив, именно в этот период во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е США особенно явственно проявилась опасная тенденция, заключающаяся в том, что международные организации и многосторонние механизмы нужны Вашингтону не для поиска приемлемых для мирового сообщества компромиссов, а для легализации и прикрытия односторонних, произвольных действий США. Если же этого добиться от многосторонних структур не удается, как произошло в Ираке и в случае с Косово, США начинают действовать в одностороннем порядке, игнорируя даже такие органы как СБ ООН. Те, кто уповал на скорое превращение «шестисторонки» в постоянно действующий механизм по вопросам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регионе, почему-то «забыли» о том, что одной из ключевых установок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ой концепции американских неоконсерваторов является курс на постепенную дезинтеграции США из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освобождение Америки от "ограничений", налагаемых многосторонними структурами с целью одностороннего и ничем не ограниченного применения военной силы по всему миру, разумеется, с целью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свободы и демократии, а на деле - обеспечения мирового господства США. Показательна в этом плане судьба Организации по развитию энергетики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КЕДО). Несмотря на все недостатки, которыми отмечена ее деятельность, в гг. она была единственным не виртуальным, а реально действующим механизмом многостороннего

166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о решению не только экономических (энергетика), но и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х проблем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нераспространение ОМУ и безопасность). И что же? В конце 2005 г. США настояли на прекращении ее работы, несмотря на возражения своих союзников южнокорейцев и отсутствие энтузиазма по этому поводу у ЕС и даже у обычно послушных японцев. Нескрываемая радость, охватившая многих американских аналитиков после победы Ли Мен Бака на президентских выборах в РК объясняется их надеждами, что новое руководство РК, в отличие от администраций Ким Дэ Чжуна и Но Му Хена, станет фактически следовать американской линии в отношении КНДР. Есть все основания предполагать, что очередная задержка в реализации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достигнутых в 2007 г. на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ах, не в последнюю очередь вызвана возродившимися кое у кого надеждами на создание «единого фронта» для продавливания своей интерпретации указанных соглашений и навязывания своей воли Пхеньяну. 14 Всячески пытаясь затормозить межкорейское сближение, США тем самым препятствуют и реализации многосторонних экономических проектов в регионе с участием России, РК и КНДР, а также ряда других стран. Понятно, что такие проекты могут быть осуществлены только в условиях нормальных отношений и широко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между Севером и Югом Кореи. Тем самым США пытаются затормозить экономическое и социальное развитие российского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которое в России связывают с реализацией указанных проектов. В этой связи стремление некоторых аналитиков зачислить всех соседей Кореи, в том числе Россию, в число противников ее объединения, представляет собой ни что иное, как попытку замаскировать эгоистические интересы ряда стран, рассматривающих полуостров как пешку в их геополитических комбинациях. России, и с точки зрения безопасности, и по экономическим соображениям примирение двух Кореей и широ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между ними, безусловно, выгодны. Наконец, формальное создание шестистороннего механизма (или даже пятистороннего - без КНДР) отнюдь не означает, что такой форум сможет реально способствовать укреплению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Так, военные программы, действительно влияющие на соотношение сил, а значит и на безопасность в регионе (создание ПРО ТВД, расширение функций 14 The Washington Post. December 26,

167 "сил самообороны" Японии за пределы региона, модернизация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 РК при содействии США, поставки крупных партий новейших американских вооружений Японии, РК и Тайваню, а также модернизация китайской армии) осуществляются на национальной или двусторонней основе. Вызывает большое сомнение, что США и, возможно, некоторые другие страны региона согласятся сделать указанные программы предметом обсуждения на таком форуме. Наиболее сильная оппозиция каким либо существенным переменам в сложившейся системе безопасности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будет, вероятно исходить из Пентагона, считают некоторые американские специалисты. Они предупреждают, что если в Пхеньяне не почувствуют каких-либо позитивных перемен в этой системе, там могут пересмотреть свои решения о выводе из рабочего состояния своих ядерных объектов. 15 Некоторые американские аналитики уже сейчас, что называется открытым текстом, требуют, чтобы вопросы американского военного присутствия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и в Восточной Азии в целом не были предметом обсуждения на любом многостороннем форуме, который может быть создан в этом регионе. 16 Они также считают, что любые мирные режимы и механизмы в СВА не должны «подвергать риску» существование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х альянсов США с Японией и Южной Кореей, на которых и будет продолжать основываться сильные позиции США в регионе. 17 Таким образом, правящие круги и большинство аналитиков в США рассматривают любой возможный в будущем механизм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ВА в качестве своего рода «довеска» к системе существующих со времен «холодной войны» двусторонних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х союзов. Такого рода механизм будет иметь две основные цели закрепление и легитимация американского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ого доминирования в регионе и контроль над политикой тех государств, которые еще не охвачены системой двусторонних союзов с США. Такому форуму уготована участь "круглого стола" для обмена мнениями, а не организации, реально влияющей на безопасность в регионе. Между прочим, похожая организация на рабочем уровне существует уже почти два десятка лет и так и не смогла привлечь в себе ни внимания общественности, ни интереса со PacNet Newsletter Там же

168 стороны руководства стран-участниц, которые, кстати, являются и участниками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Речь идет о Диалоге по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в котором с 1991 г. участвуют представители России, США, КНР, Японии, КНДР и РК. Форум идет в формате «полуторной дорожки» - каждая делегация включает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министерств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обороны, в том числе т.н. офицеров в форме, а также ученых из работающих на правительство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х центров, занимающихся проблемами в сфере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и безопасности. Опыт корейског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на протяжении последних двух десятилетий, в том числе то и дело возникающие трудности в разрешении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заставляют вспомнить слова о том, что, не решив главного, общего вопросы, мы то и дело будем спотыкаться о мелкие, частные проблемы и не знать, как с ними справиться. Такой главной, ключевой проблемой, которую предстоит разрешить участникам будущего мирного режима в СВА является выработка общеприемлемого видения новой архитектуры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 Восточной Азии, отвечающей реалиям ХХ1 века и характерным для него новым вызовам и угрозам. В практическом плане речь идет прежде всего о месте будущей объединенной Кореи в региональной системе безопасности. Многие политики и эксперты в Вашингтоне, Токио и Сеуле видят это место в рамках трехстороннего альянса США-Япония-РК, к которому уже сейчас пытаются пристегнуть Австралию. Однако такой подход вряд ли может устроить Москву и Пекин, которые, скорее всего, будут воспринимать такой союз как механизм сдерживания России и КНР. Это было бы равнозначно возникновению на наших восточных границах азиатского подобия НАТО, прикрытого уже сейчас активно создаваемой США системой ПРО ТВД. Утверждение о том, что раскол Кореи является одним из наиболее зловещих наследий «холодной войны» стало практически общим местом во всех рассуждениях о ситуации в регионе. Однако практически все западные аналитики и политики сводят ликвидацию этого наследия к необходимости добиться желательных для США и их союзников перемен во внешней и внутренней политике КНДР, а еще лучше смены режима в этой стране по выгодному для них сценарию. Но разве не являются таким же наследием «холодной войны» военные союзы

169 США с Японией и РК? Прошло уже почти два десятилетия с тех пор, как на Западе стали говорить о ее окончании, но от этих альянсов не только не собираются отказываться, но напротив, пытаются их всячески укреплять. Между тем Россия от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х договоров со странами региона давно отказалась, наши армия и флот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значительно сокращены. Сейчас даже самые закоренелые русофобы уже не решаются утверждать о наличии какой-либо российской угрозы в регионе. Так что обсуждения вопросов о характере, направленности и самой обоснованности существования указанных двусторонних союзов США в их нынешнем виде не избежать. Особенно деструктивными представляются попытки США использовать такие союзы и лоббируемые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блоковые комбинации различной конфигурации фактически для сдерживания мирного возвышения Китая, да и России тоже. Такие меры не могут вызвать вполне обоснованной озабоченности в Москве в свете идущего в Европе аналогичного процесса приближения сформированных в эпоху «холодной войны» блоков к границам России. Схожие тревоги испытывают и в Пекине, о чем с необычайной для китайцев откровенностью было заявлено в ходе визита нового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президента Ли Мен Бака в КНР в мае 2008 г. Не верят китайцы и посулам американцев, которые уверяют их, что в случае развала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го режима США не расширят свое военное присутствие на северную часть полуострова. В Пекине тут же вспоминают об аналогичных обещаниях, дававшихся советскому руководству в конце 80-х годов прошлого столетия насчет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и сопоставляют их с нынешней реальностью. Россия никогда не ставила перед собой задачу добиться господствующих позиций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Вместе с тем она традиционно была заинтересована в том, чтобы этот район не оказался под преобладающим влиянием какой-то другой, тем более недружественной нам державы, или стал местом, откуда могла бы исходить угроза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и. Во всяком случае, в силу даже одного только географического фактора прав у России на такой подход ничуть не меньше, чем у стран, отделенных от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морями и, тем более, океанами. С этой точки зрения заявленное стремление КНДР добиваться создания на полуострове нейтрального, неприсоединившегося, внеблоков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выглядит, с точки интересов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и, предпочтительнее позиции некоторых кругов в Вашингтоне и Сеуле, твердящих о необходимости

170 сохранения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ого союза с США и присутствия там американского воинского контингента даже после объединения Кореи. Нынешние почти немаскируемые попытки превратить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в передовой форпост морских держав США и Японии против континентальных России и Китая уже затянули решение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а полуострове на полтора десятилетия (первый кризис вокруг ядерных программ КНДР разразился в 1993 г.) и впредь будут мешать, а зачастую и блокировать полноценное многосторонне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корейском урегулировании, в том числе и в создании благоприятных международных условий для воссоединения Кореи. 4. Программа для Кореи Вопрос о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ой ориентации единого коре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его будущих союзах чрезвычайно важен, разумеется, не только для России и Китая, но и для США и Японии и, безусловно, для самих корейцев. Нейтрализация будущей объединенной Кореи при международных гарантиях со стороны США. КНР, России и Японии может оказаться наиболее приемлемым для всех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сторон вариантом корейског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Государства «большой четверки» гарантируют нейтральный статус объединенной Кореи, воздерживаются от заключения с ней каких-либо военных договоров, берут друг перед другом (и корейцами) обязательства не размещать и не направлять в Корею свои войска (за исключением случаев единогласных решений СБ ООН, принятых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Уставом ООН). Со своей стороны, Корея объявляет себя нейтральным государством, берет обязательства не заключать военных договоров с другими странами (соответствующие договора КНДР с КНР и США с РК прекращают свое действие), не приглашать никаких иностранных войск на свою территорию, а свои направлять за рубеж только в качестве миротворческих сил по решению СБ ООН. Участие объединенной Кореи в разного рода невоенных международных и региональных организациях (АТЭС, АСЕМ, Региональный форум АСЕАН и т.п.), двусторонние соглашения об экономическом, культурном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сячески приветствуется и поддерживается. Уже данные Севером и Югом в ряде межкорейских документов обещания добиваться объединения мирным путем должны приобрести юридическую силу и гарантированы «большой четверкой». Эти гарантии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и

171 условия должны быть приняты Сеулом и Пхеньяном. Это позволит им приступить к существенным взаимным сокращениям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 и вооружений на полуострове, а также к выводу оттуда иностранных войск. В результате КНДР высвободит значительные средства для модернизации своей экономики, а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для оказания ей помощи в этой работе. Неизбежен вопрос а согласятся ли сами корейцы на такие ограничения суверенитета своего будущего един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На это можно ответить, что мы живем в эпоху ограниченного суверенитета. Практически все государства современного мира, в том числе и крупные, являются участниками сотен международных договоров, соглашений, различ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которые ограничивают этот суверенитет для их собственного и общего блага. Разве члены ЕС, совершенствуя свою организацию, не согласились добровольно поступаться своим суверенитетом во имя общеевропейских выгод? А разве сильно «страдают» международные позиции Австрии и уровень жизни народа Австрии, вот уже более полувека живущей в условиях нейтралитета, «навязанного» этой стране в 1955 г.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м договором? А Северная Корея, начав выводить из строя свои ядерные объекты и снабдившая американцев, а не «дружественных» ей русских или китайцев, коробками, набитыми документами о своей ядерн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ранее считавшихся сверхсекретными, разве не поступилась она своим суверенитетом? И что можно сказать о Южной Корее, вооруженные силы которой до недавнего времени постоянно находились в подчинении американского генерала, который и поныне сохраняет это право в случае возникновения вооруженного конфликта на полуострове? Исторический опыт должен подсказать корейцам, что дружба с одной из великих держав против другой не принесет мира и спокойствия и уж конечно не приблизит день воссоединения страны. С учетом сегодняшних мировых и корейских реалий разговоры о том, что нейтрализация Кореи и четко оговоренные и согласованные самоограничения других стран в их политике в Корее якобы станут «посягательством» на суверенитет корейцев или «свободу действий» кого-либо из «большой четверки» великих держав в Корее - не более чем дымовая завеса для попыток продавить собственные эгоистические замыслы, реализовать сценарии, ни имеющими ничего общего ни с подлинными интересами корейской нации, ни с интересами обеспечения прочного мира и рав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для всех в регионе, где силой истории и географии сплелись интересы наиболее могущественных держав современного мира

172 Недостатком предлагаемой модели решения корейских проблем могут назвать то, что она слишком идеальна и потому - дело более отдаленного будущего. Увы, и ситуация на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ах, и в корейском урегулировании в целом вновь и вновь подводит к выводу о том, что именно отсутствие четкой и согласованной конечной цели, общего для «большой четверки» видения места единой Кореи в будущей архитектуре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является той главной, ключевой проблемой, без решения которой мы на каждом шагу будем то и дело натыкаться на более мелкие вопросы и не будем знать, как их разрешить. 5. Заключение В концепции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и, утвержденной президентом Д.А.Медведевым минувшим летом, отмечается, что принципиальное значение для России имеет общее оздоровление ситуации в Азии, где сохраняются источники напряженности и конфликтов, увеличивается опасность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оружия массового уничтожения. Усилия будут сосредоточиваться на деятельном участии России в поисках политического решения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на поддержании конструктивных отношений с КНДР 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на поощрении диалога между Пхеньяном и Сеулом, на укреплении безопасности в Северо- Восточной Азии. 18 Стремление США по-прежнему опираться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на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е альянсы с некоторыми странами региона, а не на многосторонние механизмы поддержания мира и безопасности является и, повидимому, в обозримом будущем останется главным препятствием на пути создания эффективного механизма мира,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СВА. В России считают, что будущее мироустройство в этом регионе должно быть справедливым, т.е. предусматривать создание для всех государств таких внешних условий существования, которые в наибольшей степени способствовали бы их совмест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устойчивому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ому развитию. Опыт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казал, что многосторонний механизм по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СВА может стать дееспособным и 18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Утверждена Президентом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Д.А.Медведевым 12 июля 2008 г

173 авторитетным форумом только в том случае, если он обеспечит нахождение и реализацию взаимоприемлемых компромиссов, а не станет орудием навязывания интересов одного или группы государств другим участникам такой организации. За создание именно такого механизма выступает Россия

