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 後 援 : 寶 城 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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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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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韓 國 三 田 宋 基 珍
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 後 援 : 寶 城 郡
3 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3 원 류 를 찾 아 서 조 선 분 청 사 기 의 초벌덤벙이 사발 ( 日 本 名 三 好 粉 引, 大 名 物 ) 15세기 조선, 口 徑 14.8cm, 높이 8.1cm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된 청자나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기 등의 전통도자기들은, 대부분이 중국에서 유 입된 도자제작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15세기 말엽 전남 보성과 고흥, 장흥 등지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초벌덤벙이들은 세계도자문화의 종 주국인 중국에서 조차 찾아볼 수 없는 도자양식으로, 우리 선조님들에 의해 창안된 이 땅의 독창적 도자제작 기법 이었음이 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의 [조선 분 청사기의원류를 찾아서] 조사연구로 밝혀지게 되었습 니다. 독 창 적 도 자 제 작 기 법 우 리 민 족 고 유 의 초 벌 분 장 분 청 은 조선 초기 전남의 이름 없는 민초들에 의해 제작된 초벌덤벙이 사발들, 이 사발들 중 2점( 日 本 名 三 好 粉 引, 松 平 粉 引 )이 오늘날 일본의 大 名 物 (국보급이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초벌덤벙이 사발 ( 日 本 名 松 平 粉 引, 大 名 物 ) 15세기 조선, 口 徑 14.2cm, 높이 cm
4 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 Heilongjiang 최대규(통역, 도예가, 맨좌), 신수길(차도구평론가), 치우껑위(중국 청화대학교 교수), 강대규(국립중앙 박물관 유물관리실장), 나선화(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나해철(중국 고도자기연구가), 윤영근(전남도립 대교수), 조기종(도예가), 편성진(예원예술대 교수), 송기진(도예가), 장선미(통역,도예가), 조광흠(언론 인), 김종련(촬영감독) 맨좌 : 송기진 (도예가), 주혜련(경기여고박물관자문위원), 나선화(문화재청문화재위원), 나해철(중국 고 도자기연구가), 리지엔안(복건성 고고문물연구소장), 조광흠(언론인), 황인숙(문화재수리기술사), 김동 영(언론인), 윤영근(전남도립대교수), 장선미(통역,도예가) 중국 하북성 한단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사금파리 도편관찰 강대규(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실 장, 나선화 조사단장(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2010 중국 하북성 자주요 도요지 현지조사 2011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도요지 현지조사 Kashi Hotan Karamay Urumqi Korla Xinjiang Qiemo Xizang Lhasa Hami Golmud Yumen Qinghai CHINA Sichuan Yunnan Gansu Mianyang Chengdu Zigong D ukou Kunming Ningxia Hohhot Baotou Yinchuan Taiyuan Xining Lanzhou Xian Shaanxi Hubei Nei Mongol Shanxi Henan Chongqing Yueyang Changsha B e ijin g Hebei Guangxi Guangdong T ia n jin Guizhou Hunan Jiangxi Guiyang Zhengzhou Beijing Wuhan Nanning Guangzhou Haiphong Haikou Tianjin Shijiazhuang Jinan L ia o n in g Shandong Taian Kaifeng Anhui Hong Kong Fuxin Nanjing Hefei Jiangsu Qiqihar Jixi Jilin Harbin Jilin Changchung Shenyang Benxi Dalian Qingdao Shanghai Shanghai Hangzhou Ningbo Zhejiang Nanchang Wenzhou Fuzhou Fujian Taipei Xiamen T`ai-chung T`ai-nan Shantou Taiwan Kao-Hsiung Hong Kong Miles Hainan KM Hebei,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화징토도자기 사금파리들 에 대한 리지엔안 복건성박물관 고고문물연구소장 의 설명 河 北 省 磁 州 窯 2010 중국 하북성 자주요 도요지 현지조사 Fujian, 福 建 省 自 嘲 窯 2011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도요지 현지조사
5 작가 노트 보성덤벙이는 조선 사그막의 백자연금술 보성덤벙이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그릇은 아닙니다. 조선 조정에서 민간의 백자 제작과 사용을 금했던 시절. 민간의 사기장들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창 안해 낸 불완전한 백자였으며, 조선 민초들의 질경이 같은 삶의 애환을 품고 있는 民 器 였을 뿐입니 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수많은 변화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독특한 미감과 기능성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다도계와 고미술계, 최근 들어서는 세계 도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까지 최고의 격을 갖춘 다도구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보성덤벙이는 출현과 성장배경이 기존의 도자상식을 뛰어넘다보니, 가마에 세 번을 구워 내는 수고로움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었으며, 한반도의 독창적 도자문화이다 보니 그 어느 도자 문화보다도 더 한민족의 정감어린 기운과 깊이를 가졌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릇을 빗는 사기장으로서 위대한 보성덤벙이와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的 民 窯 朝 鮮 白 磁 鍊 金 術 在 BoSeongDeomBeongYi BoSeongDeomBeongYi 不 是 追 求 完 美 陶 器 在 朝 鮮 時 代 朝 廷 禁 止 百 姓 製 作 和 使 用 白 磁 的 時 後, 當 時 民 窯 陶 瓷 匠 人 只 是 爲 生 存, 因 此, 白 磁, 代 身 的 創 案 一 白 瓷 不 完 全 朝 鮮 同 样 的 民 草 是 车 前 草, 哀 絶 的 花 费 而 已 器 只 有 这 样, 不 知 道 那 可 能 是 因 为 舰 上 的 不 完 全 的 起 因, 没 想 到 變 化 都 不 和, 一 位 獨 特 但 形 成 美 感 了 機 能 性 因 此, 以 难 与 一 位 有 名, 古 美 術 界 日 本 进 入 最 近 茶 道 界 的 世 界 的 中 国, 在 陶 瓷 文 化 的 拍 摄 宗 主 國 的, 则 被 評 價 茶 道 具 行 为 如 此, 在 与 出 現 BoSeongDeomBeongYi 的, 陶 瓷 常 識 成 長 背 景 过 旣 存, 在 做, 三 回 窯 的 燒 成, 只 做 通 過 程 的 完 成, 是 的 韓 半 島, 獨 創 的 任 何 陶 瓷 文 化 比 的 陶 瓷 文 化 的 韓 民 族 和 情 感 了 氣 運 的 深, 行 判 斷 作 为 制 造 器 伟 大 和 BoSeongDeomBeongYi 沙 器 匠 的 人 生, 我 们 感 謝 2015년 12월 5일 보성요 삼전 송기진 2015 年 12 月 5 日 寶 城 窯 三 田 宋 基 珍 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
6 축사 贺 词 나선화 (문화재청장) 罗 善 华 ( 韩 国 文 化 财 厅 厅 长 ) 송기진 작가의 개인전을 축하합니다. 저는 오래 전 보성에서 열린 도자기 심포 지엄에 강의를 가서 송 작가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 후 송 작가의 작업을 쭉 관 심을 가지고 지켜봐왔습니다. 송기진 작가는 그 동안 우리나라 보다는 일본 등 외국에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는 조선 초기의 보성 덤벙분청사기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일본에서 호조고비끼( 寶 城 粉 引 )라 불리는 보성지역의 덤벙분청사기를 누구 라도 편히 부를 수 있는 보성덤벙이 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대중화 시키려 노 력하기도 했으며, 보성 덤벙분청사기인 보성덤벙이 의 한국적인 멋과 맛을 되 살린 작품들로 국내, 외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특이할 점은, 도예가들이 듣기에도 생소한 초벌덤벙분장 도자제작기법 이라는 방식으로 그릇 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이 기법은 분청사기를 백자처럼 보이게하는 제작방식 으로 가마에 세 번 정도를 구워 그릇을 제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제작기법이 중국에는 없는 우리 선조님들이 창안하신 독창적 도자제작기법이라는 것 에 있습니다. 과거 이에 대해 조사하기위해 중국 북방과 남방의 화장토도자기 유적을 답사하던 때가 불현 듯 떠오릅니다. 조선 초 초벌덤벙분장 도자제작기법으로 제작된 사발들이 임진왜란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찻사발로 사용되었 다는 사실은 이제는 많은 분들께서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거라 여겨집니다. 현재는 국보급 명품인 대명물( 大 名 物 )로 2점이 지정되어 있다 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초벌덤벙이의 시작은 백 자를 대신해 민간의 애환을 달래주는 흰분칠의 생활용기였지만, 과거와 현대의 많은 덤벙이문화 애호가들에의 해 이 그릇들은 환희와 깨달음,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茶 道 具 로까지 기능이 확장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민간의 전통공예문화가 인류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恭 祝 宋 基 珍 先 生 举 办 此 次 个 展 自 宝 城 陶 瓷 论 坛 上 认 识 之 后, 我 一 直 关 注 他 的 作 品 朝 鲜 前 期 的 宝 城 Deombeongi 粉 青 沙 器 一 直 以 来 受 到 日 本 等 国 的 高 度 评 价, 而 相 比 之 下, 韩 国 国 内 关 注 度 却 并 不 高 宋 先 生 近 年 来 便 专 注 于 再 现 朝 鲜 前 期 的 宝 城 Deombeongi 粉 青 沙 器 的 研 究 中 其 间, 他 将 被 日 本 称 为 宝 城 粉 引 的 宝 城 Deombeongi 粉 青 沙 器 命 名 为 宝 城 Deombeongi, 此 称 谓 更 简 洁 亲 和, 更 易 被 大 众 理 解 同 时 他 的 宝 城 Deombeongi 作 品 也 深 受 国 内 外 收 藏 家 的 青 睐 他 使 用 一 般 陶 瓷 作 家 都 不 熟 悉 的 素 烧 浸 泡 粉 妆 技 法, 经 过 三 次 烧 成, 制 作 出 的 白 色 粉 青 沙 器, 非 常 耐 人 寻 味 更 为 特 殊 的 是, 这 种 技 艺 不 是 来 自 中 国, 而 是 韩 国 古 人 的 独 创 手 法 笔 者 曾 在 中 国 北 部 和 南 部 的 化 妆 土 陶 瓷 遗 址 展 开 过 相 关 调 查 众 所 周 知, 朝 鲜 前 期, 发 生 壬 辰 倭 乱 之 前, 采 用 素 烧 浸 泡 粉 妆 技 法 的 碗 传 入 日 本 后, 日 本 人 把 它 们 用 作 茶 道 具 而 得 到 茶 人 的 推 崇 其 中 两 件 还 被 选 定 为 日 本 的 大 名 物, 这 给 我 们 带 来 很 大 的 启 示 当 初 白 瓷 是 统 治 阶 层 使 用 的 瓷 器, 百 姓 只 能 用 白 色 的 浸 泡 粉 妆 Deombeongi 此 后 浸 泡 粉 妆 Deombeongi 被 Deombeongi 的 历 代 收 藏 家 作 为 茶 道 具 而 珍 藏, 认 为 它 们 能 给 人 们 内 心 带 来 喜 悦 与 觉 悟, 由 此 回 想 人 生 这 或 许 是 韩 国 民 间 传 统 工 艺 文 化 奉 献 给 人 类 的 礼 物 之 一 吧 近 年, 宋 基 珍 先 生 持 续 倾 力 于 举 办 韩 中 和 韩 日 的 粉 青 沙 器 交 流 展, 以 及 举 办 个 人 作 品 展, 为 此 祝 贺 他 本 届 个 展 以 及 10 月 下 旬 在 中 国 北 京 798 个 展 的 开 展 我 对 宋 基 珍 先 生 努 力 继 承 韩 国 传 统 陶 瓷 的 艺 术 精 神 深 表 敬 意 希 望 更 多 的 人 参 观 展 览, 尽 享 韩 国 传 统 粉 青 沙 器 的 魅 力 근년에는 송기진 작가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분청사기 작가들과의 교류전 개최를 위해 韓 中 日 삼국에서 앞서서 열심히 주도하고 있는 줄 압니다. 이번 개인전도 11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한-중 화장토도 자교류전에 이어 개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조님들께서 빚어내신 그릇들의 정신까지도 계승하려 노력하는 송기진 작가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부디 많이 찾아오셔서 우리 전통 분청사기의 멋과 맛에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
7 보성덤벙이 소개 보성덤벙이 日 本 名 寶 城 粉 引, 讀 音 호조고비끼 이 땅의 선조님들께서 개발하신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된 청자,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기 등은 모두 중국에서 유입된 도자제작기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성덤벙이(일본명 寶 城 粉 引, 讀 音 호조고비끼)를 만 들어낼 수 있는 기법인 초벌덤벙분장 도자제작기법 은 전통도 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이 땅의 선조 님들께서 개발하신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입니다. 초벌덤벙분장 도자제작기법은 분청사기를 백자처럼 만들어내 는 도자제작기술 로서, 조선 초(1470~1500년) 백자기의 일반적 사용과 제작을 금했던(조선왕조실록 세조12년(1466년)) 시기에 잠깐 동안 출현하여 약 삼십년 정도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가마에서 세 번을 구워 완성시키는 도자제작기법입니다. 이 기법으로 제작된 초벌덤벙이 사발들 몇 점이 임진왜란 전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일본 지배계급의 다회( 茶 會 )에서 말차를 마시는 찻사발( 茶 碗 )로 사용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습니 다. 현재는 일본의 국보급 명품인 대명물( 大 名 物 )로 2점( 松 平 粉 引, 三 好 粉 引 )이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 중 일본에서 미호시고비끼 ( 三 好 粉 引 ) 라고 불리는 초벌덤벙이 사발을 도요토미히데요시 ( 豊 臣 秀 吉 )가 소장했었다 라는 기록을 [ 茶 道 美 術 全 集 ]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도자기 보성덤벙이 보성덤벙이는 인위적인 기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백자나 청 자, 흑유자기 등과는 정반대의 감상법을 갖춘 자연주의 도자문화 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요체가 변화이듯, 보성덤벙이 또한 끊 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덤벙이 그릇의 쓰임을 통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이 그릇이 자연 과 닮아 있음을 감상자 스스로 발견 할 수 있고, 나아가 인간의 생 애와 덤벙이의 일생이 어떤 부분에서는 합치된다는 것을 깨닫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설명하자면, 일반 도자기들은 가마에서 나올 때 그 그릇이 가지 고 있는 모습이 거의 결정이 되어져 쓰임이 있더라도 그릇의 모 습은 변화가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비해 보성덤벙이는 가 마에서 나올 때가 사람에 비유하자면 막 태어난 아기와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양육 하는가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영향을 받듯, 보성덤벙이도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매일매일 변화해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쓰임을 통해 일년, 십년, 삼십년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서야 겨우 보성덤벙이는 제대로 된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마니아들은 보성덤벙이를 세월이 만드는 그릇, 인생 을 함께 걸어가는 도자기, 자연의 모습을 닮아있는 도자기 라 고 표현을 합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일본 고미술계에서는 호조고비끼( 寶 城 粉 引 )를 德 利 の 王 子, 술병의 최고봉 이라 말하고 있으며, 일본의 가장 오래된 차서( 茶 書 )인 만보전서( 萬 寶 全 書 )에서는 是 上 手 物 也,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경지 라 칭송하고 있습니다. 차의 맛과 기운을 순하게 만드는 기능성을 갖춘 그릇 보성덤벙이 그릇의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보성덤벙이를 차를 담아마시는 그릇으로 사용하였을 때, 그릇에 담긴 차 맛을 순하 게 만드는 기능성을 갖춘 그릇이라는 점 입니다. 이는 보성덤벙이를 만들어내는 점토에서 비밀을 찾아볼 수 있는 데, 보성덤벙이의 점토는 다량의 철분이 함유된 맥반석이 풍화 된 점토를 사용하였습니다. 맥반석은 철분 등의 광물이 다량으로 함유된 물질로서 여러 가지 신비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 철분 등의 광물질이 차에 쓴맛을 내는 탄닌을 중화시켜 차 맛 과 기운을 순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릇에서 뿜어내 는 원적외선이 차의 성분과 물의 혼합율을 높이면서 차맛을 깊고 그윽하게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보성덤벙이의 진정한 美 는 불완전함과 부작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보성덤벙이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그릇은 아닙니다. 조선의 민초들이 오로지 생존하기위해 창안해 냈던, 다소곳한 애절함이 담겨있는 그릇들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수많은 변화들 이, 생각지도 못했던 독특한 미감과 기능성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의 다도계와 고미술계에서 최 고의 격을 갖춘 그릇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茶 人 들도 보성덤벙이의 신비함에 지대한 관심 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성덤벙이는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할 진정한 이 땅의 소중한 도자문화입니다. 감사합니다 年 三 田 宋 基 珍 拜 相 1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1
8 宝 城 Deombeongi ( 宝 城 素 烧 浸 泡 粉 妆 粉 青 砂 器 ) 介 绍 日 本 称 为 宝 城 粉 引, 读 音 hozokobiki 韩 国 独 创 的 陶 瓷 制 作 技 法 宝 城 Deombeongi 历 史 上, 在 朝 鲜 半 岛 制 作 的 青 瓷 粉 青 沙 器 白 瓷 黑 釉 瓷 器 等 陶 瓷, 采 用 的 都 是 从 中 国 传 入 的 陶 瓷 制 作 技 术 而 制 作 宝 城 Deombeongi ( 日 本 称 为 宝 城 粉 引, 读 音 hozokobiki) 的 素 烧 浸 泡 粉 妆 技 法 却 是 这 方 水 土 的 祖 先 们 开 发 的 独 创 陶 瓷 制 作 技 法, 就 连 传 统 陶 瓷 文 化 的 发 源 地 中 国, 也 无 法 找 到 这 种 技 术 素 烧 浸 泡 粉 妆 技 法 是 把 粉 青 沙 器 制 作 成 白 瓷 般 作 品 的 陶 瓷 制 作 技 术, 是 在 朝 鲜 王 朝 初 期 (1470 至 1500 年 ), 因 朝 廷 禁 止 白 瓷 的 普 遍 使 用 和 制 作 ( 朝 鲜 王 朝 实 录 世 祖 12 年 (1466 年 )) 而 产 生 的 特 殊 陶 瓷 制 作 技 法, 需 要 在 窑 中 烧 制 三 次 才 能 完 成 据 推 测 这 种 技 法 只 延 续 了 了 大 约 三 十 年, 可 谓 昙 花 一 现 其 中 有 几 件 使 用 这 种 技 法 制 作 的 素 烧 浸 泡 粉 妆 碗, 在 壬 辰 倭 乱 之 前 传 到 了 日 本, 作 为 抹 茶 的 茶 碗 出 现 在 日 本 上 层 社 会 的 茶 会 中, 并 受 到 高 度 赞 赏, 从 此 开 始 闻 名 于 世 界 其 中 名 为 松 平 粉 引 和 三 好 粉 引 的 两 只 茶 碗 还 被 指 定 为 日 本 国 宝 级 名 品 大 名 物 据 茶 道 美 术 全 集 记 载, 三 好 粉 引 (mihosikobiki) 的 素 烧 浸 泡 粉 妆 碗, 曾 经 被 丰 臣 秀 吉 所 收 藏 被 称 为 一 起 度 过 人 生 的 朋 友 的 陶 瓷 - 宝 城 Deombeongi 与 凸 显 制 瓷 技 术 的 白 瓷 青 瓷 和 黑 釉 瓷 器 等 所 带 代 表 的 经 典 主 流 陶 瓷 文 化 不 同, 宝 城 Deombeongi 代 表 了 一 种 自 然 主 义 审 美 的 陶 瓷 文 化 有 如 自 然 四 季 的 交 替, 宝 城 Deombeongi 在 使 用 过 程 中 会 显 现 出 不 断 的 变 化 通 过 这 种 变 化, 鉴 赏 者 能 够 自 然 而 然 地 发 现 器 皿 与 自 然 的 相 像 之 处, 领 悟 到 自 己 的 人 生 与 浸 泡 粉 妆 陶 瓷 的 一 生, 在 某 一 阶 段 的 重 合, 从 而 获 得 某 种 情 感 的 净 化 一 般 来 讲, 常 见 的 陶 瓷 烧 制 完 成 后, 就 基 本 上 决 定 了 器 皿 所 具 有 的 样 子, 在 被 使 用 的 过 程 中 不 会 出 现 大 的 变 化 与 此 相 比, 宝 城 Deombeongi 具 有 因 人 的 使 用 不 断 发 生 变 化 的 特 点 如 果 把 宝 城 Deombeongi 比 作 人 的 话, 刚 从 窑 里 取 出 来 的 宝 城 Deombeongi, 有 如 刚 刚 出 生 的 婴 儿 其 后, 她 的 成 长 会 受 父 母 的 影 响, 通 过 一 年 十 年 三 十 年 漫 长 岁 月 的 使 用 后, 宝 城 Deombeongi 才 会 显 现 出 成 熟 的 面 貌 所 以, 爱 好 者 们 把 宝 城 Deombeongi 描 述 为 岁 月 制 造 的 器 皿 一 起 度 过 人 生 的 陶 瓷 像 大 自 然 的 陶 瓷 在 日 本 古 美 术 界, 称 宝 城 Deombeongi 为 德 利 的 王 子, 酒 瓶 的 最 高 峰 在 最 古 老 的 茶 书 万 宝 全 书 中 被 称 颂 为 是 多 么 好 的 器 物 啊, 是 人 类 制 造 出 的 最 高 境 地 宝 城 Deombeongi 具 有 柔 和 茶 味 的 功 能 宝 城 Deombeongi 器 皿 的 另 一 个 让 人 惊 叹 之 处, 是 把 宝 城 Deombeongi 作 为 喝 茶 用 的 器 皿 时, 具 有 使 器 皿 里 的 茶 味 变 柔 和 的 功 能 在 烧 制 宝 城 Deombeongi 的 粘 土 中, 可 以 找 到 这 个 秘 密 宝 城 Deombeongi 使 用 的 粘 土 是 由 富 含 铁 质 的 麦 饭 石 风 化 而 成, 因 此 器 皿 的 坯 体 中 含 有 大 量 铁 质 以 及 其 他 少 量 矿 物 质, 从 而 产 生 出 很 多 神 秘 的 功 能 据 说, 因 为 这 些 铁 质 和 少 量 矿 物 质, 中 和 了 茶 叶 中 具 有 苦 味 的 单 宁 酸, 所 以 使 茶 的 味 道 和 力 道 变 得 更 加 柔 和 并 且, 由 矿 物 质 中 放 射 出 的 远 红 外 线, 还 能 提 高 茶 与 水 的 融 合 度, 使 茶 的 味 道 更 加 深 邃 和 香 浓 宝 城 Deombeongi 真 正 的 美, 源 于 不 完 整 和 无 为 宝 城 Deombeongi 并 不 是 追 求 完 整 的 器 皿 它 是 朝 鲜 时 代 的 老 百 姓, 为 了 生 存 而 发 明 创 造 的, 凝 含 着 寂 静 的 哀 婉 不 知 是 不 是 这 个 缘 故, 在 这 种 不 完 整 中 才 派 生 出 的 许 许 多 多 的 变 化, 形 成 了 出 乎 意 料 的 独 特 美 感 和 功 能 而 好 像 也 正 因 为 如 此, 宝 城 Deombeongi 能 被 以 挑 剔 闻 名 的 日 本 茶 道 界 和 古 美 术 界 评 价 为 具 有 最 高 品 格 的 器 皿 最 近, 中 国 的 茶 人 们 也 对 宝 城 Deombeongi 的 神 秘 感 表 现 出 了 极 大 的 兴 趣 宝 城 Deombeongi 是 需 要 我 们 共 同 守 护 的 这 片 土 地 上 真 正 珍 贵 的 陶 瓷 文 化 谢 谢! 2015 年 三 田 宋 基 珍 敬 上 1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3
9 1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5 자연으로부터 유래된 거대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감상하고 좋아하는 화장토 도 자기의 근원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은 표면상의 단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진정으로 거대한 아 름다움으로 우리와 자연을 연결하고, 매우 깊은 단계에 이르게 하며 진실된 것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기진 선생님의 화장토도자 작품은 미묘하고 섬세한 백색을 바탕으로 일종의 강력하고 평온한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의 완성도는 천천히 사용하 는 과정을 통하여 사용자와의 관계를 형성한 후에야 점차적으로 나타나며, 이러 한 변화의 가능성은 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 줍니다. 송선생님은 화장토 다기( 茶 器 )가 사용자에게 안녕과 평온, 행복을 가져다 주고, 다인( 茶 人 )이 이를 사용하면서 소박하고 건강하며 천진함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바로 사람과 자연 사이에 생겨나는 자연스런 연결고 리인 것입니다. 중국 다도가 老 古 源 于 自 然 的 大 美, 是 我 们 会 欣 赏 喜 欢 化 妆 土 陶 瓷 的 根 源 这 种 美 不 是 表 面 单 一 的 那 种 美, 真 正 的 大 美 是 连 通 我 们 与 自 然, 很 深 层 次 的 很 真 实 的 东 西 宋 基 珍 先 生 的 化 妆 土 作 品 在 微 妙 细 腻 的 白 色 之 下 蕴 藏 着 一 种 强 大 的 安 静 的 力 量 他 作 品 的 完 整 性 是 在 使 用 的 过 程 中 慢 慢 和 使 用 者 发 生 关 系 后 逐 渐 呈 现 出 来 的, 这 种 变 化 的 可 能 性, 在 用 的 过 程 中 带 给 我 们 很 多 启 发 宋 先 生 希 望 化 妆 土 茶 器 带 给 使 用 者 安 宁 平 静 幸 福, 而 茶 人 在 使 用 中 感 受 到 其 朴 素 健 康 天 真, 这 其 实 就 是 人 与 自 然 发 生 的 连 接 关 系 中 国 茶 道 家 老 古
10 설백심( 雪 白 心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cm 高 7.6cm 굽지름 4.7cm 이순( 耳 順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12.5ㅡ12.7cm 高 7.3cm 굽지름 5cm 1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7
11 설화심( 雪 花 心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15.7cm 高 6cm 굽지름 5.1cm 심추( 深 秋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cm 高 7.4cm 굽지름 4.3cm 1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9
12 영해( 靈 海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cm 高 7.1cm 굽지름 5cm 심호( 心 湖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規 格 cm 高 6.7~7.4cm 2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21
13 지천명( 知 天 命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13.9ㅡ14.1cm 高 7.4cm 굽지름 5.2cm 설야( 雪 夜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7.2cm 高 4.5cm 2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23
14 천공심( 天 空 心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口 徑 cm 高 7,7cm 굽지름 5.1cm 만월( 滿 月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規 格 cm 2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25
15 설해( 雪 海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規 格 cm 어머니의 기도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規 格 35 31cm 2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27
16 태백( 太 白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規 格 cm 2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29
17 만다라( 曼 茶 羅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번 8 3.2cm 2번 cm 3번 cm 4번 cm 5번 cm(맨우측부터 1번) 자비( 慈 悲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숙우 cm 잔 cm 다관 cm 3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31
18 천왕성( 天 王 星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숙우13 6.5cm 잔 cm 다관 cm 첫사랑( 初 戀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숙우 cm 잔 cm 다관12 8.2cm 3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33
19 모심( 母 心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高 12cm 잔 cm 잔 cm 화목( 和 睦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숙우 cm 잔 cm 다관12 7.6cm 약속( 約 束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高 11.5cm 잔 cm 잔 cm 3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35
20 백록담( 白 鹿 潭 ) 보성덤벙이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2015, 高 21.5cm 3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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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41 초벌덤벙분청은 우리 민족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도예에 입문한 후 가장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은, 조선분청사기 하기위해 무형문화재 陶 泉 천한봉 선생님, 무형문화재 古 現 조기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국의 도자기까지 관심을 두겠 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 장식기법이며, 세계에서 이처럼 자유롭 정 선생님(2007년 작고), 길성요 園 堂 길성 선생님을 찾아뵙고 사 느냐 라는 막막함에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러 게 표현된 도자양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는 공부를 했을때와, 사와 지도를 받게 되었다. 은사님들의 지도에 의해 초벌덤벙제 던 중 일본 센슈대학교 히구찌아스시 교수가 조선의 덤벙이 2 도 이땅의 이름없는 민초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사발들이, 오늘날은 작기법 이라는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지않은조선분청사기제작 요지를 답사하기 위해 보성을 방문하였다. 일본의 국보와 문화재들이 되어 있다 라는 사실에 대해 알게되었 기법을알게되었고, 수많은실험과연구끝에일본국보가된조선사 정작 지역민들도 보성덤벙이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데, 멀리 을 때다. 조선사발들이 일본의 국보와 문화재들로 지정되어 있 발과 大 名 物 보성덤벙이사발의재현에도전하여, 국내와일본의원 일본에서 자비를 들여 우리 지역의 그릇을 연구하겠다고 찾아온 다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20대 청년 도예가에게 있어 조선 분 로 1 분들께 과분한 평도 듣게 되었다. 것에 감동해, 흔쾌히 현지안내와 공동조사를 수락하였다. 3년에 청사기는 반드시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래서 부푼 꿈을 걸친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2006년에는 공동(히구찌아스시,정철 안고 일본인들이 이도( 井 戶 ) 라고 하는 일본국보가 된 조선사 2000년대 초 보성덤벙이 재현에 대한 지도를 청하기 위해 古 現 수,송기진)으로 -보성, 고흥, 장흥 덤벙도자에 관한 지표조사-를 발, 호조고비끼( 寶 城 粉 引 ) 라고 명명하는 보성덤벙이 를 재현 조기정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조선 분청사기를 내용으로 일본에서 [분청사기의 과거와 현재]라는 내용을 발표 하기위해 온 열정을 다 바쳐 도전하였다. 재현의 전과정을 전통 올바르게 재현하기위해서는, 해남 산이면 진산리 도요지유적에 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히구찌 교수에게서 화장토 방식에 입각해 해내는 것도 무척이나 고생되는 일이었지만, 그 서 발굴된 고려시대 화장토도자기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하고, 그 를 이용한 도자기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태국, 베트남 등지 렇지만 이보다도 더 필자를 힘들게 했던 것은, 현재 재현해낸 사 러기 위해서는 중국 하북성 한단의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도요지 에서도 제작이 되어졌었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중 발들이 옛 보성덤벙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를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 는 지도말씀을 남기셨다. 필자는 그때 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화장토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태국 수코타이 도요지 생지덤벙분장철화어문대접 15세기 채, 재현이 다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지낸 시간들이었다. 어느 정 까지만 해도 분청사기가 유일하게 조선에서만 제작된 도자기로 는 주장이다. 처음엔 너무나도 당황하였지만, 히구찌교수가 보내 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점을 해결 알고 있었다. 생경한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조선 분청사기도 준 태국 수코타이에서 제작된 덤벙분장철화어문대접 의 사금파 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의 분청사기 역사를 조금은 넓게 바 라 볼 필요를 느꼈다. 청자, 백자에 이어 이 땅의 분청사기마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 성덤벙이를 재현하는 전통도예가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라 내 들어진 도자기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땅에서 독자적으로 창안 용에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적분석이나 고고 된 도자제작기법은 진정 없다는 말인가?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 학적인 부분들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채우려 노력했다. 초벌 던 조선 분청사기는 뭐였나? 우리의 조선 분청사기문화를 진정 덤벙도자 제작기법의 계승과 보존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를 놓는 한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에서 분 마음으로 보고서제작에 임하려한다. 일본국보가 된 조선사발 ( 日 本 名 喜 左 衛 門 井 戶, 日 本 國 寶 ) 16세기 조선, 구경 cm, 높이 8.9cm 일본국보가 된 조선사발 재현작품 2004, 송기진 作 청사기가 제작되었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만하고, 그리고 그 속 에서 조선분청사기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러한 심각한 고민 들은, 필자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조선 분청사기에 대한 정체 덤벙이 사발 ( 日 本 名 三 好 粉 引, 大 名 物 ) 15세기 조선, 구경 14.8cm, 높이 8.1cm 대명물 보성덤벙이 사발 재현작품 2009, 송기진 作 성을 흔들기에 충분했고, 현장에서 옛 그릇을 재현하고 있는 사 람이 본 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韓 中 日 삼국 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자국의 화장토도자기, 그리고 덤벙도자 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의견과 관련내용을 제시했으며, 관련연구 를 통해서 한반도 분청사기 제작 역사를 재조 명해보고, 초벌덤 벙제작기법은 한반도의 독창적 제작기법 이라는 것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이 보고서 제작의 목적이 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들은, 전문학자가 아닌 보 1. 석성우 큰스님, 경원스님, 나선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님, 한 일교류협회 조만제 회장님, 차 문화 평론가 신수길 선생님, 차문화평론가 김동현 선생님, 차문화평론가 이병인 교수님, 故 무형문화재 고현 조기정 선생님, 무형문화재 도천 천한봉 선생님, 일본 원로도예가 다나카사지로 선생 등 2. 덤벙이란?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기물을 백토물에 덤벙 담그거나 기물에 백토물을 부어서 장식하는 분청자의 한 장식기법을 나타내는 순우리말로, 순우리말 덤벙 과 이 를 결합한 조합어임. (예 : 자배기, 귀때동이 등). [일본국보와 문화재가 된 조선사발들에 우리이름 찾아주 기 조사연구]. 송기진 著.
