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특집주제 _ 이어도특집 강병철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6 김병렬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30 이어도좌담회 58 연구논문 루이아르작 Ⅰ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108 서종진 Ⅰ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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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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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erritory and Seas Vol. 8 Winter 2014
2 차례 특집주제 _ 이어도특집 강병철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6 김병렬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30 이어도좌담회 58 연구논문 루이아르작 Ⅰ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108 서종진 Ⅰ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138 정원주 Ⅰ 7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154 사료해제 이원택 Ⅰ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184 영토 해양일지 영토 해양일지 204 영토해양연구 간행및논문심사규정 208
3 특집주제 강병철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김병렬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이어도좌담회 이어도특집
4 특집주제영토해양연구 Vol. 8 Ⅰ. 머리말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강병철사단법인이어도연구회연구위원 이어도는제주의어민들에게이상향으로알려져있다. 바다에서실종된어민들의가족들은태풍을만난어부들이죽었다고생각하기보다는어딘가에있는이어도라는섬에서살아있다고믿고싶었기때문에이어도전설이만들어졌을것이라고추정하고있다. 이어도에대한전설은일본인조선학연구자인다카하시도오루 [ 高橋亨 ] 의문헌에서처음나타난다. 이후, 진성기제주민속박물관장이 1958년조천리정병주에게서구전되고있던이어도와관련된구비문학을채록하여기록하였다. 이어도는문학적소재로많이다루어지고있는데 1974년이청준소설가가발표한 이어도 는전국적인주목을받았다. 최근에는 이어도문학회 가결성되어많은작가들이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 와이어도전설을소재로다룬작품들을양산하고있다. 특히이어도문학회회장인양금희시인은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와전설속의이어도를동일화하는작품을주로쓰고있다. 양금희시인과더불어많은이어도문학회작가들이폭풍우속에서이어도수중암초를보았던어부들이이어도전설을만들었을것이라고보기때문이다.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이어도에대한민요와전설이새삼스럽게주목을받기시작한것은한국과중국간의배타적경제수역획정이라는해양경계쟁점이부각되면서부터였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는 2007년강창식 임문범의원외에 10 명의의원이발의하여 이어도의날 을조례로제정하여학술연구및탐사활동을전개하려고하였다. 그러나이어도는수중암초로서해양관리업무부서소관이아니라는점과이어도의날제정에대한도민화합차원의검토가필요하다는이유로이어도의날조례제정에실패하였다. 이후 2012 년 12월제주특별자치도의회박규헌 강경찬의원이다시발의하여상정하였으나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을현재까지성사시키지못하고있는실정이다.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에대한제주특별자치도의회와제주지방정부의입장차이는크게다르다. 지방정부차원에서는외교부의요청외에도중국관광객유치와투자유치등을고려하여 이어도의날 조례를민감한사안으로보고있으며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에부정적이다. 이러한점들을종합적으로고려해보면 이어도의날 은제주지역차원을넘어선국가차원의외교적쟁점도내포하고있다고평가할수있다. 이논문의목적은이어도쟁점과관련한제주지방정치의역할을검토하고이어도문화와해양의평화를연계하여평화적인해양갈등해결방안을모색하는것이다. 우선, 이어도쟁점의주요내용을검토하고평화적으로해양갈등을해결하는데기여할수있는적절한지방정부의역할을분석하겠다. 이어도를둘러싼한국과중국간의해양갈등의주요쟁점을분석하기위하여관련연구자및전문가들의논문과연구보고서자료를검토하겠으며한국과중국의정부문서와언론에발표된자료를분석하여지방정부의역할을중심으로해양갈등의평화적인해결방안을제시하고자한다. 이논문은서론에이어제2 장에서는이어도쟁점의주요내용을검토하겠다. 국제정치차원에서의쟁점과국내정치및지방정부차원의쟁점으로구분하여검토하겠다. 제3 장에서는제주지방정치와이어도문화의발전에대하여논하겠으며결론에서평화지향의이어도문화발전구상으로상생 6 7
5 영토해양연구 Vol. 8 이어도 특집 Ⅰ 이어도에 관한 쟁점과 지방정부의 역할 과 공영의 협력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겠다. 한 이어도등부표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배타적 경제수역 획정이 되지 않 은 상태이지만 이어도 해역은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 주하여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였다. Ⅱ. 이어도 쟁점의 주요내용 <그림 1>에서 보듯이, 유엔 해양법협약에 근거하여 연안 국가는 영해기 선에서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 수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 에서는 해저 하층토 상부수역에 있는 자원의 이용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1. 국제정치적 시각에서의 이어도 갖게 된다. 또한, 인공도서 및 구조물의 설치 사용 등에 대한 배타적 관할 유엔 해양법협약이 1994년 발효된 후 한국과 중국이 1996년 배타적 경 권을 행사하게 된다. 제수역을 선포하면서 2014년 현재까지 중첩된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경 중국은 2005년 해양행정단속 보고서에서 해양감시용 비행기를 이용하 계획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어도에 대한 쟁점은 배타적 경제수역의 획 여 5회에 걸쳐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에 대한 감시활동을 하였다고 밝 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어도는 한국과 중국 간 배타적 경제수역이 중 첩되는 해역에 있다. 그러나 이어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선포할 수 있는 중국 영해기점인 서산다오[畲山岛]1에서는 287km 떨어져 있는 반면 한국의 마라도에서는 149km 떨어 져 있어 한국과 훨씬 가깝다. 또한, 외국이 선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어도에 건설된 최초의 건축 물은 1987년 당시 한국 정부의 해운항만청에서 건설 영공(領空) 1 중국의 대륙 영해부분 기선 기준점 제 11번 기준점(11. 畲山岛 北纬 东经 ; 文件A205 - 中华人民共和国政府关 于中华人民共和国领海基线的声明, 1996年 5月 15日) 참조. 공공(公空)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공해 12해리 12해리 영해 접속 수역 육지 영해기선 대륙사면의 끝(FOS) FOS+최대 60해리 퇴적층 두께 1% 대륙봉(최대 350해리) <그림 1> 해양과 상공의 법률적 경계 8 심해저 <그림 2> 해양과 상공에서의 미중 충돌지역 출처: National Defense University(2012). 9
6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히고있으며 2006년 9월외교부친강대변인이이어도해양과학기지건설이법률적효력이없다는점을강조하였다. 중국의입장에서는배타적경제수역이경제적이해못지않게안보적이해와깊은관련이있는것으로분석된다. < 그림 2> 에서보듯이미국은중국의북해함대와남해함대인근의상공과해역의정보수집혹은수중측량을하다가중국의항의를받거나크고작은충돌을일으켜왔다. 미국과중국은지속적으로배타적경제수역과상공에서의항행과비행의자유에대하여논쟁을하고있다.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군사적활동은유엔해양법협의과정에서도쟁점이되었으며국가관행에서도쟁점인상태로남아있다. 2 중국의입장은배타적경제수역에서연안국의권한을강화하려는입장이며최소 16개국이이런입장에동조하고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의협상과정에서연안국의배타적경제수역에대한관할권강화를주장한국가들은중국, 페루와 77그룹국가들이었다. 3 미국은배타적경제수역에대하여유엔해양법협약에는없는국제수역 (international waters) 이라는용어로표현하며공해로취급하려는경향을보이고있다. 만일유엔해양법의배타적경제수역에대한중국의해석을미국이수용한다면대략 3분의 1의세계해양에서미국의군사작전이제한을받게되며이는미국과동맹국들이결코받아들일수없는해석인것이다. 4 미국이주변동맹국및협력국들과공동으로중국 이팽창하는것을울타리를치듯이포위하는전략을추진하면서이어도해역과오키노도리시마해역은중국해군의활동을제약하는요소가되고있다. 5 중국은미국의북해함대인근해역의관측이나수중측량을막기위하여배타적경제수역을최대한극대화하면서해군력을태평양으로진출시키는방안을강구하고있는것으로분석된다. 따라서중국은한국과중국간의 2 Jing Geng, 2012, The Legality of Foreign Military Activities in the Exclusive Economic Zone under UNCLOS, Merkourios, Vol. 28/Issue 74, p Raul (Pete) Pedrozo, 2010, Preserving Navigational Rights and Freedoms: The Right to Conduct Military Activities in China s Exclusive Economic Zon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9(1), p Jeff M. Smith, Joshua Eisenman, 2014, China And America Clash On The High Seas: The EEZ Challenge, The National Interest. 5 강병철, 2013, 이어도쟁점과중국해군전략의변화, Strategy 21 제31호 (Vol. 16, No. 1), 158 쪽.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이러한안보적이익을고려하고있는것으로분석된다. 배타적경제수역을둘러싼군사활동에대한유엔해양법협약의해석은크든작든이어도해역의경계획정에영향을줄수밖에없는상황이다. 2. 국내정치및제주정치적시각에서의이어도쟁점한국과중국사이에있는수중암초이어도는한 중배타적경제수역획정문제의상징적존재가되었지만독도와는다르게이어도는수면아래 4.6m 에존재하므로유엔해양법협약에근거하여검토하면해양의경계에서어떠한권한도향유하지못한다. 사실상, 배타적경제수역이공식적으로도입된것은 1996년이후로이러한해양경계구분용어가일반국민들에게익숙하지않다. 따라서이어도쟁점을영토문제로오해하는국민들도있는실정이다. 국내정치적시각에서본다면한국정부는중국과외교적협상을통하여적절하게배타적경제수역획정에대한조약을성사시켜야하는당면과제를안고있는것이다. 그러나한국정부와중국정부간에입장차이가커서아직도배타적경제수역획정에대한조약을성사시키지못하고있는실정이다. 이러한입장차가두드러진이유는경제적이해를중시하는한국정부와달리중국정부는경제적이해외에안보적이해도고려하여야하기때문에협상에어려움을겪고있는것으로분석된다. 한국은 1996년 8월 8일 배타적경제수역법 을법률제5151 호로제정 시행하였다. 이후내용에는큰변동이없으나 배타적경제수역법 의문장을원칙적으로한글로적고, 어려운용어를쉬운용어로바꾸며, 길고복잡한문장을간결하게하는등국민이법문장을이해하기쉽게정비하여 2011년 4월 4일법률제10523 호로 배타적경제수역법 을일부개정하여시행하고있다. 배타적경제수역법 에따르면한국과중국간에배타적경제수역이획정되지않은상태에서도권리행사를할수있으나배타적경제수역에대한 10 11
7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권리행사는중간선이내로한정하고있다. 6 따라서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배타적경제수역법 제3 조에명시된권리에따라서설치운영된다고볼수있는것이다. 이어도에관한한국정부의입장은배타적경제수역법에근거한것으로외교통상부가 2006년에발표한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에대한중국의문제제기관련당국자논평 에서잘나타나고있다. 외교통상부대변인이발표한내용을검토해보면첫째, 이어도는지리적으로한국측에더근접하여있으므로한 중양국간배타적경제수역경계획정이전이라도명백히한국의배타적경제수역권원내에속하는수역이라고주장하고있다. 둘째, 한국의배타적경제수역인이어도에해양과학기지를건설 운영하는것은우리나라의정당한권리행사로서해양법협약에도부합한다고주장하고있다. 셋째로, 한국정부는중국과의배타적경제수역경계획정을위해양국간배타적경제수역경계획정회담을계속추진해나갈예정이며양국은 1996년이후 10차례에걸쳐배타적경제수역경계획정회담을실시해왔다고밝혔다. 중국의이어도에대한입장을검토하면중국의안보적이익을보호하기위하여현상유지정책을선호하고있으며이어도쟁점에대하여전략적모호성을이용하는것으로보인다. 7 유엔해양법협약은해양분쟁이발생하면일방당사국이타방당사국을상대로강제적으로중재재판소, 특별중재재판소, 국제해양법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에분쟁을회부할수있도록하는강제조항이있다. 그러나유엔해양법협약제298 조에서강제관할권배제선언을유엔사무총장에게기탁하면유엔해양법협약의강제분쟁해결절차를회피할수있도록규정하고있다. 한국은 2006년 4 월 18일유엔해양법협약제298 조의강제관할권배제선언을기탁하였고중국도 2006년 8월 25일유엔해양법협약제298 조의강제관할권배제선언을유엔사무총장에게기탁하였다. 따라서한국과중국간의해 6 배타적경제수역법제5조 ( 대한민국의권리행사등 ) 2제3조에따른대한민국의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권리는대한민국과관계국간에별도의합의가없는경우대한민국과관계국의중간선바깥쪽수역에서는행사하지아니한다. 이경우 중간선 이란그선상 ( 線上 ) 의각점으로부터대한민국의기선상의가장가까운점까지의직선거리와관계국의기선상의가장가까운점까지의직선거리가같게되는선을말한다. 7 Byeong-Cheol Kang, 2013, Ieodo, Okinotorishima and International Politics, The Journal of Peace Studies, Vol.14, No. 2. 양분쟁은유엔해양법협약의재판절차에따라해결할수는없으며외교적협상으로만해결이가능한상황이다. 그러나모든해양분쟁을피할수는없 다 년 1 월 22 일필리핀이중국의배제선언조항을피하여중국이주 장하는 9 단선 이유효한것인지등을재판절차로해결하기위하여유엔해 양법협약제 7 부속서에따라중국에서면통고를하자중국은 2013 년 2 월 19 일주필리핀중국대사를통하여재판참여를거절하였다. 이중재재판 에대한추이에대하여중국의반응을분석하면서미국해전대학 (Naval War College) 의제임스홈즈교수는극단적인경우가능성은낮지만중국이유엔 해양법협약에서탈퇴할지도모른다는우려까지하고있는실정이다. 8 유엔해양법협약에서는이어도쟁점이영토문제가아니라는점에서는 한국과중국의외교부가같은목소리를내고있다. 이어도문제가국가간본격적인갈등이슈로부각되기전에원만하게협상을성사시키는것이가장바람직하다. 그러나국내정치에서는영토문제로변질되는경우도있다. 심상정통합진보당공동대표가성명서에서 이어도는섬이아니라암초 라 는주장을하였다가여론의비판을받기도하였다. 이에대하여심상정공 동대표는 우리외교통상부가밝힌 이어도는섬이아니라수중암초이고, 중국과영토분쟁대상이아니다 라는공식입장을그대로말한것 이라며 정부입장을전한것이시비거리가돼야하느냐 고반문했다. 9 특히, 대중의민족주의가개입되면서 EEZ 획정을통한해양관할권문제가영유권문제로와전되어더강도높은갈등으로발전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 James R. Holmes, 2014, 3 Ways China Could Respond to UNCLOS Ruling, The Diplomat (September 25). 9 최연진, , 심상정 -강용석 이어도는암초? 논쟁, 조선일보. 10 고충석 강병철, 2013, 이어도 -해양분쟁과중국민족주의, 한국학술정보, 297 쪽
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Ⅲ. 제주지방정치와이어도문화의발전 1. 제주포럼 의적극적활용과평화적인이어도문화의발전 제주특별자치도는고도의자치권을갖고있으나다른나라와외교적인관계를설정하는것은사실상불가능하다. 그것은여전히중앙정부의몫이라고할수있다. 그러나다른지역과달리제주도는 2005년 1월 27일 세계평화의섬 으로지정되었으며 세계평화의섬제주 구현을위한다양한평화사업들중에서동북아의평화와번영을위한토론장인 제주포럼 을개최하고있다. 이런관점에서본다면제주지방정치에서도어느정도는외교적측면에서유연한대응을할수있는여지가있다. 특히 2007년에개최된제4 회 제주평화포럼 에서는한국과제주가동북아다자안보협의체구축의중심적역할을해야한다는내용을담은 제4회제주평화포럼제주선언문 이채택되었다. 11 이선언문에서헬싱키프로세스를모델로하여신축성있는역내안보대화협의체를구축하기위하여제주프로세스의실현을촉구하였다. 제주지방정부는직접다자안보협의체를결성할수는없지만이를위한이론적 철학적담론의장을제공할수있으며공식적 비공식적논의를발전시켜나갈수는있을것이다. 사실상한국 중국 일본간에는배타적경제수역획정을하지못하고있다. 따라서언제든강도높은해양갈등으로악화될수있는잠재적해양갈등요소가상존하고있다고볼수있다. 비단정치적인영역에서뿐만아니라경제적인협력이라든가환경문제나해양분쟁의평화적해결을위한다자간국제기구와운동이제기될때그러한운동들이세계평화의섬으로지정된제주도에서잘갖추어진시설과지원을받으면서활동할수 있도록하는것도제주평화의섬의역할과관련하여유용한것으로파악될수있다. 12 이런맥락에서제주포럼에서동북아해양갈등의제반문제를다루고평화로운갈등해결방안에대한이론적 제도적연구성과 11 강병철, 2012, 동북아다자안보협의체를위한새로운도전 : 제주프로세스구상, 한국학술정보, 230 쪽. 12 양길현, 2007, 평화번영의제주정치, 오름, 65쪽. 를축적하고활용하여발전시켜나갈필요가있다. 따라서이어도문화와해양평화를연계 13 시켜서동북아국가들이해양평화선언이나행동규범수칙을규정할수있는역할을주도할수있을것이다. 이어도해역은과거어부들이조난을당하는위험한해역이며지금도가끔해난사고가발생하는곳이다. 영국상선 소코트라 가 1900년제주남쪽바다에서암초에걸려좌초하면서이어도수중암초가알려지게된이후수많은선박들이좌초되었다. 최근의선박좌초사고는지난 2010년 4월 5일인도네시아를출발, 충남태안으로향하던제주선적 5만 905t 급벌크선오리엔탈호프호가 4월 12일오후 6시 40분께이어도남서쪽 500m 지점에서암초에걸려좌초된사고다. 이좌초선박은안전한해양교통에방해가되었고해양과학기지도위험하게하였으며환경을오염시킬가능성도높았다. 오리엔탈호프호는좌초지점에서기상불량으로이어도해양과학기지를덮칠수도있었으므로선수로부터 70m 부분을선체절단후선미부분을이어도과학기지로부터안전해역으로이탈조치하였다. 14 이런사례에서보듯이이어도해역의해난사고와오염방지를위한국제적협력이필요하다. 제주포럼은정부와민간이모두참여하는 1.5 트랙성격의논의의장이므로중앙정부가최종적으로외교적사안에대한결정을하겠지만주변국이수용할수있는동북아해양에서의공동번영과공영을위한정책구상에기여할수있는여지가있는것이다. 13 이어도문화와해양평화의연계에대한사상의체계적정립에대한연구는아직이루어지지않았지만 고동지전설 의경우, 고동지가조난해서이어도에당도하였을때무조건적인구조구난과환대를받았다. 해난피해자에대한이런무조건적인구조구난과환대의정신은해양평화정신의일부로정립할수있을것이다. 14 진재욱, 2010, 항행경보 ( 제10-156) 오리엔탈호프호좌초선박선체절단알림, 해양조사원. 2. 이어도의날 제정과이어도문화의계승과발전 이어도의날 제정이제주지방정치에서쟁점이된것은 2007년 11월에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강창식 임문범의원외 10인의의원이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을발의한후부터였다. 처음에는강창식의원과임문범의원이개별적으로각각이조례안의초안을만들었다. 강창식의원은이어도가제주특 14 15
9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별자치도민들의이상향인섬이기때문에 이어도의날 을제정하고기념행사를가지면서도민화합을추진하려하였다. 반면에임문범의원은해양갈등가능성을염두에두고이어도해역이제주특별자치도의해역이라는것을근거로삼을수있는선언적의미에서 이어도의날 을제정하려고하였다. 강창식의원과임문범의원이조정과협의를거쳐작성된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은 2007년 12월 6일접수되었고제245 회임시회에서처리하기위하여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에회부하였다. 그러나이어도는수중암초로서유엔해양법상도서로서의법적지위를인정받지못하고있어해양관리업무부서소관이아니라는점과이어도의날제정취지를도민화합시책차원에서검토가필요하다는사유로회송되었으며소관상임위원회를정하는데어려움을겪었다.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을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의장이판단해서해당상임위원회로보내는데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을 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 로보내자거부하였고다시 행정자치위원회 로보냈는데 행정자치위원회 에서도소관사항이아니라고거부하였으므로도의회의장은회의규칙상에나와있는대로운영위원회의협의를거쳐서소관상임위원회를결정하도록하였다. 논란끝에결국, 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양대성의장직권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은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에배정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은 2008년 3월 17일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의심의를거쳐 3월 18일본회의에서처리될예정이었으나이회의자리에서제주도는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을유보해줄것을요청하는외교통상부명의의공문이접수됐다고밝혔다. 외교부는 이어도의날을지정할경우중국과의외교마찰을빚을소지가많다 며 이어도가우리수역안에있고, 해양기지를세우고연구활동을하고있는데, 굳이이어도의날을지정해국제분쟁지역으로인식시킬필요가없다 고밝혔다. 15 이어도의날조례안 제안이유및주요내용은제주특별자치도민사회에 구비 ( 口碑 ) 전승 ( 傳承 ) 되어온환상의섬이어도가이승만정부에서 1952년 1월 18일인접해양에관한주권 15 오재용, , 이어도의날 지정추진에정부제동, 조선일보. 선언에따라대한민국이해양관할권에속하도록고시하였고, 1984년제주대학교와 KBS가공동으로학술탐사가이루어졌으며, 2003년 6월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를설치하는등국가적인요충지화되고있음에따라서제주인의영원한이상향으로서의이어도를대내외에각인시키고도민의자긍심을높여나가기위하여이어도의날을제정하고기념행사및학술연구활동등을개최하고자한다는것이다. 이어도의날조례안은다음과같다.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제 1조 ( 목적 ) 이조례는제주인의영원한이상향으로서고난과역경을극복해낸환상의섬이어도를대내 외에각인시키고제주특별자치도민의자긍심을높여나가고자이어도의날을제정하고운영에필요한사항을정함을목적으로한다. 제 2조 ( 위치및정의 ) 북위 , 동경 에위치한서귀포시대정읍마라도서남쪽 150km 지점에있는수중암초를 이어도 라한다. 제 3조 ( 이어도의날 ) 1952년 1월 18일국무원고시제14 호 인접해양에관한주권선언 에의한평화선내에이어도가포함되었기때문에 1월 18일을이어도의날로정한다. 제4 조 ( 기념및행사 ) 1 제주특별자치도는매년이어도의날을기념하기위해다음각호의행사를개최할수있다. 1. 이어도의날기념행사 2. 학술연구및탐사활동 3. 그밖에이어도의날을기념하기위한필요한행사 2 이어도의날을전후하여주간또는월간단위로이어도의날행사기간을설정할수있다
10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제5 조 ( 위탁및지원 ) 1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이하 도지사 라한다 ) 는이어도의날행사를위하여필요한경우민간단체에게위탁할수있다. 2 도지사는제1 항에따른이어도관련행사에대하여행정적, 재정적지원을할수있다. 제6 조 ( 위원회의구성 ) 필요시에는위원회를구성할수있다. 제 7조 ( 시행규칙 ) 이조례의시행에필요한세부적인사항은규칙으로정한다. 부칙이조례는공포한날부터시행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조례안 은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에서 2008년 6월 24일가결하였으나 2008년 6월 30일열린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임시회본회의에상정되지않았다. 이에따라 2007년 8월처음발의되어입법예고까지마친이조례제정은 2008년 3월소관상임위에서한차례처리가유보된데이어본회의문턱에서또다시좌절되었는데양대성도의회의장은 이어도의날조례제정이시기적으로적절하지않고화급한사안도아니어서발의의원과상임위위원들과협의를거쳐이번회기에는상정하지않기로했다 면서 조례제정을포기하는것이아니다 라고말했다. 16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은다시 2012년에추진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박규헌의원 ( 민주통합당, 제주시애월읍 ) 과강경찬교육의원은이어도의날지정을주내용으로하는 제주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을발의했다고 2012년 7월 9일밝혔다. 17 고난과역경을극복해낸환상의섬인이어도에얽혀있는제주인의정신적가치를실공연연출, 각종자료전시및행사를개최하여제주특별자치도민의자긍심을고취시키고관광자원화하기위하여이어도의문화적 정신적가치등에필요한사항을정함을목적으로한다. 제 2조 ( 정의 ) 이조례에서의 이어도 란제주사람들로부터구비전승되고있는이상향인환상의섬, 피안의섬, 이어도타령등에내재하고있는정신적이고문화적인것을말한다. 제 3조 ( 이어도의날지정등 ) 1 이어도에대한제주인의문화적 정신적가치에대해사회적관심을고양하기위하여매년 9월 10일을이어도의날로정하고 1주간을이어도문화행사주간으로한다. 2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이조례와관련한축제를비롯한각종전시및행사등을개최한다. 제 4조 ( 축제및각종행사등 ) 1 제주특별자치도는매년이어도문화행사주간에다음각호의행사를개최할수있다. 1. 이어도와관련한실공연연출및문화행사 2. 사료전시 3. 학술연구활동 4. 그밖에제주특별자치도지사 ( 이하 도지사 라한다 ) 가필요한행사 2 실공연연출을동영상화하여관광객들에게동영상관람을제공한다. 3 도지사는교육감과협의하여각급학교에서이어도와관련한사항을교육할수있도록한다. 제 5조 ( 위탁및지원 ) 1 도지사는이어도의날축제및각종행사등을개최하기위하여필요한경우민간단체에게위탁할수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제 1 조 ( 목적 ) 이조례는제주인의영원한이상향으로서 16 오재용, , 또제동걸린 이어도의날, 조선일보. 17 강홍균, , 제주 이어도의날 지정될까, 경향신문. 2 도지사는제 1 항에따른축제와각종전시및행사등에대하여행정 적 재정적지원을할수있다
11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제 6 조 ( 위원회의구성 ) 필요시에는위원회를구성 운영할수있다. 제 7 조 ( 시행규칙 ) 이조례의시행에필요한세부적인사항은규칙으로정한다. 부칙 이조례는 2013 년 1 월 1 일부터시행한다. 박규헌의원과강경찬교육의원이발의한 제주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에서는 이어도의날 을 1951년해군이이어도를발견하고대한민국령이라는동판을수중에설치한 9월 10일로지정하고이어도문화행사주간등을운영하는내용을담고있었다. 그러나 2012년 12월 14일제301 회정례회 4차본회의를열고상임위원회를통과한이어도의날조례안을부의했으나박희수의장이 이어도의날조례가통과될경우향후일어날문제점들을우리모두가알고있을것 이라며 오랫동안고민했지만좀더지혜를모아야한다는생각에상정을보류키로했다 며의장직권으로상정보류를선언했다. 18 강경찬의원은 2013년 4월 19일속개된제305 회임시회도정질문에서우근민제주도지사에게제주도의연기요청으로제정이미뤄지고있는 이어도의날조례 와관련하여정부시책과차별화된행정을요청하였고우근민지사는현재외교문제가민감한상태로손자병법을최대로활용할때라고답변하였다. 19 제주도의회농수축 지식산업위원회는 2013년 12월 12일제312회제2 차정례회를열고강경찬 박규헌의원이대표발의한 제주도이어도의날지정운영에관한조례안번안동의안 을가결했는데이날상임위에서박태희제주도해양수산국장은 외교부는방공식별구역문제가진정국면으로접어드는상황에서이번이어도의날조례제정으로부정적영향을미칠가능성이높다고판단하고있다 며 국내외여건이성숙될때까지이어도조례제정을유보해달라 고말하며이어도의날조례안과관련해외교부와중국대사관측입장을전달 18 강홍균, , 이어도의날 지정조례또다시처리무산, 경향신문. 19 강병철 프리다크리스틴밀러 양금희, 2013, 이어도문화발전을위한시민사회의역할, 이어도연구 제 4 호, 252 쪽. 하며조례제정유보를요청했으나박규헌의원은 조례안어디에도분쟁을유발할만한내용이없다 며 조례와방공식별구역선포는별개로생각해야하며, 제주도는당당하게대처해야하는데도너무소심하게접근하고있다 고말했다 년 12월 13일오전장흔 ( 張欣 ) 주제주중국총영사가도의회를찾아박희수의장과면담하며한중관계의악화등을우려하며조례제정에대한우려를표시하였으며박희수의장은지정학적위치등을담은것이아니라인문 문화적내용에초점을맞췄다며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의취지를설명했다. 제주도의회는 2013년 12월 13일제312 회정례회마지막본회의를열고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을상정했으나심의를보류하기로의결했는데보류동의안은 방공식별구역확대이후진정국면으로접어들고있는상황에서이어도의날조례가새로운갈등을촉발시킬수있다 며 조례가제정될경우중국인관광객유치에부정적영향을줄가능성이있다 는점과 한창진행중인제주관광개발사업에막대한차질이우려된다 는점등을지적하고보류동의안은 중국관광객유치등제주도의실리를감안하고중국과의관계에서불필요한외교적관계를최소화해야한다 는점과 이런제반사항등을감안해조례의심의를보류하고한 중간배타적경제수역획정등국내 외여건이성숙됐을때다시논의하는것이바람직하다 는점을밝혔다. 21 제주특별자치도이어도의날지정 운영에관한조례안 은제 9대의회임기가끝나면서자동폐기되었다. 이어도의날 제정과관련하여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와지방정부간의입장차는비교적큰편이다. 중앙정부와마찬가지로지방정부에서는 이어도의날 제정자체에대하여부정적인입장이다. 20 강홍균, , 이어도의날 조례제주도의회통과하나, 경향신문. 21 강홍균, , 이어도의날조례제정제주도의회에서무산, 경향신문. 강시백교육의원은 2014년 9월 16일제321 회제주도의회정례회제3 차본회의에서 중국과일본이이지역순찰을하고있는와중에정부에선올해한중정 20 21
12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상회담을통해 2015년에해양경계획정협상을하는것으로안다 며 오랫동안구비전승됐고, 제주인의이상향으로서고난과역경을극복한환상의섬이어도를대내외에각인시키고무형적자산을유형화하는정책이필요하다고보는데구체적인정책이있나 라고도정질의를하였다. 이에대하여원희룡제주특별자치도도지사는 앞으로해양아카데미를정비하여대표성과전문성을갖춘연구홍보활동을강화하도록하고마라도에이어도홍보체험관건립계획이있으며 50억원예산으로 2017년부터사업계획이있어큰문제없이진행될것 이라고밝혔으나 이어도의날지정이나이부분에대해제주도가영토주권이라는차원에서접근하면배타적경제수역과 문화를앙양하는토대를마련하는것이필요하다. 해양갈등의주체로서의이어도가아니라전통의맥을잇고발전시킨다는입장에서의문화적이어도라는측면에서지방정부가 이어도의날 제정을추진한다면중국이반대할명분이없을것으로판단된다. 따라서민의를반영하는대의정치의정신에따라지방의회와지방정부간에의견을조율하여 이어도의날 제정을추진할필요가있다. Ⅳ. 맺음말 : 평화지향의이어도문화구상 관련해서중국과협상도안끝난부분 이라며부담감을표출했다. 22 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에서추진하는 이어도의날 조례는해양영토를지키기위한방편으로써가아니라제주도민들에게면면히이어져오는이어도문화를계승하는데중점을두고있다. 과거에는제주도민들에게이어도가맷돌노래를통해서광범위하게인식되고있었으나맷돌사용이줄어들고방앗간이생기면서자연스럽게맷돌노래도부르지않게되었다. 진성기제주민속박물관관장은제주대학교를졸업하고 1964년부터제주민속박물관을운영하면서민속문화지킴이로알려져있으며제주도문화재위원및중앙문화재전문위원으로활동하였는데이어도인식과맷돌노래는연관성이높다고보고있다. 진성기관장은 이어도는맷돌노래와함께광범위하게사람들에게알려져있었다. 그러나맷돌노래가사장되다시피하면서이어도에대한제주도민들의인식도많이감소하였다 면서 채록당시에모두가이어도가이상향이라는것을명확히알고있는것은아니었고일부는이어도에대하여구체적으로인식하지못하는사람도있었다 고회고하였다. 23 또한해녀들이부르던 이어도사나 와같 은해녀노래도해녀들이감소하고고령화되면서이어도에대한인식이전반적으로감소하고있는상황이다. 따라서 이어도의날 조례를제정하여이어도와관련한각종문화행사를개최하고지원하여이어도 22 박성우, , 원희룡, 이어도 분쟁부담토로, 전략적활용하겠다, 헤드라인뉴스. 23 양금희, , 양금희가만난진성기관장, 이어도전설을기록하였던민속학자, 제주인뉴스. 이어도는제주도민들에게전해져오는전설이상의의미가있다. 이어도는제주도민들의일상생활에깊숙이침투되어이어도문화를형성하여하나의생활양식이되었다. 각종상호로도이어도가친숙하게사용되고있으며이어도를소재로한문학활동도활발하게이루어지고있다. 따라서한국과중국간의배타적경제수역획정의문제에서부각된이어도수중암초와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라는외교적쟁점에방점을둔시각과는다른제주고유의전통적 문화적관점에서이어도를바라볼필요도있는것이다. 우선, 이어도쟁점의보다심도깊은이해를위하여국제적상황을검토할필요가있다. 첫째, 미국과중국의동북아역내패권경쟁적특징을보이고있다. 이어도쟁점은한국과중국간의문제이기도하지만미국과중국간의세계전략과도연계되어있다.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군사적정찰이나수중관측에대한연안국의관할권을두고논쟁하고있으며미국해군탐사선과중국선박의대치가빈번하고있다. 둘째, 이어도해역은중국북해함대의원활한대양작전능력을위해서자유로운이용이가능해야하므로중국의배타적경제수역을극대화하려할것으로분석된다. 해양의갈등이강대국의패권경쟁으로심화될수있다. 그러나중진국인 22 23
13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한국의입장에서는경제적이익에더관심이크며안보적으로미국과굳건한동맹을맺고있지만중국과도경제적으로상호의존도가점점더커지고있어해양의평화적이고안정적인관리가필요하다. 국내정치적수준에서는이어도가영토가아니지만일부국민들은영토로오해하는경우도있다. 민의를반영하여야하는정치인들은합리적국익을추구할수있도록국민들에게올바른지식을전달하여야할필요성이있다. 지금까지의논의를토대로이어도쟁점에관한제주지방정치의역할을살펴보겠다. 첫째, 이어도의날 제정과관련하여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와지방정부간의입장차를조정하여한목소리를내는것이필요하다. 중앙정부와마찬가지로지방정부에서는 이어도의날 제정자체에대하여부정적인입장이다. 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에서추진하는 이어도의날 조례는초기에는해양영토를지키기위한방편적성향도일부담고있었으나제주도민들에게면면히이어져오는이어도문화를계승하는데중점을두고있다. 해양갈등의주체로서의이어도가아니라전통의맥을잇고발전시킨다는입장에서의문화적이어도라는측면에서지방정부가 이어도의날 제정을추진한다면중국이반대할명분이없을것으로판단된다. 따라서민의를반영하는대의정치의정신에따라지방의회와지방정부간에의견을조율하여 이어도의날 제정을해양경계문제와는완전히분리하여추진할필요가있다. 둘째, 이어도의날 제정과는별개로 이어도문화 의계승발전을위한정책추진이필요하다. 이어도의날제정이자칫하면분쟁의핵심이될가능성도배제할수없다. 따라서이어도의전설, 해녀노래, 민요등에서폭력성이전혀없는비폭력사상이나타나고있다는점과구난과구호의평화사상이나타나고있다는점을부각시키는것이필요하다. 이러한점을강조하여이어도의날제정이자칫하면분쟁의핵심이될가능성을차단하여야한다. 셋째, 이어도의날 제정을보편적세계평화의정신과연계시키려는노력이필요할것이다. 제주도는 2005년 1월 27일 세계평화의섬 으로지정되었다. 따라서 세계평화의섬 실천사업과이어도의평화사상을접목시켜해양의평화정신을증진시키도록하는것은제주정치의중요한역할이라할것이다. 해양구난구호정신을바탕으로국제사회의상생과공영을도모하는세계평화의정신을 이어도의날 조례안에담아이어도문화를발전시켜나가는방안을모색하여야할것이다
14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국문초록 ABSTRACT 이논문의목적은이어도쟁점과관련한제주지방정치의역할을검토하고평화적인해양갈등해결방안을모색하는것이다. 이어도에대한민요와전설이새삼스럽게주목받기시작한것은한국과중국간의배타적경제수역의획정이라는해양경계쟁점이부각되면서부터였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는 2007년 이어도의날 을조례로제정하여학술연구및탐사활동을전개하려고하였다. 그러나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에대하여중앙정부가반대하였으며결국 이어도의날 조례제정에실패하였다. 이러한점을고려해보면이어도는제주지역차원을넘어선국가차원의외교적쟁점을내포하고있다고평가할수있다. 이어도를둘러싼한국과중국간의해양갈등의주요쟁점은외교적사안이다. 그러나이어도문화는제주전통이고고유의지역적인문화인점을고려하여별개의사안으로취급하여제주지방정치를통하여이어도의날을제정하여야할것이다. 중앙정부의우려를수용하여해양갈등과관련된요소는완전히배제하고이어도문화중심의이어도의날제정추진방안수립이필요할것으로판단된다. 주제어 해양갈등, 배타적경제수역, 이어도의날 조례, 제주지방정치의역할, 이어도문화 Issues Concerning Ieodo and the Role of Local Authorities Kang, Byeongcheol Research Fellow, Society of Ieodo Research This study reviews the role local politics on the island Jejudo played in issues concerning the island Ieodo and aims to find a solution to peacefully resolve maritime disputes. As the delimitation of South Korea and China s exclusive economic zones (EEZ) surfaced as a maritime boundary issue, it prompted a renewed interest in folk tales and songs on Ieodo. In 2007, the provincial assembly of Jejudo attempted to enact an ordinance designating Ieodo Day in order to promote scholarly research on and exploration of Ieodo. However, the designation fell through due to opposition from the South Korean central government. These aspects suggest that issues concerning Ieodo need to be considered on a national, diplomatic dimension that goes beyond the provincial boundaries of Jejugo. Diplomatic issues such as that over the EEZ delimitation agreement are at the core of maritime disputes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surrounding Ieodo. Regardless, the culture of Ieodo has been a part of Jejudo s indigenous culture, which makes it necessary to separate culture from other issues and dimensions. Ieodo Day should be established by embracing the South Korean central government s concerns and devising an execution plan that completely sets factors related to maritime disputes aside for a day to solely focus on the culture of Ieodo. Keywords maritime disputes, exclusive economic zones, ordinance to designate Ieodo Day, provincial politics of Jejudo, Ieodo culture 26 27
15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에관한쟁점과지방정부의역할 참고문헌 강병철, 2012, 동북아다자안보협의체를위한새로운도전 : 제주프로세스구상, 한국학술정보. 고충석 강병철, 2013, 이어도 - 해양분쟁과중국민족주의, 한국학술정보. 양길현, 2007, 평화번영의제주정치, 오름. 진재욱, 2010, 항행경보 ( 제 ) 오리엔탈호프호좌초선박선체절단알림, 해양조사원. Kang, Byeong-Cheol, 2013, Ieodo, Okinotorishima and International Politics, The Journal of Peace Studies, Vol. 14, No. 2. Pedrozo, Raul (Pete), 2010, Preserving Navigational Rights and Freedoms: The Right to Conduct Military Activities in China s Exclusive Economic Zon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9(1). Smith, Jeff M., Eisenman Joshua, 2014, China And America Clash On The High Seas: The EEZ Challenge, The National Interest, May 22, 검색일 : ). 강병철, 2013, 이어도쟁점과중국해군전략의변화, STRATEGY 21 제 31 호 (Vol. 16, No. 1). 강병철 프리다크리스틴밀러 양금희, 2013, 이어도문화발전을위한시민사회의역할, 이어도연구 제 4 호. 강홍균, , 제주 이어도의날 지정될까, 경향신문. 강홍균, , 이어도의날 지정조례또다시처리무산, 경향신문. 강홍균, , 이어도의날 조례제주도의회통과하나, 경향신문. 강홍균, , 이어도의날조례제정제주도의회에서무산, 경향신문. 박성우, , 원희룡, 이어도 분쟁부담토로, 전략적활용하겠다, 헤드라인뉴스. 양금희, , 양금희가만난진성기관장, 이어도전설을기록하였던민속학자, 제주인뉴스. 오재용, , 이어도의날 지정추진에정부제동, 조선일보. 오재용, , 또제동걸린 이어도의날, 조선일보. 최연진, , 심상정 - 강용석 이어도는암초? 논쟁, 조선일보. Geng, Jing, 2012, The Legality of Foreign Military Activities in the Exclusive Economic Zone under UNCLOS, Merkourios, Vol. 28/ Issue 74. Holmes, James R., 2014, 3 Ways China Could Respond to UNCLOS Ruling, The Diplomat, September 25, com/2014/09/3-ways-china-could-respond-to-unclos-ruling/ ( 검색일 : )