174 Д.э.н. Суслина С.С. Проблемы и перспективы российско-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ри новых администрациях. (Доклад на 20-й конференции Центра коре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ДВ РАН и Центра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Ханьян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октября 2008 г. Сегодня глобальная экономика переживает непростые времена. Происходят крупные изменения в мировой финансовой системе. Переоценивается роль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На фоне таких событий в мировой финансовой системе некоторым может показаться неуместным обсуждение крупных инвестиционных инициатив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проектов. Но эти вызовы открывают и новые возможности. Именно сейчас необходимо переосмыслить приоритеты инвестиционного развития, в том числе и в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сфере, для того, чтобы создать прочный фундамент для уверенного развития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будущем. 1. Текущее состояние и направления развития экономик РФ и РК при новых правительствах. 1.1.Российская экономика. Как отмечала в своем выступлении министр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азвит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Э.С. Набиуллина на пленарном заседании, посвященном открытию VII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инвестиционного форума "Сочи-2008", 19 сентября 2008 г., рост ВВП России в августе текущего года составил 7,0%, в январе-августе - 7,7%, Эти показатели соответствуют темпам роста ВВП годом ранее. В августе 2007 г. рост ВВП по сравнению с тем же месяцем 2006 г. также составил 7,0%, рост за восемь месяцев был чуть выше - 7,8%. В российском обществе обсуждается концепция развития страны на 15 лет вперед, в которой главной целью является построение экономики инновационного типа. Государство уже определилось в своей инвестиционной политике. Созданы и капитализированы институты развития. Беспрецедентно крупные средства будут вложены в инфраструктуру. Только в транспортную инфраструктуру бюджетных средств будет вложено свыше 200 млрд. долларов за 6 лет. Одной из наиболее интересных форм совместных инвестиций государства и бизнеса в инфраструктуру является частно-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175 партнерство. Поскольку, в целом, в инвестиционной политике первую скрипку играют частные инвесторы, предпринимаются все меры, чтобы создать максимально привлекательные институциональные условия для долгосрочных вложений. Идет работа над программой по развитию конкуренции. Кроме того, готовится системный план мер по стимулированию роста производительности труда. Дорабатывается план по развитию национального финансового рынка. Это особенно актуально, учитывая происходящее сейчас на мировом финансовом рынке события. Несмотря на замедление темпа роста инвестиций, эти темпы остаются достаточно высокими, чтобы поддерживать хорош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ост. Вместе с тем, в целом, по итогам 2008 года, ожидается рост инвестиций на уровне 13-15%, что меньше, чем в прошлом году, когда инвестиции увеличились более чем на 20%. Говоря о задачах по поддержанию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оста в 2009 году, Набиуллина отметила необходимость "обеспечить механизмы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инвестиций, прежде всего банковского кредитования". По ее словам, темпы роста ВВП будут зависеть также от цен на нефть. Что касается инфляции, то пока Минэкономразвития не планирует менять прогноз, согласно которому рост потребительских цен не должен превысить 11,8%. По состоянию на 15 сентября инфляция в РФ уже составляет 10% Экономика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Следует отметить, что текущий ипотечный и банковский кризис в США существенно отразился на результатах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азвития Южной Кореи, почти обрушив фондовый рынок страны и серьезно поколебав курс национальной валюты. К тому же, несмотря на стабилизацию цен на нефть, продолжается рост инфляции, только за август показатель превысил 6%. Более высокая степень вовлеченности РК в глобальную экономику,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ускоряя ее развитие, делает ее в то же время существенно уязвимой, волатильной ко всем происходящим на мировой площадке изменениям. Значительное влияние, помимо финансовых факторов, на экономику Южной Кореи оказывают рост мировых цен на сырье и топливо и отмечаемый рост дефицита торгового баланса. Однако, несмотря на текущие неблагоприятные процессы,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траны выражает твердую

176 уверенность в ограниченном характере экономических рисков в РК, в то же время понижая прогноз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оста с 4,2 до 4,1%. С оптимизмом рассматривают текущую ситуацию и международные эксперты (Financial Times Invest Rating), которые повысили рейтинг фондовой биржи РК со статуса «передовой развивающейся страны» до «развитой страны». 2. Приоритеты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России с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Энергетическое направлени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двух стран насчитывает практически столько же лет существования, сколько развивается всё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ое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России с Южной Кореей после установления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Ему присущи все этапы взлетов и падений, которые пережили взаимоотношения двух стран. Сегодня на юбилей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подводящей впечатляющий итог развития научных связей между двумя авторитетными для Росси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научными центрами, можно с удовлетворением отметить, что, как и все наше экономичес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его энергетическая сфера переживает существенный подъем, который в то же время, по обоюдному мнению специалистов двух стран, не означает, что он уже достигает предельных значений. Более того, можно сказать, что динамика его развития несколько запаздывает в сравнении со складывающимися перспективными возможностями. По крайней мере, южно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сама признавалась в упущении ряда возможностей заключения соглашений и участия в выгодных проектах. Как обстоят дела на этом направлении на современном этапе и какие перспективы вырисовываются в связи с приходом в начале этого года новых администраций, как в России, так и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Известно, что оба президента обладают хорошим экономическим опытом. Президент России 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 придерживается рыночного демократизма и политического прагматизма. Южнокорейское руководство связывает в значительной степени с Россией надежды на успех своей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стратегии, имея в виду совместную разработку природных ресурсов Сибири и российского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Кроме того, Россия, обладая значительным политическим весом в мире, способна внести свой вклад в решение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проблемы, в том числе и посредством решения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затруднений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в рамках развития трехсторонне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свою очередь, Россия разворачивает свою экономическую стратегию по освоению и включению 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потенциала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нтеграционные процессы, проходящие в регионах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и Восточной Азии. В этих планах значительная роль отводится и российско-южнокорейскому энергетическ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177 Следует отметить, что за весь предшествующий период обеими странами было много сделано по правовому и организационному оформлению эт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ктябре 2000 года было подписано «Соглашение между Правительствам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отраслях топливно-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комплекса». 13 июля 2005г. в Р.Корея (о.чечжу) состоялось VI заседание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Комитета по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и природных ресурсов, по итогам которого Стороны подписали протокол. В конце октября - начале ноября 2007 г. в Сеуле делегация Минэкономразвития России и МИД России провели с Министерством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и торговли РК переговоры по созданию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совместной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ой группы (СИГ) по вопросам подготовки Соглашения об эконом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В ходе VIII заседания Меж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й комиссии (14 декабря 2007 г., Москва) были определены дополнительные меры по укреплению и дальнейшему продвижению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топливно-энергетическом комплексе, в области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и высоких технологий, освоении космоса, на транспорте, в сфере межрегиональных связей и ряде других направлений сентября 2008 г. в Сеуле состоялось 9-е заседание Корейско- Российской совместной комиссии по экономическому и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работе этого форума приняли участие 40 официальных лиц обеих стран, ответственных за экономику, энергетику 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Основными вопросами на повестке дня заседания стали: совместная разработка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ресурсов,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развитии технологий, а также связи в области рыболовства, строительства и транспорта. Очередное заседание Корейско-Российской совместной комиссии по экономическому и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стало также частью подготовки к предстоящему визиту президента Ли Мён Бака в Москву. В целом поступательное развитие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и «доверительного и многогранного партнерства» очевидно и развивается в духе положений, зафиксированных в Совместном плане действий в области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одписанном 19 ноября 2005 г. в г. Пусане (РК). Одним из ключевых двусторонних документов, координирующих конкретное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двух стран в экономической сфере и стимулирующих его расширение в целом, остаетс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й совместный план действий в области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от 19 ноября 2005 г. Приверженность этим принципам подтверждена в ходе дальнейших контактов Президентов двух стран во время саммита АТЭС в г. Сиднее (сентябрь 2007 г.). Аналогичная позиция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прозвучала в феврале 2008 г. во время визита в г.сеул Председателя Правительства

178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А.Зубкова Стороны поддерживают регулярные контакты на официальном уровне, включая встреч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лиц,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на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м уровне, руководителей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министерств и ведомств обеих сторон. В ходе переговоров на высшем уровне, в ноябре 2005 г., 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объявила о признани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России страной с рыночной экономикой. Взаимоотношения Росси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РК) во внешнеэкономической сфере предопределены объективной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ю каждого из партнеров в расширени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на взаимовыгодной основе. В перспективе РК может стать источником крупных капиталовложений в экономику России, а также поставщиком на российский рынок, прежде всего в сибирский и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регионы, современной техники и технологий. В свою очередь, (с учетом взаимодополняемости экономических комплексов двух стран) РК нуждается в получении из России в значительных количествах сырья, топлива и полуфабрикатов. 3. Факторы, влияющие на формирование двусторонних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России и РК Оценивая ключевые направления экономической политик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оказывающие в той или иной степени влияние на динамику и характер эконом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с Россией, целесообразно выделить некоторые из них: - наращивание закупок нефти и газа за рубежом для увеличения национальных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запасов; - широкомасштабная политика руководства РК по заключению соглашений о свободной торговле; - стимулирование ПИИ в РК путём усовершенствования законодательной базы, предусматривающей, в частности, введение дополнительных льгот для иностранных инвесторов. Большинство решений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руководства в области экономики направлены на: - максимальное обеспечение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страны; - поиск рынков сбыта южнокорейских товаров; - диверсификацию экспорта РК за счет подписания новых соглашений о свободной торговле; - реализацию инвестиционных планов за рубежом с применением аутсорсинга. Факторы благоприятствования:

179 - отсутствие серьезных проблем в политической сфере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РК к совместным инвестиционным проектам на территории России и в дальнейшем освоении российских природных ресурсов; - стремление РК диверсифицировать источники поступления углеводородов, в числе которых потенциально рассматривается Россия; - понимание необходимости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с Россией для углубления межкорейской экономической кооперации. Факторы сдерживания: - неурегулированность ядерной проблемы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 возрастающая степень привязки РК к экономике Китая; - наличие барьеров по продвижению товаров и услуг российских компаний на корейский рынок; - замедление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оста мировой экономики (ожидаемая рецессия); - высокие мировые цены на сырье Но в любом случае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неоспоримым тот факт, что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России с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имеет значительно больший потенциал, чем используемый ныне. 4. Торговля Продолжается стабильный рост товарооборота России и РК. В 2006 году он составил (здесь и далее по данным ФТС России) 9,3 млрд. долл. США ( рост на 46,2 % по сравнению с предыдущим годом), в том числе российский экспорт -2,5 млрд.долл. США (рост на 7%), импорт-6,8 млрд. долл. США ( на 69,2%). Объем взаимных товаропоставок в 2007 году достиг 15 млрд. долл. США (рост в 1,6 раза), из них российский экспорт в РК-6,15 млрд. долл. США (рост в 2,4 раза), импорт из РК -8,84 млрд. долл. США (рост на 30,4%). По оценкам, товарооборот России с РК в 2008 г. достигнет 20 млрд. долл. Целью дальнейшего развития российско-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торгов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является обеспечение стабильного роста объемов взаимных товаропоставок до млрд. долл. США к 2012 году и до 70 млрд. долл. США к 2018 году. Российский экспорт в РК в 2007 году остался практически сырьевым: (до 98% его объема), это поставки черных металлов (11-12%), минерального сырья (в основном, нефть и нефтепродукты более 80%), древесины (3%), морепродуктов (около 1%). При этом следует отметить, как знаменательную тенденцию - значительное увеличение за последние 5 лет в стоимостном выражении объемов поставок в РК нефти (с 292 млн. долл. США в 2003 году до 4,9 млрд

180 долл. США в 2007 году). Сальдо торгового баланса остается отрицательным, составив в 2007 году 2,69 млрд. долл. США. 5.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и природных ресурсов Основными приоритетными задачами в развитии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с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для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в области электроэнергетики являются: разработка и принятие мер по реализации долгосрочной программы поставок российск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путем исполнения меж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го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Соглашения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газов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от 17 октября 2006 г.; поставк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российского сжиженн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по 1,5 млн.т. в год в течение 20 лет; активизация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уполномочен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по поставкам газа из России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 ОАО «Газпром» и корейской газовой корпорации «КОГАЗ» - в рассмотрении и выработке вариантов реализации газопоставок (поставки сжатого и сжиженн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морем, строительство сухопутного газопровода через северокорейскую территорию и т.п.); расширени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бласти освоения нефтегазовых ресурсов в регионах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между Россией, КНДР и РК. В области региональн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ривлечение южнокорейских инвестиций в создание на российской территории,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в регионах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предприятий по разработке сырьевых ресурсов (Эльгинское угольное месторождение в Республике Саха (Якутия) и др.); 5.1.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отраслях топливно-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комплекса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газовой отрасли. По прогнозам, к 2010 г. потребление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составит около 34,7 млрд.куб.м в год. Принимая во внимание имеющиеся долгосрочные контракты на поставки СПГ (сжиженный природный газ)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до 2010 г. и прогнозируемую величину спроса на газ, дополнительные объемы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которые потребуется привлечь Корее к 2010 г. составят около 3,5 млрд.куб.м., к 2013г. - 7,5 млрд.куб.м., к ,2 млрд.куб.м

181 В этой связи Корея с самого начала проявляла особый интерес к Ковыктинскому газовому проекту и проектам на шельфе Сахалина. В 2003 г. ОАО Компания "РУСИА Петролеум", Китайская Национальная Нефтегазовая Корпорация (КННК) и Корейская Газовая Корпорация (КОГАЗ) сделали значительный шаг в направлении осуществления Ковыктинского газового проекта: был утвержден Отчет по Международному ТЭО (МТЭО - обоснование инвестиций) проекта. В отчете был предложен следующий маршрут газопровода: Ковыктинское газоконденсатное месторождение Забайкальск Маньчжурия (Китай) Далянь (Китай)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Было подписано предварительное Письмо о намерениях продажи 600 млрд. куб. м. газа Китаю, а также до 300 млрд. куб. м. дополнительно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в течение 30 лет. Стороны планировали начать поставки газа в 2008 году, с тем, чтобы не позднее, чем к 2017 году выйти на стабильный уровень объема поставок газа в 30 млрд. куб. м. в год. В МТЭО предусматривались также поставки газа (4 млрд. кубометров в год) на рынки Иркутской и Читинской областей и Республики Бурятия. Согласно выполненным расчетам общий объем капитальных затрат по проекту должен составить около 18 млрд. $ US. Однако реализация проекта оказалась в прямой зависимости от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й Программы создания в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единой системы добычи, транспортировки газа и газоснабжения с учетом возможного экспорта газа на рынки АТР, включая Китай. В 12 мая 2003 года было заключено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между ОАО «Газпром» и Газовой корпорацией Кореи (КОГАЗ). Указанное Соглашение определило основные направления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сторон, в том числе в области перспективных проектов поставок Газпромом российск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на базе единого экспортного канала и расширения Единой системы газоснабжения на восток России. Соглашением также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ся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й области, в области подготовки и переподготовки кадров,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в рамках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газового союза. «Газпром» назначен правительством РФ координатором деятельности по реализации этой программы. В мае 2008 г. ОАО «Газпром» и «КОГАЗ» продлили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от 12 мая 2003 г. до 2013 г. Стороны рассматривают возможность совместного строительства завода по сжижению газа и газохимического комплекса. В октябре 2006 г. было подписано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е меж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е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области газов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которое в том числе призвано способствовать созданию необходимых условий для осуществления поставок российск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через Единый экспортный канал. Уполномоченными организациями по поставкам газа из России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определены ОАО «Газпром» и Корейская газовая корпорация «КОГАЗ»

182 Компании провели два раунда коммерческих переговоров. «КОГАЗ» выступила с предложением импортировать российский природный газ по ценам, базирующимся на мировых ценах на нефть и газ (7-8 млн.т или млрд. куб.м в год, начиная с гг.) и заявила о готовности в том числе рассмотреть вариант сухопутного газопровода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КНДР (один из экономически предпочтительных вариантов).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основные перспективы организации поставок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с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и связаны с проектом «Сахалин-3» и другими перспективными участками сахалинского шельфа. Пока собственная ресурсная база у ОАО «Газпром» на Востоке России для организации дополнительных поставок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отсутствует. В июне 2007 г.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ая Комиссия одобрила Программу создания в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единой системы добычи, транспортировки газа и газоснабжения с учетом возможного экспорта газа на рынки Китая и других стран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го региона. В состав Программы включена Концепция экспортной политики поставок газа в страны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го региона, в том числе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Основные руководящие принципы Программы: а) приоритетность удовлетворения спроса на газ российских потребителей и поддержание устойчивого газоснабжения в России посредством расширения Единой системы газоснабжения на восток; б) реализация единой экспортной политики с учетом действующих соглашений о разделе продукции; в) решение экспортных задач за счет поставок газа с более удаленных и дорогостоящих месторождений. Это позволит реализовать Программу в полном объеме, обеспечить поэтапное вовлечение в разработку ресурсов газа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установить обоснованные экспортные цены и прекратить конкуренцию разрозненных проектов российских компаний на рынке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го региона. Газпром закончил ТЭО и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приступил к проектированию газотранспортной системы (ГТС) Сахалин-Хабаровск- Владивосток. Создание ГТС создаст благоприятные условия для возможных поставок газа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из района Владивостока в виде ТПГ, или СПГ. Целевым сроком поставок являются гг. В случае трубопроводных поставок газа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третьей страны будет необходимо выполнить совместное ТЭО. Стороны согласились подготовить Меморандум о взаимопонимании (МоВ) по поставкам газа и проведении совместного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возможному маршруту газопровода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третьей страны и других видах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ключая изучение проекта строительства и эксплуатации

