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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이 발표논문집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B00013)

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13년도 제2차 HK국내학술대회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 지배와 저항 사이 일 시 2013년 6월 14일(금) 10:30~18:00 장 소 한양대학교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소회의실(6층) 주 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APRC) 후 원 한국연구재단

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13년 6월 14일(금) 제 1세션(10:30~12:30) 사회자: 엄구호(한양대) 발표자: 1. 이형숙(고려대):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2. 이규영(성균관대):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3. 이은경(한국외대):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4. 조규연(단국대):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토론자: 박선영(충북대), 차지원(서울대), 문준일(중앙대), 서광진(서울대) 제 2세션(13:30~15:30) 사회자: 최건영(연세대) 발표자: 1. 백승무(서울대):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2. 오원교(한양대): A.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3. 박혜경(한림대):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4. 권기배(경상대):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연구 토론자: 김혜란(고려대), 송정수(중앙대), 최진석(충북대), 김홍중(중앙대)

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제 3세션(16:00~18:00) 사회자: 김세일(중앙대) 발표자: 1. 김성일(청주대):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2. 박미령(청주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3. 박영은(한양대):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4. 이지연(한양대):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토론자: 장혜진(한국외대), 김은희(한국외대), 김상현(성균관대), 심지은(한림대)

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목 차 제 1세션 이형숙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1 이규영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19 이은경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7 조규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35 제 2세션 백승무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49 오원교 A.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61 박혜경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69 권기배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연구 79 제 3세션 김성일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87 박미령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05 박영은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117 이지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27

1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 1세션(10:30~12:30) 사회자: 엄구호(한양대) 발표자: 1. 이형숙(고려대):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2. 이규영(성균관대):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3. 이은경(한국외대):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4. 조규연(단국대):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토론자: 박선영(충북대), 차지원(서울대), 문준일(중앙대), 서광진(서울대)

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1 제국 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 희곡 아틸라 를 중심으로 이형숙(고려대) 1. 서론 20세기 러시아문단에서 괄목할 만한 작가이자 소비에트시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의 개척자들 중에서도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자먀찐(Евгений Иванович Замятин, )은 1921년에 완성된 안티유토피아소설 우리들 이 <깃발>(Знамя)지에 게재된 1988년에야 조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독자층에게 그 진면목을 알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흐른 오늘날 유럽과 러 시아에서는 자먀찐의 거의 모든 작품이 출판되었고, 그의 예술가적 개성과 창작세계 연구의 공 백 을 메우려는 전면적인 시도들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러시아학 연 구에서는 자먀찐을 주로 소설 우리들 (Мы, 1921)을 통해 소비에트정권 성립과 함께 태동하 던 전체주의체제에 미적으로 대항한 안티유토피아 작가로, 경고의 목소리 를 전하는 이단아 로 조명해왔다. 자먀찐을 이러한 규정 안에 가둘 경우 뛰어난 산문가이자 미학자로서, 드라마작 가이며 번역가, 문학비평가/시사평론가이자 문학이론가로서 그가 20세기 러시아 문단에 남긴 독 창적인 자취를 정당하게 담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1) 우리 조국의 문학은 늘 유럽문학과 달랐다. 우리나라 문학에는 시종일관된 교육 과 아바쿰 에게서부터 시작된 설교의 원리가 있지만, 형식 에 대해서는 다소 경원시한다. 유럽문학에는 정 교함, 우아함, 독자적인 문체의 장엄함, 그리고 완결성이 있다. 자먀찐은 러시아문학에서 몇 안 되는 유럽적 작가, 지적으로 뛰어난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2) 자먀찐 연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О. 미하일로프의 이 언급은 자먀찐의 모든 창작 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제사( 題 詞 )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비극적인 망명시기를 포함하여 그리 길지 않았던 창작생애에서 자먀찐이 소설과 역사적 서사, 단편과 중편, 동화, 희곡, 극장과 시나리오, 에세이, 문학적 초상, 시사평론 등 다채로운 장르들을 통해 남긴 자취에는 대담하면서도 탁마된 고유의 글쓰기 방식, 민족적 테마, 러시아 고전문학의 전통과 서양철학의 발견들을 결합하려는 시도, 신랄한 풍자와 서정, 삶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 등이 그야말로 종합적 으로, 메타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자먀찐에 대한 연구의 시계( 視 界 ) 밖에 놓여있는 많은 문제들 중 작 가의 예술철학과 역사철학에서 하나의 전환적 단계를 보여주는 희곡 아틸라 (Атилла)에 대 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10여 년 이상 아틸라의 형상을 조탁( 彫 琢 )하고, 아틸라의 시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방대한 사료를 연구하여 새롭게 해석하면서 자먀찐이 고대 로 마와 20세기 혁명들의 시대에 대해, 동과 서에 걸쳐 있는 러시아제국과 러시아인의 운명과 나아 갈 길에 대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으로서 개인과 대중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사 1) 최근 들어 독자적인 미학체계로서 자먀찐의 네오리얼리즘과 종합주의 에 대한 연구(김홍중)가 이루어지고 있 다. 2) Михайлов О. Гроссмейстер литературы // Замятин Е. Мы. М., С. 5.

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유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2. 아틸라 - 미완의 희곡 자먀찐의 역사적 표상들을 해명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역사철학을 재구성하는 일은 실재했던 역사적 과거를 다룬 이 작품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상황으로 인해 복잡해진다. 그러나 아틸 라 ( )는 비록 2막짜리 미완의 드라마이지만, 작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까지 지속 적으로 매달렸던 작품이며( 민족 대이동과 로마 제국의 멸망만큼 자먀찐이 지속적으로 부여잡고 있던 주제는 없다. - 라이네 골트), 역시 미완에 그친 생애 마지막 소설 신의 징벌 (Бич Бо жий, )은 그 과정의 결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틸라 는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훈족의 위대한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로마 사절단의 음모, 적의 딸 일데곤다와의 비극적 사랑, 카탈루냐 전투에서의 패배와 아틸라의 죽음(복수심으 로 가득 찬 여인에 의한 영웅의 피살) 등을 다루고 있다. 희곡의 슈제트는 비극, 고대 영웅서사 시, 동화, 그리고 유희적 모티프와 장면들로 구성된 다층위적 짜임을 보여준다. 1917년 혁명 이후 광범위한 대중의 문화수준을 고양시키고 새로운 문화건설에 참여시키려는 움직임과 관련하여, 이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예술형태로서 극장 에 각별한 역할이 부여되 었다. 극장이 사회적 선과 악의 능동적 투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사고가 유행하게 되었고, 따라서 극장예술을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혁명의 또 다른 임무가 되었다. 적지 않은 극장활동가들이 대중을 가르치고 계몽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고 극장이 볼셰비즘 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비에트 권력을 인간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 이런 사회 적 분위기에서 가장 요구되고 환영받는 희곡은 영웅적 인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했다. 또한 국 가의 정신적 개조 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민중들에게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에 담긴 가치들을 알려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페트로그라드의 <세계문학>출판사 산하에 설치되어 있던 역사적 장면 섹션 (Секция историч еских картин)에서도 광범위한 대중의 계몽을 위한 역사적 주제(인물과 사건)들로 희곡을 창조 하도록 드라마작가들을 각성시키는 과제를 수행할 작가들을 결합시켰다. 고리끼, 블록, 구밀료 프, 추콥스키, 올젠부르그, 자먀찐, 라브레뇨프 등 많은 작가들이 이 임무에 참여했다. 러시아에 정착했던, 그러나 역사가들이 그 흔적을 잃어버린 훈족에 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전개한 것은 구 밀료프였다( Совдепы - гунны ). 아틸라라는 영웅적 개인에 대한 자먀찐의 관심은 어느 정도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 위대한 파괴와 창조의 시대, 희망과 절망의 시대, 인간애와 잔인함의 시대. 실현된 변혁의 지지자들, 혁명으로부터 정화된 혁신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아틸라는 낡은 세계와의 격투에 뛰어든 숙명적 투사 였고, 사회적 격동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파괴자요 야만인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예술 활동가들이 5세기와 20세기라는 아 득히 먼 두 시대 간의 유사성에 관심을 표명했다고는 해도 자먀찐만이 비극 아틸라 를 실제 로 쓸 만큼 관심을 기울였고, 몇 년 뒤에 또다시 고대 로마의 멸망이라는 테마로 회귀3)했다는 3) Лядова Е. А. Трагедия "Атилла" в творческой эволюции Е. И. Замятина: Монография. Тамбов: Изд-во ТГУ им. Г.Р. Державина, C 년 7월 4일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중앙 상연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 텍스트가 심의를 거치며 결국 상연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랴도바에 따르면, 자먀찐이 지속적 으로 수정한 여러 판본 중 마지막인 다섯 번째 판본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따라서 상세한 문예학적 분석을

1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3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에 담긴 작가의 역사철학적 사유는 일시적인 조류에 따른 것만은 아 님을 알 수 있다. 3. 역사의 순환성과 관련된 개념들과 사유 자먀찐의 역사개념에서 현대 과학주의 이론들(R.마이어의 열역학 제2원칙, 마이어의 이론을 심리와 정신적 삶의 현상들로 확장시킨 빌헬름 오스트발트의 에너지 일원론, 상대성 이론 등) 은 니체와 다닐롑스키, 슈펭글러, 알렉산드르 블록과 안드레이 벨르이, 발레리 브류소프 등 상징 주의자들의 유명한 역사철학적 순환 개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철학적, 학 문적 원천들의 통속성이나 진부함은 한편으로 자먀찐의 지적 유연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역사개념의 독창성에 의심을 품게 하기도 한다. 자먀찐의 모든 이념들의 이차성을 둘러싸고 고리끼가 그를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일이나, 자먀찐의 독자성에 대한 서구의 논의를 떠올릴 만하다. 4) 그러나 자먀찐은 역사의 순환성에 대한 자신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문화-역사 적, 학문적 이론들은 단지 재료 가, 이 신화를 기술하기 위해 변화되는 언어들이 되고 있다. 현 존하는 이념들이 자먀찐에 의해 재해석되고, 흔히 대비되는 문화-역사적 범주들(자연, 자연력, 동양적인 것/서양적인 것 등)을 작가 고유의 의미와 재료들로 채우는 것이 그 개념의 독창성을 가리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역사의 순환 개념은 이 예술가의 신화시학적 표상들로부터 유기적 으로 연원하는 것이지, 니체와 슈펭글러에게서 받아들인 것(동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 고자 한다. 자먀찐의 창작은 미학과 시학의 여러 단계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화적이며 순환적 인 세계상을 창조하는 총체적인 메타텍스트로 수용되고 있다. 5) 즉, 그의 사유방식 자체는 달라 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키타이성 (Скифство)과 이단주의 (Еретичество)라 고 할 수 있다. 홀트와 폴랴코바는 자먀찐에 의해 전유된 동과 서, 스키타이성, 이단주의 등의 문제에 대한 선행하는 철학적 전통을 게르첸, 슬라브주의자, 도스토옙스키, 베르자예프, 블 록, 그리고 슈펭글러의 계보 속에서 제시한다. 6)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유사성이 아니라 (특히 다닐렙스키, 슈펭글러, 블록의 개념들의 유사성), 저자 신화의 독창성을 확인시켜주는 차 이점과 재해석들이다 스키타이성 자먀찐의 창작에서 가장 본질적인 개념들 중 하나인 스키타이 테마가 등장한 것은 혁명 이 나 변화 등의 개념과 연관된 사회문화적 형상으로서 스키타이가 이른바 유목적 원형 이었다는 할 가치가 있다. 4) Геллер Л. Уникальность творческого почерка(?) // Кредо. Ежемесячный научно-популярный и литературно-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областной независимый журнал. Тамбов, С ) Хотямова М.А. Творчество Е.И.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повествовательных стратегий первой тре ти ХХ века: Создание авторского мифа. Томск: Изд-во ТГПУ, С ) Гольдт Р. Мнимая и истинная критика западной цивилизации в творчестве Е. И. Замятина. На блюдения над цензурными искажениями пьесы "Атилла". С ; Полякова Л. В. О "скифс тве" Евгения Замятина. С 홀트는 망명 초기인 1931년 12월에 프라하에서 했던 강연에서 자먀찐 이 슈펭글러를 우리 시대에 가장 멀리 내다보는 햄릿들 중 한 사람 이라고, 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경악 시킨 심대한 위기를 처음으로 인식했던 사람들 중 하나 라고 언급했음을 밝혔다.

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점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주지하다시피, 스키타이주의 이념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7) 스키타 이주의자들 (Скифы)은 사회혁명을 진정한 스키타이적 혁명으로, 정신의 혁명 으로 가는 걸음 으로 받아들였고, 러시아의 메시아적 이며 사회 외적, 역사 외적 운명에 대해 글을 썼다. 손쩨 바(Н. Солнцева)는 스키타이주의자 그룹에 대해, 영원한 러시아의 혁신이 가까워졌다는 느낌, 대지를 삶을 조직하는 원리이자 철학적 범주로 인식, 애국심을 영성( 靈 性 )의 기호로 이해, 영성 자체는 반란성, 진리의 추구, 영원함에의 호소로 이해, 우주론적 철학과 생활양식 - 이 모든 것 이 러시아 소년들의 다면적인 형제애를 하나의 사원의 원형 천정 아래로 이끌었다. 8) 이 그룹 을 흥분시켰던 문제들은 주로 러시아의 특별한 향방과 러시아인의 영혼의 특별한 성품과 관련 된 것이었다. 스키타이주의는 러시아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예술적 삶의 모든 역겨움들에 대한 (인텔리겐치 야의 지성에)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었다. 그것은 수 천 년에 이르는 문명 발전의 순환성 이념들 로,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으로, 장구한 발전에 지친 문화에 대한 더 건강해지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려는 야만성의 작용 이념들에서 연원했다. 은세기 의 복잡해진 문화 이후에 문화의 간소화, 원시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듯하다. 9) 자먀찐이 이해하는 스키타이주의 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런 해석과는 일치하지 않았 다. 그에게 있어 스키타이주의는 동-서 의 대립이나 러시아인의 민족성을 강조하거나 무의미한 야만성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범주였다. 자먀찐의 스키타이 에는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내재하는 개인적 자유의 본능에 대한 가장 높은 정신적 표현이 들어 있다. 해방의 조건은 자신과 주변 존재들에 대한 영원한 불만과 영원한 도달, 앞을 향한 영원한 전진 이다. 그러나 강렬한 자유의지 에 이끌리는 혁명가 자먀찐은 폭력에 대한 권리를 배격한다. 10) 고 켈 드이쉬는 강조한다. 자먀찐에게 있어 스키타이인은 무엇보다도 이단아, 반역자, 오늘 이 시간에 내일을 보는 인간이다. 스키타이적인 방종과 야생적인 에너지는 무한한 자유의지를 즐기려는 것 이 아니라 뭔가 매력적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그래서 더욱 원하게 되는 자유로운 추구들을 향해 있다. 스키타이주의 를 작가는 사유의 형상으로, 영혼의 특정한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바로 이 런 이유로 자먀찐에게 있어 스키타이인은 거칠게 소리치며 초원을 달리고 자신이 가는 길에 있 는 모든 것을 쳐서 쓰러뜨리는 분별없는 기사( 騎 士 )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생명마저 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비극적인 외로운 인간, 편력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키타이인의 정의에는 결코 평온을 찾지 못할 운명을 지닌 영원한 방랑자의 형상이 내포되는 것이다. 자먀찐 의 스키타이인은 결코 평온할 수 없는 영원한 편력의 운명을 지녔지만 그것을 저주로 여기지 않고, 힘들지만 유일하게 가능한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진정한 낭만주의자들이다. 꿈을 좇 는 러시아인들은 영원한 편력자들이다. 7) 1917년 중반에는 작가들과 예술활 동가 연합의 간행물인 <스키타이인들скифы>이라는 연감이 간행되기 시작 했고, 년 동안 두 권의 문학-시사평론 선집이 출간된다(1918년에 자먀찐의 <섬사람들> 게재). Р. 이 바노프-라줌닉을 이념적 지도자로 활동한 이 그룹에는 안드레이 벨르이, 올가 포르슈, 미하일 프리슈빈, 니콜 라이 클류예프, 세르게이 예세닌 등이 참여하거나 가까이 지냈다. 8) Солнцева Н. М. Китежский павлин: Филологическая проза: Документы. Факты. Версии. М., С ) Жидков В. С. Театр и власть М., С ) Келдыш В. А. Замятин - публицист и критик // Замятин Е. И. Я боюсь. М., С. 9.

1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이단주의 스키타이주의 개념에 대한 저자의 규정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개념이 이단성 혹은 이단주의에 대한 규정을 통해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먀찐의 평가 속에서 모든 스키타이인은 자신 안에 반드시 이단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단주의 테마는 작가의 예술적이며 시사평론적인 유산의 아주 많은 부분에서 어떤 방식으로 든 다루고 있다. 이미 초기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은 기존 사회 규범들에 맞서 봉기하는 인물, 삶 의 위대한 의미를 찾아 가는 불만스러운 주인공이다. 자먀찐의 아틸라 는 그의 산문의 논리적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아틸라가 이전 작품들의 몇몇 슈제트적 요소와 인물들을 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희곡이 자먀찐에 의해 연구되었 던 개인의 자유, 인간-투사, 보편적으로 용인된 도그마들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단아 등의 테마 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 생애 전 기간 동안 그를 흥분시켰던 이 테마는 1910년대의 단편과 중편, 소설 아틸라 등에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작품들에서 이 단성 이 속악한 삶과 인간의 자유의 제한에 저항하는 폭동을 연상시켰다면, 희곡 <아틸라>에서 이단아 의 개념은 혁명가 개념에 근접하고 있다. 쾌적한 세계를 뒤흔들고 그 세계를 변화시켜 지상에 젊음을 되돌려줄 수 있는 최초로 길을 걸어간 사람, 꿈꾸는 자 아틸라가 그런 인물이 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표상들에 따라 사회를 개조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예술가의 존재 의의, 그의 독자성의 척도, 내적 불굴(확고함)을 자먀찐은 다름 아닌 이단주의 이념에 대한 태도를 통해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문학이란 실무를 집행하거나 사상 적으로 온건한 관리들이 아니라 광인(狂人), 은둔자, 이단아, 몽상가, 반항아, 회의주의자들이 행 하는 곳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11) 스스로를 이단아로 여기고 바로 그 불굴의 태도로 창작에 대한 평가에 접근하면서 자먀찐은 자신의 저작들에서 이 모티프를 상세하고 전면적으로 가다듬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사평론 논문들에서 그는 붉은 고깔모자를 언제 쓰고 언제 벗 어야 하는지 12)를 아는 문학적 문학적 기회주의자들을 지치지 않고 비난했다. 4. 슈펭글러, 칼라일의 사상과의 교호 슈펭글러의 철학에 대한 심취는 예술가 자먀찐의 역사철학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 다. 희곡 아틸라 에서 찾을 수 있는 다음의 사유와 관점들은 어느 정도는 슈펭글러의 서 구의 몰락 에서 연원한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사멸할 운명을 지녔다. 로마문명의 파괴는 역사 적으로 근거를 지닌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문명 파괴의 시대는 이 시기를 구현한 개인의 성격 (개성)을 이해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특정한 단계에서 역사 발전의 완전한 장면을 제시하는 일은 오직 예술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또한 아틸라의 삶을 통해 인류 발전에 있어서 영웅적 개인의 역할에 대한 사유를 제시하는 점은 토머스 칼라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전 세계의 역사, 인류가 이 세계에서 이루어 놓은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곳, 이 지상에서 힘껏 노력한 위대한 사람들의 역사이다. 이 위대한 사람 들이 인류의 영도자였으며, 교육자요 본보기였고, 넓은 의미에서 모든 대중이 이루고자 노력했 던 것, 그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모든 것의 피조자였다. 이 세상에서 행해진 모든 것은 본질적으 로 이 세계로 보내진 위대한 인간들이 지녔던 생각들을 실제로 구현한 것, 그 생각들의 물질적 11) Там же. С ) Там же. С. 49, 35.

1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결과이다. 이 위대한 인간들의 역사가 전 세계 역사의 진정한 영혼을 구성하는 것이다. ( 영웅 숭배론 ) 아틸라 의 근간에는 로마제국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고, 이 사건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위대한 역사적 개인의 성격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놓여있다. 작가가 위대한 개인의 성격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희곡에는 집단이 등장하거나 전투하는 장면이 실질적으로 부재하다. 민중들은 주요 등장인물인 사령관, 지도자이자 폭군인 아틸라가 선명하게 앞으로 나 서는 무대의 배경 역할만을 하고 있다. 5. 결론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고찰해본 희곡 아틸라 에는 혁명, 스키타이성과 이단주의, 러시아 영 혼에서 그것들의 근원 추구, 역사에서 개인의 위대한 역할에 대한 인식, 러시아와 러시아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별한 임무에 대한 믿음 등, 작가의 창작과 세계관의 많은 계보들이 교차하 고 있다. 이 작품에는 19세기말~20세기 초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철학과 인류학 개념들이 반영 되어 있기 때문에 자먀찐이 적극적으로 제기했던, 향후 러시아와 인류의 가능한 발전 경로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러시아와 유럽의 인텔리겐차에 의해 제기된 개인과 사 회의 상호작용 이라는 근본 문제에 주목하면서 자먀찐은 유럽 문명의 파멸, 문화의 쇠퇴 등을 비관적으로 예언했던 슈펭글러와 달리, 역사적 선결성에 회의를 품고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를 가장 전면에 제기했다. 그러나 자먀찐이 위대한 정복자의 과업을 인정하고 찬양하면서 아틸라로부터 이상적 주인공(영 웅)을 만들어낸 동시에 이 형상의 도움으로 현존하는 정권의 전제정치를 폭로하고자 했다고 해석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이 자기 시대의 전체주의적이고 야만적인 구조들을 폭로할 목적으로 역사적 교차점들의 단계를 이용한 최초의 시도라거나, 은연중 에 드러나는 슈제트 속에서 저자가 러시아 혁명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등 다양하고 모순된 해석들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곡의 상연을 반대하며, 어떤 관료는 자먀찐은 강하고, 똑똑하며, 재능 있는 적(敵)이다. 자먀찐은 충심으로 서구와 함께 한다(영혼까지도 서구적이다). 그는 볼셰비키-야 만인들에게 진심으로 반대하며, 그의 희곡은 파멸해가는 서구에 대한 애수로 가득하다. 라고 했지 만, 그 말이 곧 자먀찐이 진정으로 소비에트 권력의 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틸라가 저자에 의해 거대한 개인 (титаническая личность)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 위가 없다. 이와 더불어, 희곡의 결말에서 주인공의 파멸, 잔혹하고 때로는 저속하고 파렴치한 폭군-해방가로서 스키타이인의 묘사, 문화의 파괴를 보여주는 장면들, 아틸라에 대립하는 이상적 주인공-로마인 아에티우스 등 - 이 모든 것이 일의미적 결론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키타이주의 를 이단주의와 반항적 행동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경우, 미완의 희곡 아 틸라 와 미완의 소설 신의 징벌 이 작가의 예술적 유산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서라 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바로 이 작품들에 자먀찐이 그의 창작 생애 전체에 걸쳐 고민하고 발전시킨 이념들이 가장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훈족 지도자 아틸라의 테 마는 다 년 간에 거친 작업의 대단원의 명장면이자 독창적인 결말이 된다. 다름 아닌 아틸라의 형상 속에 자유를 위한 영원한 스키타이적 열망과 정신적 해방, 세계변혁을 향한 이단아적 노 력, 그리고 권력에 복무하는(권력의 시녀로서의) 예술 테마가 가장 유기적으로 종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1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7 참고문헌 Замятин Е. И. Сочинения. Том первый. Редакция Евг. Жиглевич. A. NEIMANIS BUCHVERTRIEB UND VERLAG,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Повести. Рассказы. Сказки. Роман. Пьесы. Сост. А. Ю. Галушкин.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Сост. Е. Б. Скороспелова. М.: Советская Россия,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в двух томах. Сост. О. Михайлов. М.: Художествен ная литература, Замятин, Е.И. Атилла // Е.И. Замятин. Собр. соч.: в 5т. Т. 3. М.: Русская книга, 나병철. 소설과 서사문화. 서울: 소명출판, 니콜라스 르제프스키 엮음/ 최진석 외 옮김. 러시아 문화사 강의. 키예프 루시부터 포스트소비에 트까지. 서울: 그린비, Белая Г. А. Дон Кихоты революции - опыт побед и поражений. М.: РГГУ, Бердяев Н.А. Русская идея// О России и русской философской культуре. Философы русског о послеоктябрьского зарубежья. М., С Бердяев Н.А. Судьба России. Опыты по психологии войны и национальности. М., Голдт Р. Мнимая и истинная критика западной цивилизации в творчестве Е.И.Замятина. На блюдения над цензурными искажениями пьесы "Атилла"// Russian Studies. Ежекварт альник русской филологии и культуры Т.II. N 2. С Голубков М. М.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ХХ в. После раскола. М.: Аспент Пресс, Гумилёв, Л.Н. Ритмы Евразии: эпохи и цивилизации. СПБ.: СЗКЭО, ООО «Издательский До м «Кристалл»», Давыдова Т. Т. Творческая эволюция Евгения 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пер евой трети ХХ века. М.: МГУП, Давыдова Т. Т. Русский неореализм. Идеология, поэтика, творческая эволюция. Учеб. пособ ие. М.: Флинта, Наука, Замятинск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 Лебедянский контекст. Тамбов-Елец, Кдырбаева Б. А. История и личность в творчестве писателей х годов. Дисс. на сои скание уч. степ. доктора филол. наук. М., Кевин М. Ф. Платт. История в гротескном ключе.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и идея революции. С Пб.: Академический проект, Лядова Е. А. Трагедия "Атилла" в творческой эволюции Е. И. Замятина: Монография. Тамб ов: Изд-во ТГУ им. Г.Р. Державина, Михайлов О. Гроссмейстер литературы// Замятин Е. Мы. М., С Опыт неосознанного поражения. Модели революционной культуры 20-х веков. Сос т. Г. Белая. М.: РГГУ, // Панов А. Традиции евразийской историософии: евразийство и теория этногенеза Л.Н.Гумилё ва в свете трагедии Е.И.Замятина «Атилла»

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Слободнюк С. А. К вопросу о гностическом элементе в творчестве А. Блока, Е. Замятина, А. Толстого ( ) //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СПб., С Хэ Фан. Евразийство и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х годов XX века. Дисс. на соискание уч. степ. кандидата филол. наук. М., Хотямова М.А. Творчество Е.И.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повествовательных стратегий первой т рети ХХ века: Создание авторского мифа. Томск: Изд-во ТГПУ, 2006.

2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9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이규영(성균관대) Ⅰ.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 소비에트 사상과 이념의 구상화 도구로 전락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1920년대 말부터 1934년 사이 소련의 유일한 공식 예술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4년 이후로 실질적으로 스탈린 예술로 변모하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이 지향했던 미학의 정치화는 스탈린의 종교적 우상화로 변질되었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고 그 형식은 이동파 화 가들의 리얼리즘에서 유래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은 소련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책 표지, 선전 포스터, 기념비적인 건축 양식, 회화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회주의 리얼리 즘의 이데올로기를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드러내어 전형화 될 수밖에 없었고, 마치 공장 에서 반복적으로 대량생산된 것 같은 상투성은 오히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정치적 키치로 전 락시켰다. 이에 대해 보리스 그로이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단조로운 음조와 유희의 부재, 대중들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점들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라고 평 가한다. 13) 신고전주의 양식을 답습하듯 스탈린 형상은 신고전주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영웅, 왕족, 귀족처 럼 영웅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러시아 성화(Икона)의 성인 모습처 럼 무표정하고 엄숙한 자태로 관람자들에게 존경심을 넘어 신성함을 유발하려고 한다. 해서 스 탈린의 초상화는 인물의 특징을 주로 두부를 통하여 전하고 인간의 모습을 성화의 인물처럼 평 면적으로 그리는 17세기 파르수니(parsuny) 기법 14) 을 연상하게끔 한다. 살아있는 스탈린의 권력 과 존엄을 신성함의 상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스탈린의 형상은 언제나 신성하고 동요 없는 초시간적 기념비 15) 로 대중들이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림 1 미하일 로샬, 석탄을 초과 달성하자! 파르수니 기법으로 소비에트와 종교의 연관성을 패러디한 작품(필자 주). 13) Борис Гройс, Искусство утопии (М.: Худржественный журнал, 2003), С ) 정교회 이콘의 전형적인 화법과 서양의 초상화 기법이 합성되었던 17세기 러시아 초상화 양식으로서 이콘보 다는 서구의 초상화에 더 가까웠다. 17세기 이콘 화가였던 시몬 우샤코프(Семен Ушаков)도 알렉세이 미하 일로비치 등 황제의 초상화를 파르수니 기법으로 그렸다. A. I. 조토프, 이건수 옮김, 러시아 미술사 (동문

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러한 스탈린의 아이러니한 우상화, 즉 종교를 부정하면서도 스스로는 신적인 영광을 후광으로 얻고자 하는 이중적 태도는 당시 러시아 대중들에게 하나의 은폐된 이데올로기로서 신화로 작 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소련 대중들에게 스탈린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상으로 존 재하였으며 스탈린의 초상화는 러시아 대중들에게 성화처럼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탈 린의 초상화와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의 성화가 함께 있는 사진 1은 당시 러시아 정교회 신 사진 1 사제 바실리 세카쵸프, 스탈린 초상화와 성 이반 뇌제 이콘 자들 집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교회사가인 사제장 게오르기 미트로파노브(протоие рей, Георгий Митрофанов)는 아직도 러시아 역사에서 혹독한 독재자의 전횡을 은폐하고 강력 한 애국, 민족주의를 부각시켜 추앙하는 현대 러시아 일부 대중들을 개탄하면서,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러시아 교회를 폭파, 폐쇄한 것을 스탈린이 복원( 년)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반가톨릭, 반서구 정책의 일환으로 정교회가 이용당한 것이었 을 뿐, 이러한 정책이 실패하자, 스탈린은 다시 정교회 성당을 폐쇄하고 혹독한 정책을 이어갔 다는 것이다. 16) 즉 러시아 정교가 지향하는 천상의 왕국을 지상의 유토피아로 대체하고 신을 대 신하여 스스로 신적 반열에 오르려했던 스탈린 형상은 강력한 권력과 힘에 대한 향수로 아직도 러시아 일부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대로 이러한 스탈린 신화는 이미 탈신화 되고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림 2처럼 스탈린의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상징성은 오늘날 러시아 다수의 대중들에게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으며 단지 성화의 껍데기만을 입은 인물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17) 스탈린 그림 2 성스러운 지도자 스탈린 선, 1996), 117 쪽. 15) 이지연, 기념비와 스탈린 신화: 권력의 재현적 공간으로서의 소비에트 예술과 삶, 러시아어문학연구논 집 제29집, 2008, 344 쪽. 16)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회고함에 있어, 러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것 중 하나가 스탈린과 정교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은 1943년부터 대외 정책의 일환으로 부분적으로 교회 보존을 실시하는데, 주로 외국 정교회 신자들의 노력과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서방에서 소련 정부를 인정하기 시작하자 스탈린은 다시 교회 억압 정책을 이어갔다. 당시 14,500개 교회 가운데 1,000개가 문을 닫았고 1988년에는 6천500개 만 남았다. 참조.

2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1 사후 해빙기에 들어서면서 소련 대중들은 스탈린 시대 유토피아의 꿈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 는 허망한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으며,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1950년대 말, 60년대 비공식 미술과 일부분 공식 미술에서도 표현되었으며, 1970년대 초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모스크바 개념주의(К онцептуализм) 작품들 속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었다. 18)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소츠 아트는 러시아적 개념 미술로 분류되거나 키치 아트로도 일컬 어진다. 1950년대 말 비공식 미술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으나 비공식 미술과 달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인 예술적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19) 소츠 아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적 강령에서 벗어나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대중 예술 기법을 흡수하여 소비에트의 이데올로기를 패러디, 뒤틀기, 해체하는 방식으로 탈소비에트를 추구했다 는 특성을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소츠 아트의 창시자인 코마르(Виталий Комар)와 멜라미드(Александр Мелами д) 20) 가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적인 형상의 재현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예술 장르 가운데서도 가장 우상화의 늪에 빠지기 쉬운 회화를 통해 종교 적인 주제를 다룬 것은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유대인으로서 화가 스스로도 많은 환경적 인 제약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샤갈(М. Шагал) 역시 유대인이 부정하였던 예수를 그림의 소재로 한 후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엄격한 층위에서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종교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화적 대상과 주제는 좁게는 기독교 회화, 넓게는 종교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글에서는 코마르와 멜라미드를 비롯한 유대계 러시아인들의 미술과 소비에트 우상 숭배와 의 관계성을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우선, 유대인 미술과 우상 에 대해 살펴본다. Ⅱ. 우상과 유대인 미술 우상(idol, 偶 像 )은 대상의 본질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데 매개하는 어떤 상( 像 )으로서 플라톤 철학에서는 선입견의 의미로, 종교적으로는 어떤 물질에 신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것 을 기념하고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의미로 자주 이해된다. 우상은 한자 뜻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본원적인 의미로는 대상의 본질과 짝을 이루는 또는 본질과 닮은 모양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 구하고, 철학, 종교의 영역에서 대상의 본질에 대한 오판의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상이라는 17) 그림 참조. 18)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첫 글자와 미국의 팝 아트의 첫 글자를 따서 합성한 것으로 블라디미르 파페르늬 (Владимир Паперный)가 1972년 당시 러시아 회화적 경향을 지적하자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고안한 용어 다. 개념주의 예술은 마르셀 뒤샹이 그의 작품 <샘>을 통해서 보여주었듯이, 예술의 실체보다 개념을 중요시 하는, 즉 예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개념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회화 경향이다. 서구의 개념주의가 포스 트모더니즘적인 경향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하나의 관점이라면, 소비에트 개념주의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상투적인 문구, 그림 속에는 허상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예술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형, 천년의 울림 (성균관대출판부, 2001), 452 쪽 참조. 19) 권정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신화해체 :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대하여, 문예미학 제 6호, 1999, 497 쪽. 20) 1965년부터 공동 작업을 한 두 화가는 1970년대 초 소츠 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고 1970년대 말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망명 후 1980년대 중반 <향수어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작>을 발표한다. 소츠 아트 의 형성과 발생과정에 대한 사항은 이지연, 해체와 노스탤지어 :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소비에트 문화,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제21집, 2006, 98쪽. 참조.

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용어는 본질을 재현 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 회화의 영역에서도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유대교와 우상의 관계는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유대교는 구약의 성서 구절(출 애굽기 20장 등)과 십계명에 따라서 신적인 것의 형상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우상으로 규정하 였다. 기독교와의 정체성 문제에서 더욱 신적 형상에 대해 엄격함을 요구했다. 이러한 형상의 거부, 반감은 유대인들에게 시각 예술 활동의 위축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신적인 형상의 오판 에 대해 절충적인 태도를 가졌던 기독교 미술은 우상숭배를 교묘히 우회하는 방식으로 독자적 인 공간을 확보한 반면 유대인 미술은 어떤 수단, 방법도 찾지 못하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 다. 21) 비록 시나고그(synagogue) 유적 발굴을 통해서 기독교 초기 시절 유대인들도 성서도해, 벽화, 모자이크를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나, 19세기 전까지 유대 미술은 예술사에 주목할 만한 화 가나 결과물을 남기지 못했다. 이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일정 정도 히브리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사막, 유목 지역 에 위치한 히브리 민족에게 시각적인 정보는 청각적인 것에 비해 강조되지 않았고, 현재 머무는 곳은 언제나 떠나야 할 곳으로 직선적인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종교와 예술관 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히브리의 신은 결코 시각적으로 계시하지 않으며 음성이나 상징,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시하였으며, 회화, 조각 등 조형예술이 발달한 그리스 지역에 비해 히브리 예술에서는 언어적인 것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리가 언어의 산물이고 언어 역시 일종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 전통에서 언어(신의 언어)는 세상을 창조한 이치이 고 역으로 신은 언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호성을 배제함으로써 어떤 사물을 표현한 그림이 그 사물 자체로 혼동할 수 있는 위 험성이 언어에는 없다 는 관점이 유대 전통인 것이다. 22) 이렇게 시각미술의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었던 종교, 지정학적 환경에서 근현대 미술사에 괄 목할 만한 샤갈, 수틴(Chaim Soutine), 뉴먼(Barnett Newman)과 로스코(Mark Rothko), 코마르와 멜라미드 등 유대계 화가와 비평가들이 탄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근현대 미술계가 유 대계 화가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 예술의 추상성 때문이었다. 즉 구상 회화 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유대 미술이 추상 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을 쏟아낸 것이 다. 여기서 주시할 점은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 형식이 구상이든 추상이든 광의적 의미에서 종교 적인 것과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 니겠지만, 많은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에는 종교적인 주제와 특징이 있다. 구상화 가운데 대표적 유대계 화가인 샤갈의 작품에는 하시디즘, 유대인, 랍비 등의 유대인 전 통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판화 등 그의 후기 작품은 대부분 종교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뉴먼의 경우, 종교적 주제나 모티프가 구상화처럼 확연히 등 장하지는 않으나, 그의 작품의 숭고미는 때로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일례로 그의 연작 시리즈인 <십자가의 길>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십자가 책형,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 스도의 고뇌를 성서적 관점에서의 재현이 아닌 관람자 스스로가 그들의 지성과 감성을 통해 어 떤 편견 없이 수용하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해석하곤 한다. 달리 말해 그의 예술이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적어도 기독교와 부차적인 관계는 있다고 할 것이다. 소츠 아트의 대표자들인 코마르와 멜라미드, 그로브만 등의 유대계 러시아인들의 그림 역시 기독교 21) 앤소니 줄리어스, 박진아 옮김, 미술과 우상 (서울: 조형교육, 2003), 14 쪽. 22) 위의 책, 51쪽. 시각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동양인에게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견해는 신이 인간 앞 에 현존하는 순간은 바로 지상의 종말, 즉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3 미술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기독교 미술과 연관성이 있듯이 소츠 아트 역시 기독 교 미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소비에트 생활을 재현하고, 혁명을 영광화 하고, 공산주 의 이상을 전파하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실천 강령은 그리스도의 업적을 재현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광화 하고, 기독교 이상을 전파하려는 기독교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그 속에서 공산 당 서기장은 신성을, 중앙 위원회 위원들은 성인 또는 제자들인 것 이다. 23) 소비에트가 기독교 미술을 리얼리즘 형식으로 차용했다면 소츠 아트는 충실하게 실제를 모사하는 동일한 형식으로 그것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근현대 유대계 미술을 기독교 문명에 동화되어 기독교 미학 원리에 입각한 것 들로 평가하기도 한다. 24) 즉 미술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끈 유대 계 미술의 특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독교 문명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이 에 대해 줄리어스는 다소 자의적이지만 기독교 미술과 진정한 유대인 미술을 구분하는 흥미로 운 기준을 제시한다. 유대인 미술은 십계명 제 2조항처럼 우상 숭배를 배격해야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유대인 미술의 유형을 우상 미술(iconic art), 무우상적 미술(aniconic art), 우상파괴 적 미술(iconoclastic art)로 구분한다. 우상미술은 유대인 성전인 시나고그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 종교 의식을 꾸미고 정치적 영웅을 칭송하는 것들이고, 무우상적 미술은 우상을 배격하고 무한 과 숭고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우상파괴적 미술은 우상을 파괴하고 공격하며 전복시키는 것 들 이다. 25) 우상 미술에는 대개 구상화로서 재현 방식을 채택한 것들이 속하는데, 랍비나 이스라엘 풍경 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유대인 학살을 묘사하는 것들, 기독교의 주제를 그린 것들로서 샤 걀의 그림도 여기에 속한다. 무우상적 미술은 동방정교회 부정신학의 인식론적 개념과 동일하게 재현한 작품을 통해서 재현 불가능한 것을 확인 하는 것이 목표다. 유대의 신은 정형화할 수 없으므로 재현할 수 없음, 즉 인간의 표현의 무력감을 통해 신의 무한함, 숭고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 무우상적 미술의 특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줄리어스는 미술계에서 언급하는 뉴먼과 로스 코의 숭고 미학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과 마찬가지로 무우상적 미술이 아니라고 단언한 다. 뉴먼의 <십자가의 길> 연작은 무한함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예수의 고난 과정 을 되새길 수밖에 없게 함으로써 우상을 재창조한다는 것이다. 26) 우상파괴주의적 미술의 궁극 적인 목적은 우상을 파괴, 모욕함으로써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코마르 와 멜라미드가 있는데, 그들은 우상파괴적인 전형적 방법과 달리 우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아이 러니하게 우상을 부활시킨다. 소련의 정치적 우상들을 해체시키는 코마르와 멜라미드, 순도코 프(Алесей сундуков), 그로브만(Михаил гробман), 부루스킨(гриша брускин) 등이 우상파괴주의 적인 미술의 화가로 분류된다. 27) 이러한 구분은 재현 예술이 우상숭배라는 관점에서 비롯한 것인데, 여기서 우상의 개념은, 유 대교 신 이외 신적인 것이라는 협의의 개념에서 벗어나, 절대자의 무한한 힘과 존엄성을 인간, 자연, 학문, 예술, 국가 등에 부여한 것으로 종국에는 절대자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확장 23) 위의 책, 28 쪽. 24) 변호사이자 미술 비평가인 영국계 유대인 앤소니 줄리어스, 유대계 미술사학자인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견해임. 위의 책, 193 쪽. 역자의 글 참조. 25) 위의 책, 쪽. 26) 위의 책, 쪽. 말레비치가 우상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구상의 극단에 위치하는 것은 맞으나 동시에 우상을 재창조 한다는 것이다.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을 아름다운 구석에 배치한 것은 분명 이러한 해석 을 가능하게 한다. 27) 위의 책, 쪽.

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재현 예술은 물론 추상, 기하학, 무의식의 세계 등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것 역시 우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뉴먼의 <십자가의 길> 연작은 물 론이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역시 재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재현의 모든 가능성들의 이 미지, 즉 카오스의 세계가 질서의 세계로 전환되기 바로 이전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동시에 아직 텅 빈 무의 세계가 담지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아우라는 또 다른 우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Ⅲ. 유대계 러시아인 미술과 소비에트 우상숭배 앞에서 살펴본 유대 전통에 따른 우상과 예술의 관점에서 가장 유대적인 러시아 화가들 가운 데 코마르와 멜라미드는, 소비에트 예술이 정치적 우상들을 그대로 모사, 베끼는 것에서 시작하 였듯이, 그들 역시 그것들을 충실하게 재현하되 그 속에 내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우상)를 베 끼어 낸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우상파괴적 예술, 즉 기독교 우상파괴와 같은 직접적 행위(그림을 파괴하거나 덧칠하는 등)가 아닌 아이러니, 조롱, 풍자의 기법을 통해 소비에트 우상을 다시 부 활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키치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소비에트 우상숭배를 의식적으로 뒤틀 기 하는 코마르와 멜라미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그림 3은 뮤즈가 스탈린 그림자를 그리듯 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령 역시 스탈린의 그림자만을 생산할 뿐임을 암시한다. 뮤즈가 오른손 으로 스탈린의 턱을 만지고 왼손으로 그의 그림자 형상을 따라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미술의 기원 에 관한 신화 가운데 하나인 부타데스 이야기를 패러디 한 것이지만, 턱을 쓰다듬는 도상 그림 3 코마르와 멜라미드, 에두아르트 다에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1982 회화의 발명, 1832 은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관계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28) 나무의 배경이 스탈린 양식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자연의 빛이 횃불의 인공조명으로, 나체의 젊은 그리스 영웅이 스탈 린으로 바뀌었고 사랑의 행위가 전혀 다른 의미를 탈바꿈 된 것이다. 29) 스토이치타(Victor Stoichita)에 따르면, 이 그림에는 소비에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언어 코드를 암시하는 것 이 있는데, 스탈린 그림자를 그리는 뮤즈의 손이 역전된 점이다. 왼손으로 칠하고 그리고 쓰는 것은 완성된 작품에 어떤 미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왼손이 좌파 예술을 실천할 뿐 아니라 사물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다.30) 달리 말해, 소 련을 떠난 두 화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소비에트 예술가들의 언어 코드로 소비에트의 새로운 28) 위의 책, 25 쪽. 29) 빅토르 스토이치타, 이윤희 옮김, 그림자의 짧은 역사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6), 188 쪽. 30) 위의 책, 쪽.

2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5 예술가들에게 어떤 암시를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주목을 받지 못 했다. 이 그림은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1970년 초에 소츠 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고 70년대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후 1980년대 중반 발표한 <향수어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작> 가운데 하 나다. 당시 두 화가는 이미 과거가 된 스탈린 시대와 재건, 개방의 물결이 밀려오던 소비에트의 새로운 예술가들과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뿐 아니라 유대인으로서의 숙명적인 정체성은 과거의 소비에트 우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러시아에서의 삶은 유대인이었기에 진정한 러시아인이 될 수 없었고 미국으로 망명 후에는 이주자로서 미국인들과 동화되어 살 수 없었다." 31) 그들의 작품은 분명 소비에트 우상을 파괴하고 있으나 유대인으로서 그들이 회상하는 소비에 트 시절은 사뭇 다르다. 1992년 5월 미술 잡지 <아트 포럼>에 기고한 기념비적 프로퍼갠더에 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 시절 소련에서 보았던 곳곳에 넘쳐나는 스탈린 초상화와 조각상을 회고할 때 그것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탈린을 우상숭배하거나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고 단 지 창조적인 작품 활동을 할뿐이다. 32) 그들은 연작의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일종의 향수로 보는 것이다. 33) 스탈린 우 상숭배를 아이러니하게 탈신화, 탈코드화 했던 것들을 소비에트 이후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것 으로 재코드화 되기를 바라는, 즉 다가올 러시아 미래를 겨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대 계 러시아인이었던 그들의 민족 역사의 반복 학습에서 어느 정도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 아의 경우만을 보더라도 러시아 혁명 당시 모든 당에는 유대인이 1/4에서 1/3을 차지했고, 심 지어 혁명가들의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34) 그러나 내전 당시 백군에게 학살당했던 러시아계 유 대인은 레닌의 중립적이고 애매모호한 태도, 스탈린의 숙청과 학살을 통해 자신들이 영원한 타 자로서 살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과거의 기독교가 우상을 파괴한 것처럼 스탈린 동상이나 초상화를 파괴 하는 것은 역사의 반복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과거의 우상이 다시 부활하지 못하 도록 무력해진 상태로 회화의 대상으로 소비에트 우상을 존속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그들의 예술적 태도는 우상파괴이지만 폭력성이 없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로마 영웅을 르네상스 시대 재현 예술가들이 다시 부활시킨 것처럼 우상을 재창조하지 않았다는 측 면에서 코마르와 멜라미드를 진정한 유대인 화가로 간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35) 이어서 소련의 정치적 우상들의 초상화와 구체적인 윤곽 없는 백지 얼굴의 대중들의 모습을 31) Rateliff. Carter, Komar & Melamid (Client Distribution Service, 2007), p. 14. 서아란, 러시아 현대 미 술과 소츠 아트(Sots Art) 2008,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재인용. 32) 앤소니 줄리어스, 위의 책, 100 쪽. 33) 이지연, 해체와 노스탤지어 :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소비에트 문화,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제21집, 2006, 쪽. 참조. 34) 고가영, 러시아 혁명기 유대인 사회주의 운동: 붙트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Vol. 23, 2012, 207 쪽. 35) 앤소니 줄리어스, 위의 책, 쪽.

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그림 3 코마르와 멜라미드, 이중의 자화상, 1972년 미하일 그로브만, 우리의 힘은 시온주의에,1996 그리샤 부루스킨 알레프벳-렉시콘 I (Alefbet-Lexicon I) 대조한 순두코프(Алесей сундуков), 공산당 중앙 위원회 위원들 사진을 패러디한 그로브만(Ми хаил гробман)과 부루스킨(гриша брускин)의 그림을 살펴보고자 한다.