23 4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43 초벌덤벙분청은 우리 민족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덤벙이사발 (일본명, 松 平 粉 引, 大 名 物 ) 15세기 조선, 구경 14.2cm, 높이 cm 초벌덤벙분청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덤벙 도자에 관한 몇 가지의 관련용어 설명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내용 중 덤벙이 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구어적 표현인 덤벙 이 는,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기물 표면에 백토니( 白 土 泥 ) 3 를 붓거나, 백토니에 기물을 덤벙 담궈 장식한 도자기를 뜻하며, 순우리말 덤벙 과 이 를 결합한 조합어이다. 덤벙이는 전통적인 우리그릇 이름 조성방식에 따라 만들어졌다. (예:자배기, 귀때동이, 왕기, 보시기, 뚝배기 등). 넓게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초벌덤벙제작기법 자체가 지나치게 비경제적인 제작공정과 높은 실패율, 수요층의 한계로 인해, 제 작현장에서도 제작을 기피하게 되면서 점차로 사라져갈 운명에 처해있어, 보존과 계승이 절실하게 필요한 전통도예제작기법이 다. 초벌덤벙도자제작기법에 대한 이해 일본에서 흔히 최고의 덤벙이를 명명할 때 대명사처럼 쓰이는 말 이 호조고비끼( 寶 城 粉 引 ) 이다. 호조고비끼는 우리말로는 보성 덤벙이 이며, 이는 보성에서 만들어진 초벌덤벙분장도자기 를 뜻한다. 보성덤벙이는 초벌이 된 기물에 덤벙질를 실시하는 초벌 덤벙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가마에서 최소 세 번을 구워내야만 완성되는 매우 까다롭고 실패율이 높은 도자제작기법이다. 역사 적으로는, 조선 초기(15세기 중엽)에 조정의 지시에 의해 민간의 백자 제작과 사용을 금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보성덤벙이는 이 시기에 갑자기 출현하여 한 세대 정도만 제작이 된 매우 희소성 이 높은 도자기로 알려져 있다. 초벌덤벙제작기법으로 제작된 덤 벙이사발들은, 임진왜란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지배계급의 茶 會 에서 말차를 마시는 찻사발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그 중 일본 다도계에서 대명물( 大 名 物 ) 4 로 지정된 덤벙이 사발들 중 한 점인( 三 好 粉 引, 讀 音 미호시고비끼)는 도요토미히데요시( 豊 臣 秀 吉 )가 소장했었다 라는 기록 5 이 남아있으며, 현재는 일본 다도 계에 大 名 物 2점( 日 本 名 松 平 粉 引, 三 好 粉 引 ), 中 興 名 物 1점( 日 本 名 楚 白 )이 지정되어 있고, 酒 器 의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품 으로 평가받고 있다. (1) 생지덤벙이 와 초벌덤벙이 의 말뜻은? 1 생지덤벙이 : 기물( 器 物 )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위해, 반건조7 된 기물에 덤벙질을 실시하여 제작된 도자기를 뜻함. 생지덤벙분장 은 중국에서 기원이 되어 11세기에 한반도 서남 해안으로 유입된 장식기법으로, 그 자체로 흰색 성상을 가진 그 릇을 얻기위한 시도에서 출발하여, 여러 분청 사기 장식기법(철회,박지,조화 등)을 시도하기위한 토대가 되는 장식기법으로 발전한다. 2 초벌덤벙이 : 철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태토로 제작된 기물을 백자처럼 만들어내기 위해, 초벌을 한 기물위에 덤벙질을 실시하 여 제작된 도자기를 뜻함. 초벌덤벙분장 은 철분이 다량 함유된 태토를 사용하여 성형한 기물을 백자처럼 만들어 내기 위한 도자제작기법으로, 초벌을 한 3 백토니( 白 土 泥 ) : 백토를 물에 풀어 개어서 걸죽하게 슬립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 풍뢰( 風 雷 ) 송기진 作 초벌덤벙제작기법은 세계 도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찾 아볼 수 없는 우리민족 고유의 독창적 장식기법 6 으로, 최근 보성 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에 의해 이 기법에 대한 학술적정리가 이 루어졌고, 관련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국내, 외에서 폭 4 大 名 物 : 일본 다도계에서 국보급이거나 국보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대상(센슈대학 교 히구찌아스시 교수 說 明 ) 5 小 林 公 成, 1986 年.[ 名 品 茶 碗 ]. 152p 世 界 文 化 社 년 11월 18일 조선일보 기사 A16. [이사람 보성덤벙이 뿌리 찾는 도예가 송기 진씨, "초벌덤벙분청은 우리의 독창적기법 ]
24 4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45 데, 보성지역에서 제작된 덤벙이는 재가 많이 함유된 유약을 쓰 출현하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다. 는 반면에, 고흥 운대리의 덤벙이는 재 보다는 패석회와 장석질 이 많이 함유된 유약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유약 하지만 한세대 이후에 조선왕조실록(1510년)에 기록된 내용을 의 시작은 재유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문양의 선명도를 위한 장 살펴보면, 이미 조선사회에 백자가 널리 성행하였다 라는 기록 석유가 개발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에 관련논문을 통하여 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봐, 초벌덤벙이의 제작기간은 약 30 자세히 설명하겠다. 초벌덤벙이가 제작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음과 기 위해서는, 경기도 광주 관요(1469년)가 개요하기 바로 몇 해 같은 내용을 들 수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粉 引 ( 讀 音, 고비끼, 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우리말 덤벙이)가 고가에 거래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희소 있다. 성이며, 그들 또한 호조고비끼를 약 30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만 제작된 도자기로 보고 있다. 9 라고 말하는 의견이 일본 사회에 세조 12년 (1466) 서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들이 위와 같은 추정을 통해서 그 1세조 /06/07(병오) / 백자기의 일반 사용을 금하다. 공조( 工 曹 )에서 아뢰기를, 백자기( 白 磁 器 )는 진상( 進 上 )과 이전 러한 생각을 갖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제작기간이 짧을 것이 라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초벌덤벙이 술잔 15세기. 조선 에 번조( 燔 造 )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부터 공사간 초벌덤벙이 주병, 15세기. 조선 ( 公 私 間 )에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위반한 사람은 공인( 工 직접 보성덤벙이를 재현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가마에서 최소 人 )까지도 제서유위율( 制 書 有 違 律 )로써 과죄( 科 罪 )하도록 하고, 세 번을 구워내야만 하는 민간생활용기의 제작은 조선 초기 민요 이는 조정의 지시도 이행하면서 사그막의 운영도 시킬 수 있는 또 공물( 工 物 )을 정하지 말고서 공사( 公 事 )를 빙자하여 사사로 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제작요건이기에 그 제작기간은 매 절묘한 방책으로 백자가 아닌 백자 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초벌덤 기물에 덤벙질을 실시한 후, 다시 가마에 넣어 불질을 하고, 기물 이 제조하는 폐단을 방지하며, 무릇 백토( 白 土 )가 산출( 産 出 )되 우 짧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당시의 민수용 백자나 옹 벙분장제작기법 이 출현한 배경으로 추정된다. 을 다시 가마에서 꺼낸 후 유약을 입혀 또 다시 가마에 넣고 불질 는 곳은 소재읍( 所 在 邑 )으로 하여금 도용( 盜 用 )을 금하고 빠짐없 기, 분청사기 등은 대개 한 번, 많게는 두 번의 가마 소성만으로도 을 해서 완성하는 도자기로, 총 세 번의 가마소성을 실시하는 도 이 장부에 기록하여 본조( 本 曹 )와 승정원( 承 政 院 )에 간수하게 하 완성시킬 수 있는 제작기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 초벌덤벙이가 만들어 지게 된 제작기법적 배경 자제작기법이다. 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8 집 25면, 분류] 공업-관청수공 그제작시기가 짧았을 것을 추정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상황은, 조 ᄀ 초벌덤벙이는 생지덤벙이 보다 백색도가 뛰어나다 이 초벌덤벙제작기법 은 세계 도자문화 종주국인 중국에도 없 ( 官 廳 手 工 ) 8 선 초기 사회의 백자문화가 지금의 인터넷문화처럼 백성들의 열 덤벙이는 기물에 백토니를 부착시키는 것이 관건인 장식기법입 는, 우리 선조님들께서 창안하신 독창적인 도자제작기법이다. 열한 지지가 있었다고 한다면, 조정에서도 계속해서 백자기의 사 니다. 백토니는 카오린(Al2O3ㆍ2SiO2ㆍ2H2O)을 주성분으로 위의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1466년 이후 한 동안은 일반 민수용 용을 금할 수는 없었을 거라 여겨지며, 위의 조선왕조실록(1510 하는데, 순수한 카오린은 백색도가 높은 대신에 점력이 떨어지는 (2) 민요( 民 窯 )에서 이미 백자가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에, 백자 사기가마에서 더 이상의 백자기를 제작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 년)의 기록이 쓰여지기 전 이미 초벌덤벙이는 그 제작을 멈췄을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생지덤벙이는 기물에 백토니를 부착시키기 를 닮은 분청사기인 초벌덤벙이가 왜 굳이 만들어져야 했는지? 라, 지방관청의 관리 하에 겨우 진상을 위한 백자 생산만을 할 수 가능성이 충분하리라 판단된다. 위해, 백토니에 접착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시도로 와목이나 목절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선 조정의 이러한 방침은, 따라서초벌덤벙도자제작기법의출현은, 조선조정의민요( 民 窯 ) 점토 같은 클레이 계열의 강력한 점질 성분을 첨가한다. 하지만 1 초벌덤벙이가 만들어 지게 된 시대적 배경 지방 민요의 입장에서는 사그막의 최대 수입원이 사라지는 청천 의백자제작금지령 으로생계가막막해진 사그막의 장인들이, 요 이때 첨가된 점질로 인해, 생지덤벙이에 사용되는 백토니는 순수 초벌덤벙이 는 비경제성 과 고난위도의전문성, 높은실패율 벽력과 같은 상황으로 다가왔을 거라 여겨진다. 하지만 수요자들 장의 활로를 위해서 절박하게 선택한 고육책이었다 라는 것을 한 카오린이 가지는 백색도보다 그 밝기가 떨어지게 된다. 그래 등으로인해, 대량생산을통해요장을운영해나가야만하는조선초 입장에서는 어두운 계열의 옹기나 분을 바른 사기보다는 당연히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서 일반 생지덤벙분장기법이 시도된 분청사기가 기물의 색은 하 기 민요( 民 窯 ) 운영방식에서는도저히 시도되기 어려운 도자제 음식의 풍미를 더할 수 있는 백자기의 수요가 계속 되었을 것이 얗게 보이나, 백자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작기법 임에도 불구하고, 전남 보성과 장흥에서 최초로 제작이 시도되었고, 그 후 인근의 고흥 운대리로 이주하여 제작이 이어 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근거로, 두 지역에서 사용된 덤벙이 유약을 들 수 있는 라 여겨진다. 백자기의 제작과 사용을 금하라는 조정의 명을 어 길 수도 없는 이러한 난감한 상황 속에서, 사그막에서는 오직 살 아 남기위한 고육책으로 백자가 아닌 백자 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초벌덤벙도자제작기법 이 7 반건조 : 장식기법 마다 반건조 상태는 차이가 있다. 덤벙질의 반건조 상태는 성형 한 기물의 굽을 깍는 2차 성형이 완료된 후 부터 완전히 건조되기까지의 중간정도의 시기. 8 조선왕조실록 세조 12년(1466년) 기록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정보자료)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벌 한 기물에 덤벙이를 실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방식으로 수비된 점토를 이용해 성형한 기물을 가마에 넣고 초벌을 하게 되면, 기벽 내에 포함되어 있는 미세한 불순물들이 열에 의해 타서 없어지게 되는데, 이때 기벽은 그만 9 구술 : 센슈대학교 히구찌아스시 교수
25 4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47 의 제작보다는, 백토를 소량으로 사용하면서 백자맛도 낼 수 있 (3) 보성덤벙이가 초벌덤벙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는 초벌덤벙제작기법이 시대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생지덤벙이와 초벌덤벙이의 구별을 위한 관능기초) 까?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릇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초벌덤벙이 사발 15세기. 조선 보면, 백자는 한 번의 가마 불질로도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초벌덤 벙이는 세 번을 시도해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차라리 백토가 일본국보와 문화재가 된 조선사발들을 재현하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민요( 民 窯 )에 서 서민들의 생활용기로 제작되었던 조 많이 매장된 점토 광맥을 찾아 그 곳에서 민수용백자를 만들지, 선사발들은 하나의 양식이나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변 저가의 민간용기제작을 위해 높은 불량률을 감수하면서까지 가 화와 다양한 형태 및 성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조 큼의 기공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초벌을 통하여 기벽에 남아있 이에 반해 초벌덤벙이는 생지덤벙이의 이러한 결점을 보완해주 마에서 세 번 까지 구워내야만하는 제작과정을 선택하지는 않았 선의 덤벙이를 말할 때도, 딱히 조선 덤벙이는 바로 이것이다 라 던 보이지 않는 수분이 완전히 증발함으로 해서, 기물자체가 어 는 장점이 있다. 이미 초벌이 된 기물은 삼투압에 의한 영향으로 을 것이라 판단된다. 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 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느 정도의 흡수력을 갖추게 된다. 즉 초벌덤벙이는 어느 정도 흡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초벌 생지덤벙이와 초벌덤벙이 또한 이 땅의 민초들에 의해 제작된 민 수력을 갖춘 초벌 기물위에 덤벙질을 실시하기 때문에, 점력이 덤벙이를 시도하였다는 것은 과한 상상이며, 생지덤벙이도 덤벙 ᄅ 보성 도촌리 요지는 그 주변 일대가 맥반석광맥으로 둘려져 수용 그릇으로, 그 것들의 구분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장이나 부족한 순수한 카오린만으로도 덤벙질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질이 어느 정도 숙달되다 보면 소형기물 같은 경우는 기물 전체 있는데, 혹 이것이 초벌덤벙기법 출현 이유일까? 도자기감정가들에게도 그렇게까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초벌덤벙질로 인해 얻어지는 기물은 백자와 매우 흡사하 에 덤벙질을 실시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맥반석이 풍화된 점토는 철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기에 내 기물에 입혀진 백토가 가마 안에서 고화도의 불을 만나면, 기벽 게 제작이된도자기도있을뿐만아니라, 그릇을깨보기전에는백자 이러한 생지덤벙질은 불량률 발생과 작업공정에 과도한 증가를 화도가 일반 점토보다 낮다. 그릇성형에 사용된 맥반석점토는 과 백토, 유약이 용융에 의한 융착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초벌덤벙이 인지구별 해내기가 어려운 정도의 기물도 만 불러올 수 있기에 대량생산을 위한 민요에서 시도가 많지는 않았 1260 를 넘어가면 점토가 타면서 끓어오르게 된다. 그래서 일 정도의 화도에서 구워진 덤벙이는 구분이 쉽지만, 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초벌덤벙이는 고도의 숙련된 기능을 요 을 것으로 여겨진다. 반 분청사기장식기법인 귀얄, 인화기법보다는 덤벙기법으로의 1250 를 넘어 가게 되면, 관능적으로는 구분이 어려운 것이 사 하는 제작기법으로, 조금이라도 백토니가 두껍게 덤벙질이 된다 제작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대개 분청사기가 실이다. 면 백토가 건조 중에도 갈라지거나 뜨게 되고, 소성이 끝난 후에 ᄃ 백토가 매우 귀했던 조선시대에 초벌덤벙이는 또 하나의 대안 1200 근처에서 소성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도 초벌덤벙이의 는 태토와 백토사이의 수축비가 달라 전부분이나 몸체의 한 부분 이 아니었을까? 선택 이유로는 근거가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역으로, 도촌리 윗 초벌덤벙이 그릇들에서 보여지는 빛깔만을 예를 들어보더라도, 에서 덤벙질된 백토가 떨어져 나가기가 쉽다. 또한 백토니가 얇 조선왕조실록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백토가 좋은 곳을 황해도 봉 사그점골과 아랫사그점골의 점토는 맥반석의 풍화물이기에 태 대략적으로 4가지 정도의 성상을 갖추고 있다. 게 덤벙질이 되게 되면 태토에 색이 백토 밖으로 비쳐나게 되어 산, 강원도 양구, 평안도 선천 등을 들고 있다. 백토가 등장하는 내 토에 다량의 철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태 첫째 불투명 백유가 두껍게 시유되어 백자와 똑같은 성상을 갖추 백색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로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유 용마다 공통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백성들의 백토 채취가 매우 토를 활용하여 백자가 아닌 백자를 만들어내는 초벌덤벙제작기 고 있는 유형, 약과 가마 안 불길의 영향에 의해 처음의 제작의도와는 다른 결 곤욕스러운 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시행하게되면 겉만 백자로 보일 뿐 기물의 내부는 백자의 둘째 두껍께 덤벙질 된 백토위에 투명도가 있는 유약이 시유되어 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즉 실패율이 매우 높은 도자제작기법 산 정상부근에 암석의 형태로 있는 백토의 채취는 백성들로서는 태토가 아닌것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보기에는 시원스런 백자에 가까우나, 백자와는 왠지 다소 이질감 이다. 농사일을 모두 제쳐두고 해야만하는 큰 고역으로 자리잡고 있었 이러한 특이성으로 인해 백자기의제작을금하라 는조정의간섭 으며, 지방관이 백성의 편에서서 조정에 백토채취를 중단하게 해 에서벗어나가마의운영을더편히할수있지 않았을까?라는 비약 ᄂ 초벌덤벙이는 생지덤벙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삼투압에 의 달라고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지방에 파견 에 가까운 추정도 해본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의 한 기물 주저앉음 현상 을 극복 할 수 있다. 된 백토채취 담당관리를 백성들이 백토굴에 매장시킨 사건도 기 생지덤벙이나 무안지역의 생지덤벙이를 살펴보면 보성덤벙이 덤벙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물에서 보이는 백색도를 높이기 위 록이 되어있을 정도다. 이토록 귀한 백토가 다량 사용되는 백자 와는 다르게 태토의 백색도가 매우 높은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해, 기물에 가능한 한 두꺼운 백토물을 입히려 하는데 있다. 하지 보성 득량면 도촌리에 일제강점기 신작로 공사와 석산개발, 도촌 만 이는 생지덤벙이의 가장 큰 문제점인 삼투압에 의한 기물 주 저수지 조성공사로 유실된 것 외에 현재까지 흔적이 남아있는 도 저앉음 현상 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생지덤벙이는 기물 요지 5기 중 이 곳들 모두에서 초벌덤벙이가 구워졌다는 점과 도 의 전체를 덤벙질하는 것이 매우 불편한 기법으로 인식되고 있으 요지에서 발견되는 사금파리의 대부분이 완전덤벙이들이며, 미 며, 조선 분청사기 도요지에서 발견되는 사금파리들을 보더라도 량의 귀얄과 반덤벙이, 백자편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지덤벙으로 제작된 기물들은 거의 다 반덤벙이로 확인된다. 주병 표면의 백토가 벗겨진사진 귀얄사발 15세기. 조선
26 4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49 점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초벌덤벙이의 백토는 소성 후에도 생지덤벙이의 백토처럼 기물에 부착되는 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손으로 백토를 문지르면 손에 백토가루가 묻어 귀얄사발 15세기. 조선 초벌덤벙이 사발 찻물현상 15세기 조선 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생지덤벙이의 백토는 그 자체로 강한 점력을 갖기에 덤벙질 된 백토가 잘 뭉쳐져 있고, 손 으로 벗겨내려 하여도 이미 기벽과 한 몸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이 느껴지는 유형. 다. 일반적으로 초벌덤벙이의 백색도는 생지덤벙이의 백색도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재가 다량 함유된 유약이 입혀진 기물이, 환원불을 만나서 다 대체적으로 좋다 라고 하는 정도가 성상적인 차이지만, 어떤 연초록계열의 성상을 지니고 있는 유형. 초벌덤벙이들은 생지덤벙이와 백색도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그 다섯째, 이 부분은 초벌덤벙이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 넷째 재가 다량 함유된 유약이 입혀진 기물이, 산화불을 만나서 릇들도 있다. 그렇지만 백색도가 좋은 초벌덤벙이들 중에는 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기물에 덤벙질을 실시하다 보면 무의식 연노랑계열의 성상을 지니고 있는 유형. 덤벙질 된 백토의 느낌이 상아에서 느낄 수 있는 색감과 분위기 적인 상황에서 기물에 백토가 입혀지지 않은 상태의 기물이 나오 가 난다. 기도 하는데, 무지 현상이란 이때의 백토가 입혀지지 않은 부분 이 외에도 그릇에 연기가 입혀졌거나, 중성불을 만나 요변이 발 을 뜻하며, 다도에서는 백토와 기벽간의 무지현상에서 보여지는 생하여 다양하게 보여지는 성상 등이 많으므로, 이 덤벙이 분야 셋째, 백색도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때 구분 방법으로 흔히 사 선과 면의 대비감, 그리고 태토에서 비쳐지는 속살 등을 덤벙이 또한 딱히 이것이 초벌덤벙이나 생지덤벙이다 라고 단정 짓기 용되는 것이 덤벙이 그릇에 물을 부어보는 방법이다. 초벌덤벙이 사발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감상폭으로 여긴다. 이 덤벙이 는 어렵다. 하물며 빛깔 하나만으로도 이럴진대, 그 다양한 형태 와 굽의 생김새, 재료적 특성 등을 다 이야기 한다면 정말 조선사 로 제작된 그릇들에 입혀진 백토는 생지 덤벙이보다 점력이 약해 그만큼 흡수력을 더 가지고 있으며, 유약의 표면에 생긴 핀홀(바 사발들의 무지현상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백토과 입혀진 부분과 입혀지지 않은 곳에 미세한 유면차이가 만들어져있는 것을 볼 수 초벌덤벙이 사발에서 보여지는 무지현상의 특징 detail 발은 말 그대로 자연과 한 몸 이라고 할만 큼, 수많은 변화와 다 늘구멍)으로 수분이 흡수되어 곧바로 순식간에 물꽃 이 생겨나 있다. 이 점이 바로 초벌덤벙이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특 양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지덤벙이와 게 된다. 이것을 생지덤벙이와 다른 또 하나의 차이로 본다. 하지 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되는 이유는, 태토로 형성 초벌덤벙이를 애써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을 생각 만 이것 또한 모든 초벌덤벙이가 바로 물꽃을 보이는 것은 아니 된 기벽과 덤벙질 된 백토가의 성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해 볼 수 있다. 며, 잘 익은 덤벙이일수록 천천히 물꽃이 피어난다. 이 때 발생하 는 물꽃현상으로 인해, 초벌덤벙이 찻사발의 최고의 미라 할 수 초벌덤벙이는 최소 세 번의 가마불질이 필요한데, 초벌한 기물에 첫째, 생지덤벙이는 대개 기물의 외부면(굽안 쪽 제외)만을 덤벙 있는 찻물현상 이 갖춰지게 되는 것이다. 이 찻물현상은 오랜 시 백토니를 덤벙질 한 후 백토니를 기물에 부착시키기 위해 두 번 질 하고 있으나, 작은 크기의 기물(사발 등) 같은 경우 내부의 전 간 동안 매일 사용하면서 천천히 세월과 함께 그릇의 백토에 찻 째의 가마불질을 실시한다. 이 때 가마에서 발생되는 높은 열에 체면과 외부면의 상부까지 덤벙질을 한다. 하지만 초벌덤벙이는 물이 들어가는 것이 정석이다. 명품 초벌덤벙이를 구분하는 요건 의해 기벽과 백토니는 소성수축을 하게 되나, 두 물질의 구성성 기물의 전체면(굽안까지 포함)을 다 덤벙질을 실시하는 것이 생 으로 첫 번째로 드는 것이 바로 이 찻물현상이 그릇에서 보여지 분이 다르기에, 이뤄지는 소성강도 또한 다르게 된다. 그래서 이 지덤벙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물의 전체 면이 덤벙 는 속도다. 초벌덤벙이의 감상기준 중 기물에 찻물이 빨리 스며 질이 되어있으면 일단 초벌덤벙이로 분류 할 수 있다. 들어 찻물현상 이 짧은 기간 내에 갖추어지는 덤벙이를 오히려 하품으로 취급하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것이 찻물현상의 즐거움 둘째, 대개 생지덤벙이는 태토에 입힌 백토의 접착력이 좋아 유 을 빨리 느끼면, 그 만큼 빨리 질리기 때문 이라 말하고 있다. 약과 백토, 태토가 한 몸처럼 보인다. 하지만 초벌덤벙이는 백자 처럼 딱딱한 느낌의 고순도의 백토질위에 투명한 유약이 입혀져 넷째, 초벌덤벙이는 사용을 하다보면 가끔 유약이 탈착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첫째의 요건을 충 생겨나게 되는데, 이때 기물에 입혀진 백토를 손으로 문질러보면 족한 그릇에 한해 둘째 요건의 기준을 접목해 봐야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부합한다라고 해서 다 초벌덤벙이로 생각 할 수는 없 백토가루가 벗겨지거나 손에 묻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초벌덤 벙이는 생지덤벙이와 다르게 백토물에 점질을 첨가하지 않기에 초벌덤벙이 사발이 오랜 사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백토가 탈착된 부분 detail 생지덤벙도자에서 보이는 백토가 강한 점력에 의해 견고하게 부착되어있는 모 습 detail 초벌덤벙이 사발에서 보여지는 무지현상의 특징 detail
27 5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1 러한 성격을 갖춘 기물에 유약을 입히게 되면, 입히는 유약은 한 질을 해야하는 다회덤벙은 조선 초기 민요에서 일반 백성들을 위 이 두 물질의 성분이 다르기에, 가마에서 구워지는 소성강도 또 세미나에 참여한 한국 측 인사들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나선화, 종류 이지만 그 유약을 흡수하는 기벽은 두 종류로, 서로 다른 흡 한 생활자기로는 시도되기가 어려운 기법이다. 이 덤벙이사발들 한 다르게 된다. 그래서 입히는 유약은 한 종류 이지만, 그 유약을 국립부여박물관장 강대규, 전남도립대학교 윤영근 교수, 송기진 수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두 성분 간의 흡수차이로 인 의 무지현상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백토과 입혀진 부분과 입혀지 흡수하는 기벽은 두 종류로, 서로 다른 흡수력을 가지게 된다. 그 등을 포함한 11인 이었다. 세미나의 내용은 주로 중국 자주요 화 해 입혀진 유약이 두께 차이를 갖는 것이다. 생지덤벙이에서 생 지 않은 곳에 미세한 유면차이가 만들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래서 자연히 두 성분 간의 흡수차이로 인한, 입혀진 유약이 두께 장토도자기와 조선 분청사기, 일본 미시마에 대한 관련연구를 주 기는 무지현상에서는 이러한 확연한 유약층을 보기가 어렵다. 이 차이는 초벌덤벙이기법으로 만들어진 무지현상만이 가질 수 차이를 갖는 것이다. 생지덤벙이에서 생기는 무지현상에서는 이 로 다뤘다. 그런데 세미나 도중 문득 뭔가가 이상하다 라는 생각 있는 자연스러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러한 층을 볼 수가 없다. 이 자꾸만 들었다. 중국 화장토도자기문화를 발표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태토에서 비쳐지는 속살을 감상폭으로 여긴다. 조선 초기 초벌덤벙이에 관한 언급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채, 오직 반건 의 덤벙이가 여러 번에 걸친 다회덤벙이라면 이런 무지현상은 생 이러한 현상이 발생되는 이유는, 태토로 형성된 기벽과 덤벙질 여섯째, 구분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초벌덤벙이가 원래 의도대 조된 생지기물에 화장토를 입히는 덤벙기법과 장식을 하는 철회, 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최소 4번의 가마불 된 백토가의 성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로 완전히 백자처럼 만들어지게 되면, 이 그릇은 관상적으로는 박지, 조화기법이 시문된 생지덤벙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구분이 어렵다. 왜냐하면, 기물의 외관이 백자와 똑 같기 때문에, 가? 이 그릇을 깨서 유약과 백토속에 감춰진 태토를 확인하기 전에는 덤벙이 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벌덤벙이로 제작된 중국은 세계 도자문화의 종주국인데 설마 초벌덤벙제작기법이 그릇들 중 백자와 똑 같은 성상을 갖춘 그릇은 찾아보기가 매우 없었을까?라고 생각하다가도, 혹시라도 몰라서 중국 측 책임자 어렵다. 인 칭화대학교 치우껑위 교수에게 중국의 화장토도자기 역사에 초벌덤벙이가 존재했느냐? 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중국 민간도 (4) 초벌덤벙이는 세계 도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도 없는 우 자사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치우교수의 답은 아직까지 리민족의 독창적 기법 중국에서는 초벌에 분장을 시도했던 도자기는 보지 못했다 라는 것이었다. 이 땅의 초벌덤벙이 도요지 등에 대한 지표조사와 재현기술을 확 보 한 후, 과연 초벌덤벙이가 우리나라 도자사의 어느 부분에 해 필자는 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반도 도자기의 대부분이 중 당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기존에 정립된 분청사 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지금 이 세미나에서 거론되는 한반도 기 관련학설에서처럼, 덤벙이의 제작시기가 분청사기가 백자로 분청사기 장식기법 대부분도 중국 자주요 화장토도자기와 연관 넘어가기 바로 전의 시기인지, 아니면 일본인 학자들이 발표한 이 있다고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조선의 민초들에 의해 만들 1390년경인지를 알아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와 관련해 이 땅 어져 일본의 국보급 명품인 대명물로 지정되어있는 우리 초벌덤 의 분청사기 제작사를 살피던 중, 지금까지는 우리사회에서 크게 벙이의 존재가 중국 역사에는 없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었 주목받지 못했던 고려시대 분청사기 제작사에 관하여 살펴볼 필 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제작된 초벌덤벙이가, 중국에는 존재하 요를 느꼈고, 이를 위해 전남 해남 산이면 화장토도자기 유적과 지 않는 기법으로, 우리 선조님들께서 창안하신 독창적인 도자제 중국 북방의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관련유적을 주목하게 되었다. 작기법이란 말인가? 또한 앞서 무형문화재 고현 조기정 선생님의 지도말씀인 조선 행사기간 중 학술대회와 관련된 행사로 하북성 한단 자주요 화장 분청사기를 올바르게 재현하기위해서는 중국 자주요 화장토도 토도자기 답사를 추진했는데, 중국 화장토 자기를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가 유훈처럼 필자의 가슴에 남아, 도자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윽고 한단에 2010년 10월 중국 북경 청화대 학교에서 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 도착해 요 송 금 원대에 제작된 자주요 화장토도자기를 대면하는 구원 칭화대학교 도예과 공동주최로 [한 중 일 덤벙도자 학술대 순간, 그 동안 분청사기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 문화유산 이라는 한 중 일 덤벙도자학술대회 세미나 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주장을 믿어왔던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었다라는 생각에 온몸에