183 завода СПГ и газохимического производства в Приморском крае, включая маркетинг его продукции. Между ОАО «Газпром» и компанией «КОГАЗ» согласован меморандум о взаимопонимании об организации поставок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из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который планируется подписать во время предстоящего визита Президента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в Москву. В июле 2005 г. компания «Сахалин Энерджи» (оператор проекта «Сахалин-2») и «КОГАЗ» подписали Соглашение на поставку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1,5 млн. т. сжиженного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в год в течение 20 лет, начиная с 2008 года. Поставки СПГ по контракту должны были начаться в середине 2008 года, однако, в связи с задержкой ввода проекта в эксплуатацию начало производства СПГ намечено на конец 2008 г., а поставки станут возможными с 2009 г. Следует отметить, что контракт с компанией «КОГАЗ» среди всех других контрактов проекта «Сахалин-2» предполагает самые низкие цены на СПГ.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как и другие покупатели в Азиатском регионе, проявляет интерес к дополнительной закупке СПГ. В случае расширения производства проекта «Сахалин-2» часть объемов может быть направлена в Южную Корею. Корейские компании принимают активное участие в работах по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Сахалин-2». По оценкам «Сахалин Энерджи», общий уровень участия 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и специалистов в работах по реализации второго этапа проекта составит около 1 млрд. долл. США. В 2007 году было завершено строительство верхних строений платформы «Пильтун-Астохская Б» на верфи компании «Самсунг Хэви Индастриз Ко. Лтд.». Генеральным подрядчиком по поставке механического оборудования для технологических линий является концерн Daewoo E&C. В строительных работах на о. Сахалин в рамках проекта «Сахалин-2» также принимают участие другие корейские компании, в том числе: Dai Koon, Nikki Shoji Korea, Doosan и т.д. Оператором Соглашения является «Сахалин Энерджи». Акционерная компания «Сахалин Энерджи» была учреждена в апреля 1994г. с целью разработки месторождений нефти и газа на шельфе о. Сахалин в рамках Соглашения о разделе продукции «Сахалин-2», которое вступило в силу 15 июня 1995г. Акционерами Компании являются:«шелл Сахалин Холдингз Б.В.» (Англия/Голландия) - 55 %, «Мицуи Сахалин Девелопмент Ко, Лтд» (Япония) - 25 %, «Даймонд Газ Сахалин Б.В.» (Япония) - 20%. Проектом «Сахалин-2»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ся разработка двух морских месторождений на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м шельфе о. Сахалин Пильтун-Астохское и Лунское, суммарные извлекаемые запасы которых составляют 140 млн. т

184 нефти и 408 млрд. куб. м газа. В настоящее рассматривается вопрос об основных инвестициях во вторую стадию разработки проекта, включающую строительство завода по сжижению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СПГ) мощностью 9,5 млн.т в год. Ввод завода в эксплуатацию был запланирован на ноябрь 2007г. Общий объем инвестиций в проект на втором этапе - около 12 млрд. долларов США. По проекту "Сахалин-1" с корейскими компаниями "Хёндэ" и "Пунг Лим" выполнены контракты более чем на 253 млн. долларов США предусматривающие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одулей для терминала в Де-Кастри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и изготовление буровой подставки на платформу "Орлан"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нефтяной отрасли. В рамках проекта в 1999 году впервые в истории России началась промышленная добыча нефти с морской стационарной платформы, установленной на шельфе. В течение пяти производственных сезонов в Японию, Китай, Южную Корею, Тайвань, США, Филиппины было поставлено около 6,7 млн.тонн высококачественной нефти. В сентябре 2004г. в ходе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саммита состоялось подписание Соглашения между ОАО «Татнефть» и компанией «ЭлДжи Инжиринг энд Констракшн» на проектирование, поставку оборудования 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нового нефтеперерабатывающего и нефтехимического комплекса.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протоколом о намерениях от г. между татарской и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ами, "ЭлДжи" обязалось организовать проектное финансирование, что было включено в вышеуказанное Соглашение как одно из условий вступления его в силу. В ходе работ компанией "ЭлДжи" был предложен модифицированный вариант проектного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который был отклонен ОАО "Татнефть" из-за неконкурентных предложенных корейской компанией условий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Что касается Соглашения о реконструкции Хабаровского нефтеперерабатывающего завода между Нефтяной компанией «Альянс» и компанией «Самсунг», то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компания Samsung оценивает возможности корейских и зарубежных компаний и рассматривает претендентов на роль основного подрядчика по контракту на проектирование, поставку оборудования и строительные работы по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гидропроцессов на Хабаровском НПЗ. Компания LG E&C, ранее считавшаяся основным претендентом на роль генерального подрядчика, оценив собственный пакет заказов и возможные риски при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на Хабаровском НПЗ "под ключ", в мае 2005 года отказалась от дальнейшего участия в данном проекте. Относительно Меморандума о взаимопонимании (МОВ от г.) между ОАО «НК «Роснефть» и Корейской Национальной

185 Нефтяной Корпорацией (KNOC) по совместному освоению Венинского блока (проект "Сахалин-3") и участка Западно-Камчатского шельфа Охотского моря. В феврале 2005 года корейской компанией было принято решение об участии в проекте по геологическому изучению лицензионного участка недр Западно-Камчатского шельфа. 22 февраля 2005г. состоялось подписание Договора о промежуточном финансировании сроком на два года ( ). Данным договором регламентируются условия создания совместного предприятия,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которыми доли участия в проекте распределяются следующим образом: ОАО «НК «Роснефть» - 60,0%; KNOC - 40,0% Стороны договорились разработать и согласовать совместную корпоративную структуру проекта. На период до создания совместной корпоративной структуры организация и реализация работ осуществляется под руководством совместного Руководящего Комитета. ОАО «НК «Роснефть» и KNOC продолжают совместную деятельность по геологическому изучению, разведке и разработке недр Западно-Камчатского шельфа Охотского моря в целях добычи углеводородов. В декабре 2006 г. между двумя компаниями было подписано Акционерное и операционное соглашение. Оператором проекта геологического изучения недр Западно- Камчатского шельфа Охотского моря является зарегистрированная в г. Южно- Сахалинске операционная компания ООО «Камчатнефтегаз».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на основании лицензии, выданной Минприроды России, ООО «Камчатнефтегаз» осуществляет геологическое изучение с целью поиска и оценки месторождений углеводородов в пределах лицензионного участка. Прогнозные ресурсы лицензионного участка составляют: нефть 1797,8 млн.т., газ 2031,9 млрд.куб.м. Компания «Камчатнефтегаз» планирует бурение 2-х поисковых скважин в 2008 году. Однако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Южная Корея обеспокоена фактом непродления лицензии на геологоразведку Западно-Камчатского шельфа, принадлежавшей "Камчатнефтегазу", СП KNOC и "Роснефти. Компания «Транснефть» обсуждает возможность участия Южной Кореи в финансировании строительства российского нефтепровода Восточная Сибирь Тихий океан (ВСТО) для экспорта нефти в Азию. «Транснефть» строит ВСТО в два этапа - первый от Тайшета в Иркутской области до Сковородино в Амурской мощностью 30 млн. т нефти в год, второй - от Сковородино до спецморпорта Козьмино в Приморском крае. Проектная мощность всего нефтепровода 80 млн. т нефти в год. Строительство первой очереди оценивается в 340 млрд. рублей без учета стоимости строительства нефтеналивных терминалов в Сковородино и поселке Козьмино на Тихом океане

186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области электроэнергетики. По инициативе РАО «ЕЭС России» с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ой (KERI Корейский электротехнологический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й Институт) обсуждается вопрос возможности создания 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объединения в странах СВА. Подписан двусторонний Меморандум о взаимодействии. В период гг. проведено несколько встреч по проекту соединения электроэнергетических систем Р.Корея, КНДР и России (проект NEAREST) c участием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института KERI, Министерства энергетики и уголь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КНДР и представительства ОАО РАО "ЕЭС России" "Востокэнерго". В рамках программы «NEAREST»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е (институту KERI) предоставлены данные по энергосистемам российского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Сибири. Проект 1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постоянного тока мощностью кв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Владивосток) КНДР". Протяженность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составляет 380 км, в том числе по территории России км, по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130 км. Стоимость строительства и ввода в эксплуатацию ВЛ 500кВ "РФ-КНДР" млн.долл. США. Срок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3-4 года. Для реализации такого проекта требуется принятие инициативных решений на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 уровне. Проект мог бы быть реализован под гарантии государств-участников шести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ов по КНДР. Проект 2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по маршруту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транзитом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мощностью 4000 МВт, с поставкой электроэнергии в объеме не менее 20 млрд. квт.ч в год. Срок реализации данного проекта 5-6 лет. По информации РАО "ЕЭС России", северо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подтвердила своё намерение участвовать в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РФ-КНДР-РК" и сотрудничать с Южной Кореей через посредство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на трёх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ах. Имеется даже предварительное согласие Министерства КНДР на прохождение ЛЭП по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Учитывая наличие стабильного платежеспособного спроса и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 в строительстве ЛЭП "РФ-КНДР- РК" как экономической основы политическог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проект экспорта электроэнергии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более перспективным и экономически обоснованным О взаимодействии ЗАО «ИНТЕР РАО ЕЭС» и KEPCO. В период с 2003 года по 2007 год в рамках обсуждения данного проекта проведен ряд встреч с участием Минпромэнерго России, ОАО РАО «ЕЭС

187 России» и ЗАО «ИНТЕР РАО ЕЭС» с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Министерства экономики знаний и корейской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корпорацией «KEPCO» со стороны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а также с участием Министерства энергетики и уголь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КНДР. 13 октября 2006 г. подписан Меморандум о взаимодействии между Минпромэнерго России и Министерством экономики знаний РК в реализации вышеуказанного проекта. Уполномоченными компаниями по проекту являются: ЗАО «ИНТЕР РАО ЕЭС» с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KEPCO» со стороны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К настоящему времени, по информации ЗАО «ИНТЕР РАО ЕЭС», делегация компании приняла участие в международном форуме и встрече высших должностных лиц, проведенных под эгидой ЭСКАТО ООН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целью которых было обсуждение проблем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в странах СВА,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в КНДР и РК. 3. Разработки в сфере электроэнергетики, включая строительство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между Россией, Северной Кореей и Южной Кореей. Целесообразность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обоснована в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ой программе «NEAREST» (проект соединения национальных электрических сетей стран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выполненного Корейским электротехническим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м Институтом (KERI) по заказу Правительства Р.Корея. Проект 1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постоянного тока мощностью квт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Владивосток) КНДР". Протяженность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составляет 380 км, в том числе по территории России км, по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130 км. Стоимость строительства и ввода в эксплуатацию ВЛ 500кВ "РФ-КНДР" млн.долл. США. Срок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3-4 года. Риски проекта по указанному маршруту оцениваются как высокие по причине низкой платежеспособности и политической напряженности вокруг КНДР. Для реализации такого проекта требуется принятие инициативных решений на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 уровне. Проект 2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 строительство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и постоянного тока 500 кв по маршруту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транзитом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КНДР (20 млрд. квтч в год) и строительства новых объектов генерации мощностью 4000 МВт. Проект может быть реализован в формате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консорциума. Срок реализации 5-6 лет. Северо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подтвердила своё намерение участвовать в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РФ-КНДР-РК" и сотрудничать с Р.Корея посредством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на трёхсторонних переговорах

188 В январе 2008г. в Свердловской области состоялась встреча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Министерства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энергетики и науки Свердловской области и южно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KOMIPO и KEPCO. На встрече обсуждались перспективы совместной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строительства угольной электростанции мощностью в 1000 Мегаватт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ядерной области на основе меж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го соглашения от 28 мая 1999 г. В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между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в области мирного использования атомной энергии отмечается устойчивая позитивная динамика. Потенциал его весьма значителен.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е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в сфере высоких технологий отвечает интересам народов обеих стран, и имеется обоюдное стремление к его дальнейшему развитию. Основными направлениям проводимых в этой сфере работ являются: - поставки российской урановой продукции для корейских АЭС (на основе действующего контракта на поставку до 2016 года в РК обогащенного уранового продукта; имеются реальные предпосылки для увеличения его поставок на корейский рынок путем заключения новых долгосрочных контрактов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 с потребителями ядерного топлива); - сооружение и коммерческое использование реакторов малой и средней мощности на плавучих АЭС и атомных опреснительных установках (достигнута договоренность о продолжении научных исследований по этой тематике); - наращивание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го и делов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бласти производства и применения радиоизотопов и использования лучевых и радиационных технологий в медицине,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ельском хозяйстве и биотехнологии. Достигнута договоренность сторон о начале разработки проекта соглашения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по обмену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й информацией в ядерной сфере. В качестве одного из вариантов гарантированного снабжения ядерным топливом корейских потребителей явилось бы создание на территории России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совместного предприятия по обогащению урана, которое может стать пилотным проектом и свидетельством о готовности России к созданию на своей территории под контролем МАГАТЭ международных центров по предоставлению услуг ядерного топливного цикла, включая обогащение урана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омашиностроения

189 Российские энергомашиностроительные компании заинтересованы в развитии взаимовыгодн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с южнокорейскими партнерами. ОАО «Энергомашкорпорация» поддерживает деловые контакты с компаниями «Хендай Хеви Индастриз», «Лост Вакс», «Дусан Хеви Индастриз энд Констракшн», «Юсунг Инструмент энд Электрик» и другими. С компанией «Хендай Хеви Индастриз» был подписан Договор о взаимопонимании, с компанией «Дусан Хеви Индастриз энд Констракшн» в предварительном порядке рассмотрены вопросы создания совместного производства газовых турбин. ОАО «Силовые машины» совместно с корейской фирмой HCD Engine Co. приняло участие в тендере в качестве субпоставщика на поставку генератора мощностью 16,5 МВт производства ОАО «Электросила», г. 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для дизель-электрической станции (ДЭС) на о. Кос в Греции. Готовится к подписанию контракт между ОАО «Силовые машины» и выигравшей тендер HCD Engine Co., где стоимость российской части поставки составляет более 1 млн. долл. США. Принимая во внимание тот факт, что в Южной Корее планируется реализация ряда проектов по реконструкции и модернизации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мощностей, предприятия, входящие в ОАО «Силовые машины» (ОАО «ЛМЗ», ОАО «Электросила», ОАО «Калужский турбинный завод», ОАО «Завод турбинных лопаток») заинтересованы в поставках для этих проектов основного и вспомогательного оборудования, запчастей, проведении ремонтных и сервисных работ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области угольной ромышленности: По контрактам с корейской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корпорацией "КЕПКО" АО "Якутуголь" и компания "Эрэл Лтд" ежегодно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поставляют 500 тыс. т. коксующихся и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углей. 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выражает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в увеличении объемов поставок до 1 млн.т. в год. При этом 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настаивает на снижении цены за 1 тонну угля, утверждая, что китайский уголь оказывается более конкурентоспособным по цене и по качеству.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поставку угля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осуществляют следующие компании: ЗАО «Сибирский антрацит», ЗАО «Кузнецктрейдкомпани», ОАО УК «Южный Кузбасс», ОАО «Междуречье», ОАО ХК «Якутуголь», ООО СП «Эрел». Поставки российских углей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в 2007 г. составили свыше 700 тыс. тонн, в том числе ХК Якутуголь поставил свыше 600 тыс. тонн угля для коксования. По вопросу возможного участия в проекте освоения Элегестского месторождения коксующихся углей Республики Тыва и установления стратег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были проведены переговоры между Правительством Республики Тыва с крупнейшей южнокорейской

190 сталелитейной корпорацией «POSCO», по итогам которых корейская сторона заявила о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и в продукции Элегестского месторождения. В гг. угольные компании ООО ТД "Сахалинуголь" и ООО "Угольные Ресурсы Сахалина" провели переговоры с представителями 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о покупке сахалинского угля. Результатом этих переговоров стало подписание протоколов о намерениях и заключение контрактов на поставку угля в Южную Корею. 18 февраля 2005г. между ОАО "Эльгауголь" и корейской компанией "LG International Corp." подписано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по освоению Эльгинского каменноугольного месторождения.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в участии в проекте и в осуществлении поставок эльгинского угля корейским энергетическим и металлургическим компаниям была подтверждена во время переговоров, проведенных с представителями «LG International Corp.» в 2007 году. 10 июня 2005г. в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е KIGAM (Корейский Институт геологии и минеральных ресурсов) и SPMI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орный институт) подписали Меморандум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с целью ускорения дальнейше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ключая обмен информацией и данными по углеводородам, совместные работы по геологической и геофизической разведке и изучению запасов нефти и газа. 6. Стратегический диалог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Уже сравнительно давно обсуждается вопрос об установлении стратегического диалога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между двумя странами, в рамках которого вырабатывались бы приоритетные направления двусторонне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траслях ТЭК. При подготовке концепции стратегического диалога в области энергетики целесообразно уделить достаточно внимания вопросу стратегии, прогнозирования, инвестиционному климату в обеих странах, гармонизации законодательства в целом. К этой работе уже подключены Институт экономики энергетики Р.Корея (KEEI) и Институт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стратегии (ИЭС)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7. Развитие межрегиональн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свете рассматриваемого направления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межрегиональные экономические связи развиваются достаточно активно. На протяжении текущего десятилетия регулярно проводились официальные встречи делегаций двух стран на уровне глав