2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7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이은경(한국외대) 19세기 말 유대 작가와 예술가들은 키예프, 오데사, 빌뉴스, 비텝스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 동을 펼치며 러시아 문학 및 문화계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민족적, 인종적 차이의 예술 표현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Владимир Стасов)의 발언은 다 양한 민족예술들이 꽃피우고 공존하는 러시아를 가능케 했다. 그 가운데서도 유대예술가들의 역 할은 단연코 돋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 풍요롭고 다채로운 색채를 부여하면서 황금기를 이어나갔던 유대 예술가들은 소비에트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제정 러시아 말, 대외적 상황에 지쳐있던 민중들은 혁명을 열렬히 환영했다. 피압박민족의 해 방운동이 극에 달았던 상황에서 혁명은 소수민족들을 기대감에 가득 차게 만들었고, 유대 예술 가들 역시 새로운 예술의 실현과 가능성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국 가 건설 이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이들을 혁명국가에 걸림돌이 되는 구시대의 잔 재로 간주하였다. 소비에트 내에서 다양성에 대한 기대를 바랄 수가 없게 된 많은 유대 작가들 과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창작적 자유가 보장되는 곳을 찾아 떠났고, 이로 인해 대거 망명사태가 발생한다. 포그롬(погром)과 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대인 탄압이 계속되었고, 혁명은 또 한 번 소비에트 내의 유대인들을 대거 정리하는 사건이 되었다. 촉망받던 화가 하임 수틴(Хаим Сутин)이 1913년 프랑스로 떠난 데 이어 샤갈(Марк Шагал)이 1922년 파리로 망명했다. 유대문학의 아버지인 숄롬 알레이헴(Шолом Алейхем)은 1905년 포그롬을 피해 스위스로 갔다가 다시 독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고리끼(Максим Горький)가 망명으로 살아남은 재능있는 시인 중 한 사람 이라고 칭한 돈 아미나도(Дон Аминадо)는 전쟁을 피해 1919년부터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저널리스트로 유명했던 폴랴코프(Александр Поляков)는 1920년에 망명하여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갔고, 시온주의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자보틴스키(Владимир Жаботинский)는 1910년부터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하여 1923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가 1940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유대문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세묜 유슈케비치(Семён Юшкевич)는 1920년 파리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비에트 내에 수많은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정 러시아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그 수는 적었지만,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예술 활동이 보장되지 않고 더 이상 희망적이지도 않은 소비에트 제국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낯선 땅에서의 정착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조국 개념,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와 인식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일찍이 특정한 국가 또는 문화권의 소유물로 귀속될 수 없는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본디 작가와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만큼 이러한 속성이 더

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강하게 마련이므로,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정체성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에트의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느끼면서 그들만의 결속력을 보여주려 하거나 또는 소비에트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어 독립 체제를 인정받으려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유대문화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채 소비에트라는 거대 문화권 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고자 했다. 이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러시아 역사에 편승되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자신들만의 생활양식과 종교를 고수하던 정통파 유대인들과 달리, 러시아 유대인들은 하시디즘(Hasidism) 1) 의 영향을 받아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속일여( 聖 俗 一 如 )를 주장했다. 이것은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질적인 민족의 일원으로서 유대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융화의 한 방법이 바로 이러한 세속적 삶이었다.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창작에서도 하시디즘의 영향, 세속 유대인들의 양상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르크 샤갈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염소와 닭, 말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친숙한 존재인 동시에 인간의 영혼이 깃든 존재이다. 샤갈의 기독교적 요소 역시 이런 일면으로 볼 수 있다. 유대식 교육을 받고 자란 샤갈은 <흰 십자가(Белое распятие)>(1938),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Снятие со креста)>(1941), <황색 십자가(Жёлтое распятие)>(1943), <십자가에 못박힌 자(Распятие на кресте)>(1944) 등의 연작들을 통해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그려내었다. 샤갈의 그리스도는 독특하게도 슈테틀을 배경으로 서 있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형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INRI) 이란 패 대신 샤갈의 이름인 Marc Ch 로 대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샤갈에게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유대교의 그리고 기독교의 그것도 아니다. 그는 핍박당하는 유대인의 이미지를 그리스도와 일체화시켰고, 또 이것을 자신의 삶에 투영시켰다. 이것은 정통파 유대인으로서가 아니라 세속화된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의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 역시 러시아 유대인들의 사고에서 유대인들과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의 결부가 낯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예술적 실천에서 보이는 모순된 사고들, 즉 유대적 정서가 아니면서 동시에 유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들은 이율배반적이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되고 있다.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유대인들의 삶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서나 기회주의와 민족주의는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소비에트 내에서 유대인들의 행보는 남달랐다. 그 어떤 소수민족보다도 강한 연대감,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대인들의 숫자가 인구대비로 보았을 때 가장 많았다는 점도 소비에트 정부에게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집권하면서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그런 만큼 유대인 작가들의 목숨도 풍전등화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 시기, 가장 강력한 반유대주의 정서가 지배적이던 당시 소비에트 문단에서 두각을 1) 하시디즘은 유대교의 신비적 가르침 카발라(Kabbalah) 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감정에 대한 측면을 중시하 며 창조된 모든 만물에 애정을 품는다. 이 사상은 모든 피조물에 신의 불꽃이 내재한다는 범신론적 사상과 인 간과 신과의 결합사상으로 나뉜다. 하시디즘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의 거룩한 접촉을 통하여 그들 속에 갇혀 있는 거룩한 실재를 깨우치는 우주적 중재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인간은 거룩한 불꽃을 광물에서 식물과 동물 로, 그리고 동물에서 말을 사용하는 생물로 상향시키고 순화시켜야 하며, 경건함과 헌신을 통해 그들을 본래 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신은 개개의 사물 속에 보여질 수 있으며 순수행위에 의해 포착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하찮은 것도 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자신을 보여주는 통로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3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9 내던 작가들도, 그리고 전면에서 활동하던 작가들 역시 공교롭게도 유대인들이었다. 이들 유대인 작가들의 문학적 성향과 지향하는 바는 표면적으로 각기 달랐지만, 그 이면에 내재한 유대 개성에 대한 존중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소비에트라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부단한 노력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오시쁘 만젤쉬땀(Осип Мандельштам, 1891~1938),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1890~1960), 일리야 에렌부르그(Илья Эренбург, 1897~1967), 바실리 그로스만(Василий Гроссман, 1905~1964)등은 소비에트 문단의 굵직한 유대 작가들로서 당시 유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각각의 노선을 취했다. 이들은 비록 유대 혈통이라는 한 가지에서 나왔지만, 주변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다.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는 극도의 민족주의자로, 혹은 인터내셔널로, 혹은 코스모폴리탄으로, 또는 주머니 유대인(Карманный еврей) 2) 으로 살아갔다. 작가들 역시 소비에트 체제에 순응하거나 완전히 반대 노선에 서서 강하게 비판하던 부류로 나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소비에트 제국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고, 제국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한 기대의 기저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문학과 문화를 이끌었던 유대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한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가 놓여있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던 대제국으로서의 러시아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소비에트에서도 반드시 그러한 시대가 도래하리라 믿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내재한 유대 르네상스와 찬란한 러시아 문화가 새롭게 부활할 가능성, 즉 그들의 창작을 통해 재탄생되리라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젤쉬땀은 이러한 가능성을 뻬쩨르부르그의 형상에서 찾아내려 했다. 만젤쉬땀은 1916년 이뽀끄레나(Ипокрена) 誌 에 <뻬뜨로뽈(Петрополь)>이라는 제목의 시 3편을 발표하였다. 이 시들에서 그는 그리스로마의 도시 페트로폴리스와 러시아의 뻬뜨로뽈이라는 과거와 현재의 두 도시 공간의 합일을 통해 문화의 영원성을 언급하고 있다. 1916년~1918년까지 만젤쉬땀의 시에서 뻬뜨로뽈 로 지칭되던 뻬쩨르부르그는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만젤쉬땀에게서 뻬뜨로뽈은 그리스 로마의 문화의 빛이 꺼지지 않는 희망의 공간이었지만, 그러나 뻬쩨르부르그는 그의 희망을 뒤엎는 반전으로 고대의 사멸한 도시 페트로폴리스의 운명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만젤쉬땀에게 두 도시는 동일한 운명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10월 혁명이후 뻬쩨르부르그에서 문인들의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다수가 망명하였고, 제 1차 세계대전과 혁명을 겪으면서 예술은 소멸되기 직전에 놓여있었다. 이런 상실의 시대에 만젤쉬땀은 뻬쩨르부르그를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 그 삶의 종말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사멸한 도시 페트로폴리스이자,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다시 부활되는 영원한 도시 이며, 죽음과 삶의 근원이자 정신적 지주로 인식한다. 만젤쉬땀의 시적 이상 속에서 뻬쩨르부르그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러시아 문화가 합일을 이루는 장소이자 러시아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존재적 이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며, 그래서 그의 존재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영원한 정신적 문화의 지주로서 영원한 예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가 살았던 삶의 터전인 뻬쩨르부르그는 사멸했지만, 그의 기억의 공간 속에서 뻬쩨르부르그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태어나며 잊혀질 수 없는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시공의 조합(панхроническое время и синхронное пространство)은 만젤쉬땀의 시학의 특징으로 개인 내면의 심리적 공간과 이상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를 종합시켜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2) 소비에트 시기 반시온주의 또는 반이스라엘 노선을 표명하고 지지하기 위해 동원된 유대인 출신 명사들을 풍 자하는 용어

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종합하는 방법이다. 즉, 양극적 공간이 함께 공존하면서 상호 작용하여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적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비에트 현실의 공간이자 시인의 내적 심리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젤쉬땀의 공간은 유대적 사고에 입각한 베르그송의 통일성 법칙을 따르고 있다. 베르그송은 현상이 시간의 연속성 법칙에 종속되어 있기보다는 공간의 연장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그는 현상들 간의 내적관련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현상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별도로 받아들인다. 내적으로 연결된 현상들은 시간에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나, 지적으로 이해가능한 총체성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3) 고대 그리스 로마의 모티브가 현대의 뻬쩨르부르그와 연결되는 것은 두 도시의 내적 연관성에 따라 공시적 선상에 동일하게 놓이기 때문이다. 만젤쉬땀은 문체적인 면에서 이삭 바벨(Исаак Бабель)을 모델로 삼았다. 이삭 바벨은 유대 르네상스가 가장 정점에 달했을 때 등장했으며, 유대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 작가였다. 만젤쉬땀은 바벨에게서 유대적 표현과 화려함을 발견하였고, 그렇게 존경했던 작가의 삶처럼 자신도 소비에트 정부의 숙청 대상이 되고 말았다. 만젤쉬땀은 살아있는 시대적 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표현의 자유가 부재해진 소비에트와 그러한 소비에트를 만들어낸 스탈린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반발심을 강도높게 비판한다. Мы живём, под собою не чуя страны, Наши речи за десять шагов не слышны, А где хватит на полразговорца - Там помянут кремлевского горца. Его толстые пальцы, как черви, жирны, А слова, как пудовые гири, верны. Тараканьи смеются усища И сияют его голенища. А вокруг его сброд тонкшеих вождей, Он играет услугами полулюдей. Кто мячнут, кто плачет, кто хнычет, Лишь один он бабачит и тычет. Как подковы кует за указом указ - Кому в пах, кому в лоб, кому в бровь, кому в глаз. Что ни казнь у него, - то малина, И широкая грудь осетина.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발아래 놓인 나라를 감지하지 못하며 열 발자국 거리의 우리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도 저 높은 곳 크렘린 사람들을 추앙한다. 3) О. Мандельштам, О природе слова

3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31 그의 손가락은 살찐 굼벵이 처럼 통통하고 그의 입술에서는 납처럼 무거운 말들이 떨어진다. 그의 바퀴벌레 같은 수염이 추파를 던지고 그의 구두코가 반짝인다. 그를 둘러싸고 목을 길게 빼고 아첨을 떠는 지도자들, 그가 가지고 노는 반푼 어치도 안되는 오합지졸들 그가 떠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말처럼 힝힝거리고 고양이처럼 갸르랑 소리를 내며 개처럼 깨깽거린다 그가 말굽처럼 탕탕 쳐서 명령을 만들어 머리에, 눈에, 사타구니에 던진다. 살인도 모두의 큰 기쁨 가슴이 넓은 오세티아 사람에게는 비밀 모임에서 이 시를 발표했던 만젤쉬땀은 밀고자에 의해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미쳐가며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친다. 유대인 혐오증이 심했던 스탈린에게 있어 만젤쉬땀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그는 만젤쉬땀을 바로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아끼는사람들 때문에 수용소로 보내는 차선책을 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젤쉬땀은 비록 이스라엘이 건국되기(1948년) 전에 이미 사망하고 말았지만, 파스테르나크가 거의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박탈당하는 상태에 놓이면서도, 심지어 노벨상 수상과 관련하여서 까지도 소비에트 제국을 떠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이해 불가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Леонид Пастернак, 1862~1945)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였고, 어머니 로자 카우프만(Роза Кауфман, 1868~1938)는 유명 피아니스트였다. 예술가문으로 명성을 날렸던 이들조차도 1921년 러시아를 떠났다가, 귀국길에 오르지 못한 채 망명해야만 했다. 부모들과 누이들이 다 망명한 상태에서 소비에트에 남겨진 파스테르나크의 운명은 가혹했다. 파스테르나크는 1910년대 미래주의 문학그룹의 일원으로 데뷔하면서 내일의 시인 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30년대 초, 중반까지 왕성한 작업을 하며 매년 시집을 발간하고 1934년 부하린의 연설에서 소비에트 최고의 시인 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혁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가 라는 비난과 더불어 스탈린 사후 때까지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펼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재능있는 시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여전히 개인적이고 서정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으려하던 파스테르나크에게 소비에트가 냉담하게 돌아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테르나크가 소비에트 정부에 보여주었던 충성심은 이 모든 것을 뒤엎을 만한 소비에트 작가로서의 전면적 변신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스테르나크는 1936년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를 썼으며, 스탈린이 파스테르나크에게 직접 전화해 만젤쉬땀에 대해 물은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부하린(Николай Бухарин)만이 유일하게 만젤쉬땀을 변호해 무거운 형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당시 스탈린의 총애를 받고 있던 파스테르나크는 동족이었던

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만젤쉬땀을 철저하게 외면하였다. 만젤쉬땀의 재능이 뛰어난지 여부를 묻는 스탈린에게 파스테르나크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4) 이와 같은 파스테르나크의 이중성은 비난의 소지가 있지만, 작가로서는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고 있으나 적어도 유대인 신분인 자신이 스탈린의 치하에서 언제든 숙청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될 것인지 친구가 수용소로 갈 것인가에 대해 순간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으며, 그 결과는 자신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이 때 스탈린은 내 동무가 체포되었다면, 난 내 몸을 던져 구했을 텐데(Если бы у меня арнстовали товарища, я бы лез на стенку) 라고 비꼬며 말한다. 스탈린의 이와 같은 말은 파스테르나크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만젤쉬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면서 어떤 의도에서 그를 변호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던 스탈린이었기에, 파스테르나크 역시 충성심을 보인다하더라도 그의 근본에 대한 의심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파스테르나크 역시 스탈린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소비에트에 남고자 했던 것은 러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는 러시아라는 풍요로운 문화의 공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결론은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 의 마지막 부분에 러시아인들보다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라는 말로 설명된다. 지바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삶과 사랑을 희생해야 했고, 모든 것을 상실해가는 속에서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시적 영감을 준 라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닥터 지바고 는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이야기이다. 지바고가 사랑했던 러시아,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나라, 예술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곳이야말로 파스테르나크에게 있어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소비에트 문학과 정치사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남긴 유대인 작가들 가운데 만젤쉬땀과 더불어 동시대에서 크게 활약하던 에렌부르그(Илья Эренбург)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에렌부르그는 흐루쇼프(Хрущёв)의 해빙기를 상징하는 신호탄 해빙((оттепель)의 작가이자, 보다 적극적인 정치행보로 소비에트에 족적을 남긴 이였다. 그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낸 행동은 바로 그로스만(В. Гроссман)과 함께 집필한 흑서(Чёрная книга) (1946)의 출간이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목격자들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저항을 다룬 것으로, 뉴욕에서 최초로, 그 이후 소련을 제외한 여러 나라에서 발간되어 이목을 이끌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피해와 인권에 대한 경각심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에렌부르그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소련 정부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유대 국가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중적 모습에 대한 흥미로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이스라엘 정부가 탄생되고 많은 유대인들이 본토를 찾아 떠나고 있을 무렵, 유대인들의 대거 유출을 두려워하던 소비에트 정부는 에렌부르그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동요를 즉각 소요시키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게 된다. 에렌부르그는 소련을 반유대주의가 사라진 세계 유일의 국가로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돌리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소비에트 정부의 편에 서 있었던 에렌부르그는 전형적인 주머니 유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영원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었다. 에렌부르그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라고 바꿔 인용하기 좋아했다. 이 말은 그가 소비에트로 돌아오면서 스페인에서 했던 자신의 보고서에 대한 검열과 왜곡을 받아들이고, 스탈린의 테러에 대해 외국에 침묵하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이후의 기간 동안 소비에트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는 데 동의하게 되는 의식있는 결정으로 작용되었다. 4)

3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렌부르그의 글에 나타나는 유대적 특성, 그것은 그가 뿌리 속까지 유대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에렌부르그의 글쓰기에는 뼛속까지 유대인이었던 만젤쉬땀과의 유사성이 아주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은 일단 정치적인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에렌부르그는 대체로 독학에 의존하였으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만젤쉬땀은 페트로그라드 대학의 학위를 받은 후 비록 산발적이기는 했지만 역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점에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동화의 명목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던 국가에 가장 강렬한 소속감을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 정치성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 둘을 잇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종교적 행보에서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만젤쉬땀은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1911년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였다. 에렌부르그 역시 같은 해 베네딕트 수도회에 입문했던 바 있다. 이것은 물론 일종의 실험과도 같은 것이었고, 에렌부르그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얼마가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것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당시 그들과 같은 환경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전형적인 시작이었다. 그런 다음 모두들 전형적이라기보다는 심각한 개인주의적 본성을 따르게 되고, 그 차이는, 문학적 재능의 크기라든지 삶에 대한 확고부동함에서 더욱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문학적 그리고 사적인 관련과 만남의 구상, 소비에트에서의 만젤쉬땀의 시를 부활시키기 위한 투쟁 등의 오랜 결과와 관련된 슈제트들이 공존한다. 사실 만젤쉬땀은 유대 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바벨과 달리 유대적 경험의 색채가 중심에 위치해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바벨과의 유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벨에게서 엿보이는 네오아크메이스트적 시도는, 그가 만젤쉬땀처럼 아크메이즘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만젤쉬땀은 자전적 이야기를 쓰지 않는 대신, 자아(свой)과 타자( чужой)간의 영역에 대해 계속적으로 주목한다. 이 부분은 기병대(Конармия) 에서 바벨이 주로 드러내던 글쓰기 방식과 유사하다. 바벨로부터 시작된 유대문학의 정수는 만젤쉬땀, 파스테르나크, 에렌부르그 등으로 이어지면서 유대적 뿌리와 경험들에서 비롯된 공통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과 운명(Жизнь и судьба) 의 작가 그로스만 또한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드러낸 유대인 작가였다. 그는 유대인들과 소비에트, 그리고 나치 간의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볼셰비키 또는 나치든 간에 전체주의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략적인 평행선에서 보완적인 에피소드들을 배열하면서 유일하게 허가된 담론인 소비에트 프로파간다 담론을 전복시키기 위해 당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소비에트 정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소비에트 정부의 목적에 위배되었을 때는 가차 없이 버려졌고 소비에트의 적대적 세력으로 몰아세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내에서 살아남기를 원했고, 가능하다면 그곳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기를 원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유대 혈통으로 연결되는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러시아라는 찬란한 예술의 공간을 택했다는 것이다. 샤갈의 후기 작업은 러시아 유대인들의 가치관을 명확히 엿볼 수 있게 한다. 샤갈은 종교적으로나 감성적으로는 유대인 회당이 그에게 가까웠지만, 인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기독교와 연결된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즉,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위해서는 보다 영원하고 가치있는 장소들을 택했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게 가능했다. 샤갈의 작업에서 제1차 순위는 늘 창작에 대한 목마름과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와 더불어 그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은 유대적 뿌리였다. 이 두 개의 모순되면서도 조화된 공존이야말로 샤갈에게 가장

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안정적인 작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의 합일은 만젤쉬땀에게, 파스테르나크에게, 그리고 에렌부르그와 그로스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획일만이 유일한 소비에트 현실에서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의 삶은 가혹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꿈꾸는 다양한 문화와 풍성한 삶의 양상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기억 속의 러시아, 러시아 문화의 뿌리를 담고 있는 소비에트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그 어디에서도 그들에게 이러한 예술적 깊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샤갈 역시 자발적이기보다는 여러 복합적 상황에 떠밀려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자신을 최고로 대우해주던 미국이 아닌 프랑스를 최종적으로 택한 것도 그곳이 자신의 고향과 닮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예술의 최고 집결지였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란 누구인가 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소비에트 내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하는가를 누구보다도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러시아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의 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정치적 연대성, 문화적 자율성을 찾기 위한 전투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유대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오랜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국가 없이 떠돌면서 유대교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왔다. 강한 결속력의 종교공동체로서 살아왔던 그들이었지만, 러시아에서 그것은 기독교와 결합되면서, 또 러시아문화에 대한 동경과 애정으로 인해 희석되어가면서 오히려 러시아 유대인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건국이후 다양한 곳에서 몰려든 유대인들은 더 이상 유대교로 자신들이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오고 세속화된 그들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취시키는 작업이 새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언어적 측면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들은 이스라엘 시민으로서 귀속감과 단결을 얻어내는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이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획득해나가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일찍이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는 결속감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이민족이지만 러시아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유대 르네상스를 기억하며 자신들만의 결속을 다지고 러시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중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데, 즉 유대적 민족성에 대한 강한 인식, 그리고 문화 대국으로서의 러시아에 거주하는 시민이자 그곳에 철저하게 동화되고자 하는 노력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귀속되지 않는 유대인들의 루프트멘슈(Luftmensch) 5) 적 기질은 소비에트 제국 내에서 이처럼 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로 존재하고 있었다. 5) 이디시어로 루프트멘슈(Luftmensch)는 공기같은 인간 이다. 루프트멘슈는 중세 박해 받던 유대인들이 사용한 용어로, 무엇이든 기회가 있으면 달려들어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공기처럼 스며든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김욱, 유대인의 모든 것 (서울: 지훈, 2005), 36쪽.

3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35 시인과 스탈린: - 마야코프스키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조규연(단국대) 1. 예술 정치 혹은 정치 예술 문학과 정치의 문제는 삶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근원적 인식과 관련, 미래주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에 문화에서 전면화된 화두였다. 러시아 미래주의는 예술로부터 기인된 자신들의 창조열망을 이 세계의 차원으로 전이하여 현실의 재창조와 새로운 건설을 요 구했으며, 2차 미래주의 라 불리는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또한 대중문화의 질료들을 예술작품에 포섭하거나 특정 정치 프로그램에 개입하고 앞장섬으로써 예술과 삶의 구분을 철폐하려 했다. 삶의 창조(жизнетворчестсво), 삶의 건설(жизнестроение) 기획 하에 20세기 초반 러시아 문화사에 있어서 독자적 흐름을 형성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혁명과의 이념적 관계, 그 사회적 맥락이라는 특성상 정치성을 배제하고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방가르드의 방향은 기존질서 타파와 새로움의 창조라는 모토를 기반으로 공산주의적 혁명 분위기의 일환으로 끌어들이려던 당국의 의도에 부응하여 진행되었던 까닭이다.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철학,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의 맑스주의적 생산의 형식으로서의 예술 에 대한 미학 사상이었던 아방가르드에 있어 예술은 삶의 재현 이라기보다는 삶의 창조, 삶의 건설 의 근본적인 수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이스(Б. Гройс)가 아방가르드 예술에 있어서 질료의 점유의지와 그 예술가에 의해 확립된 법칙에 따른 예술의 구조는 권력의지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예술가의 사회와의 갈등에 근원으로 작용했던 것 1) 이라 했듯이, 예술로부터 유래한 이들의 아방가르드적 요청은 낡은 사회구조와의 투쟁이며, 예술내의 독재를 넘어서 새로운 일상의 창조라는 현실적 독재의 무한권력으로 비춰지기 충분했던 것이다. 이에 대다수의 연구가들은 아방가르드의 형성에 있어서의 좌파 성향의 예술가들, 특히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이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유토피아 개념을 소유했던 미래주의자들에게서 그 결정적 근원과 역할을 발견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삶의 재현 이 아닌 삶의 건설 경향으로서의 아방가르드를 맑스주의 혁명이론과 세계변혁에 대한 사상과의 연관 하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하나의 예술적 현상으로 본다면, (특히 서구의 연 구가들에 의하면) 아방가르드주의자들에게 있어 현실과 세계는 자신들의 예술적 기획의 근본적 인 질료로 인식이다.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 흘례브니코프(В. Хлебников)의 필명 Велимир 에서 도 드러나듯, 아방가르드는 그 자체로 세계 권력에 대한 요구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듯, 아방가르드는 삶의 변화에 대한 정치적인 욕망의 반영으로서의 순수예술 과 특수한 형식미에 대한 예술적 지향의 반영으로서의 정치적 급진주의 가 교차하며 수많은 정치 미학적 해석을 낳게 된다. 그로이스와 균터(Х. Гюнтер)의 해석에 따르면, 일상과의 투쟁에 있어서 대중 과 괴리된 채 자신만의 예술작품 속에서 독재자로 남겨졌던 대다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은 세계가 예술적 진료로 인식했던 예술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스탈 1) Гройс Б. Утопия и обмен. М., С. 14.

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린주의의 본질은 아방가르드적 미학의 정치화 가 변형적 계승된 정치의 미학화 이며, 그 안에 서 예술은 현실을 미학화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2) 순수 예술 기획으로서 아방가르드의 정치성의 문제는 서구의 연구가들에 의해 꾸준히 사용됐 던 테마 중 하나이다. 결국,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적 흐름과 함께 러시아 문학사에 있어서 독자 적 흐름을 형성했던 러시아 미래주의는 상징주의의 그 거대함에 가려져 그 의미가 축소되어왔 고, 연구가들은 그들의 정치참여만을 주목하여 정치권력으로의 변질, 또는 정치권력과의 대결에 서의 패배라는 면을 참작했을 뿐이다. 이러한 해석은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를 대표했던 마야코 프스키의 삶과 창작에 대한 평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 시인의 위기, 예술의 위기 마야코프스키는 소비에트 혁명사의 산 증인이자 그 짧은 삶 자체가 러시아 혁명의 연대기 라 할 만큼 20세기 소비에트 문화와 그 평가에 있어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삶과 창작에 대한 비평은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가 그랬듯, 문학 분과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영역에 있어서 도 시인과 권력, 예술과 정치 식의 딜레마의 연속이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평가에 있어 서 극단적인 이분법적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미래주의 순수미학으로부터 일탈을 통한 시적목소리의 변화와 장르적 변질, 그리고 정치적 영 합에 대한 비판은 마야코프스키의 동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정치적 맥락을 관통 하며 지속된다.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이러한 혐의의 중심에는 혁명과 레프(ЛЕФ)가 있다. 혁명 이전 마야코프스키의 창작의 특징은 과장된 서정성, 또는 주체의 시학으로 귀결된다. 극 대화된 서정적 나 는 진정한 대화상대를 상실한 채 홀로 존재한다. 여타의 미래주의자들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했던 시인은 진정한 대화상대로서의 당신들 을 갈구하지 만, 이는 호소가 아닌 창조적 능력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시인인 나 와 무능력한 당신들 에 대한 자기규정일 뿐이다. 러시아의 자라투스트라 를 자처하는 시인은 기존의 예술형식과 가치 에 이미 익숙해진 대중에게 무례하리만큼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면서도 결국 그리스도신화를 찬 탈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투성이의 짓밟힌 자신의 영혼을 세인들에게 깃발처럼 건네주는 희생자가 되기를 마다치 않는다. 그럼에도 창조주-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이해 못하는 대중들과의 화해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미래주의적 오만함이나 허무주의적 반미학성이 볼셰비키에 의해 정치적 해악으로 간주되는 일차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대중과 유리된 나 는 작품의 주를 이루는 희생, 사랑, 자살 모티브와 관련하여 더욱 비대한 자아로 발전하며 끊임없는 나 의 분신들을 생성하고, 현실에 대한 아이러니는 극대화된다. 이 점을 들어 피얀느 이흐(М. Пьяных)는 혁명 이전 시기를 마야코프스키 삶이라는 전체 비극의 에필로그 부분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3) 마야코프스키 창작의 분기점으로서의 혁명 이후 마야코프스키의 창작은 정치적 색채를 띠면 서도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마야코프스키 에 의해 결성된 단체 레프 이다. 레프 미학의 반서정성과 반시학성, 저널리즘에 대한 지향에 그로이스와 균터는 파시즘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치의 미학화 를 규정하는 벤야민의 용어를 들어 아방가르드와 스탈린주의의 관계와 사상적 본질을 설명한다 См Гюнтер Х Тоталитарное государство как синтез искусств Соцреалистический канон СПб С Гройс Б Указ соч С Пьяных М. Трагический ХХ век в зеркале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СПб., С 참조.

3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37 서 기인한 선동, 사회 정치 평론 등 사실의 문학 은 흘례브니코프와 크루쵸늬흐(А. Крученых) 등 미래주의자들의 진지한 시학적 의미로서의 그 자체로서의 말 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동시, 포스터와 광고작업은 동시대인들 뿐 아니라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문 학적 측면에서 마야코프스키 후기창작의 시학적 변질이 이야기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혁명 이후, 특히 1920년대 마야코프스키 창작의 또 다른 형식은 바로 풍자였다. 소시민과 관 료주의라는 소비에트의 견고한 일상의 체계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그리고 그로 인한 프롤레타 리아 작가동맹(РАПП) 의 비판은 마야코프스키와 당국간의 불화와 고립을 가속화시켰다. 특히 마야코프스키의 1930년 풍자극 목욕탕 (Баня) 상연의 실패는 마야코프스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되어왔다. 풍자의 대상이 모호하면서도 소시민들의 부르주아적 근성에 대해 한바탕 웃을 터뜨릴 수 있었던 1929년 풍자극 빈대 (Клоп)와는 달리, 목욕탕 에 서는 관료주의에 대한 조롱이 현정부 자체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었고, 그 풍자의 대상이 너무 도 명백했기에 관객들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센 비판의 목소리 역시 라프 의 몫이었으며, 그 리더였던 리베진스키(Ю. Либединский)는 당기관의 관료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과장,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가능한 위험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결국 마야코프스키의 라프 가 입은 미래주의적 보헤미안 시인과 정권의 신임장 을 소유한 소비에트 시인 사이의 존재론적 본 질에서 오는 극단적 딜레마의 결과였다. 마야코프스키의 오랜 지인인 예술가 안넨코프(Ю. Анне нков)는 1929년 파리 여행길에서 있었던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회상한다 4) : 마야코프스키는 내게 언제 모스크바로 돌아갈 것인지를 물었다. 난 예술가로 남고 싶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마야코프스키는 내 어깨를 툭 쳤고, 갑자기 우 울한 얼굴을 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돌아갈 거야... 난 이미 시인이기를 포기했으니까. 그 리고 나서 실로 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마야코프스키는 울음을 터뜨리고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 리로 말했다. 이제 난... 관리일 뿐. 5)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창작에서 보듯 그는 소비에트 정권을 무조건적 인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정권의 충복도 아니었으며, 흔히 혁명 시인 으로 유명한 마야코프스키가 볼셰비즘을 무조건적 으로 수용한 것도 아니었다: Принимать или не принимать? Такого вопроса для меня (и для других москвичей-футуристов) не было. Моя революция.(1: 25) 수용하느냐 마느냐? 그런 질문은 내겐(모스크바 미래주의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 의 혁명일 뿐이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루나차르스키 등 당대의 정치 인사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시인을 정치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이에 정치와의 관계에서 능숙할 수 없었던 마야코프스키는 결코 정치를 향 유한 것이 아닌 정치적 배역에 의해 과도하게 이끌렸던 것이다. 역시 레닌에 대한 서사시 블라 지미르 일리치 레닌 (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은 권력자의 사후에 발표됐으며, 이오십 비사리 오노비치 스탈린 또한 결코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년 이미 소비에트 문학의 헤게모니는 라프 에게 있었고 이러한 종속적 문학상황에서 마야코프스키기 해외 여행을 자주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Константинов С. Отвергнутый футурист: Почему погиб В. Маяковский // Независимая газета, 2000, 15 апрел я, C. 11.

4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 죽음 - 우연성과 합법성의 경계에서 1930년 4월 한 발의 총성이 러시아 문화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꾸준히 언급되어왔다. 이는 시 인으로서의 존재론적 가치와 정권의 하수로서의 시인의 실존 사이에서 천재적 개인은 결국 자 신의 재능을 재물로 국가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소비에트 시대상에 대한 증명이 며, 문화적으로는 아방가르드의 종말임과 동시에 러시아 문화의 공백이자 오명으로 자주 평가받 아왔던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개막을 알린 총성이라 하겠다.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가 두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음을 밝히며, 그의 자살을 가장 좋지 못한 조건 하에 닥쳐온 만성병 6)이라 규정한다 년에 이르는 마야코프스키의 초기작품 등골의 플루트 (Флейта-позвоночник)와 인간 (Человек)에서는 이미 자살을 예견하 는 시구는 몇차례 발견된다: Все чаще думаю - / не поставить ли лучше / точку пули в своем конце. / Сегодня я / на всякий случай / даю прощальный концерт.(1: 199)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 나의 말년에 총알의 마침표를 / 찍는 것이 낫지 않을까. / 오늘 나는 /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 고별연주회를 제공할 것이다. А сердце рвется к выстрелу,/а горло бредит бритовою.(1: 255) 심장은 총알을 향해 달려 나가고, / 목구멍은 면도날에 몰두한다. «Она Маяковского тысячи лет: / он здесь застрелился у двери любимой». / Кто, / я застрелился? / Такое загнут!(1: 269) 천여 년간 마야코프스키 거리였습니다. 그는 연인의 문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어요. 누가? 내가 권총자살을? 그런 엉터리같은 소리를! 권총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외에도 마야코프스키 창작에서 죽음의 모티브는 비대화된 서 정적 자아의 내면의 중심에 놓인다. 나 와 대중,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여일하게 지속되는 아이 러니와의 자살의 유희 7)는 어찌 보면 시인의 존재와 시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도구였 다. 한계에 다다른 주체의 자기 파괴이자, 이는 신을 상실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자유 8)로서 의 극단적 아이러니는 시인을 삶의 시학화 과정, 즉 자발적 죽음으로 이끈다. 이는 작품과 작 가의 관계에 있어 작품의 영원성을 위해 자신의 작가를 살해할 권리를 획득하는 창작물 9)과 독자의 탄생을 위해 작가의 죽음으로 지불하는 10) 예술가와 창작에 관한 포스트모던적 사유와 도 맞닿아있다. 시와 일상의 경계를 제거하여 자신의 삶을 시화하고 시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기 념비를 남기려했던 시인에게 있어서 과대한 서정성과, 그로인한 비극성, 자살 자체가 근본적 인 시적 도구였다. 개혁, 개방 이후 마야코프스키의 개인적 삶과 창조적 위기, 그리고 죽음에 관련된 동시대인들 Брик Л. Пристрастные рассказы. М., С Чхартишвили Г. Писатель и самоубийство. М., С Цит по Зенкин С Вступительная заметка к переводу Г Бергельсоном книги Д Лукача Теория романа НЛО С Фуко М Что такое автор Воля к истине по ту сторону знания власти и сексуальности М С Барт Р. Избранные работы: Семиотика. Поэтика. М., С. 391.

4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39 의 회상록과 문건이 다수 출판되었고,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재평가의 분위기와 더불어 그에게서 정치적 정전화로 연유한 명문집의 윤기(Хрестоматийный глянец) 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동반되 었다. 비밀문서보관소(Спецхран)에 숨겨져 있던 동시대인들의 회상록이 다수 출판되면서 마야코 프스키에 대한 전기의 재구성이 시도되어왔고, 더불어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혁명이라 는 정치적 맥락과 결부되어 정전화되었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신화성의 막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다. 특히,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에 관련된 자료 대부분은 자살의 원인과 죽음에 대해 다소 추상적으로 언급하거나 그 의혹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뿐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11) 여타의 자료와는 달리 저널리스트 스코랴틴(В. Скорятин)의 1988년 저서 마야코프스키 죽음의 비밀 (Тайна гибели Маяковского)은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 아닌 타살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상세한 증거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사회 문화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학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의 원인을 차치하고도 자살로 초점이 맞춰진 몇 가지 직접적 정황은 이미 공식화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1929년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프랑스행 비자 거부이다. 이는 타티아나 야코블례바(Т. Яковлева)와의 결혼을 위한 것이었지만, 마야코프스키는 그 이전 릴리 브릭의 소개로 만나게 된 베로니카 폴론스카야(В. Полонская)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파리행의 의미는 정황상 이미 부차적인 것이 된다. 또한 자살이라는 결론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마야코프스키의 유서와(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목욕탕 에 대한 혹독한 비평, 그리고 베로니카 폴론스카야와의 불화(그녀는 마야코프스키가 죽기 바로 전까지 함께 있었다) 등을 들 수 있다.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관련하여 스코랴틴이 주목하는 점은 릴리 브릭의 특별한 역할과 그녀 가 추구했던 목적에 대한 규명이다. 스코랴틴이 자신의 책에서 제시하는 타살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릴리브릭의 측근이자 국가보안부(ОГПУ)의 핵심간부 아그라노프(Я. Агранов)의 행적 년 공개된 마야코프스키의 데드마스크 3. 시신 부검기록-총상의 방향 4. 책대출원의 증언 브릭 부부와 체까(ЧК)의 관계로 판단한 때, 브릭 부부가 마야코프스키의 임박한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스코랴틴의 유일한 결론이다. 비록 범인에 대한 지목은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음에도, 저자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마야코프스키 죽음의 중심에 누가 있었으며, 과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원했고, 결국 누구의 이익이었는지는 명확해졌으며, 비극적 사건의 진실, 즉 마 야코프스키가 살해되었다는 사실, 또한 시인의 자살에 대한 소비에트 공식신화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Скорятин В. Тайна гибели Владимира Маяковского. Новая версия трагических событий, основанная на последних находках в секретных архивах. М.: Звонница-МГ, О трагическом самоубийстве Маяковского и обстоятельствах его гибели см.: Маслов А. В. Петля и пуля. Исследование обстоятельств гибели Сергея Есенина и Владимира Маяковского. СПб.:ИНАПРЕСС, 2004; «В том, что умираю, не вините никого»?..следственное дело В. В. Маяковского. Документы. Воспоминания современников. М., 2005; Сарнов Б. Маяковский. Самоубийство. М., 2007.

4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4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4. 복권 - 릴리 브릭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창작에 있어서 혁명 외에도 사랑 의 테마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마 야코프스키의 연인들 또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또한 그의 작품은 상당부분 특정 여인 에 헌사되었다. 동시대의 문학가이자 회상록 작가인 긴즈부르그(Л. Гинзбург)는 심지어 마야코프스 키에게 사랑을 제외한 그 어떤 외적인 전기가 없음 12)을 지적한 바 있다. 작품 속에서 시적화 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때 여리고 아이 같은 존재가 되며, 이별 은 마야코프스키에게 극대화된 고통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여인과의 이별 은 세계의 파멸과 동일시되고, 현실의 부조 리와 혁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자신의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로 잘 알려진 릴리 브릭과의 공식적인 이별 후에도 마야코프스키 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굵직한 연애사를 이어간다. 릴리 브릭과의 연인관계를 청산했던 1925 년, 마야코프스키는 국립출판사(ГИЗ)의 편집위원이었던 브류하넨코(Н. Брюханенко)를 만났으며, 1927년 릴리브릭의 동생이자 후에 루이 아라공의 아내가 된 엘자(Эльза Триоле)로부터 프랑스 이민자 타티야나 야코블레바를 소개받고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프랑스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한 릴리 브릭은 후에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모스크바 예술극장(МХАТ)의 여배우 베로니카 폴론스카야를 마야코프스키에게 직접 소개한 사실13)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마 야코프스키의 수많은 전기 및 동시대인들의 회상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25년 마야코프스키의 미국 여행 후 그와의 공식적 연인관계를 청산했음에도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의 주변, 그의 삶의 중심에 끊임없이 가담하며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권력 14)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릴리 브릭에 대한 마야코프스키의 사랑이 평생에 걸쳐 지속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릴 리 브릭에 대한 마야코프스키의 일방향적 구애는 아니었다. 이 시기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 에 보낸 편지에서 공공연해진 브류하넨코와의 관계와 결혼소식에 대해서도 단호한 거부의사를 밝혔으며,15) 베로니카 폴론스카야를 소개한 시점 또한 타티아나 야코블레바에 대한 마야코프스 키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이었다(타티아나는 릴리 브릭을 제외하고 마야코프스키가 시를 헌사한 유일한 여인임을 상기하자). 폴론스카야는 릴리 브릭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그녀는 마야코프스키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로 영원히 남고 싶어 했다. <...>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발로쟈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는 귀국한 후 주변인들에게 내게 헌사하지도 않은 새로운 시를 낭송해주기 시작했지요. 내게 보고도 없이 말이죠. 두 번째는 내게 관심을 주지 도 않고 내가 있는데도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 옆에만 앉아 당신을 만지려고만 했지요. 16) 마야코프스키와 관련된 수많은 염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창작에 있어서 릴리 브릭에 대 "У Володи не было внешней биографии, он никогда ни в чем не участвовал. Сегодня одня любовная истори я, завтра другая - это его внешняя биография." Гинзбург Л. Записные книжки. Воспоминания. Эссе. СПб., С 마야코프스키의 연애사에 있어서 또 한 명의 여인이 존재하는데 그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만났던 미국국적의 엘리 존스가 바로 그녀이고 둘 사이에 딸 엘레나 Патрисия Томпсо н 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버지의 미국여행에 관한 회상 맨하튼에서의 마야코프스키 사랑의 역사 Маяковск ий в Манхэттэне история любви 의 저자이기도하며 현재 뉴욕 러 미문화센터 Наследие 에서 활동하고 있다 Катанян Г. Азорские острова // "Володя, до меня отовсюду доходят слухи, что ты собираешься жениться. Не делай этого..." Цит. по кн. Сар нов Б. Указ. соч. С Полонская В. Последний год // Современницы о Маяковском

4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41 한 우선순위 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여전히 마야코프스키 곁에 위치하던 릴리 브릭의 형상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왔다. 1990년대 소 비에트 문화 전반에 대한 재평가의 분위기 하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소비에트 시기에 도 이러한 움직임은 감지된 바 있다. 이는 소비에트 시기 공산주의와 반유대주의적 민족주의의 경향에서 기인하는데, 유대인 혈통의 릴리 브릭보다는 러시아 혈통인 타티아나 야코블레바를 마 야코프스키의 삶에 포함시키려했고, 마야코프스키 박물관은 마야코프스키가 릴리 브릭에게 개인 적으로 선물한 반지 17) 의 반납을 공식적 으로 요구하기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마야코프스키 사후 몇 년간 지속됐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소비에트의 비판적 시각이다. 마야코프스키의 측근이었던 갈리나 카타냔은 시인의 자살 이후 5년간 존재했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소비에트 사회의 냉담한 반응에 대해 생전 그를 증오했던 이들은 이전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서 마치 시인에 대한 기억 상실을 종용하는 듯함 18) 을 지적한다. 이는 소비에트 뿐 아니라 망명 시인이나 비평가의 부정적 평가와도 조우하는데, 현대성의 부재 와 시대착오적 시적 무능 을 들어 마야코프스키를 격렬하게 비판한 소비에트 시인이자 비형가인 셴겔리(Г. Шенгели)의 1927년 마야코프스키 전신 (Маяковский во весь рост)은 대표적인 마야코프스키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19) 또한 이 논문은 첫 출판 이후 약 60년간 출판되지 못하다가 마야코프스키의 소비에트적 색채 의 혐의를 들어 시인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가 극대화됐던 1990년대 초반 문학의 문제들 (Вопросы литературы)을 통해 출판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전반적 어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야코프스키적 분위기는 단지 소비에트 뿐 아니라 반소비에트 망명작가의 비평에게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부닌(И. Бунин)은 1937년 베를린에서 완간된 저주받은 시절 (Окаянные дни)에서 레닌과 마야코프스키를 러시아의 폴리페모스(Русский Полифем), 멍청한 폴리페모스(Идиот Полифемович) 등으로 희화화하며 반소비에트적, 반혁명적 사상을 여과 없이 표출한다. 20) 소비에트 시기 이 책의 출판 또한 전면 금지되었다. 혁명 시인으로서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망명시인 호다세비치(В. Ходасевич)의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에 바쳐진 추도문 마야코프스키에 관하여 (О Маяковском)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마야코프스키는 시의 혁명가도 아니었던 만큼 혁명 시인도 아니었고, 그의 진정한 파토스는 파멸, 즉 약하고 힘없는 모두에 대한 모욕 이며, 그가 혁명으로 이끌렸던 것은 그 안에서 파멸의 외침을 들었기 때문 21) 이라 지적한다. 이러한 점을 들어 졸코프스키(А. Жолковский)는 호다세비치의 추도문을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극단적 모델(крайние модели) 의 전형이라 규정한다. 22)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문화적 재평가의 분위기가 감지되던 1990년 카랍치예프스키(Ю. Карабчиевский)의 마야코프스키의 부활 (Воскресение Маяковского)이 러시아에서 출판된 점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3) 마야코프스키가 릴리 브릭에게 선물한 반지의 안쪽에는 세 문자 즉 Л Ю Б 가 적혀있는데 이는 Лиля Юрье вна Брик 의 약자를 의미함과 동시에 반지의 원을 따라 읽을 경우 ЛЮБЛЮБЛЮ 의 반복이 된다 또한 이 세 문자는 년 리시츠키 Эль Лисицкий 에 의해 베를린에서 출판된 마야코프스키 시집 Для голоса 의 표 지에 동일한 문양으로 인쇄되기도 한다 Катанян Г. Азорские острова // Там же. Шенгели Г. Маяковский во весь рост // Вопросы литературы С Бунин И.А. Окаянные дни. М., С. 57. Ходасевич В. О Маяковском // Литературные статьи и воспоминания. Нью-Йорк, С Жолковский А.К. О гении и злодействе, о бабе и всеросийском масштабе (Прогулки по Маяковскому) // Избр анные статьи о русской поэзии: инварианты, структуры, стратегии, интертексты. М., С 년 뮌헨에서 출판된 카랍치예프스키의 저서는 년 파리에서 달리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카랍치옙

4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4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네프 체제의 소멸과 더불어 모든 출판 기획은 국가정책에 종속되었고, 그 내부에는 마야코프 스키의 생전 그에게 반대하던 인사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마야코프 스키의 전집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논문 또한 출판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의 작품이 문학교과 서에서 조차 삭제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마야코프스키는 정치 및 문학에 관련된 정부기관에 의 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탈린은 자신의 측근이자 1년 후 내무 인민 위원장으로 임명된 예조프(Н. Ежов)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마야코프스키를 최고의 재능있는 시 인 으로 평가한다. 다음은 스탈린 서한의 전문이다: Тов. Ежов, очень прошу вас обратить внимание на письмо Брик. Маяковский был и остается л учшим, талантливейшим поэтом нашей советской эпохи. Безразличное отношение к его памяти и произведением - преступление. Жалобы Брик, по-моему, правильны. Свяжитесь с ней или вы зовите ее в Москву. Привлеките к делу Таль и Мехлиса и сделайте, пожалуйства, все, что упу щено нами. Если моя помощь понадобится, я готов. 24) 예조프 동지, 브릭의 편지에 주목해주길 진심으로 바라오. 마야코프스키는 우리 소비에트 시대에서 최고의 시인이며 가장 재능있는 시인이었으며 또 그렇게 남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과 그의 작품 을 대하는 데 있어서의 냉담한 태도는 죄악이다. 내 생각에 브릭의 탄원은 옳소. 그녀와 연락을 취 하거나 그녀를 모스크바로 부르시오. 탈리와 메흘리스를 소환하고 우리가 놓친 모든 것을 해결하시 오. 만일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난 준비가 되어 있소. 스탈린의 서한은 1935년 12월 17일 프라브다 (Правда)지에 발표됐으며 바로 같은 날 모스크 바 소재 승리광장은 마야코프스키 광장으로 명명된다. 물론,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스탈린의 갑 작스런 평가와 복권에 대해서는 스탈린의 정치적 입장이나 여러 가지 이익관계와 관련하여 수 많은 의혹이 제기된다. 흥미로운 점은 마야코프스키의 복권과 그의 사후 운명의 중심에 바로 릴 리 브릭이 있다는 사실이다.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 사후 5년간의 상황을 진단하며 1935년 11월 뻬쩨르부르크 군 사령 관이자 자신의 남편인 프리마코프(В. Примаков)의 도움으로 스탈린에게 탄원서를 전달한다. 스 탈린에게 보내는 릴리 브릭의 탄원의 요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마야코프스키 시는 결코 진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강력한 혁명적 무기로서 독창적이며, 그 관심은 매년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책의 출판을 허용해 달라는 것, 둘째는 마야코프스키 도서관 개장의 필요성과 승 리광장 의 마야코프스키 광장 으로의 개명에 대한 요청이다. 스탈린의 서한이 바로 이 탄원서에 대한 응답이 었다. 스탈린에게 보내는 릴리 브릭의 탄원의도를 밝히기 전에 소비에트 정권 하에 서 릴리 브릭의 편지는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언급해 둔다. 이는 단순히 당대 정권의 정 치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브레즈네프 시기 소비에트 비평가 사르노프(Б. Сарнов)는 릴리 브릭의 편지를 Вопросы литературы 에 스탈린의 편지와 함께 출판할 목적으로 그녀에게 접촉 하지만, 그녀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이를 거절한다: 나는 스탈린의 도움을 빌어 정당함을 해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마야코프스키의 도움으로 스탈린을 변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25) 스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야코프스키를 종교와 무신론의 경계에 위치한 미신의 시인 으로 그 주된 모티브의 양극단을 모욕에서 증오로 불평에서 복수로 고통에서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년 소련에서 출판된 후 마야코프스키 연구에 있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Цит. по кн.: Сарнов Б. Указ. соч. С. 16. Катанян В Распечатная бутылка 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С

4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43 릴리 브릭의 답변에서 스탈린과 자신, 그리고 마야코프스키 사이에 존재하는 내밀한 개인적, 정치적 맥락을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마야코프스키의 복권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릴리 브릭은 탄원서의 서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시인 마야코프스키 사후 시의 출판과 그에 대한 기억의 영속과 관련된 모든 일은 제게 집중되었습 니다. 그에 대한 자료문서, 초고와 수고, 기록수첩, 그의 모든 물건은 제게 있습니다. 저는 그의 출 판물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자료나 정보, 사진을 구하기 위해 저를 찾곤 합니다. 26)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한다. 어떻게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의 모든 유산을 소유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은 마야코프스키가 사망하기 이틀 전(1930년 4월 12일)에 쓰 인 유서 모든 이들에게 (Всем)에 있다: Лиля - люби меня. Товарищ правительство, моя семья - это Лиля Брик, мама, сестры и Вероника Витольдовна Полонская. Если ты устроишь им сносную жизнь - спасибо. Начатые стихи отдайте Брикам, они разберутся.(13: 168) 릴랴, 나를 사랑해주오. 정부 동지여, 나의 가족은 릴랴 브릭, 엄마, 누이들, 그리고 베로니카 비톨 도브나 폴론스카야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에게 변변찮은 삶이나마 제공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 요. 이미 집필을 시작한 시는 브릭 부부에게 건네주면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요.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가 평생을 사랑했던 여인이기는 하지만 그 어떤 공식적 가족이 아 니었다. 그녀의 이름이 유서의 맨 앞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유산을 릴리 브릭이 상속받 았다는 사실만을 감안해볼 때 의심의 여지는 충분하다. 27) 스코랴틴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유서는 시신 발견 즉시 브릭 부부의 측근이자 국가보안부 핵심인사인 아그라노프 의 손에 넘어가고 이는 이튿날 프라브다 지에 게재될 뿐, 1958년까지 극비문서로 국가보안부 정치국의 극비문서로서 공개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스코랴틴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유서 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혹과 위조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이와 관련, 최근에 마야코프스키 박물관에 의해 출판된 마야코프스키의 자살에 대한 조사문건에 관한 책의 서문에서 현 마야코 프스키 박물관장 스트리쥐네바(С. Стрижнева)는 사건번호50호(Дело 50) 에 포함된 마야코프스 키 유서의 인쇄본과 실제 원본과의 차이를 지적하는데, 그 결정적인 증거로 마야코프스키 사망 직후 프라브다 에 출판된 아그라노프의 인쇄본에서 발견되는 릴랴 와 브릭 사이의 쉼표를 든 다. 이는 릴리 브릭 외에 또 한명의 가족 구성원인 오십 브릭이 포함됨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 국 상속할당에 있어서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28) 그렇다면 스탈린의 답장, 즉 마야코프스키 복권의 이유는 무엇일까? 스탈린은 1937년 프리마 코프를 비롯한 정치범들을 처형할 당시 그 가족들의 체포과정에서 릴리 브릭을 그 명단에서 제 외시키며 마야코프스키의 미망인은 건드리지 않겠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29) В том что умираю не вините никого Следственное дело В В Маяковского Документы Воспоминания с овременников С 실제로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 유산의 을 상속받았고 가족은 폴론스카야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 다 ЦГАЛИ СССР Ф оп ед хр 유산분배에 대한 릴리 브릭과 폴론스카야의 논쟁에 대해서는 Та м же С Там же С Сарнов Б. Указ. соч. С. 9.