28 5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3 화장토가 분장된 위에 철화가 시도된 철화용문항아리. 중국 북방 자주요. 元 대 제작 고려 초-중기 도자유적인 전남 해남 산이면 진산리 도요지 화장토도자기 사금파리들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자주요는 하북성 한단과 관대지역의 전체 요장을 이르는 말로, 그 규모가 실로 놀라웠다. 더욱이 과거의 전통도자유적과 그 후 예들의 작업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보존되고 이어지고 있는 모습 이, 외침이 잦아 전쟁의 상흔 속에 대부분의 전통도자문화유산이 절맥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자주요의 작업장들을 둘러보면서,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에서 출 토된 유물의 기형 장식문양 등과 거의 흡사한 형태와 문양을 갖 춘 도자기가 눈앞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마치 1,0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아무튼중국화장토도자기의전남서해안유입에대한근거를현장 에서살피며, 제작기법이조선분청사기와 별 다를 것이 없구나 라 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필자는 중국 도자역사 속에서 초벌덤벙 이의 존재유무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살펴야한다는 의지가 되살아 났다. 그래서 자주요에서 전통도자기를 재현하고 있는 강소성( 江 蘇 城 ) 공예미술명인 張 正 中 선생에게 중국의 도자 제작기법 중 초 벌덤벙이의 존재유무에 관해 문의한 결과, 그에게서도 역시 중 국에는 초벌덤벙이의 존재가 있을 수 없다 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중국의 전통 화장토도자기를 재현하고 있는 작가들이 혹 옛 전통기법을 다 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한단시박물관과 자주요박물관의 유물들을 살펴보았으나, 역시나 초벌덤벙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자주요박물관장인 쟈오쉐펑( 敎 學 鋒 )선생은 자주요 화장토도자 기 제작기법에 초벌덤벙이가 있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남겼다. 자주요는 중국의 화장토도자기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이 곳 화 장토도자기의 특징은 백지분장위에 철사를 이용해 세밀한 그림 을 그려내는 철회가 널리 성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기물을 초벌 한 위에 백토분장을 하게 된다면,
29 5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5 자주요 장인의 생지덤벙분장 시연 분장이 끝난 기물 중국 하북성 한단 자주요 관대요지 덤벙도자 유적조사. 전남도립대학교 윤영근 교수(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실장 강대규(우) 자주요 생지덤벙도자 사금파리 1 자주요 생지덤벙도자 사금파리 2 초벌 된 기물의 흡수력에 의해 붓질이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요 도자기는 초벌덤벙이가 있을 수가 없습 니다. 한반도의 도자문화들 중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정 도인데, 한반도에서 제작된 초벌덤벙이가 중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장식기법일 수도 있다 라는 기대에 힘든 답사일정 속에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중국은 넓은 나라이다. 한 성의 규모가 대한민국 영토보 다 넓은 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자주요가 중국 화장토도자기의 본산이라 할지라도, 중국 북방의 도자기로 분류된다. 그래서 중국 남방의 유명요장인 복건성 자조요, 장시 성 길주요, 호남성 창샤요에 화장토도자기에 관한 정보가 필요했 다. 2011년 중국 남방지역에서 한반도와 가장 많은 교류가 이뤄졌던 지역 중 한 곳으로 꼽을 수 있는 복건성에 대해 논의하고, 복건성 화장토도자기에 관한 조사계획을 세웠다. 조사단은 문화재청 문 화재위원 나선화, 전남도립대학교 윤영근, 경기여고박물관 자문 위원 주혜련, 송기진 포함 8인으로 꾸려졌다. 복건성박물관 문물고고연구소장인 리지엔안 선생의 안내로 진 강지역에 위치해있는 자조요를 답사하였다. 자조요 화장토도자기 역시 한단 자주요의 화장토도자기와 유사 한 생지덤벙이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이 지역도 역시 초벌덤벙이 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의 초벌덤벙이의 존재유무에 대해 리지엔안 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현재까지 발견된 중국 도자유물에서는 생지(반건조) 기물에 화 장토를 분장하고 위에 녹유나 황유를 바르기 위해 초벌을 실시 한 것은 있었으나, 초벌 한 위에 분장이 된 유물 은 발견할 수 없었다 조사단을 이끈 나선화 문화재위원은 경제성을 절실하게 추구하 는 중국의 도자기문화에서는, 가마에서 3차례나 구워내야 하는 비경제적 제작방식인 초벌덤벙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 이유가 없다. 따라서 초벌덤벙방식의 도자장식기법은 중국에는 없는 한 반도만의 독창적 장식기법 이라고 평가했다. 2010년 중국 [한 중 화장토도자기 학술대회], 하북성 한단 자주요 현지답사와 2011년 복건성 진강 자조요 현지답사를 통해 중국의 중국 하북성 한단 자주요 철화침. 宋 대 제작
30 5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7 화장토도자기문화를 살펴보고 필자가 얻은 결론은 도자기는 역 시 산업이라는 것이다. 산업은 철저하게 경제성과 생산과 판매를 염두하는 것이어서, 중 국의 수많은 도자기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가마에서 한 번에 구워 내는 방식의 도자생산방식을 유지했던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 연한 것이다. 현대는 가스나 전기를 이용한 가마와 요업재료의 발달로 여러 가지 방식의 예술도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일반 생활자기 생산을 위해 가마에서 세 번을 구워내는 것은 개선시켜야 할 공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전사지 를 이용한 작업을 할 경우가 아니면 거의 시도되지 않는다. 재현된 작품을 살피는 답사단 하물며 중국 북방의 자주요에서 원추형 가마 안에 갑발을 이용하 여 하나씩 그릇을 넣어 높게 쌓아 재임을 하고, 나무를 연료로 7 일에서 보름동안을 구워내는 방식의 제작 기법에서, 일반 서민들 이 사용하는 화장토도자기를 생산하기위해 가마 불질을 세 번씩 이나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혹 한 번에 그릇을 구워낼 기술이 없었다면 몰라도 말이다. 이런 상식적인 수준의 이해를 통해, 중국에서는 초벌덤벙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그 가능성이 희박하고, 존재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역시나 한반도에서 초벌덤벙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도, 앞선 기술한 것처럼 조선 조정의 정책변화에 의한 독특한 상 공방에서 재현된 송대 화장토자기들 황에 대처하기위해 생겨나게 된 순리에 맞지 않는 도자문화일 뿐,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로 초벌덤벙도자제작기법이 시 도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라고 여겨진다. ( 茶 道 )문화의 영향이었다. 그 근거로 일본의 대명물이 되어있는 三 好 덤벙이사발은 사실 임진왜란전에 보성 인근 밀양박씨의 묘 은 덤벙이사발들이 있었을 것인데, 무덤 속에 잠들어있는 고인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사발들 중 이 사발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 전술한바와 같이 초벌덤벙이는 많은 불완전함을 안고 있는 도자 기이다. 오래 사용을 하다보면, 표면의 유약이 벗겨지거나 백토 가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이되고, 하물며 기벽에 음식물의 수분이 흡수되어 물이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식기로서 전혀 적합하지 않는 그릇이다. 에서 출토가 된 그릇이었다는 기록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사 발을 일본인들이 가져다가 도요토미히데요시에게 진상을 하였 고, 현재는 일본 다도계에 대명물로 지정되어 있는것이다. 초벌 덤벙이를 재현하는 도예가로서, 이 三 好 덤벙이사발의 위대함은 차마 말로 다하기 어려운 경지라고 말하고 싶다. 사발의 조형감, 백토의 두께, 유약의 절묘함, 환상적으로 안정된 모양의 무지현 출 수 있었는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민초들이 백자 를 대신하기위한 생계수단으로 고뇌 속에 선택한 결과인 초벌덤 벙이들이, 본래의 목적인 식기에 서 벗어나 茶 를 담는 茶 器 와 술 을 담는 주기( 酒 器 )의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천하제일명품을 만들어낸 조선의 선배 사기장들의 능 력에도 감탄이 우러나지만, 그 덤벙이들을 미적안목으로 바라 볼 이러한 원초적인 결점을 안고 있는 초벌덤벙이가 세상에서 유 명하게 된 것은, 조선 초에 당시 지역에서 생산되는 초벌덤벙이 에 관심이 많았던 지역 인물들과 일본 지배계급이 향유했던 다도 장식사들의 문양작업 시연 상 등 한마디로 재현이 불가능한 경지의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이 사발을 능가하는 재현작은 한국이나 일본 그 어디에 서도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반증이다. 당시는 수많 수 있었던 이 땅의 선조님들의 높으신 안목에도 아울러 경의를 표한다. 필자가 초벌덤벙이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라도 글로 적어내는 이
31 5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59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도요지에서 바라본 전경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수비시설 명 청대 자주요 가마 전경 명 청대 자주요 가마 내부 갑발 적재
32 6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61 한반도 덤벙질 방식 분류표 구 분 덤벙질 명 덤벙질 방식 생지덤벙 장식기법 생지덤벙 단박덤벙 막덤벙 카오린 성분에 점질을 섞어 만든 백토니를 이용하여, 반건조된 생지기물에 덤벙질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덤벙장식 기법 순수한 카오린으로 백토니를 만들어, 초벌 한 기물위에 한 번의 덤벙질로 장식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이 땅의 선조님들께서 창안하신 전통적인 초벌덤벙질 방식 초벌 한 기물에 단박덤벙을 실시하고 완전히 건조 전에 유약을 시유하는 전통적인 초벌덤벙질 방식 초벌덤벙 장식기법 고운덤벙 ( 多 回 덤벙) 풀덤벙 백토 단박덤벙 초벌 한 기물을, 묽은 백토니에 시차를 두고 덤벙질을 2회 실시하여 장식을 완성하는 방식 초벌 한 기물을 아주 묽은 백토니에 덤벙질을 실시하고, 가마에서 소성을 한다. 이후 다시 가마에서 꺼낸 기물을 다시 같은 방식으로 4회 정도 반복한다. 기물에서 백토가 떨어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기호에 맞게 근대에 창안된 방식 초벌 한 기물에 단박덤벙을 실시하고 완전히 건조 전에 유약을 시유하는 전통적인 초벌덤벙질 방식 산에서 채취한 백토를 백토니 상태로 만들어, 초벌 한 기물 위에 단박덤벙 15세기 초벌덤벙이 주병으로 하부에 백토벗겨짐 현상이 보인다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에서 발굴된 유물로 화장토가 분장된 위에 자유로운 조화기법이 시문되어 있음 조성 단박덤벙 백토니의 원료인 카오린의 성분을 탈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조성해, 초벌 한 기물에 단박덤벙 유는, 더 이상 우리 선조님들께서 창안하신 독창적인 도자 제작 럼 보이게 하는 공정)을 거쳐 골동품으로 둔갑하게 되어 한국을 조선 초기에 제작된 초벌덤벙이는 대부분 한 번에 덤벙질을 하 그렇다면, 조선초기의초벌덤벙이장식기법으로 단박덤벙 이시 기법인 초벌덤벙이 문화가 음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 방문한 일본인들에게 팔려나가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는 는 단박덤벙 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일본인들에게 판매할 도되었다는것을어떻게알수있는가 하는의문이발생할수있다. 이기도 하다. 초벌덤벙이는 사실상 현재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덤벙이문화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초벌덤벙이들은 대개 고운 덤벙(다른 말로 이의문을풀어줄열쇠가바로, 대명물로 지정된 사발들에서 보이 전통도예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도자제작기법이 아니다. 다시 재현이 되는 회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반면에 크나큰 는 다회( 多 回 )덤벙 ) 이다. 고운덤벙 이란 사용 중에 그릇의 전 는 무지현상 에 그 답이 있다. 이 무지현상은 덤벙이를 감상하 우리나라의 다른 여러 전통도자기들이 그러했듯, 초벌덤벙이 또 문제점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우리 선조님들께서 창 (구연부)부분에 백토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일본 는 감상법 중에 맨 처음으로 견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 초 한 일부 일본인들에 의한 도굴과 약탈의 역사와 맞물려 있었으 안하신 독창적 도자제작기법으로 제작된 초벌덤벙이가 일본에 인들의 취향에 맞춰 연구된 장식기법으로, 백토니를 묽게 만들어 기의 덤벙이가 여러 번에 걸친 다회덤벙(고운덤벙)이라면 이런 며, 일본 사회에서 고가에 거래가 이루어지게 된다. 아이러니하 서는 세계적인 명품의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 3-4회에 걸쳐서 덤벙질을 실시하여 백토를 기물에 입히는 장식 무지현상은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조 게도 이러한 상황은 덤벙이가 오늘날 다시 한국 땅에서 다시 재 자체가 어두운 음지의 유통구조를 갖고 있기에, 그 중요성과 가 기법이다. 물론 이때에 가마의 불질 횟수도 덤벙질의 횟수에 맞 선덤벙이가 민초들을 위한 저가의 생활그릇이었다는 점을 감안 현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을 한다. 치에 대해 국가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 춰서 늘어난다. 고운덤벙과 비슷한 성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 한다면, 최소 4번 이상의 가마불질을 해야하는 다회덤벙은, 대량 하게 된다. 식으로 조성단박덤벙을 들 수 있는데, 백토니의 수축비를 태토와 생산을 목적으로하는 민요에서는 시도되기가 어려운 장식기법 일제 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한반도로 유입되는데, 이들 중 이는 초벌덤벙이문화가 일부 몇몇 관련인들의 전유물로 전락하 맞춰 사용후에 백토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덤벙장식수법이 이다는 것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부는 일본에서 엄청난 고가에 거래가 되는 조선의 덤벙이(일 는 중요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 본명 粉 引, 讀 音 고비끼)를 구하기 위해, 호리꾼 이라고 불리는 아래의 분류표는 전통적으로 실시되었던 덤벙질방식과 근대에 도굴꾼들을 시켜 전남 일대의 고분들을 훼손하게 된다. 근래 일본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덤벙이 위조품들의 매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덤벙이는 마치 하얀 눈처럼 매우 곱고 들어 연구되고 실시된 덤벙질방식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 것이 가 더 이상은 어려워지게 되었고, 그 동안 일본에 골동품으로 팔 화사한 것이 특징이나, 조선사발의 미 중 최고의 미로 여기는 자 다. 표기된 덤벙질방식의 명칭은 필자가 조성한 명칭이며, 덤벙 그러던 중 전남 보성 지역의 옛 무덤들 속에서 양질의 덤벙이들 려 넘어갔던 수많은 위조품들이 다시 한국에 족보를 갖춘 채로 연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질방식 또한 필자가 그 동안 전수받고 연구해 온 내용을 정리한 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최고 품질의 덤벙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 )년 필자는 고운덤벙이를 처음 덤벙이를 사용하거나 찻물현상을 즐 것들이다. 공부가 부족하여 미진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러 관 이를 이르는 말로 호조고비끼( 寶 城 粉 引 ) 라는 신조어가 생겨나 경 사이에 약 30년에서 40년 정도 밖에 제작이 되지 않아, 제작된 기기 위한 초보사용자들에게는 적합하나, 초벌덤벙이를 통해 마 련분야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아 개선해 나가려한다. 기에 이른다. 그러나 도굴을 통해서 더 이상의 보성덤벙이를 구 수량이 미미하여 희소성 때문에 더욱더 귀하게 여겨지고 고가에 음의 평안을 얻기위한 구도체로서의 덤벙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한 쪽에서는 사기장들을 동원해 덤벙이 거래되는 조선의 초벌덤벙이들을, 일부 고미술품 수집가들이나 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필자는 고운덤벙이를 눈에는 모조품들을 만들어내는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만들어진 모조 차인들의 수장고에 적게는 한, 두 점씩, 많게는 수 십 점 씩 소장되 먼저 들어오나, 깊이가 없는 격이 낮은 초벌덤벙이로 여긴다. 품들은 땅속에 묻어두거나, 일련의 작업과정(신품을 골동품처 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3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韓半島 粉靑沙器 文化의 폭넓은 理解 송기진_宋基珍(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장) 1.한반도 분청사기 장식기법의 생성과 소멸 시대 화장토도자기 유적과, 또한 동시기에 제작되었던 중국 북방 의 화장토도자기를 주목해야 한다 라고 말하려 한다. 또한 한반 도 분청사기 제작사를 말하는데 있어서도, 고려 말-조선 초 가 아 분청사기의 사전적 의미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 닌 고려 초-조선 초 정도로 넓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토니(白土泥, 백토슬립)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 한다. 1 기 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땅에서 화장토를 이용한 도자기가 처음으로 제작 이를 위해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고려시대에 제작된 도자기들 된 시기는 언제쯤일까? 중 화장토기 법이 시문된 도자기에 관한 분류명칭이다. 일각에서 고려시대 우리 선조님들에 의해 독창적으로 제작되었다라고 말 한반도 도자사에 관한 정리는 일제 강점기에 최초로 시도된 것으 하고 있는 상감청자(象嵌靑磁)를 성상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로 보이는데, 한반도 곳곳의 도요지를 700여기 이상 현장조사한 면, 기물전체에 푸른빛을 갖고 있고 몸체에 화장토를 이용한 상 아사카와 노리타카, 아사 카와 타쿠미 형제에 의해서였다. 해방 감이라는 장식기법이 시문되어있기에, 이는 청자라기보다는 상 후 한반도 분청사기 제작사는 일본학자 들에 의해 14세기 중엽 - 감분 청자(象嵌粉靑磁)로 보는 것이 옳다. 1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 정도로 정리되었다.(우측 도표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자라 분류하는 것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 근대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위의 견해와 비슷하게 14세기 중 는 주류의 도자문화가 청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는 엽-16세기 초반 까지 200년이 채 못 되는 정도로 주장하고 있다. 고려시대 분청자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상 기존 우리 사회에 정설로 자리 잡은 분청사기에 대한 설명은 다 감분청자를 청자로 분류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 실은 상감청자 음과 같다. 는 화장토를 이용한 장식기법이 시문된 명백한 분청자이다. 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 상감청자에서 출발하여 15세기 세종 대왕 때 그 특징이 완성된다. 경기도 광주에 백자 전용의 관요가 청자는 말 그대로 푸른빛의 유약을 입고 있는 도자기로, 우리 땅 1469년 이후 공식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토산공물의 대상에서 벗 에는 10세기 중엽에 중국 남방 절강성 월주요의 영향이 지대했음 어난 지방의 분청사기 제작지는 자체 제작으로 이행해 감으로써, 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가마구조, 축요방식, 도자의 조형 등에서 16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분청사기는 거의 백자 제작으로 바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3 이때에 유입된 청자는 순청자로 화장 뀌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분청사기의 역사는 200년이 채 못 된 토가 시문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서남해안(해남 산 다. 2 이면 진산리 녹청자 도요지 등)에는 또 다른 도자기라 할 수 있는 중국 북방의 북송대 자주요, 요(遼), 金대에 제작된 화장토도자기 이제 필자는 위의 주장에 더해 조선 분청사기에 대해 명료하게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산이면 도요지군에서 함께 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에서 발굴된 고려 굴된 월요풍의 철화청자와 북방의 화장토도자기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중국 북방의 화장토도자기 장식기법들 중 상감기법이 시도 1. [출처] 분청사기 [粉靑沙器] 네이버 백과사전 2. 강경숙,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도자사적 의의], p109 인물 說明: 강경숙 대학교수. [한국 도자사의 연구], [분청사기], [한국미술사. 공저] 3. 초기청자 가마터의 성격과 해양교류. [고려 초기청자와 중국 청자의 관계]. 102p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된 유물은 지금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거론된 해남 진산리는 우리나라 도자사에서 어 떠한 의미일까? 필자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화장토도자 기 유적을 우리나라 분청사기가 제작의 효시로 보고있다. 진산리 유적에서 발굴된 철화, 조화, 박지, 덤벙 등의 분청사기 장식기법 63 일본학자들에 의해 작성된 조선도자사년표
34 6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65 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5 또한 1022년에 고려와 요의 화의로 인해 고려가 宋 과의 외교관계를 중단 하면서까지 고려와 요의 교류는 그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는 것과, 12세기 전반에 요 의 패망으로 인한 거란 장인들의 고려로의 귀화가 이뤄진 일련의 사건은 고려 상감분청자의 완성기인 12세기 중엽-말엽과도 어느 정도 시기적으로 일치된다. 자세한 것은 다음장에서 다루기로 한 다. 은, 중국 북방 하북성 한단 자주요 4 와 요나라, 서하국 등에서 제작 된 화장토도자기와 문양면에서 흡사하며, 조선분청사기에서 보 여지는 분청사기 장식기법과도 기법적측면에서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고려 상감청자 13세기 고려시대에 시도되었던 분청사기 장식기법은 조선 분청사기처 럼 제작처의 범위가 넓게 분포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보는 그대 로 진산리 지역을 중심으로 대단위로 이루어졌지만, 하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남 해남 인근의 강진과 전북 부안에 서 제작된 상감청자의 장식에 화장토가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강 진 대구면 부안 유천리 청자도요지에서 발견되는 상감청자 도편 4. 자주요( 磁 州 窯 ) : 중국 허베이성 자현 팽성진과 관대 지역에 있던 화북 최대의 도 요( 陶 窯 ). 송대 이후에 화북 일대에서 만들어진 같은 종류의 도기를 총칭한다. 회색 의 바탕에 백토를 바르고 투명유를 칠하 구운 경질도기로 유하( 釉 下 )에 철회문양 ( 鐵 繪 文 樣 )을 그렸고, 또는 흰색 칠한 것을 긁어내어 문양을 나타낸 것도 많다. 우리 나라의 분청사기 장식기법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기종으로는 병, 단지, 주발( 鉢 ), 물 잔 등 일용잡기 전반에 걸쳐 생산했고 특히 도침( 陶 枕 ) 등 훌륭한 제품이 많다. 중 국 육조시대(AD 3세기 - 6세기 초)에 기원을 두고, 수나라(581년-618년), 당나라(618 년 -917년)를 거쳐, 송나라(960년-1279년)시대에 가장 번성하였으며, 원나라(1271 년-1368년), 명( 明 ),청( 靑 ),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 고려 초기청자와 중국 청자와의 관계. 107p. 장남원 중국 북방 자주요에서 화장토를 이용하여 제작된 백유 黑 花 매병. 자주요. 宋. 12세기 6. 화장토도자기 : 중국에서는 화장토를 입혀 제작된 도자기를 화장토도자기 라 명 명함, 우리나라는 분청사기라 칭함. 과 유물들에서, 중국 청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화려한 상감기 법이 시문된 청자를 볼 수 있는 것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상감청자를 과연 청자로 볼 것인가, 분청자로 볼 것인가는 대중 들의 판단에 맡긴다. 중국 북방 서하에서 상감기법이 시도된 화장토 도자기. 12세기 대륙의 청자와 화장토도자기문화의 한반도유입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중국 남방에서 유입된 청자와 중국 북방에 서 유입된 화장토도자기는 고려( )와 北 宋 ( )과 의 교류가 무역사행 측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소소한 형태로 민 간이 함께 참여하여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배경으로 형성된 해남 산이면 진산리의 청자도요지군과 화 장토도자기 도요지군에서 발굴된 유적 들을 살펴보더라도, 거의 모든 생산품들이 귀족들이 사용하는 고가품이라기보다는 일반 민간에서 사용될 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생산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반면에 고려와 요나라( 거란족이 세운 국가)와의 국가 간 교류는 중앙 정부간의 교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북방 화장토도자기문화와 장인들이 본격적으로 유입이 되어 고려의 관요성격인 강진과 부안의 고급청자문화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주장은 고려와 요와의 교류가, 고려와 송의 교 류보다 시기적으로 앞서있고, 적어도 12세기 전반까지는 빈번했 따라서 한반도 분청사기 제작사를 이해하기위해서는 먼저 해남 진산리 화장토도자기 도요지와 중국 화장토도자기의 한반도 유 입과 고려의 상감분청자의 발생배경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 으며, 이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기존 학계의 주장처럼 조선의 분 청사기문화는 상감 청자에서 발생한 상감기법을 발전시켜 조선 에서 자체적으로 발생된 도자문화인 것 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분청사기 한반도 자생론]의 작은 문 제점은,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과 중국 화장토도자기 6 장식기 법과의 연계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 반도 도자사를 잘못 기록하고 알린다 라는 것 외에도,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불굴의 생존을 거듭해왔던 우리 민족의 생활권을 한 반도로만 국한시키는 크게 왜곡된 역사관을 낳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조선 분청사기 문화 한반도 자생론]이 더불어 안타까운 점 은 세계인들이 최고의 추상적인 美 를 갖춘 도자기로 인정하는 조 선 분청사기문화 를 우리 스스로 상감청자의 아류 또는 상감청자 에서 파생되어 조악한 기법으로 발전된 도자문화 로 치부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작된 [ 中 國 陶 磁 ]에 기술된 내용 중 중국의 화장토도자기에 대해 언급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주요 도자기는 그 동안 제작되었던 청자, 백자와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서 제작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태토, 유약 외에도 백 토분장이 추가된 것이다. 한국의 분청사기와 흡사한 양식이다. 기존 도자사에서는 우리의 조선 분청사기를 상감청자에서 파생 된 고려청자의 아류 정도로 취급하면서, 왜 중국의 화장토도자기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도요지에서 발굴된 도편들 (10-12세기 제작). 1986년 목포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중국 자주요에서 제작된 백지획척화기법이 시도된 사발의 내부면. 12세기. 金 대 제작 조선분청사기조화목단문푼주. 15세기. 조선