191 администраций российских регионов и корейских провинций, в ходе которых обсуждался самый широкий круг вопросов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23 апреля 2007 г. в г. Благовещенске (Амурская область) проведено 3-е заседание Комитета по Дальнему Востоку и Сибири. В заседании приняли участие руководители 16-ти субъект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представители деловых кругов двух стран. Обсуждены вопросы двухсторонне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том числе торговли, инвестиционного,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проведения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саммита АТЭС 2012 года. Одновременно была проведена бизнесмиссия РК, в которой приняли участие более 50-ти предпринимателей из двух стран. Представители РК выразили большую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в участии в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ов в рамках программы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азвития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Забайкалья до 2013 года. 12 октября 2007 г. в Сеуле состоялись очередное, 4-е заседание вышеуказанного комитета, а также презентация Федеральной целевой программы «Экономическое и социальное развитие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Забайкалья на и до 2013 года». В октябре 2007 г. с компанией LG International был подписан меморандум о совместной реализации программы развития региона. Инвестиции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 в два проекта разработка Инаглинского угольного и Эльконского уранового месторождений составят более 2 млрд. долл. США. Компанией LG International велись переговоры с российской компанией "Мечел" о коммерческих условиях освоения Эльгинского каменноугольного месторождения. Кроме того, подписан меморандум о намерениях по совместной реализации программы комплексного развития Якутии по таким проектам, как строительство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моста через реку Лена, совместное освоение месторождений углеводородов, строительство участка трубопровода из Якутии до ВСТО и другие проекты. Программа предполагает инвестиции в размере 1,4 трлн. руб. (55 млрд. долл. США) в развитие производительных сил, транспорта и энергетики Якутии до 2020 г. Корейская сталелитейная корпорация POSCO проявляет также повышенную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к разработке угольных месторождений на территории Республики Саха (Якутия) и Республики Тыва. 8. Заключение Анализ основных тенденций развития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Росси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на современном этапе позволяет придти к следующим выводам

192 Во-первых, текущее оживление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РК проявляется и в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сфере (расширяются контакты и формы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увеличиваются его объемы, в том числе коммерческие поставки угля, нефти и газа, реализуемые инвестиции). Во-вторых, растет динамика эт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импорт нефти из России только за гг. увеличился на 218,4%.). См. табл. в Приложении. В-третьих, есть целый ряд факторов, позитивно и негативно влияющих на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двух стран.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по видимости, главным, определяющим из них может стать фактор рецессии мировой экономики со всеми многозначными последствиями для двух экономик. В-четвертых, можно предположить, что, если на ближайшую перспективу рост энергетиче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может быть приторможен по причинам макр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характера, то в среднесрочной и долгосрочной перспективе можно рассчитывать на большее ускорение, учитывая уже наработанную динамику и объективную взаимодополняемость экономик по факторным составляющим: сырье-капитал-научный потенциал.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Россия входит в список десяти приоритетных торговых партнеров Южной Кореи. Если Россия начнет активно поставлять в РК нефть и газ, то она сразу может переместиться в пятерку приоритетных партнеров, обогнав Саудовскую Аравию, ОАЭ, Индонезию поставщиков углеводородов. Поэтому одним из направлений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может и должно стать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 нефтяной сфере, а также в сфере торговли продукцией глубокой переработки нефти. Напрашивается вывод о том, что в дополнение к подписанному Соглашению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газов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было бы целесообразным, с учетом реальных возможностей России, изучить вопрос о возможности подписания также соглашения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нефтяной отрасли. Данный шаг был бы созвучен и актуальной проблеме обеспечения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К, которая постоянно стремится к увеличению запасов нефти в существующих нефтехранилищах и строительству новых мощностей по хранению нефти. Регулярные поставки российского газа на рынок РК пока еще не осуществляются. Стороны продолжают вести переговоры по вопросам их организации. Реализация намерений по созданию производства новых видов продукции (диметилового спирта, синтетического моторного топлива «газ-вжидкость», гелия, другой продукции газохимии и газопереработки) и их реализация на корейском рынке могут стать одной из экспортных статей России. До конца 2010 г. ожидается ежегодное увеличение потребности РК в энергоносителях в размере 3,2%. Эта цифра ниже, чем ожидаемый ежегод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ост РК в объеме 4%. В связи с жесткими экологическими требованиями потребность в угле (антраците) уменьшится, а потребность в битуминозном угле для тепловых электростанций останется на прежнем уровне

193 Потребность в СПГ в общем объеме энергоносителей возрастет с 9,8% в 2000 г. до 12,2% в 2010 г.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в рамках расширения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газовой сфере обсуждаются следующие планы: привлечение инвестиций и высоких технологий из РК в строительство в регионах Сибири и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и газоперерабатывающих мощностей для получения новых видов продукции (диметилового эфира, синтетического моторного топлива по технологии «газ-в-жидкость»); использование инвестиционных и технологических возможностей южно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для создания в Дальневосточном регионе России совместных производств по выпуску трубной, машиностроительной продукции; реализация газа, продукции газохимии и газопереработки, а также гелия на корейском рынке. Известно, что «Газпром» и «КОГАЗ» договорились осуществлять совместную разработку технологий по сжижению природного газа, регазификации СПГ; проводить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созданию системы подземного хранения газа и техническую диагностику газотранспортной системы РК; обмениваться опытом по вопросам проектирования терминала СПГ. Таким образом, планов, перспектив и прогнозов, как говорил наш поэт В. Маяковский, «громадьё», остается лишь засучить рукава и реализовать их на благо наших народов. Приложение Основные показатели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азвит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 гг. 1. Макроэкономические показатели (в % к соответствующему периоду предыдущего года) год январьмарт январьмарт 2008 год (оценка) 2009 (прогноз) ВВП 106,4 107,4 107,4 108,1 108,0 107,6 106,6 Индекс потребительских цен, на конец периода, к декабрю предыдущего года 110,9 109,0 104,0 (январьапрель) 111,9 106,3 (январьапрель) , ,

194 Индекс промышленного производства 1) 105,1 106,3 107,2 106,3 106,2 105,7 105,5 Обрабатывающие производства Индекс производства продукции сельского хозяйства Инвестиции в основной капитал Объемы работ по виду деятельност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107,6 108,3 112,8 109,5 108,7 107,3 106,9 102,3 103,6 103,4 103,3 104,5 103,8 103,9 110,9 116,7 122,8 121,1 120,2 117,8 115,0 113,2 118,1 117,2 118,2 128,9 121,5 116,0 Жилищное строительство 106,1 116,1 151,1 119,4 107,8 116,4 115,0 Реальные располагаемые денежные доходы населения 112,4 113,5 110,0 110,7 110,0 110,6 109,6 Реальная заработная плата 112,6 113,3 118,2 116,2 114,0 2) 113,9 111,5 Оборот розничной торговли Объем платных услуг населению 112,8 114,1 114,6 115,9 116,7 114,4 111,6 106,3 107,6 108,7 107,1 106,8 107,0 106,7 Экспорт товаров 133,1 124,5 106,5 117,1 152,8 129,1 95,5 Импорт товаров 128,8 131,0 138,6 136,0 139,8 133,5 119,4 Средняя цена на нефть Urals, долл.сша/баррель 50,6 61,1 54,2 69,3 96,6 92,0 78,0 1) Агрегированный индекс производства по видам деятельности "добыча полезных ископаемых", "обрабатывающие производства", "производство и распределение электроэнергии, газа и воды", с учетом поправки на неформальную деятельность. 2) Предварительные данные

195 2. Финансовые рынки Индекс РТС Ставка межбанковского кредитован ия (1 день) На Изменен ие за неделю Изменен ие с ,87 + 8,53 + 8,22 3,93 % +0,31 п.п. +1,16 п.п. Объем вкладов населения, млрд. руб. Объем капитала кредит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млрд.руб. Объем кредитовани я кредитными организация ми реального сектора, млрд. руб. На На Изменен ие с ,5 5136,8 +1,70% 2804,8 2671,4 +4,99% 10228, ,9 +17,15% 1) По данным организаций, представивших статистическую отчетность (без учета органов денежно-кредитного регулирования, коммерческих и сберегательных банков), включая рублевые поступления, пересчитанные в доллары США. 2) Накопленный организацией иностранный капитал - общий объем иностранных инвестиций, полученных (или произведенных) с начала вложения с учетом погашения (выбытия), а также переоценки и прочих изменений активов и обязательств. 3. Объем накопленных иностранных инвестиций в экономике России по основным странам-инвесторам Накоплено на конец 2007г. всего в % к итогу прямые В том числе портфельные млн.долл. США прочие Справочно поступило в 2007г. Всего инвестиций 1)

196 из них по основным странам-инвесторам , в том числе: Кипр , Нидерланды , Соединенное Королевство (Великобритания) , Люксембург , Германия , США , Ирландия , , Франция , Виргинские острова (Брит.) , Швейцария , ) Включая инвестиции из государств-участников СНГ. 4. Товарооборот между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по данным ФТС России) (млн. долл. США) порт порт орот Экс Им Об (ян варь-март) ,6 63,3 61,0 27,0 49,9 4, ,6 26,0 02,8 74,0 36,0 5, ,2 89,3 63,8 01,0 985,9 9,1 5. Динамика поставок нефти в Республику Корея в гг. Страна 2006 г г. (Ед. изм.: млн. долл. США) Импорт РК Рост, % Импорт РК Рост, % Саудовская Аравия , ,

197 ОАЭ , ,5 Кувейт ,7 Иран , ,2 Катар , ,6 Ирак ,2 Австралия , Россия , ,4 Индонезия , ,4 Источник: KITA, февраль 2008 г. 6. Прямые инвестиции РК в России по секторам экономики Сфера инвестирования (Ед. изм.: тыс. долл. США) 2006 г г. Накопленные инвестиции Сумма Сумма Уд. вес Уд. вес Сумма (%) (%) Сельское и лесное , ,3 хозяйство Рыболовств о ,7 Добывающая промышленность , ,3 Производство , ,3 Строительство , ,7 Торговля , ,3 Ресторанный и гостиничный бизнес , ,8 Перевозки и хранение , ,7 Телекоммуникации ,7 Финансы и страхование , ,5 Недвижимость , ,1 Сфера услуг , ,3 Культура, искусство, спорт , ,2 Другие услуги ,1 ВСЕГО: ,0% % Источник: The Export-Import Bank of Korea, февраль 2008 г. *

198 20-а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ая международная конференция. Сеул, 6-7 октября 2007 г. Участники: Центр АТР Ханьян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Институт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йской академии наук. Р.В.Савельев Состояние и перспективы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области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транспорта при новых правительствах РФ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Основные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е концепции развития транспортных систем в России Согласно официальным данным, в ближайшие годы государство собирается потратить на развитие транспорт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ы более 13 триллионов рублей. Такая сумма заложена в Федеральной целевой программе (ФЦП), обозначенной как Развитие транспортной системы России на годы. Она считается самой масштабной за всю историю существования федеральных целевых программ. Выступая на международном транспортном форуме в Сочи (2008 г.) нынешний глава правительства В.Путин отметил, что с учетом современных российских условий развитие современной транспорт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ы прямая обязанность государств. Исходя из этого, из федерального бюджета будет выделено 4,651 триллиона рублей, или 3,4 % от общего объема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А более 60% средств планируется привлечь за счет внебюджетных источников и бюджетов регионов. Около 1 триллиона рублей будет выделено за счет инвестиционной составляющей тарифа на грузовые перевозки. На эти деньги должны быть построены и реконструированы 3 тысячи километров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а в некоторых регионах новые автострады и более 100 взлетно-посадочных полос. Имеются и другие перспективы. Предполагается, что до 2020 г. объем затрат на транспортную инфраструктуру в России превысит 1 триллион долларов. Локомотивами инфраструктурного строительства в России остаются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бюджет и Ивестфонд. За счет последнего в ближайшие годы должно быть реализовано более 110 проектов, которые уже сейчас связаны с транспортом. Не менее половины стоимости этих инвестпроектов будут оплачены бизнесом. Уже начаты стройки на железных дорогах. Реформируется

199 общее законодательство о концессиях. Приняты поправки в федеральный закон о концессиях. Бизнес получил снижение расходов и дополнительную защиту своих доходов от управления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ой. В Министерстве транспорта рассчитывают, что с принятием поправок предприниматели более инициативно потянутся в транспортные концессии, особенно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е. Общая стоимость железнодорожных проектов вплоть до гг. составляет более 1,7 триллиона рублей. При этом затраты бюджетов различного уровня и Инвестфонда составят 370 миллиардов рублей. А остальное профинансирует ОАО «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за счет использования тарифов на грузоперевозки. Кроме того, РЖД будет выделять в тарифах новую составляющую инвестиционную. Эти меры, по предварительным подсчетам, дадут компании около 1,2 триллиона рублей дополнительных доходов в течение пяти лет. Основная доля этих средств будет инвестирована в развитие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ы. Массовое внедрение на сети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информационных технологий и автоматизированных систем управления и контроля повлечет за собой увеличение объемов внедрения цифровых систем передачи данных на основе использования волоконно-оптических линий связи.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программой развития для этого будет закупаться только новая техника. Минтрасом этот вопрос уже согласован с Министерством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и торговли РФ. Транспортная ФЦП сверстана с учетом закупки соответствующей техники и внедрения современных технологий проектирования и строительства транспортных объектов. Если до конца года российские производители не подтвердят, что способны реализовать заявленные мощности, то необходимая техника будет закупаться за рубежом. Кроме того, все российские и зарубежные перевозчики, находящиеся в России, в предстоящий период должны быть обеспечены наземной системой ГЛОНАСС/GPS. Если, как предполагалось, будут соединены Транссиб и Корейские объединенны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то перечисленные выше особен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транспортной политики коснутся и будут в пределах достигнутых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применимы к транспортному коридору, который протянется от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через Россию в Восточную и Западную Европу, обеспечивая все преимущества, которые станут возможными благодаря осуществлению этого проекта и данной политики. Соединение Транссиба и Корейских объединенных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проект и практическая реализация

200 Российские ведомства фиксируют устойчивую группу факторов, которые создают благоприятный фон для расширения эффективно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в рамках СВА, особенно в треугольнике Россия Республика Корея КНДР. Некоторые из них, как показывает практика, имеют долговременный характер, другие, возможно, окажут свое влияние в среднесрочной перспективе. Экономическ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с использованием возможностей России, в том числе в области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транспорта соответствует практикуемым в мире стандартам и может обновить ситуацию в СВА в лучшую сторону за счет стабилизации обстановки в регионе в целом. Позитивное воздействие на динамику и подготовку совместных проектов оказывают следующие постоянно действующие факторы. - Наличие у России и Кореи общих границ, сопредельных экономических районов и континентального шельфа с богатыми биоресурсами и разведанными участками с углеводородным сырьем. Возможность их совестной добычи, разработки и использования в интересах двустороннего и многосторонне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и целевых программ. - Географическая близость Сибири и российского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с Корейским полуостровом остается существенной предпосылкой для модернизации и усовершенствование единой транспортной системы с учетом интересов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стран и при соответствующих между ними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Возможность экономной транспортировки сырьевых ресурсов различными видами транспорта, а на более дальние расстояния таких объемных, как коксующийся уголь, углеводороды, нефтепродукты и др. по уже действующим или проектируемым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м магистралям и транспортным коридорам. - Наработанные внешние связи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и торгового характера, в том числе за пределами региона, емкость российских внутренних рынков в Сибири и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Перечисленные факторы иногда влияют благотворно, но могут иметь ограниченное значение. Такое временами имело место в прошлом. Может случиться и в дальнейшем, особенно, если каждая из сторон будет ориентироваться, главным образом, на инициативы, материальное и финансовое обеспечение зарубежных контр-партнеров. В прошлом сказывались политическая конъюнктура, неумение сбалансировано учитывать не только свои интересы, но и позицию партнеров, т.е. явное стремление больше от них взять, чем им дать. На этом фоне следует иметь в виду цели и перспективы и других актуальных программ, которые в случае их осуществления могли бы

