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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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간사 동북아시아 지역은 예부터 문화와 사상 그리고 문자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때 로는 서로 역사적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오랜 교류를 통한 선린우호의 관계가 지금 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문화적 자부심과 정치적인 이유로 자기 나라의 역사 와 문화를 앞세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상대방의 역사를 훼손하고 민족적 자존심까 지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역사 갈등 등이 그 예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06년 9월 동북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인접 국가의 역사침탈과 왜곡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출범하였습니다. 우리 재단은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하여 종합적, 체계적으로 접근함으로 써 깊은 연구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바람직한 정책안을 만들어 내는 역할과 기능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립 이후 일본의 독도 역사왜곡에 효과적 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독도관련 시민활동가를 육성하고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도모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 동북아역사재단은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독도 역 사기행, 독도관련 현안문제 논의를 위한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자발적이고 건전한 독 도 시민단체 육성 및 활성화 도모를 위한 시민단체 등에 대한 지원 사업을 추진해 왔 습니다. 우리 재단은 이러한 사업들을 통하여 일본의 행태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체계적 대응을 도모하고 기존의 고답적 대응방안에서 벗어나서 민관협력에 기초한 독 도관련 대응능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시민협력사업의 결과물을 출간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시 민사회 활동을 추진하면서 독도와 관련된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대를 위해 성실히 그 역할을 다해 오신 시민활동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동북 아역사재단은 영유권 공고화를 위해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동북아시아의 영토 영해 연구 및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발간사 3

4 이 성과물이 독도관련 시민사회의 새로운 활동영역을 계발하고, 나아가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우리의 영유권 공고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2008년 3월 4 발간사

5 차 례 제1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7 Ⅰ. 사업내용 / 9 Ⅱ. 독도역사기행 / 9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 11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 11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 11 제2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3 Ⅰ. 행사내용 / 15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 20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 25 제3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3 Ⅰ. 행사내용 / 45 Ⅱ. 19세기 말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 49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 67 Ⅳ. 인터뷰와 언론보도 / 79 제4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1 Ⅰ. 행사내용 / 83 Ⅱ. 울릉도 지역의 독도 관련 일제 유적지 소개 / 87 Ⅲ.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점취 / 93 Ⅳ. 조선 침략의 첫 신호탄, 독도 강제 편입 / 112 Ⅴ. 인터뷰와 언론보도 / 122 차례 5

6 제5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37 Ⅰ. 행사개요 / 139 Ⅱ.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 140 Ⅲ.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 142 Ⅳ.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 145 Ⅴ.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 / 154 제6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1 Ⅰ.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행적 답사 / 173 Ⅱ. 러일전쟁 관련 일제 유적지 답사 / 208 Ⅲ. 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 유적지 답사 / 248 제7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67 Ⅰ.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의견 / 269 Ⅱ. 독도 시민단체 활동 사례 / 291 제8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19 Ⅰ.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 321 Ⅱ. 독도 시민단체 대표자회의 / 344 Ⅲ.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 / 347 제9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57 Ⅰ. 한국시인협회 / 359 Ⅱ. 한국수중환경협회 / 361 Ⅲ.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 / 362 Ⅳ. 영토NGO국제포럼 / 364 Ⅴ. 역사NGO국제포럼 관련 해외언론보도 / 383 제10장 시민단체 현황 389 부 록 독도 현황 차례

7 제1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Ⅰ. 사업내용 Ⅱ. 독도역사기행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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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Ⅰ. 사업내용 독도에 대한 바른 역사인식의 확대를 도모하고, 독도관련 시민단체의 전문성 제고를 위 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역사기행 독도관련 현안문제 및 민관협력 제고 방안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독도관련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자발적이고 건전한 독도 시민단체를 육성하고 활동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시민단 체 행사 지원 Ⅱ. 독도역사기행 년도 독도역사기행 행사명: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 최:동북아역사재단 주 관:동북아역사재단, 울릉문화원 추진목적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행적 답사를 통해 울릉도 독도의 역사 지리 이해 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울릉도 개척과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칩입에 대한 불법, 부당성을 확인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음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성 제고 독도관련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 일시 장소 울릉도 우산문화제 기간 중(10월 26 29일, 3박 4일) 울릉도 및 독도 현지 제 1 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9

10 행사내용 역사기행은 초청강연, 시민 활동가 포럼과 함께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로서 추진 - 독도역사기행:1882년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조사 행적 답사 - 초청강연:울릉도 독도의 역사 문화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강의 - 시민활동가 포럼:재단 및 시민단체 간 교류협력방안 등 다양한 주제 논의 참가자: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활동가 등 31명 참가방법:참가단체 소개서 및 참가자 인적현황 각 1부 제출 년도 독도역사기행 행사명: 독도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탐방 -독도의 망루를 찾아라. 추진목적 독도침탈의 결정적 계기가 된 러일전쟁의 독도관련 유적지를 탐방함으로써 독도문제 의 본질을 재확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성 제고 독도관련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 일시 및 장소 동해해전에서 일본연합함대에 의해 러시아함대가 격침된 5월 전후 울릉도 독도 현지 행사내용 전문가 초청강연 - 러일전쟁 전문가 러일전쟁 유적지 탐방 - 러일전쟁 중 일본이 건립한 망루터 탐방(울릉도 3곳, 독도 1곳), 러일전쟁 최후의 격 전지 견학 주제가 있는 토론회 -울릉도 현지인 등 참가 독도와 러일전쟁 관련 자료집 제작 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 - 일지, 사진 및 문헌자료 등 수록 참가자: 독도 시민단체 26개 단체(36명) 참가방법:참가단체 소개서 및 참가자 인적현황 각 1부 제출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추진목적:민관협력을 강화하고 국내외 단체간 협력 대응시스템 구축을 통한 독도관련 대응능력 강화 행사내용 시민단체 대표자 회의:일본 시마네현 죽도의 날 등 독도관련 현안문제 대응논의 시민활동가 워크숍:재단의 시민협력사업 및 민관협력 강화 방안 논의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추진목적:독도 등 영토 영해와 관련하여 자발적이고 건전한 시민단체를 육성하고 활 동의 활성화를 도모 행사내용 영토 영해관련 각 시민단체 행사 지원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의 독도문화축전 행사 지원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추진목적:국내외 시민사회내 독도관련 바른인식 확대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제 1 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11

12 행사내용 국내외 네트워크가 가능한 시민사회 단체 방문 및 활동가들과 교류 협력 국내외 영토NGO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영토NGO국제포럼 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3 제2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Ⅰ. 행사내용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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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Ⅰ. 행사내용 1. 행사개요 행사명: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유적지 탐방 독도관련 2007년 시민사업 실적 평가 및 2008년 시민사업 계획 협의를 위한 시민단 체 대표자 간담회와 병행 실시 추진목적 독도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을 통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전문성 제고 및 시민 단체간 상호 협력 증진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유적지 탐방을 통해 우리 정부가 울릉도 독도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이해 일 시:2007년 12월 7일(금) 8일(토) 장 소:경상북도 울진군 현지 간 담 회:백암 한화콘도 역사탐방:조선 수토정책 관련 유적지(선정비, 대풍헌, 구산항 등) 참가자:독도 시민단체 대표자 등 22명 명단 <별첨> 참조 행사 세부 일정 일자 12.7(금) 주요일정 09:30 서울 출발 16:00 울진 도착 16:00 울릉도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울릉도장 선정비, 대풍헌, 구산항, 월 송정터) 안내:심현용(경북 울진군청 학예사) 18:30 석식 21:30 분임토의 (계속)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5

16 일자 12.8(토) 08:00 조식 09:00 간담회 주요일정 2007년 시민단체 사업 실적 보고 및 평가 2008년 시민단체 사업 계획 보고 및 의견 수렴 기타 의견 수렴 12:00 울진 출발 14:30 식사 후 구( 舊 ) 일본군 죽변 망루터 답사 21:00 서울 도착 2. 역사 유적지 탐방 1) 평해군수겸 울릉도장 영세불망비 1885년 6월 울릉도장( 島 長 )을 겸임한 평해군수 심의완의 공적비 - 평해군수가 울릉도를 관할하였다는 역사사료로서 가치를 가짐 위치:경북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138-1번지(비석거리) 비석은 깨어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보존 방안 강구 필요 - 마을 주민들 사이에 비석에 대한 금기가 있어 비석의 복원 또는 재배치가 어려운 실정 사진 1 깨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선정비 사진 2 울릉도장 선정비가 방치되어 있는 곳 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7 2) 대풍헌과 울릉도 수토관련 문서 대풍헌( 待 風 軒 )은 1882년 이규원 검찰사를 비롯,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관들이 울릉도 로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곳(현재 마을 동사로 사용) - 위치: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번지 사진 3 대풍헌에서 마을 주민과 역사탐방단 사진 4 대풍헌 내부에 걸려 있는 현판 대풍헌 소장 문서인 수토절목(1823년 추정)과 완문(1811년 추정)은 울릉도 수토관 일 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경비 부담에 관한 방책에 대해 관아(삼척부)에서 결정해 준 내용 사진 5 문서 보관함과 마을 주민 사진 6 수토절목과 완문 대풍헌과 울릉도 수토관련 문서는 조선 정부가 울릉도를 포기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관리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화재이자 역사사료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7

18 3) 구산항 1882년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를 비롯, 울릉도 수토관 일행이 출발했던 항구 울릉도 독도관련 역사유적지 탐방 장소로서 의미를 지님 사진 7 구산항에서 역사유적지 탐방단 사진 8 구산항 전경 4) 월송포영 울릉도 수토관의 직임을 수행했던 월송만호와 수군들이 주둔했던 수군 진으로 현재 는 남아 있지 않음 월송포영( 越 松 浦 營 )은 현재의 월송정과 다른 곳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3-3번지 일원으로 추정 지도 1 월송포영 위치(추정) 1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 별첨 -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비 고 1 독도수호국제연대 실장 박창우 2 독도NGO포럼 회장 나홍주 3 코리아독도녹색연합 대표 박순종 4 코리아독도녹색연합 공동대표 방길남 5 코리아독도녹색연합(양양지부) 지부장 김영기 6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고문 조영삼 7 동해미래포럼 비서실장 김종출 8 동해미래포럼 회원 김한백 9 독도문화연대 사무국장 서주원 10 독도리아 대표 안용식 11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12 독도의병대 총무 윤미경 13 독도사수대 대표 이상훈 14 이종학관장기념사업회 대표 이종호 15 코리아스코프 대표 장석훈 16 재경독도향우회 회장 조대용 17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회장 편부경 18 발명계 독도개발지원 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9 독도지킴이 대표 정성광 20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홍성근 21 울진군청 학예사 심현용 22 클로버관광 직원 이재모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9

20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1) 정조실록 권40, 정조 18년 6월 무오조(1794년 6월 3일)의 기록 - 울릉도 수토 결과를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이 보고하다.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 沈 晉 賢 )이 장계하였다 울릉도의 수토( 搜 討 )를 3년에 한 번씩 변장( 邊 將, 월송 만호)으로 하여금 돌아가며 거행 하기로 이미 정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수토관( 搜 討 官, 越 松 萬 戶 ) 한창국( 韓 昌 國 )에게 관문을 띄워 분부하였습니다. <1794년 4월 21일> 순풍을 기다려 울릉도로 향하다 월송 만호의 서면보고[ 牒 呈 ]에, 4월 21일 다행히도 순풍을 만나 식량과 반찬거리를 4척 의 배에 나누어 싣고 왜학( 倭 學 ) 이복상( 李 福 祥 ) 및 상하 원역( 員 役 )과 격군( 格 軍 ) 80명을 거 느리고 같은 날 미시[ 未 時 :오후 2시]쯤에 출항하여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유시[ 酉 時 :오후 6시]에 갑자기 북풍이 일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게 끼고, 우뢰와 함께 장 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일시에 4척의 배가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만호가 정신을 차려 군복을 입고 바다에 기원한 다음 많은 식량을 물에 뿌려 해신( 海 神 )을 먹인 뒤에 격군 들을 시켜 횃불을 들어 호응케 했더니, 두 척의 배는 횃불을 들어서 대답하고 한 척의 배 는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4월 22일> 고생 끝에 울릉도에 도착하다 22일 인시[ 寅 時 :새벽 3시]에 거센 파도가 점차 가라앉으면서 바다 멀리서 두 척의 배 돛 이 남쪽에서 오고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던 참에 격군들이 동쪽을 가리키며 저기 안개 1) 이 기록은 바른역사정립기획단( ), 독도자료집 1, 쪽의 내용을 인용 재정리하였으며, 내 용 중 [ ]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날의 울릉도 지명 등의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정리 설명:홍 성근). 2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 속으로 은은히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아마 섬 안의 높은 산봉우리일 것이다. 하기에, 만호 가 자세히 바라보니 과연 그것은 섬의 형태였습니다. 직접 북을 치며 격군을 격려하여 곧장 섬의 서쪽 황토구미진[ 黃 土 丘 尾 津, 태하동]에 정박 하여 산으로 올라가서 살펴보니, 계곡에서 중봉[ 中 峰 :성인봉]까지의 30여 리에는 산세가 중 첩되면서 계곡의 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논 60여 섬지기의 땅이 있고, 골 짜기는 아주 좁고 폭포가 있었습니다. 그 왼편은 황토구미굴[ 黃 土 丘 尾 窟, 황토굴]이 있고 오 른편은 병풍석( 屛 風 石 )이 있으며 또 그 위에는 향목정( 香 木 亭 )이 있는데, 예전에 한 해씩 걸 러 향나무를 베어 갔던 까닭에 향나무가 점차 듬성듬성해지고 있습니다. <4월 24일> 거북바위가 있는 통구미에 도착하다 24일에 통구미진[ 桶 丘 尾 津, 통구미]에 도착하니 계곡의 모양새가 마치 나무통과 같고 그 앞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바닷속에 있는 그 바위[거북바위]는 섬과의 거리가 50보( 步 )쯤 되 고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되며, 주위는 사면이 모두 절벽이었습니다. 계곡 어귀에는 암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데, 근근이 기어 올라가 보니 산은 높고 골은 깊은데다 수목은 하늘에 맞 닿아 있고 잡초는 무성하여 길을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4월 25일> 저전동 앞에 있는 죽도 등 3개의 섬을 보다 25일에 장작지포[ 長 作 地 浦, 사동]의 계곡 어귀에 도착해보니 과연 대밭이 있는데, 대나무 가 듬성듬성할 뿐만 아니라 거의가 작달막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조금 큰 것들만 베어낸 뒤 에, 이어 동남쪽 저전동[ 楮 田 洞, 저동]으로 가보니 골짜기 어귀에서 중봉에 이르기까지 수십 리 사이에 세 곳의 널찍한 터전이 있어 수십 섬지기의 땅이 되었습니다. 또 그 앞에 세 개 의 섬이 있는데, 북쪽의 것은 방패도( 防 牌 島 ), 가운데의 것은 죽도[ 竹 島, 죽도], 동쪽의 것은 옹도( 瓮 島 )이며, 세 섬 사이의 거리는 1백여 보( 步 )에 불과하고 섬의 둘레는 각각 수십 파 ( 把 )씩 되는데, 험한 바위들이 하도 쭈뼛쭈뼛하여 올라가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4월 25일> 가지도에 가서 가지어를 잡다 거기서 자고 26일에 가지도( 可 支 島 )로 가니, 네댓 마리의 가지어( 可 支 魚 )가 놀라서 뛰쳐나 오는데, 모양은 무소와 같았고, 포수들이 일제히 포를 쏘아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1