35 6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67 는 새로운 도자문화의 출현이라 평하는 걸까? 하지만, 이러한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 전개방식은, 기존에 알 여기에 더해 덤벙기법을 조선의 분청사기 장식기법 중 맨 마지 려진 분청사기의 7가지 장식기법 중 2가지 기법의 전개만을 설명 막 시기에 나왔다라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 위에 기술한 것처 이러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고려시대에 화장토기법이 할 수 있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럼 분청사기가 백자로 변해가는 마지막단계로, 백자와 가깝게 시도된 모든 도자기들을 폭넓게 분청사기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 그 기법은 앞서 기술한 바대로,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상감기 보이게 하기위해 그릇자체를 백토물에 그냥 담궈 손쉽게 장식하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서 살펴봐야 할 것이 한반도 분청사기 제 법으로부터 전개된 인화기법 이 두 가지이다. 그 외 나머지 5가지 는 덤벙기법이 탄생되었다 는 기존의 주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작의 시초가 되는 산이면 진산리(고려 초-중기 분청사기 제작도 장식기법은 고려 상감청자로부터 전개되는 연계성이 거의 없는 자세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 덤벙장식기법 이 요지) 유적과, 더불어 진산리에 유입된 중국 자주요와 서하의 화 기법으로, 앞의 두 기법과는 다르게 인과적 전개의 설명이 어려 야말로 한반도 분청사기 제작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 장토도자기 양식을 주목해야만 한다 운 장식기법이다. 그러다보니 기존 주장에서는, 상감, 인화, 덤벙 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기법을 제외한 나머지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들의 전개에 대해 필자가 그 동안 연구해 온 한반도 덤벙장식기법에 대해 간략하게 한반도 분청사기 제작사를 고민해보기 위해 먼저 살펴봐야 할 것 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거나, 해당 장식기법의 기법적인 측면만을 설명하자면, 한반도 덤벙도자제작기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이, 기존 학설에서 주장하는 조선 분청사기 7가지 장식기법의 발 소개하는 것으로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덤벙기법인, 반건조된 기물 위에 조선 분청사기 중 상감기법이 시도된 매병. 15세기. 조선 생과 전개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기존 학설에서는 조선 분청사기 있다. 백토니를 붓거나 백토니에 담궈서 장식하는 생지덤벙분장기법 의 장식기법으로 흔히 7가지 정도를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과, 그리고 초벌 한 기물위에 덤벙질을 실시하는 초벌덤벙분장 고 있다.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은 그 첫째가 고려의 상감청자 앞서의 설명에서 보듯이 고려 상감분청자와 기법적 연계가 설명 기법 로 나뉜다. 이 두 가지 덤벙장식기법 중 생지덤벙이 는 반 에서 보이는 상감기법이며, 둘째로 밀도가 높은 상감기법에서 조 되지 않는 또 다른 조선분청사기 장식기법, 즉 박지기법 7, 조화기 덤벙이로 불리며,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생지 악한 형태로 발전하는 인화기법, 그리고 귀얄, 철화, 조화, 박지, 법 8, 철회기법 9, 귀얄기법(분채) 등이 일각의 주장처럼 조선시대 분장 분청사기장식기법(철회,박지,조화,상감,귀얄(분채))]과 고 마지막으로 덤벙기법이다. 이 중 덤벙기법은 백자의 시대로 접어 에 들어 최초로 시도된 장식기법이었을까? 라는 것에 대해 서는 려 중기 말, 조선 초에 발전된 것으로 보이는 상감, 인화, 귀얄자 들기 전 백자에 가깝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그릇자체를 백토물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기법들 국이 강한 귀얄장식기법 10 의 근간이 되는 장식기법이다. 에 그냥 담궈서 장식하는 덤벙기법이 탄생되었다 라는 주장을 펴 은 인화기법, 귀얄기법(귀얄선기법)과는 단지 화장토를 이용한 고 있다. 위의 이론은 누구의 주장이랄 것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장식기법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을 뿐, 시대적으로는 크게 앞 이와는 다르게 초벌덤벙이 는 초벌을 실시한 기물의 내부와 외 분청사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렇게 배웠고, 지금도 서있는 장식기법이다. 부면 전체에 화장토를 입히는 완전덤벙이 11 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비슷할 것 같은 이 장식기법들은 실은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기법이다. 그와 관련된 이해에 대해서는 아래의 표를 참조하시길 철화기법이 시문된 장군병. 15세기. 조선 7. 박지기법 : 그릇 전체에 백토( 白 土 )로 분장( 粉 粧 )을 하고 시문( 施 文 )하고자 하는 문 양을 그린 뒤, 문양 이외의 배경 부분의 백토를 긁어내어 문양을 표현하여 장식하는 기법 바란다. 8. 조화기법 : 기면에 백토를 분장하고 난 후, 백토면 위에 원하는 문양을 그리고 조 각칼을 이용해 문양의 선을 따라 오목새김 하는 기법. 일반적으로덤벙기법의도자기는 생지덤벙이 만이널리알려져 있다. 생지덤벙 방식으로기물에덤벙질을실시 하게 되면, 니 9. 철회기법 : 백토를 입힌 기물위에 철을 이용하여 문양이나 그림들 그려서 장식하 는 분청자의 장식기법. ( 泥 )상태의 백토분과 반건조 상태의 기벽이 서로 결합하는 관계 로 두 물질 간에는 삼투압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삼투압현상 10. 귀얄장식기법 : 여기에서 말하는 귀얄장식기법은 기물에 백토를 여러 번 칠을 하 기위한 장식기법이 아닌, 풀잎이나 볏짚 등의 힘 있는 모를 이용해 기물에 백토를 칠 함으로서 칠 자욱을 장식효과로 만들기위해 시도된 기법. 아직까지 중국 화장토도 자기에서 인화기법과 더불어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생지에 장식하는 방식자체는 중 국의 화장토도자기 장식기법에서 파생된 분채라 볼 수 있음. 으로 인해 반건조 된 기물의 기벽은 백토니의 수분을 흡수하여 머금게 된다. 이때 자칫 백토니가 너무 두꺼운 상태로 덤벙질이 되면 기벽이 수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갈라지는 현상 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생지덤벙으로 덤벙질을 할 때는 대 중국 북방 서하( )에서 제작된 조화어문수반. 12세기. 11. 완전덤벙이 : 생지기물에 실시한 예는 거의 없으며, 초벌을 실시한 기물의 전체 면을 백토물에 담궈 백토분을 입히는 장식기법. 전남 보성, 고흥지역이 유명하며, 보 성인근의 장흥에서도 발견된다. 개 기물의 한 쪽 면만을 덤벙질하는 반덤벙만을 실시하는 것이 다. 이 생지덤벙장식기법으로 실시된 덤벙이는 중국의 덤벙이나 박지기법이 시도된 자라병. 15세기. 조선
36 6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69 초벌덤벙분장기법이 시도된 사발. 15세기. 조선 구분 제작 시기 및 주요 산지 내용 비고 생지덤벙분장 제작기법 (생지덤벙이, 또는 반덤벙이) 고려시대 조선 초 (전남 해남 산이면 진산리 도요지, 강진 사당리, 부안 유천리, 용인 보정리, 용인 서리, 음성 생리, 칠곡 통계리 요지, 전남 장성, 무안, 장흥, 보성 외 여러 지역의 민간요지 등) 철분 등이 함유된 기물의 표면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반건조된 기물표면에 백토를 붓거나 백토니에 기물을 덤벙 담궈 장식하는 방식으로, 주로 기물의 외부면을 백토분장하여 제작된 도자제작기법.(같은 시기에 성행했던 기법으로 붓을 이용하여 백토를 입히는 분채기법 역시, 기물에 백토를 두껍게 입히는 퇴화기법을 위해 사용됨) 생지덤벙분장기법은 덤벙질된 백토면 위에 조화기법, 박지기법, 철회기법 등을 시도할 수 있는 분청자의 여러 장식기법들의 기초가 되는 장식기법.생지덤벙이는 고려 초기에 장식성 있는 기물의 외부면만을 주로 분장하던 것에서, 고려말 조선 초에 이르러 생활용기로 그 범위가 확산된다. 특히 사발의 경우 내부 전체면과 외부의 상부부분까지를 분장한 반덤벙이들이 조선 초기 민요가마들에서 많이 발견 된다. 사발에서 보여지는 반덤벙장식기법은 인화장식기법의 다음 시기에 등장하는 분청사기장식기법으로 추정된다. 중국 요,송,금,원대의 북방의 자주요 및 서하의 여려 요군, 남방의 호남성 챵샤요, 장시성 길주요 및 푸젠성 자조요 등지에서 같은 기법의 유물들이 발견됨 조화기법이 시도된 목단문 편병. 15세기. 조선 귀얄선을 장식적 요소로 의도한 사발. 15세기. 조선 초벌덤벙분장 제작기법 (초벌덤벙이, 또는 완전덤벙이) 조선 초 (전남 보성, 고흥, 장흥 등) 철분이 다량 함유된 태토로 성형된 기물을 백자처럼 만들기위해, 초벌 된 기물의 전체면에 덤벙질을 실시하는 기법으로, 총 3번을 구워서 완성시키는 도자기 임. 일반적인 도자제조 상식으로는 출현하기 어려운 기법으로, 조선 초에 약 30-40년 동안만 제작이 된 도자기로 알려져 있음. 초벌덤벙이는 연노란빛, 푸른색이 가미된 초록빛, 투명도가 있는 백자빛, 불투명한 백자빛 등, 대략 4가지정도의 성상을 갖춘 것으로 보임. 간간히 덤벙질 된 기물위에 철회가 시도된 기물도 발견이 됨. 중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기법으로, 전남 보성, 고흥, 장흥 등지에서 주로 발견됨. 조선의 덤벙이 모두 반덤벙이 12 로 공히 같다. 허나, 사발 같은 소 형 기물의 경우 기물 내부의 전체 면과 외부의 상부면까지 덤벙 질을 실시하게 된다. 이 생지덤벙장식기법은 대단한 장점이 있 다. 그 것은 바로 모든 도자기 요장의 숙원인 대량생산에 적합하 다는 것이다. 사발같은 소형기물의 경우, 기물 안을 먼저 전체 분 생지덤벙기법이 시도된 사발 장한 후 외부를 반만 담궈 덤벙질을 하기 때문에, 전체를 담궈 덤 중국 북방 서하에서 12세기에 제작된 생지반덤벙 사발. 벙질을 하는 완전덤벙이에 비해 굽을 정리하는 공정이 생략이 되 는 등 여러 면에서 작업의 제작공정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생지 덤벙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제작과정에서의 불량률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사그막의 생존 필수요건인 대량생산을 이끌 수 있는 기 법이며, 또한 옹기처럼 가마에서 한번만으로 구워낼 수 있는 장 점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생지덤벙질로 장식된 완전 덤벙이가 발견된 경우가 중국에서 극히 드물게 있으나, 이 기물 들의 태토는 태토에 함유된 백토의 함량이 매우 높아, 덤벙질을 할 때 얇게 덤벙질을 해도 백색도가 잘 나타날 경우에 한해서이 조선 분청사기 중 인화기법이 시도된 합. 15세기. 조선 초벌덤벙분장기법이 시도된 제기. 15세기. 조선 중국 북방 자주요에서 12세기에 제작된 반덤벙 사발 12. 반덤벙이 : 기물의 내부면 전체와, 외부면의 상부만을 백토분장하는 생지덤벙장 식기법으로 전남 장성과 무안, 장흥 등지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이중 무안지역에서 제작된 무안반덤벙이가 일본에서 무지하께메 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37 7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1 할 중요한 문제이며 반드시 극복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복잡한 조형의 기물이나 상감,인화기법이 시문된 경우가 아닌, 생지덤벙은 이러한 작업실패를 방지하기위해, 기물의 전체 사발 같은 단순 소형기물은 귀얄보다는 생지덤벙분장기법으로 (내부면 포함)보다는 잘 보이는 외부면 만을 염두 해두고 덤 장식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벙질을 실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술병 같이 입구가 좁은 기물 같은 경우는, 보이지도 않는 부분에 이러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주로 기물의 외부면만 일부러 백토물을 넣어서 장식 할 필요는 없으니, 외관(굽속 덤벙질을 하는 생지덤벙분장기법은 덤벙질의 숙련도만 높아진 포함)만 덤벙질이 된 초벌덤벙제작기법의 그릇들 도 간혹 다면 기물의 무너짐 없이도 산뜻한 백토면을 얻을 수 있었기 때 보이고, 크기가 작은 소형기물 같은 경우는 전체가 생지덤벙 문이다. 하지만 한 번의 붓질로만 화장토장식을 끝내는 사발의 질이 된 경우도 있으나, 굽까지 다 분장을 하게 되면 작업공 경우에도 귀얄기법이 시문된 경우가 더러 발견되는데, 이런 경우 정이 늘어나게 되므로 굽 안까지 다 분장이 된 생지덤벙이는 의 귀얄장식기법은 퇴화를 위한 분채의 역할이라기보다는 귀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선을 운동감있게 표현하여 기물을 장식하려하는, 의장의 성격이 귀얄선을 장식요소로 활용한 귀얄선장식기법이 시문된 항아리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생지반덤벙이가 주로 생지덤벙분장에서 발생되는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시도되 발견되는 곳에 간간히 귀얄선장식기법이 시문된 사금파리가 보 며,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었던 또 다른 기법으로 귀얄(분채)기법을 들 수 있는데, 이 기법은 당나라 분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기물에 화장 이는,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도요지, 장성군 장성읍 유역리 도요 지,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도요지,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도요지, 에 분채의 역할을 하고 박지기법을 통한 각종 문양이 시문 될 수 있도록 함. 여섯째, 기물의 외부 일부, 또는 전체 면에 분채의 역할 그런 반면에 전남 보성과 인근지역(고흥, 장흥)에 소재한 가마터 유적을 보면 기물전체에 백토가 덤벙질 된 완전덤벙이 사발들 을 쉽게 발견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화장토 도자기 제작기법이 최초로 시도된 중국에서는 완전덤벙이가 시 도된 도자기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왜 우리 한반도에서는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그에 대 한 답은, 기물의 굽 안까지 백토분장이 되는 완전덤벙이 그릇들 은 생지덤벙이 아닌 대부분이 초벌덤벙분장제작기법 13 으로 제작 된 초벌 덤벙이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덤벙질 로 제작된 기물들 중 기물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 외관(굽안포함) 까지 모두 덤벙질이 되어있는 기물은 초벌덤벙제작기법으로 제 작된 것이 대부분이며, 주로 내관이나 외관 중 한 곳만 덤벙질이 된 덤벙이들은 거의 생지덤벙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생지덤벙질로 백토를 기물 전 체 면에 입히게 되면 기물의 모든 면에서 삼투압이 발생하므로, 기물이 쉽게 주저앉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량생산을 위해 기물을 제작하기위한 시도에서 불량률이란 것은 절대적으로 넘어서야 토를 입히데 있어서 붓을 이용하는 기법인 분채의 장점은, 시차를 두고 얇게 여러 번을 칠함으로서 해서 기물에 입혀지 는 백토니의 두께를 조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귀얄 (분채)기법은 한 번의 덤벙질로 화장토를 장식하는 생지덤 벙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량률 즉, 삼투압현상에 의해 기물 이 무너지는 것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얄을 이용한 백토니의 분장방식은 시간이 오래 소 요되고, 공정이 늘어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귀얄(분채)기법이 시문된 사발. 15세기. 조선 장흥군 관산면 묵촌도요지, 무안문 몽탄면 대치도요지의 유적을 들 수 있다. 붓을 이용한 화장토장식기법인 귀얄기법은 고려 초에 분채 14 와 퇴화 15 라는 형식으로 이미 시도되고 있었지만, 조선 초에 나온 귀 얄 기법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고려시대에 실시된 귀얄기법 이 단지 기물 표면에 백토니를 바르는 정도였다면, 조선 초에 보 여지는 귀얄기법은 힘 있게 여러 갈래로 뻗은 붓을 이용한 붓질 을 통해서 얻어지는 운동감 있는 화장토와 붓질이 보여주는 선율 을 통하여, 장식성을 더하는 백토분장시도를 하는 귀얄 線 紋 장식 기법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귀얄장식기법은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의 토대역할을 하는 분채와 귀얄선만을 이용한 장식 등 다양한 양태를 보이는 데, 첫째, 기물의 내부 전체 면과 외부 상부 면에 귀얄선을 나타내 는 방식. 둘째, 사발의 내부 면에 인화(압인)기법으로 장식된 부 분을 채우는 분채의 역할과 기물의 외부 상부면에 귀얄선을 나타 내는 방식. 셋째, 기물의 내, 외부 면에 인화기법이 시문된 곳에 분 을 발라 채우는 분채의 역할. 넷째, 기물의 내부 전체면, 외부 상부 면에 분채의 역할을 하고 조화기법을 통한 원문과 각종 문양이 시문 될 수 있도록 함. 다섯째, 기물의 내부 전체면, 외부 상부 면 을 하고, 철회가 시문될 수 있도록 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생지덤벙이와 초벌덤벙이의 제작시기를 같이 볼 것이냐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앞서 서술한 것처럼 생지 덤벙장식기법은 고려 초기 해남 진산리 도요지에서 이미 철회, 박지, 조화기법의 도자기제작을 위해 시도가 되었던 장식기법이 며, 초벌덤벙제작기법은 언제 발생한 제작기법 이었겠느냐?라 는 의문 자체를 가질 필요도 없이, 일반 민초들을 위한 그릇을 제 작하는 민요에서는 상식적으로 시도되기 어려운 기법으로 조선 초에 시대적 요구에 의해 잠깐 동안만 제작이 되었던 것으로 보 인다. 우측의 표는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시도 13. 초벌덤벙제작기법 : 초벌을 한 기물에 덤벙질을 실시하며, 가마에 세 번을 소성 하여야만 완성되는 도자제작기법으로 세계 도자 종주국인 중국에도 없는 우리 선조 님들께서 창안해내신 독창적인 제작기법. 14. 분채 : 붓질을 통해 백토 등을 기물에 입히는 기법. 15. 퇴화 : 붓질을 통해 기벽에 백토 등을 두껍게 입혀 그 위에 문양을 표현해내는 기 법.
38 7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3 한반도 분청사기 장식기법 분류표 분청사기 장식기법 분류 기법 명칭 내용 시기 비고 고려 덤벙기법 백색도가 부족한 태토로 성형된 기물의 표면을 하얗게 하기위해, 백토니를 기물 표면에 부어서 장식하는 기법으로, 백토니가 건조된 후 백토면 위에 조화, 박지, 철회 장식을 시도하기위한 기반 작업으로 주로 실시됨 고려시대 고려 귀얄기법 (분채,퇴화기법) 고려 조화기법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위해 부드러운 붓을 이용하여 백토니를 기물에 칠하는 기법으로, 생지덤벙기법의 결점인 기물의 주저앉음 현상을 개선 하기위한 장식기법 백토니를 입힌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선에 의해 그려서 표현해내는 장식기법으로, 이 시기엔 박지기법을 주로하고 조화는 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고려시대 고려초 중국 북방 화장토도자기의 해남 진산리 유입 된 분청사기 장식기법을 대략적으로 구분해본 표이다. 일반적으 다. 해남 산이면 도요지들 중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곳이 5개소인 고려 박지기법 백토니를 입힌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그리고 난 후 문양외의 백토를 긁어내어 문양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장식기법 고려시대 로 한반도 분청사기의 소멸을 조선 16세기 초로 보고 있는 것이 기존의 학설이지만, 분청사기의 완전한 소멸 시기에 대해선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 경남의 민요에서 백 자와 함께 귀얄분청이 발견되고 있고, 또한 경기 관요에서 발굴 된 17세기 유물 중 상감청자의 제작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 데, 이 모두가 진산리에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곳이 그 중심지역 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7 당시기술된 녹청자소고 에따르면, 녹청자의문양과산이면녹청 자도요지에서주목되어야 할 것은 몇 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요 고려 철회기법 고려 상감기법 조선 상감기법 백토니를 입힌 기물의 표면에, 문양의 나타내기 위해 산화철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표현해내는 장식기법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조각칼로 새긴 후 조각한 곳에 백토니를 채운 후 건조시켜 백토를 긁어내어 문양을 나타내는 장식기법임 조선상감기법의 가장 큰 특징은 형태나 문양이 소박해졌다는 것이며, 또한 유약이 짙은 청자빛에서 장석유의 사용으로 투명도가 높아짐 고려시대 고려 중기 ~ 조선 초기 중국 북방 화장토도자기와 중국 남방 순청자, 철화청자의 한반도 유입으로 상감청자 발생 는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반도 분청사기 장식기법 분류표]는 한반도의 화장토장식 기법이 크게 유행한 시기를 기준으로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여겨주시길 바란다. 지에서 철백문양의 색소토인 철적토(철함량7-9% 정도)나 백토 를 니장으로 풀어 붓으로 칠하거나(분채 ) 덤벙 담구어(분장) 내어 사용하면서 이를 기초로 하여 다각적으로 개발시킨 문양 수법의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는 내용으로 화 장토분장을 활용한 분청사기들이 다량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생지분장 장식기법에 의한 분청사기 인화기법 기물의 표면에 꽃이 조각된 도장을 인화하여, 자국이 생겨난곳에 화장토액을 채우고, 건조후 화장토를 긁어내어 꽃모양을 나타내는 장식기법으로 시작하여, 차츰 다양한 문양의 압인장을 개발하여 인화장식을 시도한다. 인화기법은 일찍이 중국과 한반도의 토기에서도 보이는 압인기법과 상감기법의 결합으로 탄생된 기법으로 보이며, 국화문등으로 시작해 다양한 문양의 시도로 넓혀져, 조선 초기에는 귀얄장식기법과 결합해 다양한 양식의 장식이 시도된 것으로 보임 고려 말기 ~ 조선 초기 중국과 한반도의 토기에서도 보이는 압인기법과 상감기법의 결합으로 인화기법 발생 2.고려 초 대륙 북방의 화장토도자기 문화 한반도 서남해안 죽산현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유입 전남 해남군 산이면 도요지는 1986년에 이미 목포대학교 박물관 과 전라남도, 해남군이 공동으로 조사한 [해남군 문화유적 자료 조사 1986]사업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고, 조사자인 故 古 現 조기 정 16 선생님의 요청으로 1987년 [ 綠 靑 磁 小 考 ]란 제목의 별책으로 까지 발간하게 되었으며, 1992년에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해 남 진산리 녹청자요지]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진산리 화 장토도자기 유적은 당시 주류학계에서 크게 이슈화 되질 못했다. 이 때 발견된 산이면 도요지의 가마는 무려 104기였으며, 이중 진 산리 도요지는 78기의 집단군으로 산이면 도요지의 중심이 되었 알 수 있다. 더하여, 이 시기의 가마유적 조성시기를 언급한 내용 중 1968년 최순우 선생께서 고고미술에 기고하신 [인천시 경서 동 녹청자요지 발굴조사. 개요]를 들어 이러한 녹청자계통은 통 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엽인 9-10세기경에는 이미 형성되기 시작 한 것으로 토기에서 자기문화로 변혁을 가져오면서 민수요( 民 需 要 )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개구이식 대량생산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생각되어진다. 18 라는 내용으로 진산리 가마의 설립 시 기를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철화자기 라는 분야이다. 철화자기는 적토를 물에 개어 걸죽하게 만든 후, 농도를 조절하여 기면위에 조선 반덤벙기법 조선 조화기법 조선 박지기법 조선 철회기법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위해 기물의 내부 전체면과 외부면을 백토니에 반만 담궈 장식하는 기법으로, 중국에서는 송, 원대 북방 화장토도자기 유물에서 많이 보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인화기법의 다음 시기에 대량으로 유행한 기법으로 보임. 장성군 북이면 도요지, 장흥군 관산면 묵촌도요지, 무안군 대치리 도요지 유적 참조 백토니를 입힌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선에 의해 그려서 표현해내는 장식기법으로, 고려 조화기법 보다는 간결하게 정리된 양식으로 중국 북방에서 12-13세기에 제작된 화장토도자기와 매우 유사하다 백토니를 입힌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그리고 난 후 문양외의 백토를 긁어내어 문양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장식기법으로, 고려 조화기법 보다는 밀도와 테크닉이 뛰어나게 보이며, 중국 북방에서 12-13세기에 제작된 화장토도자기와 매우 유사하다 철회기법은 한반도에서는 고려 초에 처음 시도된 기법이나, 여기에서 기술한 철회기법은 고려 초의 철회와는 다른 성상을 보인다. 첫째 기벽에 입혀진 백토가 기물의 일부분만을 덮는 특징을 갖는다. 둘째 철회를 치는 양식이 문양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선의 단순화를 통한 문양의 특징적인 부분만을 기물에 간략하게 묘사하여 장식함. 하지만 표현하는 문양에 있어서는 고려 초보다 다채로운 것으로 보이며, 이 역시 중국 북방의 화장토도자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조선 초기 조선 초기 조선 초기 조선 초기 중국 북방에서 12-13세기에 제작된 화장토도자기와 매우 유사함. 한족이 세운 북송( ), 거란족이 세운 遼 ( ), 여진족이 세운 金 ( ). 원( ) 화장토도자기의 영향으로 보임. 특히 원시대의 철화는 조선백자의 철화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으로보임. 16. 故 古 現 조기정( 曺 基 正 ), ( ~ )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청자장,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호 청자장, 한반 도 청자문화의 재현 및 복원에 평생을 바친 전통도예가로 1996년에는 [일본 세계 염 ( 炎 )박람회]를 기념하는 세계도자 선진4개국 대표 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최고작으 로 선정되어 아리타[ 有 田 ] 도자문화관에 영구 전시되고 있다. [출처] 조기정 [ 曺 基 正 ] 네이버 백과사전 17. 녹청자소고, 39p, 조기정 저 18. 녹청자소고, 71p, 조기정 저 19. 고려시대 철화자기 연구. 4p. 홍익대학교 대학원. 김정신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시구( 詩 句 )등의 명문을 써넣은 것을 말 하는데, 과거에는 회고려( 繪 高 麗 ), 화청자( 畵 靑 磁 ), 회청자( 繪 靑 磁 ), 철회청자( 鐵 繪 靑 磁 ), 철화청자( 鐵 畵 靑 磁 ), 흑퇴화( 黑 堆 花 ) 등으로 불렸다. 19 철화자기와 분청사기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철화자기 는 청자의 태토위에 바로 철화를 표현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때 는 철화의 색을 바탕색이 돋보이게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결점 을 보완하기위해 백토의 사용이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자기에 있어서 백토의 사용은 철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위한 시도로, 백토를 단미로 표면을 장식한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이 둘 중 무엇이 먼저였을까에 대해서는 초벌분장 장식기법에 의한 분청사기 조선 귀얄장식기법 완전덤벙기법 철회 기물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위해 귀얄을 이용하여 백토니를 기물에 칠하는 기법으로, 생지덤벙기법의 결점인 기물의 주저앉음 현상을 개선 하기위한 장식기법. 귀얄기법은 3가지 양식이 보이는데, 기벽을 하얗게 보이게하기위해 얇게 여러 번 덧칠하는 방식이 기본이며, 거친 귀얄의 선을 살리는 방식, 이 둘이 혼용된 방식 등이다. 여기서 기술한 귀얄무늬 장식기법은 귀얄의 힘찬 선율을 표현하는 기법과 선율과 분채가 혼용된 기법을 말한다 철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태토로 성형된 기물에 초벌을 실시한 후, 초벌 된 기물위에 순수한 카오린을 이용한 덤벙질을 통하여 백토분장을 실시하는 기법으로, 총 세 번의 가마작업을 통해 기물을 만들어내는 도자제작기법. 1470년-1500년 정도에 약 30년 정도만 제작이 되었다고 추정되는 기법으로, 검붉은 태토로 성형된 기물을 백자와 같은 성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동아시아 최초로 우리 선조님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던 도자제작기법 초벌덤벙이 기물위에 유하채로 철화로 그림을 그려 표현해내는 장식기법으로, 초벌덤벙이가 된 기물위에 붓질을 실시하여 장식을 시도함으로해서 생지기물과는 다른 소박한 철화선이 보여짐. 고흥 운대리요지의 발굴조사에서 철회기법의 사금파리가 발견이 되었고, 일본자료에서 보성철화당초문사발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 ~ 조선 초기 조선 초기 조선 초기 중국 분채에서 기인하여, 귀얄의 거친 선율을 이용한 장식기법으로 한반도 발생 한반도의 독창적 장식기법으로 전남보성, 장흥, 고흥 등지에서 주로 제작됨
39 7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5 딱히 뭐라 단정 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철화란 역시 장식성의 성 격을 가지고 있는 기법이지만, 태토에 백토분장을 하지 않고 바 로 철화를 장식한 예가 중국 남방의 광동성 광주 서촌요에서 보 이기 때문이다. 백지척화흑채당초문매병. 중국 하북성 한단 자주요. 북송( )대 제작. 문양의 양식이 한반도 산이면 진산리 유적에서 발굴된 유적과 매우 흡사함 철화청자. 13세기. 고려시대 이처럼 현재 일본과 한국의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고려시대 분청 사기 문화를 철화자기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고 려시대 화장토를 이용한 장식기법이, 철화자기의 기법 안에 철 화, 백화, 철백화, 퇴화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도자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것을 채회( 彩 繪 ) 20 라 하고 사용된 안료의 발색에 따라 흑화, 흑채, 백채, 복채, 녹채 등 모두 색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된 철화자기장식기법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도자문화라 말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이론에서 차이가 있다면, 중국의 남방인지, 북 방인지의 차이와 10세기인지 11세기, 12세기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한반도의 철화자기장식기법은 공히 중국에서 유입된 문화로 본다. 특히 진산리 분청사기 유적에 중국 화장토도자기 문화가 유입되었을 것이란 주장은 고유섭선생이 철화청자가 중국 북방 요의 요업기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21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장남원 교수가 기술한 [고려시대 철화청자의 성립과 전개]를 살 펴보면, 아래와 같이 고려에서 보이는 화장토도자기 기법과 철화 기법은 국내, 외의 많은 학자들이 중국도자기가 한반도에 영향을 준 결과라 보고있다. 조기정은 해남지역의 철화와 백화를 11세 기경에 발달한 것으로 보았고, 이 기법은 이후 강진과 부안의 고 급청자가 제작되면서 위축되나, 이후 12-13세기 강진이나 부안 지역에서 재등장하는 흑백문 기법의 모태가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용이는 인천 경서동 청자나 해남 진산리 청자와 같은 조질계 청자를 11세기 지방 양식으로 파악함 으로서, 청자제작과 사용측 면에서 다양한 양상이 존재함을 예시 하였다. 특히 완도 해저출 토 조질청자계를 비롯하여 철화청자를 11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 으로 보았으며, 중국 서촌요와 자주요 등의 철화 기법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았다. 최건은 12세기를 강진과 부안이 청자생산의 중심이 되고, 다른 요장은 소멸하는 암흑기라는 전제하에, 철화기법도 중심적 청자 에서 개발된 것으로 보았다. 정양모는 10세기를 국내 철화문 발생기로 보았고, 11세기말-12 세기 초에는 중국 북방의 자주요, 남방의 장사요, 서촌요 등의 영 향으로 화문을 그린 청자가 제작되었다고 하였다. 노모리 겐은 고려도자의 전개과정을 4단계로 나누면서, 상감청 자 전성기에 철회, 철채, 진사, 흑유 등이 사용된 것으로 보았다. 철화청자와 백화청자를 아울러 회고려( 繪 高 麗 )라 명명하였으 며, 철화기법을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경에 중국 송 원 자주요 의 영향으로 시작되고, 13세기 말-14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발 달한 것으로 보았다. 22 강경숙은 고려청자의 변천과정을 초기( ), 중기( ), 중기( ), 후기( ), 말기( )등 의 4단계로 나누었는데, 이중에서도 철화 기법은 중기의 비색청 자 전성기에 압출양각기법 및 퇴화기법과 함께 등장한다고 보았 다. 23 하지만, 최근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미 10세기 말 초기청자가 제 해남 산이면 진산리에서 발굴된 도편들 작되던 시점에 철화자기도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재고의 여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주요의 영향과 관련해서는 11세기 이후 고려 철화자기의 기형과 문양소재, 구성 등에 영향을 미치 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4 장남원 교수가 발표한 또 다른 논문 중 [고려 초기청자와 중국 청 자와의 관계]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들어 중국 화장토도자기 철 화도자문화의 한반도 유입을 알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초기 자 기요업 중략 그러나 기술도입 당시 중국 남방의 영향이 컸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는 중국의 북방지역으로부 20. 채회기법은 붓에 안료를 묻혀 그리는 기법으로 중국의 신석기시대부터 출현하 여 당대에 크게 발전하였으며, 명청시기에 널리 성행한 기법으로 유상채와 유하채 로 구분된다. 또한 안료를 붓에 묻혀 점을 찍어 표현하는 수법을 채회기법에 포함시 키지않고 따로 점채라고 구분지어 부르고 있다. 고려시대 철화자기의 연구. 6p. 홍익 대학교 대학원. 김정신 21. 고려시대 철화청자의 성립과 전개. 42p. 장남원 22. 고려시대 철화청자의 성립과 전개 p. 장남원 23. 고려시대 철화자기의 연구. 9p. 홍익대학교 대학원. 김정신 24. 고려시대 철화자기의 연구. 7p. 홍익대학교 대학원. 김정신