201 существенно повлиять на политическую и экономическую ситуацию в Северо- Восточной Азии. С полным основанием можно и сегодня утверждать, что из всех двусторонних или трехсторонних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х программ, которые обсуждались на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 или ведомственном уровне, наиболее взаимовыгодным для нынешних участников, а также для возможных иностранных инвесторов из третьих стран остается уже упомянутый проект создания транснационального коридора из АТР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через Россию в страны Восточной и Западной Европы. О нем есть целый ряд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на высоком и экспертном уровне. Много сказано основополагающего, в том числе в ходе наших предшествующих научных встреч. Кажется, что он, как это бывает на экранах телевизоров, то внезапно появляется перед зрителями, то на долгое время исчезает из поля зрения и внимания специалистов и общественности наших стран. По инициативе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о нем вновь было упомянуто во время встречи президентов Д.Медведева и Ли Мен Бака в ходе работы лидеров Восьмерки на японском острове Окинава. Внимание этому проекту постоянно уделяет глава Российского правительства В.Путин. Будучи президентом, он, как известно, неоднократно касался этой темы при встречах с лидерами Юга и Севера и получил от них заверения в том, что руководящие экономические и частные деловые круги РК будут принимать необходимые меры для активного участия в проекте. Придя в Голубой дом, президент РК Ли Мен Бак в числе других экономических программ провозгласил так называемый курс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дипломатии». Имеется ввиду выход южнокорейских топливных компаний на зарубежные нефтяные и газовые рынки с целью самостоятельной разработки за рубежом месторождений, в том числе и особенно в российской Сибири,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на континентальном шельфе вблизи Сахалина и Камчатки. По этому поводу в ряде случаев имеются соответствующие «соглашения о намерениях сторон» начать совместные работы в этих районах. Согласно заявлениям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правительства РК, их страна проявляет значительный интерес к проектам развития перечисленных выше регионов, а также к расширению деловых связей с другими областями России. Обсуждены направления участия южно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не только в разработке энергетических, но и минеральных ресурсов, строительстве трубопроводов. Деловые круги Южной Кореи предлагают свое содействие в обеспечении градостроительных проектов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в преддверии проведения саммита АТЭС в 2012 г. Как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эти обширные планы могут быть без срывов и в реальные сроки выполнены, если они будут с обеих

202 сторон подкреплены развитой транспорт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ой, в том числе технически совершенно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сетью. В добавлениt/ к сказанному следует отметить следующее. Судя по поступающей информации, не только в России, но и в Южной Корее, Китае и Японии осознают полезность создания в регионе объединенных 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транспортных систем. Заключено соглашение, согласно которому будет открыт регулярный сухопутно-морской транспортный маршрут, соединяющий территории этих стран. Общая протяженность новой линии, которую планируется открыть в экспериментальном порядке в октябре сего года, составит около 800 морских миль. Она будет начинаться в городе Хуньчунь (провинция Цзилинь, Северо-Восточный Китай), по суше достигнет российского порта Зарубино (Приморье), затем через южнокорейский порт Сокчхо - японского города Ниигата.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е компании названных стран в рамках проходящей в Чанчуне IV Торгово-инвестиционной ярмарки подписали соглашение, предусматривающее учреждение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компании, которая будет отвечать за эксплуатацию транспорта по этой линии. Уставной капитал компании - $3 млн. В нем доля Китая, России, Кореи и Японии составит соответственно 16, 17, 51 и 16 процентов. По новому транспортному коридору на доставку товаров из Северо- Восточного Китая в Японию потребуются значительно меньшие, чем ранее, сроки, что позволит значительно снизить себестоимость грузоперевозок. Это, как раз то существенное обстоятельство, на которое мы каждый раз обращаем внимание, когда ведем речь о проекте Транссиб - Корейские объединенны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Новая линия будет играть важную роль в перевозках полезных ископаемых, лесоматериалов, нефти и зерна из России в Корею, Японию, страны Европы и Америки, что поможет привлечь больше взаимных инвестиций на смежные территории. Особую заинтересованность 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и единых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в Восточной Азии проявляют транспортные и энергетические ведомства Китая. Так, по их инициативе только за 2007 г. из России в Китай по Транссибир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перевезено более 1,2 млн тонн нефти (данные Управления Восточно-Сибирской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 филиала акционерного общества "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Подавляющее количество жидких углеводородов 9 млн. 211 тысяч тонн - доставлено через пограничный переход Забайкальск-Манчжурия. Через этот переход из Китая на Транссиб идет большой объем и других грузов. Фактически сейчас он находится на пределе своих возможностей. Имеется возможность поставки углеводородного сырья в КНР в текущем году увеличить в полтора-два раза. Для этого создана соответствующая инфраструктура - удлинены станционные пути на крупных и стыковочных

203 станциях, обновляются вагонный парк и устройства сигнализации и связи, вводятся более мощные локомотивы. Все зависит от договоренностей между российскими нефтяными компаниями и их китайскими партнерами считают - в управлении дороги. Как общеизвестно, остается в поле внимания Китая развитие западного направления совместной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по маршруту от Мунсана (Южная Корея), минуя Пондон и Кесонскую индустриальную зону на Саривон, Пхеньян, Синыйчжу, китайские станции Дандун и Шеньян. И далее - на центральные провинции Китая или на северо-восток - к станциям Манчжурия и Забайкальск (Россия). Этот проект благодаря активности железнодорожных ведомств Южной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и, естественно, самого Китая явно опережает восточное направление корейско-российского проекта, которым предусматривается выход на Транссиб через пограничные станции Туманган (КНДР) и Хасан (РФ). Для Китая также выгодно развитие сухопутной транспортной инфраструктуры, в том числе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в бассейне р. Туманган (Тумынь), которая для его северо-восточных провинций (Цзилинь, Хейлунцзян, Ляонин, Хэбэй) через российский Дальний Восток и север КНДР открывает кратчайшие сухопутные и морские пути в АТР. В последние два года, не смотря на трудности политического характера, японские транспортные компании, видимо, учитывая активность других стран соседей по СВА начали интенсивные переговоры с ОАО РЖД об возможном использовании Транссиба и транзита их грузовых потоков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России. Их интересы распространились и на российские европейские регионы. С РЖД и администрациями ряда областей достигнуты договоренности об участии японских фирм в модернизации железнодорожных магистралей на западном и северо-западном направлениях. Это направление выводит Сибирский и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регионы России на скандинавские и восточноевропейские страны. На состоявшейся в Токио в ноябре прошлого года российско-японской конференции, посвященной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двух стран в сфере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транспорта, был принят совместный документ о развитии двустороннего партнерства. С начала года это была уже вторая конференция по данной тематике с участием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х и деловых кругов. Участники встреч договорились об учреждении двух совместных рабочих групп. Одной из них предписано заниматься на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ом уровне вопросами, касающимися ввода в эксплуатацию новых вагонов, контейнеров, модернизации инфраструктуры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Вторая группа, которая будет работать на частном уровне, "займется проработкой конкретных направлений двусторонне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по проекту строительства высокоскоростно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магистрали 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Москва -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Ведутся переговоры с японскими фирмами, которые планируют принять участие в проекте по развитию всего Транссиба

204 В Москве и Нижнем Новгороде в июле с.г. состоялась вторая серия встреч российских и японских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по вопросам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в сфере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сообщения. Согласно официальному заявлению японский МИД по этому поводу сделал специальное заявление, из которого следует, что контакты в этой сфере позволили заложить основы для дальнейшего диалога, который будет продолжен. МИД также сообщил, что во встречах в Москве и Нижнем Новгороде принимали участие его представители, японского министерства экономики, торговли и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частных компаний. Отмечалось что, они проявили определенный интерес к участию в проектах по развитию железных дорог России и согласны подключиться к развитию перевозок на территории РФ с использованием возможностей Транссибирской и других магистралей. Со своей стороны на встрече в Нижнем Новгороде старший вице-президент компании 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заявил, что «Проект использования Транссиба для доставки грузов из Японии в Европу конструктивно обсуждался квалифицированными специалистами обеих стран. По его словам, сейчас грузы из Японии в Европу идут морем примерно 40 дней, а российская сторона гарантирует сделать это по железной дороге за 18 суток, что гораздо выгоднее и дешевле. Он также сообщил, что его ОАО провело переговоры с рядом японских фирм, планирующих принять участие в проекте по развитию Транссиба. В результате стороны ожидают заключения первых контрактов. Реализация отдельных частей проекта Свой взгляд на ситуацию, сложившуюся в связи с реализацией проекта, как и другие страны, имеет Россия. Ряд принципиальных вопросов и положений изложены выше. К сказанному можно упомянуть и другие проблемы. Часть из них уже имеют свою предисторию. Другие, в связи с неизбежно происходящими региональными изменениями, иногда заставляют нас менять некоторые приоритеты и планы. Следует, однако, сказать, что отказываться от того, что и сегодня остается выгодным и перспективным, видимо, не следует. По случаю 60-летия образования КНДР ( ) на приеме в Посольстве КНДР в Москве заместитель министра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РФ А.Яковенко заявил следующее: «Нельзя не упомянуть о результатах, достигнутых в последнее время в деле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соединения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с Транссибирской магистралью. Российские ведомства с удовлетворением восприняли известие о запланированной на 3 октября с.г. церемонии начала активных работ по соединению его пилотной части на участке Хасан - Раджин,

205 а также о значительных подвижках в запуске связанного с данным проектом совместного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го предприятия в порту Раджин». Еще до появления этой оценки руководитель ОАО РЖД В.Якунин сообщил, что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е ведомства России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практически приступили к реализации пилотного проекта по восстановлению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сообщения на 40-километров участке Хасан Раджин. Во время посещения Пхеньяна с министром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КНДР Ким Ён Самом В.Якунин подписал протокол,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которым участок между северокорейским портом Раджин и российской пограничной станцией Хасан должен быть основательно реконструирован. Соответственно реконструкции стала рассматриваться как важная составляющая часть всего проекта по воссоединению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Достигнуто также соглашение между ОАО и портом Раджин о строительства контейнерного терминала, заключен договор о создании совместного предприятия "Торговый дом РЖД", о котором упомянул В.Яковенко. СП займется строительством контейнерного терминала в этом порту с потенциалом пропускной способности до 400 тыс. TEU в год. Инвестиции в реконструкцию участка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Туманган Раджин 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терминала составят порядка 140 млн евро. Оператором проекта выступает совместное предприятие "РасонКонТранс", в уставном капитале которого доля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ы составляет 70%,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 30%. СП зарегистрировано в особой экономической зоне КНДР "Расон". Суммарные затраты на реконструкцию участка дороги и строительство терминала, по предварительным расчетам, оцениваются в 210 млн долл.сша. Специалисты из ОАО РЖД неоднократно подчеркивали, что развитие транзитных перевозок между странами АТР и Европой одно из приоритетных направлений деятельности этого авторитетного акционерного общества. По их расчетам, соединенные Транссиб и Транскорейская магистраль могут стать ключевым звеном едино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цепи, соединяющей Азию и Европу. Как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в данном конкретном случае все три страны могут с немалой пользой для себя воспользоваться своим естественным транзитным потенциалом и географическим положением. В КОНЕЦ ТЕКСТА. Как уже сообщалось, об этом же делегация во главе с Якуниным вела переговоры с официальными ведомствами Южной Кореи. Важным итогом работы делегации ОАО 'РЖД'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стало выраженное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ой согласие рассмотреть вопрос об участии в финансировании программы по восстановлению Объединенных корейских дорог. Кроме того, Сеул выразил готовность в случае согласования проекта

206 всеми тремя сторонами (ОАО 'РЖД', железными дорогами Южной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гарантировать транзитные грузопотоки через территорию РК. 'Мы уверены, что проект восстановления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и загрузки Транссибир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безусловно, важен и для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и для экономик всех трех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стран»,- подчеркивал В. Якунин. Российской компании было доверено другими сторонами сформировать его концепцию и определить форму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к чему мы и приступили в ходе состоявшихся переговоров, а затем конкретных совместных работ». Взаимодействуя с ОАО РЖД, российская компании 'ТрансТелеКом' заключила с Министерством связи КНДР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при строительстве и совместной эксплуатации волоконно-оптической линии передачи на реконструируемых участках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К настоящему времени эта линия введена в строй и стала первой прямой линией наземной связи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КНДР. и последующего начала движения по системе ж.д. по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е данной линии и последующее начало движения по системе ж.д. по территории КНДР приобретает особую важность, прежде всего, ввиду начала и, конечно, при успешном завершении реконструкции участка Хасан Раджин. По данным ОАО 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свыше 100 тысяч контейнеров ежегодно приходят только c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и следуют через Россию. Для сравнения: в направлении Европы по китайским железным дорогам а затем через Транссиб в 2006 г. перевезено 80 тыс. грузов, из которых на долю Южной Кореи пришлось 47,3 тыс. контейнеров при скорости прохождения на 27% меньшей, чем это практикуется на Транссибе. Прогнозные оценки развития мировой экономики говорят о том, дополнительные финансовые и товарные потоки в ходе текущего столетия будут сосредоточены в треугольнике США Европа - Дальний Восток. Товарооборот на этом направлении в последние 3-4 года в виде контейнерных перевозок колеблется в пределах млн. единиц. Значительная их часть могла бы пройти через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а затем через Транссиб в случае соединения российских и корейских дорог. Обращает на себя внимание сохраняющийся и сегодня, объем межкорейской торговли, особенно с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 Как известно, совсем недавно ней принимали участие свыше 481-ой южнокорейской фирмы, а двусторонний оборот достиг более 1,08 млрд. долларов. В 2007 г. появились контракты, заключенные за пределами Кесонской индустриальной зоны. Так, южнокорейская компания «ЭйсБед» подписала с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й фирмой контракт о строительстве в г. Саривоне фабрики по

207 выпуску мебели. Ее продукцию намечалось продавать на Севере и экспортировать за рубеж, в том числе на российский Дальний Восток. В свое время имели место и другие примеры увеличения двусторонней деловой активности. Всем ясно, что, если практические связи Юга и Севера со временем восстановятся, а затем увеличатся, то возрастет нагрузка на транспорт на Юге и Севере. Вряд ли, однако, на будущее удастся обеспечить, очередное увеличение темпов торговли Юга и Севера, их экономические связи с Россией и между собой только за счет морских перевозок, как это делается сейчас. В условиях жесткого ограничительного режима, существующего в КНДР не удастся подключить к торговым перевозкам на Север в ближайшей перспективе и южнокорейский автомобильный транспорт. По данным Федеральной таможенной службы РФ, российско-южнокорейский торговый оборот в 2007 г. достиг 14985,9 тыс. долларов. По прогнозам президента Корейского агентства содействия торговле и инвестициям Хон Гви Хва (интервью от ), по итогам 2008 г. двусторонний оборот может достигнуть 20 млрд. долларов. Увеличение оборота прогнозируют в южнокорейском министерстве финансов и экономики, а также в министерстве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и внешней торговли (интервью и ). На дальнейшее при практических расчетах следует также учитывать и те грузы, которые имеют отношение к экономическому, инвестиционному, военно-техническ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к увеличившемуся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в области космоса. При таких нагрузках игнорировать развитие связей с РФ по железной дороге и, как говорилось выше, надеться, главным образом, на морской транспорт и воздушные перевозки вряд ли целеобразно. Следует напомнить, что конкретные направления по созданию транспортного моста между АТР и Европой в свое время обсуждались не только в трехстороннем формате, но и с участием руководителей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Азиатского континента на встречах в Сеуле, а также в Вильнюсе (Литва) в ходе 15-го заседания Координационного совета по транссибирским перевозкам (КСТП), где приняли участие представители транспортных министерств 20 стран Европы и Азии. И в том и другом случае рассматривалась стратегия развития перевозок грузов по транссибирскому маршруту на период до 2020 года, а также включение в этот процесс транспортных артерий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Указывалось, что к середине последнего десятилетия суммарный объем перевозок грузов в контейнерах через погранпереходы и порты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 достиг 388,3 тыс. единиц. В июне т.г. Президент ОАО РЖД В.Якунин провел переговоры в РК и КНДР с руководством железных дорог этих, а также представителями бизнес-структур этих стран. Итогом встреч стало согласие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 решить вопрос об участии в финансировании

208 проекта по восстановлению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Кроме того, Сеул готов в случае окончательного согласования проекта всеми тремя сторонами (ОАО РЖД, железными дорогами Южной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гарантировать транзитные грузоперевозки по единому маршруту. По итогам переговоров Якунин заявил: «Мы уверены, что проект восстановления Транскорей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и загрузки Транссиба, безусловно, важен и для железных дорог, и для экономик всех трех заинтересованных стран. Нашей компании было доверено другими партнерами сформировать его концепцию и определить форму финансирования, к чему мы и приступили в ходе состоявшихся переговоров». Во многих экономическ5и активных странах учитывают наступление эры электронной торговли, для которой приоритетны скоростные сделки. Поэтому российские ведомства предлагают не откладывать в очередной раз реализацию проекта соединения двух магистралей в единый транспортный мост между Европой и странами АТР, экономическая целесообразность и будущие финансовые выгоды которого очевидны. Со своей стороны ведомства и администрации ряда российских краев и областей по трассе Транссиба предприняли конкретные шаги по подготовке к реализации проекта. Российские транспортные ведомства на условиях авансирования уже вложили 500 млн. рублей в модернизацию железных дорог России на участках Транссиба и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В согласованном варианте проведена стыковка железных дорог Южной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на западном направлении (от ДМЗ до Синыйчжу). Проект дополнительной реконструкции магистралей КНДР прошел экспертную оценку в российских ведомствах, которые финансируют значительную долю работ на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м участке. По оценке ОАО РЖД, требуется модернизация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КНДР, на что уйдет 2-7 млрд. долларов. Работы займут от 5 до 7 лет в зависимости от их интенсив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стороной подготовлены материалы о верхнем строении пути, готова специальная дорожная техника. От ст. Хасан через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продолжены работы по усовершенствованию местно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сети. Учитывается, что уже сейчас на Транссиб направляются товарные потоки не только с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Но и из морских портов Приморья и Хабаровского края. Следующим шагом могут стать меры трех сторон по созданию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консорциума не только по реконструкции, но и последующей эксплуатации объединенной железной дороги. Соответствующее обсуждение принципов таких действий уже не раз проводилось. У Южной Кореи имеется стойкий интерес к импорту углеводородного сырья из-за рубежа, в том числе сжиженного газа и нефти из России. Вместе с тем сейчас российское углеводородное сырье наземным транспортом на юг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не поступает. Северная Корея ограничивается поставками нефти по железной дороге из Китая и России. Юг по своим