4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4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사르노프는 소비에트 시인 고르눈그(Л. Горнунг)의 언급에서 그 합법성을 발견한다: 윗선에선 좋아 와 블라지미르 레닌 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고, 블라지미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주인 에 대한 그러한 형식의 찬양을 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페르시아 왕들의 궁중에서 궁정시인들이 과장된 찬사로 그들의 위엄을 찬양해야했던 시기에 동방에서 수용 되었다. 30) 이는 마야코프스키가 1924년 블라지미르 일리치 레닌 (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을 썼을 당 시, 스탈린은 이미 자신의 궁정시인으로서 마야코프스키를 염두에 두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1935년 이미 그와 같은 계획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사르노프는 마야코프스키의 이전의 작품에 서나마 현재적 권력인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려했던 스탈린의 선동목적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마 야코프스키의 시에는 수많은 정치인들과 저명인사들의 성이 각운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야코프스키 작품에서 스탈린 의 성은 블라지미르 일리치 레닌 과 1925년의 시 집으로! (До мой!)에서 두 차례 상기된다: -Вас /вызывает/ товарищ Сталин Я хочу,чтоб к штыку/приравняли перо Направо / третья, / он / там. - С чугуном чтоб/ и с выделкой стали-товари щи, / не останавливаться! / Чего стали? работе стихов, / от Политбюро, В броневики / и на почтамт.(6: 281) чтобы делал / доклады Сталин.(7: 94) 사르노프에 따르면, 첫 번째 시에 대한 스탈린의 태도는 1919년 미국의 공산주의 성향의 저 널리스트 존 리드의 러시아 혁명에 관한 저서 세계를 뒤흔든 열흘 (Десять дней, которые пот рясли мир)과 관련이 있는데, 레닌이 그 서문에서 10월 혁명에 대한 진실된 묘사라 인정했던 이 저작에서 정작 스탈린은 언급되지 않았고, 그 대신 트로츠키가 주요인사로 등장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수정의 차원에서 트로츠키와 동등하게, 아니 자신이 그 보다 앞서 등장하는 마야코프스키의 시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숙청 이후 정치인들의 성은 각운에서 대부분 제외되고 스탈린 만 각운으로 유일하게 남게 된다는 점도 스탈린의 이러 한 계획에 대한 위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사르노프는 로마에서 교황이 직접 황제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즉위식의 전통과는 달 리 나폴레옹은 로마교황을 직접 파리로 불러들였고 왕관을 스스로의 머리에 직접 썼던 나폴레 옹 즉위식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이를 스탈린의 그것에 비유한다. 사르노프에 따르면, 스탈린 또한 로마교황 참석이 필요로 했고, 그 역할을 자신의 자서전의 편찬을 맡은 고리키(М. Горьки й)가 해야 했으나 이는 어떤 이유에선가 실현되지 못했고, 그 자리를 마야코프스키가 대신했으 며 스탈린의 이름이 상기되는 그의 시는 스탈린 우상화에 대한 법적승인 의 형식 중 하나가 된 것이다. 31) 마야코프스키는 푸쉬킨에 바치는 시 기념시 (Юбилейное)(1924)에서 이렇게 쓴다: Я люблю вас, / но живого, / а не мумию. / Навели / хрестоматийный глянец.(6: 54)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명문집의 윤기가 / 나는 / 미이라가 아닌 / 살아있는 당신을. Цит. по кн.: Там же. С. 17. См.: Там же. С

4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45 스탈린에 의한 복권과 소비에트 정전화는 마야코프스키 스스로가 가장 경계하던 명문집의 윤 기 로 만들어버렸고, 문학사에서 시인으로부터 이를 벗겨내는 작업은 결국 반세기가 지난 1980 년대부터 시작됐다. 바로 여기에 삶 자체가 비극이었던 마야코프스키의 또 다른 비극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스탈린의 복권을 염두에 둔 파스테르나크(Б. Пастернак)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마치 예카테리나 시대의 감자처럼 마야코프스키를 강제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죽음이었다. 32) Пастернак Б Люди и положения Собр соч в т Т М С

4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4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참고문헌 Барт Р. Избранные работы: Семиотика. Поэтика. М., Брик Л. Пристрастные рассказы. М., Бунин И.А. Окаянные дни. М., «В том, что умираю, не вините никого»?..следственное дело В. В. Маяковского. Документы. Воспоминания современников. М., 2005 Гинзбург Л. Записные книжки. Воспоминания. Эссе. СПб., Гройс Б. Утопия и обмен. М., С. 14. Гюнтер Х. Тоталитарное государство как синтез искусств // Соцреалистический канон. СПб., С Жолковский А.К. О гении и злодействе, о бабе и всеросийском масштабе (Прогулки по Маяковскому) // Избранные статьи о русской поэзии: инварианты, структуры, стратегии, интертексты. М., С Зенкин С. Вступительная заметка к переводу Г. Бергельсоном книги Д. Лукача "Теория ром ана" // НЛО Катанян В. Распечатная бутылка. 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Азорские острова // Константинов С. Отвергнутый футурист: Почему погиб В. Маяковский // Независимая газета, 2000, 15 апреля, C. 11. Маслов А. В. Петля и пуля. Исследование обстоятельств гибели Сергея Есенина и Владимира Маяковского. СПб.:ИНАПРЕСС, Маяковский В.В. Полн. собр. соч.: В 13 т. М., Пастернак Б. Люди и положения // Собр. соч.: в 5 т. Т.4. М., С Полонская В. Последний год // Современницы о Маяковском Пьяных М. Трагический ХХ век в зеркале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СПб., Сарнов Б. Маяковский.Самоубийство. М., Скорятин В. Тайна гибели Владимира Маяковского. Новая версия трагических событий, основанная на последних находках в секретных архивах. М.: Звонница-МГ, Фуко М. Что такое автор // Воля к истине: по ту сторону знания, власти и сексуальности. М., Ходасевич В. О Маяковском // Литературные статьи и воспоминания. Нью-Йорк, Чхартишвили Г. Писатель и самоубийство. М., Шенгели Г. Маяковский во весь рост // Вопросы литературы С

4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 2세션(13:30~15:30) 사회자: 최건영(연세대) 발표자: 1. 백승무(서울대):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2. 오원교(한양대): A.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3. 박혜경(한림대):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4. 권기배(경상대):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연구 토론자: 김혜란(고려대), 송정수(중앙대), 최진석(충북대), 김홍중(중앙대)

5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49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가지 않는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백승무(서울대) 1. 서론 인간은 시간의 주체인가? 시간을 주동적으로 지배하고, 시간을 자신의 원칙과 의지에 따라 사 용하고 있는가?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 이 유 중 하나는 시간이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며,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가치평가 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 단위부터 시작해서 1년 365일까 지 균일한 시간과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한 시간을 부여받은 것 같지만, 실상 시간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가변적이며 변성적인 것이다. 시간은 비균질적이고 변동적이며, 시간의 흐 름은 인간도, 세계도 변화시킨다. 성속의 권력이 시간 계산법과 운용법에 사활을 건 것은 이 때 문이다. 시간은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지혜가 어우러진 전장이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정착된 소비에트 시대는 과거와의 단호한 단절과 이상화된 미래의 조속 한 유입을 추구했다. 사회주의 진입을 부정하는 부르주아적 과거 집착은 현재의 발목을 잡는 구 속이고, 역사적 시간관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 가는 현재의 시간은 생산과 건설의 과업에 대 한 장애였다. 또한 현재의 고통을 저당잡고 앞당겨놓은 미래에 대한 안티유토피아적 예견은 불 길하고 불온한 반역으로 간주되었다. 한마디로 과거의 부정과 미래의 예찬은 소비에트의 시간개 념을 규정하는 확고불변의 도그마였다. 소비에트의 주류 시간관과 불가코프의 두 희곡 극락 과 마지막 나날들 속에 드러나는 시 간관념 간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본 논문에서는 시간의 유동성과 상대성, 비균질성을 전제로 한 다. 극락 의 주인공은 미래를 거부하고 과거로 회향한다. 에스컬레이터의 역보행처럼 시간은 흐르지만 미래는 오지 않는다( 不 來 ). 마지막 나날들 에서는 과거를 절대화, 신화화 하여 초시 간적 기념비 에 인각한다. 과거는 가지 않고( 不 去 ) 현재와 동행한다. 2. 소비에트의 시간: 앞으로! 빨리! 1) 시간의 경제학, 경제학의 시간 1920년대부터 소비에트 예술의 창작방법론으로 등장하여 1932년 공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 즘(이하 SR로 약칭)의 첫 번째 창작원칙은 현실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혁명 발전에 정확히 부합하여 («точно, в соответствии с конкретным историческим революционным развитием»)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정확히... 묘사 하되 혁명 발전에 정확히 부합 해야 한다는 명제는 예술창작에 있어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급격하게 이월하는 역사적 역동성을 반영/ 고려하라는 명령이다. SR은 사실의 충실한 묘사와 사회상의 정확한 반영이라는 19세기 부르주 아적 리얼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 묘사에 안주함으로써 현실의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하고 미래의 조망에 실패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혁명 발전 이 반영된 현실묘사는 기계적 사실성을

5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넘어 혁명의 이상인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시간성(시간적 운동성)의 표현을 요구한다. 현재는 느 리고 미래는 멀다. 공산주의 사회라는 미래상을 염두에 두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지향성 예술을 추구한 SR은 현재를 가속하여 미래의 도래를 단축한다. 오지 않은 미래와 더디 가는 현재 사이 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것은 혁명 발전 이라는 당위적이고 합목적인 직선 궤도에 몸을 맡김 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소비에트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시간을 구축한다. 혁명은 휘어지고 탈선 된 과거의 시간노선을 잘라내고 미래를 향한 직선항로를 개척하는 새로운 연대기이다. 혁명의 시간은 오직 앞으로만 간다. 과거와의 대화나 과거의 반복은 미래를 오염시키는 역사적 반동이 다. 마야콥스키는 낡은 것은 모조리 죽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1) 과거라는 시간 개념과 결속한 모든 가치에 대한 사형선고이다. 그리고 미래 는 곧 도래할 세계의 우주적 모델이다. 혁명은 시 간의 왕위쟁탈전이다. 참칭자를 처벌하고 미래를 옹립해야 하는 소비에트의 시간은 조급할 수밖에 없다. 소비에트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추월하고 한발 앞서 사회주의의 역사단계에 진입한 사회이다. 자본주의 이후 라는 속성 역사를 체험하는 소비에트가 현실적 난관들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은 하루빨리 공산주의 단계로 이월하는 것이었다. 시간의 징검다리를 딛고 피안으로 건너는 것이 정치적, 경 제적 물살을 이겨내는 최선이었다 년대 소비에트는 어느 때보다 빨라진 시간, 즉 잉 여 시간이 제거된 밀도 높은 압축시간을 살아야 했던 시대였다. 1930년대 노동현장에서 벌인 사회주의 생산경쟁 캠페인은 주어진 시간 내에 생산량을 초과달성해야 하는 초인적 시간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4년으로 줄이라는 스탈린 명령도 마찬가지다. 정확 한 측정으로 정량화된 일상의 시간감각을 극복하고 시간 눈금자의 단위를 좀 더 촘촘하게 재편 하라는 것이다. 단축된 시간자 끝에는 항상 유토피아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바야흐로 시간의 문제는 인 민의 생활향상과 국가의 공적 사명을 관장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공산주의 완성은 시간의 문 제였다. 사회주의 범선에 승선한 이상, 시간의 순풍에 몸을 맡기면 공산주의는 온다. 공산주의 도래는 이념이나 제도의 성과가 아니라, 역사발전단계의 시간적 순서에 따른 필연이었기 때문이 다. 그래서 공산주의 예상시기를 선언하는 것은 국가지도자의 의무이자 고유한 권한이었다. 레 닌은 년경에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약속했고, 2) 스탈린은 스스로 공산주의의 모세가 되고자 했으며, 3) 흐루쇼프는 196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회에서 1980년에 공산주의 의 물적 토대가 구축될 것이라 선언했다. 4) 흐루쇼프의 선언을 오류라 인정한 브레즈네프는 공 산주의 대신 '선진 사회주의 (развитый социализм) 5) 란 타협적 개념을 제시하면서 공산주의 도 래를 확신할 수 없음을 은연중에 시인한다. 인민의 희망을 담보로 시간 고문을 하는 이러한 선 1) 낡은 것은 죽여야 한다. / 해골의 재떨이에 갖다버려라! / 낡은 것은 야수같이 분쇄하여 / 씻어내고, / 새로운 신화를 / 온 세상에 울려퍼지게 하자. / 시간-장벽을 / 두 발로 깨부수고 / 천 개의 무지개를 / 하늘에 수놓 자. (Стар - убивать. / На пепельницы черепа! / В диком разгроме / старое смыв, / новый разгр _о_мим / по миру миф. / Время-ограду / взломим ногами. / Тысячу радуг / в небе нагаммим.) 중에서. Маяковский В.В. Соб. соч. в 8 т. Т.2. М.: Правда, С.61. 2) Поколение, которому теперь 15 лет <...> через лет будет жить в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м об ществе. Ленин В.И. «Задачи союзов молодёжи» // Речь на III Всероссийском съезде Российского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го Союза Молодежи 2 октября 1920 года. Ленин. ПСС., М., 1963, Т.41. С ) 그래서 스탈린의 사망과 그의 격하운동은 마치 유토피아의 종말처럼 간주되었다. См.: Геллер Л. Нике М. Утопия в России, СПб.: Гиперион, 2003( 4) «Нынешнее поколение советских людей будет жить при коммунизм е!»( 5) См.: Геллер Л. Нике М. Утопия в России, СПб.: Гиперион, 2003.

5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51 언들은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도구화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을 물신화하여 모든 가치를 시간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소비에트가 공산주의를 목표로 하고, 공산주의가 시 간 종속적이라면, 소비에트는 거대한 시간계측기에 다름 아니었다. 시간은 곧 국가의 다른 이름 이었다. 이러한 국가-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스탈린의 달력개혁이었다. 프랑스혁명 달력에서 보듯이 시간의 도량형이자 주기율인 달력의 개혁은 세계관, 이상, 일상, 지배체제 전 부를 개조하는 거대한 국가사업이다. 혁명가들은 정권의 시간 체제를 장악하는 데 대게 투쟁의 초점 6) 을 두었던바, 레닌이 차르와 정교회의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서구의 그레고리력을 도입 한 것은 일면 타당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달력개혁은 오직 경제적 이유, 즉 일요일을 없애고 365일 기계를 가동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시간의 경제학을 위해 시행되었다. 7) 공 산주의 유토피아를 경제학으로 환원시킨 이 달력개혁은 시간지배가 권력유지와 정당성 확보에 필수적인 능력임을 보여준다. 2) 오래된 미래, 오래된 과거 예술은 이런 시간감각을 앞장서서 주도했다. 미래주의의 속도감 넘치는 시어와 최적화된 단어 사용법은 예술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도 속도전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산문장르에 있어서 장 편보다는 단편이 우세한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치 않다. 심지어 19세기 장편소설의 무대화 작 업도 시간적 차원에서는 단축과 절약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자움어의 출현도 논리의 의미형성속 도를 견디지 못한 결과이다. 논리의 대로를 벗어나 좁고 거친 지름길로 앞질러 가려는 시간적 욕망이 발아한 것이다. 논리란 의미의 질서이고, 의미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진리를 도출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자움어는 그 논리의 시간을 참지 못한다. 논리 위에(밖에/너머 에) 더 웅장하고, 더 숭고한 진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리의 사다리를 타고 그곳에 다다 를 수가, 다다를 시간이 없다. 지체와 정체에 빠진 기존 논리의 모순과 한계에서 해방된 영역이 자움어였다. 몽타주 또한 쇼트 사이에 삽입된 이물질로 인한 시간의 지체를 의미하진 않는다. 반대로 삽입 이미지는 길고 단조로운 잉여 이미지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 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의미의 도약은 시간의 경제학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빠르게 전진하는 동시대의 시간감각에 저항한다. 그는 미래를 점유하기보 다는 과거를 기억하는 사서, 소각되지 않는 원고 를 수호하는 문지기를 자처한다. 불가코프의 희곡은 현재 속에 이질적인 리얼리티를 주입하여 과거의 얼룩이 배어나오게 만드는 기억과 반 성의 변주곡이거나( 질주, 위선자들의 카발라, 마지막 나날들 ), 과거의 단절과 상실로 인해 궤도에서 탈선해버린 현재의 왜곡상( 적자색 섬, 조야의 아파트 ), 혹은 두 개 이상의 시간을 병치시켜 그 차이점과 유사성을 대조하는 그림찾기 놀이( 극락, 아담과 이브, 이반 바실례 비치 )이다. 불가코프에게 현재와 미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순수한 백지가 아니라, 과거 의 흔적 위에 덧씌워진 새로운 과거, 혹은 반복된 과거이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오히려 과거에 있다. 그의 희곡들이 몰리에르, 푸시킨, 고골,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등을 떠올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6)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117쪽. 7) 이정모, 달력과 권력, 서울: 부키, 135쪽. 주5일 시스템이 시작된 해가 1929년, 이를 보완한 주6일제 시스템 이 시작된 해는 1931년이었다. 이 새로운 달력은 부작용으로 인해 1940년 폐지된다.

5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 극락 : 오지 않는 미래 극락 (1934)에 대한 비평은 사유와 감정을 부정하는 조화 가 허구에 불과함을 고발하는 안 티유토피아적 해석이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그런 사상적, 정치적 해석은 정작 핵심 모티프인 시간이동기계(타임머신)의 문화적 맥락은 놓치고 만다. 문화사회학적 개념인 시간은 구체적으로 보이거나 드러나진 않지만 사태의 내막과 연원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문화의 결에 해당한다. 극락 은 시간이동의 과학적 가능성이나 그 논리적 인과관계에 대해 논쟁하기보다 급격하게 재 편되고 있는 시간에 대한 관념과 질서가 인간 본성과 문화의 결에 순응하는가 여부를 사유한다. 우리는 시간과 연동된 사건이나 행위를 떠올리지 않고 시간을 기억할 수 없다. 무대 위의 사 건과 행위는 시간의 외화 형식이다. 시간이 시계장치를 통해 째깍 이라는 음성적 기호나 눈금 자를 지나는 초침의 운동으로 외화되듯이 연극의 시간은 유의미한 신체적, 심리적 움직임을 통 해 행위가 사건으로 조직화되는 절차와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극락 에서 시간의 외화 형 식은 어떤 양상을 띠는가. 먼저 극락 의 미래는 우리들 처럼 기상천외한 낯선 세계가 아니라, 현재를 유추할 수 있는 멀지 않은 시간으로서 현재의 결과물 8) 로 등장한다. 멀지 않은 미래는 곧 다가올 미래(공산주의의 완성), 공상보다는 실제에 가까운 미래이다. 그런 오고 있는 미래 로부터의 복귀는 현재적 미래의 거부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것은 얼마 전에 목격한 마야콥스키 의 미래( 목욕탕, 1930) 직후의 미래라는 점에서 곧 다가올 미래 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함유 되어 있음도 예측할 수 있다. 9) 이런 논쟁의 관점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이 레인과 아브로라이다. 흔히 두 인물은 극락 의 지 루하고 몰개성적인 조건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탈출을 감행하는 주동적인 주인공으로 미화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레인은 개심장 의 프레오브라젠스키 교수보다 나을 게 없다. 그는 항상 바쁘다( Я очень занят, 382). 매순간은 인내(терпение, 383)의 연속이다. 극락 에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늘 시간에 쫓기고( мне некогда 408), 시간이 부족하다( у нас мало времени 417). 레인에게 한눈에 반한 아브로라 도 조화 를 능가하는 각성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결정은 즉흥적 변덕( я нем ного капризна. 391)이나 괴짜 기질(выродок, 403)에 가깝다. 그녀는 위험천만한 모험과 비행 ( Я хочу опасностей, полетов! 403)을 위해 과거로 떠나지만, 이반 뇌제의 시대나 레인이 거 주하는 1930년대가 그녀를 반겨줄 것 같지도 않고, 그녀가 이에 제대로 적응할 것 같지도 않 다. 레인과 함께 체포되어 경찰서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은 조야의 아파트 의 피날레를 떠오르 게 한다. 극락 의 주인공은 목적의식 없이 맹목적인 연구에 집착하는 인간미 없는 레인 10) 이나 충동적으로 과거를 여행하고자 하는 역사학자 아브로라이기보다는 이들의 운명을 우연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시간 자체이다. 그들은 그저 시간의 희생물 (жертвы случая, 408)이다. 현실로부 터의 탈출( из-под советской власти улететь 385)도 바람직하지 않고, 미래로부터의 복귀도 이상화되지 않는다. 예술도, 감정도 없고 통제와 감시만 있는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분샤들이 우글대는 현재도 지옥(преисподняя, 404)임은 매한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가장 고약한 품성을 가진 좀도둑 밀로슬랍스키만이 체포현장에서 유유히 탈출을 한다. 11) 시계[간]도둑만이 8) Комментарии, Булгаков М.А. Соб. соч. в 5 т. Т.3. М.: Худ. Лит. С.668. 이하 쪽수만 표기. 9) 극락 에서는 목욕탕 (Баня)을 연상시키는 Банный переулок이 4번이나 등장한다. 이 작품이 마야콥스키 의 미래에 대한 응답, 즉 미래 이후의 미래 임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불가코프가 메이예르홀트의 목욕 탕 극찬으로 인해 위선자들의 카발라 와 극락 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적자색 섬 부터 이어지던 불가코프 와 마야콥스키의 관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10) 레인은 현재를 지우고자 하는 과잉된 관념의 소유자 추다코프( 목욕탕 )에 대한 패러디에 가깝다.

5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53 시간의 횡포에서 자유롭다는 설정은 극락 이 애초에 역설과 반어의 반석 위에 서있다는 사실 을 반증한다. 시간의 역설, 혹은 역설적 시간은 미래도, 과거도 가공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레인의 주장( вр емя есть фикция, что не существует прошедшего и будушего. 386)에서도 확인된다. 고도로 발달한 극락 이 마치 고대신전을 연상시키는 대목(대리석, 주랑이 있는 테라스, 원주 등)도 이 에 부합한다. 시그널을 통한 정확한 정보와 정밀시계의 정량적 시간이 유통되는 극락 은 곧 우 연이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한 시간, 질서가 파괴된 혼란한 시간으로 오염된다. 라다마노프의 시 그널이 주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인의 유입을 허용하는 장면은 시간의 정확성과 신호의 정밀성이 생명인 극락 의 조화에 이미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든 출입을 할 때는 시그널이 울리지만( Кто же может прийти без сигнала. 403), 라다마노프의 의지와 무관하게 2차례(사비치와 분샤) 외부인이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그것이다. 주어진 명령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수동적 인물 분샤는 사소한 선택마저도 힘겨워한다. 밀로 슬랍스키가 선물로 받을 시계를 고르라고 제안하자 자발적인 결정에 둔감한 분샤는 괴로움을 토로한다. 이때 너무 많은 시계 는 너무 많은 시간 으로 고쳐 읽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너무 많은 시간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군. (407). 분샤는 명령에서 벗어난 주체적 선택과 의무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예브게니 니콜라예비치! 지금쯤 경찰이 날 찾 아 난리일 거요. 난 허가증도 없이 거주지역을 이탈했단 말이오. 난 망명자입니다! 당장 날 되 돌려주시오! 409). 자신의 시간을 모조리 국가에 헌납한 분샤에게는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관 료주의의 엄격한 질서와 일상이 반복되는 균질적 시간만이 유일한 안식을 준다. 안나: 그렇군요. 재미있는 일인가요? 당신은 어떻게 하루를 보냅니까? 분샤: 매우 재미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죠. 아내가 협동조합에 나가면 저는 않아서 카드를 작성합니다. 첫 번째 할 일이 우리 동에 죽은 사람이 없나 확 인하는 거요. 누군가 죽었다는 말은 즉각 망자의 카드를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죠. 안나: (웃는다). 도통 이해가 안돼요. 밀로슬랍스키: 제가 설명해드리죠. 아침에 일어나서 카드를 작성하죠. 산 자들은 기입하고 죽은 자들은 지우고. 그리고 카드를 배포하죠. 일주일이 지나면 그걸 회수 해서 새로이 작성하고, 다시 나눠주고, 다시 회수하고, 다시 작성하고... 안나: (웃는다). 당신 농담하는 거죠! 그렇게 살면 미쳐버릴 걸요. 밀로슬랍스키: 그래서 저렇게 미쳤잖아요! (397). 주체적 시간을 상실한 분샤에게 시간의 의미는 타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비열한 도구이다: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비밀스럽게 읽어준다). 조화연구소 소장 귀하... 금년 5월 1일, 밤 12시 30분에 라다마노프의 아브로라는 물리학자 레인과 키스를 했음. 상기 물리학자와 아브로 라는 5월 3일에도 원주 옆에서 키스를 했음. 동일 아침 8시에 상기 아브로라는 상기 물리학자 와 타임머신 옆에서 키스를 했으며, 그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음: 우리 함께 도망치자... 반복해서 등장하는 시계분실 사건은 단순히 밀로슬랍스키의 도벽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가 아 님은 분명하다. 12) 시간은 항상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극락 의 운영원칙이며, 시계는 그 11) милая слава를 가진 그의 이름은 이러한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체포를 피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아메티스토프( 조야의 아파트 )와 만난다. 12) 극락 에는 총 5번의 시계분실 사건이 발생한다. 미헬손, 라다마노프(개인시계), 의사 그라베, 손님, 라다마노

5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국정원칙에 대한 동의/충성의 표식이자 극락 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도 같다. 극락 이 증정하는 최고의 선물이 초정밀시계(хронометр, 413)인 것, 그리고 극락 의 체류를 거부하는 레인이 라다마노프에게 반납하는 물건이 바로 그 초정밀시계라는 것은 시민권이자 시민의무로 서 시간이 갖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시계분실 때문에 당황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쩌다가 다들 시계[간] 때문에 미쳐버린 거죠? (398)라고 말하는 안나의 과장법은 그리 야단스럽지 않다. 사 비치는 분실 자체보다는 그 대상이 시계라는 점에 유난스러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이들 세 명을 조심하라( Бойтиесь этих трех! 404, Они опасны для нашего общества. 413)고 수차례 경고를 하는가 하면, 이들의 존재가 국가혼란을 초래하는 전염병(Эпидемия, 398) 같은 존재라고 확대해석한다( они ее(жизнь в Блаженстве-필자) нарушат. 404). 아브로라가 정확 하게 지적하다시피( Он в бешенстве, потому что потерял меня. 414) 그의 내면적 조화 가 파괴된 것, 즉 극락 의 최고 장식품( личшее укращение Блаженства 404)인 아브로라를 빼앗 겨 평정심을 잃고 상실감과 질투심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균질적이고 정량적인 극락 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온 시간 침입자 레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락 의 시간과 대척에 서있는 밀로슬랍스키의 체포불발은 미래의 시간과 현 재의 시간으로도 포획할 수 없는 그의 돌발성과 우연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연의 희생물 이 자 레인의 우연한 동행자( случайные спутники 410), 극락 의 우연한 방문객( случайный гос ть 411)인 밀로슬랍스키는 유명배우( солист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театров 388) 출신에 극장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연극적 인물( В Большом театре сейчас утренник. В буфете давка! Там с ейчас антракт! Мне там надо быть! Тоскую. 409) 13) 이다.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에 기막힌 순 발력, 마술(волшебство)의 경지에 다다른 도벽 등 규정하고 재단할 수 없는 그의 팔색조 연기 는 질서와 규칙을 거부하는 자유자재의 진경이다. 따라서 그에게 극락 은 완성과 정점을 의미 하는 삶의 피날레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휴식(антракт)에 불과하며, 현재의 시공이야말로 어 떤 판타지가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과 흥분이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유토피아이다( Б ольшой театр! К последнему действию поспеем! 419). 그가 극락 에서 지루함( Скучно мн е 407)에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하며, 14) 인도 여행조차도 그 지루함을 씻어주지 못한다. 레인: (들어온다). 당신은 왜 여기 있어요? 인도 관광하러 갔다더니. 밀로슬랍스키: 볼만한 게 없더라고. 레인: 인도에 5분도 안 있은 거예요? 밀로슬랍스키: 채 1분도 안 있었지. 레인: 아니, 재미가 없었다는 말인가요? 밀로슬랍스키: 비행선 안에서 다 얘기해주더라니까. 분샤: 뻔한 소리만 하더라고. (408). 1분 의 시간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인도 구경을 끝낼 수 있는 초고속 시대의 기술력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1분조차도 허락하고 싶지 않는 미래사회의 무미건조함에 대한 조롱이면서, 동시에 재미와 쾌락의 충족시간조차도 광속으로 끝나는 시대에 대한 야유이다. 더 프(초정밀시계)의 시계가 그것이다. 13) 아메티스토프와 세르빈스키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연극적 인물 인 밀로슬랍스키는 악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전형적인 불가코프적 광대이다. 14) 아브로라가 느끼는 변덕스러운 권태와는 이질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아브로라의 권태는 마지막 나날들 에서 나탈리야가 느끼는 지루함/지겨움에 보다 가깝다.

5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55 빨리, 더 많이 란 구호를 위해 인간성을 억압하고 다양성을 소외시키고 있지만, 정작 시간의 경 제학이 달성된 미래사회에서는 잃어버린 여유는 되찾을 수 없고, 빼앗긴 시간은 반환되지 않는 다. 시간적 축지법이 가능하다면 쾌락의 향유도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미래사회의 비전이다. 쾌락의 충족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욕망의 속도전은 오히려 탈주의 욕망만을 부 추길 뿐이다. 4. 마지막 나날들(알렉산드르 푸시킨) : 멈춰진 시간, 현재화된 과거 마지막 나날들 (1935)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의 범주화된 관념을 넘어 초시간적 신화 의 시간으로 이월하고 있다. 푸시킨의 죽음을 다루는 역사적 시간은 사건과 기록의 맥락을 초월 하여 항시적이고 반복적인 속성을 획득한다. 1837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약 20일간의 나 날들 을 다루는 마지막 나날들 은 전기가 가지는 연대기적 엄격성 대신에 추상화된 문학적 시 간을 내세우고 있다.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고 사실적 공간 설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시간설 정(저녁-밤-낮-밤-밤)만은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푸시킨 사후 백주년을 기리는 작품답게 마지막 나날들 은 위대한 시인이 영원히 사는 원리와 그 논거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여기서 시간은 낡고 쇠잔해지지도 않고, 목적을 향해 직선적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마지막 나날들 의 시간은 과거를 길어올리는 재생의 시간이자 끊임없는 반복이 이어지는 순환적 시간 이며, 음미와 회상(재음미)을 유도하는 문학적 시간이다. 마지막 나날들 을 일상적 시간감각에서 이탈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푸시킨의 시 자체에 서 나온다. 마지막 나날들 은 푸시킨을 무대 위에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서 15) 시인의 위대함보 다는 시의 위대함에 방점을 두고 있다. 위인전이라기보다 예술론이나 예술사회학이 더 어울리는 대목이다. 마지막 나날들 에는 1825년 창작된 겨울밤 (Зимний вечер)의 일부가 라이트모티 프처럼 총 5회 반복되고 있다. 특히 주제부를 구성하는 첫 시행 눈보라가 돌풍을 일으키자 / 하늘은 눈안개로 뒤덮이네. (Буря мглою небо кроет, вихри снежные крутя) 구절은 총 7회 반복되고 있다. 시의 음성적 형식인 율격은 심장 박동과 기식( 氣 息 )을 토대로 고유한 리듬을 만 들어낸다. 리듬은 소리의 고저장단강약이 빗어내는 시간적 질서이므로 시는 결국 일상적 시간에 저항하여 몸의 시간, 정신의 시간을 창출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시행이 반복적으 로 낭송되고 있다는 것은 마지막 나날들 이 일상의 균질적, 정량적 시간과는 달리, 자모의 배 치와 소리의 장단에 따라 새로이 재구성되는 미학화된 시간을 지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의 외 형인 운과 율은 의미조직을 형성하는 구조물과도 같다. 소리가 의미를 만들고, 의미는 대상을 지시한다. 눈보라치는 겨울밤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 시는 실제 바깥 날씨를 구체화하고 있다. 겨울밤 은 стихи о стихии이면서 стихия в стихах으로 변전한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눈보라를 15) 인물들은 푸시킨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정작 푸시킨은 한번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지 않는다. 푸시킨을 모습을 은닉시킨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그 시는 시인의 영이자 육 이다. 이것은 예술가의 존재론에 대한 무대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물질적 형상을 거부함으로서 무대 안과 밖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구축할 수 있으며, 시공을 초월한 실존을 향유하게 된다. 푸시킨 없는 푸시 킨 은 이미 일상과 세계 속에 편재하는 푸시킨 신화를 지시한다. 따라서 마지막 나날들 은 푸시킨에 대한 작 품이 아니라 푸시킨에 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푸시킨의 부재 는 시인에게 마땅히 거주할 장 소가 없음을 보여준다. 집도 궁정도 그의 공간이 아니다. 2막 무도회에서 실루엣만 아른거리는 그의 모습은 음모와 감시가 지배하는 무대 현실 속에서 그의 주변성과 고립성이 깊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Сзади царс кие рога, а спереди Дантесовы (484)란 돌고루코프의 대사는 이 정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5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볼 때 겨울밤 은 일상적 시간과의 길항을 넘어서 일 상적 시간을 창조하고 미학화하고 있다. 관객들이 듣고 있는 것은 겨울밤 의 한 구절이 아니 라, 바깥에서 몰아치고 있는 눈보라로 인한 바스락거림(зашумит)과 덜컹거림(застучит), 웅얼거 림(жужжанье)이다. 16) 푸시킨의 시어에 매료된 빗코프( Какая чудная песня Прескрасное со чинение 464)가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겨울밤 의 매력은 정확한 현실재현력이다: 오늘 저도 프라체시니 다리 근처에서 시계를 고쳤거든요. 다리를 지나가는데, 맙소사! 그런 식으로 돌풍이 불면서 빙빙 돌더라고요! 눈에도, 귀에도 몰아쳤죠! <...> 굴뚝에서 정말 아이 울음소리처럼 짖더라고요. (464). 두벨트가 겨울밤 을 읽다가 무슨 소리를 듣고 창가로 고개를 돌리는 장면 은 도상(시)이 실재로 육화하는 장면이다: (Читает бумаги, принесенные Богомазовым.) "Б уря мглою небо кроет... вихри снежные крутя". (Слышит что-то, глядит в окно, поправляе т эполеты) 마지막 피날레에서 빗코프가 역참지기 아내에게 시를 읽어주는 장면 또한 시의 육화, 현실의 미학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빗코프는 예의 그 시구를 읊으며 소리의 유사성, 즉 예술 의 시간적 질서와 현실의 시간적 질서가 상응함을 보여준다. 눈보라가 돌풍을 일으키자 / 하 늘은 눈안개로 뒤덮이네. 들려? 정말 아기 우는 소리 같지 않아? (511) 이어지는 대사는 예술 의 시간이 삶의 리듬까지도 흡입하는 기막힌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빗코프: (책상위에 후한 돈을 던진다). 짚으로 만든 낡은 지붕에서 / 갑자기 바 스락 소리를 내기도 하고, / 먼 길 온 나그네처럼 / 우리집 창문을... 역참지기가 들어온다. 내실 문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린다. 역참지기: 나리, 일어나 가셔야죠... Битков. (швыряет на стол деньги широким жестом). "То по кровле обветшалой вдруг соломой зашумит... То, как путник запоздалый, к нам в окошко..." Входит станционный смотритель. Подбегает к внутренним дверям, стучит. Смотритель. Ваше высокоблагородие, ехать, ехать... (511). 원작시의 застучит 을 읽을 찰나 울려퍼지는 노크소리는 시의 시간적 질서가 현실세계의 리 듬과 완벽하게 조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다음 시구 우리네 낡은 판자집은 슬프고도 울적하여 라. (Наша ветхая лачужка / И печальна и темна.)를 눈보라 속에 방치된 푸시킨의 관에 대한 16) 급박하게 진행되는 드라마 시간과 경쟁하는 또 다른 문학적 시간은 조야의 아파트 에 나오는 오볼랴니노프 의 망상을 꼽을 수 있다.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해머 소리 가 들리고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 이 되었던 네프 시대, 전광석화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 모두 KTX를 탄 것처럼 속도감 (이상, 2008년 12월 15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을 느끼던 모스크바에서 유독 오볼랴니노프만은 푸시킨의 시를 읊으 며 훨씬 느리게 가는 문학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비록 마약에 의한 착란증세이긴 하지만, 현실의 시간에 어 깃장을 놓는 그의 시대착오적 호연지기는 네프의 무한질주가 몰고올 끔찍한 참상을 예언하고 있다. 그의 반시 대적 시간관념이 몰락을 상징하는 저녁놀과 탈주를 암시하는 창문과 병치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당대 문화사회학의 특징을 규정하는 핵심적 의미소였다. 소비에트 노동현장에서는 공간을 차지하는 신체 또한 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해부학적으로 분해된다. 가장 효율적인 동작으로 동선을 통제하고, 신체 부위의 활용도에 따라 기계를 배치하는 공간적 최적화 작업은 노동시간의 단축 및 생산성 향상과 직결 된 문제였다. 조야의 아파트 의 공간문제에 대해서는 백승무, 조야의 아파트- 공간의 삶, 삶의 공간, 슬라 브학보, 24(4), 한국슬라브학회, 2009를 보라.

5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57 은유로 읽게끔 유도한다. 17) 시의 음성적 리듬이 현실세계의 시공을 재구성하는 배경이 된다면, 그 의미적 질서는 시의 정서와 현실의 극적 상황, 나아가 불가코프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하 는 아날로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음울함과 고독, 공포, 비애가 충만한 시의 내용은 푸시킨이 자 신의 마지막 나날 동안 겪은, 그리고 사후에 겪게 되는 모욕적인 수모와 다르지 않고, 이는 죽 음을 초월한 구경의 삶 18) 을 응시했던 당시 불가코프의 실존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마지막 나날들 에서 푸시킨을 사찰하는 첩자로 등장하는 빗코프의 존재는 이 작품이 내포하 는 시간관념이 작가의 창작의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많은 대사 양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빗코프는 피아 공간과 역참 모두에 두루 등장할 뿐만 아니라, 마치 작품의 해설 자처럼 시작시점과 종결시점에 몸을 드러낸다. 또한 그의 직업이 시계공(часовой мастер) 19) 이 라는 사실은 그가 푸시킨 시의 운율(метр; метр는 мастер의 옛말이기도 하다)을 정확히 음미하 는 척도(-метр)임을 보여준다. 시계를 고치는 행위와 시를 짓는 행위를 병치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Битков. Какая чудная песня! Сегодня я чинил тоже у Прачешного мосту, <...> Дозвольте узнать, это кто же такую песню сочинил? Гончарова.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464, 강조 필자) 빗코프의 чинить와 푸시킨의 (со)чинить는 모두 교정과 조화를 추구하나, 빗코프는 자신에게 없는 со- 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가 푸시킨 시의 метр는 천재적인 기억력 20) 으로 체화하고 있지만, 그 사회문화적 맥락, 역사적 맥락은 간파하지 못한 것, 그래서 자신의 첩보행위로 말미암은 푸시킨의 파멸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지막 역참 장면에서 도 빗코프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나 결정적 각성은 보류된다. 그는 자신이 암기한 예브게니 오네긴 의 시구 21) 와 시 겨울밤 이 실제 삶을 지배하는 예술적 기호라는 것 을 해독할 능력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는 자신의 암송능력이 푸시킨의 부활과 불멸을 음창하는 확성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가 아는 것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 때문 에 거장의 살해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이다. 그가 회피(избежание)인 줄 알면서도 업무중단(отпус к) 22) 을 선언한 후, 혹독한 눈보라 속에 먼 길을 가는 것은 일종의 자발적 고행이라고 할 수 있 다. 빗코프의 시간 타종(бить) 23) 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본성에 거스르는 문명의 동작이다. 그 17) 그런 의미에서 겨울밤 의 압운과 율격 구조가 마지막 나날들 의 시간적 질서 속에서 실현되는 양상을 따 져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18) 백승무, 불가코프의 메타드라마 연구 2), 러시아연구, 제 22권 제 1-1호, 2012, 58쪽. 19) часовой мастер란 표현은 작품의 시작과 종결을 담당하는 문학적 시간의 조율사, 혹은 푸시킨 성전을 수호 하는 보초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반복하는 시구 눈보라가... 가 겨울밤 의 1연과 4연에서 수미 연관하는 반복 구절이듯이 그의 반복적 등장은 마지막 나날들 의 순환적 구조를 보여주면서 푸시킨의 부활 을 도모한다. 20) Дубельт: Экая память у тебя богатая! (486). 21) 쥬콥스키와 알렉산드라 곤차로바가 예브게니 오네긴 을 두고 책점을 치는 장면에서 분명히 결투를 의미하 는 점괘(6장 33연)가 나오지만, 빗코프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 렌스키의 총상을 묘사하는 6장 30연의 Пробили Часы 가 마지막 나날들 에서 동일하게 사용된 것을 보라(500). 22) 푸시킨 아파트(Квартира Пушкина, набережная Мойки, д.12)의 멈춰진 시계는 빗코프의 отпуск를 증 명하는 명백한 알리바이다. 23) бить와 빗코프의 상관성은 두벨트가 암시한다. Дубельт, Отделение взбудоражил. Тебе морду надо

6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문명의 기계적 метр를 심박동과 숨의 리듬으로 순치하는 것이 시다. метр의 мастер인 빗코프는 자연과 문명의 중간자, 권력과 예술의 전이체이다. 그래서 그의 타종 소리는 마치 규칙적인 율 격처럼 들린다. 동시에 그의 타종은 가부키의 효시기( 拍 子 木 )처럼 극의 음조를 바꾸는 기능을 한다. 1막에서 단테스와 나탈리야의 로맨스는 타종 소리에 의해서 불륜의 스캔들로 전환된다. 푸시키나: 그러지 마세요! 제가 죽는 꼴을 보고 싶나요? 테스가 푸시키나에게 키스를 한다. 오, 끔찍한 고통이여! 왜, 왜 당신은 우리 길 앞에 나타나셨나요? 당신 때문에 전 거짓말을 하고 죽도록 떨어야 해요... 밤에는 잠도 못 자고, 낮에는 불안하고... 시계종이 울린다. 어머나, 어서 떠나세요! 단테스: 이달리야 댁에 한번 더 오세요. 좀 더 얘기를 해야겠소. (471). 그들에게 괘종소리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라, 무감각해진 양심을 두드리는 경 종이다. 내면의 질서가 파괴된 두 사람은 시간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단테스가 계속해 서 내리는 폭설(계속 들리는 푸시킨의 겨울밤 )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 이곳에서 백년을 살아 도 이런 날씨에는 적응하지 못할 거에요. <...> 정말 지루해요. 493)이나 평생 시낭송이 들 렸 (всю жизнь слышу стихи, только стихи. 501)지만 그걸 원한 건 아니었다는 나탈리야의 고백( Я никогда не слушаю стихов. 500)은 같은 맥락이다. 그녀 또한 지루할 수밖에 없다(И мне скучно. 501). 결투가 벌어지는 시각에 울려퍼지는 괘종소리(서재 시계를 수리하고 있던 빗코프에 의해 만 들어진 소리이기 때문에 타종소리에 가깝다)는 푸시킨에게 치명상을 안긴 총성의 암시인 동시에 극의 분위기를 급격하게 비극으로 몰아넣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타종의 бить는 시인의 살해(уби т)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시인이 죽자 군중 속에서 세 번의 убит가 나온다. Студент. <...> Восстал он против мнений света... Один, как прежде, и убит". <...> Студент. "Убит. К чему теперь рыданья, похвал и слез ненужный хор... И жалкий лепет..." <...> Офицер. Сограждане! То, что мы слышали сейчас, правда. Пушкин умышленн о и обдуманно убит. (507). 시인의 죽음에 대해 빗코프는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все непонятное 510)한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하고(я тут ни при чем! 511), 푸시킨의 시에 문제가 있 었다고 책망하기도 한다(сколько я стихов переучил, будь они неладны... <...> Одна беда, эт и стихи 510). 그로서는 독재자의 복수(니콜라이: 시간이 그의 시에 대해 복수를 해줄 거요. 재 능을 찬양에 쏟지 않고 국격을 훼손하는 데 탕진하다니. 491)를 막을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Потому что пришло его время. 511). 빗코프는 결투 бить, Битков! Дальше. (487).

6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59 의 자리에 자신이 없었음을 한탄한다(Меня не было! 511). 푸시킨이 가는 곳마다 어디든 항상 따라다녔지만( я ведь за ним всюду. А я за ним всюду, куда он, туда и я. ),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푸시킨의 시를 모조리 암송하고 있는 그의 존재는 다 른 것을 말하고 있다. 시간의 장인 빗코프의 시침은 망각이라는 시간의 복수를 견뎌내는 초시간 적 불멸성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는, 그리고 예술은 씻기거나 소각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의 눈보라도 아이처럼 칭얼대며 우리의 창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말 하고 있다. 이처럼 마지막 나날들 은 자연력을 능가하는 기호의 시간, 일상과 단절된 불멸의 시간, 현실의 시간을 미학화하는 문학적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 영원성은 시간의 풍화작용에 노 출되지 않는 불변의 지속을 의미한다. 지속은 흐르는 동시에 멈춰선 상태이다. 마지막 나날들 은 흐르지만 정지된 것, 혹은 정지된 상태로 흐르는 시간을 표방한다. 마모 없는 원상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푸시킨 서거 100년에 대한 불가코프의 해석이다.