16 특집주제영토해양연구 Vol. 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김병렬국방대학교안보정책학부교수 히동의해주지않고있는상태이며, 해저대륙붕에대하여도각국이주장하는원칙이일치하지않는등매우복잡한지역이다. 과거한국과일본이제주도남방제7광구에대한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체결하자중국은해당대륙붕에대한관할권이중국에있다고항의한바있으며, 1 한국이이어도에해양과학기지를건설하자다시이에대하여맹렬히항의를제기하고있다. 2 항의의주된내용은대륙붕의자연적연장설을바탕으로한국자체가중국의대륙붕위에위치하고있기때문에한국은한반도의서쪽과남쪽해역에 12해리의영해만가질수있을뿐그이외의해역이나대륙붕에대해서는관할권을가질수없다고하는것이다. 3 한편일본은중국이나한국과달리중간선원칙을주장하고있는가운데도리 시마 ( 鳥島 ) 의지위를두고도한국과대립하고있다. 4 Ⅰ. 머리말 2013년 11월 23일중국이이어도상공까지방공식별구역 (ADIZ) 을확대한다고발표하자우리나라역시 12월 8일동상공까지방공식별구역을확대한다고발표함으로써이지역은기존일본의방공식별구역과한국 중국의방공식별구역이각기중첩되는복잡한양상이되었다. 원래방공식별구역이란영공과는다른개념이다. 속도가빠른항공기를영공내에서식별할경우대응조치가늦어질수있기때문에특정국가가안보상의이유를들어영공밖으로설정하는임의의선이다. 원칙적으로방공식별구역, 영공, 배타적경제수역, 대륙붕의법적제도는상이하기때문에이들의경계선이반드시일치하지는않는다. 특히방공식별구역은영공밖으로해당국가가임의로설정하기때문에전혀다른법적제도가적용되고있다. 그런데도일국의방공식별구역에주변국들이예민하게반응하는것은이지역이극히민감한지역이기때문이다. 이어도해역은대향국 ( 對向國 ) 간의거리가 400해리가되지못하는가운데각국이기점으로제시하고있는섬의지위에대해타방당사국이흔쾌 이러한상황아래에서우리정부는이어도해역에해양과학기지를건설하고이를운용중에있으며, 중국의동상공방공식별구역확대에대한대응조치로우리나라의방공식별구역을이지역상공까지로확대하였다. 그리고지난 7월양국정상회담에서내년부터한중양국간의해양경계획정을위한협상을진행하기로약속한바있다. 이해양과학기지의건설과관련하여필자는오래전부터인공섬을건설할것을주장한바있는데이논문에서는늦었지만이의필요성을다시한번강조하고자한다. Ⅱ. 이어도의발견과개발 1 柳炳華, 1991, 東北亞地域과海洋法, 진성사, 43쪽 위와동일. 4 柳炳華, 1991, 앞의책, 206 쪽. 1868년영국의상선코스타리카호가남해안을항해하다가미확인암초를발견했다고본국정부에타전하였다. 이후인도, 호주, 중국등을운항하며화물및우편물을나르던영국의상선소코트라 (Socotra) 호가 1900년 30 31
17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6월 5일밤 9시 40분경동경 125도 11분, 북위 32도 8분해역에서암초와접촉하는사고가발생하였다며영국해군본부에보고를하였다. 이보고를접한영국해군본부는이듬해인 1901년해군측량선인워터위치 (Water Witch) 호를파견하여암초의위치와수심을확인하였는데당시암초의수심을 5.5m 로측량하고소코트라암 (Socotra Rock) 이라고명명하였다. 5 제주도서남방해역에서수면하암초가발견되었다는소식을들은일본은이를수로지에기입하고 1938년에이용계획을구체적으로수립하였다. 당시아시아일대를지배하고있던일본은나가사키 [ 長崎 ]-고토 [ 五島 ]-제주도- 화조산도 ( 花鳥山島 )-상하이 ( 上海 ) 를연결하는해저전선을부설하고자하였는데, 제주도에서화조산도까지의거리가 450km가넘어중간에중계기지의필요성을느꼈던바이섬에직경 15m, 해면위높이 35m의콘크리트구조물을건설하여중계기지를설치하고자하였다. 그러나이러한계획은제2 차세계대전의발발로실패하게되었다. 6 < 그림 1> 에서보듯이이어도는중국의서산다오 [ 余山島 ] 에서 287km, 하이자오 ( 퉁다오 [ 童島 ]) 에서 245km, 일본의도리시마 [ 鳥島 ] 에서 276km 떨어져 서 양자강상해 1 해리 (2 m) < 그림 1> 이어도위치 제주도마라도 0해리 (14 m) 14 해리 (2 m) 1 해리 (24 m) 도 규슈 , E 5 김병렬, 1997, 이어도를아십니까, 홍일문화, 6쪽. 6 김병렬, 1997, 위의책, 6~7쪽, 일본의인공구조물설치계획에관하여자세한것은조성윤, 2014, 일본의소코트라락 (Socotra Rock) 인공섬조성계획, 이어도연구 5권, 227~249 쪽참조. 있기때문에우리나라가지리적으로훨씬더가깝다. 광복이후우리정부는최남선선생의제안에따라서이섬에대한영유 권을확립하고자샌프란시스코대일강화조약본문에삽입시키려고하다가 실패하였고, 1951 년과 1973 년두차례에걸쳐확인탐사작업을벌였으나 결국실패하였다. 한동안잊혀졌던이어도는 1984 년 3 월 KBS- 제주대학교파랑도탐사 반 에의해비로소확인되었다. 이후 1986 년에교통부수로국이이섬에대한정밀측량을하였으며, 년이해역에등부표를설치하여항해중인선박에게경고를하다가 2003 년현재의해양과학기지를준공하였다. Ⅲ. 이어도주변해역의경계획정 1969 년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 (ECAFE) 가아시아연안지역예상광물자원 합동예측보고서 (CCOP) 를제출하자아시아연안국들의대륙붕에대한관심 이급격히고조되기시작했다. 한국은 1969 년 12 월에해저광물자원개발법 을입법하고 1970 년 5 월에시행령을통하여 7 개의대륙붕광구를설정하였 다. 일본은즉각한국의제 7 광구를인정할수없다고통보해오면서이에 관한교섭을제의하였다. 한국이교섭을거부하자일본은중재재판이나국제사법재판소에이문제를맡기자고다시제의하였다. 한국은결국일본과 7 동경 125도 10분 58초, 북위 32도 7분 31초. 8 Masajuki Takeyama, 1983, Japan s Foreign Negotiations over Offshore Petroleum, Development, Robert L. Friedheim (ed.), Japan and the New Ocean Regime, New York: Westview Press, p 교섭에들어갔다. 8 수차에걸친회담을거친끝에 1974 년 1 월 30 일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이체결되 었다. 양국의비준을거쳐 1978 년 6 월 22 일발효된이 협정은 < 그림 2> 와같이한국이종전에설정하였던제 7 광구전체와제 5 광구의일부를공동개발구역으로설 정하였다. 공동개발구역으로설정된구역은대체적으로한국이주장하는자연적연장원칙에따른대륙붕 32 33
1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이어도 공동개발구역 < 그림 2> 이어도주변해양경계와한일공동개발구역 경계선과일본이주장하는등거리중간선원칙에의한경계선사이의상호중첩되는곳이다. 9 제31 조에의하여이협정은 1978~2028 년까지 50 년간유효하기때문에 2028년까지는일단한일간의남부대륙붕과관련된경계선획정문제는유보된상태라고볼수있다 김병렬, 2010, 이어도주변해역의해양분쟁요인과대책, 이어도연구 창간호, 136~137 쪽. 10 유보된상태이기는하지만해당구역에서탐사작업이이루어지지않고있기때문에사실상공동개발협정은사문화된상태에서기한종료만을기다리고있는중이라고할수있다. 한편 1994년에유엔해양법협약이발효되자일본은 1965년의한일어업협정을개정하자고요구하였다. 하지만기존어업협정의존속을희망하던한국이이에응하지않자일본은 1996년에일방적으로 1965년의어업협정을폐기함으로써한국과일본사이의바다는특정국의관할권이적용되는것도아니고공해도아닌이상한상태가되었다. 이사이일본은일방적으로그은영해기준선을근거로 1965년의어업협정에의하여조업을하던한국의어선들을무차별적으로나포하기시작했다. 이에한일양국은 1997 년에 7차례, 1998년에 8차례협상을가진후제2 차어업협정에 1998년 11 월 28일서명하게되었다. 이협정에서한국은 < 그림 2> 와같이한일공동개발구역상부수역의대략 80% 정도를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인정해주었으며나머지 20% 정도를중간수역으로합의한바있다. 한편일본보다먼저시작한한중간의어업협정은 1993년 12월부터 19 차례의공식회담을거친후일본보다늦게 2000년 8월 3일에야서명을할수있었다. 그런데이협정에서는 < 그림 2> 에서보는바와같이이어도수역북쪽에서배타적어업수역과한국측과도수역의획선이이루어졌다. 다시말해현재의이어도는한국의대륙붕제5 광구에속해있으며, 상부수역은일본에서는한국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인정을받았으나중국에서는아직인정받지못하고있는어정쩡한상태다. 그리고이어도의남부대륙붕은아직까지일본과공동개발구역으로되어있지만, 상부수역은 1998년어업협정에따라 80% 정도가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되었다. 11 따라서현재우리나라는일본이동의해주지않고있기때문에제7 광구에대한탐사작업을하지못하고있는실정이다 김병렬, 2010, 앞의글, 137 쪽. 12 일본이동의하지않는표면적인이유는석유매장가능성이없다는것이지만, 내심은 2028 년경대륙붕경계가확정되면단독개발을하겠다는것으로보인다
19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Ⅳ. 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의경계획정에서섬의역할 1. 경계획정원칙 모든육지와섬은자체의영해를가진다. 한국가의섬이대향국이나인접국 ( 隣接國 ) 의육지나섬에가까이위치하여영해가중복되는경우에는당연히경계획정의문제가발생한다. 이경우유엔해양법협약은제15 조 13 에서등거리중간선원칙을규정하고있다. 한편협약은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의경계획정방법에관하여제74 조 14 와제83조 15 에서규정하고있는데이들은등거리중간선원칙이아니고형평의원칙을내용으로하고있다. 즉영해의경계획정은중간선원칙을기본으로하면서, 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경계획정은형평의원칙을기본으로하도록한것이다. 여기에서형평한해결을위한고려사항에는여러가지가있을수있는데그중섬의존재여부나크기가하나의고려사항이될수있다. 형평이대륙붕경계획정시중요한요소로인정되게된것은대륙붕이란개념이처음국제법에도입되면서부터다. 즉 1945년의트루만선언은미국해안의대륙붕이다른국가연안까지뻗어있거나인접국과대륙붕을공유하고있는경우, 경계선은미국과관련국의하여성립되어야한다. 가에의하여 형평의원칙 에따라결정되어야한다고하였다. 16 그후 1969년북해대륙붕사건에대한판결에서국제사법재판소는이선언을경계획정원칙의출발점으로보아 경계획정은다른국가영토의자연적립되어야한다. 연장에저촉됨이없이, 가능한한각국에게해저에의육지영토의자연적연장을구성하는대륙붕전체를주도록형평의원칙에따라모든관련상황을고려하 13 2개국의해안이상호대향또는인접하고있는경우에는양국중어느국가도양국간의별개의합의가없는한양국의각영해의폭을측정하는기선상의최근점에서같은거리에있는모든점의연결인중간선을넘어서영해를확장하지못한다. 단, 본조의규정은역사적권원또는기타특수사정으로인하여본규정과상이한방법으로양국의영해를확정할필요가있는경우에는적용되지아니한다 인접또는대향국간의배타적경제수역의경계획정은형평한해결에도달하기위하여국제사법재판소규정제38조에규정된대로국제법을기초로하여합의에 15 1 인접또는대향국간의대륙붕의경계획정은형평한해결에도달하기위하여국제사법재판소규정제38조에규정된대로국제법을기초로하여합의에의하여성 16 Truman Proclamation (No. 2667): Policy of the United States on the Natural Resources of the Subsoil and Seabed of the Continental Shelf. 여이루어져야한다 고하였다 년영 불대륙붕사건에서의중재법 원이나 년리비아와튀니지간대륙붕사건에서국제사법재판소는 경계획정은모든관련상황을고려하여형평의원칙에따라이루어져야한다 고하였다. 19 경계획정에서형평을강조하는이러한관습법적경향은제3 차해양법회의에서도나타나등거리선에대한아무런언급없이형평에맞는해결만을강조하였던것이다. 20 그러나형평의정확한의미는해양법협약이채택된지 30년이넘는현재까지도명확하지못하다. 따라서형평의원칙을경계획정에관한주요원칙으로삼았던북해대륙붕사건에서도다나카 (Kotaro Tanaka) 판사는 추상적이고일반적인성격때문에경계획정에관한그어떠한구체적인기준도제시하지못하는정의라든가, 형평, 합리성과같은보다고차원적인법의이상을적용하도록요구한독일의주장을재판소가수용하였다 고하면서반대의견 (dissenting opinion) 을피력했던것이다 North Sea Continental Shelf Cases, ICJ Reports, 1969, p 홍성육, 1982, 1977 년영국과불란서간의대륙붕경계분쟁에관한중재판결, 判例硏究 제1집, 고려대학교법학연구소, 199 쪽. 19 Tunisia-Libya Continental Shelf Case, ICJ Reports, 1982, p 김병렬, 2010, 앞의글, 138 쪽. 21 North Sea Continental Shelf Cases, ICJ Reports 1969, pp. 196~ 튀니지와리비아간대륙붕사건에서국제사법재판소는해안선의길이의비율을 69 : 31( 자연적해안선 ) 및 66 : 34( 직선기선사용할때 ) 로계산하여, 양국의대륙붕을 60 : 40으로나누었다. 메인만사건도동일한방법으로 1.38 : 1이되도록하였다. 리비아와몰타간사건에서는중간선에서몰타쪽으로 0.3 정도이동하여경계선을획정하였다. 23 M. D. Blecher, 1979, Equitable Delimitation of Continental Shelf, AJIL, Vol. 73, p. 61; J. I. Charney, 1984, Ocean Boundaries between Nations: A Theory for Progress, AJIL, Vol. 78, pp. 584~ 585. 그러면이처럼추상적인 형평의원칙 을구체적으로경계획정에적용하자면어떻게해야하는가? 가장일반적인방법은등거리선방법에해안선과대륙붕 ( 경제수역 ) 의면적에따른비례성을고려하는방법이될것이다. 비례성에따른경계획정으로는 1982년의튀니지와리비아간의대륙붕경계획정사건과 1984년의미국과캐나다간메인만사건, 1985년의리비아와몰타간대륙붕사건등을들수있다. 22 그러면형평의원칙에고려되는 관련상황 은해안선의길이만해당되는가? 경계획정시고려해야할관련상황에해당하는요소로는문제수역의지리적상황과지질 -천연자원의존재여부, 위치및섬의존재가일반적으로거론되어왔다. 23 북해대륙붕사건에서재 36 37
20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판소가중시한요소들은이곳의지형과석유자원이었으며, 리비아와몰타간사건에서는당사국해안들의일반적형상, 대안국형상, 당사국관련해안들의길이등이었다. 튀니지와리비아간대륙붕사건에서재판소는자연적연장 (natural prolongation) 에따른경계획정을주장하는리비아의주장에반대하면서, 튀니지해안의형상과케르켄나 (Kerkenna) 섬을고려하였으며, 미국과캐나다간메인만사건에서미국은메인주어업의조지스뱅크 (Georges Bank) 에대한의존도를지적하였고, 리비아와몰타간사건에서는해안선의길이를지적하였다. 그런데제3 차해양법회의에서는 형평 을근거로경계획정시섬의효과를축소시키려는견해와 1958년대륙붕협약이규정한등거리선 -특별상황원칙을고수하려는견해가대립되었다. 경계획정시섬의효과를최소한으로하려는주장은터키, 루마니아, 아프리카국가들및아일랜드에의해전개되었다. 터키는대향국및인접국간경제수역의경계획정은섬이나소도, 암석의존재와같은특별상황을포함한모든관련요소들 (relevant factors) 을고려하여형평의원칙에따라합의에의해이루어져야한다고하였으며, 24 루마니아는형평의원칙을강조하면서영해외측에위치한간출지, 소도및소도와비슷한섬들의기점으로의가치는부정되어야한다고하였다. 25 아일랜드도위치에관계없이사람이살고있지아니한모든소도들을등거리선설정을위한기점으로사용하지못하게하고그외의섬들도본토의면적이나인구의상당부분을차지하고있지아니한때에는이를대륙붕이나경제수역의경계획정을위한기선으로사용할수없게해야한다고하였다. 26 Conf.62/C.2 /L.34). 반면에영국, 이탈리아, 덴마크등은 1958년협약의경계획정에관한규칙을그대로유지하자고하였으며, 그리스는 1958년협약의규정중에서 특별상황 이란말을삭제하여일반적인의미에서의모든섬들을경계획정을위한기점으로사용할수있게하자고하였다. 27 이러한논의결과 1982년해양법협약은암 24 Turkey: Delimitation between Adjacent and Opposite States (UN Doc.A/ 25 Rumania: Draft Articles on Delimitation of Ocean Space (UN Doc.A/Conf.62/ C. 21/L. l8). 26 UN Doc.A/Conf.62/C. 2/L C. R. Symmons, 1979, The Maritime Zones of Islands in International Law, Dordrecht: Martinus Nijhoff, p 석의대륙붕과경제수역을제한하고등거리선방법대신에형평에맞는해 결을경계획정의원칙으로하게되었다. 그리고제 3 차해양법회의에서의 분위기가경계획정시섬의영향을축소하는데우호적이었음에도불구하고, 경계선에대한섬의효과를제한하자는각국의제안은자국의이익을옹호하기위한자의적인목적에서제시되었기때문에섬의다양한특징에대해아무런규정도두지못하는아쉬움을남겼다. 섬은등거리선방법에의한경계획정시에는등거리선에서의이탈을정당화하는 특별상황 의전형적인예로, 그리고형평의원칙하에서는구체적인경계획정이전에고려해야할 관련상황 의대표적인예로간주되어왔다. 그렇다면국제법상의섬이란무엇인가. 1958년의영해협약과 1982 년의유엔해양법협약이규정하고있는섬의조건은수면위에자연적으로형성되어있어야하며, 육지지역이여야하고, 만조시노출되어야하며, 바위와구분되어야한다. 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는제1 항에서섬을정의하고, 28 제2 항에서육지영토와동등한지위를부여하면서, 29 섬의크기에따라그지위를구분하여야한다는주장을무마하기위하여제3조에서암석을섬과구분하여놓았다. 30 즉 민간거주또는독자적인경제생활을지속할수없는 것은섬이아니라바위인것이다. 마실수있는물이존재하지않거나경작이가능한토양, 천연자원, 생물체가존재하지않는다면일단거주가불가능하다고판단할수있을것이다. 섬과암석을크기로구분하려는노력이없었던것은아니다. 호지슨 (R. D. Hodgson) 은 0.001제곱마일이하의면적을가진섬을암석이라하였다. 31 국제수로국 (IHB) 은 1 내지 10제곱킬로미터의면적을가진섬을소도 (small islet) 라하였다. 이처럼주장이나실행도달랐고각국의이해관계도달랐기때문에결국해양법협약을협의하는과정에서합의에이르지못했다 섬이라함은바닷물로둘러싸여있으며, 만조시에도수면위에있는, 자연적으로형성된육지지역을말한다. 29 제3항에서규정된경우를제외하고는섬의영해,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및대륙붕은다른영토에적용가능한이협약의규정에따라결정한다. 30 인간이거주할수없거나독자적인경제활동을유지할수없는암석은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을가지지아니한다. 31 R. D. Hodgson, 1972, Island: Normal and Special Circumstances, in J. K. Gamble and G. Pontecorvo(eds.), The Law of the Sea: The Emerging Regime of the Oceans, Pensacola: Ballinger Publishing Co., pp. 150~ 김병렬, 2010, 앞의글, 144~145 쪽
21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2. 경계획정에서의섬의효과 1) 섬이완전한효과를갖는경우섬이라고는하지만섬의면적이매우넓어서대륙의속성을모두갖추고있거나섬이본토에가까이근접해있는경우에는, 섬은대부분대륙붕과경제수역경계획정시기준선으로서완전한효과를인정받는다. 또한당사국간합의에따라그러한효과를인정하는경우도있을것이다. 33 물론소도 ( 小島 ) 라할지라도해안에서 24해리이내에위치하는경우에는경계선획정을위한기점으로사용될수있다. 이탈리아와유고간의아드리아해에서의경계획정과핀란드와구소련간의핀란드만에서의경계획정, 우리나라남해안에서의직선기선등이그예다. 또한당사국들간의합의에따라서문제의수역에존재하는섬에완전한효과를인정하기로하는경우도있을수있다. 인도네시아와말레이시아는 1969년의협정에서경계선을가능한한주요영토의일반적방향을따르도록하면서도소도들을연결하는직선기선사이의중간선을경계선으로 문제의수역중앙부에위치하는섬으로양국간에영유권분쟁이있는섬 35 과, 폐쇄해나반폐쇄해같은좁은수역의중간선이나인접국간등거리선설정시그너머에위치하는조그만섬들은일반적으로경계선에대한효과가부정되어왔다. 또한이러한두가지경우에해당하건그렇지않건간에당사국간의합의에따라섬의효과를완전히무시하는경우도있다. 36 영유권분쟁의대상이되는대부분의섬들은육지경계선과해양이만나는지점부근이나해안에서멀리떨어져있는조그만섬들이다. 그렇기때문에아예무시하는경우도있는데 1980년코스타리카와파나마는해역의중간에있는섬들을아예무시하고경계선을획정하였다. 37 육지경계선과해양이만나는지점부근에위치하는섬들은등거리선방식에따라서경계획정을하는경우경계선에큰영향을미치게되는데, 이러한섬들은대부분그섬의영유권문제와관계없이자체의대륙붕이나경제수역을가지지못함은물론경계획정시아무런효과도가지지못한다. 38 또한해안에서멀리떨어져있는섬으로연안국사이에영유권분쟁이있는섬들도대부분영해는가질수있으나경제수역이나대륙붕은가지지 하기로하였으며, 북해에서노르웨이와영국, 영국과네덜란드, 덴마크와노르웨이도합의에따라일정한섬에경계획정에대한완전한효과를인정하였다. 34 그러나일방적인국내법상의조치에의해본토에서멀리떨어져고립되어있는조그만섬에경계획정을위한완전한효과를주장하는국가들이종종있는데, 이러한경우에는인근국가들과분쟁이발생할수있다. 예를들어영국은로칼 (Rockall) 섬을완전한기점으로삼아주변국가들과중간선방식에따라경계획정을하려다가아일랜드등의항의에 1997년이를공식적으로포기한바있다. 2) 섬이아무런효과도가지지못하는경우국가간의조약과국제재판소의판례에따를때, 양국의육지영토경계선부근이나해안에서멀리떨어져 33 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 C. R. Symmons, supra note 26, pp. 190~ 덴마크와캐나다는경계획정시한스섬 (Hans Island) 을무시하였는데, 그이유는이섬에대한영유권문제가있었기때문이다. 또한미국과캐나다는메인만경계획정사건을국제사법재판소에부탁하기로합의하면서, 마치아스실 (Machias Seal) 섬의남쪽에위치한점 (Point A) 으로부터의경계선을요구하였는데그이유도이섬과북암 (North Rock) 에대한영유권문제때문이었다 년아이티 쿠바협정에서미국의통치권하에있는나바사섬의존재를무시했다. 37 柳炳華, 1991, 앞의책, 229 쪽 년콜롬비아와아이티협정시모란트암초들 (Morant Cay) 을영해기준점으로인정하지않았다. 39 김병렬, 2010, 앞의글, 141~142 쪽. 못하며경계획정시아무런효과를가지지못한다. 폐쇄해나반폐쇄해와같은좁은수역중간부분이나그너머또는등거리선너머에위치하는섬들도그것이소도인때에는대부분대륙붕이나경제수역경계선에아무런영향을주지못한다. 39 3) 섬이부분적효과를갖는경우유엔해양법협약에섬의부분적효과를규정한내용은없다. 하지만많은국가간실행또는국제판례에서부분적효과를부여하고있다. 섬의크기나인구, 위치등을고려할때, 섬의경계선에대한효과를완전한것으로할수도없고완전히부인할수도없는경우에부분적효과를부여하고있는것이다. 즉본국영토 40 41
22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에근접해있으면서도섬의중요성에비추어완전한효과를인정하기에는형평상의문제가있는섬 40 과, 약간의주민이거주하는섬으로문제의수역중앙부에위치하는섬및상당수의주민들이거주하는중요한섬으로본국영토와는격리되어다른국가의영토가까이에위치하는섬들은대개경계획정시완전한효과보다는부분적인효과를갖는것으로처리되어왔다. 그리고이러한섬들의부분적효과는 반쪽효과 또는경계선을적정비율만큼이동시키거나 41 위요지 (enclave) 를설치하는방법등에따라경계선에반영되어왔다. 제한된효과를인정하는방식에따라경계획정을했던사례중에서국가간의합의에따른예로는사우디아라비아와이란, 인도네시아와말레이시아, 이탈리아와튀니지간의경계획정을들수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이란사이의수역에위치한카르그 (Kharg) 섬은 8제곱마일의면적을가진약간의주민들이살고있던고립된섬으로, 양국간의대륙붕협상시그효과가문제가되었다. 이란해안에서 17해리정도거리에위치한이섬은양국간의합의에따라서 반쪽효과 를가지게되었다. 즉이섬을완전한기점으로인정하여설정된선과이섬을무시하고설정한선의중간을지나는선을경계선으로한것이다. 인도네시아와말레이시아도 1969년남지나해에서양국간에대륙붕경계획정을하면서, 등거리선에큰영향을주게될나투나 (Natuna) 군도에완전한효과를주지않기로합의하였다. 합의에따라획정된경계선은이섬들에평균 4분의 3의가치를인정하기로하였다. 또한 1976년콜롬비아와파나마는암초들에대하여절반의효과를부여하였으며, 이탈리아와튀니지역시 1971년대륙붕경계획정에관한협정에서중간선에의해경계획정을하면서, 이탈리아소유인판텔레리아 (Pantelleria), 람페두사 (Lampedusa), 리노사 (Linosa), 람피온 (Lampione) 섬에평균 13해리의대륙붕을부여하였다. 그런데판텔레리아와람피온섬의튀니지영 년튀니지와리비아의대륙붕사 건에서국제사법재판소는케르켄나 (Kerkennah) 섬에 1/2 효과를부여하여경계선을이동시켰다 년의리비아와몰타대륙붕경계획정사건에서국제사법재판소는중간선에서몰타쪽으로 1/4만큼경계선을이동시켰다 (ICJ Reports, 1985, para.73.) 년의그린란드와노르웨이간의연마이엔 (Jan Mayen) 섬경계획정사건시국제사법재판소는경계선을중간선에서적정비율만큼얀마이엔섬으로이동시켜판결하였다 (ICJ Reports, 1993, para.94.) 토와의거리가각각 38해리와 60해리인것을감안할때 13해리는이들두섬의반쪽효과를평균한수치로이들섬도결국 반쪽효과 를인정받은것이다. 그밖에도섬의경계선에대한효과를절반으로한사례는매우많다. 대륙붕이나경제수역경계선에대한섬의효과를부분적으로만인정할때, 경계획정시사용되는방법중에 위요지 를설정해주는방법이있다, 이탈리아와유고슬라비아는 1969년아드리아해에서의경계획정에서유고의소도인펠라그루즈 (Pelagruz) 와카이올라 (Caiola) 를중간선획정에는사용하지않고, 섬주변에 12해리수역만을가질수있게하였다. 1976년캐나다는 200해리어업수역에관한법을제정하였는데, 대서양쪽의프랑스령인성피에르미켈론 (St. Pierre et Miquelon) 섬의영해는여기에포함되지않는다고하였다. 또한영 불대륙붕사건에서채널제도를기점으로인정해주지는않고주변에 12해리의위요지만을설치하였다. 42 4) 공동개발구역을설치하는방법섬이존재하는수역에대한국가간의이해관계를단순히 거리 라는단편적인기준이나 지형, 지질 과같은어떤한가지기준만으로는조정하기가힘든경우가있다. 이러한경우해저와상부수역에대한경계선을달리하는방법을사용할수도있지만, 43 최종적인경계선획정은유보한채잠정적인조치로공동개발구역을설치하여, 자원의탐사와개발을촉진하는방법도사용되고있다. 공동개발구역 (joint development zone) 이란생물 비생물자원의개발과탐사를위해두개이상의국가가공동으로관할권을행사하는수역이다. 국가간의합의에따라자원을공동개발하기위해수역을설치한예로는, 말레이시아와태국간의협정, 쿠웨이트와사우디아라비아 42 김병렬, 2010, 앞의글, 142~144 쪽. 43 유엔해양법상대륙붕과배타적경제수역의경계선을상이하게획정할수있다. 간협정, 우리나라와일본간의협정및아이슬란드와노르웨이간의협정을들수있다. 결론적으로어느합의에서는중간선획정시모든 42 43
23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도서가무시되기도하고, 다른합의에서는일부구간에서만도서가무시되기도했으며, 또다른합의에서는완전한기점으로이용되기도하였다. 또한일부합의에서는각도서가 12마일영해만을향유하도록조정되기도하였고, 어떤합의에서는중간선근처에위치한도서는 3마일영해만을향유토록하여경계선이다시조정되기도하였으며, 절반의효과만을도서에부여하기도했다. 44 호지슨은이와관련하여의미있는주장을하고있다. 그는계속하여인위적으로보강하지만않는다면법적의미의섬이될수있다고하였다. 46 각국의실행역시인공섬이나해저지형또는간출지에건설된등대등과관련하여영해를인정해주지않고있다. 최근의영 프대륙붕사건에서도영국의이러한입장은견지되었다. 47 물론영국이 1997년에로칼섬에대한섬의지위를포기한다고한적도 있지만조그만바위하나로한반도의두배정도의바다에대한관할권을 Ⅴ.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 상기한섬의정의에따르면이어도는현재의상태는물론개발을한다고해도국제법상의섬이될수없다. 이어도는육지화한다고하더라도해상의인공구조물에불과할뿐이다. 이어도와같은해저 (seabed) 나간출지 (low tide elevation) 위에건설된인공구조물을섬으로인정하여해양수역을가질수있도록할것인가하는문제는오랫동안의논란에도불구하고최종적으로해양수역을인정하지않는것으로법제화되었다. 45 따라서현행해양법상이어도를기점으로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경계를주장할수는없다. 하지만법제화에도불구하고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의 자연적으로형성된 (naturally formed) 것의의미에문제가생길수있다. 예를들어이어도 행사할수도있다는생각이들면바위라고하여쉽게포기하기는어려울것이다. 또한간출지라고하여무조건적으로그지위를인정받지못하는것도아니다. 역사적권원이존재하는경우에는간출지라고하더라도법적성격이문제가될수있다. 남태평양상의도서국가인통가가영유권을주장하고있는간출지미네르바환초는가장가까운거리에있는아타 (Ata) 섬에서 170해리나떨어져있지만주변국가들로부터역사적권원을인정받은바있다. 48 사정이이러하기때문에유엔해양법협약제121조 3항에서아무리암석에대하여배타적경제수역또는대륙붕을가질수없다고규정해놓았다고하지만중국이하이자오를 49 일본이도리시마 [ 鳥島 ] 를기점으로하는것을포기할것이라고생각하기는어렵다. 태평양상에있는오키노도리시마에콘크리트를부어인공섬을만들어놓고기점주장을 에해상구조물을건설하기위하여바다밑을굴착하고여기서나온토사물 46 R. D. Hodgson, supra note 37, p 하고있는일본이상당한크기 50 의암석인도리시마를 을해양에쌓아놓을경우일정한시간이지나면파도 47 C. R. Symmons, supra note 16, pp. 기점에서포기한다는것은상상하기어렵다. 실제로 와조류에의하여쌓아놓은토사더미가사라질수있다. 그런데이렇게밀려간토사가이어도근처의특정한지점에서모래톱을형성하였다고가정해보자. 이모래톱은분명히 자연적으로형성된 것이라고할수있다. 그렇다면이모래톱에영해를인정해줄수있을까? 이와관련하여아직까지뚜렷한학설은없다. 44 김현수, 2007, 국제해양법, 연경문화사, 247 쪽. 45 제60조 (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인공도서, 시설및구조물 ) 8 인공도서, 시설및구조물은도서의지위를갖지아니하며, 그자체의영해를갖지아니한다. 그리고그존재는영해, 배타적경제수역또는대륙붕의경계획정에영향을미치지아니한다. 34~ 이석용, 1988, 섬의국제법상지위, 국제법률경영연구원. 49 중국은영해기점 11번으로서산다오 [ 余山島 ; N E ] 를 12번으로하이자오 [ 海礁 ; N E ] 를선포하였다 m 2. 일본은제2 차어업협정을위한협상에서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했다. 그렇다면 2028년이전에제7 광구는물론현재중간수역으로획정되어있는수역을분할하기위한한 일간의협상시일본이도리시마를기점으로들고나올것은명약관화한일아닌가
24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Ⅵ. 이어도개발의필요성 이어도의경우자연적으로형성된것이라는데에는이견이없다. 이어도는화산활동에의해용출된마그마가응고되어형성된것으로수면아래 50m 정도의평탄한해저 ( 海底 ) 에서산의형태로돌출되어최고높이해저 4.6m를구성하고있다. 지질은응회암으로구성되어있다. 바닥에서대략 1,400 여m 가되던직경이수심 40m 정도에서갑자기 500m 정도로좁아졌다가수심 20m까지수직에가까운급경사를이루며, 수심 15m 지점에서다시직경 95m 정도로좁아져해저 4.6m 지점에서최고높이를형성하고있다. 따라서이어도는섬은고사하고암석도될수없다. 그렇다면왜이어도를개발하여인공섬을만들어야하는가. < 그림 2> 에서보는바와같이제7 광구의우측상단의땅콩처럼함몰된부분에일본의도리시마와단조군도 [ 男女群島 ] 가있다. 엄밀하게따지자면이들섬은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 3항의 민간거주또는독자적인경제생활을지속할수없는 암석이다. 그런데일본은이들섬을기점으로삼겠다고일관되게 (m) S < 그림 3> 이어도형태 4m 10m 42 m 1,41 m 출처 : 김병렬, 1997, 이어도를아십니까, 홍일문화, 10 쪽. ( 수심 m) 면적 2 0m 2 ( 수심 10m) 10,2 0m 2 ( 수심 20m) 1,0000m 2 ( 수심 0m) 1 0,0000m 2 ( 수심 40m) 0,0000m 2 ( 수심 4 m) 1,114,0000m 2 주장해왔으며, 한국은이를거부해왔다. 그결과로나타난것이이어도남부의중간수역이다. 즉중간수역의남쪽한계선은이를인정할수없다는한국의주장을반영한선이고북쪽은이를 100% 인정했을때를반영한선이다. 한일양국이이러한중간수역을영원히존속시킬의사가없거나해저대륙붕을공동개발할의사가없다면언젠가는이를분할하기위한협상을개시해야한다. 그런데어느때협상을개시하더라도일본은도리시마를기점으로하겠다는주장을포기하지않을것이다. 오히려현재보다더강하게주장하고나올것이다. 이때우리가내세울수있는카드가이어도인것이다. 이어도를인공섬으로개발한다면일본이암석인도리시마에대해 100% 효과를요구할경우우리도이어도에대해 30~50% 효과를요구할수있게되고, 결국일본섬들의효과를무시또는 0에가깝게낮출수있게될것이기때문이다. 김현수 양희철또한필자와같이일본이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할경우우리나라는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해야한다고하고있다. 51 중국또한하이자오를기점으로선포하고있다. 그런데한국의국립해양조사원은중국의이어도에대한기점이서산다오로변경되었다고하고있으며, 52 고충석교수또한동일한주장을하고있다. 53 그런데중국이기점 12 즉하이자오를영해기점에서제외했다는증거는 51 김현수 양희철, 2014, 동중국해이어도주변해양경계획정시활용가능한기점및기선에관한해양법적연구, 이어도연구 5, 87쪽. 52 고충석, 2014, 중 일영해기점및기선이슈와해양경계획정, 이어도연구 5, 31쪽. 53 고충석, 2014, 위의글, 30쪽 년 11월 7일, 이어도국내학술대회,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국제적연구및활용전문가워크샵, 주제발언. 55 유엔해양법협약제57조, 제76조 1항. 어디에도없다. 이것을어떻게생각해야할까? 이와관련하여강병철박사는하이자오가영해의기점일뿐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기점은아니라고주장하였는데 54 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이연안기선에서시작된다는법규정 55 과, 영해의기점과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기점을상이하게선포한나라가없다는국가실행을볼때이해하기힘들다. 즉중국역시하시라도하이자오를기점으로주장할가능성이있다
25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Ⅶ. 맺음말 이암초주변을매립하여제트기이착륙이가능한활주로도만들어해양 리조트를건설할계획까지세워놓고있다. 56 일본의도쿄에서서남쪽으로 1,740km 이상떨어진태평양상에 ( 북위 20도 25분, 동경 136도 05분 ) 오키노도리시마 [ 沖ノ鳥島 ] 라는작은암초가있다. 주변 100km 이내에어떠한섬도없는절해고도다. 1543년스페인의산후안 (Sanjuan) 호가발견하였고, 1931년에일본이영토로편입하였다. 1951년미일강화조약에따라오가사와라 [ 小笠原島 ] 제도가미국의신탁통치를받게되자함께신탁통치를받는것으로되었다가 1968년에일본으로귀속되었다. 현재일본은이섬을행정구역상도쿄도오가사와라촌 [ 小笠原村 ] 산하에두고있으면서, 해안법개정에따라 1989년 6월부터국가 ( 국토교통성하천국 ) 가직접관할하고있다. 이섬은타원형의고리모양산호초로간조시에동서약 4.5km, 남북 1.7km( 섬둘레 11km, 산호초내수심 3~5m) 가되지만만조시에는큰것이가로 2m, 세로 5m, 높이 70cm 정도되는아주작은암초 2개 ( 東小島, 西小島 ) 만드러나고있다. 일본은 1987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1월 4일까지바위주변에철제블록을이용, 지름 50m의원형벽을쌓아올리고그내부에콘크리트를부어파도에깎이는것을막는조치를하였다. 이공사와사후관리를위해일본정부는약 300억엔을투입한것으로알려지고있다. 일본은더나아가 56 구글검색 ( ). 일본수산청은주변에산호초를양식하여섬을보호한다는계획이다. 일본해양생태연구재단은 18년간의연구끝에오키노도리시마의주변에서산호알 20만 ~30 만개를채취해수조에서키운후여름에섬주변에옮겨심어섬을보호할계획이다. 일본은 1977년에 12해리의영해를선포하였다. 그리고최근이섬을기점으로 200해리의배타적경제수역을표시하는지도를작성하여은근슬쩍세계에배포하면서다른나라의눈치를보고있다. 일본의이러한태도에한국과중국만오키노도리시마가단지바위에불과하기때문에국제해양법상배타적경제수역을가질수없다고이의를제기하였을뿐다른나라들은침묵을지키고있다 양희철외, 2009, 국제해양질서의변화 와동북아해양정책, 한국해양연구원, 143 쪽. 한편중국은 한국의마라도와비교하여모두먼거 < 그림 4> 오키노도리시마 출처 : < 그림 5> 콘크리트로보강한오키노도리시마 출처 :
26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竹島 < 그림 6> 일본이주장하는배타적경제수역 출처 : eez-of-japan 리에있기때문에굳이암초인 하이자오 를기점으로삼는것이그다지큰의미를갖지못하는것으로판단한것으로보인다 58 고했는데정작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경계협상시에도그럴것인지는알수없다. 따라서우리나라는이어도를인공섬으로개발해야만하는것이다. 수중암초에인공섬을개발하는것이나일본처럼해상의암초에인공섬을개발하는것이나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 3항에따라대륙붕이나배타적경제수역을갖지못하는것은마찬가지다. 그런데일본은오키노도리시마라는암초에인공섬을개발한후제121 조 3항을무시하는행위를하고있으며, 한국과어업협정을협상할때는암석에불과한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했다. 물론중국이하이자오를기점으로주장하거나일본이남해상에서도리시마를기점으로하겠다고할때우리나라는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 3항에따르면암석을기점으로할수없다고주장하면된다. 하지만중국이나일본이이에얼마나동의해줄것인지는알수가없다. 동의해주지않는다고하더라도현재로서는다른방법이없다. 하지만우리 이자오를또는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한다면우리는인공섬인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하겠다고할수있을것이다. 이러한주장은굳이이어도를기점으로인정해달라고하는주장이라기보다는하이자오나도리시마의효과를낮추기위한주장이라고할수있다. 유엔해양법상완벽한섬인데도경계선획정시섬으로서의효과를부분적으로인정받거나아예인정받지못한섬들이있다는것을앞에서살펴보았다. 그런데섬도아닌암석을중국이나일본이기점으로주장할때현재로서는유엔해양법상의규정들을제외하고는우리나라가맞대응할적절한수단이없다. 따라서하이자오나도리시마의효과를낮추기위한가장좋은방법은현재로서는이어도를개발하는방법뿐이다. 그래도하이자오나도리시마는바다위로올라온암초이기때문에이어도와는비교할수가없다고한다면이는패배주의자의변명일뿐이다. 나라가이어도를인공섬으로개발할경우너희가하 58 고충석, 2014, 앞의글, 30 쪽
27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국문초록이어도는동경 125도 10분 58초, 북위 32도 7분 31초에위치한수중암초다. 이이어도가위치한해역은한국과중국, 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또는대륙붕주장이중첩되는수역이기때문에한국이이어도에과학기지를건설하자중국이강하게항의하는등예민하게반응하고있다. 일반적으로섬은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경계획정시완전한효과를갖는경우도있고부분적인효과를갖는경우도있으며, 전혀효과를갖지못하는경우도있다. 섬의면적이매우넓어서대륙의속성을모두갖추고있거나섬이본토에근접해있는경우에는완전한효과를인정받을수있다. 하지만본국영토에근접해있으면서도섬의중요성에비추어완전한효과를인정하기에는형평상의문제가있는섬과약간의주민이거주하는섬으로문제가되는수역의중앙부에위치하는섬또는상당수의주민들이거주하는중요한섬으로본국영토와이격되어다른국가의영토가까이에위치하는섬들은 반쪽효과 또는경계선을적정비율만큼이동시키거나 위요지 를설치하는방법등에따라경계선에반영해왔다. 또한양국의육지영토경계선부근이나해안에서멀리떨어져문제의수역중앙부에위치하는섬으로양국간에영유권분쟁이있는섬과폐쇄해나반폐쇄해같은좁은수역의중간선이나인접국간등거리선설정시그너머에위치하는조그만섬들은경계선에대한효과를인정받지못하는경우가많다. 하지만모든국가들은자기들이영유권을행사하고있는모든섬이나암석들에대해일단은효과를인정받고싶어한다. 우리나라는서해와남해에서는중국과배타적경제수역또는대륙붕의경계선을획정해야하고, 동해와남해에서는일본과경계선을획정해야하는문제가있다. 특히남해에서는중국과일본모두와경계선을획정해야하는문제를가지고있다. 그런데중국은자연적연장이론에따른대륙붕경계를주장하고있으며, 일본은중간선원칙에따른대륙붕경계를주장하고있다. 배타적경제수역과관련해서중국은해안선길이, 인구등을추가적으로주장하고있다. 현재까지확인된바로는중국의경우서산다오 [ 余山島 ] 와하이자오 [ 海礁 ] 를일본은도리시마 [ 鳥島 ] 를기점으로주장하고있는것으로알려지고있다. 물론이어도는중국의서산다오나일본의도리시마보다우리나라의마라도에가깝다. 하지만일본은 2차어업협정에서이어도상부수역을우리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인정했지만중국은아직까지이를인정하지않고있다. 그런데 2차어업협정에서일본은이어도상부수역은우리나라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인정했지만제7 광구에대해서는상부수역의 80% 를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인정받았고나머지 20% 도중간수역으로설정했다. 이제내년부터중국과해양경계를획정하기위한협상을시작하고, 일본과도 7광구공동개발협정의시한이만료되는 2028년이전에다시대륙붕과 7광구상부수역에설정된중간수역을분할하기위한협상을벌여야한다. 중국은암석인하이자오를기점으로하겠다고선포한바있으며, 일본은 2차어업협정협상시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했다. 결과적으로중국이되었든일본이되었든우리나라와합의를이루지못하여중간수역을설정할수밖에없었다. 이제어느때고다시협상이이루어지게되면하이자오또는도리시마의지위를두고논쟁이벌어질수밖에없다. 이때유엔해양법협약제121 조 3항에따라하이자오와도리시마는기점이될수없다는주장만으로는중국이나일본이물러서지않을것이다. 결국중국이나일본을물러서게하기위해서는이어도를인공섬으로개발하는수밖에없다. 중국과일본이하이자오또는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하면우리나라는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하면된다. 혹자는하이자오나도리시마는해상에돌출되어있는암석이고이어도는수중암초이기때문에해양법상엄연히다르다고반박하기도한다. 하지만분명한것은하이자오나도리시마역시해양법상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기점으로삼을수없는암석이라는사실이다. 중국이나일본이이 52 53
2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들을기점으로주장하지만않는다면우리나라역시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할필요가없다. 아니주장해서도안된다. 하지만중국이나일본이주장한다면우리의국익을위해서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해야만한다. 이것은이어도를기점으로인정받기보다는하이자오나도리시마의섬으로서의효과를낮추기위해우리가취할수있는유일한카드인것이다. 이경우인공섬으로개발해놓지않으면기점으로주장할수가없기때문에시급히인공섬으로개발할필요가있다. 주제어 이어도, 남부대륙붕, 한일어업협정, 하이자오, 단조군도, 도리시마 ABSTRACT Status of Ieodo according to Maritime Law and the Need to Develop Ieodo Kim, Byungryull Professor, Korea National Defense University At an east longitude of and a north latitude of , Ieodo is a cay under water situated between Korea, China, and Japan. It is 287 kilometers away from Seosantao of China, 276 kilometers away from Torishima of Japan and 149 kilometers away from Marado of Korea. Based on median line delimitation, Ieodo belongs to Korea. The same conclusion can be drawn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natural prolongation. Moreover, in 2003, Korea built an ocean science base at Ieodo. When delimiting exclusive economic zones (EEZ) or continental shelves, an island can be given either full effect, half-effect or similar other effects depending on its size and location. However, small islets or rocks can only be given territorial waters, but not exclusive economic zones or continental shelves. Furthermore, artificial islands cannot be given territorial waters, although those in EEZs are allowed to establish a safety zone not exceeding a distance of 500 meters around them. Since Ieodo is neither an island nor a rock, it cannot possess an EEZ, continental shelf or territorial waters according to the 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This means that even though an artificial island was to be built on it, it would still not be able to have territorial waters. Nevertheless, some states are nowadays using small islets or rocks in their argument for EEZs or continental shelves. China has been using Seosantao and Haijao as base points, while Japan had been doing so with Torishima and Danjo Gunto. Torishima and Danjo Gunto are not islands, but rocks that cannot be used as base points for EEZs or continental shelves. Japan has been particularly using an artificial island named Okinotorishima in the Pacific Ocean to argue for an EEZ and continental shelf. China is alone in protesting against Japan s practice. As for Korea, although it does not agree with Japan s position, it lacks the appropriate leverage in order to go against Japanese practice. Therefore, Ieodo seems to be the best leverage available. If an artificial island can be constructed on Ieodo, then it could be used to negotiate for the status of Ieodo and minimize the effect Torishima or Danjo Gunto might be given. Some may contend for Torishima or Danjo Gunto for being above water, to which one might question what the difference is between committing a minor versus major violation of the UN 54 55