40 7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7 았다. 있다. 정확한 편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청자와 화 역의 여러 백자요장), 화장토도자기(자조요)가 모두 생산된다는 장토도자기가 유입되었다고 보았을 때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특히 중국의 각 성에서 유명한 요장의 도자기들이 복 위와 같은 주장과 같이, 고려 초 한반도 도자문화형성에는 중국 고려 초 - 조선 초 한반도에서 이뤄진 청자와 분청사기 도자문화 건에서는 수출상품으로서 모방도자기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남방의 월주요와 북방의 자주요 등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으로 보 의 전개를 그려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관련학자들 중 상당수는 한반도 초 인다. 따라서 고려 초의 도자유적인 진산리 화장토도자기 유적 기 청자문화형성의 영향을 중국 복건성(자조요)과 그 옆인 절강 을 근거로 한반도에는 고려상감청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그래서 필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철화자기라는 범주 안 성(월주요), 광동성(서촌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중국 자주요로부터 한반도 진산리 바닷가에 화장토도자기제작 에 해남 산이면 진산리에서 제작된 화장토기법의 도자기가 있다 기법이 유입이 되었다 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의 학자 니시다 히 는 시각이 아닌, 고려시대 화장토장식기법(철백화,조화,상감,박 이에 대한 근거로 복건성 泉 州, 福 州 상인들이 고려에 來 船 하였다 로코도 고려 철회청자 중 문양의 짜임이 촘촘하고 표현이 섬세한 지,분채,덤벙) 안에 철화자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며, 이 철화가 청 는 관련기록들이 [ 高 麗 史 ]에 무수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泉 이른 세기 유형은 자주요 의장에 강하게 영향받았을 것으로 보았 자에도 쓰였던 장식기법일 뿐 청자와 화장토도자기를 다 해석할 州 의 각 현에 100곳 이상의 도요지가 분포하고 있었던 것과 이곳 다. 26 수 있는 범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려시대의 청자나 에 진강 자조요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때, 자조요산 도자 화장토도자기, 백자, 흑유자기 등의 도자기는 한반도에서 자체적 기가 고려에 수출되고 그 제작기술이 고려 철화자기에 영향을 주 그리고 정신옥( 鄭 信 玉 )은 고려 철화청자가 중부 지방 요장들에 으로 성장한 도자기가 아닌 중국에서 유입된 도자문화이기 때문 었을 확률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28 하지만 복건성 자조요 중국 복건성 진강 자조요 황유 문어문반. 남송 - 원대 제작. 북한 개성 출토 서 개시되었음을 밝히고, 중국 북방 요주요계와 자주요계와의 관 련성을 제시하면서도, 그 기법상 고려와는 차이를 보이나 12세기 이다. 해남 진산리에서 보여지는 화장토도자기는 중국에서 버젓이 청 의 화장토도자기는 필자가 답사한 바에 의하면, 하북성 한단 자 주요와 같은 화려한 철화가 시문되어 있는 관련유물이 거의 없 이후 한반도 남서부지역에서 출토된 조질의 청자 병 등에서 보여 자와 백자, 흑유자기 라는 큰 범주와 함께 성행하고 있었던 화장 지는 문양 배치방식이 자주요의 그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27 토도자기문화 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화장토도 자기(우리 터 번조기술, 기종과 기형, 장식기법과 문양 등 새로운 요소들을 위와 같은 견해들에 근거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을 해볼 수 말은 분청사기)문화를 주시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 도자사에 커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중략 중국북방 요업에서 발달한 상감 있다. 한반도에 중국 남방의 청자문화나 북방의 화장토문화의 유 다란 손실로 남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10세기 이후에 한반 기법 및 철화기법이 고려 초기 요업 단계부터 나타나는 점 등에 입시기에 대한 학자들 간 이견은 있지만, 중국에서 유입된 월주 도에 유입된 중국 도자문화의 시초는, 중국 남방의 월주요 청자 서 그러하다. 따라서 고려이전부터 이미 수입을 통해 중국도자를 요풍의 청자와 자주요풍의 화장토도자기 장식기법의 유입은 고 계열, 광주의 서촌요의 철화청자 계열과 중국 북방 자주요 화장 사용하고 있었던 국내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제작을 시도하는 과 려 상감청자가 출현하기 전이었다는 것을 공통적인 주장을 통해 토도자기, 요주요 계열 청자, 서하계열의 화장토도자기, 남방의 정은 중국의 어느 한 가마나 지역, 혹은 기술집단의 영향으로 보 서 알 수 있으며, 이후 중국 청자와 화장토도자기 문화의 토대 속 복건성 자조요 등지의 화장토도자기와 복건성 지역의 백자가 유 기에는 매우 복잡하고 다단해보인다. 25 에서 상감분청자는 탄생되었다라는 것을 어렵사리 추정해 볼 수 입되어 한반도의 도자문화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산 이면 진산리 화장토도자기문화는, 이 땅에 관요가 없던 시기에 하세베 가쿠치( 長 谷 部 樂 兩 )는 고려의 철화청자가 11세기 말부 민간주도로 대규모의 새로운 도자문화의 시작을 열었던 일련의 터 12세기 초반 경 월주요 철화기법을 모태로 한 중국 廣 州 서촌 대사건이며, 한반도 분청사기 문화의 효시였다고 할 수 있다. 요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보고 그 전성기는 12세기로 보 특히, 복건성에서 유입된 도자문화가 한반도 도자문화의 개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이 시기에 복건성 25. 고려초기 청자와 중국 청자와의 관계, 103p. 장남원 26. [고려시대 철화청자의 성립과 전개]. 43p. 장남원 자체가 국제무역항의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중국의 특산품인 도자상품은 복건성의 泉 州, 福 州 항을 통하여 동 아시아뿐만 아니라 널리 아프리카까지 수출되었고, 현재도 해당 27. 고려 전반기 자기에 나타난 중국 북방 도자의 영향.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 사학과 석사논문 p 정신옥. 고려시대 철화자기 연구. p11. 김정신 28. 고려시대 철화자기의 연구. 23p. 홍익대학교 대학원. 김정신 해남 진산리 철화청자 사금파리 국가와 지역에서 복건도자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복건도자의 특징은 흑자(건요), 청자(자조요)와 백자(자조요, 덕화요, 민청 지 중국 남방 복건성 자조요에서 발굴된 화장토도자기
41 7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79 조화기법이 시도된 화장토도자기 백지획화목단문매병. 자주요. 宋. 12세기 중국 청자 유입 (순청자, 철화청자) (해남, 강진, 인천, 부안 등) 중국 화장토도자기 유입 (상감, 철화, 조화, 박지, 덤벙, 귀얄[분채, 퇴화]) (해남 산이면 진산리) 고려 저급 청자 (해남 인근 여러 지역으로 분포) 요나라 공예장인들의 유입으로 비색과 치밀한 밀도, 세련된 조형을 갖춘 상감분청자 제작 12세기중엽-13세기 중엽(강진, 부안) 고려 저급 분청사기 (해남 산이면 진산리 분포) 고, 소박한 철화와 덤벙, 거친 조화문의 화장토도자기가 주로 발 견되는 것으로 봐서, 초기 당오대의 화장토도자기 문화에 해당한 것으로 보일정도로 미미하였다. 한편으론 하북성 자주요와 그 인 근인 서하에서 워낙 대단위로 화장토도자기가 제작되었기에, 자 주요 화장토도자기의 모방도자를 그렇게까지는 이룰 필요가 없 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 북방의 자주요 화장토도자기가 복주를 경유해서가 아닌 遼 시대에 산둥반도에서 직접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국도자의 영향으로 한반도 서중부,서남해안 일대 (해남,강진,부안,인천 등)에서는 청자가 서남해안(해남 산이면) 에서는 화장토도자기가 제작되었으며, 전남 해남 산이면 화장토 도자기 장식기법과 인근 지역의 청자문화가 결합하여 새로운 양 식의 상감청자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는 강진과 부안지역에서 고급청자로 발전하게 되고, 해남 산이면 진산리의 화장토도자기 는 계속 저급한 채로 명맥을 이어가던 중 쇠퇴한 고려청자와 함 께 조선 분청사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 한 이유는 해남 산이면 진산리 유적에서 보이는 박지, 조화, 철화, 덤벙, 귀얄(분채) 등의 기법이 조선 분청사기에 그대로 보이고 있 기 때문이다. 특히 산이면 진산리에서 집중적으로 보이는 한반도 화장토도자기 문화는 중국 최대의 화장토도자기 문화를 자랑하 는 하북성 자주요의 장식기술이 유입되어 오늘날 진산리 유적지 조선 분청사기(상감,인화,덤벙,귀얄 (분채,퇴화),철화, 조화,박지, 귀얄선장식기법),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초벌분장제작기법(덤벙,철회) 발생 에서 보이는 한반도 초기 분청사기 제작기술이 이뤄졌다고 본다. 이에 대해 관련학자들은 자주요 화장토도자기의 산이면 유입시 기를 11세기 말 - 12세기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본인은 산이면에서 발굴된 화장토장식기법의 유물들의 장식기 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태토도 곱게 수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북송( )시대 자주요 화장토도자기와 요나라 화장토도자 기의 장식수법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중국에서 화장토도자기 가 처음 발원한 시기인 당오대( )를 기점으로, 고려와 송, 고려와 거란과의 무역교류를 통한 문화유입을 고려한다면, 한반 도 해남 산이면 진산리에 중국 북방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유입시 기를, 이 지역의 중국 남방 청자 문화 유입시기보다 늦은 11세기 정도로 추정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화장토를 이용하여 제작된 도자기(분청사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 전반에 걸친 해남 진산리 도요지 유적과, 고려 중기 강진과 부여의 상감청자, 고려 말 조선 초기 전국에 분포된 퇴락한 상감청자와 분청사기까 지를 포함하여 폭넓게 생각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립된 한국 도자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고려시대 분청 사기 제작 史 를 외면한 상태에서(더 자세히는 산이면 진산리 화 장도도자기 장식기법이 시문된 유적과 강진과 부안의 상감청자 를 분청자가 아닌 청자문화로만 인식한 상태로) 이 땅의 분청사 기를 설명하다 보면, 한반도에서 화장토를 이용한 분청사기 제작 사가 청자보다도 훨씬 길고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조선 분청사기 의 역사적 위치는 고려 상감청자의 아류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조선 초기 분청사기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장식기법인 조 화, 박지, 철화, 덤벙, 귀얄(분채) 등의 기법에 대해서도, 그 기법들 이 한반도에서 개시된 역사조차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불확 실한 기형의 도자문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실 10-12세기에 제작된 중국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장식기법과 15세기에 제작된 한반도 분청사기 장식기법들 중, 기물에 백토를 입혀 장식하는 백지분장기법과 고려 조선의 생지덤벙기법, 백지 획화전백채기법과 고려의 상감기법, 백지척화기법과 조선의 박 지기법, 백지흑화기법과 철회, 백지획화기법과 조화기법은 실은 큰 범주에서 보면 같은 장식기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박지기법이 시도된 독. 중국 자주요. 宋. 12세기 백지흑채당초문매병 자주요. 金. 12세기
42 8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81 흡사하다. 북송시대에 자주요에서 제작되어 현재까지 전세되는 한 기록이 남아있다. 수많은 유물들에서 보여지는 형태와 문양과 거의 흡사한 양식의 근초고왕본기 에 따르면, 근초고왕은 동진 황제 효무제에게 재 도자기들이 1986년에 목포대학교 박물관이 추진한 전남 해남군 위 27년, 28년에 조공을 한 적이 있다. 30 산이면 진산리의 녹청지 유적 발굴조사에서 대거 발견되었다. 중국 자주요와 한반도 서남해안 도자문화간 교류를 알 수 있는 현존하는 제작연대 구분 시스템 중에는 도자기의 제작년대를 알 또 다른 예로 거란과 고려, 고려와 송의 교류 관계를 들 수 있다. 아보는 기술도 있으나, 거의 정확한 결과 계측이 어렵다고 봐도 10세기 동북아시아에서는 거란, 고려, 송이 차례로 건국하면서 된다. 측정방법을 살펴보면 도요지 주변에 햇빛이 투과되지 않은 정치 외교 문화면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 이 기간 동안 고 점토를 채취하여, 빛을 쏘아서 반응하는 결과와 도자기의 파편에 려는 송과도 사신교류를 하였으나 적어도 12세기 전반에 이르기 햇빛이 닿지 않은 면을 깍아내어 빛을 반응시켜 얻어지는 결과치 까지 고려 거란의 교류는 고려 송의 그것보다 빈번했던 것으 를 가지고 연대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도자기의 파편이 로 알려져 있다. 귀주대첩 이후 고려가 거란에게 사대관계를 회 조화기법이 시도된 사발. 자주요. 宋 최소 5cm내지 7cm의 두께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 다. 이런 두께를 유지하는 전통도자기가 과연 있을까? 그림50 복(1019년)하여 1022년 요( 遼 )와 화의를 맺게되면서, 송과는 외 교관계가 중단되었으나 요와의 공식관계는 빈번해졌다. 송과 고려의 관계가 주로 무역사행을 비롯한 물자교류 중심으로 중국 복건성박물관 리지엔안 29 선생에 의하면 중국의 화장토도 자기문화는 당오대( )를 기점으로 발원하여 송( 년) 원( )시대에 그 꽃을 피우는데, 화북의 자주요에서 대부분의 화장토도자기가 제작이 되었으며, 하북성과 복건성의 해상 교역로를 따라 고려와 일본, 동아시아 전역, 멀리 아프리카 케냐까지 중국의 도자기가 전파되었었다 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 장은 각 국 현지에서 발굴되는 중국의 도자유물과 당시 바다에 침몰된 해저 난파선에서 인양된 여러 수중유물들을 통해서 확인 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화장토도자기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북성 자현과 한단에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 는 자주요이다. 이 자주요풍 화장토도자기의 제작규모는 산서 하북 하남성 전역과 요나라에 걸쳐서 제작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 으며, 위치적으로 근접한 서하( 년)에서 제작되었던 화 장토자기 또한 그 문양과 시문의 테크닉이 조선 분청사기와 매우 그래서 산이면 진산리 유적과 자주요 화장토도자기의 연계성을 추정하기위해서는, 당시 당과 통일신라, 거란과 고려, 송 원과 고 려의 문물교류 기록을 확인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한반도와 중국의 문물교류와 왕래를 알게 하 는 기록들이 많이 전해지는데, 그 중 현대 사학자들 간에, 가장 유 력한 문물 교류 형태를 띤 국가 간 공식행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 이 조공무역 이다. 과거에는 조공 이라는 말이, 약소국이 강대국에 자국의 특산물 을 가져다 바치는 개념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 들어 연구된 결과로는 국가간 조공 은 강대국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약소국 에 회사( 回 賜 :다시 되돌려 사례한다)하여, 오히려 받은 것보다 훨 씬 많은 양의 자국의 문물을 조공국에 보낸 것으로 연구되고 있 다. 이러한 퍼주기외교 는 많은 학자들이 중국이 실시하는 일종 의 제후국 관리차원의 정책으로 여기고 있다. 하여 이것을 국내 수도 변경( 京 )이 아닌 명주지역 관할관의 전담아래 고려에 사신 을 파견한 예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거란과 고려는 중앙 정부 간 의 교류가 중심이었다. 요의 건국으로 고려와 요는 공식 비공식 적으로 교류가 많아지고, 거란 장인의 귀화를 통한 요문물과 기 술의 유입이 증가했다. 도자기 수요도 마찬가지로 증가하였고, 생산량과 종류도 다양해졌고 요의 장인에 의한 제작이 증가한 다. 중략 12세기 전반 [고려도경]에 의 항복한 포로 수만명 중 공예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중 열에 한 명은 정교 한 솜씨를 자진 공장( 工 匠 )으로서 왕부( 王 府 )에 머물게 하였다. 요즘은 기복이 더욱 공교하여, 부화스럽고 거짓스러운 것이 많아 전날의 순박하고 질박한 것을 회복할 수 없다 는 내용이 있어 거란의 공예 장인들이 고려의 중앙공예에 기여했음을 짐작케한 다. 31 중국과 한반도의 교역은 이처럼 국가 간 교역 이외에도 사무역도 에서는 조공무역, 중국에서는 사행무역( 使 行 貿 易, 사신단무역) 널리 성행하였으리라 여겨지며, 이러한 무역교류 중에 중국의 화 29. 리지엔안( 栗 建 安 ) : 복건성박물관 고고문물연구소장, 해저유물발굴관련 국제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인사. 이라 칭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공무역과 관련해서 1397년 조선과 명나라 간 무역 분쟁이 생겨나게 된다. 이 분쟁의 내용은 장토도자기문화가 해상운송이 용이한 한반도 서남해안 인근의 전남 해남군 산이면 바닷가에 전파되었고, 고려의 상감청자 탄생 30. 중국에게 퍼준 조공 백제에겐 이득이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오마이뉴스 대강 이렇다 조선은 명나라에 1년에 3번 조공하겠다고 하고, 명 나라는 조선에 3년에 1번만 조공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1. [고려초기 청자와 중국 청자와의 관계] 105p. 장남원 백제 근초고왕(346년 즉위) 재위에도 중국 동진과의 조공에 관 중국 북방 西 夏 에서 제작된 화장토도자기 항아리. 12세기 위보다 앞선 시기에 중국과 한반도의 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43 8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83 자주요 화장토도자기 중 상감기법이 시문된 사발내부면. 北 宋 - 金 있는 기록으로, 백제(근초고왕)와 고구려가 대륙으로 진출을 하 였다는 중국 역사서의 기록도 볼 수 있다.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 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 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 가 요동을 공격해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격해 차지했다. 백 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 -[송서( 宋 書 ) 이만 ( 夷 蠻 )열전 백제]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 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해 차지하자, 백제 또 한 요서, 진평 2군을 빼앗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 [양서( 梁 書 ) 동이열전 백제] 백제는 원래 내이( 內 夷 )였던 마한 에 속한 나라이다. 진나라 말 고구려가 요동 낙랑을 차지하자, 백 제는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양직공도 백제국사( 百 濟 國 史 ) 제기( 題 記 )] 이외에도 백제가 기원후 3세기 정도에 중국지역과 교역을 이뤘 다는 수 많은 이론적 배경을 통한 주장들이 있으나, 위의 송서나 양서 등에 기록된 내용들 은 주류사학에서는 아직 인정치 않는 내용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니 더 이상 거론치 않도록 한다. 그렇지만 중국의 고대국가 들과 백제, 통일신라 등은 조공무역과 민간무역으로 인해 최소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위한 중국과 한반도 양 지역 간의 해상무 역과 경제적 교류는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 일례 로 중국 북방지역인 하북성 한단의 동굴 안에 조각된 환조석불과 부조불화 등에서 백제불교의 주요 양식인 비천상(그림50) 등이 보이는 것은 당시에 종교문화까지 교류가 되었음을 알리는 근거 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전술한 것을 토대로, 역사적으로 대륙과 한반도는 무역 교류의 대상품으로 도자기뿐만이 아닌 도자 장인들의 진출 및 수 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역사적 기록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으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IT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자산업이 사무역과 공무역을 통한 국가 간 도자산 업교류라는 엄청난 병리( 竝 利 )현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고 여 겨진다. 위와 같이 대륙과의 대외무역이 활발히 행해졌던 고려 초기에 대 륙의 화장토도자기 제작기술과 인력이 전남 서남해안에 유입되 었고,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도요지에서 화장토를 이용한 기물들 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15세기 조선, 초벌덤벙이 주병
4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85 중국 화장토 도자기가 한국 및 일본에 미친 영향 中 国 化 妆 土 陶 瓷 对 韩 国 日 本 的 影 响 쉬위샨_ 徐 玉 珊 (베이징공업대학 건축및도시계획대학 공업디자인과 전임강사) 문화 지리 이론적으로 문화나 기술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스템이 있다. 첫 째는 부호 시스템이다. 즉 언어, 문자 등 추리 부호와 그림, 음악, 료를 구하여 차등한 원료로 도기를 만들 수 있으며 문화토로 장 식을 할 수 있다. 또한 백자나 다른 장식이 아름다운 자기 종류에 비교적 가깝게 제조할 수 있다. 각지의 장인들은 문화토를 이용 1.중국 화장토 도자기의 한국, 일본으로의 전파 춤 등 표상 부호이다. 둘째는 실물 시스템이다. 언어, 문자, 소리 하여 풍부한 장식 수법을 바꾸었다. 이로써 화장토를 재료로 한 자주요 계통의 도자기 제품이 수출되고 장인을 뺏어감에 따라 조 이미지와 관련된 미디어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교류를 거친 각종 독특한 장식 언어를 형성했다. 이로써 섬세하게 그림을 세길 수 선은 자주요의 영향을 받아 이조분청사기를 만들었다. 화장토 장 실물도 포함된다. 셋째는 인체 시스템이다. 1 도자기의 전파는 한 있고 또한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즉 우아하고 온화하 식을 모두 다 표현해 내어 조선 시대의 독특한 도자기 풍격을 형 두개 명가마 도기(실물 시스템), 모양만 그대로 베끼기만 한 것도 고 속세적이지 않은 것을 표현할 수 있고 화려하고 찬란하며 열 성했다. 장인 (인체 시스템)을 통해 비슷한 제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화장 정적인 것도 표현할 수 있다. 요나라 시대 거란 왕조 및 고려 왕조가 병존하던 시기에 요나라 토기는 장식성의 특징으로 배합 기술, 꾸민 가마 기술 및 가마 기 중국 송대시기 북방의 자주요 계통의 화장 백자, 흰 바탕에 세 가 군은 여러 차례 고려를 토벌한 적이 있으며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술 면에는 그리 큰 난이도는 없다. 단시간 내에 제조 기술을 장악 지 색깔이 들어간 것, 진주 바탕, 흰 바탕에 꽃이 그려져 있는 것, 교류도 하였다. 평화로운 시기에 양국은 경제, 문화 방면에서 서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공예 기술은 가장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흰 바탕에 꽃이 새겨져 있는 것,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꽃을 새겨 로 교류하였다. 전쟁 시기에 양측은 상대 국가의 백성을 인질로 퍼질 수 있다. 중국 화장 토기는 남북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 중 넣은 것,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그림을 그린 것, 흰 바탕에 갈색으 삼거나 투항하기로 하였다.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북방 지역의 자주요 계통은 제조 시간이 가 로 꽃을 그린 것, 흰 바탕에 갈색으로 채색한 것, 흰 바탕에 진흙으 들은 기술의 교류를 증진시켰다. 요나라 시기의 화장토 도자기는 장 길고 제조량이 가장 많다. 장식 풍격은 가장 풍부하다. 중국의 로 짜 올려 무늬를 만든 것, 흰 바탕에 붉은 색 푸른 색으로 채색을 기술적으로 중원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도자기 제고 공예 및 자 무역 도자기의 발전 및 주변 국가 간의 교류에 따라 자주요 계통 하는 등 근 50 종의 장식 기법은 모두 화장토로 장식을 만들어 생 주요 계통은 대체로 비슷하다. 북송 시기 쉬징은 <선화봉사고려 의 화장 토기는 그 명쾌하고 호방한 풍격으로 소박하고 쉽게 배 산하는 것이다. 중국 화장토 도자기의 주요 산지는 바로 자주요 도경>에 다음과 같이 기재하였다. 거란이 수만 명이 포로가 되 우는 공예가 점차 동남아시아, 나아가서는 저 멀리 서유럽까지 이며 송, 금, 원 시기에 그것이 미친 영향은 화북지역까지 분포되 어 투항했다고 들었다. 공예 기술자 열 명 가운데 공예 기술이 뛰 전파되었다. 어 있다. 자주요 시스템 제품의 대외무역 및 문화 교류를 따라 그 어난 자 한 명을 선발하여 왕궁에 머무르게 했다. 거란 공예 기술 인류가 도자기를 제조한 이래 화장토는 장식에 사용되었다. 최초 풍격 및 공예는 점차 주변 국가로 전파되었다. 한국, 일본은 모방 자 가운데 북방 지역의 공예 기술자가 적지 않고 요나라 도자기 로 사용된 목적은 반가공품의울퉁불퉁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것 이었다. 이 바깥층을 고고학자들은 도의 라고 칭했다. 유약이 나 을 토대로 현지 자원, 문화 및 생활 방식과 결합시켰으며 또한 새 로운 화장토 장식 풍격 및 공예를 만들어 냈다. 한국 당시 조선 시 가운데 적봉요, 강와둔요 등은 직접적으로 자주요의 영향을 받았 다. 당시 조선에 들어간 공예 기술자는 자연스럽게 자주요의 도 그림1. 원대 박지조롱박형병 온 후에 화장토의 기능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단지 이는 유악 대의 화장분청, 분인, 일본 소추 가운데 당진 삼도 등은 동아 자기 제조 기술법을 전수하였을 것이다. 내몽고 근처에서 출토된 과 반가공품 사이의 틈새를 가릴 뿐이었다. 어떤 때는 심지어 본 시아 도자기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원대 흰 바탕에 꽃을 새겨 넣은 조롱박 모양 병 그림1 및 한국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 되었다. 초기의 색유약자기 가운데 꽃을 새겨 넣은 분청사기의 스타일 그림2 이 비슷한 것은 이를 잘 을 받았지만 그 공예 및 문양에는 맥의 민족의 강한 내공이 포함 백화장토는 일반적으로 반가공품의 철화합물의 색깔은 색유약 설명해 준다. 되어 있다. 특히 화장토 장식 영역에서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인 의 밝은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이 중간층을 유약 지염 이라고 부 분청사기는 고려 말기 국가가 쇄락해가고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 해 조선시대 민족들은 화장토의 장식을 무궁무진하게 발전시켰 르는 학자들도 있다. 최초로 유약 지염을 이용한 것은 삼국 시기 에 생겨났다. 도자기 공예 기술을 장악한 관리들이 바뀌고 도자 다. 즉 질박하고 순박하면서도 소탈한 평범한 기질이 담겨 있고 의 무주요 정자이다. 동진 시기의 월용, 덕청요는 일부 청자들 중 기 장인들이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만 또한 우아하고 속세적이지 않고 절제된 고상한 이미지도 있다. 에서도 화장토를 이용하여 도자기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남조 시 들어진 도자기들이다. 기술 수준은 하락하기는 했지만 조각 장식 이는 일부 귀족, 사대부와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녹여낸 대에 화장토의 응용 범위는 넓었다. 호남, 사전, 안휘 등 지역의 일 을 대충 하거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만든 작품들은 소탈하고 후덕 것이다. 또한 분청사기는 이로써 예술적인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 부 도자기들도 잇따라 채용했다. 한 특징이 있다. 분청사기는 산화염이나 중성염 기술로 만들어졌 다. 장식은 작위적인 느낌이 전혀 없고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자 문화토 재료의 이러한 종류의 화장 태토질지의 기능은 토기 제 다. 그래서 색유약은 묽은 차 색깔이나 담황색을 약간 띤다. 백화 연적인 진흙의 숨결이 살아 있다. 조업에 새로운 출구를 열었다. 문화토는 색깔과 광택이 비교적 장토에 사용된 다른 장식 기법에 따르면 분청사기는 상감분청, 일본의 초기 도자기의 발전은 비교적 느렸다. 그러나 운 좋게도 진한 태토질지의 기능은 일부 지역의 토기 자원이 부족한 난제를 해결해 주었다. 우수한 우수한 질의 자토의 지역도 현지에서 재 1. 자오스위( 趙 世 瑜 ), 저우상이( 周 尚 意 ). 중국문화지리개론( 中 國 文 化 地 理 概 說 ).타 이위안( 太 原 ):산시교육출판사, 1991 : 151~152 인화상감분청, 꽃을 그리고 음각한 분청, 철회분청, 귀얄분청 등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분청사기는 계속 중국 자주요 계통의 영향 중국 및 조선 시대 도자기의 기초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섬나라의 따뜻하고 습윤한 자연 환경으로