22 구미진( 丘 尾 津 )의 산세가 가장 기이한데, 계곡으로 십여리를 들어가니 옛날 인가의 터전이 여태까지 완연히 남아 있고, 좌우의 산곡이 매우 깊숙하여 올라가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어 죽암[ 竹 巖, 죽암], 후포암( 帿 布 巖 ), 공암[ 孔 巖, 공암], 추산[ 錐 山, 추산] 등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나서 통구미[ 桶 丘 尾, 통구미]로 가서 산과 바다에 고사를 지낸 다음, 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 려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대저 섬의 둘레를 총괄하여 논한다면 남북이 70 80리 남짓에 동서가 50 60리 남짓하 고 사면이 모두 층암 절벽이며, 사방의 산곡( 山 谷 )에 이따금씩 옛날에 사람이 살던 집터가 있고 밭으로 개간할 만한 곳은 도합 수백 섬지기쯤 되었으며, 수목으로는 향나무, 잣나무, 황벽나무, 노송나무, 뽕나무, 개암나무, 잡초로는 미나리, 아욱, 쑥, 모시풀, 닥나무가 주종 을 이루고, 그 밖에도 이상한 나무들과 풀은 이름을 몰라서 다 기록하기 어려웠습니다. 날 짐승으로는 기러기, 매, 갈매기, 백로가 있고, 네발 달린 털 짐승으로는 고양이, 쥐가 있으 며, 해산물로는 미역과 전복뿐이었습니다. <4월 30일> 울릉도를 떠나서 5월 8일에 월송으로 돌아오다 30일에 배를 타고 출발하여 새달 8일에 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섬안의 산물인 가지어 가죽 2벌, 호아죽( 篁 竹 ) 3개, 자단향( 紫 檀 香 ) 2토막, 석간주( 石 間 硃 ) 5되, 도형( 圖 形 ) 1벌을 감 봉( 監 封 )하여 올립니다. 함께 비변사로도 올려 보냅니다. 2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 지도 1 천하총도-강원도(조선후기)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3

24 지도 2 여지도-울릉도( ) 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심현용(경북 울진군청 학예연구사) 1. 평해군수겸 울릉도장 영세불망비 위치:경북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138-1번지(비석거리) 郡 守 兼 鬱 島 僉 使 沈 公 宜 琬 永 世 不 忘 兩 代 一 郡 恩 同 冫 馬 驪 頌 登 四 方 孰 不 錄 仰 德 頻 鄒 衍 汗 傳 千 秋 (앞면) 해석 양대(부자)가 일군을 맞아 큰일 하니 은혜를 비유하기를 여산 탓 것(중국 여산) 같으니 모든 업적(좋은 얘기)이 사방에서 퍼져 소문이 나니 누군가 가서 우러러 기록하여 큰 덕이 춘나라에 펼쳐진 것(공자님 덕)과 같으니 땀 흘려 일함을 천추만대에 전하니 그 업적을 크게 기린다 內 外 仙 味 一 年 乙 酉 十 月 日 謹 竪 ( 光 緖 十 ) 搭 邱 三 洞 (뒷면) 해석 (광서 1)1년 을유 10월 일 내외선미(선구리, 외선미리), 탑구 3동(부달)에서 삼가 세움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5

26 사진 1 심의완 영세불망비(앞면) 사진 2 심의완 영세불망비 (뒷면) 울릉도는 임오군란이 수습된 직후인 고종 19년(1882) 8월 20일 영의정 홍순목이 울릉도 개척방안으로 제안을 하여, 지방관제상 울릉도의 소속이 울진현에서 평해군으로 바뀌게 된 다. 이때 도장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는데, 고종 22년(1885) 6월 평해군수 심의완을 울릉도 장( 島 長 )으로 겸임시키고, 평해소속 월송만호 서경수를 왕래하면서 검찰하게 했다. 심의완 은 1885년(고종 22) 3월 28일 평해군수로 부임하였으나, 1886년 1월 14일 강화판관으로 이 동하여 갔다. 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 2. 월송포영터 위치: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3-3번지 일원 1) 월송포영 월송포영( 越 松 浦 營 )은 평해군의 동 6(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 람, 동국여지지, 여도비지 ). 지도 1 울진포영 위치(추정도) 2) 월송포영 관련 산수화 현재 월송정을 그린 그림이 몇 점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대 표적인 것인 겸재의 그림이다. 이외 이정, 2) 정충엽, 강세황, 김홍도 등의 그림도 전해지고 있다. 이는 당시 월송포영의 현황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2) 이정( )이 관동지역을 여행하고 그중 경치 좋은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을 그렸는데(박은 순(1997), 금강산도 연구, 일지사, 61쪽), 필자가 자료를 확인하지 못하여 본 글에서는 생략하였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7

28 (1) 정선 사진 년, 紙 本 淡 彩, 가로 57.7 세로 32.2cm, 간송미술관소장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정선이 63세 때(1738) 8촌 친척 아우 인 우암 최창억을 위해 제작한 관동명승첩( 關 東 名 勝 帖 ) 의 11폭 중 1폭이다. 이 그림은 빽 빽이 들어찬 긴 소나무 숲을 화면 중앙에 대담하게 포치하고 울창한 수림( 樹 林 )의 가지와 잎새를 먹구름처럼 칠해놓은 겸재 특유의 묵송법( 畵 松 法 )을 분방하게 묘사하여 송림의 정 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주변에는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굴미봉 (일명 군무봉)으로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돌출해 있고 남쪽으로는 석축으로 쌓은 돈대( 墩 臺 ) 위에 누각이 서 있다. 월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을 세웠는데, 창방과 평 방이 보이며, 기둥은 방주를 사용하였다. 건물 아래에는 성문이 있고 양옆으로 성벽이 이 어져 문루( 門 樓 )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해안경비를 관장하던 월송진성의 성문 구실을 함께 겸한 것으로 추측된다. 3) 정자 주변에는 월송만호가 살던 관청과 관사인 듯한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하천이 앞으로 돌아 흐르고 있다. 지금의 자연환경과 거의 비슷하다. 3) 최완수(1999),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대원사, 272쪽. 2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 (2) 정충엽 사진 4 18세기, 紙 本 水 墨, 가로 28cm 세로 22.4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정충엽( 이후)이 정선풍( 鄭 敾 風 )의 구도와 준법, 수지법 등으로 그렸다. 즉 경물을 화면에 가득이 채우는 구성, 근경 을 위주로 한 빽빽하고 평면적인 구도, 강한 골세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필법, 짙고 윤택한 묵법, 토산을 표현할 때 피마준과 미점을 주로 사용하고 정자형( 丁 字 形 )의 소나무 표현 등 이 두드러지는 정선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이로 보아 정선의 진경산수화 화 풍은 중인 화가였던 정충엽에게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정선이 그린 월송정도와 거의 비슷하다. 즉 주변의 소나무숲과 하천 등 자연 환경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과 건물아래의 성문과 양옆의 성벽 등이 거의 동 일하다. 왼쪽의 뾰족 솟은 돌산은 굴미봉으로 보이며, 관청으로 보이는 기와집과 초가마을 등이 정선의 그림을 거의 빼닮았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9

30 (3) 강세황 사진 년, 紙 本 水 墨, 가로 48 세로 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화제가 쓰여 있지 않으며, 강세황( )이 1788년(정조 12) 9월 13일 17일까지 김홍도, 김응환 등과 금강산을 여행할 때 14면으로 제작한 시서화 합벽첩인 풍 악장유첩( 楓 嶽 壯 遊 帖 ) 에 속해있다. 4) 이 화첩은 제8면부터 제14면에는 7폭의 그림이 그려 져 있는데, 이 7폭의 그림 중 삼척의 죽서루와 고성의 청간정, 평해의 월송정의 관동팔경 세 장면을 그렸다. 이중 월송정도는 13면에 그려져 있다. 4) 이 그림을 가학정( 駕 鶴 亭 ) 을 그린 그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국립춘천박물관(2002), 우리 땅 우리의 진경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특별전, 통천문화사, 167쪽]. 그러나 이 그림은 월송정 을 그린 그림으로 보는 것이 타 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학정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호동에 있는 정자로 전방으로 황룡강을 바라보 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는 육각정( 六 角 亭 )으로 골기와 육모지붕을 취하고 있다. 가학정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여 무훈을 세운 박경( 朴 璟 )이 선조가 벼슬길에 나서기를 권했으나 이를 사 양하고 여생을 초야에 묻혀 충성할 것을 아뢰니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1601년 가을 이곳에 가학정을 건립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의 바다가 보이는 위치는 가학정이 있는 곳이 아니며 정자의 모습도 그림과 다 르기 때문에 평해의 월송정을 그린 그림으로 보아야 한다. 박은순(1997), 금강산도 연구, 일지사, 쪽도 이 그림을 월송정을 그린 것으로 파악하였다. 3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 그림에는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건물은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 또는 3칸의 팔작기와집을 세웠다. 그리고 건물 뒤쪽에 긴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그동안 문루 위에 있는 상황과 사뭇 다름을 보여 준다. 뒤쪽으로는 굴미봉으로 보이 는 바위봉우리가 솟아 있다. 이 월송정도를 포함한 죽서루, 청간정의 그림은 김홍도가 그 렸다고 추정하는 금강산도 중의 관동팔경 그림인 해산도첩 과 비슷한 구도와 구성, 소재 와 기법으로 그려졌다. 수묵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유탄( 柳 炭 )으로 잡은 초를 그대로 베껴 낸 듯 신선한 담백함이 느껴진다. (4) 김홍도 이 그림은 월송정( 月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김홍도( 경) 筆 로 전하는 금 강산도 중의 관동팔경 그림을 그린 해산도첩( 海 山 圖 帖 ) 의 하나이다. 김홍도의 금강산도들 은 1788년 관동지방으로의 봉명사경을 계기로 그려졌다고 여겨지는데, 이 그림도 이때 그 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5) 사진 년, 재료 크기 未 詳, 개인 소장 5) 이동주(1975), 김단원이라는 화원, 우리나라의 옛그림, 박영사, 쪽 ; 박은순(1997), 위의 책, 258쪽.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1