209 соображениям не стал в свое время активно, как известно, участвовать в тендерах, в том числе по проектам на Сахалинском шельфе, не считая их достаточно перспективными. Такая оценка, как показало время, оказалась не точной. Сейчас южнокорейские оценки стали иными и положение меняется. Не исключено, что и практические действия южнокорейских деловых кругов и консультирующих их 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х институтов относительно рассматриваемого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проекта также изменятся и станут на деле более активными. Соответственно, от тактики выжидания они перейдут к активному участию - техническому, финансовому, к поставкам высокотехнологичного оборудования на места работ на Восточном его направлении. Специалисты из ОАО РЖД неоднократно подчеркивали, что развитие транзитных перевозок между странами АТР и Европой одно из приоритетных направлений деятельности этого авторитетного акционерного общества. По их расчетам, соединенные Транссиб и Транскорейская магистраль могут стать ключевым звеном едино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цепи, соединяющим Азию и Европу. Как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в данном конкретном случае все три страны могут с немалой пользой для себя воспользоваться своим естественным транзитным потенциалом и географическим положением. И Южная Корея, естественно, не может быть в данном случае каким-либо исключением

210 Ким Ен Ун (Институт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АН, Центр коре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Соврем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и планы содействия взаимному улучшению национального имиджа Росси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нея. Доклад на 20-й юбилей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ИДВ-Ханьян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 г. Сеул, 5-6 октября 2008 г. По результатам проведенного Корейской корпорацией по содействию внешней торговле в 21 стране опроса Россия оказалась второй наиболее высоко оценивающей ее страной (по пятибалльной системе Россия дала 4,06 балла, тогда как занявшая первое место Индия 4,11 балла) и что, если по результатам другого исследования 42% англичан вообще не знают, где расположена Корея и называют ее месторасположение же угодно, но только не в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а 43% канадцев считают корейский язык идентичным китайскому, то россияне точно знают, где расположена Корея и 98% россиян знает, что корейский язык это самостоятельный язык Граждане Южной Кореи в целом уважительно относятся к России. Южнокорейцы не считают Россию источником какой-либо опасности для себя. По опросам, проведенным в Корее, доброжелательно относятся к России 47,1% корейцев (к своему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ому союзнику США 51,1%). В Корее признается высокий уровень развития образования, культуры России, особенно, в области хореографии (не только балета, но и в целом танцевального искусства) 1, музыки, литературы, живописи, театрального искусства. В меньшей степени в Корее знакомы с российским кинематографом. Корейцы знают несколько всемирно известных русских и советских песен («Катюша», «Очи черные», «Подмосковные вечера»), Чайковского, Достоевского, в меньшей степени Пушкина, Толстого. Основная масса корейцев Толстого знает по американскому фильму «Война и мир» с Одри Хепберн в роли Наташи Ростовой и даже многие люди с университетскими дипломами считают Л. Н. Толстого второразрядным писателем по сравнению с 1 Нет ни одного сколько-нибудь образованного южнокорейца, который не стремился бы побывать на спектаклях Большого театра, несмотря на то, что классический балет получил развитие в Корее совсем недавно и в массе своей южнокорейцы балет знают мало и разбираются плохо. Об отношении к танцевальному искусству России говорит тот факт, что все крупные средства массовой информации Кореи поместили информацию о кончине Игоря Моисеева

211 Достоевским. Советская и современная россий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практически неизвестна в Корее. После установления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между нашими странами южнокорейская общественность познакомилась с значительным числом российских исполнителей - музыкантов, певцов, со спектаклями прославленных наших балетных и оперных трупп и даже постановками драматических спектаклей, которые несмотря на то, что они шли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собирали значительную аудиторию 2. Значительную роль в пропаганде русской балет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ыграл южнокорейский «Юниверсал балет» 3, где с начала 90-х годов художественным руководителем работает балетмейстер из Кировского балета Виноградов. О признании высокого уровня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говорит факт приезда на учебу в Московскую консерваторию, ВГИК, в театральные и балетные вузы и училища значительного количества южнокорейских учащихся и студентов. Несмотря на навязываемый населению отрицательный образ России, в народных массах Южной Кореи жило много мифов и легенд о жизни в Советском Союзе. Многие в те годы были убеждены, что в СССР населению бесплатно давалось не только образование, медицинские услуги, квартиры, но даже и питание, а уж о пенсиях, об оплачиваемом отпуске продолжительностью не менее двух недель для работников обычного физического труда еще в шестидесятые-семидесятые годы и говорить не приходится, т.к. в то время они попросту не имели такого отпуска. До Олимпийских игр 1988 г. в Сеуле в России большая часть населения имела самое смутное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Южной Корее и считала ее отсталой неколониальной страной. Активная поддержка южнокорейскими болельщиками наших спортсменов сыграла значительную роль в формировании позитивного образа Южной Кореи у наших граждан. Это тем более верно, что в преддверии и в ходе самой Олимпиады-88 советская пресса и телевидение показали огромный массив информации о Южной Корее, который освещал не только жизнь простых людей, но и показал достижения в области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троительства, техники, науки, культуры и спорта. Среди нас сейчас присутствует человек, который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 занимался тогда в группе советских журналистов объективным и благожелательным освещением достижений Кореи и отношения корейцев к советским спортсменам. Это А. З. Жебин, ныне директор центра Коре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нститута Дальнего 2 Например, речь идет о постановке «Барышни-крестьянки» коллективом театра им. Ермоловой в Сеуле в 2004 г. 3 Кстати, созданного и содержащегося на средства основателя Объединенной церкви пастора Мун Сон Мена, ярого антикоммуниста, о котором много чего критического писалось в е годы ХХ века

212 Востока РАН. Объективному освещению достижений Южной Кореи и отношения к СССР в то время оказала также первая делегация научного института из СССР во главе с директором Института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академиком М. Л. Титаренко. Так что мы имеем возможность сейчас общаться с людьми, которые сыграли огромную роль в формировании позитивного, благожелательного отношения в руководстве и среди простых граждан СССР и России к Корее. Точно также я бы хотел отметить роль руководства и ученых Ханьян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первыми установившими научные контакты с российскими учеными, в частности, почетных докторов Института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йской академии наук, основателя, покойного президента университета Ким Ен Чжуна ( 김 연준), а также продолжателя его дела нынешнего президента Ким Чон Яна (김 종량), профессора Ю Се Хи (유 세희) и многих других в формировании объективного мнения в Корее о России.. Отношение корейцев к России в основном связано с отношением к русским. Раньше сведения о русских людях черпались из книг и прессы западных стран со всеми вытекающими отсюда последствиями. После установления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между нашими странами стали появляться работы корейских авторов, в которых освещаются черты характера русских, а также работы западных авторов, в которых дана попытка более или менее объективного изложения черт характера и психологии русских людей. Среди них я хотел бы обратить внимание на книгу Пак Мен Ена и Пак Бом Игоря «Водка, Чехов и Лебединое озеро», изданную в Сеуле на корейском языке в 2005 г. Пак Мен Ен, ныне живущий в Москве и женатый на русской (Нине Каишаури) без прикрас описал опыт своей семьи в 90-е годы в Москве. Хотя эпиграфом к своей книге он взял известное стихотворение Ф. Тютчева о невозможности понять Россию умом и возможности только верить, он обращает внимание на многие положительные черты граждан России, особо обращая внимание на высокий уровень родительского долга и заботы о детях, считая, что семейное воспитание в России больше ориентировано на духовное развитие личности. От него не укрылась такая деталь, как чтение стихов, сказок детям родителями и чтение стихов в детских садиках, справедливо считая, что это развивает память, организует ритмику слова, закрепляет память, повышает интерес к книге, к чтению. В немалой степени этим он объясняет высокий уровень развития культуры и литературы в России, считая, что средний уровень работ зарубежных нобелевских лауреатов по литературе составляет не выше уровня работ российских писателей второго уровня 4. Корейцы отмечают доброжелательный характер русских, их уважительное отношение к корейцам, что разительно отличает от опыта их общения с 4 Пак Мен Ен, Пак Бом Игорь. Бодка, Чехоп григо бекчжо-ы хосу (Водка, Чехов и Лебединое озеро»), Сеул, Изд-во «Икарусмидио», 2005, С

213 американцами. Естественно, все авторы не прочь отметить дежурные слова об огромном количестве спиртного, которое потребляется русскими. Отношение граждан России к корейцам из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является благожелательным. Во многом это связано с тем позитивным отношением, которое сформировалось в России к российским корейцам и поэтому они автоматически переносят свое уважительное отношение и ко всем другим корейцам. Свою роль, естественно, сыграли и знание об огромных достижениях в экономике Южной Кореи. В прессе России каких-то негативных материалов о Южной Корее сложно найти, если только речь не идет о какойнибудь катастрофе. Я практически не встречал материалов в прессе или в электронных средствах информации явно критического характера к внутренней или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е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О КНДР такие материалы встречаются и то главным образом, это пишут представители так называемой либеральной прессы. Кстати, в этой либеральной прессе можно найти явные и скрытые попытки представить корейцев в негативном духе, главным образом, возможно, в силу недостаточности воспитанности таких журналистов. Например, по поводу употребления мяса собак. Необходимо отметить, что в рядовые граждане России плохо знают корейскую литературу, корейский фольклор, корейские песни, какие-либо крупные имена писателей, спортсменов, музыкантов Кореи. Работа с зарубежной диаспорой, как с гражданами своей исторической Родины, так и с гражданами страны пребывания является составной частью имиджа страны. Защита интересов, спасение своих граждан, оказавшихся в сложной ситуации является важнейшей задачей государства, сколько бы ни пришлось затратить времени и средств. Можно отметить, что президент Путин обратился лично к правителю Омана с целью передачи осужденных там граждан России для отбывания наказания в России. Или более свежий пример, когда были задействованы мощные силы МЧС России и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 России для спасения российских туристов, пропавших на западе Китая. Еще один пример: США до сих пор пытаются найти останки своих военнослужащих, погибших в Северной Корее во время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стимулируют поиски и вывозят найденные останки в США, где их с воинскими почестями хоронят. Думаю, что заметному повышению имиджа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содействовали действия властей Южной Кореи по вызволению из талибского плена своих миссионеров летом 2007 г. Думаю, что не только специалисты по Корее, но и представители всех спецслужб отдали должное тому, что ради спасения этих людей разведка Кореи не побоялась раскрыть одного из своих ценнейших агентов и, возможно, резидента по региону. Как известно, воспитание, внедрение такого специалиста требует длительного и многоходового процесса. Но ценности человеческой жизни таковы, что страна пошла на такой шаг. Это действительно сильное проявление защиты своих граждан. Я не хочу сказать, что Корея везде последовательна. Стоит напомнить о более чем странной

214 пассивности властей Кореи в течение полугода по спасению захваченных пиратами своих рыбаков у побережья Сомали, которые только в ноябре 2007 г. были освобождены при содействии ВМФ США. Вместе с тем, было бы неправильно представлять, что в наших странах все нормально с точки зрения освещения в СМИ, учебниках и даже официальных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изданиях и скажен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й о другой стране. Вот возьмем Например, в учебнике «Народоведение» 5 рекомендованном Министерством образования России в качестве учебного пособия для средних школ, раздел Кореи написан в ключе, который соответствовал уровню развития Кореи лет 70 назад: «В сельском хозяйстве корейцев все еще очень велика доля использования мускульной силы людей.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это относится к подаче воды на поля. Водоподъемные колеса приводятся в действие людьми; механизмы используются ограниченно 6. И это говорится о стране, которая на момент написания учебника была одиннадцатой промышленной державой мира, где больше половины населения пользовалось в то время Интернетом (сейчас 95%) 7, где, пожалуй, за исключением младших дошкольников все пользуются мобильной телефонной связью! Нет нужды объяснять, как воспринимают в Корее такие безграмотные, даже оскорбительные утверждения в школьных учебниках. В то же время нам, например, трудно объяснить, почему в книге под названием «Handbook of Korea», издаваемом Корейской службой информации для зарубежных стран (а это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орган) из года в год российский остров Сахалин изображен как территория Японии (выделен одним цветом с Японией, а Россия другим цветом) 8. Весьма сложной и болезненной в формировании и поддержании образа России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является интерпретация и освещение не только в прессе и научной литературе, но, самое опасное, в школьных учебниках истории России и многих моментов наших двух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Прежде всего это касается трактовки политики России по отношению к Корее в конце девятнадцатого начале двадцатого веков, роли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в освобождении Кореи, в Корейской войне гг., а также тенденции развития России в ХХ1 веке. 5 Предисловие к книге написал мэр г. Москвы Ю. М. Лужков, пресс-секретарем которого является этнический кореец С. П. Цой 6 Народоведение. Книга первая - М.: Изд. дом Этносфера АО Московские учебники, 2002.С.203. Автор главы проф. С. П. Поляков. 7 Корея геральд, Handbook of Korea. Eleventh Edition. Seoul, The Korean Overseas Information Service, P

215 Например, в работе известного советолога Ким Хак Чжуна «История революций в России» (2005 г.) объемом 1003 страницы, при большом количестве упоминании имени В. И. Ленина (более ста), есть всего лишь одна ссылка на его работу 9. Более часто цитируемый в этой работе Л. Д. Троцкий удостоился ссылки на 3 работы 10. Излишне говорить, что автор совершенно не знает ни одной работы советских и российских авторов по проблеме русских революций, изданных в России. А как можно писать о стране, не зная научной, обществе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и оценки ученых этой страны? Известная исследовательница проблем образования России 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доктор Син Хё Сук отмечает: С началом реформ в России началась работа по составлению новых учебников. В ее ходе сделаны значительные поправки в изложение истории Кореи, которое становится все более объективным. В Южной Корее, напротив, ни точка зрения на Россию, ни сведения о ней в учебниках почти никак не изменились» 11. Она же подчеркивала необходимость освободиться от «негатив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о России, укоренившихся в Корее». Насколько объективны учебники, СМИ Кореи в освещении истории и современного положения России. Корейские авторы учебников рисуют внешнюю политику России всех времен как сплошь агрессивную, захватническую, колониальную. При этом забывают сообщить о том, что в истории никогда не было ни Казахстана, ни Узбекистана, ни Туркменистана, ни Киргизии в их нынешних границах. Грузия в границах на 8 августа 2008 г. никогда, кроме периода с 1991 по 1992 год, не существовала в истории как единое политическое и культурное целое, как государство. Грузия является территориально-политическим сообществом многих народов: кахетинцев, мингрелов, хевсуров, сванов, аджарцев, абхазов, осетин, армян, греков, евреев, русских и других. Территориальную целостность и единство Грузии обеспечивали ее принадлежность к Российской империи и Советскому Союзу и вхождение в них 9 Речь идет только о работе «Две тактики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и в 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революции», написанной в 1905 г., да и то со ссылкой на оценку английского автора L. G. Churchward, Contemporary Soviet Government, 2 nd ed.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См. Ким Хак Чжун. Росиа хекменса (История русских революций), Сеул, Изд-во «Мунхак гвади сонса», 2005, с Leon Trotsky,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32); Leon Trotsky, The Russian Revolution. Selected and edited by F. W. Dupee (Garden City, N.Y.: Doubleday Anchor Books, Doubleday and Co., 1959); Leon Trotsky, My Life (New York: Pathfinder Press, 1970) 11 Син Хе Сук. Российские школьные учебники истории о Корее: оценка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эксперта/ Корея в поисках мира и процветания. Доклады, представленные на У111 науч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корееведов. Москва, марта 2004 г./ран, Ин-т. Дальн. Востока М., 2004, С