29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의해양법상지위와개발필요성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If a major violation were to be used to oppose a minor violation, Ieodo would be the best leverage that could be used against Japan s violation. Keywords Ieodo, Southern Continental Shelf, Fishery Agreement between Korea and Japan, Haijao, Danjo Gunto, Torishima 참고문헌 [ 국문단행본 ] 김병렬, 1997, 이어도를아십니까, 홍일문화. 양희철외, 2009, 국제해양질서의변화와동북아해양정책, 한국해양연구원. 유병화, 1991, 동북아지역과해양법, 진성사. 이석용, 1988, 섬의국제법상지위, 국제법률경영연구원. 이석용외, 2006, 국제해양분쟁사례연구종합 Ⅴ, 해양수산부. [ 영문단행본 ] Symmons, C. R., 1979, The Maritime Zones of Islands in International Law, Dordercht: Martinus Nijhoff. [ 영문논문 ] Blecher, M. D., 1979, Equitable Delimination of Continental Shelf, AJIL, Vol. 73. Hodgson, R. D., 1972, Island: Normal and Special Circumstances, in J. K. Gamble and G. Pontecorvo(eds.), The Law of the Sea: The Emerging Regime of the Oceans, Pensacola: Ballinger Publishing Co. Takeyama, Masajuki, 1983, Japan s Foreign Negatiations over Offshore Petroleum, Development, Robert L. Friedheim(ed.), Japan and New Ocean Regime, New York: Westview Press. [ 국문논문 ] 고충석, 2014, 중 일영해기점및기선이슈와해양경계획정 : 해양주권수호를위한대국민이해증진방안, 이어도연구 5권. 김병렬, 2010, 이어도주변해역의해양분쟁요인과대책, 이어도연구 창간호. 김현수 양희철, 2014, 동중국해이어도주변해양경계획정시활용가능한기점및기선에관한해양법적연구, 이어도연구 5권. 조성윤, 2014, 일본의소코트라락 (Socotra Rock) 인공섬조성계획, 이어도연구 5권. 홍성육, 1982, 1977년영국과불란서간의대륙붕경계분쟁에관한중재판결, 판례연구 제1집, 고려대학교법학연구소
30 특집주제영토해양연구 Vol. 8 이어도좌담회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일자 :2014 년 10 월 24 일진행 : 이명찬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참석 : 김병렬국방대학교교수서영득한국항공대학교초빙교수, 변호사송성대제주대학교명예교수양희철한국해양과학기술원책임연구원장소 :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회의실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에서진행된이어도좌담회장면 이명찬 : 이번호특집주제를 이어도 로정하고그주제에대한좌담회를준비하였습니다. 이어도에대해서 12가지질문을김병렬교수님이제기해주셨는데, 꼭이것에구애될필요는없습니다. 12가지질문에대해서이야기하셔도좋고, 하시다가떠오르는사항이있으면말씀해주셔도좋습니다. 그러면시작하도록하지요. 작년에중국이이어도상공에방공식별구역을정해서상당히시끄러웠는데, 이부분에대해서우리가어떻게봐야할지서영득변호사님께서얘기해주셨으면좋겠습니다. 서영득 : 방공식별구역이라는것은아디즈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라고해서군사 안보상의목적으로영공외각의일정지역상공에설치되어, 영공방위를위하여항적의탐지및식별과전술항공통제임무를수행하는기준이되는공역을말합니다. 이것은군사안보상의목적으로영공외곽의일정지역상공에설정되어영공방위를위해서크게두가지기능을하는것이죠. 즉영공외곽의일정구역의상공에서항적을탐지하고식별하는기능과전술항공통제임무를수행하는역할을하는것입니다. 현재공역에대해 서는시카고협약에서규율하고있고, 그협약에따라서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가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시카고협약제12 조에의거한부속서 2에 rules of the Air 를규정하여, 공해에관한입법권을개별적체약국들이행사하는것을배제하고 ICAO 외에어떠한국가도공해상공을비행하는외국항공기에대하여자국이일방적으로규정한규칙에따를것을요구할수없다고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공해상공에일방적으로설정된방공식별구역은국제법위반이되어효력을인정할수없다는결론이됩니다. 그러나미식별된항공기에의한잠재적위협에대처하기위해 20개국이상이방공식별구역을운용하고있으므로오랜시간묵인한것이아니냐라는견해가있으며유엔헌장상자위권의발현이라는등의근거로국제적으로하나의질서를형성하고있다고보아야합니다. 방공식별구역이언제부터비롯됐냐고한다면, 여러학자들에따라서조금씩다르지만, 저는진주만습격을그기원으로보고있습니다. 1941년도에일본군이진주만을습격하면서자국비행기의몇배가되는미국비행기를폭파시키는데, 미국이적국의비행기들을레이더에서보고도아군기 58 59
31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로오인해서기습당한것을기화로영공외곽에다가어느일정선에방공식별을할수있는구간을정하자고하는것이논의가되었고, 국내기구를만들었다가 1950년 9월에미국에서세계최초로방공식별구역을만듭니다. 그리고 1951년도에와서우리나라에서도전쟁중중공기가자꾸내려오니까중공기에대한억제수단으로방공식별구역을설정하였고, 그로인해한국의방공식별구역이미국의태평양사령부로인해서 1951년도에설정된것입니다. 지난해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발표하면서우리의이어도가포함되었는데, 이어도에대하여는이미일본의방공식별구역에포함되어있었으므로중국에의해거론되는게새삼스러운것은아닙니다. 이어도는역사적으로나지리적여건뿐만아니라우리문학의소재로도익숙한대상이지만중국의입장에서는자국안보상중요한전략적요충지가될수있어우리보다더큰관심을가질수있습니다. 사실그동안이어도에대해중국은우리보다여유가없었기때문에그사이우리가해양과학기지도설치했고평화적으로운용하면서좀더앞서나간다행스러운면이없잖아있습니다. 그런데중국의방공식별구역설정이이어도를포함시키려했다기보다는근본적으로일본과분쟁이있는센카쿠 ( 댜오위다오 ) 제도를염두에두고한것이라고봅니다. 중국은방공식별구역을설정함에있어그이론적근거로자위권과배타적경제수역 (EEZ) 등을거론하고있습니다. 그들이배타적경제수역에어느정도부합하게구역을설정하다보니이어도가포함될수밖에없었지않나생각합니다. 아쉽게도우리와중국간에는아직까지해양경계획정이합의되지않아, 이어도문제는방공식별구역의논의보다는향후전개될경계획정의협상에크게달려있다고봅니다. 앞으로한중간에이어도를어떻게해결할것인가는어려운문제입니다. 중국은중국나름대로가치를두고있고, 우리는우리나름대로가치를두고있을때, 이것을꼭분쟁내지는갈등요인으로보지말고, 이어도를지금은영토적인입장에서중국사람들이나한국사람들이나너무급급한면이있는데좀더평화스럽게이용할수있는방법을모색해볼필요가있다고생각합니다. 김병렬 : 제가조금보충하자면, 방어를하는데영공만가지고는영토가위험하다는것이죠. 왜냐하면항공기는속도가빠르기때문에영토에들어온것을가지고적기냐아군기냐하면이미늦습니다. 그러니까영공밖에다선을그려서선안으로들어오게되면이게적기냐아군기냐를식별하는것이죠. 그래서이름자체가방공식별구역입니다. 영토와영해와는전혀관계없이단순히비행물체에대한것을확인하기위해서그려놓은선이방공식별구역입니다. 이명찬 : 그럼반드시양국간에겹치는부분이있을수밖에없는거네요. 서영득 : 겹치는부분이상당히많습니다. 국제법의흐름은최초육지를기반으로했다가다음에해양을기반으로했고, 그후영공이나나아가서는우주를규율해야하는식으로발전해왔습니다. 이런과정에서육지를벗어난해양에대해서도오랫동안분규가있었지않습니까. 그런오랜분규가유엔해양법협약을기점으로해서국제적으로어느정도합의가이루어졌던것이죠. 그러나영공에대해서는아직까지도각나라의기술차가워낙현격할뿐만아니라영공을눈여겨볼정도는소수의강대국을빼고는아직많지않기때문에해양법과같은확립된국제적룰이없는것이죠. 그런룰이없는과정에서방공식별구역이라는것은마치접속수역비슷한, 영해를보호하기위해밖에설정된수역을하나더정했던논리로발전한것이죠. 미국같은경우는 310해리까지설정되어있는가하면이란같은나라는 FIR(Flight Information Region) 이라는비행정보구역과일치시켜버린경우도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방공식별구역을포함한영공을규율하는국제적합의를도출할논의가필요함을저는늘지적해왔습니다. 이명찬 : 그렇다면미국하고일본은왜그렇게강하게반발했을까요? 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그은것에대해서미국이강하게반발할권리가있나요? 60 61
32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서영득 : 그러니까방공식별구역이라는것이확립된국제법논리도아니기때문에중국에대해서강하게비난할수는없고, 단지미국이비난했던것은, 중첩되는구역이생기면후발주자로서서로협의를해야되는데왜협의없이일방적으로선포하느냐, 그게가장큰논거였죠. 또, 일방적으로공역을설정할수없도록한시카고협약의정신에어긋나는것이아니냐는것도또다른근거로주장했습니다. 그런데미국이자국이나한국에방공식별구역을설정할때중국에알린적은없죠. 왜냐하면한국전당시에는적성국이었기때문에알린적이없었고일본도마찬가지로수차례걸쳐서방공식별구역을확장할때도주변국과협의하지않았습니다. 시카고협약또한민간항공기를대상으로한다는점에서약점이있죠. 그러나이번에중국의경우는방공식별구역이중첩되고있으며후발주자로서설정한다고하면적어도이것에대해서는주변국하고협의를하는것이국제법적인정신에맞는것이죠. 송성대 : 그러니까미국이왜그렇게민감한반응을보이는가하면, 비행기가식별구역에들어올때통보없이들어오면마음만먹으면격추시킬수있다는거에요. 문제는여기에있습니다. 극단적으로얘기를하면국제법에강제통제하는것도없고중국이마음만먹으면우리비행기가이어도를가는데사전에통보없이가면비행기를격추시켜버릴수있다는거죠. 그래서민감한반응을보이는거에요. 김병렬 : 방곡식별구역에서격추를시키게되면문제가많고요. 조준하고있다가영공선을통과하는순간에요격할수가있다는거죠. 서영득 : 방공식별구역은기본적으로식별을위한것이기때문에식별에응하지아니한경우에요격을할수있다는겁니다. 요격이라는것은무장한상태에서적의비행기에격추시킬수있는자세를보여주는것이죠. 중국은오해를살수있게방공식별구역설정을발표하면서방공식별구역을침범하면경우에따라격추할수있다라는발언을했습니다. 실제로그렇게된 다면굉장히큰국제법적인문제가생기게되겠지요. 사실중국이오버한것이고, 그렇게할수는없죠. 방공식별구역을설정해놓으면반드시비행계획서를통보해주게되어있습니다. 그에따라사전에비행기가노출이되니까요. 그게문제가되지요. 이명찬 : 결국우리가방공식별구역에대해서논의하는이유가이어도가거기포함되어있기때문인데, 이어도가어떤섬인지그게왜중요한지송성대선생님께서설명해주시지요. 송성대 : 네. 지금방공식별구역에대해말씀들나누셨습니다만, 이어도는한중일삼국이다겹치는부분에있거든요. 그뜻은이어도의위치가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의세지리적인삼각형의가운데에있기때문에모두이해관계가있다는뜻입니다. 그래서역사를거슬러올라가면제주도의탐라시대에해상무역을했던사람들이중국을가게되면반드시이어도항로를거쳐야되고, 중국역시일본을가려면이어도를거쳐서가야되고, 역으로일본이중국을갈때도이어도를거쳐서가야되고, 이렇게삼국의교차점에있기때문에상당히중요한위치죠. 오늘날군사적으로얘기한다면이어도에레이더하나설치해놓으면중국대륙에서비행기가뜨고내리는것을환하게다볼수가있습니다. 지금위치가삼각형의가운데있지만중국의영해기점이되는즉, 서산다오라는섬에서는 287km떨어져있고, 우리나라마라도에서는 149km 떨어져있어서, 해리로는마라도에서 81해리, 중국하고는 155해리, 그래서 236해리밖에안되죠. 중국하고우리가 400해리가넘었으면문제가없는데, 400해리가안되기때문에관할권문제가되고있죠. 그래서군사적인문제가있고, 지금우리나라에들어오는수입품의거의 98% 가이어도를통해서들어오는데이것이잠겨버리게되면우리나라국민들의생존이무너지게된다는것이죠. 그만큼지정학적으로중요하고, 그밑으로해저자원인석유, 가스등이비밀리에얘기가되고있는데, 발표되는것들은확실한것 62 63
33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은아닙니다. 민감한분야이기때문에정확하게밝혀지지는않고있습니다만, 해저자원들이무궁무진할정도로있다고하는데, 이런면에서엄청난중요성을가지고있고, 만약가능성은없겠지만이것이섬으로인정받게끔인공시설을한다면 40만 km 2 의해양영토를가질수있죠. 엄청난것이죠. 일본땅덩어리만큼이거든요. 지금우리나라의해양면적이 44만 km 2 거든요. 육지면적의약 4.5 배되는데, 섬하나가지면 40만 km 2 의면적을가질수있으니까, 이어도의중요성은이만저만한것이아닙니다. 이런면에서우리가무시할수가없는것이죠. 이명찬 : 그러면, 양희철박사님, 유엔해양법협약이우리가대화를나눈이것과관련하여어떤의미가있는것인지설명해주시기바랍니다. 양희철 : 유엔해양법협약에서의이어도의미를말씀드리기전에송교수님께서말씀하셨던것에추가해서이어도의가치부분을조금더말씀드릴필요가있다고봅니다. 먼저이어도에관한사안은국제법적측면에서객관적으로볼사안들이몇가지있습니다. 첫번째는사실이어도가인공섬이되더라도기점으로의가치는사실상없습니다. 해양경계획정이라는측면에서이어도가인공섬이되었다고해서관할권을창출할수있는것은아닙니다. 따라서법적측면에서이어도자체를볼때는해양관할권을창출혹은확보하기위한중요한의미를갖는다는주장은사실은법적근거를가지고있지않습니다. 다만이어도, 그리고이어도주변수역이갖는가치가무엇인가에대해서의논해봐야할것같습니다. 아까우리무역량의대다수가이주변수역을통과하고있다는점을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그무역량의 98% 라는수치는이른바석유가스자원수송로라는점에서그렇고, 무역량같은경우는미주노선도있고일본노선도있기때문에수치는조금낮아집니다. 또이어도같은경우에는초반에서변호사님께서이야기하셨는데, 우리보다는사실중국에게동북아에서의지역패 권확보와국가안보적측면에서훨씬중요성이더크다고봐야죠. 실제중국에서대양으로빠져나가는대양진출노선이한 9개정도되는데, 한개가북한의나진선봉에설정된것말고는그모든노선이이어도주변에서대만해역, 남중국해역을통해서인도양과태평양으로빠지는노선입니다. 이러한대양진출교통로는중국이왜이어도에대해서주기적으로관심을갖고, 왜이어도주변수역이중국의핵심해역에해당하는가를이해하는중요한요소가됩니다. 해양관할권혹은해양경계획정이라는측면에서사실은이어도가한국의관할수역에들어갈수도있다는것에대해서는논리적인이해를하시는중국전문가들은굉장히많습니다. 다만그구도가중국에유리한구도인가, 현상을변경시키면서까지경계를획정하여야하는가, 한국의해역에대한군사적이용이현재와같은비교적합리적인구도를유지할것인가등의문제를염려하는것으로해석됩니다. 즉, 이러한동북아의환경적측면을고려하다보니, 중국입장에서이어도에대해서는명확한경계획정보다는현재와같은현상유지가보다자국의이익에부합하게되는것이죠. 예를들어, 송교수님이말씀하셨다시피이어도과학기지를어떻게활용할것인가의문제에따라중국입장에서는중국측해상활동이상당히노출된다는위험성등이중국에서염려하는대표적인요소로판단됩니다. 결국, 이어도를바라볼때중요한시각은이어도에국한되어해석하기보다는이어도와이어도주변수역이동북아에미치는해양질서적인측면에서해석을해야할것같습니다. 또하나는이어도를바라보는언론매체의보도형태, 그리고이어도를둘러싼전문가들의해석이국민정서를형성하는중요한요소가된다는점에서최소한사실관계에대하여는객관성을유지할필요가있다고생각합니다. 이어도는앞에서언급한바와같이, 이른바해양관할권창출의관점에서접근할수는없으나, 여전히우리가관할하는해역에대한이해와과학적관리기반을확보하는데중요한역할을하고있습니다. 즉, 이어도와이어도주변수역에대한관심과이해는절대적으로필요하면서도법적해석을곡해해서문제를불필요하게확대하는것은지양해야합니다. 예를들 64 65
34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어, 이어도과학기지에서는매년다양한해양과학에관한자료를양산합니다. 필요한경우, 관련데이터를주변국에배포 확산함으로써지역해에대한공동의이해를높이고자노력하고있습니다. 이는이어도과학기지를통한정보의확산이이어도주변수역에대한우리나라의관할을분명하게하는작업이면서, 동시에과학적결과의국제적성과확산으로대한민국의국격을제고하는성과로이어집니다. 이는가장논쟁이되는해양문제를평화적이고조용한방법으로해결하는접근법, 즉해양과학기술이가지는장점이자강력한무기로평가됩니다. 이명찬 : 그렇다면현재이어도는바다밑에있는데여기다가콘크리트공사를해서지상으로올리지않는한, 현재로서는주변수역에대한주장에조금문제가있는것아닌가요. 양희철 : 아닙니다. 이어도의원형은수중암초입니다. 이에대해서 2006년한중간이어도관련갈등이첨예하게대립되었을때, 외교적채널에서상호인식을같이한바있습니다. 즉, 이어도는수중암초이기때문에주권적개념의영토문제가아니며, 해양경계획정에서아무런법적효과를가지지않는다는것이죠. 현재이어도에는해양과학기지가들어서있는데원래의원형이수중암초이기때문에여기에어떤구조물을추가해서수면위로끌어내든, 아니면인공섬으로완벽하게만들든그성질은여전히수중암초입니다. 따라서유엔해양법협약상관할권을창출하는법적인효과는없다고보아야합니다. 결국, 이어도를바라볼때는관할권확보라는측면에서바라보기보다는이어도의주변수역이우리에게주는해양적인가치, 그측면에서접근하는것이훨씬객관적이지않을까합니다. 이명찬 : 일본의오키노도리시마 [ 沖ノ鳥島 ] 관련지도를보면조그마한암초에다가시멘트건조물을만들어놓고원을둘러놓은걸보면어마어마하거든요. 지금우리도똑같이이어도에대해서일본이주장하듯이하면좋겠지 만그게지금의미가없다고말씀하시니. 양희철 : 그것은두지형물이가지는법적성질이다르기때문입니다. 이어도같은경우는원래형상이수중암초이기때문에관할권창출의미가없다는말이고, 오키노도리시마의경우에는태평양한가운데있음에도불구하고수중암초가아니라수면위로올라와있는암초입니다. 유엔해양법협약은제121 조를통해 섬 과 암석 을구분하고있습니다. 양자의차이는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을가질수있는가의문제입니다. 단, 이어도는섬혹은암석의범주가아닌 수중암초 라는점에서유엔해양법협약이규정하는관할권창출의법적격성을확보하고있지않습니다. 이명찬 : 분명한차이는오키노도리시마는위로일단올라온것이고, 이어도는수중암초이다, 그차이군요. 양희철 : 그렇습니다. 1980년대에미국의반다이크 (Van Dyke) 교수는오키노도리시마의현상을묘사할때딱킹사이즈침대크기밖에안되는암초를가지고관할권을확충하려고한다고굉장히직접적인언급을신문에기고했습니다. 오키노도리시마의문제는일본에귀속된지형물이라는점에서영유권등의주권문제가발생하지는않습니다. 다만, 일본이오키노도리시마를근거로해서 12해리뿐만아니라, 200해리배타적경제수역그리고 200해리외측의대륙붕을연장하겠다는것에대하여는국제사회가강력하게반발하고있습니다. 대표적인반대국가가우리나라와중국입니다. 우리나라와중국은오키노도리시마가암석이라는점에서영해만가질뿐이지, 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은가질수없다는입장입니다. 일본은 2008년 UN 대륙붕한계위원회에 200해리외측대륙붕연장문건을제출하였는데, 이중오키노도리시마를근거로한 200해리외측대륙붕연장정보가포함되어있습니다. 일본의문건은 UN 대륙붕한계위원회에서심사하였지만, 오키노도리시마를근거로한대륙붕지역에대하여는판단 66 67
35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을유보하였습니다. 결국일본은초기신청하였던약 74만 7천km 2 의연장대상지역중약 31만km 2 만인정받았습니다. 물론일본이 UN 대륙붕한계위원회의결정을그대로수긍할것으로보여지지는않습니다. 연장된부분에대하여는국내법정비를통해연장이결정되었고, 기타유보된해역에대한추가준비작업도준비중에있습니다. 중요한것은우리나라가왜일본의오키노도리시마에기반한대륙붕연장을반대하였는가입니다. 해당해역은태평양에위치하면서도주변에다른국가혹은지형물이없기때문에, 섬 으로해석될경우약 44만 km 2 의면적이창출되게됩니다. 그러나오키노도리시마는명백히 섬 이아닌 암석 으로해석하는게타당하고, 이는국제사회의공동자산인심해저, 즉 인류공동유산 을침해할수있다는측면에서인류공동의이익이기도합니다. 또다른측면에서오키노도리시마주변해역에는공해상어족자원과심해저광물자원이상당량분포하고있습니다. 우리나라입장에서는일본의관할권확대가어족자원접근권과심해저자원접근에대한기회를차단할수있다는점에서중요한이해관계가있습니다. 또한오키노도리시마가 200해리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을가질경우그주변수역이사실상연안국에의해봉쇄되는현상이발생합니다. 이는해상에서의활동에상당한제약이될수있습니다. 이는중국이특히오키노도리시마에대한일본의해석과접근을저지하고자했던중요한이유이기도합니다. 즉, 중국입장에서일본의오키노도리시마가섬으로서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을갖게되면사실상태평양이라는대양에서활동할수있는공간의상실을의미한다는점에서국가안전과연계된문제이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와중국이일본의오키노도리시마를대상으로이의를제기한것은이오키노도리시마가해양관할권을창출할수없다는의미가아니라, 오키노도리시마는암초이기때문에영해는갖는데 200해리배타적경제수역과대륙붕을갖지못한다는측면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일본이이암초를근거로 200해리를선언하거나 200해리이후의대륙붕을확보하려는노력은법적의미가없다는측면 에서이의제기를했던것이에요. 그래서이어도의지형과오키노도리시마의법적성질은다릅니다. 서영득 : 제가하나더보충을드리면, 지금이어도에해양기지를만든것에대해서는배타적경제수역에서는인공섬이든암초를개발해서인공적으로만드는것이든해양법상가능하도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만일에우리의이어도근처에중국이중국에가까운암초를개발해서자기들이인공적으로우리부표처럼해양기지를만든다면그자체가위법한것은아니라는것이죠. 그러나배타적경제수역에있는암초에만든인공섬이독자적인관할권을가지지는못한다는것이죠. 그리고아까송교수님이말씀하셨듯이배타적경제수역은 200해리로한다고되어있지만, 그것이중첩될경우에는어떻게하느냐에대해서해양법에구체적이고명확한법원칙이없고, 연안국끼리협약에의해서평화스럽게해결해야하는근본원칙을고수할수밖에없고, 아쉽게도한중간에는협약이아직완성이안됐다는것이죠. 논의가계속되는중이고. 또어떤분들은이어도가우리나라에더가깝기때문에우리관할이되야되는것아니냐고논리를펴는데국제법적으로는반드시그렇지않다는것이죠. 그것은합의가안되면아직까지미합의된분규지역인것이고, 그것이가깝다안가깝다를가지고판단할것이아닙니다. 다만우리로서는거리상가까운것이유리하니까그런이론을주장하는것이지요. 이명찬 : 유엔해양법협약에는그런것이아직규정되어있지않다는얘기입니까? 김병렬 : 아니요. 해양법협약에영해의경우는분명하게규정되어있습니다. 영해는중간선으로하는것으로영해와관련된조항에규정되어있고, 그다음에배타적인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경우에는중간선으로하게되면여러가지불편한사항이나올수가있습니다. 그래서형평한방법으로하 68 69
36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도록해양법에규정되어있습니다. 형평한방법은사안마다다를수가있습니다. 그래서일반적으로형평한방법이라는것은, 중간으로자르는것이가장좋죠. 그런데문제는대륙붕같은경우에어느쪽에서발달돼서내려왔느냐도중요합니다. 그래서과거에는이것을중심으로국제사법재판소같은데서도획정을하고그랬습니다. 그런데최근에는이방법이약간퇴조되고, 지금은형평의원칙이라는것이여러가지가됩니다. 지금도중간선이대개형평의원칙이지만어느쪽의해안선이더기냐도고려합니다. 그래서옛날같으면중간으로돼있던것을해안선이조금더긴쪽에조금더주는식으로하고있습니다. 그래서사실이어도같은경우에는경계선을어떻게자를것이냐. 일본의경우에는지난번 2차어업협정을할때, 물론상부수역만나눈것이지만, 이어도바로밑에중간수역이있습니다. 그중간수역밑에는다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으로되어있구요. 그러니까그중간수역으로되어있는북쪽경계선위쪽은한국의배타적인경제수역으로일본과협의가된거죠. 그런데중국하고할때는그게들어가지않고그위의선, 과도수역하고중간수역이렇게되어있는데, 이어도부분은그게싹빠집니다. 그러니까중국하고는이어도와관련된해역에대해서는명확하게우리는물만가지고대륙붕이나이런것은하지않고, 물만가지고보았을때는, 이어도해역은명확하게중국하고합의가이루어지지못했다고볼수가있는거죠. 송성대 : 제가얘기한다음에범위가조금넓어져가는데, 이어도에관심을가지면서요즘와서회의를느끼는것은, 이게동양과서양의문화적인차이라는점입니다. 이어도가섬이냐아니냐는이쪽의전공이아닌보통지식인들, 예를들면지명학, 고문학, 지리학을하는사람들은이어도는암초인데왜섬이라고하느냐고묻습니다. 지식인조차도이런의문을제기합니다. 임진강하구에나들섬이라고있어요. 거기도모래둑인데왜섬도자를쓰느냐고하는데그것은존재론과당위론, 사실과진실, 선과악을깊이모르면왜그렇게되는지모릅니다. 이어도가유토피아인데실재하는섬이라고 주장하는사람들이나민속학자들도있어요. 민속학자라면팩트와픽션이무엇인지는기본적으로알고주장해야되는데말이죠. 서양같았으면이어도는암초란말이죠. 그리고 2006년도한중양국간에도이어도는암초다, 섬이아니다라고했어요. 그리고이것이관할권문제의대상이될수없다고분명히합의를본거에요. 물론유엔해양법에는이어도는섬이될수없고영해기점도안된다고돼있어요. 그런데실제로는이어도를가지고한중간에다투고있거든요. 이건바다싸움이어야지왜섬싸움이돼나요. 여기서저는회의를느끼는거죠. 이어도가왜이렇게문제가되는것인지, 용어를 이어도해 라고하든지어떻게든합의해야하는것이죠. 김병렬 : 제가봤을때는그때아마의도적으로이어도수역을제외하고. 송성대 : 그러니까이게서양같았으면해양법이라든지양국의합의에의해서, 그래서나는 이어도해 경계획정을어떻게할것이냐같은용어를쓰죠. 이걸바다로취급해야지, 왜섬으로취급합니까? 여기서문제가있다는얘기죠. 엄청난문제가있는겁니다. 이명찬 : 정치적인배경이있어서입니까? 김병렬 : 사실은우리가이어도수역에등부표를설치해서약간의관할권, 그걸가지고완전한관할권행사를했다고보기에는좀어렵고, 일단지나가는선박들에편의를도모해준다는이유로했던것이 1987년도로기억하고있습니다. 그때는중국이이렇다저렇다얘기를안했습니다. 그다음에 1996년인가요, 우리가이어도에해양과학기지를건설하겠다고발표했을때도중국이거기에대해서극렬하게반응하진않았어요. 그때까지만하더라도사실은크게이어도해역이라든가이런것들이지금처럼양쪽에서민 70 71
37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감하게생각하거나그런것은아니었던것같습니다. 그후에상황이변해서중국이어업을하다가어선이좌초가돼서자기네가발견했으니까자기네것이라는등횡설수설하기시작했죠. 여기에계신모든분들하고, 많은국제법을연구하시는학자분들이알고있는바와같이사실은인공섬에대해서그것이배타적경제수역이나대륙붕의기점이될수없다라고하는것은법입니다. 그건어쩔수가없는법이거든요. 법인데그게왜중요하냐고하는데는이유가있습니다. 사실은이어도의기지건설과관련해서는어떤기록을보니까김시중과학기술부장관이이건희회장에게말을해서삼성에서건설하기로했다가나중에해양수산부에서건설한것으로되어있던데, 그것도맞지만약간안맞는부분이있습니다. 사실은삼성에그것을건설을해야한다고최초로말한건접니다. 그래서삼성에서아마이건희회장이김시중장관에게물어봤겠죠. 이어도에기지를건설하면어떤효과가있느냐? 아니, 장관이만들면만드는거지, 그시절에과기부장관은지금의해양수산부까지다통할했습니다. 장관이그걸못만들어서이건희회장한테 만들어주십시오 라고부탁을했을거라고는저는생각하진않습니다. 저는이건희회장한테얘기를한것은아니고, 그시절에삼성건설이지금의삼성물산인가어디의한하부조직입니다. 제가거기회장께말씀을드렸거든요. 그회장님이위에보고하겠다고해서그후에이얘기가나오니까아마이건희회장님이그때당시의과기부장관한테질문을했던가? 뭐어떻게됐는지자세히는모르겠고, 그걸개발해야되겠다고제가그때주장했어요. 그러면서지금과같은형태로개발하는것은맞지않다. 그것은완전한인공섬으로개발해야한다. 다른사람들이다제정신이아니라고그랬죠. 그래서해양수산부에서공청회도했어요. 그런데그것을개발해야한다고하는데는이유가있습니다. 이어도를기점으로삼을수는없지만일본은바로그옆에있는도리시마를계속해서기점으로주장을하고있습니다. 그런데그도리시마는우리가보았을때는 그냥암석입니다. 해양법 121조 3항에있는암석입니다. 그암석은마찬가지로기점으로삼을수가없도록되어있어요. 그런데일본은우리와의협상에서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을해오고있습니다. 그래서사실은어업협정도그것때문에남부수역에중간수역이나오게된것이에요. 우리와의견의일치가이루어졌으면, 일본이포기를했으면중간수역없이남쪽경계선이되는것이고, 우리가그걸기점으로하면또중간수역없이북쪽경계선으로획정이되겠죠. 그런데우리와일본의합의가이루어지지않았기때문에결국중간수역이나오게된것이거든요. 그럼일본이그것을기점으로주장할때, 어떻게해야일본이그것을포기시키도록할것인가, 아니면여기우리가얘기할내용중에섬의기점이될수있는가하는테마도있는데요. 수면위에있는섬중에 100% 효과를가지고있는섬들이많습니다. 대부분의섬들이 100% 효과를가지고있죠. 그런데 100% 효과를갖지못하는섬들도굉장히많습니다. 물이있는데도경계선을획정하거나할때, 50% 효과를갖는섬도있고, 큰섬인데도아예효과를인정받지못하는섬도있습니다. 그것은여러가지여건에의해서그런섬들의기점으로서의지위가그때그때상황에따라서얼마든지달라질수있다는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암석이라는것은주장하는쪽에서는다섬이라고하면서, 그것에서기점을삼겠다고주장하는겁니다. 그러면반대쪽입장에서는그것은기점을삼을수없다라고주장해야하는겁니다. 그것은해양법협약 121조 3항에암석이기때문에할수없다는게지금까지우리의논리였어요. 그런데문제는무엇이냐하면, 과거에는우리가독도를암석이라고했습니다. 암석이기때문에독도를기점으로삼지않겠다고했거든요. 그얘기는사실독도문제도있지만, 도리시마도같이연결되는문제였거든요. 그런데우리가기점을바꿔서독도를암석이아니고섬이다, 그래서독도를기점으로삼아서독도와오키도중간에경계선을획정해야된다고이미일본에통보했습니다. 그러니까일본은더더욱독도를기점으로주장했으니까도리시마를빨리인정하라는것이였거든요. 지금이야그부분에대한협 72 73
3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상이없으니까잠시유보가되어있죠. 그런데이것은반드시일본과우리가싸우지않으면안되는문제입니다. 왜그러냐하면, 이어도밑으로 7광구가있습니다. 그런데사실은지난번에 7광구의상부수역광구인대륙붕은 2028년까지는한국과일본이공동으로개발하도록되어있기때문에한국과일본사이에이러쿵저러쿵다툼이없습니다. 다툼이없지만, 지금우리가거기에시구를못하고있어요. 왜? 상부수역이일본의배타적경제수역이됐기때문에. 그럼석유가있는지없는지알아보려면가서구멍을뚫어봐야알지않겠습니까? 그런데지금은못하고있죠. 그런데물론외교부는또다른얘기를해요. 상부수역만일본것이된거지밑의지역은일본것이안된거다, 안된거는당연한거죠, 2028년까지는. 그럼왜가서시굴작업을못하느냐, 대답을못하는거죠. 그때쯤되면지금근무하는사람들은다자신의일이아닌게되니까. 역사적으로보면항상그래왔죠. 그래서문제는무엇이냐하면, 그때쯤되면반드시우리가일본하고다투지않으면안되게됩니다. 2028년직전이되겠죠. 2028년이되면공동개발협정이만기가되니까. 그럼그직전에다투어야되는데일본은틀림없이또도리시마를기점으로삼겠다고할겁니다. 그러면우리는신사적으로해양법협약 121조 3 항에의해서그건기점으로삼으면안된다고한다는것이죠. 그것이일본에게얼마나큰양보를얻어낼수있는주장이냐라고하면, 굉장히얻어내기힘들다는것이죠. 그런데이어도를만약에인공섬을만들어놓게되면, 얘기가달라진다는겁니다. 왜달라지는가하면, 일본이도리시마를기점으로하겠다고하면우리는이어도를기점으로하겠다고주장하는것이죠. 아니, 그것은인공섬인데어떻게인공섬을기점으로하겠다고주장합니까, 당연히그렇게항변할것아니겠습니까? 아, 그러면좋다, 인공섬은기점을삼을수없느냐? 해양법협약에그렇게나옵니다. 그러면도리시마는암석인데암석도해양법협약에보면기점으로삼을수없다고되어있는데, 왜너희는그것을기점으로삼겠다고주장하고있느냐, 너희가그것을철회하면우리도철회하겠 다, 이렇게항상국제적인협상이라는것은무언가상대방을압박할수있는도구가있어야협상이되는거지, 막연하게해양법 121조 3항을근거로해봐야일본은귓등으로도안들을겁니다. 이명찬 : 그러니까대일협상카드로써상당히효과가있다. 김병렬 : 물론이죠. 그래서처음부터제가그것을해야된다고주장했던것입니다. 서영득 : 김교수님, 보충설명이필요합니다. 아까섬이자격을받을수있는것이 50% 가될수도있고 100% 로될수도있고아무것도안될수도있다고했는데독자들을위해서어떤경우에해당되는지설명해주세요. 김병렬 : 섬을무엇으로할것이냐는처음해양법협약이만들어지고논의되는과정에서사실은학자들이면적으로나눠서몇제곱마일되는것은섬으로하고, 몇에서몇은소도로하고이런식으로호지슨 (Hodgson) 이라는학자가여러가지해결방안도내고했지만, 결과적으로합의를이루지못했습니다. 그래서만들어진것이 121조입니다. 그런데 121조가만들어지고난후에사실은해양법협약에의해서과거에없던배타적인경제수역이나오게됩니다. 그리고대륙붕이라는것도 2차해양법협약까지는해면아래 200m 이렇게뚜렷하게경계라든가이런것들이명확치가않았는데, 이제는 3차해양법협약에의해서명확하게 200해리가넘을때는무슨두께에몇퍼센트해서정확하게정의가됐어요. 그러다보니까섬이굉장히중요한위치가되는겁니다. 이제어떤나라든지사람이살든안살든바다위로조금만나와있으면이건다섬이라고컴퍼스를대고그리려고한다는것이죠. 그런차원에서영국이굉장히영국다운양보를한것이있습니다. 로칼 (Rockall) 섬이라는섬이북해상에있는데요, 사실은섬이지만일본의도리시마보다도훨씬큰암석입니다
39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이명찬 : 독도보다도큽니까? 김병렬 : 독도보다는작습니다. 그런데거기에초소가있어서보초를섭니다. 그것을처음에영국이기점으로삼겠다고주장했어요. 그런데주변국들이그건기점으로삼을수없다고했더니영국이흔쾌히기점으로삼지않겠다고포기선언을합니다. 굉장히중요한것이죠. 일본의오키노도리시마는로칼섬에댈것도아니지요. 그런데도일본은오키노도리시마를인공섬으로만들어서기점으로삼겠다고해서여러가지발간물이나홈페이지등을통해서 200해리를그렸어요. 그려서다른나라의반응을보고있는것이죠. 세계에 200개국이넘는나라가있는데, 거기에대해서명시적으로반대의사를표명한건중국과한국입니다. 다른나라들은묵묵부답이에요. 그래서아까송교수님이말씀하신것처럼 40만 km 2 의바다를컴퍼스를그려놓고다른나라의눈치를보고있다는거죠. 그래서과연일본이도리시마를기점으로주장할때, 우리가어떻게대응할것이냐, 방법이없어요. 121조 3항은일본이무시해버리면그냥중간수역으로계속남고중간수역밑에있는대륙붕은, 아니우리의물이일본물이됐는데밑의땅은한국것이다, 주장은할수있어요. 또실질적으로그렇게다르게경계가획정된데가전혀없는건아닙니다. 인도네시아와티모르사이에도, 그런데그런것들은다특별한역사적인사유가있기때문에그런것이지, 그런게일반적인대륙붕과위의상부수역의경계가별도로된다는게일반적인건아닙니다. 대부분은같이됩니다. 이렇게된다고봤을때, 개발하는것이우리한테협상력을높여줄것이냐, 이어도를개발하지않고해양법만들고나가는것이우리의협상력을높여줄것이냐라는것인데아니라는것이죠. 그것을해양법상무슨암초다, 아니, 수중암초에대해서는기점으로삼을수없다고하면서일본의암석에대해서는그건해면으로나왔으니까어쩔수없지하는것은패배주의자의생각이라고저는보거든요. 그래서그것을 100% 인정을안해주고 30% 인정만해준다고하더라도우리한테는엄청난이득이된다는것이죠. 그러면그것을무엇으로압박해야될것이냐, 해양법협약만가지고는굉장히어렵다는거지요. 아까송교수님이말씀하셨는데몇가지만예를들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섬은완전한효과를갖습니다. 제주도도섬이죠. 그렇지만육지하고똑같이완전한효과를같죠. 그런데아무런효과도갖지않는경우도많이있습니다. 예를들면, 다툼이있으면효과가없다고보는게있습니다. 덴마크와캐나다중간에한스 (Hans) 섬이라는섬이있습니다. 이것은서로간에다툼이있거든요. 그러니까그것은제외해놓고나머지가지고선을그리고한스섬을거기에위치시키자고양쪽이합의하면그런식으로되거든요. 그다음에일반적인경계선이여긴데, 이쪽나라의섬하나가여기딱들어와있는겁니다. 이럴경우에는이섬은하지말자, 왜냐하면이섬까지하게되면형평의원칙에문제가생긴다는거죠. 이런것들이있을수있다는거죠. 또이런섬들이실질적으로효과를주지않은것들이있고요. 부분적인효과를준것은굉장히많습니다. 그렇기때문에우리가도리시마라는암초에대해서부분적인효과, 우리는협상전략으로야효과를안주는것으로주장해야되겠지만, 언젠가는남부수역을경계선으로획정해야되기때문에양보하게되면부분적인효과를주는쪽으로양보할수도있겠죠. 그랬을경우그부분을가장적게줄수있는방법은이어도를개발하는것이가장적게줄수있는방법이라고주장하는거죠. 이명찬 : 100% 인정해달라고주장할수있으니까. 서영득 : 보충정리하면, 우리가섬이다섬이아니다라고했을때, 김교수님은섬이경계획정에얼마나영향을주느냐에대해직접적인설명을잘해주셨는데, 일반적으로국제적으로합의된섬이냐아니냐에서섬이되려면밀물때물이들어와도잠기지않고육상으로남아있어야된다는것이죠. 우리가용어상으로하면그게필요조건이에요. 그런데충분조건이있어요. 충분조건은그섬이독자적으로자족적인경제생활을할수있느냐, 물이 76 77
40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나느냐, 이에따라서섬이되느냐마느냐가달린겁니다. 이명찬 : 그럼오키노도리시마는전혀섬이아니죠. 서영득 : 아니죠. 이명찬 : 그런데상황이변해가면바뀔수가있지않습니까? 과학기술이빠르게발전해가면서해양경계획정에새로운변수가나타나듯이, 섬의개념도바뀌어갈수있지않겠습니까? 김병렬 : 개념이바뀌어가는거죠. 아무튼영국이로칼섬을포기한것은, 영국이니까포기를했겠죠. 일본같은경우는오키노도리시마에비행장까지건설하겠다고하고있습니다. 이명찬 : 이번에는서해의중간수역에대해말씀을나누어보겠습니다. 한국과중국이중간수역을설정할당시바다면적을계산하여양편이똑같게중간에선을그어설정했다고하는데, 그렇습니까? 김병렬 : 아니요. 그가운데를잘랐다고보기에는좀어렵고요. 왜냐하면과도수역은, 지금은다해당되는쪽이배타적경제수역이됐는데, 과도수역이양쪽으로있고요. 그가운데는중간지역으로있습니다. 그러니까중국의입장에서는이중간수역은나중에 50 대 50으로자르는게아니고 80 대 20, 70 대 30, 얼마든지자기네가주장할수있기때문에그렇게합의를봤습니다. 이명찬 : 여기법을하시는분들이계시니까궁금해서그러는데, 중간선원칙하고아까해안선말씀을하셨는데, 제가이해하기는중간선원칙하고등거리선원칙이있어요. 중간선원칙에의해서등거리를그어서하면중간선원칙이되고해서, 중간선과등거리라는용어를합쳐서사용해버리는경우 도있어요. 제이야기는중간선원칙은마주보는나라끼리하는걸로하고, 등거리선을적용하는것은인접한나라끼리할때적용하는것이라고알고있어요. 그렇게했을때인접국가간에하는등거리선을왜등거리선으로하느냐, 이것을용어로설명해주는책을보지못했어요. 김병렬 : 쉽습니다. 왜등거리선으로되느냐하면요, 사실은마주보는나라끼리도등거리선이라고표현해도틀린것은아닙니다. 왜냐하면이렇게연결되면이쪽에서등거리거든요. 그런데인접한나라끼리했을때왜등거리선이냐하면, 이렇게경계선이되어있다고했을때, 이것을어떻게잘라야될것이냐고했을때, 이거리와이거리가등거리라고하는거죠. 그래서이게이렇게되면관계가없는데변형이되어있다고하면정확히중간선으로구분하기가어려운경우가있을수있거든요. 이런경우에보면등거리선이라고해서조금위로가다가해양경계선은직선으로표시하는데특정한지점에서밑으로꺾어졌을경우를등거리선이라고표현합니다. 송성대 : 저는이해하기를, 이렇게육지가있을때 A라는나라, B라는나라, C라는나라가있을때, 육지경계선이이것이거든요. 바다를어떻게할거냐이거죠. 김병렬 : 그래서여기나온게이것과똑같은케이스가있죠. 1969년에북해대륙붕사건인데, ( 지도를보면서 ) 이쪽이덴마크 독일, 이쪽이네덜란드, 이걸어떻게해야될것이냐해서당시에등거리선원칙에따라서아마국경선이이렇게되어있을겁니다. 그래서등거리선원칙에따라서덴마크는이렇게오고, 네덜란드는이렇게가야된다는게두나라의주장이었죠. 독일은이것은안맞다고해서결과적으로영국이있으니까영국과의중간선으로해서여기에다일정한선을이렇게그렸죠. 이쪽에또무슨나라가있죠. 그래서이렇게가다가조금들어갔다가, 하여간이런식으로, 78 79
41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송성대 : 제가왜이런얘기를하냐하면, 아까형평의원칙을말씀하셨기때문에한중간에이어도바다를경계획정하는데중국은형평의원칙을강조하거든요. 그래서저같은경우는그형평의원칙은이것이다이거죠. 인접국간에적용될만한용어지, 중국하고한국간에이와같은거조정할이유하나도없다이거죠. 북해대륙붕사건에서서독은그당시에바다로나갈수없거든요. 동독은발트해로나갈수있으나이게막혀버린거에요. 너무억울하다조정해달라고해서형평의원칙에의해서내쳐준거죠. 그러니까제가하고싶은말은우리전문가들이중국하고논리적으로이의제기할때이얘기를해줘야된다는거죠. 당신네들이형평의원칙하는거해양선길이그것은인접국간에하는논리지마주보고있는나라에서는적용해서는되지않는거다, 이렇게얘기를해야되죠. 말이나온김에하는데, 또하나는, 중국은실트라인 (siltline) 을얘기하거든요. 이어도가이렇게있으면황하 양자강에서나온실트가마라도로들어와요. 그래서여기까지가자기네바다라고그러거든요. 그랬을때, 우리는무슨반론을제기해야되냐하면, 유라시아판구조를얘기해야되요. 이실트를다걷어내도 200m 이내의대륙붕은마찬가지가된다이거죠. 이런얘기를하는사람은아무도없어요. 이명찬 : 지금상당히어려운얘기같아요. 김병렬 : 그런데, 중국이거기실트가많이있긴하지만우리나라실트도가라앉아있죠. 작을뿐이지. 송성대 : 더거슬러올라가면빙하시대에는중국대륙, 한반도, 일본열도모두가연결되어있어이들나라사이는여러강들만이흐르고있었거든요. 그때에지금의황해로들어가는중국이나한국의모든강들이토사를운반해서동아시아바다의대륙붕을만드는데기여했죠. 따라서한국과중국 사이의바다경계를그을때, 대륙붕의토사가어디서왔느냐, 또는해안선의길이가어떠냐하며형평의원칙을논하는것은아무런의미가없습니다. 형평의원칙은마주보는나라가아니고인접한나라끼리경계선을그을때등거리원칙을적용하게되는데이때특정한나라가많은불이익이생긴다고판단되면이를고려하는원칙일뿐입니다. 양희철 : 저는조금다른시각에서, 크게의견차이가나는것은종합해야될것같습니다. 우선, 실트라인이란중국쪽공식입장은아닌것이고, 일부학자들이주장하고있습니다. 실트라인은특히황해경계협정, 황해대륙붕대부분이중국의강을따라서흘러나온퇴적물들이쌓여형성되었기때문에황해대륙붕은중국이가져야된다는입장이에요. 문제점은과연실트라인의정의를어디부터어디까지할것인지과학적인측면에서문제가되는데, 실트가굉장히미세한이질구조이기때문이에요, 모래도아니고진흙도아니죠. 그런데이실트에대한중국의정의가굉장히다양하게나타납니다. 그리고또하나는법적인측면에서실트라는주장을근거로할수있는그나마유일한것은유엔해양법협약 76조밖에없어요. 예를들어, 협약제 76조제4 항에서는대륙붕을연장할수있는기술적공식을제시하고있는데, 이중 퇴적암의두께 에근거할수있도록규정하고있습니다. 중국의실트라인주장은제4 항 (a) 의 (i) 가규정하는 퇴적암의두께가그가장바깥고정점으로부터대륙사면의끝까지를연결한가장가까운거리의최소한 1% 가되는 고정점들을연결하는직선의경우같은대륙주변부를따라 60 해리이상떨어지지않은지점을연결한선 에서비롯한듯합니다. 그러나이는대륙붕에대한연안국의권리문제와권리의외측한계를규명하기위한기술적문제를혼동하는것이라판단됩니다. 즉, 제76 조의대륙붕정의는대륙붕에대한권원과함께 200해리이원해역까지대륙붕을확장시키고자할경우, 이를확인하기위한기술적방법 (Formulae) 혹은기준을제시하고있는데중국의주장은권원을확장하기위한기술적방법에 80 81
42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의지하고있다는것이죠. 이는중국이실트를근거로제기하는대륙붕에대한권원의문제는사실권원 (entitlement) 이아닌외측한계를획정하는기술적방법 (method of delimitation of the outer limits of the continental shelf) 에근거한것으로타당치않습니다. 권원에대한합리적논리가성립되지않은상태에서외측한계를획정하는기술적방법으로권원을주장하는것은어불성설이기때문이죠. 또하나의문제점은과연황해대륙붕의대부분이중국에서빠져나온퇴적물로구성되었는가. 과거황해실트에대한다수의논문은중국의실트형성을당연한가설로접근하고있다는특징이있었습니다. 그런데황해의퇴적물이과연중국기원에다의존했는가, 그것은아니라는것이우리측연구결과입니다. 북한에서서한만을통해서나오는실트, 우리쪽강에서나오는실트, 중국에서흘러들어오는실트등이들은사실실트라인이라는것이있지만, 라인을형성하고있는것이아니라황해는거대한중첩된실트존이형성이되어있습니다. 때문에중국의주장은과학적으로도맞지않는접근법입니다. 지적한바와같이, 과거 1980년대이후에중국지질학자들대부분이하나의전제되는가설을설정했어요. 황해대륙붕의대부분은중국두개의강에서흘러나온퇴적물들이형성했다. 이런대원칙을설정해놓고과학적으로조사를하다보니까, 대부분이런정설로굳어졌어요. 그런데중국쪽에서펀드를내서마르탱 (Martin) 이라는프랑스학자가연구해본결과, 아닌것같다는것입니다. 예를들어, 발해를통해황해로접어드는퇴적물양은매우제한적이어서전체황해퇴적물양의 1% 이하라는사실을지적하고있습니다. 또연구결과를통해선행연구들은중국강에서흘러나온퇴적물들이특히발해만쪽에서흘러나온대부분이황해를형성했다고했는데, 발해만과황해수치의교환율을보니까일년에며칠이안되더라는결과를도출합니다. 최종적으로마르탱은발해만쪽에서강을통해서나오는퇴적물들은거의 90% 가다그쪽에가라앉아버린다고발표합니다. 즉, 수체자체가교환이안된다는의견이었어요. 이런문제때문에중국이산둥반도내에운하를뚫으려고 했던적이있어요. 계획되었던운하는폭이 200m 되고, 깊이도깊게하려고했지요. 운하를통해해결하려던문제는바로발해만의수질개선에관한환경문제였습니다. 발해만이완전히썩어버리는바다가됐기때문에황해하고바닷물을교체시켜서발해만을살리는구상인데, 이역시발해만하고황해의수체교환율이그렇게많지않다는것을증명하는객관적자료이기도합니다. 중국역시퇴적물형성에대하여인지하고있다는것이죠. 또하나의문제점은중국의실트라인주장은황해쪽에서는중국에게굉장히유리할수있다고해석하더라도, 북한쪽으로가면북한서한만의퇴적물들거의대부분이위쪽을형성하고있어요. 그리고또하나는동중국해쪽으로내려오면동중국해쪽은퇴적물들이전부다자기연안에머물러있어요. 그런데중국이주장하는것은동중국해에서자국의대륙붕은오키나와해구의중간선까지대부분간다는입장이잖아요? 이건서로충돌이되죠. 황해에서는유리하지만양쪽해역에서는중국이스스로자기논리를깨야되는그런현상이생깁니다. 그래서실트라인문제는법적 과학적인측면에서모두적용가능성은없죠. 그래서우리는황해같은경우는단일대륙붕이기때문에자연의원칙이적용될여지는없고중간선개념으로가도충분히된다고봅니다. 이부분에대해서는일부중국학자들도찬성하고있어요. 또하나는형평의원칙문제, 중간선의문제라고그랬는데, 형평의원칙이라는것은사실은대원칙이에요. 경계획정을할때중간선이라는것은방법론이라고얘기를많이해요. 이것을아까인접국가와대양국가간에다른접근을해야된다고했지만, 사실은거의다수의판례에서는경계획정에접근하는대원칙은형평입니다. 이형평이라는것이어떤특정국가를분리하는요소가아니고, 경계획정을하고자하는대상지역에있는서로주장하는모든요건이다대입될수있다는측면에서의형평인것이에요. 황해쪽에서형평이라는것, 중국이대원칙으로주장하고, 저희들은형평이라는실체가없기때문에실무적측면에서는보다안정되고투명한절차를활용하자는측면이강하죠. 그래서황해에서역시형평이경계획정의대 82 83