32 이 그림은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소나무숲 사이에 굴미봉으로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석축으로 쌓은 돈대 위에 누각이 서 있다. 월 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건물 양 옆으로 성벽이 이어졌고 건물 아래 에는 성문이 있어 문루임을 알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관청과 관사인 듯한 기와집들이 들 어서 있다. 지금의 자연환경과 거의 비슷하다. 이 그림은 강세황의 월송정도와 같은 구성 으로 표현되었다. 강세황과 김홍도의 관동도( 關 東 圖 )가 구성과 화풍이 유사한 것은 새로운 진경산수화풍을 형성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작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들의 관동팔경은 진경에 대한 사실적 접근을 벗어나 자기 자신만의 화풍으로 소화한 구도와 필묵법을 보여주어 그 화격( 畵 格 )이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 준다. 특히 그 공간의 규 모와 일관된 시점, 원근법이 좀더 뚜렷하 게 감안된 구성, 날카로운 선묘( 線 描 ) 등에서 다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화풍 은 18세기 말엽 이후 진경산수화에 변화를 일으키며 19세기 중엽까지 영향을 주었다. (5) 허필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허필( )이 그린 관 동팔경도병 중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소 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는 굴미봉으로 보이는 바위가 솟아 있고 석축으로 쌓은 돈대 위와 그 안에 건물들 이 서 있다. 건물들은 자세하지 않으나, 팔 작기와집이며 건물 아래에는 성문이 있고 양 옆으로 성벽이 이어져 문루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선, 정충엽, 김홍도 등이 그 린 월송정의 성격과 같은 성문구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7 18세기, 가로 42.3 세로 85cm, 선문대박물관 소장 3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 (6) 백운 사진 8 조선시대, 紙 本 淡 彩, 가로 43 세로 32.5cm, 관동대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평해월송정( 平 海 月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백운( 白 雲 )이란 호를 가진 인명미상의 작품이다. 백운선생이 직접 관동팔경과 금강산 등의 명승지를 두루 탐승하고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소상팔경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그 외에도 간찰의 서식들이 그림 뒷면에 붙어있는데, 후대에 와서 재편집된 것 같다. 조선말기에서 근대 초반의 작품 으로 추정된다. 6) 이 그림은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뒤쪽으로는 굴미봉으로 보이 는 2개의 봉우리가 뾰족 솟아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건물 아 래에는 석주를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하여 건물을 받친 2층 누각의 형태를 띤다. 건물의 형태가 문루에 나타나는 것과 사뭇 다르다. 6) 관동대학교박물관(2004), 소장품도록, 예맥출판사, 293쪽.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3

34 3. 대풍헌(수토절목, 완문) 위치: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 1) 완문 完 文 辛 未 七 月 日 右 完 文 爲 永 久 遵 行 事. 卽 接 邱 山 洞 民 等 狀 內 / 鬱 陵 島 搜 討 時 / 鎭 營 使 道 越 松 萬 戶 行 次 / 雜 費 奉 行 等 節 / 前 所 沿 海 九 洞 之 幷 力 / 隨 護 者 而 挽 近 矣. 洞 惟 此 專 當 則 偏 害 / 賢 勞 不 一 滌 陳 而 / 余 洞 僅 聚 錢 / 爲 壹 百 貳 拾 兩. 搜 討 時 萬 一 添 補 之 資 / 是 在 中 分 授 / 各 洞 存 本 取 利 / 每 年 二 月 推 捧 亦 爲 有 置. 莅 位 以 來 究 諸 營 弊 則 洳 矣. 洞 搜 討 時 難 支 之 狀 / 已 爲 洞 悉 / 而 右 錢 壹 百 貳 拾 兩 / 布 殖 於 各 洞 而 / 亦 是 不 費 之 惠 / 乙 仍 于 鄕 作 廳 的 / 只 各 洞 良 中 分 排 右 錢 / 而 每 兩 頭 參 分 邊 / 每 年 二 月 推 捧 / 搜 討 時 用 費 添 補 之 意 / 成 完 文 以 續 爲 去 乎. 以 此 遵 行 直 當 者. 辛 未 七 月 日 官 (수결사인) 後 表 山 洞 錢 拾 伍 兩 烽 燧 洞 錢 捌 兩 於 峴 洞 錢 柒 兩 ( 乙 巳 三 月 初 七 日 錢 二 十 兩 正 ) 直 古 洞 錢 貳 拾 兩 狗 巖 洞 錢 伍 兩 巨 逸 洞 錢 貳 拾 兩 浦 次 洞 錢 拾 兩 也 音 洞 錢 伍 兩 3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5 邱 山 洞 錢 參 拾 兩 완문 7) 신미년 8) 7월 일 옆의 완문 은 영구토록 지켜 행할 것이다. 즉 인접해 있는 구산동민의 진정서에 따른 일 이니, 울릉도를 수토할 때 (삼척)진영사또와 월송만호의 행차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을 봉행 하는 등의 절차로서 월송진의 해안에 접한 아홉 마을에서 힘을 모아 지켜서 빠른 시일 내 에 이행해야 할 것이다. 구산동에서 이를 오로지 분담하여 폐해가 편중되었으니, 특별히 수고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니 이런 묵은 일을 없애고자 동(구산동)에서 조금 모은 돈이 120냥이다. 수토 시 만에 하나라도 더 필요한 자금이 있으면 이 가운데서 나누어주고 각 동에 있는 자본의 이 자를 매년 2월에 추봉 9) 하니 이 돈을 여기에 쓰도록 하였다. 부임한 이래로 여러 군영의 폐 단을 살펴보니 그 폐습이 깊숙이 배여 있다. 이 동에서 수토 시 지탱하기 어려운 현상은 이미 모든 동에서도 잘 아니 이 돈 120냥을 각 동에 나누어서 이자 증식하는 것도 또한 자 본이 줄어들지 않는 혜택이니, 향청과 작청의 규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만 각 동에 이 돈을 나누어 분배하되 1냥에 3푼 변리로 하고 매년 2월에 추봉하여 수토 시 비용에 보태어 쓰라는 뜻으로 완문 을 발급하였으니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지켜 행하는 것이다. 신미년 7월 일 (수결사인) 다음 표산동 전 15냥 봉수동 전 8냥 어현동 전 7냥(을사년 3월 초7일 전 20냥 정) 직고동 전 20냥 7) 관청에서 향교(혹은 향교의 교생), 서원(혹은 서원의 원생), 결사( 結 社 ), 촌( 村, 혹은 촌민), 개인 등에게 어 떠한 사실을 확인해주거나 권리 및 특전을 인정해주기 위한 용도로 발급되던 문서이다. 완문은 당사자나 해 당기관의 청원에 의하여 발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8) 조선 순조 11년(1811)으로 추정. 9) 전곡을 물리어서 거두어들임.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5

36 구암동 전 5냥 거일동 전 20냥 포차동 전 10냥 야음동 전 5냥 구산동 전 30냥 2) 수토절목 搜 討 節 目 ( 供 饋 變 通 ) 癸 未 十 月 日 邱 山 洞 節 目 右 爲 永 久 遵 行 事. 卽 者 / 南 北 津 九 洞 民 人 等 呈 狀 內 / 以 爲 鬱 陵 島 之 搜 討 / 三 陟 鎭 營 使 道 / 與 月 松 萬 戶 / 間 三 年 行 之 者 乃 是 定 式 / 而 待 風 發 船 之 節 / 每 於 邱 山 津 / 而 爲 之 是 乎 所 月 松 鎭 之 於 本 津 / 則 相 距 稍 近 / 其 所 費 用 雖 不 至 於 顆 / 多 至 若 鎭 營 之 行 則 / 本 津 留 住 也 爲 日 之 久 近 / 都 關 於 風 勢 之 利 不 利 然 則 / 易 至 於 八 九 日 十 數 日 矣 / 雖 留 住 之 不 久 若 一 二 日 之 內 / 各 須 費 用 之 數 / 誠 爲 不 少 / 而 以 不 少 之 費 / 擔 當 於 矣 徒 九 洞 者 / 乃 是 九 洞 之 巨 弊. 是 如 乎 每 於 收 錢 之 時 / 怨 惡 相 加 / 咸 曰 難 支 故 / 齊 會 取 議 則 / 商 船 之 毋 論 / 魚 鹽 與 藿 物 到 泊 浦 口 下 陸 津 頭 時 受 貰 / 八 道 沿 邊 邑 通 行 之 例 也 而 矣. 徒 南 北 津 良 中 / 各 道 商 船 之 年 後 年 來 泊 者 / 亦 云 多 矣. 依 此 例 隨 多 少 受 貰 取 殖 補 用 / 於 惟 正 之 費 者 / 似 合 於 矣 / 各 洞 永 保 之 道 也. 以 此 意 / 成 給 節 目 / 俾 祛 不 細 之 民 痒 亦 爲 有 置 盖 此 鬱 島 搜 討 時 / 鎭 營 之 行 則 六 年 一 次 / 而 以 今 年 言 之 兩 日 內 支 用 之 費 / 殆 近 百 金 矣. 邱 山 津 民 之 訴 則 曰 / 分 値 九 洞 / 乃 是 前 例 / 其 他 八 洞 民 之 訴 則 曰 / 徵 數 此 多 莫 可 支 吾 互 相 呼 訴 非 止 一 再. 左 處 右 斷 似 不 無 彼 此 稱 寃 之 端 是 如 乎. 第 其 兩 日 之 費 / 旣 如 是 顆 然 矣. 若 値 風 不 利 / 而 或 至 於 十 餘 日 之 留 住 則 / 尤 將 奈 何. 弊 誠 非 細 / 憧 憧 一 念 思 / 所 以 支 保 之 策 / 是 在 如 中. 3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 齊 訴 適 至 參 互 事 勢 則 / 於 商 人 別 無 大 失 於 九 洞 省 弊 不 些. 大 抵 鬱 島 在 於 海 中 / 搜 討 發 之 待 風 / 亦 在 於 津 頭 / 而 其 費 用 之 從 前 分 値 於 九 洞 者 / 誠 由 於 濱 海 之 致 則 / 商 船 之 去 來 也 / 亦 豈 無 些 少 之 受 貰. 而 況 他 各 道 沿 邊 邑 通 同 之 例 乎. 一 依 汝 矣 等 所 訴 受 貰 數 爻 / 及 擧 行 條 件 並 以 這 這 後 錄 / 成 節 目 四 件. 一 則 置 之 作 廳. 一 則 出 給 於 揮 羅 浦. 一 則 出 給 於 直 古 洞. 一 則 出 給 於 邱 山 洞. 是 去 乎 以 此 永 久 遵 行 / 毋 或 違 越 宜 當 者. 癸 未 十 月 日 官 (수결서명) 後 一 商 船 之 受 貰 也 / 不 可 無 一 定 之 規 矣 / 鹽 則 每 石 五 分 / 明 太 則 每 駄 一 戔 式 是 齊. 一 旣 已 受 貰 於 商 船 則 / 當 該 船 主 人 / 亦 不 無 貰 錢 / 藿 船 主 人 則 二 兩 / 鹽 船 主 人 則 五 戔 / 微 魚 船 主 人 則 五 戔 式 是 齊. 一 今 此 節 目 已 成 / 其 收 捧 之 節 / 毋 論 某 津 / 商 船 如 / 民 來 泊 是 去 等 / 該 洞 任 與 船 主 人 眼 目 以 某 商 船 來 泊 之 意 / 來 報 官 家 是 齊. 一 受 貰 之 節 旣 已 定 式 則 / 收 捧 之 際 / 相 蒙 之 歎 難 保 / 其 必 無 不 可 無 句 檢 之 監 發 監 發 啓 自 邱 山 洞 / 擇 其 諸 洞 民 中 / 稍 實 勤 幹 者 一 人 / 報 發 差 出 / 使 之 逐 津 受 貰 / 而 受 貰 之 際 / 與 各 該 洞 任 及 船 主 人 眼 目 擧 行 是 齊. 一 商 船 到 泊 之 後 / 旣 有 該 津 洞 任 之 報 則 / 自 官 卽 爲 題 送 于 受 貰 / 監 官 使 之 擧 行 而 所 捧 錢 / 啓 計 其 多 少 / 當 該 監 官 來 付 / 邱 山 洞 計 年 取 殖 是 齊. 一 今 此 受 貰 錢 / 旣 付 邱 山 洞 / 使 之 計 年 取 殖 / 則 無 論 鎭 營 與 月 松 / 間 三 年 搜 討 行 / 待 風 時 / 支 用 下 記 / 自 邱 山 洞 全 當 擧 行 / 而 切 勿 侵 得 於 各 洞 / 俾 無 如 前 紛 計 之 弊 是 齊. 一 毋 論 某 津 / 商 船 來 泊 之 後 / 如 有 掩 匿 不 報 之 弊 / 是 如 可 現 發 於 廉 探 之 下 則 / 當 該 尊 位 洞 任 及 船 主 人 等 / 斷 當 限 / 死 嚴 治 是 齊. 一 上 道 進 支 旣 有 官 供 / 則 不 必 擧 論 / 而 至 於 陪 下 人 馬 之 供 饋 則 / 自 官 至 出 勤 幹 色 吏 一 人 /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7