45 8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87 그림2. 15세기 한국 분청사기 박지연어문편호 그림3. 琉 球 적회발 1970 滨 田 庄 司 그림4. 일본 중요무형문화재 富 本 宪 吉 그림5.원대 백지흑화 书 清 风 细 雨 시문반 인해 자연 숭배의 심미관을 형성했다. 일본 도자기는 모양, 문양, 들면 흰 바탕에 꽃을 빗살처럼 그린 것(즐목), 흰 바탕에 음각으 본 도쿄 국립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송대 백지매병 그림8, 백 색채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진흙의 성질, 무늬결의 재미, 가마불 로 새긴 것, 흰 바탕에 녹색으로 점점이 채색한 것, 흰 바탕이 검은 화장의 순수하고 풍부함은 백자의 우아함과 달리 질박하고도 단 의 흔적 등 자연적인 풍경 을 중요시한다. 일본인은 재질의 자연 색으로 그린 것(철회), 흰 바탕에 적록색으로 그린 것(적회) 그림 아한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훗날 조선왕조가 이를 모 적인 정취를 즐긴다. 이로 인해 화장토의 천연 진흙의 성질은 일 3, 귀얄, 화장토상감, 니회, 교니, 입분(통묘) 등이다. 또한 도자기 방한 한국 분청사기가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본 도자기 장식에서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했다. 의 자연미 건강미 에 대한 개인의 이해가 그 속에 녹아 있다. 동 화장백지는 도자기에 문양이 하나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태도에 임진왜란 후 구주 도당진, 고취, 상예, 살마, 추 등지의 조선 시대 시대 인물인 도미모토 켄키치의 작품은 우아하고 화려하다. 문인 백토 화장만 하여 흰색의 순수미가 도드라지게 하는 장식 기법이 도공들이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의 정취가 가득 담긴 야생화가 떨어지면 외로운 마을에는 봄이 다. 조선에 전파된 후에는 분장분청 이라고 불렸고 일본에서는 일본 도자기는 대량으로 상감 기법, 귀얄 기법 등 문화토 장식 기 온다 는 문자 장식을 한 그림4 작품에서는 중국 자주요 흰 바탕에 분장분청 을 분인 으로 불렀다. 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진에서 조선시대 화장토 상감기법을 까만색 꽃으로 시문 장식을 한 화장토 도자기 유형의 흔적을 볼 화장토는 원료의 산지가 다르고 민족마다 심미관도 다르다. 장인 사용해서 만든 작품은 미시마가라츠(삼도당진) 이라고 불린다. 수 있다. 그림5 이와 비슷한 기타오지 로산진의 추풍이 황허강의 의 개성도 천차만별이어서 사용하는 도구도 다르다. 당연히 그로 귀얄 기법으로 만든 것은 귀얄당진 그림 이라 부른다. 추에서 분 장분청의 장식 기법은 차완(차를 따라 마시는 종지)에 많이 사용 물을 담아가네 그림6 라는 글이 있고, 원대의 바람 꽃 눈 달 이라 는 편호와 거의 비슷하다. 그림7 인한 제조 기법도 가지각색이다. 유약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유 약색을 선택하는 것과 가마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등 방면은 모두 그림6. 일본 北 大 路 鲁 山 人 철회문자편호 된다. 추에서는 가볍고 온화하고 또한 흙냄새가 살아있도록 한 화장토 장식 도자기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식을 표현하는데 영향을 끼친 요소들이다. 이로써 더욱 풍부한 다. 이는 일본 차도의 미학정신과 많이 부합한다. 2 그림 이는 전인류의 공동 재산이다. 예술적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제작 공예가 바뀌어서 생겨난 새로 일본 민간 도자기도 중국 화장토 도자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운 화장토 장식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은 귀얄회 이고 한국에서 예를 들면 일본의 쯔보야 가마 의 화장백지적회초화문복자판 은 온다의 화장토 도도, 비목, 지회, 타괘, 흘러내림 등의 장식 수법 등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자주요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이로써 새로운 장 2.중국 화장토 도자기 장식 공예가 한국 및 일본에 미친 영향 는 분청귀약 이라고 부른다. 가마 구조 및 굽는 기술이 천차만별이어서 만들어진 새로운 화장 토 도자기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은 분인 이다. 식 스타일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앞에서 언급한 온다에서 구운 1. 화장백지 많은 기법에서는 중국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특별한 것은 바 로 많은 도자기 장인들도 이 방법을 즐겼다는 것이다. 화장토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민간 예술 운동 시기 에 가장 대표적인 도예가인 하마다 소지의 작품들은 중국 화장 토 도자기 및 일본 민간 도자기의 장식 스타일을 흡수했다. 예를 일본 학자 나이토우 타다시는 자주요 도자기를 다음과 같이 평가 했다. 이렇게 풍부한 백화장토가 없었다면 자주요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백화장토는 원래 장식의 일종일 뿐만 아니라 자주요 장식 공예의 창조와 발전에도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3 일 2. 정닝( 鄭 甯 ), 일본도기.스자좡( 石 家 莊 ) : 헤이룽장미술출판사, 2001 : 마중리( 馬 忠 理 ), 자주요 기물의 조형과 장식 예술 및 고고 기간 분류의 변화( 磁 州 窯 器 物 的 造 型 和 裝 飾 藝 術 及 其 考 古 分 期 變 化 ), 예저민( 葉 喆 民 ) 편저.중국 자주 요.스자좡( 中 國 磁 州 窯. 石 家 莊 )에 수록 : 허베이미술출판사, 2009 : 78 그림7. 원대 백지흑화 书 风 花 雪 月 편호 일본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46 8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89 그림9. 16세기 한국분청사기 분장문호 그림10. 剪 纸 刷 毛 三 岛 그림8.송대 화장백지매병 도쿄국립미술관 소장 (1) 귀얄회 人 )의 사랑을 받는다. 이들은 하케메에서 더 많은 매력을 발견했 귀얄회란 화장토의 시괘공예가 만들어낸 새로운 스타일이다. 조 다. 또한 민간 가마에서는 새로운 장식 기법인 타괘가 파생되었 선 시대 조선왕조 초기에 가장 먼저 나왔다. 분청쇄문 그림9 이 다. 타괘는 바로 부드러운 털에 화장토를 발라서 묻히는 것이다. 라 불리운다. 일본에서는 하케메(귀얄로 바른 자국) 그림10 이 도기를 회전시키면서 도기 위에 찐득찐득한 화장진흙을 바른다. 라고 부른다. 귀얄 공예의 탄생과 관련해서 일본 학자 야마다 만 그러면 리듬감 있는 귀약 문양 장식이 생긴다. 이는 일본 향촌의 게치는 분장공예가 늦어져서 시간의 추이에 따라 원래 분장 기법 농가의 민간 예술의 미를 충분히 표현했다. 그림11 이 점차 귀얄 기법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분장장식 공예가 귀얄 공예로 변화한 것은 분장분청사기를 만들 때 대량의 백화장 (2) 분인 그림11. 17세기 唐 津 烧 刷 毛 目 扒 花 纹 大 盘 일본 사가현립큐슈도자문화관 소장 그림12. 한국 조선 粉 吹 绳 耳 水 指 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장토의 백토원료는 가공과정에서 일 가마화로의 구조와 구워내는 기술의 도자기 장식에 대한 효과는 손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증가했다. 또한 가마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자주요 계통의 화장토 도자기는 공장 근처의 백토광산도 점차 고갈되었다. 따라서 백화장토의 사 모두 반도염 마제요( 馬 蹄 窯 ) 석탄요( 煤 窯 )를 사용해 가마에서 구 용량을 아끼기 위해 귀얄 공예가 괘분 기법을 대체하기 시작한 워 산화염을 나오게 해서 구워낸 백화장토는 여전히 온난한 황백 것이다. 4 색을 띠고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 분청 사기는 장작으로 때는 가 하케메의 귀얄은 볏짚(벼이삭 부분)으로 엮은 거친 붓으로서 단 마에서 구워낸 것이다. 이렇게 구워낸 것은 대부분 환원(산화물 숨에 발라야 한다. 한 번 바르면 고칠 수 없다. 글씨선이 움직일 때 에서 산소가 빠지거나 산화물이 수소와 화합함)이 된다. 백색 가 남은 날아가는 듯 한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기세가 드높을 때는 운에 태도 안의 철 등 원소를 포함하고 있고 층은 더 자연스럽고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세찬 폭포와 같다. 사방으로 흩날릴 풍부해진다. 때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 같거나 봄바람이 가볍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다. 하케메의 상쾌한 묘미는 일본 다인( 茶 굽고 난 후의 분인기는 마치 두터운 분을 바른 듯 바람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일본에서는 분인 과 분취 라는 미 4. [일] 야마다 만키치로( 山 田 萬 吉 郎 ): 미시마 하케메( 三 島 刷 毛 目 ), 29-30쪽 칭을 얻게 되었다. 그림12 조선의 도공들은 일본에서 분인의 풍 그림13. 일본 萩 烧 铭 白 雨 (17세기) 그림14. 일본 萩 烧 笔 洗 型 足 底 다완 17 雨 漏
47 9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1 격을 이어가며 하기야키를 생산했다. 그림13 분인은 부드럽고 윤 (2) 백지척화(흰 바탕에 꽃을 음각한 것) 기나는 흰색과 함께 특유의 불 냄새 와 비가 새는 냄새, 그림14 백지척화는 중국 북방의 여러 가마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 바늘구멍과 손가락의 자국 등 우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생긴 생긴 중 하나다. 이 기법을 쓰는 곳은 허난, 허베이, 산둥, 산시 및 요, 서 자연스러운 경치 가 배력이다. 분인 현상은 사실 중국 송나라 하등지에 이른다. 그림17 자주요에서도 볼 수 있지만, 자주요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 이것을 바탕으로 발전한 척화전채(음각한 꽃에 색을 채워넣는 했고 때때로 하자품으로 분류되기도 했을 것이다. 관태자주요 것)라는 새로운 기교는 태색이 순수하지 않거나 거친 단점을 숨 지 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민요) 라고 부른다. 즉, 아궁이에서 겨주었고 대비도 더욱 명확해졌다. 이것이 조선으로 전래된 이후 불이 꺼질 때 온도 하강 시간이 지나치게 긴 나머지 유약 색깔에 에는 박지 라고 불렸고, 일본에서는 미시마 가키오토시 로 불렸 변화를 주어 흰색이 부분적으로 분홍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다. 조선 백지획화와 척각분청장식은 비록 자주요의 장식 기교에서 2. 백지척획화 (흰 바탕에 꽃 그림을 음각한 것) 따왔지만, 시괘화장토 방법 및 아궁이의 구조와 분위기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풍격으로 발전하며 제작 기법과 무늬에서 모두 조선 그림17. 원대 백지 剔 花 凤 穿 모란문관 일본 白 鹤 미술관 (1) 백지획화 (흰 바탕에 꽃을 그린 것) 민족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시괘화장토의 방식은 귀얄 백지획화는 백화장토에 뿌린 후 채 마르지 않은 기배( 器 坯 ) 위에 식으로서, 그 두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두터운 곳에는 귀 죽비 같은 딱딱한 물건을 이용해 자유로운 추상적인 선과 문양을 얄의 흔적이 뚜렷하고, 얇은 곳에는 은근한 태색이 드러난다. 획 문물관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나라 백지척화전갈채모단문 보인다. 그리는 장식 수법의 하나로서, 한국에서는 이를 조화분청 이라 화와 음각의 무늬 및 기교는 다소 투박해서 자주요 장식에 비해 권구관 그림19 과 같이 어깨 양쪽 현문사이에는 수파문을 한 바 요와 고려의 왕래 중 거란의 가마 장인이 이 기법을 조선으로 전 고 부른다. 예상치 못한 효과가 훨씬 많고 현대적인 분위기도 상당하다. 그 퀴 새겼고, 복부 장식은 획화전지모단문을, 그리고 무늬 장식 외 했을 것으로 추측되어 분청사기에는 박지철채 풍격의 제품이 중국의 백지획화에는 선 하나로 꽃을 그린 것, 빗살 무늬 꽃을 그 림18 에도 직접 전갈채를 했다. 이러한 기법은 중국 중원지역의 각화 적지 않다. 그림20 이는 요에서 고려로 전해진 자주요 화장토 도 린 것과 선 하나로 빗살 무늬 꽃을 그린 것, 그리고 진주지획화등 전채와 달라 음각 새김의 단계를 생략했고 자유로이 갈채전화 자기의 전파 경로를 나타내기 때문에 뛰어난 연구 가치를 지닌 의 기법이 있다. 그림15 한국의 조화분청 은 선 하나로 꽃을 그린 (3) 백지척획화전흑채(백지척획화에 검은색을 메워 넣은 것) (갈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것)를 했으며 심도에도 변화가 있어 다. 수법을 사용했으며, 무늬 장식에는 한국의 간결하고 자유로운 풍 요나라 중기에서 말기에 항와요 화장토 도자는 시원하고 단순한 자주요 장식을 모방해 만들어낸 요 자기의 독특한 지역적 풍격을 격이 드러난다. 그림16 백지척획화전흑채 장식이 유행했다. 그 예로 네이멍구 카라친기 그림15. 북송대 백지 划 花 연문완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术 馆 藏 그림16. 15세기 한국 분청사기 조화문병 그림18. 15세기 한국 분청사기 박지모란문편호 그림19. 요대 백지 刻 花 填 彩 盘 口 관
48 9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3 그림21. 금-원대 백지흑화모란문병 도쿄국립박물관 그림22. 송대 백지흑화모란문병 일본 出 光 미술관 3. 백지흑화 있는데, 일본 도쿄의 고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지철회매화 문완 가 그 중 하나이다. 그림25 백지흑화는 화장토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유하 이는 일본에서 전해지는 옛 찻종으로서 명나라 허베이 자주요의 채( 釉 下 彩 ) 장식의 일종으로 중국 서화 예술의 수많은 특징을 담 팽성요 제품이다. 이 찻종은 일반적인 백지흑회와는 달리 흰 바 아 창조된 도자 회화 장식으로, 자주요의 가장 전형적이고 특징 탕에 흑화장토를 그려 넣고, 다시 검은 바탕에 백화장토로 점점 적인 장식 기법으로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21 이 매화나무 무늬를 그려 넣은 후, 그 위에 농담이 일정하지 않은 백지흑화 양식은 광범위한 집단에 수용돼 중국 북방 대부분 지 수야유를 반투과시켜 얼룩덜룩한 자회색의 흙빛을 만들어 냈다. 역에서 천 년 넘게 널리 제작이 되어 많은 곳에서 출토되는 것은 이것은 곧 일본의 다인들이 아끼는 자연적인 고요함의 정취이니, 물론, 대외 무역의 수출 경로를 따라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 및 서 이 때문에 한때 회고려로오인되기도 했다. 아시아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는 철회분청, 철화무늬 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백지철 그림20. 15세기 한국 분청사기 剔 刻 填 褐 彩 무란당초문병 그림24. 唐 津 烧 철회녹채소나무문항아리 17세기 이러한 매화 찻종의 기법과 네즈미시노와 서로 유사해 비록 흑 화장토를 이용해 장식을 했지만 장식 무늬는 회화성이 강하고, 회 라고 부른다. 귀얄회는 시괘법을 쓰기 때문에 철회의 회화적 여기다 유탁유으로 덮어버렸기 때문에 자주요의 전형적인 풍격 인 차원의 느낌이 더욱 강렬하고, 무늬는 자주요를 모방하긴 했 과는 이미 크게 멀어졌다. 그림26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중국 화 지만 나는 듯한 필적에서도 알 수 있듯 장식을 더욱 단순화, 속도 장토의 도자 풍격이 주변으로 확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 화함으로써 생산량을 늘리려 한 장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선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각 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모습을 드 한 이러한 기법의 변화는 화장토 도자의 지역적 차이를 드러낸 러냈다. 그림27 이렇듯 새로운 시장은 오히려 자주요에 영향을 다. 중국 자주요 백지흑화의 호방함과 장중함은 중원 문화의 무 끼치기도 했다. 게감을 말해주며, 그림22 한국의 철회분청 은 자유로우면서도 우아한 백의민족의 기상을 드러낸다. 그림23 4. 화장토 상감 백지흑화가 일본에 전파된 이후에는 에가라쓰 로 발전한다. 또 채색화는 철회에만 그치지 않고 구리 등 채색화를 추가해 색채가 화장토 상감의 기법 역시 다른 재료의 장식 기법을 모방하는 데 더욱 풍부해지게 되었다. 그림24 네즈미시노 로 발전한 종류도 그림23. 16세기 한국 분청사기철화모란문호 그림25. 명대 하북성 자주요 백지흑화매화문완 일본도쿄 五 岛 미술관 소장 서 시작했다. 예를 들면 춘추전국시대의 착김은 과 당나라 때 김
49 9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5 은평탈양감, 상아기의 금루 (상아각문리전김)과 금 상감 기법, 과 인화분청 을 창조해 냈고, 다시 일본으로 전해져 포목상감 등 송나라 때의 목기, 칠기양김은선 등이 있다. 의 풍격으로 발전했다. 당나라 때 삼채기 중에 착인 상감 기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러한 기법은 허난 중서부 일대의 가마에서 매우 유행했으며, 나 (1) 음각상감 중에는 획화상감 풍격으로 발전되어 그 범위가 허베이 남부와 청회색의 배태에 흑백색 진흙의 무늬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 커 산시 중부 이남 지역, 네이멍구 츠펑 등지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다란 청록색 덩어리와 조그맣고 촘촘한 흑백도안이 강렬한 대비 상감 기법은 현재 자료로 보았을 때 원나라까지 이어지며, 미국 를 이루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조화롭다. 그 후의 백자상감과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지획화상감반구병 그림 조선왕조 상감분청 및 인화분청은 모두 이러한 흑백과 청회색이 28 은 이 시기의 전형적인 화장토 상감 풍격을 지닌 제품이자 현 이루는 은은하고 담백한 색조를 따온 것이며, 청자와 백자상감은 재로서는 보기 드문 완전품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간 자주요에 태질과 제작 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분청상감의 태질과 그림26. 桃 山 鼠 志 野 대한 고고학적 조사에서 소량의 잔해 조각이 출토되었고 그림29 연구자들은 이러한 풍격이 중원 지역에서 유행했으며 이것이 중 기법은 상대적으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셋 중에서 가장 토속적이 고 자연스럽고 질박하면서 뛰어난 예술성도 갖추고 있다. 그림30 그림29. 화장토상감 자기파편 북송초기 상우측 등펑곡하요 출토 기타 정저우시 출토 국의 화장토 상감 도자의 위치를 제대로 확립시키는 데 일조했다 고 여겼다. 조선의 상감 기법은 12세기에 등장했다. 한국 학자들 (2) 인화상감 은 상감 기법이 본토의 동기상감 및 칠기양감을 기반으로 만들어 인화상감은 한국 분청사기에서 민족적인 특성을 가장 크게 지닌 졌을 것이며, 시간차 및 한국에서 출토된 송나라 자주요 자기의 장식 수법이다. 음각상감보다 더 간결하고 품이 적게 들며 대량 여러 가지 요소로 봤을 때 중국 상감 도자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생산에 적합한 경제적인 장식 수법이다. 일본은 이를 삼도상감 있다고 생각한다. 이라고 부른다. 인화상감과 당송시기 착인상감은 서로 유사한 점 중국 화장토 상감은 크게 착인상감과 획화상감의 두 가지 풍격으 이 많다. 그림31 둘 다 모방을 기초로 발전해 왔고, 장식 무늬 역 로 나눠 볼 수 있다. 시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안이 많으며 전통적인 동그랗게 말린 풀 착인상감은 칠기김은사양감 기법을 흡수해 만들어졌다. 김은평 무늬는 인화분청에서는 물결 모양의 선으로, 연꽃 꽃잎 무늬 빗 탈양감 기법은 특별한 무늬 장식이 있는 도구를 배태 표층에 오 방울무늬로, 국화무늬는 밧줄 주렴 무늬으로 간략화 되는 경우가 그림27. 일본 중요문형문화재 石 黑 宗 磨 20세기 목한 모양의 무늬로 압축 성형한 후 배채 색감과 크게 대비되는 화장토를 상감해 넣어 평평하게 깎아 가지런하고 반듯한 무늬를 많아 대체로 외롭고 쓸쓸한 미감을 안겨준다. 그림32 그림30. 15세기 한국 분청사기상감모란문병 드러낸다. 이러한 장식은 주로 교태기에 쓰이며, 교태의 자유로 (3) 포목상감 운 율동감과 착인의 반듯함, 차분함이 어울려 풍부한 시각적 장 주형틀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 때 주형을 쉽게 떼어내기 위해 중 식의 느낌을 준다. 국에서는 틀에 천을 한 겹 깔곤 한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방법을 획화상감은 곧 즉 배채 위에 무늬 장식을 새긴 후 전체적으로 두 포 무늬 상감의 장식으로 활용했다. 수법은 인화상감과 유사하 터운 백화장토를 시괘한 후, 반건조 상태에서 화장토를 메워 넣 며, 찍어낸 포 무늬에 백색화장토를 메워 넣어 불필요한 부분을 어 배채와 함께 고르게 만들어 무늬 부분의 화장토를 도려내 갈 없애 자연적인 그물 모양 문양을 형성한다. 한 예로 한 일본의 도 지백선을 드러내는 상감 수법의 일종이다. 남아 있는 백분 바탕 예가의 포목 상감 장식 추초 에는 은은한 시적 정취와 예술가의 과 무늬 부분의 갈색 바탕은 색감의 대비를 이룬다. 날렵한 백색 섬세한 재능이 넘쳐 흐르고 있다. 각화 문양과 흰 바탕이 이루는 동태적, 정태적인 대비는 기품 있 상감은 현대 도예가들이 특별히 아끼는 화장토 장식 수법의 일종 으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그림28 으로, 화장토 상감은 2차원에서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 그림28. 송대 화장토 划 花 상감반구병 중국 화장토 상감 기법을 기초로 한국에서는 본토의 음각상감 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림33 그림31. 당대 녹유연리문 戳 印 상감여의형베개 하남성 공현요
50 96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7 지고 일본인의 공손함과 조용함이 더해졌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마치 성격의 상호 보완해 주는 것과 같아 일본인이 왜 그렇게 자 주요의 풍격을 좋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림36 결론 공예 미술의 역사는 곧 재료의 역사다 6 화장토는 도자 재료의 장식 재료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화장토의 출현으로 인해 도자의 전체 역사가 매우 다채로워졌다. 화장토 그림33. 갈대문 접시 伊 藤 东 彦 立 间 1974 그림34. 송대 백지흑화장토 跳 刀 문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는 오랜 기간 동안 활용되며 특별히 주목 받거나 연구된 적은 없 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화장토가 진정 아무런 제약 없이 발 견되고 활용되고 자연적으로 전승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화장토 5. 흑화장토도도 도자는 인류 지혜와 자연의 은덕이 결합한 최고의 산물이었다. 또 과거의 전통 생활 방식이 점차 사라져 가는 오늘날 우리가 더 흑화장토도도 는 송나라 자주요가 백지흑채 장식에 도도 기법을 결합해 만든 장식 풍격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흑유도도각화 라 고 부르며, 일본 학자들은 이를 비백문 또는 천점문 이라고 부 른다. 현재 이러한 풍격의 자기는 세상에 몇 남아 있지 않다. 최근 몇 년 간 가마터의 발굴을 통해 출토된 부분 자기 조각을 봤을 때 이러한 도도 무늬 제품은 주로 허난 중부와 북부에서 생산되며 송금 시기에 주로 유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34 근대 일본의 오키나와 쓰보야 가마, 온다 가마, 사쓰마야키 가마 등 민간에서도 화장토 도도 장식의 그릇을 구웠다. 그림35 그림32. 15세기 한국 분청사기 인화상감문완 그림35. 일본 萨 摩 烧 跳 刀 纹 완 욱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현대 생활은 수 많은 편의와 신속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는 이런 자연적인 전승 방식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화장토 도자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창조해 냈는데도 중국의 현대 도자 설계와 도예 창작에서 화장토가 활요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일 본, 한국, 터키, 심지어 미국와 유럽에서는 오히려 수많은 화장토 장식 풍격의 도예와 도자 제품을 목격할 수 있으며, 또 저마다 다 른 기법의 혁신을 이루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단순히 형식적인 것만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기법과 재료의 성능에 대한 우리의 발굴 정신도 함께 이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류큐 도기는 15세기, 동남아에서 이루어진 무역 중에 남방에서 일본으로 도자기 제작 기법이 전해졌다. 그 후 17세기에 류큐 왕 부는 조선과 중국의 도공들을 오키나와로 모셔와 류큐는 이때 부터 현지 도기 기법의 중심지가 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이 를 통해, 일본의 도도 기법 역시 중국 당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오 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일본의 인간국보 이시구 로 무네마로 선생 역시 자주요 풍격의 작품을 구운 적이 있는데, 그 중 천점문 그릇이 있다. 두 개의 그릇은 장식의 풍격 면에서 5. 정닝( 鄭 甯 ), 일본도기.하얼빈( 哈 爾 濱 ) : 헤이룽장미술출판사, 2001 : 370 는 서로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민족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보이 이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주요의 거칠고 호방한 점이 사라 그림23. 16세기 한국 분청사기철화모란문호 그림36. 石 黑 宗 磨 ( 人 间 国 宝 ) 仿 磁 州 窑 式 6. 상강( 尚 剛 ), 천공개물( 天 工 開 物 ) : 고대공예미술. 베이징 : 생활 독서 신지식삼 련서점, 2007:6
51 월간중앙 2009년 12월호 : 이만훈 기자의 사람 속으로 보성의 도예가 송기진 모든 예술이 그렇듯,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 때 잡념이란 있을 수 없다. 딴생각이 털끝만치라도 끼어들면 대번 일 그러지고 짜부라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릇 하나도 알고 보면 공명과 이익의 세계를 초월한 지고( 至 高 )의 경지를 담고 있게 마 련이다. 특히 명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도자기는 과학이 아니다. 현대과학이 매달려 아무리 상세히 파 헤치고 매달려도 그 옛날 만들어진 것과 같은 명품을 아직 만들 어내지 못하지 않나? 도자기는 지( 地 ) 수( 水 ) 화( 火 ) 공( 空 )을 도 공의 혼으로 빚어 탄생되는 자연이다. 아니, 우주정신이다. 일본의 차인들에게 고려다완( 高 麗 茶 碗 ) 은 종교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고려다완이라 함은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찻사발 을 일컫는 말로, 실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 네들이 이도( 井 戶 ) 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해 무늬 외관 산지 등에 따라 구분되는 종류만 줄잡아 스무 가지가 넘는데, 수십 점이 일 본의 국보 및 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다완의 지존으로 대접받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이 도. 다완의 결정판 으로 불리는 일본 국보 기자에몬( 喜 左 衛 門 ), 다이묘가 성( 城 ) 대신 바쳤다는 쓰쓰이쓰쓰( 筒 井 筒 ) 등 명품 이 도는 지금도 보험금만 수십억 엔을 넘는다. 이도와 함께 일본인들로 하여금 사족을 못 쓰게 하는 또 하나의 명품 찻사발은 호조고비키( 寶 城 粉 引 ). 그릇 전체를 백토로 칠해 붙여진 분청자인데,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에 전해져 그저 고비 키 라고 불리다 일제 때부터 주요 산지인 전남 보성의 이름이 덧 붙여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소장한 국보급 찻사발 호조고비키 를 빚는 39세 도공의 10년 집념 글 이만훈 월간중앙 편집위원 [[email protected]]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email protected]] 도자기는 불의 미학이다. 아무리 뛰어난 도공도 불의 조화를 모르면 명품을 기대할 수 없다. 송기진 씨가 밤새 가마를 지키며 혼신을 다해 불을 지피는 이유다. 불의 다 스림을 거쳐 태어난 덤벙이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98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99
52 100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01 信 秀 吉 )가 소장( 三 好 粉 引 )했을 뿐 아니라 일본 다도계에서 국보 거리가 멀었다. 처음으로 시도한 덤벙이도 마찬가지였다. 대사관에서 답장이 왔는데 문화원 소관이라고 해서 연락했더니 급으로 치는 대명물( 大 名 物 ), 중흥명물( 中 興 名 物 )로 각각 2점, 1 한 달여 시행착오 끝에 막무가내로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아라키란 사람이 교류전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점이 지정돼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36점이 명품으로 귀한 대접 는 것을 깨달은 그는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아예 간판 2003년 7월 가즈아키 이노세 등 일본인 5명과 함께 주일 한국문 을 받고 있다. 을 보성다완연구소 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화원에서 교류전을 가졌습니다. 다시 시작했다. 조선 사발에는 나름의 탄생비밀이 있을 터. 그 비 난생처음 작품을 싸 들고 일본으로 가 전시회를 했으나 결과는 호조고비키 와 보성덤벙이 밀을 알아내려면 옛날 선조들이 한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처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내에서의 명성과 달리 국내에서 호조고비키 지름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저는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고 여겼는데, 일본인들이 보기 에 대한 대접은 형편없다. 일부 차인과 도예가, 그리고 골동품을 에는 안 된 거예요.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취급하는 고미술계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존재조차 알 들은 것이 고작이에요. 지 못한다. 이 한심한 상황을 보다 못해 호조고비키의 부활을 위 소득이라면 일본인들의 짜디짠 평가 와 함께 해 10년째 몸을 던져 고민하는 이가 소장 도예가 삼전( 三 田 ) 송기 도쿄( 東 京 ) 신바시( 新 橋 )에 있는 쿄갤러리에 진(39) 씨다. 서 이듬해 초대전을 열기로 약속을 받은 것이 말로는 누구나 우리의 도자기문화가 세계 도자사( 陶 瓷 史 )에서 었다. 그해 12월에는 송기진의 일본 국보가 된 우뚝하다고 하면서 정작 외국에서 그토록 칭송받는 문화유산을 조선 사발 연구 가 도자기분야로는 처음으로 나몰라라 방치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진흥기금지원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호조고비키의 우리말 이름은 보성덤벙이 다. 송씨가 2006년 문 바탕으로 70 80점을 준비해 2004년 2월 다시 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실시한 일본에서 국보 및 문화재가 된 조 일본으로 갔으나 파리만 날리다 돌아와야 했 선사발의 우리 이름 찾아주기 를 통해 새로 붙인 이름이다. 그릇 다. 8개월 뒤 다시 갔을 때는 반응이 좋았다. 형태를 만들어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 꺼내 희게 장식하는 도자기 제작 기법 이름을 딴 것으로, 원로 도예인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다. 보성덤벙이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덤벙질이다. 백토가 너무 두껍거나 얇게 발라져서는 안 된다. 갤러리에 찾아온 사람들이 제가 옆에 서 있으 니까 짐꾼인줄 알고 작가를 찾기에 저라고 했더니 정말이냐? 그가 보성덤벙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00년 봄. 미술대 학 놀랍다 고 입을 모으더군요. 하지만 10월 전시 원을 마치고 이미 전통 다완의 재현작업을 시작한 터여서 보성의 역시 작품으로는 성공했지만 전시회로서는 실 차 전문가에게 차와 관련해 자문을 구하던 중 일본에서 유명한 우선 재료부터 새로 챙겼다. 장흥 보성 일대의 옛 도요지를 찾아 벙 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패였다. 돈이 없어 차까지 팔아 갔는데 정작 작품 매매는 이뤄지 호조고비키는 바로 보성에서 만들어진 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니며 점토를 구하고 유약용 백토나 물토를 찾아 실험에 실험을 그 전까지는 이도다완은 흙에 비밀이 있는 줄 알았는데 덤벙 기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국하자마자 송씨는 도자기를 그만두기 당시에는 워낙 이도다완에 빠져있던 참이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거듭했다. 특히 유약의 경우 소나무재와 떡갈나무재, 사질 점토 법을 써야만 특유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죠. 이도의 비 로 맘먹었다. 전 해에 결혼해 딸까지 둔 가장으로서 도자기를 해 귀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그해 보성에 가마를 짓기로 하면서 덤 등의 배합비율을 달리해 가며 정답(?)을 찾아내려 무진 애를 썼 파색을 재현해 내려고 이것 저것 해보다 결국 성공했는데, 그게 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로나마 덤벙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잘만 하면 지자체 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 그해 12월 목포에서 연 보성분인다완 바로 덤벙 기법이었거든요. 정말 그릇에 대해 너무 모르는 상태 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지역문화발전에 기 재현 및 창작품 전시회였다. 하지만 이 또한 엉터리였다. 에서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당시까지 아무도 몰랐 꾸미지 않은 자연적인 멋 여하면서 자신의 작업도 할 수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기 라는 생각 조선원류PDF용 :51 PM 페이지170 던 비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경상도에서 만든 황덤벙이가 이도 두 달쯤 지났을까? 사정이 생겼다. 우연히 아는 사람이 찾아와 에서였다. 솔직히 저는 그때 보성덤벙이를 어느 정도 재현해 냈다고 생각 다완이요, 전라도에서 만든 흰덤벙이가 고비키인 것이죠. 작품전 팸플릿을 봤다 며 이도다완을 세 점 만들어 줄 수 없느 그래서 그해 겨울 그는 후배와 함께 조선시대 가마터가 있는 보 했어요. 한데 막상 보니 아닌 거예요. 나름대로 똥을 싸도록 애써 결국 그해 12월 전남보성분인다완과 정호다완의 상관전 이라는 냐 고 하는 것 아닌가? 처음으로 받는 주문이기도 했지만, 알아주 성군 득량면 도촌리로 들어갔다. 방을 하나 얻어놓고 이듬해 3월 만든 작품인데 아무리 뜯어봐도 정감이 가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타이틀로 보성 군립 백민미술관에서 연 초대전은 호평을 받았다. 는 것이 우선 고마웠다. 귀가 솔깃했다. 아내와 딸을 친정으로 보 까지 도요지를 뒤지며 사금파리와 씨름했다. 뭔가 감이 잡히는 작가란 놈이 제가 만들어 놓고도 이것을 왜 좋아하는지 의문도 하지만 시련이 닥쳐왔다. 목포전시회가 끝나면서 그동안 함께 일 내고 다시 흙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주문받은 것은 이도인 듯했다. 그래서 도촌리에서 나온 지 한 달 만인 2001년 4월 근처 가고요. 그저 분만 칠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수밖에 더 있 하던 후배들이 떠나버린 것이다. 도자기를 해서는 밥을 먹고 살 데, 막상 하려니 덤벙이 쪽으로만 쏠렸다. 하는 수 없이 전에 만들 에 녹차밭이 펼쳐져 있는 보성읍 봉산리에 가마를 짓고 보성요 겠습니까? 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겨울 내내 혼자 술을 퍼 마시 어 놓았던 작품을 대신 주고 덤벙이 작업을 계속했다. 극한상황 ( 寶 城 窯 ) 라는 이름으로 요장을 열었다. 며 고민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해보 이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듬해 6월 코엑스에서 하지만 섣부른 생각이었다. 겨우내 보고 느낀 것이 많아 작업을 보성다완연구소 차려 자. 대신 한국에서 하지 말고 일본에 나가서 해보자고 결심 했다. 열린 국제차문화대전에 이노세와 함께 출품한 그의 작품들은 국 시작하면 곧바로 작품 이 나올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올시다 였 이 같은 자각은 이듬해인 2002년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송씨의 일본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일본말도 할 줄 몰라 무조건 일본 한 내 마니아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깊은 좌절 끝에 얻 다. 기자에몬 이도 를 흉내내 봤지만 모양새나 색감 모두 진품과 작품세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기폭제가 됐다. 이도다완도 덤 국대사관에 메일을 보내 일본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했죠. 은 평가여서 두 배로 기뻤다.