216 как единой провинции с централизованным управлением и политическим подчинением имперской столице - Петербургу или Москве. Некоторые из этих народов заключали с Россией самостоятельные договоры о вхождении в ее состав в лице своих царей, князей и племенных лидеров, как, например, абхазские и мингрельские князья. Или о том, что, например, в 18 веке Грузия, точнее картлийский царский дом (царь Картилийский и Кахетинский Ираклий 11), находившийся в вассальной зависимости от Персии, трижды просился в состав России. Дважды императрица Екатерина Вторая отказывала, т.к. не хотела лишней обузы для России. Под конец под влиянием разговоров о том, что там живут люди одной с русскими веры православные и что, если Грузия не войдет в состав России, то в скором времени она будет завоевана либо Персией, либо Турцией и грузинский народ может исчезнуть как этническая общность, сдалась и дала согласие на включение Грузии в состав России. Кстати, в Георгиевском трактате ( г.), который оформил включение Грузии в состав России по просьбе грузинской стороны включено обязательство России направить два сухопутных батальона с 4 пушками для защиты границы от Персии и Турции. Присутствие русских войск навсегда избавило Грузию от агрессивных действий со стороны юга. По Георгиевскому договору грузины получали одинаковые с русскими права торговать, передвигаться и селиться на территории России. Между прочим, по условиям договора царь Ираклий 11 был обязан урегулировать свои отношения с царем Имеретии Соломоном, чтобы не было конфликтов в регионе. Только под давлением России Турция была вынуждена после двухвекового гнета согласиться на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самостоятельности восточной части Армении, которая затем сама попросилась в состав России. Что стало с теми армянами, которые оставались в составе Турции, известно по печальным событиям 1915 года, когда было вырезано полтора миллиона армян в Турции. Евросоюз, а теперь и Конгресс США признали это геноцидом. Кстати, хочу также отметить, что и Украина в нынешних границах возникла только благодаря помощи России и СССР. Если кто не помнит, напомню, что после Киевской Руси (не Украины, а Руси) на территории современной Украины были мелкие княжества, которые на протяжении многих веков были частью Польши, Австро-Венгрии, подчиненного Турции Крымского ханства. Только договор с Россией 1654 года позволил большей части Украины освободиться от польского гнета. В годах в состав Украины были включены нынешние Донецкая, Днепропетровская, Харьковская области, которые до 1917 года были составной частью России с русским населением. Только в 1939 году вошли в состав Украины Галиция (Ивано-Франковская области), в 1946 году- Карпаторусскую республику (нынешняя Закарпатская область), население элита которой выступала за присоединение к России. В 1954 году Генсек ЦК КПСС Никита Хрущев волюнтаристски присоединяет к

217 УССР Крым. К 1991 году территория УССР в 4 раза превысила территорию Малороссии, перешедшей в 1654 году в подданство России. Для любителей семантики название государства Украина происходит от польского «украина», т.е. окраины, Украина тогда была восточной окраниной Речи Посполитой. До сих пор в корейских учебниках нигде не упоминается о роли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в освобождении Кореи, говорится лишь о том, что «американские и советские войска» вошли на территорию Кореи с целью разоружить уже капитулировавших японцев 12. В вышедшей в 2007 году вторым изданием 500-страничной книге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автора Ким Ген Мука «Рассказы об истории России» сообщается, что СССР отверг просьбу США об участии в войне против Японии и только после того, как США сбросили атомные бомбы на Хиросиму и Нагасаки, решил начать войну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и, не пролив ни капли крови, занял Манчжурию и север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13. Известно ли авторам учебников истории, что в 1945 г. японск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предлагало Советскому Союзу в обмен на отказ от войны против Японии передать СССР не только 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а, но и Хоккайдо, но просило оставить за Японией Корею? Или о том, что перед Ялтинской конференцией Чан Кай Ши встречался в Каире с Рузвельтом и договаривался с ним, чтобы Корея перешла под контроль Китая? Еще одна болезненная проблема о причинах возникновения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годов. Да, Сталин совершил трагическую ошибку, подавшись на уговоры Ким Ир Сена и Мао Цзедуна. Вместе с тем, российские авторы считают, что Корейская война порождена комплексом причин внутреннего и внешнего характера. Корейские же авторы зачастую не признают внутренних причин, возлагая ответственность за возникновение войны на внешние силы и, главным образом, на СССР. 12 Советские войска начали освобождение Кореи 9 августа 1945 г., ровно через три месяца после окончания Втор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в Европе, как и было договорено на Ялтинской конференции глав СССР, США, Великобритании, т.е. выполняя свои международные обязательства. Известно также человеку, хоть немного знакомому с историей, что подготовить к наступлению миллионную группировку войск с тяжелым вооружением, со всем тыловым обеспечением разделенную на 2 фронта, перебросив их на расстояние 9 тысяч километров невозможно ни за три дня, ни за 3 недели. Кстати, советские войска остановились на 38 параллели, как и было договорено, хотя вполне могли бы занять весь полуостров. Япония объявила о капитуляции 15 августа 1945 г. Американские войска, действительно, высадились на Юге Кореи после подписания Японией Акта о капитуляции на борту линкора «Миссури» 2 сентября 1945 г. 13 Ким Кен Мук. Ияги Росиаса (Рассказы об истории России), Сеул, Изд.во «Чона сулпанса», С

218 В музее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в Сеуле выставлен рукописный текст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с указанием в сопроводительной надписи, что это «Приказ разведки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По-видимому, по идее организаторов экспозиции, это должно как бы свидетельствовать, что данный приказ (кстати, изданный начальником штаба армии и начальником разведуправления армии (только непонятно, какой армии), без указания фамилий, воинских званий, о сборе сведений о силах противника в районе Сеула) принадлежит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и доказывать, что-де Советская армия была непосредственно вовлечена в оперативные войсковые операции. На самом же деле это перевод приказания начальника штаба армии и начальника управления разведки армии (непонятной какой) в адрес штаба 2 дивизии на разведывательные действия. Внизу этого документа также от руки написано «Перевод с китайского (!) Цой Илья». Правда, странно? С каких пор перевод текста с китайского на русский язык выдается за текст, якобы принадлежащий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И потом, как можно выдавать рукописные переводные тексты, написанные переводчиком, за приказы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Нас, граждан России, независимо от национальн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не может оставлять равнодушным сильная зависимость корейских СМИ в оценке события, происходящих в мире, от позиции США. Многие журналисты Кореи просто принимают на веру все то, что пишут американские коллеги и транслируют все это на корейскую аудиторию. Это касается не только оценки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внутриполитической ситуации в России, когда, например, во всем том, как оценивали выборы нового президента в России корейские СМИ просто давали слово американским или английским журналистам с их антироссийскими выводами. В качестве примера можно сослаться на такой факт. Ведущая англоязычная газета Южной Кореи «Корея геральд», претендующая на либеральность, оценила итоги выборов в Государственную думу РФ довольно желчными антироссийскими статьями американских авторов Уильяма Пфаффа ( ) и Эндерса Эслунда (6 и 15 декабря 2007 г.) 14. Возьмем, например, как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освещали ситуацию вокруг грузинской агрессии против Южной Осетии и ответных мерах России. Весь день 8 августа корейские СМИ не дали ни одной информации о нападении грузинских войск на Южную Осетию. А с 9 августа стало транслировать материалы СNN. Агентство «Енхап Ньсю» распространило 12 августа фотографию с надписью «У обочины дороги брошена гражданская машина, разрушенная в результате атаки российских вертолетов на дороге между грузинским городами Гори и Тбилиси». Самое интересное, что на обочине дороги стоит разбитая боевая машина пехоты. Такую дезинформацию еще надо

219 придумать! Ладно, женщин, которые не служили в армии и плохо разбираются в военной технике, можно обмануть, но ведь почти все взрослые мужчины в Корее служили в армии и они всегда могут отличить военную машину от гражданской. За кого принимают потребителей своей информации в агентстве «Енхап»? Какое может быть доверие к такой информации. Этот материал появился на сейте газеты «Чосон илбо» 일 오전 그루지야 고리시와 트빌리시를 잇는 도로에 러시아군 헬기의 공격을 받아 전파된 그루지야 민간인 자동차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연합뉴스 Или, например, как освещают события в России. Я внимательно слежу за публикациями в «Чосон илбо» и «Корея херальд». Так вот, по большей части публикации о России негативного характера. Недавно произошло загадочное и возмутительное убийство бывшего прокурора Евлоева, который стал вдруг правозащитником и с зарегистрированного в США сайта вел кампанию против нынешнего президента Ингушетии Мурата Зязикова. Газета Чосон илбо сообщила об убийстве «знаменитого журналиста» 16. Об этом «знаменитом журналисте» 99,99 процента граждан России узнали только потому, что он был убит таким наглым образом. Кстати, покойный Евлоев сначала активно поддерживал первого президента Ингушетии Руслана Аушева, потом выступил против него. Потом он активно подержал кампанию по выборам Зязикова на пост президента и также через некоторое время стал выступать против него

220 Между тем, как мне кажется, всем уже давно известна тенденциозность американских СМИ, когда о невыгодных для себя фактах они просто молчат или сознательно утаивают, а также мессианский синдром американской дипломатии, когда весь мир становится зоной национальных интересов США в сочетании с двойными стандартами в оценке тех или иных событий. Достаточно известна история выступления 12 летней проживающей в США осетинской девушки по телеканалу Фокс ньюс. Когда она, которая как раз 7-8 августа была в Цхинвале, сказала, что напали грузины, а русские спасли мирных жителей, ведущий просто прекратил интервью. А следом за ними такую же политику проводят и многие СМИ Западной Европы. Например, в распоряжении Европейского Вещательного Союза (European Broadcasting Corporation) имелся доступный всем телекомпаниям видеоролик, на котором грузинские солдаты расстреливают жилые районы Цхинвала 8 августа 2008 г. Этот ролик неопровержимо доказывает, кто начал войну и какими методами уничтожал не военные объекты, а гражданское население Южной Осетии. Так вот, ни одна телекомпания Западной и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за исключением одной, не показала его. Потому что им правдивая информация о той войне не была нужна. Одна телекомпания, которая его показала, это испанский телеканал RTVE, но комментировала его так: «Здесь показан тот самый момент, когда российские войска входят в Цхинвал, столицу Южной Осетии», как будто расстреливают жилые дома Цхинвала русские солдаты. Ну, верх цинизма! Правда, пойманная за руку, она все же извинилась. 17 А что касается мессианизма США, то вот образец. В докладе Национального совета США по разведке, подготовленном в 2007 году, утверждается: "Правительству США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следует понять, что алкоголизм в Монголии - один из главных факторов, угрожающих национальным интересам Вашингтона" 18. Где Монголия и где США? Интересно, а то, что секс-индустрия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дает 14 трлн. вон 19, тоже угрожает национальным интересам США? Было бы желательно, чтобы журналисты наших стран научились давать собственные оценки, а не доверяться полностью американским источникам.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й союз военно-политическим союзом, но нельзя во всем полагаться на позицию своего союзника. Ориентация только на одно государство всегда может привести к тяжелым последствиям. И мы считаем шагом в правильном направлении политику президента Ли Мен Бака, направленную укрепление тесных связей не только с США, но и КНР, Россией и Японией. С Китаем у РК обязывающее ко многому стратегическое многостороннее партнерство. С Россией, по-видимому, просто многостороннее The Korea Herald,

221 партнерство. Россия готова к более тесным отношения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го партнерства с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Мы отметили как положительный факт, что правительство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в ситуации с грузинской агрессией против Южной Осетии заняло самостоятельную позицию, не пошло на поводу у США и не выразило какого-то осуждения России. В свое время во время известных событий и Андижане (Узбекистан) Корея также не присоединилась к хору осуждающих президента Узбекистана И. Каримова западных стран во главе с США. Эта самостоятельная позиция сейчас оборачивается немалыми выгодами для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о чем свидетельствуют не только регулярные политические консультации между МИДами двух стран, но и присутствие И. Каримова на инаугурации президента Ли Мен Бака, визит премьер-министра Хан Сын Су весной 2008 г., а также предстоящий в 2009 году визит президента Ли Мен Бака в рамках энергетической дипломатии. Для содействия имиджу наших стран предлагается: - министерствам образования России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привлекали к написанию страновых разделов в соответствующих учебниках истории и страноведения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х специалистов по конкретным странам, а не только специалистов широкого профиля, которые «и швец, и жнец и на дуде игрец». - создать совместную группу специалистов для содействия улучшению имиджа друг друга в наших странах. - расширить количество переводов российской исторической, философской, религиозной, научно-популярной и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на корейский язык, соответственно, с корейского на русский язык. - расширить показ в РК, в том числе по телевидению документальных фильмов об истории и культуре России, а в России корейских фильмов, приняв необходимые организационные и финансовые меры; - увеличить на паритетных началах, в том числе участием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органов и организаций количество проводимых в РК и РФ различных выставок и гастролей российских и корейских художественных коллективов, тематических кино- и театральных фестивалей, звезд шоу-бизнеса, с ориентацией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на молодежь; - расширить академические обмены между двумя странами, предусмотрев по примеру РК создание российского фонда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бменов, которые позволяли спонсировать зарубежные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проблемам России и ее истории, приглашать на стажировку в Россию специалистов, в том числе из Кореи, а также проводить совместные исследования и конференции по выработке единой позиции ученых, авторов учебников, журналистов по ключевым проблемам истории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х отношений;

222 - Создать временную, сроком на пять лет, двустороннюю комиссию по унификации освещения в учебниках основных вопросов истории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и проводить на регулярной основе конференции по этим проблемам. - через все каналы информации доводить до южнокорейцев объективную историю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в России, подготовив необходимые кадры исследователей по этому вопросу. - Проводить раз в десятилетие Годы России в Республике Корея и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в России, с вице-премьерами в качестве председателей Оргкомитетов по проведению соответствующих годов.. Первый из таких Годов приурочить к 20-й годовщине установления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между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т.е. в 2010 г., второй - в 2011, с тем, чтобы вторую серию таких Годов провести в годах

223

224 Асмолов К. В. 1 Образ Кореи и корейцев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россиян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что значительная часть проблем межкультурной коммуникации связана с тем или иным устоявшимся стереотипом «национального образа», который настолько укоренился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что определяет «цвет» очков, через которые общество видит и на этом основании оценивает действия отдельного представителя данного народа. Такой стереотип очень часто лежит в глубине сознания и не всегда может быть «фиксирован» с точки зрения понимания того, насколько он оказал влияние на выбор. Такой же образ есть не только у народа, но и у страны. При этом данные образы могут не совпадать. Однако они, безусловно, формируют так называемую «ментальную карту», отражающую представление человека об окружающем мире. Именно поэтому, рассматривая вопросы улучшения отношения России с корейским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мы должны не только анализировать трудности в экономической или политической сфере, но и представлять себе то, какими видят Корею или корейцев отдельный россиянин, не имеющий востоковедного образования и не занимающийся специально этой темой. Понятно, что если народ или страна имеют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однозначно отрицательную репутацию (безотносительно того, насколько это соответствует действительности), то именно она будет во многом влиять на принятие решения относительно данного объекта. В СМИ Корея представлена относительно слабо. Точнее, если в отношении иных стран у нас очень часто ведется постоянное освещение всех аспектов ее жизни, то когда речь заходит о Корее, то освещение ее жизни идет всплесками и касается событий, которые можно назвать чрезвычайными.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сегодня это ракетно-ядерная теме, в меньшей степени моменты, связанные со стихийными бедствиями или деятельностью первых лиц государства, которые нельзя не освещать. Большую часть информации о Южной Корее россиянин получает из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источника», будь то корейское кино, знакомство с корейской техникой или культурные мероприятия, проводимые в России 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ой в рамках развернутой программы, направленной на знакомство внешнего мира с Республикой Корея и выстраивание там ее «правильного имиджа». 1 Центр коре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нститута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АН, Москва

225 Северная Корея же остается для массового сознания «терра инкогнита», и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ней во многом складывается по публикациям «из вторых рук» - описаниям страны российскими или зарубежными авторами. При этом представления, основные на прямом контакте (иначе говоря, впечатления тех, кто бывал в стране сам), занимают среди них очень малое место. Но даже эти «записки очевидцев» можно разделить на несколько групп по принципу политической ангажированности. Изначально сконструировав в своей голове тот или иной образ КНДР, они неосознанно, а чаще осознанно, видят только то, что укладывается в созданную ими картину. Иными словами, вместо того, чтобы смотреть в окно, они смотрят в зеркало и часто едут на Север, желая увидеть Советский Союз пятидесятых-шестидесятых годов. В результате одни, упиваясь своим демократизмом и принадлежностью к Европе, фиксируют внимание на бедности и культе личности, окончательно формируя у масс картину ужасной страны-изгоя, существование которой неприемлемо для «белого человека». Другие, представители идейных левых, ностальгируют по старому миру и видят в КНДР некий идеальный островок социализма и заповедник духовности. Третьи, как правило, сохраняют объективность, хотя «игра в разведчика» тоже накладывает отпечаток на их реакции. Тем не менее, тон большинства таких «политически неангажированных» репортажей скорее нейтрально-дружественный. Проблемы страны описываются с пониманием и некоторым сочувствием, а эндемика, связанная с культом личности, рассматривается как деталь местной традиции. При этом можно отметить, что наблюдения тех российских граждан, которые не были жителями мегаполисов, зачастую обладали гораздо меньшей долей снобизма. Важно, что иногда очень хорошие фотографии, которые нередко можно использовать в качестве источника информации, снабжены такими комментариями, которые отражают полное непонимание того, что именно увидел автор. Закрытость КНДР с точки зрения информации порождает неприятный феномен, когда любые данные об этой стране, особенно данные враждебной пропаганды или сообщения перебежчиков, не воспринимаются с каким бы то ни было уровнем критики или попытками это проанализировать. В результате автору не раз приходилось опровергать совершенно дикие слухи о КНДР, значительная часть которых была построена на мифологизирован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о сталинском времени в нашей стране. Так, Ким Ир Сену и Ким Чен Иру приписывались поступки и мотивы поведения, калькирующие наши «легенды» о Сталине и Берии. Кроме этого, к сожалению, в корееведении пока еще нет книги, которая открывала бы Корею для массового читателя и при этом вышла бы достаточно большим тиражом, заняв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такое место, какое занимали в нем книги Вс. Овчинникова о Японии. Из того, что вышло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на