38 與 邱 山 洞 任 眼 目 擧 行 / 而 所 用 下 記 / 一 依 辛 未 節 目 用 下 爲 乎 矣 / 切 勿 濫 下 是 齊. 一 鹽 船 來 泊 也 / 每 石 五 分 戔 / 旣 已 成 節 目 酌 定 收 / 捧 付 之 邱 山 洞 / 補 用 於 搜 討 發 下 記 則 / 鹽 捧 之 受 貰 / 可 謂 疊 得. 自 今 爲 始 永 革 是 齊. 一 九 洞 巨 瘼 / 都 付 邱 山 洞 / 俾 爲 矯 捄 則 / 錢 雖 有 受 貰 處 / 亦 不 無 酬 勞 之 典 / 小 小 烟 戶 赴 役 除 減 是 齊. 一 月 松 萬 戶 搜 討 之 時 / 擧 行 之 節 及 其 他 諸 條 / 已 悉 於 辛 未 節 目 / 今 不 必 疊 床 是 齊. 一 未 盡 條 件 追 後 磨 鍊 是 齊. 수토절목(수토사 등의 접대 등에 변통하라) 계미년 10) 10월 일 구산동 절목 옆에 쓰여 있는 글은 영구토록 지켜 행할 일이다. 이것은 (월송진의) 남북포구 아홉 동민 들의 소장( 訴 狀 )에 따른 것으로 울릉도에 대한 수토에 쓰이는 것이다. 삼척진영사또와 월송 만호가 3년에 한 번 행하는 것이 정식으로 되어 있으니, 바람을 기다려 배를 출발하는 때 에 매번 구산진에서 하도록 하는 바이다. 월송진은 본 진에서 서로 거리가 아주 가까우니 그 소용되는 비용은 비록 많지 않지만, 자주 진영의 행차가 있게 되면 본 진에 유숙을 해야 된다. 날짜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은 바람의 세( 勢 )가 좋고 나쁨에 달려 있는, 즉 쉬워야 8 9일이나 십 수 일이니 비록 유숙하 는 것이 오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안에 각 재료비용의 수는 진실로 적지 않으니 그 적지 않은 비용을 9동민에게 담당하게 한 것은 이는 9동의 큰 폐단이다. 이와 같이 매양 돈을 걷을 때 원망이 서로 더하니 다 같이 말하기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하니, 그러한 고로 모여 서 의논을 들은, 즉 상선은 말할 것도 없고 어염과 미역은 배가 포구에 이르러 진두( 津 頭 ; 구산진)에 하륙( 下 陸 )할 때 세( 貰 )를 받는 것은 8도의 연변 읍에 통상 행하는 예가 있으니 그대로 한다. 다만 남북진에서 각 도( 道 )의 상선이 와서 머무는 것이 해마다 많다고 말한 다. 이 예에 의하여 다소에 따라 세를 받아 보충비용에 쓰고, 생각컨대 바르게 쓰는 것은 10) 조선 순조 23년(1823)으로 추정. 3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 각 동에서 오래 보전해야하는 도리에 맞는 것 같다. 이러한 뜻에서 절목( 節 目 ) 을 발급하여 적지 않은 민폐를 없애고자 한다. 대개 울릉도 수 토 때는 진영의 행차인, 즉 6년에 한 번 있으나, 금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양일 안에 지출 한 비용이 거의 100금( 金 )에 가깝다. 구산진 백성들이 진정하기를 9동이 분담 시행한 것은 앞서 시행한 것이다 라 하였고, 11) 다른 8동민이 진정하기를 징수하는 비용이 많으니 가히 우리가 지탱할 수 없다 고 서로 호소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구산동에서 진정하는 것을 다른 8동에서 차단하니, 피차 원망의 단서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다. 그 양 일 간에 비용이 이미 이와 같이 많았다. 만약 바람을 만나 불리하면 혹 십 여일 유숙한 즉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진실로 폐단이 적지 않으니 어떻게 해볼 일념( 一 念 )으로 생각하였 는바, 지탱하고 보존하는 대책이 이 가운데 있다. 하소연을 간추려서 서로의 사세( 事 勢 )를 맞추어 참작한, 즉 상인에게는 별다른 큰 손실이 없으나 9동의 폐단을 줄이는 데는 적지 않다. 무릇 울릉도가 바다 가운데 있어 수토하는 관리가 진두( 津 頭 ; 구산진)에서 바람이 잦 아들기를 기다리니, 그 비용은 종전에 9동에서 분담하였으니 진실로 해변에 위치한 소치로 서 상선이 왔다 갔다 할 때에 어찌 적은 세( 貰 )라도 없겠는가? 하물며 다른 각 도 연변 읍 에도 같은 예가 있다. 너희들이 호소한 바에 의하여 받는 세의 수효와 거행하는 조건을 일 일이 다음(뒤) 에 기록하여 4조 절목( 節 目 )으로 한다. 하나, 작청 12) 에 비치하여 둘 것. 하나, 휘라포에 내어 줄 것. 하나, 직고동에 내어 줄 것. 하나, 구산동에 내어 줄 것. 이렇게 하였으니 이로써 영구토록 좇아 행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 땅할 것이다. 계미년 10월 일 (수결서명) 다음 11) 신미년 완문 을 이름. 12) 서리들의 집무처를 공식적으로 인리청( 人 吏 廳 ), 이청( 吏 廳 )이라 하였고 일반적으로는 작청( 作 廳 ), 성청( 星 廳 )이라고 하였다. 서리들은 이곳을 연방이나 연조라고 존칭하였는데 속어로는 길청, 질청이라고 하였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9

40 하나, 상선의 세를 받을 때 일정한 규정이 없지 않으니 소금은 한 섬 머리 5푼으로 하고 명태는 한 뭇에 1전으로 한다. 하나, 이미 상선에 세를 받았으면 마땅히 선주( 船 主 )도 또한 세가 없을 수 없다. 미역채 취선의 선주는 2냥으로 하고 소금 선주는 5전으로 하고 작은 고기잡이 선주는 5전으로 한다. 하나, 이제 절목이 이미 작성되었으니 그 받아들이는 절차는 어떤 진을 막론하고 상선과 같은 식으로 하고, 와서 정박하고 가는 민선( 民 船 ) 등은 동임과 선주의 안목( 眼 目 )으로 하고 어떤 상선이 와서 정박하였음을 관가에 와서 보고한다. 하나, 세를 받는 절차는 이미 정식( 定 式 )으로 되었으므로 받아들일 즈음에 서로 혜택을 보려고 하여 바르게 시행되는 것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검열하는 감영의 관리가 없 어서는 안 된다. 감영의 관리는 구산동으로부터의 상계는 그 동민 중에 뛰어나고 부지런한 한 사람을 차출하여 관청에 보고하여 세 받는 책임자로 하고 세를 받을 즈음에는 각 해당 동임과 선주인의 안목대로 거행한다. 하나, 상선이 이르러 정박한 뒤에 이미 있는 해당 진의 동임이 보고하면 관청으로부터 곧 세를 받는 지침을 보내어 감영의 관리로 하여금 거행하고 바치는 돈은 그 다소를 계산 하여 보고하고 당해 관리는 구산동의 연간 돈을 모아 증식케 한다. 하나, 이제 세를 받을 돈을 미리 구산동에 부치어 연간 모아 증식케 함은 곧 삼척진영과 월송진이 물론 3년마다 수토가려고 바람을 기다릴 때에 쓰는 비용은 구산동에서 전담하게 하여 일절 각 동에 전과 같은 분쟁의 폐단이 없게 함이다. 하나, 어떤 진( 津 )을 막론하고 상선이 와서 정박한 후에 만일 숨겨서 보고를 하지 아니한 폐단이 있으면, 이는 가히 염탐하여 밝힐 것인 즉, 당해 존위 동임 및 선주 등은 마땅히 죽도록 엄하게 다스리게 될 것이다. 하나, 상급 도( 道 )의 수토관 지출비용은 이미 관에서 공급을 한 즉, 거론할 필요가 없으 나 상관을 모시고 온 부하와 말의 먹이에 대한 것은 관청으로부터 나와 일하는 아전 한 사 람과 구산동임이 안목에 맞도록 거행할 것이되 소요비용은 신미절목( 辛 未 節 目 ) 13) 대로 해야 하고 절대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13) 이로 보아 신미년 완문 을 발행한 후 같은 해에 수토사 일행을 접대할 때 들어가는 물품의 종류와 수효 등을 규정하는 절목 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임. 4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 하나, 염선이 와서 정박할 때에는 한 섬 머리 5푼 식으로 이미 절목으로 성립되어 있으 니 참작하여 정한대로 거두어 구산동으로 부치어 수토비용에 보태어 쓰게 하면 염선에서 거둔 세로 가위 재원이 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처음 시작하여 영원히 개선되게 한다. 하나, 9동의 큰 병폐를 모두 구산동에서 처리하도록 교정한 것인즉, 돈은 비록 세를 받 을 곳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수고를 하는 사람에게 수고비를 주는 법이 없지 않으니 민가 호구의 부역을 감해 주게 한다. 하나, 월송만호가 수토 시 거행하는 절목 및 기타 조건은 이미 신미절목 에 모두 정하였 으니 지금 거듭 말할 필요 없이 그대로 한다. 하나, 미진한 조건은 추후에 참작 조치한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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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3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Ⅰ. 행사내용 Ⅱ. 19세기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Ⅳ. 인터뷰와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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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Ⅰ. 행사내용 행사명: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제: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행적 답사를 통해 울릉도 독도의 역사 지리 이해 1882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울릉도 재개척과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칩입에 대한 불법, 부당성을 확인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음 일시 장소 10월 26일 29일(울릉도 우산문화제 기간 3박 4일) 울릉도 및 독도 일원 참가자: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활동가 등(31명) 초청강연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논의주제:독도 관련 시민단체의 교류협력방안 내용: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단체의 현황 및 활동을 소개하고 독도 관련 교 류협력방안에 대해 논의 세부일정 1일차 10월 26일(목) - 독도박물관 견학, 독도진경전 관람, 독도전망대 강연 - 26일 0시 30분 덕수궁 대한문앞 출발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00:30 포항행 버스탑승 완료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00:30 06:30 서울 포항 (버스로 이동) 버스 06:30 08:00 조식 08:00 10:00 휴식 및 승선 준비 (09:40 승선완료) 포항 여객선 터미널 (계속)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5

46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10:00 13:00 포항 울릉도 (선박 이동) 썬플라워호 13:00 14:00 울릉도 입도. 숙소 배정 14:00 15:00 중식 15:00 16:30 독도박물관 견학, 독도진경전 관람 독도박물관 16:30 17:00 독도전망대 관람 독도전망대 17:00 18:30 초청강연 1.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2.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검찰의 역사적 의의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 독도 스카이라운지 18:30 20:00 석식(소개 등) 독도 스카이라운지 20:00 입실, 취침(자유시간) 2일차:10월 27일(금)-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울릉도 육상답사)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06:00 07:00 07:00 08:00 기상 조식 08:00 09:00 육상일주 시작 도동 학포 (차량 이동) 울릉관광개발 09:00 10:30 10:30 12:00 학포 태하 (도보 이동) 태하 나리동 (차량 이동) 12:00 13:00 중식 나리동 13:00 18:00 18:00 19:00 19:00 20:00 20:00 22:00 나리동 성인봉 저동 (도보 이동) 도동 (차량이동) 휴식 석식 각 팀별 분임토의 22:00 입실 및 취침 4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7 3일차:10월 28일(토)-우산문화제 참여, 독도 답사, 시민활동가 포럼 시 간 내 용 장 소 비 고 06:00 07:00 기상 (도동 해변 산책) 여객선 터미널 뒷길 07:00 08:00 조식 08:00 13:00 독도답사 독도 씨플라워호 13:00 14:00 중식 14:00 18:00 시민활동가 포럼 향군회관 회의실 교류협력 방안 논의 18:00 19:00 석식 19:00 21:00 우산문화제 참여 도동, 저동 21:00 입실, 취침 4일차:10월 29일(일)-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울릉도 해상답사) 시 간 내 용 장 소 비 고 07:00 08:00 기상 (도동 약수공원 산책) 독도박물관 위 08:00 10:00 조식 10:00 울릉 출발 (현지사정에 따라 묵호행)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 대한민국 독도향우회 부회장 주경호 2 문화국장 구주회 3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대표 이종상 4 독도사랑협의회 회원 김준연 5 회원 류호정 6 독도수호국제연대 기획팀장 박창우 7 독도수호대 대표 김점구 8 운영위원 황병관 9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의장 최재익 10 자문위원 김봉식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7

48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1 독도어울림 사무국장 김성호 12 회원 민진규 13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14 총무 윤미경 15 독도향우회 사무총장 김해일 16 회원 송재욱 17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8 회원 김광식 19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20 자연보호중앙연맹(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부총재 백남진 21 재경독도향우회 회장 조대용 22 자문위원 김관일 23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이예균 24 사무처장 김장복 25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지회장 편부경 26 동아시아영토연구소 소장 양태진 27 울릉문화원 국장 김성권 28 운영위원 조영삼 29 진행요원 정장호 30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홍성근 31 경 정 정봉훈 4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9 Ⅱ. 19세기 말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1) 1.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검찰일지(요약) 일 시 내 용 비 고 1881년 5월 22일 1882년 4월 7일 4월 10일 4월 29일 4월 30일 5월 1일 5월 2일 5월 3일 5월 4일 부호군( 副 護 軍 )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에 임명 고종 임금을 알현하고 구체적인 울릉도 검찰의 명을 받음 서울 흥인문(동대문) 밖을 출발하여 육로로 원주, 평해를 경유, 구산포에 4월 27일 도착하여 순풍을 기다림 일행 1백여 명이 세척의 배로 출항 일행은 검찰사 이규원, 중추도사 심의완, 군관 출신 서상학, 전 수문장 고종팔, 화원 유연호, 기타 선원 82명, 포수 20명 등 대규모 조사단 저녁 무렵, 울릉도 서안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 포구에서 전라도 흥양 삼도 사람 김재근이 23명을 데리고 배 를 만들고, 미역 등을 채취하면서 살고 있는 것을 확인 풍랑이 심해 위기를 맞음. 산신당에 기도 산을 넘어 대황토구미(태하)에 도착. 고분 확인 포구에 평해 출신 최성서가 인솔한 인부 13명이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음. 경주사람 7명은 약초를 캐고 연일사람 2명은 움 막을 짓고 사는 것을 확인 흑작지(현포)에 도착하여 작은 배를 타고 창우암(노인봉), 추 봉(송곳산)을 바라보며 천년포를 거쳐 왜선창(천부)에 도착 왜선창에서 전라도 낙안 사람 이경칠이 인솔한 20명과 초도 사람 김근서가 인솔한 19명이 각기 움막을 짓고 배를 만들고 있었음 오대령을 넘고, 다시 홍문가(홍문동)라는 고개를 넘어 나리동 도착. 날이 저물어 파주 출신 약재상 정이호의 초막에서 유숙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등정. 사방이 망망대해 철저한 조사를 위해 다음해로 출항 연기 이날 30리 가량의 산길을 걸음 (계속) 1) 이 글에서 고종실록 부분은 바른역사기획단( ), 독도자료집 1, 쪽 의 국역본을, 이규원 검 찰일기 계본초 부분은 신용하 편저( ), 독도연구총서7:독도영유권 자료의 탐구 3권, 독도연 구보전협회, 21 46쪽 의 번역본을 인용, 날짜별로 재정리하였다. [ 의 울릉도 지명 등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정리 설명:홍성근).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날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9