53 102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03 (?)로 한 전략이었다. 천 선생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미 만들어야 기능이 늘기 때문이다. 한달 반짝 하고 몇 달 쉬고, 또 반 논문 제목도 한국 전통다완의 연구-천한봉다완을 중심으로 라고 짝 하고 몇 달 쉬고 하면 기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터 정해놓은 뒤였다. 천 선생은 여느 사람과는달랐다. 대부분 어느 득한 결과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옛날보다 조형성 등에서 완성도 분야든 일가를 이루면 자신만의 비법 운운하며 곁을 주지 않는 가 높아졌다. 것이 보통인데 그분은 다정다감했다. 덤벙이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도자기와 비슷합니다. 일단 그릇 취지에 공감했는지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꼬박 1년간 천 선생을 형태를 만들어 건조한 뒤 초벌구이를 하고 덤벙질을 한 다음 두 공부했다. 작업 방법이며 유약을 어떻게 만들어 사용하는지 등 벌구이를 합니다. 그 다음에 유약을 발라 세벌구이를 하죠. 이 중 사발을 만드는 것과 관련한 것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일일이 적 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고 어려운 것은 역시 덤벙질 입니다. 그 고,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했다. 릇 하나 만드는 데 대충 한 달 걸립니다. 제가 지금 이나마 조선사발이 어쩌고저쩌고 할 수 있는 것은다 송씨는 대충 가마당 200점 정도 넣고 불을 땐다. 다른 이들은 600 그때 천 선생님한테 배운 덕분입니다. 점이 기본인데, 그는 앞칸에만 세벌구이 작품을 넣기 때문이다. 천 선생을 통해 조선사발에 대해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송씨는 뒤칸은 초벌구이를 하는 데 쓴다. 왕창 만들어 한꺼번에 불을 땔 대학원을 마치면서 국내는 물론 일본의 유명 요장들을 찾아가 더 수도 있지만, 혼자 하기에 벅차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만들어 과 욱 폭 넓은 공부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교수의 꿈을 버리지 못 정을 연속하는 것이다. 보통 일 1년에 대여섯 번 불을 지핀다. 많 한 송씨는 마침 아는 선배가 모 대학에 신설되는 도자기 공예과 게는 한 해 스물두 번 땐 적도 있다. 의 강의를 맡으면서 부르는 바람에 조교로 들어갔다. 많이 땔 때도 가마를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하느라 그런 송기진 씨가 마지막으로 세벌구이 할 덤벙이들을 가마 안에 넣고 있다. 신생 과였던 만큼 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작업을 해 것입니다. 당시에는 감각을 이어가기 위해 불작업을 잇달아 세 연말이면 어김없이 작품전을 열고는 했다. 그렇게 두 가지 일을 번씩 했어요. 불 때기가 마지막 단계로 무척 중요한데 어쩌다 한 함께하면서 2년을 보내자 한계가 느껴졌다. 작품을 할 것이냐, 학 번 하면 불의 세기라든지 그릇 놓는 위치라든지 하는 감각을 잃 교 일을 할 것이냐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조교생활을 접고 본격 어버리기 때문이죠. 몇 백 점 넣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한 한 걸음에 처가로 달려가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너무 깊숙이 들 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특히 덤벙이는 뭐니 뭐니 해도 분을 어떻 적으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보성에 가마까지 지었다. 두 점이라도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어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야겠노라고요. 게 그릇에 붙이는지가 핵심인데, 한 번에 붙이느냐, 두번에 붙이 그가 작업지로 보성을 택한 것은 완전히 우연. 2000년 가마를 짓 사기쟁이에게는 좋은 흙이 절대적이다. 요즘 송씨는 점토를 보성 식구들을 데려와 작업을 하니 마음이 새로웠다. 그해 10월에는 느냐, 혹은 생지에 붙이느냐 등 방식이 여러 가지입니다. 초벌구 기 위한 터를 찾아 합천 양산 문경 등 전국을 헤맸지만, 마음에 드 득량면 도촌리 옛 도요지 근처에서 가져다 쓴다. 도촌리 산 전체 일본 국보와 문화재가 된 조선사발에 우리 이름 찾아주기 사업 이를 한 다음 덤벙질을 할 때 분이 너무 두꺼우면 떨어져버립니 는 곳이 없던 차에 그해 늦여름 경남 하동의 쌍계사 계곡을 다녀 가 분청사기에 알맞은 맥반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산자락 등에 을 신청해 또다시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남 다. 적당한 두께로 한방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게 하는 것이 기 오는 길에 어둠 때문에 자동차가 골짜기에 빠진 것이 계기가 됐 서 풍화한 흙을 퍼다 쓰는 것이다. 유약도 도촌에서 캔물토에 소 들은 한 번도 어려운 기금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은 분명 행운이었 술입니다. 다. 다음날 차를 꺼내러 갔다 운무에 싸인 채 가지런히 산자락을 나무재와 꼬막 껍데기를 태워 만든 가루를 섞어 만든 것을 쓴다. 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행운은 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선조들 송씨가 흙과 씨름을 시작한 것은 1989년 군산대 산업디자인과 장식한 차밭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던 송씨는 무릎을 쳤다. 그 2000년 충분한 양을 만들어 놓고 숙성시켜 사용하고 있다. 하지 이 했던 덤벙이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게 된 것이었다. 에 입학해 도자공예를 전공하면서부터. 당시에는 도예가가 되기 래 바로 여기야! 만 백토는 수입품을 쓴다. 국내에서도 고령토(카올린)가 나오지 너무 벅찬 주제여서 2006년 들어 원로 도예 선배님들을 찾아 뵙 보다 도예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학부시절에는 고향과는 가까운 곳임에도 보성에 차밭이 그렇게 크고 많은줄 만 양도 얼마 안 되고 질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고 자문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하동에서 길성요를 하시는 원당 도자 조형에 매달렸는데, 어느 날 문득 일시적 흥미를 위한 작업 몰랐습니다. 밭이라고 하니 그저 채마밭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 길성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인데 3월쯤 찾아 뵈니 덤벙이를 열심히 보다 영원성이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오 렇게 아름다운 줄도 몰랐고요. 더구나 그 일이 있기 얼마전 일본 그릇 하나 만드는 데 한 달 걸려 하라는 격려와 함께 당신의 비법을 알려주시는 거예요. 랫동안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내린 에서 유명한 호조고비키가 바로 보성에서 만들어진 것 이라는 말 덤벙이는 분청사기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분청사기는 청자와 제가 그동안 해오던 것과 다른 방식이어서 집에 와서 해보니 과 결론이 바로 사발이었다. 사발이란 감상을 위해 모시는 죽은 작 을 들은 터여서 이곳이 적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달리 쉽게 만들어졌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산허리나 논바닥에 연 기가 막혔습니다. 작품을 만든 뒤 찻물을 부어 하루가 지나자 품 이 아니라 늘 일상에서 함께하는 행복의 도구 라는 생각에서 흙이 점질만 있으면 된다 이겁니다. 기와를 만들 때도 쓰죠. 차심이 들면서 꽃으로 피어나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였다. 감각 지키려 한 해 스물두 번 불 때기도 보성덤벙이가 유명한 것은 그 바탕색이 검기 때문이에요. 덤벙이 하지만 송씨가 원당 선생의 지도를 바탕으로 선조들의 기법을 온 일단 목표가 세워지자 대한민국에서 제일 훌륭한 스승을 모시는 송씨는 요즈음 보성차밭으로 유명한 봇재 자락에 살며 작업하고 가 만들어진 곳의 산 전체가 맥반석으로 이뤄져 있어요. 도촌리 전하게 되살리는 데는 1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것이 문제였다. 대상은 일찍이 조선사발에 뛰어들어 이미 명성이 있다. 고개 너머에서 재작년에 옮겨왔다. 작업은 찻사발 위주로 에는 지금도 맥반석 광산이 있어 침대도 만들고 그래요. 맥반석 무안덤벙이는 옹기와 같이 한번 소성하는 데 비해 보성덤벙이 자자한 문경의 도천 천한봉 선생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찾아가 매일 스무 점 정도씩 한다. 오늘 만든 것은 말려서 모레쯤 초벌구 에 철분이 많아 특히 검습니다. 보성 일대의 흙이 일반적으로 철 는 세 번 소성시킵니다. 무안덤벙이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인 가르침을 받자 해도 생뚱하게 여길 뿐 쉽사리 가르쳐줄 것 같지 이를 하고, 초벌구이가 끝난 것은 덤벙질하는 식이다. 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도촌리 것이 특히 많죠. 셈이죠. 그래서 보성덤벙이는 백자가 되고 싶어하는 분청사기라 않았다. 그래서 모교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위논문 준비를 구실 매일 60점씩은 만지는 셈이다. 그가 이같이 작업하는 것은 매일 송씨는 도자기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남다르게 했다. 보통 남이
54 104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05 만들어 놓은 것을 복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송씨는 그렇게 별로 일일이 보고 배워 그 분야의 최고의 장인이 되고, 어른이 돼 다. 하지만 장삿속으로 싸구려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몇백 년을 해왔음에도 못해내 서는 또다시 자식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런 과정을 통해 기술을 하지 않는다. 는 것을 보면 잘못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수했죠. 그런데 지금은 고작 몇 년 하고 장인입네 하는 판이니 조선사발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보성덤벙이를 주로 하는 이는 재현하고 싶은 작품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들여다보고 느낌부터 그런 최고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 없습니다. 다른 그릇에 비해 손도 몇 배 더 타는 데다 돈이 안되기 챙긴 뒤 그 느낌을 살려내는 방식을 택했다. 맨 처음 매달렸던 기 으로 보더라도 이런 대물림 시스템이 임진왜란 전까지 이어졌습 때문이죠. 다른 도자기들은 가마에서 나오는 순간 우선 예쁩니 자에몬 이도의 경우 한 달 동안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은 자유와 니다. 일본의 국보나 대명물이 된 것들의 대부분이 임란 이전 작 다. 첫 눈에 뻑 가죠. 그런데 덤벙이는 무덤덤한 것이 끄는 맛이 없 편안함이었다. 그래서 그 정도의 자유스러움을 주는 그릇을 만들 품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몇 백 년 동안 명품 어요. 그러니 누가 선뜻 비싼 돈을 내고 사겠어요? 려면 스스로 내 마음부터 자유스러워지고 편안해져야 되겠다고 조선사발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족탈불급인 것이 바로 덤벙이는 쓰면서 완성되는 도자기예요. 쓰는 사람의 공력에 따라 생각하고는 마음공부부터 시작했다. 그 때문이죠. 하물며 고작 몇 십 년밖에 안 된 우리나라로 서는 말 진화하죠. 기물이 약해 함부로 쓸 수도 없어요. 고수라야 볼줄 알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 할 것도 없습니다. 옛 작품을 흉내낼 수는 있을지언정 그 깊이와 고 사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극소수입니다. 니 사발이 자장면 그릇만해지기도 하고, 손자국이 남기도 했다. 맛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송씨는 앞으로도 계속 보성덤벙이를 할 생각이다. 우리 하지만 공부를 거듭하면서 이 또한 자의식이 들어간 작위( 作 爲 ) 의 조그만 사발이 다른 나라에서 국보나 문화재로 위해진다는 자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다시 여느 사발을 닮은 작품이 빚어 졌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그제야 칭찬이 쏟 선조들 솜씨에는 아직 못 미쳐 송씨는 조선사발, 그 중에서도 덤벙이는 자연을 닮았다 고 말한 체가 그로 하여금 사명감을 부추기는데다 그동안 여러 번 때 려 치우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 업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 송기진 씨의 보성요. 아졌다. 다. 옛 선조들은 주위에 있는 자연을 퍼다 그저 그릇을 만들었을 다. 2006년 광주에서 보성덤벙이연구발표전 을 할 때 다른 사람한 뿐, 이러저러한 그릇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테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고현 조기정 선생님(지난해 작고) 다. 그래서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으면서 간단히 베낄 수 없다 께서 오셨는데 부축한 제자에게 제 작품을 들어보라고 하시고 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이런 보물 을 막사발이라고 부르는 데 대 는 이 정도면 경지에 오른 것 이라고 말씀하셨대요. 고현 선생님 해 그는 분노한다. 은 도천 원당 선생님과 함께 제게는 대선배이자 큰 스승님으로 일본 전시 때였어요. 도쿄대 예술과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와 청자 연구의 선구자이십니다. 보면서 조선사람들은 참 무식하다. 조선사발의 가치를 모르고 막 지난 5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송씨의 작업장에 느닷없 사발로 썼다. 우리가 차를 하면서 그 가치를 발견해 국보로 만들 이 일본인 두 명이 한국인 안내인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40여 었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너희가 국 년 동안 고려다완 재현에 매달려온 도예가 다나카 사치로와 도쿄 보로 받드는 조선사발을 만든 사람들을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느 ( 東 京 )의 유명한 도자기 전문 갤러리인 구로다도엔( 黑 田 陶 院 )의 냐? 그런 수준의 작품이 나오려면 그만한 수준 속에서 나오는 것 구로다 구사오미 회장이었다. 작업장을 둘러 보던 다나카가 함박 인데 함부로 말하면 되는가? 다만 그것을 향유하는 층이 조선에 웃음을 짓더니 이내 엄지를 치켜세우며 코리아 넘버원 을 외치 서는 서민층이었고, 너희는 그런 도자기문화가 없었음에도 지배 자 안내인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의 도요지 답사차 내한 계층이 그것을 향유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것 아니냐? 그러고는 해 유명 요장들을 둘러보면서도 덤덤해하던 그들이었기 때문이 일본에서 제일 그릇을 잘 만드는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가토 다. 구로다도엔은 고비키 전문 컬렉터만 해도 수천 명을 관리하 도쿠로라는 이름을 대요. 그러면서 생전에 한 해에 딱 네 작품만 는 갤러리다. 파는데 작품 한 점에 1억원씩 받고 팔았다고 하기에 작품집을 보 하지만 송씨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보성덤벙이의 제작기법은 니 그 사람이 재현했다는 작품보다 내 작품이 더 낫더라고요. 그 100% 되찾아냈다고 자신하지만, 작품은 옛날 선조들 솜씨를 도 래서 나도 1억원씩 붙여버렸죠. 돈이 문제가 아니라 조선 도공의 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고백이다. 후예로서 자존심 때문에 그런것이었습니다. 송기진 씨의 보성요. 송씨는 이듬해 코엑스 전시에서도 사발 하나에 3000만원씩 가 조선원류PDF용 :51 PM 페이지174 격표를 붙였다. 덤벙이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 기법은 되나 최고의 미에는 한참 떨어집니다. 숙련된 기능이 떨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송 아무개의 작품은 터무니 없이 비 어지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분업과 조기교육에서 찾을 수 있습 싸다는 소문만 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지금껏 작품을 제대로 니다. 옛날에는 사기막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래 서 어려서부터 사기막에 들어가 최고의 장인들이 하는 것을 분야 팔아본 적이 없다. 팔려고 작품을 한 적도 없고, 파는데 익숙하지 도 않은 탓이다. 그러다 보니 작업은 물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많 송기진 씨가 잘 나온 작품을 뜯어보며 흐뭇해하고 있다.