43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원칙일수는있으나두나라의실무적인단계를진척시키는데에는거의도움이되지않는다. 그래서현재일반적인판례에서접근하고있는단계, 하나의임시가상선을긋고, 혹시이선을움직일만한관련사항이있으면그걸조금조절해서최종적인선을도출하는, 3단계접근방식으로우리는주장을해요. 김병렬 : 잠깐만요. 저는잘몰라서물어보는데, 중국의동해안해안선길이하고, 우리서해안의해안선길이하고우리가더길지않아요? 양희철 : 그것은계산을어떻게하느냐의문제같습니다. 이명찬 : 저도아까의문이계속들었는데, 중국쪽해안이길다는게꼬불꼬불해서길다는얘기죠? 김병렬 : 아니죠, 대륙이크니까. 꼬불꼬불하긴우리가더꼬불꼬불하죠. 양희철 : 중요한것은양국이가진해안선이아니라, 양국이경계를획정하고자하는해역의해안선길이입니다. 그러니까하나의전제가되는것이, 양국간에경계획정을할때, 우리의첫번째작업이대상해역이어디인가를정해야돼요. 예를들어서, 황해의경계획정을한다면황해경계획정을하는데미치는해안선이어디인가이걸설정하는작업을해야돼요. 즉양국의해안선길이도출은양국의경계획정협상대상인수역의해안선길이이지양국이가지는모든해안선길이를비교대상으로하지는않습니다. 예를들어서, 중국대륙은굉장히긴해안선인데모두가황해에영향을주는해안선은아니니제한을두는거죠. 중국이실제이해관계가있다고생각되는해안은여기서여기까지인것같다, 그리고우리는사실전체육지와제주도, 도서가대상해역에산입될수가있는거죠. 그렇다면양국이공동의이해를갖는해안의길이가얼마나되는가를측 정해야되는데, 기준은다다릅니다. 예를들어서중국같은경우는좀간소화하는게유리할수도있고요. 우리같은경우는도서가굉장히많기때문에도서해안선까지다포함시켜서길이를측정하면더유리해요. 그런많은경우의수가있습니다. 그래서이것도협의사안에해당이되는거죠. 물론해안선을산출하는방법중에는보다간단하게양국이주장하는기선을대상으로산출할수도있겠죠. 해안선산출이라든가경계획정에서의중간선도출은예전에는수작업이었지만지금은프로그램을활용합니다. 다른방법으로는양자간합의를통해서특정크기의해도를대상으로산출하든가혹은실측을통해서해안선을도출하는방법도활용될수있습니다. 송성대 : 우리나라지절률이, 해안선의직선거리에비해서굴곡된비율이 120배에요. 중국은 30배도안될걸요. 양희철 : 문제는이제그것조차도합의사안인데, 우리들은양국이가지고있는해안선의길이가황해경계획정을추진하는데영향을미칠정도는아니라고봅니다. 국제판례를볼때, 해안선의길이가 6 대 1, 7 대 1이었다고해서그게반드시선에반영되는건아니거든요. 사안별로다르기때문에우리쪽에서는해안선의길이조차도여기에영향을미칠수는없는것같다고현재주장하고있어요. 그러니까모든사안이하나, 하나합의돼야하기때문이죠. 이명찬 : 그런데그게합의가가능해요? 양희철 : 국경을도출하는작업이기때문에그만큼신중하고, 복잡하지만합의없이는한발짝도나아갈수없는문제입니다. 그런데이미큰걸음중하나는올해한중두정상간에내년부터공식협상을시작하자고합의가됐어요
44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김병렬 : 그런데합의를안할수가없어요. 왜냐하면중국어부가한명죽었잖아요. 이런상태로계속가는것은어느쪽도동의하지않을겁니다. 이명찬 : 그건아직획정이안된지역에서그렇게벌어지는거에요? 김병렬 : 아니요. 어차피중간수역에서어업활동을하는것은우리가뭐라고못하죠. 옛날에과도수역이라고되어있다가우리측으로넘어온수역, 그쪽안에들어와서하니까문제가되는것이죠. 이명찬 : 그런데그것은중국이불만을얘기할게없을것같은데. 송성대 : 그렇죠, 불만을얘기할게없죠. 이명찬 : 그런데왜그러는것이에요? 김병렬 : 자국민이죽었으니까. 양희철 : 중국측주장은한국측이과도한법집행을했다는점을강조하고싶은거죠. 김병렬 : 사람이피해를입으면일단목소리가커지는거니까. 이명찬 : 중국입장에서공식적으로는당연히이렇게얘기를해야겠죠. 분히공감을해요. 그런데현재대중이아니라대일과의관계라면이어도에인공섬을만들더라도실제도리시마의문제하고이어도를경계획정기점으로삼았다하더라도일본과의관계에서경계획정에영향을줄수있는요소는아니에요. 섬에영향이전혀없는위치에있기때문에, 왜냐하면우리가경계획정을할때, 제주도와마라도가있고, 도리시마가있는데이어도는더멀리떨어져있단말이에요. 앞에서언급하신대로설령이어도에기점을아무리찍더라도한일간경계에영향을줄수있는정도까지는못미쳐요. 그래서활용가능성에대해서는조금제한적으로봐야될것같고, 또하나의문제는암초하고섬의문제에요. 이건국제법해석의문제이기때문에인공섬의문제하고병론할수있는가는조금생각해봐야될것같아요. 마지막으로언급하면대륙붕문제가 2028년에끝나는데, 골머리썩고있는것중의하나입니다. 2028년이후에어떻게할것인가? 현재외교부도조금곤혹스러울것이라고저는생각해요. 왜냐하면 JDZ(Joint Development Zone) 개발문제를많이언급하시는데, 양국의석유공사가대표로지금다각도로시추와개발을하기위한노력을많이하고있습니다. 우리나라석유공사가주로일본석유공사에개발하자고제의를하고있지요. 일부에서는왜단독으로못하냐고비판적견해가많은데, 이는양국이체결한남부대륙붕공동개발협정자체가 JDZ에서개발하거나시추를할때는양국이합의하도록규정되어있기때문입니다. 합의가안되기때문에시추자체를못하는것이죠. 일본입장에서는왜합의를안해주냐, 굉장히단순해요. 일본은거기자원이없다고생각한다, 자원이없는데왜돈들여서쓸데없는조치를하느냐고주장하고있죠. 양희철 : 시간이없는것같아빨리말하겠습니다. 아까언급하신것중에이어도에대한개발문제를언급하고싶습니다. 물론저는이어도가향후에중국과경계선이획정이된다든가, 그렇다면우리관할수역내에있기때문에관할권행사의측면에서인공섬을만들든무얼하든거기에대해선충 이명찬 : 공동개발투자를하니까그런거아니에요? 양희철 : 아닙니다. 공동개발의문제, 즉금전적투자의문제가아니라일본입장에서는 JDZ를향후 2028년이후에해결하는것이유리한입장에있다 86 87
45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고생각하기때문이죠. 그리고양국협정상 JDZ의시추자체가합의사안이기때문에우리나라측에서 100% 자금을투자한다고해도일본은어차피자기대륙붕으로편입될가능성이높다고판단해서, 움직일이유는없는거죠. 이명찬 : 아그래요? 그런데우리돈을가지고시추하면일본은손해볼게없잖아요. 양희철 : 아닙니다. 언급한바와같이, 일본은단순히경제적이유가아닌관할해역에대한장기계획하에태도를결정하고이행하고있다고해석됩니다. 우리나라외교부와산업통상자원부역시적극적인입장을주로제시하고있는것으로알고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일본은 2028년을기다리는것이죠. 왜냐하면최근에판례경향이라는것이, 물론판례는절대적인원칙은아니에요. 하나의추세인데, 400해리미만해역에서의지질 지형적인측면이굉장히감퇴되는경향으로나가요. 그러니까일본입장에서는기다리면자기네대륙붕이라는입장이강해진다고해석하니, JDZ 문제에소극적일수밖에없습니다. 이명찬 : 아주머리가아프네요. 김병렬 : 제가작도능력은정확치가않아서정밀작도는못해봤는데, 이어도는중간수역의약간좌측으로치우쳐서위쪽에있고, 도리시마는중간수역의동쪽에있습니다. 그래서이어도와도리시마의중간선을그리면현재남부의중간수역으로되어있는부분중에좌측부분이잘라져우리쪽으로오게됩니다. 그래서경계선에미치는영향이없다고저는보지않거든요. 나름대로영향력이있다고생각하거든요. 송성대 : 저도이어도를두고양국간의필요성, 자국의이익을위해서주장 하는것은당연하다고생각합니다. 이명찬 : 양국이라는게일본하고? 중국하고얘기인거죠? 송성대 : 중국하고요. 일본은조금비켜있거든요. 이명찬 : 지금계속일본하고얘기가많이나온것같은데, 사실일본은이어도주장하고는관계가없잖아요? 송성대 : 방공식별구역에포함됐지만, 그사람들이확장된방공식별구역에대해크게항의를하지않는입장이고요. 이명찬 : 선생님, 잠시만요. 제가질문을하나드릴게요. 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그리고나서한국정부가어떻게해야되느냐, 제가 TV에나가서토론한적이있어요. 그때어떤인사가중국이일방적으로그었다고해서한국이또일방적으로긋게되면중국이서해안쪽으로확들어와서선을그어버릴것이다. 그러면힘이약하기때문에한국이그렇게해서오히려더손해를본다. 또하나는일본은또어떠냐, 일본은그동안이어도가자기들방공식별구역인데한국이일방적으로그으면그전에도계속했던얘기가독도를자기방공식별구역으로일방적으로긋겠다고엄포를놔서결국은우리정부가안하고계속있었단말이에요. 그런데지난번에저는중국이그은이틈을이용해서우리도그어야된다고해서그렸잖아요? 그런데저하고토론을했던사람은그것을두고한국의국익에손해가될것이다, 뭐이런얘기를했어요. 왜냐하면아베가지금은오바마의압력에의해서한국이일방적으로긋더라도묵인하겠지만, 그다음그다음정권으로갔을경우에독도를일방적으로그을가능성이농후하다. 반드시그을것이다, 그래서결국은우리가일방적으로긋게되면장기적으로중국한테도당하게될것이고일본한테도당하게될것이라고주장을했어요. 여기에대해 88 89
46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서견해가있으십니까? 서영득 : 방공식별구역에대한중국의입장을두고, 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시범적으로했을것이고우리의서해안에들어갈수있다고주장하는학자들도있죠. 중국으로서는더나아가서남중국해도더시급합니다. 방공식별구역을서해안에설정하거나더나아가서는일본이방공식별구역을독도에확장할것이라는주장은현재로서는전혀근거가없다고봅니다. 그이유가뭐냐하면방공식별구역을영토의개념으로생각하는분들이그렇게생각하는것이죠. 방공식별구역은말그대로식별하는구역에불과할뿐인데, 그것을국제분규의대상에포함시켜문제삼을그럴필요성이없는것이죠. 또방공식별구역에서무력충돌이일어났던경우도없습니다. 알제리가옛날에알제리 -프랑스사태에서소련기에총격을가했다가문제가되었던경우는있었지만, 그런사건은매우특수한사항이고그외문제된경우가없는데, 문제삼는것은어떻게보면너무단편적인생각이라고보고요. 방공식별구역을우리가확장한데대해서중국이유감을발표했죠. 중요한발표였지만그것이크게문제화되지않고넘어갔던것은중국도방공식별구역을발표한상황이고우리도그러한상황인데, 지금운용자체는삼국이상호간에무시하고, 특히중첩지역은상호간에무시하는식으로되어있고, 그럼에도민항기는비행계획서를제출하는식으로되어있죠. 민항기는위험하니까. 미국이들어갈때는비행계획서제출을안하겠지만, 사실미국의비행기가외교회담을위해들어갈때는안했죠. 근본적으로는일본과미국의해양세력에대해중국이라는대륙세력이해양에대한세력확대를꾀하는과정에서중국의방공식별구역이발표되었으나시간이지나면서새로운질서로형성될것으로봅니다. 이이야기는이정도로되겠습니까? 참고로말씀드리고싶은이야기는, 최근에실크로드에대한세미나가있었는데중국학자들의많은수가이어도에대해서거론을하더라는것이죠. 중국도경제력이높아졌기때문에이어도에관한관심을, 자기영토에대한확장에관심을가지는것은당연한데, 또다른측면에선소위삼전론이라고 해서중국은전시에무력외에여론전 심리전 법률전으로적국에대해와해공작을전개하는전략을사용하고있다고합니다. 중국의방공식별구역선포를이런면에서도주목할필요가있습니다. 향후중국은법률전이라는측면에서여러분야에서법규화하는작업을할지도모릅니다. 사실중국으로서는아까말씀드렸듯이전체적인국제조약이라는무대에서는늦게들어온나라거든요. 그렇기때문에다소손해를보고있던나라죠. 예를들면 FIR 같은것도 ICAO에서는중국이들어오기전에선을그엇거든요. 중국은이제국제무대에나오면서제3 국들에게호전적이라는소리는듣기싫지만일본과미국의방어선을견제하고싶은선에서자꾸밀어내는입장이겠죠. 그런의미에서중국의방공식별구역은오래전부터준비되어온것이죠. 그입장에서우리이어도라는것을봐야되는데, 이어도는중국에서보면군사적요충지로서전략적요충지이지만우리로봐서는군사적인면에서상대적으로중요성이떨어질수도있는것이지요. 물론무역면에서는우리뿐만아니라중국쪽에서도다중요하지요. 그런측면에서본다면이어도문제를특히국민들에게마치영토의개념으로접근한다거나또는그곳을크게군사적으로중요시해서어떤분들은왜그곳에해군을주둔시키지않느냐이런주장을하고있는분들도계시는데그런모습은바람직하지않습니다. 그런데이런것은너무무리한주장이라고생각합니다. 그래서아까김병렬교수님께서이어도를인공섬으로만들자고하셨는데그점에서저도동의하는바가있습니다만, 지금있는그자체도인공섬이거든요. 분류를한다면설치물이지만, 어느정도사람도가있고실제통제를하고있는입장이므로그이상섬을만든다는것이반드시필요한지는의문입니다. 제가볼때는이어도에대해서는전략적으로접근할때우리가군사적인면을버리면국제적으로호응을얻을수있다는거죠. 이어도라는것은우리를앞세워서라도일본과미국은대중국방어면에서전초기지로삼고싶어하는것이거든요. 그렇다면우리가군사적인면이아닌해양과학기지로서의역할이나항해의안전등여러가지좋은면에서접근만한다면국제적으로우리가호 90 91
47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응을얻을수있다는것이죠. 또더나아가서는우리가관할하고있는입장에서는운용면에서군사적으로하든안하든간에우리가점유하고있는이상미국과일본의입장에서는우방이라는측면에서잃을것이없는것이죠. 저는이어도라는측면에서우리가가지고있는자산을너무확대해서접근을지나치게크게할필요는없지않느냐, 그건중국을자극하고중국이쓸데없이관심을가지게될것아니냐, 근본적으로는해양경계획정의문제인데, 저사람들은인구로보거나해안선의길이로보거나또는퇴적물로보거나모든것이자국에유리한일방적인주장에불과한것들이죠. 그리고국제법으로수용할수가없는영역들이죠. 우리로서는지금국제법원칙에따라서경제규모로봐서는우리도못지않게큰나라니까얼마든지우리가주장하는중간선을고수할능력을갖춘것이고그것이국제적으로설득력을가질수있기때문에중간선만한다면이어도를너무전략적으로중요한것으로부각시키지않고도어차피우리해역에와있는데그걸자꾸자극할필요가없다는거죠. 우리는해양경계획정에서계속중간선을주장하면될것이고이어도는부수적으로우리한테떨어지겠지요. 우리가중요하듯이그이상으로중국이중요하기때문에이어도에대해서는자꾸자극적인문제로접근할필요가없다고봅니다. 이명찬 : 서영득변호사님은대중전략관점에서얘기를하시는거고, 김병렬교수님은대일협상에서이카드를활용한다는얘기거든요. 김병렬 : 그게중국하고는아주심각한문제가있어요. 어떤문제냐하면, 중국이지금기점으로삼고있는것은서산다오라는섬인데, 그건큰섬이거든요. 그런데그밖으로보면우리가동도라고하는진짜암석이있어요. 그런데과거에는그걸기점으로많은국내학자들이알고있었는데, 중국이그것을특별히기점으로주장을안하고있거든요. 그런데만약에우리가이어도를기점으로주장하면중국은이제그것을기점으로주장할수가있 죠. 그러니까중국과는협상을하는것이고일본과협상할때는일본이도리시마를안들고나오면우리도이어도를구태여들고갈이유가전혀없는것이죠. 그런데지금까지는일본이그걸들고나왔고, 거기에대해서뭔가우리가협상지렛대를만들지않으면안된다는거죠. 그러니까중국과는중국대로협상을하는거고, 그런데이게안맞는게우리는일본하고협상을할때는자연적연장이론을지금까지주장해왔어요. 중국하고할때는중간선으로했거든요. 그러니까상대에따라서주장을달리하는것이죠. 이명찬 : 제가동아시아영토문제를여러가지공부하다보면일본같은경우는예를들어서센카쿠제도를중국하고다투면서실효지배를주장하려다보니까독도나남쿠릴열도 ( 북방영토 ) 는다른나라들이실효지배를확실하게하고있단말이에요. 그것도주장하기애매하고, 일본은이것저것상충되는것때문에주장할게없어요. 지금중국도마찬가지아닙니까? 그것과마찬가지로우리도이어도가지고일본과협상할때기준과, 중국과협상할때기준이달라버리면애매할것같은데요. 김병렬 : 어차피다른기준가지고주장하다가서로타협점을찾아서합의하는것이거든요. 그렇기때문에미리부터우리는협상기준이다르니까안되겠다고생각해서는안되요. 어떤나라든지자기에게최대한유리한것을가지고일단협상장에가서부딪칩니다. 그리고조금씩양보해주고받아내는거죠. 이명찬 : 지금까지이어도에대해여러차례협상이있었다고들었는데무엇인지요? 김병렬 : 이어도에대한협상이아니라해양경계획정협상이죠
48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이명찬 : 해양경계획정에관한협상이중국과는열네차례있었고, 지금처음개시한다는것은이어도문제아닌가요? 양희철 : 그렇습니다. 양국에게는중국이적극적으로추진할의지가담긴 해양경계획정에대한공식회담이라는게의미가있는것이죠. 양희철 : 아닙니다. 지금양국간에차이가나는것은우리는그동안중국하고국장급회담을 1차부터쭉세서 14차까지왔다는입장입니다. 그러나중국입장에서과거의회담은공식회담은아닌실무차원의사전협의로해석하고있습니다. 다행인것은중국의경우국경선을획정하는데있어서정상이합의를해서수석대표가누구냐하는문제가그협상의결정권을좌우하는데중요한데, 시진핑주석이거기에합의를했다는것은실무자들한테는굉장한압박이거든요. 이유사한사례가 2000년도에통킹만에서베트남과해양경계협정을체결할때이미경험한바있습니다. 중국과베트남두정상은국경선협의를 2000년도까지최종합의하자고 1993년도정상회담을통해합의했습니다. 이후 7년이걸렸는데계속지지부진하다가 2000년도가되었기때문에실무자들이급해졌고결국실무자뿐아니라다양한전문가회의등이신속히진행되면서 2000년도에체결되고 2004년발효되었습니다. 양국의협정이 4년늦은 2004년도에발효되었던것은이협정으로인해광동성어민들의어업관련산업구도가침해받자이를조정하기위해서였어요. 그래서황해경계획정문제역시한중정상간에합의를했다는점에서완만한구도보다는빠른회담이전개될가능성은충분히있고, 중국역시굉장히적극적으로나올가능성이있습니다. 이명찬 : 우리도몇년도까지는합의해야한다는것이있어요? 양희철 : 저희는없습니다. 아마중국과베트남이같은사회적체제를갖춘국가라는점에서그러한합의가가능했다고보여집니다. 김병렬 : 시작만합의를본것이죠. 이명찬 : 그렇군요. 오늘좌담회가굉장히의미있는좌담회일수있겠네요. 사실이런부분들에대해서일반인들은거의모르거든요. 영토해양연구 가오늘이런내용을담으면상당히전문성있는저널이될것같아요. 국제법을연구하시는분들이많이계셔서질문을좀더드리겠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에관한주제가있었는데요. 중국은배타적경제수역도거의영해처럼자유통항권을무시해버리는데, 결국방공식별구역도마찬가지로거의영공과비슷한개념으로자유통항권을제한하는것으로보입니다. 중국은배타적경제수역에서국제법체제자체를흔들어버리고있는것으로생각되는데, 반면미국이나일본은국제법에대한통상적인해석에입각해서대응을하고있는상황입니다. 예를들면, 천안함사건때조지워싱턴함의서해진입에중국이격렬하게반대하였습니다. 이와같이중요당사국사이에서해석이엇갈릴때앞으로해양법자체가좀달라질가능성은없겠습니까? 좀더부연하면, 중국은방공식별구역의법리를배타적경제수역에대한자신들의법리처럼해석하는입장인데, 미국과일본은자신들의해석에따라배타적경제수역의자유통항권처럼방공식별구역도자유통항권이보장되어야한다고해석하여전폭기를보낸것으로보입니다. 국제법해석에도힘관계가굉장히중요한것같습니다. 양희철 : 이게굉장히어려운문제인데요. 사실서변호사님께서방공식별구역을많이말씀하셨기때문에, 사실이게국제법적으로금지하는규정도없는것이고, 하라고하는기준도없습니다. 국가관행 국가실천을통해서형성되어온건데, 사실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제일처음고민했던것은 2007년도였어요. 2008년도에베이징올림픽에대비해서대만해역을중심으로해서방공식별구역을선포하려다가, 대만쪽에서인지하고강하게반발하는바람에철회했는데, 작년 11월에중국이설정하면서내놓은국제법 94 95
49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적인근거가어디에있었냐하면연안국의안전문제였어요. 즉, 중국은유엔해양법협약상의연안국은배타적경제수역에서국가안전에대한이익을확보할수있다고해석하고있습니다. 예컨대, 유엔해양법협약은제56 조를통해연안국은배타적경제수역에서천연자원을탐사, 개발, 관리를목적으로하는주권적권리등의사항외에 이협약에규정된기타의권리 를향유하도록규정하고있습니다. 또한협약제301 조는당사국이이협약에따른권리행사와의무이행에있어서 다른국가의영토보전또는정치적독립에해가되거나또는국제연합헌장에구현된국제법의원칙에부합되지아니하는방식에의한무력의위협이나행사를삼가야한다 고규정하고있습니다. 이규정은연안국의자국배타적경제수역내 기타권리 라는것이제 301조가규정하는국가주권및영토보전이침해되지않아야하며, 그국가안전과평화적질서등에대한일반국제법상의권리를포함한다고해석하고있음을의미합니다. 즉, 이에따르면일국의항공기가타국의배타적경제수역에서상공비행의자유를향유할경우에도연안국의국가주권과영토안전을존중하여야하며, 또한연안국의국가안전과평화질서를위해하지않아야하고, 이러한연안국권리를고려하지않을경우, 이는상공비행의자유에대한남용이라는것이다. 중국의방공식별구역설정의또다른근거는유엔해양법협약제58 조규정에서찾을수있다. 협약제58 조제1 항은 모든국가는, 배타적경제수역에서제87 조에규정된항행 상공비행의자유, 해저전선 관선부설의자유및선박 항공기 해저전선 관선의운용둥과같이이러한자유와관련되는것으로서이협약의다른규정과양립하는그밖의국제적으로적법한해양이용의자유를향유한다. 고규정하고있습니다. 단, 동시에동조제3 항은 이협약상배타적경제수역에서권리행사와의무를이행함에있어서, 각국은연안국의권리와의무를적절하게고려 (States shall have due regard to the rights and duties of the coastal State) 하고, 이부의규정과배치되지아니하는한이협약의규정과그밖의국제법규칙에따라연안국이채택한법령을준수한다. 고 규정하고있습니다. 이는모든국가의항공기가연안국의배타적경제수역에서상공비행의자유를향유하는것이 절대적권리 가아닌 연안국의권리 를적절히고려하여야하는 상대적권리 라는것을의미합니다. 따라서연안국이방공식별구역를설정하여외국항공기에대한식별을요구하는조치는자국의안전유지를고려할뿐아니라, 협약이규정하고있는상공비행의자유를제한하는것으로해석되지않는다는점에서협약이부여하고있는범위내의상공통제행위로해석될수있다는입장입니다. 이전방공식별구역설정에대한근거가명확하지않았다는점과비교하면, 중국의태도는사실상당히법적타당성까지준비한느낌입니다. 중국의방공식별구역선포내용을보면명확해요. 영해는대상이아니다, 배타적경제수역, 그러니까상공인거죠. 영공의개념이아니라, 공역질서에대해서연안국이자국의안전문제를침해받지않기위해서설정할수있는권리, 그것도절대적인권리가아니라나한테도상대적인권리고타국이누릴수있는것도상대적인권리라는개념에서접근했던것이고, 그런측면에서미국의논리도상당히무색한거죠. 일본의논리도그렇고. 이들국가는중국에대해서일방적으로왜그랬냐, 왜조금전언급하신사전협의를안했냐하는논리를펴고있습니다. 제가얼마전에히로시마에가서일본측학자를만났는데, 일본측에서하는논리는왜일방적으로선포하냐, 왜우리가설정했는데중첩되는현상으로설정하냐라는문제를제기한바있습니다. 사실큰개념에서일본의논리가타당하다고볼수는없는논리같아요. 왜냐하면일본도그렇고중국도그렇고설정범위를보면, 공역이라는개념에서보았기때문에예를들어서배타적경제수역의범위까지라고한다면, 그나마협약에규정이있기때문에이해가되는데이미양국이설정한건 200해리가넘어섰거든요. 중국도그냥설정한게아니라일본이방공식별구역을설정할때중국육지영토로부터 35해리라는기준을설정하여접근하였습니다. 이번중국의방공식별구역역시동일한기준이적용되었고, 똑같이활용되었습니다. 일 96 97
50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본영토로부터몇해리떨어진범위까지라고해서굉장히비례적인측면에서했고, 중국도외교부성명을보면향후에식별조치가안되면필요한조치를취하겠다고하면서도국제적비판에대하여는국제법적틀내에서움직이겠다는입장을유지하고있습니다. 중국국방부의방공식별구역설명기자회견에서각국기자들이문제발생시격추가능하냐고지속적으로추궁하였는데, 중국국방부는 모든사안에대해서대응할필요는없는거다, 사례별로타국이어떤반응을보이는지비례성의원칙에따라서접근하겠다. 라는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은현재의중국방공식별구역으로볼때, 그실행에대한국제법적위반을판단하는것은상당히무리가있고, 중국의행위역시모든사안을갈등구조로보지않고, 필요한사안에대하여만국가안전측면에서접근하여대처하겠다는다소융통성있는태도를취하고있습니다. 중국역시이번중국의방공식별구역설정이단순한갈등대립구도에서즉흥적으로생성된것이아니라, 다양한전후사정을고려해서고려하였다는것을의미합니다. 중국의방공식별구역과관련하여, 또하나주의할것은센카쿠제도는엄밀하게볼때방공식별구역의범주에는들어있지않다는것입니다. 센카쿠제도를포함한형태로그었지만중국은 영공 에는적용되지않는다는점을분명히말했다는점, 그리고센카쿠제도는당연한자국영토로생각하기때문에자국 영공 을포함할필요는없었다는데근거합니다. 또하나는미국하고중국하고크게부딪치는것중의하나는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군사활동문제에요. 군사활동을어디까지볼것인가의문제인데, 미국은규정이명확히없기때문에풀어놓자는입장이고, 사실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게군사적인문제는아니잖아요. 이것과같은경우는사실은법해석적인측면에서제가볼때는조금일관되게되어있다고는봐요. 왜냐하면 2001년도에중국전투기가미국해군전투기와충돌하여비상착륙했어요. 그때도중국외교부는연안국의권리를침해한문제로접근했어요. 그래서군사활동문제에대해서명확히판단을안한상태에서우리의안전을침해할가능성이있기때문에, 향후에중국하고미국하고부딪치는문제중의하나는 과연배타적경제수역에서군사활동문제를어떻게볼것인가, 이문제가지고부딪칠가능성이있죠. 서영득 : 제가조금만더보충하겠습니다. 우선미군기가한국방공식별구역에자유롭게드나드는것은한미상호방위조약실행의일환이고요. 방공식별구역을중국이선포한배경에는중국자국법과국제법원리를그근거로제시했습니다. 그근저에있던여러가지중에서도배타적경제수역의개념을염두에두고있었다는것이지요. 여러논문이나발표에서알수있는내용입니다. 그런데중국사람들이배타적경제수역을중요시여기는것은아까얘기했듯이 2001년도에있었던하이난도사건에서자국의전투기가미해군의정찰기와충돌해서사고가나, 하이난도링구와기지에비상착륙했는데자신들의조종사들이다죽은그사건에서배타적경제수역침범의문제를제기하였지요. 그러니까배타적경제수역이란곳에서왜군사적활동을못하느냐는문제가거론될수밖에없죠. 그게아까말씀드렸던 ICAO에서운용하는시카고협약에서영공을제외하고난나머지는마음대로비행할수있다는, 즉함부로자국의규정을만들수없다는것이국제협약인데왜군사적활동을못하느냐하는것이논란이될수밖에없고, 중국은이를강대국의논리로보는거죠. 중국과같은후발국들의입장에서보면미국이나일본과같은나라들이남의나라의영공을제외하고는자신의여타공역에서정찰기를보내고있으니까, 여기에대해서어떤이론을펼것인가가문제되죠. 당연히배타적경제수역에는군용비행기는못온다, 군사적활동을할수없다는논리를펴는거죠. 어디에그런근거가있냐, 군사적활동을하지못한다는것은국제법에명확하지않습니다. 그러니까미국과일본은공해상공비행의자유를지지하고중국과브라질 인도는이와다른견해를지지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해역에서는적어도영해, 그다음에영해를보호하기위해서접속수역을, 이보다경제적이익을더확장하기위해더나아가서 200해리 98 99
51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배타적경제수역까지정비되어있습니다. 또해양도못가진나라들, 예컨대몽골같은나라는굉장히불만을가질수도있죠. 그런데영공은적어도 12해리의영공이외는아무런제한없이자유롭게다닐수있도록국제법은돼있다이말이죠. 그래서이와같이영해상공과접속수역의상공, 배타적경제수역의상공, 이것을영해와맞춰서공역을어떻게규율할것이냐가정리되어야하는데, 국제법적으로확립되지않다보니까충돌이생기는거죠, 근본적으로. 그래서공역에관한국제협약이필요할때가됐다는거죠. 그게안되니까아까도얘기했듯이엄연히 20개이상의나라에서운영하고있는방공식별구역도국제법적으로보면위법이아니냐고하고있어요. 그런데위법이라고주장할수있는큰나라들이거의다설정해놓고있는이현실을그럼어떻게할것인지괴리가생기게되는것이죠. 양희철 : 먼저, 서변호사님이계속 영공 이라고하셔서혼동이있어요. 영해상공과육지영토상공의개념은영공으로보시는것이고, 배타적경제수역상공은공역으로해석해주시길바랍니다. 이명찬 : 12해리까지는영공이고, 200해리까지인배타적경제수역은공역이죠. 서영득 : 크게공역의범위에영공이포함되고, 영공은일반적으로 12해리영토의개념에들어가는것이죠. 전체적으로영공이라는개념으로보는분들도있는데, 지금말하는협의의영공은내영토라는개념이죠. 내영토에는영해와영공이포함되니까협의의영공개념에는 12해리를일반적으로국제법으로받아들이고있기때문에물론해협등이나특수한경우는다르게설정되기도하지만. 이명찬 : 지난번에중국이방공식별구역을그리는가장주된이유가센카쿠제도, 저는이거라고보는데방금두분이엇갈리게말씀하셨어요. 센카쿠 제도 12해리그상공은어떻게되는겁니까? 양희철 : 이번방공식별구역대상에센카쿠제도는포함되지않았고, 그필요성도없었다고봅니다. 물론센카쿠제도가중국영토라고본다면, 센카쿠제도상공은당연히영공개념에서접근될것이고, 그외측배타적경제수역상공은중국의방공식별구역을통해통제한다는측면에서양자를억지로구분할실익이있겠는가하는점은있을수있습니다. 다만, 법적측면에서엄밀하게본다면, 금번중국의방공식별구역범위에센카쿠제도상공은제외되어있다고보는것이맞습니다. 중국같은경우는명확하게구분했던것이, 센카쿠제도는영유권문제이기때문에이번에방공식별구역대상상공은아니었어요. 물론중국입장에서는당연히이제도가자기영토이기때문에영공에대한주권이행사되는상공인개념이고이번에방공식별구역의개념은주변배타적경제수역수역의상공에대한개념으로접근하였다는점에서그렇습니다. 이명찬 : 그러니까센카쿠제도보다한참더나와서방공식별구역을그었잖아요. 양희철 : 그렇죠. 서영득 : 중국의방공식별구역좌표가있습니다. 좌표가 6개지점좌표를기준으로하는데, 좌표안에센카쿠제도가들어갑니다. 양박사님말씀은이만큼들어간데에센카쿠가있으면센카쿠는영공의개념이니까이건빼고나머지는배타적경제수역이다이렇게했다고하셨는데그렇게발표한것은아닌것같습니다. 다만중국은센카쿠제도를자국의영공으로보니까영공의외곽에그어지는방공식별구역의개념상당연히센카쿠는제외되겠지요. 방공식별구역의경우외곽범위에초점이맞추어져있으므로설정된좌표가중요시되겠지요
52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양희철 : 그렇지않습니다. 중국은자국의방공식별구역설정이후외교부기자간담회와대변인간담회를통해이에대한명확한입장을밝히고있습니다. 중국외교부성명을보면, 6개의좌표하고영해외측의상공을대상으로한다는건분명히했어요. 그런데지금우리가알고있는것은육지영토에대해서 49개의영해기점을설정한것만보시는데 2012년도에중국이분명히센카쿠제도에영해기점을발표했어요. 유엔에관련해도를제시했기때문에센카쿠제도에는이미영해기점이선포된상황이라는점에서, 중국입장에서센카쿠제도에는직선기선에근거한영해가분명히존재합니다. 때문에이번에선포하면서도기자단에서계속질문이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인도출신의기자질문에대한외교부회답을참조할필요가있습니다. 인도의방공식별구역은중국국경선까지의육지를대상으로설정이되어있거든요. 굉장히특이한케이스에요. 그런데인도쪽국경을마주하고도설정할가능성이있느냐고질문했을때, 외교부대표가뭐라고했냐하면 방공식별구역에대한법적개념을명확히알아야한다. 방공식별구역은영해외측의상공을대상으로하는것이다. 기자들이이점에대해서혼동하지말았으면좋겠다고분명히하면서도인도와는국경, 육지형태를마주하고있기때문에설정할필요가없는것이다 라고적시하고있습니다. 즉, 영공은방공식별구역설정대상이아니라고분명히하고있습니다. 그래서중국이설정하고있는동중국해방공식별구역은어떻게보면보다민감할수있는 센카쿠제도영유권 문제를비켜갈수있는접근, 즉갈등을다소완화할수있는방법이었던것으로도해석됩니다. 결국, 중국의방공식별구역범주는당연한 영공 인센카쿠제도의상공을제외한그외측의해역에대한상공을대상으로하고있다는것은명확한것같습니다. 그부분에대해서중국도법적인해석을분명히했다고생각합니다. 서영득 : 중국은배타적경제수역을근거로하면서도배타적경제수역을맞추지않았습니다. 배타적경제수역이훨씬더넓고방공식별구역은조금좁 고, 그러면그것의근거가뭐냐, 무엇을기점으로했느냐, 이것도지금중국은명확하게하지를않습니다. 이명찬 : 그게아마센카쿠제도영유권문제가시급하니까조금얼버무린게있지않은가생각합니다. 송성대 : 제가한마디하겠습니다. 제가제주도에서올라온이유가있습니다. 이이어도에대해서국민들도독도만큼관심을갖지않는것같아요. 그래서독도연구소에서이번에이주제를가지고좌담회를해주신다는것에대한고마움때문에올라왔습니다. 10월 25일이독도의날이죠? 독도의달도있는모양이던데. 그런데우리제주도는이어도의날을제정하려고한 4, 5년동안조례제정을하려고해도무산되고, 정부도지방의회도소극적이라서. 그래서이번에는제주여성들이들고일어섰어요, 여성시민단체에서. 너희는이제못믿겠다, 우리가주민발의를하겠다는겁니다. 아까서변호사님께서조용하게처리하자, 이어도문제로해서중국을자극할필요가없다고했는데, 지방의회나정부로서는충분히이해되죠. 관광객이안오면어떻게할것이냐. 그런데저같은경우는이정도먹고살면됐지, 중국관광객더와서뭐하냐. 우리새로당선된지사도그랬는데, 오지말라고해도올사람은다온단말이에요. 관광객올건다온다이거죠. 이명찬 : 그렇죠. 이어도의날 을만든다고해서중국인들이안오고그러지는않을겁니다. 송성대 : 그렇죠. 이명찬 : 그사람들이뭐 이어도의날 관심이나있겠어요? 송성대 : 그렇죠
53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김병렬 : 이어도의날 을만들면관심을환기시키고고취시키는어떤이점 이있나요? ( 독도 ) 의날 정했다고우리나라사람일본안갑니까? 갈사람들은다가요. 중국사람이 이어도의날 정했다고안옵니까? 송성대 : 그러니까이제껏정치적인문제, 법적인문제만다루었는데, 사실이어도는제주도민으로서는인문학적인아이덴티티하고굉장히밀접하죠. 왜냐하면거기는마의삼각지인버뮤다삼각지처럼옛날에는거기지나가다가 50% 가난파해서사람들이죽었어요. 그것에대한신화, 전설이만들어지고민요가사가만들어지고해서문화적인권원, 법적인용어로권원이라고하는것같은데, 문화적인권원혹은원시적인권원이생긴거죠. 그것을상실한다면, 이어도를중국에게빼앗긴다면제주도민으로서는정신적인뿌리가흔들려버리는거에요. 그래서우리국민들이관심을더가져주시면고맙겠다는거죠. 이명찬 : 방금말씀하신그런문화적인요소들을많이발굴하는것도중요하겠군요. 송성대 : 네, 자료도많이제공하고있어요. 그래서처음에는지방의원들이이어도의날을 1월 18일로하기로했어요. 그래서시민단체들도다모여서워크숍을하는데저도대표로들어가서했는데, 1월 18일이평화선선포의날이거든요. 이건정치적인색채가있으니까저는방향을틀어서문화적인걸로하길바라죠. 이어도문화의날로하라이거죠. 이명찬 : 그러니까주목안하는날로조용히하는게좋다는말씀이군요. 송성대 : 네, 이렇게하니까, 1951년한국산악회하고해군이탐사갔죠. 그것이 9월 10일인가그럴거에요. 그렇게해서방향을설정했는데도, 지난번에어느의원이상정보류안을내놔서보류되고상정을못해서무산돼버렸어요. 아까이선생님말씀마따나아니시마네현입니까? 거기서 다케시마 이명찬 : 저도그것에대해서는강력하게말합니다. 관광객오는것과는전혀관계없습니다. 송성대 : 너무소극적이라는거죠. 이명찬 : 소극적인이유는딱한가지에요. 중국을굳이자극하지말자이거에요. 송성대 : 충분히이해되는데, 문제가되는또하나는중국관공선이활개를치거든요. 지난번에도우리나라국적을가진난파선한척구조하러가니까중국이왜우리허가받지않고이어도에들어왔느냐, 이렇게얘기하고있거든요. 그러니까가만히있을수있습니까? 조용한외교? 안된다는거죠. 시끄러운외교도좀해야된다는얘기죠. 서영득 : 제가조용한외교를주장했던사람으로서, 제가말한조용한외교는가만있자는것이아닙니다. 우리해역에더가깝게와있고, 우리가지금해양기지까지설정해놓은상태에서중요한것은해양경계획정입니다. 해양경계획정에서논리를갖고해야지국민감정으로붙여놔버리면나중에우리가더큰걸잃어버릴수도있다. 그렇다면우리는어떻게해야되느냐. 예를들면, 어떤가수나교수분이종종미국가서독도를신문에내는데이렇게하는것은오히려독도를국제분쟁화시키는데촉매가될수도있는것아닙니까? 그러니까이어도에관한문화행사를한다거나아니면문학작품을발굴해서시상식을크게한다거나이런더차원높은소재를발굴하고, 역사적으로우리의것으로인정받을수있는이성적접근이필요하다고보는것이죠
54 이어도특집 Ⅰ 이어도좌담회 송성대 : 저도마찬가지입니다. 저도국수주의적인것은지양해야된다고보고있습니다. 아까어느분말씀하셨습니다만우리나라는이어도과학기지에서나오는자료들을국제적으로이용하도록개방하고있습니다. 기상자료, 해양자료등모든것을중국, 일본, 러시아에공유하여인류복지에이용하도록하는것입니다. 각종자료를평화적으로이용하자는것이지요. 아까제가 조용한외교 를비판했습니다만그표현은지방정부나지방의회가너무조용하게만간다는뜻입니다. 그런데너무조용하게있다보면국제사회에서는한국이무슨약점이있어서그런줄알거든요. 이명찬 : 그러면, 오늘생각외로아주깊이있는좌담회가된것같아서독자들의평가가기대가됩니다. 이것으로오늘좌담회를모두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5 연구논문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Ⅰ. 머리말 루이아르작 Louis Arsac1 프랑스노르망디캉 (Caen) 아카데미장학관 프랑스인의관점에서한국의지정학에관해논한다면무모하다는비판을면하기어려울지도모른다. 어쩌면, 이주제에관해의견을개진하는것만으로이미오만하다는인상을줄수도있다. 여기에는두가지이유가있다. 우선, 프랑스사회가한국의지정학적인문제에남다른관심을보인다면그것은한국과극동아시아에대한순수한관심일수없기때문이다. 이러한관심은어디까지나현재프랑스가처한지정학적관계와그관계속에서고민하고있는현안들을우선적으로염두에둔상태에서한국의경우를참고하자는차원의관심일것이다. 지금프랑스에서가장큰고민거리중하나는이른바 아랍의봄 (Printemps arabes) 이라불리는중동지역의변화와이변화가야기하는국제적갈등과긴장일것이다. 지금이시간에도중동에서는이슬람과격단체들이 ( 러시아산 ) 칼라슈니코프 (Kalachnikov) 자동소총을겨누며샤리아 (Charia, 이슬람법 ) 를강요하고있다. 또한최근불거진러시아와우크라이나사이의갈등도주변국가들은물론유럽및전 1 문학박사, 장학관 ( 프랑스노르망디캉 (Caen) 아카데미 ). 주베트남 주캄보디아프랑스대사관외교관역임 (2000~2008). 현재, 동남아 동북아 아프리카지역에관한외교및연구활동을계속하고있음. 세계를술렁이게만들었다. 프랑스군대가직접적으로개입하고있는말리의내전이나중부아프리카의과격테러단체들이일으키는문제들또한프랑스사회가주목하고있는국제적현안들이다. 바로이러한현안들을우선순위에두고있기때문에한국을둘러싼국제정세는이러한문제들과의상관관계를통해서생각할수밖에없는것이다. 프랑스인의입장에서한국의지정학을논하기어려운두번째이유는동아시아지역에대한전문적인지식기반이아직까지는프랑스에마련되어있지않기때문이다. 몇안되는아시아전문가들과은퇴한외교관몇명을제외하면한반도의상황을제대로알수있는전문가는전무한상황이다. 이렇다할연구도없었지만, 연구에뛰어들어본사람들은대부분한반도에관한정보들이마치기밀서류라도되는듯접근할수없는장벽에둘러싸여있는현실에당혹스러움을느낀다. 그러나최근 15년사이에많은긍정적인변화가있었다. 아직은동북아, 동남아등구체적인지역을거론할수있는수준은아니지만, 동아시아를멀게만느꼈던과거에비하면요즘은동아시아의존재를피부로느낀다고할까? 한국의경제성장과그에따른영향력은유럽지역에서도가시적으로나타나고있다. 유럽의자동차, 가전제품시장에삼성, LG, 현대등의상표가대량으로쏟아져들어오며한국의저력을자랑하고있다. 이는유럽, 특히프랑스의동종기업에큰타격을주는수준이다. 물론, 시장을확보하는규모에관한한중국의존재가너무엄청나다보니이웃아시아국가들의성과는중국의그늘에가려지는경우가많다. 얼마전, 일본이오랜만에국제적관심을모았지만, 그것은다름아닌후쿠시마 [ 福島 ] 원전사고때문이었다. 프랑스와한국의관계에대해서는, 양국간의불신이나갈등때문이아니라관계자체의부재로인해, 즉서로간에제대로알기회가없었기때문에, 프랑스는오랫동안한국을그저 민족들의콘서트 (concert des nations), 즉많은강대국들이개입하는어떤지역정도로만이해해왔다. 이처럼오랫동안베일에가려져있던한국이최근에와서야프랑스인들의현실속에점
56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차그실체를드러내기시작하였다. 그러나아직도우리프랑스인들은한국의놀라운경제성장에감탄만할뿐, 양국의관계속에서어떻게공동의선을추구할수있을지에대해서는무지하다. 또한, 좁게는동북아에서, 더넓게는동남아에서한국이차지하는위상과외교적영향력이프랑스와어떤상관관계에있을수있는지에대한이해도부족하다. 많은국가들의이해관계가복잡하게얽혀있는동아시아의지정학적중요성을생각할때, 이러한양국간의어정쩡한관계는참으로안타까운일이아닐수없다. 한국은대한민국정부의출범과함께근대국가로의첫발을내딛는순간부터줄곧중국, 일본, 미국이라는세강대국의개입으로몸살을앓아왔다. 때로는이들사이의중재자로, 때로는이들간의과격한충돌을제어하기위한완충지대로써이용되었고, 이는한국의자립을방해하는요인이되었다. 즉, 한반도는강대국들간의 영향력외교 의무대였던셈이다. 그결과, 38선을기준으로분단되는기막힌고통을겪었고, 그이후로한국은사실상세계에서유일한분단국가로남게되었으며, 지금도통일을위한접점을찾는데에힘겨운노력을기울이고있다. 분단을겪고있는유일한나라라고말했지만, 분단을해결하는과정에서한국은결코혼자가아니다. 현재의한국을정확하게이해하기위해서는한국의지정학적특징을살펴보는연구가필수적이다. 이를위해서는공시적인접근뿐만아니라통시적인접근도반드시필요하다. 한국의장구한역사를살펴보면, 오늘날과같은상황이반복적으로일어났음을알수있기때문이다. 본론에서는먼저, 역사적맥락속에나타났던한국의지정학적특징을살펴보고, 이어서우리시대의한반도상황을조망해보고자한다. 본연구를통해과연오늘날그물망처럼한국을조이고있는복잡한힘의관계와그모순점들을제대로밝힐수있을지는자신할수없다. 그러나적어도한가지사실만큼은전달되리라믿는다. 즉, 한민족은지배욕보다는의지력이더강했다는사실말이다. Ⅱ. 삼국통일에서남북분단까지 1. 한반도 라는서사시의주인공 : 한국, 중국그리고일본 한반도의역사는한편의서사시와도같다. 고구려, 백제, 신라삼국간의전쟁이끝난 7세기부터한반도는동북아정세의열쇠로서중국, 일본과의전쟁과화친이반복되는길고지난한역사로접어든다. 백제와고구려를정복한신라는한반도전체를하나의통치국가로통합하는데성공한다. 그러나이과정에서신라는지금의중국인당나라의원조를받음으로써이후의한반도가중국의영향력아래종속되는원인을제공한다. 당시당나라는서쪽으로는강력한중국제국의국경을견고히하기를원했고, 동쪽으로는통일된한반도가중국의속국이됨으로써황해를중심으로하나의강력한중국경제권, 중국문화권을구축하고자했다. 따라서당나라는이러한맥락에서신라의삼국통일을적극적으로도왔던것이다. 통일된한반도에서통일신라가멸망하고고려 2 가세워진후, 958년부터능력위주의관리등용체제가자리잡았고, 3 이후부터전문관료들이다스리는강력한행정질서가만들어지기시작한다. 이시기에채택된능력본위의인재등용원칙은 1895년까지이어진다. 1231년, 칭기즈칸의셋째아들오고타이 (Ogedei) 가고려정복전쟁을감행하여고려를몽골제국에예속시킨다. 이후고려의두장군최영 (1316~ 1388) 과이성계 (1335~1408) 는몽골이분열되어약해진틈을타고려의자주권을회복한다. 또한, 이시기에한반도연안에자주나타나는일본해적들도소탕한다. 1392년, 이성계는조선을건국한다. 세종 (1418~1450) 의통치기간을거치면서조선의국력은강화된다. 세종은군대를개편하고중국과의외교를안정적으로정상화시킨다. 특히, 세종대왕집 2 오늘날한국의영어식명칭 코리아 의기원이다. 3 이시기에시작된관료집단이훗날사대부의기틀이된다. 권시기에창제된한글은훗날한반도의근대화에중요한역할을담당한다. 1592년용의해에, 일본의도요토미히데요시는조선정복의야망을노골적으로
57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드러내며대대적인침략을감행한다. 전쟁초기, 명나라가이런저런구실로지원군파견을망설이는가운데, 조선의명장이순신은일본함선과맞서싸운다. 그러나결정적으로일본을막을수있었던것은 1593년명나라의개입이라고보아야할것이다. 1597년, 일본이재공격을시도했을때, 이순신장군의명민한군대는중국의지원군과힘을합쳐일본군을무찌른다. 이로써일본은대륙정복의꿈을포기한다. 그러나이것은잠정적인포기였을뿐일본의대륙정복에대한야망은끝나지않았다. 임진왜란은승리로끝났지만, 전쟁으로인한조선의피해는엄청났다. 400만명이죽고 4 수많은마을들이폐허가되었다. 중국도적지않은타격을받았다. 군대를한반도로보내는사이국경수비가약화되었고, 이때를틈타만주족은명나라를침략한다. 이번에는명나라가조선에군대원조를요청하고, 이에조선의광해군은만명의군사를보낸다. 하지만전쟁은패하고만다. 1627년, 만주족은조선에동맹을요구하지만, 만주족이북경을완전히정복하기까지 8년간조선은계속해서양쪽진영모두에게소극적인태도를보이며거리를두었다. 18세기에이르러, 조선은숙종과영조시대를맞아태평성대를누린다. 이시기에조선은내각을정비하고책편찬사업을활발히진행시킨다. 정조의통치후, 중앙의모든권력은안동김씨가문이독차지하였으며, 국가의모든재산또한안동김씨가문의손에들어간다. 이시기에조선땅에는흉년이이어지고전염병이창궐하여농민들의삶은말할수없이피폐해진다. 하지만세금은계속해서무거워지기만했고, 참다못한농민들이폭동을일으키기시작한다. 민란의바람은전국적으로확산되었다. 1863년, 흥선대원군이집권해서야왕실의권위가회복된다. 흥선대원군은권좌를차지하자마자관료들의부패를척결하여국고를든든히하였고, 나라의질서를바로세우기에힘쓴다. 그러나외교적인면에서흥선대원군은철저한쇄국정책으로일관하였으며, 조선을고립시키는노선을 선택하였다. 그는러시아, 미국등과의교류를차단하고, 외국문물을받아들이려는모든시도를엄격하게 4 당시한국의인구는 1,400 만으로집계되었다. 통제하였다. 흥선은쇄국정책의일환으로가톨릭을배척하였는데, 결국 1866년에다수의가톨릭선교사들이처형당하는사건이벌어진다. 이에, 프랑스의해군대장로즈 (Roze) 는이사건에관한보고를받고, 조선땅으로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은조선을지키기위해서는모든외세의침략을막아야한다는생각을가지고강력한쇄국정책을펼쳤다. 그러나그의생각은큰착오였다. 실제로당시제국주의열강들에게조선은거의관심밖의나라였기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의집권말기에나라는혼란에휩싸인다 년, 그는죽는순간까지도그의쇄국정책이새시대, 새로운세상을향한조선의첫발걸음을놓치게만든큰실수였다는사실을깨닫지못하였다. 이때까지만해도사실일본과조선은전체적으로비슷한상황에놓여있었다. 세계가앞다투어문호를개방하고외국문물에관심을쏟을때, 두나라에도비슷한바람이불어왔다고할수있다. 그러나바람에대응하는태도는너무나달랐다. 일본열도는쇼군체제를폐지하면서전근대적이고낡은통치체제를근대적질서로개편하는데에성공하였다 (1867). 반면, 한반도는바깥세상에서일어나는일에주의를기울이지못하고, 조선의낡은사상에집착하는외고집으로근대화를위한개혁의때를놓쳤다. 일본은이시기에이미메이지천황을중심으로대륙정복계획을세웠으며, 그계획에따라서양의문물을빠른속도로받아들였다. 따라서일본에게조선침략은큰계획을실현하기위한첫관문이었다. 우선, 조선에서의상권을확보하기위해통상조약을맺도록촉구하였는데, 쇄국정책으로일관하던조선은당연히거절하였다. 외교적인노력이아무런성과를내지못하자일본은함대를보냈다. 미국, 프랑스함대가경험했던것처럼, 일본의함대또한조선의군대로부터포탄을맞았지만, 일본은다른나라들처럼그대로물러서지않고계속해서밀고들어갔다.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을체결하는데성공한다. 강화도조약은실질적으로한국에서이루어지는모든상업활동이일본의감시를받게되는것을의미하 5 왕궁을둘러싼음모와모반의움직임이곳곳에서나타났다. 는것이었다. 또한조선의군대육성을돕는다는명분하에일본군대가조선에주둔하는것또한허용되었