50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5월 7일 5월 8일 5월 9일 5월 10일 5월 11일 5월 12일 6월 4일, 5일 동쪽으로 십여리 내려가서 함양 출신 약초상 전석규의 주거처를 지 나, 산등을 따라 내려가다가 저포(저동)에 도착, 나무숲에서 노숙 도방청포(도동)에 정박 중인 일본선박 발견. 울릉도 나무를 도벌 중인 왜인들과 직접 필담 나눔 너희들이 어찌 이곳에서 벌목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곳이 타국 땅이라는 말은 들은 바 없고 일본 땅으로 알고 있다. 이미 이곳이 일본의 송도( 松 島 )라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 흥양 삼도 사람 이경화가 움막을 치고 살면서 인부 13명 과 미역을 따고 있었음 배를 타고 장작지(사동) 포구에 도착하여 흥해 초도 사람 김내언 이 인부 12명과 배를 만들고 있었음 장작지 포구에서 유숙 장작지에서 통구미로 향하는 도중 해변 바위 사위에 표목 발견(길 이 6척, 넓이 1척). 전라도 흥양 초도 사람 김내윤이 22명의 인부 와 배를 만들고 있는 것을 확인 산길이 깊고 어두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곡포(남양)에서 노숙 위험한 바윗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소황토구미에 도착 석공을 시켜 섬이름을 새기게 함 배를 타고 서쪽 해안을 따라 순찰. 향목구미, 대황토구미(태하), 대풍구미(대풍령), 흑작지(현포), 왜선창(천부), 선판구미를 지나 해안을 돌아봄. 2개의 작은 섬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죽도(대섬) 라 하고, 다른 하나는 도항(관음도)이라 함.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유숙 9일에 이어 배를 타고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통구미, 흑포, 사 태구미, 산막동 등의 포구를 돌아 보고 소황토구미(학포)에서 유숙 아침에 세 척 배를 타고 육지로 출항 저녁에 울진 쪽으로 향했으나 파도가 크게 일어 노를 저어 근근이 저녁에 구산포에 도착 이규원이 고종임금을 알현하고 복명함 고종 임금은 일본의 울릉도 불법 잠입 등에 항의하도록 하고 울 릉도 재개척에 큰 열의를 보임 이 때 울릉도에 서 벌목에 종사 한 일본인은 모 두 78명에 달한 다고 함 大 日 本 國 松 島 槻 谷 明 治 2년 2월 13일 암기충조 ( 岩 崎 忠 照 ) 세움 육상일주:소황토구미(학포) - 대황토구미(태하) - 흑작지(현포) - [창우암(노인봉), 추봉(송곳산)] - 왜선창(천 부) - 홍문가(홍문동) - 나리동 - 성인봉 - 저포(저동) - 도방청(도동) - 장작지(사동) - 통구미 - 곡포(남양) - 소황토구미(학포) 해상일주:소황토구미(학포) - 향목구미 - 대황토구미(태하) - 대풍구미(대풍령) - 흑작지(현포) - 왜선창(천 부) - 선판구미(선창) -도항(관음도) -죽도(대섬) -저포(저동) -도방청(도동) - 장작지(사동) - 통구미 - 사태구미 - 산막동(산막) - 소황토구미(학포) 5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1 2.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1) 울릉도 검찰사를 임명하다 <1881년 5월 22일> 부호군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다 통리기무아문( 統 理 機 務 衙 門 )에서 제의하였다. 지금 강원감사( 江 原 監 司 ) 임한수( 林 翰 洙 )의 장계( 狀 啓 )를 보니, 울릉도수토관( 鬱 陵 島 搜 討 官 )의 보고를 하나하나 들면서 말하기를, 순찰할 때에 어떤 사람이 나무를 찍어 해안에 쌓 고 있었는데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 7명이 그 곁에 앉아있기에 글을 써서 물어 보니 일본 사람이 나무를 찍어 원산( 元 山 )과 부산( 釜 山 )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대답하였답니 다. 일본 선박의 왕래가 근래 대중없어서 이 섬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폐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통리기무아문( 統 理 機 務 衙 門 )으로 하여금 품처( 稟 處 )토록 하기 바랍니다 라 고 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채벌을 금하는 산은 원래 중요한 곳이고 조사하여 지키는 것도 역시 정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남몰래 나무를 찍어서 가만히 실어가는 것은 변금( 邊 禁 )에 관계되므로 엄격하게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차 이 사실을 문건으로 작성 하여 동래부( 東 萊 府 ) 왜관( 倭 館 )에 내려 보내서 일본 외무성( 外 務 省 )에 전달하게 할 것입니 다. 생각하건대 이 섬은 망망한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대로 텅 비워두는 것은 대단히 허술 한 일입니다. 그 형세가 요충지로 될만한가 방어를 빈틈없이 하고 있는가를 두루 살펴서 처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호군( 副 護 軍 ) 이규원( 李 奎 遠 )을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로 임명하여 가까운 시일에 빨리 가서 철저히 타산해보고 의견을 갖추어서 보고하여 이로써 문의해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승인하였다. (고종실록 권18, 고종18년 5월 22일조) 2) 임금께서 울릉도 조사사항을 지시하다 <1882년 4월 7일> 임금께서 검찰사 이규원을 불러 만나다 임금께서 검찰사(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을 불러 만나, 하직인사를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울릉도( 鬱 陵 島 )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상( 無 常 )으 로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 松 竹 島 )와 우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1

52 산도( 芋 山 島 )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 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네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골라서 임명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고을( 邑 )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지 에다가 자세히 적어 보고할 것이다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 芋 山 島 )는 바로 울릉도( 鬱 陵 島 )이며 우산( 芋 山 )이란 바로 옛날 의 나라 수도의 이름입니다. 송죽도( 松 竹 島 )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 鬱 陵 島 )와 떨어진 거리는 20 30리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 檀 香 )과 담뱃설대라고 합니다 라고 하 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우산도( 芋 山 島 )라고도 하고 송죽도( 松 竹 島 )라고도 하는데다 동국 여지승람( 東 國 輿 地 勝 覽 ) 에 실려 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 松 島 ) 죽도( 竹 島 )라고도 하는 데 우산도( 芋 山 島 )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 鬱 陵 島 )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볼 것이다. 울릉도는 본래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과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가 돌려가면서 수색 검열하던 곳인데 거의 다 소홀히 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 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을 가져왔다. 너는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 松 島 )와 죽도( 竹 島 )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松 竹 島 )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 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대 체적인 내용을 얻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4월 7일조) 3) 울릉도 검찰 후 이규원 검찰사가 임금께 올린 보고서 2) <1882년 4월 7일> 출발전 임금께 하직인사하다 신( 臣 )은 을사년(1881) 5월 23일 외람되게도 울릉도 검찰사의 직책에 임명되어 임오년 (1882) 4월 7일에 전하께 하직하면서, 엎드려 전하의 정중하신 하교를 받들 때 황송하고 2) 이규원 울릉도 검찰 계본초( 李 奎 遠 鬱 陵 島 檢 察 啓 本 草 ). 5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3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4월 10일> 서울을 떠나 울릉도로 향하다 교외로 물러나 행장을 수습하고 10일에 길을 떠나 12일에 원주목( 原 州 牧 )에 이르러 하루 를 머물고 20일에 평해군( 平 海 郡 )에 도착하여 6일을 묵으면서 바다를 건너갈 선박과 땔나 무, 물, 양식, 찬 등을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27일 평해읍에서 10리쯤 거리에 있는 구산 포( 邱 山 浦 )에 가서 순풍을 기다렸습니다. <4월 29일> 검찰사 일행 102명이 울릉도로 떠나다 29일에 비로소 순풍을 만나 중추도사( 中 樞 都 事 ) 심의완( 沈 宜 琬 ), 군관( 軍 官 )출신 서상학( 徐 相 鶴 ), 전( 前 )수문장( 守 門 將 ) 고종팔( 高 宗 八 ), 차비대령( 差 備 待 令 ) 화원( 畵 員 ) 유연호( 劉 淵 祜 ) 및 관속 사공 등 82명, 포수( 砲 手 ) 20명과 더불어 세 배에 나누어 타고 당일 진시( 辰 時 :오전 8시)쯤 배를 출발시켰습니다. 배가 바다 중간에 이르자 풍세( 風 勢 )가 불리하여 파도가 용솟음치는데 사방을 둘러보아 도 한 점의 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는 아래위로 까불리면서 큰 바다 가운데에서 떠다 니며 지향할 바를 몰랐습니다. 다행히도 저녁때가 되어 다시 곤신( 坤 辛 :남서) 방향의 바람 을 얻어 밤새도록 배를 달렸습니다. <4월 30일> 울릉도 소황토구미에 도착하다 30일 유시( 酉 時 :오후 6시)쯤 울릉도의 서쪽에 도착하여 정박하였는데 지명은 소황토구미 [ 小 黃 土 邱 尾, 학포]였습니다. 갯가에 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 자세히 탐문한 즉 이때 전라도 흥양( 興 陽 ) 삼도( 三 島 )에 사는 김재근( 金 載 謹 )이 인부 23명을 데리고 배도 만들고 미 역도 딴다고 하였습니다. 육지에 내려 선막( 船 幕 )에 유숙하였습니다. <5월 1일> 풍랑이 크게 일다 5월 1일. 풍랑이 크게 일어 3척의 선박을 매어 둔 닻줄이 거의 끊어질 뻔하여 선원들이 당황해 구조하면서 상선( 商 船 )의 닻과 밧줄을 빌려 사방으로 매어서 다행히 위급함을 면하 고 산신당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3