55 三 田 송기진 작품평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07 덤벙분청사기는 자유로운 맛을 작품에서 느낄 수 있어야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것 같지만 난이도가 높은 제작기술이 요구되는 기법이라서 처음에는 누구든지 쉽게 입문하지만, 이것을 완성시키는 도예가는 극히 드문 도예기법입니다. 젊은 송기진 도예가가 보성덤벙이 재현을 완성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대견스러운 일입니 다. 무형문화재 陶 泉 천한봉 삼전의 이 사발은 경지에 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 故 古 現 조기정 도예가 송기진에 의하여 조선시대의 보성백토분장사발은 500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문화재청장 나선화 송기진은 보성덤벙이 가 업 이라고 했다. 그 그릇을 만나고, 만들게 되고, 대학 선생 자리를 포 기하게 되고, 가난 속에서도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된 업 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바빠 하루를 거의 보냈다 해도 나머지 짧은 시간이라도 빠짐없이 물레를 돌 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어서 습관이 되었다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도 닦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것이고, 그래서 실은 돈하고도 관계가 없다고도 하였다. 답답하고 어려울 때면 산천경계의 제신들에게 기원하고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가 그와 그의 식구들의 운명까지를 걸었기 때문에 보성덤벙이 는 그런 다정한 남도 의 흰 빛을 500년 만에 다시 송기진에게 나타내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 의사, 고도자 연구가, 미학 칼럼리스트 나해철 송기진의 고비끼는 한국 제일이다. 일본 원로 고려다완 도예가 DANAKA SAZIRO 지금까지 인간문화재라고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여러 번 만나봤지만 송선생님의 그릇처 럼 편안함을 주지는 못했다. 송기진 선생님은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작가이다. 한 일 비교민속학회 일본상임이사 HIGUCHI ATUSHI 그가 처음 조선사발에서 발견했던 [자유]라는 명제를 풀기위해 사발을 보는 관점에 있어 즉물 적, 물리적 시각에서 본질을 통찰하는 마음의 시각이 각성되기까지 간난의 시간을 보냈음에 틀림없다. 차도구평론가, 차문화공예가 김동현 소박한 자태로 송기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보성덤벙이는 선조 도공들의 혼을 일깨운 의미 있는 작업의 결과일 것이다. 차도구평론가, 차문화공예가 신수길 차인들은 다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매우 예민한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송기진 선생님의 다기는 편안한 자연스럼움 속에 섬세한 기능을 심어 놓아, 차인들을 배려하는 작가의 천재성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중국 다도가 老 古
56 三 田 宋 基 珍 作 品 评 价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09 从 作 品 中 能 够 品 出 自 由 自 在 味 道 的 浸 泡 粉 妆 粉 青 沙 器, 才 可 以 称 为 名 品 它 看 起 来 比 较 简 单, 但 是 属 于 需 要 高 难 度 的 制 作 技 术 的 技 法 因 此, 属 于 一 种 一 开 始 谁 都 可 以 轻 松 入 门, 却 很 少 有 陶 艺 家 能 够 完 成 这 种 作 品 的 陶 艺 技 法 年 轻 的 陶 艺 家 宋 基 珍 成 功 再 现 了 宝 城 粉 青 沙 器, 这 真 的 是 一 件 令 人 震 惊 和 骄 傲 的 事 情 无 形 文 化 资 产 陶 泉 千 汉 凤 宋 基 珍 的 这 个 碗, 可 以 说 是 一 个 达 到 一 定 境 界 的 作 品 无 形 文 化 资 产 故 古 现 曹 基 正 朝 鲜 时 代 的 宝 城 白 土 粉 妆 碗 在 经 过 500 年 后, 让 陶 艺 家 宋 基 珍 给 复 活 了 宋 基 珍 说, 宝 城 粉 青 沙 器 是 业 报 是 让 他 遇 见 了 那 器 皿, 从 事 制 作, 放 弃 大 学 老 师 的 职 位, 即 便 在 穷 困 中 也 不 能 摆 脱 的 业 报 每 天, 宋 基 珍 为 了 别 的 事 情 忙 乎 一 天 了, 也 要 找 个 空 隙 转 动 辘 轳 车 对 于 他 来 讲, 这 是 比 任 何 都 重 要 的 事 情, 如 今, 也 已 成 为 习 惯 他 说, 制 作 器 皿 就 是 在 修 炼, 就 是 点 亮 自 己 心 灵 的 过 程 因 此, 其 实 与 金 钱 也 没 有 什 么 关 系 他 说, 只 是 在 感 觉 到 烦 闷 和 困 难 的 时 候, 向 山 川 景 磎 的 诸 神 祈 愿 和 祈 祷 而 已 我 认 为, 之 所 以 500 年 后 宝 城 粉 青 沙 器 把 那 种 柔 情 的 南 道 白 光, 重 新 展 现 给 了 宋 基 珍, 是 因 为 他 不 仅 将 自 己 也 将 他 的 家 人 的 命 运 全 都 赌 上 了 诗 人 医 生 古 陶 瓷 研 究 家 专 栏 作 家 Na, Hae-Churl 文 化 财 厅 长 罗 善 华 宋 基 珍 的 粉 青 沙 器 是 韩 国 第 一 日 本 元 老 高 丽 茶 碗 陶 艺 家 DANAKA SAZIRO 到 目 前 为 止, 见 到 了 不 少 被 称 为 人 间 文 化 财 的 作 者 们 的 作 品, 但 是 没 有 像 宋 先 生 的 器 皿, 给 人 以 舒 适 的 感 觉 宋 基 珍 先 生 是 现 代 韩 国 陶 瓷 作 家 的 代 表 日 韩 民 俗 比 较 协 会 日 本 常 任 董 事 HIGUCHI ATUSHI 从 他 第 一 次 在 朝 鲜 碗 里 发 现 自 由, 然 后 通 过 直 观 的 物 理 视 角, 再 到 洞 察 本 质 的 心 灵 视 角, 从 而 理 解 了 真 正 的 自 由, 在 这 样 的 视 角 转 变 过 程 中, 他 应 该 度 过 了 很 多 艰 难 的 时 光 茶 具 评 论 家, 茶 文 化 工 艺 家 Kim, Dong-Hyun 以 朴 素 的 姿 态 得 以 重 生 的 宝 城 粉 青 沙 器, 是 宋 基 珍 通 过 不 懈 努 力 将 祖 先 陶 工 们 灵 魂 唤 醒 的 结 果 茶 具 评 论 家, 茶 文 化 工 艺 家 Shin, Su-Gil 饮 茶 人 对 茶 器 的 使 用 很 有 感 情 宋 基 珍 先 生 的 茶 器 不 仅 具 有 出 色 的 功 能, 还 蕴 含 着 平 和 安 然 的 自 然 美 由 此, 可 以 窥 见 作 家 理 解 饮 茶 人 感 受 的 天 赋 与 才 能 中 国 茶 道 家 老 古
57 三 田 송기진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11 전남 벌교 生 1989년 도예 入 門, 1998년 조선사발의 세계 入 門 미술학석사 _논문[한국 전통 다완의 연구] -천한봉의 다완을 중심으로- 무형문화재 陶 泉 천한봉 선생님 사사, 무형문화재 故 古 現 조기정 선생님, 길성요 길성선생님 지도 개인전 18회 개최(서울, 부산, 일본 동경, 중국 북경) 수상경력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전라남도 최우수상 수상, 전국 장려상 수상 전국공모무등미술대전 우수상 2회, 특선 2회 수상 국제차도구디자인공모전 특별상 수상 외 다수 초대전 주일한국문화원 [ 韓, 日 작도교류 초대전] 2003, 2011 (일본 동경) 주불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전 2004 (프랑스 파리) Italy Karara museum 초대전 2004 (이탈리아) 고려다완 도예가 송기진 찻사발특별전 2004(범어사 성보박물관) 한국, 일본 도예 교류 초대전 2005 (일본 동경) 韓 日 전통공예품 공동전시회 초대전 2005 (일본) 대한민국 찻사발 특별전 2010 (월정사 성보박물관) 한-중-일 화장토커뮤니케이션 (중국 북경, 한국 보성) 동아시아 화장토도자 작가 3인전 2013 (중국 북경) 국제화장토도자교류전2014(한국 보성) 한-중 전통 화장토도자 전승을 위한 런슈앙허-송기진 展 2014(중국 북경) 韓 - 中 화장토도자 교류전 2015(베이징) 韓 - 日 작도교류초대전 2015(나고야성 박물관) 외 다수 대외활동 [송기진의 일본국보가 된 조선사발 연구] 2004 [일본국보와 문화재가 된 조선사발에 우리이름 찾아주기 조사연구] 2006 [보성 분청찻사발의 재현 및 확산을 위한 한 일 심포지엄] 2007 [세계적인 명품 보성분청찻사발의 복원 및 확산에 대한 컨설팅] 2007 [보성 정흥리, 도촌리 분청사기요지 지표조사] 2007 [세계적인 명품 차도구 보성덤벙이 재현사업] 2007 [세계적인 명품 찻사발 보성덤벙이 한국, 일본 순회전] 2009 [한 중 일 덤벙도자 학술대회 개최] 2010 [조선 분청사기의 원류를 찾아서] 조사연구 2011 [한-중-일 화장토 커뮤니케이션] 기획 [조선 후기 민요가마 복원 연구] 2013 [보성덤벙이 도요지 발굴조사] 자문위원 역임 2014 [국제화장토도자교류전] 기획 2014 한-중 화장토도자문화 교류 및 중국 고요지 답사 기획(하북성 자주요, 하남성 여요,균요) 2015 주요 언론매체 보도 조선일보 초벌분장분청은 우리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중앙일보 시인(나해철)이 떠나는 전라도 여행, 송기진 보성덤벙이 3회 연재- 월간중앙 호조고비끼 재현을 위한 39세 도공의 10년 집념- 이만훈 편집위원 취재, 최재영 사진국장 사진 -2009년 12월호 8P. 전남일보 기획특집 보성덤벙이 송기진- 전남매일 문화도시 예술의 별 도예가 송기진 - 월간 전라도닷컴 기획특집 보성덤벙이 광주매일(전면) 新 호남가 보성요의 송기진, 無 기교 소박미의 극치 보성덤벙이 재현 혼신- 남도일보(전면) 명인,명장을 찾아서, 보성요 송기진, 보성덤벙이 재현은 나의 숙명 외 다수 일본 KNTV 뉴스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한 일작도교류초대전, 한국 송기진 KBS 한국재발견 EBS 한국기행 세월이 만든 도자기 보성덤벙이 ARIRANG TV The age-old craft of BOSEONG slip-wear" MBC 생방송 화제집중 -조선도공의 숨결- YTN 최고의 멋 보성덤벙그릇- KCTV 덤벙이리포트- 특허 및 상표등록 특허 제 호 덤벙질을 이용한 분청사기 제조방법 상표등록 제 호 덤벙이 작품소장처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일본 동경)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중국 북경) 부산 범어사 성보박물관 월정사 성보박물관 KYO갤러리(일본 동경) 호문화랑(일본 동경) 러시아 사할린주립미술박물관 현재 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 이사장, 보성요( 寶 城 窯 ) 대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 , , [email protected]
58 三 田 宋 基 珍 초벌분장분청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도자제작기법 113 韩 国 全 罗 南 道 筏 桥 出 生 1989 年 入 门 陶 艺, 1998 年 入 门 朝 鲜 碗 的 世 界 美 术 学 硕 士 ( 论 文 韩 国 传 统 茶 碗 的 研 究 - 以 千 汉 凤 的 茶 碗 为 中 心 ) 举 办 个 人 展 览 会 17 次 ( 韩 国 首 尔 釜 山, 中 国 北 京, 日 本 东 京 等 ) 获 奖 经 历 获 得 全 国 工 艺 品 竞 进 大 会 全 罗 南 道 最 优 秀 奖, 获 得 全 国 奖 励 奖 获 得 全 国 公 募 无 等 美 术 大 展 优 秀 奖 2 次, 获 得 2 次 特 选 获 得 国 际 茶 道 具 design 公 募 展 特 别 奖 以 及 其 他 各 种 奖 展 览 经 历 驻 日 韩 国 文 化 院 [ 韩, 日 作 陶 交 流 邀 请 展 ] 年 ( 日 本 东 京 ) 驻 法 韩 国 大 使 馆 韩 国 文 化 院 邀 请 展 2004 年 ( 法 国 巴 黎 ) Italy Karara museum 邀 请 展 2004 年 ( 意 大 利 ) 高 丽 茶 碗 陶 艺 家 宋 基 珍 茶 碗 特 别 展 2004 年 ( 梵 语 寺 圣 宝 博 物 馆 ) 韩 国 日 本 陶 艺 交 流 邀 请 展 2005 年 ( 日 本 东 京 ) 韩 日 传 统 工 艺 品 共 同 展 示 会 邀 请 展 2005 年 ( 日 本 ) 韩 国 茶 碗 特 别 展 2010 年 ( 月 精 寺 圣 宝 博 物 馆 ) 中 日 韩 化 妆 土 交 流 年 ( 中 国 北 京 韩 国 宝 城 ) 东 亚 化 妆 土 陶 瓷 作 者 3 人 展 2013 年 ( 中 国 北 京 ) 国 际 化 妆 土 陶 瓷 交 流 展 ( 韩 国 宝 城 ) 2014 年 为 了 传 承 中 韩 传 统 化 妆 土 陶 瓷 的 任 双 合 - 宋 基 珍 展 ( 中 国 北 京 ) 以 及 其 他 对 外 活 动 [ 宋 基 珍 对 日 本 国 宝 中 朝 鲜 碗 的 研 究 ] 2004 年 [ 找 寻 日 本 国 宝 和 文 物 中 朝 鲜 碗 的 韩 文 名 字 的 调 查 研 究 ] 2006 年 [ 再 现 及 推 广 宝 城 粉 青 茶 碗 的 韩 日 专 题 研 讨 会 ] 2007 年 [ 关 于 世 界 级 名 品 宝 城 粉 青 茶 碗 的 复 原 及 推 广 的 咨 询 ] 2007 年 [ 宝 城 粉 青 沙 器 窑 址 地 标 调 查 ] 2007 年 [ 世 界 级 名 品 茶 具 宝 城 粉 青 沙 器 再 现 工 作 ] 2007 年 [ 世 界 级 名 品 茶 碗 宝 城 粉 青 沙 器 韩 国 日 本 巡 回 展 ] 2009 年 [ 举 办 中 日 韩 粉 青 沙 器 学 术 大 会 ] 2010 年 [ 寻 找 朝 鲜 粉 青 沙 器 的 源 流 ] 调 查 研 究 2011 年 企 划 [ 中 日 韩 化 妆 土 交 流 ] 年 [ 朝 鲜 时 代 后 期 民 窑 复 原 研 究 ] 2013 年 担 任 [ 宝 城 粉 青 沙 器 陶 窑 址 发 掘 调 查 ] 咨 询 委 员 2014 年 企 划 [ 国 际 化 妆 土 陶 瓷 交 流 展 ] 2014 年 媒 体 报 道 朝 鲜 日 报 - 头 遍 浸 泡 粉 妆 陶 瓷 制 作 技 法 是 我 们 独 创 的 陶 瓷 制 作 技 法 - 中 央 日 报 - 诗 人 的 ( 罗 海 哲 ) 全 罗 道 旅 行 宋 基 珍 宝 城 粉 青 沙 器 3 期 连 载 - 月 刊 中 央 39 岁 陶 工 为 了 再 现 宝 城 粉 青 沙 器 的 十 年 执 着 年 12 月 号 8P. 全 南 日 报 特 别 企 划 - 宝 城 粉 青 沙 器 和 宋 基 珍 - 全 南 每 日 文 化 都 市 艺 术 之 星 陶 艺 家 宋 基 珍 - 月 刊 全 罗 道 网 企 划 特 辑 - 宝 城 粉 青 沙 器 光 州 每 日 ( 全 版 ) - 新 湖 南 歌 - 宝 城 窑 的 宋 基 珍, 无 技 巧, 再 现 质 朴 美 的 极 致 宝 城 粉 青 沙 器 的 精 华 - 南 道 日 报 ( 全 版 ) 探 访 名 人 名 匠, 宝 城 窑 宋 基 珍, 再 现 宝 城 粉 青 沙 器 是 我 的 宿 命 等 日 本 KNTV 新 闻 驻 日 韩 国 大 使 馆 韩 国 文 化 院 韩 日 制 陶 交 流 招 待 展, 韩 国 宋 基 珍 KBS 韩 国 再 发 现 EBS 韩 国 纪 行 岁 月 制 造 的 陶 器 - 宝 城 粉 青 沙 器 ARIRANG TV The age-old craft of BOSEONG slip-wear" MBC 直 播 话 题 焦 点 朝 鲜 陶 工 的 气 息 - YTN 最 高 层 次 的 美 宝 城 粉 青 沙 器 - KCTV 粉 青 沙 器 Report- 作 品 收 藏 驻 日 韩 国 大 使 馆 韩 国 文 化 院 ( 日 本 东 京 ) 驻 中 韩 国 大 使 馆 韩 国 文 化 院 ( 中 国 北 京 ) 釜 山 梵 语 寺 圣 宝 博 物 馆 月 精 寺 圣 宝 博 物 馆 KYO 画 廊 ( 日 本 东 京 ) 好 门 画 廊 ( 日 本 东 京 ) 目 前 任 宝 城 粉 青 沙 器 文 化 复 原 研 究 院 董 事 长, 宝 城 窑 代 表 全 南 寶 城 郡 會 川 面 聆 川 理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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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발행일 발행처 사진 도자작명 축시(좋은날) 도자기수리 디자인 2016년 2월 1일 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 작품사진(16p~36p) : 사진가 조성진 인물, 작품, 전경사진 : 사진가 최재영 (중앙일보, 월간중앙 사진국장 역임) 산포( 山 浦 ) 나해철 (오월시동인, 의사) 와온( 臥 溫 ) 곽재구(오월시 동인, 교수) 흑무 지헌영 디자인테라 자료집에 수록된 도판과 학술자료는 출처를 알리고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자료집 발간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보성군 관계 공무원 여러분과 보성덤벙이문화를 아껴주신 나선화 문화재청장님, 이용부 보성군수님, 김판선 보성군의회 의장 등 여러 선배, 후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들의 앞길에 안녕과 번영이 함께하길 기원드립니다. 三 田 송기진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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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 at Monitoring Post out of 20 Km Zone of Tokyo Electric Power Co., Inc. Fukushima Dai-ichi NPP(18:00 July 29, 2011)(Chinese/Korean)
碘 岛 监 结 30km 20km 10km 碘 达 碘 测 时 提 高 后 的 上 限 [250,000 微 西 弗 / 年 ] [10,000 微 西 弗 / 年 ] 巴 西 瓜 拉 帕 里 的 辐 射 (1 年 来 自 地 面 等 ) > 辐 射 量 ( 微 西 弗 ) 250,000 100,000 50,000 10,000 注 : 本 资 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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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2. 9. 13. Story 1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2 STORY STORY 12 호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2 Korean Wave Story 2012 (2012년 1/4분기) 12 호 12 호 2012. 4. 9. 2 3 4 5 轩 辕 剑 之 天 之 痕 我 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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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PowerPoint - 写作1 [兼容模式]
TOPIK 中 高 级 写 作 1 1 写 作 备 考 策 略 2 造 句 题 3 图 表 小 作 文 世 宗 韩 语 网 校 金 龙 一 2015 年 9 月 19 日 考 试 策 略 : 中 级 大 方 向 : 重 点 在 中 级 题 ( 前 一 半 ) 重 点 放 在 听 力 和 阅 读, 争 取 答 对 30 道 题 写 作 重 点 放 在 造 句 和 小 作 文, 但 大 作 文 也 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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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분 38~45 번 1. 원인, 목적 잘 알기 因 为 + 원인 为 了 + 목적 2. 수치 관련 문제 最 高 (최고), 最 低 (최저) 체크하며 듣기 38-40. 中 国 古 时 候 有 个 非 常 有 名 的 人, 叫 孟 子 在 孟 子 三 岁 的 时 候, 他 的 父 亲 就 去 世 了 为 了 让 儿 子 能 够 成 为 一 个 有 知 识 有 文 化 的 人, 母 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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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3. 1. 30. Story 2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3 STORY STORY 12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3 Korean Wave Story 2013 (2012년 1/4분기) 12 12 2012. 4. 9. 2 3 4 5 6 乱 世 佳 人 花 絮 合 集 梦 回 唐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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圳 青 岛 邮 电 与 () 30.0% 514.38 25.0% 444.84 35% 30% 21.0% 308.51 265.00 255.04 243.01 15.6% 15.0% 25% 20% 15% 9.0% 24.38 31.69 25.57 31.96 85.84 98.72 10% 5% 0% 2003 2004 众 广 视 统 规 资 广 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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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히 묻고 가까이 실천하는 선진 산림과학 3.0 시대를 열겠습니다! 01 03 05 05 06 07 08 08 10 10 11 임업인에게는 희망을, 국민에게는 행복을 带 NIFoS 1 중국 닝샤회족자치구() 중국 무슬림 인구 주요 분포도 중국 닝샤의 회족 자치구 3 중국 무슬림 인구 Top 11 지역 순위 지역( 省 ) 인구(만)
연구보고서
방송문화진흥회 귀중 2015년 방송연구지원사업 최종보고서 한류 콘텐츠의 중국 수출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K-Drama와 K-Pop을 중심으로 연구자: 이지혜(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유승엽(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2015. 11. - 1 - 제 1 장 서 론 제 1 절 연구목적 및 필요성 인터넷의 확산과 방송통신 융복합화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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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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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제 정 1973. 2. 28 개 정 2010. 3. 19 定 款 삼성전기주식회사 http://www.sem.samsung.com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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像 氣 名 刹 希 望 曰 術 技 藝 道 技 年 月 日 0 5, 1 2 3 4 5 45,000 40,000 39,534 35,000 30,000
论 文 摘 要 1949 年 10 月, 中 华 人 民 共 和 国 成 立 后 不 久, 宣 布 同 朝 鲜 民 主 主 义 人 民 共 和 国 建 立 外 交 关 系 早 在 两 国 政 权 建 立 之 前, 中 国 共 产 党 同 朝 鲜 共 产 主 义 者 共 同 经 历 了 抗 日 战 争
谢 辞 走 的 最 快 的 总 是 时 间, 来 不 及 感 叹 转 眼 间, 研 究 生 生 活 已 近 尾 声, 两 年 半 的 努 力 与 付 出, 随 着 本 次 论 文 的 完 成, 将 要 划 下 句 号 作 为 韩 语 系 的 研 究 生 的 这 两 年 半 时 间 里, 我 学 习 并 收 获 到 很 多, 因 而 也 有 太 多 的 人 想 要 感 谢 首 先 我 要 感 谢 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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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緊 張 冷 戰 體 制 災 難 頻 發 包 括 安 保 復 舊 地 震 人 類 史 大 軍 雷 管 核 禁 忌 對 韓 公 約 ㆍ 大 登 壇 : : : 浮 上 動 因 大 選 前 者 : : : 軸 : : : 對 對 對 對 對 戰 戰 利 害 腹 案 恐 喝 前 述 長 波 大 産 苦 逆 說 利 害 大 選 大 戰 略 豫 斷 後 者 惡 不 在 : : 對 : 軟 崩 壞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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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IntErnatIOnal BOOk FaIr SIBF 2016 06. 15 06. 19 COEX hall a culture Focus France spotlight country Italy DIgItal book FaIr korea 2016 2016 b1 www.sibf.or.kr Facebook facebook.com/seoulbookfest Instagram
참고자료
(Invited Paper) 위 평(Jiu Wei Ping) ( 목 차 (Contents) 길림성 사회과학원 교수) 외국인근로자 정책 및 중한노동합작 도입-한국 인력수출에 대한 중국연변조선 족자치주의 예- 5 韩 国 引 进 外 籍 劳 工 政 策 与 中 韩 劳 务 合 作 - 中 国 吉 林 省 社 会 科 学 院 周 伟 萍 특별기고문(Special Paper)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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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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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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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哈 大 铁 路 客 运 专 线 (하얼빈-대련고속철도) 概 况 哈 大 铁 路 客 运 专 线 是 国 家 十 一 五 规 划 的 重 点 建 设 工 程 项 目 之 一, 纳 入 国 家 中 长 期 铁 路 网 规 划, 国 家 发 改 委 于 2005 年 末 批 复 立 项 (하다->하얼빈-대련, 철도 여객전용선은 국가 십일오 계획의 중점 건설공정항 목중 하나로서, 국가 중장기철도망계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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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 중 국제학술대회 전라북도와 강소성의 경제협력 방안 일 시 : 2006. 11. 16 (목) 10:00~17:40 장 소 : 전라북도청 3층 중회의실 주 최 : 전북발전연구원, 강소성사회과학원 후 원 : 전라북도, 강소성 모시는 글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단순한 이웃나라가 아니라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전북의 미래를 열어 갈 가장 중요한 협력파트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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关 于 中 韩 双 边 贸 易 协 定 的 思 考 * 王 传 丽 一 二 三 四 问 题 的 提 出 < 目 录 > 目 前 中 韩 双 边 贸 易 中 的 主 要 问 题 中 韩 自 由 贸 易 的 制 度 性 合 作 结 束 语 关 键 词 : 双 边 贸 易, 自 由 贸 易 协 定, 韩 国 -美 国 自 由 贸 易 协 定, 中 国 -新 西 兰 自 由 贸 易 协 定 一 问 题 的
- <궁쇄연성>은 <매화낙인>의 촬영권 침해 여부 법원의 판단 베이징고급인민법원은 치옹야오 작가와 위정 작가의 각색권 및 편집저작권 침해 사건에 대해, 원심에 따라 궁쇄연성, 宫 锁 连 城 가 매화낙인, 梅 花 烙 의 각색권과 편집저작권을 침해를 했다고 판시함. 위정
저작권 동향 2016년 제7호 2016. 5. 17 [중국] 북경시 법원, 2015년도 지식재산권 10대 주요 판례와 10대 신 판례를 발표 백지연 * 북경시 법원에서 발표한 지식재산권 10대 주요 판례 중 저작권 관련 판례는 4 건, 10대 신 판례 중 저작권 관련 판례는 2건 이였음. 10대 중요 판례 중 저작권 관련 판례로는 1. 위정과 치옹야오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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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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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line for Applicants - KNU Exchange Program - Contents Page * Instruction for Filling-out * Why KNU and Chuncheon City? 1. KNU Chuncheon Campus 2. Field of Study and Registration of classes 3. Dorm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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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愿 景 和 韩 中 关 系 的 未 来 2013.11.20 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무궁화홀 2013.11.20 星 期 三 首 尔 大 学 湖 岩 教 授 会 馆 주최 主 办 후원 协 办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愿 景 和 韩 中 关 系 的 未 来 2013.11.20 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무궁화홀 2013.11.20 星 期 三 首 尔 大 学 湖 岩 教 授 会 馆 주최 主 办 후원 协 办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愿 景 和 韩 中 关 系 的 未 来 2013.11.20 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TOPIK 中级词汇:动词1
TOPIK 中 级 词 汇 : 动 词 1 1 짓다 做, 盖, 配, 露 出 이 집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이 직접 지은 집이다. ( 这 个 房 子 是 我 小 时 候 我 父 母 自 己 盖 的 房 子 ) 눈 오는 날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어 봅시다. ( 以 下 雪 天 为 题 目 写 文 章 ) 밥을 짓다. 做 饭 집을 짓다. 盖 房 子 약을 짓다. 配 药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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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1 前 言 現 行 考 銓 制 度 一 現 行 考 銓 制 度 對 人 事 行 政 的 重 要 性 : 強 烈 建 議 考 人 事 行 政 的 同 學 們, 一 定 要 精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熟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的 好 處, 可 以 從 以 下 幾 個 角 度 來 分 析 : 相 對 重 要 程 度 高 : 現 行 考 銓 制 度 在 人 事 行 政 三 個 主 要 等
우리의 어언대 북경어언대학교는 교육부 산하의 대학교로서, 중국 에서 유일하게 중국어 국제 교육 및 외국인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와 중화문화 교육을 주요 과업으로 하는 글로벌 대학교이다. 소위 리틀 연합국 으로 불리 는 어언대는 언어 교육과 연구를 특색으로 하는 우수
Beijing Language And Culture University 북경어언대학교 입학 안내 우리의 어언대 북경어언대학교는 교육부 산하의 대학교로서, 중국 에서 유일하게 중국어 국제 교육 및 외국인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와 중화문화 교육을 주요 과업으로 하는 글로벌 대학교이다. 소위 리틀 연합국 으로 불리 는 어언대는 언어 교육과 연구를 특색으로 하는
목록 중국 3D프린터 시장동향보고서 시장 현황 업종발전 현황 최근 정부정책 동향 미래발전 추세 대표생산품 및 가격 P3~P8 P3~P5 P6 P7 P8 수입 현황 수입 현황 수입법규 및 관세 P9~P10 P9 P10 기업 현황 중국 3D프린터 주요생산기업 현황 2014
INSIGHT CHINA by KITA Shanghai New Energy Vehicles In China Focus 중국 3D프린터 시장동향보고서 May 2015 Vol.05 목록 중국 3D프린터 시장동향보고서 시장 현황 업종발전 현황 최근 정부정책 동향 미래발전 추세 대표생산품 및 가격 P3~P8 P3~P5 P6 P7 P8 수입 현황 수입 현황 수입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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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2002 年 2 月 昌 原 大 學 校 大 學 院 音 樂 科 安 明 基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Sonata for B-flat
Installation Instructions NX70/700 A/D Conversion Module Catalog Number(s): NX-AI8V / AI8C, 2002-NX70-AI8V / AI4V / AI8C / AI4C Language Page English 3 한국어 19 中 文 35 English Contents Important User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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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04. 12 2004. 11 25 26 2004. 12 % 50 40 30 20 10 0 華 東 華 北 中 南 西 南 東 北 西 北 전 체 중 대 형 차 중 형 차 소 형 차 경 차 2004. 11 27 帕 28 2004. 12 2004. 11 29 30 2004. 12 2004. 11 31 32 2004. 12 2004. 11 33 34 2004.
PowerPoint 프레젠테이션
[ 첨부 2] 공자장학금지원학교리스트 Host Institutions for Confucius Institute Scholarship (the Regular Program,2017) 1.2017 년장학금대학별프로젝트계획및공자학원 ( 수업 ) 운영내용 (2017 Enrollment Plan drafted by the CIS Host Institution and
Microsoft PowerPoint - KITA行?快?-04月(新能源汽?)_20150430(4).pptx
INSIGHT CHINA by KITA Shanghai New Energy Vehicles In China Focus 중국 신에너지자동차 시장동향보고서 April 2015 Vol.04 목록 중국 신에너지자동차 시장동향보고서 시장 현황 8 업종발전 현황 8 미래발전 추세 P3~P6 P3~P5 P6 정책 및 법규 8 최근 정부정책 동향 8 지방정부 정책 및 계획
Microsoft Word - Audio Commentary-09D_raw_b.doc
DVD Limited Edition Back to Last page Transcribed by mirager. Translation from Korean to English by teether (Yesol). Translation from English to Chinese by junhee ( 凖 姬 字 JUN 团 ). Translation 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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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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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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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야생동물자원의 보전 및 복원을 위한 한 중 공동 심포지엄 프 로 시 딩 편집 책임 : 이 항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박인주 (흑룡강성야생동물연구소) 편집 실무 : 김백준/홍윤지/이무영/박한찬 그래픽 및 교정 : 김영준/이지은/황주선/민미숙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주최
야생동물자원의 보전 및 복원을 위한 한 중 공동 심포지엄 프 로 시 딩 편집 책임 : 이 항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박인주 (흑룡강성야생동물연구소) 편집 실무 : 김백준/홍윤지/이무영/박한찬 그래픽 및 교정 : 김영준/이지은/황주선/민미숙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주최 : 국립공원관리공단 서울대학교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중국 흑룡강성야생동물연구소 주관 : 서울대학교
57 기획 중국의 도시정책 동향 우리나라에 미치는 중국발 대기오염의 영향도 심각한 상황으로, 중국발 미세먼 지 또는 황사를 일컫는 황색 테러 와 같은 용어가 생활에서 일상화된 지 이미 오 래다. 중국발 대기오염의 주원인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발생 원인이 각기 다르지 만
세계와 도시 기획 56 중국발 대기오염 대응협력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 강택구 부연구위원 [email protected]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 01 중국 대기오염의 심각한 피해 1 겨울철마다 중국 대도시의 대기오염 농도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심각 한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11월에는 중국 베이징( 北 京 ) 도심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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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5854 Print ISSN 2289-0009 online DIGITAL POST KOREA POST MAGAZINE 2016. APRIL VOL. 687 04 DIGITAL POST 2016. 4 AprilVOL. 687 04 08 04 08 10 13 13 14 16 16 28 34 46 22 28 34 38 42 46 50 54 56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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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수업내용 1 2 도자기란 무엇인가 도자기의 시대적 변천 2
제12강 도자기(陶磁器) 문화의 이해 1 수업내용 1 2 도자기란 무엇인가 도자기의 시대적 변천 2 학 습 목 표 우리의 문화상품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 시대의 백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도자기란 도기( 陶 器 )와 자기( 磁 器 )를 총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미술품들은 주변 국가와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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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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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본 요강은 한국어로 제작되어 영문 및 중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해당 입학 요강과 관련하여 의미상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어가 가장 우선시 됩니다. 2016학년도 2학기 외국인 학부 신 편입생 입학전형 KYUNG HEE UNIVERSITY AT A GLANCE 02 Why Kyung Hee? 03 모집단위 04 입학절차 및 방법 06 지원자격 07 제출서류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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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6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6 www.fsb.or.kr 20163 + 4 Contents 20163 + 4 vol.126 www.fsb.or.kr 26 02 08 30 SB Theme Talk 002 004 006 SB Issue 008 012 014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행사일정 및 목차 JUNE 9(Sun), 2013 6월 9일(일) Lakai Sandpine Resort, 1F Lakai Ballroom /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1층 라카이볼룸 14:00 Opening Ceremony l 개회식 Opening Address
행사일정 및 목차 JUNE 9(Sun), 2013 6월 9일(일) Lakai Sandpine Resort, 1F Lakai Ballroom /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1층 라카이볼룸 14:00 Opening Ceremony l 개회식 Opening Address 개회사 06 KIM, Jong-min President of Research Institute
041~084 ¹®È�Çö»óÀбâ
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40043333.hwp
1 2 3 4 5 128.491 156.559 12 23 34 45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은 설악산과 금강산 관광연계 개발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귀하께서 해주신 답변은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가오는 21세기 한국관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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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 1 중국의 무협영화, 그 動과 靜의 인문주의 Session 1-1 시대와 호흡하는 중국의 무협영화 : 를 통해 본 중국무협영화의 변화 Session 1-2 한중 무협의 문화적 비교 Session 1-3 무협소설은 어떻게 무협영화가 되었는가 SESSION 1 중국의 무협영화, 그 動 과 靜 의 인문주의 (동서대학교 공자아카데미, 중국영화포럼)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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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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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ISSN:1674-974X CN11-5962/C 孔 子 学 院 总 第 26 期 2014 年 9 月 공자아카데미 제26호 2014년 9월 공자아카데미 공자아카데미 제26호 2014년 9월 1 孔 子 学 院 总 第 26 期 2014 年 9 月 공자아카데미 제26호 2014년 9월 공자아카데미 공 자 아 카 데 미 9/2014 26期 中 华 人 民 共 和 国 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