226 сегодняшний день, к этому формату наиболее близки книги А. Н. Ланькова, но и они пока еще не заняли эту нишу. Учитывая все это, автор данного исследования задался целью выяснить, «что мы знаем о Корее», и провел опрос среди пользователей такого интернетресурса, как «Живой журнал». Выбор этой площадки для исследования был связан отчасти с тем, что автор сам ведет Интернет-дневник, в рамках которого по мере сил и возможностей пытается заниматься «корееведческим просвещением» своих читателей, отчасти тем, что средний пользователь данного ресурса весьма репрезентативен. Это, как правило, человек в возрасте лет, имеющий или получающий высшее образование, а также имеющий возможность в течение достаточно длительного времени ежедневно проводить несколько часов в Интернете, используя его и как средство общения, и как один из основных источников новостей. Последнее предполагает определенную планку интеллектуального уровня. В опросе, достаточно широко разрекламированном в Интернетпространстве (с тем, чтобы избежать ситуации, при которой на вопросы отвечают преимущественно мои знакомые), его участникам предлагалось «поиграть в ассоциации»: потратив минимум времени на вспоминание, назвать пять слов, понятий или образов, которые всплыли у них в голове в ответ на слова «Корея» и «корейцы». В опросе приняло участие около 300 человек, что делает выборку относительно репрезентативной, ибо опрос, в котором принимает участие менее сотни человек, не валиден. И хотя пять ассоциаций возникло лишь больше, чем у половины участников опроса (что само по себе говорит о том, что Корея не занимает особенного места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и ассоциации, с ней связанные, всплывают с трудом), массив собранного материала позволяет сделать ряд интересных обобщений. Основная часть нашего исследования будет представлять собой анализ того, сколько раз было упомянуто то или иное понятие. Ответы разделены на условные группы («личности», «черты характера», «события» и т. п.). «Корея» Персоналии/личности: Ким Ир Сен был упомянут 49 раз, Ким Чен Ир 30 раз, кинорежиссер Ким Ки Док 10 раз, герой литературного произведения Хон Гиль Дон 7 раз, а полководец времен Имджинской войны Ли Сун Син и Пак Чжон Хи по 2 раза. Необычно высокая популярность Хон Гиль Дона связана не столько с популярностью сам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произведения о нем, сколько с северокорейским фильмом 1986 г., который был у нас в прокате и оказался одним из первых фильм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с боевыми искусствами, которые увидели отечественные зрители. Среди некорейцев один раз был упомянут А. Н. Ланьков и 13 раз автор этого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следнее я воспринимаю не столько как собственную популярность, сколько как

227 свидетельство того печального факта, что Корея для них во многом - «нечто, чем занимается Константин Асмолов». Основной блок ассоциаций со словом «Корея» эксплуатирует тему раздела страны и связанного с этим напряжения. Слово «война» было упомянуто 49 раз. При этом в 20 случаях уточнялось, что речь идет о Корейской войне гг. (сюда же относятся фразы типа «война со Штатами») и только 2 раза речь шла о русско-японской и японо-китайской войне. Пара «Север-Юг» была упомянута 33 раза; слова «разделение» или «раскол» - 18 раз; «38 параллель» - 14 раз; «ДМЗ» - 1 раз. Сама по себе Северная Корея была упомянута 22 раза, Южная Корея 14 раз, но обычно респондент или упоминал в одном ответе пару «Север- Юг» или факт раскола страны, или давал два ответа, называя отдельно Север и отдельно Юг. Впрочем, весьма интересно то, что Северную Корею упоминали чаще, но когда речь шла об отдельных проявлениях культуры, то образов, связанных с Югом, возникало, безусловно, больше. Среди символов, связанных с Югом, резко доминируют названия корейских компаний, хотя иногда респонденты называли не только компанию, но и конкретный продукт ее производства. Например, автомобиль «Дэу» или монитор «Самсунг». Собственно, именно «Самсунг» оказалась абсолютным лидером по числу упоминаний (66 раз), - автор связывает это с тем, что эта фирма производит мониторы, так что ее логотип поневоле присутствует перед глазами многих пользователей и потому ее название автоматически всплывает. Другие чеболи упоминались со значительным отрывом: Хёндэ/Хюндай 18 раз, Дэу 17,, LG - 8, КИА 3, Gold Star и Лотте по 2 раза, само слово «чеболь» - 13 раз. При этом отдельно отмечались южнокорейские автомобили (26 раз), электроника «вообще» (9 раз) и бытовая техника (7 раз). Из других ассоциаций, связанных с Югом, надо отметить тхэквондо, упомянутое 22 раза, но в десяти вариантах написания по-русски или латиницей; корейское кино (8 раз), флаг Южной Кореи с его специфическим дизайном (3 раза), а также две компьютерные игры, из которых одна была разработана в Корее (Lineage 2), а другая (Starcraft) чрезвычайно там популярна. Обе игры были упомянуты 3 раза. 11 раз было упомянуто слово «олимпиада» (видимо, олимпиада 1988 г. в Сеуле) и 3 раза чемпионат мира по футболу, который проходил в Японии и в Корее в 2002 г. Среди ассоциаций, связанных с Севером, на первом месте «чучхэ» (43 раза). Кроме этого среди слов, которые скорее ассоциируются с КНДР, упоминались ядерное оружие (11 раз), голод (7 раз), нищета (2 раза), бедность (1 раз) и коммунизм (6 раз). Интересный результат дал и анализ географических названий и понятий, так или иначе связанных с историей. Слово «полуостров» было упомянуто 22 раз, включая всплывающий в сознании образ карты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228 раз была упомянута «Страна утренней свежести», 5 раз Корея как «азиатский тигр». У 9 респондентов на слово «Корея» возникла ассоциация «Восток», у 8 «Азия», у 5 «Япония», у 2 - «японская оккупация». Последнюю связь можно толковать скорее как связь-антитезу (по аналогии с тем, как ассоциацией на слово «война» часто является слово «мир») или указание на участие Японии в корейской истории. Что касается рельефа, то 13 человек упомянули горы, 3 упомянули море или туман и было достаточно много упоминаний о красоте корейской природы или отдельных особенностях ее флоры. Из городов 23 раза упомянут Сеул, 8 раз Пхеньян, 3 раза - красивый аэропорт Инчхона и 1 раз просто Инчхон, 3 раза Чемульпо (старое название Инчхона), поскольку основная ассоциация ведет к событиям русско-японской войны и подвигу крейсера «Варяг», 3 раза Пусан, 4 раза остров Токто, территориальные споры вокруг которого у многих на слуху, 2 раза Кванчжу (автор усматривает в этом указание на восстание 1980 г.) и 2 раза Мангендэ, - место рождения Ким Ир Сена. Из слов, имеющих отношение к корейской истории, 4 раза упоминалось слово «Чосон» - название страны в эпоху династии Ли, 3 раза корабличерепахи кобуксоны, 5 раз «оккупация», 2 раза «диктатура», 3 раза «буддизм», 3 раза ООН, причем в одном варианте с указанием на корейское происхождение его нынешнего генсека. Что касается культурных особенностей, то здесь на первом месте по числу упоминаний различные вариации на тему «корейской морковки» (33 раза). Это достаточно забавно, поскольку означенная морковка является не столько собственно корейским блюдом, сколько продуктом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кухни». Тема собакоедения в разных вариантах упомянута 30 раз - от слова «собака» до упоминания блюда «посинтхан», кимчхи - 17, рис - 11, корейские салаты - 5, соджу (включая слова/замены типа «рисовая водка») 6, «Доширак» - 4 и лапша вообще - 4, лук 3, огурцы - 2 и «острая еда» - 3. Теперь посмотрим, какие ассоциации были связаны не столько со словом «Корея», сколько со словом «корейцы». Я специально провел это разделение, поскольку для большинства респондентов «корейцы» -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не граждане стран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а «свои» корейцы, - отечественные или проживающие в странах СНГ. И действительно. Первое место среди персоналий занял Виктор Цой 27 раз (имя указывалось не всегда). Ким Ир Сен в этой связи был упомянут 18 раз, Ким Чен Ир 11, просто фамилия Ким - 11, Юлий Ким 9, Ким Ки Дук 3, Пак - 4 (просто Пак, что может указывать как на М. Н. Пака, так и на ряд его однофамильцев, в том числе на героя старого советского фильма «Поговорим, брат», где колоритный кореец Пак оказался впоследствии японским шпионом); 2 раза Пак Чжон Хи - 2, Чон Ду Хван 2, священник Мун - 2 (скорее всего, - преподобный Мун Сон Мён, но я не исключаю и вариант Мун Ик Хвана южнокорейского священника, неоднократно

229 подвергавшегося репрессиям за левые взгляды и посещение Севера). Кроме этого, 16 раз упоминались разнообразные личные знакомые респондентов корейской национальности. Из «кулинарного» блока четко ясно, что наиболее яркая ассоциация российского массового сознания на слово «кореец» - собакоед. В различных вариантах тема собакоедения была затронута 65 раз! Корейская кухня в целом была упомянута 5 раз, рис 12 раз, морковка 19 раз, кимчхи 10 раз, капуста 4 раза, салаты 6 раз. Достаточно большой блок ассоциаций связан с внешностью корейцев. Узкие глаза в разных вариантах отмечены 24 раза, маленький рост 38 раз. Последнее достаточно забавно, поскольку, в отличие от китайцев, вьетнамцев или японцев, корейцы отличаются существенно более высоким ростом, и это говорит о том, что массовое сознание не так уж выразительно отделяет корейцев от других жителей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Тем более что 9 раз ассоциацией на слово «корейцы» было «азиаты», а 8 китайцы или японцы. Среди других характеристик, относящихся к внешности: «черные волосы» - 4 раза, кривоногие 3 раза, толстые 3 раза, худые 2 раза, красивые 4 раза, некрасивые 3 раза. Как видим, эстетические оценки разделились примерно поровну. Среди характеристик, относящихся к образу жизни и чертам характера, с большим отрывом (54 раза) лидирует «трудолюбие», хотя к этому блоку отнесены и высказывания типа «трудоголики», и указания на дисциплину, и то, что они «кичатся» своим трудолюбием. Из остальных личностных характеристик хитрость (8 раз), упорство/упрямство (12 раз), коллективизм в разных формах (10 раз), наивность и инфантильность (7 раз), нелюбовь к японцам (6 раз), вежливость (5 раз), дисциплинированность (5 раз), закрытость (5 раз), образованность (2 раза), бедность (7 раз). 5 раз упоминалось, что корейцы любители алкоголя и даже могут перепить русских, 2 - о трудностях переговоров с корейцами, об их неуступчивости. Кроме того, в разных вариантах 6 раз отмечались патриотизм, верность долгу и высокая боевая подготовка. В последний блок входят как фразы типа «круто дерутся», так и упоминания о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м спецназе, видео с боевой подготовкой которого гуляет по Интернету. Некоторые характеристики указывали на идеологию. 9 раз упоминались «коммунизм» или «коммунисты», 4 раза христианство вообще и 2 раза протестантство, 2 раза - буддизм. То, что корейцы бывают «северные» и «южные», было упомянуто 12 раз. Отдельно 4 раза были упомянуты «северные корейцы» (именно как всплывающий определенный образ людей со значками или людей, идущих строем) и 4 раза «студенты» (подразумеваются южнокорейские студенты здесь)

230 «Самсунг» на сей раз упомянули 6 раз, ДЭУ 2, Хендэ 1. Другие компании не упоминались. Автомобили 6 раз, тхэквондо 7, различные компьютерные игры (как сами по себе слова «компьютерные игры», так и их конкретные названия) 8 раз. 7 раз упоминалась лодка «Кореец» и 3 раза палочки для еды. В обоих опросах отмечалось развитие в РК Интернета. Из обработки результатов опроса были исключены как слова, связанные с Кореей более чем условно (например, «корейка» или «Корейко»), а также странные образы, связь которых с Кореей не всегда понятна, и которые, видимо, навеяны какими-то личными особенностями того или иного респондента. Попытка провести еще один «срез» восприятия Кореи и корейцев в массовом сознании через анекдоты о них, по сути, успехом не увенчалась. Значительная часть анекдотов, в которых фигурировали корейцы, была скорее анекдотами на злобу дня, причем обыгрывались не столько какие-то внешнеили внутриполитические события, сколько моменты, когда что-то задевало простого российского обывателя. Например, то, как вели себя корейская сборная и руководство РК во время чемпионата по футболу в 2002 г., когда корейская сборная получила четвертое место не только благодаря своему высокому уровню, но и из-за активного использования Сеулом административного ресурса и связанного с этим относительно пристрастного судейства. Анекдоты же, которые касались корейцев вообще и должны были бы высвечивать наиболее заметные массовому сознанию черты национального характера (вне зависимости от того, вызывают они позитивный или негативный отклик), все были связаны с поеданием собак 1. Однако эта особенность корейцев не имела в анекдотах ярко выраженной негативной коннотации и воспринималась также нейтрально-добродушно, как, скажем, отмечаемая в анекдотах про украинцев их любовь к салу. С корейцами иногда связывают анекдоты в стиле «Сбил тебя наш летчик Ли Си Цын», однако хотя большая часть таких анекдотов про советскую помощь Корее или советских военных советников, сражающихся с американцами, могла появиться впервые во время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но затем использовалась и в отношении, как минимум, Вьетнама, превращаясь в «бродячий» сюжет. Подводя итоги, можно отметить следующее. В целом в России о Корее знают гораздо меньше, чем о Китае или Японии, несмотря на весьма активную со стороны РК пропаганду у нас знаний о своей стране. Отсутствие информации, особенно - в отношении Севера, нередко компенсируется слухами разной степени «дикости»

231 Цельной информации о Корее нет. И Север, и Юг опознаются по набору легко узнаваемых брендов, которые на Юге в основном связаны с промышленным процветанием страны, а на Севере с его эндемикой культа личности. Тем не менее, нет того уровня связности, который дает понимание внутренней ситуации и внутренних процессов, облегчая процесс принятия решения. Север и Юг упоминаются примерно поровну, а чаще вместе. Поэтому тема раздела Кореи и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является областью, в которой средний российский «читатель» относительно информирован, несмотря на то, что внимание уделяется в основном международным аспектам конфликта. Ярко выраженной негативной коннотации по отношению к Северной Корее нет, - она воспринимается как маленькая бедная страна со своими большими проблемами. В остальном отношение к Северной Корее окрашено отношением к советскому прошлому, и в КНДР видят в основном «старые добрые времена», не обращая внимание на конфуцианскую основу и подменяя корейские реалии конструктами, имеющими отношение к Советскому Союзу. Корейцы,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не выделяются ярко среди азиатов вообще, однако, с другой стороны, при упоминании о корейце речь нередко идет не столько о корейце корейском, сколько о корейце отечественном. Многие элементы быта или кухни, которые массовое сознание связывает с Кореей и корейцами, имеют отношение именно к корейцам России и СНГ. В целом отношение к корейцам в России доброжелательное, и даже те элементы национальной культуры, которые могли бы вызывать негодование, воспринимаются нейтрально. Эти данные подтверждаются и опросом, проведенным не так давно газетой «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 «Восприятие друг друга совпадает у русских только с корейцами - очень доброжелательное». 2 Таким образом,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Корея и корейцы не вызывают неприязни и отторжения, с другой представления о Корее во многом являются мифологическими, и это относится не только к Северу, но и к Югу. В результате выработка решений, основанных на реальном знании ситуации, попрежнему затруднена, и потому одной из важных задач российских корееведов является «прозелитическая работа», направленная на популяризацию правильного понимания страны и распространение знаний о н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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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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