62 6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6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61 А.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오원교(한양대) I. 1934년 3월 플라토노프(А. Платонов)는 제1차 전소연방 작가대회의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획 된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하는 소비에트 작가단(бригад советских писателей)에 참여하고, 곧이 어 1935년 초에는 3개월간 투르크메니스탄을 두 번째로 다녀온다. 특히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투르크메니스탄 소비에트 공화국 건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소비에트 작가들에게 공화국에서 사 회주의 건설 역사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최초의 경험이 될 작품집을 출간하기 위한 것이었다. 1) 플라토노프의 삶과 문학에서 가장 커다란 위기와 획기적 전환의 시기인 1930년대에 이뤄진 중앙아시아 여행은 일종의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활동 초기에 당국과 독자들로부 터 적지 않은 배려와 각광을 받았던 작가 플라토노프는 점차 지배 권력과 주류 비평계로부터 정치적 억압과 창조적 부자유를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출판사로부터의 제안과 호의조차도 자 취를 감추게 된다. 2) 예컨대 여행이 성사되기 몇 해 전에 집필한 대표작 체벤구르(Чевенгур) 와 코틀로반(Котлован) 은 여러 차례에 걸친 작가의 간절하고 끈질긴 요청과 편집부의 강제적이 고 임의적인 수정에도 불구하고 출판이 허락되지 않았다. 요컨대 자신의 고유한 시각과 언어에 대한 재고를 강제당하고, 작품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일련의 불안한 정황은 작가를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오랜 침묵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투르크메니스탄 방문, 즉 다소 낯설고 새로운 세계인 동양 여행은 작가에게 한편 으로 드물지 않게 불화를 겪어왔던 정치권력과 양심의 목소리를 간직하면서 적절하게 타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1930년대 전반기, 이른바 침묵의 시기 이후 창 작 활동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현실 세계와의 직접적 대면을 통해 과학과 이성에 기초한 자연 세계의 정복 혹은 위대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건설이라는 초기의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한 회의 와 비판 그리고 이에 따른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의 심화와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라는 삶과 예술에서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1) 소비에트 작가단에 참여 신청을 하면서 플라토노프는 나는 언젠가 헐벗은 맨발의 사람들이 선조들의 궁핍한 대지를 따라 걸었던 황량한 조국을 세계적 기술을 갖춘 공산주의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라고 밝혔다. Р. Чандлер, Платонов и средн яя азия, Страна философов Андрея Платонов: проблемы творчества, вып. 5. Юбилейный, М.: ИМЛИ РАН, С ) 단편소설 체체오(Че-Че-О) (1927)와 회의하는 마카르(Усомнившийся Макар) (1929)는 이중적 이데올 로기 와 무정부주의 로 비판 받았고, 장편소설 체벤구르(Чевенгур) (1929), 코틀로반(Котлован) (1930), 희곡 아코디언(Шарманка) (1930)은 출판되지 못했으며, 중편소설 저장용으로(Впрок) (1931)는 사회주의 개혁 및 새로운 인간, 당의 노선에 대한 비방 으로 낙인찍혀, 작가의 거듭된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6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6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작가이자 수력학자(토지개량가)였던 플라토노프에게 황야(пустыня) 혹은 모래사막으로 상징되 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실제적 공간이자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철학적 깨달음을 얻게 되는 성찰의 무대였 다. 3) 바로 두 번에 걸친 투르크메니스탄 방문의 경험에 기초하여 작가는 자신의 창작 세계에서 이른바 <중앙아시아 이야기 혹은 연작(цикл)>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을 남겼다. 4) 이처럼 각별하고 다층적으로 동기 지워진 동양 세계에 대한 체험과 그것에 대한 문학적 전유 는 소비에트 시대에 정치와 예술, 권력과 작가 사이의 간단치 않은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 한 범례 중의 하나이다. 요컨대 플라토노프의 <중앙아시아 이야기>, 특히 단편소설 타킈르(Так ыр) 와 중편소설 잔(Джан) 은 한편으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 책에 상응하는 문화적 도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영혼의 엔지니어 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한 소비에트 작가의 예술적 창조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 소고는 플라토노프의 <중앙아시아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비에트 제국에서 의 정치와 예술, 권력과 작가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역학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당대의 권력 담론의 지배(수용)과 그것으로부터의 필연적 일탈(저항) 그리고 그것과의 불가피한 화해(적응)를, 즉 당대의 지배적 문학 담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실상과 그것에 대한 창조적 전복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플라토노프의 동양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평가에 각별히 주목하여, 이른바 소비에트 문학 속에서 독특하게 변주되는 러시아 오리 엔탈리즘의 일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II. 플라토노프의 <중앙아시아 이야기>에서 중앙아시아라는 토포스는 우선 끝없는 모래사막으로 뒤덮인 삭막한 황야, 즉 거대한 자연(стихия)로 등장하며, 작가 고유의 과학기술적 유토피아 이 상이 실현되어야 할 공간으로 자리매김 된다. 1934년 소비에트 작가단의 일원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온 후 쓴 에세이 뜨거운 북극(Го рячая Аркатика) 에서 플라토노프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모래 바다인 카라 쿰 사막을 사회주의 가 꽃피는 위대한 오아시스로의 개조라는 고유한 유토피아적 구상 속에서 바라본다. 요컨대 투 르크메니스탄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소비에트 제국의 근대적 기획이 예외 없이 실현되어야 할 공간이며, 이를 통해서 투르크메니스탄 또한 소비에트의 선진적 민족들의 연합 대오에 굳건히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1920년대 초반부터 두드러졌던 이성과 과학이라는 무기를 통한 자연 정복이라 3) 작가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폐허가 된 고대 도시의 아름다움, 사막에서 인간의 고독, 풍광의 황량함 등을 언급하며...별들 아래 황야는 커다란 감동을 자아냈소.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뭔가를 깨달은 것 같소 라고 썼다.(А. Платонов, Письма из поездки в Туркмению; , Архив А. П. Платонова, Книга 1, М., 2009, С. 510.) 4) 1934년 3~5월 투르크메니스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후 단편소설 타킈르(Такыр) 와 에세이 뜨거운 북극 (Горячая Аркатика) 을 집필하였고, 1935년 초 재차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온 후 중편소설 잔(Джан) 과 에세이 미래 인간의 형상(образ будущего человека) 을 완성한다.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М. Геллер, А ндрей Платонов в поисках счастья, М.: Мик, 1999, С ; Н. Корниенко, Заметки Андрея Платонова,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3, Л., С ; 최병근, 유토피아에서 성( 性 )으로: 안드레 이 쁠라또노프의 중앙아시아 텍스트 연구,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제30집, 2009, 쪽 참조.

6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A. 플로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63 는 작가 특유의 유토피아적 욕망이 죽음의 사막을 생명의 오아시스로 개조라는 시대적 요구와 일정하게 공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황야라는 물질적 공간으로서 중앙아시아는 개척의 대상으로 인식되며, 유토피아적 기획의 중심 주체인 소비에트 제국이 극복해야할 주변 타자로서 분명하게 규정된다. 작가의 이러한 구상이 예술적 형식으로 보다 발전적으로 구현된 작품이 1934년에 발표된 단 편소설 타킈르(Такыр) 이다. 이 작품은 이른바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 라는 당대적 요구를 문 학적으로 수용하면서 미래의 통합된 인류 사회를 구성할 인간의 본질적 자질로서 자유의 문제 를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5) 이 작품에서 플라토노프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자유와 해방이 존재론적으로 심대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품의 공간인 진흙 황야 를 일컫는 타킈르는 주인공들인 자린-타지(Заррин-Тадж)와 주말(Д жумаль)이 기거하는 삶의 터전이자 사막의 나라, 투르크메니스탄 자체를 상징한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타킈르는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니라 독자적 형상과 속성을 지닌 엄연한 주인공이 다. 말하자면 제목 자체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인데, 타킈르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집어삼킨 다. 말라버린 강바닥인 타킈르는 황야에서 가장 음울한 장소이며 무엇보다 망각과 죽음의 메타 포이다. 망각은 메마르고 엄혹한 황야의 세계에서 생존의 조건이다. 황야는 인간, 동물, 식물 등 의 모든 생명체에 무심하고 무차별적이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망각에 잠기고 느리고 단조로운 황야의 리듬에 맞춰야 하는바, 살아서는 그것의 비밀스런 일부로 자리 잡고, 죽어서는 모래와 바람 그리고 메마른 회전초 덤불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타킈르는 작품의 서사전체를 지 배하는데, 무엇보다 인물들의 운명과 생사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바로 자린과 주말을 비롯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타킈르에 얽매인 삶을 살아간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유목민들 에게 납치되어 노예처럼 살아가는 페르시아 여인 자린은 물이 말라버린 타킈르처럼 자유라는 생명이 없는 척박한 삶을 살다 죽어간다. 이 작품에서 타킈르로 상징되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자유를 침탈하고 구속하는 전근대적(봉건 적) 삶의 공간으로, 이에 반해 소비에트 러시아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유가 실현되 는 근대적 삶의 공간으로 대비된다. 아타흐-바바(Атах-баба)와 오다-카라(Ода-Кара) 등으로 대표 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유목 원주민들의 삶은 야만, 약탈, 잔인, 몽매, 불결 등으로 특징 지워지 며, 이로부터의 해방은 오직 예의 소비에트 권력과 사회주의를 통해서, 문명, 계몽, 질서, 지식, 정화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여주인공 주말은 적군 부대와 소비에트 정부의 도움으로 아슈하바 드와 타슈켄트에서 사회주의라는 근대적 문명의 세례를 받고 식물학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다. 주말은 자기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삶의 주체로서 거듭나고, 이제 망각과 죽음의 공 간 타킈르를 기억과 생명의 공간으로 바꿀 사명을 띠게 된다. 이처럼 타킈르 에서 플라토노프는 뜨거운 북극 에서 구상한 유토피아적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즉 전근대적 몽매의 황야를 근대적 문명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는, 낯선 타자를 전유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옹립한다. 작품 타킈르 는 1934년에 모스크바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되어, 이른바 타 자에 대한 계몽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실현하는 유용한 도구이자, 동시에 오랜 기간 동안의 강요 된 침묵으로부터 작가를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토노프의 동양에 대한 일련의 문학적 전유로서 <중앙아시아 연작>은 작가의 두 번째 투 르크메니스탄 방문 후에 집필된 중편소설 잔 에서 절정에 달한다. 작품 잔 은 창작(판본)과 5) 일찍이 고리끼(М. Горький)는 이와 관련하여 플라토노프의 정신적 본성 중에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이 존재한 다고 언급한 바 있다.

6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6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출판에 관련된 심히 복잡한 이력과 그에 따른 실로 다면적 평가와 논쟁적 해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앙아시아를 다룬 작품들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다. 6) 작품 잔 은 얼핏 보기에 소비에트 제국에 의한 중앙아시아의 소수 유목 집단(민족)의 구원이 라고 하는 당대의 역사적 과제의 해결을 문학적으로 적절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으 며, 그런 맥락에서 플라토노프의 <중앙아시아 연작> 가운데 가장 체제순응적인 작품으로, 혹은 스탈린적 유토피아와의 화해의 시도로 간주될 수 도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작품은 소비에트 제 국이 낳은 식민주의적 텍스트의 또 하나의 전형으로, 러시아와 투르크메니스탄이 낳은 문화적 혼혈아인 주인공 나자르 차가타예프(Назар Чагатаев)는 제국 이데올로기의 첨병(колонизатор)이 자 자기 민중에 대한 식민 착취의 용병(коренизатор)인 것이다. 하지만 작품 해석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핵심적인 작품의 종결부, 특히 엄연히 존재하는 2개의 판본을 둘러싼 다양한 모순적 견해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단성적인 평가는 상당히 일면적인 바, 이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새로운 해명이 재차 요구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작품 잔 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적지 않은 부분이 편집 과정에서 임의적으 로 수정, 삭제되거나, 작가 자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개작되기도 했으며, 그 간단치 않은 과정의 결과로 사뭇 다른 결말을 지닌 2개의 판본이 생겨났다. 7) 극히 복잡하고 미묘하게 전개되었던 당대 상황, 즉 권력과 작가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일종의 외적, 내적 검열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겨난 소설 결말의 두 가지 판본은 작품 전체의 구성과 주 제 등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낳았으며, 이를 통해 당대의 소비에트 지배 담론에 대한 작가의 태 도는 물론이고 동양에 대한 작가의 시각 나아가 작가의 철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진 화 혹은 전환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전체 16장으로 구성된 첫 번째 판본은 주인공 차가타예프의 귀향, 잔의 발견과 구원을 위한 노력, 또 다시 잔의 흩어짐에 관한 이야기이다. 투르크멘 여인과 러시아 병사 사이에서 태 어난 주인공 차가타예프는 아들의 구원을 바라는 어머니의 염원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황야를 떠나 유럽식으로 도시화된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고향을 얻고, 자신의 선조들에게는 알려지지 않 은 이성과 과학이라는 문명의 열매를 체득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차가타예프는 역사와 운명의 강압과 횡포로부터 끝없이 고통 받아 문명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극심한 기아와 궁핍 속에서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자기 민족 잔 8) 을 구원하고 사회주의로 인도하라는 당의 사명 을 부여 받고 고향인 사라-카믜슈(Сара-Камыш)로 온다. 고향에서 잔을 발견한 차가타예프는 황 폐한 사막 속에서 모래 밑에 고인 물을 찾아 갈증을 해결하고 주인을 잃은 양떼를 사냥하거나 6) 중편 소설 잔 은 소비에트시기에 출간된 플라토노프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크고, 훌륭한 명작으로 손꼽히며, 특히 동양에 관한 최고의 러시아 문학 가운데 하나로 평가 받는다. 특히 이 작품의 구성과 주제에서 드러나는 다층성과 다면성은 해석의 지평을 동양에 관한 특정한 서사라는 틀을 넘어 인간과 세계에 관한 보편적 서사 로까지 심화 확대한다. 7) 소설 잔 은 1935년 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16장으로 끝나는 짧은 첫 번째 판본과 1936년에 집필된 것 으로 추정되는 20장으로 구성된 긴 두 번째 판본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작가 생전에 귀향(Возвращение н а родину) (1938)과 사람 근처의 행복(Счастье вблизи человека) (1947)이라는 단편으로 출간되었으며, 첫 번째 판본은 1964년 월간잡지 광야(Простор) 9월호에, 두 번째 판본은 1978년 <예술문학(Художестве 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출판사에서 발행된 두 권짜리 선집에 수록되었다 년대에 출판된 판본들은 편집부에 의해 자의적으로 수정 혹은 삭제된 경우가 많았으며, 완전한 형태의 원문 텍스트는 1992년에 처음 으로 출간되었다(최병근, 앞의 글, 쪽 참조). 8) 잔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그 속에는 투르크멘인, 카르칼팍인, 우즈벡인, 카자흐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발루치스탄인, 그리고 미지의 사람들이 있다. 이 집단은 민족적, 인종적 자질에 의해서가 구별되지 않으며, 어머니가 부여한 영혼과 소중한 생명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로 함께 살아간다. 이들은 스스로 를 잔이라고 칭하는데, 그것은 영혼 혹은 소중한 생명을 의미한다. 그들의 소유물은 가슴 속의 마음과 두근거 림뿐이다. 육체의 경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6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A. 플로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65 처절한 사투 끝에 잡은 독수리 고기로 이들의 목숨을 연명시키며 방랑을 거듭하여 마침내 우스 트-우르트(Усть-Урт) 고원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잔이 기거할 몇 채의 진흙 집을 지어주고 당 의 원조를 받아 식량과 생활 용품을 마련해주는 등 차가타예프는 잔의 구원이라는 자신의 과업 을 완수하는 듯 했다. 그런데 과거에 한 번도 누려 본 적이 없는 물질적 풍요를 맛보았던 잔의 사람들은 어느 날 황량한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 몇 명은 카스피해 쪽으로, 다른 몇 명은 투르크메니아와 이란 쪽으로, 두 명은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차루주이와 아무다리야 쪽으로 걸어갔다. 우스트-우르트를 지나 북쪽과 동쪽으로 간 사람들과 밤사이 너무 멀리 간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차가타예프는 한숨을 쉬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하나뿐인 작은 가슴, 빈약한 지혜와 활력 으로 여기 고대 세계의 지옥 밑바닥 같은 사라-카믜슈에 처음으로 진실한 삶을 진정으로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지는 그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이 살아남도록 도운 것으로 충분하며, 행복은 지평선 너머에서 그들이 찾게 하자... 위와 같이 전문에서 16장의 중간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끝나는 첫 번째 판본에 3.5장 정도의 분량이 추가되어 전체 20장으로 구성된 두 번째 판본이 만들어 졌다. 이 판본에서 차가타예프는 아이딈(Айдым)의 간절하고 현명한 충고에 따라 사라진 잔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수피얀(С уфьян)을 만났을 뿐, 잔 사람들의 다시 모으는데 실패한다. 하지만 잔의 사람들은 사라졌을 때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하지만 공동의 삶을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심지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우스트-우르트로 되돌아온다. 바로 이 재회 후에 차가타예프와 아이딈은 모스크바로 떠나간다. 이처럼 잔 의 첫 번째 판본과 두 번째 판본의 차이, 즉 결말에서 드러나는 비( 非 )결정성은 이 작품의 예술적 운명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바, 그것은 권력과 작가, 정치와 문학의 모순적 관계를 반영하는 시대의 기록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플라토노프의 시학의 차원에서 잔의 사람들 의 흩어짐과 모임, 차가타예프와 아이딈의 우스트-우르트에서 체류 혹은 모스크바로의 떠남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필연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가 수고와 타자본에서 여러 차례 끝 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종결부를 다시 고쳐 완성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9) 우선 결말의 첫 번째 판본에서 잔의 흩어짐 은 외견상 차가타예프가 당으로부터 부여받은 잔 의 구원이라는 사명의 실패이자 사막의 땅에 사회주의의 오아시스를 건설한다는 시대적 과제의 오류를 암시한다. 중앙아시아의 황야에서 태생적 고아였던 차가타예프는 문명의 러시아에서 새로운 아버지(스탈 린)을 만나며, 이 위대한 아버지는 그의 안내자, 보호자, 심판관이 된다. 차가타예프에게 새로운 아버지가 지도자, 이데올로기, 남성성, 이성, 이상을 상징한다면, 가엾은 어머니는 민중, 꿈, 여성 성, 감성, 영혼으로 다가온다. 이성과 과학이라는 근대의 무기로서 감성과 야만의 황야를 정복하 려는 소비에트 제국의 기획, 즉 차가타예프가 당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은 애초부터 타자에 대 한 위계적 동일화를 지향하는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실험이었다. 이러한 기획의 노골적 수행자는 거짓, 어둠, 죽음의 파괴적 영인 아리만(Ариман)을 닮은 악의 화신 누르-무하메드(Нур-мухамме д)이다. 그는 잔의 조속한 소멸을 기대하고 생존자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데려가 처분하려는 사 욕에 물든 인간으로, 잔의 출신이 아니었고 잔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타자이다. 이에 비해 진리, 빛, 생명을 구현하는 창조적 영인 오르무즈드(Ормузд)를 대신하는 선의 화신 차가타예프는 이미 9) Н. В. Корниенко, О некоторых уроках текстологии, Творчество Андрея Платонова, СПб.: Наука, 1995, С. 16.

6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6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높은 지성의 산에도 도달했으면서도 자기 민족인 잔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에게도 영혼과 가 치를 부여하고 10) 근원적 동질성과 친연성을 간직하려 하는 영원한 자아이다. 11) 하지만 투르크멘 여인과 러시아 병사 사이에서 태어난 혈연적 혼종성(гибрид)에서 짐작되듯이 차가타예프에게서 동양적 원리(중앙아시아)와 서양적 원리(소비에트 러시아)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이는 심오한 내 적 갈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이어지고 결국 첫 번째 판본의 결말은 서양적 원리에 의 한 동양적 원리의 구원 실패라는 다소 비극적 어조를 채색된다. 12) 하지만 작가 플라토노프의 입장에서 잔의 떠남은 결코 비극적으로만 해석될 이유가 없다. 그 들은 차가타예프의 도움으로 진흙집의 온기와 풍족한 식사라는 물질적 행복을 일시적으로 맛보 았을지라도 억압과 착취로 점철된 지난한 삶 속에서 상실되거나 망각되었던 자신들의 존재감과 삶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잔의 흩어짐은 어딘가에 있을 자신 의 자유와 자아의 가치 등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덕목을 찾아가는 또 다른 고행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에서 떠나가는 잔을 바라보며 차가타예프가 지었던 한숨과 웃음은 자기 실패에 대 한 씁쓸하고도 정당한 시인이다. 차가타예프를 일시적으로 따랐던 잔은 사라졌지만 잔의 정신은 차가타예프에게서 살아남고, 그는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진리에 어렴풋이 다가선다. 따라서 첫 번째 판본의 결말에서 차가타예프가 다다른 궁지는 1920년대 초부터 몰두했던 이 성 우월주의적 유토피아 기획에 대한 작가의 점차적 회의와 반성의 우회적 발로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1930년대 중반 이후 플라토노프는 타자에 대한 억압적 자기화라는 동일성의 철학 에서 점차 벗어나서 타자성의 대한 인정에 기반한 공존성의 철학으로 점차 이동한다. 결과적으 로 차가타예프의 궁지는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희 비극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 예술적 전환이 플라토노프에게는 필연적으로 여겨졌을지라도 당대의 소 비에트 권력에게는 지배 담론으로부터의 일정한 일탈을 의미했기에 쉽사리 용인될 수는 없었다. 이런 와중에 소설의 순조로운 출판, 작품의 구출(sic) 13) 을 위해 작가가 취한 일종의 자구책이 다름 아닌 결말이 늘어난 두 번째 판본이다. 우선 두 번째 판본에서 내용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흩어졌던 잔의 되돌아옴과 이를 통 한 차가타예프의 맡은 바 사명의 결과적 수행이다. 많은 연구가들이 지적하듯이 잔의 사라짐과 되돌아옴 사이에 논리적 연관이나 구체적 설명의 부재는 첫 번째 판본에 비해 두 번째 판본의 작위성을, 혹은 당대의 문학 권력에 대한 순응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첫 번째 판본에서 차가타예프의 잔 찾기의 성공과 잔의 결과적 떠남에 대비되는 두 번째 판본에서 차가타예프의 잔 찾기의 실패와 잔의 궁극적 돌아옴이라는 일종의 반전 아닌 반전이다. 말하자면 두 판본은 서로 상충되기 보다는 아주 일관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데, 첫 번째 판본에서 결국 부조리성이 입증된 이성의 왕국의 프로메테우스이자 모 세인 차가타예프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두 번째 판본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구체적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에 비해 첫 번째 판본에서 지평선 너머의 행복을 찾아 각자의 길을 떠났던 10) 황야는 결코 황야가 아니며, 그곳에서도 영원히 사람들이 살아간다... 11) 그들이 한두 마리 새로 배부를 수 있을까 그는 자문한다. 아니다! 하지만 각자가 새의 조그만 살점이라 도 받게 된다면, 그들의 애수는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배부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삶, 서로 서 로의 결합에 기여한다... 12) 이처럼 차가타예프의 내면에는 일종의 극성(драматизм) 혹은 비극성이 존재한다. 내적인 균열, 즉 자기 민 족(어머니)인 잔과 결합하고 그 일부가 되려는 욕망과 위대한 아버지에 의해 맡겨진 사명의 수행이라는 의무 사이의 갈등이 핵심 모티프이다. 13) Н. Кириенко, История текста и биография А. Платонова( ), Здесь и теперь, 1, М., 1993, С. 236.

6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A. 플로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67 잔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차가타예프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의식과 망각의 잠에 빠져있던 잔의 사람들은 이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자신의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본래의 잔으로 회생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 전개 속에서 혁명과 소비에트 권력의 계몽적, 지도적 역할에 대한 강조가 드물지 않게 외삽되지만, 주인공 차가타예프의 자아와 타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은연중이지만 분명하게 감지된다. 그는 헐벗은 잔 사람들의 삶은 물론이고 척박한 황야에서 살 아가는 동물과 식물 모습 속에서 끈끈한 연대감을 체험하고, 이제 행복은 자기 내부로부터가 아 니라 외부의 타자로부터, 보다 정확하게는 자아와 타자의 상호 관계 속에서 움터올 것임을 확신 한다. 차가타예프는 크세냐의 손을 자기 손에 잡았고, 마치 그녀의 영혼이 그를 도우려 달려드는 것처 럼, 그녀의 계속되는 급박한 심장 박동을 느꼈다. 차가타예프는 이제 확신했다, 그를 위한 도움은 단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올 것이라는 것을. 중앙아시아의 황야에서 펼쳐지는 사람, 동물, 식물 등의 만물의 상호 관계는 결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것이다. 잔 의 세계에서는 서양과 동양, 중심과 주변, 남성과 여성, 정신 과 육체, 머리와 몸, 이성과 감성의 이원적 대립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14) 플라토노프는 작품 속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노래와 악 기 연주 등에 대해서도 당대의 소비에트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존경과 흠모의 자세를 보여준다. 15) III.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플라토노프의 삶과 문학에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대표되는 중앙아시 아의 체험과 그에 기반한 동양 세계에 대한 문학적 전유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플라토노프가 동참했던 소비에트 작가들의 투르크메니스탄 방문은 당대에 전연방적 규모로 펼쳐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창조적 사명의 수행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일종의 예술가들에게 창작 돌격대 의 역할의 부여였다. 주지하다시피 근대적 계몽의 하나로서 사회주의 건설은 후진과 몽매라는 전근 대적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했지만, 실상 대상인 타자, 특히 카프카즈와 중앙아시아로 대변 되는 동양에 대한 위계적 차별적 사고에 근거한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를 경향적으로 내포하고 있 14) 이런 의미에서 작품 초반에 베라의 침대 위에 걸려 있던 낯선 고화의 의미는 새삼 되새겨 볼 만하다: 그림은 지구가 평평하고 하늘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이상을 묘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키가 큰 남자가 땅 위에서 일어나 머리로 둥근 하늘 지붕을 뚫고 어깨까지 몸을 내밀고는 낯선 무한의 공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런데 그는 미지의 낯선 공간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본 나머지, 하늘 아래쪽에 남아 있던 자신의 나머지 몸에 대해서 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림의 다른 반쪽에는 같은 모습이, 그러나 다른 상황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 사람의 몸통은 몹시 지치고 말라 있었는데, 아마도 이미 죽은 듯했고, 실제로 끝이 없으며 좁고 밋밋한 땅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새로운 무한의 공간을 찾던 탐구자의 말라비틀어진 머리는 양철 냄비를 닮은 하늘의 바깥 표면을 따라 그 쪽 세상으로 굴러 떨어졌다. 15) 잔 에서 특히 음악은 최소한 가장 원초적인 영혼의 언어로 등장한다. 차가타예프의 생명을 구해주는 민족의 영웅인 소녀는 아이딈(Айдым)으로 칭해지는데, 그것은 투르크메니스탄어로 노래를 뜻한다. 말하자면 노래 덕분에 잔 민족은 궁극적으로 집단적 억압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자신들의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는 것이다.

7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6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었다. 앞 서 언급했듯이 한 때 이성과 과학 중심적 유토피아주의에 심취했던 플라토노프가 집필한 <중앙아시아 이야기>에서도 당대의 몇몇 소비에트 작가들의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국가와 당이 부여한 창조적 사명이라는 허울 속에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혹은 독특한 소비에 트적 오리엔탈리즘의 일면이 적지 않게 은폐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작 잔 에서 드러나듯이 플라토노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방문을 전후하여, 예전 에 이해하지 못했던 뭔가를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유토피아적 구상의 현실적 검증 과정을 통 해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근대적 기획의 문제와 한계를 절감하고 삶과 문학에서 새로운 대안 적 구상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추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획기적 진화를 예견하는바, 타자에 대한 위계적 전유를 전제하는 자기 동일성의 철학에서 타자에 대한 대화적 소통을 지향하는 상호 공존성의 철학으로 전환 강제에서 소통으로, 대립에서 화해로 을 기대하게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다시 문제는 주말, 차가타예프, 아이딈이 차례로 올랐던 플라토노프의 무 대에서 이제 완전한 주인공으로 새롭게 등장한 잔이 과연 어떻게 행복을 찾을 것인가?.. 이다.

7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69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박혜경(한림대) I. 서론 숄로호프는 소비에트가 인정한 가장 위대한 소비에트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카자크 지방 출 신(카자크인은 아니지만)으로 카자키(카자크인들)의 역사와 삶을 현장에서 목격했고 그들과 부대 끼며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카자키에 대한 그의 시선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라는 공간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 온 공감의 시선이다. 또한 그의 작가로서의 역량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 한 카자크 집단의 삶을 문학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결과 고요한 돈강 이라는 대작을 발표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소비에트의 톨스토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 대전과 볼셰비키 혁명, 내전으로 이어지는 현대 러시아의 격변의 시기에 카자키라는 독특한 집단을 중심으로 시대가 만들어 낸 비극의 삶 을 살아내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대서사시이다. 19세기에도 카자키를 다룬 작품들은 있어 왔지만(대표적으로 고골의 타라스 불바 Тарас Бульба 와 톨스토이의 카자키Казаки >가 있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에도 카자크 푸가초프가 중요 인물로 등장한 다) 이들 작품들은 비 카자키가 바라보는 카자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낭만화 되거나 이 상적으로 그려졌으며, 때로는 지나치게 야만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의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키 기도 한다. 고골의 카자키는 유럽적 신앙과 아시아적 관습, 순박함과 교활함, 능동적 의식과 나 태에 대한 사랑, 발전과 완벽성에 대한 충동과 완벽성에 대한 경멸 1)이라는 이중성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톨스토이의 카자키는 인접한 체첸 부족과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도 그들과 적이 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는 요령부득의 집단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숄로호프는 카자키의 무리 속에서 태어나 그들과 함께 자라고 역사적 격변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어떤 작가보다 카자키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러한 경험의 생생함이 소설 고요한 돈강 에서 인간 카 자키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II. 카자크는 누구인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민족 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카자키는 하나의 민족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는 독특한 집단이 다. 많은 연구자들이 카자키의 기원과 민족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 집단의 성격을 어떻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을 지 1) <대장 불바>에서 (Н. Гоголь,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14 томов. (Москва-Ленинград, ), то м 8, с. 49)

7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나타샤 댄스 를 쓴 올랜드 파이지스는 카자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짧게 소개하고 있다. 코사크인들은 16세기 이후로 오렌부르그 초원, 카프카스에 있는 테렉 강을 따라 돈과 쿠반 지역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주지인 시베리아의 옴스크 바이칼 호수와 아무르 강 주변에서 살고 있 는 제국의 남부와 동부 국경 자치 공동체들 내의 맹렬한 러시아 병사들 중에서 특별한 배타적 계급 이었다. 초기 러시아 전사들은 동부 초원의 타타르족과 사실상 그들의 후예일 카프카스인들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거의 아시아적인 생활방식을 갖고 있었다. 코사크족과 타타르족 모두 자유를 지키는 데 맹렬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천성적 온정과 자발성을 갖고 있었고 모두 선한 삶을 사랑했 다. 2) 국내 연구자들 중에는 구자정 교수가 카자키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데 그의 연구에서도 강조가 되는 것은 카자키 집단의 정확한 의미 규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역시 카자키의 이중 성을 강조하며 그들 사이의 일관성이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까 자끼는 폭도인 동시에 기사이며, 강도떼인 동시에 전문적인 전사 집단이며, 해적떼인 동시에 탁 월한 기병이며, 유목민인 동시에 농민이자 어부, 볼셰비키에게는 반혁명의 원흉이지만, 백군 지도부에게 볼셰비키로 비쳐짐,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원형을 만든 민족이지 만, 러시아인에게는 러시아의 국경을 개척한 애국주의의 상징 3) 이었다. 카자키의 정체성에 대해 서는 제정러시아 정부와 카자키 스스로의 입장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제정러시아 시대 카자 키는 계급(сословие)으로 존재했지만 소비에트 혁명기 그들은 스스로를 민족이라 주장하며 카자 키 공화국을 수립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4) 1880년에 실시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2백 5십만 명 정도로 추정되던 카자키는 주로 러시아 남 부, 우크라이나 남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으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군 역의 의무를 담당함으로써 세금을 면제받고 있던 집단이었다. 5) 첫 카자키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타타르인들이었다. 1400년 경 모스크바 공후들의 세력이 강해지고 타타르 연합체의 세력은 내부 적인 반목으로 점차 쇠약해지면서 러시아인들은 타타르 집단을 오히려 침략자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카자크라는 말은 투르크어로 수비대 를 뜻하며 후에 모험 가, 개척자 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6) 러시아 통치자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그들은 러시아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슬라브인들을 국경의 감시를 위해 고용했으며, 이들은 유목 민의 자유로운 삶의 양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떠도는 삶을 택한 무리는 드네프르 강에서 야이크 강까지 야생지역 (дикое поле)라고 불리는 서부 스텝지역을 점차 점령해 나갔다. 1500년대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는 러시아인들(슬라브인들)의 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는 데, 이들 대부분은 피난처를 찾아 도망 온 분리파교도나 주인의 학대를 피해 떠나 온 도망 농노 2) 올랜드 파이지스 러시아문화사: 나타샤 댄스 채계병 옮김 (서울: 이카루스 미디어, 2005), 558쪽 3) 구자정, 경계인 으로서의 까자끼: 까자끼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에 관한 소고 러시아연구 2010, 제 20 권 제 1호, 쪽 4) Ibid., 172쪽 5) 카자키의 역사와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였음: Joyce Moss & George Wilson, Peoples of the World: Eastern Europe and the Post-Soviet Republics (Detroit: Gale Research Inc., 1993), pp. 7-13; A. Helbig, O. Buranbaeva, V. Mladineo, Culture and Customs of Ukraine (Westport: Greenwood Press, 2009), pp , 34-35; 구자정, 경계인 으로서의 까자끼: 까자끼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에 관한 소고 러시아연구 2010 제 20권 제 1호, 쪽. 6) 카자크(казак)는 자유인 을 뜻하는 투르크어 quzzaq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A. Helbig, O. Buranbaeva, V. Mladineo, Culture and Customs of Ukraine (Westport: Greenwood Press, 2009), p. 19.

7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71 들,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를 피하기 위해 온 범법자들, 그밖에 몰락한 러시아의 귀족계급(бояр) 등이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카자키 집단 내에서 타타르적 요소는 거의 사라지고 동슬라브 계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7) 1500년대 후반 카자키는 몇 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의 정착지가 자포로지예(Запорожская сечь)이다. 드 네프르강 하류의 숲으로 둘러싸인 급류 지역에 정착한 자포로지예 카자크는 가장 크고 유명한 카자크 그룹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그룹은 돈강 하류에 정착한 돈카자크이다. 1581년 돈 카자 크의 한 그룹은 우랄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 후 300여년 동 안 동쪽과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카프카즈 산맥의 테렉강, 쿠반강, 볼가강과 야이크강 등) 몇 개의 카자크 공동체가 더 만들어 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카자크 사회 내에서 엘 리트 계급이 발전하게 되는데, 그들의 권력이 더욱 강력해 질수록 특권 카자크와 일반 카자크 사이에 불화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카자크 통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 세 력의 간섭에 의해 더 가속화되었으며, 특히 17세기 말 폴란드, 모스크바 공국, 오스만 제국은 카자크 영토(우크라이나 땅)의 대부분을 분할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중앙집권화된 모스크바 제 국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명목상의 통치를 완전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경제적 통제로 바꾸 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헤트만(카자키 지도자) 들은 세력을 상 실하였고, 세력이 약화된 카자크 행정부와 군대는 해산되었다. 1783년 농민들은 공식적으로 자 기 땅을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며 사실상의(de facto)의 농노가 되었으며, 반면 우크라이 나 귀족들은 러시아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카자크 공동체는 짜리와의 관계에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한편으로 는 러시아가 리투아니아, 폴란드, 터키 등과 계속해서 충돌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황제가 필요로 하는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타타르 공습으로부터도 러시아를 보호해 주었다. 그에 대한 댓 가로 러시아 황제는 카자키에게 돈을 지불하거나 음식과 화약, 의복 등을 제공했다. 다른 한편 카자크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주변의 타타르나 터키 세력과의 전쟁을 위해 러시아 황제의 승인 없이 이들 지역을 자주 공습하기도 했다. 1600년대와 1700년대 카자키의 독립에 대한 열의는 러시아 황제의 세력에 대항하는 수많은 반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8) 그러 나 모든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1800년대부터 카자크인들은 철저하게 러시아 황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1917년 볼셰비키 혁명까지 그들은 황제의 군인이자 경찰로서 전 쟁의 선봉에 서거나 민중탄압에 앞장섰다. 1900년대 초반에는 그들은 12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 하고 그 후 5년은 예비군으로 활동해야 했다. 이처럼 황제에 대한 완전한 예속과 복종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1917년 혁명을 전후 해서이다. 혁명과 더불어 재촉발된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의는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시위 군중에 대한 상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게 만들었으며, 혁명의 절정기에는 그들 내부에 적군과 백군으 로의 분열이 일어나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적군도 백군도 아닌 카자크 독 립국가를 이루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 된 후 많은 카자키는 가혹한 취급을 받았다. 그들 중 많은 수가 터키, 유럽, 미국 등으로 망명을 했지만, 나머지는 소 비에트 시민으로 남아 집단농장의 농민이나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과거의 카자키로서의 삶 을 버리고 특별할 것 없는 소비에트 시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7) 한 예로 1581년 한 까자끄 연대 내 등록 까자끄 명단의 민족 분포를 살펴보면 루테니아 출신 82%, 모스크바 공국 출신 8.4%, 폴란드 출신 4.8%, 리투아이나 출신 4.8% (Luber & Rostankowski, , Plolhy(2001), 22/구자정, 에서 재인용)로 슬라브인의 숫자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8) 가장 대표적인 두 명의 카자크 반란은 돈카자크 스텐카 라진(1671년 사망)과 역시 돈 카자크인 예멜리안 푸 가쵸프(1775년 사망)가 이끈 반란이었다.

7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카자키가 이렇게 쉽게 제정러시아 혹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적응하고 정착하게 된 데는 앞에 서도 지적했듯이 그들이 하나의 독자적인 인종이거나 민족그룹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타타르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다양한 슬라브 인종들을 흡수하여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갔 고, 삶의 양상 역시 타타르 스텝의 고유성과 러시아 숲의 특성에 함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러시아인의 일부로 남게 한 것은 그들이 정교도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몇몇 그룹들은 무슬림이거나 이교도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카자키는 러시아 정교 신봉자이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흡수하면서 성장했기에 카자키는 러시아의 다른 민족들에 비 해 타종교, 타민족에 대해 관용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신과 황제를 신봉하 는 정교도로서 그들이 오랜 동안 황제의 군대로서 열정적으로 러시아에 충성을 했던 것은 당연 한 결과일 것이다. 카자키가 모스크바 공국의 공식적인 보호령으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모스 크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페레야슬라브 협정(Переясалвская рада, 1654) 에 서명을 한 것도 정교 통치자로서 러시아 짜리의 신앙과 성향을 인정했음에 대한 반증이다. 다음 장에서는 소비에트 혁명기 자신들을 독자적인 민족으로 선언하고 독립국가를 이루려는 시도를 하는 카자키의 삶과 자의식의 성장을 거대한 장편 서사시로 엮어낸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을 중심으로 그들이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 헌신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III. 숄로호프와 고요한 돈강 총 4권으로 이루어진 고요한 돈강 9)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이 이루어 낸 가장 중요한 작 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과 1917년 혁명, 그 후의 러시아 내전 시기 돈 카자크의 삶을 주인공 그리고리 멜레호프(Григорий Мелехов)를 중심으로 파노라마 적으로 그 려내고 있다. 소설의 주요 사건은 1912년에서 1922년 사이 뵤센스카야 마을(Вёшенская станиц а)에서 전개되는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주인공 그리고리는 때로는 무책임하고 때로는 자유분방 하며 정열적인 젊은이에서 여러 번의 전쟁을 겪으며 자의식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해 간 다. 그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돈카자크의 삶을 일순간에 바꾸어 버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는 극단의 비극을 겪게 되며(물론 이것은 당시 러시아인 대부분의 비극이기도 하다) 적군과 백 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타고난 강인한 체력을 소유한 그리고리는 일반 카자크 병사에서 시작하여 장교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고 나중에는 장군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지만 전쟁에서의 성공은 그에게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게 만든 극단의 비극에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된다. 결국 소설 마지막에서 그가 택하는 것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고향과 아들에게로의 귀환이다. 이처럼 고요한 돈강 은 현대러시아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절박한 시대였던 20세기 초에 카자키라는 독특한 집단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 숄로호프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 아왔기 때문에 카자키의 다양한 삶과 의식, 전통 등이 풍부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소설의 또 다른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에서는 20세기 초 카자크 마을에서의 농민들의 일상생활이 나 관습, 예식, 전통, 노래 등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어서 카자키 삶의 백과사전 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9) 1권에서 3권은 1925년에서 1932년 사이에 쓰여졌고, 4권은 1940년에 끝이 났다.

7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73 III-1. 민요를 통해 드러난 카자크의 정신세계 고요한 돈강 에는 유난히 많은 카자크인들의 민요가 소개되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전쟁을 하면서도 그들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노래로 승화시켰던 카자크인들의 낙천성을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민요가 민중들의 삶과 함께 탄생하고 성장해 온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들의 가치관 내지는 세계관을 이해하는 제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민요가 작자 미상이고 오랜 세월 동안 구전되는 상황에서 민중의 여러가지 목소리가 덧붙여 졌 음을 생각한다면 숄료호프가 소설의 중간중간에 민요를 소개함으로써 여러가지 효과를 거두었 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생의 대부분을 전쟁에서 보내야 하는 카자키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 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들이 이런 소박함 속에서 위로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 다. 또한 숄로호프는 구전 민요를 기록하고 자신의 소설 속에서 문학적으로 완성시킴으로써 작 가로서의 성취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면 민요를 통해 드러난 카자키의 속내를 살펴보도록 하 자. 다음은 그리고리의 형인 표트르 멜레호프(Пётр Мелехов)의 아내 다리야(Дарья)가 부르는 자장가의 내용이다. 자장 자장 자장 아가는 어디에 갔었나요? 말을 지키러 갔습니다. 어떤 말을 지키러? 금으로 장식한 안장을 얹은 말을 지키러 갔었습니다. 아가말을 어디에 갔나? 대문 밖에 서 있습니다. 그럼 대문은 어디에 갔나? 물에 떠내려 갔습니다. 그럼 거위는 어디로 갔나? 갈대숲 속으로 도망쳐 갔지. 그럼 갈대는 어디로 갔나? 아가씨가 베어서 가져갔지. 그러면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아가씨는 시집을 갔습니다. 그럼 카자크는 어디로 갔나? 싸움터에 갔습니다...(1:18~19) 10) -Колода-дуда, Иде ж ты была? -Коней стерегла. -Чего выстергла? -Коня с седлом, С золотым махром... -А иде же твой коно? -За воротами стоит. -А иде ж ворота? -Вода унесла. -А иде ж гуси? -В камыш ушли? -А иде ж камыш? -Девки выжали. -А иде ж девки? -Девки замуж ушли. -А иде ж казаки? -На войну пошли...(2:20~21) 11) 이 자장가는 카자크의 일생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아이 때부 터 말과 함께 자라고 걸음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말을 모는 법을 배우는 카자키에게 말은 그들 의 분신이다. 전쟁에서도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카자크들이 말의 고통이나 부상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복수하는 내용을 우리는 자주 확 인 할 수 있다.(숄로호프의 돈지방 이야기Донские рассказы 나 바벨의 기병대Конармия 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상황들이 하나하나 연결되면서 노래의 마지막은 전쟁터에 나가는 카 10) 미하일 숄로호프 고요한 돈강 장문평 외 역 (서울: 일월서각, 1985), 18-19쪽 11) М. Шолохов, Тихий Дон,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и в восьми томах, том 2 (Моква: Огонек, 1962), сс

7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자크로 끝을 맺는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아가씨가 결혼을 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과정이며, 카자크의 삶과 전쟁은 태어나면서 부터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의 두 노래에서는 카자크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카자크의 속내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러시아를 지키고 러시아 황제를 위해서 전투에 참여 하지만 카자키에게 그것은 결코 그들이 원하는 삶은 아니다. 보통의 카자크에게 전쟁은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다는 그들의 질곡의 역사에서 외부적인 힘에 의해 강요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며, 이에 대한 그들의 반감은 오래 전 만들어지고 구전되던 노래 속에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20세기 초 이미 충분히 러시아 화가 되고 황제의 헌병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러시아 황제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는 카자키가 전 장에서 다음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노래는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촉발된 카자키의 민족적 자의식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마는 운다, 사원 옆에서 어머니는 손자를 안아 올리고 젊은 아내와 눈물에 잠긴다. 사당 안에서 까자끄가 갑주 차림새로 나오자 아내는 말을 끌어오고 조카는 창을 들어준다... 이런 고생이 있을 수 있나? 짜아르가 지운 멍에의 괴로움이여 까자끄의 목이 옥죄여 숨도 쉴 수 없네, 숨도 쉴 수 없네. 뿌가쵸프가 돈을 향해 부르짖을 때 메아리가 하류에서 끓어오른다. 오오, 아따만이여, 까자끄여. 짜아르에게 충의를 다하라 마누라같은 건 생각하지 마라 정부를 찾을 것도 생각지 마라 짜아르에게... 눈을 흘겨주리 자아, 피워라! 자아, 태워라!... 우후후! 우후, 우후! 하! 하, 하, 히, 호, 후, 하, 하! (3:574~575) Конь боевой с походным вьюком У церкви ржет, когой-то ждет. В ограде бабка плачет с внуком. Жена-молодк слезы льет. А из дверей святого храма Казак в доспехах боевых идет, Жена коня ему подводит, Племянник пику подает... Эх вы, горьки хлопоты, Тесны царски хомуты! Казаченькам вьи трут - Ни вздохнуть, ни вздохнуть. Пугачев по Дону кличет, По низовьям голи зычет: Атаманы, казаки!... Царю верой-правдой служим, По своим жалмерком тужим. Баб найдем - тужить не будем. А царю... полудим, Ой, сыпь! Ой, жги!... У-ух! Ух! Ух! Ха! Ха-ха-хи-хо-ху-ха-ха!(3:85~86) 그들에게 전쟁은 스스로 원해서도 아니고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 때문도 아니다. 전쟁에 나가 는 카자크를 보며 가족들은 눈물로 자신들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으며, 전쟁은 러시아 황제에 의 해 지워진 멍에이고 괴로움이다.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를 위해 싸운 전투는 그들의 목을 옥죄 는 고통이지만, 그것을 거스를 힘이 없기에 지금은 러시아 황제를 향해 반기를 든 농민 영웅 푸가초프를 기억하며 소극적인 저항을, 그것도 노래를 통해 드러낼 뿐이다. 그들을 지탱해 주는 힘은 그들을 잉태하고 양육해 준 카자크의 땅, 이 소설에서는 돈 강이라는 자연의 위대함이며, 오랫동안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해 준 정교 신앙이었다. 자신들의 땅과 신앙을 위해서라면 죽

7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75 는 것도 두렵지 않을 만큼 카자크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은 무한의 힘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우리들의 돈, 고요한 돈, 우리들의 아버지는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회교도에게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모스크바에 가서 살 길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네. 또한 터키에게는 - 오오, 언제나 날카로운 칼로 그 뒷머리를 얻어맞았네. 다음해도, 그 다음해도, 돈의 스텝, 우리들의 어머니는, 순결한 성모와 그 정교의 신앙과, 또한 물결이 일어 소란한 자유스러운 돈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적과 싸우라고 외쳤 네.(3:596~597) 이러한 사랑의 감정에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이해와 설득은 필요 없으며 이 땅에서 태어 난 카자크라면 태생적으로 자기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본능이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데는 그 가 장교이건 일반 병사이건 상관이 없다. 그들이 카자크라면 그걸로 족하다. 장교 리스트니츠키 (Евгений Листницкий)가 이 노래를 들으며 특이할 것도 없는 담담한 내용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경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1905년 혁명이나 1차 세계대전에서 황제의 현병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러시아와 황제 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했고 그것에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던 카자키는 1917년 혁명의 시기에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물 론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민족자결 원칙이 큰 역할을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 로 카자키 스스로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던져본 사건일 것이다. 그 래서 최근까지 목숨을 바쳐 구하려 했던 러시아 황제가 과거 그들의 선조에게는 공포와 두려움 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 장본이었다는 사실을 되살린 것이 은연중에 그들의 합창 으로 표현된 자신들의 민요였다. 한 사람의 선창으로 시작되어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나의 목소리로 부르는 합창은 카자키의 집단적 역사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을 것 이다. 캄캄한 광야 위에는 단 한 가지, 여러 세기나 살아 온 옛노래만이 살아서 지배하고 있었다. 그 노 래는 일찍이 대담하게도 짜르의 군대를 격파하고, 조그만 해적선을 타고 돈이나 볼가 유역을 마구 돌 아다니고, 독수리 표시가 달린 짜르의 어용선을 약탈하고, 상인이나 왕후나 장군들을 애먹게 하고 먼 시베리아를 정복했던 자유스러운 카자크의 선조들에 대한 것을 소박한 꾸밈없는 말로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 민족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싸움에서 격파당해 면목이 없게도 퇴각 하는 자유스러운 카자크의 자손들은 우울하게 말없이 이 힘찬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 다. (7:1721) 그들은 내재적으로 자신들은 우크라이나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카자크인이라는 신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아래는 카자크인의 기원에 관한 카자크인과 러시아인 사이의 대화이다. 난 코사크요. 그런데 당신은 집시가 아닌가요?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이요. 바보 소리! 아포니카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코사크는 러시아인에서 나왔어요. 그건 알고 있겠죠? 그럼, 내가 당신한테 한 가지 가르쳐 주지. 카자크는 카자크에서 나온 거야.