58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다. 같은시기,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은중국이라는거대한땅에들어가기위해무기를준비하는중이었다. 일본이그러했듯이, 다른강대국들역시중국으로진출하기위한발판으로서조선을이용하고자하였다. 중국의입장에서는반대로, 조선을중국의영향력아래붙잡아두는것이세계열강의대열로나아가는데에유리할것이라는계산을하고있었다. 이모든상황속에서, 한반도는스스로의의지와는상관없이열강들의세력다툼에서이미중요한쟁점이되어있었다. 고래싸움에새우등터지는격으로. 근대화초기부터한반도는이렇게열강들이탐욕스럽게바라보는땅, 그들의입맛대로요리할수있을것같은작은왕국과같은존재였다. 2. 일본의식민지배중국은조선내부의친중국세력을이용하여조선땅에발을붙일빌미를얻을수있었다. 일본이그러했듯이, 중국도마치세관처럼한반도를드나드는외세를감시하기시작하였다. 1882년 7월, 인천의조선수비대가일본주둔군에대항해싸우는사태가발생했다. 이사건은다른지역에까지영향을미쳐많은조선군반란이일어났고, 마침내수도에위치한일본대사관을파괴하기에이르렀다. 중국은중국대로반란에대비한다는명목으로군대를움직였고, 일본도한반도에체류하는일본인을보호한다는명분으로군대를움직였다. 독이오른들개들이서로대치하고있는상황이었다. 전쟁을막으려면재빨리타협점을찾지않으면안되었다. 급하게찾은대책이바로톈진조약이었는데, 두나라모두한반도에서군대를철수하기로한약속이다. 위안스카이 [ 袁世凱, Yuan Shikai] 는당시중국군대의고문이었는데, 조선왕실의모든결정을감독하고있었고, 조선이마치중국의보호령인것처럼일을처리하고있었다. 그사이일본은계속해서해군력을강화하였다. 그러던차에호남지역의농민들이과도한세금과관리들의부정부패에분노해반란을일으킨다. 이사건은조선이일본의통치아래예속되도록하는결정적인계기를 마련해준다. 제1 막 : 반란진압의명목으로중국은한반도에군대를파견한다. 그러나이사실을일본에미리알리지않았고, 일본은이에분노한다. 제 2막 : 이사건이빌미가되어일본역시아무런문제없이군대를파견할수있게되고, 일본군은이렇게한국의수도를점령한다. 그리고고종 6 황제를거의인질로붙잡아두다시피하여일본에절대적으로유리한개혁을단행하도록만든다. 제3 막 : 중국과의전쟁을더이상피할수없음을깨달은일본은중국을공격할준비를한다. 군대의전열을가다듬는한편, 일부군대를남만주로보낸다. 또한남아있는조선반란군을완전히제압하고대만을점령하기에이른다. 제4 막 : 1895년 10월 8일, 주한일본대사미우라고로 [ 三浦梧樓, Miura Goro] 의명을받은극우파무사들이고종황제가거처하던궁궐에침입하여황후를시해한다. 이른바을미사변이다. 고종은이날러시아대사관으로피신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러시아는이사건을일본의무자비한폭력성을입증하는사건으로고발하며일본에각성을촉구했으나, 실상한국에서의이권다툼이더이상쉽지않게되었음을직감한다. 러시아는서둘러조선과협약을체결하고조선을러시아권아시아로흡수하려한다. 제5 막 : 1904년 2월, 일본은한국정부가새로운조일조약에응하도록강제하는한편, 해군을동원하여인천에정박한러시아함선들을쫓아내는데성공한다. 1905년, 러시아함선이인천에서완전히물러나는사건을계기로일본은자타가공인하는열강의반열에오른다. 1905년 11 월 17일, 일본은고종황제와한국이일본의보호령이된다는조약을강제체결함으로써대한제국의모든실질적인통치권을폐하고, 고종의군주권일체를박탈한다. 이로써숨만쉬며연명해오던대한제국은죽음을맞이한다. 제5 막을끝으로연극은막을내린다. 파렴치하게도, 일본은이러한일련의사건을다음과같이설명한다. 즉, 미개했던한국이근대화하는데에일본의역할이중 년 9월 8일출생 년 1월 21일사망. 조선왕조 26대임금이자대한제국초대황제. 1863~1907 년까지조선과대한제국을다스렸다. 요했다고말이다. 사실, 이뻔뻔한거짓말이라도하지않는다면식민지배의역사적당위성을달리어떻게설명하겠는가? 일본의한반도침투가한창이던당시
59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한국인들은망설였다. 일본과일본의앞선문명편에설것인가, 아니면찬란한전통을자랑하는중국편에설것인가. 그러나이러한딜레마는쓸데없는고민일뿐이었다. 1907년고종은폐위되었고, 1908년한국의군대는공식적으로해산되었으며, 1910년 8월 22일한국은조센 (Chosen) 이라는이름으로일본에병합된다. 3. 일본의굴레일본은한국인들에게일본어를가르치기위해서일본어교사를대거채용하는등적극적인문화동화정책을펼치기시작하였다. 더나아가문화적동화를방해하는일체의활동을금지하였다. 1938년에는학교를비롯한모든공공장소에서한국어사용을금지하는법을마련하였다. 일본측은식민통치기간동안일본이한국의산업화를촉진했다고주장하며그러한근거들을제시하고있다. 그러나산업화를주도한이유는오직일본의국익을위한것이었을뿐이다. 한반도의산업화로인한모든소득은실제로일본이독차지하였다. 당시한국은일본을먹여살리는식량창고였고, 한국인들은정작심각한식량난에허덕였다. 일본은한국땅에서특히기계산업, 광업, 조선업을집중적으로발전시켰다. 이시기에한국인사업가는극히드물었지만, 소수는그들만의사업수완을바탕으로성공한사례도있다. 이병철이그대표적인인물인데, 그는 1938년에대구에서 삼성 이라는간판을달고슈퍼마켓을열었다. 일본이제국주의에빠져오로지전쟁에필요한군수물자를생산하는일에혈안이되어있는틈을타, 한국인사업가들은섬유, 농산물가공업, 상업등의분야에서사업을일으켰던것이다. 일본의식민통치체제로부터독립하려는한국인들의노력이없었던것은아니다. 1919년 3월, 독립운동의첫시발점이된삼일운동이일어났지만무자비하게진압되었다. 1913년독립군들은상하이의프랑스령지역에거처를마련하여대한민국임시정부를수립하고임시정부군대를조직하는한편, 일본, 독일과의전쟁을공식적으로선포한다. 외적으로는약해보 였지만정신력만큼은어느군대못지않게강한독립군이결성되었다. 독립군에자원했던이들은모두농민과노동자출신이었고, 이들은가톨릭혹은개신교로개종을하곤했는데, 이는일본체제와의확실한결별을표시하기위한것이었다. 또한, 임시정부의독립군들은일본어를철저히배척하며한글보전에힘썼다. 이렇게일본에저항하며독립운동을지속했지만, 제2 차세계대전종전으로일본은무조건항복을선언하였고, 한국은갑작스럽게해방을맞이하였다. 이때한국은고아가된것같은당혹스러움을느끼지않을수없었다. 40년에가까운긴세월동안나라의통수권자가없었기에, 해방직후한국은최고지도자의부재로인하여대혼란을겪게된다. 게다가, 주변국들은한국의독립의지에는전혀관심을두지않고, 이나라를트루만 (Truman) 영역과스탈린 (Staline) 영역이나뉘는경계지점정도로밖에는여기지않았다. 냉전시대 라는용어가등장하기전이었지만, 한반도에서는실질적인냉전시대가열리고있었던것이다. 냉전시대의두주역인미국과러시아는한국의지도를펼쳐놓고 38도선을기준으로나라를반토막내기에이른다. 전임시정부대표였던이승만은주한미군총지휘관하지 (Hodge) 의지원하에분단을둘러싸고일어난대혼란을수습한다. 그러나다음세가지재앙은막아내지못했다. 첫째, 북한지역에서공급하던모든산업자원의지원이끊어졌다. 둘째, 의무노동에징용되었던노동자들이대거남한으로되돌려보내졌다. 셋째, 남한의인플레이션과암시장거래가심각한수준에도달했다. 한편, 북한지역에서는소비에트연방이북한인민위원회를존중하지않고내정에점점더긴밀하게간섭하기시작했다. 4. 한국전쟁, 세계전쟁의축소판이자동족상잔의극단적사례 1946년 2월, 김일성은북한에임시정부를수립하고과격한방법으로친일파를숙청하고농지개혁을단행하였지만, 남한지역까지는미치지못했다. 당시남한지역은이미미국인들이개입하여그들이선호하는방식으로
60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사회를건설해나가고있었다. 결국북한의다섯개도만소비에트화되었다. 이렇게한국은남과북으로나뉘어두개의의회, 두개의정부가서로자신의정당성을주장하게되었다. 그배후에는러시아와미국이있었고, 이들은각각남측과북측의군사력을뒷받침하고있었다. 남과북의적대관계는점차악화되어갔고, 김일성은소비에트로부터비행기와전차를공급받아서라도, 남북한을통일하고자하였다. 1950년 6월 25일에발발한한국전쟁의배경에는크게두가지상황적요인이있었던것으로분석된다. 우선, 한국의입장에서남북의대치상황은식민통치가낳은일시적인혼란일뿐이었고골절을치료하듯이남북통합은반드시해결되어야할과제로여기고있었다. 또다른상황으로는 1949년 10월 1일중화인민공화국이수립되었는데, 중국의이와같은상황변화는김일성에게나이승만에게나큰위협이되었음이분명하다. 한반도에자신의세력을확장하기원하는이웃나라가국력을강화하여문앞에서대기하고있는형국이었기때문이다. 남북통합을더이상기다릴수없었던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13만 5,000의병력을준비하여남으로향했다. 그러나김일성의남침에대응한것은미국맥아더장군의군대였다. 전세는남쪽에유리하게작용하여, 10월, 평양이무너졌다. 그러나북한군은중공의지원군과함께다시서울로진격하여 1951년 1월, 서울을다시점령한다. 그러나같은해 3월, 한미연합군은서울을재탈환하는데성공한다. 이렇게남과북이전진과후퇴를반복하게되자, 트루먼은전쟁이전상태를유지한다는조건으로협상을시도한다. 양쪽모두온갖종류의무기와군대를소진한끝에 1953년 7월 27일, 드디어휴전협정이체결된다. 남북통합을이루기위해 200만이상의사상자를기록하며한반도를거의폐허로만들다시피싸웠지만, 휴전협정을마지막으로한국의통일은무기한으로연기되었다. 한국전쟁이진정공산주의진영과자본주의진영의우위다툼이었는지, 아니면진정남한과북한간최고권력자의이데올로기싸움이었는지는확실하게정의하기어렵다. 그러나분명한것은, 이전쟁은한반도전체에상상할수없는고통을가져 다준동족상잔의비극이었다는것이다. 5. 부흥하는남한과쇠퇴하는북한한국전쟁직후, 1950년대의남한은폐허나다름없었다. 도시는파괴되었고교통, 통신은마비되었다. 열악한산업기반을다시일으켜세우는일은쉽지않았으며, 대다수의국민들은굶주림에시달리고있었다. 온나라가이렇게비틀거렸지만, 완전히쓰러지지않은것은미국의원조덕분이었다. 1956년남한대표로재선출된이승만은공산주의를괴물에비유할정도로철저한반공정책을펼쳤다. 일본이남기고떠난재산을손에넣은사업가들은미군과의친분을이용하여산업을일으켰다. 그대표적기업이삼성이다. 1946년설립된현대 7 도기계기술분야에서산업을일으켰다. 이러한흐름을타고대학도번성하기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나경제적으로나한국사회의발전에대한쟁점은교육이라는인식이전국에확산되었다. 이시기에한국의영화산업도호황기를맞았다. 소비에트연방과중국의원조를받은북한은밝은미래가약속된듯보였다. 중공업발전에필요한모든자원이확보되었고, 두강대국으로부터기술이전을보장받았기때문이다. 김일성의주체사상 8 교육을위한대학도마련되었다. 김일성체제는주체사상을선전할목적으로영화산업을육성시켰고작가들을후원하였다. 당시까지만해도작가들은북한체제에비판적이지않았다. 그러나소비에트연방의최고권력자로등장한흐루시초프가비스탈린화를추진하자, 김일성은소비에트연방과거리를두기시작하였고, 김일성체제는점점왕정정치를연상시키는군 7 기업명이뜻하는의미는 현대적기업. 8 주체사상은기본적으로마르크스 레닌주의로부터만들어졌으나세부적인내용에서많은차이가있다. 계급없는사회를이상으로삼고있으면서정치적독립, 경제적자립, 군사적자립의세가지원칙을내세운다. 주제의형태에가까워졌다. 실제로김일성왕국은아들김정일, 손자김정은에게세습되었다. 남한에서는부정선거에항거하는학생들의거리시위가시발점이되어 4월혁명이일어났고, 1960년 4월 27일이승만대통령은결국하야했다. 그러나이승만
61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의하야후에일어난제2 공화국은얼마가지못하고, 박정희가정권을잡는다. 박정희는일본식군사정부를계획한인물이었다. 정부의철저한감독하에경제발전을추진했지만, 한편으로는일부산업의사유화를허용하여기업들의경쟁을장려하기도했다. 이는대우와같은신생기업이성장할수있는기반을제공하였다. 베트남전쟁이발발했을때, 미국을지지한박정희는 1965년에한국군대를파견하고, 그대가로상당수의군사기술을이전받는다. 박정희는또한일본과의화해를시도하여일본측에서 25억달러에달하는손해배상금을받았다. 1960년대말, 1970년대초한국은확실히발돋움하고있었다. 대학생들의저항을무력으로진압한박정희는마치조롱하기라도하듯대학대중화에앞장섰다. 9 박정희정부는미국과협력관계를유지했지만, 닉슨대통령이마오쩌둥 [ 毛澤東 ] 에게화해의신호를보내자, 정부의독재적성향을더욱강화시키고권력을독점하기위해노력하였다. 즉, 1972년에그는유신헌법을통해유신체제를확립한다. 기업체들과의긴밀한협력은 1차석유파동사태를극복할수있도록해주었지만, 그대신노동자들의임금은계속낮은수준을유지해야만했다. 한국은성장하고있었지만, 남북간의반목은그만큼깊어졌다. 1979년 10월 26일박정희는암살된다. 한편, 주체사상에더욱몰입하고있던북한은이념적으로중국이나소비에트연방에서점점멀어지고있었다. 그러나경제적인면에서두나라에진빚은계속남아있었다. 북한이재정적측면에서상당부분독립적으로운영하였다하더라도, 북한의자원을흡수하는중국과소비에트연방을막을수는없었다. 결국, 경제적침체는점점심각해지고, 그영향은강제수용소에까지미쳤다. 9 지정학을논하는이글에서두나라의내적상황을자세히다룰필요는없다. 그러나오해를방지하기위해한가지사건을소개하고자한다. 당시박정희정부에반대하는거센민중운동이있었는데, 1970년 11 월 13 일, 전태일은 우리는공장의기계가아니다! 노동법을준수하라! 고외치며 대중앞에서분신자살을했다. 이사건은박정희정부의무분별한경제성장정책에가려진그늘을보여준다. 또한, 도시와시골의격차가너무심하게벌어져돌이킬수없는수준이된것도이시기의일이다. Ⅲ. 한반도의두체제는어디로가나 년대 : 전속력으로달리는한국과고속도로를나온북한 박정희암살사건이후에도한국의군사독재는끝나지않았다. 민주화를바라는국민의식의흐름과는정반대로, 쿠데타가쿠데타를낳듯또다른군사쿠데타가일어났다. 1980년대초쿠데타로정권을장악한제5 공화국의수장전두환은한국경제의문을활짝열고외국투자자들을받아들였다. 경제는여전히호황기를누렸지만국민들은점점더민주사회를원했다. 1983년, 해방이후처음으로일본총리가서울을방문할수있었다. 그러나국민들의반응은싸늘했다. 지식인들사이에서는독재정부와결탁하여부를축적하는재벌들을비난하는목소리가커졌다. 일제시대에친일을통해부를축적하던이들이광복후에도여전히같은방식으로권력집단과결탁하여부를축적해온것에분노한것이다. 정치권력과재벌간의이러한결탁에대해한국사회가목소리를높이기시작했다. 1987년, 전두환은결국물러나고사회는기본적인자유를보장할수있게되었다. 노동조합이허용되었고, 국민투표를통한대통령선거가부활했다. 1987년, 군인출신이면서전두환의측근이었던노태우가대통령으로당선되었다. 노태우대통령시절, 한국은역설적인분위기에휩싸여있었다. 한편에는민주화에대한열망을잃고위축된일반대중이있었고, 다른한편에는 1991년의사건이보여주는것처럼격렬한민주화운동과그에대한탄압으로희생되는대학생들이있었다. 일반대중과노동자 -대학생연대사이에모순된분위기는있었지만, 끊임없는민주화운동은근본적으로사회를변화시켰고마침내는대중의윤리의식에도영향을미쳤다. 일제로부터의광복이후, 독재정권시대까지막강했던재벌은서서히영향력을잃고있었다. 1980년대에북한은빠른속도로쇠퇴했다. 무기력한생산구조, 낙후된기계설비, 성과가전혀없는투자등의문제가북한경제를위협했고, 무엇
62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보다군대유지에막대한비용이들어갔다. 북한경제는분명추락하고있었다. 이런상황에서소비에트연방의종말과중국의시장개방은북한을완전히고립시켰다. 위기에몰린북한이생각할수있는유일한희망은핵개발이었다. 내부적으로는정권유지를위해, 외부적으로는외교협상을위해, 핵은북한체제가선택할수있는유일한것이었다. 2. 위기극복을위한한국의선택-국제적영향력을활용한외교전략, 북한의선택- 군사적도발과핵개발 1992년당선된한국의대통령김영삼에관해일각에서는그의근시안적인정치를비판하곤한다. 지도자의카리스마를찾아보기힘들었던것은그만큼정치적신념이결여되어있었기때문이다. 그의임기중유일한성과가있다면그것은 세계화 일것이다. 김영삼정부는한국의국제적교류를확대시키는데에많은노력을기울였다. 엘지, 대우, 삼성, 현대등의대기업은이러한흐름을타고그들만의전문성을바탕으로해외진출에힘썼다. 반면농업은이러한세계화정책으로인해피해를입었다. 사회문화적으로도큰변화가일어났다. 한국은이제중국과의사대관계에서완전히벗어났으며, 이른바 386 세대 10 라고불렸던청년들은미국과일본의앞선문화를동경했다. 한국의영화발전에열광했고, 사고와행동의자유에관한문제에민감했다. 한편으로는민족주의적성향이강했다. 한국에주둔하고있는미군에대한불신이깊었고, 반일감정도격하게표현했다. 이들은한국의비뚤어진근대화과정과인간소외를야기하는국가의무분별한산업화정책에분노했으며, 정부의세계화정책에반대하는시위를하기도했다. 각종카페브랜드와패스트푸드문화가한국사회에가득들어차는동안, 북한사회는극심한기근에시달리며고통을겪었다. 1999년의상황은그중에서도가장절망적이었다. 식량부족으로약 200만 명이사망한것으로조사되었는데, 이는전체인구의 6% 에해당된다. 김일성정권은세습을준비중이었고, 년대에태어나 1980 년대에민주화운동을겪었으며, 당시 (1990 년대 ) 30대청년이된세대를의미하는용어이다. 군대와당간부들은정략결혼을통해고위층의지위를더욱확고히했다. 김정일은이제어엿한후계자로서의입지를굳히고핵무기를미끼로어느정도규모의외교적협상을이끌수있을지를가늠하고있었다. 1991년남한과북한은서로의체제를인정한다는조약을체결하여경제적교류의물꼬를튼다. 한국의많은사업가들이움직이기시작했지만, 북한의극심한기근때문에사업을구체화하기까지는상당한어려움을겪는다. 게다가 1997년, 아시아 에불어닥친경제위기는한국경제에도큰타격을주었다. 한국은국제부채를갚지못할지경에이르러 IMF 체제로들어갔다. 그해마지막 3분기에기록한한국의실업률은 40년만에처음으로거의 8% 를웃돌았다. 이무렵, 경제위기를극복하지못한대우그룹은파산했고, 그룹의총수는프랑스로망명했다. 1999년이되어서야남한의경제는위기에서벗어날수있었다. 2001년부터는 IMF의부채를갚아나갈정도로경제가회복되었다. 김대중정부는침체된경제를활성화시키는방안을모색하여시장경기를회복시켰고, 재벌의역량을강화해세계시장으로나아갈수있도록했다. 한편, 대기업들과은행이오랫동안맺고있던불법적인금융거래관계를청산하도록했고, 실업보험, 직업훈련과같은노동자복지시스템을구축했다. 김대중은정보통신기술, 나노공학, 바이오공학, 문화산업분야를집중적으로발전시켜한국을그야말로세계의중추국가로성장시키기를꿈꿨다. 그리고그의도전은어느정도성공을거뒀다고볼수있다. 도래하는시대의특징을잘파악한도전이었다. 남한과북한두나라모두비슷한시기에위기를겪었고, 그위기를극복하기위해서는외부의도움이필요했다. 남한의경우 IMF의원조였고, 북한의경우는해외의식량원조였다
63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Ⅳ. 개방대고립 1. 한남자의꿈과일국의쇠퇴 2002년 386세대의지지를얻어대통령으로당선된노무현에게는한가지꿈이있었는데, 그꿈을이루기위해서는한국이가까이해야할나라가있고, 거리를두어야할나라가있었다. 그꿈이란다름아닌한국, 미국, 일본의관계를전환시켜한국을외교의중심에서게만드는것이었다. 따라서그는미국과의친분을두텁게하기위해미국과의정치 경제적교류를확대시켰다. 반면, 일본과의관계에서는노골적인적대감을드러내며일본이 UN 안전보장이사회상임이사국회원이되는것을공식적으로반대했다. 2007년에당선된이명박대통령은투기와불법거래등의위험한이력을가진인물이었다. 현대그룹계열사의대표였던그의이력은다분히상징적이다. 그는노무현대통령의노선을따라미국과자유무역협정을체결하고, 11 유럽연합과도자유무역의문을열었다. 한국이세계각지로문호를개방하자, 미국측은즉시 3만명에달하는주한미군을계속유지하기로결정한다. 한국은서해지역에서군사적경계태세를강화하고자한 미연합군의군사훈련을실시하는한편, 제주도에해군기지건설을추진하여미국과이율배반적인관계를만들어간다. 이러한과정에서북한과의관계는소원해지고, 햇볕정책에는어두운그늘만드리운다 외부의존적이라는공통점을가진, 그러나너무다른처지의남과북오늘날한국은세계 12위권의국력을가진나라가되었다. 박근혜대통령은한국의국력을로봇공학과원자력발전분야에집중시키기위해많은노력을기울이고있다. 2000년까지만해도한국의우방국가는 11 미국과의자유무역협정에대한국내의많은반대가있었다. 이협정으로한국산자동차의미국수출을장려할수있었던반면, 미국산소고기의수입이대규모로이루어졌다. 한때광우병사태로격렬한항의시위가일어나기도했다. 12 햇볕정책은직접적인통일방안은아니었지만, 평양과의관계를개선하고자하는외교적노력이었다. 하나의정부가아니라면연방국가의형태로라도통합하려는목표가있었다. 미국과일본이었다. 그러나이제는두나라보다중국과의관계가더중요해졌다. 중국은현재한국에게최대공급자이자최대수요자로서한국경제의젖줄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 우호적인한 중관계와는달리, 일본과의관계는각종분쟁으로악화되기만하고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13 와역사교과서, 14 그리고일본의영토라고주장하는독도문제는두나라의관계를긴장시키는요인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한국과북한은같은시기에중국과우호적관계를유지하고있다. 북한에게는이미예측된상황이었는지도모른다. 주체사상이북한의유일한이데올로기라는점에서북한과중국의이념적관계는언제나우호적일수밖에없다. 그러나군사적으로는독립성을갖춘북한이지만, 경제적으로는어떠한가? 또정치적으로는과연독립적이라고할수있을까? 중국의엄청난감시하에모든결정이이루어진다는점에서북한은흡사중국의하청업자처럼보이기도한다. 이렇듯, 중국과의관계에서남한과북한의입장은유사해보이지만많은차이를드러낸다. 북한은중국의수요자일뿐중국으로의수출은전혀없는, 일방적으로의존하는나라이기때문이다. 남과북의관계는한때햇볕이드는듯했으나, 그빛은이제희미해졌다. 우선 2010년 3월북한의천안함도발사건으로인해남북관계는흔들리기시작했고, 이어서발생한북한의연평도포격사건으로남북관계는돌이킬수없이악화되었다. 결정적으로남한을공포에몰아넣은북한의핵실험은남북관계의가능성을더욱희박하게만들었다. 그렇지만, 남한은계속해서북한과의통일을꿈꾸고있다. 그러나현실적인통일을위해서는우선경제적 문화적측면에서부터북한과의교류를모색해야할것이다. 즉, 중국의위성처럼되어버린북 13 일본군 위안부 란일제강점기에강제동원되었던일본군성노예를가리킨다. 그러나일본은이사실을인정하지않고있다. 14 일본역사교과서에는일본의한국식민을미화하는내용이실려있다. 한의치욕을씻어주는과제부터먼저해결해야할것이다. 통일의두가지주요장애물은북한의의지와통일에대한경제적비용이다. 여기에중국측의부정적인태도또한만만치않은장애물이될것이다. 프랑수
64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아고드망 (Francois Godement) 15 은동북아국제관계에대해다음과같이분석한바있다. 중국은지금까지늘한반도가통일을이루는사태에관해심각한위기의식을느껴왔다. 이는일본도마찬가지다. 왜냐하면한국의통일은국제정세에서불확실성의요인이되기때문이다. 실제로한반도가통일에성공한다면, 한국은동북아에서막강한힘을가진나라가될것이다. Ⅴ. 운명의갈림길에선한국 1. 외교적영향력을활용한다면 2014년, 한국에는하나의꿈이있다. 그리고이꿈을이루기위해서는세가지신중함이필요하다. 그렇다면한국의꿈은무엇일까? 한국은오랫동안선진국의기술을이전받고배우는개발도상국이었다. 하지만, 이제이나라는스스로의국력을키워나갈수있는전략을알고있다. 바로외교를통해준강대국으로부상하는것이다. 이것이바로한국이꿈꾸는미래다. 그러나이를위해서는먼저재정적불안정과불확실한경제성장의문제를신중하게검토해야한다. 중국의수요는점차줄고있고, 이명박정부의 4대강사업은일자리창출에도도움이되지못한채충당하기어려운엄청난예산만낭비하였다. 두번째로신중하게생각해야할문제는이웃나라와의관계에서신뢰를쌓는일이다. 한국은동북아에서믿을만한독립국가로서의입지를마련하지못했다. 중국못지않게미국도한국의입지를허용하지않기때문이다. 그러나한국은이제주변국들에게허락을구할정도 로어리석지는않다. 미국에대해서는, 민주주의와시장경제의옹호자로서미국의우방국이되어정치 경 15 프랑수아고드망 (Francois Godement) 은아시아센터의창립자이자센터장이다 ( 제적인영향력을확보하고있다. 베트남전쟁때에도그러했듯이, 이라크전이나아프가니스탄전쟁과같이미국이개입된분쟁지역에한국군대를파견하는것은이와같은맥락에서한국의정치적입지를확보하는일이다. 준강대국의역량을갖추지못한지금으로서는주변국가들의크고작은결정에우방국으로서참여하여외교적영향력을행사할수있는방안들을모색해야할것이다. 또한, 앞선기술력을갖춘산업분야를이용하여외교적영향력의기틀을마련해야한다. 유럽연합은몇몇분야에서한국의기술력을최고수준으로인식하고있다. 문화산업도마찬가지다. 한국의문화산업수준은 OECD 회원국과 G20 국가들에뒤지지않는다. 한국이세계모든지역과교류의문을열고, 햇볕정책을통해북한과의평화를모색한다면동북아의강대국들은한국의외교적영향력을무시할수없게될것이다. 장기적으로는북한과의관계에서현상유지만을생각해서는안될것이다. 한국을둘러싼두강대국사이에서꼭두각시처럼이리저리휩쓸려다니는소모적외교를피하고, 한반도를둘러싼국제정세를안정시킬수있는능력을스스로갖추게된다면한국의외교적영향력은국제사회에서충분히인정받을수있을것이다. 세번째로신중하게대처해야할점은동북아에서활약하는세거인인중국, 미국, 일본의삼각구도다. 러시아는최근우크라이나와의분쟁에서도드러났듯이, 유럽과맞닿은국경지대에서 NATO와의갈등을해소하기에도바쁜상황이다. 그러나중국, 미국, 일본은한반도를둘러싼문제로부터긴장을풀지않고있다. 일본은언제라도독도문제와같은사안을빌미로분쟁을일으킬수있으며, 중국과의영토문제는그보다더복잡하게얽혀있다. 2. 한국 : 이웃나라들에대한불신, 한국스스로에대한불신최근들어, 주춤하기는하지만중국과의무역이한국경제에미치는영향은이제무시할수없는수준이다. 경제적교류와함께두나라사이에외교
65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적신뢰또한두터워졌다. 중국이북한과맺고있는관계만아니었다면, 한 중관계는분명한국의영향력외교전략에중요한발판이되었을것이다. 동북아를중국권으로통합시키고자하는계획의일환으로랴오닝 [ 遼寧, Liaoning] 과지린 [ 吉林, Jilin] 지역은여전히북한과긴밀한협력관계를유지하고있다. 중국이북한과의관계를중요시하는것은한국에주둔하고있는미군에대한맞대응이라고볼수있다. 양진영이각각남한과북한을볼모로서로에게위협을가하는상황이라고도볼수있다. 중국이아시아를지배하는것은곧세계를지배하는길이라는의미를한국도모르지는않을것이다. 어찌모를수가있겠는가? 여기서제기되는문제는, 걷잡을수없이성장하고있는중국의경제력을고려할때, 향후중국과의기술력경쟁에서한국의기업체는얼마만큼버틸수있을것인가이다. 또한한국과의관계에서갈등이빚어졌을때, 첫번째로중국이들고나올외교적무기는북한이아니겠는가? 근본적으로한국은어떤이웃도신뢰할수없는상황에놓여있다. 일본은과거사에대해전혀반성하지않고있고, 중국은한국과협력하는나라이면서도서로의국력을경계하는관계에있다. 미국또한한국의우방국이지만신뢰할수없는관계이기는마찬가지다. 노무현전대통령이일본의독도반환요구에대해공식적으로비난의목소리를높였을때, 미국이취한입장은양쪽모두에압력을가함으로써다툼을미루게하였을뿐근본적인해결의의지를보이지않았다. 한국이겪고있는뿌리깊은불신의문제는비단외부에만존재하는것이아니다. 한반도를둘러싼모든이웃을불신할수밖에없고, 심지어필요에따라연합하면서도경계하지않을수없는현실속에서, 이나라는폐쇄정책이얼마나위험한지를깨달았고외부와의교류가중요하다는사실또한절감하였다. 그러나오늘날동북아역내에서의외교와화합의길은차단되어있다. 남은선택은동남아와그외지역들이다. 3. 전략적가능성한국은유럽연합, 미국, 동남아국가연합과자유무역협정을체결함으로써앞서이야기한문호개방의의지와가능성을국제사회에보여주었는데, 이는 2009년부터이명박정부가표방한구호 글로벌코리아 에어울리는대외정책들이확대되어가는과정이라고볼수있다. 미국과의관계를돈독히유지함과동시에동남아국가들과의연결고리를만들기위해노력하고있는것이다. 이는중국이나일본과의관계만을추구하는것보다는훨씬안전한길이될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은오늘날중국다음으로북한과많은교역을하는지역이다. 이는북 미교역보다도더활발한수준이다. 한류에관해언급하자면, 어떤면에서한류는과장된현상이기도하고금방가라앉을것같은일시적인바람일수도있다. 그러나한류, 한국바람 이동남아청년들에게막대한영향을끼치고있는것은명백한사실이다. 한류로인해한국어에대한관심이높아졌고, 동남아에서수입하는문화상품중에서한국상품이차지하는비중은압도적이다. 여기에는물론참신하고질좋은영화를제공하는한국의발전된영화산업이큰역할을담당하고있다. 또한약 7,000 여개의한국기업체가동남아국가연합회원국에진출해있다. 준강대국으로서의입지를마련하고자하는한국과성장이더딘동남아지역은강대국들과비교하면상대적으로약소국이라고볼수있다. 그러나이들두지역간의연대는강대국에의지하지않으면서약소국들이자생할수있는국제환경을조성하는중요한기반이될것이다. 강대국들에의지하지않을뿐만아니라강대국들의개입을최소화시키고가능한한완전히배제하는방향으로나아가야할것이다. 예컨대, 남한에서수입하는물량의 80% 는말레이시아말라카해협을거쳐한국땅에도착하게되므로남중국해에서의자유로운해상교통을보장하는것은한국경제와관련해서도중요하다. 예컨대, 만약베트남의남사군도 (Spartly) 와서사군도 (Paracel) 섬을둘러싸고중국과베트남사이에영토분쟁이발생할경우, 한국은한국의이권을보호하기위해외교적인개입을
66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할수있는명분을갖는셈이다. 16 한국은중국이외의국가들, 특히중국과분쟁의여지가있는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와긴밀한협력관계를맺을수있다. 한국이이들세국가들의우방이된다면추가적인외교적역할도담당할수있을것이다. 인도네시아의경우, 모든분야에서한국의경쟁국이아니기때문에두나라는함께민주적가치실현을위한연대, 지역안전을위한연대를형성할수있고, 지역통합을위한공동운항노선을추진할수도있다. 물론, 한국이동남아권에서영향력을확대하는경우, 부분적으로북한과의일촉즉발의관계로인하여발목을잡히게될수도있다. 한편, 한국이통일을구체화하고자할때, 17 과연동남아국가연합이한국편에설것인가는의문이다. 많은사람들은이문제가동남아국가연합이나남한의의지보다는중국, 미국또는일본의결정에달려있다고말한다. 만약상황이이러하다면, 한국으로서는더욱모든예상을뛰어넘는획기적인외교력을준비해야할것이다. 이내용에대해서는한편의정치시나리오를쓸수도있을것이다. 즉, 단일민족이라는명분으로통일을신속하게추진하여준강대국으로서의실질적인역량을지닌강력한하나의정부를구성하는것, 이것은세계를놀라게할시나리오가될것이다. 보다는저돌적인태도를취하고있는것이다. 18 제값을치르지않고서는그어떤진실도밝힐수없다 는레츠 (Retz) 추기경의명언을완전히무시하는태도다. 중국의사회과학원에서는 2002년부터 20007년사이, 고구려 (B.C. 37~A.D. 668) 가중국사에기록되어야할중국의변방이었다는연구결과를실은자료를출판하였다. 한국의지식인들뿐아니라일반인들이어떤반응을보였을지는말하지않아도쉽게짐작할수있을것이다. 한국은이미중국과이어도문제로분쟁을겪은바있다. 중국은또한 2000년부터일본과도센카쿠제도문제로대치하고있는상황이다. 베트남과는스파틀리섬과파라셀섬을두고끈질긴싸움을이어가고있다. 중국은동아시아에대한욕심을버리지못하는미국의행보를곱지않은눈으로지켜보면서, 그들스스로는동아시아를장악하여거대한중국해상권을확보하고자하는야심을숨기지않고있다. 중화사상을가진제국은이처럼여기저기에자신의영유권을주장하는말뚝을박고있다. 그러나만일중국주변의아시아국가들이서로연대할수만있다면, 중국은마음대로큰소리를칠수는없을것이고, 서로의이권을존중하는관계를만들어갈수도있을것이다. 4. 중국에맞서서한국은국제사회에서외교적주도권을갖기를원하며, 또한그런과정중에있다. 어떤강대국도준강대국의대열에들어선한 국의입지를무시할수없게되었다. 성장속도를늦추거나외교적영향력을일시적으로방해할수는있겠지만, 더이상한국의입지자체를흔들기는어려워졌다. 그러나중국만큼은예외다. 중국에대해서는어떤일도장담할수없다. 중국은현재여러지역에서영토문제로시비를걸어외교적협상거리로확대시키고있으며, 게릴라전을꾸준히늘리고있다. 신중한태도 16 이문제로인해중국과베트남사이에심각한교전이있었고, 이는베트남국민들의민족주의적감정을부추겼다. 이문제에대한한국의입장표명이있었는지는불명확하다. 17 한국은국제사회의원조를받을생각이아니라면, 북한과의통일에치러야하는비용을심각하게고려해야한다. 그것은한국경제를흔들어놓을만큼의수준일것이며미리준비해야할것이다. Ⅵ. 맺음말 분할되고, 정복당하고, 병합되고, 다시분단되는기나긴역사를지나오면서, 한국은강대국들의실리에따라좌지우지되는장난감같은나라였다. 흡사, 격투사들의무대에서나볼수있을것같은광경이었다. 이나라는전의를갖추고한국이라는장난감을차지하기위해달려드는강대국들사이에서좋을때는들러리로, 그도아니면하잖은물건정 18 그리스인들이사용하는용어로, 신중한지혜 (prudence avisee) 를뜻한다. 그리스신화에서율리시스가보여주는지혜와영리함을가리킨다. 도의취급을받아왔다. 그러나한국은놀라운경제성장과산업발전을이루었고, 이것은유럽을포함한세계시장으로진출할수
67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있는무기가되었다. 또한 1997년과 2008년의경제위기를극복할수있었던원동력이기도했다. 그러나국지적으로혹은세계적으로한국의외교적입지를세우는일에는그만큼의힘을발휘하지못하고있다. 한국의외교력이동북아역내에만머무른다면, 영해 영토분쟁으로늘골머리를앓게될것이고, 일본의역사관으로인한갈등을겨우해결하는데에만급급할수밖에없다. 하지만좁은동북아를벗어나동남아, 19 유럽, 남미지역으로나아간다면, 그곳의국가들은한국의외교적역량에따라얼마든지든든한우방국이될수있다. 사실, 아시아의모든국가는현재중국의위협이라는공통분모를가지고있다. 이것은아시아외지역들도마찬가지다. 하지만아시아국가들만큼직접적이고강한위협은아닐것이다. 중국은그야말로주변의소인들을삼킬준비를하는거인과도같은존재다. 이러한상황가운데, 한국이꺼낼수있는카드는두가지가있다. 하나는무슨수를써서라도북한과통일을이루는것이다. 통일된한국은강대국들과대등한관계에서협상을이끌기에충분한영향력을가질수있다. 한반도통일의상징적가치에대해서는이미많은국가들이인식하고있으며, 이때문에서울을주목하고비무장지대를주목하고있다. 고대로마학자수에토니우스 (Suetone) 20 에따르면, 카이사르 (Cesar) 는루비콘 (Rubicon) 강을마주한순간잠시망설였다고한다. 여기서우리는발걸음을되돌릴수있다. 그러나이작은강을건너고나면, 우리손에있는무기가어떤일들을행할지는신의뜻에맡길뿐이다. 바로이말끝에, 그는 주사위는던져졌다 (Alea jacta est)! 고외친것이다. 그러나주사위를던지 는것은평화적인방법으로도가능한일일것이다. 다른하나의카드는동남아국가들과의연대다. 상업적교류의차원을넘어서진정한동맹국으로그관계를발전시키는노력은어쩌면통일보다더현실적인대안이될수도있을것이다. 이를위해서는캄보디아프놈펜의한국교육문화원의활동처럼장기적인관 19 그러나한편으로는, 한국기업가들이베트남현지에서많은비판을받고있다. 현지노동자들을고용하여업체를경영하는방식에관한비판들이다. 20 서기 1세기부터 2세기사이에살았던로마의역사가이자정치가로서, 그의유명한저작으로는율리우스가이우스카이사르의전기를담은 열두카이사르의인생 (la Vie des douze Cesars) 이있다. 점을가지고지속적인교류방안들을모색해야할것이다. 물론, 이두장의카드를꺼내는일에는앞서언급했듯이, 많은어려움이따를수있다. 그러나어려움을극복할의지만있다면, 불가능한것은아니다. 게다가두가지방안은서로배타적이거나모순적이지않다. 오히려상호보완적이다. 하나가다른하나를촉진시킬수있다. 북한과동남아는결코한국에대해같은바다를놓고싸우는카리브디스 (Charybde) 와스킬라 (Scylla) 가아니다. 두괴물은따로있다
68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국문초록 ABSTRACT 한국은이웃나라들로부터끊임없이침략을받아왔음에도, 이웃나라를침략했던경험은거의없다. 38선을기점으로분단되기이전의한반도정세를이해하기위해서는중국, 일본뿐만아니라, 미국에이르기까지이웃강대국들의이해관계를파악해야하며, 줄곧이러한강대국들의표적이되어왔던한반도의역사적사실을고려해야만한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를둘러싼강대국들간의치열한세력다툼이있었지만, 한반도에대한독점권은그어떤국가에게도허락하지않았다. 하지만근대화의초기무렵조선이선택했던쇄국정책으로인하여일본이한반도를점령하고식민지화하는데에결정적인기회를제공하였다. 일본의식민지배와광복후발발한한국전쟁은한반도를거의폐허상태로만들어놓았지만, 전후복구사업과산업화에성공한한국은 1980년대에이르러기적과도같은경제성장을이루었다. 그러나한국은동북아지역에서그국력에상응하는외교적영향력을행사하는데에는여전히어려움을겪고있다. 이러한상황을극복하기위해한국은 한류 를포함한문화정책을중심으로다양한분야에서뛰어난역량을발휘하여동북아역내에서자신의외교적영향력을키우는방안을모색해야한다. 요컨대,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의회원국들과협력관계를구축하는한편, 북한과의평화적통일을모색하는것은국제사회에서한국의 영향력외교 를가능케하는가장중요한과제가될것이다. 주제어 지정학, 영향력외교전략, 쇄국정책, 식민화, 전후복구사업, 근대화, 세계화, 통일과강대국, 아세안 ( 동남아시아국가연합 ) 과의연대 South Korea s Geopolitics: On the Road to Influential Diplomacy Louis Arsac Conseiller, Académie de Caen, Basse-Normandie Although South Korea has been constantly invaded by neighboring countries, it has rarely done so itself. In order to understand the circumstances the Korean Peninsula was in prior to its division along the 38th parallel, it is necessary to grasp the interests of neighboring major powers including China, Japan and even the United States, and also consider the fact that the Korean Peninsula has been a target of such major powers throughout history. Fierce struggles indeed took place between powers over the Korean Peninsula, but not one of them was allowed to gain an exclusive hold. However, the Joseon Dynasty s choice to adopt policies of isolation in the early years of modernization resulted in providing a critical opportunity for Japan to conquer and colonize the Korean peninsula. Nevertheless, although it was left nearly in ruins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Korean War that erupted soon after its independence from Japan, South Korea successfully went through post-war reconstruction and industrialization to achieve miraculous economic growth by the 1980s. Yet, it is still challenging for South Korea to exert a degree of diplomatic influence in Northeast Asia that corresponds to its national power. In order to overcome such a situation, South Korea needs to demonstrate its exceptional capabilities in various sectors with cultural policies such as Hallyu (Korean wave) and seek for ways to increase its diplomatic influence in northeast Asia. Meanwhile, it will also be necessary to build cooperative relations with members of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 and to pursue a peaceful reunification with North Korea in order for South Korea to be able to exercise a more influential diplomacy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Keywords Geopolitics, strategy for diplomatic influence, isolationism, colonization, post-war restoration, modernization, globalization, reunification and major power, Cooperation with ASEAN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69 한국의지정학, 영향력외교 로나아가는길 참고문헌 한불국제학술세미나자료집, 2013, 최근동아시아정세와영토문제, 그리고지도제작, 동북아역사재단. Aron Raymond, 2004, Paix et guerre entre les nations, Calmann-Levy. Charvin Robert, Dujardin Guillaume, 2010, La Coree vers la reunification, L Harmattan. Dayez-Burgeon Pascal, 2012, Histoire de la Coree, des origines a nos jours, Tallandier. Destexhe Alain, 2001, Coree du Nord: voyage en dynastie totalitaire, L Harmattan. Fabre Andre, 2001, Histoire de la Coree, L Asiatheque. Gelezeau Valerie, 2005, La Coree en miettes, regions et territoires, L Harmattan. Herodote, 2011, Geopolitique de la Peninsule coreenne, La Decouverte. Leveau Arnaud, 2014, Geopolitique de la Coree du Sud, une puissance paradoxale, Argos. Lelievre Henry, Barthelemy Jean, 2000, Japon, Chine, Coree Cette Asie qui derange, Complexe. Postel-Vinay Karoline, 2002, Coree, au cœur de la nouvelle Asie, Flammarion. Quennedey Benoit, 2011, L economie de la Coree du Nord, Indes Savantes. Rigoulot Pierre, 2007, Coree du Nord, Etat voyou, Buchet-Chastel
70 연구논문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 2014 년검정통과초등학교교과서의기술내용을중심으로 Ⅰ. 머리말 서종진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 2014년 4월 4일에일본문부과학성이교과서검정결과를발표하였다. 예년에는 3월말에발표되었는데, 이번발표는네덜란드헤이그에서 3월 25일에개최된한미일정상회담의영향으로발표시기가연기되었다고한다. 하지만일본정부의 배려 에도불구하고검정결과가발표되자한국외무부는벳쇼고로 [ 別所浩郎 ] 주한일본대사를불러항의하였고, 교육부도교과서를통한역사왜곡과영유권도발은동북아지역의평화를저해한다는대변인성명을발표하여양국관계는예년과마찬가지로냉각되었다. 1 이번교과서검정은교육기본법개정과초중고학습지도요령및해설서개정이후이들개정된규정에의거한두번째검정이다. 새로운학습지도요령및해설서에의거한첫검정이아니므로큰변화는없을것으로예상되었다. 그런데 2014년 1월에문부과학성이이례적으로 교과용도서검정기준 과 학습지도요령해설서 를개정하였다. 일본정부가추진해온교육정책개혁의움직임이이번교과서검정에어떠한영향을미쳤는가를확인할필요가있다. 1 조선일보, ; 産経新聞, 자민당아베신조 [ 安倍晋三 ] 총재는 일본을회복시킨다 라는슬로건을내걸고 2012년총선에임하였다. 총선핵심공약의하나가교육 재생 이었고선거결과자민당이승리하여 2012년 12월말에제2 기아베내각이출범하였다. 아베총리는 2006년에 교육기본법 을 60여년만에개정하였는데, 자민당과아베총리는민주당으로의정권교체로말미암아이전에수행하지못하고남겨둔과제를일본의 회복 재생 이라는슬로건아래재추진하고자하였다. 아베총리의애국심강조교육에대한의지는총리취임직후인 2013년 1월에총리직속의 교육재생실행회의 를설치하고 2월에내각관방 영토 주권대책기획조정실 을설치한것으로확인할수있다. 이번검정은애국심과영토교육강화를추진하는제2 기아베정권이들어선이후에진행되어발표되었다는점에서도주목할필요가있다. 이논문에서는아베정부의교육정책일환으로추진되고있는영토교육강화가검정교과서에어떻게영향을미치고있는가를살펴볼것이며 2014년검정통과초등학교사회과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의변화를검토하는것이과제다. 이를위해서먼저자민당과아베정권이추진하려는교육정책의내용과초등학교교과서기술의지침이되는규정들을살펴보고, 다음으로이번검정에합격한교과서의내용을분석할것이다. 일본검정교과서의영토관련규정과내용을분석한연구는새롭게검정이이루어질때마다발표되고있다. 2 하지만초등학교교과서의영토관련기술에대한연구는기술분량도적기때문인지기술내용에대해서상세하게분석한글은 2 심정보, 2008, 일본의사회과에서독도에관한영토교육의현황,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16(3); 남상구, 2011, 전후일본중학교교과서의독도기술추이와현황, 영토해양연구 1,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 3 박병섭, 2011, 일본의사회과교과서와독도문제, 독도연구 제11호, 영남대학교독도연구소 ; 허은실 남상준, 2013, 일본초등사회과의영토교육내용, 영토해양연구 5,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 많지않다. 3 일본정부가정책적으로영토교육을강화하고있는중에이루어진교과서검정이라는점에주목하여내년부터사용될새로운초등학교사회과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에대해검토하도록하겠다