54 <5월 2일> 대황토구미에서 약초 캐는 사람들을 만나다 2일, 드디어 산에 올라 고개를 넘어서 대황토구미[ 大 黃 土 邱 尾, 태하동]에 이르렀습니다. 길 곁에 넓은 돌로 뚜껑을 하고 사방에 작은 돌로 받친 것이 많았으니 이것은 옛 사람들의 석 장( 石 葬 )이라 하였습니다. 시내의 흐름을 따라 포구에 이르니, 평해( 平 海 )의 상선( 商 船 )인 최 성서( 崔 聖 瑞 )가 인부 13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살고 있었고, 경주( 慶 州 ) 사람 7명이 막을 치 고 약초를 캐고 있었으며, 연일( 延 日 ) 사람 2명이 막을 치고 대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이날 보행한 산길이 거의 30리에 가까웠는데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찌르고 수목들은 해 를 가리며 풀에 싸인 길은 실낱 같았습니다. 바다의 해가 저물게 되자 나쁜 기운을 품은 산바람이 옷을 적셔 초막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3일> 끝없이 평탄한 나리동에 이르다 3일에는 산신당에 제사를 지낸 후 고개를 넘고 숲을 뚫으면서 흑작지[ 黑 斫 支, 현포]에 도 착하니 여러 가지 돌무덤들이 있었고, 십리나 되는 평원은 백성을 거주시킬 수 있는 토지 였습니다. 갯가에 내려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전진하니까 창우암[ 倡 優 岩, 노인봉]이 있는데 높이 가 수천 척이요 형상이 기괴하였으며 꼭대기에는 위아래로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그 곁 에는 또 나란히 선 촉대암[촛대암]이 있어 높이가 수천 길이나 되었습니다. 또 살만한 터가 있으니, 삼척( 三 陟 )에 거주하던 정씨( 鄭 氏 ) 성을 가진 사람이 임진란 때 피난했던 곳으로서 8형제가 동방( 同 榜 )으로 진사급제( 進 土 及 第 )한 곳이라 하였으며 지명은 천년포[ 千 年 浦, 평리 지역]였습니다. 산봉우리 하나가 하늘 높이 솟아있으니 높이가 수천 길이요 형상이 송곳과 같아 추봉[ 錐 峯, 송곳산]이라 불려지고, 그 아래 큰 바위 하나가 있어 그 가운데 큰 구멍이 뚫려 모양이 성문 같았습니다. 아래로 작은 시내가 흘러내리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나리동( 羅 里 洞 )에 지하로 흐르는 물이 뿜어 나오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천년포를 거쳐 왜선창[ 倭 船 艙, 천부]에 도착하니 전라도 낙안( 樂 安 )의 주민으로 선상( 船 商 ) 인 이경칠( 李 敬 七 )이 인부 20명을 데리고, 그리고 흥해( 興 海 ) 초도( 草 島 )의 주민 김근서( 金 勤 瑞 )는 인부 19명을 데리고 각기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차차로 전진하여 점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면서 다섯 개의 큰 고개를 넘었는데 고갯길이 너무나 험준하여 오를 5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5 때는 이마에 닿고 내려올 때는 머리에 닿았으며 제일 아래에 하나의 고개가 있으니 이름을 홍문가[ 紅 門 街, 홍문동]라 하였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 들어가니까 곧 이 섬의 중심인 나리동( 羅 里 洞 )이었는데, 오방( 午 方 :남쪽) 을 향하여 형국이 열려 있고 수목이 하늘에 높이 솟았고 바라보니 끝이 없이 평탄한 지형 이었으니 길이는 10리가 넘고 너비는 8, 9리나 되었습니다. 여러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첩 첩이 서 있는 봉우리는 엄연히 성곽을 이루었으니, 한 병졸이 관문을 지키면 일만 군사로 도 열 수 없는 땅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홍문가의 길은 거의 자오( 子 午 :남북)방향으로 뻗은 골짜기로서 서쪽으로 갈 수록 약간 낮지만 그러나 산기슭이 서로 교차되어 전혀 물이 새어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큰 못이 국 내( 局 內 )의 건방( 乾 方 :북서)에 있는데, 길이가 70여 보( 步 )이고 너비는 50보( 步 )에 지나지 않으나 못 가운데 고인 물이 없고 다만 풀만 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 곤신( 坤 辛 :남서) 방향으로 작은 못이 있는데 길이와 너비가 각각 2 30보에 지나지 않고 지형이 움푹 패였 으나 역시 고인 물은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파주 사는 약초 상인 정이호( 鄭 二 祜 )의 초막 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4일>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에 오르다 4일에는 산신당에 기도를 올린 후 등나무, 칡덩쿨을 부여잡고 동쪽 최고봉에 올랐는데 성인봉( 聖 人 峰 )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니 바다와 산이 아득할 뿐이요 다른 한 점 의 섬도 없고 다만 열넷의 봉우리들이 우뚝하게 줄지어 서서 나리동 한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이 보이니 과연 하늘이 감추어 둔 별천지였습니다. 동쪽으로 10여리를 내려가니 초막 하나가 있는데 함양 주민으로 약초를 캐고 있는 전석규( 全 錫 奎 )가 살고 있는 곳이었습 니다. 그는 10년 동안 섬에 들어와 있으므로 섬의 형편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살 만한 곳과 여러 가지 토산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어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만 하였습 니다. 산등성이 작은 길을 따라 점점 내려오니 돌길이 중단되고 낭떠러지는 하늘에 걸려 실로 발을 디딜 곳이 없어 엎드려 서로 이끌면서 여러 가지 줄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저포[ 浦, 저동] 에 도착하였습니다. 동쪽으로 땅이 열려 터를 잡을 만하고 모시풀( 苧 草 )이 무성하여 자연적 으로 수십일 갈이의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숲 사이에서 노숙을 하였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5

56 <5월 5일> 도동에서 일본인을 만나 필담을 나누다 5일에 하나의 큰 고개를 넘어 도방청[ 道 方 廳, 도동] 포구에 도착하니 모양이 이상한 작은 배 한 척이 포구에 정박하고 있으므로 먼저 선체를 살펴보니 길이는 7척( 尺 )이고, 너비는 3척( 尺 )인데 다만 하나의 돛대만 세워놓고 배 안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안가에 왜인들 의 판막( 板 幕 )이 있었으므로 먼저 사람을 시켜 통고한 후에 막으로 들어가니 왜인 6 7명 이 문을 나서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래 통역관을 미처 평해군에 대령시키지 못해 당초 에 데리고 오지 못했으므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글을 써서 물었습니다. 지금 너희들을 보니 일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달 어느 날에 이 섬에 들어왔으며 무슨 일을 하며 막을 치고 살고 있느냐?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동해도( 東 海 道 ) 혹은 남해도( 南 海 道 ) 혹은 산양도( 山 陽 道 ) 사람으로서 2년 전부터 처음으로 벌목 공역을 시 작하여 금년 4월에 다시 여기에 와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묻기를, 만약 2년 전부터 여기 와서 벌목을 했다면, 어디에 사용하고 있으며, 일찍이 너희 조정 에서 금지하고 있는 명령을 듣지 못하였는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고용주( 役 事 者 )가 알 고 있을 것이나 우리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르며 또 일찍이 우리 조정에서 금지하는 법령 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묻기를, 작년에 수토관( 搜 討 官 )이 이 섬에 들어왔을 적에 너희 나라 사람들이 벌목하고 있다는 실정을 들은 후에 그 사유를 우리 조정에 보고하고 우리 조정에서는 곧 서계를 만들어 너 희 나라 외무성에 보냈는데 어찌 듣지 못했고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귀국의 자세한 일은 저희들이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니, 남포 규곡( 南 浦 摫 谷 )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시켜 불러 보십시오 하여 묻기를, 너희 일행에 관작( 官 爵 )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모두 관 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여 묻기를, 그렇다면 너희는 남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모두 스스로 벌목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묻기를, 남포에 있는 사람이 온 후에라야 비로소 문답할 수 있겠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사정을 모르니 남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온 후에 문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 므로 오랫동안 앉아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아 사람을 시켜 가보게 하였더니 저들의 이른 바 남포는 곧 남쪽에 있는 장작지[ 長 斫 地, 사동] 포구였습니다. 5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7 도방청에서 장작지 포구에 이르기까지 두 곳에 막을 치고 살고 있는 왜인들이 몇 사람 인지도 모르겠는데 바야흐로 사방에 흩어져 벌목하고 있었으므로 형편이 곧 불러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묻기를, 나는 왕명을 받들고 이 섬을 검찰하고 있다. 지난달 그믐날 이 섬에 들어와 산이나 물 을 두루 다니며 돌아보다가 오늘 너희를 만나 이와 같이 문답하였고 장차 이 사정을 서류 를 만들어 우리 조정에 보고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하니 그들이 말하기 를, 저희들은 삼가 그렇게 알겠습니다 하여 묻기를, 강토에는 저절로 정해진 경계가 있는데 너희가 다른 나라에 와서 마음대로 벌목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도리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다른 나라 강토가 되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러나 이 고용주( 役 事 者 )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본국에 있으니 다른 나라 의 땅인지를 거론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미 남포 규곡( 南 浦 摫 谷 )에 표목( 標 木 )이 있으니 곧 우리 일본제국의 송도( 松 島 )인 줄을 알 것입니다 하므로 다시 묻기를, 표목이 있다는 것은 지금 와서 처음 듣는 일인데 어찌 다른 나라 땅에 표목을 세우는 도리가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들은 금년에 처음 여기에 왔으므로 귀하께서 묻 는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하므로 묻기를, 너희가 처음 와서 모른다고 하면서 송도라고 칭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지도와 여지전도( 輿 地 全 圖 )에서 모두 송도라고 칭하고 있는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고용주( 役 事 者 )가 지금 본국에 있지만 그는 모두 알고 있습 니다 하므로 묻기를, 이 섬의 이름은 울릉도로서 고려는 신라에서 받았고, 우리 왕조는 고려에서 받았으므로 이는 몇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강토인데, 너희들이 너희 나라 송도라고 칭하는 것은 어떤 근거가 있느냐? 더구나 몇 백 년 이래로 우리 조정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1년 간격 으로 수토( 搜 討 )하고 있는데 너희가 우리 나라 금령을 모르고 함부로 벌목하고 있느냐? 하 니 저들이 대답하기를, 고용주( 役 事 者 )가 알고 있지, 섬에 대한 일은 저희들은 모릅니다 하 여 묻기를, 만약 과연 법의 금지를 모르고 이 범행을 하였다면 이는 용서할 길이 있으나 알면서도 고의로 범행을 하였다면 죄를 논단하여 형벌을 시행하는 일을 단연코 그만둘 수 없으니, 일을 철수하여 빨리 돌아가는 것이 옳다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삼가 그렇게 하겠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7

58 습니다 하여 묻기를, 벌목은 해서 어디에다 사용하며 돌아가는 기일은 언제쯤이겠는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 를, 어느 곳에 사용할 목재인지 저희는 모르며 돌아갈 기일은 금년 8월에 배가 온 후의 일입니다 하므로 묻기를, 너희들의 성명과 주소를 알고자 한다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남해도 예주( 豫 州 ) 송산읍( 松 山 邑 )에 사는 내전상장( 內 田 尙 長 )으로 나이는 29세, 산양도( 山 陽 道 ) 장주( 長 州 ) 선화읍( 善 和 邑 )에 사는 야촌선일( 野 村 善 一 )로 나이는 50세, 방주( 防 州 ) 궁시읍( 宮 市 邑 )에 사는 길기묘길( 吉 崎 卯 吉 )로 나이는 40세, 동해도( 東 海 道 ) 총주( 總 州 ) 팔전읍( 八 田 邑 )에 사는 길곡장 차랑( 吉 谷 庄 次 郞 )으로 나이는 26세, 그 밖에 길전대길( 吉 田 大 吉 ), 도해요장( 島 海 要 藏 ), 장사용 랑( 庄 司 勇 郞 ), 송미이이조( 松 尾 而 已 助 ) 모두 4명은 나이도 모르고 일정한 거주지도 없습니다 하므로 묻기를, 와서 머물고 있는 일꾼은 모두 몇인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두 곳에 결막( 結 膜 )의 일꾼을 합하면 78명입니다 하여 묻기를, 동해도, 남해도, 산양도는 여기서 뱃길로 얼마의 거리인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동해도는 6천리요, 남해도는 2천 5백리며, 산양도는 1천 5백리입니다(왜국의 10리는 우리 의 100리이다) 하여 묻기를, 표목을 세운 사람은 어느 도의 어떤 사람이며 무슨 근거로 다른 나라 땅에 표목을 세웠 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2년 전에 여기 와서 처음 보았는데, 명치( 明 治 ) 2년(1869) 2월 13일에 암기충조( 岩 崎 忠 照 )가 세운 것으로서 다만 우리나라 사람인 것만 알지 그 거주지와 어떤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하였습니다. 왜막( 倭 幕 )을 나서서 갯가에 내려오니 전라도 흥양 삼도의 주민 이경화( 李 敬 化 )가 인부 13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미역을 따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니 해 악( 海 嶽 )의 기괴한 형상은 절경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장작지[사동] 포구에 도착하니 흥양 초도( 草 島 )의 주민 김내언( 金 乃 彦 )이 인부 12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으며, 해가 저물어 여기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6일> 장작지에서 통구미로 가는 길에 송도라고 쓴 일본 표목을 발견하다 6일, 장작지 포구에서 통구미( 桶 邱 尾 )로 향하니, 해변의 돌길 위에 표목을 세웠는데 길이 5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9 는 6척이요 너비는 1척이며 거기에 대일본국 송도 규곡, 명치 2년 2월 13일, 암기충조( 岩 崎 忠 照 ) 세움( 大 日 本 國 松 島 摫 谷, 明 治 2 年 2 月 13 日, 岩 崎 忠 照 建 之 ) 이라고 쓰여 있어 과연 왜인 들의 문답과 같았습니다. 하나의 큰 고개를 넘으니 노목이 하늘을 찌르고 쌓인 낙엽은 무릎이 빠지고 절벽과 음 애( 陰 崖 )의 사이에 실낱같은 작은 길 하나로 통하는데 혹 있기도 하고 혹 없기도 하였으나, 중봉( 中 峰 )에 이르니까 형체도 없이 중단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라 깊은 골짜기 속으로 방황하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휴식할 땅도 없어 석벽( 石 壁 )을 더듬으며 고기 엮듯 이 서로 엉기어 나아가다가 3여리쯤 진행하여 겨우 통구미( 桶 邱 尾 )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큰 바다는 끝이 없고 기이한 바위는 중첩되어 굽어보고 쳐다보는 모든 경치에 마음이 놀라고 정신이 상쾌해짐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갯가에 흥양 초도의 주민 김내윤( 金 乃 允 ) 이 인부 22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는데, 기운이 다하고 다리가 저려 전진 할 수 없어 그대로 유숙하였습니다. <5월 7일> 곡포의 산길을 헤매다 노숙하다 7일, 서쪽으로 향하여 세 고개를 넘고 세 냇물을 건너서 점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지명은 곡포[ 谷 浦, 남양]였으며 산길이 기구하고 햇빛이 서쪽으로 빠지고 전진할 수 없어 암 혈 사이에서 노숙하였습니다. <5월 8일> 출발지 소황토구미로 돌아오다 8일, 바위 사이의 작은 길을 따라 가니,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는데, 위험하지 않는 곳 이 없었고 30리를 가서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하니 곧 당초에 배를 정박한 곳이었습니다. 석수를 시켜 섬 이름을 석벽 위에 새기게 하고 날이 이미 저물어 초막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9일> 배를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다 9일, 조그만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여 10여리를 가서 향목구미[ 香 木 邱 尾, 향목]에 이르 니 바다에 임한 가파른 석벽이 형형색색으로 기기묘묘하여 이루 말할 수 가 없었습니다. 차차로 전진하여 대황토구미[태하], 대풍구미[ 待 風 邱 尾, 대풍령], 흑작지[현포], 왜인 선창[ 倭 人 船 艙, 천부] 등을 지났는데, 포구의 산봉( 蒜 峰 )의 형상은 마늘모와 같았고, 큰 바위가 우뚝 서서 하늘을 능멸하는 모양이나 폭포가 층층으로 바다에 떨어지는 모양들은 모두가 절경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9