7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아뇨, 옛날에 농노들이 지주에게서 도망쳐 나온 돈 강 주변에 정착한 겁니다. 그게 카자크라고 불 리게 된 겁니다. (1:164) 러시아인이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하며 카자크를 설득시키려 하지만, 카자크의 의식 속에서 카 자크는 카자크일 뿐이다. 따라서 외부적 환경에 의해 그들의 삶의 가치가 변하는 경우가 생기더 라도 카자크는 그때나 지금이나 카자크로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며, 이것은 그들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정립될 수 없으며 특수한 사회 집단이나 현상으로 정의 된다 할지라도 카자크들 스스로는 자신들을 그 어느 민족에도 포함시키지 않는 독자적인 집단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의 역사의식이나 집단적 자의식이 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되 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낸다면 주인공 그리고리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의 과정은 고 요한 돈강 의 문학적 성취를 확고히 해 주며, 이 작품이 소비에트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이념 지향적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시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다. III-2. 그리고리의 비극 민족성과 이념의 대립 숄로호프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카자크는 아니다. 그의 어머니 아나스타시야 체르니코바(Анаст асия Даниловна Черникова)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카자크 지주의 집 하녀였으며, 후에 나이 많은 카자크와 결혼을 하여 법적으로 카자크 신분을 얻은 사람이다. 아버지 알렉산드르 숄로호프(Але 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Шолохов)는 랴잔 출신으로 숄로호프의 어머니가 살고 있던 지역으로 이주 한 러시아인 상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전에 숄로호프를 낳았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성분에 따라 카자크로 등록이 되었다. 물론 후에 러시아인으로 법적인 신분이 바뀌기는 했지만, 카자크 마을에서의 출생과 어린 시절의 직접적인 경험은 카자크의 삶과 사고를 그들의 일원으로서 목 격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러한 실질적인 경험이 그의 작품들에서 생동감있게 그려지고 있 다. 고요한 돈강 에서 숄로호프는 카자키의 민요들뿐만 아니라 돈 강을 중심으로 한 자연의 아름다움, 사계절의 풍부한 변화, 농사와 추수의 광경, 결혼식 장면 등 카자크 삶의 풍부한 내용 을 지나친 이상화 없이 현실적인 시선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주인공 그리고 리의 비극적 삶과 이념적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리는 1차 세계 대전과 볼셰비키 혁명, 내전 등 현대 러시아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초의 모든 전쟁을 경험한 인물이다. 1차 대전에서는 황제의 군대로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혁명과 내전 동안에는 적군과 백군 양 진영에 모두 참여하며 극도의 가치관의 갈 등으로 혼란을 겪기도 하고 한때는 카자크 독립 국가를 이루려는 허망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 지만 결국에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비적이 되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 에 몸을 내 던진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이 비극적인 것은 이처럼 거대한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 의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음으로 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 전히 그의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그것은 돈강으로 상징되는 그의 고향과 그에게 유 일하게 남은 혈육인 아들이다. 그리고리가 겪었던 고통과 불행이 비단 그에게서만 유별나게 나타난 것도 아니며 당시 러시 아에서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 못지않은 절박한 삶을 경험했을 터인데, 그리고리가 가지 는 특수성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의 내부에서 점점 떠오르는 의식은 적이 누구이던 간에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7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77 몰아가는 상황 자체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카자크로서의 집단의식도 혁명의 이념도 그가 겪은 내면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리가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하고 느꼈던 것도 죽은 존재에 대한 연민의 정이다. 그는 풀베기 철에 낫을 들고 풀을 베다가 우연히 들오리 새끼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리는 잘려진 들오리 새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았다.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황 갈색인 새끼는 부드러운 털 속에 아직도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짝 벌린 납작한 부리 위에 분홍빛 핏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유리알과 같은 눈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며, 아직 따뜻한 다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리는 문득 날카로운 연민의 정에 휩싸여 손바닥에 누워 있는 작은 시체를 가만히 응시했다.(1:51) 이러한 감정은 태어나면서부터 군인이 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카자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물 론 대다수 카자크들이 상대를 죽이면서 기쁨과 희열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의 공 포가 눈앞에서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 공포로 인해 야수로 돌변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등이건 팔이건 말이건 총이건 간에 닥치는 대로 베고 치는 혼돈의 상황(2:351)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리고리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겪는 감정이 살아남 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혐오와 의혹의 감정이다. 1차 대전에 출정하여 오스트리아 병사를 베어 버린 그리고리는 서서히 죽어가는 상대의 눈과 마주치게 된다. 죽음의 공포를 담은 눈이 꼼짝도 하지 않고 그를 응시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리고리는 차마 그 눈과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두개골의 반쪽이 길 위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낼 정도로 강한 일격 이었지만, 적을 물리쳤다는 기쁨 같은 건 없다: 힘에 겨운 짐을 진 사람처럼 그의 걸음걸이는 무겁고 뒤엉켰다. 혐오와 의혹이 그의 마음을 씹었다. 그는 톱니 모양의 등자에 손을 얹었지만, 무거워진 다리는 좀처럼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2:321) 카자크 병사들이 폴란드인 하녀를 집단 폭행하는 장면에서 느낀 분노와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녀를 구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감정도 이 와 유사할 것이다. 그리고리의 심정은 화자의 직접적인 관여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떠했던가? - 자신과 같은 인간인 적병들을 쓰러뜨리려 하고, 아직 그것을 제대 로 하지 못한 자들이 죽음의 전장에서 충돌하고, 서로가 동물적인 공포에 싸인 채 부딪치고, 서로 베 고, 무턱대고 서로 때려서 자신도 다치고 말도 다치게 하고, 그리고 한 사람을 쏘아 죽인 총소리에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치고, 정신적으로 일그러진채 서로 헤어져 갔던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훈공으 로 불려졌던 것이다. (2:353) 이처럼 정신적 혼란을 겪는 그리고리에게 적군, 혹은 백군 카자크의 조언은 처음에는 고통에 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에 서 만난 기관총병 가란짜는 그에게 황제에 대한 불신의 관념을 심어준다: 너는 황제를 위해서 라니 어쩌니 하는데, 도대체 황제란 뭐지? 황제는 주정장이이고 황후는 암탉이지 않나. 나리들 은 전쟁으로 돈을 실컷 벌지만, 우린 뭐야, 목을 조일 뿐이야. 그렇지 않나? (2:458) 가란짜의 설 명과 설득은 지금까지 출구를 찾지 못해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던 그리고리의 의심을 단번에 해 결해 주고 그를 만족시켜 준다. 그의 말에 동화된 그리고리는 시찰 나온 대공을 향한 노골적인 분노로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놈들을 위해서 우리는 고향에서 끌려나와서 죽음

8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저주스러운 개새끼들! 이놈들이다. 우리의 등을 끈질기게 파먹고 있는 이들! 이놈들을 위해서 우리는 남의 나라 보리밭을 짓밟고, 남의 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한 것인 가? 내가 보리밭에서 기어다니면서 아우성친 것도? 그렇게 무서운 꼴을 당한 것도 모두 그 때 문인가? 집을 떠나게 하고, 병영에서 반죽음을 시키고... (2:463) 그러자 이번에는 카자크 독립주의자인 추바토이와 이즈바린이 나타나 카자크에게 필요한 것 은 독립이라고 주장한다. 이 토지는 우리들의 토지야. 우리의 조상의 피로, 우리 조상의 뼈로 살이 찐 토지야. 그런데도 우 리는 러시아에 정복당해 4백년 동안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줌으로써 자신의 것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채 살아 왔어.(...) 볼셰비키가 이기면 노동자는 좋겠지만 그밖의 사람들의 형편은 나빠지지. 제정이 부흥되면 지주와 그밖의 패거리들은 잘 되겠지만 그 외의 계층에게는 좋지가 않아. 때문에 우 리에겐 그 어느 쪽도 필요하지 않다 이 말이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 뿐이라 네. (3:694~695) 이들의 말을 들으며 그리고리는 다시 한 번 가란짜와 대화했을 때와 같은 심경을 경험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에는 볼셰비키 정부에 대한 예찬이었고, 이번에는 카자크 독립에 대한 열의 였다. 카자크의 생활 방식과 사회주의(볼셰비키 혁명)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는 이즈바린의 주장은 그리고리의 내부에서 점차 볼셰비키에 대한 점증하는 증오로 확대된다. 이처럼 때로는 볼셰비키에 의해 때로는 카자크 주의자들에 의해 그리고리는 의식화 되고 분명 한 적을 만들어 내지만 그 어느 것도 전쟁과 혁명의 상황에서 그를 완전히 구원해 주지는 못한 다. 그가 구하던 해답은 소설 마지막에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향 땅(돈 강)과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어린 아들이었다. 숄로호프는 고요한 돈강 >에서 카자크의 정치의식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오 히려 인간으로서의 그리고리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소비에트의 민족 정책과 사상교육의 영향 을 받아 그는 자신의 의구심과 갈등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고 잘못된 사상과 행동을 지적할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했지만, 처음부터 그는 하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 황과는 타협할 수 없었다. 숄로호프가 소비에트에서 가장 인정받던 작가 중의 한 사람은 분명하 지만, 세계문학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이 이념을 중시하는 소비에트 담론의 무 게에 짓눌리지 않고 인간 카자크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8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79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 연구 -소비에트 초기 대불교정책을 중심으로- 권기배(경상대) I. 푸시킨이 1829년 방문하여 원시 여인의 야생미 1) 에 매혹되고, 입체파의 거두 발레미르 흘레 브니코프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2) 러시아의 동양 을 체험한 칼미크 민족은 러시아 연방에 속하는 몽골계 유목인으로서 현재 유럽 유일의 불교국 으로 동양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 다. 유목민 특유의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칼미크 불교는 티베트 불교의 강력한 영향아래 놓 여 있다. 칼미크의 선조들(오이라트)이 카스피해 북쪽 볼가강과 돈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몽고 에서 바이칼호 근처의 부리야트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 전파된 티베트 불교 3) 의 전통이 함께 들어왔기 때문이다. 칼미크 공화국 4) 의 주민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매우 깊은 민족으로 100여개가 넘는 불교사 1) 푸시킨은 시 깔미크여인 (Калмычке)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 당신의 시선과 야생적인 아름다움이 나의 이성과 가슴을 매혹하는 구나. Мне ум и сердце занимали Твой взор и дикая краса. 2) 흘레브니코프 1885년 10월28일에 칼미크공화국소재 시골 마을인 말리예 뎨르베트 Малые Дербеты 에서 태어났다. 작가 자신의 더 정확한 표현을 빌려서 이야기 하면, 볼가강 어구 가까이에 위치한 러시아의 해변 변경지대 на морской окраине России вблизи устья Волги 인 불교를 믿는 몽골 유목민의 야영지에 서с стане монгольских, исповедующих Будду, кочевников 태어났다. Давид Культинов. Осиянное слово. Элиста. 1984, с. 5. 어린 시절을 칼미크에서 보낸 흘레브니코프는 10월 혁명 후 러시아 남부 지방 을 떠돌아 다녔고 아스트라한과 카스피해 연안, 바쿠 등에서 살기도 했다. 김성일, V. 흘레브니코프의 <라 도미르>에 나타난 미래주의 유토피아. 비교문화연구, 13권 2호(2009). 34쪽. 3) «칼미크와 티베트 민족의 접촉은 우리세기 첫 번째 천년의 끝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접촉의 기본적인 지역은 현대의 신장-위구르지역에서 이루어 졌는데, 그 당시 그곳에는 위구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티베트로부터 다양한 종교적인 교리을 받아들였는데, 이러한 가르침은 특히 몽골족중의 오이라트족 사이에 강 하게 퍼지게 되었다.<..> 오이라트의 분할과 분포의 과정의 결과를 살펴보면 17세기 중엽 오이라트의 집단이 주는 서쪽의 볼가 강의 하류에서부터 중국의 만리장성, 그리고 남동쪽의 티베트의 저산지대까지 확장되었다. Установление отношений между тибетским и ойратским (калмыцким) народами, по мнению р яда современных ученых, датируются периодом конца 1-го тысячелетия нашей эры. Основной зоной контактов стала территория современного Синьцзяна, на которой тогда проживали уйгу ры, которые заимствовали из Тибета различные религиозные учения и активно распространяли среди монгольских народов, в том числе и среди ойратов. <...>В результате процесса разделени я и расселения ойратов их кочевья к середине XVII века, простирались от низовьев Волги на з ападе до Великой Китайской стены и предгорий Тибета на юго-востоке». Калмыкия и Тибе т. (2013년 5월15일 검색) 4) 1920년에는 칼미크 자치주, 1935년에 자치주는 칼미크 자치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개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3년 12월 칼미크 민족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칼미크 자치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폐지되었다. 그리고 1957년 2월 스따브로폴 끄라이 소속 칼미크 자치주로, 1958년 7월 29일 자치 공화국으로 개편되었다.

8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8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찰을 중심으로 주민의 대다수가 공개적이고 자유롭게 불교를 믿고 있다. 비록 러시아연방에 속 한 작은 공화국(전체 공화국 인구가 400,000)임에도 불구하고, 칼미크민족은 티베트 5) 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2번 방문 하고 한국 불교 조계종과 교류하는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불교 국과 깊은 신뢰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의 칼미크 불교의 역동적인 모습은 사회 주의 혁명이후 형성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대만 해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칼미크에는 규모가 큰 불교 사찰만 해도 전체 적으 로 150여 개가 넘게 있었서, 칼미크인들은 그 불교 사원에서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하였다. 심 지어 유목 생활을 하면서도 불상( 佛 像 )을 휴대용 천막 유르트 정중앙에 모시고 승려와 일반인 들이 자유롭게 모여 불교 의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칼미크 불교는 소비에트 시대 - 특히 소비에트 초기 20년 - 를 거치면서 승려가 탄 압이 대상이 되고, 대부분의 사찰이 파괴되는 등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말살 되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기본적으로 칼미크 불교를 민족주의로부터 분리하여 최종적으로 제거하여 칼미크를 소비에트 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칼미크에서 불교는 민족의 정체성 을 확립하고 민족의 공동체적 정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서 소비에트에 의해 진행되고 있 었던 러시아화를 통한 민족 통합정책과 공산당 이데올로기를 통한 소비에트식 권력집중에 방해 되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소비에트 정권은 종교 정책으로 러시아에서 모든 종교의 말살을 최종 목표 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신자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 종교를 빠른 시간 안에 지상에서 모두 사라지게 할 수도, 그렇게 하기에는 신자들의 저항에 직면 할 수밖에 없다 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소비에트 정권은 장기적인 종교 말살 정책인 반종교정책 과 함께 단기 적으로 다양한 유화적인 정책을 사용해 왔다. 이에 본고는 소수민족인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에 적용되고 실행된 강경책인 반종교 정책 과 유화적인 실용주의 정책 의 실체와 이러한 정책들이 칼미크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에 실제적으로 가져다준 결과에 대해서 고찰 6) 하고자 한다. II. 1. 칼미크 불교에 대한 반 종교정책 10월 혁명 후 소비에트 정권은 소련의 다민족 구성에서 발생 하는 민족적 갈등을 소비에트 사회주의체제의 확립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갈등의 표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소수 민족의 집단적이고 정신적인 고유한 정체성 을 드러나게 하는 5) 티베트불교의 영향력은 강력하여 수도 엘리스타에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기와지붕 사원이 여러 곳에 있고, 대부분 티베트에서 온 스님들은 티베트 어를 사용하여 독경을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티베트 망명 정부와의 교류가 활발하다. 6) 소비에트 시대,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에 칼미크 불교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는 현재까지 전혀 없다. 소비에트 시대의 역사-종교적인 연구는 1970년에 두 권으로 발간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칼미크 역 사 개론>(Очерки истории Калмыкия АССР. Т.2. М., Наука, 1970.)에 단지 몇 줄 정도의 언급만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8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 연구 81 종교 를 제일 우선 적으로 제거하려는 정책을 수행하였다.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에 위치하고 있는 칼미크에서도 신속한 소비에트화를 위해 불교를 제거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더구나 칼미크 불교는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 시기 민족적 성향의 정치적 활동 7) 에 적극적이어서 탄압 대상 최우선 순위에 올라가 있었다. 1) 재산권에 대한 탄압 소비에트 정권 종교정책의 신호탄이 된 1918년 1월 23일에 공포된 법령 <종교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свободу религиозной и антирелигиозной пропаганды> 8) 에 따라서 칼미크 불교 재산은 국유화되었고, 1923년 11월 16일에 발령된 포고령 13, 14, 16조항(статей 13, 14 и 16 Устава)에 근거하여 소비에트 정권은 «칼미크 지역 승려의 모든 재산을 등록하고 그 등록된 재산을 그 승려들이 살고 있는 불교 사원의 재산으로 환수하였다. взять на учет все имущество духовных лиц по всей Калмобласти, заприходовать его в тех хурулах, где они живут» 9). 그리고 승려들이 소유한 가축 및 농기구까지 탈취 10) 한 1928년에 재산권 탄압에 정점을 찍었다. 또한 소비에트 정부는 1922년 발생한 최악의 기근 을 이용하는 기지( 機 智 ) 를 발휘하여 교회와 불교사원, 수도원의 미사 및 행사에 쓰이는 고가품의 몰수에 대한 법령을 발의했다. 법령은 두 번에 걸쳐 제정되었는데, 우선 1922년 2월에 만들어진 법령에 의해서 불교 종교 의식에 이용되는 고가품에 대한 몰수가, 같은 해 3월에 제정되어진 법령에 의해서 모든 불교 사찰의 재산(고가품)에 대한 몰수가 단행되었다 11).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서 자행되어진 이러한 몰수는 대기근 대책 위원회 및 몰수를 위한 특별위원회 에서 담당하였는데, 실제적으로는 몰수에는 비밀위원회가 더 큰 공( 功 )을 세웠다. 7) 임시정부는 1917년 3월 20일 «종교적-민족적 제한에 대한 폐지»(Об отмене вероисповедных и национ альных ограничений)에 대한 결의를 채택했다. 이 결의는 모든 종파의 종교적 활동의 발전뿐만이 아니 라 사회-정치적 삶으로의 승려 계층의 유입으로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법적인 결의를 이용 해서 아스트라한 현 칼미크 주(칼미크공화국)의 30명 이상의 승려(라마승)들이 1917년 3월 26일 31일 사이 에 개최된 칼미크 민족 대표자 1차 회의 100명의 대표자에 포함되었다. 이 대회에서 입헌군주제를 옹호한 보수당원들을 지지했다. 8) «소비에트 정부는 종교의식이 진행되는 건물의 무상 이용, 신학교, 교회 관습의 대상물들을 넘겨준 후, 교회 의 정부 재정지원, 법률적인 권리를 박탈하였다. 또한 소비에트 정부는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 했고 종교계가 사유재산을 갖는 것을 금지했다. Советское государство, передав религиозным обществам в бесплат ное пользование культовые здания, церковные школы и предметы церковного обихода, лишил о церковь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финансовой поддержки, прав юридического лица, а также национал изировав все церковное имущество, запретило религиозным обществам владеть собственностью» СУ РСФСР, Ст )НАРК. Ф.Р.-3. Оп.2. Д Л )НАРК. Ф.П.-1. Оп.1. Д.214. Л )칼미크 공화국의 불교사찰(Калмыцкие хурулы)에는 고가( 高 價 )의 장식이 많은 것이 아니다. 당시 칼미크 자치주의 공산당 집행위원회의 회의에서도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칼미크 지역에는 수도 원도, 부자 교회도 없다, 더군다나 칼미크 불교사원에는 어떠한 귀중품도 없다. 왜냐하면 불교사원에는 금제품 이나 은제품은 없고, 장식품이라야 천이나, 드물지만 비단에 그려진 부처님의 형상이. 전부인데.. в Калмобл асти нет ни монастырей, ни богатых церквей, а в калмыцких хурулах тем более нет никаки х ценностей, ибо там не употребляются ни золотые, ни серебряные вещи и все украшения сос тоят из разрисованных образов Будды на полотне и редко шелке..» (НАРК. Ф. Р.-3. Оп.2. Д Л.10.)

8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8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 선거권 박탈 1924년 8월11일의 <시민의 선거권 박탈의 규정>과 1926년 11월 4일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선거와 소비에트 대회 О выборах в советы и на съезды советов РСФСР>에 대한 지침에서 소비에트 정부는 칼미크 성직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였다. 흥미 있는 점은 1926년 11월 4일의 지침에 소비에트 정권이 모든 종교의 현직 성직자 뿐만 아니라 퇴직한 성직자 의 선거권도 박탈한다는 희한한 문구도 슬쩍 집어 넣은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침에 따라 1927년에 4719명의 칼미크인들이 (전체유권자의 6.2%)선거권이 박탈되었는데 그 중에서 승려를 포함한 불교에 종사하는 이들이 규모는 1492명으로, 선거권을 상실한 이들의 31.6%를 차지했다. 또한 1928년에는 <퇴직.현직 불교계에 종사하는> 4492명의 칼미크인들 중 30.4%인 1365명이 선거권을 박탈 당하였다 년사이에는 3862명의 칼미크인들이 선거권을 박탈 당했는데, 그들 중 33%인 1272명의 불교계와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12) 3) 불교승려 체포 1920년대 말부터 소비에트 정부는 종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1929년 4월8일 <종교통합 религиозных объединениях»> 법령을 통하여 칼미크에서는 공산당 지도부와 청년당원들에 의해서 불교사원의 폐쇄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칼미크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사원의 문이 닫혀졌다. 이와 동시에 부처님 상에 대한 모독 및 사원에 비치된 불교화의 훼손이 광풍처럼 몰아닥쳤다 13). 이러한 소비에트 정부의 종교적 탄압은 칼미크 불교신자들의 저항을 불러왔고, 다수의 종교적인 차원의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소비에트 정부의 종교정책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을 <악적인 요소>로 규정한 소비에트의 강력한 대처로 시위는 약해졌고, 실제로 탄압은 계속되었다. 특히 1929년부터 칼미크에서는 불교 승려들에 대한 체포가 시작되었는데, 1930년에만 23명의 승려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1931년에는 이러한 승려들의 체포에 반발하는 칼미크 최고불교지도자(шаджин-лама)를 포함한 53명의 승려들을 소비에트 정권이 날조한 반혁명단체 <Закат>를 조직, 활동에 대한 혐의로 체포하였다. 12) 26 НАРК. Ф.Р.-3. Оп.2. Д.21. Л.199; Д.42. Л.168, 175; Д.550. Л ; Д Л.23; Д Л.10; Оп.10с. Д.130. Л.3, 6; Оп.2. Д Л.15; Оп.10с. Д.130. Л.19; Максимов К.Н. Трагедия нар ода: Репрессии в Калмыкии С ) 심지어 천에 그려진 부처님의 그림들은 발싸개, 이불로 이용되어졌다.

8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 연구 칼미크 불교에 대한 실용주의 정책 소비에트 정권은 위에서 언급한 반 종교 운동 과 병행하여 여러 종교를 이용하여 전체 러시 아 사회주의 소비에트화를 위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응하도록 유도하는 실용주의 정책 도 실행했다. 1) 칼미크 불교 개혁파와 연합 칼미크에는 1920년 초에 승려의 정치적 참여를 주장하는 불교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개혁적인 정책은 제 13대 달라미 라마 의 전권대리인 14) 에 의해서 적극적이고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과거에 형성된 규율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승려들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소비에트와 야합하는 반불교적 개혁 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칼미크 승려들은 10월 혁명과 내전에 대하여 중립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결국 그들의 반혁명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결국 백위군을 지지하였다. 불교 개혁파를 지지한 칼미크 자치주 소비에트 정권은 비타협적인 보수주의 승려들의 지도부를 고립화시키는 작업과 병행하여 개혁파 승려들의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약속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13대 달라이라마의 전권 대리인이면서 칼미크 불교계의 개혁운동의 주창자인 А. Дорджиев(хамбо-лама)와의 협력체제 구축에 온힘을 쏟았다. 소비에트 정부는 또한 개혁파 승려들과 함께 불교대회를 개최하여 <칼미크 자치주의 불교 사원에서의 승려들의 내부적 삶에 관한 법령 «Устава о внутренней жизни монашествующих в буддийских хурулах Калмыцкой автономной области»>과 <칼미크 자치주의 칼미크 불교신자의 정신적 부분의 통제에 대한 법규«Положения об управлении духовными делами верующих калмыковбуддистов Калмыцкой области»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법규들은 칼미크 불교의 개혁운동의 승리를 더욱더 강화 시켜주었지만 칼미크 불교의 대규모 분리 15) 와 소비에트정부에 의한 불교에 대한 통제의 확립이라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2) 전 소비에트 불교신자대회 개최 소비에트 정부는 동양에서의 사회주의 소비에트 세력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동방정책 을 실행했다. 이러한 동방정책의 대상으로 이슬람교 국가 뿐만 아니라 티베트를 포함한 불교국가도 포함되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동방정책의 성공의 열쇠를 동양나라의 국민들의 관습, 성향, 종교에(«обычаям, нравам и религии культурно-отсталых народов этих стран) 대한 섬세한 접근 16) 으로 보았다. 이것을 위해서 소비에트 정부는 칼미크내의 티베트 라마승들과 칼미크 승려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4) 티베트 망명 정부 법왕청의 승려(린포체)가 파견되어 종교 고문역을 맡고 있었다. 15) 칼미크 불교 종파와 신자들의 분리의 결과로 세 개의 종파가 형성되었다. 하나는 정신적인 부분의 지배와 통 제를 지지하는 개혁주의자, 두 번째는 보수주의자, 마지막으로는 전통적인 열반주의자. Кочетов А.Н. Л амаизм. М., С.173.참조. 16) Андреев А.И. Время Шамбалы. СПб.; М., С.283.

8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8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러한 티베트와 칼미크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의 연장선에서 소비에트 정부는 1927년 전 소련 불교신자들의 대회(종교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러한 종교대회의 개최 위원회 17) 의 위원장은 хамбо-лама А. Дорджиев가 맡았다. 이 불교 종교 대회에는 칼미크에서 23명의 대표들이 참여했고, 특히 소련 НКВД СССР Трубачев, 칼미크 자치주의 대표로서 Е. Сайков가 참석했다. 불교계에 보내는 소비에트 정권의 우호적인 몸짓은 종교대회 직후 나온 불교신자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게 만들었다. 의심할 바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신 문화 발전의 기초이면서 막스와 사회주의의 교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учение Будды, безусловно, является основанием развития духовной культуры и не мешает учению К. Маркса и социализма» 18). III. 지금까지 10월 혁명 후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서 진행된 칼미크 소비에트화 과정에서 진행된 불교정책 을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강경책인 반종교정책 과 유화적인 실용주의 정책 의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 소비에트 정부의 불교에 대한 정책의 최종 목표는 칼미크 민족으로부터 불교의 제거였다. 이러한 소비에트 정부의 칼미크 불교말살 정책은 칼미크 불교를 민족주의로부터 분리하여 최종적으로 제거하여 칼미크를 소비에트 화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하였다. 17) 위원회에는 칼미크 불교지도자인 шаджин-лама뿐만 아니라 ЦДС 비서도 포함되었다. 18) НАРК. Ф.П.-1. Оп.1. Д Л.21-26, 37, 47.

8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 3세션(16:00~18:00) 사회자: 김세일(중앙대) 발표자: 1. 김성일(청주대):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2. 박미령(청주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3. 박영은(한양대):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4. 이지연(한양대):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토론자: 장혜진(한국외대), 김은희(한국외대), 김상현(성균관대), 심지은(한림대)

8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8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87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 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김성일(청주대) I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풍자적 반유토피아 소설 레닌그라드 는 1925년 10월로 날짜가 매겨져 있다. 하지만, 작가 생전에 이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소설이 작가 동시대 현실에 대한 커다란 반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상적 경향 때문에 새로운 권력에 부응하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만다. 1941년 작가는 체포되어 총살당했고, 1963년 소련작가동맹에서 사후 복권되었다. 그 후 레닌그라드 텍스트는 1991년 환상 문예작품집인 내일 에 실려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소설에서 작가는 러시아 미래에 대한 정확한 사회정치적인 예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러시아 문학의 풍자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1920년대 초 매우 유행했던 반유토피아 장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꼬즈이레프의 소설 레닌그라드 는 장르상 반유토피아 작품이다. 전체주의 사회 건설과 연관된 위험한, 예측되지 않는 결과를 묘사하기 위해 러시아의 많은 작가들이 반유토피아 작품들을 창작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에서 반유토피아 장르의 출현은 그 시대의 역사적 특수성에 의해 설명된다. 즉 이 시기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세계의 재분배하기 위한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을 때이자, 강력한 혁명운동에 의해 계급적, 민족적, 종교적 모순이 첨예화되었을 때이며, 급격한 변화가 사회의 사회정치적, 정신적, 문화적 삶을 휩쓸 때였다. 1) Э. 바탈로프는 반유토피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반유토피아는 유토피아와의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그것에 대한 원칙적인 부정이며 사회진보의 이상실현으로서의 완전 사회 건설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전체적으로 중요한 특징을 가진 유토피아적 이상 실현의 지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2) 20세기 초 이러한 반유토피아 작품들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В. 표도로프의 Вечер в 2217 году (1906), С. 벨스키의 Под кометой (1910), А. 꾸쁘린의 Королевский парк (1911), Жидкое солнце (1912), С. 솔로민의 Под стеклянным колпаком (1912), А. 오센돕스키의 Грядущая борьба (1914), В. 브류소프의 Республика Южного Креста (1905), Восстание машин (1908), Торжество науки (1917), Е. 자먀찐의 Мы (1924), М. 꼬즈이레프의 Ленинград (1925), М. 불가꼬프의 Роковые яйца и Собачье сердце (1925), А. 쁠라또노프 Город Градов, Котлован (1930), Чевенгур ( ). 자먀찐의 우리들 과 마찬가지로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 는 그것들이 너무도 빨리 원치 않는 것이 되어 버린 그러한 관점에서 혁명과 사회, 인간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10월 1) А.Е. Ануфриев. Утопия и антиутопия в русской прозе первой трети ХХ века. Эволюция. Поэтика. М., 2001, с ) Э.Я. Баталов. В мире утопии. Пять диалогов об утопии, утопическом сознании и утопических экспериментах. М., 1989, с. 264.

9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8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혁명 승리 이후 밝은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상은 곧바로 정치권력 강화 및 유지의 문제와 연관된 새로운 정부의 확립 문제에 자리를 양보하면서 부차적인 위치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혁명의 목적인 비국가적 조직에 대한 모든 견해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강화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데올로기는 마지막 결정적 싸움 에 대한 말을 축자적으로 해석한다. 3) 그러나 꼬즈이레프를 비롯한 극소수의 작가들만이 이러한 흐름에서 빠져나왔다. 혁명 속에서 그들을 흥미롭게 한 것은 구호를 통해 향해지는 추상적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복이었다. 이점에서 그는 자먀찐 보다 현실에 더 가깝게 서있다. 따라서 그는 장기간의 예견을 수립하지 않으며, 혁명의 법칙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동시대 현상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할 뿐이다. 이 글에서는 새로운 원칙 위에 세워진 유토피아 사회가 어떻게 그것의 전복된 세계, 즉 반유토피아 세계가 되었고, 그 세계는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떠한 반유토피아적 특징들을 갖고 있으며, 1920년대 소비에트 전체주의와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소설 레닌그라드 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미래의 대립 위에 구성되어 있다. 과거는 주인공이 직업적 혁명가였던 혁명전 1913년 페테르부르크이며, 현재는 1950년 레닌그라드로, 현재는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꼬즈이레프의 소설 속에서는 세 가지 시간의 층위가 제시된다: 주인공의 과거 년 혁명적 페테르부르크, 5.1절 시위 해산때 그는 부상을 당하여 감옥병원에 갇혔다. 이곳에서 그는 12년을 보냈다; 현재는 1925년으로 무명의 주인공은 기록을 남기고 죽어갔고, 소설의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을 이 수기의 출판자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미래는 1950년대 레닌그라드로 주인공-화자의 흥분된 상상력을 통해 드러난다. 꼬즈이레프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승리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혁명적 이상이 어떤 색다른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1950년대 레닌그라드를 새로운 정치체제 속에서 뒤집혀진 낡은 체제 를 발견한 무명의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게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이상사회와 주인공간의 갈등은 곧바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일 꼬즈이레프 소설을 신화시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검토할 경우 레닌그라드 의 두 번째 구조적 원칙은 미로 이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이 머무르는 이 낯선 세계가 미로로 제시된다. 이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무명의 주인공은 새로운 진실을 밝히며 복잡한 길을 통과해 나간다. 그렇게 미로의 길은 주인공의 정신적 진화의 단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단계들은 소설의 각 장의 명칭에도 반영된다. 첫 번째 단계는 미로를 따라 이루어지는 독특한 방황이다. 이 방황에서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주인공의 내적 명확성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낯선 나라에 도착한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많은 모순들을 폭로한다.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그는 초기 황홀한 상태로부터 의혹과 당황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의 정신적 탐색의 문제는 여러 장의 명칭들에 반영되고 있다: Я на верху 3) 자먀찐의 동시대인들의 대다수 문학적 의식 또한 이러한 시대의 영향을 순순히 뒤따랐다. М.О. Чудакова Без гнева и пристрастия. Формы и деформации в литературном процессе х гг. / Чудакова М.О. Литература советского прошлого. М., 2001., с

9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89 блаженства (6장), Я начинаю разочаровываться (11장), Я переживаю неприятные минуты (14장), Я отказываюсь что-либо понимать (15장). 미로 속 주인공 노정의 두 번째 단계는 적대적인 힘과의 투쟁의 필연성에 대한 주인공 자신의 자각이다. 꼬즈이레프의 주인공은 '교리문답서'의 규범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는 점점 더 자주 부르주아 구역을 방문하고 진실을 찾고자 레닌그라드 검열관 책임자와 그리고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사내 와 대화한다. 이로써 주인공은 적극적인 입장과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여러 장 명칭에 반영되었다: Я начинаю понимать (17장), Я усваиваю высшую мудрость (18장), Я начинаю действовать (21장). 세 번째 단계는 주인공의 길에 놓여지는 방해와 연관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주요 방해물이 되는 것은 국가기구 그 자체이다. 그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것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그에게 예견되어 있던 것이다. 이 단계에서 주인공의 보다 내적인 시야가 열려지는 듯하다. 그는 이제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유토피아 세계의 안내자인 비트만은 주인공에게 국가기구의 정당성을 확신시킬 수 없게 된다. 이른바 이 세 번째 시간적 층위에서 주인공과 이상적 사회, 그리고 이 사회에서 형성된 시공간적 관계와의 갈등이 발생한다. 꼬즈이레프의 소설 속에서 예술적 공간 역시 대립의 원칙에 따라 조직된다. 레닌그라드 도시 공간도 대립의 바탕 위에서 조직되었다: 중심에 있는 특권화된 지역과 노동자들의 잘 정비된 공동주택 그리고 이에 대립되는 도시 주변에 주로 분포된 부르주아의 가난한 구역. 노동자들은 가난한 지역을 방문하는 것도, 전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도, 심지어 낮은 계층, 즉 부르주아의 대표자들과의 단순한 대담도 무조건 금지되었다. 이와 같은 절연은 '교리문답서'에 언급된 기본 규범인 의식정책의 결과이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필연성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정의하고 시민의 모든 삶을 결정한다. 주인공 각각은 미로에서 자신의 출구를 발견한다. 비록 그는 패배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얻게 된다. 이러한 평안은 그가 이룬 선택의 정당성에 대한 의식과 그가 시작한 일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과 연관된다. 이렇게 작품 구성을 과거와 현재의 대립 및 미로의 주제에 맞게 발전시키고 난후 꼬즈이레프는 바로 이것을 통해 이 소설에 철학적, 존재론적 울림을 부여한다. 이러한 울림은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의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인 인간을 삶의 어두운 미로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도록 만드는 잔인한 운명의 주제를 드러낸다. 자신의 꿈의 나라에 도착한 후 주인공은 처음엔 '교리문답서' 에 의해 이루어진 공간과 시간의 규범에 맞게 살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의 새로운 삶의 첫날들은 마치 환상적인 꿈과 같이 지나갔다. 나는 갑작스럽게 밀려들어와 나를 가득채운 인상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모임들에 참석했고 강연했으며, 수많은 질문들에 대답을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사회적 관심의 중심이 된 것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심지어 주변 상황을 거의 돌아보지 못했다. 4) 나는 어떤 멍한 상태 속에 있었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이 상태를 열심히 유지하고 있었다. 5) 4) Михаил Козырев. Ленинград. / Михаил Козырев. Пятое путешествие Гулливера. М., 1991, с. 29. 이하 작품 인용 시 이 판본을 이용하고 원문 끝에 쪽수를 표시할 것임. Первые дни моей новой жизни проходили как бы в фантастическом сне. Я не успевал вбирать в себя впечатления, которые вдруг нахлынули и заполнили меня. Я ездил с собрания на собрание, читал лекции, отвечал на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вопросы и, признаюсь, мне настолько нравилось быть в центре общественного внимания, что я даже мало наблюдал окружающую обстановку.

9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9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리하여, 주인공의 개인적 시간은 완전히 공식적인 국가적 시간에 의해 삼켜진다: 예배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정치 회합, 부르주아에 대한 노동자의 승리가 주요 주제인 단조로운 강의와 공연. 이 모든 것은 매일 반복되며, 인간을 생기 없는 메커니즘으로 변화시킨다. 유사한 효과를 꼬즈이레프의 주인공은 경험하게 된다: 집도, 사람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어디나 동일했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6) 동일한 시간보내기, 동일한 행동의 끝없는 재현 등도 인간을 메커니즘으로 변화시키고 생생한 사유와, 그것의 독립성을 말살해버린다: 처음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의 모든 지인들이 인용문 없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단지 그런 다음 나는 틀림없이 이것이 교육을 통해 나의 새로운 동시대인들의 머릿속으로 주입된 특별한 사유의 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 젊은이들은 개와 경마, 여성 등 어떤 것에 대해서든 똑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따라서 그들이 누구 - 개나 말, 혹은 여성 - 의 다리를 칭찬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7) 소설의 무명의 주인공은 이 최초의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과거의 무섭고 우스운 그림자 로서 등장한다. 새로운 레닌그라드 시민들과 달리 소시민적 사고와 그러한 삶의 형상은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낯설었다. 그는 오늘은 이곳에, 내일은 저곳을 떠돌 영원한 유목민인 스키타이인이다. 한 곳에 정주하는 것은 그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만일 거칠게 질주하던 중 그가 우연히 울타리로 둘러싸인 도시를 만나게 된다면 그는 방향을 돌릴 것이다. 집과 정주지, 배추 국 냄새는 스키타이인에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오직 영원한 질주와 자유로운 평원에서만이 살 수 있는 것이다. 8) 따라서 얼마 후 노동자 공동주택의 안락한 방은 주인공에게 짐승 우리 (с. 50)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는 공허함과 권태를 맛보게 된다: 나는 처음으로 공허함과 꼭 이렇게 죽여야만 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느꼈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위험에 처하고 궁핍과 투쟁의 와중에서 난 단 한 번도 권태를 느낀 적이 없었다. 사실, 감옥에서 권태를 느끼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곳의 권태는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었다. 포만감에서 오는 권태였다. ; 오랜 휴식이후 그녀의 집 분위기, 초라한 장식, 벽에 걸린 이 저속한 취향의 그림, 지나치게 무거운 가구, 여주인의 진하게 화장한 얼굴, 주인과 두 딸의 멍청한 얼굴,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절망적일 정도로 권태롭게 느껴졌다: 아마도 권태가 미소를 가리고, 목소리를 억누르는 것 같았다... 맙소사 이런 생활로부터 어디로 도망가야만 하는가? 9) 점차 국가권력과 갈등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교리문답서' 의 규범과 그 속에 규정되어 있는 5) Я был в каком-то чаду, и этот чад старательно поддерживали все окружающие. (с. 30) 6) Квартиры, и люди, и способы провождения времени были всюду одинаковы: казалось, что они боятся в чем-нибудь выразить свою оригинальность. (с. 36) 7) Меня сначала удивляло, что все мои знакомые не могут слова сказать без цитат, и только потом я убедился, что это особый способ мышления, вероятно, внедренный воспитанием в головы моих новых современников. (с. 41); Молодые люди разговаривали о собаках, о скачках, о женщинах - и обо всем одинаково, так что трудно было понять, чьи ноги они расхваливают: собачьи, лошадиные или женские. (с. 37) 8) Е.И. Замятин. Скифы ли? / Е.И. Замятин.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Повести, рассказы, сказки, роман, пьесы. М., 1989, с ) Я в первый раз чувствую пустоту, ненужное время, которое так или иначе надо убить. Это было совсем новое для меня чувство: подвергаясь постоянным опасностям, в лишениях и в борьбе в никогда не скучал. Правда, приходилось скучать в тюрьме, но это совсем не то... Эта скука была современно новым для меня явлением - скука от пресыщения. (с. 36); После длинного перерыва обстановка ее квартиры, эта убогая роскошь, эта безвкусная мазня на стенах, слишком тяжелая мебель, раскрашенное лицо хозяйки, тупое - хозяина и деревянные - обеих девиц, - все показалось мне безнадежно скучным: скука, казалось, застилала улыбки, скука приглушала звуки голосов... Боже мой, куда бы я бежал от такой жизни!.. (с. 70)

9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91 시공간의 규범과 금지를 위반한다. 그의 의식 속에서 정지된 공식적 시간을 대체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인, 메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의해 채워진 변화의 시간이다. 이로써 주인공이 방문하는 공간의 좌표가 확장된다. 그는 메리의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변두리와 가난한 구역이 있는 레닌그라드의 전체 모습을 알게 된다. 레닌그라드의 예술적 모델 속에서 메리의 집은 자마찐의 단일제국에서의 고대관 의 역할을 수행한다. 언젠가 메리 가족의 소유였던 주인공 집 안의 낡은 책, 가구, 그리고 부르주아 가족들이 이주한 지역의 허름한 주택 등은 주인공에게 과거 삶을 상기시킨다: 환경은 극단적으로 빈궁했다: 부서진 의자, 두 개의 소박한 걸상, 작은 목재 침대, 집주인이 조각들을 모아 천을 뒤집어 씌어 만든 작은 책꽂이. 이런 빈궁함을 나는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였던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이런 환경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녀는 나에게 점점 더 사랑스럽게 되었다. 어떤 오래전에 잊혀졌던 냄새가 생각났다. 이런 생각이 어떤 따뜻한 것처럼 나의 전 존재에 스며들었다... 10) 그렇게 메리의 집은 꼬즈이레프 소설의 예술적 공간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가정의 화려한 아파트의 소시민적 공간에 대립된다: 이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무겁고 거대한, 필요 없는 물품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장, 찬장, 넓은 소파, 의자, 걸상, 침대, 책꽂이, 조각상, 황금빛 액자 속의 그림, 작은 조각상, 전신상 등으로 인해 이 방은 마치 골동품 상점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 물품의 양으로 인해 짓눌렸던 나는 아마도 매우 불편했던 것 같다. 11) 이 반유토피아 소설의 흐로노토프는 매우 특징적이다. 주인공의 시공간은 규정 준수되는 사회의 시공간과 대립하게 된다. 12) 위에서 대립되는 것으로 언급한 것(노동자의 닫힌, 자기충족적인 코뮌은 과거 주인공의 열린, 자유로운 공간과 대립되며, 정지된 국가적 시간은 주인공-화자의 변화하는 개인적 시간과 대립된다)처럼 시공간 조직의 대립적 특성은 그것의 토대 위에 자신 / 타자 가 대립되는 작품의 인물 시스템 또한 결정한다. 이 경우 자신 이 된다는 것은 '교리문답서'가 확립한 규범과 금지에 복종하면서 정해진 국가 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타자 가 된다는 것은 시공간적인 것을 포함한 이러한 규범과 금지를 파괴하고 전적으로 자기 의견을 갖고 자신의 내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갈등관계에 접어들고, 타자 가 된 다음, 소설의 주인공은 국가 기구의 전반적인 화석화 (с. 81)를 깨뜨리려고 시도할 뿐 아니라 정지하고 죽은 시간과 생기 없고 닫힌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다. III 그러면 소설 레닌그라드 에서 반유토피아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작가는 혁명적 10) Обстановка была бедна до крайности: поломанный стул, две простых табуретки, деревянная кроватка, этажерочка, сделанная самой хозяйкой из досок и обтянутая дешевой материей, - как остро воспринималась мною эта бедность! Но странно - по мере того как я привыкал к этой обстановке, она становилась мне все милее и милее. Вспоминались какие-то забытые давным-давно запахи, и чем-то теплым это воспоминание пронизывало все мое существо... (с. 43) 11) Здесь меня поразило огромное количество тяжелых, громоздких и ненужных предметов: шкафы, буфеты, широкие диваны, стулья и стульчики, кресла и креслица, этажерки, фигурки, картины в золотых рамках, статуэтки и статуи делали эту квартиру похожей на антикварный магазин. (...) Задавленный количеством предметов, я, вероятно, был очень неловок... (с. 34) 12) А.Е. Ануфриев. Указ. соч., с. 47.

9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9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상이 실현된 미래 세계를 묘사하고 난후 그와 동시에 유토피아적 기획이 어떻게 전통적인 휴머니즘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변화되는지 보여준다. 이 반유토피아 소설은 이를 위해 몇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세계를 모형화한다. 미래 세계를 모형화한 다음 작가는 25년 후 러시아의 사회 정치적 발전을 진단한다. 소설 속에서 풍자가는 상상하던 실험을 실현한 다음 승리한 러시아 혁명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자신이 염원했던 나라에서 깨어난 구 볼셰비키 인 주인공은 언젠가 자신이 그것을 위해 투쟁했던 혁명적 이상이 이 새로운 세계 속에서 얼마나 다른 종류의 이상인가를 점차 깨닫게 된다. 극단화된 유토피아적 이상은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에 유해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문화, 기억, 양심을 파괴하고 자유를 잔인하게 억압하는 것이 되었다. 유토피아적 사상과 논쟁을 벌이며 풍자가는 유토피아를 전복하고 독자로 하여금 일원화된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성스럽고, 고귀한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해 조소를 퍼붓도록 만든다. 따라서 반유토피아로서 꼬즈이레프의 소설은 논쟁적 기능을 수행하며 공식적으로 확립된 가치들을 의문시한다. '교리문답서'로 변해버린 정치상식과 성상화가 된 지도자의 초상화, 예배와 비슷한 정치 회합 등 이 모든 것이 인간 개성에 유해한 것으로 판명되게 되는 것이다. 반유토피아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복잡한 심리적 특징을 가진 주인공이다. 유토피아적 사상과의 논쟁의 이상이 모든 반유토피아를 특징짓는 만큼, 반유토피아에서의 인물 시스템도 정해진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A. 아누프리예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인물은 이미 작가의 관념을 전적으로 구현하는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며 유토피아의 단역, 여행자-관찰자도 아니다. 자신의 사상과 감정, 목적을 가진 완전한 권리를 소유한 행동하는 인물이다. 종종 그는 적극적인 탐색과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 을 드러낸다. 13) O. 라자렌코는 반유토피아에서의 인물 시스템의 특징과 슈제트의 유형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유토피아에서 주인공의 행위, 그의 역할과 기능은 자신 / 타자 의 대립에 의해 조건지워진다... 14) 그리고 계속해서: 주인공에게 있어 타자 가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행위의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신 이 된다는 것은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어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전이의 순간이 가장 큰 가치론적 의미를 갖게 된다. 예상되는 해석을 통해 반유토피아 주인공이 처해있는 좌표 시스템이 구별되어진다. 15) 그렇게 반유토피아에서 등장인물의 모든 시스템은 자신 / 타자 의 대립의 원칙 위에 세워진다. 자신 / 타자 의 대립은 항상 반유토피아에서 개인의 내적인 세계의 특별한 구조에 대한 관념과 그리고 반유토피아에서 유효성을 획득하는, 경계의 카테고리와 연관된다. 16) 꼬즈이레프 소설의 무명의 화자를 포함한 자신의 풍부한 내적 세계를 가진 반유토피아의 주인공은 자유로운 인간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정치적인 시스템과 대립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먼 미래인 1950년 레닌그라드로 오게 된 꼬즈이레프의 주인공은 승리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자신의 색다름을 느낀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의혹의 눈길로 인해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마음을 먹지 못했고 마치 싸맨 눈으로 더듬거리듯 걸어갔다. 17) 13) А.Е. Ануфриев. Указ. соч., с ) О.В. Лазаренко.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антиутопия 1900-х - первой половины 1930-х годов. дис. канд. фил. наук. Воронеж, 1997, с ) Там же, с ) Там же, с ) Редкие встречные с такой подозрительностью поглядывали на меня, что я не решался заговорить с ними

9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93 눈을 치뜨고 보는 의혹의 눈길, 이상하고 자주 무의미한 말 로 이루어진, 도시의 간판과 거리의 명칭 등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는 과거의 이상하고 우스운 그림자 이다(с. 14). 이 새로운 사회에서 주인공을 타자 로 만드는 그 경계는 단순히 과거만은 아니다. 처음에 그는 정치적인 '교리문답서' 의 규범에 따라 사회생활에 참가하고 행복과 안녕을 느끼면서 자신 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국가의 모든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정책의 특징을 이해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레닌그라드의 사회정치 시스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된다: 논쟁을 통해 그(검열관 - 필자)를 납득시키기란 완전히 불가능했다. 나는 그와 내가 다른 두 세계의 사람이고 나의 생각이 그에게는 낯설고 이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8) О. 사비니나는 반유토피아 소설에서 주인공과 부차적인 인물의 관계는 유사성의 원칙에 따라 직간접적인 대립 위에 형성된다고 지적한다. 19) 주인공에 대립되며, 이 이상적인 공동체 속에서 자기 자신 인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내 외적인 표준을 통해 언급되며, 이것을 통해 어떤 통일성을 창조한다: 집도, 사람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어디나 동일했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확실히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두려워했고, 의심과 불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상위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근본적인 특징이 되었다. 그 외에도 모두들 지나치게 예민했고, 벨이 울리거나 바삭거리는 소리가 날 때면 몸을 떨었다. 이런 소리들은 권력의 특별 허가를 받아 주택위원회에 어떤 집 열쇠든 요구할 권리를 가진 정치지도자와 자발적 스파이의 은밀한 방문 조사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 이 반유토피아 세계의 정치지도자는 항상 동일한 외양과 몸가짐으로 강조된다: 뭔가 고양이 같고, 동시에 탐욕스러우며, 상냥한 채하는 (с. 32); 9호실의 부인과 시골풍의 처녀들인 딸들, 비트만과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한 가닥 의식도 전혀 없는 (с. 39) 프롤레타리아 사회의 허송세월하는 청년들 의 대표자들은 강력한 국가 기계의 유일한 전체 나사 의 일부분이다. 이런 형상들 창조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부자연스러움과 기계적인 특성의 모티프이다. 많은 반유토피아에서 이러한 모티프는 유토피아 사회에 속하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우리들 에서 인간-기능이 재현된다: 4명씩 규칙적인 열로 황홀하게 박자를 맞추며 번호들이 - 가슴에 황금빛 번호를 단 푸른 제복을 입은 수백, 수천 명의 번호들이 - 국가의 남녀 번호들이 걸어간다. 나 역시 우리이며 4명은 이 강력한 흐름 속 무수한 흐름의 하나이다. 21) и шел как бы ощупью, с завязанными глазами. (с. 13) 18) Переспорить его (цензора - С.И.К.) не было никакой возможности. Я чувствовал, что он и я - люди двух разных миров, мое мышление чуждо и непонятно ему. (с. 52) 19) О.Б. Сабинина. Жанр антиутопии в английской и американской литературе х гг. ХХ века. Автореф. дис. канд. фил. наук. М., 1989, с ) Квартиры, и люди, и способы провождения времени были всюду одинаковы: казалось, что они боятся в чем-нибудь выказать свою оргинальность. (36); Ясно, что люди опасались друг друга, ясно, что подозрительность и недоверчивость стали с течением времени основными свойствами характера, особенно среди людей, принадлежавших к высшему классу. Все были, кроме того, чрезвычайно нервны, вздрагивали при каждом звонке, при каждом шорохе - следствие тайных посещений политруководителей и добровольных шпионов, имевших право затребовать в домкоме с особого разрешения властей ключи от любой квартиры. (с. 63) 21) Е.И. Замятин. Указ. соч., с Мерными рядами, по четыре, восторженно отбивая такт, шли нумера - сотни, тысячи нумеров, в голубоватых юнифах, с золотыми бляхами на груди -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нумер каждого и каждой. И я - мы, четверо, - одна из бесчисленных волн в этом могучем потоке.