71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Ⅱ. 아베정부의교육정책개혁의배경 2012년 12월 16일총선거결과자민당은소선거구 237개의석, 비례선거구 57개의석으로총 294개의석을획득했다. 자민당의패배로기록되는 2009년총선거결과자민당은 119석으로감소하였지만, 2012년총선결과자민당의석은 294개의석으로 2009년과비교하여 175개의석이증가하였다. 아베정권으로정권교체가이루어졌다는점에서집권민주당의패배였고자민당의승리였다. 의석수를보면자민당이 3분의 2 이상을획득하였으므로압승을거두었다고할수있다. 그런데비례대표선거에서자민당의득표율은 27.6% 에불과하지만, 소선거구전체 300개의석가운데 237석을획득하고있다. 이를보면자민당의의석수증가가곧국민들의절대적지지라고보기는어렵다. 당선자 1명이라는소선거구제아래에서민주당지지표의이탈이자민당의의석수독점요인의하나였다. 민주당지지층의이탈요인으로는민주당정책의일관성결여와 3 11 동일본대지진전후로노정된정책대응의혼란등이거론되는데, 민주당에등을돌린유권자의표가그대로자민당지지로이동한것은아니었다. 비례대표선거에서자민당은 57석, 민주당은 30석, 유신회가 40석인데, 이들을비교해보더라도자민당의압승은소선거구에서의승리였다. 4 일본에서는 1990년대중반이후추진되고있는구조개혁결과로표면화된사회문제에대한대책이요구되고있다. 집권당은경제계에서요구하는신자유주의적구조개혁과보통국가화를위한개헌등을과제로안고있다. 지지기반이안정적이지못한아베정부와자민당으로서는이들과제를추진하기위해서보수세력의통합을이끌어내지않으면안된다. 아베정부는국제사회에서의경쟁력강화와구조개혁으로인한사회갈등에대한대책으로서먼저교육문제를부각시키면서 교육개혁 과 교육재생 정책들에 서, 일본교직원조합에지배당한교원인사 등의교육문제를 위기 로설정하고이에대한개혁이필요하다고하면서보수세력의통합과함께지지를호소하고있다. 아베수상의저서에 교육재생 이란제목의장이있다. 여기서 1980년대의영 미교육개혁정책을모델로하여 의식이있는국민을기르고품격을가진국가를만드는것 을교육목적으로설정하고, 교육을 재생 시키는일은국가의책무라고하면서일본에서의교육개혁필요성을강조하고있다. 6 아베수상이구상하는교육개혁정책은자민당교육재생실행본부가중의원선거직전 ( ) 에발표한중간종합보고서에구체화되어있다. 즉, 교육위원회를사실상폐지하고지자체장이임명하는교육장의하부부속조직화, 의무교육비국고부담비율을 100% 로하고공교육에서국가의권한과책임확대, 가칭교과용도서검정법을제정하여상세한검정기준을법령으로정하고, 교과서채택은교육장단독결정, 학교교육법을개정하여문부과학성단독으로학습지도요령결정, 교육공무원특별법개정과교육공무원윤리규정을책정하여교사의정치활동을규제하고근무성적평가 관리, 교원면허법을개정하여대학과대학원에서준면허를수여한후교육장이본면허를수여하는것등이주요내용이다. 자민당헌법개정안에는 국가는교육이국가의미래를개척해나가는데불가결한것이라는것을감안하여교육환경의정비에힘쓰지않으면안된다 (26 조 3항 ) 라는새로운항이추가되었다. 이조항을보면교육이국가를위한것이라는관점에서 국가교육권 을강조하고있음을엿볼수있다. 여기서말하는교육환경의정비는개정된교육기본법등의법률에의거한교육환경정비를의미한다. 제1 차아베내각에서애국심을강조한교육기본법을개정하였고이에의거한학습지도요령개정으로교과서가제작되고있다. 이들교육관련규범을뒷받침하기위한교과서검 초점을맞추고있다. 5 자민당교육재생실행본부의보고서에는 이지메로인한자살, 이지메를은폐하는교육위원회, 무책임한교육위원회, 자학사관교과 4 渡辺治, 2013, 安部政権と日本政治の新段階, 旬報社, 14쪽. 5 渡辺治, 2013, 위의책, 110~111 쪽. 6 安部晋三, 2013, 新しい国へ, 文春親書, 204~209 쪽. 7 아베정권은교육개혁정책을추진하기위해서교육재생실행본부장출신의시모무 정 채택제도의필요성이향후과제로서강조되고있으며그외의일련의교육정책들이교육재생과교육환경의정비라는미명하에추진되고있다
72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한예로아베정부는 2014년 4월 4일에현행교육위원회제도를개정하는내용으로지방교육행정법개정안을각의결정하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이주재하는 총합교육회의 를설치하고, 지자체장이직접임명하는교육장이교육위원회의책임자가되게하였다. 결국정치세력의교육개입을가능하게하는법률개정으로당장내년 2015년중학교교과서검정과채택과정에서논란이될것으로보인다. Ⅲ. 교과서관련규정개정과영토교육강화 2013년 6월 25일에자민당교육재생실행본부의 교과서검정실태관련특별부서 가교육개혁의일환으로검토중인교과서검정 채택관련중간보고서를종합하여총리에게제출하였다. 보고서는교과서검정과채택제도와관련하여현행교과서검정제도의문제점을지적하고개혁안을제시하고있다. 이보고서에따르면교육기본법과학습지도요령의개정이후실시된첫초중고교과서검정결과, 아직도 자학사관 에입각한기술이있다고보고있다. 고등학교역사교과서기술에서는교육기본법과학습지도요령의취지에따르고있는지의문이며, 지리교과서의경우는모든교과서에영토문제를기술하고있지만일본정부의주장이충분하게기술되어있지않다는것이다. 이러한문제점을개선하기위해서교과서기술시에정부견해와판례를언급하도록하고, 여러학설이있는경우는다수설과소수설을병기하며, 근현대사에서는확정된견해와학설이없는사항은 기술하지않도록하자고제안하고있다. 또한교과서검정과정을개정하여교육기본법과학습지도요령의취지를반영한교과서편집 집필을위해검정신청단계에서발행자에게편집취의서등의서류개선을요구하고있다. 향후과제로서교과서정의 검정 채 라 [ 下村博文 ] 를문부과학성대신, 교육재생실행본부의교육위원회제도개혁분과회좌장출신의요시이에 [ 義家弘介 ] 를정무관에임명하는등보수우익성향의측근들을문부과학성의요직에포진시켰다. 또한교육재생실행회의에는우익교과서를발행하는일본교육재생기구의야기 [ 八木秀次 ] 이사장등이포함되어있다. 택을포괄하는 가칭교과서법 의제정을제안하였다. 교육재생실행본부의보고서제안에따른교과서검정 채택제도의변화 가부분적으로라도 교과서법 으로현실화될경우에영토문제기술확대 강화, 자국 자민족중심적인역사서술증가, 우익교과서의채택률증가등 을야기함으로써교과서왜곡문제가확대 심화될것이예상되었는데실제 로 2014 년검정결과발표에앞서이례적으로교과서관련규정들이신속 하게개정되었다. 먼저문부과학성이 1 월 17 일에 교과용도서검정기준 을개정하였는데 이들기준은초등학교사회과와중 고등학교역사 지리 공민에적용되는 것이라고고시하였다. 8 그내용을보면, 1 특정사항을지나치게강조하지 않도록할것. 2 근현대역사적사상 ( 事象 ) 가운데통설적인견해가없는숫 자등의사항에대해서기술할경우에는통설적인견해가없다는점이명시되어있어야함과동시에아동또는생도가오해할우려가있는표현이없을것. 3 각의결정그외의방법으로표명된정부의통일된견해또는최고재판소의판례가존재할경우에는그것에의거한기술이되어있을것등이다. 또한문부과학성은 1월 28일에이례적으로중 고학습지도요령해설서의일부개정안을발표 9 하였는데, 개정의취지에서영토에관한교육을 충실 하게하기위해서라고밝히고있다. < 표 1> 은중학교지리와역사, 공민의영토관련내용이다. 새롭게개정된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서는독도와 센카쿠 ( 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 ) 제도를 우리나라 ( 일본 ) 고유의영토 라고명기하게하고있으며, 독도는러시아의 북방영토 ( 남쿠릴열도 ) 와마찬가지로한국에의해불법점거되고있다고기술하고있다. 센카쿠제도에대해서는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처음으로등장하였으며, 여기에는영토분쟁이존재하지않는다는정부의입장을기술하도록규정하고있다. 이들개정된규정들의적용대상은중학 8 義務教育諸学校教科用図書検定基準 及び高等学校教科用図書検定基準の一部を改正する告示 (1 월 17 일 ), 일본문부과학성홈페이지 ( 참조. 9 中学校学習指導要領解説及び高等学校学習指導要領解説の一部改訂について (1 월 28 일 ), 일본문부과학성홈페이지 ( 참조
73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 표 1> 중학교학습지도요령해설서개정내용 10 과목 지리 역사 공민 교사회과의지리적분야, 역사적분야, 공민적분야와고등학교지리 역사과의일본사 A B, 지리 A B, 공민과의현대사회와정치 경제등이며, 적용시기는 2014년교과서검정신청예정인중학교사회과교과서부터다. 독도관련규정들이지리뿐만아니라역사에까지확대되고있는점에주의할필요가있다. 새롭게개정된학습지도요령해설의규정들은중고등학교교과서에대한것으로초등학교교과서에대한것은아니었다. 현행초등학교의학습지도요령및해설의규정들을살펴보도록하겠다. 먼저문부과학성이 2008년에고시한초등학교학습지도요령해설서의개정취지에서는 사회과, 지리역사과, 공민과개선의기본방침에따라지역사회나우리나라의국토, 역사에대한이해와애정을깊게함으로써사회적인시각과생각을육성 한다고되어있다. 이전학습지도요령 (1999) 과비교하여보면 국토의위치 항목에 영토 를추가하여 국토의위치와영토 로변경되어국토및영토관련내용이최우선순위로 내용 북방영토 ( 하보마이군도,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 ) 와다케시마에대해서각각의위치와범위를확인시키면서우리나라의고유영토이지만각각현재러시아연방과한국에의해불법으로점거되고있기때문에북방영토에대해서는러시아연방에그반환을요구하고있는것, 다케시마에대해서는한국에대해누차에걸쳐항의를하고있는것등에대해서적확하게다루고, 우리나라의영토 영역에관해서이해를깊게하는것도필요하다. 또한센카쿠열도에대해서는우리나라고유의영토이고또실제로우리나라가이를지배하고있고, 해결해야할영유권문제는존재하지않는것을그위치와범위와함께이해시키는것이필요하다. ( ) [ ] 영토의획정 에서는러시아와의영토획정을비롯하여류큐문제와홋카이도의개척을다룬다. 그때에 우리나라가국제법상정당한근거에의거하여다케시마, 센카쿠제도를정식으로영토에편입한경위도언급한다. 또한중국과조선과의외교도다룬다. ( ) 그때에지리적분야, 역사적분야의학습성과를토대로국가간의문제로서영토 ( 영해, 영공을포함 ) 에대해서는우리나라에서도고유영토인북방영토와다케시마에관해미해결문제가남아있는것과현상태에이른경위, 우리나라가정당하게주장하고있는입장, 우리나라가평화적수단에의한해결을위해노력하고있는것을이해시킨다. 또우리나라고유영토인센카쿠제도를둘러싼정세에대해서는현상황에이르게된경위, 우리나라의정당한입장을이해시키고센카쿠열도를둘러싸고해결해야하는영유권문제는존재하고있지않다는것을이해시킨다. ( ) * 밑줄부분은이전규정과비교하여새롭게변경된부분임 년 7월발표된중학교지리학습지도요령해설에서 우리나라 ( 일본 ) 와한국사이에 다케시마 에대한주장에차이가있다는점등에대해서도취급, 북방영토와동일하게우리나라의영토ㆍ영역에대한이해를심화시키는것도필요하다 라고하여독도에대해서처음으로명기하였다. < 표 2> 초등학교학습지도요령해설서비교 11 목표 내용 강조되고있다. 그리고해설서 목표및내용 을비교 (5 학년 ) 하면초등학교사 회과영토는 5 학년에서다루고있는데영토부분이목표 (2) 에서 (1) 로, 내 용 (4) 에서 (1) 로이동하고있음을알수있다. 현행초등학교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서는영토와관련하여다음과같 이기술하고있다. 영토에대해서는북방영토문제에대해서도거론하고우리나라고유의영토인하보마이,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가현재러시아연방에의해불법으로점거되고있는것과우리나라가그반환을요구하고있는것등에대해서언급하도록한다. ( ) 즉, 북방영토 ( 남쿠릴열도 ) 에대해서는일본의고유영토라고언급하고있는반면독도에관해서는직접적으로언급하고있지는않다. Ⅳ 년검정통과초등학교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2014년일본문부과학성의초등학교교과서에대한검정결과, 9교과 139종이검정신청하여모두합격하였다. 9교과의평균쪽수는 6,646 쪽으로현재사용중인교과서 6,098 쪽보다평균 9% 증가하였다. 이는일본정부가지향하는 탈 ( 脱 ) 유토리 ( 여유 ) 12 교육방침이정착되어가고있음을나타내고있다. 그리고검정의견은총 2,883 건이제시되었는데, 이는교과서당평균 21건이며학습지도요령이전면적으 11 일본문부과학성홈페이지 ( mext.go.jp) 참조. 12 지식중시형교육방침을주입식교육이라고비판하면서경험중시형교육방침을가지고유토리 ( 여유 ) 있는학교를지향하는교육방침을말한다 년 2008 년 (2) 우리나라국토의정세에관해서이해할수있도록하고 [ ] 국토에대한애정을기르도록한다. (4) 우리나라국토의자연등의상황에관하여다음사항을지도나그외의자료를활용하여조사하고국토환경이사람들의생활이나산업과밀접한관련을가지고있음을생각하도록한다. (1) 우리나라국토의정세, 국토의환경과국민생활과의관련에대해서이해할수있도록하고 [ ] 국토에대한애정을기르도록한다. (1) 우리나라국토의자연등의상황에관하여다음사항을지도나지구의, 자료등을활용하여조사하고국토환경이사람들의생활이나산업과밀접한관련을가지고있음을생각하도록한다
74 영토해양연구 Vol. 8 아베 정부의 영토교육 강화와 검정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변화 고 기술한 부분이 삭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세계 속의 일본의 역 할이라는 주제로 일본과 주변국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전체적인 흐 름에서 본다면 일본이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기술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정안을 보면 결국 교과 서 검정의견은 센카쿠제도에는 영유권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부 견 해에 의거한 기술로 변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례를 놓고 볼 때, 올해 1월에 새롭게 개정된 교과용도서검정기준이 소급되어 적용되었다고 <그림 1> 2010년 교과서 검정 사례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에 독도 관련 교과서 기 술에 대해서는 검정의견이 없었다는 것은 이미 개정된 교과용도서검정기 로 개정된 2010년 검정의 평균 38건과 비교하면 감소하였다. 2010년의 검정에서는 일본 정부의 견해를 기술하게 하는 검정의견을 제 시함으로써, 독도와 관련한 부분에서 지도상에 독도의 위치 및 독도의 일본 식 명칭인 다케시마[竹島] 라고 기재하거나, 독도를 명기하지는 않고 지도상 준을 충족시킨 기술로 검정 신청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이다. 2014년 검정 결과, 초등학교 사회과를 발간한 총 4개 출판사(東京, 日文, 光 村, 敎育)의 8종(5학년 4종, 6학년 4종) 교과서 모두 검정을 통과하였다. <표 3>은 에 국경선을 표시하여 일본 영해에 포함시킨 교과서가 최종적으로 검정에 합격하였다. <그림 1>은 2010년의 검정 사례인데 국경선에 대하여 이해하 기 어려운 그림이다 라는 검정의견이 제시되어 국경선을 표시한 사례다. 실 제로 미쓰무라[光村]도서출판과 교육출판 등 2개 출판사 교과서는 검정 신 <표 3> 각 출판사별 2014년 검정 통과 독도 관련 기술 내용 출판사 東京 書籍 청본에 국경선 표시를 하지 않았으나 문부과학성의 검정의견을 받고 국경 선을 추가하여 검정에 합격하였다. 2014년 검정에서는 독도 관련 기술에 대해 직접 검정의견이 제시되지는 敎育 出版 않았다. 하지만 센카쿠제도에 대한 기술에서 검정의견이 제시되어 기술이 변경되고 있다. 미쓰무라출판 신청본 6학년 사회 교과서의 기술에 대해 센 카쿠제도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다 라는 검정 의견 한 건이 영토 관련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신청본의 일본의 영토인 센 日本 文敎 出版 카쿠제도에 대해서 중국이 영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정부는 그 해결을 위해 서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는 기술은 검정의견이 제시된 결과 일본의 영토인 센카쿠제도에 대해서 중국이 그 영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라고 수 정되었다. 후반부의 정부는 그 해결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 146 光村 圖書 出版 학년 교과서 내용 5학년 (박스) 영토를 둘러싼 문제: 일본 해상에 있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지만, 한국이 불법 上 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9쪽) (주) 북방영토, 다케시마, 센카쿠제도의 위치: 이 섬들 주변에서 일본이 해저에 있는 자원 개발 과 어업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필요합니다. 5학년 (박스) 일본 고유의 영토, 다케시마와 센카쿠제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지만 上 1954년부터 한국이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에 대해 항의함과 동시에 국제 무대에서 논의하여 해결하자고 한국에 요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12쪽) (박스) 영토를 둘러싼 과제: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지만 1954년부터 한국이 불법점 6학년 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에 대해 항의함과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논의하여 해결하자 下 고 한국에 대해 요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쪽) 43 일본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는 신중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6학년 (학습자료) 다케시마: 시마네현에 있는 다케시마는 1905년에 시마네현에 편입된 일본의 영토 上 입니다. 그러나 한국도 그 영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은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항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162, 163쪽) 6학년 (박스) 북방영토와 다케시마 문제와 같이 일본이 외국과의 사이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下 유엔헌장의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하면서, 생각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69쪽) (박스) 영토를 둘러싼 문제 - 북방영토, 다케시마, 센카쿠제도: 일본해에 위치한 다케시마(시마 5학년 네현)는 일본 고유의 영토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어, 일본 정부는 강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17쪽) (박스) 일본과 한반도 국가들: 일본의 영토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것에 6학년 대해 일본은 강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쪽)
75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이들 8종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내용을정리한것이다. 이번검정에통과한 4개출판사교과서에는모두독도를일본영토로기술하여종래 1종에서총 6종으로증가하였다. 현행본의독도관련기술은 5학년의공민분야 ( 일본문교출판 ) 에서기술되었으나이번에는공민분야 (6 학년 ) 는물론이고 6학년 ( 상 ) 역사분야 ( 일본문교출판 ) 에도기술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기술내용도종래 불법점거 외에 시마네 [ 島根 ] 현에있는, 일본 ( 고유 ) 영토, 불법점령, ( 한국에 ) 계속항의, 국제무대에서논의하여해결 등의문구를추가하고있다. 독도를일본의 고유영토 라고하는것은정부의견해를교과서에명기한것이고이러한내용의기술이초등학교교과서에등장한것은현정부의영토교육강화방침을교과서발행자가의식한결과라고보여진다. < 표 4> 초등학교사회과교과서독도관련기술및지도세부현황 14 출판사 ( 점유율 13 ) 학년 2004 년 2010 년 2014 년 기술 지도 표기 기술 지도 표기 기술 지도 표기 사진 교과서본문에서의독도관련기술외에지도를보면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라고표기하거나, 울릉도와독도사이에국경선을표시한지도가 3 4 학년사회과교과서에도등장하는등전체지도수와함께 다케시마 라고표기한지도수도상당히증가하였다. < 표 4> 는최근 3회에걸친초등학교사회과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과지도에대한세부현황을출판사별로정리한것이다. 이번에검정에합격한 5 6 학년사회과총 8종가운데 7종교과서의지도상에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라고명기한지도가게재되었고, 미표기의경우도국경선이나배타적경제수역 (EEZ) 을표시하여일본의영역으로기술하고있다. 지도수는 3 4 학년용교과서 2종에도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로표기한지도를게재하여이전 9개에서 18개로증가하였으며총 18개중에 11개지도에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라고표기하였다. 15 또한독도지도를확대하여동도와서도로표기한지도도있었으며 (5 학년上, 교육출판 ), 독도사진도 3종의교과서에게재되었는데사진게재는이번이처음이다. 東京 (52.8%) / /0-1/1 1 3/ /0-1/0-1/0 - Ⅴ. 맺음말 敎育 (26.0%) 日文 (3.1%) 日文 ( 舊大阪 ) (15.4%) 光村 (2.7%) 계 / /1 2 3/ /0 1 2/ / / / /0-1/ / / /1 1 1/ /0 1 9/3 8 18/ 점유율은 2011 년도용총 713 만 8천권에대한것임. 教科書レポート編集委員会, 2011, 教科書レポート No. 54, 日本出版労働組合連合会, 73쪽. 14 현행교과서는 4개출판사 5학년과 6학년총 10종이며이번에검정에통과한교과서는총 8종이라는점에서본다면, 3 4 학년교과서가포함되었기는하지만독도관련기술은물론이고지도수도양적으로상당히증가하였다 년검정에통과한현행본총 10종교과서가운데 3종에 다케시마 [ 竹島 ] 라고명기한지도가게재되었으며그수도총 9개가운데 3개에불과한것과비교하면상당히증가하였다. 아베정부의교육정책은국제사회에서경쟁력을갖춘소수를육성한다는명목으로추진되고있다. 교과서내용조정과도덕교육의정식교과화등으로정부와문부과학성이교육내용을통제하고정부가원하는교육제도와교육내용을관철시키기위해서 개혁 이라는이름으로교육에대한관리를강화해가고있다. 이러한교육개혁은국내적으로는현장학생과교사를무시한정권이원하는방향의교육개혁이고퇴행적인 재생 이라는점에서문제다. 또대외적으로는영토교육강화방침이일본정부가국제사회에약속한 근린
76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제국조항 을무시한교과서검정이진행되어주변국과의갈등을증폭시키고있다. 이번문부과학성의교과서검정결과를보면독도가 일본영토 라는부당한영유권주장을기술한교과서가검정을신청한모든출판사의교과서로확대되었다. 또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라고표기하거나울릉도와독도사이에국경선을표시한지도가 3 4 학년교과서에등장하는등교과서총수가감소하였음에도전체적으로상당히증가하였다. 센카쿠제도관련기술에대한문부과학성의검정의견제시에서보았듯이현재일본정부및문부과학성의영토교육강화방침이교과서기술에직접적으로영향을미치고있다고볼수있다. 2014년 1월에문부과학성이개정한 교과용도서검정기준 과 중 고학습지도요령해설 고시가무엇보다검정합격을우선시하는교과서출판사에무언의압력으로작용하여개정된규정들이이번검정에소급되어적용되었다고볼수있다. 내년에는중학교교과서검정결과가발표된다.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 (= 새역모 ) 과 교과서개선의모임 의보수우익계열의교과서채택률 16 이증가하고있는상황에서역사인식의차이와영토관련기술악화로인해교과서문제는한일관계를더욱복잡하게할것으로예상된다. 16 새역모 계열역사교과서의채택률을연도별로보면 0.039%(2005), 1.7%(2009), 3.79%(2011) 로증가하고있다. 국문초록 2014년 4월 4일에일본문부과학성이교과서검정결과를발표하였다. 이글은일본아베정부의교육 재생 정책이검정교과서에어떻게영향을미치고있는가를 2014년초등학교사회과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의변화를통해검토한것이다. 아베정부는국제사회에서의경쟁력강화와구조개혁으로인한사회갈등에대한대책으로먼저교육문제를부각시키면서 교육개혁 과 교육재생 정책들에초점을맞추고있다. 문부과학성이검정발표를앞둔 1월에이례적으로 교과용도서검정기준 과 학습지도요령해설서 를개정하였다는점에주목하면서이번검정교과서의영토관련기술을검토할필요가있다. 이번문부과학성의교과서검정결과, 초등학교사회과를발간한총 4개출판사의교과서모두검정을통과하였다. 독도가 일본영토 라는부당한영유권주장을기술한교과서가검정을신청한모든출판사의교과서로확대되어종래 1종에서총 6종으로증가하였다. 또독도를 다케시마 [ 竹島 ] 라고표기하거나울릉도와독도사이에국경선을표시한지도가 3 4 학년교과서에등장하는등교과서총수가감소하였음에도전체적으로상당히증가하였다. 영토관련기술에대한문부과학성의검정의견제시에서보았듯이현재일본정부및문부과학성의영토교육강화방침이교과서기술에직접적으로영향을미치고있다고볼수있다. 2014년 1월에문부과학성이실시한교과서관련규정개정조치가검정합격을우선시하는교과서출판사에무언의압력으로작용하여개정된규정들이이번검정에소급되어적용되었다고할수있다. 내년에는중학교교과서검정결과가발표되는데, 역사인식의차이와영토관련기술악화로인해교과서문제는한일관계를더욱복잡하게할것으로예상된다
77 아베정부의영토교육강화와검정교과서의독도관련기술변화 주제어 교과서검정, 초등학교사회과교과서, 학습지도요령, 독도 Keywords textbook screening, elementary school social studies textbooks, Gakushyusidouyouryou (Japanese National Curriculum), Dokdo ABSTRACT 참고문헌 Abe Government s Reinforced Education on Territory and the Changing Narrative on Dokdo in Elementary School Textbooks: With a Focus on Textbooks that Passed the 2014 Screening SEO, Chongchin Research Fellow,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On April 4, 2014 the Japanese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Sports, Science and Technology (MEXT) announced the results of textbook screening for This article reviews the change in narrative related to Dokdo in social studies textbooks for elementary schools in order to assess how the Abe government s education revival policy is affecting textbooks. According to the aforementioned screening results, four elementary school social studies textbooks by different publishers passed the MEXT screening. All six of the textbooks submitted for screening carried references to Dokdo as Japanese territory, an increased number from one such textbook in the past. Also, while the overall number of textbooks decreased, there has been an increase in those marking Dokdo as Takeshima or those depicting the Japanese border as running between Ulleungdo and Dokdo in maps in third and fourth grade textbooks. Thus, the screening results suggest that the Japanese MEXT s current policy to reinforce education on territory is having a direct impact on related narrative in textbooks. The MEXT guideline for textbooks revised in January 2014, which must have been retroactively applied in latest screening, may have put tacit pressure on textbook publishers aiming foremost to pass the MEXT screening. As screening results of middle school textbooks are expected to be released next year, the gap in perceptions on history and the changing narrative on territory in Japanese textbooks are likely to further complicate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남상구, 2011, 전후일본중학교교과서의독도기술추이와현황, 영토해양연구 1,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 박병섭, 2011, 일본의사회과교과서와독도문제, 독도연구 제11호, 영남대학교독도연구소. 심정보, 2008, 일본의사회과에서독도에관한영토교육의현황,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16(3). 허은실 남상준, 2013, 일본초등사회과의영토교육내용, 영토해양연구 5, 동북아역사재단독도연구소. 조선일보, 渡辺治, 2013, 安部政権と日本政治の新段階, 旬報社. 安部晋三, 2013, 新しい国へ, 文春親書. 二谷貞夫研究代表 梅野正信編, 2010, 日韓で考える歴史教育, 明石書店. 歴史学研究会編, 2004, 歴史教科書をめぐる日韓対話, 大月書店. 教科書レポート編集委員会, 2011, 教科書レポート No. 54, 日本出版労働組合連合会. 産経新聞, 일본문부과학성홈페이지 (
78 연구논문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 고구려의요서 ( 遼西 ) 진출과당의대응 Ⅰ. 머리말 정원주경민대학교강사 1 중국은 1990년대이래로현실정치에기반을둔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앞세워고구려사를중국사에편입하려는움직임을활발히진행해왔다. 이로인해고구려의정체성에대한화두는중국과한국양국간의국가적쟁점으로부각되었다. 지금까지고구려는백제와더불어신라로통일되고, 고려, 조선을거쳐대한민국으로이어져왔음을당연한사실로받아들였던역사적인식에커다란도전을받게된것이다. 이에맞서진행된한국학자들의대응은다양한측면에서이루어졌으며이로인해고구려사에대한연구성과는폭발적으로이루어져왔다. 그럼에도지금까지의연구는우리가주체적이되지못하고중국학자들의논리를반박하는입장에서소극적으로진행되어왔음을부인하기는어렵다. 이는우리의근대역사학이일본의식민사학에의해시작됨으로써그출발부터한계를갖고있었으며, 여전히그들이세운가설의촘촘한그물망을벗어나기어렵다는점도이러한상황으로이어지게된주요원인의하나라할것이다. 이로인해이 1 대표논저 : 鄭媛朱, 2013, 安臧王의始祖廟親祀와政局運營, 백산학보 ; 鄭媛 朱, 2014, 男生의失脚배경과그의行步, 韓國古代史硏究. 미확고히뿌리를내린기존의가설에의문을제기할수있는기록들이존재함에도이를뒷받침할수있는보다결정적증거가나오기전에는문제제기수준에머무르거나이유없이폐기되기도하였다. 그러한기록중의하나가 7세기대고구려영역에관한것이다. 700여년의장구한세월동안무수한종족, 국가들과전쟁을겪으면서때로는국가적위기를맞기도하고이를극복하면서또다른성장을맛보았던고구려의발전과정은물론그영역마저오늘날온전하게전해지지않고있다. 대개고구려의영역은비약적인성장을보인 5세기에요하 ( 遼河 ) 이동 ( 以東 ) 인요동지역을차지한이래고구려멸망까지그서방경계를유지한것으로보고있다. 2 반면한반도에서백제 신라와의각축으로인해남쪽방면의경계에는많은변화가있었음은인정하고있다. 그러나외부세계와의연결통로였던요하서쪽방면에대한고구려의관심은전해지는기록곳곳에적지않은흔적을남겨두고있다. 그럼에도 5~7 세기에이르는장구한세월동안요하를경계로서쪽방면으로더이상전진하지못하고고정된형태로이어졌다고볼수있을지는의문이라할수있다. 영역에대한고대적개념을오늘날처럼관할권의명확한구분이가능한경계선으로개념지을수는없을것이다. 그귀속이불분명한지대를세력권으로설정하고이러한한계를극복하고자하는시도들이진행되고있으나이러한시도마저당시의실정을온전히파악하는데는많은한계를보이고있다. 그하나가세력권을국가의지배권이미치는공간과는별개로여러세력의각축의장으로서중립적기능만을부여하고있기때문이다. 무엇보다이러한기준은고구려사에대해서는좀더엄격하게적용되는반면중원국가나타종족에대해서는관대한편이라할수있다. 그러나여러세력이쟁투를벌이는지역이라할지라도그힘의우열에따라밀고밀리게되어있으며, 우세를지속하기위한정치적 군사적노력이구체적형태로표출되기마련이다. 이것이일정 2 많은연구자들은 5세기이후고구려의서방경계가요하에서별다른변화가없었다고보는견해에동의하고있다 ( 田中俊明, 서길수옮김, 1996, 高句麗의北方進出과 廣開土王碑文 - 北方境域形成史에있어서廣開土王時代, 高句麗硏究 2, 507~513 쪽 ; 宋基豪, 2008, 5세기후반高句麗의북방경계선, 한 국고대사국의국경선, 서경문화사, 210~225 쪽 ). 이와달리 5~7 세기고구려의서방영 역에요서지역을포괄하는견해도제기되었다 ( 손영종, 1993, 5~7세기고구려의서방과북방영역에대하여 (1) (2), 력사과학 2~4호, 2~4쪽 )
79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기간지속되면그공간은영역권안으로편제된것으로보기도한다. 그러한예가중원국가에서요서지역에세운전방기지였던영주 ( 營州 ) 의확대와축소의과정이라할수있다. 이러한시각을토대로중국은요서지역의중원국가로의귀속에적극적인입장을표명하고여기서더나아가고구려사에도이를적용하고있는실정이다. 그러나한국측에서는고구려에서도이러한실례가보임에도이를축소해석하는경향이있다. 이러한경향이공세적으로진행되는역사전쟁에서우리를더나아가지못하게하는결정적요인이되고있음을부인하기어렵다. 따라서이글에서는이러한영역에대한협소한시각에서벗어나보다적극적인해석을통해고구려의영역을고찰해보고자한다. < 표 1> 7 세기대고구려의영역 출전東界西界南界北界영역편찬 北史東至新羅西度遼南接百濟 周書東至新羅西度遼水南接百濟 隋書 舊唐書 新唐書 舊五代史 東渡海至於新羅 東跨海距新羅 東渡海至于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西北度遼水與營州接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南亦跨海距百濟 南渡海至于百濟 北隣靺鞨 北隣靺鞨 北至靺鞨 北靺鞨 北至靺鞨 ( 東西 ) 二千里 ( 南北 ) 一千餘里 ( 東西 ) 二千里 ( 南北 ) 千餘里 東西二千里南北千餘里 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당태종貞觀원년에서고종顯慶 4 년 (627~659) 李延壽私撰 당고조武德연간에서태종貞觀 2 년 (618~628) 令狐德棻등奉勅撰 당태종貞觀 3~10 년 (629~636) 魏徵등奉勅撰 오대후진出帝開運 2 년 (945) 劉晌등奉勅撰 송인종慶歷 4 년 (1044) ~ 嘉祐 5 년 (1060) 歐陽脩 宋祁등奉勅撰 송태조開寶 6~7 년 (973~974) 薛居正등奉勅撰 Ⅱ. 7 세기고구려영역관련사료검토 五代會要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北至靺鞨 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송태조建隆 2 년 (961) 王溥奉勅撰 7세기는동아시아가요동하던시기이자커다란변화의시기였다. 3세기가까운분열의시대를마감하고중국대륙을수에서통일하면서그팽창세 通典 太平寰宇記 至隋漸大東西六千里 至隋漸大東西六千里 당 766 년에착수하여 30 여년에걸쳐초고가완성. 杜佑 (735~812) 편찬 ( 제도사 ) 송樂史 (930~1007) 편찬 ( 지리지 ) 는동아시아주변국들을존립과굴복의갈림길에서게하였다. 북아시아대 륙에서그성세를구가하던유목제국인돌궐은이러한추세에굴복해마침내당의위대한창업주의하나였던태종에게 천가한 ( 天可汗 ) 이라는칭호를바치는데주저하지않았다. 3 또한한대 ( 漢代 ) 이래주도권을잃었던서역으로가는통로가다시중국인들에게장악되었으며남쪽으로도그영역이보다확대되면서그팽창세는무한한것처럼보였다. 마침내수양제와당태종은동북아에위치한고구려로그팽창방향을돌리게되었다. 이러한수 당의등장은동아시아의판도를새로꾸리게되는커다란원동력이되었고, 그절정은고구려의멸망이라할수있다. 럼다른나라를통해전해지고있는데, < 표 1> 은이시기고구려의영역에대한기록들을정리한것이다. < 표 1> 을보면 수서 에서는고구려의영역을동서로 2천리, 남북으로 1천여리라기록하고있다. 수서 와동일한시기를다룬또다른사서인 북사 에서도같은기록이전해지고있다. 이러한인식은 주서 에서도보이는데그사방경계에대해서는 북사 와거의일치하게기술하고있다. 한편이보다앞시기의기록인 위서 에서는영역에대한기록은동일하나그사방경계에대해좀더구체적으로명시하고있 고구려는 70 여년에걸친수와당의지속적인공세로인해고정된형태 의영역을확보하고있었다고보기는어려울것이다. 이시기의고구려영역에대한것은대부분의기록처 3 資治通鑑 卷 193 唐紀第 9, 太宗貞觀 4 年 3 月條. 4 魏書 卷 100 列傳第 88, 高句麗, 遼東南一千餘里, 東至柵城, 南至小海, 北至舊夫餘, 民戶參倍於前. 魏時, 其地東西二千里, 南北一千餘里. 다. 4 이처럼 5세기이후수대까지고구려의영역은커다란변화가보이지않는반면당대 ( 唐代 ) 의사실을전하는 구당서 에서는동서 3천 1백리, 남북 2천리라
80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하여다른인식을보이고있다. 또한그사방경계도이전과는조금씩차이를보일뿐아니라특히서쪽경계를요하를넘어요서지역에위치한영주에이르고있다고명기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 구당서 의인식은 신당서, 구오대사, 오대회요 에까지이어졌으며자구 ( 字句 ) 마저거의동일하게기술되어있다. 이기록대로라면고구려의영역은당대에이르러대폭적으로확대되었음을의미하는것이다. 더욱이 태평환우기 와 통전 에서는고구려의역대영역변천과정을간략히언급하면서수대이래로동서 6천리로확대되었다고명기하고있다. 이러한기록들이보여주는역사적사실성은무엇인지지금부터살펴보고자한다. < 표 1> 에언급한사서들은해당시기의사실들을후대왕조가정리해편찬한것으로편찬시기의인식도고려하지않을수없을것이다. 5 표에보이는것처럼 주서, 북사, 수서 는당초기에, 통전 은당중기에편찬되었다. 구당서 는오대의혼란기에편찬된반면 신당서, 구오대사, 오대회요 와 태평환우기 는북송대에편찬되었다. 이러한편찬시기의차이가해당기록에끼칠수있는영향으로는우선거리단위에대한시대적편차라할수있다. 그러나수대와당대의거리척도는큰차이가없으므로이것으로기록의차이를설명할수는없을것이다. 또다른차이는전대의사실을바라보는시각의객관성여부일것이다. 당고조이연 ( 李淵 ) 은억지선양의형식을통해수를이어당을건국하였다. 그러므로수대특히수양제대의치부를감추지않고그대로기술한부분이적지않다. 이는당의건국에대한정당성을염두에둔편찬방식이라할수있다. 반면북송은당말기에시작된오대의혼란을극복하고들어선왕조로서의자긍심과당을이은정통성을내세우고있 었기때문에당에대한역사기술에비판적입장이라기보다는객관적서술방식을택했을가능성이높다고할수있다. 오늘날당과고구려관계에서당측입장을반영한역사서술이그대로 구당서 와 신당서 에전해지고있는것도이러한측면을보여주는사례 5 한편 통전 은제도사이고 태평환우기 는지리서이므로그편찬방침이나서술은사서들과차이가있으며시대적인식을반영하고있을것이다. 그러나지리서로서그가치를인정받고있는 태평환우기 에서 통전 의기록과동일한내용을기술하고있다는점은이기록이갖는가치를재고해볼필요성을느끼게한다. 라할것이다. 그러므로이들사서에서고구려영역에대해서만특별히확 대 과장해야할이유는없을것이다. 이러한영역인식에는나름의전승기 록을토대로했을것이며, 이것이이후기록에그대로반영되었을것이다. 또한영역에대해서수치만을언급한것이아니라그사방경계가어디 까지인지를함께명시하고있는데, 주서 와 북사 에서언급된사방경계에대한기록과는차이를보이고있어이기사의사실성에주목하게한다. 실제로당은고구려와외교적접촉이자주있었고, 고구려에대한정보수집에도적극적이었다. 6 또한고구려가멸망에이르게되면서많은고구려인들이자의든타의든당내지로유입되게되면서고구려에대한보다풍부한자료를가지게되었을것이다. 이를증명하듯이 구당서 에는전사 ( 前史 ) 에보이지않는중요한새로운사실 ( 史實 ) 들이많이실려있다. 7 이러한정보에기초해당은고구려멸망직후그영역을기미부체제로재편하는발빠른조처를취할수있었을것이다. 더욱이 통전 에서는동서의거리가이전고구려의영역보다는상당히확대되었음과그시기가수대부터라고시기마저분명히언급하고있다. 위의 < 표 1> 에서는생략되었지만 통전 에서는고구려의역대영역변화를간략하게언급하고있다. 특히고구려가후위대 ( 後魏代 ) 에영토가점점축소되어겨우천여리에이르게되었다고언급하고있다. 8 후위는북위를일컫는것이다. 고구려는북위말인 6세기중반경에남쪽으로백제와신라의협공으로한수유역대부분을상실하였을뿐아니라동쪽으로함경도까지밀리기도하였다. 또한서북방에서는돌궐의침입으로어려움을겪고있었다. 9 따라서이시기에고구려영역에커다란변화가있었음은부인하기어려울것이다. 그럼에도이러한사실이다른여타의사서에서는보이지않는 6 고구려영류왕 24년 (641) 에당의사신으로온職方郎中陳大德은고구려를염탐하기위해관리들을매수해고구려이곳저곳을둘러보고고구려에대한자세한보고를당태종에게올렸으며, 이를토대로 高 麗奉仕記 가만들어졌으며그일문이 翰苑 에전해지고있다. 또한당시당과고구려간의첩보활동이활발히벌어지고있었 는데, 이러한첩보활동은사신의주요업무중하나였다. 이러한고구려에대한자세한정보를바탕으로 구당서 가편찬되었으므로이전사서와다른새로운사실들이풍부하게전해지게된것이다. 당태종의고구 려원정에앞서행한정보수집과정에대해서는다음논문이있다. 方香淑, 2008, 7 세기중엽唐太宗의對高句麗戰전략수립과정, 中國古中世史硏究 19, 313~ 328 쪽. 7 국사편찬위원회, 1988, 中國正史朝鮮傳譯註二, 국사편찬위원회, 257~259 쪽. 8 通典 卷 186 邊防 2, 東夷下高句麗, 其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 東西六千里. 9 이시기의고구려의대외적위기를전반적으로다룬논문으로는盧泰敦, 1976, 高句麗의漢水流域喪失의原因에대하 여, 韓國史硏究 13 이있다
81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반면 통전 에서확인되고있다는것은오히려고구려영역에대한보다정확한정보를바탕으로이기록이써졌을가능성을보이는것이다. 더욱이지리서로서가치를높이인정받고있는 태평환우기 에서 통전 과동일하게고구려영역에대해기술하고있다는점도이기록의신뢰성을높이는것이다. 10 따라서 7세기대고구려영역의비약적확대를언급한기록의사실성을부인하기는어려울것이다. 다만 통전 에서언급한 6천리와 구당서 에서언급한 3천 1백리라는인식이갖는차이는두사서에서기준을삼은영역에대한인식을달리하거나그시기의차이에서비롯되었을것으로보인다. 이기록들이무엇을저본으로한것인지확인하기어렵지만역시고구려의영역이 7세기경에는이전보다상당히확대되었음을반영하는것으로볼수있다. 특히동서로의확대가비약적으로이루어졌으며, 고구려가서쪽으로중원국가의세력권을크게잠식하였다는사실을보여주는것이다. 고대사회에서의영역은오늘날처럼분명한경계선을그어가며이루어졌다고볼수는없을것이다. 대개의경우산이나강혹은이웃종족이나국가를경계로삼는경우가많으며, 때로는성벽이나군사적목적의보루를세움으로써외부세력의진입을차단하기도하였다. 그러나동서거리에대해서 구당서 에서 3천 1백리로 통전 에서는 6천리로기술함으로써그차는거의두배에이르고있다. 이는영역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에서비롯된것으로볼수있는데, 영역지배만을인정하거나그세력권까지인정하는경우라할수있을것이다. 한편으로는두사서에서언급한영역이시기를달리한것일가능성도배제하기어렵다. 구당서 에서는당대 ( 唐代 ) 의대체적인고구려의영역을언급한것이라면 통전 에서는수대이래고구려가최대의영역을확보했던시기의사실을기록한것으로볼수있을것이다. 다만이를확인할수있는단서들이부족하다는것은매우아쉬운점이라할수있다. 여기서는고구려가멸망에이르는시기인보장왕대의일반적인고구려영역에대한고찰을중심으로살펴보는것으로만족하 10 太平寰宇記 卷 173 四夷 2, 東夷 2 高句麗國, 其地後漢時二千里, 至後魏南 北漸狹, 境纔千餘里, 至隋漸大, 東西六千里. 고자한다. 그러므로멸망기의고구려영역을언급한사료중가장이른시 기의기록으로볼수있는 구당서 를중심으로고구려영역에대해살펴보기로하겠다. 고구려의영역에대한 구당서 의기록은정확히어느곳을명확히지칭하기보다는그이웃한종족이나국가를경계로삼음으로써모호한부분이많다. 또한고구려의동 서 남 북의경계를어디까지로볼지에대해서지금까지의학계의견이매우다양하게전개되고있어이글에서전부다루기는어려울것이다. 그러므로이글에서는영주라는지명이언급된서방경계를중심으로고구려영역에대해고찰해보고자한다. Ⅲ. 고구려의서계에대하여 앞의 < 표 1> 의 구당서 에서는고구려의서방경계가요하를넘어영주에이른다고하였으며 ( 渡遼水至于營州 ), 신당서 에서는요하를넘어영주에접한다고하였다 ( 度遼水與營州接 ). 영주는중원국가의동북방정책을수행하는전방위거점으로, 그영역과치소가다소변해갔으며북위이래그치소는지금의조양 ( 朝陽 ) 으로알려져있다. 조양을둘러싸고백랑수 ( 白狼水 ) 가동쪽으로흐르고동쪽으로조금더가면의무려산 ( 醫巫閭山 ) 이있으며, 그사이로대릉하 ( 大凌河 ) 가황해로흐른다. 여기에서동쪽으로더나아가면요하와마주치는데, 요하동쪽은고구려영역으로알려져있다. 전통적으로조양과요하사이는사람들이정주하기에적합하지않는자연환경과주변환경을갖고있었으므로거란과해와같은이동생활을하는유목종족들의공간이었다. 또한이곳에는수 당이세운회원진 ( 懷遠鎭 ), 통정진 ( 通定鎭 ) 을비롯해여라수착 ( 汝羅守捉 ), 연군수착 ( 燕郡守捉 ), 무려수착 ( 巫閭守捉 ) 등각종군사적목적의거점들이존재하였다. 수대고구려의무려라 ( 武厲邏 ) 11 도요하서쪽에세워진군사거점이라할수있다. 고구려가서북쪽으로영주에이 11 武厲邏의위치를대체로요하중류서안의요령성新民市북쪽지점으로파악하고있다 ( 제설은趙曉剛 沈丹林, 2000, 遼東郡 及通定鎭考略, 東北地區三至十世紀古代文化學術討論會論文 참조 )