60 이었으며, 한 뿌리에 두 머리인 바위가 수백 길로 기립하여 있는 모양이 특이하였고, 형제 바위가 서로 돌아보며 나란히 서 있는 것이나 촉대 바위가 둥근 형체로 깎여서 튀어나온 것이나, 하늘의 솜씨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포구가 있었으니 이름은 선판구미[ 船 板 邱 尾, 선창], 남쪽으로 바다 가운데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으니 모양이 누워 있는 소와 같으며 좌우로 돌면서 서로 안을 듯한 형태 인데, 하나는 죽도[ 竹 島, 대섬]라 하고 하나는 도항[ 島 項, 관음도(깍새섬)]이라 하는데, 다만 대 나무가 무더기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대나무가 있는 바위 아래에 막을 치고 유숙하였습니다. <5월 10일> 여러 포구를 지나 소황토구미로 돌아오다 10일, 배를 타고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통구미, 흑포( 黑 浦 ), 사태구미[ 沙 汰 邱 尾, 사태구 미], 산막동[ 山 幕 洞, 산막] 등의 포구를 지나왔습니다. 바다 해가 서쪽으로 잠기고 풍랑이 갑 자기 일어,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라 소황토구미 선막( 船 幕 )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11일> 선박에 돛을 달고 육지로 향하다 11일, 산신에 기도를 드렸는데, 사공들이 동풍이 점점 일어나니 배를 띄울 수가 있다 고 하여 진시( 辰 時 :오전 8시) 쯤 되어서 3척의 선박에 모두 돛대를 달았습니다. <5월 12일> 없음 <5월 13일> 험한 파도를 헤치고 평해 구산포에 도착하다 13일 해시( 亥 時 :오후 10시)쯤에 바로 울진( 蔚 珍 )으로 향하였는데, 풍랑이 크게 일어 정박 할 수 없어 노를 저어 제어하면서 평해 구산포에 돌아와 정박하고 육지에 내렸습니다. 층 계가 진 바다와 험한 파도 속에서도 이와 같이 잘 건넌 것은 역대 임금님의 혼령이 도우신 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울릉도의 지세 섬 지형의 험난함과 산세의 일어남과 떨어짐은 그림으로 그려왔고, 토지의 비옥척박과 백성이 살만한 곳 및 섬에서 산출되는 해산물들을 일일이 구별하여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6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1 섬을 둘러싼 많은 산봉우리들은 구름 속에 솟아 깎아지른 듯이 벽처럼 서 있고 첩첩한 것은 병풍을 둘러친 것과 같았는데, 비록 해안이 있어도 배를 정박해 둘 평온한 항구는 도 무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득을 따라 몰래 들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악착스러운 백성 ( 下 民 )들이었고, 겨우 복어를 잡거나 약초를 캐거나 나무를 배어 배를 만들뿐이었습니다. 새나 짐승도 오래 살 계책을 못하는 까닭으로 대충 막을 치고 사는데, 아직 집을 지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섬의 중심지인 나리동이라는 곳은 산중에 들판이 열 려 평평한 초원이 기름져 일천(1,000) 가호는 살 수 있으나, 그 나머지는 삼백(300)여 호 ( 戶 )의 땅도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렵습니다. 지방 약 5 60리가 될 만한 땅에는 뽕나무, 산뽕나무, 모시풀, 닥나무가 심지 않아도 저 절로 생장하여 족히 한 고을의 땅이 될 만합니다. 지금은 일천 길이나 되는 나무들이 하늘 을 찌르고 해를 가릴 뿐인데, 아름다운 언덕을 오래 내버려 두고 있어 참으로 이러한 효과 를 거두고 있지만 가시나무를 베고 풀을 자르는 것은 몸소 실천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본인의 행태 왜인들이 한 모퉁이를 점거하여 막을 친 것은 오랜 시일동안 날마다 벌목하여 본국으로 보내 마치 그들의 변방인 듯하고 심지어 표목을 세운 일까지 있었으니, 그때를 맞아 안용 복이라는 자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마음대로 행하고 기탄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 臣 )이 꾸짖어 물을 즈음에 그 표정을 보니까 자칫하면 사람을 속이기는 하나 그 말에는 부끄러워함이 많았으니, 이는 반드시 그들이 스스로 범행한 것이지 남의 지시를 따라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표목을 세운 것에 대하여 짐짓 빼어버리지 않은 것 은 사실의 징빙으로 삼을 계책이었는데, 이번 검찰을 하기 전에는 헛소문만이 내려오고 오 히려 자신을 기속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검찰을 한 후에 만약 또 불문에 붙인다면 이는 교활한 왜인이 몰래 벌목하 는 것을 묵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문서를 보내 추궁해도 아마 그만두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우산도 송도( 松 島 ), 죽도( 竹 島 ), 우산도( 于 山 島 ) 등은 우리나라 백성으로 거기 사는 여러 사람들도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1

62 모두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러나 이미 근거할만한 지도도 없고, 또 향도할 표적도 없고, 청명한 날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봄에 일천리를 바라볼 수 있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습니다. 우산도를 울릉도 라 칭하는 것은 마치 탐라( 耽 羅 )를 제주도( 濟 州 道 )라고 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 臣 )이 울릉도에 도착한 후에 이미 그 높은 산마루까지 걸어 보았고 다시 배를 타고 그 산기슭도 돌아보면서 10일 동안에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온 섬의 경치가 훤히 눈앞에 있는 듯하오나 다만 문장에 서툴러서 아직도 누락된 것이 많으나 시급히 아뢰어야 할 것에 연유하여 시급히 아룁니다. 울릉도 거주자 각처의 상선( 商 船 )은 봄철에 섬에 들어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고기나 미역을 잡 고 따서 떠나고 있으며, 약초 상인들은 상선을 따라 들어왔다가 막을 치고 약초를 캐어 역 시 배를 따라 떠납니다. 거주할 만한 지역 나리동 산 위에는 들판이 열려 10리나 평평하게 뻗어 있고 토질이 비옥하여 가령 개간 을 한다면 근 일천 홋수의 백성이 생활을 영위하는 땅이 될 것입니다. 다만 물이나 샘이 땅속으로 흐르기 때문에 저수할 수 없으므로 지금 본 바로는 밭으로 적당하지 논으로는 적 당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대황토구미[태하동], 흑작지[현포], 천년포[평리 지역], 왜선창[천부], 대저포[큰모시 개:저동], 소저포[작은모시개:저동],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곡포[남양] 등지는 밭을 해도 좋고 논을 해도 좋은 옥토로서 살만한 곳입니다. 포구는 14곳이 있는데, 소황토구미[학포], 대황토구미[태하동], 대풍소[대풍령], 흑작지포[현포], 천년포[평리 지역], 왜선창[천부], 대암포 [죽암], 저전포[저동], 저포[저동],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현포[ 玄 浦, 감을계], 곡포[남양], 통 구미 등인데 뿔 같이 생긴 바위가 많고 파도가 거칩니다. 또 산기슭에는 차호( 遮 護 )하고 장 포( 藏 抱 )하는 지형이 없어서 항상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키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토산품 토산품으로서는 자단향( 紫 丹 香 ), 오동나무( 梧 桐 ), 측백나무( 柏 子 ), 동백나무( 冬 栢 ), 황백( 黃 6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3 柏 ), 뽕나무( 桑 木 ), 감나무( 柹 木 ), 후박나무( 厚 朴 ), 홰나무( 槐 木 ), 회목( 檜 木 ), 마가목( 馬 柯 木 ), 노가목( 老 柯 木 ), 박달나무( 朴 達 木 ), 닥나무( 楮 木 ), 모시풀( 苧 草 ), 산삼( 山 蔘 ), 맥문동( 麥 門 冬 ), 황 정( 黃 精 ), 전호( 前 胡 ), 현호색( 玄 胡 索 ), 위령선( 葳 靈 仙 ), 백합( 百 合 ), 당귀( 獨 活 ), 남성( 南 星 ), 속 새( 木 賊 ), 관중( 貫 衆 ), 복분자( 覆 盆 子 ), 산포도( 山 葡 萄 ), 춘배, 니실( 尼 實 ), 다래, 까마귀, 비 둘기, 매, 곽조( 霍 鳥 ), 수우( 水 牛 ), 해구( 海 狗 ), 고양이, 쥐, 지네, 미역, 전복, 해삼, 홍합 등입 니다. 섬의 둘레 둘레는 1백 4 50리이고 육지와의 거리가 멀고 가까움인 것은 물길이 워낙 험하고 풍랑 에 시달리어 몇 리가 되는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 4) <1882년 6월 5일> 이규원 검찰사가 임금께 복명하다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이 복명하여 임금님께 아뢰었다. 임금께서 이 르시기를, 서계( 書 契 )와 별단( 別 單 )은 이미 읽어 보았고 지도( 地 圖 )도 역시 보았다. 산위에 있는 나리동( 羅 里 洞 )이 넓기는 하지만 물이 없는 것이 결함이다. 그 속에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있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나리동 산위에 따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비옥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기슭에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고 작은 냇 물들이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것이 가장 큰 결함입니다.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꽉 들어서서 종일 걸어도 햇빛을 한 점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만일 고을을 설치한다면 서너개 곳 중에서도 나리동이 가능할 것 입니다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진이나 읍을 설치하자면 나리동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그 골짜기 안에 한 300호 가량 들어앉을 곳은 드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골짜기에 호 가량 들어앉을 만한 곳은 7 8개가 안 됩니다. 그런데 개척한 후 여러 골짜기에 바다를 막을 곳이 없는 것이 결함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뽕나무 산뽕나무 닥나무 모시풀은 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3

64 자라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무성한 모시풀밭은 수십 이랑이나 되었으며 뽕나무 산뽕나무 닥나무 같은 것이 사이사이 산림을 이룬 것으 로 보아 옛날 백성들이 살적에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그 곳을 개척하면 백성들이 들어가 살려 하겠는가? 라고 하니 이 규원이 아뢰기를, 뱃군과 약재 상인들에게 시험 삼아 물어보니 들어가 살고 싶어 하는 사 람이 많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들어가 약재도 캐고 배도 만들던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호남사람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전부 다 배를 만들거나 미역과 전복을 따는 일들을 하였으며 그 밖의 다른 도의 사람들은 모두 약재를 캐는 일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일본사람들이 푯말을 박아놓고 송도( 松 島 )라 한다는데 그들에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들이 세워놓은 푯말에는 송도라 했습니다. 송도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서로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화방의질( 花 房 義 質 )에게 공문을 내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일본 외무성에 편지를 보내지 않 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이 내용을 총리대신과 현임 재상들에게 이야기하여 줄 것이다.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는 단 한시라도 등한히 내버려 둘 수 없고 한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이 하명을 일일이 총리대신과 현임 대신들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설사 한치의 땅이라도 그것은 바로 조상들의 강토인데 어떻게 등한히 내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일본 사람에게 통지할 뿐만 아니라 개척하는 일도 속히 손을 쓰 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빨리 개척하자면 그저 백성들만 먼저 들 어가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여드는 것을 본 다음이라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배를 댈 항구를 우선 마련할 도리는 없던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온 섬에 둘러있는 여러 포구는 돌이 깔리지 않은 데가 없으므로 시로 손대기 쉽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6월 5일조) 6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5 5) 이규원 검찰 후 우리 정부의 조치 <1882년 6월 16일>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내도록 하다 삼군부( 三 軍 府 )에서 임금께 아뢰었다.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은 일본 사람들이 한쪽 구석에 막을 치고는 송도( 松 島 )라 칭하면서 나무 푯말을 세웠으니 공문을 띄워 힐책할 일에 대하여 교지( 敎 旨 ) 를 받아 삼군부( 三 軍 府 )로 하여금 품처( 稟 處 )케 해달라고 계청( 啓 請 )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섬에 들이닥쳐 나무 찍는 것을 그 나라에서 금지시키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직접 가보니 그전과 다름없다고 하니 부득이 저번의 글 내용을 다시 강조하여 이 폐단을 영영 막아버려야 하겠습니다. 대제학( 大 提 學 )으 로 하여금 서계를 만들어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6월 16일조) <1882년 7월 10일> 다시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내도록 하다 10일, 삼군부( 三 軍 府 )에서 임금께 아뢰기를,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 의 서계( 書 啓 )에 대해 삼군부( 三 軍 府 )로 하여금 품처( 稟 處 )케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일본인들 이 침입하여 이 섬의 나무를 찍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 나라에서 금지시켜 달라는 뜻으로 벌써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가서 목격해보니 그들이 전과 다 름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하니 종전의 내용을 다시 강조하여 이 폐단을 영원히 막아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학( 提 學 )으로 하여금 서계( 書 契 )를 만들어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7월 10일조) <1882년 8월 20일> 임금께서 울릉도 재개척을 윤허하다 홍순목이 임금께 아뢰기를, 전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복명( 復 命 )할 때에 올린 울릉도( 鬱 陵 島 )의 지도와 서계( 書 契 )는 이미 다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섬은 바다 가운데 외 로이 떨어져있는 하나의 미개척지로서, 듣자니 땅이 비옥하다고 합니다. 우선 백성을 모집 해 밭을 일구고 5년 후에 가서 조세를 물리면 스스로 점차 취락( 聚 落 )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남( 嶺 南 )과 호남( 湖 南 )의 조운선( 漕 運 船 )들이 여기에 가서 재목을 베서 배를 만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5