9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9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외적 유사성과 내적 공허감으로 인해 인간은 준비된 국가 모델로 조립해 넣어진 쌍둥이 의 단조로운 기계적 복합물로 변환된다. 이로 인해 풍부한 내적 세계를 가진 반유토피아의 주인공을 몰개성적인 사회 시스템의 대표자들과 대립하게 된다. 무명의 기록 작가는 복잡한 정신적 길을 걸어나간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그것을 위해 투쟁했던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기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콘이 된 지도자의 초상, 예배 성격을 띠는 정치회합; 천편일률적인 강의와 책, 공연; 모든 사회적 특권을 가진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대립; 국가의 법에 의해 도덕적 규범이 된 상호간의 밀고; 그리고 '교리문답서'가 된 정치상식 등 이 모든 것은 과거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쳤던 투쟁과 높은 이상에 모순된다. 반유토피아의 슈제트적 갈등은 개인이 사회적 의례에서 자신의 역할을 거부하는 그곳에서 발생한다. 22) 반유토피아의 슈제트는 세 가지 시공간 - 저자, 주인공, 국가 - 이 교차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이들 각각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 자기 자신 을 통찰하려는 주인공의 의식되지 않은 희망과, 저자에 의한 사회 시스템의 도덕적인, 어떤 이상들의 제시, 그리고 국가에 의한 무한한 권력의 공개 등이 그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틀 속에서 점차 협소함을 느끼게 된다. 반유토피아적 시스템에 대한 그의 봉기가 그는 국가-세계를 파괴하고 파괴된 그 자리에 기존의 국가-세계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파괴이며 동시에 창조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점차 국가 권력과의 공개적인 갈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익숙한 사회적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꼬즈이레프의 무명의 주인공은 그에게 강요된 의례에서의 역할 을 파괴한다. 검열관으로부터 돌아온 후 나는 점호에 호출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각 집과 기관에 있는 감시와 관리의 수단이다. 점호에서 나는 정치지도원을 만났고 그는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나에게 앉기를 권했다. - 당신에게 온갖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 라고 그가 말했다. 첫 번째, - 그가 매우 길고 구부러진 손가락 하나를 구부렸다 - 당신은 우리계급의 적과의 왕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반역죄에 해당합니다. 둘째, - 그는 두 번째로 길고 구부러진 손가락을 구부렸다 - 당신은 당신에게 처음 경고를 했던 사람을 모욕했습니다. 셋째, 당신은 이틀이나 조사서를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이 이틀 동안 자기 책임자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을 했고 또 그걸 생각했습니다. 넷째, 당신은 국가 기관 중 한 곳에서 반혁명적 발언을 했습니다. 방금 국가 검열책임자가 나에게 이것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23) 유토피아 사회의 법의 파괴로 인해 주인공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책임질 능력이 없는 사람 으로 간주되어 정치상식 연구를 위해 대학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오히려 대학에서의 연구를 통해 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조직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22) Б.А. Ланин.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антиутопия. М., 1993, с ) Вернувшись от цензора, я узнал, что меня вызывают в ячейку - это орган надзора и руководства, имевшийся в каждом доме и в каждом учреждении. В ячейке меня встретил политрук и мягким движением руки предложил мне сесть. - На вас поступил целый ряд жалоб, - сказал он. - Во-первых, - он загнул один очень длинный и искривленный палец, - вы продолжаете сношения с нашими классовыми врагами, что равносильн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измене. Во-вторых, - он загнул второй такой же длинный и искривленный палец, - вы оскорбили человека, сделавшего вам первое предупреждение. В-третьих, вы два дня не заполняли анкету, следовательно, эти два дня делалп и думали такие вещи, о которых не можете сказать своему руководителю. В-четвертых, вы произносили контрреволюционные речи в одном из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учреждений, о чем мне только что донес главный цензор государства... (с. 53)

9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95 학위를 받고, '교리문답서'의 모든 규범을 다 외우고 난후 무명의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불공정과의 투쟁의 정당성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된다. -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뒤집혀진 낡은 제도이다, - 라고 혼잣말을 했다. - 만일 내가 낡은 제도와 투쟁했다면, 이제는 정말 물러서야만 하는가? 이제 나의 과제가 훨씬 더 간단해졌다고 생각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노동자 계급의 지도부는 노동자 계급의 명칭과 권리를 완전히 가로챘다. 그들의 진정한 지위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일(вещи)에 진정한 이름을 붙여야만 한다. 따라서 이것이 이미 일의 절반이 될 것이다. 특히 모두가 정치상식을 배워, 마르크스주의와 계급투쟁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으며,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노동자 대의원 소비에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낡은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보충해야만 한다. 24) 주인공은 자신의 견해를 정치적으로 선전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려한다. 그러나 그의 독자적인 생각은 유죄판결을 받고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인물과의 교제로 인해 노동자 신분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노동의 의무를 지는 타락한 지식인 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게 된다. 그의 갈등은 첨예화되고 행동은 공장으로 옮겨진다. 공장에서 주인공은 일뿐만 아니라 통치계급과의 지하투쟁을 전개한다. 그러나 반유토피아에서 묘사되는 거의 모든 갈등의 상황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해결된다. 소설 레닌그라드 에서의 새로운 사회는 주인공-화자를 중심으로 한 반란자들의 적극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존재한다. 작품의 마지막은 인간이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세계에서의 투쟁의 부조리함을 이해하는 작가-풍자가의 비극적 세계관을 확인해준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 속에 파괴적인 힘을 지닌, 따라서 실패할 운명인 자기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아이러니한 태도가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반유토피아 국가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비교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의 운명이 이 세계 속에서 미리 결정된 것처럼 판명되고, 그를 지배하는 운명의 인상도 창조된다. 이것은 1920년대 반유토피아와 고대 그리스 텍스트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언급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 시기 반유토피아 텍스트들 속에서 고대 신들의 기능은 국가로 양도되었다: 단일제국의 은혜로운 분은 천둥의 신 제우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미래의 레닌그라드의 국가 지배자들은 보이지 않는 모이라이 자매를 연상시킨다. 반유토피아 소설에서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는 또 다른 하나는 여성 이미지이다. Б. 라닌은 러시아 반유토피아 문학 에서 반유토피아는 언제나 육체의 횡포이며, 생기 없는 사고의 합리성에 대항하는 신체의 항거이다. 25) 따라서 많은 반유토피아 장르의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금지된 것의 구현 이며 어떤 혼란한 상태 의 구현이다. 꼬즈이레프의 소설의 주요한 여주인공은 메리이다. 그녀는 비록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의지가 강한 여성으로 제시되지만, 자먀찐의 I-330처럼 성적인 적극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에 메리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서도 국가 안에서 형성된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마치 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자의 힘든 운명과 타협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와 주인공 사이에서 생겨난 깊은 감정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본질적으로 24) - Да ведь это старый режим наизнанку, - говорил я сам себе. - Если я боролся со старым режимом, то неужели должен отступить теперь? Мне кажется, что моя задача теперь значительно проще. Что случилось? Верхушка рабочего класса присвоила себе наименование и права рабочего класса в целом. Надо восстановить истинное положение, надо назвать вещи их настоящими именами - и это будет уже половина дела, тем более, что все изучали политграмоту, все имеют понятие о марксизме, о классовой борьбе, существуют профсоюзы, советы работых депутатов. В старые формы надо влить новое содержание. (с. 65) 25) Б.А. Ланин. Указ. соч., с. 89.

9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9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변화시키게 된다. 만일 자먀찐의 I-330이 금지된 것의 구현 이라면 꼬즈이레프의 메리는 여성적 지혜의 구현 이다. 그녀는 연인의 모든 행동과 그의 모든 지하활동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그녀는 여러 차례 그에게 정치적 투쟁보다 어떤 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만일 무명의 주인공에게 남성적 합리주의와 이념을 위한 자기희생이 특징이라면, 메리는 발전된 정서적 감정적 능력을 가진 여성성의 전형이다. 이러한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그녀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 모든 사소한 변화들까지도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여성적 직관 덕분에 그녀는 철학자 페티소프가 위험한 인물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연인에게 경고한다: 곧 나이 많은 철학자가 도착해서 메리를 오랫동안 위로했다. 그는 운명에 대한 순종과 자살의 죄악 등에 대해 매우 오랫동안 말했다. 그가 떠나고 난후 메리는 말했다: - 페티소프(철학자를 그렇게 불렀다)를 조심하세요. - 왜? 나는 놀라서 말했다. -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가 매우 생기 없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우울하게 나를 보았다. 아마도 그녀는 나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해 두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비애가 무의식적으로 나를 정복하고 나를 사로잡았던 기쁨을 파괴하였다. - 여길 떠나요! 같이 도망쳐요! 정말로 난 그녀에게서 이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싸움 전날 도망가자니? 동무들이 뭐라고 말할까? 나의 일은 어찌 될 건가? - 만일 내가 당신에게 피치 못할 파멸이 우리와 우리 일을 위협한다고 말한다면요? 그녀의 목소리는 굳은 확신에 차 있었다. - 어떻게 되다니? 죽게 되는 거지! - 난 간단히 대답했다. 메리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몇 분 동안 얼굴을 창 쪽으로 돌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 눈에 깃든 강철같이 확고한 푸른빛의 섬광에 깜짝 놀랐다. - 우리 함께 남아요. 살면서 나는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를 결코 본적이 없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포옹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26) IV 카니발적 세계관은 패러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패러디는 그 자체로 왕위가 박탈되는 분신의 창조이며, 이것은 뒤집혀진 세계이다. 27) 연구자는 유토피아를 반유토피아의 패러디된 분신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반유토피아 텍스트는 보다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형성된다. 반유토피아 작품에 고유한 패러디의 기능은 거대한 빙산의 한 표면일 뿐이다. 그것은 보여지고 즉각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밑에 있는 심오한 하부텍스트이다. 꼬즈이레프의 소설 레닌그라드 는 자먀찐의 우리들 에 의해 토대가 닦여진 정치적 26) Скоро пришел старый философ и долго утешал Мэри, говоря, и очень длинно, о покорности судьбе, о преступности самоубийства и т.д. После его ухода Мэри сказала: - Будьте осторожнеес Фетисовым (так звали философа). - Почему? - удивился я. - Не знаю почему... Он начал очень мертво говорить. (с. 87); Она с грустью смотрела на меня. Казалось, она старается запомнить мое лицо, мой голос. И грусть невольно подчиняла меня, уничтожала охватившую меня радость. - Уедем отсюда! Бежим! Ну, этого-то я от нее не ожидал. Бежать накануне сражения? Что скажут товарищи? Что станется с моим делом? - А если я вам скажу, - голос ее звучал убедительно и твердо, - что нам и нашему делу грозит неминуемая гибель? - Ну так что же? Мы погибнем! - просто ответил я. Мэри задумалась. Она несколько минут сидела лицом к окну, не шевелясь и не глядя на меня. Но вот она взглянула на меня. Я поразился синему цвету ее глаз, из стальному решительному блеску. - Мы остаемся. Красивее женщины я не видел никогда в жизни. Я забыл нерешительность, обнял и поцеловал ее. (с. 94) 27) М.М. Бахтин. Проблемы поэтики Достоевского. М., 1979, с. 147.

9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97 반유토피아의 전통을 이어나간다. 반유토피아 장르는 항상 유토피아적 의식과의 논쟁을 예상한다. 이러한 논쟁은 풍자적-패러디적 요소들의 존재 덕분에 가능하다. 이 작품에서는 반유토피아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이 패러디된다. 꼬즈이레프의 소설의 서술은 1인칭 주인공-화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주인공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 그는 먼 미래인 1950년의 레닌그라드에서 깨어난다. 레닌그라드는 과거 주인공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혁명적 이상이 구현된 도시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을 통해 작가는 늙은 볼셰비키의 이상과 승리한 러시아 혁명의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작품에서 첫 번째 패러디 대상은 이데올로기적 규범과 국가의 지시, 국가의 도덕적 미학적 공리 등이다. 새로운 사회 속에서 전복된 계급의 개념은 사회적 수준에서 패러디된다: 위대한 혁명은 모든 개념을 전복시켰다: 이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노동자로 불리며, 반면에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사람은 부르주아로 불린다. 28) 꼬즈이레프의 소설 속 노동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부합하지 않는 삶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모든 특권을 획득하고 난후 그들은 새로운 특권귀족층의 계급을 형성한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의 허송세월하는 젊은이는 근심걱정 없고 자기만족적이며 비도덕적이어서, 부르주아 귀족 젊은이와 전혀 차이가 없다. 밤늦은 술판과 집시, 여자,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조롱. 게다가 자기 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희미한 의식조차 전혀 하지 못함... 29) 이제는 법률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그들의 의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통치와, 공장운영에 대한 권리, 2시간 노동, 자동차, 주거면적의 제한이 없는 주택에 대한 권리 등을 갖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평등, 평균주의 의 개념은 이렇게 사회적 불평등으로 변화된다: 낮은 계층 혹은 이른바 부르주아는 무제한의 근로일과 매우 낮은 주택배당, 그리고 전쟁 전에 비해 3배나 더 집세를 지불했다... 30) 꼬즈이레프는 새 국가의 정치적 특징을 패러디적으로 재창조한다. 정치상식은 '교리문답서'로 변화되었고 정치회합은 예배의식의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지도자의 초상화는 성상화를 떠오르게 하고, 정치지도원에게는 성직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레닌그라드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부조리한 차원에 다다랐다. 꼬즈이레프는 이러한 상황 또한 패러디적으로 재창조한다: 레닌그라드의 모든 주민들은 정치상식 - '교리문답서' 속에서 언급된 규범에 따라 산다. 어린 시절부터 암기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모든 삶과 행동을 규정하는 이 진실은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박탈하고 자신의 삶을 사는 가능성을 박탈한다: 나는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있어 이 '교리문답서'에 의해 손발이 다 묶여있다. 더욱이 이 모든 규범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 있지 않은 나에게 쇠락으로부터 자신을 돌보는 것은 어려웠다...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차라니 더 나았다. 이 복잡하지 않은 규범을 암기하고 그것을 철저히 수행하는 편이 차라리 더 좋았다... 나의 모든 새 지인들은 그렇게 했다. 이제 나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28) Великая революция перевернула все понятия: рабочим называется теперь тот, кто владеет средствами производства, а буржуем - тот, кто продает свой труд. (с. 58) 29) Золотая моложедь пролетарского общества, беспечная самовлюбленная, порочная, ничем не отличалась от молодежи буржуазно-дворянской. Ночные кутежи, цыгане, женщины, издевательства над цыганами и женщинами - и притом полная уверенность в своей правоте, полное отсутствие хотя бы проблеска сознания, что так жить нельзя... (с. 39) 30) Низшее сословие или так называемая буржуазия имела неограниченный рабочий день, очень низкую жилищную норму и платила за квартиру в тройном против довоенного размере... (с. 59)

10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9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격분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신중히 고려하지도 않은, 그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사상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도록 강요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31) 사상의 자유가 허용하지 않고 도그마적 구조에 완전히 종속된 레닌그라드 주민들의 특별한 사유 수단은 도덕성에 대한 개념을 왜곡한다. 이 사회에서 밀고는 비도덕적인 것이 아닌 국가의 안녕을 위한 어떤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정치적 '교리문답서'를 모사할 때 작가는 풍자적 효과를 얻게 된다. 이것은 레닌그라드의 사회 구조와 레닌그라드 시민의 행동과 관련된 인용문들을 모은 독특한 전집이다. 그것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으로부터 주인공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를 어떻게 이끌어야만 하는 가에 대해 알게된다: 질문: 집이나 혹은 거리에서 다른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 대답: 공산주의 인사말로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 질문: 공산주의 인사말이란 무엇인가? / 대답: 이것은 무의미한 거수경례가 아닌 세계 5개국에서 억압당하는 자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고 따라서 동무가 계급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위에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32) 그러나 다른 유형의 행동도 계급의 적 과의 관계 속에서 교리문답에 의해 제안된다.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그의 옆을 지나가고, 어떤 경우에도 그의 인사에 답하지 않는 것 이 요구된다.(с. 55) 꼬즈이레프는 소설 속에서 Н. 부하린과 Е. 프레오브라줸스키가 자신의 책 속에서 쓴 그러한 국가 - 승리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인 공산주의 공화국 - 를 창조한다. 그리고 만일 공산주의 입문 의 작가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모든 계급이 사라진 공산주의 사회 로의 이행을 위해 필수적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면, 꼬즈이레프는 사회의 공산주의적 개조 가 실제 무엇으로 귀결되는 가를 보여준다. 33) 새로운 사회에서의 재판 원칙 역시 패러디된다. 죄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사람이 어떤 출신 성분인가 하는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출신 성분 덕분에 주인공은 빵을 훔친 것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라는 인물에 대한 법정의 판단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서 빵을 빼앗고, 그를 밀어서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혔다. 나는 죄를 범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통해 나는 최고 계급의 대표자인 자기 자신을 아사로부터 구했기 때문에, 그가 아닌 내가 정당했던 것이다. 민사법과 형사법 규범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개인의 계급적 소속을 결정하는 규칙이다: 판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은 이미 이것에 종속된다. 이른바 노동자 권리는 모순이 증명되지 않는 항상적인 권리임에 반해, 이른바 부르주아의 권리는 항상 옳지 않다. 심지어 모순이 증명될 때조차. 34) 31) Я был связан этим катехизисом по рукам и ногам во всех своих мыслях и поступах. И тем более трудно было уберечься от падения мне, которому все эти нормы не были внушены с детства... Лучше всего было не думать, не рассуждать, лучше всего - заучить наизусть эти несложные правила и твердо исполнять их... Так и делали все мои новые знакомые. Я теперь перестал возмущаться их поведением, мне стало даже жаль их - этих несчастных, принужденных, как попугаи, повторять чуждие, ими самими не продуманные и непонятные им самим мысли. (с. 59) 32) Вопрос: Что должен делать рабочий, встретив другого рабочего в доме или на улице? Ответ: Должен обратиться к нему с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м приветствием. Вопрос: Что такое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е приветствие? Ответ: Это не бессмысленное козыряние, а напоминание о том, что в пяти странах света угнетенные борются за освобождение и что ты должен ставить интересы класса выше своих личных. (с. 54) 33) Н. Бухарин. Азбука коммунизма. Гос. Изд-во Украины, 1925, с ) Так был объяснен мне смысл суда над моей особой: я отнял хлеб у человека и толкнул его, причинив телесное повреждение, - я совершил преступление. Но так как этим я спас себя - представителя

10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99 체카대원인 М. 라찌스는 1918년 11월 1일자 잡지 «붉은 테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개별 인물에 반대하여 투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를 박멸합니다. 피고가 일이나 말을 통해 소비에트 권력에 반대하는 행동을 했던 증거를 심문에서 찾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에게 물어봐야할 첫 번째 질문은 그의 출신, 소양, 교육, 직업이 무엇인가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이 피고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붉은 테러의 의미와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35) 꼬즈이레프는 새로운 사회에서 선전되는 성의 관계 역시 패러디한다.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사랑을 부르주아의 편견, 조잡한 심리적인 것, 우리 계급에 낯선 이데올로기의 잔재 (с. 41)로 간주한다. 소설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새로운 예술의 미학적 원칙에 대한 패러디이다. 프롤레트쿨트 조직원과 미래주의자, 다른 그룹의 대표자들이 문화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거부하면서 예술을 이데올로기에 완전한 종속시키려고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문학, 연극, 회화 등은 승리한 계급의 이익에 봉사해야만 한다. 1923년 한 해 동안 잡지 «Леф»에서 다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야코프스키는 시인들을 청소했다. 러시아의 곰팡이 핀 고답파 시인들인 발몬트, 브류소프, 아흐마토바류의 시인들은 귀청을 째는 듯한 찬양 소리를 들으면서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환희의 울림에 맞춰 아세예프, 크루쵸느이흐 등등이 신뢰를 얻고, 말의 진정한 혁명적 장인들의 시인으로 편입되었다. 우연히 이곳에 잠깐 들린 백위군 문학가들이 단지 애달픈 목소리로 이따금씩 삑삑거린다. 그들은 아직도 절대 군주인 А.С. 푸쉬킨을 우두머리로 낡은 문학체계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36) 꼬즈이레프는 예술적 실험을 수행한 다음, 유사한 프로그램의 실현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가를 보여주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닌그라드의 서점 한 군데에서 신간들을 보고 난후 아이러니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시, 이야기, 소설 등은 다음과 같은 복잡하지 않은 단 하나의 사상의 증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정부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행복하며 모든 것이 훌륭하고... 편견이 모든 사물들을 꿰뚫어 스며들어 있었으며, 수십 종의 책을 읽고 난후 훌륭한 예술가가 만든 지나치게 아름다운 겉표지만 봐도 구토가 나기 시작했다. 37) 이데올로기의 숭배는 노동자가 부르주아에 대해 승리를 쟁취하는 천편일률적인 슈제트를 가진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극장에서도 지배적이다. 극장 공연에 간 주인공은 마치 서커스 공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그네, 계단, 둥근 테, 장애물 등이 설치되어 있고, 성상화가 걸려있는, 크지 않은 시골 극장의 평범한 무대를 상상해 보십시오. 몸에 착 붙는 옷을 입은 배우들이 혁명노래를 부르는 노래 소리에 맞춰, 무대 뒤로부터 달려 나와 계단을 기어오르고, 장애물을 뛰어넘기도 하며,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 высшего класса - от голодной смерти, я был прав, а не он. Так же несложен был и кодекс гражданских и уголовных законов. Главное место в нем занимали правила определения классов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индивида: для судьи важнее всего было определить, с кем он имеет дело, и уже от этого зависело решение. Предполагалось, что так называемы рабочий прав, прав всегда, когда не доказано противного, а так называемы буржуй всегда неправ, даже когда доказано противное. (с ) 35) Энциклопедия для детей. Т. 5, ч. 3. История России XX век / Сост. С.Т. Исмаилова. М., 1996, с ) Там же, с ) Стихи, рассказы, романы, повести - все было наполнено доказательством одной несложной мысли, что мы живем в самом хорошем государстве, что мы счастливы, что все хорошо... Тенденциозность насквозь пропитывала каждую вещь, и после прочтения десятка книжек мне стало тошно смотреть даже на обложки - чрезвычайно красивые обложки, сделанные лучшими художниками. (с )

10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0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돌거나, 외줄타기를 한다. -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비트만에게 물었다. - 이것은 외국의 열강들이 우리 공화국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비트만은 대답했다. (...)...나에겐 이러한 서커스 공연과 교회 예배의 결합이 마음에 들었다... 38) 코믹하게 묘사된 이 장면에는 소비에트 권력의 초기 몇 년간의 대중적 혁명 예술의 몇몇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규범의 거부 경향과 이데올로기적 알레고리성, 모든 홀을 무대 환경에 맞게 확장하려는 극단적인 노력, 군중집회, 서커스 같은 우스운 행동, 합창단 노래. 꼬즈이레프의 소설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유머사용을 금지시키는 태도 역시 패러디된다. 이상적인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수도에는 웃음의 원칙이 모든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 사회는 결코 농담을 하지도 않고, 농담을 할 줄도 모른다. 유머는 그들에게서 제거되었다. 그들 모두는 칠면조처럼 진지했다. 39) 레닌그라드에서 문학과 예술의 정기간행물 역시 이데올로기의 예속물이다. 부르주아 구역을 방문한 일과 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처녀 메리와의 만남으로 인해 주인공은 프롤레타리아의 적으로 신문에 즉각 공표되었다: 나는 노동통신원 쉴로 라는 필명으로 가장한, 이 기사의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나를 악평했던 그 더러운 말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리게이트 저쪽 방향을 따라 서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았음만을 말할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나의 방문 목적이 반혁명 운동이라고 하는 추측을 말했다. 게뻬우는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이렇게 기사는 끝을 맺었다. 40) 꼬즈이레프는 검열과 같은 그런 현상 또한 패러디한다. 주인공은 신문기사를 통해 퍼뜨려진 자신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반박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을 썼다. 그러나 최종 인쇄된 책 속에서 단지 첫 페이지만이 자신이 쓴 글임을 알아차렸을 때 주인공은 깜짝 놀란다. 범인을 찾으려고 주인공은 국가 검열책임자에게로 간다. 그는 주인공에게 검열의 기능을 설명했다: 모든 노동자는 어떤 내용의 책이든 써서 그것을 출판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판매용 책의 출판을 위해서는 몇 가지 부득이한 제한의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바로 여기서 상부 검열위원회가 노동자 작가에게 도움을 주러 오는 것입니다. 출판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각자의 권리를 박탈하지 않으려고 그는 검열기관에 제출된 책의 이데올로기 부분을 수정한다. 41) 이렇듯 자유로운 개인의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이 세계의 복잡한 철학적 문제들 중의 하나는 38) Это было весьма интересное зрелище. Представьте себе обыкновенную сцену небольшого провинциального театра, уставленную трапециями, лестницами, обручами, барьерами и увешанную иконами. Артисты в трико под пение революционных песен выскакивают из-за кулис, взбираются на лестницы, прыгают через барьеры, ходят на руках, вертятся колесом, ходят по проволоке. / - Что это такое? - спросил я Витмана. /- Это иностранные державы хотят погубить нашу республику, - ответил Витман. (...) /...Мне понравилась эта смесь циркового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 церковной службой... (с ) 39) В этом обществе никогда не шутили и не умели шутить. Юмор был вытравлен из них - они все были серьезны, как индюки. (с. 41) 40) Я не буду повторять тех грязных слов, которыми обзывал меня неизвестный автор заметки, скрывавшийся под псевдонимом рабкор Шило. Скажу только, что я обвинялся в сношениях с лицами, стоящими по ту сторону баррикады, и неведомый автор высказывал предположение, что целью моих посещений является контрреволюционное выступление. Гепеу, где же ты? - так кончалась заметка. (с. 50) 41) Каждый рабочий имеет право написать любого содержания книгу и сдать ее в печать. Но для выпуска книги в продажу существуют некоторые, вынужденные необходимостью, ограничения - и вот тут-то приходит на помощь рабочему писателю главный цензурный комитет. Не желая лишить каждого права свободно высказаться в печати, он исправляет идеологическую сторону представленной в цензуру книги. (с. 52)

10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101 인간 개성과 그것의 자유의 문제이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꼬즈이레프의 소설에서 중심적인 문제이다. 절대적 진실로 간주되는 혁명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그리고 사상의 자유의 금지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도 정신적 가치도 필요 없는 단지 자신의 육체적 만족만을 필요로 하는 가축 떼로 변화되었다. 이 주제는 작품의 두 부분에서 제시된다. 주인공과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사람과의 대화가 첫 번째 부분이다.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의 주민들은 자먀찐의 평범한 번호 와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적 세계관의 소유자로서 제시된다. 이런 세계관의 근본적인 특징은 주변세계를 완전히 받아들이려는 열정, 독자적인 사유의 부재, 그 결과로서 대화의 무능력 등이다. 이런 의미에서 꼬즈이레프의 주인공과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사람과의 대화는 주목할 만하다: 당신에게 경고할 것을 난 위임받았소. 라고 분명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 우리는 당신 행동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소.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당신의 정상상태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좀 더 두려운 점은 당신이 노동자 계급에 속하느냐 하는 사실에 대한 의문이요. 우리가 당신의 행동에서 눈치 챘던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소. 하고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속삭일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난후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신은 국가 최고 조직의 권한에 속하는 이런 문제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사유의 경향을 드러냈소... 내가 아무리 법정의 음울한 분위기에 놀란다고 할지라도, 이런 말을 듣자 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 정말로 생각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단 말이오? - 생각의 자유는 부르주아의 편견입니다. 하고 그는 답했다. - 당신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25명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어 있습니다. 42) 꼬즈이레프의 소설에서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인간은 최고의 추상화된 국가 권력의 대리인일 뿐이다. 작품에서 독재자 자체의 이미지는 부재하며 단지 초상화 틀 속에 끼워져 있는 지도자의 초상 들만이 열거된다. 방안에서 주인공은 권력의 대리인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이 초상들을 보았다. 레닌그라드에서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어떤 최고 소비에트이며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인간 은 그들의 위탁을 수행할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나는 진정되지 않았다. 나의 대담자는 미소를 띠었다: - 어째서 당신은 생각해야만 합니까? 알다시피 이 모든 문제들은 이미 완전히 해결되고, 숙고되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자신의 뇌 기관을 괴롭혀야만 합니까? 해결된 문제들에 대해 고심하는 것은 무익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 만일 이 문제들이 잘못 해결되었다면요? - 나는 진정되지 않았다. - 30년 동안 어떠한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고 소비에트는 우리의 공로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나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판단할 권리가 없는 이 문제들의 목록을 당신에게 전달할 것을 위임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검은색 장정의 크지 않은 책을 엄숙하게 내밀었다. 나는 즉시 그것을 열어보고는 이것이 내가 한 단어 한 단어 외었던 그 '교리문답서'라는 것을 확인했다. 43) 42) Мне поручено сделать вам выговор, - произнес он глухим голосом. - В вашем поведении мы заметили нечто странное, заставляющее нас сомневаться в вашей нормальности или, что еще страшнее, в ваше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рабочему классу. Того, что мы заметили в вашем поведении, не случалось уже двадцать лет в нашей практике, - продолжал он и, понизив голос до шепота, добавил: - вы обнаружили наклонность к самостоятельному мышлению в области тех вопросов, которые подлежат компетенции высших органов государства... Как я ни был напуган мрачной обстановкой судилища, но при этих словах я даже подпрыгнул в кресле: - Разве можно запретить думать? - Свобода мысли - буржуазный предрассудок, - ответил тот. - Вы можете думать обо всем, кроме некоторых вопросов, о которых думать разрешается только двадцати пяти лицам в государстве. (с. 57)

10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0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보다 본질적인 인간 자유의 문제는 주인공과 철학자 페티소프와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 풍자가-철학가 페티소프의 형상은 흥미롭다. 처음에 그는 자기 중립적인 세계관을 갖고 자신 / 타자 의 대립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 최고 행정부에 자신이 속해있음을 드러낸다. 소설 주인공과 이 철학자의 대화 장면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심문관과 그리스도와의 심야대화를 상기시킨다. 이반 카라마조프의 극시의 그리스도처럼 레닌그라드 의 주인공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개성의 원칙과 자유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에게 전혀 동의하지 않으면서 철학자 페티소프는 대심문관처럼 인간의 하찮은 본성은 정신적인 것이 아닌 물질적인 가치에 경도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약하고 따라서 어떤 자유도 그에게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정당성... 정말 그들이 정당성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까? 그들 중 누구에게든 보장된 지위를 제안해보시오. 그러면 그들 모두는 당신을 버릴 겁니다. 만일 정부가 지금 모두를 매수할 수 있다면, 정말로 누가 당신과 남겠습니까?.. 마침내 당신 자신이, 당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설득시키겠습니까? 정당성의 느낌? 아니오! 당신은 그들에게 증오의 감정을 설득시킬 겁니다. 당신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서로 증오하게끔 만듭니다. 악의는 악의를 낳습니다. 증오는 자라나며 마침내 가장 완전한 승리는 가장 악하고 가장 절망적인 증오의 축전이 될 겁니다... 44) 비교를 위하여 대심문관의 독백으로부터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이 세상에 오길 원했고, 빈손으로, 어떤 자유의 약속을 가지고 왔소. 단순하고 천성적으로 무례한 그들은 그 자유의 약속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겁내고 두려워하였소.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사회에는 자유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오! 이 황량한 작열하는 광야의 돌이 보이시오? 그것을 빵으로 바꾸시오. 그러면 인류는 비록 당신이 자기 손을 치우면 당신의 빵이 그들에게 그칠 것을 영원히 두려워할지라도 고마워하는, 유순한 가축 떼처럼 당신 뒤를 따를 것이오. 45) 혁명적 본능에 의해 지도되는 주인공은 이 반유토피아 세계의 새로운-낡은 질서를 붕괴시키고 정당성을 부활시키는 무장 봉기를 조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시위는 실패로 43) - Как же можно не думать? - не унимался я. Мой собеседник усмехнулся: - А зачем вам думать? Ведь все эти вопросы уже разрешены и обдуманы до конца. Зачем вам утруждать свой мозговой аппарат? Сознайтесь, что бесплодно ломать голову над разрешенными вопросами. - А если эти вопросы разрешены ошибочно? - не унимался я. - Тридцать лет, как не найдено ни одной ошибки. 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из уважения к вашим заслугам поручил мне передаать вам список тех вопросов, о которых вы не имеете права ни думать, ни рассуждать с другими людьми. Он торжествнно протянул мне небольшую в черном переплете книжку. Я тотчас же открыл ее и убедился, что это тот самый катехизис, который я знал назубок, слово в слово. (с. 57) 44) Справедливость... Разве они борются за справедливость? Предложи любому из них обеспеч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и все они отрекутся от вас. Если бы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ейчас смогло всех подкупить, разве кто-нибудь остался бы с вами?.. И, наконец, вы сами, что вы внушаете им? Чувство справедливости? Нет! Вы внушаете им чувство зависти, вы заставляете их ненавидеть друг друга. Злоба рождает злобу, ненависть растет, и самая полная победа будет торжеством самой злой, самой отчаянной ненависти... (с. 91) 45)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 Ф.М. Достоевский. C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пятнадцати томах. Т.9, Л., 1991, с Ты хочешь идти в мир и идешь с голыми руками, с каким-то обетом свободы, которого они, в простоте своей и в прирожденном бесчинстве своем, не могут и осмыслить, которого боятся они и страшатся, - ибо ничего и никогда не было для человека и человеческого общества невыносимее свободы! А видишь ли камни в этой нагой раскаленной пустыне? Обрати их в хлебы, и за тобой побежит человечество как стадо, благодарное и послушное, хотя и вечно трепещущее, что ты отымешь руку свою и прекратятся им хлебы твои.

10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103 끝난다. 국가 기계는 대중의 혁명적 에너지보다 더 강한 것으로 판명된다. 이렇게 꼬즈이레프는 자신의 소설을 우울하게 끝마친다. 주인공은 감옥 안에서 조용히 사형을 기다리지만, 자신이 전 생애를 바쳤던 사업과 정당성의 궁극적인 미래의 승리를 확신한다. 자먀찐, A. 보그다노프 그리고 그 시대의 다른 유토피아주의자, 반유토피아주의자들과 달리 꼬즈이레프는 상대적으로 멀지 않은 미래를 구상했고 거의 아무 것도 고안하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사회 구조와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레닌그라드 주민과 그들의 삶은 자먀찐의 우리들 의 수많은 번호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잘 숙고된 공연물을 연상시킨다. 이 소설은 반유토피아 문학의 다양한 전형적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된 특징 중 하나인 패러디를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반유토피아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의 정치적 특성, 재판의 원칙, 사랑과 예술에 대한 견해, 대중적인 정보 수단과 유머에 대한 권력의 특별한 금지, 극장 공연물과 검열행위 등. 이러한 패러디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 개성과 그 자유를 억압하는 새로운 권력의 파멸적인 정책에 대해 준엄한 경고이다. 꼬즈이레프가 이 작품을 끝마친 해로부터 25년 후인 1950년의 레닌그라드를 반유토피아 세계로 묘사하면서 전체주의의 도래를 예견했다고 한다면, 불행히도 그의 예상은 그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일찍 소비에트 현실 속에서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1930년대 초 소비에트 전체주의는 그 모습을 점점 더 확고히 해나가기 시작했다.

10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0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참고 문헌 Ануфриев А.Е. Утопия и антиутопия в русской прозе первой трети ХХ века. Эволюция. Поэтика. М., Баталов Э.Я. В мире утопии. Пять диалогов об утопии, утопическом сознании и утопических экспериментах. М., Бахтин М.М. Проблемы поэтики Достоевского. М., Бухарин Н. Азбука коммунизма. Гос. Изд-во Украины, Гопоненко Н.В. Михаил Козырев и его повесть «Ленинград». / Петербургский текст. Из истории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х годов ХХ века. (Под. ред.) В.А. Лаврова. СПб., Григорьева Л.П. Константы петербургского текста в прозе 20-х годов. / Петербургский текст. Из истории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х годов ХХ века. (Под. ред.) В.А. Лаврова. СПб., Достоевский Ф.М. 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 Ф.М. Достоевский. C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пятнадцати томах. Т.9, Л., Замятин Е.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Повести, рассказы, сказки, роман, пьесы. М., Кацис Л.Ф. «Ленинград» Михаила Козырева. / «Вторая проза». Русская проза х годов XX века. Trento, Козырев, Михаил. Ленинград. / Михаил Козырев. Пятое путешествие Гулливера. М., Лазаренко О.В.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антиутопия 1900-х - первой половины 1930-х годов. дис. канд. фил. наук. Воронеж, Ланин Б.А.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антиутопия. М., Сабинина О.Б. Жанр антиутопии в английской и американской литературе х гг. ХХ века. Автореф. дис. канд. фил. наук. М., Чудакова М.О. Без гнева и пристрастия. Формы и деформации в литературном процессе х гг. / Чудакова М.О. Литература советского прошлого. М., Чудакова М. Русский сатирик Мих. Козырев // Вопросы литературы. 1990, No.6. Энциклопедия для детей. Т. 5, ч. 3. История России XX век / Сост. С.Т. Исмаилова. М., 1996.

10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05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년대 그림책을 중심으로- 박미령(청주대) I. 들어가는 글 러시아는 1917년 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에 맞는 개혁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국 가체제와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맞는 새로운 국민이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새 국가에 맞는 새로 운 국민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문제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에 가장 시급한 것이 교육 이었다. 교육은 새로운 시대를 인지하도록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고 학교는 이제 까지 그래왔듯이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아동문학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위해 미래의 소비에트 국민을 양성하고 교육시키는 데 중요한 분야였다. 1920년대는 소비에트의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 건설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행해지던 시기였 다. 소비에트 정부는 노동계급을 위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했고 예술양식이 정치적 관리를 받게 되는 특이한 사례를 만들게 된다. 1920년대에는 교육과 선전이 예술에서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러시아 인구의 대부분은 문맹이나 반문맹이었다. 예술은 필히 이런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시각적이어야 했다. 1) 아동문학 전반을 통틀어 그림책은 그 이전보다 20세기 초에 더욱 발전하게 된다. 이 당시 러 시아는 회화분야에서 많은 실험과 함께 뛰어난 발전을 하던 시기에 있었다. 이때 활약하던 화가 들이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회화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실험은 아동문학의 일러스트에서도 적용되었다. 아동문학 중에서 그림책은 유아용으로 여겨졌다.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했거나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은 유용한 교육교재로 사용되었으며 흔히 어린아이가 처음 접하는 책은 그림책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림책이 원래 지니고 있는 가치보다 평가절하되어 왔지 만 소비에트 정부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문맹이었던 노동자계급, 그 자녀들을 위한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림책은 분명 어린이나 문맹의 어른을 위한 읽기 텍스트로 이용되었다. 페리 노들먼은 그림 책은 미묘하고 복잡한 의사소통의 한 형식이다. 시각적 정보로 언어적 정보를 보완한다는 점에 서 서사로서도 특별하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의 의미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시 각 예술로서도 특별하다. 그림책은 구성 요소들을 넘어서는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정보를 전달하는 상이한 표현 형식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라고 정의한다. 2) 마리아 니콜라예바 역시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개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어내는 독 특한 예술 형식이다. 3) 1) 마리아 니콜라예바, 용의 아이들: 아동문학 이론의 새로운 지평 김서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8, 129 쪽. 2) 페리 노들먼, 그림책론: 어린이 그림책의 서사방법, 김상욱 옮김, 보림출판사, 2011, 51쪽.

10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0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러시아 그림책은 20-30년대에 예술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활동과 함께 발전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에 당의 요구에 따라 작가들과 화가들은 그림책에 이데올로기적 교육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진 그림책이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교육하는 데 이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II. 20세기 초 아동문학의 발전과 당의 통제 소비에트의 출발은 성인문학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아동문학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는 새로운 아동문학에 대한 확고한 지침을 찾을 수 없 어서 많은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졌다. 20년대와 30년대에는 문학계 전반이 혼란한 상태였다. 1934년 처음으로 소비에트 작가대회가 개최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비에트 공식 문예이론 으로 선포되기 전까지 아동문학은 정부에 의해서 통제되는 측면이 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 장 자유로운 영역 중의 하나였다. 추다코바(Marietta Chudakova)에 따르면 아동문학은 소비에트 작가들에게 성인문학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창조적 표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주었으며 작가들 이 이데올로기적 주제를 피할 수 있게 했고 4) 소비에트 작가와 시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5) 특 히 네프(신경제정책) 시대에는 다른 여러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동문학에서도 비교적 자유로 운 창작활동이 허용되었다. 20년대에 아동서적은 가장 큰 국가 출판사(고시즈다트)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개인 출판사 도 왕성하게 출판활동을 했다. 1918년과 1931년 사이에 국립과 사립을 통틀어 100 개의 출판사 가 거의 10,000 권에 달하는 아동용 작품들을 내놓았고 500명에 달하는 작가들이 이에 전념했 다고 한다. 6) 개인 출판사들은 다양한 문학들을 내놓았는데, 아동문학에서는 스까스까(러시아 민 담) 장르와 서구의 아동문학을 번안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소비에트 미학 원 칙에 맞게 번안 개작하는 작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닌 서구의 낯선 예술 모형을 혁명적으 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며 유럽이나 미국의 현실에 낯설어 하는 러시아 독자들의 요구에 맞는 일 이기도 했다. 7) 혁명이후 소비에트 당국은 아동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 예 로 1921년에 아동의 독서 연구소(Институт детского чтения) 가 설립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 즘의 선포 이전까지 아동문학의 방향성에 대한 토론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전개 되었다. 이런 논란에는 러시아 고전 전통에 의거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함께 거론되었다. 아동문학은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을 제시하고 이데올로기 교육과 훈육을 목적으로 하는 경향 과 아동에게 자유로운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고 영원한 도덕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 3) 마리아 니콜라예바, 그림책을 보는 눈, 서정숙 외 옮김, 마루벌, 2011, 19쪽. 4) Marina Balina, Larisa Rudova, Introduction, The Slavic and East European Journal, Vol. 49, No. 2, 2005, p ) 초기에는 다닐 하름스(Д. Хармс), 니콜라이 올레이니코프(Н. Олейников), 보리스 지트코프(Бю Житков), 타마라 가베(Т. Габбе), 예브게니 시바르츠(Е. Шварц), 20세기 중 후반에는 에두아르드 우스펜스키(Едуард Успенский), 블라지미르 아로(В. Арро), 이리나 톡마코바(И. Токмакова) 등이 있다. Ibid. p 이런 작 가들은 자신들의 창작적 열의와 욕구를 아동문학에서 풀고자 했다. 6) I. I. Startsev, Detskaia literatura, bibliografiia, , M.: Molodaia gvardia, 1933, c. 3. Jacqueline Marie Olich, Competing ideologies and children's books: the making of a Soviet children's literature, ,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1999, p. 3에서 재인용. 7) Антон Долин, там же, с

10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07 향으로 양분되었다. 전자의 경우는 루나차르스키(Луначарский)와 레닌의 미망인 끄룹스까야(Н. Крупская)를 비롯해 프롤레타리아와 볼셰비키 정부의 방향이었고 8) 후자의 경우는 고리끼(М. Го рький)를 위시한 마르샥(С. Маршак)과 추꼽스끼(К. Чуковский)가 의도했던 방향이었다. 9) 어린 이를 위한 문학 대 전집(большая литература для маленьких) 의 전사( 前 史 )에서 고리끼, 마르 샥, 추꼽스끼, 그들과 가까운 작가들과 다른 직업에서 아동문학에 뛰어든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 을 했다. 추꼽스끼와 마르샥은 레프 끌랴치꼬(Л. Клячко)와 함께 일하면서 새 장르를 공식화하 려 했다. 즉 미취학 아동을 위한 스까스까, 스까스까 전통의 혼합, 서구의 동요, 러시아 고전문 학, 현대 그래픽을 아동문학에 적용시키려 했다. 10) 새로운 아동문학의 창조에 가장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사람은 고리끼이다. 그는 러시아와 외 국의 고전들과 민속의 가장 좋은 모델들을 초등학생을 위해 재출간하는 일에 고군분투했다. 고 리끼는 고전 전통을 옹호하며 나섰다. 그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에 대해서(О Новом и старо м) 란 자신의 논문에서 그는... 지금 떠나는 과거에 대한 책은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아이들에 게 더 낫고 더 지혜로운 것을 말해줄 수 있다. 라고 했다. 11)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은 세계문학(Всемирная литература) 국립출판사를 창건한 일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최초로 아 이들을 위한 전문 출판사의 창조이념이 설립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혁신은 아동문 학 전반, 아동 잡지에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1919년에 고리끼는 아이들을 위한 최초의 소 비에트 잡지 북방의 빛(Северное сияние) 을 창립한다. 창립 호는 새로운 테마들과 함께 사 상, 정치성을 띠었다. 12) 끄룹스까야 그룹은 스까스까가 지니는 해학과 유머를 거부하고 스까스까를 포함해서 민속적 유산들을 청산해야 하는 구세대의 유물로 여겼다. 그러므로 스까스까가 아동문학에 영향을 미치 는 것을 반대했고 아동문학에서 유희와 웃음을 거부하고 진지하기를 요구했다. 특히 끄룹스까야 는 아동문학을 새로운 세대의 사회주의 교육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 로 보았다. 또한 그녀는 아동서적은 새로운 사회에서 삶, 자연,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13) 반면 마르샥과 추꼽스끼 그룹은 아동문학에 교훈과 교육보다는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두 그룹은 아동문학을 보는 시각의 차가 컸고 정부의 견해와 같이 하는 전자가 후자를 탄압하고 억압하기에 이른다. 끄룹스까야 그룹의 스까스까에 대한 예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에서 스까스까의 영 향력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스까스까의 대부분은 서구 요정담의 번역 또 는 번안이었다. 14) 국립 출판사인 고시즈다트(ГОСИЗДАТ: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РСФС Р)에서는 스까스까가 계속 출판되고 서구의 요정담이 계속 번안되도록 했다. 제 1차 소비에트 작가대회에서 고리끼와 마르샥은 아동문학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한 사랑, 집단주의에 대한 8) 1921년에 나르콤프로스(Наркомпрос:민중계몽인민위원회) 산하의 아동 독서 연구소(Институт детского чт ения)가 존재했다. 여기서 아동문학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는 반대로 아동문학의 학문적 연 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А. П. Авраменко,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ХХ века е годы, МГУ, 2006, с ) 이와 동일한 주장은 Malina Balina, Creativity Through Restraint: The Beginnings of Soviet Children s Literature, Marina Balina, Larissa Rudova, Russian Children s Literature and Culture, Routledge, 2008, p. 9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Н. Крупская, О дет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и детском чтении, М.: Детс кая литература, 1979, с. 36. Ibid, p. 4에서 재인용. 10) Jacqueline Marie Olich, op. cit., p ) И. Н. Арзамасцева, С. А. Николаева, Дет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М. Асадемия, 2008, с ) А. П. Авраменко, там же, с ) Н. Крупская, там же, с. 36. Malina Balina, op. cit., p. 4에서 재인용. 14) Jacqueline Marie Olich, op. cit., p. 341.