82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르렀다는것은정확히어느지점을지칭하는지기록상으로는알수없다. 이는당시영주의관할범위가어디까지인지구체적으로알기어렵기때문이다. 그러나당대에고구려의영역이동서로상당히확대되었을뿐아니라이전까지 서쪽으로요하를건넌다 는기술과달리영주에이른다고하였으므로고구려가요하를넘어요서방면으로진출해있었음을의미하는것이라할수있다. 당의영주를통한이지역지배는영주를비롯한요서지역전체에걸쳐이루어졌고그지배력이요하까지이르렀다고볼수는없을것이다. 대대로요서지역을비롯한오늘날의동몽골지역은고구려와중원왕조와는다른이종족들이활동하는공간이었다. 특히영주는중원국가에서이지역에거주하는주요종족인거란, 해, 습을위무 감독함으로써그들의동북방면에서의위협을최소화하기위한전초기지로서활용되고있었다. 또한그서방에위치한북아시아유목세력과동방에위치한고구려를견제하기위한정치적 군사적으로주요한전략적요충지로서의역할도중시되고있었다. 12 당은국초부터이지역에대한관심을드러냈는데, 이는특히영주의위상과관할범위의변화를통해알수있다. 영주는수대의유성군 ( 柳城郡 ) 으로무덕 ( 武德 ) 원년 (618) 에영주총관부 ( 營州總管府 ) 로고치면서요주 ( 遼州 ) 와연주 ( 燕州 ) 두주를관할하였다. 무덕 7년 (624) 에는도독부 ( 都督府 ) 로개칭하면서영주 요주 2주를관할하고, 정관 2년창주 ( 昌洲 ) 를, 3 ( 帶州 ) 를설치하고이들을안치한뒤영주도독에예속시켰다. 17 정관 20년에는욕흘부 ( 辱紇部 ) 추장곡거 ( 曲據 ) 가부락민을이끌고내항하자현주 ( 玄州 ) 를설치하고이들을안치한뒤영주도독부에예속시켰다. 18 이처럼영주도독의관할범위가확대되는것은이지역의선주세력인거란이나해가당에귀부한것과연관되어있음을알수있다. 그원인으로는두가지가능성을고려해볼수있을것이다. 역사적으로거란이나해는힘의향방에따라좌우되어중원왕조나고구려및북아시아유목세력인유연이나돌궐에예속되어있었다. 그런데이시기에북방유목세력이나고구려세력이약해지면서이들에대한지배력을잃게되어거란과해가당으로의행보를선택하게되었을가능성이다. 또다른가능성은역으로이들의군사적압박이심해지면서이를피해당으로의귀부를선택하게된경우라할수있다. 첫번째의사례로는창주와사주를들수있는데이당시돌궐이정치적으로혼란하면서당이돌궐을제압하는사건이있었다. 이로인해돌궐에예속되어있던거란부족들이당에투항하였던것이다. 이에위기를느낀돌궐은당에거란부족을돌려줄것을청하기도하였다. 19 한편거란부족이대거당으로귀부한해는당태종의고구려원정이이루어진정관 19년에서 22년사이였다. 특히당태종정관 22년 (648) 11월에는거란추수굴가 ( 窟哥 ) 가거란부족을이끌고당에내속되기를희망하였고, 이를계기로당은이곳에송막도독부 ( 松漠都督府 ) 를세 년에는사주 ( 師州 ) 와숭주 ( 崇州 ) 를 6년에는순주 ( 順州 ) 마저감독하였다. 13 이렇듯이영주의관할범위가넓어지게된것은이지역에대한당의지배가확대되었기때문일것이다. 정관 2년송막부락의군장마회 ( 摩會 ) 가부락을이끌고항복하자 14 창주가설치되고이를영주에서관할하게된것이다. 15 다음해인정관 3년에는거란실위 ( 契丹室韋 ) 부락이내항하자사주를설치하였는데역시영주도독부에예속되었다. 16 정관 19년에는을실혁부락 ( 乙失革部落 ) 이내부하자영주계 ( 界 ) 에대주 12 당대에영주총관부가거란, 해, 습, 말갈등을관할하였음을이당시영주도독으로임명된張儉에대한기록을통해알수있다 ( 冊府元龜 卷 357 將帥部 - 立功門 10, 張儉貞觀初以軍功累遷朔州刺史後爲簡較營州都督府事營州所管契丹 奚霫 靺鞨諸蕃皆隣接境粟末靺鞨最近. ). 17 舊唐書 卷 39 지리지 2 河北道帶州. 18 新唐書 卷 219 北狄契丹傳 ; 新唐書 卷 43 下지리지 7 下河北道玄州. 19 舊唐書 권199 下北狄契丹傳, 貞觀二年其君摩會率其部落來降突厥頡利遣使請以梁師都易契丹. 웠다. 그리고당은그를좌령군장군 ( 左領軍將軍 ) 겸송막도독부무극현남 ( 松漠都督府無極縣男 ) 으로삼고이씨 ( 李氏 ) 성을하사하였다. 20 거란이복속할무렵에해의추장가도자 ( 可度者 ) 도부락을이끌고당에내속하였다. 당은그지역에요락도독부 ( 饒樂都督府 ) 를설치하고그 13 舊唐書 卷 39 志第 19 地理 舊唐書 卷 199 下北狄契丹傳. 15 舊唐書 卷 39 지리지 2 河北道昌州. 20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契丹傳. 21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奚傳. 를우령군 ( 右領軍 ) 겸요락도독누번현공 ( 饒樂都督樓煩縣公 ) 으로삼고역시이씨성을내렸다. 21 당은동이도호부를영주에두고동이교위로하여금송막과요락도독부를함께통제하게했다 舊唐書 卷 39 지리지 2 河北道師州. 22 新唐書 卷 219 列傳第 144, 北狄奚傳
83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이당시거란의귀부는 645~648 년사이에이루어진고구려에대한지속적인공격으로인한힘의과시로인해당이동북지역에서우월한지위를확보하였기때문으로보고있다. 23 그런데굴가는 645년고구려원정에실패한당태종이급속히퇴각하면서도영주에이르러마련한거란인들을위로하는자리에참석해좌무위장군 ( 左武衛將軍 ) 을제수받았던인물이었다. 24 이미당에서작위를받고당에내속해있었던것으로보이는굴가가 648년당에귀부했다는의미는그사이에거란부족내에커다란변화가있었기때문일것이다. 이는당태종의고구려원정실패가낳은결과일것이다. 황급히퇴각하는와중에도이지역경영의위기를걱정했던태종의우려가현실이되었던것이다. 이것이태종으로하여금고구려원정을재시도할수밖에없는필연으로몰아가고있었을것이다. 태종은병중에도원정을독려했으며이를위한보다세밀한준비가필요함에도그시간을그냥흘려보내기에는동북지역의상황은급격히변화되고있었던것이다. 따라서 647년부터소규모지만지속적으로고구려를공격했던것이다. 이를사서에서는재원정을앞둔장기소모전의일환으로기록하고있고많은연구자들이이에동의하고있다. 25 그러나그이면에는당의동북방경영에서거란, 해등이지역선주세력들의향방에대한우려에서비롯되었다고볼수있을것이다. 실제로당의요동방면에서의공격은한번에그치 것이다. 해로를통해고구려내지로공격해들어가는것은일시적타격은줄수있지만이것이주공격로가될수없음은 668년고구려멸망에서당군본대의공격로를통해서도알수있다. 26 이러한전략이선택이아닌당시상황에서당이취할수있는유일한방책이었다면이는요서지역에서의거란과해의향방과관련되어있기때문일것이다. 이미당에귀부한것으로보이는거란추수굴가가 648년거란부족을이끌고내부하였다는것은그사이에굴가를비롯한거란이당의영향력에서벗어나독자적인노선을걷고있었기때문일것이다. 더욱이재원정을위한소규모공격에서영주도독의활동이 647년 5월이후더이상보이지않는것에서도그가능성은충분히재고해볼필요가있는것이다. 이러한행보를보이던거란과해가다시당으로의귀부를선택하게된배경으로고구려원정을계기로발흥한북아시아유목세력인설연타를당이다시제압하게된사건을고려해볼수있을것이다. 또한고구려에대한소규모공격에서의승리도또다른배경이될수있을것이다. 이는당의건재함을보여주었을뿐아니라그서방의설연타를다시제압함으로써거란과해사회를압박하였기때문일것이다. 이처럼거란의대규모귀부는이전에없던커다란사건이라할수있다. 그러나이사건으로요하이서지역전체가당의지배하에들어갔으며고구려의이지역진출이좌절되었다고볼수있을지는의문이다. 더욱이당대고구려의영역에대한기술이앞에 고오히려해로를이용한고구려해안가를중심으로공격이이루어지고있는것이다. 이는고구려를여러방면에서공격함으로써국토를피폐하게만들고자하는의도로해석될수있지만한편으로는육로로의공격이원활하지않았기때문일가능성도배제하기어렵다. 재원정을시도하기위한사전작업으로서의단기간에이루어질소규모공격이최대의효과를내기위해서는전통적인주공격로인요동방면에서의고구려의방어선을전반적으로무력화시킬필요가있는 23 이영철, 2010, 唐前期營州城傍, 契丹羈縻州의技能, 대구사학 100, 319 쪽. 24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契丹傳. 25 資治通鑑 卷 200 唐紀 15, 太宗貞觀 21 年 2 月條, 上將復伐高麗, 朝議以為 : 高麗依山為城, 攻之不可猝拔. 前大駕親征, 國人不得耕種, 所克之城, 悉收其谷, 繼以旱災, 民太半乏食. 今若數遣偏師, 更迭擾其疆場, 使彼疲於奔命, 釋耒入堡, 數年之間, 千里蕭條, 則人心自離, 鴨綠之北, 可不戰而取矣. 上從之. 서도언급했듯이동서 3천 1백리이며그서계가영주임을명시한것은고구려가요서지역에진출했음과그것이상당한기간동안지속되었음을의 26 이러한요동방면의공격로에대한어려움이당태종으로하여금신라에게영토할양이라는파격적인조건을제시하게하는협약으로이어졌을가능성도배제하기는어려울것이다. 실제로 661 년의당의고구려원정에서당군은백제원정에서와달리신라군의활용도가낮았으며, 이전쟁에서신라군이한공적은평양외곽에서고전하고있던소정방군에게식량을전달하는정도였다. 미하는것이다. 이들의투항은당이다시이지역경영에성공했다고볼수도있지만고구려의압박이거세짐으로인해거란이자구책으로선택했던최선의방책이었을가능성도배제하기어렵다. 한편 수서 시기의 2천리에서 3천 1백리까지확장된것은서쪽방면으로의확장만으로보기는어려울것이다. < 표 1> 을보면동계, 남계, 북계는서계와
84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달리어느특정지역이아닌백제, 신라, 말갈로기술되어있어전사와크게달라진것이없는것처럼보인다. 이로인해당대고구려의영역확장의면모를구체적으로파악하기어렵게한다. 이처럼국가나종족으로경계를삼는것은모호한표현으로고구려가군사적압박을통해그들영역을잠식해들어감으로써실제적인경계에커다란변동이있었다고하더라도그들이멸망하지않는한접경하고있다는사실은변하지않기때문이다. 그러므로이것이고구려영역확장을부정할수있는근거가될수는없을것이다. 또한동서거리의 1천 1백리의확장을모두서쪽방면에서만찾을수없다는점도고려되어야할것이다. 한편고구려의요서진출은이전시기에도보이는사실임에도고구려의영역확대를언급한기술이보이지않다가당대사료에만이를영역확장으로표현한것은어떠한기준에따른것으로볼수있을것이다. 이전까지고구려의요서진출은주로이지역의선주세력인거란에대한영향력확대였다. 이를영역확장으로간주하기는어려울것이다. 그렇다면당대고구려의영역확장을논한것은실제로요서지역에고구려가진출함으로써자기영역화한것으로인정될만한어떠한조치가있었기때문일것이다. 고구려는이미수대에요서에진출해무려라를설치하기도하였다. 무려라는요하서쪽부근에설치된것으로수양제의고구려원정으로상실된곳이다. 27 그럼에도수대의고구려의서방경계는여전히요하로기술되고있는것이다. 그렇다면당대고구려의요서진출은무려라와는다른형태이자그진출양상이보다실질적이고구체화된모습이어야할것이다. 이러한점에서 658년당군의고구려적봉진 ( 赤烽鎭 ) 공격은그실상을유추할수있는단서라할수있다. 27 武厲邏의위치에대해서는대개요하서안으로보고그후보지로遼濱古城 ( 松井 等, 1913, 隋唐二朝の高句麗遠征の地理, 滿洲歷史地理 上, 南滿洲鐵道株式會社, 388 쪽 ), 高台山遺址 ( 王錦厚, 1986, 唐 營州至安東 陸路交通地理考實, 遼海文物學刊 , 80~81 쪽 ; 王錦厚 李健才, 1990, 東北古代交通, 沈陽出版社, 150~151 쪽 ), 公主屯后山遺 址 ( 王錦厚, 1994,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綜合硏究, 遼海文物學刊 , 48 쪽 ) 중하나로추정하고있다. 이와달리台安縣일대 로보거나 ( 윤병모, 2009, 앞의글, 82~83 쪽 ), 醫巫閭山일대로본견해도있다 ( 전준현, 1988, 조선인민의반침략투쟁사 ( 고조선-발해편 ),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4 쪽 ; 이성제, 2005, 高 句麗와契丹의關係 - 對隋 對唐戰爭期契丹의動向과그意味, 북방사논총 5, 152~153 쪽 ). Ⅳ. 요서를둘러싼고구려와당의갈등 고구려의요서 ( 遼西 ) 진출양상을명백히보여주는기록은전해지지않는 다. 다만 650 년대요서지역에서의고구려군사행동을통해이를유추해 보고자한다. 가 ) ( 高宗永徽 5 年 (654)) 10 월에고려가그장군安固를보내고려병과말 갈병을거느리고거란을침공하였다. 松漠都督李窟哥가騎兵을동원 해그들을막았는데, 新城에서전투가벌어졌다. 그때마침큰바람이 불어고려군이쏜화살이바람에이리저리빙빙돌았다. 이로인해 ( 고 려 ) 진영에서혼란이일어났다. 거란군은이를기회로 ( 고려군 ) 5 백명을 참수하고戰馬 7 천여필을노획하였다. 고려군이패해달아날때, 초목 이마른데다가바람까지세었기때문에거란군은또불을놓아서그들 을압박하였다. 불꽃이소용돌이치며날아다니면서불이번지자불에 타서죽은병사들과전마가매우많았다. 거란군은그시체들을모우고 쌓아서京觀을만들었다. 사신을보내勝捷을보고하자, 황제는사람 을시켜서露布를조정에펼치게하여모든관료들에게보여주도록하 였다. 28 위의기록은고구려의거란공격과그에대응한거란의반격에대한기사다. 여기서언급되는신성 ( 新城 ) 은고구려의요동지역에위치한신성으로비정하기는어려울것이다. 29 우선고구려가말갈병을이끌고거란을공격하였다고하였는데그곳이요동의중진인신성이라고한다면이미그전에이곳을거란에게상실했음을의미한다. 그러나이러한기록은보이지않는데이처럼중요한사건이전해지지않을수는없을것이다. 신성은요동방어의핵심중하나로이곳이뚫리면고구려방어망에커다란구멍이생기 28 冊府元龜 卷 995, 外臣部交侵. 29 新城을고구려의요동지역의신성으로 보는견해 ( 姜維東, 2001, 唐麗戰爭史, 吉林文史出版社, 144 쪽 ), 신민현의遼濱塔지역으로보는견해 ( 津田左右吉, 1964, 安東都護 府考, 津田左右吉全集 12, 岩波書店, 60~61 쪽 ), 동몽골의赤峰일대로보는견해 ( 손영종, 1997, 고구려사 2,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226~227 쪽 ) 등이있다
85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는것이다. 667년당군이신성을함락한뒤소자하유역을통해압록강유역의국내성지역까지파죽지세로밀려내려옴으로써고구려멸망을가속화하기도하였다. 비록남생의배반으로인해좀더쉽게국내성까지이르렀다고하더라도신성이고구려방어의요해처임을부정하기는어려울것이다. 더욱이이곳이요동의신성이라면고구려는이곳을상실한상태여야하는데다음해인 655년부터당의고구려공격이신성부근에서도행해지는것으로볼때이는잘못된추정으로보인다. 30 위의기록을보면고구려가거란을공격하자송막도독이굴가가막아서싸웠다고하였다. 이굴가는 까지상당한군사를이끌고공격하게되었는지살펴볼필요가있다. 이공격은거란을위협하기위한일시적인군사행동으로볼수만은없을것이다. 다음해인영휘 6년 (655) 당태종의죽음과함께소강상태에있던당과고구려가다시충돌하였다. 당고종은좌위중랑장소정방과영주도독정명진으로하여금고구려의귀단수 ( 貴端水 ) 를공격하게하였다. 33 귀단수는요하의지류인혼하로추정되고있다. 34 이는전해인 654년고구려의거란공격에대한당의경고성전투라할것이다. 35 당은현경 ( 顯慶, 656~667) 초이굴가를좌감문대장군 ( 左監門大將軍 ) 에제수하고, 이도자는우 앞에서도언급했듯이정관 22년당에내속한거란추수다. 그가직접나섰다는것은이곳이거란의영역내에서도요해처임을알수있다. 고구려장수안고가이끄는병사의규모는작지않았던것으로보인다. 위의기록을보면거란군은고구려군 500명을참수하고전마 7천여필을노획하였다고한다. 또한퇴각하는고구려군을벌판에서불을놓아상당히많은병사와전마가살상되었다고하였다. 전마가 7천여필이상동원되었다는것은이전투에고구려군이동원한병력이적지않았음을의미한다. 또한이러한고구려군을맞아대패시킨거란군도적지않은수였음을알수있다. 이처럼고구려가많은군사를이끌고거란을공격하였다면이곳은군사적으로매우중요한곳이었을것이다. 더욱이이에맞서거란의송막도독인이굴가가대군을동원해전투를벌일정도로중요한곳은이시기거란의중심지인송막도독부가있는곳일것이다. 거란의거주범위는대체로시라무렌과노합하유역의초원지대로영주의북부에위치해있었다. 31 따라서여기서언급한신성은무순의신성이아니라송막도독부가있는노합하유역이될것이다. 32 그렇다면고구려군은어떻게거란의근거지깊숙이 30 尹秉模는이신성이위치한곳이동몽골지역의송막신성으로보았는데, 陣中, 敗退, 京觀 세단어를근거로하였다. 고 구려군이원정군의입장이었기때문에 城中 이아닌 陣中 으로표현되었으며, 고구려군이 참수 5 백급과말 7 백여필 의피해 를입었다해도그곳이고구려지역이면패주할필요가없다고보았으며, 고구려군을죽이고경관을쌓은지역은고구려지역이될수없다고보았다 ( 尹秉模, 2009, 고구려의對唐戰爭과遼西및동몽골진출, 몽골학 27, 56~57 쪽 ; 李在成, 2011, 麗唐戰爭과契丹 奚, 中國古中世史硏究 26, 186 쪽 ). 31 거란은시라무렌의남쪽, 黃龍의북쪽 에위치해있었다 (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契丹傳 ). 32 李在成은제3대松漠都督李盡忠이그처남인歸誠州刺史孫萬榮과연합해서일으킨 거란의對唐獨立抗爭 막바지인 697 년 6 월경에벌어진사건에나오는신성과같은곳으로보고여기서의신성 = 거란 아장 = 송막도독부라는도식이가능하다며그위치는지금의노합하유역으로보고있다 ( 李在成, 2011, 앞의글, 184~192 쪽 ). 33 資治通鑑 卷 200 唐紀 15, 高宗永徽 6 年條. 34 이귀단수를혼하로보는견해와시라무렌의지류인대릉하로보는견해로나뉘고있다. 또한귀단수를혼하로보는입장에서는신성을고구려의요동경계에있는신성으로보지만대릉하로보는견해에서는이를그부근에있는새로쌓은성이라는신성으로보는견해를내놓고있다. 그러나정명진등이요수를건넜다는것으로볼때이귀단수는혼하로볼여지가높다고할것이다. 35 이충돌에대해서는신라가고구려와백제의연합공격으로 33성을뻬앗기고당에원조를구하자이를구원하기위한것으로보는견해가일반적이다. 그러나당이신라의요청으로고구려를압박하려고했다면군대를신라에파병하거나한반도에서신라가고전을하고있는지점이되어야할것이다. 36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契丹傳 ;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奚傳. 37 資治通鑑 卷 200 唐紀 16, 高宗顯慶 3 年條. 38 손영종, 1993, 5~7세기고구려의서방과북방영역에대하여 (2), 력사과학 3 4 호, 49~51 쪽 ; 羅棟煜, 2009, 7세기중반高句麗의東蒙古進出과軍事戰略, 감문대장군 ( 右監門大將軍 ) 에제수했다. 36 이는당이고구려와돌궐의요해지역진출에대한우려로인해이지역에대한보다긴밀한관심에서나온조치라할수있다. 보다본격적인격돌은이후당과고구려간에벌어지게되었다. 그하나가다음의전투다. 나 )( 顯慶 3년 (658)) 6월에營州都督겸東夷都護程名振과右領軍中郞將薛仁貴가병사를거느리고고려의赤烽鎭을공격하여함락하였는데, 목을벤것이 400여급이었고포로로잡은것이 100여명이었다. 고려에서는大將豆方婁를파견하여무리 3만을거느리고이를막았는데, 名振은契丹과더불어맞서싸워그들을대파하였는데, 목을벤것이 2천 500여급이었다. 37 위의기록을보면 658년당군은고구려의적봉진을공격해함락하고고구려의지원군마저대파하였다고한다. 적봉진의위치에대해서는오늘날의적봉이위치한노합하의상류에있는것으로보는견해 38 와무
86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순신성의평지위성으로보는견해 39 가있다. 또한이두견해를모두부정하면서적봉이란명칭이청대 ( 淸代 ) 인 1778년현지몽골어인 오란합달청 ( 烏蘭哈達廳 ) 을 적봉현 ( 赤峰縣 ) 으로바꾼사실을토대로이때생긴현지몽골어를한역 ( 漢譯 ) 한것이므로적봉진의위치를다른곳으로비정해야한다는견해도있다. 40 이적봉진이정확히어디인지알수없지만일단정명진과설인귀가요하를건넜다는기록이없다는점에서는요하이서 ( 以西 ) 지역에해당하는것으로보아야할것이다. 위의전투를보면적봉진이고구려에서차지하는비중은매우높았던것으로보인다. 당군의군사력이어느정도였는지알수없지만이들은우선적봉진을지키고있던고구려군사 400여명을목베고 100여명을포로로잡았다고하였다. 적봉진에주둔한고구려군은적어도 500명이상이었음을알수있다. 이는수나당이변경에설치했던진 ( 鎭 ) 의병력규모를상회하는인원이다. 41 따라서수나당이변경지역방어를위한군사기지로세웠던진이상의군사기지라할수있다. 이러한군사시설은적봉진만이아니었을것이다. 고구려가신라와각축을벌이던임진강이남에서한강북안에걸쳐촘촘하게구축했던고구려의성지들을고려한다면적봉진까지구축했을고구려의군사시설들을예상할수있을것이다. 더욱이고구려에서대장두방루 ( 豆方婁 ) 에게 3만의군사를보내이를지원하자정명진이거란군과함께싸워 2천 5백명을죽이는성과를올렸다고한다. 이처럼적봉진에대한지원군 다- 1) 待價는초기에左千牛備身이되었다. 永徽中 (650~655) 에江夏王道宗이得罪하자待價는곧江夏王道宗의사위로서연좌되어盧龍府果毅로좌천되었다. 이때에장군辛文陵이병사를이끌고가고구려를招慰하였다. 행군하여吐護眞水에이르렀을때방비를하지않은틈을타고구려가이를습격하여패하게하였다. 대가는中郞將薛仁貴와함께詔를받고東蕃을經略하러가다가이로인하여所部를이끌고求하게되었다. 문릉은苦戰하였으나적은점차물러가고군은비로소온전하였다. 대가는깊은상처를입고流矢에왼발을맞았다. 끝내그功을말하지않고足疾로免官하여돌아왔다. 42 다- 2) 顯慶 3년 (658) 副詞程名振과요동경략을명받고고려를貴端城에서대파하여 3000급을참수하였다. 다음해梁建方, 契苾何力과함께고려대장溫沙多門과橫山에서전투를벌여인귀가홀로말을달려들어가화살을모두막아내고그들을죽였다. 또한石城에서전투를할때善射者가있어관군 10여인이죽자인귀가노하여단기로돌격해적의弓矢를모두막아내고마침내그들을생포했다. ( 薛仁貴가 ) 갑자기辛文陵과함께黑山에서契丹을격파하고契丹王阿卜固를사로잡아서東都 ( 洛陽 ) 에보냈다. 이공적으로左武衛將軍에배수되고河東縣男에책봉되었다. 43 다- 3) 窟哥가죽자 ( 거란이 ) 奚와연합하여반란을일으키니行軍總管阿史德樞賓등이松漠都督阿卜固를붙잡아서東都 ( 洛陽 ) 에바쳤다. 44 으로고구려에서 3만명이나동원되었다는것은적봉진의전략적가치가매우높았음을의미한다. 무엇보다이처럼신속하게대규모군사적지원이가능했다는것은고구려가요서에세운군사시설이적봉진까지촘촘하게이어졌기때문일것이다. 이적봉진은다음의기록들을보면노합하유역에있었을것으로추정된다. 韓國史硏究 144, 117 쪽. 39 王綿厚, 2002,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17 쪽. 40 윤병모, 2009, 앞의글, 35쪽. 41 수대鎭의병력규모는 300~500 명정도였고 ( 누노메조후 구리하라마쓰오외지음, 임대희옮김, 2001, 중국의역사 -수당오대, 혜안, 214 쪽 ) 당대의鎭도그정도규모였을것으로추정된다 ( 이정빈, 2011, 6세기후반 ~7세기초반고구려의서방변경지대와그변화, 역사와현실 82, 116 쪽 ). 위의다-1) 에보이는위대가 ( 韋待價 ) 는강하왕 ( 江夏王 ) 이도종 ( 李道宗 ) 의사위였기때문에그의죄에연좌되어노룡부 ( 盧龍府 ) 과의 ( 果毅 ) 로좌천된인물이다. 신문릉 ( 辛文陵 ) 이고구려군을초위하러가다토호 42 舊唐書 卷 77 列傳, 韋挺傳附韋待價傳. 43 舊唐書 卷 83 薛仁貴傳. 44 新唐書 卷 219 列傳第 144, 北狄契丹傳. 진수 ( 吐護眞水 ) 에이르러고구려군의습격을당하고있을때중랑장 ( 中郞將 ) 설인귀 ( 薛仁貴 ) 와함께구원하러갔다는기록이나온다. 여기서언급된토호진수는노합하에해당하는것으로노합하는지금의요하가서쪽
87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으로꺾이는두강줄기중하나로시라무렌남방에위치해있다. 45 이사건의발생시기는구체적으로명시되어있지않지만 659년으로볼수있을것이다. 46 위의다-1) 을보면신문릉은고구려를초위하러가다가고구려의습격을받았고, 위대가는중랑장설인귀와함께동번 ( 東蕃 ) 을경략하러가다가구하게되었다고한다. 여기서동번은고구려로볼수없으며이들이조우한곳이토호진수라는것에서거란으로볼수있을것이다. 동번이고구려였다면굳이구별해서기록하기보다는신문릉군을지원하기위해서라든가후발대라는표현을사용했을것이다. 게다가본격적인전쟁이시작된것도아니므로후발군을따로보낼필요는없었을것이다. 그런데이미당에내속해있던거란을토벌하러간이유가불분명하다. 이는다-2) 와다-3) 을통해확인할수있을것이다. 설인귀는신문릉과함께흑산 ( 黑山 ) 에서거란을격파하고거란왕아복고 ( 阿卜固 ) 를사로잡아서동도 ( 東都 ) 로보냈다고하였다. 앞의나 ) 에서보듯이전해인 658년에도당군에협력했던거란이다음해인 659년당에반기를들고있는것이다. 반기를든아복고는위의다-3) 을보면송막도독이라하였는데이전의송막도독인이굴가가죽고뒤를이은것으로보인다. 그런데이굴가가친당적이었던것에반해아복고는당에반기를든것이다. 따라서위의다-1) 의동번토벌은당에반기를든거란에대한징계차원의전투일것이다. 또한다-2) 의기록에서설인귀가신문릉과함께흑산에서거란을격파했다는사실과동일한사건으로보이므로 659년의일로보아야할것이다. 이처럼 658년적봉진을상실했음에도고구려군이여전히토호진수에서당군과격돌하는것으로볼때적봉진은토호진수부근에있었으며고구려가구축한여타의군사시설들이여전히이지역에다수존재하고있었기때문일것이다. 그러나적봉진의상실은고구려의요서진출에커다란타격이되었음이분명하며이를회복하기위한고구려군의노력이지속되고 45 白鳥庫吉, 1912, 東胡民族考 - 2 烏 桓 鮮卑, 白鳥庫吉全集 第 4 卷, 岩波書店, 97 쪽. 46 이사건의발생시기에대해서는 653 년설 ( 尹秉模, 2009, 앞의글 ; 李在成, 2011, 앞의글 ), 655년설 ( 羅棟煜, 2009, 앞의글, 115쪽 ), 659 년설 ( 손영종, 1997, 앞의책, 227 쪽 ; 姜維東, 2003, 앞의책, 219 쪽 ) 등이있다. 있었음을보여주는기사들이라할수있다. 당은다음해인 660 년신라와더불어백제를공격해멸망시킨뒤곧이어 고구려원정대를꾸려 661~662 년까지고구려를공격하였다. 47 당이태종 47 백제를먼저공략하겠다는전략이세워진것이 655 년신라의원조요청이있을때제기된것으로보는견해 ( 李丙燾, 1973(15 版 ), 韓國史 - 古代篇, 乙酉文化社 ) 가있으며, 이때제안되었지만이계획이받아들여진것은 657년 12월아사나하로를사로잡은이후로보기도한다 ( 李昊榮, 2001( 再版 ), 新訂新羅三國統合과麗 濟敗亡原因硏究, 書景文化社, 180~184 쪽 ). 이와달리 659년 4월에신라가당에백제정벌을요청하고당도이전과달리이에대해적극적인태도를취하였다고보기도한다 ( 최현화, 2006, 7세기중엽唐의韓半島支配戰略, 역사와현실 61, 154~157 쪽 ). 48 李丙燾, 1977, 國譯三國史記, 乙酉文化社, 315 쪽 : 井上秀雄他譯註, 1974, 東アジア民族史 1, 181 쪽. 49 이정빈, 2011, 앞의글, 113 쪽. 50 한편이성제는무려라의전략적중요성을영주에비견하고요서경영의주요거점으로보기도한다 ( 이성제, 2005, 앞의글, 151 쪽 ). 그러나 邏 는순라즉경찰이란뜻을가진단어에서온것으로볼수있으므로 ( 김현숙, 2005, 고구려의영역지배방식연구,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349쪽 ) 鎭 보다는작은규모의군사시설로볼수있을것이다. 51 고구려에서鎭의존재는적봉진외에도淮陽郡의赤木鎭 ( 三國史記 卷 35 地理 2; 新增東國輿地勝覽 卷 47 淮陽都護府條 ), 永興의長嶺鎭 ( 新增東國輿地勝覽 권48 咸鏡道永興大都護府條 ), 高原의隘守鎭城 ( 增補文獻備考 卷 29 輿地考城郭咸鏡道高原條 ) 등이전해지고있다. 52 新唐書 卷 219 列傳第 144, 北狄奚傳. 의죽음이후접어두었던고구려원정을재시도하게된것은이시기요서지역에서의고구려에대한공격이어느정도성과를보았기때문으로보인다. 이로볼때당이고구려원정을시도하지못했던원인중하나가요서지역으로진출해군사력을과시하고있던고구려로인한것일가능성이있다. 당태종의고구려원정실패이후고구려는보다적극적으로요서지역경략에나섰던것으로보인다. 수세적인입장에서의요동방어가아닌적극적인공세로서의변방방어체제로의전환이이루어진것으로보인다. 이는수대의무려라처럼요하의도하를감시하거나 48 요서경영의창구 49 로서의소극적방어형태 50 와는달리수대부터이어진수 당군의대규모공격에맞선적극적인방어전략의일환이다. 51 그방향은요하를따라노합하로이어지는선이었을것이다. 이는 구당서 와 신당서 에고구려가서북방면에서영주와접한다는기록과부합되는측면이기도하다. 이것은이지역을근거로하는거란이나해로하여금생존의위협을느끼게만듦으로써이들이당에대규모로귀부하게된원인으로보인다. 고구려의군사시설이당군의공격으로어느정도무력화되자이전까지당에내속해있던거란과해로하여금당으로부터벗어나려는움직임으로이어진것으로보인다. 거란의아복고가당에반기를들무렵해에서도이도자가죽고반란을일으켰던것이다
88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이에대해당태종이후에고구려를제압하기위한 이이제이책 ( 以夷制夷策 ) 으로인해거란과해가그선봉으로활약하면서고통을받았기때문으로보는견해가제기되기도하였다. 53 이것이직접적인도화선이되었다고할지라도그저변에는고구려가당의공격으로더이상요서지역에서의군사적우위를점하지못하게되었기때문일것이다. 거란이나해와같은유목세력들은그들의필요에따라이반과복속을반복하는집단으로고구려세력이약해지고당이아직그기반을온전히구축하지못한상태를기회로서둘러반기를들었던것으로보인다. 해와거란의반기는당군에게곧진압되었지만고구려멸망이후다시당에대규모반기를드는사건으로이어지게된것도이러한그들의속성과관련되어있을것이다. 당은요서지역의고구려거점들을어느정도무력화시키게되자 661년고구려원정시에육로로고구려로진입하였을뿐아니라해로와신라를통해대규모공격을감행하였다. 그러나이원정역시실패로돌아가게되었다. 그원인의하나가철륵의배반 54 과요서지역종족들의이반을꼽고있다. 이는일시적으로당이요서지역의거점을확보했지만그사이고구려가구축했던영향력이당군의진입을무산시켰기때문일것이다. 실제역사에서는요동으로진출했던 662년당육로군의출발만이보일뿐그활약이나이후의운명에대해기록하지않고있다. 더욱이이육로군을글, 206~207 쪽. 이끈행군대총관은더이상기록에나오지않으며그아들의열전에이무렵사망했음을언급하고있다. 55 이는이육로군이결국참패했음을의미하는것으로해석될수있을것이다. 이전쟁에서당군은많은전력을상실하였고평양에서고립되어있었던소정방군은신라에서식량을보급받자평양의포위를풀고당으로퇴각하였다. 56 이후남생이당에투항하는 666 년까지다시두나라간에는소강국면이이어지게되었다. 53 李在成, 2011, 앞의글, 197~208 쪽. 54 서영교, 2006, 羅唐戰爭史硏究, 아세아문화사, 61~63 쪽 ; 李在成, 2011, 앞의 년꾸려진당의 6개행군총관중부여도총관소사업과루방도총관정명진부대의활약은보이지않는다. 소사업은오히려그해 10월에仙萼道행군총관으로철륵 을토벌하는원정군에합류하고있다 ( 資治通鑑 卷 200 唐紀第 16, 高宗龍朔 2 年 3 月條 ). 더욱이루방도행군총관으로참여한정명 진의활약은거의보이지않고있다. 그는이때맡은임무를끝으로죽은것으로되어있다 ( 舊唐書 卷 111 列傳第 33, 程務挺傳 ). 56 三國史記 卷 6 新羅本紀第 6, 文武 王上 2 年 2 月條 ; 三國史記 卷 22 高句麗本紀第 10, 寶藏王下 21 年條. 이후요서지역에서고구려의향방에대해언급한기록은더이상보이 지않는다. 그러나고구려원정에또다시실패하게되면서당이갖는국제 적인위상도그만큼약화되었을것이다. 고구려에서돌아간당은반기를든 철륵을제압하느라더이상고구려의요서진출에대해신경을쓸겨를이없었다. 또한요서지역에서거란과해의반란으로당군은고구려의요서진출을견제하기도어려웠을것이다. 오히려당은요서지역에서의고구려의우위를인정하고더이상의대고구려압박을접었던것으로보인다. 다음해인 663년당은백성들이고통받고있던배를건조하는작업들을대폭줄이는조서를내렸다. 57 또한계속된무리한전쟁으로인해그공과도제대로보상하기어려워군사들이나백성들중에는이에대한불만들이내재되어있었다. 58 또한들인노력에비해그실효성을얻기어렵다는판단하에백제웅진도독부 ( 熊津都督府 ) 에있는유인궤 ( 劉仁軌 ) 로하여금철수하도록칙서를보내기도하였다. 그러나고구려원정을포기하지못한유인궤의상소로이를철회했으나더이상의증원이나지원도하지않았다. 59 이처럼당은대규모로시도된고구려원정이또다시실패하자무리한사업들을대폭정리하고백성들의위무에힘쓰고자하였다. 또한고종의황후였던무후로인해당의내정도안정되어있지않았다. 이러한사정에따라당은고구려와의적대관계를청산하고화해를청하게되면서고구려는당의봉선의식에참여하기에이르렀다 년전쟁이후고구려는붕괴되었던요서지역의군사시설을복구함으로써이지역에서의우위를확보했던것으로보인다. 오히려이전보다더욱성세를구가하게되었을가능성이보인다. 이후당의번병으로대고구려전에투입되던거란과해가더이상당군편에서활약하는모습이보이지않는다. 61 반면거란군이고구려의군사력으로사서에등장하고있는것이다. 666년연개소문의죽음이후그후계자인남생 ( 男生 ) 은국내권력다툼에서패해당으로망명하게되는 57 資治通鑑 卷 201 唐紀第 17, 高宗龍朔 3 年 8 月條. 58 資治通鑑 卷 201 唐紀第 17, 高宗麟德元年 10 月條. 59 資治通鑑 卷 201 唐紀第 17, 高宗龍朔 2 年 7 月丁巳條. 60 정원주, 2014, 男生의失脚배경과그의行步, 한국고대사연구 김지영, 2011, 7 세기중반거란의동향 변화와고구려 -660 년거란의이반을기점으로, 만주연구
89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데이때그는휘하의병사들과함께거란 말갈병을거느리고당에내속하였다. 62 이는당시거란이말갈과더불어고구려군사력의일부였음을반영하는것이라할수있다. 이러한상황들이고구려의영역에대해서북쪽으로영주에이르며동서의거리가 3천 1백리라는기록을남기게되었고이후의사가들이이에어떠한이의를제기하지않고답습하게된이유일것이다. 이처럼고구려가서쪽방면으로영향력과지배력을확고히하게되자그북방의말갈은자연스럽게고구려의영향을보다강하게받게되어고구려에더긴밀하게예속되었던것으로보인다. 63 이것이고구려멸망시흑수말갈을제외한대부분의말갈이고구려세력으로분류되어그운명을같이하게된이유일것이다. 64 또한남쪽으로신라와백제의연합공격으로한수유역을비롯한한반도남부고지를상실하고한때는함경도부근까지빼앗겼던고구려는, 그세력을회복하게되면서신라를압박해임진강및한수북부까지차지하게되었을뿐아니라동쪽으로도비열홀지역까지확보하였던것으로보인다. 65 이로인해고구려의영역은남북으로도두배까지확대되었다는기록이남게되었다. Ⅴ. 맺음말 7세기고구려영역에대해 구당서 에서는 동서로는 3천 1백리이고남북으로는 2천리 라언급하고있다. 수대까지의고구려영역은대개 동서로 2천리, 남북으로 1천여리 라기록하고있어당대 ( 唐代 ) 고구려의영역이비약적으로확대되었음을알수있다. 통전 에서는고구려의영역을이보다더욱확대해동서 62 泉男生墓誌銘 ( 朴漢濟譯, 1997( 再版 ), 譯註韓國古代金石文 Ⅰ, 駕洛國史蹟開發硏 究院 ); 新唐書 卷 110 列傳第 35, 泉男生傳. 63 서영수는발해건국기의말갈인들을흑수말갈을제외하면모두고구려유민의일부로종래의고구려유민과말갈인이연합하여발해를세웠다는견해는예맥계 ( 고구려의지배계층 ) 와말갈계고구려유민 ( 피지배전사집단 ) 이연합하여세운고구려의계승국으로고쳐야한다고보았다 ( 서영수, 2004, 동아교섭사에서본渤海의국제적위상, 文化史學 21, 571 쪽 ). 64 고구려멸망시평양이함락된뒤백산부는중국으로들어가고백돌 안거골 호실등의말갈부들은뿔뿔이흩어지고미약해졌으며, 더러는유민과함께渤海에편입되었다 ( 舊唐書 卷 199 下列傳第 149 下, 北狄靺鞨傳 ). 65 고구려의내분으로연개소문의장자인남생이당에투항한지얼마지나지않아淵淨土가 12성 763호 3,543명을이끌고신라에투항하였다 ( 三國史記 卷 6 新羅本紀第 6, 文武王上 6 年條 ). 이때연정토와함께신라에투항한지역은비열홀주로추정된다 ( 노태돈, 1999, 영역국가체제의형성과대외관계,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249~251 쪽 ). 6천리라기록하고있다. 이러한기록이이후계속해서인용되고있을뿐아니라구체적으로고구려의사방경계에대해서도언급하고있어이기록이갖는사실성을마냥부정하기는어려울것이다. 특히서방경계를중원왕조의동북방경영의거점지인영주에이른다고한기록은고구려와당의대외관계에대해재고해볼필요성을느끼게한다. 대개의연구자들은당과고구려의대립과충돌에서고구려가항상수세적인상황에놓인것으로보는견해를가지고있다. 그러나고구려영역에대한중국측기록들이사실이라면이와달리고구려가대당관계에서능동적인입장에서대처하고있었음을보이는것이다. 특히고구려의서방경계가영주에이르고있다는것은고구려의요서진출이적극적으로이루어지고있음을반영하는것이다. 이러한고구려의요서진출이언제, 어떻게이루어졌는지알수있는기록은보이지않지만고구려가요서까지진출했음을알수있는기록들은전해지고있다. 650년대요서지역에서의고구려의군사활동을통해이를유추할수있는데, 658년의당군에의해시도된고구려의적봉진공격이라할수있다. 적봉진은거란의거주지인노합하유역에설치된것으로추정되며요하에서이곳까지고구려의군사시설이촘촘하게연결되어있었던것으로보인다. 진은수대의무려라와같은라보다는공격적이며적극적인방어형태의군사시설로볼수있다. 요하서쪽에라를설치함으로써요동방어의전초기지로서활용했던수대와달리요서지역에대한적극적인진출을통해당을견제하고이지역의선주세력인거란과해를군사적으로압박하려는전략이적봉진과같은진의설치라할것이다. 이로인해거란과해는생존의위협을느끼면서당으로의대규모복속을선택하게되었고, 당은이들을도독부체제로개편하고우대하면서고구려에대처하고자했던것으로보인다. 654년거란아장까지공격해오는고구려군에위협을느낀당은본격적으로고구려와요서에서충돌하게되었다. 658년고구려는적봉진을상실하게되면서그동안요서지역에구축했던지배력에위협을받게되었을
90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것이다. 당은요서에서고구려군을무력화시킨뒤또다시고구려원정을시도하였다. 그전초전으로백제를멸망시키고여세를몰아고구려를공격했지만결국실패하고말았다. 이후당과고구려는남생이당에투항할때까지소강상태에있었다. 이시기당은철륵의반란을제압하고국내정치의어수선함으로인해더이상고구려의요서진출에적극적으로대처할수없었던것으로보인다. 더욱이요서지역의주요종족인거란과해의반란으로이전처럼이이제이책으로고구려를견제하기도어려웠을것이다. 따라서고구려는멸망에이르기까지그서방경계가요서까지이어졌을가능성은매우높다고할것이다. 이에 구당서 를기점으로이후의사서에서이에어떠한이의를제기하지않고고구려의서쪽경계와동서의거리를 3천 1백리라기술하고있는것이다. 국문초록 7세기고구려영역에대해 구당서 에서는 동서의길이는 3천 1백리이고남북으로는 2천여리 라하였다. 이러한고구려영역에대한기록은이후사서에서도계속해서인용되고있다. 또한그서방경계를당의요서경영의거점인영주에이른다고하여고구려가요서까지진출했음을언급하고있다. 고구려와당의관계는일반적으로당의공세에고구려가항상수세적인입장에놓여있었던것으로보고있다. 그러나이러한고구려영역에대한기록은고구려가대당관계에서능동적으로대처하고있었음을보여주는것이다. 고구려의요서진출양상은 648년당이고구려의적봉진을공격하였다는기사를통해살펴볼수있다. 적봉진은거란의근거지인노합하유역에설치된것으로 500명이상의군대가지키고있었던군사기지로추정된다. 또한요하에서이곳까지고구려의군사시설이촘촘하게연결되어있었던것으로보인다. 진의설치는고구려의요서진출이이전처럼거란을간접적으로지배한다거나수대의무려라와같은소극적방어형태가아닌적극적인형태의군사전략으로의전환을의미하는것이다. 이러한일면은 654년거란의아장이있는송막도독부가위치한신성공격에서도드러나고있다. 이러한고구려의전략이거란과해를대규모당으로의복속을낳게만들었고, 당은이들을도독부체제로개편하고우대하면서고구려에대처하고자했던것으로보인다. 650년대당과고구려는요서에서충돌하게되고고구려는적봉진을상실하게되면서다소불리한상황에놓이게되었다. 요서에서고구려군을무력화시킨당은본격적인고구려원정을시도하였다. 그전초전으로백제를멸망시키고여세를몰아고구려를공격했지만실패하고말았다. 이때북방에서철륵이반기를들게되었고, 거란과해도당에반기를들게되면서더이상고구려의요서진출을견제하지못하였다. 이후거란은고구려군과같이행동하는모습이보이고있다. 이는고구려가멸망때까지그영역을보
91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전하였을뿐아니라요서지역으로의적극적진출에커다란성과가있었기때문일것이다. 주제어 요서, 거란, 영주, 적봉진 ABSTRACT Change in the Western Boundary of Koguryo in the 7th Century: The Expansion of Koguryo ( 高句麗 ) in the Liaoxi area ( 遼西 ) and Tang s Reaction the case during the period of Sui ( 隋 ). Other signs of a change in defense strategy can also be drawn from the attack on Xincheong Fortress ( 新城 ) located at the Songmak Area Commandery ( 松漠都督府 ) where a Khitan unit was stationed. This strategy of Koguryo drove a massive number of Khitan tribes and Xi tribes ( 奚 ) to subject themselves to the Tang dynasty, which treated them courteously and reorganized them into their area s commandery system to cope with Koguryo s expansion. In the 650s, the Tang and Koguryo clashed in Liaoxi and left the latter rather disadvantaged from losing Chifeng-zhen to the Tang. After incapacitating Koguryo in Liaoxi, the Tang set out on a full-scale invasion of Koguryo. It first destroyed Baekjae in alliance with Shilla as a prelude and then carried the momentum on to invade Koguryo, but failed in their attempt. Then, Tiele tribes ( 鐵勒 ) in the north made inroads into Tang s territory, and the Khitan and Xi tribes joined in the revolt, so that the Tang could no longer afford to check Koguryo from expanding west into the Liaoxi area. Khitan tribes thereafter joined Koguryo when taking military actions, possibly because Koguryo managed to hold on to its western territory up until its fall and continued to make great progress in the Liaoxi area. Jung, Weonjoo Lecturer, Kyungmin College Chiu Tang Shu ( 舊唐書 ) mentions that the territory of Koguryo ( 高句麗 ) in the 7th century (stretches) three thousand and one hundred li ( 里 ) from west to east and two thousand li from south to north. This record on Koguryo territory was henceforth repeatedly quoted in history books that came out later on. The record further notes that Koguryo bordered Yingzhou ( 營州 ) to the west, which functioned as a political and military base for the Tang dynasty in the Liaoxi( 遼西 ) area, implying that the territory of Koguryo had stretched into Liaoxi. It also implies that Koguryo was active in dealing with its relations with the Tang dynasty, contrary to the general perception that it always passively defended itself against the Tang dynasty s offensive moves. Koguryo s advance into Liaoxi can be glimpsed in other records documenting the Tang dynasty s attack on Chifeng-zhen ( 赤峰鎭 ) in 648. Guarded by more than 500 troops, Chifeng-zhen is assumed to have been a Koguryo military base established at the basin of the Laohahe river ( 老哈河 ) where the Khitan tribes ( 契丹 ) were based. It is also assumed that military installations had been densely set up between the Liao River and Chifeng-zhen. Installing a military garrison ( 鎭 zhen) in the Liaoxi region signifies a switchover to an active form of defense as opposed to the previous passive defense forms such as indirectly controlling Khitan tribes or operating the Mu ryeo-la ( 武厲邏 ) as was Keywords Liaoxi ( 遼西 ), Khitan tribes ( 契丹 ), Yingzhou ( 營州 ), Chifeng-zhen ( 赤峰鎭 ) 참고문헌 [ 사료 ] 舊唐書, 舊五代史, 北史, 三國史記, 隋書, 新唐書, 五代會要, 魏書, 資治通鑑, 周書, 冊府元龜, 太平寰宇記, 通典 [ 논저 ] 국사편찬위원회, 1988, 中國正史朝鮮傳譯註一, 國史編纂委員會. 국사편찬위원회, 1988, 中國正史朝鮮傳譯註二, 國史編纂委員會. 동북아역사재단편, 2011, 譯註中國正史外國傳 9 舊唐書外國傳譯註 上
92 7 세기고구려의서계 ( 西界 ) 변화 中 下,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편, 2011, 譯註中國正史外國傳 9 新唐書外國傳譯註 上 中 下,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2005, 고구려의영역지배방식연구,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서영교, 2006, 羅唐戰爭史硏究, 아세아문화사. 손영종, 1997, 고구려사 2,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李丙燾, 1973(15 版 ), 韓國史 - 古代篇, 乙酉文化社. 李昊榮, 2001( 再版 ), 新訂新羅三國統合과麗 濟敗亡原因硏究, 書景文化社. 전준현, 1988, 조선인민의반침략투쟁사 ( 고조선 - 발해편 ),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鄭求福外, 1997, 譯註三國史記,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鄭媛朱, 2013, 高句麗滅亡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박사학위논문. 韓國古代社會硏究所編, 1997( 再版 ), 譯註韓國古代金石文 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사마광지음 권중달옮김, 2008, 자치통감 20 21, 삼화. 누노메조후 구리하라마쓰오외지음, 임대희옮김, 2001, 중국의역사 - 수당오대, 혜안. 姜維東, 2001, 唐麗戰爭史, 吉林文史出版社. 王綿厚, 2002,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王錦厚 李健才, 1990, 東北古代交通, 沈陽出版社. 김지영, 2011, 7 세기중반거란의동향변화와고구려 -660 년거란의이반을기점으로, 만주연구 12. 김진한, 2011, 보장왕대고구려의대당관계변화와그배경, 高句麗渤海硏究 39. 羅棟煜, 2009, 7 세기중반高句麗의東蒙古進出과軍事戰略, 韓國史硏究 144. 盧泰敦, 1976, 高句麗의漢水流域喪失의原因에대하여, 韓國史硏究 13. 盧泰敦, 1999, 영역국가체제의형성과대외관계,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方香淑, 2008, 7 세기중엽唐太宗의對高句麗戰전략수립과정, 中國古中世史硏究 19. 서영수, 2004, 동아교섭사에서본渤海의국제적위상, 文化史學 21. 손영종, 1993, 5~7 세기고구려의서방과북방영역에대하여 (2), 력사과학 3 4 호. 宋基豪, 2008, 5 세기후반高句麗의북방경계선, 한국고대사국의국경선, 서경문화사. 尹秉模, 2009, 고구려의對唐戰爭과遼西및동몽골진출, 몽골학 27. 이성제, 2005, 高句麗와契丹의關係 - 對隋 對唐戰爭期契丹의動向과그意味, 북방사논총 5. 이영철, 2010, 唐前期營州城傍, 契丹羈縻州의技能, 대구사학 100. 李在成, 2011, 麗唐戰爭과契丹 奚, 中國古中世史硏究 26. 이정빈, 2011, 6 세기후반 ~7 세기초반고구려의서방변경지대와그변화, 역사와현실 82. 鄭媛朱, 2014, 男生의失脚배경과그의行步, 한국고대사연구 75. 최현화, 2006, 7 세기중엽唐의韓半島支配戰略, 역사와현실 61, 한국역사연구회. 王錦厚, 1994,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綜合硏究, 遼海文物學刊 王錦厚, 1986, 唐 營州至安東 陸路交通地理考實, 遼海文物學刊 趙曉剛 沈丹林, 2000, 遼東郡及通定鎭考略, 東北地區三至十世紀古代文化學術討論會論文. 白鳥庫吉, 1970, 東胡民族考 -2 烏桓 鮮卑, 白鳥庫吉全集第 4 卷, 岩波書店. 松井等, 1913, 隋唐二朝の高句麗遠征の地理, 滿洲歷史地理 上, 南滿洲鐵道株式會社. 田中俊明, 서길수옮김, 1996, 高句麗의北方進出과 廣開土王碑文 - 北方境域形成史에있어서廣開土王時代, 高句麗硏究 2. 津田左右吉, 1964, 安東都護府考, 津田左右吉全集 12, 岩波書店