66 들도록 허락한다면 사람들이 번성하게 모여들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 가히 해볼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관할하는 사람이 없으면 잡다한 폐단을 막기 어려울 것이니 성실하 고 일에 능한 사람을 검찰사( 檢 察 使 )에게 문의하여 우선 섬의 장관으로 임명해 보내어, 규 율과 질서를 세우고 그 제도를 새로 만들도록 하여 다른 날 진( 鎭 )을 설치할 뜻을 미리 강 론해서 감사( 監 司 )에게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8월 20일조) 6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7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 소장) 1. 머리말 평소 독도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활동해 오신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뵙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독도문제는 독도영유권 자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독립국 대한민국의 정체성 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과거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에 앞서 이 땅을 제일 먼저 침략해 왔고 이곳을 전진기지로 이용, 러일전쟁을 승 리로 이끄는데 획을 그은 곳입니다. 저는 이러한 견지에서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 라는 단행본을 발간하여 2천여 부를 관심 있는 단체나 개인들에게 배포하여 독도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독도와 울릉도가 모자( 母 子 )관계임에 역점을 두어 왔습니다. 이 모자관계론 ( 母 子 關 係 論 ) 속에 비중( 比 重 )있게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 이규원( 李 奎 遠 ) 검찰사( 檢 察 使 )의 울릉도 검찰일기( 鬱 陵 島 檢 察 日 記 ) 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도서( 島 嶼 )의 모자관계는 역사적 인문지리적 제반사항에 대한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겠으 나 독도문제는 무엇보다 모도( 母 島 )내지 속도론( 屬 島 論 )과 관련한 탄탄한 경략사( 經 略 事 )를 사적( 史 的 )으로 정립( 定 立 )하는 것이 선결문제( 先 決 問 題 )라고 봅니다. 요컨대 발표요지는 이규원( 李 奎 遠 ) 검찰사( 檢 察 使 )의 검찰일기( 檢 察 日 記 )를 바탕으로 독도 ( 獨 島 )와 울릉도( 鬱 陵 島 )의 모자관계( 母 子 關 係 )와 동해( 東 海 )라는 민족전래( 民 族 傳 來 )의 영해 ( 領 海 )가 유루( 遺 漏 )없이 지켜 나가야만 한다는 일념( 一 念 )하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7

68 2. 조선시대의 해방정책과 수토제에 따른 울릉도 조선조 초기에는 변경관리정책( 邊 境 管 理 政 策 )이 남( 南 )으로 대마도 정벌( 征 伐 )과 북( 北 )으 로 사군육진정책( 四 君 六 鎭 政 策 ) 등으로 역동적( 力 動 的 )인 정책을 펴왔으나 중기에는 임진왜 란을 겪으면서 점차로 변경( 邊 境 ) 및 해방정책( 海 防 政 策 )을 미온적( 微 溫 的 )으로 대처하는 가 운데 도서관리정책( 島 嶼 管 理 政 策 )은 자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울릉도에 왜구들이 출몰하면서 노략질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조정 ( 朝 廷 )에서는 수토제( 搜 討 制 )를 실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토제 실시와 울릉도 개척시대 를 맞이하기까지의 조선조 왕대별( 王 代 別 ) 사안( 事 案 )을 개괄( 槪 括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월 26일 요도( 蓼 島 ) 탐방실시( 探 訪 實 施 ) 世 宗 13년(1438) 4월 2일 4월 5일 함길도( 咸 吉 道 ) 감사( 監 司 )에 요도( 蓼 島 )의 도세( 島 勢 )를 조사( 調 査 ) 해 품계( 稟 啓 )하라 명( 命 )함. 전농사( 典 農 寺 ) 신인손( 辛 引 孫 )을 함길도( 咸 吉 道 )에 보내 요도를 탐 방( 探 訪 )케 하다. 世 宗 20년(1446) 7월 26일 강원도 감사에 명해 양양( 襄 陽 ) 동쪽 요도를 찾지 못한다 하니 경 ( 卿 )이 다시 탐문 보고하라 명하다. 世 宗 27년(1452) 6월 12일 삼봉도로의 도주자( 逃 走 者 )를 수문( 搜 問 ), 보고( 報 告 )하라 하다. 2월 3일 봄에 사람을 파견( 派 遣 )하고자 하는데 따른 사안( 事 案 )을 적어 올 리다. 3월 20일 삼봉도( 三 峰 島 ) 경차관( 敬 差 官 ) 박종원( 朴 宗 元 )이 출발할 때 왜( 倭 ) 와 여진통사( 女 眞 通 詞 ) 각 1명을 대동( 帶 同 ) 차송( 差 送 )케 하다. 成 宗 3년(1771) 成 宗 4년(1472) 4월 1일 6월 12일 8월 11일 1월 9일 박종원( 朴 宗 元 )에게 삼봉도는 우리 영토로, 도피( 逃 避 ) 잠입( 潛 入 ) 한 위령자( 違 令 者 )들은 군법( 軍 法 )으로 시행( 施 行 )하라 하다. 삼봉도 경차관( 敬 差 官 ) 박종원이 풍랑( 風 浪 )으로 항해( 航 海 )가 난 ( 難 )함을 이극돈( 李 克 墩 )이 아룀에, 경( 卿 )의 판단( 判 斷 )대로 하라 하다. 김한경( 金 漢 京 )을 앞세워 삼봉도를 수토케 하다. 김한경이 말하되 청명( 淸 明 )한 날 경흥( 慶 興 )에서 삼봉도를 볼 수 있다. (계속) 6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9 成 宗 7년(1475) 成 宗 8년(1476) 成 宗 10년(1478) 2월 8일 6월 10월 12일 3월 4일 5월 7월 13일 8월 9월 영안도( 永 安 道 ) 관찰사( 觀 察 使 ) 이극돈( 李 克 墩 )이 도민( 道 民 ) 가운 데 삼봉도( 三 峰 島 )를 찾아가 멀리서 보았고 상륙( 上 陸 )하지 못했다 고 보고함. 김한경( 金 漢 京 )과 건실( 健 實 )한 인사( 人 士 ) 3인을 대동( 帶 同 ), 재차 ( 再 次 ) 수색( 搜 索 )토록 하라 하다. 영흥인( 永 興 人 ) 김자주( 金 自 周 )가 도형( 島 形 )을 그려왔으나 상륙( 上 陸 )하지 못했다고 관찰사( 觀 察 使 ) 이극돈( 李 克 墩 )이 보고( 報 告 ). 좌랑( 佐 郞 ) 이창신( 李 昌 臣 )이 삼봉도( 三 峰 島 ) 포기( 抛 棄 )를 건의( 建 議 )함에 대해 촌토( 寸 土 )의 땅도 버릴 수 없다 하다. 영안도( 永 安 道 ) 관찰사( 觀 察 使 )가 조정론의( 朝 廷 論 議 )를 거쳐 쇄환 시행( 刷 還 施 行 )을 건의( 建 議 ). 상( 上 )께서 동해( 東 海 )에 섬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고 앞으로 섬 에 들어갈 때 병기지참( 兵 器 持 參 )을 허락( 許 諾 )하다. 조정론의( 朝 廷 論 議 )가 분분( 紛 紛 )한 가운데 적극적( 積 極 的 )인 수토 조치( 搜 討 措 置 )를 취( 取 )하도록 함. 론의( 論 議 ) 이후( 以 後 ) 10월 27일 수토( 搜 討 )를 위해 발선( 發 船 )하다. 10월 28일 조위( 曺 偉 )가 마상선( 麻 商 船 )을 모아 출항케 했으나 역풍( 逆 風 )으 로 되돌아옴에 30일에 재출항( 再 出 航 )시키다. 12월 판서( 判 書 ) 이극돈( 李 克 墩 )이 명춘( 明 春 )에 조선( 造 船 )하여 출범( 出 帆 )에 대해 논의( 論 議 )할 것을 상( 上 )께 건의( 建 議 )함. 2월 12일 병조( 兵 曹 )에서 군관( 軍 官 ) 10명 선원( 船 員 ) 30인을 승선( 乘 船 )시 키겠다 하니 왕( 王 )이 윤허( 允 許 )하다. 成 宗 11년(1479) 2월 20일 3월 11일 3월 17일 상호군( 上 護 軍 ) 정석희( 鄭 錫 禧 )가 초무사( 招 撫 使 )로 갈 때 보고 들 은 바를 기록( 記 錄 )하기 위해 문신( 文 臣 ) 1인을 동행( 同 行 )케 해달 라고 청( 請 )하다. 김소( 金 訴 )가 수로( 水 路 )에 익숙한 자 2 3인을 먼저 보낸 후 초무 사( 招 撫 使 )를 보내자고 건의( 建 議 )하였으나 상( 上 )은 불윤( 不 允 )하다. 삼봉도( 三 峰 島 ) 초무사( 招 撫 使 ) 심안인( 沈 安 仁 )에 교서( 敎 書 )를 주 어 도민( 島 民 )이 많을시는 수장( 首 長 )만 데려오고, 여타( 餘 他 )는 출 륙( 出 陸 )하지 않으면 토벌( 討 伐 )하겠다고 하라 하다. 成 宗 12년(1480) 1월 8일 삼봉도( 三 峰 島 )에 대한 대책( 對 策 )을 올리니 왕( 王 )이 윤허( 允 許 )하다. 肅 宗 20년(1694) 9월 19일 삼척첨사( 三 陟 僉 使 ) 장한상( 張 漢 相 ) 9월 20일 10월 3일까지 13일 동안 울릉도( 鬱 陵 島 ) 심찰( 審 察 )후 [울릉도사적( 鬱 陵 島 事 蹟 )]을 남 겼는데 여기에 독도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함. (계속)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9

70 肅 宗 23년(1697) 肅 宗 25년(1699) 肅 宗 28년(1702) 英 祖 4년(1728) 英 祖 45년(1769) 4월 6월 4일 5월 6월 9일 수토제( 搜 討 制 ) 시기( 時 期 )를 2년 걸러 - 간이년( 間 二 年 )-3년에 1번씩으로 결정( 決 定 ).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 전회일( 田 會 一 )이 17일간 수토( 搜 討 ) 후( 後 ) 울 릉도도( 鬱 陵 島 圖 )와 토산물( 土 産 物 )을 가져오다.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 이준명( 李 浚 明 )이 수토차( 搜 討 次 ) 울릉도( 鬱 陵 島 )에 다녀옴. 죄인( 罪 人 ) 황부( 黃 溥 )를 추문( 推 問 ). 섬을 얻으려면 30인 정도의 인 원에 4년간의 부역을 면제 판조선을 건조해 타고 가야 한다 하다.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이 울릉도( 鬱 陵 島 ) 인삼( 人 蔘 ) 밀채혐의( 密 採 嫌 疑 )로 처벌( 處 罰 )됨. 正 祖 18년(1794) 4월 21일 한창국( 韓 昌 國 )이 울릉도( 鬱 陵 島 )를 수토후( 搜 討 後 ) 가지도( 可 支 島 ) 에서 가지( 可 支 ) 포획( 捕 獲 ). 5월8일 귀환( 歸 還 ). 正 祖 19년(1795) 음력( 陰 曆 ) 3 4월에 실시( 實 施 )하던 수토시기( 搜 討 時 期 )를 6 7월 로 조정( 調 整 )함. 위와 같이 수백 년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조정의 관심은 끊이지 않은 가운데 수 토정책은 지속되었다. 수토를 통해 숙종년간( 肅 宗 年 間 )에 강원도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 장한상 ( 張 漢 相 )의 울릉도 피토사( 被 討 事 )에 관한 기록을 비롯해, 정조 18년(1794년)에는 강원도 관 찰사( 觀 察 使 ) 심보람( 沈 普 覽 )의 명에 의해 수토관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 한창국( 韓 昌 國 )이 울릉 도를 수토한 첩정( 牒 呈 )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왜인( 倭 人 )의 불법적인 울릉도상륙이 확인된 것은 고종 18년(1881년) 초이다. 당시 울릉도에 와서 무단벌목 하던 일본인 7명이 수토관원에 적발되었다. 이에 강원도 관찰사 박한수( 朴 翰 洙 )는 즉시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에 왕명에 의해 이규원 검 찰사의 울릉도검찰 보고가 있게 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획기적인 울릉도관리정책 을 수립하게 되였다. 이러한 이규원의 검찰일기는 울릉도개척은 물론 과거의 해방정책( 海 防 政 策 )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한 매우 의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규원의 울릉도 개척건의로 울릉도는 행정적으로나 주민생활상 새로운 전기 를 맞게 됨과 동시에 왜구들의 침탈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고 동시에 내륙의 영토와 동일 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7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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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é¹üȸº¸ 24È£ Ãâ·Â 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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