11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0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긍정적 사고, 혁명적 낭만주의를 지닌 긍정적 주인공에 대한 찬미를 독자에게 주입시켜야 한다 고 말했고 스까스까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을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아동문학을 위 한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했다.15) 이런 발언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요구하는 문학방침이 언급되 어 있어서 억지스러움이 느껴진다. 마르샥은 이때의 발언에서 어려운 시대에 아동작가들이 얼마 나 많은 공헌을 했는가를 언급했으며16)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문예이론으로 공포된 이후에 도 아동문학에 자유로움과 창의적인 실험, 유희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마르샥뿐만 아 니라 같은 생각을 공유했던 작가들은 당의 심한 감시에 시달렸다. 소비에트 정부의 아동문학에 대한 감시는 네프가 종결되어 가는 과정에서는 더욱 심화되었다. 1920년대 초의 추꼽스끼와 마르샥, 마야꼽스끼 아동시에 대한 공식적 공격, 1920년대 말 1930년 대 초 스까스까 장르에 대한 전쟁 선포, 1937년에 제트기즈17)의 레닌그라드와 1946년 아동 정 기간행물인 무르질카(Мурзилка) 에 반대하는 반 계몽주의 캠페인은 소비에트의 통제의 일면 을 드러낸다.18) 특히 아동문학은 1930년대부터 스탈린이 죽는 1953년까지 스탈린이 문화적 수 술을 단행하는 데 손을 덴 많은 도구 중의 하나였다.19) 1934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포이후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아동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자 했던 창의적인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고 아동문학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검열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부단히 정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 III. 그림책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힘을 행사하고 유지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사회의 특정 계층에게 힘을 실어주고 뒷받침해 주는 이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들을 다루고 보호 해야 하는 일은 어른들과 어린이 사이의 힘의 상관관계를 규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 린이에게 성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육시키는 일은 성인이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어린 이에게 적용가능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동문학은 성인의 가치와 가설을 어린이독자 에게 주입시키는 중요한 방법으로 문화적 가치와 가설을 표현하는 주요 매개체였다. 아동문학이 교육과 선전의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는 1920년대부터이다. 예술은 필 히 어린이와 문맹의 서민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시각적이어야 했다. 로스타 창(Окон РОСТА) 이라고 불렸던 그 당시의 정치적 포스터들이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회를 위한 예술의 새로운 역할에 따라 새로운 예술 규범은 예술과 문학에서 그들이 엘리트적 혹은 퇴폐적 이라고 불렀던 요소들, 즉 복잡하다고 비난했던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예술은 실용적이 어야 했고 목적이 있어야 했고 사상적으로 올바른 것이어야 했다. 포스터 같은 대중 예술의 새 로운 미학이 갖는 중심 사상은 텍스트와 일러스트 양쪽을 모두 단순하게 간결하게 알아보고 기 억하기 쉽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20) 그림책은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글과 그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서사체계를 지닌다. 15) Ibid., pp ) И. Н. Арзамасцева и С. А. Николаева, там же, с ) Детгиз는 국립아동출판사(Детское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이며 1933년에 설립되었다. 18) Marina Balina, Larisa Rudova, op. cit., p ) John McCannon, "Technologicak and Scientific Utopias in Soviet Children's Literature ", The Journal of Popular Culture, Vol. 34, 2001, p ) 마리아 니콜라예바, 같은 책, 130쪽.

11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09 이는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으며 각자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이 끈다. 러시아에서는 그림책과 같이 종합적인 성격의 장르가 발전하게 된 것은 은세기인 20세기 초 표현 예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시기이다. 이때 등장한 많은 예술가들은 그림책을 만드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하게 된다. 이때 기여한 대표적인 예술가는 알렉산드르 베누아(Александр Бе нуа)와 이반 빌리빈(Иван Билибин), 베라 예르몰라예바(Вера Ермолаева)와 라자르 리시쯔끼(Ла зарь Лисицкий), 블라지미르 레베제프(Владимир Лебедев)와 블라지미르 꼬나쇼비치(Владимир Конашевич), 다비드 쉬쩨렌베르그(Давид Штеренберг)와 알렉세이 빠호모프(Алексей Пахомов) 이다. 이들은 독특한 문화 현상, 즉 대중 예술로서의 아동 그림책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21)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했던 화가들의 지위가 거의 텍스트를 쓴 작가들과 같은 저자 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을 만큼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마르샥과 레베제프가 같이 이루어 낸 여러 권의 그림책에서 입증된다. 위의 그림책은 마르샥의 서커스(Цирк) (1924)로 출판사 라두가(무지개) 22) 에서 발간한 작 품이며 그림은 레베제프가 그렸다. 그런데 위의 그림책 표지를 보면 텍스트를 쓴 마르샥과 그림 을 그린 레베제프의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들어가 있다. 대부분 그림책에 일러스터의 이름은 부 수적이거나 작은 글씨로 언급되는 것이 보통인 것에 비하면 이는 획기적인 것이다. 이는 그 당 시 일러스터들의 위상을 말해준다. 마르샥과 레베제프 콤비는 러시아 그림책 역사상 훌륭하고 뛰어난 작품들을 여러 권 만들어 냈다. 위에서 언급한 서커스 를 제외하고 아이스크림(Мороженое) (1925, 라두가), 대패 가 대패를 만든 이야기(Как рубанок сделал рубанок) (1927), 어제와 오늘(Вчера и сегодн я) (1925), 짐(Багаж) (1926) 등이 있다. 마르샥과 레베제프는 당의 감시와 검열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들이다. 어제와 오늘 같은 경우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낡은 것, 오래된 것 들에 대한 풍자와 조소가 있는 반면 새로운 것에 대한 찬사가 주 내용이다. 레베제프는 표지에 서부터 그림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표지에서 마르샥과 레베제프는 나란히 и 로 연결되어 있어서 일러스터가 저자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저자 21) Валерий Блинов, Русская детская книжка-картинка б М., Искусство ХХI век, 2005, с ) 국립이 아닌 민간출판사로서 소비에트 최초의 아동전문출판사.

1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들의 이름을 기준으로 위의 그림과 아래의 그림은 그대로 어제와 오늘 을 의미한다. 위의 그림 은 이미 지나간 세월을 의미하면서 흑백으로 되어 있고 내용에서 언급했듯이 구세대의 램프를 든 나이 든 노파, 물지게를 든 노인, 잉크와 펜을 들고 가는 나이든 귀족이 그려져 있다. 아래 는 구세대의 램프, 물지게, 펜과 잉크에 대비되는 전구, 수도, 타이프를 들고 가는 젊은이들로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위해 컬러로 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도 펜이 빈 잉크통 속에서 펜이 자조적인 어투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때 그 독백은 필기체로 되어 있고 다음 장에는 타이프의 이야기가 나올 때 글씨체는 타이프 글씨체로 바뀌어 있다. 이는 표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 마르샥과 레베제프는 펜이 잉크를 묻 혀 사용할 때처럼 필기체에다 빛바랜 파란색에 가운데에는 타이프 글씨체인 И 가 강조되어 있 다. 또한 вчера 는 검은 색으로 сегодня 는 붉은 색으로 표시되면서 어제와 오늘의 극명한 차 이를 드러내고 진보적인 소비에트 혁명 정부를 드러낸다. 전반적으로 이 표지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찬양과 구세대에 대한 조소가 드러나 있다. 마르샥이 초기에 함께 했던 꼬나쇼비치(Вл. Конашевич)와 함께 만든 화재(Пожар) (라두 가, 1923)에서는 그림책 최초로 노동자를 영웅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여기서 화재를 진압하고 소녀와 고양이를 살려준 소방관 꾸지마(Кузьма)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은 소비에트 시대 에도 꾸준히 재출간되면서 사랑을 받았다.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노동자의 성실함, 민중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영웅적인 형상은 아이들의 이데올로기 교육에 적 합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구세대의 화가이면서 20년대 라두가에서 일하는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띄 르사(Н. Тырса)와 작업했던 분견대(Отряд) (1930) 역시 아이들이 소비에트 미래의 역군으로 서의 자질을 익히는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면 글보다 그림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 교육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길 전체를 차지하고 코끼리처럼 걸어가죠. 들어봐요. 그에게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는 반까, 바리까, 딴까, 라리까, 꼴까, 세료쥐까, 올까, 알료쉬가, 프리드리흐와 알리사, 찌트와 바실리사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두고 분견대 라고 불러요. (Занял/ всю дорогу/ Топает, как слон/ Слышите,/ Как много/ У него имен?/ Ва нька он/ И Варька,/ Танька он/ И Ларька,/ Колька/ И Сережка,/ Олька/ И Алешка,/ Фридри х и Алиса,/ Тит и Василиса,/ А люди говорят -/ Зовут его Отряд.) 아래 그림을 보면 기차

11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11 와 공장과 집들이 보이고 소비에트 소년소녀단원들이 단원복장을 입고 붉은 깃발 아래 줄맞춰 걸어가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는 그림에서 보여지는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다만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분견대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일사분란하면서 코끼리처럼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그런 묘사에 그림은 텍스트에서 미처 드러내지 못한 이데올로기적 틈새 메워주며 어린이 독자들에게 뚜렷이 이데올로기 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 <분견대> 그림책 작가들이나 화가들이 아동문학에서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했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지 속적으로 당과 볼셰비키 비평가들로부터 꾸준히 감시와 질타를 받아야 했다. 마르샥과 레베제프 의 콤비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강렬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인 경쟁판(Доска с оревнования) (젊은 근위대, 1931)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추상적, 장식적이라는 비난 을 받으면서 마르샥과 레베제프의 이 작품은 소비에트 아동문학 중에서 재출간이 거의 되지 않 은 불운의 작품이 되었다. 23) 볼셰비키의 템포에 맞춰서! 라는 구호로 시작되는 이 첫 페이지의 그림은 마르샥의 텍스트의 구호를 더욱 역동적이고 실제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손을 앞으로 뻗고 힘차게 걸으며 다른 손 에는 노동자들의 연장이 들려 있는 모습은 마르샥의 텍스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즉 시각적 정보로 언어적 정보를 보완하면서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당의 지속적인 질타를 모면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마르샥과 레베제프 콤비는 계속해서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는 군대다(Мы военные) (1938)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아이들이 소비에트를 지켜야 하 는 미래의 군인으로서 등장하며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것이 모두 무기들에 해당한다. 영미나 23) Андрей Крылов, И у великих поэтов бывали халтуры, , 06, 09)

1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경쟁판> 서유럽의 아동문학에서 금기시될 법한 장면들이 러시아 그림책에서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다른 나라들에서 성인들이 아동을 보호한다는 취지하에 아동에게 적합하지 않은 장면, 즉 성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을 아동문학에서 금지시키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전쟁 또는 폭력과 관련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이 당시에 마르샥을 비롯한 아동작가 들은 물론이고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 역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 품들을 내놓아야 했다. 아동문학에 대한 당의 간섭과 검열은 네프가 끝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선언될 때 더 욱 강화된다. 이데올로기적 강조는 아동 그림책에서 10혁명 이후 곧 등장한다. 아동문학은 아 직 부르주아의 무기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이 마지막 무기를 적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그것을 완 성으로 이끌면서 이용해야한다. 라고 1918년 초에 <프라브다>지는 강조한다. 24) 당의 선전과 교 육의 중심에는 레닌에 대한 우상화, 즉 지도자의 형상을 창조하는 과제가 있었다. 24) Л. Кормчий, Забытое оружие. О детской книке, Правда, 1918, 17 февр. Валерий Блинов, там же, с. 172.

11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13 '새로운 인간'의 창조에 따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국가 활동가, 여타의 정치적 지도자 와는 차별되는 그런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레닌은 젊은 세대가 모방하기 위한 우상이 되어야 했다. 어린이의 의식 속에서 그의 형상은 두 가지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레닌은 혁명가, 전사, 지도자라는 것 하나,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적 성격을 보면 친근하고 이해력이 많으 며 매력적인 인간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시각적인 수단으로 선전되었다. 즉 포스터, 사진, 영화, 그리고 더 자주는 텍스트를 통해서 창조되었다. 25) 아이를 위한 새로운 공산주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레닌과 관련된 초기에 나온 그림책은 린 (И. Лин, 텍스트)과 끌루찌스(Г. Клуцис, 그림)의 작품인 아이들과 레닌(Дети и Ленин) (1924), 예술 세계 26)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인 보리스 꾸스또지예프(Борис Кустодиев, 그림) 와 릴리나(З. Лилина, 텍스트)의 작품 레닌과 어린 레닌추종자들(Ленин и юные ленинцы) (1925), 꾸스또지예프와 뽀끄로브스까야(А. Покровская, 텍스트)의 작품 레닌에 대해 아이들에 게(Детям о Ленине) (1926)가 대표적이다. 위의 그림은 린과 끌루찌스의 작품인 아이들과 레닌 의 한 페이지이다. 이 그림에 대한 텍스트는 너의 형상은 우리 모든 면에서 인도하는 별이 될 것이다. 라고 되어 있으며 이 작품 에서 저자 린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진정한 태양이 우리에게 존재한다.... 그 태양의 이름은 레닌이다. 이 작품에서 일리치 할아버지, 사랑스런 지도자, 사랑하는 선생님, 전세계 민 중 지도자, 지도자 아버지, 영웅 레닌, 사랑스런 레닌, 레닌 아빠, 레닌 용사 이런 말 들이 사용된다. 모스크바 그림책은 혁명전까지 뚜렷한 예술적 전통을 지니지 못하다가 1920년대가 되면 독자 적이면서 매우 역동적인 활약을 펼친다. 이들이 택한 방식은 구성주의적 스타일(로드첸꼬(А. Ро дченко), 리시쯔끼(Эль Лисицкий), 뽀뽀바(Любовь Попова), 꾸쁘레야노프(Н. Купреянов), 쩰린 가쩨르(С. Телингатер), 치차고바 자매(сестры Чичаговы))과 사진 몽타주 기법(끌루찌스(Г. Клуц ис), 꿀라기나(В. Кулагина), 센낀(С. Сенькин))이었다. 예술에서의 공리주의, 생산과 사회적 과 25) Ю. Г. Салова, Образ В.И. Ленина в изданиях для детей 1920-х годов, (검색일, 2013, 4, 29) 26) 1880년대 말 알렉산더 베누아의 지도 아래 스스로 교육하는 단체 를 표방하며 만들었던 네프스키의 픽위키 안스 라는 학생 단체에서 비롯되었다. 1890년대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게 되었다. 캐 밀러 그레이, 위대한 실험: 러시아 미술 , 전혜숙 옮김, 시공사, 2001, 42쪽.

1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제에 예술이 종속되는 문제, 기술 숭배,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예술적 시각에 대한 거부는 구성 주의의 특징이며 이런 특징들은 그림책에 기계 공장, 전기, 등 도시 생활과 문명의 성과들로 표 현되었다. 27) 위의 제시된 끌루찌스의 아이들과 레닌 과 센낀의 젊은이들의 행진(Марш м олодых) (텍스트는 테스(Т.Тэсс), 1931)은 선전이라는 특징을 분명히 지니고 있으며 콜라주나 그림의 요소와 사진 묘사가 결부되어 있었다. 사진은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생산 또는 교육 출판물에도 독특한 자리를 지닌다. 이런 서적 에는 신빙성이 가장 중요한 특질이다. 책의 텍스트는 여러 그래픽적 기법들, 즉 선, 기호, 판, 여러 점들을 이용한 모형들을 사용해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서술의 다큐멘타리적이고 객관적인 특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28) 그림책 내용의 노골적인 정치적 음모와 이데올로기적 여운은 예술적 특징만큼이나 당시의 그 림책의 입장을 결정하고 있다. 동시에 이 시대의 화가에게 이런 그림책은 그래픽 언어의 독창적 인 실험 장소가 되고 있었다. 29)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작가적 신념과 실험정신, 예술적 독창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당의 감시와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줄타 기도 30년대 중반이후가 되면 마녀사냥 으로 인해 사라지게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선포된 전후를 볼 때 시의 종말과 함께 그림책의 풍성하고 실험적이며 예술적인 특성은 30년대가 되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마리아 니콜라예바는 1920년대의 책들 이 망각 속에서 끌려나올 때면 언제나 새로운 그림이 동반되었지만 그 그림들은 아무리 예술적 으로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장식으로서의 기능밖에는 할 수 없었다. 1930년대 이후 소련 의 출판인들에게는 유기적인 전체로서의 그림책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잊힌 것처럼 보인다. 이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현상의 이유는 사회주의적 환경들 때문이다. [ ] 예술의 새로운 시각적 형식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회화, 조각, 건축, 영화와 정치적 포스터의 교육적 선동적 역할 은 갑자기 불필요해졌다. 아동 문학의 기능도 변했다. 이제 언어적 측면이 어린 독자를 위한 문 학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용과 플롯 그리고 메시지와 사상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졌다. 30) 라 고 일러스트레이션이 산문의 보조적 기능, 장식적 기능을 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7) Валерий Блинов, там же, с ) там же, с ) Г. Ельшевская, Один из основоположников: Детская книга в творчестве Н. Купреянова, Детска я литература, 1987, 9, с. 60. там же, с ) 마리아 니콜라예바, 같은 책, 136쪽.

11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15 IV. 나가는 글 새로운 아동문학은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만이 누렸던 것과는 달리 모든 사회그룹, 특히 노동 계급의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소비에트의 초기 그림책들은 선 전 포스터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컬러풀한 그림과 기억을 돕기 위해 운문 형식을 사용한 아주 짧은 텍스트가 주를 이루었다. 20세기 초 은세기에 시가 지배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흐름은 당연하다. 짧은 텍스트와 그림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문맹이었던 서민들이 새로운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익히고 배워야 할 필요성에 걸 맞는 수단이 었다. 아동문학은 어떠한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작가들이 순수하게 아이들이 즐 길 수 있는 작품을 써서 읽게 하려했지만 교육과 즐거움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작가들 은 즐거움과 동시에 교육을 숨겨두고 그들이 즐기는 가운데 채득하게 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왔 다. 이런 노력은 20세기 초 마르샥과 추꼽스끼를 중심으로 오베리우 시인들, 그리고 다른 젊은 작가들이 해나갔지만 시대의 변화와 새롭게 들어선 혁명 정부는 아이들에게 즐거움만 주는 것 을 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동문학은 새로운 정부가 국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만을 선사 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는 영원한 행복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이런 당의 지시에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림책은 작가들이 숨어서 자신들의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해 나갈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기도 했지만 그 뛰어난 성인작가들은 그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서민 들과 미래의 소비에트 시민인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원하지 않 았다할지라도 자신들의 뛰어난 재능으로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재능으로 소비 에트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이들에게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18 1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17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박영은(한양대) I. 니콜라이 레리흐, 그는 누구인가? <니콜라이 레리흐> <옐레나 레리흐> 니콜라이 레리흐(Ниолай Рерих: )는 러시아의 화가이자 철학자, 신비주의자, 작가, 여행가, 고고학자, 사회활동가, 시인, 교육자였으며, 7000여점 정도의 그림과 30여권 정도의 저 술을 집필한 인물이다. 레리흐 조약(Пакт Рерих)의 발기자이고, 국제문화운동인 <문화를 통한 평화(Мир через культуру)>와 <평화의 깃발(Знамя мира)>의 토대를 놓은 그는 러시아 뉴에이 지 발전에 특별한 영향을 주었다. 1899년 니콜라이 레리흐는 뿌쨔찐 공후의 영지에서 옐레나 이바노브나 샤포슈니코바와 만나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01년 10월 결혼한다. 옐레나 이 바노브나는 니콜라이 레리흐에게 믿음직한 동반자이자 영감을 주는 여인이었다. 그들은 작품 창 작의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에게는 1902년 훗날 동양학 자가 된 아들 유리가, 1904년에는 장차 화가이자 사회활동가가 될 스뱌토슬라프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동양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동경했던 레리흐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신지학 회를 설립한 옐레나 블라바츠카야의 사상과 그 맥이 닿아 있다. 블라바츠카야는 오직 신비학의 요람 인 동방에서만 수천 년 동안 손상되지 않은 순수한 신비주의 가르침을 전수할 수 있는 현 인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를 인류의 요람 으로 간주했던 그녀의 사상은 레리흐 부부 에게도 그대로 전승되었고, 그들은 1923년 자신들의 탐색을 위해 인도를 향해 출발한다. 특히 1900년대 초부터는 인도로부터의 거부할 수 없는 부름들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인 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하면서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 비베카난다 (Vivekananda: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 )와 같은 인도 철 학자들의 사상을 깊이 연구했다. 이렇게 동양 철학을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창작에서도 독특한 반향으로 나타난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고대의 이교적 루시, 민족서사시의 이미지들이 소재로

1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면, 1) 1905년 중엽부터의 작품들(«인도의 길(Индийский путь)», «크리슈나 (Кришна)», «인도의 꿈(Сны Индии)»등)에서는 인도가 그 배경이 되었다. 그는 <생의 윤리학(Ж ивая Этика)>에 입각한 우주적 이상이 깃든 작품을 통해 몽골, 티베트, 히말라야의 성스러움과 신비스러운 원초력을 화폭에 담아내기도 했다. 2) 니콜라이 레리흐는 중앙아시아 학술탐사단을 조직하여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인도, 중국, 알 타이, 몽골, 티베트를 탐험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역사학, 고고학, 민속학, 철학사, 종교사, 예술사, 지리학 분야의 광범위한 연구가 행해졌다. 3) 이 학술탐사에서는 희귀한 여러 고대 원본들이 발견되었는데, 니콜라이 레리흐는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의 심장(Се рдце Азии)», <알타이-히말라야(Алтай Гималаи)>와 같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레리흐는 티베트, 히말라야, 인도가 인류의 영적 지식의 근원임을 확신하게 된다. 4) 마침내 레리흐 부부는 1930년대 중반부터는 히말라야 쿨루 계곡에 거주하면서 힌두교와 불교, 러시아와 인도의 고대 문화와 그것들의 공통되는 근원을 연구했으며, 서양의 문화와 동양의 지 혜가 결합된 여러 체계들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5) 1929년 니콜라이 레리흐는 파리 대학의 정치학 및 국제법 박사인 슈클랴베르와 함께 문화적 가치의 수호에 대한 협약, 이른바 레리흐 협약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또한 협약과 함께 평화 의 깃발 이라고 하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대상들을 규정하는 특수한 표시를 제안하였다. 흰색 천에 붉은 원이 그려진 이 평화의 깃발 은 영원성을 의미하는 원의 형상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합일을 상징하는 세 개의 붉은 원을 포함하고 있다. 레리흐 협약은 미국과 유럽에서 커 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협약은 1935년 8월 15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워 싱턴 백악관에서 체결되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10개국이 비준했다. 이는 레리흐가 러시아 망 명자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문화 리더로서 활동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본 발표문은 필자의 아이디어를 개진한 초고상태이며, 니콜라이 레리흐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필자의 옐레 나 블라바츠카야의 신지학과 문화사적 영향 연구 (슬라브학보, 2012년 9월 30일 발행)에서 인용되었음을 밝 힙니다. 1) 레리흐는 초기 작품에서 고대의 이교도적인 루시와 민족 서사시를 바탕에 둔 «도시 건설(Город строят)», «불 길함(Зловещие)», «바다 건너의 손님(Заморские гости)»와 같은 이미지들을 구현하였다. 특히 레리흐는 역사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이와 관련된 초기 작품이 «구교도들의 회합(Сходятся старцы)» (1898), «야로 슬라브나의 애가(Плач Ярославны)»(1893), «루시의 기원. 슬라브인(Начало Руси. Славяне)»(1896), «우상들(Идо лы)» (1901), «선박 주조(Строят ладьи)» 등이다. 당시 그의 작품은 역사적 사료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 되었으며, 철학적인 내용으로 충만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 니콜라이 레리흐의 작품세계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평가는 다음을 참조. Л.В. Шапошникова. "Н.К. Рерих как мыслитель и историк культуры", c // Петр Пильский, "Седой вековой туман", c. 280./ Н.К. Рерих. Дер жава Света. СПБ.: Азбука, c // Юргис Балтрушайтис, "Внутренние приметы творчества Рерих а", c. 273./ Н.К. Рерих. Держава Света. СПБ.: Азбука, c // Е.И. Рерих. Три Ключа. М.: Эксм о, c // Е.И. Рерих, Сокровенное знание. Теория и практика Агни Йоги. М.: Эксмо, с ) Музей имени Н.К.Рериха: Путеводитель. М.: Международный Центр Рерихов, Мастер-Банк, c ) 니콜라이 레리흐가 인도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다음을 참조 바람. Л.В. Шапошникова. "Н.К. Рерих как мысли тель и историк культуры", c ) 이 시기 옐레나 레리흐는 마하트마가 보낸 서한을 발췌한 «동양의 운명(Чаша Востока)»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1940년에는 <불교의 기초(Основы буддизма>란 책을 통해 항상 러시아의 전통 정신과 불교 정신은 하나 라고 강조했던 자신의 관점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서는 부처의 근본적인 철학적 가르 침, 니르바나. 카르마의 법칙, 환생과 같은 것들이 기술되어 있다.

12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119 레리흐 협정 체결 이미지로 표현된 평화의 깃발 (1931) II.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대한 재해석 <중앙아시아 원정 당시의 가족사진> 1. 학술탐험(고고학, 민속자료 수집)과 예술적 목적 니콜라이 레리흐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본 발표문에서는 그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주목하려 한다. 니콜라이와 엘레나 레리흐 부부의 중앙아시아 원정은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이루어졌다. <아시아의 심장(Сердце Азии)>에서 니콜라이 레리흐는 자신의 원정 대원들을 밝히기도 했다. 6) 노선은 시킴 주, 카슈미르, 라다크, 신장, 러시아의 모스크바,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몽골, 티베트 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원정의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 최근 연구자들은 그가 학술탐험 외에도 아시아에 새로운 국가 설립이나 연방국가정치보안부(ОГПУ)의 비밀 정보 수행을 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6) 이 원정에 참여한 주 구성원은 니콜라이 레리흐, 옐레나 레리흐, 그리고 그들의 아들 유리 레리흐였다. 시킴으 로 가는 길에는 잠시 스뱌토슬라프 레리흐, 라마 로브장, 민구르 도르제, 티베트 장군 라덴-라, 라마 람자나와 쩨링 같이 동행을 했다. 알타이 여행에서 레리흐의 미국 컴뮤니티의 회원들 Z.G. 포스디크와 M.M. 리흐트만 따라갔다. 티베트 여행때 레리흐는 의사 K.N.랴비닌과 교통관리자 P.K.포르트냐긴과 경비원들의 중령 N.V. 코르다쉐프스키와 주방관리자 A.A. 골루빈을 초청했다. 엘레나 레리흐를 보그다노프 자매들 L.M. 그리고 I.M 따라갔다. 캐러밴에 호송 팀과 티베트 출신 콘총과 부랴티아 출신 D. 쯔림필로프도 포함되기도 했다.

1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첫 번째 중앙아시아 원정에 대해서는 니콜라이 레리흐의 «Алтай-Гималаи»와 유리 레리흐의 «По тропам Срединной Азии»에서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에는 랴비닌(Рябинин), 포르트냐긴(Портнягин), 코르다세프스키(Кордашевский) 등과 같이 불교의 미션 으로 티베트 원 정에 참여했던 대원들의 일기가 발표되었다. 7) 이 원정은 독특한 경로와 수집된 자료의 방대함 이라는 측면에서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원정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지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이며 민속학적인 연구가 진행되다. 그들은 희귀 원고들을 발견하고 언어학적 자료와 전 설들을 수집했다. 또한 «Гималаи», «Майтрея», «Сиккимский путь», «Его страна», «Учителя Востока» 등을 비롯하여 원정 노선의 생생한 파노라마를 반영하고 있는 오백여점 정도의 그림 이 완성되기도 했다. 8) <중앙아시아 원정 당시 그린 히말라야 지역의 그림> <동양의 선지자에 대한 그림> 니콜라이 레리흐와 가족들 자신이 밝히는 원정의 목적과 과제는 다음과 같다. - 니콜라이 레리흐: <예술적인 과제 외에도, 우리는 원정에서 고대 중앙아시아의 유적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종교와 풍습의 오늘날 상태를 관찰하며, 민족들의 이주의 흔적들에 관심을 두었다.> 7) Автореферат докторской диссертации В. А. Росова «Русско-американские экспедиции Н. К. Рери ха в Центральную Азию (1920-е и 1930-е годы)», с.6 8) Беликов П. Ф., Князева В. П. Экспедиция / Никола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Рерих. М., 1972 // Шапо шникова Л. В. От Алтая до Гималаев: По маршруту Центрально-Азиатской экспедиции Н. К. Р ериха. М.: МЦР МАСТЕР-БАНК, 1998.

12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유리 레리흐: <원정의 주된 목적은 중앙아시아 내륙의 민족들과 이 지역 풍광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얻기 위함이다. 니콜라이 레리흐가 제작한 오백여점의 그림이 그 성과물이라 할 수 있 다. 원정의 두 번째 목적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인 탐색이었다. 마지막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지역의 고대 문화를 알 수 있는 민속자료와 언어자료 수집 이다.> 9)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을 예술적-민속적 목적이라 규정한 것은 Л.В.Шапошников а 10) 와 1972년에 레리흐 전기를 집필한 П.Ф.Беликов 11) 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레리흐의 중앙아시 아 학술원정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문화계몽협회 활동에서 나온 수익금과 그림을 판매한 금 액 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관점의 확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주체는 모스크바에 위치 한 <레리흐 국제센터>의 역할이 컸다. 2. 니콜라이 레리흐와 소련정보기관(ОГПУ)의 협력에 의해 진행 1999년 올레그 쉬슈킨(Олег Шишкин)은 <히말라야를 향한 투쟁Битва за Гималаи>이라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의 글에서 레리흐와 ОГПУ와의 연관성을 제기하였다. 12) 레리흐가 요원이었다는 설은 여러 역사가들에 의해 확산되기도 했으나, 13) 물론 이런 관점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14) 레리흐가 소련정보기관에서 고용한 요원이었다고 주장하는 관점을 제기한 자들은 그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소비에트 정권이 돈을 대주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레리흐가 미국에서 활동한 것 역시 소비에트 정권의 스파이 역할이었다는 설) 실제로 원정 중앙아시아 원정 당시, 니콜라이 레리흐는 ОГПУ의 의장 대리였던 트릴리세르(М.А. Трилиссер)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15) 역사가 막심 두바예프(Максим Дубаев) 역시 자신의 글 «Рерих»에서 레리흐가 ОГПУ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며, 소비에트 정권의 도움 없이는 원정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 언급하고 9) Рерих Ю. Н. По тропам Срединной 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Хабаров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 Шапошникова. Л. В. Великое путешествие. Книга первая. Мастер. М.: МЦР, ) Беликов П. Ф., Князева В. П. Экспедиция / Никола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Рерих. М., ) Шишкин О. Битва за Гималаи. НКВД: магия и шпионаж. М., ОЛМА-Пресс // Дубаев М. Л. Рерих. М.: Молодая гвардия, ) Грекова Т. И. Тибетская медицина в России: история в судьбах и лицах. СПб: Атон, // А ндреев А. И. Гималайское братство: Теософский миф и его творцы (Документальное расследов ание). Издательство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 Брачев В. С. Масоны в России: от Петра I до наших дней. С.-Петербург: Стомма, Глава 20. Московское масонство х 1930-х гг. Масоны и ОГПУ 14) Фатхитдинова Я. Ю. Новейшая история Рериховского движения в России. Автореферат диссерта ции на соискание учёной степени кандидата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Специальность оте чественная история. Уфа 2009 // Росов В. А. «Русско-американские экспедиции Н. К. Рериха в Центральную Азию (1920-е и 1930-е годы)». Автореферат диссертации на соискание учёной степени доктора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15) Росов В. А. Звенигород окликанный и завещанный. 1. // Николай Рерих: Вестник Звенигород а. Экспедиции Н.К.Рериха по окраинампустыни Гоби. Книга I: Великий План. СПб.: Алетейя, c. 272.

1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있다. 16) 사실 10월 혁명 직후 레리흐는 소비에트 정권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취했으며, 망명자들을 위한 언론에 폭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관점은 돌변했으며, 볼세비키 역시 레리흐를 이데올로기적 동지로 간주했다. 1924년 가을, 니콜라이 레리흐는 베를린에 있던 소비에트 대표부 방문차 유럽으로 떠났으며, 그 곳에서 전권대표인 Н. Н. Крестинский를 만났다. 17) 또한 1925년 9월, 레리흐 원정에 체카요원인 야콥 블륨킨(Яков Блюмкин)이 라다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참여했다고 여러 자료들은 주장하고 있다. 18) 공산주의와의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은 그의 저술에서도 나타났다. 저서 <생의 윤리학>의 일부인 간행물 «Община» (1926)에는 레닌에 관한 부분적인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공산주의 공동체와 불교 공동체 사이의 유사함에 대해 기술하기도 하였다. 훗날, 레리흐 가족이 공산주의와 관계를 단절했었을 때인 1936년, 리가에서 이 책이 재출판되었을 때에는 레닌에 관한 글들이 제외되었다고 한다. 19) 예를 들어, 1926년 판에 기재되어 있던 Появление Ленина примите как знак чуткости Космоса) 과 같은 표현은 1936년 «Община»의 64번째 문단에서는 이미 삭제되어 있다. 20) 니콜라이 레리흐는 또한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레닌의 이미지를 그림에 담기도 했다. 훗날 레리흐는 이 그림의 제목을 «Явление срока»로 변경했지만, 그가 친필로 <Гора Ленина>로 기재한 원제목이 남아 있는 작품 역시 존재하고 있다. 21) 16) Дубаев М. Л. Рерих. М., c ) Владимир Росов, «Великий Всадник. О Ленине и символике звезды на картинах Николая Рери ха». Вестник АРИАВАРТЫ, 2002, 1, c.40 18) Шишкин О. Битва за Гималаи. НКВД: магия и шпионаж. М.: ОЛМА-Пресс, // Савченко В. А. Авантюристы гражданской войны. М.: АСТ, С // Брачев В. С. Тайные общества в СССР. СПб.: Стомма, С // Майкл А. Бурдо, Сергей Б. Филатов. Современная рели гиозная жизнь России: опыт систематического описания, Том 4. Рериховское движение. Федоровс кое движение. Язычество. Новые религиозные движения. Общая характеристика. Логос, С. 27. // Велидов А. С. Похождения террориста. Современник, С ) Владимир Росов «Великий Всадник. О Ленине и символике звезды на картинах Николая Рери ха». Вестник АРИАВАРТЫ, 2002, 1, c.39 20) См. Первоиздания книг Агни-Йоги 21) Владимир Росов «Великий Всадник. О Ленине и символике звезды на картинах Николая Рери ха». Вестник АРИАВАРТЫ, 2002, 1, c.40

12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샴발라 탐색을 통한 새로운 국가 건설 니콜라이 레리흐의 원정에 대해 로소프(В.А. Росов)는 박사논문에서 레리흐는 티베트 원정과 만주 원정을 분석한 로소프의 관점에 의하면, 레리흐는 새로운 국가(Новая Страна) 에 대한 유 토피아적 꿈을 실현시킨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22) 그의 관점에 따르면, 1924년 가을 니 콜라이 레리흐가 베를린에서 소련대표부 Н. Крестинский와 Г.А.Астахов가 만난 것은 <단일 아 시아(Единая Азия)>를 추진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국가적 차원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불교의 가르침을 결합시키는 테제였다고 언급하였다. 23) 사실 레리흐의 세계적인 계획은 그 속에 아시아에 새로운 국가 설립을 포함하고 있었다. 알타이의 즈베니고로 드를 수도로 한 몽골-시베리아 국가 건설 계획은 마이트레야(Майтрейя) 숭배에 근거한 것이었 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행보는 마이트레야 와 깊이 결속될 필요가 있다 며, 샴발라와 마이트레 야 개념을 직접 공산주의 이상과 연결지었다. 이런 방식으로 소비에트 체제는 새로운 종교적, 정치적 운동을 아시아에서 시작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24) <니콜라이 레리흐가 표현한 마이트레야 이미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마이트레야(Maitreya)'란 불교에서 말법시대에 지상에 출현해 중생들을 구원하기고 예언되어 있는 미륵 부처를 뜻한다. 장차 지상에 도래할 구원불이자 미래불인 미륵에 관한 내용은 증일아함경( 增 一 阿 含 經 )이나 미륵삼부경( 彌 勒 三 部 經 ) 등의 불교 경전에서 전해지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친절과 사랑, 연민 등을 뜻하는 마이트레야는 세상에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을 가지고 올 미래의 부처로 알려져 있다. 로소프는 이런 계획 실현을 위해 불교와 공산주의 융합에 관한 테제를 다룰 레리흐와 달라이라마 13세의 회담이 당시의 주요 관건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5) 하지만 레리흐의 전 세계적인 계획은 영국인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결국 레리흐는 티베트의 수도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서 시베리아와 몽골 초원의 영토공간에 불교적 접근방법 역시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니콜라이 레리흐의 원정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그의 중앙아시아원정이 희귀식물이나 민속, 22) там же, c.44 23) там же, c.39 24) там же, c ) «Развенчанный Тибет. Дневники К. Н. Рябинина, доктора Буддийской Миссии в Тибет», Жур нал «Ариаварта», 1996 г., Начальный выпуск. Предисловие Б. С. Старостина, с.31

1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언어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샴발라 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26) 샴발라는 중 앙아시아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왕국의 이름이다. 레리흐가 샴발라를 탐색하도록 고무시킨 것은 18세기 중반 판첸라마 3세( )가 쓴 «샴발라 안내서(Путеводитель по Шамбале)» 로 알려져 있다. 27) 사실 러시아 영성사에서 샴발라 를 언급한 것은 레리흐가 처음 은 아니다. 신지학 협회 설립자 옐레나 블라바츠카야는 서구의 신비사상 애호가들에게 샴발라 신화를 언급했다. 히말라야 명인의 위대한 백색결사(белое братство)와 접촉이 있다고 주장했던 블라바츠캬야는 샴발라를 별로 큰 주안점 없이 몇 개의 장소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영향을 받은 니콜라이 레리흐와 옐레나 레리흐는 년 샴발라에 목표를 삼은 원정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티베트에는 오늘날 아시아 대륙의 문화와 학문의 원천이 된 한 전설적인 왕국에 대한 이야기 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국은 어질고 현명한 군주들의 통치에 의해 태평성대를 누렸다한다. 백성 들 역시 온유하고 지혜로워서 왕국은 문자 그대로 이상적인 사회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 교는 이 샴발라 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붓다는 샴발라의 첫 군주인 다와 상뽀(Dawa Sangpo)에게 탄트라의 심오한 설법들을 폈다고 한다. 현재 칼라차크라 탄트라(Kalacakra Tantra)로 보존되어 있는 이 가르침들은 오늘날 티베트 불교의 가 장 심오한 교리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왕이 이 교훈들을 받은 이후부터 샴발라의 온 백 성들이 명상을 행하기 시작했으며 만물에 대한 자애와 관심이라는 불도를 따랐다고 전설은 말 한다. 이렇게 하여 왕국은 군주들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까지도 깊은 지혜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는 아직까지도 이 샴발라 왕국이 히말라야 오지 어느 한 곳에 비밀스럽 게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성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여러 경전들 속에서 샴발라로 가 는 다소 애매모호한 지침문들이 들어있어 이것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비유적 으로 받아들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례로 19세기의 유명한 고승인 미팜(Mipham) 이 쓴 <칼라차크라 대( 大 )주석서>에 따르면 샴발라 땅은 시타(Sita) 강 북쪽에 있으며 국토는 여 덟 개의 산맥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샴발라의 제왕들, 즉 리그덴(Rigden)들의 궁은 나라 중 심에 자리한 둥근 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전설들은 샴발라 왕국이 이미 수 세기 전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전한다. 즉 어느 한 순간에 이 나라 전체가 깨우침을 얻어 보다 거룩한 천상의 영역으로 사라져 버렸다 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들을 보면 샴발라의 리그덴들은 천상에서도 여전히 인간사를 굽어보고 있으며 언젠가는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지상으로 강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서구의 학자들은 실제로 샴발라가 중앙아시아의 장중(Zhang-Zhung) 왕국과 같이 역사적 증거가 있는 고대의 한 국가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을 제시한 바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 들은 샴발라 설화가 완전한 가상의 이야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샴발라 왕국 이야기를 단순한 허구로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지고의 완성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뿌 리 깊고도 절실한 욕망의 표현으로 보는 일 역시 가능한 일이다. 28) 26) Н.Рерих «Шамбала сияющая» 27) Александр Берзин «Ошибочные западные мифы о Шамбале» 28) 관련 내용은 다음을 참조. 촉얌 투룽빠 가르침. 샴발라. 류연희 역. 예각, 21-23쪽. // 제임스 레드필드, 샴발라의 비밀, 김옥수 역, 나무심는 사람, // Н. Рерих, Шамбала,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Азбука 2012.

12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년 미국 조사팀은 네팔과 티베트 국경, 무스탄 지역에서 놀라운 보물을 발견했다고 세계 에 보도했다. 그 장소는 오랫동안 외국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던 곳으로, 그 조사팀은 그 곳의 칼리칸다키 강가 절벽에 많은 석굴사원들을 조사했는데, 그 곳 석굴에서 발견한 것은 현재 티베 트 불교 앞서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특이한 폰교 의 경전이었다. 그것이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그동안 전설에 고대의 비의 가 이 곳 계곡에 숨겨져 있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의'속 에는 전설의 샴발라로 알려진 곳의 입구가 쓰여있다는 것이었다. <전설의 샴발라 이미지> 이 샴발라가 세상에 유명해지게 된 것은 1933년 제임스 힐튼(J.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책에서 샴발라를 '샹그리라'로 소개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그 용어는 '지상낙원'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 전설의 장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 들이 탐사에 나서게 되었다. 그 중 이 비밀에 가장 접근한 인물이 니콜라이 레리흐로 알려져 있 는 것이다. 29) 샴발라는 이상향에 대한 상상의 장소로 여겨지지만 그 존재를 실재로 믿는 사람들 도 많다. 특히, 2차대전 당시 샴발라 관련 기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그 믿음은 더욱 확산되었 다. 미국 정보공개에 의해 밝혀진 것은 아흐네네르베(Ahnenerbe: 나치친위대(SS) 오컬트 연구기 관)가 당시 친위대 책임자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의 지시 하에 두 차례나 티베트 탐사를 했다는 것이다. 30) 중앙아시아가 아리안 민족의 발상지라 여기고 있었던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내세 워 권력을 잡아야 했다. 히틀러는 민족우월주의를 내세워 국민을 고무시키고, 세계 정복이라는 야망을 실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명문이 있는 행동과 물증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최고 라 내세 워야 할 아리안 민족의 근거지라 간주된 중앙아시아의 샴발라 왕국을 찾아내야 했던 것으로 추 정된다. 사실 이런 의식이 민족우월주의 및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치의 오컬트 연구기관이 했던 행동과 히틀러의 제국주의적 발상을 니콜라이 레리흐의 29) 기록에 의하면 그는 1923년부터 오랫동안 이 티베트 지역을 여행하며 탐사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기이한 승려를 만나기도 했고, UFO를 목격 하는 등 많은 미지의 사건들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를 당시 한 사원 의 고승이 "당신은 샴발라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30) 당시 나치는 숨겨진 왕국의 주민들로부터 협조와 동맹을 얻어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전설의 샴 발라를 찾아 비밀의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음모론자들은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관련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시기인 1945년에 러시아 군대가 독일 베를린에 진공했을 때, 한 건물 지하실에서 티 베트 수도승들 시체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들 시체들은 기이하게 SS 제복에 초록색 장갑을 끼고 있었 다고 하는데, 모종의 비밀의식을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중앙아시아 원정에 무조건적으로 비견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도록 비밀로만 남 겨졌던 문서기록들이 하나씩 공개된다면, 불교의 미륵사상에 입각해 아시아를 통합하려 했던 1920년대 소비에트 정부의 은닉된 전략 역시 조금씩 그 베일을 벗으리라...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니콜라이 레리흐의 <샴발라의 노래>(1943)

12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27 응시( )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이지연(한양대)** I. 들어가며 이 글은 소비에트의 대표적인 비순응예술(non-conformist) 사조이자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 개념주의(Московский концептуализм)를 이끈 드 미트리 프리고프(Дмитрий Пригов)의 작품을 다룬다. 2011년 6월 1일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는 2007년 타계한 프리고프의 특별 전시회가 열렸다. 여기에 전시된 프리고 프의 설치 작품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 그의 설치 는 온 몸이 검은 천으로 둘러싸여 손만 보이는 신비스러운 사람이 텅 빈 책의 책장을 넘기며 뭔가를 적고 있는 영상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영상이 투사된 장막을 걷고 안으 로 들어가면 프리고프와 그의 아들 안드레이가 마치 서로 의 분신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쉴 새 없이 떠드는 또 다른 영상이 펼쳐졌다. 곧 이어 그것을 지 나쳐 가면 프리고프 자신의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마치 그리스도인 양 이 잔을 나에게 서 거두어 주소서(Отец мой, прощу, уберите от меня эту чашу) 라는 성서의 구절을 우스꽝 스러우면서도 처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외침을 뒤로 하고 프리고프의 모습이 투사된 장막 너머로 들어가면 마침내 안쪽 의 흰 벽에 그려진 거대한 검은 눈을 목격하게 된다. 검은 눈이 그려진 벽 아래에는 붉은 피와 도 같은 액체가 담겨진 잔이 놓여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뒤로는 방금 통과해 지나 쳐 온 바로 그 프리고프의 얼굴이 보였다. 장막 위에 투사되어 우리를 마주했던 프리고프의 얼 굴은 그 장막의 배면에서 역시 반복되면서 이제 흰 벽 위에 그려진 거대한 눈을 향한 채 자신 의 운명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논문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검은 눈의 형상과 그 눈을 통해 흐르는 붉은 핏방울의 이미지는 프리고프에게서 전혀 낯설지 않다. 이것은 그의 초상화 연작을 비롯한 다양한 그래픽 작품들의 라이트모티브 중 하나였다. 신의 눈, 혹은 호루스의 눈이자 프리메이슨 의 상징, 전시안(all seeing eye)으로도 보이는 이 검은 눈은 때로는 초상화에 그려진 기괴한 예 * 이 글은 2007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으며(KRF B00013), 현재 국내 KCI 등재지에 투고, 심사중이다.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1)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드미트리 프리고프 전시 영상은 에서 볼 수 있다.

1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술가의 형상 뒤에서, 때로는 그가 그린 풍경 속 하늘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었다. 소츠아트(соцарт)와 모스크바 개념주의 미술의 또 다른 대표자 에릭 불라토프(Эрик Булатов)의 작품이 자주 태양의 자리를 소련의 기치와 상징들로 치환하고 있다면, 프리고프의 작품에서는 그 자리에 우 리를 응시하는 검은 눈이, 혹은 커다란 검은 암흑이 존재했다. 불라토프의 소츠아트 작품. 소비에트 기치 가 태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코마르와 멜라미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프리고프, <복제화 위에 그린 그림들(Рис унки на репродукциях)> 연작 中 소련 이데올로기의 기호에 대한 파괴와 탈신화화를 시도해 왔던 개념주의자 2) 프리고프가 반 복적으로 그리는 눈의 형상은 당연히 정치권력의 판옵티콘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자 유롭지 못하다. 3)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감시자, 소련의 정치적 억압의 상징, 권력의 기호를 탈신화화하기 위한 장치로 단순화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때로 그것은 마치 어딘 가 다른 세계로부터 프리고프의 회화적 풍경이나 설치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선 한 신의 시선을 닮은 듯 했다. 프리고프의 눈의 의미는 오히려 함께 그려진 풍경들, 혹은 함께 설치된 오브제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는 관객, 더 나아가 프리고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계 속해서 변화했다. 즉, 그것은 구체적인 의미를 재현한다기보다 주변의 사물들에 의해 계속 다른 의미를 지칭하게 되는 개념주의적 오브제의 인덱스적 기호작용을 '수행하고' 있었다. 4) 설치의 공간에 들어선 우리가 프리고프의 얼굴을 처음으로 대면할 때 아직 검은 눈은 우리에 2) 이에 대해서는 프리고프를 비롯한 모스크바 개념주의자들이 전체주의 기호들에 대해 취하는 탈신화화 전략을 밝힘과 동시에 그러한 전체주의의 기호 없이는 개념주의 역시 존재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이들의 반성적 미 학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김희숙의 논문, 전체주의 미학의 유산과 모스크바 개념주의, 지역연 구, 2권 1호, 서울, 1993을 참조하라. 3) 프리고프의 눈의 형상과 응시와 권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Мундт К. ""Мы видим или видят нас?": вла сть взгляда в искусстве Д.А.Пригова," Неканонический классик: 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 ов. М.: НЛО, С 를 보라. 그는 특히 박물관의 전시 형태를 통해 응시의 절대적인 권력이 스 스로 보여짐을 당하는 객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였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절대적 권력으로 서의 눈의 형상 자체가 관찰의 대상이 되는 방식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절대적 응시의 주체가 응시의 대상으 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그의 암시는 눈의 봄과 보여짐의 접점에서 두 권력의 조우와 반목의 양가 성을 읽어내려 하는 본 논문의 출발점이 되었다. 4) 현대 예술의 인덱스적 기호작용에 대해서는 Клаусс Р. "Заметки об индексе. часть I," Подлинность ав ангарда и другие модернистские мифы. Москва: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журнал, С 를 참조하라. 또한 개념주의의 퍼포먼스의 인덱스적 특성에 대한 언급으로는 Heiser J. "Moscow, Romantic, Conceptualism, and After," e-flux journal. Moscow Symposium: Conceptualism Revisited. Berlin, p 등을 보라.