93 사료해제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Ⅰ. 조선후기울릉도수토와강원감영사료 이원택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 조선후기숙종 19년 (1693) 울릉도에서동래의안용복일행과일본어부들사이의충돌을계기로조선과일본사이에이른바 울릉도쟁계 ( 爭界 ) 가발생하였다. 조선은숙종 20년 (1694) 장한상 ( 張漢相 ) 을파견하여울릉도를수토 ( 搜討 ) 하였다. 이를계기로 2년을간격으로 3년마다한번씩울릉도를수토하는것을제도화하였다. 울릉도수토는흉년이들거나특수한사정이생겨서다음해로늦추어지거나건너뛰기도하고, 또필요에따라 1년을간격으로 2년마다한번씩행해지기도하고, 매년한번씩행해지기도하였다. 그러나울릉도수토는꾸준히행해졌으며개화기의울릉도개척시기에도지속되었다. 울릉도개척이진전되어수토제가더이상의미가없게되자, 고종 31년 (1894) 울릉도수토제가공식적으로폐지되었다. 조선후기울릉도수토에관한연구는다른도서 ( 島嶼 ) 의수토에비해많이연구되었으며, 수토의성격이영토관리정책의일환이었다는것도밝혀졌다. 예를들면, 흉년으로울릉도수토의연기를건의받은영조는 이땅 [ 울릉도 ] 을버린다면그만이지만, 그렇지않다면어찌 ( 수토관을 ) 들여보내지않을 수있겠는가?( 此地若棄之則已, 不然豈可不爲入送耶?) 1 라고대답하였다. 영토수호 의지를적극적으로표명한것이다. 뿐만아니라울릉도수토관은수토후토산물을진상 ( 進上 ) 하는데, 토산물을진상하는행위는 온천하가왕의땅이아닌곳이없다 ( 普天之下, 莫非王土 ) 라는영토관념에서나온것이다. 진상품은숙종때부터자단향 ( 紫檀香 ), 청죽 ( 靑竹 ), 가지어가죽 ( 可支魚皮 ), 석간주 ( 石間朱 ) 등이었다. 2 이품목은개화기마지막수토때가지유지되었다. 조선후기울릉도수토실시현황은배재홍교수의논문 조선후기울릉도수토제운용의실상 에도표로잘정리되어있다. 3 배교수는그동안주로이용되던 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의수토기록에자신이새로발굴한 한길댁생활일기 를바탕으로, 순조 헌종 철종대의수토사실을찾아내어수토기록을보충하였다. 순조 헌종 철종대에는수토사실이관찬기록에거의나타나지않음에따라수토가실시되지않은경우가많거나아니면형식적인수토에그쳤을것으로추정되었지만, 배교수의자료에따르면이기간에도울릉도수토는지속적으로실시되었음을알수있다. 다만배교수의도표에는 1881년의수토까지만정리되어있다. 한편개화기의수토현황에대해서는유미림박사의논문 장한상의울릉도수토와수토제의추이에관한고찰 에비교적소상히서술되어있다. 4 유박사는 강원감영관첩, 강원도관초 를바탕으로당시의수토현황을자세히설명하였다. 이번에소개하는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는앞서언급한배재홍교수의도표를연대기적으로보완해주는의미와유미림박사의논문에언급된강원감영자료의사료적형태를보여준다는의미가있을것이다. 그렇지만다음에소개할첫번째사료의경우는, 필자의과문탓인지는모르겠으나, 기존에소개된적이없는자료로여겨진다. 이자료는수토제가문란해졌을것으로추정되었던철종대의자료라는점에서도학술적의의가있지않을까생각된다. 1 승정원일기 793 책, 영조 11년 1월 17일 ( 무자 ). 2 숙종, 정조때울릉도토산물의진상품목및수량은배재홍, 2011, 조선후기울릉 도수토제운용의실상, 대구사학 제 103 집, 대구사학회, 22 쪽참고. 3 배재홍, 2011, 위의글, 5~6 쪽참고. 4 유미림, 2009, 장한상의울릉도수토와수토제의추이에관한고찰,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1집 1호, 한국정치외교사학회
94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강원감영사료를바탕으로 1857~1893 년까지의울릉도수토실시현황 을정리하면 < 표 1> 과같다.( 향후배교수의도표에통합되기를바라는뜻에서배교수의도 표형식을따랐다.) < 표 1> 연도 직위 수토관 성명 1857 월송만호지희상 각사등록 27, 79 상 - 하철종 8 년윤 5 월 5 일 1867 월송만호장원익 각사등록 27, 284 상 - 하고종 4 년 4 월 20 일 1888 월송만호서경수 각사등록 27, 481 하고종 25 년 7 월 10 일 1889 월송만호겸울릉도장 출처 비고 서경수 각사등록 27, 483 하 -484 상고종 26 년 7 월 26 일 1890 월송만호 각사등록 27, 485 하고종 27 년 7 월 18 일 1891 월송만호 각사등록 27, 487 하고종 28 년 8 월 16 일 1892 월송만호 각사등록 27, 489 상고종 29 년 7 월 14 일 1893 평해군수조종성 각사등록 27, 493 하고종 25 년 9 월 20 일 Ⅱ. 사료의출처와개요 본울릉도수토관련사료는 각사등록 에실린강원감영문서에들어있 는것이다. 1857~1893 년까지의울릉도수토관련기사만선별하여원문에 표점을하고한글로번역하였다. 원래 각사등록 은조선시대중앙과지방의각관청이등사해놓은기록물 을뜻하는보통명사다. 조선왕조실록 에나오는 각사등록 의용례가그렇다. 이글에서칭하고있는 각사등록 은규장각과장서각에보관되어있는선조 10년 (1577) 부터 1910년까지조선시대중앙과지방관청의각종등록류문서들을국사편찬위원회의주관으로탈초 ( 脫草 ) 하여해서 ( 楷書 ) 로정리해서간행한자료집이다. 강원감영사료가수록되어있는원사료는강원감영계록 ( 江原監營啓錄 ), 강 원감영관첩 ( 江原監營關牒 ), 강원도관초 ( 江原道關草 ) 등이다. 강원감영계록 ( 奎 v.1-3) 은 1831년 ( 純祖 31) 부터 1861년 ( 哲宗 12) 까지강원감영에서중앙정부 비변사에올린계 ( 啓 ) 를모은것이다. 강원감영관첩 ( 奎 v.1-6) 은 1859년 ( 哲宗 10) 부터 1884년 ( 高宗 21) 사이비변사 ( 備邊司, 후기는議政府 ) 에서강원감영에보낸관문 ( 關文 ) 을모은것이다. 강원도관초 ( 奎 v.1-3) 는 1886년 ( 高宗 23) 에서 1895년사이에강원도각지방과의정부 ( 議政府 ) 에오가던관문 < 표 2> 번호 연월일 주요내용 출처 윤 월송만호지희상의울릉도수토일정 각사등록 27, 79상- 하 내년수토물품을영남에서준비할것 각사등록 27, 275하 월송만호장원익의수토인원등보고 각사등록 27, 284상 -하 내년수토물품을영남에서준비할것 각사등록 27, 346상 삼척영장의병으로월송만호차정요청 각사등록 27, 350하 내년수토물품을영남에서준비할것 각사등록 27, 419상 만호의울릉도검찰을울릉도장이보고 각사등록 27, 481하 울릉도도장의첩보 각사등록 27, 481하 월송만호서경수의울릉도검찰첩정 각사등록 27, 481하 강원감영에내린서경수관련관문 각사등록 27, 483하 -484 상 강원감영의서경수파출보고 각사등록 27, 484상 월송만호의수토후진상물품보고 각사등록 27, 484상 월송만호의검찰현황에대한보고 각사등록 27, 485하 월송만호의검찰현황보고 각사등록 27, 485하 만호가섬을검찰한현황보고 각사등록 27, 487하 월송만호가수토후진상물품보고 각사등록 27, 487하 울릉도검찰시원역잡물성책보고 각사등록 55, 479상 -하 월송만호수토후진상못한경위보고 각사등록 27, 489상 울릉도수토형편을중앙에첩보 각사등록 55, 482상 만호의검찰에대한울릉도장의보고 각사등록 27, 489상 평해군수조종성을수토위해파송할것 각사등록 27, 490하 월송만호겸울릉도도장이완갑수검할것 각사등록 27, 491상 울릉도수토시절용을도모할것 각사등록 27, 491하 월송만호의수토는중지할것 각사등록 27, 491하 -492 상 평해에서올린진상물품및성책 각사등록 27, 493하 평해군수를울릉도사검관으로차정 각사등록 27, 493하
95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 關文 ) 을초록 ( 草錄 ) 한것이다. 5 이들은모두국사편찬위원회가 1988년간행한 각사등록 27( 강원도편 ) 에실려있다. 그리고병방장공사책 ( 兵房掌公事冊 : 奎 27717) 은 1892년 ( 高宗 29) 3월부터 1893년 3월까지강원감영의병방 ( 兵房 ) 에서처리한일들을달별로정리해기록한책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1991년간행한 각사등록 55( 황해도보유편 ) 에실려있다. 19세기중후반울릉도수토관련감원감영사료의날짜, 내용, 출처등을 < 표 2> 로정리하였다. Ⅲ. 원문표점및번역 1. 江原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原州牧使臣李謹啓, 爲相考事, 本島鬱陵島搜討, 間二年擧行, 自是定式, 而今年搜討段, 越松萬戶當次, 故依例擧行之意, 前已發關知委爲白有加尼. 節呈越松萬戶池熙祥牒呈內, 萬戶以鬱陵島搜討事, 去四月二十二日, 與李璟祐及所帶員役十一人 沙格十六名, 分騎四船, 自本浦離發, 行到平海郡邱山津候風所是如可, 五月初八日辰時量, 遇風齊發, 同月初九日丑時量, 抵泊于本島待風邱尾. 天明後, 萬戶躬率員役, 始爲下陸, 看審島形, 則右有黃土窟, 左有屛風石, 石面有搜討官三陟營將李源明 越松萬戶石忠先二人之刻名, 其餘則年久頑缺, 不辨字畫是乎. 中有一澗, 約行二十里許, 其間廣闊, 可田可畓處, 幾近四十餘石落只是乎旀. 初十日, 自西向南, 到桶邱尾, 則有可支窟, 而窟穴深邃, 可支魚十餘首, 驚躍入海, 故以砲以棒, 進上所封, 僅爲捉得, 形如土鼠, 足如海狗, 而窟險波惡, 無路更捉, 轉到香木亭, 則木在石上, 不善茁長哛除良, 已被斧斤, 餘存者, 只是短禿, 盡日搜䂨, 僅充元數. 十一日, 緣涯而東, 到楮田邱尾, 轉入五里許, 有竹田, 故擇其稍長, 難辛䂨取是乎旀. 5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도서목록과해제참고. 十二日, 自倭船倉, 至黑杖邱尾, 則矗岩特立, 中有通船之孔, 名曰孔岩. 日已向暮, 仍爲經夜. 十三日, 自南向北, 十里許則有兀然狀如立錐, 名曰錐峰, 轉帿布岩, 則岩 高爲四五十丈, 穴通於下, 足用一帆矣. 四船還泊於待風邱尾, 仍爲止宿是 乎所. 遍島搜察, 幸無頉處, 而島之四圍段, 以若經過, 量其遠近, 則似不下 一百二十餘里. 千岩競秀, 萬壑爭流, 奇形怪狀, 不可殫記, 樹木則檀栢桐楡 桑榛, 飛禽則鷗鷺鷹烏鶉雀, 走獸則猫鼠, 海錯則藿鰒而已是乎所. 十四日, 風勢不利, 難以行船. 十五日, 四船齊發, 而萬戶所騎船一隻, 先到于平海邱山津是乎, 則其餘 三船, 鱗次來泊, 而翌日是在十六日, 仍爲還鎭爲有等以, 本島圖形及進上 元封紫檀香二吐, 加封十吐, 靑竹三箇, 石間朱六升, 可支魚皮二領, 並只上 送是如爲白臥乎所. 今此搜討之行, 遠涉險洋, 無事還泊, 誠甚萬幸是白乎旀. 本島圖形一本, 紫檀香十二吐, 靑竹三箇, 石間朱六升, 可支魚皮二領, 自臣營監封上送于 備邊司, 緣由幷以謹具啓聞. 咸豊七年閏五月十五日.( 각사등록 27, 79 상 - 하 ) 강원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원주목사이종우 ( 李鍾愚 ) 6 는삼 가보고합니다. 살핀일은다음과같습니다. 본도울릉도수토는 2 년간격 7 6 철종 8년 (1857) 11월 28일자 일성록 에강원도암행어사李京鎬가올린書啓의別單에 書啓以爲監司李鍾愚雅量有恢 越松萬戶池熙祥, 今番搜討, 無弊竣事. 書啓에이르기를감사이종우는아량이넓고 월송만호지희상은이번搜討에서폐단이없이일을마쳤다 라는구절이있다. 7 2 년간격 : 중간에두해의간격을두고 3 년마다한번행하는것 ( 三年一往 ) 을뜻함. 8 바람의방향을관측하는곳. 으로거행하는것이본래정해진격식입니다. 그런데금년의수토는월송만호의차례에해당하여예에따라거행하라는뜻으로전에이미관문 ( 關文 ) 을발송하여알렸습니다. 이번에올린월송만호지희상 ( 池熙祥 ) 의첩정 ( 牒呈 ) 안의내용은다음과같습니다. 만호는울릉도수토의일로지난 4월 22일이경우 ( 李璟祐 ) 및대동한원역 ( 員役 ) 11인, 사격 ( 沙格 ) 16명과함께네척의선박에나누어타고본포구를출발하여평해군구산진 ( 邱山津 ) 후풍소 ( 候風所 ) 8 에도착하였습니다. 5월 8일진
96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시 ( 辰時, 07~09 시 ) 쯤바람을만나일제히출발하여, 같은달 9일축시 ( 丑時, 01~03 시 ) 쯤본도의대풍구미 ( 待風邱尾 ) 에정박하였습니다. 날이밝은후, 만호가몸소원역을이끌고비로소육지로내려가섬의형세를살펴보니, 오른쪽에황토굴이있고왼쪽에병풍석이있는데, 병풍석의벽면에수토관삼척영장이원명 ( 李源明 ) 과월송만호석충선 ( 石忠先 ) 두사람의새겨진이름이있고, 그나머지는햇수가오래되어무디어지고없어져자획을변별할수없었습니다. 중간에개천하나가있는데약 20리쯤가니, 그사이가꽤넓어논밭을삼을수있는곳이거의 40여섬지기 [ 石落只 ] 에가까웠습니다. 10일, 서쪽에서남쪽을향하여통구미 ( 桶邱尾 ) 에도착하니, 가지굴 ( 可支窟 ) 이있었는데굴이깊었습니다. 가지어 ( 可支魚 ) 10여마리가놀라바다로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총과몽둥이로봉물로진상 ( 進上 ) 할것을가까스로잡았습니다. 형태는들쥐와같고, 다리는물개와같았는데, 굴이험하고파도가사나워다시잡을방도가없었습니다. 돌아서향목정 ( 香木亭 ) 에이르니, 나무가돌위에있는데볼품없이새순처럼자라난것일뿐만아니라이미도끼질을당하여남은것은단지짧고뭉툭한것만있어, 종일찾아서도끼질하여가까스로원래의수효를채웠습니다. 11일, 물가를따라동쪽으로향하여저전구미 ( 楮田邱尾 ) 에도착하여, 5리쯤돌아들어가니대밭이있었습니다. 그래서조금긴것을골라어렵사리잘라서가지고왔습니다. 12일, 왜선창 ( 倭船倉 ) 에서흑장구미 ( 黑杖邱尾 ) 에이르니, 첩첩의암석이홀로서있는데그가운데로배가지날만한구멍이있어서이름이공암 ( 孔岩 ) 이라고합니다. 날이이미저물어밤을보냈습니다. 13일, 남쪽에서북쪽을향하여 10리쯤가니, 우뚝솟아모양이추 ( 錐 ) 를세워놓은것같은암석이있는데추봉 ( 錐峰 ) 이라고불렀습니다. 방향을바꿔후포암 ( 帿布岩 ) 에이르니, 암석의높이가 40~50 장 ( 丈 ) 이되었으며아래에구멍이관통하여배한척은족히드나들만했습니다. 네척의배가돌아와대풍구미 ( 待風邱尾 ) 에정박하고그곳에서머물러잤습니다. 섬을두루살폈는데 다행히탈난곳은없었으며, 섬의사방주위는이미지나간바와같으며그 거리를헤아려보니 120 리아래로내려가지는않을듯합니다. 천개의암석 이빼어남을다투고만개의골짜기가흐름을다투어기괴한형상을이루다기록할수없습니다. 수목은박달나무 잣나무 오동나무 느릅나무 뽕나무 개암나무등이며, 날짐승은갈매기 해오라기 매 까마귀 메추라기 참새등이며, 길짐승은고양이 쥐등이며, 해산물은미역 전복뿐입니다. 14 일, 바람의형세가불리하여배를띄우기어려웠습니다. 15 일, 네척의배가일제히출발하여만호가탄배 1 척이먼저평해구산 진 ( 邱山津 ) 에도착하니, 그나머지 3 척이차례로와서정박하였습니다. 다음 날이 16 일인데진 ( 鎭 ) 으로돌아왔는바, 본도도형 ( 圖形 ) 및진상 ( 進上 ) 원봉 ( 元 封 ) 자단향 ( 紫檀香 ) 9 두토막, 가봉 ( 加封 ) 열토막, 청죽 ( 靑竹 ) 세개, 석간주 ( 石間 朱 ) 10 여섯되, 가지어 ( 可支魚 ) 가죽두벌을모두올려보냈다고하였습니다. 이번수토의길은멀리험한바다를건너갔다가무사히돌아와정박하였 으니참으로매우다행입니다. 본도의도형 ( 圖形 ) 한본, 자단향 ( 紫檀香 ) 열두 토막, 청죽 ( 靑竹 ) 세개, 석간주여섯되, 가지어가죽두벌을강원감영에서 감봉 ( 監封 ) 하여비변사로올려보냅니다. 연유를아울러삼가갖추어계문 ( 啓 聞 ) 합니다. 함풍 ( 咸豊 ) 7 년 (1857) 윤 5 월 15 일. 2. 爲牒報事, 鬱陵島搜討, 明年當限, 而搜討官段, 越松萬戶當爲擧行是如 9 자단 ( 紫檀, Red Sandel Wood) 의深材에서발하는향. 목재가자줏빛이고, 박달나무처럼단단하기때문에자단이라고함. 10 산화철을많이포함한붉은빛흙또는그흙에서산출한검붉은안료. 단청이나佛畵에많이쓰임. 11 다른두곳의기사에서水長桶으로되어있는바, 水長桶이맞는듯함. 乎, 嶺南船二隻及格軍三十名, 東萊倭與兵船 汁物, 11 擔桶 長水桶等物, 預爲等待, 待搜討官所報, 卽爲 起送之意, 依例發關分付於嶺營, 緣由並以牒報爲臥 乎事. 同治五年丙寅十二月初八日.( 각사등록 27, 275 하 ) 첩보 ( 牒報 ) 하는일입니다. 울릉도수토는내년이기
97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한에해당하는데, 수토관은월송만호가마땅히거행해야한다고하기에, 영남의배 2척과격군 ( 格軍 ) 30명, 동래 ( 東萊 ) 왜학 ( 倭學 ) 과병선 ( 兵船 ) 집물 ( 汁物 ), 담통 ( 擔桶 ) 수장통 ( 水長桶 ) 등의물건을미리갖추고대기하다가수토관의보고를기다려즉시발송하라는뜻을예에따라관문을발송하여영남감영에분부하니, 연유를아울러첩보하는일입니다. 동치 ( 同治 ) 5년 (1866) 12월 8일. 삼척영장이마땅히거행해야합니다. 영남의배 2척과격군 30명, 동래왜학과병선 집물, 담통 수장통등의물건을미리갖추고대기하다가수토관의보고를기다려즉시발송하라는것을예에따라관문을발송하여영남감영에분부하였다는뜻으로삼군부 ( 三軍府 ) 에보고하였으며, 연유를첩보하는일입니다. 임신년 (1872) 11월 5일. 3. 爲牒報事, 節呈越松萬戶張源翼牒呈內, 萬戶以鬱陵島搜討次, 今月十一日離發, 直向邱山津待風所, 而所率員役 沙格姓名及粮撰 襍物數爻, 修成冊上使是如爲有等以, 同成冊兩件, 監封上送爲臥乎事. 同治六年丁卯四月二十日.( 각사등록 27, 284 상 - 하 ) 첩보하는일입니다. 이번에올린월송만호장원익 ( 張源翼 ) 의첩정 ( 牒呈 ) 내에, 만호는울릉도수토를위해이달 11일출발하여곧바로구산진 ( 邱山津 ) 대풍소 ( 待風所 ) 로향하였는데, 인솔한원역 ( 員役 ) 과사격 ( 沙格 ) 의성명및양찬 ( 粮撰 ) 과집물 ( 襍物 ) 의수효를성책 ( 成冊 ) 하여올려보낸다고하였으므로동성책 ( 成冊 ) 두건을감봉 ( 監封 ) 하여올려보내는일입니다. 동치 6년 (1867) 4월 20일. 4. 爲牒報事, 鬱陵島搜討, 明年當限, 而搜討官段, 三陟營將, 當爲擧行是如乎, 嶺南船二隻及格軍三十名, 東萊倭與兵船 汁物, 擔桶 水長桶等物, 預爲等待, 待搜討官所報, 卽爲起送事, 依例發關分付於嶺營之意, 報于三軍府爲乎旀, 緣由牒報爲臥乎事. 壬申十一月初五日.( 각사등록 27, 346 상 ) 5. 爲牒報事, 鬱陵島間年搜討, 三陟營將 越松萬戶, 例爲輪次擧行, 而今年搜討, 則營將爲當次, 故已於歲前, 差定發關矣. 卽接該營將金弼求所報, 則以爲營將自到任之初, 偶得身病, 長在委頓, 以若病狀, 涉海遠行, 萬無其路是如爲有臥乎所, 搜討之行, 每於三四月之交, 候風發船, 而營將之時月獲瘳, 未可的知, 故同搜討官, 以越松萬戶移差, 使之擧行爲乎旀, 緣由牒報爲臥乎事. 癸酉三月二十一日.( 각사등록 27, 350 하 ) 첩보하는일입니다. 울릉도의간년수토 ( 間年搜討 ) 12 는삼척영장과월송만호가예에따라번갈아거행하는데, 올해의수토는삼척영장이담당할차례여서이미세전 ( 歲前 ) 에차정 ( 差定 ) 하고관문을발송했습니다. 지금해당영장김필구 ( 金弼求 ) 가보고한것을보니, 영장이임소에도착한처음부터우연히신병을얻어오래도록누워있어서, 이러한병세로는바다를건너멀리행차할방도가전혀없다고하였습니다. 수토행차는매번 3월에서 4월로넘어갈즈음바람을살펴배를출발시키는데, 영장이완쾌될때를정확히알수없으므로동수토관을월송만호로옮겨차정하여그로하여금거행하도록하며, 연유를첩보하는일입니다. 계유년 (1873) 3월 21일. 첩보하는일입니다. 울릉도수토는내년이기한에해당하는데, 수토관은 12 1년의간격을두고 2년에한번수토하는것
98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6. 爲牒報事, 鬱陵島搜討, 明年當限, 而搜討官段, 越松萬戶當爲擧行是如乎, 嶺南船二隻及格軍三十名, 東萊倭與兵船 什物, 擔桶 水長桶等物, 預爲等待, 待搜討官所報, 卽爲起送事, 依例發關分付於嶺營之意, 報于三軍府爲乎旀, 緣由牒報爲臥乎事, 合行云云. 戊寅十一月十三日. 牒議政府.( 각사등록 27, 419상 ) 첩보하는일입니다. 울릉도수토는내년이기한에해당하는데, 수토관은월송만호가마땅히거행해야합니다. 영남의배 2척과격군 30명, 동래의왜학과병선 집물, 담통 수장통등의물건을미리갖추고대기하다가수토관의보고를기다려즉시발송하라는것을예에따라관문을발송하여영남감영에분부하였다는뜻으로삼군부 ( 三軍府 ) 에보고하였으며, 연유를첩보하는일입니다. 운운. 무인년 (1878) 11월 13일. 의정부에첩보. 7. 七月初六日. 鬱陵島島長報, 萬戶還鎭日子及檢島緣由事題內, 非但不通商口岸, 初無許採文憑, 而日人姬野輩之藉稱古屋, 行此約外, 寔是駭然, 曉諭禁斷, 無至違約生梗之弊爲旀, 米鉄載去材木, 雖有手票, 有不可信, 不有禁飭, 任其運載, 安有島長隨事嚴飭之意乎. 揆以事躰, 萬萬駭痛, 另加察飭, 俾杜後弊向事.( 각사등록 27, 481하 ) 무자년 (1888) 7월 6일. 울릉도도장이보고한 만호 ( 萬戶 ) 가진 ( 鎭 ) 으로돌아온날짜및섬을검찰한연유의일 의제사 ( 題辭 ) 안에, 통상 ( 通商 ) 항구가아닐뿐만아니라처음부터고기잡이허가문서도없었는데, 일본인희야 ( 姬野, 히메노 ) 일행이고옥 ( 古屋, 후루야 ) 이라빙자하여이렇듯약조외의일을행하니이는매우놀랍다. 깨우쳐금단하여약조를어기고사단을만드는폐단에이르지않도록하며, 미철 ( 米鉄, 미첼 ) 이싣고간재목 ( 材木 ) 은비록수표 ( 手票 ) 가있으나믿을수없는데, 금칙 ( 禁飭 ) 하지않아마음대로싣고운반하였다고하니, 어찌도장이일에따라엄칙하는뜻이있다고할수있겠는가? 사체 ( 事躰 ) 를살펴보니, 매우놀랍고통탄스럽다. 특별히살피고신칙하여뒷날의폐단을막을일이다. 8. 七月初六日. 鬱陵島島長牒報, 萬戶檢島時, 日人能野順造材木請買事論列牒報事題, 無論已斫, 此非自下論賣, 則妄與日人, 議及於此, 有違事躰, 論賣一款, 更勿擧論, 其禁斫與典守, 另飭擧行, 毋至大段生梗之地向事.( 각 사등록 27, 481 하 ) 무자년 (1888) 7월 6일. 울릉도도장 ( 島長 ) 이첩보한 만호가섬을검찰할때일본인능야순조 ( 能野順造, 구카노쥰쵸 ) 가재목구매를청한일을논열하고첩보한일 에대한제사 ( 題辭 ) 에, 이미벤것을막론하고이는아래에서판매를논할것이아닌데, 망령되이일본인과더불어의논이이에이르렀으니사체 ( 事躰 ) 를위반한것이있는바, 판매를논한한항목은다시거론하지말며, 베는것을금지하는것과법을지키는것을별도로신칙거행하여큰사단이생기는데에이르지않도록할일이다. 9. 七月初十日. 東營報, 越松萬戶徐敬秀牒呈據, 去三月二十一日, 入于鬱陵島, 一一檢察, 今六月十九日還鎭, 而島中農形, 今無鳥鼠之灾, 實爲免歉, 今年新起田, 爲八石落, 新入戶二戶. 日人姬野, 島中採鰒嚴禁, 而所謂却水衣二件執置, 假島長以金演泰差出, 且日人菊谷熊太郞, 島木一百二吐, 板材一百二十片請買, 幷待處分之地事, 題內知悉是在果, 古屋利涉之所謂公文, 係是年久也, 恐不可藉此採漁, 另飭禁斷, 俾杜後弊是遣, 無論已斫未斫, 至若論賣一款, 有非自下擅便, 姑不得擧論向事. 十三日題出.( 각사 등록 27, 481 하 )
99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1888년 7월 10일. 동영 ( 東營 ) 13 은보고합니다. 월송만호서경수 ( 徐敬秀 ) 의첩정 ( 牒呈 ) 에의거하면, 지난 3월 21일울릉도에들어와일일이검찰하고지금 6월 19일진 ( 鎭 ) 으로돌아갔는데, 섬안의농사형편은금년에는새와쥐의재난이없어실로흉년을면할수있을것이고, 금년새로개간한밭은 8섬지기이며, 새로들어온호가두호입니다. 일본인희야 ( 姬野 ) 는, 섬안에서복어를채취하는것을엄금하였는데도이른바각수의 ( 却水衣 ) 14 2건을가져다놓고, 가도장 ( 假島長 ) 으로김연태 ( 金演泰 ) 를차출하였습니다. 또일본인국곡웅태랑 ( 菊谷熊太郞 ) 은울릉도의나무 102토막과판재 ( 板材 ) 120편 ( 片 ) 을구매할것을청하니아울러처분을기다릴일 이라고하였습니다. 그제사안에, 고옥이섭 ( 古屋利涉 ) 의이른바공문 ( 公文 ) 은햇수가오래된것이어서아마도이를빙자하여채어 ( 採漁 ) 하는것은불가하니, 별도로신칙금단하여뒷폐단을막도록하며, 이미베었든아직베지않았든막론하고판매를논한한건에이르러서는아래서마음대로할수있는것이아니니, 거론되지않도록할일이다. 13일제 ( 題 ) 가나왔다. 10. 己丑七月十七日. 關東營, 相考事, 卽據貴營來牒內開, 節呈越松浦萬戶兼鬱陵島長徐敬秀呈稱, 萬戶去三月初六日午時, 率兩隻船發行, 翌日午時到泊島中, 三朔留住, 次第搜檢, 今六月初七日酉時, 自島發船, 同月十一日亥時, 還泊于平海厚里鎭, 仍卽還鎭, 檢島形止及進上物種, 依例鱗次輸納, 馳報計料, 且該島方有日船二十四隻及日人一百八十六名, 入來採鰒, 其所作弊不一, 其端難以防遏, 措處昧方, 不得不馳進營下, 受由上京面告外衙門等情, 據此日人作弊, 未知何故, 該鎭亦係邊防, 不可暫曠, 不卽許由, 題飭更報, 邊政攸關, 有難擅便, 恭竣稟旨分付等語, 據此具稟, 蒙有勅旨, 該島長自與他鎭將逈異, 飭卽給由, 從便往來, 奉此發關, 到卽無滯給由, 迅 飭該島長上送, 免悞機務, 宜當者.( 각사등록 27, 關東監營을줄여서일컫는말, 곧강원하-484상 ) 감영을말한다. 14 물이들어오지않도록만들어진옷. 기축년 (1889) 7월 17일. 관동 ( 關東 ) 감영이살피는일입니다. 지금귀감영이보내온첩정을보니그내용에, 이번에올린월송포만호겸울릉도장서경수 ( 徐敬秀 ) 가올리며이르기를, 만호는지난 3월 6일오시 ( 午時, 11~13 시 ) 에배두척을인솔하여출발하여다음날오시에섬에도착정박하고, 석달을머무르면서차례로수검 ( 搜檢 ) 하고이번 6월 7일유시 ( 酉時, 17~19 시 ) 에섬에서배를출발하여같은달 11일해시 ( 亥時, 21~23 시 ) 에평해후리진 ( 厚里鎭 ) 으로돌아와정박하고이어서곧진 ( 鎭 ) 으로돌아와, 섬을검찰한현황및진상물품을예에따라차례로수송하여납부할것을치보 ( 馳報 ) 할계획이었는데, 또해당섬에일본배 24척및일본인 186명이들어와전복을채취하니그작폐가하나가아니요, 그단서를막기어려워조처할방도가없어어쩔수없이감영에급히나아가, 말미를얻어상경하여외아문 ( 外衙門 ) 등의정황을대면하여보고하겠다고했다합니다. 이에의거하면일본인들의작폐가무슨까닭인지알수없으나해당진이또한변경방비에관계되어잠시도비워둘수없으니, 즉시말미를허가할수없다고제칙 ( 題飭 ) 하니다시보고하였는데, 변방의정사에관한것은마음대로편리하게처리하기어려움이있어삼가품지 ( 稟旨 ) 하여분부 ( 分付 ) 를기다리겠다는등의말이있었습니다. 이에의거하여갖추어아뢰어서칙지 ( 勅旨 ) 를받았습니다. 해당도장은다른진장 ( 鎭將 ) 과매우다르므로곧말미를주면편리한대로왕래하라고칙유하였습니다. 이를받들어관문을발송하니, 도착즉시지체없이말미를주어해당도장을올려보내도록신칙 ( 迅飭 ) 하여기무 ( 機務 ) 를그르치지않도록하는것이마땅할것이다. 11. 己丑七月二十五日. 東營報, 鬱陵島中, 日人之作弊者, 該萬戶只先通報于釜山監理, 至於三朔後, 出島還鎭, 不言其詳, 只擧日人作弊數語而修報者, 萬萬疎忽, 該萬戶徐敬秀, 爲先罷黜, 其罪狀令攸司稟處, 而日人所採, 出浦先乾鰒數爻及無印蹟冊子中列錄條件, 船號, 首頭居住姓名與釜山港監理去來照會成冊兩件, 拜爲修正上送事, 題到付.( 각사등록 27, 484상 )
100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기축년 (1889) 7월 25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울릉도안의일본인작폐자에대해해당만호는부산감리 ( 監理 ) 에게만미리통보하고, 심지어석달후섬을나와진으로돌아와서도상세한것을말하지않고오직일본인작폐몇마디만들어보고한것은매우소홀하니, 해당만호서경수 ( 徐敬秀 ) 를우선파출하고, 그죄상은유사로하여금품처 ( 稟處 ) 케하며, 일본인이채취한것으로포구를나서기전에말린전복의수효및인장자국이없는책자중에열거하여기록한조건, 선박이름, 두목의주소, 성명그리고부산항감리와왕복조회 ( 照會 ) 한성책 ( 成冊 ) 두건을절하고수정하여올려보내는일입니다. 제 ( 題 ) 도부 ( 到付 ). 14. 庚寅七月二十二日. 越松萬戶報, 萬戶檢島形止論列牒報事, 題到付.( 각 사등록 27, 485 하 ) 경인년 (1890) 7월 22일. 월송만호는보고합니다. 만호가섬을검찰한현황을논열 ( 論列 ) 하여첩보하는일입니다. 제 ( 題 ) 도부 ( 到付 ). 15. 同日. 又報, 萬戶檢島形止論列牒報事. 題.( 각사등록 27, 487하 ) 12. 己丑七月二十六日. 東營報, 越松萬戶呈, 以鬱陵島搜討後, 本島圖形及進上紫檀香十二吐, 靑竹三箇, 可支魚皮二領, 石間朱六升, 監封上送于統理衙門緣由事, 題到付.( 각사등록 27, 484상 ) 기축년 (1889) 7월 26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월송만호가올린울릉도수토후본도도형및진상할자단향 12토막, 청죽 3개, 가지어가죽 2벌, 석간주 신묘년 (1891) 8 월 16 일. 또보고합니다. 만호가섬을검찰한현황과논열 하여첩보하는일입니다. 제 ( 題 ) 同日. 萊營報, 越松萬戶呈, 以㭗陵島搜討後, 本島圖形及進上紫丹香 十二吐, 靑竹三箇, 可支魚皮二領, 石間朱六升, 監封上送于內務府, 民戶墾 田成冊, 更爲修呈事. 題.( 각사등록 27, 487 하 ) 6 되를감봉 ( 監封 ) 하여통리아문 ( 統理衙門 ) 으로올려보낸연유의입니다. 제 ( 題 ) 도부 ( 到付 ). 13. 庚寅七月十八日. 東營報, 越松萬戶呈, 以鬱陵島檢察形止及民戶摠數 墾田斗數, 區別修成冊, 上送于議政府, 緣由事.( 각사등록 27, 485하 ) 경인년 (1890) 7월 18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월송만호가올린울릉도검찰 신묘년 (1891) 8월 16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월송만호가올린, 울릉도수토후본도도형및진상할자단향 12토막, 청죽 3개, 가지어가죽 2벌, 석간주 6되를감봉 ( 監封 ) 하여내무부로올려보내고, 민호 ( 民戶 ) 와간전 ( 墾田 ) 을성책 ( 成冊 ) 하여다시고쳐올리는일입니다. 제 ( 題 ). 17. ( 四月 ) 二十日. 一. 鬱陵島搜討船, 今四月初七日發行而候望次, 甘結嶺東 의현황및민호 ( 民戶 ) 총수와간전 ( 墾田 ) 두락수를구별하여성책 ( 成冊 ) 하여의정부에올려보낸연유의일을올렸습니다. 15 萊 : 東의오자인듯함. 번역은東으로함. 九邑. 一. 鬱陵島檢察時, 帶率員役及粮餠雜物成冊, 報議政府.( 각사등록 55, 479 상 - 하 ( 兵房掌公事冊 ))
101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임진년 (1892) 4월 20일. 하나. 울릉도수토선박이이번 4월 7일출발하여날씨를살피며기다리는차에영동 ( 嶺東 ) 의 9읍에감결 ( 甘結 ) 함. 하나. 울릉도검찰시, 인솔원역및식량, 떡등잡물을성책하여의정부에보고함. 18. 壬辰七月十四日. 東營報, 越松萬戶呈, 以㭗陵島搜討使形止馳報, 而島中新舊戶與男女人口及墾田斗數成冊, 幷皆漂失, 不得修上, 事躰惶悚, 進上物種, 今年段不爲封進事.( 각사등록 27, 489상 ) 찰한형편을논열하여첩보하는연유의일입니다. 21. 壬辰十二月初九日. 關東營, 相考事, 照得㭗陵島三年一次搜驗, 以平海郡守 越松萬戶, 迭次入送, 已有定例, 自乙酉開拓以後, 設有島長, 使之常時留駐, 嗣於戊子年分, 該島長例兼越松, 亦令任便往來矣. 此次另有搜驗事, 平海郡守趙鍾成, 特爲復舊例派送之意, 欽承上諭, 奉此關飭, 到卽轉飭該郡守, 欽遵前往, 以便搜驗宜當, 合行移關, 請照驗施行, 須至關者.( 각사등 록 27, 490 하 ) 임진년 (1892) 7월 14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월송만호가올린첩보에울릉도수토사가형편을치보 ( 馳報 ) 한바, 섬안의신구 ( 新舊 ) 호수와남녀인구및간전 ( 墾田 ) 두락수를성책하였는데, 모두표류하여잃어버려만들어올리지못하니, 사체가황송하고진상물품은금년은봉진 ( 封進 ) 하지못한다는일입니다. 19. ( 七月 ) 初六日. 一. 鬱陵島搜討形止, 牒報議政府 內務府 統理衙門.( 각사 등록 55, 482 상 ( 兵房掌公事冊 )) 임진년 (1892) 7월 6일. 하나. 울릉도수토형편을의정부, 내무부, 통리아문에첩보함. 20. 壬辰七月二十六日. 㭗陵島長報, 萬戶以檢島形止論列, 牒報緣由事.( 각 사등록 27, 489 상 ) 임진년 (1892) 7 월 26 일. 울릉도장 ( 㭗陵島長 ) 은보고합니다. 만호가섬을검 임진년 (1892) 12월 9일. 관동감영에서상고하는일입니다. 살펴보건대, 울릉도 3년 1차수험 ( 搜驗 ) 은평해군수와월송만호가번갈아들어가는것이이미정례가있는데, 을유년 (1885) 개척이후부터도장 ( 島長 ) 을설치하여그로하여금늘머무르게하였고, 이어서무자 ( 戊子, 1888) 년분에는당해도장이월송만호를예겸 ( 例兼 ) 케한것도또한편리하게왕래하도록한것입니다. 이번에별도로수험의일이있는데, 평해군수조종성 ( 趙鍾成 ) 을특별히구례 ( 舊例 ) 를복구하여파송하라는임금의효유를삼가받들어, 이관문으로신칙하니도착하는즉시해당군수에게전칙 ( 轉飭 ) 하여예전에갔던것을삼가준수하여수험을편하게하는것이마땅할것입니다. 관문을보내는것에합당하므로살펴서시행하기를바라며모름지기관문을보내기에이르렀습니다. 22. 癸巳三月初二日. 東營報, 新除受越松萬戶兼鬱陵島島長李完甲, 使之接 辦該鎭曁該島搜檢事.( 각사등록 27, 491 상 ) 계사년 (1893) 3월 2일. 동영은보고합니다. 새로제수받은월송만호겸울릉도도장이완갑 ( 李完甲 ) 으로하여금해당진 ( 鎭 ) 및해당도 ( 島 ) 의수검 ( 搜檢 ) 을접수하여처리하도록한일이다
102 조선후기강원감영울릉도수토사료해제및번역 23. 同日. 平海報, 鬱陵島搜討時, 船隻與格軍, 係是慶尙道南沿各邑之卜定, 而都會是在寧海府之專管擧行, 完固船隻, 慣水格軍, 不日備送之意, 關飭於寧海府, 以爲國役奉行之地事, 題發船之期在邇, 故爲電飭嶺營矣. 依舊例無減輸送云, 未知的確是喩, 若添數卜定, 則各邑都聚, 實難容易, 害將歸民, 不如仍舊收捧, 克圖節用事.( 각사등록 27, 491하 ) 계사년 (1893) 3월 10일. 평해 ( 平海 ) 군수는보고합니다. 울릉도수토시, 선박과격군 ( 格軍 ) 은경상도남쪽연안각읍에복정 ( 卜定 ) 하는데, 모두모이는것은영해부 ( 寧海府 ) 가전적으로관리하여거행하는바, 온전한선박과물에익숙한격군을날을헤아리지말고준비하여보내라는뜻으로영해부에관문으로칙유하여국역 ( 國役 ) 을봉행 ( 奉行 ) 하도록할일입니다. 제사 ( 題辭 ) 에선박을출발시킬기한이가까웠으므로전신으로영영 ( 嶺營, 영남감영 ) 에신칙하였다. 구례 ( 舊例 ) 에따라감하지않고보낸다고하였으나, 확실한지모르겠다. 만약숫자를첨가하여복정 ( 卜定 ) 하였으면각읍이모두모이는것은실로쉽지않아해가장차백성에게돌아가예전처럼거두어들이는것만못할것이니절용을도모할일이다. 전에식년 ( 式年 ) 수험 ( 搜驗 ) 시, 연해의민폐가없지않았으므로이미무자년분 ( 戊子年分 ) 에도장 ( 島長 ) 을설치하여사무를겸하여관리하도록한것이니, 오직편리하게하고폐단을제거하려는지극한뜻에서나온것입니다. 이번에평해군수가이미울릉도의형편을검찰하도록파견되었으니월송만호가입도하여수토하는한가지일은지금잠시두는것이일의마땅함에부합합니다. 이에특별히관문으로신칙하니, 도착하는즉시월송만호에게관문을보내살펴서거듭파견하지않게하는것이의당함. 25. 癸巳九月二十日. 江原道報, 平海呈, 以鬱陵島搜討後, 圖形一本 紫檀香元封二吐, 加封十吐, 靑竹三介, 石間朱六升, 可支魚皮二領, 監封上送于內務府. 民戶墾田成冊上送事, 題到付.( 각사등록 27, 493하 ) 계사년 (1893) 9월 20일. 강원도가보고합니다. 평해에서올린, 울릉도수토후도형 1본, 자단향원봉 2토막, 가봉 10토막, 청죽 3개, 석간주 6되, 가지어가죽 2벌을감봉하여내무부로올려보내고, 민호와간전을성책하여올려보내는일입니다. 제 ( 題 ) 도부 ( 到付 ). 24. 癸巳三月十二日. 關東營, 相考事, 曩以欽奉上諭, 委派平海郡守趙鍾成, 前赴鬱陵島檢察情形事, 關飭在案, 査在前式年搜驗時, 不無沿海民弊, 故已於戊子年分, 設置島長, 兼管事務, 亶出於任便祛弊之至意也. 今此平海郡守, 旣在派任檢察島情, 則越松萬戶之入島搜討一事, 今姑置之, 寔合事宜, 玆特關飭, 到卽翻關越松萬戶, 遵照須勿疊派宜當者.( 각사등록 27, 491하-492 상 ) 계사년 (1893) 3월 12일. 관동감영에서상고하는일입니다. 전에성상의칙유를삼가받들어평해군수조종성 ( 趙鍾成 ) 을파견하여먼저울릉도로들어가형편을감찰하라는일을관문으로신칙한것이책상에있는데, 살펴보니 26. 癸巳十一月初八日. 關東營, 相考事, 照得玆由本衙門, 欽奉上諭, 將平海郡守趙鍾成, 鬱陵島査檢官差下, 使之前往稽察, 奉此關飭, 仰貴觀察使査照, 轉飭該郡守, 俾卽欽遵辦理宜當者.( 각사등록 27, 493하 ) 계사년 (1893) 11월 8일. 관동감영에서상고하는일입니다. 살펴보건대, 본아문 ( 衙門 ) 에서성상의유시를삼가받들어장차평해군수조종성 ( 趙鍾成 ) 을울릉도사검관 ( 査檢官 ) 으로차정하여내려보내그로하여금먼저가서계찰 ( 稽察 ) 하도록관문을보냈으니, 귀관찰사는살펴서해당군수에게전칙 ( 轉飭 ) 하여즉시삼가준수하여일을처리하도록하는것이마땅함
103 영토 해양일지 영토 해양일지 영토 해양일지 2014 년국내국외 6 월 7 월 5 일 : 외교부, 일본도쿄집회에일본정부고위공무원참석하여독도영유권주장에강력항의 19 일 : 외교부, 일본의해군사격훈련요구에대하여 일고의가치가없다 며일축 20 일 : 외교부, 고노담화는일본정부가발표한일본의문서라며일본의검정보고서를강하게비판 3 일 - 한중정상회의 ( 박근혜 시진핑 ), 일본의집단적자위권 / 고노담화검증에우려표명 - 한중정상, 해양경계획정협상 2015 년부터가동하기로합의 김동욱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 4 일 :G7 정상, 남중국해에서의 법의지배 천명 5 일 : 일본정치권 지자체, 다케시마문제의조기해결을요구하는도쿄집회 개최 8 일 : 중국, 남중국해영서초에인공섬건설계획발표, 인공섬건설은남중국해방공식별구역선포를위한사전포석으로분석, 주변국반발예고 10 일 : 중국유엔대표부, 시사 [ 西沙 ] 군도탐사작업관련베트남방해에대한중국의입장 (position paper) 을반기문국제연합사무총장에제출 19 일 : 일본정부, 독도근해를포함한동해상에서 6 월 20 일실시예정인우리해군사격훈련에중지요구 20 일 : 일본정부, 고노담화는한국정부와사전조율이있었다는내용의 고노담화검증보고서 발표 23 일 : 미국 뉴욕타임스, 일본의역사눈가림 이라는제목의사설을통해아베신조일본총리의역사부정비판 1 일 : 일본내각, 각의결정에서헌법해석변경하여집단적자위권행사천명 9 일 : 일본정부, 일본해상자위대연락관 1 명을미해군작전본부에파견하여상주시키기로결정 10 일 : 일본정부, 집단적자위권행사에환영의뜻을표명한독일정부에사의표명 2014 년국내국외 7 월 8 월 9 월 10 월 11 일 : 주한일본대사관, 자위대의날 행사대사관에서개최. 당초롯데호텔에서개최할예정이었으나롯데호텔측이국민정서를감안하여대관계약을일방취소하였음. 이에대해일본정부의항의가있었음 23 일 - 한미, 제 46 차한미안보협의회의 (SCN) 에서전작권전환사실상무기한연기 11 일 : 미일양국, 미일방위협력지침 에집단자위권금지해제반영하기로합의 5 일 : 일본정부, 독도영유권주장, 2014 년방위백서발간 13 일 - 일본정부, 독도인근섬인오키 [ 隠岐 ] 제도에자위대주둔시설설치하기로발표 - 러시아군이남쿠릴열도 ( 북방영토 ) 에서군사훈련을실시한것에대해일본외무성아주국 ( 亞洲局 ) 참사관이주일러시아임시대리대사를불러서유감의뜻을전달. 러시아군의이지역군사훈련은 2010 년 7 월이래처음임 20 일 : 미국 워싱턴포스트, ( 버지니아주 ) 동해명칭 일본군 위안부 문제등에 한국편들기 문제있다고지적 5 일 : 일본정부, 일본군 위안부 를성적노예로규정한 1996 년의유엔보고서를반박하기위하여대외선전의강도를한층더강화하기로결정 8 일 : 중국왕이외교부장, 중국 호주전략회의에서남중국해문제는역사적사실존중, 국제법규존중, 당사국간직접대화와협상존중, 남중국해평화와안정위한노력존중강조 29 일 : 중국외교부, 일본대륙붕연장관련정령 ( 政令 ) 국제법에부합하지않는다고지적 8 일 : 미 일, 일본자위대활동지역에대한지리적제약을없애는새로운방위협력지침 ( 가이드라인 ) 을작성하기로합의 10 일 : 일본외무성,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내용홈페이지에서삭제 11 일 : 일본관방장관, 댜오위다오 [ 釣魚島 ] 분쟁을잠정보류하자는중국제안거절
104 영토 해양일지 2014 년국내국외 10 월 - 외교부, 일본정부가고노담화를계승하겠다고공언하면서도한편으로이에역행하는언행을반복하고있는데대해매우실망스럽다고비판하며유감표명 4 일 : 정부, 독도입도지원시설건설보류결정 7 일 : 국무총리, 독도입도지원센터관련사과 24 일 : 필리핀 미국 일본 3 국, 남중국해에서중국을겨냥한합동군사훈련실시 28 일 : 중국외교부, 베트남과인도의남중국해가스전개발협력에반대입장표명 30 일 : 일본, 국가지도에댜오위다오, 독도, 북방 4 개도서등을전부지도속에포함시킴 7 일 : 중일양국, 중일관계개선에관한 4 개항의원칙합의 8 일 : 케리미국무장관, 중일관계개선환영언명 2014 년국내국외 12 월 11 일 : 중국외교부, 베트남의남중국해관련주장에반박 12 일 - 중국국방부, 중국군군용기의미야코 [ 宮古 ] 해협관통비행입장표명 - 중국군용기에대응하기위해일본의전투기들이긴급출동한것에대해항해와비행의자유를존중해줄것을촉구하였음 11 월 12 월 11 일 : 외교부대변인, 이승철입국거부 일본에유감표명 9 일 : 일본정부, 독도에서노래한가수이승철일본입국거부조치 24 일 : 육해공군, 독도방어훈련실시 24 일 : 중국외교부, 난사제도 [ 南沙諸島 ] 매립에대한외부간섭거부 25 일 : 일본, 한국군독도방어훈련에항의 26 일 - 미국출판사, 일본군 위안부 관련일본교과서기술수정요구거절 - 주한중국대사, 미국 사드 의한국배치에반대의사천명 29 일 : 중국해경선, 시사군도해역에서조업중이던베트남어선 2 척조업방해 3 일 : 미하원, 동중국해해양분쟁평화적해결결의안채택 7 일 : 중국외교부, 필리핀제소남중국해분쟁중재불수용입장발표 9 일 : 미국 워싱턴포스트, 아베정권의역사왜곡비판
105 규정 영토해양연구 간행및논문심사규정 1. 영토해양연구 에는다음과관련된특집, 논문, 연구노트 ( 단보등 ), 자료소개, 서평등의글을게재한다. 1) 독도와관련된주제 2) 영토및해양과관련된주제 3) 본재단의목적에부합하는논문 2. 영토해양연구 는 6월 30일, 12월 31 일매년 2회간행하는것을원칙으로한다. 3. 편집위원회는투고된원고를다음과같은과정과내용으로심사한다. 1) 편집위원회는투고된모든원고를논문제목, 형식요건, 원고분량의적절성, 재단목적에대한부합성등을기준으로 1차심사하고, 참석편집위원과반수통과판정을얻어 2차심사에회부한다. 4. 편집위원회는심사위원과심사과정에관한구체적인사항일체를대외비로한다. 이외투고자는게재가결정된논문이라할지라도심사위원회의보완요구가있을경우이를최대한존중하여야한다. 5. 편집위원회는심사결과를투고자에게서면등의방법으로통보한다. 논문은아래와같은항목에의하여심사한다. 1) 논문제목의적절성 2) 형식요건및체제의정연성 3) 논리성및독창성 4) 학술적가치 5) 인용자료의적절성 6) 분량의적절성 7) 요약문의적절성 6. 편집위원회는 영토해양연구 에투고된일체의원고에대해심사종료후돌려주지않는다. 2) 편집위원회는투고원고중논문류의경우편당관련전공자 3인의심사자를선정하여 2차심사가이루어지도록한다. 2차심사때에는공정성을위해필자명을반드시지운뒤심사한다. 3) 심사위원은심사의뢰된논문을편집위원회의정해진양식에따라 수정없이게재 (A), 수정후게재 (B), 수정후재심사 (C), 게재불가 (D) 의네등급으로판정한후편집위원회에제출하여야한다. 이중 B C 등급의경우수정사항이, D등급의경우에는게재불가이유가반드시명시되어야한다. 4) 편집위원회는심사통과논문편수가 영토해양연구 의일반적인분량을초과할경우편집위원회의기획과심사성적을종합적으로고려하여우선게재순위를정한다
106 논문심사내규 투고요령 1. 편집위원회는심사결과를다음의네가지로처리한다. 1) 게재가 : 3인모두 A로판정한경우예 : (A, A, A) 2) 수정후게재 : 3인모두 B 이상으로판정한경우 / 2인이 A로, 나머지 1인이 C로판정한경우예 : (A, A, B) (A, B, B) (B, B, B) (A, A, C) 3) 수정후재심사 : 2인이 A와 B 이하로판정하고나머지 1인이 C로판정한경우 / 2인이 B 이상으로판정하고나머지 1인이 D로판정한경우 / 1인이 A나 B로판정하고 2인이 C로판정한경우예 : (A, B, C) (A, B, D) (B, B, C) (B, C, C) (A, C, C) 4) 게재불가 : 2인이상이 C나 D로판정한경우 (A, C, C와 B, C, C는제외 ) / 1인이 D로판정하였는데 A가포함되지않은경우예 : (A, C, D) (A, D, D) (C, C, C) (B, B, D) (B, C, D) (C, C, D) (D, D, D) 5) 재심사 : 2인이 B 이상으로정하였는데 1인이 D로판정한경우, D 판정 1건에대해서만심사위원을교체하여재심사함. 2. 편집위원회는논문편수가 영토해양연구 의수록분량을초과하거나또는편집위원회의기획상의우선순위등의사정에따라심사통과원고가운데일부를필자의양해하에차기호또는차차기호에실을수있다. 이가운데단순히 영토해양연구 수록분량초과만이원인일때에는투고및심사성적순위로해당호게재를결정한다. 3. 심사결과통보는심사위원이나과정을대외비로한상태에서심사결과와수정제의및게재불가사유를통보한다. 1. 영토해양연구 는전문적인학술지로서논문, 서평, 연구노트 ( 단보등 ), 회고와전망, 영토 해양관련일지, 자료소개등이게재된다. 투고하고자하는원고는 3월 31일또는 9월 30일까지투고신청서와함께 영토해양연구 편집위원회앞으로제출하여야한다. 2. 원고는반드시컴퓨터파일로작성하여 영토해양연구 실무총괄담당자메일 (tas@nahf.or.kr) 로보내야한다. 또한최종원고제출시사진 ( 해상도 300dpi 이상 ) 및기타자료는별도제출한다. 3. 원고분량은 200자원고지 100 장내외를기준으로하되충분한논지전개를위해부득이한경우 50장이내로초과할수있다. 그림과사진의수량은원고분량에포함하지않으나논지전개를위해필요한최소한으로제한한다. 4. 원고는제목, 필자 ( 소속기관, 직위 ), 머리말, 본문, 맺음말, 국문및영문초록, 국문및영문주제어, 참고문헌 ( 필요시 ) 의순서로구성한다. 5. 논문의목차와소제목은머리말로부터순서에따라 Ⅰ>1>1)>(1) 로번호매김을한다. 6. 인용문헌은가급적각주로표기하되부득이한경우에는참고문헌의방식을활용할수있다. 7. 각주에서현대문을인용할때에는 필자, 연도, 논문, 서책 ( 출판사 ), 쪽수 의순서로한다. 앞서인용한문헌을재인용할때에는바로위의문
107 헌을인용할경우에는 필자, 연도, 위의글 ( 책 ), 쪽수 의순서로, 바로위이전의문헌을인용할경우에는 필자, 연도, 앞의글 ( 책 ), 쪽수 의순서로인용한다. 예 ) 김홍도, 2010a, 위의글, 78쪽. 홍길동, 2002, 앞의글, 29쪽. 8. 각주에서고중세문헌을인용할때에는 작자 ( 필요시 ), 서책, 편목, 인용문 의순서로한다. 이중고중세문헌은필요할경우판본명이나영인본명을밝힐수있고, 인용문중전략, 중략, 후략등은 로표기한다. 이외본문중의인용문은문장가운데에삽입되는경우 표시로묶고, 인용문이길어문단을나눌경우에는 표기없이서술한다. 예 ) 東北人, 東北集 ( 東北文化社影印本 ). 東北有高士, 東北公賢裔鵠擁, 是人世 9. 서양문헌을인용할때에는책명은이탤릭체, 논문은큰따옴표로표기하고다음과같은순서와방식으로인용한다. 예 ) V. G. Childe, 1932, Chronology of prehistoric Europe : a review, Antiquity 6, pp. 206~ 참고문헌을활용하는경우에는본문의인용처를밝히고자하는곳에괄호를치고그안에필자와인용문헌의간행연도및필요시인용쪽수를표기한다. 예 ) ( 동북인, 2006 : 24) 초판 1쇄인쇄초판 1쇄발행 펴낸이펴낸곳 영토해양연구 Vol 년 12월 20일 2014년 12월 30일 김학준동북아역사재단 등록 제 호 (2004년 10월 18일 ) 주소 서울시서대문구통일로 81 임광빌딩 전화 팩스 ISSN 비매품 이책의출판권및저작권은동북아역사재단에있습니다. 저작권법으로보호를받는저작물이므로어떤형태나어떤방법으로도무단전재와무단복제를금합니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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