13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29 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프리고프의 얼굴 너머, 혹은 우리가 그 순간 속한 공간 너머 어딘가 에 존재하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응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가 프리고프 자신의 형상이 그려 진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행위에 의해 그 검은 눈은 가시화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 리는 프리고프 자신의 검은 눈에 대한 응시를, 그 와 눈 의 대면을 목격한다. 즉, 우리의 응시 는 프리고프와 검은 눈 사이를 오가며 진동하는 퍼포먼스가 되었다. 여기서는 바로 이러한 움직임의 순간, 프리고프가 그리고 있는 무대화된 설치의 공간에서 우 리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의미 탄생의 순간을 주목한다. 프리고프 작품에서의 눈 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그 눈의 혹은 눈에 대한 응시의 문제를 고찰하면서 그의 시와 초상 화 연작, 설치예술을 분석의 텍스트로 하여 그가 눈이라는 장치를 통해 꾀하고 있는 해체와 새 로운 창조의 전략을 추적한다. 소련 이데올로기의 기호들로부터 절대적 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월성의 기호들을 부정하며 그 허구성을 폭로하려 했던 개념주의자 프리고프의 작품 속에서 절대적 응시의 기호인 이 눈은 무엇을 표상 혹은 지칭하는가? 그것은 초월적 절대 권력의 기호에 대한 개념주의적 탈신화화의 장치에 그치고 있는가? 아니면 설마 그 역시도 러시아 모더니스트들의 고질적인 초월성에의 지 향을 떨쳐내지 못한 것인가? 이 글에서는 눈의 형상에 대한 논의를 통해 개념주의자 프리고프 에게서의 초월의 문제를 고찰하려 한다. 또한 모든 초월적인 기호들을 유희적이고 연극적인 설 치 공간 내에서의 전환의 퍼포먼스가 되도록 하며 그러한 퍼포먼스의 현재성을 절대화하는 프 리고프의 미학적 전략을 살펴보면서 이를 통해 그가 제시하는 개념주의 예술의 존재론적 지평 을 드러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II. 모스크바 개념주의와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shift) 리포베츠키(М. Липовецкий)는 올해 초 간행된 프리고프의 전집 제 1권 단자들(Монады) 의 5) 출간에 부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 모더니즘을 비롯한 고전적 문학 전 통의 종결자가 된 브로드스키(И. Бродский)와 달리 프리고프는 70-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형 성된 새로운 러시아 문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 새로운 문학 전통이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 드의 경험을 결합하여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정확하지 않은 용어인 포스트 모더니즘 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反 문화 라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6) 이 때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반문화의 중심인물인 프리고프를 브로드스키와의 대비 속에서 설명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들 두 시인은 모두 1940년생이었다. 그리고 각각 1996년과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브로드스 키 연구가 그의 사후 4-5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최근 2010년을 전 후로 프리고프 연구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모두 50년대 후반 거의 동일한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60년대 시의 창작에 몰두한 브로드스키와 달리 프리고프는 학 업을 계속하였고 67년 미술 활동과 함께 문학 활동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60년대 브로 5) Пригов Д. А. Монады. 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ов;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5-ти томах. Т. 1. М.: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 «Тот редкий, кто полностью: Дмит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ича Пригова издадут собранием сочинений», интервью с Марком Липовецким, Лента.ру. 28 ноября 2012.(

1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드스키가 검열과 체포 등으로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면 프리고프는 부당하게 학교에서 제명된 학생들을 위한 시위에 참가하여 1년간 제적되는 정도의 사건 외에는 비교적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7) 그리고 70년대에 접어들며 브로드스키는 망명시인으로서 프리고프는 반문화의 대표자 로서 각각 러시아 모더니즘의 끝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이 되었다. 혹은 이들을 러시아 포스 트-모더니즘의 서로 다른 두 벡터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브로드스키는 검열과 체포 등의 사건을 겪었지만 그의 시는 분명 소비에트의 현실로부터는 유리되어 있었다. 알렉세이 유르착(Алексей Юрчак)은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의 삶에 바쳐진 자신의 저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mo more. The last soviet generation) 의 한 장을 브로드스키에 대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С ергей Довлатов)의 회상으로부터 시작한다. 8) 브로드스키가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이데올로기 의 기호들에 대해서 무심했다는 도블라토프의 지적으로부터 유르착은 이러한 브로드스키의 경 우가 10년 뒤 브레쥬네프 시기를 살았던 도시 젊은이들(마지막 소련인, 말하자면 70년대인들) 사이에 퍼진 삶의 방식을 선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르착은 70년대 젊은이들이 브로드스키가 그러했던 것처럼 소비에트 현실에 대해 외재적인 (вне) 위치를 취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때 그는 외재성(вне) 이라는 용어를 통해 어떤 현실 안에 위치해 있으면서 그 현실을 지각하지 않는, 혹은 하나의 체제의 테두리 안에 여전히 존재 하면서 그것의 규범들을 따르지 않는 상황 을 가리키며 이를 마지막 소비에트 세대의 삶의 방 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들이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은 채 그것 을 때로는 형식적으로, 때로는 습관적으로 삶 속에서 수행(perform) 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 로 그것의 원래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심지어 담론의 정언명령적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창조적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전환(shift)'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힌다. 그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고 정확하지만 그가 소비에트인들의 특수한 외재성, 즉 권위적 담 론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에 존재하는 이중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브로드스키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브로드스키는 1960년대 소련에서 사는 동안조 차도 결코 권위적 담론의 안 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늘 망명자였고 체제의 외부에 있었다.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존재했던 브로드스키에게는 그러한 담론에 대한 그 어떤 수행도, 심지어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shift)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의 시 가 권력에 대한 정치적인 도전을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권위적 담론과의 공생이라 할 수 있을 이러한 수행의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유르착이 말한 수행적 전환의 시도는 프리고프를 비롯한 모스크바 개념주의자들에게 서 발견된다. 유르착은 反 문화가 아닌 공식문화의 테두리 내에서 그 규범을 벗어나지 않은 채 허용되는 일탈을 통한 삶의 소소한 자유를 70년대 러시아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규정하며 이를 수행적 전환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의 책의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수행적 전환 에 내재한 해체와 전복에의 가능성이다. 작은 전환의 시도들이 마침내 소련의 해체라는 갑작스 7) 프리고프의 모스크바 전시회 도록 Граждане! Не забывайтесь, пожалуйста! Работы на бумаге, инс талляция, книга, перфоманс, опера и декларация. Московский музей соврем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 13 мая - 15 июня 2008 года.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Куратор выставки и составитель издания Е катерина Деготь). М.: Московский музей соврем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 9에 수록된 연표 참 조. 8) Yurchak A.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mo more. The last soviet generation. Princeton Univ. Press, C

13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31 러운 사건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그의 논지는 권위적 담론에 대한 (의미론적이 아닌) 화용론적 전환의 반복들이 결국 그것의 의미론적 붕괴로 이어진다는 해석을 내포하고 있 다. 이 때 이러한 의미론적 해체에 이르는 수행적 전환의 극단적 예들을 다름 아닌 소련의 이데 올로기 기호들을 다루는 소츠-아트와 모스크바 개념주의의 화용론적 전치의 방법론 속에서 발견 하게 된다. 가령 소비에트의 지나치게 상투화된(hypernormalized) 표현들은 개념주의자들의 아이러니의 대 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의 부분이었고 그들의 예술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질료였다. 그들 의 작품이 보여주는 反 소비에트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과 예술은 - 다소 과격하긴 했 지만 - 소련이라는 삶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трансцендирующий) 이중적 의미 의 외재적 상황(вне)에 오히려 더 가깝다. 아무런 형식적, 내용적 변형 없이 전시회를 장식하고 있는 코마르와 멜라미드(Комар и Меламид)의 소비에트 기치들은 이질적인 맥락으로의 전치라 는 순전히 화용론적 전환을 통해 의미론적 해체에 이른다. 이는 유르착이 말한 수행적 전환 의 극단이라 할 만하다. 모스크바 개념주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본질을 폭로하고 더 나 아가 소비에트적 신화에 대한 해체를 통해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행하는 과정이라고 평가된다. 이전의 권위적인 언어들을 질료로 삼고 있는 이들의 미학은 본질적으로 반복과 변형을 통한 기호의 전환 과정(ana-process) 이었다. 프리고프의 작품은 자주 이러한 기호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무대와 같았다. 그 무대는 거울이 아닌 창문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 안에서는 기억과 반영이 아닌 끊임없는 변형(метаморфоза)과 이행이 일어난다. 그의 작품에 본질이나 절대 같은 초월적 대상은 부재하지만 변형 그 자체는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목적론적 행위가 됨으로써 초월적 대상 이상의 절대성을 확보한다. 다양한 가면들을 쓴 화자가 등장하고 소비에트 일상의 다양한 언어들을 수집하고 열거하며 해체하는 개념주의 미학을 따르고 있는 브로드스키의 서사시 공연(Представление) 같은 작품이 결국 에필로그에 이르러 모든 가면들을 내려놓은 시인의 본 모습을 드러내며 연극적이고 유희적인 떠들썩함을 종말론적 애상으로 치환하고 있는 9) 것과는 달리, 프리고프는 브로드스키의 위 작품 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따르고 있는 자신의 작품 이 사람은 누구인가(Кто это) 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 Кто это(1998) Предуведомление <...> Вдруг входит некто, возможно, всем прочим и известный, но вами встречаемый впервые. И тут на глазах все и происходит. 1. Входит малозаметный человек и на наших глазах увеличивается до невероятных размеров это гений, Малевич, например. 2. Входит видный человек и вдруг начинает опадать это перспективный неудачник, Надсон, например. 9) 이에 대해서는 이지연. 브로드스키의 포스트모더니즘: 서사시 <공연>을 중심으로, 러시아 연구. 제14권 1 호.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쪽 참조.

1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 18. А вот человек, про которого нечего и сказать, да так нечего сказать и все оставшееся время это и есть простой человек, это любой, к примеру. 10) 이 작품 이 사람은 누구인가(Кто это) 는 1연부터 마지막 18연까지 계속되는 인물들의 등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의 에필로그가 등장 하는 브로드스키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의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앞의 17개 연의 구조를 동일하 게 반복하며 동시에 마지막 등장인물을 평범한 사람, 그 누구라도 상관없는 이라 지칭함으로써 텍스트를 무한히 열어 놓는다. 이처럼 프리고프는 언제나 모든 경계와 막다른 벽을 허물고 무한 한 인용과 기호적 자유를 향해 열리는 급진적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을 선언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의미작용은 전환과 이행의 움직임 가운데에 존재한다. 브로드스키에게서 작가 의 진정한 얼굴이 가면 아래에서 드러난다면 프리고프의 진정한 얼굴은 계속해서 가면을 바꿔 쓰는 그 변화(перевод)와 전환(сдвиг)의 총체로서의 프로테우스(Protheus)적 작가의 형상에 다름 아니다. 텍스트로부터 제스춰로, 하나의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언어적인 것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으 로 등의 전환과 전이를 통해 의미가 생겨난다. 프리고프 자신은 이를 전환의 방법론(модус тра нзитности) 이라 일컬었다. 그가 엡슈테인과의 대화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술가는 하나의 상태에 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일종의 전환 모듈(модуль перевода)이다. 11) 이는 프리고프 작품의 실제적인 주인공이 되는 기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시체(референ т)에 대한 강박을 벗어난 기표(означающее)는 그의 작품 공간을 유영한다. 그의 시는 때로 두운 법(аллитерация)만으로 직조된다. 자주 기호와 그 지시체 사이의, 하나의 기호와 다른 기호 사이 의 상관관계는 부재한다. 그의 모든 텍스트 기호들은 그저 그 각각의 기호들이 수반하는 고유 한 환영을 가리키는 표식에 불과하다. 12) 그의 작품에서는 장르적 규범 또한 무화된다. 그는 시와 희곡, 소설과 평론, 회화와 설치, 퍼 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언어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다. 심지어 초상화들(портреты) 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회화 작품 연작은 말레비치(Малевич),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등 성이 명백한 대상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남성과 여성이 하나 로 합쳐진 양성인간(андрогин)의 부조리한 형상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프리고프의 텍스트는 모든 기호의 혼종과 변형이 가능한 무대이며 이 때 작가는 그러한 전환 과 변형의 구심점이 된다. 그의 텍스트는 위에서 인용한 시와 같이 종결되지 않는 변형의 순간 10) 인터넷 페이지 인용.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이 사람 은 누구인가(1998) / 일러두기 <...>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온다. 아마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러나 처음 만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1.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사람이 들어온다. 그 리고 우리 눈앞에서 그는 믿을 수 없는 크기로 커진다. 이 사람은 천재이다. 가령 말레비치이다./ 2.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 들어와서는 갑자기 바람 빠지듯 쭈그러든다. 이 사람은 전도유망한 실패자이다. 가령 나드슨 같은 사람이다./<...> 18.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가령 누구라도 상관없다.» 11) Об этом см. Ямпольский М. Модус транзитности,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No М осква, С ) Рыклин М. «Проект длиной в жизнь»: Пригов в контексте московского концептуализма, Не канонический классик: 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ов. С. 82.

13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33 들로 채워진다. 프리고프에게 다른 무엇보다 퍼포먼스가 중요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모든 언어적, 조형적 작품들은 그 자체로 현재적인 퍼포먼스가 된다. III. 초상화와 가면들: 개념주의 시인 의 기념비 모스크바 개념주의는 지시체가 부재하는 텅 빈 기호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불라토프 가 그리고 있는 소비에트의 하늘 풍경이나 코마르와 멜라미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연작은 이데올로기의 절대적 기호들을 새로운 맥락 가운데로 전치함으로써 그 의미를 무화한다. 또 다른 개념주의자 카바코프(Илья Кабаков)의 설치는 흔히 쓰레기 더미의 예술이라 일컬어진 다. 그는 소비에트의 일상의 삶의 잡다한 사물들, 특히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하여 설치한다. 그 의 대표적인 총체적 설치(total installation) <10명의 사람들>에 포함된 작품 <우주로 날아간 사 람(человек, который улетел в космос)>은 한 공동주택 거주자의 텅 빈 방의 모습을 그대로 가 져다 놓고 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뚫려 있는 천정, 온통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련의 포스트와 광고, 기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기호의 폐허와도 같았다. 13) 모스 크바 개념주의는 이처럼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와 일상의 삶의 기호들의 폐허 위에서 탄생하였다. 개념주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을 고물상 수집가(старьевщик)나 글쓰기중독자(графоман)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프리고프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기호의 수집자이자 관찰자로서의 개념주의자에 머 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작품 속에 개념주의 예술가-시인의 기념비를 구축하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식 문학의 외부에 서 있지만 동시에 그것의 구조를 인식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것과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개념주의자 프리고프는 자신의 예 술과 정치권력의 공통점을 간파하고 심지어 그에 대한 경쟁적 의지를 드러내었다. 이러한 프리 고프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그의 초기 대표작인 경찰관 찬양(апофеоз миллицанер) 이 다. 여기서 찬양(апофеоз, apotheosis) 이라 번역한 단어는 어원상 신의 반열에 오름, 신성화를 의미한다. 즉, 이 시는 миллиционер 와 음성학적으로 동일하지만 형태상 다른 새로운 경찰관 миллицанер를 신격화하고 칭송하는 시가 된다. 프리고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프로테우스와 같 은 부유하는 존재임에도 동시에 텍스트 공간 내의 절대적 권력을 지니는 개념주의 시인에 대한 기념비를 이 시를 통해 세우고 있다. 프리고프가 실제로 경찰복장을 한 퍼포먼스를 했었다는 사 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АПОФЕОЗ МИЛИЦАНЕРА(1978) 14) Когда здесь на посту стоит Милицанер Ему до Внуково простор весь открывается На Запад и Восток глядит Милицанер И пустота за ними открывается И центр, где стоит Милицанер 13) 이에 대해서는 이지연. 일리야 카바코프의 총체적 설치 :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꿈과 소비에트 삶의 예술, 비교문화연구, 13권 제 1호. 경희대학교 비교문화 연구소, 쪽을 보라. 14) Пригов Д. Избранные. Москва, С

1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Взгляд на него отвсюду открывается Отвсюду виден Милиционер С Востока виден Милиционер И с Юга виден Милиционер И с моря виден Милиционер И с неба виден Милиционер И с под земли... Да он и не скрывается < > Теперь поговорим о Риме Как древнеримский Цицерон Врагу народа Катилине Народ, преданье и закон Противпоставил как пример Той государственности зримой А в наши дни Милицанер Встает равнодостойным Римом И даже больше той незримой Он зримый высится пример Государственности <...> 프리고프는 스스로를 국민시인(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поэт)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형상을 소비에 트 사회의 영웅이자 작은 스탈린인 경찰관(миллицанер)에 투영한다. 경찰관 찬양 연작의 첫 번째 시에서 миллицанер는 세계의 중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어 그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보이는(зримый) миллиционер와 음성적 동일성으로 하나가 된다.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첫 번 째 миллицанер는 개념주의 시인으로 사방으로부터 보이는 миллиционер는 세계 가운데에 세 워져 모두가 볼 수 있는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소비에트의 권력의 기념비로 읽힌다. 그 후 시에 서 миллиционер는 단 한 번만 등장하며 миллицанер가 지배적이 된다. 이렇게 해서 миллицане р는 소비에트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던 텅 빈 이데올로기의 기호, 권력의 기념비와도 같은 мил лиционер를 대체한다. 시인의 낭송 속에서 두 서로 다른 철자의 차이는 무화된다. 즉, 이 시의 낭송의 순간은 개념주의 시인의 절대적 권력이 행하여 지는 순간이 된다. 프리고프가 이 시를 낭송하는 방식이 마치 언어의 주술적 기능을 강조한 흘레브니코프(Хлебников)의 웃음의 주문 (Заклятие смехом) 의 리듬처럼 들리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프리고프의 언어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투명성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술과도 같다. 얌폴스키(М. Ямпольский)는 벤야민(W. Benjamin)의 언어철학에 기대면서 프리 고프의 언어를 태초의 창조자-신의 언어와도 같은 순수형태의 언어와 유사하다고 평가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 자체로서의 언어, 태초의 언어와도 같은 프리고프의 언어는 지시체를 지니지 않 으며 오히려 명명되는 것의 본질에 대한 자기 현현으로서 이름과 같은 기능을 한다. 15) 게오르그 비테(Георг Витте)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지적하고 있듯 프리고프 작품에서 변치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다름 아닌 명명( 命 名 ) 의 모티브이다. 16) 초기 작품에서 15) Об этом см. Ямпольский М. Там же. С

13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35 명명행위는 마치 이름을 부르고 주문을 거는 신화적 행위와 유사했다. 그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남기겠는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명명의 권리를 남긴다! (Пригов, «Часы и градусы») 17) 년 사이 창작된 프리고프의 자모시( 字 母 詩 Азбуки) 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각 행에 주어진 알파벳은 그 어떤 지시적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지시체 를 갖지 않는 인덱스 기호처럼 다른 차원으로의 침투와 이행의 기점이 된다. 각 행의 처음에 있 는 문자들은 시인에 의해 주어진 이름으로서 프리고프가 창조하는 텍스트 세계에 대한 카탈로 그를 이룬다. АЗБУКА 9 18) (значений) Предуведомление Не я первый придумал приписывать буквам как ие либо смысловые значения. Но я первый поня л Азбуку как строгую последовательность этих з начений, в целокупности своей представляющих грандиозную драматургию мироздания и бытия. А это первое и изначальное Б это страшное и безначальное В это что то ненареченное Г это что то уже нареченное и Д это тоже уже нареченное Е мы назначим мертвым и синим Ж мы назначим живым и красивым З это будет волны лиризма М будет пакостный лик имперьялизма Н это что то такое нейтральное и О нейтральное, но и астральное но П это уже миллионов плечи Р друг к другу прижатые туго С это стройки в небо взмечены Т держа и вздымая друг друга У это что то воет и гнет Ф что то ломит и рвет Х это сердце страдает томится и Ц этот сердце страдает томится и Ч это сердце страдает, как птица а Ш это сердце уже оттомилось Щ это сердце в алмаз превратилось Ы это Ю подземное душное Э это Ю неземное воздушное Ю это Ю подземное ясное Я это ясно Я (의미의) 자모시 9 일러두기 철자에 어떤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로 생각해낸 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세계구조와 존재의 장엄한 연출법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이 의미들의 엄격한 순서에 따라 자모를 파악한 최초의 사람이다. А - 이것은 최초의 원래의 것 Б - 이것은 무섭고 불가해한 것 В - 이것은 명명되지 않은 무엇 Г - 이것은 이미 명명된 무엇 그리고 Д - 이것 역시 명명된 무엇 Е - 이것을 우린 푸르고 죽은 것에 명한다 Ж - 이것을 우린 살아있는 붉은 것에 명한다 З - 이것은 서정성의 투명한 파도가 된다 М - 이것은 제국주의의 가증스런 얼굴이 된다 Н - 이것은 중립적인 무엇 그리고 О - 이것은 중립적인 그러나 별과 같은 그러나 П - 이것은 수백만개의 어깨 Р - 그게 서로 이어선다 С - 이것은 하늘에 치솟는 구조물들 Т - 서로를 지탱하고 들어올리면서 У - 무언가가 몸을 비틀며 소릴 지른다 Ф - 무언가가 부수고 울부짖는다. Х - 이건 고통으로 깨어지는 가슴 그리고 Ц - 이건 고통으로 깨어지는 가슴 그리고 Ч - 이건 새처럼 고통받는 가슴 그러나 Ш - 가슴이 이미 지쳤다. Щ - 가슴이 금강석이 된다 Ы - 이것은 Ю, 지하의 후덥지근한 것 Э - 이것은 Ю, 지상이 것이 아닌 공중의 것 Ю - 이것은 Ю, 지하의 선명한 것 Я - 이건 분명하다 - 이건 나(Я) 16) Витте Г. «Чего бы я с чем сравнил»: поэзия тотального обмена Д. А. Пригова, Неканоническ ий классик: 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ов. М.: НЛО, С ) 인터넷 페이지 인용.

1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 자모시9 에서 프리고프는 각각의 문자에 고유한 속성들을 부여한다. 명제와도 같은 단언 적 문법 구조는 독자들의 세계 이해에 배치되면서 부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시인은 작품의 창조자-신이자 명명자로서 부조리한 단언들을 마치 선언하듯 절대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 내에서의 절대적 권력을 확언한다. 시인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명명 행위를 통한 제의적 전환이 행하여지며 이는 초월적인 것의 인덱스적 본질에 대한 시인의 종교적 믿음 을 드러낸다. 19) 이 러한 자음과 모음들의 외부가 아닌 그 가운데에 마치 세계의 중심과도 같은 지점에 굳건히 서 있는 변하지 않는 자기동일적 존재로서의 나(Я) 는 앞선 시 경찰관 찬양 에서 형상화된 개념 주의 시인의 기념비 миллицанер와도 같다. 그는 모든 전환의 가운데에서 지금, 여기 에 존재하 는 직시적(deitic) 중심이 된다. 시인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절대적 찬양 의 공간에는 의미론적 부조리가 신성과 공존한다. 프리고프에게 있어 슬라브 신화 속 키키모라(кикимора)의 울부짖음 과 같은 비분절음과 미사를 드리는 성직자의 엄숙한 음성이 모두 시인의 목소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텍스트 공간의 창조와 변화의 축(ось)이자 텍스트 내부의 전환과 이행을 촉구하는 화행(performative)의 주체, 또한 모든 경계이월을 위한 매개로서의 시인의 혼종적인 프로테우스적 형상은 그의 그래픽 연작인 초상화들(Портр еты) 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연작에 속한 초상화들은 모두 유사한 틀을 따른다. 작 품 상단에는 제 3의 눈, 혹은 신화적 전시안처럼 보이는 검 은 눈이 존재하고 그 눈 아래에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 로 비슷한 괴이한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에는 칭 기즈칸 등의 몇몇 통치자들과 동료 개념주의자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써있다. 괴물과 같은 형상에는 이 름이 붙여져 있지만 그 이름은 사실상 괴물에 대한 그 어 떤 설명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관객은 그 괴물에 부여된 이러한 통치자와 예술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과 그 것이 지칭하는 지시체 사이의 부조화를 체험한다. 피보바로프(Пивоваров)의 초상 그림은 균열과 괴리의 순간으로서 체험된다. 관객의 시선 은 이 그림을 조우하는 순간 쉬지 않고 움직일 것이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장식적인 나뭇가 지들이 움직임의 환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 안에 그려진 문자마저도 그 형태가 불분명하거나 혹은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어 다른 두 원 안에 가두어져 있다. 이 두 원은 가운데에 그려진 초상을 관통하여 좌우 혹은 앞뒤로 존재하며 따라서 그것을 통해서만 결합될 수 있다. 관객이 서로 다른 두 영역에 속한 자음과 모음들을 결합하고 기하학적 디테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순간 이 그림은 완성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의 움직임들의 중심에는 초상이 서 있다. 남성성 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하나인지 둘인지 모를 형상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괴이한 초상은 20) 작 18) 인터넷 페이지 인용. 번역은 김희숙, 전체주의 미학의 유 산과 모스크바 개념주의, 147쪽을 참고하였다. 원문은 인터넷 페이지에 게시된 개작된 버전을 따랐 다. 19) Голынко-Вольфсон, Дмитрий. Место монстра пусто не бывает (Божественное и чудовищное в теологическом проекте Д. А. Пригова) //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No Москва, ) 프리고프 초상화 연작의 잡종적 성격에 대해서는 Чепела К., Сандлер С. Тело у Пригова // Неканони

13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37 품이라는 무대에서 계속해서 가면을 바꾸어 쓰는 시인-창조자 프리고프의 모든 가면들의 총체이 자 그의 변형 그 자체의, 비결정성의 현현이다. 즉, 초상화의 회화적 평면은 이 그림을 보는 이 의 시선을 통해 현재적인 퍼포먼스의 장이 된다. 가면과의 만남은 이미 일정 정도 어떤 상상적 존재로 이행한 몸의 형상과의 조우라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가면은 형상이자 imago이다. 즉, 그것은 얼굴이 이미 언어의 영역에 가까워진 것, 그것이 부분적으로나마 다른 기호적 단계로 이행한 것이다. 만일 가면이 언술의 영역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 록 촉구하는 화행(performative)에 가까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옛날 그리스의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을 때 인간의 얼굴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늘 옆모습으로 그렸다. 반면 가면들은 늘 정면으로 그렸다. 가면은 마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교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남 이란 가면이 기능하는 구조 그 자체로 여겨졌다. 가면을 마주하면서 인 간은 대타자에, 보이지 않지만 늘 인간을 응시하는 신에 닿을 수 있었다. 가면은 신성의 얼굴을 은폐한 채로 대신 순수 화행과도 같은, 에너지와 힘과 눈뜸의 순수한 현현과도 같은 그의 시선 만을 드러낸다. 21) 얌폴스키의 가면에 대한 분석은 가면의 총화로서의 프리고프의 시인의 형상을 이해하게 한다. 또한 가면과도 같은 예술가의 초상 뒤에서 빛나는 검은 눈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개념주의 시인 프리고프의 진정한 얼굴은 가면 뒤에 가려져 있지 않다. 그의 진정한 얼굴은 마치 신의 형 상처럼 부정의 방법론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는 부재의 反 테제이며, 동시에 괴물과 같이 일그 러질 정도로 혼종적인 가면들의 총합이 된다. 따라서 가면을 벗겨낸 시인의 얼굴을 재현하는 것 은 불가능하다. 가면을 벗겨낸 신의 얼굴이 곧 신의 응시 외의 그 무엇도 아니듯 가면 뒤에는 어두운 공허만이, 암흑의 먹구름 사이로 우리를 응시하는 시선만이 존재할 것이다. 초상화에 그 려진 전시안의 형상은 곧 이러한 가면 뒤의 작가의 응시이자 대타자, 신의 응시와 같다. IV. 눈과 창: 암흑지점과 22) 대타자의 시선 Е: Естественно для любого на фронтальную стену поместить глаз! а почему на фрон тальную? а на какую же? не на боковую же? согласен! Е: 어떤 경우든 눈은 무대 가장 전면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왜 전면에 있어야 되는데? 그럼 어디다 두는데? 옆면에 둘까? 그러네! (Пригов, 설치의 ABC(Инсталляция. Азбука) ) 앞서 언급했듯 전시안을 연상시키는 검은 눈은 프리고프의 라이트모티프이다. 이 눈은 마치 벽에 그려진 다른 세계로부터의 시선(взгляд)처럼 나타난다. 프리고프는 성서 다니엘서에서 왕의 주연 중 갑자기 벽에 나타난 손이 써 놓은 신성한 전언 메네, 테켈, 파레스(다니엘서 5장 25-28절, 한글 번역본으로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을 검은 눈의 형상과 연관시켰다. 눈은 마치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듯 그려지거나 다른 세계로부터의 환영인 듯 표현되어 있으며 이러 ческий классик: 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ов. М.: НЛО, С 를 보라. 21) Ямпольский М. Демон и лабиринт, Москва: НЛО, С ) 이 장의 제목은 미란 보조비치, 암흑지점: 초기 근대 철학에서의 응시와 신체, 이성민 역. 서울: 도서출판b, 2000으로부터 가져왔다.

14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한 설치의 구조로 인해 눈은 명백히 신의 눈, 모든 것을 보는 절대적 앎(знание)과 권력(власть) 의 상징으로서 작품 공간 너머의 세 계에 속한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다. 이 눈의 형상이 말레비치의 <검 은 사각형>을 연상시키는 검은 바탕 위로 그 형상을 드러낸다거나 검은 휘장의 장식 뒤로, 혹은 열려진 검은 커튼 사이로 보인다는 사실 또한 이 눈이 작품이라는 무대 너머의 초월적 세계의 것임을 드러낸다. 가령 말레 비치의 질(Вагина Малевича) 이라는 부조리한 제목의 스케치에 그려진 검 은 구멍은 말레비치의 검은 색이 곧 초월적 세계로의 통로일 뿐 아니라 이 세계는 이 세계 저편의 세계가 낳 은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 다. 흰 벽 위의 검은 얼룩 위에는 때 로 눈 대신 말레비치를 비롯한 예술 가들의 이름이 써 있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검은 눈은 신적이고 절대적인 초월적 기호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1980년대 이후 프리고프의 작품에 서 작가의 절대적 권력이 사회주의를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의 권력의 기호 들과 분리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둘 간의 상동성이 암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프리고프의 눈은 정치권력과 작가의 시 선, 더 정확히는 그들의 잉여적 시선(избыточный кругозор -- М. Бахтин), 곧 전지전능한 신 의 절대적 응시 모두를 포함하는 권력 자체에 대한 표상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벤담 (J. 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이 고안하고 있는 간수(관찰자)의 편재적 시선이라는 환상을 재현한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에게 간수의 형상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비가시성이 관찰자의 응시 의 환상을 만들고 그의 절대적 권력을 가능하게 한다. 즉, 벤담의 판옵티콘이란 관찰자의 비가 시적 편재성의 환상을 통해 그에게 절대적 응시의 권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절대적 대타자, 즉 신을 표상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대타자의 자리는 완전한 암흑지점이어야 한다. 이러한 완 전한 비가시성 속에서만 신의 편재성이 담보된다. 신의 응시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것 외에 그를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은 응시 속에서만 가시적인 상상적 비존재자이다. 23) 판옵티콘은 보는 것 - 보이는 것 의 동일성에 균열을 가져오는 기계라 할 수 있다. 24) 우리가 검은 암흑지 23) 미란 보조비치, 암흑지점, 쪽. 24) Грякалов Н. Тела революции и концептуальные персонажи, Революция и современность. Сбо рник, посвященный памяти доцента кафедры социальной философии и философии истории П очепко В.А. СПб.: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ое философское общество, С.120.

14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39 점을 응시하는 한 대타자의 절대 권력은 담보된다. 프리고프의 눈 은 대타자의 이러한 비가시적인 응시에 대한 해체의 방법론이 된다. 그에게 눈은 절대적 대타자의 응시를 표상하지만 동시에 관객이 그것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판옵티콘의 환상을 파괴하고 보는 것 - 보이는 것 의 동일성을 다시금 회복한다. 설치 공간의 중앙에 위치 한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앉아 있는 청소부는 절대적인 권력의 응시를 마주한다. 그는 절대자의 응시라는 환영을 창조하는 검은 구름 혹은 암흑을 걷어낸다. 프리고프가 자신의 설치의 ABC (Инсталляция. Азбука) 에서 이러한 커튼을 걷어내는 노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 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З: Занавес поместим на стене по обе стороны от глаза, как бы раскрывшимся и явившим тайну, им скрываемую, под сосредоточенным созерцательным усилием уборщицы. З: 커튼은 벽 위에 눈의 양방향으로 쳐 있어야 한다. 마치 청소부의 관조의 노력으로 커튼이 열리고 그것에 의해 가려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는 것처럼. (инсталляция. азбука. з) 눈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고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게 하는 것은 관객에게 새로운 응시 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의 시선이 권력의 잉여적 시선의 영역에 도전하도록 하는 중요한 사건 이 된다. 이 때 모든 것을 보는 권력과 그것을 응시하는 자의 관계는 바흐친이 미적 활동에서 의 작가와 주인공(Автор и герой в эстетическ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을 통해 개진하고 있는 작자 와 그가 그리는 주인공 의 관계와도 같다. 25) 바흐친이 지적하고 있듯이 대개 작가는 자신의 주 인공을 전적으로 지배하며 그에 대해 시선의 잉여를 확보하고 있다. 프리고프가 위에서 인용된 설치의 ABC(Инсталляция. Азбука) 의 한 항을 통해 말하는 커튼을 걷어내려는 청소부의 관 조의 노력 이란 작가에 대한 주인공의 저항, 판옵티콘에서의 간수에 대한 죄수의 저항과도 같 다. 이는 절대적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으로서 결국 대타자의 왕위를 찬 탈하는 카니발적 전복의 행위와 같다. 이는 프리고프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모든 절대 적 타자에 대한 해체 작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 때 프리고프의 설치에서 작가의 위치는 유동적이고 상대적이다. 그의 설치 공간에는 두 절 대자의 두 권력이 공존한다. 가령 이 글의 서두에서 묘사한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프리 고프는 관객이 공간을 옮겨감에 따라 스스로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입장하는 관객을 바라보며 잔을 거두어 달라고 외치는 프리고프는 스스로를 신성과 동일시하면서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 다. 그러나 이어 관객이 설치의 더 깊은 공간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는 영사막의 배면에서 또다 시 스스로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관객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동시에 그 앞에 그려진 검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즉, 그는 검은 눈과 같은 방향에서 관객을 응시하는 동시에 검은 눈의 시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서 예시한 <초상화들>에서도 작가들은 대부분 눈 과 같은 편에 서 있었다. 눈은 작가들의 세계의 태양처럼 그들의 뒤에서 마치 회화 평면 깊은 곳으로부터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 다. 프리고프는 자주 권력자들의 기념비와 나란히 서서 관객을 응시한 채 퍼포먼스를 벌였다. 즉, 그는 절대 권력과 대등한 위치에서 관객들을 바라보았고 또한 스스로를 모든 절대적 권력의 분신으로 위치지우며 그러한 절대 권력에 도전하였다. 때로 그는 관객과 같은 방향에 스스로를 25) Бахтин М. Автор и герой в эстетическ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т. 1. М.:Издат ельство Русские словари. Языки славянской культуры, С 참조.

14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4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위치시키기도 했다. 설치 공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청소부는 절대 권력의 응시인 눈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려 노력하는 작가 프리고프의 분신이자 동시에 그의 주인공이었다. 이 때 설치의 공간으 로 들어선 관객은 우선 청소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와 시선을 마주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청소부와 눈을 향한 시선을 공유한다. 문제는 관객이 청소부의 자리와 눈의 위치 사이에 섰을 때이다. 이 경우 관객은 절대자의 위치에서 청소부를 보게 된다. 이처럼 프리고프 의 설치에서 초월적 대타자와 작가, 작가인 주인공, 주인공, 관객의 위치는 계속해서 전환된다. 이 때 만일 관객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프리고프와 눈 사이에 서 있다 한다면 관객은 프리고프를 응시하는 동안 눈을 볼 수 없고 눈을 보는 동안 프리고프의 형상을 볼 수 없다. 마치 자화상에서와 같다.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는 자 신의 모습을 보는 동안 자신이 그린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그러한 그려진 자신을 보는 동안 실제 자신을 볼 수 없다. 절대적 대타자와 마치 분신의 관계를 이루며 스스 로를 그와 대등한 위치로 고양시키려 했던 프리고프는 이 러한 두 응시의 동시성을 자신의 설치 공간을 통해 실현하 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설치인 <세 개의 시점(Тр и точки зрения)>을 통해 이처럼 불가능한 시선의 조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프리고프는 모서리에 검은 눈을 그렸다. 이 렇게 해서 하나의 눈은 서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응시로 분열되며 동시에 제 3의 응시를 통해 관객을 마주한다. 그 리고 그는 이러한 모서리를 성스러운 붉은 모서리(Красный угол) 라 불렀다. 과거 말레비치가 절대주의의 검은 사각형을 붉은 모서리에 걸었듯이 프리고프는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동시 성이 회복되고 응시의 주체와 객체의 자기동일성이 담보되는 불가능성의 공간을 신성한 모서리 에 창조해 내었다. 이처럼 프리고프는 눈의 형상을 통해 설치 무대의 제한을 넘어서는 초월적 공간과 작가의 시 선을 제압하는 대타자의 절대적 응시의 형상을 그렸다. 그리고 그러한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세 계의 응시에 도전하며 그것을 이 세계의 안으로 끌어 들이는 다양한 장치들을 창조했다. 응시를 통해 열고자 했던 검은 커튼이나 다른 세계로의 통로인 듯 보이는 천정과 바닥의 구멍들은 모 두 설치의 공간적 한계를 파괴하려는 프리고프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프리고의 초월 에의 의지는 이 세계를 넘어 이상적인 레알리오라를 향해 가려 했던 과거 상징주의자들의 낭만 성과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초월적 세계의 기호들을 이 세계의 것과 동일하게 하고 절 대적 대타자의 시선을 프리고프 자신의, 더 나아가 관객의 시선과 대등하게 함으로써 모든 위계 를 파괴하고자 했다. 설치 무대의 지금 여기라는 순간 속에서 모든 대상들이 서로간의 수직적 경계를 무화하고 수평적이며 대등한 평면 위에서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은 프리고프에게 가장 중요한 미학적 전략이었다. 즉, 그에게는 초월이 아닌 전환이 의미 있었으며 그러한 전환 을 통해 절대성을 해체하고 경계에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로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 이야 말로 프리고프 해체의 본질이었다. 오히려 그는 타자성에 대한 인식 없이는 나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즉, 그 는 늘 개념주의 시인의 형상을 작품 안에 구축하기 위해 대척점의 존재들을 질료로 사용하였다.

14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41 개념주의 시인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경찰의 형상을 가져왔으며, 마찬가지로 절대 권력과 대 타자의 응시를 표상하고 있는 검은 눈을 통해 그것을 대등하게 마주하는 자신의 응시를 현전하 도록 했다. 이는 자화상의 본질을 지적하며 사건으로서의 나의 현전에 대해 말하는 데리다의 논리를 연 상시킨다. 26) 과연 타자성과의 조우 없이 나가 존재할 수 있는가? 나를 바라보는 초월적 나와 타 자화된 객체로서의 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움직임과 그러한 움직임의 흔적을 통해 주어지 는 사건으로서의 나를 그리는 것이 곧 자화상이라는 데리다의 주장을 반복이라도 하듯이 프리 고프는 개념주의 작가인 자신과 그의 대타자로서의 절대 권력 사이의 자기동일적 응시의 이상 을 향해 가는 지난한 궤적 위에서 그들이 서로를 응시하고 또 응시되도록 하면서 그들을 분리 하고 있는 경계 위에 균열을 창조해 낸다. 그러한 균열은 데리다가 말했듯 차이에 대한 은유이 겠지만 그 차이는 바로 두 세계의 전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행위와도 같다. 프리고 프는 그러한 균열의 틈으로부터 흘러나온 붉은 피를, 때로는 붉은 눈물을 담고 있는 피의 잔을 설치 무대의 한 가운데에 놓는다. V. 맺으며: 쉬프터와 카니발, 핏빛 눈물 Карнавал торжествует самую смену, самый процесс сменяемости, а не то, что именно сме няется. Карнавал, так сказать, функционален, а не субстанциален. Он ничего не абсолютиз ирует, а провозглашает веселую относительность всего. 27) 카니발은 교체 자체를, 교체의 과정 자체를 환호한다. 무엇이 교체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 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니발은 실재론적이라기보다 기능론적이다. 그것은 그 무엇도 절대화하 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의 유쾌한 상대성을 찬양한다. 프리고프의 설치는 카니발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는 작가, 주인공, 관객의 절대적인 경계가 무 너진다. 이들은 서로 위치를 바꾼다. 따라서 이들의 경계는 계속해서 갱신된다. 그의 설치 공간 은 이러한 전환과 갱신의 경험적 순간들로 채워진다. 야콥슨이 인칭대명사의 예를 들며 제시한 쉬프터(shifter)라는 언어학적 개념이 그러하듯이 이들 작가, 주인공, 관객의 자리는 비워지며 또 다시 채워지기를 계속하면서 전환된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비롯한 현대 예술의 원리를 인덱 스적 기호작용을 통해 설명하면서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자신의 논문 서두에서 야 콥슨의 쉬프터를 주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8) 프리고프의 작품 또한 인덱스적 기호작용에 의지해 있다. 그의 작품에는 변화와 그것이 남기 는 흔적들이 그려진다. 그것은 자기동일성의 아이콘적 기호도, 자의적인 상징적 기호도 아니다. 오히려 변화의 지금 이 순간을 지시하는 직시적인(deitic) 인덱스적 기호로서 계속해서 새로운 주체로 텅 빈 의미를 채우는 쉬프터이다. 프리고프는 이러한 인덱스적 기호에 고유한 지시체의 공백을 통해 절대권력을 해체하며 동시에 그러한 절대적 기호의 폐허를 계속되는 전환으로, 기 호작용의 극장적 현재성으로 채운다. 26) 이에 대해서는 Derrida J. Memoirs of the Blind, Self-Portrait and Other Ruins. The Univ. of Chicago Press, 1993를 보라. 27) Бахтин М. Проблемы поэтики Достоевского. М., С ) Клаусс Р. Заметки об индексе. Часть 1, Подлинность авангарда и другие модернистские миф ы. Москва: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журнал, С

14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4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잘 알려져 있듯 프리고프는 36,000 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그는 마치 소련 시대의 스타하노 프 운동을 염두에 둔 듯 미리 독자들에게 자신의 집필계획과 목표량을 고지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위대한 시인 의 형상을, 그의 시적 자아이자 그의 시 세계의 창조자인 위대한 ДАП(Дмит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ригов)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는 쉬지 않고 종이 위를 메워 나갔다. 29) 프리고프는 자주 시행의 끝에서 마침표를 생략하였다. 마치 그는 그의 시가 시간의 흐름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될 거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시의 각각의 단어들은 각각의 순간에 해당했 다. 그의 작품은 멈추지 않는 텍스트 퍼포먼스였다. 그의 시가 대부분 현재시제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에게는 텍스트 공간 내에서의 현존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따라 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자주 무대와 같이 구성하였다. 예카테리나 됴고치(Екатерина Деготь)가 지적하고 있듯이 프리고프는 무대라는 공간을 채우는 것을 신적인 특권으로 생각하였으며 그러 한 특권을 작가의 형상에 부여하고자 했다. 30) Диалог 5 31) <...> ПРИГОВ Что еще? СТАЛИН Пять великих смыслов! ПРИГОВ Пять великих смыслов! СТАЛИН Шесть великих букв! ПРИГОВ А что будет, если отнять одну букву? СТАЛИН Что будет? ПРИГОВ Будет Талин! ТАЛИН Талин! ПРИГОВ А если отнять еще одну? ТАЛИН Еще одну? ПРИГОВ Будет Алин АЛИН Будет Алин! ПРИГОВ А если отнять еще одну? АЛИН Еще одну? ПРИГОВ Будет Лин ЛИН Будет Лин! ПРИГОВ А еще одну? ЛИН Еще одну? ПРИГОВ Будет Ин ИН Ин! ПРИГОВ А еще одну? ИН Еще одну? ПРИГОВ Будет Н! Н Будет Н! ПРИГОВ А еще одну! 프리고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 다닐 하름스(Даниил Хармс)의 극장적 소품과 거의 유 사한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은 프리고프와 스탈린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점차 이 29) Витте, Г. «Чего бы я с чем сравни»: Поэзия тотального обмена Д. Пригова. С ) Деготь Е. "Пригов и «мясо пространства»," Граждане! Не забывайтесь, пожалуйста! Работы н а бумаге, инсталляция, книга, перфоманс, опера и декларация. Московский музей современ ного искусства 13 мая - 15 июня 2008 года.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М.: Московский музей совр ем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 ) Пригов Д. Избранные. С

14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43 둘의 대화 과정에서 스탈린은 프리고프의 말에 따라 변화한다. 반면 프리고프는 스탈린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이 소품은 작가 언어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보여준다. 하름스의 우연한 사건들(Случаи) 연작에 속한 짧은 극 형식의 이야기들이 그러했듯이 이 작 품 또한 절대적 현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말은 발화의 순간 바로 무대 위에서 효력을 갖 기 시작한다. 스탈린의 형상은 이 소품 속의 프리고프의 말에 의해 계속해서 변형된다. 하름스 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프리고프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재현될 수 없는 현재성 그 자체를 재 현하였다. 앞서 지적하였듯 불가능한 동시성을 작품 공간에서 실현하고 전환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작품을 영원한 퍼포먼스의 현재가 되 도록 하는 프리고프의 시도에는 카니발의 에너지가 내재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죽 음과 삶을 동시에 포함하는 붉은 피로 표상 되었다. 그 피는 프리고프의 설치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경계의 균열 지점에 서 흘러들어와 무채색의 설치 공간을 물들 인다. 때로 그것은 검은 눈으로부터 흘러내 려 눈 아래에 놓인 잔에 담겼다. 그 잔은 프리고프가 사랑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적힌 벽 앞 텅 빈 의자 위에 놓여 있기도 했다. 프리고프에게서의 붉은 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이자 그의 생명의 보혈이라는 이 중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2011년 베니스에 서 자신의 운명의 잔을 치워달라고 소리치 는 프리고프와의 첫 만남을 다시금 연상시 프리고프, <50방울의 피(пятьдесят капелек крови)> 연작 中 켰다. 그의 외침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그리스도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 하는 시인 프리고프의 시적 선언이자 퍼포먼스였다. 자신의 운명의 잔을 치워달라고 애원하면서 도 기꺼이 그 잔을 받았던 그리스도처럼 프리고프는 스스로에게 개념주의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삶의 마지막까지 36,000 편의 시와 수많은 스케치, 설치 작품들을 통해 부단히 수행해 갔다. 분신과도 같은 두 개의 권력이 서로를 응시하고 위치를 바꾸며 동일성과 차이의 간극을 오가 는 순간 이 둘은 스스로의 대칭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서로의 시선이 겹쳐지는 대칭의 평면 위 에 균열을 만들어 낸다. 그 균열을 따라 설치의 공간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눈물은 프리고프 작 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움직임, 즉, 멈추지 않는 전환이라는 인덱스적 기호작용의 영원한 현재 성에 대한 증거와도 같다.

14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4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 Миллицанер: Так что же это такое? Автор: Это торжество перед лицом дальнейшей невозможности. Миллицанер: Как это? Как угадаешь, что дальше невозможно? Только после смерти. Автор: Да, апофеоз это торжество жизни в лучах восходящей смерти! «Апофеоз миллицанера» 32) 경찰: 그래서 이건 도대체 뭐야? 작가: 그건 앞으로의 불가능함을 마주한 상태에서의 승리지. 경찰: 어떻게 그렇지? 어떻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죽은 후에나 그렇겠지. 작가: 그래, 신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 그것은 곧 떠오르는 죽음의 빛 가운데서의 삶의 승리지! 경찰관 찬양 32) Пригов Д. Избранные. С. 9.

14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4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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